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예수는 신화다 : 고대인들의 종교 [ 신인 미스테리아] 2001 년 한국에는 기독교를 발칵 뒤집어놓을 책이 한 권 출간되었다. 프랑스의 신화학자 피터 갠디와 티모시 크리프의 저작인 [ 예수는 신화다] 가 동아일보를 통해 출판된 것이었다. 그러나 거센 기독교의 반발을 물리치지 못하고 1주일 만 에 폐간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그리고 최근 2009년에 다른 출판 사를 통해 조용히 재출간이 이루어졌다. 책의 내용이 무엇이기에 기독교는 그렇 게 발끈했던 것일까? 문학평론가 승영조씨가 번역한 2001년 판을 기준으로 책 의 내용을 요약 정리하여 소개한다. 특히 이 책의 주목할 점은 서양 고대인들에 게 유행했던 [ 신인 미스테리아] 라는 종교에 대한 정보이다. 당시에는 사람이 곧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보편적이었다. 1 장. 생각할 수 없는 생각 고대 사회를 점령한 대형 종교가 하나 있었다. 이른바 미스테리아mysteries 신 앙이다. 미스테리아 신앙의 핵심에는 한 사람의 신인( 神 人, godman) 이 있었다. 그는 지역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려졌다.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 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 소아시아에서는 아티스, 시리아에서는 아도니스, 이탈리아에서는 바 쿠스, 페르시아에서는 미트라스로 불렸다. 지역과 문화적 배경에 따라 이름과 형태가 달라졌지만 그들은 모두 동일한 하나의 신인을 지칭하고 있었다. 그 신 인의 특징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육체를 가진 신이며, 구세주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며 어머니는 인간 처녀( 동정녀) 이다 그는 3명의 양치기가 찾아오기 전인 12월 25 일에, 동굴이나 누추한 외양간 에서 태어났다. 그는 신도들에게 세례 의식을 통해 다시 태어날 기회를 준다 그는 결혼식장에서 물을 술로 바꾸는 기적을 행한다 그가 나귀를 타고 입성할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찬송하며 그 를 맞이했다 그는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부활절 무렵에 죽없다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여 영광스럽게 하늘로 올라갔다 신도들은 최후의 날 심판자로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의 죽음과 부활은 그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 의식으로 기념되 었다
이러한 특성은 극히 일부만 나열한 것이지만 이것만으로도 예수 이야기와 얼마 나 흡사한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왜 대중에게는 알려 지지 않았던 것일까? 그것은 초기 로마 교회가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안간힘을 썼기 때문이다. 로마 교회는 미스테리아 신앙을 말살하기 위한 잔혹한 계획을 세우고, 그에 관련된 모든 문헌을 체계적으로 말살했다. 이 계획은 너무나 완벽 하게 수행되어 미스테리아 신앙은 오늘날까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악마의 모방 미스테리아 신앙이 말살되기 전 새롭게 등장한 그리스도교는 누가 봐도 미스테 리아 신앙의 유대교적 변형이었고, 미스테리아 신앙의 카피에 불과했다. 당시의 모든 학자들이 그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리스도교를 옹호하던 유명한 학자 들조차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 테르툴리아누스, 이레나 이우스 등 초기 교부들은 그 유사성이 악마의 모방탓이라고 필사적으로 주장했 다. 악마가 예상에 의한 표절 을 했다는 것이다. 예수의 진짜 이야기가 발생하 기 전에 악마가 미리 예상을 해서 사악하게 모방을 했다는 것이다. 대단히 사악 한 변명이 아닐 수 없다. 영지주의와 문자주의 원래 미스테리아 신앙은 특정 신인을 우상시하며 그를 숭배하는 종교가 아니었 다. 신인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관한 이야기는 모든 사람의 내면에 있는 신인의 씨앗을 부화시키기 위한 비유적인 상징이었다. 미스테리아 신앙의 기본 전제는 사람이 성장하여 모두가 신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초기 그리스도 교는 이러한 흐름을 훌륭하게 계승하고 있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최초의 그 리스도교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날 기독교의 대표적인 이단으로 둔갑해버 렸다. 바로 영지주의자들(Gnostics) 이다. 그들은 로마 교회의 박해를 받아 철저 하게 말살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진정한 목소리는 은폐되고 말았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교는 문자주의자들(Literalists) 과 로마 제국 의 정치권력이 결탁하여 탄생했다. 문자주의 그리스교인들은 예수를 미스테리아 의 정신을 계승한 상징적 신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당시 고대사회에 편만하게 퍼져있던 미스테리아 신앙의 관 점에서 볼 때 예수가 실존인물이 아니라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것은 너무나 명백 한 것이었다. 그들은 역사와 증거를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로마 황제 는 그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로마황제는 강력한 황제권을 가진 로마건설을 위해 황제를 신으로 만들어 줄 있는 권위적인 종교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오
랜 역사를 송두리째 파묻어버리는 참혹한 대학살과 대말살이 자행되었다. 그리 고 유세비우스를 비롯한 당대의 신학자들은 역사를 날조하고 입맛대로 편집하여 새로운 기독교 초기 역사를 창조해냈다. 나그 함마디의 동굴 그러나 은폐되었던 영지주의 전통은 1945년 이집트의 한 농부에 의해 나그 함 마디 근교의 한 동굴에서 영지주의 장서가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 다. 이 장서에는 로마 교회에 의해 편집된 신약성서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초 기 교회에는 널리 유포되어 있었던 영지주의 문서들이 대량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환생을 믿었으며, 미스테리아 신앙을 계승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려 2천 년 동안 문자주의에 물들어온 그리스도교는 추방되었다가 다시 돌아온 영지주의 를 지금도 인정하지 않는다. 2 장.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미스테리아 신앙에서 신화( 神 話 ) 란 신에 입문하는 인간을 위해 기록된 암호화 된 문서였다. 그들은 신화 속에 감추어진 비밀지식을 알고 있었다. 신화는 자신 이 성취해야 할 신적 레벨의 안내서였다. 신화 속의 죽음은 내면의 죽음이었고, 신화 속의 부활은 내면의 부활이었다. 그들은 미스테리아 신앙을 배우기 위해 비밀스러운 입문식을 치렀고, 그들은 자신이 바로 육체를 가진 신 이라는 사실 을 자각했다. 신앙의 성장은 신의 성장이었으며, 성장 단계에 따라 4번 정도의 더 심오한 통과의례를 치러야 했다. 그들이 추구한 것은 완전한 신인으로 완성 되는 것이었다. 플라톤은 완전한 신인의 표상으로 완벽한 형태의 구체인 구슬을 비유하기도 했다. 미스테리아는 당대 고대사회의 국제적인 종교였다. 피타고라 스, 헤로도토스, 플라톤 등도 미스테리아의 사제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미스테리 아 신앙의 유대교적 해석이었다. 그리스도교인은 예수처럼 죽고 부활하여 승천 해야 한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예수들의 공동체였다. 문자주의자들에 의해 말 살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3 장. 악마의 모방 그리스도가 도래할 것이며 인간에 속하는 죄인으로서 불의 처형을 당하리라는 것을 선포하는 예언자들의 말을 미리 들었으므로, 사악한 악령들은 신의 아들이 라 불리는 자들을 미리 만들어 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관한 말이, 시인들의 말과 마찬가지로 단지 경이로운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인간들에게 미리 심어 주기 위한 것이었다. -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말이다.
하나님의 아들 디오니소스는 날 때부터 신중의 주인인 신이다. 디오니소스는 죽어야 야 육체 속에 자신의 신격을 감추었다. 죽어야 할 운명의 인간들에게 현시하기 위해서였 다. 그는 불멸의 형태를 변화시켜 인간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예수 또한 디오 니소스처럼 신중의 신이며, 죄 있는 육체의 모양으로 사람이 되었다( 롬8:3). 그 는 충만한 신격이 육체 속에 들어있었다( 골2:9). 아티스의 어머니는 동정녀 키벨레이다. 아도니스의 어머니는 동정녀 미르 Myrrh( 몰약) 이다. 아이온은 동정녀 코레에게서 태어난다. 디오니소스는 동정녀 세멜레에게서 태어난다. 예수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다. 파라오는 신의 화신이었다. 모든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인들도 신의 화신 이 었다. 피타고라스, 엠페도클레스 등도 인간 세상에 내려온 신의 화신이며 구세 주로 여겨졌다. 예수도 또한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화신이다. 탄생 디오니소스를 낳게 될 성스러운 결혼식은 보우콜리온boukolion 간에서 치러졌다. 예수도 누추한 외양간에서 태어났다. 곧 황소 외양 외양간stable으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로 카탈렘나katalemna 인데, 이것은 동 굴을 뜻한다. 동굴은 어머지 대지의 자궁이다. 디오니소스의 또 다른 이름인 판 Pan 신은 동굴을 신성시했다. 미트라스는 동굴에서 태어났다. 제우스도 동굴에서 태어났다. 디오니소스도 동굴에서 태어났다.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가 가리키는 것도 다름 아닌 신인의 탄생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전통에 따르면 예수는 동굴 에서 태어났다. 아도니스는 옥수수의 신으로 여겨졌고 빵은 아도니스를 상징했다. 아도니스가 신성시한 작은 숲 속에 빵집이 감추어져 있었다. 예수가 태어난 베를레헴은 빵 집이라는 뜻이다. 세례 조지프 켐벨 등의 신화학자는 예수와 세례 요한의 신화적 의미를 발견했다. [ 세례 의식은 고대 수메르의 신전 도시인 에리두에서 유래된 고대의식이었다. 물의 집의 신 인 에아Ea 의 의식이었던 것이다. 헬레니즘 시대에 에아는 오아네 스Oannes 라고 불렸다. 오아네스가 그리스어로는 이오아네스Ioannes, 라틴어로 는 요하네스Johnnes, 헤브라이어로는 요하난Yohanan, 영어로는 존John( 우리말
로는 요한) 이다. 그래서 여러 학자들은 요한이나 예수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 만 물의 신과 태양의 신이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세례는 고대 미스테리아의 핵심적인 의식이었다. 세례는 죄를 씻어내는 정화의 식으로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상징적으로 성수를 뿌리는 방법과 완전히 물에 잠기는 방법이 있었다. 미스테리아 신앙인들은 죄를 씻어내기 위해 되풀이 해서 세례를 받았다. 몸을 물에 담그는 세례는 세 가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물에 들어가는 것은 죽음, 물속에 완전히 잠기는 것은 매장, 다시 나오는 것은 부활이다. 미스테리아에서 세례는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흰 옷을 입고 세례를 받았으며,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았다. 기독교의 세례는 미스 테리아 세례의 연장선에 있었다. 기적 디오니소스는 아리아드네와의 결혼식장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일으 킨다. 예수도 결혼식장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다. 히포크라테스가 신봉했던 약의 아버지 아스클레피오스는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려냈다. 신학자 오리게네스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바쳐진 수많은 비문과 글들을 강탈해서 이름만 예수로 고쳐 놓았다. 피타고라스는 제자들이 강을 쉽게 건널 수 있도록 바다의 물결을 잔잔하게 했 다. 예수도 그랬다. 엠페도클레스는 죽은 지 30 일이 지난 여자를 살려냈다. 예수는 죽은 지 3일 된 나사로를 살려냈다. 엘레우시스 디오니소스의 입문자들은 정화의식의 일부로써 약 2천 명의 입문 자들이 모두 어린 돼지를 안고 바다에서 목욕을 했다. 이러한 목욕의식은 자신 들에게 붙어있던 귀신들이 돼지에게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2 천이 되는 군대귀신을 돼지떼에게 들어가게 하여 바다에서 몰사시킨다. 예수는 거의 나귀타기 미스테리아의 대향연을 준비하면서, 나귀는 신성한 도구가 든 바구니를 실어 날랐다. 이 도구는 디오니소스의 우상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것들이었다. 이때 무리들은 큰 소리로 디오니소스를 찬미하며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미스테리아에 서 종려나무는 지혜를 상징하는 나무였다. 예수도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 하고, 백성들은 나뭇가지를 흔들며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라고 큰 소리로 찬양했다. 미스테리아에서 나귀는 더 낮은 수준의 동물적 자아 를 상징했다. 그것은 미스
테리아 입문자가 극복하고 진압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나귀는 여러 단계의 모험 과 입문절차를 통해 마지막에는 참다운 인간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사후 지하세계에서의 고난 중에는, 자신의 나귀가 끊임없이 먹어 치우는 밧줄 을 영원히 꼬아야 하는 형벌이 있다. 밧줄은 수준 낮은 자아에서 수준 높은 자 아로 끌어올리는 수단인데, 나귀는 그것을 먹어치우는 존재로 묘사된다. 그러므 로 나귀를 타고 가는 신인은 나귀의 본성을 정복한 자의 표상이다. 빵과 포도주 고대인들은 미스테리아 신인들이 인간에게 옥수수와 포도를 재배해서 빵과 포 도주를 만드는 기술을 전해주었다고 믿었다. 미스테리아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 들은 성체인 빵과 포도주 섞은 물, 혹은 십자가 표시가 새겨진 성체를 받았다! 미스테리아 사제들은 입문자에게 빵을 떼어 나주어 주고 포도주를 따라 주었다. [ 내가 나와 더불어 하나가 되고, 나 또한 너와 더불어 하나가 되도록 내 몸을 먹고 마셔라. 그리하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이 말은 성서에 나 오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미트라스가 한 말이다. 예수도 요한복음(6:53) 에 서 이렇게 말한다.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 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신인의 죽음 디오니소스의 미스테리아 의식에서는 신인을 나타내는 가면이 십자가를 상징하 는 나무 장대에 매달렸다. 디오니소스는 덩굴 면류관을 썼고, 자색 옷을 입었고, 쓸개즙을 마셨다. 예수도 그랬다. 십자가 옆에는 횃불을 든 두 사람이 있다. 하나는 하늘을 가리키고 하나는 땅 을 가리킨다. 이들은 예수의 옆에 못박힌 두 강도로 변형되었다. 플라톤은 < 공 화국> 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교리를 가르쳤다. AD 5세기 이전에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5세기 이전에 이미 십 자가에 못박힌 신인상이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십자가에 못박힌 신인들을 기 념하는 것들이다. 신성한 희생양 [ 그대는 영원히 피를 흘림으로써 우리를 구원했도다]. 이것은 예수가 아닌 미 트라스에게 바쳐진 비문이다. 파르마코스는 모욕을 당하고 매질을 당한 후 죽음 에 처해졌다.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죄가 사해졌다고 믿었다.
