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교육과 사회 변화 -루소와 칸트- 강 성 훈 주제분류 정치철학, 교육철학 주요어 루소, 칸트, 교육, 정치체제, 자기개발기능, 완성능력 요약문 루소에게 있어서 역사란 인류가 우연한 환경변화에 적응한 결과물 이다. 인간의 자기개발능력은 그와 같은 적응의 능력으로 등장한다. 그로 인해 독존으로부터 사회상태로 이행한 인류는 상호간의 종속을 심화시켜가 며 궁극적으로 일인에 대한 만인의 종속상태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발생하 는 혁명은 인류를 다시금 최초의 사회상태로 회귀시키며 최악의 상태를 향 한 종속의 심화가 다시 전개된다. 루소의 사회계약은 혁명을 이상적인 정치 체제 수립에 연결시킴으로써 역사라는 악순환을 중단시키는 작업이다. 반면 칸트에게 있어서 역사는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본성에 의해 추동되 는 것으로 필연적인 과정이다. 그 과정 자체가 류적 존재로서의 인류가 자기 를 교육시켜나가는 과정이며 그것의 끝은 기존 역사와의 단절이 아니라 그 과정의 완성이 된다. 완성능력 이야말로 그 본성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를 통 해 인간은 악으로 나아갔다가 선으로 돌아오는 거대한 과정을 완성하게 된다. 양자에게 교육은 현재의 정치 체제를 변혁하는 수단이 아니다. 루소에게 체제 변혁은 종교 를 통한 입법자의 역할이며, 교육은 그를 통해 수립된 이상적 정치 체제를 유지하는 수단이다. 칸트에게 그와 같은 이상적 정치 체제는 인류의 자기 교육의 완성을 통해 달성되는 것인데, 현존의 정치 체 제는 그 교육의 결과가 아니라 조건이다. 인류의 자기 교육은 자유의 보장 을 통해 가능하며 그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 체제는 인류에 의해서가 아니 라 지배자에 의해서 수립된다. 따라서 양자를 교육을 통한 사회변화 라는 기획의 근거로 삼아왔던 사 유들은 재고가 필요하다.
100 논문 Ⅰ. 서론 연구대상의 측면에서 교육을 상대적으로 독점하고 있는 교육학의 성 립 이전부터, 사회변화의 기능 을 교육의 본질적 속성으로 규정하려는 사유들은 존재해 왔다. 근대적 교육학의 출발로 평가되는 코메니우스의 이론적 작업들은 30년 전쟁 이후의 동유럽 재건을 교육을 통해 도모하 려는 기획을 포함하고 있는 바, 이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유 들을 당대에 적합한 형태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종교가 역사발전의 질곡으로, 따라서 극복의 대상으로 지목된 계몽주의의 시대 에 믿음 을 대체할 이해 의 수단으로서의 교육은 동시에 역사발전의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정치적 혁명이 낡은 꿈으로 인식되는 오늘날, 사 회변화와 관련하여 교육에 거는 기대는 보다 강화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몇 년 동안 진보적 교육계는 혁신학교 로 명명된 교육개혁 프로그램을 교육자치제도를 통해 실현시켜왔다. 또한 이를 특정 정치 세력에 의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 훼손으로 간주하는 반대 역시 존재 했다.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정치철학자 중 한사람인 랑시에르는 1980년대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유사한 논쟁에 대해 다소 생소한 평 가를 내린 바 있다. 1981년 집권한 미테랑의 사회당 정부는 교육제도 에서 부르디외적인 계급 재생산 효과를 제거하기 위한 진보적 정책을 추진한다. 1) 이에 대해 우파는 사회당 정부의 교육정책이 프랑스의 공 화주의적 가치를 훼손한다는 명목으로 맞섰다. 랑시에르는 이와 같은 논쟁 자체에 대한 비판을 시도하는데, 그가 보기에 논쟁에 참여한 좌 우파는 한 가지 측면에서 동일한 입장을 공유하고 있었다. 교육대상, 내용, 방법 등에 있어서 양자는 분명한 차이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해간다 는 계몽주의적 테제를 공유하 고 있었던 것이다. 랑시에르는 그와 같은 테제는 지금-여기서 해결 1) 계급적 특수성을 무시한 공통 교육과정의 강요가 소외계급의 합법적 재 생산을 결과한다는 좌파들의 지적에 호응하여, 학생의 계급적 특성에 부 합하는 교육내용 및 방법을 교육현장에 적용하려던 정책이었다.
교육과 사회 변화 101 할 수 있는 과제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미래로 미루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으로 비판한다(Rancière, 1987: 226). 따라서 그의 비판은 오히려 좌파적 입장에 대해 강도 높게 전개되는데, 본 연구에서 주목 하는 것은 랑시에르의 비판의 현실적 적확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 비판이 환기시키는 것으로 보이는 좀 더 본질적인 문제에 관한 것이 다. 즉, 애초에 경험적 사실들을 근거로 규명된 것이 아니라, 교육이 라는 추상적 개념으로부터 연역해낸 교육의 사회 변화 기능이 과연 논리적 차원에서 정합성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다. 본 연구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한 가지 우회로를 탐색해보려는 시 도이다. 즉, 그 연역 작업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검토가 아니라 계몽 주의 이후 교육을 통한 사회변화 라는 테제의 이론적 근거로서 소 환 2) 되어왔던 사유들, 대표적으로 라인강 서안의 루소와 동안의 칸트 의 사유를 살펴봄으로써 간접적으로 그 테제의 논리정합성에 문제를 제기하려는 것이다. 본문에서 상술하겠지만, 연구자가 보았을 때 루소 의 사유는 명시적인 형태로 그 테제를 거부하고 있다. 루소는 사회 계약론(Du Contrat Social) 이라는 기념비적인 자신의 저서를 존재 양식을 바꾸지 않으면 멸망하고 말(360) 묵시론적 단계에 인류를 위 치지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는 이 저작이 루소의 또 하나의 주요 저작인 불평등기원론(Discours sur l origine et les fondements de l inégalité parmi les hommes) 에서 제기한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그는 불평등기원론 을 불평등의 마지막 단 계(187) 에 대한 묘사로 끝맺고 있는 바,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부 권력을 완전히 해체하거나 합법적인 체제(institution légitime) 에 가깝게 만들(187) 어야 한다. 사회계약론 에서 묘사된 정치 체제 야 말로 그 합법적인 체제일 텐데, 따라서 멸망하고 말 인류와 불 평등의 마지막 단계 에 있는 인류는 동일한 대상임이 명백하다. 연구자는 기존의 연구(2010)에서 그 인류 가 합법적인 체제 를 구 2) 미국의 블룸(Bloom, A.), 프랑스의 뻬리(Perry, L.)로 대표되는 보수적 정 치철학과 노올(Nohl, H.)과 뢰어스(Röhrs, H.)로 대표되는 독일의 개혁교 육학의 전통이 이 소환의 전형적 주체들이다.
