2013년도 문화재위원회(근대문화재분과) 제4차 회의록 일 시 : 2013. 8. 13(화) 14:00 16:10 장 소 : 국립고궁박물관 회의실 출석위원 : 김영식(위원장), 김성우, 김용수, 김정신 박문열, 백영흠, 오진경, 윤경로, 한태식 (이상 10명) 심의내용 및 의결사항 : 이하 자료와 같음 문 화 재 위 원 회
목 차 심의사항 1 근대문화유산 의생활 유물(1차) 문화재 등록 공개 2 근현대문화유산 산업기술 유물 문화재 등록 공개 3 김붕준 일가 유물 등 3건 문화재 등록 공개 4 윤웅렬 일가 유물 등 2건 문화재 등록 공개 5 인천 구 대화조( 大 和 組 ) 사무소 문화재 등록 공개 6 사적 제248호 구 서울역사 일반휴게음식점 설치 현상변경 공개 검토사항 7 서울 행촌동 딜쿠샤(Dilkusha) 문화재 등록 공개 8 대구 구 교남 YMCA 회관 문화재 등록 공개 9 예천 윤우식 생가 문화재 등록 공개 10 거창 구 자생의원 문화재 등록 공개 11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 성당 문화재 등록 공개 12 등록문화재 명칭 변경(안) 공개 보고사항 13 사적 제281호 서울 중앙고등학교 본관 주변 현상변경 허가사항 변경허가 보고 공개 - 2 -
심 의 사 항 - 3 -
심의사항 안건번호 근대 2013-04-001 가. 제안사항 1. 근대문화유산 의생활 유물(1차) 문화재 등록 근대문화유산 의생활분야 유물 중 문화적 사회적 학술적 가치가 있는 유물의 문화재 등록 여부를 부의하오니 심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 제안사유 ᄋ 근대문화유산 의생활분야 목록화 조사 연구용역 (2012년) 결과를 바탕으로 관계전문가 자문회의 및 등록조사, 검토회의를 통해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 유물 10건에 대하여 등록예고 기간( 13.6.21 7.20)을 거쳐 문화재 등록 여부를 심의하기 위함 다. 주요내용 (1) 신 청 인 : 문화재청장 (2) 대상문화재 : 이도재 예복 등 10건 번호 유물명 착용자 수량 및 규격 제작년대 소장자 (보관처) 1 이도재 예복 1식, 상의 74.5cm, 하의 이도재 1897 1907년경 103cm, 예모 61cm 육군박물관 2 민철훈 대례복 일습 1식, 길이 86.3cm, 민철훈 가슴둘레/2 37.8cm 1901년 박영숙 (한국자수박물관) 3 민철훈 모닝코트 민철훈 1식, 길이 91cm, 조끼 55cm, 하의 101.5cm 1900년대 박영숙 (한국자수박물관 4 박기준 대례복 일습 1식, 길이 103.2cm, 박영숙 박기준 1096 1910년 가슴둘레/2 36.5cm (한국자수박물관) 5 김선희 혼례복 1식, 원삼 113cm, 치마 김선희 120.5cm 1935년 김은영 6 이해상 내외 상복 이해상 2식, 다양 1970년 경운박물관 7 백선엽 군복 백선엽 5점, 다양 1958년 전쟁기념관 8 판사 법복 1점, 길이 110cm, 화장 김홍섭 85cm 1953년 9 검사 법복 민복기 1점, 길이 110cm, 화장 85cm 1956년 10 일제강점기 변호사 변호사 법복 1점, 길이 110cm, 화장 김홍섭 73cm 1941년 법복 1953년형 변호사 법복 민복기 1점, 길이 110cm 1956년 대법원 법원도서관 대법원 법원도서관 대법원 법원도서관 비 고 - 4 -
(3) 추진경과 ᄋ 12. 2. 6~10. 5 근현대문화유산 의생활분야 목록화 조사 용역(서울여대 산학협력단, 책임연구원 교수) -의생활분야 유물 225건 목록화 및 등록 기준(안) 제시 ᄋ 13. 1월중 의생활분야 등록검토 대상 선정 자문(서면검토) -자문위원 : 문화재위원, 가천대학교 교수, 한국전통문화 대학교 교수, 문화재전문위원 - 자문결과 : 이도재 부장 예복 등 26건 등록 조사 대상 유물 선정 및 기 준(안) 마련, 연세대학교 박물관 소장 유물은 윤웅렬 일가 유물을 일괄 검토 ᄋ 13. 3. 20~4. 22 의생활분야 등록조사(9개소 13건) - 조 사 자 : 문화재전문위원(복식사), 문화재전문위원(복식사), 이화여대 교수(복식사), 한경대 교수(복식사) -조사장소 : 육군박물관, 연세대학교 박물관 등 9개소 ᄋ 13. 5. 31 의생활분야 등록 검토회의 -참 석 자 :, 문화재위원, 문화재위원, 문화재전 문위원 -회의결과 : 문화재 등록대상 및 등록기준(안) 검토, 이도재 예복 등 10건 등록 검토 대상 선정 ᄋ 13. 6. 11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 검토 -의생활 유물 10건 문화재 등록 예고키로 함. 판사, 검사, 변호사 법복 에 대한 보존관리 방안을 확보할 것 (4) 문화재 등록예고 ᄋ 기 간 : 13. 6. 21 7. 20(30일간) ᄋ 예고결과 -내 용 : 친일반민족행위자 물품에 대한 문화재 등록 반대의견 제출 -제출자 : 민주당 국회의원 김광진 등 12명 - 대 상 : 백선엽 군복(5점), 민철훈 대례복 일습, 모닝코트, 윤웅렬 일가 유물 (69점) 등 4건 (5) 심의사항 : 문화재 등록 심의 라. 검토의견 < 관계전문가 현지조사( 13.3.20 4.22)> 번호 유물명 조사자 의견 검토회의 1 이도재 예복 미조사 2 민철훈 대례복 일습 미조사 3 민철훈 모닝코트 미조사 4 박기준 대례복 일습 미조사 5 김선희 혼례복 미조사 비 고 - 5 -
번호 유물명 조사자 의견 검토회의 6 이해상 내외 상복 미조사 7 백선엽 군복 미조사 8 판사 법복 미조사 9 검사 법복 미조사 10 변호사 일제강점기 변호사 법복 법복 1953년형 변호사 법복 미조사 비 고 < 근대문화재과 의견> ᄋ 예고기간 중 문화재 등록에 대한 국회 등의 반대 의견이 있으므로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됨. 또한 등록문화재의 명칭 부여 지침 (예규 122호, 2013.07.04)에 따라 등록문화재 명칭에 대한 검토가 필요함 마. 의결사항 : 조건부 가결 ᄋ 문화재 등록 -이도재 예복, 박기준 대례복 일습, 김선희 혼례복, 이해상 내외 상복, 판사 법복, 변호사 법복(일제 강점기 변호사 법복) ᄋ 문화재 등록 보류 -민철훈 대례복 일습, 민철훈 모닝코트, 백선엽 군복, 검사 법복, 변호사 법복 (1953년형 변호사 법복) - 사 유 : 의복사적 가치는 인정되나, 착용자의 친일행위와 관련하여 국민의 정서에 부합되지 못한다는 의견이 있어 추후 심도있는 검토 후 등록 여부를 결정하기로 함 ᄋ 출석 10명, 찬성 10명 붙임 1. 근대의생활 유물(1차) 문화재 등록조사 보고서 2. 친일반민족 행위자 물품에 대한 문화재 등록 반대의견서(민주당 김광진 국회위원 등 12명) 3. 문화재청의 친일파 미화에 반대하는 독립운동단체 및 민족운동진영의 입장 (성명서) 4. 판사, 검사, 변호사 법복 의 문화재 보존관리 방안(법원도서관 의견) - 6 -
< 붙임 1> 근대의생활 유물(1차) 문화재 등록조사 보고서 1. 목 적 ᄋ 우리나라 의생활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근대의생활분야 유물 중 문화적 사회적 학술적 가치가 큰 것을 문화재로 등록 보존하고자 함 ᄋ 의생활 유물 검토대상 중 문무관복 및 제복류, 혼례복, 상장례복 등에 대하여 1차로 등록 추진함 2. 추진경과 ᄋ 12. 2. 6~10. 5 근현대문화유산 의생활분야 목록화 조사 연구(서울여대산학협력단, 책임연구원 교수) -의생활분야 유물 225건 목록화 및 등록 기준(안) 제시 ᄋ 13. 1월중 의생활분야 등록검토 대상 선정 자문(서면검토) - 자문위원 : 문화재위원, 가천대학교 교수, 한국전통문화대 학교 교수, 문화재전문위원 - 자문결과 : 이도재 부장 예복 등 26건 등록 조사 대상 유물 선정 및 기준(안) 마련, 연세대학교 박물관 소장 유물은 윤웅렬 일가 유물을 일괄 검토 ᄋ 13. 3. 20~4. 22 의생활분야 등록조4사(9개소 13건) -조 사 자 : 문화재전문위원(복식사), 문화재전문위원(복식사), 이화여대 교수(복식사), 한경대 교수(복식사) -조사장소 : 육군박물관, 연세대학교 박물관 등 9개소 ᄋ 13. 5. 31 의생활분야 등록 검토회의 -참 석 자 :, 문화재위원, 문화재위원, 문화재전문위원 -회의결과 : 문화재 등록대상 및 등록기준(안) 검토, 이도재 예복 등 10건 등록 검토 대상 선정, 박찬주 결혼예복과 트레인은 관련자료 정밀조사 후 재검토, 판사 법 복은 1953년형 판사 법복만을 대상으로 할 것, 동덕여자고등학교 교복은 등록가치 미흡 ᄋ 13. 6. 11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 검토 -의생활 유물 10건 문화재 등록 예고키로 함 ᄋ 문화재 등록 예고 -기 간 : 13. 6. 21 7. 20(30일간) -예고결과 내 용 : 친일반민족행위자 물품에 대한 문화재 등록 반대의견 제출 제출자 : 민주당 국회의원 김광진 등 12명 대 상 : 백선엽 군복(5점), 민철훈 대례복 일습, 모닝코트, 윤웅렬 일가 유물(69점) 등 4건 3. 조사개요 가. 조사일자 : 13.3.20~4.22(4일간) 나. 조 사 자 ᄋ 문화재전문위원(복식사) - 7 -
ᄋ 문화재전문위원(복식사) ᄋ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복식사) ᄋ 한경대학교 교수(복식사) 다. 조사내용 : 의생활 유물 실사 및 문화재적 가치 검토, 관계자 인터뷰 등 번 호 유물명 착용자 수량 및 규격 제작년대 소장자 (보관처) 비 고 1 이도재 예복 1식, 상의 74.5cm, 하의 이도재 103cm, 예모 61cm 1897 1907년경 육군박물관 1식, 길이 86.3cm, 박영숙 2 민철훈 대례복 일습 민철훈 1901년 가슴둘레/2 37.8cm (한국자수박물관) 3 민철훈 모닝코트 1식, 길이 91cm, 조끼 민철훈 55cm, 하의 101.5cm 1900년대 박영숙 (한국자수박물관 4 박기준 대례복 일습 박기준 1식, 길이 103.2cm, 가슴둘레/2 36.5cm 1096 1910년 박영숙 (한국자수박물관) 5 김선희 혼례복 1식, 원삼 113cm, 치 김선희 마 120.5cm 1935년 김은영 6 이해상 내외 상복 이해상 2식, 다양 1970년 경운박물관 7 백선엽 군복 백선엽 5점, 다양 1958 1962년 전쟁기념관 1956년 8 판사 법복 김홍섭 1점, 길이 110cm, 화 장 85cm 9 검사 법복 1점, 길이 110cm, 화 민복기 장 85cm 10 일제강점기 1점, 길이 110cm, 화 변호사 변호사 법복 김홍섭 장 73cm 법복 1953년형 민복기 1점, 길이 110cm 변호사 법복 1953년 1956년 1941년 대법원 법원도서관 대법원 법원도서관 대법원 법원도서관 4. 등록기준(안) ᄋ 문화적 사회적 학술적 가치와 더불어 복식사적, 그리고 문화재적 가치가 우수한 유물 ᄋ 근 현대 의생활 분야와 관련하여 전환을 나타내는 독특한 가치를 지닌 유물 ᄋ 유물의 제작과 착용 및 사용 이력이 뚜렷하고 용도가 구체적인 것 ᄋ 사용된 옷감이 직물사적 가치를 지닌 유물 ᄋ 동종의 유물이 있을 경우에는 시기적으로 앞서며,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착용자가 확실한 것 5. 조사자 의견(요약) 조사자 의견 번호 유물명 1 이도재 예복 미조사 2 민철훈 대례복 일습 미조사 3 민철훈 모닝코트 미조사 비고 - 8 -
조사자 의견 번호 유물명 4 박기준 대례복 일습 미조사 5 김선희 혼례복 미조사 6 이해상 내외 상복 미조사 7 백선엽 군복 미조사 비고 8 판사 법복 미조사 9 검사 법복 미조사 10 변호사 법복 일제강점기 변호사 법복 1953년형 변호사 법복 미조사 가. 이도재 예복 ᄋ 대한제국기 고위 관료의 중요한 복식자료임( ) ᄋ 대한제국 시대 예복이라는 상징적인 가치 외에도 유물의 형태와 색상, 디자인, 보존상태 등에서도 우수한 유물임( ) ᄋ 대한제국 시기의 유물이 양적으로 적으며, 특히 부장예복으로는 유일한 유물임 ( ) 나. 민철훈 대례복 일습 ᄋ 국가상징 문양에 현재의 국화( 國 花 )인 무궁화가 최초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복식사 적으로 의미가 있음( ) ᄋ 문관대례복 제식에 따른 칙임관 1등 대례복으로 유일한 것으로 착용자와 제작지와 제작일시 등이 남아 있는 귀중한 자료임( ) ᄋ 1901년 파리에서 제작된 대한제국 문관대례복 유물로. 칙령문서를 포함하여 근 현대 의생활자료로 일괄 등록해야 할 가치가 충분함( ) 다. 민철훈 모닝코트 ᄋ 착용자와 착용시기가 분명하고, 일제강점기 서구식 예복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음 ( ) ᄋ 대한제국시대 외교관이었던 민철훈의 모닝코트로, 대한제국 시대 이후 일제 강점기 때 착용되었던 것으로 전형적인 모닝코트의 구성을 갖추고 있음( ) ᄋ 대한제국시기의 유물이 적은 현 상황에서 착용자의 신분이 확실하고 유물의 상 태도 좋음( ) 라. 박기준 대례복 일습 ᄋ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 서구식 대례복의 제작국에 따른 특징 및 보관방식까지 살펴볼 수 있음( ) ᄋ 대한제국 궁내부 및 예식원 대례복의 도식이 발견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유물임( ) ᄋ 박기준이 착용했던 예복으로 일습을 갖추고 있고 대한제국시기 우리나라 서구식 예복의 면모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임( ) - 9 -
마. 김선희 혼례복 ᄋ 근현대 직물과 의례복의 특징을 살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됨( ) ᄋ 보존상태가 좋으며, 근대시인으로 유명한 김광균의 혼례(1935) 때 부인인 김선희가 착용했던 것으로 직물과 복식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임( ) ᄋ 착용자가 확실하고 혼례사진도 남아 있어 등록문화재 자료로서 가치가 있음( ) 바. 이해상 내외 상복 ᄋ 1968년 이후 상복과 장례과정이 간소화되었고, 탈상한 후에 상복은 태우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전통 상복 유물은 찾아보기 어려움( ) ᄋ 대한제국시대 왕실종친인 이해상부부가 영왕 초상 때 착용하였던 상복( 喪 服 ) 일습 으로. 전통 상복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임( ) ᄋ 착용일과 착용자가 명확한 남녀 상복 일습이라는 측면에서 문화재로 등록하여 보존할 가치가 있음( ) 사. 백선엽 군복 ᄋ 계절에 따른 예복의 형태와 착용 목적에 따른 형태 비교 등 군사복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임( ) ᄋ 대한민국 국군의 산증인으로 대한민국 장군복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로, 근무 복에서부터 예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군복이 갖추져 있음( ) ᄋ 대한민국의 육군복식 그중에서도 장군의 각종 유형의 복식을 볼수 있는 귀중한 자료임( ) 아. 판사 법복 ᄋ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따라 제정된 판사법복으로 착용자가 확실하며, 판사 법복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임(,, ) 자. 검사 법복 ᄋ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따라 제정된 판사법복으로 착용자가 확실하며, 검사 법복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임(,, ) 차. 변호사 법복 ᄋ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따라 제정된 판사법복으로 착용자가 확실하며, 변호사 법복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임(,, ) 6. 유물별 주요특징 및 가치 가. 이도재 예복 1) 명 칭 : 이도재 예복 2) 소 유 자 : 육군박물관 3)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노원구 화랑로 574 4) 수 량 : 1식(상의, 하의, 예모) 5) 규 격 ᄋ 상의 : 길이 74.5cm, 소매길이 55.8cm ᄋ 하의 : 103cm ᄋ 예모 : 전체둘레 61cm - 10 -
