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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체험합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집시다. 5. 우리 옷 한복의 특징 자료 3 참고 남자와 여자가 입는 한복의 종류 가 달랐다는 것을 알려 준다. 85쪽 문제 8, 9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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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과 학기 술부 고 시 제 호 초 중등교육법 제23조 제2항에 의거하여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을 다음과 같이 고시합니다. 2011년 8월 9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 1.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은 별책 1 과 같습니다. 2.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별책

시험지 출제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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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국어에서 관용표현 지도 방안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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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위 가 오는 경우에는 앞말 받침을 대표음으로 바꾼 [다가페]와 [흐귀 에]가 올바른 발음이 [안자서], [할튼], [업쓰므로], [절믐] 풀이 자음으로 끝나는 말인 앉- 과 핥-, 없-, 젊- 에 각각 모음으로 시작하는 형식형태소인 -아서, -은, -으므로,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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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習 說 ) 5), 원호설( 元 昊 說 ) 6) 등이 있다. 7) 이 가운데 임제설에 동의하는바, 상세한 논의는 황패강의 논의로 미루나 그의 논의에 논거로서 빠져 있는 부분을 보강하여 임제설에 대한 변증( 辨 證 )을 덧붙이고자 한다. 우선, 다음의 인용문을 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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伐)이라고 하였는데, 라자(羅字)는 나자(那字)로 쓰기도 하고 야자(耶字)로 쓰기도 한다. 또 서벌(徐伐)이라고도 한다. 세속에서 경자(京字)를 새겨 서벌(徐伐)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또 사라(斯羅)라고 하기도 하고, 또 사로(斯盧)라고 하기도 한다. 재위 기간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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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위조(僞造)는 용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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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수훈신문(35호)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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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민락초신문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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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절 조선시대 이전의 교육

사진 24 _ 종루지 전경(서북에서) 사진 25 _ 종루지 남측기단(동에서) 사진 26 _ 종루지 북측기단(서에서) 사진 27 _ 종루지 1차 건물지 초석 적심석 사진 28 _ 종루지 중심 방형적심 유 사진 29 _ 종루지 동측 계단석 <경루지> 위 치 탑지의 남북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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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은이가 4) ᄀ에 5) 위 어져야 하는 것이야. 5 동원 : 항상 성실한 삶의 자세를 지녀야 해. 에는 민중의 소망과 언어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입니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가능성은 이처럼 과거를 뛰어넘고, 사회의 벽을 뛰어넘고, 드디어 자기를 뛰어넘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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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이전> ⑴ 문명의 형성과 고조선의 성립 역사 학습의 목적, 선사 문화의 발전에서 국가 형성까지를 다룬다. 역사가 현재 우리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었음을 인식하고, 역사적 상상력을 바탕으 로 선사 시대의 삶을 유추해 본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국가가 형성되고 문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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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절 조선시대 이전의 교육

목 차 국회 1 월 중 제 개정 법령 대통령령 7 건 ( 제정 -, 개정 7, 폐지 -) 1.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 1 2.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 1 3. 경력단절여성등의 경제활동 촉진법 시행령 일부개정 2 4.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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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펜 기고문

정 답 과 해 설 1 (1) 존중하고 배려하는 언어생활 주요 지문 한 번 더 본문 10~12쪽 [예시 답]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한 사 람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으며,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해쳐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0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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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자원의 9) 우리나라 굴할 경우,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채굴할 수 있는가를 계산한 것으로, 자원의 고갈 시기를 나타내는 지표가 된 증가할 것으로 전망돼. 5 비 : 국민들의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 는 국내 곡물 생산 기반을 유지할 필요가 있 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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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금융분야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 1. 개인정보보호 관계 법령 개인정보 보호법 시행령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전자금융거래법 시행령 은행법 시행령 보험업법 시행령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자본시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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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 인물 강순( 康 純 1390(공양왕 2) 1468(예종 즉위년 ) 조선 초기의 명장.본관은 신천( 信 川 ).자는 태초( 太 初 ).시호는 장민( 莊 愍 ).보령현 지내리( 保 寧 縣 池 內 里,지금의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서 출생하였다.아버지는 통훈대부 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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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제31차 통신심의소위원회 회의록(심의의결서,공개, 비공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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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은하 1 우리 은하 위 : 나선형 옆 : 볼록한 원반형 태양은 은하핵으로부터 3만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 2 은하의 분류 규칙적인 모양의 유무 타원은하, 나선은하와 타원은하 나선팔의 유무 타원은하와 나선 은하 막대 모양 구조의 유무 정상나선은하와 막대나선은하 4.