미스테리아 신앙에도 원죄가 있었다. 플라톤은 죄목을 알 수 없는 고대의 어떤 죄에 대한 형벌로 영혼이 육체 속으로 추방되었다고 가르쳤다. 엠페도클레스는 우리가 신의 세계에서 저지른 죄에 대한 댓가로 네 원소를 거치며 떠돌고 있다 고 말했다. 하나님과의 분열이 곧 원죄라고 가르쳤다. 동물을 죽여 희생양을 삼 는 것은 원죄에 대한 속죄의 표시였다. 예수도 원죄를 대속하는 희생양이었다. 부활절 신인 아티스는 사흘 만에 부활했다. 미스테리아는 봄의 축제에서 아티스의 부 활을 기념했다. 아티스의 시체 인형을 소나무에 매달고, 신성한 꽃으로 치장한 다음 묘지에 매장한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다시 살아난다. 밤의 어둠 속에 서 한 줄기의 빛이 그의 열린 무덤을 비춘다. 그 때 무덤 곁에 서 있던 사제는 입문자들의 입술에 성스러운 기름을 발라주며 이렇게 말한다. 그대도 고통으로 부터 구원되리라. 그것은 신도들의 경험하는 영적 부활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예수도 3 일 만에 부활했고, 초기 그리스도교인은 영적 부활을 믿었다. 이와 같 은 단적인 몇 가지 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그리스도교는 미스테리아 신화 의 차용이며, 미스테리아 철학의 복제다. 4 장, 5 장. 완벽한 플라토니즘 그리고 영지주의 플라토니즘 신약 < 성서> 는 정말 새로운 것이었을까? 전통 유대인들에게는 분명 새로웠고 이단적이었다. 예수의 비유를 통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의 유대인 교리는 소 트라테스의 적을 사랑하라 는 교리의 도전을 받았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미스 테리아의 가르침은 내세에 대한 유대인의 개념을 뒤바꿔 놓았다. 따라서 신약 < 성서> 는 유대인에게는 새로운 것이었다 - 그러나 유대인을 제외한 다른 민족 들에게는 새롭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그런 교리를 지니고 있었 다. 신약 < 성서> 는 완벽한 플라토니즘의 카피였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리와 똑같은 것을 고대 미스테리아 교리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예수의 행적과 똑같 은 이야기를 미스테리아 신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약 2천여 년 동안 우리는 그 리스도교가 유일하며 혁명적인 계시종교라고 믿어 왔지만 그것은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 영지주의
영지주의자는 오늘날 이단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스스로를 진짜 그리 스도교인이라고 생각했다. < 베드로 계시록> 에는 부활한 예수가 문자주의 그리스 도교를 거짓된 교회Imitation church( 이미테이션 교회, 모방 교회) 라고 질타하 는 대목이 나온다. 영지주의자들이 보기에 참그리스도교를 곡해한 것은 문자주 의자들이었다. 원래의 그리스도교는 모든 입문자가 신비한 앎 즉 그노시스를 개 인적으로 체험하는 영적 종교였다. 그러나 문자주의자들은 맹목적 믿음을 강요 하는 세속적 그리스도교로 전락시켜 버렸다. 그것은 종교를 권력의 시녀로 삼기 위한 정치적 목적과 맞아떨어졌다. 은밀한 미스테리아 클레멘스의 말에 따르면, 마가는 신약에 나오는 복음서 하나만 쓴 것이 아니 라, 입문 수준에 따라 다른 세 가지 복음을 전했다. 신약의 마가복음은 믿음을 갖게 된 초보자에게 어울리는 가르침이 담겨있다. 다른 복음인 < 마가의 비밀 복 음서> 는 완벽해지려는 자를 위한 것이다. 그노시스를 전하는 다른 한 가지 복음 은 구전으로 전해졌다. 영지주의자들은 일반인에게 오픈되는 수준이 낮은 공개 적 진리와 엄격히 비밀에 부쳐야 하는 수준 높은 은밀한 복음을 갖고 있었다. 모든 좋은 것들 위에 존재하는 하나The One 를 알고 싶다면, 장차 알게 될 미 스테리아를 비밀에 부치겠다는 맹세를 해야 했다. 의 수준 낮은 복음을 곡해함으로써 생겨났다. 이미테이션 교회는 영지주의 믿음 너머의 앎 믿음은 현상에만 관심을 두는 반면, 앎은 이면의 실재를 꿰뚫어 본다. 정신이 앎의 대상과 일체가 됨으로써 앎에 이르는 것이야말로 이해의 최고 수준이다. 그노시스는 확신을 갖지 않고 의심을 하는 사고 차원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신비체험을 통해 얻은 진리에 대한 앎을 가리킨다. 문자주의자들은 맹목적 믿음의 가치를 찬양하며, 주교가 한 말을 의심치 말라 고 명한다. 그러나 영지주의 교사들은 은밀한 미스테리아 입문식을 치르면 입문 자가 직접 그노시스를 체험하고 스스로 진리를 알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의자에게 믿음이란 그노시스에 이르기 위한 디딤돌일 뿐이다. 영지주 너 자신을 알라 델피의 아폴론 신전 입구에는 미스테리아의 가장 중요한 영적 명령이 적혀 있 다. 그노티 세아우톤Gnothi Seauton - 너 자신을 알라. 미스테리아 신앙이 찾
는 그노시스는 자신에 대한 앎Self-Knowledge 였다. < 옹호의 도마의 책> 에는 이런 가르침이 나온다. [ 자신을 알지 못하는 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러 나 자신을 알게 된 자는 동시에 모든 것의 심연에 자리 잡은 그노시스를 이미 얻은 것이다]. 영지주의 현자인 마니는 12세에 자신의 본질이 거룩한 쌍둥이라는 사실을 깨 달았다. 미스테리아는 그것을 다이몬과 에이돌론으로 보았으며, 영지주의는 영 과 혼으로 보았다. 보편적 다이몬 영지주의에 의하면 모든 사람에게는 다이몬이 있다. 다이몬은 신성한 나 이며 만물에 깃들어 있는 보편적 자아다. 자신을 알면 하나님을 안다. 나는 너이고, 너는 나다(I am Thou, and Thou art I)'. ' 네가 너를 만드신 그분을 알게 되면 너 자신을 알게 되리라. 클레멘스는 그리스도교 입문자들에게 하나님이 되는 연습 을 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참된 영지주의자는 이미 하나님이 된 자 라고 가르쳤다( 클레멘스의 < 파이다고구스> 3장 1 절). 자각을 얻은 영지주의자들의 말 에 따르면, 우리가 누구인지를 마침내 알게 되는 순간, 역설적으로 우리는 오직 신GOD 만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환생 미스테리아에서는 한 영혼이 여러 생애를 거치며 그노시스를 깨달아 가는 과정 을 되풀이한다고 믿었다. 플루타르코스는 계몽되지 않은 영혼은 습관의 힘 때문 에 거듭해서 환생하게 된다고 말한다. [ 영혼은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영혼이 육체를 입는 것은 새가 새장 속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영혼이 육 체 속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이번 생에 길들게 되면, 때문에 거듭해서 다시 태어나 육체로 돌아오게 되고, 어 버리지도 못하게 된다]. 일종의 인연과 오랜 습성 세속적 욕망과 인연을 끊 영혼의 무지에서 벗어나 그노시스를 얻어 온전해질 때 비로소 환생을 멈추고 더 이상 다른 육체에 들어가지 않는다. [ 모든 영혼은 태초부터 존재했다. 따라서 영혼은 이미 여러 세상을 거쳤으며, 최종 완성에 이를 때까지 또 다른 여러 세상을 거치게 될 것이다. 영혼은 지난 번 생애에서의 승리로 강화되거나 패배로 약화된 채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 이것은 초기 기독교의 권위 있는 학자였던 오리게네스의 말이다. 카톨릭 교회는 그의 사후에 그를 이단자로 몰았다. 신약성서에도 환생이 들어있다. 예루살렘의 제사장들은 세례 요한에게 네가 엘리야의 환생이냐 고 묻는다( 요 1:21). 또 제자들은 예수가 세례 요한의 환생인
지, 선지자 엘리야의 환생인지, 다른 선지자 가운데 하나의 환생인지를 논의한 다( 막 8:27~8). 남녀평등 기독교가 여성을 억압하고 남성 위주의 세력을 형성한 것과는 반대로 영지주의 는 남녀평등을 실현했다. 심지어 복음서에도 예수는 여성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가까운 수행자 중에는 항상 여성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부활한 그리스 도를 처음 발견한 것도 여성이었다. 영지주의 복음서에 여성들은, 특히 막달라 마리아는 완전히 깨달은 여성 으로서 예수와 매우 가까운 사이로 그려져 있다. 현명한 막달라 마리아는 어리석은 여성혐오자인 베드로와 자주 다툰 것으로 그 려진다. < 피스티스 소피다> 에서 베드로는 마리아가 예수와의 대화를 독차지함으 로써, 자신의 우선권과 다른 남성 사도들의 우선권을 빼앗는다고 투덜거린다. 그러나 예수는 남자든 여자든, 성령이 임한 자는 말을 하라는 신성한 명을 받았 다고 마리아를 옹호한다. 로 활약했다. 많은 여성들이 영지주의 그리스도교의 충성어린 리더 6 장. 예수라는 암호 신성한 수학 예수라는 이름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암호다. 숫자에 담긴 비밀 메시지를 해 독하는 것을 게마트리아 라고 하는데, 게마트리아에 의하면 인명이나 지명은 숫 자로 환산될 수 있으며, 숫자의 상징을 풀면 감추어진 메시지가 나타난다. 요한 계시록의 짐승이라는 단어의 게마트리아는 666 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매우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게마트리아다. 그 이름의 게마트리 아를 분석하면, 888 이다. IESOUS = 10+8+200+70+400+200 = 888 = 8+8+8 이 세 종류의 8 은 마가의 비밀 복음서처럼 세 단계의 성장과정을 상징한다. 미 스테리아 신앙에서 예수는 3개의 계단을 거치면서 자신을 각성해가는 입문자들 자신이다. 그러므로 모두가 예수이며 모두 예수가 되어야 하지만, 자기의 수준 에 따라 초보적인 예수와 중간단계의 예수와 고급레벨의 예수로 나뉘게 된다. 다이몬 예수
초기 그리스도교에는 예수와 모든 점에서 닮은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 도마는 예수의 쌍둥이로 알려졌다. 예수는 왜 쌍둥이일까? 예수를 상징하는 숫자 153 에 힌트가 있다. 숫자 153은 요한복음에서 그물에 걸려 올라온 물고기의 숫자 다. 수학자들은 153 이 근원적이며 의미 깊은 기하학적 도형 을 나타내고 있음 을 알아냈다. 그 도형은 두 개의 원이 신성한 결합으로 결합되어 있으며, 반지 름 길이만큼 서로 겹치는 부분에 베시카 피시스vesica piscis라 불리는 물고기 형상이 만들어진다. 이 모양의 높이와 길이의 비율은 153: 265 이다. 아르키메데 스는 이것을 물고기의 척도 라고 불렀다. 이 도형에 등장하는 원은 예수를 상징 하며, 원이 두 개인 것은 쌍둥이 예수를 의미한다. 물고기는 쌍둥이 예수의 표 식이다. 영지주의에서 예수는 다이몬이다. 모든 사람의 본성에 있는 GOD 이다. 그런데 다이몬이 쌍둥이라는 것은 두 종류의 신GOD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드러난 예수와 그늘에 가려진 예수가 있다는 말이다. 영지주의는 다 이몬과 에이돌론으로 해석한다. 다이몬은 수준 높은 자아, 에이돌론은 수준 낮 은 자아다. 환상설 문자주의 그리스도교는 영지주의를 공격하기 위해 도케티즘Docetism 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였을 뿐이며, 예수는 실제로 살과 피를 지닌 육체가 아니었고 그렇게 보 실제로 십자가에서 죽지도 않았지만 마법적인 방법으로 십자가에 서 죽은 것처럼 보였다고 믿는 것이 도케티즘이다. 그러나 영지주의는 예수를 처음부터 실제로 존재했다고 믿질 않았다. 역사적 실존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마법을 써서 고통을 피했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궤변이다. 그것은 영지주의를 왜곡하기 위해 문자주의자들이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이다. 진정한 영지주의 입장에서 십자가 처형 이야기는 미 스테리아 신앙의 다이몬/ 에이돌론의 교리가 암호화 되어 있는 입문식의 비유에 불과하다. 자아를 뜻하는 에이돌론은 죽어야 하고, 진아를 뜻하는 다이몬은 살 아야 한다. < 코란> 에서는 예수의 가상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선언한다. [ 그러 나 그들은 그를 죽이지 않았으며, 그를 십자가에 못 박지도 않았다. 그들을 위 한 하나의 비유로 그런 얘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수라4:156~7)] 영적부활 미스테리아 신앙에 의하면, 사람은 모두 죽어야 할 존재인 에이돌론과 불멸의
