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편--최종(칼라변경) 2005.2.5 :39 AM 페이지265 2400DPI 75LPI 2 횃불싸움 충남 부여군 립민박물관 2 횃불싸움 이서지 265 오르면 상편을 놀리거나 약을 올려서 싸움을 의의 이 놀이는 쟁을 기점으로 들해졌지 작하기도 다. 만 960년까지는 되어 왔다. 서 문물이 들 쥐불놀이가 횃불싸움으로 진행되는 동기는 쥐불 어오면서 통조림 깡통에 관솔을 넣어서 돌리는 불 의 소에 따라 그 해 농의 흉과 마을의 길흉을 깡통이나 솜뭉치에 기을 묻힌 횃불 등 도의 변 점치는 이 있기 때문이다. 마을마다 넓은 지역 천이 있었다. 횃불싸움은 마을의 안녕과 작을 기 에 불을 놓아 화(火勢)를 크게 하기 위해 경쟁을 원하는 의미로 진행되지만, 마을 주민들의 체감 하다가 싸움으로 진된다. 또 다른 이유로는 마을 을 고양하고 청소년들에게 용맹성을 길러주는 놀이 경계를 넘어 쥐불을 놓으면 쥐들이 그 쪽으로 도망 이다. 가서 농작물에 피해를 입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 참고문헌 東國歲時記, 조선의 민놀이(군중문화출판, 다. 그래서 편에서 불을 지르면 다른 편에서는 불 964),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文化財管理局, 969 을 끄는 경쟁을 하기도 다. 98), 全北傳統民俗 上卷(全羅北道, 989), 민 횃불싸움은 용감 소년들이 앞장서서 상편을 향해 진다. 서로 들고 있던 불붙은 홰를 휘저으, 2(민편찬위원회, 민족문화, 99), 민족 문화백과(신문화연원, 99), 민의 계5 - 놀이-(고려학교 민족문화연원, 며 공방(攻防)을 계하다가 편이 밀리면 그 동 200). 네 청년들이 합류하여 를 역키고, 그러면 필자 주인택(朱仁鐸) 상 마을의 청년들도 가담하여 본격적인 싸움이 개된다. 청년들의 횃불싸움은 쟁을 방불케 회회아(回回兒) 팔랑개돌리기 다. 서로 고함을 지르면서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며, 긴 홰를 인없이 휘두르기 때문에 화상을 입 기 예이며 옷에 불이 붙는 경우도 있다. 홰가 거의 기와밟기노래 다 타면 상를 향해 던져 버리고 새로운 홰를 가지 고 싸운다. 부는 부상을 당 람이나 횃불을 빼 의 날 밤에 부녀자들이 기와밟기놀이 앗겨 항복 람이 많거나 후퇴 편이 진다. 횃불 를 할 때 부르는 노래. 기와밟기놀이를 할 때 목청이 싸움은 석(石戰)과 병행되기도 하고, 격화되면서 좋은 선창자 여섯 람이 앞소리를 부르면 뒤따 석으로 발하기도 다. 르는 많은 람들이 뒷소리를 받아 부른다. 지역례 특이 례로 강원도 홍천군 동면 초리 내용 경북 의성에서는 날 초저녁에 읍내를 와 성수리에서는 초부터 석을 해오다가 동서로 흐르는 아거랑[衙舍川]을 경계로 남촌과 날 밤에 횃불싸움으로 부를 가리며, 북 지역에 북촌으로 갈라져 논다. 먼저 집밖에 나온 부녀자들 서는 날 밤 달집태우기가 끝난 뒤 횃불싸움 이 골목을 누며 어누야 지레야, 이지레가 누지렌 을 벌이고 상편의 달집 진지를 먼저 빼앗아 횃불 고, 나라임의 옥지렐. 하며 노래를 부르면서 마 을 드는 편이 이기는 경우도 있다. 을 부녀자들을 모은다. 어느 도 람들이 모이면
렬로 서서 허리를 굽혀 앞람의 허리를 잡고 기 무슨끝을 밟아왔노 싸리끝을 밟아왔네 와밟기놀이가 작된다. 이 때 선창자 여섯 람 어어누야 지애여 어어누야 지애여 이 기와밟기노래의 앞소리를 하면 열 옆이나 뒤 어어누야 지애여 따르는 람들은 뒷소리를 받는다. 가락에 맞추어 이상에서 살펴본 의성기와밟기노래는 안동놋다 공주(소녀)가 부축을 받으며 등 위를 걸어 나간다. 리밟기노래 가와 유하며 가락도 유하여 안동 공주가 등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면 뒤쪽의 부녀자 의 것이 파 변용된 흔적을 볼 수 있다. 편 경북 는 곧 어나 앞쪽에 가서 다 붙는다. 이렇게 하여 군위군 의흥면의 기와밟기노래는 다음과 같다. 266 *02편--최종(칼라변경) 2005.2.5 :39 AM 페이지266 2400DPI 75LPI 계 마을길을 누며 나아간 열은 마침내 아 이재애가 누지앤고 나라님의 옥지앨 거랑의 유다리[覽德橋]에 도착다. 이부리가 누부리고 나랏님의 옥부릴 이곳에서 남북이 서로 치하여 각기 기와밟기를 손이왔네 손이왔네 하며 참을 논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북촌 긔어디서 손이왔노 패들이 듣거라 듣거라, 점실[點谷] 옥산(玉山) 듣거 단장을 밟어왔노 쉰단장을 밟어왔네 라, 어루야 디어여야 에이야 데이야 꼿개야. 하고 무슨옷을 입고왔노 단옷을 입고왔네 외친다. 