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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1. 상상과 증명, 1차 상상과 증명, 2차 웰빙과 행복, 1차 웰빙과 행복, 2차 리듬, 1차 리듬, 2차 교육, 1차 교육, 2차 위험과 소통, 1차 위험과 소통, 2차 258 <언론보도> 287

3 상상과 증명, 1차 포럼 - 1 -

4 엄정식 : 엄정식입니다. 먼저 제안자로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기존에 우리가 과학기술이 인간 을 만나다 라는 주제 하에 서로 만나는 그런 수준의 모임을 가졌다면, 이 모임은 이제 우리는 만나서 무엇을 할 것인가, 과학과 사회가 좀 더 농도 있게 무언가를 같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에 초점을 맞춘, 일보 전진한 모임이라 하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융합이라는 말까지는 너무 사치스런 표현이고 그 전 단계 정도까지인데, 오늘 이 자리 에는 우리가 만나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주제를 가지고 만난다는 의도가 있 습니다. 우리가 의도한 것이 통합 이나 융합 은 아니고 모였으면 제목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 까. 우리 모임의 이름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 하고 있다가 길을 묻는다는 차원에서 표 현을 해줄 수 있는 단어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정민 선생님이 아이디어를 내주 신 것입니다. 우리가 나루터를 여행하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 포럼 이름을 나루터 가는 길을 묻는다 라고 하면 어떨까, 길을 묻고 일단 잘못 가더라 도 어딘가 가보자, 여러 가지 고심 끝에 문진 포럼이라는 제목을 지은 것입니다. 좋은 담은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구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담이 너무 높으면 소통이 전혀 안되니까 뭘 해도 안 되는 거고, 담이 너무 낮아도 함부로 왕래하게 되지 않겠습 니까.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담일 때 좋은 이웃이 되는 거지요. 우리 영역은 다르지 만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담을 두고 이야기할 때 좋은 결과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기대 없이, 결과를 의도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편한 이야기를 할 때 의외의 수확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우리 모임엔 그 어떤 작위적인 기획 의도도 없습니 다. '상상과 증명'이라는 서로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루어 질 때 어떤 즐거운 일이 있을까 기대해보면서 오늘 모임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정 민 : 오늘 토론의 키워드는 상상 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논의를 끌어나갈까 고민하다가 논의 를 끌어나가는 것 자체를 없애고 밑그림 없이 자유롭게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서 진행하 고자 마음 먹었습니다. 오늘 모임에는 철학, 문학, 사회학, 자연과학, 예술 분야의 여러 선생님들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진형준 : 기본적으로 저는 상상이 인간의 다원성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유기적 사 유이며, 합리와 비합리의 사이에 있습니다. 정대현 :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많은 지각을 하는데, 지각을 그대로 떠올리는 것도 상상이지만, 여러 지각들을 새로운 배합으로 떠올리는 것 을 일반적으로 상상이라 하는 것 같습니 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융합은 아니더라도 여러 방향성을 열어놓고 봤을 때 상상은 인간의 어떠한 지적인 활동에서도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을 곧 상상력으 로 구분 짓는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그 분들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상상이 인문학의 중 요한 재산일 수는 있지만 인문학의 규정적 특징은 아니라고 봅니다

5 동물들은 그러지 않는데 아이들은 1~2살짜리조차 이게 뭐야? 하고 묻습니다. 이는 의미의 세계에서 일어난 것으로 상상력이 작동한 것입니다. 또 저는 상상과 증명은 대비되는 개념이 아니라 상보적 관계에 둘 수 있지 않을까 싶 습니다. 이형구 : 꼭 예술 분야가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부분에 있어 창조성은 필요합니다. 저는 창조가 곧 발상의 전환 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디어가 곧 창조력이죠.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창의적인 상상을 방해하는 좋지 않은 문제들이 편재되어 있습니다. 창조적 상상력을 키 워주지 못하는 교육, 사회 시스템들이 그것입니다. 김무경 : 상상력이라는 이름을 내검으로써 지금까지의 사회학과는 다른 여러 전망을 열어줄 수 있 지 않을까요. 이는 이미 역사학, 철학, 문학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흐름입니다. 지금도 미국에서 실증주의적 전통이 지배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이미지와 상상력의 사회학, 다른 사회학으로 가는 출발로서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증주의적 전통의 반대편에 문화철학이 있고, 이는 억 압의 전통에 대한 복권의 일환입니다. 홍사종 : 저는 이야기가 모든 상상력의 출발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그것이 문학, 역사, 철 학, 종교로 진화하고 오늘날 영화, 드라마 등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거죠.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오늘날에만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 이 있어요. 그러나 원래 인류는 상상을 하면서 짐승과 구분되고, 인간의 모든 행동은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결국은 상상력이 인류의 진화를 도와줬다 할 수 있고, 상 상력의 산물이 문명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인간이 가진 무한대의 상상력은 기술적인 측면으로 구현이 되지 못했지만 이 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죠. 이제는 이야기 자체가 사업이 되는 시대입니다. 따라서 이 제는 누가 먼저 상상하느냐가 경쟁력의 관건이 되었습니다. 아이디어가 현실로 상용화 되기 쉬어짐에 따라 생산의 핵심 동력이 되었고, 정보혁명이 곧 이야기혁명이 된 것이 죠. 이 사회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보지 못한 사회입니다. 정 민 : 상상은 이제 현대 사회의 핵심동력으로 누가 먼저 그것을 발전시키느냐가 관건이 되었습 니다. 상상력이 이제 우리의 전방위적 생활에 압박을 하기 시작한 것이죠. 상상을 열 필요가 있고, 상상을 통해 미지의 세계는 기지의 세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재천 : 요즘 하도 상상력, 상상력 하다 보니 상상력을 갑자기 풍부하게 해줄 수 있는 기발한 교 육법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상상력이라는 것이 그렇게 갑자기 길러질 수 있는 속 성을 가진 것인지, 아니면, 아니면 그런 노력을 하다 보면 우리의 상상력이 신장되어서 - 3 -

6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진형준 : 상상력이 뭔지 이론적으로 배우는 것은 가능하기도 하고 가능하지 않기도 합니다. 현상 을 해석할 때에도 역시 상상력이 필요한데요, 상상력은 곧 주관적인 가치판단이 들어간 것이기도 합니다. 주관적 인식으로서 그러한 상상력은 객관적 지식 체제에서 인정받지 못해왔죠. 물론 주관으로 인한 오류 가능성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어차피 세상은 주관 적인 가치부여로 살 수밖에 없고 인식이 전환될 필요가 있습니다. 철학 영역이건, 객관 적인 과학 영역이건 상상력이 구체적으로 실천적인 방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폭넓게 상상력을 규정해보면 어떨까요. 이야기가 돈이 될 수도, 상상력이 돈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사회가 왔습니다. 상상력하 고 다원이라는 것 사이가 무한 경쟁을 증폭시키는 그런 사회에서 우리가 살고 있어요. 상상력이 필요하고 풍부한 상상력이 대접받는 시대라는 것도 분명하지만 세상은 점점 다원화되고 복잡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사유는 더 단순해지고 상상력은 결핍되고 있어 요. 궁극적으로는 물질 가치에 상상이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대현 : 가르칠 수 있고, 가르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서양의 이전의 모든 시대가 절대 주의 시대, 획일주의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학문은 영원한 진리였습니다. 상상력 이란 이성을 벗어난 것이었죠. 따라서 상상력의 시대 라는 말의 배경에는 학문 개념의 변화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구조가 될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절대주의에서 다원주의로 변화하였습니다. 영원한 전수는 다 원주의 시대에는 없잖아요. 눈이 닿는 모든 것이 상상이고, 상상력은 길러질 수 있습니 다. 홍사종 : 상상력 늘릴 수 없죠. 수렴적인 사람이 있고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수렴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시험을 잘 치는 능력 등이 뛰어납니다. 이런 분들은 한 발자국도 더 나갈 수 없는 게, 섬이라고 해서 떠오르는 이야기를 하라고 하였더니 상당 수가 고 립이라고 말했더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섬에 가서 섬을 바라본다면? 교수님들도 가르치는 것이지 그 분이 철학적 사유를 발전시키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역사를 발전시키는 것은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사회조직을 잘 이끌어 나가는 것 은 수렴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구요. 그래서 저는 상상력이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 다. 물론 모두가 상상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상상력은 현실에 뿌리 내리지 않으면 공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대일 : 상상력과 창의적 상상력이라는 것은 목적성을 통해 억압적 기제로 작용될 가능성이 있다 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아까 정교수님이 지적해주셨던 건데, 상상이라는 것 이 문학적인 것에도 과학적인 것에도 내재된 것이라 봅니다

7 이형구 : 상상력이 교육에 의해 학습될 수 있느냐. 저는 학습되어지지 못하다고 봅니다. 물론 어 느 정도까지는 교육이 가능하리라 봅니다. 그러나 그것이 획일화되면 독특한 것이 사라 지게 됩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교육에 의해서 가능할 것 같지만 제가 생각할 때는 아닙 니다. 상상력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야기 하는 것은 좀 더 창의적인 상상력 입니다. 윤리 도덕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주관, 차별화, 비현실,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 화 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미술학도를 보았을 때 배우는 그림들이 똑같습니다. 오히려 다른 전공자들이 와서 훨씬 잘 하는 경우가 많아요. 차라리 길거리에서 더 배울 것이 있다고 봅니다. 김무경 : 개인과 사회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상상과 증명은 말하자면 객관의 세계를 우리의 주관 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상상은 한편으로는 개인과 사회, 개인이나 상 호 간의 다양한 경험들을 연결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상상이 아닐까요. 우리 속에 섬을 고립낙원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잠재태가 없으면 섬은 우리에게 고립낙원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그 이미지들이 우리 머릿속에 있는 다원주의를 깨우치게 할 수 없다면 상상력은 줄어들 것입니다. 진형준 : 윤리, 규범, 틀, 과학은 가치중립적일까요? 아닙니다. 차가운 과학은 없습니다. 저는 우 리를 둘러싸고 있는. 우리 눈에 드러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연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의적인 상상력이란 우리가 만나는 물질들을 변화 가능성 속에 놓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 연계가 존재한다고 믿고 사고를 전개하는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것, 상관없는 것들끼리 서로 연결할 수 있는 힘 말이죠. 생각이 닫힌 사람은 세상에 보이지 않는 것, 억압되어 있는 것, 그 모든 것들을 큰 틀 에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열린 상상력이 중요합니다. 가치 창조 자체에 상상력을 종 속시켜서는 안 됩니다. 정대현 : 설명, 이해, 해석의 세 단어로 자연과학, 사회학, 인문학을 차별화 하는 시도들이 있었습 니다. 20세기 초 과학자들의 활동이 설명 활동이었다면, 사회과학자는 사회현상의 문 제를 어떤 틀에 맞춤으로써 이해 시키는 활동, 인문학자는 해석 활동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셋은 규정적인 것이 아니라 대표적인 속성입니다. 이는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설명, 이해, 해석, 그 분야에 현저한 활동으로 수정될 수 있습니다. 상상과 증명의 경우에서도 증명 은 특정한 규칙에서 결론에 이르는 것으로, 어떤 규칙을 따르는 체계에서 작동하는 기제라 하겠습니다. 낭만주의 시대는 이런 기존 의 틀을 깨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경우입니다. 기존의 틀을 깨는 것. 이것이 상상의 구 성적인 특성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억압의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어떤 - 5 -

8 선한 의도의 법률이나 제도도 특히 약자들에게 억압적일 수 있습니다. 그 억압의 제약 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것, 그것이 인문학적 상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엄정식 : 상상력도 인간의 정신활동 아닙니까. 그것을 기능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 다. 기억력과 상상력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기억력이 시간 순서대로 들어오는 관 념을 쌓아가는 능력이라면, 상상력은 공간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입니다. 기억력에도 논 리가 있듯이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에도 로직, 결이 있다고 보거든요. 상상력에도 수준 이 있고, 여기에는 어느 정도 트레이닝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덕환 : 상상을 지각의 새로운 배합이라고 정의를 하시면, 과학에서도 상상력이 상당히 여러 수 준이 있는 거 같아요. 예를 들어서 DNA의 2중 분자구조, 그거 사실은 아무도 본 사람 이 없습니다. 여러 가지 팩트들을 주워 모아서 만들어낸 그야말로 상상 속의 구조거든 요. 거기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상상 간에는 차이가 있는 거 같아 요. 상상과 교육 간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 아까 이야기하셨는데, 분자의 구조 같은 상 상력은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아이들이 배운 게 있어야, 상상 하는 방법을 배워야 다음 수준으로의 상상이 여러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거죠. 이것이 무조건 낮은 수준이 있어야 하이 레벨로 갈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과학에서는 그 런 부분들이 있다고 보구요. 제 주관적인 판단인지는 몰라도 예술적 상상력은 아주 극 단적인 경우가 아니면 큰 어려움 없이 보는 이가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과학적 특 히 기술적인 부분에 그걸 적용시키면 사회가 절대로 수용 못할 위험한 영역이 있죠. 또 한 편으로 예술 분야에서 이야기하는 상상이 과학에서는 상당히 다르게 나타나는 것 같 아요. 정 민 : 지금 이덕환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공부에도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높은 수준에서 낮은 수준으로 내려오는 공부, 아래서부터 밟아가는 공부가 그것입니다. 즉, 상학하달과 하학상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문학이 전자에 해당한다면, 수학은 밑 에서부터 밟아가는 공부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상상에도 단계의 문제가 개입될 수 있고, 상상력의 성격이나 종류에 영향을 줄 수 있겠습니다. 이덕환 : 창의성과 사기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여기에서도 상상이라는 것과 환상, 망상은 종이 한 장 차이인 것도 같습니다. 상상도 폭넓게 보면 우리가 수용할 수 있고 없는 결과 품위 의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승종 : 모델링은 문제를 단순화시킵니다. 모델링의 과정이 과학적 상상력입니다. 따라서 여기에 는 상상으로 만들어진 모델이 어느 것이 더 좋은가 증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9 최재천 : 제가 얼마 전에 무지개를 풀며 라는 책을 번역했습니다. 이 책에서 보면 뉴튼이 분광학 으로 무지개색을 보여줬는데 당시 문학가들이 문학적 상상력을 과학자가 다 망가뜨렸다 고 비난을 한 거에요. 하지만 책은 그럼으로 인해 더 알게 되고, 알게 됨으로 해서, 즉 과학자들의 도움으로 인해 이전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세계를 열어주었다고 말합 니다. 교육받은 상상력(educated imagination)이 문학적 상상력, 예술적 상상력과 틀림 없이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과연 예술에서도 교육받은 상상력이 교육받지 않은 상 상력보다 못한가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한 개인에서도 그것들이 다르게 나타나는 스펙트럼이 있을 것이고 개인 수준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것들 도 나타날 것입니다. 홍사종 : 교육받은 상상력과 교육받지 않은 상상력 말씀하셨는데 천부적 상상력이라는 것 역시 있 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을 받아 더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통해 훌 륭한 예술가가 나올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정대현 : 삼각형과 사각형은 그림적 상황에서 구분이 되요. 그런데 천삼각형과 천사각형은 그림적 상황에서 구분이 안됩니다. 아까 모델링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과학에서의 가설 말씀 하셨는데 그게 다 제가 보기에는 descriptional imagination 같습니다. 한국 교육에서의 난점들은 우리가 비판해야 할 것이고 하여간 좋은 선생을 만난다는 것도 중요하구요. 결국 모델링을 한다고 했지만 많이 알아야, 지식이 있어야 적절한 상상력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것도 상상력은 상상력이지만 심리학에서 천 삼 각형과 천 사각형은 그림적 상황에서 구분이 안 되기 때문에 기술적 상황으로 가야 합 니다. 진형준 : 어떻게 접하게 할 것이냐의 문제도 있습니다. 제대로 된 교육을 하려면 잘 만들어진 학 생을 만들라고 하지요. 그 무언가 지식이 가득찬 것도 좋지만 자기가 접하는 대상들, 심지어는 지식들까지도 질문하는 방식을 나름대로 갖춘 학생을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 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양자택일이 아니고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진정 과학적, 합리적으로 사유하는 제자를 키우고 싶으면 지식을 많이 주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질문을 많이 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사유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 고 그 자유라는 것이 정확한 답을 요구하는 과학에서조차도 엉뚱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유를 낳는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교육받 고 있는 것들을 다시 한 번 문제 삼는 것, 이 정도 훈련은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정 민 : 사실 인문학이 상상력인 것 같지만 인문학만큼 상상력을 말살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런 문제도 같이 좀 논의해보도록 하지요

10 홍사종 : 난데없이 상상과 증명이라는 질문을 끌고 나와서 지금까지 이끌어온 논의들을 사회과학 적으로 정리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이덕환 : 일반적으로 넓은 의미의 상상은 들어와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 조금 억제를 시켰던 것 같 아요. 공학쪽에서는 좀 다르지만. 사실은 오늘 상상과 증명이라는 주제를 테이블에 올 려놓은 것은 홍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이 특히 상상력이 강조되는 시대라서보다 는 문진포럼을 만든 동기가 더 중요할 거 같아요. 두 문화의 단절이 가장 극심한 게 우 리 사회가 아닌가 싶어요. 그렇게 해서 나온 이야기가 다른 학문분야와의 소통입니다. 소통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주로 만남이란 말을 많이 써왔는데, 이게 단절이 심해서 의 미 있지 못하고 만남 자체에 그치는 만남이었단 말이죠. 상상은 인문학적 상상, 예술적 상상, 사회과학적 상상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사종 : 예 알겠습니다. 이덕환 : 상당히 다양한 시각이 있을 거라 하나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 고자 하는 의도가 컸습니다. 홍사종 : 아까 다원주의적 가치관 이런 말씀 하셨는데. 사실 예전 사람들은 즐기면서 생각하고 놀 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요즘 사람들에게 좀 살만하니까 놀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놀아 도 되는 사회가 왔는데 잘 놀 줄을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막 노는 거예요. 그런데 요 즘 아이들은 정말 잘 놀아요. 시장, 생산관계가 변한 거 같아요. 생산성, 놀이문화, 놀이 혁명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여기에 상상력이 필요한 겁니다. 최재천 : 예전에는 단순한 명제들만 풀면서 우리 과학자들이 최전선에 떠밀려서 섰는데, 어느 순 간부턴가 과학은 문제를 푸는 방법을 환원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되었어요. 우리에게 던 져진 것은 복잡계 과학이고, 방법론의 문제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복잡계 과학이라는 한 학문가지고 전체를 풀어낼 수는 없어요. 전체적으로 인문학과의 소통이 라도 해봐야 이 복잡한 문제를 풀어낼 것 아닙니까. 장지상 : 상상력이라는 게 최근에 와서는 중요한 화두가 된 것 같아요. 87년 이후에 임금도 많이 올라가고 경제수준이 올라간 이후 단계부터 이야기 나오는 게 주입식 교육의 폐해입니 다. 창의적 교육이 필요하다고들 했지요. 하지만 주입식 교육은 주입식 교육대로 장점 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창의적 교육도 해야겠지만 말이죠. 이전에 우리나라는 문맹률 이 엄청 낮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크게 해소된 것은 주입식 교육 덕분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철저한 모방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데요. 모방 없이는 창조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배우지 않고 생각만 해선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아요. 내공이 곧 창 - 8 -

11 조력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 민 : 오히려 인문학에서의 상상력에 대한 문제가 자연과학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절박합니다. 갑자기 괴물처럼 다가온 상상 앞에서 서로가 준비 안 되어 있던 것이 아니었는가 싶어 요. 돌파구가 필요합니다. 절박감이 들어요. 오늘 발제된 여러 질문들의 경로를 따라서 논의를 진전시켜 나가면 아주 건설적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진형준 : 상상력에 대한 철학적 정리라든지 그것이 인문학 사회과학에서 어떻게 가능하고 필요할 수 있을 것인가 정리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상력을 중심으로 한 인간학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어요. 여담처럼 말씀드리자면, 자연과학자들이 오히려 훨씬 자유로 운 상상력으로 앞서가는 것 같습니다. 인문학자들의 상상력이 훨씬 더 갇혀있어요. 정 민 : 생각하는 방식의 차이가 그런 차이를 가져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의 논 의를 나중에 발전시키면 오늘 모인 선생님들 개인 별로 한 꼭지씩의 이야기를 묶어 책 으로 펴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오늘은 서로의 문제를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는 지 점이었던 것 같아 좋았습니다. 프랑스에서는 5세기만에 만났다고 했는데, 우리도 참으 로 오래간만에 만났습니다. 의미를 되새기면서 다음에 또 모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긴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12 상상과 증명, 2차 포럼

13 이덕환 특히 지난번에 이야기가 많이 부족했던 것이 증명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는 상상에 대한 이야기만 나와서 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면 주제와 제목과 좀 균형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이정민 일단 말을 섞어보지요. 최재천 글세요. 저는 그러면 이렇게 화두를 던져 볼까요. 갑자기 증명하라면 증명부터 확 뛰어 들기 그러니까. 이덕환 선생님이 하라고 그래서 하는 것 같으니까 기분이 나빠서. 우리 가 제가 가끔 어디 쓰거나 상의를 하면 꼬투리를 잡아 봅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물어 보면 어떨까 싶은데. 상상력 하면 늘상 앞에 인문학적 상상력. 이게 상상력은 오로지 인 문학적 상상력인것처럼 항상 그렇게 우리사회는 이미 인식이 되어있는 것 같은 그런 좀 느낌이 있거든요. 과학적 상상력하면 어색해하시는 것 같은. 그렇다고 제가 인문학적 상 상력이 없다는 것은 아니니까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상상 력이 있다면 둘이 꼭 본질적으로 달라야하는지. 아니면 같은 건데 다른 그릇에 넣고 자 꾸 구별을 하려고 애쓰는 건지. 이걸 시작해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정 민 거기 조금 보태서, 지난번에도 장선생님이신가요? 과학자의 상상의 문제 관한 논의를 들으면서도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상상력의 질이 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상력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떠올리는 느낌이. 예를 들어 인문학자들은 무에서 유를 지 향하는 상상력이라고 한다면, 과학자들은 오히려 유에서 무를 지향하는 방향이 아닌가. 말하자면 어떤 프로세스를 만들기 위해서 여기 있는데에서 이 단계로 가기 위한 빈부분 을 찾아내기 위한 상상력이라면, 인문학자들은 없는 것들을 가공의 세계로 끌고 들어가 는 그런 종류의 상상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정대현 선생님 저 번에 이분법말씀해주셨는데 서두를 먼저 열어주시는게 어떨까요. 정대현 정선생님께서 주신 숙제로 시작을 하겠습니다. 인문학이 무엇이냐고 할 때 많은 논의들 이 특히 최근에 있었는데, 정리를 해본다면 결국은 어떤 제도도 아무리 선한 의도임에 도 불구하고 결국은 억압적인 경향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약자들에게. 자유스럽지 못한 행태에 빠지는데, 자유의 가능성의 공간을 확대하는. 인문학의 과제로 인문학의 본 질로. 자유 공간의 확장. 현실억압성뿐만 아니라 지루함, 권태로움, 무의미성을 포함해서 자유라는 넓은 의미로 보는 것이지요. 자유롭지 못한 인간범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으 로의 확장을 해야되기 때문에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 한편으로 현실비판이 있어야 되는데. 현실 진단을 하고 비판을 하고 부자유스러움의 까닭이 무엇 인지. 그것이 정치적 억압인지, 경제적 것인지, 실존적인 건인지에 대한 분석이 있어야 현실비판으로 가능한 것이니까. 그러니까 이제 인문학에서는 비판정신과 상상력이 항상 함께 같이 가는 것 같아요. 현실에 대한 비판 없이 상상을 하는 경우 그 자체로 흥미 있을 수는 있지만 인문적인 가치가 얼마나 있는 것인지. 공동체, 인간조건, 시대의 조건 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 아닌가. 인간이 그 시대의 인간들이 어떤 자유를 원했는가에 따 라. 르네상스 때는 기독교의 신본주의 억압성, 인본주의와 인문주의가 발생했지요. 인본 주의 휴머니즘이죠. 휴머니즘을 인본주의라고도 번역하고 인문주의라고도 번역하는데 영어에서 휴머니즘은 신본주의라는 단어와 짝지어지는데 우리나라 인본주의는 꼭 종교

14 와 연상이 안 되는 상황인데, 르네상스는 결국 신본주의로부터 신본주의 억압성을 벗어 나 인본주의로 확장으로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21세기 인간조건은 무엇인가. 르네상스 의 인간조건은 아닌 것 같아요. 21세기 인간조건은 달라졌잖아요. 정보, 환경, 세계화. 그래서 다른 인간 조건 하에서 인문학적 상상력이 어떻게 처방을, 보다 자유로운 공간 을 확보할 수 있는가에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과학적 상상력하고의 차이에 대해서 최 선생님 물음 전에 제가 숙제를 내면서 자연학 과 인문학의 소통을 잡아 숙제를 하려다보니까 우리 학계에 과학사라는 분야가 있고 인 지과학이라는 분야가 있고. 과학과 인문학의 소통의 노력들이 여기저기 있다고 생각이 되요. 그걸 하려다보니 과학사와 인지과학이 떠올라서 그것을 여기 포함해야 되나 제쳐 놓아야 하나 의논을 하고 해야 되지 않나 싶어서 과학과 인문학의 소통으로서의 주제가 아니라 21세기 현대사회에 있어서 인간적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맞춰보았습니 다. 과학의 상상력이라고 할 때에는 지난번 과학자 모델링 말씀하셨던 것처럼 결국은 과학 공동체가 이게 문제다 라고 할 때, 문제에 대한 깊은 통찰이나 배경을 가지고서 문제해 결에서의 여러 가지 옵션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방식이 과학적 상상력이 아닌가. 결국 인문학은 그 과제를 자유스럽지 못함이라는 과제에 대해서 인문학은 어드레스 한다고 한다면, 과학자의 상상력은 과학 공동체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 어드레스하는 상상력. 그러니까 자유스럽지 못한 인간조건이라는 것은 일반적이고, 이제 그래서 미술과 음악 과 인문학 공동체는 굉장히 넓지요. 이것은 느낌으로도 알지요. 자유스럽지 못함, 권태 로움. 그러나 과학적 상상력의 경우에는 과학 공동체가 문제를 스페시픽하게 하고 있는 데 그 문제가 왜 문제인가. 왜 그 문제가 벽에 부딪혔는가. 그러려면 그 문제에 대한 과 학 공동체의 언어에 의한 공유가 있어야 거기서 해결의 실마리를 향한 생각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제 기본적으로 과학적 상상력이나 인문적 상상력이나 기본적 논 리는 같다고 생각해요. 지각들의 다양한 배열을 하나의 생각 안에서 제시하는 것. 문학 적 상상력도 마찬가지죠. 다양한 지각들을 하나의 생각 안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배 열한다든가. 새롭게 배열할 수도 있고. 그렇죠. 대게는 새롭게 배열하는 거죠. 결국은 과 학적 상상력도 여러 가지 지각들을 가지고서 이게 문제다 할때, 문제해결을 위한 가설 적 생각 안에다 넣어가지고 생각으로 제시하는게 과학적 상상력이 아닌가. 최재천 선생님이 말씀하신 논리는 같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이따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싶고요. 그 전에 이덕환 선생님 한 말씀 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선생님 말씀 듣다 보니까 과학 적 상상력은 과학자들은 상상의 나래를 펴는 공간이 좁게 들리네요. 문제가 과학공동체 에서 문제를 주어준다고 이야기를 하셔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덕환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대현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인문학적 상상력 이라는 것은 무를 만들어내는, 현실하고 아무 상관이 없어도 상관이 없죠. 현실을 완전 히 이탈을 해서 인식이나 폭을 넓혀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과학적 상상력 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것 같아요. 우선 진정한 의미의 과학적 상상력은 철저하게 현 실, 자연에 근거를 두고 있어야 의미가 있지, 자연을 떠나면 상당히 심각하게 문제가 있 죠. 그러니까 현실에 얼마나 어태치되어 있느냐 하는 부분에서 좀 차이가 있고. 그 다음 에 과학적 상상력의 독특한 특징은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상상이 큰 부분

15 을 차지하는 것 같은데요. 미시세계나 거시세계는 전혀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부분이거 든요. 과학 안에서만 존재하지. 지각화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훈련받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죠.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실부분과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어야 의미가 있고. 정말 인문학에서 이야기하는 식의 자유로운 상상은 불가능한 것 같아요. 범위가 크냐 좁 으냐의 문제는 입장의 차이일 것 같아요. 어느 것이 더 크고 작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려 울 것 같은데. 지난 번 장지상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문제가 미리 제시되어 있다는 부분 은 오히려 인문학적 상상력과 더 깊은 관계가 있지 않나. 순수한 의미의 과학적 상상력 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나름대로의 시각화 지각화인것 같고요. 기술 쪽에서 테크놀로지 발전에서 상상력은 어떤 의미의 시작은 인문학적 상상력하고 비슷한 것 같아요. 현실세계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 그게 이제 대응을 시킨다면 억압, 구조 이런 것과 비슷할 것 같은데 이를 통해 해결해서 자유롭고 편리해보자는 인식에서 시작을 하거든요. 그런 쪽에서 살펴보면 시작은 상당히 인문학적 상상력과 비슷하고, 이 것도 역시 현실세계를 벗어나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최재천 제가 일부러 토론을 위해서 일부러 좀 긁어보자면, 선생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자연과 학자로서 기분이 나빴는데, 이덕환 선생님이 자연과학자는 지각의 범위를 벗어나서도 상 상이 가능한데 인문학은 그렇지 못하지 않느냐. 그러면 인문학하시는 선생님은 기분이 나쁘셔야할것 같은데 혹시 거기에 대해서 반론하실 것 있으세요? 우리가 하는 이야기가 이렇게 얽혀있는 느낌이 들어서. 이대일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옛날에 언제인가 (?)라는 책을 접하고 깜작 놀랐습니다. 그런 것의 내용적 동질성을 보아낼 수 있는 서양사람들 눈 참 독특하다는 것하고. 저는 보고 20%도 이해를 못했는데, 대강의 요체는 알아챘는데 어떤 의미에서 상상력의 동질성입 니다. 음악이라든지, 수학이라든지, 에술적 상상력은 이야기를 빼놓으셨는데, 저는 상상 력은 기본적으로 같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적 자연과학적 상상력을 굳이 나눠본다면 대 상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문학 사학, 사회학, 철학 이런 것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적 대상이 다르고, 자연과학이라는 것은 물적대상이자 현상계에 대한 주목으로서, 그것을 이해하는 툴의 상이성, 한쪽은 언어고 한쪽은 수학이다. 대상을 이해하는 어법의 상이성 이 굉장히 중요함과 동시에 그것이 묘하게도 양쪽의 상상력의 갈래를 치게 만드는 억압 기제도 되게 만드는 그런 것이 되지 않을까. 이해방식의 차이가 언어에서 만들어지면서 도 상상력을 다소 상이하게 만드는 것이 언어 쪽에 있다. 저는 예술쪽에서도 그런 것을 많이 보거든요. 가령 그림에서 음악적 구현을 해낸다고 할 때, 소리세계를 (...). 그것이 어떤 색깔과 형태를 가지고 있는 특이성때문인데, 툴의 상이성이 야기시키는. 그래서 이 런 것이 있지 않을까. 말씀하신것과 딱 부합되지는 않지만 저는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 다. 엄정식 그 같은 이야기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할 수도 있겠다 싶은데, 어떤 의미로는 정 선생 님 말한 것을 거들고 싶거든요. 재미난게 뉴턴이 나는 가설을 만들지 않는다 그런 유 명한 이야기가 있자나요. 과학자가 어떻게 가설을 안 만드냐 할 수 있지만. 가설은 원칙 적으로 검증될 수 없는 가설 있자나요. 신화라든지 소설가들의 상상력이나 종교적인 그 런 가설은 안만든다. 가설이지만 어디까지나 과학자의 가설이다. 그렇게 이해한다는 거

16 에요. 과학철학에서는. 그렇다면 그게 같은 상상력을 써도 과학자의 상상력과 시인의 상 상력은 다를 수 있다. 정 선생님은 외연이 넓다든지 자유롭다든지 이렇게 표현을 한거고 요. 여기서 좀 도움이 될만한 것은 그 자체에 문제가 많았지만. 논리실증주의자들이 말한 검증가능성 있자나요. 원칙적으로 검증이 가능하냐? 그것은 이론용어도 마찬가지이다. 아까 이덕환 선생 말씀하신 과학자들도 정대현 선생님 말씀하신 좁은 의미의 지각을 넘 어서는 상상을 할 수 있다. 그것을 우리는 과학철학에서 이론용어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과학자들이 쓰는 용어가 당장 검증 가능한 경험적인 용어만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확대해서 추론의 결과로 나온 사변적인 요소를 많이 도입해서 쓰는데요. 그것 때문에 과 학이 우리의 경험영역을 넓혀간 것 있자나요. 경험용어만 썼다면 과학은 이것을 확인하 는 작업이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가지는 못했을거다. 신화나 종교에서 전문처럼 생각했 던 그 영역을 풀어내지 못했을거다. 그런 점이 바로 우리가 관심 있는 상상력의 영역이 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넓은 의미로 검증가능해야 하는 것이잖아요. 검증가 능하지 않은 상상력도 인문학에서는 쓴다. 이렇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가 논의해볼만 한 것 같아요. 제가 염두에 두었던 것은 황금산 있잖아요. 황금으로 된 산. 그것은 인문학 자들이 시에서 얼마든지 쓸 수 있는 표현이자나요. 페가수스라든지. 그런데 러셀이 이야 기하는 라운드 스퀘어 있자나요. 동그란 사각형을 상상할 수 있느냐. 개념적으로나. 그 것은 상상이 안되거든요. 그것은 사각형이 아니란 뜻이고. 그래서 아무리 거친 상상력도 한계가 있다. 그 한계는 바로 우리 사유의 법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로 상상 도 넓게 쓰기는 하지만 논리가 있다. 결이 있다. 인문학적 상상은 결이 없고, 과학적 상 상은 경험에 갇혀있고 그런 건 아니다. 상당히 우리 생각보다 인문학적 상상력도 한계가 있고. 우리 사유의 법칙이 있는데 그것을 벗어날 수 없고. 과학적 상상력도 경험에 반드 시 갇히는 것은 아니고. 그렇게 하면 상당히 개념적으로 좁혀질 수 있지 않을까. 최재천 제가 해온 숙제는 유일하게 선생님 말씀하신 그런 내용인데요. 이렇게 생각을 해봤어 요. 아까 정대현 선생님이 논리는 같다고 하셨고. 예전에 학문이 한곳에서부터 출발한게 사실이라면 그게 어느 순간 갈라졌을 것이고 지금 와서 인문학을 하시는 분에게는 증명 의 부담을 덜어드린 것 아닌가. 원래 예를 들어 인간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서술 을 하면서 인과적 설명이 전혀 안되는 이야기를 하는 걸 받아들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자나요. 그게 무슨 말이 되나요. 하여튼 원시시대 때 이야기를 하더라도 남과 소통 하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인가 설명을 하고 내 설명에는 논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 논리 가 어느 순간에. 저는 이런 제안을 해봅니다. 인문학이라는 탈을 쓰고 어느순간부터 증명의 부담을 벗어 버리고 막 나간거 아닐까. 과학자들에게는 계속 과중되게 주어지고, 인문학을 하시는 분 들에게는 보통 길에서 이야기를 할 때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해도 되게끔 어느순간 학문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 것 아닌가. 검증가능성에서 자유로워지는, 역사적으로 그 런 일이 있었나요? 김무경 전번에 진선생님도 얘기하셨는데, 예를 들어 1979년 자연과학자와 인문학자가 500년 전에 만난 것이다. 결별한 것이 500년이 된 것이다. 결별이 된 것이 정치적, 경제적 여 건이 동반되어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된는데요. 코르도바에서 만날 때, 아리스토텔레스

17 를 몇 세기만에 재발굴해서 번역한 학자가 아베로에스라는 이슬람 학자인데요. 곧 우리 나라도 번역이 나오는데 아베로에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토마스 아퀴나스에 연결되어 스콜라철학의 근간이 됩니다. 이는 다시 서구 대학의 독트린처럼 되니까요. 이후 합리주 의, 실존주의 이런 식으로 가는 것이지요. 최재천선생님께서 증명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는 표현을 쓰셨는데, 아마도 그 흐름은 인문학자들은 증명을 안하니까 결국 가공의 어떤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즉 아리스토텔레스 흐름을 표현한 합리주의 실증주의 경험주 의만이 어떤 진리인 것으로 연결되는 흐름으로 갈 수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한편으로 근동으로 아비세마라는 사람이 떠났다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근동으로 가서 신 비주의적인 흐름을 이어받았다고 합니다. 서구는 아리의 삼단논법을 쓰는 개념이나 지각 이 우세한 쪽으로 갔고, 그 반대되는 흐름이 근동으로 왔습니다. 하나의 해석이겠지요. 그런 이분법을 썼으니까, 그것이 지금에 와서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500년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어떻게 교회로 치자면 교회적인 전통, 제도적인 전통 신비적인 전통이 약해지는 것과도 연관이 있겠지요. 앞서서 정교수님이나 엄교수님이 말씀하셨지만 상상에는 일종의 논리가 있다. 법칙, 결 이 있다는 표현을 써주셨는데 저도 그런 흐름에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상상공부를 하 면 그것이 담겨 있는 보고로 신화를 쫓게 되는데요. 서구같은 경우 모든 신들이 있는 것 이 판테온이겠지요. 만신전이라는. 여러 신들 중 아폴론도 있고 디오니소스도 있고. 그 러면 아폴론은 흔히 과학의 이미지와 연결되는 신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과학에서 흔히 통속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16세기~19세기 주도적인 과학의 이미지는 아폴론이라 는 신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맞는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기존의 통속적 과학이 가지 고 있는, 기계적 과학관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것은 여러 신들 중 하나의 신의 속성 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이 여럿이 있는데 그걸 타이 폴로지 하려는 융의 아큐타이폴로지같은 느낌이지요. 그러니까 결이 무엇인가? 결이 무 엇인가를 찾아보고자 하는 것. 그 여러 결 중에 하나에 국한되었던 것이 아마도 이전에 우리 통속적 과학이 아니었을까.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그런 이미지였을 것 같습 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상상이 무한히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상상력도 어떤 논리가 있 고 우리가 몇 가지 흐름을 잡아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전에 저같은 문외한이 과학이라고 하면 여러 상상의 모양 중에서도 한 모습에 국한된 것을 과학이라고 생각했 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서 여러 상상의 모습 중에서 아폴론이라는 신이 만신전 중 하나의 신인데 아폴론에만 국한된 것이 과학과 연결될 수 있겠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자꾸 말씀이 길어지는데요, 제가 한가지 더 예를 들자면 움베르트 에 코가 합리주의와 비합리주의를 나눌 때 합리주의는 한계 안에 있는 것이고, 그것이 논리 학이든 과학이든 정치학이든, 비합리주의는 한계를 넘어서는 무한의 갈망이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그 한계 안이라는게 논리상으로 치면 동일률, 모순률, 배증률인데요. 이게 어 떤 고정적인 과학이 따라가는 길 같아요. 가정을 세우면 가정을 벗어나는 것은 가지치고 최종원인을 찾아가는 것이지요. 인과율을 만들어나가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에코가 이야 기하기를 합리주의를 벗어난 비합리주의적인 흐름이 있었는데, 그 흐름은 지금까지도 계 속 됩니다. 그 흐름은 아마도 신화로 치면 헤르메스신에 연결될 것 같아요. 헤르메스신 은 이것이면서도 저것인 신이거든요. 모르겠습니다. 어떤 아인슈타인 이후 양자역학 등 등 현대과학에 이르기전까지 동일률을 벗어나는 많은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18 생각하거든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아마도 자연과학의 최신 업적하고 상상력하고 다시 만나는 시점인지도 모르겠는데요. 에코가 합리주의와 비합리주의를 가르면서, 비합 리주의를 헤르메스로 놓으면서, 거기 중요한 사유방식을 이전까지 신비주의로 몰아왔던 쪽에서 사유하는 방식, 저는 그것을 점성술적인 사유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전까지 자연 과학이 갈라놨던 모든 범주들을 뛰어넘는 것, 인간이나 별이나 수목이나 모두 중립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정 민 상상력의 질을 구분해보자는 뜻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정 선생님 말씀하신 앞 부분에서 억압, 부자유, 권태, 무의미성, 이런 것들을 비판이든 무엇이든 자유로운 확장 을 위해서 상상이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셨고, 억압 종류에 따라 상상력 종류도 달라진다 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상상이 앞에 들어가는 것을 생각해보더라도 신화적 상상이라든가 종교적 상상이라든가 예술적 상상이라든가 낭만적 상상이라든가 하는 것이 인문적 영역 에 속하는 것이라면, 엉뚱한 상상이라든가 기발한 상상이라든가 도발적 상상이라든가 가 상이라든가 이런 것은 자연과학적인 상상과 관련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문제해결 을 위한 상상이고, 하나는 자유로워지기 위한 상상. 하나는 해방쪽을 지향하고, 하나는 해결쪽을 지향하는 상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하나는 억압을 자꾸 풀어서 무 화시키는 상상이라고 한다면, 하나는 문제를 예를 들면 날고싶다는 욕망을 이카루스적인 것으로 접근하면 과학적인 상상으로 해서 실현하는 단계로 들어가는 기제가 되고요. 그 에 따라 방향성이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일단 저는 공통점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저는 한문을 하다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생각에도 종류가 있거든요. 한자에서 생각 사( 思 )자는 머리거든요. 밭 전자가 두뇌. 따져 서 하는 생각이거든요. 쉽게 말하면 곰곰한 생각입니다. 상( 想 )이라는 것은 이미지로 떠 오르는 생각이거든요. 상으로 맺히는 생각이죠. 념( 念 )이라는 것은 떠나지 않는 생각이거 든요. 머릿속에 머금어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려( 慮 )라는 것은 짓누르는 생각입니다. 호랑이가 올라탄 모양이니까. 그렇다면 사상이라는 것은 곰곰이 한 생각이 이미지를 가지게 될 때, 그것이 사상이 되는것이고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떠나지 않 으면 상념이 되는거고요. 어휘들을 결합을 해보면 사( 思 )와 상( 想 )과 념( 念 )과 려( 慮 )의 생각이 아주 선명하게 되거든요. 상이라는 것은 가시화되는 비주얼한 것으로 그려지는 생각인데 그려지는 방향은 인문적인 것과 과학적인 것이 확실히 다르긴 하겠다. 일단 그 릴 수 있는 생각이어야 하겠다는 것이 상상의 전제라는 되겠고요. 거기서 방향이 어떻게 달라질지 그 부분을 화두 삼아서 이야기해보았으면 합니다. 엄정식 이것과 연관되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알기에 측량술 있잖아요. 그게 제일 발달된 때가 고대 이집트라고 그러는데, 나일강이 범람하니까 영역을 다 측량해놔도 한번 범람하면 다 씻겨내려 가잖아요. 그래서 그걸 다시 정하는 방식으로 측량술이 발달되었다 그러거 든요. 그런데 그리스 사람들이 그걸 배워왔단 말이에요. 배워왔는데 강도 없지만 범람도 안하는 거 있자나요. 그래서 그 측량술을 상상의 영역에서 써먹게 된다는거지요. 측량술 을 순전히 엔지니어링 차원에서 쓰면 측량술로 끝나는데, 이것을 엔지니어링 차원이 점 점 줄어들고 상상력이 더 발동하면 하늘을 측량하는 것 있잖아요. 하늘을 마음대로 측량 할 수 있잖아요. 그것이 기하학으로 가는 모티브다. 그래서 오히려 기하학은 이집트에서 발달하지 않고, 상상력이 담긴 기하학은 그리스에서 발달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 철학하

19 는 사람은 그게 관념론과 실재론 논쟁이 벌어질 때 coherence있자나요. 기하학적, 논리 적 coherence. 이제 그것을 강조하면 관념론쪽으로 넘어가는게 되고요. 제가 논의했으 면 좋겠는 것이 제 눈에는 파라독스인것 있자나요. 그것은 전형적인 기하학적 수학적 산 물이거든요. 그리고 오히려 현실적 틀을 사유의 틀에 맞추려니까 안맞는단 말이에요. 그 려면 둘 중에 하나는 틀렸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현실은 우리 지각의 산물일 뿐이지 어 떻게 지각을 믿냐. 따라서 파라독시컬한 세계가 더 진짜고 이게 그림자일 뿐이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그런 면에서 관계를 생각해보면 상상은 현실과 관계 속에서 파생 적이고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 coherent한 정합적이고 일관 된 상상이야말로 좀 더 잘 리얼리티를 반영하는 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는게 철학자 들이거든요. 우리가 파라독스를 우습게 지나칠 수 없는게, 제논의 파라독스라는 책이 있 거든요. 그런데 요즘의 양자역학까지 전부 동원해서 풀어보려고 해도 안되는 것이거든 요. 나는 그래서 칸트식으로 검증된 상상력이 과학이고, 검증되지 않은 즉 증명되지 않 은 상상력을 우리가 그냥 상상력으로 부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 해보는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대일 제가 하나 좀 여쭈어보고 싶은데요. 제가 보기에는 상상력의 결이라고 할 때, 결이라는 단어보다는 패턴이라는 것으로 바꾸었으면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것을 전개 시켜나가는 개인적인 패턴이 있고, 개인적인 패턴이 상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 은 인문학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과연 상상력의 보편성을 무엇으로 추출해낼 수 있을 것이냐라는 질문을 드리고 싶고요. 최재천교수님 말씀하신 증명세계의 문제와 인문학적 상상력의 관계에 있어서는 오히려 인문학의 증명 혹은 자연과학적 세계간에 떨쳐냈다기보다는 인문학적으로 달라붙어서 인문학적인 언어논리를 정밀하게 만들어내 는 기제로, 즉 압박기제로 작용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예를 들면 인문과학 이라든지, 사회과학이라든지. 저는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왜 언어의 체계를 수학 적 체계로 맞추려고 할까? 왜냐하면 언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논리성이 있고, 단어의 함 축되어 있는 명료성과 체계성을 딱 맞추는 것도 사실은 수학적 룰이 가지고 있는 또 다 른 체제인데, 이것을 또 과학화 시킨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아까 최재천 교수님 말씀하 신 것은 해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문학자들이 과학의 족쇄에 따른 억압으로 작동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거기에 따라 오히려 상상의 패턴이나 결이라는 것의 보편 성을 어떤 것을 추출해낼 수 있을까? 왜냐하면 그러한 것이 추출이 되지 않으면 상상의 결이 있다는 것으로 지나치고 말것 같고요. 공감되는 내용이 부재하게 될 것 같아서 거 꾸로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최재천 선생님 말씀하신 것은 제가 이야기한 게 벌어지고 난 다음에 벌어지는 현상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인문학이 증명의 부담을 떨어내고 한참 하다가 자연과학이 치받는 바람에 또 다시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렇게 말하는 건가요. 이대일 언어 조직화시키는 체계성이 엄밀성을 요구하는 압력기제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네요. 정 민 그런 식으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이라는 것을 선생님은 전제가 처음부터 달랐다는 전제

20 를 할 때에만 성립되는 것이 아닌가요? 말하자면 어느 순간 인문학이 증명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했다고 한다면 원시사회에서 불가항력적이거나 불가사의한 어떤 현상에 부딪쳤을 때 그것에 반응하는 인간의 반응이 상상으로 나타난다는 건데요. 이해할 수 없 는 세계에 대한 합리화시키기 위한 기제가 상상력으로 출발이 되었지요. 그렇다면 거기 에서도 어떤 것이냐에 따라 증명의 수순을 밟아야 하는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고 더 하 나 나아가는 수순이 있는 것이니까. 원래부터 있던 것에서 증명을 포기하고 이렇게 말하 는 전제는 조금 그렇지 않을까요? 최재천 저도 충분히 이해하고 딴지거는 차원에서 던져 본 것인데요. 과연 처음에 그런 일들이 벌어질 때 그 환경이 어떠했을까 생각을 해보는데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천재지변 이 벌어지고, 그것을 그 중에 어떤 사람이 설명을 했을 것 아니에요. 그런데 이것은 우 리가 생각하는 이런 수준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이라는 존재가 있거나 뭔가가 있 어 우리를 그렇게 만들고 있다. 제가 그 현장에 앉아있었다면 그러면, 물론 좋지 않은 가정이지요. 저는 이미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받은 사람인데, 그렇다 치더래도 야 그게 말이되냐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해서 우리를 이상하게 현혹시키려고 그러 냐. 그런 사람 없었을까요? 분명히 있었을텐데요. 정대현 서양전통에서 이세계 저세계 설명하는 방식으로 두 세계라는 전제를 도입해가지고 한 것인데요. 주어진 것이 전부고 신의 것 모르는데 여기 것도 모르는데 이야기하기 싫다. 최 선생님 말씀과 관계해서 최근에 와서 왜 상상력이 화둑가 되고 있는가? 신화가 각 대학에서 학과목으로 채택이되고 왜 그럴까? 제 생각에는 중세에는 신본주의라는 것 때 문에, 독재체제에서는 독재라는 것 때문에 인문학이 선명한 과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제는 독재도 없지요. 신도 없지요. 전통적으로 인간을 수천년 간 얽매었던 억압기제들이 풀어지고 해체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유로운 것 같지는 않고요. 지루하고 권태롭고 불만스럽고. 그러니까 인문학이 표적을 정확하게 잡아야 하는데 그것이 안 잡히니까 우 리가 상상력이 모자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상상력을 배우기 위해 신화, 옛날 에 우리 조상들은 어떤 신화를 만들었는가, 왜 만들었는가, 어떻게 만들었는가, 그 공부 의 주제가 우리한테 오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의 과제는 옛날하고 지금하 고 똑같다.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더 자유로운 상황으로, 소극적인 자유가 아니라 적 극적이 자유로 자유의 완성, 그 쪽으로 가는 큰 과제는 있는데 구체화시키지 못하는 것 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두 분이 말씀하신 이견에 대해 과학은 현실세계를 다루고, 인지세계를 다룬다고 했을 때 전체 틀은 인정을 해요. 그러나 그것을 번역을 해서 이해하고 싶은데요. 과학은 현실 세계적이다라는 말씀을 과학적 상상력은 항상 가설이 제시되었을 때, 테스팅이 없으면 과학적 가설이 아니다. 과학적 가설은 상상력을 발휘하지요. 과학적 가설은 공동체가 하 거나 과학자가 패러다임을 옮기려 할 때 상상력을 발휘하는데 테스팅 가능해야지요. 육 안으로 인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이론용어처럼 가설적인 엔티티를 도입해서 어떻게 하겠 다라고 했을 때 전체는 어떻게든 나와야 하잖아요. 육안으로는 인증 못하지만 시스템을 통해서 그것이 성공적으로 된다면 컨펌 가능하다. 그래서 그 말은 다르게 받아들이면 어 려움은 없는 것 같고요. 과학은 인과적 언어임에 반해, 인문학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증명 부담을 덜어온 것이

21 아닌가 하는 의문에 대해서 선생님의 말씀은, 김정호 선생님처럼 인과로 얘기했는데 제 가 몇 년전 까지만 해도 잘 따랐는데 이제 안따른다. 러셀, 퍼트남도 인과 조건으로 과 학자가 연구하는가? 다 통계를 가지고 하는 것 아니냐? 이제는 확률의 대상명제와 기본 명제 간 관계에서 확률이 계산되는데 그것을 과학자가 어떻게 구성하느냐, 어떻게 묻는 가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래서 확률도 자연현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의 구성에 따 라 확률의 값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주관적 확률,, 언어의존률이 있더라도, 테스트 조건 하에서 되기 때문에 인문학과 다르다. 인문학은 아주 정확하게 말씀해주셨는데, 언어의 논리 안에서 상상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규제가 풀린 상상은 아니지요. 어떤 책에서는 인 간이 날 수 있다라는 상상을 할 수 있지만 어떤 책에서는 인간이 날 수 있다는 상상을 못하지요. 어떤 책에서는 아버지가 내 아들이었으면 하고 상상할 수 있다고 해요. 그러 나 어떤 책에서는 상상이 안되요. 그리고 아까 둥근 사각형, 어떤 책에서도 상상이 안 됩니다. 그리고 아까 바하 이야기 하셨지만 셀프레퍼런스라고 하는 것이 음악, 논리나 수학에서 재미있어진다면, 자기가 자기 자신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표상하면, 현실에 서는 리얼라이즈드될 수 없지만 시,공에서 그려낸 것이 에셔이지요. 상상될 수 있는 것 이 있고, 그것이 모두 현실에서 구현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내가 처음 말씀드린 가설, 과학과 인문의 상상력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 다만 대상, 도구가 다른 것이다. 증 명의 개념으로 둘을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증명은 결국 무엇이냐? 삼단논 법, 디덕션 아니거든요. 테스팅 조건 하에서 이런 전제를 주면 이런 결과가 나올것이냐 하는 것에 대한 스텝바이스텝의 디스크립션이다. 디덕션 증명이 아니고 테스트 과정의 디스크립션 증명이라고 할 때 받아들여 지지만, 디덕션은 아니잖아요. 넓은 의미에서 증 명을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구분해주는 메타포로 얘기할 수 있지만, 좁은 의미로 이야 기하면 과학적 공동체 안에서도 수용하기 어려운 그림이 아닌가 싶네요. 이덕환 이제 증명문제로 넘어가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현실과의 관계를 증명으로 해석하시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아까 인문학적 상상력이 증명, 즉 테스팅의 부담을 덜어버린거다라고 한 이야기는 상당히 재미있는 것 같아요.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어떻게 그랬느냐도 재미있을 것 같고 왜그랬느냐도 재미있을 것 같고 요. 그 이전에는 증명의 부담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거기에 어떤 문제 때문에 덜 어버리려고 했을까? 최재천 소위 인문학을 하시는 선생님들은 그것을 동의 안하시는 것 같은데요. 정 민 제 생각은 선생님 말씀에서 미끄러져 나온 것인데, 자꾸 두서가 없어지는 것 같아서 그 냥 꺼내 놓는 차원에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어느날 신화학이 각광을 받고 상상력이 화두 가 될 정도로 주목을 받는다는 것이 우리 사회 구조가 상상력을 억압하는 폭력적인 구 조로 되어있다는 것이고. 억압이 소통을 막는 방해기제로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렇다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과학이 그동안 증명을 통해 해체시켜버 린 상상력을 복원시키자는 움직임하고도 관계가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이런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조선시대 나나니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나 나니벌이 새끼를 낳을 때 되면 알을 놓고는 어디가서 배추벌래 애벌레를 잡아와서 독침 을 쏴서 마취시켜 자기 집에 넣거든요. 그리고 봉해버려요. 밖에서 계속 이렇게 기도하

22 는 모양으로 빌거든요. 조금 있으면 그 안에서 애벌레를 먹고 알들이 다 까고 나옵니다. 그런데 옛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냐면, 애벌레에 대한 글이 굉장히 많아요. 이게 무엇 이냐면 남의 새끼를 가져가서 넣어놓고 나와 같은 놈 나오게 해주십시오 하고 빈다는 거에요. 그 날개 비는 소리가 류와 비슷하다고 해서 류와지축이라고 해서 용어가 나옵니 다. 그런 조선시대 사람이 쓴 글을 보더라도 저 이상한 짓을 해요. 빕니다. 그러니까 조금 있다 새끼가 나올거다. 그런데 봐라. 들어간 놈이 엉뚱하게 똑같은 새까가 돼서 나오니까 마법이 일어났다는 것이지요. 그 안에 놓은 알이 이걸 잡아먹고 나왔다는 생각 을 못하고 이게 엉뚱한 걸 집어넣고 자기 새끼로 변하게 해달라고 비니까 하늘이 응감 해서 나왔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예전에 철새개념이 잘 없으니까. 제가 새에 관한 책 정리하면서 쓴건데요. 어 느 새가 잘 있다가 싹 안보여요. 기러기 같은건 이동하는 게 보이니까 알 수 있지만 어 느 순간 싹 안보이면 항상 그걸 설명하는 것이 다른 동물로 변했다고 설명하는 거에요. 그런 예가 수 십가지 나오는거에요. 심지어는 겨울에 논밭을 파면 알같은게 뭉쳐져 있는 데 그걸 까면 꾀꼬리다. 이렇게 설명하거든요. 이건 과학적 증명이 안 되는 상상의 세계 인데, 과학적 정보에 의해서 사실이 아니고 엉터리고 파괴되어 버리니까. 옛날에는 긴밀 한 관계가 있어서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느 고리 속에 있다는 건데 이게 과학적 증명에 의해 깨어져 버렸거든요. 우리가 믿었던 어떤 진실이라든가 종교적인 엄숙이라든가 염원 이나 바람, 나나미벌은 부모가 자기 닮은 자식 낳게 해달라는 염원을 상징하는 동물로 되었는데 어느순간 허망한 것으로 바뀌어버렸죠. 이런 것들이 상징을 해체시키고 상상을 해체시키고. 과학이 해체시킨 우리삶속에 중요한 가치를 신화의 체계에서 복원시킴으로 서 다시 그런 삶의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이런 움직임과 관계가 된다면 어떨까 생 각합니다. 엄정식 그것 연결해서 저는 보완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상상이 나 증명에 공통점이 있다면 설명력이다. 이는 과학철학의 용어인데 둘 다 설명력이 있 다. 근데 상상력과 증명의 설명력이 상상적 설명력으로부터 과학적 증명쪽으로 넘어오고 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냐면 개기일식 같은 것 있잖아요. 그런게 갑자기 생겼을 때, 이 것은 신이 노했다. 이렇게 하면 설명이 되잖아요. 상당히 안정감을 주고 다들 반성하게 되고 우리 중에 누가 나쁜짓을 했다. 그래서 어떤 놈을 골라서 처형하면 굉장히 안정감 을 주지요. 그것은 대단한 설명력이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추장 아들 한명이 선교자 하고 연줄이 돼서 옥스퍼드에서 천문학을 공부하고 와서 아버지 그게 아닙니다. 동그라 미 세 개 그리고 달이 어디쯤 와 있다고 설명한다면 이건 설명력이 전혀 없거든요. 그 사람한테는 이건 천문학적 설명력이 없는것이지요. 근데 설명의 스코프가 다른 것 있자 나요. 그것은 어떤 사회 어떤 사람한테만 한시적으로 설명력이 있고, 개기일식을 설명하 는 천문학적 설명은 보편성을 띈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부족 중에 누군가를 처형했 을 때 평화가 오면 그게 설명력이 있다는 것이잖아요. 근데 그게 제한되어 있다. 그것도 설명력이 있었던 것은 상당히 귀납적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처음부터 주장하는게 아니라. 추장이 말하는 건 항상 옳았다. 왜냐면 권위를 부여했으니까. 과정이 귀납적인 과정인거거든요. 권위가 많으니까 연역적으로 설명을 하는거고. 과학적 설명하고 상당히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과학적 설명과 차이가 있다면 엄청난 보편적 스코프 의 디스크립션이 가능하다. 굉장히 단순하다. 그런 차이가 있다는 것이지요. 보편적으로

23 대체되고 있잖아요. 또 하나 재미난 것은 트로이라는 영화 본 적 있어요? 브래드피트가 나온 영화인데 그 거 혹시 본사람 없어요? 저는 그 영화보고 상당히 놀랐어요. 희랍신화에는 익숙한 편인 데, 코스웤도 했고요. 그런데 대게 아킬레우스가 주인공인 영화잖아요. 아킬레우스는 사 람이라기에는 너무나 파워풀한 인간인거 있지요. 그런 인간이 있다는 건 상상이 안가잖 아요. 그래서 신이 장난을 쳐서 낳았을거라는 설명을 해야 설명력이 커진다. 그것은 굉 장한 설명력이다는 겁니다. 신이 작동했을 것이다. 제가 이 영화를 내가 왜 끄집어내냐 면 그게 정설인데 희랍신화에, 그리고 일리야드 전체가 신들의 싸움이자나요. 근데 이건 신을 깨끗이 제거해 놓잖요. 완전히 휴머니스트로서 한 인간도 강할 수 있다는 비참하게 죽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데 굉장히 놀랐거든요. 신들이라는게 도저히 이런 위인이 있 을 수 없다. 신이 장난치지 않았으면 이런 미인이 있을 수 없다. 어지간히 예뻐야 이야 기를 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미의 여신이 어떻게 했다고 해야 설명이 가능하다는 겁니 다. 근데 아까 정 선생님 말씀하신 신이 설득력이 없다는 것은 니체가 신이 죽었다는 것 은 뉴턴적, 데카르트적 설명의 final authority는 없다는 것이거든요. 그런 객체는 존재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의 합리성은 허구다. 그런 의미로 설명력을 계속 쓴다면 신은 설명력이 없다는 것이지요. 질서정연해야 그 정점에 신이 있 고, 그것을 이만큼 해서 설명이 안될때 리퍼해야 코히어런트한데, 이게 완전히 질서정연 하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는거지요. 신이 비집고 들어갈 곳이 없잖아요. 그러면 혼돈의 신을 설정할 수도 없는것이고요. 그래서 나는 상상과 증명의 공통단어를 설명력으로 본다면 설명하는 방식이 변모되었 다. 지금 보면서. 실제로 우리가 신을 믿는다 생각할지 몰라도 보통사람들은 다 믿어주 었다는 겁니다. 질서를 바라니까. 그런 것이 있어서 자기를 정당화해주는 기제가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왜 프리고진같은 사람이 믿어야 하느냐, 리처드 로티같은 사람은 필연성 이란 허구다. 가설이다. 여기서 신이 설정이 된거다. 혼돈이 팩트다. 이렇게 생각하면 신 을 도입할 자리가 없는거 있잖아요. 그랬을 때 우리가 상상력의 파괴랄까. 그 설명력을 요구하지 않는 것 있잖아요. 설명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리고 모든 설명은 제한된 설명 이다. 그러니까 거기서 다원주의가 나올 수 없고,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 관계가 좀 더 선명해지지 않을까. 최재천 개인적으로 부끄러운 이야기를 조금 보태고 싶은데요. 제가 몇 년전부터 한 두군데 썼 고 쓰고 싶은 책의 제목이 설명의 뇌인데요. 인간의 뇌의 진화를 제가 설정할 때, 가장 처음에 진화한게 생존의 뇌라고 그러거든요. 숨고, 살아남아야 하고, 먹는 걸 찾고, 대부 분의 동물들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다음에 발달한 것이 감정의 뇌이다. 그 다음 발 달된게 생각의 뇌이다.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누어 왔어요. 인간이 생각의 뇌를 가진 가장 대표적 동물이고요. 그런데 한동안 인간만 생각의 뇌를 가지고 있다고 우겼는데, 이게 가차없이 과학의 발달로 다 무너졌잖아요. 침팬지도 다 하고 편형동물 플라나리아도 몇 번 훈련시키면 기억하거든요. t자에다 놓고 t에왔을 때 전기충격을 몇 번 주면 거기 와 서 전기충격을 안 줘도 왼쪽으로 꺾어요. 그 뇌야 좁쌀 아래 100분의 일도 안되는 뇌인 데도요. 그걸 생각이고 할지는 별개 문제인데요. 그래서 다른 동물들과 우리 인간들의 차이를 생각의 뇌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을 하는 것이거든요. 그럼 인간의 뇌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설명의 뇌다. 저희 집에 개가 열 마리가 같이 사는데 이놈들

24 끼리도 자기네끼리 문제해결을 해요. 하지만 설명하지는 않아요. 그냥 그 나름대로 있고 물어뜯고 해서 질서를 잡아놓는데, 유일하게 인간만이 설명하는 동물이라는 것이지요. 제 관찰에 의하면. 그렇다면 이게 어떻게 보면 우리 인간의 뇌의 진화에 어느 순간에 설 명하기 위해 태어난 것들일텐데요. 그 방식이 어떻게 되어가느냐. 저는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오히려 선생님 말씀하시는 다원주의로 끌고 가버리면 조금 걱정이 되요. 무엇 인가 뇌 구조적으로 같은 무언가 있어 주어야할 것 같은데요. 인문학 쪽 몇몇 분야에서 는 거꾸로 가는 것이 보이는데요. 그동안 자연과학이 압박을 줘서 상당히 증명하고 객관 성을 띄려고 하다가 그것을 막 집어던지는 인문학적 분야들이 속속 생겨나요. 그냥 주관 적인 경험 중시해서 미국의 인류학과에서 아프리카교수들이 자리를 잡고 그래요. 그 사 람들은 종전의 그런거로 논리적으로 하는게 아니라 내가 아프리카에서 살면서 그러면 그걸 논문으로 쓰는데 그게 막 받아들여진다는겁니다. 그동안 과학에 등 떠밀려서 객관 성이니 한거 다 지겹다는게 생기더라고요. 과연 이게 과연 옳은건가. 과학자의 입장에서 또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건 다원주의는 아니겠지요? 이대일 가령 미국의 패러사이콜로지 분야에서 헤성처럼 떠오르는 분이 (?) 제가 이 문제가 말 입니다. 아까 과학이 인간의 상상력을 대체했다 그러는데 왜 그게 상상력의 대체냐. 오 히려 과학적인 상상력으로 세상이 풍요로워졌고, 우주를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창구 를 내줬는데 왜 과학탓을 하냐는 이야기를 합니다. 근데 캔윌버가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 인가하면, 왜 주관성이 검증 불가능성이냐는 겁니다. 과학에서는 검증가능성 아닙니까? 소위 객관성이고 보편성이라는 것이 누가 그런 방식에 따라 누가 그걸 테스트하더라도 동일한 결과가 나올 때 받아들이는 것 아닌가. 왜 주관성에 대한 검증이 주관을 통해 불 가능하냐는 문제를 제안하거든요. 거기 내제되어 있는 것이 종교입니다. 다음 단계에서 종교에서 과학이 득세를 하게 되는데, 말하자면 상상과 증명의 세계가 등장한 것도 바로 과학적 세계가 하도 우위를 차지하니까 어떤 보편타당하다는 것에서 억압이라고 할까요 자유스러움이라고 할까요. 캔윌버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무척이나 공감했습니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과 너가 이야기하는 것이 패턴은 다르지만 내용이 같으면 그것이 증명이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수학적 증명만 가지고 이야기하라고 하는지 그런 이야 기를 하고 있거든요. 최재천 후반전 넘어가기 전에 좋은 이야기하셨습니다. 쉬는 시간 조금 가지고 후반전 시작을 거기서 하겠습니다. 최재천 다시 환기시키는 의미에서 이대일 선생님이 다시 한번 간단하게 정리를 해주셨으면 합 니다. 이대일 상상력이라는 문제 혹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증명과 상상의 문제 이것이 특히나 15세 기 산업혁명과 르네상스 이후에 과학적 세계관과 과학기술적 세계가 퍼져나가면서 거기 에 따른 세계관이 지배적인 구조로 되면서 사회시스템이나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라든지 다수의 엄밀성이라든지 그런것을 요하는데서 발생이 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에 따라 이렇게 되어오다 보니까 제가 알고 있기로는 캘윌버랑 남미쪽에 폐쇄신경생물학 하시는 분 있지요. 그분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주관주의 말씀하셔서 생각이 난 겁니다. 이 분

25 은 영성쪽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왜 도대체 검증이라는 것이 보편이라는 것이 꼭 수학 적 논리성을 따라야만 하는가. 공유한 체험이 언어체계로 이루어질 수 있고 이것이 증명 가능성이라고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개인적으로 공감하고 있고, 기존의 종교의 역할을 과학이 대체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인데 과학적 세계가 있으면서 빚어진 이러한 현대사회의 문제와 더불어서 앞으로 추구해나가야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의 세상, 즉 기독교적이거나 불교적인 것이라기 보다 일종의 영성적이라는 것의 인식의 보 편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재천 김무경 선생님, 사회과학쪽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꺼리가 있을텐데요. 김무경 패러사이콜로지 말씀하신 것 같은데 제가 워낙 과학에 문외한이라 여쭤보고 싶은건데 요, 기존 과학 절차를 따라 나온 결과들 중 패러사이콜로지의 결과와 합쳐지는 것이 없 는지 알고 싶은데요. 제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공간차원에서 논세퍼블리티라고 할까 요? 대상을 한 곳에 로컬리제이즈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xy 좌표 속에, 극단적으로 말 하자면 도처에 의미 있는 대상이 있다. 의미는 도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간 상으로 볼 때도 일종의 대칭성이지요. 이전에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비대칭성이 아 니라 비비대칭성이라고 할까요? 동일한 시간이 과거에도 일어났고 현재에도 일어났고 미래에도 일어났고요. 비비대칭성을 이야기하는 물리학자들이 있다고 문외한으로 말씀드 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간도 그렇고 공간도 그렇고 일종의 로컬리제이션시켜서 그걸 밝혀내고 넘어 서는 것이 결과로서 나왔다는 것이지요. 그건 예를 들어서 같은 의미가 도처에 있다는 것은 훨씬 패러싸이콜로지 같은 느낌을 받거든요. 융이 동시성이라 이야기할 때, 혹은... 라는 싸이코에 대해 이야기할때는 그런 것이지요. 예를 들면, 자명종이 울려서 잠을 깨는데, 자명종이 울려서 깬 것 같지는 않은 거지요. 바로 동시에 하는 것이지요. 내가 그 친구를 생각하는데 전화가 온 거지요. 그런 것은 아마 같은 의미형이 여기저기 있기 때문에 동시에 일어나는 거겠지요. 제가 여쭈어보고 싶은 것은 혹시 어떤 자연과학과 인 문과학에서 차별성에 대해 많이 말씀해주셨는데 그걸 차별성을 견지하면서도 그 결과가 패러싸이콜로지에서 말하는 결과로 합쳐지면서 오히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합쳐지는 주장까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제가 자연과학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이렇게 건너띄면서 여쭈어볼 수 있고요. 예를 들어 신과학에서 이전의 결과들이 동양의 전체적 과학전통과 만난다. 그런 결론인 것 같습니다. 최재천 그 부분은 아마 이덕환 선생님한테 여쭈어보면 절대 아니라고 말하실 것 같은데요. 이덕환 저는 조금 동의하기 힘든 이야기거든요. 인문학적 상상력하고, 자연과학적 증명이나 상 상력에 한정되서 이야기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같은 거라고 해도 상당히 차이는 계속 있을 것 같아요. 융합을 이야기하고 그럴 적에도 같은거니까 같이보자는 건 성립이 안 될 것 같고요. 김무경 말씀 중 죄송한데요. 다른 방식으로 갔는데 결과는 같다는 걸 말씀드리는것이지요

26 이덕환 같다면 어느 한쪽으로 귀속을 시켜야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어프로치했는데 양쪽이 다 같다는 건 조금 그렇습니다. 김무경 예를 들어 신비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것과 자연과학자들이 고유한 방법을 통해 이야 기하는 것하고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이 있을 수 있지요. 이덕환 같은게 생겼다면 어느쪽으론가 넘겨줘야지. 넘겨지게되지 않을까. 최재천 그점에 대해서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셔야 될 것 같은데요. 정말 선생님이 말씀하신 다원 주의의 어떤 부분일 것 같은데요. 정대현 엊그제 기자가 전화를 했는데 도서관 인문학 철학에서 지난 일년동안 대출빈도치를 조 사를 해서 TOP10을 골랐대요. 도서관 이용자 학생들의 TOP10 철학도서 목록빈도치가 학생들 건강한 독서경향을 나타내는건지 코멘트를 해달라고 저한테 책 열권을 보내왔어 요. 제가 보기에 저는 놀랍게도 참 건강하다고 했는데요. 단서가 있어요. 이게 심리학책 이 네 권이나 있어요. 존듀이는 심리학을 철학에 집어넣었는데요. 아까 선생님이 철학과 인문학의 증명부담을 덜어주셨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존듀이가 20세기 초 사람인데 그 때와는 다르게 심리학이 이제는 자연과학이잖아요. 이제는 제가 대학 다닐 때 만해도 인 간이란 무엇인가 하면 철학자들에게 물었어요. 그런데 요새는 다 심리학자에게 물어요. 그래서 통계, 확률, 여기에 아까 대상명제와 기본명제가 디스크립션 언어로 되기 때문에 여기에 주관성이 있는 것이지 주관성이 들어간 명제가 아니면 확률이나 통계를 낼 수가 없지요. 주관성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그러나 확률이 인간과 독립해서 물리세계에서 발생 하는 수치가 아니라 주관성이 들어와요. 그러나 주관성이라고 하는게 아무렇게나 되는게 아니잖아요. 이 과학자 저 과학자 따라서 다를 수 있어요. 그러나 동료 전문가 공동체가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올바르고 정당한 디스크립션이냐 평가를 할 수 있거든요. 주관성 을 인정하더라도 테스팅 조건에서 절제가 되기 때문에 공동체가 요구하는 객관성에 도 달할 수 있다 생각을 해요. 저는 이덕환 선생님의 가는 방법이 다른 한 같은 결과에 왔다 할지라도 같다 할 수 있느냐는 말에 조금 더 동조적이에요. 제가 다원주의적인 인식론을 해서 그런 거 같아 요. 무엇이냐면 같은 결과 문장으로 명제화 되어있을 것 아닙니까? 가령 달리는 기차에 서 탁구공의 속도가 얼마다. 과학자가 계산해서 내는 속도의 값과 명상이나 신비적 체험 으로 해서 도달할 수 있었다면, 도달한 값 하고는 같은 기호로 구성된 그 문자들의 나열 이지만 의미를 말하는데 A의 의미에 도달하게 되는 문법이 있어요. B는 거기 도달하게 되는 문법이 있고, 그러기 때문에 같은 기호나열이기는 하지만 A의 경험내용과 B의 경 험내용이 다를게 아닌가. 다원주의에서 이것이 어떻게 되느냐. 다원주의가 선생님들께 말씀드린 대상명제와 기본명제 디스크립션에 주관성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다원적이다. A 과학자가 이렇게 디스크라이브하는 것에 대해서 B 과학자는 이렇게 디스크라이브한 다. 그러나 어떤 제한적인 조건에 의해서, 테스팅 컨디션에 의해 수렴해간다는 것이지 요. 초기에는 다양한 디스크립션이 존재해 다원주의지만 과학자 공동체가 수렴해간다. 최재천 타당하지 않으면 버리셔도 되는데요. 기가 혹시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

27 서 꺼내봅니다. 우리가 침을 맞아서 삔게 풀리고 하는게 실제 현상이잖아요. 그런데 양 의학에서는 다른 방법으로 그 다친 걸 풀어내려고 하고, 한의학에서는 기에 입각한 무엇 인가로 풀어내는데 이게 최근에 와서 서울대 물리학과에 서광섭 교수라고 있는데, 기의 물리학을 풀어내려고 전력투구하고 계세요. 북한에 있던 그 양반이 혈관처럼 기의 경락 의 실체를 밝혔다해서 난리쳤다 사라졌는데 그것을 이분이 찾아내고 있어요. 상당부분 증거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러면 이 일련의 이야기들이 서광목교수가 하시는 일은 과학을 끌고 와 증명하려는것이지요. 그런 증명과정이 없더라도, 저는 참 애매해요. 이게 외국의 학자들중에 10년전부터 저와 기 연구를 하자고 졸라대는 분이 계세요. 나 는 너희 나라나 중국에 여행을 가거나 해야하는데 너는 교육을 다 받았으니 그냥 앉아 서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시면서 연구비까지 줄 테니 해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 답 변은 무엇이냐면 선생님이 기 연구하다 안되도 말년에 이상한 짓 했나보다 끝나지만 전 아직도 가야될 길이 많은데 저는 망조듭니다. 도대체 그걸 유물론적으로 풀어낼 수 있겠 느냐. 방법이 안보인다고 말하고 10년동안 빠져있었는데요. 그 사이에 서광섭 선생님이 물리학을 가지고 와서 풀어내겠다고 하시고 계십니다. 그런 게 없더라도 침 맞아서 낳았 다는. 그렇게 풀었든 양의학에서 풀었든 결과가 똑같으면 같은 건가요? 이대일 조금 아까 말씀하신 핵심이 어떤 문제에 대한 접근방법과 해결방법이 다르면 결과가 같더라 하더라도 결과는 다르다. 이렇게 정리가 될 수 있습니까? 정대현 A와 B가 같은 명제도 아니고 문장도 아니에요. 그러나 같은 기호로 되어 있어요. 겉으 로는 같은 문장과 명제인 것처럼 보여요. 같은 기호로 되어있으니까. 그러나 A는 과학자 가 이 과정을 거쳐서 도달했고, B는 다른 방법으로 도달한거지요. 그래서 부여하는 의미 가 달라지는 거에요. 기호는 같지만 그 의미가 달라요. 엄정식 이대일 선생님 제시한 문제부터 길을 따라 오다가 길을 잃었거든요. 주관성의 문제를 제기하셨잖아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차이는 주관성의 유무다 나는 이렇게 보거든요. 완전히 우리가 과학철학에서 가치중립적이냐 과학이 중립적이지 않지 요. 그러나 의도한다는 것이지요. 주관성이 개입되는 요소를 최소한도로 극소화하려고 애쓰는 것 있잖아요. 사회과학도 마찬가지이지만 자연과학을 프리머티브하게 보는 것은 그게 참 힘든 것 있잖아요. 객관화하기가요. 객관화함으로써 잃는 것은 많지요. 잃는 게 없다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러나 그 얻는 게 더 소중하기 때문에 과학적 방법을 매우 소 중하게 생각하는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의도한다. 그런 것이 전부 주관성을 미니마이 즈하는 방법이거든요. 그래서 객관성을 극대화하고요. 그런데 인문학은 오히려 그 주관 성이 소중하다는 것이거든요. 주관성의 존재자체를 그렇게 여긴다는 겁니다. 우리가 천 문학하고 별을 바라볼 때, 천문학자는 진짜 자기 존재와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별을 보려 애쓰잖아요. 그 비유를 하면 칸트가, 나는 위대한 발견이라고 보는데, 결국 내 가 보게 되어있다는 것이거든요. 내가 보는데 오히려 별의 객관성에 도달하려면 나의 존 재를 극소화하는게 아니라 나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나의 구조가 어떤지 바라봄으로써 그 함수를 계산할 때 오히려 더 객관적인 별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주 관은 버릴 수도 없고요, 그래서 캔윌버의 책을 저도 가지고 있는데, 이 사람 책의 특징 이 아규먼트가 없어요. 그래서 설득력이 약하다는 것이지요. 감동은 주지만. 그래서 이

28 사람이 하는 이야기도 비트겐슈타인이 예전에 한 말이지만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 무 모하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차이를 극소화하려고 애쓸게 아니라, 저는 항상 어디서 강의할 때 인문학의 특징이 있다면 자연과학이 이론을 정립할 때 언어적 요소에 너무 많이 기대니까 로티같은 경우는 그것도 하나의 문학이라고 이야 기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메타포를 보편화시켜버리는것이지요. 실재를 지칭하는것도 메타포다. 실재라는 메타포라고 이야기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정말로 환원이 안 되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도 내가 본다는 사실, 즉 주관성이지요, 주관성은 함부로 환 원되지 않는다. 그랬을 때, 오히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차이가 선명해지고. 그 선명함을 받아들이고 조심스럽게 접근할 때 둘 다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기지 않을까 싶고 요. 그리고 기 있잖아요. 저도 그런 거 많이 쫓아다녔어요. 유학가기 전에 삼각산에 도사를 따라다니면서 초능력을 배운다고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배운 줄 알았거든요. 유학시절 룸메이트한명이 들어왔는데 완전히 마비되었는데 재벌 아들이에요. 그런데 캠퍼스생활로 생명을 연장시키려했던 것이거든요. 내가 돈이 많이 딸릴 때라 잘 가두어 놓고 초능력을 썼거든요. 근데 안 되더라고요. 돈을 너무 생각해서 그랬는지. 그런데 나는 기 있잖아요. 그건 팩트인건 사실이다 이거에요. 근데 그걸 설명하는 방식이 틀렸다. 다른 방식이 있 을거다. 근데 고친사람이 모른다 이거야. 이게 설명력이 너무 세거든. 기로 설명하는 거 있죠. 예를 들면 그래서 설명력이 없다는 거에요. 그건 오른손 들었을 때, 하느님의 섭리 야. 하나님의 섭리로 모든걸 설명할 수 있거든요. 그러면 알았어 하면 되거든요. 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구나. 알 수 없는 힘이 작동했다는 뜻이구나. 우리가 심리학에 서 무의식을 굉장히 철학쪽에서 대단치 않게 생각하는 게 무의식 있잖아요. 그 알 수 없 는 무엇으로 설명하려는 시도 있잖아요. 무의식은 그 자체로 아이덴티파이 안되서 그 자 체로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는 거에요. 이는 포퍼식으로 하면 폴스파이가 안되는거에요. 고쳐졌어도 기 때문에 고쳐진건지 그 사람의 이상한 능력때문인건지 설명이 안된다는 거에요. 최재천 선생님 설명하신 건 과학적 설명인거 같은데요. 기를 하는 분은 기로 설명을 하시면 그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잖아요 엄정식 그러니까 고쳐진 다음에 설명되는 과정에서 설명의 주체를 기로 설명했을 때 설명안되 는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럼 무엇이 기가 아니냐 말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것이 과학화되지 않은 것이지요. 정 민 예를 들면, 미신이나 반과학이나 그것이 사장시켜버렸던 가치들을 과학의 이름으로 복 원시키자. 아니면 상상의 언어를 과학으로 대체시킨다든가 하는 시도가 되겠지요. 그런 데 지난 번 우리 일차모임으로 주의를 환기시켰으면 하는데, 지난번에 말씀을 하는데 진영순 선생님 입장과 홍사중 선생님 입장이 상당히 불편하게 만난다는 느낌을 받았거 든요. 이게 상당히 번지수가 다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두 분이 생각하는 상상의 방향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렇다면 홍 선생님 생각하 시는 상상은 기성의 가치를 전복시키고 기성의 가치로써는 도달할 수 없는 지점들을 가 치관을 전복시키고 뒤집어엎고 발상을 바꿔서 답답하게 막혀있는 생각의 활로를 뚫어서

29 에너지를 돌리자는 쪽으로 상상인 거 같고, 진 선생님 상상은 학술적인 개념으로써 전 통적인 서구적 지적 전통속에서 상상의 경로를 설명하시니까 한쪽에서 중요한 가치가 한쪽에서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한쪽에서는 의미있는 것이 한쪽에서는 별로 의미 없는 상황이 되지요. 그러니까 결국은 그 때 그래서 상상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을 인정 하고 자연과학과 그걸 나누어보자라고 했는데, 그걸 너무 나누다 보니까 오늘은 이야기 가 다시 맴도는 느낌이 들거든요. 어쨌거나 사이버시대라는 것이 상상이라는 것을 중심 개념으로 불러들이는 촉매가 된 것 같아요. 그러니까 가상현실이라든지, 실재하지는 않 지만 분명히 실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거나 실재하고 있는 것들이지요. 이번 올림 픽에서 불꽃놀이 같은것들이 실재가 아니었는데 다 있는 것처럼 믿게 하는 마술같은 것 들이 일상에서 벌어직고, 착시현상이나 착각현상과 같은 사실이 아닌데 사실로 믿거나 사실인데 사실로 믿지 않는 것 같은 혼란이 벌어지니까요. 여기서 상상이라는 기제를 통해 에너지를 끌어올 수는 없는가? 이것이 상상이라는 화두가 본격화되는 계기인데요. 그렇다면 가상현실이나 사이버시대라는 것은 결국 과학이 연 것인데, 여기서 부족한 부 분을 채워줄 것은 인문학적 상상의 문제니까요. 여기서 코웍의 가능성도 생겨나는 것 같고요. 그런 부분을 조금 화두로 나누어보면 어떨까 합니다. 사이버라든가 과학과 인문 적 상상의 접점과 같은 것들입니다. 정대현 저는 미술사가들 중에서도 백남준을 주제로 박사논문 다룬 분들이 몇 분 계세요. 그 분 들하고 이야기를 해보았는데 제가 백남준 선생을 높이하는 것보다 훨씬 낮게 봐요. 근데 저는 마르셀 뒤샹 수준이다. 그렇게 저는 생각을 하는데, 그래서 왜 그런가를 선생님께 서 사이버 관련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시간공간, 뉴튼 시간공간, 칸트 시간공간, 아인슈타인 시간공간, 그렇게 살아왔는데 저 는 백남준 선생이 20세기 21세기에 인간조건을 작품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고 생각 해요. 왜냐하면 21세기에 사이버로 인간경험에서는 절대적 시간공간이 없고, 상대적 시 간공간도 허물어지고, 상대적 시간공간에서만 해도 앞뒤가 있고 너와 나가 있고, 이것이 있는데 플라스틱 시간공간에서는 앞뒤전후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시간여행 그런 것이 아 니라 우리가 녹화하고 편집하고 이것이 전통적인 기준으로는 북경 올림픽 개막식을 그 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 화를 내야해요. 그런데 지금 우리의 인간조건이 달라져서 화 내 야하는 것인가? 사이버가 우리 실제 시간공간의 확장이 되어버렸어요. 익스텐디스 스페 이스 타임 되어가지고 우리 시간공간이 플라스틱해진거지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젊었 을 때는 어른들이 버릇없다 그러셨는데요. 근데 우리가 어렸을 때, 선배 어른들과 차이 보다 젊은 대학생들하고 차이가 훨씬 더 많이 나잖아요. 스페이스타임의 플라스티시티 때문에, 신인종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요. 그렇기 때문에 엤날에는 인문학하기 참 쉬웠 다고 생각되요. 그냥 교회 권위 죽었어 그러면 되었는데 지금은 죽었어 없어라고 해체할 것이 없는거에요. 우리는 자유롭지 않은데, 우리는 답답한데, 지루한데. 그래서 신화, 상 상력에서 한 수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사이버 조건이, 시간의 플라스티시티가 현대인의 중요한 조건이라고 생각되는데 이것을 어떻게 진단하고 문제가 무엇이며 혹시 기여하는 바는 있는데, 어떤 종교는 철학이 인간이 하나다라고 이야기했지만 인터넷처럼 인간을 엮어주는 것이 얼마나 있었어요? 인터넷은 다 연결해주거든요. 그럼 좋은 점이 무엇인 지.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엇인지, 문제는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30 최재천 제가 그냥 딴지 한번 걸어볼까요. 그런데 그걸 풀기위해서 신화로 돌아가는 건 자연과 학자가 볼 때는 모자라 보이거든요. 신화도 결국은 상상력으로 만들어놓은 그건데. 이를 테면 구라의 창작물이잖아요. 이것을 이제 와서 보고라고 그러고 거기서 파고 있는 걸 보고 그러면 저는 옛날사람들이 한 것을 가지고 거기서 긁고 앉아 있느냐 그럽니다. 그 게 꼭 거기서 정확한걸 찾으려는게 아니겠지요. 그걸 함으로써 더 큰 뭔가를 기대하는거 겠지요. 정 민 예전 월드컵 때 갑자기 치우천왕이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아무런 것이 없었던건데 이 게 하나의 코드가 되어가지고 구심적인 빌미가 되니까 이게 갑자기 폭발적인 에너지로 변화하는 것을 지금도 많이 느끼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이 신화가 가지고 있는 힘이겠 죠. 원형적인 힘인데요. 증명할 수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분명히 그것이 모여서 에너지화 될 때는 가공할만한 파워를 가져오니까 그런 에너지의 근원이면서 점화장치로 써 상상의 문제를 보자는 것이지요. 그런것이 오늘날 미래상상연구소의 취지에 가깝다고 생각하거든요. 창의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기제로서의 상상력의 문제이지요. 에너지 공급의 근원으로써 상상력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복원시킬 것인가의 문제를 예전에는 상 상이란 허망하고 황당하고 이런 것으로 치부했던 것이거든요. 환상과 가상과 공상과 몽 상과 같은 주변개념들과 관련이 되었었거든요. 엄정식 제가 조금 다른 개념을 하나 도입해볼까. 영어로 리얼하다는 거 있자나요. 그 영어로 리얼하다고 두 경우에 다 쓰는데, 사이버스페이스가 리얼하다. 실감난다는 뜻이거든요. real to me. 그런데 또 하나는 실재한다는 뜻이 있거든요. 자연과학에서 다루는 것은 실재를 다루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인문학에서는 리얼한 것을 다루거든요. 그런데 실재 를 왜 리얼이라고 그러냐. 반복적으로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이거든요. 반복적으로 확인 이 가능하니까 그것이 3차원의 세계에서는 물질이 된다는것이지요. 물질로 존재하는 것 은 실재한다고 그러고, 상상 속에 실감난다고 말할 수 있을 지언정 실재한다 말할 수 없자나요. 그런데 하느님, 신 같은 경우에는 대게 인간의 한계성 때문에 완전성을 지향 하는 입장에서 똑같은 걸 리얼하게 확인하지는 않지만 실감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신 이 그런 뜻으로 리얼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편인데요. 물질적 대상보다 영향력 을 미칠 수 있다. 리얼리티라는 말로 상상의 세계나 증명의 세계를 엮어볼 수 있지 않 을까. 둘 다 리얼한데 하나는 실재한다고 그러고 하나는 실감난다 하지만 영어로 전부 다 리얼하다. 그런데 버츄얼리얼리티 있잖아요. 해석이 많지만 사실상 실재한다는 거 같 다는 것이거든요. 가상현실이 아니라 너무너무 리얼해서 사실상 실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거든요. 최재천 실재로 우리 아이들이 많이하는 리니지 같은 경우는, 그 아이들은 그 속에서 살잖아요. 그 속에서 살고 그 속에서 자기가 선택한 아바타를 통해서 협동해서 나라를 건설하고 망하고 이런 것을 끊임없이 한다는 말이에요. 엄정식 맞아요. 그것 때문에 자살도 하고요. 그래서 이게 너무 실감난다. 이것은 관념상의 문 제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요. 그리고 실재한다는 그 리얼은 실제로 존재하고. 내가 보지 않아도 실제로 존재하고요. 그런데 저는 칸티안이라 그런지 몰라도 칸트는