102 논문 성하는 방법으로 루소가 제시하고 있는 것이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 의 종교 임을 논증한 바 있다. 이는 그 수단으로 교육 을 상정하는 방식-즉, 에밀 을 사회계약을 위한 인간교육의 매뉴얼 로 상정하는 방식-으로 루소를 독해하는 독일 이상주의적 전통에 대한 논박이었 다. 루소가 이행의 수단으로 종교 를 선택하는 이유는 인간들 사이의 지적능력의 차이이다. 사회계약 이라는 체제 구성의 행위는 일반의 지 에 대한 인식을 계약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요구한다. 일 반의지를 자신의 의지로 받아들이는 것이 곧 사회계약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루소는 현재의 인간들 전체를 그를 인식할 수준으로 교육 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와 같은 교육은 사회계약에 의해 수립된 정치 체제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교육을 사회계약 의 조건으로 놓게 되면 교육과 사회계약이 상호 전제되는 순환논리가 발생한다. 루소가 제시하는 종교는 일반의지에 대한 인식을 믿음 으 로 대체하기 위한 수단이다. 반면 칸트가 교육을 이상적 정치 체제 수립의 수단으로 간주한다 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이상적 정치 체제 수립은 교육을 통해 현존하는 정치 체제를 부정하고 대안적인 정치 체제를 수립하는 것과 같은 과정이 아니다. 그는 일단 교육을 인류 의 자기교육 이라는 의미-독일 이상주의의 전통에서 Bildung 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되는-로, 나아가 이를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본성이 수행하는 과정으로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사회화하려는 경 향(vergesellschaften) 과 동시에 개별화하려는 경향(vereinzelnen/isoliren) 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인간들 사이의 항쟁을 유발하며 이 항쟁을 통해 인간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잠재력들을 개화시켜간다. 즉, 교육은 개체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류적 존재 로서의 인류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와 같은 항쟁이 가능한 조건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이다. 칸트는 계몽된 군주 라는 이상적 지배자를 교육의 조건으로 소환하는데, 그는 교육자 가 아니라, 교육-인간들 사이의 항쟁-이 가능한 조건으로서의 정치체제를 마련할 의무를 가
교육과 사회 변화 103 진 존재다(Kant, 1784b: 22). 이 정치 체제는 인민의 자기 교육이 완 료되면서 수립되는 이상적 정치 체제가 아니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이는 그러한 교육이 가능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며, 교육(받은 민중)이 아니라 지배자에 의해 수립되는 것이다. 양자는 공히 현존의 정치 체제를 부정하고 그에 대안적인 정치 체 제를 수립하는 수단으로 교육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역으로 말하면 이상적인 교육은 특정한 정치 체제를 조건으로 한다. 따라서 양자를 교육을 통한 사회변화 라는 단순한 테제 속으로 소환하는 것 3) 은 양 자가 가지고 있는 사유의 힘을 무화시킬 뿐만 아니라, 그 소환을 통해 근거를 마련하려는 테제 자체의 논리정합성에도 의심을 품게 만든다. 본 연구는 루소와 칸트에 대한 이상의 진술을 보다 자세히 분석함으 로써 일단 양자가 그 테제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논증하고, 그를 통 해 교육을 통한 사회변화 라는 테제의 재고를 제안하려는 것이다. Ⅱ. 정치 체제의 변혁과 교육 1. 사회계약과 교육 기실 교육을 통한 사회변화 라는 계몽주의의 기획은 한 가지 아포 리아를 내재하고 있다. 바로 그러한 교육이 가능한 조건은 어떻게 마 련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에 대해 교육 이라는 수단을 제시했을 때 발생하는 형식논리적 오류-즉, 교육에 필요한 조건을 교육을 통해 마 련한다는-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학은 오랜 시간동안 고민해온 바 있 는데, 부정적인 형태로나마 이와 같은 고민을 시작한 것은 근대의 사 회계약론자들이다. 물론 그들의 최초 관심사가 교육과 그 조건의 문제 는 아니었고, 교육과 정치체제와의 관계를 그들이 최초로 고민한 것도 3) 칸트에 관한 한, 이는 연구자 자신이 박사학위 논문에서 범했던 오류이 다. 따라서 본 연구는 연구자의 그와 같은 오류에 대한 정정의 의미 역시 가지고 있다.
104 논문 아니었다. 플라톤 이래로 서양의 사유전통이 정치체제와 교육의 관계 에 대해 주목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주로 현존하는, 혹은 현존한다고 가정되는 정치체제의 유지 와 관련 하여 교육의 기능을 사고하는 것임에 반해, 사회계약론자들은 새로운 정치체제의 수립과 관련된 교육의 기능을 사유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회계약과 관련하여 특히 홉스와 루소를 괴롭혔던 것은,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는 이유는 현재 자신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문제를 사 회구성을 통해 해결하기 위한 것인데, 사회구성을 위해서는 바로 그 능력부재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일 그 능력부재를 사회구 성 이외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다시 인간은 사회를 구성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홉스가 다음과 같이 말할 때, 즉 만일 사람 들이 개별적 자기규율(individual self-government)을 통해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다면, 즉 그들이 자연법에 따라 살아갈 수 있다면, 국가 도 공공의 권력을 통한 억제도 절대적으로 불필요할 것이다(Hobbes, 1641: 84) 라고 말할 때 그가 제기하는 것이 바로 그 문제이다. 홉스 가 말하는 사회계약의 동기가 자연상태의 인간들 상호간에 형성된 공포 라는 것은 잘 알려진 바와 같다. 인간들이 사회를 구성하는 것 은 바로 이 공포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것인데, 그 공포는 인간들의 자기규율 능력의 부재 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만약 새로운 사회 에 대한 합의가 현존하는 인간들 사이에 가능하다면 그것은 그들이 자기규율 이 가능하다는 징표이며, 그렇다면 역으로 사회를 구성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홉스의 생각이었다. 결과적으로 사회의 현존은 인간이 그 능력부재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며, 결과적으로 사회 의 구성은 인간들 스스로의 작품이 아니라 외부의 초월적 존재-Prince- 에 의존한 것임에 틀림없다. 루소는 이상적 정치 체제와 그를 구성할 시점에 있는 인민 사이의 이 같은 순환논리를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다. 하나의 국민이 형성되면서부터 정치의 건전한 원칙들을 이해하고 국 가 존재 이유의 기본적 규칙들을 따를 수 있게 하려면 결과가 원인이
