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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4 동북아 문화공동체 특별연구위원회 구 분 성 명 소 속 및 직 위 위 원 장 김 광 억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김 우 상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 준 식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전 영 평 대구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위 원 정 진 곤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 정 하 미 한양대 일본언어 문화학부 교수 최 진 욱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 흥 석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본 서는 경제 인문사회연구회 2005년도 협동연구사업 의 일환으로 경제 인문사회연구회 소관 8개 국책연구기관과 3개 기관이 협동으로 수행한 연구과제 중 하나입니다. 본 서에 수록된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당 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5 요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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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I. 연구의 의의 및 분석틀 동북아시아 문화공동체 형성이라는 대 주제와 관련하여 대중문화 의 영역은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그것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 동북아시아라는 보다 큰 지역을 중심으로 상호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번영의 기틀을 마련 할 필요성을 주장하는 다양한 언설들에도 불구하 고, 국가 간에는 여전히 불평등이 존재하고, 역사인식의 현격한 차이 가 발견되며, 정치경제적인 현실에서도 국가중심의 이해관계를 벗어 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대중문화의 영역에서는 1990년대 들어 주목되었던 일류( 日 流 ) 현상이나 최근 부각되고 있는 한류( 韓 流 ) 현상 등에서 관찰할 수 있는 바와 같이 특정한 문화 상품 의 소비라는 행위를 통하여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공통의 요소를 발견해 갈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듯이 보인다. 인터넷과 미디어 산업의 발달은 국가의 정책이나 기업의 대응이 따라가기 어려 울 정도의 빠른 속도로 전 세계의 소비자를 연결하고 있으며, 특정 문화 상품에 대한 소비자, 수용자의 반응은 생산자, 기획자는 물론 유통에 종사하는 측에서 조차 전혀 의도하거나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 로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대중문화 및 문화상품의 소비 에 나타나는 초국가적인 흐름의 분석을 통하여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는 문화공동체 형성의 가능성을 탐색해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먼저 동북아 공동체의 주된 주체라 할 수 있는 한국, 중국, 일본의 각국에서 아시아의 대중문화에 대한 인 식과 흐름이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는가를 살펴보고 그것을 배경으로 현황에 관한 이해 및 전망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사실 대 중문화의 흐름을 동북아 라는 지역에 한정하여 논하는 것은 매우 인 위적이고 부자연스런 설정이다. 그것은 1990년 이래 현격하게 긴밀 해진 대중문화의 교류 현상은 동북아뿐 아니라 대만, 싱가포르, 베 트남, 타일랜드 등 동남아시아 각국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전역에 걸 iii

8 쳐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의 지구적 확산을 서구와 비 서구로 나누고, 일본이나 홍콩, 한국 등이 아시아 전체를 포함하는 지역의 새로운 문화중심이 되는 가능성을 흔히 말하는 탈중심화 혹 은 다중심화 의 역학에서 이론화 하고자 할 경우에도 동북아의 3국 과 동남아시아의 국가들을 나누어 접근할 근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문화산업이나 대중문화 수용에서 주요 배경의 하나로 이해되고 있는 자본주의적 발달단계나 근대성의 차이를 보더라도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동일한 NIES계열에 속하는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과의 상호교류 확산의 가능성을 논하는 것이 더욱 용이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리적, 역사적 근접성으로 인하여 한국인의 인식 속에서 중국과 일본은 동남아시아와 구분되는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그러한 인식이 바로 동북아 공동체 논의의 근저에 깔려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 보고에서는 다소 인위적인 경계 짓기의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 중국, 일본에 한정하여 대중문화 교 류의 역사적 배경 및 현황을 살펴보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증진방안 에 대해서는 비록 단기간이기는 하나 본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접하게 된 현장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한 중 일 3국간의 대중문화 교 류를 보다 원활히 하고 나아가 그를 통한 상호이해 및 공유의 영역 을 넓혀가기 위하여 우리가 당면한 과제가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것 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II. 한 중 일의 대중문화 수용의 역사와 현황 여기서 현황은 주로 동아시아 각국에 일본 대중문화의 침투, 즉 소위 일류( 日 流 )가 대두된 것은 시작으로 미디어 산업 간의 상호교 류 및 연계가 크게 확대되는 1990년대 이후를 말한다. 그러나 이 보 고에서 간단하게나마 그 이전의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는 것은 그를 통하여 1990년대 이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 지니는 의미를 보다 넓 iv

9 은 시각에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며, 나아가 앞으로의 흐름을 전망 하는데도 많은 참고가 될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1. 한 중 일 아시아 대중문화 수용의 역사적 배경 최근 들어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대중문화의 교통이 크게 강조 되고 또한 주체적인 소비자의 역할이 주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히 최근에 이르기까지 동북아시아에 있어서의 대중문화의 흐름은 국가 중심의 정치경제적 역학에 의해 크게 좌우 되어 왔음을 부정하 기 어렵다. 현대적인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1900 년대 초에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특히 동북아시아 3국에서의 대 중문화의 현황은 문화산업이 민족정체성의 문제 및 국가주의적인 헤 게모니와 밀접히 관련되어 왔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일본의 식민지배 하에 대중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하였 으며, 해방이후에는 일본의 대중문화 수입이 차단된 속에서 미국 대 중문화 상품의 절대적 지배를 받아왔다. 그와 같은 상황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서냉전 구도의 형성에 한국이 최전선으로 편입되었 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해방 이후 최근에 이르기 까지 국가의 공식적 정책으로 채택되었던 일본 대중문화 상품의 수 입 금지 조치 역시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한국이 독립된 국민국가로 서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데 일본의 영향력을 최대한 차단하여야만 했던 절박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문화적 독자성을 개발하고 추구하는 방향으로가 아니라 미국의 대중 문화 상품을 대량으로 받아들이고 흡수하면서 그에 바탕 하여 문화 산업의 기반을 유지하고 소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한편 체제 상의 차이로 인하여 공산화 이후 중국 본토와의 대중문화 교류도 단 절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1990년대 이전 한국과 일본 및 중국과의 대중문화 v

10 교류가 국가적 이해관계 및 국제정치적 역학에 의해 정상적인 흐름 이 차단되고 왜곡되어 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아가 1980년대 말 중국의 개혁개방 및 한국의 민주화 이후 단계적으로 진행된 중국과 일본의 대중문화에 대한 개방조치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1990년대 한국사회와 경제의 규모는 일정한 정도로 성장하여 비록 일부의 우려가 있었으나 전반적으로는 중국과 일본의 대중문화 요소가 유입되더라도 자국의 문화산업이나 경제가 크게 위협받지 않 을 것이라는 판단이 그 배경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간의 정치경제적 역학은 여전히 대중문화산업과 문화소비 현상 의 기초적 환경으로서 강고하게 존재하며, 문화의 흐름에 밀접한 영 향을 미치고 있음이 확인된다. 중국의 경우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과 서구의 영향 속에 대중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하여 1940년대에는 대개 틀을 잡고 있었고, 일 본과는 상당한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중화인민공 화국 성립 이후 본토에서는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한 후 같은 사회주 의 국가인 소련이나 동구권과의 교류 활동을 제외하고는 다른 문화 권과의 교류가 거의 자취를 감춘 반면, 홍콩은 아시아 여러 나라와 합작의 방식을 통해 매우 활발한 교류를 실천하게 된다. 1950년대 홍콩 영화산업은 한국과 일본,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그리고 70년대에는 유럽과 미국 등 다양한 나라들과 합작하 여 영화를 제작하였다. 이처럼 홍콩이 다른 나라와 합작 영화 제작 을 통해 활발하게 교류를 하는 동안 중국 본토는 대약진운동, 반우 파투쟁, 문화혁명 등 잇달아 등장한 정치적 캠페인들과 대중운동의 영향으로 영화산업을 포함한 대중문화 영역 전체가 계속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1980년대 들어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단절 되었던 대만과 홍콩의 대중문화가 중국 본토로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중국에서도 다른 나라와의 대중문화 교류가 다시 등장하게 vi

11 되었다. 개혁개방 정책의 실시와 문화산업의 성장이 있었지만 지난 시기의 정치적 격변으로 인해 만들어진 공백으로 인해 중국 문화산 업은 대중들의 요구를 충족시킬만한 마땅한 콘텐츠가 부족한 상황에 서 홍콩과 대만 및 지리적으로 근접한 일본의 대중문화들이 그 자리 를 채우기 시작하였으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는 소위 강타이( 港 臺 ) 로 일컬어지던 홍콩과 대만의 대중문화가 압도적으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반면 일본에서는 중국이나 한국과는 달리 아시아로부터의 대중문 화 유입이나 교류를 특별히 금지하거나 차단하였던 예는 보이지 않 는다. 오히려 1900년대 들어 일본의 대륙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시아주의 가 지배 이데올로기로 부상하면서, 일본 문화 산업의 활동은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동아시아 전역에 걸쳐 확장되 었다. 중국의 만주, 상해와 조선의 경성 등지에 영화협회를 설립하 어 일본영화업계의 대륙진출 거점을 마련하였으며, 음반업계도 영화 업계와 연계하여 만주나 상해 등지로 진출하였다. 일본 내에도 1930 년대에 소위 대륙붐 이라 하여 영화와 가요를 비롯한 대중문화 영역 에서 중국대륙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현상이 나타났으며, 상당한 수의 중국이나 조선인 가수, 연기자들이 일본에 서 데뷔하여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0년대에서 1940년대 전반에 걸 쳐 일본에서 일어난 대륙붐 은 국책에 의한 붐의 조성이라는 성격이 강했으며, 대중문화 영역에서 일어난 붐은 아시아주의 이데올로기의 좀더 대중적이고 정서적인 차원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 다. 따라서 대륙붐에서 반일하고 항일하는 아시아의 모습은 그려지 지 않았으며, 중국이나 조선에서 만들어진 영화 등이 직접 일본에 소개되고 일본인에게 소비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1930년대에서 1940년대 전반에 걸친 대륙붐 에 이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일본에서는 1970년대 이후의 아시아붐(1980년대의 한국붐을 포함함), 그리고 1990년대 이후 계속되어 온 아시아붐과 vii

12 2000년대의 한류 등 몇 차례 동아시아의 대중문화 붐이 발견된다. 1970년대 아시아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의 주된 배경은 한국, 중국과 의 국교 정상화였다 (각각 1965년과 1972년). 물론 그 이전에도 1950년대에는 한국의 길옥윤 ( 吉 屋 潤, 일본에서는 기치야 준으로 알 려짐)이 재즈밴드에서 색소포니스트로 활약하고 있었고, 기타 일제 시대에 형성된 인맥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 뮤지션들이 있었으며, 1960년에는 패티 김이 NHK가 공식적으로 초청한 최초의 한국가수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1965년의 한일수교는 양국 의 대중문화 교류에 있어 하나의 커다란 분기점이 되었다. 곧 일본 음반업계의 주도하에 이미자, 패티 김, 남상규, 김소희(판소리) 등 많은 한국인 가수들이 일본에 와서 음반을 취입, 판매하였다. 그러 나 한일수교라는 정치적 맥락과 일제시대의 인맥 등을 배경으로 일 본의 업계가 중심이 되어 추진하였던 당시의 대중문화 유입의 시도 는 일본에서 한국가요의 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반면 아시아인의 활동이 일본인 사이에서 전후 최초의 아시아붐 이라 할 만한 반응을 일으키게 한 것은 중국계의 영화와 가요였다. 1970년대에 이소룡에 의한 홍콩의 쿵푸영화 붐, 1970년대 말의 광동 팝의 인기, 그리고 1980년대 초에는 성룡의 영화가 다시금 쿵푸영화 붐을 불러일으키는 등 홍콩영화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아시 아 소비의 견인차 역할을 계속해서 수행하였다. 대중음악의 영역에 서는 1971년에 대만가수 歐 陽 菲 菲 (오오양휘휘)가 일본에서 가장 권 위있는 일본레코드대상의 신인상을 수상하였으며, 이어 1974년에 데 뷔한 Teresa Teng( 鄧 麗 君 )은 1995년에 사망할 때까지 일본에서 지 속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또 같은 시기에는 홍콩에서 내일한 Agnes Chan( 陳 美 齡 ), Frances Yip( 葉 麗 儀 ) 등이 일본에서 활동하기 시작 하는 등 이 시기만해도 20명 이상의 동남아시아 가수가 일본에서 데 뷔하고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즉 1970년대 일본의 아시아 붐은 비록 한일수교(1965), 중일수교 (1972)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는 해 viii

13 도 실제로는 중일수교와 더불어 국교가 단절된 대만 그리고 홍콩 등 지와의 교류가 오히려 활발해졌다는 점에서 단순히 수교라는 정치적 맥락이 이 붐을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일본에서 전후 최초의 한국의 대중문화 붐이라 할만한 것은 1980 년대 들어 가요부문에서 나타났다. 1970년대의 아시아붐과 연관되어 은경자(박은경), 미치 걸, 릴리 김, 김상희, 최양숙 등 한국의 가수 들이 일본에서 데뷔하고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서 처음으로 큰 인기를 얻은 것은 1977년에 한국가요의 번안곡 <가 슴아프게>를 히트시킨 이성애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크게 히트를 했고 이어, 나훈아가 데뷔하는 등 한국인 가수의 일본 데뷔가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1988년의 서울 올림픽 때에는 김연자가 부른 공식송 <아침의 나라에서>( 吉 屋 潤 작 곡), 코리아나가 부른 <손에 손잡고> 등이 유행하였다. 그리고 1989 년말에는 일본 최대의 국민적 인 TV가요축제, 紅 白 歌 合 戦 에 조용필, 김연자, 계은숙, 패티김 등 4명의 한국인 가수가 출장하면서 한국 가요붐이 절정에 달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 한국가요 붐을 보면 한 국인 가수들이 엥까 ( 演 歌,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는 것이 대부분이 었고, 이성애나 조용필 등 한국에서는 소위 트로트가수 가 아닌 가 수들도 일본에서는 엥까가수 로 활동한 경우가 많았다. 즉 한국가요 =엥까 라는 등식이 성립이 되었으며, 이러한 현상은 엥까라는 장르 가 오래되고 향수어린 옛 노래로 간주된 당시 일본인의 인식의 틀에 서 한국인 가수나 한국가요가 과거의 것으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인식되고 전유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ix

14 2. 한 중 일 아시아 대중문화 수용의 현황과 대응 가. 한국의 아시아 대중문화 유입현황과 대응 1990년대 들어 한국의 아시아 대중문화 유입 현황에 있어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1998년 일본의 대중문화상품에 대한 단계적 시 장개방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중국의 대중문화 상품에 대해서는 홍콩 및 대만의 문화상품의 경우 해방 이후로도 계속 단절이 없이 문화상품들이 한국으로 유입되어왔기 때문에 실질적인 단절이 없었 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홍콩의 영화산업 상품과 무협 및 역사 드 라마 등은 1970년대 이후 한국의 대중문화 소비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해왔고, 작품과 스타에 따라서는 열광적인 국내 팬 들을 보유해오기도 했다. 중국 본토의 경우는 1980년대 말 중국의 개혁개방 이래 장 이모우, 첸 카이거를 비롯한 제5세대 영화감독이 라 불리는 중국 본토 출신 감독들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면 서 한국에서도 그들의 작품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는 몇몇 영상물에 한정된 것이었으며, 가요 등 기타의 분야에서 중국의 대중 문화는 한국의 소비자들에게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반면 일본 대중문화 상품은 1945년의 해방 이후 1990년대 중반까 지 공식적인 국내 수입이 금지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대중문화 상품들은 여러 가지 비공식적 경로를 통해 특히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 활발히 소비되었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쳐왔다. 비공 식적인 차원에서 일본의 음반과 음악들은 불법복제를 거치거나 아니 면 한국 대중음악에서 그 원전 표절의 시비를 끊이지 않게 발생시키 며 보이지 않는 영향력으로 존재해 온 것이다. 이러한 점은 드라마 나 기타 TV 프로그램들에서도 마찬가지로 공식적 교류나 유입이 차 단된 상황에서 일본의 포맷을 모방하였다거나 표절에 대한 시비가 줄곧 제기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 방침이 발표되고 일본의 문화 상품에 대한 단계적 수입개방이 이루어졌다. x

15 그러나 아직 그 영향은 미미한 정도에 머물고 있다. 예를 들어 2002년을 기준으로 볼 때 국내 극장용으로 수입된 영 화의 원산지를 보면 미국 영화가 170편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 고, 그 다음으로는 일본(18편), 프랑스(16편), 독일(11편), 홍콩(10편) 의 순서를 보인다. 중국의 경우 대중문화 산업이 아직 미약한 본토 의 작품들은 비교적 적은 편이며, 여전히 홍콩의 오락영화가 대종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여년간 한국 영화소비 시장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온 홍콩영화의 수입과 소비도 1996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한편 장르별로 보 면, 드라마에 있어서는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이 거의 없는데 비해 오 히려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더 많았으며, 대신 만화(애니메이션)에 있어서는 중국과 홍콩으로부터 수입된 것이 한 건도 없지만 일본으 로부터는 지속적으로 상당한 양의 애니메이션 작품이 수입되어 국내 에서 방영되었다. 특히 애니메이션 분야에 있어서는 미야자키 하야 오 감독의 세계적 영향력 아래 있는 작품들이 특히 2000년대 들어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이외에 [공각기동대], [아키라] 등의 공상과학물 또한 한국에서 적지 않은 매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 다. 케이블 텔레비전 시청이 급격히 늘어난 2000년대 중반 한국의 각 가정에서 방영되는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의 프로그램들 중 절대 다수 또한 일본 작품이다. 또한 일본의 대중문화에 대한 수입개방이 있기 훨씬 이전부터 한 국 텔레비전의 드라마를 포함한 각종 프로그램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일본의 그것을 모방하여 기획되었다는 소위 표절시비 가 여러 차례 제기되었으나 개방조처 이후 이러한 표절시비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의식과 국제적 법률조치가 강화됨에 따라 무단 복제가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그에 대신하여 포맷 수입 이라는 이름으로 프로그램 형식을 수입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특히 한국 텔레비전의 오락프 로그램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일본으로부터의 포맷수입에 의존하여 xi

16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일본 대중가요 상품에 대한 수입규제가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 던 최근까지 일본의 대중가요가 음반을 통해 국내에서 소비된 사례 는 최근까지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그러다가 2004년에 들어 일부 일본 가수들에 대한 국내 팬클럽이 결성되고 광범한 소비층을 확보 하기 시작하는 경향이 나타나 2005년에는 보다 본격적인 일본 대중 음악의 인기가 국내시장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5년 3월, 한국 국내 유명 음반 체인인 교보 핫트랙스의 일본음악차트 위클리 톱10 에서는 나카시마 미카의 뮤직 이 1위, 보아의 Best of Soul 이 2위 에 올랐다. 더 차트 의 주간 팝 앨범 차트 에서는 보아의 Best of Soul 이 1위, 케니지의 At Last: The Duets Album 이 2위, 그리고 나카시마 미카의 뮤직 이 3위에 올랐다. 나카시마 미카가 일본 내에 서 인기있는 다른 일본 J-pop 가수들을 제치고 유독 한국에서 인기 를 끄는 이유는 그가 부른 노래 원곡이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주제곡으로 번안되어 불리어져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일본어로 된 가창곡을 삽입해 넣을 수 없지만, 한국 가수가 일본 원곡을 한국말로 리메이크(번안) 해서 부르게 되면 이는 곧바로 일본 가수의 음악에 대한 홍보효과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일본 가수들의 음반을 한국에 유통시키는 직배사 소니 BMG, EMI 등은 2005년에 들어 여러 일본 가수의 음원을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 O.S.T.를 기획 제작하는 한국 음반사들에 제공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현재 이루어지는 대중문화 소비가 역시 다중적 채널, 다차원적 매체의 혼합과 상호영향으로 얽혀 진행된다는 점이 다. 한국 드라마의 국내 인기가 일본 대중가요의 국내 확산으로 이 어질 수 있으며, 거꾸로 한국 드라마의 일본 내 인기가 한국 대중가 요의 일본 진출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다시 각국의 모바일 캐릭터와 게임에 교차적인 방식으로 영향을 주면서 문화의 xii

17 장르별 혼성화, 국적적 혼성화, 문화상품 정체성의 혼성화를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대중문화산업 원류로서의 미국 대중문화가 가장 기본적인 환경이자 리소스의 제공자로서 튼튼하게 존재하고 있다. 일본의 게임 프로그램 수입에 있어서는 사실상 그동안 별다른 제 한이 없었다. 전반적인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소 니의 플레이스테이션 2(PS2) 게임 프로그램은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것처럼 한국 안에서도 절대적인 시장적 지배력을 지니고 있다. 소니, 세가, 닌텐도 등이 세계시장의 99%를 석권하고 있는 게임기용 비디오 게임물 시장은 2003년 말 추가로 개방되기 이전부터 플레이 스테이션용 프로그램 한 가지 종류만 해도 한국 내에서 2002년에 1,500억원, 2003년에는 2,500억여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2004년 에도 증가추세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 경우는 게임 소프트웨어가 일본어로 제작된 것에 대해 수입이 금지되어 있던 당시 유럽과 미국 지사를 통해 영문판이 우회공급된 것으로서, 현재는 일본에서 새 게 임 출시 후 한국수입까지 3개월 이내에 이루어지며, 한글판 게임의 동시제작도 어렵지 않아 시장 활용의 동시성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상태다. 플레이스테이션 이전부터 한국에서 널리 소비되어온 세가와 닌텐도의 소프트웨어는 그 매출액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적으나 한 국 내 게임 소비시장에서 차지하는 일본의 비중을 확고히 해왔다. 그렇지만 한국의 게임 소프트웨어 시장이 일본 상품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문화적 콘텐츠 성격으로 볼 때는 중국의 영향 또 한 적지 않다. 또한 한국에서 주축이 되어 개발, 판매하기 시작한 한 국산 게임 소프트웨어 안에서도 일본과 중국의 대중 문화적 성격들 이 강하게 담겨져 있으며, 개발자들은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일본 적 성격과 중국적 성격을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그들의 상품을 만들 어가고 있다. 이렇게 한국에서 개발된 게임들은 중국의 게임시장에서 인기가 높 xiii

18 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 원인은 우선 스토리상에 있어서 삼국지와 수호지를 비롯한 다양한 중국 무협소설의 스토리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 많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한국에서 개발되어 일본과 중 국으로 팔려나가는 게임들에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일본 게임산업 소 프트웨어의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던 요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해 중국의 고전적 무협지적 내용이 1970년대 이후 중 국과 홍콩의 무협 영화적 성격을 입고 발전되어, 1990년대 이후 특 수효과가 게임에서 한층 발전된 형태로 활용됨으로써 중국 뿐 아니 라 한국,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끄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 서 한국의 업체들은 중국과 동남아 등지에 게임 소프트웨어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중국 및 대만의 자본출자를 받아 현지법인을 설립하 여 현지문화적 요소를 담아 개발한 상품들은 기획에서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다국적적 문화적 요소의 조합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으로 나타나며, 캐릭터와 프로그램 개발에 있어서도 다국 기업간 합 작과 제휴가 증가하고 있다. 나. 중국의 아시아 대중문화 유입현황과 대응 중국의 경우에도 1990년대 들어 외국과의 대중문화 교류가 본격 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최근에는 한류( 韓 流 ) 현상이 주목되고 있다. 중국의 한류는 특히 대중음악 분야에서 한국 가수들의 중국 공연과 라디오 방송, 그리고 음반의 형태로 주로 젊은 층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한국 드라마도 젊은 층이 주요 시청자이지만 점차 외국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 장년층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시청자 층을 확보해 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중국과 외국의 대중문화 교류는 심각한 불균형 상태에 있다. 이와 같은 특성은 90년대를 지나 현재까지도 계속 이 어지고 있어서 대중음악의 교류는 일방향적 유입이 지배적이고 드라 마나 방송 프로그램도 동남아 지역과 외국의 화교권을 제외하고는 xiv

19 수출 실적이 거의 없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영화의 경 우 역시 이러한 실정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아직까지 중국의 문화 산업이 앞으로 어떤 방향의 발전경로를 따를 것인지, 외국과의 대중 문화교류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지, 지금과 같은 심각한 불균형의 상태를 중국 정부와 문화산업계가 어떤 방식으로 극복 할 것인지에 대해서 예단하기는 힘들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되고 있는 전 지구화( 全 地 球 化 : globalization)의 과정 속에서 중국 대중문화가 지 금보다 더욱 빨리 변화하고 교류의 형태 역시 지금과는 다른 양상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점만큼은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또한 문화 산업은 자본의 흐름에 매우 민감하다는 점에서 중국의 경우도 자본 의 영향에서 결코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역시 중국 문화 산업의 현재 상태에서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점이다. 이와 같은 여 러 가지 변화의 양상은 중국 사회의 거시적 미시적 차원의 변화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적인 맥락과 흐름 속에서 관찰 분석되어야 한다. 중국은 개혁개방, 시장경제의 도입, 전세계적 흐름에의 동참 등으 로 많은 변화를 겪고 있고, 문화산업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즉 이전 의 당과 정부의 선전도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던 데서 벗어나 하 나의 산업분야로 자리잡고 있고, 또 국가는 전세계적 추세에 발맞추 어 문화산업이 국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발전을 위 한 여러 가지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고 있다. 그 중 일부는 계획했 던 방향으로 정책이 시행되어 변화를 일으키고 있지만, 또 다른 부 분에서는 아직 눈에 뜨이는 정책의 수립과 시행이 없는 상황이다. 다만 한류 현상에 보이는 한국의 대중문화 상품의 유입에 대응하여 중국정부는 통제자의 역할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 다. 즉 여전히 존재하는 체제의 경직성과 폐쇄성으로 인해서 체제나 정권, 그리고 소위 미풍양속에 위협이 될 만한 문화콘텐츠를 생산 수입 유통되지 못하도록 막는 데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주어지며, xv

20 이는 콘텐츠 자체에 대한 심의와 수정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문화상 품의 생산과 유통에 관여하는 모든 기관에 대한 지속적 통제를 통해 서 이루어지고 있다. 대중음악, 드라마, 영화 모두를 포함해서 중국의 아시아 대중문화 교류의 문제점은 수입초과라는 것이고, 특히 한국과는 거의 일방적 이다시피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한 문제가 발생한 중요한 원 인 중의 하나는 교류가 완성된 문화상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대중문화의 교류는 문화산업이 발달한 국가나 지역에서 그 렇지 못한 지역으로 흐르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중국은 거대한 시 장에 비해서 자국 내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콘텐츠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우수한 콘텐츠가 유입되기 쉬운 여건에 놓여 있다. 게다가 한국은 일부 영화나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인정받 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있고, 특히 아시아 각국에서는 열렬한 환영 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의 전체적인 대중문화의 자체 생산 능 력은 낮은 편이기 때문에 한국과의 교류에서 거의 일방적으로 받아 들이는 쪽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류의 흐름은 장기적 으로 교류 자체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고, 교류를 통한 문화 공동체 형성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가는 데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 다. 그런 의미에서, 물론 다른 이유들도 있지만, 드라마와 영화의 합 작 내지 합자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도 상당히 바람직한 움직임이라고 생각된다. 중국 내에서 한류 상품들의 인기에 대하여 중국의 대중매체나 문 화산업계에서는 상당한 정도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 드라마 에 대한 중국 제작자들의 공격은 한국 드라마의 낮은 질을 공격하는 경우에서와 같이 그 근거가 빈약하거나 한국 드라마 때문에 중국 드 라마들이 황금시간대에서 밀려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이 사실 관계의 오류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 서는 한국 드라마는 외국 드라마 방영 제한 규정에 묶여 있어서 그 xvi

21 영향력에 한계가 있고, 또 한국 배우들이 중국 시장을 잠식한다고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들은 또 한 한국 드라마가 중국 드라마 시장에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은 국내 시장이 아니라 홍콩, 대만, 동남아시아 등의 해외시장이라는 것을 밝히고, 한국 드라마가 중국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상황에서 중국 제작자들은 압력을 느낄 수 있겠지만, 한국 드라마의 좋은 점을 본 받아서 압력을 변화와 발전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등장 한다. 한국의 드라마, 더 넓게는 한류가 중국대륙에서 뿐만 아니라 홍 콩, 대만, 일본, 동남아 등지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에 대한 중 국 언론들의 해석도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중에서 가 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한국이 여러 국가들과 같이 유교문화권 혹은 중화문화권에 속해 있으면서, 유교문화의 전통을 유지한 채 표현은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잘 한다는 점이었다. 그 외에도 한국의 유행가 가사는 청년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번뇌와 우려, 쓰고 달콤한 정감 등을 묘사하고 있으며, 또한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또 가볍 고 건강한 마음과 자세로 이후에 더욱 큰 도전을 맞는 내용들을 담 고 있다고 한다. 한국 영화에서도 인간과 인간 사이의 동정( 同 情 ), 약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 사회적 봉사에 대한 생각 등을 발견할 수 있으며, 한국 영화는 자신의 민족문화에 대해서 비교적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음을 밝힌다. 그 외에도 한류가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전지구화 과정 중 한국문 화가 자신의 위치를 찾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발견된다. 즉 중국의 현대사회문화에는 특색과 생명력이 결핍되어 있고 민족 특색의 문화가 없다. 한류는 문화 전지구화 과정 중 출현한 전지구 화와 지역화(localization)의 충돌이고 조화이며, 전통논리와 현대성 의 충돌, 동서양 가치관의 충돌을 남김없이 구현하고 있고, 따라서 많은 중국인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지들과 연관되 xvii

22 어 한류는 동서양 문화의 결정체라거나, 전지구화 시대에 한류는 아 시아문화의 존속을 설명하는 유력한 증명이라는 등의 해석도 등장하 고 있다. 한류를 논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또 하나의 점은 이것이 중국의 젊 은이들에게 특히 호소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들은 음악이나 드라 마에 대한 선호를 넘어서서 그들의 의복, 장신구, 머리모양 등을 한 국의 스타, 특히 힙합 스타일의 댄스그룹을 따라하고,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제 최신 전자수첩, 휴대전화, 컴퓨터 등을 소비하는 등 생 활 전반적으로 한류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 이들을 하한주( 哈 韓 族 ) 라 부르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종교적 신앙이나 전통적 유 교 등을 믿지 않는 많은 신세대에게 정신적 지주가 필요한 상황에서 중국의 유행문화가 미성숙하여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므 로 한국 유행문화가 그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한류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언급들도 등장하고 있다. 즉 유행문화는 시장경제의 한 수단이고 많은 경제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이들은 그 때문에 한국 정부가 문화산업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고 이해하며, 또한 한국 정부가 제도적으로나 법률적 으로 문화산업을 지원하고 인재를 양성하며 또 동북아문화공동체 구 축에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기도 한다. 위의 담론들이 한류에 대해 객관적,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키는 것 이라면 한류에 대한 비판적 담론도 폭넓게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한 류상품의 내용에 대해서는 드라마에 대해서는 주인공이 항상 불치병 이나 난치병에 걸리는 등 스토리가 유사하다거나 극의 전개가 너무 느리다는 점이 지적된다. 그리고 소위 잘 사는 사람이 많이 등장하 고 남녀 주인공이 너무 잘 생기는 등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나아가 한류도 결국 하나의 유행에 불과하고 사람들은 늘 새 로운 유행을 추구하기 때문에 일류( 日 流 ) 가 흘러갔듯이 한류도 새 로운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한 때의 유행으로 흘러갈 xviii

23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류의 생산이나 유통에 대한 비판으로는 중 국에 진출한 한국의 대중문화 제작자와 유통업 종사자 중에는 탄탄 한 대기업도 있지만 영세기업이 많아서( 魚 龍 混 雜 ) 한류의 제작과 시 장 운영 면에서 문제가 많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중국 내의 한국 대중문화 소비자들의 유형은 크게 적극적으로 소 비하는 부류, 소극적으로 소비하는 부류, 그리고 소비하지 않는 부 류의 세 범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어느 부류에 속하든지 대체로 한국 대중문화의 질적 우수성은 인정을 하면서도 맥락과 상황에 대 한 판단 속에서 한국의 대중문화상품 소비양상과 반응은 다양한 층 위를 형성한다. 대부분의 적극적 소비자들 특히 젊은 층 은 불법 적이거나 비합법적인 방식으로 한국의 대중문화 상품을 소비하지만 이것은 어느 정도 중국 대중문화의 산업구조의 특성에 기인한다 한국 대중문화 상품이 중국의 그것에 비해서는 질적으로 우수하 다고 본다. 한국 대중문화의 소비를 통해 중국인들은 한국과 한국인 에 대한 친근감을 느끼고, 제한적이고 매우 일반화된 수준에서이기 는 하지만 한국의 문화적 특성에 대한 몇 가지 이해에 도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정확한 이해보다는 하나의 기호로서만 한국 을 소비하기도 한다. 중국의 한국 대중문화 소비자들은 현재 2000년에서 2002년 한국 대중문화에 대해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던 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안정적인 상태가 된 것으로 보인다. 다. 일본의 아시아 대중문화 수용의 현황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동아시아에서 문화교통의 흐름이 과거에는 일본에서 다른 지역으로 흘러간 경우가 많았다면, 현재는 일본으로 유입되는 것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커다란 흐름이 되었다는 점을 새로운 현상으로 지적할 수 있으며, 이 흐름의 중심에는 현재 한류 의 압도적인 붐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도 일본에는 소위 아시아 의 대중문화 소비 붐이 나타났으나 한류와 같은 최근의 현상과는 일 xix

24 정한 차이를 보인다. 먼저 1930년대 크게 유행하였던 소위 대륙붐 은 관주도 민추종 의 형태, 즉 국가의 주도로 민간의 문화업계를 동원하여 대동아공영권 이라는 정치이데올로기를 정서적으로 뒷받 침하는 대중문화를 생산하며 일반 대중에게 향유하도록 하는 형식이 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1980년대까지의 아시아붐은 민간업계주도 소비자추종 의 도식, 즉 노골적인 정치이데올로기보다는 문화산업이 주도하여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진 문화유입이 당시 소비자들의 정서 나 욕구의 어떤 측면과 맞아떨어져 붐이 형성되는 형태였다. 이에 대해 최근의 한류를 비롯한 아시아소비의 특징은 소비자주도 문화 업계추종 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소비자들의 주체적 수용이 먼저 나타나고, 시장가능성을 확인한 문화산업계가 반응함과 동시에 미디어 등에서 관심을 보이고 문화정책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식의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어떤 점에서 소위 한류의 효과라고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지금까지 일본의 문화산업이 국내지향성 아니면 서구지향성 이 특히 강한 영역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매우 의미 있는 것이다. 또 한 한류는 문화 콘텐츠로서 가치를 입증함으로서 지금까지 아시아를 주로 시장으로서만 인식해 왔던 일본의 문화 산업계에 하나의 충격 을 준 것으로 나타난다. 소비자들의 반응에서 일본의 한류현상을 설 명하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지적되는 것은 상대적 친근감, 문 화적 유사성 이다. 즉 중국이나 대만, 홍콩 등 중국어권과도 달리 한국은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일상생활의 면에서도 언어만 조금 다를 뿐이고, 외모 면에서나 문화적 배경의 면에서나 일본과 매우 유사함을 발견하게 되어 공감을 얻는 것이 쉽다고 한다. 그러 한 유사성 속에서도 한국의 드라마에서는 감정의 표현이 더 강렬하 게 나타나는 등 한국적 인 특색이 나타나기 때문에 매력을 느낀다 고 한다. 한편 한류 현상의 배경요인으로 특히 문화 산업계 종사들에 의해 xx

25 자주 지적되는 것은 일본의 대중문화가 로컬한데 비해 한국의 그것 은 글로벌하다는 견해이다. 즉, 일본의 대중문화 상품들은 오랫동안 국내 시장만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 왔기 때문에 지방적인데 대해 한 국의 것들은 애초부터 해외 시장을 겨냥하고 만들어져 온 까닭에 보 편성을 띠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로컬성 대 한국의 글로벌성 이라 는 인식은 널리 공유되고 있으며, 특히 음악 등과 관련해 자주 언급 된다. 예를 들어 J-Pop은 보다 세련됐고 듣기에도 편하지만 가볍고 그 호소력이 일본 국내에 한정이 돼 있는 반면 K-Pop은 미국남부의 음악, 특히 블루스와 유사한 애절함, 애수가 깃들어져 있으며 정서 적으로도 더 깊고 호소력이 강하고 넓다고 한다. 드라마의 경우에도 한국 것이 보편적인 주제나 문제를 다룸으로써 보다 널리 수용될 수 있는 반면, 일본 것은 대사부터가 극히 로컬하며 심지어는 일본 국 내에서조차 도쿄 중심으로 짜여서 지방 사람들이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한국 드라마는 일본에서 받아들 여질 수 있는 여지가 많지만, 일본 것은 한국에서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 하며, 이제 일본도 한국으로부터 배워 글로벌화 되어야 한다 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물론 이런 설명방식으로는 왜 한류 이전까지는 한국의 드 라마가 일본에서 거의 수용된 적이 없었는지, 또 왜 일본의 각종 대 중문화가 지금까지 한국에서 널리 받아들여질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는 설명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특히 영화와 관련하여 한국의 보 편성은 일종의 미국화의 징후이고 일본의 로컬성은 문화의 특수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꼭 나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언설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 한류현상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재일교포들의 역할이다. 예를 들어 <겨울연가>가 본격적인 한류 붐을 일으키기 전에 일본에서 최 초로 히트 를 친 영화 <쉬리>를 수입, 배급한 회사 CINE QUA NON의 사장 이봉우의 시도는 오늘날 한류의 전사( 前 史 )로 매우 중 xxi

26 요한 케이스로 들 수 있으며, 그 이외에도 많은 한국인 뉴커머들이 일본에 정착하고 조금씩 여러 사업을 확장해 온 것도 한류 붐의 밑 바닥이 되었다. 한류가 터지고 나서는 이들에 의해 많은 관련 회사 들이 만들어졌으며, 이들은 또한 신주꾸( 新 宿 )와 신오꾸보( 新 大 久 保 ) 사이에 새로이 형성된 코리아 타운 에서 한류의 유통에 중요한 역할 을 담당하고 있다. 한류의 효과로 나타난 또 한 가지의 현상은 일본의 주류 문화산업 계로 진출하는 한국인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일본의 업계에 진출하여 일본인 업주를 설득해 가며 한국과의 교류를 확대 해 가는 적극적이고 개입적인 문화생산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담당하는 일은 반드시 한류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는 업무만은 아니며 오히려 그보다 한류를 넘어서 일본시장에서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는 대중문화 아이템을 개발하고 소개하려는 입장을 드러냄으로써 앞으로의 문화교류의 전망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외에도 한류의 파급 효과로 다양한 종류의 합작 내지 공동제 작의 시도가 한일 양국의 문화업계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업계 간 교류 확대는 생산과 유통 차원에서 지속적인 협력 체제를 구축해 나가고자 하는 업계차원의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로 경제적인 이해관 계가 개입되어 있다. 합작은 제작과정에 원작, 자본, 스텝, 배우, 편 집 등이 복잡하게 얽혀지는 혼성적 작품을 포함하여 리메이크에 이 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1 그와 같은 제작과정의 얽혀지고 융합된 실태를 나타내기 위해 메이드 인 JK 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 도 있다 ( 小 倉 紀 蔵 2005: p. 212). 또한 한류, 일류의 붐을 타고 타 국에서 붐이 된 것이 자국으로 전해져 긍정적인 (재)평가를 받게 되 는 소위 역한류, 역일류 의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 小 倉 紀 蔵 전 1 허준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는 나가사키 슌야( 長 崎 俊 一 ) 감독, 야 마자키 마사요시( 山 崎 まさよし) 주연으로 리메이크 중이다. xxii

27 게서: ). 이와 같이 한국 작품의 리메이크, 그리고 한국에서 의 인기가 일본으로 역수입되는 현상도 역시 한류의 파급효과의 하 나로 한일 간에 보다 대등한 새로운 상호적 관계가 구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일본의 한류 현상을 이해하는데 미디어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미디어는 <겨울연가>같은 TV프로가 그렇듯 한류 콘텐츠의 유통기제 그 자체이기도 하다. 물론 일본의 모든 미디어가 한류에 대해 우호 적인 것은 아니며, 한류에 대해 비판하거나 야유하는 듯한 보도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본인의 한류경험은 각종 미디어로 인해 매 개되고 구성된 경험인 것임은 분명하다. 즉 미디어는 한류에 대한 일종의 세론 을 형성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뿐 아니 라 문화업계 종사자들의 한류 인식이나 국가의 정책 입안 등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또한 일본국내의 미디어보도, 특히 한류 팬의 미디 어표상은 한국 미디어가 스스로의 보도 작업과 함께 다시 한국으로 전함으로써 초국가적 미디어교통의 양상을 띠게 된다. 따라서 일본 한류의 미디어표상은 일본국내에 머물지 않고 국경을 넘어 일본의 한류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본에서 한류효과가 가장 두드러진 미디어의 하나로 출판업계를 들 수 있다. 한국드라마나 영화, 배우 등을 시각적으로 소개하는 여 러 잡지들, 드라마나 영화의 내용 등을 기술한 서적들, 나아가 한국 어 학습서 등 수많은 한류관련의 출판물이 새로 간행되었으며, 기존 의 여성잡지들에서 특집으로 다루어지고 있으며, 한국 현지의 체험 담이나 심지어는 한일간 국제결혼의 경험담 같은 책들도 한류 특 수를 본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출판물들은 한류 팬을 주된 독자층 으로 상정하고 있으며, 한류와 관련된 실용적 정보나 이미지, 그리 고 보다 수준 높은 팬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여러 측면에 대해 학습 하기 위한 정보 등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출판물들은 한류 팬들 이 서로 소통하고 교육하는 장이 되고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독자들 xxiii

28 이 스스로 집필하면서 문화생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문화생산과 관련하여서는 오프라인 출판만이 아니라 인터넷 홈페 이지의 개설이라는 차원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즉 셀 수 없을 만큼 한류 팬들의 개인 사이트가 등장하였으며 사이버공간에서 팬들이 서로 의견과 정보, 그리고 감성이나 정서까지도 주고받으면 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개인 사이트 외에도 수많은 한 류 관련의 정보 사이트가 있다. 일본의 한류 붐의 파급효과 중 가장 두드러진 사례 중의 하나는 사진집이나 주류 영상 미디어의 광고 등에 한류배우들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배용준이 일본의 광고, 특히 TV의 CF에 출 현하면서 한국의 배우들이 TV 광고를 비롯해 이미지의 세계에서 본 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조차 어 려웠던 이런 광고들은 보통 일본인들에게 다양하게 독해되면서 드라 마보다도 오히려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으며, 일본의 도시공간에서 한국 배우와 콘텐츠의 존재감(presence)을 비약적으로 확대하는 역 할을 하고 있다. 한류 팬들의 정서적 공동체를 형성케 하는 온라인 오프라인 매체 공간들이 대체로 사적이고 친근한 정보로 가득한데 반해 똑같이 긍 정적이면서도 좀 더 공식적인 의미부여를 하는 미디어로 일간지와 같은 공공성이 높은 매체를 들 수 있다. 2 이들의 주된 메시지는 한 일우호나 교류, 그리고 역사적 의의 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런 공 적인 긍정적 한류담론은 한일 정부의 日 韓 友 情 年 이라는 정치적 입장 과 가장 잘 맞아떨어지며, 적잖은 일본인의 한류에 대한 공적인 의 견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고 또 그것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2 공론적 입장에서 한류를 취급하는 경향이 강한 대표적인 매체가 아사히 ( 朝 日 )신문으로 이 신문에서는 한류의 원류 란 제목으로 2005년 5월 23 일에서 6월 10일까지 15회에 걸쳐 한류관련의 집중 연재기자를 실었다. 그 내용은 오늘날의 한류가 있기까지의 전사( 前 史 )에 초점을 맞추어 눈에 잘 보이지 않은 한일교류의 뒷이야기들을 오랜 취재를 바탕으로 발굴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xxiv

29 일본의 한류 팬의 주된 층은 30대에서 60대 정도의 연령의 여성 들이다. 이들의 존재는 2004년 4월에 배용준이 <겨울연가>의 방영 후 처음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 그를 보러 나리타 공항에 모였던 5000명에 달하는 열광적인 아줌마 팬 의 모습이 보도되면서 서서 히 대중적 미디어의 표면에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이지민 2004: 94).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미디어는 일본 미디어에 비추어진 일본인 팬의 모습을 호기심과 신기함이 뒤섞인 시선으로 적극 한국에 전하 였으며, 이런 초국가적 미디어 교통은 많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일본 열도가 완전히 한류에 휩쓸린 것으로 생각하게 한 효과를 가져다 왔 다. 그런데 이런 아줌마팬 의 미디어표상에서 팬이 아닌 나머지 일본 인들이 받는 인상은 긍정적이라고만 할 수 없으며, 오히려 적잖은 미 디어표상에는 열광하는 아줌마들을 야유하는 시선이 담겨져 있었다. 그 뿐 아니라 이미 국내의 일부 미디어에도 보도된 바와 같이 보 다 적극적인 반 한류의 담론도 발견된다. 주로 인터넷을 통해 펴져 있고 일부 책으로도 출판된 앤티담론은 공공성을 띠는 기존 매체의 형태보다는 사이버공간의 개인 블록 같은 데서 유포되는 음성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즉 사이버 공간에서는 한류나 재일교 포, 한국인을 야유하거나 비방하는 댓글들이 흔히 발견된다. 최근 오프라인 시장에서 서적 형태로도 출판된 マンガ 嫌 韓 流 ( 山 野 車 輪 지음, 2005)는 그러한 반 한류 담론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내용 을 보면 한류에 대해서는 마지막의 에필로그에서 조금만 언급할 뿐 나머지 9개의 챕터들은 한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시사문제나 역사 문제의 이야기로 짜여져 있는데, 그 내용과 소위 새로운 역사를 만 드는 모임의 기본적인 주장과의 공통성을 읽어내기는 어렵지 않다. 山 野 車 輪 은 가명으로 추정되며, 소위 새역모 와 그 동조자들이 중 심이 되어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집필한 서적으로 보인다. 이 책은 일본의 대형 서점들에서 베스트셀러로 올라 있다거나 출 간된 지 2개월 안에 매진되었다는 소문들에도 불구하고 일반 미디어 xxv

30 에서는 이에 대해 보도를 거의 안 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인터 넷 서점에서 보이는 서평이나 댓글에는 일반 미디어로부터 무시당하 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이 책의 독자들이 불만이나 답답함을 을 표 시하는 사례들이 나타난다. 또한 그들은 한류 팬들에 대해 혐오감을 보이거나 혹은 노골적인 비방을 가하지 않더라도 일본의 매스컴에서 다루어지는 한일우호 일변도의 공식적인 담론에 대해 회의를 드러낸 다. 또한 한류에 대한 앤티사이트라 볼 수 있는 사이버 공간에 오르 는 글 들 중에는 한류 팬들을 세뇌당한 아줌마들 로 폄하하거나, 재일교포의 동원, 혹은 한국 음모설 등을 제기하기도 한다. 즉 한류를 통해 미소로 다가오는 회유책 의 이면에는 참된 모습, 즉 반일하는 한국인이나 중국인이 있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초국가적 반일네트워크 가 조직되어 있다는 주장 등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오선화의 최근 저술을 들 수 있다). 한류 현상은 일본에서 학술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부상되어 활발히 분석되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한류에 대한 연구자들의 관 심이 쏟아져 나온 한국의 상황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일본에서 한류 에 대한 최초의 학술서적이라 할 수 있는 日 式 韓 流 (2004)의 편 자 모오리 요시타카( 毛 利 嘉 孝 )는 서두에서 저널리즘의 열광에도 불 구하고 미디어연구, 매스커뮤니케이션연구나 대중문화연구 등 학술 적인 영역에서는 지금까지 이 새로운 현상은 거의 연구되지 않고 있 었다. 이 책의 기고자인 이와부치 고이치( 岩 淵 功 一 )의 작업은 아마 유일하다고 해도 좋은 예외이다 라고 쓰고 있다(p. 8-9). 한류가 학 술적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 이유로는 우선 한국에서와 마찬가지 로 일본의 경우에도 자국 발신의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에 비해 유입 되는 것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한류현상을 주된 사회문화 현상의 하나로서 보다는 피상적인 유행 정도로 보는 시선도 학술적인 무관심 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xxvi

31 일본의 한류는 국가의 문화정책의 방향성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 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연구에서 지적하였듯이 일본은 상대적 으로 국가가 문화산업에 개입하지 않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양영 균, 문옥표, 송도영 2004). 그런 특징은 국가가 강하게 문화산업을 통제하고 국책으로 대중문화 생산과 유통을 장악했던 제2차 세계대 전 시기의 상황에 대한 일종의 반동으로 구조화된 것이다. 이런 일 본의 맥락에서 국가의 정책적인 지원을 받으면서도 매력적인 대중문 화를 만들어 내어 일본으로 상륙한 한류 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그 영향으로 일본에서는 이제 한국이 국가의 문화전략에서 일본보다 앞 서 있다는 인식은 널리 퍼지게 되었으며, 한국에 배우자는 소위 룩 코리아 (Look! Korea) 의 움직임은 문화산업계와 관련해서는 무엇 보다 문화정책이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도 있다( 小 倉 紀 蔵 2005: p. 201 참조). 즉, 한류 자체보다도 오히려 그 배경에 있는 한국 정부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 거기서 힌트를 얻어 일본 문화산 업계의 부흥, 강화를 시도하려는 방향성이다. 한류와 관련해서 일본 정부의 역할은 예전부터 해 오고 있는 한국 문화의 일본 소개라는 방향으로도 물론 나타나고 있다. 즉 민간에서 이루어지는 한류 행사를 여러 가지 형태로 지원함으로써 일한우호 라는 정치적이고 관적인 의미를 부여해 왔다. 그러나 최근의 방향성 은 오히려 어떻게 대중문화를 의식적으로 해외로 수출해 나갈 것인 가에 모아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제 일본에서도 대중문화 영역을 포함한 문화외교 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그 한 예로 볼 수 있다. 물론 문화외교라는 생각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예 컨대 Nissim 2003 참조). 그런데 예전의 문화외교가 일본의 소위 전통문화, 고급문화에 한정이 되어 있었다면, 현재의 그것은 애니메 이션 같은 대중문화 영역을 부각시켜 보다 산업적이고 마케팅적인 사고가 스며든 개념이 되었다 ( 中 央 公 論 2005년 10월호 특집, 지금 정말로 문화외교를: 세계에 일본의 애니메 세대 를 키우라 참조) xxvii

32 일본이 이렇게 국가주의적으로 문화산업에 적극 개입하고 육성해 야 한다는 인식이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확산되고 있으며 어 느 정도의 사회적 동의도 얻을 수 있게 된 데는 분명히 한류 의 충 격이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한류에 매개된 일본의 문화정책의 방향 이 한국 정부와의 관계에서 협력과 공생으로 이루어질 것인지 아닌 지는 앞으로 아주 중요한 과제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Ⅲ. 한중일 대중문화 교류의 전망과 과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와 동아시아 문화공동체로의 전망에 대해 논하기 위해 우선 현지조사와 현황파악을 통해 떠오른 여러 가지 과 제들에 대해 언급하도록 한다. 이런 과제들을 풀어나가기 위한 방안 이나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동아시아의 앞날을 전망하기 위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강조해야 할 출발점은 동아시아의 대중문화 교류, 특히 한 일 간의 교류라고 할만한 현상들은 다방면에 걸쳐 상당한 규모로 이 미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즉, 한일 양국의 정부가 공식적으로 교류 라는 명칭으로 인식하든 안 하든 간에, 문화업계, 소비자, 미 디어, 학계 등에서 수많은 교류가 이루어져 있는 것이 현황이다. 따 라서 문제는 정부가 전면에 나서 새로운 흐름을 구축하여 추진하는 방향보다는 오히려 이미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진 미세하고도 다양한 교류들을 좀더 원활하게 유지시켜 나가는 것, 그리고 그러기 위해 우선 교류현장이 현재 겪고 있는 여러 가지 과제들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즉 교류의 현장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이나 거부감 들에 귀를 기울이고 해소해 나가는 방향에 한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구상할 수 있는 방안이 설정되어야 한다. xxviii

33 1. 한류 효과의 양가적 측면에 대한 인식 앞서도 언급된 바와 같이 중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문화 산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대중문화에 대하여 양면적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긍정적인 면에서는 외국 상품의 인기에 자극 을 받아 국내의 문화산업을 증진하고 나아갈 방향에 대한 시사점을 발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소위 윈윈 전략 이라 할 수 있는 입장 을 표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류와 같이 일방적인 문화흐름의 상황에서 그것을 발신하는 측에서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그 효과를 극대화 하려 할 경우 수용하는 측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교 류 증진의 노력들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따 라서 한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인접국들과의 장기적이고 순조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나아가 동북아 공동체라는 구상을 구체화해 나가기 위한 하나의 필 수적인 포석이 된다. 거꾸로 말하면 교류현장에서 일어나고 경험되 는 미시적이고도 구체적인 제 국면들에 대한 진지한 고려나 대책 없 이 한국 정부의 독선적 입장에서 동북아 공동체 구상이 추진된다면, 오히려 중국이나 일본 측의 반감을 심화시킬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이 된다. 또한 특정 문화상품의 유행으로 나타나는 전반적인 인식변화의 효 과에 대한 지나친 과장도 경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류의 효과 로 아시아회귀의 경향을 나타내면서 큰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일본 의 문화 산업계에도 여전히 옛날부터의 구조적인 문제나 관습적인 인식은 존재한다. 그리고 아시아와 같이 작업을 해 온 일본 업계인 들은 여전히 주변사람들과의 갈등이나 한류소비자들에 대한 불신감 을 숨기지 않고 표출하곤 한다. 이러한 예는 한류와 같은 현상의 효 과가 상당한 것은 틀림없지만 그것이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상호 인식을 하룻밤에 바꾸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xxix

34 2. 거래문화의 차이와 갈등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교류가 확대되면서 증가하고 있는 한중, 한 일 등의 거래나 합작 등의 직접적인 교류 현장에서 더욱 강화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한류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이 일본 측이 라는 견해가 상당히 퍼져 있다. 물론 경제적 이득이 일본에서 한류 현상을 계속해서 가능케 하는 기본 여건이긴 하다. 그런데 실제로 거래를 담당하는 입장에서는 한일 양국에 엄존하는 거래의 접근방식 이나 관습 등의 차이로 인해 여러 가지 갈등을 보이고 있으며, 이것 이 극대화될 경우 한국과의 거래에서 손을 놓겠다는 견해까지 실제 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한 갈등은 한류상품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새 로이 유입되는 상품의 구매 가격 협상 등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구입 하는 측에서는 한 가지 상품이 성공하였다고 다음의 상 품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합리적인 가격 으로 시작하여 흥행이 성공한 경우에 이익부분을 나누는 형식의 파 트너십을 구축해 가고자 하나 수출하는 측에서는 눈앞의 선불 금액 에 모든 것이 집중이 되어 가격의 협상이 결렬되는 예들이 많이 나 타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들은 장기적으로 볼 때 한류 상품의 수 출에 악영향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다양한 파트너십의 구축을 통한 일종의 문화산업적 공동체의 형성에도 장해가 되고 있다. 물론 한일관계에서 보면 이런 거래문화의 차이는 역사적인 배경을 무시할 수 없다. 즉, 한일 간의 역사적 관계, 특히 식민지시기의 경 제적 수탈이라는 피해자적 기억이 현재 한일 양국의 거래관계에서 한국 측이 취하게 되는 입장을 여전히 규정하고 정당화는 측면이 있 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 차원은 일본의 입장에서는 쉽게 이해도 용납도 안 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런 갈등구조를 풀 어나가기 위해서는 비즈니스 현장에서 거래문화의 상호이해를 위한 구체적 프로그램 고안과 함께 역사적 문제의 상호인식과 이해로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시 말해 거 xxx

35 래 관계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차이의 배경과 그것을 재생산해 내는 기제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해 나가기 위한 대책이 마련될 필 요가 있다. 3. 합작의 현장에서의 경험과 업계문화의 차이 이번 조사에서 만난 대중문화 업계의 종사들의 다수가 앞으로 국 가간의 교류를 확대하고 공유의 부분을 확대해 가기 위한 효과적 방 안의 하나로 합작이나 공동제작을 늘려가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였 다. 그것은 우선 합작을 통해 자본을 끌어 모으는 것이 현실적으로 유리하며, 또 각자가 부담하는 위험(risk)은 감소시킬 수 있을 뿐 아 니라 시장의 확대효과가 있다고 한다. 여러 나라의 합작을 통해서 합작에 참여한 각각의 당사자를 묶어서 하나의 시장에 편입시킨다면 그만큼 넓은 시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에는 물론 각 당사자들이 자신의 본국에서는 더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 려 있다. 그러나 각 나라에서 문화 산업계는 나름의 관행을 가지고 오래 지 속돼 왔기 때문에 그것이 서로 만날 때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 기기 마련이며 실제로 합작의 현장을 경험했던 사람들로부터도 그런 갈등의 구체적 내용을 들을 수 있다. 일본에서 10년 이상 일해 오면 서 한일 양국의 문화산업계의 시스템이나 사정 등을 잘 아는 J씨는 일본에서 일의 진행방식이 한국 측 종사들과 비교해 훨씬 조직적이 고 세밀하게 이루어지며 그것은 단순히 문화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이유(인건비나 제작비 등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그러한 양국의 문화차이는 흔히 국민성 의 근본적 차이로 이해되며 따라서 단기간 내에 해소 되기는 어려운 것으로 인식된다. 마찬가지로 한일 양국에서 최초의 합작영화로 선전된 <로스트메모리즈> 제작에 통역자로, <역도산> 제 작에 스텝으로 참여한 어떤 한국인은 스텝이 함께 섞여 일하게 되는 xxxi

