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인치심에 대한 칼빈의 이해 이신열 (고신대학교) I. 들어가는 말 칼빈의 성령론은 많은 칼빈 연구가들에 의해 상당한 논의의 대상이 되어왔다. 1) 성령의 인격에 관한 주된 접근은 주로 그가 삼위 하나님의 세 번째 인격체임에 대한 사실에서 출발한다. 네 덜란드의 칼빈 연구가이었던 판 데르 린드 (S. van der Linde)는 하나님에 대한 삼위일체론 적 이해 없이 참된 종교가 존재할 수 없다는 차원에서 그의 신학에서 성령론의 위치는 정당화 된다. 2) 대부분의 경우 성령의 사역은 하나님의 모든 사역이 현실적으로 성령을 통해 이루어진 다는 관점에서 다양한 교리들과의 관계 속에서 고찰되어왔다. 이런 맥락에서 칼빈에 의해 성 령은 하나님의 손으로 묘사된다. 3) 성령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사역에 효력을 더하는 하나님으로 묘사되는데 창조의 사역을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창조 시에 성령은 하나니의 그림자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적인 능력으로 소개된다. 4) 따라서 독일의 칼빈 연구가이었던 베르너 크루쉬 (Werner Krusche)는 성령을 신적 행위의 효율적 능력으로 정의 한다. 5) 그러나 여기에서 칼빈이 성령의 사역과 관련해서 언급하는 능력 (potestas) 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령의 '능력 은 비록 인간의 눈에 숨겨진 것이 사실이지만, 어떤 추상적인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을 가리킨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따뜻하게 느끼게 만들고 더 나아가서 그분에 대한 경외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의 사역은 아주 인격적이며 구체 적이어서 궁극적으로 우리 경험을 통해서 알려지게 된다. 6) 이러한 경험을 통해 성령의 능력 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릴 수 있다. 칼빈은 이렇게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성령의 능력을 생명의 능력으로 이해한다. 이렇게 하여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통하 게 되며, 이로 인해 성령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생명의 능력을 느끼게 된다. 7) 성령의 사역과 이를 통해 드러나는 숨겨진 능력에 대한 인격적 체험을 더욱 분명하게 나타내 1) S. van der Linde, De leer van de Heiligen Geest bij Calvijn: bijdragen tot de kennis der reformatorische theologie (Wageningen: H. Veenman & Zonen, 1943); Werner Krusche, Das Wirken des Heiligen Geistes nach Calvin (Göttingen: Vandenhoeck & Rupprecht, 1957), 성령의 인치심과 유사한 개념인 성령의 증거 (the witness of the Holy Spirit)에 대한 이해 로는 다음을 참고할 것. Anthony N. S. Lane, "John Calvin: The Witness of the Holy Spirit," Articles on Calvin and Calvinism, vol. 9, ed. Richard C. Gamble (New York: Garland, 1992), 107-123. 2) Van der Linde, De leer van de Heiligen Geest bij Calvijn, 118. 3) 기독교 강요, 4.4.21; CO 48, 260 (행 11:21 주석). 4) 기독교 강요, 1.13.22. 5) Krusche, Das Wirken des Heiligen Geistes nach Calvin, 11. 칼빈은 이 사실을 삼위일체론적으 로 다음과 같이 적절히 묘사한다. 기독교 강요, 1.13.18: 모든 활동의 시작과 모든 일의 근원과 원 천은 성부께 있고, 또한 지혜와 경륜과 모든 일의 질서있는 시행은 성자께 있으며, 또한 그 활동의 능력과 효력은 성령께 있다. 6) Van der Linde, De leer van de Heiligen Geest bij Calvijn, 18-19. 7) 기독교 강요, 1.13.14. - 1 -
기 위해서 칼빈은 성경적 용어인 성령의 인치심 (the sealing of the Spirit) 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8) 그렇다면 칼빈의 성령론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왜 이 용어가 제대로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가? 이에 대한 답변을 추구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령의 인치심이라는 개념을 칼빈 성령론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것이 본 논문의 주제에 해당된다. 왜 이 용어가 그의 성령론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간과되었을 뿐 아니라 성령론의 다른 표현 또는 개념에 의해 흡수되어버리고 말았는가? 필립 부틴 (Philip Butin)은 이에 대한 해답을 이 용 어의 인간화(anthropologizing)에서 찾는다. 즉 성령의 인치심이 의에 있어서 인간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9) 즉 부틴에 의하면 칼빈에게 성령의 인치심 은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차원에만 국한시키는 것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 다. 