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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o n t e n t s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2011. 11. vol 57 일상 속의 문화를 찾아 떠나는 서울문화예술탐방.
02 아트 갤러리 이달의 표지 작가, 유진숙 11월의 문화+서울 이야기가 있는 서울문화예술탐방 04 서울, 어디까지 가봤니? 06 보고, 듣고, 느끼고, 문화와 함께 서울을 걷다 10 연극과 함께하는 역사탐방 세종의 선물 14 문학에 길을 묻다, 문학탐방의 의미 16 추천! 셀프 서울문화예술탐방을 위한 책 10권 18 사람과 사람 18 문화 人 뮤지컬 배우 홍지민 24 영 아티스트 페코마트 이성진, 이민혜 작가 30 나의 서울 생활기 한옥 지킴이 피터 바돌로뮤 34 서울 단상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인재진 총감독의 서울 그리고 재즈 이야기 24 지금 서울은 36 이슈 1 서울의 외국인 예술가들 - 금천예술공장 입주 예술가 40 이슈 2 새롭고 낯선 감각 충전, 뉴웨이브 공연예술축제 페스티벌 場 44 이슈 3 창의예술교육이 간다 48 이미지 서울 그리움 50 이달의 평론 100년 전 작품의 기념 방식을 다시 생각하다 김석만, 김재엽 연출의 <육혈포 강도> 54 리뷰 1 전어보다 맛있는 책 잔치, 파주북소리 & 와우북페스티벌 58 리뷰 2 소프트 파워 시대의 공연예술 시장, 2011 PAMS 서울아트마켓 60 리뷰 3 반짝반짝 빛나는 BIFF의 순간들 서울 너머로 64 해외 트렌드 금천예술공장 해외 예술가 교환 프로그램 참여 작가 3인의 생생 체험기 67 해외 뉴스 카소리아 36 문화 @서울 68 좌충우돌 문화 체험 홍은예술창작센터 꼴, 좋다 재활용 리폼 프로그램 72 MUST 7 11월의 문화 소식 74 문화 캘린더 77 SFAC 뉴스 82 현장 인터뷰 84 독자의 소리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발행일 2011년 10월 25일 등록일 2005년 6월 8일 발행인 안호상 발행처 (재)서울문화재단 편집기획 서울문화재단 홍보교류팀 홍보교류팀장 이현아 박영도, 정경미, 김수연, 신동석, 주환석 씨네21(주) 발행 (재)서울문화재단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 홈페이지 www.sfac.or.kr 편집 디자인 사진 씨네21(주) (재)서울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문화+서울 은 서울에 숨어 있는 문화 욕구와 정보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예술가들의 창조적 힘과 시민들의 일상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 자 합니다. 문화+서울 에 실린 글과 사진은 (재)서울문화재단의 허락 없이 사용할 수 없으며, 문화+서울 에 실린 기사는 모두 필자 개인의 의견을 따른 것입니다.
아트 갤러리 02 03 1 <비밀얘기>, 캔버스 위에 연탄재, 아크릴, 116.8 72.7cm, 2010 언젠가부터 우리는 이건 비밀인데 라는 마치 거래 같은 대화에 익숙해졌다. 세상에는 현기증이 날만큼 많은 비밀이 존재한다. 때로는 내가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표지 작품인 <비밀얘기>는 이러한 인간 삶의 단면을 표현한 것이다. 작품 속의 세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의 모습이다. 2 <병약하기만 했던 딸을 늘 믿어준 엄마에게 바치는 선물-감사>, 캔버스 위에 연탄재, 아크릴, 72.5 91cm, 2011 3 <노인과 새>, 캔버스 위에 연탄재, 아크릴, 91 116.8cm, 2009 2 이달의 표지 작가 유진숙 연탄재의 재림 1 연탄재를 재료로 사용하는 게 독특하다. 연탄재를 사용하게 된 특별한 계기 가 있나? 대학생 때 가슴 아픈 사랑을 겪었는데 마음이 다 타버려 재가 된 것 같았다. 그때 우연히 길에 나뒹구는 연탄재를 발견했고 내 마음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에 재료로 사용하게 됐다. 연탄재와 아크릴 물감이 창조하 는 변형된 색의 느낌은 무척 신선했다. 또 제 몫을 다하고 재가 돼버린 물 건이 그림의 질료로 새롭게 거듭나는 과정은 내가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 고자 하는 것과 비슷해 잘 맞았다. 연탄재를 사용하는 데 있어 장단점이 있다면? 연탄재를 회화작업에 사용하 려면 고되고 복잡한 작업과정을 감수해야 한다. 여러 번의 덧 작업을 통해 입체작가 못지않은 에너 지를 쏟아야 하는 것도 힘든 부분이다. 하지만 어떤 물감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몽환적 색감과 질감 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작품들을 보면 표현이 직접적이고 강한 편이다. 분위기가 다소 무겁기도 하고. 일부러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들을 소재로 사용하진 않는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공상과 고민을 하는 데, 그 과정에서 탄생한 상징화된 인물과 상황들을 작품에 담다보니 다소 무겁게 느껴지는 것 같다. 작품에 주로 담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예전엔 나의 이야기가 많았다. 마치 일기장을 공개하 는 사춘기 소녀처럼. 하지만 언제부턴가 사람이야기 또는 사람 가슴 긁는 이야기 를 주제로 하고 있다. 연민과 집착, 인연과 그리움, 경쟁과 좌절, 사랑과 외면 등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표현하려 한다. 또한 풍성함 속에 빈곤이나 외로움 속에 따뜻함 같은 상반된 감정을 한 화면에 담으 려고 애쓴다.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좀 더 솔직한 작업을 하고 싶다. 돌아보면 나는 상징 이라는 과제에 억눌려 창작자의 카타르시스보다 정신적 수행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 것 같다. 즉흥적이고 거친 퇴행 적 작업이 될지라도 나의 새 작업들은 가식적이지 않고 날것 이었으면 한다. 서울문화재단 2010 시각예술활성화 지원 사업 선정작가. 동국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고 새로운 재료에 대한 호기심이 남다르며 작품의 주재료로 사용하 는 연탄재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여섯 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 했다. 스스로에게 일이 아닌 놀이 같은 작업의 재미를 선물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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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문화 + 서울 04 05
서울, >> > 어디까지 가봤니? 이 야 기 가 있 는 서 울 문 화 예 술 탐 방 서울에서 산다는 것.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정신없고 커다란, 복작거리는 이 도시에 숨어 있는 진짜 속살을 파헤치는 즐거움을 매일매일 맛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왕의 묘소와 문인의 집, 전통 박물관이 모인 거리와 숨어 있는 작은 미술관까지. 서울은 해외의 여느 도시만큼이나 역사, 문학, 전통, 예술이 두루 배어 있다. 누구나 보아왔지만 누구도 알지 못했던, 서울의 매력. 이 궁극의 매력을 찾기 위해 문화+서울 이 나섰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서울문화예술탐방 에 대한 각양각색 이야기부터 당신의 셀프 탐방을 도와줄 추천 책까지 한데 모았다. 서울 산책자여, 귀 기울여 들어보시라.
11월의 문화 + 서울 06 07 1 보고, 듣고, 느끼고, 문화와 함께 서울을 걷다 일상 속의 문화 찾기, 서울문화예술탐방 도심 속에서의 삶을 표현한다면 속도 속 스침 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속 도의 편리함 속에서 보는 것이 곧 전부 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 않나 싶 다. 늘 빨리 빨리 라는 단어를 입에 붙이고 살다 보니 자연스레 여유를 잃게 된 듯하 다. 이는 삶에 대한 성찰은 물론 주변의 것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시간마저도 놓 치게 한다. 속도에 대한 강조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구를 찾는 현상을 가져왔다. 이러한 삶 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웰빙과 슬로 라이프의 바람을 가져왔고 걷기문화를 탄생시켰다. 그동안 빠른 속도로 살아가느라 놓치고 지나간 것을 다시 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게 작용했다. 이는 곧 문화와 자연에 대한 관심 으로 연결되어 문화유산과 함께하는 답사여행, 자연과 함께하는 도보여행의 붐을 일게 했다. 걷기, 문화가 되다 특히 자연과 함께하는 도보여행은 2008년 제주 올레길 열풍 으로 이어졌고 이후 길을 따라 그저 걷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 되는 여행상품이 많이 나왔다. 제주 올레길 사례는 지방자치 단체들이 지역 내 문화유산과 연계한 도보여행 코스를 활발히 개발하도록 하는 시발점이 되었고, 서울에서도 서울 성곽로, 남산 산책로 등이 새롭게 각광받았다. 그야말로 친환경 생태 주의에 입각한 관광자원의 개발이 활성화되는 과정이었다. 나 아가 이러한 관심은 생태, 문화, 역사 등과 연계한 걷기 안내 서의 붐을 가져오기도 하였는데 과거 동호회 중심으로 공유했 던 정보를 출판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됐다.
1 2 3 서울문화예술탐방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과 장소 속에서 문화예술을 경험하도록 도와준다. 2 3 현재 걷기를 위한 많은 길들이 탄생했다. 역사문화가 배 어 있는 길(정약용의 남도 유배길), 가로수가 예쁜 길(담양 메 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문학작품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박 경리 토지길), 녹음이 어우러져 생태적 환경을 체험할 수 있는 길(북한산, 지리산 둘레길, 강원 바우길, 변산 마실길, 고창 질 마재길, 무등산 옛길, 안동 퇴계오솔길, 강화 나들길, 군산 구 불길, 울진 십이령보부상길 등), 문화예술가들이 모이면서 자 생적으로 만들어진 골목길(광주 예술의 거리 골목길) 등 도보 여행 선택의 폭이 무척 넓어졌다. 나아가 이러한 길 프로그램 은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교육 프로그램으로 연결되었다. 소 설가 김주영과 문화계 인사들이 함께 조직한 한국의길과문 화 는 길을 매개로 한 청소년 여행문화학교 프로그램을 운영 한다. 일상에서 향유하는 문화예술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서울문화예술탐방 은 한창 유행 하고 있는 걷기여행, 문화유산을 찾아 전국으로 떠나는 답사 여행과는 무엇이 다를까? 서울문화예술탐방의 차이점은 한 마디로 일상성 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문화예술탐방은 자연 속에서 자기 자신을 성찰하게 하 빠른 속도로 살아가느라 놓치고 지나간 것을 다시 보고 싶다는 열망은 문화와 자연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어 문화유산과 함께하는 답사여행, 자연과 함께하는 도보여행의 붐을 일게 했다. 는 걷기여행, 그리고 문화유산 답사를 목적으로 하는 탐방이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그곳에 숨어 있는 소중한 곳, 그리고 바쁜 일상 속에서 지나쳐 버렸던 모든 문 화예술 자원에 대한 다시 보기를 유도하는 탐방이다. 주변의 문화예술 자원을 새로 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기쁨을 주고 자 한다. 더불어 단순히 보기 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분야 전문가의 문화해 설을 더한 듣기 의 에듀컬처도 포함한다. 일상 속에서 짬을 내어 걷기와 함께 문화 를 즐기고 다시 일상 속으로 돌아가게 하는, 일상의 비타민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2007년부터 진행된 서울문화예술탐방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서 울의 미술관, 박물관, 문학, 역사, 건축, 대학로 연극 등을 주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2010년까지 255개 코스 프로그램에 1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하여 서울 곳곳에 숨어 있는 문화예술 자원을 탐방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2011년에는 서 울문화예술탐방의 코스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10개의 코스를 선정해 프로그램
11월의 문화 + 서울 08 09 서울문화예술탐방은 전문가의 해설과 함께 교육적인 효과까지 더한다. 서울문화예술탐방은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그곳에 숨어 있는 소중한 곳, 그리고 바쁜 일상 속에서 지나쳐 버렸던 모든 문화예술 자원에 대한 다시 보기를 유도하는 탐방이다. 주변의 문화예술 자원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기쁨을 주고자 한다. 을 꾸몄으며, 연극과 함께하는 역사탐방 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서울문화예술탐방을 진행하면서 개인적으로 의미 있었던 코스는 베스트 10 코 스에도 일부 포함되어 있는데, 많은 이들이 문화예술탐방을 통해 새롭게 바라보고 관심을 갖게 된 장소들이다. 참여한 많은 시민들은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는지 몰랐 다며 그동안 이렇게 소중한 곳을 그냥 스쳐지난 데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한편 2011년 새롭게 선보인 연극과 함께하는 역사탐방 은 사건 중심의 스토리 탐 방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였다. 전문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그 장소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연극배우들이 재현함으로써 상상력을 자극하고, 역사적 공간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주말마다 궁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시간과 장소로 직접 찾아간다고 할까? 서울문화예술탐방은 일상성 을 강조하는 탐방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과 장 소 안에서 다양한 문화예술을 경험하고 삶의 여유를 갖게 한다. 문화와 예술이 공기 와 물처럼 우리의 일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되었으며 그 안에서 많은 이 들이 삶의 여유를 찾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장소와 시간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어 서울 시민들에게 일상 속 여 유를 선물할 수 있기 바란다. 서울문화예술탐방 추천 장소 도심 속 숨어 있는 미술관 환기미술관, 김종영미술관, 토탈미술관 서울의 문인, 그들의 집 춘원 이광수 고택, 월탄 박종화 고택, 상허 이태준 고택, 만해 한용운 고택 조선의 왕이 잠든 곳, 능 태종의 능(내곡동 헌릉), 성종의 능(삼성동 선릉), 연산군의 묘(방학동 연산군묘), 중종의 능(삼성동 정릉), 순조의 능(내 곡동 인릉) 북촌의 전통 박물관 가회박물관, 닭문화관, 북촌생활사박물관, 북촌동양문화박 물관 전통 가옥의 변신 두가헌, 민가다헌
해외 대표 문화예술탐방 코스 >> > 역사와 연계한 코스 보스턴 프리덤 트레일 미국 건국 사적을 돌아보는 코스로 보도에 새겨진 붉은 라인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보스턴 코먼에서 찰스타운의 벙커힐 기념탑까지 4km 구간 에 16개의 역사적 장소가 모여 있다. 특히 각 장소에서는 그 시대의 복장을 한 해설사의 재미난 해설도 함께한다. 영화와 연계한 코스 뉴욕 마피아 투어 <대부>에서 <좋은 친구들>까지 갱 영화의 인물들이 거닐던 장소를 둘러볼 수 있다. 악명 높았던 뉴욕 마피아들의 행적을 돌아보는 조직범죄 탄생 워킹투 어 는 마피아의 원조 럭키 루치아노에서 파이브 포인트 갱, 알카포네의 숨 가 쁜 이야기를 만나게 해준다. 문학과 연계한 코스 뉴욕 마크 트웨인 투어 뉴욕에서 마크 트웨인의 발자취를 거닐어보는 워킹투어. 첫 번째 책을 출판했 던 쿠퍼 유니온에서 그리니치 빌리지까지 전문학자가 안내하며 마크 트웨인 의 문학세계와 뉴욕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해설과 함께 체험을 유도하는 코스 멜버른 감옥에서의 죄수 체험 투어 멜버른 감옥은 빅토리아 주 최초의 감옥으로 1929년에 폐쇄되기까지 각종 범 죄자들을 수감했으며 136명의 죄수들을 교수형에 처했는데, 1972년 오스트레 일리아 내셔널 트러스트에서 관리를 맡으면서 관광지로 개조되었다. 가이드 가 교도소의 간수 역할을 하고 방문객들은 죄수 역할을 하면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지방정부가 전략적으로 개발한 코스 빌바오 워킹 투어 1970~80년대 철강 산업이 쇠락하고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인구가 감소 하고 도시가 쇠퇴하자 지방정부가 적극적으로 재개발에 나선 사례다. 빌바오 를 도보로 여행할 수 있는 두 개의 노선을 개발하고 그 주변을 집중적으로 개 발했다. 볼거리를 담은 팸플릿을 배포하여 주변의 유적지, 박물관, 미술관, 시 장 및 상가를 소개하고 있다.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 투어 시카고 중심부의 공터에 새로 들어선 밀레니엄 파크는 디자인 도시로의 변모 를 보여준다. 음악과 건축, 첨단 기술과 디자인이 융합된 절묘한 복합물로 시 카고는 이들 공간을 잇는 투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시카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홈 & 스튜디오 투어 시카고건축재단에서 건축과 디자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확대하기 위한 목 적으로 진행하는 투어 프로그램으로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설계자로 잘 알 려진 시카고의 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과 삶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작품 소개에만 그치지 않고 시카고 서부 교외에서 시작한 신혼생 활, 첫 직장, 스튜디오 디자인, 애정, 성격, 취미 등 그의 삶에 대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진행된다. 셀프 투어를 유도하는 가이드 맵 덴버 시티 가이드 www.denvercityguide.net 문화예술을 콘셉트로 제작되었으며, 특정한 목적을 가진 여행자들을 위해 만 든 맞춤 지도 형식이다. 현대미술과 전통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정 보를 수록하고 있다. 덴버시의 공공아트 가이드 맵은 조형물의 사진 위주로 구성되었으며 도시 전체의 경관을 만들고 있는 조각품이나 설치미술 등의 위 치를 알려준다. 시드니 디자인 가이드 www.sydneydesignguide.com 건축, 산업디자인, 패션, 예술, 시각문화 등 디자인 관련 분야에 대한 정보를 수록한 책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창작 커뮤니티로서의 시드니를 소개하고 있 다. 각 분야별로 가장 창조적인 디자이너와 스튜디오, 새롭게 발굴한 작가와 작품의 정보를 제공한다. 도시 홍보에 있어 널리 알려진 자연환경이나 관광명 >>> > > 소 이외에 디자인이라는 특화된 분야를 보유한 전문도시의 이미지를 함께 제 공하는 사례다. 글_ 한지연 서울문화재단의 창단멤버로 2009년부터 서울문화예술탐방 사업을 진행하는 문화사업팀의 팀장을 맡고 있다. 문화예술과 행복의 정비례 함수를 100% 믿는다. 늘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는 호기 심 레이더! 오늘도 상상한다. 신나는 문화사업 뭐 없을까?