다이몬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에이돌론이라는 개인적 정체성을 지니고 살 아간다 하더라도 죽어서는 다이몬이라는 영원한 정체성을 갖게 된다. 아의 입문식은 에이돌론의 죽음과 다이몬의 재생을 상징한다. 미스테리 영지주의자들도 그와 같은 교리를 가르쳤다. 우리는 누구나 죽음으로써 부활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문자주의자들은 개인적 부활의 체험을 아득한 훗날 일어날 일로 여겼 고, 그리스도 재림 후에 육체적으로 불멸성을 얻게 되는 것을 부활이라고 생각 했다. 그러나 영지주의의 < 빌립의 복음서> 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그리스도교인들 을 비웃고 있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에 부활 해야 하며, 먼저 죽음 다음에 부 활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신성한 결혼 미스테리아 신화에서 중시된 주제 가운데 하나는 신인과 여신의 결혼이었다. 아테네에서 해마다 출현 한 디오니소스는 신랑 으로 불렸고, 여신을 상징하는 아테네 도시와 결혼을 했다. 미스테리아 입문식에서 입문자는 신인의 신부로 여겨졌다. 입문식은 특별히 혼례의 방 에서 치러졌다. 입문식 후에 그들은 신 부 로 불렸다. 신부는 환생한 자아, 곧 에이돌론을 상징했고, 신인은 환생의 고 리를 끊은 자아 곧 다이몬을 상징했다. 입문자의 두 상대적 자아는 입문식을 거 치면서 통합되었다. 영지주의에서는 예수와 소피아( 지혜) 의 신성한 결론으로 전환되었다. 소피아는 타락한 자아/ 에이돌론이었으며 모든 것의 근원인 소스Source를 찾아 헤매다가 세상에서 길을 잃은 프시케( 혼, soul) 였다. 다이몬은 프시케를 찾아 결합하는 영Spirit 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영과 혼의 재결합, 신성한 결혼이다.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 미스테리아의 가르침에 의하면, 입문식의 최대 비밀은 우리 안의 영혼 이 디 오니소스의 참모습 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노시스를 얻은 입문자는 자신 곧 디오니소스 신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한 입문자는 1 명의 오시리스, 1명 의 디오니소스가 된다. 마찬가지로 영지주의의 < 빌립의 복음서> 에는 더 이상 그리스도교인이 아니라 1 명의 그리스도 라고 일컫는다. 영지주의 금언집에서 예 수는 이렇게 말한다. [ 물이나 거울에 비친 너 자신을 보듯이, 너의 내면에 비친 나를 보아라]. < 빌립의 복음서> 에서 예수는 이렇게 선언한다. [ 너는 영혼을 보 았고, 너는 영혼이 되었다. 너는 그리스도를 보았고, 너는 그리스도가 되었다. 너는 하나님 아버지를 보았고, 너는 하나님 아버지가 되었다].
입문식의 여러 수준 미스테리아와 영지주의의 철학 체계에 따르면, 인간의 정체성에는 네 가지 수 준이 있다. 육체적 수준, 심리적 수준, 영적 수준, 신비한 수준. 이 네 수준을 영 지주의자들은 육체, 가짜 영혼, 영혼, 빛으로 나누었다. 육체와 가짜 영혼은 에 이돌론, 혹은 수준 낮은 자아라는 두 국면을 이룬다. 영혼과 빛은 불멸의 다이 몬의 두 국면 는 국면 - - 을 이룬다. 개별적 차원의 수준 높은 자아와 만물에 공유된 보편적 자아라 문자적, 신화적, 신비적 영지주의 깨달음은 세 가지 수준으로 나눌 수 있다. 문자적 : 심리적 수준의 그리스도교인들은 먼저 물의 세례를 받았고, 그리스 도교의 미스테리아에 입문했다. 그들은 예수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의 기록 으로 이해했다. 문자 그대로 죽음에서 부활했다고 믿은 것이다. 신화적 : 영적 수준의 그리스도교인들은 두 번째로 공기( 성령) 의 세례를 받 았고, 그리스도교의 은밀한 미스테리아에 입문했다. 그들은 예수 이야기를 비유적 신화로 이해했다. 호화한 가르침이다. 이 신화는 각 입문자가 거쳐야 할 영적인 길을 암 신비적 : 영지적 수준의 그리스도교인, 곧 영지주의자는 마지막으로 불의 세 례를 받았고, 그리스도( 보편적 다이몬 혹은 로고스) 가 곧 자신의 참된 정체성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 그들은 예수 이야기를 비롯한 어떤 가르침도 초월했 결론 영지주의자들에게 예수는 여러 수준으로 이해되어야 할 인물이었다. 영지주의 가 말살된 탓에 우리는 가장 낮은 수준의 가르침만 받아 왔다. 예수 이야기의 참된 비유적 성격을 밝혀 주는 영지주의의 은밀한 가르침에 접근하는 것이 차단 되어 온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역사적 인물이라고 잘못 생각해 온 것도 그 까 닭이다. 7 장. 잃어버린 사람 예수에 관한 진실한 역사적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예수의 생애에 대한 비판적 연구의 결과보다 더 부정적인 것은 없다. 역사적 예수의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공개적인 구세주로 이 세상에 왔으며, 하나님 왕국의 율법을 가르쳤고, 지상에 하늘의 왕국을 세웠으며, 세상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었다는 나사렛 예수의 이미지는 차례로 파괴되었다. 밖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차례차례, 표면으로 떠오른 구체적인 역사 문제들로 인해 조각나 고, 쪼개지고, 붕괴된 것이다. - 앨버트 슈바이처. 예수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당시의 로마는 인류 역사상 글을 읽고 쓰는 능 력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시기였다. 당시의 작가들이 쓴 저서를 한데 모아 놓으 면 도서관 하나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누구도 예수를 언급하지 않았다. 세 명 정도가 그리스도에 대해 한 문장 정도씩 언급했지만 그것은 예수 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해서가 아니라 당시의 말썽장이였던 그리스도교인들 어떻 게 처벌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예수의 역사적 사료가 필요했던 기독교 옹호론자들은 급기야 허위사실을 날조 하고 광범위한 위조를 하기에 이른다. 기독교가 결정적인 증거사료로 내미는 요 세푸스의 기록은 후대의 유세비우스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복음서는 절대적 진리? 신약의 4 대 복음서는 과연 절대 틀림이 없는 절대적 진리의 책일까? 누가복음 에서 누가는 유대 왕 헤롯 때에(1:5) 요한과 예수가 6개월 간격으로 기적적으로 잉태되었다고 말한 후, AD 6년의 호구 조사 때에도 마리아가 여전히 임신 중인 것으로 그려 놓았다 - 그렇다면 아무리 짧아도 10년 동안은 임신을 하고 있었 던 셈이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족보가 등장한다. 두 저자는 예수의 아버지를 요셉으 로 본다. 여기까지는 일치한다. 그런데 요셉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마태는 야 곱 이라 하고, 누가는 헬리 라고 한다. 두 복음서에서 제시하는 족보가 고작 한 세대를 거슬러 올라갔을 뿐인데 벌써 할아버지부터가 다르다. 올라가도 두 족보는 전혀 다르다. 그 위로 거슬러 마태복음(12:40) 에서는 [ 요나가 밤낮 사흘을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 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고 했다. 그런데 복음서들의 말에 따르면, 예수는 금요일에 죽었고, 일요일 아침에 살았다. 그렇다면 땅 속 에서 예수는 불과 이 틀 밤만을 보냈다. 마가복음 7:6~7절에서 예수는 이사야 29:13 을 잘못 번역한 것을 인용한다. 예 수가 오역된 구절을 인용했다는 것은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사도행전에서 베 드로도 잘못 번역된 구절을 인용한다. 또 사도행전 15:113~18에서 야고보가 인 용한 구절은 아모스 9:11~12 를 그리스어로 잘못 번역한 것이다. 마태복음 27:9
에서 마태는 스가랴가 한 말을 예레미야가 한 말이라고 잘못 말한다. 사복음서를 자세히 연구해보면 서로 일관성이 없고 같은 사건도 뒤죽박죽으로 뒤섞여서 모순을 일으키는 사례들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복음서는 절대적 진리가 아닌 것이다. 복음서들은 하나님의 신성한 말씀이 아니라는 것은 논란의 여지없이 확실하다. 신약에 대한 학문적 연구 현대 학자들은 3 천여 종의 복음서에 대한 초기 원고를 세심하게 연구한 결과, 기록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알게 되었다. 원문을 고치거나 교정하거나 제멋 대로 첨가하거나 삭제하는 일이 빈번했다. 어떤 학자는 무작위로 복음서 내용의 일부를 선택했다. 그는 마가복음 10장과 11 장을 선택하고, 여러 초기 원고들과 비교해 보았더니 무려 48 군데 이상이 달라져 있었다. 복음서 전체를 놓고 본다 면 얼마나 극심한 첨삭이 되었을 것인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이 유사성을 띠는 것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마가복음을 토대로 고쳐 쓴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은 너무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 이미 역사적 사료로는 논할 가치가 없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가 유창한 그리스어로 장문의 설교를 하는데, 언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유대 목수의 아들이 구사할 수 있는 마가복음은 그나마 예수의 생애에 대한 목격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으나 마가 복음을 연구한 학자들은 또다시 실망하고 말았다. 마가복음은 역사적 정확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마가복음에 나오는 지명은 실제 지명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 다. 학자들은 마가복음이 여러 단편을 짜깁기해서 만든 편집본이라는 결론에 도 달했다. 역사적 증언보다는 신학적 도그마에 더 관심을 두고 있었다. 마가 신앙 공동체의 자기 고백과 같은 책이었다. 마찬가지로 마태복음은 마태 신앙공동체 의 자기 신앙 고백이고, 누가복음, 요한복음도 자기들의 믿는 신앙을 옹호하기 위한 신앙고백서였다.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을 역사적 인 것처럼 쓴 것에 불과했다. 사도행전이라면? 사도행전이라면 예수의 역사성에 대해 뭔가 말해주지 않을까? 그러나 사도행전 은 잡다한 모험과 환상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잡화점에서 파는 대중 서적과 다 를 바 없다. 사도행전은 1 명의 저자가 쓴 것이 아니다. 16 장, 27 장, 28장에서 느닷없이 이 야기가 3인칭 진술에서 1 인칭 진술로 바뀐다. 일일이 다 거론할 필요도 없이 여