31 말하자면 이 3차원의 세계를 버츄얼 리얼리티로 봤거든요. 말하자면 누메나가 실재하는 건데, 우리가 어떤 기제를 통해 보아낸게 이거다. 그래서 이건 우리 삼차원에서는 반복 이 가능하고 여러 삼자가 확인할 수 있고 메뚜기들이 모여서 육각형으로 보애는 것이 실재한다고 말하듯이 이게 실재한다.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칸트한테는 버츄얼 리얼리티 하고 그 리얼리티하고 matter of degree의 문제이지 kind 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게 되 면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증명도 matter of kind의 문제는 아니다. degree의 문제 이다. 물론 우리가 그 차이를 우리가 무시하는건 아니지요. 그래서 그런 관점에서 우리 가 버츄얼리얼리티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조금 더 폭넓은 시각이 생기지 않을까. 정대현 그래서 칸트적 관점에서 사이버스페이스를 해석하면 무엇이 되지요? 엄정식 사이버스페이스를 해석하면 그걸 구성하는 구조 있잖아요. 그 선험적 조건들을 분석하 면 완전히 상상의 소산은 아니다. 문자 그대로 버츄얼하다고 보는 것이지요. 이게 버츄 얼 하듯이요. 내가 얘기하려고 하는것은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사실상 실재하는 것처 럼 보인다. 왜냐면 우리가 진짜 실재하는 것은 알 수 없고, 12개의 범주와 뉴턴적 시공, 즉 오성형식의 12개범주하고 직관 말하자면 감성형식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그 범주가 얼개를 만들어서 3차원 세계가 나왔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아무리 몸부림쳐도 그런 관점에서 볼 수밖에 없다. 그게 허상이라는 게 아니라 필연적으로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는 걸 이야기하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아까 이야기하려던 리얼리티의 문제 있 잖아요. 이것은 관념속에서만 리얼하고 이것은 버츄얼리 리얼하고 이것은 리얼리 리얼한 그 구분은 상당히 정도 차이의 문제가 된다. 최재천 제가 들은 이야기인데 리니지게임에도 영웅들이 있다네요. 한번 그 최고수 영웅이 신촌 에 떴다 하니까 가상에 세계에서만 놀던 애들이 실제를 보기 위해 신촌에 교통이 마비 될 정도로 몰려들었대요. 이게 제가 선생님 이야기 들으면서 무언가 있을까 하고 던져보 는 건데요. 정 민 자꾸 섞이는거지요. 자꾸 상상이라는것이 삶속에 끼어들었는데 문제는 그동안 과학기술 의 발달이 우릴 자유롭게 해줄 것으로 알았는데 우리를 더 구속하고 더 답답하게 만들 었고 자유로워지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답답해지는 소이연을 찾아가지고 그것 을 해방시키기 위한 통로를 개발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 통로 중 상상이라는 통로가 가 장 유력한 것이 아닌가? 이것 아닌가요? 그렇다고 할 때 지금 말하는 게임이나 그런 것 들이 가상현실과 실재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벌어지는 법죄라든가 상상이 가져오는 그 런 부정적인 면들도 있지만, 이것의 속성을 잘 파악해서 긍정적인 에너지로 코드화시킬 수 있는 방법 같은 것을 찾아보면 좋겠는데요. 아까 이덕환 선생님 정리해주신 것 중에 인문학처럼 상상력을 억압하는 분야는 없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것과 관련지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학생들이 공부하는 방식이나 사 고하는 패턴을 보면 교육수준이 올라갈수록 점점 폭이 좁아진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결 국 상상의 훈련이라든가 이성의 반대되는 훈련이 전혀 없다는 것이고 올라갈수록 억압 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32 이대일 저도 정선생님 말씀과 다음 테마로 넘어가는 내용에 대해서 교육자로서 절대공감하고 있는데요. 인문학적 상상력 뿐만 아니라 예술적 상상력도 빈곤하기 작이 없습니다. 그래 서 상상력을 억압한다거나 상상력 빈곤의 문제 부재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컨텐츠 디자인이라고 사실 컨텐츠 디자인이라는 것이 말 자체가 안 되는데도 내용이 없으니까 저런 부서까지 생기고 서포트 하는데도 없거든요. 김무경 제가 중간에 껴서 죄송한데 깊은 철학적 뜻은 이해 못하니까. 기왕에 상상력이라는 말 을 쓰고 상이 이미지라는 말을 쓰셨는데 그런 문제제기가 되었을 때 가장 근본적인게 무엇인지 생각을 해보게 되거든요. 저는 칸트를 이해 못하지만 칸트의 도식같은 역할 있 지 않습니까. 개념이 너무 추상화되어있다면 도식은 현실에 더 가깝고 훨씬 더 구체적이 고 감각적인 차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개념적 차원이 문제가 되었을 때 내려오는 게 이미지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예를 들어서, 상상력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알려지 게 된 게, 불문과에서 바슐라르 이야기를 하면서 많이 알려졌는데요. 바슐라르 같은 경 우는 과학의 축하고 상상력의 축을 대립시켰거든요. 과학의 축은 낮의 사고고 상상력의 축은 밤의 사고라고 해놓았지요. 바슐라르 제자들은 이렇게 놓은걸 이렇게 논 것 같아 요. 과학의 축은 위에 있고 상상력의 축은 밑에 있다. 그러니까 상상력은 밑에 깔리는거 에요 심층으로 들어가면 공통으로 깔려있는데 우리 상상력쪽에서 객관화시키고자 하는 게 과학쪽으로 가지 않았을까. 아까 정 교수님은 주관성이라는 표현을 쓰셨고, 흔히 쓰 는 표현으로는 마음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우리 마음중에는 어떤 것을 조금 더 객관 화 시켜서 해보고자 하는 쪽이 있다. 또 우리 마음중에는 그런 쪽으로 잘 안되고 유추나 메타포나 시적이나 철학적인 언어로 가는 쪽도 있다. 그러면 각각 나타내는 바는 다르지 만 그 밑에 깔린 상상력의 차원에서 보자면 다른 마음의 모양새 같은 것이지요. 바로 그 렇기 때문에 그리스 만신전으로 가야하지 않느냐 그런 말씀이지요. 예를 들어 그리스의 많은 신들중에서 가장 단순화시키면 아폴론하고 디오니소스라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절 대적으로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한 사람 내에서도 있겠지요. 다 같고 있겠지요. 디오니소스 있고 아폴론 있겠지요. 아폴론적인 경향 강한 사람 있겠고, 디오니소스적 경향 강한 사람 있겠지요. 그래서 결국에 문제라는 것도 사회문제도 사회 학이니까 그 말씀 드리고 싶었지만 예를 들어서 촛불시위의 주도적인 생각이 무엇이냐? 디오니소스냐? 그렇다면 한국사회 전체를 하나의 만신적으로 보았을 때, 디오니소스가 부족하면 너희가 와서 디오니소스를 넣어주겠다는 것이겠구나. 그렇다면 괜찮다. 이렇게 볼 것이고, 디오니소스가 철철 넘쳐흐른다. 거기에 디오니소스를 또 넣겠다면 안된다. 그러니까 절대적으로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이걸 만신전으로 봤을 때, 만신전의 신들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견지하면서 다이나믹을 유지하고 힘이 된다고 받아들이면, 만신전 신들 사이의 균형, 서로 어떻게 견제하는지, 사회 전체가 만신전의 사양한 신들을 살려 주는 사회인지 죽이는 사회인지. 그리고 이미지가 나왔다고 단순히 좋은 것이 아니라 그 이미지가 나온 것이 전체주의적인 하나의 신으로 몰고가는 사회로 이미지가 쓰이는지 아니면 다양한 신들을 살려주는 식으로 이미지가 쓰이는지 그게 중요한 것 같거든요. 이 미지 자체가 나오는 것을 반길 게 아니라요. 이미지를 써가지고 히틀러처럼 그 힘을 자 기 것으로 하는 경우도 있겠고, 아까 치우천왕 말씀하셨지만 2002년 월드컵처럼 쓰일 수도 있겠고요. 그러니까 이미지 자체가 어떻다는 것 보다는 그 쓰임이나 전체에 대한 그림에 대해서 어떤 전제를 하고 있느냐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33 정 민 아까 교육문제를 말씀하셨으니까 이야기하는데, 결국은 오늘날 우리사회는 점점 열려지 고 다변화되야되는데 점점 폐쇄되고 획일화되는 구조로 가고 있으니까. 말하자면 디오 니소스적인 축제는 이루어지지 않고 폭력에 의해 자구 닫혀버리는것이지요. 그러면 열 어주는 것으로서 상상의 문제같은 것들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작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재천 시간도 그렇고 그래서 오늘 주제가 상상과 증명이니까요. 마무리를 해봤으면 좋겠는데 요. 저는 아까 엄정식 선생님 주관성을 이야기하고 하셔서, 그것에 초점을 맞춰보면 어 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주관성, 객관성이 상상과 증명을 다른 형태로 이야기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요. 어차피 저희가 시작을 인문학적 상상 력과 과학적 상상력을 대립적 관계에 놓고 시작했으니까. 저는 자꾸 딴지거는 역할을 하 게 되는데요. 마직막으로 딴지걸고 선생님들이 한번 쭉 마무리를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요. 아까 엄정식 선생님이 인문학은 주관성을 존중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시와 소설을 쓰는 것이고요.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미술작품과 음악작품이 나오는데, 이게 다른 사람들이 읽고 듣고 공감하려면 객관성을 띄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무도 읽지 않고 들어주지 않는 주관성이 과연 무슨 의미를 갖는건지. 결국은 인문학적 상상력도 궁극적으로는 객 관성을 추구하는게 아닐까요? 엄정식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돌아가면서 이야기하지요. 정 선생님 제기한 문제 있잖아요. 교 육과 이것과 연관지어도 된다고 보는데요. 제가 개인적인 이야기 한마디만 하면, 제가 우리 철학계에서는 상상력이 탁월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거든요. 그것은 증명이 가능할 거에요. 그런데 철학자들도 보면 말이죠. 상상력이 타고난 철학자들이 있고, 굉장히 오 거나이즈되고 과학적 오리엔테이션이 강한 철학자들이 있는데 니체, 키에르케고르, 사르 트르 이런 계열의 철학자들은 애비가 없어요. 일찍 아버지를 잃었어요. 특히 엄한 아버 지가 있는 사람은 상상력을 기를 기회가 없어요. 그래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못 만들어 요. 잘난 아버지 둔 사람은 크게 못 자라요. 정말 존 스튜어트 밀은 예외라고 보는데요. 하여튼 우리가 너무 관료화되다 보니까 그럴수록 자기 운신의 폭이 좁아져서 꾀재재한 인간이 되가는 거 있잖아요. 거대 기계의 부속품으로 빨리 자기 자리 찾을라고 하고요. 상상력이 강한 사람은 낙후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제도적 교 육이나 가정교육에 있어서 굉장히 신경써야할 부분이 있겠다. 그게 왜 주관성과 관계가 되나면, 주관이라는 것이 내가 어디쯤 있는지 알게 만들지는 않거든요. 저같은 경우는 네 살때 아버지를 여위어서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형식으로 나타났다가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고, 그러다 보니 내면세계로 점점 오면서 내 면에 있는 자아 있잖아요. 이런 식으로 해야 상상력이 개발이 되는 건데요. 허튼 소리도 많이 하고요. 그런데 날 보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잘한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날 좋아하는 사람들은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이야기하거든요. 그런게 교육과 선의의 거 짓말을 할 줄 알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상상력은 결국은 아까 정대현 선생님 말씀하 셨지만 지각과 지각의 컴비네이션이잖아요. 비슷한 지각끼리 컴비네이션을 이루는 것은

34 진짜 상상력이 아니고 상당히 다른 지각기리 컴비네이션을 이루는게 진짜 상상력이거든 요. 그래서 그러려면 주관을, 자존심을 살려주고 내 귀에 거짓말로 들리더라도 상상력이 풍부하구나라고 말하면 그런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주관 적인 주체성이랄까 그런 걸 강조하고 길러주는 게 상상력의 함양이고 교육적으로 부딪 친 문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식일 수도 있겠다. 최재천 어느쪽으로 돌아가야 될지 모르지만 제가 조금전에 이야기드린 그것은 선생님 이야기 하신 것에 딴지를 걸기 위해 던져본 것이거든요. 그래가지고 주관성 기른답시고 이상한 짓 자꾸 하라고 하는게 제일 좋은 교육인지. 궁극적으로 객관적을 띄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라면 주관성 자체도 어떤 선생님 표현처럼 결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닌가? 엄정식 한 마디만 더 할게요. 우리 집사람이 작가거든요. 자기가 더 잘 알겠지만 소설 쓰다가 인물을 하나 만들잖아요. 주인공이나 조역을 만들면 만들 때 까지는 자기 자유래요. 근 데 일단 만들어놓으면 무슨 옷을 입혀야 하는지 성격은 어때야 하는지 완전히 그 놈 자 율에 맡긴데요. 따라가야 된데요. 그래야 한 인간으로 컨시스턴트하고 리얼해지는거지. 그래서 만들때는 작가 재량인데 만들고 나면 그 놈의 노예가 된대요. 그런 점에서 우리 가 구분해야 되는 것 있잖아요. 리얼 이야기가 상상 속에서 리얼해지려면 굉장히 결이 뚜렷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객관성 아니냐. 이너로직이라는 표현을 쓰더라고요. 내면적 논리다. 그런걸 생각하면 개념이 분명해지지 않을까. 최재천 선생님 말씀을 바로 이으면 정대현 선생님 이으면 바로 좋을 것 같기는 한데 이렇게 돌고 정대현 선생님께 마무리를 드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대일 저는 디자인 쪽이다 보니까 점점 획일화성이 강렬해지는. 따라서 미적상상력을 어릴 때 부터 길러주지 못했던 가정문화, 사회문화, 교육문화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다원주의 사회라고 이야기하는데 우리 사회의 실상은 다원주의가 아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위 포스트모더니즘같은 경향이 들어오면서 학문세계나 여러 곳에서 얼핏 수용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내면을 흐르고 있는 것은 여전한 획일주의 색깔이다. 조선시대 다 흰옷 입고 돌아다녔던 것 같은 그런 색깔을 강하게 느낍니다. 이게 우리 사 회가 조금씩이라도 노 자체를 인정할 수 있는 인식이 삭트지 않으면 서양사람들과 같은 상상력이 길러질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얼 마 전 90년대 초에 사회가 이렇게 되면서 디자이너들에게 OEM 방식으로 몰래 베끼고 그런 식으로 했거든요. 그런데 사회가 바뀌고 나니까 자기 모델이 필요해서 디자이너들 에게 해보라고 했어요. 그런데 못하는거에요. 거기에 길들여져가지고. 저는 우리사회 실 상이 여전히 이러하다고 생각합니다. 상상력이 갑자기 나오는게 아니거든요. 저는 그래 서 한국인으로서 경직된 문화, 경직된 사고와 같은 것들을 풀어헤쳐가야하는 모멘트가 이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야기하는 상상과 증명의 세계는 덧셈 뺄셈이라든지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저 는 그렇게 이해를 합니다. 검증 박식도 그렇고, 여기에 있어서 두 장르 자체의 미팅의 불가능성을 생각하고요. 다만 여기에 잠재되어 있는 상상력의 공동. 상상이란 장르의 갈 래 다양성, 서로에 대한 관심의 중요성을 환기해야 할 필요를 많이 느낍니다. 가령 캔윌

35 버 같은 경우는 과학의 장르, 역할, 넥스트 스테이지 영성 그렇거든요. 그것을 무리하게 끌고 접합하려는 것이 아니라 위치지우기와 같은 것이고요. 거기서 다음 스텝에서 통합 해서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 각을 합니다. 이상입니다. 이덕환 상상과 증명이 본질적으로 어떻게 같고 다른가 하는 것은 공통점도 있고 분명하게 차 별화되는 것도 있을 거 같아요. 둘 다 사람이 하는 거고 어쩔 수 없이 공통점이 있을 것 같고요. 그런 면에서 김무경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상상을 바닥에 깔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여러 종류 상상 중에 일부가 커 나와서 증명이나 과학적 어떤 걸로 틀 잡았다 고 봐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런 식의 어떤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는, 엄선생님이 강조하는 담을 적당하게 두면서 구분하는 것은 좋을 것 같고요. 왜 우리사회에서 갑자기 상상이 강조되고 기대를 많이 하는가. 첫째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고요. 언제부터라고 이야기하기는 그렇지만 우리 교육이 죽어있는 셈이거든 요. 거의 피폐상황입니다. 그러니까 상상에 대한 교육만 안 이루어지고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면에서도 교육이 전혀 안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상당히 사회적 욕구불 만이 있는 것 같고요. 학교교육만 아니라 사회교육, 가정교육도 죽었거든요. 요새 집에서 교육시키는 것이 전혀 없는 것 같거든요. 저희 집에서부터 그렇고요. 사회에서도 교육은 포기한 것 같아요. 공교육은 공교육대로 죽어있고, 상상에 대한 교육만 잘못된 것이 아 니라 전체가 무너진 상황 때문에 상상 쪽을 들여다보면 더 심각하게 보이는 것 같고요.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초근대만 보더라도 30년을 못살면서 억눌려있었거든요. 그러면서 90년대 이후로 경제성장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80년대 중 후반 이후입니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천불을겨우 넘고 그랬는데, 85년 86년 이러면서 갑자기 치솟아가지고 지금 이만불이 된 것이거든요. 그리고 90년대 지나면서 사회적으 로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지고요. 이게 우리 사회에서 상상력을 강조하는 요인이 아닌가 싶어요. 이전까지는 눌려있고 어렵게 살았어도, 박정희식 상상력에 기대 살면 살 았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그게 확 풀어지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상당항 능력을 요구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특별히 튀어나오는 사람도 보이지 않고, 서로가 욕구불만인 것 같 아요. 이러한 상황에 대한 타개책으로 상상력을 기대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 걱정스러운 것은 최재천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왜 진화로 돌아가는지 그건 잘 이해가 안되요. 아 까 엄선생님 말씀하셨지만 무엇인가 아쉬워요. 그런데 더 아쉬운 것은 지난번에 리듬을 할적에 정재호 교수가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아직도 우리나라도 그렇고 다른 사회도 마 찬가진데, 사람들은 과학이 아무리 힘을발휘하고 능력을 보여주어도 사람들은 아직도 상 상속에 살고있다는 것이지요. 쉽게 이야기해서 기문제, 한의학, 소위 말해서 비과학적인 주장들 이런 것들이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으니가 인정해줘야하지 않느냐는 이야기 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신화가 강조되고 비과학적인 이야기의 중요성이 자꾸 강조되면 서 그게 마치 상상력을 증진시켜주는 기제로 작용할 거 같은 느낌을 주는거에요. 그런 것들이 상당히 걱정스러워요. 전체적으로 과학에 대해서 상당히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인 식을 확산시키는 요인으로도 보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상당히 걱정스러운 면도 있는데 전체적으로 인문학 상상이 강조되는 이유가 단순히 상상이 중요해서라기보다 우리사회 에서 인문학이 제대로 뿌리내리고 확산되지 못하고 있고 이런 것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은 이게 가능한건지도 모르지요. 100년전만해도 인문학을 아는 사람들은 아마 사회의

36 5%, 1%정도만 알면 되었지 99%는 몰라도 상관없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갑자기, 특히 우리사회에서는 99%가 알아야 되는 무엇이 되어버렸어요. 그러면서 상상이라는 것이 어 떤 의미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강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무경 저는 아까 말했던 걸 조금 덧붙여서 이덕환 선생님이 반복해주셨습니다만, 항상 문제제 기가 나왔을 때는 상상력을 토대로 깔았으면 좋겠다. 그 연장선상에서 로고스중심주의 가 아니라 이마고센트리즘으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렇게 보면 칸트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했다면 이마고센트리즘을 주장하는것은 그에 버금가는것이 주장 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야기하고 싶고요. 아마도 그렇게 함으로써 동양적 사유와 만날 수 있는 길이 더 열리지 않을까. 예를 들어서, 중국의 상형문자 같은 경우 이미지로 상 당히 특화했자나요. 아마도 우리 사회 조직이나 사유 방식이 이마고센트리즘적인 요소 들을 더 많고, 더 가짐으로써 밝혀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고요. 이덕환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걱정을 상상적인 문제와 섞어서 이야기해본다면, 제가 아 까 했던 이야기의 반복인지도 모르겠는데 상상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그러면 상상력중에서 자연과학에 필요한 상상력, 객관화시키고자 하는 상상력을 키워야겠다면 객관화시키고자 하는 상상력을 키워야겠다고 말을 바꾸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상상력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렇게. 그렇지만 객관화시켜야 하는 문제의식은 버리지 말아야겠다. 저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서구 같은 경우는 그야말로 지나친 실증주의적인 태도 때문 에, 과학주의적인 태도 때문에 반대가 나왔다고 한다면, 우리가 그런 상황이냐 이거지 요. 어떻게 보자면 과학주의도 더 밀고나가야 되는데, 더 이질적인 것을 더 개발시키고 뚜렷이 밀고 나가야 되는데 그렇게 밀고 나가기도 전에 벌써 다원주의적인 태도가 나오 면서 유야무야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걱정이 있는 거 같아요. 정 민 어떤 현대사회의 구조적인 관계에서 발생했던 경직된 생각의 틀에서 상상을 통해서 물 고를 트자는 건 필요하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아까 신화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신화라 는 것은 상당히 원형적 상징이고, 치우천왕이 이야기해서 신앙의 대상으로 만들자는 움 직임으로 나가지 않거든요. 구심적 상징이고 에너지의 동력으로만 작동하는 것이니까, 이것을 꼭 과학적 사유의 반대가 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고 요. 창조적 에너지로서 신화의 문제를 접근하는 다양한 경로들을 앞으로 다양한 논의를 통해서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정대현 왜 우리가 상상력을 최근에 와서 많이 이야기를 해야하는가.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인 문학의 위기라고 하는 것과 관계되었다고 생각해요. 인문대 학장님들이 지난 한 15년동 안 몇 번 모여서 제주도에서 위기선언을 했는데, 제도적인 인문학의 위기지요. 전공과목 폐강되고 그러니까요. 제가 보기에는 창조의 사회만큼 인문적 경험이 보편화된 시대는 없었어요. 다시 말해서 인문적 경험이 당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즐겨지고 확장 되고 정보의 수준도 올라가고, 시대적으로는 인문학이 융성한 시대라고 생각을 해요. 그 런데 문제는 무엇이냐면 사회에서 수용되고 있는 인문학하고 제도권에서 인문학하고 차 이가 있는데, 제도권에서 이루어지는 인문학은 문자 중심적 인문학이에요. 고전을 읽고 이해하고, 자유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그러잖아요. 2000년동안. 그런데 사회에서 수행되 고 있는 인문학은 이마고 센트리즘 말씀해주셨지만 문자 언어가 아니라 디지털 언어거

37 든요. 총체적 언어거든요. 문자만 들어가는게 아니라 소리, 그림 다 들어가잖아요. 향기 는 아직 안들어갔지만요. 그래서 문자 언어 안에서는 인간이 공간적 존재인데, 디지털 언어 안에서는 인간이 총체적 언어에요. 시간도 들어가고 그래요. 그러니까 얼마나 더 어필하고 설득력이 있고 그래요. 그래서 결국은 제도적 인문학에서 수행되고 있는 인문 학, 디지털 언어의 인문학이 들어가야 되는데, 이게 조정하는 기간이라고 생각이 되요. 그러면서 이제 상상력을 필요로 하고 다시 생각ㅅ해야해요. 신화하는 사람들 중에서 비과학적이고 반과학적인 것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렇지 만 전체적으로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학생들이 다 알지요. 우리 대중이 다 알지 요. 신화는 상상력을 위한 하나의 계기, 동력에 지점으로써 필요한 것이지 과학을 버리 고 예전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이제 디지털 언어 시대가 되면서 뉴 턴, 아인슈타인의 시간공간을 익스텐디드 시간공간으로 사이버 안에서 변화하였고, 그러 면서 상대주의 공간만 해도 인간관계가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전통적인 인간관계의 안에 서 이루어져요. 우리세대는 전통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친구인데, 요즘 어린 아이들은 친 구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시간공간이 다르니까요. 젊은 사람들은 콘택이 핸 드폰, 문자 이러니까 젊은이들의 시간공간이 우리들의 시간공간과 전혀 달라서 우리가 이해하는데 어렵고, 우리 인간관계의 텀으로 아이들의 인간관계의 텀을 다 해석하려고 하고 평가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시대가 바뀌고, 시간공간 구조가 달라졌기 때문 에 젊은이들 각 개인이 상대적 시간공간의 공동체가 아니라 각기 가지고 있는 시간공 간을 가지고서, 시간공간의 구조가 각기 연결되어 있는 구조가 아닌가.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 연결은 되어있지만 외로울 것 같고, 그렇지만 외롭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이제 앞으로 시대에서 담론이 대화 개념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버마스는 차이를 인정하라고 했는데 담론의 개념은 담론이 흥미있고 유의미하기 위해서는 서로 달라야해요. 담론개념은 다름을 요구해요. 서로 다르니까 재미있고 흥미있잖아요. 같은 소리하면 무슨 재미가 있어요. 담론이 유의미하고 흥미있기 위해서는 서로 달라야 하고, 다르기 위해서는 상상을 해야되지요. 그래서 담론이 어느정도 지속을 해나가면 공유하는 공간이 확장되지요. 그것이 객관성이지요. 차이를 요구할 때 상상력이 주관성이고 담론 은 유지해나가면서 도달하는 결과가 객관성이고 공유의 공간이지요. 담론개념에서 젊은 이들이 시간공간이 우리와 다르게 각각의 시간공간을 가지고 만나는데 그 아이들끼리 담론을 하다보면 서로 차이를 요구하지요. 생각이 같으면 만날 필요 없다고 생각할 것이 잖아요. 다른 생각을 해야 서로 토론도 하고 흥미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지요. 이런 상 황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관계가 무엇인가? 엄교수가 이야기한 것처럼 카인드 차이 가 아니라 디그리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상상은 같은 도식 구조인데, 다만 상상력이 어드레스하는 방향이 과학공동체의 문제해결을 위한 상상력은 자연과학의 상 상력이고, 인문학은 인간 조건의 부자유에 어드레스 하는 것이지요. 넓은 의미의 예술까 지 인문학에 포함하는 입장에서 그것은 인문학적 상상력이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모두 같은 인간학이라고 생각해요. 하늘의 별을 보면 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다. 내가 왜 별을 쳐다보느냐. 내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서이다. 인간학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자연 과학적 상상력과 인문학적 상상력이 어드레스하는 대상은 다르지만 상상력의 구조는 같 고요. 그리고 흥미있는 상상력은 아무래도 새로운 것이고 획기적이고 해체적인 것이어야 하지요. 그러나 공동체들이 있고 현실조건이라는 기본적인 통찰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어떤 제약이 있고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결국 우리

38 가 도달하는 지점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재천 마무리를 너무 잘해주셔서 보태고 싶은 말씀 없고요. 엄정식 선생님이 엄한 아버지 이 야기를 했는데 저희 아버지가 엄하시거든요. 그래서 저는 영 힘든가 봅니다. 그렇더래 도 아까 김무경 선생님이 상상력을 바탕에 깔자고 하셨으니까. 그런데 까는 상상력이 엄 정식 선생님 말씀처럼 디그리의 차이면 전 디그리를 다 하려면 해야하는게 과학에 의한 상상력을 깔지 않으면 인문학적 상상력만으로는 디그리가 한정되 있잖아요. 우리가 결국 교육의 문제로 넘어가게 되면 후세 과학적 상상력을 할 수 있는 디그리로 넘어갈 수 있 을 정도의 교육을 시켜줘야 하지 않알까. 교육을 받을 때는 이걸 왜 받느냐고 하겠지만 약간은 강압적으로라고 하더라도 누구나 어느 정도 과학적 백그라운드가 없다면 나중에 그 디그리로 넘어가는건 불가능해지는 것 아니에요. 그래서 이덕환 선생님과 저는 과학 을 너무 중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도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야 할 문제 아닌가. 예, 일단 마쳤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9 웰빙과 행복, 1차 포럼

40 엄정식 : 안녕하십니까,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있다가 작년에 퇴임한 엄정식입니다. 작년에 혹시 그 책 다 받으셨죠? 과학기술 인간을 만나다... 그 프로젝트가 2년 전쯤 시작해서 작년에 마무리된 건데, 거기에 인연이 되가지고 이 프로그램에 연루되었거든요. 이번에 과학기술부하고 교육부가 합치면서 무엇을 할 수 있겠냐 새로운 기획을 찾는 중 서로 다른 분야 학자들이 모여서 어떤 주젤 갖고 토론을 벌여보자 하는 기획에 참여하게 됐 어요. 기획의원회가 구성되어서 제가 나이가 제일 많은 덕에 책임을 맡게 됐고, 이게 두 번째 모임입니다. 거기 보면 인간을 만나다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그 연속선상에 서 우리가 단순히 만나는 게 아니라 이제부터 만나서 사귀어보자, 그래서 공통된 주제 들을 골랐어요. 지난 번 첫 번째 모임을 이 방에서 시작했는데 상상과 증명, 예술적 상상과 과학적 증명이라고 할까요. 그런 이질적인 주제를 두고 난상토론을 벌여봤거든 요. 형식을 여러 가지 구상하다가 오히려 청중이 있는 것보다 주제를 심화하기 위해서 클로즈드 세션 형식으로 청중 없이 준비해 발표하자해서 가졌던 첫 시도였는데 상당히 생산적이었어요. 그래서 오늘 두 번째 주제를 가지고 모이게 됐는데, 이번에는 행복과 웰빙 이라는 어떻게 보면 같고 어떻게 보면 다른 뉘앙스가 있는 주제입니다. 웰빙이 어 쩌다보니 요즘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말이 되었는데 거기에 좀 더 기술과학적인 함축 이 들어있지 않나 해서 그 주제로 이야기 해보자 해서 모인 겁니다. 아무쪼록 이 자리 가 의미도 있지만 즐거운 자리가 될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보겠습니다. 그러면 실질 적으로 이 모임을 주도해 오신 서강대 이덕환 교수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이덕환 : 제가 어찌 하다 보니 이상한 일을 맡게 되어 선생님들께 피해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름 을 문진 포럼 이라 지었는데, 문진이라는 말이 논어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기획 의원으로 계시는 정민 교수님이 추천해주셨는데, 나루터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는 뜻이 랍니다. 저희가 지금 교과부의 작은 과제로 수행을 하고 있는데, 기획의원은 지금 엄정 식 선생님이 위원장님이시고 저하고 명지대 이대일 선생님, 이화여대 최재천, 한양대 정민 선생님까지 다섯 명, 거기에 학술진흥재단 장지상 인문사회단장, 과학재단 이승종 본부장 이렇게 일곱 명이 기획의원이 되어 꾸려가고 있습니다. 저희는 비공개로 포럼, 토론회라고 해야 할지 행사를 다섯 가지 꾸려 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 세 가지는 소통을 위한 디딤돌이라고 해서 엄정식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건데, 쉽게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토론을 해서 인문, 사회, 예술 등 각 분야의 분들이 모여서 소통하는 겁니다. 이렇게 세 가지 하고 과학기술과 사회문제 에 관련된 주제, 그것은 위험과 소통 이라는 주제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거창한 주제 를 골랐는데 교육에 대한 것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그래서 우선 지금 시작한 게 작은 주제 세 가진데,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셔서 아 무 기획도 하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나루가 어딘지 물어보고 각자 생각하는 나루 터가 다른 곳에 있을 것 같은데 아무 방향 없이 토론을 해보고 녹취한 내용을 가지고 기본적인 텍스트를 만들어 두구요, 그것을 정리해서 기획의원회에서 다듬어서 몇 가지

41 주제를 만들려 합니다. 선생님들이 그것을 보고 각자 생각을 깊이 해주셔서 한 주제를 맡으셔도 되고, 혹은 여러 분이 한 주제를 맡으실 수도 있고... 오늘 만난 내용을 바탕 으로 8월 말에는 좀 더 심도 있는 토론을 한 뒤에 그것을 모아서 자료를 만들어보고 10월에 인문주간이라는 게 있는데 그때 서강대에서 공개 토론을 해보려 해요. 세 가지 주제를 그런 식으로 진행해보려 합니다. 11월에 모여서 보고서를 내고 가능하면 내년 쯤 그것을 다듬어서 출판을 해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경우에는 웰빙과 행복 에 대해서 자유롭게 얘기해주시면 될 것 같구요. 부담 은 가지실 필요 없고 깊이가 없으면 다음 번에 심화를 시키도록 하고 오늘은 자유롭게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지난 주에는 많은 분들이 모여 상상과 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았는데, 세 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게 잘 놀아보았습니다. 지금 그것을 녹취한 내용을 가지고 선생님들께 확인받고 있구요. 이번 주 금요일에는 리듬, 생리학적, 문학적, 우주 의 리듬 등 많은 것이 포함되는 주제를 가지고 토론이 진행될 겁니다. 이대일 선생님이 제안을 하셔서 그런 주제를 가지고 그렇게 세 가지가 한 꺼번에 진행될 것입니다. 처음 아이디어는 엄정식 선생님이 말씀하셨듯 2006년도에 과기부에서 새로보는 과학기술 이라는 것으로 여기 이런 책이 있는데 지식인을 대상으로 한 과학기술 대중화 사업을 했었습니다. 여기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 종교 이렇게 네 분야의 공개 토론을 한 결과 를 모은 것이구요. 주제 발표한 것과 토론문 녹취한 것을 가감 없이 문장만 다듬어서 만든 책입니다. 이후 현실성 있는 주제로 네 번을 더 했는데 이런 자료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구요. 암튼 반응이 좋아서 이번 사업은 교과부의 인문사회지원과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대강 지금까지 진행사항하고 오늘 모임의 성격을 말씀드렸습니다. 여 기 모이신 분들께서 소개를 해주시죠. 정진홍 : 서울대 인문대 종교학과에서 정년퇴직을 했구요. 그동안 한림대 있다가 올 봄부터 이화 여대에 와있습니다. 전공과목은 종교학 중에서도 종교현상학이구요. 전통 종교들을 다 루지 않고 symbol, myth 이런 걸 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맹광호 :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서 40년 교직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전공은 예방 의학인데 임상의학이 아닌 질병역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게 집단을 대상으로 한 것 이기 때문에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토양이 필요하죠. 국내에서 공부하고 미국에서는 역 학 통계학 공부했고 그러다보니 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서 의학의 흐름을 바꾸는 그 런 쪽, 바꾼다는 게 인문 사회과학적 내용을 포함하는 내용을 다루게 되었습니다. 운이 좋게 의과대학 인증평가사업을 시작해 41개 대학을 평가하면서 인문사회 부분을 평가 항목으로 집어넣어 모든 대학이 그렇게 바뀌고 있는 추세이구요, 그러다 보니 의료물 리, 생명물리에 관심이 있어 의료물리 학회를 국내에 만들었고 국가 생명과학윤리위원 회 1기 끝나고 2기 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론 글을 좋아해서 수필로 작년에 문단에 등단했고, 의사들 중에도 글 쓰는 사람들이 있어 의사수필가협회를 만들

42 어 초대 회장을 하게 되었구요. 아무튼 좋은 이야기 오늘 많이 듣겠습니다. 좋은 자리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대일 : 안녕하세요, 명지대 디자인학과에서 시각디자인 전공하고 있는 이대일입니다. 저는 사실 디자인 전공이라 별 볼일 없는데 이런 자리에 기획의원으로 불러주셔서 참여하게 되었 습니다. 아마 정민 교수님이 소개를 하신 것으로 아는데요. 저는 여러 교수님들 고견을 듣고 머리 속에 요약하고 연결지어 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기쁨을 만끽할 시간 을 갖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덕환 : 저는 서강대 화학과에 있고, 화학을 하다 보니 머리가 안되서 과학커뮤니케이션이라고 최근에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는 전공을 하다 보니 이런 일을 맡게 되어 여 러분들을 괴롭히게 되어 죄송합니다. 조긍호 : 서강대 심리학과 조긍호입니다. 저도 이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심리학에 벗어나서 유학 사상 중에 심리학인 임플리케이션을 해석하는 그런 연구 작업을 한 20년간 해왔습니 다. 그러다보니 제가 심리학자인지 사이비인지 잘 모르게 되었구요. 아무튼 반갑습니다. 이정전 : 서울대 이정전입니다. 제 원래 전공은 토지경제학입니다. 우리나라 토지문제가 심각한데 토지경제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저 하나뿐입니다. 원래는 토지가 제 전공인데 우리나라 에선 이상하게 토지문제가 심각한데도 불구하고 그런 쪽으로 전망된 바 없다 보니 토 지 문제만 가지고 가르치기가 좀 어려워서 환경 쪽이랑 연계해서 활동을 해왔습니다. 아무래도 토지나 환경 쪽으로 하다보면 경제성장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생각 해야 할 것인가 환경하시는 분들이나 보면 경제성장에 예전부터 비판적인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지금 뭐 경제학에 있습니다만 다른 경제학 계신 분들은 경제가 살아나면 행복 하다는 낙관론에 빠져 계신데 환경쪽에 계신 분들은 전통적으로 그렇지 않다 하시거든 요. 제가 경제학 공부를 했습니다만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마르크스입니다. 제가 슬프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정말 마르크스 주의는 우리 마음에 친숙한 고향과 같은 사상이다 생각해서 당분간은 마르크스 쪽 공부했던 것을 살려서 마르크스 하면 어렵다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글을 쓰고 연구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함성호 : 저는 현장에서 건축설계를 하고 있고 여기 계신 분들 보니 다 선생님이신데 전 현장에서 건축 설계를 하고 있고 요새는 공공미술 건축 하다보니 관련이 돼서 지역공동체 예술 이라던가 스트리트 퍼니처 쪽으로 관계가 돼서 하고 있습니다. 이종호 : 이종호입니다. 예전에 지금 계신 정진홍 교수님 신학 강의를 들었었습니다. 그 때 저희 들은 분야가 정치학이고 그런데 그 때 종교학에서 좋은 말씀 들었고 과학 분야에까지

43 말씀 주시니 잘 듣고 주시는 의미를 정책에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성철 : 저는 학부에서 화학을 하고 직장생활 하다 언론에 관심이 있어 언론학 공부를 해서 학위 를 마쳤습니다. 매스컴 쪽 공부를 했고 학부와 관련 주로 과학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대일 : 제가 한 가지 지난번 토론을 통해 본 소감을 간단히 말씀드릴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이 야기를 좀 드리겠습니다. 지난번 엄교수님이 제안한 상상과 증명, 과학과 인문학이라던 지 증명 가능한 세계와 불가능한 세계의 접합 등이 제안됐는데... 지나고 나서 제가 보 니까 지난 주엔 상상 쪽에 주로 이야기가 됐었던 것 같습니다. 난상토론이라고는 하지 만 합당한 주제가 방향에 맞춰진 포인트에 맞춰지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오늘도 엄교수님이 제안하신 웰빙과 행복이라고 했을 때 행복과 웰빙이라는 개념, 상관 성과 이런 것, 진짜 행복과 관계가 있는가, 다시 말해서 개념 검증... 웰빙에 관한 컨셉 이 무엇이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로서 웰빙 컨셉이 무엇인가... 여기서 초점이 두어 져야 할 거 같습니다. 노파심에서 말씀드렸는데 웰빙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두 개념을 그것이 상위개념이든 하위개념이든 두 개의 컨셉에 맞추어 이야기를 해주시 면 고마울 것 같습니다. 엄정식 : 저희들이 이런 포맷을 구태여 고집한 것은 청중이 있으면 의식하게 되잖습니까. 논의가 경직되는 경향도 있고 해서 어떤 포맷에 우리가 붙잡히지 않고 자유롭게, 그리고 전공 들이 조금씩 다르잖아요. 자기 전공에 대한 관점에서도 충분히 말씀해주시지만 다른 전 공에도 관심있으시면 충분히 개진되서 전공을 넘어서도록,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진, 나 루터를 묻는. 그래서 지난 시간에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관계가 있다면 로버트 프로스트 의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네 라는 시가 있더라구요. 담이 너무 높으면 커뮤니케 이션이 안 되고 낮으면 트고 지내다가 싸우잖아요. 적당한 높이를 유지해야 하지 않을 까. 융합이니 여러 이름들이 있었는데 우리가 문진 이라는, 나루터를 묻는 의미를 살리 고 싶었던 건, 서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건 좋은데 함부로 넘나들지는 않기로, 남의 영역 을 침범하지 않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할까요... 그렇게 논의해나가면 어떨까. 영미 분석 철학이 원래 제 전공인데 그것이 과학철학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나중에 심리철학으 로 발전하지만 굉장히 전문분야라고 할까요, 우연히 윤리학을 이 학교에 오면서 가르치 다가 과학철학도 가르치고 이 프로그램에 과학기술과 인간의 행복이라는 주제로 발표 했거든요. 그걸 배경으로 실마리를 풀어갈까 그런 생각이 있는 거죠. 정 토의가 너무 난각상을 보이면 제가 교통정리도 좀 하면서 진행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여기 실려 있는데 이 책에도 나중에 시간 있음 읽어보심 좋구요. 제가 이 주제를 제안한 것 은 요즘 유달리 행복이라는 것이 유행어처럼 돼서 이것은 개념적으로 분명히 할 필요 있지 않는가 싶어요. 사랑해요 라는 말이 얼마 전에 유행했잖아요. 제가 보기에 사랑

44 이 엄청난 사건인데 걸핏하면 사랑한다고 인사하고 아침 인사로도 사랑해요 하고 인 사만 하면 사랑하게 되는 그런 시기가 있었듯 요즘은 행복이라는 말이 그런 식으로 쓰 이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요. 모든게 행복이라고 하다보면 행복이 아닌게 없어지고 그렇 게 되면 정작 행복이 뭔지 규정하기 어려워지고 얼마 전부터는 웰빙이라는 말이 생활 속에서 자주 쓰이기 시작했는데 웰빙이라는 말이 한국식 영어 같아도 원래는 철학 용 어거든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 그걸 영어로 번역한 것이 웰빙이에요. 실 제 토의 중에 구체적으로 나오겠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 비교대조가 되면 좀 더 개념을 분명히 하고 어떤 식으로 이것을 증진하고 계획 세워 도모할 건가 이런 정도까지 얘기 가 확장됐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간단히 칠판을 좀 이용해 볼까요. 제가 가지고있는 행 복 개념이 아까 말씀드린 eudaimonia, 서양 최초의 윤리학 텍스트에 이 단어가 나오는 데, eu 이러면 좋다, 아주 경사스럽다, 이런 얘기거든요. daimon 이라는 것은 대인적 차원의 수호신이거든요. 말 그대로 하면 좋은 수호신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그 말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면 직역을 했을 때 웰빙이라는 말로 직역할 수가 있어요. 이게 싸인펜이든 책상이든 건물이든 존재하는 무엇이든 간에 개념적으로 제대로 잘 존 재하는 것, 이런 책상이 있다면 고유 존재 이유가 있을텐데 그 이유를 잘 충족시켰을 때 eudaimonia라고 합니다. 인간이 인간이 되기 위해 육체, 정신, 사회적 생활도 해야 하는데 인간이 인간으로 잘 존재하는 게 eudaimonia, 그야말로 잘 있는 그런 넓은 뜻 이에요. 우리가 행복이라는 말에 이렇게 천착할 필요는 없고 제가 내용적으로 행복이라 는 단어가 충족되려면 어떤 개념들이 거기 포함될 건가 정리해보니까요, 생리랄까 혹은 심리 이걸 같이 가도 좋고 넓은 의미의 아리스토텔레스식으로 얘기하면 우리가 생물학 적 관점에서 한 생체 기능을 할 때 심리학적 현상까지 다 포함하잖아요. 그럴 때 그 주 체로서 느끼는 그 무엇이다. 그래서 아주 재밌는게 아리스토텔레스가 윤리학, 나중에 정치학까지를 영혼론으로부터 도출해요. 요즘 말로 하면 심리학적 기초를 갖고 시작한 다는 거죠. 인간이 동물과 차이나는 것은 영혼의 기능이 특별하다는데 있습니다. 그 부 분을 잘 충족시키는 게 인간이 인간으로서 잘 있는 거에요. 그 중 특별한 기능을 이성 적 기능이라 하는데 그 기능이 여기서 상당히 중요해요. 우리가 여기서 즐거움을 연상 할 수 있습니다. 행복이란 무엇이든 한 개인이 심리적, 육체적으로 즐거움을, 흐뭇함을 경험하는 그런 것이며 절대로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거죠. 둘째는 윤리적 개념입니 다. 이거는 인간에게만 고유한 다른 사람들하고 어울려 사는 사회 속에서 인간 관계를 통해서 느껴지는 거지 혼자 상상할 수 없다는 거죠. 그리스 사람들이 볼 때 인간이 혼 자 사는 것은. 폴리스라는 개념이 도시국가 단위의 한 부분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으 로, 정치적인게 아니잖아요. 다 알다시피 인간은 폴리스의 한 구성원일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윤리적인 개념이고 그리고 그것이 바로 윤리학자들이, 철학자들이, 종교학자들이 그렇게 행복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이유입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전제 로 우리가 행복할 순 없죠. 잠시 즐거울 순 있되 오래 행복할 순 없어요. 어떤 강아지 라던지 우리가 애완용 동물로 기르던 고양이나 강아지나 어떻게 볼 때 행복해볼 순 있

45 지만 그러나 행복하진 않아요. 셋째로, 그것은 합리적 개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이 야기한 거지만 요즘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Theory of Justice, 하버드의 존 롤스라 는 철학자가 이야기했고, 경제학에서도 다루죠. 그 책 2/3쯤 보면 굉장하지만 단단한 챕터에 행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거기에 머라 써 있냐면 rational plan of life 가, 삶의 합리적 계획이 있는 사람이 그게 잘 이뤄져 왔고 잘 이뤄지고 있으며 앞으로 도 잘 이뤄질 거라는 느낌이 있을 때 그게 행복이라고 한다는데 전 그게 굉장히 함축 적으로 잘 정리된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만들어 본 건데 섭리 적 개념입니다. 이런 위의 세 가지가 구비되었다 해도 이를테면 종교적 맥락이 합리적 개념과 함께 들어갈 필요가 있는 건데 아무리 탄탄히 개인의 욕구와 능력이 실현되도 행복이 마침내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상당히 종교적인 뉘앙스가 포함되는 개념 이죠. 이런 걸 생각해보았는데 대체로 제가 생각하는 행복 개념은 이런 맥락에서 논의 되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여러 분들을 모신 것도 그런 맥락에서 우리가 좀 더 보완을 할 수 있도록 구성한 거거든요 이렇게 실마리를 풀어보도록 하죠. 이덕환 : 교수님 웰빙과 행복을 너무 좋아하셔서 설명하시는 데만 30분이 걸렸네요. 아까 말씀하 신 것처럼 지난 번 상상과 증명은 한 쪽으로 치우친 측면이 있는데 그래도 상관없습니 다. 다음에 그것을 반대쪽으로 끌고 갈 여유가 있기 때문에. 부담 갖지 마시고 지금 엄 선생님이 행복에 대한 철학적 개념을 내려주셨는데 우리가 여기서 철학적 정의를 내릴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이러한 철학적 부분들을 선생님 각 분야에서 어떻게 활용해서 사 회에 전파할 수 있겠느냐 이런 방향이면 뭐든 괜찮습니다. 함성호 : 제가 먼저 하부구조에서 이야길 꺼내보겠습니다. 현대적 의미에서 간단히 말해 건축이란 쉘터라고 생각해요. 비와 바람의 피난처다 이야기하지만 현대 의미에서 건축은 비바람 이건 물론이고 동물의 침략 말고 다른 걸 추구하게 되는데 다른 걸 추구하려고 사람들 이 설계를 의뢰하러 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원하는 집이 없다는 거에요. 평생 자신 이 살 집을 꿈꾸는 사람들이 건축가에게 와서 하는 이야기는 계단이 쇠로 되고 지붕을 뾰족지붕으로 하고 그런 건데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본 좋은 집을 부분적으로 열거하는 거지 나는 이런 집에 살고 싶다 하는 꿈 그런 건 존재하지 않습 니다. 그러고 나서 집 설계를 합니다. 어찌어찌해서 그렇게 하면 이 사람들이 이제 설 계를 하고 끝나고 집이 지어집니다. 집이 지어지면 사람들이 제일 곤혹스러워 하는게 전에 살던 아파트랑은 다르거든요. 단독주택에 살게 되면 전에 아파트 살던 습관을 버 리지 못해 집에 적응을 못합니다. 평생을 꿈꿔왔던 집을 그렇게 살다가 2~3년 만에 팔 고 다시 아파트로 들어갑니다. 제가 보기에 이 사람의 행복은 무엇인가, 아파트인가 주 택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또 다른 한 가지, 설계를 하는 과 정에서 인간의 욕망과 부딪힙니다. 나는 1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맞게 집을 지 어주세요. 그거에 맞게 해서 설계를 보여주면 나는 이걸 원한다 이래요. 거기엔 돈이

46 들고 어디선가 돈이 나옵니다. 대부분 그 돈은 은행빚이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빚이 쌓 이고 집이 다 지어지면 그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인간 욕망에 대한 문제 가 건축에서 첨예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옆집과의 관계가 있습니다. 저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짐승이라 생각 하는 게 영역싸움을 합니다. 단독주택을 지으면 반드시 옆집과의 영역 다툼에 들어가 요. 먼저 있던 사람들이 새로 오는 사람에게 요구를 합니다. 우리 쪽으로 창문 내지 마 세요, 담을 지어주세요... 집 짓는 사람들이 그걸 감당합니다. 관례가 그래요. 법은 그렇 지 않지만. 먼저 터를 잡았다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합니다. 제가 별장 하나를 설계했는데 다 짓고 첫날 입주해 술을 마시고 하루 놀았는데 다음 날 쥐 머리 3개가 잘려서 댓돌에 놓여 있는 거에요. 거기 사는 어떤 짐승들이 인간들에게 주의를 주는 거 죠. 여긴 내 영역이다. 똑같이 도시에서도 그런 일들이 벌어져요. 건축가들이 집을 부수 고 싶을 때가 그런 때에요. 제가 합리적으로 잘 살려고 이렇게 지었는데 그 행위 자체 가 반목을 가져오는, 사람들에게 경계를 불러 일으키는. 제가 보기에는 엄교수님이 말 씀하신 1~3번과 다 위배되는 개념이죠. 행복을 위해 집을 짓는데 1~3번과 다 부딪히 고 4번과도 부딪힙니다. 4번이 신의 섭리라기보다는 자연의 섭리이고 최고의 건축은 아무것도 짓지 않는 것이 최고의 건축이다 보니 4번과 배치되는 거에요. 집을 짓고 사 는 것이 주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엄교수님 제시하신 4가지 방식들과 얼마나 많 이 괴리되고 있나 하는 결론이 아닌 말씀을 드려봅니다. 엄정식 : 다른 분 하실 말씀 없으신가요. 이덕환 : 시작부터 행복하지 않네요. 정진홍 : 그런데 행복이라는 말을 그렇게 많이 씁니까? 예전과 비교해서? 제가 관심을 갖는 건 새 로운 관심의 출현인지 낡은 언어의 회복인지입니다. 전 별로 안쓴다고 생각하는데... 이덕환 : 현실을 보면 전보다는 행복이란 말을 많이 쓰는 것 같고, 웰빙은 모든 사람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가 되어버렸구요. 정진홍 : 행복이란 말을 안쓰다 요즘 많이 쓴다는 전제가 있는 것 같고, 그런데 우리 말에는 적합 하지 않은 웰빙이라는, 우리 언어에서 충족되지 못한 어떤 새로운 삶의 스타일이라던지 이런 것이 웰빙이라는 말에 담기면서 우리 정서를 표출하고 있다고 하는 일련의 변화 에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행복이라는 말보다는 예전엔 복을 받는다, 그러지 못 하다는 말을 썼고 한동안 행복이라는 말을 안쓰다가 다시 쓰고 있구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외래적인 사조는 아니더라도 웰빙이라는 말을 쓰면 그것이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과 닮았기 때문에 쓸 텐데 그 언어 현상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47 함성호 : 서양에서는 행복이 저런데 동양에서는 어떻게, 어떤 의미로 쓰이고 있는지... 정진홍 : 행복이라는 말이 근대 이후에 쓰여지다가 한 동안 안 쓰이다가 멋있게 산다던지 잘 산다 던지 이런 말이 유행하고 전통적인 말로 복이라는 말이 쓰이다가, 상당히 안 쓰인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많이 쓰인다고 하시니까. 제가 보기엔 안 그런데... 엄정식 : 제가 보기엔 너무 많이 쓰이는데요. TV를 봐도 그렇고 글을 봐도 그렇고... 경제적으로 넉넉해지니까 이제부터는 행복할 권리보다 의무가 있는 것 아니냐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하나는 젊은 사람들이 그냥 즐긴다는 말을 행복으로 바꿔쓰 는 것도 있죠. 행복해요. 흐뭇해요... 이런 말을 행복이라는 말로 확장해서 쓰는 거 같 거든요. 맹광호 : 웰빙을 행복에 묶어 생각하는데, 현실적으로 웰빙이 됐든 행복이 됐든 건강이 제일 중요 한 필요조건입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웰빙이라는 말은 모두 건강을 염두에 둔 것이거 든요. 실제로 건강의 정의가 1947년 세계 보건기구 총회에서 나온 말인데, 건강이라는 게 몸에 병이 없는 것만이 아니라, 피지컬, 멘탈, 소셜 웰빙이라는 말이 거기서 나옵니 다. 여기서 나오는 웰빙이라는 말은 건강의 다른 말일 수 있어요. 건강하다, 건강의... 거기에다 95년에는 스피릿추얼 웰빙이라는 것이 추가된 개념인데 건강이라는 말에 가 깝게 웰빙이라는 말을 쓰는데. 최근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선배 교수님 한 분이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 런데 그 부인이 재주꾼이에요. 그림도 잘 그리고 활동도 많이 하고. 그런데 일전에 호 텔서 만났는데 표정이 안 좋아요. 남편도 돌아가셔서 더 자유로울 것 같고 그런데 불행 하다 하시더라구요. 남편이 돌아가셔서가 아니라 몸이 아프다 이거에요. 재주, 돈, 능력 이 다 있는데 건강이 안좋으니 불행하다. 그런 에피소드가 있고. 건강이 웰빙 내지는 행복의 아주 중요한 조건인 거죠.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오늘 TV를 보니 저녁에 중랑 천에 사람들이 모여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하는 겁니다. 기자가 인터뷰를 하는데 제가 이걸 두 달 하고서 체중이 늘었습니다. 전 무지하게 행복합니다 이러더라구요. 아까 엄교수님 말씀하신 기분 좋다는 걸 연결해서 생각하면 될 듯 싶어요. 건강을 위해 서 사람들이 애를 쓰고 있고 최소한 건강이 웰빙 행복의 필수조건이라는 거죠. 그런 측 면에서 우리가 웰빙 문제를 이야기한다 하면 건강 문제를 빼곤 이야기할 수 없는 겁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에 꽃동네를 갔는데 거기 29살 쯤 된 여환자가 있었어 요. 그런데 이 사람이 20년째 라디오 하나 놓고 누워서 하루 종일 있는 거에요. 그런데 이 분이 또 시를 써서 벽에 시가 걸려 있는데 그 시가 제목이 나는 행복합니다 에요. 시가 세 단락인데 나는 행복합니다 배운게 없어서. 사회를 보면 배운 사람이 다 나쁜 짓 하더라는 거죠. 두 번째는 몸을 못 움직여서 행복합니다. 몸이 건강하지 않으니

48 다니면서 나쁜 짓 못한다. 세 번째는 가난해서 행복합니다. 여기에서는 육체적인 건 강은 없는 거죠. 소위 그것은 아까 말했던 spiritual 웰빙 같아요. 아까 엄교수님 말씀 하신 세 가지를 and 개념이냐 or 개념으로 볼거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정진홍 : 그거 안 행복한 거 같은데... 맹광호 : 제가 말하는 것은 건강하지 않아도, 건강이 웰빙에 필요조건일 수 있는데 그러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겁니다. 기분 좋은 것만이 행복은 아닐 수 있더라... 이대일 : 저는 아까 엄교수님 말씀하신 게 예단이라 할까 저것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고 봐요. 목적론적 행복으로 보이기도 하고... 종교의 합리성과 비합리성이 있는데 저기서 행복, 윤리 이런 것이 어떻게 될 것인가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엄정식 : 제가 잘못된 것일 수 있는데 종교적일 수 있지만 알 수 없는 무엇이 작용한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행복... 종교를 가졌다고 행복하다는 것과는 관계없는 것이구요. 이정전 : 경제학적 측면에서 말씀 드리면 요새 행복에 대해서 굉장히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저도 작년에 행복에 대한 책을 썼지만, 행복에 대한 수요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행복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와요. 이미 이런건 한 풍토가 되었고, 전에 없이 관심과 요구가 홍수를 이 루고 있습니다. 행복에 대해 경제학에선 이렇게 봐요. 각자가 나름대로 행복관을 가지고 있다. 경제학 에선 그걸 100% 다 인정하자. 이런 것이 행복이니까 그것을 가지고 이렇게 해라 하는 식으로 임포즈 하는 것을 경제학에선 배제하고 각자가 생각하는 걸 인정합니다. 단지 저것이 인간이 가진 행복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증진시켜줄 것인가 우리는 그것만 생각 하면 되는 거지 행복이 뭔지 굳이 생각할 필요 없다는 거죠. 각자 나름대로 행복관이 다 있고 그게 행복이다 그걸 인정하자는 게 첫 번째고... 행복 경제학이라는 게 최근에 있는데 이렇게 봅니다. 개인적으로 다 행복관을 가지고 있지만 동양 서양 후진국 선진국 유교 불교 다 떠나서 행복관이 참 비슷하다는 놀라운 결과가 있다는 거에요. 가족 관계 화목하고, 인간관계 좋은 친구 만나 즐기고, 건강은 기본이 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고, 람 있는 일을 하고 그럴 때 사람들이 행복을 느 끼고 그것이 동양 서양 다 똑같더라는 겁니다. 행복 경제학에서 행복에 대해서는 연구 할 가치가 없어요. 사람들마다 다르고 기분 내키는 대로 하는 거기 때문에 이 사람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행복에 대한 생각은 정형화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불 규칙하고 이런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거에 입각해서 첫 번째 해줘야 할 것은 과 연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가 조사를 시작하는 겁니다. 굉장히 많은 행복에 대한 요구 가 있고 이렇게 생각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행복을 인정할 것인

49 가 그걸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윤리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되거든요. 남에게 해를 주면서 자신에게 행복을 추구하는 경우 같은 건 어떻게 볼 것인가. 철학적 측면에서도 이런 건 행복이 아니라던가 범위를 정해야 하지 않는 가... 이게 경제학자들 의견과 정면으로 충돌하죠. 맹광호 : 어느 정도는 이런 토론을 통해 개념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웰빙도 웰빙 신드롬, 하나의 증후군이라고 봐요. 이것이 사업과 연결이 돼서 웰빙을 문화와 연결시 키는 사람도 많습니다. 보통 상업화된 웰빙을 보면, 실제로 웰빙 추구하는 사람들 보면 다른 이를 고려 안합니다. 나만 행복하면 되요. 그것이 웰빙 문화의 추세입니다. 남이 어떻듯 나만 즐거우면 된다. 이걸 우리가 바로잡아줄 필요가 있습니다. 저 4가지 중에 서 한 군데 웰빙 개념을 이끌 필요는 없지만 어딘가에 비중을 둘 수 있고 기본적인 필 요는 생리적 조건입니다. 여러 조건이 좋을 수 있는데 불행하다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최근에 일고 있는 웰빙 산업 대개가 먹는 거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것의 과소비 말하자면 효과에 맞지 않는 과소비가 자꾸 나타나고 있어서... 집도 마찬가지에요. 웰빙 집을 짓는 그런 것. 그것이 근거가 있는 거냐. 그런데 이걸 허물어 버리면, 정량적인 개 념을 허물어 버리면 아무거나 이야기가 다 되는 거죠. 내가 좋다는데 뭔 소리냐. 이렇 게되면 공동으로 추구하는 웰빙이 허물어져 버려요. 그런 의미에서 개인에 대한 웰빙, 행복에 대한 인식은 존중해주되 여러 분야 의견을 모아서 이런 것이다 라고 제시를 해 줘야 합니다. 엄정식 : 지금까지 제가 보기에는 나온 모든 이야기가 이것과 연관이 있다 보거든요. 제가 의학자 가 심리학자가 아니니 생리적인 것, 심리적인 것을 충분히 설명 안한 거지, 거기에는 주거나 경제적 문제가 충족되어야 하고...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불행할 이유는 없잖아 요. 윤리적이라는 거는 아까 선생님 말씀하셨듯 보람이 있잖아요. 남 해치지 않고 그런 게 윤리적 개념이거든요. 그래서 이 개념이 일관적이라고 보는 거거든요. 라이프스타일 에서 완전 무결한 딱딱한 개념은 못세우겠지만 매니저블하고 무리없는 계획을 얘기하 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래도 알 수 없는 어떤 요소들이 작용합니다. 보증된 것은 아니 에요. 철학 얘기해선 안되겠지만 칸트는 행복이 결국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신의 존재 를 추구하는 거잖아요. 일단 중요한 그걸 제가 코멘트 드리면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와 일관된다 이런 생각 드는 거거든요. 제가 설명을 자세히 안 해서 그렇지. 하여튼 뭐 제 소감은 그래요. 조긍호 : 제가 심리학쪽에서 이야길 시작해보죠. 심리학에 전통적으로 가장 핵심적인 관점은 인간 행동이나 인간의 삶이 객관적인 환경에 의해 유도되어지냐, 그것이 개인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 이런 것이 심리학의 지금까지의 싸움입니다. 1960년대까지 행동주의 심리학. 객관적인 현실적인 조건, 객관적인 자극조건이 인간 생활을 좌우하느냐 이런

50 입장이다가, 그 이후에 객관적 조건 그 자체가 아니라 개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 는 주관적 인식 이런 게 개인에게 더 영향이 크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바뀌어왔다고 볼 수 있어요. 행복에 있어서도 그런 배경에서 심리학적 입장에서는 달라져 왔습니다. 행 복에 영향을 미친 객관적인 조건을 사회학에서도 quality of life 이야기를 하면서, 수 입이 얼마 될 때 어떻다든지 경제수준과 연결지으려는 시도들이 있다가 1970년대부터 인가 80년대부터 심리학에선 객관적 조건보다는 주관적 조건이 중요하다고 여기게 되 었습니다. 그래서 웰빙의 문제도 행복은 개인이 느끼는 수준의 것이다, 주관적 개념으 로서의 웰빙 이런 것이 행복감이다, 그런 연구들이 이 쪽을 지배한다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일리노어 대학에 있는??라는 사람이 서브젝티브 웰빙이라는 것은 이 사람 은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는 개념이라 말합니다. 하나는 삶의 만족도입니다. 자신의 삶 에 얼마나 만족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 주관적 평가의 문제가 되겠죠. 그리고 또 하나는 감정적 균형, 어펙티브 웰빙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즐거움을 자주 느끼느냐. 이 것은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즐거운 감정 빼기 부정적 감정. 즐거운 감정을 부정적인 감 정보다 더 많이 느끼고 사는 것이 서브젝티브 웰빙이다...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문제는 여기서 삶의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가 핵심적이라 하겠습니다. 감정적 이런건 쉽게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니까 삶의 만족도의 레벨을 높이 는 요인들을 상황적 조건에서 찾아보려 하고 개인의 특성에서 찾아보려 하는 많은 시 도들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경제 수준과 삶의 만족도를 비교해보면 미국의 경우 전체 수입과 상관이.12라고 합니다. 상당히 낮은 거죠. 그런데 방글라데시에서는 수입과 서 브젝티브 웰빙 상관이.65 이렇게 나옵니다. 어느 정도까지 경제수준이 높아질수록 행 복감이 높아지지만 그 이상이 되면 행복감과는 무관해집니다. 또 개인의 성격, 특성을 보면 외향적인 사람일수록, 낙관적 경향 가진 사람일 수록 만족도 높아진다는 그런 게 심리학에서 많이 이뤄지는 연구입니다. 아까 말씀하신 동양에서 행복의 개념... 최근에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는게 문화간의 차이의 문제입니다. 대체로 서구 개인주의 문화권, 아시아쪽 집단주의 문화권 서브젝티브 웰빙 수준을 비교하면 개인적 문화권일 수록 웰 빙 수준 높다고 합니다. 이것을 설명하는데 여러 가지 양식이 있습니다. 그쪽일수록 경 제수준 높으니까, 또 다른 사람들은 문화적 가치의 차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행복을 자주 이야기하고 그런 것은 서양식의 가치였습니다. 그런데 동아시아에서는 예컨대 유 교문화권에서는 복이라는 것이 유학사상에선 복이나 이런 것을 중요시하지 않는 개념 였던 거 같은데 그런 것들은 부귀라든지 다남이라든지 개인이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닙 니다. 하늘에 달린 것이거나 외적 환경 조건에 달려 있거나. 맹자나 순자 같은 사람은 재외자, 재천자라 얘기하고... 그러니 그것은 인간의 통제범위를 벗어난 것입니다 복이 라는 것은. 자기 덕을 쌓는 일입니다. 사람이 바람직한 삶을 위해 해야 할 일이지 외적 인 조건을 위해 그런 것들을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일반적으로 복, 부귀, 장수라든지 하 는 것들을 이야기해왔는데, 그런 것들은 유학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개인의 통제에서 벗 어난 것이니 인간의 바람직한 삶을 규정하는 것이 될 수 없죠. 그런 입장에서 복이란

51 것이 유학 사상에서는 크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정진홍 : 이어서 말씀드리고 싶은데 전 늘 고민이 추운 게 더 괴로울까 배고픈 게 더 괴로울까 이 런 것이었어요. 그래서 배고픈 게 채워지든지 추워지지 않게 되든지 그 때부터 뭐 생각 하는 거지 춥고 배고프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더라는 겁니다. 피지컬한 거죠. 어쩌다 학교서 단체로 영화 관람을 가잖아요. 영화를 보면 스토리가 전개되잖습니까. 주인공이 막 뭐뭐 하고 이러는데 저 사람 어떻게 저렇게 차를 탈까 어떻게 먹을까 그 생각을 하 니 아무 것도 안보여요. 피지컬이 충족되지 않으면 아무리 스릴 있어도 스토리가 보이 지 않아요. 피지컬한 여유가 있어야 먹을 게 있어야 마음씀씀이도 있다는 거죠. 거기서 윤리도 도덕도 나오는 거에요. 종교라는 것을 전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신을 믿느냐가 아니고 인간은 문제를 가진 존재라 해답을 추구한다, 이것이 해답이라고 경험된 문화가 종교라 이름 붙여진 거다. 해답이 있는 삶이 행복한 삶인 거에요. 해답이라는 것이 무 엇이냐, 유심조 라 불교서 이야기합니다. 문제가 어디서부터 출발하느냐면 어떤 종교이 든 몸의 문제에서 출발합니다. 몸의 문제라는 게 다른 게 아니고 가난, 질병, 죽음, 이 런 거에요. 그래서 요즘 셀프라는 말을 할 때 바디셀프라는 말을 하죠. 몸자아. 종교 자 체가 몸이 생겨나서부터 이뤄진 거니까. 그래서 종교 치고 병 고친다는 이야기 없는 것 없고, 그게 강하냐 안하냐 차이죠. 또 가난에 대해 얘기 안하는 게 없고... 몸의 죽음에 있어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게 바디셀프고 그게 극복이 안되는 거죠. 병 안 걸릴 수 없기 때문에 생기고 죽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마지막에 해답의 실체는 다른 게 아니 에요. 상황을 바꾸는 게 아니죠. 그 현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거죠. 존재하는 것, 그게 질병이든 가난이든 죽음이든 그게 의미 있다고 수용할 수 있고, 그것이 해답이 되고, 그래서 죽음이 와도 행복한 거죠. 모든 부정적 가치가 승인할 가치가 있으면서 의미있 는 실재가 되며 문제는 해결되고 그것이 해답이죠. 그런데 문제는 어딨냐면요 누가 그 런 얘기 했더라구요. 시그니피케이션 이즈 모어 워스 댄 다잉 거짓말 하는 것보다 더 못된 것일 수 있다. 종교가 그런 거거든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만적일 수 있다. 진정 한 해답이 아닌데 해답이라 해서 사람을 맹목적으로 만들고. 종교의 해답은 늘 기만성 이 있거든요. 사실상 종교를 살펴보면 평화에 대한 기여를 한 적이 없습니다. 해답을 주는 실체라 얘기하는데도 사실 없어요. 그런 갈등 속에서 종교가 행복을 약속하고. 그 걸 아까 말씀하신대로 섭리적 개념이라고 했을 때 그런 섭리라고 하는 언표가 가진 기 만적인 인식의 구조가 있습니다. 그게 참 문제에요. 맹광호 : 영적이라는 말로 바꾸면... 정진홍 : 스피릿추얼이라는 말도 마찬가지. 종교학에서는 초월, 신비, 신성, 영적... 잘못하면 저기 에서 오는 거다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도 인간의 경험을 개념화한 거에요. 그렇게 생각 해야지 그게 저기서 온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많은 과오를 낳을 수 있어요. 인간의 경

52 험, 그러니까 가장 아이디얼한 것을 바라는 그 바람 자체가 개념화된 것입니다. 맹광호 : 오는 게 아니라 원래 있던게 드러나는 것으로... 프로이트 이전에는 데카르트처럼 인간에 있어 의식세계가 요만큼이면 무의식세계가 훨 큰건데 사실 데카르트만 해도 무의식을 도외시했잖습니까. 무의식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건강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거 든요. 종교, 신앙 차원서 이야기하면 오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있는 거다 이런 말이죠. 불 교서 말하는 소위 네이처. 전 그리 믿어요. 신비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정진홍 : 프로이트 무의식의 개념이라 하는데, 그게 요즘 이야기하는 진화생물학에서 보면 어떤 걸까요. 이미 있다고 이야기했... 맹광호 :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세계가 있다는 걸 발견해 사람들에게 알린 거고, 우리가 불교에 들 어가서 보면, 예를 들어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가 아니라 나 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존재한다 가 아닌가 싶어요. 의식세계에 있어 나와 숨겨져 있 는 원래 본성... 정진홍 : 프로이트 theory와 현대 생물학적 theory 텀... 맹광호 :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정진홍 : cognitive science에서 그것을 이야기할 때 예를 들어 어떤 거가 망쳐지면 종교 없어진 다, 그런 것이 종교를 설명하고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우리는 그 때 종교를 어떻게 이 해해야 할 것인가가 중요해요. 경청하고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거든요. 그런 사 이언스가 발전되는 과정에서 프로이트의 무의식이 어떻게 반영되어야 할 것인가... 저는 프로이트로 이야기하는 게 상당히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맹광호 : 우리 인체도 계속해서 진화과정에 있다고 보는 거죠. 그러한 상황서 크게 보자면 우리가 결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한데 어떤 콜렉티브한 컨셉, 지금 우리가 행복 을 추구하고 웰빙상태를 원하는 것은 그만한 경제적 상황, 시간적 여유가 안나니까 그 런 의미에서 행복이라는 말이 많아지는 말에 동감합니다. 그런 시대가 온거죠. 이덕환 : 자연과학 면에서는 당혹스런 부분이 있어요. 그 말씀 드리기 전에 아까 조긍호 선생님이 삶의 만족도, 행복도를 사회학적으로 확인한다고 그러셨는데 거기에 대해서 저희 자연 과학 하는 사람들이 젤 많이 듣는 이야기가 그겁니다. 티벳이나 부탄같은 낙후된 물질 문명권에서 사는 사람들이 행복지수가 상당히 높다, 우리보다 훨씬. 그 사람들에게는 현대 과학문명을 소개해줄 필요가 없어 그냥 살게 내버려 두는 것이 낫다 이런 이야길

53 많이 듣는데 이런 것에서 행복지수가 조사를 해놓고 객관적으로 해석을 할 수 있는 것 인지... 과연 원시 생활을 하는데 행복지수가 높으면 그렇게 살도록 놔두는 것, 그게 더 인간적인 것인지 헷갈려요. 그것에 질문을 던져 보고 싶고. 그리고 지금 웰빙이라는 말이 몇 년 전부터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5~6년 전 부터 쏟아진 것 같아요. 맹박사님 말씀처럼 삶의 질이 올라가니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생겼어요. 다른 면은 현대 사회에 대한 모순, 불합리성에 대한 반발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저희 자연과학쪽 입장서 보면 객관적으로는 행복이 무슨 뜻이든 간에 행복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은 굉장히 많이 갖춰져 있거든요. 식생활, 보험 등이 몇 년, 몇십 년 전과는 비교도 못해요. 사람들은 이른바 풍요 속 빈곤을 느끼는 거죠. 상황은 좋아 졌는데 어떤 의미에선 박탈감을 느끼는 거. 저희가 볼 적에 이런 느낌을 많이 가져요. 우리 선조들은 굉장히 잘 살았는데 우리에게 와서 겉으로 잘산다고 하지만 사실은 형 편없어졌다. 박탈감, 이것이 행복을 내세우고 웰빙을 주장하게 하는 것이 아닌지... 맹광호 : 웰빙이 중요한 화두입니다. 수명이 엄청 길어졌고 앞으로 더 길어지겠죠. 우리 인구고령 화는 전무후무하죠, 전세계에도 없었고. 문제는 고령 사회인데 나이가 든 사람들이 건 강하지 못하다는 거에요. 상대적으로 외국 어느 나라 노인네들보다 건강하지 못합니다. 삶의 질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사실 삶의 질이라는 말 자체를 따져보아야 하는데 질적 으로 떨어지는 삶을 사는 게 아니냐 하는. 제가 몇 가지 건강 증진프로그램을 강조하는데, 그런 이유가 역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기 때문에. 젊어서 나쁜 라이프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거든요. 유난스러워요 우리 나라 사람들. 예전처럼 수명이 짧으면 상관없지만 이제는 긴 노후를 살아야 하는데 숨도 못 쉬고 관절이 다 아프고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 이거지. 제 눈엔 이게 보이는 거에요. 예 측 가능한 상황이. 행복의 상당한 수준의 필요조건인 건강을 유지하지 않으면 웰빙도 행복도 어렵습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이 많아요. 웰빙이나 행복을 정량화해서 말할 수 없되 기본 팩터 나열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경제 수준, 나이, 이랬잖아요. 재작년엔가 동아에서 800명 대상으로 해서 웰빙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나이에 따라 엄청 다르고 직업에 따라 엄청 달랐단 말이죠. 놀라운 건 20~30대가 나는 웰빙이다 라는 사람의 70~80%였다는 거에요. 건강이 이미 충족되어 다른 즐거움을 찾는다는 거죠. 나이 든 사람들은 드물었어요. 50대가 넘어가면 4%대, 나이 먹어 건강의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 으면. 정신적으로 중요한 것은 직업에서 전문직 종사자들이 제일 높았어요. 25%가 나 는 웰빙이다 라고 했고, 공무원이 18%, 가정 주부가 9%로 굉장히 낮아요. 직어브 나 이, 경제적 상태... 이런 걸 가지고 우리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겁니다. 저는 젊어서부 터 웰빙에 대한 사전교육 내지는 정보 제공 이런 게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것 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실제로 기본조건이 이덕환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상 당히 좋아졌음에도 건강에 관한 습관만은 후진국 중 후진국이에요

54 이정전 : 이제 우리가 선진국가로 진입하는데 굳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은 뻔해요. 경제 적으로만 풍족하게 해주면 되요. 아까 조긍호 선생님이 말씀하셨 듯 어느 정도까지 그 상황이 올라가고 나면 행복하고 소득이 따로 가요. 그러기 때문에 이 단계서부터는 어 떤 방법으로 행복을 올릴지 답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충족을 해줘야 하는 거죠. 아 까 맹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어느 정도까진 건강이 필요한데, 또 건강은 돈과 관련되 거든요. 국민 소득수준이 늘어나면 위생수준도 늘어나고 행복이 증진되고 건강도 증진 되고 같이 가는데, 어느 정도 넘어가면 건강하고도 같이 가지 않게 돼요. 미국에서 유 럽에서 행복 조건을 꼽았는데, 건강이 행복 조건의 4번째에 속해요. 제일 첫째가 가족 의 행복, 경제가 2번째, 인간관계가 3번째... 거기서 말하는 건강하고 우리가 말하는 건 강하고 다를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우리가 선진국 사회 진입한다 보면, 그 때부턴 어떻 게 해야 행복해지는지가 중요해집니다. 맹광호 : 우리에 맞는 것을 찾아야죠. 건강이라는 게 두 가지를 통해 가능한데 하나는 치료적, 다 른 하나는 예방적 패러다임이에요. 문제는 지금은 병이 한 번 생기면 고치는 게 거의 없단 말이에요. 앞으로는 병이 나면 고치지 못하거나 엄청 고생스러워질 겁니다. 젊어 서부터 예방을 해야 한다는 게 제 주장인데 아직도 우리나라는 치료적 패러다임이 지 배적이에요. 병원이 치료하는 곳이지 예방하는 곳이 아닌거죠.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진 이유 중 하나가 웰빙 말 안하는 사람이 없고, 웰빙 대부분 내용이 건강이인데 실제로 건강에 대한 행동들은 영 다르고... 이런 걸 통해서 이런 중요성을 저는 강조해야겠습니 다. 엄정식 : 아까 이덕환 선생님 제기한 문제를 일단 정리하고 넘어가자구요. 조긍호 : 그런 행복지수를 무엇으로 측정하는지 상당히 문제가 될 거 같아요. OECD social indicator 이런 건 아닐 거 같아요. 예를 들자면 서구에서는 아이 앰 해피 이지만 우리 에겐 앰 에 해당하는 것이 없단 말이죠. 행복에 대한 중요성이랄까, 무게가 나는 행복 하다 라고 할 때 무게보다 같은 무게냐 뭐 그런 문제도 있을 수 있을 거에요. 또 이게 다른 얘기긴 하지만 그 행복이란 걸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잖아 요. 자존감, selfesteem, 그런 걸 가지고 측정해보면 서구가 동양보다 훨씬 높더란 말 이죠. 서구에 있어서는 자존감이 중요하고 동양은 별로 덜 중요하다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 자존감을 뭐라고 생각하느냐가 사실 제일 중요해요. 자존감. 우리는 자기 장점보 다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는 것이 자존감의 근거일 수도 있단 말이죠. 서구에는 나는 뭐를 잘한다 이런게 자존감의 근거일 수도 있고... 척도가 비교 가능한 것인지가 중요하 죠. 정진홍 : 인식의 지표에서 비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종교학적 전통에 비교라는 말을 새

55 롭게 하고 있습니다. 인식의 방법으로서의 비교. 그것이 정말 인식론적으로 타당한 것 이냐 하는 거죠. 중요한 건 척도의 문제가 아니라. 저희가 내린 결론은 비교는 불가피 하다. 그러나 비교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는 겁니다. 물음을 묻는 주체의 이념적 지표가 뭘 묻느냐 어떻게 묻느냐 왜 묻느냐가 어떤 것을 다 결정하는 거야. 이 데올로기가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비교가 불가피합니다. 그러니 비교를 통 해 나오는 통계적 수치나 이런 거를 우리가 그렇게 수용하자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거 는 상당히 제한적인 것... 이정전 : 행복에 대한 연구가 경제학에는 별로 없어요. 행복에 대한 연구의 80~90%가 자연과학 자들이 하는 거에요. 기본적으로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행복이라는 것이 얼마든지 과학적 연구대상이 된다는 거죠. 예를 들어 설문 조사를 해요. 만족감, 거기에 영향을 주는 것을 다 분석을 해요. 만족감을 다 분해하고. 분해 요소들을 물어보는 거에요. 그 다음에는 물어볼 뿐만 아니라 제3자에게 확인을 해요. 지금 조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 셨는데 당신 친한 친구로서 이 사람 말이 맞냐,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혈액검사, 뇌파 검사 등을 맞는 방향으로만 검사를 하는데 이게 뭐 사회과학적 입장서 보면 유물론적 인 거일 수 있죠. 두뇌에서 일어나는 것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처럼 두뇌를 보면 다 알아요. 그런 걸 측정해보면 일정해요 또 그게. 이덕환 : 심리학, 자연과학, 화학은 아닌... 맹광호 : 삶의 지표하고 모두 다 정량화해서 통계처리하고... 이정전 : 자료가 50년 자료가 선진국에 축적되어 있어요. 그것 대부분이... 맹광호 : 이교수님 말씀이 맞는 게 인간의 심성이나 정신세계를 계량화해서 연구한 내용들을 바이 올로지컬하게 증명하려는 거죠. 그렇게 해서라도 소위 객관화 하자는 노력들이... 이정전 : 자신만만한 거야. 지금... 엄정식 : 철학에서는 그걸 아주 구체화한 게 벤담이에요. 벤담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이라는 말을 내놓을 때 그거는 어떤 심리현상을??한다는 걸 전제로 한거거든요. 그게 실제로 얼마나 써먹혔는진 몰라도 7가지, 그냥 만족도가 아니라 농도가 짙은 만족감이어야 하 고, 오래 지속되는 만족도여야 하고, 이게 개인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까 지 퍼져야 하고 이런 식으로 죽 7가지를 대거든요. 그런데 그거는 원칙적으로 당시 심 리학이 발달하지 않았으니까 원칙적으로 그게 가능하다는 걸 전제로 한단 말이죠. 또 그걸 근거로 해서 숫자가 늘면, 최대 다수를 측정하는... 동시에 정의의 원리가 되는 거

56 거든요. 윤리의 근거면서 정의의 근거면서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거에요. 그거는 실 제로 얼마나 컨티파이 할 수 있냐는 문제는 둘 째 치고, 그걸 전제로 해서 윤리학 이론 이 나왔다. 그러니까 행복의, 말하자면 컨티파이를 한 거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런 세 련된 형태론 아니지만 원래 에피쿠로스 학파, 스토어학파, 그리고 아까 선생님 말씀하 신 것과도 연관되는데, 행복은 A분의 A라고 치거든요. 하나의 A는 Ability고 또 하나의 A는 Ambition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걸 이룰 능력이 있었을 때 그는 행복하다. 그런데 그 때 방식이 다르다. 에피쿠로스학파들은 자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늘리는 걸 말하고, 1:1이 되도록. 그런데 스토아 학파는 그래봐야 자꾸 욕구만 더 생기 고 더 괴로워지고 더 불행해진다, 그러니까 능력은 그대로 두고 욕구를 줄인다, 그러면 서 불교식이나 그게 문화권일 수도 있고 또 개인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우리가 봐 서 낙관적이고 진취적이고 해서 노력을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하는 일을 이룬단 말이 죠. 행복을 유지할 수도 있고. 그런데 또 어떤 사람은 내면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고 혼 자 있고 싶어 하고. 그런 분석들은 굉장히 고대부터 동양철학도 마찬가지죠. 그런 게 하나 철학쪽에서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구요. 그리고 아까 맹선생님 말씀하신 건강 있 잖아요. 그런데 그게 철학 쪽에서 가치를 따질 때 도구적 가치냐 목적적 가치냐 이런 걸 구분하거든요. 그런데 건강은 건강 자체를 위해 우리가 노력하지는 않죠. 뭘 위해 건강하게 된다 이건 아니죠. 그런데 철학쪽으로 상당히 문제가 된 게 아까 rational planning 이야길 했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어렸을 때 장년이 됐을 때도, 한 70정도 살 겠다 건강하고 흐트러지지 않는 정신 상태로. 70 정도 살겠다 해가지고 계획을 세웠단 말이죠. 그런데 70에 안죽는단 말이죠 이게. 그렇다고 새로 계획을 짤 수도 없고... 그 런데 이런게 행복을 위한 요소로 저해요소냐, 행복을 위해 더 산다는 게 바람직한 거 냐... 상식적으로는 일단 오래 살고 보자 이런 생각 갖고 있잖아요. 그런데 철학에선 그 것이 상당히 화두가 되어 있다. 그냥 무조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제일이냐, 경제 적으로도 많이 버는 것이 제일이냐, 이런 건 도구적 가치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고 행복의 필수요소도 아니다. 돈 많은 게 오히려 불행의 요소일 수 있는 것처 럼, 쓸데 없는 건강이 불행의 요소일 수 있다... 그래서 이런 계획이 있었고 그것을 이 뤘을 때 행복한 거지. 행복의 반대말이 불행이잖아요. 불행도 rational planning life가 있는데 그게 안 지켜졌을 때 불행한 거지. 그런 플랜이 없는 사람이 뭔가 하는 일마다 안 되고 이러면 그거는 재수없는 거지 불행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로또 당첨이 안 됐다고 불행한 게 아니거든요 재수 없는 거지. 그렇다고 로또가 됐다고 행복한 게 아니 다. 원래 자기 계획에 있던 게 아니라면. 맹광호 : 경제적 일이 생겼기 때문에 행복의 조건이 마련된 거지 그걸 그냥... 엄정식 : 행복의 조건 일 수 있지만 불행의 조건일 수 있어요. 건강도 행복의 조건일 수 있지만 불행의 조건일 수 있습니다

57 이덕환 : 어떤 때 건강이 불행의 조건일 수 있어요? 정진홍 : 아까 심리학 이야기를 하셨지만 요즘 심리학에서 질적 연구를 하지 않습니까. 통계 처리 를 주로 하다가 최근 소수의 케이스 스터디가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새로운 경 향이고 저는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심리학적 인 이론을 발견하고, 많은 경향이 생기고... 저희 종교학에서도 이제까지는 교주 위주로 했다 할 수 있죠. 그러면 대개 예수가 어떤 분인가, 공자가, 붓다가 어떤 분인가를 보는 거에요. 그런데 요즘엔 클라이언트를 중심으로 하고 있거든요. 어떻게 무당이 되느냐, 그 사람을 찾아가는 클라이언트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느냐... 예수가 어떤 가르침을 했느냐가 아니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어떤 느낌을 가지느냐 가치관이 어떻게 변했는 가... 그것이 심리학에서 케이스 스터디로 옮겨온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고. 그 다음 에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목적론적 이야기와 방법론적 이야기. 아주 재밌는데, 유어 바 디 이즈 모어 댄 유어 헬스. 저 70 넘었거든요. 모이기만 하면 뭐 좋다 뭐 한다 이런 이야기 하거든요. 그럼 제가 이야기합니다 유어 바디 이즈 모어 댄 유어 헬스. 몸 자체 가 목적은 아니다. 그것이 영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뭔가 다른 차원의 것이라 생각해요. 여유 있어 오전 내내 헬스 가고 오후 내내 목욕탕 가서 일생 보내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 말씀 드리고 싶고... 그 다음에 제가 마지막으로 왜 이 말씀을 주제를 선택을 하셨 을까 생각이 드는데, 왜 웰빙하고 행복일까... 거의 등가적 개념인데. 처음 말씀하신 것 처럼 상상과 증명이라 하시면 상당히 컨트라스트도 있고 컨틀릭트도 있고 그러면서 추 구할 수 있는 하모니도 있고. 그런데 왜 등가적 개념을 말씀하셨을까. 아주 흔하게 웰 빙, 웰다잉은 말씀 안하셨을까. 전 웰다잉이라는 말이 행복이란 말보다 저는 급격하게 흔하게 쓰이는 새로운 언어다 생각하거든요. 섹스 에듀케이션이 패션을 이루듯 웰 다잉 이 패션을 이루면서 막 퍼져나간다 생각하거든요. 웰다잉이 왜 그게 중요하냐면 시점을 바꿔놓기 때문입니다. 웰빙은 종말을 전제하지 않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그런데 웰 다 잉은 종말의 자리에서 삶의 과정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꾸 어떤 식의 논의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보냐면, 웰 다잉의 입장에서 웰 빙을 정리하는 새로운 그 삶의 퍼스 펙티브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그게 지금 하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우리처 럼 BK HK해서 나오는 것처럼 일본에서 COE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Center of Excellence라고 해서 문부성에서 하는 우수 연구 지원 프로젝트인데, 동경대학 종교학 과에서 하고 있는 COE 프로젝트는 사생학 연구입니다. 생사를 거기에선 사생이라고 하 는데 잘 바꿨다고 했어요. 작년에 가봤을 때 보니 연구 세션이 세 갠데 엄청난 돈을 들 입니다. 일 년에 몇 억엔을 쏟아 부어가면서 장기 연구를 하고 있는데, 죽은 문화의 문 화적 자료를 수집하고, 그 다음에는 이론적인, 철학이나 종교에서 죽음을 어떻게 이해 한다든지 하는 거고... 세 번째가 중요한 거에요. 심리학에서 관심을 가지는 분이 계실 거 같은데, 죽음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요. 그런데 그걸 우리나라에서는 시회복지

58 기관에서, 주로 노인 복지기관에서 하거든요. 저도 참열 해봤습니다만 상상히 반응이 좋습니다. 늙은이들에게 죽음 이야기하면 몰매 맞지 해도 죽음이 현실적인 부분이거든 요. 그런데 죽음에 대한 교육을 유치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커리큘럼을 만들어 요. 금붕어가 죽는다 왜 죽었을까, 살아있는 건 모두 죽는다 너도 죽는다, 살아있는 건 출생에서부터 사망 사이를 사는 거다 이런 걸 가르칩니다. 흥미있는게 말이죠, 컨트롤 된 두 집단을 연구했더니 죽음 교육을 받은 집단과 받지 않은 집단하고 비교를 했더니 교육받은 그룹의 퍼스널리티가 더 좀 착하고 배타적이지 않고 긍정적인 것이 상대적으 로 더 높게 나타나더라는 거에요. 그런 새로운 문화들이 전세계적으로 확장되고 있습니 다. 미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래 왔고 일본에서도 그렇고 한국에도 상당히 많은 시도가 있습니다. 웰빙이 웰다잉을 함축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웰 다잉하고 웰 빙을 연결시키는 새로운 스트럭쳐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목표로 정리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리고 그건 당연하게 철학이 전유할 수도 없고 의학이 전유 할 수 없다. 전 요즘 죽음자체가 민주적으로 이뤄진다고 생각하는데, 죽음은 판정을 받 아야 하지 않습니까. 자연적인 현상으로 이해되던 때가 지났고, 보호자, 의사하고, 변호 사하고 성직자하고 같이 모여 경정한단 말이에요. 그것이 현실이라는 거죠. 웰빙 웰다 잉 전부 다 다시 논의해야 하는 거죠. 그런 퍼스펙티브의 전환. 이대일 : 선생님 말씀이 상당히 중요. 욕망의 충족이라는 문제와 행복, 그리고 웰빙에는 내용적 함의가 상이한 내용들이 혼재되어 있지 않냐 하는 생각이고. 그래서 이것을 어떤 형태 로든 개념 정의를 해놓으면, 웰빙에 담긴 독특한 뉘앙스 젊은 세대들이 지향하는 가치 관 이런 것들을 못박아서 좀 정돈을 해놓으면 명료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이런 이야기 들어서 좋고 저는 오히려 함선생님에게 묻고 싶네요. 전통 건축에 있 어 어떤 형태로든 행복의 개념이랄까 욕망의 충족이란 측면에선 충분히 많이 논의된 것으로 아는데... 함성호 : 다시 고전적인 부분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 사느냐, 와이 빙 에 대한 문제를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욕망의 충족, 이게 과연 행복일까 하는 의 문이 드는데요. 일단 욕망을 충족한다는 말 이전에 웰빙이나 웰다잉 이전에 와이빙이 필요하단 거죠. 욕망을 충족하기 이전에 그 욕망은 어떤 욕망인가 들여다볼 필요가 있 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게 라깡식으로 타자의 욕망인지 순수하게 너의 욕망인지 이것을 직시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게 순수한 자신의 욕망일 때 웰빙도 웰다잉도 될 수 있지 않을까. 항상 행복이라는 것이 뭔가 충족시켜야 하는 거라면 그것이 무엇을 충족 시키는 것이냐, 욕망이라는 존재의 실체에 대해 다시 한 번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엄정식 : 선생님은 웰빙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웰다잉을 말씀하셨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낫빙을 이야기했어요. 죽음은 여러 connotation이 다르다. 또 하나, 소크라테스가 죽을 때 초이

59 스가 있었거든요. 이 사람을 유죄판결 내려서 독배 마시게 됐는데, 제자들이며 친구들 이 나갈 수 있게 배려를 했어요. 정부에서도 버틸 줄 몰랐고, 이 노인네 죽여봐야 얻을 거 없고. 그래서 조건부로 철학을 가르치지 말라 그 조건으로 내보낼 수 있다 했거든 요.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철학을 가르치지 않고 사는 건 사는 게 아니다, 이런 거에요. 그러니 웰 빙이나 웰다잉이 순전히 건강문제가 아닌 거죠.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어떻 게 사느냐가 문제에요. 행복은 어떻게 사느냐와 연결된 문제에요. 그리고 라깡이 얘기 하는 순수한 욕망 있잖아요. 그 욕망이 사실은 아주 원형적인 욕망이라기보다 욕망의 반대가 뭐겠어요 당위잖아요. 무엇에 억눌리면서 어떤 욕망이 생기는 거죠. 무엇에 억 눌렸냐에 따라 어떤 욕망이냐... 억눌리는 기제가 제거되었다는 그런 뜻으로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거죠. 그야말로 사이콜로직한 의미... 욕망이 아니라 컬쳐라는 컨텍스트가. 욕망이, 그게 행복의 조건인 거 있잖아요. 욕망이 없다면, 갈등이 없다면 불행할 이유도 없겠지만 행복의 이유도 없다... 이정전 : 욕망의 퀄리티 문제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마르크스가 자세히 얘기하고 있지요. 어떤 욕 망이 중요하냐. 마르크스는 어느 정도 자본주의 사회가 되면 물질적으로나 기본적인 욕 구 충족에 자본주의가 기여 한다고 봅니다. 그 다음부터가 자본주의에서 문제가 되는 게 뭐냐 하면 결국 행복을 증진시키지 못하면서 욕망만 올리는. 자본주의 사회 유지를 종속하기 위해 젤 중요한 건 물건 많이 파는 것이거든요. 예전엔 물건 잘 만들면 팔렸 지만 요즘은 이것을 선전해서 잘 포장해야 하잖아요.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거죠. 자본 주의 사회에서는 물건 잘 만드는 것 플러스 욕망 자극해서 플러스시키는 데 굉장한 에 너지가 들어가요. 대표적인 것이 경영대학이죠. 결국 어떻게 하면 물건을 많이 팔 것이 냐 기법을 연구하는 거잖아요. 물건을 많이 파는 데 대단히 필요한 것은 욕구를 느끼게 만드는 겁니다. 상술, 경영대학, 광고, 이런 걸 통해 사람들 욕망을 막 뻥튀기 한다는 게 마르크스 논의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있지도 않은 욕망을 뻥튀기 해서 과연 그렇게 뻥튀겨진, 결국 물건 많이 만들어서 그렇게 인위적으로 뻥튀겨진 욕망이 그렇게 많은 자본을 통해 충족시킬 가치가 있는 것인가 고민해봐야 합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결국 아까 엄선생님 말씀처럼 행복이라는 것은 욕망이 충족된 상태입니다. 욕망 부풀리게 되면, 분자와 분모가 동시에 늘어나면 끝이 없어지는 거죠. 100년전 사람이 이런 걸 이야기한다는 걸 보고 놀라고 그랬어요. 새로운 행복을 위해 서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합니다. 자본주의만으론 안 된다는 게 이 사람 논의의 핵심 이에요. 정진홍 : 인류의 고전적 위스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참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다행 히 세계가 동서양을 망라하게 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아프리카 종교에 관심을 두고 있 습니다. 이제는 아프리카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까 말하신 아리스토텔 레스가 죽음을 얘기한 거와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죽음은 다릅니다. 그래서 서양식으로

60 얘기하면 죽음의 사자가 걸어오는 거거든요. 불교에서는 생사일계거든요 같은 거거든 요. 결국은 같은데 다른 겁니다. 욕망도 마찬가지잖아요. 불교적으로 하면 욕망은 벗어 나야 하지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다. 벗어나지지 않는 것인데 동시에 충족되지 않는 것, 그 틈새에서 살아가는 것, 바로 요새 그 흔한대로 이야기 하면 그 틈새에서 살아가는 것.. 그래서 그런 거를 이렇게 죽 생각을 해보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게 결과적 으로는 지금 여기에서 텐터티브하게 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진리라는 것을 얘기할 수 없을 지도 모르죠. 절대적인 것으로 규범적인 것으로 딱 설정할 수는 없는 거 같아요. 대단히 텐터티브하게 지금 여기서 최선의 것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고 여기서 세월이 지나면 불과 2년, 10년, 50년 후엔 이게 다 뒤집어질지도 몰라요. 그러나 그 때 사람들 은 또 텐터티브하게 이 것이 가장 적합한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 종교학 공부하며 느끼는 건데 종교가 언제부터 악해지느냐, 자기의 주 장이 절대적이라고 이야기할 때부터 악해지거든요. 그래서 우리의 논의도 대단히 텐터 티브한 겁니다. 겸손한 자세에서 뭔가 이야기해나가면 굉장히 좋지 않을까... 이대일 : 저는 그런 의미에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세속적 의미, 탈속적 의미에서의 행복이 얼 핏 떠오릅니다. 그런 것이 과연 현대 사회를 사는 사람으로서 신세대가 만든 웰빙이라 는 단어 속에 정신적인 어떤 지향가치가 포함된 것인지 아닌지도 궁금하구요. 저로서는 웰빙이라는 단어 속에 단순한 물질적 충족 이상의, 피지컬한 차원 이상의 어떤 것이 끼 얹어져 있는 게 웰빙이라는 단어가 아닌가 생각하거든요.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 시는지... 엄정식 : 제가 컨트라스트를 왜 시도했냐면, 제가 이야기하는 행복은 이런 요소들을 포함하는 반 면에 아까 맹선생님이 이런 요소를 확인시켜주셨는데 웰빙은 주로 1번의 피지컬하고 육체적인 것, 찰나적 즐거움에 영향을 주지 않았나, 그리고 그것이 기계문명의 발달 때 문에 상당히 많은 부분이 스피릿츄얼 하고 이런 부분도 수량화가 가능하고 커뮤니케이 션이 가능하다는 신념에 근거하지 않았나. 그래서 저는 그게 상당히 선명하게 대비됐거 든요. 일단 의도는 그랬다는 거. 정진홍 : 대단히 저런 식의 분류가 컨벤셔널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 을 하는데, 세속과 탈속도 그렇게 구분짓지 않습니다. 저희 종교학에서는 그렇게 생각 을 하는데, 십자가가 어디선가는 절대적인 선인데 어디선 아무 의미 없다, 그 선을 정 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속이라는 것은 그렇게 경계지어져 다르게 논의될 것 이 아니라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탈속과 세속이라는 것을 구분해서는 안됩니다. 아까 말했듯 어떻게 의미부여를 할 것인가? 조셉 캠벨이 신화를 이야기하면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냐 합니다. 블리스. 지복. 가장 복 받은 사람은 자기 하고 싶은 거 하고 사 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저런 범주로 분류화되지 않지요. 그런데 저는 가끔 보면 영화

61 만드는 사람들, 미쳐있잖아요. 하고 싶은 거 하고 굶고 만들어서 상 타고 그러잖아요.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거든요. 브레이크 댄스 같은 경우, 제 이웃에 그런 친구가 있는데 요. 언어를 적절히 사용 않는다 할 지 몰라도 종교적이거든요. 완전히 디보션하고... 엄정식 : 지금 선생님 말씀에 자기가 원하는 걸 하면 그것이 남을 불행하게 할 수 있잖아요. 그건 즐거울 수 있어도 행복할 수 없다. 윤리적 개념이 거기서... 정진홍 : 거꾸로 생각하면 규범을 먼저 전제하느냐, 자유로운 행동에서 규범이... 맹광호 : 정교수님 말씀이 이해 안가는 건 아닌데, 중독자들,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은 그 이상 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정진홍 : 종교 해답이 자기기만적일 수 있다는... 맹광호 : 해답이 자기기만적이죠. 그래서 결국은 우리들의 대화가 단순히 철학적 담론이면 어떤 이야기를 해도 다 해답이 되는데, 교과부에서 이런 걸 할 때는 완전히 형식 갖춘 건 아 니되 지금 유행되고 있는 웰빙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문제제기가 되어야 하겠고, 거기 에서 그래도 우리가 구체적으로까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웰빙문화를 건전하게 이끌어 가려면 이러이러한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이런 이야기가 나와야 할 거 같고, 교육이나 웰빙에서 웰다잉까지도 조금 더 이야기될 게 있다고 봐요. 사실 저도 그 구분에 대해 서, 죽음에 대해서 뉴스 보고 이야기하는데, 그러니까 웰빙은 정교수님 말씀 그대로 자 기 죽음에 임박했을 때 뭘 느낄까 생각해보면 해답이 된다 이거죠. 이메일 상에 우스갯 소리로 죽을 때 사람은 세 가지를 후회한다고 하는데, 첫째 좀 더 베풀지 못한 것. 저 는 체험을 했어요. 돈 많은 사람치고 행복하게 죽는 사람 못 봤어요. 둘째로는 좀 더 참지 못한 것. 쓸데없이 말하고 행동한 것. 세 번째는 좀 더 재밌게 살 수 있었을 텐데 그것에 투자하지 못한 것. 이런 것들이 웰빙으로 가는 겁니다. 웰빙 상태로 가기 위해 서. 그 다음 상태에서는 제도화가 싫으면 어떻게 이것을 교육 프로그램화, 정보화할 거 냐든지 이런 것들도 우리가 같이 가줘야 하지 않을까요. 함성호 : 지복이라는 문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행복한 게 아니냐라는 그 이야기에 동의 하고 싶어요. 물론 아파트에서 트럼펫을 불고 그런 게 행복은 아니겠죠. 우리가 행복을 너무 행복이라는 것을 단절적으로 생각하는 거 아닐까요. 관계 속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건데, 제 주변엔 폭주족이 많아요. 도로 장악하고 달리고 하는데, 저도 처음에는 아파트 트럼펫이 생각났어요. 그런데 걔네들하고 친해지면서 이해를 하게 됐어요. 저는 지복이 야말로 행복이 아닌가. 왜냐하면 이해하면 되거든요. 아파트서 트럼펫 하면 시끄럽죠. 그런데 제가 그 입장에서 조금만 더 생각하면 서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

