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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작품에 나타난 시간의 철학적 의미 * - 동시적 공존과 반복 - 주제분류 문예철학, 시간론 주 요 어 보르헤스, 베르그손, 들뢰즈, 시간, 동시적 공존, 반복 요 약 문 보르헤스의 문학은 통상 현실적 경험 세계의 재현이 아니라 상상력의 언 어적 유희로 관념 세계를 창조하는 환상 문학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보르헤스의 문학 적 상상력 속에 그려진 시간은 단순히 비현실적 환상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허구적 설정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시간의 실재적 본성에 관한 철학적 통찰을 함축한다. 계기 적 연속이 아니라 동시적 공존과 반복으로 특징지어지는 보르헤스의 시간은 특히 베 르그손과 들뢰즈의 철학적 직관과 유사한 실재 시간의 초월론적 양상을 보여준다. 문 학적 상상력과 철학적 사유의 공통된 통찰에 따르면, 동시적 공존과 반복의 시간은 유 한한 존재자의 자기중심적 경험 세계에 국한된 삶이 아니라 개체초월적인 삶 전체의 생성 원리를 깨닫게 함으로써 하나의 삶에 대한 긍정과 다른 삶에 대한 개방을 가능 하게 하는 실천적 의미를 지닌다. 보르헤스 문학에 대한 일반적 해석 경향과 달리 보 르헤스는 시간 조작을 통해서 텍스트 바깥을 지워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실재 적 진실에 도달하는 텍스트 바깥으로의 출구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I. 서 론 보르헤스는 주로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하여 해명되어왔다. 오늘날 상식이 되 어버린 저자의 죽음, 창조적 오독( 誤 讀 ), 메타픽션 등의 주제들은 이미 그 기원의 자리에 놓여있는 보르헤스를 빼고서는 얘기할 수 없는 것들이 되었다. 보르헤스 의 소설들은 현실적 경험 세계의 재현이 아니라 순수한 상상력의 언어적 유희로 구축되는 환상적인 허구의 세계를 창조했다고 평가된다. 1) 읽기 또는 다시 쓰기로 * 이 논문은 2003 년도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KRF-2003-043-A00057) 1) 박병규에 의하면 보르헤스 작품은 역사적 현실에서 살고 있는 인간과 세계와 우주 에 대한 모종의 진리를 담고 있지 않으며, 우리가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교훈이나 의미도 없다. 일찍이 바라네체아가 말했듯이 보르헤스 문학의 핵심은

철학연구 제74집 서의 글쓰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독특한 논리적 서술 등을 통하여 보르헤스는 현실적 경험 세계의 유기적인 질서와 체계를 근거 짓는 소박한 실재 론적 믿음에 균열을 내며 텍스트 바깥은 없다 는 포스트모던 담론의 주제를 선도 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소설 속에 그려지고 있는 시간의 독특한 양상은 보 르헤스 특유의 환상 문학을 구축하는 가장 중요한 기본 장치 중 하나라고 여겨진 다. 2) 보르헤스 특유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질적으로 주어지는 하나의 시간으로 서 선형적 인과성, 계기적 연속성과 같은 경험적 특성들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 니라, 끊임없이 두 갈래로 분열하며 다양한 계열의 여러 시간들이 동시적으로 공 존하는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특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형이상학조차도 환상 문학의 일종으로 간주하는 보르헤스에게서 역설 적이게도 나는 시간에 관한 그의 실재론적 통찰을 엿본다. 나는 그의 작품에 나타 난 시간의 독특한 양상들이 단순히 텍스트 차원의 허구적 설정에 불과하고 문학 적 상상력의 유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실재적 본성에 관한 철학적 직관 에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베르그손과 들뢰즈의 시간 철학에 비추어 보면, 하나가 아닌 여러 시간들의 동시적 공존,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시간, 차이를 생성하는 반복 이라는 보르헤스적 시간의 특성들은 오히려 인간의 경험 적 삶을 조건 짓는 시간의 근원적인 초월론적(transcendental) 작동을 드러낸다. 3) 놀이다. 시간의 놀이며 상상력의 놀이며 담론의 놀이다. ( 시간의 미로와 담론의 미 로 서어서문연구 16 호, 2000, 9) 또한 김춘진에 의하면 보르헤스는 자신의 철 학적 입장을 본질적 회의주의 라고 일렀다. (...) 보르헤스는 모든 형이상학적 또는 신학적 문제를 현상세계에 존재하는 법칙적 질서의 헤아림이라는 인식론적 관점에 서가 아니라 환상과 허구의 생성이라는 심미적 관점에서 조망한다. ( 보르헤스와 포 스트모더니즘, 서울대 인문 논총 25집 1991년 2 월호, 49) 2) 시간 조작은 보르헤스 환상 문학의 기본 장치이다. 모든 환상 문학의 기본 장치는 딱 4 가지뿐이다. 작품 안에 있는 작품, 꿈으로 오염된 현실, 시간 속에서의 여행 그 리고 분신. 바로 이것들이 보르헤스의 본질적인 테마들- 세계, 지식, 시간, 자아의 문 제적 본성- 이고 또한 그의 본질적인 구성 기술들이다. (Labyrinths; selected stories and other writings, Jorge Luis Borges, ed. Donald A. Yates and James E. Irby, Penguin Books, 1964, 18) 3) 여기서 초월론적인 것(transcendental) 은 경험 세계 저편의 초재적인 것(transcen- dent) 이 아니라 경험 이전에(a priori) 존재하되 경험의 내재적(immanent) 배후에서 경험의 가능 조건으로서 작동하는 것, 그러나 오로지 경험 세계에 현실화된 것들을 통해서만 그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잠재적인 실재의 존재 방식을 의미한다. 이것은 물론 칸트로부터 온 개념이지만, 나는 이것을 칸트적 의미에서 경험 대상을 구성하

보르헤스 작품에 나타난 시간의 철학적 의미 시간의 초월론적 양상은 계기적 연속의 시간성에 매여 있는 서사의 시간 너머에 서 언표 불가능한 것으로 발견된다는 점에서 경험 세계의 바깥(dehors)-초월적 외 부(extérieur) 가 아닌- 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보르헤스는 삶의 수수께끼로서 불가해한 것이자 그 자체로서는 언표 불가능한 시간의 이러한 근원적 양상을 표 현하려는 역설적 노력을, 다시 말해 경험 세계 바깥에 대한 사유의 표현 가능성을 환상적 허구를 통해서 실현하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나는 보르헤스 작품에 나타난 시간 양상이 단지 비현실적인 환상 세 계의 구성 장치로 작동하는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초월론적 조건으로서 작동하나 사유되지 못했던 시간의 근원적인 양상을 표현하 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특히 나는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과 죽지 않는 사람들 을 중심으로 동시적 공존 과 반복 이라는 보르헤스 의 시간 개념을 베르그손-들뢰즈의 철학적 시간론에 접속시킴으로써 시간에 관한 보르헤스의 문학적 상상력이 갖는 텍스트 바깥에 대한 사유로서의 실천적 의미를 고찰하고자 한다. II. 시간의 두 양상: 계기적 연속과 동시적 공존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4) 에는 두 종류의 시간이 나타 난다. 하나는 유춘의 알버트 살인사건이 전개되는 시계의 시간 이다. 저녁 6 시, 유춘을 쫓고 있던 메든의 전화 6시 10 분, 기밀 사항을 대장에게 알리기 위한 계획 수립 8시 50 분, 기차를 타고 알버트의 집으로 감 9시 30 분, 메든이 다음 기차를 타고 유춘을 쫓아옴 8시 50분과 9시 30분 사이의 40분 동안 계 획을 완수해야 하는 유춘, 메든에게 붙잡히기 직전, 알버트를 살해하여 기밀을 알 리는데 성공... 이 탐정소설의 표면에 흘러가고 있는 시간은 이렇게 과거-현재- 미래가 시계 바늘의 움직임에 따라 구슬처럼 꿰여가는 계기적 연속으로서의 시간 는 인식 주관의 형식이 아니라, 베르그손적 의미에서 삶의 존재 형식으로서의 시간, 즉 잠재성을 현실화하는 실재 지속의 역동적 존재 방식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자 한다. 이에 대해서는 김재희 베르그손의 무의식 개념에 대한 연구 ( 서울대 박사 학위 논문, 2005) 서론, 각주 2 참조. 4) 보르헤스, 픽션들, 황병하 옮김, 민음사, 1994

