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논총 제67집 (2012), pp. 511 550 알폰소 바뇨니( 高 一 志 )의 서학제가 ( 西 學 齊 家 ) 제부부 ( 齊 夫 婦 )권 - 선교의 한 방식으로서의 부부 윤리 - 알폰소 바뇨니( 高 一 志 )의 서학제가 ( 西 學 齊 家 ) 제부부 ( 齊 夫 婦 )권 - 선교의 한 방식으로서의 부부 윤리 - 박 지 현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1. 서론: 예수회의 적응주의와 서학제가 명( 明 ) 왕조 후기에 해당하는 16-17세기의 중국은 역사상 그 어느 때 보다도 인간의 본성과 욕망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티모시 브룩(Timothy Brook)의 쾌락의 혼돈 에 등장하는 장도( 張 濤, 1586년 진 사)의 탄식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중국 사회는 왕조 초기 이상적 농경 질서에 기반한 정통적 유가 담론의 중심성이 이완되고 상업 발달에 따른 욕망의 긍정과 이단의 사유가 분출되고 있었다. 1) 이 시기 다양한 문학적 1) 16세기 이후 후기 명대 사회의 모습이 전기의 복고주의와 정통 유가 회복의 기치로 부터 벗어나 상당히 자유분방한 상업사회의 면모를 보였다는 것은 많은 문학사 및 주제어: 알폰소 바뇨니, 고일지, 예수회, 문화 융합, 대학, 정치학, 수신제가 Alfonso Vagnoni, Gao Yizhi, Jesuit, syncretism, Daxue, Politika, Xiushengijia
512 인문논총 제67집 (2012) 텍스트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이 같은 중심 이완의 분위기는 레 이 황(Ray Huang)의 1587, 아무 일도 없었던 해 라는 역설적인 제목의 책에서 바로 황제의 태업 으로 은유되었던 상황, 즉 기의는 사라지고 기 표만 남은 중심의 시스템이 오로지 관습의 힘에 의해 유지되던 매우 기 이하면서도 특수한 상황과 밀접히 연동되어 있다. 2) 흥미롭게도 이 시기 중국에는 많은 수의 유럽의 카톨릭 선교사들이 건 너와 13세기 몽고제국 시기 이후 단절됐던 동서 문명교류를 다시 본격화 시켰다. 3)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동방견문록 으로 귀결되는 13세기 의 동서 교류는 주로 중앙아시아를 통한 육로 접근이 그 방법이었다. 4) 문화사가들이 언급하는 바이다. 대항해시대 유럽의 상선들이 드나들면서 세계 무역 의 최대 수출국으로 부각한 이 시기 중국은 특히 남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사회 전반 에 상업 문화의 심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쾌락의 혼돈 에서 휘주( 徽 州 ) 흡현( 歙 縣 )의 지현( 知 縣 )이었던 장도( 張 濤 )는 이 같은 거침없는 상업 문화의 확대에 불편한 심기를 느끼며 왕조 초기 유가적 이상향이자 통치의 목표로 설정된 평화로운 농경 사회의 질서를 향수한다. 티모시 브룩(Timothy Brook)지음, 이정 강인황 옮김(2005), 쾌락의 혼돈: 중국 명대의 상업과 문화 (The Confusions of Pleasure: Commerce and Culture in Ming China, 1998), 이산. 2) 1572년에서 1620년까지 무려 48년을 황제 자리에 있었던 만력제( 萬 曆 帝 )는 후반부 약 30년의 재위 기간을 고의적인 직무 태만과 파업으로 관료 집단에 대항했다. 레이 황(Ray Huang, 黃 仁 宇 )(1997), 1587, 아무 일도 없었던 해, 가지않은길. 3) 1552년에서 1800년 사이에 중국 선교에 참가했던 인원은 920명이다. 그 중에 3분의 1이 넘는 314명이 포르투갈인이었고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출신의 선교사들이 많았다. 데이비드 먼젤로(David E. Mungello)지음, 김성규 옮김(2009), 동양과 서양의 위대한 만남 1500~1800: 대항해시대 중국과 유럽은 어떻게 소통했을까 (The Great Encounter of China and the West, 1500-1800, 2005), 휴머니스트, 81쪽. 4) 마르코 폴로는 아버지 니콜로 폴로(Nicolo Polo)와 숙부 마테오 폴로(Matteo Polo)를 따라 1271년 동방 여행을 떠났다. 두 형제는 이미 1260년 콘스탄티노플을 출발하여 바닷길로 손다크(Sondak)에 이르고 바르카 칸이 다스리는 타타르 영지를 거쳐 보카 라(Bokhara)에 도착, 그곳에서 동북으로 향하여 쿠빌라이 칸이 있는 곳에 다다랐다. 두 번째 마르코 폴로가 동행한 여행은 아크르(Acre)를 출발하여 팔레스티나, 아르메 니아, 페르시아를 지나 발라샨에 이르고 그곳에서 와칸(Wakhan) 계곡, 파미르를 거 쳐 카시카르에 도착, 다시 야르칸을 지나 사주( 沙 州, 즉 돈황)에 이르고 동북 방향으
박지현 / 알폰소 바뇨니( 高 一 志 )의 서학제가 제부부 권 513 반면 16-17세기 유럽의 선교사들은 15세기 이후 전개된 대항해시대의 성 과를 바탕으로 상선을 타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초창기 대항해시대를 주도 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세계 분할은 유럽에서 중국으로 들어가는 길을 두 가지로 압축했는데 하나는 포르투갈 배를 타고 리스본을 출발해서 아 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 인도의 고아에 간 다음, 다시 마카오로 향하는 것 이었고, 다른 하나는 스페인 배를 타고 세비야를 출발해서 대서양을 가로 질러 멕시코에 도착 아카풀코로 이동한 다음, 다시 배를 타고 태평양을 횡단해 필리핀을 거쳐 복건( 福 建 )성 해안으로 잠입하는 것이었다. 5) 13세기의 육상 이동과는 달리 각각 마카오와 필리핀이라는 후방의 거 점을 두고 있었던 16-17세기의 해상 이동은 훨씬 많은 수의 사람들을 안 정적으로 중국에 보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보다 전면적인 문명교류의 가 능성을 열어주었다. 이 시기 중국에서 활동했던 유럽의 선교사들 중에는 예수회 소속 신부들의 족적이 단연 돋보이는데, 이는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 瑪 竇, 1552 1610)를 필두로 한 예수회의 선교가 중국 사회의 엘 리트인 신사층 즉 문인-관료들을 주요 타깃으로 한 적응주의 전략을 갖 고 있었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유럽과 중국의 문명교류라는 차원에서 매 우 주목할 만한 성과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6) 로 숙주( 肅 州, 감숙성)를 거쳐 북경으로 들어가는 여정이었다. 마르코 폴로(Marco Polo), 권미영 역(1994), 동방견문록 (The Travels of Marco Polo), 일신서적출판사, 서장/ 1장/ 2장. 5) 데이비드 먼젤로, 위의 책, 80쪽. 6) 예수회와 달리, 프란체스코회 특히 스페인인들은 스페인에 거주하는 무슬림과 유대 인을 기독교로 강제 개종시키거나 추방한 정복운동(Reconquista)을 경험한 바 있기 때문에 적응을 모색하기보다 대항의 태도를 취했다. 그들은 개인적인 수양과 전도 양쪽에서 복종과 수난을 강조했으며, 중국에서 문인이 아닌 하층민들을 선교의 대상 으로 삼았다. 안토니오 카바예로는 1650년에서 1665년까지 15년 동안 산동성( 山 東 省 )에서 5천명의 하층민을 개종시켰다. 데이비드 먼젤로, 위의 책, 64쪽. 예수회가 유럽과 중국의 문명 교류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는 주겸지( 朱 謙 之, 1899 1972) 지음, 전홍석 옮김(2003), 중국이 만든 유럽의 근대-근대 유럽의 중국문화 열풍 ( 中 國 思
514 인문논총 제67집 (2012) 적응주의 노선은 예수회 신부들을 그리스도교 전파를 위한 사제인 동 시에 유럽에 중국의 정보-중국의 지리, 언어, 철학, 종교, 역사, 제도, 기 술-를 전파하고 해석하는 중국학자로 기능하게 했다. 먼젤로(David E. Mungello)에 의하면, 예수회 적응주의의 노선은 다음의 두 가지 배경을 지니고 있는데 첫째, 당시 유럽은 진기한 나라 중국에 대해 상당한 호 기심과 지식 열풍을 갖고 있었고 두 문화를 융합하려는 적응주의의 시 도가 예수회로 하여금 중국에 관한 정보의 주요 공급자로 만들고 이것 이 유럽의 학자들과 군주들로부터 선교 사업에 대한 폭넓은 지지기반을 이끌어내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예수회 선교사들은 서 구의 지식을 중국의 문화배경에 적용시키고 유교-그리스도교의 융합 (Confucian-Christian synthesis)을 통해 중국 지식인들을 포섭하여 개종을 위한 중국 왕조의 승인을 얻으려 했다는 것이다. 7) 실제로 이러한 노선을 실현하기 위해 마테오 리치와 그 선후배 예수회 선교사들은 무엇보다 중국 언어와 문자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위해 노 력했고, 중국 의복을 입고 중국 음식을 먹는 등 중국 풍속에 동화되기 위해 애를 썼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철학과 역사, 종교, 지리, 기술 등을 이해하기 위해 옛 경전들을 읽고, 중국의 여러 지역을 다니며 보고 들은 것들을 기록하고 관찰했다. 8) 이러한 노력으로 그들은 그리스도교를 전 想 對 於 歐 洲 文 化 之 影 響, 商 務 印 書 館, 1940), 청계, 24-25쪽. 그는 13세기 몽고가 유 럽을 정복할 당시 그들이 전파한 중국 문명이 사실상 유럽 문예 부흥의 물질적 기초 를 이뤘으며, 16세기 이래 중국의 예수회 선교사들이 소개한 중국 문화가 18세기 유럽 계몽 운동의 정신적 기초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7) 데이비드 E 먼젤로(David E. Mungello) 지음, 이향만 장동진 정인재 옮김(2009), 진기한 나라, 중국: 예수회 적응주의와 중국학의 기원 (Curious Land: Jesuit Accommodation and the Origins of Sinology, 1985/1989), 나남, 11-16쪽. 8) 1582년 마테오 리치가 마카오에 도착하기 이전 동아시아 선교를 총괄하던 발리냐노 (Alessando Valignano, 1539 1606)는 일본과는 달리 외국인 거주를 허락하지 않고 문을 걸어 잠근 중국 개종을 위해선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중국에 관한 학식 과 지식을 체득한 선교사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제자인 루제리(Michael