러 증거들을 종합해볼 때 사도행전은 복음서들과 마찬가지로 스크랩하여 편집한 작품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가장 초기의 증거 신약의 베드로서, 야고보서, 요한서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현대의 고전학자들 은 이들 편지가 초기 교회 내부의 이단적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후대에 위조된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러나 탁월하게 위조하지도 못했다. 이 편지에서는 사도들이 이미 죽어서 묻혔다는 듯이 사도들을 조상들( 벧후3:4) 이라고 일컫는 다. 따라서 이것은 분명 베드로의 글이 아니다. 다만, 반이단적 메시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베드로의 이름을 빌린 것이다. 베드로서가 위서라는 사실은 널리 인정된 사실이었다. 바울의 서신도 형편이 좋지는 못하다. 학자들은 디모데전서와 디도서가 위조된 것이라고 믿는다. 바울의 초기 편지는 AD 70년 이전에 쓰여 졌기 때문에 복음 서들보다도 먼저 기록되었다. 그런데 바울은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도 하지 않는다. 다. 바울은 신비적으로 체험하는 그리스도에 관심이 있었을 뿐이 신화의 발달사 신약성서는 실제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보여준다. 다. 그리스도교 신화의 발달사를 가장 초기의 복음인 마가복음은 이미 존재한 파편들을 편집한 것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저자들은 마가복음을 수정하고 덧붙여서 새로운 버 전의 예수 생애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마가복음을 손상시키면 안 되는 귀중한 역사적 기록으로 보지 않았다. 필요에 따라 윤문할 수도 있고 첨삭할 수도 있는 하나의 이야기로 보았다. 마가복음은 예수 이야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아니다. 가장 초기의 기록은 바 울의 편지이다. 바울의 여러 편지가 네 복음서보다 먼저 씌어졌으며, 사도행전 보다 약 려 있다. 100년은 앞섰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편지는 신약 뒷부분에 실 이것은 마치 바울서신이 복음서나 사도행전보다 나중에 쓰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다. 순서에 따라 그리스도교 신화의 발달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바울의 여러 편지 / 서기 약 50 년 / 예수는 신화적으로 죽었다가 부활한 신 인이다 2. 마가복음 / 서기 70~110 년 / 예수 신화가 역사적, 지리적 배경을 갖게 된다.
3.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 서기 90~135 년 / 예수의 탄생과 부활에 대한 세부 이야기가 추가되고, 이야기가 윤문된다. 4. 요한복음 / 서기 약 120 년 / 그리스도교 신학이 발전한다. 5. 사도행전 / 서기 150~177 년 / 역사적 예수에 대한 환상이 다 만들어졌으니 이제 그의 사도들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6. 사도들의 편지 / 서기 177~220 년 / 문자주의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 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수많은 미혹하는 자( 요한2서 1:7) 를 공격하며, 영 지주의에 맞서 싸우기 위해 바울과 사도들의 편지를 위조한다. 결론 역사적 예수를 찾는다는 것은 헛일이다. 무수히 많은 탐구를 했던 선대 학자들 도 그랬다. 온 시대를 통틀어 하나님의 유일한 성육신이었다고 일컬어지는 한 인간의 역사적 존재에 대한 실질적 증거는 전혀 없다. 역사적으로 예수가 존재했어야만 그리스도교가 힘을 얻고 호소력을 갖는다고 흔히 주장되어 왔다. 그러나 실제로 존재했다는 가정 없이도 가능하다! 디오니 소스, 미트라스, 아티스, 세라피스 등 신화적으로 죽었다가 부활한 온갖 신인들 의 미스테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교도 처음에는 예수 미스테리아로 생겨 나서 고대세계에 널리 퍼졌다고 할 수 있다. 8 장. 바울은 영지주의자였는가? 그렇다면 전통적으로 열렬한 반영지주의자로 알려진 바울의 진실은 무엇일까? [ 바울에 대한 역사적 해석과 그의 여러 편지에 대한 객관적 분석으로 통용되 는 것의 대부분은 2 세기 이교 연구자들의 해석이거나 분석이다. 그들의 말처럼 바울이 명백히 반영지주의자였다면, 어떻게 영지주의자들이 바울을 위대한 영적 스승으로 받들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입문자 들에게 지혜와 그노시스의 비밀 가르침을 줄 때, 어떻게 바울을 모범 사례로 들 수 있단 말인가? 바울의 부활 신학을 어떻게 그들 신학의 원천이라고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정통 그리스도 교의 육체적 부활 교리에 대항하는 결정적인 증거로 어떻게 그의 말을 인용할 수 있단 말인가?] - 일레인 페이절스의 말이다. 사도 바울은 시대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교인이다. 신약에는 그 가 썼다는 13 종의 편지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 분량은 신약정경 전체의 4분의 1 이다. 게다가 사도행전의 대부분이 바울의 이야기다. 그런데 정작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다수의 영지주의자 집단은 바울을 영지주의의 창시자라고 주장했다. 스스로를
바울의 사람 이라고 주장한 영지주의자들은 로마 교회의 끈질긴 박해를 받으면 서도 10 세기 말까지 계속 번성했다. 발렌티누스의 말에 의하면, 바울은 선택된 소수의 사람을 그리스도교의 더욱 심오한 미스테리아 에 입문시켜서, 하나님의 비밀 가르침을 전수했다고 한다. 나그 함마디의 장서에는 < 사도 바울의 기도> 와 < 바울의 묵시록> 이 포함되어 있다. ( 바울의 계시록에는 바울이 10개의 하늘 - 낮은 수준의 일곱 하늘과 신적인 수준의 세 하늘 - 을 보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 나오는 것처럼 셋째 하늘에만 올라간 것이 아니다.) 진짜 바울? 현대의 고전학자들은 신약에 나오는 13종의 편지들 가운데 7종만이 진짜 바울 의 것으로 간주한다(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데 살로니가전서, 빌레몬서). 바울의 저작 중 목회 서신인 디모데 전후서와 디도서 등은 초기 기독교에서는 성서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이것은 중요한 사실인데, 바울이 반영지주의자로 나타나는 문헌은 목회 서신뿐이기 때문이다. 2세기 말 영지주의 교사로서의 바울의 견해는 너무나 위협적이어서, 대응논리로서 문자주 의자 바울을 만들어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절박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자주의 자 바울은 특히 이렇게 충고한다. [ 디모데야, 네게 전해 내려온 것을 지키고, 거 짓되이 일컫는 지식Gnosis 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이것을( 그노시 스)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 났느니라 ( 디모데전서 6:20~21)]. 2 세기 말의 바울은 반영지주의자이며 남성중심의 권위주의자로 묘사된다. 그러 나 불과 몇 십 년만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의 관점은 정반대였다. 2세기 초반 클 레멘스 주교의 편지에서 베드로는 바울을 이단자라고 맹렬해 비난한다. 다메섹에서 예수를 보았다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으며, 바울이 사악한 악마나 거짓 악 령의 계시였다고 주장한다. 바울은 교회에서 추방해야 하는 위험한 인물이었다. 바울과 미스테리아 바울은 소아시아의 다소( 타르수스 : 오늘날 터키의 중남부) 에서 출생했다. 당시 그곳은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를 능가하는 이교 철학의 최고 중심지였다. 미트 라스 미스테리아가 발생한 곳도 바로 다소였다. 바울은 그리스도교 교리와 미트 라스 신앙의 현저한 유사성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미스테리아의 용어와 구문을 빈번하게 사용한다. 프뉴마pneuma( 영), 그노시스gnosis( 신성한 지식), 독사doxa( 영광), 소피아sophia( 지혜), 텔레이오이teleioi( 입문자) 등이 그것이다. 그는 더욱 위대한 카리스마타를 열심히 추구하라고 말하는데, 카리스마타 charismata'는 미스테리아를 목격한 사람의 축복받은 본성을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했다. 바울은 심지어 자신을 하나님의 미스테리아의 집사 라고 일컬었다. 이 말은 세라피스 미스테리아의 사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플라톤은 < 파이드로스> 에서 지상의 복제품에는 영혼에게 소중한 이데아의 빛 이 없으므로, 그것들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게 보인다 고 썼다. 바울은 이렇게 썼다. 우리가 지금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 굴을 맞대고 볼 것이다( 고전 13:12).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라는 표현은 미스 테리아의 공식 문구였다. < 바카이> 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그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나에게 미스테리아를 건네준다.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이렇게 시인했다. 플라토니즘의 목표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영역에 존재하는 참세계 의 신전에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이루어지 는 신들과의 교섭 에 대해 쓰기도 했다. 영지주의자 바울 바울의 예수는 신비하게 죽었다가 부활한 영지주의의 신인이다. 문자주의자들 이 말하는 역사적 인물이 아닌 것이다. 바울이 예수를 역사저거 인물로 다루는 듯이 보이는 유일한 편지는 디모데전서의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언하신 그리스도 예수 라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 편지를 위조된 것이다. 진짜 바울은 영지주의 도케티즘 교리를 가르친다. 예수는 인간으로 온 것이 아 니라 인간 육신의 탈likeness 을 쓰고 왔다. 로마서(8:3) 에 의하면 하나님은 자 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탈을 씌워 보냈다(sent in the likeness of sinful flesh)'. ( 개역성서에는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다고 번역되어 있다. 그 러나 모양 보다는 탈 로 번역할 때 의미가 더 명료하다. 예컨대, God in the likeness of a man 은 사람의 탈을 쓴 신 이라는 뜻이다). 또 빌립보서(2:7-8) 에 의하면 그리스도 예수는 이 세상에 나타나기 위해 인간의 탈 을 썼다. 바울 의 편지는 명백하게 영지주의 교리로 가득 차 있다. 셋째 하늘 까지 올라갔다는 바울의 말은 영지주의자나 미스테리아 입문자에게는 전혀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 다. 그들은 일곱 천체( 일월화수목금토성) 와 연계된 일곱 하늘이 있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말한다.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어떤 영적 은 사pnumatic charisma 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기 위한 것이다( 로1:11). 영지주의 자들은 이 영적 은사 란 입문식이라고 답한다. 입문식은 직접 만나서 은밀히 거 행해야 한다. [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 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 고