부틴이 지적한 바와 같이 칼빈이 이 용어를 많은 경우에 성령의 내적 증거 (testimonium Spiritus sancti internum)라는 용어와 거의 동일하게 사용하였음이 사실이다. 10) 그러나 이 두 용어가 실제로 그의 성령의 사역 이해에 있어서 동일한 내용을 가리키는 용어인가에 대한 판단이 내려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분명한 사실은 칼빈에게 성령의 인치심은 부틴이 언급 하는 제한적인 인간론적 이해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개념이었음이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서 성령의 인치심을 성경의 권위, 예정, 신앙, 그리고 성례와의 관계 속에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II. 성령의 인치심과 성경의 권위 칼빈은 성경의 권위가 논증에 위해서 불신자들에게 입증될 수 없는 이유는 단지 신앙을 지닌 신자들에게만 알려지기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11) 그는 성경의 기원에 대한 우리의 확신은 인간 의 이성보다 더 높은 것에 근거해야 한다고 밝힌다. 이 확신은 단지 성령의 감추어진 증거에 의해서만 주어지는 것이다. 12) 칼빈이 성령의 증거 라는 용어를 성령의 인치심 이라는 용어와 더불어 사용하는 경우를 빈번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모든 이론을 다 합친 것보다도 성령의 증거가 훨씬 더 훌륭하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의 말씀에 대한 적절한 증거를 주실 수 있으므로, 그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성령 의 내적 증거에 의해서 인쳐져야 하기 때문이다. 13) 또한 1539년에 작성된 널리 알려진 사돌레토 추기경에게 보낸 답신에서도 증거 와 인치심, 두 용어의 동일한 사용이 드러난다.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증거에 기초를 두어서도 아니되며 또한 의심스러운 견해나 8) W. van't Spijker, De verzegeling met de Heilige Geest (Kampen: De Groot Goudriaan, 1990), 58-79. 9) Philip Walker Butin, Revelation, Redemption & Response: Calvin's Trinitarian Understanding of the Divine-Human Relationship (New York: Oxfor Univ. Press, 1995), 84. 10) Ibid., 59; 기독교 강요, 1.7.4. 11) 기독교 강요, 1.8.13. 12) 기독교 강요, 1.7.4. 13) 기독교 강요, 1.7.4. Barbara Pitkin, What Pure Eyes Could See: Calvin's Doctrine of Faith in Its Exegetical Context (New York: Oxford Univ. Press, 1999), 25. - 2 -
인간적 권위에 의해 지지되어서도 아니 되며, 인간의 실수에 의해 망각되지 아니 하도록 단지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가락에 의해 우리 마음에 새겨져야 한다.... 왜 냐하면 그의 진리를 우리 마음이 인식할 수 있도록 조명하는 것은 하나님 한 분 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진리를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인치시며, 이에 대 한 그의 확실한 증거로 우리 양심에 확증을 제공하신다. 14) 성령의 증거와 인치심은 성경의 권위가 다름 아닌 말씀 그 자체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 기 위해 칼빈이 사용한 동일한 개념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칼빈에 의해 성경의 권위가 확보되 었다. 성경의 권위는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것이다. 칼빈은 계속해서 성령의 증거와 인치심과 관련해서 성경의 자증성 (self-authentication)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논의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성령께서 내적으로 가 르침을 주신 사람들은 진정으로 성경을 신뢰한다는 것과 또한 성경이 참으로 자 증하므로 성경을 감히 논증과 이론에 예속시켜서는 아니 되며, 우리가 마땅히 가 져야 할 완전한 확신은 성령의 증거를 통해서 얻어진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그 자 체의 위엄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직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그것이 인쳐질 때에야 비로소 성경이 우리에게 진지한 영향을 주게 된다. 이렇듯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조명을 받기 때문에, 성경이 하나님으로 부터 비롯된 것임을 우리 자신의 판단이나, 또는 다른 사람의 판단에 의해서 믿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판단을 초월하여 성경이 사람들의 사역을 통해서 우리를 향 해 하나님의 입 그 자체로부터 흘러나온 것임을 완전한 확신으로 - 마치 하나님 의 위엄 그 자체를 눈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 받아들이는 것이다. 15) 성경의 권위는 인간의 이성과 논증을 떠나서 자증성에 의해서 확립된다. 