박지현 / 알폰소 바뇨니( 高 一 志 )의 서학제가 제부부 권 515 파하고 서구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다양한 한문 저작들을 저술할 수 있 는 역량을 갖추게 되었고, 그들이 이해한 중국을 유럽에 소개하기 위해 사서( 四 書 )와 같은 주요 서적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한편 중국에 관한 각 종 보고서와 단행본을 출간했다. 9) 서학제가 를 지은 알폰소 바뇨니(Alfonso Vagnoni, 1566 1640, 중국 명 王 豐 肅 후에 高 一 志 로 개명)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1584년 예수회에 입회했다. 10) 1603년 4월 성 요한 호에 몸을 실은 후 1604년 7월 마카오 에 도착, 1605년 3월 남경( 南 京 )으로 들어간 11) 그는 남경의 선교 책임자 로서 포르투갈 출신인 알바레 데 세메도(Alvare de Semedo, 1585 1658, 중국명 謝 務 祿 후에 曾 德 昭 으로 개명)와 의욕적인 선교 활동을 펼쳐 1611년 5월 3일 지붕에 백옥 십자가를 달은 최초의 교회 성십자교당( 聖 十 字 敎 堂 ) 을 완공하고 남경을 중국 선교의 주요 거점으로 성장시켰 다. 12) 그러나 1616년 남경의 예부 책임자인 심각( 沈 㴶 )에 의해 주도된 남 Ruggieri, 1543 1607)에게 전력을 다해 중국어로 읽고 쓰고 말할 수 있도록 공부할 것을 명한다. 후에 루제리 또한 고아에 있던 마테오 리치의 추가 파견을 요청하면서 그에게도 역시 빠른 시일 내에 중국어를 익힐 것을 권했다. 이들은 1583년 마침내 광동성 조경( 肇 慶 )에 거주 허락을 받고 중국 입성에 성공한다. 히라카와 스케히로( 平 川 祜 弘 ) 지음, 노영희 옮김(2002), 마테오 리치: 동서문명교류의 인문학 서사시, 동아시아, 72-82쪽. 9) 명청대 중국에서 활약했던 대표적인 예수회원 및 그 한문 저작 목록은 王 治 心 (1881 1968) 撰 (2004), 中 國 基 督 敎 史 綱, 上 海 古 籍 出 版 社, 91-98쪽과 楊 森 富 編, 中 國 基 督 敎 史, 臺 灣 商 務 印 書 館, 民 國 57(1968), 84-113쪽에 잘 정리되어 있다. 예수 회 선교사들이 간행한 중국에 관한 주요 보고서와 단행본은 주겸지, 앞의 책, 81-93쪽. 10) 바뇨니의 생평과 전교 활동에 대해서는 ( 法 ) 费 赖 之 (Louis Pfister, 1833 1891) 著 (1988), 馮 承 鈞 譯, 入 華 耶 蘇 會 士 列 傳, 臺 北 : 商 務 印 書 館, 民 國 27(1938)과 方 豪 (1910 1980) 著, 中 國 天 主 敎 史 人 物 傳 ( 上 中 下 ), 中 華 書 局 참조. 11) 바뇨니가 마카오에 도착한 시기와 남경에 정착한 시기에 대해서는 비뢰지( 费 赖 之 ) 의 서술과 남경 교난 때 당시 예부( 禮 部 )에서 올린 심리 기록이 다르다. 그 기록에 의하면 바뇨니는 1599년 마카오에 도착했고 1611년 남경에 정착한다. 심리 기록은 王 治 心, 앞의 책, 78-89쪽에 인용. 12) 바뇨니가 이지조( 李 之 藻 ) 등의 도움을 받아 완공한 최초 성당에 대해서는 萧 若 瑟
516 인문논총 제67집 (2012) 경( 南 京 ) 교난( 教 難 )으로 고초를 겪고 세메도와 함께 추방되어 1617년 광 주( 廣 州 )를 거쳐 1618년 마카오로 압송되었다. 13) 그 후 1624년 교난의 여파가 잦아들자 이름을 왕풍숙( 王 豐 肅 )에서 고일지( 高 一 志, 자는 則 聖 ) 로 바꾸고 다시 산서( 山 西 ) 지역으로 들어가 생을 마칠 때까지 15년간 왕 성한 전교 활동을 펼쳤다. 14) 그는 모두 23종의 한문 저작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 예수회 선교사중 가장 주목할 만한 선교 업적과 리 치에 버금가는 한문 저작을 남겼음에도 그에 관한 전문적인 연구 논문은 부족한 편이다. 바뇨니의 서학제가 는 유럽의 가정 윤리, 즉 기독교가 표방하는 부부 윤리, 아동 교육 등의 내용을 소개하는 한문 저작이다. 그는 이 책을 서 학수신 ( 西 學 修 身 )과 서학치평 ( 西 學 治 平 )의 연계성 속에서 저작한 것 으로 보이는데 이는 결국 대학 ( 大 學 )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 ( 修 身 齊 家 治 國 平 天 下 )에 대한 서학( 西 學 ) 버전 시리즈물의 기획 출간으로 볼 수 著, 天 主 教 傳 行 中 国 考, 民 國 叢 書 第 一 編 11, 上 海 書 店, 1989( 河 北 省 獻 縣 天 主 堂 1931 年 版 影 印 ) 참조. 교회 벽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1611년 5월 3일 예수회 신부들이 중화 옛 나라의 남경에 건축한 첫 번째 교회당( 一 六 一 一 年 五 月 三 日, 耶 穌 會 諸 神 甫 在 中 華 古 國 之 南 京 建 築 之 第 一 敎 堂 ). 楊 森 富, 앞의 책, 74쪽. 13) 남경 교난의 시말에 대해서는 王 治 心, 앞의 책, 78-89쪽. 14) 왕풍숙( 王 豊 肅 )이란 중국명은 그의 성인 바뇨니(Vagnoni, 즉 왕 )와 이름인 알폰소 (Alfonso, 즉 풍숙 )의 줄임 음역을 합친 것이다. 바뇨니의 중국 전교는 크게 두 개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 번째가 1605년에서 1616년 교난 때까지 남경에서 활동 한 시기이고, 두 번째가 1624년 12월에서 1640년 4월 세상을 뜰 때까지 산서( 山 西 ) 에서 강주( 絳 州 )를 중심으로 활동한 시기이다. 그는 마테오 리치의 노선을 따라 우 선적으로 그 지역의 유력한 신사층과 돈독한 관계를 맺으며 그들의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전교 활동의 주안점은 빈민 구제를 통한 교세 확장에 있었는데 그가 산서에 서 활동했던 15년간 세례를 받은 사람은 8천여 명에 이른다. 특히 1634년 대기근 때에는 1530여 명이 세례를 받았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평자들은 이렇게 말했 다. 천주교사( 天 主 敎 師 ) 가운데 교 안팎에서 모두 경애를 받은 자로는 이마두( 利 瑪 竇, 마테오 리치)를 제외하고 고일지( 高 一 志, 알폰소 바뇨니)를 능가하는 사람이 없다. 楊 森 富, 앞의 책, 74쪽.
박지현 / 알폰소 바뇨니( 高 一 志 )의 서학제가 제부부 권 517 있다. 15) 바뇨니의 이 같은 기획은 예수회의 기본 선교 전략이었으며 리 치에 의해 구체화되고 심화된 적응주의 의 계승이자 실천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예수회의 적응주의는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융합을 의미한다. 이들에 게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융합이 가능했던 이유는 도덕과 정신적 수양의 측면이 강하고 상대적으로 종교성이 취약했던 유학이 종교성이 분명하 며 유일신을 갖는 기독교와 대립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16) 실제 리치의 유교-그리스도교의 융합 모델에 있어 유교는 주로 사회 도 덕적인 요소들을, 그리스도교는 영적인 요소들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17) 그러므로 그는 유교의 시조인 공자를 소개함에 있어 이교도 철학자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크게 존경받았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 15) 서학수신 ( 西 學 修 身 )과 서학치평 ( 西 學 治 平 )의 개요 및 목차는 徐 宗 澤 編, 明 淸 間 耶 蘇 會 社 譯 箸 提 要, 중화서국, 민국47년(1958), 214-218쪽 참조. 楊 森 富 는 앞 의 책 74쪽에서 바뇨니( 高 一 志 )의 저작이 23종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그의 한문 저작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성요해략 ( 聖 要 解 略 ) 제2권: 1626 년 강주( 絳 州 )에서 초각, 1914년 토산만( 土 山 灣 ) 중각 (2) 성모행실( 聖 母 行 實 ) 3권: 1631년 강주( 絳 州 ) 각 (3) 천주성교성인행실 ( 天 主 聖 教 聖 人 行 實 ) 7권: 1629년 강 주( 絳 州 ) 초각(그 중 제1권은 종도열전 ( 宗 徒 列 傳 )이란 제목으로 도원정수 ( 道 原 精 粹 )에 편입하여 1888년 토산만( 土 山 灣 ) 중각) (4) 사말론 ( 四 末 論 )4권 (5) 종말 지기심리우정수 ( 終 末 之 記 甚 利 于 精 修 )6쪽: 1675년 북경에서 각 (6) 칙성십편 ( 則 聖 十 篇 ) 1권: 1626년 이후 복주( 福 州 )에서 각 (7) 십위 ( 十 慰 )1권: 강주( 絳 州 )에 서 각 (8) 여학고언 ( 勵 學 古 言 )1권 (9) 서학수신 ( 西 學 修 身 )10권: 1630년 이후 강주( 絳 州 )에서 각 (10) 서학치평 ( 西 學 治 平, 일명 민치서학 ( 民 治 西 學 )) 4권 (11) 서학제가 ( 西 學 齊 家 )5권 (12) 동유교육 ( 童 幼 教 育 )2권: 1620년 각(13) 환우시 말 ( 寰 宇 始 末 )2권 (14) 비록회답 ( 斐 錄 彙 答 )2권 (15) 비학경어 ( 譬 學 警 語 ) 2권 (16) 신귀정기 ( 神 鬼 正 紀 )4권 (17) 공제격치 ( 空 際 格 致 )2권 (18) 달도기언 ( 達 道 紀 言 )1권 (19) 추험정도론 ( 推 驗 正 道 論 )1권. 이상은 王 治 心, 위의 책, 93-94쪽. 16) 데이비드 먼젤로, 앞의 책, 60쪽. 17) 리치는 1609년 일본 주재 부관구장 프라체스코 파시오(Francesco Pasio)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대부들의 학파는 초자연적인 것에 대해 별 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도덕적 이상(moral ideals)은 거의 대부분 우리들 자신의 이상과 조화가 된다. 데이비드 E 먼젤로, 앞의 책, 105-107쪽.
518 인문논총 제67집 (2012) 레스의 경우처럼 학식 있는 중국인들이 공자를 그들의 공통적 스승으로 존경하였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18)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리치의 유교-그리스도교의 융합이 그가 중국에 있었던 명대 후기, 즉 16-17세기 중국 사회의 이완적 분위기와 매 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이완된 중심의 시스템이 단지 관습의 힘에 의해 유지되고 있던 당시 중국의 사상 문화 경향은 정통성 이나 과거성, 근원성에 대한 구심력이 약화되고 주변성과 현재성, 혼합 성에 대한 원심력이 크게 작용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먼젤로는 이 점에 주목하여 바로 이러한 명대 후기의 제설통합적 (syncretistic) 흐름 - 예컨대 유 불 도 삼교합일과 같은 - 이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융합이라 는 적응주의 탄생의 토대가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러한 접근에는 한두 가지 함정이 있어 보인다. 먼저, 이 시기 사상 문화 전반에 제설통합의 흐름이 있었던 것은 사 실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명대 후기의 특징적 정신이라 보기는 어려우며, 더욱이 이러한 흐름이 먼젤로가 인식하고 있듯이 반드시 창조적 이고 개방적 인 방향의 정신이라고 볼 수는 없다. 어떤 의미에서 제설통합은 명대 후기가 아닌 전 역사 시기를 아우르는 중국 본연의 특징이다. 다만 그 제설통합의 메커니즘이 긴장된 중심의 구심적 당기기인지 이완된 중 심의 원심적 확장인지 방향과 밀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여전히 주체 는 중심의 시스템이며 마치 달의 인력이 밀물과 썰물을 만들어 내듯이 응축과 확장이 있을 뿐 창조와 답습, 개방과 폐쇄는 중국적 제설통합의 특징과 관련된 키워드가 아니다. 그러므로 리치가 시도했던 유교와 그리 스도교의 융합이 당시 사회 전반의 이완적 분위기 속에서 보다 쉽게 착 안 혹은 용인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당시에 특별히 창조적이고 개방적이었던 지적 흐름 속에서 탄생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의 18) 위의 책, 96쪽.