11월의 문화 + 서울 10 11 1 세종과 함께 경복궁을 거닐다 연극과 함께하는 역사탐방 세종의 선물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최만리의 읍소다. 한글창제를 반대하는 최만리와 찬성하 는 정인지 간의 언쟁이 한창이다. 대국 중국과 같은 글자를 쓰는 게 자랑스럽다, 중 국과 다른 글자를 쓰는 건 오랑캐나 하는 짓이라며 최만리가 핏대를 세운다. 중국은 대국이나 결국 타국이다, 새로운 글자는 뜻이 통하지 않는 일이 없어 모두 표현 가 능하니 한글은 백성을 위한 글자다, 그러니 누가 한글창제를 반대하겠는가. 세종의 측근이면서 비판적 지지자였던 정인지가 외친다. 둘러앉은 사람들은 정인지의 주 장에 동조를 보낸다. 맞아, 옳소. 소가 생각을 하게 되면 밭을 갈게 되지 않을 것이 라는 최만리의 주장에 사람들이 야유를 보낸다. 우우~. 결국 세종이 한 말씀 하신 다. 글 모르는 백성들이 불쌍하지도 않은가! 경복궁 수정전 앞, 연극과 함께하는 역사탐방 이 진행 중이다. 학자들의 고증을 통해 탄생한 대본에 전문 배우들의 연기가 보태져 역사는 책 속의 지루한 사건이 아 닌 눈앞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현장이 된다. 오늘은 2011년 10월 8일, 한글날 전날이니 당연 훈민정음이 주인공이다. 전문 배 우 세 명이 각각 최만리, 정인지, 세종대왕 역할로 분해 열연하고 있다. 대본이 꽤 재밌다. 탐방에 참여한 어른, 아이들 모두 조선의 어느 한때로 돌아간 듯 몰입한다. 경회루 바로 앞에 자리한 수정전은 세종 때 집현전이 있던 곳이다. 세종이 이곳에서 집현전 학자들과 한글을 만들고 반 포했으니 오늘 수정전 앞에서 당시를 재연하는 것은 의미 있 는 일이다. 함께 연극을 보던 아들은 한글이 저렇게 어렵게 태 어난 글자인 줄 몰랐다며 우리글을 아껴야겠단다. 다른 아이 들도 제법 진지한 얼굴이다. 오늘의 언쟁은 정인지의 한판승이다. 정인지는 닭의 소리 를 적을 때 꼬끼오라고 쓰는 게 맞다, 穀 氣 吳 (곡기오)라고 뜻 과는 상관없이 한자의 소리만 가져와 쓰는 건 옳지 않다고 주 장한다. 꼬끼오, 곡기오. 소리글자인 한글의 우수성이 빛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순간 모여 있던 사람들이 웃으며 박수를 친다.
아미산 교태전 자경전 경회루 강녕전 수정전 사정전 2 근정전 1 경복궁 탐방에 앞서 한글창제의 역사적 현장을 연극배우들이 재현했다. 2 연극과 함께하는 역사탐방 세종의 눈물 참가자들. 경복궁 투어 코스 >> > 수정전(연극공연 종료 후) 출발 경회루 자경전 교태전 아미산 강녕전 사정전 근정전 세종 같은 성군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20여 분의 연극이 끝나면 본격적인 경복궁 여행이 시작된다. 오늘 탐방의 해설을 맡은 이는 세종리더십연구소의 박현모 연 구실장이다. 오랜 기간 세종의 국가경영을 연구해온 해설사 는 오늘 궁투어의 방점을 세종에 찍었다. 경복궁은 여러 왕들 의 거처였다. 하지만 오늘은 세종을 중심으로 경복궁을 둘러 보기로 한다. 내일이 한글날이지 않은가. 먼저 경회루를 지난다. 경회루는 연못 안에 섬을 만들고 그 위에 크게 누각을 지었다. 주역사상에 바탕을 둔 우주의 원리 가 담겼다는데, 왕이 사신을 접대하거나 연회를 열 때 이용했 다고 한다. 사진 찍는 무리들이 연회장을 능가하게 왁자하다. 들어가보지 않고 겉으로만 우아한 자태를 감상하니 좀 아쉽기 도 하다. 아쉬운 마음을 지나 간의대로 향한다. 간의대는 세종 시대 종합천문대로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간의대는 장영실 의 공간이라 한다. 인재양성에 힘 쏟았던 세종의 노력에 꽃을 피운 사람이 장영실이던가. 관비 출신의 장영실은 태종이 지 방의 인재들을 발굴하기 위해 실시한 도천법을 통해 기술자로 궁궐에 들어왔는데 세종이 그의 능력을 알아보고 천문학교수 정도의 지위인 종6품의 벼슬을 내리는 파격인사를 단행했다. 이로 인해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 르네상스가 세종시대에 열리 게 되었다 하니 세종의 남다름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간의대를 지나 자경전을 향하는데 어느 나무 아래서 해설사의 걸음이 멈춘다. 말채나무라 한다. 한약재로도 쓰이는, 지네가 싫어하는 나무인데 잠깐 쉬어가자며 말채나무에 얽힌 옛이야기를 전한다. 맨 앞에 서서 행진하던 초등학생 4, 5학년 아 이들이 귀를 쫑긋 세운다. 언제나처럼 선비는 과거를 보기 위해 길을 떠나고 또 언제나처럼 이상한 마을을 지난다. 이번 마을은 지네 때문에 고통받는 마을. 선비는 지네에게 독한 술을 먹이 고 휘청거리는 틈을 타 지네의 목을 친다. 선비가 떠나려 하자 마을사람들은 지네가 또 나타날지 모르니 머물러 달라 한다. 그러자 선비는 몸에 지니고 있던 나무를 꺼 내 지네 몸통에 꽂으며 이 나무가 있는 한 지네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며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다시 과거를 보기 위해 떠난다. 그 나무가 자라고 자라 지금의 말채나무 가 되었다는 전설. 어른들이 더 재밌어한다. 말채나무 옆에 살구나무가 있다. 살구나무는 개와 상극이란다. 이 두 나무는 모 두 우리 종이다. 경복궁에는 외래종 나무가 없다고 한다. 알고 나니 지나가는 이름 을 알 수 없는 나무들 모두가 새롭다. 세종은 백성을 나무의 뿌리에 비유했다고 한 다. 나무가 잘 자라려면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 세종은 뿌리를 튼튼히 하는, 친서민 정책을 펼쳐왔다고 해설사는 설명한다. 뒤에서 누군가 왈, 세종이 환생하셔야겠네. 성군을 기다리는 마음은 다 같은가 보다. 경복궁의 진정한 주인을 만나다 자경전은 왕실의 웃어른인 대비들이 묵었던 곳이다. 이곳은 담장 안팎의 꾸밈새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특히 벽의 매화무늬는 최고의 디자인이라 한다. 궁궐은 담
11월의 문화 + 서울 12 13 1 과 문으로 구성된다. 즉 담은 막는 역할을, 문은 여는 역할을 한다. 열 곳은 열고 막 을 곳은 막는다. 마치 정치와 같이. 자경전은 대비의 정치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담을 쳤다. 대신 담에 고운 매화꽃을 장식해 갇혀 있는 게 아니라 보호받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단다. 경복궁 8경 중 2경인 연기문을 지나 왕비가 묵었던 공간인 교태전을 향한다. 교 태전은 왕비가 묵었던 공간인 만큼 가장 북쪽, 가장 안전한 곳에 자리한다. 왕의 침 전인 강녕전 뒤다. 후원인 아미산 꽃계단이 곱다. 아미산은 궁궐에 한 번 들어오면 궐 밖으로 나가기 어려웠던 왕비를 위해 만든 정원이다. 야트막한 동산을 계단식으 로 꾸미고 곳곳에 나무와 꽃을 가꾸었다. 강녕전으로 가기 전에 아미산 옆 우물에 들른다. 우물가에 유난히 앵두나무가 많다. 세종이 가장 좋아했던 열매가 앵두다. 세자 시절 문종은 아버지 세종이 좋아 하는 앵두를 따기 위해 손수 궐내에 앵두나무를 가꾸었다 한다. 우물가는 뒷공론의 공간이라던데 앵두 한 바구니면 이야기는 열 바구니겠다. 갑자기 우물가가 궁궐에 서 가장 인간미 넘치는 곳으로 느껴진다. 강녕전은 왕의 침전이 있는 곳이다. 왕은 강녕전에서 독서나 휴식을 취했고 때 로는 신하들과 편히 이야기도 나누었다. 탐방객들이 신을 벗고 직접 들어가본다. 여 름에는 꽤나 시원할 법하다. 천장의 무늬는 조선왕조의 화려함과 격조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데 구조가 특이하다. 문을 모두 닫으면 왕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더군 다나 왕의 방은 밤마다 다르게 정해진다고 한다. 시해의 위험을 피해서 말이다. 강녕전은 세종 때 개축했다고 한다. 그런데 개축 후 어느 날 왕의 침소로 뱀이 들어와 유유히 기둥을 타고 올라가더란 다. 신하들이 잡으러 달려왔으나 이미 없어진 다음. 그러나 잠 깐 나가 있던 세종이 다시 침소에 들었을 때 그 뱀이 이번에는 책상 위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세종은 이 뱀의 출현을 가 뭄과 배고픔에 고통받는 백성의 절규라 여겨 민심을 돌보려 더 욱 애썼다. 게으른 통치자에게 보내는 경고라 해석한 것이다.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걸음을 쉰다. 꽤 많은 사람들 이 반원을 그리며 섰다. 어린아이들부터 어르신들까지 연령 대가 다양하다. 제법 듣기 어려웠을 내용인데도 용케 따라다 니는 아이들이 기특하다. 아들은 연극에서 세종대왕을 만나 서 그런지 장소마다 왠지 친숙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설마 아 까 그분을 진짜 세종이라 믿는 것은 아니겠지? 세종의 집무실이었던 사정전과 왕이 조회를 받고 사신을 접 견하며 나라의 중요한 행사를 치르던 근정전을 둘러보며 역사 탐방의 마무리를 준비한다. 사정전( 思 政 殿 )은 한자 그대로 깊 이 생각하여 나랏일에 임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해설사는 생 각 좀 하면서 정치하라는 의미로 이름을 지은 것 같다고 한다. 사정전 앞에는 오목해시계, 즉 앙부일구가 있다. 아이들이
interview 1 책 속의 역사를 현장으로 가져올 방법을 고민했다 재 연 연 극 배 우 장 용 철 1 2 세종의 선물 은 박현모 전문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진행됐다. 2 본인을 소개하자면? 서울연극협회 이사로 있다. 올해로 연기 경력 20년차다. 오늘 맡은 역할을 소개해달라. 한글창제에 반대하는 최만리와 맞서 언쟁을 벌이는 정인지 역할이다. 한글의 우수성과 필요성을 주장한다. 원래 정인지는 세종과 아주 친한 사이로 알고 있다. 이번 연극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 서울문화재단이 보내온 사료를 바탕으로 고 증을 거쳐 대본을 썼고, 전문연출가와 전문배우들이 극을 만들었다. 이벤트성 공 연을 넘어 복잡한 책 속의 역사를 어떻게 현장으로 가져올 수 있을까 고민했다. 서 사성과 현장성을 멀티로 접근할 수 있는 이런 기획들이 많이 생겨 창작예술인들에 가장 신기해하며 구경하던 것이다. 이 해시계는 저잣거리에 도 두었는데 세종은 백성들이 한자를 못 읽을까 걱정해 글자 대신 쥐나 소 같은 그림을 넣어 시간을 표시했다고 한다. 백성 들에게 한글이라는 문자를 만들어주고 해시계로 시간을 선물 해주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세종은 위대하다. 근정전은 정치는 부지런히 해야 한다고 붙여진 이름이며 정도전이 지었다 한다. 부지런한 국왕은 아침에는 인재의 말 을 잘 듣고 낮에는 백성들을 방문하고 저녁에는 지시된 것을 수렴하고 밤에는 다음날의 중요한 결정을 위해 몸을 편안히 한다고 한다. 박현모 해설사는 이것이야말로 한국형 리더십 의 덕목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인재의 의견을 경청하고 백 성들의 안위를 돌보러 다녔던 세종이야말로 경복궁의 진정한 주인 아닐까. 지루함이 없으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토요일 오후, 여 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룹 지어 깃발을 들고 궁궐 탐방에 나서 고 있다. 숙제를 끝낸 사람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 라본다. 아들은 말채나무를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며 뛰어간다. 문득 해설사가 가장 가슴 떨리는 곳으로 꼽아준 열상진원 샘 이 보고 싶어진다. 뿌리 깊은 나무와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면 우리 왕국도 대대로 번성할 것이니, 나는 최초의 훈민정음 작 품인 <용비어천가>를 읊으며 아들의 뒤를 따른다. 뿌리가 깊 은 나무는 바람에 움직이지 아니하므로, 꽃이 좋고 열매가 많 으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그치지 아니하므로, 내가 이루어 져 바다에 가느니. 대한 지원도 활성화되면 좋겠다. 공연을 마친 소감은? 관객들의 호응이 적극적이어서 기뻤다. 최만리보다는 내게 더 호의적인 것 같더라. 날씨가 좋아 공연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interview 2 세종의 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전 문 해 설 사 박 현 모 본인을 소개하자면? 세종리더십연구소의 연구실장이다. 세종은 우리 역사에서 친 서민정책을 가장 잘 실천한 임금인데, 이러한 세종의 리더십을 연구하고 있다. 실 록에 실린 엄청난 이야기들을 시민들과 나누고 싶었다. 연극과 함께 진행되니 어떤가? 해설에 앞서 연극이 진행되어 자칫 산만하거나 지 루해질 수 있는 탐방의 분위기를 잡아주어 좋았다. 덕분에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를 놓치지 않고 진행할 수 있었다. 다른 역사탐방과 차이점은? 대부분의 역사탐방이 정보전달 중심인데, 이번 탐방은 사건 중심, 이야기 중심이다. 이야기 속에 공간이 녹아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싶 었다. 개인적으로 경복궁에서 가장 가슴 떨리는 장소를 꼽는다면? 기운을 재충전할 수 있 는 민속박물관 옆 은행나무길과 향원정 북서쪽에 있는 열상진원이라는 샘을 꼽고 싶다. 이 샘에서는 찬물이 솟아나는데 이 물이 청계천을 지나 한강으로 흘러들어간 다고 한다. 궁궐 안에 끊임없이 솟는 샘이 있기에 역사도 이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글_ 김영미 시인. 성미산마을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근처 중학교에서 국어 강사로도 일한다. 성미산학교 4학년인 아들, 언어치료사인 남편과 함께 이 프로그램 에 참가했다. 사진_ 최성열 한여름의 청량한 사이다 한 잔 같은 사진 한 장을 찍고 싶은 사진기자. 역사탐방 참여자들이 마음에 꼭 담고 가길 바라는 것이 있다면? 세종의 마음이다. 즉 가장 아래 있는 사람들을 돌보고 받아들이는 마음, 항상 배려하고 소통하고자 애쓰 는 그 마음이다.