이런 방식으로 칼빈 은 신자들에게 있어서 성경의 권위를 인식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에 있어서 성령의 증거와 인 치심의 결정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그의 성경의 권위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칼빈은 성령의 증거 와 성령의 인치심 사이에 날카 로운 대립선을 긋지 아니한다. 두 용어는 성경의 신적 기원과 진정한 능력에 대한 의심을 걷 어내고 이를 확증하는 것에 관한 동일한 영적 실재를 지칭하는 용어라고 볼 수 있다. III. 성령의 인치심과 예정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성경의 권위를 입증하기 위한 모든 인간의 노력은 칼빈의 사고에 중 요한 원리로 자리 잡지 못한다. 동일한 사실이 칼빈의 예정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인간의 관점만으로 살펴본다면 선택은 전혀 발견되거나 감지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숨겨진 작정 가 운데 하나로 인식된다. 그러나 칼빈은 선택이 성령의 인치심을 받을 때, 빛을 받게 되며 증명 된다고 주장한다. 16) 선택받은 자들이 유기된 자들로부터 구별될 때 성령은 인치심의 영으로 14) Jean Calvin, "Reply to Sadoleto," Calvin: Theological Treatises, The Library of Christian Classics, vol. 22, trans. J. K. S. Reid (Philadelphia: Westminster, 1954), 244. 15) 기독교 강요, 1.7.5. - 3 -
알려지게 된다. 17) 칼빈이 여기에서 의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두 그룹에 속한 사람들을 논리 적으로 이해 가능한 선택 과 유기 라는 두 가지 극단적 구도 속에 놓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 18) 선택은 더 이상 숨겨진 작정의 교리가 아니라 죄인들을 영속적으로 하나님의 가족으로 삼는 자유로운 양자삼음의 은혜의 결과로 주어진 것이다. 이 교리는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를 통해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선택과 관련된 양자삼음의 교리에 관한 해설에 있어서, 칼빈 은 전자를 인치심의 개념을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는, 야곱의 경우에, 선택을 받은 자들에게 양자삼음의 은혜가 쉬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주님께서 그의 부르심으로 이를 효과적으로 인치시기 때문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라면, 자신의 양식을 거부한 그의 동생 야곱이 배고픔을 인내로 참을 수 있었으며, 세상을 초월하여 하늘의 삶을 열망하게 된 것은 어디에 서 비롯된 것인가? 19) 성령의 증거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택을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게 만든다. 우리는 믿 음으로 선택에 나타난 자유로운 양자삼음의 은혜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사실에 의해서 선 택이 믿음에 근거한 것이 되지는 아니한다. 왜냐하면 후자는 전자의 결과이자 열매이기 때문 이다. 20) 따라서 단지 믿음에 의해서 선택이 모든 사람들에게 가시적인 것이 될 따름이다. 행 15:7을 주해하면서 칼빈은 고넬료의 선택에 나타난 가시성이 성령의 인치심의 결과에 해당된 다고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가시적 은혜로 자신의 자유로운 양자삼음을 고넬료와 그의 친척들에게 인치신 것은 마치 그의 손가락으로 자신의 자녀들을 가리키는 것과 같다. 21) 우리의 양자됨은 외적 및 내적 소명에 의해 우리에게 알려지고 인쳐지는데 여기에서 소명은 말씀과 성령에 의한 소명을 가리킨다. 22) 더욱이, 소멸되지 아니하는 띠에 의해 하나님의 선택이 그의 소명을 이와 더불어 16) 기독교 강요, 3.24.3. 17) CO 51, 212 (엡 4:30 주석): Eat enim spiritus Dei quasi sigillum quo a reprobis discernimur: et quod impressum est cordibus nostris, ut certa sit nobis adoptionis gratia." CO 50, 24 (고후 1:22 주석): Tertio notandum est, quicunque testem spiritum sanctum non habent, ut Deo ad certam spem salutis vocanti amen respondeant, falso christianum nomen obtendere." Joel R. Beeke, Assurance of Faith: Calvin, English Puritanism, and the Dutch Second Reformation (New York: Peter Lang, 1994), 70. 18) Cf. Otto Weber, Foundations of Dogmatics, vol. 2, trans. Darrell L. Guder (Grand Rapids: Eerdmans, 1983), 426. 19) CO 23, 354 (창 25:29 주석): In persona autem Iacob ostendit non esse otiosam adoptionis gratiam in electis : quia Dominus eam sua vocatione efficaciter obsignat.... unde fratri Iacob ut se proprio victu fraudans, inediam patienter ferat, nisi quia spiritu sancto duce supra mundum se attollit, et ad coelestem vitam adspirat. 20) 기독교 강요, 3.24.3. 21) CO 48, 344: "... Deum in Cornelio et eius cognatis gratuitam suam adoptionem visibil spiritus gratia obsignasse, ac si digito filios suos monstraret." 22) Van der Linde, De leer van de Heilige Geest bij Calvijn, 116. - 4 -