박지현 / 알폰소 바뇨니( 高 一 志 )의 서학제가 제부부 권 519 미에서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융합이라는 리치의 적응주의는 그러한 지 적 흐름과는 무관하게 그 개종의 대상이 교육받고 개명된 중국의 지식 인 들로 설정되어 있는 이상 피할 수 없는 전략이었다. 다시 말하면 적응 주의는 선택된 전략이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전략이었다는 뜻이다. 또 하나, 리치는 유 불 도의 제설통합에서 불교와 도교가 담당하고 있는 영적 요소들을 그리스도교의 영적 요소들로 대체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것은 리치의 관념적 희망일 뿐 실제 유 불 도 제설통합의 실 상은 리치가 그리던 영역들 사이의 역할 분담, 즉 유교가 사회의 도덕을, 불교와 도교가 영적 요소를 구분해 담당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삼교 의 제설통합에서 유교는 여전히 중심의 기능을 하며 그 과정에서 불교와 도교가 지닌 본래의 영적 요소들을 끊임없이 세속화하거나 또 다른 의미 에서 추상화한다.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융합 또한 마찬가지다. 문제는 리치가 꿈꿨던 유교-그리스도교의 융합이 중국 사회에 그리스도교를 이 식시킴에 있어 가장 현실적이고 성공적인 전략일 수 있지만 그 융합의 양상이나 결과는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을 당혹스럽게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바뇨니의 서학제가 는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융합이 바로 사회의 도 덕, 즉 영성이 아닌 윤리의 차원에서 어떻게 전개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 는 아주 흥미로운 텍스트이다. 특히 부부의 윤리를 다루고 있는 제부부 ( 齊 夫 婦 )권은 남녀의 사랑과 결혼에 관한 유교의 도덕과 기독교의 도덕 이 어떤 지점에서 함께 하고 다시 나뉘는지를 통해 융합, 즉 예수회의 적응주의가 당시 사회의 현실 속에서 어떤 새로운 담론의 형성을 가능하 게 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리치가 그랬듯 바뇨니도 유 학 담론에 발달되어 있지 않은 영적인 문제,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보완 을 불교나 도교가 아닌 그리스도교가 훨씬 더 높은 차원에서 대체하고 그것이 중국 개종의 주요한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
520 인문논총 제67집 (2012) 었다. 남녀의 사랑과 결혼이라는 지극히 세속적인 테마가 기독교의 초월 적 신성성과 만났을 때 중국적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담론의 방향은 어 떤 것이었을지, 실제 적응주의의 목적과 결과는 일치할 수 있었을지 제 부부 권에 대한 고찰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서학제가 의 구성과 제부부 ( 齊 夫 婦 )권 서학제가 는 알폰소 바뇨니 즉 고일지( 高 一 志 ) 신부가 산서( 山 西 )에 서 신사( 紳 士 )층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출간한 여러 한문 저작들 가운데 하나이다. 1624년 바뇨니가 마카오를 떠나 다시 중국으로 들어올 당시 산서 지역에는 강주( 絳 州 )를 중심으로 한( 韓 )씨, 단( 段 )씨 집안이 이미 천 주교에 귀의해 있었다. 한씨 집안의 한운( 韓 雲 ) 한림( 韓 霖 ) 한하( 韓 霞 ) 형제와 단씨 집안의 단곤( 段 袞 ) 단습( 段 襲 ) 단의( 段 扆 ) 형제는 모두 충 실한 천주교 신자로 바뇨니의 전교 사업을 적극 후원했다. 19) 그 중에서도 특히 한림( 字 는 雨 公 )과 단곤( 字 는 九 章 )은 바뇨니의 좌 19) 한씨 집안에서 가장 먼저 세례를 받은 사람은 맏형 한운( 韓 雲 )이다. 일찍이 북경에 서 서광계( 徐 光 啟 )의 가르침을 받고 천주교에 귀의한 그는 1620년 예수회 선교사 줄리오 알레니(Giulio Aleni, 1582 1649, 중국명 艾 儒 略 )에게 강주로 와줄 것을 요 청한다. 이때 알레니가 강주로 들어가 한씨와 단씨 집안의 가족들 18인에게 세례를 준 것이 산서에 처음으로 천주교가 들어가게 된 계기였다. 한운의 동생인 한림( 韓 霖 ) 또한 이때 세례를 받았다. 黃 一 農, 明 清 天 主 教 在 山 西 絳 州 的 發 展 及 其 反 彈, 中 央 硏 究 員 近 代 史 硏 究 所 集 刊 第 26 期, 民 國 85 年 (1996) 12 月, 20쪽. 하지만 소약슬 ( 萧 若 瑟 )은 한림이 천주교에 귀의하게 된 과정에 대해 북경에서 서광계와 가깝게 지내다가 도를 듣고 세례를 받았다고 서술했다. 萧 若 瑟, 앞의 책, 203쪽. 단곤( 段 袞 ) 은 한운과 마찬가지로 1620년 이전 북경에서 세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1620년 산서로 온 알레니가 섬서( 陝 西 ) 전교를 위해 떠나고 1624년 니콜라스 트리 고(Nicolas Trigault, 1577 1628, 중국명 金 尼 閣 )가 잠시 그 역할을 맡았으나 얼마 후 그 역시 섬서로 떠나고, 마침 이름을 고일지로 바꾸고 중국으로 들어와 있던 바뇨니가 산서의 전교 사업을 맡게 되었다.
박지현 / 알폰소 바뇨니( 高 一 志 )의 서학제가 제부부 권 521 우지력 ( 左 右 之 力 )으로 빈민 구제와 성소 확장, 교회 건립 등 모든 교구 사업의 후원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한문 저작에 적극 동참했다. 20) 바 뇨니의 저작 가운데 성모행실 ( 聖 母 行 實 ), 서학수신 ( 西 學 修 身 ), 서 학제가 ( 西 學 齊 家 ), 동요교육 ( 童 幼 教 育 ), 신귀정기 ( 神 鬼 正 紀 )는 두 사람이 공동으로 교열을 맡았고, 비학경어 ( 譬 學 警 語 )는 단곤 혼자 교 열에 참여했다. 한림은 동요교육 의 서문을 쓰기도 했다. 21) 이 두 사람이 실제 바뇨니의 저작에 있어 얼마만큼의 역할을 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단순히 책의 출간을 돕고 문장 교열만을 봐준 것인지 아니면 구체적인 내용과 서술에 있어서도 실질적인 참여가 있었는지 정 확하게 고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두 사람과 바뇨니의 관계, 다시 말해 그들의 전반적인 교류 상황을 미뤄 짐작할 때 적어도 책의 내용과 서술에 대한 실질적인 공유와 교감은 어떤 형태로든 이뤄졌을 것이라고 본다. 22) 바뇨니의 주요 저작들이 1624년 산서로 들어온 직후 대부분 간행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의 이러한 저작들은 남경에서 추방된 후 마카오에 서 보낸 6년의 시절 동안 철저히 준비된 것임을 짐작하게 해 준다. 그것 이 실제 한림과 단곤 같은 중국의 엘리트 신사층과 만났을 때 어떤 프리 즘의 굴절을 보였을지 살펴보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 다. 23) 이들은 모두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경제적 기반을 갖춘 독서인으 20) 高 一 志 大 德 不 凡, 熱 心 傳 道, 又 得 韓 君 段 君 左 右 之 力, 敎 遂 大 開. 萧 若 瑟, 앞의 책, 204쪽. 21) 方 豪, 앞의 책( 上 ), 255쪽과 272쪽. 22) 특히 한림은 바뇨니와 매우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건륭( 乾 隆 ) 연간(1735 1795) 작성된 강주지 ( 絳 州 志 )에 의하면, 그는 독서하는 틈틈이 서광계에게 병 법( 兵 法 )을 배우고 고칙성( 高 則 聖, 즉 高 一 志, 칙성은 고일지의 字 )에게 총법( 銃 法 ) 을 배워 당시 사회에 유용한 선비( 有 用 之 士 )가 되기 위해 힘썼다. 라고 되어 있다. 方 豪, 앞의 책( 上 ), 254쪽. 또한 소약슬( 萧 若 瑟 )은 고일지를 강주로 오게 한 사람이 한림이라고 전하고 있다. 萧 若 瑟, 앞의 책, 203쪽. 23) 확실히 산서 강주의 향신인 한림( 韓 霖 )과 단곤( 段 袞 )은 16-17세기 명말 천주교 전래 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인물이다. 손상양( 孫 尙 楊 )은 두 사람을 이 시기 가장 유명
522 인문논총 제67집 (2012) 로 향시( 鄕 試 )에 급제한 거인( 擧 人 )이었으며 장서가( 藏 書 家 )였다. 특히 단곤은 강주( 絳 州 )의 가장 유력한 거신( 巨 紳 )으로 명( 明 ) 종실의 아무개 를 사위로 맞는 등 신분이 고귀하고 부유했다. 24) 서학제가 는 총 5권으로 이뤄져 있는데 권1과 권2는 타이완( 臺 灣 ) 보 인대학신학원( 輔 仁 大 學 神 學 院 )에서 출간한 서가회장서루 ( 徐 家 匯 藏 書 樓 ), 명청천주교문헌 ( 明 淸 天 主 敎 文 獻 )(총 5책, 1996) 제 2책( 冊 )에 수록 되어 있고, 권3부터 권5까지는 대북이씨학사( 臺 北 利 氏 學 社 )에서 출간 한 법국국가도서관 ( 法 國 國 家 圖 書 館 ), 명청천주교문헌 ( 明 清 天 主 教 文 獻 )(2009) 제 2책에 수록되어 있다. 제부부 ( 齊 夫 婦 )권을 다루는 본고에 서는 서가회장서루명청천주교문헌 에 수록되어 있는 제가서학 ( 齊 家 西 學 )을 기본 텍스트로 삼았다. 이 판본은 별도의 서문 없이 권1 제부부 와 권2 제동유 ( 齊 童 幼 )로 구성되어 있는데, 권1 제부부 의 서문은 다음 과 같다. 수신( 修 身 )의 학문이 갖춰졌다. 다음으로 집안을 다스리는 문제인데, 거 기에는 부부, 자녀, 노비( 僕 婢 ), 소작농( 甸 徒 )의 네 가지 이치가 있다. 그것 이 갖춰져야 집안이 다스려진다. 修 身 之 學 備 矣. 次 以 齊 家, 厥 屬 有 夫 婦 子 女 僕 婢 甸 徒 之 四 者 理, 家 乃 齊 焉. 25) 하고 영향력 큰 신자 12인의 리스트에 포함시켰는데, 그 12인은 다음과 같다. (1) 구태소( 瞿 太 素 ) (2) 서광계( 徐 光 啓 ) (3) 이지조( 李 之 藻 ) (4) 양정균( 楊 廷 筠 ) (5) 이천 경( 李 天 經 ) (6) 손원화( 孫 元 化 ) (7) 왕징( 王 徵 ) (8) 한림 (9) 단곤 (10) 김성( 金 聲 ) (11) 구식사( 瞿 式 耜 ) (12) 장갱( 張 賡 ). 孫 尙 楊 ( 比 利 時 ) 鍾 鳴 旦 著 (2004), 1840 年 前 的 中 國 基 督 敎, 學 苑 出 版 社, 253-254쪽. 24) 萧 若 瑟, 앞의 책, 203-204쪽. 이 두 사람은 끝까지 바뇨니에 대한 후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비뢰지에 의하면 바뇨니의 무덤은 강주성에서 4, 5리 떨어진 단가 장( 段 家 莊 )에 있다. 费 赖 之, 앞의 책, 은리격전 ( 恩 理 格 傳 ) 참조. 25) 鐘 鳴 旦 杜 鼎 克 黃 一 農 祝 平 一 等 編 (1996), 徐 家 匯 藏 書 樓 明 淸 天 主 敎 文 獻, 臺 北 : 輔 仁 大 學 神 學 院, 第 2 冊, 齊 家 西 學 卷 之 一, 齊 夫 婦, p. 493.
