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과 생명 사이 2015.4.13 이정아_고려대학교 경제학박사 tempjunga@gmail.com 나의 죽음은 어떻게 가까운 타인의 생활을 불안하게 만드는가? 이 질문은 역설적으로 다음의 질문으로 연결된다. 나의 삶에서 나 자신과 가족의 생존, 그리고 생활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 각 어느 정도일까? 복지국가 논의에서 익숙한 개념인 탈상품화 는 바로 이러한 질문들과 관계가 있다. 노동을 상품으로 팔지 않더라도 생활할 수 있음을 가리키는 노동력의 탈상품화 가 달성된 상태에서 개인의 생존은 당연한 권리이므로 노동을 강요당하지 않을 수 있다. 노동 은 생활의 내용이자 자원이 될 수 있다. 나에겐 생명보험이 정말 기묘한 제도로 여겨진 적이 있다. 보험은 위험에 대비하 기 위한 것인데 생명보험이 대비하려는 위험은 사람의 생명, 즉 죽음이다. 그런데 그 죽음이라는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있는 인간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생명보험은 일반적으로 일정 기간 생존하면 만기보험금을 지급받고 이전에 사망하면 사망보험금 을 받기로 계약한다. 이 중 만기보험금만을 고려하여 생명보험에 가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유동성을 고려하면 차라리 저축을 하거나 다른 투자처를 찾는 편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생명보험 제도의 핵심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사 망사고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불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키르케고르는 불안을 인간 의 근본 감정의 위치에 놓지 않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묘한 점은 인간의 죽음 뒤에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데 있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에서는 현재의 소비를 더 선호하는 합리적인 개인이 당장 소비 할 수 있는 돈을 굳이 저축하는 이유가 미래 소비에 있다고 설명하며, 따라서 문제 의 해를 구하기 위해 죽을 때 있는 돈을 다 쓰고 죽는다는 조건을 전제로 하곤 한 다. 직관적으로도 이는 비현실적인 조건이다. 사람들은 자녀 등의 가족에게 재산을 남겨 상속할 뿐만 아니라 죽기 전에 증여하기도 한다. 이 맥락에서 소비로부터 효용 을 얻는 인간의 진짜 미스테리는 자기가 쓸 돈을 굳이 자녀를 낳아 같이 쓴다는 사 실일지도 모르겠다. 이 미스테리를 경제학적으로는 효용함수에 자녀의 소비에 대한 효용, 즉 이타심을 넣어 해결하기도 한다. 자녀는 자신의 자녀에게, 그 자녀는 또 그 자녀에게 이타심을 가지므로 이 해결방법은 수리적으로 무한해지는 심각한 난관에 1
봉착하지만, 동의하기 어렵진 않다. 오히려 이타심을 미스테리로 만드는 접근이 미스 테리라고 할 수 있겠다. 생명보험의 대상이 되는 위험은 사실 보험가입자의 죽음 자체가 아니라 그의 죽음 뒤 근친이 겪게 되는, 생활이 불안해질 가능성이다. 우리, 적당히 이타적인 개인들은 건강하게 살아있는 동안에 미리 죽은 후 남겨질 사람들을 걱정한다. 그렇지 않다면 생명보험이란 존재했을 리가 없는 제도이다. 나아가 위험이 더 크고 구조화된 사회 에서 생명보험에 대한 수요는 더 크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생명보험의 생명 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LIFE 는 종종 생활 로 번역된 다. 세 가지 색 시리즈로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았던 거장,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의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서 이중생활은 프랑스어로는 la double vie, 영어로는 the double life를 번역한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때의 life는 생명으로 번역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한국어 생명 과 생활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 이 저쪽 언어에는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들은 구분했다고 한다. 