62 걸 비난하기 시작하면 행복해질 수 없고. 순수하지 않은 타자의 욕망을 따라가는 것, 행복하고 점점 더 멀어지는 거죠. 결국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이해라는 장치 혹은 도구가 필요하지 않나... 맹광호 : 웰빙과 같이 가는 게 웰 페어에요. 이게 되게 중요한 게 웰 페어 개념이 우리나라는 사 람 입장을 이해하는, 공동체적 서로를 배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는 그것을 윤리적이 라는 말로 썼을 뿐이지 절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회. 웰 페어한 사회가 되려면 지 금 자기만 행복하면 되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글쎄 그건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용납은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정진홍 : 그 말씀엔 있는 것 같아요. 코스모스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사람들을 어떻게 불행하게 하느냐 구조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교육, 종교공동 체가 어떻게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지 제도화 이런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리고 또 하나는 그런 면에서 종교학에서 이야기하자면 이런 것을 아이디어라고 생각하 던 때가 있었어요. 예를 들어 종교 간의 갈등이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현대 전쟁은 종 교 전쟁이니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종교 전쟁을 하니까, 종교로 정당화되든가 종교가 원인이 되든가 하는 전쟁. 이렇게 됐을 적에 가장 종교 간의 평화적 공존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뭐냐. 출발점은 다 달라도 종착점은 같다고 모든 종교들이 이해하자. 말하자면 이런 것이 컨벤셔널한 이해입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잘 될 거다. 그러나 지금 제기되는 문제는 왜 그런 상황에서 원추형을 전제하느냐. 모든 종교가 다르게 시작했으면 다르게 끝날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지금까지 생각한 것들은 대단히 규범적인, 도미네이트한 생 각들입니다. 출발점 다르면 다 종착점도 다를 거다 무한한 평행선을 그린다, 바로 그렇 기 때문에 공존하고, 그때 관계가 평화이다. 공자님 말에 따르면 그게 화이부동이죠. 같 지 않으므로 조화로운 것. 평화 개념은 종점서 모이는 게 아니라 제각기 다른 종점으로 가는 것이다. 저는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냐면 만약 불행하게 되는 구조가 어떤 건가 생 각하게 되면 그 다음에 나올 수 있는 실천적 당위로서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제도로 바꾸자, 그리고 그 제도가 정말 승인된다고 생각할 적에 평화를 얘기하자, 어떻 게 공존할 건가. 그러면 새벽 1시에 나팔 분다 하는 건 아니다 하는 생각도 들거고, 밤 중에 300키로로 달리는 오토바이도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그건 안해야 되겠다는 생각 이 들거고... 그러나 오토바일 타는 거고... 이대일 : 이 대목에서 조선생님께 질문하고 싶네요. 지금 말씀하신 걸 듣다보니 좀 전 조선생님 말씀하셨던 행복의 인식에 있어서의 주관성과 객관성 문제를 이야기하셨잖습니까. 듣다 가 이건 주관과 객관의 문제라기 보다도 어쩌면 일종의 집단적인 문화가치가 결정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을 좀 듣고 싶습니다

63 조긍호 : 주관이라는게 문화적 가치의 내면화일테니까요. 순전히 나만의 주관이라는 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사회의 문화적 가치를 내면화하는 것이 주관일 것이고 바로 그런 점에서 주관의 공통성이라든가 하는 이야길 해볼 수 있겠죠. 이대일 : 제가 90년도 티벳이 터지고 나서도 티벳과 무관한 티벳 에어리어의 인도, 그러나 티벳의 전통문화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곳을 갔었습니다. 가서 보니까 물질적인 현실은 저희 가 보기엔 완전 거지 수준이죠. 그럼에도 전통적 삶을 살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던지, 아니면 여름에 석달 반 동안 한 번 밖에 농사를 지을 수밖 에 없습니다. 식량이나 경제적 환경이 굉장히 열악한데도 불구하고 그냥 낭만적 시각이 아니구요 삶의 태도나 인성, 사람에 대한 관심 이런 것들이 거꾸로 부유하다는 생각에 감회받았습니다. 제가 관광지 되자마자 가가지고 정말 때 타지 않은 곳이었거든요. 그 때도 이 사람들의 행복이 어디서 올까 생각했었거든요. 거꾸로 전공하셨으니까 조교수 님께 여쭤보고 싶어서... 이덕환 : 저희가 거의 세 시간째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특별히 마무리 말씀을 해주시거나 8월에 날짜를 하루 정해가지고... 맹광호 : 자유롭게 이야기하게 해주신 게 도움이 되고 했습니다만 가능하면 우리도 지향하는 것, 제가 잠시 이야기했습니다만 이런 자리를 만들었을 적에는 각자 마스터베이션도 아니 고 뭔가 지향하는 지점이 있을 거라고 느끼거든요. 대체로 용어와 관련된 문제 제기, 관련된 요소들 이야기도 했고, 이런 자리가 만들어진 이유가 이런 거라고 어떤 이야기 를 더 만들어가야 할까 이야기한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이걸로 끝나고 다음에 보충적 모임을 해서 두 번 모이면 끝나는 건지... 이덕환 : 다시 한 번 말씀드릴께요. 저희가 칸을 쳐서 모일 수도 있었던 건데 그게 지금까지 했던 거고 그래서 그걸 보류하고 칸을 나중에 치기로 한 겁니다. 지금 말씀해주신 거를 저희 가 녹취하고 열심히 정리를 해서 여기서 8월에 논의하고 싶은 문제를 도출하려고 합니 다. 그 때 말씀하신 것처럼 언어적인 개념들을 칸을 적절히 쳐가지고... 텍스트는 끝까 지 보존을 하고 그것을 종합해서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더 작은 주제들을 꺼내서 그것 을 선생님들께 나누어 드리던지, 아니면 여기 계신 특정 선생님이나 모든 선생님들께 부탁을 드리던지, 확실한 건 8월엔 이런 난상토론은 아니고... 기획의원회에서 분석을 해서 조그만 주제를 만들어가지고 그걸 가지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드리려 고 합니다. 가능하면 빨리 드리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걸 드리고 선생님들께서 생각 을 해서 그걸 텍스트로 써오셔도 되고 말씀을 하셔도 되고, 다음 두 번째 모임에도 이 렇게 다시 녹취를 할 겁니다. 8월에 다시 한 번 그렇게 정리할 거고 그 다음에 10월에 모였을 때는 이것만 가는 게 아니라 세 개가 한꺼번에 갈 갑니다. 그 때 여기 계신 분

64 이 다 발표할 기회는 안 될 것 같고 그걸 뭉뚱그려서 공개적으로 토론회를, 심포지엄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지금 하실 말씀을 해주셔도 좋고 집에 돌아가신 후에 주셔도 좋 고... 맹광호 : 여기 모인 분들이 제가 보기에는 어쨌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개인을 위해서가 아 니라 사회적으로 기여하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겠다 보구요, 지금 주제 잘 잡으셨는 데 이것에 대한 그 제대로 말하자면 도움이 되고 있는 거. 그런 거를 필요에 맞춰서 그 러다보니까 저도 준비한 게 결국은 웰빙의 내용 부분에 들어가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해본다든지, 실제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은 제가 양보할 수 없고... 그럼에도 불구 하고 건강 행동은 엉망이다 이런 것들이 담아져서 우리가 한국 사람들이 조금 더 건강 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죠. 이덕환 : 다른 분들 여기서 특별히 남기고 싶은 것... 이정전 : 구체적으로 행복 프로그램... 맹광호 :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정의적인 내용이라든지 앞으로 어떡해야 한다든지 오늘 나오 기는 했어요. 이덕환 : 요거만 제가 말씀드릴께요. 저희가 지금 문진포럼에서 다루고 싶은 주제가 세 가지가 있 습니다. 하나는 순전히 학문적인 입장에서 여러 분야의 분들이 모여서 한 번 의견을, 소통을 하려는 목적으로 마련한 토론이구요. 그 다음에 그래서 저희가 정말로 이름을 붙인게 소통을 위한 디딤돌입니다. 소통을 위해서 모여가지고, 더 이상은 바라지 말고, 우리가 우리 분야만 아니라 다른 분야 사람들 이야기도 들을게 있네, 우리 같이 공유할 게 있구나 이런 정도 소득을 얻으면 만족하는 그런 수준이구요. 지금 선생님 말씀하신 사회적 통용성, 활용가치 이런 건 두 번째 세 번쨉니다. 그건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회 적 이슈하고 일반적 사회이슈하고 그거는 디딤돌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기획을 하고 있 습니다. 어떤 분들을 가지고 어떤 주제로 해서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건가 정해서 이야 기를 해야지, 안그러면 뭐 산으로 갈지 바다로 갈지 모르는 상황이 될 거 같구요. 선생 님 말씀하신 내용은 그런 거에 관련된 거 같구요. 지금 뭐 웰빙과 행복 이 자체는 처음 에 기획은 그냥 이거 놓고 소통을 해보자 그것도 괜찮을 거다 이런 거였구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도 문제는 없죠. 선생님 말씀처럼 사회적으로 활용가치 있는 제안이 나 제언이나 이런게 유도가 될 수 있으면... 맹광호 : 또 그런 게 이야기가 안 된게 웰빙을 사업화하는 그런 움직임... 이런 것에 대한 비판 내 지는 성찰 이런 거가 있고, 또 한 가지는 그거를 인식하는 개인들의 문제, 아까 얘기했

65 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 등에 대한 토론의 필요가 있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경험 하고 있는 웰빙 문화에 대한 진단이 아니고 그냥 이야기 나눈 것이 아니냐 그런 생각 이... 엄정식 : 그렇다면 지금 이덕환 선생님 말씀하신대로 난상토론이었는데, 의외로 좋은 결과를 얻었 다고 생각하는 게, 웰빙과 해피니스가 선명하게 구분되는 개념이 아니었는데 이게 섞여 서 쓰이고... 그게 구분이 되었다는 거죠. 이 시대의 행복을 우리가 웰빙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맑스 이야기도 나왔지만 자본주의가 만드는 새로운 문화잖아요. 스피 리츄얼 보다는 피지컬, 소셜, 보다 인디비주얼한... 이런 것에 초점을 놓다보니... 그래서 저희가 의도했어요. 그런데 만약에 어떤 방향, 정부에서 주도했다는 것을 너무 의식할 필요는 없지만 가시적인게 나와야 한다면 이미 우리 방향은 정해졌다고 보거든요. 전통 적인 행복 개념을 되찾아서 욕구의 충족 보다는 절제나 신심이라고 할까 이런 것들을 부각시킴으로써 건전한 심신을 얻을 수 있는, 그런 것을 함축하지 않았나... 이덕환 : 그 정도의 결론으로 귀결이 되면... 엄정식 : 아니 결론이 아니라, 그런 것을 함축하지 않나 오늘 논의들이... 이덕환 : 아무튼 오늘 다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66 웰빙과 행복, 2차 포럼

67 이덕환 : 지난번에 말씀하신 것을 텍스트로 만들지 않고 정리를 했습니다. 보내드렸으니 한 번씩 보셨을테고... 기본적으로 웰빙과 행복이 무엇인가, 현대사회에서 행복이 무엇인가, 웰빙 에 대한 노력, 행복에 대한 차이 이런 얘기들이 나왔구요. 오늘 2페이지에 나와 있는 것 은 지난 시간 논의된 것을 죽 정리하면서 이런 이야기들이 더해지면 이야기가 괜찮을 것 같다 해서 적은 겁니다. 그러니 여기에 구속되실 필요는 없고 여기에 보완을 하는 차 원에서 말씀해주시면 될 거 같습니다. 10월 9일 서강대에서 저희가 인문주간 행사를 해 야 하는데, 행사의 형식을 아직 결정하지는 못했지만 부탁을 드리니 도와주시구요. 선생 님 시작하시죠. 엄정식 : 오늘 두 번짼데 다른 주제도 그랬지만 오늘까지는 좀 자유롭게 난상토론 형식을 유지했 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 맹광호 선생님께서 지적을 해주시긴 했지만 이게 다른 모임하 고 달라서 너무 방임형식으로 해서 어디로 가는가 걱정이 된다고 하셨죠. 하지만 어찌됐 든 나루터까진 가거든요? 그런 무드를 유지하면서 자유롭게 나온 이야기를 정리하는 게 깊이나 넓이에 있어 새로운 이야길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자유로운 형식을 유지하기 로 했구요. 사실 행복이 전통적으로 오래된 개념인데, 행복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어도 바람직한 삶을 살 때 인간은 행복하다고 생각한다고 규정할 수 있는 건데요. 이렇게 큰 틀로 생각한다면 바람직한 삶을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시대별로 달라지는 것 같아요. 특 히 현대에 와서 건강, 피지컬한 차원의 바람직한 건강에 대한 폭이 넓어지면서 행복이 정신적인 부분과 내면적인 도야, 윤리적인 부분, 종교적 부분과 연결된다고 생각했는 데... 암튼 지금 행복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가시적인 게 갖춰져야 한다는 인식으 로 바뀌고 해서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제가 개인적으로 볼 때 우리가 즐거 움을 누린다고 했을 때 이걸 이차적으로 행복하다는 뜻으로 많이 쓰는 것 아닌가... 전 윤리학강의를 오래했지만 명백하게 웰빙은 개념이 좀 덜 윤리적이고 더 육체적이고 가 시적이고 사회적이고 이런 맥락 속에서 투영되는 개념이라 한다면 행복은 좀 더 정신적 이고 종교적이고 추상적이고... 그런 contrast가 이뤄지지 않았나 저는 그런 생각이 들거 든요. 그렇기 때문에 전통적인 행복 개념만 고수할 수 없는 거고 이 어휘 자체가 시대에 따라서 많이 변하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이야기를 오늘 이끌어 가면 어떨까... 재미난 것 은 지난 주인가 철학 모임이 있었는데, 그 중에 김재권 교수라고 세계적 석학과 대담을 나누면서 선생님이 언제 행복했냐고 물으니까 자기는 논문밖에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시 는 거에요. 논문 쓸 거리가 있고 그것만 생각하고 그것이 뜻대로 써졌고 그걸 남들이 알 아줬을 때 행복했다고 하시더라구요. 그게 상당히 이상한 측면에서 감동을 주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평소에 오랫동안 자기가 욕구하는, 원하는 게 진짜 뭐고 그걸 할 수 있었고 그것을 해야 했었나 그랬을 때 그게 자신의 삶의 보람이고 소크라테스식 자아인식이면 서 동시에 바람직한 삶이고 거기에 행복한 삶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지 않나... 이런 생 각을 했는데 같이 대담 나누던 김재권 교수가 그런 식으로 표현하니까 제가 생각했던 것을 확인한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같이 이야기한 김태균 교수는 올해 구순이시거든요

68 그래서 늘 건강을 강조하셨어요. 예상한대로 이 분은 내가 진짜 건강하구나 느꼈을 때 행복하다고 느낀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거기서 건강은 상당히 포괄적인 의미가 아니었 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태길 선생님이 건강에 대해 말씀하시는 게 완전히 건강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누구든 치통이 있고 치질이 있고 근시안일 수도 있 고... 누구나 병이 있고 완벽하게 건강할 수는 없다는 거였죠. 그러나 생활을 영위하는데 큰 불편이 없을 정도면 그 사람을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 아닐까. 그런데 그 분 말 씀이 아직도 이 나이에 큰 불편을 못느낀다는 점에서 나는 건강이 행복의 필요충분조건 이 아닌가 생각하신다는 거에요. 이렇게 우리가 행복에 대한 담론을 나누는 시점에서 그 두 분의 행복관을 염두에 두면서 이야기를 계속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조긍호 : 많이 생각을 못해왔는데요. 이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 subjective 웰빙 이런 문제에 대해 심리학자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최근입니다. 종래까지 심리학, 특히 서구 심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초점은 아마도 abnormal personality에 치중해온 경향이 아주 짙습니다. 적응 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타인에게나 자기 자신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됐고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만들지 이런 것들이 지금까지 심리학 자들의 중심적인 관심사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연속선상에서 abnormal부터 normal까지 ideal한 선이 있다고 했을 때 왼쪽의 abnormality 쪽으로 관심을 기울였고 그들을 normality로 이끌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전통적인 심리학의 관 심사였다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서양식의 실용주의 관점이라든지 이런 것에 배경을 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최근 1990년대 중후반쯤 해서 이쪽에도 더 바람직한 상 태, ideal한 상태로 관심들을 기울이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행복이나 subjective 웰빙과 같은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쯤부터 문화비교학 심리학에 학자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가 아닌가 싶어요. 여기에 서 문화비교학의 기본적인 틀이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나누어서 두 사회의 특징들을 구분하고 비교하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주의 중심적인 나라들이 북미, 오세아니아, 북서유 럽 등이었다면, 집단주의 중심적인 나라들은 동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이런 곳이라 하겠 습니다. 그런데 미국과 캐나다를 중심으로 한 북미지역의 대학생과 한중일 동아시아 3국 의 사람들을 비교하는 연구들을 많이 해왔어요. 그런데 이를 비교 대상으로 삼은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한중일 사람들이 미국에 많이 유학을 갔고, 미국 사람들 이 연구파트너 삼기 좋았을 뿐 아니라, 그 나라들이 경제적 발전도 좀 이루었기 때문이 죠. 그래서 한중일과 북미지역의 대학생들 아니면 같은 연령층의 사람들에게 동일한 문 제 상황을 제시해주고 그 반응을 보고 비교하는 그런 연구들이 시작되면서 유학사상이 나 불교와 같은 것에 서구 심리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 겁니다. 바로 그런 것이 normal에서부터 오른쪽 ideal한 상태까지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 다. 그래서 1990년대쯤부터 이런, 오른쪽으로 치우친 연구들을 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 가지 예로 마틴 셀리그만이라는 사람을 들 수 있겠습니다. 1960년대

69 년대 abnormal쪽 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었던 none the happiness, 무기력증상 등이 학습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아주 엄밀한 실험을 했던 사람인데, 이 사람이 1990년 대 중반 미국 심리학자 회장이 됐어요. 그 즈음 해서 이 사람의 관심이 긍정심리학이란 분야로 바뀌었어요. 정 반대의 방향으로 바뀐 것이죠. 그 사람이 자기 관심이 바뀐 이유 를 몇 가지 이야기했는데 하나는 자기 딸과의 경험이었습니다. 6살된 자기 딸과 잔디를 깎고 있었는데 아이가 막 장난치고 그 종이 구기고 하더란 말이죠. 그래서 셀리그만이 야단을 쳤어요. 그랬더니 이 딸이 한참 있다가 아버지에게 대들더라는 겁니다. 내가 4살 때까진 징징대고 물었다. 그걸 잘 알았는데 4살 생일부터 내가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그렇 게 않으려고 결심하고 있는데 아빠를 보니 아빠는 계속 야단치기만 한다. 아빠도 날 기 분좋게 해줄 수 있으니 그렇게 해봐라. 그 때 그가 아주 크게 깨달았다는 이야기도 하고 그런 배경에서 동아시아 사람들의 비교 연구와 같은 것들을 하면서 긍정적인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최근에는 행복이나 이런 문제에 대해 가장 많이 이야기 하고 전도사처럼 불리는 사람이 바로 이 마틴 셀리그만이거든요. 서구 심리학에서 이 문 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도 얼마 전이고 아직 모여진 하드 데이터가 그리 많 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엄정식 : 얼마 전에 왔었죠, 국내에도? 조긍호 : 예, 왔었습니다. 엄정식 : 그 때 좋은 얘기가 나왔습니까? 조긍호 : 네 조금 나왔어요. 이 양반이 프로그램이 있어요. 그래서 그 프로그램을 이야기하고 그 랬죠. 최근 심리학계에서는 이제 셀리그만에게서 들을 게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학자로서 생명은 끝난 사람입니다. 이대일 : 그렇다면 조교수님은 웰빙이 긍정심리학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조긍호 : 네. 맹광호 : 우선 지난번에도 이야기가 나왔지만 웰빙 이야기가 나온 건 생활수준이 높아져서 그런 것이고 그렇게 역사가 깊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기존에는 사는 것이 문제였 지 않습니까. 또 하나는 그러다보니 사실은 먹을 게 없어도 행복해야 하는 게 인간인데 그것은 교육되어야 하는 부분인데 우리 교육시스템에서 내적 가치의 중요성 같은 것이 교육된 기회가 적지 않았나 싶어요. 그나마 우리 어렸을 적엔 자연과의 교류나 이런 게

70 좀 있었던 것 같은데 점점 덜해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우리 모임을 통해서도 반성해야 할 부분 중 하나가 아닐까요. 또 중요한 것이 수명에 대한 이야기겠 죠. 현대인들의 수명이 길어졌습니다. 오래 살게 되고 보니 어떻게 사는 것이 재미있게 사는 것인지 당연히 생각나겠죠. 그러다보니 웰빙 개념이 자연스럽게 나온 겁니다. 그리 고 두 번째 주제와 관련된 건데 제가 지난번에 건강이 웰빙의 필수조건은 아니지만 충 분조건이다 이런 말씀드렸는데, 좀 전에 엄교수님 말씀하신 걸 들어보면 웰빙이 행복의 충분조건이지 않겠는가, 결과적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도움이 되는 그런 충분조건이 되 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 드는데요. 이게 제가 뒤에 나올 토론주제와도 연결되는데 전 앞 으로 웰빙 사업이 굉장히 더 확대될 거다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사람이 중요하다는 이 야기를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모상으로 창조됐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데요. 요즘 건강을 우리 의학 쪽에서 보면 건강추구에 끝이 있느냐 이야기들을 하는데요. 아까 엄교수님 완 벽한 건강 있을 수 없다 하시는데 제가 왜 웰빙 문화가 확대될 것으로 보냐면 사람이 건강을 추구하는 것이 끝이 없기 때문이죠. 왜냐하면 하느님이 인간을 완전하게 만들었 는데 완벽한 건강에 도달하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거죠. 그런 생각을 무의식으로 갖고 있 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보다 하나님 만드신 대로의 인간 모습으로 가려면 지금보다 훨 씬 건강하고 잘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모상처럼 되려면 멀었기 때문에 그걸 추구하려는 노력이 끊임없을 거라고 보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웰빙의 의미가 확대될 것으로 보입 니다. 세 번째 보면 현재 삶을 향상시킬 수 있을 거냐 이러는데 이거야 말로 왜곡된 웰 빙에 대한 개념이 아니냐, 이번 기회에 이런 개념이 웰빙이지 이런 게 만들어진다면 그 건 당연히 삶의 질을 높일 건데 지금 현재의 왜곡된 웰빙 상태에서는 그게 아니라는 거 죠. 그런 측면에서 웰빙은 행복하게 사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충분조건이 된다고 봅니다. 따라서 웰빙에 대한 올바른 개념정의가 전제되어야 하고, 지금까지 이야기가 되 었지만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웰빙,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라 영적인 것까지 포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 정진홍 선생님 안 오셨는데 한 번 여쭤보고 싶었어요. 그 분은 종교도 안가지고 계신다 했고... 그게 저는 미스테리에요. 저희 지난번에 웰 다 잉 이야기를 좀 했었잖아요. 웰 다잉을 위해서 웰빙이 중요하단 거거든요. 결국 잘 죽기 위해 지금 잘 살아야 한다는 건데, 사실 웰빙보다 웰 다잉이 정의하기가 훨씬 쉽죠. 왜 냐하면 웰 다잉, 잘 죽는 것은 국가나 민족, 종교에 상관없이 거의 비슷한 형태의 개념 이 떠오르기 때문이죠. 지난 번 이야기한 것처럼 죽는 사람들이 표현한 것을 모아봤을 때 대체로 내가 돈을 많이 벌지 못하고 높은 사람이 되지 못해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사람답게 남들 배려 못하고 착하게 살지 못하고 남들과 나누지 못한 것을 후회하 며 죽더란 말이죠. 역으로 하면 그걸 잘하는 게 잘 죽는 거고 그러다보면 웰빙에 대한 개념도 나오는 것이죠. 다시 말해 웰빙 형태 정의를 할 때 웰 다잉을 잘 살펴보면 개념 이 정의된다는 겁니다. 최근에 웰다잉에 대한 책도 많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유사 죽음 을 체험하고 죽음에 대해 연구한 사람, 혹은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 등이 말이 죠. 지난 7월 25일에 죽은 랜디 포쉬 교수의 마지막 강의도 있지 않습니까. 전 세계 사

71 람들이 감동했다고 하던데, 47살밖에 안먹은 사람이 마지막 강의에서 하는 이야기가 기 막혀요. 자기 아이들 셋을 위해 마지막 시간을 쓰는 그런 모습이 서양 사람 같지 않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연결을 지으면 웰빙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배경 이라던지 이것이 행복과 연결 지을 때 갖추어야 할 조건이라던지 특히 웰 다잉을 위해 웰빙을 생각한다면 제 경우 대충은 머릿 속에 그려집니다. 하여간 웰빙에 대한 잣대가 나옵니다. 이대일 : 저는 거꾸로 질문 드리고 싶은데요. 인간이 장수하게 되면서 웰빙 개념이 필요하게 된 것은 근래에 이르러서의 일이고, 이것이 90년대 중후반을 지나면서 30~40대에서 선풍 적으로 형성된 삶의 한 패턴이잖습니까. 이것이 웰빙이라는 단어가 된 걸로 알고 있거든 요. 앞으로 웰빙 개념이 더 중요해질 수 있지만 지금 현재의 개념이 과연 무엇인가 정확 히 알 필요가 있죠. 개인적으로는 웰빙이라는 것이 다분히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건강에 관련된 개념으로 파악됩니다. 그래서 이는 분명히 전통적인 행복의 개념과는 다소 상이 한 것으로서 산업문명이라는 독특한 체계 하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이해됩니다. 웰빙이 한정지어진 의미에서의 소극적인 혹은 협의적인 개념이라 한다면 이것이 지향적 개념으 로 봤을 때 바람직한 것일 수 있는가 회의가 들구요. 그리고 더 잘 산다고 했을 때 이것 이 어떤 건지 거꾸로 여쭤보고 싶구요. 맹광호 : 같은 이야기인데요, 결국은 30-40대를 중심으로 90년대 후반에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웰 빙은 향락적인 부분이 크다는 거죠. 젊은 나이에 돈은 있고 이걸 가지고 화려하고 허영 되게 살고 싶다, 이런 거죠. 사실은 웰빙이라는 것이 외적보다는 내적가치에 가까워야 하는데 상당히 외향적인 부분에 치우쳤고... 그런 젊은 세대의 관심을 기업가들이 놓치지 않고 웰빙 산업을 만들었다고 보는 거에요. 그것이 집이 됐던 건강식품이 됐던... 모든 것에 다 웰빙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지 않습니까. 이게 돈이 되는 거죠. 그런데 이것을 이대로 두면 지금까지 우리가 이야기하는 웰빙은 이대로는 안돼요. 이게 왜곡될 가능성 이 크다는 거죠. 그러니 웰 다잉에서부터 역으로 거슬러 가보면 죽음에 대해 임종 환자 들에 대해 이야기한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제가 말한대롭니다. 내가 왜 살면서 더 높은 지위에 못 올라갔는지, 죽으면서 내가 왜 돈을 못벌고 성공 못했는지가 아니라는 이야기 죠. 결국은 우리가 웰빙을 위해서는 좀 더 정신적인 부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 니다. 물질적인 것만 사회가 제공할 것이 아니라. 그러기 위해 그것이 교육 시스템에서 도 제대로 교육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대일 : 지금 맹교수님 말씀하신 정신적인 내용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사랑, 헌신, 봉사... 이런 것 들이 되겠죠? 맹광호 : 말하자면 그런 것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더 토론해봐야 하는데 개인적인 행복과,

72 나만 행복하면 되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더란 말이죠. 아까 어느 학자분 이야기하신 것처럼 자신이 한 일로 보람도 있고... 하지만 그건 결과적으로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 분의 논문이 영향을 미치는 거니까... 그 자체로 이타적인 행동이 되는 거지만. 순수하게 자신의 기쁨만을 위한 것은 행복이 아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이거는 논 란의 여지가 있는데 웰다잉의 이야기를 할 때 종교가 불필요한 거냐, 저는 그렇지 않다 고 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오늘 정진홍 선생님이 오셨으면 이야기 들었으면 했는데... 이거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죠. 지금까지 나온 모든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역시 spiritual한 웰빙은 웰다잉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함성호 : 저는 웰 다잉에서 종교가 필요하다, 그건 성립하지 않는 것 같아요. 있어서 그것이 긍정 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좋은 거고... 제가 이번 우리 1,2차 포럼이 있는 시간에 중국엘 잠 시 다녀왔어요. 포럼이 생각나서 그들과 행복 이야기를 하니까 그들은 행복이 우리가 생 각하는 것처럼 추상적이고 총체적이고 궁극적인 이런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내가 오늘 고량주 한 잔 마셨는데 진짜 맛있더라, 그것을 행복이라고 하더라구요. 지금 처해있는 상황에서 만족한 상태... 그 상태를 그들은 행복이라 하더라구요. 우리와 단어의 차이도 있겠지만 차이가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을 설명 하고 그것을 뭐라 하냐 물었더니 대답을 잘 못하더라구요. 중국인들은 굉장히 현실적이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맹광호 : 그런데 그것은 유교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엄정식 : 저는 유교적 사고가 고대 그리스 철학, 이를테면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등 이 사고하는 것과 굉장히 비슷하다고 봐요. 궁극적 목적이 이 사회에서 정의사회를 이룩 하는 거에요. 그를 위해 절제와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는 거에요. 그 궁극적인 목적은 이 세상에서 모두가 다 공평하고 행복하게 사는 거거든요. 그런데 내세 개념은 없어요. 중국 사람들도 그렇고. 있다 해도 소극적인 거지. 자식 잘 낳고, 부모 잘 지내고, 형제가 세속적으로 다 건강하고 잘되고 그게 행복하다는 거죠. 그래도 행복 개념은 성립될 수 있죠. 그런데 아까 중국 사람이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유교적 전통에서 말 하는 중국 사람은 자신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고량주 한 잔으로 자기만이 아니라, 어떤 맥락 속에서 고량주가 의미가 있어야 행복으로 연결되는 거죠. 사회 전체, 자식들 등과 고량주가 함축하는 의미가 연결되어야 행복할 수 있는 거지, 그냥 단순히 쾌락이 행복은 아니거든요. 함성호 : 고량주 한 잔으로 대표되는 상황들이 분명히 존재하는 거죠. 다시 말해 그것이 함축하는 게 있는 거죠. 이야기하는 와중에 들은 것인데 중국 사람들은 돈을 벌면 가까운 친척,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을 다 모아서 먹인대요. 그것이 나는 성공했다, 내가 벌어서 당신에

73 게 베푼다는 징표고 그것도 일종의 상태에 대한 것이죠. 맹광호 : 다른 말로 하면 특별한 욕심이 없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평범한 것에서 행복을 느 낀다는 이야기지요. 내세 이야기가 나와서 제가 말씀드리는 건데, 대조되는 말씀을 드리 지요. 제가 72년도에 인도 가서 한 달 정도 있었어요.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들 얼마나 많았습니까. 부자들은 여전히 있지만요. 제가 단체연수 프로그램이었는데 지도하는 교수 에게 물었어요. 우리나라 같으면 폭동이 일어날텐데 이곳은 이상하다, 별로 불행해보이 지 않는다. 한 주만 더 지내면서 관찰해보라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1주가 지나도 잘 모 르겠어서 다시 물었더니 그들은 현세가 중요하지 않다는 거에요. 내세가 중요하다는 거 에요. 내세를 생각하니까 현세가 불편한 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하더라 구요. 엄정식 : 구태여 종교를 들먹거리지 않아도 인간에게 희망이라는 현상이 있잖아요, 인간이 희망할 수 있다는 현상. 그것을 종교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그리고 내세까지도 이어진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사실 그건 검증된 건 아니잖아요. 물론 검증되었다고 웬만한 과학적 증명보다 더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성직자들이고. 유명한 토론이 있거든요. 코 플스톤 신부하고, 말하자면 논리실증주의의 대변인격인 A. J. 에이어하고의 토론에 대한 유명한 자료가 제게 있어요. 에이어가 그렇게 말해요. 내세에, 다시 말해 천당에 하나님 이 계시다. 하지만 그건 검증이 되지 않은 거지. 다만 당신이 믿는 것이고. 그랬더니 코 플스톤 신부가 그렇게 말해요. 너희들이 많은 것을 검증해야 믿지만, 그런 건 검증할 필 요가 없이 확실한 거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는 끝나는 거거든요. 그런데 두 사람에게 공 통된 게 있다면, 그것이 희망이에요. 희망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가 무한 개념을 상대적 무한과 절대적 무한으로 나눌 수 있듯이, 이것이 세상에서 제일 크다고 하지만 더 큰 개 념이 있다 하면 그게 절대자와 연결될 수 있듯이 항상 더 크다는, 더 잘될 수 있다는 개 념을 가지고 있으면 그게 행복의 개념이 아닌가 생각해요. 지금 말씀하신대로 종교가 그 희망을 갖는 한 표현일 수 있죠. 그런데 종교가 그 역할을 못할 수도 있어요. 희망끼리 싸우면 더 험악해지잖아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간은 희망적 존재라는 거에요. 더 잘 될 거라는 막연한... 그래서 제가 행복개념을 규정하는데 그런 것을 왜 중시하냐면, 합리 적인 존재라야 플랜이 있을 수 있고, 전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고, 그걸 세울 수 있어 야 그게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이 의미 있을 수 있는 거죠. 그런 플랜을 세울 수 없다면 희망을 갖는 게 무의미하고 그게 지금 이뤄졌는지, 그러니까 아까 말씀하신 고량주가 지 금 한 잔 먹었을 때 그게 자기가 지금 희망했던 것이 이뤄졌고 또 당분간 이뤄질 거라 는 상징적인 의미가 되었을 때 이 사람이 행복하다 할 수 있지, 만약 감각적이고 순간적 인 경험을 표현한 것이라면 그것은 행복이라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가족에게 한 턱 낸다 했을 때 자신이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사야 행복한 거지, 내가 갑자기 로또 돼서 돈이 많이 생겨서 이걸로 친구 가족 불렀을 때 이건 행복 개념 아니거든요. 저는 이런

74 생각을 해본 거죠. 인간에게만 고유하고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더 인간적인 삶만 행복해질 수 있다. 여기에 아까 말씀하신 spiritual한 문제와 종교적인 부분을 더 한다면 심신이 강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봐요. 만약에 기독교가 아니었다면 유교와 고대 그리스의 철학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해요. 인의예지라는 것이 고대 철학에 서 이야기하는 덕목 있잖아요, cardinal virtue라는... 그것과 그대로 매핑이 가능해요. 그런데 놀랍게도 기독교에서 super natural한 개념이 들어오거든요. 바오로의 덕목이라 는 건데, 그게 다 알다시피 사랑과 믿음과 소망이에요. 이 개념은 유교에도 고대 그리스 에도 없어요. 이건 바오로가 구체화해서 나중에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체계화한 것이지, 고대 그리스엔 그 개념이 없어요. 그런데 없다는 것은 그 의미가 특별하다는 것을 의미 하거든요. 그러니 여기서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도 아니고 아가페도 아니고 에로스도 아 니고 something special이라는 거에요. 그 사랑이 체험되려면 여호와 하나님을 존재를 전제로 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날 사랑하는. 그러니 이거는 허무 맹랑한 개념이에요. 오죽하면 마테오리찌가 신앙이라는 개념이 설명이 안 되니까 하늘 개념을 들먹거려도 중국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는 거에요. 하늘 개념은 정치적 개념이지 사실 종교적 개념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중국 사람들이 체험하는 게 효도잖아요. 그래서 마테오리찌가 대효 라는 말을 만들었더니, 이 중국 사람들이 조금 감 잡혀 하더라는 거 에요. 우리 김승혜 수녀님은 제가 보기에 아전인수격으로 그것을 가져다 붙여서 원시 종 교에 그것이 있었다고 하는데, 저는 태생이 다르다고 보는 거거든요. 암튼 그래서 사랑 과 믿음과 소망이란 개념이 없었어요. 근데 바오로가 그것을 도입한 것은, 만약 그런 게 없다면 지혜와 용기와 정의와 절제와 이런 게 다 갖춰져도 참다운 의미의 행복은 누릴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왜냐하면 도둑놈의 집단도 그것을 다 갖출 수 있으니까. 그 런데 그리스 철학에 그런 비유는 없지만 제가 그걸 설명하기 위해 빌려오는, 장자에 나 오는 비유가 있거든요. 장자에 내편, 외편, 잡편이 있잖아요. 잡편은 사실 장자가 한 말 이 아니라고들 해요. 내편은 장자가 한 말이고 외편은 좀 섞인 것 같고. 잡편은 장자를 추종하는 과장된 이야기들인데 거기 무슨 이야기가 나오느냐 하면 도척이란 애가 나와 요. 오죽하면 성이 도씨에요. 도둑 도자. 도척이 만든 이야기겠죠. 제자들이 물어요. 우 리 도둑들도 인의예지를 갖출 수 있냐. 도척이 그래요. 갖출 수 있다. 그래서 은행에 금 고 털러 갈 때 그걸 가봐야 아냐. 하늘만 턱 봐도 어딘지 알아야 그것이 지혜고... 제일 먼저 뛰어 들어가는 놈이 용기고 안 들어가면 만용이고... 그리고 그것을 훔쳐 와도 선배 도둑이 있었으니 우리가 잘 먹고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선배 도둑들도 몸 불편한 도 둑 위해 훔쳐온 것을 분배하고 이런 식으로 죽 설명하거든요. 그랬을 때 이것은 정의사 회라고는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나쁜 정의다. 그런 걸 설명할 수 있단 거죠. 그런데 하나 님이라는, 전지전능하고 선 그 자체인 개념을 도입하지 않으면 그 집단이 선한 집단이라 는 것을 보증하지 못한단 말이죠. 따라서 온전한 의미의 행복한 집단이 될 수는 없는 거 에요. 웰빙 집단은 될 수 있더라도 말이죠

75 맹광호 : 절대적인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엄정식 : 그렇죠. 그것을 전제로 해야죠. 그러나 신이 존재하느냐 아니냐는 다른 문제죠. 그걸 철 학에서 누구도 그것을 합리적으로 규정한 사람은 없다고 보이니까요. 맹광호 : 가령 칸트같은 경우는 이성 아니겠습니까. 엄정식 : 그런데 칸트는 신을 이성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고 하죠. 우리 능력을 넘어서니까. 우리 가 행복이 보증되지 않으니까 coherent하지 않다는 거죠. 그런데 만약 이것을 합리적으 로 설명하려면 신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요청할 수는 있다고 이야기했죠. 맹광호 :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어떤 절대자의 명령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고, 칸트 가 이야기한 소위 이성에 비춰서 판단한다던지, 아니면 예를 들어 밴덤의 공리주의... 많 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면 좋은 이야기라는, 그런 식으로 어떤 기준이 있을 것 아니겠어 요. 그거야 우리처럼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옳은 일은 하느님이 좋아하는 일이라 는 식으로 기준이 명확한데,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함성호 : 아까 도척 이야기 하셨는데 그러면 도둑놈은 행복하면 안 되나 이런 생각이 들었고, 또 하나는 여기까지 이야기하다보니 도대체 우리고 느끼고 있는 행복이 아니라 행복 자체 는 어떤 상태를 이루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행복이라는 게 어떤 상태에 들어 가면 지속가능한 형태로 들어가는가, 아니면 행복해졌다 불행해지고 다시 행복해지는 사 이클을 유지하는 건지 궁금하네요. 이대일 : 비슷한 질문이 떠올랐어요. 지금 세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행복 개념이 더 혼란스 러워졌어요. 아까 엄선생님께서 중국인의 고량주에 대해 일종의 콘텍스트적 사고랄까요 그런 쪽의 이야기를 하셨죠. 저는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플레지르에 가 까운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더군다나 엄선생님의 rational과 plan의 개념이라던지, 또 는 맹선생님의 no plan, irrational의 말씀을 듣다보니 거꾸로 행복의 보편적인 가치와 내용이 있을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여기에 대해 거꾸로 제가 여쭤보고 싶네요. 만일 행복의 개념에 대해서 인류 보편의 콘텐츠가 부재한다면, 거꾸로 모든 것이 다 행 복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인도 말씀 하셨지만 열악한 삶 속에서도 그들이 마음의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면 거기엔 지성이나 이성과 같은 것이 자리할 틈도 없을 것 같구 요.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거꾸로 여쭤보고 싶었어요. 이덕환 : 엄선생님 아까 말씀하실 적에 행복의 전제조건 비슷하게 rational plan 말씀을 하셨는데,

76 인도의 자는 사람들에게 있어 rational plan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엄정식 : 저는 그 사람들은 우리 못지않게 coherent하고 consistent한 인생관이 있다고 생각하거 든요. 아까 말씀드렸듯 내세와의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이덕환 : 그것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보시나요? 엄정식 : 태어날 때부터 그 사고를 유전자처럼 가지고 태어나는 거죠. 그 사고 속에서 일관되게 자신이 인생계획을 세울 수 있고, 그 계획이 지금 무리 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을 그 들도 하는 거거든요. 이덕환 : 그걸 유전적으로 태어났다고 하시면 그건 좀... 맹광호 : 이건 어떻습니까. 윤회사상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엄정식 : 그러니까 윤회사상 자체가 그들의 belief system이라는 거죠. 그것의 어떤 부분이 옳고 그르냐는 우리가 판단할 바는 아니죠. 지금 서구에서 근대적 서구사고가 옳으냐 해서 논 란거리가 되고 있잖아요. 그런데 coherent하고 consistent하게 단기간을 넘어서서, 장기 간 동안 자신의 life style을 넘어서서 선조부터 후손까지 이어질 수 있는 사고체계가 있 고, 그 체계 속에서 내 삶이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rational plan of life라는 거죠. 맹광호 : 지금 거기에 plan이 없어도 된다고 봐요. 제가 아까 인도 사람들 이야기를 한 것은 그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게 아니라 불만이 없다는 말씀을 드렸던 겁니다. 불만이 없다는 것 과 행복하다는 것은 다른 것이거든요. 행복은 훨씬 적극적인 개념일 것 같아요. 이 사람 들이 불만이 없는 건 내세를 믿기 때문이었다는 거죠. 그렇지만 그걸 곧 그들이 행복하 다고 느끼는 건 아니라는 거죠. 엄정식 : 관점의 차이인데, 우리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사람이 불만이 없는 정도지,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행복까진 아니다 이렇게 볼 수는 있어도 그 사람들 이 자신들의 belief system 안에서 더 필요한 것이 없다면 그것을 우리 식으로 불만이 없다 정도로 판단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함성호 : 아까 인도의 예를 들면 불가촉천민이나 카스트제도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제가 인도를 공부하면서 카스트 제도에 대한 아주 재밌는 현상들을 발견했는데, 불가촉천민들은 카스 트 제도 안에도 들지 못하는 계급이거든요. 그러면 그 계급을 둘 필요가 왜 있었을까 하

77 는 의심이 들어요. 그들은 만족한 상태도 문제가 있는 것이, 사회적으로 아예 차단이 되 어 있어요.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도 극히 드물고 심지어 그들이 걸은 길을 타인들이 가 려 하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한 사회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것 같은 사람들이에요. 그러 니 이 사람들이 내세를 믿으면서 어느 정도 만족을 한다는 것도 사실은 좀 불가능한 거 죠. 왜냐하면, 그때그때 당하는 육체적 고통이라는 것이 있잖습니까. 그것은 항상 만족할 수 없는 상태이거든요. 이대일 : 그건 다른 사례도 많죠. 꼭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말이에요. 우리가 보기 에는 경제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형편없는데도 만족하고 사는 사람들 많거든요. 함성호 : 그걸 과연 만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대일 : 제가 대화하면서 그런 것을 느껴봤어요. 제가 지금 묻고 싶은 건 이런 겁니다. 과연 인 류 전체 행복에 있어 보편적인 가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함성호 : 전 그게 있다고 봐요. 그게 뭐냐면 정교수님이 지난 1차 포럼 때 말씀하신 지복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인간에게는 누구나 모두가 떠받드는 지복이 아니라 개인적인 지복이 있다 는 것이죠. 엄교수님이 말씀하신 김재권 교수님의 예를 들면 논문을 쓰고 하는 것이 그 분의 지복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제가 임종을 지켜봤던 한 시인은 딱 하나 후회 되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20년 전에 썼던 글이 있었는데, 당 시 그걸 그렇게 쓰면 안되는 거였다는 거에요. 어찌 보면 그 글을 쓰고 시를 쓰는 게 지 복이었던 거죠. 그렇게 사람들은 누구나 어떤 개인적인 지복에 이르거나 그것을 좇아가 는 모두 지복에 이르거나 가는 상태, 그것이 행복이 아닌가 싶어요. 조긍호 : 여기서 문제는 그런 지복의 상태가 있다고 하더라도 무엇이 과연 지복이냐에 대한 보편 적인 기준이 있을 수 있을까에 대한 것 같아요. 그것은 개인에 따라서도, 문화나 사회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구요. 함성호 : 저도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데 지복이라는 건 다 다른 거고, 그런 지복의 상태에 도 달하거나 추구하는 상태가 행복이라는 거죠. 엄정식 : 그것을 아주 설득력 있게 설명한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거든요. 저는 그가 도덕철학의 심리학적 기초를 내세웠다고 생각해요. 그는 영혼이 3가지 기능이 있다고 봐요 식물적, 동물적, 이성적 기능이 그것인데요, 물론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식물적, 동물적 기능, 말 하자면 건강이 갖춰져 있어야겠죠. 하지만 인간이 인간으로서 행복한 것은 그게 인간만 가지고 있는 특징을 극대화할 수 있을 때 그게 행복하다는 것이고 그것은 이성적 기능

78 인 것이거든요. 어떤 사람이 육체는 상당히 건강한데 판단력이 흐리고 그러면 그것을 인 간으로서 기능을 극대화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죠. 안됐지만 그 사람은 덜된 사람인거 죠. 하지만 나름대로 행복할 수는 있겠죠. 자신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깜냥이 그거니까. 자기가 누구냐가 규정되면 자기가 반드시 먹어야 하는 적당량이 규정된다는 거죠. 그래 서 얼마나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자신이 누군지가 먼저 정의 되어야 한다는 거죠. 이게 무슨 뜻이냐면 행복의 기준이 없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에 게 통용되는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냐에 따라서 누구의 행복이 연역적으로 도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누구냐가 결정되면 절대적으로 그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거죠. 나는 어떤 놈이니까 어때야 행복하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거 죠. 하지만 문제는 다이내믹하게 자기도 변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도 변하고 하니 그걸 규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죠. 그런데 놀랍게도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관은 그것이거든 요. 저는 그래서 저는 절대로 이 문제에 있어서는 상대주의나 회의주의로 갈 수 없다고 봐요. 이덕환 : 선생님 말씀이 제게는 혼란스럽게 들리는데, 저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요즘 과학기술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들을 하잖아요. 그런 문제들 때문에 저 도 그 쪽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이런 생각을 해봐요. 아까 인도 길에서 자고 있 는 사람들도 불만이 없거나 행복하거나 둘 중 하나겠죠. 소리쳐서 못살겠다고는 하지 않 는 것을 보니까. 그런데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또 있어요. 히말라야, 아마존에 사는 사람 들도 다 불평 없이 살거든요. 인도에 있는 사람들이 유전적으로 rational plan을 갖고 태 어나는 건 아니고, 결국은 인도의 길이나 원시 사회처럼 극한 상황에서 사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그냥 적응하는 거죠. 적응해서 그 상태에서 더 이상 희망을 가 질 수도, 소망을 가질 수도, 벗어날 방법도 없다는 걸 인식하면 절망하고 포기하는 거죠. 그리고 거기서 포기하고 나면 남은 것 갖고 만족하거나 행복하다고 느끼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우리가 개인의 행복을 이야기할 적에 그 사람은 rational plan하고 관련 된 게 아니고, 그 사람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과 관계된 이야기죠. 그리고 그것을 바깥에 서 볼 때, 그러니까 타자가 타인의 행복을 말할 때에는 그것을 고려해서 이야기해야 한 다는 거죠. 예를 들어서 한 사람이 고시원 같은 단칸방에서 살면서도 행복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은 저기서 만족하니까 괜찮게 살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 은 심각하게 문제가 될 수 있죠. 삶의 조건을 어떤 식으로든 비교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 놓고 행복의 정도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봐요. 엄정식 : 그것은 제가 행복을 규정할 때 중요한 개념이에요. 그리고 특히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 는 아주 오래된 문제거든요. 그런데 행복과 긴밀하게 연결된 개념으로 희망 말고 자유 라는 개념도 있거든요. 전 자유라는 주제로 학위논문을 써서 그것에 대해 할 말은 많은 데 적어도 그것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는 거죠. 그 첫 번째가 원하는 걸 얻었을 때

79 누리는 자유 있잖아요. 정복자의 길을 가는 자유. 드라마틱한 것이 알렉산더가 추구했던 정복의 길이거든요. path of conquest라고 이름이 있어요. 그리고 그것과 너무도 대조되 는 자유 개념이 디오게네스의 은둔의 길이에요. 이것은 path of renunciation이라고 하 죠. 알렉산더가 디오게네스의 길을 갈 수 없듯, 디오게네스도 알렉산더의 길을 갈 수 없 거든요. 자기가 누리는 자유의 방식이 다르다는 거죠. 그런데 이덕환 선생님이 말씀하시 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는 알렉산더의 눈으로 지금 디오게네스를 보고 있는 거거든요. 이덕환 : 그 사람이 디오게네스에요? 인도의 길거리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은... 엄정식 : 그것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그런 거죠. 디오게네스가. 인도에 있는 사람들이 만약에 행복했다면 자신이 자신의 분수를 알아서 거기에서 만족할 줄 알게 된 거죠. 만약 자본 주의 냄새를 맡아서 갈등을 일으키는데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 다면 그 사람은 행복하지 않은 거죠. 그런데 자연주의나 기술문명 이 와도 그것에 매력 을 못 느끼거나 체념을 하거나 하면... 이덕환 : 아니죠, 그건 몰라서 못 느끼는 거죠. 엄정식 : 아니, 모르면 괜찮은 거죠. 그것은 행복할 수 있다는 거에요. 이덕환 : 그러니까 그것을 그렇게 모르고, 극한 상황에 주어져 있는 사람 말하는 거에요. 그 사람 이 성격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은둔해서 살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그 사람은 자유롭지 않죠. 삶의 환경이 자신의 선택이 아니구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 서 살고 있는 거죠. 엄정식 : 적응했을 때 생기는 자유가 있고... 이덕환 : 그걸 은둔의 자유라고 하는 것은... 엄정식 : 아니에요. 자유의 두 개념을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한다고 했을 때 그건 종교적 맥락이지 만... 이덕환 : 그걸 은둔의 자유라고 하는 것은 좀 지나친 것 같은데요. 엄정식 : 아니에요. 그것이 철학과 종교에서는 중요해요. 감옥에 처넣어도 그 사람의 자유를 억압 할 수는 없는 것 있잖아요. 몸을 불편하게 가둘 수는 있어도 말이에요. 그게 아주 대조 되는 극적인 두 가지에요. 미국 9 11 사태의 의미는 자유의 두 개념 중에 말하자면 알

80 렉산더의 자유를 상징하는 탑이 무너졌을 뿐인 거죠. 그리고 미국이 세계화 과정에서 세 계 사람들에게 주입시키려 하는 것 있잖아요. 그 개념의 자유만을 주입하려고 하는 거 죠. 그런데 인도 사람이나 디오게네스 같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자유가 있거든요. 그것을 미국화시키려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라는 거죠. 이덕환 : 이야기가 자유로 가고 있는데 다시 행복으로... 엄정식 : 행복도 내 기준으로 너는 행복할 수밖에 없다라고 한다면, belief system을 바꾸려는 시 도라는 거죠. 이덕환 : 저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내 belief system으로 저 사람이 저 상태에서 만족하거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굉장히 위험하다는 거죠. 그걸 선택이라고 하시면 제가 할 말이 없는데, 히말라야 사는 사람이 자기 선택해서 그 꼭대기 간 거 아니거든 요. 내려오고 싶은데 못 내려오는 것일 수도 있어요. 엄정식 : 제가 질문 하나 할께요. 피상적으로 보면 우리가 여기 살고 있는 건 선택이고, 히말라야 사는 사람들이 운명이라 생각하면 오판이에요. 이덕환 : 그건 아니죠. 우리도 선택에 의해 여기에 살게 된 것은 아니죠. 엄정식 : 그런데 필연적으로 우리가 만약 행복하다면, 어쩌면 선택일지 모르는데 이것을 운명적으 로 선택이라고 착각한 거에요. 사실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을... 이덕환 : 제가 말씀드린 것을 오해하고 계시네요. 제가 행복하느냐 불행하느냐, 혹은 제가 선택했 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아니고, 제 시각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 혹은 불행을 따지는 것이 그 사람의 선택한 삶의 조건이라 하시면 굉장히 복잡해져요. 그런데 그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저 사람은 이야기를 하지 않 으니까 불만이 없다고 보거나, 불행하다고 소리 지르지 않으니까 행복하다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거에요. 그런 사람들을 보고 그 사람들이 rational plan이나 희망을 가지 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 않나 싶어요. 엄정식 : 그게 만약 무리라고 들렸다면 우리 개념의 rational plan 있잖아요. 내가 내 rational plan이라고 이야기했듯이. 그 개념을 거기에 투자했기 때문에 이상하게 들리는 것이지 그 사람이 사는 동안 이런 체계에서 살았고,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 것이다, 그런데 거 기에 큰 하자가 없다, 그렇게 느끼는 한 그 사람은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거죠. 우 리 눈으로 그 사람은 운명적으로 어쩔 수 없이 저렇게 된 것이라고 본다면 그 사람도

81 우릴 그렇게 볼 수밖에 없어요. 맹광호 : 내세를 믿는 것도 하나의 rational plan이라고 보고 계신 거 아닌가요. 이대일 : 엄교수님께 질문 하나 드리고 싶네요. 디오게네스의 자신의 행복을 위한 선택적 삶이 rational plan이라 보십니까. 엄정식 : 네, 전 그렇게 보는데요. 이대일 : 저는 그것이 과연 이성에 근거한 것인가 직관적 판단력에 근거한 것인가 잘 모르겠거든 요. 인간의 사유와 이성으로 봤을 때 그에 따른 plan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아까 아리스 토텔레스의 말씀, 인간의 행복 가치 성립 불가능성에 대해 말씀하셨다고 들었거든요. 그 렇다고 했을 때 디오게네스의 판단이 과연 이성에 근거한 것이냐 아니면 직관적 인식에 근거한 것이냐가 궁금해지네요. 엄정식 : 무엇을 이성으로 보느냐. 오죽하면 근대적 이성이라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서구에서 뉴 튼 중심으로 형성된, 그리고 무기를 내세워서 제패한 세계의 의식 그걸 인식이라 하면 나머지 모두가 비이성적이죠. 그런데 취미로 디오게네스가 그런 게 아니고 자기가 정말 용의주도하게 삶이란 무엇인가를 판단하고 누가 뭐래도 당당하게 그런 삶을 살기로 했 다면 그게 그 사람 나름의 합리적인 인생 계획이라는 거죠. 이대일 : 합리적 개념이 굉장히 넓어지는군요. 디오게네스를 중심으로 한 일단의 그 사람들을... 엄정식 : 아뇨, 그렇게 넓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유명한 사건이 있잖아요. 알렉산더가 어떤 놈이 자기 못잖게 존경받는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은 거에요. 알렉산더가 그런 이야기 하잖 아요. 하늘에 하나의 태양이 있듯 땅에도 왕이 하나여야지 왜 다른 놈이 나보다 더 존경 받냐 하고 좀이 쑤셔서 어느 날 수하장병들을 거느리고 디오게네스를 찾아가잖아요. 거 기에서 유명한 햇빛 가리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실제 그 책을 보면 이렇게 나와 요. 딱 가요. 가서 자기를 I'm Alexander, the greatest. 라고 소개해요. 그러니까 디오 게네스가 이렇게 이야기해요. I'm Diogenes, the dog. 그러니 알렉산더가 할 말이 없 잖아요. 겁주려고 한 번 해본건데 딱 맞상대를 하는 거에요. 그래서 할 말이 없어진 알 렉산더가 Did I scare you? 라고 한 거에요. 그러니까 디오게네스가 Are you good guy or bad guy? 라고 되물어요. 알렉산더가 그 말을 듣고 어떻게 천하의 알렉산더가 bad guy일 수 있겠느냐 good guy지라고 이야기해요. 디오게네스가 어떻게 디오게네스 가 good guy를 두려워하랴라고 이야기하면서 맞짱을 뜨는 거에요. 내가 선을 실현하려 고 이러고 있는데 good guy를 두려워하느냐고 하니 알렉산더가 말문이 막힌 거죠. 그

82 다음에 What can I do for you? 라고 알렉산더가 묻자, 그 때 햇빛 가리지 말고 꺼지 라는 말이 나오는 거에요. 만약 알렉산더가 자신의 틀 안에서 이성적 존재라면 그 못지 않게 디오게네스도 이성적인 존재라는 거죠. 알렉산더가 기분으로 말놀이하다 그 곳에 간 것이 아닌 것처럼 그런 의미의 rational plan이라는 것이죠. 이덕환 : 선생님 말씀하시는 게 이런 거죠. 험한 조건에서 사는 사람들이 revolt 안하고 그냥 할 수 없이 살기로 선택한 것이라는 말씀이시죠? 엄정식 : revolt하면 그건 이미 행복하지 않은 거죠. 이덕환 : 그렇죠. 거기까지는 좋다고요. 하지만 그 윤회설을 믿게 되는 것도 그 사람의 선택이라 고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이조시대 때 백정은 윤회설을 믿어서 revolt 안 했던 것은 아니잖아요. 그 사람이 디오게네스처럼 말을 멋있게 할 수 있어서 그렇게 폼 나게 살았 던 것도 아니고 그냥 할 수 없이 그렇게 산 거에요. 엄정식 : 저는 백정을 행복하다고 그러지 않아요. 그런 사람들, 천민을 만나보진 않았지만. 선생님 들이 전하는 description이 맞다면 행복하다는 거죠. 이덕환 :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그거라고요. 정말 인도 같으면 자본주의가 이야기가 되겠지만, 기 본적으로 그 얘기가 과학기술과 관련된 얘기에요. 과학기술을 통해서 결국은 인도에 돈 이 왕창 들어가고, 삶의 질이 높아지면 갑자기 그 사람들도 윤회설을 포기하게 된다. 그 게 fact입니다. 우리나라도 천민들이, 그러니까 백정들이 가끔 싸움을 했는지는 몰라도 기본적으로 살고 있었고요. 일본에도 부락민들이 있죠. 그 사람들이 난리 안치고, 선생님 말씀처럼 선택해서 살고 있는데, 그 사람들을 어떤 의미에서는 revolt하게 만드는 것을 보고 과학기술이 잘살고 있는 사람을 불행하게 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의문이 들어 요. 그게 저희들에게 굉장히 심각하게 고민거리에요. 과연 과학기술이 그 사람들을 더 불행하게 만들었느냐, 그 사람들이 선택해서 정말로 윤회설을 믿어서 그런지, 뭘 믿어서 히말라야 산꼭대기에서 먹을 것 없는 곳에서 그러고 사는 건지, 그걸 그 사람들의 선택 이라고 하면 과학 입장에서는 난처해져요. 이대일 : 말이 곁가지로 나가는데, 당황스러운데요. 엄정식 : 이게 핵심인데, 과학기술이 우리 논의해 온 맥락에서 보면 두 가지 점에서 행복을 흔들 었다고 볼 수 있어요. 하나는 그 틀 안에서 자라던 전통적인 belief system을 흔들었습 니다. 그렇다면 과학의 힘으로 다른 새로운 belief system을 만들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게 만들어지고 있지 않고 있다는 거에요. 오히려 지금은 과도기라 할 수 있죠. 다시

83 말해, 과학이 만들어진 다음에도 그걸 충족시킬 수 있는 내용물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거 에요. 그래서 과학은 구조적으로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거든요. 그런데다 가 심지어 미래를 보장하고 있지 않다는 거에요. 근대과학관까지도 그게 가능했는데. 베 이컨이 한 그런 concept도 상당히 prediction 할 수 있을 것 같은 form을 잡았는데, 지 금 문제는 과학이 그것을 개런티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과학기술이 인간 을 총체적으로 불행하게 하고 있다고 보는 거죠. 이대일 : 지금 엄교수님은 행복에 대한 일종의 보편조건을 가지고 세계보편조건을 이성과 plan으 로 보고 계시는 거죠. 그리고 저나 이덕환 교수님은 거기에 반대하고, 그게 핵심입니다. 그러니까 이걸 일단 그 정도로 하고, 다른 테마에 얘기할 내용들이 많기 때문에 지나갔 으면 좋겠습니다. 맹광호 : 우리가 행복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이것을 관념화해버리면 나중에 엄청난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불교에서 말하는 소위 무념으로부터 벗어나야 한 다는 것도 결국은 관념을 벗어버리자는 것 아니겠습니까? 관념을 벗어버리지 않고서는 안 되는데 작업이 조건을 따진다든지 이런 것이 다 관념화 과정이라는 말이죠. 그냥 문 제제기로 던져봅니다. 마지막 하나, 과학기술 이야기는 다 아는 것이지만 근대철학에서 유래된 것이죠. 그런데 철학은 변화되었는데 과학기술은 변화하지 않았어요. 말하자면, 철학은 반성성찰적인 과정을 거쳐서, 이제 철학이 필요 없다고 할 정도까지 지금 뒤집어 지고 있는 상황인데 과학은 끝도 없이 나아가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엄교수님이 얘기 하신 결과론적으로 과학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 저는 어떻게 보느냐면, 과학기술의 자체 문제로 보는 게 아니라, 과학을 낳은 철학이 성찰적으로 변화된 것만큼 과학기술이 변화가 안 된 것이 큰 거죠. 그런 측면에서 과학기술 분야에 굉장한 성찰이 필요한 거 에요. 함성호 : 저는 과학기술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요. 과학기술이 우리 생활을 편리 하게 바꾼다고 얘기들을 하잖아요. 자꾸 단어들이, 이야기가 나오는데, 만족, 행복, 적응, 자유. 편리... 편리하게 만드는데, 편리하다는 게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할 것인가 하 는 생각을 한번 해보거든요. 말하자면, 핸드폰이 많은 사람들이 쓰기 전에는 전화번호라 는 것은 장소와 떨어질 수 없었잖아요 은 종로 몇 번지에 있는 어떤 전화라 는 식으로. 이렇게 장소와 떨어질 수 없어요. 어떤 개인은 그곳에 매달려 있어야 했어요. 그런데 핸드폰이 나오면서 한 개인이 드디어 시간 및 장소와 떨어져서 자유롭게 시간과 장소를 바꿀 수 있게 되었죠. 예전에 핸드폰 없을 때는 5시에 꼭 홍대 앞에서 만나자 그 럴 때 5시에 안 나가면 약속을 안 지키는 나쁜 놈이 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걸 근대적 시각이라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미리 전화를 해서 나 좀 늦겠다, 너 딴 거 해라 하는 식으로 여러 가지를 자유롭게 만들어준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편리가 자유를 가져

84 다주고, 그 자유가 어떤 만족을 주면, 그것도 행복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맹광호 : 자연과학은 방법론으로 발전한 학문인데, 저는 지금 그러면서도 과학자에 몸담고 있으면 서도 제가 열심히 과학기술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어요. 그런 기본적인 발전과정에 문제가 있기도 하고. 토인비의 대화 라는 책을 보면, 과학기술은 개발만 되 면 그냥 퍼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굉장히 맞는 말이에요. 과학기술이라는 것이 가진 속성 중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이 속도감이에요. 76년에 체외수정에 의해서 아이가 태어났어요. 30년이 지났는데, 지금 서울 뒷골목 산부인과에서까지도 다 하는 것 이 되었죠. 이게 무서운 건데. 이미 열려버린 판도라 상자인거에요. 이것을 지금 우리 같 은 사람의 몫이에요. 이것을 어떻게 과학기술의 제한을 두어가면서 어떻게 할 것인가가 큰 숙제입니다. 발전하지 말라고 하면 역적이에요. 분위기를 봐서는. 왜냐하면 사실 휴대 전화가 있으니까 되게 한 거죠. 얼마 전에 불교 방송를 TV로 보니까 대구 팔공산에 있 는 94살의 큰 스님이 앉아서 작가와 대담을 하는데, 스님 현대 우리 삶에 대해 한 말씀 해 주십시오 했더니 이 분이 요즘 사람들 왜 그렇게 바쁘냐고 하시는 거에요. 예전에 자 기가 서울 가면 2~3일 걸려서 갔는데, 요즘에는 하루 만에 갔다 오는데, 그런데도 그때 보다 더 바쁘다는 거에요 사람들이. 전 거기서 충격을 느꼈어요. 이게 큰 문제구나... 이덕환 : 선생님 말씀 하시는 것에 제가 할 수 없이 반론을 제기하겠습니다. 저는 이게 중요한 이 슈라고 생각해요. 철학자들이 반성을 하고 지금 어떻게 하셨다고 그러셨는데, 그럼 거꾸 로 철학자들이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노력한 적이 있나요? 예를 들어, 더 명시적으로 인간의 물질적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한 적 없죠? 맹광호 : 없죠. 아니 없다고 할 수 없는 게 근대철학에 있어서 경험주의라던지,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이 뉴턴의 과학을 뒷받침... 엄정식 : 베이컨도 의사였고, 라이프니츠도 유명한 의사였죠. 확실히 철학이 인간을 편리하게 만 들지는 않았어요. 이덕환 : 철학자로서 인간의 물질적 삶을 향상시킨 것이 아니라고 하면, 똑같은 질문을 과학자들 에게도 할 수 있어요. 과학자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뉴턴 이후로 분업이 되었는데 그 전의 분업을 안했으니까 왜 분업을 안했냐고 물어보면 이상한 질문입니다. 과학자들이 인간의 정신적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왜 과학자는 양쪽을 책임지고 왜 철학자는 한쪽만 책임지나, 그것이 제가 근본적으로 던지 고 싶은 질문이고요. 기본적으로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거나, 맹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거 에 저의를 받아들이기 힘든 fact가 하나 있어요. 왜 이렇게 바쁘냐. 사자가요. 먹이 많은

85 데서 한 그룹이 20마리 정도만 살면 바쁠 이유가 없어요. 제가 알기로는 사자의 사냥 성공률이 20%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먹이가 많으면, 하루 다섯 번 뛰어 한번 사냥을 하면 배부르게 먹고 살아요. 그런데 그 주변에 사자가 많아지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다섯 번으로 안 되고 죽어라고 뛰어 다녀야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겁니다. 지 금 우리 인간이 그런 형편이에요. 200년 전에 10억이었어요. 지금 66억이에요. 바쁠 수 밖에 없어요. 안 바쁘면 다 죽어요. 지금 10년 전 보다 몇 배로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에 요.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갑자기 인간들이 80세가 넘어서까지 살기 시작해요. 그 조건 을 자꾸 잊어버리는 거에요. 옛날식으로 우리가 지구상에서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에 요. 왜 66억 만들었냐고 주장을 하시면, 이건 참 답답해요. 66억을 만든 거는 불행할 수 있는데, 한 가정이나 가족에 들어가서 왜 당신 아버지가 왜 80세까지 살도록 만들었냐 고 하면 질문이 아주 험해져요. 왜 평균 수명을 80세까지 만들어가지고 이모작을 하도 록 골치 아프게 만들어놨냐. 교육도 바꿔야하고. 이러면 이건 굉장히 멋있는 질문처럼 들려요. 그렇거든요. 그러니까 그 fact를 고려해서 과학기술의 문제점을 지적해야 한다는 건데 그게 빠져있어요. 과학기술이 그런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것을 받아들이 기 힘들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험한 자연조건 하에서 그걸 선택이라고 보셔도 좋고 그 걸 포기라 해도 좋아요. 그렇게 살던 사람들한테 다른 기회를 준 거에요. 다른 방법으로 살 선택기회를 준 거에요. 저희가 과학기술 쪽에서 철학자들에게 요구하고 싶은 것은 철 학자들이 반성을 해서 철학이 필요 없다가 되게 아니라 5~6억하다 60~70억이 되었는 데, 아직도 5~6억 때의 철학을 가지고 막 설명을 하려고 하다가 안 되니까 없어지는 거죠. 엄정식 : 얘기의 흐름을 연속적으로 잘 하고 있다고 보는데, 우리가 행복을 관념적으로 너무 하는 것 아니냐고 말씀하셨는데, 행복이 제대로 규정이 안 되서 그런 문제가 나오는 것 같아 요. 일단은 과학기술이 웰빙에 무지무지 공헌했다라고 보는 것이거든요. 점점 과학기술 때문에 웰빙이 해피니스하고 차이가 나는 거죠. 우리가 쓰는 웰빙과 원래 웰빙은 현격하 게 차이가 납니다. 분명히 과학기술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줬 죠. 근데 그것이 우리가 define을 제대로 못했지만 제 definition으로는 정비례에 공헌하 지 않았다는 것이고, 여러 가지 예를 들었지만 오히려 그런 의미의 행복은 더 후지게 되 는 것 있잖아요. 그런 것의 근원적인 것은 그것이 과학자가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혹 은 과학기술이 잘못한 게 아니라, 과학기술을 응용한 우리 모두의 잘못이지, 그 사람들 은 열심히 공부하고 앎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걸 할 줄 아는 노하우를 보였을 뿐이라고요. 우리가 인격적으로 굉장히 탁월해서 불필요하다고 땅에 묻어두었으 면 그렇다면 괜찮은데, 우리 인간은 그걸 써먹고 싶잖아요. 그러니까 과학기술이나 특정 한 과학자를 매도하는 것이 아니죠. 그 사람들도 인간이고. 그 사람들이 그것을 멈출 수 도 없고 방해해서도 안 된다는 거죠. 지적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은. 근데 거기서 나온 바이 프로덕트를 우리가 생활에 적용할 때, 과연 이것이 행복에 이바지했느냐? 그래서

86 예를 들면, 알렉산더가 그렇게 많은 땅을 차지했다고 해서 디오게네스보다 조금 더 행복 했던 사람이 아니었던 것처럼, 우리가 호기심을 충족시켰다고 해서 더 행복한건 아니라 는 거죠. 그런 판단이 나오려면 행복개념을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 어요. 맹광호 : 제가 말한 과학기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다른 게 아니고. 부모가 자식을 낳으면 먹이고 입히는 것뿐만 아니라, 올바르게 가도록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겁니다. 과 학기술은 과학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겁니다. 제가 말하는 건 예를 들어서, 지금 과학 기술이 발달한 이후 낭비, 물질적인 낭비... 이런 것에 대해서 누구도, 과학자가 아닌 사 람들은 우리가 만든 것도 아니니까 손을 뗀다고 하고. 저는 어느 쪽이냐 하면 과학기술 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된다는 입장이에요. 르네 뒤버 이이기를 하고 싶어 요. 이런 측면에서 이대로 가다가 인문학이나 예술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처럼 말하자 면 그런 건데. 그런 접근으로 이쪽 분야에 대해서 관심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양쪽에서 보 면 누구도 책임을 안 진다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이야기한 것인데, 참 좋네요. 여러 측 면에서 보면 행복이나 웰빙이란 것 자체도 만만한 것은 아닌데, 확실한 것은 지금 우리 가 가고 있는 것이 바른 길이냐 아니냐에 대한 관찰이죠. 이대일 : 여기에 대해서 제가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방금 끝난 이야기들. 조금 전 삶의 리듬에 관한 이야기는 제가 생각하기에는 좀 벗어나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가령 오늘날 우리 가속화되고 다시 말해서 여유 없고, 새로운 이즘, 혹은 새로운 기술, 가속적으로 도달하 면서 이것이 과학기술문명의 책임이냐. 전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요. 과학기술문명을 축으로 하는 자본주의 문명 속에서 있는 것이지 그것이 과학기술 자체 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 측으로 해서 자본주의 문명이라는 것이 서브시스템 이기 때문에 이것 자체로 과학의 윤리성이나 도덕성 자체를 논할 수 없는 게 아닌가 하 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따라서 아까 엄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과학기술문명이 웰빙의 개념을 낳게 된 바운더리를 만들어준 공과를 인정한다고 했는데 전 그렇게 생각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웰빙이라는 개념이 어떤 의미에서는 안티사이언스 그런 색깔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물적 축적과 풍요 속에서 보다 질이 다른 삶을 추구하는 그런 과정 에서 나온 것이 웰빙의 개념이고 그런 의미에서 보다 높은 물성의 추구일까요. 양질의 삶 추구일까요.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과학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웰빙을 단지 과학기술의 그라운드로 보기 보다는 마찬가지 맥락에서 자본 주의 문명에서의 폭격과 같은 물적 양산 속에서 빚어진 그런 맥락에서 발생된 개념으로 본다면 이것을 일방적으로 과학기술에 대해서 바르다 바람직하지 않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싶어요. 저는 그렇게 봅니다. 맹광호 : 여기서 근본적으로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라, 깊은 반성이 필요한 때가 아니냐, 그런 정

87 도의 이야기죠. 이덕환 : 저희 쪽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에요. 지난 100여 년 동안 물질적 풍요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럼 거기에 맞는 낭비를 막고 파괴를 안 하고, 그런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철학적 배경은 과학자들이 만들어야 되는 것이 아니죠. 철학자들이 만들어야 되고, 정치학자, 사상가들이 만들어야 하는데 그쪽은 아무런 액션이 없었어요. 그러고 나서 지금 지금 격차가 극에 달한 것이죠. 자본주의 말씀하셨는데, 자본주의 사 고방식은 다 100년 전 식이에요. 그리고 지금 물질적인 삶의 수준은 갑자기 21세기로 왔거든요. 지금 저 밑에서 100년 전 으로 돌아오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이야기로 들린다. 그게 지금 저희는 불만스러운 겁니다. 행복에 대한 논의도 그런 면에서 불만스러운 거에 요. 어려운 자연환경, 어려운 삶의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한테 그 사람들의 입장 에서 더 나은 건지 모르겠지만. 삶의 조건 자체는 자유스럽게 해주고 나서, 그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인간적인 것이지. 넌 거기서 태어났으니까, 히말라야 산속에서 태 어났으니까 너는 거기서 만족하고 살아라. 우리 것을 안 집어넣는 것이 너희에게는 득이 다. 그런 식의 표현은 저희도 많이 했거든요. 대표적인 나라가 부탄이에요. 부탄이라는 나라가 언젠가 2차 대전 직전 행복지수 조사한 것이 있어요. 세계 8위였죠. 근데 얼마 전 부탄에서 쿠데타 일어났는데, 어느 사회학자가 이렇게 비유를 했어요. 그 사이에 히 말라야 산에 등산하러 가는 사람들이 자꾸 그들에게 무엇을 줘서 불행해졌다. 저희가 그 런 이야기를 들으면 굉장히 불편해요. 결과적으로 더 나은 선택을, 그것이 나은 것이 될 지 나쁜 것이 될지... 결국은 나쁜 선택을 하게 된 거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것은 그 사 람들의 선택이지, 그 조건을, 그 선택의 가능성을 주는 것을 비판하면, 그 과학기술 쪽에 서는 굉장히 불편해요. 지금 전체적으로 그런 것이에요. 그 물질을 낭비하고, 자원을 낭 비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기술 같은 것들에 대해 왜 그런 기술을 만들어냈느냐고 하면 그 이야기를 저희들은 참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거기에 맞춰서 사회적 제도, 사상이 이 런 것들이 이런 거죠. 아주 쉽게 얘기해서, 인도 불가촉천민이 대단한 사상을 가져서 그 렇게 불만을 터뜨리지 않고, 불행하다고 소리치지 않고 사는 것이 아니에요. 교묘한 윤 회설이라든지 뭔가 누군가에 의해 게획된 교묘한 틀 속에 그 사람들이 갇혀 버린거죠. 현대사회도 그런 틀이 필요한데 여태까지 없었던 겁니다. 엄정식 : 일단은 부탄사람들의 belief system이 흔들리기 시작하잖아요. 그럼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새로운 belief system은 형성이 안됐고, belief system이 없 는 데서 막 혼란을 일으키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 다음에 새로운 belief system이 생겼 는데, 거기서 필요한 내용물을 습득하지 못하니까 이게 불만에 찬다는 거죠. 나중에 미 국의 어떤 부자보다 부자가 되었을 때 행복할 수 있겠죠. 그러나 이 사람이 거기서 조용 히 지내는 걸 깨버리는 걸 어떤 게 더 나은 삶이라고, 어떤 삶이 더 행복한 거라고는 말 하기 어렵죠. 그래서 과학기술 자체를 콜라병으로 생각했을 때, 이 시대 전체 자본주의

88 가 과학기술의 다른 표현이에요. commercialism의 과학기술화가 자본주의라는 겁니다. 과학기술이 무엇을 변모시켰고 변모시킨 것에 걸 맞는 내용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철학더러 하라 그런 것인데, 자 생각해보세요. 2500년 전에 그 스승들이 나와서 공자니 예수니 석가 이런 사람들이 이때 그 농경유목사회에서 한 말이 아직도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보통 scandalous한 게 아닙니다. 이는 인간의 어느 점 이 못 자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보다, 그건 앞으로 2000~3000년이 지나도 안 자 란다는 것을 함축한다고요. 그런 mentality를 가지고 있는데 감당할 수 없는 과학기술을 갖다 놓고, 이게 잘 유용하게 쓰기를 삶의 밸런스를 가지고 rational plan of life를 엮을 수 있도록 기대한다는 것은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상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원천적으 로 구조적으로 불행하게 되어있다는 거에요. 이것은 마치 애들이 연필을 깎다가 잘 안 깎이니까.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을. 정신력을 가지라고 요구하는 것과 마 찬가지에요. 이덕환 : 제가 불만스러운 것은 이겁니다. 2300년, 2500년 동안에 살았던 사람이 선생님이 생각 하시는 것처럼 공자나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를 존경하며 살았다고 생각하세요? 그 극한 상황에서 공자가 살았는지 공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몇 명 없었어요. 엄정식 : 아직도 감동을 받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한테. 이덕환 : 지금 선생님이 받을 수 있는 것은 그건 세상이 바뀌어서 그래요. 200년 전에는 공자가 있었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조차 몇 명 없었을 겁니다. 그 가르침 을 알고 있던 사람이 없죠. 2300년 동안 감동을 준 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그건 그 냥 삶의 조건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그 기간이 늘어난 것이죠. 그 사이에 사람이 삶이 뭐가 바뀌었느냐. 하나도 안 바뀌었어요. 삶의 조건이 2500년 전이나 200년 전이나 거 의 똑같죠. 아무런 삶의 조건에 관한한 물질적 삶의 조건에 관한한 변화가 거의 없었어 요. 그래서 그것이 2500년이 지난 오늘에도 감동을 준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근데 기술 발전의 속도가 2500년 전에 시작이 되었으면 그것은 어제 있었던 일입니다. 2500년 동 안 감동을 준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요. 엄정식 : 예수가 그저께 태어났다고 해봐요. 그건 감동주기는 마찬가지에요. 인간의 mentality나 수용능력이나 이런 게... 이덕환 : 저희가 행복이나 이런 것에 지적하는 것은 지금 예를 들어, 예수가 200년 전에 태어났 으면요. 그 텍스트는 지금 삶의 조건과 전혀 맞지 않아요. 예수나 이런 사람들이 더 지 금 조건하고 맞지 않아요. 지금 우리 삶의 조건과 말이에요. 상당한 부분이 안 맞잖아요

89 그래서 지금 문제가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웰빙하고 행복이 겉으로 드러나는 삶의 조건이 바뀌어서 노력하게 되는 것을 웰빙이라고 보고, 속으로 느끼는 것을 행복이라고 본다면 그 격차가 커지게 된 것 아닙니까. 그 웰빙의 조건은 순전히 과학기술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행복을 어떻게 사람들이 인식하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텍스트에 의해서 느껴지는 것이 많아요. 그걸 제가 인정을 하는 겁니다. 나쁜 의미로는 인도에 있 는 사람들이 인도 길거리 자는 사람들이 불만을 표현을 안 하고 불행하다고 소리 안치 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거기다 교묘하게 그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 모르죠. 뭔가 이상 한 이야기를 만들어 놓고 너희들은 그렇게 살아라. 얽어매는 거죠. 그렇게 갇혀있던 거 라고요. 우리도 그런 상황이 아닌가 싶어요. 우리도 2500년 전에 아리스토텔레스 이런 양반들의 텍스트 속에 갇혀가지고 웰빙은 높은데 쫓아가지 못하는 거에요. 이걸 올라가 게 해줘야죠. 2500년 이란 건 의미가 없다는 거죠. 인류역사에서 삶의 물질적인 겉으로 드러나는 삶의 조건에서는 그동안은 아무 일도 안 일어났어요. 2500년이라는 기간이 무 지하게 긴 것 같지만 그동안에 변화가 없었다고요.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는 거죠. 엄정식 : 핸드폰 있다고 자유가 더 증진된 것 같지는 않거든요. 그만큼 구속이 배가되었다고 보는 데요. 이덕환 : 기술은 자유를 주기 위해서 개발된 것이 아닙니다. 뭘하는가는 사용자들이 하는 거죠. 사람들이 전화기 옆에 안 앉아있고, 들고 다니면서 전 세계 누구와도 통화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면 그것을 선택할 것인지, 그걸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는 사용자들의 몫이죠. 그거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을 채워주어야 하는 것은 철학과 사상가들이에요. 맹광호 : 마지막 질문을 보면 또 한번 만날지는 모르지만요. 저는 이런 것이 느껴져요. 물질적이 고 정신적인 것을 같이 표용하는 행복이나 웰빙을 이야기하려는데 이게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게 같이 갈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같이 갈 수 없는 것을 같이 가자고 하니까... 이덕환 : 선생님 아까 말씀하신 걸로 하면 웰빙은 너무 단순화시킨 것이라는 인정을 하고요. 저는 멋있는 표현인 것 같은데 선생님의 정의에 따르면, 상당히 physical한 부분이에요. 행복 은 상당히 내형적인 것이고. 맹광호 : 웰빙 상태가 제대로 확보가 되면 물질적 행복감이 커질 것이다, 이런 건 아니지만, 여러 가지 여건이 갖춰져서 삶의 질이 높아지는 그런 여건이 갖춰지는 것을 웰빙이라 본다면, 그것이 확대되면 확대될수록 정신적인 원래 행복은 우리가 잃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요. 그런 측면에서 아까 우리가 앞으로 돌아가면 웰 다잉이 해결책이에요. 웰 다잉이 정 말 목표라면 웰빙을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90 그런 측면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반성문제 얘기는 직접 많은 얘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같 이 가지 않으면 안 되겠죠. 함성호 : 관념적 이야기 같은데, 이교수님 이야기 듣다 보니까 산업화 이후 물질문명은 빅뱅을 이 룬 것이지요. 백년 정도에 앞선 모든 진화속도보다 거의 폭발적으로 일어났는데, 사실은 우리의 정신적인 어떤 진화속도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는 거죠. 아직도 2500년 전 말 들에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정신의 진화. 그것 때문에 저는 웰빙의 근본적 토대 가 그것이라 생각합니다. 약 100년 전 부터 시작했던 물질문명 빅뱅으로 인해 그전에 느꼈던 자연이라든가 풍경들이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것으로 둘러싸여 있단 말이죠. 그러 다보니까 사람들이 과거에 누렸던 친l자연적 생활들을 구사해보자, 그래서 웰빙이라는 것들이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렇게 되면 웰빙이 단순하게 physical한 이야기 만은 아닌 것 같아요. 웰빙이라는 것들이 우리의 정신적 진화를 어떻게 이룩해 갈 것인 가 하는 부분도 웰빙 속에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맹광호 : 하나의 해결 방법인거죠. 무슨 건강에 도움이 되고 무슨 물질적인 만족을 위한 것들이 웰빙의 콘텐츠가 아니라, 자연에 집을 짓고 그 자체도 웰빙에 들어간다면, 반드시 과학 기술 쪽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지요. 오히려 더 그런 면에서 철학적인 그런... 이대일 : 그렇다면 저는 당장 의문이 드는데요. 웰빙 개념과 행복 개념의 콘텐츠 혹은 자리 그런 것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상당히 궁금해지네요. 방금 말한 것은 행복의 대체개념 아닌 가요? 맹광호 : 행복의 하나의 충분조건일 뿐이죠, 웰빙이.. 이덕환 : 비슷한데 같지는 않아요. 이대일 : 행복을 상위개념으로 보시는 거지요? 맹광호 : 꼭 필요한 조건은 아니에요. 그것 없이도 행복한 사람이 있으니까. 이대일 : 그럼 역시 종속개념으로 보시는... 맹광호 : 꼭 필요한가, 아니면 충분한가... 이대일 : 그렇다면, 그럼 그냥 행복이란 개념을 쓰면 되지 왜 웰빙이라는 게 필요한가요?