철학연구 제74집 이다. 다른 하나는 소설 속의 소설인 취팽의 작품에서 구현되고 있는 미로의 시간 이다. 여기서 시간은 시계 시간처럼 한 번에 하나씩 지금 이라는 순간들이 지나가 는 연대기적이고 선형적인 흐름이 아니다. 시간은 마치 미로의 공간처럼 매순간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져 무한히 증식하며 그 전체가 한꺼번에 펼쳐진다. 과거-현 재-미래는 단 하나의 계열이 아닌 가능한 모든 계열들로 현실화되며 따라서 무한 히 다양한 시간들이 동시적으로 공존한다. 현재는 단 하나의 과거로부터 단 하나 의 미래로 나아가는 단선적인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공존하는 두 갈래의 과거들 그리고 동시에 공존하는 두 갈래의 미래들 모두와 동시적으로 공존 한다. 5) 취팽 소설의 비논리적이고 혼란스런 서사의 이면에는 이렇게 과거-현재- 미래의 상이한 계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는 시간의 복수성이 감춰져 있다. 보르헤스는 현실적 경험 세계를 지배하는 시계 시간과 문학적 허구의 세계를 구축하는 미로 시간 사이의 기이한 마주침을 통해서 현실과 허구를 뒤섞는 환상 세계를 표현한다. 알버트는 취팽의 소설을 언급하면서 미로 시간의 차원 에서 보 자면 두 사람( 알버트와 유춘) 의 만남과 관계는 다양한 시간 계열들이 존속하는 만 큼이나 다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시간 속에서 당신은 존재하지만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른 어떤 시간 속에서 나는 존재하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습 니다. 또 다른 시간의 경우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존재합니다. 6) 하지만 시계 시 간의 차원 에서 쫓기고 있던 유춘은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말하 면서 미리 세워놓았던 계획에 따라 알버트에게 총을 발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 다면 단 하나의 인과적 계기성에 매여 있지 않다는 다양한 시간 계열들의 동시적 공존 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결국 취팽의 미로 시간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허구적 설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인가? 아니 보르헤스가 취팽의 소설을 통해 그 려 보인 시간의 그 독특한 양상은 단지 현실을 환상으로 전환시키는 요소, 비현실 적 환상을 구성하는 문학적 요소로 작동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인가? 보르헤스가 취팽의 소설뿐만 아니라 허버트 쾌인의 소설을 통해서도 끝없이 두 5) 취팽의소설속에서어떤군대의현재사건전투에서의승리은황량하고어두운산 ( ) 행을 통과해 온 과거1과 축제가 벌어진 궁전을 가로질러 온 과거2가 동시에 수렴하 는 지점에 있다.( 픽션들 161) 또한 취팽의 소설 속에서 독자는 모든 것을 -동시 에- 선택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다양한 미래들, 다양한 시간들을 선택하게 되고, 그것들은 무한히 두 갈래로 갈라지면서 증식하게 됩니다. ( 픽션들 160) 6) 같은 책, 165

보르헤스 작품에 나타난 시간의 철학적 의미 갈래로 갈라지며 증식하는 시간을 무한한 이야기 의 가능 조건으로 상정하고 있 음을 보면, 미로 시간은 반현실적인(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현실 초월적 인) 허구적 환상 세계를 창출하기 위한 심미적 장치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7) 그러나 그 자체로서는 표현될 수 없으면서 표현되어야 하는 수수께끼의 답처럼 서사의 언어적 논리를 거스르면서까지 미로 시간을 드러내고자 했던 취팽은 자신 의 소설이 우주에 대한 하나의 이미지 8) 로서 존재하기를 원했다는 점에 주목해 야 한다. 취팽이 생각한 우주는 단 하나의 시간이 아니라 분산되고 수렴되고 평 형을 이루는 시간들의 그물 9) 로 이루어져 있다. 미로는 이러한 우주의 무한한 시 간 양상에 대한 은유적 표현일 뿐이다. 즉 취팽은 무한한 이야기 를 만들기 위해 서 미로 시간을 설정한 것이 아니라 미로 시간을 구현하려다 보니까 무한한 이 야기에 도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보르헤스는 결코 끝나지 않는, 그래서 영원히 이야기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무한히 전개되는 이야기의 가능성을 꿈꾸었다. 그것은 보르헤스가 생각한 소설의 이상일지도 모른다. 비록 보르헤스 자신은 아주 짧은 이야기들만을 쓰는 데 그쳤지만, 그 짧은 이야기 속에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할 무한한 이야기의 실현 가능성을 소설 속 소설들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보르헤스는 한 권 의 책이 무한한 책이 될 수 있는 10) 여러 가지 방법들을 생각했다. 마지막 페이 지가 첫 페이지와 동일하여 매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순환적이고 원형적인 책, 천일야화 처럼 이야기 속에 이야기 자신과 동일한 이야기가 들어있어서 마 치 거울 속에 거울이 있듯이 끝없이 자기 지시적인 책, 다시 쓰기로서의 다시 읽 기를 통해서 텍스트의 완결을 무한히 지연시키는 삐에르 메나르의 돈키호테 처 럼 11) 플라톤적인 원본을 반복하고 수정하면서 아버지로부터 아들로 무한히 상속 7) 허버트 쾌인의 소설 역시 가지처럼 갈라지는 구조 ( 픽션들 중 허버트 쾌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 120) 의 시간을 전제한다. 이것은 물론 취팽의 것과 달리 두 갈 래가 아닌 세 갈래로 갈라지며 공존하는 시간이지만, 보르헤스는 쾌인 식의 3중 구 조보다는 취팽 식의 2중 구조가 무한한 이야기의 구성에 더 적합하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미 쾌인은 3 중적 구조에 대해 후회를 했고, 자신을 모방하고자 하는 사람 은 2 중적 구조를 선택하게 될 것이며, 조물주들이나 신들 대신 무한성, 그러니까 무 한한 이야기들, 무한히 가지가 갈라지는 이야기들을 선택하게 될 거라고 예언했다. ( 같은 책, 124) 8) 같은 책, 164 9) 같은 책, 같은 곳 10) 같은 책, 158