그러면 유다리 남쪽에서 남촌패들이 듣거 무신바지 입고왔노 무명지라 고두바지 라 듣거라 춘산(春山) 가음(佳音) 듣거라, 어루야 디 무신저고리 입고왔노 자지단 동저고리 어여야, 에이야 데이야 꼿이야. 하고 외치며 서로 무신철육 입고왔노 광철육 입고왔네 기를 북돋운다. 이 외침은 싸움이 끝날 때까지 계 무신띠를 매고왔노 광띠를 매고왔네 된다. 의성기와밟기의 노래는 94년의 조 무신버선 신고왔노 삼신버선 신고왔네 고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무슨판을 쳐려주도 오리조리 도죽판에 무신저를 놓아주도 은수저를 놓아주데 이 지래는 누지랜가 나라임의 옥지래지 이 터은 누터인가 나라임의 옥터 다음은 충북 음성군 원남면의 기와밟기노래이다. 긔어데서 손이왔노 상도서 손이왔네 이 지아가 웬지안가 밋칸을 발고왔노 신칸을 밟고왔네 상감에 놋지아 무슨옷을 입고왔노 철갑옷을 입고왔네 이 지아를 밟을 적에 무슨 말을 타고 왔나 무슨갓을 쓰고왔노 용단갓을 쓰고왔네 백말을 타고 왔지 무슨갓끈 달고왔노 새청갓끈 달고왔네 이 지아를 밟을 적에 무슨 갓을 씨 왔나 무슨망근 쓰고왔노 애올망근 쓰고왔네 통영 갓을 씨 왔지 무슨잠 달고왔노 호방잠 달고왔네 이 지아를 밟을 적에 무슨 망건을 씨 왔나 무슨창의 입고왔노 남창의를 입고왔네 을때기 망건을 쓰왔지 무슨띠를 띠고왔노 관띠를 띠고왔노 이 지아를 밟을 적에 무슨 조고리 입 왔나 자주단 동저고리 무 명 주 고루바지 틀누조고리 입고 왔지 무슨선 신고왔노 타래버선 신고왔네 이 지와를 밟을 적에 무슨 바질 입 왔나 무슨행 치고왔노 자지행 치고왔네 양누바지를 입고 왔지 무슨신을 신고왔노 목파래를 신고왔네 이 지와를 밟을 적에 무슨 제님을 치 왔나 무슨반에 밥을주도 재주반에 차려주데 율멕이제님을 치 왔지 970년에 조 바로는 다음과 같다. 강 남 서 손이왔네 이 지와를 밟을 적에 무슨 신을 신 왔나 어어누야 지애여 어어누야 지애여 백신을 신 왔지 이지애가 누지앤고 나라님의 옥지앳 이 지와가 웬 지완가 이터이 누터이고 나라님의 옥터잇 삼감에 놋지왈 손이왔네 손이왔네 슬슬이나 밟으 기어디서 손이왔노 경상도서 손이왔네 이들 기와밟기 노래는 문답창이면서 선후창이다.
*02편--최종(칼라변경) 2005.2.5 :39 AM 페이지267 2400DPI 75LPI 초성이 좋은 나이 든 부녀자 7 8명이 선창하면 놀 리들의 등 위로 이른바 공주가 좌우의 부축을 받으 이에 가담하지 않고 따르는 부녀자들이 후창다. 며 천천히 걸어 나간다. 이 원형 놋다리를 웅굴(우 물)놋다리라 하며 행이 길로 나가 렬형 놋다 리가 되어도 제 앞쪽에서 인도하는 두 람이 선 順 著, 朝鮮總督府, 94). 창하고, 공주 뒤쪽에 2명의 후창자가 따르면서 놋 필자 성병희(成炳禧) 다리노래를 답창다. 충청북도 편(문화방송, 995), 朝鮮の鄕土娛樂(村山智 청계산에 놋다릴 이터이 뉘터이로 나라임의 옥터 이기와가 뉘기와로 나라임의 옥기왈 의 놋다리밟기놀이를 할 때에 부르는 노래. 놋다 기어데서 손이왔노 경상도로 손이왔네 리밟기는 경북 안동( 안동읍)에서 무슨꼭깨 싸여왔노 어깨꼭깨 싸여왔네 날 밤 부녀자들이 모여 노는 집단 민놀이로서 경 칸을 밟아왔노 쉰칸을 밟아왔네 상북도 도무형문화재 제7호이다. 안동의 놋다리 무슨옷을 입고왔노 백마주 입고왔네 밟기는 읍성 안에서도 놀고 읍성 밖에서도 놀았는 무슨바지 입고왔노 지죽바지 입고왔네 데, 성안의 놋다리밟기는 놀이 내용이 렬로 행렬 무슨띠를 띠고왔노 광목띠를 띠고왔네 하는 줄놋다리뿐이나 성밖의 놋다리밟기는 웅굴(우 무슨선 신고왔노 타래선 신고왔네 물)놋다리와 줄놋다리가 더 있고, 그 밖에 부수된 무슨행 치고왔노 자치행 치고왔네 놀이가 있으며, 그 놀이마다 노래가 있다. 무슨신을 신고왔노 봉만회를 신고왔네 내용 놋다리밟기에는 가지의 노래가 있다. 처음 무슨갓을 쓰고왔노 통양갓을 쓰고왔네 에 둥둥데미가 작되는데 행이 각기 손을 잡고 무슨망근 쓰고왔고 외올망근 쓰고왔네 원형을 이루어 앉으면 둥둥데미노래를 합창하면서 무슨잠 달고왔노 옥각잠 달고왔네 선두의 부녀자로부터 람과 람 이의 잡은 손 무슨관자 달고왔노 옥관자를 달고왔네 을 타넘고 원을 이루며 돈다. 이 때 행은 잡은 손 무슨동곳 꽂고왔노 산호동곳 꽂고왔네 을 놓는 이 없고 노래는 짤막하나 이 마당이 끝 무슨갓끈 달고왔노 슬갓끈 달고왔네 날 때까지 계 반복다. 어화유리 둥둥데미 둥 무슨도포 입고왔노 남창의를 입고왔네 둥데미 어화유리, 저달봤나 난도봤다 저빌봤나 난 손이러 어이왔노 양모토 끼고왔네 도봤다, 저길봤나 난도봤다. 둥둥데미가 끝나면 귀가러 어이왔노 수피애암 쓰고왔네 이루어진 원은 흡 지문(指紋)꼴로 겹겹이 감겨 입이러 어이왔노 모개쪽을 물고왔네 있으며 곧 실감기노래의 합창에 맞추어 원이 풀어 물이깊어 어이왔노 인다리를 밟아왔네 지는데 가장 안쪽에 위치하는 선가 그로 손을 무슨말을 타고왔노 백말을 타고왔네 잡은 채 겹겹 원 이의 길을 따라 풀어 나온다. 