11월의 문화 + 서울 14 15 1 문학에 길을 묻다 문인들의 삶과 문학을 찾아 떠나는 문학탐방의 의미 문학탐방에서 수도 서울이 차지하는 의미는 대단하다. 서울은 조선시대에는 한양 이란 이름으로 500년 이상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또한 일제 36 년과 대한민국 수립 60년 동안 여전히 수도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환란과 전 쟁으로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문학탐방지는 많지 않지만, 문인들의 삶과 문학을 탐구하며 문학적인 상상력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바로 서울의 문학탐방이다. 문학작품에는 사람과 지명이 등장한다. 처음 이야기를 시작한 사람의 고향과 삶 의 길이 있다. 문학탐방은 아득한 역사의 뒤안길을 가기도 하고 얼마 전의 이야기를 찾아 길을 나서기도 한다. 그 길을 자동차를 타고 가기도 하고 걸어가기도 하지만 항상 우리 눈에 보이는 길만 가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길과 상상의 길인 보이지 않 는 길도 함께 따라 가는 것이다. 문학기행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 사람이 살았던 곳에는 어디나 이야 기가 있다. 다양한 이야기가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이것이 문자로 기록되 면 문학이 되고 역사가 된다. 길이 아닌 곳을 걸어간 누군가가 있었기에 길이 만들 어졌다. 문학탐방은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작가와 작품을 알지 못하 고 역사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길은 보이지 않 는다. 문학기행은 이런 길을 찾고 만나는 여행이다.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만나러 가지만 그 만 남은 생시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우리네 현실의 삶은 가정이나 직장, 이웃과 직간접으로 연 결되어 있다. 일상적인 삶의 공간은 좁고 만나는 사람도 제한 적일 수밖에 없다. 문학작품이나 답사처에서 만나는 역사적 인 인물들은 가공인물이거나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현실보다 더 확실한 모습으로 다시 살아와 내 자신과 함께하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그들은 나와는 전혀 인연이 없 었지만, 기행이 끝나면 시대를 초월하여 만난 그들의 열정적 인 삶에 감동받게 되고 또한 그곳에서 마주한 주인공들에 대 한 연민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기에 이른다.
2 1 2 3 문인들의 자취를 찾아서 라는 주제로 진행된 문학탐방. 자신이 살아갈 미래의 삶 속의 좌표가 될 수 있다. 이 여행에 동참한 사람들은 그 친 밀한 동질감에 놀라기도 한다. 망우공원에는 박인환, 한용운, 김상용, 계용묵, 방정 환 같은 작가들이 잠들어 있다. 서울문화재단 문학탐방은 총 3회에 걸쳐 이곳을 답 사했다. 참가 시민들은 묘역에서 작가들의 삶과 문학을 통해 많은 감동을 받고 돌아 왔다. 특히 박인환 시인의 초라한 묘소에서 퇴락한 비문의 시비를 읽으며 눈시울을 붉히던 참가자가 많았다. 성북동 심우장에서는 민족작가 한용운 시인의 상징성을 가슴으로 느끼기도 했다. 인왕산에서 북악산으로 이어진 능선에는 윤동주의 시심이 일렁인다. 이곳이 문학탐방은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행위 문학작품 속의 사람들이 걸어간 길을 더듬거리며 찾다 보면 죽은 사람들은 죽은 것이 아니다. 그들을 찾아가면 어디선가 살아서 돌아온 듯 착각을 하게 된다. 무언으로 말을 하며 그 장소를 떠날 때까지 지켜보는 듯하다. 이런 기분으로 답사를 하면 문학의 향기는 소리 없이 피어나는 안개와 같다. 스멀거 리면서 퍼지는 향기는 코를 자극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영 혼을 울리기도 한다. 이 영혼이 머리를 타고 흘러 내려와 가슴 을 흔들면서 향기 있는 생명력으로 꿈틀거리게 하는 마력을 가지게 된다. 문학기행은 고독한 사람들에게 많은 지인들을 만나게 하며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 음을 나는 믿는다. 문학작품에서 죽은 사람들은 죽은 것이 아 니다. 그들에게는 단지 생물학적인 죽음이 있을 뿐이다. 문인 들의 삶과 안식처에서 떠나간 이들이 남긴 삶의 흔적들을 찾 다 보면 이런 확신을 가지게 된다. 이렇듯 문학탐방은 현재를 직시하고 미래를 응시할 수 있 게 하며 작가와 역사적인 인물들과 함께 대화할 수 있는 기회 를 제공한다. 문학기행을 통해서 만나는 역사적인 인물들은 3 <서시>의 무대라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서울시가 이곳에 윤동주 언덕 이란 지명을 만들고 시비와 정자를 세워 문학탐방지로 조성한 것에 탐방객들 모두가 박 수를 보내기도 했다. 서울문화재단 문학탐방은 이렇듯 서울시가 새롭게 만든 문학탐방 장소를 기행 지로 선정하기도 한다. 이곳의 기행이 끝난 후에 한 탐방객은 서울 도심을 향해 서 있는 시비에 새겨진 <서시>를 읽고 나니, 문학의 향기 덕에 긍정적인 삶으로 거듭난 듯합니다 라는 문자를 보냈다. 문학기행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증거다. 결국 문학탐방이란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적극적인 행위이다. 일상의 삶을 떠 난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며 자기의 존재 인식을 통해서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문학탐방은 역사적인 인물과 문학적인 만남을 제공한다. 역사와 문화, 자연과 의 만남이 있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만나며 찾게 되기도 한다. 자신이 지금 가 고 있는 인생길의 목표점과 삶과 죽음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이유로 서울문화재단 문학탐방은 답사와 여행의 장점을 동시에 얻을 수 있 다. 그러나 문학탐방은 아직 수익성이 없어서 여행사가 진행하기 어렵다. 문학단체 나 역사학술단체조차 지속적인 답사가 어려운 실정이다. 전문가의 섭외도 힘들거 니와 지속할 수 있는 열정적인 동우회들이 없기 때문이다. 문학기행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콘텐츠가 없는 상태다. 제대로 된 단행본이 없는 것도 문학기행 분야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지난 몇 년간 서울문화재단에서 주관한 문학탐방 은 이런 기회를 기다려온 사람들에게 단비와도 같았다. 필자가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한 문학탐방 장소는 모두 20여 곳이다. 문학탐방은 문인들의 삶과 문학의 궤적을 찾는 여행이다. 작가가 살았던 시대로 회귀하여 작품을 읽게 되면 작가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그가 선택한 삶의 길을 알 게 된다. 혹 그가 잘못된 선택을 하였다고 해도 당시의 시대사적인 배경을 이해하면 오해가 풀린다. 작가와 역사적인 인물을 비판하기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게 된다. 결 국 겸손해질 뿐만 아니라 남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지고 깊어진다. 문학탐방에 참여 한 사람들이 쉽게 동질감을 느끼고 금방 친구가 되는 이유다. 작품을 공유하고 토론 하는 가운데 아름다운 만남의 인연을 만들 수 있다. 문학작품의 무대나 원작자의 고 향을 탐방하고 난 후 다시 그 작품을 읽으면 깊고 넓은 지식으로 보답받게 될 것이 다. 먼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서울 내 문학탐방이 시급한 이유다. 이를 통해 문학사 의 콘텐츠를 얻게 될 것이며 이는 서울 문학사의 복원적인 의미가 될 것이다. 앞으 로도 서울문화재단 문학탐방이 계속되어 그 영역이 넓어지길 기원한다. 글_ 김경식 시인. 1985년부터 학교 및 단체에서 800회 이상 문학탐방을 진행했다. 저서로 <사색의 향기 문학기행> 외 다수가 있으며, 현재는 국제 PEN클럽 한국본부 사무처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11월의 문화 + 서울 16 17 서울의 모든 구보 씨 를 위해 추천! 셀프 서울문화예술탐방을 위한 책 10권 구보 씨는 길을 나섰다. 그는 어디를 갈까 생각하여본다. 모두가 그의 갈 곳이었다. 한군데라도 그가 갈 곳은 없었다. 그는 천변길을 광교로 향하여 걸어간다. 한낮의 거리 위에서 구보 씨는 갑자기 격렬한 두통을 느낀다(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서 부분 인용). 구보 씨는 생각했다. 혼자 서도 서울문화예술탐방을 할 수 있는 길잡이 책이 있으면 좋을 텐데. 구보 씨가 정말 그랬을까? 속는 셈 치고 믿으시라. 서울을 걷는 산책자 구보 씨 를 위한 책 10권을 소개한다. 이제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해설사 없이도 서울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다. 작가들이 사랑한 서울, 문학기행 서울은 많은 작가들이 사랑했고 또 연민했던 도시다. 서울의 굴곡진 역사만큼이나 그들의 시간도 그리 흘렀다. <서울, 문학의 도시를 걷다>는 작가들의 숨결이 살아 있는 문학 속 장소를 찾아 떠난다. 부담 없이 따라 걸을 수 있도록 부러 길지 않은 코 스로 12군데를 마련했다. 시인 노천명이 살던 효자동의 소박한 집, B사감이 다니던 정동길의 이화여고, <날개>의 주인공이 올라갔던 신세계백화점 옥상까지. 어제 무 심히 지나쳤던 을지로 거리가 소설가 이상의 이상한 세계가 된다. 풍성한 사진, 상 세한 지도, 친절한 대중교통 안내는 덤이다. 국문학자 김재관과 장두식이 쓴 <문학 속의 서울>은 문학 속에서 변화를 거듭해 온 서울과 서울 사람들의 내면을 더 깊은 공명으로 들여다본다. 당대의 대표적 작 가들이 목격한 문학 속 서울풍경이 다양한 사진과 함께 펼쳐진다.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에 등장하는 익명의 타자를 얘기하면서 옛 선술집 풍경을 보여주는 식 이다. 아름답고 행복한 서울의 뒤편에서 스러져간 사람들이 있었다. 문학 속에서, 서울은 깊다.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는 작가들의 흔적을 찾아 나선 친절한 기행에 세이다. 서울 곳곳을 돌아보며 저자 특유의 조곤조곤한 문체로 작가들의 삶을 따라 걷는다. 우리가 몰랐던 서울의 건축, 건축기행 유홍준은 최근에 펴낸 책에서 이렇게 썼다. 주변의 경관을 자신의 경관으로 끌어안 는 차경( 借 景 )의 미학을 경복궁처럼 훌륭히 이루어낸 건축은 세계에서 드물다. 스 케일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경복궁과 자금성을 비교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일갈이 다. 가까이 있는 건축물에 오히려 까막눈이 돼버린 우리들의 초상이기도 하다. <서울, 건축의 도시를 걷다 1, 2>도 같은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지나다니면서 늘 본다는 이유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건축에 대해 너무 모른다. 폭넓고 친 절한 해설로 유명한 건축사학자 임석재는 1년 동안 서울 곳곳을 다니며 서울의 건축 지도를 완성했다. 그 의미를 짚고 설명하면서 서울의 건축물을 총망라한 대작이다.