이끌어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효과적으로 부 르실 때, 그가 우리 구원에 관한 그의 작정을 체결하기 위한 인침을 새긴 것처럼 우리에게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하자. 성령의 증거는 우리의 양자됨에 대한 인치심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23) 인치심은 칼빈이 특별 소명이라고 부르는 것과 관련을 맺고 있다. 일반 소명은 하나님께서 구 원의 효력 없이 외적 설교의 수단을 통해 모든 사람을 자신에게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뜻한다. 이와 달리, 특별 소명은 선택을 받은 자들에게만 주어진다. 이 소명을 통해서 성령에 의해 이들의 마음이 주님의 날까지 인침을 받게 된다 (고후 1:22). 24) 그러나 성령의 사역에 의한 선택에 대한 확신은 양자됨의 은혜를 통해 확실시되며 검증된다. 이제 양자됨에 대한 확 신이 영구적으로 신자들의 마음에 새겨진다. 이들은 특별 소명에 의해서 성령을 통해서 주님 의 날까지 인침을 받게 된다. IV. 성령의 인치심과 신앙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의 권위와 선택에 관련된 성령의 인치심은 전적으로 신앙을 지닌 자들에게 적용되는 진리에 해당된다. 칼빈이 보여주는 믿음에 있어서 성령의 인치심이란 우리 의 양자됨에 대한 확신인데 이는 그의 거룩하게 하시는 역사에서 비롯된다. 25) 이를 통해서 하 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의심과 갈등이 사라지게 된다. <기독교 강요>에 언급된 널리 알려진 칼 빈의 신앙에 관한 정의에는 성령의 인치심의 사역이 다음과 같이 강조된다. 믿음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아는 확고하고도 분명한 지식으로서, 그 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어진 약속의 진리에 근거하는 것이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지식에 계시되고 우리의 마음에 인쳐진 것이라고 부른다면, 이제 우리는 믿음에 대한 올바른 정의에 도달하게 된 것이라 할 것이다. 26) 칼빈의 이 정의에서 우리는 계시와 인치심이라는 믿음에 관한 성령의 이중적 사역을 발견할 수 있다. 독일의 칼빈 연구가 쉬처짜이클 (Heribert Schützeichel)은 성령의 이중적 사역을 시간적 관점에서 이해한다. 27) 그의 이러한 해석은 너희가 믿고 난 후에, 그 안에서 인침의 표를 받았는데 이 표가 곧 약속된 성령이라. 는 엡 1:13의 번역에 근거한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한 이러한 시간적 해석은 성령의 사역이 두 그룹으로 구별될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해 내었 다. 즉 성령의 사역은 서로 다른 두 영역으로 구분되는데 이는 계시를 통한 지식과 성령을 통 한 인치심을 가리킨다. 쉬처짜이클은 여기에서 인간의 마음에 주어지는 첫 번째 계시가 먼저 주어진 후에 비로소 성령의 인치심에 의한 마음의 확증이 주어진다고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 23) CO 47, 147 (요 6:40 주석): Porro, ut individuo nexu electio Dei vocationem secum trahit, ita quum efficaciter nos Deus ad fidem Christi vocavit, hoc perinde apud nos valeat, ac si insculpto sigillo suum de salute nostra decretum comprobaret. Nam spiritus testimonium nihil aliud est quam adoptionis nostrae obsignatio. 24) 기독교 강요, 3.24.8. 25) 기독교 강요, 3.2.8. 26) 기독교 강요, 3.2.7. Cf. 1.8.5 & 3.2.36. 27) Heribert Schützeichel, Die Glaubenstheologie Calvins (München: Max Huber, 1971), 170ff. - 5 -
이 믿음의 정의에 관한 칼빈의 올바른 견해인가? 엡 1:13 해석에 있어서 칼빈이 주장하는 성 령의 이중적 사역은 쉬처짜이클이 주장하는 시간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이원론적 해석을 뒷받 침하지 않는다. 성령의 사역에 대한 칼빈의 이중적 해석은 계시와 인치심에 관한 시간적 선후 관계를 결정짓지 아니하며 단지 이것이 성령의 새로운 사역이라는 사실을 강조할 따름이다. 28) 칼빈은 신앙을 불러일으키는 성령의 사역이 그의 인치심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엡 1:13 주해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나님의 말씀, 자신들의 구원, 그리고 종교 전반에 관해서 신자들이 갖는 참 된 확신은 육체에 대한 판단 또는 인간적이며 철학적인 논증에서 비롯되는 것 이 아니라 성령의 인치심에서 비롯되는데 성령은 그들의 양심에 모든 의심을 제거할 확신을 제공하신다. 29) 칼빈은 성령의 이중적 사역에 대한 어떠한 시간적 구별도 허락하지 아니한다. 