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line ML Comm 精 神 分 析 : 第 20 卷 第 2 號 2009 Psychoanalysis 2009;20(2):150-161 원 저 나보코프와 늑대인간 * 李 炳 郁 Nabokov and The Wolf-Man Byung-Wook Lee, M.D. * 150 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1899~1977)는 러시아 태생의 소 설가로 정교한 심리 묘사와 유려한 문체를 구사하는 언어 의 마술사로 정평이 나있는 작가이다. 특히 그의 소설 [롤 리타]와 [어둠속의 웃음소리]는 인간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불가항력적인 욕망과 환상의 세계를 다루면서 인간을 파국 으로 몰고 가는 비극적인 상황을 그린 작품으로 그에게 확 고한 작가적 명성을 안겨준 대표작이다. 그의 작품에서 인 용된 롤리타 증후군 또는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용어까지 생길 정도로 그의 소설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금서목 록에 오르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베스트셀러 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서 주로 다루고자 하는 부분은 그의 창작심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프로이트 및 정신분석 에 대한 나보코프의 매우 이례적일 정도로 강한 혐오감과 적대감에 있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나보코프와 동시대를 살았던 늑대인간과 비교하기 위함에 있다. 그 이유는 나보 코프의 정신분석에 대한 적대적 태도의 이면에는 늑대인간 의 존재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늑대인간은 프로이트 의 환자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인물로 그 역시 나보코프 와 비슷하게 러시아 귀족 출신으로 태어났으며, 아버지의 비극적인 최후와 러시아혁명으로 모든 재산을 잃고 망명자 신세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녔지만, 정신분석을 기피했던 나보코프와는 달리 오랜 기간 정신분석을 받았다 는 점에서 대조를 이룬다. 따라서 저자는 정신분석에 대한 두 인물의 상반된 태도를 통하여 나보코프의 매우 독특한 접수완료:2009년 7월 16일 / 심사완료:2009년 8월 2일 게재확정:2009년 8월 10일 * 翰 林 大 學 校 醫 科 大 學 精 神 科 學 敎 室 Department of Psychiatry, College of Medicine, Hallym University, Seoul, Korea 론 정신세계를 탐색해보고자 한다. 본 론 나보코프는 누구인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1899년 러시아 페테르스부르그 의 명망 있는 귀족 가문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자유분방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어려움을 모르고 컸다. 그의 아버지는 정치적인 활동에 열성을 보인 인물이었지만, 1917년 러시 아혁명이 일어나자 전 가족이 남러시아 크리미아 반도로 잠시 피신했다. 1919년 내전에서 백군이 패배하자 이들 가 족은 일단 영국으로 도피했다가 1920년 베를린으로 이주 했다. 그러나 1922년 암살자의 손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 당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물론 이들의 광대한 영지도 소비 에트 정부에 의해 전면 몰수되고 말았다. 나보코프는 1916년 불과 17세의 나이에 삼촌 루카로부터 방대한 유 산도 물려받았지만 볼셰비키 혁명으로 모든 것을 잃고 말 았다. 이후 그는 죽을 때까지 단 한번도 집을 소유해본 적 이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불행한 최후는 그에 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으며, 이후 그의 작품활동에 주된 주 제를 이루기도 했다. 나보코프는 어린 시절부터 나비 수집 에 취미를 붙였으며, 미술에도 흥미를 지녀 한때는 화가를 꿈꾸기도 했으나 자신에게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일찍부터 시를 쓰는 등 문학적 재능을 발휘 하기 시작했다(Boyd 1990). 1922년 아버지가 베를린에서 암살된 직후 나보코프는 러시아 이민의 딸 스베틀라나와 약혼했다가 얼마 가지 않 아 파혼 당했다. 그가 그녀와 사랑에 빠진 것은 그녀의 나 이 불과 16세 때였다. 어린 나이도 나이지만, 파혼의 직접 적인 이유는 그가 일정한 직업이 없다는데 있었다. 그는 잠 시 영국에 머물며 트리니티 대학 및 캠브리지 대학에서 공 부했으며, 1923년 졸업한 후에는 베를린으로 가서 번역가
李 炳 郁 로 활동하였다. 그는 수년간 독일에 거주하면서도 독일어 를 전혀 배우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매우 정치적인 발언처럼 들린다. 1925년 유대계 러시아 여성인 베라 슬로 님과 결혼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의 반유대주의가 노골화 되고 아내마저 직업을 잃게 되자 파리로 이주했으며 테니 스 코치 등으로 생계를 도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 고 독일군이 진격해오자 1940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왕성 한 창작활동과 번역일에 몰두하였다. Boyd(1991)는 그의 미국 체류시절을 나비 연구와 대학 강의 그리고 저술활동 등 3가지 특징으로 요약한 바 있다. 그러나 1960년에는 스 위스로 이주하여 은둔생활로 일관하다가 1977년 스위스 로 잔느에서 사망했다. 나보코프는 시린이라는 필명으로 작가생활을 시작했으며, 처음에는 러시아어로 작품을 발표했다. 시린은 올빼미 혹은 천국의 새를 의미하는 말이며, 세상에서 고립된 그 자신의 입장을 잘 반영하는 필명이기도 하다. 그는 현대 미국 문학 을 대표하는 작가로 불리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미국 작가라 할 수도 없다. 그의 주된 작품 기조는 미국적인 요소 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1932년에 발표한 소설 [어둠속의 웃 음소리]는 그 무대가 베를린이며, 원래 러시아어로 발표되 었던 작품으로 사악한 남녀에게 농락당한 한 중년 남성의 파멸을 다루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롤리타]는 1955년에 발표되었는데, 어린 소녀에 대한 중년 작가의 사 랑과 집념을 다룬 작품으로, 부도덕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한때 금서목록에 오르기도 했으나, 해금된 이후 1962년에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지기 도 했으며, 1997년에는 애드리안 라인 감독이 다시 리메이 크 할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던 작품이다. 그의 소설 [어둠속의 웃음소리] 역시 1969년 영국의 토니 리차드슨 감독이 영화화 했는데, 원작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점이 다르 다. [어둠속의 웃음소리]와 [롤리타]는 주제 면에서 볼 때 하나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소설 모두 어린 소녀에 집착하다 파국을 맞이하는 중년 남성 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필명 시린이 뜻하는 올빼미처럼 살 았다. 밤에만 활동하는 올빼미의 존재는 낮에 활동하는 다 른 짐승들에게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는 이처럼 일상적 인 대인관계를 극단적으로 기피하는 동시에 자신에 대해서 도 철저히 은폐시키고 살았다. 헤겔이 말한 미네르바의 부 엉이는 황혼이 깃들면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고 했지만, 나 보코프가 이처럼 지혜를 뜻하는 철학적 의미로 사용한 것 인지 여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객관적인 진실에 반감을 지니고 주관적 세계에 비중을 두었던 그의 신념에 비추어 본다면 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는 평소에도 아내 베라 에게 매우 의존적이어서 그녀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사회생활에 미숙함을 보였다. 그는 스스로 말 하기를, 자신의 아내가 아니었으면 단 한편의 소설도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을 정도다. 그의 아내는 매우 헌신적인 태도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거들었으며, 원고 교정부터 출판사 섭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멀리 나비 채 집을 떠날 때면 그녀가 손수 운전하여 동행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남편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장거리 여행을 할 때 에는 항상 권총을 소지했다고 한다. 