근대문화재분과 제4차 회의록(공개)

인천광역시의회 의원 상해 등 보상금 지급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의안 번호 179 제안연월일 : 제 안 자 :조례정비특별위원회위원장 제안이유 공무상재해인정기준 (총무처훈령 제153호)이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 (행정자치부령 제89호)으로 흡수 전면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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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서 The Archives of KBS Special Live Broadcasting Finding Dispersed Families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서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 1.0 개요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은 KBS가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 분부터 11월 14일 새벽 4시까지 방송기간 138일, 방송시간 453시간 45분 동안 생방송한 비 디오 녹화원본 테이프 463개와, 담당 프로듀서 업무수첩, 이산가족이 직접 작성한 신청서, 일일 방송진행표, 큐시트, 기념음반, 사진 등 20,522건의 기록물을 총칭한다.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냉전체제가 지속되는 지역이다. 대한민국의 이산가족은 일제강점기(1910~1945)와 한국전쟁(1950.6.25.)으로 인한 남북분단으로 발생하여 약 1천만 명에 이른다. KBS는 한국전쟁 33주년과 휴전협정(1953.7.27.) 30주년을 즈음하여 <KBS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기획했다. 이 기록물은 대한민국의 비극적인 냉전 상황과 전 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혈육들이 재회하여 얼싸안고 울부짓는 장면은 이산가족의 아픔을 치유해 주었고, 남북이산가족 최초상봉(1985.9)의 촉매제 역할을 하며 한반도 긴장완 화에 기여했다. 또한 더 이상 이와 같은 비극이 생겨나서는 안된다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 세 계에 전달했다. 이 기록물은 세계 방송사적으로도 기념비적인 유산이다. 텔레비전을 활용한 세계 최대 규모의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이다. 총 100,952건의 이산가족이 신청하고 53,536건이 방송 에 소개되어 10,189건의 이산가족이 상봉했다. 방송 전담인력 1,641명이 투입되고 138일간 방송되었다. 2.0 신청자 2.1 신청자명 문화재청 2.2 신청유산과의 관계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을 총괄하는 부처 - 2 -

2.3 연락 담당자 문화재청 국제협력과장 박희웅 2.4 연락처 Name 박희웅 Address 대전시 서구 청사로 189, 정부대전청사 문화재청 국제협력과 Telephone Facsimile E-mail +82 (0)42 481 4730 82 (0)42 481 4759 hwpark63@korea.kr 2.5 권한 선언 본인은 해당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Signature Full name (Please PRINT) 나선화 Institution(s), if appropriate Cultural Heritage of Republic of Korea Date Administration of the XX March 2014 3.0 신청유산에 대한 설명 3.1 신청하고자 하는 유산의 명칭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 1)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녹화원본 2) KBS가 생산한 기록물 - 방송 기획 과정에서 생산된 기록물 - 방송 제작 과정에서 생산된 기록물 - 방송 이후 파생된 기록물 3) 중앙정부, 지방 자치단체가 생산한 기록물 4) 공공단체, 법인, 개인, 기업이 생산한 기록물 - 3 -

5) 사진 기록물 3.2 자료의 목록 또는 등록 사항 1)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녹화원본 KBS는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전량 실시간 녹화하였다. 여기에는 453시간 45분에 걸쳐 생방송에 소개된 이산가족들의 상봉장면이 일자별로 테이프 463개에 생생하게 담겨져 있다. (첨부자료1) 2) KBS가 생산한 기록물 KBS가 생산한 기록물은 이산가족찾기 방송의 초기구상과 진행과정, 그 성과를 총체적으로 보여 주는 중요한 기록물들이다. - 방송 기획 과정에서 생산된 기록물 : 방송의 초기 구상과 기획내용 등을 엿볼 수 있다. 제작진 업무수첩(2권), 이산가족찾기 방송 임원회의 자료(1부), 이산가족찾기 업무 진행 흐름 도(1부)가 있다. - 방송 제작 과정에서 생산된 기록물 : 출연자들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헤어질 당시의 상 황을 간략하게 기술한 사연판(463장), 신청자들이 직접 작성한 접수원본 대장(4,004장)과 접 수자 명부(7권), 제작진 근무표(9장), TV편성표, 경비지급 내역서, 관련 프로그램 큐시트 및 대본, 프로그램 및 행사 진행내역 등이 보존되어 있다. - 방송 이후 파생된 기록물 : 시청자들의 TV시청 감상문, 백서, 화보와 이산가족찾기를 주제로 제작한 특집 드라마, 다큐멘터리, 영화, 상봉가족 초청 축하공연 라디오 실황 테이프 등이 보존되어 있다. (첨부자료2) 3) 중앙정부, 지방 자치단체가 생산한 기록물 이산가족찾기 방송은 그 당시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등이 방송 제작현장을 방문하여 이 산가족을 위로하고 제작진 및 자원봉사자를 격려하는 등 중앙정부 및 각 자치단체의 도움과 지원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이산가족을 위한 만남의 광장 조성, 각종 편의시설 제공, 지원대책 회의 등 정부의 지원내역은 이산가족찾기 정부지원현황 및 추진계획 에 상세하 게 나와 있으며, 관련 기록은 국가기록원에 보존되어 있다. 또한 북한 주민의 KBS 이산가족 찾기 방송 참여 보장을 촉구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대한민국 국회 방문연설(1983.11.12.) 장면이 동영상으로 보존되어 있다. (첨부자료3) 4) 공공단체, 법인, 개인, 기업이 생산한 기록물 당시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서 실시한 KBS 이산가족찾기 방송에 대한 전 국민의 여론조 사 결과표 가 보존되어 있어 당시 프로그램의 엄청난 영향력을 알 수 있다. 또한 대한적십 - 4 -