박지현 / 알폰소 바뇨니( 高 一 志 )의 서학제가 제부부 권 523 이 서문은 실상 제부부 의 서문이라기보다 서학제가 전체의 서문 으로 읽힐 수 있는데 무엇보다 첫머리에서 이 글이 수신 의 학문에서 이 어지는 것임을 밝히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앞서 언급했듯이 서학수신 ( 西 學 修 身 )- 서학제가 ( 西 學 齊 家 )- 서학치평 ( 西 學 治 平 )으로 이어지는 연 속 기획물의 출간은 사서( 四 書 )의 하나인 대학 ( 大 學 )의 수신제가치국 평천하 ( 修 身 齊 家 治 國 平 天 下 ) 담론에 대한 적응주의 적 반응의 결과라 고 볼 수 있다. 바뇨니가 왜 하필 그 조목에서 저술의 동기 부여를 받았 는지에 대해서는 이 세 가지 텍스트를 모두 살펴본 후에 본격적으로 논 의할 수 있겠으나, 위의 간략한 서문이 주는 주요한 힌트에 의하면 이 기획물의 출간은 무엇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Politika) 소환이 란 배경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에서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정한다. 개인은 번식을 위해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고 자기 보존을 위 해 치자( 治 者 )와 피치자( 被 治 者 )가 결합한다. 이렇게 가장 단순하고 자연 스런 결합에 의해 생겨난 최초의 공동체가 바로 가정이다. 가정은 다시 부락을 이루고 부락은 국가를 이룬다. 그러므로 국가는 가장 높은 형태 의 자연적 공동체이다. 모든 공동체는 선( 善 )의 추구라는 목적을 가지며 국가의 목적은 최고의 선( 善 )을 추구하는 것이다. 최고의 선을 실현하는 국가는 개인의 행복을 충족시킨다. 그러므로 국가의 행복과 개인의 행복 은 같다. 26) 이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개인-가정-국가 사이의 동심원적 구조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에 나타나는 개인-가정-국가-천하 사이의 동심원적 구조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 점이 바로 바뇨니로 하여금 수신제 가치국평천하 의 서학 버전을 저술하게 하는 동기로 작용했던 것 같다. 26) 국가 공동체의 본질과 개인 행복과의 관계, 그리고 가정의 의미에 대해서는 아리스 토텔레스, 천병희 옮김(2009), 정치학, 숲, 제1권 제1-2장(15-22쪽)과 제7권의 제1 장(363-366쪽).
524 인문논총 제67집 (2012) 바뇨니가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을 떠올 렸다는 가정은 그가 제가 의 구성을, 위의 서문에서 보듯이 (1) 부부 (2) 자녀 (3) 노비 (4) 소작농으로 구분하고 있는 데서도 나름의 탄력을 받는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인간의 가장 자연스런 공동체 구성의 요인 으로 숫컷-암컷 즉 남-녀의 결합과 치자-피치자의 결합이 있고 이것으로 이뤄진 최초의 공동체가 가정(oikos)이라 할 때, 가정을 이루는 가장 주된 최소 요소는 (1) 주인과 노예(despotikē) (2) 남편과 아내(gamikē) (3) 아버 지와 자식(patrikē)이 되기 때문이다. 27) 부부 자녀 노비 소작농으로 구분되는 서학제가 의 체례는 바로 이 같은 최소 요소들의 16-17세기 적 변주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같은 제가서( 齊 家 書 )로서 명( 明 ) 영락제( 永 樂 帝, 1402 1424 재위) 때 간행된 범립본( 范 立 本 )의 치가절요 ( 治 家 節 要 )의 편목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28) <표 1> 范 立 本 撰 明 本 治 家 節 要 篇 目 卷 之 上 卷 之 下 正 己, 立 業, 勤 儉, 謹 愼, 禮 節, 廉 恥, 存 信, 謹 言, 致 思, 務 本, 得 失, 慮 危, 主 見, 諫 諍, 處 富, 居 貧, 父 子, 舅 姑, 繼 母, 夫 婦, 兄 弟, 妯 娌, 後 嗣, 訓 子, 敎 女, 育 嬰, 家 和 睦 親, 處 鄰, 擇 交, 往 復, 晨 昏, 出 行, 防 虞, 防 盜, 隄 備. 冠 笄, 婚 姻, 喪 儀, 奉 先, 宗 譜, 讀 律, 讀 傳, 置 書, 製 辦, 買 賣, 食 用, 稑 種, 畜 養, 選 擇, 免 思, 量 度, 賦 役, 戶 口, 生 辰, 胎 産, 斗 秤, 債 負, 借 換, 嗜 飮, 取 妾, 奴 僕, 內 外, 褻 瀆, 風 俗, 是 非, 爭 鬪, 訴 訟, 病 疾, 患 難, 遺 失, 怪 異. 치가절요 에 있어 서학제가 식 가정의 구성 요소는 아버지와 아들 ( 父 子 ),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 舅 姑 ), 계모 ( 繼 母 ), 남편과 아내 ( 夫 27) 아리스토텔레스, 위의 책, 제1권 제3장(23-24쪽). 28) 范 立 本 撰, 新 刊 明 本 治 家 節 要, 宣 德 6 年 (세종 13년, 1431) 간행, 고려대 중앙도서 관 한적실 소장.
박지현 / 알폰소 바뇨니( 高 一 志 )의 서학제가 제부부 권 525 婦 ), 형과 아우 ( 兄 弟 ), 동서 ( 妯 娌 ) 등과 같이 관계의 확장으로 인 한 외연의 확대를 보여준다. 그밖에 상당수의 편목들은 아리스토텔 레스가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즉 가정을 이루는 관계적 요소 외에 가 정 관리 (oikonomia)의 또 다른 중요 요소로서 제기했던 재산획득기술 (chrēmastikē) 29) 에 해당하는 항목들이 많은데 서학제가 에서는 오히려 이 부분에 대한 서술의 의지가 없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치가절요 의 편목들을 보면 전통 유가들이 생각하는 가정 관리 의 범위와 카테고리 가 수양과 도덕, 예법과 풍속, 실용과 처세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며 광범위함을 알 수 있다. 서학제가 의 서문에 해당하는 위의 인용 문장을 놓고 볼 때, 3 4 5 권의 내용은 노비와 소작농을 다루는 방식과 윤리에 관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일단 1 2권의 세부목차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표 2> 徐 家 匯 藏 書 樓 明 淸 天 主 敎 文 獻 에 수록된 齊 家 西 學 의 목차 및 감수 편찬자 분류 제1권( 卷 之 一 ) 제부부( 齊 夫 婦 ) 제2권( 卷 之 二 ) 제동유( 齊 童 幼 ) 목차 제1장 정우( 定 偶 ): 한 남편 한 아내 제2장 택부( 擇 婦 ): 아내 고르기 제3장 정직( 正 職 ): 바른 직분 제4장 화목( 和 睦 ): 화목 제5장 전화( 全 和 ): 온전한 화목 제6장 부잠( 夫 箴 ): 남편의 덕목 제7장 부잠( 婦 箴 ): 아내의 덕목 제8장 해로( 偕 老 ): 해로 제9장 재혼( 再 婚 ): 재혼 제1장 교육지원( 敎 育 之 原 ): 부부의 혼인 제2장 육지공( 育 之 功 ): 보모의 역할 제3장 교지주( 敎 之 主 ): 부모의 역할 제4장 교지조( 敎 之 助 ): 교사론 제5장 교지법( 敎 之 法 ): 교육하는 방법 제6장 교지익( 敎 之 翼 ): 상벌의 균형 제7장 학지시( 學 之 始 ): 배움의 시작 제8장 학지차( 學 之 次 ): 배움의 순서 제9장 결신( 潔 身 ): 순결 교육 제10장 지치( 知 耻 ): 부끄러움 교육 29)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제1권 제3장(23쪽).
526 인문논총 제67집 (2012) 분류 제1권( 卷 之 一 ) 제부부( 齊 夫 婦 ) 제2권( 卷 之 二 ) 제동유( 齊 童 幼 ) 감수 편찬 교정: 예수회 동료( 耶 穌 會 中 同 學 ) 비기규( 費 奇 規, Gaspard Ferreira) 용화민( 龍 華 民, Nicolas Longobardi) 등옥함( 鄧 玉 函, Joannes Terrentius) 30) 비준: 양마약( 陽 馬 諾, Emmanuel Dias) 편찬: 극서( 極 西 ) 고일지( 高 一 志, Alfonso Vagnoni) 교열: 우성( 虞 城, 하남) 양천정( 楊 天 精 ) 하동( 河 東, 산서) 위두추( 衛 斗 樞 ) 단곤( 段 衮 ) 한림( 韓 霖 ) 교정: 예수회 동료( 耶 穌 會 中 同 學 ) 비기규( 費 奇 規, Gaspard Ferreira) 용화민( 龍 華 民, Nicolas Longobardi) 등옥함( 鄧 玉 函, Joannes Terrentius) 비준: 양마약( 陽 馬 諾, Emmanuel Dias) 편찬: 극서( 極 西 ) 고일지( 高 一 志, Alfonso Vagnoni) 교열: 우성( 虞 城, 하남) 양천정( 楊 天 精 ) 하동( 河 東, 산서) 단곤( 段 衮 ) 한림( 韓 霖 ) 먼저 제부부 ( 齊 夫 婦 )권의 목차를 보면 이 글이 부부 윤리에 있어 특 히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부부의 제1 덕목은 화목이 다. 이러한 가화 ( 家 和 ) 이념은 전통 유가 담론에서도 가정의 제1 덕목으 로 선양하는 것이다. 화목하기 위해서 부부가 어떤 조건에 놓여야 하고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또한 그 화목의 내용과 목적은 무엇인지, 동일한 화목의 이념이 유교와 그리스도교에서 어떤 간극을 드러내며 혹 은 융합의 가능성을 보이는지 글의 내용을 통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제동유 ( 齊 童 幼 )권은 바뇨니의 또 다른 한문 저작인 동유교육 ( 童 幼 教 育 )의 상권( 上 卷 )에 해당되는 것이다. 동유교육 은 상하 두 권으 로 이뤄져 있는데 상권의 내용이 교육의 주체, 방법, 목적에 관한 것이라 면 하권은 교육의 내용에 관한 것이다. 하권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30) 등옥함( 鄧 玉 函 )의 원래 이름은 Joannes Schreck이다. 方 豪, 앞의 책(상권), 217쪽.
박지현 / 알폰소 바뇨니( 高 一 志 )의 서학제가 제부부 권 527 <표 3> 徐 家 匯 藏 書 樓 明 淸 天 主 敎 文 獻 에 수록된 童 幼 教 育 의 목차 분 류 下 卷 목차 제1장 함묵( 緘 默 ): 침묵 제2장 언신( 言 信 ): 신의 제3장 문학( 文 學 ): 글 배우기 제4장 정서( 正 書 ): 바른 책 제5장 서학( 西 學 ): 서학 제6장 음식( 飮 食 ): 섭생 제7장 의상( 衣 裳 ): 의복 제8장 침매( 寢 寐 ): 취침 교육 제9장 교우( 交 友 ): 교우관계 제10장 한희( 閒 戱 ): 놀이 3. 한 남편 한 아내( 一 夫 一 婦 )의 당위성: 제1장 정우( 定 偶 )/ 제2장 택부( 擇 婦 ) 읽기 서학제가 제부부 ( 齊 夫 婦 )권의 제1장 정우( 定 偶 ) 장의 첫 번째 문 장은 가정의 근본 ( 家 之 本 )으로서 남편과 아내, 즉 가정 운영의 주체로 서 부부가 지니는 중심적 지위에 대한 선언으로 시작한다. 부부가 있은 연후에 자녀가 있고, 부부와 자녀가 있은 연후에 안으로는 노비( 僕 婢 )가, 밖으로는 소작농( 佃 徒 )이 있고, 각종의 집안 일이 생겨난다. 고로 부부가 집안의 근본이다. 有 夫 婦, 然 後 有 子 女, 有 夫 婦 子 女, 然 後 內 而 僕 婢, 外 而 佃 徒, 種 種 家 務 起 焉. 是 故 夫 婦 家 之 本 也. 31) 31) 鐘 鳴 旦 杜 鼎 克 黃 一 農 祝 平 一 等 編, 앞의 책, 西 學 諸 家 卷 之 一, 齊 夫 婦, 定 偶 第 一 章, 494쪽.