누구든 쉽게 찾을 수 있게 40여 장의 상세 지도를 직접 그려넣는 정성을 들였다. <서울의 고궁 산책>은 자동차로 지나치기만 했던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 궁, 경희궁의 어제와 오늘을 되짚는다. 고궁의 작은 요소 하나하나를 살피면서 조 선시대의 건축문화를 깊이 음미하는 책이다. 조각상, 문의 문양, 궁에 놓여 있는 돌, 한 그루의 나무조차도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시간의 흔적을 좇다, 역사기행 왜 경복궁은 273년간 폐허로 방치될 수밖에 없었을까? 경운궁은 왜 덕수궁으로 이 름이 바뀌었을까? <임혁필의 서울역사기행>은 개그맨 임혁필이 직접 발로 뛰며 쓴 서울의 역사 이야기다. 개그맨의 책이라고 슬쩍 얕잡아봐서는 곤란하다. 공력이 상 당하다. 두 딸아이를 위해 책을 썼다는 임혁필의 말처럼 그 진심이 행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관람 시간, 입장료, 연락처, 교통편, 안내도 등을 자세하게 실어 체험학습 에 활용할 수 있게 했다. 하루에 돌 수 있는 코스별로 짜여져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만난 서울 풍경을 수십 권의 스케치노트에 채운 이가 있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의 저자 이장희다. 그의 작업은 그대로 서울의 역사가 된다. 없어진 길, 허물어진 건물, 사라진 골목, 무너뜨린 담장. 서울의 시간, 서울의 이야 기에 귀 기울이면서 따뜻한 일러스트로 그 역사를 복원한다. 김구 선생이 생을 마감 한 경교장을 보며 아픈 우리 현대사에 가슴을 치고, 역사 깊은 그곳을 한 병원이 차 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한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서울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 는 어느 독자의 말은 마치 사랑고백처럼 들린다. 이 고백이 이상하게 가슴을 울린다. 잊고 있었지만, 서울은 우리를 벅차게 하는 도시였다. 말랑말랑한 갤러리 여행, 미술기행 <일요일 오후, 갤러리 산책>은 서울과 경기 지역 갤러리 47곳의 정보를 꾹꾹 눌러 담은 알찬 책이다. 미술기행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안성 맞춤.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작품을 즐겁게 감상하는 법을 일러준다. 더불어 갤러리 자체가 하나의 공간으로서 얼마나 매력적인지도 놓치지 않는다. 각 갤러리의 성격, 위치, 팁을 총망라하여 정리하고도 갤러리 주위의 카페, 맛집, 산책로 등을 함께 소 개한 것은 이 때문일 터. 갤러리는 그림을 감상하는 공간이자 여유로운 휴식을 즐기 는 곳이기도 하다. 어려운 미술용어를 알기 쉽게 풀어주고, 유명 아트페어를 소개하 고, 미술시장에 대한 얘기도 곁들인다. 부산 지역 갤러리도 한 챕터를 차지한다. 이 책 한 권이면 미술기행 준비 끝. <나는 미술관에 놀러간다>는 좀 더 저자의 감성이 묻어난다. 서울의 미술관 29 곳을 에세이 형식으로 소개하면서, 저자가 수년간 미술관에 다니며 찾은 보석 같은 곳을 아낌없이 공개한다. 자칫 딱딱할 수 있는 가이드북이 말랑말랑해진 것은 이 때 문이다. 미술관을 부담스러워하는 이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글_ 김현경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 헤매는 스토리 헌터. 북매거진 <SKOOB> 기자로 일하다 책을 좋아하면 책을 잘 만들기도 하는 줄 알고 기획편집자가 되었다. 사진_ 백종헌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라본 세상만큼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사진기자.
사람과 사람 문화 人 18 19 내일을 향해 노래하라 뮤지컬 배우
사람과 사람 문화 人 20 21 선 굵은 외모와 적당히 넉넉한 몸매, 온몸에서 뿜어내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 뮤지컬 배우 홍지민은 무대뿐 아니라 방송에서도 강한 카리스마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1996년 서울예술단원으로 뮤지컬계에 발을 내딛은 이후 크고 작은 무대를 통해 자기만의 강렬한 색채를 덧입혀 온 그녀가 지금 서 있는 곳은 올해로 30주년을 맞는 뮤지컬 <캣츠>의 무대다. 여배우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꾼다는 그리자벨라 역을 훌륭히 소화하며 문화숲프로젝트 가든파이브 아트홀에서 공연될 <뮤지컬 디바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는 그녀. 새로운 내일을 향해 온 힘을 다해서 노래하는 뮤지컬 배우 홍지민을 만났다. <캣츠> 공연을 시작한 지 몇 주가 지났습니다. 고양이가 되어 무대에 서는 기분은 어 떤가요. 설레죠. 무대에 설 때마다 더 경건해지고 삶을 돌아보게 돼요. <캣츠> 에 참여하기 전에는 그저 고양이의 삶을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 주는 작품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직접 연기해 보니 곳곳에 너무나 많은 철학적 의미가 숨어 있더라고요. 함께 무대를 채우는 배우들을 보면서 도 감동 받아요. 이렇게까지 힘든 공연일 줄 상상도 못했거든요. 1막을 끝내고 탈진할 것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도 다시 무대에 올라 더 멋 진 앙상블을 선보이는 후배들이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운지, 보고 있으 면 눈물이 날 정도예요. <캣츠> 연습을 하면서 뮤지컬을 막 시작했을 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웜업하고 트레이닝했던 제 모습을 다시 떠올릴 수 있어 감사했어요. 그리자벨라로 무대에 올라 메모리 를 처음 불렀을 때 기억하세요? 그럼요. 이천 공연이었는데 처음 공연하는 사람처럼 와들와들 얼마나 떨 었는지 몰라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어요. 캐릭터가 주는 중 압감도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메모리 를 듣기 위해 기다린다고 생각하 니 더 부담이 됐어요. 마지막 소절을 마치자마자 객석에서 박수가 터지 는데 소름이 돋을 정도였죠. 계속 그때 그 느낌을 찾으려고 하는데 그만 큼 반응이 안 나와서 고민이에요. 서울 관객들이 박수가 좀 짠가? 배우 가 박수에 연연하면 안 되는데 저도 사람인지라.(웃음)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역할이지만 무대에 서는 시간이 짧아서 아쉽기도 하겠어요. 오프 닝과 1막 후반에 잠깐, 그리고 2막 메모리 장면부터 헤비사이드 레이어로 올라가는 장면까지 더해도 10여 분 정도밖에 안 되니 말이에요. 그동안은 무대 위에 오래 서 있는 역할을 주로 맡아서, 무대에 잠깐 나와 노래 한 곡 부르고 박수 받는 배우들 보고 쉽게 박수 받는다고 참 많이 놀 렸거든요. 한편으로는 부러워하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그들이 스트레 스를 많이 받는다고 얘기했는데, 그걸 이제야 이해할 것 같아요. 실제로 메모리 한 곡을 부르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상당히 길거든요. 오 프닝 마치고 한참 기다렸다가 잠깐 나가서는 메모리 부르다 말고 내려 오고, 2막 메모리 부르기까지도 40분 정도를 더 기다려야 해요. 처음엔 하는 일 없이 기다리는 게 너무 우울했는데 발성실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괜찮아졌어요. 무대 뒤에 마련된 개인 연습실 말인가요? 맞아요. 작은 발성실에 혼자 앉아 사, 사, 메, 메 조금씩 발성 을 바꿔가면서 첫 소절만 수십 수백 번씩 부르는 거예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신병 환자처럼 보일 걸요? 공연하면서 이렇게 열심히 발성 연습 한 게 거의 처음이에요.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는데 3주 정도 지나 니까 재밌어졌어요. 발성 연습하면서 노래도 많이 늘었고요. 3~4시간 을 연습하는데 안 늘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죠.(웃음) 넘버가 많을 때는 신경 쓸 게 많아서 아주 디테일한 연습을 놓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번엔 단 한 곡뿐이라 제대로 연습할 수 있어 좋아요. 요즘엔 기다리는 시 간이 지루하기는커녕 매일 정해놓은 연습량을 채우느라 쉴 틈 없이 바쁘 다니까요. 그리자벨라는 다가올 내일의 새로운 희망을 노래하지만, 무대 위에서 줄곧 무겁고 우 울한 기운을 뿜어내죠. 그동안 주로 연기했던 유쾌하고 개성 강한 캐릭터들과는 다른 인물이라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홍지민만의 그리자벨라를 만드는 데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그리자벨라는 여배우의 삶과 너무 닮아서 노래 부를 때마다 슬퍼요. 그 리자벨라 역의 배우들은 각자의 스토리를 만들어서 연습했어요. 저는 여 배우의 이야기를 지어봤어요. 배우로 지내던 중에 음반 제의를 받고 기 대에 부풀어 다른 길로 나섰다가 좌절하게 되는, 실제 제 경험을 토대로 한 내용이었죠. 그렇다고 홍지민의 그리자벨라가 인순이, 박해미 선배 님의 그리자벨라와 비교해 특별히 달라진 건 없어요. 그저 바쁜 두 분보 다는 연습에 가장 많이 참여했고, 덕분에 다른 배우들과 소통이 가장 많 았다는 게 다르다면 다른 점이겠죠. 무대에서 내려오면 상대 배우에게 항상 물어보거든요. 내가 그의 눈빛을, 몸짓을 제대로 이해하고 연기했 는지 말이에요. 전성기? 아직은 아니에요 배우 홍지민에게 어쩌면 가장 화려한 시절인 지금 이 순간에 만난 <캣츠>의 그리자벨 라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홀로 외롭게 늙어가는 그리자벨라를 보면서 앞으로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자꾸 저더러 전성기를 맞았다고들 하시는데, 아직은 아니에요. 앞으로 갈 길이 얼마나 먼데요. 아줌마 역할을 많이 맡아서 그 렇지 아직 마흔도 안 됐거든요. 100살까지 사는 세상에서 적어도 80살까 지는 무대에 설 거고, 그럼 이제 겨우 절반 온 건데 벌써 전성기를 맞으
면 남은 날들이 얼마나 서글프겠어요. 방송을 통해 이름을 알린 지 4년 밖에 안 됐고, 통장에 잔고가 쌓이기 시작한 것도 2년밖에 안 됐어요. 앞 으로 내려갈 길만 있다면 억울해요.(웃음) 그렇다면 배우 홍지민의 전성기는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요? 개인 콘서트를 하고 싶어요. 콘서트 한다고 발표하면 티켓이 그날 다 매 진되면 좋겠고요.(웃음) 하지만 아직은 많이 불안하니까 어느 정도 자신 이 있을 때쯤? 근데 또 그것도 아니래요. 선생님들 말씀을 들어보면 나 이 먹을수록 더 불안해진다고 하더라고요. 기대치는 높아가고 정답은 없고.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무대에 서는 것처럼 보이는데 불안하다니 정말 뜻밖 이에요. 알고 보면 제가 참 소심한 사람이거든요. 노래나 연기에 대해 공부를 하 면 할수록 더 그런 것 같아요. 내가 참 무식하게 했구나 싶어 부끄러워지 고. 특강 나가는 걸 즐거워하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후배들에게 실질적 으로 도움이 되는 얘기를 많이 들려줄 수 있으니까. 물론 제 주변에도 좋 은 멘토가 있었지만 아쉬움도 있었거든요. 말하자면 족집게 강사가 없었던 거군요. 그렇죠. 예를 들면, 허밍이 노래할 때 도움이 많이 된다는 건 알지만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최근에 만난 보컬 선생님을 통해 그 중요성을 알았고 실제로 해보니 정말 좋았어요. 이걸 스물다섯 살에 알았더라면 얼마나 더 좋았겠어요. 똑같은 말이어도 진짜 내 것이 되면 다르게 와 닿는 법이거든요. 같은 길을 먼저 걸어본 내가 해보니까 이 방 법이 좋더라, 너희도 한번 해봐라 하고 지름길을 알려줄 수 있어서 참 기 뻐요. 돈 되는 일도 아니고 한 시간 넘게 떠들다 보면 목도 많이 아프지
사람과 사람 문화 人 22 23 뮤지컬 <캣츠>.