철학연구 제74집 되는 책... 그러나 취팽의 무한한 이야기는 이러한 책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에서 이 루어진다. 취팽은 텍스트 차원에서만 가능한 관념적 무한성이 아니라 텍스트 바 깥의 실재 그 자체가 지닌 무한성을 구현하려는 노력 속에서 무한성에 도달한다. 다시 말해 취팽의 소설이 무한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실재 그 자 체가 무한한 미로 시간의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고, 그러한 시간을 통해 전개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 또한 그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맥락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 인 것이다. 취팽은 우주를 관통하고 있는 시간 전체의 양상을, 아니 가능한 모든 삶의 여정을 다 그려보고자 했다. 미로 시간에 대한 취팽의 깨달음은 현재의 삶, 또는 현재의 어떤 사건은 절대적이고 필연적인 결정물이 아니라 잠재적으로 공존 하던 다양한 시간 계열들 중의 하나에서 현실화되는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 얼마 든지 다른 시간 계열의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함의한다. 복잡한 시간 그물의 우주 안에서 우리 모두는 현실적으로 단 하나의 삶, 그리고 이 하나의 삶으로 구현된 단 한 계열의 시간만을 살 수 있을 뿐인지 모른다. 하지만 우주 전체의 관점에서 보자면, 동시적으로 공존하는 무한히 다양한 계열의 삶들과 그 만큼의 복수적인 시간들이 존재할 것이다. 취팽의 소설은 이러한 우주적 실재의 미로와 같은 시간 양상을 깨닫게 함으로써 하나의 삶에 몰두하는 궁색하고 협소한 현실을 다시 바 11) 보르헤스를 텍스트론의 선구자로 놓은 대표작 < 돈키호테 의 저자, 삐에르 메나르> 를 보면, 세르반테스의 텍스트와 삐에르 메나르의 텍스트는 언어상으로는 단 한자 도 다른 게 없이 똑같다. 그러나 삐에르 메나르의 것은 전자보다 거의 무한정할 정 도로 풍요롭다. ( 픽션들 84) 왜 그러한가? 삐에르 메나르의 돈키호테 는 마치 양 피지 사본처럼, 세르반테스의 텍스트를 그대로 따라 읽으면서 새롭게 다시 쓴 무수 한 흔적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거치면서 흔적들로 두터워진 삐에르 메 나르의 텍스트로부터 원본인 세르반테스의 텍스트를 찾아내어 복원한다는 것은 불 가능하다. 원본이란 차라리 끊임없이 유예되고 지연되며 어렴풋한 흔적의 하나로서 만 남아있을 뿐이다. 삐에르 메나르의 작업이 무한한 한, 무수한 삐에르 메나르들의 돈키호테 읽기가 또는 다시 쓰기가 계속되는 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는 그 완결이 무한히 지연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텍스트는 그 자체로 완성되 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 속에 열려있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과 거와 현재는 이전과 이후의 계기적 연속의 관계가 아니다. 과거는 현재에 의해, 아 니 현재 이후에야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 된다. 과거가 현재에 의해 재구성되고 해석 됨으로써 존재한다는 프로이트의 사후성의 논리나, 원초적 기원이란 기원 이후의 것 이 등장한 이후에야 비로소 기원으로서 정초될 수 있다는 데리다의 흔적의 논리 역 시이와다른것이아니다.

보르헤스 작품에 나타난 시간의 철학적 의미 라보도록, 그 바깥으로 시선을 확장하도록 시간의 수수께끼를 내었던 것이 아닐 까? 환상적 관념으로의 도피가 아닌 실재의 진상에서 삶을 다시 보게 하는 것, 이 것이 바로 환상이 현실을 넘어서는 방법이 아닐까? 취팽의 방법으로 단 한 권의 책이면서 무한한 책이 되는 것, 보르헤스식으로 말해 알렙 12) 을 구현하려는 것, 그것은 바로 실재 전체에 대한 형이상학적 통찰의 구체화에 다름 아니다. 김춘진은 미로 시간의 비현실적 양상을 마술적 인과성 을 드러내는 문학적 은 유로 간주한다. 보르헤스의 시간 게임은 마술적이다. 소설이 선형적 인과 관계에 따라 서술되는 시간예술이라면 보르헤스의 픽션은 그 선형적 인과 관계를 마술적 인과 관계로 바꾸어 놓는다. (...) 인과적일 수 없는 것을 인과적으로 믿게 하는 잠 정적 믿음을 유도하는 것... 13) 그러나 내가 보기에 미로 시간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마술적 조작에 그친다기보다는 있는 데도 못 보고 있는 시 간의 실재적 본성에 관한 철학적 통찰을 함축한다. 미로 시간의 실재성에 대한 보 르헤스의 확신은 소설이 아닌 그의 강연이나 에세이들에서도 엿볼 수 있다. 특히 시간에 대한 새로운 논박 에서는 역설적이게도, 환상적인 관념 세계의 구축으로 유명한 보르헤스의 명시적인 관념론 비판을 볼 수 있는데, 거기서 보르헤스는 계 기적 연속으로서의 시간 과 하나의 유일한 시간 존재 라는 관념론적 시간 개념을 반박하고 있다. 14) 그의 논박 중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과거의 어느 한 순간 12) 알렙 이란 무한한 총체로서의 우주 전체가 서로 겹치거나 투명해져 버리는 법 없 이 ( 보르헤스, 알렙, 황병하 옮김, 민음사, 1996, 229) 동시적으로 공존하는 세계 를 직경 2~3cm 안에 담아 보여주는 것으로서 보르헤스의 문학적 상상력의 산물이 다. 무한한 책으로서 취팽의 소설이 보여주고자 한 것은, 비록 언어의 특성상 계기 적 연속성에 따라 표현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인과적 관계가 전복된 비논리적인 서 술로 보여질 수밖에 없지만, 알렙과 같은 동시적 공존의 세계, 즉 시간 전체의 양상 이라고할수있다. 13) 보르헤스 김춘진 엮음, 문학과지성사, 1996, 14, 16 14) 나는 관념론의 논증들과 함께 관념론이 받아들이고 있는 거대한 시간적 계열들을 거부한다. (...) 나는 모든 사물들이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는 단 하나의 유일한 시 간의 존재를 거부한다. (Labyrinths, A new refutation of time 257) 여기서 주장 된 보르헤스의 논박은 대략 3 가지 정도로 축약할 수 있다. 우선 물질적 실체나 정신 적 실체와 같은 연속체를 부정하면서 연속의 실체성을 부정한다면, 관념들의 연속 으로 시간을 정의하는 관념론의 주장은 자기 모순적이다. 그리고 시간이 순전히 관 념들의 연속과 같은 심적인 과정에 불과하다면, 단 두 사람조차도 그것을 공유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르헤스 자신이 체험했던 것처럼 과거의 어느 한 순간과 현재의 어느 한 순간이 반복되면서 무차별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면, 다시 말해 라이

