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통일부 연구용역 보고서 지방자치단체 대북교류 10년 백서 책임연구원 :최대석(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공동연구원 :이종무(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박희진(연세대 통일연구소) 연구보조원 :강승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2009년 10월 9일 이화여자대학교 통일학연구원
최대석 -클레어몬트 대학교 정치학 박사 -이화여자대학교 통일학연구원 원장 이종무 -경남대 북한대학원 정치학 석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평화나눔센터 소장 박희진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 박사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소 연구교수 강승희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관계 석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평화나눔센터 연구원
지 방 자 치 단 체 대 북 교 류 10 년 백 서
지방자치단체 대북교류 10년 백서 인 쇄 발 행 2009년 10월 9일 2009년 10월 9일 발행처 발행인 주소
지방자치단체 대북교류 10년 백서 최대석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이종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박희진 연세대 통일연구소 강승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2009년 10월 9일 이화여자대학교 통일학연구원
사진으로 본 지방자치단체 대북교류 10년
사진으로 보는 지방자치단체 대북교류 10년 제주도민운동본부 감귤 출항식(1999.12) 철원군, 벼 재배현장 방문(황해남도 재령평야) (2001.7.25) 철원군, 농기계 출항식 인천항(01.7.16)
사진으로 보는 지방자치단체 대북교류 10년 강원도, 연어치어 남북 공동방류행사(2001, 4)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북측 선수들을 응원하는 부산 시민서포터즈(2002.9) 제주도민, 북한 방문, 백두산 천지(2003.8)
사진으로 보는 지방자치단체 대북교류 10년 강원도, 안변연어부화장 준공식(2003.12.23) 인천시, 용천피해 구호물품 북송 (2004.5.12) 인천시, 통일 마라톤 행사(2004.06.15)
사진으로 보는 지방자치단체 대북교류 10년 북 강원도 연어치어 방류 (2004.8) 북 강원도 원산 농민기술 강습소 보수 전경 (2004.12) 제주도 사랑의 의약품보내기 운동 (2005.1)
사진으로 보는 지방자치단체 대북교류 10년 인천시 대표단, 평양 순안비행장 (2005.5) 제천 삼일포농장 관리사 신축 현장 (2005.6) 제16회 아시아 육상 경기 선수권 대회 (인천 문학경 기장, 2005.8)
사진으로 보는 지방자치단체 대북교류 10년 인천에서 개최된 제16회 아시아 육 상경기 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북측 선수단과 청년학생단 입국 모습 (2005.8) 금강산에서 개최된 남북 강원도민속문화축전 (2005.9) 남북 강원도 겨울철 체육경기 (2006. 3)
사진으로 보는 지방자치단체 대북교류 10년 남북 강원도 아이스하키 친선경기(2006.03) 경남 통일딸기 수확체험학습 (2006.10) 북 남새온실에서 자라고 있는 경남통일딸기 (2006.10)
사진으로 보는 지방자치단체 대북교류 10년 강원도 북한태권도 시범단 초청행사 (2007.4) 경상남도, 장교리 소학교 착공식 (2007.4) 전라남도, 평양 발효콩공 장 준공식 (2007.10)
사진으로 보는 지방자치단체 대북교류 10년 충북제천, 금강산 신계사 농 장 간판 (07.9.13) 경기도, 당곡리 도정공정 시연(2007, 10) 경기도, 당곡리 현대화를 위 한 진료소 및 탁아소 신축 (2007)
사진으로 보는 지방자치단체 대북교류 10년 인천시 대표단, 평양시 체육단 축구장 기증식 참가(2007.11) 진안군, 개성에서 인삼 시범포 설치(2008.03) 경북, 사과원 조성지 생육상황 모습(2009.5.20) 경북, 사과원 조성 MOU체결, 개성 송도리협동농장 (2008.6.18)
사진으로 보는 지방자치단체 대북교류 10년 경기도, 개성시 개풍양묘 장 준공식(2008.05) 경상남도, 평양 장교리 소학교 건립 전 후 의 모습 (2007 2008) 장교리 소학교 완공 후 공부하는 모습 (경남, 2008)
목 차 사진으로 본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 10년 Ⅰ.서론 23 Ⅱ.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추진배경 및 과정 31 1.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추진배경 33 가.내적동기 34 나.외적동기 37 2.남북교류협력사업의 개념과 지방자치단체의 특성 39 가.남북교류협력사업의 개념 39 나.남북교류협력사업에서 지방자치단체의 특성 46 3.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변천과정 49 가.남북교류협력사업에 대한 모색기(1999년~2001년) 51 나.대북 인도적 지원사업의 추진기(2002년~2005년) 62 다.개발지원 사업으로의 전환기(2006년~현재) 72 Ⅲ.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자치단체별 추진실적 79 1.서울특별시 81 2.부산광역시 82 3.대구광역시 85 4.인천광역시 86 5.광주광역시 89 6.울산광역시 90 7.경기도 91 8.강원도 95 9.충청북도 100 10.전라북도 101 11.전라남도 105
12.경상북도 107 13.경상남도 108 14.제주도 111 Ⅳ.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분야별 추진실적 113 1.사회문화교류 분야 117 가.추진현황 118 나.사업특징 127 나.추진계획과 방향 130 2.대북지원 분야 135 가.농업 및 축산분야 137 나.보건의료 분야 170 다.긴급구호 및 기타 지원 분야 178 Ⅴ.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평가 및 향후 발전 과제 185 1.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평가 187 가.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성과 188 나.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한계 196 2.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향후 발전 과제 201 가.협동농장에 대한 지원사업 모델의 개발과 추진 201 나.광역 지자체와 기초 지자체 사이의 협력체계 구축 203 다.남북교류협력사업 전담부서의 확대 강화 205 라.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중앙정부의 남북협력기금 지원 206 마.북한의 지방 경공업 복구 지원 207 부록 1.인도적 대북지원 사업 및 협력사업 처리에 관한 규정 211 2.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사업 추진 지원지침 218 3.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 조례 221 4.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사업 연표 311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사업 DB 319
표 그림 목차 <표 Ⅱ-1> 접경지역을 구성하는 행정구역 35 <표 Ⅱ-2> 대북지원의 유형 42 <표 Ⅱ-3> 지자체 국제교류의 유형 45 <표 Ⅱ-4> 정부의 대북 식량 및 비료 지원(1998년 이후) 48 <표 Ⅱ-5> 지방자치단체 교류ㆍ협력 심사위원회 승인사업 및 결과 57 <표 Ⅱ-6>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1999~2005년) 64 <표 Ⅱ-7>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조례 현황 68 <표 Ⅱ-8> 광역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기금 조성 현황 70 <표 Ⅲ-1> 강원도 연어자원 보호증식사업 97 <표 Ⅲ-2> 제천시 북고성군 농업지원 사업 실적 101 <표 Ⅲ-3> 전북지역 기초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 현황 104 <표 Ⅳ-1> 남측 지자체의 북측 희망교류대상기관 검토 현황 119 <표 Ⅳ-2> 남측 지자체 초청 사회문화교류 사업의 무산사례 121 <표 Ⅳ-3> 경남 농업분야 대북지원사업의 경제적 가치평가 149 <표 Ⅳ-3> 지자체별 사업추진 협력단체 158 <표 Ⅳ-4>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대북 농업지원 사업 165 <표 Ⅳ-5> 보건의료분야의 지원내역별 지원액 분포 173 <그림 Ⅱ-1> 원조의 목적과 단계에 따른 분류 44 <그림 Ⅱ-2> 남북경협의 유형 46 <그림 Ⅲ-1> 경기도 남북교류협력추진팀 편제 92 <그림 Ⅳ-1> 경기-평양미 통일농사 지역 157 <사례 Ⅲ-1> 남북강원도 민속축전 99 <사례 Ⅲ-2> 제주도의 비타민 C 외교 112 <사례 Ⅳ-1> 제주도:초기 대북지원 사업 추진과정 138 <사례 Ⅳ-2> 경기도: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평양식품가공공장 142 <사례 Ⅳ-3> 전남남북교류협의회:지방간 교류 합의서 채택 과정 144 <사례 Ⅳ-4> 경기도:평양 당곡리 농촌현대화사업 148 <사례 Ⅳ-5> 전라남도:지역이 나서서 민관교류의 한계를 넘는다 161 <사례 Ⅳ-6> 경기도: 경기-평양미 남북의 장벽을 허물다 162 <사진 Ⅲ-1> 2002부산아시안게임 부산시민 서포터즈와 북측 응원단 83 <사진 Ⅲ-2> 당곡리 협동농장에서의 농촌개발 지원 사업 94 <사진 Ⅲ-3> 장교리 협동농장에서의 지원 사업 110
Ⅰ.서 론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한 지 올해로 10주년이 되었다.그러나 지자체가 남북교류협력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 한 기간은 이제 5~6년 정도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1999년 1월에 제 주도가 북한에 감귤을 지원하면서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사업이 그 첫걸 음을 내딛었지만,2000년 6.15정상회담이 있기 전까지는 거의 활성화되 지 못하였다.지자체들은 그 이후 중앙정부 차원의 남북교류와 협력의 물 꼬가 터지고 나서야 비로소 남북교류협력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었 다.남북관계의 주요 행위자라고 할 수 있는 중앙정부,지자체,기업,민간 단체 중에서 지자체가 가장 늦게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시작했지만,이제는 다른 행위자들과 함께 지자체는 남북교류협력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 고 있다. 남북교류협력사업을 대북지원,남북 사회문화교류,남북경협으로 구분 할 때 지자체는 주로 대북지원 분야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물론 지자체들이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했던 초기에는 대북지원 보다도 사회 문화교류 사업을 우선하였다.또한 거의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처음에는 북한 지자체와의 자매결연에 큰 관심을 보였을 뿐이다.하지만 남북관계 의 현실은 남북 지자체 간의 자매결연이나 지자체의 남북 사회문화교류 사업이 쉽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줬다.이에 따라 지자체들은 북한이 절실 히 요구하고 현실적으로도 추진이 가능한 대북지원을 중심으로 북한과 본 격적으로 교류협력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난 10년간 지자체들은 직접적으로 대북지원을 할 수 있는 법적 지 위를 갖지 못하였다.현행 법제도에서 대북지원은 법인 및 단체만이 행할 수 있고 지자체는 독자적으로 대북지원을 추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에 따라 지자체들은 독자적으로 대북지원을 할 수 있는 민간단체와 협력관계 를 맺고 대북지원 사업을 추진하였다.따라서 그동안 민간이 거둔 대북지 원의 성과 중 상당 부분은 지자체와 함께 나눠야 할 것들이다.그리고 더 나아가 지자체는 대북지원 분야에서 새로운 변화를 추동하는 힘이 되었 다. 지자체가 대북지원에 참여하면서 나타난 새로운 변화와 그 속에서 지 자체가 한 역할은 다음과 같다. - 25 -
첫째,대북지원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데 지자체가 중요한 역할 을 하였다.그동안 대북지원이 장기화되면서 물고기를 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라 는 말들이 많이 회자되었다.하지만 민간단체들은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실제로 지원 현장에서 구현하기가 쉽지 않았다.하지만 지자체는 민간단체보다도 자원 동원 능 력이 뛰어나고 각 분야의 전문기관들을 산하에 두고 있어서 개발지원 사 업을 추진하는 데 강점을 갖고 있었다.이에 따라 지자체들이 본격적으로 대북지원 사업에 나서면서,대북지원이 긴급구호 차원의 지원 사업에서 벗어나 개발지원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북한 협동농장에서 시범적인 농촌개발 사업을 추진했던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 고 할 수 있다. 둘째,대북지원에서 남과 북이 모두 이익이 되는 호혜적인 사업 영역 을 발굴 추진하는 데 지자체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대북지원은 모두 일방적으로 북에만 이익이 되는 것이라는 오해가 존재한다.또는 대북지 원으로 북이 얻는 이익은 가시적인 것이고 즉각적인 것에 비해 남의 이익 은 평화 증진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 다.하지만 지자체가 추진했던 산림 공동 방제 및 말라리아 공동 방역 사 업 등은 지원 받는 쪽이나 지원하는 쪽이나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호혜적 인 사업이었다.반대로 남쪽에서 지원하지 않으면 북이나 남이나 그 피해 를 똑같이 받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이와 같이 지자체들은 지역적 특성 과 요구를 반영한 호혜적인 지원 사업을 발굴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남북화해협력과 통일문제에 대한 지방의 참여 활성화와 역량을 구축하는 데 지자체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그동안 남북관계 문제는 중 앙정부의 과제이고 서울에 근거를 둔 민간단체의 일로 여겨졌다.그런데 광역 지자체가 대북지원에 나서면서 지방의 여러 기관과 단체들이 이 문 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도의회와 지방 언론들도 남북관계 문제에 훨씬 더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기초 지 자체들이 남북교류협력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특히 일부 광역 지자체들은 산하의 기초 지자체들과 협력체제를 구축하여 대북지원 에 나서고 있는데,그러면서 시ㆍ군 단위에서도 남북교류협력사업에 대한 - 26 -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이것은 앞으로 본격적인 남북교류협력의 시 대가 개막되면,기초 지자체를 중심으로 한 풀뿌리 차원의 교류협력이 추 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고 있는 바가 매우 크다. 