교육과 사회 변화 105 되어야 하고, 입법의 결과로서 얻어져야 할 사회정신이 그 입법의 동 기가 되어야 하며, 사람들은 법이 실존하기 전에 그 법에 의해 되어 야할 존재가 되어 있어야 한다(Rousseau, 1762: 383-인용자 강조). 잘 알려져 있다시피 루소에게서 역사는 필연적인 과정이 아니다. 혹 은 인류 전체에게 주어진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다. 불평 등기원론 에서 자세히 논증되고 있는 바, 역사는 환경변화가 초래한 우연의 과정이다. 거대한 환경의 변화는 유명한 루소의 독존하는 자연 인으로부터 독존의 공간을 앗아간다. 가뭄과 같은 우연한 사건은 생존 공간의 절대적 면적을 축소시키고 따라서 인간들은 자연스럽게 한정 된 공간으로 모여들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군집일 뿐 이며 여기서 사회라 할 만한 관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우연적 공동 노동 공동노동의 이익에 대한 인식 공동노동의 고착 이라는 단 계를 밟아나가야 한다. 루소에게 최초의 사회란 바로 이렇게 성립된 공동노동의 관계이다. 4) 문제는 이 공동노동의 관계가 독존시에는 감 춰져 있던 인간들 사이의 능력의 차이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공동노동 은 기여도라는 형태로 그 능력의 차이가 표면화시킨다. 인간들 사이의 불평등은 여기서 발생하는 바, 그것은 무능한 인간이 유능한 인간의 의지에 종속되는 그러한 현상을 말한다. 이 종속의 관계가 한 번 형성 되면 종속의 정도는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종국에는 만인의 일인에 대한 종속 즉 전제정이 출현한다. 이에 대한 민중의 혁명은 인류가 이미 자연의 독존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한 최초의 공동노동의 단계 를 다시 출현시킨다. 따라서 다시 전제정을 향한 종속심화의 과정이 반복되고, 결과적으로 루소에게 역사는 우연에 의해 발생한 최초의 공 4) 루소에게 있어서 모든 사회가 계약에 의해 성립된 것은 아니다. 반면 그 로티우스와 홉스에게 있어서 모든 사회는 계약에 의해 성립된 것이다. 이 점이 루소를 여타의 사회계약론자들과 구별시키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 일 텐데, 루소의 사회계약론 은 모든 사회의 성립에 사회계약이 있었다 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회들과 변별되는 특수한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행위로서의 사회계약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그는 당대의 사회를 계약에 의해 성립된 것이 아니라 계약을 통해 극복해야할 사회라 고 생각했다.
106 논문 동노동과 전제정 사이를 순환하는 과정에 불과한 것이다. 사회계약이란 이 순환의 과정을 끊어내기 위한 인민의 집단적 행 위가 될 텐데, 즉 전제정에 대한 즉자적 혁명을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사회의 수립에 연결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상기한 루소 의 순환논리가 등장한다. 인민이 사회계약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이 미 그 인민이 사회계약에 의해 만들어질 인간이어야 한다. 즉, 사회 계약이 사회계약을 전제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루소는 불필요한 순환 논리를 스스로 상정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순환논리는 루소 자신의 논리에 대한 자문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킨다 는 당대의 계몽주의적 기획에 대한 공격이다. 친우이자 후원자였던 에피네 부인과의 논쟁에서(Boiteau, 1863: 276-278) 단편적으로 드러난 루소의 문제제기는 다음과 같다. 즉, 사 회변혁에 관한 계몽주의적 기획은 현재 사회의 문제를 인민에게 교육 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러면 그를 인식한 인민은 그 문제를 제거하는 작업에 착수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 사회의 문제 중에는 인 민에게 그와 같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 포함되어있 다. 따라서 당대의 계몽주의는 인민에 대한 교육을 금지하는 사회를 인민에 대한 교육을 통해 변화시킨다는 모순을 내포한 기획이다. 루 소는 이 모순을 사회계약이 사회계약을 전제한다는 형태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루소가 소크라테스와 생 피에르의 정치변혁의 기획이 실패한 원인으로 지적하는 것이 바로 이 모순이다(1755b: 255; 1789: 422). 이로 인해 루소는 사회계약을 그를 이해시키는 작업(교육)의 도 움 없이 달성하고자 하는 바, 그가 선택하는 수단은 종교이다. 그는 일단 논리적 증명이 불필요한, 역사적으로 실존이 확인되는 입법자(Législateur) 5) 를 소환한다. 이 입법자는 인민들의 전체의지로 부터 일반의지를 찾아낼 능력이 있을 뿐, 입법권-일반의지를 인민에 게 강제하는 권리-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면에서 통상적 입법자들 과 구별된다. 6) 동시에 인민은 그로부터 사회계약에 대한 이해를 구할 5) 루크레티우스, 모세, 누마, 카토 등을 말한다.
교육과 사회 변화 107 처지에 있지 않다(Rousseau, 1762: 383).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법자가 발견한 일반의지는 인민의 동의를 통해서만 법으로서 확립될 수 있 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입법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종교 라는 비이성적 권능이다. 7) 그래서 권력이나 이성에 호소할 수 없었던 입법자들은 폭력없이 복종 시킬 수 있고 근거없이 설득할 수 있는 다른 질서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인민이 국가의 법을 자연의 법인 양 복종하고, 도시에서의 권리가 인간의 권리라 믿으면서, 공공의 행복을 순순히 받아들여 자발 적으로 복종하도록 하기 위해 모든 시대의 국가의 아버지들이 신적 중재에 의존하고 자신들의 지혜를 신들의 지혜인 것으로 만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Rousseau, 1762: 383). 스타로뱅스키가 말하는-나아가 그 스스로가 수용하고 있는-루소 에 대한 칸트적 독해, 즉 두 번째 논고 ( 불평등기원론 -인용자)의 주장과 사회계약론 의 명확한 구조 사이의 필수적 연결을 확립하기 위해 에밀 및 루소의 다른 교육 저작들의 부분들을 끼워넣는 (Starobinski, 1971: 31) 방식은 이렇게 루소 스스로에 의해 부정당하 게 된다. 그렇다면 칸트가 루소의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했던 정치체 6) 달리 말하면 그들에게 입법권은 없다. 그들을 입법자로 만들어주는 것은 일반의지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들은 자신이 발견한 것을 법으로 만들기 위해 인민에게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동의를 구하는 과 정에서 기존의 어떤 정치권력에 기댈 수가 없는데, 루소가 말하는 사회계 약이란 일단 기존의 모든 권리-정치권력을 포함한-의 해체로부터 시작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초월적 권위에 의존하여 이 동의를 구할 수밖에 없는 바, 루크레티우스와 모세는 성공했고, 카토와 소크라테 스는 실패했다. 아마도 이와 같은 입법의 난관이 루소가 당대 유럽에서 자신이 제안하는 사회계약이 가능한 국가로 코르시카 단 하나밖에 찾아 내지 못했던(Rousseau, 1762: 391) 이유였을 것이다. 통상적 입법자와 루 소의 입법자 사이의 자세한 차이에 대해서는 안젤-피어슨의 연구 (Ansell-Pearson, 1996: 206-207)와 마스터스의 연구(Masters, 1976: 358-361) 를 참조할 수 있다. 7) 물론 이 종교는 현대 정치학에서 말하는 종교적 이데올로기와 같은 것인 바, 이에 대해서는 강성훈의 논문(2010)을 참고할 수 있다.
