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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 石 堂 論 叢 49집 기꾼이 많이 확인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의 유형이 가족 담, 도깨비담, 동물담, 지명유래담 등으로 한정되어 있음도 확인하였 다. 전국적인 광포성을 보이는 이인담이나 저승담, 지혜담 등이 많이 조사되지 않은 점도 특징이다. 아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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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習 說 ) 5), 원호설( 元 昊 說 ) 6) 등이 있다. 7) 이 가운데 임제설에 동의하는바, 상세한 논의는 황패강의 논의로 미루나 그의 논의에 논거로서 빠져 있는 부분을 보강하여 임제설에 대한 변증( 辨 證 )을 덧붙이고자 한다. 우선, 다음의 인용문을 보도록

과 위 가 오는 경우에는 앞말 받침을 대표음으로 바꾼 [다가페]와 [흐귀 에]가 올바른 발음이 [안자서], [할튼], [업쓰므로], [절믐] 풀이 자음으로 끝나는 말인 앉- 과 핥-, 없-, 젊- 에 각각 모음으로 시작하는 형식형태소인 -아서, -은, -으므로,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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伐)이라고 하였는데, 라자(羅字)는 나자(那字)로 쓰기도 하고 야자(耶字)로 쓰기도 한다. 또 서벌(徐伐)이라고도 한다. 세속에서 경자(京字)를 새겨 서벌(徐伐)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또 사라(斯羅)라고 하기도 하고, 또 사로(斯盧)라고 하기도 한다. 재위 기간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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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국어에서 관용표현 지도 방안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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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과 학기 술부 고 시 제 호 초 중등교육법 제23조 제2항에 의거하여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을 다음과 같이 고시합니다. 2011년 8월 9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 1.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은 별책 1 과 같습니다. 2.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별책

시험지 출제 양식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체험합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집시다. 5. 우리 옷 한복의 특징 자료 3 참고 남자와 여자가 입는 한복의 종류 가 달랐다는 것을 알려 준다. 85쪽 문제 8, 9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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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민락초신문4호


제1절 조선시대 이전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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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국회 1 월 중 제 개정 법령 대통령령 7 건 ( 제정 -, 개정 7, 폐지 -) 1.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 1 2.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 1 3. 경력단절여성등의 경제활동 촉진법 시행령 일부개정 2 4.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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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답 과 해 설 1 (1) 존중하고 배려하는 언어생활 주요 지문 한 번 더 본문 10~12쪽 [예시 답]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한 사 람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으며,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해쳐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0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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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금융분야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 1. 개인정보보호 관계 법령 개인정보 보호법 시행령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전자금융거래법 시행령 은행법 시행령 보험업법 시행령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자본시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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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 인물 강순( 康 純 1390(공양왕 2) 1468(예종 즉위년 ) 조선 초기의 명장.본관은 신천( 信 川 ).자는 태초( 太 初 ).시호는 장민( 莊 愍 ).보령현 지내리( 保 寧 縣 池 內 里,지금의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서 출생하였다.아버지는 통훈대부 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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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은하 1 우리 은하 위 : 나선형 옆 : 볼록한 원반형 태양은 은하핵으로부터 3만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 2 은하의 분류 규칙적인 모양의 유무 타원은하, 나선은하와 타원은하 나선팔의 유무 타원은하와 나선 은하 막대 모양 구조의 유무 정상나선은하와 막대나선은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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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금융업과 의료서비스업간의 제휴를 통한 신 규 사업이 더욱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각 단계별, 산업 별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충분한 지식의 수립이 필요하 다. 우선 금융산업의 특수성에 따라 과거 은행법 등 각 금융업법과 금융감독규정 외에도 제휴 또는 진출하 고자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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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 환경정책 형산강살리기 수중정화활동 지원 10,000,000원*90%<절감> 형산강살리기 환경정화 및 감시활동 5,000,000원*90%<절감> 9,000 4, 민간행사보조 9,000 10,000 1,000 자연보호기념식 및 백일장(사생,서예)대회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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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오스본을 중심으로 한 작은 정부, 시장 개혁정책을 밀고 나갔다. 이에 대응 하여 노동당은 보수당과 극명히 반대되는 정강 정책을 내세웠다. 영국의 정치 상황은 새누리당과 더불어 민주당, 국민의당이 서로 경제 민주화 와 무차별적 복지공약을 앞세우며 표를 구걸하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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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운 체계상의 특징 음운이란 언어를 구조적으로 분석할 때, 가장 작은 언어 단위이다. 즉 의미분화 를 가져오는 최소의 단위인데, 일반적으로 자음, 모음, 반모음 등의 분절음과 음장 (소리의 길이), 성조(소리의 높낮이) 등의 비분절음들이 있다. 금산방언에서는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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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스님의 이 달의 법문 성철 큰스님 기념관 불사를 회향하면서 20여 년 전 성철 큰스님 사리탑을 건립하려고 중국 석굴답사 연구팀을 따라 중국 불교성지를 탐방하였습 니다. 대동의 운강석굴, 용문석굴, 공의석굴, 맥적산석 굴, 대족석굴, 티벳 라싸의 포탈라궁과 주변의 큰

15강 판소리계 소설 심청전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106월 평가원] 1)심청이 수궁에 머물 적에 옥황상제의 명이니 거행이 오죽 하랴. 2) 사해 용왕이 다 각기 시녀를 보내어 아침저녁으로 문 안하고, 번갈아 당번을 서서 문안하고 호위하며, 금수능라 비

2 국어 영역(A 형). 다음 대화에서 석기 에게 해 줄 말로 적절한 것은? 세워 역도 꿈나무들을 체계적으로 키우는 일을 할 예정 입니다. 주석 : 석기야, 너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인다. 무슨 좋은 일 있니? 석기 : 응, 드디어 내일 어머니께서 스마트폰 사라고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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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 溪 讀 書 詩 에 나타난 樂 의 層 位 와 그 性 格 신 태 수 * 53) Ⅰ. 문제 제기 Ⅱ. 讀 書 詩 의 양상과 樂 의 의미 층위 Ⅲ 敬 의 작용과 樂 개념의 구도 1. 敬 과 靜 味 樂 의 관계 2. 樂 개념의 구도와 敬 의 기능 Ⅳ. 樂 개념이 讀 書 詩 에서 지니는 미학적 성격 1. 樂 의 심상 체계, 그 심미안과 능동성 2. 樂 의 審 美 構 造, 그 원심력과 구심력 Ⅴ. 결론 국문초록 독서시는 대개 靜 의 상태에서 味 의 상태로, 味 의 상태에서 樂 의 상태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靜 味 가 樂 의 상태를 지향하므로 독 서시가 樂 을 본령으로 한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樂 의 유형은 크게 보아 두 가지이다. 화자를 단독으로 드러내는 獨 樂 과 화자와 대상을 모두 드 러내는 同 樂 이 그것이다. 독락과 동락의 형성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건이 있다. 그것은 바 로 敬 이다. 敬 은 靜 味 樂 이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작용을 한다. 敬 의 작용 범위에는 未 發 已 發 의 개념도 놓여 있으므로, 靜 味 樂 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발 이발의 개념과 靜 味 樂 의 개 념이 敬 의 작용 권역에서 부딪히면서 이질성과 상동성을 보여준다. 독서시의 일차적인 몫은 화자이다. 敬 의 주체도 화자이고, 樂 의 주체 * 경일대학교 초빙교수 / 전자우편 : sandang@paran.com 37

제17호 (2010) 도 화자이기 때문이다. 화자는 以 物 觀 物 의 시각에서 심상의 능동성을 발 견한 다음, 여러 심상을 수평적 관계로 전환시키는 양상을 보여준다. 작가 인 퇴계가 화자를 설정했다는 점을 상기할 때, 화자가 보유한 일련의 심 미안은 곧 퇴계의 심미안이 된다. 퇴계의 심미안은 樂 의 審 美 構 造 에서 빛을 발한다. 樂 의 심미 구조는 독락이냐 동락이냐에 따라 다르다. 독락에서는 구심력만 나타나고 동락에 서는 원심력까지 나타난다. 동락의 독서시는 주목할 만하다. 원심력으로 道 우위의 입장을 흐트러뜨림으로써 내면의 動 靜 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 기 때문이다. 독서시의 의의는 여기에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주제어 -------------------------------------------------------------------------------- 독서시, 정( 靜 ), 미( 味 ), 락( 樂 ), 독락, 동락, 이물관물, 심미안, 구심력, 원심력 38

退 溪 讀 書 詩 에 나타난 樂 의 層 位 와 그 性 格 (신태수) Ⅰ. 문제 제기 退 溪 는 다면적인 성격을 지닌 학자이다. 1) 儒 學 者 이기도 하고, 讀 書 理 論 家 이기도 하고, 文 藝 家 이기도 하고, 政 治 家 이기도 하다. 퇴계학이 전개되 면서 퇴계의 다면적인 성격이 상당 부분 밝혀졌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채 남은 영역도 있다. 독서이론가로서의 면모가 그것이다. 퇴계는 여느 학 자 이상으로 독서이론의 제창에 심혈을 기울였다. 초년부터 身 病 을 얻을 정도로 독서를 많이 했고, 2) 독서 과정에서 획득한 바를 이론화하는 데 남 다른 열의를 보였다. 독서이론으로 사물의 탐색 원리와 심신의 수양 방법 을 제시하려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기에 간단없는 노력을 했으리라 본다. 독서이론의 제창을 일평생 과업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독서이론가로서 퇴 계의 면모를 정면에서 다루지 않을 수 없다. 독서이론가로서의 면모를 다루자면 詩 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退 溪 全 書 에 실린 2000여 수에는 독서와 관련된 시가 40여 수이고, 그런 시 중 에는 독서이론이 녹아든 경우가 적지 않다. 독서이론은 대체로 靜 이니 味 니 樂 이니 하는 개념을 통해 나타난다. 3) 퇴계가 靜 味 樂 을 동원 해서 독서의 원칙이나 방법을 술회하기 때문에, 독서이론이 이런 개념들 을 제재로 활용한다고 할 수 있다. 靜 味 樂 의 개념은 동시에 등장하기 도 하지만, 개별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개별적으로 등장한다고 해서 문 제라 할 수는 없다. 樂 만 보이고 靜 이나 味 가 보이지 않더라도, 樂 을 1) 이 방면에 대한 논저는 상당히 많다. 대표적인 논저를 들면 다음과 같다. 丁 淳 睦, 退 溪 評 傳, 지식산업사, 1987; 권오봉, 퇴계선생 일대기, 교육과학사, 2001; 윤사순, 퇴계 이황, 예문서원, 2002; 퇴계학연구원, 삶과 학문을 통 해 본 퇴계 그는 누구인가, 글익는들, 2006이 그것이다. 2) 退 溪 全 書 言 行 錄, 卷 1, 學 問 條 에 이런 내용이 있다. 퇴계는 젊은 시절 온종일 쉬지도 않고 잠자지도 않고 책을 읽다가 고질병을 얻었다고 한다. 3) 신연우, 도산잡영과 도산십이곡의 흥, 이황시의 깊이와 아름다움, 지식산 업사, 2006, 110~119쪽에서 樂 을 주목한 바 있다. 興 과 樂 의 관계를 퇴 계의 심미 의식과 관련시키고 있어서, 필자의 논의에 일정한 지침을 제공한다. 39