36 경우 시스템이나, 일하는 방식이나 기질이 너무 달라 많은 트러블이 일어나며 결국은 잘 해 보자라고 시작하였던 일이 다시는 일하고 싶지 않다 는 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역효과라는 점을 지적한다. 따라서 합작에서 실제로 사람들이 섞어서 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실제로 섞이지 않는 다른 방식의 합작을 권하고 있다. 4. 차이와 갈등을 완화하기 위하여 - 한국 측에서 이상에서 살펴 본 바를 기초로 문화교류의 현장에서 감지되는 차 이와 갈등을 완화하고 교류를 증진하기 위하여 1) 전문 인력의 양성 과 적절한 배치, 2) 장기적인 관점과 상호이해의 기본 위에서 만들 어지는 파트너십의 형성, 3) 상호적인 교류 시스템의 구축 및 민간 교류의 활성화, 그리고 나아가 4) 교류의 기반이 되는 쌍방의 문화 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논의와 교육 등을 제안할 수 있다. 1) 전문 인력의 양성 및 배치: 위에서 살펴 본 현장에서의 차이의 경험과 갈등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그것은 교류를 직접적으로 담당하는 생산, 유통업계의 사람들이 실감하고 있는 과제들이기 때 문이다. 그런데 이런 과제들에 대해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지, 그러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현장의 사람들도 효과적인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한 가지 지 적될 수 있는 것은 통역과 같은 매개인이 없이 직접 거래하고 작업 할 수 있는 상황이 이루어지게 된다면, 갈등이나 오해의 상당 부분 이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며 이는 곧 현지 사정에 정통한 전문 인력 의 양성이라는 문제와 연결된다. 이번의 현지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바를 보면 한류의 부상과 함께, 일본에서는 이미 유학생 출신의 한국인 뉴카마들을 주류 업계에 진 출시켜 한국과의 교류증진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토록 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들은 한국과, 일본 양쪽의 문화를 모두 이해하고 의사소 xxxii

37 통을 증진시켜 나가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양국간의 교류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한국에 있어 서는 특히 중국과의 교류를 담당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너무 부족 한 실정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방송국에서 중국어가 가능하고 중국 사회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직원은 기껏해야 한두 명이거나 아 예 없고 그나마 소수의 전문가들을 중국 관련 부서에서 오랫동안 일 하게 하지 않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다른 부서로 순환을 시키고 있는 형편인데 반해서, 일본 NHK에는 중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일본인들 이 국제부에 배치되어 있으며, 그들은 대개 장기적으로 중국 관련 일을 해왔고 특파원 활동도 한 사람들이고 또한 중국에서 유학한 사 람들도 활용한다. 따라서 한국 측에서도 드라마뿐 아니라 대중문화 의 전반적인 영역에서의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중국이나 일본의 시스템과 문화를 잘 이해하고 현지어로 어려움 없이 의사소통이 가 능한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양성하는 것이 시급히 필요하다. 2) 상호 교류시스템의 구축 및 민간교류의 활성화: 문화의 교류를 일 방적인 흐름이 아니라 상호적이며 균형되고 안정적인 방향으로 발전 시킬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킬 수 있어야 한다. 중국과의 교류에 있어서도 현재 한국과 중국의 대중문화 교류가 비록 균형 잡 힌 모습은 아니지만 민간의 차원에서는 자율적인 대화와 교류가 조 금씩 시도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한류 와 같은 일방적 흐름만을 강조하고 상품의 판매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면 이 체계를 안정 화시켜 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단기적인 이익이 나 활황만을 위한 정책은 지양해야 하며 장기적인 차원에서 대안과 정책 수립이 이루어져야 한다. 많은 대중문화 산업계 인사들이 지적 하고 있듯이 단기적인 성과 위주의 지원은, 한국 대중문화상품이 중 국에 더욱 공격적으로 진출하도록 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미 한국 의 게임산업이 중국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 중국 정부가 제재 조치를 xxxiii

38 내렸으며 한국 드라마의 경우에 대해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다는 점 에서 단기적인 성과 위주의 지원 계획은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오늘날 한국에서는 일본 대중문화를 개 방하다보니 별로 위협도 아니었다는 식의 담론이 상당히 퍼져 있다. 그리고 일견 일방통행으로 보이는 한류 수출에 만족하면서 한류를 상호적 교류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 내에는 이미 일본의 대중문화가 상당히 들어 와 있고 일본과의 합작도 여러 가지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아가 한국의 문화 산업계나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일본인도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 하였다. 이런 상황을 한국 측에서 좀더 오픈하게 인식하게 되어야 일본 측에서도 한국과의 실제적이고도 장기적인 상호적 관계를 구상 할 수 있게 된다. 3) 현장 파트너십의 구축 및 네트워크의 형성: 한중일, 특히 한일 간 의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정치적 마찰과 갈등에도 불구 하고, 상대방의 문화에 대해 잘 알고 관심을 가지고 있던 특정의 개 인들의 인맥과 파트너십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해 왔음을 살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한류가 급부상하면서 이러한 기존의 네트웍이나 파트너십의 장기적 유지에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것임 이 아님이 드러난다. 오히려 한류 이전부터 문화교류에 종사해 왔던 사람들은 이 유행이 지나간 이후를 염려하고,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에 우려를 표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인간관계와 신 뢰의 구축은 정치적, 경제적 변화나 유행의 변화를 넘어 교류를 지 속시켜 나갈 수 있는 효과적인 기제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직접적인 교류의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교류를 추진해 온 당사자들 간의 개인 적인 친분관계나 신뢰는 갈등을 해소하고 중재하는데 핵심적인 역할 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교류의 증진과 지속을 위해서는 이미 존재하는 개인적 인 xxxiv

39 맥이나 네트웍을 지원하고 활성화 시키며, 새로운 인맥을 발굴하고 키워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한 인맥이나 네트웍은 단순히 업계 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학계, 문화계, 정치계, 시민단체들 사이에 도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각 방면에 존 재하는 기존의 인맥, 네트웍을 찾아내어 상호 연결시키고 공동으로 협력해 나갈 수 있는 장을 마련함으로써 기존의 교류관계를 더욱 활 성화 시켜 나가는 것이다. 4) 문화에 대한 심층적인 교육: 동북아 국가들, 특히 식민지배의 경험을 가진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는 서로의 문화적 행위에 대해 가 치평가가 쉽게 개입되는 편이다. 즉 대중문화 교류에 종사하는 사람 들 사이에서도 서로 상대방의 사고나 행동방식에 강한 이질감을 표 출하면서 스스로의 방식을 보다 나은 것으로 전제해 버리는 경향성 이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고 수정하기 위해서는 교류 상대 방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며, 특히 문화적 차이 를 주어진 본래의 것으로 고정시켜 버리는 구래의 문화관이 아니라 좀 더 열린 동태적 문화관을 키워 가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한 이 해가 결여된 상태에서 최근의 한류 현상으로 갖게 된 우월감이나 자 신감을 지나치게 내세우게 되면 당연히 상대국과 갈등이 심화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특히 한국의 미디어에서는 한류현상과 관련해 서 일본이나 중국을 정복 했다는 식의 군사적 표현들이 흔히 쓰이 고 있음은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는 미디어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표현을 선호하는 한국인 독자, 청중, 시청자들이 존재함을 의 미한다. 그런데 이런 담론은 현재 초국가적 미디어교통으로 인해 상 대국들에도 어느 정도 전해지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것은 업계나 한 류 팬은 물론 한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 를 가져 온다. 이런 미디어 상황의 효과를 염두에 두면서 그것을 바 xxxv

40 꾸어 나가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한국의 문화상품의 우수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공동제작이나 혼성제작에서 일본이나 중국 등지의 참여 사 실을 최소화하고 때로는 삭제 까지 하는 관행 역시 문제이다. 유명 한 예로는 <박하사탕>이나 <올드보이> 같은 작품들이 일본과의 일종 의 합작인데도 불구하고(전자는 자본, 후자는 원작), 한국에서는 한 국 의 영화로 선전되는 상황, 그렇게 선전되어야 하는 상황임은 일 본 측의 입장에서 보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합작을 합작으로, 교류 를 교류로 인식하고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 한, 한일 양국의 문화 산업계나 소비자 차원에서 아무리 합작이나 교류 가 이루어진다 해도 한국 내에서 별로 사회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 다. 이런 문제는 특히 한일 관계에서는 일본 대중문화의 음성적 수 용이라는 역사와 직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 과제를 풀어 나가기 위 해서는 그것을 양성화하고 공론화함으로써 앞으로는 일본과의 관계 를 있는 그대로 언급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전망들은 한국이 중심이 되어 동아시아 문화공동체를 구상하겠다는 식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도 우회적이고 소극적인 것 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과제와 전망에 대한 성찰적 사 려 없이 추진되는 동아시아 문화 헤게모니의 획득경쟁은 상대국가와 의 상호적 관계를 오히려 악화할 수 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전 지구화라는 흐름에서 문화교통은 탈중심화라는 성격을 띠면서 소비 자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을 지니고 있으며, 이런 시대적 추세에 서 한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입장을 구상하기 위해서 꼭 고려되어 야 할 전망들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xxxvi

41 목 차 I. 서 론 1 1. 연구의 의의 및 분석틀 3 2. 연구방법 6 II.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9 1. 한국의 아시아 대중문화 유입의 역사적 배경 중국의 아시아 대중문화 유입의 역사적 배경 일본의 아시아 대중문화 유입의 역사적 배경 57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한국의 아시아 대중문화 유입현황과 대응 중국의 아시아 대중문화 유입현황과 대응 일본의 아시아 대중문화 유입현황과 대응 132 Ⅳ.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전망과 과제 대중문화의 흐름과 정치경제학적 전망 중국의 아시아 대중문화 수용양상 및 언설을 중심으로 본 전망 일본의 한류 수용양상 및 언설을 중심으로 본 전망 185 xxxvii

42 Ⅴ. 결 론 전문 인력의 양성 및 배치 상호 교류시스템의 구축 및 민간교류의 활성화 현장 파트너십의 구축 및 네트워크의 형성 문화에 대한 심층적인 교육 198 참고문헌 201 xxxviii

43 표 목 차 <표 I-1> 국가 광전총국의 해외 드라마 수입과 방영에 관한 주요 법규 목록 54 xxxix

44 그 림 목 차 <그림 I-1> 라그나로크의 주요 캐릭터 79 xl

45 I 서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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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1. 연구의 의의 및 분석틀 동북아시아 문화공동체 형성이라는 대 주제와 관련하여 대중문화 의 영역은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그것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 동북아시아라는 보다 큰 지역을 중심으로 상호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번영의 기틀을 마련 할 필요성을 주장하는 다양한 언설들에도 불구하 고, 국가 간에는 여전히 불평등이 존재하고, 역사인식의 현격한 차이 가 발견되며, 정치적인 경제적인 현실에서도 국가중심의 이해관계를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는 최근 부각되고 있는 한류현상에서도 관찰할 수 있는 바와 같이 특 정한 문화 상품의 소비라는 행위를 통하여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공통의 요소를 발견해 갈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과 미디어 산업의 발달은 국가의 정책이나 기업의 대응이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의 빠른 속도로 전 세계의 소비자를 연결하고 있으며, 특 정 문화 상품에 대한 소비자, 수용자의 반응은 생산자, 기획자는 물 론 유통에 종사하는 측에서 조차 전혀 의도하거나 예측하지 못한 방 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대중문화 및 문화상품의 소비에 나타나는 초국가적인 흐름의 분석을 통하여 국가의 경계를 넘 어서는 문화공동체 형성의 가능성을 탐색해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동북아를 한국과 중국, 일본의 3국을 일컫는 좁은 범위로 이해한다면 대중문화의 상호교류 및 확산을 동북아 라는 지역에 한정하여 논하는 것은 매우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런 설정이라 고 생각된다. 그것은 1990년 이래 현격하게 긴밀해진 대중문화의 교 류 현상은 동북아뿐 아니라 대만, 싱가포르, 베트남, 타일랜드 등 동 남아시아 각국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전역에 걸쳐 나타난 현상이기 때 문이다. 대중문화의 지구적 확산을 서구와 비서구로 나누고, 일본이 나 홍콩, 한국 등이 아시아 전체를 포함하는 지역의 새로운 문화중심 이 되는 가능성을 흔히 말하는 탈 중심화 혹은 다 중심화 의 역학에 Ⅰ. 서 론 3

48 서 이론화 하고자 할 경우에도 동북아의 3국과 동남아시아의 국가들 을 나누어 접근할 근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문화산업이나 대중문화 수용에서 주요 배경의 하나로 이해되고 있는 자본주의적 발달단계나 근대성의 차이를 보더라도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동일한 NIES계 열에 속하는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과의 상호교류 확산의 가능성을 논하는 것이 더욱 용이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리적, 역사적 근접성으로 인하여 한국인의 인 식 속에서 중국과 일본은 동남아시아와 구분되는 독특한 위치를 점하 고 있으며, 그러한 인식이 바로 동북아 공동체 논의의 근저에 깔려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 보고에서는 다소 인위적인 경계 짓기의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 중국, 일본에 한정하여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 적 배경 및 현황을 살펴보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증진방안에 대해서 는 비록 단기간이기는 하나 본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접하게 된 현장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한중일 3국간의 대중문화 교류를 보다 원 활히 하고 나아가 그를 통한 상호이해 및 공유의 영역을 넓혀가기 위 하여 우리가 당면한 과제가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먼저 동아시아 문화교통의 역사적 맥락을 살펴 볼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최근 부상하고 있는 한류와 같은 현상에 관해서도 동떨어지고 독특한 현상으로 보는 오류를 피하 고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미디어문화의 초국가적 이동이 훨씬 긴밀하게 이루어 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학자들에 의해 지적되고 있다. 즉 미국의 대중문화 포맷이 세계 각지에 침투됨과 함께 그것이 지역적인 맥락에서 혼성화되면서 비서구지역의 미디어문화의 제작 능력이 비 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그와 더불어 문화시장이 확대되고, 국 경을 넘는 미디어 문화산업 간의 연계가 깊어지게 된 것, 그리고 이 에 따라 미디어교통의 지역화가 활발해지게 된 것 등이 그 배경으로 4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49 이해되고 있다( 岩 淵 功 一 2004: p. 112). 문화시장의 확대는 동아시아 각국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소비력을 지닌 도시의 중산층이 크게 성장 하였다는 점, 그리고 인터넷 매체에 친숙하고 국적이나 민족에 구애 되지 않고 지구적 소비문화를 즐기는 신세대 젊은 층이 등장하였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와 같은 흐름을 타고, 1990년대 초부터 일본의 애니메이션, 만 화, 캐릭터, 게임, 패션, 음악 등이 아시아 전역의 젊은이들을 사로잡 았으며, 이어 홍콩의 대중음악과 영화가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의 관 객을 매료시킨 열풍이 지나간 이후, 이제 다시 한국의 드라마, 영화, 음악 등이 관심의 초점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류의 현 재에 대한 이해나 앞으로의 전개방향에 대한 전망이나 모두 그것을 독립적인 현상으로가 아니라 전지구화에 따른 문화교통의 확대라는 맥락 안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류를 비롯하여 최근 다방면으로 확대되고 있는 동아시아 문화교 통의 흐름을 고려할 때 또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교류되는 문화가 특정의 국적을 부여하기 어려운, 다시 말해 하나의 기원으로 수렴되기 어려운 복합적이고 혼종적인 아이템들이라는 점이다. 대표 적 예의 하나로 우리는 한국태생으로 일본에서 활동하며 서구에서 유 래된 음악을 하는 가수 보아를 들 수 있다. 보아는 일본 뿐 아니라 아 시아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그가 대변하는 문화가 한국적 인 것인지, 일본의 것인지, 서구적인 것인지는 매우 애매하다. 실상 그의 음악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멋진 문화 상품 인 한 그것 이 어디에서 기원하였는가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며 그런 의미에서 지구화 시대를 사는 아시아의 젊은이들을 혼종을 소비하는 자 로 규 정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이와부치 2003: 90). 이것은 다시 말해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다양하고 다방면적인 대중문화의 흐름이 초국 적(transnational)인 성격을 지닌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그 현 상을 일부에서 시도되는 바와 같이 다시 국가주의나 본질주의적인 민 Ⅰ. 서 론 5

50 족문화론으로 환원시키려는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 이 연구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입장은 문화교류의 증진 방안을 논함에 있어 일방적인 진출의 확대를 도모하기 보다는 상호적 인 교류의 확대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과의 교류에 있어서 도 현재 한국과 중국의 대중문화 교류가 비록 균형 잡힌 모습은 아니 지만 민간의 차원에서는 자율적인 대화와 교류가 조금씩 시도되고 있 다. 따라서 정부가 한류 와 같은 일방적 흐름만을 강조하고 상품의 판매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면 이 체계를 안정화시켜 나가기는 어 려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오늘날 한국에서 는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하다보니 별로 위협도 아니었다는 식의 담론 이 상당히 퍼져 있으며, 일견 일방통행으로 보이는 한류 수출에 만족 하면서 한류를 상호적 교류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내에는 이미 일본의 대중문화가 상당히 들어 와 있고 일본과의 합작도 여러 가지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아가 한국의 문화 산업계나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일본인도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중문화교류 를 통한 동북아 공동체 형성의 가능성을 모색해 보기 위해서는 한류 와 같은 일방적 흐름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 지고 있는 교류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흐름을 원활히 유지시켜 나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2. 연구방법 본 연구팀은 연구 책임자를 포함하여 3명의 공동 연구자와 각각 중 국과 일본의 대중문화 분야를 전공하는 두 명의 박사과정 연구보조원 으로 구성되었으며, 한중일의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하 여 먼저 한국팀 (송도영), 중국팀 (양영균, 이응철), 일본팀 (문옥표 6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51 山 內 文 登 )의 3개 팀으로 나누어 2005년 7-8월간에 각기 2주에서 4 주에 걸치는 현장조사를 실시하였다. 현지조사에서는 주로 엔터테인 먼트 기획사 등 영화, 드라마, 가요 등을 수입하여 유통시키거나 합 작에 참가한 경험이 있거나 계획 중인 문화교류 관련 종사자들, 부대 상품 판매업자들, 그리고 문화상품의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였으며, 그 외에 특히 한류와 관련된 문헌자료 및 온라인, 오 프라인 매체들의 보도 자료를 검색 정리하였다. 현지 조사 후 몇 차례에 걸친 워크샵을 통하여 보고서의 통일된 포 맷을 시도하였으나, 뒤에서 살펴볼 바와 같이 각 나라별로 대중문화 수용 및 교류의 역사적, 이념적 배경이 다르고, 그에 개입되는 정부 나 업계, 미디어, 소비자의 역할이 각각 다를 뿐 아니라 무엇보다 조 사의 내용 및 현황에 대한 각 연구자들의 이해에도 일정한 차이가 있 어 동일한 구성으로 보고서가 작성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무리하게 포맷을 통일하고자 시도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공동연구 결과보고에 서 통일된 형식을 갖추는 것보다 각 연구자들이 지역전문가로서 중요 하게 생각하는 사항이나 해석상의 차이들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각 국의 현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보고서의 구성은 먼저 연구책임자에 의해 집필된 제 I 장 서론에 이어 제 II 장에서는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을 II-1 한국편 (송도영), II-2 중국편 (양영균, 이응철), II-3 일본편 (문옥표, 야마우치 후미타카)의 3절로 나누어 다루고, 제 III 장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역시 마찬가지로 III-1 한국편 (송도 영), III-2 중국편 (양영균, 이응철), III-3 일본편 (문옥표, 야마우치 후미타카)의 3절로 분담하여 각 팀별로 조사결과를 정리하였다. 그리 고 마지막의 제 IV 장에서는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전망과 과 제>를 각 나라별 주안점을 살려 제시하였다. Ⅰ. 서 론 7

52

53 II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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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1. 한국의 아시아 대중문화 유입의 역사적 배경 가. 이식된 해외 대중문화의 혼합 정착사 2005년 현재 한국에서 한, 중, 일 문화공동체를 논하는 것은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를 놓고 볼 때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실제로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는 곧 수입된 해외 대중문화의 역사로부터 시작되었 으며, 특히 일본의 식민 지배를 중심으로 일본의 대중문화가 사실상 한국대중문화를 그 기초적 형태부터 형성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 그 런 의미에서 초기의 한국 대중문화는 이미 한국과 일본 두 나라 간에 는 식민지적 문화공동체 (이 단어의 특수한 맥락을 인정해 사용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를 이루고 있었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일본문화의 절대적 영향아래 있던 일제시대의 한국 대중문화가 1930 년대 일본의 중국대륙 침략기에는 또한 중국문화의 요소들을 그 안에 받아들여 또 다른 의미에서의 한 중 일 문화교류와 혼성 현상마저 보 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나타났던 한 중 일의 문화적 혼성과 교류는 2005년 현재의 맥락에서 한국 정부와 지식인들이 논의하고 싶어 하는 문화적 교류 또는 문화공동체와는 거리가 먼 것이며, 사실은 그 정 반대의 의도를 내포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한국 대중문화 형성기의 한, 중, 일 대중문화의 지형도는 일본의 일방적이고 지배적인 헤게모니 아래 서 중국문화가 편입되어 들어간 형국이고, 한국의 경우는 한국적인 문화적 주체성이라고 내놓을 만한 것이 거의 보이지 않는 일방적인 지배-피지배의 국면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2005년 현재 한국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한 중 일 문화교류 이야기는 소 위 한류 라는 용어로 대표되는 한국 대중문화 상품의 일부가 한국인 들이 보기에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들의 대중문화를 형성하는데 있어 절대적으로 지배적 위치에 있어왔던 일본과 그리고 그 이전시기부터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11

56 자신들에게 문화를 전수해주면서 아시아적 문화 헤게모니를 지배해 왔다고 인식되는 중국의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놀랍고 감격 스러운 현상을 발견하면서 등장하게 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대중문화계에서 일고 있는 한,중,일 문화교 류 내지 문화공동체와 관련된 담론, 보다 구체적으로는 한류 와 관련 된 한국내의 담론이 갖는 성격을 위치매기고 상대화시켜 살펴보기 위 한 전제로서 한국 내에 유입, 이식되어온 해외 대중문화 영향의 역사 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해방 이후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는 일제시대 동안 이미 강하게 형 성된 일본문화의 영향에 뿌리를 둔 채 다시 한반도에 진주한 미국의 문화적 홍수가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시기를 경험하게 된다. 이 미 개항기 직후부터 일본을 경유한 미국과 유럽 문화상품의 영향이 한국의 문화소비시장 초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해방 직후 미군정의 시작과 함께 한국에 쏟아져 들 어오기 시작한 미국 대중문화는 순식간에 당시 취약했던 한국 대중문 화 산업과 대조를 이루었던 한국민들의 대중적 문화욕구의 폭발적 수 요를 파고들어 일시에 시장을 장악했다. 1960년대와 70년대 한국 극 장가에서 절대적 힘을 발휘한 미국 영화의 영향은 당시의 영화광을 소재로 한 소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에서도 잘 드러난다. 또한 대 중음악에 있어서도 여전히 강력한 일제시대 음악적 형성물의 성격에 서 벗어나고자 하는 일부의 욕구와 현대화 를 곧 서구화 와 동일시했 던 대중들의 문화적 분위기가 연결되어 미국 팝 음악의 다양한 장르 들이 곧 한국 대중음악 산업의 새로운 바람으로, 그리고 이어 주도적 경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러한 미국문화의 영향은 오늘날까지 지 속되고 있다. 대중가요와 영화,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한국에 유입된 미국문화의 영향은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절대적인 위치를 차 지하기에 이르렀으며, 분야에 따라서는 표현되는 언어만 한국어 혹은 한국인의 모습이지 사실상은 미국 대중문화산업 상품의 그것과 엄밀 12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57 히 구분하는 것이 의미를 상실한 단계에 이르기도 했다. 특히 동아시 아에서 인기가 있다고 여겨지는 한류 문화상품의 상당수가 예컨대 로큰롤 과 힙합, 재즈 적 요소들을 그대로 흡수 소화하여 자신의 것 으로 재창출해내는 현재 한국의 대중음악 상품들을 주된 무기로 하고 있는 점들이 주목된다. 한편 해방 이후에는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갈구와 일제 식민지배의 영향을 벗어나고자 하는 동기가 워낙 강하여서 정치적으로 일본 대중 문화의 유입통로를 차단하기 위한 정책적인 노력이 수십 년에 걸쳐 지속되어 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와 함께 1940년대 말 공산화된 중국 대륙의 대중문화는 공산주의 체제의 특성상 그 문화산 업적 수준이 빈약했던 것도 사실이거니와 공산국가 의 문화적 영향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노력도 겸하여져서 중국대륙의 대중 문화적 요 소 또한 오랜 동안 유입이 정책적으로 차단되었다. 대신 1960년대 중 반 이후에는 홍콩에서 발전한 무협영화 또는 무술영화들을 기본으로 하는 오락성 영화들이 한국 영화산업에서 무시하지 못할 열풍을 일으 켜 상당 기간 동안 한국의 대중들을 열광케 하였고, 이후 홍콩영화 로 대변되는 중국영화들의 한국 내 위치를 오랫동안 공고히 했다. 일본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수입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현 실에 있어서의 영향은 여전히 강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대중문화의 수입이 금지된 해방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의 시기동안 일본 대중문 화는 우선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있어서 하나의 교 과서적인 역할을 해온 것이 현실이다. 즉 한국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 램들의 드라마와 프로그램들 중 적지 않은 수가 표절에 가까울 정도 로 일본의 그것들을 베끼거나 재료들을 따와서 혼합함으로써 자신들 의 창작물인 양 방영해온 것 자체가 일본 대중문화의 직접적인 수입 이 금지되어 있는 것을 오히려 악용한 사례로 지적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출판만화와 텔레비전용 만화영화 및 게임에 있어서는 일본 상품 중 적지 않은 작품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소비됨으로써 그 문화상품들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13

58 의 원전이 일본 것인지 한국 것인지를 소비자들이 분간하지 못한 채 수용되는 사례들 또한 적지 않았다. 또한 1980년대 후반에 들어 여행 의 증가와 비디오 및 디지털 대중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일본의 문화 상품들을 한국내로 반입해 들어오는 것이 쉬워졌고, 케이블 텔레비전 의 시청권 확산은 대중문화 상품의 국경개념을 무력화시키기 시작했 다. 이는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한국의 시장개방이 단계적으로 시작 되기 오래전부터 이미 일본 대중문화가 한국의 대중문화의 제작과 소 비영역에서 커다란 영향을 계속 미쳐오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2000년대 초기부터 현재까지 동아시아 여러 곳에서 인기 를 끌기 시작한 한국 대중문화 산업 상품들의 의미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 위에서 어떤 위치를 점할 것인가? 특히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한류 담론은 한국 대중문화사에 대한 인식위에서 어떤 역사적 의미 를 갖게 될 것인가? 나아가 거기서 대중문화 상품들을 중심으로 한 한, 중, 일 문화교류 의 활성화와 문화공동체 형성이라는 것은 현 실적으로 어떤 성격을 가지게 되며 어떤 역사적 상황 위에서 탄생한 담론적 산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 고 이 절에서는 개항기 이후 한국에서 대중문화 라고 할 수 있는 것 이 형성되는 초기에서부터 절대적인 자리를 차지했던 해외문화의 유 입 현상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나. 일제시대: 일본 대중문화의 절대적인 영향 대중사회의 형성이라는 것 자체가 근대적 산물이라는 점을 전제하 고, 대중적 매체를 활용한 문화소비상품을 대중문화 상품이라고 한다 면 한국에서 해외 대중문화의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식민지적 인 근대화를 겪기 시작한 개항기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는 곧 해외 대중문화 유입의 역사와 함께 출발 했다. 그리고 그것은 수요와 공급의 자연스러운 시장적 상호작용에 따른 것이기보다는 식민지적 상황이라고 하는 특수한 구조를 바탕으 14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59 로 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대중문화의 소비 자체가 모두 강압적이 었다고 할 수는 없으며, 다수의 대중문화 상품은 한국인들 스스로의 자발적인 문화소비 욕구에 부응하는 형태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 문화적 영향의 방향은 일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중문화를 제작, 유통, 소비할 수 있는 장치와 자본, 그리고 공간의 마련에 있어서 그 러한 일방성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1) 한국 영화사 출범기 일본의 영향 좌파영화인으로서 경향파 의 대표적 활동가이기도 했던 임화( 林 和 ) 의 기록(2002)에 의하면 한국의 영화사는 광무 7년(서기 1903년) 동 경의 흥행업자 요시자와상회( 吉 澤 商 會 )가 한반도에 수입해서 공개한 영미연초회사의 선전필름이 활동사진 형태로 한국내에서 상영된 것 을 효시로 본다. 그 내용은 미국계 담배회사의 선전필름이었으며, 그 것을 들여와 상영한 주체는 동경의 상업 자본이었으므로 한국인들은 단순 소비자로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본격적인 영화 이전 활동사진 이라 불리는 작품들은 역시 일 본 상인들이 들어와 상영한 것으로서 내용물은 미국 유니버설 회사와 프랑스 파테 회사의 단편 및 장편, 일본의 신파물을 담은 활동사진들 이 주종을 이루었다. 그 중 일부는 본래 일본인 관객을 위해 만들어 진 조선 풍물을 담은 활동사진도 있었는데, 이것이 다시 한국에서 상 영되기도 했다. 활동사진 시대는 일본에서도 활동사진 제작이 활발하 기 이전의 시기여서, 미국과 프랑스 등 영화산업을 처음 일으킨 구미 의 작품들이 일본인들의 손을 통해 수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 게 활동사진 시대 에는 한국에서 제작된 것이 전무하며 따라서 제작 과 유통에 한국인이 참여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고 판단된다. 이후 한국에서 짤막한 필름들이 제작되기 시작하는 것은 1918년경 신파 연극이 유행의 한 고비를 넘을 무렵으로 이야기된다. 그러니까 신극좌, 혁신단, 문예단 등의 극단이 동경에서 일본인 촬영기사를 데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15

60 려다가 일본에서 신파연쇄극 이라 불리던 연극을 모방한 내용을 한국 에서 공연할 때 연극의 장면과 장면 사이에 스크린을 내리고 비춤으 로써 극의 역동성을 보조하는 필름들이 나타났던 것이다(김종욱 2002: 73). 여기서 한 가지 더 지적해 둘 것은 당시 한국에서 인기를 끌던 신파극 이라고 하는 것들의 상당수가 - 가장 대표적이며 인기 를 끌기도 했던 [장한몽]을 비롯하여 - 유럽 등에서 만들어진 문예물 원작을 일본에서 각색, 번안하여 일본 내에서 신파극으로 올렸던 작 품들을 그 원전으로 삼고 있었던 사실이다. 한국의 신파극들은 이렇 게 유럽 문예물 원작에서 일본의 맥락에 맞게 각색된 작품이 다시 한 국에 들어오면서 인물의 이름과 배경설정을 한국식으로 번안, 혹은 각색하여 올리는 것들이 많았다. 바로 이런 이중적인 각색을 거쳐 수 입된 문화적 산물이 일본인 촬영기사와 제작자의 손으로 촬영되고 상 영된 것이 당시 한국의 신파극단에서 상영되던 상영물의 다수를 구성 하였다는 점은 이후로 한국 대중문화가 걸어가게 될 외부문화의 이 식 현상과 주체적 성격이 상대적으로 약한 객체적 성격 으로서의 콤 플렉스를 설명하는 틀이 될 것이다. 신파연쇄극에서 공연된 작품 중 한국에서 처음 촬영된 것으로 거론되는 것의 하나는 김도산 등의 신 극좌에서 제작하고 단성사에서 1919년 10월 27일 처음 공연된 활동 사진 연쇄극 [의리적 구투( 仇 鬪 )]라는 작품이었다(김화 2001: 23). 신파연쇄극 사이에 끼어져 상영되는 것을 넘어서서 독립된 작품으 로 제작된 영화는 1920년에 취성좌( 聚 星 座 )와 김도산 등이 경성도청 으로부터 위촉받아 제작한 호열자 예방 선전영화와 1921년 - 김하 (2001)의 주장에 따르면 1923년 작품이 되나 확인하기가 어렵다 - 총독부 산하 체신국의 의뢰로 윤백남이 연출을 맡은 저축사상 선전영 화 [월하( 月 下 )의 맹서] 등이 효시를 이룬다. 즉 독립된 영화작품 자 체가 일본 식민정부의 의뢰로 선전계몽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들이라 는 점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16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61 보다 완전히 흥행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작품으로는 당시 황금관 과 조선극장 두 개의 극장을 경영하던 하야카와 긴타로 ( 早 川 金 太 郞 혹은 早 川 宅 舟 )라는 일본인이 1922년에 동아문화협회라는 회사 를 만들어 거기서 제작한 것으로, [춘향전]이라는 타이틀을 올렸다. 이 [춘향전]은 하야카와( 早 川 )가 감독하고 촬영은 [의리적 구투]를 촬영했던 일본인 히로가와가 맡았다. 다만 주연배우는 한국인이어 서 당시 조선극장의 변사였던 김조성과 김선초가 주연으로 출연했 다(김화 2001: 24). 한국 최초의 춘향전 영화는 이렇게 일본인의 제작, 감독, 촬영으로 만들어져서 일본인 소유의 극장에서 일본인 기사의 손으로 상영되었 다. 이 작품은 당시의 기준으로 보아 흥행에 성공했고, 일본에 수출 되어 상영됨으로써 한국에서 제작된 영화의 일본 수출에서도 첫 기록 을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물론 당시의 맥락에 있어서는 이것이 한국 영화의 일본 수출이라고 인식되지 않았을 것이며 사실상 형식과 내용 에 있어서도 결코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영화사 의 시작은 당시 일본영화사 의 일부에서 진행되던 포함관계 속의 부 분의 역사 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춘향전]의 흥행 성공에 자극받은 단성사의 사주 박승필은 단성사 의 영사기사 이필우에게 촬영을 맡겨 한국인이 촬영을 맡은 최초의 작품인 [장화홍련전]을 제작, 상영하였다. 이 작품은 최초로 한국인 제작자와 촬영기사에 의해 만들어진 극영화로 한국의 영화사( 映 畵 史 ) 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 작품 이후로 박승필은 영화제작에 서 손을 떼게 된다. 그리고 이어 설립되는 최초의 대형 영화사( 映 畵 社 )는 1924년 조선에 건너와 있던 일본인들이 공동출자하여 부산에 설립되는 조선키네마주식회사였다. 전부 일본인 자본으로 구성된 조선키네마 주식회사는 영화의 기업 화를 목표로 촬영소 등의 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자본, 감독, 촬영 등 은 일본인들이 맡았고 출연하는 연기진은 한국인들이 맡았으며, 주로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17

62 한국시장과 일본시장을 동시에 겨냥한 작품을 지향했다. 연기를 담당 한 한국인들은 토월회( 土 月 會 )라고도 불린 무대예술연구회 구성원들 이 주축을 이루었다. 이들은 동경유학생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으 며, 당시 주류를 이루던 신파극에서 벗어나 새로운 연극을 지향하여, 러시아 작가 안톤 체홉의 작품들을 공연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렇게 구성된 조선키네마주식회사는 창립 작품으로 제주도에서 촬영한 [해( 海 )의 비곡( 悲 曲 )]이란 신파극을 만들었다. 출연은 한국인 들로서 안종화, 이채전, 이월화, 이주경 등이었고, 제작과 각본, 감독 은 모두 조선키네마주식회사의 대주주 중 한 사람인 다카사가 맡았으 며, 촬영도 일본인 촬영기사가 맡았다. 이 작품은 1924년 단성사에서 개봉되었고 그 이듬해 일본에 수출, 상영되었다. 여기서도 이 작품의 일본 상영을 과연 수출 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일인지는 의문스럽다. 이어 앞 서 [월하의 맹서]에서 감독을 맡았던 윤백남이 조선키네마에 들어가서 일본인 제작자 및 촬영 스탭들과 함께 한국인 배우들을 고 용한 영화 [운영전]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세조대왕의 넷째 아들 안 평대군의 사생활을 소재로 한 소설 운영전을 각색한 작품으로 1925년 에 개봉되었다. 이후 조선키네마는 [운영전]과 [암광]의 흥행 부진으 로 위기를 맞는다. 1925년에는 흥행저조로 사업위기를 맞은 조선키네마에서 경험을 쌓았던 한국인들이 나와 윤백남이 설립한 백남 프로덕션에서 [심청 전]이 만들어지는 때다. 윤백남은 한국에서의 흥행을 바탕으로 주된 시장으로 겨냥했던 일본시장에 [심청전]을 출시하여 상영하려고 하였 지만 이 작품이 한국에서 흥행하지 못함에 따라 일본시장에서 상영할 기회도 얻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백남 프로덕션 회사 자체가 해산 하게 된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일제시대에 한국에서 제작되는 초 기 영화들이 시초부터 일본시장을 염두에 두고 제작에 임하고 있었다 는 사실이다. 즉 아직 규모가 크지 못한 한국 상영시장은 거기서의 18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63 흥행을 바탕으로 보다 규모가 큰 일본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발판이 라는 의미를 당시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2000년대에 들 어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일부 한류 문화상품들이 한국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일본시장에 들어가 흥행수입을 올리고자 하는 기획 성격을 갖는 것과 비교해보면 보다 흥미로운 사실로 인식될 것이다. 1925년과 1935년까지의 10년은 한국에서 많은 영화사들이 한꺼번 에 설립되는 시기다. 40여개의 영화 프로덕션이 활동을 벌였는데, 실 제로 1년에 제작되는 영화 수는 평균 10편 안팎이었다는 사실에서 많 은 영화사가 생겼다가 또한 금세 소멸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중 주 목을 끌었던 회사와 작품으로는 1926년에 설립된 계림영화협회의 [장 한몽]이다. 이 작품은 일본인 작가가 쓴 금색야차( 金 色 夜 叉 )라는 제 목의 소설이 일본 내에서 인기를 끌었었던 작품으로(김종욱 2001: 83), 한국에서는 그것이 다시 번안되어 신문에 연재되면서 인기를 끌 었고, 다시 신파극으로 올려져 또한 인기가 입증된 작품이었다. [장 한몽]을 영화하면서 먼저 남자 주인공인 이수일 역을 맡은 주연배우 는 일본인 오자와( 大 澤 )라는 배우였는데, 촬영 도중 행방불명이 되어 후반부는 나중에 소설 [상록수]의 작가로 유명해지는 심훈을 발탁하 여 주연배우로 썼다. 이 영화의 감독은 이경손이 맡았고 촬영은 조선 키네마의 촬영기사로 활동했던 니시가와라는 일본인이 맡았다. 1926년이 되어 한국의 영화사는 나중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받게 되는 흥행작품을 낳는다. 요도라는 일본인이 설립한 영화회사에서 제 작을 맡은 나운규 각본, 감독, 주연의 [아리랑]이 그것이다. 이 작품 은 나운규의 시나리오를 본 일본인 사장이 시나리오의 작품적 완결성 을 인정하여 주저 없이 나운규에게 감독과 주연을 모두 맡겼다고 하 는데(김화 2001: 42-43), 작품 내에서 은연중에 일본 제국주의에 시 달림을 당하는 조선 민족의 식민 비애를 반영시켰다는 해석이 이루 어져 조선총독부의 검열에서 여러 차례 말썽을 빚었다. 결국 일본인 제작자는 검열을 통과시키기 위해 일본인 스모리 슈이치를 감독으로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19

64 기록하여 검열을 통과시켰으나 사실상의 감독은 나운규가 맡았음을 여러 증언들이 확인하고 있다. 당시에 일찍이 볼 수 없었던 흥행의 대성공을 기록한 [아리랑]은 하나의 작품이 맥락에 따라 다르게 인식될 수 있는 작품의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즉 일본인들이 보기에는 대중 통속극으로 통할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당시 식민지배하에 있던 한국인들은 그 작품 안에 서 항일 메시지를 느낄 수도 있는 이중적인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었 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화의 기록에 따르면 이 작품에 소박하나마 조선 사람에게 고유한 감정, 사상, 생활의 진실의 일단이 적확히 파 악되어 있고, 그 시대를 휩싸고 있는 시대적 기분이 영롱히 표현 되 고 있다고 해석되고 있었던 것이다(김종욱 2001: 75). 이후 나운규는 액션 활극의 성격을 띤 작품 [풍운아]를 감독해서 다시 흥행에 성공하였다. 이에 힘입은 나운규는 여전히 일본인 자본 가가 제작자로 나선 [들쥐]라는 작품을 [풍운아]와 유사한 스토리 구 조로 만들게 되는데, 내용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조선총독부 도서과에 서 검열을 불허함에 따라 상영이 중단되었다가 재상영 되었다. 이후 흥행성 있는 작품에만 열중할 것은 요구하는 일본인 제작자와 결별하 고 나와 독립 프로덕션을 차린 나운규는 [옥녀], [두만강을 건너서] 등의 작품을 제작, 감독하기에 이른다. [두만강을 건너서]는 일제에 항거하는 민족의 울분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으로서 검열 당국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친 장면 삭제와 제목 변경을 요구받고 겨우 개봉되었다. 하지만 이를 기화로 아직까지도 제작비 지원을 하던 일 본인 자본들과 완전히 결별하게 되자 나운규의 프로덕션도 해산의 길 을 가게 된다. 이후 나운규는 흥행 작품에 몰두하면서 여러 작품을 남기고, 일본인 자본의 원산만 프로덕션에 들어가 1931년에 [금강한] 이란 작품을 감독하였다. 이 작품은 일본인 딸을 둘러싼 러브스토리 에 액션을 가미한 흥미본위의 작품이었는데(호현찬 2000: 57), 사람 들은 나운규가 이러한 작품을 연출하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 20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65 고, 작품 자체도 흥행에 실패했다. 이후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초반에는 좌파 사상에 입각해 영화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활동한 경향파 영화인들이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은 이데올로기를 앞세우는 반면 영화적 흥행성이 부족했고, 조선총독부의 검열과 감시 가 심한데다 자금난까지 겹쳐 1931년 이후 실질적인 영화제작을 하지 못하고 이론 활동에 중점을 두게 된다. 그렇지만 이들의 운동이 신파 조 영화의 구태의연함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진로 모색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된다. 나운규의 [아리랑]과 함께 무성영화기 한국 영화의 2대 걸작으로 거론되기도 하는 [임자 없는 나룻배]는 1932년 이규환의 연출로 탄생 되었다. 이규환은 일본대학 예술과를 나온 친구의 자극과 도움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영화예술연구소에 입소한다. 6개월간의 기초 공부를 마치고 일본의 쇼치쿠 촬영소에 들어가려 했으나 좌절하고 서 울에 왔다가 다시 상하이로 간다. 상하이에서 시나리오를 쓰며 기회 를 기다리던 그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영화의 거장으로 인정받 던 도요다시로( 豊 田 四 郞 ), 스스키 주키치 등에게 사사하면서 본격적 영화수업을 받는다. 이후 일본에서 쓴 한 편의 시나리오를 들고 한국 에 돌아와 나운규의 적극적 주선으로 [임자 없는 나룻배]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1935년은 무성영화 시대가 막을 내리고 발성영화가 발표되어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 발성영화가 녹음장비와 기술을 요구했던 만큼 상대적으로 기술력과 자본력이 부족했던 한국인들의 영화사는 불리 한 상황에 놓인다. 따라서 더 많은 영화인들이 일본 영화사에서 한국 인 스탭으로 일하면서 한국에서의 영화 제작활동을 하게 되며, 이와 함께 일본에서 직수입된 영화의 상영이 한국내 영화소비시장에서 상 대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얻게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의 식민통치는 더욱 직접적인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21

66 형태로 발전한다. 이후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게 된 1940년에는 조선 영화령이 공포되어 영화인들에 대한 등록을 요구하고 조선영화배급 사가 영화배급을 일원하게 되었다. 또한 이전까지 자유롭게 판매되던 필름도 배급제도에 의해 통제됨으로써 이후 일본제국주의의 선전선 동을 목적으로 하는 이외의 영화가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접어든다. (2) 일제시대 대중가요 형성기의 해외문화 유입 (가) 유성기와 음반의 도입 한국에서 대중가요가 대중적 문화상품의 형태로 소비되기 시작한 것 또한 영화와 마찬가지로 일제 식민치하의 근대화시기였다. 그리고 대중가요의 경우에도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미국 등지의 유성기와 음 반이 직접, 혹은 일본을 거쳐 소개되고 소비되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한국인들이 유성기를 최초로 접한 것은 1880년대로 알려지 고 있으며 (한국대중문화예술 연구원 2000: 37) 일반인들에게 축음 기가 인식된 것은 1925년 무렵으로서 당시에는 일본에서 만들어 낸 레코드가 주로 유통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인의 목소리가 음반에 담긴 최초의 일은 1895년 6월 미국 시카고의 만국 박람회에 알렌의 주선으로 박춘재를 비롯한 한국 국악인 10명이 도미하여 빅타 (Victor)회사에서 창과 민요 등을 녹음한 일이다. 박춘재는 이후에도 다시 4명의 기생을 데리고 미국 빅타 회사의 초청으로 일본으로 가서 경기도 잡가들을 여섯 곡 취입하였다. 그러니까 미국 음반제작회사의 일본 지사에서 한국인들이 당시의 대중적 노래라고 할 수 있는 민요 들을 취입한 것이다. 이후 1907년 3월 경기명창들이 일본에 있는 미국 콜럼비아사 스튜 디오에서 녹음 후 음반을 제작하는데 참여하여 그것이 상업음반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이 음반들은 다시 국내로 수입, 판매되었다고 한 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유성기의 국내 보급이 아직 미약해서 그 22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67 경제적 의미는 아직 미미한 단계였다고 판단된다. 1910년 한일합방 후 한국경제와 문화가 사실상 일본의 그것에 편입 되면서 한국의 명창들이 일본에 가서 취입하고, 그 음반이 다시 한국 시장에 반입, 판매되는 경우가 늘어났다. 이 무렵부터는 미국 유성 기, 축음기 회사 뿐 아니라 일본축음기상회 등 일본 내의 하드웨어 제작사들 역시 음반을 녹음해서 제작하고 한국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녹음되는 곡도 전통 민요에서 서서히 벗어나 창가, 찬송가, 일본의 유행가와 양악 등을 담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활동하던 빅타, 콜럼비 아가 한국에도 지점을 설치하고자 노력하면서, 1930년부터 1945년까 지의 약 15년 동안 한국에는 콜럼비아, 빅타, 포리돌, 제축( 帝 蓄 ). 킹 구축음기 회사 등이 일본 본사 혹은 일본 자회사의 한국지점으로 활 동했다. 해방 전 순수하게 한국에서만 활동한 음반사는 돔보와 뉴코 리아레코드사 등 두 개가 발견된다. (나) 서양음악의 도입과 일본식 대중가요의 정착 개항기에서 일제시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한국에 들어온 서양음악 은 1880년대 중국을 거쳐 예수교의 찬미가가 들어온 것부터 시작된 다. 보다 본격적인 서양음악의 국내 유입은 1893년 미국 선교사들에 의한 것으로 특히 아펜젤러의 배재학당이 서양음악 보급에 중요한 역 할을 하였다. 이후 1905년이 지나면서 미국의 교회들에서 한국 교회 를 위한 찬미가를 발간, 보급시키기 시작했다. 보다 대중적인 유행가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는 창가 의 도입이다. 먼저 중국과 일본에서 서양의 song 이나 leid 의 뜻을 한문으로 설명 하면서 창가란 말을 썼는데, 한국 개화기에는 찬송가와 유사한 서양 노래로서의 창가가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로 한국의 대중 가요에서는 미국 찬송가 식의 영향이 들어간 곡과 더불어 서양음악에 가사를 붙여 부르는 곡, 그리고 서양음악이 일차로 일본화한 뒤 다시 들어오는 일본풍의 곡들이 한국말로 번안, 혹은 번역되어 소비는 두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23

68 줄기 물결로 대별된다. 이 두 가지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그리 쉽 지 않은 일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대중가요의 주된 흐름은 일 본의 그것을 거의 그대로 습득하여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게 된다. 1905년에 퍼진 최남선의 [남부철도가]의 경우만 해도 영국 민요 Coming through the Rye라는 곡에 7.5조의 노래를 붙였다. 한편 이 즈음의 곡 중 또한 인기가 있었던 [학도가]의 경우는 일본에서 작곡 되어 불리어지던 [철도창가]의 곡조에 한국말로 가사를 새로 붙여 부 른 노래였다. 1910년대에 많이 불리어졌고 음반으로도 대중에게 많이 보급되기 시작했던 [희망가] 혹은 [이 풍진세상을]은 경우에 따라 계몽적인 노 래라고 오해되기도 하지만 본래 1890년 일본 창가집에 실려 있던 노 래로서 일본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던 것이 한국으로 건너와 새로운 제목과 가사로 바뀌어 다시 크게 유행한 것이다. 한국에서 대중가요 라고 할 수 있는 형태로 퍼지고 상업화도 된 본격적인 노래는 바로 이 [희망가]에서 출발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현재 대중가요사를 연구 하는 이들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이 곡이 전통음악과 다른 새로 운 형식을 도입한 것이면서 동시에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또 음 반이라는 매체를 통해 사회 여러 곳에 널리 보급된 것 최초의 사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후 유행한 노래들을 들자면 일본의 [가레스스끼]라는 노래가 한 국에 건너와 [시들은 방초]라는 번안가요로 불린 것, 톨스토이 원작 [부활]이 일본에서 신파극으로 구성되어 크게 인기를 끌던 것이 다시 한국으로 건너와 가사가 번안을 거쳐 [카츄샤]를 유행시킨 것, 그리 고 일본의 전통민요 가락을 기초로 일부 변형된 일본의 인기 신파극 [장한몽]이 한국으로 건너와 번안되어 이수일과 심순애를 주인공으로 하는 [장한몽]으로 크게 인기를 끌고 그 주제곡의 하나인 [장한몽가] 가 유행가요로 인기를 끌게 된 것들이 주목된다. 즉, 음반, 신파극, 그리고 대중가요 등 모든 것이 일면 서양의 것을 24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69 원전으로 삼으면서도 그것이 다시 일본에서 해석, 변형되어 들어오거 나 아니면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이 음악적으로는 변화를 거치지 않으면서 가사만 번안되어 들어와 소비되는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 던 바, 엄밀히 말한다고 할 때 한국의 초기 대중가요는 일본의 대중 가요의 한 부분집합을 이루고 있는 형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서 비롯되는 한국 대중음악의 태생적 식민지성과 종속성은 이후 20세 기 내내 가요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정체성의 위기의 식과 왜색 논쟁 을 낳는 원인이 되며, 20세기가 다 끝날 무렵에 이르 기까지 일본 대중음악을 공식적으로 수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로 자리를 잡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찬송가조를 기본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서양음계와 악곡전개 방식에 좀 더 충실한 곡들은 학교에서 교육되는 음악과 일부 가곡 등 으로, 일본민요풍을 기조로 변형된 신파로 발전한 일본 대중가요의 곡 구조를 지닌 창가들은 보다 대중적인 가요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음반시장에서의 인기를 비롯한 일반 대중들의 음악적 소비에 있어서는 일본풍의 대중가요가 주류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다른 한 편 조선 말기부터 대중들이 즐겨 부르던 잡가 풍의 민요적 요소들도 근근이 한 귀퉁이에서 그 영향을 지속하고 있었던 바, 이들은 신민 요 라는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불리어지고 소비되었다. (다) 일본을 통한 서양화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일제시대 내내 서양음악의 영향 또한 끊이지 않고 한국에 유입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근대화가 궁극적으로 곧 서양화라고 하는 당시의 사고가 작용한 때문이기도 하며, 대중문 화계 전체에서 그러한 영향이 지속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1925년경 신극단 토월회 멤버로 당시 연극무대의 막간가수로도 활약했던 복혜숙은 [축배의 노래], [여자의 마음] 등 오페라 아리아 몇 곡을 취입하기도 했다. 같은 시기 미국의 파퓰러 음악이나 샹송,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25

70 라틴 음악들도 부분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들 음악은 특히 1927년 한국에 라디오 방송국이 개설되면서 경성관현악단이 클래식, 세미 클래식, 미국의 경음악, 그리고 재즈 음악 등을 연주하기 시작 했다. 1930년대에는 각 극장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극장 소속의 황 금좌 밴드, SMC 재즈밴드 등이 극장과 방송국을 무대로 연주활동 을 벌였다. 또 레코드 직속밴드도 출연해서 오케레코드 직속의 CMC 스윙재즈밴드 가 노래의 반주나 경음악 연주 등의 활동을 하고 음반 을 내기도 했다. 이들 밴드들은 신민요를 스윙 템포로 변형시켜 연주 하고 그에 맞춘 가수의 노래를 공연케 하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신 민요 [노들강변]이 재즈 풍으로 변형되어 인기를 끌었던 대표적인 경 우로 이야기되기도 한다(한국대중예술문화연구원, 2005: 116). 이렇게 미국을 비롯한 서양음악 요소들이 한국 대중가요 및 대중음 악에 유입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주류는 앞서 말한 것처럼 어디 까지나 일본풍의 가요였다. 즉 일본 가요곡 중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끈 곡들은 의례껏 일본계나 한국의 레코드사들에 의해 한국말로 번안 되어 불리어지고 레코드 취입이 이루어졌다. 한국인의 작곡 작품도 이미 일본노래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것이 다시 취입 전 일본인의 손 으로 편곡되어 취입되었으므로 전주나 간주에서 오는 분위기가 일본 가요와 별 차이가 없는 엔카조의 노래가 된 것이다. 다. 해방 후의 대중문화 (1) 영화산업: 미국영화의 영향 확산과 일본영화의 차단 (가) 미국영화 유입의 역사적 배경 미국영화의 수입은 사실상 해방 직후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일제시 대 초기부터 있었다. 다른 대중문화 영역도 그렇지만 일본영화의 영 향이라는 것 자체가 미국영화를 일본에서 소비하거나 그것을 바탕으 로 하면서 영화를 만든 것이 다시 일본 식민치하에 있던 한국으로 들 26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71 어오는 것을 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제시대 한국의 극장들에서 상영되던 영화들은 한국영화, 일본영화, 미국 영화 셋으로 대별될 수 있는데, 형식과 회사구성형식 등에 있어 한국영화와 일본영화는 실질 적으로 구별하기 어려웠던 것이 현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신 미국영화는 그 문화적 이질성과 흥행의 매력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이었다고 말 할 수 있다. 자세한 자료가 부족하여 논의에 한계가 있지만 1925년의 경우, 한 해에 약 20편의 미국영화가 한국에 수입, 상영되었다고 한다. 1930년 대에도 한국 영화시장 내에서 미국영화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한 것 이어서, 일본영화의 그것을 앞서고 있었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일 본영화는 그 숫자가 불분명하나 미국영화에 크게 뒤지지 않는 관객동 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의견이 대두된다. 즉, 한국에서 영화사 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미국영화는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해방직후부터는 이전에 비해 더욱 직접적이고 본격적인 영화 시장의 성립과 함께 미국영화가 전과 비교해 훨씬 대량으로 수입되어 상영되는 단계에 이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분적인 자료이지만 사이 한국에 수입된 외국영화 중 미국영화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65%에 이른다. 나머지는 홍콩 및 대 만영화, 그리고 그 나머지를 유럽 각국 영화 등이 차지했다. 일본영 화는 해방 후 극장에 걸릴 수 없었으며, 이는 일본영화에 대한 개방 이 이루어지는 1998년에 와서야 상황의 변화를 겪는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국내 영화제작과 상영물을 통제하기 위한 법률로 제정된 1962년의 영화법이 외국영화에 대해서는 대체로 연간 25편 내외의 외국영화만 수입을 허용하는 를, 즉 외국영화 수입쿼터제로 적용되었 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제한 속에서도 전체적인 영화소비 시 장은 미국영화의 절대적인 흥행우위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별도의 보호책이 없이는 한국영화가 일정한 시장규모를 확보한 채 제작과 유 통을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었다.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27

72 (나) 미군정의 시작과 미국영화의 장악 해방을 맞이하면서 일제말기 오랫동안 숨죽여 오던 한국의 영화계 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1945년 직후의 한국 영 화시장에서 가장 주목할 사건은 일본영화의 직접적인 수입이 사실상 중단되는 대신 헐리우드영화 중심의 미국영화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로 한국 영화계는 오랫동안 미국영화의 절대적인 영향권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해방 직후 영화시장에서 보이는 또 한 가지 특징은 미국 영화만이 아니라 소련영화, 프랑스 영화, 그리고 중국 영화 등 비교 적 다양한 나라에서 제작된 영화들이 수입되기 시작하였다는 점과, 중국과의 영화교류가 눈에 뜨인다는 점이다. 한 가지를 더 이야기 한 다면 일본영화의 수입이 원칙적으로는 금기시되는 분위기 속에서, 아 직 정부가 성립되지 않은 혼란의 공간을 이용해 일제시대 제작된 조 선총독부의 국책영화가 일부 제목만 바뀌어 상영된다든지(서울신문 ), 일본에서 상영되었던 미국영화가 일본말 자막을 그대로 달고 있는 상태에서 한국에 수입되어 상영되는 현상들(조선일보 )이다. 미국영화의 수입과 한국 내 상영은 먼저 일본어 자막을 달고 있던 [안나 카레리나], [로미오와 줄리엣], [바람과 같이 사라진다], [타 잔], [지구를 달리는 사나이],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9종이 수입 상영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즉 미국의 영화, 배급회사들은 태평양 전 쟁 발발 이전에 일본에서 공개되었던 오래된 미국 영화들을 일본어 자막을 붙인 채 한국의 극장들에 우선 배급함으로서(경향신문 ) 한국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헤게모니 경쟁에서 소련영화에 선수를 빼앗겼던 1945년 말의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노력한다. 한편 막대한 자본과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전까지 보던 영화 와는 흥미와 규모면에서 월등한 차이를 보이는 미국영화에 매료된 한 국관객들은 빠른 속도로 미국영화의 소비자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즉 28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73 영화소비자들에게 미국영화는 곧바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기 시 작해서, 극장 흥행의 대부분이 미국영화에 의해 이루어지는 현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의 영화배급대행사가 한국 의 극장에 대해 불평등한 일방적 조건을 제시하는 단계에까지 이른 다. 즉 미국 9대 영화제작회사의 한국 내 배급대행업체로 설립된 중앙 영화배급사는 서울의 주요극장에 대하여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프로그램 자체를 자신들이 지정하는 바에 따라야만 영화를 배급해 줄 수 있다는 내용을 통고하기에 이른다. 그 조건 중에는 90일 중 52일 은 반드시 중앙배급사에서 지정하여 배급해주는 미국영화를 상영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경향신문 ) 한국 영화 인들의 반발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앙영화배급사는 이후 서 울시내 17개 상설영화관에 대해 다음 내용을 포함한 영화배급 조건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 3개월분으로 영화 5편을 한꺼번에 계약할 것 - 계약금으로 10만원을 납부할 것 - 계약한 영화 5편은 3개월 내에 극장에서 적당히 상영할 것 - 영화 선전비는 극장 부담으로 할 것 - 입장 수입은 매일 중앙영화배급사에 보고할 것 - 뉴스는 사용여부를 불문하고 3개월분 8만원을 선납할 것 - 3개월에 52일 이상은 반드시 미국영화를 상영할 것 (동아일보 ) 등등. 다른 자료에 의하면 해방 후 1948년 3월까지 중앙영화배급사를 통 해 국내에 수입된 미국영화는 7백여 편에 이르며(서울신문 ), 같은 기간 제작된 한국영화는 해방 후 조선영화계의 개화난만 ( 開 花 爛 漫 ) 을 노래하는 기사에도 불구하고 (경향 ) 90 여 편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이야기된다.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29