철학연구 제74집 과 현재의 어느 한 순간이 식별불가능하게 뒤섞여 내가 지금 어느 시간을 살고 있는지 구분할 수 없게 했던 자신의 어떤 체험을 근거로 계기적 연속으로서의 시 간을 해체할 수 있다고 한 보르헤스의 주장이다. 15) 분명한 논증의 형태를 갖추었 다고 하긴 힘들지만, 그 주장의 함축은, 마치 유춘과 알버트의 만남이라는 어떤 사건의 순간이 상이한 계열의 여러 시간들에서 동시에 공존할 수 있듯이, 어떤 순 간이 상이한 시간 계열들에서 반복되면서 동시에 공존할 수 있음은 실재적 사실 이라는 것이다. 보르헤스는 분명 순간들의 계기적 연속체로서 단 하나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한다. 현실적 경험에서와 달리, 다양한 계열의 여러 시간들 이 동시적으로 공존하며 현재의 순간은 상이한 계열들에서 반복 가능하다는 것이 보르헤스가 생각했던 시간의 실재적 본성이다. 미로 시간은 시간에 관한 보르헤 스의 이러한 철학적 통찰을 표현한다. 그런데 시간은 왜 계기적 연속으로서의 시간과 동시적 공존으로서의 시간으로 갈라지는가? 우리의 경험적 현실을 구성하는 시계의 시간과 환상적인 허구에 불 과하다고 여겨지는 미로 시간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사실 보르헤스의 문학적 상상력 속에서는 이 문제에 관한 적극적인 해답이 없다. 비록 미로 시간의 양상으 로 시간 실재에 대한 통찰을 표현하긴 했으나 보르헤스 자신이 사유하지 못한( 또 는 표현하지 못한) 그 통찰의 깊은 내막에 대해서는 오히려 지속에 관한 베르그손 의 철학적 논증이 밝혀줄 수 있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16) 프니츠의 식별불가능성의 원리에 따라 두 순간의 동일성이 확보될 수 있다면, 계기 적 연속으로서의 시간은 해체될 수 있다. 관념론적 시간 개념에 대한 보르헤스의 이 러한 논박을 세세하게 분석하여 검토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여기서는 다 만 보르헤스가 미로 시간을 통해서 시간 실재의 본성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표현하 고자 했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그친다. 15) 타자 나 1983년 8월 25 일 ( 보르헤스, 셰익스피어의 기억, 황병하 옮김, 민음사, 1997)은 이러한 동시적 공존의 체험을 보여주는 문학적 표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타자 는 1918 년에 사는 스무 살 미만의 젊은 나( 과거) 와 1969년에 사는 칠 십대의 늙은 나( 현재), 그리고 1974 년에 발행된 지폐( 미래) 가 한 자리 한 순간에 동 시에 공존하는 기이한 사건을 다루며, 1983년 8월 25일 은 71세의 나와 84세의 나의 만남을 통해서 현재와 미래, 또는 과거와 현재의 동시적 공존을 보여준다. 16) 절대적인 단 하나의 시간이 아니라 다양한 계열의 시간들이 실재한다는 보르헤스의 생각은 1978년 6월 23 일에 있었던 시간 ( 보르헤스, 허구들, 박병규 옮김, 녹진, 1992 부록 보르헤스 강연집 중에서) 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여 기서는 보르헤스가 시간에 관한 베르그손적 통찰을 전제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요컨대 시간이란 문제의 형이상학적 중요성에 대한 인식, 제논의 역설을 통한 공간

보르헤스 작품에 나타난 시간의 철학적 의미 베르그손은 시론 에서 공간화된 시간과 순수 지속을 구분했다. 시계로 대변되 는 공간화된 시간이 등질적인 공간의 양적 분할에 따르는 연속이라면, 순수 지속 은 양화될 수 없는 질적 변화의 연속으로서 공간성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시간 그 자체의 양상이다. 공간화된 시간이 인간적 행위의 실천적 편의에 의해 형성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시간 양상이라면, 순수 지속은 구체적인 삶을 통해 체험되 고 표현되는 실재적인 시간의 참된 양상이다. 보르헤스와 마찬가지로 공간화된 시간을 현실적 경험 세계의 시간 양상으로 본다면, 순수 지속은 아마 경험 세계 바깥에서 발견되는 미로 시간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보르헤스 와 베르그손은 모두 시간에 관한 한 현실( 실재) 과 환상( 현상 또는 관념) 의 통념 을 뒤집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는 현실적 경험을 지배하는 시계 시간 이 오히려 관념적( 환상적) 인 것이고, 경험 세계 바깥의 미로 시간과 순수 지속이 야말로 진정한 실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몇 가지 의문들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순수 지속이 과연 미로 시간과 같은 동시적 공존체의 시간 양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순수 지속은 사실 양적 계 기성을 질적 계기성으로 대체했을 뿐, 여전히 계기적 연속이라는 경험적 양상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따라서 계기적 연속체로서의 시계 시간과 대립하는 동시적 공존체로서의 미로 시간에 순수 지속이 그대로 상응한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그 다음, 도대체 미로 시간과 순수 지속이 경험 세계 바깥에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플라톤적 의미에서 초월적 실재성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칸트 적 의미에서 초월론적 관념성을 말하는 것인가? 동시적 공존체로서의 시간 양상 은 계기적 연속체로서의 시간 양상과 어떤 관계를 지니는 것인가? 이에 대해 우선적으로 답하자면, 순수 지속은 미로 시간과 같은 동시적 공존체 이며 이는 초월론적인 실재로서의 시간 양상이다. 미로 시간은 바로 이러한 순수 지속의 의미에서 경험 세계와 관계 맺는 초월론적인 시간 양상을 보여준다. 순수 지속이 여전히 경험적 차원의 계기적 연속성에 매여 있다는 오해는 지속 개념의 발전적 과정을 보지 못한 탓이다. 베르그손의 지속 개념은 시론 에서 완 성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삶을 체험하는 의식의 지속은 분명 이전 것과 이후 것의 상호침투에 의한 질적 변화의 연속이다. 그러나 물질과 기억 에 오면, 의식 화된 시간에 대한 비판, 기하학적 점과 같은 현재란 없으며 현재에는 항상 과거와 미래가 침투되어 있다는 생각, 뉴톤식의 등질적이고 절대적인 단 하나의 시간 개념 을 부정하면서 우주 전체에는 다양한 계열의 시간들이 동시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 는생각등등이그렇다.