제17호 (2010) 통해 靜 이나 味 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특정 개념은 그 자체에서 그치지 않고 여타 개념을 환기시키는 양상을 보이므로, 오히려 퇴계시의 특징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타당하다. 독서이론을 형상화한 시를 讀 書 詩 라 할 때, 독서시란 결국 경전 읽기의 목적 자세 방법 그리고 경전의 사상 체계에 대한 유학적 관점을 담게 되어 있다. 독서시에서 주목을 요하는 개념은 樂 이다. 樂 은 자연에 대한 탐 색의 소산이요, 活 理 에 대한 체인의 소산이요, 삶에 대한 유유자적의 소산 이다. 탐색이나 체인이나 유유자적은 靜 味 를 통해 구현된다는 점에서, 靜 味 는 樂 으로 나아가는 과정이고 통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독서시는 樂 의 형상화를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삼는다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樂 이라고 해서 한결같지는 않다. 상황과 분위기 그리고 감성과 이 성의 계기에 따라 樂 개념의 진폭이 상당한 수준으로 변화하는 까닭이 다. 여기서 거칠게나마 樂 의 의미 층위 및 개념의 구도 변동을 상정해 볼 수가 있다. 퇴계시에 대한 논문은 수백 편에 이르지만 여태까지 퇴계 독서시에 대 한 연구는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독서시를 부분적으로 다룬 논 문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제재적인 차원에서 독서의 문제를 다루거나 독서시의 중핵을 비껴가 버리거나 하기가 일쑤이다. 독서시를 앞에 놓고 도 독서시라는 자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다고 생각된 다. 설사 독서시라는 점을 인식하더라도 방법론적인 자각이 철저하지 못 하다면 이 또한 결과가 달라지기는 어려울 터이다. 樂 에 초점을 맞추어 의미 층위, 개념적 구도, 주제 구현방식, 미학적 특징 등을 천착할 때, 독 서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으리라 본다. 필자는 퇴계학연구원에서 간행한 퇴계학역주총서를 자료로 삼아 이런 문제의식을 구체화해 보고자 한다. 40

退 溪 讀 書 詩 에 나타난 樂 의 層 位 와 그 性 格 (신태수) Ⅱ. 讀 書 詩 의 양상과 樂 의 의미 층위 퇴계의 독서시에는 유학적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경전을 어떻게 읽고 경전에서 무엇을 얻는지를 다루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을 고려하여, 퇴계의 독서시에 대한 요건을 설정해 볼 수가 있다. 요건은 최소한 두 가지이다. 첫째, 유학적 개념이 중심 내용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자연의 이치나 경전의 내용으로부터 받은 감동을 형상화 하다 보면 유학적 개념은 필수불가결하다. 둘째, 독서에 대해 언급하되 방법과 지향점을 겨냥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독서의 방법과 지향점 에 대한 내용이 없고서는 독서이론이라 하기 어렵다. 두 가지 요건 중에 서 한 가지만 갖춘 시도 있고, 두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춘 시도 있다. 이 둘을 어떻게 판정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두 가지의 요건을 모두 갖춘 시가 온전한 독서시이다. 가령, 첫째 번만 나타나고 둘째 번은 나타나지 않거나 둘째 번만 나타나고 첫째 번은 나타 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퇴계가 지향하는 독서시가 아니다. 첫째 번만 나타 나는 경우는 아예 독서시와는 거리가 멀다. 독서와 연관되지 않는 시를 독서시라고 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둘째 번만 나타나는 경우는 독서시이 기는 하되 온전한 독서시가 아니다. 독서에 대한 이러저러한 언급만 있는 정도이니, 제재적 차원의 의의를 넘어서기는 어렵다. 결국, 靜 味 樂 과 같은 개념들이 독서의 원칙이나 방법을 겨냥해야 유학적 내용을 담은 독 서시라 할 수 있다. 유학적 내용을 담은 독서시라야 독서에 대한 퇴계의 견해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유학적 내용을 담은 독서시가 바로 퇴계가 지 향하는 독서시, 즉 본격적인 독서시가 된다. 1) 蒼 蒼 竹 嶺 似 函 關 푸르른 죽령은 함곡관 같은데 作 吏 東 西 兩 載 間 동서의 관리 생활 이 년간 하였네. 忽 有 飛 鴻 傳 尺 素 홀연히 기러기가 편지를 전해와 遙 憐 孤 鶴 入 仙 山 신선 세계에 들어간 고상한 학을 그리게 됐네. 41

제17호 (2010) 碧 窓 味 道 偏 宜 靜 푸른 창 앞에서 고요한 마음으로 도를 맛보고 黃 卷 尋 人 最 在 閒 누런 책 속에서 한가롭게 옛사람 만나겠지. 若 使 箇 中 眞 得 樂 만약 그 중에서 참된 즐거움을 얻는다면 一 匡 應 不 羨 齊 桓 한 번 바로잡는 데 제환공 부럽지 않겠지. < 退 溪 全 書 外 集 卷 1, 詩. 次 韻 李 庇 遠 見 寄 > 2) 破 屋 春 寒 怯 透 颸 부서진 집 봄추위에 찬바람 들어올까 두려워 呼 兒 添 火 衛 形 羸 아이 불러 불 더 지펴 파리한 몸 보호하네. 抽 書 靜 讀 南 窓 裏 책 뽑아 남쪽 창문 아래에서 조용히 읽고 있으니. 有 味 難 名 獨 自 怡 그 맛 표현하기 어려우나 나 홀로 절로 흡족하네. < 退 溪 全 書 別 集 卷 1, 詩. 春 寒 > 이른바 본격적인 독서시에 해당되는 두 수를 인용해 보았다. 두 수 모 두 독서의 樂 을 형상화하고 있다. 1)에서는 靜 의 상태에서 책 속 성인 의 意 趣 를 맛보고 樂 에 이른다고 한다. 樂 이라도 보통 수준의 樂 은 아 니다. 춘추시대의 패자인 제환공의 영광이 부럽지 않을 정도라고 했으니, 樂 이 어느 정도로 대단한지를 가늠할 수 있다. 한편, 2)에서는 靜 의 상 태에서 책 속 진리를 맛보고 自 怡 의 경지에 이른다고 한다. 自 怡 의 경 지는 곧 심중의 즐거움을 가리키므로, 樂 과 동일한 語 義 를 지닌다고 해 도 무방하다. 이렇게 보니, 1)과 2)는 靜 이 어떤 과정을 거쳐 樂 에 도달 하는지를 잘 드러낸다. 靜 味 樂 의 과정이 바로 그것이다. 靜 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樂 임을 감안할 때, 독서에 대해 다루면서 樂 을 거론 한다면 이와 같은 樂 의 형성 과정을 상정해도 좋을 것 같다. 3) 萬 事 終 歸 一 指 薪 만사는 마침내 일지신으로 돌아가니 勞 生 何 用 敝 精 神 괴로운 인생 어이하여 정신을 괴롭히랴. 三 杯 飮 酒 猶 通 道 석 잔의 술을 마시면 도를 통할 수 있어도 五 斗 呑 葱 不 耐 辛 닷 말의 파 삼키면 매움을 견디지 못하리. 黃 卷 舊 聞 天 外 樂 옛날의 누런 책에서 하늘 밖 음악을 들었더니 42

退 溪 讀 書 詩 에 나타난 樂 의 層 位 와 그 性 格 (신태수) 白 雲 今 見 意 中 人 오늘은 백운암에서 마음에 둔 사람을 보았네. < 退 溪 全 書 外 集 卷 1, 詩. 贈 宗 粹 上 人 > 4) 玉 府 房 櫳 靜 이 별세계의 방 안이 고요하고 琅 函 竹 帛 多 책장에는 책들이 많다오. 得 官 那 比 此 벼슬을 한들 이에 비기랴? 佳 處 氣 淩 霞 아름다운 글귀를 보니 놀구름이 뭉게뭉게. < 退 溪 全 書 續 集 卷 1, 詩. 燈 花 > 3)~4)에서는 靜, 味, 樂 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 는 것은 아니다. 樂 에 해당되는 어구가 있으니, 이런 어구를 통해 추적이 가능하다. 3)의 聞 天 外 樂 과 4)의 氣 凌 霞 은 주목을 요한다. 이런 어구들 은 독서의 감동을 형용하는 보조관념이므로, 화자가 독서의 樂 을 생동감 있는 비유어로 표현했다고 할 만하다. 비유어로 대체했다고 해서 樂 개념 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왜 樂 을 비유어로 표현했는지는 간단히 해명될 수 있다. 사전적으로 樂 이라는 글자는 의미 범주가 어느 정도 고 정된 편이다. 기존의 고정된 의미 범주로서 크고 벅찬 즐거움을 나타내기 가 어렵다고 여긴다면, 비유어를 동원해서 의미 범주를 확장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된다. 확장된 의미라 하더라도 樂 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 는다는 점에서, 이런 비유어를 樂 의 범주에서 이해해도 무리가 없다. 樂 개념의 어구만 있을 경우, 樂 의 형성 과정을 짚어낼 수 있는지가 관심사이다. 독서시에 마련된 장치만 포착한다면 樂 의 형성 과정을 얼마 든지 짚어낼 수 있다. 3)~4)의 장치는 대조적 상황 설정이다. 4) 3)에서는 괴로운 인생 과 누런 책 이 대조적 상황을 나타내고, 4)에서는 벼슬 과 별세계의 방 안 이 대조적 상황을 나타낸다. 전자는 화자가 속한 세속의 4) 퇴계가 天 理 와 人 欲, 性 과 情, 理 와 氣, 未 發 과 已 發 등의 대립항을 詩 로 형상 화했기 때문에 대조적 심상은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유호진, 退 溪 詩 의 이미지 연구, 退 溪 學 報 116, 退 溪 學 硏 究 院, 2003에서 이런 점을 주목하고 퇴계시의 대조적 심상을 천착했다. 43

제17호 (2010) 삶을, 후자는 화자가 나아가고자 하는 독서의 삶을 나타낸다. 화자는 전자 쪽을 버리고, 후자 쪽을 택한다. 그 결과, 靜 의 상태가 조성된다. 靜 이 곧 樂 으로 이어지지는 않으니, 중간에 무엇인가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중간에는 味 가 놓인다. 이렇게 보니, 대조적 상황 설정이 靜 을 포착하게 하고 味 를 설정하게 한다. 대조적 상황 설정이야말로 樂 의 형 성 과정을 짚어내도록 하는 장치 구실을 충실히 수행한다고 할 만하다. 5) 窓 外 東 風 料 峭 寒 창밖에 동녘바람 봄기운이 차가울 제 窓 前 流 水 碧 潺 潺 창밖의 시냇물은 잔잔하고 푸르도다. 但 知 至 樂 存 書 室 알괘라. 내 즐거움. 서재에 있고 보니 不 用 高 門 送 菜 盤 높은 집 저 채반이야 보내오길 기다리랴. < 退 溪 全 書 卷 2, 詩. 正 月 二 日 立 春 壬 子 > 6) 茅 茨 移 構 澗 巖 中 바위와 시내 사이에 띠 이엉 집을 옮겨 얽으니 正 値 巖 花 發 亂 紅 바위에 피는 꽃이 어지러이 붉었도다. 古 往 今 來 時 已 晩 예로부터 지금까지 세월 흘러가서 때 이미 늦었지만 朝 耕 夜 讀 樂 無 窮 아침에 밭 갈고 밤에 책 읽으니 즐거움 끝이 없네. < 退 溪 全 書 卷 1, 詩. 移 草 屋 於 退 西 名 曰 寒 棲 庵 > 대조적 상황 설정만이 장치 구실을 하지는 않는다. 樂 개념의 어구만 있는 독서시에서는 자연물도 중요한 장치 구실을 한다. 6) 7)에서 보듯, 자 연물도 여럿이다. 6)에서는 바람 시냇물이고, 7)에서는 바위 시내 띠 꽃이다. 이런 자연물은 산 속에 있고, 세속의 인공물과는 판이하다. 세속의 인공물 을 상정한다면 산 속의 자연물과 대조적 위치에 놓이지만, 굳이 대조적 위치를 염두에 두지 않아도 무방하다. 자연물 그 자체로 樂 의 형성 과정 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시냇물이 잔잔한 곳이나 바위와 시내 사이에 거처 한다고 했으니, 화자는 분명히 靜 의 상태라 할 만하다. 靜 과 樂 사이 에 거리가 있으므로, 그 중간에 味 를 설정해서 樂 의 형성 과정을 결구 할 수 있다. 이상에서 보듯, 자연물 또한 중요한 장치이다. 그런 장치만 44