오히려 그는 이중적 사역에 대한 논리적 구분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보인다. 30) 따라서 그는 아무런 주저함과 애매모호함 없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나는 신앙과 관련해서 성령의 두 가지 사역이 존재한다고 대답한다. 이는 신앙 을 구성하는 두 부분에 상응하는 것으로 마음을 계몽하고 확립한다. 신앙의 시 작은 지식에서 비롯되며 그 종결은 확고하고 흔들리지 아니하는 확신으로 이루 어지는데 여기에는 신앙을 공격하는 어떤 의심도 허락되지 아니한다. 나는 이 두 가지 모두가 성령의 사역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신앙으로 복 음을 받아들였던 에베소 교인들이 성령의 인치심으로 신앙에 있어서 확신을 갖 게 된다고 선언했던 것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31) 이러한 논리적 구분에 관해서 크루쉬는 우리의 지식과 관련해서 성령의 조명이 중생에 효 력을 가져오며 우리의 의지와 관련해서 성령의 인치심이 중생을 가져 오게 한다고 주장한 다. 32) 칼빈의 사고에 있어서 신앙의 본질은 확신을 떠나서는 정의될 수 없다. 33) 신앙의 확실성에 28) Krusche, Das Wirken des Heiligen Geistes nach Calvin, 262. 29) CO 51, 153: "Vera igitur persuasio, quam de verbo Dei, de salute sua, de tota religione habent fideles: non est ex sensu carnis, non ex humanis aut philosophicis rationibus, sed ex spiritus obsignatione, qui illorum conscientias ita reddit certiores, ut dubitationem omnem eximat." 30) Van't Spijker, De verzegeling met de Heilige Geest, 67-68. 31) CO 51, 153: Respondeo, duplicem esse effectum spiritus in fide, sicuti fides duabus praecipue partibus continetur. Nam et mentes illuminat, et animos confirmat. Initium fidei est notitia: consummatio est fixa et stabilis persuasio quae contrariam dubitationem nullam admittat. Utrumque opus est spiritus, ut dixi. Proinde non mirum est si dicat Paulus non solum fide percepisse Ephesios evangelii veritatem, sed in ea fuisse sigillo spiritus sancti confirmatos. 32) Krusche, Das Wirken des Heiligen Geistes nach Calvin, 259-63. 33) CO 7, 456 (Acta Synodi Tridentinae)(1547): "Notanda est antithesis inter fidem et haesitationem: unde colligere promptum est, fidem destrui, simul ac tollitur certitudo.... Et sane totam fidei naturam ignorant, qui eam dubitatione miscent." - 6 -
대한 그의 이러한 강조는 견인의 가능성을 배제한 채 인간이 전 생애동안 의심과 불확실성 에 머물러야 한다는 로마 가톨릭의 신앙 개념에 대한 그의 투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로마 가 톨릭의 맹목적 신앙 (fides implicita)은 다음과 같이 악하고 불경건한 가르침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교황에 속한 기독교가 어떤 기독교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을 소유했다고 말하는 어떤 사람도 그들에 의해서 불경건한 뻔뻔스 러움을 지닌 사람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이나 확신도 신앙에 관 한 그들의 이해에 속하지 아니한다. 이들이 내세우는 이러한 주장은 교황의 모 든 학파들에 있어서 불신앙의 아비인 악마가 다스리고 있다는 놀라운 증거에 해당된다. 실제로 나는 스콜라주의의 신학자들이 사람의 양심에 대해서 영속적 인 의심을 자극하는 행위에 합세할 때, 인류의 자연적 감정이 전횡적으로 다스 리는 것에 그들이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음을 인식한다. 34) 그러나 신앙의 확실성에 대한 칼빈의 견해가 신앙의 성장에 관한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 니다. 비록 신앙이 분명히 확실하지만 그에게 이는 그 자체로서 연약한 것이다. 우리는 연약 하지만 구원의 약속은 우리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므로 확실하다. 35) 구원의 확신은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것에 달린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적이다. 우리의 마음은 돌과 같으며 망설임과 의심으로 채워지기 쉽다. 성령은 이러한 부정적인 사고들을 제거하고 대신에 우리 마음에 확신을 제공하신다. 그러나 우리 삶에 유혹이 다가올 때 마다,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감싸고 하나님의 자비의 약속에 대한 확신을 보여준다. 비록 신앙이 지금 완 전한 것은 아니지만, 망설임, 의심, 그리고 유혹에 굴복하지 아니한다. 