마치 어린 아들을 돌보 는 어머니 역할을 그녀가 도맡은 셈이지만, 그것은 매우 과 잉보호적인 태도이기도 했다. 나보코프의 작품에 대한 일 부 세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까지 남편을 옹호 하는 입장을 취했지만, 그러나 자신의 아들에게만은 마크 트웨인의 작품을 읽지 못하게 했는데 그것은 부도덕하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Schiff 2000). 이처럼 대중과 동떨어 진 삶을 보낸 나보코프지만 그도 젊은 시절 한때는 바람둥 이 기질을 보였으며, 뛰어난 체스 솜씨를 지녔고, 축구, 테 니스 등 운동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러나 스위스에 정착 한 이후로는 거의 공개적인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 다. 1934년생인 아들 드미트리 나보코프는 오페라 가수로 성공하여 이태리 스칼라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스위스로 이주한 것도 아들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아 내 베라 슬로님은 1991년에 사망하여 그의 곁에 나란히 묻혔다. 미국의 작곡가 니콜라스 나보코프는 그의 사촌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러시아, 미국, 스위스 등지에서 각각 20년씩을 보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일정한 국적에 구애 받음이 없이 자유롭게 살았던 무국적자, 무주택자로 살면서 도 세계적인 부와 명성을 얻은 매우 이례적인 작가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나보코프는 매우 강박적인 성격으로 대인기피증이 심했 으며, 일생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오로지 나비 연구와 체스놀이 및 저술활동에만 전념했던 특이한 인물이다. 그 는 여행을 매우 즐겼지만 운전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자택 에 전화도 두지 않을 정도로 대인 접촉을 멀리 했다. 그러 나 그는 다국적 언어 구사에 매우 능통했으며, 그들 부부는 결혼한 이후에야 비로소 두 사람 모두 共 感 覺 (synesthesia)이라는 매우 특이한 지각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일종의 이상지각의 하 나로 일반 활자에서 다양한 색채를 볼 수 있는 매우 특이 한 능력이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은 사실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그 때문에 남다른 심미안을 지 니고 탐미주의적인 묘사가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151
나보코프와 늑대인간 152 공개적인 노출을 극히 꺼렸던 나보코프는 오로지 작품을 통해서만 대중들과 접촉했다. 소녀와 제3의 성 일상생활에서 나보코프는 매우 강박적이면서 구도자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오히 려 그와는 정반대로 매우 도착적거나 또는 사악한 인성의 소유자들로 나타난다. 가장 비근한 예로 그의 출세작 [롤리 타]는 어린 소녀에 대한 중년 남자의 성적인 집착과 환상 을 묘사하고 있는데, 소설 첫 부분에서 롤리타의 이름을 소 개하는 가운데 그 발음에 특히 강조를 두고 있다.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남성의 불꽃이여, 나의 죄악,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세 번 올라가 입천장에 붙으면서 이를 세 번 건드린다. 롤~리~타. 이처럼 로올-리이-타아! 롤리 타를 발음하려면 입을 오므리고 벌리고 뱉어내듯 쏟아내야 한다. 성적인 의미가 매우 강한 것처럼 들린다. 마치 성기 의 움직임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듯하다. 인간의 발성은 입 술과 혀의 마찰을 통해 전달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인간의 성행위 자체가 그러한 발성 형태와 매우 흡사하다는 점에서 롤리타의 발음은 성적인 상징을 매우 압축적인 방식으로 드 러낸다. 실제로 나보코프는 절묘한 언어적 표현 기법으로 명 성이 자자하며, 따라서 그의 작품은 번역하기 매우 어려운 것으로도 정평이 나있다. 이런 해석이 지나친 억측이라고 생각된다면, 나비 수집광이었던 나보코프가 일생 동안 나비 생식기 연구의 권위자였다는 사실과 그와 비슷한 배경을 지 녔던 동시대의 늑대인간이 프로이트에게 분석을 받는 도중에 고백한 사실, 즉 자신의 나비공포증을 설명하는 가운데 나 비가 날개를 접었다 펴는 자태를 보면 마치 여성이 다리를 벌렸다 오므리는 모습처럼 보여 기묘한 느낌을 받는다고 고 백한 사실 등과 비교해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갈 것이다. 주인공 험버트는 파리 태생의 중년 작가로 40을 바라보 는 나이다. 그의 어머니는 소풍을 나갔다가 벼락에 맞아 죽 게 되는데, 그후로는 아버지 밑에서 외롭게 성장한다. 그는 특히 사춘기 전후의 소녀들에게 유별난 매력을 느끼게 되 는데, 그 자신의 설명에 따르자면 어린 시절 여자친구 애너 벨 리(에드가 앨런 포우의 시 제목과 동일한 이름)와 이루 어지지 못한 사랑의 후유증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부인 과 이혼한 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에 파리를 떠나 뉴욕으로 이사한다. 그는 집필활동을 위해 자신이 묵 을 집을 찾던 중에 뉴잉글랜드 지방의 한 작은 마을에 방 을 빌려 정착한다. 셋집 주인인 샬로트 헤이즈는 과부로, 그녀에게는 12살 난 귀여운 딸 돌로레스(롤리타)가 있었 다. 롤리타를 본 순간 첫눈에 반한 그는 그녀에게 접근하기 위해 어머니인 샬로트와 마음에도 없는 결혼까지 한다. 롤 리타를 통해 그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애너벨의 존재를 지 워나간다. 어린 소녀에 대한 갈망과 집착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녀 의 어머니와 위장결혼까지 불사한 험버트는 상식적으로 본 다면 매우 부도덕한 인간이다. 물론 그 결혼은 합법적인 혼 인이지만 도덕적으로는 사악한 결합이다. 그것은 합법을 가장한 근친상간적 욕구의 표출이기도 하다. 오늘날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원조교제의 심리적 배경도 같은 맥락에 서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하겠다. 남편인 험버트의 사 랑이 실제로는 자신의 어린 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어 머니 샬로트는 충격을 받고 집을 뛰쳐나가다 교통사고로 죽 게 되는데, 그후 험버트와 롤리타는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 이지만, 그러나 결국 주인공은 귀여운 롤리타에게서도 버 림을 받는다. 롤리타는 따분하기 그지없는 험버트를 버리 고 사악한 남성 퀼티를 따라가지만 그녀 역시 임신까지 한 상태에서 퀼티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롤리타를 잊지 못한 험버트는 결국 그녀를 버린 퀼티를 찾아 살해함으로써 경 찰에 체포되어 투옥되는 파국을 맞이한다. 그에게 주어진 혐의는 미성년 유괴 및 강간 그리고 살인 혐의 등 중범죄 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험버트는 오로 지 롤리타에 대한 애절한 사랑을 잊지 못한다. 1955년에 발표된 [롤리타]는 나보코프가 미국 서북부 오레곤주에 기거하면서 나비 채집에 몰두하던 시기에 쓰인 소설이다. 그는 아름다운 나비를 채집하면서 동시에 매력 적인 소녀 롤리타에 사로잡힌 중년 작가에 관한 비극적인 소설을 집필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존 파울즈의 소설 [콜 렉터]의 주인공이 소심한 나비 수집가이면서 한 여학생을 납치하여 사랑을 구걸하다 거절당하는 내용과 비슷하다. 그러나 파울즈의 소설은 [롤리타]보다 8년이나 뒤인 1963 년에 출판된 작품으로 세상에서 소외된 주인공의 단절된 이상심리에 초점을 맞춘 반면에, 나보코프의 소설은 이상 심리라기보다는 오히려 몽환적인 의식의 흐름에 주안점을 둔 작품이라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험버트와 롤리타 의 관계는 강박적인 집착과 변덕스런 감정이 서로 맞물린 관계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어차피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없 는 관계로 이미 불행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고 볼 수 있 다. 이들의 성적인 일탈 행위도 소외된 남녀의 미해결의 갈 등 또는 채워지지 않는 애정에 대한 굶주림의 표출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그것은 결코 성적인 행위로 충족될 수 없는 근원적인 갈망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롤리 타의 유혹은 이미 파괴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기 그지없는 폭발물과 같은 것이었으며, 험버트의 사