무슨안장 실고왔노 순금안장 실고왔네 집실로 감아라 당실로 풀어라. 실감기노래는 무슨반에 채려주도 재죽반에 채려주데 원이 완히 풀릴 때까지 반복되며 둥둥데미노래 무슨수저 노았드노 은수저가 노았드네 다 가락이 빠르기 때문에 부녀자들은 뜀박질로 접를 채렸드노 칠첩으로 오았드네 어데다가 밥담았도 식기굽에 담아주데 원을 완히 풀어 돌아 나오면 자연히 하나의 큰 어데다가 반찬주도 접굽에 담아주데 원이 되는데 행 모두가 붙어서 안쪽을 향하여 허 어데다가 김치주도 중발굽에 담아주데 리를 부려 인(人)다리를 짓는다. 그러면 원 밖에 어데다가 숭융주도 삼칭쟁반 굽쟁반에 서있던 중년층 노년층 부녀들이 쪽에서 어느윤 뚜에엎어 갖다주데 놋다리야 놋다리야 에 놋다리로. 하며 문창(問唱)하면 다른 쪽의 부녀 이 놋다리 노래는 곡조가 유장하여 인다리 등을 들은 노래를 하지 않고 놀이만 할 뿐이며 그들 인다 밟는 공주의 걸음걸이에 알맞게 되어 있다. 안동의 돌게 된다. 어느윤에 놋다리로 안동놋다리밟기노래(安東 ) 참고문헌 韓國民俗文化論(任東權, 集文堂, 983), 민요 267
*02편--최종(칼라변경) 2005.2.5 :39 AM 페이지268 2400DPI 75LPI 268 내용 달이 떠오르기 작하면 처녀와 새댁들이 슷하다. 마당 넓은 집으로 모여 손과 손을 이어 잡고 둥글게 놋다리에 청계산에 놋다리에 원을 그리며 빙빙 돌면서 노래하고 춤을 춘다. 이 때 원은윤에 놋다리에 앞장 선 앞소리꾼이 선창을 하면 뒤따르는 부녀자 성(城)안 놋다리밟기의 가도 거의 같으며 곡조도 기워되서 손이완노 경상도서 손이안내 들이 후렴인 이라고 외친다. 처음에는 기머하로 손이완노 에게꼬께 싸와완내 느린 가락으로 길게 뽑으며 천천히 돌다가 흥이 차 놋다리에 청계산에 놋다리에 츰 고조되면 점점 빠른 가락으로 변하면서 춤도 빠 무슨말을 타고완노 백말을 타고완내 르게 변다. 무슨갓을 쓰고완노 용단가슬 쓰고완내 갖추고 있고, 빠르면서 경쾌 느낌을 준다. 메기고 귀가실어 워얘완노 명주풀심 싸고완내 받는 장절 형식에 이라는 같은 후렴로 입이실어 워얘완노 문어복 물고완내 받아 넘긴다. 다음은 토연토연 김토연아소리 이다. 놋다리에 놋다리에 토연토연 김토연아 는 3분박 4박자의 율격조를 놋다리에 청계산에 놋다리에 토연토연 김토연아 무슨옷을 입고완노 광철육 입고완내 좌수별감 딸볼라고 무슨버선 신고완노 타래선 신고완내 열두담장 떼넘다가 무슨신을 신고완노 육날미들 신고완내 서른서치 큰쾌자를 경북에서 984년에 지 도무형문화재 제7 서치닷푼 째였나 호 안동놋다리밟기는 성밖에서 놀아오던 웅굴놋다 꼬치같은 우리댁이 리이다. 이 놋다리밟기의 기, 담당자, 장소, 놀이 묻 기 나 자주하면 의 형상 및 가 내용의 상징성 내지 신앙적 의미 기뭐라고 답할꼬 등을 검토하면, 우리 농경회에서 상원은 금상단 외기낭게 말(歲末)에서 연초에 집중된 가운데서 뿌리없는 낭글심거 도 핵심이 되는 날임이 더욱 분명해진다. 여성과 서울에라 올라가니 달, 공민왕 안동 파천설의 부인 공주의 소야천 해캉달캉 열렷드라 인교도강(人橋渡江)설, 웅굴놋다리의 원무(圓 핼라깎아 겉우고 舞), 백마를 타고 인다리를 건너 찾아온 손 에 달라깎아 안우고 환 등은 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예축의례 올라가는 관열차 에 틀림이 없으며, 우리 상고부터 있어 왔던 내 니려오는 신관열차 방자 신앙(來訪者信仰)에서 기원 놀이임이 분명 줌채경 하고가소 하다 하겠다. 줌채값이 은도닷냥 열에닷냥 책, 新羅伽倻文化硏究所, 975). 서른값이 지값레 필자 성병희(成炳禧) 줌채값이 참고문헌 安東놋다리밟기硏究(金宅圭 외, 新羅伽倻文化9 별 냥른고 은도닷냥 열에닷냥 서른값이 지값레 다되었네 다되었네 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노물리에 되는 선부선부 서울선부 놀이를 할 때 부르는 노래. 장 부 남자되야 노래는 토연토연 김토연아 생금생금 생가락지 그만으간 없을소냐 달람 제바제바 문열기 산지띠기 재밟기 서른칸 담띠넘다 등으로 성된다. 서른서치 큰 쾌 자 노래 냥른고
*02편--최종(칼라변경) 2005.2.5 :39 AM 페이지269 2400DPI 75LPI 생금생금 생가락지 뒷 동 산 치치달에 호당지로 닦아내어 분재끝에 쨌다 고 먼데니 달래라 이태백이 맏딸애기 젖에니 처젤레라 하잘났다 소문듣고 저처제야 자는방에 분가면 몬볼래라 말소리도 둘레라 두분가면 몬볼래라 오라버님 오라버님 삼분을 거듭가니 그네말씀 하지마소 서른칸 문 에 동지섣달 설에 언실번실 나앉았네 지떠는 소립니다 발새치장 볼작치면 그말해 안들으면 빌 백 이 빌선에 쉬엄불을 피워놓고 빌 백 이 달깐신에 명지 목을매어 깔진깔진 줄빈자로 자는듯이 죽거들랑 신에꽝꽝 볼게신고 앞산에도 묻지말고 성 군 쪽쪼고래 뒷산에도 묻지말고 괴 맹 당 깃을달아 연밭둑에 묻어주어 명주고 살피달고 연꽃이가 피거들랑 백년동 너리달아 오는람 가는람 쪽고 들고니 눈물쌍 지어주소 은초롱도 조롱조롱 달람 는 달넘의 투리이다. 