91 맹광호 :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까. 이대일 : 상업적이라기보다 자발성이 굉장히 강한 것 같아요. 맹광호 : 제가 첫날 얘기했지만, 1947년에 건강을 정의할 적에, 웰빙이라는 말이 나와요. 소위 안 녕상태, 그게 웰빙이에요. 우선은 건강해야 되고, 사회적 롤에 있어서도 말하자면 사회로 부터 왕따 당하는 것은 웰빙이 아니죠. 사람들과 어울려서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육체적 으로 건강하고 사회적으로 잘 어울리고 그런 상태가 건강이라는 거죠. 조긍호 : 원래는 행복과 거의 동일한 의미로 쓰였을 텐데, 본래적인 의미는. 최근에 와서 웰빙이 물질적이나 그 의미가 변질된 것 같아요. 지금 죽 말씀 나온 게 인간이란 존재가 보통 이야기하길 대체적인 특성하고 사회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서 어떤 걸 더 강조 할거냐 그런 것의 싸움들이 아니었나. 서구사회는 대체적 특성을 중시하고. subjective 웰빙에서 서구인들은 삶의 만족을 어떻게 느끼느냐. 자기 독특성.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 다 독특할 때, 남들보다 수월할 때, 만족감을 이럴 때 만족감을 많이 느낀다고 하고, 동 아시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받아들여질 때, 수용될 때 만족감을 느낀다고 해요. 동아시아 사회 유학사상에선 기본적으로 인간의 사회적 특성을 강조해 온 그런 측면이 아주 강하죠. 물질적 측면과 정신적 측면 뭐 그렇게 대비할 때, 꼭 그것 이 매치되기 힘들겠지만 물질적 측면, 과학기술 그런 것이 인간의 개체적인 그런 행복, 만족에는 상당히 기여했단 말이죠. 그런데 이 사회적인 측면, 더불어 같이 사는 그런 측 면에는 상대적으로 도외시되었어요. 그래서 앞으로 행복 그러면 행복에 관한 사회적인 특성, 다시 말해 인간이 같이 모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그런 측면이 더 강조되어야 한다고 봐요. 맹광호 : 대체로 지금까지 외적인 가치에 너무 치우쳐 온 것 같아요. 거기 실제로 과학기술이 기 여했고요. 그럼 내적가치를 강조하고 키우는 것은 철학이나 인문학 그런 거 아니냐? 그 런 측면에서는 그런데, 나는 내가 낳은 자식이 잘 되도록 그것이 일으키는 부작용에 대 해서는 내가 더 잘 아니까 과학자들에게도 상당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그런 이야기였어 요. 옛날에 오래된 이야긴데,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대화라고 해서, 서정주 시인 나오고 저도 나오고 이런 사람들이 나와서 토론 벌인 적이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비슷한 이야 긴데 서로 비난을 하는 거에요. 젊은 나이에 제가 감히 서정주씨한테 그래도 과학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인문학에 대해서 향수도 느끼고 그걸 어떻게 하면 좀 해서 과학기술을 좀 제대로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시 쓰는 당신들은 과학기술에 대해서 언제 관심한번 가 져봤냐? 왜냐하면 서정주시인은 막걸리 가지고 있는데, 과학기술하는 사람들은 위스키 마신다고 그런 이야기 하더라고요.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서로 반성해야 할 문 제라고 봅니다

92 이대일 : 저는 아까 과학기술의 도덕성에 대해서 이덕환 교수님이 기술자 내지는 과학자가 발견해 내고 혹은 발명해낸 것에 대해서 나머지는 다른 영역이다,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판단하 고 대화하는 거에 전 첫째로 반대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왜냐하면 과학자들이 요새 상 당히 염색체 DNA 복사 문제도 그렇고 대표적인 것으로 등장을 했는데. 그런 문제에 대 해서 과학자들의 윤리의식, 가치의식 이런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2 차 대전 직전에 원자탄 개발하고 나서 그때도 과학자들 내부에서도 상당히 심각하게 있 었고 저도 그 기사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웰빙에 대해서 다음 두 가지의 사항을 주목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가지는 웰빙이 세계적인 개념이라기보다 한국에서 90년대 중반 이후에 생성된 독특한 행복가치관의 개념이라는 것에 대해서 좀 주목해보고, 이 점을 새삼스럽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나하는 겁니다. 두 번째는 제가 맹교수님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지만, 하위개념 상위개념 이런 것을 떠나서 행복은 다소 정적인 개념이고, 웰빙은 다소 동적인 개념이 아닌가. 그리고 웰빙이 다소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개념이라면, 행복은 상대적으로 수동적인 그런 개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었습니다. 웰빙에 대한 저의 두 가지 주목해서 생각해봐야 할 개념이라 생각을 하고 그 리고 나머지 문제들은 엄교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만 행복에 대한 정확한 개념 그 사전 찾아봐도 희미하게 나와 있거든요. 리듬을 저번에 흘러가는 운동이라고 했을 때, 흘러가 는 운동이 꼭 음악에서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인생에도 해당되고, 바람에도 해당되고, 강물에도 해당되기 때문에 그게 리듬 고유 개념이 아닌 것처럼. 마찬가진데 설명이 장황 해지더라도 대강 서로가 충분한 이야기를 통해서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의 개념 은 적어도 이런 것이란 가상적 모델이 있어야지만 나머지 문제들, 웰빙도 마찬가지고요. 다른 것들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정식 : 아까 조선생 말씀하셨다시피 제가 기억하기로 웰빙이라는 영어 단어를 처음 본 것은 윤 리학 책이었어요. 에우다이모니아 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를 영어로 웰빙이라고 했 더라구요. 그 전의 책들에서는 해피니스 로 번역했거든요. 아까 해피니스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공리주의 등 여러 가지로 썼잖아요.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 를 번역할 때 해피니스라고 하지 않고 언젠가부터 웰빙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이는 인간한테만 적용되는 개념이 아니라, 모든 사물이 사물로서 자기 역할을 잘 할 때, 잘 기능할 때 웰빙이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말을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쓰지 않고, 돈 있는 사람이 보약 먹고, 고급 헬스장에 가고, 전원주택에 살고, 골프채를 몇 개 가지 고 있고 하는 것을 웰빙이라고 사용하는 것 같은데, 저는 그것이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고 봐요. 행복은 지금까지 말씀드렸다시피 인생 전반에 대한 plan of life가 있고 그것이 특히 rational 하다는 좁은 의미로 쓰는 것보다도 다른 사람이 보더라도 그만한 계획은 세울 만 하다 생각하고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어요. 그걸 지금까지 잘 실행해왔고 앞으로도 당분간 무리 없이 실행될 거라고 생각할

93 때 느낄 수 있는 즐거움 있잖아요. 아까 고량주도 그런 것이 자기 꿈이었고 그렇다면, 고량주가 행복이 아니라 그 맥락에서 행복이라 느낄 수 있겠다고 저는 define이 되네요. 저도 그랬고 우리 의식이 그만큼 확대된 건데 웰빙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 후반에 어떤 모티브로 나왔든 그야말로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서 정신적인 수양이라던 지 인격적인 도야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있잖아요. 그 쪽으로 이래선 안 되겠다는 반성을 통해서... 그래서 결국 고유의 행복 개념과 같아졌다면 그거는 바람직하 다 이거죠. 그리고 우리가 토론을 벌이는 목적 중 하나도 될 수 있음 그 웰빙 운동이, 열기찬 민주화 운동이 시시해지고 이상한 문민독재같은 것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그 웰빙 운동이 행복으로 근접해질 수 있다면 이 모임의 의미가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 각이 들어요. 이덕환 : 웰빙이라는 말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두 가지를 같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한 가지는 행복의 정의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생각하는데 정확히 내리자면 힘든 것 같고, 웰빙은 처음에 엄선생님이나 맹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 는데, 80년대 말인지 90년대인지 10여 년 전부터 상당히 상업적으로 왜곡되고 오염된 개념이 갑자기 사회에 확산된 거 같거든요. 분명히 그거는 무언가 잘못된 거죠. 그거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논의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웰빙과 행복을 굳이 구분을 해본다 하면 가능할 것도 같아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조금 외적인 면, 내적인 면... 그런 식으로 구분은 가능할 거 같은데... 저는 드리고픈 말씀이 행복이라는 개념, 웰빙이라는 개념... 저희가 이런 말도 쓰거든요. 가축의 웰빙... 이런 말도 씁니다. 동물 학대하면 안 된다 할 때 동물의 웰빙도 있거든요. 그런 게 엄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아리스토텔레스적, 그리고 맹선생님이 말씀하신 1947년의 개념과 연관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행복은 저의 입장이 아니라 남의 행복을 볼 적에 상당히 상대적인 것 같아요. 제 생각엔 그 사람이 선택한 것이건 아니던 그 사람이 놓여진 삶의 조건하고 아주 긴밀하게 연결된 것 같아 요. 그것을 그런 인식 없이 쓰게 되면 선생님이 말씀하신 삶의 plan에 대한 이야기... 이 런 것들 앞에 그 사람이 놓여있는 조건에 대한 전제가 깔려 있어야지 그게 빠지고 나면 이게 조금... 엄정식 : 지금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 쟁점 같아요. 만약에 행복을 조금 더 좁은 의미로 써서 웰빙 이라 그랬다면, 아리스토텔레스 이야기하듯 이것에 이것 나름의 웰빙이 있고, 그리고 또 식물은, 책상은 책상 나름의 웰빙이 있다고 해봐요. 그러면 그것이 웰빙하는 조건은 자 기 규정이거든요. 자기가 누구고, 어떤 존재며, 어떤 기능을 해야 고유한 기능을 하면서 제대로 존재하는 것이냐가 다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천민들을 볼 때 자기 나름 대로 그들이 자신들이 규정한 기능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걸 우리가 우리 식으로 규 정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저는 오히려 그게 조금 비유가 심할지 모르지만 예를 들어 부시맨에게 콜라를 던져준 게... 그런 게 있었다는 거에요. 상업혁명 이후에 워낙에

94 방적공장을 많이 만드니까 식민지적 활로를 영국 사람들이 개척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장사만 해먹으려고 그런 게 아니라 옷을 입혀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대 요. 어떻게 옷을 안입냐. 그래서 대부분 다 입혔는데 남은 게 아프리카였대요. 아프리카 에 그들이 두 사람을 보냈는데, 한 명은 전혀 활로 가능성이 없다, 입지 않을 거다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무궁무진하다, 이거는 옷 입는 거를 가르쳐야 한다고 한 거에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얼마나 지금도 입는지 모르지만 그게 행복하냐 이거죠 우리 관점에서 봤을 때. 선교사들이 그런 mentality를 가지고 있대요. 이 사람들이 전도가 안 된다는 거에요. 전도가 되려면 원죄 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 이빨이 안 들어간단 말이죠. 그 러니 원래 인간은 죄인이라는 것을 가르치기까지 그렇게 힘들었대요. 물론 아직도 못 가 르쳤지만. 그러니 그게 예수를 믿게 하는 게 그 사람들을 바람직하게 살게 하는 방법이 냐, 전체적인 맥락에서 그것과 비슷하다는 거에요. 물론 이 사람이 나중에 선교사 친구 도 생기고 원죄의식이 없는 게 너무 부끄럽고 그렇게 되면 불행해질 수 있죠. 그런데 그 렇기 전까지는 belief system이 independent 하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보면 내가 뭘 믿고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는 항상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죠. 그 사람이 문화적으로 어떤 배경, 어떤 신념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거기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자율적으로 인정 받아야 하는 거고, 그게 충족되는 한 그 사람은 행복하다 이거거든요. 그 사람에게 우리 가 코카콜라 같은 것들을 다 줬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belief system이 바뀌면 그 사 람은 과도기를 거쳐서 불행했다가, 이제 새로운 체계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이야기 죠. 그래서 나는 우리 이덕환 선생님하고 관점이 본질적으로 틀리지는 않다고 봐요. 맹광호 : 웰빙이 갖고 있는 본래적 의미가 잘 지내는 것, 잘 기능하게 하는 것...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인간의 웰빙은 인간이 인간답게 기능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그동안 못 입고 못 먹는 것도 인간답게 기능 못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고요. 그러니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거 입고 먹고 이것도 인간답게 기능하기 위한 하나의 조건일 수 있단 말이죠. 지난번 정 진홍 교수님 말씀하신 것 중 echo가 되는 게 하나 있는데, 제가 아는 지체아 이야기를 했을 때 그게 불행한 것 아니냐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정진홍 교수님 말씀을 들어보면 다분히 주관적인 면이 있단 말이에요. 본인이 행복하다고 느끼는데 그걸 당신 행복한 게 아니냐고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종교 역할인데 요즘 일어나는 현상을 보면 종 교 잘못은 아니지만 웰 다잉으로 인해서는 되게 중요한 조건인 거 같은데 웰빙에서는 종교가 문제를 일으키는 거 같아요. 오늘 오기 전에 찾아보니까 천주교 내에서도 교회 때문에 상처 입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거에요. 역사에 보면 성 요한도 마찬가지고. 동 료 수도사들에게 왕따 당해서 갇혀 사는. 글쎄 우리가 그게 종교에 문제 있는 게 아니라 종교 믿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 입는 건데 종교 때문에 상처 입은 것처럼 이야기하더란 말이죠. 자칫 잘못하면 종교가 문제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이야기죠. 엄정식 : 저는 곁들여서 그런 이야기도 조금 같이 하고 싶은데 그런 formal한 종교를 안 갖고 있

95 어도 저 사람은 신심이 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는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그렇게 규 정하고 싶거든요. 모든 게 다 설명된다는 식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뭔가를 인정하고, 거 기에 대한 경외심, 그 경허함, 그리고 그것이 전반적으로 삶에 반영될 때 그 사람은 신 심이 강하다, 전 그렇게 믿고 싶거든요. 그런데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하느님이라던지 부처님이라던지 identify화해서 실제로 다가가는 것 있잖아요. 그것이 기성종교고. 그래 서 그게 만약 종교의 기준이라면 덜 된 목사님이나 신부님 강론을 보면 알 수 없는 것 에 대해 너무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게 굉장히 실증적이라고 보거든요. 조 그만 정보 갖고 많은 걸 이야기하는. 오히려 진실하다면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조금 이 야기할 수 있잖아요.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의 차이를 그것이라 보는데, 저널리즘에서는 적은 정보를 가지고 그것을 일반화하잖아요. 그런데 학자라면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평 생 한 번이나 두 번 소리를 내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종교적이라는 것과 어떤 종교를 갖 고 있다는 건 별개의 문제라고 봐요. 그래서 성직자도 비종교적일 수 있고, 종교를 가지 고 있지 않아도 삶의 태도로 봐서 알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한 겸허와 배려가 있다면 저 는 그걸 종교적이라고 보는 거거든요. 제가 마지막 개념으로 행복은 섭리적 개념이다라 고 말한 것은, 그게 자연의 섭리이든 신의 섭리이든, 부처님의 섭리이든 표현은 무엇이 든 좋은데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작동한다는 거에요. 어쩌면 그게 제일 중요한 요소일지 몰라요. 칸트도 그랬거든요. 우리가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그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은 보장되지 않는다는 거에요. 하나님이 있어야 설명이 다 된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카톨릭 에서는 그거를 상당히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는 거죠. 합리적으로 중세 이래로 증명할 수 있다고 봤는데, 하나씩 하나씩 그게 왜 논리적으로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를 똑같은 방식 으로 왜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가도 증명해요 이 사람이. 이성을 가지고는 하느님을 증 명할 수 없다. 신의 영역이 따로 있다는, 그것이 순수 이성을 넘어선다는 그런 이야길 하거든요. 제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저를 광신자로 볼 수 있는데, 그것과는 상관없 이 알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한 겸허함이 있잖아요. 과학자들이나 수학자들이 굉장히 종 교적일 수 있다는 게 그 사람들이 산에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어디서부터 인간의 올라감을 누구보다도 잘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잖아요. 그와 마찬가지로 깊이 분석하고 검증한 사람일수록 어디서부터 검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신심이 그런 데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덕환 : 프리고진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복잡성의 과학을 처음 시작한 사람인데 그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자기는 신을 굉장히 믿고 싶다고 해요. 그런데 인간화된 신은 싫어한다 고 하죠. 해석되고 엮어진 신. 지금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이야깁니다. 그 사람은 원래 캐톨릭이었고 성당에 굉장히 오래나갔는데 어느 순간 그렇게 믿어져서 안 나간다고 하 더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섭리적 이라는 말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요. 맹광호 : 오해받을 수는 있죠. 섭리적 이라는 말이 기독교에서 주로 쓰는 말이기 때문에. 그런데

96 듣고 보니 그런 뜻이 아니라... 엄정식 : 맞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비기독교적, 비불교적 이런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다 말하는 범종교적인 어떤 태도... 그런 의미로 고대 그리스에서도 호모 렐리기오수스 라고 호모 사피엔스나 이런 말과 같이 써요. 인간은 본성적으로 종교적이라는 거죠. 맹광호 : 르네상스 이전과 이후를 구분해서 신에서 인간 중심으로 가다 보면 옛날 것이 인간에 대 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 것 아니냐 하는 이야기도 있고... 이덕환 : 이제 대강 정리를 하셔도 될 거 같은데, 특별히 하실 말씀 있으시면... 맹광호 : 이번에 재밌는 게 정리해서 보내니 좋은 거 같아요. 정리를 쫙 해서 하니까 좋은 거 같 아요. 많이 고쳤어요, 덕분에. 조긍호 : 아까 사회적인 특성을 더 강조한다고 하는... 인간의 사회적인 특성을 포괄하는 정의가 좋았다고 생각됩니다. 맹광호 : 사회적인 존재로서 훈련이 안 된거죠. 또 기본적인 삶의 자세에 대한 교육도 안되어 있 죠. 소위 말하는 가치 교육이 안됐다는 것도 이 기회에 이야기해야 할 것 같고... 가치 문제를 떠나서 웰빙과 행복 문제를 이야기할 수는 없는 거거든요. 함성호 : 아무리 우리나라에서 웰빙의 파도가 상업화되어있고 기형화되어 있다고 하더라고 이게 왜 먹히는가에 대한 생각도 해봐야 할 거 같아요. 산업화의 공포들, 우리 사회가 급격히 산업화되면서 가져왔었던 공포... 집을 지어달라고 건축주들 의뢰가 오면 건강 무진장 걱 정하거든요. 그런 건강 걱정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거에요. 그런 어떤 산업화의 공포도 우리가 같이 생각해봐야 할 거 같아요. 맹광호 : 그게 웰빙 바람의 긍정적인 측면... 아까 엄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자연친화적인 이런 것이 웰빙 내용 속에 들어가 있으니까요. 기능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그런 측면도 있죠. 엄정식 : 저는 사실 웰빙의 모델로 되어있거든요, 당진 근처에서는. 제가 21년 전에 제가 부친 고 향을 찾아 농가를 사서 책도 쓰고 농사도 짓고 그러는데... 저는 그렇게 define하고 싶어 요. 행복은 자기 인식의 함수다. 자기 라는 게 세 변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삼각형 같다 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를 안다는 건 세 변의 길이와 크기를 안다는 건데 이 변이 욕구 와 능력과 당위의 세 가지로 이루어진 것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자기가 진 정으로 원하는 게 뭐고, 자기가 얼마나 그걸 해낼 수 있으며, 과연 그것을 해도 되는지

97 해서는 안되는지 알았을 때 그것을 해낸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죠. 그런데 만약 우연히 뭐가 이뤄졌다고 해도 그것을 자기가 의도하지 않았고 그것이 우연히 이뤄진 거 라면 그건 행복은 아니라고 봐요. 그건 재수가 좋은 것 뿐이죠. 그런 의미로 행복은 자 기 인식의 함수라고 봐요. 맹광호 : 오늘 꼭 나왔으면 했는데 안 나온 말이 하나 있는 거 같아요. 감사 가 그것인데요, 이미 만족이나 이런 이야기는 나왔는데 말이죠. 행복에 있어서 감사의 마음이라는게 상당히 중요한 거 같아요. 감사의 마음이 있어야 행복한... 함성호 : 감사한다는 마음을 일으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일 것 같아요. 엄정식 : 하느님 아니더라도 조상님께도 감사할 수 있죠. 함성호 : 제가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 제가 성경에서 젤 이해 안되는 말이 범사에 감사하 자는 이야기였어요. 왜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거지, 기적에 감사해야 하는 건데... 이덕환 :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여섯 번 모였습니다. 오늘 주제에 대해서는 두 번 모였구요. 저 희가 요새 융합 이런 것들이 엄청난 유행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만남의 노력이 많이 있는데 웰빙은 그래도 두 번 다 상당히 길게 이야기가 활발히 된 거 같구요. 사실 다른 것들은 편차가 좀 있습니다. 이번 문진포럼 사업에서 실시하는 게 정형화된 틀을 제시하 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론을 제시하려고 하는 거거든요. 여기서 얻어낸 이야기 그 자 체로도 의미를 찾을 거고요. 그보다 문진포럼 자체로 관심이 있는 것은 서로 만나는 방 법에 대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만남이 형식은 다양하지만 일회성입니다. 만나서 자기 하 고 싶은 말 하고 헤어지는 겁니다. 그 다음 follow up은 없죠. 거기서 우연히 몇 분이 재밌는 말씀을 하시면 그런 모임이 몇 번 더 있고 그런 거였는데, 이거의 전신인 새로 보는 과학기술 이 그런 식이었거든요. 8번을 해봤는데 하고보니 상당히 허무하더라구요. 참가하신 분들도 그냥 뭐 화려한 행사에 한 번 참여했다 정도밖에 없었어요. 이번에 우 리가 문진포럼에서 시도했던 것이... 그래서 이렇게 텍스트를 정리한 겁니다. 본인이 어 디 가서 한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 볼 기회가 없거든요. 이게 보면 어떤 분야하고 어떤 분야 분들이 모이면 잘 섞이고 어떤 분야 분들은 다 튕겨져 나가고 대화가 전혀 안돼요. 그런데 후자가 더 많습니다. 그러니 일회성 행사에서는 같이 모여 이야기 한 번 해보고 헤어지면 끝입니다. 우리가 두 번이라 조금 아쉬운 점도 있는데, 다음에 만약 이런 기회 가 있다면 기획을 해가지고 지향점을 두고 끌고 가는 것, 몇 분이 모여서 이렇게 가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효율적이기보다는 더 의미 있는 모임이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자료가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일회성 만남은 그냥 각자의 이야기들이 흩어진 거 지, 흩어져서 같은 책에 들어갔다 뿐이지 서로의 융합이나 통합의 의미는 전혀 없는 것

98 같아요. 이게 과연 효과가 있는지는 다른 곳에서 평가하겠지만, 그러니 이번에 시도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더라도 앞으로 이런 시도가 진행이 되면 관심가져 주시기 바랍 니다. 오늘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99 리듬, 1차 포럼

100 이덕환 : 바쁘신데 참석해주셔서 감사드리구요. 제가 한경구 선생을 모시려고 무지 애를 썼는데 이 분이 한참 외국에 계시다가 오늘 귀국하셔서 다음 번에 모시려고 합니다. 다른 분 서강대 우찬제 선생님이라고 있는데 어제 유럽에 가셨다고 하고... 바쁘신 거 같아요. 저희가 문진 포럼이라고 이따 엄선생님이 설명해주실텐데... 이미 시작을 했습니다. 지 난 7월 2일에 상상과 증명 이라는 주제로 세 시간 논의를 했고, 또 7월 7일에는 웰빙 과 행복 이라는 주제로 세 시간 논의를 했습니다. 오늘 리듬이라는 주제로 하게 되는데 요. 문진포럼 전체 틀은 위험과 소통, 교육이라는 주제가 더 있는데... 저희 기획의원은 젤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데, 엄정식 선생님이 위원장이시고, 저하고 최재천, 이대일, 정민 선생님에 학진 장지상 인문사회단장, 과학재단 이승종 본부장님까지 이렇게 일곱 명이 꾸려가고 있고, 여기 박성철 박사가 실무를 맡고 있습니다. 지금 지원은 교과부의 정책과제 중 하나고 학진에 인문주간 행사라는게 10월에 있는데 그 지원금 2개를 모아 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기본적 취지는 이따 말씀 드릴테고 이번 포럼을 토론을 좀 해서 7월말까지 정리를 해서 선생님들께 보내드리겠습니다. 그 때엔 논의된 데에서 주 제를 추출을 해서 보내드리도록 할거구요 8월 말에 다시 모여 심화된 토론을 할 겁니 다. 그 내용을 다시 정리해서 텍스트로 만들 거구요. 10월 둘째 주 인문주간에 공개행 사를 할 겁니다. 새로 보는 과학기술 이라고 2006~2007년에 걸쳐 과기부에서 8번 걸 쳐 토론을 주최했었는데, 각 분야의 분들 모셔다가 다양한 이야기를 했어요. 그 4개의 포럼에서의 텍스트를 모은 것이 이 책입니다. 문진 포럼은 그 후속격이에요. 지난번 새 로 보는 과학기술 의 토론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이번엔 비공개로 전문가들끼리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원래 취지는 좀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 대중화에 대해 이야 기 해보자, 초중고등학생 대상이 아니라 지식인을 대상으로 높은 수준의 이야기를 해보 자 하는 취지였는데, 요즘 융합이다 이런 것들이 너무 유행을 해서 과학기술을 특별히 내세울 필요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냥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수준 높은 대화 기회를 마련해보자 이런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토론을 하고 대화 나눈 것을 정리해서 텍스트로 만들어보려 합니다. 대화 내용을 녹취할 겁니다. 선생님 들이 생각하시기에 빼야 할 내용은 빼드릴테니까 전혀 신경 안쓰셔도 되구요. 오늘은 전혀 구체적 토픽 없이 리듬 이라는 주제 하나 걸어놓고 이야기를 나눠볼까 하거든요. 그럼 왜 이런 걸 하게 됐는지, 문진포럼 자체에 대한 설명을 엄정식 선생님이 좀 해주 시죠. 엄정식 : 반갑습니다. 지금 이덕환 선생님 말씀하신대로, 그런 연유로 해서 모임이 이뤄졌구요. 그 것도 좀 말씀하심 좋을 거 같아요. 이덕환 선생님이 더 잘 아실텐데, 교육과학기술부하 고 연관이 있죠? 이덕환 : 아까 잠깐 말씀드렸는데 새로보는 과학기술 은 2006년도에 당시 김우식 과학기술 부총 리께서 과학기술 대중화를 어떻게 새로운 방법으로 할 수 없을까 해서 방법을 찾다가

101 제가 이런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과학기술은 빠지고 토론에만 참여하고 주제발표는 각 분야의 분들을 모시자고 해 본 것이 과학기술 인문학을 만나다 입니다. 거기에서 엄정 식 선생님이 주제 발표를 해주셨었습니다. 그 다음이 예술을 한 번 하고 사회과학 한 번 하고 종교를 한 번 하고 그렇게 네 번을 모아서 책을 만들었고, 나머지는 실용적 분 야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것이 과기부에서 상당히 성과가 좋았다고 평가가 돼서 이번 것은 과학 분야가 아닌 인문사회연구과에서 지원하는 겁니다. 어쩌다보니 제가 저걸 8 번 기획했다 해서 실무로 참여하게 됐구요. 엄선생님 모셔다 위원장을 맡아달라 해서 그렇게 일이 진행됐습니다. 지금 이 3개 하고 있는 것은 정말 소통을 위한 디딤돌이라고 했는데, 다양한 분야의 분들이 모여서 진지한 대화가 가능하다, 이런 것을 보여주는 목적으로... 보여준다기보 다는 그것을 한 번 시연을 해보는 시험 케이스로 잡았구요. 교과부에서 정말 원하는 것 은 두 번째 새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 요새 뭐 광우병 이다 이런 것들 때문에 위험 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카테고 리는 과학기술과 완전히 상관없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하고 잡은 것이 교육 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이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 대화를 통해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를 해보자... 그냥 너무 현실적이고 표피적이고 감정적인 대립이 아니라 좀 수준 높 은 대화를 통해서 사회문제를 좀 조명해보고 거기서 실마리를 찾아가지고 사회문제 해 결에 앞장서보자 이런 취지로... 그게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시작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 럼 대화를 이끌어내는 그런 방법으로 지금과 같은 포맷을 생각해냈거든요. 그런데 아직 뒤에 2개, 즉 위험하고 교육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 했습니다. 그게 방향 설정되면 여기 계신 분들도 도움 주실 수 있음 주셨음 좋겠구요. 제가 소개하다 말고... 엄정식 : 암튼 너무 반갑구요. 요전에 그런 이유로 해서 기획위원회라는 걸 만들었는데 제가 좀 그날 늦게 갔어요. 그리고 나이도 많고 전공이 철학이라서 그런지 저한테 진행을 맡으 라 해서 진행하고 있구요. 저희들끼리 그날 확인한 거는 진짜 자유롭게 같은 주제를 갖 고 이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일종의 인문사회하고 과학이 만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 좀 사귀어보자, 그렇게 난상토론을 하다 보면 현실적으로 같이 할 일이 생기지 않겠냐 해서 주제들을 고른 거거든요. 그러니까 시험삼아 서너 번 해보는 거고 점점 더 이 과 정을 통해 세련되어지지 않을까... 지난 번 어떤 분께서 그래도 어떤 방향이 있어야 하 는 거 아니냐 하고 말씀을 하셨는데, 물론 방향이 선명화되어야 하고 가시적인 것이 있 어야겠죠. 그러나 일단은 브레인스토밍 차원에서 자기 분야에서 그 문제를 어떻게 보는 지, 그 다음에야 우리가 뭘 같이 할 수 있을지 이야기가 나오지 않겠느냐 하는 거죠. 그전에도 비슷한 모임들이 많이 있었잖아요. 제가 기억하기로 철학에서는 1920년대쯤 에 비엔나 서클 중심으로 해서 논리 실증주의가 형성될 때 각 분야 다른 사람들이 무엇 을 같이 해보자는 흐름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주도하던 사람이 논리학자이고 수학

102 자이고 물리학자라서 일종의 그 쪽으로 환원주의화 해버리는 경향이 있었거든요. 그러 면 우리 의도와는 방향이 달라지는 거죠.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시 중에 로버트 프로스 트의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네 라고 있어요. 담이 너무 없으면 트고 지내다 싸 우는 것 있잖아요. 또 담이 너무 높으면 서로 커뮤니케이션 못하니까 얘기하다보면 우 리끼리 좋은 담이 어떤 건지 서로 느끼게 되지 않을까. 자기 아이덴티티 유지하면서... 그런 의도에요. 너무 자유를 준다고 불안해하지 마시구요. 이런 주제를 택했는데 사실 은 아까 얘기가 나왔지만 이대일 선생님이 강하게 이 주제를 미셨는데, 또 이대일 선생 님 말씀만 들으면 환원주의가 되잖아요. 왜 이 분야의 분들을 모셨나 특별히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아요. 리듬이 요즘은 음악적 언어가 됐지만, 최근에 생체리듬, 바이오리듬 이렇게 다양하게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어떤 분들을 모셨음 좋겠다, 이 주제로.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배경이 뭐 냐 잠깐 말씀드리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아시다시피 리듬 이란 것은 영어잖아요. 그 런데 어원은 그리스어더라구요. rein 이라는 단어에서 어원이 생겼다고 해요. 그 말뜻은 흐른다 는 거래요. 그런데 우린 흐른다 하면 물을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게 동양 노장 사상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고, 그래서 동양사상 공부하시는 여기 분들 의견도 들어 보구요. 나중에 'rhythomos'가 명사화된건데 이게 리듬의 어원이 되는 거죠. 철학에서 는 이것을 본격적으로 쓴 사람이 플라톤이거든요. 법률 편에서 운동의 질서를 얘기할 때 이 단어를 썼거든요. 그런데 질서라 하면 사실은 그리스 신화 사회로부터 이성의 사 회로 오면서 좀 더 로고스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여러 학문적으로 합리적인 접근을 요구 하게 되잖아요. 그러면서 이게 이성하고 합리성 개념하고 연결되게 되고, 그러다보니까 최근에 근대까지 오면서 서구적 합리성 이런 게 강하게 지배하게 되는. 오히려 이게 작 위적인 것이어서 리듬을 깨는 거 아니냐. 서구 근대과학이 세상을 보는 눈. 그런 게 강 화되면서 오히려 예술쪽에서, 특히 음악쪽에서 리듬을 타는 단어들을 새롭게 부각시킨 것 아니냐. 그렇게 가기 전에 우리와 상당히 연결된 사람이 있는데 그게 피타고라스거든요. 원래 는 피타고라스 정리로 우리는 알고 있지만, 신흥종교의 교주거든요. 오르페우스. 그 사 람이 교주로 사제들을 훈련시킬 때 영혼의 정화 차원에서 수학적 훈련을 시키고, 그 훈 련이 세련될수록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이 생기고, 그러다보면 영혼이 정화되 고... 수학적 분석의 결과와 음악적 결과가 묘한 연관을 주기 때문에. 피타고라스를 심 층적으로 연구하면 우리가 왜 모였는지가 다 설명이 나오거든요. 특히 정말로 음악적인 단어로 시작하지만 음악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존재론적 문제인 것 같아요. 특히 현대에서 푸코나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은 합리성과 비합리성이랄까 요, 대립 구조까지 전부 드러나게 되는. 제가 생각하기에도 논리 실증주의 때만 해도 과학이 패러다임이 물리학이었는데 점점 시간이 갈수록 생물학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더란 말이죠.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이야기꺼리가 많지 않을까. 저는 철학이 전공인 데 공부는 미국서 했고, 그 중에서도 분석철학이라 해서 과학철학, 심리철학, 언어철학

103 그런 과목을 담당했습니다. 이덕환 : 소개가 길었는데 이대일 선생님으로 넘어가서... 이렇게 길게는 하지 마세요. 이대일 : 안녕하세요. 명지대 디자인과에 재직하고 있는 이대일입니다. 저는 산업디자인, 그 중에 서도 특히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제가 여기 이렇게 끼게 될지 몰랐는데, 정민 선생님 추천으로 별 자격도 없는데 이 자리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선생님들 고 견 듣고 헤아리는 것으로 기쁨을 삼겠습니다. 성굉모 : 서울대학교 예전으로 치면 전자공학과, 지금 전기컴퓨터공학부에 재직 중인 성굉모입니 다. 전공은 음향학이라서 제가 공대에서도 음향공학을 강의하고 음대에서는 음악음향학 을 강의합니다. 그래서 이덕환 교수님이 공학과 예술의 만남, 음향학과 음악의 만남 이 걸 어떻게 눈치채시고 과학과 기술지에도 칼럼 써달라고 하시고 여기도 불러주셔서 훌 륭한 분들 만나서 분야를 초월한 대화를 나누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박창범 : 고등과학원의 박창범입니다. 제 전공은 천문학인데요. 세부 전공으로는 우주론과???입 니다. 저는 이런 자리에 온 건 사실 처음이 아닐까 싶은데요. 여러분들 하시는 말씀 잘 듣고 공부 많이 하게 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정재서 : 안녕하세요. 이화여대 중문과에 있구요, 신화학과 도교학이 제 전공입니다. 주로 상상력 쪽에 해당하는 연구를 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구요. 그 전에 비슷한 주제로 한겨레신문 사에서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 이라고 해서 과학 분야, 인문학 분야 관련 있는 분들끼리 서로 대담을 시킨 적이 있는데, 그 때 제가 바로 옆의 박창범 선생님과 우주론에 대해 대담을 한 적이 있는데, 오늘 이렇게 또 좋은 주제를 갖고 같이 말씀 나누게 되어 기쁘 게 생각합니다. 이승종 : 화학하고 가까운 분야는 아니구요, 저는 오히려 물리에 더 가까운 공부를 하고 있구요. 지난 연초부터 과학재단에 가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모임에는 옵저버 입장으 로 왔구요. 이덕환 : 저는 서강대 화학과에 있구요. 한 이십 몇 년 있었는데 화학을 하다보니 먹고 살기 힘들 거 같아 과학커뮤니케이션으로 전공을 바꿨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모임을 만들어서 바쁜 분들에게 무작정 전화해서 강요하는게 주특기가 된 것 같습니다. 두 번을 했는데 처음엔 세 시간 동안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시다가 오셔서는 세 시간을 다 채우고 일 어나시더라구요

104 박성철 : 박성철입니다. 모임의 전체적인 실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언론학을 전공했지만 학부에 서는 화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전공을 과학커뮤니케이션, 보건커뮤니케이 션, 헬스커뮤니케이션 이런 분야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들 만나뵙게 되서 반갑습니다. 정 민 : 한양대 국문과에 있고 전공은 한문학입니다.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에 관한 공부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 만나 좋은 말씀 듣게 되어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채현경 : 이화여대 채현경입니다. 리듬이 음악적 요소이다 보니까 관심이 쏟아지는 것은 아닌가 하네요. 저는 그만한 내공이 없어서 배우러 왔습니다. 제 전공은 음악학이라 되어 있는 데 한국에서는 음악이 따로 독립적으로 되어 있는 과가 많지 않습니다. 피아노로 시작 해서 서양음악 중심으로 공부를 하고 음악 인류학이라고 세계 인류학을 연구하는 방법 론을 배워왔어요. 음악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상당히 알려지지 않은 학문이다 보니까 그 것을 떠나 세계 음악 문화 자체에 대해 연구한다는 것은 또 다른 어려움이 있는 것 같 습니다. 저의 역할은 제가 보기에 음악 쪽에서 황병기 선생님이 오셔서 마음이 놓이고, 서양 음악에서 가지고 있는 얕은 지식과 리듬에 대한 이야기가 있으면 조금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이렇게 불러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황병기 : 저는 학자가 아니고 가야금 연주를 하고 작곡도 하는 사람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옆에 있 는 채현경 교수가 오히려... 저보고 여기 나오라고 한 것도 채현경 교수이고... 저는 리 듬에 대한 말을 듣고 조금 흔들려가지구... 서양음악보다 국악의 리듬에 대한 흥미가 있 고, 저 역시 여러분들에게 배우러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대일 : 제가 그러면 간단히 리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보겠습니다. 먼저 상상과 증명이라는 테 마가 인문학과 사회과학 사이의 단절에 대해 그것이 어떻게 하면 적합할까 보다 세계관 이랄까요 학문적인 가치에 대한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지난 월요일에 주장된 웰빙 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나온 웰빙의 개념이 무엇이고 우리 삶에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가치판단에서 비록된 것이었습니다. 리듬은 현대성, 문명의 리듬과 우리의 리듬이 진정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이는 엄정 식 선생님이 말씀하신 존재론적 문제이자 삶의 새로운 가치체험으로 생리적인 리듬과 사회적인 리듬 이런 것이 어우러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진행되었다고 생각합니 다. 리듬이라고 할 때 이를 우리 동양말로 바꾸면 율동 이 되겠습니다만 제가 이것을 생 각하게 된 것은 여기 리듬이라고 할 때 우주 자연의 리듬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해와 달 의 리듬이 지구의 리듬을 좌지우지하고 있듯이, 우주자연의 리듬이 있다고 한다면 지구 에 붙어사는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생물과 인간 자신이 아닐까 하는

105 생각이 듭니다. 두 번째는 지구의 리듬과 생물의 리듬이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 인간의 측면에서 본다면 인체의 리듬이 있고 또 삶의 리듬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 간의 리듬이라고 했을 때는 줄여 얘기하자면 억지를 좀 부려본다면 생노병사라고 할까 요... 여기에 반해서 사회적 리듬, 문화적 리듬이라 하면 관혼상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 해봤습니다. 또 한 가지는 인간이 만들어나가고 있는 삶의 제도적 측면에서 비롯되는 역사적인 리듬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소위 이것이 운명사적인 리듬이 될 수도 있겠는데요. 이러한 것은 다른 말로 줄이면 또 흥망성쇠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사회적 리듬, 역사적 리듬 이런 것들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 황교수 님이나 최교수님 참석해주셨습니다만 특히 예술에 있어서의 리듬도 매우 중요한 문제라 고 생각됩니다. 굳이 문학으로 바꾸면 기승전결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음악이나 무용, 체육을 비롯해서 영화, 예술 등 모든 분야를 관통하고 있는 핵심 키워 드가 리듬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걸 동양화로 바꾸면 기운생동이 되는데요, 서양화에 서는 에너지가 되겠지요. 그런데 에너지는 물리적 차원에서 본 것 같고, 기라는 것은 형이상학적이고 다소 추상적인 그런 개념에서의 기가 되지 않을까... 기를 번역하면 에 너지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서 기의 운이란, 운이 리듬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기가 타 고 노는 것, 다시 말해 만물은 기의 움직임의 패턴이 아닐까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런 측면에서 예술이 굉장히 대표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특히나 저는 현대예술에 비판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이 문제 때문입니다. 바로 리듬의 파괴. 리듬의 파괴를 통해 과학적 이성에 매몰되어 예술자체가 지니고 있는 가장 중요 한 생기를 지나치게 이성 중심으로 쫓아가 본연의 감성적 리듬의 포션을 대단히 파괴시 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는 그런 의문이 듭니다. 조금 이야기가 장황해질런지 모르겠 지만, 태극기 휘날리며 라는 영화를 봤는데, 제가 껌껌한 곳을 싫어하는데 하도 사람이 많이, 1000만이나 봤다고 해서 가서 봤다가 제가 시계만 쳐다보다 왔습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비슷하던데, 나중에 공격 장면에서 계속 죽이고 하는데 어떻게 저렇게 리 듬을 파괴한 것이 천만이 볼 수 있을까. 계속 공격하는데 지루해서 시계만 보다가 왔습 니다. 제가 독특한지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리듬은 현상계 존재, 특히 생명계에 있어 에너지와 직결된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리듬을 탄다 는 것, 생기, 기운, 생동 이러한 것들이 단어만 다르지 내면적으로 같은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 천문학, 음양학 전공하신 분들 계시고 해서 재미있는 말씀 많이 나눠주실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저는 여기에 대해 개괄적으로 말씀드렸는데요. 아무 말씀이나 좋으니 편하게 경험적인 측면도 좋고 학문적인 측면도 좋고 생각나시는 것 말씀을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굉모 : 이덕환 교수님이 리듬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하셔서 며칠 전 키워드를 생각해봤습니다. 그거 가기 전에 아까 엄정식 교수님이 피타고라스와 리듬을 연결해주셨고 피타고라스가 그 당시 신흥종교 교주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아 흥미로운데, 피타고라스가 철학자로 수

106 학과 음향학에서는 리듬의 원조라기보다는 화성의 원조입니다. 서양의 화성학에서 역사 를 올라가면 피타고라스가 현의 길이가 1:2, 2:3, 3:4, 그러니까 주파수의 비가 간단한 정수비가 될 때 두 현을 뜯었을 때 귀에 아름답게 들리더라... 물론 중국 사람들이 더 아름답게 했을 거다. 서양쪽에 기록된 것이 원조가 그래서 피타고라스는 음악의 3요소, 멜로디, 리듬, 하모니 중에서 화성, 하모니의 원조로 교과서에 나와 있습니다. 여기 황병기 선생님도 계시고 채현경 선생님도 계신데, 제가 먼저 말씀드리자면 음악 의 3요소를 멜로디, 리듬, 화성이라고 그렇게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그런데 서울음대 이 성재 교수님의 음악개론을 제가 들을 때 리듬이 이 세 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하 시더라구요. 그러시면서 애국가를 리듬없이 멜로디만 부르시고, 그 다음에 화음은 제외 하고. 그러니까 리듬만 가지고 음악이 되는데, 멜로디만 가지고는 안된다, 리듬이 세 가 지 중에서 제일 중요하다는 말씀을 학생 때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국악은 화음이나 하모니는 치중을 잘 안하는 것 같은데 황병기 선생님은 왜 우리 국악이 그렇게 발전했 는지, 그에 반해 제가 알기로 우리 국악은 리듬이 굉장히 발달한, 변화가 많고... 그런 문화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리듬만으로 음악이 가능하고 음악의 3요소 중 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알고 있고 타악기만으로 음악이 됩니다. 멜로디 없이. 서양 타악기도 그렇고. 우리 사물놀이가 대표적이죠. 그건 음악적인 쪽에서 본 거고, 제가 전자공학을 전공한 한 사람으로서 리듬을 정의하 자면, 리듬의 가장 중요한 물리적 요소는 규칙적인 반복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규칙 적인 반복이 있을 때, 전자공학에서는 주기를 정합니다. 가장 규칙적인 어떤 물리의 양 이 있을 때 변화가 있고, 그런데 한 주기 내에 모노톤하면 재미가 없어서, 한 주기 내 의 패턴은 변화가 되지만, 그게 다시 반복이 되요. 그래서 주기라는 게 물리학적으로 정의가 되고 그런 복잡한 주기합수를 이론으로 수학화했고 불규칙한 현상까지도 물리적 수학적으로 계산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한 번 일어나는 현상도 수많은 주기함수가 합치 면 그걸 만들 수 있다 뭐 이렇게 되어 있으니깐요 물리학적으로. 그건 제가 주기를 주 장하려고 한 거고, 그 다음에 아까 인간 자연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인간을 중심으로 할 때 리듬과 가장 가까운 건 우리의 맥박이 아닌가. 생명의 근원이고. 그리고 맥박이 비슷하게 1초 정도 됩니다. 뛰고 나서 맥박 올라가고. 그리고 자연에서 리듬의 근원은 우리 인간을 중심으로 볼 때 밤과 낮 24시간, 그리고 나아가서는 1년 4계절 365일. 그 러나 12달을 만들어 놓은 건 인위적인 것 같습니다. 12달은 꼭 12달이어야 할 이유가 없고 24절기로 나눠도 뭐 아무 상관없고. 그러나 12달도 달의 운동으로 보면 주기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에서는 낮과 밤, 한 달, 그리고 일 년... 이런 주기가 우리 생명과 태양으로부터 우리가 생명을 누리면서 사는데 리듬과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리듬에서 규칙성만 있어서는 이게 너무 무미건조합니다. 이대일 교수님께서 현대 예술이 리듬에 대한 너무 심한 파괴 때문에 개인적으로 부정적으로 보 신다고 했는데, 저도 현대 음악 듣기 너무 힘들어서 아주 들어보려고 하다 좋아하려고 하다가도 힘든데, 너무 규칙성을 파괴한 게 아닌가. 리듬의 아름다운 점은 규칙성인데

107 그 규칙성에서 약간 변화가 있어야 아름답다고 생각됩니다. 즉 변화는 예외적인 요소, 사회적으로 보면 사회적으로 보면 저항하는 요소, 비규칙적인 요소인데, 전자공학에서 는 이걸 노이즈라고 생각합니다. 유효신호에 노이즈가 깔려있고, 그리고 법을 지키는 사람은 규칙을 지키는 사람인데 범법자가 사회에 있어야 사회가 재미가 있지 않나. 너 무 모든 국민이 법을 다 지키면 법도 필요 없어지고, 천당에 가니 재미가 없고 지옥에 가니 재미나는 스토리 있어 재미난다는 것처럼 비규칙적 요소가 깔려 있어야 된다고 봅 니다. 자연에서 기온의 변화를 그래프로 그리면 여름에 제일 올라가고 겨울에 내려가면 모노톤하게 올라갔다 내려가는 게 아니라 하루 낮과 밤에 오실레이션이 있고 그러다가 기압골 때문에 4월에도 눈이 오고, 어떤 때엔 4월에도 해운대에서 수영할 수 있고... 이 건 기상적인... 기후가 아니고 기상이라고 하죠 이런 건. 그게 규칙적 리듬에 실려 있어 야 아름답지 않나, 그렇게 생각해봤습니다. 주식가격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가에 변동이 있습니다. 여기서 주식하시는 분은 장기적 은 사이클을 봐서, 주식이 죽쓸 때 아무리 머리 써봐도 안됩니다. 또 반도체 가격에도 사이클이 있습니다. 삼성전자하고 하이닉스 반도체 사람들은 반도체 가격들이 미니멈할 때 손해 봐도 절대 걱정하지 않습니다. 1년 반 후, 3년은 올라가게 되어있으니까. 올라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준비를 합니다. 오히려 미니멈에 있을 때 생산라인을 투자하고, 그래서 다른 나라보다 더 준비를 하고 있지요. 산업에서도 리듬이 필요하고 리듬은 내 려갔을 때, 낮에 일하고 밤에 쉴 때, 쉬는 게 아니라 다음을 준비하는 거죠. 메인터넌스 하는 거죠. 예를 들어 메인터넌스가 가장 중요한 것이 항공기, 전투기와 잠수함입니다. 전투기와 잠수함은 몇 시간 오퍼레이션 하면, 반드시 얼마 동안 정밀 진단을 해서 메인 터넌스 하고, 잠수함은 심지어 고등어 토막 내듯이 해서 잘라서 거의 다시 만들어요. 그러니 리듬의 낮과 밤은 낮은 일하고 양이고, 밤은 네거티브한 것으로 볼 것이 아니 다. 밤은 낮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고, 군대나 회사 이런 곳에서도 오퍼레이션과 메인터 넌스는 적당한 리듬을 가지고 해야 오래 가고. 인간도 너무 번 아웃(burn our)되면 안 되니까 여름방학 때 이런 거 하지 마시고 사실 쉬러 가셔야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제 범위는 아닙니다만 현대인이 자연의 리듬과 함께 하고 있나 생각 해봤습니다. 물고기와 개구리나, 우리가 먹는 게는 산란을 아무 때나 하지 않습니다. 개 구리 봄에 알낳지 가을에 낳지 않습니다. 야생동물의 번식도 계절에 맞춰 풀이 나올 때 새끼를 납니다. 그런데 인간이 엉망진창이 되지 않았나. 다시 자연에 순응해서 살아야 하지 않나. 제가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 현대인의 리듬을 파괴를 엔지니어가 만들 었습니다. 비닐하우스와 냉장고, 냉동고입니다. 계절음식이 없어졌습니다. 서울 사람들 이 강화도에 가서 일년 내내 벤뎅이회 내놓으라고 합니다. 벤뎅이회는 5월에 먹는 건데 시도 때도 없이 벤뎅이회를 내놓으라고 하니 강화도 사람들이 벤뎅이를 5월에 잡아서 뼈를 발라서 냉동고에 넣어놨어요. 그걸 겨울에도 풀어서 내놓으니 맛이 없죠. 저는 그 런 것들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연의 뜻에 순응해서 다시 살아야 되지 않을 까. 그러면서 저하고는 제가 너무 무식한 분야인 동양의 풍수나 주역을 좀 우리도 배워

108 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상입니다. 이대일 : 말씀하신 것 중에 하나만 여쭤보고 싶은 게 다른 게 아니고요, 인체의 리듬 중에 제일 재미있는 게 조선시대인가 언제인가 모르겠는데 여성을 8년으로 보고, 남성을 7년으로 보지요. 그래서 주기가 태어나서 8살 때 다운되었다 9살 때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고 16살 때 다운되고... 그래서 이팔 청춘이라는 게 여성의 생리주기가 시작되는 것을 이 야기하는 것으로 아는데... 남성은 그 주기가 7년, 여자는 8년이라고 제가 어디서 들어 가지고... 엄정식 : 일단은 오신 분들이 한 말씀씩 하시고 주제를 찾아나가죠. 다른 분? 정재서 : 사실 리듬이라는 게 동양에서는 법도죠. 유교라고 하는 것. 법이지 않습니까. 그 법은 우 주 만물의 법도이기도 하고 인간의 법도이기도 하고. 거기 통달하면 도인이죠. 모든 걸 다 볼 수 있고 예견할 수 있고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사실 예악이라고 사람 다스리 는 것도 공자님이 예와 악. 음악, 리듬이죠 결국. 그것을 가지고 사람의 성정을 둬야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사실 문학 쪽에서는 운문이 중심 아니겠습니까. 운문이 제일 중요하 죠. 운문에서 압운이라는 게 결국 리듬인데, 이것은 정말 귀신과도 소통할 때는 압운을 해야 돼. 그러니까 제문은 전부다 압운하게 되어있어요. 귀신과 대화하는, 귀신께 드리 는 제문이나 비문, 이것은 반드시 압운을 해야 되요. 왜. 울림, 리듬을 통해서만 상상계 와 교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으니까요. 귀신을 느껴 소통하는 데는 마??? 시보다 더 한 것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리듬이라는 것은 상상계, 초자연적인것과 자연적인 것이 소통할 수 있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구요. 예 중에서 재밌는 얘기가 소옹이라고 유명한 철학자가 있죠. 주희라던가 이런 사람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이 소옹이 리듬에 정통한 사람이죠. 우주의 리듬에 정통하니까. 소옹이 낙양의 천진교에서 손님을 배웅하다가 그 때 철 잃은 두견새소리를 듣고 낯빛이 변한 거에요. 근심 스럽게. 그래서 친구가 왜 그러냐 했더니 앞으로 조정에 굉장히 어 려운 일이 있을 거다. 신하가 감히 임금의 권한을 넘어서서 그런 일이 생기고 문제가 생길 거다. 왜 그러냐 했더니 두견새는 남쪽에 있는 새인데 그 새가 지금 아직 음기가 성할 때 일직 나타났다는 거죠. 그런데 천자는 남현존자. 북쪽에 서서 남쪽을 바라보는 데 신하의 형국인 남쪽 기운이 북쪽으로 왕성하게 왔다는 것은 앞으로 신하들이 권한을 가지고 천자를 제압하는 이런 현상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식의 해석을 해요. 그런데 결 국 이후 난리가 나서 송나라에 큰 문제가 생겼죠. 이런 이야기들이 있는데 물론 일화입 니다만 그 정도로 리듬이라는 것, 자연이라던가 사물의 리듬을 통해서 모든 것을 파악 하려 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신화쪽에 보면 제가 사내경 이라고 하는 중국의 가장 오래된 신화책을 번역한 적 있

109 는데, 이걸 보면 굉장히 단조로운데 리듬을 가지고 있어요. 어디가면 뭐가 있고 어떻게 되고 어떻게 되고. 계속 반복적이에요.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특징인데, 아닌게 아 니라 거기서 이제 아까 그 노이즈 말씀을 하셨는데, 파격, 창조적인 이런 것은 그 안에 서 파격을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따라서 좀 더 창조적인 그런 경지가 만들어지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당시에 보면 리듬, 운을 원래 정해진 정형이 있는데 그걸 일 부로 깨뜨리고 다른 불협화음을 집어넣는 기법이 있어요. 그런 기법이 있어서 그걸 요 음이라고 하죠? 요체라고 그러는데, 그게 그런 기법이 있고. 그런데 그게 처음에는 좋 았는데, 너무 형식화하면 문제가 나중에는 요체의 법칙이 생겨나요. 파격에 법칙을 만 들어 버리니 나중에 또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그런 현상이 되풀이가 되는 건데... 가 령 서양의 모더니즘 예술에서 한때 자기네들의 매너리즘을 탈피하기 위해 경도되었던게 소위 원시주의인데, 고갱도 타히티 섬가서 원주민들 만나서 새로운 걸 얻어오고, 특히 유럽세계 예술가들이 미개한 지역에 가서 아프리카나 남태평양가서 서머스 모옴도 뭐 남태평양 가고... 인도니 가서 새로운 어떤 것을 빌어오고. 이런 아까 말씀드린 지나친 기교나 형식에 있어 매너리즘에서 탈피하고 원시성에 본질적인 리듬을 회복함으로써 무 엇인가 다시 좀 새로운 어떤 것을 시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사실은 우리가 여기 서 리듬 자체만을 가지고 이야기하지만, 그런 측면에서 그런 것들은 또 어떻게 보면 원 시적인 것을 가지고 하나의 자기 자양으로 삼아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이런 취지는 제 3세계적인 입장, 또 어떻게 보면 정치성의 문제도 있죠.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또 하나의 요즘 이야기하는 오리엔탈리즘이라든가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원시성을 어떻게 이용당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것을 주체적으로 봐주는것이 아니라 이용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니까. 원시문화 자체의 본질을 중요시해서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도구 적인 차원에서 보는 것이니까 별도로 정치성에 어떤 문제가 있을 수도 있구요. 어쨌든 여러 가지 생각나는 대로 말씀드린 겁니다. 박창범 : 리듬에 대해 아무 생각도 안나가지고 우선 리듬이란 단어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었어요. 많이들 말씀하시듯 반복, 주기, 규칙성, 진동, 요동...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우리말이다 보니 말뜻이 느껴지는데, 리듬은 그것을 다 가져다 부어서 총체적으로 느껴 지는 어떤 것 같아요. 외국에서는 원래 어원이 따로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상당수 사 람들에게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학술용어 아닌가 하는... 만약 나중에 보는 사람들한테 주제가 뭔가를 전달하려면 다른 단어가 사용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이야기를 하는 논지 가 생명, 인간, 사회의 논의의 결과를 이용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리듬이라는 것 자 체의 정체를 파악하려 하는 건지... 그 파악된 정체가 우리 생명 유지나 사회유지 발전 에 긍정적인 이용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학문적 목적을 가지고 리듬의 정체를 파악하 려는 목적을 갖는지 그게 저한테는 조금 궁금한 점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과학자로서 리듬에 대해 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생명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리듬에 대해 제 생각을 잠깐 말씀드리자면요, 사람들이 아무래도 리듬에

110 대해 중요성을 느끼게 되는 주 이유가 그것을 주변에서 수없이 많이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부터 여러 문화현상에 모든 종류의 리듬이 어떤 것에 이용되고 그것이 이 용되었을 때 안전하고 평화롭고 아름답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리듬 의 원천을 생각해보면, 자연의 4가지 힘 중에 그 힘들이 다 관여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서 중력이 반영되어 있는 리듬의 현상은 조석현상이라던지, 해와 달이나 별들의 천체가 주기적으로 출몰하는 현상, 또 계절의 주기적 변화... 이런 것들이 중력이 지배하고 있 는 주기적 현상이구요. 그 다음에 전자기력이 지배하는 현상은 대부분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들이 물질의 진동현상입니다. 물질의 진동을 통해 많은 느낌을 받고, 음악도 거 기에 상당히 관련이 있고... 그런데 여기서 제가 주목하게 된 것은 이렇게 진동을 하고 규칙성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자연현상을 일으키는 이면에 자연법칙이 물질에 대해서 늘 부여하고 있는 모습은 아니라는 거에요. 예를 들어 우주의 대부분은 규칙적인 운동 상태에 있지 않습니다. 일방적인 진화상태에 있는 거고 소위 역학적으로 릴렉스되어 있 다. 릴렉스되어 있다는 말은 제가 우리 말로 번역한 건데요 지배역학하에서 여기서 지 배역학은 중력입니다... 지배역학하에서 물리량 간의 조화상태, 이걸 릴렉스되어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우주의 물질이 일방적 진화상태로 가다가 특정 작은 지역에 물 질간의 많은 상호작용을 하게 되면 릴렉스되는 상태, 그러니까 물리량간의 조화상태, 예를 들어 운동에너지와 중력에너지가 적당히 조화상태로 가게 되면 거기서 조화상태가 유지되는 시간이 반복과 규칙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태양 주위로 지구가 돌 수밖에 없 는 것. 돌지 않는다면 일방적 진화상태에 가서 지구가 사라지게 되고 사람이 살아갈 수 없게 되고 이런 증명을 할 수 없게 되죠.. 그래서 릴렉스된 상태에서만이 반복과 주기 성을 발견하게 되는 거고 그것은 우주 전체에서 아주 일부인 것이라는 거죠. 지금 중력 을 예를 들어 말씀드렸는데 중력 진화의 최종 상태도 아닙니다. 중력 진화의 상태가 여 러 단계가 있는데 그 중에서 굉장히 긴 단계이고 생명체가 태어나기 적합한 단계입니 다. 예를 들어 수십 억 년 동안 어떤 별 옆에서 생명체가 일정 거리를 두고 살 수 있기 때문에 생명체에게 유리한 상태구요. 그런데 이 상태가 궁극적 상태가 아니구요. 궁극 적으로는 지구는 태양 속으로 떨어져 들어가고 태양은 다시 은하계 중심으로 떨어져 들 어가서 모든 것은 다 블랙홀이 되었다가 블랙홀마저도 증발해서 궁극적으로 우주는 절 대 무의 상태로 가게 되는. 그래서 규칙성을 타는 것이 생명유지에는 필수적이고 유리 하고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 생각과 경험을 기초로 해서 더 나아가 그것이 우주의 보편 적 진리라고 확장하는 것은 지엽적 경험에 기초한 생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재서 :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지구가 궁극적으로 태양에 흡수되고 태양이 은하계로 가서 소실 되고 다시 블랙홀이 되고 그 다음에 다시 재편이 되는... 이거 자체가 리드미컬한 거 아 닙니까? 그 자체도 이미 리듬의, 그 주기적인 것을 반복하는 셈이 아니겠습니까? 인도 브라만교를 보면 겁마다 순환하는 방식이 있는데 상당히 그와 흡사하거든요 지금 말씀 하신 게

111 박창범 : 문제는 전체가 일어나는 우주적 진화는 반복되느냐 하는 질문을 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우주의 성질에 따라 다른데 현재 저희가 알고 있는 바로는 다시 반복되지 않습니다. 정재서 : 그럼 허구의 세계로... 박창범 : 인간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원하지 않는 세계일지는 모르나 그런 감정을 떼고 보면 우주 는 그렇게 변해가는 거죠. 일방적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정재서 : 그럼 그것으로 끝나는 거... 황병기 : 끝난다 안끝난다 자체가 인간적 사고방식이에요. 우주가 끝난다 안끝난다 이런 건 통하 지 않지. 인간의 언어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니까. 한 마디로 얘기해서 얘기 할 필요도 없고 얘기할 수도 없죠. 이대일 : 그러면 황교수님은 가령 빅뱅같은 것도 시작이 있다 없다... 황병기 : 저는 그냥 음악연주자에 불과하지만, 그 전에 제 젊었을 때 읽은 책이 야스퍼스 책이었 는데, 그 책을 보면 인간이라는 것은 모든 방면에서 모르는 것으로 싸여있는 갇혀있는 존재이다 라는 말이 나와요. 과거를 알려고 올라가보면 모르는 존재이고, 미래로 가도 모르고, 우주의 크기도 모르고... 절대적으로 알 수 없는 상태의 인간. 절대 모른다는 것 을 안다고 한 야스퍼스도 문제지만, 불교에서는 무엇인가를 얘기하기 전에, 입을 벌리 기 전에 난 이미 착오에 빠져 있는 존재에요. 그런 말이기 때문에 제 생각엔 이 리듬의 문제를 너무 근원적으로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지 말고 제 생각에는 어떤 한계에 대한 것을 정해서 그 한계 내에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다고 봐요. 우주의 종말까지 를, 또 어떻게 시작했냐를... 예를 들자면 모든 만물은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하느님이 만든 것인데 그럼 하느님은 누가 만들었냔 말야. 그렇게 하다 보면 말장난에 불과하지 우리가 얻는 것이 없단 말이지. 저는 지금까지 처음 여기 나오라할 때도 느꼈고 나와서 몇 분 말씀 들어도 그런데, 제일 중요한 건 리듬이란 것을 무엇으로 보느냐, 리듬이 대 체 무어냐 하고 정의를 해놓고 리듬을 이야기해야죠. 각자 리듬을 이야기하면 실질적으 로 혹자가 A라 말하는데 다른 사람은 B라 생각하고... 하바드 음악 사전이라는 게 있어요. 단권으로 된 거라 큰 사전은 아니지만 상당히 권 위가 있는 사전입니다. 굉장히 권위를 인정받는 사전인데, 그 사전의 초판본이요. 지금 5판까지 나왔는데 초판을 제가 보고서 아주 인상적이었던 건 거기서 리듬을 찾아봤어. 이게 명색이 권위 있는 사전인데 리듬이란 모르겠지만 하고 전제를 달아요. 모르겠다, 리듬이라는 것을 모르겠지만 어쩌구 저쩌구 달아놨더라구. 그거 한 페이지에 불과하지

112 만 사전 만드는 사람이 병신도 아니고 바보도 아닐건데 이건 모르겠다 이런 전제 하 에 범위를 정해가지고 음악의 리듬 정의를 했거든. 리듬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보느냐 이걸 어느 정도 정해놓고서 대화를 나눠야 실질적인 소득이 있지 않을까 이리 보고... 리듬이란 말은 동양엔 물론 없던 말입니다. 율동 어쩌구 하지만 과연 율동이 리듬과 같은 거냐, 음악에 한해서만 그런거냐. 그런 면에서 국악에서는 장단이라는 말만 씁니 다. 장단이 워낙 좁은 범위인데 서양의 리듬이란 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보편적으로 쓰이니까 국악하는 사람도 머릿속에 확실치 않아도 서양서 쓰는 리듬을 장단이라 생각 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그 장단이라는 뜻을 확대해서 사용하는 겁니다. 그게 아니고 작 은 뜻으로 장단이라 뜻을 쓰기엔 확실합니다. 한국 사람은 음악적으로 같은 것, 가령 시계소리 똑딱똑딱... 똑하고 딱하고 같은 것... 같은 걸 반복하는 것, 그걸 가지고 주기 를 만드는 것... 그게 한국사람은 왜 그런지 몰라도 그걸 싫어해요. 싫어해서 한국장단 사물놀이 이런걸 보면 쿵딱쿵딱 안하고 쿵~딱 쿵~딱 한단 말야. 이런 기계적인 소리는 멋이 없는 거죠. 한국 사람들은 그걸 싫어해서 모른 것을 다른 단위의 조합으로 봐요. 그 다른 단위가 실제로 보면 긴 소리와 짧은 소리입니다, 그래서 장단이야. 한국 사람 은 긴 것과 짧은 게 합쳐져야 멋진 거지, 똑같은 것이 합쳐지면 기계소리다 이런 생각 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생을 국악 장단으로 사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나라 장단, 리듬에 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금을 주는 데 있어요. 이걸 주려면 긴 소리와 짧은 소리가 덕~ 덕 덕~덕... 길고 짧은 것을 간단하고 알기 쉽게 나타내는 것이 2:1이에요. 2랑 1을 합 치면 3이 되지. 그래서 긴 것하고 짧은 것을 합해야 한다는 건데, 또 음악하는 사람들 은 추상적 이론을 내는 것에 취미도 소질도 없어. 이게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돼요. 말 로 앉아서는 이거 소용없어. 한국 리듬은 즉 장구... 장구친다는 말을 장단친다고 해요. 장구를 누가 치느냐 이걸 장단을 누가 하느냐. 장단이라 하는 것은 즉 장구, 그런데 장 구의 특색이 전세계적으로 없을 지경인데 서양쪽은 티파니 네 다섯 개 놓고 때리지만 전부 쿵쿵쿵 소리고 음 소리만 높여요. 결국 쿵소리죠. 그런데 장구 소리는 한쪽 쿵하 고 떡이거든요. 완전히 딴 거에요. 그래서 쿵~ 떡. 쿵을 음으로 봅니다. 떡을 양으로 보 고 장구소리라는 것은 결국 똑같은 소리가 아니라 전혀 반대되는 소리에요. 동양철학적 으로는 음양이죠. 장구 소리 자체가 음소리와 양소리를 합한 거죠. 그러면서 이놈이 길 고 짧은 것이 연결이 되면 원칙적으로 쿵 소리는 길고 떡은 짧아져요. 쿵~떡 쿵~떡. 그럼 오금주는 효과가 나죠. 그런데 그렇게만 하면 단조롭거든. 단조로운 것을 재미있 게 만드는 방법은 뒤집는 거에요. 한국 사람들이 뒤집는 걸 좋아해요. 운동경기도 지다 가 나중에 뒤집는 걸 좋아하지. 쿵~떡 하다가 쿵떡~ 장구소리를 탁 치는데 원칙적으로 쿵은 음이고 떡은 양이지만, 어찌됐든 쿵하고 떡소리만 나는 것도 지겨워. 그래서 쿵을 칠 때 떡을 같이 쳐. 이걸 합이라 하지. 이건 음과 양이 동시에 있는 상태니깐 태극상 태야. 양쪽이 같이 있는 거. 그래서 한국의 모든 장단은 거의 100% 합으로 시작합니다. 둘이 분리되지 않은 합일상태. 쿵과 떡이 합치면 떵이라 하는데, 이건 음양이 합쳐진 것으로 음도 있고 양도 있으니 음이라 할 수도 양이라 할 수도 없으며, 음이기도 양이

113 기도 해요. 이분법에 의해서 모든 것이 음 아니면 양이어야 한다면 합을 음으로 봅니 다. 태극도 음의 상태에요. 이게 아주 중요한 이유는 뭐냐면 우리가 생명력이라는 말을 쓰는데, 생명력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 뭐냐, 그것은 생성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만드는 것이 생물의 특성이죠. 자기가 자기를 안 만들면 무생물이죠. 자기가 자기를 만드는 것 을 무엇이라고 그러냐. 낳는 것. 새끼 안 낳는 생물은 없어요. 모든 생물은 새끼를 낳고 반대로 새끼를 낳지 않으면 그것은 무생물이에요. 새끼를 낳으려는 것처럼 강한 힘은 없거든. 그런데 새끼를 낳는 것이 뭐냐면 바로 음이거든요. 그래서 떡은 음기를 더 강 조하려고 붙은 거지 둘이 싸우려고 붙은 게 아냐. 그래서 둘이 합치고 나면 뭐가 나와 야 해요. 그런데 낳는 자가 음이기 때문에 나오는 건 반대가 나와야 해요. 그래서 떵 다음에는 떡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쿵~떡 떡 이 떵~떡 쿵떡... 쿵떡 했으니 떡이 양이니 반대 음이 나오는 거에요. 어떤 주기를 이루는 하나의 가장 짧은 주기, 국악인은 그것을 장단이라 해요. 이걸 서 양식으로 하면 리듬 패턴이 되는 거죠. 리듬의 패턴을 장단이라고 해요. 떵떡 쿵떡 이 게 가장 기본적인 장단이죠. 이것이 조금 늘어지면 떵~떡 쿵떡이 돼요. 쿵은 변화가 되 었지만 떡은 안 되니까 뒤를 떨어줘요. 떨 적에도 서양악보로 표시할 수 없는 이유가 뭐냐면 이게 사실 떠는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떤다고 하면 서양에선 트릴이라고 하는 데 사람이 직접 악기를 여러 번 쳐서 떨리게 만들죠. 하지만 국악에서는 면의 끝을 쳐 서 바운싱 시켜야 해요. 장구채를 장구에 쳐서 저 혼자 떨게 하는 거지, 자체 탄력으 로... 유치하게 사람이 계속 때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몸에 힘을 빼고 공을 벽에 던지 듯 던지고서 봐야 하는 거예요. 그 바운싱을 잘되게 하는 사람이 명고수예요. 자기가 안치고 소리를 내는 것. 자기가 직접 치는 것은 아주 유치하고 강제하는 것. 그것이 우 리나라 장단이죠, 리듬의 본질적인 것. 이것을 여러 가지 변화를 시켜요 여기서부터. 그 다음에 최소단위를 장단이라고 했지만 그 장단을 계속 반복만 하면 단조롭기 때문에 맨 처음에 주기를 생각하고 그 주기 몇 개를 엮어가지고 구성감을 만들어요. 용어가 적당 치 않아 그것을 국악 하는 사람은 장단 집을 짓는다고 해요. 일반화된 말은 아니지만 그거를 만들 적에 대체로 넷의 구성을 지어요. 그걸 뭐에 연결 짓냐면 중국의 기승전결 에 연결짓는 건데 기는 뭔가 나타나는 거죠. 나타나려면 힘을 줘야 하니까 그걸 미는 거라고 합니다. 밀면 움직이잖아요. 그것이 어디에 해당하느냐면 사절기의 봄입니다. 봄 이 되면 생명체가 싹이 나야 돼. 여름에는 그것이 뻗어나가 번식해야죠. 그것을 단다고 해요, 달어. 뭐에 붙는다, 그래서 밀고 달고... 달고는 여름이에요. 그 다음에는 기승전결 하고 뭐가 다르냐면 중국에선 승 다음에 전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말로는 맺는 거고 그 게 한자로는 결이 되요. 그것이 가을이고 가을엔 매단 걸 뻗은 결과물을 추수해야, 모 아야 해요. 겨울은 장단에서 푼다고 해요. 국악에선 맺고 푼다고 하지. 맺는 걸로 끝나 면 안 돼 풀어야지. 그것이 겨울입니다. 그것이 저장하는 거죠. 봄을 위해 씨앗을 저장 하듯이. 그래서 천자문 같은 곳에도 추수동장이라 하죠. 그러니 결해서 맺는 거고 우리 는 푸는 거고. 그래서 순수 우리말로는 밀고 달고 맺고 푼다, 그래야 이 구성감이 생깁

114 니다. 이 구성감을 이루는 것은 장단이지만, 장단을 여러 갤 모아서 하나의 구축물을 만드는 것은 용어가 없고 장단집을 짓는다 고 해요. 장단집을 지을 때는 겹으로 짓는 거죠. 겹집이라고 그럽니다. 4개가 되어야 겹이라고 합니다. 근게 우리나라에서는 리듬 을 중요시한다고 했는데 우리나라에는 거의 모든 음악이 노래를 부르던 피리를 불던 장 구가 필수야. 서양에서는 피아노 연주할 때 누가 북 때립니까. 서양에서는 바로크 이후 가장 중요시한 것이 화성일 겁니다. 서양 음악 배운다 하면 화성악이 중심이에요. 대위 법도 화성에 중심을 두고 있고. 그래서 서양 음악에서는 멜로디, 리듬, 하모니를 3대 요 소로 보지만, 사실 멜로디 없는 음악은 수두룩하고... 특히 하모니. 왜 음악 교과서에서 말하는 3요소에 하모니가 들어가느냐, 서양음악에서는 하모니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래 요. 베토벤 음악에서 하모니 빼면 헛 거예요. 하모니가 되려면 어떤 놈이랑 어떤 놈 진 동수가 맞아야 하는데 이 음이랑 이 음이 본질적으로 같고 음 높이만 다르다는 전제 하 에 하모니가 성립되는 겁니다. 국악에서는 하모니를 전혀 중요시 하지 않고 가야금의 경우 하모니가 나올까 걱정해 서 하모니 현상을 미리 방지를 해요. 가야금에서 줄을 뜯을 때는 다른 손가락이 반드시 줄 위에 얹혀져 있어요. 실에서 음이 나올 수 없게 손가락으로 막는 겁니다. 그래서 국 악은 하모니가 발달하지 않은 음악이 아니라 기피하는 음악인 거죠. 완전히 동시에 울 리는 걸 아주 싫어해요. 재미난 것은 완전히 동시에 안 나와도 순차적으로 나오는 걸 아르페지오 라고 하는데, 드르르 하는 것도 국악에선 아주 천한 일로 봐요. 긁는 이런 건 절대로 안 써요. 가야금 벽에 세워놓잖아요. 문외한들이 가야금 보고 하는 게 드르 륵 긁어보는 거예요. 줄이 여러 개 있으니 사람 심리가 이걸 보면 긁고 싶어지는 거죠. 국악하는 사람들은 이걸 아주 천하게 생각하고 기피해요. 아무나 긁는 거니까. 그런데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굉장히 애용해요. 일본이나 중국 음악에서는 아르페지오를 씁니 다. 그런데 거문고에서도 예외는 있어요. 거문고라는 악기는 원칙적으로 손 집는 두 포 지션을 눌러가지고 동시에 해야 화음이 나는 건데 그게 절대로 안 되거든요. 거문고 줄 이 6개인데 2번째하고 3번째 줄만 가지고 멜로디를 냅니다. 하나는 줄이 가늘고 하나 는 굵은데 가는 것을 유현이라고 해요. 놀 유자. 하나는 대현이라고 하는데 굵은 거예 요. 거문고 대현줄 이건 말이 되지 않을 정도로 굵어요. 굉장히 굵습니다 악기 크기에 비해. 유현으로 타다 대현으로 타다 그 두 줄로 멜로디를 타는 거예요. 나머지 4줄은 뭐하느냐 하면 멜로디를 밑에서 받쳐주는 그런 개념으로 탑니다. 원칙적으로는 첫 번째 줄을 타고 나서 유현은 소리가 안 나는, 말하자면 때리는 소리 그게 깁니다. 그 다음에 퉁 소리 그게 멜로디거든요. 그럴 때 서로 살~기둥 실질적으로 이건 소리가 안 나는 소 리에요. 유현을 채가 스치는 잡음이지. 그래서 둥에 가서 멜로디가 나는. 하여튼 멜로디 만 연주하다가 곡 끝날 적에. 그건 원칙입니다. 곡 끝날 적에는 손으로 맞춰놓은 것을 궤라고 하는데, 궤 위에서만 하는데 궤 상천이라는 게 있고, 그러니깐 궤 위에 얹어는 있지만 멜로디로 쓰지 않는 줄을 궤 상천이라 하고 궤 밑에 떨어져 있는 줄을 궤 하천 이라고 해요. 그리고 맨 마지막 줄은 무현이라고 해서 그것도 굉장히 낮고 굵은 줄인데

115 요, 그 세 줄은 완전히 똑같은 음으로 맞춰놓습니다. 똑같아서 곡이 끝날 적에 순서대 로 그걸 내야 하는 거에요. 그건 왼손을 쓰지 않기 때문에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 같 은 여운으로서 그것을 쓸 적에는 두 줄, 심지어는 세 줄까지도 음을 울려서 약간의 화 음 같은 효과가 납니다. 그런데 그것도 다른 음으로 맞춰 놓아야 화음인데 똑같은 거에 요. 동도 화음이죠. 그래서 그건 하나의 멜로디로 나가다가 멜로디가 아닌 자연의 소리, 어떤 운치로서 만들어 놓은 거에요. 그래서 이 국악이 세밀하게 들어가면 굉장히 어려워요. 어떤 악기든지 국악에서는 하 나의 음이 나오면 그 음이 변화가 되어야 해요. 변화가 없이 똑같이 존재해야 화음인 데, 국악에서는 소리 하나하나를 다른 음으로 보고 붓글씨 쓰듯 연주하는 거죠. 어떤 악기든 소리가 한 번 나오면 변화시켜야 하는 겁니다. 음을 변화시키는 것이 있어야 독 주악기가 돼요. 피아노 같은 것이 88번 있어도 항상 같은 음만 나오니까... 피아노 같은 악기는 원칙적으로 구현해내지 못하죠. 엄정식 : 그 정도 해주시구요. 이따 또 말씀해주시구요. 채현경 : 글쎄 보완이라고 말씀드릴 수 없을 거 같구요. 모든 분들이 말씀하셨지만 제 나름대로 생각 있었는데 많이 혼합이 돼서 통합되어버렸어요. 몇 가지 말씀을 드리자면, 음악의 3요소 이야기 하는데 화성, 리듬, 선율이 있다 이야기하는데 아까 바로크시대부터 화성 이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사실은 거기 한계를 둬야 하는 이유가 화성이라는 개념이 생 긴 이후부터 3요소가 생겼기 때문이에요. 서양 사람들이 수직적 음 관계를 중요시하면 서 생긴 컨셉이고... 피타고라스부터 아까 이야기했으니 그 때로 돌아가면 그 당시 3요 소는 로고스, 리듬, 하모니아였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걸 화성으로 오해하는 데 그게 바 로 멜로디랍니다. 물론 제가 그리스어나 라틴어도 못하는 상황에서 2차 자료만을 봤으 니까. 그런데 음악이라는 것이 어쩌면 리듬이었다. 그것이 한동안 지속되었어요. 선생님 이 장단 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서양에서도 맨 처음 리듬을 체계화했을 때는 장단의 패 턴이었습니다. long & short. 우리 현재 개념으로 4분 음표와 동등한 그런 게 생긴 게 1250년 경 되거든요. 이게 뭐라고 동등하다고 보시면 될 것 같으냐면 다성음악이 체계 적으로 되기 시작할 때, 여러 사람이 노래를 같이 부름으로 인해 리듬이 중요해진 거예 요. 왜냐하면 조화를 이뤄야 하니까. 흐르잖아요 리듬이라는 건. 수평으로 흐르지만 수 직으로도 같이 흘러갔을 때 이 사람들이 생각한 것은 어떻게 리듬에 있어서 패턴이 있 어야 하지 않을까. 이 때 이 사람들이 리듬의 패턴에서 근본적으로 생각한 게 long & short, 2:1의 관계입니다. 이게 어디서 나온 거냐면 당대 라틴어와 프랑스어 운문의 운 율, 메들리컬 핏에서 온 것이거든요. 길고 짧은 것. 그 때 만들어낸 게 엄밀하게 음악에 서는 mode of rhythm이라고 이야기해요. 그러나 그 때 리듬의 패턴이 여섯 개가 나왔 습니다. 그래서 길고 짧은 것이 혼합되어 나온 트러키라고 이야기하죠 우리 시에서는. 우리 엄선생님 아실 것 같은데. 그 다음에 짧고 긴 것 아이엔빅... 죽 이렇게 패턴이 나

116 왔어요. 그런데 그게 나오기 전까지 굉장히 분명한 것은 음악에 있어서 음악이 리듬이 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까지 이야기했어요, 성경을 인용해서 태초에 리듬이 있었다 이렇게 이야기할 정도로. 사실 그렇게 생각하면 음악의 리듬에 대해 맨 처음 언급한 사람은 피타고라스보다는 플라톤이 아닌가 싶어요. 왜냐하면 플라톤은 가사가 없는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 했으니까. 그래서 기악음악에 대한 고려가 없었거든요. 서양 음악의 큰 흐름을 보면 1300년, 1600년, 1900년 300년을 주기로 변화가 있었습니다. 먼저 1300년에는 리듬 을 체계화한 것입니다. 뉴 뮤직이다. 이런 이야기를 해요. 1600년에 일어난 큰 변화는 장단조와 화성이 정립되는 거거든요. 이 때 리듬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그 중 하나가 뭐냐 하면 그리스의 비극이라는 것을 다시 오페라로, 그러니깐 드라마컬 뮤지컬이라고 해서 만듭니다. 그 때 처음으로 만든 게???인데, 바 로 그???에 음악과 가사의 관계가 또 다시 언급되는 거거든요.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뭐냐 하면 가사의 리듬을 따 왔을 경우에 훨씬 호소력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또 1600년에 그런 개혁이 있어서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또 한 편으로는 가사와 관 련된 프리 리듬에 대한 언급과 그 당시에 음악이 먼저냐 가사가 먼저냐... 가사에는 리 듬이 들어가니까 이에 대한 언급이 많습니다. 중요한 작곡가와 철학자들이 몰려 논쟁을 하거든요. 1900년대는 우리가 알고 있는 도레미파솔라시도 개념을 붕괴하기 시작하거 든요. 화성의 법칙을 따르지 않겠다. 그러면서 이 사람들이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데, 그 때 아까 선생님께서 잠시 말씀하신 것처럼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이라는 작품이 사실은 당시에 새로운 음악으로 크게 두각을 나타내거든요. 그 음악이 1913년에 파리 에서 공연되었는데요. 이 음악의 발레 음악인데 딱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이 막 던지고 난리가 났었어요. 그래서 공연이 끝나질 못했거든요. 왜 이 사람들이 그렇게 행 동했느냐면 바로 리듬 때문이었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리듬의 개념에서 완전히 벗어난 거에요. 아까 이대일 선생님께선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는 리듬 개념에서 벗어났을 때 너무 힘들다는 말씀하셨는데 전 그걸 아름다운 일탈이라고 봐요. 우리는 지금까지 리듬 을 패턴이라 묶어서 봤잖아요. 이거는 하나하나... 리듬에 있어 중요한 건 기본 단위인 데 1,2,3,4... 1,2,3,4... 이런 식의 bit인데... 그거에서 우리가 4/4박자, 3/4박자, 2/4박 자 할 때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냐면 어디에 우리가 규칙적으로 액센트를 넣느냐 이 걸 이야기하는 거거든요. 2박자일 경우엔 원, 원, 원투, 3박자일 경우에는 원투쓰리, 원 투쓰리, 원투...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규칙적인, 반복으로 인해서 감지되는 거거든요 심 리학적으로. 그런데 이 사람이 리듬을 규칙에서 완전히 벗어났어요. 그래서 그 때 엑센 트를 던진 것을 보면 32마디, 32음표를 엑센트를 어디에다 떨구냐면 9,2,3,5... 이런 식 으로 우리가 보지 못한 그루핑을 한 거에요. 우리는 심리적으로 예견을 하고 있어요 어 떤 음악을 듣더라도. 그게 2/4박자더라구요 제가 악보를 보니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원투, 원투, 원투, 원투 이런 것을 기대하는데, 그 음악은 원 투쓰리포파이브식스세븐에 잇 나인 원투 ~ ( 표시가 강세) 이런 식으로 하는 거니까 사람들이 흥분한 거에요. 그

117 런데 그렇게 사용한 데는 이유가 있었거든요. 음악에서 리듬이라는 거에 대해 제가 보 기에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변형을 통해 20세기 초반에 와서는 크게 벗어나기 시 작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대칭, 반복, 주기라는 것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제가 보기에는 음악이 변화하는 사회 문화의 반영이라고 봐야 할 거 같아요. 1차 세계 대전 터지는, 당시 경제공황 이런 거와 맞물려 있다던가. 또 한 편으로 보면 우리만 있 는 줄 알았는데 서구 사람들이 타자를 보게 되었잖아요. 파리 만국 박람회 같은 것을 통해서 다른 곳을 본 거죠. 서양음악은 제가 보면 점점 체계화하다가, 단순한 것에서 점점 복잡해지고, 팽창해지고, 그 다음에 그걸 체계화하다가 어떻게 보면 20세기 들어 파괴했다고 볼 수도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일탈하는, 붕괴라고도 이야기 많이 하는데 요. 그러면서 제가 보기엔 다른 문화권의 음악을 생각 안 해볼 수 없다는 거죠. 그렇게 생각을 하고 보니까 제가 발리 같은데 음악을 잠깐 생각해봤어요. 인도네시아 발리. 발 리는 힌두교를 믿고 있는 곳이거든요. 거기 음악을 보면 음악이 리듬이, 사이클이 순회 적인 구조를 갖고 있어요. 그 소사이어티에서 보면 악기들이???라고 아시는지 모르겠 는데, 청동으로 만들어진 악기들이 오케스트라가 전부 두드리는, 타악기로 구성되어 있 어요. 굉장히 여러 가지 타악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거기에선 윤회설을 믿으므로 패턴 이 짧게는 8박, 길게는 16,32,64 이런 게 싸이클처럼 계속 돌아가는 거에요. 모든 악기 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참여를 해요 타악기들이. 어떤 악기는 매박 쳐요. 1,1,1,1,1... 어 떤 악기는 매 2번마다 나와요 쉬고 나오고 쉬고 나오고... 어떤 악기는 4번째 박마다 나와요 1/2/3/4, 5/6/7/8, 9/10/11/12... 그 다음에 큰 봉은 8번에 한 번 나와요. 각각 자기 역할이 있는데 그게 서로 다 연결이 되서 큰 하나의 소리 만들어요. 저는 사실 그 걸 1-2년간 배우면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면요. 제가 그걸 가르치는 선생에게 혼났어요. 제가 그것을 이해를 못했는데요. 한국이라는 소사이어티에서 경쟁적인 삶을 살다보니 일단 무슨 악기를 하든 열심히 해서 튀어요. 조화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번번히. 그런데 전 왜 난 이렇게 잘하는데 저 사람이 날 보고 뭐라고 할까 이렇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고 2년이 걸려 터득한 것은 그 소사이어티가 평등 사회인 거예요. 모든 사람이 튀지 않고 자기 역할을 하고... 그 리듬을 보고 잊혀지지 않는 게 단지 그 사람들의 종교와 음악의 리듬과 이 모든 것이 얽혀 있는... 그래서 리듬이라는 게 제가 보기에는 문화 사 회의 반영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정재서 : 그 말씀 상당히 중요한데 아까 황병기 선생님 말씀하셨듯 중국 음악을 들으면 중국은 항 상 그걸 넘어서려 하지 않는, 항상 법도로 수렴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중국음악 들으면 그게 너무 지나치게 빠지지 말아야 하고 너무 슬퍼도 아주 너무 상심하지 말라는 공자 말씀이 있는데, 이게 중국 음악이나 예술 쪽에 다 그런 게 있어요. 항상 그 안에서 법 도로 수렴하려고 하는 경향이... 제가 하버드에 있을 때 줄리어드에서 연주가 있었는데, 실로폰 비슷한데 제가 이름을 모르겠어요. 그걸 최고로 잘 연주하는 사람의 연주회가 있었는데 중국 사람들이랑 같이

118 가서 들었거든요. 그런데 중국 사람들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저는 감흥 못 느끼는데. 그 사람들 거는 기술적으로 세련되게 해요. 그런데 그 이상의 음악을 넘어서는 감흥을 안주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법도대로 하니까. 한국 사람들에겐 그게 중요한데... 며칠 전 에도 대만에 갔다가 거기서 유명한 남국 청나라 때 전통적인 음악을 들었는데 역시 그 래요. 민족 정서와 환경을 반영하는 게 확실히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끊임없이 우리 는 변화를 추구하고 단조로운 걸 못 견디니까... 그런데 중국 음악은 법도를 항상 지키 고, 거기에 귀착되어야 하고 그런 느낌을 줘요. 채현경 : 음악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 하신 거잖아요. 그걸 음악의 힘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 을 거 같아요. 사실 리듬에 대해 논의하면서 저는 서양음악을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하니 까 대중음악 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있어서... 아까 우리 이야기 범위를 규정해야 하 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하실 때 정말 이건 너무 광범위하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데 사실 굉장히 재미있는 스터디가 지금 뭐 동양권에 대해 말씀하셨으니까. 그런데 미국을 연구하는, 버팔로 대학의 찰스 카일이라는 미국 문화연구자가 무슨 얘 길 했냐면 서양음악을 얘기하니까 모든 지휘자가 지휘봉을 갖고 있는 건 굉장히 정확한 걸 주도하기 위한 것이라는 거에요. 굉장히 정확한 것을 주도하는데 그것에 있어 음악 이나 재즈를 보면 제 박자에 나오는 게 프레임 워크는 있지만 약간씩 밀리고 나올 것 같으면서도 안나오고 그런단 말에요. 불일치라는 거. 그 사람이 불일치라고 이야기했는 데,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그게 바로 미학이라고 이야기하기엔 지나치게 학문 적이지만 우리가 재즈를 들으면서 몸을 가만있지 못하고 흔드는 것은 그게 바로 음악의 힘이 아닌가 싶어요. 앉아 있지 못하고 몸을 흔들다가 나가잖아요. 제가 느낀 게 그것 이 바로 음악의 힘이 아닌가. 음악을 보면 어떤 음악은 선율적인 음악이 있고, 어떤 음악은 화성적인 음악이 있습니 다. 19세기 많은 음악은 선율적인 음악이구요, 리듬적인 음악은 여러분들이 베토벤의 음악이 전부 선율적인 게 아니냐, 예를 들어 베토벤 교향곡 5번 같은 경우는 빠바바 밤... 그건 리듬이 모티브에요. 그걸 가지고 사실은 이 작곡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 티브를 가지고 4악장 만들었어요. 하다 보니 딴 이야기인데 그래서 음악에 있어 그렇다 는 거죠. 소위 말하는 음악에 대한 이 논의에서 제가 보기에는 아름다움을 논의하셨기 때문에... 제가 해본 생각은 과연 음악의 힘이라는 게, 기승전결, 또는 음악에 있어서 여 러 가지가 있겠고, 기승결해 이런 게 있겠지만, 또 하나는 리듬이 우리로 하여금 일어 나서 플로어에서 춤을 추게 만드는 음악의 힘에 대해서도 우리가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엄정식 : 두 분 말씀 들어보니 역시 리듬은 음악 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다 하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 정리할 필요가 있는데 이대일 선생님이 시작할 때 리듬의 수준이랄까 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처음에는 그야말로 존재론적인 자연의 흐름... 상당히 음악은 문화

119 적 차원의 맥락에서 동서양의 음악, 리듬이 어떻게 발달하고 적용되는가를 설명해 주셨 구요. 근데 제가 보기에는 우리가 앞으로 자연과학하시는 분과 좀 더 지금 유기적 대화 가 되었으면 좋겠거든요. 자연과학 쪽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우주의 질서 이런 거잖아 요. 아까 저는 그 블랙홀 이야기, 우주의 질서라는 것이 결국 제한된 범위 안에서 논의 되는 거다, 그건 어찌 보면 아주 미미한 걸 리듬이라는 차원에서... 자연의 법칙이랄까... 그런 범위에서 논의하는 거다라고 말씀하셨죠. 암튼 그건 물리학자들이, 천문학자들이 보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희 철학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생소하지 않거든요. 칸트는 그것을 현상이라고 그랬어요. 알 수 없는 망망대해에 떠있는 외로운 섬에 불과하다... 우리가 인식 탐구를 통해 알아낸 대상은... 그게 아까 야스퍼스가 이야기한... 사실 야스 퍼스는 칸트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알 수 없는 그런 거에 대한 영역까지 리듬을 적용하려는 건 아니거든요? 박창범 : 자연의 속성을 파악해서 인간이 리듬에 대해 갖게 된 어떤 관념이 굉장히 관련이 있습니 다. 예를 들어 한국 사람은 변화를 원하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데, 자연은 적어도 우리 가 경험하는 자연만 봐도 반복과 비반복의 양면성이 자연의 속성이거든요. 보다 큰 규 모로 가면 거의 비반복성이 대자연을 지배하지만 인간이 볼 수 있는 좁은, 소위 릴렉스 되는 상태 안에서도 반복과 비반복이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 사람은 그 두 개에 다 주목을 하고 있는 걸로 보이구요. 더 나아가서 리듬의 반복성에만 주목하지 말고 비 반복성의 중요성, 그리고 더 나아가면 그 비반복성이 자연의 원래 속성이다 이런 말씀 을 제가 드립니다. 엄정식 : 우리가 리듬의 개념을 규정할 필요 있다 말씀하시지만 저는 꽤 또 분명해진 것 같아요. 클래식에서는 음양이 지속되다가 정지를 포함해서 또 지속되고 그 지속이 길고 짧은 그 런 특징을 갖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것이 질서를 가지고 있을 때 음악에서는 리듬이라 는 건데, 보편적으로 적용하면 우주 삼라만상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생체도 그런 거고. 그랬을 때 이건 음양의 전유물이 아니고 그것을 비쥬얼라이징할 때, 디자인, 미술 쪽에서도 리듬을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실제로도 우리 가 그쪽으로 논의를 강화했음 하는 게 우리가 귀로 들을 때는 소리를 듣지만, 이게 더 깊은 차원으로 보면 신경접합점까지 들어갔을 때 소리가 소리로 들어가는 게 아니잖아 요. 소리가 대뇌까지 들어가는 게 아니잖아요. 신경섬유로 가면 부호로 바뀌어야 하는 데... 펼스 신호의 형태로 가야 하는데... 그것을 부호화하면 결국은 모스 부호 같이 그 런 이진법으로 완전히 번역이 가능해지잖아요. 태극이나 사궤가 이진법으로 되어 있잖 아요. 이것은 리듬을 반드시 음악의 용어로뿐만 아니라 생체를 설명하는 용어로도 쓸 수 있고, 논의가 될 수 있으면 디지털라이즈, 이진법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세계 자체를 디지털라이즈한 형태로 봤을 때 우리가 논의를 넓혀갈 수 있지 않을까

120 성굉모 : 그건 너무 논의를 틀에 맞추려는 것 같은데요. 사람이 뇌에서 소리를 감지하면, 기저막 에 있는 털세포가 역학적 변형을 일으키면서 전기적인 펄스로 바뀌어서 신경으로 해서 가고,.. 물론 눈에서 보는 것도 그럴 겁니다. 신경에서는 전기적 신호로 뇌로 가는데 그 게 꼭 플러스 마이너스 또는 모스 부호처럼 길고 짧은 게 아니고 그냥 펄스 형태인데 그 레피티션 레이트가 다르고 그런 것들이 정보로 되어 있지 꼭 이진법적인 펄스로 가 는 것은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기적 펄스로 가기 때문에 정보를 전달하 려면 직류적으로는 갈 수 없고, 그렇다고 교류도 아니고 펄스 형태로 정보를 전달한 다... 엄정식 : 펄스가 좀더 세분화 되면 이진법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장, 단. 그런 신호의 컴비네이 션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성굉모 : 신호처리에서 모든 신호를 바이너리 신호로 바꿔서 오늘날의 모든 컴퓨터나 디지털 오디 오나 그렇게 인간이 그걸 잘 했는데, 글쎄 다섯 가지 감각기관이 뇌에 전달하는 그게 꼭 이진법적인 신호냐 하는 건, 저는 좀 물음표... 전기적 펄스로 가는 건 맞는데 그 펄 스를 그걸 꼭 이진법적으로 해야 하느냐... 엄정식 : 거기서 펄스는 좀 애매한 개념이 아닌가... 성굉모 : 펄스는 그냥 신호가 툭,툭,툭,툭 이렇게 할 수도 있고 툭툭툭툭 할 수도 있고 이렇게 여 러 가지... 그런데 모스부호는 훨씬 변화가 많죠. 장단이 드러나죠. 그런데 이 청각신호 가 장단이 들어가는 신호로 전환된다는 건 전 잘 모르겠어요. 엄정식 : 저희는 사유실험을 많이 하니까 그런데 원칙적으로 귀에서 들어오는 패스트럴 심포니 같 은 경우도 그걸 시각화할 수 있다면 상당히 재밌는 그림으로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 시각화할 수 있는 그것을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건데, 그러니까 리듬이 반드시 음악적 인 용어는 아니라는 거죠. 시각적인 거일 수도 있고 생체리듬과 연결될 수 있는 그런 차원에서 논의를 전개를 전개해보면 어떨까... 이덕환 : 음악에서 논의를 바깥으로 끌고 나오기 위해서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음악이라는 거 쭉 말씀하신 거는 우리의 사상이라든가 철학이라든가 경험이라는 것을 반영해서 만들어낸 리듬이죠. 저희가 창조해낸 거죠. 그런데 우리가 흔히 자연에서 보는 리듬이라는 것은 굉장히 제한적인 범위 안에서 우리가 만들어낸 게 아니라 관찰한 리듬이거든요. 계절이 라던가... 간단히 말하면 규칙성, 반복성에서 시작이 되는데, 흔히 생리학적 리듬으로 들 어가면 굉장히 복잡하거든요. 심장 박동이라던가 호흡이라던가 그런 것들이 있는데... 여태까지는 반복이 된다면 관찰했고 왜 반복되는지는 거의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 심장

121 반복이라던가 이런 것들이 굉장히 견고하거든요. 시계추 흔들리는 것보다는 훨씬 더 견 고하게 되고 있는데, 옆에서 건드려도 뭐 엄선생님께 무슨 이상한 이야기를 하셔도 제 심장박동은 조금 빨라졌다 돌아오구요, 영 이상한 방향으로 가지는 않거든요. 옆에서 뭘 건드려도... 그 요새 카오스하고 관련된 복잡계 과학을 조금씩 설명을 하고 있는데, 핵심은 되먹임이라는 것, 피드백이라는 게 있어가지고 그게 진동을, 그러니까 반복을 아주 견고하게 유지시켜주는 걸로 바뀌고 있거든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도 굉 장히 오랫동안 상당히 견고하게 돌고 있잖아요. 근원적 이유는 없어요. 다른 곳으로 가 도 되는데 지구가 우리가 아는 한에서 적어도 몇 십 억년을 돌고 있었던 거죠. 거기에 도 어떤 제한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조금씩 밝혀내는 것 같은데 거기에서 벗어나 면 우주에도 리듬이 있고 주기가 있고...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 아닌지... 그런데 상호 작용이 있어서 피드백이 가능한 영역에서는 그런 주기성이 견고하게 유지될 수 있는데, 그런 상호작용이나 피드백 메커니즘이 불가능한 영역에서는 완전히 제멋대로 가는 거거 든요. 일반적인 진화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생물이나 관찰 가능한 영역에서 봤던 주기성, 리듬 이런 것을 너무 쉽게 일반화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우주의 주기, 리듬 이런 것을 기대하는 거 아닌가... 지금 요새 우주론, 천체 물리학 이런 데 가면 없는 것 처럼 보이거든요. 그럼 우리 생각도 좀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고. 자연에서 관찰 되는 리듬은 극도로 한정된 범위 안에서 그런 것이지 그것을 일방적으로 확대해서 뭔가 없는 걸 있는 것처럼 기대하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재서 : 지금 그런 입장이 지지된다면 동양의 가장 기본적인 음양오행 같은 게 무너져야 하고 한 의학의 가설, 풍수 등 모든 것이 다시 검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거기에 물론 혐의가 없는 건 아닙니다. 음양오행이 자연에 대한 제한된 관찰에서 나온 건데, 그 이 론을 구성을 해놓고 그것으로 여러 가질 설명하다 보니 모든 게 맞게 된 그런 측면이 없는 게 아니에요. 특히 최근 여성학 쪽에서 남녀관계에 있어 차별적인 음양론에 의한 그런 입장 같은 것들은 음양이론이라는 것을 구성해놓고 그것을 우주론화하면서 당위론 적 차별하게 된 것이거든요. 상당히 그런 부분은 반성해야 할 것 같고, 또 한의학이 몇 천 년 동안 살아남은 것을 보면... 현대의학에서는 완전히 미신이죠. 근거도 없고 실험 할 수도 없고 경험에 의한 것일 뿐인데 이론적으로는 완전 유사과학이잖아요, 그렇지만 그게 지금 수 천년 동안 살아남아서 지금까지도 상당한 것으로 평가되는 이런 것을 생 각하면 음양오행론이 우주 전체에 대한 설명으로서 나름 옛날 사람들이 파악했던 실험 이 아닌 직관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우리가 너무 자연과학적 견지에서, 좁은 범 위 내에서만 어떻게 본 것... 이것은 우리가 요즘 실험이나 관찰이라 하는 범주 내에서 생각할 때에만 좁은 범위이지 그 당시 사람들은 오늘날과 같은 자연과학의 실험과 같은 이런 방식이 아니고, 직관이라든가 사유라든가 명상이라든가 여러 가지 다른 방식에서 본 것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는 또 너무 무시할 수 없는 것 아닌가

122 엄정식 : 이덕환 선생님이 제기하신 문제를 근대 서양철학자 중 한 사람이 아주 심각하게 제기한 적이 있었거든요. 우리가 생각하는 리듬은 굉장히 넓은 의미로 쓰이고 있잖아요. 규칙 성, 법칙성... 이런 걸로요. 그걸 왜 믿나. 불 때면 연기난다 이런 현상 있잖아요. 경험적 으로 인식한 것은 불 땠다는 것과 연기나는 걸 봤을 뿐인데 이걸 자주 보면 불 때면 연 기난다는 인과관계가 끼어드는 건데... 실제로 경험한 것은 순간적인 현상일 뿐인데, 이 걸 계속 경험하면 불 때면 반드시 연기난다는 전칭명제로 둔갑한다는 거죠. 그걸 못 풀 고 있거든요 현대 과학철학에서도 이견이 많죠. 이건 적어도 우리가 인과성을 포함한 리듬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문화적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 닌가 하는 거죠. 자기 권의 음악을 들으면 편해지고 장단이 화음보다 낫다는 그런 이 유는 있을 수 없잖아요. 그레고리안 찬트가 그 문화권에서 근대 와서 화음이 화성이 강 화되면서 유럽 근대 음악을 만들었고, 그것이 근대 유럽 과학에 어떤 영향을 미쳐 매트 리컬한 사고를 반영하려는 그런 것이었지. 그러니까 말하자면 서양 근대사를 통해 탄생 된 음악 형태일 뿐인 것 있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그레고리안 찬트나 인도나 시리아나 저쪽의 러시안 처치음악 이런 것은 완전히 다른 문화권이잖아요. 우리 동양 음악하고 특히 인도 같은데 하고 너무 유사하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문화적 측면, 자연과학적 측면, 생물학적 측면에 대해 조금 나눠서 연구하면 재밌어지지 않을까. 성굉모 : 우리가 오늘은 리듬을 이야기하니까 주기적 반복 이런 걸 이야기하니까 모든 걸 거기에 맞추지 않냐는 말씀을 하셨는데. 맞는 거 같습니다. 물리적으로 역학계에서 보면 진동 이 늘 일어나지 않습니다. 에너지를 준다고 해서 역학계의 3대 요소가 질량이 가지고 있는 관성, 관성은 자기가 있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거고, 그리고 탄성, 손실, 마찰 과 같은 세 가지 시스템으로 구성되었을 때 에너지를 주면, 손실이 많을 때에는 오실레 이션이 진동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느 이하여야지 크리티컬 댐핑 이하로 되어야지 오 실레이션이 일어나는데, 그 오실레이션은 손실은 적은데 에너지가 탄성 에너지로 갔다 가 그게 관성 에너지로 갔다가... 탄성 에너지는 위치 에너지의 일종이고 관성에 갈 땐 운동 에너지로 서로 에너지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할 때 역학계에 진동이 일어나는데, 그 진동은 손실이 얼마 이하로 적어야 일어납니다. 손실이 많으면 한 번 툭 치면 조금 움직이고 가만있지 반복적인 진동은 못해요. 그러니 손실이 시스템에서만 진동이 일어 나고 그 진동현상은 관성이 가지고 있는 운동에너지와 탄성이 가지고 있는 탄성에너지, 위치에너지인데 일종의 포텐셜 에너지죠... 그거를 서로 에너지가 왔다갔다 바뀌면서 주 기라는 것은 에너지가 왕복하는데 걸리는 시간이죠. 그게 역학계에서는 그렇고 전자계 에서는 똑같이 그렇게 전기회로 이런 곳에서 오실레이션이 일어나는데, 저항과 캐퍼시 스턴스, 인덕턴스 이 세 가지 중에서 저항은 에너지를 잡아먹는거고, 인덕턴스는 자기 적인 에너지를 스토어하는 거고, 캐퍼시턴스는 전기 에너지를 모으는 겁니다. 여기서도 역시 전기에너지와 자기에너지가 왔다갔다 하는게 전류의 오실레이션이 일어나는 거고 여기서 저항이 너무 크면 안 일어납니다. 그러니깐 전자계나 역학계에서는 물리학자들