린도전서 2:9)] 입문자라면 이러한 말이 미스테리아 입문식 때 선언된 공식 문구라는 것을 쉽게 알아볼 것이다. 영지주의 < 도마 복음서> 에도 예수가 그런 말을 하는 대목이 있 다. [ 눈으로 보지 못했고, 귀로도 듣지 못했고, 만져지지도 않았고, 사람의 마음으로 도 생각지 못한 것을 내가 너희에게 주리라] 영지주의의 일파인 발렌티누스파는 바울이 그리스도교인들을 리아 에 입문시켰다고 주장한다. 소피아의 미스테 발렌티누스파는 바울이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 낸 첫 편지를 증거로 인용한다. 바울은 이렇게 썼다. [ 우리는 입문자들과 더불 어 소피아에 대해 말한다 ( 고린도전서 2:6)]. 독자들은 이렇게 결정적인 영지주 의적 문장을 고린도전서에서 본 적이 없다는 게 이상할 것이다. 그 이유는 이 문장이 다음과 같이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온전한 자들과 더불어 지혜 를 말한다. 바울은 기도를 하며, 너희 사랑이 그노시스로 더욱 더 풍성하게 ( 빌립보서 1:9) 되기를 빌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는 소피아와 그노시스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고 썼다. 이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의 비밀Mystery의 지식 Gnosis 인 그리스도( 골로새서 2:2) 라고 썼다. 다시 말하면, 그노시스는 하나님의 미스테리아에 대한 앎이다. 그노시스가 곧 그리스도다. 그는 문자letter는 죽이 는 것이나 영은 살리는 것이다, 성서의 이야기는 비유 이며, 상징symbol 이라 고 썼다. 부활의 사도 바울은 부활을 죽은 자가 물리적 육체를 지닌 채 무덤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 라 영적인 사건으로 보았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 고린도전서 15:50). 바울에게 부활은 지금 이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영적 체험이었다. 그는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에베소서 2:5) 고 과거형으로 썼다. 또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일으켰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수와 함께 우리를 하늘에 앉히셨다( 에베소서 2:6) 과 과거형으로 썼다. 심적 수준과 영적 수준의 가르침 바울의 편지는 두 가지 수준에서 유효하다. 예수를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 보는
것은 초보자 단계의 그리스도인을 위한 공개적 미스테리아다. 은밀한 미스테리 아에 입문한 영적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를 비유로 이해한다. 바울의 편지는 이 두 가지 수준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바울은 동시에 두 가지 방식으로 가르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영지주의자들과 문자주의자들 모두에게 숭배될 수 있었 다. 바울은 영지주의의 창시자라고 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었다. 9 장. 유대인의 미스테리아 유대인들이 미스테리아를 받아들였다는 것이 처음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처 럼 여겨졌지만, 사실은 그와 달랐다. 유대문명과 이교문명은 역사 내내 서로 만 나서 통합되어 왔다. 예수가 살았던 것으로 묘사되는 갈릴리는 디오니소스 미스 테리아의 중심지였다. 유대인들은 바빌론 점성술에 능했고, 예루살렘에서도 미 스테리아 의식을 거행했다. 피타고라스의 학파의 유대인 필론은 자신을 모세 미 스테리아의 주교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구약성서가 암호로 기록된 미스테리아 경전이라고 믿었다. 바로 그들에 의해 예수 미스테리아가 탄생했다. 10 장. 예수 신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종교의 정의는 신화의 오역 이라는 것이다. 영적인 상징에 는 반드시 역사적 바탕이 있다고 생각할 때 어김없이 오역이 이루어진다 지프 캠벨 - 조 예수 미스테리아는 알렉산드리아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러나 로마 제국이 예루살렘을 잿더미로 만든 AD 70 년 이후, 유대인들은 난민이 나 노예가 되어 로마 제국 전역으로 흩어졌다. 다만 공개된 미스테리아에 입문 해서, 그리스도교를 제한적으로 반쯤 수용한 유대인들은 메시야 예수의 생애 를 믿었고, 그 믿음을 간직한 채 고대 세계 전역으로 퍼져갔다. 그런데 로마 제국 의 서부지역으로 간 유대인들은 알렉산드리아의 예수 미스테리아 중심지와 연결 이 끊기고 말았다. 그들은 완전한 입문식을 치를 수 없게 되었다. 수백 마일 이 내에는 그노시스를 전수해 줄 스승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 미스테리아는 혼란스 러운 형태로 전수될 수밖에 없었다. 수십 년 이내에, 서부 그리스도교인들은 예 수가 문자 그대로 죽었다가 부활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을 핵심 교리로 삼 은 종교를 만들어 냈다. 그들의 문자주의 그리스도교인들은 어떤 은밀한 미스테 리아도 수용할 여지가 없었다. 이 종교는 복음서들을 비유로 보지 않았고, 오로 지 실제 사건에 대한 역사 기록으로 보았다. 2 세기 내내, 각 지역의 그리스도교 집단 리더들은 감독자나 주교로 알려지게 그
되었다. 전수할 은밀한 미스테리아를 갖지 못한 이들 주교는 예수 이야기가 문 자 그대로 참이라고 믿기만 하면 누구나 영원한 구원을 보장받는다고 가르쳤다. 이것은 공개적 미스테리아만을 기초로 한 제한적인 형태의 그리스도교인데, 국 이것이 로마 카톨릭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로써 알렉산드리아의 동부에는 영지주의가 계속 번성하고 서부에는 문자주의 가 번성하는 상반되는 흐름이 생겨나 대립하게 되었다. 결 영지주의는 문자주의자 들에 의해 진짜 그리스도교를 왜곡하는 존재로 지탄받는 적반하장의 상황이 야 기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유대인들은 신화적인 구원자가 아니라 역사적인 구원자가 필요했고, 그래서 예수 미스테리아는 준( 準 ) 역사적 배경을 갖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이 불가피했다. 원래 미스테리아는 영 원한 가르침을 초시간적인 신화로 남기는 것이었으나, 유대인들의 손에 들어간 미스테리아는 유일하게 한 번 일어난 사건인 것처럼 묘사되고 말았다. 인명과 지명과 역사를 적절히 섞어서 마치 역사인 것처럼 꾸민 것이다. 진실은 입문식 을 통해 밝혀질 것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박해를 피해 곳곳을 흩 어진 초보자들은 더 심오한 진리를 더 이상 접할 수 없었고, 그들은 예수를 역 사적 인물로 맹신하는 새로운 유형의 종교를 탄생시키고 말았다. 11 장. 거짓 교회 문자주의와 영지주의자 사이의 갈등은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를 박해할 때에 절정에 이르렀다. 그런 박해에 대해 양 진영은 매우 다른 방식으로 대처했다. 문자주의자들에게는 예수가 순교자였다. 럽게 예수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증거였다. 그래서 순교를 당한다는 것은 영광스 오늘날 무슬림 극단주의자과 흡사한 방식으로, 문자주의 순교자들은 신성하고 영적인 전사로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한 시간 동안 고통을 당함으로써 영생을 획득한다 고 믿었다. 사회의 언저리에 작은 무리로 결집된 이런 광신도들은 여러 면에서 현대의 사교집단을 닮았다. 오늘날의 사교 집단도 기꺼이 집단 자살을 함으로써 천국의 보상을 받는다고 주 장한다. 이와 달리 영지주의자들은 순교가 그리스도교에 해한 전적인 오해의 산물이라 고 보았다. 그들은 누구나 하나님이 주신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었고, 그 운명에 순교도 포함되지만, 재빨리 천국에 가는 방법으로 순교를 추천한다는 것 은 우스꽝스럽고 기만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영적 계몽은 그노시스 에 대한 신비한 깨달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거창한 제스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 진리의 증언> 이라는 영지주의 문헌은, 순교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선언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증언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만 증언하는 공허한 순교자들이다. 그들의 죽음은 인간의 죽음 일 뿐이어서 그들이 원하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구원은 그런 식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희생 을 바란다고 가르치는 자들은 하 나님을 식인종으로 만드는 자들이다. 그런 문자주의자들은 순진한 동료 교인들 을 부추겨서 사형집행자에게 자진해서 찾아가도록 형제들을 몰아붙이는 자들이 다. < 베드로의 계시록> 의 저자는 특히 어린 사람들에게 가해진 폭행을 보며 환 호하는 문자주의자들의 모습에 경악했다. 문자주의자들은 순교를 헛된 것으로 보는 영지주의자들을 배신자로 보았고, 영 지주의자들은 문자주의자들을 광신적 극단주의로 보았다. 로마인과 박해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는 AD 250 년에 처음 시작되었고, 257~259 년, 303~305 년에 다시 되풀이되었다. 그래서 역사를 통틀어 그리스도교가 박해를 받은 것은 모둔 합하면 5 년 정도이다. 이러한 박해의 규모는 그리스도교 선전자 들이 지나치게 과장했다는 것이 오늘날에는 널리 알려져 있다.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그 숫자는 손에 도리어 로마 총독들은 그리스도교인들을 해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역설적이게도 순교를 요구한 것은 그리스도교인들 자신이 었다. 한 교인 집단은 총독을 찾아가서 자기들을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로 채택되기 17년 전인 304년에 페르시아의 미트라 스 신인이 제국의 보호자로 선포되었다. 미트라스 미스테리아는 삽시간에 로마 전역을 휩쓸었다. 3세기에 이르면 로마 제국의 끝에서 끝까지 미트라스를 섬지 기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런데 로마의 황제들은 사람에 따라 선호하는 신인이 달랐다. 어떤 황제는 디 오니소스를, 어떤 이는 아티스를, 세라피스를, 헬리오스를 섬기는 황제도 있었 다. 황제들은 하나의 제국, 하나의 황제 라는 주장을 뒷받침해줄 하나의 신앙 을 찾고 있었다. 보편적인 종교 곧 가톨릭Catholic 종교를 필요로 한 것이다. 황제들은 이러한 온갖 종교를 여러 세대에 걸쳐 시험해 보았지만, 도 거두지 못했다. 4 세기 전반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시험해보았다. 이상적인 후보였다. 아무런 성과 그리스도교는 민중들에게는 미스테리아 종교가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로 마 제국은 로마 제국은 미스테리아 종교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미스테리아 종 교의 지도자들은 신비주의자이거나 철학자였다. 그들은 국가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며 권위를 훼손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문자주의 그리스도교는 공치 아 픈 지성인을 배제시킨 미스테리아 종교였다. 게다가 이미 권위주의적 종교가 되 어 있었다. 이 종교는 권위를 지닌 자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으라고 가르쳤다. 이것이야말로 로마 당국자들이 바라던 종교가 아닐 수 없었다. 신비주의자가 없 는 종교, 은밀한 미스테리아가 없는 공개적 미스테리아만의 종교, 내용 없는 형 식뿐인 종교! 321 년 콘스탄티누스는 최초의 그리스도교인 황제가 되었다. 그는 325년 니케 아 공의회를 주관하여 하나의 신조를 만들어냈고, 신조를 거부하는 주교들은 추 방시켰다. 이후 무자비한 그리스도교인 황제들의 치하에서 로마는 점차로 그리 스도교 국가가 되어갔다. 역사의 날조 문자주의 교회는 승리를 자축하는 의미에서 자기들에게 어울리는 역사가 필요 했다. 진정한 역사는 엄격히 억압되고, 그들에게 수용 가능한 역사가 날조되었 다. 이렇게 날조된 역사는 오늘날까지도 대다수 사람들에게 올바른 역사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그들은 바울의 편지들을 새롭게 개찬하여 문자주의 계보에 끼워 넣음으로써 바 울을 영지주의에서 격리시켰다. 그리고 세네카라는 로마의 정치가와 친분이 깊 은 것으로 조작하기도 했다. 바울뿐만 아니라 여러 사도들의 이름을 빌려 편지 가 위조되었다. 그 편지들이 지금은 버젓이 < 성서> 로 간주되고 있기도 하다. 그 리스어 경전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첨삭과 왜곡, 수정 편집이 이루어졌다. 그리스도교 성자들에 대헤서는 상습적으로 허구적인 전기가 만들어 졌다. 베드로가 로마에서 거꾸로 매달렸다는 전설을 꾸며내기도 했다. 인기있는 영지주의 문헌이나 미스테리아 서적들은 자기들의 입맛대로 지우고 바꾸고 뒤집 어버렸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가 역사적 예수의 증언자인 것처럼 조작하기 도 했다. 요세푸스가 썼다는 < 하나님의 본질에 대하여> 라는 후기 문서도 위조된 것인데, 그것은 문자주의 기독교를 옹호하는 내용이다. 오늘날 학자들은 면밀한 언어학 연구를 통해 이 문서를 위조한 사람을 의심이 여지없이 밝혀냈다. 다름 아닌 이레니우스의 제자이자, 이단자 사냥꾼인 히폴리토스(220 년대) 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학자들은 또 데살로니가후서가 히폴리토스의 문제와 유사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후서는 전서의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조작된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본디오 빌라도를 예수를 믿었던 신앙인으로 둔갑시켰고, 심지어 예수를 위한 순교자로 만들었다. 교회 선전자, 유세비우스