528 인문논총 제67집 (2012) 이 같은 부부의 중심성에 대한 인식은 명초 범립본( 范 立 本 )의 치가절 요 ( 治 家 節 要 ) 부부 ( 夫 婦 ) 항목에 나타나는 인륜의 시작 ( 人 倫 之 始 ) 으로서 남편과 아내, 즉 모든 친인척 가족 관계의 출발점이자 예의 근원 으로서 부부의 개념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부부는 인륜의 시작이다. 고로 소학 에서 말하길, 인류가 있은 연후에 부부가 있고, 부부가 있은 연후에 부자( 父 子 )가 있고, 부자가 있은 연후에 형제가 있다 고 했으니 반드시 예( 禮 )로 구별하여야 한다. 夫 婦 乃 人 倫 之 始. 故 小 學 云, 有 人 民 而 後 有 夫 婦, 有 夫 婦 而 後 有 父 子, 有 父 子 而 後 有 兄 弟, 必 當 以 禮 爲 別. 32) 가정 운영의 근본적 주체로서 부부의 중심성에 대한 위와 같은 선언은 바로 이 제부부 권의 일차적인 편찬 목적이 정해진 배우자 ( 定 偶 ) 즉 한 남편 한 아내 ( 一 夫 一 婦 )의 당위성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 가 정의 근본이자 중심으로서의 부부는 일부일처라는 대칭적 한 쌍의 개념 이 배타적으로 수립되어야 안정적이다. 조물주가 태초에 정하시길, 처음 사람을 만드실 때 남자 하나 여자 하 나만을 내어 부부로 삼으시고, 그들로 하여금 인류를 전해 만민의 조상이 되게 하셨으니 짝이 실로 여기에서 정해졌다. 천지개벽의 초창기에 사람 을 늘리는 일이 가장 시급한 일일 터인데 어찌 여러 부인을 아내로 맞게 하지 않고 단지 한 사람만을 짝으로 삼게 하셨는가. 바름이 이와 같을 뿐 이다. 蓋 造 物 主 從 太 初 時 定 之 矣. 厥 初 生 人, 止 一 男 一 女, 配 爲 夫 婦, 令 傳 類 爲 萬 民 宗 祖, 伉 儷 實 定 于 此. 夫 開 闢 之 初, 生 人 最 急, 胡 不 多 婚 而 一 止 配 一, 蓋 正 則 宜 如 此 爾. 33) 32) 范 立 本, 앞의 책, 夫 婦 項. 33) 鐘 鳴 旦 杜 鼎 克 黃 一 農 祝 平 一 等 編, 앞의 책, 494쪽.
박지현 / 알폰소 바뇨니( 高 一 志 )의 서학제가 제부부 권 529 바뇨니에 따르면 한 남편 한 아내는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이는 태초 에 인류를 창조하신 하느님이 그리 만드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남편 한 아내의 바름 은 진리의 빛처럼 영원하고 절대적이다. 그럼에도 사람 들은 그 바름을 알지 못한다. 후세 사람들이 조물주의 원 뜻을 살피지 않고 아내가 있는데도 다시 첩 을 얻으니 바름이 어그러졌다. 부부가 화목하면 서로 사모하고 서로 믿고 서로 결합하고 서로 보완을 이룬다. (아내가) 많으면 화목이 흩어지고 신 뢰가 쇠락하여 (상호간에) 거리가 생기게 되니 어찌 정해진 직분을 다할 수 있겠는가. 後 世 不 稽 物 主 原 旨, 有 妻 復 娶 妾, 正 則 乖 矣. 夫 婦 和, 則 相 慕, 相 信, 相 結, 相 成 焉. 多 則 和 散 信 衰 而 離 矣. 何 定 職 之 能 盡 乎. 34) 실상 중국의 축첩제도는 한 남편 한 아내라는 일부일처의 당위성을 거 스르는 것이 아니다. 법률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처( 妻 )와 첩( 妾 )을 엄격히 구분하는 중국의 혼인제도는 엄밀한 의미에서 일부다처제가 아니라 일부 일처다첩제라고 할 수 있다. 35) 첩은 아내가 아니라 가족의 한 구성원이다. 그러므로 유가 경전을 비롯한 거의 모든 주류 담론에서 부부라 함은 처 ( 妻 )를 이르는 말이지 첩( 妾 )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흔히 부부의 도를 음양 ( 陰 陽 ) 혹은 내외 ( 內 外 )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방식도 가정의 기 본 구성 원리로서 일부일처 체제의 당위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36) 하지만 선교사인 바뇨니의 눈에 처와 첩의 구별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일부일처의 의미는 한 가정에 한 남편 한 아내 가 아니라 한 34) 위의 책, 495쪽. 35) 范 立 本, 전게서, 取 妾 項 을 보면 첩을 얻는다는 것이 여자 종을 사는 것과 같은 차원의 일임을 알 수 있다. 36) 易 經 家 人 卦 : 37. 家 人 ( 卦 三 十 七 ) ( 離 下 巽 上 ) 家 人 : 利 女 貞 彖 曰 : 家 人, 女 正 位 乎 內, 男 正 位 乎 外 男 女 正, 天 地 之 大 義 也 家 人 有 嚴 君 焉, 父 母 之 謂 也 父 父, 子 子, 兄 兄, 弟 弟, 夫 夫, 婦 婦, 而 家 道 正 正 家 而 天 下 定 矣
530 인문논총 제67집 (2012) 남자 한 여자 (즉 一 夫 一 婦 )를 뜻하는 것이다. 예수회의 적응주의는 유교 의 조상숭배를 수용할 수는 있어도 축첩제도를 용인할 수는 없었다. 많 은 사대부들이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는 데 있어 이 문제가 가 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는 사실은 유교-그리스도교의 융합에 있어 단순한 역할 분담-유교는 도덕의 층위를 그리스도교는 영적 층위를 담당하는-이 얼마나 관념적인 이상이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37) 선교 사들의 입장에선 축첩( 蓄 妾 )이 비도덕이지만 사대부들의 입장에선 휴첩 ( 休 妾, 첩을 내보내다)이 비도덕이다. 선교사들의 눈에 첩은 쾌락과 죄악 의 산물이지만 사대부들의 눈에 첩은 보호와 구제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덕의 상충은 사대부들로 하여금 가정 내 한 남자 한 여자 의 결단을 어렵게 한다. 바뇨니의 전략은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바름 으로서 한 남편 한 아내가 아닌, 실용 으로서 한 남편 한 아내에 대한 설득, 이야기는 이제 결혼의 피곤함과 고달픔, 여자들의 불완전한 성정 에 대한 토로로 이어진다. 유명한 현인인 파랄다( 罷 辣 多, 플라톤)는 일찍이 현명한 부인을 얻는 것은 복이요, 부인을 얻지 않고 자유자적하는 것은 더 큰 복이다. 라고 말 했다. 혹자가 결혼의 어려움을 묻자 아내를 얻어 편안한 날은 딱 이틀뿐 인데, 방에 들어가는 첫날( 入 室 初 日 )과 출상하는 마지막 날( 出 喪 終 日 )이 다. 라고 하였다. 이학( 理 學 )의 스승인 속격랄( 束 格 辣, 소크라테스)은 결혼 한 것을 늘 후회했다. 어느 날 혹자가 결혼에 대해 묻자, 물고기가 통발에 들어가긴 쉬어도 나오긴 어렵다. 고 답했다. 名 賢 罷 辣 多 嘗 曰, 娶 獲 賢 者, 福 也, 不 聚 而 自 適, 乃 更 福 也. 或 詢 其 難 曰, 娶 妻 之 安, 兩 日 耳, 入 室 初 日, 與 出 喪 終 日 也. 理 學 之 師 束 格 辣 恒 悔 結 婚, 他 日 或 以 婚 問, 答 曰, 魚 欲 入 笥 易, 欲 出 笥 難. 38) 37) 이지조와 양정균의 사례(데이비드 먼젤로, 앞의 책, 58-59쪽)와 한림의 사례( 黃 一 農, 앞의 논문) 참조. 38) 鐘 鳴 旦 杜 鼎 克 黃 一 農 祝 平 一 等 編, 앞의 책, 496쪽.
박지현 / 알폰소 바뇨니( 高 一 志 )의 서학제가 제부부 권 531 한 선비는 죽음을 앞두고 형제들에게 말하길, 내 생의 복은 아내가 깎 아먹지만 않았다면 거의 완벽했다. 아, 슬프도다! 악하지도 않는 한 명의 부인이 선량한 남편의 복을 (이리) 감소시키거늘 현명하지 않은 여러 명의 부인은 (남편의) 복녕( 福 寧 )을 얼마나 감소시키겠는가. 고로 전대의 철인 들은 혼인의 형국을 분명히 알고, 혹자는 끝내 아내를 얻지 않았으며 혹자 는 한번 아내를 얻으면 더 이상 아내를 얻지 않았다. 一 士 臨 終 謂 昆 弟 曰, 吾 生 平 之 福, 非 妻 減 損 之, 庶 幾 備 矣. 噫! 一 妻 不 惡, 尙 減 良 夫 之 福, 多 婦 不 賢, 福 寧 有 幾 哉. 故 前 哲 明 婚 姻 之 勢, 或 終 不 娶, 或 一 娶 不 續. 39) 따라서 결혼은 오히려 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 한다면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 40) 이로부터 그 한 명의 아내를 고르기 위한 다음과 같은 조건 들이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아내 고르기 ( 擇 婦 )에는 다섯 가지 계율이 있다. 41) (1) 빈부에 차이가 있게 하지 마라: 가난하면 좁고 비루함을 감당키 어 렵고 부유하면 교만하여 복종시키기 어렵다. 빈부의 정도가 같아야 마음이 조화롭기 쉽다. (2) 나이에 차이가 있게 하지 마라: 어린 여자는 아직 기가 완성되지 않 아 아내로 맞이하면 그 몸을 손상시키고 그 배움을 약화시키고 자식 을 나약하게 한다. 늙은 여자는 이미 기가 허하여 아내로 맞이하면 그 힘을 소모시키고 그 지혜를 감소시키고 자식을 요절하게 한다. 39) 위의 책, 496-497쪽. 40) 이 같은 논리는 왜 한 남편 한 아내여야 하는가에 대한 근거를 제공하는 동시에 바뇨니와 같은 사제들이 왜 하느님이 아담에게 하와를 짝지워 주셨음에도 불구하 고 그 같은 성 가정을 이루며 살지 않는가에 대한 매우 적절한 해명의 공간을 제공 하는 것이기도 하다. 41) 范 立 本, 앞의 책, 婚 姻 項 에서도 며느릿감 혹은 사윗감을 고르기 위한 주요 조건 들이 나오는데 그 기본 관점이 택부 ( 擇 婦 )장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점이 흥미롭다.