李 炳 郁 랑은 뜨거운 열정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차가운 심장을 덥히 기 위한 자구책으로 보인다. 그것은 순수하고 청순무구한 소녀의 사랑을 착취함으로써 그 자신의 냉담하고 우울한 내면세계에 온기를 가하고자 하는 필사적인 시도로 보인다. 고립과 소외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롤리타의 때묻지 않 은 열정을 공유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험버트의 간절한 기대는 롤리타의 배신으로 일순간에 무너져내리고 그는 자 신의 분노와 좌절감 및 질투심을 사악한 인간 퀼티를 살해 함으로써 상쇄시키려 했으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롤리타가 아니라 어둡고 음습한 감옥이었을 뿐이다. 오늘날 대중적 차원에서 운위되고 있는 롤리타 증후군이 란 간단히 말해서 어린 소녀에 대한 성인의 과도한 집착이 나 기호를 의미한다. 물론 그 명칭은 나보코프의 소설 제목 에서 따 온 것이다. 한때 그의 소설 [롤리타]가 판금 조치 를 당한 이유도 사회적 윤리 및 도덕 기준에 벗어난다는 여 론 때문이었다. 분명히 아동에 대한 병적인 기호나 성행위 는 소아성애증(pedophilia)이라고 해서 일종의 성적 도착행 위로 간주되는 동시에, 사회윤리적 차원에서 법적 처벌이 가 능한 상태라 하겠다. 그러나 정작 나보코프 자신은 롤리타 증후군이라는 용어 자체에 불만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 것은 순수한 사랑에 초점을 두지 않고 단순히 성적인 욕망 차원에서만 사용되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사랑 자 체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지 그 전후 맥락에 대해서는 일체 문제 삼지 말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험버트의 사 랑은 과연 병적인 집착이 아니고 순수한 사랑이었다는 말 인가. 순수한 사랑이라는 명분만으로 거짓된 위장결혼이나 근친상간, 연적 살해 등 모든 일탈 행위도 무마될 수 있다 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보코프의 마술 적인 문체는 독자로 하여금 험버트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 시키는 쪽으로 몰고 간다. 소설은 소설일 뿐 결코 윤리 지 침서가 아니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작품 속에 몰입 하다보면 작가의 무의식과 독자의 무의식간에 교감이 이루 어지면서 잠재된 욕망과 환상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그 러한 교감을 이어주는 매개체는 잃어버린 아동기 시절이라 고 할 수 있다. 어린 소녀에 대한 험버트의 병적인 집착은 단순한 성도착적인 욕구 충족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증발해 버린 아동기에 대한 그리움과 그 시절을 복원시키고자 하 는 필사적인 시도로 보인다. 그러한 시도는 작가인 나보코 프 자신의 욕망이기도 하다. 그에게 가장 한이 된 사실은 어린 시절을 잃어버렸다는 데 있었다. 그는 소설의 주인공 을 통하여 자신의 욕망과 환상을 재연시키고자 한 것이다. 불행한 사건 때문에 어린 시절을 기억에서 지워버려야만 하 는 많은 독자들도 그러한 작가의 의도를 누구보다 예리하게 감지하고 공감하기 쉽다. 오늘날 우리사회에 십대 소녀들로 이루어진 연예인들, 빙 상 스타 및 인터넷 얼짱 등의 아이돌 스타들에 열광하는 수 많은 매니아들이 나올 정도로 그 인기가 치솟고 있는 현상 도 일종의 롤리타 증후군의 일부일 수 있다. 물론 동년배의 십대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현상은 매우 당연한 일 이겠지만, 성인에게서 스토킹 수준의 행동을 보인다면 그것 은 문제가 다를 수 밖에 없다. 한동안 사회문제로까지 비화 되었던 원조교제 역시 롤리타 증후군에 속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겠다. 문근영 주연의 영화 [어린 신부], 나탈리 포 트만 주연의 [레옹] 등이 성인 관객들에게 묘한 자극을 주 는 이유도 잠재된 성적 욕구뿐 아니라 되찾을 수 없는 어린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런 점 에서 어린 소녀의 존재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으로 불릴 수도 있다. 무자비하고 냉혹한 남성의 마음조차 뒤흔 들어 놓을 수 있는 이 같은 제3의 성이 지닌 매력은 대중매 체라는 합법적 표현 수단에 힘입어 작가와 독자 간에 묵시 적인 합의를 이루게 한다. 이처럼 은밀한 방식에 의한 욕망 의 교류는 고루하고 보수적인 당국의 검열을 피해갈 수 있 는 우회로를 제공한다. 이런 경우에 검열을 하는 자와 검열 을 당하는 자는 서로를 제각기 악으로 규정한다. 소설 [롤 리타]를 금서로 지정한 사람들은 작가의 의도를 악으로 규 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 주인공의 처절한 사랑에 공감 하는 사람들은 고리타분한 도덕주의자들의 간섭을 악으로 간주할 것이다. 이런 논의들은 형이상학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 문제의 본질이 실로 모호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 러나 실제로 나의 가족 안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고 상 정한다면 과연 독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 인가 생각해볼 필요도 있겠다. 우리 각자의 내면 속에 롤리 타 증후군의 잔재가 남아있다손 치더라도 마치 주인공 험 버트처럼 정작 자신의 욕망과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 리지 않고 위선과 거짓을 일삼는 동시에 비록 의붓 아버지 이긴 하지만 어린 딸에게 성적인 접근을 거침없이 시도할 수 있겠는가. 그런 욕망을 지니고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 는 사람들은 비겁하거나 솔직하지 못한 위선자들인가. 그렇 다면 인간의 양심은 무엇이고 도덕률은 왜 필요한가. 성이나 사랑은 성역 없이 허용되고 폭력만이 거부되는가. 그리고 사 랑과 증오는 서로 공존이 불가능한 별개의 차원인가. 그러 나 수천 년간 사랑을 외쳐온 종교들 간에 벌어지는 숱한 분 쟁과 증오심의 만연을 보면 이런 문제가 간단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사랑은 선이고 폭력은 악이라는 단순 도식 이 인간에게 제대로 적용되자면 실로 넘어서야 할 장벽이 많음을 실감하게 된다. 153
나보코프와 늑대인간 154 제3의 성이라 할 수 있는 소녀에 대한 병적인 집착 이전 에 인간이 마주칠 수 밖에 없는 악의 문제를 다룬 전형적 인 작품으로 나보코프의 [어둠속의 웃음소리]를 들 수 있 다. [어둠속의 웃음소리]는 [롤리타]의 모태가 되었던 소설 로, 여기서는 성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매우 타락한 두 남녀 의 사악한 음모와 그들의 욕망에 휘말려 파멸을 맞이하는 한 중년 남자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소설의 무대는 1920 년대 베를린. 중년에 도달한 미술평론가 알비너스는 헌신 적인 아내 엘리자베트와 어린 딸 이르마와 함께 부유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항상 마음 한구석 에 허전함을 지니고 있었으며,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부분 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는 성적인 면에서 강박적이 기도 했다. 그는 막연하게나마 자극적이고도 스릴 넘치는 모험을 바라고 있었으며, 동시에 어린 소녀들에 대한 환상 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날 극장에 갔다가 그곳에서 일하는 마고트 페터스라는 소녀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는 부모에 게서 학대받고 가출하여 누드 모델로 활동하고 있던 16세 소녀로 여배우가 되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다. 그녀는 자신 의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알비너스를 이용한다. 그는 아름답고 성적인 매력이 흘러 넘치지만 사기성이 짙고 상대 를 마음대로 농락하며 이용만 하는 마고트와 관계를 맺음으 로써 위험한 파국의 길을 스스로 자초한다. 더욱이 그녀의 첫 애인 악셀 렉스가 나타나면서 그에게 재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악셀은 매우 부도덕하고 불량스럽고 잔혹한 인간 이었다. 마고트와 악셀은 곧 알비너스를 속임수와 질투의 늪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 결과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시력 까지 상실한 알비너스는 두 남녀의 농간에 놀아난 끝에 가 족, 행복, 건강, 재산 등 모든 것을 잃고 파멸로 치닫는다. 