6) 착 용 자 : 이도재( 李 道 宰, 1848 1909) 7) 재 질 : 모직 8) 조성연대 : 1897 1907년경 9) 조사자 의견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이 유물은 군부대신과 학부대신을 지낸 이도재( 李 道 宰 :1848~1909)의 것으로, 대 한제국 군대에서 정2품급에 해당하는 부장( 副 將 )의 복식이다. 대한제국 시대의 예 복이라는 복식사적 가치 외에 어깨의 금색 장관용( 將 官 用 ) 견장( 肩 章 ), 예도( 禮 幍 ), 입전모( 立 前 毛 ), 식서( 飾 緖 ), 식대( 飾 帶 ), 바지( 袴 ) 등이 모두 완벽한 형태로 갖춰져 있다. 대한제국기 고위 관료의 중요한 복식 자료로 평가되므로 근대의생 활분야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현 상 -모자의 형태는 유지되고 있지만, 금속사는 퇴색하여 빛을 잃음 -상의의 견장 금속 장식사 분리되어 있음 -바지 옆 장식선과 바지 일부 좀으로 인해 헤어짐 ᄋ 내용 및 특징 -이 옷은 이도재( 李 道 宰 :1848~1909)가 착용했던 것이다. 이도재는 한말의 문신으 로 1894년 군부대신을 거쳐 학부대신이 되었으나, 단발령을 반대하여 사직했다. 1898년 지석영에게 한성의학교 설치를 인가하여 한국 최초의 서양의학기관의 설립을 지원한 인물이다. 1902년 12월 육군부장( 陸 軍 副 將 )으로 철도원총재가 되 었다. 1903년 초 외부대신 평안북도 관찰사 1904년 충청남도 관찰사를 거쳐 내 부대신 표훈원의정관을 역임하고 다시 농상공부대신에 임명되었으며, 1905년 다시 내부대신에 발령되었다. 경상북도 평안남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충청남 도 전라남도 관찰사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906년 8월 그 동안의 공적으로 태 극장( 太 極 章 )을 서훈받고, 그 뒤 장례원경 시종원경에 임명되었으나, 1907년 7 월 총리대신 이완용의 모함으로 나문정죄( 拿 問 定 罪 )당하였다. - 이 옷은 1897년 5월 15일에 발표된 육군복장규칙(관보 제 639호)에 따른 정장 - 11 -
( 正 裝 ) 대예장( 大 禮 裝 )차림에 따른 것이다. 관보에 의하면 이 옷은 1900년 이후 의 것으로 이도재가 부장에 임명받은 1902년의 옷이다. 1897년 정장은 성절전하 와 문안시 등 가장 큰 행사 때 착용하였다. 옷의 구성은 모( 帽 ) 입전모( 立 前 毛 ) 대예의( 大 禮 衣 ) 고( 袴 ) 대견장( 大 肩 章 ) 식대( 飾 帶 ) 도구서( 刀 具 緖 ) 도 대( 刀 帶 ) 백혁수투( 白 革 手 套 :백색 가죽장갑) 백포하금( 白 布 下 襟 :깃 안쪽에 붙 이는 흰색 포) 화( 靴 ) 등으로 구성되었다. - 예모( 禮 帽 )는 1897년 육군복장제식의 개정에 따라 프랑스군의 장교모인 케피 (Kepi)모 형태였다. 모자의 구성은 정개( 頂 蓋 )와 상반부, 하반부로 구성되었다. 부수물로 상부 정개의 이화장, 차양인 전비, 모표인 표장(표장) 등이 부착되었 다. 상반부에는 관등을 표시하는 종선, 하반부에는 계급을 표시하는 횡선을 금 사양고직( 金 絲 兩 股 織 )으로 부착하였다. 1897년에 개정된 예모의 규칙에 따라 흑 색융질에 정개( 頂 蓋 )는 이화형 붉은색 융질 위에 금사로 이화를 수놓았다. 정개 와 하반부 사이는 전 후 좌 우측 4곳에 관등을 표시하는 수금선양고직:종선 을 띠었는데 장관은 3줄이었다. 이 모자에는 3줄 장식이 있다. 상반부와 연결되 어 머리가 들어가는 몸통부위인 하반부에는 계급을 표시하는 횡금선양고직을 계급에 따라 부착하였는데, 이 모자에는 8줄 장식을 하여 부장의 신분을 표시하 였다. 표장( 表 章 )은 모표로 1897년 5월 이후 타원형의 흑색융질 바탕을 횡으로 하여 정중앙에는 은색 선과 금색 꽃술을 수식한 자두꽃을 수놓아 장식하고, 그 좌 우에 금색 잎과 은색 꽃송이를 수놓은 무궁화가지를 교차시킨 수 장식을 했고, 부분적으로 무궁화 나뭇잎을 중심으로 소형 무궁화꽃을 수놓은 형태였다. 모자에는 턱끈이 달려있었다. 턱끈은 금사로 둥글게 짠 것을 두줄로 나란이 하 여 늘리거나 줄일 수 있게 하고, 양 쪽 끝은 모자의 차양 양쪽 끝에서, 도금한 무궁화무늬 단추를 주물로 만들어 붙어 고정하였다. 차양은 반달모양이었고 흑 색 가죽으로 만들었다. -입전모( 立 前 毛 )는 모자 앞에 꽂는 상모이다. 1900년 3월 23일에 새롭게 규제되어 금속철선에 백색 깃털을 중복 연결한 형태로서 모자의 모표 위 부위에 삽입 착 용하였다. 모자의 크기는 전체 둘레 61cm, 앞높이 8.3cm, 뒤높이 10.8cm이다. 5cm 높이의 금색 띠를 둘렀고, 앞 중심에 이화무늬가 자수되어 있는 장식을 붙 였다. 그 위에 깃털이 달려있다. 모자의 챙은 너비 4.2cm, 둘레 24.5cm이다. - 1900년도 이후 예의( 禮 衣 )의 깃에는 정도기자형의 금사로 수놓은 띠를 붙이고 금사로 별을 수놓아 달았다. 장관급은 3개로 이도재의 예의에는 금사로 3개의 별이 수놓여 있다. -소매부리 상단에는 八 자형의 홍색융록( 紅 色 絨 綠 )을 붙이고, 그 위쪽에 황금색 띠 를 계급에 따라 참의에서 대장까지 1줄에서 9줄까지 붙인다. 이 유물은 황금색 띠가 8줄이 있으며, 도금한 이화무늬가 양각된 단추 3개를 계급의 구분없이 소 매부리 쪽으로 1줄로 나란히 달았다. -바지에도 융으로 만든 장식선[ 縫 章 色 : 측면 띠]을 붙였는데, 장관 및 보병은 홍 색이었다. 이도재의 바지에는 홍색 띠가 붙어있다. ᄋ 문헌자료 -국방군사연구소(1997), 韓 國 의 軍 服 飾 發 達 史 Ⅰ -육군박물관(2012), 육군박물관 소장 군사복식 ᄋ 기 타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 설립자인 석주선선생의 기증품이다. ᄋ 등록가치 및 근거기준 - 이 복식은 이도재의 부장예복으로 1897년 5월 15일 육군복장제식 개정에 따른 - 12 -
복식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보존상태도 양호한 편에 속한다. 부장예복으로는 완형이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이다. ᄋ 종합의견 : 이도재( 李 道 宰 :1848~1909)는 군부대신과 학부대신을 지냈다. 대한제국 군대에서 정2품급에 해당하는 부장( 副 將 )의 복식이다. 대한제국 시대 예복이라는 상징적인 가치 외에도 유물의 형태와 색상, 디자인, 보존상태 등에서도 우수한 유 물이다.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복식사)> ᄋ 현 상 -보존상태가 양호하나 금속사의 상태가 좋지 않고 바지의 일부가 좀으로 헤어짐 ᄋ 내용 및 특징 - 이 옷은 이도재( 李 道 宰 : 1848~1909)가 착용했던 예복으로 1897년 5월 15일에 발표된 육군복장규칙(관보 제 639호)에 따른 정장( 正 裝 ) 대예장( 大 禮 裝 )에 대한 규정에 따른 것이다. 이 옷은 모( 帽 ) 입전모( 立 前 毛 ) 대예의( 大 禮 衣 ) 고( 袴 ) 대견장( 大 肩 章 ) 식대( 飾 帶 ) 도구서( 刀 具 緖 ) 도대( 刀 帶 ) 백혁수투( 白 革 手 套 :백 색 가죽장갑) 백포하금( 白 布 下 襟 :깃 안쪽에 붙이는 흰색 포) 화( 靴 ) 등으로 구 성되어 있다. ᄋ 문헌자료 -국방군사연구소(1997), 韓 國 의 軍 服 飾 發 達 史 Ⅰ -육군박물관(2012), 육군박물관 소장 군사복식 ᄋ 기 타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 설립자인 석주선선생의 기증품이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이 옷은 이도재의 부장 예복으로서 1897년 5월 15일 육군복장제식 개정에 사례 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당시에는 복장제식이 여러 번 바뀌었는데, 이 예복 일습 은 1900년 이후의 것으로 이도재가 부장에 임명받은 1902년의 옷으로 추정된다. 해당시기의 유물이 양적으로 적으며, 특히 부장예복으로는 유일한 유물이므로 반드시 문화재로 등록하여야 할 것이다. ᄋ 종합의견 : 이도재( 李 道 宰 :1848~1909)부장( 副 將 )의 예복으로 대한제국 시기의 복 식으로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가치가 충분하다. 나. 민철훈 대례복 일습 1) 명 칭 : 민철훈 대례복 일습 2) 소 유 자 : 박영숙 3)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로 132길 34 한국자수박물관 4) 수 량 : 1식(대례의, 대례모, 조끼 대례고, 대수장 등) 5) 규 격 ᄋ 길이(칼라제외) 86.3cm, 가슴둘레/2 37.8cm, 소매길이 58.7cm - 13 -
6) 착 용 자 : 민철훈( 閔 哲 勳, 1856~1925) 7) 재 질 : 모직 8) 제작연대 : 1901년(프랑스 Jules Maria 제작) 9) 조사자 의견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이 유물은 민철훈(1856 1925)이 1901년 프랑스 파리에서 제작하여 착용했던 것 이다. 국내에 보고된 칙임관 1등 대례복으로 유일한 것으로 대례모, 대례의, 조끼, 대례고, 대수장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 ᄋ 대례의 앞중심선 좌우에 표현되는 국가상징 문양에 현재의 국화( 國 花 )인 무궁화 가 최초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복식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착용자와 착용시기가 분명하고, 대한제국기 1등 대례복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으므로 근대의생활분야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현 상 : 상태는 양호한 편이나, 특히 대례복 깃 부분과 어깨 부분에는 습기로 인해 금속자수사가 변색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 작게 좀이 쓴 흔적이 있다. ᄋ 내용 및 특징 - 서구식 대례복 일습 중 대례모, 대례의, 조끼, 대례고, 의식 검( 劍 )까지 모두 갖 춘 상태로 전해 온다. - 대례모는 검은색 융직물에 흰색 타조털이 장식되어 있다(바이콘, Bicorn). tail coat 형(연미복형) 서구식 대례복으로 대례복 상의의 뒷고대 안쪽에 Min chul Whin/JULES MARIA/14. R. du. 4 Septembre. PARIS라고 자수되어 있다. 포켓 안쪽에는 Jules Maria/1901. 6. 10이라고 남아 있어 프랑스 파리에서 1901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대례의 겉감은 검은색 모직, 안감은 흑견으로 만들었 다. 칼라(collar), 포켓, 커프스는 청색 모직으로 만들었다. 대례복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국가상징 무늬는 앞중심선 좌우에 반근화( 半 槿 花 ) 6송이와 전근화( 全 槿 花 ) 6송이가 금사로 수 놓여있다. -바지에는 2줄[ 兩 條 ]의 요철문( 凹 凸 紋 )이 부착되어 있다. - 14 -
-조끼와 의식 검까지 일습으로 전해온다. -모자를 보관하는 양철케이스와 복식과 칼을 보관하는 보관함이 있다. - 민철훈의 광무 4년, 광무 5년, 광무 8년, 광무 10년의 칙임장도 함께 보관되어 있다. ᄋ 문헌자료 -한국자수박물관 편(1991), 大 韓 帝 國 時 代 文 物 展 - 유희경, 이강칠, 허동화, 이순자(1991), 대한제국시대 문무관복식제도( 大 韓 帝 國 時 代 文 物 展 카다로그 附 錄 ), 韓 國 刺 繡 博 物 館 出 版 部 -이경미(2012), 제복의 탄생, 민속원 -경운박물관(2012), 대한제국 남성 예복 새로운 물결, 주체적 수용 ᄋ 기 타 -소장자가 후손으로부터 구입하였다. 이 복식 외에도 미국공사 칙령 외 3건의 문 서 포함되어 있다. - 민철훈( 閔 哲 勳 :1856~1925)이 착용한 것이다. 민철훈은 고종 21(1884)년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자리를 거쳐, 광무 3년(1899)년에는 변리공사로서 궁내부특진관 에 승임하였다. 광무 4년(1900)에 영국 독일 이탈리아의 특명전권공사로 부임 하였고, 광무 5년(1901)에는 오스트리아 특명전권공사를 겸직하였다. 그 후 광무 8년(1904)에는 주미전권공사로 전보되었다가 그 다음 해 독일특명전권대사로 부 임하였다. 광무 10년(1906)에는 궁내부특진관의 내직으로 보임되기도 했지만, 융 희 3년(1909)에는 다시 주독일전권대사로 임명되는 등 주로 외교관으로 활동했 다. 1901년 파리에서 제작된 이 대례복은 민철훈이 유럽에 있을 때 제작하여 착 용한 것이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서구식 문관대례복은 첫째, 서양과의 외교 현장에서 착용하기 위해 대한제국이 주체적으로 도입하였다는 점. 둘째, 현재의 국화로 이어져 오는 무궁화무늬를 최 초로 활용하였다는 점에서 복식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본 유물은 국내에서 보 고된 광무 4년(1900) 칙령 제15호 문관대례복 제식에 따른 칙임관 1등 대례복으 로 유일한 것이다. 착용자와 제작지와 제작일시 등이 남아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ᄋ 종합의견 : 민철훈( 閔 哲 勳 : 1856~1925)이 착용한 칙임관 1등의 문관대례복으로 1901년 파리에서 제작한 것이다. 민철훈이 외교관으로 유럽에서 근무했을 때 제 작, 착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착용자와 제작지와 일시 등이 남아 있는 귀중한 자 료이다. 이와 함께 유럽과 미국공사의 칙임관 칙령문서 4건과 호패도 함께 있다. 대한제국시대 문관대례복을 알 수 있는 유물로 칙령문서를 포함하여 근 현대 의생활자료로 일괄 등록되어 보호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복식사)> ᄋ 현 상 : 비교적 상태 양호하나 금속자수사의 변색과 부분적으로 좀 쓴 흔적이 있다. ᄋ 내용 및 특징 - 서구식 대례복 일습 중 대례모, 대례의, 조끼, 대례고, 의식 검( 劍 )까지 모두 갖 추어져 있다. 대례모는 서구식 예모인 바이콘 햇(bicorn) 으로 흰색 타조 깃털이 장식되어 있다. 연미복(tail coat) 스타일의 서구식 대례복이며, 상의 뒷고대 안 쪽에 있는 자수의 내용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1901년에 제작된 것이 확실하다. 칼라(collar), 포켓(pocket), 커프스(cuffs)는 청색 모직이다. 대례복의 앞 중심선 좌우에 금사로 반근화( 半 槿 花 ) 6송이와 전근화( 全 槿 花 ) 6송이를 수 놓았다. 바 지에는 2줄[ 兩 條 ]의 요철문( 凹 凸 紋 )이 부착되어 있다. 조끼와 검이 일습으로 있 - 15 -