退 溪 讀 書 詩 에 나타난 樂 의 層 位 와 그 性 格 (신태수) 포착한다면 숨겨진 樂 의 형성 과정도 들추어낼 수 있다는 입론이 가능해 진다. 논의의 결과, 독서시의 양상은 두 가지이다. 화자를 단독으로 드러내는 1)~2)와 화자와 대상을 모두 드러내는 3)~6)이 그것이다. 1)~2)와 3)~6) 에서 나타나는 화자는 판이하다. 1)~2)에서는 화자가 주변 환경보다 자기 자신을 표출하는 데 치중하고, 3)~6)에서는 화자가 자기 자신보다 주변 환경을 표출하는 데 치중한다. 1)의 不 羨 齊 桓 과 2)의 自 怡 에서 전자가 확인되고, 3)의 聞 天 外 樂 와 4)의 氣 凌 霞 에서 후자가 확인된다. 5)와 6) 에서는 주변 환경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어구가 보이지 않으나, 3)~4)와 동궤인 점은 분명하다. 자연물을 통해 화자 자신을 들여다보기 때문에 이 런 추측이 가능하다. 1)~2)와 3)~6)의 화자가 이처럼 판이하다면, 화자의 선택적 행위를 상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즉, 자기 자신을 표출하려는 화 자는 전자 쪽을, 주변 환경을 표출하려는 화자는 후자 쪽을 선택했으리라 본다. 화자의 가치판단이 형식까지 좌우할 정도이니, 독서시에는 두 유형의 話 者 群 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표출하고자 하는 화자군과 주변 환경을 표출하고자 하는 화자군이 그것이다. 전자 쪽은 시선의 범위 가 좁고, 후자 쪽은 시선의 범위가 넓다. 시선의 범위가 이처럼 다르니, 樂 의 의미도 당연히 다르다. 1)~2)에서는 獨 樂 에 대해 다룬다. 주변 환 경은 고정되고 화자 혼자서만 일방적으로 樂 의 경지에 빠져 든다는 점이 그 근거이다. 한편, 3)~6에서는 同 樂 에 대해 다룬다. 화자는 주변 환경으 로 나아가고 주변 환경은 화자에게로 나아옴으로써 화자와 주변 환경이 함께 樂 의 경지로 빠져 든다는 점이 그 근거이다. 독서시에서는 이치, 자 연, 생활을 주 제재로 활용하므로, 이에 의거하여 獨 樂 과 同 樂 의 의미를 확인해 보기로 한다. 제재에 부합하는 어구를 찾되 어구 앞에 작품 번호 를 붙인다. 45

제17호 (2010) 독락 이치 1) 味 道, 2) 有 味 자연 1) 碧 窓 味 道, 2) 靜 讀 南 窓 裏 생활 1) 不 羨 齊 桓, 2) 獨 自 怡, 동락 3) 一 指 薪 3) 聞 天 外 樂, 4) 氣 凌 霞, 6) 巖 花 發 亂 紅 6) 朝 耕 夜 讀 도표에서 보듯, 독락과 동락은 모든 측면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이치의 측면에서는 화자가 인식의 주체로서 일관한다는 쪽과 인식의 주체이기도 하고 객체이기도 하다는 쪽으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독락에서 후자는 동 락에서 나타나므로, 평면적/ 입체적으로 정리될 수 있다. 자연의 측면에서 는 화자가 홀로 樂 을 느낀다는 쪽과 사물과 함께 樂 을 느낀다는 쪽으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독락에서 후자는 동락에서 나타나므로, 개인적/ 전체 적으로 정리될 수 있다. 생활의 측면에서는 화자가 자기 본위로 삶을 영 위한다는 쪽과 천지만물과 더불어 삶을 영위한다는 쪽으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독락에서 후자는 동락에서 나타나므로, 개별적/ 우주적으로 정리될 수 있다. 결국, 독락과 동락은 극과 극이다. 독락은 평면적 개인적 개별적 인 데 반해 동락은 입체적 전체적 우주적이어서, 이런 판단이 가능하다. 극과 극의 의미층을 의미 층위의 분화라는 각도에서 파악할 수 있다. 하나이거나 하나일 수 있거나 한 樂 이 독락과 동락으로 갈라졌기 때문이 다. 의미 층위가 생기면서 두 의미층 간에는 필연적으로 高 低 等 級 이 생 겨난다. 동락의 의미층이 높고 독락의 의미층은 낮다. 물론, 독락의 의미 층이 樂 의 최저층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樂 이라고 하면, 世 俗 的 樂 까 지 포함한다. 육체적인 쾌락이나 물질적인 쾌락이나 유희적 유흥적인 쾌락 따위가 그 좋은 예이다. 세속적 樂 에 비추어 볼 때, 독락과 동락은 모두 理 想 的 樂 의 위치에 선다. 결국, 독서시에서는 최저층에 있는 세속적 樂 은 배제해 버리고, 이상적 樂 으로서의 독락과 동락만을 주목한 셈이 된 다. 의미 층위를 분화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무엇이 高 級 品 格 인지를 가려 놓았다는 점에서, 독서시야말로 고차원적인 품격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46

退 溪 讀 書 詩 에 나타난 樂 의 層 位 와 그 性 格 (신태수) Ⅲ. 敬 의 작용과 樂 개념의 구도 독락과 동락의 형성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건이 있다. 그것은 바 로 敬 이다. 敬 은 靜 味 樂 이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작용을 한다. 화자가 첫째 단계인 靜 의 상태를 갖출 때, 둘째 단계인 味 로 나아 갈 수 있고 味 를 바탕으로 하여 셋째 단계인 樂 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과정은 확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私 意 가 발생하고, 그런 사의가 뒤엉켜서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5) 즉, 靜 에서 味 로 나아가는 데 서도 사의가 끼어들고, 味 에서 樂 으로 나아가는 데서도 사의가 끼어들 어 樂 으로의 이행을 방해한다. 敬 은 사의를 물리쳐서 樂 의 형성 과정을 지켜준다. 敬 이 어떻게 樂 의 형성 과정을 지켜주는가? 樂 의 의미 층위 를 고려하면서, 이 점을 해명해 보기로 한다. 1. 敬 과 靜 味 樂 의 관계 靜 味 樂 은 樂 의 체계화 과정이다. 靜 은 주변 환경의 상태 이고 味 는 마음의 상태이고 樂 도 마음의 상태인데, 이런 일련의 상태들 이 敬 을 갖추면서 靜 味 樂 의 과정을 형성한다. 敬 은 마치 자동 차의 기름과 같다. 기름이 있어야 자동차가 앞으로 나아가듯, 敬 이 갖추어 져야 靜 과 味 와 樂 이 하나의 대열을 이루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대열을 이루는 데만 敬 이 긴요한 것이 아니다. 敬 은 靜 味 의 과정에 도 긴요하고, 味 樂 의 과정에도 긴요하다. 이런 입론의 근거는 朱 子 로부터 구할 수 있다. 주자에 의하면, 敬 은 온갖 이치를 구비한 善 의 근본 이다. 6) 敬 이 樂 의 형성 과정을 관장해서 화자로 하여금 온갖 이치로써 5) 퇴계는 私 意 를 몹시 경계한다. 義 理 之 行 에 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退 溪 全 傳 卷 1, 書, 答 鄭 子 中. 入 於 私 意 反 害 於 義 理 之 實 참조. 6) 朱 子 語 類 卷 12, 學 6, 持 守. 敬 則 萬 理 具 在 와 心 經 附 註 卷 3. 便 有 敬 以 主 乎 中 則 事 至 物 來 善 端 昭 著 所 以 察 之 者 益 精 明 耳 를 연결시키면 이런 내용이 나타난다. 주자의 敬 思 想 에 대해서는 최무석 손정호, 주희의 경 사상에 대 한 一 연구, 敎 育 哲 學 제19집, 한국교육철학회, 2001에서 전반적으로 다루 47

제17호 (2010) 선을 실현하게 한다는 언급이 여기서 가능해진다. 논점을 이렇게 설정할 때, 未 發 已 發 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미발 이 발 또한 敬 과 관련성이 깊기 때문이다. 7) 靜 味 樂 에 敬 이 작용하듯, 미 발 이발에도 敬 이 작용한다. 靜 味 樂 과 미발 이발이 무슨 공통점을 지 녔기에 敬 이 두 쪽 모두에 작용할 수 있는가? 공통점으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특정 상태로의 지향성을 나타낸다. 전자에서는 독서시의 화자가 樂 개념의 체계를 지향하고, 후자에서는 靜 과 動, 性 과 情 의 통관 을 지향한다. 둘째,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행한다. 전자는 靜 味 樂 의 과정을 보이고, 후자는 미발 이발의 과정을 보인다. 이렇게 보니, 전자와 후자는 상당히 유사한 편이다. 이 정도로 유사하다면, 상동 성이 아주 크다고 할 수 있다. 敬 을 통해 미발 이발과 靜 味 樂 이 지니 는 상동성의 근거를 포착해 보기로 한다. 정자와 주자에 의하면, 敬 은 마음의 미발과 이발에 모두 관여한다. 미발 은 의식이 발생하기 이전이면서 지각은 어둡지 않은 마음의 상태이고 8) 이발은 의식이 발생해서 지각이 개시되는 마음의 상태라는 점을 감안할 때, 敬 은 의식이 발생하기 이전과 이후를 모두 관장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미발이 겉으로 나타날 때 이발이 되므로, 미발이 中 을 유지해야 이발도 和 의 상태가 될 수 있다. 이발이 和 의 상태가 되기를 바란다면, 먼저 미발 었다. 7) 미발 이발과 敬 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들이 논의한 바 있다. 대표적인 논저로 4편을 손꼽을 만하다. 1 문석윤, 退 溪 의 未 發 論, 退 溪 學 報 116, 退 溪 學 硏 究 院, 2003, 2 이승환, 退 溪 의 未 發 說 釐 淸, 退 溪 學 報 114, 退 溪 學 硏 究 院, 2004, 3 이승환, 朱 子 수양론에서 未 發 의 의미, 退 溪 學 報 119, 退 溪 學 硏 究 院, 2006, 4 이봉규, 성리학에서 미발의 철학적 문제와 17세기 기호학파의 견해, 한국사상사학 13, 한국사상사학회, 1997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 1의 논자와 2 3의 논자는 의견이 서로 맞선다. 맞서는 양상을 검토 하면 무엇이 미발 이발 론의 쟁점인지를 알 수 있다. 8) 朱 子 大 全 卷 75, 記 論 性 答 稿 後 에서 未 發 을 思 慮 未 萌 과 知 覺 不 昧 로 설명하 고 있다. 미발의 전반적 성격에 대해서는 이봉규, 앞의 논문, 7~8쪽에서 잘 밝혀 놓았기에 참조할 만하다. 48

退 溪 讀 書 詩 에 나타난 樂 의 層 位 와 그 性 格 (신태수) 을 中 의 상태로 가다듬어야 한다. 9) 문제는 미발을 관찰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퇴계가 南 時 甫 에게 언급했듯, 미발이란 지극히 조용한 가운데 움 직임의 단서만 있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10) 이런 상태에서는 氣 가 用 事 하 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기는 한다. 氣 와 관련된 단서가 미발의 상태를 교란시키지 않도록 하려면, 敬 이 마음의 主 宰 者 가 되어 꾸준한 활동을 전 개해야 한다. 1) 一 寸 膠 無 千 丈 渾 한 치 갖풀 천 길 흐림 없애서 玉 淵 秋 月 湛 寒 源 옥 같은 연못 가을달에 근원 맑고 차네. 端 居 日 夕 如 臨 履 평상시 거처하며 밤낮 물 앞에 선듯 살얼음 밟듯 하니 箇 是 存 存 道 義 門 이것 바로 본성 보존하고 보존하는 도의의 문이라네. < 退 溪 全 書 卷 5, 詩. 居 敬 齋 > 2) 守 身 貴 無 撓 몸 지킴 흔들리지 않음 귀하게 여기고 養 心 從 未 發 마음 기름은 미발을 따른다네. 苟 非 靜 爲 本 실로 고요함 근본되지 않으면 動 若 車 無 軏 움직임 마치 수레에 끌채 없는 것 같네. < 退 溪 全 書 卷 5. 詩. 次 韻 奇 明 彦 贈 金 而 精, 二 首 / 守 靜 > 1)~2)는 敬 이 미발을 어떻게 유지시키는지를 보여준다. 1)에서는 無 千 丈 渾 玉 淵 秋 月 湛 寒 源 의 작용을 한다고 한다. 敬 그 자체를 나타내는 寸 膠 와 敬 의 속성을 나타내는 日 夕 如 臨 履 로 인해 敬 의 작용이 잘 부각된 다. 정리하면, 敬 은 갖풀이 황하의 흐림을 제거하듯 경계하고 조심하는 자 세로 마음의 혼탁한 기미를 제거한다. 한편, 2)에서는 靜 에 의해 敬 이 작 9) 退 溪 全 書 卷 24, 書, 答 鄭 子 中 別 紙. 朱 子 之 論 中 和 亦 曰 未 發 之 前 不 可 尋 覓 已 發 之 際 不 容 安 排 惟 平 日 莊 敬 涵 養 之 功 至 而 無 人 欲 之 僞 以 亂 之 則 其 未 發 也 鏡 明 水 止 而 其 發 也 無 不 中 節 矣 참조. 10) 退 溪 全 書 卷 42, 記, 靜 齋 記. 至 靜 之 中 自 有 動 之 端 焉 이에 대해서는 이승 환, 退 溪 의 未 發 說 釐 淸, 退 溪 學 報 114, 退 溪 學 硏 究 院, 2004, 95쪽에서 자세하게 다루어 놓았다. 49