그리스도교의 모든 허구 역사를 최종적으로 조직화하고 종합한 것은 4세기의 유세비우스 주교였다. 그는 교회 역사의 아버지 로 알려져 있다. 니케아 공의회 에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총애를 받기 위해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완전히 바꾼 주교들 가운데 1 인이었다. 유세비우스는 로마 황제를 지상의 그리스도의 대변자 로 만들었다. 유세비우스의 임무는 로마 그리스도교에 적합한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는 진실과 전혀 관계없는 역사를 만들었다. 의 글을 읽는 것은 현대의 고전학자들은 유세비우스 모든 것을 전적으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황당 한 문학적 세계 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또 다른 고전학자는 그를 고 대에 대해 최초로 철저하게 부정직하고 불공정한 역사가 라고 일컬었다. 어떤 이는 그가 고의로 시대를 날조 했으며, 자의적이며 마구잡이로 꾸며낸 역사라 고 비판했다. 현대의 고전학자들이 유세비우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유세비우스는 영지주의를 공격하는 문건들을 만들어냈고, 예수까지 거슬러 올 라가는 사도들의 계보를 날조해냈다. 그는 1세기부터 로마 교회를 주교들이 이 끌어왔다고 기술했지만 그것은 명백한 거짓말이었다. 그는 또 박해를 받아 순교 한 그리스도교인의 수를 터무니없이 과장했고, 이교도 순교자들의 전설을 베껴 서 순교한 그리스도교인의 전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전혀 양심에 가책도 없 이, 예수 자신이 에데사( 지금의 터키 동부) 의 왕자에게 보냈다는 편지를 만들어 냈다- 그 편지에서 예수는 자기를 본 적도 없으면서 구세주를 믿게 된 것을 축 하한다. 그리스도교 200 년 역사를 기만적으로 날조한 그는 이런 사람이었다. 이교 신앙의 파괴( 미스테리아 신앙의 파괴) 4 세기 로마 가톨릭 교회가 국가로 채택되자, 그들은 미스테리아 신앙데 대해 잔혹한 테러를 가했다. 미스테리아 예언자들은 체포되어, 그들이 신이 가짜라는 것을 시인할 때까지 고문을 당했다. 사제들은 그들의 성소에서 사슬로 묶인 채 굶어죽었다. 고발을 뒷받침하는 아무런 증거가 없는데도 미스테리아 신앙인들은 어린이들을 제물로 바쳤다는 고발을 당해서 제단에 그들의 피를 뿌렸고, 그들의 창자로는 현악기의 줄을 만들었다- 그들은 처참한 고문을 당한 후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자백하고, 그렇게 처형당했다. 산채로 화형을 당한 사람도 많았다. 일 부 고대 성소는 능욕을 당한 후 철저히 파괴되었고, 더러는 강제로 그리스도교 회로 개조되었다. 미스테리아의 위대한 종교 저술들은 소각되어 세상에서 영원 히 사라지고 말았다. 한 목격자는 이렇게 기록했다.
[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판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불질렀다. 금서를 소유 한 자의 정서는 모조리 재가 되었다. 모든 사람이 엄청난 공포에 사로잡혔다] 미스테리아의 다이몬 은 사악한 데몬( 악마) 으로 간주되었다. 386 년 무렵에는, 근본주의에 사로잡힌 광신도 수도사 무리가 로마 제국 전역에서 피에 굶주려 날 뛰고 있었다. 그들은 완전히 법의 통제를 벗어났다. 미스테리안 신앙인 리바니 우스는 황제에게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다. [ 검은 복장을 한 이 폭도들은 엄연히 법이 있는데도 법을 무시하고, 곤봉과 돌 과 쇠몽둥이를 들고 다니며 신전을 유린합니다. 신전은 완전히 파괴되어 지붕이 내려앉고, 벽이 무너지고, 석상이 끌어내려지고, 제단이 뒤집히고, 사제들은 입 을 다물지 않으면 죽음을 당합니다. 첫 신전이 파괴되면, 두 번째, 세 번째, 신 전으로 달려갑니다. 그런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수가 너무나 많은데, 작은 무리 로 흩어져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 후 함께 모여서, 무슨 짓을 했 는지 서로 다투어 자랑하다가, 최고의 만행을 저지르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합니 다] 391년 6월 16 일. 마침내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모든 미스테리아 이교 신전을 폐쇄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황제는 또 이렇게 명했다. 그리스도교에 적대적인 모든 책을 불살라라. 그 책들이 하나님의 분노를 사지 않도록, 그리고 경건한 자들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그러자 문맹자 수도사들은 수천 년 동안 축적되어 온 지혜와 과학적 지식을 이교도의 미신으로 취급해서 닥치는 대로 말살해 버렸 다. 415년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 키릴로스는 수도사들을 시켜 한 교인 폭도를 선 동해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마지막 이교도 과학자를 살해하게 했다. 그 과학 자는 히파티아라고 불린 여성이었다. 그녀는 로마 교회 성당에서 발가벗겨졌고, 그들은 그녀의 피부를 산채로 벗겼으며, 사지를 갈가리 찢어서 죽였다. 콘스탄티누스 치하에서는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미스테이라 종교와 동등한 지위를 가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반세기 후, 테오도시우스 치하에서 그리스 도교는 인간이 믿어야 할 유일한 종교로 선포되었다. 테오도시우스는 395년에 사망했다. 정확히 15 년 후 로마는 서고트족의 발길에 무참히 짓밟혔다. 고대 세 계의 가장 위대한 심장부인, 자랑스러운 이 도시는 여러 신들을 섬기며 천년 동 안 번영해 왔다. 그런데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지 몇 십 년 만에 수많은 경이적 유물과 성취가 파괴되었고,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로마는 멸망하고 말았다. 영지주의의 말살
그리스도교가 국교로 제정된 4세기에도 영지주의는 여전히 강력한 세력을 유 지했다. 문자주의 교회는 끊임없이 갖은 방법으로 영지주의를 탄압했다. 마침내 381 년, 테오도시우스는 이단을 국가반역죄로 규정했다. 영지주의 저술은 금지 만해서는 안 되며, 전부 파괴하고 불태워야 할 온갖 사악함의 온상 으로 매도되 었다. 모든 철학적 토론은 전적으로 억압되었다. 또 황제는 사람들이 공개 석상 에 나가는 것을 금지시켰으며, 종교에 대해 어떤 주장을 해서도 안 되며, 토론 을 하거나 조언을 해 주어도 안된다고 포고했다. 본래부터 편협한 종교 미스테리아 신앙과 영지주의는 본래부터 관용적이었다. 그것을 신화를 기초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자주의는 본래부터 편협했다. 예수가, 하나이며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이고 신자들은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해야 했다. 그러니 그리 스도교는 그런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는 다른 모든 종교와 대립할 수밖에 없었 다. 게다가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이 저주를 받도록 정해져 있었다. 그러므로 자 신들의 믿음을 전파하는 것은 종교적 성전이었고, 하나님이 부여한 의무였다. 자기만이 옳다는 편협성은 그처럼 성스러운 것이 되었다. 결론 좀 더 최근의 역사를 돌아보면 고대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0 세기 초에 극소수의 공산주의자들이 러시아에서 권력을 잡았다. 하 지만 불과 몇 년 후, 과거 정권에 몸담았던 공무원을 비롯한 엄청난 인구가 공 산당에 가입했다. 왜? 살아남고 싶으면 공산당원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과거 정권에 연루된 사람은 인민의 적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이와 유사하게, 일단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자, 교인의 수가 엄 청나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왜? 그리스도교인들은 특혜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성직자는 세금을 낼 필요도 없었다. 교인이 되지 않으면 의견을 달리하는 이교 도, 곧 하나님의 적 으로 낙인이 찍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스탈린 선전자들이 그들의 전체정치를 미화시키고, 그들의 도그마가 참되고 선 하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사악하게 역사를 날조한 것과 마찬가지로, 선전자들은 교인들에게 거짓말을 주입시켰다. 그리스도교 근년에 공산주의의 편협성은 중국과 캄보디아의 광신적 청년 공산주의자들을 부추겨 문화혁명이라는 재앙을 불러왔다. 이때 그들은 풍요한 고대의 유물을 닥 치는 대로 파괴했고, 수많은 지성인들을 학살했으며, 그들의 사회는 위기에 처
했다. 마찬가지로 약 1천 500 년 전에, 광신적 그리스도교 수도사들도 문화혁명을 일 으켰다. 그때 경이로운 유적과 미스테리아 신앙의 문화적 업적이 잿더미가 됨으 로써, 서구문명은 1 천 년이나 퇴보하고 말았다. 성 아우구수티누스는 문자주의 의 신앙이 승리했음을 이렇게 선포했다. [< 성서> 의 권위에 입각한 것 외에는 어떤 것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모든 정신력보다 < 성서> 의 권위가 더 위대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우리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미스테리아 이교 신앙이 그렇게 원시적인 반 면, 문자주의 그리스도교가 유일하게 참된 종료라면, 왜 미스테리아 신앙은 그 토록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고, 왜 참종교는 그토록 몽매한 1천년의 암흑시대를 불러왔는가? 12 장.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 고대 이교의 미스테리아는 사라지지 않았다. 새로운 종교로 모습이 바뀌었다. 그 미스테리아는 그리스도교라는 고대 미스테리아는 우리 모두가 신의 아들과 딸들이라고 가르쳤다. 예수 신화도 마찬가지다. 예수 신화는 바울이 주장한 신 성한 비밀, 곧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를 지금도 드러낼 수 있다. 영지주의자 예수는 < 도마의 복음서> 에서 다음과 같이 약속한다. [ 내 입에서 나온 것을 마시는 자는 나와 같아지리라. 내가 몸소 그가 되리니, 감추어진 것들이 그에게 환히 드러나리라] C. 진짜 예수를 알고 싶다 1) 역사적 예수가 제거되면 진정한 기독교가 부활 한다 역사 속에 감금된 슬픈 예수 우리는 우리에게 주입되어 있는 신관념, 인지를 배웠다. 종교관념이 얼마나 뿌리 깊은 인셉션 사실로 밝혀져도 믿지 않으려는 경향까지 보이는 것은 얼마나 인셉션에 중독되어 있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그들은 인간 정신의 유연성과 역동성을 차단하기 위해, 예수를 역사 속에 가두 어버렸다. 예수는 걸림 없는 자유, 제한 없는 해방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역사