으며, 모자를 보관함과 칼 보관함도 있다. 민철훈의 광무 4년, 광무 5년, 광무 8 년, 광무 10년의 칙임장도 함께 보관되어 있다. ᄋ 문헌자료 -한국자수박물관 편(1991), 大 韓 帝 國 時 代 文 物 展 - 유희경, 이강칠, 허동화, 이순자(1991), 대한제국시대 문무관복식제도( 大 韓 帝 國 時 代 文 物 展 카다로그 附 錄 ), 韓 國 刺 繡 博 物 館 出 版 部 -이경미(2012), 제복의 탄생, 민속원 -경운박물관(2012), 대한제국 남성 예복 새로운 물결, 주체적 수용 ᄋ 기 타 -소장자(허동화)가 후손으로부터 구입하였다. 이 복식 외에도 미국공사 칙령 외 3 건의 문서 포함되어 있다. -복식의 착용자 민철훈( 閔 哲 勳 : 1856~1925)은 고종 21(1884)년 문과 급제, 광무 3 년(1899)년 변리공사, 광무 4년(1900)에 영국 독일 이탈리아의 특명전권공사 부임, 광무 5년(1901) 오스트리아 특명전권공사를 겸직하였다. 광무 8년(1904)에 는 주미전권공사, 9년 독일특명전권대사로 부임하였다. 광무 10년(1906)에는 궁 내부특진관의 내직으로 보임, 융희 3년(1909)에는 다시 주독일전권대사로 임명되 는 등 주로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1901년 파리에서 제작된 이 대례복은 민철훈 이 유럽에 있을 때 제작하여 착용한 것이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이 옷은 민철훈( 閔 哲 勳 : 1856~1925)이 착용한 광무 4년(1900) 칙령 제15호 문관 대례복 제식에 따른 칙임관 1등 대례복으로 유일한 유물이다. 1901년 파리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이며, 민철훈이 외교관으로 유럽에서 근무했을 때 주문 제작하 여 착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유럽과 미국에서 1890~1914년에 사용되었던 바이콘 햇(bicorn, 나폴레옹이 쓰고 있는 모자와 같은 것), 모자와 검의 보관함까지 포함된 이 예복을 통해 대한제 국 시기 우리나라의 외교관의 복식의 면모를 잘 알 수 있다. 특히 서구식 예복 에 대한제국의 주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무궁화 무늬를 사용한 최초의 사례인 점 에서 의의가 크다. 착용자와 시기만이 아니라 제작지와 일시 등이 확실한 자료 로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함께 소장되어 있는 유럽과 미국공사의 칙임관 칙 령문서 4건과 호패도 사료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대한제국시대 문관대례복을 알 수 있는 유물로 칙령문서를 포함하여 근 현대 의생활자료로 일괄 등록되어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 ᄋ 종합의견 : 1901년 파리에서 제작된 대한제국 문관대례복 유물이다. 민철훈( 閔 哲 勳 : 1856~1925)의 예복으로 칙령문서를 포함하여 근 현대 의생활자료로 일괄 등록해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다. 민철훈 모닝코트 1) 명 칭 : 민철훈 모닝코트 2) 소 유 자 : 박영숙 3)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로 132길 34 한국자수박물관 4) 수 량 : 1식(모닝코트, 조끼, 하의, 보타이 2점) 5) 규 격 : 모닝코트 길이 91cm, 조끼 55cm, 하의 101.5cm, 보타이 36.8cm - 16 -
6) 착 용 자 : 민철훈( 閔 哲 勳, 1856~1925) 7) 재 질 : 모직 8) 조성연대 : 1900년대 9) 조사자 의견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이 유물은 민철훈(1856~1925)이 일제강점기 정장용 예복으로 착용했던 모닝코트 이다. 모닝코트는 테일러드 칼라, 싱글 브레스티드, 허리 절개선, 허리다트가 있어 전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모닝코트와 함께 조끼, 바지, 나비넥타이 2점도 전해 진다. ᄋ 착용자와 착용시기가 분명하고, 일제강점기 서구식 예복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 으므로 근대의생활분야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현 상 : 상태는 양호한 편임 ᄋ 내용 및 특징 - 17 -
-민철훈(1856 1925)의 모닝코트 일습으로 모닝코트, 조끼, 바지, 나비넥타이 2점이다. - 모닝코트(morning coat)는 19세기 영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옷으로, 남자의 관 혼상제( 冠 婚 喪 祭 )의 어느 경우에라도 착용할 수 있으며, 저녁부터 밤에는 착용하 지 않는 정장예복이다. 모닝코트의 상의는 검정색 도스킨(doeskin)이나 캐시미어 (cashmere)와 같은 모직물로 만들고 깃은 노치드 라펠(notched lapel)이고 허리 에 절개선이 있으며, 뒷길은 무릎길이까지 온다. 앞길의 좌우 자락이 사선으로 패어 바지의 앞부분이 드러난다. 여밈은 싱글 브레스티드(single breasted)이다. 바지는 검정이나 회색의 줄무늬 옷감을 사용한다. 조끼는 상의와 같은 옷감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프록코트(frock coat)가 정장용이며, 모닝코트는 프록 코트의 대용으로 반정장(semi formal)으로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정식 예복으로 사용되었다. 이와 같은 모닝코트는 일제강점기에 정장용 예복으로 많이 착용되 었다(현재까지 일본의 관료들도 예복용으로 착용하기도 한다). - 민철훈의 모닝코트는 두꺼운 검정색 모직으로 만들었고 총길이 91cm, 밑단둘레 59cm, 소매길이 68cm, 어깨넓이 18cm, 수구 15.5cm이다. 테일러드 칼라(tailored collar, notched lapel)에 싱글 브레스티드(single breasted)로 앞중심에 길이로 2 개의 단추로 여몄다. 왼쪽에 행거치프 주머니가 있다. 허리에 절개선이 있고 허 리다트가 양쪽에 있어 전형적인 모닝코트의 형태이다. -조끼는 앞길은 검은색 모직, 뒤길은 검정색 공단이며 안감은 아이보리색 공단이 다. 길이는 55cm, 소매둘레 27.7cm, 옆트임 3.5cm, 어깨넓이 9cm이다. 앞 중심 에 4개의 단추가 있고, 허리에는 다트가 있다. 양쪽으로 주머니가 2개씩 총 4개 의 주머니가 있다. 조끼의 뒤에는 버클과 벨트가 달려있다. - 보타이는 총길이 36.8cm이고 중심에 2개의 리본이 겹쳐있으며 리본의 길이는 9cm이고 너비는 5.5cm이다. - 바지는 회색 줄무늬 옷감을 사용하였다. 총길이 101.5cm, 바지부리(1/2) 22cm, 허리밴드 4cm, 허리둘레(1/2) 38.5cm이다. 양옆에 인포켓이 있고, 허리밴드 밑으 로 벨트 고리가 있다. 뒷중심이 3cm 트여있고, 중심의 양옆으로 6cm 지점에 단 추가 달려있다. 또한 뒤의 허리밴드 아래에 버클과 벨트가 34.5cm 너비로 부착 되어있다. 뒤 포켓의 너비는 14.5cm이다. ᄋ 문헌자료 -한국자수박물관 편(1991), 大 韓 帝 國 時 代 文 物 展 - 유희경, 이강칠, 허동화, 이순자(1991), 대한제국시대 문무관복식제도( 大 韓 帝 國 時 代 文 物 展 카다로그 附 錄 ), 韓 國 刺 繡 博 物 館 出 版 部 ᄋ 기 타 -소장자가 후손으로부터 구입하였다. 이 복식 외에도 미국공사 칙령 외 3건의 문 서와 문관대례복 칙임관 1등 예복 포함되어 있다. - 민철훈( 閔 哲 勳 : 1856~1925)이 착용한 것이다. 민철훈은 고종 21(1884)년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자리를 거쳐, 광무 3년(1899)년에는 변리공사로서 궁내부특진관 에 승임하였다. 광무 4년(1900)에 영국 독일 이탈리아의 특명전권공사로 부임 하였고, 광무 5년(1901)에는 오스트리아 특명전권공사를 겸직하였다. 그 후 광무 8년(1904)에는 주미전권공사로 전보되었다가 그 다음 해 독일특명전권대사로 부 임하였다. 광무 10년(1906)에는 궁내부특진관의 내직으로 보임되기도 했지만, 융 희 3년(1909)에는 다시 주독일전권대사로 임명되는 등 주로 외교관으로 활동했 다. ᄋ 등록 가치와 근거기준 -이 복식은 대한제국시대 외교관이었던 민철훈의 모닝코트이다. 대한제국 시대이 - 18 -
후 일제 강점기 때 착용되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전형적인 모닝코트의 구성을 갖추고 있다. 민철훈의 문관대례복 1등 칙임관 복식과 함께 등록하면 좋을 것으 로 생각한다. ᄋ 종합의견 : 민철훈( 閔 哲 勳 : 1856~1925)이 착용했던 모닝코트이다. 대한제국시대 미국공사와 유럽 여러나라의 칙임관을 지냈던 민철훈이 착용한 모닝코트라는 점 에서 의의가 있다. 민철훈의 칙임관 1등 대례복과 칙령문서 4건과 함께 일괄 등 록할 것을 건의한다.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복식사)> ᄋ 현 상 : 상태는 양호한 편임 ᄋ 내용 및 특징 -이 옷은 민철훈( 閔 哲 勳 : 1856~1925)의 모닝코트에 조끼, 바지, 나비넥타이 2점이 포함된 일습유물이다. 검정색 모직이며, 테일러드 칼라(tailored collar, notched lapel)에 싱글 브레스티드(single breasted)의 전형적인 모닝 코트형태를 갖추고 있다. - 조끼는 앞길은 검은색 모직, 뒤길은 검정색 공단이며 안감은 상아색 공단이다. 앞 중심에 4개의 단추가 달려 있고, 주머니가 좌우 2개씩 총 4개 있다. 조끼의 뒤에는 버클과 벨트가 달려있다. 보타이는 중심에 2개의 리본이 겹쳐있다. 바지 는 회색 줄무늬 옷감으로 만들었고 양옆에 인포켓이 있고, 허리밴드 밑으로 벨 트 고리가 있다. 뒷 허리밴드 아래에 버클과 벨트가 부착되어 있다. ᄋ 문헌자료 -한국자수박물관 편(1991), 大 韓 帝 國 時 代 文 物 展 - 유희경, 이강칠, 허동화, 이순자(1991), 대한제국시대 문무관복식제도( 大 韓 帝 國 時 代 文 物 展 카다로그 附 錄 ), 韓 國 刺 繡 博 物 館 出 版 部 ᄋ 기 타 -소장자가 후손으로부터 구입하였다. 이 복식 외에도 미국공사 칙령 외 3건의 문 서와 문관대례복 칙임관 1등 예복 포함되어 있다. -복식의 착용자 민철훈( 閔 哲 勳 : 1856~1925)은 고종 21(1884)년 문과 급제, 광무 3 년(1899)년 변리공사, 광무 4년(1900)에 영국 독일 이탈리아의 특명전권공사 부임, 광무 5년(1901) 오스트리아 특명전권공사를 겸직하였다. 광무 8년(1904)에 는 주미 전권공사, 9년 독일 특명 전권대사로 부임하였다. 광무 10년(1906)에는 궁내부 특진관의 내직으로 보임, 융희 3년(1909)에는 다시 주독일 전권대사로 임 명되는 등 주로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1901년 파리에서 제작된 이 대례복은 민 철훈이 유럽에 있을 때 제작하여 착용한 것이다. ᄋ 등록가치 및 근거기준 - 이 옷은 대한제국 외교관이었던 민철훈( 閔 哲 勳 1856 1925)의 모닝코트로서, 전 형적인 모닝코트의 형태와 구성을 갖추고 있다. - 모닝코트(morning coat)는 19세기 영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옷으로, 야간예복 으로 착용되는 연미복(frock coat)와 달리, 관혼상제( 冠 婚 喪 祭 )의 어느 경우에라 도 착용할 수 있는 주간용 정장예복이다. - 대한제국시기의 유물이 적은 현 상황에서 착용자의 신분이 확실하고 유물의 상 태도 좋으므로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ᄋ 종합의견 : 대한제국시대 칙임관을 지냈던 민철훈( 閔 哲 勳 : 1856~1925)이 착용했 던 모닝코트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민철훈의 문관대례복과 칙령문서 4건과 함 께 등록문화재로 가치가 높다. - 19 -