만 특강은 계속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더 유명해져야 하고요. 지금보다 더 유명해지길 바라세요? 지금도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셔서 감사하지만 앞으로 더 유명해지고 잘 될 거예요. 그래야 하고 싶은 작품도 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들도 더 많 아지잖아요. 사실 사인지도 제작해서 가지고 다녀요.(웃음) 유명해져서 가장 좋은 건 제 공연에 관객들이 많이 와주신다는 거예요. 혼자서 자식 들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하신 엄마 어깨에 힘 들어간 모습이 좋고, 돈도 많이 벌어서 좋아요. 마음 편히 재능기부를 할 수 있고, 후배들 맛있는 것도 사줄 수 있고요. 가끔 욕심 없이 무대에만 서고 싶다는 후배를 보면 저는 바보라고 해요. 배우가 왜 배우예요, 얼굴을 알려야 배우인 거예요. 혼자만 좋아서 연기할 거면 방에서 해야죠. 어떻게 배우가 대중에게 사 랑받기를 원하지 않을 수 있어요.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고 사랑을 받고, 그 사랑으로 성숙해지면서 생긴 좋은 에너지를 다시 돌려주는 게 배우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행복한 뮤지컬 배우 공연과 방송 활동을 동시에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쪼개서 바쁘게 살아가게 되는데요, 그런 삶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나요? 없지 않죠. 공연 연습에 올인할 수 없을 땐 특히 더 죄송하고 스스로도 마음이 불편해요. 하지만 아직은 불편함보다는 좋은 점이 100배는 더 많 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작은 역할 하나 하려고 강원도에 기차 타고 혼자 가기도 했거든요. 또 이렇게 인터뷰도 할 수 있게 됐잖아요. 얼마나 하고 싶었는데요. 연예인의 인기란 물거품과도 같아서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잖아요. 지금의 관심과 사 랑이 사라질까 불안할 때는 없나요? 두렵긴 하지만 계속 열심히만 한다면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아요. 몇 십 년 동안 쌓아온 내공인데 하루아침에 없어지겠어요. 전 무대 위에서 오 래 버틸 거예요. 뮤지컬 배우는 해야 할 일이 참 많잖아요. 몸도 만들어 야 하고, 목도 보호해야 하고, 노래 연습도 해야 하고, 연기 공부도 해야 하고. 부지런히 트레이닝하지 않으면 무대 위에서 금방 티 나는 직업 이라 그에 상응하는 연습과 훈련을 해야 해요, 매일 매일. 그럼에도 무대에 서는 배우로 살고 싶은 까닭은 무엇인가요? 좋으니까요. 저는 뮤지컬 배우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라 생각해 요. 반짝이 드레스와 나풀거리는 긴 속눈썹을 얼마나 사랑하는데요. 방 송을 하면서 뮤지컬 배우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뮤 지컬 배우들이 진짜 다재다능하고 적재적소에 써먹을 수 있는 재주가 무대건 일상이건 나와 만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고 싶어요. 연기나 노래나 더 디테일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관객들뿐 아니라 선수들에게도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아직도 해야 할 일, 극복해야 할 산이 많아서 즐거워요. 많거든요. 저만 해도 뮤지컬을 하다가 드라마를 할 수 있고, 드라마가 여 의치 않으면 예능을 할 수도 있고, 콘서트 무대에 설 수도 있고, 후배들 에게 강의도 할 수 있잖아요. 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 한 일이에요. 11월에는 가든파이브 아트홀에서 열리는 <뮤지컬 디바 콘서트>에 참여하신다고 들었 어요. 박해미, 최정원 씨와 함께 무대를 꾸밀 예정인데 어떤 공연인지 소개해주세요. 올해 문화숲프로젝트에서 다양한 공연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제가 공연 할 디바 콘서트는 공연장을 자주 찾지 못하는 주부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니 콘서트예요. 올해 초에도 두 분과 함께 콘서트를 한 적이 있는 데, 이번에는 3인3색 콘서트가 아니라 각자 한 시간씩 자기만의 무대를 갖게 됐어요. 뮤지컬 넘버 외에도 가요, 팝송 등 다양한 음악을 준비했 어요. 주로 저와 동년배이거나 연배가 많은 여성 관객들이 객석을 채워 주실 텐데요, 그분들께 The Greatest Love of All 을 꼭 들려드리고 싶어 요. 가장 위대한 사랑은 나를 사랑하는 것 이라는 가사처럼, 내가 나를 좀 더 사랑하면 뭘 해도 적극적으로 더 큰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 를 나누면서 좋은 에너지를 전하고 싶어요. 생일 맞으신 분들께는 축하 노래도 불러드리고, 몇 분께는 마음을 담은 선물도 안겨드리고요. 제 보 컬 선생님이신 진정훈 교수님을 초대해서 토크콘서트로 꾸며볼 계획이 에요. 젊은 남자 게스트와 함께이니 더 반응이 좋지 않겠어요. 송파 일대 뮤지컬을 좋아하고 관심있어 하는 많은 분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관객들과 제대로 소통할 수 있기를 바라야겠네요. 그게 제 목표예요. 무대건 일상이건 나와 만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 지를 주고 싶어요. 저 배우를 만나면 기분이 좋다 는 얘기를 들을 수 있 는 배우이길 바라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대에서나 방송에서나 잘하는 모습, 멋있는 모습을 보여드려야죠. 뭐든 책임감 있게 잘해야 자신감도 생기고, 그걸 보는 사람도 신나지 않겠어요. 연기나 노래나 더 디테일해 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관객들뿐 아니라 선수들에게도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아직도 해야 할 일, 극복해야 할 산이 많아서 즐 거워요. 글_ 정세원 <더 뮤지컬> 기자. 사춘기 시절을 뮤지컬과 함께 보냈고, 뮤지컬과 관련된 직업을 갖겠다며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학교보다는 공연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더니 결국 뮤지컬 전문지 기자가 되었다. 말하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또 믿는 일인. 사진_ 최성열 한여름의 청량한 사이다 한 잔 같은 사진 한 장을 찍고 싶은 사진기자.
사람과 사람 영 아티스트 24 25 즐거운 창조행위가
커다란 메아리로 신당창작아케이드 페코마트 이성진, 이민혜 작가 c 백종헌
사람과 사람 영 아티스트 26 27 서울시창작공간 신당창작아케이드 31호, 활력 넘치는 시장의 기운이 가 득한 아케이드 한편에 또 다른 마트가 존재한다. 이성진, 이민혜 작가가 운영하는 페코마트 (PECO MART, www.pecomart.co.kr). 상품들이 빼곡히 진열된 일반 상점과 달리 이곳은 이들의 아이디어가 가득한 사무 실 겸 작업실이다. 페코마트라는 이름과 칫솔 위에 놓인 치약 모양의 로 고에서도 이들이 꿈꾸는 상큼한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매일 아침 치약 으로 이를 닦잖아요. 페코마트가 디자인한 물건들이 아침의 신선한 기분 과 닮아 있으면 좋겠어요. 페코마트는 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미난 요소들을 패러디한 다양한 디자인 소품을 제작한다. 이들은 기존의 자연 식품과 가공품들을 바탕으로 해 전혀 다른 용도와 느낌의 독특한 사물들 을 만들어왔다. 아기자기한 작업실 밖 윈도에는 이들의 행위(play)가 사 람들에게 전달되고 다시 메아리처럼(echo)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페코 (PECO)의 바람이 적혀 있다. 메종 & 오브제 를 홀리다 최근 페코마트는 아주 반가운 메아리 같은 소식 하나를 들고 왔다. 지난 9월 프랑스 파리 노르 빌르뱅트 전시 센터에서 열린 세계 최대 생활 디자 인 박람회 메종 & 오브제 (Maison & Objet)에 참가해 여러 작품들의 수 출 계약을 성사하고 또 제안받고 돌아온 것이다. 이성진 작가와 이민혜 작가는 메종 & 오브제 이후 일손이 더 바빠졌다고 하면서도 설레는 마 음을 감추지 않았다. 해외 전시에 참여한 것은 지난해 일본 도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였어요.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성과가 좋았어요. 페코마 트 제품의 유머러스한 면이 잘 통한 것 같아요. 스마트폰 때밀이 나 오징 어 모양의 포스트잇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 많이들 웃고 여러 질문을 하 셨어요. 그럴 때 기분이 참 좋았죠. 모마(MoMA, 뉴욕현대미술관)를 비 롯해 시카고현대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등의 해외 미술관과 유럽의 편 집숍, 그리고 개인 유통업자에 이르기까지 15개국 이상에서 젊은 작가들 의 이 유쾌한 디자인을 보고 제품 계약을 제안했다. 수출 소식은 비단 젊은 작가들의 짜릿한 성공 소식에 머물 것 같지는 않다. 페코마트는 새로운 공간에서 또 다른 어떤 재미난 일과 이야기가 계속될 것인지,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두 눈을 반짝이고 있기 때문이 다. 해외 반응을 통해 저희도 많은 걸 배우게 돼서 기뻐요. 페코마트 제 품에 한글이 쓰여 있다 보니까 제품 위의 문구를 영어나 일본어 버전으 로 새롭게 만들자는 이야기도 나눴어요. 또 어떤 남자분이 오셔서 뉴욕 모마에 입점되어 있던 컵받침 미트 버거 (Meet Burger)를 샀다며 무척 반가워하셨는데 알고 보니 폴 스미스 브랜드 관계자셨어요.(웃음) 저희 에게 협업을 제안하셨죠. 스마트폰 때밀이 는 한국의 때밀이를 알고 있 던 사람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전시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던 건 과자 모양을 한 메모지였다. 페코마 트의 디자인은 첫눈에 보면 위트 넘치는 장난감 같다. 한 예로 이들이 디 자인한 과자 봉지 안에는 바삭바삭한 과자 모양의 메모지가 담겨 있다. 장난끼와 함께 사물의 실제 쓰임을 발견하는 의외성 이 페코마트 디자인 의 또 다른 매력이다. 과자 모양의 메모지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자 를 깨물어 먹은 듯 모두 다 다른 모양에 웃음이 번진다. 진짜 과자를 꺼 내 먹는 순간처럼 메모지 하나하나에는 독특한 향과 질감이 넘친다. 과 자를 만지듯 부스럭거리는 듯한 느낌이 손으로 전해진다. 서양에서는 크리스마스 때 쿠키를 많이 구워 먹잖아요. 크리스마스 때처럼 기분 좋 은 메모 용지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해서 이렇게 만들게 됐죠. 마트에서 파는 과자 봉지 디자인을 패러디하면서도 이런 메모지가 있다면 사고 싶다 는 마음이 들 만큼 메모지에 적합한 디자인을 완성했다. 크리스마 스 쿠키 메모지 뒷면은 보통 과자들이 그렇듯 성분표시가 되어 있다. 그 런데 메모지에 담긴 성분이 남다르다. 유머 40%, 트릭 30%, 웃음 30%! 세상이 이렇게 이루어져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페코마트의 제품에는 정형화된 디자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머리를 알싸하게 만드는 유머가 곳곳에 놀이하듯 숨어 있다. 소꿉놀이를 할 때 쓰이는 가짜 음식 같은 미트 버거 는 어엿한 컵받침으로 여섯 개의 컵 받침을 차례로 쌓으면 햄버거 모양이 되는 컵받침 세트다. 햄버거 컵받 침은 아이디어 뱅크 이성진 작가의 발상에서 시작됐다. 컵받침은 사용 하지 않을 때는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컵받침을 사용하지 않을 때도 주목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 었어요. 각각의 컵받침을 모아서 이렇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면 햄버 거 모양이 되니까 흥미로운 인테리어 소품으로 쓰일 수 있어요. 고기 (meat)에서 알파벳 하나를 바꿔 만남 (meet)을 만들어낸 페코마트의 기 지는 이렇게 생활을 관찰하는 데서 비롯된다. 상상과 현실의 스파크 햄버거가 전 세계 많은 이들이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음식이라면 페코 마트의 또 다른 디자인에서는 한국에서 특별하게 여기는 물건들에 대 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이민혜 작가가 설명해주는 공깃밥 카드 와 소 주병 카드 에는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입체적으로, 또 재치 있게 담겨 있 다. 밥공기에는 꽃문양과 함께 엄마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쌀알 모양의 동그란 편지지를 그릇에 담으면 영락없는 공깃밥이 된다. 어버이날 어 머니께 드릴 수 있는 그런 카드죠. 소주병 모양의 카드는 아빠가 힘내시 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만든 거예요. 힘과 마음을 전해주는 편지지 를 만들고 싶었어요. 한국의 독특한 미감을 담고 있는 디자인이라면 뭐 니뭐니 해도 스마트폰 때밀이 다. DSLR의 렌즈를 닦는 초극세사 천으로 만들어진 때밀이는 최근 가장 큰 관심과 인기를 얻고 있다. 분홍색, 하늘 색, 노란색의 때밀이는 손가락 세 마디가 딱 들어갈 수 있는 앙증맞은 크 기로 디자인되어 유용하면서도 귀엽다. 목욕탕에서 쓰는 이태리타월을 응용한 발상의 전환 이다. 한 땀 한 땀 재봉틀로 바느질해 만든 제품으로
2 1 1 미트 버거. 2 오징어 포스트잇과 문어 포스트잇. 3 스마트폰 때밀이. 3
사람과 사람 영 아티스트 28 29 기존의 문구 디자인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화를 제안하고 싶어요. 여기 오면 예쁜 노트와 편지지를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되는 그런 공간이오. 냉장고 등에 붙일 수 있는 껌자석. 100%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이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한국적인 매력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 다. 먹고 마시고 생활하는 방식을 흥미롭게 비트는 일에 애정과 생동감 이 더해져 상상력과 현실의 스파크가 일어난다. 더욱이 이들이 작업하 고 있는 신당창작아케이드는 다양한 영감을 얻는 보물창고와 같은 장소 다. 시장이라는 점이 흥미로웠고 그래서 페코마트와 더 잘 맞아떨어진 다고 생각했어요. 오징어 모양의 포스트잇이랑 스마트폰용 때밀이는 시 장의 소박한 정서에서 발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아이디어가 없 을 때 시장을 자주 돌기도 해요. 젊은 작가들이 함께 있어서 힘을 얻기 도 하고 인쇄소가 많은 충무로와도 인접해 있어서 여러모로 도움을 받고 있어요. 오징어 포스트잇 과 문어 포스트잇 은 오징어다리 뜯어먹듯이 포스트잇을 재밌게 뜯어서 사용하라는 의도에서 만들게 된 문구 제품이 다. 오징어와 문어다리처럼 쭉 뻗은 포스트잇은 떼어 쓰기에도 메모하기 에도 간편하고 편리하다. 냉장고 등에 붙이는 자석을 껌 모양으로 만든 것도 그냥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잘 달라붙는다는 껌의 특성, 그리고 자석을 동시에 생각해낸 아이디어다. 껌이 딱 달라붙잖아 요. 자석도 딱 달라붙으면 좋을 거고요. 저희가 새로운 껌 로고와 디자인 을 만들기도 했어요.(웃음) 놀듯 작업하고, 작업하듯 논다 페코마트가 작업하는 방식은 관찰과 상상이 함께 어우러진 놀이와 같 다.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작업하지만 이성진, 이민혜 작가의 협업은 생 활에서 놀이와 일이 짝꿍처럼 연결되어 있다.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이렇게 만들어보자 하는 경우가 가장 많아요. 그래서 새벽에 갑자기 전 화로 이민혜 작가를 깨우는 경우도 많고요. 이성진 작가가 불현듯 아이 디어를 낸다면 그래픽적인 부분은 이민혜 작가가 주로 진행한다. 제품, 아이디어 제작을 제가 맡는다면 이민혜 작가가 제품 색깔과 이미지를 주 로 만들어요. 순간순간마다 아이디어를 함께 놀듯이 공유하고요. 이민 혜 작가는 이렇게 아이디어를 공유해 디자인하는 과정이 결국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가 와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언 젠가부터 사람들이 이걸 좋아할까, 정말 쓸까 하는 생각보다는 내가 쓰 고픈 걸 만드는 게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쓰고 싶은 걸 만들 때 다른 분들도 좋아하는 경험을 자주 하고 있어요. 정말 쓸데없어 보이 는 디자인이거나 말도 안 되는 디자인처럼 보여도 피식 웃음이 나올 수 있고 각자의 생활에 힘이 될 수 있는 디자인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성진, 이민혜 작가는 둘 다 대학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다. 하 지만 평소 그래픽뿐 아니라 제품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두 작가는 각각 프리랜스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의기투합해 페코마트를 시작했다. 제 품 구상부터 제작, 판매, 유통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길을 찾아왔다. 페코마트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역사는 길지 않지만 이성 진 작가는 페코 라는 예명으로 다양한 일러스트와 디자인 작업들을 진행 했고 이민혜 작가는 그만이 가진 감각적인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많은 책 작업 등에 참여해왔다. 페코마트를 처음 시작할 때 회사의 콘셉트를 정 확하게 잡고 싶었어요. 일상적인 물건에서 소소한 재미를 발견할 수 있 는 디자인이 목표였죠. 일상의 유쾌한 반전이라고 해야 할까요? 쉽게 알 아볼 수 있는 반가운 감탄사 같은, 순간의 재미를 함께 만들어가며 보여