이와 같이 지자체가 현 단계 남북교류협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반해 이에 대한 평가는 매우 인색한 것으로 보인다.그것은 지자 체가 독자적으로 대북지원을 할 수 없는 것이 한 원인이기도 했다.현행 법제도 상 지자체는 민간단체를 통해 대북지원 사업을 추진해야 하기 때 문에 지자체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다른 원인으로는 지자체의 초기 남북교류협력사업에 대한 선입견을 들 수 있 다.초기에 지자체가 남북교류협력사업에 나설 때 준비나 역량은 부족한 데 한 건 중심의 성과주의에 매몰되어서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 가 있었다.이러한 잘못들은 그 이후 대부분 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 직도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에 대한 평가에서 단골 메뉴처럼 거론되고 있다.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변화 발전과정을 보지 못하는 이러한 잘못된 평가들이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암묵적 으로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사업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다.현 재 주안점을 두고 있는 대북지원에서 사회문화교류로,그리고 남북 지자 체 간 자매결연을 통한 교류협력으로 진전될 것이다.이러한 점에서 지자 체가 남북교류협력사업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역할보다도 앞으로 하게 될 역할들이 훨씬 더 기대된다고 하겠다.특히 중장기적인 남북관계의 발전 과 남북통합의 과정을 생각해 볼 때 남북교류협력사업에서 지자체가 갖는 위상과 역할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지난 10년간 진행된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을 기록 정리하는 것이 요구된다. 지자체 대북교류 10년 백서 의 발간을 통해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에 대한 일면적이고 편향된 인식도 바로 잡을 수 있고,앞으로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이 발전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한 창조적인 모색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백서는 우선 제Ⅱ장에서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추진배경 및 과정을 정리하였다.우선 지자체가 남북교류협력사업에 나서게 된 동기에 - 27 -
대한 분석과 남북교류협력사업과 관련한 주요 개념들을 정리하였고,남북 교류협력사업에서 지자체가 갖는 특성들을 살펴보았다.그리고 지자체 남 북교류협력사업의 시기를 1 남북교류협력사업에 대한 모색기(1999~ 2001),2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의 추진기(2002년~2005년),3 개발지원 사업으로의 전환기(2006년~현재)로 구분해서,각 시기별로 주요 특징들과 그 다음 시기로 변화하는 과정들을 정리하였다. 제Ⅲ장에서는 16개 광역 지자체 중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추진 실적을 갖고 있는 14개 광역 지자체들에 대해서,각 광역 지자체별로 남북교류협 력사업의 추진 실적을 정리하였다.여기에서는 특히 각 지자체가 남북교 류협력사업에 나서게 된 배경과 추진과정을 중심에 두고 각 지자체가 추 진했던 사업들을 정리하였다.따라서 각 지자체가 추진했던 모든 사업을 포괄하고 있지는 않다.그리고 기초 지자체의 추진 실적은 별도로 정리하 지 않고 광역 지자체 추진 실적 안에 포함해서 정리하였다. Ⅳ장에서는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추진실적을 분야별로 정리하 였다.우선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분야는 크게 사회문화교류 분야와 대북지원 분야로 나눴고,대북지원 분야는 다시 농업 및 축산 분야,보건 의료 분야,긴급구호 및 기타 지원 사업으로 구분하였다.그리고 각 분야 별로는 추진현황과 사업특징에 대해 서술하였고 앞으로의 추진계획과 방 향 등에 대해 정리하였다. 제Ⅴ장에서는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평가 및 향후 발전 과제에 대해 정리하였다.이 장은 본 백서에서 결론과 같은 의미를 갖는 것으로 향후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이 발전하기 위한 과제를 도출하는데 중점 을 두어 정리하였다. 마지막으로 부록에서는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과 관련해서 중앙정 부가 제정한 규정과 각 지자체들이 제정한 남북교류협력조례를 실었다. 또한 이 백서 발간을 위한 기초 자료인 각 지자체별 남북교류협력사업 보 고서는,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 DB라는 제목으로 한데 모아서 가장 뒤 에 실었다.따라서 각 지자체별 추진실적을 상세하게 확인하고 싶은 분들 은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 DB를 참조하기 바란다.이 DB 작성을 위해 수고해주신 각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 담당자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 28 -
드린다. 지난 10년간 진행된 지자체들의 대북지원 사업을 정리한 이 백서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대북지원을 통한 남북 간 신뢰형성이라는 큰 물길 을 개척해온 많은 지자체들의 노력들이 담겨있다.본 백서가 지자체의 대 북지원에 대한 국내외의 인식과 관심을 제고하고,향후 대북지원 논의에 건설적인 기여를 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 29 -
Ⅱ.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추진배경 및 과정
1.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추진 배경 지자체가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게 된 최초의 동기는 지자체별로 매우 다양하다.강원도와 제주도 같이 매우 일찍부터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한 지자체가 있는 반면에 충청남도와 같이 아직까지도 남북교류협력 사업의 추진 실적이 없는 지자체가 있기도 하다.이와 같이 지자체들의 남북교류협력사업은 비슷한 시기에 동시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시간적 편 차를 두고 진행되었다.그것은 각각의 지자체들이 자신들만의 고유한 동 기를 가지고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일반적으로 개인이나 조직이 어떠한 행동을 하게끔 유발하는 동기는 내부적 요인으로서의 욕구와 외부적 요인으로서의 유인으로 구분된다.이 와 마찬가지로 각 지자체가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게 된 동기도 지자 체 각자가 갖고 있는 내부적 욕구와 외부적 유인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 이다. 우선 지자체들이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게 된 내부적 욕구는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첫째는 접경지역의 발전에 대한 욕구,둘 째는 지자체 주최 행사의 성공적 추진,셋째,호혜적 이익의 추구라고 할 수 있다. 1) 이것들은 모두 지자체가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게 된 내적 동기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대부분의 지자체가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데에서 드러나듯이 지자체가 남북교류협력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한 외부적 유인들이 존재한다.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구호활동의 필요성이라든 가,2000년 6.15선언 이후 지자체 차원에서 남북화해협력 및 통일에 기 여하고자 하는 것들이 바로 외부적 유인이라고 할 것이다.이것은 지자체 가 남북교류협력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한 외적 동기라고 말할 수 있 다. 1)이와 같은 유형화는 지자체가 처음에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게 된 동기에만 한정 된 것이다.지자체들은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게 되면서 최초의 동기와 함께 북한 주민의 구호라든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민족 공통의 과제를 자신들의 과제로 받아들 이기 때문이다. - 33 -
지자체들은 이러한 내적,외적 동기에 의해서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 진하게 되었다.물론 중심적인 동기야 있겠지만 보통은 여러 가지 동기들 을 중첩적으로 가지면서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지자체가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게 된 배경을 구 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이를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로 구분하고 각각의 동기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하고자 한다. 가.내적 동기 (1)접경지역의 발전 욕구 강원도와 경기도는 북한과 직접적으로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대표적 인 접경도( 接 境 道 )라고 할 수 있다.물론 인천시도 접경지역지원법 2) 에 따 른 접경지역을 포함하고 있지만 접경시라는 인식이 별로 존재하지 않는 다.그것은 인천시의 접경지역인 강화군과 옹진군이 도서지역인 것에 기 인한 것으로 보인다. 2000년 1월에 제정 공포된 접경지역지원법 에 따른 접경지역은 강원, 경기,인천 등 3개 시ㆍ도 15개 시ㆍ군이 속해 있다. 3) 이 법에 의해 지정 된 3개 시ㆍ도 접경지역의 행정구역별 지정 현황은 아래 <표Ⅱ-1>과 같 다. 2)접경지역지원법은 남북의 분단으로 낙후된 접경지역의 경제 발전과 주민복지 향상을 지원하고,자연환경을 체계적으로 보전하고 관리하며,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 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2001년 1월에 제정되었다. 3)접경지역지원법에서 규정한 접경지역은 일반적 의미의 접경지역과는 다른 의미로 군사 시설보호법 제2조 제3호의 규정에 의한 민간인통제선(이른바 민통선)이남의 시ㆍ군의 관할구역에 속하는 지역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지역을 말한다.황금회 외, 접경지 역지원법의 경기도 효과분석과 개선방안 연구 (수원:경기개발연구원,2007),p.9.접 경지역지원법과 접경지역지원법 시행령에서 정하고 있는 접경지역의 면적은 8,097.17km2 로 남한 면적의 약 8%를 점하고 있다.이는 제주도의 약 4.4배에 해당하고 전라북도와 비슷한 면적이다.김범수, 접경지역 지원사업의 실적 및 효율적 추진방안 (춘천: 강원발전연구원,2007),p.5. - 34 -
<표 Ⅱ-1> 접경지역을 구성하는 행정구역 구분 시ㆍ군별 면적(km2) 강원도 춘천시,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고성군 5.186.99 경기도 고양시,김포시,파주시,연천군,양주시,동두천시,포천시 2,412.73 인천시 강화군,옹진군 497.45 <출처> 김범수, 접경지역 지원사업의 실적 및 효율적 추진방안 (춘천: 강원발전연구원,2007),p.6. 이들 접경지역은 휴전 이후 50여 년 동안 군사시설보호법 등으로 토 지 이용이 규제되고 지역개발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 문에 지역발전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특히 이들 접경지역 대부분 이 포함되어 있는 강원도와 경기도의 경우에는 접경지역 주민들이 갖는 소외감과 지역 발전에 대한 욕구를 무시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또한 도의 입장에서도 균형적인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접경지역에 대한 각종 규제와 제한을 완화시키고 이들 지역을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이 강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냉전 시기에는 군사안보 우선의 논리와 첨예한 군사적 긴장으 로 인해,접경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의 발전 욕구를 외부로 나타내기가 쉽 지 않았다.그런데 1990년 이후 탈냉전이 이뤄지고 1998년에 출범한 김대 중 정부가 대북포용정책을 추진하게 되면서 이들 접경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특히 2000년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강원도와 경 기도는 그동안 군사안보의 요충지였던 접경지역을 남북화해협력의 교두보 로 변화 발전시키는 데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그리고 강원도는 금강 산관광 사업,경기도는 개성공단 사업이라는 대표적인 남북협력 사업이 추진되는 지역이기 때문에,남북교류협력사업은 이들 접경도의 중장기 발 전구상의 핵심적 의제가 될 수밖에 없다.이에 따라 강원도와 경기도 및 그에 속한 기초지방자치단체들은 남북교류협력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 35 -