자사에서 발간한 인명부(12권)와 TV 특별생방송의 타이틀곡으로 사용된 잃어버린 30년, 이산가족 상봉 시 배경 음악이었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등 이산가족을 주제로 한 음반(10종 152장)도 보존되어 있다. (첨부자료4) 5) 사진 기록물 1만 5천여 점의 이산가족 찾기 관련 사진기록물이 KBS에 소장되어 있다. 이 사진들은 당 시 스튜디오 상봉장면을 촬영한 네가 필름(1,902컷)과 슬라이드 필름(414컷), 그리고 KBS가 외부 사진작가에게 의뢰하여 촬영한 사진(1만 2천여 점)들로 구성되어져 있다. 그 외 KBS 지 역총국에서 자체 촬영한 사진(38점)과 남북적십자사회담 북측 대표단의 KBS 이산가족찾기 현 장방문 사진 등도 보존되어 있다. 이 사진들은 KBS주변과 만남의 광장에 모인 인파, 다양한 사연의 벽보와 현수막, 상봉 순간들을 생생하게 포착하여 역사적 가치가 높다. (첨부자료5) 3.3 시각자료 이산가족찾기 기록물은 전량 디지털파일로 변환되었다. 이 디지털파일들은 <KBS특별생 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웹사이트(office.kbs.co.kr/family)를 통해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 다. 3.4 역사/기원 한국 이산가족의 역사는 일본제국주의 침략(1910~1945)으로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 만주 러시아 등지로 피신했고, 이 중 일부는 스탈린에 의해 사할린 타슈겐트 로 강제 이주되었다. 젊은이들은 탄광이나 태평양 전쟁에 강제로 끌려갔다. 또한 광복 후 급 작스럽게 그어진 북위 38도선 분할(1945.9.2.)과 곧이어 발발한 한국전쟁(1950~1953)으로 인해 북한과 남한의 가족들이 만날 수 없게 되었다. 한국전쟁은 사상자 약 400만명, 전쟁고 아 약 10만명을 양산했으며 한반도의 이산가족은 약 1,000만명에 이르게 되었다. KBS는 한국전쟁 33주년과 휴전 30주년에 즈음하여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 다>를 방송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프로그램이 기획된 것은 아니었다. KBS가 원래 한국 전쟁 기념으로 기획한 프로그램은 1983년 6월 21일에 방송된 아침방송 <스튜디오 830>의 아직도 내 가족 못 찾았오 였다. KBS는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이산 가족의 고통과 절절함을 인식하였고, 6월 23일에 당시 이원홍사장의 최종 결정을 얻어 2시간 특집물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기획하였다. 6월 26일부터는 방송에 출연할 이산가족을 찾는다는 스폿광고를 내 보냈다. 당초 2백명을 방송에 출연시킬 계획이었으나 이 틀 만에 모두 천 여명이 출연신청을 해 옴에 따라 최종 850명을 방송에 소개하기로 했다. 면 - 5 -