철학연구 제74집 의 지속은 과거를 축적하여 현재에 이용하는 구체적인 삶의 지속으로 확장된다. 이전 것과 이후 것의 상호침투에 의한 질적 변화 는 잠재적인 과거와 현실적 현 재의 동시적 공존 속에서 팽창-수축하며 잠재성을 현실화하는 기억의 연속적인 운동으로 재정의 된다. 이 기억의 운동이야말로 계기적 연속으로서의 시간이 어 떻게 가능한지, 왜 현재는 끊임없이 지나갈 수밖에 없는지, 그 역동적 구조의 본 질을 해명해 준다. 뿐만 아니라 기억의 운동은 누구에게나 동질적인 단 하나의 시 간이 아니라 다양한 리듬과 속도의 차이로 흘러가는 여러 지속들의 동시적 공존 가능성 또한 발견할 수 있게 한다. 17) 베르그손식으로 다시 말하자면, 시계 시간은 경험적 현실적 차원에서 공간 운 동에 종속된 시간이다.< 메든의 전화를 받는다 전화번호부를 뒤진다 기차 를 탄다 알버트를 사살한다> 와 같이 공간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행위와 운동의 연속이 있다. 여기서 현재는 직전의 과거를 미래의 행위로 연결하는 인과적이고 선형적인 연속의 이행지점이다. 그러나 기억 운동의 관점에서 공간과 독립적인 시간 그 자체의 양상을 살펴보 면, 시간은 미로 시간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며 분출한다. 현 재는 매순간 분출하면서 한편으로는 과거를 향하여 되떨어지는 방향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를 향해 돌진하는 방향으로, 동시에 둘로 갈라지면서 흐른다. 18) 단일한 순간으로서의 현재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는 사라지지 않는 과 거 전체와 동시적으로 공존하며 항상 과거에 의해 물들어 있다. 현재의 두께는 과 거와의 이질적 혼합물로서 항상 두 갈래로 갈라지며 자기 변신하는 시간의 이중 분열을 말해준다. 시간은 왜 두 갈래로 갈라지는가? 그것은 바로 비연대기적으로 현재와 관계 맺으며 현재와 미래 사이의 인과적 연속성을 탈구시킬 수 있는 잠재 적인 과거의 존재 때문이다. 예컨대 < 메든의 전화를 받는다> 와 < 전화번호부를 뒤 진다> 사이에 상이한 차원의 과거들이 비연대기적으로 삽입될 수 있다. 이 잠재 적인 기억들의 삽입으로 인해서 < 메든의 전화를 받는다> 는 < 전화번호부를 뒤진 다> 로 이행하지 않고 < 숨어서 메든을 기다린다> 거나 < 탈주로를 따라 도망을 간 다> 와 같은 다른 방식의 행위로 얼마든지 연결될 수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알버트 와 유춘의 관계 또한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재와 현재 사이의 인과적 연속성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계열의 시간 진행을 가능하게 17)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김재희 베르그손의 기억 개념과 시간의 역설에 대하여 철학연구 제63 집, 2003, 겨울호 참조 18) H. Bergson, L'énergie spirituelle, Œuvres, Paris, PUF, 1970, 131-2/914

보르헤스 작품에 나타난 시간의 철학적 의미 하는 것은 바로 무한히 팽창하며 축적되는 순수 과거의 존속, 그리고 다양한 수준 으로 수축되며 현실화하는 이 순수 과거의 현실화 작동이다. 순수 과거( 베르그손 의 용어로는 순수 기억) 는 사라지지 않고 보존된 과거 전체로서 항상 현재와 함께 잠재적인 상태로 공존한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의 관계는 동질적인 두 순간의 계 기적 연속이라기보다는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이라는 이질적인 두 요소의 동 시적 공존이다. 여기서 동시적 공존 이란 물론 공간상에 한꺼번에 펼쳐져 있음을 의미하지 않 는다. 그러나 동시적 공존의 또 다른 이중적 의미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동시적 공존이고, 다른 하나는 잠재적인 것 안에서 여러 수준의 과거들이 동시적으로 공존하는 것이다. 전자가 현재의 두께 가 함축 하는 과거와 현재의 동시적 공존 양상이라면, 후자는 순수 기억의 원뿔처럼, 상이 한 시간 계열들로 현실화할 수 있는 과거 전체가 상이한 수축의 수준들에서 반복 되고 있음에서 보여 지는 양상이다. 바로 이 순수 과거의 존재 양상 때문에, 다시 말해 무엇보다 과거 전체가 수축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수준들에서 동시적으로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과거와 동시적으로 공존하는 현재의 질적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현재는 어떤 수준에서의 과거가 현실화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삶의 시간으로서의 지속이란 잠재적인 과거를 현실화하는 의식의 긴장 과 이완 정도에 따라 상이한 리듬과 속도로 흘러간다. 우리는 매순간 과거 전체의 수축 정도에 따라 상이한 수준들에서 흘러가는 삶의 현재를 산다. 시간은 하나가 아니라 각자의 삶의 지속만큼이나 여럿이다. 공간적 차원에서 바라본 현재들의 연속적인 이행이란 한편으로는 잠재적인 과 거로, 다른 한편으로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로 갈라지며 자기 분열하는 현재의 질 적 변화에 다름 아니다. 바꿔 말하자면, 계기적 연속으로서의 시간은 과거의 방향 으로 무한히 증가하는 잠재성을 미래의 방향으로 부단히 현실화하는 순수 기억의 초월론적 작동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순수 과거는 현실적 경험 이전에 먼저 존재 하는 잠재적인 실재이면서 동시에 현실적 경험의 실재적 조건으로 작동한다는 점 에서 초월론적인 것이다. 19) 끊임없이 양방향으로 분열하는 시간, 동시적 공존체로서의 초월론적 시간 양상 을 표현하기에는 헤라클레이토스적인 강물의 흐름 보다는 들뢰즈적인 크리스탈 이 더 적합하다. 크리스탈은 그 다면체적 특성 덕분에,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이 서로를 반복 반사하면서 상호침투하고 있는 식별불가능한 요소들의 동시 19) 이에 대한 자세한 논증은 김재희 베르그손의 무의식 개념에 대한 연구 참조

철학연구 제74집 적 공존상태와 비연대기적 시간의 분열적 특성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20) 현재 는 과거가 되는 현재, 현재의 현재, 미래가 되는 현재가 식별불가능하게 상호침투 하면서 자기 분열한다. 시간은 지나가는 현재와 보존되는 과거로 분열하면서 미 결정적인 미래를 개방한다. 현재가 현실화된 표면이라면 과거는 이 현재를 통하 여 무한히 다양한 미래들로 발산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성이다. 과거-현재-미래의 계열은 현실적 차원에서는 하나일 수 있으나 잠재적 차원에서는 무한히 다양한 것들로 공존할 수 있다. 다양한 시간 계열들이 잠재적 차원에서는 동시적으로 공 존하지만 언표의 현실적 차원에서는 하나씩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취팽의 미로 시간도 이와 마찬가지다. 미로 시간이라는 보르헤스의 문학적 상상력이 잠재적 공존체로서의 지속이라 는 베르그손의 철학적 직관에 닿아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일까? 시간이 결코 한꺼번에 주어지지 않는 이유, 그들의 공통된 해답은 바로 시간이 끊임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며 자기 분열한다는데 있다. II I. 시간 안에서의 삶과 죽음: 불멸 또는 반복의 의미 하나의 삶은 유한하다. 따라서 하나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끝이 있다. 그러면 미 로 시간의 이미지로서 끝없이 펼쳐지는 무한한 이야기는 어떻게 가능한가? 무한한 시간을 사는 삶, 다시 말해 죽음을 넘어선 무한한 삶이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즉 죽지 않는 사람들 은 호머 의 일리어드 마지막 권에 끼여 있던 어떤 원고, 조셉 카르타필루스 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어떤 이야기를 액자 형식으로 들려 주고, 이 이야기에 대한 논평까지 후기로 담고 있다. 21) 원고의 내용에 따르면, 화 자인 나 는 로마의 군단장인 마르코 플라미니오 루포 로서 < 죽지 않는 자들의 도시> 를 발견한다. 거기서 나 는 < 불사( 不 死 ) 의 강물> 을 마시고 죽지 않는 사람 이되며, 그도시의혈거인( 穴 居 人 ) 들중에서천백년전에 오디세이 를 창조했 20) 크리스탈이 드러내거나 보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시간의 감춰진 근거, 즉 지나가 는 현재들과 스스로 보존되는 과거들의 두 방향으로 던져지는 시간의 분화 (différenciation), 바로 그것이다. G. Deleuze, Cinéma 2: L image-temps, Minuit, 1985, 109 21) 알렙에수록.