여기서 악셀은 사악하고 간교한 인물의 전형이며, 마고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성적인 유혹까지 마다하지 않는 매우 위험한 여인이다. 그녀는 돈과 명성 그리고 쾌락을 추구하 는 속물적 여성이지만, 자신의 야심을 이루기 위해서는 알 비너스에게 온갖 충성스런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어리 석은 알비너스는 그야말로 간교한 뱀과 고양이를 자신의 곁 에 두고 키운 셈이 되고만 것이며, 결국 인생 파탄이라는 돌 이킬 수 없는 대가를 지불하고 말았던 것이다. 두 남녀의 사악한 음모를 눈치 챈 알비너스가 복수를 결심하고 마고 트를 죽이려 하지만, 그녀가 먼저 총을 가로채고 그를 죽인 다. 어둠 속의 웃음소리는 회한과 비탄, 자조에 가득 찬 절 망적인 몸부림인 동시에 삶에 무책임한 인간의 마지막 신 음소리이기도 하다. 여기서 악셀은 악마 그 자체이며, 자신 의 욕망 때문에 그의 유혹에 넘어간 마고트는 결국 알비너 스를 영원한 어둠의 세계로 전락시켜 버린다. 인간의 삶은 매우 고달프다. 더구나 신경증적 갈등과 성 격적 결함 때문에 서로 마주치며 살아가야 하는 삶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우리 모두는 진공관 속의 증류수와 같은 무 균적 세상에 사는 것도 아니며, 또한 그런 곳에서는 하루도 생존해 나갈 수도 없다. 이것이 우리가 마주치며 헤치고 나 갈 수 밖에 없는 딜레마이며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숱한 인간들이 심적인 고통과 좌절에 빠져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러 시아의 망명작가 나보코프의 소설을 통하여 우리는 인간의 심성이 얼마나 나약하고 무기력한지 실감하게 된다. 그리 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본의든 아니든 불가피하게 마 주칠 수 밖에 없는 간교하고 사악한 심성의 무리들에 대한 경각심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나보코프의 소설은 우리 모두를 일종의 편집증 상태로 몰고 간다. 그는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하다. 도대체 우리가 믿고 살 수 있는 존재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신인가, 가족인가. 그리고 이처럼 근본 적인 불신에 가득 찬 질문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궁금해지 지 않을 수 없다. 선과 악의 대립적 구도로 이 세상을 바라 보는 이분법적 시각은 오히려 모든 문제를 단순화시킨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를 곤혹스럽 게 만드는 것이다. 카리스마 넘치고 매력적인 동시에 매우 영리하기까지 한 인물에게서 전혀 상상도 못한 사악함을 발 견할 때 다가오는 좌절과 무력감은 더욱 큰 나락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반면에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다소 우매하기 까지 한 인물에게서는 지루함과 따분함을 느끼며 새로운 자 극을 찾아 위험하기 그지없는 모험의 세계로 떠나도록 유 혹 받을 수도 있다. 나보코프의 소설은 그러한 권태와 유혹 사이에서 우왕좌왕 하다가 결국 파멸의 늪에 빠지고 마는 나약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우리 모두에게 증언하고 있다. 나보코프의 소설에 나오는 두 여주인공 롤리타와 마고트 의 성격을 보면, 성적인 매력이 넘쳐나는 매우 유혹적인 여 성들이지만, 순진무구한 남성을 이용하고 착취할 뿐 아니 라 종국에는 끝없는 파멸의 늪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원인 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세상의 많은 순진한 남성들은 특히 도발적이고도 유혹적인 여성들에게 불가항력적으로 빠져들 고 매혹되기 쉽다. 소위 팜므 파탈로 구분되는 부류의 여성 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지금도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숱한 남 성들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위험한 여인들의 존재 는 오래 전부터 수많은 사건들과 화제를 도맡아 일으켜 왔다 는 점에서 선망과 외경심을 동시에 불러 일으키는 수수께끼 와도 같은 존재들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돌이켜 보더라도 동서고금을 통하여 남성들을 유혹하고 파탄으로 몰고 갔던 여성들은 항시 존재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이
李 炳 郁 러한 위험한 여인들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했 다. 오히려 성적 매력이 넘치는 팜므 파탈은 사회적으로도 선망과 찬미의 대상이 되었다. 과거에는 전문가들 집단에서 이들 여성들에 대해 전형적인 히스테리로 보는 경향이 있었 으나 현대에 와서는 경계성 인격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함에 따라 그 진단도 달라졌다. 실제로 많은 임상가들조차 이들 여성에 대한 치료는 기피하는 것이 상례라 하겠다. 왜냐하면 이들의 착취적이고도 파괴적인 욕구가 실로 감당하기 어려 울 만큼 강하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롤리타]뿐 아니라 [어둠속의 웃음소리]는 인간 심성의 어두운 측면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는 점에서 매우 염세적 인 작품으로 간주될 수 있다. 어둠과 웃음을 동시에 제시하 는 소설의 제목 자체가 매우 이율배반적이요 역설적이기까 지 하다. 따라서 그 웃음은 자조와 탄식, 절망에서 나오는 웃음소리라 하겠다. 빛이 차단된 어둠 속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은 절망적인 탄식을 의미한다. 나보코프의 소설은 나른 하고 유혹적이면서도 잔혹하고 사악한 인간 심성의 늪 속 으로 독자 모두를 몰입시킨다. 그것은 평범한 삶을 영위해 가는 대다수의 일반인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무의식적 악 의 단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슴 아플 정도로 안타까운 악 도 존재한다. 사랑하는 롤리타 때문에 그녀를 괴롭힌 악인 을 살해함으로써 파멸에 이른 작가 험버트는 세속적인 판단 에 따르자면,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여성과 위장결혼을 했다는 악, 또한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악, 그리고 애도할 마음도 없이 그녀의 어린 딸을 데 리고 애정의 도피 행각을 벌인 악, 미성년을 성적으로 착취 했다는 악, 그리고 악을 악으로 응징했다는 또 다른 악을 행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스스로 행복한 가정생활을 깨트 리고 사악한 세계에 접근함으로써 파멸에 이른 알비너스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적어도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은 어린 소녀에 집착하고 미혹된 중년 남성, 나이 든 남성을 마음껏 농락하고 배신한 소녀, 중년 남성에게서 소녀를 가로챈 사 악한 젊은 남성, 그리고 복수를 시도하다가 종국에는 파멸 에 이르는 중년 남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들 모 두는 악의 고리로 한데 묶여져 있다. 이처럼 나보코프의 소 설에는 구태의연한 권선징악적 구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 디까지가 선이고, 악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서로의 욕망 때 문에 상대를 착취하고 이용하는 기생적인 관계만이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그곳에 구원은 있을 수 없다. 단지 욕망에 지친 어두운 신음소리만 있을 뿐이다. 나보코프와 프로이트 생전에 나보코프는 대중 앞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피 했으며, 또한 당시 주된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마르 크스나 프로이트 등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표시했다. 그는 오히려 마르크스보다 프로이트를 더욱 혐오했던 것으로 전 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유는 분명치가 않았다. 나보코 프는 프로이트를 인간의 소망과 꿈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보았다. 그것은 인간에게 심리적 통찰이 불필요할 뿐 아니 라 오히려 꿈을 성취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입장이다. 나보 코프의 프로이트 비난은 언어의 마술사답게 실로 가열차다. 그는 몹시 냉소적인 말투로 프로이트를 일종의 코믹 작가 라는 점에서 몹시 존경한다고 말하고, 정신분석 집단을 광 적으로 떠들어대는 어리석음과 맹신에 가득 찬 일종의 친 목회 모임에 비유했다. 