접을 통해 4등급으로 나누고 만날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이는 50명을 MC석 바로 뒤에 앉혔 다. 정해진 2시간 안에 모두를 소개하기 위해 사연판으로 출연자들을 소개했다. 출연자들이 사연판을 가슴에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있으면, 아나운서가 사연판과 고유번호를 차례로 소개 했다. 첫날 방송이 나가자 반향은 대단했다. 문의 전화가 빗발쳤으며 전화 연결이 안 되자 이 산가족들은 새벽에 택시를 타고 KBS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KBS는 방송이 나가고 있는 바로 그 시각에 긴급회의를 열어 이미 접수된 이산가족을 다 소개할 때까지 방송을 계속하기로 하 고 당초 2시간 특집물로 기획되었던 이 프로그램을 2시간 15분 더 연장하였다. 첫날 방송에 서 총 36건의 이산가족이 상봉하였고, 첫 번째 상봉가족은 한국전쟁 중에 부산에서 헤어진 가족을 찾은 신영숙(당시 40세)였다. 방송 다음날인 7월 1일 아침부터 KBS 중앙홀과 본관, 여의도광장은 몰려든 이산가족 인파로 가득 메워지기 시작했다. 질서유지와 안내를 위해 경찰 이 동원되었고 전담조직인 이산가족찾기추진본부 가 설치되었다. 7월 1일 밤 10시 15분부 터 재개된 두 번째 방송에서는 9개 지방방송국에서도 지역별로 접수받은 이산가족을 출연시 켰다. 이후 장장 138일 동안 방송이 이어졌다. 3.5 참고문헌 박중길(1983). KBS 생방송 한달, 총괄적 평가분석: 이산가족찾기. 신문과 방송, 152, 62-67. (1983). 이산가족찾기 프로의 현황과 전망. 방송연구, 6, 49-61. 이경자(1983). TV기능과 영역의 재평가: 이산가족찾기 방송 을 중심으로. 방송연구, 6, 35-48. 이상희(1984). 방송캠페인의 사회적 효과 : 이산가족찾기 운동의 이론적 의의. 사회과학과 정책연구, 6(1), 123-150. 전병재(1984). 민족이산과 이산가족찾기 운동의 사회적 함의. 사회과학과정책연구, 6(1), 101-122. 정대철(1984). 방송매체와 이산가족. 동국, 20, 54-60. 추광영(1984). 이산가족찾기 운동에 대한 시민참여와 방송의 공공성. 사회과학과정책연 구, 6(1), 151-182. Dayan, D., Katz, E.(1992). Media Events: The Live Broadcasting of History (pp.49-50). Harvard university press. Jun, S.H., Dayan, D.(1986). An Interactive Media Event : South Korea s Televised Family Reunion. Journal of Communication, 36(2), 73-82. Larson, J.F.(1995). The Telecommunications revolution in Korea (pp.50-52). Hongkong: Oxford University Press. - 6 -

3.6 해당 유산의 가치와 기원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는 최대 3인/곳의 사람 또는 조직의 이름과 자격, 연락처 이름 자격 연락처 1. 안국정 (AHN, KUG JUNG) 2. 김성호 (KIM, SUNG HO) 3. 서경호 (SUH, KYUNG HO)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제작부장(1983) 서울방송 부회장(2007-2009) 동아방송 설립추진위원장(2009-2011) 한국소통학회 회장(2010-2012) 광운대학교 정보콘텐츠대학원 원장(2010-2012) 광운대학교 미디어영상학부 객원교수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 위원(2005-)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관장(2008-2010)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4.0 법적정보 4.1 유산 소유자(이름과 연락처) 1)이름 한국방송공사 (KBS) 전화 +82-2-781-1000 2)이름 대한민국 정부 (국가기록원) 주소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13 팩스 +82-2-781-1649 이메일 yskim1214@kbs.co.kr 주소 대한민국 대전광역시 서구 청사로 189 정부대전청사 2동 전화 +82-42-481-6300 팩스 +82-42-472-3906 이메일 suncandy@korea.kr 3)이름 한국갤럽조사연구소 전화 +82-2-3702-2100 주소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 208 팩스 이메일 4.3 법적 지위 - 7 -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의 보존과 관련하여 모든 법적, 행정적 책 임은 위 소유자 및 관리자에게 속한다. 4.4 접근성 KBS는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을 KBS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국내 포털사이트에서 이산가족찾기 또는 KBS 아카이브 를 검색하면 기록물에 접근할 수 있다. 이 홈페이지를 통해 당시 프로그램 영상의 다시보기가 가능하며, 사진자료, 가족을 찾는 사연판 등 대부분의 기록물을 자유롭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이산가족찾기 접수 명부를 DB화하여 찾는 사람이나 찾을 사람의 이름으로 당시의 출연 화면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4.5 저작권 현황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의 저작권은 한국방송공사(KBS)에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따른 모든 저작권의 책임을 진다. 음반의 저작권자는 작사자, 작곡자, 실연자, 제작사에 있다. 5.0 심사 기준에 대한 평가 5.1 진정성 KBS는 1TV를 통해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부터 11월 14일 새벽 4시까지 방송 기간 138일, 방송시간 453시간 45분 동안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생방송 하였으며 이를 전량 녹화하였다. 녹화원본 테이프 463개와 방송과정에서 생산된 사연판, 큐 시트, TV편성표, 라디오 녹음자료, 사진 등은 사실 그대로를 고증하는 1차 자료이자 원본이 며, 생산된 이래 KBS아카이브에서 계속 보존되어 왔다. 중앙정부 및 지방 자치단체가 생산한 기록물은 대부분 국가기록원에 보존되어 있다. 5.2 세계적 중요성 TV, 전쟁과 분단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다.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은 전쟁의 참상을 전 세계에 고발하고 인권 과 보편적 인류애를 고취시킨 생생한 기록이다. 이산가족을 찾겠다는 인파가 계속되는 여의도 광장과 KBS 주변은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비에르 페레스 데 게야르(Javier Pérez de Cuéllar) UN사무총장은 김경원 UN주재한국대사와의 회담(1983.7.21.)을 통해 이 산가족의 비극에 대해 깊은 동정과 이해를 표했고, 제70차 IPU[Inter-Parliamentary - 8 -