제17호 (2010) 용할 수 있다는 관점을 취한다. 敬 의 작용에 대한 언급이 없어도, 짐작하 기 어렵지 않다. 靜 을 확보해야 미발이 지속된다고 한 점이 그 단서이다. 미발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敬 이 작용해야 한다고 볼 때, 敬 이 마음으로 하여금 戒 愼 恐 懼 하게 함으로써 미발의 상태을 지속시켰다고 해석할 수 있 다. 1)과 2)를 종합할 때, 敬 은 미발을 지키는 주역이다. 마음을 철저히 주재해서 미발이 지속되도록 하니, 敬 은 미발에 있어서 필수 요건이 아닐 수 없다. 3) 古 人 何 事 惕 淵 氷 고인은 무슨 일로 연못이나 얼음에 간듯 두려워했던가? 從 善 如 登 惡 似 崩 선좇기는 산오르기 같고 악좇기는 흙 무너지기와 같네. 美 質 尙 難 無 悔 吝 아름다운 바탕을 가졌더라도 후회없이 살기 어렵지만 吾 今 安 得 不 兢 兢 내 이제 어이하여 조심하고 조심하지 않겠는가? < 退 溪 全 書 卷 3, 詩. 東 齋 感 事 十 絶 / 其 八 > 4) 主 敬 還 須 集 義 功 경을 주로 함은 또한 모름지기 의를 모으는 공부이니 非 忘 非 助 漸 融 通 잊지도 조장하지도 않으면 점차로 통달하게 되리. 恰 臻 太 極 濂 溪 妙 꼭 태극도설 염계의 오묘한 글에 도달한다면 始 信 千 年 此 樂 同 비로소 믿겠네. 천년에 이 즐거움 똑같음을. < 退 溪 全 書 卷 3, 詩. 陶 山 雜 詠 十 八 絶 七 言 / 玩 樂 齋 > 3)~4)는 敬 이 이발을 어떻게 유지시키는지를 보여준다. 두 작품 모두 敬 과 이발의 관계를 다루므로, 구별하지 않고 살펴도 무방할 듯하다. 마음 이 외물에 접촉하여 발동하는 순간 즉 이발의 순간에는 善 도 나타날 수 있고 不 善 도 나타날 수 있다. 이 때, 敬 을 갖춘다면 마음을 채찍질해서 善 으로 나아갈 수가 있게 된다. 3)에서 慽 淵 冰 하고 兢 兢 한다거나 4)에서 須 集 義 功 하여 非 忘 非 助 하다거나 한 표현은 敬 을 갖추고 善 을 지향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善 에 대한 지향은 곧 敬 의 완비를 전제로 한다. 敬 이 때 로는 常 惺 惺 으로서 때로는 其 心 收 斂 不 容 一 物 로서 人 欲 을 제거하고 過 不 及 의 상태에 머무르지 않도록 해야 가능하다. 3)과 4)를 종합할 때, 敬 은 50

退 溪 讀 書 詩 에 나타난 樂 의 層 位 와 그 性 格 (신태수) 이발을 中 節 의 상태로 이끄는 주역이다. 情 을 성찰하고 다스려서 미발시 의 性 이 구현될 수 있도록 하니, 敬 은 이발에 있어서 필수 요건이 아닐 수 없다. 敬 이 미발과 이발에 관여하는 양상을 보니, 敬 은 마음을 조절하고 다스 리는 확실한 수양 방법이다. 1)~2)에서는 敬 이 마음의 주재자가 되어 미 발이 지속되도록 하고, 3)~4)에서는 敬 이 情 을 성찰해서 미발시의 性 이 구현되도록 한다. 敬 이 樂 의 형성 과정을 관장한다는 점을 상기할 때, 마 음의 문제가 걸린 자리에는 敬 의 중요성이 대두한다고 할 수 있다. 靜 味 樂 과 미발 이발이 유사성을 넘어 상동성을 지닌다는 언급이 여기서 가능하다. 상동성의 근거는 靜 味 樂 의 체계 내에 갖추어져 있다. 靜 은 독서 이전에 조성된 주변 환경의 상태로서 그 자체가 지각과 지향성은 지니지 못하고, 味 樂 은 독서 이후에 조성된 마음의 상태로서 지각과 지 향성을 모두 지닌다. 지각과 지향성의 토대를 근거로 할 때, 靜 은 미발과 유사한 상태이고, 味 樂 은 이발과 유사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상동성을 들어서, 미발 이발을 달리 표현한 개념이 靜 味 樂 이라고 해 도 좋은가? 그렇지는 않다. 독서시에서 靜 味 樂 이라는 개념이 나타난 다면, 미발 이발로 설명할 수 없는 흐름이 독서시에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 다. 여기서 상이성이 거론될 수 있다. 두 가지 정도를 지적해 보기로 한 다. 한 가지는, 미발 이발과는 달리, 마음의 상태가 단계적으로 뻗어나간다 는 점이다. 독서자가 교훈이나 감동을 얻고자 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다. 다른 한 가지는, 미발 이발과는 달리, 11) 마음의 상태가 뒷단계로 이행할수록 긍정적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독서의 궁극적인 목적이 樂 에 놓여져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다. 상이성은 곧 독서시와 미발 이발 의 부조화를 나타낸다. 결국, 靜 味 樂 으로 설명할 수 있는 樂 의 형성 과정을 미발 이발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의미가 된다. 11) 도덕적으로 볼 때 미발은 純 善 湛 一 하고 이발은 可 善 可 惡 하므로, 미발 이 발의 과정에서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51

제17호 (2010) 미발 이발로 전혀 설명할 수 없는 사안이 있다. 敬 이 제한적으로 작용하 는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독락과 동락이라는 樂 의 양태에서 그런 점을 찾아볼 수 있다. 樂 의 양태로서의 독락과 동락은 모두 이상적 樂 의 갈래 로서 화자가 선택해야 할 대상이다. 敬 은 독락이나 동락에 관여할 뿐이고, 어느 한 쪽을 일방적으로 지목할 수는 없다. 화자가 어느 한 쪽을 선택할 때 敬 은 선택된 바를 따라 樂 의 의미를 강화시켜 줄 뿐이다. 즉, 화자가 독락을 선택하면 평면적 개인적 개별적인 의미층을 생산하도록 추동하고, 화자가 동락을 선택하면 입체적 전체적 우주적인 의미층을 생산하도록 추 동한다. 의미 층위의 차원에서 볼 때, 敬 이 무소불위의 권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 善 을 지향하는 자의 마음을 붙들고 樂 의 형성 과정을 관장하면 서도 樂 의 양태를 선택하는 데는 유보적이어서, 이렇게 볼 수 있다. 2. 樂 개념의 구도와 敬 의 기능 주자에 의거할 때, 敬 은 收 斂 작용을 한다. 12) 수렴 이란 外 物 에 의해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는 행위 이니, 수렴이야말로 마음의 경각 상태인 敬 을 유지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13) 敬 은 외물로부터 이입되는 부 정적인 영향을 차단하므로, 수렴은 그런 상태를 생성 유지시키는 기능을 하는 셈이다. 물론, 수렴이라고 해서 모두 일정한 범위를 지니는 것은 아 니다. 수렴 범위가 협소한 경우도 있고, 수렴 범위가 넓은 경우도 있다. 수렴 범위가 일정하지 않다면 敬 의 내용도 일정하지 않다는 의미가 된다. 수렴 범위가 어떤 편차를 보이며, 이에 따라 敬 의 내용이 어떤 차이를 보 이는가? 12) 敬 에 대해 주자는 朱 子 語 類 卷 17에서 其 心 收 斂 不 容 一 物 라 했고, 朱 子 語 類 卷 12에서는 始 學 工 夫 須 是 靜 坐 靜 坐 則 本 原 定 雖 不 免 逐 物 及 收 歸 來 也 有 箇 安 頓 處 라고 했다. 모두 수렴 작용을 강조했다고 보면 된다. 13) 유학적 수렴의 개념 및 방법에 대해서는 鄭 羽 洛, 南 冥 文 學 의 意 味 表 出 樣 相 과 現 實 主 義 的 性 格, 慶 北 大 博 士 論 文, 1997, 70~94쪽에서 잘 다루어 놓았 기에 참조할 만하다. 52

退 溪 讀 書 詩 에 나타난 樂 의 層 位 와 그 性 格 (신태수) 1) 多 病 無 能 白 髮 翁 병 많고 능력 없네. 흰 머리 늙은이. 一 身 長 伴 蠹 書 蟲 한몸 오래도록 함께 했네. 책속의 좀벌레와. 蠹 魚 食 字 那 知 味 좀벌레 글자 파먹은들 어찌 그 맛 알리요? 天 賦 群 書 樂 在 中 하늘이 뭇 경서 내리셨으니 즐거움 그 속에 있다네. < 退 溪 全 書 卷 3, 詩. 東 齋 感 事, 十 絶 / 其 六 > 2) 讀 書 人 說 遊 山 似 글 읽기와 산 놀이가 비슷하다고 하지만 今 見 遊 山 似 讀 書 지금 보니 산 놀이가 글 읽기와 비슷하다네. 工 力 盡 時 元 自 下 공력이 다할 때는 의례히 내려오고. 淺 深 得 處 摠 由 渠 얕고 깊음 얻는 곳 모두 이에 있더구나. 坐 看 雲 起 因 知 妙 열 구름 앉아 보고 기묘함을 알았고 行 到 源 頭 始 覺 初 근원지에 이르러선 비롯됨을 깨달았네. 絶 頂 高 尋 勉 公 等 마루턱 찾을 것을 그대들에 기대하니 老 衰 中 輟 愧 深 余 늙어서 전진 못하는 이 몸 내 깊이 부끄러워라. < 退 溪 全 書 卷 3, 詩. 讀 書 如 遊 山 > 1)~2)에서는 수렴 방법이 수렴 범위를 결정하는 양상을 보인다. 1)에서 는 수렴 방법이 경직되어 있다. 화자는 자신이 多 病 無 能 해서 蠹 書 蟲 과 함께 할 뿐이라고 한다. 수렴 방법이 蠹 書 蟲 과 함께 하는 정도이므로 수 렴 범위는 經 書 를 벗어날 수가 없다. 경서 이외에는 경계선이 그어져 있 으니, 東 齋 주변의 그 많은 자연물에도 마음이 갈 수 없다. 한편, 2)에서 는 수렴 방법이 유연하다. 화자는 遊 山 을 하듯 독서로써 道 의 근원머리를 체인한다고 한다. 독서의 과정이 한발 한발 나아가는 유산과 같다고 하며 道 의 수렴을 유산의 기쁨과 관련시켰으니, 수렴 방법이 꽤나 신축적이다. 1)과 2)에서 수렴 방법이 수렴 범위를 결정한다면, 敬 의 내용도 당연히 차이를 보이게 마련이다. 수렴 방법이 경직된 1)의 경우에는 敬 의 작용이 제한적이고, 수렴 방법이 유연한 2)의 경우에는 敬 의 작용이 거의 무제한 적이다. 수렴 방법에 따라 敬 의 작용이 달라진다고 해서, 敬 이 온전하게 수렴 53