주고 싶었어요. 페코마트가 내놓은 제품들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반전 의 감각들 이 살아 있다. 기존의 음료수 패키지를 차용한 스티커 편지지 세트는 센 스와 기발함이 가득해 당장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우유 디자인을 패러디한 서운해유, 포도 음료수를 차용한 여봉 빨리 들어와 요, 딥키스, 바캉스, 친구사이다 스티커까지 친구나 가족에게 음료수 를 건넬 때 재미있는 편지도 함께 건네고 싶었던 두 디자이너의 마음이 실제 이런 제품으로 살아났다. 친구사이다 도 둘이 나누던 말장난에서 시작한 디자인이었어요. 일이라고 생각 안 하고 디자인 샘플을 만들어서 서로 보여주기도 하고, 반응이 별로 안 좋으면 그만두기도 하고요. 일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분, 즐거운 놀이처럼 생각해요. 작업의 영감은 주로 노는 데서 얻어요.(웃음) 마트나 시장을 많이 돌아다니기도 하고요. 페 코마트의 흥미진진한 디자인에 비해 침착한 두 작가는 제품은 발랄한 데 성격은 차분해 보인다 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사실 두 작가 모두 둘만 있을 때는 숨겨둔 장난끼가 발동한다. 페코마트를 운영하기까지 어려운 점도 물론 많았다. 대량생산을 위 한 제작비, 인쇄 과정, 유통 등 그간의 문제를 통해 페코마트만의 노하우 를 쌓는 과정을 보낸 이들은 즐거운 창조행위가 가능한 디자인 브랜드 를 꿈꾼다. 아직 국내에서는 디자이너 브랜드나 상품에 대한 인식이 높 지 않아요. 가격이 비싸다면서 제품을 보고 살짝 웃고 지나가시는 분들 도 많고요. 앞으로 재밌는 상품을 만들어서 페코마트 오프라인 숍을 열 고 싶어요. 상품만 진열해놓고 파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색다른 공간의 마 트 말이에요. 이민혜 작가가 상상하는 마트에 이성진 작가는 이런 그림 을 덧붙인다. 기존의 문구 디자인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화를 제안하고 싶어요. 여기 오면 예쁜 노트와 편지지를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되는 그런 공간이오. 페코마트가 상상하는 마트와 그 안팎에 담긴 생활 디자인은 팍팍한 일상에 힘이 되는, 시원한 청량음료 같다. 서운한 마음, 미안한 마음, 사 랑하는 마음 등 남에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저희가 만든 사물들을 통해서 웃으면서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단순한 청량음료가 아니 라 이들이 만든 스티커처럼 반전의 매력이 숨어 있는 디자인 말이다. 글_ 현시원 독립 큐레이터.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전문사 과정을 졸업하고 한겨레신문 esc팀에서 기자로 일했다. 전시 <지휘부여 각성하라> 등을 기획했고 단행본 <디자인 극과 극>을 펴냈다.
사람과 사람 나의 서울 생활기 30 31 한옥 지킴이 피터 바돌로뮤 오래된 건축물에는 문화가 흐른다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에게는 한옥 지킴이 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는 철거 위기에 처한 한옥을 2년여에 걸친 두 번의 법정 공방 끝에 지켜냈다. 우리가 아끼고 보존해야 할 한옥을 외국인이 구해냈다니,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국인으로서 창피함과 부끄러움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40여 년간 살아온 그는 한국인을 가리켜 우리나라 사람들 이라고 칭할 정도로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느끼지 않는 듯하다. 한옥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통가옥과 역사에 대한 지식마저도 빠삭한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조차 순간 잊게 된다. 강릉 선교장에 사시면서 한옥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고 들었습니다. 선교장 하 면 조선시대 사대부의 고택으로 유명한데 어떻게 외국인에게 그 집에 살 기회 가 주어졌나요? 선교장에서는 1968년부터 4년간 살았습니다. 당시 할머니 한 분 이 혼자서 99칸짜리 집을 지키고 계셨는데, 마땅히 이야기 나눌 사람 하나 없고 무척 적적하셨을 테지요. 그런데 제가 자주 찾아 가서 말벗도 해드리고 하니까 어느 날 들어와서 살아도 좋다고 하시더군요. 그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여전히 집안 행 사에도 참여하고 자주 교류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선교장은 한국 의 전통가옥 중에서도 그 원형이 잘 보존된 집이지요. 아들이 대 대로 관리를 맡고 있는데, 의식도 깨어 있고 한옥에 대한 지식도 해박해서 잘 지켜나가고 있어요. 그때의 기억이 남아 서울로 올라와서도 한옥을 고집하신 건가요? 동소문동에 있는 이 집에 이사 온 때가 1974년인데, 당시에는 한 옥이 전혀 특별한 주거공간이 아니었습니다. 동소문동 주택의 90% 정도는 한옥이었지요. 작지만 정원도 있고, 주차도 할 수 있고, 교통도 편한데다 무엇보다 예산이 맞아 이 집을 사게 됐습 니다. 이사 와서 보수를 좀 하긴 했지만 집 내부를 완전히 개조하 진 않았어요. 전통양식 그대로 살아도 전혀 불편하지 않으니까 요. 10년 전에는 뒷집도 사서 두 집을 이어놓았죠. 30년 넘게 산 집이 철거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은 짐작이 가고도 남 습니다. 2007년 이 지역이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됐습니다. 동소문동6가 일대의 한옥 43채가 철거될 위기에 놓였던 거지요. 법적으로 재 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려면 노후하거나 불량한 건축물이 60%를 넘어야 하는데 이 지역은 그에 미치지 못했어요. 이를 근거로 뜻 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소송을 냈고 기나긴 법정 공방을 벌인 끝 에 승소했습니다. 하지만 재개발추진위원회 쪽에서 바로 항소 하더군요. 지난해 2심에서도 어렵게 승소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긴 법정 싸움으로 인한 스트레스, 그리고 주위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한옥을 지키시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옥은 과학, 철학 그리고 미학이 담긴 훌륭한 주거공간이에요. 입지부터 큰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자리 잡으며, 건물 형태는 강풍을 막아내기에 적합합니다. 보온뿐만 아니라 습기를 제거하 는 효과도 있는 온돌은 그 자체가 과학이지요. 또한 한옥은 나무, 흙, 돌, 종이 등 자연 소재만을 이용해 지은 집이기에 콘크리트와 알루미늄으로 지은 집이 만들 수 없는 안락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를 제공합니다. 지붕의 곡선, 미닫이문의 격자 모양 등은 또 얼마 나 아름답습니까? 그러한 한옥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하고 오래된 집이니 무조건 새로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요? 제가 이 집을 샀던 1970년대 중 반만 하더라도 서울에 80만 채 정도의 한옥이 있었습니다. 지금 남은 건 1%도 채 되지 않아요. 반면에 뉴욕 맨해튼에 가면 1800 년대에 지은 건물들이 수두룩하고, 유럽에는 중세시대의 고성과 고택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네들은 건물이 오래되고 낡았다 고 해서 부수고 새로 짓지 않아요. 정부와 개인이 나서서 가꾸고 지켜나갑니다. 오래된 건축물은 국가와 개인의 역사이고 정체성 이잖아요. 문화가 담겨 있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북촌을 중심으로 한옥 보존이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나라의 지원이 동소문동6가와 7가까지 포함하는 재개발 계획이 추진되고 있습 니다. 소송에서 이기면 모든 일이 끝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 지가 않더군요. 재개발을 원하는 주민들도 있을 텐데 그분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을 것 같습 니다. 실제 집 앞에서 시위를 벌인 사람도 있었고, 집에 찾아온 손님에 게 해코지를 한 사람도 있었어요. 지금도 괜한 시비를 피하기 위 해 집에 드나들 때는 조심스레 행동합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 이에 재개발에 대한 주민의 인식이 많이 바뀌기도 했어요. 재개 발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지요. 주민 의 50% 이상이 반대할 경우 재개발 추진이 불가능한데, 성북구 만 해도 벌써 네 곳이 무산됐어요. 우리 동네도 그렇게 되었으면 합니다. 있기도 하고요. 물론 나라에서도 한옥 보존에 힘쓰고 있기는 하지요. 하지만 그 방식이 문제예요. 보존의 대상은 북촌에 있는 700~800채의 한 옥뿐이고, 남은 한옥은 모두 철거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나마 북 촌의 한옥도 나라에서 원하는 방식대로 리모델링을 해야만 지원 을 받을 수 있고요. 고유의 주거형태를 완전히 뜯어고친 한옥을 어떻게 한옥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사실 한옥뿐만이 아니지 요. 도시개발 계획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역사적인 건물들이 사 라졌어요. 한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인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한옥에 사시면서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으셨나요? 한 번도 없습니다. 거짓말 같지요? 하지만 아닙니다. 조금만 고쳐 살면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양옥도 30년에 한 번씩은 수리를 해 야 하잖아요. 한옥도 마찬가지입니다. 30여 년 전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한옥의 전통적인 형태와 원자재는 그대로 살리되 전선, 배 관 등의 불편한 부분은 수리를 했어요. 욕실과 주방도 생활하기 편하도록 고쳤고요. 겨울에는 알루미늄으로 된 덧문을 만들고 온 풍기를 설치하기만 하면 전혀 춥지 않아요. 낮에는 햇볕이 잘 들 어 온풍기도 거의 틀 필요가 없습니다. 이 집이 1930년대 말이나
사람과 사람 나의 서울 생활기 32 33 한옥은 과학, 철학 그리고 미학이 담긴 훌륭한 주거공간이에요. 보온뿐만 아니라 습기를 제거하는 효과도 있는 온돌은 그 자체가 과학이지요. 1940년대 초에 지어진 걸로 추정되는데 보시는 것처럼 깨끗하게 잘 보존되어 있잖아요. 한옥에 사는 것이 불편하다는 생각은 그 야말로 선입견에 불과합니다. 40년 넘게 한국에 사셨으니 이제 뼛속까지 한국사람이 다 되셨을 것 같습니 다. <1대100>이라는 퀴즈 프로그램에서 외국인 최초로 우승을 할 정도로 한 국사회에 관해 해박하시기도 하고요. 처음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 습니까?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 땅에 처음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러다 한 국에서 일자리를 얻었는데, 그 일이 하고 싶었던 일이었던데다 재미도 있어서 오랜 시간 머물게 되었지요. 그 이후 선박 컨설팅 관련 회사를 이곳에 설립했고요. 무엇보다 한국의 친구들과 문화 가 저를 떠나지 못하게 한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전통건축 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한국에서 정말 매력적인 건축물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콘크리트가 덮이기 이전의 청계천의 모 습도 기억합니다.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이사,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명예이사로도 활동하고 계시지요. 왕립아시아학회는 아시아의 역사, 미술, 자연, 지리 등을 연구하 는 기관으로, 런던에 본부가 있습니다. 한국지부는 1900년에 설 립되었고요. 저는 한국의 전통건축과 역사에 관한 강의와 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은 전통건축을 보존하고 보호하는 단체로, 저 또한 외부 강의나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국 건축물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지요. 해군의장대 출신 대원들을 오랜 기간 후원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 니다. 후원한 지는 26년 정도 됐습니다. 서울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 는 지방 학생들에게 살 곳을 제공하고 있어요. 우연한 기회에 진 해 해군의장대 행사를 관람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의 질서정연한 모습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의장대의 군기가 세긴 하지만 그 안의 질서도 잘 잡혀 있고, 또 그들의 의리와 사고방식은 사회에도 도 움이 되는 부분이거든요. 사실은 이 학생들이 저를 돕는 측면도 있습니다. 온돌방이 7개, 마루방이 2개인 큰 집이다 보니 혼자 지 내기에 너무 넓기도 하고, 또 제가 출장이 잦아 집을 비우는 경우 도 많거든요. 같은 내무반 출신의 학생들이라 서로 사이도 좋고, 마치 가족 같은 분위기지요. 앞으로의 서울 생활을 통해 이루고 싶은 소망, 꿈이 있으신가요? 개인적으로 동소문동 일대를 문화의 동네로 만들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이 지역 가까이에 성신여대, 한성대, 국민대, 고려대 등 여러 대학이 몰려 있잖아요. 교육의 동네 라고 불릴 정도지요. 학 생과 선생들이 많이 사니까 문화적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 지역의 한옥을 잘 보존해 갤러리, 공방, 찻집, 책 방 등으로 개발하면 좋을 것 같아요. 성북구에는 문화적인 거리 가 부족한데, 이 동네가 그렇게 되었으면 합니다. 이 모든 꿈은 재개발이 무산되어야만 가능한 일이겠지요. 글_ 윤현영 여행 잡지 기자를 거쳐 현재는 독립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시끌벅적한 도시의 다채로운 모습을 글로 옮기는 작업을 좋아한다. 사진_ 오계옥 느긋한 일요일 오전의 커피 한 잔을 꿈꾸며 일주일을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진기자.