74 해방직후의 시기 한국 영화소비시장의 경향 중 눈에 뜨이는 또 한 가지는 미국영화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다양한 나라로부터 영 화들이 수입되거나 부분적인 교류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중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1945년 11월에 소련영화가 6편 수입된 것 이다. 이후 1947년 7월에는 중국촬영공사에서 제작된 영화 [충의지가 ( 忠 義 之 家 )]가 수입됨으로서 해방 후 처음으로 중국영화가 수입되고 (자유신문 ) 이후로도 1948년 초까지 8편 가량의 중국영화 가 한국에 수입, 상영되고 있다. 또 1948년 11월에는 프랑스 영화의 한국 배급을 대행하는 회사인 한영사가 설립되어 프랑스 극동 지배인 의 경영아래 활동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대신 같은 기간에 해외로 수출된 한국영화도 있었는데, 해방의 감 격을 표현한 한국영화 [자유만세] 중국어판이 조중( 朝 中 )친선과 문 화교류를 위해 중국에 수출되어 상해를 비롯 중국 각지에서 6개월간 상영되는 계약이 성립되었다(대동일보 ). 그러나 중국과의 영화 교류는 1949년 중국대륙이 공산화되면서 사실상 중단되기에 이 르고, 이후 1950년대 말 쇼 브러더즈의 설립을 기점으로 홍콩의 영화 산업이 본격적으로 부상하기까지 사실상 별다른 교류나 수입이 없는 시기를 맞는다. (다) 경향파와 소련영화의 영향 1928년경에서 30년대 초까지는 한국 영화계에서 경향파( 傾 向 派 ) 라고 불린 작품들이 제작되기도 하였다. 경향파는 1917년에 러시아에 서 성공한 볼셰비키 혁명의 영향으로 공산주의 이론을 받아들인 좌파 예술가들이 결성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 혹은 카프(KAPF) - 에서 주축을 이룬 영화운동이었다. 영화를 공산주의 정치 투쟁의 한 수단으로 인식하면서 계급투쟁을 통한 혁명 사상고취를 지향하는 이 작품들에는 임화( 林 和 )와 서광제 등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이 들의 작품은 조선총독부의 검열과 삭제, 그리고 작품이 가지는 비흥 30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75 행적 성격으로 대부분 흥행에 실패하였고, 경향 내부에서도 점차 경 향파 영화에 대한 정체성 비판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큰 사회적 반향 을 일으킨 것으로 볼 수는 없지만 경향파의 작품들에 당시 러시아 선 전영화들의 영향이 적지 않게 반영되었으며, 원작에 있어서도 그러한 영향이 작용하였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해방 직후 1950년의 6.25 사변이 있기 전까지의 기간에는 미국영 화가 물밀 듯이 들어오는 시기이기만 북한에서는 당연히 북한에 진주 한 소련의 영향으로 소련영화들이 다수 수입되어 상영되었다. 그리고 남한에서도 1945년 11월 한번에 6편의 소련영화가 수입되어 상영되 고 있었다. 1945년도와 1946년의 기록에 의하면(중앙일보 / ) 북한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대부분은 소련영화 로서 소련의 영화선전공작의 맹렬한 기운 에 대해서 거론한다. 그러 나 남한의 경우 미군정은 소련영화에 대해 외무과의 상영허가 제도를 적용함으로써 그 영향력의 확장을 경계하기 시작(서울신문 )한다. (라) 외국영화 수입의 통제를 통한 한국영화 보호강구 해방직후 미국영화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아무런 통제 없 이 활동하던 미국 영화배급 대행사가 한국의 극장들에 제시한 불공정 조건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 일본 어 자막의 외국영화에 대한 금지가 필요하다는 여론도 지속적으로 있 었다. 이에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공연 및 영화관련 법 률들이 제정되고 통제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는데, 그 가장 큰 골격은 한국영화를 보호하고 진흥시키기 위한 보호책이었다. 미군정 이후 정부수립 시까지 외국영화의 수입에 있어서 이미 반입 을 한 이후 수입허가를 하거나, 특히 미국영화의 경우는 중앙영화배 급소를 경유하는 작품들에 대해 수입에 대한 실질적인 제한조치가 없 었다. 영화수입에 관한한 사실상의 무정부상태였다고 할 수 있는 상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31

76 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1949년 1월부터는 상공부 무역국에서 공보 처의 검증을 얻은 영화에 한해 수입을 허가하는 법안이 적용되기 시 작했다(동아일보 ). 이에 따라 원칙적으로 외국영화의 수 입을 한국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제도가 비로소 마련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해방 후 비로소 처음으로 정부의 정책적인 차원에서 영화수 입을 통한 대중문화 교류의 제도적 틀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을 의미 하는 바, 이후 한국이 처한 시대적 정황과 역사적 배경들은 여전히 미국, 일본, 중국 기타 국가의 영화를 수입하거나 교류하는데 있어 중요한 조건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후 미국영화의 수입은 표현상의 내용에 있어 윤리성을 중심으로 하는 검증이 적용되었고, 일본영화는 원칙적으로 수입이 금지되었다. 그리고 1950년에 발발한 6 25 사변이후 고착화된 분단 상황은 중국 영화의 수입이나 중국과의 영화합작에 있어서 공산화된 중국과는 애 초부터 일체의 교류를 차단하는 한편, 영국령 하에 있던 홍콩과의 교 류, 수입에 집중하는 현상을 가져오게 된다. 영화를 비롯한 문화산업 상품 전반에 있어서 반일, 반공 경향은 매 우 미세한 곳에까지 작용했던 바, 예를 들면 1957년 홍콩에서 제작하 여 국내에 수입, 상영허가가 내려졌던 중국영화 [애루]에는 주연급 배우 중 세 사람이 공산 중국에 우호적인 활동을 벌인 중공계 인물 이라는 데 말썽이 생겨 상영이 금지되기에 이른다(조선일보 ) 한편 1957년에는 한국영화 중 홍콩과 동남아에 처음으로 영화 [시 집가는 날]이 영어와 중국어 자막을 달고 수출되었다. 이 영화는 1958년 동경에서 개최되는 아세아영화제에 [백치 아다다]와 함께 한 국 대표작품으로 선정, 출품되어 간접적이나마 일본과의 문화교류가 능성을 조금씩 열어가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1957년에는 두 편의 한중합작 -사실은 한국과 홍콩 의 합작 - 영화가 등장한다. 그 중 먼저 이루어짐으로써 최초의 한 32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77 중합작 이라고 보도된 작품은 이진섭 각본의 [망향]으로서, 한국에서 는 성광상사, 박승학, 함훈식 등이 제작에 참여하고 홍콩에서는 아주 공사, 장국흥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홍콩 측에서는 4명의 주연 급 배우들이, 한국에서는 6명의 주연 혹은 조연급 배우들이 참여하여 촬영에 들어갔다. 한편 1957년 9월의 보도에 따르면 이듬해 쇼 브러 더즈로 발전하는 홍콩의 소씨부자 유한공사와 한국의 한국연예주식 회사가 합작계약을 성사시켰다. [이국정원]으로 제목이 붙은 이 영화 의 계약내용을 보면 촬영에 소요되는 장비와 기술 인력은 홍콩에서 모두 제공하고 한국 측에서는 기타 필요경비 일체를 제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주연급 배우는 7명인데, 그 중 4명의 여주인공은 홍콩 측 에서, 그리고 3명의 남주인공은 한국 측에서 캐스트되는 것으로 내정 되었다. (마) 1960년대의 한국영화 보호책: 1962년 제정된 영화법 이후 1960년대 한국 영화는 이른바 중흥기 에 접어들었다는 표현 이 등장한다. 영화의 제작과 상영편수가 늘어나고, 아직 텔레비전 수 상기가 일반에게 널리 보급되기 전이어서 한정된 오락수단만 가지고 있던 새로운 대중사회의 주역인 소비자들은 극장에서 손쉬운 오락을 찾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진지한 고민이 결여된 영화들의 남발로 인해 한국영화에 식상한 관객들도 늘어났고, 이들은 규모와 볼거리에 서 차원이 다른 외국영화, 그중에서도 특히 미국영화로만 몰려가기 시작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해방 직후부터 한국영화의 존립에 위협을 느끼 며 국산영화 보호책을 부르짖던 문화계인사들과, 역시 자국 대중문화 의 일정한 영역을 보호할 필요를 느낀 정부는 극단적일 만큼 강력한 영화통제 정책을 시행하면서 그 안에 한국영화 보호의 장치로 수입쿼 터 제한 조항을 포함시키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5 16 혁명 직후 들 어선 군사정권에 의해 1962년 공포된 영화법이다. 1962년 영화법 중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33

78 외국영화의 한국수입에 관련된 조항은 외국영화 수입권을 원칙적으 로 국산영화 제작사에만 부여한다는 것이며, 전체적인 국산영화 제작 편수에 비례해서 수입쿼터를 조절한다는 것이었다. 전체 국산영화 제 작편수 대 외국영화 수입쿼터수는 3대 1의 비율로 결정되었다. 이에 따르면 1980년대 초 기준으로 볼 때 대체로 년 25편 정도의 외국영화 가 수입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 25편에 대한 외국영화 수입권을 두고 각 국내영화 제작사들이 경쟁을 하는 구도가 진행된 것이다. 그리고 외국영화 수입쿼터는 국산영화 제작사 중 우수영화, 영화제 에서 수상한 영화, 그리고 영화수출 실적을 가진 회사에게 우선적으 로 배분한다는 규칙도 적용되었다. 특히 수출에 관련해서는 1편의 국 산영화를 수출하는 회사에게 1편의 외화수입권을 배정받을 권리를 주 었다. 국내 영화사들은 한국영화를 만드는 데 열심이기보다는 수익성 이 비교적 손쉽게 보장되는 외국영화 수입권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으 로 한국영화를 제작하는 경향이 이후 강하게 형성되었다고 평가된다. 이에 영화수출 기록의 허위성이 담긴 사건도 여럿 적발되고(호현찬 2000: 151) 외국과의 합작영화 제작 기록에도 문제가 많았다. 특히 가까운 지역권 내에서 큰 비용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 합작의 형식을 추진할 수 있는 파트너로 홍콩의 영화사들이 가장 손쉬운 대상이었기 에 홍콩 영화사들과는 내용상 실제적인 합작이든 아니면 영화수입권 을 얻기 위해 수출실적을 만들어내기 위한 형식상의 것이든 대만 및 홍콩과의 합작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합작은 1970년대에 들어 눈에 많이 뜨이는데, 무협영화 형식이 대다수를 차 지했다(호현찬 2000: 207-8) 한편 1960년대 후반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화한 소위 문예영화가 다량으로 제작된 것은 정부가 우수한 문예영화에 대해 큰 프리미엄을 주고 우수영화 부문에서 우대함에 따라 나타난 결과 중 하나였다. 그 러나 그것은 형식적인 것이기도 했다. 1970년대 전반에 걸쳐 국산영 화가 외국영화 수입쿼터를 얻는 수단으로 전락함으로써 싸구려 통속 34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79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고, 상업성이 없는 문예 영화 등의 소위 우수영 화 는 2,3일 만에 간판을 내렸다. 또 제작되었으면서도 실제 상영되 지 않는 영화들이 연간 3,40편에 달했다. 이에 관련하여 시비가 일자 1969년 정부는 시상부문에서 문예영화란 용어를 없앰으로써 외국영 화 수입쿼터를 얻기 위한 문예영화제작 바람이 가라앉았다. 결국 1962년의 영화법을 통해 한국영화 제작 편수는 일정량을 확 보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중 극장에서 실제 상영되는 비율은 70% 남 짓이었고, 상영일수도 형식적인 것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몇 몇 중요 한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미국영화 중심의 흥행시장 성격이 이 기간 내내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러는 가운데 홍콩과 대 만의 무협영화와 권격 영화들이 한국 내에서 비교적 장기간에 걸친 흥행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또 한 가지 거론할 것은 1970년대 초 텔레비전 시대가 개막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영화 제작편수를 급격하게 감소시키 는데, 예를 들면 1971년에 202편 제작된 국내 영화 수는 1972년에 그 절반 정도인 121편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텔레비전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극장 영화에서 미국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늘어났 다. 텔레비전의 작은 화면에서 충족될 수 없는 큰 화면의 만족감에 걸맞는 큰 규모 예산의 영화들이 헐리우드에서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새로운 무협과 권격 영화 바람을 일으키게 된 홍콩영화계의 쇼 브 러더즈 및 골든 하베스트 영화사 작품들이 뛰어난 오락성을 무기로 한 국극장의 영화소비 시장에 대규모로 쏟아져 나온 것도 이 시기이다. (바) 홍콩/ 대만 영화의 영향 1949년 중국의 공산화와 1950년의 6.25이후 한반도의 분단체제가 고착화되면서 한국(남한)에서는 이제 공산화된 중국 본토와의 교류가 실질적으로 중단되는 국경폐쇄기에 들어간다. 중국본토로부터 영화 와 가요, 기타 문화상품이 한국으로 흘러들어오는 통로가 모두 차단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35

80 되었으며, 이는 1980년대 말 중국의 개혁개방이 시작되는 시기 전까 지 계속된다. 대신 이후 한국에 유입되는 중국 대중문화라는 것은 사 실상 홍콩과 대만의 대중문화 상품이 된다. 그중에서도 한국에서 가 장 지속적이고 강한 영향력을 미쳐온 것은 역시 홍콩의 영화산업 상 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초부터 1980년대 초에 이르는 10여년은 홍콩 무협영화의 황금기로 불린다. 이 시기 홍콩영화의 영향은 한국의 영화소비시장에 서도 매우 중요한 비중을 갖고 있었는데, 그 내용은 초기의 전통 무 협지 방식에 따른 무협극에서 이후 이소룡과 성룡 등으로 대표되는 보다 현대적인 내용과 구성을 지닌 권법영화로 발전한다. 그러나 홍 콩영화의 영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장르를 바꾸어가며 계속 히트하 여 세계적인 차원에서 그 시장을 넓혀갔다. 한국의 영화시장 또한 여 기서 예외가 아니었다. 198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영웅본색으로 대표되는 홍콩 느와르의 화려한 연출이 한국의 영화시장 한편을 휩쓸었다. 1990년대 초반에 는 이전에 없었던 SFX 촬영기법을 동원하면서 전통무술로 회귀되는 것이 접합되어 각광을 받는 새로운 스타일의 무협영화가 또한 한국에 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다시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중국의 개방과 홍콩의 반환 등을 배경으로 중국의 신세대 감독들이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지닌 작품들을 내어놓음으로써 한국에서도 이들에 대한 열기가 대단했다. 1958년에 설립된 홍콩의 영화사 쇼 브러더즈와 1971년에 설립된 영화사 골든 하베스트가 한국시장에 풀어놓기 시작한 무협영화들은 이미 이전부터 한국 내 대중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던 무협소설의 매 력을 바탕으로 삼고 있었다. 영상연출을 담당하는 감독 외에 무술감 독을 별도로 두고 제작되었던 홍콩의 무협영화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중국의 무술이 지니고 있는 현란한 기술과 장인적 능력을 보 여줌으로써 한국의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1960년대 무협영화로는 왕 36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81 우 주연의 [단장의 검]과 유명한 [외팔이]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었다. 1971년 골든 하베스트의 추문회와 손을 잡고 [당산대형]으로 데뷔 한 이소룡의 영화 중 일부에는 한국인 배우 김태정이 당룡( 唐 龍 )이라 는 예명으로 [사망유희]라는 작품에서 이소룡의 대역까지 맡기도 했 다. 이후 1970년대 초는 고전적 무협영화와 쿵푸 중심의 권격 영화가 봇물을 이루었다. 호금전의 [방랑의 결투], 장철 감독의 [의리의 사나 이 외팔이], 이소룡 주연의 [정무문]과 [용쟁호투], 유가휘 주연의 [소 림 36방], 왕도 주연의 [소림사 십대제자]등이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끈 대표적인 작품들에 속한다. 이 시기에는 한국에서도 전문 무술인을 기용한 본격 권격 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는 당연히 홍콩 권격 영화들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홍콩 무협 및 권격 영화에 한국인 배우들이 진출하여 연 기한 경우도 여럿 존재했다(오현리, 2001 :21). 외다리 선풍을 일으 킨 한용철, 주한미군 태권도 사범이던 박종국을 비롯해 김원웅(예명 Bobby Kim), 이영국(예명 Henry Young), 이관영(예명 Alex Lee) 등의 무술사범들이 해외에 진출하기도 하고 한국에서도 영화를 만들 었다. 이들은 국내영화로 활동무대가 한정되지 않고 홍콩과 헐리우드 등을 동시에 드나들면서 활동했다. 황태식(예명 黃 正 利 ), 김용호(예 명 王 虎 ) 등은 주로 홍콩영화의 제작무대에서 활동한 무술배우들이다. 홍콩영화들은 이렇게 한국 인력을 그 안에 포함시키기도 하고 형식 에 있어서 곧바로 한국영화에 영향을 주기도 하면서 한국 영화소비시 장 전반에서도 오랫동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왔으며, 그 오락성을 인정받아 비교적 안정된 흥행을 누려왔다. 1962년 영화법이 적용되 면서 외국영화 수입쿼터의 제한을 피하기 위해 한국과 형식적인 합 작 을 구성할 파트너로서도 가장 손쉬운 대상으로 여겨졌고, 사실상 의 흥행에서도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그 결과 영화법이 개정되기 직 전인 1985년, 1년에 25편의 외국영화만이 수입 가능했던 때에도 미국 영화 21편을 제외한 나머지 4편이 프랑스나 독일영화가 아니라 홍콩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37

82 영화들의 차지로 돌아갔다. 또한 영화법 개정을 통해 원칙적인 외국 영화 수입개방이 이루어진 다음인 1990년 한국에서 상영된 253편의 외국영화 중 홍콩영화는 무려 98편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 해 137편 이 상영된 미국영화와 함께 한국 국내의 외국영화 시장을 거의 양분 하다시피 하는 막강한 위치를 점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 영화소비 시장에서 지속적 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 홍콩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뛰어난 오락 성이다. 특히 무협이나 권격의 정형화된 어느 한 가지에만 머물지 않 고 무협 영화 중에도 다시 희극적 요소를 가미한 작품이 하나의 장르 를 이룬다든지, 권격 영화 붐 속에서도 새로운 형식과 코미디를 가미 한 성룡( 成 龍 )과 홍금보, 원표 등의 작품이 제 2의 무협영화로 발전하 고, 1990년대에 들어 다시 서극 감독의 특수촬영 기법과 전통무술의 기예를 재발견시킨 제 3의 무협영화로 진화를 거듭하는 것들이 주목 할 만한 점이다. 1980년대 수반 홍콩영화에서는 [영웅본색]으로 대표 되는 홍콩 느와르 라는 독특한 장르영화를 만든 것도 주목된다. 이러 한 영화들은 결국 지난 수십 년에 걸쳐 한국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흥행의 기조를 이루어왔으며, 한국 안에 각 장르와 작가, 배우들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자들과 팬들의 층을 형성해온 것도 사실이다. 1990년대에 이르러 중국의 개혁개방이 시작되고, 다시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홍콩영화의 인력과 기술은 대거 헐리우드로 이동해갔다. 홍콩영화의 영향력 자체가 급격히 약화 되면서 결과적으로 한국영화소비 시장 내에서 홍콩영화의 존재도 그 명맥을 잇기 어렵게 되었다. 성룡과 주윤발, 이연걸과 서극은 이제 헐리우드 영화를 통해 한국의 극장을 장식하게 되었다. 대신 1990년대에 한국에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중국 제 5세대 감독 들이라고 불리는 장예모를 위시한 중국 본토출신 감독들과 왕가위를 비롯한 신세대 감독의 작품들, 그리고 코미디적 소품으로 흥행의 틈 을 메우는 오락영화들이다. 38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83 (2)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TV드라마 영화-일본대중문화 의 실질적 유입 1945년 해방 이후 199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부는 일본 의 대중문화산업 상품에 대해서 지속적인 수입 불허 원칙을 고수해왔 다.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야 일본 대중문화 산업 상품에 대한 단 계적인 수입개방을 준비, 적용하게 된다. 2005년 지금까지도 아직 일 본의 대중문화산업 상품들은 한국 영토 안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수입 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식민지 형태를 통한 근대화로 인해 현대 한국의 대중문화 탄생 자체가 일본문화와 동질적인 정서구조 및 모방의 형태 로 형성되었다는 데서 오는 문화적 정체성의 위기감이 전반적으로 중 요한 작용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 보다 복잡한 작용들이 각 시대에 존재해온 것도 사실이다. 유신헌법 시대의 특수 한 정치적 맥락에서 별도의 해석이 필요한 것이지만 한국에서 만들어 진 대중가요 상품에 대해서까지도 거기에 일본적 색채 가 있느냐 없 느냐는 왜색시비 가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일부 한국 대중가요에 대 해서까지도 왜색 이라는 이유로 정부에서 그 유통과 공개적 소비를 금지시키는 역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 1945년 이후 1990년대 중반의 공개적 일본 대중문화상품에 대한 단계적 개방 시작 사이에 50여 년 동안의 단절 이 있었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대중문화는 현실에 있어서는 항상 한국 대중문화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본 환경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1980년대부터는 멀티 미디어의 발전 을 통해 일본 대중문화산업 상품들이 별다른 장애 없이 한국의 문화 소비 시장 안에 깊숙이 들어와 일상적으로 소비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출판물의 형태를 띤 만화, 청소년 전자오 락실에서 청소년들의 놀이와 감수성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환경으로 존재해 온 PC게임, 그리고 텔레비전 등에서 역시 어린이들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39

84 의 정서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만화영화들이었다. 한편, 직접적으로 완성된 작품이 일본에서 수입된 것은 결코 아니 지만 한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편성하는데 있어서 오 래 전부터 일본의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자료 제공처 역할을 해왔음 또한 관련업계에 종사하는 이들 모두가 인정하 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오래 전부터, 적어도 1980년대 초부터 한국의 TV 쇼프로그램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 그리고 드라마들 중 상당수는 일본TV의 형식과 스토리 라인을 표절했거나 번안, 재편성 짜깁기 하는 방식을 통해 창작되고 한국의 안방에서 소비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출판만화의 경우는 출판물에 대한 수입에는 제한이 없었으므로 일 찍부터 일본의 만화는 한국의 만화시장에서 유통될 수 있었다. 특히 일본만화의 그림은 그대로 둔 채 지문만을 한국어로 바꾸어 번역 혹 은 번안한 작품들이 일찌감치 한국의 만화 소비층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게 됨에 따라 일본만화의 스토리 구성과 만화의 정서들은 곧바로 한국 만화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한국의 TV에서 방영 되었던 어린이 만화영화 중 상당수 역시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이 번 역, 번안되어 방영되었는데, 당시 한국의 소비자들은 그것이 일본에 서 만들어진 만화인 것을 잘 모른 채 소비하기도 했다. 어른들은 그 것이 일본에서 제작된 작품들이라는 것을 알았을지 모르나 [우주소년 아톰]과 [사파이어 왕자], [캔디 캔디], [마징가 제트]를 매일 보며 자 라던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어린시절 웃음과 울음을 함께하 며 지내온 그 프로그램들이 일본 의 것인지 한국 의 것인지를 알지 못했으며, 그런 사실이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1980년대 장년층 들 일부 사이에서도 열광적인 인기를 끌어 매니아 그룹을 형성했던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은하철도 999]는 은하철도 999인 것이지 그것이 일본 것이건 불란서 것이건 한국 것이 건 상관이 없는 문제였다. 물론 그 작품이 일본에서 만들어진 작품임 을 알게 된 후에는 그 소비자들은 그로 인해 일본의 문화적 저력에 40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85 대해 인정하는 자세를 갖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 또한 사실이지만 말 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자장비의 발달과 함께 1980년대부터 한국 청소년 들의 놀이문화 중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전자오락실 의 프로그램 대부분이 일본에서 만들어진 데서 더욱 강화된다. 오락에 사용되는 그림과 캐릭터만으로는 그 문화적 국적성이 곧바로 인식되 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일본산 전자오락 프로그램들은 일찍 이 한국의 미래 문화소비 세대의 감수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아이템들 을 제공하며 그들과 함께 성장해 왔다. 일본대중문화 개방 이전의 시기에 한국에 유입되었던 일본 대중문 화 상품의 영향은 다시 한국 텔레비전의 각종 프로그램과 드라마 기 획의 교과서적 준거로 활용되어온 일본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도 나 타난다. 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증거를 대기가 어렵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TV 프로그램에 대한 끊임 없는 표절시비와 논란은 한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기획자들이 일본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강력한 영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러한 영향들은 그것이 일본에서 제작된 일본 문화적 산 물이라는 점이 소비자들에게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강한 영향 력을 가지고 한국의 대중문화 소비자들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아왔다. 시기가 다시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대중 미디어의 복합화 현상이 가속되었다. 이미 1980년대부터 일반에게 광범하게 보급되었던 VCR 과 멀티미디어 매체들, 그리고 케이블 텔레비전과 위성방송의 전파망 은 국가 정부에 의한 기계적 통제로 그 흐름을 조절할 수 있는 차원 을 넘어섰다. 인터넷의 빠른 보급은 그러한 환경변화의 속도를 이전 의 맥락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으로 만들었다. 그럼에 따라 이미 1980년대부터 일반에게 꽤 알려지기 시작했던 일본 대중문화의 상품 들은 1990년대에 들어 국가의 대중문화시장 개방과는 무관하게 한국 내에서 점점 널리 유통, 소비되기 시작했다.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41

86 막상 일본영화가 한국 시장에서 단계적으로 개방되기 시작한 1998 년의 경우, 세계적인 성가를 얻고 있었던 일본영화 작품들이 국내에 서 개봉되었을 때 그 관객 수가 예상했던 수치를 훨씬 미치지 못했던 것은 그 작품들이 실제로 인기가 없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즉 이미 그 작품에 관심을 가질만한 사람들은 공식적 시장개방 이전에 다른 경로와 매체를 통해 그 작품들을 감상해 버렸기 때문이기도 했던 것 이다. 또한 한국의 대중문화 상품들 상당수가 그동안 이미 일본대중 문화 상품의 요소들을 그 안에 담은 채 일본 대중문화적 성격들을 한 국 소비자들에게 간접 혹은 직접적으로 소비시켜왔으며, 이제 한국의 대중문화산업 상품들은 일본 대중문화적 성격의 흡수에 더하여 미국 대중문화상품의 성격을 거의 자기 것으로 체화하고 흡수함으로써 그 러한 복합문화적 성격을 토대로 한 자기 자신의 대중문화 성격을 만 들어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2. 중국의 아시아 대중문화 유입의 역사적 배경 중국은 역사적으로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여러 민족들이 권력을 얻 기 위해 싸우면서 그 결과 문화적인 혼성(hybridity)을 만들어내었고 지금 현재도 한족( 汉 族 )을 포함하여 56개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 족 국가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이와 더불어 중국이 다른 나라와 문화적인 교류를 이어온 것 역시 매우 오래 되었다. 예를 들어 신라 나 고려의 혜초나 최치원 등도 중국과 고대 한국의 문화적 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3 그러나 1949 년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하여 사회주의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을 세 운 이후 몇 가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부와 교류가 거의 사 3 미국(1위), 러시아(2위), 일본(4위), 중국(7위), 한국(12위) 등이다. Elisabeth Skons, et al., Military expenditure, SIPRI Yearbook 2002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2), p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87 라지게 되었다. 이 절에서는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중국과 외부 사회의 교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가. 영화 부문 1895년 처음 등장한 영화는 홍콩을 거쳐 상하이로, 상하이를 거쳐 중국 전체로 확산되었다. 1900년대 초 중국의 영화 산업은 주로 외국 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가장 잘 알려진 영화상( 映 畵 商 )은 스페인 사람 라모스(A. Ramos)로 1903년부터 10여 년 동안 상하이 뿐 아니 라 우한( 武 汉 )같은 지역에까지 극장 체인을 운영하였다. 4 또한 상하 이에 만들어진 중국 최초의 영화 촬영 회사 아세아영화공사( 亚 细 亚 影 片 公 司 ) 역시 미국인에 의해 만들어졌다. 중국에 영화가 처음 소개된 후 얼마 동안은 유럽의 영화들이 집중적으로 상영되었으나 1900년대 가 되면서는 주로 미국 영화들이 중국의 극장을 장악하였다. 당시 영 화 제작에 있어서도 미국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현재 의 중국 영화 산업을 형성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어느 정도 지속되고 있는 경향이라 할 수 있다. 예 를 들어,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로 그 당시까지만 해도 중국의 영 화 산업이 상당히 큰 비중으로 의존하던 유럽에서 필름을 가지고 올 수 없어 아세아영화공사는 어쩔 수 없이 영화 촬영을 중단하고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영화들이 대거 상하이 에 들어오면서 유럽 영화를 대체하였고 필름 역시 미국에서 들어오면 서 영화 촬영을 재개할 수 있었다. 당시 중국 영화는 서구 아방가르 드나 소련의 몽타쥬학파로부터 받은 영향은 매우 적었고 할리우드 영 화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할리우드의 영화들이 중국 영화시장에서 상당한 위협이 되었고 시장을 거의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루쉰( 魯 4 루홍스 슈샤오밍/김정옥 역, 차이나 시네마: 중국영화 백년의 역사 (서 울: 동인, 2002), pp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43

88 迅 ) 역시 많은 비판을 하였다 년대까지 미국의 영화가 중국 영화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1930년대 민족의식의 발현과 민족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등장하면서 중국 영화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계기들이 마련되 었다. 이미 20년대 중반부터 폭발적으로 등장한 중국 영화제작사들 이 30년대 들어와 왕성하게 활동을 전개하고 특히 1932년 좌익영화 운동이 시작되면서 중국의 영화는 급속하게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1937년부터 시작된 중일전쟁과 뒤이어 발발한 국민당과 공 산당의 내전으로 인해 중국 영화 산업은 20년대 중반부터 성장하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위축되기 시작한다. 여러 전쟁을 피해 상하이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많은 영화인들이 중국 내륙으로 옮겨 항일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였고 또 많은 수는 홍콩으로 이주하여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홍콩 영화 산업이 발전하게 되는 기초를 만들어낸다. 6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중국 대중문화의 교류는 중국 본토와 홍 콩으로 나누어 언급할 필요가 있다. 본토에서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 한 후 사회주의의 맹주 인 소련이나 동구권과의 교류 활동을 제외하 5 陈 伯 海 ( 主 编 ), 上 海 文 化 通 史 ( 上 海 : 上 海 文 艺 出 版 社, 2001), p. 1786; 李 亦 中, 中 国 电 影 概 观, 李 亦 中 / 吕 晓 明 ( 主 编 ), 中 国 电 影 卷 ( 上 海 : 华 东 师 范 大 学 出 版 社, 1993). p. 3 등을 참고할 것. 물론 당시 영화시장의 90% 이상을 미국 할리우드 영화가 장악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 시 중국 영화산업이 미비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는 견해도 있다. Zhen Zhang은, 당시 미국 영화의 강세에도 불구하고 중국 영화가 완전히 서구 화, 식민지화된 것은 아니었다고 보며 오히려 당시 중국 영화산업의 특징 은 일종의 혼성(hybridity)이라고 보는 것이 적합할 것이라 지적한다. Zhen Zhang, Teahouse, Shadowplays, Bricolage: Laborer's Love and the Question of Early Chinese Cinema, Yingjin Zhang(ed.), Cinema and Urban Culture in Shanghai,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9), pp 특히 pp 를 보라. 6 특히 한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홍콩 영화감독 왕지아웨이( 王 家 卫 )의 대 표적인 영화 <화양연화>와 <2046> 등이 바로 이 시기 홍콩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상하이 사람들과 함께 왕지아웨이의 영 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그들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1940년대 상하이를 떠나 홍콩에 정착한 사람들에 대한 언급을 더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44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89 고는 다른 문화권과의 교류가 거의 자취를 감춘 반면 홍콩은 아시아 여러 나라와 합작의 방식을 통해 매우 활발한 교류를 실천하게 된다. 본토에서는 정치/경제적으로 소련의 모델을 차용하게 된 것과 마찬가 지로 영화계에서도 소련의 영화 미학과 특성을 소개하거나 작품을 상 영하는 빈도가 높아지게 된다. 특히 폭력물 이나 음란물 로 분류할만 한 미국영화들이 점점 많이 들어오고 조잡하게 만들어진 영화들 역시 증가하면서 그에 대한 대안으로 소련 영화의 미학과 영화이론이 집중 적으로 소개되었다. 7 물론 이러한 경향은 1930년대부터 등장한 것이 지만 50년대에 이르러서는 그와 같은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또한 많은 영화들이 주로 동구권에서 열리는 국제 영화제에 출품되어 상을 받게 되는데, 특히 체코슬로바키아의 카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 (Karlovey Vary International Film Festival)가 대표적이다 년대 홍콩 영화산업은 한국과 일본,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 시아, 태국, 베트남 그리고 70년대에는 유럽과 미국 등 다양한 나라 들과 합작하여 영화를 제작하였다. 9 물론 이는 어느 정도 산업적인 필요성 때문이었다. 특히 50년대에서 70년대까지 홍콩의 쇼 브라더 스(Shaw Bros.)와 한국의 신필름이 많은 합작 영화를 만들었는데, 홍콩 쇼 브라더스 측에서는 현대화된 관객의 취향에 맞는 영화를 만 들어야 하고 새롭게 컬러 영화를 시도해야 하는 것에서 어떤 부담을 느껴 적합한 합작 파트너를 찾은 것이 바로 한국이었다. 일본은 영화 기술이 이미 앞서 있고 경험도 많기는 했지만 당시 홍콩 사람들이 가 지고 있었던 반일감정 때문에 적합한 합작 상대가 아니었던 반면 새 롭게 성장하는 한국의 영화계는 그들에게는 적절한 파트너가 될 수 있었다. 7 陈 伯 海 ( 主 编 ), 위의 책, pp 루홍스 슈사오밍, 위의 책, p 샘호, 또 다른 나를 본다는 것: 홍콩 영화와 한국과의 협력, 허문영 외 아시아 영화 네트워크의 뿌리를 찾아서: 한-홍 합작시대 (부산: 부산국 제영화제, 2004), p. 38.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45

90 또한 중국이 사회주의국가가 되면서 중국어권 영화의 최대시장을 잃게 되었기 때문에 다른 시장을 개척해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한편 한국의 경우 막 시작된 영화산업의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도 홍콩, 나아가 아시아 전역까지 시장을 확대할 필요를 충족시킬 방법을 홍콩 과의 합작으로 찾고자 하였다.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필요성도 존재 하고 있었는데 서류상으로만 합작 영화로 꾸며 외화수입 쿼터를 피해 가기도 하고 영화 수출 자격을 얻기도 했으며 합작을 빌미로 그 당시 쉽게 구하기 힘들었던 생필름을 반입하기도 하였다. 10 당시의 합작 영화들이 그리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는 없고 그 당시와 지금까지도 한국의 일부 논자들이 저질 폭력 영화, 싸구려 영화 등으로 비난함 에도 불구하고 합작을 통한 인적/물적 교류가 어느 정도 중요한 위치 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영화평론가 허문영은 다음과 같이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합작은 낯선 이웃이 함께 영화를 만드는 일이다. 여기서 많 은 가능성이 태어난다. 먼저 공동제작에 참여한 국가의 관 객이 그 영화의 관객이 되는 길이 넓어진다. 그것은 민족 국가 경계를 넘어서는 다국적 문화권을 형성하는 작업의 일 환이 된다. 만일 아시아 10개국이 공동 제작하는 영화가 만 들어진다면, 그 10개국의 관객에게 이 영화는 낯선 아시아 영화가 아닌 확장된 자국 영화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런 방식의 영화 만들기가 많아질수록 자국 영화라는 구원의 대 중적 힘은 희미해져 갈 것이다. 더 중요한 가능성은 텍스트 상에서 생겨난다. 합작은 텍스 트 상에서 두 문화권의 대화를 예비한다. 하나의 문화권에 서 생성되는 대중서사에는 대개 타자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년 7월 6일 조영정(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과의 인터 뷰, 보다 자세한 논의는 조영정 황금기에서 암흑기까지: 한국합작영화약 사, 허문영 외 아시아 영화 네트워크의 뿌리를 찾아서: 한-홍 합작시대, (부산: 부산국제영화제, 2004), pp ; 로우 카 1950년대와 60년대 한국과 홍콩의 교류과정, 허문영 외 아시아 영화 네트워크의 뿌리를 찾 아서: 한-홍 합작시대 (부산: 부산국제영화제, 2004), pp 참고 할 것. 46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91 가로지른다. 그러나 그 타자가 서사의 공동저자가 되는 순 간, 다시 말해 두 문화권이 함께 서사를 만드는 순간, 공포 와 혐오는 이해와 관용에의 가능성을 열기 시작한다. 한-홍 합작은 서로의 물리적 필요에 의해서 태어났다. 그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합작의 시대를 거치 면서, 두 나라의 문화가 점점 더 많이 대화해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11 홍콩이 다른 나라와 합작 영화 제작을 통해 활발하게 교류를 하는 동안 중국 본토는 대약진 운동, 반우파 투쟁, 그리고 1966년부터 시 작된 문화혁명 등 연이어 등장한 정치적 캠페인들과 대중운동의 영향 으로 영화산업을 포함한 대중문화 영역 전체가 계속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문화혁명이 진행되던 1966년 5월부터 1973년까지 7년 동안 중국에서는 한 편의 극영화도 만들어지지 않고 단지 세 가지 강조 원 칙( 三 突 出 ) 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모범극( 样 板 戏 )만이 제작 가능한 사 태까지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국내 상황으로 인해 외국과의 문화적 교류는 완전히 불가능했고 개혁개방이 공식적으로 제기된 1978년을 지나 80년대에 이르기까지도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게 된다. 80년대에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단절되 었던 대만과 홍콩의 대중문화가 중국 본토로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서 서히 중국에서도 다른 나라와의 대중문화 교류가 다시 등장하게 되었 다. 개혁개방 정책의 실시와 문화산업의 성장이 있었지만 지난 시기 의 정치적 격변으로 인해 만들어진 간극으로 인해 중국 문화산업은 대중들의 요구를 충족시킬만한 마땅한 콘텐츠가 부족한 상황에서 홍 콩과 대만, 지리적으로 근접한 일본의 대중문화들이 그 자리를 채우 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그 이전에도 이들 문화상품과 콘텐츠들이 비 공식적인 통로와 방법을 통해 중국 남부와 몇몇 대도시에 유통되었던 11 허문영 더 많은 더 깊은 대화를 위하여: 합작의 문화적 의미에 관한 단 상, 허문영 외 아시아 영화 네트워크의 뿌리를 찾아서: 한-홍 합작시대 (부산: 부산국제영화제, 2004), pp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47

92 것은 사실이지만 본격적이고 공식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80년 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성장해 있는 홍콩, 대만, 일본의 문화 산업이 만들어낸 문화상품들 중 정치적 의도나 의미를 담지 않은 것 들이 중국 본토에 유입이 되면서 출판, 영화와 드라마, 대중음악 등 중국 대중문화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년대부터 개혁과 개방에 대한 논의가 조심스럽게 시작되고 이에 따라 대중문화 의 영역에서도 외부 사회와의 교류가 시작된 것이다. 지금도 강타이 ( 港 台 ), 즉 홍콩[ 香 港, xianggang]의 뒷 글자와 대만[ 台 湾, taiwan] 의 앞 글자를 이어붙인 조어로 불리는 홍콩과 대만 대중문화는 그동 안 많이 발전하지 못한 대륙의 대중문화만을 접해왔던 본토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에 대해 전보옥은 문화배경에 있어서 중국 대 륙과 뿌리가 같지만 근 40여 년 간의 단절로 인해 이질적인 것이 되 어버린 홍콩 대만의 대중문화들이, 문화영역의 속성상 비교적 정치적 요인이 배제되고, 고도의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정치적 의도가 없다는 전제 하에 비교적 쉽게 중국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졌다 고 언급한 다. 13 최근까지 대만과는 출판, 텔레비전 및 영화, 대중음악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홍콩의 경우 영화와 대중음악의 본토 유입이 두 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강타이 대중문화의 대륙 유입이 약간씩 변화하고 있다. 대중음악 방면에서는 중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본 토 가수들의 음악이 있기는 하지만 홍콩이나 대만 대중음악들이 지금 현재에도 훨씬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반면, 중국 본토와 홍콩 대만 사이의 교류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영화와 텔레비전 드 라마의 경우는 그다지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 못하다. 대만의 경 12 이와 관련하여 전보옥 양안 대중문화교류가 중국 현대 대중문화 형성에 미친 영향, 장수현 외 중국은 왜 한류를 수용하나: 한류의 중국적 토 대에 대한 다학문적 접근 (서울: 학고방, 2004), pp 참고. 13 위의 글, p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93 우는 정치적인 미묘한 관계로 인해 정치적 입장이나 주제가 강하게 드러나는 것들은 교류의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대중문화 교류가 주로 역사물과 무협물 혹은 청춘남녀의 현대 애정물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홍콩의 경우에는 주로 코미디나 무협물의 비중이 컸었는데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많은 홍콩의 영상업계 인력들이 할 리우드나 동남아 등지로 빠져나가게 되었고 그 이전까지 급속하게 성 장했던 홍콩의 영화들이 지나친 자기복제 로 스스로 함정에 빠지게 되면서 본토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실정에 이르게 된 다. 14 나. 대중음악 부문 대중음악과 관련하여 외국과의 교류를 조금 더 자세히 논의할 필요 가 있는데 중국의 대중음악 역시 중국의 영화산업과 비슷한 노정을 거쳐 성장해왔다. 1908년 상하이에서 프랑스인에 의해 음반회사가 설립된 이래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전까지는 미국의 메이저 회사나 일본의 자본이 중국 음반 시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1949 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에는 그 이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중 국인들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음반업체들이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70 년대까지는 여러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 60년대 중 반 중국 음반들이 해외에서 큰 인기를 얻어 심지어 홍콩 시장에서 중 국 음반의 점유율이 70%에 달하기도 했었지만 70년대의 정치 상황으 로 중국 음반시장이 큰 타격을 입어 80년대 홍콩, 대만과의 교류가 다시 시작되었을 때에는 홍콩과 대만의 음악에 완전히 압도되는 정도 14 이런 점에서 대중문화의 교류는, 단순히 콘텐츠의 교류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교류 당사자인 개별 사회들 내부의 여러 가지 상황과 특징들이 복잡하게 연관되는 과정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홍콩 영화의 간 략한 역사적 흐름과 현재의 위기와 도전에 대해서는 송철규, 고도춘몽 ( 孤 島 春 夢 ): 홍콩영화 일람, 강계철 외, 현대 중국의 연극과 영화 (서 울: 보고사, 2003) pp 참고.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49

94 에 이르렀다. 지금 현재도 중국 대중음악의 인기 차트를 보면 강타 이 즉 홍콩과 대만 가수들의 이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본토 출 신 가수들의 인기는 그보다 못한 것으로 나타난다. 홍콩/대만의 음악과 관련하여 언급할 만한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중국의 록 음악에 대한 것이다. 15 중국, 특히 베이징을 중심으로 90 년대부터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얻기 시작한 록 음악은 홍콩/대만 음 악의 모태로 여겨질 수 있는 서구의 음악으로부터 시작했지만 홍콩/ 대만 음악의 주류적 경향인 팝의 성격과는 다르다는( 非 主 流, 另 类 ) 두 가지의 특징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즉 음악의 뿌리는 홍콩/대만 음악과 동일하게 서구에서 찾을 수 있지만 주류 음악과는 다른 어떤 것으로 여겨짐으로써 서구적이지만 기존의 음악과는 다른 성격을 가 진 음악으로 언급된다. 16 이런 점에서, 중국 젊은이들의 서구에 대한 이중적 태도(ambivalence)를 중국의 록 음악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 이다. 80년대를 지나 실질적인 개혁개방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90년대부 터는 비로소 외국과의 대중문화 교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서구의 음악과 영화들이, 비록 어느 정도 제한된 방식이기는 하지만, 17 공식 적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하게 된 것도 이 시기이며 지금 현재 한창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자주 언급되는 한류( 韓 流 ) 역시 중국에서 록 음악은 摇 滚 (yaogun)이라 불린다. 두 동사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단어인데 摇 는 흔들다(to rock/shake)의 의미이고 滚 은 구르다(to roll)라는 뜻으로 영어의 rock'n'roll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16 Robert Efird, Rock in a Hard Place: Music and the Market in Nineties Beijing, Chen, Nancy, Constance D. Clark, Suzanne Z. Gottschang and Lyn Jeffery (eds.), China Urban: Ethnographies of Contemporary Culture,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1) pp 외국의 대중음악이나 영화가 중국에 공식적으로 유입되기 위해서는 정부 기관이 발행한 허가증을 가지고 있는 단위가 정부의 심사절차를 거쳐 수 입해야 하며 영화의 경우는 수입 편수가 제한되어 있다. WTO가입을 계 기로 제한조치들이 점점 완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제약이 보 다 자유로운 교류를 막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50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95 년 국교 수립이 된 이후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과의 교류 가능성이 처음으로 제기된 것은 1994년 3월 28일 양국정부간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 을 체결한 이후로 볼 수 있다. 18 그 러나 경제적 교류나 문화교류에 앞서 스포츠 분야의 교류가 먼저 이 루어졌다. 90년대 중반이 되면서 대중문화 분야의 교류가 서서히 이 루어지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행사로는 1996년 10월 베이징에서 처 음으로 열린 한국문화주간 행사를 들 수 있다. 한국의 전통문화와 현대적 예술 공연, 대중문화와 패션쇼 등이 중국 관중들에게 소개되 어 한국문화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시기부터 중국 국제 라디오방송국( 中 国 国 际 广 播 电 台 )을 통해 한국 음악이 FM 방송에서 처음으로 소개되었고 1997년부터는 서울음악실 ( 韩 城 音 乐 厅 )이라는 한국 음악 프로그램이 중국의 한 한국 공연 기획 사의 제작으로 방송되기 시작하였다. 1998년 H.O.T의 음반 <행복> 이 중국 당국의 정식 비준을 받아 중국에서 출시되고 예상을 훨씬 뛰 어넘는 판매기록을 세우면서부터 한국의 음악들이 중국에 지속적으 로 소개되었다. 1998년 클론의 <쿵따리샤바라>를 시작으로 구피, 박 미경, NRG, 베이비복스 등 50여 종에 달하는 한국 가수의 음반이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소개되었고 본격적인 한류 가 시작되었다. 공연분야에서도 한국 가수들의 콘서트가 기획되어 개최되었는데 1999년과 2000년 클론과 H.O.T의 공연을 시작으로 한국 가수들이 중국 현지에서 직접 노래를 하는 기회들이 만들어졌고 지금 현재까지 도 가끔씩 이어지고 있다. 19 또한 한국의 많은 노래들이 중국어로 번 18 장영, 중국에서 한류 현상과 한국 드라마 수용에 관한 연구: 중국 대학 생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학위논문, 2003), pp 한국 대중음악의 중국 유입과 관련한 자세한 논의는 전오경, 한류 현상 과 그 지속 가능성에 관한 연구: 중국에 진출한 대중음악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대학원 문화학 협동과정 문화학 전공 석사학위논문, 2004) 를 참고할 것.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51

96 안되어 중국가수에 의해 불리는 경우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전오경에 따르면 한국 음악이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소개되던 1998년, 1999년 에는 중국 음반시장이 침체기였고 중국 시장에 진출했던 일본 음악 산업 역시 철수를 준비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한국 음악이 중국 대중 음악 시장의 빈자리 를 메울 수 있는 콘텐츠로 급격하게 부상할 수 있었다. 20 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부문 중국의 텔레비전 방송 역시 지금까지 언급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80년대 중반에 홍콩에서 수입되기 시작한 것이 교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시초였다. 그 역사를 간단히 살펴 보자. 1984년 CCTV가 홍콩에서 제작한 < 霍 元 甲 >을 방영하여 굉장한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일본 드라마 < 血 疑 >, 브라질 드라마 < 女 奴 >, 멕시코 드라마 < 誹 謗 > 등이 중국에서 연달아 방영되었다. 이렇게 1980년대 말까지 해외에서 대륙으로 드라마들이 대규모로 진입하였 다. 1990년대 후기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 제작하는 프로그램이 부 족하여 수입 드라마에 장기간 의존해왔다. 기본적으로 정치적 심사기 준에 부합하기만 하면 어떤 외국 드라마든지 구입할 수 있었다 년대 후기에 해외 수입 드라마는 중국 텔레비전 방영에서 고조에 달 했다. 강타이 드라마가 강력한 기세로서 대규모로 진입해서 각 방송 사마다 시청률 수위를 차지하고 드라마 시장의 주요 부분을 점유했 다. 국산 드라마의 발전을 촉진하고 드라마 방영 질서를 바로잡는 등 여러 요소들을 고려하여 국가광전총국은 잇따라 일련의 정책 법규를 발표해서, 21 드라마 수입의 주체, 수입 드라마의 수량, 생산지, 제재 20 위의 글, p 광전총국은 국가 라디오 영화 및 텔레비전방송총국( 國 家 廣 播 電 影 電 視 總 局 )의 약칭으로 영화,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 영상제품의 제조와 판매 등 중국의 대중매체와 관련된 대부분의 영역을 담당하는 국무원 산하 기 52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97 등을 한정하고 점차 해외 드라마의 수입과 방영을 통제했다. 해외 드 라마의 수입과 방영에 관한 주요 관리법규의 이름과 내용, 시기 등에 대해서는 <표 I-1>을 참조하면 된다. 구이다. 방송협력협정을 체결할 때 중국측 당사자는 RTPRC(중화인민과 파전대)인데, 이 기구가 ABU(Asia-Pacific Broadcasting Union: 아시 아태평양방송연맹)에 가입한 중국 유일의 회원인데, 실제로는 광전총국 이 이름만 빌린 것이다.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53

98 <표 I-1> 국가 광전총국의 해외 드라마 수입과 방영에 관한 주요 법규 목록 법규 명칭 주요 내용 선포 시기 외국 TV 프로그 램의 수입과 방 송에 관한 관리 규정 각 방송국이 매일 방영하는 각 프로그램에서 외국 드라마는 드라마 총 방영시간의 25%를 넘어서는 안 된다. 그 중 황금시간(18~22시)에는 15%를 초 과해서는 안 된다 격투와 살인내 용의 외국드라마 의 수입과 방영을 엄격하게 제한하 는 것에 관한 통 지 드라마 수입과 합박과 방영 관 리를 더욱 강화 하는 것에 대한 통지 무협, 범죄 등을 제재로 한 외국 드라마의 수입 을 크게 줄이기를 요구한다. 이미 도입을 허가한 상술한 제재의 외국 드라마에 대해 각지에서는 방 영 전 자체적으로 신중하게 심사하기 바라며, 최대 한 가능한 극중의 격투장면을 편집하기 바라며, 매 일 19~22시 황금시간대에는 방영해서는 안 된다. 수입 드라마의 산지와 제재를 조정하는 힘을 확대 하여 같은 국가, 지역 혹은 제재가 중복되고 유사 한 드라마의 집중적인 수입을 피한다. 궁중과 무술 을 제재로 한 수입 드라마에 대해 엄중하게 제한 해야 하고, 이런 류를 제재로 한 수입 드라마는 연 간 수입 드라마 총량의 25%를 넘어서는 안 된다. 각 방송국, 유선라디오TV방송국은 19~21:30의 시 간에는 광전총국에서 방영허가를 얻은 수입 드라 마 외에는 수입 드라마를 배치해서는 안 된다. 같 은 수입 드라마는 3개 이상의 성급 TV방송국 상성 프로그램채널에서 방영해서는 안 된다 성급 방송국 프 로그램 채널 관 리업무 강화에 관 한 통지 TV 드라마 관리 규정 18~22시의 시간에 방영하는 수입 드라마의 비율 은 반드시 15% 이내로 제한한다. 그 중 19~21:30 의 시간에는 광전총국이 방영을 허가한 수입 드라 마 외에 수입 드라마를 방영해서는 안 된다. 모든 TV가 같은 것 을 보여주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같 은 수입 드라마 역시 3개 이상의 상성 프로그램채 널에서 방영해서는 안 된다. 방송국은 매일 방영하는 각 프로그램에서 수입 드 라마는 드라마 총 방영시간의 25%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그 중 황금시간(18~22시)에는 15%를 초 과해서는 안 된다 자료: 央 視 - 索 福 瑞, 中 國 電 視 劇 市 場 報 告 ( 北 京 : 華 夏 出 版 社, 2004), p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99 1992년 개혁개방이 본격적이고 구체적으로 진행되면서 텔레비전 방송 역시 외국과의 교류를 증진하기 위한 하드웨어의 구축과 콘텐츠 의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부터 위성을 통 한 프로그램 송출을 시작하고 외국에 안정적으로 프로그램을 공급할 수 있는 네트워크의 구축, 외국 방송사와의 교류 확대 등이 이루어졌 다. 또한 그 이전까지는 주로 외국에 있는 화교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해당 국가나 지역에 판매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90년 대 중반 이후로는 전문적으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세계 각국 언어로 중국의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22 이와 같은 시도로 90년대 이전에 비해 보다 많은 중국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이 외국에 소개되기는 했지 만 여전히 프로그램 수출보다는 수입량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역시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한국 프로그 램의 중국 유입만을 생각해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그 이전 부터 몇 편의 드라마들이 중국에 소개되기는 했지만 23 한류 라고 부 를 만큼의 특이한 현상으로 등장한 것은 <사랑이 뭐 길래( 爱 情 是 什 么 )>, 안재욱이 출연한 <별은 내 가슴에( 星 梦 奇 缘 )> 24 등을 시작으로 한국 드라마에 대한 상당한 관심이 수면으로 올라온 시점부터라 볼 수 있다. 이를 시작으로 한국에서 만들어진 드라마의 상당수가 공식 적으로 공중파를 통해 방송이 되거나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VCD 전집의 형태로 유통이 되는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중국의 관객 22 徐 光 春 ( 主 编 ), 中 华 人 民 共 和 国 广 播 电 视 简 史, ( 北 京 : 中 国 广 播 电 视 出 版 社, 2003), pp 장영, 위의 글, p 중국 안재욱 팬클럽에 대한 사례 연구로 고단단 장수현, 한류 수용자의 특성과 그 함의에 대한 고찰: 중국의 안재욱 팬클럽에 대한 사례 연구, 장수현 외 중국은 왜 한류를 수용하나: 한류의 중국적 토대에 대한 다 학문적 접근 (서울: 학고방, 2004), pp 를 참고할 것. 특히 이 연구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한류를 포함한 외국 대중문화와의 교류 현상 내부에는 하나의 일반적인 像 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성 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55

100 과 만나고 있다. 25 그러나 중국 방송 프로그램이 한국에 들어와서 한 국 관객들과 만나는 경우는 매우 드문 형편이다. <포청천>처럼 공중 파를 통해 방송된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한동안 상당한 인기를 얻었 던 <황제의 딸> 같은 경우도 지역 방송을 통해 소개되었을 뿐이며 지 금 현재는 중국 전문 유선채널을 통해서만 중국의 드라마(대부분은 홍콩에서 만들어진 무협 드라마이다)를 접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그나 마도 시청률이 매우 낮은 실정이다. 중국의 대중문화산업은 20세기 초반 서구의 영향을 받아 태동했으 며 교류도 서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과 함께 대중문화는 국가의 철저한 통제 아래 체제를 옹호하고 선전하는 방향으로 제작되었으며, 외부와의 교류는 급격히 감소했으 며 그 대상도 공산주의 국가들에 거의 한정되다시피 했다. 개혁개방 정책이 시행되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소재의 제한이 완화되고 교류 도 다시 활성화되었는데, 주요 교류 대상은 홍콩과 대만이었다. 이들 은 같은 문화적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오랜 세월 자본주의체제 하에 서 대중문화가 발달되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중국 대륙에 수용되었 으며 그 양상은 거의 일방적이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중문 화의 교류는 그 대상이 다양화되고 양도 훨씬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 는데,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은 급속하게 떠오른 주요 교류 대상국 이 되었으며, 그러한 현상은 한류 라는 단어가 유행하는 것으로 대표 된다. 25 한국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와 같은 한국 드라마들이 중국에서 매우 선풍적인 인기 를 끌고 있는 것처럼 그려지지만 중국에서 만난 중국인들 의 이야기와 직접 관찰한 바를 종합하면 그 정도의 선풍적인 인기 를 끌 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 언론 자료, 정부 기 관 몇 곳의 자료들 중 몇 가지는 매우 심각한 수준의 과장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56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01 3. 일본의 아시아 대중문화 유입의 역사적 배경 이 절에서는 일본이 (동)아시아와 관련된 대중문화를 수용, 소비해 온 역사적 배경을 개관한다. 거기에는 몇 번의 피크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1930년대에서 40년대 전반에 걸친 소위 대륙붐, 1970년 대 이후의 아시아붐(1980년대의 한국붐을 포함함), 그리고 1990년대 이후 계속되어 온 아시아붐과 2000년대의 한류 등이다. 가. 1930년대 대륙붐 19세기 후반 이후 소위 탈아입구 를 정책적으로 표방한 근대 일본 에서 아시아로 다시금 회귀하자는 아시아주의 가 지배이데올로기로 부상한 것은 1930년대의 일이다. 1931년의 만주사변에 이어 괴뢰국 가 만주국 을 세운 일본은 이때부터 중국과의 오래된 전쟁 상태로 접 어들게 되었고 이 와중에 조선을 병참기지로 재편성하는 지정학적 정 책을 취하게 되었다. 이런 대륙침략을 정당화해 주는 이데올로기가 미국, 영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을 가상의 적으로 삼고 그 앞에서 일 본이 맹주로서 하나 된 아시아를 보호한다는 아시아주의였다. 이런 이데올로기가 실제 정책에도 반영이 되면서 국책으로 대동아공영권 의 구상이 이루어지고 추진되었다. 그리고 이 공동체 구축의 구상은 1941년 말에 실제로 연합국과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강화되고 구체화 되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아래 1937년 7월에는 만주에 滿 洲 映 畵 協 會 (세칭 滿 映 )가, 1939년 5월에는 상해에 中 華 電 影 股 份 有 限 會 社 (중화전영)가 설립되었다. 만영은 일본의 영화업계가 직접 만들었다기보다는 만주 국 관료들의 전략적 발상에서 새로 설립되었는데, 곧 일본 영화업계 의 중국 진출의 거점이 되었다. 중화전영은 그 때까지 상당한 활동을 보이고 있던 현지의 중국 영화산업계를 기반으로 하여 그것을 관리하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57