또한 정신분석은 중세적인 미신과 관련된 것으로 프로이트의 생각은 조롱감인 동시에 저지시 켜 마땅하다고 했다. 더 나아가 정신분석은 한마디로 탁상 공론에 불과한 지식으로 그토록 농담 같은 이론에 많은 시 간을 들여 수고하는 것은 실로 어리석고도 진저리나는 일 이라고 하였다(Nabokov 1973). 이처럼 통렬한 나보코프 의 비난에 대하여 Green(1988)은 근대문학사에서도 그 유례가 없을 정도로 도에 지나친 가혹한 것으로 본다. 더욱 이 정신분석을 크게 환영했던 초현실주의 작가들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Field(1977)는 나보코프가 독일어 원문이 아 니라 오로지 영문판을 통해서만 프로이트를 읽었기 때문에 오해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라고 그를 변호했지만, 나보코 프는 실제로 독일어 원본을 통해 프로이트를 읽어야 한다 고 말한 바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프로이 트를 그릇되고 어리석으며 저속한 인물로 평가절하했다. 이 처럼 프로이트에 대해 자제력을 잃을 정도로 강한 반감을 지 니도록 만든 이유에 대해서 de la Durantaye(2005)는 프로 이트의 다른 많은 저술보다 특히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늑 대인간의 사례를 접한 것이 주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았다. 그 증거로 나보코프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원초경에 대한 언급을 자주 했다는 점을 들었다. 더욱이 광적인 나비수집 가였던 나보코프가 늑대인간이 어릴 때 보였던 나비공포증 을 무심코 넘겼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나보 코프는 프로이트뿐 아니라 그 이후에 이어진 대상관계이론 등에 대해서도 매우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특히 [롤리타]의 주인공 험버트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Sokol 1986). 물론 나보코 프는 험버트의 입을 빌려 정신분석에 대한 경멸과 혐오감을 드러내는데 주저치 않았지만, 정작 나보코프 자신은 정신분 석에서나 다룰 수 있는 무의식적 환상과 욕망의 세계를 작품 속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매우 분석적인 작업에 종사했다고 볼 수 있다. 155
나보코프와 늑대인간 156 Rowe(1971)는 나보코프의 작품에 주로 나타난 성적 상징에 대해 논의한 바 있지만, 이에 대해서 나보코프는 격 렬한 반응을 보이며 터무니없는 사고의 비약으로 간주하고 맹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보인 이유 는 물론 196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정신분석적 비평의 움 직임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살핀 바와 같이 나보 코프의 작품은 실제로 정신분석적 탐구 대상으로는 아주 적절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무의식 적 환상을 드러내는 자유연상 내용에 결코 손색이 없는 내 용들로 넘쳐나 있기 때문이다. 나보코프는 자신의 일부나 다름없는 작품들에 대하여 그러한 분석적 해석이 가해지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례적으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 점 자체가 나보코프의 한 특성을 드러 내준다. 그것은 일종의 저항으로 간주할 수 있겠으나, 나보 코프 자신이 했던 말 그대로 작가와 작품의 분리 및 무관함 에 모순된 태도이기 때문이다. 또한 소설이 단지 소설에 불 과한 것이라면, 작가가 그토록 나서서 분개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평적 작품 해석에 대한 작가의 흥분은 곧 작가 스스로가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의미도 되 는 것이다. Nabokov(1981)는 말하기를, 자신은 위대한 작 가들의 고귀한 삶에 함부로 손대기를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은밀한 부분을 훔쳐보는 일에도 전혀 흥미 가 없다고 하면서 부언하기를, 그 어떤 전기작가라 할지라 도 나보코프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작가와 작품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 가 없다는 듯이 들리는 이 말은 그러나 모든 소설은 결국 자서전적이라고 주장한 토마스 울프의 말과도 배치된다. 그 런 점에서 나보코프는 일반 독자들이 등장인물 및 그 내용 에 너무 몰입해서는 안되며, 오로지 스타일과 구성에 주의 를 기울이면서 고도의 심미적 즐거움만 만끽하면 된다고 했던 것이다(Nabokov 1982). 그러나 이 같은 독자들에 대 한 충고를 작가 자신은 지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단지 심미적 즐거움에 그친 것이 아니라 나보코프 자신의 내적 환상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에, 그는 주인공의 행동에 일말 의 책임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세부 사항 및 세부적 묘사에만 치중하라는 그의 충고는 세부적인 사항뿐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을 중요시하는 정신분석과도 배치된 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만약 나보코프가 로르샥 검사를 한 다면, 그는 전체적인 윤곽을 무시하고 세부적 묘사에만 집 착할 것이 틀림없다. 예를 들어, 나비 그림에 대한 설명에 서도 그는 생식기 부위에만 집착할 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결과에 대한 평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나보코프가 요구하는 문학감상론의 요지는 나비의 아름다운 무늬를 세밀히 관찰 하고 즐기듯이 소설을 즐기라는 주문이지만, 그것은 나비 전체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자 하는 독자들의 요구를 무시 하는 견해로 보이기도 한다.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요인으로는 나보 코프 자신의 독특한 세계관을 들 수 있겠다. 그의 주된 신 념이 철저한 개인주의로서 개인의 자유와 표현을 가로막는 그 어떤 개념이나 전체주의적 이념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프 로이트의 정신분석 역시 인간의 심성을 일정한 이론적 틀에 묶어두는 것으로 파악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Alexandrov 1995). 나보코프 입장에서는 프로이트가 개인의 꿈을 말 살시키는 내적 감시자라는 점에서 볼셰비키를 닮았다고 간 주했으며, 그런 점에서 정신분석은 볼셰비키와 같은 전체주의 이념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de la Durantaye 2005). 그에게 개인적 주관성을 억압하는 모든 체제는 악 인 셈이다. 따라서 그는 볼셰비즘이나 파시즘 및 정신분석 등 모든 이념적 틀 자체를 적으로 간주한 것이다. 그러나 대내외적으로 억압적이고도 갈등적인 현실에서 개인을 자 유롭게 해방시키고자 하는 정신분석의 노력을 단순히 볼셰 비즘이나 파시즘과 같은 정치적 억압체제와 동등시하는 것 은 나보코프 자신의 왜곡된 편견과 무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정신분석이야말로 파시즘과 공산주의 등 전체주의사회에서 공적으로 취급되어 추방당한 유일한 학문이 아니겠는가. 나보코프와 늑대인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1899~1977)는 프로이트의 유명 한 사례로 알려진 늑대인간의 실제 인물 세르게이 판케예 프(1887~1979)와 거의 동시대 인물이다. 시대적으로도 같을 뿐만 아니라 두 사람 모두 러시아 명문 귀족 출신으로 두 집안 모두 러시아혁명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들의 아버지 또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함으로써 정신적 외상을 겪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 리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서로 인접한 스위스와 비인에서 제각기 세상을 떠났지만, 일생 동안 두 사람은 상면한 적이 한번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이에는 매우 흥미로운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점에서 관심을 이끌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물론 이들을 연결시키는 고리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늑 대인간은 프로이트의 분석을 받았으며, 정신분석을 존중하 는 입장인 반면에, 나보코프는 프로이트를 경멸하고 매우 강한 적개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보코프의 매우 특이한 과민반응은 프로이트의 이론 자체보다도 늑대인간 의 사례를 통하여 가장 큰 자극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