532 인문논총 제67집 (2012) (3) 병약한 자를 맞지 마라: 병약한 여자는 자식을 생육할 수 없는데 설 령 생육한다 하더라도 병약하지 않은 자식이 없다. 병약한 여자는 집안을 다스릴 수 없는데 설령 다스린다 하더라도 오래갈 수 없다. (4) 지나치게 똑똑하거나 멍청해서는 안 된다: 똑똑하면 생각이 지나치 고 법도를 뛰어넘어 권세를 휘두르고 질서를 어지럽힌다. 멍청하면 본업을 다할 수 없고 어진 남편의 가르침을 따를 수 없다. (5) 현명하지 않으면 아내로 맞지 말라: 현명한 부인이면 가난하고 못 생겼다 하더라도 자식을 기르고 집안을 다스릴 수 있다. 현명하지 않으면 비록 존귀하고 부유하고 총명하다 하더라도 자식을 기름에 있어 불초한 자식이 나오고 집안을 다스림에 있어 아무런 성과가 없다. 42) 이 같은 아내 고르기에 실패했을 때 남자는 큰 환난에 빠진다. 악처 는 어떤 맹수보다도 무섭고, 그와 짝을 이루느니 사나운 호랑이를 만 나는 게 나으며, 그러한 아내가 죽었을 때는 다행이다 라는 위로를 받 는다. 그러므로 현명한 아내는 원방( 遠 方 )의 진귀한 보물이요, 한 집안 의 문장( 文 章 )이요, 내치의 법도요, 어진 지아비의 편안처요, 자식의 밝은 하늘이요, 시종들의 기둥이요, 친척들의 의지처요, 궁핍과 한기에 처한 자들의 온실이요, 우환에 빠진 자들의 위로처인데, 그런 아내를 얻는 것 은 하느님이 허여하신 바이지 사람의 힘이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고 하였다. 43) 42) 鐘 鳴 旦 杜 鼎 克 黃 一 農 祝 平 一 等 編, 앞의 책, 擇 婦 第 二 章, 497-500쪽. 43) 위의 책, 500-501쪽.
박지현 / 알폰소 바뇨니( 高 一 志 )의 서학제가 제부부 권 533 4. 바른 직분과 화목의 의미: 제3장 정직( 正 職 )/ 제4장 화목 ( 和 睦 )/ 제5장 전화( 全 和 ) 읽기 중국의 전통 담론에서 부부의 직분은 음양( 陰 陽 )과 내외( 內 外 )의 비유 를 통해 구분된다. 44)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자의 위치에서의 적절한 역 할이고 조화다. 마치 우주만물의 자연스런 운행처럼, 해가 지면 달이 뜨 고 달이 지면 해가 뜨듯 각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임무를 조화롭게 수행 하면 되는 것이다. 반면 서학제가 제부부 에서 부부의 바른 직분( 正 職 )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전제는 세상의 어떤 만물도 전능하지 않다 는 데 있다. 세상의 어떤 만물도 전능하지 않으니 모두 서로에게 의지해 이루어야 한다. 조물주가 태초에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를 내시어 짝을 짓게 하시고 화목하게 가정을 이뤄 바른 도로써 만세에 전하게 하신 것을 보면, 부부의 직분은 무엇보다 서로 돌아보고 서로 구제하며 서로 의지하고 서로 이룸 에 있음을 알 것이다. 世 物 無 全 能, 皆 相 須 以 存 成 也. 觀 造 物 主 初 生 一 男 卽 生 一 女, 俾 成 伉 儷, 和 睦 立 家, 以 正 道 垂 萬 禩, 乃 知 夫 婦 之 職, 首 在 相 眷, 相 濟, 相 存, 相 成 矣. 45) 44) 후한( 後 漢 ) 때 반소( 班 昭, 45 116)가 지었다는 여계 ( 女 誡 ) 제2장 부부 ( 夫 婦 ) 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부부의 도는 음양의 원리에 부합하고 신명에 통달 하니, 진실로 천지 사이의 큰 뜻이고 인륜의 대체이다( 夫 婦 之 道, 參 配 陰 陽, 通 達 神 明, 信 天 地 之 弘 義, 人 倫 之 大 節 也.). 나아가 이 같은 음양의 원리는 남녀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음양은 본성을 달리하고 남녀는 행동을 달리한다. 양은 단 단함을 덕으로 삼고 음은 부드러움을 쓰임으로 삼는다. 남자는 강함을 귀하게 여기 고 여자는 약함을 아름답게 여긴다.( 陰 陽 殊 性, 男 女 異 行. 陽 以 剛 爲 德, 陰 以 柔 爲 用. 男 以 强 爲 貴, 女 以 弱 爲 美.) (제3장 경순 ( 敬 順 ) 편) 이로부터 통솔하는 남편, 섬기 는 아내의 역할이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숙인 역주(2003), 여사서 ( 女 四 書 ), 여 이연. 45) 鐘 鳴 旦 杜 鼎 克 黃 一 農 祝 平 一 等 編, 앞의 책, 正 職 第 三 章, 502쪽.
534 인문논총 제67집 (2012) 그렇다면 이렇게 서로 돌아보고 의지하며 함께 하는 일은 무엇인가. 가정의 운영은 크게 재산의 획득과 육아로 귀결된다. 그 안에는 남녀 즉 부부 사이의 역할 분담이 있는데 그것은 중국의 전통 담론과 별다른 차 이점이 없다. 예컨대 밖을 다스리는 자( 治 外 者 )는 모으는 것에 부지런해 야 하고 안에 거하는 자( 居 內 者 )는 갈무리하는 데에 근면해야 한다 라든 지 하나는 낳는 것( 生 )을 주로 하고 하나는 품는 것( 孕 )을 주로 하며, 하 나는 재화의 생산을 주로 하고 하나는 아이의 양육을 주로 한다 같은 것들이 그렇다. 어미의 직분은 뱃속에 아이를 잉태하고 가슴에 품으며 마시고 먹게 하는 것 이고 아비의 직분은 품을 떠나면 가르치고 깨우치 며 병이 들면 낫게 하고 장성하면 가정을 꾸리게 하고 불초하면 꾸짖는 것 이다. 46) 그렇다면 한 발 더 나아가 이러한 직분 혹은 역할들 사이의 관계는 어떠 한가. 바뇨니에 의하면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결코 동등하지 않고, 주객 ( 主 客 )의 구분이 존재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관계의 설정이 중국 전 통 담론 속의 음양론, 즉 해와 달의 비유를 통해 설파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남편과 아내는) 해와 달에 비유할 수 있는데, 달은 음을 담당하여 만물에 은택을 내리지만 그 빛은 모두 해에게서 나온 것으로 만약 해를 가리면 그 빛을 잃을 뿐만 아니라 만물이 어그러진다. (그러므로) 아내의 존영( 尊 榮 )과 권력은 전적으로 남편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만약 기세를 타고 권력을 휘두른다면 반드시 영광은 사라지고 집안은 어지럽게 될 것 이다. 그러나 남편이 아내의 주인인 것은 군주가 신하의 주인인 것처럼 상 하의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형체의 주인인 것처럼 주객( 主 客 )의 구분이 있는 것이다. 又 譬 如 日 月, 月 主 陰, 澤 下 物, 光 力 悉 借 諸 日, 倘 掩 日, 非 特 失 其 光, 且 致 諸 物 乖 亂. 婦 之 尊 榮 權 力, 全 係 于 夫. 苟 乘 勢 擅 權, 必 將 失 榮 亂 室 矣. 然 46) 위의 책, 502-503쪽.
박지현 / 알폰소 바뇨니( 高 一 志 )의 서학제가 제부부 권 535 夫 主 婦 權, 非 如 君 主 乎 臣, 有 天 澤 之 殊, 神 主 乎 形, 有 主 客 之 分 也. 47) 이 같은 관계 설정과 역할 분담 속에 남편과 아내는 가정 운영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간다. 여기서 함께 라는 것은 둘 사이에 정서적 유대 혹은 조화로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이상적인 가정 운영은 바로 이 화목함 속의 연대이고 합심이다. 그렇다면 남편과 아내는 왜 서로 화목해야 하는가. 그것은 본래 두 사람이 한 몸이었기 때문이다. 조물주가 태초에 남자 하나를 만들고 다시 남자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 여 여자 하나를 만들어 짝으로 삼게 하시니 이들이 만민의 조상이다. 남편 이 아내보다 높은 것은 흙을 빚어 만드셨기 때문이고, 아내가 남편보다 낮 은 것은 그의 갈빗대로 만드셨기 때문인데, (하지만) 이로 보건대 (두 사람 은 또한) 서로 친하고 화목하기가 한 몸처럼 해야 된다는 뜻이 아니겠는 가. 이들을 다 만들고 명하시기를 두 사람은 한 몸이니 쫓아 보내서도, 다른 데로 시집을 가서도 안 된다 고 하셨다. 造 物 主 初 造 一 男, 遂 取 男 一 脇 骨, 造 一 女 爲 配, 是 萬 民 之 宗 祖 也. 夫 尊 于 婦, 乃 造 以 撮 土, 婦 卑 于 夫, 反 造 以 夫 脇, 非 明 示 以 宜 相 親 和 如 一 體 也 哉. 造 畢 命 之 曰, 二 人 一 體, 不 得 休 離 他 適. 48) 부부의 화목은 가정 운영, 즉 자녀를 양육하고 노비를 가르치고 가업 을 꾸려나가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동력이다. 둘 사이의 화목은 마음 의 화목 ( 心 和 ), 말의 화목 ( 言 和 ), 행동의 화목 ( 行 和 )이 있는데 이 세 가지가 모두 갖춰져야만 온전한 가정 운영이 된다. 49) 이 같은 화목을 방 해하는 것에는 다음의 4가지 요인이 있다. 47) 위의 책, 503-504쪽. 48) 위의 책, 和 睦 第 四 章, 504-505쪽. 49) 위의 책, 506쪽.
536 인문논총 제67집 (2012) (1) 사음( 邪 淫 ): 부부의 화목은 남편이 다른 아내를 알지 못하고 아내가 다른 남편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부부의 도( 道 )는 해와 달의 만남과 같아서, 한 번도 황도( 黃 道 )와 적도( 赤 道 )를 벗어나지 않지만 해는 항상 빛을 주고 달은 항상 그 빛을 받으므로 아름다운 것이다. 만약 지구의 그림자를 만나 식( 蝕 )이 생기면 추해진다. (2) 의심: 애정의 형세는 다른 마음( 情 )의 끼어듦을 허락하지 않는데 한 번 의심이 생기면 애정도 사라지고 화목의 의사도 없어진다.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 쉬워서 아침에 사랑하다가도 저녁에 미워지고, 저녁 에 사랑하다가도 아침에 미워지니 스스로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하물며 마귀가 사람을 유혹해 질투를 일으키면 좋았던 마음도 쉽게 멀어지고, 아무런 이유 없이 상황이 꼬여나가면 그로부터 의심이 생 겨나기도 한다. 그래서 남편은 반드시 귀머거리가 돼야 하고 아내는 장님이 돼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귀머거리여야 아내의 말과 다른 사 람의 참소를 듣지 않고, 장님이어야 남편의 잘못과 밖에서 들어온 사단을 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분노: 여성은 허약하여 쉽게 노하고 남성은 총기 있고 굳세서 쉽게 노한다. 그런 까닭에 집안일의 번잡함이나 자녀로 인한 수고로움, 하인들의 우매함과 생각지 못했던 여러 가지 돌발적인 일들이 터지 면 부부의 화는 더욱 치열하게 타오른다. 대저 어떤 일에 촉발돼서 문득 화를 내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오랜 화를 풀지 않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아니다. 화를 식힘에 있어서는 참음( 忍 ) 만한 것이 없 다. 옛날 서쪽 땅의 한 현인이 친구를 초대했는데 부인이 계속 소란 스럽고 무례하게 굴자 친구가 불안하여 가겠다고 했다. 주인이 말하 길, 나는 32년을 참았는데 그대는 이 잠깐을 못 참는가? 친구는 그 말에 승복했고, 부인 또한 그 말을 듣고 잘못을 고쳤다. 위대한 현인 속격랄덕( 束 格 辣 德, 소크라테스)의 부인 산제백( 山 弟 伯, 크산티페) 은 성격이 사나웠다. 혹자가 어떻게 참는지를 묻자 현인이 답했다. 물레방아의 바퀴가 시끄럽지 않은 때가 없으나 그것을 원망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아내를 보는 것 또한 이와 같다. (4) 직분 넘기: 부부는 각기 정해진 지위가 있는데 그 직분을 넘어 침범 하게 되면 화목을 잃는다. 50) 50) 위의 책, 全 和 第 五 章, 507-513쪽.