한국 어 생명 또는 목숨에 해당하는 조에zōé는 살아있음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생활에 해 당한다고 할 수 있는 비오스bíos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 특유한 삶의 형태나 방식 을 가리켰다. 1) 고대 세계에서 정치 영역인 폴리스에 포함되지 않았던 단순한 자연 생명인 조에가 국가 권력의 통치 대상이 된 현상, 즉 생명정치bio-politique는 말년 에 푸코가 천착했던 주제였다. 2) 나의 죽음은 어떻게 가까운 타인의 생활을 불안하게 만드는가? 이 질문은 역설적 으로 다음의 질문으로 연결된다. 나의 삶에서 나 자신과 가족의 생존, 그리고 조에 의 쳇바퀴 바깥에서 영위하는 생활, 비오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어느 정도일까? 복지국가 논의에서 익숙한 개념인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 는 바로 이러한 질문들과 관계가 있다. 노동을 상품으로 팔지 않더라도 생활할 수 있음을 가리키는 노동력의 탈상품화가 달성된 상태에서 개인의 생존은 당연한 권리이므로 노동을 강 요당하지 않을 수 있다. 3) 노동은 생활의 내용이자 자원이 될 수 있다. 탈상품화가 복지국가 논의에서 등장한 이유는 그것이 복지를 통해 달성 가능하다는 검토와 기대 에 있을 것이다. 반대로 나와 가족의 생활, 나아가 생존이 절실하게 나의 노동에 의 존하고 있는 상태를 고도의 상품화 상태라고 하자. 건강한 개인들이 죽음 이후, 노동하는 내가 사라질 때 를 미리 걱정해서 생명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불안해하는 현실이 바로 그런 고도의 상품화 상태가 아닐까? 1) 아감벤, 조르조(2008), 호모 사케르: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 박진우 옮김, 새물결 출판사. 2) 다음을 참조. 푸코, 미셸(2012),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8~79년, 오트르망 옮김, 도서출판 난장. 3) 다음을 참조. 에스핑앤더슨(2007), 복지 자본주의의 세가지 세계, 박시종 옮김, 성균관대학교 출판 부. 2
그림 1. 노동시간 변화 추세 출처: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상용직 5+ 각 년도. 그림 1은 지난 27년간 한국 임금노동자들의 평균적인 노동시간 추세를 나타낸 것이 다. 1990년부터 기존의 주48시간에서 주44시간, 2004년부터 주40시간 근무제를 점진 적으로 확대 시행한 결과, 월평균 총 노동시간은 50시간 이상 단축되었다. 소정노동시 간의 감소 추세가 비교적 완만한 것으로 보아 초과노동시간의 단축이 적지 않은 기여를 해왔다. 그림 1만 놓고 말하면, 그동안 한국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은 초과노동에 대 한 사회적 관대함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림 2. 여성관 남성의 월평균 총노동시간 출처: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상용직 5+ 각 년도. 그러나 여성과 남성의 월평균 총 노동시간을 각각 나타낸 그림 2를 그림 1과 비교하 면, 월평균 소정노동시간의 그래프가 여성의 월평균 총 노동시간 그래프와 거의 같다는 3