102 는 성격을 지니었다. 음반업계도 영화업계와 연계되면서 만주나 상해 등지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중일전쟁을 전후하여 일본 문 화산업은 동아시아 규모로 활동을 본격적으로 확장해 나갔다. 이 시기에 일본 내에서는 흔히 대륙붐 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나타 나게 된다. 그것은 영화나 가요를 비롯한 대중문화 영역에서 중국 대 륙을 소재로 삼은 작품들이 당시 일본인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현상이다. 이것이 근대 일본에서 아시아와 관련된 대중문화가 커다란 붐을 일으킨 첫 사례이다( 明 治 시대 초기에 크게 유행한 明 清 楽 의 사 례도 있음). 이 대륙붐의 중심적인 장르는 영화와 대중가요였다. 그중 가장 상 징적인 예는 1938년에 만영에서 데뷔하고 이어 일본 東 宝 가 제작한 영화에 연달아 출현하면서 일본에서 대스타가 된 李 香 蘭 의 경우이다. 그녀는 만주에서 태어나 항일기운이 높던 북경에서 중국인으로 여자 학교를 다니던 일본인( 山 口 淑 子 )이었다. 흔히 대륙삼부작 이라 불리 는 白 蘭 の 歌 (1939), 支 那 の 夜 (1940), 熱 砂 の 誓 ひ (1940)에 출연 하면서 그녀는 중국인 으로 일본인의 인기를 얻었다. 이런 작품들의 주제가인 < 白 蘭 の 歌 >, < 蘇 州 夜 曲 >, < 紅 い 睡 蓮 > 등 역시 크게 히트를 쳤다. 이런 주제가를 포함하여 1930년대에는 흔히 대륙멜로디 라고 불리 는 노래들이 일본에서 인기를 모았다. 제목에 중국 각지의 지명을 사 용하고 그곳을 묘사허가나 또는 그곳을 무대로 설정한 일본 가요나 일본인 작곡가가 중국풍으로 작곡한 것이 중심이었다. 나아가 중국 상해 등지의 가요를 일본어로 번안한 것도 있었고, 또 일본어와 중국 어를 섞거나 아니면 중국어만으로 부른 것도 있었다. 이런 대륙멜로 디는 이 시기 일본에서 보인 좀 더 폭넓은 이국취미와 관련되어 있었 다. 그 대상에는 조선도 포함되었고 아리랑, 춘향전 등은 일본인 사 이에서 널리 알려졌고, 특히 아리랑은 일본어로 번안되거나 제목이나 가사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나아가 꽤 많은 조선인 가수들이 일본에 58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03 서 데뷔하여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와 같은 일본인의 아시아 소비와 더불어, 일본의 메이저급 영화 회사들이 만영이나 중화전영 등과 제휴하여 중일 합작영화를 만들기 도 했다. 萬 世 流 芳 (상해상영 1943년, 일본상영 1944년), 春 江 遺 恨 (1944년 상해 일본 상영, 일본제목 狼 火 は 上 海 に 揚 る ) 등이 그 러한 예이다. 아편전쟁의 영웅 林 則 徐 를 찬양한 전자는 사실상 중국 영화였던 반면, 후자는 일본의 명치유신의 志 士 坂 本 竜 馬 와 중국의 태평천국의 의군과의 관계를 그린 일본영화였다. 전자에 출연하여 중 국어로 주제가를 부른 李 香 蘭 은 이 영화의 상영을 계기로 일부 중국 인에게도 중국인 으로 상당한 인기를 모으게 되었다. 이 당시에는 또 한 한일 이나 한중 등의 합작영화들도 만들어졌다. 만영과 조선의 고려영화사가 제휴하여 제작한 鮮 滿 합작영화 복지만리 는 후자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것은 당시 조선에서도 정책적으로 추진되던 만주 이민을 장려하는 내용이었다. 1930년대에서 1940년대 전반에 걸쳐 일본에서 일어난 대륙붐 은 국책에 의한 붐의 조성 또는 국책과 맞아떨어진 붐의 형성이라는 성 격이 강함은 분명하다. 그리고 대중문화 영역에서 일어난 붐은 아시 아주의 이데올로기의 좀 더 대중적이고 정서적인 차원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붐을 일으킨 영화의 경우를 보아 도 국책이나 이데올로기가 노골적으로 반영된 국책영화나 선전영화 라기보다는 대부분이 오락영화였으며, 따라서 문화 텍스트와 국가의 정책 또는 아시아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가 갖는 관계는 단순한 반영 관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륙붐의 확실한 특징은 일 본인에 의한 전유라는 성격이며, 거기서 그려진 아시아는 항상 환영 하는 타자, 보호해 줄 만한 타자였다. 예컨대, 李 香 蘭 이 위의 대륙삼 부작에서 맡은 역할은 처음 일본에 대해 혐오하거나 저항하다가 일본 인 남자의 고귀한 뜻과 개인적인 사랑에 감명을 받아 그를 사랑하게 되는 중국인(만주인) 여자였다. 따라서 대륙붐에서 반일하고 항일하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59

104 는 아시아의 모습은 그려지지 않았고, 이에 따라 당시 중국영화 등이 직접 일본에 소개되고 일본인에게 소비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 1970년대 아시아 붐 전후 일본에서 아시아에 대한 대중문화적 관심이 다시금 높아진 것 은 1970년대 이후의 일이다. 그 흐름을 마련한 가장 큰 맥락은 한국, 중국과의 국교 정상화(각각 1965년과 1972년)였다. 그런데 그 이전 시기에 일본에서 아시아인들의 활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국인을 경우를 보면, 1950년대에는 이미 吉 屋 潤 (길옥윤, 일본에서는 기치야 준으로 알려짐)이 재즈밴드에서 색소포니스트로 활약하고 있었고( 白 木 秀 雄 クインテット, 吉 屋 潤 とクール キャッツ), 그 외에도 일제시대에 형성된 인맥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 국 뮤지션들이 있었다. 1960년에는 패티 김이 NHK가 공식적으로 초 청한 최초의 한국가수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이 외에도 많은 재일교 포 가수들이 일본에서 통명을 쓰면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965년의 한일수교는 양국의 대중문화 교류에 있어 하나의 커다란 분기점이 되었다. 곧 장세정, 이미자, 김치 캐츠, 패티 김, 남상규, 김소희(판소리) 등 많은 한국인 가수들이 일본에 와서 음반을 취입, 판매하였다. 이 때의 교류는 일본의 음반업계가 주도하여 이루어졌 다. 예컨대, 일본 빅터의 프로젝트에서는 재일교포 가수로 당시 상당 한 인기를 얻고 있던 小 畑 実 (본명 강영철)를 비롯하여 佐 伯 孝 夫, 佐 藤 邦 夫 등의 빅터 관계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또한 일제 시대의 인맥이 아직 남아 있었다. 佐 藤 邦 夫 의 경우 아사쿠사의 국제 극장에서 있던 조선악극단 공연의 프로듀스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41년부터 3년 동안 조선악극단에서 일했고 김해송, 손목인, 박시 춘, 김정구, 이난영, 남인수 등과 친교를 맺은 인물이었다. 이로써 1960년대 후반에는 한일수교라는 정치적 맥락과 업계의 인센티브, 일제 식민지 시대의 인맥 등으로 인해 많은 한국인 가수들이 일본에 60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05 서 음반을 판매하였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이 때 일본 에서 한국가요의 붐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1970년대로 접어들어 아시아인의 활동이 일본인 사이에서 전후최 초의 아시아 붐 이라 할 만한 반응을 일으킨 것은 다시 중국계의 영 화와 가수였다. 영화로는 1973년에 이소룡의 燃 えよドラゴン 가 공 개되어 홍콩의 쿵푸영화 붐을 일으켰다. 이것은 1979년에 Mr. BOO 시리즈로 이어져 Samuel Hui( 許 冠 傑 )를 비롯한 광동팝의 인기를 수 반하였고, 1982년경에는 성룡의 영화가 다시금 쿵푸영화 붐을 불러 일으키는 등 홍콩영화가 새로운 아시아 붐의 견인차 역할을 계속해서 수행하였다. 대중음악의 영역에서는 1970년대 이전에 이미 재일중국인 胡 美 芳, 李 玲 香, 黃 淸 美 등이 알려져 있었지만, 특히 1971년에 대만가수 歐 陽 菲 菲 (오오양휘휘)가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일본레코드대상의 신인 상을 수상한 것이 해당영역에서 아시아인의 존재를 강하게 심어준 계 기가 되었다. 이어 1973년에 일본 포리돌과 계약하고 1974년에 데뷔 한 Teresa Teng( 鄧 麗 君 )은 1995년에 사망할 때까지 일본에서 지속적 으로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 또 같은 시기에는 홍콩에서 내일한 Agnes Chan( 陳 美 齡 ), Frances Yip( 葉 麗 儀 ) 등이 일본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는 등, 이 시기 만해도 20명 이상의 동남아시아 가수가 일본에 서 데뷔하고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이 같이 1970년대에 와서 전후 처음으로 아시아 붐 이 일어나게 된 데에는 1972년의 중일수교가 중요한 변수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중 일수교와 더불어 국교가 단절된 대만 그리고 홍콩 등지와의 교류가 오히려 활발해졌다. 따라서 단순히 수교라는 정치적 맥락이 이 붐을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대륙출신 가수로는 1970년대 말에 데뷔한 關 牧 村 이 효시이며, 주목할 만한 인기를 끈 것은 2000년대에 등장하는 女 子 十 二 楽 坊 까지 기다려야 했다.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61

106 다. 1980년대 한국가요 붐 이와 같은 1970년대의 아시아 붐과도 연관되면서 은경자(박은경), 미치 걸, 릴리 김, 김상희, 최양숙 등 한국의 가수들이 일본에서 데뷔 하고 활동을 전개했다. 그런데 일본에서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큰 인기를 얻은 것은 1977년에 한국가요의 번안곡 <カスマプゲ>(가슴 아프게)를 히트시킨 이성애이다. 이 때 東 芝 EMI가 판촉을 위해 붙인 엥까의 원류를 찾는다 라는 문구는 일본레코드대상 기획상을 받았 다. 그녀는 데뷔한지 1년 반 만에 결혼으로 은퇴할 때까지 많은 음반 을 취입하고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 이 외에 1970년대에 데뷔한 한국 인 가수로는 김연자, 박경희, 김세레나 등이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1983년에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크게 히트를 쳤고 이어 1985년에 나훈아가 데뷔하는 등 한국인 가수 의 일본 데뷔가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1988년의 서울올림픽 시에는 김연자가 부른 공식송 < 朝 の 国 から>(아침의 나라에서)( 吉 屋 潤 작곡), 코리아나가 부른 <ハンド イン ハンド>(손에 손 잡고) 등이 유행했 다. 그리고 1989년말에는 일본 최대의 국민적 인 TV가요축재 紅 白 歌 合 戦 에 조용필, 김연자, 계은숙, 패티김 등 4명의 한국인 가수가 출 장하면서 한국가요 붐이 절정에 달하였다. 이 시기 한국가요 붐을 보면 한국인 가수들이 엥까 (트로트) 가수 로 활동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성애나 조용필 등 한국에서는 소 위 트로트가수 가 아닌 가수들도 일본에서는 엥까 가수 로 활동한 경 우가 많았다. 이 때 한국가요=엥까 라는 등식이 성립이 되었다. 엥까 라는 장르가 오래되고 향수어린 옛 노래로 간주된 당시 일본의 인식 의 틀에서 한국인 가수나 한국가요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인식되었 다. 이 시기까지의 아시아 붐의 특징을 대중음악의 경우에서 보면 현지 의 노래가 일본으로 수입되는 것보다 가수가 일본에 와서 일본어로 노래하는 경우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노래가 수입된 경우는 62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07 많지 않다. 대만의 경우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걸쳐 수많은 일본 곡이 대만에 수입 되었지만, 일본으로 수입된 것은 < 海 鷗 >와 < 我 家 在 那 裡 >의 두 곡(한국계 화교 劉 家 昌 의 작품) 밖에 없다. 한국의 경우 한국가요 는 조금 더 많이 소개됐지만 그래도 이 같은 문화교통의 불 균형은 역시 존재하였다. Ⅱ.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적 배경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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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III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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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1. 한국의 아시아 대중문화 유입현황과 대응 가. 대중문화 시장의 개방과 이후의 추세 지난 10여 년간 한국의 아시아 대중문화 유입 현황에 있어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1998년 일본의 대중문화상품에 대한 단계적 시장 개방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중국의 대중문화 상품에 대해서는 홍콩 및 대만의 문화상품들이 해방이후로도 계속하여 한국으로 유입되어 왔기 때문에 실질적인 단절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홍콩의 영화산업 상품과 무협 및 역사 드라마 등은 1970년대 이후 한국의 대 중문화 소비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해왔고, 작품과 스 타에 따라서는 열광적인 국내 팬들을 보유하기도 했다. 중국 본토의 경우는 1949년 이후 중국의 공산화 이래 1980년대 말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이 있기 전까지는 문화상품 수입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 시기 중국 본토는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대중문화 산업을 발달시킬 여건을 지니지 못하고 있기도 했다. 그렇지만 장 예모우, 첸 카이거를 비롯한 제 5세대 영화감독이라 불리는 중국 본토 출신 감독들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면서 한국에서도 그들의 작품 이 큰 인기를 끌었다. 여태까지 한국의 대중문화 시장에서 영향을 미 친 중국 문화상품들은 주로 영화와 드라마 등 영상물을 중심으로 이 루어지며, 이에 반해 대중가요 및 기타 음악의 음반 산업 상품과 그 멀티미디어적 가공물들은 그리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해왔다. 반면 일본 대중문화 상품은 1945년의 해방 이후 1990년대 중반까 지 공식적인 국내 수입이 금지되어왔다. 한국의 근대화 시기에 식민 종주국으로 자리 잡으면서 한국의 현대 대중문화 성립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결정지어온 일본이기에 한국 정부는 해방 후 현재에 이르 기까지 일본 대중문화산업에 대해 경계를 지속해왔다. 따라서 1998 년의 일본 대중문화 산업에 대한 수입개방이 있기 전까지는 공식적인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67

112 차원에서 일본 대중문화 산업의 상품을 수입할 수 없었고, 일본 대중 문화의 한국 내 영향을 최소한으로 차단하고자 하는 정책적 기조가 이어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대중문화 상품들은 여러 가지 비공식적 경로를 통해 특히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 활발히 소비되었고 지속 적인 영향을 미쳐왔다. 한국 대중가요의 형식과 내용을 직접 만들어 내고 유통시켰던 일본의 대중음악 산업은 한국에서 만들어지고 판매 되던 대중음악 안에 항시 존재하는 영향력 있는 요소이기도 했다. 비 공식적인 차원에서 일본의 음반과 음악들은 불법복제를 거치거나 아 니면 한국 대중음악에서 그 원전 표절의 시비를 끊이지 않게 발생시 키며 보이지 않는 영향력으로 존재해 온 것이다. 이 점은 드라마를 비롯한 영상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의 대중문화 상품들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그것이 일본의 것을 베꼈는지 여부, 일본의 문화적 색채를 너무 많이 지니고 있지는 않느냐는 비판 등이 끊이지 않아, 일본 대중문화 상품에 대한 경계는 해방 이후 항시 존재해온 중요한 담론 및 정책적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는 가운데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 방침이 발표되고 이 후 한국 대중문화 시장에서는 일본 대중문화 상품에 대한 단계적 수 입개방이 이루어졌다. 그 대략적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일지 1998년 10월 8일 한 일 양국 정상간 한일 파트너십 공동 선언 발 표. 김대중 대통령, 두려움 없이 임하되 단계적 으로 일본 대중문화 개방 방침을 천명. 1998년 10월 20일 (1차 개방) 한 일 공동제작 영화 수입개방. 한국 영화에 일본 배우 출연 가능. 68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13 일본영화 중 4대 국제영화제 수상작 수입개방 일본어판 만화와 만화 잡지 등의 출판물 수입개방. 1999년 9월 2일 (2차 개방) 정부가 공인하는 국제영화제(총 70여 개) 수상작 수입개방 전체 관람가 영화 수입개방(애니메이션은 제외). 2000석 이하 규모의 실내 장소에서 일본 대중가수 국내 공 연 허용. 2000년 6월 27일 (3차 개방) 12세 및 15세 관람가 등급 영화 수입 개방. 국제영화제 수상한 극장용 애니메이션 수입 개방. 모든 규모의 대중가수 국내공연 허용. 일본어 가창을 제외한 나머지 일본음반 수입개방. 게임기용 비디오게임을 제외한 여타 게임물(PC게임과 온 라인 게임 등)수입 허용. 2001년 7월 12일 정부, 일본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 항 의로 일본 대중문화 추가개방 무기 중단 발표. 2002년 말 한 일 공동 월드컵 축구 대회 등의 성공적 개최로 양국 국민간의 상호 신뢰관계가 회복, 추가 개방 분위기 조성. 2003년 6월 7일 한 일 정상회담 공동성명: 일본 대중문화 개방 확 대 표명과 4차 개방 계획안 마련. 2003년 9월 16일 (4차 개방) 영화 음반 게임 분야 완전 개방 (방송 과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보완 조치 마련해 개방 범위를 조 율한 뒤 2004년 1월 1일 함께 개방). 위에서 본 것처럼 일본 대중문화 상품에 대한 개방이 최근의 일에 불과하고, 시장이 한국 내에서 형성되는 데는 나름대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볼 때, 현 단계에서 한국에 유입되는 일본 대중문화 상품의 영향을 판단하는 것은 아직 섣부르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중국에 대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69

114 해서도 마찬가지여서, 홍콩의 중국본토 반납 이후 아직 산업구조와 사회적 성격상 자체 내의 대중문화 산업을 발달시키는데 그 초기적 단계를 밟고 있는 중국의 대중문화 산업이 한국에 유입되고 있는 현 황을 지금 판단하는 것도 성급한 일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해방 후 미국 및 서양의 대중문화 상품들을 가장 적 극적으로 수용하고 스스로의 내부에 흡수하며 소비해온 한국의 대중 문화 산업계가 다시 중국 및 일본의 문화적 요소들을 그 안에 포함시 킨 혼성적 성격을 지닌 문화상품들을 내놓으면서 최근 동아시아 일대 에서 몇 가지 문화상품들을 인기리에 판매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일 찍부터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홍콩의 영화산업 상품이나 일본 의 영화,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과는 차원이 다르게, 이제 몇 작품들이 동아시아 일부에서 인기를 끌고 수출되기 시작하는 현 단계 는 한류 상품에 대한 극단적인 찬양과 필요이상의 평가절하들이 겹 쳐지는 국내담론을 낳고 있다. 이에 이러한 한류현상에 대한 분석과 담론 평가 이전에 현 단계 한 국에서 나타나는 동아시아 대중문화 상품의 유입형태와 현황을 정리 해보는 것이 필요하며, 이에 바탕을 둔 실질적인 평가 및 전망이 있 어야 할 것이다. 아래에서 살펴볼 것은 한국의 대중문화 소비시장에 서 공식적으로 추정되는 아시아 대중문화 상품 유입에 관한 자료를 근거로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대로 한국 안에서의 아시아 대중문화 상품 특히 일본의 그것을 현실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해 야 한다. 공식적 수입과 소비 이전부터 비공식적 수입과 소비가 폭넓 게 발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나. 영화와 드라마 2001년경부터 한국 영화시장에서 외국영화가 수입되는 편수는 몇 년간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특히 2003년과 2004년 국내 극 장에서 한국영화가 흥행에 큰 성공을 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70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15 2005년 현재 그러한 추세가 계속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 다. 또한 실제 한국영화의 흥행성공이 몇 작품에 치중된 것으로서, 한국영화 전반의 제작과 상영편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거나 다양해진 것은 아니라는 점도 유의할 사실이다. 2002년을 기준으로 볼 때 국내 극장용으로 수입된 영화의 원산지 를 보면 미국 영화가 170편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그 다음으 로는 일본(18편), 프랑스(16편), 독일(11편), 홍콩(10편)의 순서를 보 인다. 중국의 경우 대중문화 산업이 아직 미약한 중국 본토의 작품들 은 비교적 적은 편이며, 여전히 홍콩의 오락영화가 대종을 이룬다. 일본의 경우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작품 중심으로 수입이 이루어지고 있었기도 하지만, 일본 영화와 드라마가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끈 것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등 미야자키 하야오 의 애니메이션과, 비디오 대여시장에서 일부 층에게 인기를 끌었던 이와이 슌지 감독의 몇 작품을 빼면 아직 크게 눈에 뜨이는 것이 없 다. 그렇지만 이것은 아직 공식적인 시장이 자리 잡지 못한 초기 단 계의 현상일 뿐인지도 모른다. 보다 장기적인 차원에서는 적지 않은 저력을 축적하고 있는 일본 영화산업의 상품들이 한국에서 어떤 영향 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1) 중국과 홍콩 영화 1996년 홍콩의 중국본토 반납 이후 홍콩영화는 그 영향력이 급격 히 상실되었다. 그에 따라 적어도 20여 년간 한국 영화소비 시장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온 홍콩영화의 수입과 극장에서의 소비가 급격 히 감소했다. 그렇지만 극장에서의 소비를 대신하는 미디어 매체로서 의 비디오 플레이어가 널리 보급되면서 홍콩영화는 비디오 대여점에 서 지속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확실한 한 영역을 점하고 있다. 2005년 최근에는 1980년대 말 홍콩 느와르의 전통을 잇는 [무간도] 시리즈가 한국의 홍콩 느와르 매니아 층에게 크게 환영을 받기도 했다.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71

116 홍콩의 무협영화와 드라마들의 경우는 현재 한국의 케이블 TV 채 널 중 중국 무협극을 전문으로 하는 방송국이 여럿 존재한다. 공중파 텔레비전에서도 1990년대 중반에 큰 인기를 끌었던 [판관 포청천]을 비롯 여러 작품들이 많은 한국 소비자들에 의해 소비되었으며, 이후 에도 인기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여러 편의 중국 역사극과 무협 극이 공중파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어 왔다. 이는 한국 내에서 증가하 고 있는 중국에 대한 관심과 중국 역사극이 갖는 오락성, 그리고 상 대적으로 저렴한 프로그램의 가격 경쟁력이 조합되어 이루어지는 현 상이며,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로 진화되어 갈 가능성이 있다. (2) 일본영화의 한국 내 소비 중국과 일본에서 한국으로 수입되는 영화와 드라마들은 그 장르에 따라 매우 뚜렷이 구분되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면 2000년 한 해 동안 중국으로부터는 6만 7천 달러 규모의 드라마 수입이 있었지만, 드라마 수입이 아직 허용되지 않았던 일본으로부터는 드라마 수입실 적이 전무하다. 대신 만화(애니메이션)에 있어서는 중국과 홍콩으로 부터 수입된 것이 한 건도 없지만 일본으로부터는 1백 8십만 달러 상 당의 애니메이션 작품이 수입되어 국내에서 방영되었다. 방송사에서 방영하는 영화 프로그램의 경우는 2000년의 경우 일본으로부터 53만 4천 달러, 홍콩으로부터는 28만 4천 달러 상당의 작품이 수입되어 국 내 텔레비전을 통해 소비되었다. 어찌 보면 한국 내 일본영화에 대한 소비는 아직 미미한 수준인 것 이 사실이다. 겨울연가 열풍이 일본 대중문화시장에서 중요한 화제가 되었던 2004년 한국 내 일본 영화의 극장 흥행은 서울 관객 기준, 1 편당 평균 3만 2천명이었고, 극장 점유율은 2.1% 정도였다. 그러나 일본영화의 극장 상영은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단계적 개방조치 이후 이제 시작되고 있는 시기일 뿐이라는 점에서 앞으로도 한참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72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17 2005년에는 2월말부터 4월초까지 한국 극장가에서 상대적으로 손 님이 들지 않는 비수기에 다섯 편의 일본 영화가 개봉되었다. 피와 뼈, 69, 바이브레이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아무도 모른다 등 의 제목을 달게 된 이 영화들은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파헤치는 작품부터 순애보를 담은 멜로물, 젊은이들의 생활에 대한 묘사를 담 은 청춘물까지 다양하다. 일본영화가 과거 1960년대에 구가했던 세 계적인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과거의 일본영화들 은 여전히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활동하는 감독들의 중요한 교과서적 역할을 했고 세계 영화계에 기여한 바도 컸다. 그리고 상대적 침체기 에 처해 있다고 이야기되는 현재도 일본영화들은 한국 영화소비 시장 으로의 진출을 준비하는 시기에 있을 뿐이다. 특히 애니메이션 분야에 있어서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세계적 영향력 아래 있는 작품들이 2000년대 한국 어린이들의 어린시절을 형성하는 필수적인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이외에도 [공각기동 대], [아키라]등의 공상과학물 또한 한국에서 적지 않은 매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다. 케이블 텔레비전 시청이 급격히 늘어난 2000년대 중 반 한국의 각 가정에서 방영되는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의 프로그램들 중 절대다수 또한 일본 작품이다. 이렇게 본다면 일본의 영화와 텔레 비전 프로그램이 한국에서 자리잡아가는 지평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고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아직 현재의 수익으로 환산되지 않았을 따름이다. (3) 일본 T.V. 프로그램의 수입- 무작정 베끼기 에서 포맷 수입 으로 일본의 대중문화에 대한 수입개방이 있기 오래 전부터 한국에서는 일본 텔레비전 드라마와 기타 프로그램 수입이 금지되고 있었다. 그 러나 일본의 방송 프로그램은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위성 텔레비 전을 통해 한국의 안방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73

118 그리고,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한국 텔레비전의 드라마를 포함한 각 종 프로그램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일본의 그것을 거의 그대로 모방하 여 기획되었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아, 표절시비 가 항시 있었다. 이러한 표절시비는 최근에 들어 지적재산권에 대한 의식과 국제적 법률조치가 강화되고, 다른 한편에서 일본 대중문화 상품에 대한 개 방이 이루어지면서 그 국면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즉, 시장 개방 에 따라 한국 텔레비전에서는 일본 텔레비전 프로그램 무단 복제가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국에서는 일일연속극이 나 일부 드라마 제작 능력 외에는 일반 프로그램들을 창의적으로 기 획하는데 여전히 한계를 느끼고 있었고, 결국 이전에는 표절과 베끼 기를 해오던 것을 이제 포맷 수입 이라는 이름으로 프로그램 형식을 수입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된다. 2005년 현재도 한국 텔레비전의 오락프로그램들 중 적지 않은 수 는 여전히 일본 프로그램의 형식을 수입해서 모방한 형태로 만들어진 다. 오락프로그램 포맷 수입이 수출에 비해 절대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시장개방 이전부터 한국 오락 프로그램들이 일본의 그것을 표절하거나 모방해왔다는 소문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보아야 한다. 대표적인 것을 몇 개만 들면 다음과 같다. 방송위원회에 따르면 SBS 방송국은 2002년에서 2003년 사이 [장미의 이름], [기분 좋은 수요일], [결정 맛 대 맛], [가슴을 열어라] 등을 일본에서 수입해온 포맷으로 만들었다. SBS 드라마 중 [요조숙녀]도 일본 드라마에서 줄 거리를 사와서 한국 내용으로 번안해 방영된 것이다. MBC의 경우 대표적인 것으로는 일본 TBS에서 편당 2000달러 안 팎의 비용을 지불하며 브레인 서바이버 의 포맷을 사와, 거의 형식과 프로그램 그대로를 두고 알맹이만 한국의 것으로 개편해서 방송을 제 작, 방영해왔다. 이러한 현상은 2005년 현재까지도 큰 변화 없이 지 속되고 있다. 74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19 다. 음반과 대중가요 한국 음반 산업은 대부분이 국내시장을 겨냥한 것으로 이루어져왔 다. 따라서 음반의 수출입은 국내 음반시장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 이 매우 적어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외국음반이 국 내로 수입되는 경우는 해외에서 제작된 음반이 국내 라이선스 회사에 서 제작, 발매되는 형식을 띠거나 직배사가 직수입을 통해 유통시키 는 형태를 띤다. 그런데 국내 라이선스 회사에서 제작, 발매되는 형 식을 띠게 되는 경우, 그 콘텐츠는 해외의 음악이되 실제로 수치가 포착되는 데 있어서 해외음반의 수입으로 잡히기 보다는 국내 제작된 음반의 국내유통으로 포착된다. 따라서 이러한 해외 음악콘텐츠의 유 통을 수치상으로 포착하는 일은 쉽지 않다. 여기에 더하여 인터넷의 발달로 해외 음악의 국내 수입 및 소비경로가 다양해짐에 따라 국가 적 차원의 통제나 관리가 더욱 어려워졌다. 일본 대중가요 상품에 대한 수입규제가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던 최근까지 일본의 대중가요가 음반을 통해 국내에서 소비된 사례는 최 근까지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그러다가 2004년에 들어 일부 일본 가 수들에 대한 국내 팬클럽이 결성되고 광범한 소비층을 확보하기 시작 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리고 2005년에는 보다 본격적인 일본 대중 음악의 인기가 한국 국내시장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5년 3월, 한국 국내 유명 음반 체인인 교보 핫트랙스의 일본음 악차트 위클리 톱 10 에서는 나카시마 미카의 뮤직 이 1위, 보아의 Best of Soul 이 2위에 올랐다. 더 차트 의 주간 팝 앨범 차트 에서 는 보아의 Best of Soul 이 1위, 케니지의 At Last: The Duets Album 이 2위, 그리고 나카시마 미카의 뮤직 이 3위에 올랐다. 나카 시마 미카가 일본 내에서 인기 있는 다른 일본 J-pop 가수들을 제치 고 유독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가 부른 노래 원곡이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주제곡으로 번안되어 불리어져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75

120 나카시마 미카의 음악이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것을 이야기하기 전 에 한 가지 짚어둘 점은 보아의 Best of Soul 이 한국에서 판매되는 음반 중 일본 음악 으로 분류되어 들어갔다는 점이다. 그리고 영미 중심의 대중음악 장르를 대상으로 하는 주간 팝 앨범 차트 에서 다시 보아의 음악과 나카시마 미카의 음악이 나란히 등장해 있다는 사실이 다. 일부 국내 언론에서는 심지어 태극소녀, 일본의 심장부에 태극 기를 꽂다 라는 제목까지 붙이며 민족주의적 착각과 흥분을 하기도 하지만, 보아의 음반 산업적 성격은 처음부터 다국적적이고 혼성적이 다. 그 중 특히 Best of Soul 은 경우에 따라 일본 대중음악인 J-Pop으로 분류될 수도 있고 일반 팝 음악으로도 분류되어 판매된다 는 점에서, 명백히 문화의 혼성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다시 나카시마 미카의 한국 내 인기 현상으로 돌아가자. 그의 한국 내 인기는 그가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사용된 주제가의 원곡을 부른 가수라는 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KBS 2 텔레비전의 인기 드 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의 주제곡은 박효신이 부른 눈의 꽃 으로 한국인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었다. 그리고 눈의 꽃 이 수록된 Original Sound Track 앨범이 많은 수익을 올리면서 그 곡이 일본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에 따라 한국 내에서는 일본어 원곡에 대한 관심이 동반 상승했다. 이에 눈의 꽃 의 원곡인 유키노 하나 를 부른 나카시마 미카가 대중들에게 알려지 게 되고, 그의 음반 Love 가 국내에서 4만장이 팔리게 되었다. 또한 일본어 원곡이 모바일 매체와 온라인 음악사이트 다운로드 순위에서 급상승하며 경제적 수익으로 환산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지도 확산 과 인기를 바탕으로 나카시마 미카의 새로운 음반인 뮤직 이 한국에 서 발매되자 또한 음반 판매 순위에서 머리를 점하게 된 것이다. 아직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일본어로 된 가창곡을 삽입해 넣을 수 없지만, 한국 가수가 일본 원곡을 한국말로 리메이크(번안) 76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21 해서 부르게 되면 이는 곧바로 일본 가수의 음악에 대한 홍보효과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일본 가수들의 음반을 한국에 유통시키는 직배사 소니 BMG, EMI 등은 2005년에 들어 여러 일본 가수의 음원을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 O.S.T.를 기획 제작하는 한국 음반사들에 제공하고 있다. 한국 텔레 비전 드라마의 성공을 돕는 일본 대중가요, 한국 드라마 속의 일본 대중가요가 다시 한국 드라마의 성공을 통해 한국 음악소비시장에서 영향력을 얻는 파급효과가 발생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현재 이루어지는 대중문화 소비가 역시 다중적 채널, 다차원적 매체의 혼합과 상호영향으로 얽혀 진행 된다는 점이다. 한국 드라마의 국내 인기가 일본 대중가요의 국내 확 산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거꾸로 한국 드라마의 일본 내 인기가 한 국 대중가요의 일본 진출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다시 각국의 모바일 캐릭터와 게임에 교차적인 방식으로 영향을 주면서 문 화의 장르별 혼성화, 국적적 혼성화, 문화상품 정체성의 혼성화를 만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대중문화산업 원류로서의 미국 대중문화가 가장 기본적인 환경이자 리소스의 제공자로서 튼튼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일찌기 식민지 초기부터 한국의 대중문화를 형성시켰던 일본 대중문화 자체가 서구 대중문화를 도입시키는 창구 의 역할부터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라. 게임 소프트웨어 - 여전히 절대적 영향력을 가진 일 본 게임 일본의 게임 프로그램 수입에 있어서는 사실상 그동안 별다른 제한 이 없었다. 전반적인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소니 의 플레이스테이션 2(PS2) 게임 프로그램은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그 런 것처럼 한국 안에서도 절대적인 시장적 지배력을 지니고 있다.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77

122 소니, 세가, 닌텐도 등이 세계시장의 99%를 석권하고 있는 게임기 용 비디오 게임물 시장은 2003년 말 추가로 개방되기 이전부터 플레 이 스테이션용 프로그램 한 가지 종류만 해도 한국 내에서 2002년에 1,500억원, 2003년에는 2,500억여 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2004년 에도 증가추세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 경우는 게임 소프트웨어가 일본어로 제작된 것에 대해 수입이 금지되어 있던 당시 유럽과 미국 지사를 통해 영문판이 우회공급된 것으로서, 현재는 일본에서 새 게 임 출시 후 한국수입까지 3개월 이내에 이루어지며, 한글판 게임의 동시제작도 어렵지 않아 시장 활용의 동시성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상 태다. 플레이 스테이션 이전부터 한국에서 널리 소비되어온 세가와 닌텐도의 소프트웨어는 그 매출액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적으나 한 국 내 게임 소비시장에서 차지하는 일본의 비중을 확고히 해왔다. 그렇지만 한국의 게임 소프트웨어 시장이 일본 상품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문화적 콘텐츠 성격으로 볼 때는 중국의 영향 또 한 적지 않다. 또한 한국에서 주축이 되어 개발, 판매하기 시작한 한 국산 게임 소프트웨어 안에서도 일본과 중국의 대중문화적 성격들이 강하게 담겨져 있으며, 개발자들은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일본적 성격과 중국적 성격을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그들의 상품을 만들어가 고 있다. (1) 한국 게임산업 속에 존재하는 중국과 일본의 문화산업 중국 게임시장에서 한국에서 개발된 게임에 대한 인기가 높은 것은 우선 스토리 상에 있어서 삼국지와 수호지를 비롯한 다양한 중국 무 협소설의 스토리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에서 개발되어 일본과 중국으로 팔려나가는 게임들에는 일본 애 니메이션과 일본 게임산업 소프트웨어의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던 요 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거기에는 중국의 고전적 무협지 적 내용이 다시 1970년대 이후 중국과 홍콩의 무협 영화적 성격을 입 78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23 고 발전되었으며, 1990년대 이후 서극 감독류의 특수효과가 게임에 서 한층 발전된 형태로 활용됨으로써 중국 뿐 아니라 한국, 일본에서 도 큰 인기를 끄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중국 내 한국 온라인 게임의 인기 원인은 중국 무협과 서양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환타지풍의 요소를 섞어놓은 것으로 이야 기된다. 한국에서의 인기에 못지않게 중국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 고있는 [미르의 전설 2]은 무협과 서양 환타지풍이 혼합된 한국 게임 소프트웨어의 대표작이고(조선일보 ), 2004년에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발표되어 인기를 끌어온 [라그나로크]는 일본 만화 와 게임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귀여운 캐릭터 와 일본게임의 오락성 요소를 적절히 결합시킨 게임적 성격이 그 특징(조선일보 )으로 인식되고 있다. 웹젠사에서 개발한 온라인 게임 뮤 도 마 찬가지 성격이다. <그림 I-1 > 라그나로크의 주요 캐릭터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79

124 라그나로크는 2004년 7월 서울에서 2004 라그나로크 월드 챔피언 십 을 열어 한국 내에서 한국 국가대표 선발전을 여는 것 외에도 중 국, 대만과 홍콩, 필리핀, 인도네시아, 일본 등에서 국가대표 선발전 을 따로 가져 한국에서의 게임 본선을 치렀으며, 이날 경기는 게임 전문 케이블 채널인 MBC Games를 통해 방송되었다. (2) 합작과 제휴의 증가 사실상 한국 게임 소프웨어 업체들이 개발한 게임의 스토리와 캐릭 터들은 그것이 과연 한류 로 인식되는 것이 타당한지를 의심스럽게 할 만큼 혼성적이다. 한국업체로 등록된 하이윈에서 개발한 천상비 ( 天 上 啤 )는 애초부터 중국과 대만 시장을 겨냥하고 중국식 무협극의 스토리와 캐릭터로 개발된 것의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중국과 동남 아 등지에 게임 소프트웨어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중국 및 대만의 자 본출자를 받아 현지법인을 설립하여 현지문화적 요소를 담아 개발한 상품들은 기획에서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다국적적 문화적 요소의 조합을 위해 노력한다. 한편 캐릭터와 프로그램 개발에 있어 다국 기 업간 합작과 제휴도 증가하고 있다. 시장의 광역화를 위한 문화산업 계 일반의 전략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현상이다. 일본의 캐릭터가 국내에 마음놓고 확산되기 시작한 것도 1998년 이후 눈에 뜨이는 현상이다. [짱구는 못말려], [드래곤 볼], [헬로 키 티] 등 만화 캐릭터나 독자적 상품 캐릭터 외에 일본 통신회사의 애 니메이션 캐릭터들도 최근 핸드폰을 통한 모바일 게임 캐릭터가 모바 일 통신망을 통해 유통 중이다.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는 일본 i-mode의 3d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페이 페이(Fei Fei) 인데, 일본 현지에서 사진집까지 출판되며 팬 클럽을 가지고 있는 정도로 인기 있는 캐릭터다. 이 캐릭터는 한국내 모바일 게임 전문업체와 전략적 제휴협약을 체결하고 일본 내에서 서비스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다 운로드 서비스를 국내에서도 동일하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80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25 마. 한국 문화산업 상품 안과 밖에서의 합작 및 교류 증가 (1) 국내 활동 아시아 출신 연예인의 증가 일본 배우로서 한국의 텔레비전과 CF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유민의 사례에 자극 받아 한국진출을 준비중인 일본 배우가 2004년 7월 일본 연예기획사의 자료에 따르면 200명 이상으로 파악되기도 했다(스포츠 조선 ). 이들은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 기획 사와 계약을 모색하는 등 구체적인 준비를 하고 있다. 일본인 가수 아유미가 한국을 주무대로 가요활동을 하고있으며, 일 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배용준의 소속 기획사인 BOF가 다시 2004년 일본의 여중 2학년생인 에리카를 SBS 드라마스페셜 유리화 에 출연시키고, 이후 한국으로 와 계속 뮤직 비디오와 드라마, 프로 그램에 출연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이는 일본을 주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계 가수들과 연예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점, 그에 못지않게 현재 국내 활동을 대부분 접어두고 중국과 동남아를 주무대로 활동하는 한국 출신 연예인 또한 늘어나고 있는 현상의 이면에서 동시적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일본 또는 중국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한국출신 연예인들은 한국 작품 이 아니라 처음부터 중국인 기획자와 스탭, 스토리, 자본, 기타 요소들을 가지고 만들어지는 중국 문화산업 혹은 그와 같은 맥락에 서의 일본 문화산업 체계의 일부로 소속, 참여하고 있으며, 그런 현 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최근까지 (공산화된) 중국 혹은 대중문화 수입금지 대상이었던 일본의 문화산업적 요소에 대해 상대적으로 폐쇄적이었던 한국에서 그러한 동아시아적 외래문화 요소를 공식적으로 내부에 참가시키는데 약간 늦은 감이 없지 않다.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81

126 (2) 일본만화 원작의 한국영화 칸느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한국영화 올드보이 가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바다. [올드보이]는 한국 내에 서도 흥행성적을 올렸으며, 그것이 일본만화를 원작으로 했다는 사실 이 일본 내에서도 잘 알려짐에 따라 일본의 영화수입업자들도 관심을 보였다. 반면 한국 시장내에 개방, 상영되기 시작한 일본영화의 한국시장 내 흥행성적은 2003년 상반기의 경우 국내 극장 점유율에서 1.5%에 그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태다. 반면 2004년에 영화와 같은 수준으로 전면 개방되기 시작한 일본 비디오물의 국내시장 소비 는 상대적으로 많은 소비자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된 다. 그중에서도 어린이와 전 연령층을 상대로 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으로 상징되는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의 경우는 한국산 애니메이 션에 비할 수 없을 정도의 세계적 경쟁력을 가지고 각 가정의 비디오 시청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3) 한국 드라마의 일본 현지촬영 유치 [겨울연가]의 일본 내 열풍이 일본인들의 겨울연가 관광을 통한 한 국관광 붐으로 이어지는 것에 주목한 일본의 도시들이 한국 드라마 촬영장소 유치를 위해 노력을 경주하여 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일 본 지방도시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홍보하는 데 있어 한국 드라마가 최고의 홍보매체가 될 것이라는 판단하에(조선일보 ) 유 치경쟁을 벌여 한국 드라마의 일본 현지로케를 속속 성사시키고 있 다. SBS TV의 드라마스페셜 유리화 의 경우, 오사카 국제공항, 고베의 기타노 지역, 하버랜드, 콘체르트 호, 산노미야에서 촬영을 하고, 다 시 오사카 유흥가와 뒷골목을 배경으로 드라마를 촬영함으로써, 이제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는 그 안에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 풍물을 풍부 82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27 히 담아 전달하는 매체로서도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일본의 뮤직비디오와 텔레비전 드라마 등에 한국 연예인들이 자주 참가하는 현상이 몇 년 전부터 눈에 뜨이기 시작한 것 또한 동 일한 전개과정의 다른 측면이라고 할 것이다. (4) 다양화되는 합작 기획 대중문화산업 초창기부터 존재했던 중국 혹은 일본과의 합작 기획 은 현재의 국면을 맞이하여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한중 혹은 한일 합작 프로그램들을 다차원적으로 낳고 있다. 2000년 10월에 이 미 한국과 중국 합작 텔레비전 드라마가 추진, 성사되었으며, 2003년 에는 중국 국영방송 CCTV와 KBS가 공동으로 제작한 한중 가요제 가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방영되기도 했다. 영화에 있어서는 개항기의 한국영화 상당수가 사실상 일본의 대동 아 공영권 내에서 이루어진, 즉 일본의 자본과 스탭, 출연진이 한국 인 스탭, 자본, 출연진과 큰 구분 없이 섞여 작품을 만들어내고 유통 시키기도 했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해방 직후에도 중국과의 영화합 작은 끊이지 않고 이루어졌으며, 1960년대 이후에는 홍콩과의 합작 이 지속적으로 맥을 유지했다. 그런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현재 이 루어지는 한중 합작 영화와 드라마는 새삼스런 사건이 아니다. 일본 과의 합작도 마찬가지여서, 1998년의 일본 대중문화 산업에 대한 시 장개방 이후 일본과 한국의 합작 영화가 여럿 제작되고 있는 것은 그 리 특기할 만한 사항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인지도 모른다. 한국 의 시네마서비스와 일본의 쇼치쿠 영화사가 각기 6대 4 비율의 자본 투자로 영화를 제작한다든지 한국의 싸이더스가 일본측과 역시 반반 의 비율로 자본을 투자하면서 양국 스탭과 배우를 모두 활용해 영화 들을 제작하는 사례는 단순히 한 작품의 시장 확보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전략적 차원에서 문화산업계의 국제적 네트웍과 전략적 제휴 망 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인식되고 있다.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83

128 2. 중국의 아시아 대중문화 유입현황과 대응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외국의 대중문화 교류는 심각한 불균형 상태에 있다. 이와 같은 특성은 90년대를 지나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 지고 있어서 대중음악의 교류는 일방향적 유입이 지배적이고 드라마 나 방송 프로그램도 동남아 지역과 기타 외국의 화교권을 제외하고는 수출 실적이 거의 없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영화의 경 우 역시 이러한 실정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신세대 감독들의 영화가 비록 본국에서는 합법적인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유럽을 중심으로 상당한 인지도를 얻게 되었고 장이모우의 <영웅( 英 雄 )>과 <연인( 十 面 埋 伏 )> 같은 상업 영화들이 세계 각지에서 높은 흥행수입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례는 사실 전체 중국 영화산업을 고려할 때 그 영향력이 미미한 것이거나 어느 정도 예외 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정확할 것이다. 아직까지 중국의 문화산업이 앞으로 어떤 방향의 발전경로를 따를 것인지, 외국과의 대중문화교류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지, 지금과 같은 심각한 불균형 의 상태를 중국 정부와 문화산업계가 어떤 방식으로 극복 할 것인지 에 대해서 예단하기는 힘들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되고 있는 전지구화( 全 球 化 : globalization)의 과정 속에서 중국 대중문화가 지 금보다 더욱 빨리 변화하고 교류의 형태 역시 지금과는 다른 양상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점만큼은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또한 문화산 업은 자본의 흐름에 매우 민감하다는 점에서 중국의 경우도 자본의 영향에서 결코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역시 중국 문화산업 의 현재상태에서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점이다. 이와 같은 여러 가 지 변화의 양상은 중국 사회의 거시적 미시적 차원의 변화와 동떨어 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적인 맥락과 흐름 속에서 관찰 분석되어 야 한다. 본 장에서는 중국에서 발견되는 아시아적 대중문화 교류에 대해서 84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29 정부, 업계, 대중매체, 소비자 등의 각각 상이한 주체는 어떻게 인식 하고 대응하는지 살펴볼 것이며, 특히 한국과의 교류에 중점을 두고 고찰할 것이다. 더 나아가 대중문화산업 일부에서 시도되고 있는 한 중 내지 한중일 사이의 합작 생산 및 유통의 시도들을 통하여 대중문 화를 매개로 한 동북아문화공동체의 가능성을 파악하려고 한다. 가. 국가의 문화정책 한국은 1990년대 중반부터 문화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부가 개입하여 문화산업의 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시행해오고 있 다. 중국의 경우 그러한 움직임은 2000년대 들어서 서서히 시작되고 있으며, 한국을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논의도 있다 년도에는 중화인민공화국저작권법, 영화관리조례, 라디오텔레 비전관리조례, 음반영상제품관리조례 등을 살펴본 바 있다. 중국 은 당과 정부가 각 문화산업 분야를 얼마나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는 지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던 것이다. 이어 2005년에는 문화산업 을 발전시키려는 정책, 특히 외국과의 교류와 관련된 정책과 그 정책 이 실행되는 양상을 포함하여 파악하려고 한다. (1) 중국의 문화산업정책 문화산업은 국가적으로 심대한 중요성을 가지는 산업부문이다. 첫 째, 문화산업은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근자에 고속성장하고 있는 산업이다. 문화산업은 투자위험은 크지만 그만큼 수익률이 높을뿐더 러 하나의 원작을 통해 다양한 이용이 가능한 One-Source Multi-Use 를 통해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 실제로 문화 선진 국들은 문화상품 수출을 통하여 높은 부가가치를 실현시키고 있다. 둘째, 문화산업은 타산업에 대한 파급효과가 크고 국가 이미지 제고 에도 기여한다. 마지막으로 문화산업은 지역균형발전과 고용창출 효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85

130 과가 크다. 26 이러한 문화산업의 특성을 인식하고 중국은 2000년에 들어서서 문화산업 발전정책을 제정했다. 27 그 기본 방침은 문화산업 발전을 가속화하고, 문화건설의 새로운 국면을 창도하는 것이며, 그 목적은 중국문화의 선진성, 독특성, 응집력과 감화력을 발현하는 데 있다. 그 구체적 내용은 국유 중심의 체제 개편, 문화예술품의 생산 과 운영의 집단화, 자금지원, 현대의 환경에 맞는 수입과 분배제도의 확립, 국가급 문화산업 기지 건설, 외향형 문화산업의 발전 독려와 국제문화교류 확대, 세계문화시장에서 중국 문화상품의 영역 제고 등 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구체적 결과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국가급 문화산업 기지로서 2004년 7월 중국의 상하이에 국가동만게임산업진흥기지를 설립했다. 이 기구는 문화콘텐츠 사업과 인력양성을 주도하는 국가기 관으로서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사촌형인 후진화가 회장을 맡고 있다. 또한 국유 중심의 체제 개편을 위해서 중국는 국무원 비공유자본 문 화산업 진입에 관한 몇 가지 결정( 國 務 院 關 于 非 公 有 資 本 進 入 文 化 産 業 的 若 干 決 定 ) 을 2005년 8월 8일에 발표했다. 이는 민영부문이 중 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음을 반영한다. 예컨대 비공유제 경 제는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1/3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매 년 GDP 성장의 70%를 이끌고 있다. 이 부문의 고용효과도 대단히 커 서 민영경제주체에 취업한 인구가 8천만 이상이며, 삼자기업과 향진 기업을 합하면 전체 비공유제 경제주체에 취업한 인구는 2억을 넘어 선다. 따라서 중국정부가 비공유제 자본이 문화산업에 진입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이 결정 에 따르면, 문화예술단체, 공연장, 박물관 및 전람회장, 26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한 중 일 문화콘텐츠산업 경쟁력 비교분석 (서 울: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2004), pp 실제로 중국의 문화산업은 최근에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1998년부터 2001년에 이르는 기간에 문화산업의 연평균성장속도는 1.47%에 불과하 여 전체적 경제성장률에 미치지 못했으나, 2002년에는 전년 대비 18.66%, 2003년에는 전년 대비 22.88%의 성장을 기록했다. 86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31 문화예술 중개업, 애니메이션 및 인터넷게임, 광고, 영화 및 TV 드라 마 제작 및 배급, 방송영상기술 개발응용, 영화관, 도서 간행물 소매, 음반 소매 등의 영역에 민간자본이 진입하는 것을 지지하고 격려한 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민간자본이 문화상품 및 문화서비스 수출업무에 종사하는 것을 격려 지지하며, 나아가 민간자본이 국유 문화예술단체나 시설의 주식제 개조에 참여하는 것을 격려 지지하고 민간자본의 지배경영을 허용한다. 그러나 출판물 인쇄 및 발행, 언론 출판 기관의 광고 및 발행, 라디오와 TV 방송국의 음악, 과학기술, 스포츠, 오락 관련 프로그램의 제작, 영화 제작 및 배급, 상영 등의 영역에 있는 국유 문화기업에 출자나 투자를 할 수 있지만 그 출자총 액의 49%를 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케이블 TV 접속망 건설과 경 영, 케이블 TV 단말장치의 디지털화 개조에도 민간자본이 참여할 수 있지만, 그 출자액이 전체의 49%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사항은 반드시 관련 행정 주관부문의 비준을 받아야 한 다. 그리고 비공유제 문화기업은 프로그램 심사, 비준과 자격 인정, 융자 등 분야에서 국유기업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고 규정한다. 그 러나 민간자본이 투자할 수 없는 분야도 적시하고 있는데, 통신사, 신문잡지사, 출판사, 라디오와 TV 방송국, 방송송신시설, 중계시설, 방송위성, 위성중계시설, 모니터링시설, 케이블 TV 전송 핵심망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인터넷을 이용해 시청프로그램 서비스 업무에 종사하거나 뉴스 사이트 등을 개설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출판물과 영상물, 음반완제품 등 문화상품의 수입업무에 종사하지 못하며 국유 문물박물관 운용에도 참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민간자본 이 문화산업 부문에 진입하는 것을 일부 허용 내지 격려하면서도 국 가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부문에 대해서는 국가의 지배력이 과반 이상 을 차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더구나 핵심부문에 대해서는 아예 참 여 자체를 막고 있다. 이 결정 은 시장경제의 발달과 중국사회의 개방으로 인해서 국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87

132 가가 문화산업의 생산과 유통부문을 독점하던 체제는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외국과의 합작 내지 합자 역시 활발하 게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이전에 비해 자율성이 증대하고 규제가 완 화되기도 했다. 영화에 있어서 외국과의 합작이 근래에 들어 늘어나는 것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된 것이다. 2003년 한 해 동안 중국영화집단공 사( 中 國 電 影 集 團 公 司 ) 산하의 중국영화합작제작회사( 中 國 電 影 合 作 制 片 公 司 )가 접수한 공동제작 편수는 총 60편이며 그 중 42편이 제작되 어 역사상 최대의 합작제작편수를 기록했다. 또한 2004년 10월 현재 공동제작 신청 건수가 이미 60편을 넘어섰고, 그 중 31편이 이미 완 성되어 전 해의 기록을 깰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특히 2004년부터 발효된 CEPA(홍콩과의 관세 협정)의 28 영향으로 홍콩과의 공동제작 이 크게 늘어서, 2004년 합작 신청 작품의 60-70%가 홍콩과의 합작 이다. 외국과의 공동제작에 나타나는 몇 개의 새로운 추세가 있다. 첫째, CEPA로 고무된 홍콩 영화가 해외 융자를 통해 끌어들인 자본을 공동 제작 영화생산에 투입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미국, 일본 등의 자본 이 유입되고 있다. 둘째, 정책 완화와 함께 종래와 달리 일부 해외 중 소영화제작회사도 공동제작 대열에 합류했다. 셋째, 공동제작에 참여 한 국가수가 증가했다. 2004년만 해도 일본, 베트남, 북한, 폴란드, 러시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 국가의 영화사가 공동제작 에 참여했다. 또한 공동제작영화 투자액도 늘어나고 있다. 영화에 대한 국가의 지원의 또 다른 사례로는, 침체기에 빠진 중국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영화제작의 모델을 창출하기 위해 영화 <영웅>과 <연인>의 흥행을 위해 정부에서도 일조를 했다 영화와 관련하여 이 협정이 중요한 것은 홍콩의 영화는 영화 수입쿼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29 <영웅>은 <와호장룡>의 제작사인 홍콩의 안락영편( 安 樂 影 片 )공사가 세계 시장을 목표로 1억 위안(인민폐, 한화 160억 원)의 제작비를 조달하였다 88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33 <영웅>의 경우 개봉시기가 비슷했던 한중합작영화 <무사>의 광고를 제한했다고 하며, <연인>의 경우에는 여름방학 시즌에 개봉하려고 했 던 할리우드 대작인 <스파이더맨2>와 <슈렉2>의 개봉날짜를 연기시 켰다고 한다. 또한 두 영화를 중국사회에서 항상 문제가 되어온 불법 복제의 피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영화의 개봉을 전후하여 불법복 제품의 단속을 매우 철저히 했다고 한다. 또 다른 구체적인 실행으로는 앞서 지적했듯이 중국정부는 상하이 에 문화콘텐츠 사업과 인력양성을 주도하기 위해서 국가동만게임산 업진흥기지를 설치했으며, 인터넷게임 관련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 게임학원을 2004년 8월 18일 북경에 처음 문을 열었고, 이후 전국에 15개의 양성기지를 설치할 계획이다. 북경의 게임학원은 정보산업부 전자교육센터와 홍콩직업훈련국, 그리고 북경의 회중익지( 匯 衆 益 智 ) 과학기술유한회사에서 연합해서 추진하고 있다. 게임학원은 선진적 인 교육과정과 과학적인 교육모델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외의 저명 게임제조업자, 게임운영회사와 밀접한 전략적 합작관계를 건립 하여 취업을 우선 목표로 하는 직업양성훈련을 통하여 실용적인 인터 넷게임기술을 습득한 인재를 배양하려고 한다. 30 그러나 광전총국의 최승호 비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문화관광부 가 주축이 되어 TV페스티발에 한국관을 만들도록 지원한다든가, 수 출을 위해 영상물에 더빙을 하거나 자막을 넣도록 지원하는 등 다양 한 형태로 정부가 문화산업 진흥정책을 펴지만, 중국의 경우 그렇지 고 하며, 2년여의 기획과 6개월여의 촬영, 3,500만 달러의 제작비와 6,500명의 최대 촬영 인원 등의 기록을 가진 대작이다. 2004년 8월 마 지막 주 미국에서 개봉되어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한편 7월 16일 중국 전역에서 개봉한 <연인>은 우리나라 돈으로 대략 300억 원이 투입된 대작으로 개봉 3일간 흥행수입에서 <영웅>의 기록을 깨고 역대 최고인 663만 달러를 기록했다. 제작사는 또한 개봉에 앞서 7월 10일 북경에서 열린 월드 프리미어 공연 행사에 30억을 투입, 유례가 없는 적극적인 물량 공세와 기발한 진행 방식으로 프로모션을 함 으로써 막판까지 많은 이들의 이목을 확실히 집중시켰다. 30 흑룡강 신문 2004년 8월 23일.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89