박지현 / 알폰소 바뇨니( 高 一 志 )의 서학제가 제부부 권 537 5. 남편의 덕목과 아내의 덕목 : 제6장 부잠( 夫 箴 )/ 제7장 부잠( 婦 箴 ) 읽기 서학제가 제부부 제6장과 7장의 내용은 남편과 아내가 각기 경 계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 정리해놓은 것이다. 그것을 뒤집어 보면 남편 과 아내가 각기 갖춰야할 덕목들에 대한 서술이 되는데 이것은 앞서 살 펴본 부부의 바른 직분( 正 職 )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계와 덕목의 기본 적인 방향은 다음과 같은 관계 설정에서 비롯된다. 옛말에 이르길 신하의 본보기는 임금이고 아내의 본보기는 남편이다. 라고 하였다. 남편의 바름과 간사함이 아내에게 통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 남편이 아내를 바로 하여 그 집안을 다스리고자 한다면 화목으로 결합하 는 것이 가장 좋다. 古 言 曰, 臣 之 表, 君 也, 妻 之 表, 夫 也. 夫 之 正 邪 不 通 于 妻 者 無 之, 夫 欲 正 妻 以 齊 其 家, 莫 若 結 以 和. 51) 부부의 관계에 대한 이 같은 관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에 나 타나는 남편 혹은 아버지의 권위에 대한 입장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정 관리 기술에 있어 세 가지 요소가 있다 고 보았는데 그것은 노예들에 대한 주인의 지배(despotikē archē), 아버지 의 지배(patrikē archē), 남편의 지배(gamikē archē)이다. 52) 여기서 아내와 자식에 대한 가장의 지배는 노예들에 대한 주인의 지배와 달리 자유민을 지배하는 것과 같다. 남편의 아내에 대한 지배는 정치가(polotikos)가 동 료 시민을 지배하는 관계가 영구화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본성적 51) 위의 책, 夫 箴 第 六 章, 513쪽. 52) 이 세 가지 지배는 가정을 이루는 세 가지 최소 요소, 즉 (1) 주인과 노예(despotikē) (2) 남편과 아내(gamikē) (3) 아버지와 자식(patrikē)에 상응하는 것이다.
538 인문논총 제67집 (2012) 으로 연장자와 성인이 연소자와 미성년보다 지배하는 데 더 적합하듯이 남성이 여성보다 지배하는 데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53) 이로부터 남편이 갖춰야 할 덕목은 가장, 즉 가정에서의 리더 혹은 지 배자로서의 덕목이라 할 수 있다. (1) 남편은 아내를 선함으로 선도하고 지혜를 일으켜야 한다: 이는 마치 광풍이 사람의 옷을 억지로 벗기려 하면 사람은 더욱 옷을 부여잡 고, 태양이 따뜻한 열기로 훈훈하게 하면 사람 스스로 옷을 벗어 받 아들이는 것과 같다 (2) 남편은 나약해서는 안 된다: 여자의 성정은 이기기를 좋아하고 스스 로 주인 삼기를 좋아해서 남편이 나약하면 반드시 그 위를 올라탄 다. 아내가 남편의 권력을 훔치면 한 집안에 두 명의 주인이 있게 되는 것이다. 장차 부림을 당할 주인은 그 집안을 다스릴 수 없다. (3) 남편은 희희낙락해서는 안 된다: 혼인의 도( 道 )는 절제와 공경으로 해야 한다. 혹자가 외도하지 않음을 자랑하자 한 성인이 나무라며 말했다. 집 안에서 취해 있는 것이나 집 밖에서 취해 있는 것이나 다를 바가 뭔가. 부부 간에 방탕한 것이 어찌 죄가 아니겠는가. 그 러므로 부부 사이에는 구별이 있고( 夫 婦 有 別 ) 예( 禮 )로써 대해야 하 는 것이다. (4) 남편은 비밀을 말해서는 안 된다: 아내는 생사의 배우자요, 전체 중 의 반이요, 가정 운영의 조력자니 집안의 일은 마땅히 그녀와 함께 도모해야 한다. 그러나 집 밖의 일과 정치, 혹은 친구가 부탁한 비밀 스런 일은 부인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여자들의 성정은 새로 듣거 나 가벼운 말을 좋아하고 비밀이란 걸 알지 못하며 소문을 전하는 것을 쾌감으로 여긴다. (5) 남편은 사사로운 사랑을 해서는 안 된다: 여자들의 성정은 매우 교 활해서 남편을 유혹해 자기를 따르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미 총애와 신뢰를 얻은 다음에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한다. 53)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제1권 제12장(54-55쪽).
박지현 / 알폰소 바뇨니( 高 一 志 )의 서학제가 제부부 권 539 (6) 남편은 아내에 대해 교만해서도, 인색해서도 안 된다: 아내와 남편 이 이미 한 몸이 되면 남편은 아내를 가벼이 여긴다. 남편이 아내를 가벼이 여기지 않고 공경하고 후히 대하면, 마치 해가 달을 비춰 달 빛이 빛나고 만물이 풍성해지듯 한 집안이 윤택해진다. 공경과 은혜 가 없으면 아내는 뜻을 잃고 자식은 양육되지 못하니 가문의 도가 쇠락할 것이다. 54) 반면 가정에 있어 남편의 피지배자로서 아내가 갖춰야 할 덕목은 다음 과 같다. (1) 꾸미는 것을 좋아하지 말라: 여자의 바른 꾸밈은 진귀한 옷이 아니 라 올곧은 덕( 貞 德 )을 갖추는 것이다. 좋은 꾸밈은 아름다움을 가장 하는 것이 아니라 추악함을 가리는 것이다. (2) 나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말라: 달은 해를 만나면 보이지 않고 조금 씩 어긋나야 보이기 시작하다가 정면으로 빛을 받을 때 보름달이 되 지만, 현명한 아내는 이와 반대로 남편을 대할 때 모습이 드러나고 남편에게서 멀어질수록 깊이 숨는다. 부인이 밖에 나가 노닐게 되면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듣게 되어 돌아와도 밖에 유혹된 생각이 때때로 마음에서 일어나니 고요함이 오염된 자 는 흔들리게 된다. 진귀하고 깨끗한 옷은 장궤 속에 잘 숨겨져 있어 야 백 년이 지나도 손상됨이 없으니 한 번 더러운 먼지가 묻게 되면 그 아름다운 색이 상실된다. (3)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말라: 말을 적게 해야 지혜와 청렴, 정절, 근 신과 같은 여러 미덕이 온전히 드러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몸과 집 안의 일이 드러나고 여러 사람들의 단점이 언급되며 분란이 일어나 니 작은 문제가 아니다. 옛날에 한 유명한 철인이 말하길 사람이 사는 집에는 모두 두 개의 문이 있어 그 내부 사정이 새어나가니 하 나는 대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아내의 입이다. 대문은 모두 엄중히 54) 鐘 鳴 旦 杜 鼎 克 黃 一 農 祝 平 一 等 編, 앞의 책, 夫 箴 第 六 章, 513-518쪽.
540 인문논총 제67집 (2012) 방비를 하나 아내의 입은 대부분 단속을 소홀히 하니 왜인가. 라고 하였다. (4) 한가로움을 좋아하지 말라: 한가로움은 모든 악의 매개이다. 바른 의무를 행하다 쉬게 되면 사악한 생각이 싹트고 안의 일이 끝나면 바깥의 유혹이 들어온다. 부인의 바른 직분은 문지방 안의 일을 맡 는 것으로 쉴 틈이 많지 않다. 따라서 한가로움을 좋아하면 집안의 일은 반드시 황폐해진다. 성경에서 이르길, 한가로움이 이르면 장 궤가 비니 부잣집의 가장 큰 우환은 바로 한가로움을 좋아하는 부 인이다 라고 하였다. (5) 사치스러움을 좋아하지 말라: 부인들은 재물을 모으는 수고로움을 겪지 않거나 연로함의 고난을 맛보지 않으면 화려한 꾸밈에 빠져 지 출에 규범이 없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현명한 부인의 덕을 칭찬할 때면 반드시 그 어진 남편이 모아놓은 자산을 잘 보존하는 일에 대 해 서술하였다. 선지자는 부부의 도( 道 )를 묘사하면서 두 마리 소가 함께 밭을 갈아 곡물이 가득 차게 되는 것을 그렸는데 그것의 의미 는 부부가 기왕 혼인의 멍에를 짊어지게 됐다면 마땅히 뜻을 합치고 힘을 아울러 집안의 자산을 풍성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궁핍한 자를 돕고 환난에 빠진 자를 구휼하는 데에 있어서는 이와 정반대이다. 대저 조물주가 너의 수확을 풍성히 하고 너의 자산을 더해주는 것은 그것을 사사로이 쓰게 함이 아니라 공적으로 쓰게 함 이니 가까운 데서 덕을 쌓으면 훗날에 공을 갖추게 된다. 그러므로 현명한 부인은 인덕( 仁 德 )의 공을 쌓는 데 있어 차라리 사치스러울 지언정 검소하지 않고, 인자하고 지혜로운 남편은 이를 금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리 하라 가르치니 그 집안은 무궁토록 복될 것이다. 55) 55) 위의 책, 婦 箴 第 七 章, 518-526쪽.
박지현 / 알폰소 바뇨니( 高 一 志 )의 서학제가 제부부 권 541 6. 결혼의 목적: 제8장 해로( 偕 老 )/ 제9장 재혼( 再 婚 ) 읽기 이상에서 언급된 부부의 역할과 덕목의 내용을 보건대 서학제가 제부부 권을 통해 바뇨니가 전달하고자 했던 결혼의 의미와 목적은 가 정의 근본으로서 한 남편 한 아내가 바른 직분과 화목을 통해 올바른 가 정 운영을 함으로써 기독교적 공공성을 담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 히 제7장 아내가 갖춰야할 덕목에서 근면함과 검소함을 통한 재산 증대 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구휼을 위한 자선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 은 가정 운영의 궁극적인 목적이 가정의 범주 안에 머물지 않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아리스토텔레스가 개인, 가정, 국가를 동심원적 구조로 파악하면서 최고의 선( 善 )의 실현을 국가의 단위에서 상정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구도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혼의 이상적인 마무리는 어떤 모습일까. 아담과 하 와라는 태초의 부부처럼 하느님에 의해 짝지어진 남편과 아내는 종신토 록 헤어져서는 안 된다. 한 남편과 한 아내는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이니, 큰 잘못[ 大 故 ]이 아 닌데도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를 맞아들이고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 에게 시집가는 것은 하느님께 큰 죄를 짓는 것이다. 一 夫 一 婦, 上 主 所 結, 苟 非 大 故 而 棄 妻 他 娶, 棄 夫 他 適, 卽 負 罪 上 主. 56) 여기서 큰 잘못 이란 불결함을 입는 것이다. 만약 아내가 불결함을 입 게 되면 남편은 아내와 잠자리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또한 다른 배우자 를 구하지 않고, 아내 또한 다른 데로 시집가지 않은 채 각자 수절하며 지낸다면 훗날 화목함을 회복할 수 있다. 세상의 도( 道 )는 짝이 아니면 이룰 수 없고 짝은 화목이 아니면 온전하기 어려우니 절대로 아내를 내 56) 위의 책, 偕 老 第 八 章, 526쪽.