라. 박기준 대례복 일습 1) 명 칭 : 박기준 대례복 일습 2) 소 유 자 : 박영숙 3)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로 132길 34 한국자수박물관 4) 수 량 : 1식(대례의, 대례모, 조끼, 바지, 검과 검대, 훈장, 모자함 등) 5) 규 격 : 총길이 103.2cm, 등길이 46cm, 가슴둘레/2 36.5cm, 소매길이 59.5cm 6) 착 용 자 : 박기준( 朴 基 駿 1875~?) 7) 재 질 : 모직 8) 조성연대 : 1906 1910년(일본 요코하마에서 제작) 9) 조사자 의견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박기준(1875~?)이 일본 요코하마에서 제작하여 착용했던 서구식 대례복이다. 대 례모, 대례의, 조끼, 바지, 검과 검대, 훈장, 옷솔, 모자함, 대례복 보관함까지 모두 전해지고 있다. ᄋ 착용자와 착용시기가 분명하고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 서구식 대례복이 제작국에 따른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대례복의 보관방식까지도 살펴볼 수 있으므로 근대의생활분야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현 상 -상태는 양호한 편이나 부분적으로 좀이 쓸어 있음. 특별히 검을 꽂는 플랩(flap) 부분에는 헤어져 있음 -깃(collar) 부분은 착용한 흔적이 있으며 조금 헤어져 낡은 상태임. 깃 부분에 흰 실로 박 이라고 수를 놓았지만 소장자가 편의상 표기한 것으로 생각함 ᄋ 내용 및 특징 - 20 -
-박기준의 유물로 전해지고 있다. 박기준( 朴 基 駿 1875~?)은 광무9년(1905)년 8월 24일 예무관물훈 5등 팔괘장수장, 국내부 1900~1910년 외교문서 및 황실비서업 무를 맡았다. - 서구식 대례복의 일습 중 대례모, 대례의, 조끼, 바지, 검과 검대, 훈장은 물론 옷을 손질하는 솔과 모자함 그리고 대례복 일습을 보관하는 함까지 모두 소장 되어 있다. - 대례모는 검정색 모직에 가장자리는 공작깃털이 달려있다. 모자의 가운데에 태 극무늬와 그 위에 사선으로 이화무늬의 자수와 이화 단추가 달려있다. 모자함은 대례모와 같은 형태의 철제 위에 옻칠을 하였다. -대례의는 프록코트(frock coat) 형이고, 전면에 자수된 무늬는 이화( 梨 花 :오얏꽃) 이다. 무늬의 형태는 半 開, 全 開, 未 開 의 오얏꽃을 하나의 가지에 연결한 것으로 친임관( 親 任 官 )은 11가지, 칙임관( 勅 任 官 )은 9가지, 주임관( 奏 任 官 )은 7가지로 규 정되었다. 박기준의 대례복은 7가지가 수놓아져 있다. 대례의 겉감은 검은색 모 직, 안감은 흑견으로 제작되어있다. 칼라(collar)와 소매끝동, 주머니는 파랑색 모 직 위에 금사와 프랭글을 수놓았다. 앞중심에 7개의 단추가 달려있으며, 뒤 허리 에는 2개의 단추가 있다. 뒤허리에서 밑단까지 트임이 있다. - 조끼는 앞목둘레, 앞중심선, 도련선까지 가장자리에 금사편직이 부착되어 있다. 앞 여밈에는 이화 단추 5개가 달려있다. -바지는 양옆에 요철( 凹 凸 )무늬의 금색 선이 둘러져 있고, 허리 밴드에 단추가 달 려있다. 뒷중심에는 버클과 벨트가 달려있다. 바지에 달린 단추는 영어로 요코 하마 라고 써 있어 이 옷이 일본 요코하마에서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검( 劍 )에는 이화무늬가 장식되어 있으며, 검대[칼집]는 검정색 옻칠이 되어 있고 하단부는 금색 금속으로 장식되어 있다. ᄋ 문헌자료 -한국자수박물관 편(1991), 大 韓 帝 國 時 代 文 物 展 - 유희경, 이강칠, 허동화, 이순자(1991), 대한제국시대 문무관복식제도( 大 韓 帝 國 時 代 文 物 展 카다로그 附 錄 ), 韓 國 刺 繡 博 物 館 出 版 部 -이경미(2012), 제복의 탄생, 민속원 -경운박물관(2012), 대한제국 남성 예복 새로운 물결, 주체적 수용 ᄋ 기 타 -소장자가 후손으로부터 구입하였다. 이 복식 외에도 박기준 일가의 한복류가 70 여점 있다. ᄋ 등록가치 및 근거기준 - 대한제국 궁내부의 서구식 대례복은 1900년에 문관대례복에 포함되어 정해졌다 가 1906년 2월 27일에 분리되어 새롭게 제정되었다. 현재까지 대한제국 궁내부 및 예식원 대례복의 도식이 발견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유물이다. -박기준 일가의 유물은 대례복을 포함하여, 한복을 비롯한 70여점이 있다. 등록문 화재로 등록할 때 개항기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등 격동기의 관리복의 변화와 편복류를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함께 등록할 것을 건의한다.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복식사)> ᄋ 현 상 : 부분적으로 좀의 흔적이 있고 낡은 상태임 ᄋ 내용 및 특징 -박기준의 유물로 전해지고 있다. 박기준(1875?)은 대한제국의 관료이며 일제강 - 21 -
점기의 법관이다. 그는 광무9년(1905)년 8월 24일 예무관물훈 5등 팔괘장수장, 국내부 1900~1910년 외교문서 및 황실비서업무를 맡았다. - 서구식 대례복의 일습 중 대례모, 대례의, 조끼, 바지, 검과 검대, 훈장은 물론 옷을 손질하는 솔, 모자함, 대례복 일습을 보관함까지 포함된 일괄 유물이다. ᄋ 문헌자료 -한국자수박물관 편(1991), 大 韓 帝 國 時 代 文 物 展 - 유희경, 이강칠, 허동화, 이순자(1991), 대한제국시대 문무관복식제도( 大 韓 帝 國 時 代 文 物 展 카다로그 附 錄 ), 韓 國 刺 繡 博 物 館 出 版 部 -이경미(2012), 제복의 탄생, 민속원 -경운박물관(2012), 대한제국 남성 예복 새로운 물결, 주체적 수용 ᄋ 기 타 -소장자가 후손으로부터 구입하였다. 이 복식 외에도 박기준 일가의 한복류가 70 여점 있다. ᄋ 등록가치 및 근거기준 -이 유물은 대한제국시기 궁내부의 서구식 대례복 일습니다. 궁내부의 서구식 대 례복은 1900년에 문관대례복에 포함되어 정해졌다가 1906년 2월 27일에 분리되 어 새롭게 제정되었다. 지금까지 대한제국 궁내부 및 예식원 대례복의 도식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복식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박기준 일가의 유물은 대례복과 한복 등 70여점이 있다. 개항이후 대한제국시기 와 일제강점기 등 근대 우리나라 복식의 변화를 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하고 가치 있는 자료이다. ᄋ 종합의견 : 박기준이 착용했던 예복으로 일습을 갖추고 있고 대한제국시기 우리 나라 서구식예복의 면모를 알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가치가 충분하다. 마. 김선희 혼례복 1) 명 칭 : 김선희 혼례복 2) 소 유 자 : 김은영 3)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 102-11 4) 수 량 : 1점 5) 규 격 ᄋ 원삼 : 앞길이 113cm, 뒷길이 120cm, 화장 80cm ᄋ 치마 : 120.5cm(허리포함), 허리말기 길이 81cm, 너비 10cm ᄋ 띠 포함 6) 착 용 자 : 김선희(1919 2007) 7) 재 질 : 견(화문단) 8) 조성연대 : 1935년(소장자 가문 제작) - 22 -
9) 조사자 의견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이 원삼은 연한 녹색 비단으로 만든 혼례용 원삼인데 가장자리를 따라 붉은 선단을 댄 일명 개성 원삼 이라고 하는 것이다. 소매에는 여러 색상의 색동이 달려 있고 수 구에도 홍색 선단을 대었다. ᄋ 근대 시인으로 유명한 김광균(1914~1993)의 혼례(1938) 때 부인인 김선희가 착용했 던 것이다. 근현대 직물과 의례복의 특징을 살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되 므로 근대의생활분야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현 상 : 상태 양호함 ᄋ 내용 및 특징 -녹색의 모본단에 빨강 모본단으로 둘레에 선을 두른 원삼이다. 파랑, 홍색, 노랑, 홍색, 노랑의 색동 소매에 대대를 두른다. 개성지방 원삼은 경기지방과 다르게 겉감의 가장자리에 선을 두른다. 배자 깃을 달듯이 꼬집어 박기로 원삼 깃을 달 았으며, 원삼 단추가 있었던 흔적만 남아 있다. 원삼단추는 금파로 만든 것이 2 개 있었다고 하나, 이를 이용하여 브로치로 활용하였다고 한다. - 원삼의 바느질은 어깨솔기가 있고, 등솔은 입어서 오른쪽으로 넘겼다. 홑옷이나 소매부분에만 안감이 대어져 있다. 소매의 색동은 가름솔로 연결하였다. 대대의 옷감은 덧단과 같은 옷감이며, 원삼의 겉감과 치마의 옷감 등 모두 같은 무늬의 옷감을 사용하였다. - 원삼과 함께 착용하였던 홍색 치마가 남아있다. 치마는 혼례 때 입었던 것으로, 원삼 겉감과 같은 무늬의 옷감을 사용하였다. 치마는 왼꼬리이며 치수는 길이 120.5cm이다. 허리에는 흰 옥양목으로 만든 허리말기가 81cm, 10cm 너비로 달 려있다. ᄋ 문헌자료 -북한지방의 전통복식, 개화이후-해방전후(현암사) ᄋ 기 타 -이 원삼은 현재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3호 매듭장인 김은영 선생의 친정 어머니 의 혼례복이다. 김은영선생의 친정아버지는 근대시인으로 유명한 김광균이다. 친 정어머니 김선희는 1935년 3월3일에 혼인하셨고, 2007년 93세로 사망했다. 친정 어머니는 개성출생이며, 함북 이원에서 성장하였고 혼례도 함북이원에서 했다고 - 23 -
한다. 친정아버지인 김광균의 어머니(김선희의 시어머니)가 사람을 시켜 만들어 서 개성머리어멈과 함께 혼례 때 보낸 것이라 한다. < 사진 1> 은 김광균과 김선 희의 혼례사진이다. < 사진 2> 는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재현한 사진 으로, 착용자는 이 원삼의 소장자인 김은영의 딸이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원삼 과 사진에 남아 있는 치마, 그리고 봉띠[ 大 帶, 鳳 帶 ]이다. 사진 속의 개성화관은 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민속박물관의 전시를 위해 김선희의 고증으로 재현한 것 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한삼은 김선희가 며느리 볼 때 새롭게 만든 것이라고 한 다. 이 원삼은 김선희가 수의( 壽 衣 )로 사용하려고, 빨간 보자기에 싸서 6.25 전쟁 에서도 보관하였다고 한다. 보관은 김선희가 생전에 담배가루를 넣어 좀이 써는 것을 방지했다고 한다. 김광균 시인과 부인의 혼례모습 재현 모습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이 원삼은 근대 시인으로 유명한 김광균 부부의 혼인 때 신부인 김선희가 입었 던 옷이다. 당시 혼례식 사진도 남아 있으며, 제작연도와 착용자가 확실한 옷으 로 가치가 있다. 혼례 때 입었던 옷으로 수의( 壽 衣 )로 사용하던 풍습 등을 알 수 있는 옷이다. 또한 이웃에 혼례용으로 빌려주면 수의로 입을 때, 망자가 좋은 곳 으로 간다는 풍습 등이 있어 이 옷을 이웃에게 빌려주기도 했다는 증언도 있다. 현재 개성지방의 혼례풍습을 알 수 있는 좋은 유물이다. 개성지방은 서울이나 경기지방과는 다른, 혼례용 원삼과 머리모양 등이 특이하다. 이 외도 개성지방 혼례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 등도 함께 전래되고 있어,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하 는 것을 추천한다. 보관상태도 매우 좋다. ᄋ 종합의견 : 개성지방 원삼으로 보존상태가 매우 좋다. 이 원삼은 근대시인으로 유 명한 김광균(1914~1993)의 혼례(1935) 때 부인인 김선희가 착용했던 것이다. 근 현대시대의 직물과 복식을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것 을 건의한다.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복식사)> ᄋ 현 상 : 상태 양호함 ᄋ 내용 및 특징 : 녹색 길과 색동소매에 빨강 모본단으로 가장자리 선을 두른 전형 적인 개성지방의 원삼이다. 원삼과 함께 착용하였던 홍색 치마는 흰색 옥양목 치 마허리가 달린 전통적인 형태이다 ᄋ 문헌자료 -북한지방의 전통복식, 개화이후-해방전후(현암사) - 24 -
- 이경자, 홍나영, 개성 복식의 연구-실물을 통한 실증적 고찰, 복식 16호, 한국 복식학회 ᄋ 기 타 - 이 원삼은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3호 매듭장인 김은영 선생의 모친 김선희의 1930년대 혼례 예복이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이 원삼은 근대 시인으로 유명한 김광균(1914 1993) 부부의 혼인 때 신부인 김 선희가 입었던 옷이다. 1930년대 개성지방의 혼례복의 전형적인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착용자가 확실하고 혼례사진도 남아 있어 등록문화재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ᄋ 종합의견 : 시인 김광균(1914~1993)의 혼례 때 부인인 김선희가 착용했던 개성지 방의 원삼이다. 근현대시대의 복식자료로 가치가 충분하다 마. 이해상 내외 상복 1) 명 칭 : 이해상 내외 상복 2) 소 유 자 : 경운박물관 3)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로 29 4) 수 량 : 2식 5) 규 격 ᄋ 이해상 상복 -최의( 縗 衣 ) : 길이 115.3cm, 화장 79.3cm -상( 裳 ) : 전3폭(하단폭 48cm), 후4폭(하단폭 65.5cm), 길이 62.2cm -중단( 中 單 ) : 길이 113cm, 화장 83cm, -행전( 行 纏 ) : 길이 24.5cm, 너비 20cm -굴건( 屈 巾 ) : 높이 36cm, 너비 17cm -수질( 首 絰 ) -건( 巾 ) -요질( 腰 紩 ) ᄋ 이해상 부인 상복 -대수장군( 大 袖 長 裙 ) : 뒷길이 115cm, 화장 76.8cm -중단( 中 單 ) : 길이 123.5cm, 화장 70cm -요질( 腰 紩 ) 6) 착 용 자 : 이해상(1913 1985)과 부인 신계완(1913 1991) 7) 재 질 : 삼베 8) 조성연대 : 1970년 - 25 -
9) 조사자 의견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가. 이해상 상복 ᄋ 이해상이 1970년 5월 영왕 이은의 장례 때 착용했던 상복 일습이다. ᄋ 1969년 이후 상복과 장례과정이 간소화되었고, 탈상한 후에 상복은 태우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전통상복 유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상복은 착용자가 분명 하고 착용했던 상황도 역사적인 영왕 이은의 장례식이므로 역사적, 문화적, 근대 의생활 변화에 중요한 자료로 생각된다. 따라서 근대의생활분야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나. 이해상 부인 상복 ᄋ 이해상의 부인 신계완이 1970년 5월 영왕 이은의 장례 때 착용했던 상복 중 대수 장군( 大 袖 長 裙 ), 중단( 中 單 ), 요질( 腰 紩 )이다. 대수장군은 여자 상복의 제일 겉에 입는 옷으로, 저고리와 치마가 붙은 형태이다. ᄋ 1969년 이후 장례과정의 간소화, 탈상 후 상복을 소각하는 현상 때문에 전통상복 유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상복은 착용자와 착용했던 상황도 분명하므로 근대의 생활 변화에 중요한 자료로 생각된다. 따라서 근대의생활분야 등록문화재로 등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가. 이해상 상복 - 26 -