108 논문 제의 이행과 교육의 관계에 대한 그 자신의 사유는 어떤 것일까. 2. 교육의 조건으로서의 정치 체제 1784년에 발표한 세계 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Idee zu einer allgemeinen Geschichte in weltbürgerlicher Absicht) -이하 이 념 -에서 칸트는 역사를 인류의 자기 계몽 과정으로 파악하는 역사관 을 간략하나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 칸트에게 있어서 인간은 객관적 자연법칙에 어느 정도 순응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지배받는 존재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의지의 자유 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 다. 그러나 이 의지가 또한 보편적 이성법칙에 지배받지 않는다는 것 이 인간의 행위- 의지가 외부로 나타난 현상이 인간 행위이다(Kant, 1784b: 17) -와 그것의 집적인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어려운 점 이다. 이러한 상황에 부딪혀 칸트는 모든 존재들을 아우르는 인과법칙 대신, 인간의 역사만을 인도하는 어떤 자연의 계획이[ ]. 발견될 수 있지 않을까(Kant, 1784b: 18) 8) 라고 자문한다. 그리고 인간이 그의 동물적 존재의 기계적인 명령을 넘어서는 모든 것을 전적으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이끌어 내어야만 한다는 것이며, 또 인간 자신이 본능 에 의존하지 않고 이성을 통해서 창조한 행복과 완전함 이외에는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Kant, 1784b: 19) 이 바로 그 계획이라고 대답한다. 자연은 쓸데없는 것은 아무 것도 행하지 않으며(Kant, 1784b: 27), 따라서 생명체의 모든 자연적 소질은 언젠가는 완전하 게, 그리고 목적에 맞게 발현되도록 결정되어 있(Kant, 1784b: 18) 는 것이다. 이로부터 자연이 인간에게 이성과 그에 기초하는 의지의 자유를 주었다는 것(Kant, 1784b: 19) 은 그것을 완전하게 발현시키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잠정적 결론이 나오게 된다. 9) 8) 칸트저작의 인용은 일차적으로 아카데미판 칸트 전집을 사용하였으며 이 차적으로 이한구의 편역본을 참조하였다. 아울러 본고에서의 인용문의 모 든 강조표현은 원저자에 의한 것이다. 9) 만약 자연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인간을 창조했다면 인간은 글자 그대로
교육과 사회 변화 109 칸트는 이러한 역사철학에 입각하여 인류의 역사를 그려나간다. 그 에게 있어 자연의 목적달성, 즉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능력들의 완 전한 발현은 인간들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다. 10) 인간은 사회화의 성향 과 동시에 개별화의 성향 을 가지고 있다(Kant, 1784b: 20). 칸트는 이를 반사회적 사회성(ungesellige Geselligkeit) 이라고 칭하는데, 이는 단순히 인간이 사회 속에 있기를 원하면서 동시에 독존을 추구한다는 말이 아니다. 인간은 사회 속에 서도 자신의 원하는 바대로의 삶을 추구한다. 이것이 개별화의 경향 이다. 만일 그와 같은 삶이 타인의 삶과 충돌을 일으키게 될 때는, 자신을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타인에게 관철시키려 고 한다. 이것이 사회화의 경향이다. 따라서 사회 속의 인간은 필연 적으로 자신의 동류들과 항쟁(Antagonism)하게 되는데, 이 두 가지 성향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서 인간은 타인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 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잠 재력들을 계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인간이 가진 모순된 경향이 초래하는 이 항쟁이야말로 인간의 모든 잠재력을 계발시키는 원동력 이다(Kant, 1784b: 20-21). 칸트가 말하는 민중의 자기 계몽(Kant, 1784a: 36) 이란 바로 이 항 쟁을 통한 인류의 발전이다. 그가 교육은 개체로서의 인간(Individuum) 이 아니라 류적 존재(Gattung)로서의 인류의 과업(Kant, 1784b: 18)이 자연스럽게 그 법칙을 따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 속에서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수행해야 할 일은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의지의 자유 혹은 자유의지 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하는 것인데, 이는 실재 의 인류사가 수학적/기계적 합리성에 부합하는 형태로 이어져오지 않았다 는 사실로부터 타당하게 연역해 낼 수 있다. 칸트가 이념 에서 반복적으 로 의지의 자유 를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일 텐데, 물론 이에 대해서 그 의지의 자유 를 실현하는 것 또한 이미 자연의 계획에 포함된 것이라면 그 역시 인간의 주체적 행위의 무용-나아가 불가능-으로 환원될 수 있 다는 반론이 가능할 것이다. 이는 본 연구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므로 자세한 논의는 차후의 연구로 미루고자 한다. 10) 아렌트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 이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전제하고 있 음에 주목하며 이를 통해 칸트의 쓰여지지 않은 정치철학(Arent, 1982: 34; 73) 을 재구성하려 한 바 있다.