이 놀이의 형 두짝고 들고니 태는 앉아서 하는 것과 서서 하는 것 두 종류가 있 놋초롱도 조롱조롱 다. 앞람이 다음 람과 그 다음 람의 잡은 손을 홍도수건 질라매고 타넘고 나가면 그 다음 람들도 같은 방식으로 따 서리단 화단치매 라 나가며 노래를 부른다. 다음은 달람 달람 범 나 주잡아 소리이다. 달로달로 말로달아 달람 달람 다리나쿵쿵 달람 영영천 끈을달아 니가무슨 반달이고 초달이 반달이지 질도맹창 둘러입고 달람 달람 다리나 쿵쿵 달람 명지삼베 나는물에 니가무슨 큰달이고 달이 온달이지 답이나 씩자하니 달람 달람 다리나 쿵쿵 달람 질로가는 씩자하니 니가무슨 반달이고 그믐달이 반달 질만고 갈것이지 제바제바 는 제야 제야 의 투리이다. 자 람으는 어찌리 진모리 가락에 맞추어 두 줄로 서로 립하여 서는 269 서치닷푼 째뜨렸네 되 었 네 다되었네 생금생금 생가락지 는 매 장단의 앞부분이 미 립향(對立向) 이열무(二列舞)의 형으로 동작은 손잡기, 빠른 걸음의 외발겹쳐뛰기, 팔넘기 등으로 혹은 레 로 작하여 미 로 종지되는 선율형인 성된다. 매 장단이 미 에서 작하여 미 로 종지 반면, 후렴는 라 로 작하여 미 로 종지하는 하는 규칙적인 리듬형식으로 되어 있다. 다음은 제 고 선율이다. 이 노래는 선부선부 서울선부 로 바제바소리 이다. 가를 바꾸어 부르기도 다. 다음은 생금생금 생 제바제바 초란제바 가락지소리 이다. 연꽃이나 피거들랑
오는람 가는람 문열기 는 놀이에 수반하여 노는 눈물상 지어주소 놀이노래이다. 자진모리가락의 노래에 맞추어 갈방가 오거들랑 렬종의 형으로 허리잡기 발딛음 문만들기 갈방가 덮어주소 등의 동작으로 이어진다. 노래는 라 에서 작하 굵은가 오거들란 여 미 로 종지하는 선율형태로서 첫 부분 라라솔 굵은가 덮어주소 미 로 진행하는 부분은 김새와 같다. 선후창이면 그말에 안듣거든 서도 제차의 인상을 준다. 다음은 문열기소리 안불을 피워놓고 이다. 명지 저처제야 서울이라 남적선아 문 쪼끔 열어주소 묵은듯이 말소리로 문이샤 있다마는 열때 없어 못열래라. 자는듯이 죽거들랑 치마끝에 열때찼네 얼컹덜컹 열어주소 앞산에도 묻지말고 열때줌 열어주소 얼컹덜컹 열어주소 뒷산에도 묻지말고 산지띠기 는 송아지떼기의 투리이다. 선두가 연밭둑에 묻어주소 나무나 기둥 등 고된 물체를 잡고 나머지 람들 저처제야 자는방에 이 앞람의 허리를 잡고 있으면 술래가 움직이는 말소리도 둘래라 줄의 꼬리를 따면서 논다. 노래는 3분박 2박자의 곡 오라버님 오라버님 으로서 간단 노랫말을 주고받으며 후반부는 아니 그네말씀 하지마소 리와 유 리듬형태로 되어 있다. 성음은 매 소 동지섣달 설에 절 레 로 작하여 라 로 갑자기 도약함으로써 아 지뜨는 소리내라 니리 부분과 조를 이룬다. 다음은 산지띠기소리 이다. 제바제바 초란제바 저선봤나 난도봤다 능금난개 물어다가 저달봤나 난도봤다 소영땅에 집을지어 저빌봤나 난도봤다 그집짓던 삼년만에 우리 송아지 물먹으러 가더니 죽었나 살았나 울아버지 서울양반 동애따기 의 동애 는 동아의 투리로 박과에 우리엄마 진주때기 하는 식용식물이다. 산지띠기 와 유 놀이로 우리오빠 착선부 앞람의 허리를 잡고 늘어선 줄 선두가 꼬리를 따 우리형님 샛별같이 내는 놀이이다. 노래는 매 장단이 미 혹은 라 로 이내나는 옥단처녀 작하여 미 로 끝맺는 형적인 리듬형태의 곡이 절 는 절이다의 투리인 절다의 청유형 다. 후반부의 반복부분은 장단이 미 에서 작 이다. 횡형의 두 줄 또는 석 줄의 람들이 상방 하여 미 로 종지함으로써 반부의 선율과 조를 줄을 뛰어 넘어 서로의 간격을 줄임으로써 소금이 이룬다. 다음은 동애따기소리 이다. 나 기이 들이 배어드는 것을 형상화하고 있 청룡황룡 친다 물레실실 돌아간다 다. 다음은 절소리 이다. 이동애가 누동앤고 나라임의 옥동앨 270 *02편--최종(칼라변경) 2005.2.5 :39 AM 페이지270 2400DPI 75LPI 절 절 들깨 참깨나 오지나 동앗줄이 얼마던고 열두닷냥 돈두닷냥 재밟기 의 재 는 지애의 축약형이고, 지애는 기 절 절 와의 투리이다. 종형으로 서서 허리를 굽힌 뒤 유지나 장판에 절 치마를 걷어올려 쓰고 앞람의 허리를 잡고 있으 피마자 콩이가 오지지 면 맨 뒤의 람부터 차례로 등에 올라 밟아가는 어화산에 절 놀이이다. 이 때 재밟기 노래가 따르는데 라 에서