542 인문논총 제67집 (2012) 쳐서는 안 된다. 일단 내치게 되면 근심스런 일이 생기고 원수의 틈이 생기고 친한 정이 상하고 비방이 초래된다. 아내가 원래의 남편을 버리 고 다른 데로 시집가는 것은 몸을 욕되게 하고 윤리를 해치는 일이라 하 여 사람들이 싫어하는 바이거늘, 아내를 내쫓고 다른 아내를 얻는 것은 어찌 또한 추한 일이 아니겠는가. 57) 이처럼 해로는 결혼의 가장 완결적인 마무리지만 만약 중간에 배우자 가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이 경우 재혼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바뇨니는 재혼을 하지 않는 것이 더욱 높은 절개를 보여주는 일이라고 설파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사람은 정결함에 있어 하늘의 신( 天 神 )을 닮아 세속을 초월하고, 혼 인에 있어 땅의 짐승( 地 獸 )을 닮아 비루한 속세를 따른다. 홀아비와 과부의 절개는 혼인의 절개에 비해 더욱 정결하다. (2) 결혼한 부부는 같은 족쇄를 찬 한 쌍의 죄수이다. 서로 당기고 끌 려가며 피할 수도 헤어질 수도 없다. 서로 따르고 인내하며 집안일 의 중임을 함께 짊어지고 가다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편안한 휴식을 얻는다. 한 사람이 죽으면 혼인의 맺음이 비로소 풀어지며 스스로 주인 되는 자유를 얻을 수 있거늘 어찌 다시 혼인하여 이제 막 얻은 자유를 잃는단 말인가. (3) 혼인의 고충은 매우 번잡하고 무거우며 피할 수 있는 곳이 없고 면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혼인을 하고 후회하는 사람은 십에 아홉이 며, 혼인을 하고 편안해하는 사람은 열에 하나이다. 다행히 그곳을 벗어났는데 다시 그 안에 몸을 던지니 무엇 때문인가. 이미 큰 바다 의 험난함을 벗어났음에도 다시 그곳을 떠돌다 파도 속에 죽기를 구 하니 긍휼히 여길 필요가 없다. (4) 물론 후사가 없거나 나이가 젊을 경우, 지향과 기원이 확실치 않고 역량이 부족하여 시세에 위태롭고 일상을 살아가는 데 고충이 있을 57) 위의 책, 527쪽.
박지현 / 알폰소 바뇨니( 高 一 志 )의 서학제가 제부부 권 543 경우, 재혼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인 앙박삭( 盎 愽 削 )은 이렇게 말 했다. 배우자를 잃은 사람은 외로이 살 것을 근심하지 말라. 정결한 사람은 홀로 있고 은둔하길 좋아하니 천신( 天 神 )이 그를 위해 함께 할 것이다. 또한 어찌 살까 근심하지 말라. 천주께서 너의 목숨을 보 호하고 너의 일을 주관하실 것이다. 만약 자녀 때문에 재혼을 한다 면 흔히 전의 아이를 버리고 후의 아이를 기르게 되는데 두 아이 사 이에서 공정치 못한 죄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후사를 잇기 위 해 재혼을 한다 하는데 재혼을 하면 반드시 아이를 낳아 잘 키운다 는 보장이 있는가. 58) 이상과 같은 재혼관은 가장 극명하게 중국의 전통 담론과 배치되는 내 용이다. 중국의 사대부들은 배우자를 잃었을 때 일정한 의례의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재혼을 해야 했다.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못 잊어하는 것은 효의 관점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결혼 생활이 아무리 피곤하 고 번잡한 것이라 하더라도 출가를 하지 않는 한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는 없었다. 중국에서 한 남편 한 아내( 一 夫 一 婦 )의 당위성은 자연 속의 음양이 늘 조화롭게 공존하듯이 반드시 그러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 미에서의 당위이다. 그것은 하느님이 정해주신 유일한 짝과의 해로를 의 미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에겐 아내가 아내에겐 남편이 있어야 한다는 일 반적인 상황의 당위인 것이다. 결혼을 바라보는 바뇨니의 관점과 중국 전통 담론의 가장 큰 차이는, 바뇨니의 경우 개인과 가정을 넘어서는 그 어떤 존재 혹은 가치를 위해 결혼이 복무되거나 극복되어야 한다는 도구 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고 중국의 전통 담론은 결혼 그 자체가 도의 실현 이 일어나는 자연적 현장의 하나라는 목적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이다. 이는 개인-가정-국가의 단위에 균일하게 도가 구현될 수 있다는 전 58) 위의 책, 再 婚 第 九 章, 528-533쪽.
544 인문논총 제67집 (2012) 제를 갖고 있는 대학 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의 관점과 그 도가 단계 적으로 포섭되어 국가라는 최종의 단위에서 최고의 선으로 완성될 수 있 다는 정치학 의 관점이 보여주는 차이의 또 다른 반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7. 결론: 선교의 한 방식으로서 부부 윤리와 달라진 담론 알폰소 바뇨니, 즉 고일지의 서학제가 는 16-17세기 명말 예수회 선 교사들이 중국 선교와 관련하여 견지하고 있었던 적응주의 노선, 즉 유 교와 그리스도교의 융합이라는 문명 교류적 전략과 야심 속에서 등장한 텍스트 중의 하나이다. 그 중에서도 제부부 권은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일차 공동체의 형식이자 최소 단위로서 부부의 윤리가 두 세계관의 충돌 속에서 어떤 담론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살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선교의 한 방식으로 채택된 부부 윤리는 조상 숭배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적 세계관과 유교적 세계관이 첨예하게 만나는 한 지점이기도 하 다. 기독교적 한 남편 한 아내 관념과 유교적 한 남편 한 아내의 관념은 축첩제도를 중심에 놓고 대립하는데 이는 중국의 관료 지식인들이 기독 교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가장 장애가 되는 요인이었다. 바뇨니는 제부 부 권의 저술을 통해 기독교적 한 남편 한 아내 관념의 당위성을 설파하 고자 했는데, 이것이 실제 중국 지식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고찰이 어렵다. 다만 제부부 권의 내용을 살펴볼 때, 기독교적 한 남편 한 아내 관념 의 당위는 태초에 하느님이 그렇게 정하신 것이라는 신앙의 문제에 그 유일한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이후 20세기 동서 문명의 충돌 속에서
박지현 / 알폰소 바뇨니( 高 一 志 )의 서학제가 제부부 권 545 합리적 이성에 바탕을 둔 근대적 시민 인권 개념의 도입과 함께 강고하 던 축첩제도가 일시에 무너지고 기독교적 한 남편 한 아내의 혼인 제도 가 구축되던 상황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제부부 권의 이러 한 한계는 바뇨니라는 인물이 실존했던 시대의 한계이기도 하고 그가 지 닌 신앙적 세계관의 한계이기도 하다. 실제 바뇨니는 남녀의 결혼, 부부와 가정의 문제를 그 시기 유럽의 카 톨릭 교회 담론이 그랬듯 신성성과 세속성의 두 가지 모순된 잣대를 가 지고 바라봤던 것으로 보인다. 결혼은 원죄의 확인인 동시에 인류의 보 존을 위해 하느님이 허여하신 성사( 聖 事 )의 하나다. 사랑과 화목으로 이 루어진 가정은 구원을 받기 위한 현실의 물적 토대인 동시에 금욕을 위 한 실천의 장이었다. 이러한 모순성은 바뇨니가 제부부 에서 기독교적 한 남편 한 아내 가정의 설파를 위해 동원했던 두 가지 방식, 즉 결혼과 가정이 지닌 신성성에 대한 긍정의 논리와 그것이 지닌 세속성에 대한 부정의 논리가 어떤 맥락에서 한데 뒤섞여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결혼과 가정에 대한 이러한 모순된 두 가지 관점의 제부부 속 부부 윤리 담론이 전통적인 중국의 담론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에 대해 다음 의 두 가지 측면에서의 가설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명대 후 기 중심의 이완이 확산되면서 분출됐던 쾌락의 담론에 세속성에 대한 부 정의 논리가 미친 영향이다. 원죄와 타락의 근원으로서 결혼과 가정에 대한 바뇨니의 부정적 견해는 당시 확산되던 쾌락과 욕망의 담론에 반성 의 기제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음, 결혼과 가정이 그 자체로 도의 실현이었던 전통 사회의 타성에 대해 신성성에 대한 긍정의 논리가 미친 영향이다. 신이 허여한 성사로서 결혼과 가정에 대한 바뇨니의 긍정적 견해는 남녀 간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중국의 전통적 담론에 고귀함과 정결함이라는 새로운 가치 지향의 담론을 결합시킬 토대를 마련했을 가
546 인문논총 제67집 (2012) 능성이 있다. 실제 명말 금병매 ( 金 甁 梅 )라는 작품에서 청초 홍루몽 ( 紅 樓 夢 )이 라는 작품으로의 전환은 어쩌면 남녀의 사랑과 결혼에 관한 바로 이러한 기독교적 부정과 긍정의 논리가 중국의 전통 담론과 만나 만들어낸 새로 운 담론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것이 필자의 다소 무리가 있는 생각이다. 서학제가 제부부 권의 내용이 사랑에 관한 중국의 전통 담론에 직접 적인 영향을 줬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담론의 흐름과 방향은 분명 그러 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바뇨니는 적응주의 전략의 일환으로 부부의 직분과 화목의 논리가 비슷한 두 세계관의 융합을 시도하고 기독 교적 한 남편 한 아내 가정의 구축을 통해 그리스도 신앙을 전파하려 했 지만 그것의 결과는 신앙이 아닌 다른 문화의 영역에서 다른 방식, 다른 양태로 전개되었다는 것이 본고의 조심스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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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 / 알폰소 바뇨니( 高 一 志 )의 서학제가 제부부 권 549 ABSTRACT The Qifufu ( 齊 夫 婦 ) Volume of Alfonso Vagnoni s( 高 一 志 ) Xixueqijia( 西 學 齊 家 ) - The ethics between husband and wife as a missionary strategy - Park, Ji Hyun Alfonso Vagnoni s( 高 一 志 ) Xixueqijia( 西 學 齊 家 ) is one of the texts that appeared as a result of the accommodation position, which adhered to the strategy of cultural exchange through the fusion of Christianity and Confucianism, adopted by Jesuit missionaries in China in the 16~17th century. Xixueqijia introduced the European family ethics advocated by Christianity advocates, such as the ethics between husband and wife and the education of children. This Chinese volume may be seen to be connected to two other volumes, Xixuexiushen( 西 學 修 身 ) and Xixuezhiping ( 西 學 治 平 ). The serial publication of these three volumes can be understood as an accommodational reaction to the Xiushenqijiazhiguopingtianxia ( 修 身 齊 家 治 國 平 天 下 ) discourse that appears in Daxue( 大 學 ). At the root of this was the intention to summon Aristotle s Politika, which also contains, in its discourse, the same concentric structure of individual -family-country.
550 인문논총 제67집 (2012) The aim of the article is to examine, through the analysis of the Qifufu ( 齊 夫 婦 ) volume of Xixueqijia, how attempts were made to establish some common ground regarding the ethics between husband and wife amongst the clashing of two worldviews. The ethics between husband and wife, as well as the issue of ancestor worship, represented the intersections where the Confucian worldview and the Christian worldview sharply clashed. The Christian notion of monogamy and the Confucian notion of the concubinage system stood at the center of conflict, and this issue acted as the greatest barrier in the acceptance of Christianity by Chinese officials. In China, it was believed that if monogamy( 一 夫 一 婦 ) ought to be maintained, it was because nature needed to coexist in harmony, as Yin and Yang must always maintain a balanced state. In other words, monogamy was not something ordained by God. The main difference between Vagnoni s perspective of marriage and that of traditional Chinese discourse is that while he regarded marriage as something that must be maintained or overcome in order to pursue a value greater than the mere individual or family, the traditional Chinese perspective regarded it as something that happens naturally as one follows Dao( 道 ). It can be said that this also demonstrates the difference between the perspective of Xiushenqijiazhiguopingtianxia in Daxue which sees Dao as existing unformally throughout the levels of individual-home-country and the perspective of Politika which considers that it is at the final level of the state that Dao can arrive at the greatest virt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