제17호 (2010) 방법의 통제 아래 놓인다고 할 수는 없다. 敬 이 때로는 수렴 방법의 제약 을 돌파하기도 한다. 수렴 방법을 돌파한다고 한다면, 수렴 방법의 주체인 화자가 시각의 범위를 확장시킨다는 의미가 된다. 14) 그런 사례가 독락의 경우에서 적지 않게 나타난다. 독락 가운데는 시각의 범위나 수렴 방법에 있어서 임의성이 강한 경우가 많다. 세속 공간이 충격을 가해 올 때 화자 가 독락을 성급하게 선택해서 시각의 범위를 좁혀 버렸다가, 그 이후에 화자가 수렴 방법을 확장하고 시각의 범위를 넓히고자 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이렇게 보면 화자가 어느 정도로 변화를 모색하느냐에 따라 敬 의 작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추리가 가능하다. 독락의 구도 내에 서 화자의 변화 모색과 敬 의 작용이 어떤 관계를 갖는지를 살피기로 한다. 3) 宿 霧 初 收 曉 日 鮮 묵은 안개 처음 걷고 새벽해가 밝아올 제 寒 溪 幽 壑 共 蒼 然 차가운 시내 깊은 골이 모두 푸를 뿐이어라. 病 中 軀 體 纔 溫 攝 병 깊은 이 몸일사 따사롭게 다스리고 窮 裏 田 園 半 廢 捐 궁곤한 채 밭과 동산은 반일랑 버렸노라. 滿 壁 圖 書 常 獨 樂 도서가 벽에 가득 홀로서 즐거웁고 一 庭 烟 草 爲 誰 憐 온 뜰에 내 낀 풀은 누구를 위해 사랑할꼬? 秋 來 又 約 同 襟 子 이제 가을철이 드니 나의 벗과 약속하여 明 月 淸 風 上 釣 船 맑은 바람 밝은 달에 낚싯대에 오르련다. < 退 溪 全 書 卷 2, 詩. 立 秋 日 溪 堂 書 事 三 首 / 其 一 > 4) 黃 卷 中 間 對 聖 賢 누런 책권 그 속에서 옛 성현 마주 하고서 虛 明 一 室 坐 超 然 텅빈 밝은 방에 초연히 앉아 있네. 梅 窓 又 見 春 消 息 매화 핀 창밖에 또 다시 봄소식이 이르니 莫 向 瑤 琴 嘆 絶 絃 요금을 비껴 안고 줄 끊어졌다 슬퍼 마오. 14) 退 溪 全 書 卷 7. 箚, 大 學 經. 蓋 此 心 旣 立 由 是 格 物 致 知 以 盡 事 物 之 理 則 所 謂 尊 德 性 而 道 問 學 由 是 誠 意 正 心 以 修 其 身 則 所 謂 先 立 其 大 者 而 小 者 不 能 奪 由 是 齊 家 治 國 以 及 乎 天 下 則 所 謂 修 己 以 安 百 姓 篤 恭 而 天 下 平 是 皆 未 始 一 日 而 離 乎 敬 也 然 則 敬 之 一 字 豈 非 聖 學 始 終 之 要 也 哉 에서 보듯, 敬 이 확고할 경우에는 어떤 心 事 든 변화시킬 수 있다. 54

退 溪 讀 書 詩 에 나타난 樂 의 層 位 와 그 性 格 (신태수) < 退 溪 全 書 卷 2, 詩. 正 月 二 日 立 春 > 3)~4)에서는 독락의 구도를 갖추고 있다. 3)에서 常 獨 樂 이라 하고 4) 에서 虛 明 一 室 坐 超 然 이라 하며 나홀로 를 지향한다는 점이 그 근거이다. 독락의 구도에는 변화의 기미가 있다. 3)에서는 화자가 뜰을 내다보며 풀 과의 연관성을 모색하고 4)에서는 화자가 매화를 보며 도학의 전통에 대 한 소회를 밝히는 데서 나홀로 에 멈추지 않으려 한다. 나홀로 를 추구하 던 화자가 수렴 범위를 넓히면서 독락의 구도에서 빠져나오려는 노력으로 이해된다. 이런 현상은 수렴 방법의 변화에서 기인한다. 외물을 수렴의 대 상으로 보아 시각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였으니, 수렴 방법이 한결 유연하 고 넓어졌다. 수렴 방법이 敬 의 작용 범위와 연관된다는 점을 상기할 때, 수렴 방법의 변화가 수렴 범위를 넓히고 敬 을 활발발하게 만든다고 볼 수 있다. 활발발해진 敬 이 독락의 구도를 변화시켰다는 언급이 이로써 가능 해진다. 화자가 왜 이렇게 수렴 방법의 변화를 모색하는가? 화자의 처지를 들여 다보면서 이 점을 해명해 보기로 한다. 3)의 화자는 병중이어서 운신의 폭이 넓지 못하다. 궁핍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궁핍 때문에 운신하지 못할 리는 없다. 아마도 몸이 불편해서 독락을 선택했으리라 본다. 물론, 몸이 아프다고 해서 마음까지 아픈 것은 아니다. 병 때문에 독락을 선택하기는 했어도, 그리 흔쾌하지 않은 까닭은 심중에서 온전히 용납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3)의 結 句 가 그런 점을 시사한다. 한편, 4)에서는 독락을 선택 한 연유가 드러나지 않으나,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집 안에서 매화를 본 다고 했으니, 3)과 같은 연유로 독락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3)과 4) 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心 과 身 이 일치한다면 독락의 구도가 변하기 어 렵겠지만, 心 이 身 과 다르다면 독락의 구도가 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그것이다. 敬 이 뒤흔드는 독락 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가 관건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독락이되 독락이 아니다. 독락의 상태에 있기 때문에 여전히 독락이 55

제17호 (2010) 지만, 독락의 상태를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에 온전한 독락은 아니다. 온전 하지 않은 독락, 즉 敬 이 뒤흔드는 독락 은 그 자체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독락의 구도가 닫혀 있지 않고 열려 있어서, 동락과 친연성이 강한 까닭 이다. 독락의 화자가 천지만물에 대한 지향성을 지니기만 한다면, 敬 은 동 락의 구도 속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그만큼 많아진다고 할 수 있다. 동락 가운데는 前 身 이 敬 이 뒤흔드는 독락 이었을 경우가 적지 않으리라는 지 적이 여기서 가능해진다. 이렇게 보니, 敬 이 樂 에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 다. 心 과 身 이 일치하지 않는 화자에게로 파고들어 독락을 동락으로 이어 줌으로써, 독서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만드는 구실을 한다고 할 수 있다. Ⅳ. 樂 개념이 讀 書 詩 에서 지니는 미학적 성격 독서시의 일차적인 몫은 화자이다. 敬 을 지니는 주체도 화자이고, 樂 의 형성 과정을 이끄는 주체도 화자이다. 바꾸어 말하면, 화자가 심미안을 지니지 않았다면 敬 도 온전히 갖출 수 없고, 樂 의 형성 과정에도 온전히 관여할 수 없다. 화자의 심미안은 동태적이다. 성리학적 이념이 전반적인 분위기를 지배하므로 정태적일 듯하나, 의외로 동태적인 측면이 있다. 심 미안이 동태적이라면, 심미안의 결정체인 樂 도 당연히 동태적이게 마련 이다. 樂 의 心 像 體 系 와 審 美 構 造 에서 실제로 動 의 機 微 가 감지되고 있 어서, 樂 의 동태적 성격은 뚜렷한 근거를 갖추었다고 할 만하다. 화자는 動 의 기미를 어떻게 포착하고 형상화하는가? 樂 이 심미안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는 결국 美 學 的 次 元 의 과제가 된다. 1. 樂 의 심상 체계, 그 심미안과 능동성 현대적 의미에서 볼 때, 독서시는 美 學 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미학이론 에 입각해서 美 의 본질이나 구조를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 그 근거이다. 56

退 溪 讀 書 詩 에 나타난 樂 의 層 位 와 그 性 格 (신태수) 독서시가 미학적 대상과 거리가 먼가 하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미학은 이론에 의해서 구현되기도 하지만, 이론에 의지하지 않고 구현되기도 하 는 법이다. 15) 독서시는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미학 이론이 등장하기 훨 씬 이전에 독서시에서는 이미 미학적 관점을 보유하고 있었다. 대상의 美 를 心 像 으로 승화시키고 그 심상을 체계화해서 樂 으로 규정했으니, 미의 탐구 작업은 미학이론이 아닌 미학적 관점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할 만하 다. 독서시의 미학적 성격은 독서시 그 자체에서 찾아야 마땅하다. 西 洋 式 의 미학이론을 의식하지 말고 樂 그 자체의 심상 체계를 구체적으로 끄 집어낼 필요가 있다. 樂 의 심상 체계를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天 人 合 一 과 物 我 一 體 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해야 한다. 거개 논자들은 작품에서 자연과 인간 그리고 천리가 나타날 때 천인합일이나 물아일체가 주제라 하는 경향이 있다. 이 런 논법이라면 천인합일이나 물아일체를 樂 의 심상 체계라 할 법도 하 다. 물론, 옳은 지적이 아니다. 단순한 미학적 범주를 심상 체계로 오인하 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심상 체계는 심상의 유기적이고 조직적인 통 일체를 가리킨다. 질료로부터 심상을 추출해내고 추출한 심상을 적정 비 율로 배합할 때 유기적이고 조직적인 통일체가 나타날 수 있다. 질료가 독서시의 제재라는 점을 감안하면, 樂 의 심상 체계는 결국 천인합일이나 물아일체의 범주 안에 들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미학적 범주를 심상 체 계로 오인하지 말고, 그 범주 안으로 파고들어가서 심상의 실체부터 검출 해야 마땅하다. 1) 雖 云 萬 物 備 吾 身 비록 만물의 이치가 내 몸에 갖추어졌다고 하나 15) 미학을 미의 본질과 구조를 해명하는 연구 라고 정의할 때, 이런 연구는 전 문가의 이론적 지원을 받지 않고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劉 勰, 文 心 雕 龍, 崔 信 浩 譯, 玄 岩 社, 1975, 9쪽에서 언급했듯이, 자연이 이미 성대한 文 彩 와 音 樂 性 을 갖추었으므로, 그런 문채와 음악성을 드러내기만 해도 미학의 조건 을 갖춘다고 할 수 있다. 57

제17호 (2010) 老 去 常 憂 虛 作 人 늙어가며 올바른 사람 못된 것이 항상 근심이네. 賴 有 前 言 明 此 理 옛사람이 이치를 밝게 말해 줌에 힘입었으니 豈 無 窮 巷 樂 餘 春 어찌 궁벽한 곳이라고 남은 봄의 즐거움이 없겠는가? 靑 雲 舊 友 多 疑 舊 청운의 꿈을 이룬 옛 벗은 옛말을 의심하는 이 많으나 白 面 新 知 少 信 新 백면서생으로 새로 안 이는 새로이 믿는 자 적어라. 問 子 隱 功 深 策 勵 그대의 숨은 공부가 깊은 계책에 힘쓴다니 忽 如 對 榻 講 論 親 홀연히 마주 대하고 강론하는 듯하구려. < 退 溪 全 書 外 集 卷 1, 詩. 金 惇 敍 和 余 所 和 琴 夾 之 遊 山 諸 作 就 其 中 復 二 首 / 其 一 > 2) 無 酒 苦 無 悰 술이 없을 젠 딱하게도 기쁨이 없어 有 酒 斯 飮 之 술이 있으면 곧장 마시는도다. 得 閒 方 得 樂 한가함을 얻어야만 즐거움이 찾아드니 爲 樂 當 及 時 즐거움을 누리려면 때 놓쳐선 아니 되리. 薰 風 鼓 萬 物 훈훈한 저 바람이 만물을 고무시키니 亨 嘉 今 若 玆 오늘에 이르러서 이같이 아름답네. 物 與 我 同 樂 나와 만물 간격 없이 함께 즐겨함이니 貧 病 復 何 疑 가난코 병들다손 무엇을 의심하리요? 豈 不 知 彼 榮 저들의 영화로움 내 어찌 모르랴만 虛 名 難 久 持 필경 헛된 이름이란 오래 지닐 수 없으렸다. < 退 溪 全 書 卷 1, 詩. 和 陶 集 飮 酒 二 十 首 / 其 一 > 1)은 천인합일에 대해, 2)는 물아일체에 대해 다루고 있다. 1)에서는 경 서의 이치로 만물과 화자의 틈새를 메우고, 그 결과 樂 에 이르렀다고 한 다. 이치, 만물, 화자는 원래 그대로가 아니다. 우주 운행의 이치이고 이치 를 내장한 만물이고 흥겹게 독서하는 화자이니, 심상으로서의 이치, 만물, 화자일 따름이다. 한편, 2)에서는 바람, 만물, 화자가 어우러져서 동락을 이룬다고 한다. 바람, 만물, 화자도 원래 그대로가 아니다. 만물을 고무시 키는 바람이고 바람을 맞아들이는 만물이고 자연물과 함께 하는 화자이니, 심상으로서의 이치, 만물, 화자일 따름이다. 16) 1)~2)에 각기 나타난 삼자 58