점을 알 수 있다. 전체의 총 노동시간 감소가 남성의 총 노동시간 감소보다 급한 것은 여성의 구성비가 높아진 데에서 기인한다. 즉, 여성은 주로 소정노동시간만큼 일하지만, 남성은 초과노동을 더 한다. 여기에서 질문 하나.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시간을 마음대 로 선택하고 있을까? 만약 마음대로 노동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동일한 일을 하더라도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초과노동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해석할 것 이고, 고용된 일자리의 규범화된 노동시간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여성과 남 성의 일자리가 분리되어 있다고 볼 것이다. 초과노동을 통해 장시간 노동을 하는 일자 리에 남성이 집중된 것이다. 여성과 남성의 노동시간은 모두 크게 줄어들었으며 여전히 여성의 노동시간이 남 성 88% 수준으로 짧다. 그러나 여성의 더 짧은 노동시간이 더 긴 여가시간을 의미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굳이 자료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대부분 경험적으로 동의할 수 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굳이 하나의 자료를 제시하려고 한다. 한국인이 생활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가 있다. 통계청이 1999 년 이후 5년마다 실시하는 생활시간조사 는 이미 서유럽, 북미 및 중남미, 아시아 여 러 국가들에서 실시하고 있다. 그림 3은 동일한 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들의 분포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개인의 노동시간 을 시장 노동과 비시장 노동으로 분류하는 데, 이 자료는 비시장 노동의 규모 파악 등의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림 3. 생활시간조사 실시 국가(짙은 색) 출처: UN 통계국(http://unstats.un.org/unsd/demographic/sconcerns/tuse/). 4
표 1. 행동별 평균 하루 시간사용량 단위: 분 개인유지 일 가정관리 가족 교제 및 보살피기 여가활동 여성 650.94 421.24 109.99 26.07 210.59 남성 645.75 470.64 26.21 16.43 263.32 주: 각 행동에 따르는 이동시간을 포함하였음. 개인의 행동은 크게 개인유지, 일, 학습, 가정관리, 가족 보살피기, 참여 및 봉사 활동, 교제 및 여가활동, 이동, 기타로 분류된다. 개인유지에는 수면과 식사, 개인위 생 등이 포함되고 교제 및 여가활동에는 교제뿐만 아니라 시청과 인터 넷 이용 등이 포함된다. 표 1은 현재 전일제 임금노동자인 여성과 남성의 행동별 평균 하루 시간사용량을 나타낸 것이다. 예상대로 남성은 하루 평균 약 50분을 더 일하지만, 여성이 가정관리와 가족 돌봄에 쏟는 시간은 93분 이상 더 길며 이는 남성의 약 3.2배 수준이다. 만약 가정관리와 가족 돌봄 시간을 가구유지에 소비되는 부불노동 시간이라 고 한다면 지불노동과 부불노동의 합인 총 노동시간은 위의 평균만 이용하여 계산할 때 남성이 44분 더 짧다. 그리고 이는 곧 교제 및 여가활동 시간의 차이로 반영됨을 알 수 있다. 표 2. 평일과 주말의 활동 단위: 분 평일 주말 개인유지 일 가정관리 가족 교제 및 보살피기 여가활동 여성 626.44 512.30 89.92 23.63 166.08 남성 622.79 567.16 16.70 11.43 204.64 여성 712.50 192.42 160.43 32.20 322.43 남성 703.84 226.40 50.29 29.09 411.80 주: 각 행동에 따르는 이동시간을 포함하였음. 표 2는 평일과 주말을 나누어 더 자세히 살펴본 것이다. 평일에 남성보다 여성이 부 불노동에 투여하는 시간은 85분 길지만 주말에는 113분 이상 더 길어진다. 주말 노동 시간이 짧아지므로 총 노동시간의 격차는 평일 약 31분에서 주말 약 79분으로 두 배 이상 길어진다. 개인의 활용가능시간이 지불노동시간보다 짧을 때를 시간빈곤 상태로 정의한다. 전일제 임금노동자 중에서 하루 1440분 중 평균적인 개인유지 시간인 647.67분과 가정관리, 가족 돌봄 시간을 뺀 활용가능시간 이 지불노동시간보다 짧 은 시간빈곤율을 평일을 기준으로 계산한 규모는 5.31%이다. 이는 남성 4.81%와 여성 6.15% 사이에 위치한 수치이다. 노동시간이 감소해감에 따라 이러한 시간빈곤율은 더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시간사용의 내용과 질이다. 5