참된 신앙은 이러한 어 려움을 극복하고 신적 자비의 약속을 신뢰할 힘을 성령의 인치심에서 얻어낸다. 36) 칼빈은 여기에서 이미 우리의 의지에 획득된 확신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사고에 성령의 조 명으로 주어지는 구원의 지식을 획득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을 지속적으로 받기 위해서 성령의 인치심이 필요한 것 이라고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러나 만약 지성의 참된 이해가 하나님의 영의 조명에 의한 것이라면, 마음의 확 증에 있어서 성령의 능력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 면 마음의 불신이 지성의 어두움보다 더욱 크기 때문이다. 지성에 지식을 불어 넣 는 것 보다 마음에 확신을 심어 주는 일이 더욱 어려운 일이다. 성령께서 인 (seal)의 기능을 발휘하셔서 이미 지성으로 확실하다고 알고 있는 그 약속들을 마 음속에 인쳐 주시며, 또한 그가 보증인의 역할을 담당하셔서 그 약속들을 확증하 고 든든하게 세우시는 것이다. 37) 34) CO 50, 228 (갈 4:6 주석): Hinc apparet qualis sit in papatu christianismus, ubi impiae praesumptionis damnant, si quis Dei spiritum habere se dicat. Fidem enim sine Dei spiritu et sine certitudine imaginantur. Hoc unum dogma illustri argumento est, diabolum infidelitatis patrem in omnibus papistarum scholis regnare. Fateor quidem, scholasticos, quum iubent perpetua dubitatione fluctuare conscientias, nihil aliud docere quam quod dictat naturae sensus. 35) CO 55, 211 (벧전 1:5 주석). 36) 기독교 강요, 3.2.33; Pitkin, What Pure Eyes Could See, 32. 37) 기독교 강요, 3.2.36. - 7 -
V. 성령의 인치심과 성례 칼빈의 사고에 있어서 성례의 역할은 신앙을 확증과 강화에 놓여 있다. 38) 성례가 그 자체로서 이런 효력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성례의 효력은 전적으로 성령에게서 비롯된다. 내주하시는 스승이신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오직 그의 능력으로 마음을 꿰뚫고 움직여 사모하게 하고 우리의 영혼의 문을 열어서 성례를 받아들이도록 하실 때 에 비로소 성례가 그 역할을 정당하게 수행하게 된다.... 성례의 능력은 오로지 성령께 있고 다만 그 사역만 성례에 있으므로,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으면 성례의 사역은 헛되고 하챦은 것이 되어 버리고 말지만, 성령께서 속에 역사하셔서 그그 의 능력을 드러내실 때에는 성례가 크나큰 효과로 가득하게 된다. 39) 그러나 성례에 있어서 성령의 능력에 대한 강조에 있어서 칼빈은 성례를 말씀에 기록된 하나 님의 약속과 은혜를 전달하는 단순한 도구로 파악하고 이 사실에 주목한다. 우리는 우리의 신 뢰를 성례전에 두어서는 아니 되며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로 전이되도록 해서는 아니 된다. 40) 이런 생각을 지니게 될 때 비로소 성례에 명시된 것을 획득하기 위해서 신앙의 그릇을 가져 오는 한 은혜가 성례에 매여 있다는 그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41) 이러한 고찰에서 성례의 유일성이 신앙과의 관계 속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성령의 인치심이라는 차원에서 성례를 다음의 두 가지로 나누어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첫째, 성례는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에 주어진 약속에 대한 인 (seal)에 해당된다. 칼빈은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신앙에 관한 성령의 인치심의 사역과 성례의 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장래 기업에 대한 신앙이 우리에게 확증되고 성례가 또한 인이라는 주장이 우리 가 언급했던 종류에 속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직 성령에게만 적합한 것을 표징 으로 전이하는 것 보다 더 일관성을 지닌 것은 없기 때문이다. 42) '약속의 인 과 관련해서 벡만 (Joachim Beckmann)은 (말씀과 성례) 모두의 경우에 성령께 38) 기독교 강요, 4.14.10: 그러므로 말씀과 성례는 우리를 향하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선하신 뜻 을 우리 눈앞에 제시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확증시켜 주는 것이다. 아버지를 아는 지식으로 말미암 아 우리의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며 더욱 강건하게 서게 되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이러한 확증을 우 리 마음속에 새겨 놓으심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확증시키시며 또한 그 믿음을 효력 있는 것으로 만드 신다. 39) 기독교 강요, 4.14.9. 40) 기독교 강요, 4.14.12. 41) CO 7, 701 (Calvini responsio ad annotationes Bullingeri) (1549): "Coniunctam quidem Dei gratiam sacramentis esse fateor, non tempore, non loco, sed quatenus vas fidei quisque affert, ut quod illic figuratur obtineat." 42) CO 9, 24 (Defensio sanae et orthodoxae doctrinae de sacramentis): "Cuius generis sunt, quos illic notavimus, spiritum sanctum esse sigillum quo nobis sancitur futurae haereditatis fides, et sacramenta etiam sigilla esse. Nihilo enim magis consentaneum est, pari gradu locari, quam ad signa transferri, quod non nisi in spiritum competit." - 8 -