退 溪 讀 書 詩 에 나타난 樂 의 層 位 와 그 性 格 (신태수) 는 모두 심상이다. 화자의 심미안에 의해 걸러진 심상이기에 원래 그대로 의 대상은 아니다. 원래 대상의 특성 중에서 공통 요소만을 뽑아내고 隔 意 를 소거해 버렸기 때문에, 이런 심상이 나타날 수 있었다. 심상의 실체를 확인하고 보니, 樂 의 심상 체계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 낸다. 樂 의 심상 체계가 보유한 원리가 질료의 특성을 소거해서 수평적 관계 조성하기 에 있으니, 樂 의 심상 체계는 그런 원리를 통해 나타난 심 상의 통일체가 된다. 이치와 만물과 화자가 격의 없이 어울려서 조합해낸 심상의 통일체가 1)에서 나타난 樂 의 심상 체계이고, 바람과 만물과 화 자가 격의 없이 어울려서 조합해낸 심상의 통일체가 2)에서 나타난 樂 의 심상 체계이다. 심상 체계가 보유한 원리에 따라 심상 체계가 생겨난다면, 심상 체계가 보유한 원리는 어디서 생겨나는지가 관심사이다. 物 보다 我 가 우위에 서는 以 我 觀 物 의 시각 17) 은 분명히 아니다. 1))과 2)의 삼자가 각기 대등한 위치에 놓인다는 점에서, 物 과 我 의 구별이 없는 以 物 觀 物 의 시각이 樂 의 심상 체계가 보유한 원리를 배태한다고 할 수 있다. 이물관물의 시각이 어떻게 그런 원리를 배태하는지가 관심사이다. 우선, 이물관물의 시각과 樂 의 심상 체계의 관계를 가다듬어 볼 필요가 있다. 이물관물의 시각은 미학의 형식에 해당되고 樂 의 심상 체계는 미학의 내 용에 해당된다. 형식과 내용이 다르다면 양자의 관계는 깨어지고 만다. 1) 과 2)의 심상으로부터 그런 조짐이 나타난다. 질료로부터 심상을 포착했 다고는 하지만, 심상 간에는 우열의 차이가 존재한다. 심상으로서의 화자 가 관조 체인의 주역이라 볼 때, 심상으로서의 화자는 높고 심상으로서의 16) 화자가 바람 만물과 대등하므로, 동락의 주체는 화자만이 아니다. 바람도 동 락의 주체이고, 만물도 동락의 주체이다. 我 가 物 이고 物 이 我 이니, 物 의 理 와 我 의 理 가 만나서 모두를 동락의 주체로 만들고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화자가 책을 읽지 않아도 읽은 효과를 얻는다. 物 의 理 가 經 書 의 理 와 같기 때문이다. 觀 書 深 喩 在 方 塘 ( 退 溪 全 書 卷 3, 詩. 十 八 絶 七 言 / 天 光 雲 影 臺 或 只 稱 天 雲 臺 이라고 한 언급도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17) 李 敏 弘, 性 理 學 的 外 物 認 識 과 形 象 思 惟, 朝 鮮 朝 詩 歌 의 理 念 과 美 意 識, 成 均 館 大 出 版 部, 1993, 106~112쪽 참조. 59

제17호 (2010) 대상은 낮다. 우열 관계가 생기면 내용에 이상이 생기니, 樂 의 심상 체계 를 가능하게 하는 원리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물관물의 시각은 수평적 관계를 조성하는 방법으로 원리를 설정한다. 1)에서 이치 만물이 2)에서는 이치 만물이 화자와 교섭하는 데서 이런 추리가 가능하다. 삼자가 교섭한다고 볼 때, 樂 의 심상 체계가 보유한 원리는 심상의 능 동성을 전제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심상이 능동성을 지닌다고 해야 교섭 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심상이 생물이기에 능동성을 지닌다고 할지, 生 의 理 를 지니기에 능동성을 지닌다고 할지가 관건이다. 독서시는 후자이다. 즉, 天 地 가 生 生 不 窮 의 뜻을 수행하므로 만물의 심상은 活 物 이 고, 18) 태극이 至 神 之 用 을 부여하므로 理 의 심상은 活 理 이다. 19) 이렇게 해 서 심상의 능동성을 인정하면, 대상의 본질을 活 潑 潑 로 인식하는 계기를 확보한다. 20) 가령, 매화가 사물에게 가서 이치를 깨닫는다거나 21) 솔개와 물고기가 천리를 구현한다 22) 거나 하는 식의 인식이 나타나게 된다. 이물 관물의 시각이 심상의 능동성을 끌어들여 심상 체계를 가능하게 하는 원 리를 조성했으니, 심상 체계의 원리는 심상의 능동성을 떠나서 존립할 수 가 없다. 18) 활물에 대한 견해는 退 溪 全 書 自 省 錄, 答 鄭 子 中 의 天 地 之 心 只 是 箇 生 凡 物 皆 是 生 方 有 此 物 人 物 所 以 生 生 不 窮 者 以 其 生 也 ( 性 理 大 典 卷 35) 와 退 溪 全 書 續 集, 卷 8의 天 地 之 間 有 理 有 氣 纔 有 理 便 有 氣 眹 焉 纔 有 氣 便 有 理 從 焉 理 爲 氣 之 帥 氣 爲 理 之 卒 以 遂 天 地 之 功 所 謂 理 者 四 德 是 也 所 謂 氣 者 五 行 是 也 에 나타난다. 19) 활리에 대한 견해는 退 溪 全 書 卷 18, 書, 答 奇 明 彦 의 此 理 本 然 之 體 也 其 隨 寓 發 見 而 無 不 到 者 此 理 至 神 之 用 也 向 也 但 有 見 於 本 體 之 無 爲 而 不 知 妙 用 之 能 顯 行 殆 若 認 理 爲 死 物 其 去 道 不 亦 遠 甚 矣 乎 에 나타난다. 20) 김원준, 陶 山 雜 詠 을 통해 본 隱 逸 과 天 理 구현, 우리말글 45, 우리말글학 회, 2009, 19쪽에서 활발발 이 천리의 妙 用 이라고 하며, 이 활발발 을 통해 형이하의 세계를 형이상의 세계로 인식할 수 있다고 한다. 覺 天 理 의 心 眼 을 강조할 때 나올 만한 언급이라 생각된다. 21) 退 溪 全 書 卷 1, 詩. 湖 堂 梅 花 暮 春 始 開 用 東 坡 韻 二 首 / 其 二 의 神 淸 骨 凜 物 自 悟 참조. 22) 退 溪 全 書 言 行 錄, 卷 4, 論 理 氣. 鳶 飛 魚 躍 狀 化 育 流 行 上 下 昭 著 莫 非 此 理 之 用 참조. 60

退 溪 讀 書 詩 에 나타난 樂 의 層 位 와 그 性 格 (신태수) 樂 의 심상 체계 전제 --- 심상의 능동성 원리 --- 수평적 관계의 조성 양상 --- 원리를 통해 나타난 각각의 통일체 樂 의 심상 체계는 수평적 관계의 조성 원리에 입각한 통일체로서, 심 상의 능동성을 전제로 한다. 만약, 화자의 심미안이 작용하지 않았더라면 樂 의 심상 체계는 나타날 수 없다. 화자가 심미안으로 심상의 능동성을 발견한 다음, 여러 심상을 수평적 관계로 전환시킴으로써 하나의 통일체 를 결구할 수 있었다. 통일체에 이르기까지 심미안이 한번도 멈추지 않는 다. 심상 포착 심상의 능동성 발견 심상 체계의 원리 설정 심상 체계의 양상 표출 이라는 과정이 맞물려 전개되고 있으니, 심미안이 시종 일관 樂 의 심상 체계를 향해 치닫는다고 할 수 있다. 각 과정마다 심미 안1, 심미안2, 심미안3, 심미안4라는 이름을 붙여도 무방하리라 본다. 작 가인 퇴계가 화자를 설정했다는 점을 상기할 때, 화자가 보유한 일련의 심미안은 곧 퇴계의 심미안이 된다. 퇴계의 심미안이 얼마나 치밀하고 활 발한지를 알 수 있다. 2. 樂 의 審 美 構 造, 그 원심력과 구심력 퇴계 미학은 화자의 심미안을 통해 표출된다. 樂 특히 동락의 심미 구 조에서 그런 점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동락이라 하면 調 和 融 會 만을 떠올 리기 쉬우나, 葛 藤 相 馳 도 빼놓을 수 없다. 화자가 세속 공간과 충돌하다 이상 공간 23) 에 진입하기 때문에 갈등 상치의 비중이 적지 않다. 조화 융회가 갈등 상치를 전제로 하므로, 갈등 상치의 비중은 조화 융회의 비중 만큼이나 크다. 갈등 상치 없이 樂 의 심미 구조가 형성될 수 없다는 점에 23) 세속 공간과는 정반대의 위상을 지녔기에 이상 공간이라 지칭해 봄직하다. 최진덕, 退 溪 理 氣 心 性 論 의 脫 道 德 형이상학적 해석, 退 溪 學 報 112. 退 溪 學 硏 究 院, 2002, 38쪽에서는 무위자연의 고향 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61

제17호 (2010) 서, 갈등 상치를 중시하는 화자의 심미안을 읽어낼 수 있다. 퇴계가 화자 를 창출했다고 볼 때, 심미안의 근원은 퇴계의 삶이라 해도 무방하다. 조 화 융회를 화합 의식으로 갈등 상치를 거부 의식으로 지칭하고, 두 의식 을 통해 퇴계 미학의 특징을 조망해 보기로 한다. 아아! 나는 불행히도 늦게 먼 외딴 시골에서 태어나 순박하고 고루하기 만 하여 들은 것이 없으나 산과 숲 사이에서 스스로 돌아보니, 일찍이 즐 길 만한 것이 있음을 알았다. 중년에 망녕되어 세상에 나가 속세의 바람 과 흙먼지를 전신에 뒤집어쓰고 객관이나 전전하다가 자칫하면 스스로 돌 아오기도 전에 죽을 뻔하였다. 그 후 나이가 들어 늙을수록 병은 심하여 지고 행하는 일마다 더욱 실패를 겪으니, 세상은 나를 버리지 않았지만 나는 세상에 버림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비로소 울타리와 새장에 서 몸이 벗어나 분수에 맞게 농촌의 밭구렁에 몸을 던지니, 전에 이른바 산림의 즐거움이 기약하지 않아도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니 내 이제 쌓인 병을 삭이고 깊은 근심을 틔우며 늘그막에 편안히 쉬려면 이 곳을 버리고서 장차 어디서 구하겠는가? 24) 陶 山 雜 詠 幷 記 의 뒷부분이다. 이 글에는 퇴계의 목소리가 여과 없이 드 러나고 있으므로, 나 를 퇴계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퇴계인 나 는 속세 의 客 館 을 전전하는 者 이다. 속세의 객관 이 벼슬살이를 의미하므로, 나 가 명리를 얻기 위해 세상에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속세 는 결코 나 에 게 우호적이지가 않다. 바람과 흙먼지 를 뒤집어씌우기도 하고, 따돌리고 홀대하기도 한다. 속세 의 이런 횡포에 대해 나 는 나름대로 대응을 한다. 망녕 되게 세속 공간을 선택했다고 자책하며 은거생활을 모색한다는 점이 24) 退 溪 全 書 卷 3, 詩. 陶 山 雜 詠 幷 記. 嗚 呼 余 之 不 幸 晩 生 遐 裔 樸 陋 無 聞 而 顧 於 山 林 之 間 夙 知 有 可 樂 也 中 年 妄 出 世 路 風 埃 顚 倒 逆 旅 推 遷 幾 不 及 自 返 而 死 也 其 後 年 益 老 病 益 深 行 益 躓 則 世 不 我 棄 而 我 不 得 不 棄 於 世 乃 始 脫 身 樊 籠 投 分 農 畝 而 向 之 所 謂 山 林 之 樂 者 不 期 而 當 我 之 前 矣 然 則 余 乃 今 所 以 消 積 病 豁 幽 憂 而 晏 然 於 窮 老 之 域 者 舍 是 將 何 求 矣. 62