123 이 처음에 다 해놨지만 어떤 조건에서 오실레이션이 일어나느냐, 또 일어나더라도 손실 이 적으면 오실레이션이 오랫동안 일어나고 손실이 많으면 금방 댐핑이 되죠. 그 오실 레이션을 계속 유지하려면 한 주기 동안의 손실만큼 에너지를 계속 공급해 줘야하는 거 죠. 어머니가 애 그네를 계속 태워주려면 한 번만 해서는 안 되죠. 몇 번 왔다갔다하다 정지해버리죠. 계속 밀어줘야, 한 주기 동안 손실한 에너지를 계속 공급해줘야 그네가 유지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역학계나 전자계에서는 어떤 조건일 때 오실레이션이 일어 나고 어떤 때 안 일어나는지 계산 가능하고 예측 가능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하 다보면 모든 것은 주기적이고 오실레이션이 있는 거다 가정을 하고 이야기했는데 그건 좀 무리라는, 자연과학 쪽에서 보면 그건 무리죠. 그렇지 않은 경우가 굉장히 많고. 박창범 : 자연과학하고 인간을 연결시키기 위해 방금 말씀을 이어받아서... 안정계의 지배현상이 리듬이라고 생각되는데, 어떤 시스템이 있는데, 그 시스템이 계속 유지되고, 무변화는 아니지만 항상 겉보기로 변화가 없어 보이는 시스템을 지배하는 원리가 있어 그 지배원 리를 따라서 모든 것이 반복적으로... 가만히 자연현상을 보면, 대부분 무변화에서는 자 연이 유지가 되지 않아요. 주기적일 때만 유지가 됩니다. 안정계를 지배하는 방법이라 는 것이 리듬이다. 그런데 결국 그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그렇게 믿음이 존재할 때, 인 간이나 사회가 건강해지고, 편하다는 것을 알게 모르게 습득을 해서 우리가 그것에 대 해서 가르치지 않아도 리드미컬한 음악에서 쾌감을 느끼고 규칙적인 생활에서 건강을 찾고, 저절로 그렇게 되는 거죠. 그런데 그런 안정계에서는 아무런 발전이나 변화가 있 을 수가 없는 거죠. 양면적 측면이 거기서 발생하는데, 끊임없이 안정계에서 존재하는 한은 그 시스템에서는 변화나 진화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데, 이 안정계를 유지시키는 게 자연의 법칙이지만, 자연의 지배원리 자체는 진화의 법칙을 가지고 있는 비리드미컬 하고 리듬을 파괴하는, 그것이 지배원리인데 우리가 그것을 안정계를 타고 있으면서도 늘 지각하고 있어야 한다. 이대일 : 진화라고 했을 때 진화라는 것이 실재하는 지도 전 궁금하구요. 진화라기보다 어떤 우리 의 삶의 환경, 문화 환경의 변화라는 것이 사실은 진화가 아니라 우주적인 힘에 의한 그것의 작용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막연히 드는데, 진화라 했을 때 일직선적인, 일종의 직선적인 시간관이라 할까요. 그런 것도 어렴풋이 회의적으로 느껴져서 그 점에 대해서 좀 여쭙고 싶습니다. 박창범 : 시간에 대해서는 직선적 시간을 말씀드린 거고, 진화는 인간의 관점에서 봤을 때 바람직 한 진화를 말씀드린 게 아니라 그냥 변화를 말씀드린 겁니다. 실제는 반드시 변화를 수 반하기 때문에 그걸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정재서 : 상당히 재밌는 말씀하셨는데, 그런 원리를 보면 말이죠. 주역이나 역학에서도 그런 걸

124 알고 있지 않았나요. 태극 자체가 보면 점이 없어요. 중국 태극에는 두 가지 점이 있어 요. 그게 뭐냐면 점이 가장 빨간 기운이 최고로 넓어졌을 경우 거기 점이 있거든요. 최 고의 시점에서는 항상 쇠퇴의 조짐이 있다는 것이거든요. 다시 파란 기운, 그러니까 음 의 기운이 그 때 나온다는 얘기에요. 다시 그 얇은 데서부터 시작해서 점점 커지지 않 습니까 그 파란 기운이... 그 파란 기운의 한 복판에 점이 찍혀 있죠. 이것이 바로 최초 의 씨앗이에요. 다른 반대되는 변화의 기미죠. 그것을 표시한 것이거든요. 좁은 곳에서 출발해서 점점 넓어지고... 박창범 선생이 말씀하신 안정적인 역할이... 음향오행이라는 것이 그런 것을 추구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항상 중요한 것은 이것이 가장 극점에서는 다시 변화할 수 있고, 넘어갈 수 있다는 그런 것을 설명하고 있는 건데, 그것이 박선생 님 말씀하신 부분과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닌가... 엄정식 : 아까 이덕환 선생님 질문은 그대로 살아있는 것 같은데요 그래도? 그것이 말하자면 넓은 의미의 중국식 리듬을 확인하고 그것을 말하자면 어떤 신앙의 대상이랄까... 그것이 통 용되는 세계는 제한되어 있는 것 아닌가. 정재서 : 결국은 음양오행을 이론화해서 이데올로기화면, 그것을 통해 안정을 추구하지 않을 겁니 까. 그렇게 그 상태로 가기를 원하는 거죠. 그것을 무한대로 확장하면서 일부 그것에 통용되는 것일지라도 그것을 무한대로 확장하면서 안정된 국면으로 유지하려고 하겠지 요. 그러나 나중엔 결국 모순이 생기면서 문제가 발생하고 이런 과정을 밟게 되겠지요. 엄정식 : 정민 선생님 어떻게 하실 말씀이... 정 민 : 저는 리듬이라는 것하고 일상의 권력과 연결지어서도 논의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예를 들어 북반구 시계 돌아가는 방향과 남반구에서 해가 돌아가는 방향에 따 라 시계의 방향이 달라지는 데서 오는 어떤 그런 것들... 저는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일제 시대 저희가 자동차가 왼쪽에 운전석이... 지금하고 반대였고... 그러니까 좌측통행 이 기본적인 리듬이었는데 그것이 이제 미국식이 들어와서 운전석이 바뀌었는데 좌측통 행은 안 바뀌었거든요. 그러니 이제 좌측통행을 하면서 운전석을 바꿔놓으니까 우리나 라만 아주 희한한 통행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것이 이제 건물에서도 이렇게 돌 아가는 구조냐 이렇게 돌아가는 구조냐가 그런 차이로 나타나게 될 거고... 그 다음에 우리가 지금 발언한 순서도 화투 패 방향으로 하고 있고... 이걸 반대로 뒤집으면 불편 하거든요. 어떤 그런 것들이 리듬이라고 한다면 그런 것에서 탈출하려는 욕구 역시 또 하나의 리듬을 가지고 오는데, 리듬이라는 것이 권력적인 속성... 선생님이 말씀하신 일 반화시키고 획일화시켜야만 직성이 풀리는데. 사실 질서는 그렇게 획일화되지 않는데... 여기서 오는 어떤 모순들 같은데서 어떤 권력과 믿음의 문제가 있지 않겠나 그런 것을 화두로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125 정재서 :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잠시 말씀을 드리자면... 최근에 중국은 초안정적인 구조였다, 이런 가설이 있어요. 유교를 중심으로 해서 초안정구조. 그런데 이것이 결국 어떤 음양 오행설에서 이야기하는 리듬을 완전히 아예 정착해서 그것을 강화시켰을 때 그런 측면 에서 생각해볼 수 있지 않나 중국이라는 나라를... 초안정구조적인 그런 상황 같은 것... 정 민 :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 무질서한 것 속에서 질서를 찾으 려는 욕구는 반드시 존재하고 있으니까 그것을 이제 우리 일상에서 이야기하자면 결 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산결, 물결, 바람결, 나무에도 결이 있는데 나무의 결 같은 것은 우리가 목리 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치 리 자를 써가지고 결을 리 라고 하는데 결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흐름이고 그런 것인데, 이런 것을 박선생님 말이나 과학적인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그런 결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굉장히 불규칙적이다, 이렇게 말하지만 우리는 결을 찾을 때 안정감을 느끼고 그 속에서 질서를 타고 싶어 한다는 속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 사이의 길항관계가 리듬을 둘러싼 논의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엄정식 : 권력하고 연관시켰으면 좋겠다고 하시니까 생각나는 게 마키아벨리가 코페르니쿠스와 동 시대 사람이거든요. 코페르니쿠스가 천체를 검증해보니까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너 무 다르게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수학적 가설이냐 성경이냐 딜레마에 빠지는데 그 사 람은 있는 그대로를 본 거거든요. 어떻게 돌아가야 한다는 당위를 제시하는 게 아니라. 그런데 그 과학적 업적에 굉장히 충격 받은 게 마키아벨리에요. 이걸 사회과학에, 특히 정치학에 적용할 수 없을까... 그런데 마키아벨리 이전에는 그야말로 플라톤의 국가론부 터 죽 그 때까지도 당위론만 나왔거든요. 동양에서 음양오행설도 왕도를 걸어야 한다... 그래서 하늘의 이치를 따르면 그게 왕도고 자연히 백성은 따라오고 그런 당위론만 제시 했는데 그런 사람이 실제 정치를 잘한 적도 오래 지속한 적도 없고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 사람이 결이 윤리적 도덕적 결과 정치적 결은 다른 거다. 다른 패러다임에서 놀아야 한다고 해가지고... 군주론, 전술론 이런 걸 보면 전술론에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 는데 이 책들이 마키아벨리 보면 나쁜 놈으로 되어 있잖아요. 사자처럼 터프하고 여자 처럼 교활하게 나와 있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의 그런 글들이 컨디셔널하게 되어 있어 요. 정권을 잡으려면 그렇게 하라는 거야 군자같이 폼 잡고 있지 말고. 그리고 정권을 유지하려면 다른 테크닉이 필요하다는 거에요. 그래서 최초로 하나로 노머티브 사이언 스로서 정치학이 소셜 사이언스랑 분리되거든요. 천문학이 이제 말하자면 우주론에서부 터 분리되듯이, 코페르니쿠스에 의해서. 정치학이 도덕철학으로부터 분리하거든요. 그래 서 그것을 우리가 한 번 결 하고 연결시켜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른 패러다임의 리듬 이 거기서 통한다면

126 정재서 : 그것을 연결시킨 게 동양에서는 한비자죠. 한비자가 완전 분리시킨거거든요. 소위 패도 정치방향으로 왕도 정치와는 반대되는... 완전 정치는 순전히 인간의 이기심으로 조정해 야지 이미 도덕같은 것과는 전혀 상관없다... 한비자는 맹자보다 순자계통 유학에 가까 워요. 순자는 완전 성악설적 입장이고 소위 하늘을 거의 기계적 자연으로 보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그런 관계가 있거든요. 산을 돌아다니면서 하늘에서 움직이는 것은 인간에 게 전혀 영향 안 미친다, 이게 순자거든. 그렇게 보니까 완전 단절시키는 거죠. 지금 선 생님 말씀하신 그런 마키아벨리 관념하고도 상당히 흡사하게. 그런데 그게 주류가 안 돼. 서양에서는 주류인데... 완전 이단시 되고 있죠. 엄정식 : 그런데 사실은 스토아학파의 테마가 우리 주제와 맞는 거 같아요. 거기 큰 주제가 있는 데 자연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고 이성적은 선한 것이다, 그런 포뮬라가 있거든요. 따 라서 자연적인 것은 선한 것이다. 막연한 흐름을 잡은 거죠. 그 흐름을 독점하면서 동 시에 사람이 리듬을 독점하는 거 있잖아요. 이런 것은 그 주제와 연결해서 한 번 음미 해볼 가치가 있는 것 같던데. 성굉모 : 좀 다른 이야기가 되겠습니다만, 그냥 시민들이 이야기하는 정치권력에서의 리듬, 그런 것과 관련된 게 권불 10년이라고 있죠, 권세. 그런데 우연히도 우리나라가 좌파가 정권 을 10년간 잡고 우파가 지금 바뀌었는데, 시민들이 느끼기는 계속 우파가 정권을 잡아 도 큰일 납니다. 좌파가 계속 잡아도 큰일 나고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우 연히 속담 권불10년하고 10년 만에 우파가 잡은 것하고 딱 맞아떨어지지 않나.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은 좌파우파 주기를 10년을 좋아하지 않나, 그런 아무 근거 없이 그런 생 각이 들어서 말씀드렸습니다. 정재서 : 중국에서는 권불10년이 아니라 호불100년. 오랑캐는 100년을 못 넘는다. 이게 이제 중 국 한족들한테 이야기가 나오는데, 100년 내에서 왔다갔다 한다는 거죠. 위진남북조라 고 오랑캐들 제일 많았던 시기... 우리나라 고구려 이 무렵에도 모두 100년에서 150년 안팎이고 200년을 못넘어요. 역시 그게 깨진 게 예외가 청나라가 300년을 해가지고 완 전히 깨졌죠. 그러니까 이제 말하자면 나름대로의 주기를 생각한 거죠. 야만족들은 문 화가 없으니 100년을 못 넘는다는 거에요. 이승종 : 저는 평상시 리듬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같이 생각나는 단어가 패턴 이었습니다. 물 론 지금 리듬하면 두 선생님이 말씀하신 음악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시간 축에서의 패턴 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패턴은 시간만 따질 게 아니에요. 자연과학이나 공학 쪽에 서는 시간, 공간이 또 다른 개념에서의 패턴입니다. 그런 큰 의미에서의 패턴을 생각해 봤는데 항상 시간이든 공간이든 관련된 스케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연과학 입장에서 시간적인 패턴인 경우에도 전혀 다른 패턴 보일 수 있다는 거죠. 보통 생각하

127 는 음악적인 리듬같은 건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적당한 시간 스케일. 짧으면 초 단위 에서 길면 몇 분 또는 한 시간의 타임 스케일에서 리듬일 거 같은데, 그걸 지금과 조금 다른 스케일로 가면 아주 길어질 수도 굉장히 짧아질 수도 있는 그런 거거든요. 그런 타임 스케일에서 보면 상당히 다른 패턴을 보일 수도 있을 것 같구요. 공간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특히 공간 같으면 요즘 나노 스케일 이래서 많이 보고 있고... 우주와 같은 엄청나게 큰 공간 스케일이고, 시간도 마찬가지고... 스케일 개념도 같이 포함시켜 생각하면 상당히 다른 리듬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연과학 이나 공학에서는 스케일이 전혀 다른 패턴도 생길 수 있겠다 싶구요. 사실 어떤 좁은 스케일에서는 정형화된 패턴이 보이다가도 좀 키워놓으면 아까 말씀하신 패턴에서 벗어 나는 그런 것들은 또 항상 나타나기 마련이거든요. 그러면서 또 그게 더 커지면 그게 패턴이 되기도 하고. 그런 스케일 문제가 지금 말씀하신 어려운 것들을 같이 포함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일 : 지금 벌써 세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듣기에는 오늘 말씀하신 것 중에 키워드로 떠오른 것들이 어쩐지 제게는 그렇게 들립니다. 만물은 리듬 패턴이다. 리듬 패턴이라는 말이 상당히 의미 있게 떠오른 이 시간 주제어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 이 듭니다. 저는 아까 황선생님 이야기 듣고 하나 놀란 게 있는데 저도 사실 리듬을 찾 아봤어요. 그런데 한심하더라구요. 도저히 설명이 안되더라구요. 리듬에 대한 정의가 없 다. 그래서 저는 황선생님 말씀 듣자마자 가장 중요한 것들은 정의하지 못하는 거구나. 마치 생명에 대한 정의가 지금까지 없는 것처럼. 리듬도 이게 엄청나게 중요한 거구나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상당히 좋은 말씀들 감사하고요. 마지막으로 간단히 여기 참 여하신 패널 선생님들께서 한 말씀씩 해주고 이 자리를 파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성굉모 : 조금 전에 이승종 교수님께서 스케일이 중요하다고 하셨고, 작은 스케일에서 규칙적인 게 어떤 스케일을 크게 해서 보면 규칙이 아닌 것 같은데 다시 더 키우면 다시 규칙성 이 나오고... 그래서 규칙적인 게 자꾸 반복되고 하는데 그 걸 프랙탈이라고 하죠. 디자 인에서도 벽지... 이렇게 규칙적인 것 같은데 그 속에 보면 또 다른 게 있고... 그래서 자연계에 찾아보면 리듬의 예가 많이 있을 수 있다, 그걸 이야기한 게 아닌가. 리듬에 서 벗어난 것은 많이 있지만 그것까지 이야기할 시간이 없어서. 그래서 이야기하다보니 모든 건 리듬이 있는 걸로 머릿속에 잘못 박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창범 : 아까 제가 안정계에 대해 말씀드렸었는데요, 우리가 경험적으로 인간과 사회라는 조직을 유지하거나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거나 생각해내는 효율적인 방법으로서 규칙, 법 칙, 또 그런 것에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동주기성, 어떤 규칙성을 요구하고... 동주시성을 환원을 일으키죠. 그런 것을 선하고 바

128 른 것으로 배우고 요구받고 있는데요. 물론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 인간사의 측면이지 만, 제가 아까 자연의 예를 들어 말씀드린 것처럼, 자연 원리의 기본은 변화의 원리고 주기적인 것은 자연 상황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리고 인간사에서도 결국 변화나 창의는 혼돈에 의지하거나 비주기적인, 그리고 비규칙적인 그런 능력에 의지를 합니다. 따라서 너무 리듬과 규칙성에만 의미를 부여할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리듬의 파기와 비리듬 적인 현상, 또 그런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재서 : 저는 동양의 여러 가지 사상이 리듬과 상관이 있다는 것에 주목을 해봤구요. 그런 것들 이 갖는 정체성이 우리가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안정, 어떤 체제라던가 그런 것들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반복적이고 주기적인 리듬구조 이런 것을 갖는 것이 효과적이고, 그런 것들이 실제 정치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 많이 활용 되어 왔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던 것 같구요. 그렇다면 결국 카오스와 코스모스라는 두 가지 문제를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생각해봐야 할 거 같아요. 주기 적이고 반복적인 것이 하나의 질서를 지향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코스모스적인 것으로 본다면,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질서... 그런 측면에서 그것을 코스모스적인 것으로 보고, 그렇지 않고 어떤 자연 상태, 그것을 카오스적인 걸로 본다면 결국 코스모스라고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존재하는 하나의 터전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인데, 그것이 카오스라고 하는 비리듬적인 세계에 대해서 그것을 우리가 부단히 리듬화해 나가야 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비리듬적인 것 자체를 우리가 말하자면 그대로 하나의 힘으로서 받아들 여야 하는 것인지... 결국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이라던가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함의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리듬에 대한 문제가 확장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 니다. 채현경 : 오늘 사실 제가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리듬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사실 전 리듬이라 하면 아까 정의가 내려져 있지 않다고 하셨는데, 요즘은 투 플로우. 흐른 다는 그런 게 있습니다. 전 항상 플로우라고 생각하면 두 가지 정도 생각하는데요. 제 가 서양음악의 이해 같은 과목에서 비전공 학생들에게 리듬이 무엇이라고 설명할 때, 비가 내리는 것도 리듬이고, 내가 걸을 때도, 내가 생각하는 머리 안에도 리듬이 있고, 운전하면서도 리듬이 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리듬을 음악이라는 것에 대칭시켜서 생각 해보기보다는 흐름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제 역할이 음악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정확히 이야기한 것 같지 않지만... 제가 아까 박교수님 말씀하 신 안정된 것과 변화를 위해서 또 다른 변화를 하는, 그리고 또 안정을 갖는 이런 과정 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음악사라는 것의 흐름을 살펴보면 새로운 것이 안정되면 그 다음 에 변화를 일으켜서 그것에 대응하는 또 다른 것이 생기면서 자리를 잡고 안정이 되면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형태로 변화를 하면서 음악사가 흘러 왔거든요. 그래서 아까 제가 말씀하실 때 음악에 대해서 중요한 것은 세 가지다 이렇게 말할 수가 없어

129 요. 이제 21세기에 우리는 또 다른 이야길 할 수밖에 없어요. 중요한 요소에 템버 가 들어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하나 든 생 각은 지금 우리가 인문학, 과학, 예술의 만남인데 음악하는 사람들은 정말 전문적인 음 악가로서 활동한 것 이전에 모차르트 때만 해도 천문학자였고 수학자였고 그랬거든요. 저한테 이제 과제라는 것는 팩트는 알고 있지만, 그리고 그 사람들이 수학적으로, 천문 학적으로 문제를 풀었다고 이야기가 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건 이론이거든요. 과연 이 론과 실제와의 관계, 예술이, 음악이 다른 학문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오늘 우리가 그래서 모인 것 같은데요. 그래서 오늘 말씀들을 듣고 다각도로 생각해봐야겠다고 느꼈 습니다. 황병기 : 아까 길게 이야기했지만 제가 그냥 아는 범위 내에서 이야기했고, 그 다음에는 제가 재 미있는 경험을 말씀드리면, 아까 채현경 선생이 스트리반스키 봄의 제전 이야기 했지 만. 그게 대중적으로 굉장히 큰 충격을 주었는데, 대중들이 초연 때 집어던지고 그래서 공연을 못하고 분노를 일으켰죠. 리듬을 대중에게 전혀 익숙하지 않은 그런 것을 했는 데. 그것도 어려운 것이 소란이 지나고 일 년인가 지나고 난 뒤에 그걸 다시 했는데, 발레 없이 음악회 형식으로... 그 때 초연을 지휘하는 사람이 몽떼라는 프랑스 지휘자였 는데, 그 사람이 1년 후에 그것을 발레 없이 지휘를 해서 그 때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 었거든요. 그런데 그 봄의 제전이 제가 유달리 좋아하는 곡인데요.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품을 투표해가지고 1위더라고요. 우리나라 신문에서. 저는 그 작품을 처음 들은 것이 아마도 1959년 아니면 60년이에요. 듣고 제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는데, 거기를 보면 그때까지 서양 클래식에 나오던 음악의 리듬과는 전혀 다른 불규칙함이 나오는데, 우리 가 일정한 패턴이라는 것도 반복한다는 거에 대해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19세기까지 베토벤이니 해도 어느 정도의 다람쥐 챗바퀴 도는 거 같은, 우리가 다람쥐 도는 거 보 면 갑갑하잖아요. 19세기 때까지 그런 것에서 확 해방되어 이탈한지가 챗바퀴통을 부셔 버리고서 풀밭으로 다니는 것 같은 해방감 같은 것. 그걸 저희가 봄의 제전에서 느꼈거 든요. 그런데 그걸 들을 때, 리듬의... 물론 관현악도 대단하고 화성도 대단하지만 리듬 에서 서양의 교과서에 없는, 그 교과서에 나오는 리듬에서 벗어난 쾌감이 있더라는 거 죠. 속이 시원하면서 멋있을 뿐 아니라 아름다워요. 그런 걸 느끼더라고요. 그리고 국악 과 관련지어 말씀드리자면, 이건 리듬하고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데... 우리나라 조선조 때, 음악이 죽 내려오다가 19 세기 말에 우리나라 왕조사를 보면 거의 끝날 무렵인데. 19세기 말에 김창조라고 하는 가야금 명인이 나와서 처음으로 산조라는 것을 만들거든 요. 그런데 19세기 말까지 가야금이나 기악은 그 중심이 정악 쪽에 있었어요. 그랬는 데, 급이 낮은 사람들은 판악을 했습니다. 현악은 선비들의 사랑을 받는 음악이라고 해 서 왕궁에서 연주되고 그랬는데 김창조라는 사람이 남도음악, 그러니까 판소리가 연주 가 되죠. 여기 기초를 두고 산조라는 음악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악기 색채도 그 때까 지는 정악 가야금이라고 해서 신라 때부터 내려오는... 그걸 확 줄이고 산조가야금을 만

130 든 거에요. 그래서 산조가 처음 나왔을 땐 이름이 없었어요. 구태여 이야기하자면 시나 위라고 했어. 그런데 시나위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시나위는 원래 살풀이춤 반주 음악이 에요. 대금 불고 피리 불고 했었는데. 그것을 선비들이 하는 풍류악기인 가야금을 가지 고 연주한 거야. 그래서 이 것이 대중들에게 인기가 확 일어나니까 정악하는 사람들이 대체 뭐를 갖고 그리 좋아하냐 궁금해 해서 들었는데 저게 음악이냐. 저건 허튼 가락 이다. 그래서 이름을 산조라고 한 거에요. 곡이 아니야. 그건 허튼 가락이야. 그래서 산조라고 이름을 지으니까 다들 산조라 부른 거예요. 그래서 저 자신의 가야금 스승도 그걸 불만스러워 했습니다. 산조라는 이름을 잘못 지었어. 고쳐야 돼. 허튼 가락이 뭐 야. 그런데 산조가 처음 나왔을 때엔 그 당시까지의 안정된 세력이 보면 그건 허튼 가 락이야 음악이 아니고. 그런데 지금은 산조가 가야금 전통곡에서는 고전입니다. 최고의 고전. 그러니까 허튼 가락이 나온 건 이름을 잘못 지었다고 봐요 전. 왜냐하면 그 시대 사람이 허튼 가락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정말 새로운 것 아니야. 그걸 정말 잘못 한 거죠. 서양음악에서도 바로크 음악이 괴상하다는 뜻이거든요. 그런데 그게 지금은 괴상 하기는커녕 답답할 정도로 고전적인 음악 아니에요. 정재서 : 선생님 그게 아마 제가 알기로는요. 산조의 산 자가 원래 유래가 중국에서부터 이미 한 나라, 당나라 때부터 일반 민간의 음악을 산악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걸 붙인 것 같아요. 산악이라고 했는데 거기서 유래를 따서 붙이지 않았겠습니까. 황병기 : 뭐 그럴 수도 있고... 산조를 그래서 실제 우리 말로 허튼 가락이라고 해요. 실제로 산만 하다는 뜻은 그 당시 양반들이 생각하기에 흐트러질 정도가 되어야 새로운 거지 그걸 보고 아름답다고 하면 시시한 거지. 엄정식 : 그런데 그걸 지금 관점에서 보면 엄격하게 산만한 거죠? 황병기 : 산만하기 때문에 그게 좋은 곡이지. 이대일 : 오늘 여러 교수님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말씀 나누는 중에 하고팠던 말씀 많으셨 을 거고 시간이 충분치 않았을 거란 생각 들었습니다. 저도 사실 반론이나 질문 많이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 역시 근대 미술 쪽 리듬의 급속한 변화 등 끼어들고 싶은데 그 러지 못했습니다. 하여튼 이 아쉬움은 오늘 나온 이야기를 정리해서 다음번에 이걸 가 지고 주제를 구체적으로 만들어서 그것을 가지고 의논해 주십사 말씀드릴 때 더 초점 모이고 명확한 이야기가 전개되리라 생각합니다

131 리듬, 2차 포럼

132 엄정식 : 지금까지는 그야말로 난상토론으로,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바로 거 기서 출발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강제로 갈 것 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암암리에 이렇 게 염두에 좀 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선생님 말씀하시죠. 이대일 : 지난 번 좋은 말씀들 요약된 걸 보고 상당히 기쁘고 좋았습니다. 오늘은 이덕환 교수님 하고 엄정식 교수님이 나눠드린 프린트에 있는 것처럼 토론주제를 요목으로 나눠 포인 트를 잡아 말씀을 나눠보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개진하셨어요. 그래서 이렇게 서 너 개 항목으로 리듬에 대한 구체적인 주제가 잡혀 있습니다. 제가 페이퍼를 보고 느끼는 것은 예술의 위치라던지 리듬의 문화적 측면이라던지, 자 연과학적인 측면도 마찬가지구요. 음악적인 측면이라고 하면 두 교수님께서 편하게 말 씀하실 수 있겠지만, 이게 사실 만만한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여기 있는 주제들은 생각을 해가면서 얘기해야 하는 대목이 아닌가,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이덕환 선생님과 상의를 못해서 그런데 리듬이라는 토픽을 발제했을 때 제 개인적으로는 현대인의 삶의 리듬, 문명의 리듬, 그리고 현대적인 삶이라는 것이 생 리적인 리듬 내지는 인간적인 리듬이라는 측면에서 문명이라는 것이 과연 건강한 것으 로 작용하고 있는 것인가, 저로서는 심중에는 그러한 것이 먼저 있었습니다. 그러다보 니 어떤 의미에서는 이런 자체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는데 하여튼 요거를 초점으로 하면 서도 혹시 생각이 드신다면 현대인의 삶의 리듬이라는 측면에 대해서도 한 번쯤 말씀해 주시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어쨌거나 다시 한 번 반복해서 말씀드리면 준 비를 해오신 교수님들이 대부분이시겠지만 생각을 해가면서 그게 결함이 있을 수도 아 닐 수도 있겠죠. 서로 이런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나눠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혹시 성교수님 준비해오셨으면 말씀 좀 해주시지요. 성굉모 : 순서대로 이렇게 하는 게 좋겠죠? 아니면 모두 다 말씀드리나요? 이대일 : 토픽별로 하셔도 좋고... 이덕환 : 의사진행발언을 좀 하겠습니다. 처음에 기획할 때 이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다양한 분야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방법론을 찾아보자는 것도 의도 중 하나였습니다. 전혀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상대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섞어가는 방법론을 찾아보자 는 거였거든요. 저는 나름대로 정리를 했는데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을 풀어 서 하나의 글을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우선은 아이템별로 정리를 해놓고 오 늘 이야기를 하고 더 섞어서 그 다음에 글을 만드는 쪽으로 그렇게 가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조금 끊어져도 상관이 없을 것 같아요. 여기서 이야기가 완성이 안 되더라도 10월 9일 저희가 인문주간 행사를 하나 하도록 되어 있거든요. 그 행사 할 때까지 여 기서 나온 이야기를 꿰어서 하나 내지는 두 개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빈틈이

133 있으면 그 때 가서 메우면 될 거 같습니다. 우리가 답을 찾자고 여기 모여있는 건 아니 니까, 문제를 던져주는 방향의 말씀이라도 괜찮을 거 같아요. 순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거구요. 제가 정리를 하다 보니 이런 것들이 추가되었으면 좋지 않겠느냐 하는 아주 낮 은 수준의 제안입니다. 여기 구속될 필요는 없으실 것 같습니다. 성굉모 : 저는 공대교수 버릇이 돼서 그런지 토론 주제를 말씀해주셔서 그거에 대해서 제 생각을 다 정리해왔습니다. 융통성이 없는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공과대학교수들이나 의대교수 들이 회의를 할 때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준비를 해오고 그걸 이야기하고 의견이 다 른 것만 얼른 조율하고 그럽니다. 얼른 다른 일을 하러 가야 하기 때문에... 죄송합니다 문화가 달라서. 그렇지만 모든 주제에 대해 저의 이야깃거리를 조금씩은 준비해왔습니 다. 우선 예술의 위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물론 리듬이 예술과 많이 관련되는 그 런 측면에서 예술의 위치가 철학이나 자연과학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할 것인가 생각해 봤습니다. 우선 저는 예술은 전혀 별개의 독자적인 위치를 가져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술은 예술이고 학문과 예술에 있어서는 예술이 학문에 종속되 어서도 안 되고, 학문이 또 예술에 종속되어서도 안되고, 또 종교가 거기 섞여도 안 된 다고 봅니다. 그래서 예술은 전혀 별개의 독자적인 위치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술에 있어 리듬이 독특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예술이 독 자적인 위치를 가져야 하지만 자연과학이나 공학이, 또는 이들을 합쳐서 과학기술이라 하는데 과학기술이 예술창작에 좋은 도구, 틀을 제공해줄 수 있습니다. 특히 전위예술 의 경우에는 예술가가 새로 나온 과학기술의 도구를 남보다 먼저 사용할 때 히트를 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백남준씨죠. 백남준씨의 비디오아트가 뭡니까. 요새로 보면 구닥다리 CRT 튜브로 된 모니터를 연결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개척했기 때문에 유명 해진 거죠. 또 여기 채현경 교수님 계시지만 피아노라는 게 뭡니까. 피아노를 엔지니어 가 보면 18~19세기의 기계공업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 피아노 속을 보면 굉장 히 재미있어요. 요즘 기계공학자들에게 피아노를 만들라 하면 전혀 다르게 메탈을 쓰고 반도체를 쓰고... 물론 디지털 피아노를 그렇게 만들죠. 그런데 목재와 가죽과 핀만 써 서 그 복잡한 메커니즘을 만들었는데 그걸 엔지니어가 보면 18~19세기 기계공업 수준 에 불과한데, 음악계가 보수적이어서 아직도 그렇게 복잡하고 미련한 메커니즘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피아노라는 것은 굉장히 과학기술적인 산물입니다. 거기에 트 레임을 주물로 해서 현의 큰 장력을 유지하게 한 것... 이 모두가 엔지니어링의 산물이 죠. 미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술은 독창적인 영역에 있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새로운 툴을 예술가들이 사용하면 더 폭넓은 창작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면에서 과학기술은 예술을 위해 일하는 하인과 같은, 툴이나 만들어주는 존재라 할 수 있겠죠. 그리고 두 번째 리듬의 문화적인 측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마도 문화권을 떠 나서 왜 우리가 리듬을 좋아하느냐, 그것은 기본적으로 아주 모노톤하거나 아니면 정반

134 대로 아주 불규칙한 것을 듣거나 보게 되면 어느 종족이나 마음이 편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간 영역에서 어떤 존재 형태나 반복성, 거기에 단순한 규칙 반 복이 아니라 거기에 추가해서 약간의 변화가 끼어있는 그런 규칙반복성이 리듬이라고 볼 때 인간이 원천적으로 그런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모노톤이나 아주 불규칙한 것 보다는 말이죠.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패턴의 리듬을 좋아하느냐, 지난 시간에 황 병기 선생님이 국악 리듬에 대해 많은 좋은 말씀 해주셨었는데 문화권적으로 구체적인 패턴에 들어가면 그 실체가 좀 다를 겁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북을 좋아하고 음악을 들으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몸을 들썩인다는 정도만 알지, 어느 족의 리듬이 어떤지 그런 것은 잘 모르죠. 아마도 그 안으로 들어가면 재미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리듬을 다른 표현으로 해서 그런 문화권마다 실체가 분명히 다를 겁니다. 야채 를 먹는데 유럽 사람들은 그것을 그냥 먹는 거 보다는 소금에 절이고 식초를 넣고 올리 브 기름을 넣어서 오래 두지 않고 먹는 샐러드가 발전시켰습니다. 우리나라는 겨울에 야채를 먹기 위해 김치를 담가서 발효시켜 먹죠. 김치 비슷한 것이 유럽에도 있습니다. 독일이나 폴란드 사람들이 먹는 싸워크라우트가 그것인데요, 양배추를 소금에 절여서 오랫동안 두고 먹거든요. 이렇게 야채를 먹는 법이 다르듯 문화적 측면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리듬의 자연과학적 측면에 대해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실험이나 관찰이 논리적 명제를 얻어내는 인과성을 얻어내는 과정이 단순하지 않다고 방향을 주셨는데, 실험이 나 관찰을 자연과학에서 할 때 특히 여기에서 학생들이 잘못을 저지르는데, 제한된 조 건에서 실험한 결과를 나중에 결론에서는 그 조건 이상으로 확대하기도 합니다. 물론 모르고 하는 것이지만 거기서 오류가 생기죠. 어떤 특정한 조건에서 그런 현상이 일어 나는 것을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이야기 한다는 거죠. 지난 시간에도 우리가 자 연계에 언제나 진동이나 주기적인 변화가 있다고 말을 했었는데 사실은 없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혹은 특수한 조건일 때 그런 경우가 많죠. 실험이나 조건은 어떤 조건에서든 지 그 조건을 벗어나면 그 결과를 가지고 어떤 전제나 논리적 명제를 만들면 안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 다음에는 우주의 원리를 예로 들었는데요. 우주의 원리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 다. 그런데 우주는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제가 약간 이론 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비리듬 속에 수많은 다른 종류의 리듬 구성성분이 포함되어 있다 는 것이 푸리에의 이론입니다. 수학자 푸리에가 어떤 주기함수를 분석하면 주기함수의 기본음과 배음의 성분비로 임의의 음골을 갖는 임의의 악기음을 모두 합성할 수 있다는 것도 비주기함수 조차도 비주기함수는 무한대의 많은 주기를 갖는 함수를 웨이팅을 해 서 보면 또 비주기함수가 됩니다. 수학적으로는 또 그거를 은근히 이런 이론들로 말한 다면 비리듬이라는 것도 그 안에 다른 수많은 다른 종류의 리듬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 니다. 수학적으로는 적어도 그렇고, 논리적으로도 그것을 이야기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 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135 이대일 : 비리듬이라고 말씀하시는데, 불규칙적인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성굉모 : 아뇨, 불규칙도 포함하구요. 예를 들어서 한 번 폭발하는 음은 모든 주파수 성분이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그 폭발하는 순간에 위상이 모두 더해져서 충격음이 됩니다. 그 러니까 한 번만 일어나는 현상도 후대 이론에서는 수많은 주파수 성분의 적분으로 표시 됩니다. 그것은 깔끔하게 이론으로 되어 있는 거죠. 그래서 수학적인 것을 약간 연역적 으로 말씀드려봤습니다. 그리고 제가 우주를 잘 모르지만, 제가 배운 물리학으로는 우주의 원리도 안정상태로 가기를 추구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예를 들어 원자핵이 있고 전자가 있으면 에너지를 줘서 전자 에너지 주기를 올려주면 그 에너지가 없어진 다음에는 더 안정된, 낮은 레벨 의 에너지 상태로 떨어지면서 그 에너지 차이를 방출하거든요. 그런 것이 제가 배운 정 도의 물리학입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불규칙하고 불안정한 상태는 단지 과도적인 현상 이고 그것이 결국은 안정상태로 가려고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 는 이 시점에서는 그것을 관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시간적으로 그것 을 관측하는 것이 오래 걸려서 그런 것이 아닌가. 결국은 최종적으로는 안정상태로 간 다고 해도 안정상태로 간다는 것은 모두가 죽은, 모두가 정지된, 진동도 없고 리듬도 없고 빛도 없고 그런 것밖에 생각할 수가 없네요, 암울하긴 하지만.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리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리듬을 시각화 디지털화한다면이 어떤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한다면 이 아닙니다. 이미 시각화 디지털화 할 수 있습니 다. 이미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타악기 악보입니다. 타악기 악보에 큰 북 언제 때리고 작은 북 언제 때리고... 악보가 이미 리듬이 시각화된 것입니다. 그 리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해서 음성연구에 많이 쓰는 스펙트로그램이 있습니다. x축은 타임축이고 y축은 주파수 성분 빈도입니다. 이걸로 소리를 기록하면 거의 완벽하게 기 록이 되고 그 스펙트로그램의 패턴이 똑같으면 음색이 같습니다. 그래서 스펙트로그램 이 소리를 기록하는 현대 과학적 수단으로서는 비교적 정확하고 편리한 편입니다. 그렇 게 소리를 기록해놓으면 패턴이 되는데, 그 패턴이 똑같으면, 예를 들어 A, B, C가 있 는데 A, B가 똑같은 패턴이면 그 둘이 똑같은 사람 혹은 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리고 여러 가지 악기의 리듬을 동시에 기록할 수 있습니다. 타임축에 대해서 주파수축 대신 여러 가지 파트의 악기가 언제 소리를 내야 하는지 적어놓은 것이 바로 타악기 악 보입니다. 그러니 새로운 것이 아니고 이미 다 쓰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리 듬을 시각화하고 디지털화할 수 있고 거기에서 패턴 인식적으로 어느 리듬과 리듬이 똑 같다, 거의 같다, 약간 다르다 등등 이런 것들을 얼마든지 수량화해서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프랙탈 개념을 도입할 수 있고, 프랙탈 개념을 도입한다 하면 타임 도메인에서의 스케일링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미세한 음악을 현미경처럼 보느냐 아니면 긴 시간을 거시적으로 보느냐 그 문제라는 겁니다. 이것은 오늘 하루 온도의 변

136 화나 삼성전자의 주식가격의 변화를 시간에 따라서 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하 루에도 온도나 주식가격은 시시각각 변하죠. 그렇지만 그것을 적분을 해서 평균을 내면 아주 거시적인 변화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프랙탈 개념이나 리듬을 패턴화 할 때는 스케일링을 함에 있어 요구에 따라 변화를 미세하게 살펴볼 것인지, 변화를 평 균화해서 거시적으로 볼 것인지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뒷부분의 과학기술적인 측면 에서는 리듬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는 툴이 충분히 많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 다. 감사합니다. 이상입니다. 이대일 :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질문 드려볼 것도 있는데, 제가 질문을 이따 드리도록 하구요 다른 교수님들께서 먼저 말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정교수님... 정재서 : 정리가 좀... 이대일 : 그럼 채교수님 말씀해주십시오. 채현경 : 성굉모 선생님께서 1, 2, 3, 4 정확하게 준비해서 말씀하시니 제가 좀 긴장이 되네요. 저도 솔직히 숙제를 안 해왔거든요. 그래서 보면서 논의를 들어보고 제 생각도 좀 정리 할까 했는데요. 우선 첫 번째 예술의 위치에 대해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실 때 예술이 독 자적인 위치라고 하시면서 피아노를 예로 들고 과학기술이 예술에 대해서는 하인이라는 말씀을 하셨었죠. 그게 예술하는 사람으로서 기분 좋은 이야기긴 한데, 저는 예술의 위 치에 대해 또 다른 의미에서 생각해봤습니다. 예술과 인문학이라 하면 예술이 우리 삶 에서 너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에 예술에 대해서 철학이나 자연과학의 이론이 나 방법론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예술에 대해서 철학자들이 어떻게 생각해 왔나 하는 것도 음악에 와서 반영이 되어 왔 구요. 그 다음에 자연과학에서, 특히 인지과학 쪽에서 인간이 소리라는 현상을 듣고 그 것을 어떻게 인지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소위 말하는 엑스터시를 느낄 수 있는가 하 는 것을 오랫동안 연구해왔다고 봅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랬고 음악 분야나 다른 예술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밀접하게 서로 교류하면서 스터디가 진행되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분야별로 어떻게 나왔는지 죽 살펴보고 왔는데, 플라톤이 리듬 에 대해 한 이야기를 찾아봤어요.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 리듬이라고 하면 음악의 요소 중 그 어떤 요소보다도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육체적인 것과 연결을 짓습니다. 왜냐하면 리듬에 우리가 신체적으로 반응을 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플라톤 같은 경우 우리 인간이 동물에 비해 훨씬 리듬적인 활동을 활발히 하는 동물이라고 이 야기합니다. 리듬이라는 것은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했 는데, 당시로 생각을 해보면 머리이겠죠. 그렇다고 했을 때 우리는 리듬을 인지하는 뇌

137 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지금 우리 그룹에 인지과학을 하는 분이 안 계시는 것이 좀 아쉽네요. 제가 책을 좀 읽다보니 그런 이야 기가 나오더라구요. 뇌에서 우리의 리듬을 감지하는 능력 중에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 는 수면 등의 규칙적인 생체리듬을 감시할 수 있는 리듬과 또 하나는 인터벌 클락이라 고 해서, 간격 시계가 있습니다. 생체리듬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음악에서 감지하는 리 듬을 감지할 수 없죠. 인터벌 클락이라는 것은 더 넓은 의미에서 박동, 규칙적으로 반 복되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인데, 대뇌피질에서 그것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제 가 생각할 때에는 관계에 있어서 철학적인 연구도 중요하지만, 그 다음에는 인지에 있 어 이런 부분들에 대한 연구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벌 클락이라 하는 것은 새로 운 개념인 거 같아요. 그 안을 보니 굉장히 복잡한 메커니즘이 들어있더라구요. 이게 새로운 개념으로 등장하면서 우리 뇌의 작용에서 음악 소리를 인지한다던가 리듬을 인 지한다던가 하는 굉장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는 우리가 이런 방향으로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술과 다른 영역과 연결 지어서, 이를테면 인지과학쪽과 음악을 연결해보는, 디자인과 음악도 마찬가지구요. 그 런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대일 : 잠시만요. 제가 선생님 설명을 듣다가 인터벌 클락에 대한 설명을 잠시 놓쳤는데, 그것 을 줄여서 이야기하면 어떻게 되죠? 채현경 : 간격시계라고 해야겠죠. 그 개념은 넓은 범위의 박동을 만드는 새로운 종류의 시계로 보 면 됩니다. 이대일 : 시간적인 인터벌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군요. 음악적인 리듬을 그 쪽에서 체크하는... 채현경 : 그렇습니다. 생체 리듬에서는 음악을 감지할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인터벌 클락을 발 견했다고 봐야겠죠. 대뇌피질이 큰 역할을 하고 있구요. 그래서 이거하고 연결짓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귀로 듣는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귀로 듣는 게 아니거든요. 뇌에서 그것을 인지하기 때문에, 그것을 인지하는 뇌에서 작 용하지 않으면 음악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인지할 수 없는 거니까요. 성굉모 : 예전에는 청각기관을 귀라 했지만 지금은 귀에서부터 그것을 인지하는 뇌까지를 모두 청 각기관이라고 합니다. 시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서부터 뇌를 지나 그것에 대한 판단 까지를 모두 시각기관이라고 합니다. 황병기 : 그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거 아닙니까

138 이대일 : 지금 말씀하신 인터벌 클락을 들으니 생각나는데, 디자인 쪽에는 공간지각이라는 말이 있는데 음악으로 보면 그것에 해당하는 거 아닙니까. 그것도 생리적인 지각이 아니거든 요. 게다가 공간지각은 동서가 다르고, 남녀간에도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채현경 :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인지 쪽의 연구가 예술과 연계되어서 이루어져야 하지 않는 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엄정식 : 그거와 연결지어서 저도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예술이 있잖아요. 우리 삶 전체에서 그 것이 차지하는 위상이 뭘까 생각해봤어요. 저는 예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공학의 하 인이라는 그런 생각은 안하거든요. 엄밀하게 예술과 과학이 어떤 부분에 있어 구분되지 않고 오버래핑된다고 봐요. 그러니까 종교도 예술하고 오버래핑 되는 거구요. 물론 사 람들은 예술이 예술만의 자율적인 영역이 있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그것만 갖고 예술이 되진 않거든요. 예를 들어 건축, 템플 이런 걸 봐도 벽돌이 없으면 건축이 있을 수 없 거든요. 여기 계신 황선생님께서 아무리 위대한 음악가라 해도 악기가 없으면 그게 안 되잖아요. 악기는 예술이 아니거든요 악기는 악기지. 이렇게 개념적으로 섞여 있다고 봐요. 저는 오히려 보완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구요. 채선생님 말씀과 연결되는데, 제가 사실 심리철학 쪽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논문을 쓰다가 보니 철학자들이 개념만 가지고 분석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해서 안식년에 그 부 분을 연구하고 싶어서 책방을 어슬렁거렸는데 철학 분야에는 없더라구요. 그런데 의대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섹션을 보니 변형계라는, 대뇌의 변형계라는 책이 있는데 그 게 10년 동안 매년 1권씩 시리즈로 나오는 것이더라구요. 거기에는 심리학자, 인지과학 자, 의학자, 철학자 같은 사람들이 학제간 논의를 통해 대뇌의 변형계 부분만 거기에 묘수가 있다고 해서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더라구요. 그게 시리즈인데 지 금은 아마 다 나왔을 거에요. 우리가 의식 부분 있잖아요 최종 신경이 관할하는... 그 부분이 예를 들면 완전히 두 개의 왕국이라는 말이죠. 자연신경과 연관이 안 되거든요. 예를 들어 소화를 한다던지 피가 순환한다든지 호흡을 한다든지 하는 건 우리가 맘먹고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변형계에 딱 막혀있다는 거에요. 그게 말하자면 양쪽에 다리를 놓는데, 팬필드(?)라고 캐나다의 유명한 심리학자 연구를 보면 대뇌 49개 영역 이 완전히 만장일치를 하면 그걸 뚫고 들어간다는 겁니다. 뚫어서 이쪽에 영향을 준대 요. 그래서 요가도 그런 한 형태라 해석할 수 있구요. 그런 형태 연구들이 나와 있더라 구요. 그런데 그 방법 중 하나가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대뇌가 발달되다보니 뇌간으로 영향을 못 미치게 된다는 거에요. 뇌간은 초능력의 능력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는 거 에요. 그런데 이걸 안 쓰니까 거의 기능이 쇠퇴해서 완전히 자기들끼리 독립을 이루고 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자율신경하고 다른 신경과의 차이가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았 다는 건데 하도 오래전에 본 책이라 어렴풋하지만 그걸 활성화하는 방법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나와요. 상대적으로 대뇌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방법이, 테크니컬하게 약화

139 시키는 거 있죠 훈련을 통해서. 그것이 이론적으로 밸런스를 이룰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거죠. 예를 들어 어떤 아줌마가 2층집에서 불이 났는데 냉장고를 그냥 들고 뛰어내리는 초능력 같은 거 있잖아요. 대뇌를 약화시키는 방법이 바로 리드미컬한 거라는 거죠. 이 리드미컬한 것이 물론 음의 리듬뿐만은 아니죠. 예를 들어 스님들이 목탁을 계속 두드리면 108번뇌와 같은 잡생각이 약해진대요. 개인적인 판단이나 사사로운 이분법적 사고, 그야말로 합리적인 사고가 마비된다는 거에요. 군대 가면 머리깎고 제복부터 입히잖아요. 그리고 군가가 부르게 하는데 이 군가가 아주 규 칙적인 리듬을 갖는다는 말이죠. 거기에 제복까지 입고 발까지 맞추면 사사로운 개인이 완전 공중분해됩니다. 그건 개인이 아니라 뇌간이 하는거죠. 우리에게야 흔한 경험이지 만 동경대 한 교수가 학생들 데모하는 걸 말리러 뛰어들었다가 학생들의 구호를 들었대 요. 운동권 노래들이 굉장히 리드미컬하거든요. 그게 개인의 역할을 흐리게 만든다는 거죠. 나중에 어떻게 해서 데모를 하는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 들어가게 됐는지 자기도 놀랐다고 해요. 물론 그것은 소리로서의 리듬이 제일 먼저 효과를 보이니까 그것만 생 각하게 되는 건데 아까 패턴이라는 표현을 썼었잖아요. 패턴은 사실 시각적 리듬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우리가 사이코델릭 이런데 가서 쿵짝쿵짝 반짝반짝 빛을 리드미컬하게 보내잖아요. 거기에 술까지 먹으면 모두 제정신들이 아니잖아요. 완전히 여러 채널을 통해서 대뇌 작용을 약화시키는 영향을 준다는 거죠. 예술하는 사람들이 철학하는 사람 들처럼 정신이 말똥말똥해서는 힘들잖아요. 하지만 철학은 절대 그런 리듬을 타선 안 된다는 거거든요. 합리적 작용을 해야 하니까요. 쓸만한 리듬이 있고 못쓸 리듬이 있고 체계적으로 로고스적인 리듬, 이를테면 쓸만한 리듬만 건지고 못쓸 리듬은 버려라 이래 서 이게 너무 왜소해지니까 근대적 합리성으로 최근에 와서는 이상한 쪽으로도 발전하 지 않았습니까. 뉴턴적 리듬이라고 할까 데카르트적 리듬...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제가 두서없이 얘기했는데 리듬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것과 연결지어 서 포괄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리듬이라는 것의 개념 을 우리가 좀 더 구체화할 수 있지 않을까... 이대일 : 두 가지 말씀을 하신 것 같아요. 하나는 소리의 인간에 대한 작용, 인간의 어떤 상태를 이끌어내는 어떤 사운드의 리듬의 효과라 할까요. 그 다음 아까 처음에 제안하신 것이 예술과 여타 학문 자연과학이나 철학과의 관계에 있어 유사성, 동기성이 크다는 말을 하셨는데 전 거기에 대해 생각이 좀 다릅니다만 기본은 인정을 충분히 합니다. 가령 수 학에서 가장 단순한 것에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했을 때, 아름다움이라는 감정은 사실 이성적인 게 아니거든요. 그 이야기는 다시 여쭙기로 하구요. 혹시 황교수님 하실 말씀 이 있으신지요. 황병기 : 전 조금 이따 하겠습니다

140 성굉모 : 엄교수님이 인간에게 초능력이 있었는데 대뇌가 발달하다보니 쇠퇴하게 되었다고 하셔서 생각이 났습니다. 저도 그런 비슷한 이야길 들었는데, 서양식의 철학과 물리학을 배운 사람은 초능력이 없답니다. 대뇌를 너무 쓴거지요. 그래서 앞으로 초능력을 가진 사람 을 만들려면 서양의 수학, 물리학, 유클리트 기하학을 가르치지 말아야 한답니다. 엄정식 : 심리과학이나 인지과학하는 사람들의 최고 관심사가 어떻게 초능력을 가시화할 수 있는 가, 이용할 수 있는가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보통 때도 필요하면 냉장고 들 수 있으 면 좋지 않겠어요? 그런데 급할 때만 그런 능력이 나오고 대개는 70프로정도밖에 의식 적으로 나오지 못한대요. 우리 모든 능력이 말이에요. 그런데 저는 초능력에 대한 잡서 를 읽어봤는데 일어난 현상에 대해 철학하는 사람이 그걸 무시하면 안 되고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해석 못한 게 스캔들이지 일어난 게 스캔 들은 아니거든요. 그것은 일어난 현상이니까. 그래서 그것을 계속 생각해보면 우리가 원래는 지금 가지고 있는 능력보다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옛날 책들을 보면 날 씨보고 누가 오는 줄을 알았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었대요. 그런데 어떤 문화철학책 보니까 텔레 라는 말에 대해 나와요. 그러니까 텔레폰이 발달하면서 텔레파시가 상대적 으로 약화된 거라는 겁니다. 그리고 핸드폰이 발달하면서 그 능력이 더 마비되어 간다 이런 말이 있거든요. 또 어떤 책을 보니 왜 영화산업이 헐리웃에서 번성하게 됐는지 이 유가 나와요. 거기 비가 안와서 그렇게 되었대요. 시바의 여왕이나 벤허와 같은 영화를 찍으려면 한 달 정도 엄청난 장비들 사막에 뿌려놔야 하는데 비가 오면 엉망진창이 된 대요. 일기예보가 아니무리 발달해도 그건 가늠할 수 없대요. 인디언 노파에게 가서 물 어보니 끄떡없대요. 그래서 인디언 노파에게 자주 갈 수 있는 LA 근처에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는데 대뇌를 활성해서 쓰다보니 상대적으 로 우리 능력이 퇴화되었다는 거에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동물적 기능을 활성화하고 이걸 대뇌와 소통 채널을 만들려면 리드미컬한 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대뇌 가 놀랍게도 리드미컬한데 약하다는 걸 발견했대요. 그거는 소리의 리듬뿐만 아니라 시 각적 리듬, 몸의 리듬을 포괄합니다. 리드미컬한 음악을 듣고 빛 보면서 춤을 추면 거 의 완벽한 효과를 누리는 거죠. 완전히 판단력이 없어지니까 그런 때 빨리 사랑을 고백 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대로 판단력이 없어지니 받아들이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 리가 리듬에 대해 고민할 때 그런 이야기를 같이 이야기하면 안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 어요. 이대일 : 뇌간에 동물성, 야성 그런 것들이 집결되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지금 말씀 들어보면 뇌 간 기능이 초능력과도 관련이 있다는 그런 말씀이시죠. 말을 좀 돌려서 정재서 선생님 중국과 관련해서 리듬의 변화 등 이런 측면에서 질문을 좀 드려도 될지 모르겠구요. 아 니면 혹시 지금 이야기 나누다 생각나신 말씀이라도 있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41 정재서 : 예술의 위치 관련해서 지금 말씀을 드린다면 음악과 같은 예술, 그리고 이론을 핵심으로 하는 철학, 자연과학 등 우리 주제 자체가 통섭이라고 하는 입장에서 이것들을 살펴보 면 사실 동양철학이나 음악이나 과거에는 같은 원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가령 득도한다는 건 득음한다는 얘기가 되는 것 같구요. 지금은 서로 다 떨어졌다고 보이는 데 그런데서 우리가 지혜를 얻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구요. 가령 대뇌에 있어서의 능력과 뇌간의 능력이 서로 성격은 다르면서도 우리 생활에 있어 의식의 부분과 무의식 의 부분이던지 서로 상반된 부분을 구성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소위 심리학 쪽에서 는 융식으로 이야기 하면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시키는, 개성화와 같은 개념으로 했을 때 온전하게 모든 것이 다 같이 함께 할 수 있다는 입장이죠. 그런데 우리가 가령 예술 이든 철학이든 자연과학이든 궁극적인 실제를 파악하는데 목적을 두는데, 길이 다르다 는 입장에서 놓되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 하는 측면에서 좀 생각을 좀 해 봤으면 좋겠구요. 그것이 과거에서는 소위 득음이니 득도니 하는 개념들이 그런 것들을 통해 같이 통합되지 않았나 생각하구요. 그런데도 사실 동양철학에서 보면 유교와 도교 입장이 좀 달랐던 거 같아요. 가령 유교에서 보면 사실 성리학자들은 예술을 천시했거 든요. 같은 차원에서 득도의 과정으로 본다기 보다도 오히려 도를 터득하는 과정에 있 어 방해가 된다고 봤죠. 성리학자들이 특히, 정자와 같은 사람들이 하는 발언이 완물상 지, 물건을 가지고 놀다보면 거기에 빠져 본래 취지를 잃어버린다는 것이거든요. 즉, 문학이나 예술에 심취하다보면 도에서 멀어진다는 거죠. 그 완물상지라는 말이 주자학 에서 문학과 예술을 억압하는 말로 기능을 했습니다. 완 은 완구에서처럼 가지고 논다 는 것, 물 은 사물, 상 은 상가집 할 때 잃어버린다는 뜻의 상 자, 지 는 의지에서처럼 뜻이죠. 완물상지가 결정적으로 문학이나 예술을 도학과는 길이 다르며 낮은 단계라고 이야기해주는 것이죠. 이게 나중에 송나라에 와서 주자학에서 주장되면서 받아들여지고 이후 예인을 차별하는 그런 것이 됩니다. 그러나 장자나 이런 걸 보면 조그만 재주, 심 지어 꼽추 노인이 매미를 잡는 재주까지도 도로 보고, 하나하나 기술이나 잡술도 도가 있어야 한다는 다른 인식을 보여줍니다. 그런 것들이 앞으로 참고가 되지 않을까 생각 을 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 리듬을 문화적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리듬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모든 사 물이 리듬이 있다,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안정을 추구하는 우리 욕구가 반영되어 형성 될 수도 있다... 사실은 음양오행설에도 이런 측면이 있다고 보거든요. 음양오행의 원리 라는 것 자체가 객관적으로 주어져서 객관적으로 관찰해서 파악하는 측면이 있지만, 그 것을 법도화하면서 그것이 모든 사물을 규제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면서 부터 는 도식주의라든가 매너리즘이라던가 하는 문제가 생기죠. 그렇게 해서 실제로는 자연 스런 현상 자체를 기계적으로 파악한다던가, 오히려 그런 폐해... 대표적인 것이 풍수이 론이죠. 풍수이론도 자연지리상태 알맞게 적절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가지고 개념화하 고 이론화해서 풍수가 나왔겠지만, 나중에는 그 틀을 가지고 기계적으로 적용하면서 은 폐시키고, 무덤 잘 써서 자식들 잘 되게 한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서 문제가 생긴 거죠

142 또 다른 폐단을 낳게 된 거죠. 리듬의 문화적 측면에서는 이데올로기적인, 혹은 다른 정치성의 측면이 생각되어야 할 것 같고 그렇습니다. 리듬을 자연과학적 측면에서 생각을 해본 것은요. 이것이 우주의 어떤 원리를 하나의 주기적인 것이라든가 어떤 주기성을 관찰함으로써 그것을 발견하려고 했던 것은 사실 고대인들이 종교와 같은 여러 가지 것을 통해 시도를 분명히 했던 것 같구요. 그리고 이제 그 대표적인 것이 제의 아니겠습니까. 제의라고 하는 것이 과거의 어떤 우주의 리 듬이란 것을 의식, 이를테면 춤과 노래를 통해 재현함으로써 우주적인 힘을 그대로 얻 어보겠다는 그런 거거든요, 제의의 목적이라는 것이. 그리고 그 신화적인 또는 사건이 일어난 순간을 재현함으로써 그 순간의 신성한 시간과 공간을 재현하여 거기에서 어떤 힘을 얻겠다는 그런 것이죠. 우리가 일주일간 나쁜 짓하다 교회에 가서, 교회에서 예배 보는 시간과 공간 속에 들어가면서 예수님이 살았던 순간을 재현하면서 힘을 얻고 정화 되고 깨끗하게 살아보겠다 마음 먹고 나와 또 다시 죄 짓고 나쁜 짓하고 그런 거거든 요. 그 반복이거든요. 일종의 종교 리듬. 어찌 됐거나 그게 힘을 주는 것 아닙니까. 신 성한 예배 순간에 시간과 공간을 재현함으로써 바로 힘을 얻게 되고 그 순간에 동참하 는 것과 같이 되구요. 그리고 속세에 다시 나오게 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의라 는 것이 결국 어떤 우주적인 리듬을 재현한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리듬은 결국 우주의 흐름이나 상태와 동일시된 것을 재현한 것으로 생각됐던 것 같습니다. 이게 지난번 박 창범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주가 반드시 리듬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라고는 하셨 죠. 그런 측면이 사실 그렇습니다. 제의란 것이 아까 말씀드린 그런 측면이 있지만, 인 간이 우주적인 리듬을 조종하려고 하는, 그것을 자기 방향으로 만들어가려는 경향도 있 거든요. 가령 비가 안내려서 기우제를 지낸다던가 가뭄이 계속될 때는 제사를 지내는 데, 그 때 제의라는 것은 비가 오지 않고 막 홍수가 들고 하는 그 리듬에 조화시키려는 게 아닌, 그 리듬을 조종하려 하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거든요. 리듬이라는 것이 반드 시 안정성만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구 요. 가령 재미있는 예로 중국 은나라 때 갑골문이라고 해서 점을 치잖습니까. 점을 치 는데 거북이 등껍질의 딱딱한 곳에 화젓가락을 대면 확 균열이 생기죠. 딱딱한 데다 확 뜨거운 것이 닿으면서 짝 갈라지죠. 균열이라는 말이 거기서 나오지 않습니까. 그 갈라 진 상태를 무당이 보고서 길흉을 점치는 겁니다. 임금이 오랑캐를 토벌하러 가는데 이 게 길하냐 그러지 않느냐를 갈라진 모양을 보고 점을 치는 거죠. 그 당시의 대부분의 주요결정사항은 그걸로 점쳤어요. 사냥을 어디로 갈거냐 비가 올거냐 안올거냐 등등. 그걸 조사해보니 어떤 방향으로 가냐면 실제로 처음엔 맞추기 위해 그런 방향으로 예견 을 하고 나아갔는데, 나중에는 이미 결정은 되어 있어요. 이미 전쟁을 나가기로 결정이 거의 되어 있어요. 그런데 거기서 흉한 점괘가 나오면 길한 점괘가 나올 때까지 계속 다시 치는 거에요. 말하자면 조정이 결국은 인간의 어떤 의도성에 맞춰서, 말하자면 우 주적인 리듬도 인간의 우주성에 맞추는 방향으로 조종을 했다는 거죠. 이런 것들을 봤 을 때 주기적인 반복으로서의 리듬을 우리가 어디까지 인정하고 어디까지를 다른 영역

143 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냐 그런 점들이 생각이 되고 그렇습니다. 이대일 : 저는 황교수님 말씀하시기 쉽게 거꾸로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예술의 위치 라고 적어놓았는데 저는 이것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오늘날 예술이라는 것이 리듬을 따르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여기서 리듬은 생리적인 것일 수도 인위적 으로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정서적으로나 생리적인 것으로나 이게 건강을 북돋아줄 수 있는 의미에서의 리듬인가 그렇지 않은가. 이것이 예술에 나타나는 것인지. 또 하나는 예술이 사회적인 위상이라고 할까요, 예술 이 사회적으로 가능하고 있는가. 아니면 대중문화와 같은 것으로서 그 일체가 우리의 소위 예술이라는 자본에 크게 잠식되어서 어떤 식으로는 하위문화라는 것이 그런 면에 서 예술을 대체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질문을 드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리듬이라고 할 때 가령 서양 미술사에서 보면 굉장히 과속화가 되고 있습니다. 낭만주의 이후에 이즘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다가 이젠 이즘조차도 없어지고, 가령 60년 대 이후에는 미니멀리즘이 아트다 해서 이름이 붙다가 그것도 없어져 가는 추세고 어떤 요소들도 다 없어져 가거든요. 그러다보니 캔버스까지 다 날아가 버리고 어떤 의미에서 는 휘젓고 돌아다니는 퍼포먼스 측면이 강해지면서 그런 것들을 제가 볼 대 저기 어떤 리듬이 있나 생각되구요. 여기에 대해 생각이 어떠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황병기 : 저희가 얘기하는 걸 전체 타이틀이 리듬 아닙니까. 그런데 리듬이 무엇이냐에 대한 이야 긴 거의 없었던 거 같아요. 말씀하시는 걸 죽 들어보면 리듬이 무엇인지는 이야기 안하 지만 리듬이 뭔가다 하고 정의를 하고 가시는 거 같아요. 그걸 보면 리듬이라는 것은 뭔가 반복되는 패턴이다. 뭔가 이렇게 변화만 하고 나가는 게 아니라 어떤 규칙이나 형 식이나 반복되는 주기라던가 이런 걸 전제하고 이야기하시는 거 같습니다. 예술의 위치 라고 하셨는데 아까 성굉모 선생님은 과학과 철학은 전혀 다른 것이다 말씀도 하셨고, 조금 전 정선생님께서는 성리학에서 예술이 오히려 도를 닦는데 장애거리가된다고도 하 셨구요. 예술이라는 것 자체를 저희는 아마 여기 계신 분들 모두 예술이라는 건 좋은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 말씀들을 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아까 성리학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고 하셨어요. 이슬람교 다수파의 원리주의자들은, 근본주의자들은 예술을 굉장히 나쁜 것이라 봅니다. 그래서 탈레반에서 음악을 못듣게 한 겁니다. 예술 중에서 도 특히 음악, 예술 중에서도 특히 음악은 사람의 영혼을 흐리게 만든다는 거에요. 술 마시는 것처럼. 많은 종교인들이 술을 못하게 하잖아요. 술을 먹으면 비이성적인 이야 기를 하는 것처럼 예술을 하면 사람이 타락한다는 거에요. 그래서 예술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나쁜 것으로 봤던 것입니다. 그런 것이 있고, 저는 그것도 이해는 해요. 예술이 나쁜 것이라는 것. 우리나라에서도 고성방가 못하게 해야 해요. 공원에서 노래하면 다 잡아가잖아요. 예전에는 고속버스고 기차고 타자마자 노래 부르고 이랬잖습니까. 자기 가 노래 안부르더라도 부산 정도 가면 처음부터 끝까지 뽕짝을 틀어요. 예전에 제가 미

144 국에 갔더니 미국의 장거리 버스에서는 음악을 안틀더라구요. 우리나라에서는 당시에 필수였어요. 저는 음악 안트니 굉장히 좋더라구요. 그리고 이건 잡담인데 이대에 있을 적에 수학여행을 가자고 해요. 버스를 타고 가잖습니까. 그런데 70년대 당시에는 반드 시 지도교수가 있어야만 학교에서 허가가 났어요. 그래서 교수 한 명이 쫓아가야 하는 데 서로 안가려고 해요. 그러면 저한테 와서 애걸복걸해요. 그 때 전 조건이 버스에서 절대 음악 안트는 것이었어요. 미리 다짐을 받고 갔어요. 지방을 가면 자연도 보고 그 러는데, 서울 다방에서 나올 노래가 나오면 기분 잡친다구요. 예전에는 미국에서도 틀 었었는데 어떤 사람 한 명이 듣기 싫다며 끄라 했대요. 버스 운전수가 당신은 듣기 싫 더라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더 많은데 난 틀어야겠다고 했대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고소를 했답니다. 우리 나라로 치면 헌법재판소까지 올라갔대요. 버스 안에서 음악을 트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해서 그 때부터 못틀게 되었답니다. 그 판례가 멋있는 것이 안 틀어서 듣고 싶은 사람이 못 듣는 것은 서비스 부족이지만, 듣기 싫은 사람에게 듣게 하는 것은 인권침해다. 서비스 부족은 있을 수 있지만 인권침해는 안된다고 해서 껐다 고 하거든요. 예술이라는 것이 그런 면이 있어요. 대개 왕이라든가 통치자라던가 하는 사람이 예술에 손을 대면 나라가 이상해져요. 네로가 그랬죠 연산군이 그랬죠 김정일이 그랬죠. 예술이 어쩌구 하면서 기생 부르고 그러면 망조 들은 거거든요. 그런데 휘종이 재밌는 것이 아악을 만들었어요. 대성악을 만들어서 혼자 듣기 아까웠는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아악이 소개된 계기가 되었어요. 아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의 높이입니 다. 불변하는 음의 높이. 가장 기본음이 황정음인데, 황정음의 높이를 어디에 맞춰야 하 는 것인가. 먼저 왕조가 망했으면 그 왕조는 황정음 높이가 틀려서 망했다고 하고 그래 서 다시 만들어요. 그런데 어느 음에 맞춰야 하는 것이 아무 근거도 없는 거에요. 옳고 그름에 대해 높고 낮음을 두고 논문 쓸 건덕지가 없거든요. 그래서 중국서 생각하다 생 각해낸 것이 뭐냐면,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고민한 거에요. 곡식이죠. 곡식 중 으뜸은 기장이라고 해요. 그래서 기장 알을, 그 곡식알을 몇 백 개를 나열해서 그 길이에 황정 소리를 나오는 것을 맞추어야 한다고 한 거에요. 왜냐하면 기장은 신성 한 것이니까. 기장이 좀 긴데 그걸 옆으로 세우느냐 앞으로 세우느냐에 따라 길이가 다 달라져요. 가지가지에요. 어떤 설을 쫓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근거도 없는 거거든 요.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에겐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었어요. 당시 휘종 때 황 정음이 우리 나라로 들어왔던 겁니다. 그것을 국립박물관에서 아직도 쓰고 있는 거에 요. 그러고 이왕 그 이야기했으니 제가 횡설수설입니다만, 아까 질문에 답부터 해야죠. 사 회적 기능이라는 것은 예술을 나쁘게 볼 수도 있구요. 현대에 와서는 예술도 다 깨지는 거거든요. 그게 결국은 서양 예술의 예입니다. 요새는 이런 주의 저런 주의 있다가 다 깨져버린 것이구요. 아까 성선생님은 피아노가 18~19세기 엔지니어링의 수준을 반영하 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오늘날 21세기의 엔지니어링을 반영할 수 있는 악기가 나오면 그걸론 작곡을 못해요. 아무리 자연과학이 발달을 하고 수학이 치밀해진다 해도 예술이

145 라는 것은 아무리 다른 게 번성을 해도 우리가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그런 것이에요. 만 족을 시켜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비한 것은 피아노 음 고를 적에 12평 듣기를 합니 다. 한 옥타브를 물리적으로 12등분 하거든요. 요즘 과학으로는 그것을 문제없이 계산 해내거든요. 12등분하면 이론에 딱 맞는데요, 그 이론에 정확히 맞는 소리를 피아노 리 스트로 같이 줘요. 그래서 지금도 피아노 줄을 어떻게 고르냐 하면 정비사가 귀로 고릅 니다. 귀로 고르는데 이걸 재보면 다 틀린 거에요. 그래서 예술은 사람의 귀와 눈에 한 계가 있어서 거기에 있는 걸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계산상으로나 테크놀로지가 아무 리 발달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거에요. 가령 일본에서 굉장한 미인을 반을 사진 찍어서 절반을 이쪽에다가 붙였답니다. 그러면 이쪽과 저쪽이 완전 대칭이잖아요. 그러면 미인 은 왼쪽과 바른쪽이 똑같아야, 대칭이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하면 추녀가 됩니 다. 진짜 미인은 왼쪽하고 바른쪽이 다르게 생겼답니다. 예술 쪽에서는 어떤 말이 있느 냐면 예술적 착오 라는 게 있어요. 그 착오 때문에 매력이 있다는 거에요. 그 착오란 뭐냐, 계산에서 테크놀로지를 배제하는 거에요. 예술은 역시 신기한 부분이 있어서 과 학으로 규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또 철학의 경우에는 철학자들이 예술에 대해서, 특히 음악에 대해서 한 이야기는 넌센스인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보통 예술이라 하면 시나 미술을 가지고 이야기하는데, 그것들에서 통하는 이야기가 음악에서는 통하 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나 미술에서 미학에서 설정한 것을 음악에 갖다 붙이면 통하지 않는 것이, 미술 쪽에서는 일단 미술을 그리면 남아야 하지 않습니까. 남지 않 으면 고전적 가치가 없는 것인데, 음악은 본질이 그 순간 없어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한 때 철학자들이 음악을 보고 과연 예술 작품이냐고 의심했었죠. 칸트인가 누가 그랬 던가 잘 모르겠는데 이것은 준 예술 작품이다, 진짜 예술작품은 못된다고 이야기했던 거지요. 예술에서 음악이라는 것은 특이한 입장에 있는데, 이상스럽게도 음악은 리듬에 있어서는 중요하게 받아들여져요. 음악은 리듬이 없으면 존재할 수조차 없기 때문입니 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20세기부터 들어와서 우리가 지금 예술이 뭐다, 예술의 사회 적 위치가 뭐다 하고 따지는 것 자체가 다분히 서양의 고전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그러 니 백남준 같은 사람은 반예술, 현대에서 예술은 존재하면 안된다는 예술을 했던 거지 요. 피아노를 때려 부수고, 마당에서 발로 음반을 짓밟아 깨뜨리고 별짓을 다 했잖아요. 예술은 필요 없다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을 반예술가라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게 백남 준이구요. 그런 것들이 서양의 클래시컬한 흐름인데, 지난 번 제가 말씀드렸지만 20세 기 들어와서는 대중예술, 특히 음악의 경우에는 대중음악이 클래식 음악을 대체해버렸 죠. 그래서 대중음악이 오늘의 서양에서, 특히 미국에서 살아있는 음악이고, 클래식 음 악은 말하자면 박물관적인, 18~19세기 이후에 이렇게 위대한 음악 작품이 있었다는 정 도의 가치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은 팝이죠. 이대일 : 줄여서 이야기하면 이렇게도 말씀드려볼 수 있겠군요. 오늘날 예술은 없다. 다시 말해서 대중문화로서의 그것이 있을 지언정

146 황병기 : 그것은 사회에 따라 다르지만 미국이 제일 심하다 이대일 : 맞습니다. 리듬을 중심으로 하는 예술이라고 했을 때 여기에는 분명히 고전적인 개념에 입각한 그런 흐름이 보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대체로 그렇게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황병기 : 그런데 대중음악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리듬이에요. 이대일 : 저도 예전에 황선생님이 감명을 받았다고 하시는 봄의 제전 들었을 때 이런 느낌을 가졌 거든요. 고전주의 음악에서 나오는 정돈되고 깔끔하고 우리의 정서가 느껴지는 그런 느 낌말이죠. 그런데 이걸 보니까 뭐랄까 산업문명에서 비롯된 개인적인 불안감, 욕망, 갈 등... 이런 것의 폭발에 대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현대음악이라는 것이 소위 산업 혁명 이후에 문명화된 사회 속에서 비롯되는 하나의 작용이자 반작용이 아닌가 하는 느 낌을 받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과연 오늘날 현대 사회에 있어서, 특히 대중음 악을 볼 때에도 리듬의 정체는 과거 고전주의 시대에 있어서의 그런 리듬의 색깔과 상 당히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을 실제로 들어봐도 그렇구요. 특히 미술이나 디자인 쪽에서 보면 굉장히 일종의 타악기 소리와 같은 단순해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미술에서 미니멀리즘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이를테면 나이키 상표처럼 극단순화된 부 호성과 같은 것으로 가고 있는데 그런 측면에 있어서 저는 좀 왜 그러는지는 알되 납득 치는 않아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과연 문명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가구 요. 그래서 이 문제를 거꾸로 황선생님이나 채선생님도 좋고 말씀을 해주시면 좋겠습니 다. 정재서 : 제가 잠시 생각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음악과 사회 관계를 보면 공자님이 음악에 대해 굉장히 조예가 깊었고, 음악을 사회 교화와 같은 목적으로 활용을 했었죠. 소위 예악이 라고 하지 않습니까. 공자가 얘기한 것 중에서 치세지음은 안이화, 다스려진 세상의 음 악은 편안하고 평화롭다는 이야기지요. 또 난세지음은 애이원, 슬프면서 처량하고 원망 스럽다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음악을 보면 그 시대를 알 수가 있다. 이것이 유교에서 공자의 음악관이거든요. 전에 어떤 이야길 들었는데, 조사를 해봤더니 클래식을 어떤 도시에 계속 틀어줬대요. 그랬더니 범죄율이 15%인가 20%인가가 떨어졌대요. 그런데 대중가요, 팝송 이런 것들을 계속 틀어줬더니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불안해하고 ADH도 많이 생기고 안 좋더란 거에요. 그래서 공자의 예악 관념이 입증이 되는 사례라 생각했 죠. 공자는 음악을 가지고 사람을 치료하고 다스릴 수 있다고 봅니다. 그 이야기는 결 국 또 리듬을 가지고도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는 이야기기도 하죠. 어떤 리듬을 가지고 는 사람을 치료할 수 있고, 또 어떤 리듬으로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겁니다. 클래식의 리듬과 대중음악의 리듬, 호소하는 것이 감정에 호소하는 것과 깊은

147 내면에 호소하는 것의 목적이 방향에 따라 차이가 있겠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채현경 : 제 아들이 19살인데요, 자기가 돈을 벌러 갈 때 과외를 하러 가는데 저보고 차를 태워달 라고 해요. 그래서 가는데, 제 CD가 클래식밖에 없으니까 한 번 타보더니 자기가 빅뱅 을 구워가지고 왔어요. 그래서 저한테 설명을 하는데 하나는 나만 바라봐 라고 해서, 나는 바람을 피워도 너는 나만 바라봐 이런 거라고 하더라구요. 여러 개가 있어요, 거 짓말 등등. 그래서 제가 그것을 듣는데 처음부터 끝까지가 다 리듬이에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매우 규칙적이에요. 제가 그 애를 내려다주면, 갈 때 1시간 정도 걸리고 올 때 한 1시간 반 정도 걸려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보니 제가 기계적으로 그 음악을 듣고 있더라구요. 제가 굉장히 놀랐어요. 이걸 내가 왜 듣고 있나. 제 아들은 감명을 받았어 요. 음대 교수인 우리 엄마가 빅뱅을 듣고 있다고.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게, 그 음악 이 프레이징(?)도 없이 너무 규칙적인 거에요. 그것을 죽 듣다가 생각난 것이, 우리가 리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한 가지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이 프레이징 이에요. 리듬을, 말하자면 박을 규칙적으로 세는 기계가 메트로놈이라고 1816년에 산업혁명 이후에 발 명되었거든요. 당시에는 베토벤이 살아있을 때인데, 베토벤이 이것에 완전히 매료된 거 에요. 기계의 정확성에 대해서. 왜냐하면 서양음악, 특히 예술음악에 있어 굉장히 중요 한 것은 템포와 리듬의 정확성이거든요. 베토벤이 교향곡 9번을 작곡할 때, 자기가 메 트로놈 마킹을 정확히 보고 이 부분은 몇 개, 이 부분은 또 몇 개 해서 숫자를 다 표기 한 거에요. 이 빠르기로 움직여야 한다고. 베토벤은 항상 스케치를 많이 하기로 유명하 거든요. 그런데 베토벤이 악보가 안보여서 했던 걸 잃어버린 거에요. 그래서 다시 듣고 템포 적합한 것을 다 적었다는 거에요. 그리고 오리지널 악보를 나중에 발견했는데 둘 이 하나도 맞는 게 없었대요. 그래서 베토벤이 그것들을 집어던지면서 이렇게 정확한 것은 필요가 없다고 했대요. 이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냐 하면 리듬을 맞추기 위해 기계까지 동원해서 정확하게 하려고 하는데 결국 우리가 음악을 들으면서 감동을 받는 것은 리듬을 묶어서 하나의 단위로 만들어주는 리듬의 큰 단위인 프레이즈 때문이죠. 이것은 센텐스 스트럭쳐로 보면 될 것 같아요. 프레이징 안에는 리듬이 있다 하더라도 시작하고 끝날 때는 우리가 생체적으로 느리게 시작합니다. 물론 중간에 빨라지기도 하 구요. 그래서 결국은 시작부터 끝까지 한 곡을 들으면 공연 시간은 거의 똑같아요. 그 런데 그 안에서 시작하는 부분과 끝나는 부분은 좀 느리고 가운데는 속도가 좀 붙고... 그래서 무슨 얘기냐 하면 우리가 갖고 있는, 감성적으로 느끼고 리듬에 부응하는 그거 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매우 규칙적인 건 아니고 시작하고 끝날 때 우리도 모르게 느려진다는 거죠. 지금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아까 선생님께서 대뇌 말씀 하셨는 데, 우리가 요즘 음악을 들으면 그 반복은 시작할 때부터 기계적으로 어택을 해요. 다 프로듀스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감성과 신체적 리듬이 들어가 있지 않은 기계적인 리듬 이에요. 그러니 그것을 듣고 있으면 거의 마비상태가 오는 거지요. 3시간을 저도 모르

148 게 들었는데 그게 바로 그 음악이 가지고 있는 성격입니다. 중요한 것은 빅뱅이라는 음 악을 10대만 듣는다는 겁니다. 20대는 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20~30대는 서태지를 듣기 때문이죠. 그 이야기는 10대가 입시지옥 안에서 굉장히 피폐하게 산다는 것이죠. 현실을 잊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이런 음악을 들음으로써 일탈하려는 거죠. 결코 건강한 것은 아니죠. 황병기 : 그러니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난세지음이에요. 오늘날 젊은이들이 난세지음을 듣는데 그 건 지금이 난세라 그런 거에요. 난세에는 난세지음을 듣는거에요. 엄정식 : 큰 질문 중에 리듬의 문화적 관계하고 자연적 관계가 있었고, 지금 현상 속에서 그 맥락 이 나오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꼭 철학적이라기보다 현대를 보는 시각이랄까 그런 게 논의가 되고 있잖아요. 그것을 우리가 리듬이라는 주제와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그런 데 그 전에 예술의 위치를 어떻게 보느냐, 서양 고대철학에서도 그게 굉장한 논란거리 였잖아요. 테오리아 라는 것 있잖아요. 씨오리의 어원이 열광 이었대요. 미쳐서 날뛰는, 종교적 엑스터시를 테오리아라고 했대요. 그게 너무 재밌는 이야기죠. 그래서 우리가 어떤 분석이나 체계화를 통해 얻는 지식이 아니고, 직관을, 혹은 엑스터시를 통해서 세 상을 인식했을 때 그것을 테오리아라고 했대요. 이론이라는 것이 지금과는 정 반대였던 셈이죠. 이론이라는 말을 오늘날 우리가 쓰는 개념으로 완전히 바꾸는데 공헌한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거든요.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천이나 직관, 이런 것과 우리가 이야기하는 합리성을 엄격히 구분해요. 그 이전에는 나눠지지 않아서 리듬하고 관계가 되는 것이 합리적 리듬과 원초적 리듬이 구별이 안갔던 것이죠. 합리적 현상이 점점 괴 리현상을 일으키면서 그야말로 서구의 근대성으로 발전하는 것 있잖아요. 그것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람이 뉴튼과 데카르트라고 이야기합니다. 음악도 보면 유럽에서 그렇게 세지 않았던 하모니가 극치에 이르는 단계가 근대성이 극치에 이를 때에요. 근 대성이 극치에 이를 때 리듬이 약화되고 하모니가 강화되는 현상을 보였죠. 그런데 재 즈를 왜 의미심장한 음악으로 보냐 하면, 제가 음악사를 살펴보니 그렇게 디파인했더라 구요. 아프리칸 리듬과 유러피안 하모니의 만남이다. 그래서 그것들이 서로 죽지 않고 상생으로서 만났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는 유럽이 고향을 새로 경험하는 것 있잖아요. 그리고 아프리카 리듬 입장에서 보면 비로소 집을 찾은 것이구요. 그 의미기 왜 살아나 는 지를...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합리성 있잖아요. 근대적 합리성, 그리고 동양철 학에서도 나오잖아요. 특히 주자학에서 보면 괴리를 일으키는데 양명학으로 오면 다시 만나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리듬의 두 가지 유형이 굉장히 문화적인 요소가 있다. 해석 하는데 많이 달려 있고. 그런데 지금 아까 난세지음이라고 말씀하신, 그것을 어떻게 이 해할거냐 하는 것이 우리 철학하는 사람들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관계를 설정 하는데 도움되거든요. 포스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어떤 사람들은 탈 이란 개념으로 해석하면서 모더니즘은 끝났다고 말합니다. 모더니즘은 실제성, 객관성, 체계성, 합리

149 성... 이런 것을 의미하거든요. 그런데 포스트 라 하면 그것을 완전히 버린다, 필요없다, 그렇게 해석할 때는 탈이란 개념이 들어가구요. 후기 라는 개념으로 보면 어떻게 우리 가 체계성이나 합리성과 같은 것을 버릴 수 있겠느냐는 거죠. 그런데 근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좀 더 폭넓은 개념으로 유지한다면 제한된 의미의 하모니와 어울리는 리듬이었 는데 지금은 그 범위에서 벗어난 더 폭이 넓은 리듬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재미난 예가 있더라구요. 연극을 보는데 모더니스트 연극 감독 있잖아요. 예를 들어 로미오와 줄리엣을 내가 연출하고 있는데 거의 끝날 때쯤 기가 막히게 잘 된 것을 한 관객이 뛰어올라와 난장판 치는 거에요. 그랬을 때 모더니스트 감독은 이거 망했구 나. 끝나가는데 재뿌렸구나 이렇게 생각하는데, 포스트모더니스트 감독은 와 이거 진 짜 성공했구나 이런다는 거죠 같은 연극을 보고. 포스트 모더니즘이라 해서 성공과 실 패가 있는 것이 아니라 스코프가 다르다는 겁니다. 모더니즘을 수용하는 것에 있어 일 부에서는 극히 일부만 수용하는. 그래서 가끔 뉴튼하고 아인슈타인하고 비교하는 사람 들이 있어요. 문화적 차원에서 우리가 리듬을 이야기할 때 다른 문화권 리듬하고 우리 리듬하고의 관계... 운전할 때 앞차들이 80~90킬로로 간다면 어떤 제한속도가 80일 때 도 있잖아요. 거기 맞춰서 빨리 80킬로로 내리는 게 아니라 같이 가는 것이 어떤 의미 에서는 합리성이잖아요. 흐름을 타는 거란 말이죠. 법을 안 지켰다고 리듬을 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게 리듬을 지키는 거란 말이죠. 문화적 개념하고 다른 문화권의 관계, 또 시대도 어떤 전 시대의 리듬과 지금 시대, 난세의 리듬, 그리고 앞으로 올 시대의 리듬이 어떤 관계를 맺지 않을까 싶어요. 재미있는 것이 리듬이 문화권 안에서는 coherent하면서도 consist한데 자연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그건 전혀 다른 이야기거든 요. 노장사상 같은 경우는 자연을 함부로 일컫잖아요. 자기만 자연을 아는 것처럼 이야 기하잖아요.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볼 때 해석된 자연이거든요. 근거 없이 오만한, 유가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반사회적인 자연관이란 말이죠.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자연적 리듬과 문화적 리듬, 그리고 문화와 문화 사이의 리듬 같은 것을 조망할 수 있 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채현경 : 선생님께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선생님께서 우리 리듬이라고 하시는데 무엇이 우리의 리듬인지... 황병기 : 제 생각에는 우리 시간이 많이 됐으니까 좀 건설적으로 이야기해주세요 지금까진 마구 파괴하는 것처럼 이야기가 됐는데... 이대일 : 제가 정리해보겠습니다. 예술의 위치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든 전체적으로든 공감하는 것 같은데, 아까 황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과거 고전주의적 예술은 죽었다, 대신 리듬 이 어떤 형태로든지 살아나고 향유되고 있는 것은 대중문화로서 이야기되는 예술이라는 말씀 하신 것 같습니다. 지금 이야기가 흘러가다보니 대체적인 내용이 리듬의 문화적

150 측면에 와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엄교수님께서는 리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랄까요 이 런 부분까지 언급하셨는데, 리듬이 좀 줄여가지고 리듬의 문화적 측면이라 이야기하면 너무 광범위해서 가닥 잡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빅뱅이라는 단순한 도 피형태의 리듬을 말씀하셨는데, 산업문명, 기계문명, 정보산업사회와 같은 사회에 있어 서의 리듬이 어떠한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여기에서 발생하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을 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마지막 항목에 있는 리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라고 하는 항목인데, 사실 리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라고 했을 때 리듬이 과연 고전주의적 리듬에서 세상의 단파성 리듬으로 봤다면, 과연 우리의 존재를 위해서, 건강한 삶을 위해서 어떤 방향의 리듬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을까, 거꾸로 그런 것들을 이야기 나눠봄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알고 있기 로 1980년대 중반 이후로 소위 인디고 칠드런이라고 해서 소위 새로운 영적 능력을 가 진 아이들이 서양 동양할 것 없이 마구 등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특히 아까 대뇌 말 씀 하셨는데 사고작용 판단정지에서 일어나는 각성상태에 이른 사람들이 무지하게 많이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지구의 자장의 힘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2013년 가면 이게 제로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데, 어떤 학자는 인간 사회 현상의 변화를 이야 기하기도 합니다. 자연의 변화에서 도를 닦지도 않은 도인들이 속출해서, 느닷없이 각 성해서 소위노장사상이나 불가에서 이야기하는 그런 상태에 이른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제가 지금 리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재고라고 하면 과연 어떠 한 리듬이 건강한 삶, 지향적인 삶으로서 바람직하게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부분도 한 번 식탁에 올려놓아 봐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리듬의 문화적인 시각도 아까 말씀드 린 부정적인 의미라고 할까요, 네거티브한 것에서의 리듬을 보면 이게 과연 어떤 것인 가, 그리고 리듬의 자연과학적 측면은 이따 아울러서 마지막에 이야기해보았으면 좋겠 습니다. 제가 다시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엄정식 : 근데 아까 리듬할 때 우리 란 개념이 뭐냐 물으셨는데, 제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비트 겐슈타인이 폼스 오브 라이프 라고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어요. 전 생태형식 으로 번역했는데, 일반적으로 삶의 형식이 있죠. 그게 문화적으로나 자연적으로 주어진다 고 하거든요. 주어져서 작위적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수동적으로 만들 어지는 것도 아니고. 언어의 형성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해요. 우리가 일일히 설명하지 않아도 언어를 이해하잖아요. 그러나 사자나 메뚜기의 언어는 번역이 가능하지 않다는 거죠. 그래서 폼스 오브 라이프 개념을 가지고 그것을 설명하거든요. 그 개념을 리듬과 연결시키면, 우리에게 자연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인간이 공유할 수 있는 자연적 리 듬이 있잖아요. 그런 리듬이 있다고 생각하면 상당히 이해하기가 좋을 것 같구요. 그리 고 문화적 리듬 있잖아요. 세대간 리듬. 아무리 식구라 해도 전혀 다른 리듬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엉뚱하게 그 사람이 리듬을 갖고 이야기한 게 아 니고 언어를 갖고 이야기했거든요. 그런 개념을 우리가 도입하면 문화와 자연의 관계에

151 대해 이야기하는데 상당히 도움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이덕환 : 리듬의 문화적 특면에 대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난세지음이란 말 나왔는데, 고대서부터 시작해서 리듬의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다고 하면 과거에는 굉장히 변화가 느렸고 지금 은 빠르다는 것이 차이일 것 같구요. 지금 10대가 빅뱅을 듣고, 20~30대가 서태지를 듣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20대는 10대 때 서태지 음악을 들었거든요. 10대가 무슨 문제가 있어서 빅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제가 듣기로 원시 때부터 10대는 항상 문제가 됐다고 들었거든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10대는 항상 문제아였거든요. 그들이 항상 난세지음을 들었다는 거죠. 정재서 : 이집트에 그런 말이 있다고 그러죠. 요즘 젊은 놈들 버릇없다, 그렇게 써놓은 상형문자 가 있었다는 거에요. 이덕환 : 지금 우리가 10대나 20대가 듣는 음악을 충격적이라고 느끼는 이유가, 실제로 서태지, 빅뱅의 음악이 연주가가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000명의 오케스 트라를 데려다놔도 그 음악을 실연할 수 없을 겁니다. 사람이 쫓아갈 수 없는 속도와 콤비네이션이거든요. 그런 테크놀로지가 등장한 것이 길게 봐야 20~30년이고 그게 굉 장히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그게 저희 세대의 귀에는 도무지 익숙하지 않 은 거지요. 여태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리듬에 대한 인식이나 사고방식을 모두 깨뜨 리는 건데. 그게 우리가 듣기엔 굉장히 충격적인데 우리 아이들도 같은 느낌을 갖고 있 는지 그건 모르겠어요. 저는 채선생님 말씀하신대로 그런 음악 들으면 기분도 별로 안 좋아지고 그렇거든요. 그런데 우리 애들 보면 안 그런 것 같아요. 문화적 측면에 이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 같아요. 사실 우리가 아프리카 사람들이 타악기 두드리는 소리 들 으면 대부분 편치 않거든요. 그렇다고 그 사람들처럼 흥분하는 것도 아니고. 느낌이 전 혀 다르거든요. 아까 인지과학 이야기 하셨는데 그런 새로운 시각으로 봐야 하는 거 아 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너무 우리 고정관념으로 새로 태어난 리듬의 이야기 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세대, 문화에 따라 우리가 다른 나라 음악 들었을 때 느낌 이 완전 다르듯 세대별로도 전혀 다르게 가는 것 같구요. 리듬의 자연과학적 측면에 대 해서는 오늘 박창범 박사가 있었으면 더 나았을 텐데... 우주에 대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해온 리듬을 보면 상당히 안정적인, 안정계, 스테이블 시스템에 나타나는 반복되 고 주기적 현상을 일컫는 측면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박창범 교수가 이야기한 우리가 지금 새롭게 알게 되는 우주는 주기성을 찾을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말의 뜻은 이렇습니다. 우주의 어느 영역에 가면 완전한 진공이 있고 어디 가면 없고 그런 뜻이 아니라 기술 개발과 우리의 과학적 인식 폭이 넓어지면서 생기는 건데 19~20세 기 초반까지 과학은 안정적인 자연에 대한 해석이었거든요. 그게 지난번 박창범 교수 말로는 중력이 압도적으로 작용하거나 아니면 전자기장이 압도적으로 작용하는 영역에