사람과 사람 서울 단상 34 35 가을은 재즈의 도가니!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인재진 총감독의 서울 그리고 재즈 이야기 가을은 역시 재즈의 계절 이라거나 재즈의 선율은 가을바람을 타 고 라는 식의 제목이 붙은 기사가 최근 국내 매체에 자주 등장한 다. 음악을 즐기고 듣는데 특정 계절이 필요할 리 없는데 유독 가 을만 되면 이런 말들이 자주 들린다. 재즈라는 음악을 굳이 계절 과 연결해 이야기한다면 서양에서는 일반적으로 여름이 재즈의 계절로 통한다. 물론 여름에는 전 장르에 걸친 각종 공연예술 축 제가 동시에 펼쳐지기에 다시 말하면 여름은 각종 공연예술 축 제의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후 탓인 지 가을에 유독 많은 축제가 벌어진다. 특히 경기도 가평에서 10 월에 펼쳐지는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은 순항을 거듭하며 8년 동안 성공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나의 직업은 축제 총감독이다. 8년 전부터 자라섬국제재즈페 스티벌의 총감독으로 일하고 있으니 꽤 장수(?)하고 있는 축제감 독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축제를 기획하다 보니 그 지역이 좋 아져서 지금은 가평의 한 작은 마을로 이사해 계획에 없던 전원 생활을 5년째 계속하고 있다. 이제는 시골생활에 완벽히 적응해 버린 전( 前 ) 서울 시민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전원생활의 좋은 점을 열심히 설파하며 함께 같은 길을 걸 어갈 것을 강력히 권유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주말 저녁마다 서울의 재즈 클럽과 공연장을 찾지 못하는 아쉬운 속내를 숨기 는, 이중적 모습도 있다. 재즈는 요리다 재즈페스티벌의 총감독이라는 직업상 흔히 듣는 이야기가 어떻 게 하면 재즈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과 재즈는 너무 어렵다 는 말이다. 재즈라는 음악을 접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음반을 통하여 생활 속에서 매일 접 할 수 있는데, 특별히 음반으로 재즈와 가깝게 지내는 방법을 한 가지만 추천한다면 같은 곡을 다르게 연주한 다양한 버전을 찾아 듣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자신도 모르게 재즈의 매력에 푹 빠지
재즈를 즐기는 최고의 방법은 라이브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최고의 요리사가 현장에서 조리하는 음식을 즉석에서 맛보고 평할 수 있다면 이것 또한 최고의 경험이 아니겠는가? 어가서 별미를 만나게 되는 식당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잘 모르 는 혈기 왕성한 젊은 연주자와 검증된 유명 연주자들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곳, 그리고 그들이 조리하는 새로운 별미를 기대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재즈 클럽인 것이다. 직업상 해외 출장이 잦은 나는 출장 중에도 항상 현지의 재즈 클럽을 찾아 그들의 음악을 맛보려 애쓴다. 재즈는 특이하게도 세계인 모두가 맛볼 수 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특별한 레시피를 가지고 있는 음악이기 때문 이다. 나만의 추천 리스트 게 된다. 지구상의 수없이 많은 요리사들이 같은 재료로 다른 음 식을 만들고 있는데 그 음식을 비교하여 맛볼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다만 귀로 맛을 본다는 차이가 있을 뿐, 재즈는 요 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직업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재즈를 즐기는 최고의 방법은 라이브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최고의 요 리사가 현장에서 조리하는 음식을 즉석에서 맛보고 평할 수 있 다면 이것 또한 최고의 경험이 아니겠는가? 물론 우리가 끼니마 다 입에 맞는 음식을 먹을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 는 음악을 듣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초행길에 우연히 들어 간 식당에서 별미를 만나게 되었을 때 그 경험은 특별한 기억으 로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의 몇 군데 재즈 클럽은 우연히 들 이번 주말, 아니 오늘밤에 당장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상쾌한 가 을바람을 맞으며 맥주 한 잔과 근사한 음악의 성찬을 맛볼 수 있 는 재즈 클럽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좋아하는 몇 군데 재 즈 클럽을 소개하자면 먼저 이태원의 올 댓 재즈 (All that Jazz)가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재즈 클럽이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곳으로 지역의 특성상 많은 외국인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곳 이기도 하다. 홍대 앞 에반스 (Evans)는 젊은 연주자들이 항상 새 로운 음악을 선보이는 클럽으로 의외의 신예를 만나기에 충분한 멋진 공연이 매일 밤 펼쳐진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서초동의 야누스 (Janus)라는 클 럽이다. 우리나라 재즈 1세대 연주자 중의 한 사람인 재즈 보컬리 스트 박성연 씨가 운영하는 곳으로, 오랫동안 국내 재즈 연주자 들에게 사랑방 같은 역할을 했다. 만약 고급스러운 취향의 소유 자라면 압구정동의 원스 인 어 블루 문 (Once in a Blue Moon)도 추천할 만하겠다. 이곳에서는 종종 내한 공연을 마친 해외 유명 연주자들의 뒤풀이 현장을 만나는 행운도 함께한다. 이번 주말에는 나도 전원생활의 즐거움은 잠시 접어둔 채, 설 레는 마음으로 서울의 재즈 클럽을 찾아볼까 한다. 혹시 거기서 이 글을 읽은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마치 십년지기라도 되는 것처럼 반갑게 인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바로 재즈 라고 이야 기하면서 말이다. 글_ 인재진 경기도 가평읍 마장리에 거주하면서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의 총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상명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로 출강 중이다. 일러스트레이션_ 이정현 대학에서 의류학을 전공, 현재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지금 서울은 이슈 36 37 그들은 어 찌 하 여 함께 막걸리를 마시게 되었나 서울의 외국인 예술가들 - 금천예술공장 입주 예술가
불과 수년 전만 해도 거리에서 스치는 외국인이 낯설게 느껴졌다. 실제 1984년에는 4만 명에 불과하던 장기 거주 외국인 숫자가 2011년에는 130만 명을 돌파했다. 2000년대 들어 국제도시 서울의 매력이 전 세계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주한캐나다 상공회의소 시몽 뷔로 회장은 한강에서 수상스키를 타고 북한산에서 암벽등반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수많은 갤러리와 공연장, 최고의 식당이 반경 10km 안 메가시티에 모두 다 있다 며 자신이 서울에서 20년을 산 이유는 서울이 최고의 비즈니스 도시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할 정도다. 자연스레 서울에서 창작활동을 벌이는 젊은 예술가도 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케이팝(K-pop)으로 대표되는 서울은 대중문화의 아시아 중심도시로 발돋움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젊은이들이 이제는 서울을 소비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제도시의 숙명이자 아름다운 의무인 셈이다. 지하철 1호선 독산역에서 멀지 않은 금천예술공장에는 6명의 젊은 외국인 예술가들이 상주하며 자신의 예술활동을 지속해가고 있다. 이곳은 3개월간 거주가 가능한 레지던스식 예술공간으로, 국제적 예술인들에게는 거주 공간을 후원하고 지역사회에는 예술작품으로 보답하는 흥미로운 실험이 반복된다. 11월 30일 서울 을 주제로 작품발표를 준비 중인 6명의 외국인 작가들을 만나봤다. 저건 무슨 로봇일까? 마치 정의의 사도처럼 늠름하잖아? 글쎄, 마징가 같은 데. 금천예술공장으로 가는 길은 걱정만큼 어렵지 않았다. 가산디지털단지역을 지 나니 금세 독산역이다. 생각보다 근접한 도심 속 예술공간인 셈이다. 1970~80년대 영등포구 문래나 금천구 독산 쪽에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서울의 맨얼굴 을 알고 있는 셈이다. 과거 수출역군이 밤잠 이루지 못하고 밥 먹듯 야근하던 동네가 바로 이 곳 옛 구로와 영등포 지역이다. 바둑판처럼 잘 짜여진 공단도로 5~6개를 지나니 금 천예술공장 이라는 팻말이 이방인을 반갑게 맞이한다. 옛 인쇄공장을 리모델링했다 는 얘기가 실감이 날 정도로 공장형태가 분명한 예술가의 안식처였다. 입구에 선 순 간 공장 지붕 위에 터줏대감처럼 서 있는 마징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근사한 아 트 로봇 이다. 그 존재만으로 이곳이 예술+공장 임을 인식시키는 압도적 위력이다. 서울이요? 처음이에요. 아시아 미술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어서 진작 왔어야 했 을 도시인데 늦게 온 셈이죠. 사실은 집중적으로 연구할 공간이 필요했는데 이곳이 가장 이상적이었어요. 호주 태생으로 현재는 독일에서 작품활동 중인 알렉스는 4주차 서울생활을 무 척이나 효과적으로 보내고 있었다. 이미 부산과 모란공원묘지 등을 돌아다니며 사 전조사를 끝마친 눈치였다. 그녀의 하루일과는 무척 규칙적이다. 집중해서 연구해 야 할 시간과 작업하는 시간을 명확하게 구분해 사용한다. 생활비가 비싸고 작업실 이 떨어져 있던 독일에서 한동안 이 문제로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숙 소와 작업실이 한데 모여 있는 금천예술공장은 최적의 작품활동 공간이다. 그녀는 손수 장봐온 음식으로 가볍게 식사를 하고 정해진 시간에 작업실로 돌아가 연구에 매진한다. 깐깐한 학구파 예술가 이미지 그대로다. 그녀는 과연 어떤 작품을 선보일 까? 그녀가 이번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놀랍게도 독일 뉴스를 통해 접한 한국의 한 여성노동자 때문이었다고 한다. 여성이 노동운동의 선두에 서 있는 모습은 흔한 일이 아 니에요. 한진중공업 크레인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는 김진숙 씨가 제 작품의 모티브입니다. 도심의 오래된 공업지대가 쇠 락하면서 노동자들이 겪어야 할 고통은 서구에서도 낯설지 않 아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성이 그 저항의 대표 존재라니 놀 라워요. 도시와 여성의 몸 그리고 노동과 정치의 교차점을 작 품으로 보여줄 생각입니다. 금천예술공장이 2011년 하반기 프로젝트로 내세운 화두는 도시문제 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세계 여러 도시에서 온 이방인의 시선으로 새롭게 재해석해보자는 프로젝트다. 사실 현대적 대도시란 거의 모든 예술가들의 화 두가 된 지 오래다. 현대성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인 도시. 결국 모든 작가들은 도시의 비판적 소비자들이자 인류의 행복을 위 한 최선두에 선 도시 파괴자들이다. 이를 위해 일본과 인도네시아, 호주, 그리고 스페인에서 온 6명의 작가들이 이곳 작업실에 9월 초부터 둥지를 틀었다. 이들 6명은 모두가 설치미술(설치영상이나 영상퍼포먼스) 작 가들이다. 한 달간 자신의 주제에 맞춰 조사활동을 벌이고, 한 달 이상 작품 제작에 몰입할 시간이 주어진다. 11월 30일까지 작품을 매조지하고 12월 8일까지 3층 PS333 전시실에서 자신 들의 결과물을 전시할 계획이다. 이들에게는 총 3개월 동안의 흥미로운 동거동락이자 두 번 다시 찾아오기 힘든 서울에서의 장기체류인 셈이고, 서울시민에게는 세계적 수준의 젊은 작 가들의 작품활동 전 과정을 근접 목격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 다. 글로컬(글로벌+로컬) 이란 화두를 내세운 도심 속 창작공 간의 위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10월 4일은 이곳에서 함께 일주일간 생활한 큐레이터 제이 슨의 환송회와 여섯 번째 멤버인 애쉬의 생일파티가 열리는 날 이었다. 뉴욕으로 떠나는 제이슨과 막 호주에서 도착한 애쉬 를 위해 간단한 다과가 마련됐다. 약속된 저녁 6시가 되자 서 울시내 구석구석을 탐험하던 이들이 하나둘씩 독산동으로 모 금천예술공장에서 작업하는 외국인 예술가들.
지금 서울은 이슈 38 39 여들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온 엠지와 줄리아는 막 안산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들 역시 첫 방문이지만 한국 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다른 작가들과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 다. 한류의 영향 때문만은 아니었다. 독산동이나 안산의 공단 에서 수만 명의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이 한국 노동자를 대신해 일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의 문제는 오롯이 자신들의 문제이기 도 한 셈이다. 서울 부자들은 어디 사나요?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도 보 았으니 이번에는 서울의 부유층이 사는 곳도 한번 가보고 싶 어요. (줄리아) 지난주에는 한강 여의도 공원에 가서 서울시민이 여가생 활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보고 왔어요. 오늘은 안산지역 외국 인 노동자들이 시간을 보내는 공원을 보고 왔어요. 크게 비교 가 되네요. 아무래도 신분의 차이 때문이겠죠. (엠지) 184cm나 되는 큰 키로 시선을 집중시킨 비센테는 스페인 타라고나 출신으로 역시 처음 한국을 찾았다. 아시아를 처음 방문한단다. 자연스레 그의 눈에는 보이는 것 하나하나가 신 기함과 경탄의 대상이 된다. 오! 이게 한국의 트럼프로군요. 화투? 예쁘고 신기해요, 와우! 그는 언제나 감탄사를 연발했다. 캄사합니다 란 한국말도 적절하게 사용할 정도 로 사교적이다. 그는 도시노동자들의 여가문화를 탐구하고 있다. 가장 관심이 많은 대목은 바로 도박 이다. 합법적인 도박이 우리 곁에도 존재한다. 경마와 경륜 그리 고 강원랜드 카지노가 그렇다. 도시는 노동자에게 절망밖에 줄 게 없기 때문에 가끔 씩 달콤한 희망을 건네는 전략을 사용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난주 광명 벨로드롬 에 가서 한국 경륜을 처음 구경하고 왔다. 그런데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경마장도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강원랜드? 거기는 또 어떻게 가나요? 그곳의 분 위기도 느껴보고 싶어요. 어떤 사람들이 도박을 즐기는지 확인해야 할 테니까요. 예술가는 언제나 도시의 이방인 가장 늦게 당도한 애쉬는 유일하게 서울이 첫 방문이 아닌 작가였다. 2년 전 쌈지스 페이스에서 이미 서울을 소재로 작품을 선보인 적이 있다. 그 때문인지 여유와 자신 감이 배어 있었다. 가장 늦게 도착했지만 작품 규모도 가장 크고 작업 속도도 빠를지 모른다고 귀띔한다. 일본인 카주야는 이들 가운데 가장 젊은 작가다. 한국에는 처음 이지만 이웃사촌이니만큼 한국이 친숙하다고 말한다. Interview 금천예술공장 거주 외국인 작가 6인 알렉스 마르티니스 로어 Alex Martinis Roe 1982년 호주 멜버른 출생 모나쉬대학 순수미술 박사 전태일부터 김진숙에 이르는 한국의 도시노동운동을 연 구 중입니다. 마석 모란공원묘지에 가서 감동을 받았어요. 그곳은 민중들을 위한 미술관이더군요. 하지만 제 작품은 철저히 사실에 기반을 둔 객관성의 연장선이길 바랍니다. 정치의 도구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줄리아 사리세티아티 Julia Sarisetiati 1981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출생 트리삭티대학 사진 전공 안산에서 노동자로 살고 있는 많은 인도네시 아 사람들을 만나고 왔어요. 사회계층 간의 모 순과 역설을 품은 공업지대 안에서 이방인 노 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전략과 꿈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보고 싶어요. 애쉬 키팅 Ash Keating 1980년 호주 멜버른 출생 폐기물을 활용해 거대 설치 작업을 해왔습니다. 2년 전 쌈 지스페이스 초대로 을지로 간판업체들의 폐기물을 집중적으 로 수집. 연구한 적이 있어요. 규칙적 폐 쓰레기가 괴물로 변 하는 라벨 랜드(Label Land) 라는 작품을 만들었죠. 이번에는 서울이란 멋진 도시를 상징하는 아주 환상(?)적인 가든 시티 (Garden City) 를 구상 중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아요.