ᄋ 현 상 : 상태 양호함 ᄋ 내용 및 특징 -이해상(1913~1985)은 이달용의 아들로서, 흥선대원군의 형인 흥완군, 완순군, 이 재완, 이달용의 가계를 이은 사람이다. 이해상은 영왕과 재종질( 再 從 姪 )관계이 다. 이 상복은 1970년 5월 영왕 이은의 장례 때 이달용의 아들과 며느리인 이해 상과 신계완이 입었던 옷이라고 한다. - 이해상의 상복( 喪 服 )은 굴건( 屈 巾 ), 건( 巾 ), 수질( 首 絰 ), 최의( 縗 衣 ), 상( 裳 ), 요질 ( 腰 紩 ), 중의( 中 衣 ), 행전( 行 纏 )으로 구성되어 있다. - 건(4017)과 굴건( 屈 巾 ) 수질( 首 絰 4016)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이 3가지 를 갖춘 것을 굴건( 屈 巾 ) 이라고 한다. 최의( 縗 衣 4023)는 거친 마포로 만들었으 며, 가슴 왼편에는 최( 縗 )가 달려있다. 상( 裳 4025)은 전3폭, 후4폭이다. 삼[ 麻 ]으 로 만든 요질( 腰 紩 4019)과, 베로 만든 행전( 行 纏 4018)이 있다. 속에 입는 중의 ( 中 衣, 中 單 4022)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 상복 일습 가운데 지팡이와 짚신만 빠 진 상태이다. 이와 같은 상복( 喪 服 )을 굴건제복( 屈 巾 祭 服 )이라 부르기도 한다. ᄋ 문헌자료 -조우현(1989), 조선시대 상복에 관한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 경기여고 경운박물관 유물등록카드 4016, 4017(굴건 일습), 4018(행전 일습), 4019(요질), 4022(중단), 4023(최의), 4025(상) ᄋ 기 타 - 이 상복은 경기여고 졸업생인 이남주가 경기여고 경운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이 상복의 착용자는, 기증자의 부모로 어머니 신계완 또한 경기여고 졸업생이다. 이 굴건제복은 기증자의 아버지가 1970년 5월 1일 낙선재에서 거행된 영왕의 초종에 입었다고 한다. 기증자 아버지 이해상은 영왕의 재종질( 再 從 姪 )이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이해상 상복은 영왕 이은(1897~1970)의 초종( 初 終 ) 때 거행된 1970년 5월1일에 착용하였던 옷이며, 이 옷을 입고 이해상은 명정을 썼다고 한다. - 1969년 정부는 가정의례준칙을 대통령 고시로 선포한 이후, 상복을 간소화하고 노제와 삼우제등을 없애기로 하였기 때문에 전통적인 제복이 남아있기 어렵다. 특히 상복은 탈상 이후 태우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현재 전통 상복은 찾아 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실의 상징적인 인물인 영왕 이은의 장례 식 때 착용한 상복은 역사적, 문화적, 생활 등에서 기념이 되며, 상징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새마을운동과 가정의례준칙의 반포 등 급격하게 변화하는 생 활에서 마지막 전통적인 상복은 근현대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가치가 있다. ᄋ 종합의견 : 대한제국시대 왕실종친인 이해상부부가 영왕(1879~1970) 초상 때 착 용하였던 상복( 喪 服 ) 일습이다. 전통 상복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근현대 제복 을 알 수 있어,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것을 추천한다. 나. 이해상 여자 상복 ᄋ 현 상 : 상태 양호함 ᄋ 내용 및 특징 : - 이 상복의 착용자는 이해상의 부인 신계완이다. 이해상은 고종의 사촌인 완순 군의 고손자로서 영왕과는 재종질( 再 從 姪 )로 6촌 사이이다. 이해상의 부인 신계 완(~1991)은 영왕의 장례 때, 이 상복을 입었다고 한다. -대수장군은 여자 상복 일습 가운데 제일 겉에 입는 옷으로, 저고리와 치마가 붙 - 27 -
은 형태이다. 저고리 길이는 42cm, 치마길이 73cm, 화장 78cm, 뒷품 60cm, 치 마폭은 188cm이다. -요질은 126cm이다. 이 외도 중단이 있다. ᄋ 문헌자료 -경기여자고등학교 경운박물관(2012) 아름다운 기증, 소중한 모음 도록 pp. -1970년 5월 9일 경향신문 7면 -1970년 5월 9일 mbc TV 9시 50분 영왕 장례식 중계 -대한뉴스 제 776호 영왕 서거 (http://www.ehistory.go.kr/page/pop/movie_pop.jsp?srcgbn=kv&mediaid=1011&mediadtl=6285) ᄋ 기 타 - 이 상복의 기증자인 이남주는 경기여자고등학교 졸업생이며, 상복을 직접 착용 했던 이해상의 부인인 신계완(1913~1991)도 경기여고 23회 졸업생이다. 이남주 가 모교 박물관에 부모의 상복( 喪 服 )을 기증하였다. ᄋ 등록가치 및 근거기준 - 이해상 상복은 영왕 이은(1897 1970)의 영결식이 거행된 1970년 5월에 착용하 였던 옷이다. 1969년 정부는 가정의례준칙을 대통령 고시로 선포한 이후, 상복을 간소화하고 노제와 삼우제등을 없애기로 하였기 때문에 전통적인 제복이 남아있 기 어렵다. 특히 상복은 탈상 이후 태우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현재 전통 상복은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실의 상징적인 인물인 영왕 이은의 장례식 때 착용한 상복은 역사적, 문화적, 생활 등 에서 기념이 되며, 상징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새마을운동과 가정의례준칙 의 반포 등 급격하게 변화하는 생활에서 마지막 전통적인 상복은 근현대 등록문 화재로 등록할 가치가 있다. ᄋ 종합의견 : 대한제국시대 왕실종친인 이해상부부가 영왕(1879~1970) 초상 때 착 용하였던 상복( 喪 服 ) 일습이다. 전통 상복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근현대 제복 을 알 수 있어,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것을 추천한다. < 한경대학교 교수(복식사)> ᄋ 현 상 -명칭 : 이해상과 부인의 상복 일습 -색상 : 소색 -소재 : 삼베 ᄋ 내용 및 특징 -본 유물은 영왕 이은( 李 垠 ;1897 1970)의 장례식에 참석한 이해상과 그의 부인이 착용한 것으로 이해상의 딸인 이남주가 경운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영왕은 고종황제의 일곱 번째 아들로 어머니는 순헌황귀비 엄씨이다. 그는 순종 황제의 제위기간인 1907년에 황태자로 봉해졌고 1926년 순종황제의 사후 이왕 ( 李 王 )으로 불리었다. 대한민국 수립 후 귀국이 허락되지 않아 일본에 머무르다 가 1963년 귀국하였고 1970년 5월 1일 오후 1시에 낙선재에서 사망하였다. - 영왕의 장례는 그가 사망한 다음날인 5월 2일 정부와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이 협의하여 15명으로 구성된 영왕 장의준비위원회(위원장 李 建 雄 ) 에서 의논하 여 9일장으로 진행하였는데 황태자의 예우로 하였다. 주요 장의절차는 다음과 같았다.(동아일보 1970년 5월 4일 7면 참조) 5월 5일 소렴( 小 斂 ), 대렴( 大 斂 ), 재실은정( 梓 室 銀 釘 : 관에 못을 박음) 5월 6일 성복( 成 服 ) - 28 -
5월 7일 재실서상자( 梓 室 書 上 字 : 판위에 上 자를 씀), 결과( 結 裹 : 관을 묶음) 5월 9일 계빈발인( 啓 殯 發 靷 : 관을 밖으로 내옴), 노전( 路 奠 : 청량리 로타리에 서 노제를 지냄), 천전( 遷 奠 : 묘소로 옮긴다는 제사) <그림 17>재실을 대여로 옮긴 후 낙선재를 나오는 유족들, 1970년 5월 9일 동아일보 자 료 사진 - 이 유물은 이해상과 그의 부인 신계완이 영왕의 장례식에서 착용한 것이다. 이 해상은 고종황제의 사촌인 완순군 이재완( 李 載 完, 1855 1922)의 아들인 이달용 ( 李 達 鎔, 1883 1948)의 3남으로, 영왕은 그의 재당숙이 된다. 이해상은 가계로 보아서도 상복을 입어야 하는 유복친( 有 服 親 )이지만 조선시대의 경우로 비추어 볼 때 영왕의 상을 국상으로 보아 참최복( 斬 衰 服 )을 착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國 朝 喪 禮 補 編 에 따르면 국상 때 종친과 문무백관은 모두 참최복을 착용하 여야 한다. < 그림1> 은 영왕 장례식 당시 상주인 이구(사진에서 맨 왼쪽)와 함 께 참최복을 착용한 유족들을 촬영한 사진으로 동아일보 1970년 5월 9일자 지 면에 실렸던 장면이다. - 기증자인 이남주의 증언에 의하면 이 상복은 그의 부모가 낙선재에서 거행되었 던 영왕의 초종( 初 終 : 초상이 난 때부터 졸곡까지의 기간)에 입었던 것이고, 특 히 그의 부친은 영왕의 명정을 쓴 분이라고 한다. 본 상복을 착용한 모습이 사 진으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착용자가 명백하고 착용 상황이 뚜렷하다. -유물의 구성은 남자 상복 일습과 여자 상복 일습이다. 유물 중 남자상복은 다음 < 표1> 과 같다. < 표1> 남자 상복 일습 참최의(제복)와 참최상 광수주의형 중단 굴건(수질) 효건 요질2점 행전 - 29 -
<그림2>최복 도식화 <그림3>최상 도식화 - < 그림2> 에서 보는 바와 같이 최복의 길이는 115.3cm, 화장은 79.3cm 이다. 굴 건의 높이는 36cm, 너비는 17cm이고, 행전의 길이는 24.5cm, 너비는 20cm이다. 예서에 기록되어 있는 바 대로 최복을 구성할 때는 허리부분을 따로 마름질하여 붙이는데 본 유물은 그 부분은 생략되었고, 허리아래에 임( 衽 )이라고 하는 자락 과 연결하여 구성되어 있다. < 그림3> 의 최상은 전3폭, 후4폭의 구성으로 한 폭 의 너비는 16cm 정도이고, 폭을 연결한 후 맞주름을 잡아 허리에 연결하였다. 눈물받이인 최( 衰 )는 父 喪 에 해당되어 왼쪽 가슴에 붙어 있고 크기는 가로가 12cm, 세로가 17cm이다. 지극한 애도를 등에 짊어진다는 의미를 지닌 부판( 負 板 )은 뒷길에 부착되어야 하지만 탈락된 것으로 보인다. -<표1> 에서 중단 중 한 점은 남자 상복과 한 점은 여자 상복과 함께 착용한 것 으로 생각된다. 또한 요질 두 점 중 한 점은 여자 상복의 구성품으로 생각된다. - 이해상의 부인이 착용한 여자 상복으로는 대수장군과 광수주의형 중단이 함께 기증되었고 유물의 사진은 < 표2> 와 같다. < 표2> 여자 상복 일습 대수장군 앞 대수장군 뒤 -대수장군의 저고리길이는 42cm, 치마길이는 73cm 이며 총길이는 115cm이다. 화 장은 78cm, 뒷품은 60cm, 치마폭은 188cm이다. 하상에 맞주름을 잡아서 상의와 연결하였다. 앞가슴에 눈물받이인 최는 부착되어 있지 않고, 뒷길에 부판이 달려 있다. 대대가 부판 아래를 지나 앞길 중심에서 매듭지어진다. ᄋ 기 타 -착용자 이해상의 딸인 이남주가 경기여고 경운박물관에 기증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30 -
-본 유물은 1970년 5월 1일에 사망하고 국가에서 9일장으로 장례를 치른 영왕 이 은의 장례 때에 재종질인 이해상과 그의 부인이 착용한 남녀 상복 일습이다. -유물의 구성은 남자 상복으로 참최의(제복)와 참최상, 광수주의형 중단을 비롯하 여 효건, 수질, 요질, 행전과 여자 상복인 대수장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 민속적인 전통상 상복은 장례가 끝난 후 태워버리는 것이 관습이지만 이 상복 일습은 후손들이 잘 보존하여 일습의 형태로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전통적인 상 복 착용이 거의 사라지고 있는 현재 대한제국 마지막 왕으로 칭해졌던 영왕의 상례라는 착용일과 왕실종친인 이해상과 부인 신계완이 착용하였다는 착용자가 명확한 유물이므로 문화재로 등록하여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ᄋ 종합의견 : 본 유물은 1970년 5월 1일에 사망하고 국가에서 9일장으로 장례를 치 른 영왕 이은의 장례 때에 재종질인 이해상과 그의 부인 신계완이 착용한 남녀 상복 일습이다. 전통적인 상복 착용이 거의 사라지고 있는 현재 대한제국 마지막 왕으로 칭해졌던 영왕의 상례라는 착용일과 착용자가 명확한 남녀 상복 일습이라 는 측면에서 문화재로 등록하여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바. 백선엽 군복 1) 명 칭 : 백선엽 군복 2) 소 유 자 : 전쟁기념관 3)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9 4) 수 량 : 5점 ᄋ 하예복 상하 각 1벌, 동정복 상하 각 1벌, 동만찬복 상하 각 1벌, 동근무복 상하 1벌, 트랜치코트 1벌 5) 규 격 ᄋ 하예복 -상의 : 총길이 71cm, 가슴둘레/2 52cm, 소매길이 57cm -하의 : 바지길이 97cm, 허리둘레 88cm ᄋ 동정복 -상의 : 총길이 75cm, 가슴둘레/2 48.5cm, 소매길이 58cm -하의 : 바지길이 100cm, 허리둘레 88cm ᄋ 동만찬복 -상의 : 총길이 56cm, 뒷길이 52.5cm, 가슴둘레/2 49.5cm, 소매길이 59.5cm -하의 : 바지길이 103.5cm, 허리둘레 88cm ᄋ 동근무복 -상의 : 총길이 85cm, 가슴둘레/2 53cm, 소매길이 56.5cm -하의 : 바지길이 101cm, 허리둘레 86cm ᄋ 트렌치코트 : 총길이 122cm, 가슴둘레/2 60cm, 소매길이 63.5cm 6) 착 용 자 : 백선엽( 白 善 燁, 1920 ) 7) 재 질 : 개버딘, 울 등 8) 조성연대 : 1950~1962년 9) 조사자 의견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백선엽(1920 현재)이 1950년대 착용했던 여름 예복, 겨울 정복ᆞ예복ᆞ근무복, 트랜치 코트이다. ᄋ 착용자와 착용시기가 분명하고 계급에 따른 표식을 알 수 있다. 또한 계절에 따른 - 31 -