Union] 서울총회에 참석한 7개국 17명의 위원과 국제인권연맹 이사 일행이 현장을 방문하기 도 하였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시에서 개최된 ABU[Asian Pacific Broadcasting Union] 총 회(1983.10)에서는 이산가족을 주제로 한 30분짜리 영어판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다. KBS 본관 중앙홀에 마련된 기자실에는 전 세계 25개국의 기자들이 상주하면서 상봉소식을 실시간 으로 전달하였다. 미국 ABC는 나이트라인(Night Line) 을 통해 생중계하기도 했다. 또한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프로그램은 인도적인 관점에서 세계인의 찬 사를 받았다. 1983년 9월 6일부터 사흘간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 시에서 개최된 제6차 세계 언론인대회는 이 프로그램을 1983년도의 가장 인도적인 프로그램 으로 선정하였다. 1984 년 2월 17일 아프리카 가봉에서 열린 제24차 골드 머큐리 세계평화협력회의 총회에서 는 방송기관으로는 처음으로 1984 골드머큐리 애드 호너렘 (AD HONOREM) 상을 수상 하기도 했다. 이 상은 세계평화에 기여한 인사나 기관에 시상하여 왔으나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전쟁의 상처를 고발하고 인권과 평화의 중요성을 한국은 물론 전 세 계인에게 고취시킨 공로를 인정하여 상을 수여한 것이다. 영국 그리니치대학교에서는 방송학 교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전 세계에 분단과 이산가족의 사례는 많지만, 그 슬픔과 그리움이 TV프로그램을 통해 이렇게 강렬하게 표출된 사례는 없었다. TV, 냉전의 종식과 한반도 긴장완화에 기여하다 KBS의 이산가족찾기 방송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냉전이 개개인들에게 내면적으로 입힌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를 본격적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남북한의 이산가족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부각시켰다. 유창순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1천만 이산가족 문제의 해 결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조속히 남북적십자사 회담을 재개할 것 을 촉구하는 담화문 (1983.7)을 발표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1983.8)에서 남북한 간의 이념과 제 도가 다르다 하더라도 이산가족 문제해결은 더 이상 지연시킬 수 없다 고 강조했다. 레이건 미국대통령은 대한민국 국회 방문연설(1983.11)에서 KBS 이산가족찾기 방송의 성공을 언급 하며 북한의 협조를 촉구하였다. 이런 노력의 결과, 이산가족찾기 방송 2년 후에 북한 대표단이 KBS를 방문(1985.5)했고 역사적인 남북한 이산가족의 최초상봉(1985.9)이 이루어졌다. 이후 2014년까지 남북한의 이 산가족 총 18,523명이 상봉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이산가족찾기 방송 7년 뒤에는 한 국전쟁의 당사자이자 공산권의 대부였던 소련과의 수교(1990.9)도 이루어졌다. 이듬해인 1991년에는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종식되었다. 이처럼 KBS의 이산가족찾기 방송은 국제 냉전질서의 극복과 남북한의 긴장완화에 기여했다. TV, 전 국민의 참여와 공감을 이끌다.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프로그램은 각계각층의 참여와 공감을 이끌어 냈 - 9 -