보르헤스 작품에 나타난 시간의 철학적 의미 던 호머 를 만나게 된다. 나 는 불사자로서 불멸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수세기 에 걸쳐 매번 다른 이름의 누군가로서 살면서 체험한 뒤, 마침내 불사성을 지워버 리는 죽음의 강물을 마시고, 다시 죽는 존재가 된다. 원고의 끝부분에는 그 원고 의 저자로 추정되었던 카르타필루스 가 실은 이야기의 화자였던 루포 일 뿐만 아니라 또한 호머 였다는 것이 밝혀져 있다. 도대체 나= 루포= 카르타필루스= 호 머 의 동일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다른 시공간에서 반복되면서 이들의 동일 성을 산출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루포 로서의 나 와 혈거인으로서의 호 머 는 분명 < 죽지 않는 자들의 도시> 에서 마주쳤다가 탄지에 항구 어귀에서 헤어 지지 않았던가? 22) 보르헤스는 영혼이 자기동일성을 간직한 채이신체에서저신 체로 옮겨 다니는 영혼불멸을 주장하지 않는다. 보르헤스의 불멸은 신체의 불변 성이나 영혼의 불변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신체와 영혼의 완 전한 죽음을 전제로 한다. 23) 나 라는 존재의 완전한 죽음, 즉 나 를 지탱하던 신 체가 소멸하고, 나 를 이루고 있던 모든 기억이 망각될 때, 그리고 나 를 지칭하 던 그 이름을 벗어던질 때, 비로소 나 는 불멸의 길에 들어 설 수 있다. 어떻게 완전한 나의 죽음이 오히려 나를 불멸에 도달하게 하는가? 보르헤스는 죽음을 유한자의 궁극적 한계로서 보지 않고 다른 삶으로의 이행으로 보았다. 죽 음의 의미는 실존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개체초월적인 삶 자체의 관점에서 해석된 다. 개체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삶은 유한하며 궁극적인 미래는 결국 한 생명의 죽음이요 한 세계의 종말이지만, 삶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죽음이란 단지 하나의 삶에서 다른 삶으로 이행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미래는 항상 또 다른 삶의 우 연한 생성으로 열려져 있다. 생명의 약동에 의해 창조적으로 진화하는 베르그손 적 우주의 지속과 마찬가지로 보르헤스의 불멸은 결코 사적인 것이 아니라 우주 적인 것 24) 이며 무한한 시간 속에서 영속하는 삶 자체의 양상이다. 베르그손과 마찬가지로 보르헤스는 죽음의 관념성 보다는 불멸의 실재성에 더 주목한다. 불 사의 존재가 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인간을 제외하고 모든 피조물들은 죽음 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불사의 존재들이다. 25) 죽음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은 22) 알렙 24, 30 23) 나는 보르헤스로 계속 존재하고 싶지는 않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내 죽 음이 완전한 것이기를 바라며, 육체와 영혼을 가진 채로 죽기를 바란다. 허구들 의 부록 보르헤스 강연집 중에서 불멸 (1978년 6월 5 일 강연) 221 24) 같은 책, 234 25) 알렙 26

철학연구 제74집 거꾸로 개체초월적인 삶의 영속성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오로지 인간만이 자신의 죽음에 대한 관념을 가지며, 영생불멸에 대한 꿈과 종교를 만들어낸다. 26) 그러나 보르헤스적 불멸은 종교적인 꿈이 아니라 삶의 실재이다. 개체초월적인 관점에서 삶 전체를 바라볼 때 불멸은 영속적인 삶의 지속으로서 실재한다. 왜 나 의 죽음이 문제 되지 않는가? 그것은 나 라는 자기동일적 실체가 실은 텅 빈 형식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보르헤스에 의하면 나 를 채우고 있는 것 은 이미 타자들 이다. 심지어 1918 년의 나 와 1972 년의 나 조차도 서로 다른 타자 로서 마주친다. 우리는 서로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 리는 너무 비슷했으면서도 너무 달랐다. 27) 20대의 젊은 나와 70대의 늙은 나 사 이에는 시간의 흐름에 의해 변형된 육체와 정신의 차이가 소통 불가능한 거대한 벽으로 가로막고 있었다. 마치 두 나 가 서로 다른 계열의 시간 속에서 살고 있 었던 것인양! 나 는 왜 루포이고 카르타필루스이며 호머인가? 나= 타자 라는 것 은 바로 시간이라는 삶의 조건이 형식적 연속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상 의 질적 변화와 차이를 산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는 이미 하나가 아닌 여럿 이고, 나 의 말은 다른 사람들의 말이며 그들의 흔적들이다. 나 가 카르타필루스 인지, 루포인지, 호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였는지를 망각 한 아무나 로서 그 누군가 로서 기록한 말들이 남아있다는 사실 뿐이다. 기억 의 영상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남아있는 것은 단지 < 말들> 뿐이다. 28) 요컨대 나 는 실체가 아니라 이름뿐인 텅 빈 형식이고, 나 를 채우는 것은 무한히 계속 되는 다른 삶들일 뿐이다. 29) 26) 베르그손에 의하면, 죽음 이라는 관념은 인간 지성의 산물이다. 동물들은 자신들의 생명적 충동에 직접적으로 충실한 반면, 인간은 추상화 일반화하는 지성 때문에 자 신을 둘러싸고 있는 생명체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죽음의 일반성을 확인하고는 자 신의 죽음에 대한 관념을 갖게 된다. 이에 종교는 죽음의 불가피성에 대한 지성의 표상에 대항하는 자연의 방어적 반작용 (H. Bergson, Les deux sources de la morale et de la religion, Œuvres, 137/1086) 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27) 셰익스피어의 기억 19 28) 알렙 35 29) 1983년 8월 25 일 에는 오늘의 내가 미래의 나를 꿈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미래 의 내가 오늘의 나를 꿈꾸고 있는 것인지 불분명한 상황이 그려진다. 그런데 미래의 내가 죽자 오늘의 나에게 현실감을 주었던 세상마저도 모두 사라진다. 다만 또 다 른 꿈들이 나를 기다리고 ( 셰익스피어의 기억 155) 있을 뿐이다. 오늘의 나든, 미 래의 나든 나는 그 누군가에 의해 꿈꾸어진 존재다. 이것은 마치 모든 것은 신의 관