하예복 동정복 - 32 -
동만찬복 동근무복 - 33 -
트렌치 코트 예복의 형태를 비교할 수 있고 착용목적에 따른 형태 비교도 할 수 있다. 따라서 현 대 군사복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생각되므로 근대의생활분야 등록문 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현 상 : 상태 매우 양호함 ᄋ 내용 및 특징 - 백선엽(백선엽 : 1920~현재)은 일제 강점기의 교육자 군인이자 대한민국의 군 인 정치인 외교관 기업인 교육인이다. 만주국 육군군관학교 제9기로 졸업하 여 만주국의 장교로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하였으며 만주군 중위로 있을 때 1945 년 광복을 맞았다. 해방 직후에는 고당 조만식의 비서로 활동했다. 1946년 군정 기 남조선국방경비대에서 활동하였고, 1949년 제5사단장이 되었으며 대한민국 창군 주역으로 대한민국 국군 창설에 참여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에 대한민국 국군 장군으로 참여하였다. - 백선엽 육군 장군의 옷은 하예복(상하 1벌), 동정복(상하 1벌), 동만찬복(상하 1 벌), 동근무복(상하 1벌) 그리고 트렌치코트 1벌이다. 1. 하예복( 夏 禮 服 ) 상하의 1벌로 구성되어 있고 흰색의 개버딘으로 제작하였다. 홑옷으로 자켓의 상부에만 안감을 넣었다. 상의는 테일러드 칼라(tailored collar)에 싱글 브레스 티드(single breasted)이다. 앞중심에 무궁화 장식의 단추 4개를 달아 여몄다. 양 쪽으로 각 상하 2개씩 모두 4개의 주머니가 있다. 상부의 주머니는 아웃포켓 (patch pocket)으로 뚜껑(flap)에 장식단추가 달려있다. 왼쪽 주머니 위에 군인들 의 상징인 약장이 8단 22개가 달려있다. 오른쪽 주머니 위에는 태극무늬 수장식 이 있다. 양 어깨에는 장식 단추가 있는 견장이 있고 장군을 상징하는 별이 4개 - 34 -
달려있다. 뒷트임이 있다. 하의인 바지도 상의와 같은 옷감인 개버딘으로 만들었다. 뒷주머니는 양쪽 2 개로 뚜껑(flap)이 달려있다. 착용자가 분명한 제복으로 여름 행사용 예복이다. 착용한 흔적이 여러 곳에 남아있다. 2. 동정복( 冬 正 服 ) 상하의 1벌로 구성되어 있고, 겉감은 두꺼운 카키색 울(wool) 저지(개버딘), 안감은 실크(silk)를 사용하였다. 형태는 하예복과 유사하지만 포켓의 flap 모양 이 조금 다르다. 상의는 테일러드 칼라(tailored collar)에 싱글 브레스티드 (single breasted)이다. 앞 중심에 무궁화 장식의 단추 4개를 달아 여몄다. 양쪽 으로 각 상하 2개씩 모두 4개의 주머니가 있다. 주머니는 山 자를 거꾸로 놓은 듯한 모양의 뚜껑(flap)에 장식단추가 달려있다. 뚜껑의 가장자리는 상침 장식이 있다. 뚜껑 양쪽 가장자리에 작은 스냅 단추를 달아 뚜껑을 고정하였다. 주머니 는 웰트 포켓[입술 주머니]이다. 어깨에는 장식 단추가 있는 견장이 있고 장군 을 상징하는 별이 4개를 금속사로 수놓았다. 뒷트임이 있다. 상의의 안쪽에 한 자로 백선엽 이라는 미싱자수가 놓여있다. 겨드랑이 안쪽에 너비 12.5cm, 높이 3cm의 반달모양의 가죽위에 강호 양복 이라는 상호와 주소와 전화번호가 인쇄 되어 있다. 안감에는 많이 착용하여 훼손된 곳이 있다. 상의의 가장자리의 일부 는 상침하였다. 하의인 바지도 상의와 같은 옷감인 울(wool) 저지으로 만들었다. 뒷주머니는 양쪽 2개로 뚜껑(flap)이 달려있다. 그 밑에 2.5cm의 단추를 달아 주머니를 고정 하였다. 3. 만찬복 1958~1962년까지의 만찬복( 晩 餐 服 )은 서양에서 착용하던 디너 재킷(Dinner jacket: 약간의 약식예장)을 뜻하는 것이나, 군에서 제정한 만찬복의 모양은 이 와는 다르게 메스 재킷(Mess jacket) 형태로서, 연미복에서 꼬리를 잘라낸 형태 의 만찬복을 말한다. 재킷의 어깨에는 견장대, 소재의 수장( 袖 章 )은 관등의 구별 없이 폭 2.5cm의 복지색 편직 띠를 부착하였고, 앞면의 중형 단추와 견장대의 소형단추는 황금색 금속제이다. 바지의 양 측면 봉제선상에는 관등을 표시하는 흑색 편직 띠를 관등에 따라 장관급은 폭 1.5cm 크기를 2줄을 부착한다. 고 하 였다. 이를 참고하여 보면 이 옷은 1958~1962년 사이에 착용되었던 동만찬복 ( 冬 晩 餐 服 )이다. 카키색 울(wool:모직물) 짧은 볼레로 형식의 더블 브레스티드(double breasted) 자켓으로 소매 끝에 검은색의 선장식이 8.5cm 정도 달려 있다. 허리 에는 양쪽에 2개씩 다트가 있고, 더블 단추가 사선으로 달려있다. 테일러드 (tailored) 칼라(collar)이고 왼쪽 칼라에는 단추 구멍이 있다. 어깨에는 3cm 너 비의 단추가 달린 견장에 금속사로 수놓은 별이 4개 있다. 라펠(lapel)과 왼쪽 길에는 훈장을 걸 수 있는 실 루프(loop) 3개가 있다. 소매의 끝에서 3.5cm 올 라 온 곳에는 너비 7.8cm의 편직으로 된 브레이드 장식이 있다. 안 포켓 가까 이에 라벨이 있다. 바지의 양옆에는 너비 1.8cm 금색 브레이드 장식이 두 줄 나란히 붙어있고, 서스펜더 벨트(suspender belt)를 맬 수 있게 바지 안쪽에 흰 단추가 달려있다. 바지의 안감은 무릎 아래 길이 정도 들어 있다. - 35 -
4. 동근무복 카키색 울로 만든 동근무복으로 셔츠와 바지 1벌로 구성되어 있다. 컨버터블 칼라(Convertible collar)에는 별 배지가 4개 달려있으며, 어깨에는 견장이 달려 있다. 커프스에는 단추가 2개 달려있다. 셔츠 앞 중심의 양쪽에 아웃포켓이 달 려있다. 밑단은 굴린 형태이다. 여러 곳에 충해를 입었다. 바지 양옆에 인포켓이 있으며, 뒤에는 뚜껑이 달린 포켓이 2개씩 있다. 허리 안쪽으로 서스펜더(suspender) 벨트(belt)를 걸 수 있는 단추가 있다. 바지 포켓 안쪽에는 상표와 벨트에 W-9478 이라는 도장이 찍혀있다. 동근무복은 미국에서 제작된 기성복이다. 5. 트렌치 코트 전형적인 트렌치 코트의 형태이다. 더블 브레스티드(double breasted)이며 칼 라 안에 단추가 달려있다. 허리에는 벨트가 있고, 뒷 중심에는 47.5cm 트임이 있다. 단추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더블(double)로 3줄 달려있다. 소매 끝에는 밴드가 있고 단추 4개가 달려있다. 어깨에는 견장이 있고, 별이 4개 달려있다. 이 트렌치코트의 안쪽에는 H.NAKASHIMA/OSKA,TOKYO라는 라벨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일본에서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1962년까지 주로 장교들에게 지급하여 정복 근무복 작업복 등의 겉옷으로 착용하였다고 한다. 보존상태 매우 좋다. ᄋ 문헌자료 -국방군사연구소(1997), 韓 國 의 軍 服 飾 發 達 史 Ⅱ ᄋ 기 타 : 백선엽 장군 기증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백선엽 육군장군의 하예복, 동정복, 동만찬복, 동근무복, 상하의 각 1벌과 트렌치 코트 1벌이다. 대한민국 국군의 산증인으로 대한민국 장군복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을 건의한다. ᄋ 종합의견 : 백선엽 육군장군의 하예복, 동정복, 동만찬복, 동근무복, 상하의 각 1 벌과 트렌치코트 1벌이다. 대한민국 국군의 산증인으로 대한민국 장군복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근무복에서부터 예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군복이 갖추져있 다.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을 건의한다.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복식사)> ᄋ 현 상 : 상태 매우 양호함 ᄋ 내용 및 특징 -이 유물들은 백선엽(1920~ )장군의 여름 예복(상하 1벌), 겨울 정복(상하 1벌), 겨울만찬복(상하 1벌), 겨울근무복(상하 1벌) 그리고 트렌치코트 1벌이다. ᄋ 문헌자료 -국방군사연구소(1997), 韓 國 의 軍 服 飾 發 達 史 Ⅱ ᄋ 기 타 -백선엽 장군 기증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백선엽 장군의 하예복, 동정복, 동만찬복, 동근무복, 상하의 각 1벌과 트렌치코트 1벌 유물로서 대한민국의 육군복식 그중에서도 장군의 각종 유형의 복식을 볼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착용자가 확실하고 유물의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하여 등 - 36 -
록문화재로 등록할 가치가 충분하다. ᄋ 종합의견 : 백선엽(1920 )장군의 근무복에서부터 예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 형의 복장을 알수 있는 자료로서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가치가 있다. 사. 판사 법복 1) 명 칭 : 판사 법복 2) 소 유 자 : 대법원 법원도서관 3)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 219 4) 수 량 : 1점 5) 규 격 : 길이 110cm, 화장 85cm, 가슴둘레/2 69cm 6) 착 용 자 : 김홍섭(1915 1965) 7) 재 질 : 모직 8) 조성연대 : 1953년 추정(1953 1965년 착용) 9) 조사자 의견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1953년 3월 5일에 발표된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 서기 복제규칙 에 의하여 제작ᆞ착용된 판사 법복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의한 것으로, 김홍섭(1915 1965) 판사가 1953년부터 서울고등법원장 재직 중 사망한 1965년까 지 착용하였던 것이다. 착용자와 착용 시기가 확실한 판사 법복이므로 근대의생활 분야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현 상 : 일부 퇴색하여 변색되어 있음. ᄋ 내용 및 특징 -이 판사 법복은 김홍섭(1915~1965)이 서울고등법원장으로 재직 중에 입었던 법 복이다. -해방이후 6.25 동란을 거치면서 몇 년 동안 법복은 정비되지 못하였다. 1953년 3 월 5일 발표한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 서기 복제규칙 에 따라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법복이 마련되었다. 착용자의 신분에 따라 판사는 백색, 검사는 황색, 변호사는 자색의 무늬를 수놓았다. 이 법복은 검정색 모직(확인) 가운으로, 목 부분에는 스탠드 칼라(stand collar) 를 부착하고 검정색 법모와 함께 착용하였다. 가운의 앞에는 5개의 단추가 달려 있는 탭(tap)이 있어 앞에서 여미게 되어 있다. 소매는 두리소매이다. 가슴 중앙 에는 지름 20cm의 무궁화 무늬의 은사로 몰 자수되어 있다. 현재는 은사가 변 색되어 마치 갈색처럼 보인다. 함께 보관되어 있는 법모는 구름과 태극무늬를 은사로 수놓았다. ᄋ 문헌자료 -조선총독부관보(제2393호 대정 9년 8월 2일) -법복디자인연구(1998),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연구소, 경원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ᄋ 기 타 -김홍섭(1915~1965) 판사의 부인인 김자선 여사 기증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일제 강점기 시대인 1920년 7월 26일 칙령 제222호와 1890년 (명치 23년) 10월 23일 칙령 제 260호 조선총독부 재판소 직원의 복제에 관한 건에 의한 판사 법 복임 - 37 -
ᄋ 종합의견 : 해방이후 1953년 3월 5일에 발표한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 서기 복제규칙 에 의해 대한민국 최초의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따라 제정된 판사법복으 로 착용자가 확실한 귀중한 자료이다.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복식사)> ᄋ 현 상 : 일부 퇴색과 변색. ᄋ 내용 및 특징 -이 판사 법복은 김홍섭(1915~1965)이 서울고등법원장으로 재직 중에 입었던 법 복이다. ᄋ 문헌자료 -조선총독부관보(제2393호 대정 9년 8월 2일) -법복디자인연구(1998),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연구소, 경원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ᄋ 기 타 -김홍섭(1915~1965) 판사의 부인인 김자선 여사 기증 ᄋ 등록기준 및 근거기준 -이 옷은 김홍섭(1915~1965) 판사가 고등법원에 근무하던 당시에 착용하였고 소 장해왔던 판사의 법복이다. - 대한민국 법관의 공식적인 법복은 1953년 3월 5일 발표한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 서기 복제규칙 에 따라 마련되었다. 1953년의 복제규칙은 1966년까지 유 지되었다. 당시 판사 검사 변호사의 법복의 색상과 형태는 모두 같으나, 무궁화 자수문양의 색상으로 판사(백색), 검사(황색), 변호사(자색)를 구별하였다. 판사 의 법복에 장식된 백색의 자수는 은사로 자수되어 있다. 전 민복기 대법원장의 검사, 변호사 법복과 자수문양의 색상만 달라 당시의 규정과 일치하는 유물로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필요가 있다. ᄋ 종합의견 : 해방이후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따라 제정된 판사법복이며 착용자(김 홍섭)가 분명하여 보존 가치가 충분한 자료이다. 아. 