(2)지자체 주최 행사의 성공적 추진 2000년대 들어서서 각 지자체들은 지역 발전을 위해 경쟁적으로 국제 행사를 유치하기 시작하였다.지자체가 국제행사를 유치하게 되면 해당 지자체의 국내외 인지도가 높아지는 한편,행사시설 건립 및 도시미화 사 업 등으로 도시기반시설이 확충되고,이를 기반으로 관광산업 육성과 지 역경제 발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그리고 중요한 국제행사 경우에는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도 받게 되고,민선 지자체장들은 국제행사 개최를 통해 자신의 업적을 쌓게 되기 때문에 지자체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국제 행사 유치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국제행사에 북한을 참여시키게 되면 단순한 국제행사 의 개최를 넘어서 한반도 평화와 화해협력에 기여한다는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특히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화해협력이 활성화되 면서 지자체 주최 행사에 북한을 참여시키는 것은 국제행사의 이미지를 제고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지자체들은 판단하였다.또한 국내 행사 라 할지라도 전국체전과 같이 국가적 차원에서 치러지는 전국 규모 행사 에는 백두산이나 금강산에서의 성화 채화를 추진함으로써 통일을 기원한 다는 의미와 남북화해협력의 가치를 부여하고자 하였다.그리고 더 나아 가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주최하는 지역 차원의 행사에도 북한과의 교류를 추진하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지자체의 이러한 시도들에 대해 일회성 행사 또는 전시성 행사의 추진이라면서 폄하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매우 잘못된 지적이라고 할 것이다.오히려 지자체들이 자신들의 행사에 평화와 남북화해협력의 가치를 부여하고,이를 통해 행사 이미지를 제고하고자 하는 것은 분단 현실에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호혜적 이익의 추구 남북한 사이에 발전 단계가 다르고 경제 규모의 격차도 엄청나게 차 이나기 때문에 남북한의 공동이익을 도모할 것이 무엇이 있겠냐고 생각할 - 36 -
수 있다.하지만 그동안의 남북관계를 보면 일방적인 지원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서 대북 쌀 차관 제공의 경우에도 대북지원의 측면과 함께 국내에서의 쌀 수급 조절에 기여하는 측면이 존재하는 것이다.이러한 것 들을 잘 보여주는 것이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예 를 들어서 제주도의 경우 과잉 생산된 감귤을 북한에 지원함으로써 국내 의 수급 조절과 가격 안정에 도움을 받고 있다.감귤을 대북지원 하지 않 고 그대로 두었을 경우에는 과잉생산으로 인한 가격폭락으로 제주도 감귤 농민들이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또한 경기도에서 추진하는 남북한 말라리아 공동방역 사업의 경우도 남한 내에서 말라리아 예방을 위해 필수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업인 것이다.강원도가 추진한 금강-설악 권 솔잎혹파리 공동방제 사업의 경우에도,이를 그대로 둘 경우 설악권으 로 옮겨와 피해를 끼칠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금강-설악 연계 관광개발에도 타격을 주게 된다. 이와 같이 지자체가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게 된 동기 중에는 남 북한이 호혜적으로 상호이익이 되기 때문인 것들이 있다. 나.외적 동기 (1)인도적 구호 활동의 필요성 1990년대 중반에 발생한 북한의 대량 아사 사태는 20세기의 마지막 대기근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이 시기 북한 기근의 특징은 첫째,전 인구 층에 골고루 확산된 넓은 기근,이른바 사회주의적 기근 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사회통제가 비교적 철저한 국가에서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질서 있 게 한계 영양 상태로 접근해 들어가는 상황을 말한다.둘째,외부 세계와 차단된 조용한 기근 이라는 점이다.북한의 식량난이 매우 심각한 것임에 도 기근의 실상이나 피해규모,구호물품의 배분과정 등은 외부에 제대로 4)20세기의 대기근으로는 소련의 우크라이나 대기근(1932~33),인도 벵골지방의 대기근 (1943),중국의 대기근(1959~61),아프리카 대기근(1984~85)등이 있다. - 37 -
알려지지 않았다. 5) 적게는 수십만 명에서 많게는 수백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북한 의 대기근은 남한 사회에서 범국민적인 대북 지원운동을 불러 일으켰다. 1990년대 중후반에 시민사회 및 종교계가 추진한 북한동포돕기운동에 수 백만 명의 국민들이 동참한 것이다.하지만 잘 알다시피 김영삼 정부 시 기에는 남북관계가 극도로 대립하였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대북지원도 매 우 미미하였고,지자체 중에서 대북지원에 나서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1998년에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하 였다.사실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자 하는 것이 인 지상정의 일이다.오히려 그 이전까지 지자체들이 대북 인도적 지원에 나 서지 않은 것이 이상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그런데 김대중 정부가 남북 간에 보다 많은 접촉, 보다 많은 대화, 보다 많은 협력 을 추구하면서 남북관계에서 지자체가 운신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된 것이다.이에 따라 지자체들이 대북 인도적 지원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북한의 식량난은 장차 통일해서 함께 살아가야 할 북한의 한 세대가 기아와 질병으로 발육부진,신체장애,가족공동체의 해체 등 회복하기 어 려운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따라서 지자체들은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 도적 구호 활동의 필요성을 항상 인식하고 있다.따라서 북한에서 자연재 해가 발생을 하게 되면 지자체가 긴급구호 차원에서 인도적 지원을 하게 되고,더 나아가 일회적인 지원을 넘어서서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남북교 류협력사업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2)남북화해협력 및 통일에 기여 2000년 6.15공동선언으로 남북관계가 대립과 대결에서 화해와 협력 으로 전환되기 시작하였다.오랜 인도주의 문제였던 이산가족 문제도 진 전을 이뤄서 거의 정례적으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개최되었고,정부 차 원의 대북 식량 및 비료 지원도 연례적으로 추진되었다.또한 2000년 시 5)정병호,< 對 北 朝 鮮 支 援 ための 韓 日 民 間 協 力 の 方 向 >, 北 朝 鮮 人 道 支 援 韓 日 NGOフオ-ラム 資 料 集,1999,46~47 面. - 38 -
드니올림픽 남북 공동 입장을 필두로 체육,방송,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 서 사회문화 교류가 추진되었고,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사업 등 대규 모의 남북경제협력 사업도 본격화되었다.이와 같이 중앙정부 및 기업,민 간 차원에서 다양한 교류와 협력이 이뤄지면서 지자체들도 남북화해협력 및 통일에 기여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동서독 통일과정에서 지자체가 수행한 역할에 대한 적극적인 평가도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사업에 대해 긍정적 인식을 갖도록 하였 다. 6) 통일 이후 남북 통합 및 북한 지역의 재건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지 자체 간의 자매결연을 통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특히 독일과 달리 급격한 흡수통일이 아니라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통일을 해야 한다고 할 때,지자체 간의 교류와 협력은 통일의 지역적 토대를 준비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7) 2.남북교류협력사업의 개념과 지방자치단체의 특성 가.남북교류협력사업의 개념 남북 간에 이뤄지는 제반 활동을 지칭하는 용어로 남북교류 또는 남 북협력,그리고 이를 합친 남북교류협력 이라는 단어들이 사용된다.우리 가 보통 남북교류협력사업이라고 할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어떠한 용어들이 정확하게 사용되기 위해서는 학술적으로 정의되거나 또 는 법률에 의해서 정의되어야 한다. 6)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독일 통일과정에서 도시 간 자매결연 사업의 기여는 두 가지로 이야기된다.첫째는 동서독 주민들의 이질성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교류들을 담당하 였고,둘째는 서독 지자체들이 구동독의 행정체계 재건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김학성ㆍ최진욱, 남북한 지방자치단체간 교류ㆍ협력:실태분석과 활성화 방안 (서 울:통일연구원,2001),p.66. 7)동독 붕괴 후 통일이 이뤄지기까지 양독간 약 854개의 도시간 자매결연이 이뤄졌고, 협력사업은 1993건에 달하였다.이는 통일 이후 사회통합에 지방자치단체간의 교류협 력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홍양호, 지방자치단체의 대북 교류협력 현황과 추진방향, KDI북한경제리뷰,2007년 8월호,p.13. - 39 -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최초의 법률인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하 남북교류협력법) 제2조에서는 출입장소, 교역, 반출ㆍ반입, 협력사업 등 네 가지에 대해 용어 정의를 하고 있다.그 중 협력사업 에 대해서는 남한과 북한의 주민(법인ㆍ단체를 포함한다)이 공동으로 행하는 문화ㆍ관 광ㆍ보건의료ㆍ체육ㆍ학술ㆍ경제 등에 관한 제반활동을 말한다고 규정하 고 있다.이 정의에 따르면 협력사업 은 남북교류사업도 포함하는 개념으 로 교류와 협력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있다.하지만 동법의 다른 조항들 에서는 남북교류ㆍ협력 이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는데,이것은 명 백하게 교류와 협력을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립국어원이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교류 를 1 근원이 다른 물줄기가 서로 섞이어 흐름,또는 그런 줄기,2 문화나 사상 따위가 서로 통함 으로 설명하고, 협력 은 힘을 합하여 서로 도움 이라고 정의하고 있 다.이러한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남북교류 는 각 분야에서 남북한이 갖 고 있는 문화나 사상 등을 상호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고, 남북협력 은 남북한이 각자가 갖고 있는 것을 교류하는 것을 뛰 어 넘어 힘을 합쳐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가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이를 차원과 연결시키면,외부와 전혀 어떠한 작용도 없이 고립 되어 있으면 일차원적 관계라고 할 수 있고,교류는 쌍방 간에 평면적으 로 교환이 이뤄지는 것으로 이차원적 관계이고,협력은 쌍방의 힘이 입체 적으로 합쳐져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삼차원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즉,협력은 교류보다 더 높은 차원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류 와 협력 을 현실에서 명확히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그 경계가 분명하기 위해서는 이를 가르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한데,무엇을 기준으로 제시할 것인지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이런 사업은 교류사업이고 저런 사업은 협력사업이라고 나눌 수가 있는 것이다.설혹 어떤 특정한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구분하는 엄격한 기준 을 세울 수 있다 하더라도,이 기준이 다른 분야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가 없다.정치,군사,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이 있 을 수 있는데,각 분야의 특성과 상관없이 전체 분야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공통적인 기준을 제시하기란 어려운 것이다.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 40 -
남북관계에서 교류 와 협력 을 구분하기 보다는 이를 합친 교류협력 이라 는 복합명사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남북교류협력사업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질 수 있다.1991년에 남북 간에 체결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ㆍ협력에 관한 합의서(이 하 남북기본합의서) 에는 제15조에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통일적이며 균 형적인 발전과 민족전체의 복리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자원의 공동개발, 민족내부교류로서의 물자교류,합작투자 등 경제교류와 협력을 실시한다 고 되어 있다.또한 동합의서 제16조에는 남과 북은 과학기술,교육,문 학 예술,보건,체육,환경과 신문,라디오,텔레비전 및 출판물을 비롯한 출판 보도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협력을 실시한다 라고 되어 있다.이와 같이 세부적으로 분야를 구분하면 그 목록은 끝이 없을 것이다. 이에 여기에서는 통일부의 업무 분장을 기준으로 남북교류협력사업의 분야를 구분하고자 한다.남북 간에 실제적으로 이뤄지는 교류협력 사업 에 입각해서 정부 부서가 마련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통일부에서 남북 교류협력사업을 담당하는 교류협력국은 교류협력기획과,남북경협과,사회 문화교류과,인도지원과 등 총 4개 과로 구성되어 있다.총괄기획부서인 교류협력기획과를 별개로 하면 통일부는 남북교류협력사업을 남북경협, 사회문화교류,인도지원으로 구분하고 있다.이에 기초해서 각 사업들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자세히 보는데,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에서 차지하 는 비중이 높은 대북지원 8),사회문화교류,남북경협의 순으로 살펴본다. 대북지원은 1995년부터 진행된 것으로,그것은 다시 긴급구호,복구 (개발구호),개발지원으로 나눠진다. 9) 이들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 면,우선 대북지원의 목적에서 긴급구호와 복구(개발구호),개발지원 모두 8)통일부에서는 인도지원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지만,이는 최근 활발하게 논의 가 이뤄지고 있는 대북 개발지원을 포괄하지 못하는 개념이라서,이 글에서는 대북지 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9)통일부의 인도적차원의 대북지원사업 처리에 관한 규정 에는 대북지원 사업을 인도적 목적으로 시행하는 1 이재민의 구호와 피해복구를 지원하는 사업,2 식량난 해소를 위한 농업개발지원에 관한 사업,3 보건위생 상태의 개선 및 영양결핍 아동과 노약자 등을 지원하는 사업,4 자연재해 예방차원에서 산림복구 및 환경보전 노력을 지원하 는 사업,5 기타 통일부장관이 인정하는 사업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 41 -