152 서, 중력의 영역이나 전자기 힘의 영향만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면 그런 결과가 나타나 는데, 그 바닥에 여태까지 무시해왔던 요동이 있습니다. 노이즈죠. 이론적으로는 무한히 많은 주파수가 똑같이 섞여 있는 거죠. 그게 다 섞여 있어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던 것이 지금은 상당히 중요시되고 있거든요. 그런 것들에 의해서 나타나는 자연현상들이 밝혀지고, 그것이 소위 말하는 복잡계 과학 이런 것들이거든요. 그런 것들이 오히려 더 중요하더라는 거에요. 스테이블한, 안정된 시스템의 분석이 아니라, 불안정한 시스템에 대한 분석이 예전엔 못하던 거였는데 지금은 그것을 할 수 있는 수학적 틀이 부분적으 로 나오고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어느 정도 분석을 해보니 이게 전혀 의외의 결과를 가 져오고, 그것이 현대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진화거든요. 생물학적인 진화를 뜻하는 것 이 아니라, A라는 상태에서 B라는 상태로 부드럽게 이어지고, B에서 다시 A로 돌아오 는데 가역성도 있고, 연속적인 변화도 가능하고... 이런 것들이 우리가 19~20세기 초반 까지 죽 들여다보던 자연현상이었는데, 이제는 A에서 B로 간 다음에 B에서 A로는 다 시 못 돌아와요. 이게 진화라는 말을 쓰는 기본적인 의미거든요. 비가역적으로 한 번 가면 못 돌아오는 그런 변화들이 자연에서도, 물리계에서도 굉장히 많이 발견됩니다. 그런 것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에서 리듬이라는 것이 어떤 압도적인 영향력 하에서 안정 된 어떤 상황이 연출될 때에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하던 자연의 리듬이라는 것이 보 이는데, 그 바닥에는 백색 잡음이 깔려서 백색 잡음에 의해서 나타나는 자연현상들은 이건 도대체가 예측 불가능하고... 그래서 요새 물리학에서는 필연이라는 건 없어졌다. end of certitude 라고 해서, 더 이상 필연은 없고 우연만 남아 있는 것이 자연의 기본 법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거기 가면 주기적인 반복이라는 걸 찾기 힘들어 지거든요. 그게 자연의 거의 모든 곳 바닥에 깔려 있다는 겁니다. 중력의 영향이 줄어 들거나 전자기의 힘의 영향이 줄어들게 되면 상대적으로 그것이 증폭이 되어서 보이는 거죠. 우리가 확실하게 자연현상을 예측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는 겁니다. 그게 안정 계에 대한 분석, 뉴턴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죠. 뉴턴 역학이 적용되지 않는 건 양자역 학이 적용되는 것과도 다르지만, 뉴턴 역학과 양자역학하고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물리세계가 있더라 이런 거거든요. 그런 것들은 아마 우주를 해석하는데 상당히 새로운 인식을 요구하는 거 같아요. 경험적으로 우주를 해석하던 방식하고는 전혀 다른 인식이 필요한 거 같아요. 이대일 : 성교수님 말씀하신 솔리톤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도 후리 이론에 따르는 겁니까? 성굉모 : 피직스기 때문에 조금 더 넘어서죠. 지금 이야기하신 것처럼 자연계에 꼭 안정계, 또는 우리가 원하는 신호, 그리고 규칙적인 리듬만 존재하는 게 아니고 사실은 자연계에 늘 노이즈가 깔려 있습니다. 노이즈가 어려운 이유는 시간적으로 언제 출현할 지 아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랜덤 노이즈라는 게 그 주기를 예측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측을 할 수 있으면 그것이 나올 때 캔슬하면 되는데 예측을 못해요. 그래서 전자공학이나 통신

153 공학의 역사는 노이즈와의 싸움입니다. 휴대폰 멀리까지 통화할 때 파워가 왜 필요하냐 면 노이즈를 뛰어넘고 이 신호를 들려주기 위한 거거든요. 노이즈가 없다면 저전력으로 멀리까지 통신이 가능합니다. 전자공학이나 현대 IT 기술이라는 것이 쉽게 이야기하면 노이즈와의 싸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반도체도 생기는 거고 빠른 프로세서도 생긴 겁 니다. 노이즈가 자연계에 깔려 있습니다. 노이즈 위에 우리에게 유용한 정보를 보내기 위해서는 노이즈보다 큰 놈을 실어야 하고, 수신할 때도 작아지면 그것을 키워서 들어 야 합니다. 자연계는 사실 그렇습니다. 불규칙한 노이즈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것과 인간이 싸우고 있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리듬을 이야기할 때는 노이즈는 리듬이 없다 고 했죠. 그래서 자연과학적으로 리듬을 정의하자면, 황선생님께서 리듬이 정의되지 않 았다 하셨는데, 좁은 의미에서 약간 과학적으로 제가 보자면 리듬은 시간적인 존재의 패턴 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거기서 약간 설명하자면, 시간적인 존재의 패턴이 완전 규칙성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완전 불규칙적인 노이즈는 여기서 제외되어야 할 거 같습니다. 리듬이 똑같은 것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엇박자가 되고 하는 것이 음악에서도 쓰이듯이 말이죠. 그러면 미술 하시는 분이 공간적인 패턴은 리 듬에서 제외되는 거냐 하실 수 있겠지만 일단 출발은 여기서 해야 할 거 같구요. 그리 고 현대과학이 전자공학이나 신호처리나 통신공학은 노이즈와의 싸움이다, 그것은 출현 시간의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호에서 디터미니스틱 시그널과 랜덤 시그널이, 유효 신호 대 노이즈의 비율이 얼마냐 하는 것을 늘 통신공학에서 따집니다. 그런데 현대 과학이 이런 노이즈에 대해서도 랜덤 프로세스를 연구해서, 우리 학부엔 랜덤 프로세스가 대학원 과목에 있습니다. 현대 과학이 그것을 어떻게 정복할 것인가를 목표로 하는 거죠. 지금 이야기하신 솔리톤에 대해서는 저의 영역도 훨씬 넘어서기 때 문에 뭐라고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저는 아까 채교수님 아드님이 그런 음악을 듣는가 생각했는데, 생체리듬과 그것을 결 부시켰으면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제가 짧은 소견으로 뇌에 대해 연구하는 생리학 뇌의 한 분과 유럽 출장을 같이 가면서 비행기 안에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생체 리듬이 기가 막힌 것이랍니다. 한마디로 왜 생체리듬이 있냐고 물으니까 인간이 살기 위해서 생체리듬이 있다는 겁니다. 밤에는 모든 활동을 쉬게 하고 말이죠. 그래서 생체리듬을 깨는데 가장 좋은 것이 먹는 거랍니다. 밤늦게 먹으면 낮의 생체리듬이 살아난답니다. 생체리듬을 깨는 거죠. 그러니 밤에는 쉬고 낮에는 일하는 것이 낮과 밤의 리듬인 겁니 다. 생체리듬이 왜 있냐면 생존하기 위해 있다는 거고, 요새 10대가 왜 그런 극히 반복 적인, 극히 처음부터 공격하는 무지막지한 리듬을 왜 듣냐. 이걸 난세지음이라고 하셨 는데 요새 아이들이 그런 음악을 듣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지 않나 싶어요. 좀 서글픈 이야기지만. 황병기 : 일종의 마취 아닌가요. 음악 자체의 리듬을 보면 굉장히 공격적이고 다른 걸 못하게 한 단 말이에요. 폭력적인 리듬이죠. 그래서 제 생각에는 리듬이라고 해도 좋은 리듬이 있

154 고 나쁜 리듬이 있는 거지요. 폭력적이고 기계적인. 메트로놈 이야기도 하셨는데 거기 에 맞춰 연습을 하면 박이 정확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근데 그게 맛이 없어요. 처음에 연습할 적에는 그것에 맞춰서 하고, 그 다음에는 그것에 맞추면 안돼요. 음악을 버려요. 처음에 기본적인 걸 잡기 위해서만 메트로놈을 하고, 기본적인 걸 다 하고 나면 자연스 러워저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틀면 안돼요. 엄정식 : 좋은 음악 나쁜 음악 하잖아요. 술도 좋은 술이 있고 나쁜 술이 있잖아요. 우리 집사람 은 술을 안 먹더라구요. 왜 안먹느냐고 하니까 기분 나쁘게 기분이 너무 좋아진다는 거 에요. 모욕을 느낀다는 거에요. 그게 설득력 있는데, 지금 이야기한 음악을 들으면 기분 나쁠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품위가 손상되듯이.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 적인 이야기지, 그것이 보편화되는 문화가 형성될까봐 오히려 그것이 염려스러운 거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기성 문화권 있잖아요. 메탈과 같은 것도 수용할 수 있는 새 로운 문화가 형성되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아까 우리가 포스트모더니즘 모더니즘 비교 했듯이 말이죠. 단순히 이게 세대차이인지 엄청난 문명의 전환기인지, 그게 아마 흥미 있는 부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이덕환 :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거죠. 공격적 리듬이라고 하셨는데 요즘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걸 이어폰으로 꽂고 공부를 해요. 대답도 못할 정도로 크게 틀어놓고 공부해요. 황병기 : 안틀어놓으면 공부가 안 될거에요. 습관이 돼서. 결과적으로 마음이 편해진다 이거죠. 채현경 : 자기가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걱정들이 많이 있을텐데... 이덕환 : 그렇죠. 걱정은 제가 대학갈 때에도 많았죠. 채현경 : 문화적 측면을 말씀하셔서 제가 생각했던 거구요. 사실 가사도 굉장히 중요했구요. 그리 고 음악적 세련됨이나, 화성이나, 가사, 멜로디 등 음악적으로 고 수준이었어요. 제가 그걸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냐면 저희가 문화적 측면을 생각하니까 세계화에 대해 꼭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세계화가 우리 논의에 키워드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 가 생각해봤습니다. 얘네들이 접하는 문화는 우리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들어오고 있 고, 세계라는, 음악이나 여러 매체를 통해 들어오고 있는, 그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대해 서도 저희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덕환 : 아까 황병기 선생님께서 기술의 발전이 음악에는 큰 영향을 못 줄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 데, 어떤 면에서는 음정이나 음색이나 이런 걸 이야기하시면 맞는 것 같은데요. 다른 면에 있어선 전혀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메트로놈 말씀도 하셨지만 지금

155 대중음악을 연주하는 친구들에겐 메트로놈이 필요없거든요. 박자가 자동적으로 맞춰지 는데. 성굉모 : 메트로놈이 그 안에 들어있는 거죠 황병기 : 제가 드리는 말씀은 우리 머리가 굳어 있달까, 구세대고 또 새로운 세대는 그 나름대로 무엇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야기를 못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어요. 그 것을 조심해야 하지만 뭐든지 전부 주관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왜 그러냐면 요즘 애들이 듣는 음악 있잖아요. 그건 지금 성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이미 그 안에 메트로 놈이 들어있습니다. 메트로놈이 들어 있다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박자가 기계적이 라는 것을 입증하는 겁니다. 그 기계적인 것이 좋으냐 나쁘냐는 것은 두 번째 판단으로 돌리고, 우선 오늘날 젊은 애들이 듣는 그 음악이 박이 천편일률로 기계적이고, 개인의 주관을 용납할 수 없는 그런 음악인 것이라는 점은 틀림없는 거에요. 이덕환 : 박자 문제도 있지만 테크닉 면에서도... 황병기 : 그리고 그것이 기계적으로 만들어진 음악도 많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면, 개인의 창의력이 들어갈 데가 없게 돼요. 제가 미국에 80년대 갔을 때 그런 걸 봤는데, 피아노 처럼 생겼는데 그 안에 멜로디를 단선으로 아리랑이면 아리랑, 애국가면 애국가를 치면 그것이 심포니 오케스트라로 편곡해서도 나오고, 재즈스타일로 나오고, 포크스타일로도 나오고... 그 안에 완전히 메모리가 다 되어서, 프로그램화되어서 자신은 선택만 하면 돼요. 그것이 오늘날 테크놀로지 엔지니어링인데 그것을 개인 작곡가에게 줘봐야 그걸 가지고 할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정식 : 80년대 유행했던 음악을 지금도 계속 하지만, 미국의 에이지 음악이 있잖아요. 그것이 전통음악과 지금의 메탈 기능이 만나서 이른바 명상음악을 만든 것 같아요. 명상음악 특징이 제가 아까 말씀드린 리드미컬한 것 있잖아요. 대뇌 작용을 약화시키는 아주 근 본적인 것이거든요. 잡다한 생각 안하고 싶고, 그것을 그렇게 디파인하거든요. 이대일 : 뇌에 알파파가 많이 나오게끔 만들거든요. 엄정식 : 안정감을 갖게 하고 108번뇌를 잊게 하고... 황병기 : 뉴에이지 음악은 대체적으로 명상적인 게 사실 아닙니까? 엄정식 : 그럼요

156 이대일 : 알파파가 7.3헤르츠랍니다. 그런데 심장의 파동이 7.3이구요, 천둥에서 나와 전희체가 생기는 파장....아까 노이즈 말씀하신 게 사운드 개념만 이야기하신 건 아니죠? 성굉모 : 그럼요. 전자파건 사운드건 모든 것에 말씀드린 겁니다. 이대일 : 그게 7.3헤르츠랍니다. 그것이 묘한데, 몸 속의 염분 농도가 바닷속 염분 농도와 똑같은 것처럼 심장박동과 알파파의 파장이 7.3헤르츠라는 겁니다. 이덕환 : 그거 굉장히 잘못된 정보입니다. 바닷물을 먹으면 죽습니다. 바닷물과 피의 짠 정도는 비교도 안되죠. 성굉모 : 바닷물은 3.5%죠. 35/1000죠. 이덕환 : 피가 몇 십 분의 일 낮습니다. 저도 그 이야기 많이 듣는데 굉장히 잘못된 정보입니다. 바닷물의 염분 농도가 피의 염분 농도가 같으면 바닷물을 마시고 죽을 일이 없죠. 이대일 :... 황병기 : 바닷물 농도와 피농도가 같다고 이야기하면 그럴 듯 하잖아요. 그런 게 많아요. 이승종 : 생리식염수라는 표현과 바닷물을 잘못 사용한 것이 아닌지... 이대일 : 알파파가 7.3 헤르츠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박동 수가 아니라 박동에서 발생하는 파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엄정식 : 저는 그 이야기를 더 끌어가고 싶은데 자연적 리듬과 문화적 리듬의 관계 있잖아요. 예 를 들어 보름달 있잖아요. 보름달이 뜨면 이리떼들이 울부짖잖아요. 그게 피가 위로 솟 아서 그렇다는데, 달이 인력으로 피를 끌어올린대요. 그래서 흥분하는 거 있잖아요. 그 것을 컨트롤 못해 범죄율이 급증한다고요. 그러니까 달이 바닷물도 끌어올리는데 피는 어느 정도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요. 이덕환 : 그것이 비과학적인 대표적인 이야기구요 엄정식 : 그런데 책에 있더라구요?

157 이덕환 : 자연적 리듬에 대해서 지난번 박창범 박사가 사실 노이즈 때문에 잡음 때문에 비리듬적 인 우주가 만들어진다고 했는데 정 반대도 있습니다. 똑같이 노이즈 때문에... 심장박동 같은 것은 시간적으로 너무 심하게 변하면 사람이 살아남지 못하거든요. 아주 견고하게 지켜져야 해요. 그런데 흔들리는 진자는 조금만 건드려도 많이 틀려져요. 그런데 심장 은 굉장히 튼튼하게 운동을 해도 벼롤 많이 안 바뀌고 잠을 자도 크게 안 바뀌거든요. 그것도 같은 틀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비선형, 비가역, 이런 현상들을 분석하는 과정에 서 생체 주기적인 리듬... 우리가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 말고 생명 유지에 필요한 그런 리듬들은 엄격하게 통제가 되어 있어요. 이것은 벗어나면 생명에 지장이 있으니까. 그 런 자연적인 리듬은 확실히 있구요. 그건 아주 대표적인 리듬이죠. 현대과학에서 우주 의 리듬이 없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다고 부정하는 게 아니라 폭이 넓어졌다는 거에요. 심장박동처럼 아주 철저하게 규칙적으로 지켜지는 리듬이 있는 가 하면,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불규칙한 자연현상도 있다는 겁니다. 자연의 폭이 무지하게 넓어진다는 거죠. 황병기 : 저는 자연과학에 대해 무지합니다만 우주에서 사람이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지구밖에 없잖아요. 지구의 대기권만 벗어나도 우린 다 죽잖아요. 달만 가도 죽고, 화성가도 죽 고... 그러면 이 넓은 우주 속에서 태양조차도 너무나 먼지 같은 것이 우주인데 그런 태 양의 위성에 불과한 지구에서만 사람이 살아갈 수 있잖습니까. 그러니까 우주 전체를 두고 보면 지구가 예외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지난번 박창범 선생님 말씀하신 것과 같 이 대체로 무질서한 속에서 안정된 것은 중력이 지배하는 아주 극히 예외적인 현상에 불과한 것이죠. 지구 자체가 극히 예외적인 공간인 것처럼 무한한 변화 속에서 나중에 인류 전체가 멸종되는 것이 대다수의 자연과학자들이 말하는 것이잖습니까. 60억 인류 자체가 없어지는 거에요. 우리 이렇게 여기서 이야기해봐야 아무 의미 없어요. 심지어 지구도 없어진다 하잖습니까. 태양도 그렇고 우리도 지금 굉장히 제한적인 존재이지만 인간에게 유리한 조건이라던가 안정된 리듬의 세계여야만 아까 심장이 견고하게 박자 친다고 했잖습니까. 그것에 대해 우리가 어느 정도 안정된 범위 속에서 리듬을 생각해 야지 우주 전체를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아까 성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우리가 휴대폰으로 서로 이야기하는 것도 노이즈를 극복했기 때문인 거구요. 그러니 우리가 노 이즈를 받을 이유가 없고 그걸 넘으면 되는 거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되네요. 그러니 우리가 생각하는 리듬은 우주 전체를 생각하면 공간적이나 시간적이나 극히 예외지만, 우리가 살 수 있는 공간이 여기밖에 없는 거에요. 그러니 이 범위 내에서 우리가 논하 면 되는 거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이덕환 : 현실적으론 그렇죠. 그런데 거기에 규모의 문제가 나오는데, 공간적인 규모로 보면 우주 전체를 보는 것하고 사람의 손 안에 들어가서 완전한 분자세계를 보는 것하고 상당히 닮은 점이 많습니다. 프랙탈 이야기와 비슷한 건데요. 시간의 규모로 보면 선생님 하신

158 말씀이 되거든요. 황병기 : 시간도 1초를 들여다보면 무한정.. 이덕환 : 과학적으로 제일 짧게 보는 게 펨토고, 제일 길게 보는 게 10의 -15승이거든요. 시간의 크기를 나타내는 겁니다. 성굉모 : 더 짧은 시간도 수학적으로는 얼마든지 존재하는데, 인간이 만든 레이저 펄스의 폭과 같 은 것에 대해 인간이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가 거기까지라는 거죠. 이덕환 : 그것보다 더 짧은 시간은 우리가 봐도 별로 재밌는 게 없을 것 같구요. 황병기 : 최소 단위가 뭐라구요? 이덕환 : 펨토입니다. f, e, m, t, o... 나노가 10억이니까 그것의 100만 배입니다. 나노가 10의 -9승이고, 이게 -15승이니까... 황병기 : 인류가 도달한 제일 작은 시간단위가 펨토라고 했잖아요. 그걸 단위로 작곡을 해봐야 뭐 하겠습니까. 제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지금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사람이 컴퓨터 앞 에 앉으면 키만 눌러야지 그 안에까지 고개를 집어넣고 조작할 이유가 없다는 거죠. 그 러니 리듬에 관한 이야기도 키 펀치 수준으로 제한하고 이야기해야 의미가 있지, 펨토 의 음악 이런 것을 논의해봐야 아무 의미 없다는 거죠. 이승종 : 황교수님 말씀은 이런 것 같습니다. 예술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리듬은 인간의 눈이나 귀 로 인지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그것을 뛰어넘는 우 주라던가 혹은 아주 작은 스케일이라던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의미 없다는 말씀 같 아요. 조금 다른 차원에서의 리듬을 이야기하면 의미 있는데, 음악과 미술 같은 예술 차원에서 보면 인간이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스케일에서 이야기해야 의미 있지 않나 그런 말씀 같습니다. 저는 사실 지난번과 이번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서 정말 리듬이라 는 주제를 잘 정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예술, 인문사회, 자연과학하 시는 분들이 모여 3시간째 이야기를 하는데 계속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게 하는 굉장히 좋은 주제인 거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 이렇게 젊은 세대들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하면서 최근의 변화까지도 전부 묶어서 긍정적인 측면으로 리듬의 진화랄까 하는 형태로 묶어봤음 좋겠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뭐 사실 아까 요즘 젊은 사람들 표현도 쓰셨지만 저도 예전에 이어폰 꽂고 공부했거든요. 당시에도 제가 듣던 노래를 저희 부 모님들은 싫어하셨어요. 그걸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의 다음 세대에 대해 우리가 너무

159 이해하지 않으려고 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구요. 결국 좋은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 라고 저는 낙관적으로 생각하기는 합니다. 정형적인 그런 리듬에서부터 그동안 변화해 오면서 비정형으로 인간들에게 더 나은 즐거움을 제공해주다가 또 언젠가는 다음 세대 들이 다시 정형의 리듬을 추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게 왔다갔다하는 게 아닌가... 소위 사회 진화라는 측면에서 정반합으로 발전해가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리듬도 그 렇게 발전하지 않을까... 저는 긍정적 측면에서 이해하려고 그렇게 생각해봤습니다. 이대일 :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이제 여섯시가 다 되어서... 엄정식 : 아 저는 황선생님 말씀하신 거에 대해서 구태여 철학적인 입장이라고 말할 것까지는 없 겠지만, 예를 들면 그런 것이 있었거든요. 영국 경험론과 대륙 합리론, 인식론 이야기가 나올 때 영국 경험론에서는 우리가 관심 있는 것은 항해하는데 바다가 충분히 깊으냐라 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인간이 바다의 깊이를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그냥 항해하는데 바다가 충분히 깊은지만 우린 알면 된다. 말하자면 영국 경험론의 전형적인 비유이지요. 그런데 대륙 합리론에서는 그것이 진짜 정말 비철학적인 이야기라고 말해 요. 철학자라면 우리가 모르더라도 내려갈 때까지 내려가보는 거 있죠. 내려가는 것이 비록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저는 개인적으로 그것이 의미 있다고 보거든요. 단순히 말 장난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음악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뻔할지라도, 우주의 어떤 맥락 속에서 인간이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 그래서 이른바 우리가 음악이라고 말 하는 것이 무슨 꼬락서니인지 알려고 하는 것이 같은 음악을 듣더라도 다른 생각을 갖 게 만들지 않을까 싶어요. 아무튼 이 논의에 여전히 저는 약간의 풋노트를 달고 싶거든 요. 이대일 : 정리하면서 한 말씀만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마지막 항목인 리듬에 대한 새로운 인식 에 대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내려온 것 같은데요. 지금 이야기 나온 중에서 특히 엄교 수님 말씀하셨던 리듬의 시각과 디지털화의 문제가 아니고, 학교에서 일학년 과정중에 제가 리듬을 가르치고 있거든요. 리듬, 반복, 텍스쳐와 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림을 그리게 합니다. 리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가령 아까 이야기 나 온 뇌간과 대뇌, 소통 부재, 그리고 인간이 이성적으로 똑똑해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진 정 각성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던지, 아니면 포스트모던적인 시각에서, 로지컬 한 그런 측면에서 그것을 벗어난 상태라던지 등등에 대한 이야기기가 나왔습니다. 아무 튼 리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가볍게 생각나는대로 말씀해주시고 끝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재서 : 종합적으로 나름대로 거칠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우리가 리듬이라는 주제를 놓고 과학 적인 입장, 또는 예술적인 입장, 그런 입장에서의 어떤 접합이라든가 여러 의견들을 모

160 색하는 입장에서 볼 적에 느슨한 리듬, 느슨한 리듬이 예술 쪽의 입장이 아닌가 싶어 요. 그리고 정확한, 정밀한 리듬을 추구하는 입장이 과학적 리듬이 아닌가 싶습니다. 거 칠게 말하면 말이죠. 아까 엄선생님이 달의 주기성과 거기 상응하는 토끼라든가... 토끼 도 새끼를 낳고 달이 뜨면 흥분한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시골에서 많이 하는 이야기거든 요. 여성의 주기도 예로 들 수 있겠구요. 그것에 대해 이선생님께서는 과학적 이론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사성의 논리와 과학적인, 이른 바 인과적인 논리의 차이라 고 봐요. 유사성이 결국에는 주술적인 사고가 될텐데, 그렇다고 해서 유사성을 과학적 인 입장에서 격하해버리면 문학이나 예술이 설 자리가 없어져요. 문학이나 예술에서는 바로 이 유사성, 주술성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거기 기대기 때문에 예술성이 살아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리듬을 통해 예술과 과학의 접합 가능성을 모색한 다 하면 기존의 어떤 과학사적 인식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유사과학에서, 주 술에서 과학으로 발전했다는 진화론적 입장으로 보게 되면 과학의 전단계인 주술은 미 신으로서 퇴치되어야 해요. 비과학적인 것으로서 퇴치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 그것을 단절로 생각합니다. 유사과학적인 생각과 과학적인 사고 사이에는 엄청난 단절 이 있다는 거죠. 이것은 굉장한 하나의 발전이고 이전 것은 이미 폐기된 연금술 같은 생각이다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서로 접합될 여지가 없다고 봐요. 그런데 어떤 진화론적 인 도식으로 보지 않고 유사성과 연속성으로 생각하고 인간의 인식구조라는 것이 폐기 가 되고 다른 하나가 대체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아무리 과학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 도 기술적인 사고 인식도 여전히 같이 공존하고 있다는 입장에서 그것들을 같이 공존하 고 있다고 볼 때에 이게 우리 예술이든 과학이라는 것에 대해 같이 접점을 모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연속선상에서 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연속선이라는 게 진화론 적으로 지난 것이 나쁜 것이니 폐기하고 올바르게 나간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 가 아무리 과학시대에 살고 있어도 여전히 주술적인 생각이나 감수성을 가지고 있고 그 것이 우리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폐기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부분이라는 이런 인식이 있 어야 예술과 과학이 공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과학의 입장에서도 그것을 좀 더 다른 측면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과학 입장에서 본다면 이것이 효용성 이 없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효용성을 넘어서 인간의 본질적인 인식 체계라던지 하는 측면 등 긍정적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또 아까 정확한 리듬과 느슨한 리 듬의 차이로서 우리가 예술과 과학을 분별해본다면 사실은 그게 절대적으로 어떤 단절 이 있는 것은 아니란 말이죠. 주술적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나중에 과학적으로 판명될 수도 있으니까요. 소위 주술이라고 하는, 유사성이라고 하는, 사실 한의학 같은 것도 유 사성에 입각하는 것이지만 수 천 년 동안 살아남았거든요. 물론 양의학보다는 지위가 못하지만 나름대로 효용성이 있고 순전히 유사성의 원리인데 말이죠. 음양오행설이라는 건 다 유사성의 원리거든요. 유사과학이죠 다 지금 보면.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다 포 용하는 더 큰 패러다임이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입니다

161 성굉모 : 저는 말씀드릴 걸 다 말씀드렸기 때문에 다른 분들 말씀을... 엄정식 : 아까 비과학적이라고 차단이 됐지만 사실 제가 그 이야길 하려는 의도는 자연적 리듬하 고 문화적 혹은 도덕적 리듬과의 관계 설정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냐에 대한 거였거든 요. 철학하는 사람은 넌 비과학적이다 하면 위축되거든요. 그런데 제가 왜 아직도 그걸 내세우냐 하면 과학적으로 입증이 됐던 안됐든 제가 그래요. 제가 달이 뜨면 그래요 컨 트롤이 안 되거든요. 그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적인 리듬일텐데, 또 교육받았기 때문에 저를 컨트롤 하려는, 합리적이고 도덕적이고 선비 다워야 한다는, 그런 건 사실 문화적 인 것이거든요. 그러면 이 두 리듬이 어떻게 양립 가능할 것인가... 문화를 어떻게 해석 하느냐, 저는 문화를 일종의 자연현상으로 보거든요. 아까 황선생님 말씀하셨다시피 개 미 먼지같은 인간들이 모여서 문화라는 이름의 자연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마 치 자연과 문화의 이분법으로, 문화가 있고 또 자연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는데 앞으로 제가 거기에 관심을 갖는다면 그 리듬이 결국 문화라는 자연적 리듬과 이른바 자연이라는 자연적 리듬이 어떻게 관계 설정될 수 있을 지 거기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 다. 황병기 : 저는 구체적인 이야기 하나만 하겠습니다. 국악에만 국한해 봐도 리듬이 상당히 다양합 니다. 한 가지 정도가 아니고 엄청 다양한데, 가령 사찰에서 스님들이 범종을 치죠. 범 종을 칠 때 일정한 간격을 두고 칩니다. 계속 반복됩니다. 33번도 치고 28번도 치고 하 는데, 스님들이 그 숫자를 세면서 종을 치죠. 자기의 감각이나 생체리듬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한 번 두 번 세서 치는 겁니다. 그걸 세지 않으면 감각적으로 치지 못합니다. 머리로 세니까 치는 건데, 문제는 그걸 치는 리듬이라는 것이 뭐냐, 원리가 뭐냐, 거기 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고 종소리 그 자체를 존중하는 겁니다. 종소리 감상을 충분 히 해야 한다는 것이 목적이요 모든 것입니다. 그러니 한 번 땡~ 하면 충분히 감상했구 나, 이렇게 소리 자체를 충분히 듣고 드 다음 소리를 또 듣고 하는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제가 그런 리듬에 대해 편의상 만들어 낸 것이 타임밸류 리듬입니다. 공인된 바 없고 제가 만들어낸 것이에요. 그 스님에게는 종소리의 타임밸류, 그것 자체 가 원리요 목적이요 그것밖에 없어요. 그래서 소리를 다 듣고 다음 종을 쳐요. 그런데 지금 이야기하는 타임밸류 리듬이라는 것이 실제 음악에 나타난 것이 문묘재래악입니 다. 문묘재래악은 성균관에서 공자제사 지낼 적에 하는 음악인데요. 그것이 중국 태고 적 음악이라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없어졌다고 하는데... 그거 연주할 적에 보면 연주자 가 소리 하나하나를 충분히 울려주어야 한다는 생각 외엔 아무것도 없어요. 음 하나 내 면 반드시 숨을 쉬어야 해요. 음 하나가 하나의 세계에요. 스님이 이걸 칠 때에도 똑같 은 거에요. 음과 음 간의 간격을 생각을 안해요. 음 하나를 내가 충분히 울려주면 된다. 그런 것에서부터 시작을 해가지고 가령 종묘재래악을 보면 거기선 이런 걸 많이 씁니 다. 박만 있고 그룹핑이 안되요. 그룹핑한다는 생각이 머리에 없어요. 그런 음악도 있고

162 그러나 이것은 있어요 일정한 것. 그런데 문묘재래악에서는 이 개념도 없습니다. 스님 이 종치는 것과 똑같이 소리 하나만 듣는 거에요. 그런 걸로 시작해가지고 우리 국악에 서도 제일 많은 것이 주기적인 반복을 중요시하는 음악이 주종을 이룹니다. 주종을 이 루는 것을 박자리듬이라고 하는데 거기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말할 것도 없이 장단입니 다. 어느 장단에 맞춰서 춤춰야 할 지 모른겠다는 말이 있죠. 장단을 지니는 음악은 전 부 장구로 반주가 되요. 판소리에서만 북으로 반주가 되고. 북이나 장구 반주가 반드시 들어가게 되는데, 장단이 있는,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장단이 곧 리듬이라 해도 과 언이 아닐 정도인데요. 그 장단을 이루는 원리가 무엇이냐 하면 하나의 최소한도의 단 위는 긴 것과 짧은 것이 나오는 겁니다. 딱~딱 딱~딱, 반대로는 딱딱~ 딱딱~ 똑같은 건 우리나라엔 없어요 장단이지. 그것을 합해보면 2:1이기 때문에 그것이 3인데 박이 몇 개가 뭉쳐가지고 어떤 구조물을 만들 적에는 3이 아니라 4에요. 그 4에 자연리듬하 고 제일 직접적인 연결이 되는 것이 바로 춘하추동이에요. 그래서 춘하추동을 한국사람 은 다른 말로 한문을 이용할 경우에 기승결해라고 하는데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고... 순 수한 우리 말로는 밀고 달고 맺고 푼다고 하고... 그래서 우리 박이 묶여서 어떤 구조물 적인 형식을 만들 적에는 3의 원리가 아니라 4인데, 그 4가 춘하추동이라고 누구나 알 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 하면 봄, 만물이 소생하고 꽃이 피고, 승 하면 여름인데 뻗어나 가고요, 가을이 되면 결 추수하고, 겨울이 되면 '해 봄을 위해 저장하고 4의 원리로다 가 3이 모여서 4로 하나의 구조물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우리 국악에서 가장 중요한 원 리 중 하나에요. 채현경 : 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냐면 주술, 달에 대해 이야기하셨잖아요. 우리가 음악이라고 하면 문화적인 측면이기도 한데 우리가 계속 토론을 하면서 음악이라고 하면 음악이라 고 이야기하잖아요. 지금 황선생님께서 한국음악의 예를 말씀해주셨 듯 사실 우리가 섞 어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하나로 묶어 보기엔 어려운 개념이 있지 않은가 싶어요. 아 까 달 말씀하실 때 우리나라 달 안에는 산토끼가 사는데 그것이 긍정적인 느낌이지만, 서구에서 달이라 하면 미친 장면이라든가 살인과 같은 부정적인 것들이 떠오르거든요. 문화적 애스팩트라는 것이 아까 세계화란 말씀도 드렸지만 이것을 우리가 학문끼리도 섞지만 문화적으로도 섞어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정재서 : 통하죠. 루나틱... 루나가 원래 광적 이라는 뜻이구요. 태양이 밝고 의식세계라면, 달은 무의식세계이기 때문에 광기와 연결될 수 있을 겁니다. 상징학적으로 보면 그것은 같아 요. 엄정식 : 그래도 지금 루나틱 말씀하시니까 조금 마음이 가라앉네요. 이덕환 : 저는 다른 이야기는 드릴 게 없구요. 서양 사람들은 달을 보고 그 속에서 마귀할멈의 모

163 양을 찾아냅니다. 우리는 토끼가 거꾸로 서있는데 말이죠. 수많은 훈련이 필요한 거 같 아요. 다른 것은 말씀드릴게 없고 저희가 다시 한 번 이 내용을 정리해서 보내드리겠습 니다. 고치실 거 고치시고. 이것을 가지고 텍스트를 하나 적어도 만들어야 합니다. 그거 만드는 작업을 기획위원회에서 상의를 해서 어느 분께 부탁을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아 요. 부탁드리면 사양치 말고 해주시고 오는 10월 9일에 행사를 하나 할 겁니다. 이 세 개를 묶어가지고 인문주간 행사를 할 건데 그때도 좀 협조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가 어렵게 어렵게 해서 학진에 펀드를 우격다짐으로 받아냈습니다. 그게 지금 기약이 된 게 지지난 주인가 그렇구요, 학진 것은 아직 돈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돈이 들어 오는 대로 처리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게 낯선 모임이고 그런데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 것 같아요. 이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뭔가 만들어내겠다고 의도하지 않고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는 기회가 많아지면 그 끝에 통섭이나 융합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의견이 있으시면 말씀을 좀 부탁드립니다. 이대일 : 오늘 좋으신 말씀 대단히 감사합니다

164 교육, 1차 포럼

165 이덕환 : 시작하겠습니다. 문진포럼 이라고 해서 올 5월부터 시작을 해서 지금까지 6번을 모였고 오늘이 7번째인데요, 문진포럼 대표격인 엄정식 선생님이 국민일보에 얼마 전에 문진포 럼에 대해 투고하신 것이 있어서 뒤에 붙여놨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여기 최재천 박사님 이 주장하시는 통섭, 융합, 통합... 뭐 이런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학문 분야 간의 소통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거든요. 이 사업도 사실 그런 취지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재작년에 새로 보는 과학기술 이라는 사업은 과학기술 대중화를 다른 차원에 서 해보자는 취지에서 다른 분야 분들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봤었던 거구요. 문진이라는 것이 특별하게 결론을 내자고 모이는 모임은 아니고, 다양한 분야의 분들이 모여서 의견을 나누어 보면서 그 결과를 모아보자는 취지입니다. 그래서 지금 말 씀하시는 것을 녹취할 거구요, 기록으로 남길 것은 나중에 선생님들께 보내드려서 내용 을 거기서 더하셔도 되고 빼셔도 되고 기회를 드릴테니 여기서는 편안하게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공개 안하셔도 되는 문제를 말씀해주셔도 저희가 나중에 삭제를 원하시면 삭제해드리겠습니다. 그래서 편안하게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고, 그리고 오늘 참석하 신 분들 대부분은 다 아실텐데 소개를 좀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기 저희 기획의원으 로 계신 명지대 이대일 선생님이시구요, 여긴 이화여대 최재천 선생님이시구요, 저는 서 강대 화학과의 이덕환입니다. 제가 소개를 그냥 드릴까요? 김경동 선생님 다 아시다시피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정년을 하시고 지금 여러 활동 계속하고 계십니다. 선생님 조금만 소개를 해주시겠습니까? 김경동 : 정년 퇴임을 했고, 지금 가르치는 곳은 KDI 국제대학원에서 강의를 계속 하고 있구요, 다른 곳도 한 두 군데 나갑니다만, 자원봉사도 좀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덕환 : 그 다음에 도재원 선생님은 거창고 이사장으로 계십니다. 거창고등학교가 아마 대안고등 학교를 표방하던가요? 거창고등학교를 조금 소개해주시죠. 도재원 : 거창고등학교가 대안학교 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1997년 고등학교 문제가 심각하 게 대두될 때 기자들이 저희 학교 와서 취재하고 가서 한국에 이런 학교도 있다, 이게 한국 교육의 대안이다 하고 쓴 것이 대안학교 라고 이야기된 겁니다. 요즘 말로 하면 대 안학교는 아니고 정규 고등학교입니다. 거창이라는 곳이 조그만 농촌 도시인데, 학교도 총 학생은 360명 정도로 400명이 채 안됩니다. 1953년부터 지금까지 졸업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덕환 : 그 옆에는 연세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하셨고 전기과에 계시는 윤대희 선생님이십니다. 윤대희 : 반갑습니다. 오늘 토론자 중에 엔지니어는 저 혼자인 거 같은데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따 이야기 나올 수 있을지 몰라도 과학이 인문학 쪽이라는 생각이 참 많이 들어요 공

166 대 교수로서. 오늘 많은 이야기를 들도록 하겠습니다. 이덕환 : 그 다음에 경북대학교 김규원 선생님은 교육사회학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규원 : 저는 사실 교육사회학이라고 공개적으로 말씀을 드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교육학에서 교육사회학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저는 잘 아시겠지만 사회계층론, 불평등 쪽에서 교육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교육에 대해 사회학적인 관점을 가지고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덕환 : 영문과에 계시면서 온갖 것들에 대해 말씀 많이 해주시는 서지문 선생님이십니다. 서지문 : 반갑습니다. 이덕환 : 이규미 선생님은 상담심리를 전공하셨습니다. 이규미 : 아주대학교에서 상담심리를 가르치고 있는 이규미입니다. 이덕환 : 김형규 선생님은 제가 모시는데 애를 먹었는데 고대 의대 계십니다. 김형규 : 예, 내과 김형규입니다. 이덕환 : 의학 쪽에 저희 맹광호 선생님이라고 계신데, 그 분이 시간이 안 되셔서 추천을 받았습 니다. 저희가 오늘 이야기할 주제는 무지 큰 건데요, 한 번에 이야길 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야길 해봐서 이야기가 더 필요하다 싶으면 2차 모임을 갖도록 하겠습니 다. 지금까지는 한 주제에 대해 2번씩 토론했었는데, 이번에도 진행을 해봐서 이야기를 더 진전시킬 것이 있으면 그렇게 해보려고 합니다. 교육이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이 고, 큰 과제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백년지대계라는 말은 없어졌고, 대중요법을 쏟아내야 사람들이 만족하고 쏟아놓으면 번번이 실패인 거 같고, 그래서 이런 토론회를 마련해봤 습니다. 청중의 압력 없이, 해야 할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해보고자 합니 다. 이야기는 여기 계신 선생님들이 풀어주심 될 거 같고, 저희가 준비하면서 생각했던 것은 교육 현안에 대한 토론은 자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결론은 나오지 않고 문제는 점 점 심해지고 이런 부분이기 때문에 지양하구요. 교육기본법이라는 게 있더라구요. 우리 교육을 총괄하는 중요한 법인 것 같은데 거기 2조에 홍익인간 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게 과연 21세기 우리 사회가 교육을 함에 있어 이런 이념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도 되 는 것인가, 그리고 이 개념을 여기 나온 것과 같은 사전정의로 이야기해도 되는 것인가. 우리가 어떤 인간을 길러내도록 노력해야 하는가, 문제가 많을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167 방법론은 나중에 기회 있을 때 이야기하도록 하구요, 좀 과감하게 질문을 던지면 우리 사회가 과연 교육에 투자를 할 필요가 있는가, 이유가 있는가 이런 문제부터 시작을 해 보고 싶어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면 교육을 가정에 맡기는 걸 생각해보고요. 사회가 학생에게 공교육을 시키는 기본적인 이유, 철학적인 이유 등이 모두 실종이 된 거 같거 든요. 기획을 하면서 이런 부분을 생각했습니다. 제가 드린 말씀에 대해 반론을 하셔도 좋구요, 원래 문진은 취지가 어떤 명쾌한 결론을 끄집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 분들이 이야기 나눠가는 과정에서 어떤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시작을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최재천 선생님이 기획의원으로서 부연설명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최재천 : 따로 부연설명을 할 것은 없구요, 이덕환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다른 분께서 어떤 이 야기든 말씀을 이어주시면 이야기가 진행될 것 같습니다. 김경동 : 제가 한 10여 년 전에 책을 하나 냈습니다. <한국 교육의 사회학적 진단과 처방>이라 고, 교육학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한국 교육의 문제를 꼽아보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 지 두서없이 적은 책인데, 거기 대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인용을 한 것이 있어 요. 요즘 사람은 과거 공부한다 하면서 공명( 功 名 )도 못하고 학문을 다스린다 하면서 실제로는 저술도 아니하여 마지막에는 과거 공부 학문 다스리는 것 둘 다 성취가 없으 니 늙어서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아, 경계할지어다. 이게 누가 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다산? 비슷하지만 다산보다 더 선각자인 실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율곡선 생님입니다. 400년 전 이야기인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 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거 같습니다. 과거공부 하듯 대학 가서 취직 잘해서 출세하는 게 하나 있고 그것이 공명하는 것이고, 학문한다는 것은 좀 더 교육 자체의 가치에 무게를 두고 열심 히 공부하겠다 하는 그런 이야기가 되는데, 제가 여기서 2가지만 던져보고 토론을 위한 하나의 양식으로 가보았음 좋겠습니다. 율곡선생의 이 인용구에서 지적하고 있는 내용의 핵심은 교육가치관, 교육은 무엇인가, 왜 우린 교육을 받아야 하며 교육의 중요성은 어 떤 것이냐, 이런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있는데, 그래서 우리가 교육 가치관이다 하고 규정을 한다면 그것을 2가지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는 목적 적 가치 로서의 교육입니다.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공부하는 것 자체가 너무 기 분 좋다,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공부하는 것, 학문하는 것, 배우는 것, 이것 자체가 기 분 좋다... 목적적 가치로서 중시한다. 이것이 아마 상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줄로 압니다. 교육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왜 우리는 교육을 하느냐라고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정당화 하기 위하여 이런 목적적 가치를 내세웁니다. 그러나 실제로 현실 을 보면, 우리가 이상과 현실을 사회에서 통속적으로 볼 때 항상 괴리가 있게 마련이거 든요. 사람들이 추구하는 이상은 상당히 고매하고 숭고한데 실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 습, 행동하는 것, 추구하는 구체적인 목표는 이상과는 대단히 멀거나 반대되는 그런 방 향으로 흘러가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적적 가치로서

168 교육이 현실로 내려오게 되면 그 다음엔 수단적 가치, 도구적 가치 가 됩니다. 내가 교 육을 받음으로써 어떤 것을 달성하고 얻을 수 있다, 그것이 수단이고 도구입니다. 사실 저는 도구라는 말이 일본말이기 때문에 잘 쓰지 않는데, 교육학에서는 많이 씁니다. 수 단적 가치는 교육을 받음으로써 다른 목적을,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그런 절차로 생각한 다는 것입니다. 이 때 이 두 가지 가치 사이에 긴장이 있고, 괴리가 있고, 그것이 발생시 키는 문제가 정책적으로 나타나고 사람들이 정책에 대해 평가할 때 어떤 때는 목적적 가치를 느끼고, 어떤 때는 수단적 가치를 느끼고 하면서 자기 편리한대로 교육을 재단해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혼란이 생기고 누구도 이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처지가 못 되는 이 지경까지 왔다고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육의, 물론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죠. 이것이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사회의 변동과정에서 사회 가 기술발달도 하고 정보화 시대도 되어서 이런 기술이 엄청나게 진보하는 과정에서 죽 역사를 되돌아볼 것 같으면 농경사회에서 공업사회로 넘어오고 정보사회로 진입하는 과 정에서 둘 사이의 충돌이 때로는 심각하고 어떤 때는 한 가치가 위로 올라가고 한 가치 는 억눌려지고 하는 이런 모습으로 엎치락 뒷치락 하고 있죠. 개인의 관점에서 교육을 평가해보라 하면 저는 이 두 가치 사이의 긴장이 극도로 심각해져서 한 가치가 거의 이 제는 말살되고 다른 한 가치가 모든 사람들의 교육 가치관을 지배해서 교육의 본질 자 체가 망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 이야기할 때 우리가 입시 정책을 어 떻게 할 것인가, 평준화 정책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수준에서 이야기해봐야 아무 의 미 없고 근원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슈로 제가 제기하고 싶은 건 평준화 문제인데요. 이것도 우리 문화적인 민족 적 의식과도 관계가 있습니다만, 교육은 평등하게 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근본적으로 차별적인 것이 옳으냐 하는 아주 핵심의 문제입니다. 이게 본질의 문제인데, 둘 다 모두 중요한 가치죠. 하나는 선택의 문제고 하나는 평준화의 문젠데, 적어도 교육은 원래 목 적에 따르면 선별성, 그러니까 교육을 잘 시키면 교육의 효과가 학생들에게서 나타나고, 그것을 교육학에서는 수월성 이라고 합니다. 사람을 엑설런트하게 만든다, 여기서 엑설 런트는 여러 의미가 있죠. 수월성 추구한다고 하거든요 교육의 목적이. 수월성을 심어주 는 방향으로 교육이 이뤄졌을 때 불평등이 생기게 마련이죠. 선별하고 차별하고 평가하 니 차이가 나죠. 사람에겐 모두 개인차, 능력차, 성향차, 적성차가 있는데 그 차이를 제 대로 드러내서 제대로 키워내는 것이 진짜 교육의 목적이다 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반 대쪽으로 가서 그게 아니다, 교육은 누구에게나 골고루 다 기회를 줘서 모든 사람들이 다 기회를 누릴 수 있는 교육을 해야 옳다는 소위 평균주의가 있습니다. 이 둘이 충돌하 는 거죠. 이건 현대, 소위 말해 근대화, 해방 이후 우리가 일본식 교육제도를 어느 정도 탈피하면서 상당정도 남아있지만 미국식 교육을 채택하면서 일종의 자유방임적 원리에 기초해서 평가하고 선별하고 경쟁하도록 하고 하는 교육을 처음엔 도입했습니다. 한참 가다가 역사적 변천과정이 어느 시점에 가면 이거 안되겠다, 왜냐하면 불평등이 너무 심

169 하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이 불평등을 국가가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 소위 말하는 평준화 제도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사실상 평준화라고 하면, 고등학교 학생 선발과 관련 해서 평준화가 아주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부모들이 어디까지 가있냐면, 교육의 평준화, 혹은 평등주의라고 하는 것은 마치 누구도 차별해선 안되고 경쟁시켜선 안되고 선별해선 안되고 다 똑같이 가야 한다는 아주 절대적인 평등 주의와 가까운 교육관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 기 시작합니다. 사람들, 주체들에 따라 그것은 다 다르게 나타나는데요, 예컨대 고등학교 에서 교원을 평가한다 하면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것에 기초를 해서 나왔느냐, 이런 것을 우리가 한 번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우리 사회의 이념적 지향에 대한 근본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전 우선 이 두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덕환 : 사실 그 두 가지가 핵심인 거 같습니다. 우리가 또 이야기해야 하는 중요한 주제가 있거 나 아니면 김경동 선생님께서 지금 지적하신 이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를 이어주 셔도 괜찮습니다. 김형규 : 그런데 지금 말씀하신 주체가 누구인가요? 김경동 : 주체가 다 다릅니다. 다른데 그것이 다르면서도 맥이 통하는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 다. 김형규 : 제가 말씀드리는 초점은, 그 대상이 교육수요자(학생)인지, 아니면 공급자(교사 등)인지, 아니면 교육을 받은 학생들로 하여금 혜택을 받는 사회가 대상인지 명확치 않아서요. 왜 냐하면 학생의 시각으로 보는 것과 교사의 시각으로 보는 것과 사회의 시각으로 보는 것을 같은 것을 놓고도 다르게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둘 중 어떤 시각에 서 이런 시각을 제시하신 건지... 김경동 : 그러면 제가 좀 더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 하나의 프레임워크를 제안하겠습니다. 이건 절 대적인 건 아닌데요. 가령 교육가치의 원천, 소스가 있습니다. 이게 어디서 나왔냐 하면 사회문화적 차원이 있고 학자 개인의 차원이 있습니다. 개인이 볼 때, 혹은 사회가 볼 때 어떤 가치가 중요한지가 있는데, 여기서 사회문화적인 차원은 또 세부적으로 나눠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제도적인 규범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약속을 해서 법률이나 규 칙을 통해 제도적 규범을 만들어놓았는데, 그 규범에 의해서 교육가치가 생겨나는 것이 죠. 그 다음에는 좀 더 분산이 되어 있는 사회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요구하는 가치가 있죠. 그리고 세 번째는 일반적인 문화적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죽 전통적으로 이어오면서 개발하고 있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이 세 가지 사회문화적 차 원의 교육가치가 어디서부터 나왔고 누가 그것을 주장했느냐 하는 소위 주체의 문제가

170 나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인차원으로 넘어가면 주로 개인의 욕구입니다. 개인이 무엇을 희망하느냐, 갖고자 하느냐... 그래서 이것을 우리가 두 가지로 갈라서 생각할 수 있어요. 교육목표를 정할 때 이런 가치를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좀 더 구체화하는 수 준으로 내려옵니다. 그러면 이걸 공식적으로 목표를 정하는 게 있고 비공식적으로 사람 들이 받아들이는 목표가 있습니다. 예컨대 제도적 규범으로서 교육에서 공식적 목표는 어떤 것을 추구하느냐, 교육제도입니다. 교육제도를 볼 때 예컨대 인간의 지적 능력을 키우겠다, 이게 중요한 교육가치고 그것을 목표로 삼아 공식적으로 그것을 학교에서 제 정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지적 능력을 키우고자 한다 이렇게 주장할 거 아닙니까. 그 다음에는 정서적인 특징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어가겠다 하는 것이 있을 거고, 좀 더 구 체적으로는 직업적인 기능, 스킬을 키워주는 것이 좋겠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이런 것이 필요하니까... 이런 것인데 이 비공식적인 부분으로 넘어오면 이 비공식이라는 것은 누가 딱 정해놓고 학교에서 이런 것을 추구한다고 문서화하거나 정부에서 정책을 발표할 때 내놓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은연중에 서로 공유하고 있는 목표라 하겠습니다. 그것을 제 도적 규범과 관련해서 사람들이 제도교육을 받을 때에 추구하는 자격훈련입니다. 어떤 훈련을 받아서 자격을 갖고 싶다. 그런 것이 은연 중에 하나의 규범으로 나와 있습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고 규범입니다. 그 다음에 사회적인, 분산적인 욕구라고 하는 것은 사회가 좀 더 넓은 의미에서, 넓게 퍼져서 이런 것을 추구했으면 좋겠다 하고 제시 하는 것이 사회발전입니다. 우리가 교육을 열심히 시킴으로써 이 사람들이 활동을 열심 히 해서 사회를 발전시킨다는 것이죠. 과학기술개발을 진흥하고자 한다. 또는 인력개발, 또 일부에서는 교육을 잘 시켜서 정치통합을 하겠다. 이것은 북한 같은 곳에서 여실하게 나타나는 교육의 목표입니다. 그 다음에 사회문제를 해결하자. 어린이들 교육을 잘 시켜 서 사회문제가 덜 일어나게 한다던지 이런 식의 것들이 사회적 욕구가 좀 공식적인 목 표로 나타나는 것들인데, 역시 이것이 비공식 목표로 넘어가면 직업적인 기능을 습득하 는 것으로 사회가 요구를 합니다. 예컨대 같은 공과대학에서 학생들을 키워내는데, 공과 대학 교수들이 갖는 생각과 부모들이 갖는 생각, 기업체에서 갖는 생각이 서로 충돌할 수도 있어요.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느 수준에 가서는 공유하는 것이 있어요. 뭐냐 하면 더 직업적인 기능을 습득해라, 취업을 잘 할 수 있게 하라, 이런 것들이 은연중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 것이 일종의 분산된 사회적인 욕구입니다. 그 다 음에 문화적 가치라고 하면 바로 이 홍익인간 이 우리 교육 목표에 나와 있거든요. 그런 가 하면 철학이나 심리학에서 자아실현, 도덕적 수양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런 것은 일종의 문화적 가치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이 추구하는 문화적 가치는 비공식적인 측면에서 보면 지위를 얻고자 하고 권력을 얻고자 하고 부를 얻는 수단으로서 교육을 생각한다는 말이에요. 개인적인 욕구로 넘어가면 역시 개인 자아를 실현하겠다던지 지위 를 상승하겠다던지 하는 목적적 가치와 수단적 가치 다 있습니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보면 어떻게 해서든 졸업장 얻어서 면허 취득하고 출세하고 권력과 부를 얻는다는 식으로 간다는 말이에요. 그러니 그 주체가 전체 사회일 수도 있고 제도

171 권 안에서 교육 정책을 만들거나 교육을 운영하는 사람일 수 있고, 그 다음에 교육을 받 는 수혜자, 부모일 수도 있고 학생일 수도 있고, 그것이 사회일 수도 있고 개인일 수도 있고 그것을 우리가 하나씩 분리해서 설명하면 정리가 될 거 같습니다. 이규미 : 저는 이덕환 교수님 전화를 받고, 이 모임의 성격이 현안 문제나 이전의 지식과는 달리 우리가 정말 생각하는 것을 나누자 하셔서 매력을 느꼈구요. 그래서 제가 혼자 개인적으 로 도대체 교육이 나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생각을 해보니까 저는 지 금 제가 갖고 있는 것이 작던 크던 제가 굉장히 건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건강 의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 생각을 했어요. 그게 아마 교육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집에서부터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사랑의 힘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그것 말고 그런 힘 말고도 또 뭔가가 있는데 그것은 역시 학교에서 배운 것들일 것이라는 생 각이 들면서 다시 정리를 해봤어요. 교육이라는 말이 한자로는 교 가 가르친다는 거고 육 이 기른다는 거잖아요. 가르친다는 말은 문화유산을 전수받는다거나 지식을 전수받는 것이고, 기른다는 것은 인성 교육의 문제인데, 이것을 가정도 그렇고 학교도 그렇고 다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둘 다 내게 필요했고 중요했구나, 그리고 이런 것들이 조화 되면서 내게 도움을 줬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교육의 주체를 보면 학교는 교 의 부분에 더 비중을 두게 됩니다. 물론 두 가지 다 하구요. 거창고등학교는 육 을 굉장 히 강조하셨던 거구요. 그 다음 가정은 육 의 부분을 강조하는데, 최근에 제가 뭐가 문 제냐 생각해봤더니 우선 공교육 방향이 실종된 것 같아요. 공교육의 목표는 국가의 목적 과 맞추어서 국가가 정하게 되어있죠. 그런데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이게 개인적인 차원 으로 오고 또 지금 학교도 그렇고 사교육이 번창하는 이유도 교육의 목표가 어떤 자기 에게 지나 권력이나 부를 줄 어떤 기관의 선발기준에 맞춰지고 있는, 그런 게 요즘 교육 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오히려 공교육보다 사교육을 선호하고 이런 문제가 생기고 있는데 이 기준이 왜 또 문제가 되느냐면 인간을 도구화하고 기준이 계속 변화하고 있 기 때문에 우리에게 혼란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적 자체가 교육의 주체로부터 혼란 스럽게 가고 있는 것, 그리고 공교육의 목표가 우리에게 공감을 못 일으키고 그것이 무 언인지도 우리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가정이 나 학교나 두 아주 중요한 교육 주체가 육 에 대한 관념들이 점점 흐려진다는 겁니다. 지식을 마구 밀어 넣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져야 하는 가치나 덕목 이런 것 을 키워주지 못하는 게 오늘날 교육의 문제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최재천 : 세 분 선생님들 말씀을 들으면서 김형규 선생님이 뭔가 말씀을 못마치신 것 같은 느낌이 저는 드는데요, 주체 이야기를 한 번 해보시면 어떨까 싶어요. 왜냐하면 얼마 전에 저도 대담을 하는데 누군가 제게 대학의 주인이 누굽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묻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담담하게 학생도 직원도 아닌 교수라고 했다가 논쟁이 좀 붙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지금 선생님 말씀 던지신 걸 보니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172 고 말씀하신 거 같아서... 김형규 : 이제 그게 같은 문제를 놓고도 학생 입장에서 보는 것과 학교 입장에서 보는 것, 교사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이 같을 수가 없거든요. 그리고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교육의 설립 주체들, 예를 들어 특별한 종교를 가진 학교에서의 교육목적이 따로 있을 테고요. 그것 이 당연히 학부모들이나 학생의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죠. 그 다음에 교육을 시키 는 목표 자체가 학생들을 도구화시키기 위해 수단적으로 이용하는 건 아니지만 학생들 은 교육을 받음으로써 취직을 쉽게 하거나 부를 얻을 수 있는 그런 것을 원한다면 사회 가 그런 것을 제공해야 하는데, 학생들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이를테면 기업에서 요구 하는 것이 있을 수 있거든요. 제가 보기엔 그런 것들이 전혀 합의점이 없는 것 같아요. 지금 교육을 가지고 이야기할 때 자꾸 겉돈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김경동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현실적으로 비공식적인 목표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교 육을 공급하는 쪽에서는 공식적인 목표를 자꾸만 이야기한다는 말이죠. 학생들은 그 사 이에서 혼돈스러워 한다는 거죠. 전혀 양보가 없는 거 같아요. 컨센서스가 이뤄지지도 않고 있고, 이뤄질 수도 없어요. 공급자의 개념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죠. 설립 주체 일 수도 있고 교사일 수도 있고 교사주체일 수도 있죠. 학생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그것 을 수용하는 사회의 단체, 기업도 마찬가지고.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고 서로 남 탓을 하는 것 같아요. 기업은 학교 탓하고 학교는 정부 탓하고... 그런 분위기로 해서 교 육이야기만 나오면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서로 탓만 하고 컨센서스도 없고... 제 가 보기엔 다 옳은 이야기만 합니다. 틀린 이야기가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전혀 다른 의미의 옳은 이야기를 하고 있고 전혀 합의가 안되고 있거든요. 이게 굉장히 어려운 일 이에요.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교육에 관한한 자꾸 겉돈다 는 인상을 받는 이유가 누구 입장에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교육 공급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 각이 들어요. 과연 교육을 받는 학생의 입장으로 이야기하실 수 있는 분들이 이 중 누가 있겠는가, 또 기업체의 입장에서 이야기하실 수 있는 분들은 누가 있겠는가 싶어요. 교 육을 공급하는 분들끼리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야기는 쉽게 될 수 있죠. 그런데 그게 과 연 무슨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결국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고 남 이야기하게 되고 결 국 우린 잘하고 있는데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든지 하는 결론이 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전 처음부터 그런 걱정이 들어서 누구의 관점으로 이야기할 것인가 하는 말씀을 드렸던 겁니다. 김경동 :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일단 국민국가 체제에 들어가서는 교육의 핵심주체는 국가였 습니다. 국가가 공교육을 한 겁니다. 가정교육도 있고 요즘은 사회교육도 번창하고 있는 데, 국민국가 체제에 들어서는 국가가 교육의 목표를 세우고 교육정책을 내놓고 공급자 의 관점에서 이런 교육을 해야겠다 이렇게 해서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국민의 의식이

173 처음부터 좀 더 민주화되어 있고 잘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사회에서는 국가조차 도 중앙집권적 국가가 아니고 예컨대 미국 같은 곳에서는 교육의 상당 부분을 정책에서 시작해서 교과서까지 지방에서 다 하거든요요. 요즘 우리가 교육 지방자치한다고 해서 난리치고 있는데 정말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겁니다. 여하튼 지방단위에서조차도 역시 정부가 국가를 대신해서 지방정부가 시민들의 의견을 규합해서 어느 정도의 합의를 만 들어서 교육정책을 시행해가는 걸로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조차도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죠. 그러나 우리는 일찍부터 국가가 주체가 돼서 교육을 제공하고 방향을 제시하 는 걸로 되어 있었는데, 갑작스런 민주화 과정에서 국민의 의견이, 소위 수요자의 의견 이 너무 지나치게 등장하면서 국가가 갈팡질팡 자기의 방향을 제대로 못 잡게 된 겁니 다. 그러니 국가의 대한 신뢰도 없어져버렸고, 국가가 아무리 정책을 내봐야 소용없는 거고 그러면 이제 공급자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하는 거죠. 여기엔 좀 묘한 데가 있는데 공급자 측면에서 보면 국가가 돈을 주기 때문에... 사립학교조차도 돈을 받 고 있잖아요. 그러니 눈치를 봐서 국가가 하라는 대로 하려고는 하는데 수요자 입장에서 보면 이게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겁니다. 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봤 을 때 말입니다. 여기서 충돌이 생기거든요. 그럼 중간에 있는 소위 교육 실천자들, 우리 같이 교육하는 사람들은 중간에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좀 더 이상적인 차원에서 이야기할 때는 공급자와 수요자를 같이 보고 해야죠. 같이 보 고 한다는 이야기는 그것이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상적인 가치를 이 야기할 때 교육은 그 자체가 좋고 즐거운 것이다, 해놓으면 인격이 건강해지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배운 사람에게도 이야기하고 공급하는 자들도 그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국가도 그것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 목표는 틀림없어요. 그런데 지금 그것은 어디론가 다 없어져 버리고 다 자신의 이해와 관심만을 먼저 내세워서 밀고 나가기 때문에 교육이 완전 갈등 속에 서 허물어져 가고 있는 겁니다. 늘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두 개의 바퀴가 있 는 짐수레를 상정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적재함, 짐칸 에는 짐이 꽉 차 있어요. 넘쳐납니다. 그런데 바퀴 두 개가 다 망가졌어요. 그럼 이거 수 레 구실 못한다는 겁니다. 이 바퀴 두 개는 그럼 뭐하냐. 짐칸에 들어가 있는 엄청난 짐 은 지식입니다. 책 가지고 자꾸 외워서 공부한 내용들은 머릿속에 터져나가게 들어가 있 어요. 그럼 이 두 바퀴는 뭐냐. 일반적으로 말하는 창의력이라든지 독창성을 육성하는 측면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교육이 단순한 흡수만이 아니라 자기가 연구하고 판단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어야 하죠. 그런데 이것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인간관계 이 런 것을 키워주는 교육, 이것이 학교에서 다 망가지고 있어요. 학원에서 창의성 키워주 는 교육이 어디 있습니까. 시간 낭비고. 도덕성, 창의성 이런 것엔 관심 없습니다. 그러 니 수레바퀴 두 개는 완전히 망가져 있고 짐만 잔뜩 실어놓은 수레가 교착상태에서 꼼 짝도 못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 그러니 우리가 근본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가 정교육에서부터 시작해서 교육의 가치나 목표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기 전까지는

174 좀 엉망이라는 겁니다. 윤대희 : 가정교육, 사회에서의 교육 등 말씀하시는데 어찌 됐든 이야기는 학교로 모아질 수밖에 없나 싶어요. 어쨌든 학교의 역할은 막 자라나는, 미완의 학생을 기성세대로 배출해내는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전 기능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고 봐요. 방금 말씀하셨듯 교 육의 가치가 목적적 가치와 수단/도구적 가치가 있다고 하셨는데, 두 개가 막 엎치락 뒷 치락 하다가 결국은 목적적 가치가 있어도 도구적 가치가 교육을 지배한다는 말씀 하셨 는데 동감을 합니다. 우리가 교육을 한다면 학교, 가정 어디서든지 지덕체라는 말 우리 많이 하잖아요. 지와 덕과 체가 조화를 이룰 때 저는 현대 교육에 있어, 아까 과거 말씀 도 하셨지만 과거야 어쨌든 출세를 하면 도덕적으로도 완벽한 사람으로 봐줬던 것 같아 요. 그들이 도덕에 대한 책을 달달달 외운 사람들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래 서 지덕체가 밸런스를 이뤄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정보화 사회다, 지식 기반의 사회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과정에서 지 쪽만 부각이 되어버리는 거죠. 제 가 여기다가 문제제기를 하자면, 교육이 도구화되어 있는 것만 일반적인 이야기인 거 같 아요. 그것은 그런데 사는 과정에서 어떻게든 가지 않는가, 만들어질 것 같고.아까 국가 가 주체라고 했는데 거기에 동감을 합니다. 지금까지 국가는 각 공화국에서 각자 자기들 에 맞는 것에 맞춰서 멀쩡히 힘들었지만 있었던 많은 분들이 겪었던 중학교 시험도 무 시험제로 바뀌었구요. 고등학교 평준화도 했고, 이것은 저는 컨센스와 아주 롱텀의 홍익 인간 이라는 거창한 단어에 대한 고민 없이 만든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 전으로 더 내 려가면 일제치하라던가 미군정에서는 어떻게 하면 이들을 잘 통치할까를 위한 교육시스 템이었을거고 이렇게 변화를 했을텐데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도구화에 대 해서는 누구나 다 이야기 가능하고 발전적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입니다. 그렇지 만 현대 이 시점에 있어서 아까 말씀드린 지덕체라는 것의 밸런스를 이룰 때 더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고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라면 교육의 인간화에 대한 것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게 아주 핵심적인, 더 큰 고민 아닐까. 사교육이다 이런 것은 도구화에서 이야기가 되는 거고, 어느 대학은 가면 잘 먹고 잘 살더라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아무리 교묘하게 평준화를 시켜봐도 사교육은 내 자식은 돈이 있는 이상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고, 그것을 이겨낼 방법은 현실적으로 찾기 어려운 것 아 닌가 싶어요. 그렇다면 오늘 이슈를 아까 이덕환 선생님께서 제안하셨 듯 더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은 뭘까, 전 그것은 대상이라고 아까 김형규 교수님 말씀하셨는데, 우 리 모두가 주체 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물론 도구화 교육으로 놓고 생각을 해보면 주 체는 여러 주체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교육의 어떤 인간화라는 것을 목표로 해서 고민 을 할 때 우리 전체가 추구하는 것이라면 주체는 우리 전체가 아닐까.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저 자신도 꼭 공급자 입장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세대학교 교수의 입장이 아닌, 그런 입장에서 생각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교육의 인간화, 저는 그 것이 뭔지 모르겠어요. 엔지니어라 툴을, 도구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

175 고민을 좀 하면 이덕환 교수님 말씀에, 아까 김교수님 말씀 하셨듯이 지금 패하고 있는 쪽을 어떻게 레이즈시킬 것이냐 하는 부분에 포커싱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덕환 : 좋은 말씀이신 거 같은데 교육의 인간화의 측면, 교육의 수단적 도구로서의 측면은 좀 제쳐놓고 교육의 인간적인 측면, 인간화된 교육이 뭔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김규원 : 넘어가기 전에 주체라는 말에 대해 듣고 보니 선생님께서도 좋은 비유들 들어주셨는데, 제가 교직과목 맡아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첫 시간에 여러 분들이 생각하는 교육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우화를 하나 빌려 이야기하라는 과제를 줬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한 가지 소개를 드리려 하는데, 당나귀를 팔러 가는 아버지와 아들 이야 기가 있잖습니까. 당나귀가 어찌 보면 교육현실인지 피교육자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와 아들은 학부모도 되고 교사도 되고 학교도 되겠고 심지어 교육부까지도 갈 수 있겠 습니다. 그런데 가다 보면 왜 안 타고 가느냐는 사람들이 있죠. 또 아들 태우고 가니까 왜 아버지는 태우고 가지 않느냐, 아버지 태우니까 아들 태우지 않느냐 하는 사람들이 있죠. 나중에는 두 사람 다 타고 가다 누군가 불쌍한 당나귀라고 이야기하니 당나귀를 둘이 메고 갑니다. 그 우스꽝스러운 것이 우리 교육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까 교육 주체 입장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좋은 질문입니다. 기업체의 요구, 학부모의 요구, 설립 자의 요구, 기관의 요구 많지 않습니까. 이 동네 저 동네에서 그런 식으로 한 마디씩 한 것이 우리 교육을 멍들게 한 겁니다. 물론 그 요구들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교육이 무엇이냐는 담론을 하는 주체와 요구를 하는 주체는 구분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최근에 우리 학교에서 교양교육 개편이 있었는데, 교양교육이 무엇이냐는 것에 대해 알다시피 중구난방이고 갑론을박입니다. 체육 이런 쪽 에서는 심지어 스키같은 것을 교양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소위 현대인으로서 취미생활, 레저하는 것을 교양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인문사회 이쪽 분들은 이런 걸 허용하지 않습니다. 또 기업에서는 엑셀 등 도구적 기술을 요구하지 않 습니까. 그런데 교육을 계속 담당하는 교수가 하나의 집단질서 차원에서 그 문제를 정리 할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어떤 사람의 가치관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를 떠나서 여하튼 사회의 구조 속에서 계속해서 그러한 교육이라는 장에서 수십 년동안 살 고 고민하고 그 바탕 위에서 연구해고 나름대로의 집단 질서 체계를 구축해왔으니까 교 육이 무엇이다는 것에 대한 어떤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재천 : 판을 엎는 차원에서 제가 삐딱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좀 전에 선생님께서 교육 주체 가 국가가 됐다고 하셨죠. 엄연한 사실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여전히 목적 가 치로서의 교육하고 수단적 가치로서의 교육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어요. 국가가 주체가

176 되는 순간 목적적 가치로서의 교육은 사라져 버리는 거 아닙니까? 기껏 해봐야 국가가 해주겠노라고 입에 침 바른 거지 그 순간부터 교육은 일방적인 것이 되는 거 아닙니까? 서지문 : 아까 김선생님이 굉장히 생상한 리뷰를 들려주셨는데, 짐 때문에 바퀴가 찌그러지는 것 은 사실인데, 사실은 원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짐이 아니고 연료가, 그러니까 주입되는 지식이 주입식으로 주입되지 말아야만, 교육받는 사람들에게 그 지식이 짐이 아니라 연 료가 되어야지 짐이 돼서는 안 되는데 현재 어디에서나 짐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나라는 교육의 목표라는 것을 저도 어렸을 때 생각을 해보면 저희 어머니가 매일 공부 해라 공부해라 그러셨어요. 심지어는 공부하는 게 효도다 하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 말에 대해 굉장히 반발심을 느꼈었어요. 그런데 가끔가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네가 대학을 다니면 뭐하냐 사람이 되어야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러니깐 수단으로서 의 교육과 목적으로서의 교육을 둘 다 마음에 가지고 계시는 건데, 수단으로서의 교육이 더 급했기 때문에 공부해라 공부해라 그렇게 말씀하신 거구요. 가끔은 목적으로서의 교 육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구요. 국가가 교육을 떠맡는다면 목적에 치중하 거나 사실 국가에서 제일 중요한 게 모범시민을 길러야 하는 것 아닙니까. 물론 기능인 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기능인이 많아도 시민들이 다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국가공동 체를 생각하지 않으면 그 국가는 안으로 골병들어 성장을 못하게 되는거죠. 우리나라는 국가가 너무나 수요자의 취향에 맞추는 교육을 하려다 보니까 교육이 목적이 아니고 수 단이 되어버렸는데요. 영국에서는 굉장히 많은 비판과 반성의 대상이 되었지만 19세기 까지, 사실 20세기 초까지도 모든 퍼블릭 스쿨의 목표는 젠틀맨을 길러내는 거였어요. 그러니깐 전혀 기능인이라는 생각이 없고, 교육하는 목표 자체가 젠틀맨을 기르는 거였 다는 거죠. 그 젠틀맨이라는 것은 사실 무위도식하는 사람만이 그 계급에 속할 수 있었 어요. 대개는 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 먹고 사는 사람이 젠틀맨이고, 그런 사람들만이 젠틀맨 사회에 속해있던 것이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인간을 인격체로서 인 간과 교류할 수 없는데, 자기 생계 급하고 이런 사람은 보게 되면 아무래도 타인을 이용 하게 되고 그렇기 때문이죠. 그래서 젠틀맨들이 그것을 고집하는 게 돈 많은 사람들이 우리만 특권을 누리자 이런 것 보다는 젠틀맨으로서 국가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인데 우 리 사회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이 들어와 가지고 우리 사회를 흐려놔선 안 된다, 우리 사 회에서만 정말로 인격적인 인간 사이의 교류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젠틀 맨을 다른 말로 어 맨 오브 컨버세이션 이라고 해요. 우스운 것 같지만 맨날 말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고, 정말 교양이 있기 때문에 대화를 하면서 교양을 주고받고 그러 면서 그 속에서 인생의 목표라던가 국가에 나아갈 길을 도출해내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어 맨 오브 컨버세이션이라고 한 거죠. 퍼블릭 스쿨에서는, 가령 퍼블릭 스쿨 회고록 이 런 것을 보면 저자가 자기는 자기보다 약한 아이를 때린 일이 결코 없다, 그게 이제 자 신의 퍼블릭 스쿨을 교육의 보람이고 그것이 퍼블릭 스쿨이 자신에게 해준 혜택으로, 내 가 뭐를 배웠고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는 나보다 약한 아이를 때린 일이 한 번도

177 없다 그런 식이었는데요. 우리도 사실 과거를 볼 때 아까 율곡 말씀도 하셨었고, 다산도 우리나라 공부가 과거 위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틀렸다, 그래서 정말 진정한 학문이 되 지 못하고 출세를 위한 학문이 되었다고 얘기하는데요. 지금은 더 말할 것도 없죠. 그래 도 과거를 보는 사람들은 공부하는 텍스트가 굉장히 도덕적인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었 는데, 요즘은 그렇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는 사실 그게 기능인이 되기 위한 지식 교육이 사실은 인격 성장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제대로 교육을 하면 확 실히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미적분 같은 것이 도덕적 주체로서의 성장 에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든 것이 인격적인 성장에 도움이 되는, 아무리 기술적인 교육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가령 건 축가가 건축을 잘 배울 때 그것은 정말 인간을 위한, 인간이 사는 도리에 맞는 건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기술적인 교육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받 으면 인격 성장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모든 사람이 이것과 이것은 별개라고 생각하고, 인격을 가르치면 기능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에 한 외국어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을 만났어요. 그런데 이 분이 학교에 가서 인성교육 시간을 만들었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것에 대해 처음엔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잘 따라왔다고 해요. 전혀 그런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무척 흐뭇하셨다는 거예 요. 그러니 공자가 자기는 배움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배움의 내용이 무엇일까 전 많이 의문을 가졌어요. 공자님이 배움을 얘기하실 때 그것은 어떤 깨달음을 말하는 것인 데 그 깨달음이라는 것이 명상을 하면서 그냥 얻어지는 것은 아니고 서경이라던가 시경 이라던가 하는 것으로부터 지식을 얻으면서 깨달을 수 있었던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 기 능을 위한 교육도 그것이 이것과 대립이 되고 이것을 깎아먹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서 로를 도와서 테크니컬한 교육도 사람이 되는데 밑거름이 되고 사람이 되면 그 테크니컬 한 교육을 더 잘 흡수할 수 있을 겁니다. 이규미 : 수단으로서의 교육과 목적으로서의 교육에 대해서 따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것이 국가 의 목적이든 한 가정의 목적이든 학부모의 목적이든 그 수단이라는 것은 목적을 위해 있는 것 아닙니까? 아마 그 목적에 대한 생각을 아까 인간 이라는 단어가 나오다 멈춰 버렸는데요, 저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교육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인간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교육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한 학년에 3 개 반이 있는 어느 학교에서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전 학부모에게 들었는데, 학년 초가 돼서 학부모들을 모시고 선생님들이 자기가 1년 동안 애들을 어떻게 키울 건지 이야기 하는 자리에서 한 선생님은 내가 우리 반 애들의 수학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겠다고 이 야기했다고 해요. 또 한 선생님은 제가 아이들을 아주 예쁘고 착하게 인성 좋은 아이들 로 키워보겠다고 이야기했대요. 그 자리가 끝나고 학부모들끼리 의사소통이 있었습니다. 수학을 잘 가르치겠다고 했던 선생님반 학부모들은 굉장히 좋아했고, 나머지 선생님반 학부모들은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거냐, 공부 가르치는 것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냐 하

178 고 걱정했대요. 그런데 1년 후에 결과가 나왔는데 물론 3개반밖에 없지만 예쁘게 키워 보겠다고 한 선생님의 반 아이들이 수학선생님도 제일 좋고, 다 좋았다고 해요. 그리고 수학성적을 담당했던 선생님 반에는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걸 학부모 들이 실제로 경험한 거예요. 공부에만 치중하는 선생님보다 학생들의 인성에도 신경 쓰 는 선생님이 더 좋았다는 겁니다. 아까 교수님께서 지식 정보화 사회 말씀을 하셨는데 지식 정보화 사회가 지식만 갖고 사는 사회는 아니고 그 지식을 어떻게 쓸지 알아야 하 고 제대로 된 지식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죠. 사회 나가서 조직생활을 하는데 도 요즘 EQ나 MQ 등을 강조하는 이유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능력보다도 그런 지식을 기반으로 해서 자기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알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끝까지 잘 살고 있는 것을 실제로 보고 있잖아요. 그러면 교육이 무엇을 위해 가 야 하는가는 분명하다고 보이는데, 교육을 하는 공급주체나 수요자들이나 교육에 대한 잘못된 미신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지식이 다 만들어지고 한다는 생각 때문에 다 한 쪽으로 쏠려서 사실은 속을 따지고 보면 다 알 수 있는 건데도 마치 무슨 귀신 씌인 사 람들처럼 잘못된 길을 그냥 가고 있는 거라는 거죠. 그래서 교육이 잘못된 것 아닌가 하 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도재원 : 제가 오늘 모임을 제안받았을 때 참석자를 보니 다 처음 뵙는 교수님들인데, 왜 시골에 서 저 같은 사람을 불렀나,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가르치는 경험을 통 해 제가 가진 생각을 말하라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감히 여기에 토론이나 이런 걸 할 자격은 없습니다. 전문적으로 이론 정리를 한 것도 아니라서 제가 좀 투박하게 말 해도 이해를 해주십시오. 처음에 김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대입 해결책으로 평 준화니 뭐니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는 이런 이야길 들을 때마다 울화가 치밉니다. 이건 해결이 안 된다고 하는데 왜냐, 간단히 설명하면 이조시대 때 뒤로 오면서 78%를 차지 하던 농민들이 누구나 교육받을 수 있는 해방 이후로 물론 여건이나 돈 때문에 안됐지 만... 하지만 교육을 통해 계층 상승 등 사람들의 삶의 질이 낮아진 걸 뻔히 보거든요. 제가 농촌 출신이라 잘 알지만 여건도 좋지 않고 어렵잖습니까. 그런데 여기 저기 억압 되어 있는 그것이 해소가 되는 거죠. 교육을 시키기 시작해서 그런 생각들이 죽 모여서 지금은 출세수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식을 아무리 과외 금지령을 내리고 해도 돈은 있는데 자기 자식을 과외 안 시킬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예전에도 과 외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지금은 더 하죠. 사교육비 줄지 않고 더 늘어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아까 이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차라리 이렇게 할 바에야 지식교육은 사교육에 넘겨주고 공교육은 인간 교육을 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까지 해보았습니다. 저희 학교는 교육목적이 민주 시민 양성입니다. 그 가운데 교육목표가 내 삶을 사는 사람, 정의와 사 랑을 실천하는 사람,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제가 여기서 제일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각자가 다르게 타고 태어난 능력을 최대한 개발해서 그것으로 이 웃과 함께 사는 사람입니다. 제가 30몇 년을 시골에서 선생을 하다 보니 사람이, 이건

179 철학적인 문제기 때문에 제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사람의 능 력이 얼굴이 다른 것처럼 다 다르게 태어나는데 교육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수혜를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희가 수준별 수업을 하는 이유도 그것이 지금 우열반이 다 해서 오해를 사고 잘못 되어 있는데, 능력이 다른 사람이 똑같이 들어가 거기에서 한 시간 내내 아무것도 모르면서 영어 수학을 하루에 다섯 시간 일곱 시간 이렇게 받았단 말이에요. 다 알고 있는데 졸려 하는 사람도 있구요. 그 중 몇 사람 보고 갑니다. 그래서 제가 아이들을 설득했습니다. 내가 교장인데 3사람을 초청했다. 그러면 울라하고 교장선 생님이 추천했다고 좋아해요. 그런데 제가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 녀석밖에 이야기가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한 명하고만 이야기하고 시간 다 다고 가라 했을 때 옆 두 사람은 어떤 기분으로 나가겠느냐, 교장이 초청해서 좋았다고 나가겠느냐 아니면 인간 모멸감을 느끼며 나가겠느냐. 수준별 수업은 그래서 하는 거다, 인간대우하기 위해 하는거다, 그래 서 수준별 수업을 진행해서 아주 잘 진행됐습니다. 그래서 교육개발원에서 한 일 주일 와서 연구하기도 했구요. 제가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교육은 각기 능력이 다른 사람에 게 역할에 맡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 사람들은 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 문에 자기 역할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태어난 그 사람들에게 다 똑같은 교육을 해선 안 되고 각 개인에게 그 사람이 가진 소질을 가장 잘 개발시켜 줄 수 있는 교육을 학교에 서 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교육이 가야 합니다. 그러면 사회정서도 같이 따라줘 야 하는데, 저는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환경미화원과 의사선생님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기술면에서가 아니라 사회생활을 할 때 같은 눈 으로 봐야 한다, 환경미화원은 길거리에 음식물을 치우고 병을 치우는 예방을 하는 것이 다. 의사가 처방 내리는 이런 차원까지 꼭 가진 않더라도. 스웨덴에서 보니까 어떤 사람 이 3대째 대학을 졸업하고 굴뚝 치우면서 살더라는 거죠. 사람을 직업을 보고 판단할 것 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 직업을 가지고 사회에 얼마나 공헌하느냐를 가지고 평가가 되 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짧게 동유럽을 다녀오면서 느낀 것이 물론 그 나라들이 사회 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그렇긴 하지만 대학 박사학위까지 국내에서 하는 것은 국가 에서 모두 책임을 진다고 합니다. 대학 진학률은 20%밖에 안 되는데, 대학 안 가는 학 생은 자신의 머리가 안 되니 자신이 좋아하는 기술을 배워 그 일을 하겠다는 거죠. 그런 데 이런 일을 우리나라에선 3D 업종이라 할 정도로 직업 자체가 그렇게 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다 다르게 태어나는데 그 각자 다 르게 태어난 사람들은 사회를 구성하는데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태어났다 는 겁니다. 따라서 교육 혜택은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야 하고,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 발 휘시켜주는 것은 학교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대희 : 한 가지 여쭙고 싶은게 우문일 수 있는데, 거창고등학교에서 몇 명 졸업시켜서 소위 명 문대학이라는 곳을 몇 명 보냅니까?