검사 법복 1) 명 칭 : 검사 법복 2) 소 유 자 : 대법원 법원도서관 3)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 219 4) 수 량 : 1점 5) 규 격 : 길이 110cm, 화장 85cm, 가슴둘레 140cm 6) 착 용 자 : 민복기(1913~2007) 7) 재 질 : 모직 8) 조성연대 : 1953년 추정(1953 1955, 1963 1966년 착용) 9) 조사자 의견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1953년 3월 5일에 발표된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 서기 복제규칙 에 의하여 제작ᆞ착용된 검사 법복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의한 것으로, 대법원장을 역임한 민복기(1913~2007)가 1953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재직 또 는 1955~1956년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때에 착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착용자 와 착용 시기가 비교적 확실한 검사법복이므로 근대의생활분야 등록문화재로 등 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 38 -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현 상 : 일부 퇴색하여 변색되어 있음 ᄋ 내용 및 특징 - 이 검사 법복은 전 대법원장 민복기(1913~2007)가 대법원장 임명 전인 1953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재직 또는 1955~1956년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때에 착 용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검사법복이다. -해방이후 6.25 동란을 거치면서 몇 년 동안 법복은 정비되지 못하였다. 1953년 3 월 5일 발표한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 서기 복제규칙 에 따라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법복이 마련되었다. 착용자의 신분에 따라 판사는 백색, 검사는 황색, 변호사는 자색의 무늬를 수놓았다. 이 법복은 김홍섭 판사의 판사법복과 형태는 동일하나 무궁화 무늬의 색상만 다 르다. -검정색 모직(확인) 가운으로, 목 부분에는 스탠드 칼라(stand collar)를 부착하고 검정색 법모와 함께 착용하였다. 가운의 앞에는 5개의 단추가 달려있는 탭(tap) 이 있어 앞에서 여미게 되어 있다. 양쪽에는 주머니가 있다. 소매는 두리소매이 다. 가슴 중앙에는 지름 20cm의 무궁화 무늬 속에 지름 10cm의 무궁화가 금사 로 몰 자수되어 있다. 함께 보관되어 있는 법모는 지름 5cm의 무궁화 무늬 속 에 태극 무늬가 은사로 수놓았다. 모자 뒤쪽에는 리본장식이 있다. 리본장식의 안쪽에 고무줄로 착용자의 머리 사이즈를 조정할 수 있다. -길이 110cm, 화장 73cm이다. ᄋ 문헌자료 -법복디자인연구(1998),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연구소, 경원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ᄋ 기 타 -민찬홍[민복기(1913~2007) 전 대법원장의 손자] 기증 ᄋ 종합의견 : 해방이후 1953년 3월 5일에 발표한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 서기 복제규칙 에 의해 대한민국 최초의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따라 제정된 검사법복으 로 착용자가 확실한 귀중한 자료이다.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복식사)> ᄋ 내용 및 특징 - 이 옷은 전 대법원장 민복기가 착용했고 소장해 온 검사의 법복이다. 민복기가 1956년 7월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1956년 이전의 유물로 추정된다. - 대한민국 법관의 공식적인 법복은 1953년 3월 5일 발표한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 서기 복제규칙 에 따라 마련되었다. 법복의 색상과 형태는 같으나 무궁 화 자수문양의 색상으로 판사(백색), 검사(황색), 변호사(자색)를 구별하였다. 검 사 법복의 무궁화 자수는 금사로 수를 놓았다. 김홍섭 판사의 은사(백색) 무궁 화 자수 유물과 자수문양의 색상만 달라 당시의 규정과 일치한다. ᄋ 문헌자료 -법복디자인연구(1998),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연구소, 경원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ᄋ 기 타 -민찬홍 기증. 민복기(1913~2007) 전 대법원장의 손자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이 옷은 전 대법원장 민복기가 착용했고 소장해 온 1953 1956년 시기의 검사의 법복이다. 이는 민복기가 1956년 7월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한 사실로 미루어 추 - 39 -
정가능하다. 법복에는 금색으로 무궁화 자수를 수놓아 규정과 일치한다. 1950년 대우리나라 법복의 모습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로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ᄋ 종합의견 : 해방이후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따라 제정된 검사법복이며 착용자(민 복기)가 분명하여 보존 가치가 충분한 자료이다. 자. 변호사 법복 1) 명 칭 : 변호사 법복 2) 소 유 자 : 대법원 법원도서관 3)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 219 4) 수량, 규격 및 재질 등 연번 구 분 규 격 재 질 착용자 1 일제강점기 변호사 법복 길이 110cm, 화장 73m 모직 김홍섭 2 1953년형 변호사 법복 길이 110cm 모직 민복기 계 2점 조성연대 (착용시기) 1941년 (1941 1950) 1956년 (1956 1961) 비 고 5) 조사자 의견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가. 일제강점기 변호사 법복 ᄋ 이 변호사 법복은 독립투사 변론에 앞장섰던 김홍섭(1915~1965) 판사가 일제강점 기인 1941년부터 해방 때까지 변호사로 활동할 때 착용했던 법복이다. 1920년 법 복 규정 에 따라 제정된 변호사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되므로 근대의 생활분야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나. 1953년형 변호사 법복 ᄋ 1953년 3월 5일에 발표된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 서기 복제규칙 에 의하여 제작ᆞ착용된 변호사 법복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의한 것이 다. 대법원장을 역임한 민복기(1913~2007)가 1956년 7월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하 였다고 하는데 그 시기에 착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착용자와 착용 시기가 비 교적 확실한 변호사 법복이므로 근대의생활분야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 람직하다고 판단된다.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가. 일제강점기 변호사 법복 ᄋ 현 상 : 일부 퇴색하여 변색되어 있음 ᄋ 내용 및 특징 - 이 변호사법복은 일제 강점기인 1940년대 김홍섭(1915~1965)이 변호사로 활동 할 때 착용한 것이다. 김홍섭은 1941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당시 김병로( ~ )와 함께 독립투사 변론에 앞장섰을 때이다. - 변호사의 법복으로 규정에 따라 흰색의 오동나무 꽃무늬와 당초무늬가 수 놓여 있다. 전해오는 사진에 보면 모자를 착용했으나 현재 모자는 없는 상태이다. - 법복은 스탠드 칼라(stand collar)가 달린 검정색 가운과 법모( 法 帽 )로 구성되었 다. 가운은 앞 중심에 부착한 4개의 단추로 여미게 되어있다. 오동나무 꽃과 당 - 40 -
초무늬가 어깨와 가슴에 구름무늬처럼 수 놓여있다. - 일제강점기에는 1920년 법복에 관한 규정(대정 9년 7월 27일자 제정 공포 칙령 제 222호 및 대정 9년 8월 2일자 조선총독부 관보 제 2393호)이 새로 마련되어 검은색 모직( 毛 織 ) 바탕에 일제의 상징인 오동나무꽃 무늬를 수놓은 법복과 구 름무늬가 있는 모자를 착용하게 되었다. 판사, 검사, 변호사의 법복 형태와 무늬 의 구성은 같았고 오동나무 꽃 색깔에 구별이 있었다. 오동나무 꽃은 일본내각 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무늬의 색은 판사는 자색, 검사는 비색, 변호사는 흰색이었고, 고등법원은 오동나무 꽃 7개, 복심법원은 5개, 지방법원은 3개로 꽃 의 색깔과 숫자로 구별하였다. 길이 110cm, 화장 73cm이다. ᄋ 문헌자료 -조선총독부관보(제2393호 대정 9년 8월 2일) -법복디자인연구(1998),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연구소, 경원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ᄋ 기 타 -김홍섭(1915~1965) 판사의 부인인 김자선 여사 기증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일제 강점기 시대인 1920년 7월 26일 칙령 제222호와 1890년 (명치 23년) 10월 23일 칙령 제 260호 조선총독부 재판소 직원의 복제에 관한 건에 의한 변호사 법복임. 일제 강점기 시대 법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임. ᄋ 종합의견 : 이 변호사법복은 1941년부터 해방 때까지 독립투사 변론에 앞장섰던 김홍섭(1915~1965)판사가 일제강점기 때 변호사로 활동할 때 착용했던 법복이다. 1920년 법복 규정 에 따라 제정된 변호사복을 알 수 있는 자료로 등록자료로 추 천하는 바이다. 나. 1953년형 변호사 법복 ᄋ 현 상 : 일부 퇴색하여 변색되어 있음. ᄋ 내용 및 특징 -이 변호사 법복은 전 대법원장 민복기(1913~2007)가 착용하고 소장했던 변호사 법복이다. 전 대법원장 민복기는 1956년 7월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한 사실이 있 으므로 당시 착용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 1953년 3월 5일 발표한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 서기 복제규칙 에 따라 대 한민국의 공식적인 법복이 마련되었다. 착용자의 신분에 따라 판사는 백색, 검사 는 황색, 변호사는 자색의 무늬를 수놓았다. 1953년의 복제규칙은 1966년 새로운 규칙을 정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1966년 이후 변호사는 판사 검사와 달리 더 이상 법복을 입지 않았다. 이 변호사 법복은 김홍섭 판사법복이나 민홍기 전 대법원장 검사과 형태는 동일 하나 무궁화 무늬의 색상만 다르다. ᄋ 문헌자료 -법복디자인연구(1998),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연구소, 경원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ᄋ 기 타 -민찬홍[민복기(1913~2007) 전 대법원장의 손자] 기증 ᄋ 종합의견 : 해방이후 1953년 3월 5일에 발표한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 서기 복제규칙 에 의해 대한민국 최초의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따라 제정된 변호사법복 으로 착용자가 확실한 귀중한 자료이다.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복식사)> 가. 일제강점기 변호사 법복 ᄋ 현 상) : 일부 퇴색하여 변색되어 있음 ᄋ 내용 및 특징 -이 옷은 일제 강점기인 1940년대 김홍섭(1915~1965)이 착용했던 변호사 법복이 - 41 -
다. 검은 색 의복과 모자에 흰색의 오동나무 꽃무늬와 당초무늬가 수 놓여있다. ᄋ 문헌자료 -조선총독부관보(제2393호 대정 9년 8월 2일) -법복디자인연구(1998),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연구소, 경원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ᄋ 기 타 -김홍섭(1915~1965) 판사의 부인인 김자선 여사 기증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이 옷은 1940년대 김홍섭(1915~1965)이 착용했던 변호사 법복으로 일제시기 법 복의 면모를 볼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 7월 법복에 관한 규정(대정 9년 7월 27일자 제정 공포 칙령 제 222호 및 대정 9년 8월 2일자 조 선총독부 관보 제 2393호)에 따라 제정된 법복은 검은색 모직 바탕에 오동나무 꽃 무늬를 수놓은 법복과 구름무늬가 있는 모자를 착용하였다. 판사, 검사, 변호 사의 법복 형태와 무늬의 구성은 같았고 오동나무 꽃무늬의 색이 달랐다. 고등 법원은 오동나무 꽃 7개, 복심법원은 5개, 지방법원은 3개로 꽃의 색깔과 숫자로 구별하였다. 일제강점기 법복을 알 수 있는 흔치 않을 자료로 근 현대문화재로 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ᄋ 종합의견 : 일제시기 김홍섭(1915~1965)판사가 일제강점기 때 변호사로 활동할 때 착용했던 법복이다. 1920년 법복 규정 에 따라 제정된 변호사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등록을 추천한다. 나. 1953년형 변호사 법복 ᄋ 현 상 : 일부 퇴색과 변색. ᄋ 내용 및 특징 -이 옷은 전 대법원장 민복기(1913~2007)가 착용했던 변호사 법복이다. ᄋ 문헌자료 -법복디자인연구(1998),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연구소, 경원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ᄋ 기 타 -민찬홍 기증. 민복기(1913~2007) 전 대법원장의 손자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이 옷은 전 대법원장 민복기가 착용했고 이후 소장해온 변호사의 법복이다. 민 복기가 1956년 7월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한 사실로 미루어볼 때 1950년대 중반 에서 60년대 중반 시기의 법복으로 추정된다. - 대한민국 법관의 공식적인 법복은 1953년 3월 5일 발표한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 서기 복제규칙 에 따라 마련되었다. 당시 판사 검사 변호사의 법복은 색상과 형태는 같으나 무궁화 자수문양의 색상으로 판사(백색), 검사(황색), 변 호사(자색)를 구별하였다. 이러한 1953년의 복제규칙은 1966년 새로운 규칙을 정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1966년 이후 변호사는 판사 검사와 달리 더 이상 법 복을 입지 않았다. - 이 유물은 당시의 규정과 일치하고 착용자가 분명한 유물로 등록문화재로 등록 할 가치가 충분한 귀중한 자료이다. ᄋ 종합의견 : 해방이후 최초의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따라 제정된 변호사 법복이며 착용 자(민복기)가 확실하여 보존 가치가 충분한 자료이다. - 42 -