110 논문 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류는 이와 같은 자기 계몽을 통 해 더 이상 항쟁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 두 성향을 충족시키면서도 타인과 항쟁하지 않는 사회를 향해 나아간다. 이것이 칸트가 말하는 인간 최고의 단계, 즉 보편적 도덕 법칙이 곧 자신의 행위의 준칙이 되는 단계로의 인류의 진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와 같은 단계는 인간의 모든 능력의 개화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것 인 바, 따라서 이는 반드시 사회 속에서만 달성된다. 칸트에게 있어 서 인류의 완성이 이상적 사회 건설과 동일시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연이 인간으로 하여금 그 해결을 강요하는 인류의 가장 큰 문제 는 보편적으로 법이 지배하는 시민 사회의 건설이다. 사회 속에서 만, 그것도 최대의 자유를 갖는, 즉 구성원들의 일반적인 항쟁과 그러 한 자유의 한계에 대한 가장 정확한 규정과 보장을 갖는-이렇게 함 으로써 타인의 자유 또한 성립할 수 있다-사회 속에서만 자연의 최 고 계획이, 말하자면 모든 소질의 계발이 인류에 의해서 성취될 수 있 는 것이다[ ] 그러므로 자유가 외적인 법률 하에서 가능한 한 최대 로 반항할 수 없는 힘과 결합된 사회, 즉 완전히 정당한 시민적 정치 체제가 인류를 위한 자연의 최고 과제임에 틀림없다. 자연은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고 수행함으로써만 인류에 관한 자신의 여타의 계획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Kant, 1784b: 22). 그런데 인류의 최종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인 인간들 사이의 항쟁은 한 가지 조건을 요구하는데, 바로 그것을 허용해 주는 자유다. 최상의 정치 체제를 인류 역사의 최종 목적으로 상정하는 칸트의 이 와 같은 작업은 기실 루소가 직면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 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루소에게, 혹은 사회계약론에 있어서 이상적 정치체제는 역사를 통해 추구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그것의 수립은 현재의 과 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과 그를 구성할 현재의 인간 사이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칸트는 이를 미래의 과제로 미룸으로써 그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문제의 지연 은 곧바로 다음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미래의 목적을
교육과 사회 변화 111 달성해나가는 인류의 자기 계몽은 조건 없이 이루어지는가. 물론 여 기에 한 가지 조건이 전제된다. 바로 그 자체가 인류의 자기 계몽인 인간들 사이의 항쟁이 자유 롭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Kant, 1784a: 36). 따라서 최종적인 이상적 정치 체제는 아닐지라도 그를 최소한으로 보장할 정치 체제의 마련이 결국 다시 교육의 조건이 된 다. 11) 이 지점에서 만약 그와 같은 정치 체제의 수립을 다시 교육을 통한 것으로 상정한다면 교육과 정치 체제 사이의 무한퇴행이 발생할 것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칸트는 이 최소한의 정치체제의 수립을 민중과 분리시켜 계몽된 군주- 계몽이 왕의 자리에 올라서야 한다 (Kant, 1784b: 28) -의 임무로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계몽군주의 출현이 칸트의 체계 속에서 해결되어야 할 마지막 과제가 된다. 그는 그 해결을 위해 일단 인간을 타인과 더불어 유를 이루며 살 때 어떤 지배자를 필요로 하는 동물(Kant, 1784b: 23) 로 규정한 다. 12) 왜냐하면 그렇지 않을 경우 인간은 분명 타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자유를 잘 못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인간이 이성적 존재자로서 모든 사람의 자유에 제한을 가하는 법률을 갖고자 하더라도 그의 이 기적이고 동물적인 성향 때문에 그는 자신만은 그러한 제한에서 제외 시키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Kant, 1784b: 23). 따라서 인류에게 지배자는 제거할 수 없는 존재다. 문제는 그 지배 11) 이 두 가지 정치 체제를 구별하지 못했던 것, 즉 칸트를 단순한 교육을 통한 사회 변혁 의 테제 속으로 소환한 것이 본 연구자가 기존 연구에서 범했던 오류이다. 본 연구의 심사 과정에서 일인의 심사자는 이를 칸트의 사회 혹은 국가 개념이 경험적 사회(현실 국가)와 예지적 사회(법이 지배 하는 시민사회)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간과할 때 발생하는 문제임을 정확하게 지적해 주었다. 지면을 통해 감사드린다. 12) 이와 같은 사유가 당대에 이미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칸트 스 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헤르더는 그와 같은 사유가 개체로서의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진보의 가능성을 부정한다는 측면에서 비판을 가하고 있 는데(Kant, 1785: 64-65), 칸트는 이를 다시 자신의 목적론적 역사관에 터 해 반박하고 있다(Kant, 1785: 65-66).
112 논문 자가 어떠한 경로로 스스로를 계몽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는 다 른 모든 과제들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과제 인데, 그 역시 앞서 언급 한 약점을 가진 인간이어야 하기 (Kant, 1784b: 23) 때문이다. 칸트 는 이 문제를 논리가 아닌 현존의 계몽군주를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이념 과 같은 시기에 발표된 잘 알려진 논문 계몽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답변(Beantwortung der Frage: Was ist Aufklärung?) -이하 계몽 -은 논리로서 해결되지 않는 계몽군주의 출현 과정에 대한 해 명을 현존하는 계몽군주를 통해 대체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칸트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듯이 그의 역사철학은 선험적 원리 에 기초를 두고 있는 세계사의 이념 으로써 보편적 세계사를 서술하 려는 것일 뿐 경험적으로 작성된 역사를 그를 통해 다시 쓰려는 것 은 아니다(Kant, 1784b: 30). 따라서 이념 에서의 계몽과 계몽 에서 의 계몽은 차이가 있다. 다만 연구자가 주목하고 하는 것은 이념 에 서 미완결된 한 가지 논리가 당대 사회에 대한 계몽 에서의 서술을 통해 보완되고 있다는 점이다. 프리드리히 2세의 현존이야말로 논리 로 해결되지 않는 계몽군주의 출현을 보증하는 것이었다. 일반적 계몽을, 다시 말해 마땅히 스스로 그 책임을 져야 할 미성년에 서의 탈출을 방해하는 장애가 차츰 감소되어가고 있는 명백한 징후가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시대는 바로 계몽의 시대이며, 환언하면 프리드 리히 왕의 세기이다(Kant, 1784a: 40). 따져라. 그러나 복종하라(Kant, 1784a: 41) 는 프리드리히 2세의 선언을 제한적이나마 당대에 이루어져야 할 계몽의 정수로 칸트가 받 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종교에 대한 관용뿐만 아니라 체제에 대한 비판 역시 허용하고 있는 대왕의 통치는, 당대의 조건 속에서 자유로운 항쟁의 조건으로서의 정치 체제였다. 결론적으로 칸트에게 있어 교육은 현존의 정치 체제를 변혁하는 데 있어서는 한 걸음 물러나 있게 된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와 같은 칸트의 입장에 대한 정치학적 평가가 아니라, 그의 이러한
교육과 사회 변화 113 후퇴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교육과 그러한 교육의 조건으로서의 정치 체제 사이의 관계에 대한 사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13) 이것을 무시한 체 시대적 한계가 그대로 반영된 그 의 결론-지적 엘리트에 의한 위로부터의 교육-을 그대로 수용하거 나, 형해화된 도덕교육의 지침으로 그의 역사철학을 축소시키는 것은, 공히 칸트사유의 출발지점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을 무화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3. Perfectibilité : 자기개발기능 vs 완성능력 본 절에서는 루소와 칸트가 나름의 역사 철학을 전개해 나가는 데 있어서 주요한 위치를 점하는 각자의 개념 하나씩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이것을 살펴보려는 이유는 양자가 사용하는 그 개념들이 명백 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동일시하는 것이 특 히 루소에 대한 오해를 발생시키고 그를 교육을 통한 사회변화 라는 테제의 근거로 만드는 사유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앞 절에서 루소가 역사를 환경변화에 대한 인간의 적응을 통해 발생 한 것이라 말한 바 있다. 이 논리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모종의 기능이 있지 않으면 안 될 텐데, 루소는 이 기능을 perfectibilité 라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개념 14) 으로 지시하고 있 13) 쉴러는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서한(Über die ästhetische Erziehung des Menschen in einer Reihe von Briefen) 에서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궁구하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강성훈의 연구(2008: 63-70)를 참고 할 수 있다. 14) 이 단어가 사전상에 최초로 등장한 것은 1771년에 출판된 대표적인 민간 프랑스어 사전인 Dictionnaire universel françois et latin(속칭 Dictionnaire de Trévoux의 제6판(6권 675쪽)에서 인데, 그 사전은 명백히 루소로부터의 출전( 불평등기원론 )을 밝히며 그 단어의 의미를 개선할 수 있는 본성, 즉 개선의 능력(qualité de ce qui peut être perfectionné, qui est capable de perfection) 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Oeuvres Complétes III의 1317쪽( 불평등기원론 의 142쪽에 대한 스타로뱅스키의 후 주3)을 참고할 것.