退 溪 讀 書 詩 에 나타난 樂 의 層 位 와 그 性 格 (신태수) 그것이다. 갈등을 도피로 해결하기 때문에 소극적인 대응에 불과하지만, 이런 소극적인 대응에도 거부 의식은 분명히 묻어 있다. 퇴계의 삶에 거 부 의식이 잠복해 있다면, 독서시의 화자도 결코 예외일 수가 없다. 이런 정황을 염두에 두고 동락에 대해 다룬 독서시를 먼저 주목해 보기로 한다. 1) 城 郭 囂 塵 匪 雅 栖 성 안은 시끄럽고 번화해 선비 살 곳이 못 되어 鉢 山 松 麓 古 東 西 발산 소나무 기슭에 동서를 차지했네. 風 號 一 院 濤 聲 殷 바람이 정원을 호령하니 물결소리가 크게 들리고 栢 悅 千 霜 翠 色 迷 잣나무가 서리 내린 걸 기뻐하니 푸른빛도 흐릿해졌네. 歌 頌 魯 邦 聞 作 廟 경서 읽으니 묘당에서 연주하는 음악이 들리는 듯하고 盤 桓 陶 徑 見 携 藜 오솔길 산책하니 도잠이 지팡이 끌고 거니는 듯하네. 澗 中 山 上 皆 天 賦 시냇가나 산 위나 모두 하늘이 주신 것이니 百 尺 何 妨 徑 寸 齊 백척도 한 치와 마찬가지라 어찌 꺼리끼랴. < 退 溪 全 書 續 集 卷 1, 詩. 次 韻 晩 翠 堂 > 1)의 화자는 애초에 성 안 의 여건에 대해 거부 의식이 심각하다. 25) 시끄럽고 번화하다고 하며, 발산 소나무 기슭 으로 옮겨간다. 성 안 은 세속 공간을 가리키고 발산 소나무 기슭 은 이상 공간을 가리키므로, 세 속 공간을 떠나 이상 공간으로 진입한 셈이 된다. 이상 공간에서는 음악 소리가 들린다고 하며, 화합 의식을 드러낸다. 26) 거부 의식은 애초에 형 성되었지만, 화합 의식이 형성된 뒤에도 소멸되지 않는다. 화자는 독서 공 간을 아주 조용한 분위기로 형용했다. 바람이 호령해서 물결소리가 크게 25) 세속 공간에 대한 반감은 여타 시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서울은 흰 옷을 검 게 할 뿐 아니라 예전의 나 자신과 지금의 나 자신을 다르게 하는 곳이라고 하는 시와 서울은 티끌만 난무하는 곳이라고 하는 시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 다. 해당 시구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退 溪 全 書 卷 5, 續 內 集, 詩. 豈 無 京 洛 或 相 逢 素 衣 化 緇 嗟 非 昔 ( 用 大 成 早 春 見 梅 韻 ); 退 溪 全 書 卷 5, 續 內 集, 詩. 東 歸 恨 未 携 君 去 京 洛 塵 中 好 艷 藏 ( 漢 城 寓 舍 盆 梅 贈 答 ); 退 溪 全 書 卷 2, 詩. 一 第 平 生 幾 誤 身 素 衣 今 復 化 緇 塵 ( 寄 月 川 趙 上 舍 士 敬 ) 26) 음악 은 융회 현상을 형용하는 미적 심상이니, 자연물에 대한 화자의 화합 의식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63

제17호 (2010) 들린다고 하면서도 관조하기에 좋다고 하니, 세속 공간에 대한 거부 의식 이 여전히 남아 있다. 두 의식은 판이하나, 충돌하지 않는다. 거부 의식은 외부 세계를 향하며 遠 心 力 을 형성하고, 화합 의식은 내부 세계를 향하며 求 心 力 을 형성하므로, 방향이 서로 다르다. 방향이 다르니, 충돌이 없다고 할 수 있다. 2) 因 病 投 閒 客 병들었다 핑계하고 한가한 몸이 되어 緣 深 絶 俗 居 깊은 곳 찾아와서 속사 끊고 살으련다. 欲 知 何 所 樂 즐거움 어느 것을, 알려고 할 양이면 白 首 抱 經 書 경서를 껴안은 채 백수로 늙으려네. < 退 溪 全 書 卷 2, 詩. 溪 堂 偶 興 十 絶 / 其 九 > 3) 愁 緖 如 抽 獨 繭 長 끊임없는 수심은 실을 뽑아내는 듯이 길어 不 堪 嬴 瘦 似 東 陽 옷 감당도 못할 만큼 동양태수처럼 수척해라. 吟 詩 可 滌 幽 憂 疾 시를 읊으면 깊은 근심병을 씻을 수 있어 口 角 瀾 飜 白 三 十 입으로 백삼십 편을 흥겹게 읽었네. < 退 溪 全 書 外 集 卷 1, 詩. 辛 亥 早 春 趙 秀 才 士 敬 訪 余 於 退 溪 語 及 具 上 舍 景 瑞 金 秀 才 秀 卿 所 和 權 景 受 六 十 絶 幷 景 瑞 五 律 余 懇 欲 見 之 士 敬 歸 卽 寄 示 因 次 韻 遣 懷 > 2)~3)은 독락에 대해 다룬 독서시이다. 2)의 화자는 벼슬살이에서 물러 나 깊은 곳 에서 경서를 읽는다고 한다. 속사 를 끊겠다고 하는 데서 심 리적 갈등을 겪었을 법하나, 깊은 곳 과 조화 융회 상태에 진입하면서 심 리적 갈등을 해소한 듯하다. 갈등이 없으니 상치도 없다. 오로지 독서에만 매달리므로, 구심력만 나타나고 원심력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할 만하다. 3)의 화자는 2)의 화자와 대동소이하다. 근심이 많아서 東 陽 太 守 인 沈 約 처럼 야위었다고 한 데서 심리적 갈등이 2)의 화자만큼 심각했으리라 여 겨진다. 심리적 갈등이 이상 공간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으나, 화자는 독서 에만 전념한다. 거부 의식이 표출되지 않으니, 樂 의 심미 구조에는 구심 64

退 溪 讀 書 詩 에 나타난 樂 의 層 位 와 그 性 格 (신태수) 력만 나타나고 원심력은 나타나지 않는다. 요컨대, 2) 3)에서 원심력은 나 타나지 않는다. 갈등은 약하고 상치는 없으므로 구심력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樂 의 심미 구조를 근거로 할 때, 동락의 1)과 독락의 2) 3)은 성격이 매우 다르다. 1)의 경우에는 구심력과 원심력이 모두 나타나는 데 반해, 2) 3)의 경우에는 구심력만 나타난다. 이런 현상은 세속 공간에 대한 거부 의식의 유무 때문이다. 거부 의식이 1)에는 있고 2) 3)에는 없으니 원심력 이 나타나거나 나타나지 않거나 한다. 원심력이 이런 정황을 보인다면, 樂 의 심미 구조도 일정할 수가 없다. 원심력이 나타나는 경우는 구심력 과 긴장 관계를 형성하므로 樂 의 심미 구조가 역동적 확장적 성격을 띠 고, 원심력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는 긴장 관계가 형성하지 못하므로 樂 의 심미 구조가 정태적 제한적 성격을 띤다. 원심력이 나타나는 경우는 언 제나 역동적 확장적이고 원심력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는 언제나 정태적 제 한적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동락은 일정한 편이지만, 독락은 유동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4) 書 傳 千 古 心 옛 성인의 글에는 천고 마음 전했으니 讀 書 知 不 易 글을 읽는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았노라. 卷 中 對 聖 賢 누런 책권 가운데서 성현을 대했으니 所 言 皆 吾 事 허다한 그 말씀이 모두 나의 행할 일일세. < 退 溪 全 書 卷 5, 續 內 集, 金 愼 仲 挹 淸 亭 十 二 詠 / 其 五, 讀 書 > 5) 夜 枕 浪 浪 徹 雨 聲 밤들어 베개 위에 빗소리 낭랑터니 朝 霞 明 滅 弄 陰 晴 아침 놀이 뵐락 말락 흐렸다 개이어라. 無 氈 坐 上 仍 無 客 방석 없는 자리 위에 이내 손님 안 오시고 有 蘀 園 中 亦 有 英 잎 떨어진 동산 속에 꽃이 가금 보이어라. 宿 鳥 自 營 飛 散 鳥 숙조는 절로 오가며 일찌감치 흩어지고 家 偅 雖 懶 掃 涓 淸 집의 종놈은 비록 게으르나 꽤 맑게 쓰네. 讀 契 挑 意 忘 安 飽 책읽기 뜻에 꼭 맞아 편안하고 배부른 것 잊으니. 65

제17호 (2010) 相 勵 何 人 共 日 征 누구를 격려하여 함께 나아가리요? < 退 溪 全 書 卷 2, 詩. 寓 舍 西 軒 早 起 卽 事 > 4)~5)는 독락의 범주에 드는 독서시이다. 27) 이 독서시는 3.2장에서 거 론한 < 立 秋 日 溪 堂 書 事 三 首 / 其 一 > < 正 月 二 日 立 春 >과 같이 樂 의 심미 구조가 열려 있다. 열린 부분은 4)의 所 言 皆 吾 事 와 5)의 相 勵 何 人 共 日 征 이라는 구절이다. 이 두 구절은 화자가 새롭게 나아갈 방향을 암시하면 서, 독락이라는 틀 속에 갇히지 않으려 한다. 이런 현상은 화자의 시각이 외부 세계로 향한다는 증좌이다. 만약 외부 세계로까지 시각을 확장하기 만 한다면, 樂 의 심미 구조의 한 축인 원심력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이 렇게 보니, 4)~5)에서 나타나는 樂 의 심미 구조는 상당히 동태적이다. 위상은 독락의 상태이면서 지향점은 동락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樂 의 심 미 구조가 靜 中 動 이라는 점에서, 4)~5)는 樂 의 심미 구조가 비교적 안정 된 동락의 독서시와 독락의 독서시의 중간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다. 독서시의 유형은 세 가지이다. 원심력이 나타나지 않는 독서시와 원심 력이 나타나는 독서시와 원심력이 나타날 기미가 보이는 독서시가 그것이 다. 이 세 가지 유형은 퇴계의 삶을 반영한다. 퇴계는 자신의 일상을 시로 형상화했기 때문에, 28) 퇴계가 곧 詩 이고 詩 가 곧 퇴계라는 등식이 이루어 27) 樂 이라는 단어나 樂 의 비유어가 없지만, 정체를 밝히는 데 어렵지 않다. 4) 의 對 聖 賢 과 5)의 讀 契 挑 意 가 단서가 된다. 靜 味 樂 이라는 樂 의 형성 과정을 놓고 볼 때, 對 聖 賢 과 讀 契 挑 意 은 樂 과 상통하므로, 틀림 없는 독락의 독서시이다. 28) 퇴계시에는 성리학적 고담준론도 담겨 있지만, 삶의 현장에서 겪은 각종 경 험적 사실도 담겨 있다. 사제간의 담론, 선배 학자와의 상봉, 벗과의 회동, 등산한 뒤의 느낌, 농민의 참상 등이 그것이다. 퇴계시의 내용이 복합적이므 로, 道 우위의 관점을 능사로 삼아서는 안 된다. 道 우위의 관점으로 경험적 사실을 포착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퇴계시의 실상에 입각해야 경험적 사실 에 담긴 퇴계의 의식을 해명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 점에서 퇴계시를 편협 한 도덕적 기준으로 평가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金 基 鉉, 퇴계의 審 美 의식과 초월의 정신, 退 溪 學 報 120, 退 溪 學 硏 究 院, 2006, 107쪽의 제안은 경청 할 만하다. 66