*02편--최종(칼라변경) 2005.2.5 :39 AM 페이지27 2400DPI 75LPI 에게는 줄을 단단히 꼴 것을 지하고, 가닥의 줄 태의 곡이다. 다음은 재밟기소리 이다. 을 꼬아 넣는 도지기수에게 서두를 것을 지하고 이재가 저재가 누재고 나랏님의 옥잴 있다. 그리고 뒤의 술소리는 임을 절실히 그리는 이재가 저재가 누재고 나랏님의 옥잴 여성의 심을 노래하고 있다. 이처럼 꾼들이 각 이재값이 얼맨고 은도다래 열에닷냥 자의 역할을 제로 하도록 챙기고, 또 이성문제를 돈도다래 열에닷냥 서른냥이 지값이라 화제로 삼아 지루함을 덜어주려는 의도를 가진 27 작하여 미 로 끝맺음하는 반복적인 선율리듬 형 를 부르고 노는 것은 그렇게 해야 마을에 년이 들 는소리가 마을의례와 관련을 가지고 있지만, 노래 고 그 해에 별 탈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의 본질적 성격은 노동요임을 의미다. 참고문헌 요 다산을 예축하는 (성병희, 통문 줄꼬는소리는 닻줄 벼릿줄 등 어업용 줄을 만들 화6, 통문화, 985), 영덕 (성병희, 경북예악 때도 부른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되어 있어 지, 慶尙北道, 989). 어업이 활발하게 개되어 왔음을 생각하면, 어업용 필자 성병희(成炳禧) 줄을 꼬면서 부르는 소리 또 그만큼 널리 분포되었 설은 노동요에 편적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줄꼬 의의 에 놀이를 하면서 노래 을 것임은 분명하다. 이러 연고로 바다 쪽 마을에 줄꼬는소리 서는 줄다리기의 줄을 꼴 때도 어업용 줄을 꼬면서 부르던 노래를 그로 가져다 불렀을 개연성이 크다. 의 줄다리기에 용할 줄을 꼬면서 부르는 노래. 실제로 북 부안의 어여라디여소리는 줄다리기 할 줄다리기는 에 마을의례 겸 집단놀이로 때 쓰는 줄을 꼬면서 부르는 소리지만, 그것은 배와 하는 이 많았으며 곳곳에서 행해졌다. 그러 관련된 에 쓰이는 여러 줄을 만들 때도 부르던 것 므로 줄꼬는소리 또 에 고르게 분포되었을 이다. 그러나 내륙 지방에서의 줄꼬는소리는 원래 줄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는 남과 경남 등 부 지역 을 꼴 때만 부르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용도의 것을 에서만 그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 가져다 부르는 것인지 현재로서는 파악하기 어렵다. 내용 줄꼬는소리는 후렴이 있는 노래로 선후창으로 의의 의 줄다리기에 용하는 줄은 부른다. 선창자의 메김는 통 2토막으로 성되 상적 기능을 넘어선 존재이다. 그것은 암줄과 숫줄 며, 후창자들이 받아 부르는 후렴의 길이 또 동 이 만나 이루어내는 생명 원리, 곧 조화와 생산의 상 하다. 그리고 줄꼬는소리의 내용은 줄 꼬는 작업의 징물이다. 그러므로 줄꼬는소리는 마을의 요를 실무적 필요성에 의 것과 꾼들이 즐거운 마음 빚어내는 즐거움과 설렘의 서를 바탕에 깔고 있 을 갖도록 하기 위 것이 부분을 차지다. 북 다는 점에서 반적인 노동요와 차별된다. 부안군의 노래는 다음과 같다. 참고문헌 민요 경상남도 편(문화방송, 994), 탈탈어라 자새수야 어여라 디야 민요 라북도 편(문화방송, 995). 빨리가자 도지기수 어여라 디야 필자 강등학(姜騰鶴) 앞술레는 가차지고 어여라 디야 뒷술레는 멀어진다 어여라 디야 자글자글 꼬아나 어여라 디야 줄메고가는소리 줄메는소리 남 여수 여천의 노래가는 다음과 같다. 줄메는소리 임아임아 서방님아 에헤 술 요내가슴을 만져주소 에헤 술 동지섣달 긴긴밤에 에헤 술 의 에 마을의례 겸 집단 놀이로 줄다 핏기없이 말라진이몸은 에헤 술 리기를 할 때 줄을 메고 나오면서 부르는 노래. 임생각이 환장이로 에헤 술 내용 줄메는소리 의 분포는 호남과 영남 등 남부 앞의 어여라디야소리는 자새(얼레) 돌리는 람 지방에 집중되어 있다. 에 줄다리기하
는 습은 곳곳에 있던 것이지만, 중부 지방 도 줄메기의 요령, 줄꾼들에 격려 등 노동의 에서는 줄을 메고 나갈 때 노래 없이 물만 치는 효율을 위 것, 놀이로서의 흥과 줄다리기의 리 경향이 있었다. 중부 지방에도 강원의 삼척, 충북 를 위 줄꾼들의 기 진작 등 겨루기의 분위기를 의 괴산처럼 줄메기에 노래를 함께 례는 매우 제고키기 위 것, 그리고 마을의 안녕과 요를 귀하다. 이에 반해 남부 지방에서는 줄을 메면 으 기원하는 의례적인 것 등이 함께 나타나는 이 많 레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 관습 다. 아래에 예 례를 면, 남 성에서 의 차이로 줄메는소리의 은 남부 지방이 활발 해지는 노래로 줄메기의 요령과 줄꾼들에 격 하다. 그리고 노래의 종류 또 남부 지방의 것이 려의 내용이다. 272 *02편--최종(칼라변경) 2005.2.5 :39 AM 페이지272 2400DPI 75LPI 중부 지방의 것다 교가 되지 않을 도로 다양 줄을메서 발을맞추 하다. 이리저리 살펴가며 이리자울뚱 저리자울뚱 으로 파악되고 있다. 더리덜렁소리 위야호호소 어깨를맞춰 줄을메 리 칭칭이소리 등은 그 중에 교적 널리 알려져 있는 노래이다. 