인도주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따라서 이러한 지원활동은 박애 (Humanity),중립성(Neutrality),공평성(Impartiality)이라는 인도주의 원 칙에 입각해서 실시되어야 한다. 10) 그런데 개발지원은 인도주의 목적 외 에 복리증진이라는 추가적인 목적을 갖고 있으며,원조의 결과에 대한 관 심이 높아지면서 인도주의 원칙보다는 원조 효과성을 제고하기 위한 원칙 들이 보다 강조되고 있다. 11) 긴급구호와 복구(개발구호),개발지원의 차이 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래 <표 Ⅱ-2>와 같다. <표 Ⅱ-2> 대북지원의 유형 긴급구호 복구(개발구호) 개발지원 목적 인도주의 실현 인도주의 실현 인도주의 복리증진 실현과 목표 긴급한 인명구조 시설 복구 및 재난 대응 능력 향상 주민의 삶의 질 향 상 핵심 문제 재화와 서비스의 결핍 지역적 무기력 제도와 정책의 제 약 방향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응 지역사회의 자립역 량 강화 지속가능한 사회경 제시스템의 개발 원칙 박애,공평성,중립 성이라는 인도주의 원칙 인도주의 원칙과 타당성, 실현가능 성,적절성 등 원조 효과성 제고 원칙에 따른 지원 프로젝트 기간 단기(1년 이내) 중기(2년 이내) 장기(2년 이상) <출처> 이종무 외, 북한 개발지원 체제의 구축 방안 (서울:통일연구원, 2008). 10)UN GeneralAssemblyResolution46/182(1991.12). 11) 2005년 3월에는 원조 효과성에 관한 파리선언 (Paris Declaration on Aid Efectiveness)이 발표되었다.파리선언은 원조의 효과성 제고를 위해 수원국의 주인 의식(ownership),원조 일치(alignment),원조 공여국 간 조화(harmonization),성과중 심 관리(managing forresults),공여국ㆍ수원국 간 상호 책임(mutualaccountability) 등 5가지의 주요 부문을 제시하고 있다.이종무 외, 국제 NGO의 원조 정책과 활 동 (서울:통일연구원,2008),p.55. - 42 -
위의 표에서 보이듯 긴급구호는 재화와 서비스의 결핍 상황에서 인명 구조를 목표로 활동하는 것으로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응을 가장 우선시한 다.이러한 지원활동은 제공된 물자가 재난 피해자들에게 전달되느냐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며,물자 빼돌리기나 시장에 내다팔기와 같은 문제점 이 일부 발생하더라도 전체적으로 재난 피해자의 구호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면 계속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그리고 복구(개발구호)는 재 해를 당한 사람들이 재해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파괴된 시설과 역량을 복구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가 된다.그러나 이 과정에서 핵심적 으로 부딪치는 문제는 지역적 무기력 상황이다.반면에 개발지원은 당장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는 빈곤이나 불결한 위 생,열악한 공공 서비스 등의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 하는 것이다.따라서 개발지원에서 중요한 것은 지원의 효과를 극대화하 는 것이며,제도와 정책의 제약으로 빚어진 문제들을 해결하고 지속가능 한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것을 주요 방향으로 한다.이와 같이 지원의 목 적 및 내용이 상이한 데서 지원의 기간도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일반적 으로 긴급구호 프로젝트는 1년 이내 단기적으로 진행되며,복구(개발구호) 프로젝트는 2년 정도의 중기적 기간을 갖고 지원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반면에 개발지원 프로젝트는 통상 2년 이상 장기적인 계획과 전망 속에서 지원 사업을 펼치게 된다. 12) 그런데 긴급구호,복구(개발구호),개발지원은 반드시 순서대로 일어 나는 것이 아니며,종종 동시에 수행되어야 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지원 형태의 구별은 구호에서 개발(from relieftodevelopment)이라는 논 리적 또는 연대적 순서를 가정하는 것에 따르기보다는,목표의 즉각성이 나 기간에 기초해서 이뤄질 수 있다.그러나 이러한 활동들이 서로를 보 강하게끔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하지 않는다면 서로를 위태롭 게 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13) 아래 <그림 Ⅱ-1>은 원조의 목적과 단계에 12)이종무, 북한 개발지원에서의 민관협력방안, 북한 보건의료 개발지원 과제와 추진 전략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주최 정책세미나,2008년 7월 28일),pp.2~4. 13)OECD,"OECD DAC GuidelinesonConflict,PeaceandDevelopmentCo-operation," (Paris:OECD,1997),p.10. - 43 -
따라 어떻게 분류되는지를 표시한 것이다. <그림 Ⅱ-1> 원조의 목적과 단계에 따른 분류 <출처> 이종무 외, 북한 개발지원 체제의 구축 방안 (서울:통일연 구원,2008). 남북 사회문화교류는 그 안에 매우 다양한 세부 분야들을 포괄하고 있다.통일부 사회문화교류과는 사회문화분야 교류협력 을 남북한 간 사 회ㆍ교육ㆍ학술ㆍ언론ㆍ관광ㆍ방송ㆍ노동ㆍ문화ㆍ예술ㆍ출판ㆍ종교ㆍ체육 ㆍ청소년ㆍ여성 분야 등의 교류협력 이라 정의하고 있다. 14) 이와 같이 사 회문화교류의 분야는 다양한데,이에 따라 각 분야에서 남북교류협력사업 을 성사시키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지자체 경우에도 여러 분야 에서 각기의 시도를 했지만,실제로 성사된 남북 사회문화교류 사업은 문 화 및 체육 분야에 한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국내의 지자체가 외국의 자매결연 지자체와 행하고 있는 국제 교류는 아래 <표 Ⅱ-3>과 같다.이 표에는 지자체가 국제교류라는 측면 에서 접근했던 다양한 사업들이 망라되어 있는데,향후 지자체의 남북교 류협력사업도 이렇게 다각도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기에 소개한 다. 14)통일부 홈페이지의 사회문화교류과 담당 업무 설명 내용. - 44 -
<표 Ⅱ-3> 지자체 국제교류의 유형 교류유형 인적교류 문화교류 체육교류 상징사업 경제교류 기타교류 교류내용 공무원 교환(파견)근무,시찰 및 조사단,청소년 교류 민속축제 참관,예술단 교환공연,사진 및 그림 전시전,서적 기증,바둑 및 서예교류전,국악 연주,민속품 전시회 스포츠 교류단 파견,친선 스포츠 경기 공원조성(상호),한국정자 건립,거리 명명식,자매도시 전시관 개관,명예시 민증 수여 경제교류협정 체결,지역기업 진출 및 합작투자사업,전용공단 조성,무역센 터 건립,상품전시관 및 특산품 상설전시관 개관,시장개척단 파견,산업시 찰,상공회의소 자매결연,중소기업연합회 교류,투자설명회,관광전 개최, 기술이전 협의,직항로 개설(항공기,여객선) 명예박사학위 수여,재난 시 성금(원조),의료봉사활동,동물교환(동물원) <출처> 한국지방자치국제화재단, 2007지방자치단체 국제교류백서 (서울:한 국지방자치국제화재단,2008),p.11. 그리고 남북경협은 교역과 협력사업으로 구분할 수 있다. 15) 교역은 대금결제 또는 물물교환 조건이 없는 일방적 지원에 의해 반출입하는 비 거래성 교역,남북한 간 매매계약에 의한 상품 거래,대금결제 또는 물물 교환 조건으로 반출입하는 거래성 교역으로 구분된다.이중 거래성 교역 15) 경제협력은 보통 투자 및 자본협력 등을 일컫지만 광의로는 무역을 포함한 모든 경 제교류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쓰이기도 하며,때로는 대개도국 경제협력의 줄임말로 이해되기도 한다.경제협력은 정부차원의 개발원조,상업차관,수출신용,민간부문에 의한 직 간접투자,해외건설,무역,해외이주 및 해외취업 등을 포함하며,국가 상호간 에 이전되는 재원을 포함한다.따라서 선진국 간,개도국 간 그리고 선진국과 개도국 간 경제 분야의 제반 협력관계를 경제협력이라 할 수 있다. htp:/www.koica.go.kr. 아직 국제적으로 통일된 경제협력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으며 기관 및 저자들에 따라 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일반적으로 경제협력은 광의의 개념과 협의의 개념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위의 코이카 설명은 광의의 경제협력 개념이며,협의의 경제협력 개념은 민간 부분의 교역 및 투자와 이를 촉진시키기 위한 정부의 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남북경협은 아직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단순화해서 교역과 협력사업(투자)만으로 구분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 45 -
에는 상업적 매매거래인 단순 물자교역과 위탁가공교역으로 다시 나눠진 다.협력사업은 북한법에 의해 현지 투자법인을 설립하는 형태로서 직접 투자 방식은 합영기업,합작기업,단독투자기업(외국인기업)등 세 가지가 있다. 16) 이러한 남북경협의 유형은 아래 <그림 Ⅱ-2>와 같다. <그림 Ⅱ-2> 남북경협의 유형 <출처> 남북경협정보센터,<htp://www.kita.net/interkorea2/index.jsp>, (2009년 9월 3일 검색). 나.남북교류협력사업에서 지방자치단체의 특성 17) 남북교류협력사업에는 정부,지자체,기업,민간단체 등 다양한 행위자 들이 관계하고 있다.그 중 정부의 역할은 매우 크고 결정적이다.남북관 계의 진전과 후퇴가 정치 군사적 요인들에 의해 크게 규정되고 있고,남 북관계를 규율하는 법률 및 제도가 아직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 16)자세한 것은 남북경협정보센터 웹사이트 참조. htp:/www.kita.net/interkorea2/html/business/namb2.jsp. 17)이종무, 대북 인도적 지원과 교류 활성화 과제, 현대경제연구원 편, 통일경제 2009년 봄호,pp.28~29. - 46 -
에 많은 부분들이 정부의 정치적 결정에 좌우된다.그러나 지난 10년 간 화해협력의 남북관계가 지속되면서 남북관계에서 정부 이외에도 지자체, 기업,민간단체의 역할이 높아지게 되었다. 앞서 남북교류협력사업은 대북지원,남북 사회문화교류,남북경협으로 구분된다고 하였다.그런데 이들 각 영역에서의 주요 행위자는 차이가 있 는데,대북지원의 경우에는 정부,지자체,민간단체가 주요 행위자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남북 사회문화교류는 워낙 포괄하는 분야가 넓기 때문에 이 부분에는 정부,지자체,기업,민간단체가 모두 주요 행위자로 역할을 하고 있다.반면에 남북경협은 아직까지는 정부와 기업만이 주요 행위자 로 관계하고 있고,지자체나 민간단체는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대북지원과 남북 사회문화교류 분야에서 지자체의 특 성이 어떠한지를 살펴본다. 우선 대북지원의 주요 국내 행위자로는 정부,지자체,민간단체가 있 는데,이들은 모두 대북지원 사업에 실질적으로 관계하고 있다. 18) 정부는 그동안 쌀 및 비료 등 단일 품목의 대규모 지원을 통해 북한 식량난 해결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2000년대 이후 북한의 식량난이 상 당 부분 완화된 데는 남한 정부의 식량 및 비료 지원에 힘입은 바가 크 다.하지만 정부의 대북지원 사업은 지원규모가 크고 국민의 세금으로 추 진된다는 점에서 남북관계 변화 및 정치 군사적인 문제로부터 많은 영향 을 받는다.2006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대북 식량지원이 중단된 것이나, 2008년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정부 차원의 대북 식량 및 비료 지원이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즉,대북지원에서 정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반면에 일관성 있는 정책 집행을 하기가 쉽 지 않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1998년 이후 현재까지 남한 정부 차원에서 북한에 직접적이든 아니면 유엔 기구를 통해 간접적으로든 식량 및 비료를 지원한 실적은 아래 <표 Ⅱ-4>와 같다. 18)위 자료,pp.28~29. - 47 -
<표 Ⅱ-4> 정부의 대북 식량 및 비료 지원(1998년 이후) 연도 식 량 직접지원(차관 및 무상) 간접지원(WFP) 비료 1998 4만 톤(옥수수 3만 톤, 밀가루 1만 톤) 1999 15.5만 톤 2000 50만 톤(외국산 쌀 30만 톤, 중국산 옥수수 20만 톤) 30만 톤 2001 10만 톤(옥수수) 20만 톤 2002 40만 톤(국내산 쌀) 10만 톤(옥수수) 30만 톤 2003 40만 톤(국내산 쌀) 10만 톤(옥수수) 30만 톤 2004 2005 40만 톤(국내산 쌀 10만 톤, 외국산 쌀 30만 톤) 10만 톤(옥수수) 30만 톤 50만 톤(국내산 쌀 40만 톤, 외국산 쌀 10만 톤) 35만 톤 2006 쌀 10만 톤(국내산 쌀) 35만 톤 2007 40만 톤(국내산 쌀 15만 톤, 3.2만 톤(옥수수,콩,밀, 외국산 쌀 25만 톤) 밀가루,분유 등) 30만 톤 합계 270만 톤 47.2만 톤 255.5만톤 *2006년에 제공한 쌀 10만 톤은 무상으로 지원된 것이고,그 외의 직접 지원 식량은 모두 차관으로 제공된 것임. 이에 반해 민간단체는 정부의 반대 축에 존재한다.민간단체의 대북 지원은 정치 군사적 상황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지속적이고 안정적으 로 추진된다는 장점이 있다.하지만 민간단체의 지원규모가 매우 작기 때 문에 지원의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고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대북지원 민 간단체는 대략 60여 개 정도가 활동을 하고 있는데,긴급구호부터 개발지 원적 성격의 사업까지 다양한 형태의 소규모 지원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민간단체들은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지원 규모가 작고 단체들 사이에서도 경쟁적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대북 협상력이 극히 취약하다.그러나 민 - 48 -