134 않다고 했다. 방송에 관한 한 정부 차원에서는 각 방송사에서 알아서 좋은 물건을 해외에 팔라고 장려하긴 하지만 구체적인 지원책은 없다 는 것이다. (2) 대중문화교류정책 국제문화교류와 관련된 정책에 한정해서 살펴보자. 2002년 4월 17 일에 발표된 음반영상제품의 수입관리조치( 音 像 製 品 進 口 管 理 辨 法 ) 가 그 한 예가 될 수 있다. 제1조에서 음상제품의 수입관리를 강화하 고 국제문화교류를 촉진하며 인민군중의 문화생활을 풍부하게 하기 위하여 음상제품관리조례 와 국가의 유관규정에 근거하여 이 조치 를 제정함을 밝히고 있다. 제4조에서는 담당 기관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전국 음상제품의 수입에 대한 감독관리는 문화부에서 책임을 지며, 음상제품의 수입 계획을 세우고, 수입제품의 내용을 심사하고, 음상제품의 완제품수입단위의 수, 분포 그리고 구조를 결정한다. 현 급 이상 지방정부의 문화행정부문은 본 조치에 의거하여 해당 행정구 역내 음상제품의 수입을 감독 관리한다. 각급 세관은 맡은 범위 내에 서 음상제품의 감독 관리를 책임진다. 제6조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 이 담긴 제품은 수입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1 헌법에 정해진 기 본원칙에 위반되는 것; 2 국가의 통일, 주권, 영토 보전을 해치는 것; 3 국가기밀을 누설하거나, 국가의 안전이나 국가의 영예와 이익 을 해치는 것; 4 민족분열을 선동하고 민족단결을 파괴하는 것 또는 민족의 풍속과 관습을 침해하는 것; 5 사교( 邪 敎 )와 미신을 선양하는 것; 6 사회질서와 안정을 해치는 것; 7 음란, 도박, 폭력을 선동하는 것; 8 타인을 모욕하거나 비방하고 타인의 합법적 권익을 침해하는 것; 9 사회의 공중도덕이나 민족의 우수한 문화전통을 위해하는 것; 10 법률, 행정법규 및 국가규정에서 금지하는 기타의 내용들. 31 그리 31 이와 같은 내용은 음상제품관리조례 에서 생산이 금지되는 것과 거의 같은 내용이다. 양영균 문옥표 송도영 저,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90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35 고 제7조에서는 국가가 음상제품의 수입에 대해서 허가제도를 실행 하고 있음을 천명한다. 이하 제2장에서는 음상제품을 수입할 수 있는 단위에 대한 내용을, 제3장에서는 수입심사를 담당하는 기구와 절차 등에 대한 내용을, 제4장에서는 수입관리 전반에 관한 내용을 그리 고 제5장에서는 상기 규정들을 어겼을 경우 부과될 벌칙조항을 담고 있다. 방송부문의 국제교류에 대한 국가의 입장과 역할 등을 살펴보자. 우선 정부 차원에서의 교류는 전세계의 다양한 국가들과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을 필두로 선진국들과 교류할 때는 그들로부터 들어오는 문화산업에 의해 중국이 받을 수 있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신경을 쓴다. 방송의 경우 방송협력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교 류의 형태이다. 중국은 선진국들뿐만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뒤떨어진 작은 나라들과도 적극적으로 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협력 협정을 체결한 이후 몇 년이 지나도록 전혀 교류를 하지 않기도 한다. 특히 중국은 약소국들에 대한 원조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약 소국이 광전총국에 지원을 요청하면 광전총국이 상무부에 이관하고 상무부에서는 주로 중국에서 생산한 장비나 물품을 제공한다. 방송협력협정을 체결하는 당사자는 광전총국이고 상대 국가의 방 송부문 정부기구와 교류를 하지만, 32 프로그램의 판매와 구매, 즉 수 입과 수출은 개별 방송사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의 CCTV가 한국의 KBS로부터 프로그램을 구입하는 경우를 상정해보자. 상하이 TV페스티발이나 사천 TV페스티발 같은 데에서 판매자(KBS)와 구매 위한 한국 중국 일본의 대중문화산업에 대한 비교연구 인문사회연구회 협동연구 총서 (통일연구원, 2004) 참조. 32 중국과 한국의 경우 1992년에 방송총국이 KBS와 협력협정을 체결했고 이후 MBC와도 협정을 체결했다. 당시에는 한국의 유관기관으로는 공보 처가 있었는데 공보처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정부를 대내외에 선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중국의 입장에서 파트너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고 한다. 그 이후 방송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광전총국은 방송위와 교류를 했고 문화관광부와도 교류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91

136 자(CCTV)가 대면을 하고 상대방과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기 는 하지만 실질적 계약으로까지 발전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 분의 경우 중개인이 개입을 하게 된다. 중국의 방송사들은 자신들이 좋은 프로그램을 구입하기 위해서 발 벗고 나서지 않으며, 한국의 방 송사들은 팔려고 하지만 정확한 경로를 통해서 파트너를 잘 찾지 못 한다. 따라서 중개인이 좋은 프로그램을 찾아서 양 쪽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다. CCTV가 중개인과 구매계약을 맺고 중개인은 KBS와 구 매계약을 체결하는 형식이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광전총국은 여러 단계에 걸쳐 개입을 한다. 우선 프로 그램을 해외에서 수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방송국을 선정한다. 성 급 방송국 31곳은 연간 20회분 회당 45분에서 50분 사이 의 드 라마를 수입할 수 있고, 몇 군데 예외가 있다. 33 CCTV와 광동 TV는 자체 심의에 의해서 수입, 방영할 수 있다. 그리고 Tibet TV( 西 藏 TV)는 연간 50회분을 방송할 수 있다. 34 다음으로는 수입허가를 발행 하는 것이다. 수입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방송사가 가계약을 맺은 다음 더빙 등 국내방송을 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든 샘플 테이프를 광 전총국 외사사( 外 事 司 )에 접수한다. 외사사는 이 테이프를 다시 총편 실( 總 編 室 )에 넘기면 여기서 모니터링을 한다. 2명 내지 3명이 한 팀 을 이루어서 자막 틀린 것, 대사 틀린 것, 이상한 대사가 나온 것, 화 면에 중국에서 제한하는 음란물이나 정치적인 내용이 나온 것 등을 33 한 방송사에서 20회분만 수입할 수 있기 때문에 분량이 그 이상인 드라 마를 수입할 때는 편법을 쓸 수밖에 없다. <대장금>은 본 방송 54회분에 스페셜 2회분을 합쳐서 전체 56회분이다. 이 경우 3개 방송사가 협의를 거쳐서 공동으로 수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입허가 신청과정에서도 3개 방송사가 같이 한다. 가령 호남 TV가 <대장금 요리편>, 호북 TV가 <대 장금 의녀편>, 사천 TV가 <대장금 완성편>을 신청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여인천하>는 5부로 나뉘어 각각 따로 제목이 붙어 있었고, <허 준>도 3부로 나뉘어 있었다. 34 광동 TV의 경우 지리적 조건 때문에 홍콩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Star TV, MTV 등 몇 개 프로그램이 광동 TV 케이블 방송망에서 재송신을 하고 있어서 예외로 인정했고, 시장 TV는 광고 수입이 너무 적어서 인기 있는 외국 프로그램의 수입을 통해서 수입을 올릴 수 있게 해준 것이다. 92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37 가려내어 상세한 의견을 첨부하여 허가를 신청한 방송사에 보내어 수 정을 요구한다. 매우 상세하고 까다롭게 심의를 하기 때문에 1심에서 통과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1심을 거치는 데 약 3개월 정도가 소요 되고 수정요구가 많으면 더 오래 걸리는 경우도 많다. 최종적으로 총 편실과 외사사의 의견을 종합해서 허가가 떨어지면 수입허가증( 引 進 劇 許 可 證 )을 발부한다. 35 이처럼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 기 때문에 수입 당사자인 방송사에서는 허가증을 기다리느라 애간장 이 탄다고 한다. 왜냐하면 방송사는 미리 방송편성을 해야 하기 때문 이기도 하고 수입극을 방영하고자 하는 시기가 있기 때문이다. 36 방송용 영상물이 VCD나 DVD 등 음상제품으로 출시될 때는 문화 부의 심의를 거친다. 그러나 문화부 심의는 광전총국의 심의에 비해 서 매우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다. 자막이나 더빙이 잘못된 것도 심 의를 통과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아마 TV에서 방송될 때는 누구나 시청을 할 수 있기 때문이고, 음상제품은 특정인이 특정제품을 구입 했을 때만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후자의 경우 전자에 비해 접 근하기 비교적 어렵고 그만큼 사회적 영향력이 미미하다고 볼 수 있 는 것이다. 또한 실제 방영되지 않은 드라마의 음상제품이 상당수 시 장에 나와 있는 것 같았다. 37 중국은 개혁개방, 시장경제의 도입, 전세계적 흐름에의 동참 등으 로 많은 변화를 겪고 있고, 문화산업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즉 대중 문화는 이전에 당과 정부의 선전도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던 데서 벗어나 하나의 산업분야로 자리 잡고 있고, 또 국가는 전세계적 추세 35 TV 방송물의 경우 허가가 나지 않는 경우는 많지 않다. <조폭 마누라> 의 경우에는 TV 방송용으로 수입을 추진하다가 너무 폭력적이어서 허가 가 나지 않았다. 36 <대장금>을 수입한 호남 TV에서는 여름방학 기간에 <대장금>을 방영하 려고 했으나 허가를 받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려서 9월 1일부터 방영하기 로 했다. 37 실제로 출시되어 있는 한국 드라마의 DVD나 VCD의 표지에서 상당수의 오류가 발견되었다. 이는 그만큼 문화부의 심의가 까다롭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는 일부 불법복제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93

138 에 발맞추어 대중문화산업이 국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다시피 그 중 일부는 계획했던 방향으로 정책이 시행되어 변 화를 일으키고 있으며, 또 다른 부분에서는 아직 눈에 뜨이는 정책의 수립과 시행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통제자의 역할에 더욱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즉 여전히 존재하는 체제의 경직성과 폐쇄성으로 인해서 체제나 정 권, 그리고 소위 미풍양속에 위협이 될 만한 문화콘텐츠를 생산 수 입 유통되지 못하도록 막는 데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주어지는 것이 다. 이는 콘텐츠 자체에 대한 심의와 수정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문 화상품의 생산과 유통에 관여하는 모든 기관에 대한 지속적 통제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나. 대중문화산업계의 대응 대중문화교류에 있어서 국가가 법률이나 규정 등을 통해서 교류의 환경을 만들거나 정책 등을 통해서 교류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수립 하고 실행한다면, 실제 교류의 주역은 역시 업계라고 할 수 있을 것 이다. 중국의 경우 문화산업체들의 대부분은 국가가 소유 운영하는 것이며,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최근에 민영자본이 대중문화의 생산과 유통에 일부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 절에서는 완성된 상품의 교류뿐 만 아니라 생산과정에서의 교류, 즉 합자나 합작을 중요하게 다룰 것 이다. 왜냐하면 중국의 경우 한국이나 일본과 완성된 문화상품의 교 류에서는 상당히 일방적인 수입 일변도의 상태에 있으며 상당 기간 그러한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큰 반면, 생산과 유통에 같이 참여할 수 있는 합자 내지 합작은 쌍방적 흐름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로 최근에 크게 늘어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활성화될 것 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경제적 부문에 중점을 둔 개혁개방이 인민들의 생활 전반에 걸쳐 94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39 구체적 변화를 가져오고 다른 영역에까지 확산되기 시작한 1990년대 에 들어서 외국과의 대중문화교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한국과 중국의 교류는 1992년 한중수교가 이루어지고 1994년에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 이 체결된 이후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간헐적으로 진행 되던 교류가 본격화된 것은 1996년과 97년 경부터였다. 38 (1) 대중음악 부문 한국과 중국의 대중문화 교류의 한 축을 담당한 것은 대중음악이었 다. 한국의 대중음악 스타들이 관중을 만나는 중요 계기가 되었던 중 국 내 공연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했던 것은 연예기획사였다. 이들 에 의해 중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을 가 지고 있는 H.O.T를 비롯하여 39 클론, NRG, 베이비복스, 안재욱 등 이 중국에서 공연을 펼치게 된 것도 이들 공연기획사 또는 연예기획 사의 작업에 의해서였다. 물론 문화관광부를 중심으로 한 정부관련 기관과 단체들에서도 여러 가수와 배우가 참가하는 일회성 공연을 마 련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보아와 장나라, 비 등이 매우 인기가 있었 다. 보아는 H.O.T가 소속되었던 기획사인 SM 엔터테인먼트에서 일 본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서 키운 가수답게 필자가 베이징과 상하이의 대형 음반매장에서 발견한 3장의 앨범과 3장의 싱글은 대부 분이 일본판이었다. 비는 박진영이 세운 JYP 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한국을 벗어나 아시아를 비롯한 해외로 진출하려고 부쩍 애를 쓰고 38 필자는 1993년 중국의 텐진( 天 津 )에서 허베이성 남쪽으로 가는 기차 안 에서 조용필의 <친구여>를 경음악 버전으로 듣고 상당히 놀랐던 경험이 있고, 1995년에는 텐진에서 드라마 <질투>를 보면서 매우 익숙한 인물들 이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국어를 하는 것이 어색해 보였지만 중국에 서 한국 드라마를 본다는 것에 감회를 느끼며 시청했던 경험이 있다. 39 실제로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H.O.T의 앨범은 <Outside Castle> 을 비롯하여, <Go Hot>, <I Yah>, < 幸 福 > 등이 있었다. H.O.T가 해체 된 이후 독립한 강타와 문희준, JTL의 앨범도 볼 수 있었는데, 이들은 H.O.T의 후광을 업고 인기를 얻는 것 같았다.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95

140 있고, 중국에서도 연예잡지의 표지모델로 등장하기도 하고 포스터 같 은 것에도 많이 등장하고 있었다. 최근에 중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 동하고 있는 장나라는 드라마 출연과 공연, 음반활동 등을 겸하고 있 다. 이들 3인의 공통점은 아시아를 대상으로 하는 뮤직어워드를 해외 에서 받았다는 것이고, 이들의 해외 진출은 당연히 연예기획사의 적 극적 지원과 마케팅 전략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형 음반매장이나 대형 서점의 음반판매코너는 본토, 홍콩과 대 만, 서양, 일본, 한국 가수의 코너를 분류해서 마련해놓고 있었다. 한 국 가수의 코너는 가장 규모가 작았는데, 일본 가수 코너와 큰 차이 는 없었다. 실제로 어떤 가수들의 어떤 앨범이 팔리고 있는지 알아보 기 위해서 베이징에서 FAB라고 하는 음반 영상 전문 판매점과 가장 큰 서점 중 하나인 투수다샤( 圖 書 大 厦 )의 음반판매코너, 그리고 상하 이의 대형 서점인 상하이수청( 上 海 書 城 )의 음반판매코너를 샅샅이 살 펴보았다. 한국 가수의 음반 중에는 물론 한국에서 유명한 가수들은 거의 다 있었지만,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한국에서 거의 들어 보지 못한 가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40 특기할 것은 중국에서의 활동 에 중점을 둔 경우 중국에서 특별한 앨범을 발매하거나 중국어 노래 몇 개를 앨범에 포함시키거나 몇 노래의 제목만이라도 중국어로 짓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장나라의 경우인데, 그녀 는 중국에서 중국어 앨범 < 一 張 >을 발매했고 가장 최근의 한국어 앨 범인 <나의 이야기>에도 3곡은 영어제목이지만 나머지 한국어 제목 뒤에는 중국어 번역을 실었다. 41 중국의 젊은이들이 한국 노래를 감상하기 위해서 CD 대부분의 경 우 불법복제품 를 구입하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온라인으로 다운받 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필자가 인터뷰했던 20대의 젊은이들은 대부 40 예를 들면, A4, A1, Martina, PLT, Step, X-Large 등이다. 41 그 외에 Boa는 < 爲 愛 勇 敢 >이라는 앨범을, NRG는 < 我 們 的 世 界 >라는 중 국어 제목의 앨범을 가지고 있었는데,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96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41 분 이 경로를 통한다고 했다. 또한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무료로 다운 로드하거나 스트리밍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길이 막히면서, 한국의 젊 은이들도 중국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공짜로 노래를 다운로드하는 예 가 많다고 한다. 그 외에 한국 노래를 번안해서 중국어로 부른 경우는 매우 많으며, 이 같은 번안곡을 전문적으로 부르는 가수도 있는 실정이다. 한국 가 수를 벤치마킹, 더 정확하게는 카피하는 가수들도 등장했는데, 황유 난이라는 가수의 경우에는 사진을 찍을 때 비와 거의 같은 의상을 입 고 같은 포즈를 취한다. 또한 중국의 가수지망생들이 한국으로 와서 가수가 되기 위한 트레이닝을 받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러나 중국 가수나 노래가 한국에서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유명한 중국(홍콩과 대만 포함) 배우들이 가수를 겸해서 잘 알 려진 경우가 있고, 또 한중가요제에 나온 가수들이 그나마 알려져 있 다. 물론 일부 젊은이들은 중국 노래나 가수에 관심을 가지고 잘 알 고 있지만 폭넓은 인기를 누리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중국 가수 중에서 한국에서 단독 콘서트를 가진 경우도 없는 것 같다. 즉 대중음악 분야에서도 교류는 한국에서 중국으로 수입되 는 방향으로 거의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 대중가요의 경우에 는 음반을 사거나 온라인으로 접속해서 듣지 않는 이상 접하기가 쉽 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 다만, 하한주( 哈 韓 族 ) 라고 불리는 일부 젊은이들의 경우에는 생활의 전반적인 부분 에서 한국의 가수들을 따라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눈에 띄고 또 관 심의 대상이 된다 대중문화에서의 한류뿐만 아니라 한국인과 한국 자체에 애정을 느껴 한 국어를 익히거나 한국 상품을 구매하려는 젊은이들을 가리켜 하한주라고 한다.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97

142 (2) 드라마 부문 앞에서도 지적했다시피 한류 의 진원지는 드라마였다. 1997년에 방영된 <사랑이 뭐 길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뒤이어 <별은 내 가슴에>가 히트를 하면서 한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43 드라마 분야 의 국제교류의 역사는 앞 절에서 간단히 살펴본 바 있다. 1990년대 후반까지 강타이 드라마들이 중국 시장을 휩쓸다시피 하면서 광전총 국에서는 드라마 수입에 대해 통제를 가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2002 년에는 수입 드라마들이 약세를 보였다. 2002년에는 조사대상 방송 사 중 18%는 해외 수입 드라마를 구입하지 않았고, 해외 드라마를 방 영한 채널 중 해외 드라마 방영 횟수는 전체 드라마 방영 횟수의 21% 에 불과했다. 또한 2002년의 상하이 TV페스티발에서는 강타이 드라 마의 시장점유가 하락하면서 가격도 떨어졌다. 홍콩의 대하드라마와 대만의 장기( 長 技 )인 가정윤리 드라마가 대부분 퇴출된 반면, 비교적 활약한 해외 드라마 선전은 한국의 아이돌 드라마와 새롭게 참가한 태국이 가지고 온 드라마가 겨우 남았다 년 33개 도시의 156개 채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오후 5 시에서 12시 사이에 방영된 드라마 총수는 681편인데 이 중 수입 드 라마는 116편(17%)이었다. 실제 시청률에서는 수입 드라마의 비중이 6%까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45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132개 채널에서 총 327편의 수입 드라마를 방영했는데, 오후 7시 30분에서 12시 사이에 방영된 이것은 총 드라마 편수의 22%에 해당했고, 방영 된 회수로는 1411회로서 21%의 점유율을 나타내었다 이 두 드라마가 방영되었을 때는 물론 한류 라는 용어가 존재하기 이전 이었다. 44 央 視 - 索 福 瑞, 中 國 電 視 劇 市 場 報 告 ( 北 京 : 華 夏 出 版 社, 2004), pp 위의 책, pp 위의 책, p 앞의 수치와 뒤의 수치가 차이 나는 이유는 앞의 수치 는 156개의 조사대상 채널에서 방영된 편수이고, 조사대상 시간이 오후 5시에서 12시 사이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비해 후자의 수치는 수입 드 98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43 2002년 해외에서 수입된 드라마 중 방영 채널 수에 따른 순위를 매 겼을 때 top 10 중 한국 드라마 <가을동화( 藍 色 生 死 戀 )>과 <이브의 모든 것( 女 主 播 的 故 事 )>이 공동 2위를 차지했고, 나머지는 홍콩 드라 마 7편과 대만 드라마 1편이 차지했다. 그리고 국가 또는 지역별 수 입 드라마 방영편수에서는 한국이 점유율 20.5%로 홍콩 (40.7%)에 이어서 2위를 차지했다. 3위 이하로는 대만 (12.9%), 미국 (11.9%), 일본 (7.0%), 유럽 (3.1%), 싱가포르 (2.1%), 기타 (1.8%)였다. 홍콩, 대만, 싱가포르를 중화권으로 간주하면, 한국 드라마의 인기를 실감 할 수 있다. 47 또한 2002년 주요 방송국에서 방영된 한국 드라마 채 널수 top 10을 살펴보면, 대부분 청춘물에 속하는데, 이러한 드라마 가 인기를 얻는 요인으로는 탄탄한 스토리와 멋있는 배우, 화려한 의 상과 멋진 장면, 그리고 좋은 삽입곡 등을 꼽을 수 있다. 한국 드라마 중 DVD와 VCD 형태로 판매되는 것도 상당히 많았다. 실제로 어떤 드라마들이 판매되고 있는 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베이징 과 상하이의 대형 음반매장과 서점의 음반판매코너에 진열된 한국 드 라마의 리스트를 만들어 보았다. 총 110종의 드라마가 있었고 물론 중복되는 것도 많다 당시 가장 전면에 내세워진 것은 <대장금>이었 다. 이들 중 방영되지 않은 것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방영된 드라마 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일부 제품은 너무 조악해서 정품이 아닌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것들은 비 교적 수월한 문화부의 심의를 통과했을 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예컨대 <머나먼 나라>는 <어나언 나리>로, <명랑소녀성공기>는 <명랑소녀졍 공기>로 표기되어 제목에 오류가 있었고, 배우 이종원을 이충원으로 라마를 방영한 채널 전체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수입 드라마의 편수와 비중이 늘었고, 조사대상 시간이 오후 7시 30분부터 12시로 짧기 때문 에, 특히 수입 드라마는 황금시간대 방영이 매우 제한되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후자 쪽이 더 높게 나온 것 같다. 47 양영균 문옥표 송도영,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국 중국 일본 의 대중문화산업에 대한 비교연구, pp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99

144 잘못 표기한 경우가 있었고, <명성황후>의 주인공은 최명길인데 이미 연으로 나와 있었으며, <젊은이의 양지>는 이종원, 차태현 주연 작품 인데 표지에는 배용준과 전도연의 얼굴이 나와 있었다. 또한 <정 ( 情 )>이란 드라마는 <가을동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 藍 色 生 死 戀 終 結 篇 >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방송 프로그램의 수출입은 개별 방송사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앞 서도 지적했듯이 현재 한국과 중국 사이의 거래에서는 계약 당사자 사이에 중개상이 끼어서 중개상이 한국측 방송사와 중국측 방송사와 각각 수입과 수출 계약을 맺는다. 광전총국의 최종 허가를 받아서 계 약을 완결하고 수입 방송사는 시간을 편성해서 방영을 하게 된다. 불 법복제품의 유통 경로도 여러 가지 있겠지만, 최근에는 동북지방에서 위성으로 받은 프로그램을 바로 복제해서 판매를 하는 것이 가장 빠 르고 많이 쓰이는 경로라고 한다. 한국 드라마에 대한 소비 형태에서 한국 드라마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관심이 있더라도 연령이 많은 소비 자들은 텔레비전을 통해서 시청하지만,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고 젊은 사람들은 DVD나 VCD를 빌려서 보고 싶을 때, 시간이 있을 때 자유 롭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한국과 중국 사이의 방송 프로그램 무역은 중국의 입장에서는 과도 한 수입초과라고 할 수 있다. 2003년에 중국이 한국에 수출한 프로그 램의 총액수는 약 493,000달러인데 비해서 한국에서 수입한 프로그 램의 총액은 약 7,837,000달러였다. 48 수입액이 수출액의 약 16배에 달했다. 이러한 무역역조현상은 국내 텔레비전 방송시장에서 한국 드 라마에 국산이 밀려난다는 인식과 함께 한국 드라마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형성하는 한 요인인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 서 논의할 것이다. 48 이 수치들은 문화관광부, 2004 문화산업백서 에 나온 자료를 바탕으로 필자가 계산한 것이다. 100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45 (3) 영화 부문 한국 영화는 드라마에 비해서 중국에서 훨씬 더 열악한 위치에 있 다. 드라마는 상당히 많은 편수가 방영이 되었지만, 영화의 경우 극 장에서 상영된 것은 <클래식>, <무사>, <비천무>, <내 여자친구를 소 개합니다>, <주먹이 운다> 등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 중에서 한국에 서 아주 흥행에 성공한 작품은 없는 형편이다. 한국 영화가 비교적 폭넓게 소개된 것은 영화전문채널인 CCTV6을 통해서였다. 1997년에 시작된 한국 영화 수입은 2001년에 9편으로 가장 많았고 2002년에 4 편, 2003년에 2편으로 줄어들면서, 7년간 총 20편이 CCTV6을 통해 서 방영되었다. 그다지 활발하게 진행되지는 못했는데, 이것에는 몇 가지 문제가 개입되어 있다. 중간 브로커를 통해 CCTV6에 들어오는 한국 영화 샘플들은 상당히 오래전에 제작되었거나, 한국에서 흥행에 실패한 영화, 폭력이나 정사장면 등 중국에서 방영하기 곤란한 영화 들이 많아서 제대로 수입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49 한국 영화 역대 흥행 20위 정도에 든 영화 중에서 극장에서 개봉했거나 CCTV6 에서 방영된 것은 전혀 없는 것 같다. 이처럼 극장에서 상영되거나 TV에서 방영된 영화 중에 한국에서 매우 흥행에 성공했던 작품들이 빠지게 된 데에는 중국에 등급제가 없다는 점이 중요한 이유로 작용 한다. 한국에서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은 영화는 당연히 극장에 서 상영할 수 없고, 15세 관람가라 하더라도 한국보다는 더 엄격한 잣대로 판단하기 때문에 그런 점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등급제가 없어서 상영하기 힘들 것 같은 것들(한국에서 15세 이상 관람가 이상 등급을 받은 것들)을 모두 제외한다 하더라도 <집으로>, <어린 신 부>, <장화홍련> 등의 영화가 극장에도 걸리지 못하고 TV에서도 방 영되지 못한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마도 중국인들의 정서와 잘 맞지 않기 때문에 수입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이다. 49 박희성 외, WTO 가입 이후 중국 영화산업의 변화와 전망 (서울: 영화 진흥위원회, 2005), pp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01

146 DVD나 VCD 형태로 팔리는 한국 영화는 얼마나 되나? 위에서 드 라마에 대해서와 같이 조사해본 결과, 베이징과 상하이의 대형 매장 에 진열된 한국 영화의 편수는 총 54편이었다. 그 중에는 도저히 정 체를 알 수 없는 영화들이 상당수 있었고, 50 한국에서 흥행에 매우 성 공했던 영화들 중에서 누락되어 있는 것들이 많았다. 51 심지어 몇 편 의 영화를 묶어서, 마치 여러 가수들의 노래를 모아서 만든 컴필레이 션 앨범처럼 만든 것도 있었다. 52 (4) 대중문화산업에서의 합작 대중음악, 드라마, 영화 모두를 포함해서 중국의 아시아 대중문화 교류의 문제점은 수입초과라는 것이고, 특히 한국과는 거의 일방적이 다시피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한 문제가 발생한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교류가 완성된 문화상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50 예를 들면, <9일 절반(구천반)>-홍인영 주연; <그날 이후 那 天 以 后 >-정 애리, 박인환, 정동환, 김지영 주연; <남자이야기 古 惑 仔 >-최민수, 이태 란 주연, <노래만들기 歌 曲 制 作 >-안재욱, 남경주, 이효창, 이국영 주연, <늑대사냥 猎 狼 > -정은, 현석, 송채환, 윤여정 주연, <대통령의 딸 總 統 的 女 兒 >-이정성, 전지원 주연 등이 있었다. 51 불법복제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매점에서는 물론 대부분의 인기 있었 던 한국 영화를 구할 수 있다. 그러나 대형 매장에서 버젓이 불법복제품 을 팔 수 있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드라마의 경우에서처럼 영화도 불 법복제품이 분명한 제품은 많이 있었다. 앞의 각주에서 등장한 정체불명 의 영화도 그렇지만, 도저히 수입허가를 받지 못했을 것 같은 18세 이상 등급의 영화들 <4발가락>, <두사부일체>, <베사메무초> 등 도 버젓이 판매되고 있었다. 제대로 제품을 갖추고 있지 않은, 또는 고객들이 별로 찾지 않는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실제로 한국 영화를 DVD나 VCD로 보는 젊은이들도 많은데, 이들은 주로 복제품 전문매장이나 인터넷을 이 용한다. 52 예를 들면, < 愛 欲 情 毒 >이라는 타이틀 아래 <남자의 향기>, <중독>, <태 양은 없다>, <8월의 크리스마스>, <정>, <순애보> 등 영화 9편을 모아두 었고, < 韩 国 情 色 电 影 精 选 >이라는 것은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조폭마 누라>, <와니와 준하>, <엽기적인 그녀>, <물고기 자리>, <오버 더 레인 보우>, <베사메무초>, <화성으로 간 사나이> 등의 영화 모음집이었다. 102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47 다. 대중문화의 교류는 문화산업이 발달한 국가나 지역에서 그렇지 못한 지역으로 흐르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중국은 거대한 시장에 비 해서 자국 내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콘텐츠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우수한 콘텐츠가 유입되기 쉬운 여건에 놓여 있 다. 게다가 한국은 일부 영화나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정도 로 높은 수준에 있고, 특히 아시아 각국에서는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의 일부 영화는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수상하여 인정을 받고 있고, <영웅>과 같은 영화는 세계적으로 대단한 흥행 실 적을 올렸지만 전체적인 대중문화의 자체 제작 능력은 낮은 편이기 때문에 한국과의 교류에서 거의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쪽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류의 흐름은 장기적으로 교류 자체에 악영 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고, 교류를 통한 문화공동체 형성이라는 큰 그 림을 그려가는 데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물론 다른 이유들도 있지만, 드라마와 영화의 합작 내지 합자는 이러한 상 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도 상당히 바람직한 움직임이라고 생각되기 때 문에 좀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 우선 영화 쪽부터 살펴보자. 정부의 각종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최 근에 외국과의 합작영화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는 점은 위에서 지적 한 바 있다. 한국과 중국의 합작은,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활발하 게 진행되었던 한홍합작을 제외하면, 2000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비천무>는 2000년에 합박( 合 拍 )의 형식으로 제작되었는데, 상하이 영화 제편창이 현물 투자를 하고 중국 및 홍콩특별행정구의 판권을 가져갔다. 같은 해에 촬영한 <아나키스트>는 상하이 필름 스 튜디오와 협조하여 협박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년에는 <무사> 53 중국의 용어에 따르면 합작은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협박으로, 이것은 외국 제작자가 중국 국경 내에 들어와서 촬영 제작을 할 때 중국 은 설비, 기자재, 장소 등을 제공함으로써 촬영 제작에 협조하는 방식으 로, 이윤이나 손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외국 제작자가 진다. 다른 하나는 합박으로, 이것은 중국과 외국 양측이 자금이나 노무 혹은 실물 등을 공동으로 투자 투입하고 공동으로 촬영 제작하며, 그 이윤이나 손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03

148 가 협박형식으로 제작되었고, 2003년에는 <천년호>, 2004년에는 <도마 안중근>이 역시 협박형식으로 제작되었다. 이 중 <비천무>와 <무사>는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체면 유지는 한 셈이고, <아니키스트>와 <도마 안중근>은 참패를 면치 못했다. <비천무>는 1999년 10월부터 3개월간 중국 올로케이션으로 촬영했고 한국 영화사상 최대인 4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했다. 200만 정도의 한국관객을 동원하였지만 워낙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서 손익분기점 을 넘기지 못했다고 한다. <무사>는 2000년 8월부터 12월까지 중국 에서 전량 촬영했고, 총 제작비 53억 (마케팅비 포함하면 80억)이 투 입되었으며, 국내관객 250만 동원하여 역시 손익분기점에 미치지 못 했으나 중국, 프랑스 등 세계 각국에 수출되어 수익을 남긴 것으로 알려진다. 이 영화는 중국과의 합작 형식은 협박으로 미약하지만 동 북아 대중문화의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다. 한국의 정우성, 안성기, 주진모의 호화캐스팅에 <와호장룡>으로 세계적으로 주목받던 중국의 장쯔이가 합류하여 출연진이 짜였고, 중국의 유명 미술감독 훠팅샤오 와 일본의 저명한 작곡가 사기수 시로가 스텝으로 합류하여, 그야말 로 한중일 삼국의 공동작업을 이루어 내었던 것이다. 54 올해에는 매우 흥미 있는 영화 세 편이 개봉한다. <칠검>이 그중 하나이다. 이 영화에는 한국의 보람영화사가 홍콩, 중국과 제작비의 1/3 (50억)씩 분담하고 기획단계에서부터 적극 참여했다. 감독은 홍 콩의 쉬커, 주연은 중국의 견자단, 홍콩의 여명, 양채니, 한국의 김소 연 등이며, 일본의 가와이 겐지가 음악을 맡았다. 기획, 투자, 연출, 배우, 스텝에 이르기까지 한 중 홍 일이 함께 한 다국적 프로젝트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영화는 12월 개봉 예정인 <무극>이다. 상하이 필름 등 중 해에 대해 공동으로 나누거나 책임을 지는 방식이다. 후자가 합작의 의 미가 크고 전자는 진정한 의미에서 합작이라고 보기 힘든 측면도 있다. 54 < 104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49 국 제작자들과 함께 한국 쇼이스트와 미국 문스톤엔터테인먼트가 제 작비의 10%씩을 투자했다. 출연진은 한국의 장동건, 중국의 장바이 쯔, 일본의 사나다 히로유키, 연출은 중국의 첸카이거로서 이 역시 한 중 일 미를 아우르는 다국적 합작영화이다. 홍콩의 탕지리 감독의 액션극 <신화>에는 아시아 최고의 미인으로 불려지는 한류 스타인 김 희선이 세계적인 홍콩스타 청룽과 함께 주연을 맡았다. 이 두 사람의 주연만으로도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적 관심을 끌었고, 현재 흥행에서 도 매우 선전하고 있다고 한다. 이 세 영화는 두 가지 중요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동북 아시아 국가들을 아우르는 합작의 형식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이전 의 한중합작 영화들은 <무사>를 제외하면 중국이라는 장소에서 일부 스텝으로만 중국인들이 참가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면, 이제는 합작 의 정도가 훨씬 더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무협 이라는 장르를 취했다는 것이다. <와호장룡>, <영웅> 등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중국 무협은 웅장한 스케일과 화려한 색채로 전세계에 통할 수 있는 소재가 되었기 때문에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합작품이 아시아 를 넘어서서 전세계를 겨냥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 매우 의 미가 있는 것이다. 이 세 영화는 아시아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주목 을 받음으로써 이제 아시아에서 기획하고 제작하는 영화에 다양한 자 본들이 들어올 수 있는 기틀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55 드라마 분야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합작이 시도되고 있다. 한국 배 우가 출연한 중국 드라마만 해도 10여편에 이른다. 56 이처럼 중국 드 라마에서 한국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들의 연기력 이 뛰어나다는 것 외에 그들을 통하여 한류의 힘을 이용하여 한국과 기타 아시아 국가들에게까지 시장을 넓혀보겠다는 고려 때문이다. 그 55 조선일보 2005년 9월 21일. 56 <백령공우>의 안재욱, <사대명포>의 차인표, <자등연>의 한재석, <독행 시위>의 김민, <정정애금해>, <양문호장>, <신취타금기>의 채림, <은색 년화>와 <조만공주>의 장나라 등이다.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05

150 러나 이런 캐스팅은 스타파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문제를 안고 있으 며, 이 드라마들 중에 한국에서 제대로 방영된 것이 없는 것만 보아 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합작이 이루어진 사례는 <북경 내사랑>과 <비 천무> 정도를 들 수 있다. 둘 다 중국에서 주로 촬영했고, 중국의 체 제에 맞게 사전제작 되었고, 상당히 많은 제작비가 투여되었다는 공 통점이 있다. 전자는 50억원 정도가 투자되었는데 KBS가 제작했고, 여배우 쑨페이페이와 일부 스텝이 중국측에서 참가했다. 북경 아가씨 와 한국 젊은이의 사랑과 성공 스토리를 가지고 리얼하고 생동감있게 한국과 중국 두 민족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기획의도는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흥행에서 참패를 면치 못했다. 사전 준비 부족과 양국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의사소통의 부재가 이 드라마의 실패를 제작 과정에서 이미 예감할 수 있었다고 드라마 제작에 참가 했던 한국측 스텝들은 밝히고 있다. <비천무>의 경우에는 원작 만화, 영화 등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스 토리 자체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장소와 일부 스텝만 중국에서 이용하는 것도 익숙한 모습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주목 을 끌었던 것은 제작과 배급 시스템이었다. 제작비 80억원(편당 3억 3000만원). 이 중 20억원은 중국 제작자 상하이 제편창이 자국 방영 권을 갖는 조건으로 투자했으며, 한국의 창업투자사가 35억원을 투자 했다. 주관 제작자인 독립프로덕션 (주)에이트 픽스와 외주제작자 유 린시네마그룹이 공동으로 8억원을, 소프트웨어 진흥원이 7억원을 냈 고, 나머지 10억원은 소액투자로 충당했다. 저작권은 에이트 픽스가 갖고 방영권만 방송사에 주는 조건으로 배급을 하려 했다. 제작비의 70%는 해외 판매에서 충당할 계획이었고, 홍콩과 일본 등에서 관심 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서는 지상파 방송을 타지 못하는 것으로 거의 결정이 되었다고 한다. 대중문화산업에서의 합작은 당분간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것 같 106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51 다. 여기에는 우선 현실적인 필요가 존재한다. 합작을 통해 자본을 끌어 모으는 것이 현실적으로 유리하다. 그것을 통해 큰 자본을 모을 수 있고 또 각자가 부담하는 위험(risk)은 감소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자본만 투자하는 합작일 때는 제작할 작품의 가능성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할 것이다. 만약 자본의 합작과 더불어 공동제작에 참여한다면 그 나름대로 위험이 따른다. 즉 이미 만들어 져서 검증을 거친 상품을 구매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만들어가야 하는 것에 실패의 위험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57 또한 공동작 업 과정에서 양국의 출연자들과 스텝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차이 때문에 작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영화 <역도산>에서 한일 합작에 관여했던 김선아 프로듀서와 드라마 <북 경 내사랑>의 한국측 스텝은 공통적으로 공동작업의 어려움을 토로했 다. 합작 확대의 또 다른 주요 이유는 시장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존 재한다는 것이다. 여러 나라의 합작을 통해서 합작에 참여한 각각의 당사자를 묶어서 하나의 시장에 편입시킨다면 그만큼 넓은 시장을 갖 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는 물론 각 당사자들이 자신의 본국에 서는 더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58 대중문화산업에 있어서 동북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합작을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과 사람 그리고 정보가 빠른 속도로 국경을 넘나드는 전지구화라는 움직임과 지역별로 블록화함 으로써 정치적 경제적 파워를 극대화하려는 움직임이 공존하는 시대 적 상황에서 동북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긴밀한 교류와 협력은 매우 긴요할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의 한 결과가 동북아 국가들 사이 의 공동작업이며, 이 작업은 그들 사이의 교류와 협력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57 교육방송(EBS)의 이승훈 PD와의 인터뷰. 58 싸이더스 영상사업부의 김선아 PD와의 인터뷰.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07

152 다. 중국사회 내의 담론: 대중매체를 중심으로 담론의 생산과 유포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것은 대중매체와 학 계일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대중문화산업의 교류, 특히 필자가 관심을 가진 한류에 대한 학술적 연구의 성과를 발견할 수 없었다. 59 이는 한국에서 엄청난 양의 각종 논문과 저서, 그리고 보고서들이 쏟 아져 나온 점, 그리고 일본에서도 한국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지 만 한류를 다룬 연구가 몇 편 등장했다는 점과 비교하더라도 매우 특 이한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것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학자 들이 한류 라는 현상을 자신의 연구 테마로 설정할 정도의 관심을 가 지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학자들의 관심이 미미한 이유 중 하 나로 한류 라는 현상이 중국에서 사회문화적으로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다고 상정해 볼 수 있을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한류 는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학자들이 그 현상에 대해 제대로 반 응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양자 중 어느 쪽이 실 상에 근접한 추정인지 단언할 수 없지만, 한류가 중국사회에 존재하 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양자 모두 작용하고 있다고 보 는 것이 안전한 판단이겠지만, 학계의 이러한 실정과 어느 정도 유 사한 실정은 대중매체 쪽에서도 발견된다. 즉,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 59 과연 실제로 하나도 없는지, 아니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찾지 못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중국에는 아직 학술적 성과들을 쉽게 찾 을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의 구축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한류 관련 연구를 찾는 작업이 용이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국의 시스템에 대한 필 자의 지식 부족과 그 시스템을 이용하는 데 미숙한 점 등이 필자가 연구 성과를 찾아내지 못한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을 상정할 수 있 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필자는 중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중국인 학생의 적극적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필자 자 신에게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현실 자체를 반영한 결과가 나 타났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즉 실제로 중국에서 한류에 대한 학술적 연 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가능성을 뒷받침 하는 정황증거는 필자가 몇 가지 경로를 통해서 한류에 대한 연구를 수 행한 연구자를 만나서 인터뷰를 행하고자 했지만 그러한 연구자를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108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53 소위 한류 스타의 동정이나 드라마와 영화, 가요 등에 대한 소개 정 도의 기사는 쉽사리 접할 수 있지만, 한류에 대한 심층적, 분석적 기 사는 많지 않은 형편인 것이다. 본 절에서는 중국의 대중매체 종이 로 발행되는 신문뿐만 아니라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성 글까지 포함한다 에서 다룬 한류에 관한 심층적 기사들을 중심으로 한류가 중국사회에서 어떻게 표상되고 있으며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를 살 펴볼 것이다. (1)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적 담론 우리가 이 보고서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대중문화의 장르가 드라 마, 영화, 대중음악이고 각 장르에 대한 중국사회의 반응과 평가도 상이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장르를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합당하다. 우선 중국의 대중매체, 특히 신문기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르 는 드라마이다. 이는 아마 드라마가 가장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고 그만큼 사회적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의 경우 같 이 묶어서 ([ 電 ] 影 [ 電 ] 視 ) 다루어지기도 한다. 한국 드라마와 관련하 여 중국에는 부정적 목소리와 긍정적 목소리가 공존하고 있다. 이 양 자가 모두 언론에 표출된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2005년 6월에 개최 된 상하이 TV페스티발( 上 海 電 視 祭 )이었다. 이 사태는 한국 언론에서 도 다루었다. 60 이 글에서는 중국의 세 신문에 실린 기사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그 페스티발에 참가한 중국의 드라 마 제작자들이 한국 드라마에 대해 집단적으로 공격을 했기 때문이었 다. 그 내용을 법제만보( 法 制 晩 報 ) 에 실린 기사를 통해 살펴보자. 최근 몇 년간 중국 스크린 상에 한풍( 韓 風 ) 이라는 한줄기 바람이 점 점 더 맹렬해지고 있다. 중국의 드라마 제작자들은 텔레비전 방송사 60 예를 들면, 중국 한류 찬반 논쟁, 한겨레신문, ( ).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09

154 와 음상(드라마 DVD나 VCD)발행기구가 한국 드라마의 방영량과 발 행량을 줄여줄 것을 요구하면서 한국 드라마의 죄상 을 열거했다. 첫 번째 목소리 : 한국 드라마의 인물은 극도로 비현실적이다. 최 근 국내 방송관련기구가 한국 드라마 <대장금>을 떠받드는 것에 대 해, 베이징 쯔진청( 紫 禁 城 ) 영상공사 대표 장창( 張 强 )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흥, 나는 특별히 <대장금>을 보았는데, 내 생각에 그저 그 랬고, 근본적으로 그렇게 지나치게 선동하여 유혹할 필요가 없다. 지 금 이토록 열렬한 반응을 얻는 것은 이 드라마가 여권( 女 權 )의 색채 를 띤 우상문화라는 노선을 따르고, 극본상 남여 주인공이 극도로 비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질을 놓고 보면, 제작 수준이나 복 장, 소품 등 방면에서 한국 드라마는 근본적으로 국산 드라마와 비교 할 수조차 없다. <무한대제( 武 漢 大 帝 )>와 같이 중후한 작품을 한국 드라마는 만들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 목소리 : 국내 방송과 배급업체들이 맹목적인 하한( 哈 韓 ) 을 내보내고 있다., 우리 중국의 그토록 큰 드라마 시장에서 케이크 의 큰 조각은 한국 드라마에 주고, 우리 국내 드라마에게는 손바닥만 한 부분만 주었다. 더구나 일부 방면은 드라마 도처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예컨대 범죄드라마( 涉 案 劇 )가 황금시간대에서 쫓겨나는데, 이 같은 객관적 요인이 있으니 한국 드라마가 잘 될 수 있는 것 아니겠 나? 61 드라마 제작자인 딩신( 丁 芯 )은 말했다. 국내 방송과 배급업체 들이 맹목적인 하한을 내보내고 있다. 매년 수백편의 국산 드라마가 61 이 발언은 매우 부정확한 것 같다. 앞에서 지적했다시피 밤 10시 이전의 황금시간대에는 수입 드라마 방영에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다. 그리고 범죄 드라마의 경우 2002년경에 매우 인기를 끌었고, 그에 따라 같은 종 류의 드라마가 무더기로 제작되어 광전총국에서 일정량 이상 제작하지 못하게 규제했다 (최승호 인터뷰).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드라마의 시간 편성에서도 이런 점을 고려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즉 범죄 드라마가 황금시간대에서 밀려나고 있다면, 그것은 수입 드라마, 특히 한국 드라 마 때문이 아니라 정부측의 고려에 의해 다른 국산 드라마로 대체되는 것으로 보인다. 110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55 황금시간대를 빼앗기고 있다. 이는 우리 국내 드라마에게 매우 불리 한 것이며 응당 막아야 한다! 세 번째 목소리 : 한류는 몇 년 못 갈 것이다. 중시( 中 戱 )영화드 라마제작센터 옌( 閻 )주임은 훨씬 더 폭발적인 발언을 하였다. 그는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한류는 몇 년 못 간다. 한류에 뭐 좋은 점이 있느냐? 한국 드라마가 우리보다 나은 점이 어디 있느 냐? 현재 한국 드라마를 배워야 한다고 진종일 이야기들 하는데, 도 대체 무엇을 배워야 하나? 드라마 제작 구조를 보면, 한국에는 독립 적이고 제대로 갖추어진 제작회사가 없고, 대부분 방송사 내부에서 제작되고 드라마 제작회사에서 촬영하는 것이 매우 적어서 독점적 성 질이 비교적 강하다. 62 경쟁이 좋은 제품을 만든다 는 말을 할 수 없 는 것이다. 따라서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한국 드라마가 중국 시장에서 점점 축소될 것이며 국산 드라마가 변함없이 주류인 것이다. (2) 비판적 담론에 대한 반론 이러한 일부 제작자들의 한류에 대한 경각심과 비판에 대해서 북 경청년보( 北 京 靑 年 報 ) 는 한국 드라마 위협론은 마음상태 문제다 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서 반론을 펴고 있다. 이 기사에서 기본적으 로 제기하는 문제는 상황이 과연 정말로 그들이 말한 것과 같이 심 각한가? 이라는 것이다. 기자는 같은 업종의 유관인사들을 취재하여 국내 방송시장, 국내 영상물(VCD와 DVD) 시장, 국내 연기자 노동시 장에서 한국 드라마는 전체로 절대 열세에 처해 있으며, 한국 드라마 62 공중파 방송3사의 드라마 중 외주제작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40-70%에 이르고 있어서 오히려 외주제작 드라마가 더 많다고도 볼 수 있다. 따라 서 대부분의 드라마가 방송사 내부에서 제작된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다만 외주제작사가 여전히 방송사에 비해서 매우 열등한 위치에 놓여 있 으며, 요즘엔 스타를 많이 거느린 연예기획사의 입김에도 많이 휘둘리는 경향이 있어서, 외주제작사가 완전히 독립적이고 제대로 갖추어진 구조 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11

156 의 진정한 위협은 해외시장에 있음을 발견했다. 전체적으로 말해서, 한국 드라마가 중국시장에서 가지는 영향력은 몇몇 제작자들이 말하 는 만큼 크지 않지만, 그 질은 그들이 말하는 만큼 떨어지지 않는다. 한국 드라마를 공격하는 것은 국내 드라마 제작자들의 초조한 마음상 태를 폭로하는 것이며, 그들이 국내 드라마 시장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근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공격은 사실 그 의미가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일 그들이 말로 규탄하는 데에만 머물 뿐 자신의 사 정에 대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한국 드라마는 장래에 정말로 홍수와 맹수 가 될지 알 수 없다. 이러한 취지로 이 기사는 크게 세 부분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첫째, 국내 드라마 시청률로 보면 한국 드라마가 국내 드라마를 뒤 흔들 수가 없다. 현재 정책에 따르면 황금시간대에는 국내 드라마만 방영할 수 있고, 한국 드라마 등 수입극은 밤 10시 이후에 방영할 수 있고, CCTV가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는 <해외극장( 海 外 劇 場 )>은 밤 11시에 시작한다. 이 시간대에는 시청률이 높을 수 없으며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따라서 방송사가 드라마를 구매할 때 시간대에 따라서 가격이 다르다. 예컨대 CCTV8은 황금시간대에 는 회당 80만 위안을, 한국 드라마 방영 시간대에는 회당 18만 위안 을 지불한다. 따라서 국내 드라마와 한국 드라마는 같은 출발선상에 서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수량을 보더라도, 국내 수입극 중에서 홍 콩 드라마가 가장 많으며 한국 드라마는 두 번째이다. CCTV 문예센터 국제부 주임 친밍신( 秦 明 新 )이 소개한 바에 따르 면, CCTV8이 방영하는 24시간 중에서 수입 드라마는 3시간 정도밖 에 점유하지 못한다. 저녁 황금시간대 3시간이 그 채널 수익에 40% 이상을 공헌한다. 이는 국산 드라마가 한국 드라마를 포함한 수입 드 라마보다 훨씬 더 큰 공헌을 하는 것을 의미하며, 국내 드라마 시장 의 정황상 수입 드라마가 국산 드라마에 위협이 될 수는 없다. 그러 나 한국 연속극은 CCTV8의 비황금시간대 시장의 10% 정도를 차지하 112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57 면서 시청자들의 수요를 부분적으로 만족시키고 있다. 둘째, 국내 음반영상시장과 연기자의 노동시장의 측면에서 보더라 도 한류의 충격은 크지 않다. 300억 위안의 음상시장 중 한국 드라마 가 어느 정도 차지하는지 구체적 수치는 알 수가 없다. 한국 드라마 의 수입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광저우 펑리엔( 鋒 聯 )공사의 사장 펑 하이엔( 彭 海 燕 )은 기자에게 말하길, 수량상의 우세로 인해서 국내 음 상시장의 대부분은 국내 드라마가 차지하며, 한국 작품으로 말하자면 영화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드라마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드라마의 판권 가격이 올라가고 있으며, 이것으로 미루어보면 국내 판매가 좋 은 편이다. 이 외에 점점 더 많은 한국 배우들이 중국으로 와서 촬영을 한다. 예를 들면 <아파트( 白 領 公 寓 )>의 안재욱, <양문호장( 楊 門 虎 將 )> 등의 채림, <디아오만공주( 刁 蠻 公 主 )>의 장나라 등이다. 중국배우 중 중한 합작 작품에 비교적 많이 출연했던 왕야난( 王 亞 楠 )에 따르면, 충격이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매우 크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통계수치 로 보아도 마찬가지인데, 한국 배우는 중국에 오면 모두 주연을 맡게 된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매년 500편 정도가 촬영되고, 그중 남녀 주인공은 1,000명 정도가 필요한데, 한국배우는 20명을 넘지 않는다. 왕아난은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작자가 한국 배우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마 광고나 판매상 이점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국내 의 중한 합작 드라마는 특별히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한국 배우 들의 직업의식은 훨씬 더 큰 충격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30회분의 드 라마 <비천무>를 7개월 반 동안 촬영하면서 그들이 지친다고 해서 게 으름 피우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을 때는 가 볍게 원망스럽다는 표현을 할 뿐이었다. 이 점이 국내의 많은 배우에 비해서 강점이었으며, 연출자나 제작자들로 하여금 척도를 가늠하게 했다. 셋째, 해외시장 부문에서 한국 드라마는 국내 드라마에 대해서 진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13

158 정 충격을 준다. 친밍신은 CCTV가 채림의 <저 푸른 초원 위에( 靑 靑 草 )>의 수입을 확정했고 아마 가을에 방영할 것이고, CCTV 영화 드 라마부 주임인 왕궈휘( 汪 國 輝 )는 CCTV가 한국 드라마를 수입할 여지 가 아직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설사 이렇다 하더라도 한 국 드라마가 충격을 주는 것은 국산 드라마의 국내시장이 아니라 해 외시장이라고 말했다. 중국 드라마 시장 연구보고( 中 國 電 視 劇 市 場 硏 究 報 告 ) 에 따르면 대륙의 드라마가 미국, 일본 등의 비중국어 국가 와 지역에 대한 판매는 분명히 상승했지만, 홍콩, 대만, 동남아 등 전 통적인 수출지역에서의 시장점유율은 위축되고 있는데, 그 중요한 원 인은 한국 드라마의 충격이다. 한국 문화관광부의 수치가 나타내듯이 드라마는 한국 텔레비전의 최대 수출품이며 수출시장은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 위주이고, 몇 몇 고전극은 러시아, 이집트, 아라비아 반도에까지 수 출되고 있다. 2002년도에는 12,363회분을 수출하여 1,639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TV 드라마 무역에서 중국은 한국에 대하여 수입초과 상태에 처해 있다: 한국 MBC 드라마위원회 이재갑 위원장에 따르면, 한국의 한 방송사가 일년에 한 편의 중국 드라마를 수입하고 있으며, 한국 시청자의 수요를 고려하여 대부분의 수입 드라마는 대작 역사물 이다. 상하이 TV페스티발과 함께 열린 국제 텔레비전 논단에서 제기된 한국 드라마에 대한 공격에 대한 반론에 해당하는 또 다른 기사가 신문신보( 新 聞 晨 報 ) 에 CCTV가 장차 한국 드라마를 수입 드라마의 중요 부문으로 삼으려 한다 는 제목으로 실렸다. 이 기사는 앞에서 살펴본 북경청년보 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는데, 요지는 한 국 드라마로부터 배울 점이 있으며, 그 예를 <대장금>으로 들고 있 다. 좀더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자. <보고 또 보고( 看 來 又 看 )>, <인어아가씨( 人 魚 小 姐 )>, <노란손수건 ( 黃 手 帕 )> 등 한국 드라마가 CCTV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린 데 이어 114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59 서 CCTV는 한국 드라마를 수입 드라마의 하나의 중요 방면으로 삼으 려 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왕궈휘가 질문에 대한 대답의 형식으로 했 다. 국가 매체인 CCTV로서 한국 드라마를 대량으로 방영할 경우 국 산 드라마를 보살피는 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걱정을 하는 사람 들이 있다. 왕궈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수입 드라마와 국산 드라마의 비율에 대해서 광전총국은 엄격한 규정을 가지고 있으 며, 현재 방영되는 한국 드라마에 다른 수입 드라마의 점유율을 더하 더라도 규정된 기준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아마도 <보고 또 보고>, <인어아가씨> 등 몇 편의 드라마는 방영 이후 비교적 큰 반향을 일으 켰고, 따라서 이 같은 오해가 형성되었을 수 있다. 실제로 수입된 한 국 드라마의 비율은 지켜야 할 비율에 미치지 못하며, 더구나 국산 드라마를 보호하는 데에 대해서는 영향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또한 다음과 같은 생각을 밝혔다. 제작자들은 얼마간 압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압력은 동력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 한다. 한국 드라마는 참고로 할 가치가 있는 부분이 많다. 문화에는 국경이 없으며, 앞으로 서로간의 융합은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이 것이 하나의 압력이 되기 시작하지만, 이것은 동력으로 전환해서 우 리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MBC 드라마센터의 이은규 주임 역시 논단에 참가했다. 중국 시청자들이 좋아했던 <보고 또 보고>와 <인어아가씨> 그리고 <대장 금>은 모두 MBC 드라마이다. 장금의 아버지 로서 이은규는 성공 비결에 대해 이야기했다. 첫째 비결로 신선감을 들면서 그는 가장 중 요한 것은 주제가 시청자들에게 신선감을 줄 수 있는가라고 했다. 둘 째는 목표 시청자를 조준하는 것이다. 즉 극의 성격에 따라 주 시청 자를 설정하고 그들의 생활패턴까지 고려해야 한다. 셋째는 비용이 다. 대형 역사물을 촬영할 때는 큰 돈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없는데, 따라서 촬영지가 있는 지방정부와 협의를 해서 세팅장이 테마공원으 로 바뀔 수 있도록 하고 그 기회를 빌어서 촬영원가를 절약할 수 있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15