114 논문 다.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완성능력 혹은 완성가능성 으로 번역되고 있는 이 단어는 루소 자신에 의해 자기를 개량하는 기능, 환경의 도 움을 받아 다른 모든 기능들을 연속적으로 계발하는 기능(la faculté de se perfectionner; faculté qui, à l aide des circonstances, dévelppe successivement toutes les autres, 불평등기원론 : 142) 15) 으로 정의되 고 있다. 그런데 이 기능을 통한 다른 기능들의 계발에 있어서 진보 혹은 퇴보(선 혹은 악)를 향한 방향성도 진행의 필연성도 존재하지 않 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야우스는 루소 이후에는 역사가 인간 본성의 목적론적 상태로 환원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Jauß, 1989: 55). 루소는 심지어 이 기능이야말로 인간의 모든 불행의 근원이며, 평온하고 순진무구한 나날이 계속되는 저 원초적인 상태로부터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인간을 이끌어( 불평등기원론 : 142) 낸 원인이라고 말 하고 있다. 16) 루소에게 자연이 부과한 이 기능은 다른 여타의 모든 기 능들을 필연적으로 계발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닥칠 우연에 대응하 게 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만일 그러한 기능의 계발을 필요로 하는 우연과 조우하지 않는다면 그 기능을 계발하는 기능은 발휘될 이유가 없다. 달리 말한다면 인간에게 잠재되어있는 기능들은 도덕적인 이유 15) faculté를 능력 이 아니라 기능 으로 번역한 이유는 이것의 의지에 따라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조건에서 자연스럽게 발휘됨을 강조하기 위 해서이다. 능력으로 번역하게 될 경우 그것의 발휘에 모종의 의지 및 판 단이 선행한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는데, 루소에게 이 능력은 이성 개화 이전에 작동하며 이성 개발 자체를 추동하는 것이므로 이를 강조하기 위 해 이러한 번역어를 사용하였음을 밝힌다. 16) 그것( perfectibilité -인용자)의 중요성은 그 논고( 불평등기원론 -인용 자)에 대한 당대의 주석가들, 예를 들면 그림과 헤르더에 의해 재빨리 인 정받았다. 그러한 사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데, 그 관념이 당대 의 수많은 지도적 필로조프들의 핵심 전제를 형성하는 인간의 도덕발달 에 대한 세속적이며 역사적인 관점을 보호(요약)해주기 때문이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루소의 체계에서 계몽사상의 특징을 매우 명확히 정의하고 있는 그 용어는 당대의 대부분의 지지자들과 비판가들이 상상했던 의미 와 전혀 상반된 한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필로조프들의 교의에 있어 서 우리의 개선가능성은 야만에서 문명으로의 진보적 발달을 보장하는 것이라면, 루소에게 있어서 그것은 우리의 윤리적 정치적 타락을 야기하 는 것이다(Wokler, 1980: 89).
교육과 사회 변화 115 에서가 아니라 생존(변화되는 환경에 대한 적응)이라는 즉자적인 이유 에서 계발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루소가 이 개념을 고안해 낸 이 유는 그를 통해 인류역사의 방향성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것은 그가 상정한 자연상태와 현존인간의 상태와의 간극을 연결시키기 위해 고안해낸 추상적인 기능인 것이다. 자연상태의 고립된 인간이 여 타의 존재들과 달리 환경의 변화에 대해 스스로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는-외부의지를 배재한다면-그 내부에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기 능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 이 기능은 그러한 추론을 통해 인간이 가지 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능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성이라는 기능조차 이 기능에 의해 계발된다는 것을 주목하는 일이다. 반면 칸트에게는 이성이야말로 여타의 기능을 계발하는 바로 그 기 능이다. 칸트는 창세기를 이성이 자연의 법칙에 반하는 여타의 능력들 (음식물을 고르거나 만드는 능력, 성적 흥분의 능력, 미래를 의식하는 능력, 자신 이외의 존재들을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는 능력)을 순차적 으로 계발해 나간 이야기로 읽는다(Kant, 1786: 111-114). 이성의 개 화를 통해 인간은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자신의 능력들을 계발해나가 기 시작하며 이는 곧 악의 시작(Kant, 1786: 115) 에 다름 아니다. 물론 자연이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한 것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함인 바,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의 본성을 깨닫고 그에 준하여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여타의 존재들이 인식 없이 자연 에 복종하는 상태를 초월하는 도덕적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도덕 발달 과정(Kant, 1786: 111) 인 바,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은 바로 그 여정을 시작하고 완성하는 능력인 것이다. 루소의 자기개발기능과 완성능력으로서의 칸트의 이성은 그 작동의 필연성에서부터 변별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루소의 그 기능은 특수한 조건을 만나지 않는 한 발휘되지 않는 바의 것인 반면, 칸트 의 이성은 필연적으로 개발되는 것이다. 생명체의 모든 자연적 소질은 언젠가는 완전하게, 그리고 목적에 맞게 발현되도록 결정되어 있다[ ] 사용되지 않는 기관은 그 자연적