속에 갇혀 버린 예수는 숭배 받는 최고의 우상이 되었다. 꼼짝할 수 없는 콘크 리트 청동으로 만든 동상이 되어버린 예수, 그의 동상 앞에서 절하는 민중들을 보면서 그는 얼마나 슬플까? 탈을 벗으면 예수의 진짜 얼굴이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랜 세월동안 인류에게 거짓말을 세뇌시켜 왔다 해도, 아무리 권력과 결탁한 종교지도자들이 오 그것이 진실의 하늘을 다 덮을 수는 없다. 역사적 예수는 정치가들에 의해 자행된 인셉션에 불과하다. 역 사적 예수가 제거된다는 것은 정치가들의 인셉션에서 벗어난다는 뜻이지, 예수 를 부인한다는 뜻이 아니다. 도리어 철가면을 벗김으로써 진짜 예수를 볼 수 있 다. 예수의 맨 얼굴을 직접 대면할 수 있다. 예수의 맨얼굴은 이 세상을 창조하 지도 않았고, 십자가에 죽은 적도 없다. 예수는 창조주의 허상을 깨고 진실의 하늘을 열어주는 인물이다. 꿈꾸는 창조 주와 결탁한 타락한 종교의 진실을 드러내고, 창조와 상관없이 스스로 자존하시 는 진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존재다. 어둠의 신 창조주의 꿈속으로 찾아와서 꿈에 젖어있는 인간을 각성시키는 존재다. 네오를 잠에서 깨 우는 모피어스 같은 인물이 바로 예수다. 잠에서 깨어난 네오는 또 다른 사람을 잠에서 깨우는 전사가 된다. 예수는 종교적 억압과 통제에 맞서 싸우는 저항운 동가다. 잠에서 깨는 것은 반응과 반응의 연속이다. 그렇게 예수는 연쇄적으로 만들어져간다. 예수 네트워크는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의 유기적 연합, 예수들의 공동체다. 영화를 빗대자면, 매트릭스의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은 예수들의 도시 시온 의 일원이 된다. 성서에서 예수는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 진실의 눈을 완전히 가리고 있다. 성 서에 기록된 예수를 액면 그대로 믿는 것은 다. 180도 뒤집힌 예수를 따르는 것이 2) 성서에서 복원해보는 예수의 진짜 모습, I AM 예수는 사람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모델이다 사람은 무엇인가? 나는 과연 누구인가? 예수는 이 질문에 해답을 주기 위해 태 어난 가공의 모델이다. 예수를 제대로 이해하면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성서에 등장하는 예수는 구약성서에서부터 자주자주 나타난다. 신약성서에서 갑 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다. 성서의 작가들은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동일한 하나 의 실체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수를 통해 사람이 무엇인지를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가 아니다. 교훈이며 모델링이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멜기세덱이라는 사람 창세기 14 장에는 멜기세덱이라는 사람이 아브람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멜기 세덱은 아버지,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난 날도 없는 사람이다. 그는 예수 다. 피조물의 올가미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부모와 족보, 탄생과 죽음은 창조의 일부분이다. 결핍의 신이 창조한 것이다 보니, 도저히 제거할 수 없는 요소가 발생한 것인데 그것이 죽음이다. 꿈은 꿈 을 꾸는 자의 생각이 질료가 된다. 어둠의 신이 가진 생각이 재료가 되어 피조 물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 생각이라는 것이 블랙홀의 정보체이다보니, 그것으 로 만들어진 피조물은 아무리 좋은 꿈을 꾼다 해도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힌 다. 사망과 죽음은 넘을 수 없다. 꿈에도 한계가 있음이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태어남도 있다. 태어남이 있으므로 부모도 있어야 하고 족보도 있어야 한다. 이 런 것들이 창조주가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넘어서 버린 사람은 더 이상 피조물이 아니다. 더 이상 시스템에 속 하지도 않는다. 그는 예수다. 자존자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여호와[ 야웨] 라는 사람 창세기 18 장에는 여호와라는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난다. 그는 아브라함이 차려주는 버터와 고기요리를 맛있게 먹는다. 이 사람의 이름은 여호와[ 야웨] 다. 이름이 뭐냐고 묻는 모세에게 여호와는 이렇게 답한다. 내 이름은 <I AM> 이 다. I AM THAT I AM. 번역하면 < 나는 나다>. I AM이라는 이 사람이 바로 여 호와다. 예수는 내가 바로 I AM 이며, 내가 I AM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 죄 가운 데서 죽을 것이라( 요한복음 8장 24 절) 했으니, I AM 은 바로 예수의 이름이다. 당신은 당신을 어떻게 소개하는가? 당신은 당신을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정의 하고 있다. 부모, 가족, 회사, 경력, 명함, 이름... 당신은 이 모든 시스템 밖에 있는 순수한 자신을 본 적이 있는가? 그것으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가? 대부 분의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관계 속에서 파악한다. 인드라망이다. 우주적 시스템은 거대한 인간은 그 거미줄에 매달려 있는 날파리나 모기 같은 존재들이 다. 아무도 그 거미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므로 모든 거미줄을 벗어던진 후에 나타나는 순수하고 독보적인 자신에 대해 앎이 없다. 야웨란 이름은 이런 것이다. 나는 이 피조물 세상의 그 무엇도 아니다. 나는 이곳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나는 이 세상의 시스템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그러 므로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나를 정의할 수 없다. 나는 다만 나일뿐이다. 이
것이 예수다. 예수는 이런 사람이다. 성서는 여호와가 사람이라는 것을 가리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사용한다. 호렙산 정상에 강림하는 장면에서는, 짙은 구름과 화염과 폭풍으로 산 정상을 둘러싸서 그곳에 사람 이 서 있는 것을 못 보게 한다.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여 호와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어떤 추상적인 영적 존재로 알고 있다. 그것이 예수를 가리는 안개다. 야곱에게 나타난 하나님이라는 사람 창세기 32 장에 야곱에게 나타나 밤새도록 씨름을 하는 하나님이라는 사람 이 있다. 이 사람은 신[ 하나님,GOD] 이다. 이런 경우를 일컬어 신인( 神 人 ) 이라 한 다. 원래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 라,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인간이지만 일반적인 인간과는 다른 종류, 멜기 세덱이며 또한 야웨인 인간, 즉 예수에게 붙여지는 호칭이다. 하나님이란 꿈에 서 깨어나 꿈과 상관없는 현실세계에서 살아가는 신인이다. 우리가 모두 신인의 후보자들이다. 요한에게 나타난 예수라는 사람 요한복음에서 요한이 만나는 예수는 멜기세덱과 야웨와 하나님의 총합이다. 그 는 근원을 인간에게 두지 않으며, 자신을 가리켜 I AM 이라고 부르고,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선언한다( 요14:9). 나는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내 안에 있다고 한다( 요14:10).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한다( 요10:30). 즉 나는 아버지 다. 내가 아버지인 것을 믿지 않으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는다( 요8:24). 나는 곧 가장 높은 보좌에 앉았던 그 여호와 자신이기 때문이다( 요12:41). 모든 사람들 속에 씨앗으로 내포 되어 있는 I AM I AM 은 예수다. 아담과 하와는 I AM 의 형상대로 지어졌다( 창1:27). 그들은 벌 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창2:25). 그들은 비유와 상징이다. 아담과 하와 는 예수의 씨앗이다. 고린도전서 15장에는 씨앗을 일컬어 벌거벗은 입자라고 말 한다. 벌거벗은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은 입자, 즉 예수의 씨앗을 상징한다. 그 씨앗이 에덴동산에 뿌려져 있다. 하나님의 씨앗( 요일3:9) 은 에덴에 있다. 에 덴은 사람을 상징한다. 육체는 씨앗을 품고 있는 껍질이다. 에덴에 뿌려진 예수 의 씨앗은 모든 사람들 속에 내포되어 있는 I AM 이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을 탈피하여 밖으로 나오는 것은 I AM이 육체의 껍질을 벗고 싹이 되어 소생하는
것이다. 뱀이 허물을 벗듯이, 갑각류 생물들이 껍질을 탈피하듯이, 누에가 5번에 걸쳐 번데기를 벗고 5 령 누에가 되듯이, 인간도 자신의 껍질을 벗어야 비로소 올바른 정체성을 만나게 된다. 인간의 정체성은 I AM 이다. 이렇게 육체의 허물을 벗고 나타난 I AM을 요한은 말씀 곧 로고스라고 부른 다. 말씀이 나타난 자들은 신들이라 불린다( 요10:35). 예수와 동일한 근원을 가 지게 되며, 하나님들이 된다. 말씀을 받은 자란 말씀이 실체가 되어 나타난 사 람들이다. 즉 그들의 몸은 혈연으로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 말씀이 실체로 변한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은 더 이상 피조물이 아니고 I AM 자신이다. 말씀(I AM) 이란 참 하나님 자신이다. 나의 기원은 참하나님께 직접 맞닿아 있다. 그가 나 를 세상에 보냈고, 나는 그로 말미암아 세상에 온 구원자다. 그것이 곧 예수들 이다. 요한복음에 이르러, 예수와 일반인의 구별이 사라지고, 자기 속에 있는 I AM 을 발현시켜 모두가 예수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천명된다. 사람은 태초부 터 있었고 창조자이며 알파와 오메가다. 사람에게 회임된 I AM 의 태아, 그 불행한 운명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I AM 이 모든 사람들 속에 들어있으며, 모두가 볼 수 있 다고 말한다( 로1:19). I AM 은 그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의 포자( 胞 子 ) 이며, 그것 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 인간을 짐승과 구별 짓는 표적이다. 그러나 사람은 지혜가 어두워져서 이 사실을 망각하고 I AM의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종교를 만들고 말았다. 사람의 본성은 더욱 타락해서 마음에 I AM을 두는 것을 싫어하 기에 이르렀으니( 로1:28) 종교가 흥왕할수록 사람에게 회임된 I AM의 태아는 더욱 깊은 흑암 속으로 매몰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사람이란 무엇인가? ( 요한복음 1장 1~13 절 재해석) <1:1> 태초에 I AM 이 있었다. I AM 은 꿈을 꾸기 시작한 존재, 즉 아바돈 자신 이다. 그는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있었다. 여호와는 1 AM의 반대편에 자신의 이상형으로서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아바돈과 여호와 하나님은 동일한 I AM이 다. 그 둘은 야누스, 음양합일, 자웅동체와 같다. <1:2> 태초에 아바돈과 여호와가 함께 I AM 이었다. 꿈의 시작은 자기 자신을 반대편에 세우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자신과 쌍둥이이지만 성질은 정반대인 신으로 등장했다. 계의 중심이 되어 함께 있었다. 그 자체가 I AM 이었다. 아바돈은 자신이 처한 특이점의 반대편에 그 둘이 서로 다른 세