더리덜렁소리는 남 동남부, 위야 잘도들헌다 잘도들헌다 호호소리는 경남과 남의 접경 지역, 칭칭이소리 우리역군들 수십명이 는 경북과 강원의 동해안 접경지역에 분포되어 있 이렇게잘할줄 몰랐건만 줄메는소리는 에 최소 5종 이상이 있는 것 다. 그런데 줄메는소리는 용도가 문화되어 있는 다음 노래는 북 부안에서 해지는 노래로 어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 경우도 있어서 자기 마 를 는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 을 또는 다른 마을에서 다른 용도로 부르는 노래를 도도 돌아를 줄을메고 돌아 가져다 쓰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더리덜렁소리 에용 에헤용 에용 에헤용 는 줄메는소리로만 부르는 노래이지만, 위야호호소 빌어 빌어를 고기잡이를 빌어 리와 칭칭이소리는 각각 경북과 경남의 부 지역 에용 에헤용 에용 에헤용 에서 논매는소리로 부르던 것이다. 이 밖에 줄메는 조기를잡자 조기를잡아 장앞바다 조기잡 소리로 부르는 노래의 원래 용도는 나무하는소리 에용 에헤용 에용 에헤용 농뒷풀이하는소리 볏단나르는소리 장례뒷풀 조기를잡자 조기를잡아 칠산앞바다 조기잡 이하는소리인 경우도 있다. 에용 에헤용 에용 에헤용 줄메는소리는 모두 후렴이 있는 노래로서 선후창 의의 줄메는소리를 통해 같은 편으로서의 통합감 으로 부른다. 설은 행수에 제이 없으나, 행 길이 을 만끽하고, 동에 겨루기를 위해 기를 진작 는 두 토막짜리가 지배적이다. 그 분위기와 서는 킨다. 그러므로 줄메는소리의 가창은 성원들을 반적으로 밝고 경쾌데, 설이 부분 두 토막 하나로 묶어내는 체적인 실천이라는 의미를 가 짜리로 성되는 것도 이 노래의 분위기가 그렇기 진다. 때문이다. 두 토막짜리 설의 노래는 토막짜리 참고문헌 남의 줄메는소리 유형(이소라, 全南文化財3 5, 처럼 호흡이 급박하지도 않으며, 또 네 토막짜리처 全羅南道, 990 992), 韓國의 農謠5(李素羅, 民俗苑, 럼 완만하지도 않다. 992), 민요 경상남도 편(문화방송, 994), 민 의 줄다리기는 마을의 안녕과 요를 기원하는 의례의 하나로 행해진다. 그리고 줄 다리기는 마을의 성원이 다수 참여하는 집단놀이 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줄 메는 은 여럿이 협 요 라북도 편(문화방송, 995). 필자 강등학(姜騰鶴) 지신밟는소리(地神 ) 력하여 무언가를 옮기는 집단적 노동이기도 하다. 의 에 지신밟기를 할 때 부르던 노 그러므로 줄메는소리는 노동요 의식요 유희요 래. 기원의식요(祈願儀式謠) 가운데 안녕기원요(安 의 성격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그 내용 寧祈願謠)에 하는 것으로, 새해를 맞이하여 년
*02편--최종(칼라변경) 2005.2.5 :39 AM 페이지273 2400DPI 75LPI 동안 마을과 각 가이 평안하기를 바라는 뜻으로 치르는 지신밟기 의례에 수반되어 불리는 노래이 강원도 들어가니 금강산이 상겼는데 밀양땅을 둘러니 종남산이 제이다 다. 이집터가 생길라꼬 종남산줄기로 흩어져서 내용 지신밟기를 하는 물패들은 통 마을의 당 학의머리 를놓고 용의머리 집터닦아 신(堂神)이 있는 곳에서 제를 지내고, 농기를 앞 집터우에 주초놓고 조초우에 기둥워 다. 곳에 따라서는 마당밟는소리 고반이라고도 273 다. 그리고 집안에 들어서서는 마루 부엌 장 독 마간 뒤주 등 곳곳을 돌아다니며 축원다. 예를 들어 986년에 경남 밀양군 무안면의 지신밟 성주님 요술로서 이집에라 주양반 아들애기 놓거들랑 기를 조 고서를 면, 마루 부엌 장독 고이고이 잘길러서 글공부 잘켜서 샘 뒤주 마간 굴뚝 등을 돌며 축원 것으로 우리서울 가거들랑 검판를 다매련하고 되어 있다. 이처럼 축원의 장소와 상이 여럿이므 로 지신밟는소리 또 종류가 여럿이다. 그리고 축 성주님 요술로서 눈크고 코큰놈도 저물알로 퇴송하고 원의 상이 같다고 해도 노래의 유형은 지역에 따 재수망 만복은 이집으로 다들오소 어허여루 지신아 라 다른 경우도 있어서 지신밟는소리의 종류는 더 (민간의식요연) 욱 다양해졌다. 고, 집터를 마련 뒤, 성주를 모셔오기까지를 술 되는 것은 성주신을 축원하는 노래, 곧 성주풀이다. 하여 성주가 이 집에 좌하게 된 내력을 말했다. 이 성주는 가의 길흉화복을 담당하는 가옥신(家屋 것이 본풀이다. 본풀이에 이어 자식이 출하게 해 神)으로서 가 내에 있다고 여겨지는 여러 신 가운 달라고 하면서 눈 크고 코 큰 여러 잡귀들을 물 아래 데 우두머리에 해당다. 지신밟는소리 중에서도 로 내고 집안에 만복이 깃들 것을 말했다. 이것이 성주풀이가 가장 길고 내용도 가장 부하다. 성주 축원이다. 