노동자들은 노동하지 않는 여가시간에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을까? 결과는 남녀를 불문하고 와 가장 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평일과 주말을 나누어 보면 평일보다 길어진 여가시간의 적지 않은 부분을, 평일의 여가시간에도 함께 했던 와 함께 하고 있다. 평균적으로 자신의 여가시간의 3분의 1정도는 언제나 와 함 께 한다. 표 3. 가장 긴 시간을 사용한 교제 및 여가활동 단위: 분 평일 주말 여성 남성 여성 남성 1순위 2순위 3순위 아무것도 안하고 쉼 59.85 18.81 9.91 인터넷 정보검색 66.83 19.47 12.64 가족친척과의 교제 112.61 26.87 14.6 컴퓨터 게임 135.73 23.08 21.42 일반적으로 는 행복하지 않은 활동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나이가 들수록 의존도는 높아지는 듯하다. 표 4는 전일제 노동자들의 연령대 별 평균 시청시간이다. 세대를 추적 조사한 결과가 아니므로 해석에 유의할 필요가 있지만, 여성은 육아에 많은 시간을 쏟게 되는 30대에 시청시간이 조금 줄지만 이 후 꾸준히 늘고 남성의 시청 시간은 30대 이후로 여성을 초월한 것으로 나타난다. 표 4. 연령대별 평균 시청시간 단위: 분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이상 전체 68.70 73.59 87.04 99.86 114.73 여성 71.48 67.65 76.69 84.65 101.86 남성 65.90 76.28 92.73 107.04 121.21 남성은 지불노동으로 여성은 부불노동까지 더해 삶의 상당 부분을 노동에 할당한 다. 다수가 자신이 노동하지 않게 되는 혹은 할 수 없게 되는 상태에 대해 걱정하 고 불안해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하는 노동이 곧 생명보험이라는 생각도 든다. 노 동이라는 생명보험이든, 돈을 내고 가입한 생명보험 제도이든 생명보험은 이타심, 6
즉 남을 위한 마음에서 비롯한다. 부불노동을 더 많이 하는 여성들이 이 측면에서 좀 더 이타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렇듯 인간의 생애, 생활, 생명은 타인과 함 께 하는 것인데, 여가시간의 가장 큰 비중을 가 차지하고 있으며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의존하게 된다는 사실에 서글퍼지기도 한다. 타인과 함께 하는 노동활동이 생활의 다른 부분까지 잠식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여가활동의 내용에 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지는 않아도 그것이 조에zōé를 넘어 비오스bíos의 의미에 다가가 는 내용을 갖게 되기를 내 자신에게도,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미래에 대 해서도 기대한다. 2015년 새사연 발간 보고서 2015년 4월 13일 현재 아젠다 발간 일 제목 작성자 한국경제 1/8 가상의 적 앞세운 구조개혁의 속살 정태인 세계경제 1/12 약 엔, 강 위안, 슈퍼 달러 의 시대 도래? 박형준 고용,노동 1/15 노동시장 유연화, 만능 열쇠가 될 수 있을까? 김수현 주거 1/22 소수자가 된 무주택 서민의 미래는? 강세진 돌봄 1/26 좋은 돌봄, 현 상황에서는 불가능 최정은 복지 2/3 복지 없는 노후는 재앙 이다 이은경 잇:북 2/11 2015년 전망보고서 종합 : 침체의 지속, 복지 축소 정책의 위기 미디어팀 고용,노동 2/16 허점투성이 월급으로 은페되는 장시간 노동 이정아 고용,노동 2/24 월간 노동시장 모니터 : 2015년 1월 노동시장 분석 김수현 경제 2/27 복지국가로 가는 길, 한국은 지금 어디에?:1자본주의 다양성 모델들 박형준 경제 3/5 복지국가로 가는 길, 한국은 지금 어디에?:2한국사회경제모델의 나아갈 길 박형준 돌봄 3/9 아동학대와 CC 논란, 보육정책 방향 최정은 고용,노동 3/16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이정아 고용,노동 3/19 월간 노동시장 모니터 : 2015년 2월 노동시장 분석 김수현 주거 3/23 주택시장동향분석(5) : 아파트 실거래가 동향 강세진 보건 의료 4/9 의료급여와 노인환자가 재정위기의 주범? 이은경 경제 4/13 생활 과 생명 사이 이정아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