간단체들은 협동농장,병원 등 북한 주민들의 삶의 현장에서 그들과 직접 적으로 접촉하면서 함께 지원 사업을 벌일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대북지원에서 지자체는 정부와 민간단체의 중간지대 정도에 위치한 다.긍정적 측면에서 보면 중앙정부보다 정치군사적 영향을 덜 받으면서 대북지원을 추진할 수 있다.또한 지자체는 자체 예산 확보 등을 통해 민 간단체보다 큰 규모로 자원동원을 할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수준의 규모로 대북지원 사업을 추진할 수 있고,농업기술원 등 산하 기관을 통한 전문 성을 확보하고 있다.지자체는 기업과 비교했을 때에는 공익적 사업을 추 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부정적 측면에서는 중앙정부 와 비교해서 대북 협상력이 많이 떨어지며,사업의 결정 및 집행체계가 경직적이어서 민간단체와 같이 대북지원에 있어서 신축적이고 유연한 접 근이 어렵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대북지원에서는 주요 행위자들의 특성이 분명하게 드러난 다.하지만 남북 사회문화교류에서는 주요 행위자들 사이에 구별이 명확 하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앞서 남북 사회문화교류의 주요 행위자로는 정 부,지자체,기업,민간단체가 있다고 언급하였는데,여기에서 정부가 정책 의 주체라면 지자체ㆍ기업ㆍ민간단체는 사업의 주체라고 할 수 있다.정 부는 남북교류협력의 정책을 전반적으로 수립하고 집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고,실제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지자체ㆍ기업ㆍ민간단체이기 때 문이다.그런데 남북 사회문화교류 사업에서 지자체,기업,민간단체들이 크게 구별되지 않는 것은,대부분의 사회문화교류 사업이 일회적인 행사 로 기획ㆍ추진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물론 6.15민족공동위원회 가 주관해온 민족공동행사 경우에는 연례적으로 진행되기도 했지만 그것은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따라서 아직은 행위자별 특성이 나타날 정도로 남북 사회문화교류 사업이 발전하지 못했다고 평가된다. 3.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변천과정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이 추진되어 온 10년이라는 시간은 1년 단위 로 예산을 수립 집행하고,선거를 통해 4년마다 단체장이 선출되는 지자 - 49 -
체 입장에서 볼 때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하지만 냉전구조가 아직도 해체되고 있지 않은 한반도 현실에서 지난 남북교류협력사업을 평가하기 에 10년이라는 시간은 매우 짧은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따라서 얼마 안 된 기간을 다시 여러 시기로 구분하는 것이 적절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글에서 시기적 구분을 시도한 것은 지자체 남북교류협력 사업의 변화 과정과 양상,그리고 특징들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 이다.하지만 어떠한 기준으로 각각의 시기를 구분할 것이며,각각의 시기 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여기에서는 남북 교류협력사업이 대북지원,남북 사회문화교류,남북경협이라고 할 때,지 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대북지원을 중 심으로 시기를 구분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이에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제1기:남북교류협력사업에 대한 모 색기,제2기: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의 추진기,제3기:개발지원 사업으로 의 전환기로 구분하였다.하지만 한 시기에서 다음 시기로 넘어가는 연도 를 어떻게 정해야 할 것인지가 또한 문제가 된다.제1기와 제2기를 가르 는 연도를 정하는 것에 다소 모호한 점은 있지만,이 글에서는 지자체들 이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사회문화교류 사업을 중심으로 대북사업을 추 진하다가 2002년에 들어서서 본격적으로 대북지원을 추진한 것으로 보았 다.물론 이 시기에도 강원도와 제주도는 대북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 지만,2002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해서 다른 지자체들이 본격적으로 대북 지원에 나서게 되었다는 점에서 2002년을 분기점으로 삼았다.그리고 제2 기와 제3기를 구분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용이한데,그것은 2006년도에 북 한과 지자체 사이에 본격적으로 농촌개발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기 때문이 다. 이를 다시 정리하면,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시기는 1 남북교류 협력사업에 대한 모색기(1999~2001),2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의 추진기 (2002년~2005년),3 개발지원 사업으로의 전환기(2006년~현재)로 구분 된다. 19) 19)이종무,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평가와 발전방안,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 사업 10년의 성과와 향후 발전 방향 (경기도ㆍ제주도 공동주최 워크숍,2008년 3월 - 50 -
가.남북교류협력사업에 대한 모색기(1999년~2001년) (1)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효시 지자체의 남북협력 사업은 1999년 1월에 제주도가 북한에 감귤 100톤 을 지원한 것이 효시라고 할 수 있다. 20) 1998년 말에 도민사회 일부에서 풍작으로 넘쳐나는 감귤을 대북지원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당시 대표적 대 북지원 민간단체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 협조를 요청해왔다.과잉 생 산된 감귤을 북한에 지원하면 북한 주민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국내 감귤 가격도 안정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21) 그 후 준 비과정을 통해서 1999년 1월 22일에 인천항에서 지자체 차원의 첫 지원물 품인 감귤 1만 박스가 북한 남포항으로 출발하였다. 1999년 하반기에 들어서자 제주도 감귤 작황이 대단히 좋아 감귤 과 잉생산이 우려되는 상황이 다시 발생하였다.이에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은 제주도의 시민단체 및 기독교계와 감귤을 대북지원 하는 방안을 협의 하였고,1999년 9월 11일에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 하는 자리에서 북측에 감귤지원 문제를 제기하였다.우리민족서로돕기운 동의 제단을 받은 북한 조선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이하 아태위)는 지난 번에 지원된 감귤이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고 각별한 고마움을 표시하 였고,감귤의 추가지원 요청과 함께 지원된 감귤의 분배 확인을 위한 방 북단의 초청을 약속하였다. 22) 26일~27일),pp.64~72. 20)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효시를 언제로 잡을 것인지는 다소 논쟁거리가 된다.일 부에서는 제주도가 1998년 말에 감귤 100톤을 대한적십자사에 기탁한 시점을 지자체 대북지원의 효시로 삼기도 한다.하지만 이때 기탁된 감귤은 인천항에서 1999년 1월 22일에 출발하였다.그리고 제주도가 매년 4,000톤 내외의 규모로 본격적이고 지속적 으로 대북지원 사업을 추진한 것은 1999년 11월 27일에 북한 감귤보내기 제주도민운 동본부 가 출범한 이후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점을 고려해서 1999년 1월 22일에 감 귤이 지원된 것을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효시로 삼았다. 21)이러한 접근법으로 국내의 과잉 생산 물자를 북한에 지원한 물품으로는 감귤,계란, 분유,미역 등이 있다. 22)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창립 5주년 활동자료집 (서울:우리 - 51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을 통해서 감귤지원에 대한 북측의 긍정적 답변 을 받은 제주도는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1999년 11월 27일에 새천년맞이 북한에 감귤보내기 제주도민운동본부 23) 를 발족해서 감귤 2,000톤을 지원 하는 것을 목표로 모금운동에 들어갔다.제주도의 대북 감귤지원은 민간 이 중심이 되어 밑으로부터 추진된 전형적인 사업으로,초기에 제주도청 에서는 감귤집하장 선정과 수집,운송 차량과 저장창고 제공 등 보조적인 역할만 담당하였다.1999년의 감귤 보내기 운동은 도민들의 적극적인 참 여로 매우 성공적으로 진행되어서 당초 계획했던 2,000톤을 훌쩍 넘겨서 4,336톤을 지원하는 성과를 내었다. 이와 같이 제주도가 남북교류협력사업에 나서게 된 것은 인도적 차원 에서의 북한 주민에 대한 구호와 함께,과잉 생산으로 가격이 급락하는 감귤 가격의 안정화를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이러한 호혜적 이익에 대한 추구가 그 밑바탕에 있었기 때문에,제주도의 감귤 지원사업은 일회적으 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지원사업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하지만 잉여 농산물 지원을 통한 남북협력사업의 추진은 지자체의 보편적인 방식이라 기보다는 제주도만의 고유한 특징이라 할 것이다. 한편 제주도와 다른 이유에서 초기부터 남북교류협력사업에 적극적으 로 나선 지자체로 강원도가 있다.강원도는 북한과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접경도( 接 境 道 )이면서 남북 강원도로 나눠진 분단도( 分 斷 道 )라는 특성을 갖고 있어서 남북교류협력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이기도 하다.그동안 도( 道 )의 분단과 접경지역이라는 군사안보적 이유 때 문에 강원도는 지역 발전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그래서 강원도는 지자 체로서는 가장 처음으로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조례와 추진체계를 마련하 였다. 강원도는 1998년 9월 9일에 남북강원도교류협력위원회조례 를 제정하 민족서로돕기운동,2002),p.141. 23) 새천년맞이 북한에 감귤보내기 제주도민운동본부 는 1999년 11월에 제주도 기독교교 회협의회를 비롯한 각 종단,시민사회단체,새마을운동 제주본부 등이 참여해서 만들 어졌다.그 이후 대북 감귤지원을 범도민운동으로 확대하기 위해 2000년 11월에는 제 주상공회의소를 비롯한 각종 기관 및 단체들의 참여 하에 북한동포돕기제주도민운동 본부 로 이름을 바꾸었다. - 52 -
였고,동년 12월 31일에는 강원도남북교류협력기금조례 를 제정하였다.또 한 강원도는 지자체 처음으로 1998년 9월에 기획관리실 안에 남북교류지 원담당 을 신설하였다.이후 강원도의 남북교류협력사업이 본격적으로 추 진되면서 이렇게 신설된 전담 조직은 2001년 3월에 남북협력담당관실 로 확대 개편되었다.그리고 강원도는 남북교류협력사업에 민간의 참여를 제 도적으로 마련하고자 노력하였는데,범도민적 의견 수렴 및 종합기구로 남북강원도교류협력위원회 를 1999년 11월에 발족하였고,2000년 5월에는 대북지원 창구로 반관반민 단체인 남북강원도협력협회 를 설립하였다. 24) 이와 같이 강원도는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 놓았다가,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남북교류협력사업에 나서게 되었다.그 결과 2000년 12월에 김진선 강원도지사가 육로로 원산과 평양을 방문하여 북측 민족경제협력 연합회(이하 민경련)와 씨감자 원종장 건설,솔잎혹파리 공동방제,연어자 원 보호 증식과 관련한 합의서를 체결하였다.이 시기에 다른 지자체들이 대부분 남북 사회문화교류 사업을 추진했던 것과 비교하면,강원도는 북 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원사업을 추진하여 실질적인 성과를 냈다는 점 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특히 남북이 다함께 이익이 되는 호혜적 사업 인 솔잎혹파리 공동방제 사업을 발굴한 것은 강원도가 확고한 원칙 위에 서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25) 24)통일부의 인도적차원의 대북지원사업 처리에 관한 규정 에는 대북지원사업자 를 대 북지원 사업을 추진하는 남한주민(법인 단체에 한한다)으로 규정하고 있다.따라서 지자체는 법인이나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대북지원 사업을 추진할 수가 없다.이에 따라 강원도와 같이 반관반민의 단체를 직접 설립하든지,아니면 경기도 등 여타 지자체들은 기존에 활동하고 있던 대북지원 단체와의 협력을 통해서 대북지 원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통일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이 규 정을 개정해서 지자체도 독자적으로 대북지원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 고 한다. 25)강원도는 남북강원도교류협력 5대 원칙으로 1 실질적 교류협력,2 공동 이익 추구, 3 공개투명ㆍ도민 공감대 형성,4 상호 신뢰주의,5 장기적 안목을 설정하였다.황 병일, 남북강원도의 화해와 협력,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사업 10년의 성과와 향후 발전 방향 (경기도ㆍ제주도 공동주최 워크숍,2008년 3월 26일~27일),p.24. - 53 -
(2)남북 지자체 간 자매결연의 추진과 북한의 외면 이 시기에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한 거의 모든 지자체는 북한 지자 체와의 자매결연 방식의 사업을 추구하였다.자매결연은 지자체가 국제교 류를 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방식으로,이를 북한과의 교류에 적용하 는 것은 지자체들에겐 매우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26) 그래서 대부 분의 지자체들이 처음에는 자매결연 방식의 남북협력 사업을 추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자체가 자매결연을 위해 북한 교류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은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타났다. 27) 첫째,도시규모 및 여건의 유사성으로 포항시 가 청진시 를,그리고 군산시가 해주시 를 교류대상으로 선정한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둘째,분단 전 행정구역의 동일성이다.이러한 사례는 주 로 접경지역 지자체의 교류대상 선정에 나타나고 있는데,철원군이 북한 철원군 을,고성군이 북한 고성군 을,그리고 옹진군이 북한 옹진군 을 교 류대상으로 선정한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셋째,역사적 유사성이다.경주 시가 개성광역시 를,그리고 관악구가 구성시 또는 의주시 를 교류대상으 로 선정한 사례가 이에 해당된다.넷째,실향민의 고향이다.해당 지자체 에 거주하고 있는 실향민의 다수의 고향이 교류대상으로 선정된 경우인 데,충청남도가 황해도 를,그리고 태안군이 해주시 를 선정한 것이 여기 에 해당된다.이외에도 동일한 지명(강동구가 평양특별시 강동군 선정한 경우)또는 상급지자체가 자매결연을 추진하고 있는 지역(담양군이 평안 남도 군단위 지자체 를 희망한 경우)등이 교류대상 선정의 기준으로 활 용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경기도와 강원도는 대표적인 분단도이면서 접경지 역이라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자신들과 인접한 북측 지역인 황해도나 북강원도와의 교류협력 추진에 역점을 두었다.분단으로 경기도는 예전의 26)따라서 이 시기에는 독일 통일 이전에 동서독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자매결연 및 교류 협력 사례가 국내에서 많은 조명을 받았다. 27)한국지방행정연구원, 지방자치단체의 남북교류 활성화 방안 (서울:지방행정연구 원,2001),pp.59~60. - 54 -