退 溪 讀 書 詩 에 나타난 樂 의 層 位 와 그 性 格 (신태수) 진다. 주지하다시피 퇴계는 수십 차례의 出 과 處 를 거듭했다. 삶에 굴곡이 많았으니, 그런 굴곡이 詩 에 고스란히 담겼다고 할 수 있다. 퇴계의 삶이 出 處 일 때와 處 處 일 때와 處 의 성격을 조정하고자 할 때로 나누 어진다고 볼 때, 樂 의 심미 구조도 이와 같은 양상을 보이게 된다. 순차 적으로 정리하면, 2) 3)과 같은 樂 의 심미 구조와 1)과 같은 樂 의 심미 구조와 4) 5)와 같은 樂 의 심미 구조가 그것이다. 세 가지 독서시의 유형 이 곧 세 가지 樂 의 심미 구조를 낳았다는 언급이 가능하다. 퇴계시를 溫 柔 敦 厚 美 學 이나 性 情 美 學 이라 하는 입장 29) 에서 보면, 세 가지 독서시의 유형이 낯설게 느껴진다. 道 우위의 입장에서 한발 물러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독락의 독서시는 온유돈후의 미학이나 성 정미학과 다소간 유사성이 있다. 원심력이 나타나지 않고 구심력만 나타 나므로, 道 를 표방하며 축소지향적인 인식 태도를 갖추었다고 해도 그다 지 무리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동락의 독서시이다. 원심력으로 인해 道 우위의 입장이 흐트러졌으니, 온유돈후 미학이나 성정미학이라는 이름으 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기존 입장과 어긋난다고 해서, 예외적으로 처리할 수는 없다. 작품 수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 위상을 재평 가해야 마땅하다. 이렇게 할 때, 독서시의 유형을 확인하고 樂 의 심미 구 조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조성되리라 본다. Ⅴ. 결론 지금까지 퇴계 독서시에 대한 연구는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독서시를 부분적으로 다룬 논문이 있기는 하나, 제재적인 연구의 차원을 29) 온유돈후의 미학에 대해서는 李 鍾 虎, 退 溪 美 意 識 의 形 成 原 理, 고전시가 의 이론과 표상, 林 下 崔 珍 源 博 士 停 年 紀 念 論 文 集 刊 行 會, 1991, 48~54쪽에 서 잘 다루어 놓았고, 성정미학에 대해서는 李 敏 弘, 앞의 책, 178~199에서 잘 다루어 놓았다. 67

제17호 (2010) 넘어서지 못한다. 退 溪 全 書 에 실린 2000여 수에는 독서와 관련된 시가 40여 수이고, 그런 시 중에는 독서이론이 녹아든 경우가 적지 않으므로, 독서시는 반드시 살펴야 하는 과제가 된다. 독서이론은 대체로 靜 이니 味 니 樂 이니 하는 개념을 통해 나타나므로, 이에 초점을 맞추어 천착하 면 독서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으리라 본다. 독서시라면 거개 靜 의 상태에서 味 의 상태로, 味 의 상태에서 樂 의 상태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靜 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樂 임을 감 안할 때, 독서시에서는 어느 경우에나 樂 의 형성 과정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樂 의 형성 과정에 있어서 樂 은 일정하지 않다. 크게 보아 화 자를 단독으로 드러내는 樂 과 대상을 모두 드러내는 樂 으로 나뉜다. 전 자를 獨 樂 이라 하고 후자를 同 樂 이라 할 때, 전자는 평면적 개인적 개별적 인 데 반해 후자는 입체적 전체적 우주적인 성격을 띤다. 독락과 동락의 형성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건이 있다. 그것은 바 로 敬 이다. 敬 은 靜 味 樂 이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작용을 한다. 敬 의 작용을 상정할 때, 미발 이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미발 이발과 靜 味 樂 이 모두 敬 의 작용 권역에 들어 있으니, 미발 이발과 靜 味 樂 간에는 분명히 상동성이 있다. 물론, 이질성 또한 적지 않다. 마음의 상태가 단계적으로 뻗어나간다는 점과, 마음의 상태가 뒷단계로 이행할수록 긍정적으로 바뀐다는 점이 그것이다. 독서의 궁극적 목적이 樂 에 놓여져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다. 敬 의 작용이 곧 수렴을 의미한다고 볼 때, 어떤 방법으로 수렴하느냐에 따라 敬 의 작용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수렴 방법이 경직될 때는 수렴의 폭이 넓지 못하고, 수렴 방법이 유연할 때는 수렴의 폭이 넓어진다. 수렴 방법에 따라 敬 의 작용이 달라진다고 해서, 敬 이 수렴 방법의 통제 아래 놓인다고 할 수는 없다. 敬 이 확고하게 서 있을 때는 수렴 방법의 제약을 돌파하기도 한다. 독락의 경우에서 그런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몇몇 독 서시에서 나홀로 를 추구하던 화자가 외물과 교섭하며 나홀로 를 벗어난 68

退 溪 讀 書 詩 에 나타난 樂 의 層 位 와 그 性 格 (신태수) 다. 수렴 방법이 敬 의 작용과 연관된다는 점을 상기할 때, 결국 敬 이 독락 의 구도, 더 나아가서는 화자의 시각을 변화시켰다는 언급이 가능해진다. 독서시의 일차적인 몫은 화자이다. 敬 을 지니는 주체도 화자이고, 樂 의 형성 과정을 이끄는 주체도 화자이다. 바꾸어 말하면 화자가 심미안을 지니지 않았다면, 온전하게 敬 도 갖출 수 없고 樂 의 형성 과정에도 관여 할 수 없다. 화자는 以 物 觀 物 의 시각에서 심상의 능동성을 발견한 다음, 여러 심상을 수평적 관계로 전환시킴으로써 하나의 통일체를 결구할 수 있었다. 작가인 퇴계가 화자를 설정했다는 점을 상기할 때, 화자가 보유한 일련의 심미안은 곧 퇴계의 심미안이 된다. 퇴계의 심미안이 얼마나 치밀 하고 활발한지를 알 수 있다. 퇴계의 심미안은 樂 의 審 美 構 造 에서 빛을 발한다. 樂 의 심미 구조는 독락이냐 동락이냐에 따라 다르다. 독락에서는 구심력만 나타나고 동락에 서는 원심력까지 나타난다. 이런 심미 구조는 溫 柔 敦 厚 美 學 이나 性 情 美 學 의 입장과는 어긋난다. 독락의 독서시는 이런 입장과 무관하지 않으나, 동락의 독서시는 무관한 편이다. 원심력으로 인해 道 우위의 입장이 흐트 러졌기 때문이다. 독서시의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온유돈후 미학이나 성정미학의 범위를 넘어서서 내면의 動 靜 을 진솔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새롭게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논문은 2010년 4월 30일( 金 )에 투고 완료되어 2010년 5월 15일( 土 )부터 5월 25일( 火 )까지 심사위원이 심사하고, 2010년 6월 1일( 火 ) 편집위원회에서 게재 결정된 논문임. 69

제17호 (2010) 참고문헌 孟 子, 朱 子 語 類, 朱 子 大 全, 退 溪 全 書 권오봉, 퇴계선생 일대기, 교육과학사, 2001. 金 基 鉉, 퇴계의 審 美 의식과 초월의 정신, 退 溪 學 報 120, 退 溪 學 硏 究 院, 2 006, pp.101-142. 김원준, 陶 山 雜 詠 을 통해 본 隱 逸 과 天 理 구현, 우리말글 45, 우리말글학 회, 2009, pp.65-86. 문석윤, 退 溪 의 未 發 論, 退 溪 學 報 116, 退 溪 學 硏 究 院, 2003, pp.1~44. 신연우, 도산잡영과 도산십이곡의 흥, 이황시의 깊이와 아름다움, 지식 산업사, 2006, pp.101-126. 유호진, 退 溪 詩 의 이미지 연구, 退 溪 學 報 116, 退 溪 學 硏 究 院, 2003, pp.185-230. 윤사순, 퇴계 이황, 예문서원, 2002. 李 敏 弘, 性 理 學 的 外 物 認 識 과 形 象 思 惟, 朝 鮮 朝 詩 歌 의 理 念 과 美 意 識, 成 均 館 大 出 版 部, 1993, pp.101-132. 이봉규, 성리학에서 미발의 철학적 문제와 17세기 기호학파의 견해, 한국 사상사학 13, 한국사상사학회, 1997, pp.1-27. 이승환, 退 溪 의 未 發 說 釐 淸, 退 溪 學 報 114, 退 溪 學 硏 究 院, 2004, pp.67-107. -----, 朱 子 수양론에서 未 發 의 의미, 退 溪 學 報 119, 退 溪 學 硏 究 院, 200 6, pp.1-34. 李 鍾 虎, 退 溪 美 意 識 의 形 成 原 理, 고전시가의 이론과 표상, 林 下 崔 珍 源 博 士 停 年 紀 念 論 文 集 刊 行 會, 1991, pp.37-76. 丁 淳 睦, 退 溪 評 傳 지식산업사, 1987. 鄭 羽 洛, 南 冥 文 學 의 意 味 表 出 樣 相 과 現 實 主 義 的 性 格, 慶 北 大 博 士 論 文, 19 97. 70

退 溪 讀 書 詩 에 나타난 樂 의 層 位 와 그 性 格 (신태수) 최무석 손정호, 주희의 경 사상에 대한 一 연구, 敎 育 哲 學 19, 한국교육철 학회, 2001, pp.203-120. 최진덕, 退 溪 理 氣 心 性 論 의 脫 道 德 형이상학적 해석, 退 溪 學 報 112. 退 溪 學 硏 究 院, 2002, pp.1-44. 퇴계학연구원, 삶과 학문을 통해 본 퇴계 그는 누구인가, 글익는들, 2006. 劉 勰, 文 心 雕 龍 崔 信 浩 譯, 玄 岩 社, 1975. 71

제17호 (2010) Abstract The Layers and the Qualities of 'Rak' in Toegye's Book-report Poems Shin, Tae-soo This thesis is to examine out the layers and the aesthetic qualities of 'Rak' in Toegye's book-report poems. The result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ly, Toegye's book-report poems contain a process of moving from the state of 'Jeong( 靜 )' to the state of 'Mi( 味 )', and than from the state of 'Mi( 味 )' to the state of 'Rak( 樂 )'. Secondly, the types of the book-report poems are two, that is, Dokrak( 獨 樂 ) and Dongrak( 同 樂 ). The former has a flat personal individual quality, while the latter has a cubic global universal quality. Thirdly, in the formation process of Dokrak( 獨 樂 ) and Dongrak( 同 樂 ), there is a primary requisite, that is, Gyeong( 敬 ), not to be missed. It gives 'Jeong( 靜 )' 'Mi( 味 )' 'Rak( 樂 )' a regular direction. Fourthly, 'Jeong( 靜 )' 'Mi( 味 )' 'Rak( 樂 )' has a relationship of homogeneity and heterogeneity with Mibal( 未 發 ) Yibal( 已 發 ). Homogeneity means that it is in the functioning area of Gyeong( 敬 ), and heterogeneity unlike the Mibal( 未 發 ) Yibal( 已 發 ) means that it sprouts by steps, the more it goes on to the top steps, the more positively it is changed. Fifthly, the function of Gyeong( 敬 ) is not fixed. When the convergent way is stiffened, the width of the convergence is narrowed. And when the way is flexible, the width is enlarged. of course, it does not say that Gyeong( 敬 ) is under the 72

退 溪 讀 書 詩 에 나타난 樂 의 層 位 와 그 性 格 (신태수) control of the way of convergence. In case that the Gyeong( 敬 ) stands firmly at its own position, it breaks through the limitation of the way of convergence way, and then often it changes the structure of Dokrak( 獨 樂 ), and further the speaker's way of looking. Sixthly, in the viewpoint of Yimulgwanmul( 以 物 觀 物 ), the speaker finds out the activeness of images, and then changes the various images into a levelling relationship. Thus, he comes to produce result of a unified structure. Seventhly, Toegye's aesthetic sense is brightened in the aesthetic structure of 'Rak( 樂 )'. In case of Dokrak( 獨 樂 ), it shows a centripetal force, and Dongrak( 同 樂 ), it shows a centrifugal force even. Judging from this qualities, the nobility of Toegye's aesthetic sense is discerned. Key Words: Book-report Poems, Jeong( 靜 ), Mi( 味 ), Rak( 樂 ), Dokrak( 獨 樂 ), Dongrak( 同 樂 ), imulgwanmul( 以 物 觀 物 ), aesthetic sense, a centripetal force, a centrifugal force 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