160 다. 즉 대형 역사물에는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가는 것을 각오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 드라마에 대한 중국 제작자들의 공격은 한국 드라 마의 낮은 질을 공격하는 경우에서와 같이 그 근거가 빈약하거나 한 국 드라마 때문에 중국 드라마들이 황금시간대에서 밀려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이 사실관계의 오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는 다른 신문들에서 지적한 바와 같다. 다른 신문들은 한국 드라마는 규정에 묶여 있어서 그 영향력에 한계가 있고, 또 한국 배우들이 중국 시장 을 잠식한다고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한 국 드라마가 중국 드라마 시장에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은 국내시장이 아니라 홍콩, 대만, 동남아시아 등의 해외시장이라는 것을 명시한다. 또한 한국 드라마가 중국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상황에서 중국 제작 자들은 압력을 느낄 수 있겠지만, 한국 드라마의 좋은 점을 본받아서 압력을 변화와 발전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3) 한류의 발생이유 한국의 드라마, 더 넓게는 한류가 중국대륙에서 뿐만 아니라 홍콩, 타이완, 일본, 동남아 등지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중국 언론들은 여러 측면에서 보여주고 있다. 우선 한국인과 중국인은 외모도 비슷하고 서로 잘 알고 있다는 점과 양국은 문화가 상통하고 유교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았는데, 한국 드 라마 내용에는 중국인과 비슷하게 삼대가 같이 사는 대가족, 고부간 의 화목함, 부모는 자애롭고 자식은 효도하는 등이 포함된다는 점, 그리고 드라마 제작 기술이 우수하고 정미( 精 美 )하다는 점을 중국 전 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칭화대학( 淸 華 大 學 ) 영상대학 교수 인홍( 尹 鴻 )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밝혔다. 문화적 영향은 두 가지 요 인에 달려 있는데, 하나는 두 문화에는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기초가 116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61 있어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 문화가 다른 문화생산에 영향을 미친다, 즉 우월성 을 구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과 한국은 아시 아 지역에 같이 속해 있고, 역사상 일찍이 중화문화의 배경 하에 있 었고 따라서 생활방식이나 가치관에 서로 통하는 바가 있어서 교류할 수 있는 기초는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의 유행문화(대중문화)는 원래의 새로움이 부족하고, 비교적 일찍 서방문화를 받아들인 한국 유행문화가 그 빈 자리를 메우고 있고, 동남아 지역에서 사정은 비슷 하다. 드라마에 관해서는 한국이 여러 국가들과 같이 유교문화권 혹은 중 화문화권에 속해 있으면서, 유교문화의 전통을 유지한 채 표현은 현 대적이고 세련되게 잘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그 외에도 한국의 유행가 가사는 청년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번뇌와 우려, 쓰고 달콤한 정감, 생활 중에 조급하게 돌아다니거나 곤란하여 어쩔 줄 모 르는 것을 묘사하고 있으며, 또한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또 가볍고 건강한 마음과 자세로 이후에 더욱 큰 도전을 맞는 내용들을 담고 있 다. 한국 영화에서도 인간과 인간 사이의 동정( 同 情 ), 약자에 대한 관 심과 애정, 사회적 봉사에 대한 생각 등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한국 영화는 자신의 민족문화에 대해서 비교적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 다. 영화 <클래식( 愛 有 天 意 )>에서 보면 화면이 아름답고, 깨끗하며, 애정을 표현함에도 불구하고 매우 전아( 典 雅 )하며, 동방인의 감정을 표현한다. 또 하나 한류가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전지구화 과정 중 한국문화 의 위치를 찾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현대사회문화에는 특색 과 생명력이 결핍되어 있고 민족 특색의 문화가 없다. 한류 는 유교 문화와 미국의 산업화된 대중문화가 결합된 산물이다. 한류는 문화 전지구화 과정 중 출현한 전지구화와 지역화(localization)의 충돌이 고 조화이며, 전통논리와 현대성의 충돌, 동서양 가치관의 충돌을 남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17

162 김없이 구현하고 있고, 따라서 많은 중국인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 이다. 이러한 논지와 비슷한 내용으로는 한류는 동서양 문화의 결정 체라거나, 전지구화 시대에 한류는 아시아문화의 존속을 설명하는 유 력한 증명이라는 등의 이야기가 있다. 63 한류를 논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또 하나의 점은 이것이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특히 호소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들은 음악이나 드라마에 대한 선호를 넘어서서 그들의 의복, 장신구, 머리모양 등을 한국의 스타, 특히 힙합 스타일의 댄스그룹을 따라하고, 64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제 최신 전자수첩, 휴대전화, 컴퓨터 등을 소비하는 등 생활 전반적으로 한류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 이들을 하한주( 哈 韓 族 ) 라 부르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종교적 신앙이나 전통적 유교 등을 믿지 않는 많은 신세대에게 정신적 지주가 필요한 상황에서 중국의 유행문화가 미성숙하여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므로 한국 유행문화가 그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65 한류의 내용뿐만 아니라 경제적 측면이나 정부와 관련성에 대해 언 급한 기사내용도 있다. 유행문화는 시장경제의 한 수단이고 많은 경 제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는 한국 정부가 문 화산업에 적극 투자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또 중국 정부가 최근 들어 문화산업의 발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런 점을 충분 히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 정부가 제도적으로나 법률적 으로 문화산업을 지원하고 인재를 양성하며 또 동북아문화공동체 구 축에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기도 한다. 즉 한국 정부와 문화산 업계의 움직임에 대해서 이들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류에 대한 비판적 담론도 폭넓게 존재한다. 드라마에 대해 63 < 64 < 65 < 118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63 서는 주인공이 항상 불치병이나 난치병에 걸리는 등 스토리가 유사하 다거나 극의 전개가 너무 느리다는 점이 지적된다. 그리고 소위 잘 사는 사람이 많이 등장하고 남녀 주인공이 너무 잘 생기는 등 현실성 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한류의 지속성에 의문을 표하는 기사들 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 외에 근본적으로 한류도 결국 하나의 유 행에 불과하고 사람들은 늘 새로운 유행을 추구하기 때문에 일류( 日 流 ) 가 흘러갔듯이 한류도 새로운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 면 한 때의 유행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류의 생산이나 유통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대중문 화 제작자와 유통업 종사자 중에는 탄탄한 대기업도 있지만 영세기업 이 많아서( 魚 龍 混 雜 ) 한류의 제작과 시장 운영면에서 문제가 없지 않 음을 지적한다. 전체적으로 중국의 대중문화산업 분야는 아직 미성숙 상태에 있어 서 급속한 시장경제의 발전과 정보화 등으로 인해서 폭발하는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외부의 대중문화가 유행할 수 있는 객관적 환경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특히 한국의 대중문화가 중국인들에게 폭넓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전통문 화와 인간의 기본적 본성을 골자로 현대적 생활의 화려하고 세련된 외양을 잘 입혔기 때문이라고 중국 언론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전통 적 요소로 인해서 외국 문화에 무관심하던 중장년층의 주목을 받고, 젊은층의 지지를 받는 것은 주로 화려한 외양으로 인한 것이라고 주 장하고 있는 것이다. 라. 대중문화 소비자의 반응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중국의 대중문화산업이 국유 일변도에서 벗 어나고 해외와의 교류도 증대하면서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상품 이 다양화되었다. 매체의 영역에서도 전통적인 TV와 라디오 방송과 영화 상영,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신문과 잡지 이외에도 CD, VCD,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19

164 DVD 등의 새로운 매체를 통해서 드라마나 영화, 뮤직비디오 등을 시 청하고, 인터넷을 통해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고, 또 뉴스를 보기도 한다. 이처럼 매체가 다양화되고, 소비자의 욕구를 충 족시키기에 중국 자체에서 생산되거나 미국과 강타이에서 수입되는 콘텐츠로는 부족한 상황, 특히 일본 대중문화상품에 대한 열기가 식 는 시점과 맞물려 한국의 대중문화가 중국에서 광범위하게 주목받고 소비되는 한류 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던 상황은 대중문화소비에 있어서 소비자 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선택과 반응이 얼마나 중요한 지 잘 보여주 고 있다. 66 상기했듯이 물론 이러한 분위기를 지속 발전시키는 데에 는 방송사, 영화사, 기획사 등 대중문화산업계가 중심이 되겠지만, 적어도 중국과 일본에서는 한국대중문화의 붐이 우연히 조성되기 시 작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이전에도 드라마, <질 투>와 <여명의 눈동자> 등이 중국에서 수입 방영되었지만 그다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다가, 1997년에 <사랑이 뭐 길래>가 선풍 적 인기를 끌면서 한국 대중문화상품에 대한, 더 나아가서 한국 사회 에 대한 관심이 중국에서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이후 한국 드라마의 중국 유입은 꾸준히 늘었으며 영화, 대중음악, 애니메 이션, 게임 등 다양한 분야의 대중문화상품으로 확산되었다. 중국의 대중문화 소비자 가운데에는 한국의 상품을 적극적으로 소 비하는 부류, 소극적으로 소비하는 부류, 그리고 소비하지 않는 부류 등이 혼재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어떤 특징을 가지는 사람들인지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기존의 연구를 통해서 살펴보자. 67 사회인구학적 변인에 따른 한국 드라마 시청여부에서는 66 한류를 말한다 : 문화/시선 창간 기념토론, 문화/시선 1 (한국문화 관광정책연구원, 2005), pp 대중문화 중에서도 가장 많은 소비자들이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품은 텔레비전 드라마이다. 왜냐하면 중국의 텔레비전 수상기 보급률 과 시청 시간에 대한 통계 수치를 보면 2002년 당시 TV 수상기는 120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65 남성보다는 여성, 나이는 젊을수록, 생활수준이 높을수록 한국 드라 마를 많이 시청하는 경향이 있으며, 직업적으로는 학생과 언론인이 가장 많이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68 이러한 결과는 한국 드라마가 현 대적인 생활을 많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방면에 관심이 많은 층에서 많이 시청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1)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다양한 평가 한국 대중문화를 소비하지 않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한국 대중문 화에 대해서 비호의적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 중국 사회에서 한국 대중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도처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에 대 한 담론이 사회적으로 폭넓게 유통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 대중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거나 호의적임에도 불구하고 소비할 수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조사에서도 이런 점은 확인 되었다. 선양( 沈 陽 )에 거주하는 주리용( 朱 立 勇 )은 컴퓨터 회사에 다니 는 20대 후반의 남성인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69 한국 드라마 나 영화를 아예 보지 않는다. (중략) 한국 드라마는 굉장히 지루하고 탤런트의 이미지도 거의 비슷하다. 한류는 일시적인 유행일 뿐 한국 드라마가 발전하려면 더 다양한 소재를 개발하고 미남미녀만이 아닌 좀더 다양한 이미지의 배우를 등장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정보 98.2%의 가정에서 보유하고 있었고, 1인당 하루 평균 시청시간은 179분 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따로 돈이나 시간을 들여서 구입하지 않아도 접근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와 더불어 중국에서 한류가 발생 하는 도화선이 되었고, 또 중국 소비자들이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 을 지속적으로 가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 드라마이기 때문에 드라마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고, 본 보고서에서 도 그 연구를 인용하려고 한다. 68 차이바오칭( 柴 葆 靑 ), 중국 시청자의 한국드라마 시청 행태와 매체 효과 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석사학위논문, 2003), pp 그에 대한 인터뷰는 8월 11일에 필자의 요청에 의해 한국학중앙연구원 학생인 구정에 의해 이루어졌다.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21

166 제공자는 한국 드라마의 단점으로 지루한 스토리, 실생활에서 쉽게 보기 힘든 미남미녀가 주로 등장하는 출연진 등을 꼽았다. 그는 한국 드라마를 어느 정도 시청한 이후 이러한 평가를 내리고 시청을 중단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그는 당연히 일부러 돈이 나 시간을 투자하여 다른 한국의 대중문화상품을 소비하지 않는다. 역시 선양에서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한 중국인은 아주 소 극적인 한국 대중문화 소비자로 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한국 드라 마를 가끔 본다. (중략) 한국 드라마는 화면이 아름답고 배우들이 잘 생겼지만 드라마가 보여주는 한국 문화를 이해하기 힘들고, 특히 사 치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분위기는 자신과 거리가 아주 멀다고 생각한 다. 그리고 스토리 구성은 너무 천편일률적이고 끝까지 안 봐도 결말 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다. 이 정보 제공자의 한국 드라마에 대한 평 가는 앞의 사람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그들은 공통 적으로 스토리와 출연자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70 이 사람이 한국 대중문화 전반에 대해 어떻게 소비할 것인지는 불문가지이다. 그에 비해 한국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은 그것에 대한 평가에서도 매우 호의적인 경향을 나타낸다. 연구자들이 인터뷰 한 사람들 중에서 이런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한국 드라마의 장점은, 화면이 선명하고 배경이 아주 아름답다; 드라 마 음악도 아주 아름답다; 스토리가 재미있다; 배우들이 잘 생기고 연기도 잘 한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이 한국 드라마의 장점 내지 자 신들이 한국 드라마를 자주 보는 이유라고 언급한 내용의 상당 부분 70 사실 이들이 한국 드라마에 대해 내리는 평가는 중국의 대중매체에서 한 국 드라마를 비판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내러티브이다. 필자가 직접 인터뷰하지 않아서 그들이 대중매체의 그런 평가로부터 영향을 받았는 지, 혹은 완전히 독자적인 생각인지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사회적 담론 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일정 정도 있었으리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그 리고 한국 드라마에 대한 한국 내 평가에서도 상기와 같은 항목은 자주 언급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내 존재하는 반한류( 反 韓 流 )의 담론이 한 국 대중문화에 대한 경계 혹은 반감에서 비롯된, 근거가 희박한 것이라 고 볼 수 없다. 122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67 은 한국 드라마에 대한 비판에서 자주 등장하는 내용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대체로 젊고, 학력수준이 높으며, 기본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연구자들이 만났던 북경어언문화대학( 北 京 語 言 文 化 大 學 )의 젊은 학생들 역시 한국 드라마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중국 드라마 는 옛 사극( 古 裝 片 )이 많기는 하지만 요즘은 현대 아이돌 드라마도 많이 만든다는 점에서 비슷하기는 하지만 중국 드라마는 플롯( 情 節 ) 이 그다지 사람의 주목을 끌지 못하고 비슷비슷해서 보다 새로운 느 낌이 없는 반면 한국 드라마는 사람을 끄는 힘이 있어서 (시리즈의) 중간부터 보더라도 끝까지 다 보게 하는 힘이 있다고 한다. 앞서 지 적했던 바와 같이 이들의 지적은 똑 같은 내용을 한국 드라마에 대한 비소비자 혹은 소극적 소비자와 정반대의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후자는 한국 드라마가 대만이나 홍콩의 드라마, 특히 사극에 비해 스토리가 지루하고 단순하다고 평가한 반면, 전자는 완 전히 상반되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보기에 중 국의 문화산업 발전은 아직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문화산업 발전 은 아직은 한국에 뒤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 드라마에 대한 적극적 소비자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성향과 생각은 다른 한국 대중문화상품의 적극적 소비자와 마찬가지로 한국 대중문화상품의 질적 우수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상하이 출신으 로 상하이에서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한 영화배우 조우이( 周 易 )는 한국 영화를 매우 좋아한다. 중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한국 영화 는 유명한 배우들이 나오는 청춘물(예를 들어 <엽기적인 그녀>, <클 래식>,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등)이거나 코미디류(예를 들어 <몽정기>, <색즉시공>, <조폭 마누라> 등)인데 반해 조우이는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을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꼽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 설경구 같이 되는 것이 꿈이다. 그는, 중국 드라마나 영화가 질 적인 측면에서 한국 것을 따라가기 어려우며 특히 배우들의 노력과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23

168 정신은 꼭 자신들이 배워야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또한 중국 에서 인기 있는 한국 영화는 모두 오락적인 성격이 강한 것들뿐인데 그런 영화들 말고도 좋은 영화가 많이 있는데도 71 사람들이 별로 찾 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한다. 그는 한국 영화의 완성도가 높기 때 문에 좋은 영화든 그렇지 않은 영화든 편차가 그리 심하지 않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2) 한국 대중문화의 소비 방식 중국에서 한국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의 한국 대중문화 소비자들, 특히 젊은이들은 주로 불법 유통되는 DVD, VCD 혹은 인터넷을 통해 한국 문화상품에 접하고 있다. 72 이는 앞에서 다룬 중국 대중문화산업과 정책들을 보 면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다. 영화의 경우 등급제가 아직 도 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상영되는 영화들은 불법적으로 유 통되는 것에 비해 상당히 제한적일 뿐 아니라 가격도 비싸다. 또한 다양한 통제 정책과 조치들로 인해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유통되는 71 중국에서 공부하는 한국 유학생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한국의 대중문화 상품들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 중국 대학가 근처의 DVD, VCD 판매점에 가면 대부분의 한국 영화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의 DVD 발매 를 기다렸다가 그것을 복사해 파는 경우도 많고 극장에 몰래 촬영하여 화질이 매우 안 좋은 판본들도 있다. 한국 영화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한 국의 B급 에로 비디오들도 DVD로 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앞에서 언급 했던 대로 정체불명의 영화들도 한글 제목을 달고 판매되고 있다. 72 중국의 대중문화 소비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한국 대중문화 의 소비자보다 수적으로 더 많고 두텁고 복잡한 층위를 이루고 있는 중 국 본토와 강타이 대중문화에 대한 팬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한국에서 이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언론계와 학계에서는 중 국 대중문화에 대한 중국의 팬덤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당연하게도 한국 대중문화 팬덤이 범접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이는 앞서 대중문화 교류에 대한 중국 언론의 담론 분석에서도 이미 추정할 수 있는 바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주로 교류와 관련된 팬덤, 혹은 소비자에 대한 반응에 대해 서만 논의를 제한할 것이다. 중국 대중문화 소비자에 대한 깊이 있는 논 의는 별도의 연구로 이루어져야 한다. 124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69 것들 중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는 문화상품이 충분하지 못하거나 시의 성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 언급하였던 <대장금>의 경우 가 이런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예가 될 수 있다. 광전총국의 심 의가 늦어져서 2005년 9월이 되어서야 후난TV에서 방영을 시작했는 데 공식적으로 텔레비전에서 방영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몇 개 버전 의 VCD 세트가 음반영상 매장에서 판매가 되었을 뿐 아니라 대만에 서 방송했던 것이 파일의 형태로 인터넷에서 유통되었기 때문에 그 드라마를 이미 접한 소비자들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방영을 시작하지 않은 시점에 이미 방송하고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점은 중국 문화산업의 특성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 으로는 소비자들의 생활방식 때문에 선택된 것이기도 하다. 한국 대 중문화의 적극적 소비자들 대부분은 10대, 20대 학생이거나 회사원 들이다. 따라서 텔레비전에서 방송하는 드라마,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시간 맞추어 볼 수 있는 조건이 안 될 때도 있기 때문에 DVD, VCD를 사거나 대여해서 자신이 편한 시간에 보는 것이다. 한국 드라 마의 방영이 밤늦은 시간에만 이루어진다는 점 역시 이런 방식의 소 비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한다.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는 DVD, VCD를 통해 보는 것이 일반적인 반면 대중음악의 경우는 인터넷의 보급과 MP3 플레이어의 확산으로 파일의 형태로 유통되는 것이 보다 일반적 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경우에도 인터넷이 상당히 발달했고 젊은 이들은 매우 손쉽게 영화와 드라마의 파일을 찾아낼 수 있기는 하지 만 다운로드 시간이 많이 걸리고 73 전송 품질이 그다지 좋지 않기 때 문에 DVD나 VCD에 의존하지만 음악의 경우는 파일 크기가 크지 않 73 북경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베이징의 인터넷 속도가 상하이보다 느리고 품질도 좋지 않다고 불평을 하곤 했다. 그 예로 인터넷망이 불안정하고 많이 느리기 때문에 베이징에서는 파일 이어받기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하지만 상하이 친구들은 그런 프로그램의 존재를 모르고 있더라는 이야 기를 전해주었다.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25

170 고 중국에는 아직 MP3 파일 유통에 대한 제한 조처가 없어서 상대적 으로 많이 이용되는 편이다. 그러나 MP3 파일로 유통되는 한국 대중 음악은 대부분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댄스 음악이 주를 이룬다. H.O.T, S.E.S., 장나라, 보아 등의 음악은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보다 다양한 장르와 가수의 음악을 찾는 것은 약간 어려운 편이다. 벅스 뮤직과 같은 한국의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지만 이것 은 한글을 약간 알고 검색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MP3 파일로 찾지 못하는 음악의 경우는 그냥 듣는 것을 포기 하거나 학교 근처 불법 음반 판매상에서 3위안이나 5위안에 파는, 비 닐 케이스로만 포장되어 있는 불법 복사 CD를 구입하는 경우도 있 다. 74 (3)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다양한 팬덤 위에서 살펴보았던 드라마를 포함하는 한국의 대중문화상품에 대 한 이와 같은 입장들은 언뜻 보기에 매우 주관적인 듯 보이지만 연구 진이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는 점에서 완전히 근거 없는 반응과 평가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대중문 화에 대한 취향은 주관적인 반응과 집단적인 정서와 성향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의 반응이 지극히 주관적이라고 해도 무 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해 한국 대중문화 에 대한 팬덤(fandom)이 상당히 다양한 층위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 74 물론 이러한 경향도 다양한 층위를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일반적 소 비자 들의 경우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구하거나 접할 수 있는 매체를 이용하여 음악을 듣고, 구하기 어렵거나 접근하기 힘든 소스에 대해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쉽게 포기하거나 가급적 쉬운 방법을 찾기 마련 이다. 하지만 이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소비자들도 있다. 상하이에서 만났던 NRG 팬클럽 이 팬클럽은 NRG 소속사로부터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팬클럽이었고 공식 명칭은 NRG 팬클럽 상하이 지부 이다 회원들 의 경우는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발매된 CD 뿐 아니라 한국에서 발매된 CD도 소속사를 통해 구입을 하며 불법 복제 CD를 사는 것은 NRG에 피 해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126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71 실을 반영하기도 한다.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팬덤은 복잡한 스펙트 럼 형태의 분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중국 소비자들이 보이는 다양성은, 한국 대중문화 상품을 통해 한 국에 대해 갖게 된 이해의 정도에서도 나타난다. 한국 사회에 대한 관심이 약간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대중문화를 통해 한국의 특징을 조금 더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 우연히 접한 한국 대중문화로 인해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생겨 한국 사회의 특징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 는 경우도 있다. 75 물론 이와 같은 이해도 사실은 매우 제한적이거나 일반화된 수준 이상으로 나아가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기껏해 야 한국 사람들은 바닥에 앉아서 밥을 먹는다거나 김치를 먹는다거나 부부끼리 서로를 부를 때 아빠, 엄마 이런 식으로 부르는 것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수준이다. 또한 어떤 경우에는 한국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만 강화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연구진이 중국 사 람들을 만났을 때 여러 차례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한국 남성들이 아직도 강한 가부장적 관념을 갖고 있거나 여성을 때리냐는 물음이었 다. 이와 같은 질문을 한 사람들은 물론 한국 대중문화에 대해 고정 적인 관심을 갖고 팬덤을 형성하는 부류는 아니고 한국 드라마가 중 국에 방영되기 시작한 초기에 <목욕탕집 남자들( 洗 澡 堂 老 板 家 的 男 人 們 )>과 <사랑이 뭐길래( 愛 情 是 什 么 )> 등을 보고 한국 남성에 대한 특 정한 이미지를 고착화시킨 경우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한국 드라마 를 많이 시청하는 사람일수록 드라마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이고, 평 가가 긍정적일수록 중국인이 한국에 대하여 친근감이 생긴다고 한 다. 76 즉 한국 드라마가 한국 사회와 문화의 구체적 내용을 알리는 역 할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지만,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친근감을 증 75 한국 드라마를 시청한 후에 한국 대중문화와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정도가 높지는 않은 것으로 조사되었다(차이바오칭, 중국 시청자의 한국드라마 시청 행태와 매체 효과에 관한 연구, pp ). 76 위의 글, p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27

172 대시키는 효력은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77 한국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여성들의 경우에는 한국의 대중문화 상 품을 통해 일종의 트렌디를 형성하거나 그것들을 하나의 기호로 받아 들이는 경향도 볼 수 있다. 상하이의 평범한 회사원 투원지에( 屠 雯 洁 ) 의 경우는 한국 드라마를 통해 화장하는 법, 옷 입는 스타일을 참고 할 수 있어 좋다고 하였다. 그가 보기에 요즘에는 중국이든 한국이든 일부 스타에 의존해서 드라마를 만드는 경향이 많아서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그저 비슷하게 여겨지는데 다만 한국 배우들의 경우 중국에 비해 보다 예쁘고 깔끔해서 그들의 화장법과 옷 입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한다. 한국의 문화상품, 혹은 한국 사회가 특정한 내용을 담지하지 않고 하나의 기호로만 소비되는 경우도 분명 있다. 특히 요즘에도 한글이 프린트된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간혹 만날 수 있는데 제대로 만 들어진 옷도 있기는 하지만 어떤 경우는 의미가 전혀 통하지 않는 글 자들의 조합이거나 오자가 많은 이상한 글자들, 심한 경우는 보행자 출입금지, 취급시 주의사항 등 디자인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한글이라는 이유만으로 옷에 프린트된 것도 볼 수 있다. 한국 의 한 방송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방영한 적이 있었는데 그 프로 그램에서 인터뷰한 중국 여성은 이상한 한글이 프린트되어 한국 사람 들도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해 주자 상관없다. 보기 좋으 면 그뿐이다 라고 대답을 했다. 사실 이와 같은 경우는 극단적인 사 례이기는 하지만 한국 대중문화 상품과, 나아가 한국 사회 자체가 소 비되는 방식이 한국측의 시각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혀 다르게 소비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는 현상이다. 77 한류의 주 소비층에 해당하는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 사에서도 한류가 한국의 이미지 변화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52.5%로 잘 모르겠다 (28.4%)나 아무 역할도 없다 (11.0%) 보다 훨씬 많았으며, 부정적 역할을 했다 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가장 적 어서 8.1%에 불과했다. 한국청소년개발원, 중국 청소년들의 한류 인식 실태에 관한 연구 (서울: 한국청소년개발원, 2002), p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73 사실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과 맹목적인 수준의 팬 덤은 2002년을 기점으로 많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2002년 거리에서는 문희준, 강타 등의 이름이 새겨진 축구복 형태의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젊은이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고 2002년 5 월 상하이 한국상품 전시회 축하공연을 위해 JTL, TTMA 등이 상하 이 홍치아우( 虹 橋 )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많은 중국인 팬들이 몰려 공항업무가 약 10시간 이상 마비되기도 했었다. N.R.G.의 한 멤버가 죽었을 때 그 소식을 접한 학생들이 일부 학교를 나오지 않았고 많은 학생들이 하루 종일 눈물을 흘리거나 통곡을 하는 바람에 수업에 차 질이 있기도 했다. 지금 현재도 간혹 평화통일 등의 한글이 프린트 된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고 강타, N.R.G. 등의 몇 스 타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를 찾을 수 있기는 하지만 지금 현재는 사실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팬덤 자체가 상당히 안정화된 실 정이라고 볼 수 있으며 한국 언론에서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것과 같은 그런 열광적인 반응 을 항상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 장 나라 팬클럽( 聆 听 娜 拉 俱 樂 部 )의 회장인 류양( 劉 楊 )은 다음과 같은 이 야기를 해 주었다: 많은 여학생들이 H.O.T, N.R.G., (대만 가수) 조 우지에룬 등을 좋아한다. 나 역시 그렇다. 장나라를 좋아한다. 그 런데 콘서트 입장권이 500원이고 내가 그만큼의 돈이 없는데 아버지 를 졸라서 500원을 받아 갈 수는 없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안 간다. H.O.T 멤버 중에서는 강타와 문희준만 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 다. 98년, 2000년 한류가 한참 활발할 때 문화부장관과 주중 대사를 만난 적이 있다. 나는 그때 고등학생이었으니 어릴 때였다. 그 사람 들이, 많은 중국 학생들이 한국 것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만족해했고 무료 영화 상영, 무료 한국어 강습 등 다양한 활동을 했었다. 그때는 활동이 매우 활발했다. 주로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 지 금도 그런 활동들은 있다. 그런데 그 때 활발하게 활동했던 사람들이 나처럼 학생이 되거나 직업을 갖게 되었다. 그런 것을 좋아하는 것이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29

174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니 그냥 지금은 취미가 된 것 뿐이다. 중국 소비자들은 한국적인 것에 대해 집착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 은 스스로의 문화적 욕구에 의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가고 있 는 중이고 여러 맥락과 상황이 한국에 유리하게 돌아간 것일 뿐이라 고 보는 것이 어쩌면 보다 정확한 관점일 수 있다. 상하이에서 만난 드라마 섭외담당 PD( 外 聯 制 片 ) 왕하이성( 王 海 生 ) 선생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문화 교류는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하나의 유행이고 흐름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반응이 오래 지속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는 의견을 말해 주었다: 예를 들어 어떤 드라 마가 예전에 보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좋은 느낌을 갖는 다. 그 다음에도 비슷한 느낌이 들고 또 다른 드라마를 봐도 비슷한 느낌이면 사람들이 비슷한 느낌 때문에 더 이상 보지 않게 된다. 음 식도 맛있는 것을 계속 먹으면 질리는 것과 같다. 사람들의 입맛은 변하기 마련이다. 상하이에서는 2-3년 지나면서 한국 드라마에 대한 흥미가 많이 없어졌다. 예전에 북한 영화를 봤을 때도 비슷했다. 처 음 봤을 때, 뭔가 다르다고 느꼈었는데 다른 영화를 보니 여전히 비 슷하게 슬픈 영화더라. 소비자의 반응, 즉 팬덤을 언급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하는 세 가지 특성이 있다. 하나는,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중국과 한국의 대 중문화 교류 현상이 상당히 일방향적이고 불균형적인 상태에서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중국 소비자들을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없던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소비와 긍정 적인 반응이 분명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소비자들이 한국 언론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그렇게 광적인 팬 들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장르와 형태의 한국 대중문화에 대해 중국의 소비자들은 매우 복잡한 다층적 형태의 분포를 만들어 내고 있다. 둘째,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이분법적 구분, 10대들의 맹목적인 130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75 반응으로만 묘사할 것이 아니라 그들은 매우 주체적인 입장에서 팬덤 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스타 혹은 장르에 대한 열 광과 관심에서 만들어지는 팬덤은 소비자 스스로가 처한 맥락, 대중 문화 유입과 교류를 둘러싼 다양한 외부적 요인, 다양한 경로를 통해 수집하는 수많은 정보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며 소비자들은 그것들을 단순히 즐기는 것 이상의 차원에서 소비한다. 78 그것은 욕망의 분출/충족일 수도 있고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의 차원 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또한 특정한 경우 그것은 또 래 사이의 경쟁의 자원이 될 수도 있다. 79 중국의 대중문화 소비자들 에게서 나타나는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셋째, 대중문화에 대한 팬덤이 어떻게든 문화산업과 자본에 대한 반응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팬덤이 앞으로도 지금의 모습 그대로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결코 속단할 수 없다. 2002년을 정점으로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이 안정화되고 한풀 잦아든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오히려 바람직 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한국 대중문화가 열풍처럼 몰아치다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는 것보다는 중국 사회 내의 영향력이 감소하더라도 중국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항목 중의 하나로, 더욱 바람 직하게는 선호도가 비교적 높은 항목으로 오랜 기간 존속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할 것이다. 지금 현 시점에서 앞으로의 교류 전망과 제안 을 수립할 때 신중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부분일 것이다. 78 팬덤 혹은 대중문화의 소비와 관련하여 매우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졌다. 대중문화의 전유 과정으로서의 팬덤과 관련하여서는 Paul Willis, Common Culture: Symbolic Work at Play in the Everyday Cultures of the Young (Boulder: Westview Press. 1990) 참고. 79 이응철, 청소년의 대중문화 수용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석사학위논문. 1998) 참조.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31

176 3. 일본의 아시아 대중문화 유입현황과 대응 가. 분석의 틀 (1) 1990년대 이후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초국가적 이동 동아시아에서 대중문화의 지리적 이동에 관해 1990년대 이후를 현황 으로 시기구분 하는 것이 일본의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구분을 처음으로 세계화에 관한 이론적 논의를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맥락에서 설득력 있게 내건 것이 岩 淵 功 一 (2001)이다. 그 에 따르면 1990년대에 들어 동아시아에서 미디어문화의 초국가적 이 동이 훨씬 긴밀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런 동아시아 의 변화를 문화의 세계화라는 보다 큰 맥락에서 파악한다. 즉, 미국 의 대중문화 포맷이 세계 각지에 침투됨과 함께 그것이 지역적인 맥 락에서 혼성화 되면서 비서구지역의 미디어문화의 제작 능력이 비약 적으로 발전한 것, 문화시장의 확대와 국경을 넘는 미디어 문화산업 간의 연계가 깊어진 것, 그리고 이에 따라 미디어교통의 지역화가 긴 밀화 되었다는 것 등이다( 岩 淵 功 一 2004: p. 112). 이렇게 1990년대 이후에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대중문화 교통은 국민국가체제를 전제 로 한 국제적(international)인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체제를 가로지르는 초국가적(transnational)인 성격을 띠며, 나아가 다양하 고 多 방향적인 것으로 개념화된다. 일단 이런 변화양상을 인정한다면, 현재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각 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류 현상은 1990년대 이후의 다양하고 다방 면적인 문화적 흐름의 한 가지 두드러진 사례로 분석될 수 있으며, 이 장에서 살펴보게 될 일본의 아시아 대중문화의 유입과 대응의 문 제도 이런 맥락에서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다. 132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77 (2) 1990년대 이후 일본 아시아소비의 성격과 구조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동아시아에서 문화교통의 흐름이 과거에는 일본에서 다른 지역으로 흘러간 경우가 많았다면, 현재는 일본으로 유입되는 것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커다란 흐름이 되었다는 것이 일 견 새로워 보인다. 이 흐름의 중심에는 현재 한류 의 압도적인 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역사적 배경에서 보았듯이 과거에도 일본의 아시아소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과거와 현재에서 관찰되 는 아시아소비는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이 다른가. 현재의 그것은 무엇이 새로운가. 역사적 배경을 기술한 것은 바로 이런 비교작업을 통해 현재적 특징을 도출하기 위해서이다. 과거의 일본의 아시아소비를 보면, 우선 1930년대의 대륙붐은 흔 히 관주도 민추종 의 도식으로 파악이 된다. 즉, 국가가 주도하여 대동아공영권 이라는 정치이데올로기를 강화시켜 나간 상황에서 민 간의 문화업계를 동원(1940년대에는 통폐합 및 공유화)하여 정치이데 올로기를 정서적으로 뒷받침하는 대중문화를 생산하며 일반 대중에 게 향유케 했다는 것이다 80. 또, 1980년대까지의 아시아붐은 민간업 계주도 소비자추종 의 도식으로 일단 이해될 수 있다. 국교 정상화와 같은 정책적 맥락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노골적인 정치이데올로기 보다는 문화산업이 주도하여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진 문화유입이 당 시 소비자들의 정서나 욕구의 어떤 측면과 맞아떨어져 붐이 되었다는 해석이다. 한편, 이런 이념화 작업을 바탕으로 이 보고서에서는 최근 의 한류를 비롯한 아시아소비의 특징을 소비자주도 문화업계추종 의 도식으로 파악한다. 즉, 그 구조는 일본 소비자의 주체적 수용 시 80 그렇다고 소비자의 주체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며 오히려 대중적으 로 고조되던 아시아주의적 정서를 국가가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간 측 면을 강조하는 소위 대중파시즘(grass-roots fascism)론적 견해도 존재 한다. 사실 이런 견해들 위에도 역사학적으로는 여러 가지 해석들이 가 능한 극히 논쟁적인 지점이라는 것은 덧붙여야 한다. 따라서 여기서 기 술한 이해도식은 현재를 기술하기 위한 과거의 이념형적 파악이다.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33

178 장가능성의 확인 문화산업의 추종 미디어와 관심과 문화정책의 개략적인 흐름으로 짜여진다. 이렇게 일본의 아시아소비의 성격을 시 기에 따라 도식화하여 차별화사는 작업은 필수적으로 적잖은 단순화 와 일반화를 수반하지만, 이 작업을 통해 비로소 최근의 아시아소비 에서 새로운 국면의 거시적 특징을 포착해 낼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분석의 틀을 바탕으로 하여 아시아 대중문화의 유입의 복 합적인 요인과 다양한 효과들을 알아보고자 하는데, 이번 조사에서 특히 주목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사항이다. 즉, 1) 아시아를 향유하는 일본인 소비자의 부각, 2) 일본 대중문화 업계의 구조적 변화 양상이 다. 이 외에 미디어 등에서 다루어지는 한류 담론이나 국가의 문화정 책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겠다. 나. 일본 문화업계와 한류 효과 (한류에 대한 대응) (1) 문화산업계의 민족지적 연구 작년 보고서에서는 일본 문화산업계의 총체적인 파악을 목적으로 생산, 유통, 소비의 수직적 구조 및 영화, TV, 음악이라는 수평적 연 관이라는 틀로 산업구조적 특징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그 때 중요한 과제로 삼은 것이 해당 업계의 구조 속에서 한국이나 아시아의 위치 의 문제였다. 그리고 조사의 결과로서 생산과 유통의 영역에서 邦 (일본) 대 洋 (서양)이라는 인식틀이 업계의 실제 구조로서 제도화되 어 왔다는 것, 그리고 좀더 근원적인 구조적 변화가 없는 한 한류와 같은 현상이 적어도 업계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하였다. 작년에 확인한 바와 같이 일본 국내의 시장 을 주된 대상으로 삼고 一 國 주의적으로 구조화된 일본의 문화업계는 표면적으로 눈에 뛰는 빙산의 일각을 제외하고는 민간부문에서 탈국 가화 가 아주 늦은 편이다. 따라서 작년의 조사에서 도출된 하나의 가 설로서 국경을 넘어서 수용하고 이동하는 소비자를 따라잡기 위해 제 134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79 도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추종적으로도 급속히 구조조정을 해 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런 가설 하에 일본의 문화산업계의 변화에 대해 통계수치나 산업 구조와 같은 거시적 관점뿐만 아니라 실제 종사자들을 만나 면접조사 를 통해 좀더 미시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이번 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이를 위해 작년과 올해에 걸쳐 일본의 영화, 음악, TV의 생산과 유통의 영역에서 일하는 20여명의 문화산업계 종사자들 을 만나 면접조사를 실시했다. 면접 대상자는 기본적으로 아시아나 한국과 관련해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삼았고, 그 성 별적, 민족적 구성에서 여성 10명, 한국인 6명이 포함되었다. 여기에 는 특별히 아시아와 관련해서 일한 경험이 없는 사람도 일부 포함되 었으며, 그것은 연구 대상자의 편차를 넓게 해 준다. 81 이번 조사를 토대로 현재 일본 문화업계에서 확인되거나 지적될 수 있는 변화양상으로는 1)아시아 회귀( 回 歸 )의 추세, 2)민족구성의 재 편, 3)공동제작의 증가 등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각 항목들이 실제 종 사자들에 의해 어떻게 경험되고 의미화되어 있는가 하는 질적인 관점 을 가지고 접근했다. 81 연구 방법과 관련하여 언급한다면 일본사회 내의 특정한 층인 업계 종사 자들을 만나 인터뷰한다는 작업은 외부자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 아니었 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들은 대체로 조사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주거 나 하는 예가 드물었으며, 때에 따라서는 무엇을 위한 조사인지 의아해 하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업계에 대해 민족지적인 접근을 시도한 일 본 측의 기존 연구를 보아도 업계에서의 오래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경 우가 적지 않다( 岩 淵, 生 明 등의 케이스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산업 안 에 들어가기 위한 방법으로 조사주체 측에서 이미 만날 사람의 면담을 완벽하게 만들어 놓기보다는 아는 사람의 소개라는 방식으로 인맥 을 따 라 사람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한정된 조사기 간 내에 효율적으로 일정을 짜서 집중적으로 인터뷰를 실시하기가 그렇 게 쉽지는 않았으며, 긴 시간과 충분한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문화인류학적 현지조사의 전통적 규범에서 본다면 문제점이 없지 않음을 지적해 놓아야 한다.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35

180 (2) 일본 문화산업계의 아시아회귀( 回 帰 ) (가) 아시아로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우선 일본 문화산업의 종사자들을 만나게 되면, 여러 가지 계기로 아시아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이 많음을 곧 알 수 있다. 그 리고 이것은 개인차원이라기보다는 기업체차원이고 업계차원의 구조 적 변화의 징후로 보인다. 역사적 배경에서 본 것처럼 이런 아시아로 의 관심이 이번이 처음이 아님을 인정한다면 현재의 상황은 일본 문 화업계의 아시아회귀( 回 歸 )라고 부를 수 있다 82. 이런 변화는 일본사 회 전체의 추세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이 변화는 지금까지 일본의 문화산업이 국내지향성 아니면 서구지 향성이 특히나 강한 영역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결코 작은 변화가 아니 다. 사실 대부분의 일본 업계인들은 일본 국내의 시장에서 일하는 것 이 너무나도 자연화되어서 일본 문화의 해외유출이라는 것을 오랫동 안 의식하지 않았다. 따라서 거꾸로 1990년대에 와서 일본의 어떤 문 화가 아시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 함으로써 상당한 충격을 받은 사람이 적잖다. 이전부터 외국 노래를 일본어로 부르는 것은 하도 많아서 너무나도 익숙했어요. 그런데 일본 노래가 아시아의 언어로 불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설마 일본 의 창가 같은 노래가 아시아인들에게 불리고 있다고는 상상 도 못했지요. 이 사실을 알게 돼서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창가를 가지고 CD 전집을 만 들기로 했고요. 그렇게 해서 만든 게 CD30장짜리 근대창 가집성 입니다. (중략) 원래는 유럽의 클래식 음악, 특히 현대음악을 좋아했고 합창도 했는데요. 솔직히 아시아나 한 국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개념이 없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한국에 꽤 깊이 빠져 버렸어요. (V음반반회사 디렉 터, 남성, 40대)(이하 밑줄은 인용자) 82 岩 淵 功 一 (2001)는 이런 변화가 1990년대 이후 진행이 되어 온 것으로 보 았다. 136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81 이것은 전혀 아시아에 관심이 없던 음반회사 디렉터가 어떻게 아시 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는지에 대해 말해 준 내용이다. 1990년대 말에 처음으로 일본노래가 과거에 아시아로 전파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역사의 무지에 대해 충격을 받아 아시아에 대해 관심을 가지 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음반회사에서 주로 초, 중, 고등학교의 음악학교 교재를 만드는 일 을 맡아하는 음반회사의 여성 디렉터는 아시아회귀라는 추세에 있어 문화업계와 문화정책과의 관련성을 시사하는 내용을 이렇게 이야기 해 주었다. 저는 회사에서 초, 중, 고등학교의 음악교재를 담당하는 부 서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4, 5년 전부터 발밑 을 보자는 움 직임이 강해졌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는데 하 나는 일본에서 민요로, 또 하나는 세계에서 아시아로, 이렇 게 되었어요. 아시아는 뿌리이기 때문에. 그래서 먼저 뿌리 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이 전에는 음악교육의 세계도 서양 일변도였지요. 이렇게 해서 <아리랑>을 초등학 교 교재로 싣게 되었습니다. 또 어린이가 노는 노래도 실었 고요. (중략) 2002년에 음악교육이 개정이 된 게 큰 계기인 데요. 그 핵심이 언어와 문화를 학습하자는 거예요. 문부성 의 방침으로 일본부터, 아시아부터 라는 것이 나온 거지 요. (C음반회사 디렉터, 여성, 30대) 문화산업과 문화 교육정책은 같이 가는 것은 아니지만 교과서를 만든다는 부서의 특수성도 작용이 돼서 그 연관성이 드러난다. 사실 이런 아시아회귀의 동향은 일본사회 전체의 좀더 일반적인 지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 어떻게 아시아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 준 업계인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것은 인터뷰한 대부분의 일본 업계인들이 원래부터 아시아에 관심이 많았 다고 대답하는 사람들, 즉 옛날 같으면 소수파 에 속했을 사람들이었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37

182 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금 현재 기업체 안에서 새로 조직화된 부서 아니면 담당자로 아시아와 관련된 일을 맡아하고 있다. (나) 시장으로서의 아시아, 콘텐츠로서의 아시아 이렇게 각성된 관심의 방향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즉, 아시아 대중문화의 국내 시장 수용을 통한 비즈니스와 일본 대중문화의 아시 아 시장 발신을 통한 비즈니스이다. 이는 시장으로서의 아시아와 콘 텐츠로서의 아시아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우선, 시장으로서의 아시아는 많은 업계인이 구상하고 상상해 온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음악디렉터는 인터뷰에서 이런 경험담을 말해 주었다. 도쿄 Ladies Singers라는 합창단이 있는데요. 한국에서 매 년 연주회를 해 온 팀입니다. 그런 인연도 있고 그래서 이 제 한국에서 CD도 내 보고 싶다고 회사 측에 제안해 보았 는데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아직 해적판 문제나 인터넷 문제도 있고 여러 가지 권리문제가 해결이 안 돼 있어서 그 렇다는 겁니다. 그런데 개방이 되면 시장으로는 한국이 큰 것 같아요 (C음반회사 디렉터, 여성, 30대). 이런 시장으로서의 아시아가 갖는 가능성에 대한 관심과 현실적 문 제로 의한 경계심의 양립은 1990년대 이후 업계 차원에서 꽤 오래 이 식되어 온 측면이다. 따라서 이 방면에서 아주 새로운 인식의 변화 같은 것은 두드러지지 않다. 한편, 콘텐츠로서의 아시아는 한류를 통해 일본 국내시장에서의 가 능성이 충분히 증명이 되었다. 이제 문제는 그렇게 확대된 일본의 아 시아소비가 어느 정도로 계속 이어질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문화산 업계의 구조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인지의 상호 연관 된 물음이다. 작년보고서에서 확인했듯이 일본의 문화산업계는 서양 과 일본, 즉 洋 - 邦 의 틀로 짜여져 있다. 영화에서는 양화와 방화, 음 138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83 반에서는 양반( 洋 盤 )과 방반( 邦 盤 )의 틀로 생산체제와 유통기제까지 구조화되어 있다. 여기서는 아시아라는 범주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래서 오랫동안 아시아의 영화는 양화로, 아시아의 음반은 양반으로 분류되어 왔다(음악의 경우는 외국 가수가 일본어로 부르는 경우도 많았고 이 때는 방반에 들어갔다. 현재의 BoA 같은 경우도 이런 관행 을 따르고 있다). 그러면 이런 틀과 최근의 아시아소비, 특히 한류는 어떤 교섭관계 를 보이고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해 영화 배급화사에서 해외영화의 배 급권 비즈니스를 담당하는 업계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극장의 흥행 측은 방화의 체인과 양화의 체인으로 나누어져 있지요. 방화는 일본영화만. 그래서 아시아영화도 안 들어 가지요. 아시아영화든 한국영화든 양화로 분류됩니다. 그런 데 조금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예컨대 비디오의 바이 어 말인데요. (중략) 비디오의 대형 체인 대여점에서는 지 금까지 바이어가 혼자였던 것이 이제 양화전용의 바이어하 고 방화 플러스 아시아영화의 바이어가 생겨서 한국영화 같 은 경우에도 방화의 바이어가 전부 구입하는 일을 맡게 됐 어요. 그러니까 동양과 서양이라는 분류방식인 셈이지요. (S영화배급회사, 남성, 30대) 이어서 이런 변화가 극장 흥행과 같이 유통구조 전체에 걸쳐서 어 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은 급속히 극장 측도 변해 오고 있지요. 시네콘(시네마 콤플렉스)이 생겨서요. 손님들이 많이 보는 영화에는 스크 린수를 많이 할애한다는 원래 그래야 할 모습이 되어가고 있지요. 이게 다음의 차원으로 가게 되면 아마 양화, 방화, 아시아영화라는 분류로 극장이 정해지는 시스템이 안 될 거 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바로 그래서 [일본에서 배급키 로 돼 있는] <역도산>이 이게 한국영화냐, 일본영화냐 하는 논의가 있는데요. 설경구 외에는 대부분[의 출연자가] 일본 인이고 촬영도 거의 일본에서 촬영했지만 감독은 또 한국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39

184 사람이고 자금도 한국의 자본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한국영 화라고 하면 한국영화이고... 그래서 이렇게 선을 긋는 것 이 별로 의미가 없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아마 점점 더 그런 식으로 융합이 진행이 돼 가는 게 아닐까요, 아시 아 내에서. (위와 같음) 위의 두 가지 인용에서 지적할 만한 요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방- 양의 틀로 짜여진 기존의 일본의 유통구조에서는 아시아영화가 양화 로 분류되었지만 이제 오히려 일본을 아시아로 편입시킨 동-서, 또는 아-양의 틀로 이행하는 기미가 보인다는 것, 또 하나는 방-양이든 아-양이든 이런 분류자체가 앞으로는 별로 의미가 없어질 것이고, 실 제로 이미 아시아에서는 공동제작 등에서 융합 이 보인다는 것이다. 한편, 일본의 매너지먼트회사에서 일하면서 무명의 한국인 가수를 발굴해 먼저 일본에서 성공적으로 데뷔시킨 경험을 갖는 한국인 직원 은 그 매너지먼트의 방향성이나 방침과 관련해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희 회사가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는요, 한류랑 관계없이 하는 거기 때문에, 한류가 어느 정도 사그라지고 시들어도 J-Pop시장에서 꼭 살아남을 수 있게 그렇게 트레이닝을 할려고 하거든요. (중략) K-Pop의 K는 저는 저희가 판단 하기에는 어느 정도 관객층이라든지 고객층이 한정이 돼 있 는데다가 한류라는 것도 오래가지 않을 거다는 판단 하에서 자 그러면 그 이후에도 계속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 야 될까 생각할 때 J-Pop으로 전면으로 승부를 걸어야 되 겠다, 그러니까 그 한국이라는 내셔널리티(nationality)를 내세우는 게 아니라, J-Pop으로 승부한다기 보다는요, 그 냥 순수한 음악으로 승부를 하자는 의미에서 그렇게 시작을 했거든요. (중략) [음악이나 드라마보다 더 작품성 으로 평 가된다는] 영화 쪽은 저도 다른 방향으로 어떻게 좀 좋은 사업케이스라든지 모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영화 쪽으로는 진짜 앞으로 신경을 써 보고 싶은데. (S매너지먼트회사 직원, 여성, 30대) 140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85 이 경우에는 K-Pop 아티스트라는 것을 내세워 한류를 타기보다는 오히려 그것과 차별화시켜 J-Pop이라는 일본 국내시장에서 승부를 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런 지향성은 보는 관점에 따라 한국의 가수가 기존의 일본 음악시장으로 편입 된다고 해석될 수도 있고 아니면 오 히려 도전 한다고 표현될 수도 있다. 적어도 이 담당자는 한류라는 붐에는 기한이 있다고 보고 그 너머를 보면서 적극적으로 일본 국내 시장의 테두리 안 에서 노력하고 성공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단순한 편입 이 아니라 오히려 K나 J라는 내셔널리티 와 무 관한 순수한 음악 으로 승부하겠다는 지향성을 나타냈다. 이점에서 선을 긋는 것에 별로 의미가 없다 고 한 위의 견해와 일견 통한다. 그런데 위의 대답이 다음과 같이 이어지면서 그런 탈국가 적 지향 성은 다시 국가 의 테두리로 회수되고 만다. 아무래도 외국인한테 감정이입이 되는 건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것 같애요. 결국은 자기나라 사람 자기나라 가수 자기 나라 배우들한테 조금 더 결국은 친근감을 느끼거나 감정이 입이 잘 되지 저희가 아무리 한류스타를 좋아한다거나 외국 사람, 외국배우를 좋아한다거나 어느 정도 그거는 한계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지금은 일본 분들이, 배용준이라든지 가수를 좋아는 해주시지만 영원히 오래갈 것 같지 않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위와 같음) 이러면서 J-Pop에서 승부하겠다는 말이, 그 너머에 있는 순수한 음악 으로 승부하겠다는 지향점과 일본인들에게 자기나라 가수 로 사랑받도록 노력하겠다는 지향점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읽어 낼 수 있다. 사실은 이런 담론적 혼란과 양가성은 다른 업계인들에게 도 상당히 넓게 보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시아회귀의 성격을 지니 는 탈국가주의 적 발화와 오랫동안 관습화된 국가주의 적 발화는 많 은 업계인들의 담론에서 뒤섞이면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41

186 (다) 아시안 정체성과 공동체의식 이렇게 아시아에 관심을 갖는 업계인들은 스스로 아시아인 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면서 아시아가 특정한 성격의 공동체 를 이루는 것으 로 상상하기도 한다. 그 공동체는 우선은 경제적인 것(즉 아시아시장) 이지만 문화적인 비전도 포함된다. 다음은 아시아에서의 민족문제에 대한 자기 생각을 국내의 재일교포의 문제와도 연관시키면서 말한 내 용이다. 저도 오사카 출신인데요. 서 쪽에. 제가 태어났을 때는 소 학교나 어릴 때는 주변에 재일교포, 당시는 재일조선인이라 고 했는데, 많이 있어서 저는 그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 게 보통이었거든요. 그런데 역시 도쿄로 왔을 때, 연예인 중에 상당히 많잖아요. 정말 많은데 그래도 말을 안 하더라 고요. 저는 처음에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중략) 한 류나 배용준 효과라는 것인데요. 지금까지 일본 여성이 한 국인 스타를 쫓아다닌다는 일은 없었지요, 거의. 거의가 아 니라 전혀 없었어요. (중략) 그래서 저는 정말 한류라는 것 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 우리는 역시 아시아인이니까, 일본 인도 원래는요. 몽골의, 몽고사람(Mongolian)이니까 이런 아시아라는 곳에서, 하나의 나라가 될 필요는 물론 없지만, 그래도 유럽도 유로로 간 것처럼 (중략) 아시안 이랄까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지점으로 갔으면 하거든요. 특히 연예 계에서. 지금까지 내가 재일교포라고 말을 못했던 사람들이 요. 이제는 조금씩 말하기 시작했습니다만, 역시 그게 자연 스럽게 저는 북한 출신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진 정한, 아시아 속에서 서로 이해한다는. 그렇게 안 되면 사실 독도문제도 해결이 안 됩니다. (G영화배급사, 남성, 40대) 일단 재일교포에 대한 시선이 도쿄와 오사카에서 다르다고 전제해 놓고 후자는 전자보다 낫다고 하는 오사카지역 출신자의 서사전략은 흔한 편이다. 그런데 한류의 효과로서 이런 국내에서의 민족차별이 완화되기를 관찰하고 기대하면서, 이것이 하나 된 아시아 를 낭만적 142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87 으로 구상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것은 발화자가 스스로 를 아시아인, 몽골리안 과 동일시함으로써 형성된 아시아적 정체 성을 바탕으로 한다. 여기서 아시아 로의 회귀라고 해서 모든 지역이나 나라에 똑같은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이번 조사에서는 홍콩, 대만을 포함한 중 국어권이 아니라 한국 측에 보다 강한 친근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해 준 경우도 많았다. 그 핵심은 상 대적 친근감, 문화적 유사성 의 이야기인데 그것을 가장 선명하게 설명해 준 것이 다음의 인용이다. 역시 한국의 장점은 홍콩영화를 봐도 저는 조금 문화적인 차이를 느끼는데 한국영화는 문화적 차이를 거의 안 느끼거 든요. 역시 민족으로서 굉장히 가깝구나 생각이 들어요. 그 래서 러브 앤 헤이트 아니지만 가깝기 때문에 생기는 사랑 과 증오 같은 게 있어서 여러 가지 문제도 있지만요. 역시 영화 속에 그려진 것들을 보면, 아 나도 그런 거 경험했는 데, 일본도 그랬지, 아니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구나 이런 발견이 있어요. 이렇게 상당히 실생활에서 체험하는 것을 한국영화에서 자주 보거든요. 이건 역시 홍콩영화에는, 좀 비슷하다고 해도 좀 다릅니다. 물론 큰 의미로 말하면 아시 아인으로서의 동감이라는 것도 있지만 역시 아시아 속에서 한국은 거리적 가까움, 거의 일본하고 다른 게 없구나 하는 이런 것이 그래도 정말 장점이지요, 한국 측에서, 한국영화 측에서 봐도요. 유일하게 언어만 조금 다를 뿐이고, 외모적 으로도, 문화적 배경도 상당히 비슷해서 공감을 얻기 쉽지 않나 해요. (S영화배급사, 남성, 30대) 이렇게 친근감을 강조했지만 차이를 전혀 인식 못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 대답에 이어 거꾸로 한국적 이기 때문에 일본 인이 다소 이국적 이어서 좋다는 부분도 있지 않나 하는 질문에 대 해 이렇게 대답하였다.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43