다. KBS는 그동안 방송에서 수신자 위치에 머무르던 대중의 직접적인 접근을 허용함으로써 10만 명이 넘는 시청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신청접수 전화만도 하루에 6만 통에 이르렀 다. 이는 세계 방송역사상 유례가 드문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매일 전파를 통해 전해지는 평 범한 이웃들의 상봉장면을 통해 전 국민은 이산가족과 함께 울었고 아물지 않은 전쟁의 상처 에 몸서리를 쳐야했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1983년 10월 10일부터 20일까지 전국의 1천4 백50가구를 무작위로 추출하여 개별면접을 실시한 결과, 전체 조사대상자 중 53.9%가 이산 가족찾기 방송을 새벽 1시까지 시청한 적이 있고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 다는 사람은 88.8%에 달했다. 방송 3일째부터는 학생 주부 일반시민들 주축으로 안내, 의 료봉사, 신청서 대필 등의 자원봉사가 시작되었고, 컬러TV, 공중전화, 이동화장실, 기차표, 생수, 빵, 라면, 부채, 수건 등을 기탁하는 개인과 기업체의 후원도 줄을 이었다. 각 기업체 의 이산가족 상봉신청자에게는 특별휴가가 부여되기도 하였다. 5.3 비교 기준: 1 시간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후 세계는 냉전이라는 새로운 전쟁으로 빠져든다. 그 최전선 에서 한국전쟁(1950.6.25.)이 발발했고 한반도에서는 약 200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약 1,000만 명의 고아와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정전 이후 30년이 지난 1983년에도 냉전체제는 여전히 강고했다. 소련은 태평양을 날아가는 대한항공 여객기를 격추(1983.9)시켰다. 북한은 미얀마에서 한국의 대통령을 향해 테러(1983.10)를 감행했다. 한반도에서 냉전은 아직 끝나 지 않았던 것이다. 같은 해 6월, 서울 여의도에서는 10만 명의 이산가족이 상봉을 간절히 기다리며 여의도광 장과 KBS 앞에 운집했다. 전 국민들은 상봉장면을 TV화면으로 보면서 감격과 통곡으로 오열 했다.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프로그램은 1980년대 냉전체제의 극복이라는 평 화운동의 상징이었고, 전 세계에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인류의 평화를 웅변하였다. 2 장소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은 유일한 분단지역이자 냉전의 최전선인 한반도에서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눈물의 재회를 통해 분단된 민족의 아픔을 치유시켜 준 한민족의 대서사시이다. 1983년 6월 30일 첫 방송 다음날 아침부터 KBS가 소재한 여의도 인근은 출연을 신청하 려 밀려드는 이산가족들로 인산인해였다. KBS본관 건물 벽면은 물론, 인도, 여의도광장, 가 로수까지 가족을 찾는 벽보로 뒤덮여 장관을 이뤘다. 방송 참여는 신청서 작성 접수(접수 - 10 -

번호 부여) 방송출연 등의 절차로 진행되었다. 신청서는 이름, 성별, 나이, 고향, 현재의 주소, 찾을 사람의 인적사항, 찾을 사람과의 관계, 헤어진 곳, 헤어진 때, 자신의 신체적 특 징, 도움되는 말 등을 적도록 되어 있었다. 문맹자의 경우 KBS 직원이 신청서를 대필해 주기 도 했다. 생방송이라는 한계 때문에 한번 방송한 내용을 다시 확인하겠다는 신청이 쇄도함에 따라 KBS는 공개홀과 옥외에 24대의 수상기를 설치하여 방송 녹화분을 VTR로 재생해 주기 도 하였다. KBS본관 중앙홀은 방송 신청을 접수하러 온 사람, 방송출연을 끝내고 상봉 연락 을 기다리는 사람, 전 세계 25개국에서 파견된 기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KBS본관 공 개홀(TS-1)은 생방송을 진행하는 스튜디오이자 메인 스테이지였으며, 이산가족을 찾는 출연 자의 애타는 모습과 가족을 찾아주려는 직원들의 노력, 눈물의 상봉장면이 펼쳐지는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3 사람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은 이산의 아픔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체념해 살아 온, 보잘 것 없는 일반인들의 개인 기록이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아도 역사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42년 만에 오빠의 목소리를 듣고 실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 면, 북쪽에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다 자살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누나와의 상봉 후에 너무나 기쁜 나머지 KBS 만세! 공영방송 만세! 를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33년 동안 생사조차 모르던 형제자매가 방송이 아닌 접수창구에서 몇 마디 대화로 한 핏줄임을 환호하며 통곡하 기도 했다. 또한 각자의 사연을 알리고자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총동원되었다. 마네킹을 세워 놓은 사람, 염소를 데리고 나온 사람, 금관을 쓴 사람, 허수아비 복장을 한 사람,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사람, ET 인형이나 자동차, 오토바이 등에 사연을 써 붙인 사람 등 저마다 눈길을 끌려고 애를 썼다. 이처럼 방송 출연자들 대부분은 서민 중산층이었다. 그동안 일부 상류층 은 그들의 사적 자원과 전화, 신문광고 등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통해 대부분 이산 을 극 복해 왔던 반면, 커뮤니케이션 수단과 자원 접근이 쉽지 않았던 대다수 서민 중산층에게는 이를 극복할 방편이 없었기 때문이다. KBS는 138일이라는 미증유의 장기방송을 통해 국민 대다수가 공중매체에 직접적으로 참 여하고 주체가 되어 그들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본 기록물은 전쟁과 분단이라는 역사적 비극으로 인하여 비자발적으로 이산의 아픔을 겪어 온 일반인들이 자발적으로 출연하 여 구술한 영상기록이라는데 그 의의가 있다. 4 대상과 주제 전쟁과 분단의 고통, 그리고 상처의 치유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 시대를 살아온 1천만 이산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참상을 고발 하고, 30년 이상 헤어졌던 이산가족들의 눈물의 상봉을 통해 이산 의 상처를 치유하고 극 - 11 -