보르헤스 작품에 나타난 시간의 철학적 의미 카르타필루스, 루포, 호머는 모두 죽지 않는 자들이었다. 죽지 않고 무한한 시 간을 사는 존재였기에 그들은 다른 존재이면서도 동일한 존재일 수가 있었다. 여 기서 이들의 동일성은 신체적 동일성이나 영혼의 동일성이 아니라 바로 체험된 삶의 동일성, 즉 인간인 한에서 가능한 모든 삶을 동일하게 겪는다는 점에서 설명 될 수 있는 동일성이다. 무한한 시간 속에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일들이 일 어난다. (...) 만일 무한한 정황들과 무한한 변화들을 가진 어떤 무한한 시간을 상 정해 본다면 적어도 한번 오디세이 가 씌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다. 아무도 아닌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단 한 사람의 죽지 않는 인간은 모든 죽 지 않는 인간들이다. 30) 누구든 무한한 시간 동안 살 수 있다면, 가능한 모든 형 태의 삶들을 다 살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모두 동일한 삶을 살게 된다. 바로 이점 에서 죽지 않는 자들은 자기 자신이면서 동시에 다른 모든 사람들일 수가 있다. 무한한 시간을 사는 한, 카르타필루스의 삶은 루포의 삶이고 호머의 삶이다. 나 의 삶은 모든 사람 의 삶이다. 취팽의 소설에서처럼 다양한 계열의 시간들 속에 서 영위되는 삶의 모든 잠재성을 현실화하는 것이기에 죽지 않는 자의 삶은 하나 의 어떤 삶이면서 동시에 모든 삶이다. 따라서 보르헤스의 불멸은 영원히 다른 양상으로 반복되는 삶, 즉 무한한 시간 을 사는 삶 그 자체의 양상이다. 동일한 삶의 내용이 여러 시공간 속에서 여러 개 체들을 통해서 현실화되어 반복된다. 죽지 않는 자의 관점이란 삶 전체의 관점이 요, 무한한 시간 그 자체의 관점이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삶이란 언제나 하나의 삶이면서 모든 삶이며, 죽음이란 언제나 다른 삶으로의 이행일 뿐이다. 무 엇보다 이 불멸은 동일한 것의 영속이 아니라 다른 것의 반복이다. 다른 것의 반 복이란,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동일한 삶이 다양한 시공간 상의 개체들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현실화된다는 것이고, 개체의 관점에서 보면, 나 는 무한히 다른 삶 의 주체로 이행하며 거듭 변신한다는 것이다. 불멸과 반복의 관계에 대한 이러한 보르헤스적 통찰은 들뢰즈가 차이와 반복 에서 제시했던 죽음 충동을 넘어선 념으로서 존재한다는 버클리의 관념론적 세계를 변용시켜서 나의 삶은 결국 신의 꿈으로서나 존재한다는 식의 허무주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초점은 삶이 한갓된 꿈에 불과하다는 게 아니라, 나 의 삶이 아닌 어떤 삶이라는 데 있다. 나 는 또 다른 삶을산다는것, 즉이꿈속에서의삶도살고저꿈속에서의삶도산다는것, 그러 니까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하나의 어떤 삶 이지 나 의 삶이 아니라는 것! 바로 그 것이다. 30) 알렙 27, 28

철학연구 제74집 세 번째 반복 의 의미를 함축한다. 31) 시간이 삶으로서의 지속인 한, 시간은 차이를 생성하는 반복이다. 들뢰즈는 삶 의 시간성을 무의식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세 반복을 통해 설명한다. 32) 첫 번째 반복은 우리 자신을 물질적 세계 속에 정박시키는 습관 의 수동적 종합으로서 살아있는 현재 로서의 시간성에서 발견된다.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단순한 물질적 반복으로부터 규칙화된 습관을 형성함으로써 생명체는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예 컨대 심장 박동의 규칙적인 반복에서부터 자동화된 재인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적 필요와 욕구에 의해 제한된 우리의 삶은 대부분 습관에 의해 유지된다. 이 살아 있는 현재 의 시간을 구성하는 과거와 미래 사이의 간격은 너무나 협소해서 주어 진 자극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처럼 현재는 언제나 순간적이다. 현실적 삶의 일차 원적인 시간 양상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 질적 변화가 거의 없는 이러한 순간적 현재들의 반복으로 흘러간다. 두 번째 반복은 일차원적 현재들의 계기적 이행을 가능하게 하는 기억 의 수 동적 종합으로서 순수 과거 로서의 시간성에서 보여 진다. 들뢰즈는 우리가 앞서 언급했던 베르그손적 순수 기억의 초월론적 작동이야말로 현재들의 이행과 질적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더 근원적인 차원의 시간성이라고 주장한다. 들뢰즈에 의 하면, 베르그손의 순수 과거는 모든 수준에서의 과거들의 잠재적 공존체로서 스 스로를 보존하면서 무한히 팽창할 뿐만 아니라 또한 동시에 스스로를 수축하면서 현재 안으로 연장한다. 순수 과거는 팽창하면서 수축하는 이중 운동을 통해서 이 전 현재를 자기 안으로 지나가게 하고 새로운 현재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창조한 다. 순수 과거는 잠재적인 과거이면서 동시에 현실화된 현재로서 자기 자신을 반 복하면서 현재들을 지나가게 한다. 살아있는 현재 는 이 잠재적인 순수 과거의 가장 극단적인 수축 지점일 뿐이다. 현재의 질적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 현재 31) 보르헤스는 니체의 영원회귀로부터 동일자의 반복이 아닌 차이의 반복을 읽어낸다 는 점에서도 들뢰즈와 동일한 통찰에 도달한다. 짜라투스트라의 이론을 받아들이면 어떻게두개의동일한과정이하나가될수없는것인지를이해할수없다. (...) 수 를 헤아리는 특별한 임무를 띤 천사장이 없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이 첫 번째 주기 또는 322의 2000승 번째 주기가 아니라 13514번째 주기라는 사실이 무슨 의 미가 있겠는가? 삶의 실제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 보르헤스, 시간회귀론, 바 벨의 도서관, 김춘진 옮김, 글, 1992, 221) 이러한 보르헤스의 주장은 동일한 것의 반복이란 오히려 반복 그 자체를 무화시킬 뿐이며, 반복이 반복으로서 의미 있게 작 동할 수 있으려면 다른 것의 반복이어야 한다는 들뢰즈적 통찰을 함축한다. 32) G. Deleuze, Différence et répétition, PUF. 1968, 2 장전체참조.