李 炳 郁 정된다. 왜냐하면 늑대인간은 나보코프와 매우 비슷한 심 리사회적 위치에 있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차이 가 있다면 늑대인간은 어려서 나비공포증을 보였지만 나보 코프는 나비애호가였다는 점이 다르며, 늑대인간은 나보코 프처럼 적절한 승화의 과정을 이루지 못했다는 점에서 다르 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나보코프는 정신분석을 평가절하하 고 기피함으로써 자신의 창조적 자원을 스스로 보호하고자 했다는 점에서도 다른 길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때문 에 나보코프는 그 자신의 신경증적 경향이 노출되는 것에 대 한 극도의 경계심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나보코프는 동시대를 살았던 프로이트의 늑대인간과 매 우 유사한 배경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 귀 족 가문 출신이라는 점, 러시아 혁명으로 일가 전체가 몰락 했다는 점, 오랜 망명생활을 해야만 했다는 점, 민감한 성 장기에 아버지를 비극적인 사고로 잃었다는 점, 항상 강박 적이고 우울했다는 점 등이 너무도 흡사하다. 그런 점에서 나보코프가 프로이트를 유난히 혐오했던 이유도 사실은 늑 대인간의 사례에 접했던 나보코프로서 자신과 너무도 비슷 한 점을 발견하고 지나친 방어적 태도를 보인 것이 아닐까 한다. 그것은 나보코프가 원초경에 대한 언급을 자주 했다 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겠다(de la Durantaye 2005). 프로이트가 분석에서 주로 다루었던 늑대인간의 핵심은 바 로 꿈을 통해 드러난 원초경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 제로 나보코프는 영문판 프로이트 저술을 탐독했으며, 그 런 점에서는 프로이트에 대해 양가적인 태도를 보였던 버 지니아 울프와도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나보코프는 자신의 창작에도 인간의 비현실적인 환상과 욕망을 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본인의 의식적인 태도와는 달리 프로이 트의 영향을 입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그는 민감한 의 식을 지닌 예술가로서 분석적 통찰로 인한 창조적 자원의 고갈을 두려워했을 수는 있겠다. 이병욱(2007)은 늑대인간의 분석에서 프로이트가 간과 한 사실은 늑대인간이 그 자신의 현실세계에서 겪은 외상적 사건들, 다시 말해서 가문의 몰락과 가족 일원들의 비극적 인 최후 등의 여파로 그가 보인 심각한 우울증 및 편집증적 경향에 대해서는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점을 지적 한 바 있다. 늑대인간은 러시아 유수의 귀족가문에서 태어 나 별다른 어려움을 모르고 성장했다. 그러나 청소년기에 이르러 그에게는 연이어 들이닥친 불행한 사건들로 정신적 위기를 겪어야 했다. 그것은 누이 및 아버지의 자살, 그리고 러시아혁명으로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망명객으로 전락한 점, 힘든 망명생활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이룩한 결혼생활에 서 행복을 찾고 싶었으나 아내의 자살로 인해 더욱 큰 좌절 에 빠지게 된 점 등이 그가 헤치고 나가야 할 과제였던 것 이다. 그러나 분석의 힘도 그의 절망감을 완전히 없애주지 는 못했다. 반면에 나보코프는 유복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 나 부족함을 모르고 성장했으며, 외관상으로만 본다면 그의 어린 시절은 매우 행복한 시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미 소년시절부터 삼촌인 아저씨로부터 성적인 괴롭힘을 당했으며, 더욱이 그의 나이 18세가 되던 해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그의 집안은 일시에 몰락의 길 로 접어들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족들은 해외로 도피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아버지는 베를린에서 암살자에 의해 살해당하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말하기를, 자신이 소비에트 독재를 미워하는 것은 모든 재 산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소중한 어린 시절을 잃었기 때 문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그는 돈과 토지를 강탈당했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들을 증오하는 망명자들에 대해서도 동 일한 경멸감을 지닌다고 했던 것이다(Nabokov 1989). 이 는 마치 늑대인간을 염두에 두고 던지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늑대인간에 대해서도 혐오감을 지 녔는지도 모른다. 나보코프는 지독한 대인기피증을 보였지 만, 그것은 대중들에 대한 심한 혐오감과 불신에 의한 반응 으로 보인다. 그에게는 러시아혁명이란 사건 자체도 단지 천박한 군중심리의 발로에 불과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로서는 냉철한 이성적 판단에 입각하지 않은 혁명 적 운동에는 본질적인 거부감을 지녔을 것이다. 이러한 그 의 고고한 귀족주의적 잔재는 대중적 접촉을 극도로 회피하 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 본성에 내재된 악마성 의 폭로야말로 그가 진정으로 시도하고자 했던 목표일지도 모른다. 그의 대표적인 소설 [롤리타]와 [어둠속의 웃음소 리]가 그러한 의도를 반증한다. 인간 존재에 대한 뿌리 깊 은 불신은 바로 그 자신의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외상적 사건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보코프는 죽을 때까지 그에게 헌신적인 아내 베라가 있 음으로써 상징적인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지만, 늑대인간은 일찍 아내를 잃음으로써 외롭고 쓸쓸한 여생을 보내야만 했다. 또한 나보코프는 작가로서의 성공으로 부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오페라 가수로 성공한 아들과 함께 자 신의 빼앗긴 어린 시절을 보상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 만, 늑대인간은 후손도 없이 궁핍한 생활을 영위하며 자신 의 정신적 외상을 영원히 보상받지 못한 채 홀로 외로운 생 을 마치고 말았다. 그는 단지 완치되지 못한 환자로만 기억 될 뿐이다. 나보코프는 자신의 처지와 너무도 비슷한 늑대 인간의 불행한 모습에서 아마도 자신의 또 다른 분신을 엿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 모습은 실로 그가 평소에 혐오하고 157
나보코프와 늑대인간 158 경멸하는 인생 실패자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비쳤기 쉽다. 나보코프는 정신분석을 증오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실패한 인생의 상징인 늑대인간을 혐오한 것이며, 동시에 그를 적 절히 치료하지 못한 프로이트에 대한 개인적인 불신이 더 욱 컸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Khrushcheva(2008)는 나보 코프가 그의 생전에 가장 증오했던 의사들 가운데 프로이 트, 지바고, 쉬바이처 박사 등이 포함된다고 하였는데, 의 사 지바고 역시 러시아혁명 및 내전의 와중에서 무기력하 게 희생당한 나약한 지식인으로 묘사되었다는 점에서 나보 코프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가장 닮 은 대상에게 적대감을 표시하는 것은 곧 자기 부정을 의미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늑대인간은 솔직하게 자신의 처지가 의사 지바고와 매우 비슷하게 느낀다고 고백한 바 있다(Gardiner 1971). 그러나 적군과 백군 사이에 벌어진 참혹한 러시아내전으로 모든 것을 잃고도 그러한 비극의 현 장에 끝까지 동참한 의사 지바고는 비록 힘없는 지식인이긴 하지만 결코 비겁자가 아니다. 적어도 그는 자신에게 주어 진 고난과 시련을 감수하면서 모든 러시아 민중들과 더불 어 그 고통을 함께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 려 해외 망명을 선택한 나보코프와 늑대인간이 더욱 자기 중심적인 인물들이다. 나비사냥과 체스놀이 어려서부터 나비에 매료된 나보코프는 광적인 나비수집 가로도 알려져 있는데, 나비 분야 연구에 있어서는 전문가 를 능가할 정도로 일가견을 지니고 있었으며, 특히 나비의 생식기 연구에는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고 한다. 