복하는 과정의 기록이다. 인권과 인류애 30여년 만에 만난 가족들이 얼싸안고 울부짖는 이산가족의 모습에서 끈끈한 가족애와 형 제애를 확인시켜 주었으며, 남북한의 체제와 이념 차이로 만날 수 없는 미상봉 이산가족들의 애환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은 정치, 군사와는 별개인 인도주의적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전 세 계에 알린 보편적 인류애의 기록이다. 평화와 통일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프로그램은 이산가족문제가 대한민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북통일을 통해 남북한 모두가 극복해야 할 과제임을 알게 해 주었다. 또한 지구상에 이와 같은 비극이 또다시 생겨나서는 안된다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달했다. 5 형태와 양식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프로그램은 사람을 찾는 도구로 TV를 사용했다는 데 그 독창성이 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막 보급되기 시작한 컬러TV가 보여주는 생생한 인 상과 풍부한 표정은 이산가족찾기 운동의 성과를 극대화시켰다. 헤어진 가족의 이름과 얼굴을 잘 몰라도 출연 모습만으로 서로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 이후 유사한 구성 의 사람찾기 TV프로그램이 쏟아졌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방송과 병행하여 실시 한 컴퓨터 조회 서비스는 방송에 첨단기술을 접목한 성공적인 시도였다. KBS는 한국과학기술 원(KAIST) 및 경찰청 컴퓨터와의 연결, 상호검색을 통해 이산가족찾기 운동을 과학화하며 상 봉 성공률을 높였다. 한편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은 동일 주제를 가지고 138일 동안 장기 방송된 마라톤 형식의 프로그램(Telethon)이다. 이를 위해 방송제작 전담인력만 1,641 명이 투입되었고, 서울 본사와 21개 지역국, 송중계소 등 전 네트워크에서 5천여 명의 직원 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6 사회적/정신적/공동체적 중요성 이산가족찾기 기록물은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고 남북 평화통일의 중요성을 우리 후손들에게 일깨워 줄 수 있는 중요한 기록물이다. KBS가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 다 를 방송한지도 어언 30년이 지났다. 하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 상태이며 남북한의 이 산가족들은 서로를 그리면서 늙어가고 있다. 이렇듯, 이산가족찾기는 한반도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또한 이산가족의 비극은 한민족만이 아닌 전 세계인이 기억해야할 아픔이다. 인 류가 평화를 지향하며 가장 소중하게 보존해야 할 고통스러운 영상기록이다. 지금도 지구촌 - 12 -

한편에서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인류에게 가해지는 만행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6.0 보조요건 6.1 희귀성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은 TV라는 매체가 탄생한 이후 최대 규모의 대중의 참여와 접근을 보장한 기록이라는데 역사적 의의가 있다. 방송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장기 캠페인이다. 전쟁과 분단을 겪은 나라는 많지만 전쟁의 아픔과 상흔을 TV를 통해 이처럼 가장 처절하게 표현한 프로그램은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유일하다. 본 기록물은 KBS의 단독 저작권 관리로 유일본이며 외부 복제는 불가하다. 상봉 신청명단 총100,952건은 7권의 책자에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방송출연자들이 친필로 적은 신청접수 대장과 사연판 등이 원본으로 보관되어 있다. 6.2 완전성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은 대부분이 온전하게 보관되어 있다. 생방 송 녹화원본 테이프(463개)와 1만 5천여 점의 사진, 이산가족 신청자의 친필로 작성된 사연 판, 이산가족 접수대장, 당시 방송 편성표, 큐시트, 업무분장표, 근무교대표, 제작진 업무수첩 (1983년) 등을 원본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물품구입, 제작진 식대 등 지출결재서, 이산가족 인명부 배포현황 등의 문서류는 디지털화하여 보존하고 있다. 이외에도 생방송 스튜디오, KBS 주변, 여의도 광장 및 만남의 광장에 부착된 벽보, 현수막을 촬영한 사진과 특별생방송 당시 타이틀곡, 이산가족을 주제로 한 음반들을 원본 및 디지털 파일로 보유하고 있다. 7.0 이해 관계자들과의 협의 7.1 본 등재신청의 중요성과 보존에 대해 이해 관계자들과 협의한 구체적인 내용을 기술한다. 문화재청은 본 등재신청과 관련하여 KBS와 협의를 완료하였다. KBS는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의 세계적 가치와 중요성에 공감하고, 세계기록유산등재를 통해서 전쟁의 폐해와 평화의 중요성을 후손들에게 알리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KBS는 본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 자체 전담 TF를 구성하여 기록물 발굴 수집, 분류, 보존처리, 디지털화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 외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대한민국 국가기록원, 대한적십자사, 한국갤럽조사연구소 등과도 - 13 -