장단군 지역 28) 이,그리고 강원도는 도의 절반 정도 29) 가 각기 남과 북으로 나눠진 바 있다. 하지만 중앙집권적 체계인 북한에서 지방정부는 자치권이 없는 하위 행정기관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치권을 갖고 있는 남한의 지자체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하였다. 또한 남한과의 교류 협력 사업은 중앙기관인 노동당 통일전선부가 직접 관장을 하기 때문에 북한의 시ㆍ도 인민위원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다. 남한의 지자체와 북한의 인 민위원회는 동일한 지위에 있지 않은 것이다.더욱이 심각한 경제위기에 시달리 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자매 결연 방식을 통해 지방 차 원에서 교류협력이 이뤄지 는 것을 받아들일 처지도 아니었다.따라서 지자체의 자매결연 방식을 통한 남북 교류협력사업은 거의 진전 을 이루지 못하였다. 30) 지자체에 대한 남북한의 인식 차이 남한 지자체의 북한 파트너인 민화협 참사 들은 초기에 지자체 단체장들의 위상을 매우 낮게 보았다.사실 중앙집권적이고 당우위인 북한 체제에서는 지방정부의 장이 중요하게 보일 리가 없었다. 또한 지자체에서 방북단을 꾸릴 때 시ㆍ도 의원과 지방 언론사 기자들을 참여시키는 것 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많은 거부감을 보였다. 나중에 시간이 경과되면서 북한 담당자들도 지자체가 남북교류협력사업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ㆍ도의원의 이해와 협력이 필수 적이고,지자체 주민들의 이해를 위해서 지방 언론사의 취재 활동이 불가결하다는 것을 이 해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남한 지자체들도 북측 지자체 와의 자매결연에 크게 연연해했는데,북한의 체제 특성상 중앙기관을 끼지 않고서는 어떤 사업도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 었다. 28)경기도 파주시 지역에는 임진강 너머 있는 면들 중에서 도라산역이 있는 장단면과 군 내면,판문점이 있는 진서면과 진동면,그리고 연천군 지역에는 백학면이 옛 장단군 지역이다.북한 지역에서는 현재 개성시 장풍군이 옛 장단군 지역이다. 29)남강원도의 면적은 16,874km2 (남한 면적의 17.0%)로 7시 11군 187읍면동으로 구성되 어 있고,북강원도의 면적은 11,092km2(북한 면적의 9.0%)로 2시 15군 15읍 440리동 7 노동자지구로 구성되어 있다.강원도, 제3차 강원도종합계획(안)시안(2000-2020), 2000. 30)이종무,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평가와 발전방안, p.65. - 55 -
강원도 경우 북강원도에 솔잎혹파리 공동방제 사업,연어자원 보호 증식사업 등을 활발하게 펼쳤지만,강원도의 북한 파트너는 북한의 강원 도 인민위원회가 아니라 중앙의 대남 기관들이다.2000년에 강원도가 북 한과 체결한 남북강원도교류협력합의서의 북한 기관은 민경련이고,2003 년 이후부터 강원도는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이하 민화협)와 합의서를 체결하고 있다.또한 경기도도 북한의 황해도나 개성시 등 지방행정기관 과의 교류협력을 희망하였으나 이뤄지지 못하였고,결국 북한의 민화협을 파트너로 해서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가장 이상적인 방식이 남북 지자체 간 자 매결연 방식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하지만 남북 간의 경제력에 현격한 차이가 있고,체제 및 이념의 상이성으로 지 방 차원의 교류협력에 대해 북한은 아직도 부담을 크게 갖고 있다.따라 서 자매결연 방식을 고집하는 경우에는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이 성사 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3)지자체의 남북 사회문화교류 사업 추진과 무산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 화해협력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 아지면서 방송사를 비롯해서 다양한 단체들이 북한과의 사회문화교류 사 업을 추진하였다.특히 북한 예술단들의 남한 방문은 언론의 커다란 조명 을 받았는데,2000년 5월의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의 서울공연,동년 6월의 평양교예단의 서울공연,그리고 같은 해 8월의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서울 공연이 연이어 진행되었다.리틀엔젤스 평양공연에 대한 교환 형태로 이 루어진 평양소년예술단의 공연과 평양교예단의 공연은 남북한 국민들에게 강렬한 동포애와 민족적 자부심을 자아내면서 남북교류협력사업에 대한 관심을 분출시켰다. 31) 따라서 이 시기에 지자체들이 남북 사회문화교류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래서 앞서 살펴본 제주도와 강원도를 제외한 31)이교덕 외, 남북한 사회문화 협력거버넌스 활성화 방안 (서울:통일연구원,2007), p.71. - 56 -
다른 지자체들의 경우 대북지원보다는 남북 사회문화교류 사업의 추진에 더 역점을 두고 추진하였다.사실상 지자체가 주최하는 행사에 북한 대표 단이 참가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이벤트가 되기 때문에,지자체들 이 국제행사나 규모가 큰 국내행사를 개최할 때 북한 대표단을 참가시키 기 위해 대북접촉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이러한 지자체의 남북 사회문화교류 사업으로는 아래 <표 Ⅱ-5>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부산,대전,충남,경북,전북과 같은 지자체들이 북한 참가를 추진한 전국체전,세계문화엑스포,국제꽃박람회,국제마라톤 등의 행사들이 있다.하지만 부산시가 추진한 2000년의 제81회 전국체전의 성 화를 금강산에서 채화한 것 말고는 사업이 성사된 것이 한 건도 없었다. <표 Ⅱ-5> 지방자치단체 교류ㆍ협력 심사위원회 승인사업 및 결과 심사 위원회 1차 ( 00.8) 2차 ( 00.10) 3차 ( 00.12) 4차 ( 01.1) 지방 자치단체 사 업 명 성사여부 부산 제81회 전국체전 금강산 성화 채화 사업성사 대전 제2차 WTA 총회 북한과학도시 초청 무산 경북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 북한인사 초청 무산 제주 한라에서 백두까지 통일염원 합수ㆍ합토 무산 충남 2002안면도 국제꽃박람회 북한 참여 무산 충남 2002동아마라톤 북한 초청 무산 경남 남북교류사업 추진을 위한 방북 무산 강원 금강-설악권 솔잎혹파리 공동예방사업 사업성사 강원 남북공동 어린 연어 방류사업 사업성사 충남 제82회 전국체전 성화 채화 무산 충남 특산품 교류전 북한 참여 무산 전북군산 오페라 탁류 북한 공연 무산 전남목포 신의주시 인도적 지원 사업 사업성사 전북 군산-전주 간 국제마라톤대회 북한 초청 무산 강원철원 남북 철원군 간 농업교류 무산 - 57 -
강원철원 궁예ㆍ태봉국 학술회의 및 태봉제 북철원 초청 무산 5차 ( 01.5) 6차 ( 01.8) 대전 북한도시 WTA 참여를 위한 남북교류사업 무산 서울강동 선사문화학술회의 무산 강원고성 농축산분야 교류ㆍ협력 추진 무산 전남 우량씨감자 생산지원 무산 <출처> 양현모 외, 한반도 평화ㆍ번영을 위한 로컬 거버넌스 활성화 방안: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를 중심으로 (서울:통일연구원,2007),pp.41-42. 지자체의 남북 사회문화교류 사업이 무산된 이유로 주로 거론되는 것 이 첫째,사업의 구체성 결여,둘째,성급한 사업추진,셋째,북한의 수용 능력을 벗어난 경우,넷째,사업 제안 시 북한의 과도한 요구 등이다. 32) 하지만 이러한 분석은 당시의 남북관계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실패의 원 인을 대부분 지자체 내부 문제로 돌리고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이 에 여기에서는 지자체 남북 사회문화교류 사업의 무산 원인을 북한의 문 제점이나 남북관계 상황을 반영해서 다면적으로 고찰하고자 하며,그에 따라 무산 원인을 첫째,지자체와의 사회문화교류 사업에 대한 북한의 소 극적 태도,둘째,남한 내 과열 경쟁,셋째,지자체의 준비 부족 등 세 가 지로 나눠서 살펴본다. 우선 중앙집권적이고 폐쇄적인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과 다방면으로 사회문화교류를 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에,대북지원이나 남북경협에 는 적극적이지만 사회문화교류 사업에는 소극적 태도를 갖고 있다.더욱 이 남한과 달리 해당 분야의 기관이 직접 대남 접촉에 나설 수 없기 때문 에 대남사업을 담당하는 통일전선부가 모든 것을 처리해야 하는데,당시 32)홍양호, 지방자치단체의 대북 교류협력 현황과 추진방향, p.5.1990년 2월에 문화부 와 통일원은 남북문화교류 5원칙 을 발표하였는데,그것은 1 분단 이전의 우리 민 족 전통 문화를 우선 교류한다,2 승부 및 경쟁적 분야는 배제한다,3 전통 문화의 원형을 변형,훼손하는 표현 방식은 지양한다,4 쉽고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한다,5 공동 실행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한다 로 되어 있다.이우영, 남북한 체육ㆍ문 화교류와 화해 협력, 현대경제연구원 편, 통일경제 (2002.5ㆍ6호),pp.8~9.이 원 칙은 지금 시점에서도 적실성을 갖고 있다. - 58 -
에 통일전선부는 제안되는 사회문화교류 사업을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인력과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그런데 남한에서는 6.15공동선언 이후 봇물 터지듯 다양한 사업들을 북한에 제안하였고,북 한은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선택과 집중을 한 것이다.이러한 점에서 볼 때 지자체가 제안한 남북 사회문화교류 사업은 북한의 관심 사안이 아니 었던 것이다.북한은 사회문화교류 사업에서 정치적 성격이 짙은 행사나 상당한 경제적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사업을 우선한 것이다. 이러한 우선순위와 연관해서 볼 것이 남북 사회문화교류 사업에 대한 남한 내 과열 경쟁이다.2000년 6.15정상회담 이후 남한에서는 북한과의 공동 행사가 무형적 가치를 지니는 매력적인 문화 상품으로 받아들여졌 고,이에 따라 방송국,기업,지자체,민간단체 등이 적극적으로 북한과의 접촉에 나섰다.하지만 북한이 이를 모두 소화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 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남한 기관들 사이에 경쟁이 과열되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남한의 사회문화교류 사업을 받아들이는 조 건으로 과도한 대가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그런데 지자체는 공공예산으 로 사업을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방송국이나 기업처럼 북한의 요구에 부 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그렇다고 북한과 정치적 성격의 행사를 지자체 차원에서 추진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따라서 이 시기의 남북 사회문화교 류 사업은 방송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가운데 기업이나 민간단체들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었지,정치적,재정적 제약을 안고 있는 지자체 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거의 없었다고 보인다. 다음으로 이 시기에 지자체의 남북 사회문화교류 사업이 대부분 무산 된 원인의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지자체의 준비 부족 문제이다.지자체들 이 이 시기에 구체성이 떨어진 사업들을 성급하게 추진하였다는 비판은 뼈아픈 지적이 아닐 수 없다.6.15공동선언 이후 남북화해협력의 분위기 속에 일회적인 이벤트 성격의 행사를 추진한 경우들이 많고,지자체 내에 서 충분한 논의와 준비를 거치지 않고 단체장의 의지와 관심에 의해서 즉 흥적으로 추진되기도 하였다.이 시기에 강원도를 제외하고서는 중장기적 계획과 추진체계를 제대로 갖춘 곳이 없었다는 것이 이 점을 말해준다. 결국 지자체들이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남북 사회문화교류 사업을 일회 - 59 -
적인 이벤트성 사업방식으로 추진하였기 때문에 사업을 성사시키기가 쉽 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반면에 대북 인도적 지원은 지자체가 추진하는 데 있어서 명분도 있 을뿐더러 지원 사업을 계기로 북한과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형성할 수 있 다는 이점이 있었다.북한과의 신뢰 구축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어떠한 사 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는 없는 것이다.이에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 업의 초점이 남북 사회문화교류 사업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으로 이 동하게 되었다. (4)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행정 절차 마련 정부는 1990년에 남북교류협력법을 제정해서 남북 간 교류협력에 필 요한 사항들을 규정하였다.하지만 이 법은 북한 주민 접촉 및 방북 등에 대해 포괄적으로만 규정하고 있어서,각 분야별 교류협력사업에 적용하게 될 때 구체성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다.그래서 정부는 각 분야별로 남북 교류협력업무 처리에 관한 규정을 만들기 시작하였다.1997년 6월에 남북 사회문화협력사업 처리에 관한 규정 을 제정하였고,1999년 10월에는 인 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사업 처리에 관한 규정 을 제정하였다.경제협력 분 야는 이미 1990년에 제정된 남북교류협력법에 경제 관련 법률을 준용하도 록 했고, 33) 그 외 필요한 때마다 각 사안 별로 고시를 제정하여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령들은 남북교류협력사업에서 지자체가 갖는 특성들 을 고려해서 제정된 것은 아니다.그런데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지 자체들이 남북교류협력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면서 이들에 대한 법 적,행정적 규율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문제로 제기되었다.