어떤 경우 에는 거의 하루 종일 연구실에 틀어 박혀 현미경으로 나비 생식기만을 들여다보며 연구에 몰두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비 종의 분류에도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고 알려졌다. 나비는 재생과 탈바꿈의 상징인 동시에 변덕쟁이 및 정숙 하지 못한 바람둥이 여성을 가리키는 은어이기도 하다. 실 제로 보기 흉측한 애벌레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나비가 나 온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 소위 환골탈태 또는 거듭나기란 말이 가장 적합한 동물이 나비일 것이다. 이처럼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그것도 아름답고 호화찬란한 모습으로 변신하는 나비의 경이로운 모습에 나보코프는 특 히 매료된 것 같다. 나비에 매료된 나머지 일생을 나비 연구 에 바친 인물은 또 있다. 바로 한국의 나비박사 석주명 (1908~ 1950)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시 서울 국립과학관 이 폭격으로 인해 불길에 휩싸이면서 그가 20여 년간 채집 한 75만 마리의 나비 표본이 모조리 소실되고 말았다. 폐 허로 변한 국립과학관의 복원을 위해 회의 참석차 서둘러 가 는 길에 그는 우익청년들이 인민군으로 오인하여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는 참변을 당했다. 그가 숨을 거두며 남긴 마지막 말은 나는 나비밖에 모르는 사람 이라는 말이었 다. 석주명이 이처럼 비명에 세상을 떠날 시점에 나보코프 는 하버드 대학 비교동물학 연구실에서 나비 연구에 몰두 하고 있었다. 석주명은 자신의 결혼생활에 파경을 맞으면 서까지 나비 연구를 포기하지 않는 강한 집념을 보였지만, 나보코프는 다행스럽게도 매우 헌신적인 아내의 보살핌 속 에 안주할 수 있었다는 점이 그에게는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존 파울즈의 소설 [콜렉터]에서 주인공은 나비를 수집하 듯이 젊은 여성을 납치하여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유괴범과 피랍자라는 서로 다른 입장에 놓인 두 남 녀 간에는 소통의 단절로 인한 보이지 않는 비극이 존재한 다. 나보코프의 소설 [어둠속의 웃음소리]와 [롤리타] 역시 나비사냥에 나선 중년 남성들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잡았다가 놓친 나비는 단순히 귀엽고 사랑스 런 나비가 아니라 수집가를 잡아먹는 무서운 흡혈나비였던 셈이다. 수집가는 자신이 잡은 나비를 바늘로 찔러 고정시 킨다. 매우 가학적인 취미라 할 수 있다. [콜렉터]의 주인공 은 방 전체를 자신이 잡은 나비 표본으로 가득 채운다. 그러 나 그 공간은 대화가 단절된 침묵의 방일 뿐이다. 그러한 대 화의 단절은 나보코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특히 나비 생식기에 대한 나보코프의 유별난 관심과 집념은 인간 생식 기에 대한 관심이 전치된 것일 수 있다. 생식에 대한 관심은 자신의 태생에 대한 관심과 의문의 연장이기도 하다. 또한 성에 대한 관심의 표시일 수도 있다. 성에 대한 현미경적 관 심의 집중은 복잡다단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단절된 작가 자신의 내적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보코프는 인간을 고통에 빠트리는 사회적 관계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외적 환경의 변화에 그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나비에 강박적인 집착을 보였는데, 이는 자신의 내부에 간직된 상실감과 복수심, 경쟁심의 발 로가 아닌지 모르겠다. 나비는 재탄생의 상징적 의미를 지 니기도 하지만, 아동기를 상징하는 애벌레의 징그러운 모 습과는 전혀 다른 아름다운 자태의 나비로 변신한다는 점 에서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나보코프 자신의 꿈 과 소망을 담고 있는 상징적 존재일 수도 있다. 그가 나비 의 생식기에 특이하게 집착한 이유도 알고 보면 인간의 성 을 부정하고 신비로운 존재의 상징인 나비세계를 통하여 새 로운 존재로 거듭나기를 바란 것일 수 있다. 그러나 Freud (1918)는 늑대인간이 어린 시절에 보였던 나비공포증에 대
李 炳 郁 해 직접적인 해석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그 유명한 그루샤 장면에서 나비가 의미하는 성적인 상징에 대해 언급한 적 은 있다. 늑대인간은 자유연상에서 말하기를, 나비가 날개 를 접었다 폈다 하는 반복적인 움직임을 바라보면 매우 기 괴한 느낌을 받는다고 하면서 그것은 곧 여성이 다리를 벌 리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고백한 바 있는데, 늑대인간의 이 러한 특이한 연상은 비단 그뿐이 아니라 나보코프에게도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성적인 유혹의 주제는 늑 대인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그것은 특히 여성으로부터 주어진 유혹뿐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오 는 유혹도 포함된 것이었다. 늑대인간의 연상에 의하면, 나 비는 소녀 또는 아주머니처럼 보이고, 딱정벌레나 애벌레 는 남자아이처럼 보인다고도 했는데, 이러한 그의 고백은 나보코프 자신의 억압된 무의식적 내용을 매우 자극했을 것 으로 보인다. 따라서 나보코프가 프로이트에 대해 강한 혐 오감을 드러낸 것은 그 해석 내용에 대한 두려움 및 그에 대한 반작용의 결과로 보인다. 늑대인간이 어린 시절에 파 리를 잡아 날개를 떼어 버리거나 애벌레를 토막 내고 풍뎅 이를 발로 짓밟는 등의 가학적인 행동을 통해 보인 동물학 대에 대하여 프로이트는 늑대인간 자신의 거세공포 및 피 학적 충동을 회피하기 위한 방어적 행동으로 보았다. 실제 로 늑대인간은 사탕 막대기를 토막 낸 뱀으로 표현했던 유 모의 말이나 길에서 만난 뱀을 지팡이로 때려 조각나게 만 들었던 아버지의 행동도 생생히 기억해 냈던 것이다. 물론 나보코프는 이러한 해석에 강한 저항감을 느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가 일생 동안 즐겼던 체스놀이는 승부를 가르는 게임의 형식이 아닌 매우 특수한 형태의 상상퀴즈 놀이였는데, 강 박적이 아닌 사람들은 참여하기 힘든 매우 복잡한 두뇌게임 에 속한다. 나보코프는 이러한 놀이를 통하여 일종의 심미 적인 즐거움을 찾는 동시에 자신의 작품 구상에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Hiatt(1967)는 나보코프 자신 이 창안한 체스 놀이를 통하여 그의 소설 [롤리타]가 완성 되었음을 지적하고, 그러나 그가 아무리 정교하게 짜 놓은 수수께끼의 구도 안에 주인공 험버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 스를 교묘한 방법으로 숨겨놓으려 했다 하더라도 그러한 은폐 시도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왜냐하 면 그러한 은폐의 시도 자체가 저항을 의미하며, 저항은 또 그 자체가 이미 그 어떤 단서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보코프는 말하기를, 정신분석은 시간낭비에 불과한 헛수 고에 불과하며, 분석가들의 모임 역시 세상을 시끄럽게만 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분 석가들은 자칭 성적 갈등의 전문가임을 자처하지만, 매춘 부가 무심코 내뱉은 간단한 속임수조차 눈치채지 못할 것 이며, 진정한 성적 낭패의 그 어떤 단서도 잡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러나 나보코프는 자신의 상상놀이를 지나치게 과신했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저항에도 불구 하고 험버트의 정신역동은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여지 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비록 그는 분석가의 능력을 형편 없는 것으로 과소평가했지만, 그것은 그만큼 그가 정신분 석적 해석을 경계하고 두려워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 다. 그러나 Shengold(2008)도 지적한 바 있듯이, 스포츠 와 게임 등에서 보이는 선수들의 자세와 위치 등은 정서적 인 요인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쉽다는 것인데, 다시 말해서 그것은 서로 마주 보느냐 또는 등을 돌리고 있느냐 에 따라 시각적인 의미와 그로 인해서 야기되는 감정적 반 응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서적 반응은 정 신분석적 치료과정뿐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도 얼마 든지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나보코프의 삶과 작품을 통해 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성적인 의미뿐 아니라 상실과 애도의 관점에서 고 찰해 볼 수도 있다. 