보르헤스 작품에 나타난 시간의 철학적 의미 의 삶을 상이한 수준들에서 상이한 속도와 리듬으로 지나가게 하는 것, 그것은 바 로 상이한 수축 정도에 따른 순수 과거의 반복 때문이다. 세 번째 차원의 반복은 삶을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파악할 수 있는 소위 역사적 차원에서의 반복, 삶 그 자체로서의 시간성이다. 요컨대 첫 번째 반 복이 물질계 안에서 생물학적인 삶의 정초를 설명해준다면, 두 번째 반복은 이렇 게 영토화된 삶들 간의 질적 차이들, 즉 다양한 리듬들과 속도들에 의한 삶의 이 행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를 설명해준다고 할수있을것이다. 그러나마지막세 번째 반복은 개체로서의 삶들을 넘어서 탈영토화하면서 재영토화하는 생명 그 자 체의 자기 변신을 설명해준다. 생명은 언제나 하나의 삶으로서 유한한 개체 속에 서 구현된다. 그러나 생명 그 자체는 유한한 개체를 넘어서 무한히 다른 개체들을 통해서 스스로를 반복한다. 삶 그 자체의 관점에서 볼 때 특권화된 삶은 없다. 어 머니의 삶에서 딸의 삶으로 이어지는 반복, 줄리어드 시저의 죽음에서 멕베드와 컬 패트릭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반복. 33) 이 반복은 동일한 삶의 반복이 아니라 다른 삶의 반복이다. 34) 33)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논고 는 역사적 사건의 반복에 대해 다루고 있다. 시저의 이야기와 아일랜드인 반란 음모 이야기 사이의 이러한 유사성은( 그리고 또 다른 유 사성들은) 라이언으로 하여금 시간의 비밀스러운 형상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만든 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선들의 그림. (...) 역사가 역사를 복사한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 ( 픽션들 203-4, 205) 이 작품은 들뢰즈의 관점에서 상이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차이와 반복 에서는 차이화하는 반복 의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지만(Différence et répétition, 153, 161), 천개의 고원 에 서는 리좀과 도주 의 관점에서 배신과 속임수( 기만) 의 차이를 제거했다고 비판받을 수있다.(Deleuze, Mille Plateaux, Minuit, 1980, 157, 295) 34) 또다른죽음은차이를산출하는반복의한예를보여준다. 1904년마소예르전 투에서 겁쟁이로 행동했던 빼드로 다미안은 그 사실을 수치스러워 하며 조용히 살 다가 1946 년 엔뜨레 리오스에서 죽었다. 그러나 자신의 수치스런 과거를 수정하고 싶어 했던 다미안의 열망을 알고 신은 임종의 순간에 그를 다시 과거의 그 전쟁터로 돌려보냈다. 그렇게 해서 1946 년, 오랫동안 가슴 안에 품고 있던 열망에 따라 1904 년 겨울과 봄 사이에 벌어졌던 마소예르의 패전에서 전사했다. ( 알렙 111) 말하자면 다미안은 1946년에 겁쟁이로 죽으면서 동시에 1904년에 용사로서 죽은 것이다. 다미안의 죽음은 1946년과 다시 도래한 두 번째 1904년에 동시적으로 반복 된다. 이 반복은 물론 과거1( 첫 번째 1904 년 겁쟁이로서 살아남) 과 과거2( 두 번째 1904 년 용감한 전사로 죽음) 가 현재(1946 년 죽음의 순간) 와 동시적으로 공존하는 미로 시간의 차원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1946년의 죽음과 두 번째 1904년의

철학연구 제74집 첫 번째 반복이 물질로부터 습관의 형성과 삶이라는 물질과의 차이를 만들어내 고, 두 번째 반복이 습관들과 삶들 사이에 다양한 리듬과 속도의 차이를 만들어내 었다면, 세 번째 반복은 삶 자체를 자기 자신과 다른 것으로 만드는 차이를 만들 어낸다. 하나의 삶이었던 유한한 개체는 죽음과 더불어 죽음 너머에서 또 다른 삶 으로 이행하며 삶 자체를 반복한다. 삶은 끊임없이 다른 삶의 양상으로 자기 자신 을 반복하며 자기 차이화 한다. 이 세 번째 반복의 차원에서 보면, 각자의 유일무 이한 삶은 무한히 다르게 반복될 하나의 어떤 삶일 뿐이다. 자기 자신을 반복하면 서 동시에 자기 자신과 달라지는 삶의 생성 운동을 나타내는 이 세 번째 반복이 야말로 바로 익명의 누군가로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보르헤스적 불멸이 함축 했던 통찰이 아니었을까? 무한히 다양한 삶의 시간들이 동시적으로 공존함을 미 로 시간이 함축한다면, 계기적 연속성에 묶인 하나의 현실적 삶은 시계 시간이 표 상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잠재적인 전체로서의 미로 시간과 현실화된 부분으 로서의 시계 시간 사이의 관계는 삶 그 자체의 반복, 즉 자기 자신과의 차이를 산 출하는 시간 그 자체의 세 번째 반복과 같다. IV. 결론: 다른삶의가능성 문학적 상상력과 철학적 직관은 경험 세계 바깥으로 사유의 확장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사유의 역할은 동어반복적인 현실 재인식이나 경험의 정당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과의 마주침을 통해서 경험 세계를 확장하 고 풍요롭게 하는데 있다. 철학적 통찰이나 문학적 상상력이나 시간에 관한 사유 역시 궁극적으로는 삶을 다르게 보게 하기 위한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의 경험적 양상 너머에서 시간의 초월론적 작동을 발견함으로써 경험 세계 바깥에 대해 사유한다는 것은 단지 비현실적인 환상 세계나 무시간적 영원의 초 월 세계로 넘어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시간성에 대한 고찰은 우리 삶의 유한성과 유위변전에 대한 납득할만한 설명을 얻는 것일 뿐만 아니라 주어진 삶 이 아닌 다른 삶의 가능성으로 우리 자신을 개방하고자하는 것이다. 보르헤스가 허구적으로 그려 보인 시간의 모습은 철학적 직관에 비친 실재 시 죽음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동일한 다미안의 죽음이지만, 그 죽음의 순간은 겁쟁 이 다미안 과 용감한 다미안 이라는 서로 다른 삶으로서 반복된 것이다.

보르헤스 작품에 나타난 시간의 철학적 의미 간의 초월론적 양상이다. 문학적 상상력과 철학적 탐구가 공동으로 도달한 초월 론적 시간에 의하면, 시간은 구체적인 삶과 무관하게 계기적 연속성에 따라 획일 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변화와 생성 원리로서 아니 삶그자 체로서 작동하는 것이다. 동시적 공존과 반복의 시간은 자기중심적인 경험적 삶 의 바깥에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개방한다. 협소한 경험 세계의 나를 버리고 익명 의 누군가로서 자신의 삶을 하나의 삶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나의 삶은 오히려 모든 삶으로 확장될 수 있다. 삶 그 자체는 매번 유일무이한 각자의 독특한 삶으 로서 자기 자신을 반복하기에, 하나의 삶은 언제나 모든 삶인 것이다. 인간중심, 자아중심, 개체중심의 관점은 유한한 존재자의 협소한 경험 세계에 국한된 삶, 생 성의 결과물로서 주어진 부분적 삶만을 살게 할 뿐이다. 삶 전체의 관점에서, 삶 그 자체의 부단한 생성 운동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라야 탈인간중심적이고 개체초 월적인 삶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하나의 삶 또는 다른 삶에 대한 윤리적 태도가 가능할 것이다. 동시대에 공존하든 예측불가능한 미래에 도래하든, 하나의 삶에 대한 긍정과 다른 삶에 대한 개방성은 무엇보다 시간을 자기중심적 경험세계의 구축요소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개체초월적인 삶 전체의 무한한 생성 원리로 볼 때 에만 열릴 수 있다. 그러니까 보르헤스의 환상 문학은 독특한 시간 조작을 통해서 텍스트 바깥을 지워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텍스트 바깥으로의 출구를 그려 보인 것이 아니었 을까? (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