이에 정부는 33)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26조(다른 법률의 준용)에는 남북 간의 투자,물품의 반 출ㆍ반입,기타 경제에 관한 협력사업 및 이에 수반되는 거래에 대하여는 외국환거래 법,외국인투자촉진법,수출보험법,대외경제협력기금법,법인세법,소득세법,조세특례 제한법,수출용원재료에 대한 관세 등 환급에 관한 특례법을 준용한다고 규정하고 있 다. - 60 -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사업에 대한 사전협의와 조정을 행정자치부가 담당 하도록 하고,그에 따라 2000년 7월에 행정자치부는 남북자치단체간 교류 협력 업무 처리지침 을 마련하여 시행하였다. 이 지침에 의하면,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 업무에 관하여 다른 법령 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이 지침을 적용하고,행정자치부는 통일부와 협의하여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조정하도록 하고 있다.또한 지자 체는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시행할 경우에 가급적 교류가 용이하고 실현가 능한 사업부터 우선적으로 추진하고,남한의 기술과 자본을 바탕으로 북 한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업을 중심으로 추진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그리고 지자체가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당해 사업 을 행정자치부와 사전 협의한 후 통일부에 사업승인신청을 하고,교류협 력사업의 추진 후에는 그 결과를 행정자치부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 다.특히 북한 지자체와 자매결연을 체결하거나 대규모 경제협력사업을 추진할 시에는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지방의회의 지원을 유도하기 위하여 지방의회에 보고 및 의결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하여,행정 자치부에 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사업 심사위원회 를 설치하여 사전적인 심의조정을 거침으로써 비효율적인 사업수행을 예방토록 규정하고 있다. 이 지침에 따른 추진절차는 1 남북교류협력사업의 계획수립 및 보고,2 행정자치부의 심의ㆍ조정,3 통일부에 승인신청,4 북한 지방자치단체와 교류협력 추진,5 교류협력 결과의 보고 등 5단계로 되어 있다. 34) 하지만 중앙정부 부서인 행정자치부가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사업을 협의 조정하도록 한 것이 지자체의 자율성을 침해할 소지가 있으며,추진 절차에 있어서도 행정자치부와 통일부의 협조가 아무리 잘 이뤄진다고 해 도 지자체 입장에서는 행정자치부와의 협의 조정 후 다시금 통일부에 남 북교류협력법에 따른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중복적이고 비효율적 이라고 인식되었다.실제로 행정자치부의 남북자치단체간 교류협력 업무 처리지침 에 따라 심의,승인된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사업은 앞의 <표 34)지방행정연구원, 지방자치단체의 남북교류 활성화 방안,pp.39~40. - 61 -
Ⅱ-5>의 사업이 전부이다.이 지침에 따라 설치된 자치단체 남북교류협 력사업 심사위원회 도 2000년 8월부터 2001년 8월까지 총 6차례 개최된 것이 전부이다.그 이후에는 지자체들이 대북지원 단체 등 민간단체를 통 해 우회적으로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였기 때문이다.결국 행정자치 부의 남북자치단체간 교류협력 업무 처리지침 은 사문화되어 실시되지 않 다가 2003년 5월에 통일부가 마련한 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사업 추진 지 침 으로 대체되었다. 나.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의 추진기(2002년~2005년) (1)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의 본격화 지자체가 처음으로 남북교류협력사업에 나섰던 1999년부터 2001년 사 이에,대부분의 지자체들은 북한 지자체와의 자매결연 도모와 사회문화교 류 사업을 추진하였다.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남북 지자체 간 자매결 연이나 사회문화교류 사업은 북한의 거부감으로 성과를 낼 수가 없었다. 북한과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원하고 성사 가능성이 높은 사 업부터 추진해야 한다는 점에 이론이 있을 수 없다.그래서 지자체들은 북한이 보다 적극적으로 호응을 보이는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물론 지난 시기에 지자체의 남북교류협 력사업에서 유독 강원도와 제주도가 추진한 대북지원만이 성과를 냈다는 것도 이러한 방향 전환에 일조를 하였다. 또한 2002년은 지자체 선거가 있었던 해로,특히 새로 선출된 광역단 체장들이 임기 첫해부터 남북교류협력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하였 다.기존에 이미 대북지원을 추진하고 있던 강원도와 제주도외에 경기도 가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하였고,다른 지자체들도 그 뒤를 이어 대북지원 사업에 나서게 되었다.특히 6.15정상회담 이후 남 북관계가 급속도로 발전할 것 같았던 분위기가 각종 정치 군사적 사건들 로 냉각되면서, 35) 정치 군사적 문제들에 대해 중앙정부 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지자체별 특성에 따른 다양한 접근들이 가능한 지자체 역할이 - 62 -
커지게 되었다. 이 시기에 지자체가 추진한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은 주로 농업분야에 집중되어 있다.경기도가 2002년에 경운기 200대를 지원한 것을 시작으로 2004년에는 경운기(100대)와 콤바인(20대)을 지원하였고,2005년에 들어서 면 북한 농업과학원과 벼농사 시범사업을 추진하기에 이른다.강원도의 경우에는 2000년에 못자리용 비닐을 지원한 것을 시작으로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연어치어 공동방류 및 금강산 산림 병충해 방제 약품을 지원 하였다.또한 지자체 중에서 상당히 일찍 대북지원 사업을 시작한 전라남 도는 2003년에 평안남도 대동군에 농기계수리공장 건설을 지원하였고, 2005년에는 못자리용 비닐 및 온실 자재 등을 지원하였다.그리고 전라북 도의 경우에는 2004년부터 황해남도 신천군 백석리에 농기계 지원과 함께 농기계수리공장 건설을 지원하였다. 36) 한편 광역 지자체가 아닌 기초 지자체의 대북지원 사업도 특기할만한 데,제천시는 2004년부터 북고성군 삼일포에 과수원 조성사업을 지원하였 는데,이 사업은 기초 지자체의 남북협력사업의 모델로 평가되고 있다.또 한 익산시의 경우에는 2004년 평안북도 용천역 폭발사고가 일어나자 긴급 구호 사업을 진행하였고,그 이후에는 용천육아원 및 소학교 복구 사업의 지원에 이어 용천육아원 어린이에 대한 급식지원 사업을 전개하고 있 다. 37) 지자체가 이 시기에 추진했던 주요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은 아래 <표 Ⅱ-6>과 같다. 35)2001년에 등장한 부시 행정부의 '악의 축'발언이 상징하듯 미국의 대북강경노선으로 북미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했고,그 영향으로 동년 3월에 개최 예정인 제5차 남북장관 급 회담이 6개월 정도 연기되어서 9월에야 개최되었다.또한 2001년 9.11테러 및 대 테러 전쟁의 영향으로 남북관계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2002년 4월 임동원 특사의 방북 으로 남북관계를 정상화되는 듯이 보였지만,이것도 역시 2002년 6월의 서해교전과 10월의 2차 북핵문제 발발 등으로 벽에 부딪치게 되었다. 36)이종무,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평가와 발전방안, p.69. 37)용천육아원에 대한 급식지원 사업은 익산시의 공식적인 지원 사업이 아니다.그러나 이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 전액이,용천역 폭발사고에 대한 지원사업의 과정에서 지속 적인 대북지원의 필요성을 공감한 익산시 공무원 및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충당되고 있다.따라서 이 사업은 사실상 익산시민들의 지원 사업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 63 -
<표 Ⅱ-6>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1999~2005년) 38) 지방 자치단체 년도 사업내용 및 사업품목 금액 (백만원) 2002 -경운기 200대,지붕개량제 180천m2,축구공 2002 개 1,000 -농업:경운기 100대,콤바인 20대 경기도 2004 -보건:치과장비 5셋트,환자수송용 버스 5대 -식품:평양 식품가공공장 설치(착공) 1,340 -구호:긴급구호 의약품 지원 2005 -벼농사 시범사업(3ha)및 농기자재 지원 등 1,936 2000 -못자리용 비닐 27,000롤 234 강원도 2001 ~ -매년 어린연어 공동방류(50만~55만 마리) -연어 부화장 건설(부화장비 및 건축자재) 4,284 2005 -북강원도 산림 병해충 방제약품 및 기자재 제공 2003 -평남 대동군 농기계수리공장 건설 지원 470 전라남도 2004 -대동군 농기계수리공장 수리 부품 및 장비 지원 470 2005 -못자리용 비닐,모내기 및 온실 자재 등 지원 680 제주도 1999 ~ -감귤지원:1999년(4,336톤),2000년(3,031톤), 2001년(6,105톤),2002년(4,000톤), 2003년(7,500톤),2004년(8,107톤), 2005년(3,049톤) -당근지원:2000년(2,000톤),2001년(4,000톤), 2005년(7,000톤) 4,510 제천시 2004 -북고성군 삼일포 과수원 조성사업 서울시 2005 -북한 아동 대상 제과 원료 지원 1,030 경상남도 2005 -남북농업교류를 통한 식량 증산,기술교류 105 전라북도 2005 -농기계 수리공장 및 농기계 지원 1,786 인천시 2005 -페인트 124톤 등 3,130 <출처> 홍양호, 지방자치단체의 대북 교류협력 현황과 추진방향,pp.7~11. 38)제2기인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의 추진기(2002~2005)이전에 진행된 사업은 강원도의 2000년,2001년 사업과 제주도의 감귤지원 사업뿐이다.나머지는 모두 2002년 이후에 진행되었다. - 64 -
(2)민간단체와의 협력 관계 구축 지자체들이 이 시기에 대북지원 사업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참여 하게 되었지만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대북지원을 추진할 수 없는 제도적 제약이 존재하였다.1999년 10월에 공포된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사업 처리에 관한 규정 에는 대북지원사업자 를 대북지원 사업을 추진하는 남 한주민으로 법인 및 단체에 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이 규정에 의해 지 자체에게는 직접적으로 대북 지원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이에 지자체들은 오랫동안 북한과 관계를 맺어온 대북지원 단체와 협 력관계를 구축해서 간접적으로 대북 지원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지 자체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과 관련해서 협력관계를 맺은 민간단체는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39) 첫째는 남북강원도협력협회,전남도민남북교류협의회와 같이 지자체 가 주도해서 설립한 민간단체이다.남북강원도협력협회는 광역 지자체인 강원도가 중심이 되어 설립되었고,전남도민남북교류협의회는 전라남도의 22개 시ㆍ군의 기초 지자체 및 시ㆍ군 의회가 주축이 되어 설립되었다. 특히 강원도의 경우에는 도가 적극적으로 남북교류협력사업에 나서는데, 지역 내에 대북지원을 수행할 민간단체가 없다보니까 도가 적극적으로 나 서 단체 설립을 한 경우이다.하지만 이 단체들은 민간부문이 함께 참여 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방 차원의 반관반민 남북협력기구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지역사회에 기반하고 있으면서 해당 지자체와 특별한 협력관 계를 맺고 있는 순수한 풀뿌리 민간단체이다.경상남도와 협력관계를 맺 고 있는 경남통일농업협력회와 제주도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남북협력 제주도민운동본부가 그 경우이다.사실 민간단체들이 지방 차원에서 독자 적으로 대북지원 사업을 추진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지방의 경제 규 모가 수도권과 비교해서 매우 작아서 사업 재원을 자체적으로 조달하기가 쉽지도 않고,서울,부산 등 대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자체에서는 복수 의 대북지원 단체가 만들어지기도 어렵다.따라서 지역에 기반하고 있는 39)이종무,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사업의 평가와 발전방안, p.68. - 65 -
대북지원 단체들은 지자체와 상당히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게 되고,이를 통해서 대북지원 사업에 소요되는 자금의 상당 부분을 조달하게 된다. 셋째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및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와 같이 서울에 근거를 갖고 있는 전국적인 민간단체이다. 40) 이들 단체들은 북한 과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지자체 남북협력 사업의 창구 단체 역할을 맡게 되었다.특히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지자체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의 물꼬를 튼 대표적인 단체인데,1999년에 제주도의 감 귤지원 사업을 필두로 해서 경기도(2002년~현재),전라남도(2003~2005), 전라북도(2005년~현재),경상남도(2006년)등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의 창구 역할을 맡았다.그리고 2004년에 창립된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는 9개의 지역본부를 갖추고 있으면서 지방의 남북교류협력사업 활성화에 큰 힘이 되고 있는데,부산시 및 인천시 등이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와 협력해서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였다.지자체 입장에서도 초창기 에는 민간단체를 통해서 북측과 사업을 하는 것이 독자적으로 대북사업을 추진하는 것보다 위험부담도 작고 비용도 절감되는 효과가 있다.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에서 지자체와 민간단체의 협력관계는 몇 단계 의 변화과정을 거친다.초기에는 민간단체가 기존에 추진하고 있던 대북 지원 사업에 지자체가 자금을 지원하는 후원자 역할에 머물게 된다.하지 만 이 시기는 잠깐이고 민간단체와 함께 방북을 하면서 북한의 민화협과 대북지원 사업에 대한 협의를 공동으로 진행하게 된다.지자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사업을 북한에 제안하기도 하고,북한이 자신의 관심 분야를 지자체에 설명하기도 한다.이 과정에서 대북지원 사업은 민간단체와 지 자체의 공동 협력사업으로 발전하게 된다. 41) 지자체가 민간단체와 함께 1~2년 정도 대북지원 사업을 추진한 이후 40)1996년에 설립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광주전남,부산에 지역지부를 두고 있고, 2004년에 결성된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는 광주전남,부산,울산,인천,전북,대전, 충남,경남,서울에 각기 지부를 두고 있다. 41)여기에서 민간단체와 지자체의 공동 협력사업이라고 할 때 핵심적인 사항은 지원사업 의 재원을 공동으로 마련한다는 것이다.그 이후 지자체가 사업재원을 전액 조달하는 지원사업을 추진하게 되면,형식적으로는 공동 협력사업이라고 해도 내용적으로는 지 자체의 독자적인 사업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 66 -