축원의 내용은 다양데, 체로 자식 풀이의 내용은 지역에 따라 그리고 부르는 람에 농 주인 건강 재물 등에 것들이 많다. 본 따라 차이가 있지만, 체로 본풀이와 축원이 핵심 풀이를 통해 신을 모고, 바라는 바를 신에게 고하 을 이룬다. 는 것이 성주풀이의 기본적 틀이다. 내용으로는 액막이가 있다. 액막이는 성주풀이 경상도 안동땅에 제원이 본레라 에 들어 있기도 하고, 또 독립적으로 불리기도 하는 제원에 솔씨받아 서말서되 받았더니 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용문산 치치달라 아흔아홉골 던졌더니 달에 드는액은 이영동으로 막아내고 그솔이점점 자라나서 타박솔이 되었나 이달에 드는액은 삼삼칠로 막아내고 타박솔이 자라나서 소부동이 되었나 삼달에 드는액은 초파로 막아내고 소부동이 자라나서 부동이 되었나 오달에 드는액은 유유두로 막아내고 앞집에 안목아 뒷집에 김목아 조선여덟도 도목아 나무로 가지라 집터없어 어이하노 집터해러 가자라 본풀이 및 축원과 함께 성주풀이 성의 주요 어허여루 성주님아 성주님본이 어데멘고 경남 밀양에서 조된 성주풀이다. 재목을 하 지신밟는소리는 여럿이지만, 그 중에서도 중심이 어허여루 지신아(물소리, 이하 동) 성주님 모셔다가 이집에다 좌키고 우고 물을 치면서 마을로 들어와 각 가을 방문 유유두에 드는액은 칠칠석으로 막아내고 동지섣달에 드는액은 이라 날 어부수부로 막아내니라 아미타불 년 간의 액을 미리 풀어주는 노래이다. 액막이소 우두에 우수야 좌두에 좌수야 집터해러 가자라 리는 예처럼 매달 드는 액을 막아내는 노래도 있지만, 우리서울 치치달라 서울삼각산 경하고 몸과 집안에 드는 액과 살을 막아내는 노래도 있다.
의의 우리는 해를 작할 때마다 새로운 가능성 에 팥밥을 할 놈이 나왔다. 는 뜻이다. 남 지방 에 기를 건다. 각자의 소망을 이루며 삶이 진 에서는 이 오면 찹쌀에 팥과 광저기와 콩과 하기를 꿈꾸는 것이다. 지신밟기는 이러 가능성 차조를 넣어서 밥을 찐다. 이 밥을 흔히 찰밥 찹쌀 의 기를 고양키며, 그 실현을 미리 이루어 축 밥 밥( 밥)이라고 다. 에서 오곡 년이 하하는 행다. 그리고 지신밟는소리는 가능성에 들라고 해먹는 오곡밥인데, 남부 지방에서는 찹쌀에 기와 실현을 담하는 주술적 언어다. 그러 붉은 색이 나라고 팥을 많이 넣기 때문에 개 팥밥 므로 지신밟는소리에는 미래를 적극적으로 열어가 ( 밥)이라고 다. 가을 추수 때 팥농가 잘 안 되 려는 건강 마음이 그 바탕에 놓여 있다고 할 수 면 에 동네 람 누군가가 팥밥을 해먹지 않 있다. 은 탓이라 하고 에 274 *02편--최종(칼라변경) 2005.2.5 :39 AM 페이지274 2400DPI 75LPI 참고문헌 韓國民間儀式謠硏究(柳鍾穆, 集文堂, 990), 밥을 해 먹을 놈이 나왔 다. 고 것이다. 년 들기를 온 동네 람이 소원 민요 경상남도 편(문화방송, 994), 민요 라 하는데, 이러 소원에 불참하는 람을 난하는 북도 편(문화방송, 995), 의성의 민요(의성문화원, 2000), 담이다. 양양군의 민요자료와 분석(강등학 외, 民俗苑, 2002). 참고문헌 민의 계5 - 놀이-(고려 필자 강등학(姜騰鶴) 학교 민족문화연원, 200). 개 쇠듯 필자 최래옥(崔來沃) 의 즐거워야 할 명절이나 잘 먹고 지내야 할 날에 설은 나가서 쇠어도 은 집에서 쇠어야 다 제로 먹지도 못하고 무의미하게 지낸다는 뜻의 담. 내용 에 람이 개에게 먹이를 주면 개 의 객지에 나간 람은 설에 부득이 집에 돌아오 에게 파리가 꾈 뿐 아니라 개가 파리해진다고 믿어 지 못하더라도 에는 꼭 돌아와야 다는 뜻의 개를 굶기는 습이 있었다. 이 습은 오래되었는 담. 데 조선에도 날은 집에서 기르는 내용 설은 새해가 작하는 때이므로 출타를 개를 매어두고 음식을 주지 않았다. 람도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지내고 조상에게 예로부터 개는 놀고 먹는 편 팔자라고 생각해 예(禮)를 다하고 이웃에게 인를 다녀야 다. 부 왔던 우리는 호강에 겨운 람들을 가리켜 개팔 득이 설을 집에서 쇨 수 없었다면 에라 자, 오뉴 개팔자, 오뉴 댑싸리 밑에 늘어진 도 집에 돌아가야 다. 설에는 이 있어서 집 개팔자 라고 하였다. 그런데 날만은 하루 종 에 못 갔지만 도 여유를 가지면 그 을 개를 굶겼다. 그래서 여러 끼를 굶어 배가 무척 다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 년 고픈 처지나 명절 같은 날 제로 지내지 못하는 것 중 농 년을 소망하고 준하는 중요 기로, 을 빗어 개 쇠듯 다고 말하였다. 이 지나면 본격적으로 농짓기가 작된다. 참고문헌 俗談辭典 -改訂版-(李基文, 一潮閣, 962), 우리 그러므로 까지 집에 가서 생계(生計)요, 생존 담(원영섭, 창출판, 993). (生存)을 해결할 농짓기를 준해야 다. 필자 최래옥(崔來沃) 인데도 여히 출타를 하고 있으면 철(농철)을 모르는 람이요, 철이 없는 람이요, 농와 단 에 밥할 놈이 나왔다 절 람 이라고 해서 이에는 욕(辱)을 먹었다. 욕을 먹는 람은 농 공동체에서 따돌림 받기 쉬 의 반 농가에서 추수할 때 팥의 수확이 여의치 못할 때 불만스럽다는 뜻의 담. 내용 우리나라 남부 지방에서는 팥을 음은 웠다. 참고문헌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 -慶尙南道 篇-(文化財管,, 폿(발 )이라고도 다. 그러므로 이 담은 理局, 972). 필자 최래옥(崔來沃)