<붙임 2> - 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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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붙임 3> - 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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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붙임 4> 판사, 검사, 변호사 법복 보존관리 방안(법원도서관 제출) 등록문화재 예고 법복 관리현황 구 분 자료설명 보관위치 판사 법복 검사 법복 변호사 법복 광복후 첫 판사 법복 김홍섭 전 서울고등법원장 착용 광복후 첫 검사 법복 민복기 전 대법원장 착용 일제강점기 변호사 법복 김홍섭 전 서울고등법원장 착용 광복후 첫 변호사 법복 민복기 전 대법원장 착용 법원전시관에 전시중 법원사자료실에 보관중 법원전시관에 전시중 법원사자료실에 보관중 보존관리 방안 ᄋ 자료실에는 형광등 자외선 차단봉을 설치하고 정기적으로 방충방균제를 비치 하고 있음 ᄋ 기타 자료유해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조치할 예정임 - 문화재청 동산문화재 관리 가이드북 을 참고하여 자료보존환경을 유지 할 수 있도록 노력함 <자료보존 유해요인 및 권고사항> 빛 온, 습도 유해요인 대기오염과 공해 해충, 곰팡이 및 세균 취급 및 관리부주의 권고사항 - 직사광선 차단 - 실내 형광등 자외선 차단, 조도는 50룩스 이하 - 전시기간은 3개월 이내 - 20도 내외 - 상대습도 50 60% - 중성처리 보관용기 사용 - 검은 숯 비치 - 바닥에서 50cm 이상 떨어진 위치에 보관 - 방충방균제 사용 - 취굽자의 주의 - 정기적인 상태 점검 -전시관에 진열되어 있는 법복은 가급적 조속한 시일 내 복제본으로 대체함 -복식자료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중성한지로 포장하고 중성처리된 보존상자에 넣어 보관 -자료보존환경이 갖춰진 서고에 보관할 수 있도록 함 - 48 -
안건번호 근대 2013-04-002 2. 근현대문화유산 산업기술 유물 문화재 등록 가. 제안사항 근현대문화유산 산업기술분야 유물 중 산업사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 유물을 문화재로 등록하고자 부의하오니 심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 제안사유 ᄋ 근현대문화유산 산업기술분야 목록화 조사 연구용역 (2012년) 결과를 바탕 으로 관계전문가 자문회의 및 등록조사, 검토회의 등을 통해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 유물 18건에 대하여 문화재 등록예고 기간 ( 13.6.21~7.20)을 거쳐 문화재 등록 여부를 심의하기 위함 다. 주요내용 (1) 신 청 인 : 문화재청장 (2) 대상문화재 ᄋ 대 상 -신규 등록 대상 : 압사기 등 17건 번호 유물명 수량 및 규격 제작년대 소장자 (보관처) 소 재 지 비 고 1 압사기 2 공병우 세벌식 타자 기 3 현대자동차 포니1 4 해양조사 연보 5 통일벼 유물 6 1점 152(w) 119(h) 182( ) 1대 26.5(w) 28(d) 12.5(h) 1대 26.5(w) 28(d) 12.5(h) 1대 397(l) 156(w) 136(h) 해양조사요보 총9호 4 6배판(25.4 18.0) 해양조사연보 총15호 4 6배판(25.4 18.0) 허문회 시 험도구 및 조사야장 통일벼 조 사야장 연구용 원자로 TRIGA Mark-Ⅱ 7 전기로 2건 야장 : 18.7 10.6 3권 18.7 10.6 1기 823(h) 654(w) 655(d) 1건 8점 800(l) 750(w) 970(h) 1886년 추정 1949~ 1952 1949~ 1952 한국조폐공사 (화폐박물관)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 사업회 이수창 1975 백중길 1928~ 1942 국립수산 1954~ 과학원 1967 1960~ 1970년대 1960~ 1970년대 1959~ 1962 한국과학기술 한림원 (국립과천과학관) 국립식량 과학원 한국전력공사 1963년 철박물관 대전광역시 유성구 과학로 80-67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로 56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 11길 3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대신로 244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해안로 152-1 경기도 과천시 상하 벌로 110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인로 125 서울특별시 노원구 노원길 130 충청북도 음성군 영 산로 360 소유자 미동의 소유자 미동의 - 49 -
번호 유물명 수량 및 규격 제작년대 소장자 (보관처) 소 재 지 비 고 8 9 연세 101 아날로그 전자계산기 아날로그 전자계산기 3호기 1식 29(l) 80(w) 196(h) 1식 325(l) 72(d), 높이 다양 10 금성 라디오 A-501 1대 42.9(w) 17.5(h) 16.3(d) 1대 42.9(w) 17.5(h) 16.3(d) 11 금성 냉장고 GR-120 1대 38.0(w) 75.5(h) 41.4(d) 12 금성 텔레비전 VD-191 1대 63.0(w) 40.0(h) 32.0(d) 1대 63.0(w) 40.0(h) 32.0(d) 13 금성 세탁기 WP-181 1대 69.0(w) 38.0(h) 90.0(d) 14 삼성전자 64K DRAM 15 글 1.0 패키지 16 치도규칙( 治 道 規 則 ) 17 과학조선 2점 웨이퍼 : 4.0인치 칩 : 2.3(w) 0.9(d) 0.8(h) 1건 2점 매뉴얼 : 15.5 22.0 디스켓 : 5.25인치 1책 29.6 18.8 총22호 4 6배판(25.4 18.0) 총28호 4 6배판(25.4 18.0) 1961년 1964년 1959년 1959년 1965년 1966년 1966년 1969년 박상희 한양대학교 박물관 (주)LG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주)LG (주)LG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주)LG 1983년 (주)삼성전자 1989년 1882년 (주)한글과 컴퓨터 규장각한국학 연구원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 222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지산로 167-72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지산로 167-72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지산로 167-72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지산로 167-72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삼성2로 95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왕판교로 644번길 49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103동 1933~ 1941년 연세대학교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 1933~ 1944년 고려대학교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변경 등록 대상 : 1건 번호 유물명 수량 규격 제작년대 소유자 소재지 비고 당초 국가표준 근대도량형기 변경 국가표준 도량형 유물 154건 331점 236건 549점 1900~ 1960년대 산업통상자원부 기술표준원 1900~ 1960년대 경기도 과천시 교육원로 98 기술표준원 경기도 과천시 교육원로 98 (3) 추진경과 ᄋ 12.3~ 11월 : 근현대 산업기술분야 목록화 조사 연구용역 실시 -용역수행 : 전북대학교 산학협력단(책임연구원 : 김근배 교수), 175건 목록화 ᄋ 13. 1. 17. : 산업기술분야 등록조사 대상 선정 및 등록기준(안) 마련 전문가 자문 - 자문위원 : (문화재위원), (한양대교수), (문화재전문위원), (전북대 교수) -자문결과 : 등록 검토대상 유물 선정 기준(안) 마련, 등록조사 대상 선정 ᄋ 13.4~ 5월 : 문화재 등록조사(21건) - 50 -
ᄋ 13. 6. 4. : 문화재 등록 대상 선정 사전검토 회의 - 자문위원 : (문화재위원), (문화재위원), (광운대 교수), (경주대 교수), (가천대 교수) -회의결과 : 조사대상 중 1건 제외(산업용 화약 제조 설비), 2건 보류(압인기, TDX) ᄋ 13. 6. 11. : 제3차 근대분과 문화재위원회 검토 - 압사기 등 18건을 등록 예고키로 함 (4) 문화재 등록예고 ᄋ 기 간 : 13.6.21~7.20(30일간) / 압사기 등 18건(변경등록 1건 포함) ᄋ 예고결과(2건) -연구용 원자로 TRIGA Mark-Ⅱ: 소유 관계 불분명 -통일벼 조사야장 제출처 : 국립식량과학원 의 견 : 문화재 등록 유물 추가 및 등록예고 사유에 대한 문안 검토가 필요함(벼 품종개발에는 육종가 혼자 성과를 낼 수 없으며 육종팀 전체의 각각 역할이 종합적으로 결집된 성과임) (5) 심의사항 : 문화재 등록 심의 라. 검토의견 < 관계전문가 등록조사( 13.4 5월) > ᄋ 전북대교수 등 의견 : 붙임 참조 < 근대문화재과 의견> ᄋ 예고기간 중 의견수렴 결과에 따라 소유자 미동의 2건은 제외하고 압사기 등에 대하여 등록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됨 마. 의결사항 : 원안 가결 ᄋ 문화재 등록 - 압사기,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 현대자동차 포니1, 해양조사연보, 통일벼 유물(허문회 시험도구 및 조사야장), 전기로, 연세 101 아날로그전자계산 기, 아날로그전자계산기 3호기,금성 라디오 A-501, 금성 냉장고 GR-120, 금성 텔레비전 VD-191, 금성 세탁기 WP-181, 삼성전자 64K DRAM, 글 1.0 패키지, 치도규칙( 治 道 規 則 ), 과학조선, 국가표준 도량형 유물 ᄋ 문화재 등록 보류 -통일벼 유물(통일벼 조사야장), 연구용 원자로 TRIGA Mark-Ⅱ -사 유 : 소유자 미 동의 및 소유 관계 불분명 ᄋ 출석 10명, 찬성 10명 붙임 : 근현대문화유산 산업기술분야 문화재 등록조사 보고서 - 51 -
근현대 산업기술분야 문화재 등록조사 보고서 1. 목 적 ᄋ 우리나라 근 현대 산업기술분야 유산 중 산업사적 문화적 사회적 가치가 큰 것을 문화재로 등록 보존 ᄋ 산업기술 유산의 문화재적 평가 및 가치 부여를 통해 근대 동산문화재에 대한 대국민 홍보 및 관심 제고 2. 추진경과 ᄋ 12.3 ~ 11월 : 근현대 산업기술분야 목록화 조사 연구용역 실시 -용역수행 : 전북대학교 산학협력단(책임연구원 : 김근배 교수), 175건 목록화 ᄋ 13. 1. 17. : 산업기술분야 등록조사 대상 선정 및 등록기준(안) 마련 전문가 자문 -자문위원 : (문화재위원), (한양대학교 교수), (문화재전문위원), (전북대학교 교수) -자문결과 : 등록 검토대상 유물 선정 기준(안) 마련, 등록조사 대상 선정 ᄋ 13.4 ~ 5월 : 문화재 등록조사(21건) ᄋ 13. 6. 4. : 문화재 등록 대상 선정 사전검토 회의 - 자문위원 : (문화재위원), (문화재위원), (광운대학교 교수), (경주대학교 교수), (가천대학교 교수) -회의결과 : 조사대상 21건 중 3건은 제외(압인기, 산업용 화약 제조 설비, TDX) 하여 총 18건을 등록 대상으로 하며, 등록 대상 18건 중 현대자동차 포니1, 해양조사연보, 통일벼 유물, 국가표준 도량형 유물 에 대해 서는 다음 유물을 등록 대상으로 함 현대자동차 포니1 : 총 1건 (백중길 소장 1975년식) 해양조사연보 : 총 24호(해양조사연보 제1호~제15호 및 해양조사요보 제1호~제9호) 통일벼 유물 : 총 2건(허문회 연구도구 및 조사야장, 통일벼 조사 야장) 국가표준 도량형 유물 : 총 82종 218점(벽걸이시계, 조선인사예규 제외 및 도 량형계기각종류일람표 추가) ᄋ 13. 6. 11. : 제3차 근대분과 문화재위원회 검토 - 압사기 등 18건을 등록 예고키로 함 ᄋ 13. 6. 21. : 문화재 등록예고 -기 간 : 13.6.21~7.20(30일간) / 압사기 등 18건(추가등록 1건 포함) -예고결과(2건) 연구용 원자로 TRIGA Mark-Ⅱ: 소유 관계 불분명 통일벼 조사야장(국립식량과학원) : 문화재 등록 유물 추가 및 등록예고 사유에 대한 문안 검토가 필요함(벼 품종개발에는 육종가 혼자 성과를 낼 수 없으며 육종팀 전체의 각각 역할이 종합적으로 결집된 성과임) 3. 조사개요 가. 조사대상 : 압사기 등 18건 - 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