에는,지자체와 북한 사이에 어느 정도 신뢰관계가 형성되면서 지자체 자 체 재원만으로 추진하는 사업을 기획하게 된다.그렇게 되면 지자체가 지 원사업의 발굴,협상,실행의 모든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게 되고,민 간단체는 대북협상,방북 및 지원물자 반출 등과 관련해서 실무적 지원 역할을 하게 된다.물론 민간단체가 해당 지원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있 으면 지자체로부터 지원사업의 실행 전반을 위탁받아 수행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 형성된 지자체와 민간단체와의 협력관계는 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으로 점차적으로 발전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3)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 제도 및 추진체계 정비 강원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남북교류협력 제도나 추진체계 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였다가,이 시기에 들어서면서 각 지자체들은 자신들의 여건에 맞게 제도와 추진체계를 갖추 기 시작하였다.이러한 추진체계로는 남북교류협력조례의 제정,남북협력 사업을 위한 기금 조성,남북교류협력 전담부서 설치 등이 있다. 우선 남북교류협력조례는 16개 광역 지자체 중에서는 충청남도를 제 외한 15개 광역 지자체가 제정하고 있다.그리고 기초 지자체는 서울(강 동구),경기도(고양시,김포시,파주시),강원도(고성군,철원군),충청북도 (제천시),전라북도(전주시),전라남도(나주시,목포시,영광군,완도군,장 성군,장흥군,함평군,화순군) 42),경상남도(양산시)등 7개 시ㆍ도의 17개 42)전라남도는 2003년에 시장,군수 회의에서 전남남북교류협의회 를 결성하기로 결정하 고,2003년 6월 화순군을 시작으로 각 시군에서 전남남북교류협의회 지원 조례 를 제 정하였다.이와 관련해서 전라남도 총 22개 시 군 중에서 광양시와 영암군을 제외한 20개 시군에서 관련 조례를 제정하였는데,나주시ㆍ영광군ㆍ완도군ㆍ장흥군,함평군은 처음부터 남북교류협력조례 를 제정하였고,나머지 시군은 전남남북교류협의회 지원 조례 를 제정하였다.그런데 전남남북교류협의회 지원 조례 를 제정한 시군 중 목포시 와 화순군은 이 조례를 폐지하고 대신에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설치 조례 를 제정하였 고,장성군은 기존 조례를 폐지하지 않은 채 별도로 남북교류협력조례 를 제정하였다. 여기에서는 전남남북교류협의회 지원 조례 를 지자체 자체의 사업을 위한 조례가 아 닌 특정한 단체를 지원하기 위한 조례로 보았기 때문에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조례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 67 -
시군구에서 조례를 제정하였다.광역 및 기초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조례 현황은 아래 <표 Ⅱ-7>과 같다. <표 Ⅱ-7>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조례 현황 광역 지자체 조례제정일 기초 지자체 조례제정일 강원도 43) 1998-09-09 1998-12-31 강원도 고성군 1999-12-31 경기도 2001-11-09 강원도 철원군 2001-03-21 광주광역시 2003-01-01 서울시 강동구 2003-08-06 전라남도 2003-06-05 전남 영광군 2003-07-24 서울특별시 2004-07-20 전남 장흥군 2003-11-03 인천광역시 2004-11-08 전남 함평군 2003-12-15 경상남도 2005-04-07 전남 완도군 2003-12-22 대구광역시 2005-08-10 경기도 파주시 2004-01-10 울산광역시 2006-04-06 경기도 고양시 2004-04-01 제주도 2007-05-09 전남 나주시 2004-04-20 부산광역시 2007-07-11 충북 제천시 2007-09-28 전라북도 2007-12-28 전북 전주시 2007-11-15 경상북도 2008-01-10 전남 화순군 2008-05-27 충청북도 2008-02-22 경기도 김포시 2008-06-09 대전광역시 2008-06-20 전남 장성군 2008-12-31 충청남도 없음 경남 양산시 2009-03-04 전남 목포시 2009-04-20 (2009년 9월 1일,각 지자체 법령정보 검색 결과) 남북교류협력 관련 조례를 처음 제정한 강원도는 남북교류협력위원회 및 남북교류협력기금 설치 조례를 각각 만들어서 2개의 조례를 갖고 있 43)강원도는 1998년 9월 9일에 남북강원도교류협력위원회조례 를 제정하였고,동년 12월 31일에는 강원도남북교류협력기금조례 를 각각 제정하였다. - 68 -
다.강원도와 비슷한 시기에 조례를 제정한 기초 지자체인 강원도 고성군 은 아예 기금 관련 조례만 제정하기도 하였다. 44) 반면에 같은 기초 지자 체인 강원도 철원군은 2001년 3월에 철원군남북교류협력기금 설치 및 운 용조례 를 제정하였는데,이 조례 안에 철원군남북교류협력위원회 를 설치 하는 규정을 두었다.비록 명칭은 기금 조례로 되어 있지만,내용적으로 강원도가 각각 제정한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설치 조례와 남북교류협력기금 설치 조례를 하나로 통합한 것이다.그리고 2001년 11월에 조례를 만든 경기도는 아예 명칭을 경기도남북교류협력의 증진에 관한 조례 로 하고, 그 안에 기금의 조성 및 운용,남북교류협력위원회 구성,실무기획단에 관 한 내용들을 모두 규정하였다.그 이후 경기도의 남북교류협력조례는 다 른 지자체들이 조례를 제정할 때 주요하게 참조하는 모델이 되어서,지자 체의 남북교류협력조례가 통일적 내용을 갖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지금까지 제정된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조례 중에서 특기할만한 것으 로는 서울시와 경기도의 조례가 있다.서울시의 경우에는 유일하게 서울 시남북교류협력재단 을 설치할 수 있도록 조례에 규정하고 있다.조례에 따르면 서울시남북교류협력재단 은 1 남북교류협력사업과 관련된 프로그 램의 개발 및 추진,2 시의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지원,3 국가ㆍ시 또는 자치구로부터 위탁받은 남북교류협력사업 등을 할 수 있다.아직 서울시 남북교류협력재단 이 설립된 것은 아니지만,나중에 서울시 차원의 남북교 류협력사업이 활발해지면 전문적인 집행기관으로 역할토록 하기 위해 규 정해 놓은 것이라고 하겠다.또한 경기도의 조례에는 도내에 소재하는 대 학교 또는 대학에 북한과의 교류협력과 관련된 학과의 설치를 장려할 수 있도록 했다.중장기적으로 남북교류협력의 전문 인력을 배출하겠다는 구 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그 외에 다른 지자체의 조례와 구별되는 것 으로 충청북도의 조례가 있는데,충청북도는 남북교류협력을 농업 분야로 만 한정해 놓고 있다. 45) 44)고성군 조례의 명칭은 고성군 남북교류진흥기금 설치 및 운용조례 로 2000년부터 3년 동안 매년 군비에서 1억 원씩을 출연,현재 원금과 이자를 합쳐 4억2,300만원이 적립 돼 있다.(고성군정신문 제157호,2008년 12월 간행지). 45)충청북도의 조례명은 충청북도남북농업교류협력에 관한 조례 로 되어 있고,그 안에 - 69 -
그리고 지자체들은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2008년 12월 31일 현재,광역 지자체 중에서 서울시,부산시,인천시,광주 시,경기도,강원도,충청북도,전라북도,전라남도,경상남도,제주도 등 총 11개 시도가 총 709억 원을 조성하여서,이 중 일부를 집행하고 남은 총액은 437.7억 원이다.기초 지자체의 경우에는 강원도의 고성군,철원군, 충청북도의 제천시 등 소수의 지자체만이 기금을 조성한 것으로 파악된 다.광역 지자체의 남북협력기금 조성 현황은 아래 <표 Ⅱ-8>과 같다. <표 Ⅱ-8> 광역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기금 조성 현황 조성액 기금 잔액 서울특별시 200억 원 178억원 46) 부산광역시 20억 원 20억 원 인천광역시 85억 원 27억 원 광주광역시 10억 원 10.7억 원 47) 경기도 227억 원 140억 원 강원도 110억 원 35억 원 충청북도 3억 원 - 전라북도 11억 원 11억 원 전라남도 5억 원 5억 원 경상남도 30억 원 3억 원 제주자치도 8억 원 8억 원 합계 709억 원 437.7억 원 (2008년 12월 31일 현재) 내용도 남북농업교류협력기금 및 남북농업교류협력위원회로 농업에 한정해 놓고 있 다. 46)서울시는 2004년과 2005년에 각기 100억 원씩 총 200억 원의 남북교류협력기금을 조 성하였다.이 기금은 집행 잔액에 이자 수입을 더해 2008년 12월 31일 현재 177억 7 천만 원이 남았다. 47)광주시는 총 10억 원을 조성하였는데 그 중 1.3억 원을 집행하였다.여기에 2억 원의 이자 수입이 있어서 조성액보다 많은 금액이 잔액으로 남게 되었다. - 70 -
이 표에서 알 수 있는 것은,첫째,광역 지자체들의 재정 능력에 따라 서 기금 조성액에 많은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서울시와 경기도의 경 우에는 200억 원대의 남북협력기금을 조성한 반면에,예산규모가 작은 시 도들은 10억 원을 채 넘지 못하고 있다. 48) 둘째로는 접경지역을 갖고 있 는 경기도,강원도,인천시가 모두 큰 금액의 남북협력기금을 조성하고 있 다는 것이다.강원도와 인천시의 예산규모는 광역 지자체 중 9위와 10위 에 해당되지만,남북협력기금 적립액은 세 번째와 네 번째로 많다.이것은 접경지역의 시도가 모두 남북관계 발전에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 을 말해준다.셋째,200억 원의 남북협력기금을 조성한 서울시의 경우 기 금 집행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이는 비슷한 규모의 기금을 적립한 경기도가 남북교류협력사업에 매우 많은 기금을 이미 집행한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이와 관련해서 생각해 볼 것이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사업 추진체계 이다.현재 경기도와 강원도만이 남북교류협력사업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있고,다른 지자체들은 전담부서 없이 주로 자치행정과나 대외협력을 담 당하는 부서 안에 담당자 1명만 두고 있다.그런데 이 1명의 담당자도 남 북교류협력사업 전담 직원은 아니며,이 담당자에게 남북교류협력사업은 여러 업무 중의 하나일 뿐인 것이다.그런데 전담부서가 설치된 경기도와 강원도는 기금 집행 실적도 많고 실제로 남북교류협력사업도 가장 활발한 곳들이다.남북교류협력사업이 활발하니까 담당 직원도 늘어나고 독립된 부서의 설치까지 이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그 반대로 전담 부서가 설치 되니까 다양한 남북교류협력사업이 활발히 추진되는 것이기도 하다.앞으 로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사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서울시를 비롯해서 재정규모가 큰 지자체부터 순차적으로 전담 부서를 설치해서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요구된다. 48)2008년 전국 시도별 예산규모는 경기도(24.4조원),서울시(21.0조원),경남(10.1조원), 경북(9.1조원),전남(8.5조원),충남(7.1조원),부산(7.1조원),전북(6.4조원),강원(6.0조 원),인천(5.8조원),충북(4.6조원),대구(4.4조원),광주(2.5조원),대전(2.5조원),제주(2.3 조원),울산(2.3조원)의 순이다. - 71 -
다.개발지원 사업으로의 전환기(2006년~현재) (1)긴급구호 차원의 인도적 지원의 한계 49) 대북 인도적 지원이 10주년이 되는 해인 2005년에 들어서면서 많은 변화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다.만성적인 식량부족 상황과 오랫동안 보건의 료 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으면서,그동안의 인도적 지원활동에 대 해서 심각한 문제 제기가 이뤄졌다.지금까지 진행된 대북 인도적 지원은 문제해결을 위한 근원적 처방이 아니라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사 실상 긴급구호와 동일한 의미인 인도적 지원은 긴급상황(Emergency)과 재난(Disaster)에 대한 구호활동이 중심이기 때문에 장기간 지속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직접적인 구호활동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게 되면,그 이후에는 개발지원으로 전환하게 되는 것이다.그런데 대북지원은 북핵문 제 등 정치 군사적인 문제로 인해 개발지원으로 전환되지 못한 채 인도적 지원이 장기화되는 기형적 모습을 띠게 되었다.결국 10년이라는 시간이 경과되면서 인도적 지원의 효과성에 대한 문제 제기 속에서 개발지원으로 의 전환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북한은 2004년 9월에 국제기구들에게 인도적 지원 사업을 개발 지원으로 전환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그동안 매년 진행되던 유엔의 합동 호소절차(ConsolidatedAppealsProcess,CAP) 50) 를 2005년부터 받지 않겠 다고 선언하였다.북한의 이러한 요청은 현실적 근거와 타당성이 있기 때 문에 국제사회도 진지하게 검토하고 충분히 대화를 할 수 있는 문제인데, 북한은 대화보다는 국제사회에 이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방식으로 진행 49)이종무, 북한 개발지원 연구의 현황과 과제, (미발표 원고)를 참조하였다. 50)유엔의 인도적 지원은 통상적으로 합동호소절차(CAP)를 통해 진행되며,북한은 1995 년부터 이 절차에 의해서 유엔으로부터 지원을 받아왔다.합동호소절차는 통상 1년을 주기로 진행되는데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1단계는 공동인도주의행동계획 (CHAP)의 수립이고,2단계는 기금 호소(AppealforFunds),3단계는 실행,공동 모니 터와 평가,공동인도주의행동계획의 수정,결과 보고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다.이종 무, 대북 인도지원 시스템의 발전 방안 (경남대 북한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05), p.20. - 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