서 하나님의 신앙을 불러일으키는 능력과 동일한 방식으로 역사하신다. 고 주장했다. 43) <신 앙고백서 (1542)>에 나타난 성례에 대한 칼빈의 정의는 인 이라는 단어를 활용하여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전과 동일하게 성례는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인치는 인이며 이를 더욱 진정성을 지닌 것으로 만든다. 이런 이유로 성례는 가시적 교리로 언급 될 수 있다. 44) 계속해서 칼빈은 성례가 하나님께서 효력을 주시고 성령의 능력을 나타내는 한도 내에서, 유용하다고 밝힌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구원을 위한 그들의 효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하나님 의 영이 행하셔야 한다. 45) 이러한 칼빈의 주장들을 종합해 볼 때 비록 성령의 인치심이라는 용어가 항상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성례의 효용성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이는 필수적인 개념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둘째, 성례는 오직 선택 받은 자들에게만 유효하다. 칼빈은 은혜가 신적 약속을 신뢰하지 아 니하는 자들에게도 주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46) 그러나 이 사실은 그의 신앙과 상관없이 성례에 참여하는 모든 자들에게 은혜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실상, 성례 의 효용성은 하나님에 의해 선택함을 받은 신자들에게만 주어진다. 비록 유기된 자들이 성례 에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신앙 결여는 이들이 은혜의 약속을 받지 못하는 이유에 해당된다고 다음과 같이 칼빈은 설명한다. 유기된 자들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소유에 대한 유일한 장애물은 그들의 불신앙인 데, 이는 모든 책임이 그들 자신에게 있음을 뜻한다. 요약하면, 표징 (sign)의 표 현 (representatio)은 악의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속이는 자들을 제 외하면 어떤 사람도 실망시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표징으로부터 그 의 신앙의 그릇이 수용할 수 있는 만큼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 가장 참되기 때문이다. 47) 모든 사람을 향한 은혜의 약속을 제공하는 성령의 사역을 인식한 칼빈은 이를 은혜의 열등한 인치심 (an inferior sealing of grace) 이라고 불렀다. 이 용어를 통해 그의 강조점은 선택된 자를 인치시는 성령의 사역으로 집중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령은 우선적이고 더욱 내적인 인 (the prior and more internal seal)'로 불리워진다. 칼빈은 이 두 가지 용어를 다음과 같이 자세히 설명한다. 43) Joachim Beckmann, Vom Sakrament bei Calvin: Die Sacramentslehre Calvins in ihren Beziehungen zu Augustin (Tübingen: J. C. B. Mohr (Paul Siebeck), 1926), 61. 44) Jean Calvin, Selected Works of John Calvin: Tracts and Letters, vol. 2, ed. Henry Beveridge & Bonnet, Jules (Grand Rapids: Baker, 1983, reprint), 152. 45) Ibid. 기독교 강요, 4.14.9. 46) 기독교 강요, 4.14.7. 47) CO 9, 25 (Defensio sanae et orthodoxae doctrinae de sacramentis): "Quando vero reprobis non nisi sua incredulitas obstaculo est, quominus Christo potiantur, in ipsis quoque tota culpa residet. Denique neminem frustratur signi repraesentatio, nisi qui ultro et maligne se ipsum privat. Verissimum enim est tantum quemque fructus ex signis referre, quantum fidei vase percipiet." - 9 -