180 도재원 : 저희는 그런 통계를 잘 말 안합니다. 기자들이 그런 질문 하거나 학교에서 이름난 사람 이 몇 명 있냐고 물으면 통계 안낸다고 하고 이야기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말씀드 리겠습니다. 150명 졸업을 해서 서울대 연고대를 62명 정도 갑니다. 윤대희 : 제가 그것을 여쭤본 것은 다른 선생님 말씀대로 지금 굉장히 우리 마음에 와닿는 좋은 말씀을 해주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거창고등학교 하면 그런 이야길 하는 것이 아 니고 명문대학을 보내는 고등학교라고 말한단 말이죠. 기자나 학부모에게 이야기 나오는 것이 그렇게 되어 있고. 여기가 문제거든요. 지금 선생님은 제가 그런 수치를 물어보는 것 자체가 불쾌하실 정도로 중요한 것을 생각하고 계신데요, 다른 사람들은 그것에 더 관심이 있단 말이죠. 아까 우리 용어에서 매치시킨다면 도구화되어 있는 교육, 이것에 대한 이야깁니다. 저도 선생님 말씀처럼 입시문제 이런 것을 복잡하게 하면 할수록 사교 육이 더 늘어날 것 같고 문제는 어쨌든 더욱더 심플하게 가줘야지만 인간화라는 쪽으로 가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정부가 시험 보는 방법까지도 다 이야기하다보니 더 어 려워진 것 같아요. 정부가 답을 제시했는데 그 답이 사실은 거기에 못 미치는 것이고... 그런데 도구화에 의한 문제점은 어쩌면 학교가 아닌 더 바깥쪽에서 봐줘야지만 좋은 쪽 으로 가줄 수 있는, 해결하긴 힘들어도 그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방 금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셨듯 거창고등학교에서 실현하는 좋은 것, 이 쪽이 어떻게 되느 냐 하는 것을 이야기하려면 교육에 대한 어떤 제도에 대해 좀 더 원칙적인 접근이 필요 할 것 같아요. 전 대학교육도 일반교육처럼 되어버린 게 문제인 거 같아요. 원하는 대학 을 다 가버리는 건데, 초중고 여기까지를 더 생각할 때 좀 더 간소화시켜서 접근을 할 때 우리가 원하는 접근이 나오는 것 아닌가 싶어요. 선생님 말씀하시는 것처럼 애들이 다 다르니 다른 교육 시켜야 한다는 것이 단순하고 맞는 말씀인데 그것을 못하기 때문 에 할 수 있게끔 끌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도재원 : 제가 한 마디만 설명하자면 제 한 해 선배인데, 그 때는 졸업생이 50명-70명 이럴 때였 습니다. 그런데 그 양반이 서울공대를 나와서 포철회장이 되었거든요. 거창같이 조그만 도시에서 포철회장이 되었다 하면 사회적인 이슈가 되죠. 그 양반이 졸업한 초등학교에 서 거창초등학교 42회 누구누구 포철회장 됐다고 플래카드를 만들었습니다. 또 내가 봤 던 사람은 중학교가 거창중학교인데 거창중학교 7회 딱 걸고 하는 겁니다. 저희는 안 걸 었습니다. 시민들도 막 거창고는 되게 도도하네, 이런 소리 하고 학생들도 자꾸 말이 나 오니까 왜 우리는 안 거냐고 묻고, 그래서 제가 강당에서 거창고에서 왜 플래카드를 걸 지 않는지 훈화를 했습니다. 서울대 연고대 되는 것도 저흰 절대로 걸지 않습니다. 대학 합격자 명단을 작성할 때에도 가나다 순으로 작성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했 죠. 내가 걸지 않는 이유는 우리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이 제 뒤를 죽 따라 와가지고 대 학만 고려대학교를 갔어요. 자기는 그 시골에서 농부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내가 살던 이 계층을 돌아보겠다는 생각에 농대로 갔습니다. 그리고 졸업하고 바로 부인

181 도 잘 만나가지고 돌아와서 지금 농사짓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졸업하고 농부로 들어올 때 그 때 플래카드를 못 걸었다, 누구누구 위대한 농부 되다, 그것을 못걸었다. 그런데 지금 포철회장 되었다고 이걸 걸면 포철회장은 이렇고, 농부는 이렇다는 것이 되고, 우 리 학교 가진 교육이 흐트러진다, 그렇기 때문에 안 건다. 너희도 알지 않느냐. 서울대 들어갔다고 붙이는 걸 봤느냐. 저희는 제 생각이 맞고 틀리고가 문제가 아니라, 직업이 라는 것에 물론 차이는 있지만 그걸 그렇게 우리나라처럼 심하게 해서는 대학 입시도 힘들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김경동 : 국가가 개입함으로써 어떤 수준에서는 교육이 잘되기도 하고 잘 안되기도 합니다. 근본 적으로 따지면 정책을 수립하는 사람과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 그리고 수혜를 받는 사람 의 가치관이 다 다르겠죠. 교육에 있어 국가의 역할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 다음에는 그 목표가 국민의 합의를 얻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현재까지 우리 나라에서는 없었던 것 같아요. 국가가 일방적으로 하다보니까 나중에는 각자 자기의 이 해관계를 교육에 투영시키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국가는 다양한 입장들에 휘둘리게 되 고, 또 다른 반발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 국가가 개입하면 잘 안 되는 것은 맞는데, 국가 가 해야 할 일도 분명히 있다 이겁니다. 특히 시민사회는 불안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 합의를 도출하는 작업을 국가가 해줘야 합니다. 합의를 도출하고 그거를 한 다음 엔 맡기면 됩니다. 맡기면 그 다음엔 감독만 하면 됩니다. 잘못된 것을 시정해주면 되는 거죠. 이대일 : 그런데 제 생각에는 합의라는 측면에 중요한 내용, 다시 말해서 아까 선생님들이 제기하 신 교육적인 비전이라고 할까요, 이런 것의 결여가 현실적인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 닐까 합니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겠지만 소위 산업혁명 이후 새로운 가치 지 향으로서 우리 자신이라든지 피교육자라든지 사회구성원으로서 무엇을 지향해서 어디로 나아갈지에 대한 컨센서스는 전혀 없는 거 같습니다. 이러한 산업혁명의 물질 중심의 가 치 속에서 교육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신분 상승 내지는 사회적인 성공, 혹은 부와 권력 의 획득 이런 것의 수단으로만 성립이 되어 있지, 사실 교육이 아까 말씀하신 목적적 교 육 혹은 도구적 교육의 양면성의 균형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봅니다. 가령 저희 대학만 하더라도 보니까 대학 서열은 취업률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하면서 각 학과마다 취업률에 신경을 쓰라고 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취업률이라고 하면 학원에 가서 교육을 받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저는 디자인을 전공하다 보니 졸업하면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학생을 길러내라고 하는데 사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그쪽에만 포인트를 맞춰 교육을 시킬 수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럼 도대체 우리 사회 에 학원은 왜 있고 전문대학은 왜 있고 대학은 왜 있느냐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대학의 기능과 목적은 무엇이며 학원의 기능과 목적은 무엇인가. 학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대학에서 하라고 하면 이것이 대체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까 두 선생님

182 이 말씀하셨지만 국가에서 할 일이라는 것은 소위 공교육을 통한 교육적인 비전을 어디 둘 것인지에 대한 컨센서스가 우리 사회에서 있어본 적이 없지 않았나, 그런 교육적 지 향을 어디에 두고 어디로 몰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아까 도선생님 말씀하셨지만 나머지 는 일종의 수단적인 개념으로서 교육을 쫓아가지 않을까 저는 그런 생각 갖게 되거든요. 김경동 : 제가 받은 인상인데요, 사실은 기업체에서 요구하는 인력이 어떤 인력이냐, 바로 오면 직장에서 학교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써먹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원하진 않습니다. 기 업체가 요구하는 것은 어차피 자기들이 사람 데려오면 바로 쓸 수가 없기 때문에 트레 이닝이 필요한데 거기 들어갔을 때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바탕이 있느냐 없느냐 그걸 대학에서 제대로 해주길 바라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기업체는 기술자만 길러내라 이렇게 생각한다고 보는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겁니 다. 이대일 : 제가 지금 예를 잘못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야기 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교육이 어디를 향해서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컨센서스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김경동 : 우리가 뭔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도 말씀 드렸던 거고, 이걸 바로잡아서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가 나와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이런 토론을 안 해본 것은 아닙니다. 많은 장소에서 많은 이야기가 나온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문제 는 뭐냐 하면 막 모여서 오려붙이기 하고 있잖아요. 이렇게 뜯어놓고 결과가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그게 현실이니까. 그러나 진짜 교육부가 돈 들여서 뭘 하려면 이걸 받아들여서 국민적 합의를 위한 포맷을 만드는데 직접 투입해야 합니다. 하고 그걸 구체적으로 국민적 합의를 얻는 과정에서 이것이 절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러기 때문에 그런 과정을 우리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부터 우리 가 고쳐야 하는데 분명히 우리는 제시할 것이 있습니다. 교육의 방향이라든가 비전도 제 시할 것이 있구요. 외국에서도 수없이 토론해서 만들어놓은 규정이 있어요. 그걸 얼마든 지 우리가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그것을 제대로 하자고 해서 실현해본 사람이 없습니다. 대통령들도 선거 전에는 막 이야기하다 당선되고 나면 그 다 음부터 한 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게 문젠데. 우선 그 말씀 드리고. 그럼 교육의 비전 이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느냐 그것을 제가 여기서 일일이 드릴 필요는 없습 니다. 하지만 그 중에 핵심은 뭐냐. 아까 인간화라고 하셨는데, 교육이 모두 비인간화하 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까. 그러면 교육의 인간화는 목적적 가치에서도 인간주의 적인 목표가 나와야 하고 수단적인 과정에서도 교육 자체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합 니다. 또 기술을 배우는 것 자체가 인간을 위해서 하는 거고, 그것이 또 써먹는 사람도 인간적 관심을 가지고 써먹는 것으로 하면 기술 배우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씀 하셨는데, 바로 그겁니다. 교육을 받는 주체나 제공하는 주체에 그런 생각

183 이 들어가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입니다. 처음부터 생각 없는 사람들이 아무리 해봐야 인 간화가 될 수가 없습니다. 도선생님처럼 처음부터 인간적인 생각을 가지고 교육에 임하 는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는 프로그램 아무리 똑같게 해봐야 차이가 없습니다. 이걸 한 번도 제대로 꾸려서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을 우리 국가가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 문 제입니다. 김규원 : 인간화라는 주제가 나오니까 덧붙여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이, 사실 우리가 근대 교육의 발원은 르네상스부터가 아닙니까. 신( 神 ) 중심의 세계에서 인간 중심의 세계로 관심을 옮긴 것 역시 인간화적 측면이죠. 그런데 그것이 소위 근대 국가의 성립과 함께 말씀하 셨던 것처럼 국가가 국민을 키우기 위한 수단으로서 교육제도가 성립되었다는 거죠. 그 럴 때 사회화 문제하고 인간화 문제가 서로 모순과 대립 속에, 정반합의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법률로, 정책으로 구현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국가가 처한 환경변화에 따라서 교육의 목표나 기능도 분명히 달라져야 하는데 소위 산업화 단계에서 필요했던 교육과, 국가적 차원에서 필요했던 교육과, 지금 탈현대 시대에서 필요한 국가적 차원에 서의 교육이 분명히 달라졌다고 봅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나라는 국가적 단위에서는 근대적 패러다임 속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이미 사회 구성원들은 시민 사회의 성숙이라 든지 민주화라든지를 통해서 오늘날 탈현대적 상황에 적합한 교육을 제공받길 요구하는 데 국가가 정책이나 지원 측면에서 그것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는 거죠. 최재천 : 그 점에서요, 저는 오늘 이덕환 선생님이 우리 정책 수립하는 쪽으로 가지 말자고 분명 히 말씀하셨기 때문에 작심하고 삐딱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자꾸 이야기가 나오는 인간화, 이걸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잖아요. 중요한 건데 굉장히 어려운 주제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글 쓰는 게 그런 걸 해보겠다고 덤비는 건데, 시장이 변화 하고 시대가 변화하는 속에서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어요. 단도진입적으로 들이대고 싶 은 게 하나 있는데요, 차라리 우리 솔직히 이야기해서 교육은 어차피 일방적인 건데, 동 물을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동물 사회에 교육이 있나 하는 것을 관찰한 겁니다. 기 본적으로 동물 사회에 학교가 없죠. 그런데 어미새가 새끼새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는 과 정은 교육이라고 봐도 되는 과정인 것 같아요. 굉장히 비슷하거든요. 실제로 날아보라고 하고 건너편 가지에 앉아 지켜보거든요. 떨어지는 거 보면서도 또 해봐 또 해봐 하는데 그런 예를 제외하고는 가르친다기 보다는 그냥 하고 있으면 옆에서 배우거든요. 침팬지 어미가 계속 흰개미굴을 쑤시고 있으면 그거 옆에서 보지도 않는 척 하다가 어느날부터 자기도 쑤시고 먹어요. 자, 그러면 아까 선생님 말씀하신대로 목적적 가치로서의 교육이 어떻게 보면 제일 진짜 교육처럼 느껴는 지는데 그거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이미 우리 가 교육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새끼새가 엄마 난 안날고 집에서 뭉개고 살아볼래 그런다고 엄마가 그래 너는 니가 선택할 수 있는 거니까 까짓것 너는 나는 법 배우지 말라 그러면 안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럼 악착같이 나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

184 거죠. 저는 오히려 목적적 가치로서 교육이라는 것을 때려치우자는 데 국민적 합의를 모 으면 안 되겠냐고 생각해요. 혹시 거창고에서 도선생님 그동안 해오신 것이 막연하나마 우리가 이야기하는 목적적 가치를 추구하신 건지, 아니면 선생님 하신 일을 잘 다시 분 석해보시면 도구적 교육을 하신 건 아니었는지요. 그냥 학생들 모아서 잘 살게 해주고 인간답게 살아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나는 한 명 한 명에게 세상을 살아갈 기가 막 힌 수단을 쥐어주겠다 해서 이거야 말로 악착같은 교육을 시킨 결과로 그 아이들이 잘 된 것은 아닌지요. 교육기본법을 보면 목적적 가치로서의 교육에 대한 내용이 없다고 봅 니다. 홍익인간의 이념이라는 것도 우리가 다 같이 잘 살기 위해 걸어놓은 이념이지, 모 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그 중에서 나는 인격 도야 안하겠다고 하는 사람 은 어떻게 할 것인지, 그것을 안 된다고 하면 민주주의의 권리와 의무 양 쪽을 다 해야 한다는 것으로 강압하는 거거든요. 이 문장을 다 읽어보면 이 중에 사실상 호기심만 가 지고 배우기 위해 배우는 것을 어떻게 해주겠다는 내용은 제 생각에 전혀 안보입니다. 그것은 차라리 침팬지나 하는 짓이고 우리가 애당초 교육을 해야겠다고 덤벼들었으면 목적적 가치로서의 교육은 이상적이긴 한데 현실에는 없는 것이니 빼버리고, 거창고에서 혹시 제가 분석한 게 맞다고 하면 아예 수단적 가치로서의 교육을 제대로 하면 이게 결 국은 목적적 가치로서의 교육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도 달성해주는 것은 아닌가 싶어 요. 대단히 위험한 발언처럼 들립니다만... 도재원 : 결국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은 동물은 저희만 살면 되는거예요. 하지만 인간은 같이 살아 야만 해요. 거기에서 교육에 대한 생각이 나와야 해요. 학교에서는 앞에서 서 교수님 말 씀하신 그 방법을 씁니다. 수학이 수학 자체 기능이 아니라 수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인간 교육을 같이 넣어 가는 거죠. 교육과정을 우리가 해가면서 단순히 학문과 지식 전 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동안에 인간을 집어넣는 거예요. 과목과목을 하면서 지식전달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들어가는 거죠. 저희는 신문사에서 와서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은 학교다 하는데 두 마리 아니다, 한 마리 토끼인 거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처음부터 교육의 가치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교육은 애초에 하나라 고 생각합니다. 김규원 : 우리가 목적적 교육, 수단적 교육을 이슈로 잘 제기해주셨는데 결국 그것이 하나다 하는 이야기가 제가 볼 때는 비유적으로 뫼비우스 띠가 있잖습니까. 안을 가만 보면 겉이고, 겉이 안이고 그 둘이 구분이 안 되는. 마찬가지로 교육도 그것이 처음에 수단이 되었든 목적이 되었든 추구하다보니 다 같은 거다 이런 쪽으로 해석이 됩니다. 사례를 하나 예 로 들면 충청도에 있는 조그만 한 전문학교인데, 아시다시피 요즘 전문학교 이름만 써내 면 다 들어갑니다. 학교 다닐 때도 학업에 대해서는 취미가 없는 학생들이 갑니다. 그런 학문에 대한 역학구조를 이해를 바로 시킬 수 없는 겁니다. 해봐야 효과가 안 나죠. 공 부에 대해서는 전혀 취미가 없으므로. 예를 들어 경북의 모 외국어 대학에 소위 영어관

185 광통역학과의 졸업생 중에 Monday부터 Sunday까지 다 이야기하고 스펠을 맞춘 학생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영어관광통역학과입니다. 그런 학생들을 그 학교에서 어떻게 교육시켜야겠는가. 교수들이 그냥 1:1 만남을 많이 갖도록 도모했답니다. 학생들 이 술 좋아하면 같이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낚시 가고 등산가고 그러면서 인간적으로 친해졌답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교수님을 통해서 뭔가 배워야겠다 이런 식으로 교육을 했답니다. 결국 취업률이 100%다 이렇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건 인 생이 먼저냐 수단이 먼저냐 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결국 하나란 이야기죠. 어느 하나만 추구해서는 다른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겁니다. 그렇게 접근해서 이야기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이규미 : 수단과 목적이 하나라면 그 하나가 뭘까 하는 게 이 교육가치의 어떤 합일점을 주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동안 칭찬합시다 릴레이가 있었던 것처럼 이런 흐름이 있어야 하 는 게 아닌가 싶어요. 어떤 점에서 그러냐면 우리가 해방 이후 교육의 가치는 미국에서 온 겁니다. 그러다가 합의가 이루어진 가치가 딱 한 번 있었는데 제가 볼 때는 5공 시절 잘 살아보자 였던 것 같아요. 모든 교육이 잘 살기 위한 데 초점이 맞춰졌다가, 그 다음 에는 비민주화에 대한 대치가 일어나면서 그 때부터는 뭔가 합의점이 없어진 것 같아요. 지금 사실 이념적으로는 있는 건데 저는 홍익인간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자체는 잘못된 것이 없다고 봐요. 이것이 밑으로 내려왔을 때 무엇인가에 대한 건 없다고 봐요. 공교육이 살아있는 나라는 그게 있는 거죠. 자기들이 다 같이 공통적으로 무엇을 위해 교육을 하는가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거창고도 도선생님 말씀하시는 것처럼 모든 인간 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있고 그것을 개발해서 인간적으로 살 수 있도록 실천 하신 거예요. 그게 제가 볼 때는 그런 걸 갖고 있으신 분은 강당에 서 계실 때 의도적인 교육과 비의도적인 교육에 대해서도 몸에서 묻어나오는 거거든요. 도선생님께서 아까 말 씀하셨는데 플래카드 하나 걸 때에도 이념이 들어있는 거예요. 그것은 사실 교육 목적과 분리된 것이 아닌 거거든요. 제가 소속이 교육대학원입니다. 물론 학부 수업도 하고 박 사들도 가르치지만. 그런데 교육대학원 교사들에게 상담심리를 가르치러 가면 4학기 내 지 5학기 상담심리를 배우고 가는 사람들이 상담 전문가가 되는 건 아니에요. 제가 늘 이분들에게 스스로 이야기하는 게 그거예요. 첫 번째는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려고 노력 해야 하는가를 가지자. 두 번째는 인간에 대한 존중심을 갖게 하자. 모든 사람이 다 소 중하고 자기의 어떤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자. 그러면 사실 상담에 대한 지식 이런 거 보다 제가 하는 행동이나 말이나 선생님들 한 분 한 분 학생을 대하는 태도에서 저 는 그게 묻어나온다는 생각을 하고 있구요. 그래서 많은 졸업생들이 하는 이야기가 뭐냐 면 제가 상담을 하려고 공부를 했는데요 나갈 때가 되니 저 자신을 알게 됐어요 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 것들이 내가 무엇을 지향하는가에 대해 알고 있으면 수학공식을 하나 가르쳐도 거기 다 묻어나온다고 저는 생각하고, 그게 학생도 그렇고 가르치는 사람도 그 렇고 지향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는 게 저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186 것이 없어서 지금까지 혼란스러운 것 아닌가 싶구요. 그것이 무엇이냐에 대해 합의가 이 뤄져야 하고 그런 작업을 해보는 것도 굉장히 도움될 것 같아요. 제가 또 한 가지 아쉬 움을 가지는 것은, 교과부에서 오는 여러 가지 공문서를 보잖아요. 그럼 주로 앞에 배경 이 나옵니다. 이 정책이 왜 실행되어야 하나 이런 것을 보면 지금 현재 사회문제이지 우 리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교육 이념이나 목적에 대한 이야기는 없어요. 정책 을 하더라도 무엇이 최종 목적이냐는 없고 요즘 상태가 이러니 우리 이렇게 해야 한다 만 있는 거지요. 그런 이유는 우리 머릿속에 교육이 지향해야 하는 최고의 합일점이 없 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다 사실은 만들어내면 있을 수 있거든요. 모든 국민이 동의하는 것. 그것이 없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김형규 : 토론은 굉장히 좋은데 결론은 이상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흘러가는 내용으로 봐서는 결국 나타나는 현상이 좋은 대학으로 진학해서 취업 잘하는 것이 목표 인 것처럼 흘러가고 있거든요 그것이 수단으로서 가치인지 도구로서 가치인지 모르겠지 만 결국 같은 거다. 같은 거지만 결국 결론적으로 하나라는 말은, 사실 진학률과 취업률 이 높은 곳이 결국 좋다는 결론으로 흐를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내용은 상당히 좋은데 결과는 좀 조심스럽게 되구요. 이런 토의가 있을 때마다 하는 이 야기가 국가가 목표를 정확히 해야 한다는 말씀 하시는 분들이 있고, 민주 시민성이 성 숙하지 못해서 그런다는 분들이 계십니다. 틀림없이 국가 탓을 하는 분이 계시는데, 국 가는 아마 시민 탓을 할 겁니다. 누구의 탓이냐의 문제죠. 시민들이 성숙하지 못해서냐 국가 목표가 명확하지 못해서냐, 이 문제는 뜯어 붙일 논쟁이 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 하구요. 그 다음에 세 번째로 교육에 대한 국민들의 합의가 없었다는 것 보다는 그것은 아마 합의를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교육과 같이 예민한 문제는 철저히 정치 문제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국민적 합의라기보다는 표의 합의겠지요. 아 시다시피 표의 합의는 매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 바뀌어 왔기 때문에 교육에 관한 국민 적 합의는 우리가 스스로 바꾼 거죠. 우리가 그 정권을 택함으로써 스스로 바꾼 것이기 때문에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중 누구도 자유스러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 다. 그리고 지금 현 정권 내에서의 국민적 합의가 뭐냐, 그것은 지금 현 정권 내에서 보 이는 것처럼 기업에 친화적인 것이 정권의 목표입니다. 그러면 교육의 목표는 뭐냐, 기 업이 좋아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게 목표인거죠 현 정권에서는. 그렇다 하면 우리가 이야 기했던 모든 이야기들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토론이 계속 이뤄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걸 어떻게 정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정리해 야 할 것 같습니다. 김경동 : 몇 가지 명료화할 필요가 있는 거 같은데요, 하나다 하는 이야기를 이렇게 보면 어떻습 니까. 공자 말씀대로 공부 했더니 참 기분 좋다, 그런데 열심히 했더니 취직도 잘됐다 이거죠. 내가 취직 잘 시키기 위해 인간 교육을 시켰다 이것이 아니라. 이렇게 되면 인

187 간 교육 자체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거니까. 내가 인간교육을 하려고 막 하니까 이 녀석이 공부를 어찌나 잘하는지, 공부 못하면 어차피 뭘 해도 다른 걸 못하니까. 잘 하 는데 보니까 취직도 잘하고 사회구조가 그리 되어 있으니 좋은 곳 가서 취직도 잘하더 라. 문제는 이게 목적이 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목적과 수단이 전치가 되었다. 교육받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취직하기 위해서 교육받는다고 되어 버린 겁니다. 김형규 : 선생님 말씀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결론이 나면 취업 잘 시키고 진 학률 좋은 학교가 좋은 교육을 시켰다는 결론이 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조심스럽 다는 이야깁니다. 김경동 : 아까 김형규 교수님이 예를 들어주셨는데, 아마도 제가 모르긴 하지만 그 학교를 운영하 는 분들은 뭔가 자기 반영되어 있고 철학이 있을 겁니다. 애들은 공부를 안 하지만 취직 도 잘 시켜야 하고 교육정부의 지원도 받아야 하고 현실적인 목표가 있을 겁니다. 그것 없는 사람들은 바보죠. 그러나 거기에 플러스 알파가 하나 있습니다. 이게 뭐냐 하면 그래도 저 놈들 공부시키려면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김호길씨 이야기인데, 이 분이 영국 잘 있다가 LG에도 있고 하다가 전문대 학에 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학교의 스토리가 아니고 다른 전문대의 수업에 대해 교 육부에 그래야 한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들려준 거예요. 어떤 전문대학엘 갔더니 전자공 학과에서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 커리큘럼을 그대로 갖다놓고 서울대 전자공학과에서 쓰는 교과서를 갖다놓고 2년 동안 뗀다고 해요. 서울대에서 4년 동안 떼는 과정을. 그 목표를 세워놓고 애들을 가르쳤다는 거예요. 그럼 얘네들이 뭘 했겠습니까, 아무것도 못 하고 나온 거죠. 우리나라에 그렇게 교육시키는 사람 있습니다. 그게 더 지배적이고 더 다수일 거라는 게 문제입니다. 취직 잘 시켜주면 좋다 이겁니다. 그런데 취직이 목표는 아니고, 교육을 잘 시켜봤더니 취직 잘 되더라, 이게 좋다는 겁니다. 지금 도선생님 하시 는 게 그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질 않아요. 그 현실을 고쳐야 하고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해야 하는데, 어떻게 사람들 마음을 바꿀 수 있느냐 그 쟁점이 중요한 거예요. 또 하나, 전 국가를 싫어하는데 국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게 있어요. 국 민 통합을 하고 합의를 얻는 건 국가가 해야죠. 그건 어느 시민단체에서 해도 안돼요. 그러니까 국가가 하긴 해야 하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는 식은 또 안 됩니다. 현재의 문제 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규미 : 공부시키는 것과 인간화가 다른 것이 아니고 무엇이 앞서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인간화 가 됐든 뭐가 됐든 최전선에 있는 더 중요한 가치를 잊어버리지 않고 모든 것을 하면 교육이 살 것이라고 생각해요. 거창고도 성공한 사례잖아요. 많은 곳에서 성공한 사례가 있어요. 아까 세계의 이야기도 마찬가지구요. 이런 이야기는 교사들하고 한 적이 있어요. 어떤 교사가 이런 이야길 하는 거예요. 우리가 공부 안 시키고 그런 쪽에 치중하면 분명

188 부모들은 화를 낼 것이다, 그랬더니 다른 교육전문직에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다, 요즘 부모들도 공부 압력을 주면서 시키는 이외에 다른 방법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데, 사실은 뭔가 좋은 방향으로 가는 선생님이 나오면 거기에 박수를 쳐줄텐데 다들 거 기 묶여가지고 공부를 더 시켜야 하지 않나, 좋은 대학을 보내야 하지 않나, 취직을 잘 시켜야 하지 않나 해가지고 제대로 해야 할 역할을 못하고 있는 거다, 이런 이야길 했고 사실 오늘 이 자리에서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만든 것은 그런 의문점 때 문이잖아요. 그런 것을 합의해서 저도 아까 국가 말씀을 드렸지만 전적으로 국가에 의존 하는 것은 아니구요, 국가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드렸던 거예요. 최재천 : 그렇게 어떻게 보면 거창고등학교에서 한 것이, 저는 계속 이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인 성교육을 꼭 하시겠다고 하신 건 아니지 않나 싶어요. 인성교육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계시면서 더 정확히 표현하면 맞춤 교육을 하신 거죠. 한 놈 한 놈에 맞춰서 그 한 놈이 사람이 되게끔, 우리 사회에서 살아남게끔 교육을 시키신 결과가 그렇게 되신 것 아닌가 싶어요. 결론이 그렇게까지 나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요 잘못 우리가 이런 이 야길 하다보면 저흰 사실은 문진포럼의 다른 주제로 모였던 것이 상상과 증명이거든요. 창의적인 것을 어떻게 할 거냐 하는 이야기를 모여서 그 동안 했는데, 교육이 너무 일방 적으로 가다보면 도무지 우리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매일 같이 떠들던 창의성 교육은 어 떻게 할 건지 의문이 생겨요. 하나 예를 들면 침팬지 엄마 옆에서 쑤시는 걸 본 애는 그 것만 할 줄 알아요. 그런데 아무것도 안 가르쳐준 동네에서 이상하게 나오기도 하거든 요. 예를 들면 한 일본 원숭이는 어느 날 잘못해서 관리인이 고구마를 가지고 오다 엎질 렀는데 그거를 그대로 먹는 놈들은 모래를 씹으니까 퉤퉤 거리는데, 그중에 한 원숭이가 그걸 물에 가지고 내려가서 씻어먹는 바람에 다 그걸 보고 아 저렇게 먹음 되는구나 하 고 다 씻어 먹었다는 거예요. 얼마 후에는 쌀인지 보린지를 가지고 오다가 그걸 잘못 엎 질렀는데, 또 이 녀석은 그걸 거둬다가 물에다 넣은 거예요. 모래는 쫙 가라앉고 곡물은 한동안 물에 뜨죠. 다들 그걸 보고 이야 저런 방법이 있네 하고 따라 했다는 거예요. 그 래서 지금은 그냥 무얼 갖다가 아무데다 뿌려 놓으면 다 그렇게 해서 먹어요. 이를테면 혁신이, 개혁이 일어난 건데, 그런 거는 옆에서 억지로 가르친 집안에선 안 나오는 거거 든요. 내버려 두는 데서 이상한 놈이 나와서 그 놈이 새로운 것을 개발했는데, 이것도 만일 우리가 지나치게 수단적인 가치로서 교육을 중시하고 교장선생님으로서 교사로서 교수로서 내가 알어, 넌 이렇게 해야 해 하고 지나친 교육을 시켜대면, 그렇게 하면 창 의가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도재원 : 아까 김교수님도 자유를 줘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희가 학교 교육에서 강조하는 것은 인성교육이라고 과목의 목표에 들어가 있는 것은 단 한 가집니다. 내가 이 세상에 서 태어나 참 귀하고 그 귀하다는 걸 느꼈을 때 나만큼 귀한 사람 옆에 살고 있다는 걸

189 느끼게 하는 것, 그게 인성교육의 전부입니다. 저희들은 자유 속에서 창의력이 나온다고 봅니다. 학생들을 교육시간도 정규시간과 정부에서 허락한 방과 후 공부밖에 안합니다. 자기들이 자율학습하는데 할 사람만 하는 거죠. 하기 싫은 사람 안하고. 그래서 저희들 이 아이들이나 학부형에게 이야기할 때도 학생들이 부모들이 보기엔 멍청하게 보이는 거 같아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 속에서 생각이 나올 수도 있는 거구요. 또 별도의 과정으로 일거리 같은 것은 저희들이 막노동을 하거든요. 막노동 하는 가운데 자기가 해보도록 하는 과정을 막노동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3일 동안은 학생회장이 학교 를 운영하고 큰 행사 자체를 진행하게끔 자유를 줍니다. 그렇게 자율을 주는데서 창의력 이 생겨난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대일 : 혹시 거창고 학생으로서 객관적으로 우리 학교 졸업생들이 다른 학교 학생들과는 이상이 라고 할까요 도덕심이라고 할까요 창의성이라고 할까요, 그런 측면에서 확실히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뭔가를 조사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도재원 : 아뇨 없습니다. 개개인을 두고 할 수는 없고 한 무리를 통째로 놓고 보면 확신이 있습니 다. 이규미 : 어떤 점에서 확신을... 도재원 : 그것을 나타나는 현상을 어떻게 이야기 해야 하는데... 이규미 : 자신감이라던가 또는 어떤 뭐... 도재원 : 그것은 이제 들어서 하는 이야기죠. 대학에 들어가서 고등학교 때보다 더 좋은 성적을 냅니다. 또 학생들하고 이야기하는 과정 가운데, 제가 교장이라 그런 이야기만 해주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대화상대가, 이야기가 자꾸 빗나간다. 부모님들이 그런 말씀을 하십 니다. 이것은 제가 좀 쑥스럽습니다. 김경동 : 사례 하나 미국서 직접 만난 친구제자의 남편인데 그 부인이 저녁 초대를 했어요.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친구가 누구냐 하면 서울 농대에서 공부를 하고 MIT에서 학위를 받고 연구소에 있다가 지금 벤처 사업을 성공한 친구거든요. 그 친구가 자기 경 험을 이야기하는데 MIT에 가서 시험을 쳤는데 한 과목이 A+가 나왔다는 거예요. 기분 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런데 담당 교수가 불렀다는 거예요. 불러서 가니까 앞으로 이 런 단어 쓰지 말아라, 이번엔 A+를 줬는데 다음에도 이런 단어를 쓰면 블록시키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이건 뭔가 하면 자기가 준 문제에 대해 100% 다 잘 썼다는 거예요. 그 런데 글쓴이 생각이 하나도 없다, 넌 그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그런 게 없다 그

190 이야길 듣고 충격을 받았다는 겁니다. 이게 우리 교육이에요. 한 이틀 전에 학술원에서 회의가 있어서 싱가폴에 갔었어요. 주제가 과학교육입니다. 과학자도 아닌데 어떻게 해 서 묻혀갔는데 거기에 국립과학연구소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 갔더니 초등학교부터 온갖 과학 실험할 수 있는 시설을 다 해놓고 그 커리큘럼 운영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것을 국가가 프로그램을 만들어놓고 거기서 교사교육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과학 교사 교육을 해서 내보내면 확실히 차이가 있잖아요. 우리나라가 실제로 어떤지는 잘 모 르겠구요. 미국도 애들 교육시키는 걸 보세요. 요즘 컴퓨터가 있으니까 다 알지만 컴퓨 터가 있기 전에는 애들이 숙제하려면 도서관을 갑니다.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전부 리서 치해요. 그래서 숙제를 해서 낸다 이겁니다. 요즘은 컴퓨터로 다 하니까. 그런데 보통 우 리나라 고등학교에서 그런 문제냅니까? 그런 숙제 안 낼 거라는 겁니다. 자신이 직접 리 서치를 해야만 하는 그런 숙제는 안 낼 겁니다. 이덕환 : 요즘은 수행평가라고 해서 그걸 하는데, 인터넷으로 다 해서 내죠. 도리가 없습니다. 이규미 : 저는 그런 점에서도 아까 우리가 지식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에 더 중요한 것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그런 이야길 하고 있었잖아요. 그런 점에서도 저는 굉장히 중요 하다고 보고 있는데, 아까 최재천 교수님 말씀하셨지만 그 원숭이가 창의성의 좋은 사례 라고 보이진 않구요, 영재입니다. 우리가 창의성은 누구에게나 있는 걸 찾아줘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도선생님이 말씀하신 게 맞다고 봐요. 제가 전공은 이 쪽이 아닌데 창의성에 대한 교직과목을 가르치다 보니까 공부를 하게 됐어요. 제가 제도권에 서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창의성에 대해 강의하려다 보니까 제가 하고 있는 게 뭐냐면 창의성에 대한 여러 개념과 방법을 가르치는 거도 제 일이지만, 이 사람들 학교에서 틀 에 박힌 생각을 깨주는 게 제일이더라구요. 왜 틀에 박힌 생각을 가지게 되었냐면 지식 이 우선이 되어서 그래요. 다른 건 생각하지마. 밑줄 쫙, 이것만 공부해. 그러다보니 우 리가 창의성을 갖고 있는 사람의 조건 중에 개방성이나, 융통성 이런 게 안 키워진 거 죠. 그걸 키우는 게 제일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형식화된 교육을 시키는 게 아니고 지식을 열어주는 것보다 더 앞에 강조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 이것을 우리가 찾는 게 교육의 본질을 찾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서지문 : 지름길로 가는 게 가장 현명한 거고 똑똑한 삶이 되는 거고. 사실 이번에 멜라민 파동도 그런 거죠. 중국의 옆에서 보면 우후죽순처럼 갑자기 떼부자가 되고 그러니까 자기도 빨 리 돈을 벌어야겠다 그래가지고 그런 멜라민 파동까지 일어나고 그런 거죠. 그냥 과정은 생략하고 뭐든지 가장 지름길로 가는 것이 우리 시대에서 최고로 스마트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대한 옳고 그름의 개념이 전혀 없어요. 정말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 는 삶인가에 대한 기초적 토대가 부족한 겁니다. 우리 사회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가 장 잘 활용하는 것이라던가 하는 그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보

191 고 막 떠밀려서 어쨌든 최단거리 주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고, 그래서 결국 손 에 얻는 것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불행한 삶일 거라고 생각해요. 늘 손 에 얻지 못한 것에 대해 초조해 하고 불안해하고 그렇게 하면 결국 범죄로 이어지기도 쉽고 반사회적이 되고 그래서 그 사람 자체에게도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거죠. 그럴 텐데도 우리 사회가 그런 거를 최단거리로 바라고 거기에 대한 윤리적 도식이라든가 하 는 것을 돌봐주지 않고 그래서 정말... 그렇게 되면 우리 사회가 총체적인 부실화가 되는 거죠. 이덕환 : 이제 슬슬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우리 사회가 사실 지금 위기를 넘어 절망적인 수준에 온 것 같아요. 지금 최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스스로 자멸의 길로 들어선 게 아 닌가. 그렇게까지 볼 수 있는 부분이 눈에 보이거든요. 그런데도 이런 식의 교육이라면 포기하면 괜찮지 않을까 이런 말씀은 안 해주시는 거 같아요. 어떤 식으로든지 공교육은 필요하다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인 것 같습니다. 그럼 교육 가치관이라고 아까 처음에 말 씀해주셨는데, 그것이 사실 교육가치관뿐 아니라 사회의가치관, 아까 도선생님 말씀하셨 듯 사회가 여러 부류의 직업을 가진 사람을 보는 시각이 복잡하게 연계되어 있는 거죠. 그런데 그런 것들을 저희가 그동안 한 번 사회적으로 어떤 식으로든지 합의를 도출하려 고 노력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김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최근 몇 번의 선거를 우리가 그렇게 봐야 하는지. 과연 우리 선거가 그렇게까지 의미를 부여할 정도로 되어 왔는지 의문이거든요. 그래서 아직도 사회 가치관 이것이 독재국가처럼 하나로 딱 정의를 할 수 는 없을 거구요, 국민교육헌장 만들 듯이 그렇게 만들 수는 없을 것 같고, 그럼에도 불 구하고 어떤 식으로든 공감되는, 합의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제안은 많이 있었고 다만 추진하려는 의욕이 없었다 그런 결론이신데, 이런 가치 관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가능한지 이런 점을 중심으로 해서 한 말씀씩만 돌아가면서 해주시면... 김규원 : 우리 상황에서 본 교육의 위기의식에 대해서는 인정을 합니다. 다만 과연 그게 절망적인 가 했을 때 저는 오히려 희망적이라고 봅니다. 교육에 대한 신화와 허상이 무너지고 그 런 단계에 왔기 때문에, 그것을 대체할 다른 교육의 이념이나 가치관이 확산될 조짐에 서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라고 봅니다. 물론 사회구성원들이 노력을 안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국가가 추상적이든 구체적인 정책 입안자이든 그 양반들이 갖는 것은 상당히 엘리트주의적 발상이고, 관료행정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왔다고 생각합 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는 일정 부분 교육에 대한 정보의 편파성 내지는 왜곡성을 확대 시켜 왔는데, 이제는 그것이 더 이상 신뢰를 얻을 수 없게 된 거죠. 제가 최근에 자료를 찾다보니까 2007년도에 국내에서 박사학위 배출자수가 거진 1만 명에 달합니다. 미국에 서는 1200~300명이구요. 유럽도 있을 거고 일본도 있으니까 해마다 적어도 14000~5000명의 박사가 해마다 쏟아지고 있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전 박정희 대

192 통령이 어느 공장에 가서 지침 내리고 어디 가서 한 마디 하고 그에 대해서 교육 관료 들이 정책을 내고 이런 단계는 이제 아니라는 거죠. 각계각층에 그런 전문가들이 쏟아지 는 상황입니다. 아시다시피 예전에는 이승만 대통령에게도 이승만 박사라는 호칭부터 줬 어야 했죠. 장면 박사, 이기붕 박사... 다 고관대직의 직함이 있어도 박사라는 호칭을 좋 아했었다고 해요. 그만큼 이게 희소성이 있고 나름의 분위기가 있었다는 건데 그런 사람 들이 1년에 1만 명이 넘게 쏟아지는데 저는 이것이 역동적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전문가들이 새로운 교육에 대한 가치관을 설정해 가는데 큰 원동력이 되고 구심점을 발 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아마 각계각층에서 여태까지 국가적 하나의 왜곡된 교육관이나 가치관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교육의 주체들이 나름대로 가치관 형성의 주체로서 나서고 있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이덕환 : 다른 분들 한 말씀씩 해주시죠. 윤대희 : 아까 공부하는 게 효도라는 이야기 하셨는데 사실은 다 들은 이야기죠 뭐. 제가 이렇게 신입생 학부모 앞에서 했던 얘기가 생각났어요. 우리 들었던 이야기가 야 이 녀석아 공 부해서 남주냐 하는 걸 많이 들었잖아요. 그런데 신입생들에게 이야기할 때 너희들 남 주기 위해서 공부를 안 하면 인생 망한거다, 뭔가 제가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남 주 기 위해 공부하는 거다고 한 건데, 오늘 수단적 과정은 나쁜 쪽이고 인간화는 좋은 쪽으 로 이야기가 된 거 같은데, 그 과정에서의 인간화가 굉장히 중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구요. 그 다음에 결국 시험이라는 것을 교육이라는 과정에서 보게 되는데, 시험이라 는 것은 제가 생각해보면 선생님이 얼마만큼 잘 가르쳤는지를 보기 위한 목적과 쟤가 다 알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목적을 가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은 거기서 완전 변질돼서 석차를 매기기 위한 도구 이외로는 전혀 안 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요. 결국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다 제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교육을 시키는 과정에 있는 방법을 잘못 프랙티스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러면 교육을 시키는 사람들 에 대한 교육과 원칙에 대한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까 미분 적분 가르치는 것은 마치 우리가 도구를 가르치는 건데, 제가 그 때 이야기하 고 싶었던 게 무엇이냐면 아까 말한 지덕체... 덕체는 뭐 당연히 앞에 좀 했으면 좋겠다 하는 거고 지 에서 과학기술인문사회... 결국 우리가 공부하고 배우는 대상이 우리가 사 는 지구의 모든 것이라고 했을 때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게 공학과 교육이라면 인문사 회학은 결국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 두 가지가 다 중요한 건데 지금 많이 잘못된 것이, 과학과 수학을 가르치는 걸 마치 툴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너무 많이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것을 인문사회하는 분들이 깨주지 않으면 중고등학교 교육이 굉장 히 어려워지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어질 것 같아요. 여기 코싸인으로 인 생 살아가는 사람 없습니다. 저도 강의할 때나 씁니다. 하지만 과정이 중요한 것이기 때 문에 그걸 잘하는 애한테는 더 어려운 걸 가르쳐주고 못하는 애한테는 더 쉽게 삼각함

193 수도 가르쳐주는 것이 당연한 건데,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거가 우리 사는 모든 건데 저는 그거를 문제로 제기하고 오늘 인문사회학 하 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아무튼 인문사회 쪽에서 이 과학과 기술에 대한 것을 당연한 교 양과목이라는 것을, 철학만 교양은 아니거든요. 이런 것들이 받아들여지면 편성 등 여러 측면에 있어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규미 : 저도 잘하는 사람에게는 거기에 맞게 가르치고 못하는 사람에겐 쉽게 가르치는 것이 교 육에 사람이 들어가야 한다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에 대한 것이 우리 교육에서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뒤로 가기 때문에 도구화되면서 문제가 되고 있는 거 아 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도재원 : 자꾸 우리가 교육 교육하면 그 교육을 받아서 장래에 어떻게 해야 하는 생각에만 너무 치우칩니다. 한 사람 일생이라는 것은 어릴 때부터도 그것을 다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이 뭐 준비해서 나중에 본선에 진입하고 그런 것은 아닌 거죠. 우리 고등학교 3년이 라는 것은 그냥 입시 준비하는 게 아니고 그것도 생활이라는 겁니다. 삶이라는 거죠. 그 래야 사람이 고등학교만 살고 죽더라도 자기 삶을 살다 죽는 거지, 이것이 교육이라는 걸 장래를 생각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를 생활공간으로 아 이들이 이해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왔습니다. 가령 학생들끼리 생일잔치 서로 해주고 어려운 일 있으면 먼저 겪었던 아이가 이야기 해주고 1박 2일 야영이라던지 놀이를 하 기도 합니다. 학교를 하나의 삶의 공간으로 인식하게 하고, 학교라는 것이 16~19살까지 삶을 거기서 산다 이런 느낌이 들게 하려고 여러 가지로 애를 쓰고 있습니다. 김형규 : 우리 교육에서 창의성이 부족한지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왜 우리 교육에서 창 의성이 부족한지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문제 인지 아니면 이 시대의 문제인지, 또 우리나라에서 창의성이 왜 필요한지, 창의성이라는 것이 꼭 필요한 건지 그런 것도 한 번 원론적으로 이야기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사람에 대한 사랑이 교육에 대한 질을 높인다고 하셨는데 사람에 대한 사랑은 결국 누가 하는 것이냐, 그건 교육 공급자들이 해야 할 일이거든요. 그럼 그 공급자들이 왜 학생들을 사랑하지 않는지, 왜 현실적으로 학생들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다고 다들 인 식하게 됐는지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서지문 : 아까 윤 교수님께서 남을 위해서 배운다는 걸 인식시키려고 하신다고 했는데, 정말 그 나와 남이라는 게 결국은 분리되는 게 아니라는 것, 그런 것을 학생들이 깨닫게 하는 게 정말 중요하고 그게 그 사람들의 일생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구성원이 되 는가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인간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 음으로써 사는 것이죠. 교육에서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어떻게 엮이는 것인가 그런 것을

194 정말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이 개인주의라는 것을 이 기주의와 동의어로 생각하는데 사실 개인주의의 원뜻은 이기주의와 정반대의 뜻이죠. 도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사람 고유의 능력을 키워서 그 사람들이 자기 성취를 하 고 그것을 통해 이웃을 돕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그게 개인주의의 뜻인 것이지 남이 야 어찌됐든 나만 잘되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내 멋대로 하고 내 잇속 챙기고 그런 것을 개인주의라고 생각하는데요. 물론 서구에서도 그렇게 잘못 생각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서구의 사상을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서구가 발전된 사회 가 된 것이 모두가 제 잇속을 챙겼기 때문에 된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질을 기를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개인주의의 뜻이고 그렇 기 때문에 민주주의도 아무리 민초들도 귀중한 사람이고 그 사람 없으면 민주주의가 발 전을 할 수 없는 거죠. 그런 관점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삶이라는 게 무엇이고 개 인과 사회의 관계는 어때야 하는 것이고 어떻게 분리될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해 근본적 인 생각을 해야 공부를 하더라도 제대로 수용이 되고 제대로 자기 발전의 토양이 될 수 있는 그런 교육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규미 : 제가 오늘 여기 와 느낀 것은 교육을 이끌어가는 우선 가치가 우리나라에도 생겼으면 좋 겠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각자 자기 철학에 맞추어서 하는 것이고, 그것이 교육 공급자 에게 중요한 것이지만 지금은 교육 자체가 시장에 나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특 별한 개인 철학을 가지고 교육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이 없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에 따 라 사람들이 선택을 한다는 것은 교육이 시장에 나와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 다. 그렇다면 문진포럼의 의미도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교육이 무엇을 목표로 해 야 하느냐,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해서 전체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 니다. 정치도 여기 개입이 되고 여러 가지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뜻있는 사람이 이것에 대해 목소리 높이고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여기서 이야기하고 끝 나면 안 되고, 저는 많은 정책적 제안이 묻혀버렸을텐데 오히려 묻혀있는 것에 굉장히 좋은 것이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실천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문제이구요. 그 러니 그런 것들을 생각하는 그룹들이 자꾸 압력을 넣고, 이렇게 가야 하는데 왜 가지 않 느냐, 이렇게 해줘야 하지 않는 거 아니냐 하고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경동 : 첫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하게 되었네요. 국가 이야기를 하면 오해받기 쉬운데 국민의 합 의를 얻을만한 가치관을 세워야 한다고 봅니다. 국가는 지원을 해주고, 실제 주체는 국 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아직 그런 면에서 성숙하지 못한데, 그렇게 되기 위해 서는 시민사회 자체의 성숙도가 높아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이야기하자 면 국가는 올바른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마당을 열어줘야 하고, 그러면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사회운동으로서 교육을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운동의 일환으로 제일 중요한 게 우리 학부모 재교육입니다. 보통 이런 이야기하면 구름

195 잡는 거 같고 그런 식인데 이상이 없는 사회와 있는 사회는 다르다고 봅니다. 이상을 성 취하는 것이 힘들지라도 이상을 버려서는 안 되는 거죠. 사회운동이라는 것도 처음에는 몇몇 사람이 시작했을 지라도 나중에 그것이 거대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이덕환 : 오늘 말씀들 잘 들었고,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196 교육, 2차 포럼

197 이덕환 : 문진포럼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문진포럼은 과기부가 교과부가 되고 나 서 그 사업의 후속사업을 할 것이 없느냐 해서 출발한 포럼입니다. 청중이 있으면 부담 스럽기도 하고 청중을 모으기도 어려워서 제안을 한 것이 이런 형식의 만남입니다. 요즘 사회에 통섭 통합 융합 이런 이야기가 많은데 우리사회에서는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 하 는 기회가 없어서 청중 없이 저희들끼리 그냥 3시간동안 쉬는 시간 없이 가는 것입니 다. 포럼의 방향은 여기서 이야기를 하면서 방향이 설정이 되는 형식이구요. 7월부터 시작 해서 10번의 이런 모임을 진행 했습니다. 주제별로 2번씩 했는데요. 주제의 내용은 상 상과 증명, 행복, 웰빙, 리듬. 이것은 엄 선생님이 제안을 하시고 기획위원에서 결정을 한 것인데, 추상적인 개념을 놓고 개념에 대한 토론을 2번씩 3시간 했습니다. 그리고 지 난 10월 달에 공개 심포지엄을 했고, 이번 10월 11월에 하는 주제가 위험과 소통 그리 고 교육입니다. 과학기술에 대한 위험도 있고,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 현대사회가 경험 하게 되는 위험문제를 한번 다뤄보자고 해서 교육과 위험도 한 번씩 이야기를 나눴습 니다. 여기 교육은 잠시 후 엄 선생님이 말씀해주시겠지만, 교육 현안은 굉장히 어려운 과제고 복잡하고 이해관계가 얽혀서 진행이 안 될 것 같으니까 조금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죠. 우리사회가 교육이 왜 필요한가 이야기를 하다가 지난번 결론은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리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고, 그런 것들을 우리가 공유하기 위한 사회 운동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나. 이런 이야기를 했었 습니다. 그러면 대강 이정도로 소개를 하구요. 참석자분들의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덕환 : 우선 손봉호 선생님은 다 아실 것 이구요. 명함 보니까 고신대 계시구요. 다양한 분야에 서 글도 많이 쓰시는 분입니다. 이규미 선생님은 아주대에서 교육심리학 지난번 토론에 도 나왔구요. 정옥자 선생님은 서강대 계시다가 규장각 원장하시고, 지금은 국사편찬위 원회 원장하시구요. 정민 선생님은 엄 선생님과 저하고 최재천 박사와 이대일 교수님과 문진포럼을 끌고 가는 분이시구요. 김정구 교수님은 서울대 물리학과에 계시고 지금 물 리학회 회장하시구요. 김규원 교수님은 경북대 사회학과에 계시고 교육사회학하시구요. 강정인 박사는 서강대 정외과에 있구요. 전공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목소리가 되게 큰 양반입니다. (웃음) 강정인 : 글쎄 제 목소리가 크다는 것은 맞지 않는 이야기 같은데요. 이덕환 : 자유롭게 말씀을 해주시면 두 친구가 녹취를 합니다. 내년에 정리를 해서 내년에 출판을 해볼까 합니다. 여기서는 부담 없이 말씀을 해주시구요 저희가 녹취를 해서 보내드리겠 습니다. 말씀하신 것을 적어놓고 나중에 보면 이상하게 보일 때도 있으니 수정을 하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릴 것이고, 출판을 하게 되면 편집과정에서 한번 더 수정을 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198 엄정식 : 제가 개인 사정으로 두 달 만에 외출했어요. 딴 나라에 온 것 같고. 저는 서강대에서 한 30년 근무하다 작년에 정년퇴임 했구요. 아까 이덕환 선생님 말씀하신 과기부 프로젝트 에 참여했다가 인연이 돼서 이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요새 다 아시듯이 통섭, 융합, 이 강조되는 시대이고, 또 과기부하고 교육부가 합치다보니 거기서 뭔가 원천적으 로 할 일이 없나 해서 기획된 모임이구요, 이 모임을 어떻게 출발할까 하다가 기존 과학 기술과 인문학이 만나자는 라는 의미에서 한 발자국 더 내딛는 의미로 만든 것이고, 이 왕 만나는 것 각 분야의 사람들과 좀 사귀어보자 해서 개념적 혼란을 주는 주제들을 하 나씩 골라서 현실적으로 함축을 갖는 주제들을 골라 분야가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 난상 토론을 벌이자 해서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게 제대로 되는 것인지 그것조차도 우리가 경 험을 통해서 한번 다시 연구해 보기로 했거든요. 우리가 세미나는 전문가들이지만 이런 종류의 모임은 드물지 않았나, 어떤 주제를 가지고 전문가가 아닌 다양한 사람들이..그 래서 손봉호 선생님을 두고 상당히 논란이 많았어요. 총장을 지내신 분이 전문가가 아니 면 누가 전문가냐, 그래서 제가 아니라고 했거든요. 그런 쪽으로 거리가 먼 분이라고, 그리고 어떻게 보면 교육이 아닌 것이 어디 있겠어요. 사람들이 그게 교육학자들만의 일 이라고 생각 했으면 그건 착각이었다. 교육에 관심은 있지만 목소리 특히 장관 지내신 분들은 빼시라고 그래야 조금 더 다양한 실질적 토론이 있지 않을까. 더 많은 것을 챙길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조금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다시 모시고 또 모시고 한 가지 주 제로도 전 팀과 달라졌잖아요? 그래서 저번에 시간이 안 되시는 분들 이번에 고심참담 하게 여러분들을 모셨어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그야말로 창의적인 작업이 여기서 벌어지면 어떻겠느냐. 다들 아시겠지만 정민 선생님이 우리 모임 작명을 해주셨는데 논어에 나오 는 말로 나루터 가는 길을 묻는다 는 뜻입니다. 하지만 나루터가 궁극적인 목적지는 아 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지난 모임에 참석을 하지 못 했는데 그 대신 제가 전체의 메뉴 스크립트를 두 세번 줄쳐가면서 읽어봤던 것 같아요.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으니 나루터까 지 가는 것으로... 그 다음에 다음 목표를 바라보는 것으로 기획한 것 입니다. 지난번에 하셨던 말씀 중 미진한 부분을 오늘 더 이야기 나누고, 또 새로운 이야기도 나올 수 있 구요. 드물게 인문, 사회, 과학 분야 분들이 모이셨으니 이야기가 많이 나올 거라 믿습 니다. 저는 그런 인상을 받았어요. 만약 중세 로마시대때 이런 모임이 있었다면 그 어떤 시대정신 이랄까 하는 것들이 이야기에 깔려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지금이 무슨 시대 냐. 전 역시 오늘날이 과학기술의 시대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많이 이야기해 주셨 으면 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글을 썼는데 과학하고 기술은 전혀 다른 분야라고 생각해요. 최근에 교 육도 기술교육이 있고, 과학적 기술교육이 있고 과학정신이 있잖습니까? 과학이라는 합 리적 사고, 포퍼가 말하는 개방정신 이라던지 과학이 어떻게 해서 가능했나. 그런 것들 이 교육에 반영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199 저는 거기까지 말씀을 드리구요. 여기 손 선생님 모셨으니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 이 좋 을 것 같습니다. 여기 선생님들이 다 모이셨으니까 먼저 실마리를 풀어 주시죠. 이덕환 : 김경동 선생님은 다른 약속 때문에 못 나오셨는데 지난번에는 김경동 선생님이 잘 말씀 을 해주셨는데 교육을 어떻게 봐야하느냐? 개인의 수단적인 도구적인 목표를 충족시키 기 위함이냐? 아니면 다른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함이냐? 이런 이야기를 주로 했었습니 다. 마지막에 나눈 이야기가 엄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교육에 반영해야 될 가치관과 시대정신이 들어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그런 얘기를 첫 시작을 못하고 끝을 맺 었습니다. 손봉호 : 저는 교육을 좀 넓게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비생물학적으로 외부로부터 습득하 는 모든 것이 다 교육 아니냐, 꼭 무슨 의식적으로 배운 것 외에 사실 무의 식 적으로 배우는 것이 사실 더 많거든요. 고민을 확대하는 이유는 교육을 너무 좁게 이해를 해버 리면 학교교육이든 가정교육이든 의식적인 것만 따지면 상당 부분을 빼버리고 교육을 이야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의식적인 교육이 상당히 중요한 것인데 무의식적인 교육에 신경을 안 쓰면 의식적인 교육에 대한 논의도 제대로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번에 가치라는 것을 이야기 했는데. 가치라는 것이 사실 형식적인 교육이 아닌 무의 식적인 것에서도 많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히든커리큘럼을 얘기 하자면, 한 교사가 물 리학을 가르치면 물리학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가치관 등 무의식적 으로 많은 것을 가르치게 되는데, 이것을 히든 커리큘럼 이라고 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그 간 너무 신경을 안 썼기 때문에 형식적인 교육도 문제가 있지 않나. 가치에 대해서 우리가 교육을 시킨다 하면 과연 그것을 교육시킬 수 있느냐. 무의 식적으로 이뤄지는 사회전체 문화가 가령 왼쪽으로 가고 있는데 학교 교육이나 가정에 서 오른쪽이 암만 옳다고 강조해봐야 그게 별로 설득력이 없다는 거죠. 답안지에는 정 답을 쓰는데 실제 행동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가치관으로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죠. 오늘 저는 조금 교육의 범위를 조금 더 넓게 이해를 해서 무의식적인 교육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엄정식 : 이규미 선생님 해주시죠 이규미 : 저는 오늘은 이야길 들어보고 흐름을 보고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엄정식 : 정옥자 선생님 해주시죠. 정옥자 : 교육에 대해서 제가 본격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우린 지금 교육이라 하지 만 전 통시대에는 교화라는 말을 많이 썼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전통적인 용어는 상당히 권위

200 적이다. 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더라구요. 그런데 아까 손봉호 선생님 말씀 하신 것도 히든 커리큘럼이 교화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냥 이렇게 일일이 지식을 주입시키고 가르 치지 않아도. 그러니까 전통식으로 말하면 본대 배운대 있다 왜 그러잖아요. 누가 버르장머리 없이 말하면 아 저 본디 없다 배운디 없다 그러니까 보고 젖어든 것이 없으니까 막 행동하 고. 그런데 전통시대에는 교화라는 말이 바로 구체적으로 지식을 주입 하는 것이 아니라 化 하는 것 인간화 하는 것 그게 교화라는 말로 썼는데. 우리가 교육이라는 말을 쓰고 나서부터는 교화가 아주 권위주의적인 용어인걸로 오해를 하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제가 교양한국사를 굉장히 오래 했습니다. 그게 서울 대에 서 필수여서 반드시 단과대학별로 학생들이 반드시 듣도록 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단과 대별로 강의를 들어갔는데, 들어가 보면 공대학생은 아 공대학생은 이렇구나! 이거구 나! 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구요. 간호 대학생들은 아 간호대 학생 분위기는 이렇구 나! 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는데, 제가 제일 어려운 대상이 의과 대학생들 이였어요. 제 가 왜 이렇게 힘들까 생각을 해보니 걔들은 2학년 때 들었거든요. 그러니 1년이라는 것 이 그렇게 무섭다구요. 아무래도 2학년 때니까 대학생활 상당히 했기 때문에 교수들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임했던 것 같기도 하구요. 그리고 의대생이라는 자부심이 오만함으로 나타난 것 같기도 하구요. 아주 굉장히 다루기 힘든 대상 이였어요. 하루는 수업이 늦어져서 뛰어가는데 한 학생이 제 앞을 스쳐지나가는 거에요. 학생들은 뒷문으로, 전 앞문으로 들어가는데 그 학생이 앞문을 열길래 문을 열어주나 보다 했더니 그게 아니라 자기만 들어가고 문을 꽝 닫아서 머리를 부딪히게 만들더라구요. 그때 느낀 것이 아 지식 가르쳐봐야 소용이 없구나. 그래서 제가 들어가서 제가 그 학생에게 야 단을 치지 않고, 문을 열어주는지 알고 기쁜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갑자기 문을 꽝 닫아 서 크게 다칠 뻔 했다고.. 그러면서 여러분들이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그랬어요.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는 현대 소학을 가르쳤어요. 이건 안되겠다. 지식은 아니다. 그래서 굉장히 잔소리를 많이 시작 했습니다. 예컨대 뇌 물과 예물의 차이, 예의와 아부의 차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 했어요. 주제별로 정리를 해서 강의 시작 전에 10분 정도만 했어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몸을 비비꼬고, 하 품을 하고,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고, 적의를 보이더니 그게 한달, 그러니까 강의 한 네 번 정도 하니까 학생들 태도가 바뀌더라구요. 그러고 한 두달쯤 되니까 문을 열어주는 학생이 생겼어요. 그래도 아무도 그것을 아부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어요. 그리고 돌아가면서 칠판도 지우고 굉장히 태도도 좋아지고 다리도 꼬지 않고. 그러면서 제가 그 때 느낀 것이 교육이 나쁜 말로 하면 잔소리, 좋은 말로 하면 학생에 대한 사랑이고 관 심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교수로서 그동안은 지식만을 전달하고 교육을 시 킨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구요. 그래서 한 학기 끝날 때쯤 되니 학생들과 다 친해 졌고 이름도 다외웠고, 그러니 학생들도 익명성에 숨어서 적당히 하는 걸 못하더라구요

201 그 다음 부터는 학생들도 긴장을 하고 선생이 자기를 파악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행 동도 가려서 하더라구요. 제가 처음에는 이불 개는 법부터 가르쳤다니까요. 자기가 자기 침대를 정리하고 이불을 개는 학생이 놀랍게도 드물더라구요. 저는 우리 애들에게 절대 그런 걸 용납 안했거든요. 학생들 그런 것을 보고 충격 받고 이불 개는 법을 구체적으로 다 알려 줬어요. 처음에는 교수로 안보고 이상한 사람이구나 하더니 나중에 이불 개는 사람 손들어보라 했더니 늘어난 거에요. 기분이 어떠냐 물으니 좋다고 하더라구요. 내가 흘린 찌꺼기는 반드시 내가 정리하는 것이다. 전통시대에는 기본이 그것 이였다. 그래서 제가 소학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소학이 대단한 것이 아니다. 쇄소 응대 진퇴지절 이다. 쇄소라는 것은 물 뿌리고, 청소하는 것. 응대라는 것은 손님오시면 인사하는 것 진퇴지 절은 나아가고 들어가는 그런 어떤 행동거지인데 예전에는 당연히 진퇴지절이 심했지만. 자 예를 들어 보면 예컨대 여름에 교수방을 찾았다. 그런데 교수가 더워 문을 열고 있었 다. 그러면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가. 학생들 하나같이 노크를 하고 들어가야 한다. 라고 얘기를 해요. 그러면 들어가서 문을 닫느냐 그대로 두느냐 라고 물으면 반반이에요. 문을 닫아야죠. 라고 하는 학생, 열려져 있는 문으로 들어갔으니까 그대로 둬야죠. 라고 하는 학생. 그래서 제가 후자가 맞다. 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결론은 현대 소학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전통 시대 소학을 가르치는 것은 오늘날 법도 에 맞지 않지만, 가르치지도 않으면서 버릇없다고 하는 것. 이게 우리들의 문제가 아닌 가. 그래서 한 학기를 하고 나서 학생들의 태도가 좋아지고 성실하고 진지하고 결국 교 육의 시점이 남의 문제도 아니고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실감 했습니다. 그런데 한 학기로 끝났는데, 그 다음부터는 너무 힘들더라구요. 성과는 굉장히 컸지만 힘들어 못 하겠더라구요. 그래서 결국 지식만 나열하고 시험만보고 결국 내 스스로 교육을 포기 한 것입니다. 사실 요즘 집에서도 자식 교육하는 것에 대한 대안이 없는 거 같아요. 가정에 서 기본적인 인성교육은 가정의 몫이 아닌가 싶은데요. 그런 대안에 현대소학이 필요하 지 않은가, 오랫동안 제가 생각해본 겁니다. 어렸을 때부터 기본적인 품성에 관련된 규 범성, 예라는 것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애경을 극진하게 하는 것, 그 준칙은 결국은 행 동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언행이고, 그런데 그 언행이 어때야 한다는 규정 없이 이럴 땐 서구적인 것을, 이럴 땐 전통적인 것을 섞어 이야기하는데, 이건 역사하는 사람의 문제 도 교육하는 사람만의 문제도, 철학하는 사람만의 문제도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여러 분 야가 모여서 오늘날의 규범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손봉호 : 선생님 말씀하신 예의, 말하자면 이것은 다른 사람을 염두에 둔 교육인 거죠. 우리가 학 교에서 테크니컬한 것에 대한 교육은 자신을 위한 것이고, 베이컨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결국은 힘을 위한 거거든요. 지식이란 힘이다

202 힘이란 것이 지배를 하고자 하는 거고. 간접적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끼치게 하는 것이죠. 하지만 대부분 우선 자기를 위해 하는 건데 우리가 힘만 있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결국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게 되있고, 사회에 해를 미치는 겁니다. 그 건 결국 자기 교육도 제대로 안 되는 것이라고 믿어요. 다른 사람에 대한 교육이 잘 이 뤄져야 자신에 대한 지식 교육도 잘 되는것 아닌가 생각 합니다. 이규미 : 저는 정옥자 원장님 말씀 들으면서 거기에 덧붙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난번에 가치 관 이야기를 했는데 바로 그런 것들이 뭐냐에 대한 답일 수도 있겠는데요. 그 학생들이 그 시간에 와서 왜 불순한 태도를 보이고 관심이 없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 래도 자기에게 도구과목이 아닌거에요. 당장 써먹을 수 없고, 자기 힘을 키우는데 중요 하지 않은 과목이라는 생각을 해서 나태 했었는데 선생님께서 그런 부분들을 지적하면 서 저는 그 학생들을 따라오게 만든 힘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는데, 그게 자기를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굉장히 건방지게 앉아있는데 참 나는 이불 갤 줄도 모르는 아이고 선생님 이야기 들어보니까. 형편 없는 거죠. 자기 자신이 그러면서 내가 이런 것도 못 배운 사람인가.라는 자기 성찰이 있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스스로 바꿔나가고 해주시는 말씀에 대해서 감사를 느끼지 않았을까. 그런 마음과 내용 이 따라오면 학생들도 감흥을 받고 따라올 것이고, 우리가 그런 교육을 잘 못 시키고 있 는 것이 아닌가. 너무 지식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정작 학생들이 목말라하는 것 을 지나쳐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강정인 : 그냥 뭐 간단하게 떠 오른건데요. 아까 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형식적 제도적인 교육하고. 히든 커리큘럼.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을 때 아마 지난시간에 이야기 할 때 목적가치로서의 교육과 수단가치 로서의 교육이 연결되는 것 같거든요. 사실은 교육의 실제에 있어서 수단가치로서의 교육을 실천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교육에 이상적인 것 을 떠들어대지만 히든 커리큘럼이라는 것 자체가 교육이라는 것이 출세를 위한 도구이 고, 사회가 물질적 가치라던가 효율성만을 집중적으로 추구하다보면 그게 히든커리큘럼 이라면 교육이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도 엇박자로 돌기 때문에 부자연이 생기고 비리 가 생기는게 아닌가. 저도 한 가지 경험이 있는데. 어떤 때는 서강대 학부생이 사법시험 공부를 해야 하는데 휴학을 두 번 했는데 세 번을 하려면 학교에 탄원서를 내야하는데 지도교수가 협조하는 편지를 써주면 휴학을 받을 수 있다. 라는 것을 알고 이메일로 쓰고 서류를 보내라 라 고 했고, 이메일 내용은 고맙다 공부 정말 열심히 하겠다.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겠다 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제 주위에 사법시험 합격한 사람이 참 많은데 이 친구들이 그 당시 시험을 볼 때는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겠다고 했는데 지금 은 그냥 부유한 중산층이지 그 이상 빛과 소금인 것 같진 않다. 사회의 빛과 소금이라 함은 청소 아저씨라든가 그런 사람들이 빛과 소금인 것 같은데

203 너희들은 얼마나 빛과 소금이냐. 라고 답신을 보냈어요.. 너가 빛과 소금이 되겠다고 하는데 나는 납득이 되질 않는다. 내 주변에 사법시험 붙은 사람들이 참 많은데. 상당히 여유가 있기 때문에 사소한 범행은 잘 저지르진 않지만 특 별히 도덕적인 것 같진 않다. 사회적 책임감도 없고, 가장 세금도 많이 떼먹고 그러니 너 자신은 그러지 말아라. 그랬더니 사과하는 편지가 왔더라구요. 선생님 죄송합니다. 라고..저는 큰 생각없이 보낸건데..아무튼 그렇게 주고 받았는데 사법시험 공부할 때 빛 과 소금이 되겠다고 하는데 얼마나 빛과 소금이 될지.. 그런 회의도 들고 말로는 그렇게 해야 한다 라고 교육을 받은 것이고 히든커리큘럼이라는 것이 어떻게 해서든 출세를 하 는거죠... 김규원 : 사실 요즘 대학이 교육보다는 연구 강조하는 것 같거든요. 그에 따라서 교육을 맡 은 교수집단도 연구에 생활의 비중을 옮기는 그런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 교 수님 말 씀해주신 잔소리교육 이것은 진작에 포기를 한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때는 학생들이 그 런 잔소리를 들은 적이 없기 때문에 실천할 생각이 없었던 것 아닌가. 가정에서는 공부만잘하면 면죄부를 받는 그런 상황이기에 아마 그런 양상을 보인 것 아 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현대소학과 같은 커리큘럼이 어떻게 우리사회에 제도화 될 수 있을지. 이 앉은 자 리 에서는 번뜩 떠오르진 않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이것은 우리사회에 필요하다. 요즘은 인터넷 시대 방송 융합 시대에 교육이 점점 더 파편화 되는 추세인 것 같거든요. 그러면서도 개인의 주최 활동 무대라던가 개인이 갖는 사회적 관계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개개인이 갖는 사회성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으면 정말 자기가 가진 자기만을 위한 자기 힘을 키우기 위한 지식하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우려도 낳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회 구성원들이 가진 자기 개인의 힘의 역량의 제고와 더불어서 어떤 형태로든지 남을 배려하는 그런 관심을 키우는 것이 시급한 과제인 것 같습니다. 김정구 : 저는 사실 교육에 전문가도 아니고, 다만 과학계에 있다 보니까 이런 것은 조금 고쳐 야겠다. 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는데요. 정 선생님 말씀 하신 것이나 손 선생님 말씀 하 신 것처럼 교화나 전통적인 히든커리큘럼 개념 같은 그런 교육의 이것의 중요성은 누구 나 다 공감을 하죠. 교육의 어떤 개념이라는 것이 시대에 따라 바뀌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합니다. 기본적으로 교육의 목표는 어떤 인간이든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깨우 치고, 스스로 지식의 폭을 넓혀야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스스로 지식을 넓힐 줄 아는 사람에 중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이런 쪽으로 신경 을 써야 하지 싶습니다. 애들 심지어 책까지 다 챙겨주는 이런건 부모의 할 일을 못한다 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어떤 책을 한번 보니까 유치원 다닐 때 세상사는 것을 다 배웠다. 물론 지나 친

204 생각이 없진 않지만 거기에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이런 교육 에 초점을 스스로 사회에 필요한 지식을 넓힐 줄 아는 사람에 포커스를 맞춰야하지 않 느냐 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 문진 포럼 이라고 해서 사실 문진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그런데 이게 좋은 뜻인 데, 상당히 고색적인 표현이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앞서 말씀 드렸다시피 다른 사람에게 물어서 가는 것의 중요성도 있지만, 남의 지식을 빌려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조금 있지 않느냐. 저는 우리 애들한테 길을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저는 이런 교육시켰으면 합니다. 그래야지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을 할 줄 아는 즉, 늘상 남들이 하는 방법이 아닌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차원의 교육을 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세상의 현상 을 보면 기존의 개념보다는 새로운 개념이 정의되는 세상이참 많은데...그래서 스스로 지식의 폭을 넓히는 교육에 근접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정 민 : 선생님 말씀하는 것 듣다보니까, 논어의 學 而 時 習 之 가 생각이 나는데요. 그 당시 사람들 도 교육적 가치에 고민을 했구나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학은 가게 하라..라고해서 깨닫 는다..라는 것으로 해서..플롯을 달았고..어떤 사람은 학은 효 라고해서 본 받는다. 라는 어떤 모범적인 가치를 본 받아서 같이 나아간다. 두 가지의 이런 식의 학에 대한 것에 대해서 교육에 대한 방향이 확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지난번 토론에서 목적가치 도구적 가치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고, 제가 오다가 아 까 화 장실을 갔더니 좌변기 옆에 문구가 서강교육은 가치 지향적이다. 라고 써 있 었습니다.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는 안 밝히고, 서강의 교육은 가치 지향적이다. 라는 것을 슬로 건으로 내세우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그 옆에 보니까 서강의 교육은 인간공동체의 영성 함양을 목표로 한다. 가치 지향적이다. 라는 것처럼 무책임 한 것이 없거든요. 그런데 가치가 오늘날의 사회에서 교육에서의 문제는 물질가치가 사회의 절대가치가 되어버린 데 대해서 교화의 문제라던가 감화의 문제라던가 이게 물질가치라는 것이 무한경쟁 사회 속에서 삶의 지향점이 되다 보니까. 사회가 승자 독식의 구조가 되고 이 구조에서는 마이너리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번 낙오되면 다시 만회할 길이 없는 승자독식의 사회니까 부모들은 무슨 짓을 해서도 사회에 반열에 올려 놓는 것이 목표니까. 이렇게 되다 보니까 이러한 가치지향이 순위가 우리사회구조가 요 구하고 강요하는 문제를 짚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상생에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가치 지향의 문제에서 나오는 구조적 문제 에 대해서 정립이 있어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구요. 또 하나가 지난번 대안학교 관련해서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요. 그러다보니까 교육에서 시스템을 벗어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라는 것도 없지 않고, 이러다보니 이게 잘못 되면 창의성 각을 추구하는 방식이 신기하거나 엉뚱한 것을 장려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도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205 그래서 이런 문제를 조금 더 논의를 해봤으면 하는 생각을 했구요. 또 하나 지난번 논의 에서 조금 더 논의 되었으면 좋겠다고 싶은 것이 평생교육의 문제를 조금 더 그리고 사 회 교육의 문제를 조금 이 자리에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이후에 몇 십년의 시간들이 주어지는 이런 50년 이후에 실직하고 나면 그만두고 나 면..그 이후 몇 십년의 시간을 자기를 위해서 삶을 추구해야 하는데 여기서 주최적인 삶 의 영위가 되지 않는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제 세대간의 갈등이라던가..본격 적인 사회문제들이 다 있을 테니까 오늘날 교육의 담화는 이런 문제까지 포괄시켜야 하 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또 저는 학생들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12년 동안 대학 오기까지의 교육은 대학합격하기 위한 공부였고 대학 4년은 취직하기위한 공부였고 취 직하고 나서는 안 잘리기 위한 공부였지 한번도 평생 자기 자신을 위해서 공부한 적은 없거든요. 모든 교육이 거기에 맞춰서 강요 되어있고 이런 구조적모순이나 문제들에 대 한 어떤 성찰도 있어야 하지 않겟느냐 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덕환 : 지난번보다는 이야기가 많이 정리가 되는데요. 교육의 주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공교육하고 가정교육 사회교육 뭔가 지향하는 것이 다르고 방법도 달라야 하는 게 아닌가 싶거든요. 김정구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가정에서는 대체로 불가능 하고. 그런 것 들이 어떤 것들이 교육의 역할분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구요. 그 다음에 가치관의 우선순위 가치의 우선순위의 문제도 정옥자 선생님의 현대소학 문제와 같은 것인데요. 현대 소학을 많은 사람들은 인성교육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아요. 교사 임용이라던가 인성교육을 굉장히 강조하는데 알맹이 없는 구호성 인성교육이고 필요성 은 인식하는데도 알맹이는 못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거든요. 교육에서의 가치 관 우선순위 이것을 어떻게 봐야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의 문제인 것 같아요. 승 자독식 이라고 하지만 예전에는 승자독식도 아니고 주어진 대로 포기하고 살아야하는 것 아닌가요. 승자독식 이라는 것도 이렇게 표현하면 좋지는 않지만 승자독식이라는 것 도 기회가 주어져 있는 것이죠.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져 있는데 기회를 획득하기 위한 경쟁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죠. 독식하겠다고 노력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경쟁 의 방법이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교육에서 지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도 좋고, 삶의 기본적인 방법에 대한 것도 좋고 결국 우리가 좋게 말해서 과학의 시대고, 나쁘게 말해서는 물질 문명사회인데 결국 교육을 통해서 그 fact는 못 바꿀 것 같아요. 그 안에 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길러내야 하는데 결국은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것이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지향하는 가치의 다양성은 존중하면서 어떻게 경쟁을 부드럽게 하고 가 치관을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것 같아요. 어떤 면 에서는 교육의 문제가 경쟁의 룰 세팅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손봉호 : 저는 지식 교육, 기술교육의 주체는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인성교육 은 분업을 할 수 없다고 봐요. 인성이라는 것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없이 다른 사

206 람을 해치지 않는 겁니다. 물질적인 이익을 위한 경쟁도 하고 뭘 해도 결국 그것을 가지 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면 안 된다는 기본소양을 모든 사람들이 갖춰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저는 가치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고 생각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반 드시 가져야 할 가치는 도덕적 가치고, 도덕적 가치라고 별게 아니고, 도덕적 가치는 다 른 사람에게 해를 미치지 않는 것이죠. 그러니까 가치라는 말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 하 니까 힘이 드는 것 같아요. 다른 가치는 별로 우리가 강조를 안해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학문의 가치는 절대로 모든 사람이 갖춰 야 한다.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부당하게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 교육은 모든 사람이 다 해야 한다. 김정구 : 이덕환 교수님이 교육에서의 가치관을 말씀하셨는데 현실적으로 보면 고등학교 교사 선발을 보면 조금 황당하다고 할까.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교사선발에서 무엇을 가장 강조 하냐면. 교육관을 강조하는데 그래서 교육학이 아주 중요하다. 선발의 70%를 교육 학적으로 하는데, 실제 여러 사람 이야기도 나름대로 교육철학이 튼실하다면 내용을 잘 못배워도 된다는 거에요. 교육철학이라는 것이 교육과목 많이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 거든요. 나름대로 자기 어릴 때부터 인생관이랄까 가정 인성교육 사회에서 깨닫는 것인 데 그런 것을 교육학을 70%보고 능률을 30% 본다는 것이에요. 물리학회 회장하다보니 까 물리 교과서 보게 되는데 내용을 보니 제가 4~50년 전에 물리교과서 그때 고등학교 물리교과서 수준보다도 못한거에요. 심지어 물리책에 반도체에 대해서 한마디도 안 나옵 니다. 어떻게 반도체로 먹고 사는데. 반도체를 한마디도 안 가르치냐 그랬더니 사범대 교수말이 반도체를 넣으려면 고등학교 교사 모두 재교육을 시켜야 한다 라는 것이 우 리교육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육 하시는 분들의 가치관이 현실에 전혀 안 맞 다. 라고 생각 합니다. 그런식으로 70~80 년 내려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뀔 것 같은가. 잘 안바뀔 것 같아요. 거기에 교육에 대한 개념이 시대에 따라서 바뀌어야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 습니다. 엄정식 : 저도 깊이 생각 안 해봤거든요. 우리가 따로 교육에 대해서 생각을 안 하게 되잖 아요. 교육에 몸담고 보니. 공부할 때 교육자가 되기 위한 건 아니었잖아요. 그냥철학 좋아서 하다보니까. 교수가 된 것이고, 그런데 저는 늘 그런 것을 강조하는 것 같아요. 철학 같 은 것은 운동으로 치면 기본기다. 프리드로우 같은 것을 잘해야 뭘 해먹고 살든지 성공 할 수 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비유를 많이 했어요. 농구도 프리스로우 드리블을 탄탄해 야 위기에 강하고 대선수로 클 수 있다. 그런데 아까 정 선생님이 소학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fresh하게 가르칠 수 있느냐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게 우리 과제 같아요. 그전에 는 예를 들면 중세에는 성경에 있었다. 또 소학의 논어에 있었다. 라고하면 그 자체에 파워가 있고 설득력이 되잖아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게 어쨌다는 이야기냐? 그리고 그때 농경 유목시대에 나온 이야기인데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 그런 것을 어려운 것은 풀어서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게 요즘 사회의 특징과 연결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요즘 합리성

207 이야기 나오잖아요. 좀 더 테크니컬하게는 도구적 합리성, 목적적 합리성. 그러니까 조 금만 더 이렇게 세분화하면 비판적 합리성과 종합적 체계적 합리성, 분석적 독립적 합리 성인 것으로 나뉘거든요. 그런데 제 생각에 서구사회의 합리성에 대해 배우려 하는 것 은, 동양에도 합리성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체계화하고 정당화하고 종합하고 그런 합리 성은 강한데 그것을 뒤집어 엎고, 반성하고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그런 합리성이 약해진 것 같아요..그런데 그런 합리성이 서구의 과학을 문명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사람들한테 배울 것이 예를 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렇게 말한 아니에요. 중세때 스콜 라철학을 형성한 사람들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숭배해가지고 그런 과정을 캐치프레이즈로 만든 게 있는데. 아미쿠스 플라토 새드 마기스 아미카 베리타스 플라톤은 위대하다. 그러나 진리는 더 위대하다. 실제로 니코마코스에 그런 비슷한 이야기가 나와요. 특히 플라톤은 이해하지만 이데아론을 안 받아들이겠다. 그런 비판 정신이 서구사회를 만들었 다 전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사실은 19세기 동양 서세동점 이라고 하나요. 우리 가 그때 취한태도는 아주 한결같이 중국이나 한국이나 일본이 재주는 좋지만 정신은 우 리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런데 이게 잘못된 것 같아요. 정서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였어야 했어요. 우리가 비판 정신을 안 받아들인 것이에요. 그것이 과학을 과학으 로 가능하게 하는 건데.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려고 하냐면, 성경에 경전에 나오는 말씀 성현들의 말씀이 왜 옳은지 합리적인 논증을 통해서 보여주지 않으면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결국은 너를 이롭게 한다는 이것 하고 연결이 되어 있다는 거죠. 손 선생님이 더 잘 아시는데. 장 롤스라는 사람이 아주 고심참담하게 현대 전형적이고 바람 직한 인간상이 무엇인가 이것을 체계적으로 효과적으로 잘 할 수 있는 것이 교육 아니 겠습니까? 그 바람직한 인간상을 Rational egoist 라고 규정하거든요. 합리적 이기주의 자다. 그럼 이기주의자들의 객관적 사실이고 어떻게 하면 합리적인 이기주의자가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은 이기주의자라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그건 어 차피 인간이 생겨먹은 게 그러니까 옛날부터 공자도 이기주의자였고, 어떻게 보면 예수 도 다 이기주의자였다. 소학에 안 맞는 건 버리면 되는거고 챙길 건 챙기면 되는거고, 한가지 또 예를 들면 얼마전 정착자가 쓴 것이더라구요. moral freedom이라는 책인데, 뉴욕타임즈에서 다뤘더라구요. 거기에 재미난 예가 있는데 우리가 왜 용서를 해야 하나. 왜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하나 그 전에는 성서에 써져 있어 그런 거라 생각했는데, 용서 를 안 하고 품고 있으면 자기가 답답해서 못살겠다는 거에요. 논어에 있다든지 소학에 있다든지 코란에 있다든지가 아니라 정말로 네가 편하고 싶으면 용서해라, 이런식의 접 근이 좋지 않을까. 아까 정옥자 선생님의 이불 개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런데 그 거는 진짜 이불 개는게 아니라 기본을 다지자는 거잖아요. 해 먹고 살던지 의사가 되든 지 깡패가 되든지 큰 깡패가 되려면 대도가 되려면 이불을 개는 기본적인 것 있잖아요. 그런데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규미 : 저는 우리가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갖는게 전문성과 인성이 있자나요. 인성이라는 것이

208 사람에 관한 것인데. 지난번은 지식 위주의 교육은 막 진행되는데. 인간에 대한 것이 필 요하지 않냐는 이야길 하다 지난 시간 마무리했습니다. 사실은 지식 위주의 교육도 지 금 문제가 있어요. 김정구 교수님도 말씀을 해주셨지만 우리가 지금 입시위주에 대한 공부만 하다보니까 지식자체에 대한 공부지, 지식을 얻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 부족한 것 도 교육에서 논의가 되어야 할 것 같구요. 여러분들께서 사람됨의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 를 해주셨는데 아까 사람에 대한 교육에 대해 손봉호 선생님께선 남을 해치지 않는 것 을 말씀해 주셨고, 그리고 엄 선생님은 합리적 이기주의자 이야길 해주셨는데.. 저는 인 간화교육인데? 그럼 인간화가 무엇인데? 라고 생각을 해보니 나 자신의 인간적 품위를 잃지 않는 것 품위를 지키는 것 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인간적인 품 위가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했었구요. 사실은 아까 처음에 말씀 주셨던 히든 커리큘럼에 대한 말씀에 대해 자신도 모르게 보고 배우는 것이 많다. 저도 학생들에게 처음으로 상 담심리를 배우는 학생들이 용어가 너무 어렵다고 이야기를 해요. 제자들이 언제 교육을 다 받냐고 묻곤 하는데 그럴 때면 제가 격려 하면서 하는 말이 걱정하지 마 라 공부하다보면 가랑비 옷 젖는 것처럼 교육 다 받고 나면 저절로 상담심리학자 가 되어 있을 거라고 말해요. 저는 교육을 그렇게 봤죠. 그렇게 교육이 끝날 때 쯤이 면 확실히 달라지기도 하고. 그런 것을 느끼는데요. 그 부분은 저희가 의식하면서 교육 은 할 수 없지만, 상담에서는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의사소통의 93%가 nonverbal로 전달이 된다. 그만큼 사실은 의도적으로 말로 하는 것 보다 비언어 적으로 가는 것이 많 다. 그래서 요즘은 비언어적인 방식이 어떤 것이냐 라는 것을 많이 가르쳐요. 교육도 우 리가 모르게 가르치지만 우리가 자각을 해서 뭔가 그 부분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나타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구요. 그리고 합리적 이기주의자에서 전 좀 더 대화를 하면 좋겠어요. 아까 말씀하신 의대생들은 이런 게 발동했을 거에요. 내가 서울대 의대 다니고 괜찮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까 선생님 말씀 듣다 보니 내가 부족한 거 아니냐..라는 자각을 갖고 이런 생각 들고 자기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말 중 하나가 에들러라는 상담심리학자가 건강한 사람이 표준으로 거는 두 가지 기준이 있는데 사회적 관심과 공동체감이에요. 자 기 자신이 충만한 사람은 저절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학 생들에게도 계속 이야기를 하는데 여러분들은 나만 아는 사람은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 다. 남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전공 내에서도 전공생들을 위 한 일에 하나라도 참여를 하는 것이 건강한 사람 아니냐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사람이 만들어지려면 자기가 우선 충족이되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갈수 있도록 가르 쳐주면 교육이 되지 않을까.. 그런 것이 저는 인간적 품위를 지키는 거라고 생각했습니 다. 엄정식 : 합리적 이기주의자라는 개념이 그것도 포함해요. 자기가 진정한 이기주의자가 되 자기가 먼저 거점이 되야 하는 것이죠. 그 의미를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려면

209 손봉호 : 합리적 이기주의 때문에 제가 예전에 그것을 사용했다가 오해를 많이 받았습니다. 이규미 : 용어자체가..그 이기주의 라는게... 손봉호 : 엄 선생님 입장도 잘 들었는데 인간이 이기주의적인 것을 어떡합니까. 받아들여야 하는 데 그것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그 이기주의를 충족시키면 그게 괜찮아 진다. 라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이에요 거에요. 합리란 말이 요즘은 사실 도구적 합리성 이라고 해서 이기주의적인 것을 갖고 있어요. 제가 합리적 이기주의라는 말을 쓰니까 누 군가 그러더라구요. 합리적이라는 말하면 거기 이기주의가 포함된 거 아니냐. 전 엄 선 생님 말씀하신 합리적인, 성숙한 인간이 교육의 목표가 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해요. 합리 성에 대해서 동양이 상당히 약점이 있잖아요. 서양의 합리성이라는 그리스 사상에서는 감정을 억제함으로서 합리성을 추구했거든요. 감정이니 욕망이니 이런 것은 진리를 찾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다. 그 욕심이 개입되지 않아야 합리적이 되지 욕심이 개입되면 합 리성이 상실해 버린다. 라는 전통이 있는데 우린 아직 그걸 못하고 있어요. 오히려 궤변 이. 하여튼 수준 낮은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논리를 이용하는 궤변을 너무 많이 써 버린 다는 것이죠. 이 객관적으로 합리성이 되지 않고 궤변으로 흘러버리니까 이게 합리성이 냐. 저는 정말 엄 선생님 말씀하신대로 진짜 합리적이 되려면 품위가 있어야하고 해를 안 끼쳐야 하는 것이지,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결국 직 간접적으로 자기가 도움을 받 게 되는 거니까. 그래서 우리가 지금 자기 품위를 지키는 사람, 남에게 해 안 끼치는 인 간, 합리적 이기주의자 이런 다른 개념 생각해도 결국은 같은 결과로 가게 될 것 같아 요. 이규미 : 저도 이해가 가는 것이 불교에서도 살생을 하지 말라던가..악업을 짓지 말라는 것이 결 국은 자기에게 되돌아오는 그런 기우 때문에 그런거니까... 김규원 : 저는 합리성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것이 갖는 사회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갖는 의미 를 짚어보고 싶습니다. 바우만 학자가 Legislators and Interpreters 라는 책속에서 이 야기를 했는데 근대국가가 성립되기 이전에는 개별 공동체 단위에서 교육이 이뤄지고 어떤 것이 바람직한 삶이고 하는 단위였다가 이것이 근대국가의 성립과 더불어서 점점 중앙 집권화 되고 바람직한 가치가 뭐다 라는 것이 규정화되어가고 특정 이데올로기를 보편화시키는 과정 속에 이 합리성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그런 합리성을 도구화 시키는데 있어서는 지식인의 역할을 이학자는 비유적으로 Legislators 나 특정한 생활양식이든 가치관이든 지식 그 자체도 규정을 하고, 법적으로 효력 할 수 있는 그런 것을 지식인이 했다. 세계화되고 탈근대적 맥락 속에서는 그것이 갖는 포악성이라던가. 배제와 소위 절차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탈락 하게 되는 상황 속에서 지식인들에게 요

210 구되는 것이 Interpreter다. 그것은 뭐냐..라고 함은 각각의 작은 단위에서 개별적 단위 까지 내려가겠지만 갖는 가치나 양식 문화 다 다른 것이죠. 그것을 그네들의 입장에서서 전체적인 해석하는 것은 해석하는 사람의 입장의 차이니까 지식인의 역할이 커야한다. 저는 이것을 교육 부분에서 어떻게 접목을 해야 하나 고민을 했습니다. 제가 갖는 교육 관은 개인의 잠재력을 개발시켜주고, 궁극적으로 개인이 자기중심적 인식을 구축해가면 서 행복감을 갖도록 하는 것 그것을 바람직하다. 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러나 우리가 하 나의 제도적 차원에서 교육을 한다는 것은 근대 국가가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이 학교 에서 배울만하고 가르칠만하고 이런 식으로 가기 때문에 그 틀 속에서 전부 배우고 그 런 교육을 또 행하는 사람으로 정말 진정한 인터프리터 위치의 교육을 적용할 것인가 고민이 되는 부분 이더라구요. 지난번에 교육주체라는 말 나왔을 때 한 이야기가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사회에 주어진 여건 속에서 수십년 동안 교육이라는 전문적인 활동을 해 온 사람들이 시대적 책망, 사회적 소명을 갖는다면 그 사람들의 전문적인 판단에 교육은 어떻게 된다. 어떻게 가르쳐야된다. 라는 것은 우리가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물론 교육에 관여 하지 않는 제 3자적 학생들 학부모들 자기들도 나름대로 교육에 주력할 수는 있겠 지만 하나의 집단 지성차원에서 이것이 교육이다. 그래야 할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은 교 육자들의 부담이고 책무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런 의미에서는 토마스의 자유로 운 생활속의 의사소통 구조를 통하든 전문가 집단들의 일반인의 요구까지도 감안해서 자유로운 의사 개진을 통해서 뭔가 끄집어 내야할 필요는 있다. 라는 것에 대해서 문진 포럼에 기대하구요. 그런 차원에서 교육이 뭘까? 어떤 형태로든지 제가 볼 때는 지식과 인성이라는 두 축을 조화롭게 엮어가는 그런 방향으로 여기서 제시하는 대로 21세기 사 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이 아닐까 생각 합니다. 흔히 그랬을 때 표제와 비슷하게 사람들에 게 비전을 제시하는데 있어서 용어를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그랬을 때 요즘 창의적인 인간 양성 기업인들도 그걸 좋아해서 그런지 그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데, 창의라 는 개념에 대해서 교육적으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 우리사회가 덜 민감하게 접근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유학시절에 80년대 중반에 미국의 효과적인 중 등교육을 위한 연구소에서 한일이 무엇이냐면 어떻게 하면 미국학생들은 중등학생들에 게 창의적인 사고를 하게 하는지 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맥락은 무엇이냐면 동아시아 신흥 개도국 경제 성장률이 낮고 점점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데 자기들이 여러 가지 분 석을 통해 비교를 해보니까 대학까지는 자기들의 경쟁력이 월등히 나은데 초등교육도 나은데 중등에서 아시아에서 보니까 일본이나 중국이나 한국이나..교육의 질이 떨어진 다. 교육의 양도 떨어지고, 규범적측면도 떨어지고. 거기서 굉장히 차이가 난다. 해서 그 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년차가 600만불의 연구비였어요. 중등과정에서 창의적인 사고를 어떻게 시킬까하는 것 이였는데 프로젝트 명칭이 h.o.t 프로젝트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고차적 사고를 위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왜 창의적이라는 말을 안 쓰느냐 라는 논란 중에서 창의라는 것이 정 말 가치 함축적인 용어지 않습니까. 무엇이 창의냐?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사고라는 것

211 은 다 창의적인 면이 있는거죠. 그래서 그 대안으로 가치 중립적인 학문적 용어로서 고 차적 사고를 쓴 것 같습니다. 창의 그러면 자칫 잘못하면 특별한 영재 천재들만 하는 것 으로 생각하는데. 고차적 사고는 교육을 통해서 충분히 접근 가능한 개념이다. 라는 식 으로 가더라구요. 미국사회는 현실문제와 더불어서 아직 연구가 그렇게 진행되는 것을 보고 배울점이 많 다. 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사회도 인간상에 대한 것이 나오면 학문적으로 연구 가능한 형 태로 테마가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정옥자 : 한가지만 물어볼께요. 창의성과 예의가 상충하는 겁니까? 김규원 : 거기까지는 고민을 안 해봤습니다. 이덕환 : 일부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김정구 : 인성하고 창의성하고...그렇게.. 정옥자 : 제가 워크샵에서 했던 얘기가 있는데, 아이들 교육, 인성교육에서 예의를 가르쳐야한다 고 얘기를 했었거든요.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 같은 경우에도 임진왜란 병자호란 같은 전쟁으로 엄청난 혼란을 겪었어요. 그래서 예를 세워야겠다는 얘기가 시작 된거죠. 결국 왜 예가 필요한가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면서부터 17세기에 수많은 예서가 나왔어요. 그 러면서 예라는 것이 국민생활에 침투하면서 국가정치 문제로까지 확대대고. 그것이 17 세기 상황 이였거든요. 물론 세계 진화론에 입각해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약육강식 적자 생존의 시대, 경쟁의 시대니까 싸워서 이겨야 사는 세상 이자나요. 하지만 우리는 두 번 의 전쟁에 더해 일제시대란 엄청난 시련을 겪었자나요. 그 당시에는 나라를 잃은 마당에 예의염치가 어디 있어요. 살아 남는게 최선이죠. 거기에 6.25전쟁도 겪고. 그러니까 우 리가 세계적인 가치 기준으로 봐도 기존의 가치가 다 무너졌구요. 게다가 두번의 시련을 겪고 나서 사람들이 거칠어진 상태가 되 버린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이 시점에서 어떻게 가야 하는가 하는 중요한 전환점인거 같아요. 경제 정치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문제가 비인간화 되어 가고 있으니까 교육을 통해서 어느 정도 미래를 조금씩 설 계를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제가 조선시대를 예를 들어가면서 이 혼란 한 사회일수록 예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예는 법과 도덕의 중간쯤 위치하는 것이 아닌가. 법은 강제적이고 도덕은 굉장히 자율적이지만 예는 자율적이면서도 남의 눈을 의식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간 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예의 규범 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는데 같이 얘기 하시던 분은 학생들에게 예 의라고 가르치면 창의성이 없어지니 안된다. 라고 해서 논쟁을 해야 하나 고민을 했었습 니다

212 김규원 : 아마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추측한다면, 형식적 강압적으로 예를 배운다면 그것 이 사고의 부분에서 영향이 억압적으로 가기 때문에 창의성이 죽는다. 라는 뜻으로 말씀 하신 것 같네요. 우리가 창의적, 도덕적 인간상이라는 표제를 초등학교가면 많이 볼 수 있는데 그 도덕이란 것이 느슨한 부분이고. 중간적이란 위치가 적절하다고 받아들여지는 데, 그 말씀을 듣고 생각하니까 도덕적이라는 것이 개방적이고 주최적인 인간상을 지칭 하는 것으로 보거든요. 자기가 충족되야만 남을 배려할 수 있다. 라는 것이 주최적인 인 간을 말하는데 남을 배려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요즘 얘기하는 다 문화 사회에 적합한 가치를 드러내고 아마 그런 개방성과 주최성이 함께 어우러진 것이 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결과 창의적인 것과 상충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강정인 : 그런데 제가 반대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는데요. 예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습니다.교육학 적으로 근거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린아이들에게 방을 치우라고 시키고 너무 정 돈된 방에 있는 것 보다는 어지럽고 널려있는 것이 사고 전개에 도움이 된다던지 벤처 기업에서 정복장이 아닌 자유롭게 복장을 입고 마음대로 출퇴근을 해라 하는 것처럼 행 위에 대한 암묵적 디스플레이에 많은 신경을 쓰다보면 상대적 비중에 차이가 많이 생기 고 자신의 사고가 뻗치는데 마이너스가 있으니까 그렇게 말씀하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규미 : 예의를 표현하는 형식은 예전과 지금은 다를 수 있겠죠. 어떤 사람은 예의라고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차이라고 볼 수 있겠죠. 심리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예를들어 방을 정리하는 것이 편할 수도 있고 어질러져 있는게 편할 수도 있는건데, 그걸 예의가 없는 아이라고 하면 힘든거죠. 사실은 창의성에 대해 문헌에서 말하는 공통적인 개념은 새로 움 플러스 적절성이란 거지요. 흔히 창의성 하면 새로운 것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이 가 치가 우리에게 얼마나 유용한 것인가 하는거지요. 창의성은 예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적 절한 것이다. 창의성은 결코 이상 괴상 망측한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가치다. 브레인스토밍하다가도 결국 수렴을 하잖아요. 그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유용한 아이디어인가. 그게 창의성이니까 저는 예의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 다. 정옥자 : 그런데 저는 합리적 이기주의자란 개념이 굉장히 낯선데요. 또 다른 예를 들을게요. 어떤 분이 합리주의에 대한 숭배를 하시드라구요. 한분은 사이 언스, 한분은 언론학 하는데 이 세상 모든 것을 합리주의로 해석하고 합리주의에 맞느냐 안 맞느냐로 나누시는데 그래서 제가 합리주의가 도대체 무어냐 했더니 합리주의도 모 르냐 하면서 윽박 지르시더라구요. 그것도 하나의 기준이 될 수는 있지만 어떻게 그것이 최고의 가치냐 제가 그랬거든요. 그걸 너무 맹신하면 그것도 미신일수 있다고 서로 얼굴

213 붉혀가면서 논쟁 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합리성과 탐욕, 욕망과 대비시키는데 감성과 이성. 저는 그 말을 더 많이 써요.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유익하고 좋아도 자기한테 기 분 나쁘면 안 하는게 한국사람 이에요. 그게 사실은 감성과 이성의 문제라고 생각 하는 데요. 전통시대 감성과 이성의 조화를 굉장히 중요시 했거든요. 또 너무 감성이 흐르면 기준이 없는거죠. 그것이 불균형된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고, 너무 이성만 찾는 사람은 각박한 사람이고, 너무 감성에 치우치면 기준이 없는 사람이죠. 저는 감성 이성이 조화 된 사람이 전통시대부터 추구되어왔고,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너무 합리주의만 강조하고 있는데 또 최근 들어는 EQ가 중요하다고 강조하 고 있어요. 그때까지는 IQ가 최고였는데 말이죠. 요새는 EQ도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걸 보면서 세상이 변하고 있는 건가 했습니다. 엄정식 : 넓은 의미로 보면 인간이 전부 합리적이죠. 동물에 비해서 넓고 깊게 생각하고 그것을 여러 가지 기준으로 합리성을 나눌 수 있지만 대체로 최근 구체적으로 얘기를 하면 칼 포퍼 라는 사람이 과학 철학잔데 이 사람은 서구의 합리성을 두부류로 나누더라구요. 하 나는 종합적 체계적, 합리성 사물을 보면 체계화하려고 하고 분류 하려고 하는데, 그것 이 합리적 접근을 하는데 동양뿐만 아니라 서구도 그것이 지배했다는 것이죠. 정옥자 : 서구가 과하죠. 엄정식 : 서구가 과하죠. 이 사람은 이것을 도그마틱 내셔널리티 독단적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철 학사를 다뒤져도 두 사람밖에 없어요. 소크라테스 칸트하고 자기 인간의 이성적 능력 중 에 비판적 능력이 있는데. 동양이 약하죠. 얼마전에 한국철학사를 보다보니까 그 율곡이 처음으로 그 얘기를 하더라구요. 주자가 말해도 틀리면 틀린 것이다. 그때서야 비판적 합리성이 전면에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럴 정도로 도그마틱 합리성이 지배했다는 것이죠.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도. 유달리 소크라테스와 칸트가 인간의 이성의 비판적 능력을 극 대화해서 과학사를 훑어보면 한동안은 패러다임이 있어서 넙죽 엎드리지만 그걸로 한 세기를 가진 않자나요. 지나면서 축적되고 그것이 비판정신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거든 요. 동양에도 니담같은 사람도 엄청난 과학기술이 동양에 있었는데 선비정신 때문에 성 장하지 못했어요. 자라질 못하고. 뒤집어 엎는 비판정신 때문에 그것이 학문으로서 크지 않고 기술로서 머물렀다. 정옥자 : 선비정신이 비판정신인데. 엄정식 : 맞아요!! 서구의 바로 그 비판정신이 강하게 부각되어 근대에 달라졌다는 것이죠. 비판정신은 합 리성 이야기 할 때 과학정신과 연결된다고 보거든요. 과학정신이 갖는 경험적 관찰과 논

214 증과 열린 마음으로 보편화 하는 자세 누구한테든지 practice 가능한 그런 자세 받아들 이는 것이 늦었지만 그것이 서양 것이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더 다음단계로 비약하 기 위해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규미 :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안 받아들였나요? 엄정식 : 아니요 받아들였죠. 제가 어렸을 때가 생각나는데 소련에서 스푸트니크호를 올렸잖아요 그때 미국이 굉장한 충격에 빠졌어요. 근데 그 당시 미국은 시카고를 중심으로 한창 실 험 교육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시기였거든요. 수학시간도 토론을 했데요 그런데 수학을 다수결로 결론 내는 것이 아니자나요. 결국 그러다가 소련에 뒤졌다는 거죠. 그래서 중 등교육을 중심으로 전면적으로 교육정책을 바꿨어요. 사실 찬반을 가르는 것도 어느정도 수준이 되어야 가능한거거든요. 그런 디스플린이 있어야 찬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런 것과 연결을 해야 교육학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이덕환 : 창의란 말이 사실 굉장히 경계해야 될 말이거든요 사실 새로운 것과 적절한 것을 말씀 하셨는데. 새로운 것은 실시간으로 파악이 가능하거든요. 적절한 것은 사실 사후 판단이 더 확실해요. 그렇게 되면 창의적인 것은 사기적으로 대비되요. 성공하면 창의적인 것이 고 실패하면 사기꾼이 되는거죠. 그게 교육계의 엄청난 화두거든요. 근데 이중에 상당한 부분이 김정구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인 가 하는 주장이 강해요. 기존의 틀에 아이들을 가두면 안 된다. 그냥 아이들을 풀어둬 라. 아이들이 자꾸 보고 재미있게 느끼다 보면 마음대로생각하고 그게 창의력이다. 라고 주장해요 정옥자 : 기존의 교육이 너무 벽돌 찍어내듯 하는 교육이어서 그랬죠. 이덕환 : 그거에 대한 반발을 괜찮은데 그게 너무 극단적으로 가서.. 경계해야 하는..오히려벽돌 찍어내는 것보다 더 나쁠지도 몰라요. 김정구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결국은 저희 과 학기술 쪽에서 보면 지식교육이거든요. 수단적 목적적 교육이죠. 교육은 사실 둘 다 필 요한거죠. 둘의 배합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지만 거기서는 효율의 문제가 심각해요. 효과가 있는 교육인지 우리가 정말로 필요한 것을 가르치는지에 대한 의문이 심각하구 요. 인성교육 이라던지 교화라던지 하는 그쪽부분도 상당히 중요하거든요. 여기서 툭 던져보고 싶은 말씀이 지금까지 과거의 일을 보면 인간이 무슨 짓을 해도 상 관이 없었습니다. 즉 우리끼리 잘 살면 되고 좀 자연에다가 부담을 줘도 금방 회복이 되 고 그런데 지금은 66억이 살고 있거든요. 이제 우리가 잘못하면 자연이 회복되지 않는 시대이구요. 우리가 합리성, 이성이야기 할 때, 이제는 남들, 인간의 남뿐만 아니라 자연 의 남도 같이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근데 또 저는 상당히 불만스러운 것이 그것들이