특히 체스판 위에서 벌어지는 게임의 경 우에, 왕과 왕비 그리고 그들을 지키는 병사들을 통하여 왕 국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 또는 백마와 흑마의 짝짓기를 통 한 변화의 묘수 등을 위주로 이루어진 놀이라는 점에서 나 보코프 자신의 잃어버린 가족 및 어린 시절을 반복적으로 복 원시키고자 하는 그의 오랜 소망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Pollock(1961)은 그 자신의 애도과정 경험뿐 아니라 많은 환자들의 분석을 통하여 확인된 사실, 즉 애도과정은 조기 발달단계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적응 과정에 필수적인 요인임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애도과정은 많은 작가들의 창조적 작업에 강력한 동기를 제 공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기도 하다. 그런 관점에서 나비 와 체스에 대한 나보코프의 강박적인 집착은 그 자신의 잃 어버린 아동기와 부모에 대한 애도반응을 나타내는 것일 수 도 있다. 실제로 그는 주장하기를, 자신이 오랜 기간 간직해 온 향수는 잃어버린 어린 시절에 대한 것이지 빼앗긴 재산 때문이 아니라고 하면서 그런 이유로 그 자신은 모든 지위 와 재산을 잃었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를 증오하는 반공주 의자들 역시 혐오한다고 하였다(Nabokov 1989). 나보코프 의 이러한 주장은 곧 그 자신의 아동기적 외상을 우회적으 로 암시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그는 새롭게 복원해야만 할 미해결의 아동기 갈등을 지니 고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Centerwall(1992)은 험버 트의 소아성애증적 집착은 실제로 나보코프 자신이 지녔던 문제로 다만 그 자신의 욕망을 소설 속의 주인공을 통하 159
나보코프와 늑대인간 160 여 행동화시킴으로써 대리적인 만족을 구했던 것으로 보 고, 이는 곧 나보코프 자신이 아동기에 겪었던 성적 외상 경험과 관련된 오이디푸스 갈등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그 를 성적으로 괴롭힌 장본인은 바로 그에게 막대한 유산을 물려주었던 삼촌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몰수된 유산이 아니 라 그 유산을 물려준 아저씨에게서 받았던 성적 학대 자 체가 더욱 큰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한 상처는 되물릴 수 도 없는 영구적인 흔적을 그에게 남긴 것이기에 나보코프 는 오로지 소설 창작을 통하여 자신의 갈등을 부분적으로 해 소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De Masi(2007)의 소아 성애증 환자 분석 경험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그 에 의하면, 처음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거리감이 느껴 진 환자였으나 그의 내면에 간직된 망상적 핵심, 즉 자신이 집착하는 어린 대상이 부모를 대신해서 영원히 이상화되고 숭배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믿음과 그 대상으로 인하여 모 든 쾌락과 행복이 보장될 것이라는 망상을 이해하게 되면 서 점차 병적인 도착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이다. 그러나 매우 역설적인 현상이기는 하지만 만약 나보 코프가 정신분석을 통하여 자신의 병적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그의 소설들은 태어나지 못 했을 수도 있다. 나보코프가 가장 두려워했던 점도 그러한 분석적 통찰로 인하여 자신의 창조적 동기와 그 원천이 고 갈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 리고 그런 염려는 사실상 전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결 론 러시아 출신의 현대작가 나보코프와 프로이트의 환자로 유명해진 늑대인간은 동시대 인물로서 두 사람 모두 러시 아혁명의 여파로 몰락의 길을 걸었던 귀족가문 출신들이 다. 나보코프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대해 극도의 반감 과 혐오감을 지녔던 인물이었지만, 그 이유는 자신의 처지 와 너무도 흡사했던 늑대인간의 모습에서 강한 저항감을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 프로이트의 늑대인간 분석은 나 보코프 자신의 신경증적 갈등을 직면하는 계기를 제공함 으로써 더욱 정신분석에 대한 반감을 자극한 것으로 보이 며, 실제로 그 자신의 강박적 우울성향은 늑대인간과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그의 특이한 작품 성향과 개인적인 나비사냥 및 생식기 연구, 체스놀이 등을 통하여 드러나는 신경증적 양상은 프로이트에 대해 이례적일 정 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나보코프 자신의 심리적 결함 의 노출 가능성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을 더욱 강화시킨 것 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유형의 전이저항은 늑대인간 자신도 분석 도중에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 보였던 특징 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서 분석을 받았던 늑대인간이나 분 석을 경멸하고 회피했던 나보코프나 두 사람 모두 프로이 트에게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저항을 보인 셈이다. 그러나 나보코프처럼 타고난 예술적 재능을 통하여 자신의 신경 증적 경향을 적절히 승화시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없었 던 늑대인간은 상대적으로 더욱 불행한 생애를 살았던 것 으로 보인다. References Alexandrov VE. The Garland Companion to Vladimir Nabokov. New York: Garland Publishing;1995. Boyd B. Vladimir Nabokov: The Russian Years. Princeton, NJ: Princeton Univ Press;1990. Boyd B. Vladimir Nabokov: The American Years. Princeton, NJ: Princeton Univ Press;1991. Centerwall BS. Vladimir Nabokov: A case study in pedophilia. Psychoanal Contemp Thought 1992;15:199-239. de la Durantaye L. Vladimir Nabokov and Sigmund Freud, or a particular problem. American Imago 2005;62:59-73. De Masi F. The paedophile and his inner world: Theoretical and clinical considerations on the analysis of a patient. Int J Psycho- Anal 2007;88(pt 1):147-165. Field A. Nabokov: His Life in Part. New York: Viking;1977. Freud S. From the history of an infantile neurosis. SE 17 London: Hogarth Press;1918. p.1-122. Gardiner M. The Wolf-Man by the Wolf-Man. New York: Basic Books;1971. Green G. Freud and Nabokov. Lincoln: Univ Nebraska Press; 1988. Hiatt LR. Nabokov s Lolita: A Freudian cryptic crossword. A- merican Imago 1967;24:360-370. Khrushcheva NL. Imagining Nabokov: Russia Between Art and Politics. New Haven: Yale Univ Press;2008. Lee BW. The Wolf Man Analysis Terminable and Interminable. Psychoanalysis 2007;18:146-155. Nabokov V. Strong Opinions. New York: Vintage;1973. Nabokov V. Lectures on Russian Literature. New York: Harcourt Brace Jovanovich;1981. Nabokov V. Lectures on Literature. New York: Harvest Books; 1982. Nabokov V. Speak, Memory. New York: Vintage;1989. Pollock GH. Mourning and adaptation. Int J Psychoanal 1961; 42:341-361. Rowe WW. Nabokov s Deceptive World. New York: New York Univ Press;1971. Schiff S. Vera (Mrs. Vladimir Nabokov). New York: Random House; 1999. Shengold L. Competition and postural confrontation in life, 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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