*02편--최종(칼라변경) 2005.2.5 :39 AM 페이지275 2400DPI 75LPI 설은 질어야 좋고 은 밝아야 좋다 티미터 도이다. 아이들이 연을 겨우 내내 띄우다 가 농가 작되는 이후에 연을 날리 면 개백 이라는 욕을 먹기 때문에 연을 더 이상 달이 떠야 년이 들어서 좋다는 뜻의 담. 날릴 수가 없어서 날인 열나흗날에 그 동 내용 설은 섣달 그믐 무렵이라 달이 없고 추우며 안 가지고 놀던 연을 날려 내는데, 이것을 송액 밤이 길고 캄캄하다. 설음식을 장만하는 람에게 (送厄) 이라고 다(북 남원 지방은 공이라고 는 이런 설 환경 때문에 힘이 든다. 설 후 날씨 다). 바로 그 해에 들 액운을 연에 달아서 멀리 날 가 질어(습기가 있어) 눈이 오면 날씨도 푸근해지 려 낸다는 액땜이라고 할 수 있다. 의 설은 눈이 많이 와야 좋고 은 밝고 환 275 고 주변이 밝아 하기 좋고 놀기에도 좋다. 무엇 송액할 연을 날릴 때는 연에 연 주인의 이과 주 다도 설이 질면 농에 도움이 된다. 설이 질다 소와 생년을 적고, 붓글씨로 송액만리(送厄萬 는 것은 겨울에 눈이 많이 와야 다는 뜻으로, 눈 里)나 송액영복(送厄迎福), 송영신(送舊迎新) 등 이 농작물을 덮어 이불 실을 함으로써 동해(凍 을 쓴다. 그리고 연실에 솜고치나 쑥 빈 것, 담배 害)를 예방함과 동에 토양에 충분 수분을 공 꽁초, 숯가루를 뭉쳐서 창호지를 바른 것을 연에 바 급하기 때문에 농가 잘 된다. 그래서 겨울에 눈 투 매달아 불을 붙이고, 이어 얼레실을 풀어 공중에 이 많이 오면 리농가 년 든다. 고 말하기도 띄운다. 그 이에 불이 타들어가서 연실을 태우면 다. 음력 오과 동짓달, 유과 섣달이 상관관 연이 연실에서 뚝 떨어져서 바람에 따라 멀리멀리 계가 있어서 오동지 육섣달 이라는 담이 있는 날아간다. 이 연은 다른 연다 크기 때문에 송액할 것처럼 눈이 많은 해는 다음 여에 가 많이 오 때 멀리 날아간다. 이 연처럼 멀리 훌훌 떠나가는 모 므로 좋다. 양을 빗는 담이다. 편 에는 람들이 달을 고 새해 귀 신 날 참고문헌 민, 2(민편찬위원회, 민 소원을 는데, 둥근 달이 떠야 년(豊年)이 족문화, 99), 우리담(원영섭, 창출판, 993). 든다고 믿는다. 올해 해는 달같이 람이 밝 필자 최래옥(崔來沃) 고 건강할 것이라는 예언을 할 수 있으므로 달 이 밝기를 바란다. 만약에 이 끼어서 달을 귀신날(鬼神 ) 볼 수 없으면 해 농도 캄캄하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는 달을 숭배하는 망기원(望月祈願) 심리 의 열엿새날. 귀신닭(당)날 달귀귀신날 가 들어 있다. 또 날에는 마을 주민들이 모여 귀신단지날 귀신다래는날 귀신달는날 귀신 밤늦게까지 함께 즐기는데, 달이 밝고 날씨가 좋아 달군날 귀신당기날 귀신단오날 신날[申日] 고 야 쥐불놀이를 포함 각종 놀이를 제로 할 마이날이라고도 다. 수 있었다. 유래 귀신날의 유래에 뚜렷 거는 없다. 참고문헌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 -慶尙南道 篇-(文化財管 다만 자료에 의 유추 해석이 가능할 뿐이 理局, 972), 농담집(라남도 농촌진흥원, 989). 다. 그 하나는 날이면 이밥(쌀밥)을 해 필자 최래옥(崔來沃) 서 버리고 부럼도 버리기 때문에 이 날 귀신이 많 이 나온다고 여겨 생겼다고 는 것이다. 다른 하 날 귀머거리장군 연 떠나가듯 나의 해석은 현실적인 해석으로 날 밤새도 록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술을 마고 놀았기 때문 에 다음날 머슴들이 을 할 수 없으므로, 이 날 의 멀리 가서 떨어지는 모양을 이르는 말. 을 하면 귀신에 의 병이 들어 주인댁에 손해 내용 귀머거리장군(將軍)은 연의 종류로서 윗머 를 끼친다는 핑계를 어 하루 더 놀기 위해서 생 리 양쪽 귀퉁이에 검은 부등변삼각형을 그린 연이 긴 날로 는 것이다. 이와 슷 예로 겨울철에 다. 부등변삼각형은 밑변이 5센티미터, 높이가 0센 가장 힘든 이 땔감용 나무를 해오는 인데,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