188 한국적 이라는 것은 뭐랄까요, 드라마가 강하다는 것, 한 국적이라는 것은 역시 간이 진함 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일본보다요 관객을 울릴 때는 철저하게 울리지요, 웃을 때, 코미디에서는 좀 직선적인 코미디를 하지요, 그리고 액션으 로 싸울 때는 정말 입에서 군침을 흘리면서, <역도산>에서 도 그렇게 하면서 연기하는데요. 일본의 배우들은 아마 그 렇게까지는 안 할 겁니다. 이런 간이 진함, 강함이 한국영 화의 매력이 아닌가 하거든요. 이건 확실히 조금 차이이긴 차이지요. 그런데 이건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고 기본 적인 이해라든지 사물에 대해 느끼는 방식이라든지 이런 건 정말 유사한 것이 있지 않나 합니다. (위와 같음) 이 같이 표현상의 차이를 바탕으로 한 강한 친근감을 느낀다는 것 이 같은 아시아 내에서도 한국이 더 가깝다고 말하게 하는 중요한 요 인이다. 따라서 아시아인으로서 아시아라는 공동체를 막연하게 그리 면서도 그 속에는 차이의 체계가 나름대로 전제돼 있다. 그리고 한국 문화의 상대적인 유사성이 한류 와 같은 강력한 붐을 가능케 했고 또 한국에 있어서도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많은 일본 업계인 들의 견해이다. 이상과 같이 일본의 특정한 업계인들에게 이런 차이를 내포하면서 도 친근한 경제적, 문화적 공동체로서 아시아 는 다방면으로 상상되 어 있다. 그리고 이런 개인적 비전들이 전체 사회의 동향과 복합적으 로 연관되면서 일본 문화업계의 아시아회귀라는 것이 중요한 변화로 인식될 수 있는 수준까지 부상한 것으로 보인다. (라) 업계인의 한류 인식 그러면 과연 업계인들은 아시아 대중문화 중에서도 한류 를 어떻 게 인식하고 또 이해하고 있는가. 이들은 기본적으로 문화업계 현장에서의 경험을 가진 전문가로서 자신의 의견이나 견해를 만들어 나가지만, 한편으로는 잡지나 TV, 서 144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89 적 등 각종 미디어의 담론들에 매개되면서 자신의 해석을 수정하거나 보완한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이건 잡지에서 읽었는데, 이건 어디 서 본 것 같은데 하면서 자신이 하는 말의 출처가 밖에 있음을 나 타난 경우도 많았다. 이런 상호작용이 있긴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경 험을 바탕으로 한 나름의 한류 인식을 갖고 있다. 그 중에서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이 일본의 대중문화가 로컬적인 것에 비해 한국의 그것은 글로벌하다는 견해이다. 즉, 일본 것은 국 내 시장만 염두에 두고 오래 만들어 왔지만 한국 것은 이제 애초부터 해외 시장을 겨냥하고 만들어져 있고 따라서 보편성을 띠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 일본의 로컬성 대 한국의 글러벌성 이라는 인식은 꽤 널리 공유되고 있다. J-Pop는 대체로 멜로디어스하고 듣기가 좋고 또 로컬해요. 근데 K-Pop는 아메리칸 뮤직 같아요. 한국말도 영어 같고. 랩도 한국어로 하면 딱 어울리지요. 그래서 10대 애들이 그 런 어감이 멋지다고도 하지요. (중략) 한국의 발라드에는 블루스를 느낍니다. 미국남부의 음악에 가까운 무엇을 느껴 요. 슬픔이랄까 애절함이랄까 애수 같은 거. (중략) 가슴에 와 닿는 게 있어요. 한국의 민요 들어 봐도 그렇더라고요. 발성부터가 많이 틀리고요. (연예프로덕션 사장, 남성, 40 대) K-Pop을 미국남부의 음악, 특히 블루스와 연관시켜 말한 이 내용 은 K-Pop이 단순히 J-Pop보다 미국적이라기보다는 정서적으로 더 깊고 호소력이 강하고도 넓다는 함의를 갖는다. 한편, J-Pop는 약간 세련됐고 듣기에도 편하지만 좀 가볍고 또 그 호소력이 일본 국내에 한정이 돼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비교는 TV드라마에서도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일본의 영화가 왜 해외에서 많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냐면 예 컨대 시부야에서 어떻게 했다 등 말이 전부 지금 젊은이에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45

190 게밖에 안 통하는 말을 많이 씁니다. (중략) 대화를 따라 갈 수 없는 그런 시나리오를 아무렇지도 않게 씁니다. 미국 은 절대로 그렇게 안 하지요. 근데 일본인은 별로 생각을 안 합니다. 해외에 보인다는 것을 생각 안 하고 만들어 왔 어요. (중략) TV드라마 같은 경우도 한국 쪽이 훨씬 보편성 이 있다고 할까 다른 나라 사람들도 알 수 있게 만들어요. 처음에는 한국인의 텐션이랄까 성질이 좀 급한 건 일본인에 게 잘 없는 게 있지만, 그래도 역시 가슴의 부분이라든지 가족이라든지 하는 것은 물론 조금은 다르지만 (중략) 어떤 나라에도 있는 이야기인거고. 일본은 거리의 패션이 어쩌고 하는 쪽에 너무 가 버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까 한 국 드라마는 지금 많은 일본인이 갑자기 보고 일본 드라마 는 안 보게 되는 흥미로운 현상이 보이지만, 그렇다면 일본 드라마를 한국인이 많이 보냐 하면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중략) 그러니까 지금은 한국 쪽이 뭔가를 만드는 사람들의 시선이 해외로 향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한국 내의 드라 마지만 보는 건 중국이거나 대만이거나 일본이거나 이런 걸 굉장히 의식하고 있는 듯합니다. 좋은 일이지요. 돈이 들어 오니까요. (웃음) 한국으로요. (G영화배급회사 아시아 담당 자, 남성, 40대) 오랫동안 방송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이 업계인은 한국과 일본의 드라마를 이와 같이 비교했다. 그리고 한국 것이 보편적인 주제나 문 제를 다룸으로써 좀더 널리 수용될 수 있는 반면, 일본 것은 대사부 터가 극히 로컬하며 심지어는 일본 국내에서도조차 도쿄 중심으로 짜 여서 지방 사람들이 충분히 이해를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한국 드라마는 일본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여지가 많 지만, 일본 것은 한국에서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런 설명방식에는 지나친 단순화가 존재한다. 따라서 예컨대 왜 한류 이전까지는 한국의 드라마가 일본에서 거의 수용된 적이 없 었는지, 또 왜 일본의 각종 대중문화가 지금까지 한국에서 널리 받아 들여질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안 되는 것이다. 냉철하게 말 해 이런 업계인들의 진술은 일본에서 갑자기 한류 붐이 터진 것에 대 146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91 한 일종의 상황적 설명의 한계를 벗어나 있지는 않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면서 한국 것 이 현재 좀더 보편적이고 해외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반면 일본 것 은 너무 로컬하고 국내시장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생각은 적어도 음악 이나 영화, 드라마의 영역에서는 많은 일본 업계인들이 공유하는 것 이다. 그리고 위의 인용들은 그래서 이제 일본도 한국에 배워서 글로 벌화 되어야 한다, 즉 룩 코리아(Look Korea)하자는 뉘앙스를 수반 하는 사례들이다. 그런데 똑같은 일본=로컬성, 한국=글로벌성이라는 인식에 서면서 도 조금 다른 함의를 갖는 언술도 있다. 즉, 한국의 보편성은 일종의 미국화의 징후이고 일본의 로컬성은 문화의 특수성을 나타내는 것으 로 꼭 나쁜 것이 아니라는 뉘앙스이다. 영화를 만드는 방식을 보면 일본은 낡았어요. 직인( 職 人 )적 이라고 해야 할까요. 근데 그게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 습니다. 한국은 훨씬 미국화된 것 같아요. 미국에서 배운 영화인도 많고요. 그래서 만드는 방식이 합리적이지요. 새 로운 방법을 많이 도입하고요. 그려진 건 한국이거나 아시 아인데 그리는 방식은 좀더 국제적이지요. 이전의 한국영화 하곤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일본인에게도 이해하기 쉽지 요. 할리우드에 익숙하니까. 시작으로는 좋은 것 같아요. 영어로 말함으로써 서로 통한다, 이런 것하고 비슷한 현상 인 것 같아요. (TV다큐 디렉터, 남성, 50대) 이 같은 일본문화 인식이 극단까지 가게 되면 일본문화론, 일본인 론 할 때 흔히 나타나는 일본문화의 소위 특수주의(particularism), 예외주의(exceptionalism)라고 하는 일본의 관습적인 사고로 이어지 게 된다. 또, 할리우드=미국의 합리성과 비교하면서 일본고유의 방식 을 정신주의적으로 이해하는 오래된 사고방식으로도 근접하게 된다. 이렇게 일본 문화의 고유성과 특수성, 개별성을 문명(=서구, 특히 미국)의 보편성과 대조시키면서 전자의 의의와 가치를 긍정적으로 인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47

192 정하는 담론 자체는 새로운 것이 전혀 아니다. 이것은 아오키 다모츠 의 표현을 빌리면 일본이 엄청난 경제성장를 경험하고 있던 1960년 대 중반에서 8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긍정적 특수성 논의에 가깝다 ( 青 木 保 1990).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그런 주장을 애니메이션과 같 은 대중문화 영역과 적극 연결시켜 펼치는 것이 새로워 보인다. 나중 에 연구와 한류담론에 대해 논하는 챕터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최 근에 도쿄대에 새로 생긴 신영역 創 成 과학연구과 에서 교수로 있는 하마다 야수끼의 논의에는 이런 발상과 문화관이 곳곳에 보인다( 浜 田 保 樹 2005). 이런 관점에서는 일본의 로컬성이 오히려 세계로 하여금 쿨하다 고 생각게 하는 요인으로 긍정적으로 이해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일본의 문화수출과 문화외교라는 문화정책의 당위성에서 기 본적 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일본 대중문화의 로컬성 논의는 국내시장을 상대로 활동해 온 당해 업계에서는 오히려 오래됐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참조하 는 상대가 서구의 대중문화가 아니라 한류라는 새롭고도 강력한 타자 를 만나 일본=로컬성 대 한국=글로벌성 이라는 이해도식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지적할 만하다. 그리고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것에 대 한 평가에는 약간의 편차와 양가성을 나타내고 있다. (3) 업계구조의 민족적 재편성 (가) 전후일본 문화산업계의 단일민족성과 그 균열 일본사회에 소위 단일민족 의 신화가 널리 받아들이진 것은 제국이 해체되고 소위 섬나라 로 돌아 간 전쟁후의 일이다( 小 熊 英 二 1995). 전후 일본이 민족구성에 있어 상대적으로 단일적이라는 것은 미국과 같은 명확한 복합민족국가들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후 일본 국내에서도 일종의 소수민족 들이 함께 살아 왔던 것이 엄격한 사실이다. 단일민족론은 제국주의시기에 널리 보급되던 복합민족론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전후에 부상한 측면을 148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93 갖지만, 결국은 일본사회의 복합민족성을 은폐하고 내부적 타자를 인 정하지 않는 배타적 이데올로기로 기능해 왔다. 문화산업계의 소위 주류 역시 오랫동안 일본인 만으로 구성된 국내 시장을 상대로 발전해 왔다. 역사적 배경에서 본 바와 같이 그런 상 황에서도 아시아인 가수나 연예인이 활동을 전개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기본적으로 일본어로 연기나 노래를 하면서 일본인 을 즐겁게 하는 역할, 그렇게 길들여진 타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다. 나아가서는 그런 최소한의 타자성도 내세우지 못한 수많은 재 일교포들이 실제로는 연예계를 잠식하다시피 활동해 온 업계의 이면 사도 있다. 이렇게 구축된 문화산업계의 단일민족 적 구조를 먼저 흔들고 위협 한 대표적인 존재 역시 재일교포이다. 이들이 한국의 대중문화를 선 구적으로 수입하여 일본 시장에서 팔려 한 시도들은 오늘날 한류의 전사( 前 史 )로 기억되어야 한다. 예컨대, <겨울연가>가 본격적인 한류 붐을 일으키기 전에 일본에서 최초로 히트 를 친 영화 <쉬리>를 수 입, 배급한 회사 CINE QUA NON의 사장 이봉우의 시도는 가장 잘 알려진 케이스이다. 나아가 많은 한국인 뉴커머들이 일본에 정착하고 조금씩 여러 사업을 확장해 온 것도 한류 붐의 밑바닥이 되었다. 한 류가 터지고 나서는 이들에 의해 많은 관련 회사들이 만들어졌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전후 일본의 문화업계가 일본인 이나 일본시 장 을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여 수행해 온 수많은 관습들과 실천들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다. (나) 코리아타운 만들기 소위 생산 업계는 아니지만 한류의 유통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신주꾸( 新 宿 )와 신오꾸보( 新 大 久 保 ) 사이에 펼쳐진 장 소이다. 현재 그곳은 도쿄의 코리아타운이라 할 정도로 크게 확장되 었다. 원래는 거기에 사는 재일교포와 한국의 뉴커머들이 주로 스스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49

194 로를 위해 만든 식당이나 가게가 있을 뿐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한 류팬이 된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 명소처럼 되었다. 한류에 깊이 빠져 들어간 소비자라면 한국 현지를 찾아 가는 것이 가장 정통성이 높은 행위일 터이지만, 그 다음으로는 이곳에 와서 쇼핑하는 것이 정통성 이 높은 행위이다. 그래서 일본의 지방에서도 찾아 올 수 있다. 도쿄 의 이웃 현( 県 )인 神 奈 川 에 있는 역 앞의 음반소매점에서는 눈에 띠 게 한류코너 를 만들어 놓고 한류관련의 CD나 DVD를 판매하고 있 었다. 그런데 그 사장은 한류에 정말 빠진 손님들은 新 大 久 保 를 찾 아 갈 것 이라고 말했다. 즉, 조금 한류에 관심이 깊은 사람이라면 지 방에 산다 해도 꼭 그곳을 찾아본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일본의 한류팬이 운영하는 많은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확인된 다. 어디서 상품을 구하냐 하는 질문에 대해 인터넷몰, 한국 현지구 입 다음으로 이 장소로 찾아가는 것이 추천된다. 이제 이 지역은 한 류상품의 유통과 소비의 하나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현재의 한류란 상상도 못 했던 시절부터 이 곳에서 김치를 파는 데 서 출발하며, 현재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한류상품 유통의 중심 네 트워크를 구성하기에 이른 한국인 사장은 이 장소의 의의에 대해 이 렇게 표현하였다. 세계 어느 나라든 큰 나라라는 것은 동화정책을 갖고 있지 만, 일본의 동화정책과 여타 지역의 그것은 또 달라요. 일 본의 동화정책은 나를 완전히 해체하라 하는 것입니다. 정 말 자신을 완전히 파괴하라는 데서 시작해서 이름도 일본 이름으로 바꿔야 합니다. 패전 이전의 창씨개명이라는 것은 하나의 정책으로 보는 게 아니라 저는 일본사회의 특징으로 봅니다. 외부의 인간이 이름도 언어도 습관도 모두 동화되 지 않으면 우리( 身 内 미우찌)로 아무도 안 받아들여 줍니 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사귄다는 것 은 상당히 어려웠어요. 그러니까 동화정책이라는 상황이 일 본에서 한국인의 생활문화를, 자신의 생활문화를 그대로 유 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허락해 주지 않았습니다. (중략) 150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95 그래서 일본에는 한국인의 집중지역은 있었지만 일반적인 의미로의 코리아 타운은 없었어요. 코리안이 많이 있는 지 역, 많이 사는 지역은 있었겠지만 말이지요. 집, 주거는 일 단 제외하고 식이나 자신의 말이나, 자신이 갖는 평소에 쓰 는 자신의 이름으로 살면서 자신의 생각을 갖고 있는 곳은 없었어요. 이 지역처럼 한국인과 일본인이 함께 섞어서 살 면서 한국인이 자신의 생활문화, 생활양식을 그대로 유지하 면서, 일본인도 그것을 인정하면서 교류하는 장소는 없었다 는 말입니다. (한국계 대형 소매점 사장, 남성, 40대). 실제로 이 지역은 도쿄의 다른 지역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을 만큼 한글표시로 가득하다. 그곳은 일본에서 이념으로만 존재하면서 실현 되기 어려웠던 복합민족적(multi-ethnic)이고 문화다원적(multi -cultural)인 광경을 처음으로 이루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런 새로운 장소의 형성은 비록 문화업계의 생산 영역은 아니지만 그 유통과 소비의 구조를 재편해 나가는 중요한 촉매가 되고 있다. (다) 일본 업계 내의 한국인 - 세계화되는 노동시장 이번 조사를 통해 드러난 또 중요한 사실은 이런 생산 업계 바깥이 아니라 내부에서 일하는 한국인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타 입에는 두 가지가 있는 듯하다. 하나는 한국회사에 소속돼 있으면서 일본 현지로 파견나간 한국인, 또 하나는 일본 현지에 와서 일본회사 에 취직하여 일하는 한국인이다. 우선 일본으로 파견나간 한국인의 존재는 한국과 일본의 업계 사이 에서 관계가 깊어가는 추세를 보여준다. 이들은 일본인 회사와 거래 하면서 일본인 회사원과의 개인적인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일하고 있 었다. 사실 이번 조사에서 인터뷰 대상자를 선정하고 만나는 데에 있 어 그런 한국인 업계인에게 도움을 받았는데 그의 넓은 인맥은 결정 적이었다. 한편, 문화업계 관련의 일본 회사로 취직하여 일하는 한국인 또한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51

196 증가하고 있다. 정확한 숫자는 확인이 안 되지만 이번 조사에 의하면 대체로 일본 현지에서 오래 유학한 경험을 가지고 언어나 기술의 측 면에서 뛰어난 젊은 여성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이 한류와 맺는 관계는 단일하지 않다. 일본 내 한류에서 이들 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또 그 영향력이 얼마 만큼인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된 것은 이들이 한국인으로서 한국 과 관련해서 일하는 경우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한류 로 인식되 는 것과 오히려 구별을 지으면서 활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한 류상품이 한국 내에서 생산되고 발신됨을 감안하면, 아마도 일본 현 지에서 생산 영역에 관여하는 입장에서 수입과 소개의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해 나가야 할 처지에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 제로 이런 입장에서 기존의 한류의 배우나 가수와 다른 타입의 인재 를 발굴하고 역시 한류를 완전히 타는 것이 아닌 방식으로 일을 진행 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처음에 그래서 계속 여자가수를 찾아오라고 그러셨는데 저 는 여자가수는 일본에서 별로 지금... 어느 정도 직관 같은 게 있었는데요. 별로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안 들었었어요. 나름대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중략) 근데 처음에는 사장님이 굉장히, 제가 남자가수들만 자꾸 가지고 오니까, 처음에는 좀 시큰둥하시다가 일단 좀 들어 보시라고 했더니 노래 너무 잘 한다고, 그 다음부터 호기심 을 많이 가지시더라고요. 그러더니 아 앞으로는 한류도 남 자다, 남자의 시대이다 그러셔 가지고 남자가수로 하자 그 러셔 가지고 본격적으로 트레이닝을 했지요. (S매니지먼트 회사 직원, 여성, 30대) 여기서 보이는 것은 일본인 사장을 설득시켜 나가면서 자신이 믿는 비전을 실현해 나가려는 적극적이고 개입적인 문화생산자의 모습이 다. 이런 문화실천이 기존의 일본업계의 관습들과 어떤 교섭과 타협 의 양상을 보이는지는 앞으로 좀더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152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97 이들은 또 일본 업계 내에서 한국인의 사적 네트워크를 구성해 있 다. 서로 잘 아는 사이이다. 이유는 아직 한국인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일본에서 같은 학교를 다닌 경험이 있다는 것, 그리고 아마도 다 들 나이도 비슷한 미혼의 여성들이라는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이런 네트워크는 이들만으로 닫힌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파견 나온 한국인들, 그리고 업계의 일본인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 고 있다. 그러면 과연 이들이 일본 회사에서 겪는 경험은 어떤 것일까. 이번 조사에서는 일본에서 일하는 어려움 등을 묻는 방식으로 인터뷰를 진 행시킨 부분이 많았지만 개인적인 대우 등에 대한 대답은 대체로 긍 정적이었다. 예컨대, 일본의 큰 방송사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은 일 본회사에서 일하면서 한국인으로서 또 여성으로서 차별이나 불이익 같은 것이 없는지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런 거는 전혀 없고요. 아무래도 표면적으로는 내 보이지 는 않더라고요. 일본 사람들은. 절 봐가지고 그런 건 없었 던 것 같애요. 노동조합 같은 것도 잘 돼 있기 때문에. 특 히 저희 회사가 편한 건 외국인이 많으니까, 뉴스방송이라 그래가지고 외국 어디 나라더라, 여기 저기 나라 사람들이 왔다 갔다 거리니까 뉴스 통역을 하는 사람도 필요할거 아 니예요. 여러 가지 세계 장르, 위성방송도 하니까, 사람들 이 많이 왔다 갔다 하니까. 그런 거에 대한 표면적인 것은 없어요. 전혀.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없어요. 그러려면 아예 뽑질 않겠다는 그런 생각이니까. 일본 사람들이 좋은 건 뽑으면 확실히 끝까지 해 주는 것. (N방송국 근무, 여 성, 30대) 일본에서도 사회적 위상이 높은 회사에서 전문직으로 근무한다는 답변자의 사회적 위치 때문일 수도 있지만 표면상은 특별히 부정적인 일을 경험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고용기회의 증가뿐만 아 니라 이렇게 긍정적인 경험 자체가 한류 의 중요한 효과 중 하나로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53

198 나타난 것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경험은 재일교포들이 일본에서 수 많은 취업차별을 받아온 역사를 상기해 보면 상당한 변화일 수밖에 없다. 이런 추세와 평가는 앞으로도 한국의 우수한 인재들의 해외유출이 늘어날 수도 있음을 시사해 준다. 그리고 이렇게 한국인의 고용기회가 증가하게 됐을 때 그것이 일본 국내에서 갖는 문화적 효과, 특히 위에 서 언급한 문화다원적 상황에 끼칠 영향은 적잖은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동향은 세계화되는 노동시장에서 나타날 수 있는 수많은 이동 양상 중의 하나이다. 특히 문화산업계에서 창조적인 영역이나 기술적 인 영역에서는 국경을 넘는 상승지향 의 힘이 강하게 작동이 되어 사 람들을 국제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편이다. 현 시점에서는 문화업계의 세계적 역학 속에서 일본보다 미국으로 가고 싶어 하는 욕망이 강하 게 나타난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원래 미국으로 가고 싶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일본으로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 준 사람이 있었다.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을 채용하여 같이 일해 본 적이 별로 없는 일본 회사에서 일하기 때문에 회사의 방침이나 기존의 관행 등과 갈 등이 없을 리가 없다. 이런 측면에 대해서는 한일교류의 과제와 전망 에 대해 논하는 IV장에서 다시 언급하도록 한다. (4) 업계 간 교류의 제 형태 (가) 한일 공동제작 최근에 문화업계의 여러 분야에서 활발해지는 것이 아시아 제국 간 에서 공동제작 (일본에서는 합작이라는 말이 여전히 선호된다)이라 는 생산 유통의 협력체제의 활성화이다. 물론 예전에도 국가 간의 문 화교류이나 초국가적인 미디어 교통은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경우에 도 각 나라의 문화업계가 서로 공식적인 합의와 계약을 갖고 이루어 졌다기보다는 정부차원에서 관주도로 또는 민간차원에서 개별적으로 시도되고 망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적어도 일본의 입장에서 최 154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199 근의 변화는 공동제작이라는 시도가 생산과 유통 차원에서 좀더 지속 적인 협력 체제를 구축해 나가고자 하는 업계차원의 의식적인 산물로 등장하고 또 증가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공동제작 현장에서는 아시아회귀라는 일본 업계의 변화 속에서 겪 게 되는 다양한 경험들이 세부적으로 드러난다. 이번 조사에서는 각 종 공동제작 중에서도 주로 한일합작 에 초점을 맞추어 실제로 공동 제작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나 그렇게 제작된 작품에 깊이 관여한 사 람들에게 공동제작의 경험과 그것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이 대목 역 시 편차를 들어내지만 부정적인 측면은 과제와 전망을 논하는 IV장에 넘기고 여기서는 업계인들에게 긍정적으로 인식되고 또 경험된 제 국 면들에 대해 검토하도록 한다. 일본인은 종교심이 약해졌고 정치에도 관심이 없어요. 투표 도 안 가고요. 참의원 선거 따위는 화제도 안 되고. 썰렁 합니다. 국회는 시끄럽지만 일본인들은 상관이 없어. 다음 주에 해산이 되는데도 일본 사람들은 관심이 없지요. 독도 문제도 많은 일본인들이 모릅니다. 근데 한국 사람들은 완 전히 반대지요. 이런 걸 좀더 서로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요, 우리는 영화라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영화를 같이 만 들고 있을 동안은 이런 식으로 싸우지 않습니다. 함께 하면 서 어느 쪽이 좋다도 없고요. 말은 다르지만 같이 뭔가를 만들면서 전쟁은 안 일어납니다. 그렇게 해서 싸워서 전쟁 은 안 일어나요. 문화, 문화물을 통해서는 전쟁은 안 일어 납니다. (중략) 정치가들이 개입해 오면 아무래도 국가 대 국가 가 되어서요. 그러면 서로 양보할 수 없다, 우리는 양 보할 수 없다, 이렇게 돼 버리는데 문화를 통해서 개개인이 조금씩 벽을 헐어가고 거리를 없앤다는 것이 진정한 의미로 의 국제교류가 아닌지. 영화라는 것은 그런 게 가증한 것 같애요.(G영화배급회사 아시아 담당, 남성, 40대) 이 내용에서 공동제작의 효과는 명쾌하게 긍정적인 것으로 표현되 었다. 즉, 공동제작을 하는 한 전쟁이 안 일어난다는 것이고, 같이 영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55

200 화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갈등도 없고 싸움도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 리고 정치인들이 추진하는 교류가 아니라 공동제작이라는 문화실천 에서처럼 개개인이 문화를 통해 실현해 나가는 교류가 진정한 국제교 류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번 조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 중 하나는, 대체로 일본인이 교류에 대해 긍정적 효과나 당위적 의의라는 관점에서 말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한국인은 그런 당위성보다는 좀더 현실적인 문제나 과제에 대 해 말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처음 만났을 때 한국인은 자신의 경험이나 감정에 대해 대체로 솔직하게 말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일본인들은 보통 안 그런 편이라는 문화적 차이가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외에 일본인이 교류 라는 것에 적극적인 의미 를 부여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되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이 존 재한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실제로 일본의 맥락에서는 한국과의 공동제작이라는 것이 비록 순전히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한 시도라 하더라도 곧 한일우호 라는 이념으로 포장되기 쉽다. 이것은 나중에 언급할 미디어에서의 공식적인 한류담론과 일정한 관계를 갖는 것이다. (나) 다양한 교류양상, 대등한 관계성 이렇게 한국과 일본의 명확한 공동제작이라기보다는 제작과정에서 원작, 자본, 스텝, 배우, 편집 등등이 복잡하게 얽혀지는 혼성적 작품 도 많아졌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이런 경우에 비록 한일 간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해도 한일합작 이라는 말보다 오히려 메이드 인 JK 와 같은 다른 개념으로 부르자 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것은 일본과 한국이라는 국경을 대중문화 생산의 영역에서도 똑같이 자명 한 것으로 상정해 놓고 메이드 인 재팬, 메이드 인 코리아 라고 하 는 것이 아니라, 얽혀지고 융합된 제작과정의 실태에 맞게 명명을 해 보자는 것이다( 小 倉 紀 蔵 2005: p. 212). 그리고 이런 이념 끝에는 아 시아 지역에서 여러 가지 공동제작과 교류를 통해 아시아를 넘어 함 156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201 께 세계로 나아가자 하는 사고로 이어지게 된다. 한편, 최근에 일본이 한국의 작품을 리메이크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같은 책: p. 214)도 주목할 만하다. 예컨대, 허준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는 나가사키 슌야( 長 崎 俊 一 ) 감독, 야마자키 마사 요시( 山 崎 まさよし) 주연으로 리메이크 중이다. 나아가 타국에서 붐 이 된 것이 자국으로 전해지면서 그것이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짐으로 써 자국에서 (재)평가를 받게 되는 케이스도 있다. 유행의 일종의 역 수입 관계이다. 배용준은 한류 이후에 다시 한국에서 (꼭 배우로서라 기보다) 역사적인 의미에서 굉장한 평가를 받은 케이스인 반면, 쿠라 모토 유키( 倉 本 裕 基 )의 경우에는 일본에서 거의 무명이었음에도 불구 하고 한국에서 인기를 끈 것이 역수입이 되어서 일본에서 인기를 얻 게 된 케이스이다 83. 이와 같이 한국 작품의 리메이크, 그리고 한국에 서의 인기가 일본으로 역수입되는 현상 등은 확실히 한일 간에서 새 로운 상호적 관계성의 구현을 나타내는 일로 보인다. 다. 한류, 미디어, 소비자 (1) 일본 미디어의 다양한 면모와 효과 일본에서 한류 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에 있어 미디어의 역 할은 지대하다. 미디어는 우선 <겨울연가>같은 TV프로가 그렇듯 한 류 콘텐츠의 유통기제 그 자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류현상을 효과 적으로 부추김 으로써 경제적 이득을 겨냥할 수 있는 것은 한류의 유 통기제들 - 방송, 광고, 신문, 잡지 등 - 이 될 것이다. 대중문화관 련 업계의 수평적 통합이 더욱더 깊어진 현 시점에서는 위에 언급한 좁은 의미로의 문화산업계와 미디어업계를 구별해서 논하는 것부터 가 비효과적인 접근으로 보일 수도 있다. 83 小 倉 紀 蔵 는 이것을 역한류, 역일류 라는 표현으로 부르고 있다. 小 倉 紀 蔵, 韓 国 ドうマ, 愛 の 方 程 式 ( 東 京 : ポプう 社, 2004), pp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57

202 그런데 일본에서 미디어업계가 문화산업계와 결탁하여 하나같이 획일적으로 한류를 타려는 것은 아니다. 한류에 대해 비판하거나 야 유하듯 보도하는 것 또한 일본 미디어의 한 층을 이루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산업계와 미디어업계를 서로 연관되면서도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지니는 사회공간을 구성하는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미디어에서의 한류표상은 직접 한국문화 상품을 소비하지 않는 많 은 일본인에게 있어 한류현상 그 자체이기도 하다. 즉, 대부분의 일 본인의 한류경험은 각종 미디어로 인해 매개되고 구성된 경험인 것이 다. 또, 미디어는 한류에 대한 일종의 세론 을 형성해 나가는 데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뿐만 아니라 문화업계 종사자들의 한 류 인식이나 국가의 정책 입안 등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이런 일본 국내의 미디어보도, 특히 한류팬의 미디어표상은 한국 미디어가 스스로의 보도 작업과 함께 다시 한국으로 전함으로써 초국 가적 미디어교통의 양상을 띠게 된다. 따라서 일본 한류의 미디어표 상은 일본 국내에 머물지 않고 국경을 넘어 일본의 한류에 대한 한국 인의 인식에까지 큰 영향을 끼친다. 이런 초국가적 이미지 교통의 성 격, 특히 한일 간의 독해 차이에는 유의해야 한다. (2) 한류를 타는 미디어들 (가) 팬덤과 미디어 전반적으로 보아 일본 출판업계는 한류에 의해 경제효과를 누렸다. 실제로 일본에서 수많은 한류관련의 출판물이 새로 간행되었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 배우 등을 시각적으로 소개하는 여러 잡지들, 드라마 나 영화의 내용 등을 기술한 서적들, 또, 한국어 학습서 등 많은 한국 관련의 서적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잡지는 대부분이 새롭게 창 간된 것들이다. 나아가 한국 현지의 체험담이랄지 심지어는 한일간 국제결혼의 경험담 같은 책도 나왔다. 출판업계는 다방면에 걸쳐 한 류 특수를 본 것으로 보인다. 158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203 이런 출판물은 주로 한류 팬을 주된 독자층으로 상정하고 있다. 따 라서 자연스럽게 거의가 긍정적인 담론으로 가득 차 있다. 내용은 한 류와 관련된 실용적 정보나 이미지(예컨대, 드라마나 배우 등에 대한 자세한 기술, 보고 듣는 비결이나 방법, 상품을 구매하는 방법, 드라 마 같은 연애이야기)가 많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한국의 여 러 측면에 대해 학습하기 위한 정보 등이 주를 이룬다. 서적을 보면 초급에서 중급, 고급까지 나름대로 알아가는 단계가 있고 그 수준 에 맞게 출판되기도 한다. 이런 서적과 함께 팬도 성장 하는 셈이고, 또 출판업계로서도 그렇게 함으로써 끊임없이 새로운 출판시장을 산출해 나가는 것이다. 한국드라마 중급자 를 위해 쓰인 책의 서문을 보면 이렇게 소개돼 있다. 이제 한류는 단순히 한국드라마가 좋다 가 아니라 보다 구체적으로 한국드라마의 가 좋다, 한국스타 중 에는 누가 좋다 이런 식으로 옛날의 할리우드영화 못지않 은 주목과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중략) 이 책에서는 드 라마 같은 연애 이야기, 흉내 내고픈 스타의 패션, 드라마 에 등장한 요리 등 한국드라마 초급 을 졸업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여 한국 사람들과 잘 사귀기 위한 조그마한 지식이나 비슷하면서도 역시 다른 습관 등을 소개 하겠습니다( 韓 流 隊 気 分 は 韓 ドラ ヒロイン!, 東 京 : 竹 書 房 文 庫, 2005) 한류를 탐험한다는 의미인 이 책자의 편자 韓 流 隊 는 5명의 한류 팬들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스스로가 중급 또는 상급의 말하 자면 선배 한류 팬 으로서 한국 현지까지 직접 찾아다니면서 수집한 각종 정보와 경험을 가지고 집필한 것이다. 이런 책들은 상당히 자세하고 한국의 언어나 문화에 대한 기본적이고 도 다양한 정보도 제공한다. 그리고 이런 대중적인 책을 통해 한국에 대해 좀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되는 팬도 있다. 이번 조사에서도 한류를 통해 보다 전문적인 책을 읽게 된 한류 팬을 만나 인터뷰할 수 있었다.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59

204 요즘은 한류의 배우보다는 한국어, 한국문화 쪽에 더 관심 이 많아요. 그래서 책도 빌려 보고 그렇습니다. 특히 뭐죠, 한국하고 일본의 문화적 차이 같은 게 재미있더라고요. [한 국문화에 대한 책을 보여 주면서] 지금도 이런 책 보고 있 는데. 너무 재미있어요. (중략) 근데 저 같은 팬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이렇게 관심을 넓혀 가는 사람은. 역 시 드라마 좋아하고 배우 좋아하고 그런게 많을 것 같은데. (한류팬, 여성, 30대)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이 팬이 소수파 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일본의 한류 팬이 상당히 학구적 일 것이라는 생각은 이들을 독자층으로 출판되는 서적들의 내용을 보아도 짐작할 수 있 다. 아마도 적잖은 한류 팬들이 언어를 배우고 문화도 배우고 하면서 보다 진화 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리라 여겨진다. 위에서 언급한 출판물은 기본적으로 한류 팬들이 서로 소통하고 교육하는 이들만의 미디어라는 성격을 지닌다. 독자의 위치에 머물 지 않고 스스로가 실제로 집필하면서 문화생산에 참여하는 적극적 인 모습까지 보인다. 이런 단계가 되면 문화소비와 생산의 경계가 뒤섞여서 애매해지는 지점이다. 문화생산이라는 의미에서는 오프라인 출판이 아니라 인터넷 홈페 이지의 개설이라는 차원에서 상당히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 현재 셀 수 없을 만큼의 한류 팬의 개인 사이트가 만들어졌고 사이버 공간에서 팬들이 서로 의견과 정보, 그리고 감성이나 정서까지도 주 고받으면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개인 사이트 외에도 수 많은 한류 관련의 정보사이트가 있으며 한류 팬들의 인터넷 리터러시 의 보급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런 사이트들 중에는 조금 이라도 부정적인 의견을 쓸 수 없다는 의미에서 배타성을 드러낸 동 질적 공동체의 양상을 띠는 것도 존재한다. 이것은 분명 한류팬이 갖 는 특정한 모습의 하나이며, 이것이 일종의 종교 와 같다는 비판자들 의 의견을 낳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160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205 (나) 여성잡지 넓은 의미로의 팬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과 함 께 경제적 효과를 타서 기존 잡지, 특히 여성 잡지에서 계속 한류를 특집으로 삼았다. 이런 데에 나오는 한류표상은 한국의 남성배우를 중심으로 한 것이고, 한류 팬을 독자층으로 삼아 역시 긍정적인 내용 으로 기술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특히 여성배우 에 대해서 야유하거나 비판하는 내용이 실리기도 한다. (다) 시각적 미디어 - 사진집, 광고 위의 잡지나 팬사이트 등도 문자미디어라기보다는 사진 등으로 가 득하며 시각미디어에 가깝다. 그런데 비주얼적인 이미지의 측면이 더 욱더 두드러진 사진집이나 광고 등에서도 한류배우들이 등장하게 되 었다. 우선 수많은 한류배우 관련의 사진집이 출판되었다. 이것은 한류 붐의 파급효과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사례 중 하나이다. 이 경제적 효과 때문인지 심지어는 소위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모임의 역사교과 서를 출판해 오고 있는 후소샤( 扶 桑 社 )에서조차 이병헌의 사진집을 냈다가 한국 미디어에서 보도가 되면서 문제가 된 경우도 있었다. 그 런데 비싼 촬영비용 등이 다른 미디어에서 보도가 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낳는 대표적인 미디어가 이 사진집이기도 하다. 배용준이 일본의 광고, 특히 TV의 CF에 출현하게 된 것은 일본의 맥락에서는 상당히 충격이었다. 그 전에도 BoA 등이 출현한 광고가 조금 있긴 했지만 배용준 이후 한국의 배우들이 TV 광고를 비롯해 이 미지의 세계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현지에서 오래 일해 온 어떤 한국인 업계인은 이런 광고 출현에 크 게 놀랐다고 했다. 한국 드라마보다도 오히려 특정한 광고를 보고 커 다란 한류효과를 느꼈다는 이야기이다.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61

206 옛날 같으면 상상할 수가 없어요. 한국사람, 유명한 사람이 라 하더라도 이미지 자체가 좀 우울한 느낌이 들잖아요. 교 포라든가... 그런데 한류 때문에 확 뒤집어졌어요. 소니 선 전 보고 한류가 대단하긴 대단하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다른 거야 먹고 뭐 음식이나 오로나민C[국민적 건강음료]니 껌 선전이야 롯데 이런 건 그럴 수도 있다 생각했는데 소니 선전은 정말 놀랬어요. 소니까지 움직이는구나, 배용준이. <겨울연가>가 소니까지 움직였구나 생각을 했어요. (S영화 제작사 직원, 여성, 30대) 이런 광고는 보통 일본인들에게 다양하게 독해되면서 상당한 효과 를 발휘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독해에서 의미작용의 다양성을 인 정하더라도, 일본의 도시공간에서 한국 배우와 콘텐츠의 존재감 (presence)은 비약적으로 늘어났으며 이제는 흔한 도시 광경 중의 하 나로 자연화되어 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3) 한일우호와 교류의 관점 - 공적인 의미부여 일본의 출판, 미디어업계가 이렇게 팬들의 담론이나 팬들을 위한 표상으로만 가득 차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런 팬의 정서적 공동 체를 형성케 하는 정보의 공간 바깥에서는 한류에 대해 굉장한 편차 를 갖는 다양한 미디어 담론이 존재한다. 팬덤의 담론공간은 대체로 사적이고 친근한 정보로 가득하다. 그런 데 똑같이 긍정적이면서도 좀더 공식적인 의미부여를 하는 미디어의 한류담론도 존재한다. 주된 메시지는 한일우호나 교류, 그리고 역사 적 의의 등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팬들의 담론에서도 이런 의미부 여가 이루어지긴 하지만, 특히 일간지와 같은 공공성이 높은 미디어 에서 이런 특징이 두드러지게 된다. 그런 공론적 입장에서 한류를 취급하는 경향이 강한 대표적인 매체 가 아사히( 朝 日 )신문이다. 잘 알려진 바대로 일본에서는 소위 진보파 에 속하는 일간지이다. 이 신문에서 한류를 포함해 아시아에 대한 보 162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207 도는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다. 이 신문에서는 한류 의 원류 란 제목으로 2005년 5월 23일에서 6월 10일까지 15회에 걸쳐 한류관련의 집중 연재기자를 실었다. 그 내용은 오늘날의 한류가 있기까지의 전사( 前 史 )에 초점을 맞추어 눈 에 잘 보이지 않은 한일교류의 뒷이야기들을 오랜 취재를 바탕으로 발굴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인터뷰한 어떤 한국인 업계인은 이 연재 기사가 20년에 걸친 기자의 취재의 결과로서 아주 괜찮은 내용이었다 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런 공적인 긍정적 한류담론은 한일 정부의 日 韓 友 情 年 이라는 정치적 입장과 가장 잘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적잖은 일본인의 한류 에 대한 공적인 의견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고 또 그것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4) 미디어 속의 한류 팬 과 한일간 미디어교통 지금까지 팬들의 보다 사적인 한류담론과 일간지로 대표되는 공적 인 한류담론을 개관했다. 그러면 거꾸로 일본 미디어가 한류, 특히 그 팬을 적극적으로 보도하게 된 시점과 계기, 그리고 그 표상의 성 격은 어떤 것일까. 이번 조사에도 확인됐듯이 한류 팬의 주된 층은 30대에서 60대 정 도의 연령의 여성들이다. 그런데 일본의 미디어에서 처음부터 팬의 존재가 인식되고 그려진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주로 <겨울연가>라는 드라마의 인기에 대한 보도가 주를 이루었다. 그런데 방송이 시작된 지 반년이 지난 2003년말 무렵부터 조금씩 팬의 존재가 그려지기 시 작했다(이지민 2004: pp ). 이 맥락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2004년 4월에 배용준이 (사적인 여행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일본을 찾아 온 일이다. 이 때 5000명이라는 팬이 배용준을 보러 나리타공항 에 모였고 이것이 곧 사건 으로 널리 보도된 것이다(같은 글: p. 94).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63

208 이렇게 열광적인 아줌마 팬 의 모습이 스포츠신문과 같은 대중적 미 디어의 표면에 서서히 부상되게 되었다. 이런 한류팬의 미디어표상에 대해 특히 용사마 라는 호칭의 등장 과 정착과정에 주목한 연구에 의하면, 일부 팬에 한정된 애칭 이 나 중에 미디어에서 널리 사용되면서 일반적인 호칭 이 되었다. 따라서 용사마 인기와 한류 붐은 결코 미디어가 선행한 것이 아니라 팬이 선 행한 것이며 그 호칭도 미디어가 팬에서 인용 해서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같은 글: p. 98).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미디어는 일본 미디어에 비추어진 일본인 팬 의 모습을 호기심과 신기함이 뒤섞인 시선으로 적극 한국에 전했다. 그리고 스스로도 많은 보도 작업을 전개했다. 이런 초국가적 미디어 교통은 많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일본열도가 완전히 한류에 휩쓸린 것 으로 생각하게 한 효과를 가져다 왔고 한국에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일본 현지의 입장에서 좀더 냉철하게 보면, 이런 아줌마 팬 의 미디어표상에서 팬이 아닌 나머지 일본인들 이 받는 인상은 긍정적이라고만 할 수 없다. 오히려 적잖은 미디어표 상에는 열광하는 아줌마들을 야유하는 시선이 담겨져 있었고, 그것은 분명 한류의 비소비자들에게 아주 좋게만 비추어지 않았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5) 미루고 또 꾸미는 한국에의 거부감 - 앤티담론 한류에 대한 일본의 담론에서 마지막으로 가장 부정적인 측면을 언 급한다. 그것은 주로 인터넷을 통해 펴져 있고 일부 책으로도 출판된 앤티담론이다. 이것 역시 일본 미디어에서 돌아다니는 한류담론의 한 모습이다. 그런데 그것은 공공성을 띠는 기존 매체의 형태보다는 사 이버공간의 개인 블록 같은 데서 유포되는 좀더 음성적인 담론이다. 한류나 재일교포, 한국인을 야유하거나 비방하는 댓글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흔히 보인다. 그런데 최근에는 한류의 이름을 걸어 오프라 164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209 인 시장에서 서적 형태로도 출판된 것이 있는데 그것이 マンガ 嫌 韓 流 ( 山 野 車 輪 지음, 2005)이다. 내용을 보면 한류에 대해서는 마지막 의 에필로그에서 조금만 언급할 뿐 나머지 9개의 챕터들은 한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시사문제나 역사문제의 이야기로 짜여져 있다. 그 내용과 소위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모임의 기본적인 주장과의 공통성 을 읽어내기는 어렵지 않다. 야마노 샤린( 山 野 車 輪 )은 가명으로 추정 되며, 소위 새역모 와 그 동조자들이 중심이 되어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집필한 서적으로 보인다. 그러면 이 책의 실제 독자층은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이를 인터넷 서점에서 보이는 서평이나 댓글을 바탕으로 간 단히 알아보도록 한다(Yahoo.co.jp에서). 우선 이 책의 유통과 소비에서 보이는 가장 큰 구도는, 이 책이 서 점에서 꽤 팔렸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미디어에서는 이 책에 대해 보도를 거의 안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독자들은 대체로 이런 일반 미디어의 침묵에 대해 답답함을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대로 일본 미디어의 다층성을 반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84 여기까지 무시합니까 매스컴은? (2005/09/11). 여전히 팔리고 있는 것 같군요. 근처의 서점에도 규모와 상 관없이 진열되기 시작했습니다. 내용에 대해서는 각자가 읽 고 판단하시면 될 것인데, 이렇게 잘 나가는 책에 대해 매 스컴은, 항의라도 좋고 쓸데없는 책이니 읽을 가치가 없다 는 평가도 좋으니 뭔가 반응을 보여 줬으면 합니다. 이걸 지금 현재 거의 안 하고 있는 일본의 매스컴. (중략) 한국 보다도 오히려 일본[의 미디어] 측이 더 문제가 많은지도 모르겠군요. 언제까지 무시하냐? (2005/09/24). 이렇게 많은 고객의 댓글이 붙고 여기저기의 인터넷 사이트 84 아래의 인용문들 마지막 부분에 표시된 날짜는 인터넷 서점 yahoo.co.jp 에 댓글이 올랐던 시기를 나타낸다.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65

210 나 블록에서도 취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스컴은 전혀 이걸 취급하려 하지 않는다. 이 책의 내용은 물론이지만 이 런 상황 그 자체가 일한 문제에 대한 매스컴의 자세를 확실 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런 독자들은 대체로 한류 팬, 정확히는 미디어에 비추어 진 한류 팬 표상에 싫증을 숨기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인식하기 (2005/10/08). 내용은 嫌 韓 流 라는 제목에서도 상상할 수 있듯 한국의 지 금의 스타일을 철저하게 비판하는 것이다. 비판하는 내용 중에는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고 느끼는 부분도 적잖지만 지금의 일본인이 한국에 대해 이런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이 잘 팔리고 있다는 것 은 좋은 일이라 생각되고 만화라는 읽기 쉬운 형식으로 이 런 내용이 그려진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중고년층의 많은 여성들이 미쳤듯이 好 한류에 빠지고 그 영상이 TV에서 방 영되는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일한관계를 생각해 나가야 할 것이고 현 상태가 좋다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다. 그런 계 기로서 이 책의 존재는 크다고 하겠다. 독자 중에도 상대적인 감각을 가지고 읽는 사람도 보이긴 한다. 다 음의 예 역시 일본의 매스컴에서 다루어지는 한일우호 일변도의 공식 적인 담론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지만, 그렇다고 반대의 극(한국 음모설 등)으로까지는 안 가고 책의 내용을 하나의 생각으로 상대화 하는 시선이 보인다. 한국 분들의 마음을 괜히 부추기는 부분이 있는 것이 유감 스럽지만. (2005/10/09). 매스컴은 한국의 좋은 면만 다룬다. 일견 한국이 정말 우호 적이고 좋은 나라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은 우리에게 숨겨진 것들이 있다. 안 좋은 것은 전하지 않는다. 전한다 해도 많이 말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보라. [일본에 대한] 166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211 심한 비방이 많다. 진실도. 일본과 한국. 어딘가에 느끼는 불공평함. 이질감. 그 정체. 이 책을 보면 그것이 보일지 도. 나라와 상관없이 사람끼리라도 상대방의 나쁜 면을 알 고 나서 사귀는 것은 [인간관계의] 질이 높은 것이라 생각 한다. 일본과 한국, 사고방식이 다르다. 이 책은 이 세상에 있는 여러 생각들 중 하나. 이 책을 읽고 나서도 한국이 좋 다고 할 수 있다면(마음에 걸리는 곳이 있다 해도) 사람으 로서 폭이 넓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최근에는 노골적인 비방을 가하는 앤티 사이트라기보다는 배용준 팬의 블록이라는 형태로 한류, 특히 배용준을 야유하는 담론을 유포 하는 사이트도 생겼다. 그 댓글의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만화 嫌 韓 流 가 이 한달 동안 큰 베스트셀러가 되어 있는 것도 신문에서 보도를 안 하네요. 한류가 싫다가 아니라 한 국의 전부가 정말 싫다는 일본인이 증가하는 것도 계속 숨 기고 있다든지, 아니면 용사마가 실은 한국에서는 인기가 떨어진 삼류배우이고 대만에서는 일본에서 큰 인기 일본 에서는 대만에서 큰 인기 라는 식으로 모든 것이 조작된 원숭이의 연극과 마찬가지라는 것도 비밀이지요. 한국에서 는 (배용준이) 일본에서 큰 인기 라고 해야 일이 생기는 정도의 레벨이라는 것도 비밀이지요. (중략) 사이비 한류를 탄 것은 재일교포의 동원과 세뇌당한 아줌마들이었다는 것 은 절대로 지적하면 안 되는 일이고요. (중략) 도도꼬는 그 런 용사마를 계속 응원합니다. 왜냐면 미지의 생물을 관찰 하는 게 도도꼬의 취미거든요. (2005년 8월 29일) 이 사이트에서는 모든 댓글이 용사마팬 의 입을 통해 쓴 형식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글쓴이인 도도꼬는 촌스러운 어감을 갖는 여자이 름이다. 여기서도 嫌 韓 流 가 기존의 매스컴에서는 잘 취급이 안 돼 있다고 똑같이 답답함을 표한다. 그리고 한류 팬에 대해서는 세뇌당 한 아줌마들 과 함께 재일교포의 동원 이 있었다고 본다. 사실 이런 대중멸시와 교포차별의 악의 있는 시선의 결합은 한류의 한국 음모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67

212 설 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제로서 앤티 담론에서 자주 반복되는 모티 프이다. 그리고 한류를 통해 미소로 다가오는 회유책 의 이면에는 참 된 모습, 즉 반일하는 한국인이나 중국인이 있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초국가적 반일네트워크 가 조직되어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어떤 사회현상에 대해서도 앤티 담론은 있기 마련이고 특히 한류 정도의 새롭고도 커다란 사회현상이 되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할 수 도 있다. 그런데 한일 간의 역사적 관계, 특히 일본의 오래된 차별적 한국관을 상기하면 이 문제의 뿌리는 좀더 깊은 데에 있다고 해야 한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에서 본 바와 같이 현재 일본에는 한류 에 대해 상당히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며 그 일면만을 보 는 것은 옳지 못 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앤티 담론에서 주장하는대 로 일본의 미디어공간은 현재까지 한류에 대해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담론과 표상으로 가득 차있는 것이 사실이다. 라. 아카데미즘 문화정책(학술적 한류담론 및 정부의 문 화정책) (1) 아카데미즘과 한류 (가) 한류연구의 상대적 부재 아카데미즘의 담론은 위에서 본 미디어의 담론, 특히 저널리즘의 담론과 느슨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자율적인 담론공간을 구성한다. 그런데 일본의 해당분야의 경우, 실제로 언론이나 업계의 세계에서 일한 경험을 가진 연구자가 많은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그리고 이 영역에 대한 검토는 언론과 함께 일반인에게 여러모로 영향력이 있는 지식인들이 한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검토 작업이다. 우선 확인해야 할 것은 한류라는 현상이 일본에서 학술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부상되어 활발히 분석되고 있다고 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 다. 이것은 한류에 대한 연구자들의 관심이 쏟아져 나온 한국의 상황 168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213 과 비교하면 아주 대조적이다. 일본에서 한류에 대한 최초의 학술서 적이라 할 수 있는 日 式 韓 流 (2004)의 편자 모오리 요시타카( 毛 利 嘉 孝 )는 서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저널리즘의 열광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연구, 매스커뮤니케이션연구나 대중문화연구 등 학술적인 영 역에서는 지금까지 이 새로운 현상은 거의 연구되지 않고 있었다. 이 책의 기고자인 이와부치 고이치( 岩 淵 功 一 )의 작업은 아마 유일하다고 해도 좋은 예외이다 (p. 8-9). 이 말은 그렇게 과장된 것도 아니고 현재도 아주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여기서 왜 연구가 그리 안 되는 가 하는 의문은 차라리 그 자체로 고찰해 볼만한 과제이다. (나) 나가는 것에 대한 관심 한 가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일본의 대중문화가 해외로 나가는 것 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였지만, (서양의 그것이 아닌) 아시아의 그것 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관심이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1990년대에 와서 동아시아에서 문화적 이동이 양적으로 늘어나고 또 긴밀해졌는데, 이런 현상에 대한 일본 측의 학문적 관심은 우선 일본 대중문화의 아시아적 침투와 확산에 대한 탐구로 나타났다( 五 十 嵐 1998; 岩 淵 功 ; 岩 淵 功 등). 이것은 그 시기에 일본의 각종 대중문화가 아시아 각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일본의 맥락에서 보면 이런 관심자체도 아주 새로 운 것이었다. 일본 대중문화의 아시아적 영향 이라는 것은 1990 년대 이전부터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식민지지배의 역사와 밀접 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역사적 문제 때문에 전후의 일본 지식인들은 제국주의 시기의 역사가 각인된 동아시아의 대중문 화교통(거의 일본에서 다른 지역으로의 일방통행)이라는 현상에 대해 검토를 안 해 왔다. 따라서 1990년대에 와서 일본 지식인들이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된 것이고 이리하여 일본의 대중문화 침투 현상이 발 견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관심의 방향성은 들어오는 것, 즉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69

214 한류 와 같은 현상에 대한 관심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다) 한류팬에 대한 인식 또, 한 가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미디어에 비 추어지는 팬덤이 여타 하위문화 의 팬덤을 구성한다고 흔히 여겨지는 저항적인 젊음이 와 같은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것 은 흔히 학술적인 관심을 끌기 쉬운 주변성, 저항성, 억압성과 같은 속성을 일견 읽어내기 어려운 대상이다. 한류현상을 완전히 주류로 편입된 피상적인 유행 정도로 비판적 또는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은 아마도 이 영역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이런 식으로 인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국이나 아시아에 대한 학술적인 무관심 은 재생산될 수 있다. 물론 일본어로 이루어진 연구들에서 편향성 을 읽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모집단을 가지고 여기까지 서술했다. 일본에서도 앞으로 좀더 활발한 연구 활동이 나타날 수도 있다. (2) 국가와 문화정책 (가) 일본의 문화정책과 한류 효과 일본에서 문화산업에 국가가 개입하지 않은 구조에 대해서는 작년 보고서에서 이미 언급하였다 (양영균 문옥표 송도영, 2004 참조). 그 런 특징은 국가가 강하게 문화산업을 통제하고 국책으로 대중문화 생 산과 유통을 장악했던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상황에 대한 일종의 반 동으로 구조화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적잖은 업계인들이 자신들의 문화활동에 대한 국가의 정책적 개입을 극히 부정적으로 생각해 왔 고, 그것은 여전히 일종의 기업문화, 업계문화로 강하게 남아 있기도 하다. 이런 일본의 맥락에서 국가의 정책적인 지원을 받으면서도 매력적 인 대중문화를 만들어 내어 일본으로 상륙한 한류 는 상당한 충격이 170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215 었다. 일본에서는 국가가 대중문화에 개입하면 망친다는 고정관념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런 관념을 바꾸어 놓을 계기를 한류가 마련한 측 면이 있다. 국가의 문화전략은 한국이 일본보다 앞서 있다는 인식은 일본의 언 론, 업계 등에서 이제 널리 인식되게 되었다. 사실 한국에 배우자는 룩 코리아의 움직임은 문화산업계와 관련해서는 무엇보다 문화정책 이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小 倉 紀 蔵 2004: p. 201 참조). 즉, 한류 자체보다도 오히려 그 배경에 있는 한국 정부 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 거기서 힌트를 얻어 일본 문화산업계의 부 흥, 강화를 시도하려는 방향성이다. 이와 같이 일본 나름의 산관민의 관계성 속에서 한류의 흐름은 소 비자, 문화산업계로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문화정책으로까지 파급되 게 된 셈이다. (나) 대중문화를 통한 문화외교 한류와 관련해서 일본 정부의 역할은 예전부터 해 오고 있는 한국 문화의 일본 소개라는 방향으로도 물론 나타나고 있다. 민간에서 이 루어지는 한류 행사를 여러 가지 형태로 지원함으로써 일한우호 라 는 정치적이고 관적인 의미부여를 하는 것도 그러한 예이다. 그런데 이런 방향성은 전부가 오히려 어떻게 대중문화를 의식적으 로 해외로 수출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오고 있다. 한류의 작극도 받아 이제 일본에서도 대중문화 영역을 포함한 문화 외교 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문화외 교라는 생각자체는 예전부터 있어 왔다(예컨대 Nissim 2003 참조). 그런데 예전의 문화외교는 일본의 소위 전통문화, 고급문화에 한정이 되어 있었다면, 현재의 그것은 애니메이션 같은 대중문화 영역을 부 각시켜 보다 산업적이고 마케팅적인 사고가 스며든 개념이 되었다. 中 央 公 論 2005년 10월호에 실린 특집은 바로 이런 추세를 보여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71