일반적 속담에 의하면, 우등과 열등에 관계에 놓인 물건들은 상호 모순적이지 않 지만, 성례에 의한 은혜의 열등한 인치심은 부인되지 아니한다. 성령은 우선적이 며 더욱 내적인 인으로 불리워지며, 그 이유는 동시에 언급된다. 왜냐하면, 하나 님께서 양자삼음의 뱃지를 통해 존귀함을 부여한 자들을 선택하시기 때문이다. 48) 성례에 관한 성령의 사역은 다음의 두 가지 결과로 나타난다: 열등한 인과 내적인 (또는 우선 적) 인. 성례에 나타난 이 두 가지 결과는 하나님께서 선택받은 자들의 마음속에서 신앙을 창 출하는 방식을 상기시킨다. 일시적 신앙에 대한 그의 설명에서 칼빈은 유기된 자들에게 성령 의 낮은 차원의 사역이 존재한다고 언급하는데 이는 분명히 선택된 자들에게 임하는 성령의 인치심의 사역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엄밀하게 말해서 선택된 자들에게만 사죄을 인치셔서 그들로 하여금 특별한 믿음으로 이를 자신들에게 적용하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유기된 자 들의 경우도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자비를 베푸심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 다. 물론 혼동스럽게 그리고 올바른 분별력이 결여된 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어 쨌든 그들도 화목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 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소유한 것과 동일한 믿음과 중생을 받는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외식의 가면을 쓰고 하나님의 자녀들과 똑같이 신앙의 원리를 지닌 것처럼 겉모습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그의 은혜를 인정하 기에 충분할 만큼 그들의 마음을 조명하신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49) 믿음의 창출에 있어서 높은 (또는 참된 ) 차원의 성령의 사역과 낮은 차원의 성령의 사역 사 이의 결정적 차이는 성령의 인치심의 현존과 결여로 정의될 수 있다. 그러나 성례의 효력을 결정짓는 요소는 성령의 인치심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치심은 정의상 성령의 사역에 의해서 주어지는 인 (seal)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두 종류의 인이 존재한다: 내적인 인과 열등한 인. 내적인 인은 선택된 자들인 참된 신자들에게 성례의 효력을 제공하는 인에 해당된 다. 그러나 열등한 인은 유기된 자들에게 외적으로 작용함으로써 이러한 효력을 창출하지 못 한다. VI. 나가는 말 이글에서는 성령의 인치심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의 관심을 성경의 권위, 예 정, 신앙, 그리고 성례라는 4가지 주제에 집중하였다. 성령의 증거는 특히 성경의 권위에 대한 칼빈의 이해에 있어서 성령의 인치심과 상당히 근접 한 개념에 해당되며 많은 경우에 양자는 동일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성경의 자증성은 성령의 증거와 인치심 모두를 강조하는 효과적인 도구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성경의 자증성에 대한 48) CO 9, 119 (Secunda defensio de sacramentis contra Westphali) (1556): "Nam quum proverbio vulgari iactetur, quae subalterna sunt inter se non pugnare, non ideo negatur inferior sacramentis gratiae obsignatio, dum spiritus vocatur prius et interius sigillum: et simul notatur causa, quia eos Deus elegit, quos adoptionis tessera dignatur." 49) 기독교 강요, 3.2.11. - 10 -
칼빈의 이해에 있어서 성경의 기원과 능력이 실제로 신적인가를 결정함에 있어서 모든 인간적 이성과 논리가 배제되기 때문이다. 성령의 인치심에 대한 칼빈의 이해는 또한 그의 예정론을 통해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비록 그 가 선택과 유기라는 양극 구도를 명시적 방식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성령의 인치심이라는 요소에 의해 선택된 자들이 유기된 자들로부터 구별된다는 것이 그의 독특한 주장에 해당된 다. 그의 널리 알려진 신앙에 관한 정의에서 칼빈은 성령의 사역에 있어서 두 가지 측면을 구분한 다. 먼저 성령의 조명에 의해서 신적 약속에 대한 지식이 인간의 사고에 주어지는 반면에, 성 령의 인치심에 의해서 인간의 마음에 확신이 제공된다. 그러나 칼빈은 성령의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을 시간적 차원에서 인식하여 양자를 구별하지는 않는다. 여기에 나타난 그의 의도는 신 앙이 어떻게 시작되고, 유지되며 성장하는가를 논리적으로 보여주는데서 발견된다. 따라서 그 가 말하는 성령의 사역의 두 가지 측면은 인간의 신앙 행위의 통일성의 기초로서 작용한다. 마지막으로 칼빈은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에 가장 많은 토론의 대상이었던 성례를 성령의 인 치심을 통해서 이해하고 정의한다. 그러나 성례의 효용성은 성령이 제공하시는 인의 존재나 결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인으로서의 성례는 선택된 자들의 마음속에 작용하는 내 적인 인에 해당된다. 이러한 이유로 단순히 성례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그 효용성이 보장될 수 없다. 유기된 자들에게도 성례는 여전히 인으로 작용하지만 이는 열등한 인에 지나지 않는다. 성례의 효용성을 결정짓는 요소는 성례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성례인가에 관한 것이다. 성령의 인치심은 이런 방식으로 성례에 대한 더 나은 이해를 위한 중요한 역할을 담 당한다고 볼 수 있다. -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