협의를 완료하였다. 이에 따라 본 등재신청은 대한민국 문화재위원회와 세계기록유산한국위원회 등 엄격한 국 가적 심사 절차를 거쳐 본 신청에 이르게 되었다. 8.0 위험 평가 현재까지 영상, 사진, 음향기록물 보존에 있어서 큰 위협 요소는 없다. 등재 신청된 기록 물은 KBS 영구 기록물로서 항온항습 상태로 보존되며, 기록물의 내용은 열화 및 소실을 대비 하여 디지털 파일로 변환하여 보존하고 있다. 다만, 영상 및 녹음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는 기계장치의 생산이 중단되거나 고장수리를 위한 유지보수가 어려울 경우 직접 재생이 불가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경우를 대비 해서 기록물을 디지털 파일로 변환 완료하였다. 종이기록물의 경우 기록물 수집당시 실온 상태로 보존되어 일부 열화가 진행되었으나, 영 구보존처리를 거쳐 현재 안전하게 보존되고 있다. 9.0 보존 및 접근 관리계획 9.1 본 기록유산을 위해 존재하는 관리계획이 있는가? 예 아니오 1) <이산가족찾기 기록물 전시실> 설립 KBS는 향후 기록물 전시실을 설립하여 현재 매체별로 분산 보존되고 있는 기록물을 통합 하여 관리할 계획이다. 새롭게 조성될 기록물 전시실은 항온항습 시설 등을 갖추며, 일부 전 시기능도 갖출 예정이다. 2) 관리 계획 디지털아카이브 사업 추진 KBS가 소장한 20,109건의 이산가족찾기 기록물은 전량 디지털파일로 변환 완료되었고, 3중화 보관을 통해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또한 KBS 아카이브시스템(KDAS)를 통해 24 시간 검색 및 접근이 가능하다. 접근 계획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웹사이트를 통해 누구나 이산가족찾기 기록물에 - 14 -

접근 가능하다. 향후에는 이름별/성별/지역별/일자별 등 다양한 검색기법을 지원할 예정이다. 수집 계획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과 방송 출연자, 정부기관 공무원, 당시 자원봉사자 등 개인 소장된 1차 자료들이 있을 걸로 추정되는 바 이산가족찾기 웹사이트 및 다양한 창구를 통해 추 가적인 기록물 수집을 계속할 예정이다. 10.0 기타정보 비디오 녹화원본 테이프 및 오디오 테이프 보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항온항습 시설을 갖추는 것이다. 기록물관리기관의 보존시설로 권장되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자기매체 의 경우 온도는 13 17, 습도는 35 45%, 필름매체의 경우 온도는 -2 2, 습도는 13 17%로 보존환경을 유지해야 한다. 종이기록물의 경우 온도는 18 22, 습도는 40 55% 로 보존하며, 훼손 및 열화 방지를 위한 탈산, 소독, 훈증 등 보존처리과정이 필요하다. 영상물, 녹음물의 경우 기술의 발전으로 과거 매체를 재생할 수 있는 기계장치의 생산이 중단되거나 부품이 없어 고장수리를 위한 유지보수가 어려울 경우 테이프를 직접 재생할 수 없는 경우가 우려된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KBS에서는 디지털아카이브 사업을 통해 기록물 을 디지털 파일로 변환을 완료하였다. 또한 앞으로 발굴 수집되는 기록물도 보존처리과정을 거쳐 항온항습 상태로 보존되고, 디 지털 파일로 변환하여 보존할 것이다. 디지털 파일로 변환되더라도 기록물의 원본 매체는 영 구히 보관, 관리될 것이며, 이는 방문자들의 견학 및 외부 전시를 위한 용도로 활용될 것이 다. - 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