<1:3> 만물은 I AM 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 그가 없이는 하나도 된 것 이 없었다. 모든 것이 그의 꿈속이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물리세계를 만들었고, 아바돈은 영적세계를 만들었다. 물리세계가 8개의 차원이 있듯이 영적세계도 8 개의 차원이 있다. 물리세계와 영적세계는 언제나 동전의 양면처럼 대칭구도를 갖고 있다. 그것을 지은 신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1:4> 그런데 I AM 은 꿈속에 조용히 숨어들어와 있었다. 꿈을 꾸는 자신을 꿈 속에 등장시켰다. 바로 사람으로 현현한 것이다. 사람은 재생산이 가능하고 대 량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에게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담았다. 여 호와는 사람의 육체가 되었고, 아바돈은 사람의 혼이 되었다. 사람 속에 포자로 감추어둔 아바돈의 분신을 혼(soul) 이라 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육체는 여호와의 것이 되었고, 숨어있는 영혼은 아바돈의 것이 되었다. 생( 生 ) 과 사( 死 ) 의 지배자 가 정해진 것이다. 육체와 혼 사이에서 중재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 의식이며 자 아라고 한다. 그러나 자아는 혼보다는 육체의 편에 서서 편향적인 삶을 살아왔 다. 혼의 존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말았다. 육체도 I AM 이며, 영혼도 I AM 이다. 그러나 여호와가 꿈의 신이며 꿈에서 깨 면 사라지는 안개와 같듯이, 육체도 꿈속의 I AM 이며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 그 러나 영혼의 I AM 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꿈을 꾸는 주체의 현현이며 분신이 며 클론이기 때문에 사라질 수 없다. 그래서 육체는 잠시지만 사후세계는 영원 한 것이다. <1:5> 그러나 꿈속에 사는 어떤 사람도 자신이 바로 I AM의 화신이라는 사실 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도리어 까맣게 망각해 버렸다. <1:6> 그래서 이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 요한이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1:7>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이 I AM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왔 다. <1:8> 그러나 그는 아직 자신이 I AM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깨닫지는 못하고 있었다. <1:9> 그런데 자신이 I AM이라는 사실을 완전하게 체득하고 있는 사람이 있 었다. <1:10> 그는 세상에 있으면서도 자신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라는 사실을 알
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외의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1:11> 이 세상은 자신이 창조한 자신의 땅이었다. 모든 사람이 그와 같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1:12> 그러나 그를 말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바로 근본 I AM을 카피한 동 일한 I AM 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13> 그들은 혈통이나 족보나 사람의 뜻으로 태어난 육체는 잠시 있다가 없 어질 I AM 의 신기루에 불과하며, 진정한 I AM은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는 혼 임을 알게 되었다. <1:14> 그런데 여기에서부터 두 종류의 길로 갈라지고 말았다. 겉으로 드러난 I AM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혼의 I AM을 추구하는 사람 들이 생겨났다. 겉으로 드러난 I AM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육체가 바로 신의 형 상이며 신의 얼굴이며 신자체임을 자각했고 그것을 가장 중요한 가르침으로 삼 았다. 육체의 I AM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외모를 통해 여호와 아버지와 전혀 틀림이 없는 원래 그대로의 I AM 을 실현하려고 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완벽한 모델이 필요했다. 영광스럽고 화려하며 살아있는 여호와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완벽한 우상으로서의 예수를 만들었다. <1:15>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그러 나 육체가 신의 현현임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혼에 대한 앎이다. 혼의 I AM이 육체의 I AM 보다 먼저 있었고, 또 나중까지 영원히 있을 것이기 때문 이다. 진정한 예수는 바로 혼의 I AM 이다. <1:16> 혼의 I AM 은 밀도가 무한대인 특이점이다. 그 특이점 속에는 어둠과 고통이 충만하게 채워져 있다. 나의 진정한 현실이 얼마나 비극적인 것인지를 안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은혜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나에 대한 지식은 포 장되고 가려지고 왜곡된 거짓말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혼의 I AM을 만나고 보 니 참된 현실이 무엇인지에 눈뜨게 되었다. 이것이 참된 지식, 진리다. <1:17> 모세는 겉으로 드러나는 I AM 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줄 수 있는 것은 이론( 율법) 뿐이다. 그들은 자신이 곧 존재라는 자부심으로 목이 곧은 백성이 되고 말았다. 대개 그들은 무지한 사람들을 상대로 교주가 되거나 사상
적인 스승이 됨으로써 자신이 깨달은 진실을 부귀와 영화를 얻는 수단으로 사용 한다. 그들은 진정한 예수가 아니라 예수의 우상이다. 그러나 혼의 진실을 일깨우는 예수는 자신이 구원자가 아니라 구원이 필요한 불쌍한 존재임을 설파할 수밖에 없다. 예수는 구원자가 아니라 구원을 받아야 하는 어린 양이다. I AM 은 구원이 절실히 필요한 고통받는 예수다. <1:18> 본래 I AM 을 본 사람이 없었다. 자신이 먼저 체득한 후 모든 사람들 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주는 역할이 바로 예수다. 그 정체성이란 구원받기 위해 처절히 호소하는 I AM 의 모습이다. 무한고통으로 인해 부르짖는 비명소리 를 무한대로 증폭시켜 저 너머에 있을 진정한 구원자에게 호소하고 있는 눈물이 펑펑 나도록 가엾은 I AM 의 모습,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 던 하나님 I AM 의 진면목이다. 알파와 오메가, 인류의 종말은 우주의 종말 우주의 역사를 시작한 이가 알파요 처음이라면 인간은 오메가요 마침이다. 간이 우주역사에 출현하기까지는 지난한 시간이 걸렸지만 우주시간을 축약해보 면 한 가지 특성이 나타난다. 우주의 나이 약 150억년을 1 년으로 환산하면, 인류는 12월 31일 23시 2분 24 초에 생겨났다. 우주역사에서 인간은 갓 태어난 신생아다. 우주는 인간을 해산 하기 위해 150 억에 가까운 시간을 고통해 왔다. 그리고 그 마지막 몇 십 분을 남겨두고 출현했다. 지구의 나이 45억년을 하루 24 시간으로 줄여보면, 인간은 23시 59분 30초에 태어났다. 지구역사에서 인간은 이제 방금 태어났다. 지구는 인간을 낳기 위해 45억년의 시간을 몸부림쳐 왔으며 불과 30 초를 남겨두고 인간이 출현했다. 인간은 왜 이렇게 늦게 우주역사에 등장한 것일까? 인간의 정체성이 우주를 시 작한 신 자체일진대, 인간이 우주에 나타난 것은 창조자의 출현이다. 그것은 시 작한 자가 마쳐야하기 때문이다. 알파였던 자가 오메가가 되기 위해서이다. 인 간의 출현은 곧 우주의 종말을 뜻한다. 인간은 우주를 끝내기 위해서 등장했다. 우주를 어떻게 인간이 끝낼 수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인 인간이 모두 잠에 서 깨어나 버리면 우주는 끝나는 것이다. 잠자는 자가 잠에서 깨어나면 꿈은 사 라지는 것과 같다. 인간이 우주를 창조한 주체이기 때문에 인간이 잠에서 깨어 나면 우주는 없어진다. 인간에게 종말이 닥치고 있다는 싸인은 얼마든지 많다. 인류 종말의 시나리오 는 풍부하다. 인간은 지구에서 또는 우주에서 영원히 살기 위해 출현한 것이 아 니라 역사를 마치기 위해 등장했기 때문에 인류의 종말은 정해진 일이다. 그리
고 지금이 그 시기라는 것은 자연환경이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정말 종말로 맺음을 해야 하는가? 종말로 끝나는 것밖에는 길 이 없는가? 우주를 종결짓기 위해 등장한 것이 인간이지만 그러나 인간에게 주 어진 이 시간은 황금 같은 기회의 때임에 틀림없다. 바로 인간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시간이다. I AM의 본질을 어둠속에서 구출해 낼 수 있는 유일한 시간 이다. 지금이야말로 사람 속의 아바돈을 구원할 수 있는 시간이다. 지금이 바로 예수를 건져낼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종교는 한사코 사람에게 일깨우기를, 네가 바로 신이며 네가 바로 근원이며 네가 바로 한님( 하나님) 이라는 사실을 끊 임없이 일깨우고자 노력해왔다. 먼저는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제 대로 알아야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음이다. 사람이 자신의 신적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성서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가 공통적으로 펼 쳐온 지향점이다. 그것은 목적이 아니라 출발선이다. 모든 종교에 흐르는 단 하나의 도맥 모든 종교는 오직 하나의 도맥으로 흐르고 있다. 모든 종교에 감추어 진 신인도맥의 한줄기를 간추려보면 일목요연한 하나의 패턴이 존재함 을 알게 된다. 그것은 모든 사람은 신이 될 수 있는 그릇으로 태어났 고, 자신이 신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이다. 모든 종교에 는 표현의 차이는 달라도 같은 비젼이 들어있다. 인간이 신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 시대는 인간이 신인이 되는 길이 더 이상 감추어야 할 비밀이 아니다. 만천하에 오픈하고 전 세계에 공개하여 세계시민이 모두 신인으로 회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인간 은 신이었기 때문에 원래적인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본래적인 신의 모습을 회복한다는 것은 원래 있던 그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니, 육체는 3 차원 시공을 떠날 수 없으므로, 내 면의 I AM 인 혼이 위치이동을 해야 한다. 먼저는 모든 종교가 어떻게 한목소리로 신인화( 神 人 化 ) 를 외쳤는지를 살피고, 그 후에는 혼의 위 치 이동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영화 다. [ 매트릭스] 를 통해 보이고자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