서울은 도쿄와 상당히 비슷한 것 같아요. 젊은이의 문화, 패션, 도시 경관 등이 특히 그렇죠. 그러나 잘 관찰해보면 미 묘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재미난 점은 젊은이들이 특 정 브랜드를 동일하게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왜 그럴 까요? 10월 6일, 필자는 이들과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아무리 한 공간에 살고 있다지만 외식을 함께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 다. 문화적 배경도 다르고 작업 패턴도 다르기 때문이다. 한식 은 이들에게도 언제나 신선한 도전이다. 작은 반찬 하나하나, 음식을 먹는 방법 하나하나 모든 것이 질문의 대상이다. 게다 가 오랜만에 질문에 답이 가능한 이가 찾아오자 오히려 필자 가 인터뷰를 당한 셈이 됐다. 한국의 묘지는 왜 둥그런가, 노 동자들은 비싼 집값을 어떻게 감내하나, 한국 드라마는 왜 매 번 극단적 소재를 쓰나, 한국의 여성은 그리도 보수적인가, 남 북한 통일을 원하나. 이들의 질문은 끝이 없었고 문제를 풀어 나가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예술가란 직업은 끊임없이 질문을 주고받으며 깨달음을 얻 어가는 과정일 수밖에 없어요. 그런 점에서 무척이나 흥미로운 직업이죠. (비센테) 서울의 비싼 물가 얘기가 나오자 각자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사정도 들려 주었다. 이제 30대 초중반인 이들은 각자가 살고 있는 대도시에서 치열한 생존투쟁 을 벌이는 중이었다. 전 세계 대다수 예술가들은 보험혜택도 없고 고정 수입도 없어요. 다들 한계생 활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죠. 때문에 도시문제를 보다 민감하고 날카롭게 바라봅 니다. 우리 역시 도시의 변방에서 살아가는 가냘픈 존재니까요. (알렉스) 잠시 우울한 얘기가 흘러 나왔지만 막걸리로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막걸리는 한국 전통주로 서민과 농민들이 즐긴다 고 설명하니 다들 관심이 배가됐다. 목넘김 이 부드럽고 게다가 알코올 도수도 적당하다고 찬사일색다. 이들은 대도시란 단순하 게 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가 아니라는 것, 그 속에서 누군가는 끊임없는 실험을 벌이 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실험의 주체는 도시에 사는 누구라도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금천예술공장 정문 앞 레몬마트 에서 벌어진 막걸리 술판을 지켜본 이는 건 물 위의 마징가 제트(예술로봇) 와 맑은 10월의 하늘 위에 떠있는 예쁜 반달이었다. 글_ 정호재 동아일보 기자. 사람을 만나고 그와 관련된 사건을 기록하는 직업 10년째. 구( 舊 )세계에서 살고 있 지만 신대륙에도 관심이 높아 뉴미디어와 아시아를 집중 취재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탁신-아시아에서의 정치 비즈니스>가 있다. demian@donga.com 카주야 타카가와 Kazuya Takagawa 1986년 일본 구마모토 출생, 도쿄예술대학 졸업 서울에서의 노동(Labor)과 일(Work)의 차이, 노동자와 예술가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곳도 원래는 인쇄공장이었다 고 합니다. 원래는 상품을 생산하던 장소가 이제는 예술가의 작품 을 생산하고 있지요. 노동자와 예술가는 도대체 무엇을 공유할 수 있을까요? 이런 의문에 대한 검증을 이곳에서 해보고 싶습니다. 엠지 프링고토노 MG Pringgotono 1980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출생 자카르타대학 시각예술교육 전공 인도네시아에서도 한류가 한창이에요. 10대 젊 은이들이 한국음악에 푹 빠지고 매력적인 서울 에 대해 환상을 품기 시작한 것이죠. 하지만 서 울에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인들 대부분은 서울 주변부에서 힘겨운 노동으로 생활을 영위합니 다. 대도시 서울과 자카르타가 아주 흥미로운 방 식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본질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비센테 바즈케즈 Vincente luis Vazquez 1976년 스페인 타라고나 출생 랜스 암스트롱은 서구사회의 영웅입니다. 서양은 자전거를 발명했지만 기계보다는 여전히 인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 문이지요. 그러나 동양에서는 자전거의 기계적 성능을 보다 중시하더군요. 인간은 사라지고 순위만 남는 경륜도 마찬가집 니다. 왜 그럴까요?
지금 서울은 이슈 40 41 <방문기 X> 최영모
새롭고 낯선 감각 충전 뉴웨이브 공연예술축제 페스티벌 場 이 11월 4일부터 12월 11 일까지 남산예술센터와 원더스페이스에서 열린다. 페스티벌 場 은 축제가 마련되는 실제의 장( 場 ) 이라 할 수 있는 남산예술 센터의 색깔과 특징을 또렷하게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는 점 에서 주목할 만하다. 컨템퍼러리와 뉴웨이브, 즉 동시대적 연 극과 새로운 공연양식은 2009년 남산예술센터가 새로 개관하 면서부터 내건 극장의 슬로건이다. 남산예술센터가 꾸준히 기 획, 제작하는 창작연극이 동시대의 고민과 성찰을 담은 컨템 퍼러리 연극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면, 페스티벌 場 은 새 롭고 실험적인 공연양식을 발굴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축, 뉴 웨이브 를 지향하는 프로그램이다. 페스티벌 場 은 1997년부터 2001년까지 대학로 소극장을 중심으로 열렸던 젊은문화축제 장 에서 시작되었다. 당시만 해도 공연장 부족 등 물리적, 제도적 조건 때문에 젊은 예술가 들이 독자적으로 자기 공연을 창작, 발표하기가 쉽지 않은 상 황이었다. 이에 몇몇 뜻있는 기획자와 아티스트의 자발적인 참 여로 젊은문화축제 장 이 시작되었고, 무용수와 마임이스트 등이 주도하는 가운데 연극, 무용, 마임 등 움직임을 중심으로 한 장르간 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후 2009년 남산예술센터의 재개관과 함께 8년 만에 부활 한 페스티벌 場 은 복합장르 의 공연을 추구한다. 젊은문화축 제 장 시절, 복합장르 개념이 배우와 무용수, 마임이스트 등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이 한 무대에 서는 것을 의미했다 면, 지금은 한 예술가가 여러 장르의 언어로 통합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질적인 장르, 서로 다른 언어가 뒤섞이면서 만들어내는 낯설고 새로운 감성과 에너지가 페스 티벌 場 이 추구하는 목표다. 공연과 미디어가 만나는 새로운 방식 페스티벌 場 은 2회를 맞이한 지난해부터 복합장르 라는 광대 한 범위를 어느 정도 제한하고 구체화시켜 미디어와 공연예술 의 결합 을 축제의 지향점으로 내세웠다. 멀티미디어나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공연예술에 접목시키는 창작 활동 지원에 초점 을 맞춘 것이다. 하지만 미디어를 단순히 재현의 도구나 장치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 라, 보다 본질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미디어와 공연예술의 만남에 주목한다. 미 디어를 통해 공연예술의 속성을 더 확장시키거나 공연예술이란 장르 속에서 미디어 를 새롭게 재해석 또는 창조하려는 시도에 힘을 실어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듯 미디어가 사용되는 방식이 일차적인 고려 대상이지만, 그 형식이 얼마만 큼 작품의 메시지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 역시 중요한 평가 기준이 다. 이는 미디어가 단순히 형식을 위한 형식 으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소통을 위한 언 어로서 기능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감수성을 만들어내고 전달해야 한다는 극장 측 의 명확한 입장을 보여준다. 이러한 기준을 통해 올해는 총 6개의 작품이 페스티벌 場 의 지원작으로 선정되 었다. 제각기 다른 장르와 다른 색깔을 보여주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미디어를 무 대에 들여옴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같은 고민을 공유하 는 작품들이다. <방문기 X> 강화정 연출의 <방문기 X>는 사후 세계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작품이다. 모든 것이 끝난 후의 안락함이나 공허함, 혹은 천국과 지옥 같은 개념을 떠나서 실제로는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오래전부터 궁금했어요. 그러다 문득 인간의 이성을 넘어서 는 그 세계를 우리의 이성으로 해석하고 상상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질문 에 도달했죠. 강화정은 이성을 넘어서는 죽음의 세계를 시각, 청각, 공간감, 그리고 무의식이 란 낯선 감각을 통해 느껴보고자 한다. 마치 설치미술 작품처럼 낡고 버려진 것들로 채워진 무대에 죽음에 가까운 인물들이 등장해 관객들을 묘하고 낯선 세계로 안내 한다. 애초부터 죽음이란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시작했기에 작품은 명쾌한 내러티브보다는 낯설고 모호한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고, 관객 역시 이 생소한 감각 에 자신을 맡기기를 권한다. 초연과 달리 이번 공연은 남산예술센터의 공간을 최대 한 활용할 예정이다. 입장부터 출연자들이 직접 관객을 폐허더미가 쌓여 있는 극장 안으로 인도하고, 공연 중에도 장면에 따라 관객을 이동시킨다. 이를 통해 관객은 스스로 방문자 가 되어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는 듯한 독특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아이에게 말하세요> <아이에게 말하세요>는 2009년 영국의 극작가 카릴 처칠이 팔레스타인 사태를 취 재하고 돌아와 쓴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의 공연권을 전 세계에 열어두었고, 모
지금 서울은 이슈 42 43 든 공연은 무료인 대신 관객의 자발적인 기부금을 팔레스타인 기금으로 전달하기를 희망했다. 박해성 연출은 작가의 의도에 대한 깊은 공감과 지지에서 이 작업을 시작 했다.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가하는 폭력을 고발하고 있지만, 좀 더 확장시키면 자신이 피해자였다는 이유로 가해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드러내고 있 어요. 이건 우리의 현대사, 지금 한국의 현실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했습니다. 작품은 이스라엘 역사의 특정한 순간을 담은 7개의 장면에 화자가 나와 모놀로 그로 극을 진행하는 형식이다. 특이한 것은 화자가 작품의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세요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지 마 세요 하는 말만 반복한다는 점이다. 실제 무대에는 아이도 등장하지 않고, 누구에 게 말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결국 이 작품은 이 말을 들은(공연을 본) 관객이 말을 하느냐 안 하느냐(행동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완성되는 것이다. 박해성은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여, 여러 대의 카메라가 무대를 다양한 각도로 찍어 실시간으로 투사하게 한다. 이는 결국 우리의 삶마저도 미디어를 통해 접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삶과 미디어 사이의 격차 를 눈으로 확인시켜주는 장치다. <겨울> 김제민 연출의 <겨울>은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의 희곡 <겨울>을 모티브로 한다. 욘 포세의 작품은 대개 철저하게 압축된 문장과 반복되는 단어, 잦은 침묵으로 이루어 져 있다. <겨울>은 그러한 포세 언어의 특징을 명징하게 드러내면서 두 남녀의 소 통의 부재를 그린다. 김제민은 원작이 지닌 단순한 구조를 해체하여 두 개의 층위를 가진 메타 구조로 풀어내고자 한다. 한편에서는 한 쌍의 남녀 가 포세의 언어를 이야기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마임이스트 와 페인팅 퍼포머가 등장해 제삼자의 입장에서 두 인물을 바 라본다. 한 무대에 포세의 텍스트에 흐르는 정서적 흐름과 이 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란 두 개의 구조를 병렬로 늘어놓 는 것이다. 이는 작품과 그것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선을 따 로 둠으로써 원작의 단순한 내러티브를 좀 더 넓히는 시도다. 김제민은 미디어를 활용해 이러한 시선의 확장을 공간적으 로도 보여주고자 한다. 야외 건물이나 오브제에 입체 영상을 투사하는 프로젝트 맵핑 기법을 사용하려 합니다. 물리적 공간 에 가상의 레이어를 입혀서 증강된 현실을 보여주는 방식이죠. 작품의 미니멀한 무대세트에 영상으로 레이어를 입혀 실제와 가상을 공존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무대가 또 다른 의미를 생 산해내도록 할 예정입니다. <펜테질레아> 무대 디자이너 출신인 연출가 라삐율이 이끄는 팟저 프로젝트 는 올해 서거 200년을 맞은 독일 극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 스트의 작품 <펜테질레아>를 무대에 가져온다. <펜테질레아> 는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그리스의 명장 아킬레우스와 여전 사 부족 아마존의 여왕 펜테질레아의 사랑과 비극을 다룬 작 품이다. <아이에게 말하세요> 상상만발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