116 논문 소질이 봉사해야 할 목적을 달성시키지 않는 장치로 보아야 하는데, 그것은 목적론적 자연론에 있어서는 하나의 모순이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이 원칙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법칙적인 자연이 아닌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자연을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Kant, 1784b: 18). 오히려 루소의 자기개발기능과 유비시킬 수 있는 것은 앞 절에서 살펴본 자신을 사회화하려함과 동시에 개별화하려는 성향, 즉 반사 회적 사회성(ungesellige Geselligkeit) 이다. 이는 이성을 개화시키지 는 않지만 개화된 이성이 지속적으로 자신의 기능을 확장하도록 추동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향 역시 필연적으로 발휘된다는 측면 에서 루소의 그 기능과는 구별된다. 신비주의로부터 시작되어 비코와 헤르더에 의해 체계를 갖추게 된 독일의 목적론적 역사관의 전통에서, 칸트가 말하는 바의 능력은 그 역사를 추동하는 힘으로써 이미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도야 (Bildung) 로 잘 알려진 독일의 지적 전통에서의 개념은 이 능력의 실현인 바, 오를로우스키는 이 능력이야 말로 신비주의적 전통과 인 문주의적 전통을 결합시켜 인간의 유기적 도야가능성에 대한 믿음 이라는 도야 담론의 핵심을 구성하는 것임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Orlowski, 1971: 22-23 참조). 아직은 완성의 능력(Fähigkeit zur Vervollkommnung) 혹은 자기 발전의 능력(Fähigkeit zur Selbstentwicklung) 과 같이 서술적으로 표현되던 이 능력은 루소의 perfectibilité 를 만 나면서 그 개념으로 표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독일어 수용에서 자기개발기능(perfectibilité)은 Reimarus와 Schlösser에 의해-루소적 의미에서 반신학적으로-비규정성(Unbestimmtheit)으로 재 현되었지만, 다른 모든 저명한 작가들에 의해서 (완성Vervollkommnung 을 통해) 다시금 신학화 되어버렸다(Jauß, 1989: 55). 17) 17) 여기서 야우스는 버크의 논문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 서지사항은 다음과 같다. Buck, G.(1973), Selbsterhaltung und Historizität, Blumenberg, H, Poetik und Hermeneutik, vol.5, pp.29-94. 아울러 번역자가 perfectibilité 를 완성가능성 으로, Vervollkommnung 를
교육과 사회 변화 117 물론 루소의 그 단어를 그와 같이 이해하는 것은 비단 독일의 전통 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단어의 모국이라 할 수 있는 프 랑스에서도 그와 같은 경향성은 나타나고 있다. 꽁도르세의 인간 정 신의 진보에 대한 역사적 개요(Esquisse d un tableau historique des progrés de l esprit humain, 1795) 18) 와 그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스 딸 부인의 문학론 19) 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하버마스(1987: 243)가 말하는 바와 같이 꽁도르세의 perfectibilité 는 한계 가 없다는 측면 에서 독일 이상주의적 수용과는 다르지만, 인류의 진보를 일정한 방향 으로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라는 측면에서는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소의 perfectibilité 는 완성능력 으로 번역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루소는 인간이 완전해질 거라고(become perfect) 확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은 인간 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일 뿐이다. 루소가 인류에 게 부여한 perfectibilité라는 능력은 자기 개선 능력(capacity for self-improvement)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Cranston, 1995: 232). 물론 칸트는 명시적으로 루소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칸트가 창세기에 대한 독해를 통해 얻은 내용을 루 완전화로 번역한 것을, 본고의 내용에 맞게 자기개발기능 및 완성 으로 수정하였음을 밝힌다. 18) 인간의 본성과 현재의 모습에 대한 그러한 관찰들은 따라서 새로운 진 보-인간의 본성이 인간에게 계속해서 그에 대한 희망을 가져도 좋도록 해준-를 확신하고 그것을 가속시킬 수단을 이끌어 낼 것이다[ ] 그것이 내가 착수한 작업의 목적이며, 논증과 사실들을 통한 그 작업의 결과는 인간 능력의 완전성에는 어떠한 조건도 없으며, 따라서 인간의 완전가능 성은 실로 무한하고, 이러한 완전가능성의 진보는 당장 그 진보를 중단시 키고자 하는 어떤 힘으로부터도 독립적이며, 자연이 우리에게 준 이 지구 가 존속하는 동안에는 어떠한 한계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Condorcet, 1822: 3-4). 19)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혁명과 세기의 연속을 거치며, 나의 관심이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이 떠오르는 첫 번째 생각은 인류의 완성가능성이다. 나는 도덕적 성격을 지닌 위대한 작품들은 결코 포기된 적이 없다고 생 각한다. 계몽주의 시대에서도, 또한 암흑기에서도 역시, 인간정신의 점차 적인 진전은 결코 중단된 적이 없었다(Staël, 1871: 207).
118 논문 소에게서 다시 찾고자 할 때, 루소의 불평등기원론, 에밀, 사회 계약론 은 인류가 고난의 도정을 걸으며 결국 자기완성에 이르는 연 대기가 된다(Kant, 1786: 116-118). 그러한 독해 속에서 루소의 그 개 념이 독일 특유의 목적론적 역사관을 추동하는 능력, 완성을 향한 진보(Kant, 1786: 115) 를 가능하게 하는, 더 나은 것을 향해 나아가 려는 소질과 능력(Kant, 1798: 88), 즉 완성능력 으로 의미변전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변전을 통해 루소의 사유가 교육을 통한 사 회변화 의 전형으로 규정되는 바, 따라서 이는 교정을 요하는 문제다. Ⅲ. 요약 및 재언 이상에서 살펴본 루소와 칸트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 을 것 같다. 루소에게 있어서 역사란 우연에 의한 것이며 오히려 인 류는 그 역사를 끝내지 않는 한 멸망하고 마는 존재다. 그 역사를 끝 내기 위해서는 교육 이 아닌 종교 를 통한 사회계약으로 이상적인 정치체제를 구성해야만 한다. 따라서 역사의 종결이란 기존 역사와의 단절이다. 그가 제시하는 자기개발기능은 그 역사를 추동한 원인이며 그것은 환경의 변화에 의해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계약은 더 이상 변하지 않는 환경-정치체제-을 조성함으로써 그 기능 또한 봉 인하는 작업이 되는 것이다. 아울러 교육은 그러한 사회의 구성 이후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작동하게 된다. 반면 칸트에게 있어서 역사는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본성에 의 해 추동되는 것으로 필연적인 과정이다. 그 과정 자체가 류적 존재로 서의 인류가 자기를 교육시켜나가는 과정이며 그것의 끝은 기존 역사 와의 단절이 아니라 그 과정의 완성이 된다. 완성능력이야말로 그 본 성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를 통해 인간은 악으로 나아갔다가 선으로 돌아오는 거대한 과정을 완성하게 된다. 이 과정의 조건으로서의 현 존 정치체제는 스스로 계몽된 지배자에 의해 수립되는 것이다.