216 준다. 지금 정말로 문화외교를: 세계에 일본의 애니메세대 를 키우 라 라는 이름의 특집은 이런 목적으로 구성이 되었다. 일국의 외교력은 정치나 경제, 안전보상의 측면을 보는 것 만으로는 올바르게 헤아릴 수 없다. 타국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근린제국과의 긴 장관계가 계속되는 지금, 쿨하다 고 높은 평가를 받는 일 본문화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 나라의 지혜와 도량을 따져 야 할 때이다. (p. 106) 이 특집의 직접적인 계기는 올해 7월 11일에 발표된 보고서 문화 교류의 평화국가 일본의 창조를 의 간행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특집의 참가자들은 이 보고서 작성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한 인물들 이다. 그 보고서는 문화외교의 이념과 행동지침에 대해 세 가지 축을 세웠다. 즉, 발신, 수용, 그리고 공생이다. 발신의 중심에는 세계에 일본의 애미메세대를 육성하자는 내용이 등장한다. 애니메이션을 중 심으로 내세운 문화관은 일본 정부의 공식 보고서로는 상당히 획기적 이다. 이 특집 좌담회에서는 여전히 이런 문화관에 대한 이질감을 표 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이제 전체적인 추세는 애니메이션 을 포함한 문화콘텐츠사업의 정책적 육성이라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한편, 수용은 해외의 아티스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 이다. 그런데 그것은 거주(resident)형 아티스트를 육성한다는 것이 내용의 중심이다. 재능이 있는 해외 아티스트를 일본에서 키우고 그 를 통해 다시 세계로 반신한다는 발상이다. 그리고 공생은 특히 동아 시아에서의 그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공동제작이나 국경을 넘는 문화 생산의 협력 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제안되고 있다. 일본이 이렇게 국가주의적으로 문화산업에 적극 개입하고 육성해 야 한다는 인식이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확산되고 어느 정도 사회적 동의를 얻어가게 되는 데에는 분명히 한류 의 충격이 있었 다. 그리고 이렇게 한류에 매개된 일본의 문화정책의 방향이 한국 정 172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217 부와의 관계에서 협력과 공생으로 이루어질 것인지 아닌지는 앞으로 아주 중요한 과제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Ⅲ.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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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IV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전망과 과제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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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1. 대중문화의 흐름과 정치경제학적 전망 앞에서 살펴본 한국 내 동아시아 문화유입의 역사와 현황을 종합 적으로 살펴볼 때, 그리고 중국과 일본에서 전개되는 동아시아권 문화산업 상품의 유입과 교류현상의 맥락을 살펴볼 때, 대중문화산 업은 그 자체가 정치적인 의미에서나 경제적인 의미에서 정체성을 형성하고 지배하는 헤게모니적 장치이자 상업적 이익을 창출하는 수단으로 작용해 온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 형성초기에 일본과 미국의 대중문화가 대량으로 유입되어왔으며 이후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곧 일본에 의 한 한국의 식민지적 지배, 그리고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서냉전 구도의 형성에 한국이 최전선을 형성하면서 편입되고 있었다는 사 실에 의해 그 기본조건이 결정되었다. 해방 이후 일본 대중문화 상 품의 유입이 차단되었던 것은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한국이 현대 국 민국가, 대중사회를 바탕으로 한 환경 속에서 자신의 문화적 정체 성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일본의 영향력을 최대한 차단하여야만 그 나마 국민 국가적 건설이 가능했다는 절박한 사실의 반영이기도 하 다. 그러나 그것은 문화적 독자성을 개발하고 추구하는 방향 이전 에 미국으로부터 대중문화 상품을 다량 받아들이고 흡수하면서 그 에 바탕 한 문화산업 기반을 유지하고 문화소비를 가능케 하는 방 식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한편 중국의 공산화 이후 중국 본토로부터의 문화상품 - 비록 그 것이 공산화된 중국에서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 이 유입되지 못하도록 차단했던 것도 자본주의 체제를 채택한 한국 으로서는 정치경제적 환경 안에서 대중문화의 소비가 이루어질 수 밖에 없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즉 1980년대 말 중국의 개 혁개방 이후, 그리고 1990년대 한국사회와 경제의 규모가 일정한 정도 성장한 이후 다시 세계경제의 전지구화가 충분히 진행된 단계 Ⅳ.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전망과 과제 177

222 에서 각각 중국과 일본의 대중문화 요소가 유입되도록 시장을 개방 한 것 자체가 그러한 기본적인 틀이 감소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런 점에서 정치경제적 환경의 힘은 여전히 대중문화현상의 기초적 환경으로서 강고하며, 매체의 전지구화와 경제의 전지구화가 단일 한 형태의 지구문화, 즉 global culture가 아닌, 각 지역권과 각 지 방의 특성에 맞게 전지구적 요소들이 재구성되고 조합되는 이른 바 cultural supermarket (Mathews, 2000) 현상을 전개시키고 있 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한국 내에 유입되는 동아시아 대중문화 요소, 그리고 다시 중국 과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여러 곳에서 소비되는 한국 대중문화 요소는 그런 면에서 일찍부터 국가적 차원 의 이동과 협력에 의존 하는 것이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애초부터 벗어난 다양한 영향과 이 해관계 속에서 네트워크의 형태로 작동하는 문화, 정치, 산업적 복 합현상이다. 한류 작품들 속에는 중국적 요소가 더 많이 담긴 것이 있는가 하면 미국적 요소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있고, 일본 대 중문화 상품을 고스란히 베낀 것도 있다. 동시에 거기서 말하는 일 본 대중문화 상품 중 상당수가 또한 유럽과 미국의 문화요소를 차 용하면서 국지적으로 번안하고 재창조해낸 것들이 많다. 이미 규모의 경제를 따라 위험요소를 줄이고 보다 안정된 시장 포트폴리오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해온 동아시아 문화산업계 의 주체들은 시장개방이나 공식적인 문화유입 루트가 열리기 이전 부터 다양한 형태로 각국의 대중문화 요소들을 차입하거나 교환해 왔고, 공식 혹은 비공식적인 채널을 따라 혹은 협력하고 혹은 경쟁 해왔다. 그러한 경쟁과 협력은 국가범주나 지역범주를 벗어나 파트 너를 결성시키고 문화적 구성요소들을 조합시키는 방향으로 가속화 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동아시아의 대중문화의 흐름 역시 비록 평등하거나 균등한 방향은 아니더라도 경제와 사회의 세계화 현상 이 가속화되면서 보다 강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178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223 대중문화와 문화산업이 지니는 그러한 속성을 고려해 볼 때 현재 의 교류현황에 대한 인식이나 앞으로 보다 장기적 안목에서 교류를 보다 원활히 지속시켜 나가기 위한 방안이 중국과 일본의 경우에 같을 수 없다. 그것은 한국, 중국, 일본이 각각 문화산업적 기술이 나 발달 단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다르며, 또한 상이한 역사적 배 경을 가지고 있는 만큼 현재의 흐름에 대한 이해와 반응 역시 매우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중국 및 일본에서 최 근 주목되고 있는 한국 대중문화의 수용 즉 한류 현상에 대하여 나 타내는 반응을 중심으로 하여 현지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업계, 관 계, 언론계, 학계, 소비자들의 견해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봄으로써 앞으로의 과제 무엇인가를 정리해 보기로 한다. 2. 중국의 아시아 대중문화 수용양상 및 언설을 중심 으로 본 전망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은 오랜 세월 공통의 문화적 배경 아마 중화문화권이라고 할 수 있는 을 가지고 비교적 긴밀한 관계를 유 지해왔다. 근세에 들어서서 각 국은 매우 드라마틱한 양상으로 운 명을 달리 하면서 상호간의 관계도 변화를 겪어왔으나, 최근에 들 어서면서 삼국간의 관계는 다시 긴밀해지고 정치적, 경제적, 문화 적으로 교류가 매우 활발해지고 있다. 물론 그 관계와 교류가 우호 적 기반 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매우 치열하고도 암묵적 인 주도권 경쟁이 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최근의 여러 상 황을 고려해볼 때 한중일 삼국의 관계는 상당 기간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큰 만큼 삼국 간에 서로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고 우호적 태도를 발달시키는 것이 중요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대중 문화는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대중문화의 생산과 유통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적 시장원 Ⅳ.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전망과 과제 179

224 리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국가나 정부의 의도대로 통제하는 것 이 매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위의 논의로부터 국가의 통제가 강력 하게 작용하는 중국의 경우에도 국가가 대중문화산업에 미칠 수 있 는 영향력은 상당히 제한적임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최근에 전지 구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국가 단위의 경계가 약화되고 자본의 논 리가 더욱 강력하게 관철되는 현상이 관찰된다. 따라서 자본의 작 용에 거스르는 어떤 주체의 의도가 실현되는 것은 매우 힘들 것이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중일의 역사적 배경과 현 상황, 그리고 미래의 관계를 전망해볼 때 자본의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대중문화의 교류를 촉진시켜 삼국 사이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우호적 관점을 형성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는 있다고 생각 된다. 앞서 논의한 중국과 한국의 대중문화 교류의 여러 상황들을 종합 적으로 고려할 때 보다 균형 잡히고 충실한 교류를 실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관계, 학계 뿐 아니라 많은 소비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한국의 문화산업이 중국의 그것에 비해서는 보다 발전되어 있고 질적으로 우수한 것이 사실이다. 현재와 같이 한국으로부터 중국으로 대중문 화가 일방적으로 유입되는 교류의 양상을 쌍방향적인 교류가 강화 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교류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양국의 문화산업 종사자 사이의 인적교류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중국이 한국의 발전된 문화산업기술과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든다면 양측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교류의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여태까지 제작된 몇 가지 합작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에서 보듯이 한국과 중국 양자가 서로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콘텐츠를 만 들어내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매우 어렵고, 결국에는 이도저 도 아닌 모호한 특징을 지닌 콘텐츠를 만들어내어 실패할 확률이 180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225 매우 높다. 이와 같은 지적은 연구진이 만난 한국과 중국의 산업계 에서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따라서 함께 모여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기보다는 다양한 교육과 교류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인적 인 왕래와 정보의 교환이 가능한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중국 CCTV의 <동일수가( 同 一 首 歌 )>가 한국의 <열린 음악회>를 성공적으 로 벤치마킹한 사례를 통해서 볼 때, 인적 교류의 체계를 안정적이 고 장기적으로 구축한다면 중국의 문화산업 수준을 높이는 데 한국 이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례는 지금 현재 아주 조금씩 실현되고 있다. 한국의 오락 프로그램 제작자를 베이징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중국에서의 활동을 계획하고 이미 오랜 시간 북경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 성공했던 몇 가지 아이템들을 중국에서도 시도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접촉을 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많은 아이템 중 한두 가지는 이미 거의 실현 단계에 온 듯 했다. 그는 북경에서 생 활을 하면서 북경의 방송 관계자들을 만나 중국의 오락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지적해 주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 중국 오락 프로그램이 질적으로 보다 발전할 수 있도록 함께 작업하는 일을 기획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제작자와 같은 의도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한국 대중문화 전문가들이 베이징에 여러 명 있다고 했다. 그 러나 이들은 아무런 재정적 정책적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고, 특히 이들은 중국 사회와 문화산업계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부족하여 매 우 어려운 상황이 처해 있는 것 같았다. 따라서 이와 같은 시도와 교류가 보다 활성화될 수 있는 방안과 기회를 연구하고 실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의 대중문화산업 종사자들을 훈련시키고 교육 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 역시 시도해볼 만하다. 중국의 문화산업이 당면한 문제 중 하나는 급변하는 중국 사회와 소비자들 의 취향과 욕구를 생산자 쪽에서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하지 못하는 Ⅳ.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전망과 과제 181

226 것이다. 따라서 대중문화 생산자들에게 좀더 발전된 문화산업 기술 과 내용을 전수하는 프로그램을 한국에서 운영한다면, 중국의 대중 문화산업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발전이 친한국적 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국과 교류/협력을 할 때 한국의 각종 기구에서 활동하는 중국 관련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할 필요가 매우 절실한 형편이다. 한국의 방송사나 기획사, 중개상 등 중국과 많이 거래하는 기구에 중국 관련 전문 인력이 너무 부족한 실정이다. 광전총국의 최승호 비서는, 지금 현재 한국의 드라마가 일본의 드라마에 비해 중국에 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 관련 전문 인력 확보라는 측면에서 보면 한국의 방송국들이 일본의 NHK에 상당히 뒤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방송국에서 중국어가 가능하고 중국 사회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직원은 기껏해야 한두 명이거나 아예 없고 그나마 소수의 전문가들을 중국 관련 부서에서 오랫동안 일하게 하지 않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다른 부서로 순환을 시키고 있는 형편인데 반해서, 일본 NHK에는 중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일 본인들이 국제부에 있다. 장기적으로 중국 관련 일을 해왔고 특파 원 활동도 한 사람들이다. 또한 중국에서 유학한 사람들도 활용을 한다. 한국의 드라마가 지금 중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지만 드라마 뿐 아니라 전반적인 영역에서의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중국 관련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양성하는 것이 시급히 필요하다. 중국 의 시스템과 문화를 잘 이해하고 중국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사 람을 키워야 중국과 원활하게 교류하기 쉽다는 것은 매우 자명하 다. 위에서 언급한 한국인 오락 프로그램 제작자가 가장 큰 어려움 을 겪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그는 중국어를 아주 유창하 게 하고 중국 사회를 잘 이해하는 사람만 있다면 자신이 기획하는 일이 훨씬 빨리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고 하였다. 이미 상당히 진행되고 있고 또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 182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227 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합작을 더욱 활성화해 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교류의 형태가 불균형적이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제한적이고 일반적인 수준 이상을 넘어가지 못하는 현실을 극복하고 상호 이해와 상호 협력의 가능성을 보다 확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식의 합작을 활 성화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합작의 형태는, 이 미 경험했던 실패의 사례들을 반복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양자 를 동시에 만족시키려는 무모한 시도보다는 서로의 장점을 잘 살리 고 부족한 부분은 상대측에서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합작은 합작이 가지고 있는 장단점에 대한 깊 이 있는 연구가 결여된 상태에서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서 즉흥적으 로 이루어졌거나 상품성 있는 스타 한두 명을 내세워 스타파워로만 시장을 개척하려는 시도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지만, 보다 전문적 인 연구와 의사소통을 전제로 하는 합작이 더욱 많아진다면 한국과 중국 사이의 대중문화 교류가 지금에 비해서는 더욱 안정적이고 균 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체계적인 시스템의 구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양국이 함께 노력해야 하는 부분인데, 지금 현재 중 국에서 유통되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경우도 그렇고 한국 음악도 그렇고 자막 처리가 제대로 안 되어 있거나 틀린 번역이 많이 나타 난다는 점을 하나의 사례로 제시할 수 있다. 일반 판매용 VCD는 문화부에서, 공식적으로 방영되는 드라마와 영화의 경우는 광전총 국에서 심의를 하다보니 심의의 기준도 일관적이지 않고 번역과 자 막 처리에 대해서도 많은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업계도 단 기적 이익만 앞세워 빨리 출시하기 위하여 비전문가에 의한 빠른 번역과 자막 작업을 선호한다면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소비자 층을 넓고 깊게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통 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역시 문제이다. 중국 정부의 입 Ⅳ.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전망과 과제 183

228 장과 원칙을 고려하면서 한국이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체 계적으로 구축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또한 한국 측에서도 드라마를 제작할 때 수출할 것을 염두에 두고 주제가나 배경음악을 만들고 선정하고, 더빙이 된 후에도 배우의 대사 이회의 음향을 살 릴 수 있도록 트랙을 나누어 녹음을 하는 고려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눈에 보이는 이익만을 위해 단기적인 정책을 남발 하는 것은 절대 금물일 것이다. 정부의 역할은 단지 운용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만 머물러야 한다. 한국과 중국의 대중문화 교류가 비록 균형 잡힌 모습은 아니지만 민간의 차원에서는 어느 정도 안정화되고 있고 자율적인 대화와 교류가 조금씩 자유롭게 시 도되고 있는 시점에서 정부가 한류 라는 일방적 흐름만을 강조하고 상품의 판매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면 이 체계를 안정화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단기적인 이익이나 활황만을 위한 정책은 지양해야 하며 장기적인 차원에서 대안과 정책 수립이 이루 어져야 한다. 많은 대중문화 산업계 인사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단 기적인 성과 위주의 지원은, 한국 대중문화상품이 중국에 더욱 공 격적으로 진출하도록 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미 한국의 게임산업 이 중국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 중국 정부가 제재 조치를 내렸으며 한국 드라마의 경우에 대해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다는 점에서 단 기적인 성과 위주의 지원 계획은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한중간의 교류를 보다 원활히 지속시켜 나가니 위해 서는 중국 관련 전문 인력의 양성과 적절한 배치, 보다 심도 있는 논의와 장기적인 관점과 상호이해의 기본 위에서 만들어지는 시스 템의 구축, 그에 기반한 민간 차원의 합작 활성화 등이 필요한 시 점이라고 볼 수 있다. 184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229 3. 일본의 한류 수용양상 및 언설을 중심으로 본 전망 한일간의 대중문화 교류 증진을 논하기 앞서 기서 강조해야 할 출발점은 동아시아의 대중문화 교류, 특히 한일 간의 교류라고 할 만한 현상들은 다방면에 걸쳐 상당한 규모로 이미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즉, 한일 양국의 정부가 공식적으로 교류 라는 명칭으로 인식하든 안 하든 간에, 문화업계, 소비자, 미디어, 학계 등에서 수 많은 교류가 이루어져 있는 것이 현황이다. 따라서 문제는 그런 흐 름을 관주도로 구축하여 추진하는 방향보다는 오히려 이미 민간 차 원에서 이루어진 미세하고도 다양한 교류들을 좀더 원활하게 유지 시켜 나가는 것, 그리고 그러기 위해 우선 교류현장이 현재 겪고 있는 여러 가지 과제들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런 과 제들을 직시하고 풀어 나가는 방향에 한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구상 할 수 있는 방안이 설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실제로 교류 를 해 오고 있는 한일 양국의 문화산업계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하 여 이들이 지금 현재 어떤 교류경험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한다. 가. 문화산업계의 미묘한 한류인식 한류효과와 교류의 경험에 대한 비교적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서 는 위에서 이미 언급하였다. 그런데 좀더 부정적인 인식이나 경험 역시 존재한다. 우선 일본 업계 내에서 한류나 한국과의 교류에 대해 미묘한 인 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을 들어야 한다. 예컨대, 몇 년 동안 한국과 같이 작업을 해 오고 있는 음반회사 디렉터는 올해에 들어 와서 중 국이나 한국에서 역사인식문제와 관련해서 반일시위가 일어나면서 주변사람들에게서 왜 한국과 일하느냐? 는 질문을 수차례 받았다 Ⅳ.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전망과 과제 185

230 고 한다(V음반회사에서 올해 독립한 음악디렉터, 40대, 남성). 그 는 역사문제가 터지니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던 한류가 미디어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려고 하는 경향을 보면서 그것이 바로 일본인들이 한국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1970년대 일본에서 처음으로 한국가수로 크 게 인기를 얻은 이성애를 데뷔시킨 이래 계속해서 한국음악을 일본 에 소개해 온 일본인 작곡가는 최근에 갑자기 부상한 한류 붐에 대 해 그냥 유행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즉 모두들 그냥 따라하는 것이 며 그 중에 정말 제대로 한국의 대중문화를 이해하고 장기적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매우 회의적인 견해를 나타내었다(독립음악프로덕션 사장, 70대, 남성) 즉 위의 사례들은 최근 한류의 유행 등도 작용하여 아시아회귀의 경향을 나타내면서 큰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일본의 문화산업계이 지만, 여전히 옛날부터의 구조적인 문제나 관습적인 인식은 존재한 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아시아와 같이 작업을 해 온 일본 업계인 들은 변치 않는 주변사람들과의 갈등이나 한류소비자들에 대한 불 신감을 숨지기 않고 표출하곤 한다. 따라서 한류가 일본사회에 가 져다 온 효과는 상당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하룻밤에 달라지는 것 은 아니라는 점을 냉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나. 거래문화의 차이와 갈등 한류의 확산과 함께 갈등이 두드러진 영역은 양국의 유통관계자 들이 직접 만나게 되는 거래의 현장이다. 한국 회사와 많은 거래를 경험한 한 일본의 대형 영화배급회사에서 한국영화의 판권매수 담 당자는 한류의 유행을 타고 한국 상품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상승하 고 있는 점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유럽이나 미국영화의 경우 값 이 비싸더라도 제작비, 시장점유율 등을 고려해 일정한 선에서 가 격이 결정되는 지표와 같은 것이 있는데 한국의 경우 그런 지표를 186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231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지난번 영화가 얼마였으니 이것은 얼마다 라 는 식으로 가격을 요구하는 까닭에 한류 상품의 보급에 역효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본 측에서 한국 상품의 유통배 급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한국인들과는 합리적 협상 이 어렵다고 판단해 손을 떼고자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S영화배급회사, 40대, 남성). 뿐만 아니라 비싼 가격에 상품을 들여오게 되면 더 많은 선전비를 들이게 되고 결과적으로 아주 큰 성공이 아닌 한 수 입가와 선전비를 합친 원가를 회수할 수 없는 까닭에 실패한 사례 들이 등장하게 되고 그런 사례를 본 다른 바이어들을 주저하게 만 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 측에서는 처음에 어느 정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하고 성공한 경우에 이익부분을 나누자 는 식의 파트너십 협상을 원하지만 한국 측의 경우 눈앞의 선불 금액에 모든 것이 집 중이 되어 좀처럼 그런 방향으로 이야기가 풀리지 않는다고 한다 (위와 같음). 이러한 갈등은 물론 한일 양국의 문화 산업계에 존재 하는 거래문화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는 한류의 붐을 타고 많은 뉴커머들이 경험이나 일본의 문화산업계 의 관행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없이 한국 상품의 유통에 뛰어 들었 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 새로운 관계자들은 기존의 관행을 존중 해 가며 업계 내에서 착실히 신뢰를 구축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일본 측의 관련자들과 파트너십을 형성해 가며 일을 진행하기 보다 는 붐을 탄 단기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까닭에 위와 같은 갈등이 발 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래 문화상의 차이 이외에 한일 간의 모든 경제적인 거래 관계 에서 또 한 가지 장애로는 거래에 임하는 양국의 관련자들이 지니 고 있는 역사적으로 구축되어 온 기본적인 태도의 차이를 들 수 있 다. 즉, 한일 간의 역사적 관계, 특히 식민지시기의 경제적 수탈이 라는 피해자적 기억이 현재 한일 양국의 거래관계에서 한국 측이 취하게 되는 입장을 여전히 규정하고 정당화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 Ⅳ.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전망과 과제 187

232 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 차원은 일본의 입장에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까닭에 갈등이 더욱 심화되는 경향이 있다. 대중문화의 교류가 지니는 산업적 성격상 한류가 지속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는 수입하여 판매하는 쪽에 경제적 이익이 발생 해야 한다는 것임을 고려할 때 거래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위와 같 은 문화적 격차와 갈등을 줄여나갈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함 은 분명하다. 다시 말해 현장에서의 갈등구조를 풀어나가기 위해 비즈니스 현장에서 거래문화의 상호이해를 증진시키고 나아가 역사 적 문제의 상호인식과 이해에 까지 연결되어 장기적인 파트너십이 형성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구체적 프로그램의 고안이 요청된다. 다. 업계문화의 한일 간 차이 거래 현장에서의 장기적인 파트너십의 구축이 일종의 문화산업적 공동체 구성이 도움이 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라면 또 한 가지의 방안은 공동제작이나 합작의 증대일 것이다. 앞서 중국의 예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경우에도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많은 업계종사 자들은 합작의 확대를 상호교류 증진의 가장 바람직한 발전 방향의 하나로 제시하며 많은 기대를 표명하였다.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 모두 문화 산업계가 나름의 관행을 가지고 오래 지속되어 왔기 때 문에 거래의 현장에서와 마찬가지로 합작의 현장에서도 서로 만날 때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기기 마련이며, 가장 큰 차이는 일하 는 스타일의 차이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10년 이상 일해 오면서 한일 양국의 문화산 업계의 시스템이나 사정 등을 잘 아는 한 업계 관련자는 자신이 경 험 한 양국의 업계 문화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즉 일 본인 스탭과 한국인 스탭이 섞여 영화를 찍는 경우 일본은 모든 것 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여 정확하게 예정된 기일 안 에 작업을 끝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데 비해 한국 사람들은 188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233 그런 짜여진 틀을 싫어하고 쉽게 예정 기한을 넘기고 일본인들이 보기에는 모든 일을 적당히 하는 데서 마찰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S엔터테인먼트 일본파견 직원, 30대, 여성). 그러나 그녀는 일본에서 일의 진행방식이 조직적이고 세밀하게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그것이 일본문화 라고 단순히 규정짓고 끝 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이유(인건비나 제 작비 등의 차이)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처럼 현 장에서 느껴지는 문화의 차이 및 업계 구조의 차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이 흔히 양 측의 참가자 모두에 의해 국민성 의 근본적 차이 로 결론지어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차이는 메우기가 거의 불가 능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아마도 한일 양국의 많은 업계 관계 자들이 직접적인 대면의 경험을 통해 갖게 되는 인식일 것으로 생 각된다. 이런 문화적 경험에서 오는 이질감이 시간이 지난다고 자 연스럽게 풀리지 않음은 10년 이상을 일본에서 지냈던 이 업계인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문화적 차이와 그것을 구축하고 또 재생산해 내는 기제에 대해 상호적으로 이해하 고 풀어나가기 위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라. 합작현장에서의 갈등 이번 조사에서는 일본에서 일하는 한국인 중에 실제 합작현장을 경험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통역과 같은 입장에서 말 그대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서서 거기서 일어나는 갈등과 충돌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한일 양국에서 최초의 합작영화로 선전된 <로스 트메모리즈> 제작에 통역자로, <역도산> 제작에 스탭으로 참여한 어떤 한국인은 그 경험에 대해 시스템이나 양 측에서 참가하는 사 람들의 기질이나 전반적인 문화의 차이가 너무 커서 트러블이 많 고, 결과적으로 많은 경우 좋은 의도로 시작하였던 것이 작업이 끝 날 때쯤이면 다시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 는 식으로 끝나는 경 Ⅳ.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전망과 과제 189

234 우가 많아 오히려 역효과인 경우를 많이 보았다고 전한다(S연예프 로덕션 직원, 30대, 여성). 따라서 영화의 합작을 하더라도 자본과 제작을 분리하거나 하는 식을 통하여 가능하면 실제로 사람들이 섞여서 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합작을 추구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일 것이라고 제안한다. 뿐만 아니라 문화 산업계에서 한일교류라는 행위는 정치적 당위성 외에도 현실성, 경제성 등이 밑바닥에 깔려서 실행이 되는 법인데, 현장에서 섞이는 공동제작은 경제적으로도 별로 좋지 않을 수도 있 다고 한다. 따라서 최근 들어서는 사람들이 실제로 섞이지 않는 여 러 가지의 형태, 혹은 같이 작업한다 해도 50대 50이 아닌 다른 방 식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제작이 더욱더 늘어나는 추세인데, 그 이면 에는 합작현장에서의 갈등 경험 및 그것과 연결된 경제적 계산이 존재한다. 한일간의 합작 현장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또 한 가지의 요인은 일본의 경우 스탭들이 경험이 많은 베테랑들이 대부분인데 비해 한 국은 젊은 스탭들이 많다는 점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각기 장 단점이 있는데 일본의 경우 현장 경험을 중시하는 전통적 분위기인 데 반해 한국의 경우는 현장 경험은 없어도 외국에 유학하거나 공 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많아 연령위계가 문제를 발생시키는 경우도 있다. 한국 측의 스탭들은 최근 한국 영화들의 성공을 바탕으로 강 한 우월감 내지 자신감을 드러내는 한 편 일본 측의 스탭들이 보기 에는 새파랗게 젊은 것들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자존심만 내세우 고 잘난척 한다 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판권 거래에서도 보인 한국 측의 자신감과 일본 측의 당 황감은 여기서도 다른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식의 갈등이 극대화되면서 일본 측의 반감이 극단화될 경우 위에서 본 앤티한류담론과 같은 인식이 문화산업계 내에서도 나타날 개연성이 있다. 따라서 한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 190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235 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일본과의 장기적이고 순조로운 관계를 유 지하고 나아가 동북아 공동체라는 구상을 구체화해 나가기 위한 하 나의 필수적인 포석이 된다. 거꾸로 말하면 이렇게 교류현장에서 일어나고 경험되는 미시적이고도 구체적인 제 국면들에 대한 진지 한 고려나 대책 없이 한국 정부의 독선적 입장에서 동북아 공동체 구상이 추진된다면, 오히려 일본 측의 반감을 심화시킬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 된다. Ⅳ.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전망과 과제 191

236

237 V 결 론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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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이상에서 살펴 본 바를 기초로 문화교류의 현장에서 감지되는 차이 와 갈등을 완화하고 교류를 증진하기 위하여 1) 전문 인력의 양성과 적절한 배치, 2) 상호적인 교류 시스템의 구축 및 민간 교류의 활성 화, 3) 장기적인 관점과 상호이해의 기본 위에서 만들어지는 파트너 십의 형성, 그리고 나아가 4) 교류의 기반이 되는 쌍방의 문화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논의와 교육 등을 제안할 수 있다. 1. 전문 인력의 양성 및 배치 위에서 살펴 본 현장에서의 차이의 경험과 갈등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그것은 교류를 직접적으로 담당하는 생산, 유통업계의 사람 들이 실감하고 있는 과제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과제들에 대 해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지, 그러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 해서는 현장의 사람들도 효과적인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한 가지 지적될 수 있는 것은 통역과 같은 매 개인이 없이 직접 거래하고 작업할 수 있는 상황이 이루어지게 된다 면, 갈등이나 오해의 상당 부분이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며 이는 곧 현지 사정에 정통한 전문 인력의 양성이라는 문제와 연결된다. 이번의 현지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바를 보면 한류의 부상과 함께, 일본에서는 이미 유학생 출신의 한국인 뉴커머들을 주류 업계에 진출 시켜 한국과의 교류증진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토록 하는 사례가 많았 다. 이들은 한국과, 일본 양쪽의 문화를 모두 이해하고 의사소통을 증진시켜 나가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양국간의 교류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한국에 있어서는 특히 중국과의 교류를 담당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너무 부족한 실정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방송국에서 중국어가 가능하고 중국 사회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직원은 기껏해야 한두 명이거나 아예 없고 그나 마 소수의 전문가들을 중국 관련 부서에서 오랫동안 일하게 하지 않 Ⅴ. 결 론 195

240 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다른 부서로 순환을 시키고 있는 형편인데 반 해서, 일본 NHK에는 중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일본인들이 국제부에 배치되어 있으며, 그들은 대개 장기적으로 중국 관련 일을 해왔고 특 파원 활동도 한 사람들이고 또한 중국에서 유학한 사람들도 활용한 다. 따라서 한국 측에서도 드라마뿐 아니라 대중문화의 전반적인 영 역에서의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중국이나 일본의 시스템과 문화 를 잘 이해하고 현지어로 어려움 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한 전문 인력 을 확보하고 양성하는 것이 시급히 필요하다. 2. 상호 교류시스템의 구축 및 민간교류의 활성화 문화의 교류를 일방적인 흐름이 아니라 상호적이며 균형되고 안정 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중국과의 교류에 있어서도 현재 한국과 중국의 대중문화 교류가 비록 균형 잡 힌 모습은 아니지만 민간의 차원에서는 자율적인 대화와 교류가 조금 씩 시도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한류 와 같은 일방적 흐름만을 강조 하고 상품의 판매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면 이 체계를 안정화시켜 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단기적인 이익이나 활황만 을 위한 정책은 지양해야 하며 장기적인 차원에서 대안과 정책 수립 이 이루어져야 한다. 많은 대중문화 산업계 인사들이 지적하고 있듯 이 단기적인 성과 위주의 지원은, 한국 대중문화상품이 중국에 더욱 공격적으로 진출하도록 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미 한국의 게임산업 이 중국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 중국 정부가 제재 조치를 내렸으며 한 국 드라마의 경우에 대해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다는 점에서 단기적 인 성과 위주의 지원 계획은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오늘날 한국에서는 일본 대중문화를 개 방하다보니 별로 위협도 아니었다는 식의 담론이 상당히 퍼져 있다. 그리고 일견 일방통행으로 보이는 한류 수출에 만족하면서 한류를 상 196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241 호적 교류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 런데 한국 내에는 이미 일본의 대중문화가 상당히 들어 와 있고 일본 과의 합작도 여러 가지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아가 한국의 문화 산업계나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일본인도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하였 다. 이런 상황을 한국 측에서 좀더 오픈하게 인식하게 되어야 일본 측에서도 한국과의 실제적이고도 장기적인 상호적 관계를 구상할 수 있게 된다. 3. 현장 파트너십의 구축 및 네트워크의 형성 한중일, 특히 한일 간의 대중문화 교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정치적 마찰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문화에 대해 잘 알고 관심을 가 지고 있던 특정의 개인들의 인맥과 파트너십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 해 왔음을 살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한류가 급부상하면서 이러한 기존의 네트웍이나 파트너십의 장기적 유지에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 로만 작용하는 것임이 아님이 드러난다. 오히려 한류 이전부터 문화 교류에 종사해 왔던 사람들은 이 유행이 지나간 이후를 염려하고, 어 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에 우려를 표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 적인 인간관계와 신뢰의 구축은 정치적, 경제적 변화나 유행의 변화 를 넘어 교류를 지속시켜 나갈 수 있는 효과적인 기제를 제공하고 있 다 또한 직접적인 교류의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교류를 추진해 온 당 사자들 간의 개인적인 친분관계나 신뢰는 갈등을 해소하고 중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교류의 증진과 지속을 위해서는 이미 존재하는 개인적 인맥 이나 네트웍을 지원하고 활성화 시키며, 새로운 인맥을 발굴하고 키 워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한 인맥이나 네트웍은 단순히 업계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학계, 문화계, 정치계, 시민단체들 사이에도 광 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각 방면에 존재하는 Ⅴ. 결 론 197

242 기존의 인맥, 네트웍을 찾아내어 상호 연결시키고 공동으로 협력해 나갈 수 있는 장을 마련함으로써 기존의 교류관계를 더욱 활성화 시 켜 나가는 것이다. 4. 문화에 대한 심층적인 교육 동북아 국가들, 특히 식민지배의 경험을 가진 한국과 일본 사이에 서는 서로의 문화적 행위에 대해 가치평가가 쉽게 개입되는 편이다. 즉 대중문화 교류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서로 상대방의 사고 나 행동방식에 강한 이질감을 표출하면서 스스로의 방식을 보다 나은 것으로 전제해 버리는 경향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고 수정하기 위해서는 교류 상대방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며, 특히 문화적 차이를 주어진 본래의 것으로 고정시켜 버리 는 구래의 문화관이 아니라 좀 더 열린 동태적 문화관을 키워 가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한 이해가 결여된 상태에서 최근의 한류 현상 으로 갖게 된 우월감이나 자신감을 지나치게 내세우게 되면 당연히 상대국과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특히 한국의 미디어에서는 한류현상과 관련해 서 일본이나 중국을 정복 했다는 식의 군사적 표현들이 흔히 쓰이고 있음은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는 미디어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런 표현을 선호하는 한국인 독자, 청중, 시청자들이 존재함을 의미한 다. 그런데 이런 담론은 현재 초국가적 미디어교통으로 인해 상대국 들에도 어느 정도 전해지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것은 업계나 한류 팬 은 물론 한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 온다. 이런 미디어 상황의 효과를 염두에 두면서 그것을 바꾸어 나가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한국의 문화상품의 우수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공동제작이나 혼성제작에서 일본이나 중국 등지의 참여 사 198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243 실을 최소화하고 때로는 삭제 까지 하는 관행 역시 문제이다. 유명 한 예로는 <박하사탕>이나 <올드보이> 같은 작품들이 일본과의 일종 의 합작인데도 불구하고(전자는 자본, 후자는 원작), 한국에서는 한 국 의 영화로 선전되는 상황, 그렇게 선전되어야 하는 상황임은 일본 측의 입장에서 보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합작을 합작으로, 교류를 교류로 인식하고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 한, 한일 양국의 문화 산업계나 소비자 차원에서 아무리 합작이나 교류가 이루 어진다 해도 한국 내에서 별로 사회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는 특히 한일 관계에서는 일본 대중문화의 음성적 수용이라는 역 사와 직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 과제를 풀어 나가기 위해서는 그것을 양성화하고 공론화함으로써 앞으로는 일본과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언급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전망들은 한국이 중심이 되어 동아시아 문화공동체를 구 상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도 우회적이고 소극적인 것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과제와 전망에 대한 성찰적 사려 없 이 추진되는 동아시아 문화 헤게모니의 획득경쟁은 상대국가와의 상 호적 관계를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전지구 화라는 흐름에서 문화교통은 탈중심화라는 성격을 띠면서 소비자 중 심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을 지니고 있으며, 이런 시대적 추세에서 한 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입장을 구상하기 위해서 꼭 고려되어야 할 전망들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Ⅴ. 결 론 199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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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최근 발간자료 안내 연구총서 북한의 인권부문 외교의 전개방향 최의철 저 6,000원 북한이탈주민의 지역사회 정착 이우영 저 5,000원 조선녀성 분석 임순희 저 6,000원 북한의 개인숭배 및 정치사회화의 효과에 대한 평가연구 서재진 저 6,500원 세기 미,중,일,러의 한반도정책과 한국의 대응방안 여인곤 외 공저 8,500원 부시 행정부의 군사안보전략 이헌경 저 5,000원 일본의 군사안보전략과 한반도 김영춘 저 4,000원 중국의 한반도 안보전략과 한국의 안보정책 방향 최춘흠 저 3,500원 한반도 평화정착 추진전략 박영호 외 공저 8,500원 핵문제 전개 및 내부 정치변동의 향배와 북한 변화 박형중 저 7,000원 미국의 대이라크전쟁 이후 북 미관계 전망 최진욱 저 5,000원 북한의 후계자론 이교덕 저 4,500원 김정일 정권의 안보정책: 포괄적 안보개념의 적용 박영규 저 5,500원 북한의 사회통제 기구 고찰: 인민보안성을 중심으로 전현준 저 4,000원 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남북관계 및 북한 경제지원 시나리오 박형중 외 공저 10,000원 통일예측모형 연구 박영호 외 공저 8,000원 동북아 안보 경제 협력체제 형성방안 박종철 외 공저 10,000원 국제적 통일역량 강화방안 황병덕 외 공저 10,000원 북한 재산권의 비공식 이행 임강택 외 공저 5,000원 북한 노동력 활용방안 최수영 저 3,500원 대북 인도적 지원의 영향력 분석 이금순 저 5,500원 인도주의 개입에 대한 국제사회의 동향 최의철 저 6,000원 A CRITICAL JUNCTURE 최진욱 저 4,000원 식량난과 북한여성의 역할 및 의식변화 임순희 저 5,000원 통일 이후 갈등해소를 위한 국민통합 방안 박종철 외 공저 10,000원 미ㆍ중 패권경쟁과 동아시아 지역패권 변화 연구 황병덕 외 공저 9,500원 중국의 부상에 대한 일본의 인식과 군사력 강화 김영춘 저 4,000원 주한미군 감축 및 재배치와 한국의 국가안보 홍관희 저 4,500원 남북경협 실패사례 연구: 대북 경협사업의 성공을 위한 정책과제 김영윤 저 7,500원 북한의 핵 폐기 가능성과 북 미관계 정영태 저 5,000원 미국의 대북인권정책 연구 김수암 저 6,000원 김정일 시대 북한의 정치체제 박형중 외 공저 10,000원 미국의 한반도 정책과 통일문제 박영호 저 5,500원 북한의 경제특구 개발과 외자유치 전략 :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특구를 중심으로 임강택 외 공저 6,000원 조치 이후 북한의 체제 변화 : 아래로부터의 시장사회주의화 개혁 서재진 저 7,500원 CSCE/OSCE의 분석과 동북아안보협력에 주는 시사점 손기웅 저 5,000원 최근 발간자료 안내 209

254 남북 사회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대내적 기반구축방안 : 통일문제의 갈등구조 해소를 중심으로 조한범 저 4,500원 국제적 통일역량 실태분석 여인곤 외 공저 9,000원 대북지원민간단체의 남북교류협력 연구 이금순 저 5,000원 <7 1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북한경제 변화 전망 : 실질소득의 변화를 중심으로 최수영 저 4,000원 ~2000년 북한기근: 발생, 충격 그리고 특징 이 석 저 9,000원 Toward Greater Transparency in Non-Nuclear Policy : A Case of South Korea 전성훈 저 7,000원 유럽연합(EU)의 대북 인권정책과 북한의 대응 최의철 저 8,000원 북한의 노동인력 개발체계: 형성과 변화 조정아 저 7,000원 Energy Cooperation with North Korea : Issues and Suggestions 김규륜 저 4,500원 일본의 보수우경화와 국가안보전략 김영춘 저 5,000원 북한주민의 국경이동 실태: 변화와 전망 이금순 저 6,500원 북한 청소년의 교육권 실태: 지속과 변화 임순희 저 5,500원 미 중 패권경쟁과 우리의 대응전략 황병덕 저 9,000원 북한 광물자원 개발을 위한 남북 협력 방안 연구 김영윤 저 7,000원 청소년의 통일문제 관심 제고 방안 손기웅 저 5,500원 러시아 탈 사회주의 체제전환과 사회갈등 조한범 저 6,000원 동북아협력의 인프라 실태: 국가 및 지역차원 박종철 외 공저 10,000원 북한의 형사법제상 형사처리절차와 적용실태 김수암 저 7,000원 공동선언 이후 북한의 대남협상 행태: 지속과 변화 허문영 저 7,500원 북한체제의 분야별 실태평가와 변화전망 : 중국의 초기 개혁개방과정과의 비교분석 이교덕 외 공저 10,000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통일전망 조 민 저 6,000원 북한의 경제개혁과 이행 이 석 저 7,000원 북한의 산업구조 연구 최수영 저 5,500원 탈냉전시대 전환기의 일본의 국내정치와 대외전략 배정호 저 6,500원 부시행정부의 대북 핵정책 추진 현황과 전망 김국신 저 5,000원 미국 외교정책에서의 정책연구기관(Think Tanks)의 역할과 한반도 문제 박영호 저 8,500원 년도 통일문제 국민여론조사 박종철 외 공저 10,000원 미국과 중국의 대북 핵정책 및 한반도 구상과 한국의 정책공간 박형중 저 5,000원 북한인권백서 북한인권백서 2003 서재진 외 공저 9,500원 White Paper on Human Rights in North Korea 2003 서재진 외 공저 10,000원 북한인권백서 2004 이금순 외 공저 10,000원 White Paper on Human Rights in North Korea 2004 이금순 외 공저 10,000원 북한인권백서 2005 이금순 외 공저 10,000원 White Paper on Human Rights in North Korea 2005 이금순 외 공저 10,000원 210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255 연례정세보고서 2003 통일환경 및 남북한 관계 전망: 2003~2004 6,000원 2004 통일환경 및 남북한 관계 전망: 2004~2005 6,000원 2005 통일환경 및 남북한 관계 전망: 2005~2006 6,000원 학술회의총서 신정부 국정과제 추진방향 5,000원 한반도 평화번영과 국제협력 5,500원 김정일 정권 10년: 변화와 전망 10,000원 한반도 안보정세변화와 협력적 자주국방 10,000원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 8,000원 남북한 교류(화해)ㆍ협력과 NGO의 역할 7,500원 한반도 평화회담의 과거와 현재 5,500원 북한경제와 남북경협: 현황과 전망 6,500원 한국 및 미국의 국내환경변화와 한반도 평화 10,000원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번영과 한 중 협력 9,000원 북한 경제의 변화와 국제협력 8,000원 남북공동선언과 한반도 평화 번영: 평가와 전망 10,000원 Infrastructure of Regional Cooperation in Northeast Asia: Current Status and Tasks 10,000원 Implementing the Six-Party Joint Statement and the Korean Peninsula 10,000원 북한 광물자원 개발 전망과 정책방안 10,000원 논 총 통일정책연구, 제12권 1호 (2003) 10,000원 통일정책연구, 제12권 2호 (2003) 10,000원 통일정책연구, 제13권 1호 (2004) 10,000원 통일정책연구, 제13권 2호 (2004) 10,000원 통일정책연구, 제14권 1호 (2005) 10,000원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Unification Studies, Vol. 12, No. 1 (2003) 9,000원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Unification Studies, Vol. 12, No. 2 (2003) 10,000원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Unification Studies, Vol. 13, No. 1 (2004) 10,000원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Unification Studies, Vol. 13, No. 2 (2004) 10,000원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Unification Studies, Vol. 14, No. 1 (2005) 10,000원 영문초록 KINU Research Abstracts 02 10,000원 최근 발간자료 안내 211

256 협동연구총서 국내적 통일인프라 실태 10,000원 통일정책 추진체계 실태연구 허문영 외 공저 10,000원 남북관계의 진전과 국내적 영향 최진욱 외 공저 10,000원 법 제도분야 통일인프라 실태 연구 제성호 외 공저 10,000원 통일교육의 실태조사 및 성과분석 한만길 외 공저 10,000원 국내적 통일인프라 구축을 위한 실태조사 : 경제분야 이상만 외 공저 10,000원 북한이탈주민 적응실태 연구 이금순 외 공저 10,000원 종합결과보고서: 국내적 통일인프라 실태조사 박영규 외 공저 9,000원 통일인프라 구축 및 개선방안 10,000원 정보화시대 통일정책 거버넌스 개선방안 여인곤 외 공저 7,000원 남북관계 개선의 국내적 수용력 확대방안 : 분야별 갈등의 원인 및 해소방안 박종철 외 공저 10,000원 통일관련 법제 인프라 정비 및 개선방안 제성호 외 공저 10,000원 통일지향 교육 패러다임 정립과 추진방안 고정식 외 공저 10,000원 경제분야 통일인프라 구축 및 개선방안 양문수 외 공저 10,000원 북한이탈주민 분야별 지원체계 개선방안 이금순 외 공저 8,500원 종합결과보고서: 통일인프라 구축 및 개선 방안 김영춘 외 공저 5,500원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정책연구 10,000원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협력적 아시아 인식의 모색 오명석 외 공저 5,500원 동북아문화공동체와 유럽문화공동체의 공통성과 차별성 김명섭 외 공저 5,000원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국 중국 일본의 대중문화산업에 대한 비교연구 양영균 외 공저 10,000원 동북아 공동의 문화유산에 대한 공동 연구와 관리 박경하 외 공저 10,000원 동북아 문화공동체의 동아시아 지역 확대방안을 위한 서중석 외 공저 10,000원 기초연구: 한국-동남아 문화 공동체 형성 가능성 분석 동북아 평화문화 비교 연구 조한범 외 공저 9,500원 동북아 한민족 사회의 역사적 형성과정 및 실태 최진욱 외 공저 6,500원 동북아공동체의 행정조직 구축에 관한 연구: 유럽연합의 행정부인 집행위원회 조직의 비교분석을 중심으로 윤종설 외 공저 5,000원 동북아 국가의 인적자원실태 및 개발 동향과 인적자원개발 분야의 공동체 형성 가능성 연구 강일규 외 공저 10,000원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법적기반 구축방안 전재경 외 공저 8,000원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법적 기반 구축방안 : 형사법제를 중심으로 이진국 외 공저 6,000원 동북아 여성문화유산 교류협력방안 김이선 외 공저 8,500원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청소년교류 협력 연구 윤철경 외 공저 10,000원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교육 분야 교류 협력의 실태 한만길 외 공저 10,000원 212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257 동북아 국가간 관광교류협력 방안(Ⅰ) : 잠재력과 장애요인 박기홍 외 공저 6,000원 동북아 문화공동체 추진의 비전과 과제(Ⅰ) 김광억 외 공저 4,000원 종합결과보고서: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정책연구 김광억 저 4,500원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유럽연합의 정책 사례 김명섭 외 공저 9,500원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문옥표 외 공저 10,000원 동북아 문화공동체의 동아시아 지역 확대를 위한 동남아시아 정치 사회 문화 인프라 연구 서중석 외 공저 9,000원 동북아 평화문화 형성을 위한 인프라 구축방안 전성훈 외 공저 10,000원 동북아 한민족 공동체 형성을 위한 인프라 구축 방안 배정호 외 공저 10,000원 동북아 지역인권체제(포럼) 구성 추진 최의철 외 공저 10,000원 동북아공동체의 정책결정기구 구축에 관한 연구 윤종설 외 공저 10,000원 동북아 국가의 인적자원개발 제도 및 인프라 분석과 공동체 형성 방향 연구 강일규 외 공저 10,000원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법적지원방안 연구(Ⅱ) 전재경 외 공저 10,000원 변화하는 동북아 시대의 체계적인 국경관리시스템 구축에 관한 연구 장준오 외 공저 8,000원 동북아 여성문화유산 네트워크 구축에 관한 연구 김이선 외 공저 10,000원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청소년교류 인프라 구축 연구 오해섭 외 공저 9,000원 동북아시아 3국 학생 및 교원의 상호이해에 관한 의식조사 연구 한만길 외 공저 9,000원 남북한 통합과 통일인프라 확장방안 10,000원 남북한 통합을 위한 바람직한 통일정책 거버넌스 구축방안 김국신 외 공저 10,000원 통일관련 국민적 합의를 위한 종합적 시스템 구축방안 : 제도혁신과 가치합의 박종철 외 공저 10,000원 남북한 통합을 위한 법제도 인프라 확충방안 이철수 외 공저 10,000원 신패러다임 통일교육 구현방안 박광기 외 공저 10,000원 남북한 경제통합의 인프라 확장방안 양문수 외 공저 10,000원 북한이탈주민 사회적응 프로그램 연구 이금순 외 공저 10,000원 종합결과보고서: 남북한 통합과 통일인프라 확장방안 김영춘 외 공저 10,000원 동북아 NGO 백서 전봉근 외 공저 10,000원 동북아 NGO 연구총서 조한범 외 공저 10,000원 비매품 통일정세분석 중국의 통일외교안보정책 전망: 10기 전인대 1차회의 결과분석 신상진 북한 핵문제의 경제적 파급효과와 향후 전망 임강택 북한 인권실태에 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동향 최의철, 임순희 한/미 정상회담과 공조방향 이헌경, 박영호 최근 발간자료 안내 213

258 일본의 안보개혁과 유사법제 정비 배정호 북한 병력제도 변화와 병력감축 가능성 박형중, 정영태 기 1차 최고인민회의 개최 동향 분석 박형중 년도 북한의 신년 공동사설 분석 박형중, 전현준, 이교덕, 최진욱 최근 북한 변화 및 개혁 동향 북한연구실 제13차 남북장관급회담 결과 분석 및 전망 조한범 최근 북한의 주요 대남논조: 민족공조 론 강조의 배경과 의도 박형중 미 국무부의 2004년 북한 인권보고서 분석 최의철 제2차 6자회담 분석과 전망 전성훈 제4대 러시아 대선결과 분석 여인곤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1기 제2차 회의 결과분석 이석, 최진욱 제60차 유엔인권위원회의 북한인권결의안 채택과 우리의 고려사항 최의철, 임순희 김정일 국방위원장 중국방문 결과 분석 이교덕, 신상진 차 북 일 정상회담 결과분석 김영춘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프로그램 추진 실태 전성훈 년 상반기 북한 동향 정영태, 최진욱, 박형중, 서재진, 이교덕 일본 참의원 선거결과 분석 김영춘 남북한 전자상거래 추진방안 김영윤, 박정란 미의회 북한인권법 : 의미와 전망 김수암, 이금순 년 미국 대통령선거 동향 분석(Ⅰ) : 케리 민주당 후보의 외교안보정책 방향 박영호, 김국신 년 미국 대통령선거 동향 분석(Ⅱ) : 부시 공화당 후보의 외교안보정책 방향 김국신, 박영호 중국공산당 16기4중전회 결과분석 전병곤 년 미국 대통령 및 의회 선거 결과 분석 김국신, 박영호 중국의 동북공정과 우리의 대응책 전병곤 년 북한의 신년 공동사설 분석 및 정책 전망 이교덕, 서재진, 정영태, 최진욱, 박형중 북한의 경제개혁 동향 김영윤, 최수영 북한의 핵보유 선언 배경과 향후 입장 전망 정영태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 이후 주변 4국의 반응과 향후 정책 전망 박영호, 김영춘, 여인곤, 전병곤 북한인권 관련 미 국무부 보고서 분석 및 정책전망 최의철, 김수암 중국 10기전인대 제3차회의 결과 분석 전병곤 일본의 보수우경화 동향분석 김영춘 농업분야 대북 협력 방안 김영윤, 최수영 년 북한 영향실태조사결과 보고서 분석 이금순, 임순희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1기 제3차 회의 결과 분석 박형중, 최진욱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동향 : 제61차 유엔인권위원회의 결의안 채택을 중심으로 최의철, 임순희 최근 중 일관계와 갈등요인 분석 배정호 북한인권국제대회 동향과 향후 전망 김수암 북한 주권국가 인정문제의 국제법적 조명 : 동 서독 사례와 향후 통일정책 과제 황병덕 동서독간 정치범 석방거래(Freikauf) 손기웅 일본 총선 결과 분석 김영춘 214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 중 일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 및 증진 방안 연구

259 평화비용의 의미와 실익 김영윤, 이 석, 손기웅, 조 민, 서재진, 최수영 미 일동맹의 강화와 주일미군의 재편 배정호 주변4국과의 연쇄 정상회담 결과분석 여인곤, 박영호, 배정호, 최춘흠 APEC 정상회의의 의의와 한국의 역할 김규륜 KINU정책연구시리즈 북핵보유선언: 향후 정세전망과 우리의 정책방향 허문영 북핵문제와 남북대화: 현안과 대책 이기동, 서보혁, 김용현, 이정철, 정영철, 전병곤, 곽진오 남북공동선언 재조명: 이론과 실제 홍용표, 조한범 광복 60년과 한반도: 한미관계, 남북관계 그리고 북핵문제 김근식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로드맵: 6자회담 공동성명 이후의 과제 조성렬 제4차 6자회담 합의 이행구도 전현준, 박영호, 최진욱, 이교덕, 조한범, 박종철 Studies Series The Successor Theory of North Korea Kyo Duk Lee Nine Scenarios for North Korea's Internal Development Hyeong Jung Park The Impact of Personality Cult in North Korea Jae Jean Suh The Unofficial Exercise of Property Rights in North Korea Kang-Taeg Lim and Sung Chull Kim A Study of the Social Control System in North Korea: focusing on the Ministry of People s Security Hyun Joon Chon Strategies for Development of a North Korean Special Economic Zone through Attracting Foreign Investment Kang-Taeg Lim & Sung-Hoon Lim The Food Crisis and the Changing Roles and Attitudes of North Korean Women Lim Soon Hee Evaluation of South-North Economic Cooperation and Task for Success Young-Yoon Kim North Korea s Market Economy Society from Below Jae Jean Suh Continuities and Changes in the Power Structure and the Role of Party Organizations under the Kim Jong-il s Reign Hyeong-Jung Park and Kyo-Duk Lee The DPRK Famine of : Existence and Impact Suk Lee 최근 발간자료 안내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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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통일연구원 定 期 會 員 가입 안내 통일연구원은 통일문제가 보다 현실적인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서 그동안 제한적으로 유관기관과 전문가들에게만 배포해오던 각종 연구결과물들을 보다 폭 넓게 개방하여 전국의 대형서점에서 개별구입하거나 본원의 定 期 會 員 에 가입하여 구독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본원의 간행물 분량이 많아 일일이 서점에서 구입하기에는 번거로움이 있을 것이 라는 점을 고려하여 定 期 會 員 制 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정기회원에게는 본원의 모 든 간행물(연구총서, 국문논총, 영문저널, 학술회의 총서, 판매되지 않는 수시 정 세분석보고서 등)을 직접 우편으로 우송해드리는 것은 물론 학술회의 초청 등 회 원의 권리를 부여하오니 많은 이용을 바랍니다. 1. 정기회원의 구분 1) 일반회원: 학계나 사회기관에서의 연구종사자 2) 학생회원: 대학 및 대학원생 3) 기관회원: 학술 및 연구단체 또는 도서관 등의 자료실 2. 회원가입 및 재가입 1) 가입방법: 1 회원가입신청서를 기재하여 회비를 납부하신 入 金 證 과 함께 본 연구원으로 Fax 또는 우편으로 보내주심으로써 정기회원 자격 이 취득됩니다. 2 본원 홈페이지( 회원가입신청서 를 작성하신 후 회비를 납부하신 입금증을 Fax 또는 우편으로 보내주심으로써 정기회원 자격을 취득하실 수 있습니다. 2) 연 회 비: 회원자격은 가입한 날로부터 1년간입니다 (기관회원 20만원, 일반회원 10만원, 학생회원 7만원) 3) 납부방법: 신한은행 온라인 (예금주: 통일연구원) 4) 재 가 입: 회원자격 유효기간 만료 1개월전 회비를 재납부하면 됩니다.(재가입 안내장을 발송) 3. 정기회원의 혜택 1) 본 연구원이 주최하는 국제 및 국내학술회의 등 각종 연구행사에 초청됩니다. 2) 본 연구원이 발행하는 학술지 통일정책연구 와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Unification Studies를 포함하여 그 해에 발행되는 단행본 연구총서 (연평균 30-35권), 학술회의 총서(연평균 5-6권), 정세분석보고서(연평균 5-10권) 등의 간행물이 무료 우송됩니다. 3) 본 연구원에 소장된 도서 및 자료의 열람, 복사이용이 가능합니다. 4) 시중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지난자료를 20% 할인된 가격에 구입할수 있습니다. 5) 저작권과 관련하여 DB써비스를 통해 압축한 자료는 제3자 양도 및 판매를 금합 니다. 4. 회원가입 신청서 제출 및 문의처 서울시 강북구 수유6동 (우편번호: ) 통일연구원 통일학술정보센터 (전화: , FA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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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회원가입신청서 성 명 주민등록번호 - 근 무 처 간 행 물 받을 주소 직 위 (우편번호 : ) 절 전 화 FAX 취 연 락 처 전자메일 선 ID PW 전 공 및 관심분야 회원구분 일반회원 ( ) 학생회원 ( ) 기관회원 ( ) 본인은 통일연구원의 정기회원 가입을 신청합니다. 200 년 월 일 신청인 ( 인) 본 신청서를 팩스나 우편으로 보내주십시오. (서울시 강북구 수유6동 통일연구원 통일학술정보센터 FAX: ) 신한은행 온라인 (예금주: 통일연구원) 본 연구원에서 여러분들을 위해 어떤 서비스를 더 제공했으면 좋은지에 대한 의견이 있으신 분은 본 신청서 뒷면에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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