교육과 사회 변화 119 결과적으로, 양자는 인간과 역사에 대한 인식차이에도 불구하고 현 존의 사회 혹은 정치체제를 변화시키는 문제에 관한한 교육에 기대를 걸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구자가 보았을 때 그들의 사유가 현재에 대해 갖는 의미는, 시대 적 한계 속에서 그들이 선택했던 제한적 해법들의 타당성 때문이 아 니라, 그러한 해법들을 찾도록 만든 근본적인 문제를 현재에도 지속적 으로 고민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생겨나는 것 같다. 아울러 교육과 정 치 체제, 교육과 사회변화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끝난 것이 아닌 듯하 다. 오히려 그 개념적 의미로부터 연역해 냈던 사회 혹은 문화의 혁신 이라는 교육의 본질적 기능이 교육 실천의 현장에서 길을 잃고 있는 오늘날의 사회는, 현실적 성과로서 그 내용을 채우기 이전에 그 개념 으로부터의 연역이 타당한 것인지를 묻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론에서 언급했다시피, 본 연구가 그에 준하는 것은 물론 아니며 그러한 작업들의 한 전형에 대한 문제제기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루소와 칸트가 교육에 대한, 나아가 교육과 사회의 관계에 대 한 사유에 있어서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그들을 근거 로 사회변화 기능을 교육의 본질적 속성으로 규정해온 작업들에 대한 문제제기는 제한적이나마 그러한 직접적 연구를 추동할 수 있을 것으 로 기대된다. 투 고 일: 2013. 01. 06. 심사완료일: 2013. 02. 13. 게재확정일: 2013. 02. 14. 강성훈 고려대학교 교육문제연구소
120 논문 참고문헌 강성훈, 루소에 대한 자연주의적 해석의 문제, 고려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08., 루소사상에서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종교 : 플라톤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교육철학 49집, 교육철학회, 2010. 이한구 편역, 칸트의 역사철학, 서울: 서광사, 2005. Ansell-Pearson, K., Nietzche contra Rousseau: A study of Nietzche s moral and political thought, Cambridge: Cambridge Univ. Press, 1996 Arent, H., Lectures on Kant s Political Philosophy, Chicago: Univ. of Chicago Press, 1982, 김선욱 역, 칸트 정치철학 강의, 서울: 도서풀판 푸른숲, 2002. Boiteau, P., Mémoires de madame d Épinay(Ⅱ), Paris: Charpentir, 1863. Condorcet, M. de, Esquisse d un tableau historique des progrès de l esprit humain, Paris: Masson et Fils, 1822. Cranston, M., Rousseau s theory of liberty, in Wokler, R. (ed.), Rousseau and liberty, Manchester & NY: Manchester Univ. Press, 1995. Dictionnaire universel françois et latin(Ⅵ), 6e edition. Hobbes, T.(1641), Warrender, H. ed., De Cive: the Latin Version, London: Oxford Univ. Press, 1983, Tuck, R. & Silverthorne, M. (ed. & tr.), On the Citizen, Cambridge: Cambridge Univ. Press, 2005. Jauß, H. R., Studien zum Epochenwandel der äesthetischen Moderne, Frankfurt am Main, 1989, 김경식 역, 미적 현대와 그 이후- 루소에서 칼비노까지, 서울: 문학동네, 1999. Kant, I., Beantwortung der Frage: Was ist Aufklärung?, 1784a, Königlich Preuß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 (hrsg.), Kant s Gesammelte Schriften(Ⅷ), Berlin & Leipzig: Walter de
교육과 사회 변화 121 Gruyter, 1923., Idee zu einer allgemeinen Geschichte in weltbürgerlicher Absicht, 1784b, Königlich Preuß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 (hrsg.), Kant s Gesammelte Schriften(Ⅷ), Berlin & Leipzig: Walter de Gruyter, 1923., Rezensionen von J. G. Herders Ideen zur Philosophie der Geschichte der Menschheit, 1785, Königlich Preuß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 (hrsg.), Kant s Gesammelte Schriften(Ⅷ), Berlin & Leipzig: Walter de Gruyter, 1923., Mutmaßlicher Anfang der Menschengeschichte, 1786, Königlich Preuß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 (hrsg.), Kant s Gesammelte Schriften(Ⅷ), Berlin & Leipzig: Walter de Gruyter, 1923., Erneuerte Frage: Ob das menschliche Geschlechtim beständigen Fortschreiten zum Besseren sei?, 1798, Königlich Preuß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 (hrsg.), Kant s Gesammelte Schriften(Ⅶ), Berlin: Druck und Verlag von Georg Reimer, 1917. Masters, R. D., The Political Philosophy of Rousseau, Princeton & New Jersey: Princeton Univ. Press, 1976. Orlowski, H., Untersuchungen zum falschen Bewusstsein im deutschen Entwicklungsroman, Poznan: Uniwersytet im. Adama Mickiewicza, 1971, 이덕형 역, 독일 교양소설과 허위의식, 서울: 형설출판사, 1996. Rancière, J., Le Maître Ignorant, Cinq leçon sur l emancipation intellectuelle, Paris: Librairie Arthème Fayard, 1987, 양창렬 역, 무지한 스승, 서울: 궁리출판, 2012. Rousseau, J. J., Discours sur l origine et les fondements de l inégalité parmi les hommes, 1755a, Gagnebin, B. & Raymond, M. (ed.), Œuvres Complétes(Ⅲ), Paris: Gallimard, 1964.
122 논문, Discours sur l Economie Politique, 1755b, B. & Raymond, M. (ed.), Œuvres Complétes(Ⅲ), Paris: Gallimard, 1964., Du Contrat Social, 1762, Gagnebin, B. & Raymond, M. (ed.), Œuvres Complétes(Ⅲ), Paris: Gallimard, 1964., Le Confession, 1789, Gagnebin, B. & Raymond, M. (ed.), Œuvres Complétes(I), Paris: Gallimard, 1964. Staël, Madame de, De la littérature considerée dans ses rapports avec les institutions sociales. Œuvres Complétes de Mademe la baronne de Staël-Holstein(I), Paris: Firmin Didot frères, 1871. Starobinski, J., Jean-Jacques Rousseau: La transparence et l obstacle, Paris: Gallimard, 1971, Goldhammer, A. (tr.), Jean-Jacques Rousseau: transparency and obstruction, Chicago: Univ. of Chicago Press, 1988. Wokler, R., A Reply to Charvet: Rousseau and the Perfectibility of Man,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1(3), Spring, 1980.
교육과 사회 변화 123 ABSTRACT Education and Social Change: Rousseau and Kant Kang, Seong-Hun According to Rousseau, history is a result of human adaptation to changing circumstances. Perfectibilité (the faculty of self-development) of man is one such faculty of the adaptation. Individuals live in isolation but shift to a social state by means of this faculty, dominance and subordination between individuals deepen, and finally all people become subordinate to one person. The people then return to the first social state (isolation) by revolting against this state of subordination. Rousseau's The Social Contract seeks to give humankind a framework for breaking out of this vicious cycle that defines human history by connecting the revolution with the ideal political body. According to Kant, though, the aforementioned cycle defines history because it is the inevitable product of human nature. The process is a self-education course for mankind as a species, and the end of it is not severance from history but the perfection of history. The perfectibility (the ability to achieve perfection) of human nature completes the process of mankind turning to evil but then returning to the good. In both, education is not a solution by which the existing political body can be changed. For Rousseau, change is the vocation of the lawgiver by special religion and education is a solution that
124 논문 maintains the ideal political body established by the change. For Kant, the ideal political body is not a result but a condition of education. Political freedom allows the self-education of mankind to take place; a free political body is then established by a ruler, not the people. In conclusion, the notion that Rousseauian and Kantian thought can serve as the philosophical basis of the thesis social change through education needs to be reconsidered. Keywords: Rousseau, Kant, education, political body, perfectibilité, perfectibi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