215 남에 들어오는 건 상관이 없는데 그것이 생태주의, 환경주의로 들어가면 거긴 사람이 없 어요. 생태계와 환경을 위해서 우리가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는 것으로 가고 있거든요. 가고 있다라기 보다는 그런식의 주장이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다른 생명이 뭔지 이해수준이 상당히 높아 졌거든요. 그런 것이 교화 인성 교육쪽에 같이 포함을 시켜야 하지 않은가 생각을 하거든요. 단순히 우리끼 리 피해를 주지 않고 잘 산다기보다는 더 넓은 의미죠. 과학을 모르는 피상적으로 과학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다뤄야 하는 문제로 들어가서 인성교육의 의미가 달라져야 하 는 것이 아닌가. 엄정식 : 거기서 하나 더 붙여서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우리 자라는 아이들이 사이보그 같은 것 이 정말로 이웃이 될 수 있는 사회, 로봇이 인간성을 대등하게 가지게 되는 시대를 살아 야 되는 아이에게 교육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지 않나.. 아직 우린 그런시대에 전혀 준비 를 못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인간개념 자체를 확장해야 할 필요성이 있지 않나.. 손봉호 : 선생님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주장을 했는데 요즘은 그것 을 알아내기가 힘들어요. 예를 들어서 인터넷에 악플을 달아도..이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지 안주는지 인식하기가 상당히 어렵거든요. 이번에 미국경제를 그렇게 만든 파생상 품. 이게 정말 남에게 피해를 주는지 안주는지 판단하는 것이 옛날보다는 정말 복잡한 것 같아요. 이덕환 : 의미가 상당히 복잡해지는 것 같아요. 손봉호 :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예의를 자꾸 주어진 규범이라고 생각하니까 창의와 모순이 된다. 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예의도 규범도 새로 정의를 해야 하지 않느냐. 사실 예 의는 나와 다른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거지 동물하고 일어나는 건 아니자나요. 예의란 것은 결국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해를 끼치 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 예의다. 라고 딱 정의를 해버리면 얼마든지 창의성과 경중을 가 늠하기 가능하다. 그런데 이것을 주어진 규범, 주어진 틀에 들어가면 창의성이 약해지는 것은 사실이죠. 그러니 자꾸 모순이다 그러는 거죠. 지금 자연을 또 하나의 타자로 할 것인가 하지만 그것도 결국 다른 사람의 관계로 넣을 수 있습니다. 자연이 망가지면 자 연히 사람도 고통을 당하고 결국 다른 사람이 망가지면 그러다 보면 나도 망가지게 되 고. 자연을 굳이 의인화 하지 않더라도 지금 있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연장하 면 자연히 자연에 대한 관심도 기대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덕환 : 지금까진 원론 이야길 했거든요. 원론 관련해서는 결국은 다 이야기가 나온 것 같습니 다. 너무 현실적이면 의미 없는 담론이 되겠지만 조금은 현실 문제로 가보는 게 나을 거

216 같아요. 김정구 선생님이 이야기를 조금 해 주시죠. 김정구 : 우리나라도 많이 바뀌었구나 싶은 기사가 최근에 났는데, 내용이 뭐냐면 우리나라출판업 계가 상황이 어떤가에 대한 거였어요. 거기 나온 걸 보면 베스트셀러, 밀리언셀러를 갖 고 있는 회사가 더 쉽게 망한다는 거에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내용을 봤더니 밀리 언셀러 갖고 있는 회사들도 있고, 또 다른 회사들 예를 들면 천부 가지고 있는 회사도 있고 그런데 밀리언셀러 갖고 있는 회사가 한 몇년 하다가 부도가나고..그게 뭘 말하느 냐 하면 그게 물리에서는 파레토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옛날 영국에서 부의 분포가 어떻 게 되었는가 조사한 것이 있습니다. 영국 인구 20%가 나머지 부의 80%를 지배하는 거 에요. 그런 시대에는 20% 인구가 지배를 하면사회가 다 지배되는 거에요. 소위 말하는 선택과 집중이 되는 그런 사횐데, 요즘은 우리나라도 출판업계도 자질구레한 걸 많이 갖 고 있는 거에요. 조그만 출판사가 얼마나 많으냐가 우리 사회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거지 잘나가는 몇 군데로는 사회가 위태위태해질 수 있다는 거죠. 다시말해 사회가 바뀌 어가면서 테일이 얼마나 튼튼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튼튼한지가 결정되 는 겁니다. 또 사례 중의 하나가 음악도 예전에 베스트셀러만 잘 팔면 되는 거였는데, 요즘은 그게 아니라 잘 안 팔리는 것이 잘 팔려야 한다는 겁니다. 예전에는 20%가 80%를 가지고 있었는데 요즘 사회는 20%가 80%를 차지하는 것이 아 니라 50%를 차지하는 거죠. 그걸롱-테일 사회라고 합니다. 예전에 굵은 놈들이 지배하 는 사회였다면 지금은 조그만 놈들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은 무엇이 중요하냐.. 교육할 때도 큰놈들이 중요하지만 상당히 밑층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회 산업구조도 대기업이 지배하는 거라기 보다는 중소기업들 내지는 개인사업자들에게 기대하는 것으 로 바뀐 겁니다. 따라서 교육을 할 때도 이런 것 개인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 앞으로 중 요한 과제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지금7차 교육과정에서 보면,학생들에게 다양 한 교육을 제공 한다. 소위 다양성을 강조 하는 것이죠, 과목수가 80개가 됩니다. 나는 지리학이 그렇게 가짓 수가 많은지 몰랐어요. 국토지리, 세계지리, 경제지리, 정치지리 다양하게 하는 거에요.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거에요. 하고 싶은 것 하라! 그런데 그렇게 배워서 그것을 학 생들에게 나가서 어떤 경쟁력이 있는가..경쟁력이 있는 과목을 가르쳐야 하는데 자유로 운 선택에 있어서 쉽고 재미있는 것만 하거든요. 이것이 중등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 까 먹고 다양성 자율성을 제공해서 망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일본은 고치고 있는데.. 우리 는 아직 계속 주장을 합니다. 강정인 : 처음에 철학이 좋다. 그래서 좋다는지 알았는데..지금 말하시는 것 보니까 비판하시는 것 같내요. 역설적으로 말씀하신 것이죠? 철학은 아주 좋습니다. 라고 하신 것이

217 김정구 : 아니 그러니까 철학은 아주 좋은데 현실을 무시하고 착각을 한거죠. 교육이 대학에 책임 이 아닌가 싶은데 학생들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해야 하는데 결국 우리가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교육에서 뭐가 경쟁력에 파워가 되는가 수학하고 과학교육이 사실은 파워입니 다. 그런데 그것을 선택으로 해놨기 때문에 쉬운 교과목을 선택 하기 때문에 그런 쪽으 로 가고 있습니다. 정 민 : 선생님 말씀에서 공감 합니다. 다양성과 자율성을 보장함으로써 개인이 선택함 으로써 그것은 개성으로 나갈 것이고 이것을 통해서 창의성을 길러지면 우리시대가 요구하는 인재가 만들어질 것이다. 가정 하에서 진행되었지만 사실은 여기에 작동되는 원리는 자 기의 개성도 아니고, 자율성도 아니고 어떻게 하면 쉽게 하고, 점수 잘 따는 것으로 작 동해 버리니까. 대학에서의 교양과목이나 전공과목 붕괴라는 것이 다 그런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자꾸 남과 창의성이 위험하게 빠질 수 있는 부분이 그 지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실 오늘날 자녀교육 할 때도 자기 자식은 특별하고..나는 특별하고 나는 나니까. 뭐 이런 식의 신문 광고 카피에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것 들이 교육에서 현장에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경향도 고려해 봐야 할 사항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강정인 : 그런데 제가 들었을 때는 그것은 교육제도가 자체가 잘못 됐다고 보기 보다는 결국 점수 가 잘나오는 것을 택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대입 제도가 어떻게 개선되지 않 는 한 학생들은 좋은 대학을 갈 것을 목표로 공부를 할 것이고 결국 쉬운 과목을 택할 것이고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대입경쟁..그것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죠. 김정구 : 대입경제가 갖고 있는 것도 크지만 체제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죠. 사실 우리가80개의 과목을 들을 필요도 없고, 실질적으로 인문 사회 인문계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이 무엇 인가. 기본적인 것은 가르쳐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요즘미국의 경제가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지만 그런 증권회사라던가 사람을 구할 때 면접 문제 나오는 것들 이 증권을 끼고 있는데 비유를 해서 그렇겠지만 자동차가 어디가 가장 stable point인 가. 그것이 달리 그런 것은 아닐 것이고, 분석력이 어떤가를 보려는 것이거든요. 제가 이공계 학생뿐만 아니라 인문계도 가르치고 있지만 과학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를 합니다. 왜냐하면 과학이라는 것이 분석력을 키워주는 분야이기 때문에 비록 인문계라 하더라도 그런 분석력을 키우는 그런 과목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다른 나라 이야기 많이 하는데 소위 하버드 MIT에서도 인문과목을 필수적으로 가 르치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그런 것은 전혀 이야기 하지 않고, 이공계 따로 인문계 따로 이런식으로 계속 진행이 된다는 것이죠

218 엄정식 : 제가 질문 겸 코멘트 하고팠던 것이 그것 입니다. 과학교육과 수학교육이 필요하다했는 데, 그게 꼭 중학교때 미적분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고가 있잖아요. 과학적 사 고와 수학적 인식이 있잖아요. 사물을 볼 때. 그런게 저는 서구사람에게 배워야할 부분 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서구 문물을 받아들일 때 포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거기 열 매만 따먹으려고 했다는 거죠. 일본도 그렇다고 보구요. 그런건 오히려 우리나라가 앞서 가는 편이라고 봐요. 과학과 수학을 조금 더 넓게 보면 비판적 사고와 함께 분석력을 길 러주는 거죠. 열린사고 열린 마음을 갖고. 그것의정치적 표현이 민주주의, 그것의 경제 적 표현이 자본주의라고 생각해요. 뿌리는 과학정신이라고 생각하구요. 일환으로 논술 그런 것도 한 건데 실제로 시 행해보 니 삼천포로 빠지고 있단 말이에요. 중요한건, 왜 그것을 가르쳐야 하느냐 고 또 어떻게 그것을 가르쳐야 하느냐 입니다. 이상주의적인 생각만을 할 것이 아 니라 장관을 지낸 친구들이 주변에 있는데, 관료제 때문에 안 된다는 거에요. 구 체적으로 말을 하자면 교 육부를 없애던지 완전히 틀 속에 갇혀 있고. 장관 메시지 가 전혀 전해지지 않고. 존재 하기가 어렵고. 이념을 갖고 들어가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런 제도적 문제. 암 튼 그거는 전폭적으로 지지하는데.. 과학적 사고, 정신이 모든 이들에게 체질화, 습관화 되어 있지 않으면 앞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아간다고 생각해요. 기술은 몸집이 커졌고, 정신은 갖춰지지 않은 불구를 만들게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구사람도 못 따라잡고 지 금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구요. 러셀이 오죽하면 서구 교육이 클레버 스쿨 보이들을 만들 고 있다고 했을까요. 김정구 : 저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육 자율성이라던가...이런 것을 학생들에게 맡겨 놓는 데 그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성공을 하려면 교육체제의 다양성을 해야 한다고 하고 대학이 자 율적으로 해야 합니다. 모든 방법을 통일화 시켜놓고 하라고 하면 현제 체제 하에서는 우열을 가리기 참 힘들 것입니다. 교육체제의 다양성이라고 하는 것은 좋은 학교 나쁜학교 다 있는데 그것을 인 정 안하려고 하니까. 모든 다 똑같은 그런 것을 강요하는 그런 시스템에서는 다양성이 갖고 있는 장점을 고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손봉호 : 우리나라에 우리문화를 고려하고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문화는 아주 피상적으로 무조건 좋은 대학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완전히 종교에요. 나는 참 우리나라 교 육기관은 종교기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학교 간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에요. 그것 을 삶의 목적으로 살고 있는 이런 문화에서는 입시제도 바뀌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말씀하신 다양하게 해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모든 대학이 매년 입시제도를 바꿔 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시험보기 2주일 전에 이렇게 바꾸고..저렇게 바꿔서 아예 준비 를 할 수 없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면 들어갈 수밖에 없게끔. 그 리고 우리가 너무 무책임해요. 한 학생 잡아놓고 물어보면 그 학생 실력이 어떤지 알

219 수가 있는데 그런데 우리 교수들 그렇게 합니까? 논술 그거 채점하라고 하면 귀찮아가 지고...이렇게 하면 다양성이 없어집니다. 미국은 입학사정관에서 완전히 결정하지 않습니까? 그런 식으로 하기 전에는 다양성이 생기지도 않고. 지금 수학 가르치는 식으로 하면 달달 외워버립니다. 답이 나오는 과정 을 무시하고 답을 외워버리는데..점수만을 따지는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그런 식으로 공 부를 하게 되 있습니다. 대학의 도덕성도 문제가 있습니다. 교수들이 주관식문제를 내서 채점하면 학부모들이 난리가 납니다. 컴퓨터가 채점하면 믿고 교수가 채점하면 난리가 나요. 못 믿는 사람도 문제지만 과거에 교수들이 욕 먹을 짓을 많이 해놨거든요. 사돈의 8촌까지 다 봐주고 이런 식으로 불공정하게 채점을 하니까 이렇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교육계 교육위원회 발전위원장을 하라고 해서 했는데 이게 무엇이냐 하면 고등 학교 내신성적 만으로 대학에서 사람을 뽑자는 운동이였는데 그래서 고등학교장과 대학 을 연계해서 서로 믿도록 해보자. 그런데 이거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대 학은 고등학교 를 못 믿고, 고등학교는 못 믿을 짓을 하거든요. 독일 같은 경우에는 자기가 다닌 고등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자기를 가르친 교사가 감독을 하고, 채점을 하는데도 아무런 문 제가 없는데, 지금 우리나라 그런 식으로 했으면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대학이 고등학 교를 믿을 수 있어야하고 고등학교는 믿을 수 있게끔 행동 을 해야 하고 교수들이 학생 을 다양성 있게 뽑으려면 공정하게 뽑는 도덕성을 갖춰 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강정일 : 저도 찬성합니다만 교육제도가 사회계급화와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전반적인 변 화가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독일 같은 경우에는 고등학교 나와서 보석 가공업해도 10 만불 가까이 받을 수가 있고 노동자가 되도 사회적인 소득이 평준화보장이 되니까 대학 나오고 안 나오는 것이 사회적 차이가 크게 없는 것이고, 어느 대학나와도 다 국립화가 되있고, 대학이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데 우리 같은 경우에는 대 학 나왔느냐 아닌가에 계층차가 너무 커지고 미국처럼 명문대가 두텁게 있으면 캘리포 니아 주립대를 나오던 예일대를 나오던 자기만 공부를 잘하면 대학원도 가고 캘리포니 아 조그만 대학을 나오든 자기가 공부만 잘하면 월스트리트를 가는 그런 취업구조가 되 있는데.. 우리사회는 기업에서 취업구조를 바꾼다고 해도..여러 인맥관계 때문에다 명문대 출신들 만 다 하니까 사실은 교육문제는 사회개혁이 수반되면서 못 배운 사람들에게는 계층의 문제도 있지만 그것도 한이거든요. 이 나라 에서는 유교적 전통이 강해서 그런지 배우지 못한 사람은 구원을 못 받은 것이고 대학은 간 사람은 구원을 받은거죠. 그런 사회개혁 이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어렵다고 봅니다. 김정구 : 취지는 좋은데 현실을 봅시다. 우리교육에서 황당한 것이 우리 큰 애가 고등학교 다닐 때 그 반에 50명이 다니는데 30명은 수업도 안 듣는다는 거에요. 자거나 떠 들거나 앞 에 3~4명만 수업을 받는데..또 그중에서 잘하는 애들은 시원찮게 가르 치니까 학원 가

220 려고 하고, 결국은 나머지 30명 우리나라에 블루클래스에 갈 거라구 요. 걔들은 예전과 전혀 다르게 3년 동안 교육을 전혀 못 받고 시장에 나간거거든요. 사회적인 형평성 그 것을 강조하다보니까 60~70%는 전혀 교육 안 시키고 사회에 진출시키는 것이에요. 이 게 난 사실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전체가 공통적으로 다 내려가는 거에요. 정치가들이 모를 리가 없거든요. 우리 사회책임이에요. 우리 교육하는 사람들이 잘난체 하고 하지만 이런 현실에서 아무소리 안 하는 것 보면 우리 사회 참 웃긴다. 길가에 번듯이 입고 있는 사람 붙잡고 물어보면 반 이상은 애들 다 외국에 보냈을 것입 니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에요. 강정인 : 그것도 입시제도와 사회계층과 관련이 되 있는 거죠. 고등학교 공부 안하는 것도 나라 뿐만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구요. 일본도 마찬가지구요. 우리 김정구 : 못하는 고등학교 봐서 그러는진 몰라도 제 조카가 다닌 학교 보면 여기보다 훨씬더 열심 히 해요. 사회봉사도 하고 우리나라처럼 교육열이 심한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렇게 엉터리 교육을 받게 된 이런 구조를 누가 책임 집니까? 이규미 : 우리가 여기서 사회개혁 논하기도 어렵고 입시제도를 논하기가 어렵자나요. 그런데 교육 을 통해서 지난번 모임에서 교육이 자체가 너무 도구적으로 흘러가는데 그럼에도 불구 하고 어느 수준이 되면 대학가기를 포기하다 싶은 아이들이 학교 현장에 있거든요. 학교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교육을 하는데 그때 초점을 뒀던건 지식보다 인성에 초점을 두 었는데 그렇다면 교육이 중요하게 따져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가 모든 사람들에게 이것 이 교육이다. 라고 우리가 얘기해 줄 수 있는게 무엇인가얘기를 하면서 이것이 끝난 것 같아요. 오늘 한 이야기에 대해서 세분화해서 우리가 조금 더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 습니다. 이덕환 : 여기서 다 정리를 해가지고 뭔가 결론을 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고 김정구 선생님은 현 행체제에 대해서 불만이 상당히 많으신데 기회균등 교육 기회균등의 논리와 수월성 즉, 능력 균등이죠. 그것 두 주장의 대립인 것 같거든요. 지난 10여년 동안은 기회균등논리 가 압도를 한 것이고 그 이전에도 문제가 있었지만은 사실 여기서 사회개혁이나 교육개 혁을 이야기하기에는 자리가 아닌 것 같구요. 도덕성 회복 이런 문제는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사회개혁은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완전히 새롭게 뒤짚지 않는 이상은.. 다른 나라 자꾸 이야기 하지만 우리처럼 기회가 잘 주어지는 나라도 없자나요. 손봉호 : 개인적으로 도덕성에 대해 충격을 받은 이야기가 있어요. 신문을 보니 어느 고등학생이 신체적으로 약한 친구를 따돌림 시키고 괴롭혔다는 거에요. 저는 그 이야길 보고 화가

221 났는데, 너무 비겁한 거에요. 약한 아이들을 돌볼 줄을 알아야지, 짐승도 그렇게 하는데. 우리 사회가 그것에 대해 느끼는 것이 너무 약해요. 온 시민이 들고 일어서야 한다고 봐 요. 병이 들어서 골골한 아이를 건장한 녀석들이 둘러 싸가지고는. 이게 교육이냐. 깡패 들도 그렇겐 안할 거 아닙니까. 기본적인 것만이라도 교육을 좀 시켰으면 좋겠어요. 제 가 사범대에도 있었지만 제자들에게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 관심 갖지 말고 힘들고 가 난하고 어려운 학생,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합니다.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배려, 이건 우리 교육에서 이뤄져야하거든요. 우리 교사들이 그런 것에 약합니다. 교사들이 그런 정도의 정의감은 가지고 있어야 수학을 가르치든 국어를 가르치든 전달 이 된다고 봅니다. 이덕환 : 그것만큼 많이 만연 되 있는게, 과기부 쪽에서 강조 되는게 영재, 신동. 사실 그 영재 신 동이야기가 나온게 수월성 교육부분도 있구요. 그 애들이 보통 학교현장에서 왕따를 당 하는 아이들이구요. 특히 신동 수준에 근접하는 아이들은 대부분이 문제가 있어요. 그 아이들이 친구라던가 교사로부터 아주 심한 프레셔를 받아요. 그래서 신동에 포함되는 아이들을 따로 교육시켜야 한다. 그것도 선생님이 말씀 하신 것도 비슷하죠. 손봉호 : 더불어 사는 사회. 이것에 우리가 지금 제일 약하거든요. 제가 수준을 비교해보니까 우 리나라가 과학기술분야도 그렇게 뒤져있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뒤져 있지 않지만 투명성 은 세계42번째 후진국 수준이에요. 제가 어디서 통계를 보니 한국과 일본을 비교한 것이 있는데 1년에 법원에 기소된 사람 이 일본에 비해서 우리가 671배고 무고로 기소된 사람이 일본의 2100 몇 배에요. 이건 문명국과 야만국 수준입니다. 뭐가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가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해 요. 지식 지식하는데 지식은 별로 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도덕적 수준은 엄청나게 뒤져 있어요. 김정구 : 그게. 치유가 됩니까.. 엄정식 : 가령 우리가 교육 문제를 볼 때 이게 왜 이 모양이냐 하고 분노와 절규와 자책의 시각으 로 볼 수 있지만, 특히 근 현대사적 맥락에서 보면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 어요. 교육뿐 아니라 다른 것도. 이것을 상당히 낙관적으로 보면서 본질적으로 뜯어고치 려 할 것이 아니라 작은 것 하나씩 제거해보는 거 있잖아요. 문제 자체를 뿌리부터 고쳐 보려다 결국 손도 못 대고 마는 악순환을 겪고 있는데 상당히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자 세로 우리 이거 제법이야. 그런데 이거는 안되겠어.. 그런 시각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저는 가령 이런 생각이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참 지도자가 되려면 3가지 금기가 있다. 경력에 하자 있으면 안 되고, 큰 땅 갖고 있으면 안 되고, 교육 하자 있으면 안 되고. 다른 나라에서는 경력 그리 심각하지 않거든요. 왜냐하면 분단국가가 아니니까. 우리나

222 라는 분단 구조기 때문에 병역에 예민한 거 있잖아요. 땅덩어리가 좁다. 또 인구밀도가 높다보니 그걸 좀 더 차지하면 예민한 게 파장을 일으키는 거고, 그리고 계급 이야기 나 왔지만 하도 사회가 불안하다보니 오히려 부동산 갖는 것도 돈 갖는 것도 중요한 게 아 니고, 일단 잃지 않는 건 지식 뿐이니 완전 거기로 관심이 모아지고 그리고 결국 거의 종교화되는 여기 어떻게든 매달리지 않으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거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보는 것이 논의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우 리 교육문제야 말로 포괄적인 종적/횡적 분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에게 교육문제는 교육문제가 아니고 차라리 종교문제다. 그 문제만 우리가 절감해도 상당히 좋은 자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손봉호 : 제가 교육을 포괄적으로 이해하자고 했죠.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이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자각이 없어요. 사실 우리 중고등학생들에게 엄청나게 나쁜 영향 주고 있거든요. 교사들이 아무리 좋은 소리를 해도 국회의원들 저따위 소리 하면 중고등학생 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가 없어요. 언론인들도 마찬가지고 교육을 좀 더 포괄적으로 이 해해야 사회 모든 구성원이 교육자라는 자각을 갖지 않겠나 싶어요. 김규원 : 환경문제까지 고려해서 교육을 고려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저는 흔히 환경은 지속 가 능성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는데 교육에는 의미 있다고 봅니다. 여러 선생님들께서 현행 교육문제를 제시해주시는 것이 저는 이미 지속가능하지 않은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라 고 봅니다. 가정적으로도 경제적 부담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고통도 크지 않습니까? 국가 도 자원낭비거든요. 돈을 들여서 외국에 달러를 낭비 할 뿐 만 아니라 대졸자들도 취업 을 못해 전전긍긍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것이 다 국가적 손실이거든요. 앞으로는 어 떻게 하면 지속가능한 교육을 할 수 있겠느냐 라는 고민이 있어야 할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구요. 그리고 김정구 교수님이 과학과 수학 부분에 대해서 소홀히 해서 큰일이다. 라는 것에 동감합니다. 문과이과 구분, 이것이 사실 적절치 않거든요. 최재천 박사님이 말씀하시는 통섭을 이야기 하는 이 시대에 아직도 우리는 근대 국가적 분류방식을 탈 현대식에 와 서도 유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7차 교육과정 도입하면서 아이들에게 고기를 주기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야 한 다. 라고 했는데 저는 한때 이런 주장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애들이 자기가 낚을 고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낚을 방법을 가르쳐주면 뭐하느냐. 인생설계를 어떻게 가야하고 적 성이 무엇이 맞고 그래서 대학의 서열에 관계없이 그 전공이 있는 학과 또는 대학을 진학을 하고 이런 애들이 있을 때 낚시 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인데 관계없이 무조건 자기가 먹을 고긴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그저 남들이 큰 고기 잡는다고 자기도 큰 고기 잡아야겠다. 라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라 는 이야기를 했거든요. 중등교육과정에서 드리고 싶은 말은 중등교육학생들에게 올바른 자기인생 설계부터 교

223 육시켜야 하지 않겠느냐. 그게 소홀히 되지 않았나. 그리고 문과이과 구분 없애고 과목 수 대폭 줄이는 것도 찬성입니다. 제가 유학시절에 우리 애를 유치원을 보냈는데 그 당시 쥬라기 공원이 아주 유행했거든 요. 애 들이 공룡가지고 놀아요. 그러니까 공룡에 대해서 1년 내내 아주 학습을 해요. 공룡의 식생활, 기후, 역사, 자기 관심에 따라 스토리를 이어갈 수 있는 그런 교육이지 요. 단지 공룡 하나만 가지고도 산수도 할 수 있고, 영어도 할 수 있고, 그런 것을 보면 과목수를 늘렸다고 해서 우리가 제대로 교육시키는 것이 아니다. 수학 하나만 가르쳐도 그것을 통해서 문과 수학적 언어 속에서 철학적 언어 개념 도 배 울 수 있는 것이고 다른 과학과 관련된 원리 수학에 어떻게 적용되어서 나타 나 지는지 도 배울 수 있는 것 이구요. 엄정식 : 수학적 사고를 가르친다. 손봉호 : 왜 과목이 많아졌는지 아십니까? 그게 학회이기주의입니다. 손봉호 : 국민윤리 이제는 없어져도 되지 않느냐고 이야기했다가 맞아 죽을 뻔했어요. 지금 학회 들이 우리 학생을 죽이고 있어요. 김정구 : 저는 크리티컬 한 입장인데요. 지식을 우리 학생들에게 전해주는가를 토의 하는 줄 알고 왔는데 또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알았네요. 제가 걱정 하는 건 큰 걱정인 것 보다도 우 리 현실이 이렇고 앞으로를 보면 걱정이 되는 거에요. 우리나라도 상당히 발전을 많이 했습니다. 코스피 코스닥 시장도 그렇고 세계에서 벤처 시장이 미국이 제일 세죠. 그다 음이 일본이니 몇몇 나라있고, 우리나라도 벤처 컴퍼니 시장이 큰 나라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컴퍼니 교육을 시킬 때 측면들이 교육을 받고 스스로 자기가 배웠던 것들 에 대해서 더 무언가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이 있는가. 우리는 그런 쪽에 신경 을 써야 하지 않을까. 통계를 보면 미국의 벤처 컴퍼니 가 세계의 85%를 차지한다고 합 니다. 우리나라 1%도 안 됩니다. 교육의 차이가 미국과 월등히 차이가 나는 건 아닌데 이유가 뭔가.. 그리고 오늘 입시문제니 그런 건 없었는데 앞으로 이런 큰 문제를 다뤄야 하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이규미 : 저는 지난번 논의가 너무 인성 쪽에 치우쳤던 것이 너무 현재 교육이 지식 전달에 치중 되어 있어 그러면서 잃어버린 가치들. 저는 앞으로 문진 포럼에서 기회가 있다면 지식을 쌓아가는 방법에 대한 것을 논의하는 것도 좋은 주제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구요. 오늘 저는 이 부분에 대해 덮어놨던 것에 굉장히 중요한 의제가 남아 있었고 그걸 다 이야기 못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김정구 교수님께서 손봉호 교수님이 타인에 대한 배려를 얘기하셨

224 을 때 그것이 교육으로 충족이 되느냐고 물으셨는데 저는 그게 충족이 되어야한다고 굉 장히 믿고 있거든요. 우리 자라나는 사람에게 부족한 것이 두 가지라 보는데 하나는 자 기관리 능력이에요. 개인적인 위기가 갑자기 찾아왔을 때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거예요. 대인관계가 안 되니까 외톨이가 되기도 하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꼭 배워야 할 것이 분노 조절이구요. 두 번째는 타인에 대한 배려인 것 같아요. 문제는 왜 그런 것들 이 학교에서, 가정에서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느냐에요. 그것은 그분들도 교육을 받지 못해서이다. 그게 의식화 되서 모든 과목에서 그것들이 키워지면 학교 또는 가정에서 그 것들이 강조되고,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델링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키워주고 싶지 않았던 가치들이 키워지는 거거든요. 그런 것들이 교육에서 좀 더 관심을 갖고 투 입이 되어야 한다고 봐요. 부모로서, 교육자로서 아이들에게 키워주어야 하는 거고 그게 지식이 부족해도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구 : 사실 제 친구들도 보면 중고등학교 친구가 사회 나와서 보면 어릴 때 버릇 그대로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친구들이 대학 때 교육을 잘 받아서도 아니고 전부다 그런 친구들 이였거든요. 그런 것을 보니까. 어릴 때 교육이 중요하다. 엄정식 : 남을 배려하고 그런 것이 어떻게 연관될지 모르겠는데 이런 표현을 한번 쓰고 싶어요. 자기관리와 연관 지어서 순발력 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어요. 한 20년도 더 되었는데, 윤 리와 가치라는 과목을 가르쳤는데, 제가 서강대에서 그런 과목을 오래 가르쳤기 때문에 비교를 해보려고 커리큘럼을 그대로 가르쳤어요. 한번은 기말시험에 똑같은 문제를 내보았는데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이 한 애가 시험 답 안지를 안 쓰고 자기가 6년 동안 사귀던 여자가 지난주에 자길 배반했는데 칸트고 뭐고 자기 눈에 들어오겠느냐. 해서 그걸 한 시간 내내 답안지에 미어지는 마음을 쓴 거에요. 그런데 제가 너무 감탄을 했어요. 일단은 C로 하고 나중에 리포트를 써내라고 이야길 했는데, 오히려 그 문제를 낸 게 그 애에게 미안한 거 있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게 그 렇게 부럽더라구요. 우리 애들은 사실 곁눈질이라도 해서 답안을 메우려 했을텐데 그런 순발력이랄까? 자기 관리능력 있잖아요. 이덕환 : 강정인 박사님 마지막 한 말씀 하시죠. 강정인 : 제가 뭐 말씀 드릴려면 버스가 항상 지나가서. 이덕환 : 여기 버스는 돌릴 수가 있어요. 강정인 : 옛날이야기로 돌아가서 엄 선생님께서 서구는 자연과학을 잘 발전시키고 합리성인사고가 강하고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부족하고 많이 배워야 한다. 저도 지금에 와서는 많이 배

225 워야 한다. 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러나 발전과정에 있는 해석은 달리 생각을 합니다. 베이컨이 Knowledge is power다. 배우는 것이 힘이다. 지식이 권력이다. 이렇게 해서 사실은 새로운 모델을 창출한 것이거든요. 과거의 힘이라는 것이 정치 종교 지도자가 권 력을 갖는 것 이였고 그렇다고 해서 베이컨이 주장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정치적 영웅들 은 좋은 일도 하지만 그런 것을 위해서 사람들을 많이 죽여야 한 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사람들 많이 안 죽이면서도 인류를 위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한다. 때문에 진정한 지도자 는 과학자다. 라고 주장을 합니다. 이것은 새로운 인물유형과 지식유형을 강조한 것인데 사실은 근대적 시각에서 보았을 때 과거 사회가 우리시각에 의해서 비판 받는 것이고,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전근대사회 라고 말할 수 있는 인도, 중국, 이슬람의 기독교문명은 많은 경우에 과학이나 기술에 유 용함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것 들이 균형을 잃고 지나치게 팽창하게 된다면 사회의 윤 리성이 무너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것을 견제하는 기제가 있었거든요. 자본주의가 부의 축적을 위해서 질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뒷받침하기위해서 과학기술이 무한 팽창을 하는 경우 이런 것이 있을 때 서구사회는 엄청나게 팽창을 하 고 합리성이 hyper 수준으로 가게 되었는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우리에게 인성교 육이 문제가 되는데 한번 과학기술에 대립각을 세워 말하면 서구에서의 무한팽창을 암 세포라고 말하고, 전통사회에서 암세포가 어느 정도 윤리적 틀 안에 묶어두려고 노력을 했고, 어느 정도 성공을 했는데, 17세기 16세기 이후에 서구에서는 암세포가 무한 팽창 을 해서 증식을 한 것이죠. 방어기제가 전근대 사회 들면서 다른 사회에서는 다 효과적으로 작동을 했는데 서구에 서는 방어 기제가 무너졌다고 보거든요. 물론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얻은 것도 상당히 많지만, 다른데서는 그런 방어기제가 확실 히 작용을 했던 것이죠. 그래서 과학기술이 어느 정도 발전을 했지만 인성교육의 문제 knowledge for mutual가 약해지는 것이죠. knowledge for power는 엄청나게 팽창 하 고 있구요. 그러니까 학교교육을 할 때도 이걸 가르치는데 급급하고 인성교육이라는 것을 유치원 때 다 배웠다고 생각을 하고, 사실 중요한 것은 실천이고 인성교육을 실천 한다고 해서 외부적인 명예나 부가 쉽게 들어오는 것은 아니구요. knowledge for power는 그것을 실천하면 돈이 들어오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실천에 문제가 제기 되지 않는데 knowledge for mutual 는 실천해봤자 돌아오는 것이 없으니까 실천의문제가 안 걸려 균형이 깨지구요. 근대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이 인성교육의 문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일본도 열악하지만 인성교육은 잘 되어있다. 그렇다면 그 안에서 교육 기관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김정구 선생님도 말씀 하셨듯이 근본적인 문제는있지만 교 육적으로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을 해야 하는데 근본적으로 교육이라는 것이 사회의 자 기 재생산이고 사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재화의 차등적 분배를 합리화하는 기제라면

226 분명히 문제는 있는 것이죠.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이상 하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효과적일 것이냐. 만약에 페 미니스트 입장에서 보면 결혼이라는 것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영속하는 수단이고 남녀가 서로 사랑해서 서로가 공동체를 꾸려 나가는 것인데 그 두 개의 긴장은 항상 존 재 하는 것이거든요. 엄정식 : 그 얘기 들으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하는거 아닌가요? 김규원 : 조금만 더 보태면 서구가 과학기술에 응용을 통해서 세계를 지배하는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생존의 위기 국면이 그 사람들의 대의적 지향성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 을 하거든요. 과거 우리사회는 생존의 시대에 있어서 교육이 출세 지위상승에 밑거름 이 였다. 하지만 이제는 생활의 단계로 넘어 왔다 보니까 이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엄정식 : 제 생각에는 그 맥락에서는 나름대로 coherence가 있지 않은가 합니다. 이런 모임을 가 졌을 때 기대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담론은 저는 굉장히 productive 했 다고 생각 했구요. 저는 사실 포스트 모더니스트들도 비판하는 서구 근대성을 허겁지겁 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서구 사람들도 버려야 할 합리성. 분명 거기에서 불어온 중요한 바람은 우리가 취해야 하겠구요. 그리고 교육의 방향은 그쪽에 있어야 한다. 또 김정구 교수님말씀하신 과학과 수학교육도 결국 그쪽으로 연결이 되는 말하자면 보편적으로 공 유할 수 있는 가치를 향해서 경전이나 성현들을 지칭하지 않고 분석적인 힘을 통해 도 달할 수 있는 교육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교육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227 위험과 소통, 1차 포럼

228 이덕환 : 문진포럼에 대해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요즘 '통섭', '학문간 융합'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우리 사회에서 그런 것들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 해 여러 가지 이견들이 많습니다. 이 사업은 처음에 과학기술부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교 육과학기술부의 사회과학연구지원팀에서 진행을 하고 있는 프로젝트인데요. 우리 사회가 학문간 벽이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아요. 융합이나 통섭이 꼭 아니더라도 학문간 벽을 좀 낮출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기존에 이런 문제의식에 대해 모여서 무언가를 해보자는 시도는 많았습니다. 과기부가 지원해서 과학과 문학, 과학과 예술의 만남 이런 것들에 대 한 시도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희 문진포럼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는 조용하게 앉 아서 현실적으로 알맹이 있는 모임을 하면 좋겠단 생각을 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과학 대중화 이런 이야길 할 때에도 지금까진 대상이 거의 초중고 학생들이었습니다. 사실 과 학 대중화의 문제도 기성세대나 지식인들 사회에서의 과학에 대한 인식 이런 것도 심각 한 문제인 것 같거든요. 문진포럼은 특히 과학기술 대중화를 지향하진 않고, 학문간 벽을 낮추는 시도라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청중을 두고 토론을 했더니 절대적인 부분이 형 식을 맞추는데 투자가 많이 되고 낭비가 많은 것 같더라구요. 청중 없이 진행하면 자유 롭고 심도 있는 모임이 될 것 같아 이런 파격적인 방법을 시도해봤습니다. 우리 모임이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해결책을 찾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름을 문진포럼 이라 고 지은 것인데요, 맹자에 나오는 말이라고 하는데 목표를 정해놓지 말고 목표로 가는 중간 지점이 되는 나루터가 어디인지 먼저 확인을 하고 거기 간 다음에 거기부터 또 새 로운 지향점을 향해 가는, 그런 시도로 시작을 했습니다. 그래서 토론도 리더가 있어서 이끌어나가기 보다는 화두를 던져놓고 자유롭게 난상토론을 해보구요. 그래서 오늘 3시 간은 선생님들 하시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해주시면 그 말씀을 녹취해서 문서화해서 선생님들께 보내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을 수정하시거나 심화하시거나 추가하시거 나 빼셔도 됩니다. 부담 갖지 말고 자유롭게 말씀해주시는 과정에서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도 넓혀 가고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찾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이 이야기를 할 수는 없어서 세 그룹으로 나누어서 이야기를 진행했었습니다. 상상과 증명, 웰빙과 행복, 리듬이 그것이었는데요, 그 세 주제가 담론 위주였다면, 교육문제하고 위험 과 소통은 사회적인 이슈들, 저희가 어쩌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지 않 을까 싶은데요. 오늘 이렇게 모이고 다음에 한 번 더 모여 이야기를 심화시켜 나가려고 합니다. 최근 한 20년 사이에 우리나라가 엄청나게 변화했구요, 경제적인 면에서는 상당 한 성과를 거둔 셈이죠. 그러나 그러다보니 여러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 중 하 나가 교육 문제이고 또 하나가 위험 문제이죠. 올해만 해도 광우병이니 멜라민이니 해서 사회적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위험사회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 사회 를 일반화시키기 보다도 우리 사회가 빠르게 변화해나감에 따라 위험스러운 부분이 도드 라져 보입니다. 또 인위적인 위험도 있지만 자연재해에 대한 위험에 대해서도 인식이 많 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자연재해 자체도 과학기술을 통해 너무 환경을 파괴하고 해서 생기는 인공 재앙인 것처럼 인식하기도 하고, 생태문제도 강조되면서 그 나름대로 문제

229 를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위험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는 데 두 번의 모임을 통해 현대 사회에 위험이 다가오는 것을 포착하고 그 정체를 밝혀내 서 치유하는 정책을 마련하고 실제로 대안이나 치유를 실행에 어떻게 옮겨야 하는가 하 는 과정을 여러 분야에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우리 사회의 진단 겸 사회에 대한 건설적인 의견 제시를 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씀드렸듯, 특별한 지향점은 없습니다. 사회가 경험하게 되는 위험을 가장 빨리 진단하는 것은 문학이나 예술 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각각의 분야에서 위험의 정체를 확인하고 하는 것은 철학이나 사회 학에서 하는 거 같구요, 실체를 찾아내서 실행에 옮기는 것은 종교나 자연과학, 공학 쪽 도 들어갈 것 같구요. 사회가 극복해야 하는 위험문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개괄적으로 살 펴보자는 그런 의도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말씀드린 부분으로 논의를 제한할 필요는 없 고, 국민적 차원에서 위험을 어떻게 인식하고 반응하며, 그것을 순화시키려면 어떤 방안 이나 자세가 필요할지 다양하게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보니 철학하시는 분 이 말씀 열어주시는 게 제일 좋더라구요. 김남두 선생님께서 말씀을 열어주시면 어떨까 요. 김남두 : 위험이라고 하는 것이 항상 있어 왔을텐데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 위험이라고 하는 것이 대형화가 되었다는 점이 이야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날 위험이라고 하는 게 일종의 체계적인 선택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날 사람이 조직되는 방식이 자 본주의라고도 할 수 있을텐데 여러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있는데 그 기본적 틀이 하나는 시장이 되겠고, 시장은 예전부터 있었던 거구요.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가 성립된 이후로 는 과학과 기술이 시장 체제의 바탕이 되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이라고 하는 것이 수 요와 공급이 만나서 교류되는 장소인데, 요즘 시장에서는 유통되는 제품의 생산을 위해 필요한 자원들이 예전과는 터무니없이 다르죠. 현대적인 시장이라고 하는 것이 소통이 되는데 제 생각에는 필요한 물건이 제공되고 필요한 사람이 그것을 사는데 성격상 한계 를 허용하지 않는 성격의 제도가 자본주의라 생각해요. 그래서 커질 수밖에 없죠. 생산도 대량화 하고 그것에 값을 매기고. 과학기술이라고 하는 것도 양적인 수단을 통해 체계화 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수량적인 요소라고 하는 것이 과학과 기술을 하는데 핵심 적인 요소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시장이나 과학이라고 하는 것 모두 거기서 소통되는 것들 모두를 양적인 단위로 셈하고, 그 안에서 소통되는 여러 가지들을 대형화시킨다는 생각이 들구요.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정리해보겠습니다. 과학기술하고 시장에 토 대해서 오늘날 삶의 체계라는 것이 지구화가 되어있죠. 그 지구화라는 속에 시장이 있구 요. 과학기술, 생산의 밑바탕이 되는 건데 그것은 양적인 성격을 가지고 그것과 관련해서 크기라고 하는 건데, 그 한계가 자체 안에서 주어지지 않는... 대형화라고 하는 것이 그 안에 어떤 방식으로 방향지어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 위험의 진단, 인식, 처방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실제 이야기를 시작한다고 하면 그 위험의 성격이 어떤 것 이냐 먼저 논의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위험과 성격과 관련해서 오늘날 위험이라고 하는

230 것이 대량화라고 하는, 크기가, 거기서 피해를 입는다면 사람들 수가 얼마나 된다든지, 그 양적인 부분... 일단 그런 것을 실마리로 해서 이야기를 돌리면 어떨까 생각됩니다. 이덕환 : 현대사회 위기의 특징은 과학기술과 시장을 기반으로 하며 양적으로 대형화되어 있고 커 져있고 통제가 어렵고... 그런 것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김욱동 선생님께서는 거기에 대 해 하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자유롭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김욱동 : 문학가나 예술가들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과 학자들은 논리나 분석에 의존하지만 예술가들은 직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과학자들보다 어떤 면에서는 위험을 포착하는 능력이 앞서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 다. 한 학자는 "예술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비루한 세계에서 일탈한다. 예술적 재 능이라는 것은 직관적 능력이다. 예술가에게 있어 직관이라는 것은 자유로운 직관이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요, 그런 특징 때문에 문학가나 예술가들이 누구보다도 일찍 위 험을 포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중국 지진이 일어났을 때 스촨성에서 지진이 일 어났을 때 두꺼비들 10만 마리가 한 번에 길거리에 뛰어나온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람들 에 밟히고 차에 치어서도 그 행렬이 계속되었다고 하는데요. 이 두꺼비들은 지진이 일어 날 것을 알고 있었던 거죠. 1975년이었나요, 만주 지진 때 겨울잠을 자던 뱀들이 갑자기 기어나오고, 나비가 고치를 뚫고 나왔고... 이 또한 지진이 일어날 것을 예고한 경우라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술가의 상상력도 안테나처럼 위험이 일어날 것을 미리 포 착하는 경우가 적잖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보자면, 구약성서에서 예언서를 보면 오늘 날 우리가 겪고 있는 환경오염, 생태계 위기를 이미 오래 전에 예언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야라는 선지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땅이 마르고 시든다. 세상이 생기가 없고 시든 다. 땅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 해도 생기가 없다. 땅이 사람 때문에 더럽혀진다. 사람 이 율법을 어기고 법령을 거슬러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땅은 저주 를 받고 거기 사는 사람들은 형벌을 받는다. 그러므로 땅의 주민들은 불에 타서 살아남 는 자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이사야 선지자는 구약성서에서 오늘날 우리가 느끼고 있는 환경위기나 생태계 위기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 요엘 선지자도 요엘1장에 서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씨앗이 흙더미 속에서 모두 말라 죽고 광야가 텅텅 비고 가물어 거둬들일 곡식이 없어서 창고는 폐허가 된다. 풀밭이 없어 가축들이 울부짖고 소 떼가 정신없이 헤매며 양떼도 괴로워한다.' 구약성서의 예언을 보더라도 신들이나 선지자 들은 위험 요소를 미리 감지하고 심각성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최 근 예를 보더라도 조지오웰은 매스미디어가 정치가의 하나의 수단이며, 인간은 매스미디 어에 종속되어 멸망할 것이라 예언하지 않았습니까. 1984년 이야기지만 지금까지도 어 느 정도 유효하다고 봅니다. 그런가 하면 줄 베르느 같은 공상과학자들은 새로운 과학 발명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여러 위험 요소들을 안고 있다고 간파했구요. 예를 들어 1874년에 나온 작품인 <신비의 섬>에서는 이미 수소 기반 경제 개념을 도입했거든요

231 그래서 그 주인공중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합니다. "석탄이 모두 고갈되면 인간은 무엇에 의존해서 살 것이냐." 그랬더니 또 다른 한 작중 인물이 대답하기를 "바로 물이다. 물이 미래의 석탄이다." 이런단 말이죠. 이렇게 수소경제 개념이 1784년에 출간된 작품에서 나오구요. 그래서 여러 예술가들이나 과학자들이 위험을 포착하고 그것을 설득력 있게 예술로 형상화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또 하나 예술가에게 있어 위험은 축복이 며 예술을 창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거죠. 오히려 편안함과 안주는 적이 되지만. 예술가들은 그래서 일상성에 끊임없이 도전해왔습니다. 평범한 시민들은 예술가가 될 수 없고, 예술가들 중 일상에서 일탈한 괴짜가 많은 것이 그 이유라 하겠습니다. 미술 분야 의 경우를 예로 들어 미켈란젤로도 당시에는 천박하다는 이유로 무시당했지만 오늘날 성 화를 그린 화가로 존경받고 있구요. 이 밖에도 많은 예가 있겠습니다만, 이런 많은 예술 가들이 일상성에 도전함으로써, 그리고 위험을 도구로 삼음으로써 예술을 창작해왔다고 봅니다. 이덕환 : 선생님께선 예술가들이 일상성에서 일탈하는 것, 그것을 위험의 인식이라고 보시는 겁니 까? 김욱동 : 일상에서 일탈을 하고 위험이라는 요소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동시에 하는 사람이죠. 이덕환 : 이 말씀에 대해 어느 분이 받아주셔도 좋습니다. 천선영 : 저는 사회학 공부하는 관점에서 울리히 벡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요, 위험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때 개념적으로 우리가 위험을 쓰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기본적으 로 근대사회에서 위험을 이야기하는데 있어 어떤 분들은 우리말로 번역할 때 '위험'과 ' 위해'라고 하자 이러시는데, 영어로는 'danger'와 'risk'가 구분이 되어 있는 거고, 독일에 서는 울리히 벡의 책이 <Risikogesellschaft>, risk society인거고 그것을 우리 말로 '위 험사회'라고 옮겼을 때 정말 위험하다고 느껴요.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위험이라는 의미라 는 것이 있는데, 그 책을 읽고 제목을 '위험사회'라고 옮기고 우리가 그 말을 계속 쓰고 있을 때 개념의 혼동이 근본적인 문제가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danger'와 'risk' 사이의 간격은 상당히 크다고 보거든요. 그것을 우리말로 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 다. danger는 개조심이라고 했을 때 risk라고는 쓰지 않잖습니까. 개 앞에 안가면 되는 거고, 피할 수 있는 것이고, 국지적이고. 그렇게 보면 다른 한 편으로 risk는 체제 내에 상존하고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문제이고,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근대적 삶을 우리가 선택할 때 기본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라는 것, 그런 기본적인 문제라는 거죠. 실제로 위험 을 없앨 수도 회피할 수도 없고, 축복까지는 아니어도 그것과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 는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실제로 위험을 우리가 risk라고 이해하면 굉장 히 다른 논의가 될 거 같거든요. 저는 risk를 우리말로 위험이라고 옮기는 것이 위험하다

232 고 생각하고 제가 그걸 바로잡을 순 없지만 danger를 위험이라고 쓰고 저는 risk는 그냥 risk라고 하는 것이 좋을 거 같아요. 우리말로 위험이 아닌 더 좋은 개념으로 옮길 수 있 음 모르겠는데 위험이라고 할 바에는 risk라고 그대로 쓰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이덕환 : 일본은 어떻게 쓰고 있나요? 천선영 : 일본은 잘 모르겠습니다. '위험'이라고 쓰는 것 같아요. 그 말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서 잘못 번역된 말로 쓰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이덕환 :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risk와 위험을 차별화해서 제시해주시겠습니까? 이강현 : 저도 천선생님 말씀에 동의하는데, 실질적으로 미국에서 'youth & risk'라는 말을 많이 쓰거든요. 이걸 '청소년 위험'이라 하는데 청소년이 위험한 것이 아니고 일탈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청소년을 risk라고 하는 것이니까 개념을 분명히 구별하는 것이 좋을 것 같 습니다. 천선영 : 제가 학생들에게 물어요. 우리 근대 사회에서 risk에 대한 것을 인식할 때 보험회사가 보험을 들지 않습니까? 그것을 우리가 재보험회사라고 하는데 재보험회사는 어디에 보험 을 드나? 실제로 그 문제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risk라는 문제를 모두가 알고 있었고, 아 무도 그것을 피할 수 없고, 어떻게 보면 피할 수 있는 것으로 가정하는 그런 체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 자체가 실체가 아닌 것을 실체인 것처럼 가정하는, 금 융자본주의가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 체제 자체가 가짜에서 가짜를 만 들어내는, 리스크를 자연발생적으로 생산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재보험회사의 존재 자체 가 자본주의 사회 자체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피규어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danger와는 다르게 risk는 우리가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면서 숙제라는 생각이 듭니 다. 그래서 저는 '위험과 소통'이라는 제목을 전 risk와 소통이라고 이해했는데 그렇기 때 문에 소통이라는 주제가 훨씬 중요해지는 거죠. 예를 들어 danger라고 했을 때 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없앨 수 있는 것이면 없애면 되는 건데 risk기 때문에 소통의 문제가 중 요한 것이고, 소통을 얼만큼 잘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가 관건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김욱동 : 그러니까 두 개념의 구분이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시죠? 천선영 : 그런데 그 개념 자체가 시간과 함께 변화되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요. 굳 이 나눠보자면 danger는 국지적이고 제한적이고 차후에 우리가 조심하면 재고할 수 있 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개조심'에 risk를 쓰지 않는 것에 대해서

233 는 다들 동의하실 것 같은데... 송해룡 :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반론을 하겠습니다. 천선영 : 개가 있는 집에 risk라고 붙인 것을 저는 못 봤는데요? 그 구분 자체가 물론 애매해지는 것이 있을 수는 있다고 봐요. 아까 선생님 말씀하셨듯 자연재해나 이런 것이 성격이 변 했다는 거죠. 도대체 어디까지가 자연재해인가. 요즘도 그런 일이 생기면 그것이 인재냐 천재냐 이야기한다는 말이죠. 그 구분자체가 모호해지고 규정 자체가 사회문화적인 것이 라고 본다면 그 경계가 모호해지겠지만, 그것을 예쁘게 개념적으로 나눠놓는다면 제가 보기에 danger는 피할 수 있는 어떤 것, risk는 아무리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계산해도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고 내가 어떤 결정할 때 risk가 없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결정 하는 선택이라고 봐요. 그리고 그 결과로 다가올 수 있는, 미래에 주어질 것으로 예상되 는 어떤 부분들이죠. 우리가 인식하면서도 다 계산하고도 계산되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지금 내가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미래를 포함하는 의식인 것 같아요. 한종훈 : danger는 확실한 것 같은데요, risk는 danger가 발생할 수 있는 확률을 가진 것, 그래서 risk의 경우는 danger가 발생할 수 있지만 잘 컨트롤 하면 danger가 발생하는 것을 피 할 수 있는 것이 risk고, danger의 경우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개가 있는 집에서 개가 문다, 이런 것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천선영 : 그것은 하나의 예였고, 둘을 구분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 같지는 않구요. 한종훈 : risk라는 것은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닌가요. 금융위기다, 금융risk라고 하 면 잘 처리하면 위험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고... 천선영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risk는 그러고도 해결되지 않는 부분 이 있다는 인식 에 바탕이 있다고 봅니다. 금융위기라는 것이 어떻게 하면 우리가 금융 위기를 없앨 수 있다, 그렇게 이야기한다면 전 risk라는 말을 쓰지 않을 것 같아요. 이강현 : 구분하는 것엔 동의를 하는데, risk가 없애거나 피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 다는 말씀이시죠. 하지만 제가 아까 youth & risk라고 말한 것은 risk의 요소들을 제거 할 수 있다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지금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면 risk는 제거할 수 있는 요소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천선영 : 그러면 선생님, 예를 들어서 보혐회사가 risk 계산을 목적으로 하는, 그것을 통해 밥을 벌어먹고 사는 회사란 말이죠. 그렇다고 보면 재보험회사 예를 들은 건데, 선생님 말씀처

234 럼 청소년 문제 예를 든다면 어쩌면 줄일 수 있겠다고 논의할 수는 있겠지만 risk의 본 질은 없앨 수 없다는 거죠. 만약 risk를 없앨 수 있다면 보험회사가 재보험을 들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요? 보험회사가 재보험회사에, 다시 말해 risk를 받아주는 회사가 또 다른 곳에 risk를 담보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거잖아요. 김욱동 : risk와 problem을 구별하거든요. risk는 발생시에 프로젝트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이벤트나 상황의 가능성을 말하는 거구요, 반면에 problem은 발생할 것이 확실하 거나 이미 현재 발생한 상태에 있다는 점에서 risk와 구분되는 거거든요. 따라서 risk를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문제점으로 발전하는 거거든요. 천선영 : 제가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보험회사에서 얼마 전부터 어떤 보험을 내놨냐면, 한 사람이 얼마까지 살지 계산하지 않고, 다시 말해 종신보험이 등장했을 때 전 관심 있게 봤는데, 제 생각에 종신보험의 등장은 인간의 수명이 물론 그들이 평균 수명을 다 계산하고 손해 나는 것은 안 하겠다 생각해서 짰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들이 생각한 거보다 평균수 명이 훨씬 더 늘어났고, 생각하지 못했던 질병 수도 훨씬 많이 늘어났고. 어떻게 보면 종 신보험의 등장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더 이상 얼마나 살지에 대해 계산 안하고 그것을 다 안고 가겠다는 보험의 최종형태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risk가 얼마나 계산하기 어렵 고 계산할 수 없고, 계산불가능성이라는 과제 앞에 마치 아까 김욱동 선생님이 문학가들 이 온몸으로 위험상태를 읽어내는 사람인 것처럼 경제 일선에 있는 사람이야말로 온몸으 로 느끼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risk는 상존하는 것이고 기본적으 로 없어질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겁니다. 이강현 : 여기서 risk를 재정의하는 것보다는 risk를 우리말로 번역했을 때 위험이라는 말이 되고 danger도 위험이라는 말로 번역이 된다는, 그런 것에서 혼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에 는 찬성합니다. 그런데 risk는 우리말로 위험 말고도 '위기'라고도 번역이 되거든요. 실제 로 사람들에게 적용될 때는 위기, 보험도 그런 표현이 오히려 적절한 것이 아닌가 생각 이 되요. 송해룡 : 설명을 하십시오. 제가 조목조목 반론을 제기하겠습니다. 이덕환 : 여기서 논쟁을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송해룡 : 아니, 방향이 잘못 가고 있기 때문에 수정을 하려고 말씀드린 겁니다. 이덕환 : 아니, 제가 진행상의 발언을 드리겠습니다. 여기서는 본인의 의견을 제시하실 때 조금 mild하게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여기서 논쟁을 하면서 이것이 옳고 이것이 틀리다는

235 것은 처음 포럼을 만들 때부터 의도한 것이 아닙니다. 송해룡 : 예. 알겠습니다. 김남두 : 지금 danger하고 risk 말씀하시는데 crisis란 말도 있거든요 그거하고 danger하고 risk 가 다 다르단 말이죠. 그것들이 어느 정도 구분될 필요가 있는데 지금 말씀처럼 근본적 으로 그것들이 달라서 완전히 구분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이야기해봐야 할 것 같 구요. 한 방향에서 risk라고 하는 것은 없앨 수 없는 거고 danger는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냐고 제안을 해주신거죠. 송해룡 : 지금 천선생님께서 여러 말씀을 해주셨는데 저는 그것에 대해 다른 측면이 있다고 봅니 다. 우선 Risikogesellschaft를 우리 말로 번역하는 것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봅니 다. 왜냐하면 그 책 내용이 위험과 위협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죠. dangerous 는 위협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칼로 위험을 한단 말이죠. 어떠한 한 모습이 존재함으로써 능동적으로 나에게 재난, 재해, 재앙 등등 있었을 때 그것이 발생가능한 확률이 위협입니 다. 그리고 위협은 우리가 재구성된다는 개념으로 사회과학적으로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risk는 확률이고 재구성되어 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가 위험문제라는 것에 접근해 야겠다. 보험하기 위해 보험 든다고 하면 보험이 위험의 발생가능성을 예측하고서 그와 같은 것들을 담보로 문명화 과정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보험이거든요. 독일 Allianz가 그 쪽 분야로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천교수님 말씀하신 것이 충분히 다 논의 가능한 부분 입니다. 가정된 피해를 예상하는 개념이 risk다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말씀 드리구 요. 위험은 하나의 위험이 아니라 크게 세 가지 카테고리로 나눠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 적, 기술적, 자연적 위험... 위험의 종류는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risk를 위험으로 말 하고 있는 겁니다. 천교수님 고민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저도 고민을 했어요. 그래서 제 가 쓴 책에서는 '위험 보도'라는 말을 했고 휴대폰 전자파의 '위험'이라고 말했구요. 그런 데 한국사람들이 영어에 중독이 되어서 위험이라기보다 risk라고 하면 훨씬 쉽게 이해를 해요. 그래서 제가 'risk 커뮤니케이션과 위기관리'를 써보았습니다. risk라고 하면 사람 들이 마음에 와닿는, 그렇기 때문에 천교수님께서 위험보다는 risk라고 쓰는 것이 훨씬 파급력이 있지 않냐고 말씀하신... 천선영 : 제가 논문에 리스크를 굳이 번역하자면 우리말로 이렇게 하자 써놓구서 기억이 안 나서 혹시 찾을 수 있으면 찾아달라고 부탁하려고 했습니다. 우리 말로 굳이 풀어쓰자면 '계산 불가능한 위험'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뭐라고 프로포절 했는데 그것을 굳이 풀 수 없다면, risk가 있어 보여서가 아니라 개념적으로 어떤 말이 번역 불가능한 것이 있는 것처럼 조 심스러워해야 하는, 살아가는 사람들의 성격을 규정하는 개념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위험 이라는 말을 우리말로 담아냈을 때 저는 risk를 쓸 것 같아요

236 송해룡 : 그건 선생님 관점이구요 저는 '위험'이라는 말을 써야겠다고 생각해요. 울리히 벡이 쓴 책에 다 나와 있어요. 그런데 번역본 내용이 아주 많은 부분을 이해 못할 정도로 되어 있어요. 제 책에서 이런 주석을 달았습니다. 의미 전달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의미 전달 에 있어 오역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주요 개념에 대한 주석이 없어서 일반 독자 들이 이 책을 읽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제가 이렇게 주석을 달아놓았 습니다. 영어판을 번역했다고 하는데 오리지널 텍스트를 번역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독 일어를 모르는 사람은 그 의미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거죠. 천교수님은 독일에서 공부 하셨으니까 그 텍스트를 분명히 이해하실 수 있고 저도 독일에서 공부해서 정확히 그 텍 스트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런 논쟁이 벌어지는 거죠. 김남두 :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danger와 risk를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에 대한 의견차보다도 위 험이라는 말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해,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에 대한 의견차인 것 같 아요. 아까 선생님이 risk와 관련해서 말씀하신 포인트하고, 지금 위험이라는 말에 대해 불명확하게 가정된 것이라고 말씀하신 포인트가 같은 것 같거든요. 차이의 포인트를 분 명히 하고 나가야 할 거 같은데, 지금 송선생님께서 반대하시는 것은 천선생님이 말씀하 신 risk에 대한 설명에 대한 반론인 것인지, risk를 위험이라고 쓰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포인트에 대한 반대인 것인지 그것부터 분명히 하고서 말씀하시는 것이 의미있을 것 같 습니다. 송해룡 : 위험이 제가 보기엔 확률인데 천선생님께선 그 말씀을 하시지 않고... 김남두 : 위험이 확률적인 요소라는 말씀이시죠? 천선영 : 제가 아까 보험회사 말씀을 드리면서 확률 이야기를... 송해룡 : 자연적인 것만 말씀하셔서 위험에 세 가지 요소가 있다는 것에 대해 아울러 말씀드린 겁 니다. 천교수님께서는 보험회사에 대한 말씀을 하시다보니 자연재난 같은 부분에만 추점 을 두시게 된... 김남두 : 꼭 자연재난만이 아니고... 송해룡 : financing crisis는 crisis management의 최근 논의거든요. crisis를 위기라고 하는 말로 커뮤니케이션 학과 쪽에선 정의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사회과학과 커뮤니케이션 과가 같은 사회과학대학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개념에 대해 이처럼 의미의 차이가 있는 겁니다

237 천선영 : 그게 사회학과 언론학의 차이는 아닌 거 같구요. risk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사회과학하 는 사람들끼리도 이런저런 논란들이 있는데, 제가 그 개념을 걸고넘어졌던 이유는 이렇 게 하면 좋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생산되고 있는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데 있 어서 불필요한 혼란을 낳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 혼란을 줄이는 방법으로 차라 리 위험보다 risk라는 개념을 가지고 들어가서 쓰면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 니다. 이덕환 : 여기서 잠깐... 송해룡 : 그것이 천선생님과 제가 충돌하는 부분입니다. 저는 그러면 안 된다는 관점이고, 선생님 은 그렇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보시는 거죠. 천선영 : 그러면 질문 하나만 할께요. 선생님은 제가 risk라고 말하는 부분을 위험이라고 쓰고 싶 으신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하면 지금 왜 risk라고 쓰셨습니까? 이덕환 : 지금 문진에서 처음 생기는 경운데, 두 분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여기서는 해결할 수 없 습니다. 확실히 danger는 저희가 여기서 주제로 삼는 것은 아니고, 여기서 위험이라고 하셔도 좋고 risk라고 하셔도 좋은데 가능하면 가장 넓은 의미로 써주십시오. 그 중에서 확실히 danger는 아닌 것 같구요, crisis는 여기 포함시키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김남두 : 지금 이야기가 필요 없이 꼬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할 거 같은데, 저도 자 신은 없습니다. risk라는 것이 danger하고 관련해서 어떤 측면을 특히 부각시켜서 구성 해놓은 개념이다. 그 정도의 막연한 이야기를 일단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시다가 선이 분명하지 않은 것 같다 말씀하셨는데, 예컨대 아까 '개조심' 말 씀을 하셨단 말이에요. 그 개조심이라는 것이 개 자체가 항상 dangerous하다는 것보다 도, 어떤 상황에서 개가 잘못 반응하면 개에게 물릴 수 있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데 그것을 조심하라고 danger라는 말씀을 쓰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것과 관련해서도 risk라는 말을 쓸 수가 있을 거에요. 예를 들어 그런 사람이 어떤 지역 에 가서 개에게 물리는 일이 빈발한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그 지역에 갈 때 특정 개에게 물릴 수 있는 risk가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 그런 사건의 특정 측면 에 대해 risk라는 말을 쓰고 그것이 그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준다던지 한다면 crisis라 거나 이런 말을 쓰는 거죠. 그 말들이 동일한 평면에서 이것은 여기 이것은 여기 이런 방식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일단 danger가 상당히 넓은 개념인 것 같으니까요. 그 것과 관련해서 특정 측면을 부각시킬 때 crisis라는 말을 쓰기도 하고 risk라는 말을 쓰 기도 한다. 그런 정도로 정리를 해두면 2개가 관계없는 것이다 하는 전제는 우리가 빼놓

238 을 수 있을 것 같구요. 그러면서 이야길 해가면서 risk는 이러이러하게 한정을 분명히 시 킬 수 있겠다 하는 초보적인 수준에서의 정리가 가능할 거 같은데요. 아까 송선생님 말 씀하시다가 risk를 위험이라고 변역한 것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불명확하게 가정된 것, 구성된 것이라는 이야길 하시면서 세 가지 이야기하시다 말씀이 끊어지셨죠. 계속 말씀을 해주시죠. 이강현 : 송선생님 말씀하시기 전에 이야길 좀 드리겠습니다. 저는 사실 위험이라는 말로 표현했 을 때 risk와 똑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 송교수님 말씀하시는 것처럼 구 분하자는 것에는 동의를 합니다. 예를 들어 위험이라고 하면 확률적으로 100%에 가까운 것이 danger입니다. 그것을 범하기만 하면 틀림없이 물리고, 폭발물 앞에 가서 무엇을 건드리면 반드시 터지는 거고... 그렇게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천선영 : 제가 논문에 쓴 용어 생각이 났습니다. 굳이 하자면 risk를 '선취적 위험'이라고 번역하 자고 말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risk에 danger적인 성격이 있을 수 있어 그것들이 전혀 별개라고는 할 수 없지만, risk는 danger와는 다른, 근대사회가 내재하고 있는 특정한 형태의 danger를 말하고 싶은 욕구, 그런 것이 risk와 관련되었 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그것을 우리말로 옮길 때 발생하는 risk가 너무 크다는 거 죠. 그래서 굳이 그 말을 옮기자면 선취적 위험이라고 하자고 한 거고, 아까 말씀하셨던 확률이나 재구성이나 불명확한 것들이 미래에 다가올지도 모르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함으로써 그것이 가중될 수도 있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결정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미래에 다가올지도 모르는 불명확한 무언가, 계산하고도 계산되지 않는 그 무엇들을 지금 우리 가 결정을 끌어다 놓음으로써 가정하는,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risk라고 말을 하는 것 이 더 좋겠다고 본거죠. 굳이 우리가 위험이라는 말을 버릴 수 없다면 danger하고는 어 떤 식으로든 개념적으로 구분해줘야 할 것 같아요. 한종훈 : danger와 risk가 영어로는 구분이 되는 거 같아요. 다만 천선생님이 말씀하실 때 risk는 피할 수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는데 거기서 문제가 생기는 거 같아요. 왜냐하 면 대부분 risk는 위험을 안고 있지만 확률적으로 갖고 있어서 그걸 위험이 발생할 수도 있고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잖아요. 천선생님 말씀하시다가 한 부분 에서 risk는 피할 수 없다고 하시니까... 천선영 : 그 피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그것이 체제 내재적이라는 이야기였어요. 우리가 그것을 0 으로 만들 수 없다는 거죠.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안 다가가면 되는 거지만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어떤 risk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운명 이니 숙명이니 그런 말씀을 드린 거였죠

239 이덕환 : 다시 말씀드리지만 문진에서 용어에 대한 엄밀한 정의를 내릴 수는 없구요. 위험이라고 하셔도 좋고 risk라고 하셔도 좋구요. 이렇게 생각해주세요. 단순히 개인적인 관심사를 벗어나 사회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는 danger도 좋고 risk도 좋고 crisis도 좋습니다. 그런 식으로 애매하게 해놓고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회적 차원에 서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는 정도로 이야기를 하구요. 여기서 지금 보시다시피 사 회과학 하시는 두 분이 부딪히면 소리가 크거든요. 여기서 이따 강지원 변호사님 오시면 이 분도 목소리가 크시거든요. 조금 목소리를 낮춰주시고 다른 쪽 이야기를 듣는 쪽으로 해주십시오. 그러다보면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서 한 이야기가 압도한다 고 하면 판이 깨져버리구요. risk나 위험이라는 것을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고 이렇게 이 야기할 수도 있구나 이렇게 해주십시오. 그것만 양해해주시구요. 위험이라고 해야 하는지 risk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정의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도 여기서 드러났고 제 생 각엔 이것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는 논의인 것 같습니다. 어느 집에 개가 사람을 물 위험이 있다는 건 주변의 사람들만 관심을 가지면 되는 문제 인데, 여기서 우리가 소통이라는 점과 연결 지으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수준의 위험, risk라고 생각해주시고 그런 위험을 어떻게 진단할 것인가에 대해 말 씀해주십시오. 아까 김남두 선생님이 대형화를 위험의 특징으로 말씀해주셨는데 제가 이 런 식의 이야기를 던져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2~300년 전으로 돌아가 산업혁명 전에 그 당시 사람들에게도 risk가 작게 느껴졌을까 하는 겁니다. 13~4세기의 페스트 같은 것... 물론 이건 자연재해에 가까운 건데요. 당시 인구가 4~5억 정도밖에 안 되었을테니까요. 김남두 : 예컨대 이제 기후변화와 관련된 의제라던지 금융위기라고 하는 것, 지진, 사스, 이런 것 들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논의의 주제가 되는 위험의 케이스일텐데... 기후변화와 관련 된 위협, 그것의 성격이... 강지원 : 안녕하세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김남두 : 페스트의 위험으로서의 성격에 대한 질문을 던지셨는데, 이것의 성격이 일단 물음을 이 렇게 던질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자연적인 것이냐 아니면 단순히 자연적인 것이 아닌 사 람이 만든 문명에 의한 것이냐. 틀림없이 자연적인 것인데, 또 자연적인 성격만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인간이 사는 방식에 의해 야기된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금융위기 는 물론이고 사천에 지진 같은 거가 페스트와 연결되는 부분일텐데, 지진이라는 자연현 상과 관련있는 건데 또 그것만으로는 간단하지 않은 것이 도시에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피해가 그렇기 때문에 커질 수 있다는 것이 논의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옛날처럼 사람들이 서로 떨어져 산다고 하면 지진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 규모가 덜하겠죠. 물론 그것을 당하는 사람의 강도라는 것은 다수 소수에 상관없이 큰 것이겠죠.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할 것은 피해가 대규모화가 되고 체계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240 위기의 성격이 예전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사천 지진 같은 것도 자연재 해인데, 자연재해가 더 문제 되는 것은 예를 들어 서울의 지진이 태평양의 그것과는 케 이스가 다르지 않겠습니까. 위험으로서의 지진이라고 하는 것은 서울의 지진이 태평의 지진보다 덜 위험하다는 것이 아니라 성격이 다른 것이죠. 사스도 마찬가지고. 이런 위험 이라고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모여살고 의식주를 해결하는 방식이 체계적으로 체제로 서 얽혀 있다라고 하는 것과 상당히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거 같구요. 페스트도 역사적으로 그것이 문제화되는 건 도시화와 관련해서 대규모의 인력이 죽었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가 된 것이겠죠. 그런 측면에서는 인간의 삶의 방식과 연관되는 것이 구요. 이강현 : 논의를 나눠서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남두 선생님은 자연적인 재해와 관련된 위험을 말씀하셨는데, 일단 위험의 소스가 자연적인 것인가 인공적인 것인가 그것을 좀 나눠서 순차적으로 이야기 나눠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덕환 : 지금 위험의 특징을 말씀하시다가 예가 그것이 나온 것 같구요. 김남두 : 제가 딱히 자연재해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했다기 보다는 성격이 인공적인 것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말씀을 드린 겁니다. 이강현 : 성격을 이야기하셔도 좋은데, 성격을 이야기하다보면 위험의 소스에 따라 그것이 규정되 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을 나눠서 어떤 것을 먼저 하든 그 다음에 다른 것으로 넘어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덕환 : 네, 그렇다면 어느 쪽도 상관없습니다. 한종훈 : 개인적으로는 현대사회의 위험이라든지 risk가 부각되는 것이 과학기술의 발전이 원인이 아닌가 싶어요. 가령 원시시대 때라 하면 저는 자연적인 재해나 인공적인 재해나 마찬가 지라고 생각하는데 지진이 일어나봐야 인구밀집도가 낮으니 몇 명 죽고 말면 되는 일인 데 중세로 넘어와 도시간 도로가 생기고 사람들 간 교류도 있고 하니 페스트 같은 게 일 어났을 때 파급효과가 크단 말이죠. 그렇지만 그때 도시화라던지 하는 것은 유럽에 국한 되어 있던 것 아닙니까. 과학기술이 점점 발달해서 현대에 오면 항공기나 인터넷이나 네 트워크 사회가 되었단 말이죠. 그러니 조류독감이니 사스니 이런 것들이 원시시대 때 같 으면 한 마을을 전멸시키고 더 이상 숙주가 없어 소멸될 것들이 비행기를 타고 사람들이 다른 나라로 가고 수출을 하고 교류가 생기니까 갑자기 전세계에 퍼져 효과가 커지는 거 같아요. 그리고 건축기술이 발달하다보니 주상복합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는데 현대 기술 로 소방차가 화재가 일어나면 올라갈 수 있는 게 32층밖에 안돼요. 그 위로는 화재가 일

241 어나도 대책이 없습니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고민하고 있는데. 이것도 결국엔 초고층빌딩 을 짓는 기술이 발전하다보니 그런 risk가 생긴 것 같아요. 금융위기도 마찬가지인 것 같 아요. 금융위기도 가령 한 나라에서만 시스템이 되어 있으면 한 나라에 국한이 될 것인 데, 인터넷 등을 통해 전세계를 왔다갔다 하다보니 갑자기 위험하다고 하면 우르르 패닉 상태에 빠져버리게 되는 거죠. 저는 아까 김남두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현대 사회로 오 면서 과학기술들이 점점 가속화되어 급격히 발전하다보니 현재 우리가 보는 위험들이 굉 장히 개념화되어 있고 네트워크화되어 있고 복잡화되어 있고 복잡한 것 같아요. 요즘 사 람들 성인병에 잘 걸리잖아요. 비만이라던지 당뇨라던지. 그런 성인병이 오는 이유가 저 는 인간의 유전자가 과학적 발전으로 인해 변한 사회에 적응을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하 거든요. 금융도 그런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 발생한 금융위기의 원인이 신용위 기라고 보거든요. 신용이라고 하면 결국 믿음인데, 이게 전세계 과학기술이 발전하다보니 글로벌 사회가 되고 돈이 순식간에 몇십 억씩 왔다갔다하는 걸 보다보니 인간들이 2000 년 갖고 온 본성은 변하지 않았는데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보니 전세계 사람들이 패닉 상 태에 빠지는 거에요. 그렇게 사람들이 패닉상태에 빠진 것이 전염병처럼 가속이 되어 더 퍼져나가 버리고 이런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이덕환 : 이강현 선생님 말씀처럼 조금 구체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제가 이런 주제를 던져보려 합 니다. 네트워크가 되고 확산이 빨리 되고 규모가 커지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사회가 달 라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의사결정이 상당히 민주화되었잖아요. 예전에 70%의 사람들은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 관여할 방법이 없었잖아요.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4,000만이 은행이 어떻게 되는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거든요. 이 사회의 민주화에는 책임이 따라가는 건데 그런 책임이 국민들에게 넘어오면서 국민들 이 굉장히 어떤 경우에는 필요 이상으로 과민하게 반응하고 기본적으로 예전보단 걱정할 일이 많아지는 거죠. 그런 것에 대한 의견은 없으신지요. 한종훈 : 좀만 더 이야기해도 될까요. 사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현재 세상이 네트워크화되 어서 해서 굉장히 많은 정보들을 접하게 되는데 인간들이 갖고 있는 정보처리 능력이나 위기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이라던지 하는 것은 과거에 이야기하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거죠. 새로운 위기라서. 국가에서 안전에 대한 법규도 되어 있고 기업들도 새로운 기술로 제품을 만들 때 나름대로 검증을 해서 저희가 제품을 사면 안전코드를 지켜야 할 것을 써놓고 한다는 말이에요. 그러다보니 개개인이 많은 제품에 대한 규범을 다 따라가서 처 리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버린 것 같아요. 전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을 보고 있다 가 소수 전문가의 의견에 의존을 하잖아요. 전문가들이 한 명 두 명 위기다 하면 위기인 가 하고, 네 명 다섯 명 하면 불안해지고 백 명이 이야기하면 패닉 상태가 되는 게 아닌 가 싶어요. 그래서 소통을 통해 현대인들이 새롭게 발생하는 위기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것에 대처하는 방안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는 거 같아요

242 이강현 : 위험이 대형화되고 기계문명, 과학문명의 발달이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인정합니 다. 그러나 위험의 모든 소스가 과학기술의 발달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아까 송 교수님께서 위험을 3가지 차원으로 나눠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저도 같은 입장 이에요. 기술적 과학 문명의 발달만 가지고는 소스를 진단할 때 어렵다 싶은 부분이 있 다고 보거든요. 공동체 문제라든지 아이들이 학교 안가고 향락산업으로 빠진다든지 그게 어느 수준 이상이 돼서 굉장히 위험한 사회를 만들고 있다든지에 대해 과학문명하고 어 느 정도 관련은 있지만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한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김남두 : 과학기술이 직접 원인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위험이 거대화되고 하는데 과학 문명이 큰 영향을 준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송해룡 : 제가 선생님들 보면 위험과 소통이 주제인데 왜 이 두 가지가 주제인지에 대해서는 말씀 을 안 하시거든요. 연구한 지식을 나누는 차원에서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왜 우리가 위 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냐면 위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잘못 가지고 있다고 했을 때 국가가 어떤 정책을 집행하고 있었을 때 사회적 비용을 많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 점에서 바른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위험문제는 예전부터 확대를 시켜보 면 광우병 사건, 쓰레기만두 사건, 태안사건 이런 것들을 거쳤을 때 위험에 대한 인식이 어떤 것을 통해 형성이 될까... 페스트 말씀하셨지만 그 당시 사람들에겐 크게 다가오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미디어 발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보 확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와 같은 것들이 미디어를 통해서 더 큰 방향으로 퍼지는, 그러니 어떻게 하면 인식을 잘 만들어 사회적인 비용을 줄일까 하는 건데, 이런 것들이 risk와 소통의 관계를 이야기할 수 있는 방향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잘못된 위험 인식 이 잘못된 소통을 가져와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우리로 하여금 들게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 논의하는 것이 문진의 핵심적 목표라고 생 각합니다. 이덕환 : 그게 문진의 마지막 목표입니다 김남두 : 지금 이야기 방향이 다수의 사람들이 사태를 잘못 알고 심리적으로 패닉한 상태로 가서 위기가 커진다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이런 경우에도 전세계에 다 알려지고 잘 모 르고 쫓아다니면서 이야기가 커진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텐데, 실제로 위험의 요소가 없 는데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런 것이냐는 일단 따져봐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사람 들이 어떤 일이 진행될 때 이게 가치가 얼마나 있는 건데 어떤 조건 하에서 가치가 어떻 게 되느냐는 것을 계산할 수 있는 방도라는 것이 처음부터 차단되어 있었던 거죠. 그건 다수가 어떻다 문제를 떠나서 상품 자체의 성격이 사람들의 앎을 차단하는 그런 성격을

243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내 돈이 어떻게 된다 하면 반응할 수밖에 없는데, 그 경우에서 우 리가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우중으로서 반응이 일어났다, 그 방식으로만 이야 기하게 되면 이야기가 이중적인 논의가 될 위험이 있다고 봐요. 그러니 이야기 뭐냐면 아까 네트워킹, 복잡화되었다는 이야기는 원인관계를 찾아내기 어렵게 됐단 이야기거든 요. 사태 자체가 그런 성격을 갖고 있고, 알 수 있는 상태라 하더라도 일반인들은 알기 어렵죠. 그런 조건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이 오늘날 위기하고 관련해서, 또 위기의 소통과 관련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안인데 사태 자체에서도 예컨대 금융위기 같은 아까 신 용의 위기라고 했는데 신용의 위기라는 것의 성격이 이것을 매니지 하는 사람들의 도덕 적인 요구조건, 그것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없게 하는 것이 들어가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사태 자체의 복합성, 실제 danger로서의 실질성이 함께 이야기되어야지 너무 한 면만 이야기되면 안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송해룡 : 논의를 기술적 위험과 사회적 위험에 한정시켜서 해야 된다고 봐요. 주제는 인간 활동에 따른 위험이 증가하고 있는데 국가가 사회적 비용을 줄여서 어떻게 될까 이런 부분에 초 점을 맞춰서 논의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요. 넓게 이야기하다보면 이런 문제와는 아 주 별개적인 모습들도 되고 문진에서 지금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미디어의 부정적인 면 보다는 이러한 사회적인 위험과 기술적인 위험을 어떻게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에게 risk 인식을 다른 모습으로 해서 합리적인 방향으로 보게 만들까거든요. 과학적 진실과 사회 적 사실은 다르거든요. 이번 광우병 사건에서 봤던 과학적 진실과 사회적 사실이 크게 충돌했거든요. 그런 것을 가지고 논의를 하면 논의가 훨씬 재미있게 진행될 것 같습니다. 천선영 : 사회적, 기술적, 자연적 구분하셨을 때 자연적인 것을 빼고 말씀하자고 하셨나요? 송해룡 : 자연적인 위험, 천재지변은 빼고 이야기하자고 한 겁니다. 천선영 : 그럼 금융위기는 왜 빠지는 건가요? 그건 어디로 가는 건가요? 송해룡 : 이건 테크놀로지 문제라든지 하는 것과는 문제가 아주 특별하고 극단적인 일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논의를 금융 쪽으로 한다면... 천선영 : 금융 쪽으로 한다는 건 아니지만, 저는 오늘 사실 나루터 이야기를 하시고 했지만 제가 오늘 여기 오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이야기를 편하게 하도 되는 거구나 생각했기 때문이 에요. 과격하게 말을 해라 말씀도 하셨지만 그걸 믿고 제가 지금 말을 굉장히 과격하게 하고 있는데 뒷탈이 두렵긴 하지만 리스크를 감수하고 말씀을 드리는 거죠. 그게 조금 더 생산적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나루터에 목표가 없이 가다보면 목표가 생기지 않겠나. 우리가 어디를 정해놓고 가자는 것보다는 조금 열어놓고 가자는 취지로 들었구

244 요. 그런 취지에서 보자면 아까 선생님들 말씀에서 나오는 '제대로 됐다' '잘못 됐다' '최 종 목표다' 이런 이야기들은 지금 좀 놓고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들구요. 그 런 의미에서 말장난을 의도적으로 하려는 이유는 저는 이론이 굉장히 치열한 실천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강력하게 저도 실천적 인간이다 주장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개념의 덩어 리가 이론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토론의 성격상 우리가 이 점에서 어느 정도 합의를 보 자는 것은 충분히 인정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들이 자꾸 불거져나오는 근간 에 그런 세상을 보는 관점의 차이들이 나중에 문제해결 방식까지 죽 따라가기 때문에 실 제 우리가 그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다 드러내고 난 다음에야 드러나지 않을까 생 각됩니다. 저희가 합의를 끌어내자는 것이 아니라 결국 선생님들 말씀하시는 것들도 아 까 우리 그냥 덮고 가자고 했던 부분도 계속 이야기가 나올 거란 말이죠. 제가 일단 문 제제기를 할 건데요. 예컨대 우리가 지금 자연적인 risk와 사회적인 risk를 명확히 구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것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면 사실 저는 우리가 여기 앉아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위험을 정리할 수 있고 해법을 갖고 있다면 저는 이런 자리가 불필요하다고 봐요. 이런 자리의 필요성 자체가 어떤 논의를 통해서도 해결되지 못하는 논의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 내지는 막연한 공포가 됐든 뭐가 됐든 그런 것들이 여전히 깔려 있다는 생각이 들구요. 지진이 됐건 광우병이 됐건 이전에는 자연적인 재해라고 치부할 수 있었던, 그것은 하늘의 문제라고 생각했었 던 그런 부분들을 더 이상 우리가 자연적이지만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거죠. 우리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뀜으로써 자연재해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는 것입니 다. 인간의 생명 자체에 인위적인 개입들이 광범위하고 집요하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서 이건 자연이 하는 일이다 이건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부분들 이, 모든 것들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문제로 인식되는 부분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 어요. 더 이상 광우병이나 조류독감 금융위기 이런 것을 서로 다르기만 한, 분리 가능한 문제라고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구요. 아까 말씀이 체제 자체의 성격, 상품 자체의 성 격, 그런 조건의 일반화 이런 말씀 하셨는데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의미에서 상존한다고 말씀드렸던, 없앨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인식을 따르다보면 제대로 된 인식이 있고 진심이 있는데 그걸 몰라서 그걸 알리는 것이 소통의 목적이라는 생각에 저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문제의 성격을 전문가들도 모르는 상태 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많은데 누가 누구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저는 부 정적입니다. 이덕환 : 조금만 제가 중간에 끼어들께요. 어느 부분을 제하고 싶은 건 없구요. 아까 송해룡 선생 님 말씀은 우선 여기서는 사회적, 기술적인 이야기를 먼저 하고 다음에 나눌 수 있으면 자연적인 이야기를 하자고 말씀하셨던 것이고 빼놓자는 말은 아니셨던 걸로 이해합니다. 이강현 선생님도 그런 취지셨던 거 같은데 어떤 식으로든 좋습니다. 경제 위기에 대해서 만 계속 토론하는 것은 지금 좋은 것이 아닌 것 같구요. 소통의 문제를 지금 끄집어내는

245 건 바람직하지 않은 거 같아요. 소통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는 게 좋을 거 같습 니다. 빼자는 게 아니구요. 위험의 문제에서 소통이 왜 거론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번으로 넘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강현 : 사실은 저도 자연과학잡니다. 송교수님 지금 사회적, 기술적인 위험을 먼저 다루자고 하 셨는데 제 생각에는 자연적인 것이 다루기가 훨씬 더 가시적이고 피부에 와 닿고 해서 쉽지 않을까 합니다. 그걸 먼저 다룰 때 사회적인 문제가 나오는 것이고 문화에 따라 인 지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논의를 이끌어나가기 쉽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disaster라 는 말을 두 가지 우리말로 번역을 했어요. 그랬다가 최근에 다시 통합을 했는데, '재난'과 '재해'로 나눴어요. 그랬을 적에 정의를 어떻게 했느냐면 재해는 자연적인 것, 재난은 인 공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대구 지하철 참사, 가스 폭발, 삼풍 백화점 붕괴 이런 것 이 재난이었다는 거죠. 최근에 다시 '재난'으로 통일을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봤을 때 소 스를 사회적, 자연적, 인공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위험으로 우리 에게 감지되기 까지는 여러 단계가 있을 거라고 봐요. 예를 들어 자연과학에서 암이 발 생할 때도 몇 가지가 결합되서 느낄 수 있는 위험으로 다가온단 말이죠. 그래서 우리가 위기를 진단할 때에 하나만이 아닌, 요즘 문제가 하나만으로 발생하는 건 거의 없으니까, 복합적이고 네트워크화되어 있고 얽혀 있는데, 그것이 어디서 기원하는지 소스를 알고 그것을 구분하고 어떤 요소가 거기에 첨가될 때 그것이 확장되는지, 어떤 처방을 내려야 막을 수 있을지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어떤가 생각이 됩니다. 이덕환 : 현대사회에서 말하는 위험을 우리가 사회적으로 관심을 갖는 risk라고 정리를 했습니다. 현대사회가 경험하는 risk의 특징으로 김남두 선생님이 대형화, 사회의 네트워크화 등을 말씀하셨는데... 이강현 : 제가 재난재해를 자연적 disaster으로 확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재난재해를 보통 4 단계의 사이클로 봅니다. 그런데 그 나라의 문화, 시스템에 따라서 재해가 어느 단계에서 더 증폭되기도 하고, 이를테면 선진국일수록 예방을 하고 재난이 발생한다 해도, 일본 같 은 경우 다른 나라의 피해에 비해서 몇 십 분의 일, 몇 백 분의 일로 아주 적거든요. 그 런 것이 준비되어 있고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사람들이 준비가 되어 있고 또 문화가 서 포트 하는, 그런 것이 되어 있는 곳과 되어 있지 않은 곳...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대형화가 우리 인간의 준비과정, 어떤 우연 에 대한 인식, 지금 현재 우리나라도 생명에 관한 인식이 낮아졌기 때문에, 왠만한 재난 이 와도 그냥 잊혀지고 지나가버리는 것이 습관화된, 이런 현상이 위험에 대한 감지와 관련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덕환 : 처음에 이야기를 던졌던 것처럼 위험의 종류, 분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246 나오고 있습니다. 위험이 risk라는 말도 있고 danger라는 말도 있고 crisis라는 말도 있 고 disaster라는 말도 있고 problem이라는 말도 있고 굉장히 많은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저희가 계속 경험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위험이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해결이 된 것도, 안된 것도 있고 그것이 지나가면 새로운 것이 등장하고 있고... 위험을 어떻게 예방하고 진단하고 정체를 밝혀내고 치유책을 어떻게 만들어내고 실제로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그것을 위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가... 현실 진단 이야기는 조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경제위기도 좋고. 경제위기는 지금 보니 저희가 현실적으로 대답을 해드릴 부분이 안되어 있는 것 같고, 그것보다는 우리 사회가 최근에 겪었던 광 우병이라던가 멜라민이라던가 중국의 지진이라던가 지구온난화라던가 그런 쪽에 대해 우 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것들을 문제라고 지적을 하기 시작했는지, 어떤 메카니즘을 통해 그렇게 지적하기 시작했는지... 송해룡 선생님이 제일 잘 아실 것 같은데... 송해룡 : 잘 안다기보다는 커뮤니케이션적 차원에서 연구를 한 거구요. 저는 우리 사회가 선진사 회로 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회적 위험을 줄여야 하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그건 국가적 차원이기도 하고 개인적 차원이나 집단적 차원이기도 합니다. 그랬 을 때 어떠한 인간 활동, 인간이 생존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 위험으로 전환되는, 이러한 예가 바로 지구온난화 같은 것이죠. 일터로 가기 위해 모바일 수단을 이용해야 하는데 거기에서 화석 연료가 나와서 차에 문제를 주고 있다는 말이에요. 이런 문제를 우리 사 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해결될까. 그것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현실적 으로 제기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정책적인 지원이 있어 도 우리 국민들, 수용자라 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적다 이 말이죠. 왜 적을까요. 여기엔 문화적인 관점도 있고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도 있습니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커뮤니케이 션 양식, 문화적 양식, 여기에 대한 퍼셉션 연구를 해야 이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 다. 어떤 분들은 경제적 차원에서 해결이 가능하다고 말씀들 하시는 것을 많이 들었습니 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 불가능한 방법입니다. 내 생존을 위해 자동차를 타고 어디로 가 야 하는데 아무리 석유 값이 높다고 해도 차를 타고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러면 어떻게 대중교통수단이나 이런 다양한 부분들을 우리가 어떻게 정책적으로 해서 사회적 비용을 낮출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인데 퍼셉션 이론과 정치하는 분들이 사회적인 흔들 림에 대한 인식이 너무 적어요. 휩쓸려선 안 되는데 그런 부분이 상당히 많지 않나. 정치 입안자의 문제점, 그리고 우리 미디어 문화에 대한 연구가 적기 때문에 캠페인이라던지 이런 것들이 형식적인 차원에서 너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싶습니다. 이덕환 : 치유에 관련된 문젤 지적해주신 거 같은데요. 송해룡 : 치유보다는 이런 문제가 연결되어 있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우선 앞 부분을 해야 다음 부분을 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247 이덕환 : 그럼 강지원 변호사님께서도 한 말씀... 강지원 : 문제를 잘 알아야 대답하죠. 우선 문제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위험이라는 것 을 화두로 꺼내신 까닭이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뭘까 생각해봤습니다. 위험이라는 것에 착안하신 까닭은 위험 없는 세상이었음 좋겠다 생각하셨기 때문이겠죠. 위험이 없는 세 상이 그러면 최상의 세상이냐, 글쎄요 꼭 그렇진 않을 것 같거든요. 그래도 최소한의 안 전이 보장된 세상이라고는 말할 수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위험에 착안한 것은 유익하다 고 봅니다. 앞 말씀을 들어보니 유형도 분류하고 하신 거 같은데 위험이라는 것을 이해 하기 위해서는 그런 분류방식도 필요할 거구요. 더 나아가서는 위험의 위험으로부터 오 는 피해 우리 사회가 인간에게 주는 피해가 뭔가에 대해서도 착안할 수 있다고 봐요. 이 런 피해가 오니까 그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단 말에요. 그 피해는 뭘까, 사람에 대 한 피해 같아요. 거기엔 육체적, 정신적 피해가 있을 거구요 육체적으로는 뭐 폭행을 당 했다 강간을 당했다 이런 것... 자기에게 다가오는 피해일 거구요. 정신적인 피해가 또 엄청나게 큰데 정신적인 피해라는 것이 말할 수 없단 말이에요. 정신적인 피해를 소홀히 한다면 피해자의 인식을 적게 하는 것 아닌가 그런 부분에 착안할 수 있을 것 같구요. 또 물질적 피햅니다. 빌딩이 무너졌다던가 재산 등 물질적 손실... 그렇게 보면 사회적 피해도 있을 것 같아요. 인간관계가 파괴되는 거에요. 어떤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 불신이 생기는 거에요. 그래서 과거보다 상황이 나빠졌다 한다면 거기에 대해서도 생각 해볼수 있구요. 암튼 위험이라는 주제에 대해 무언가 생각해보신다면 그런 피해 의 유형 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면 그것을 최소화하는데 착안해서 말할 수도 있지 않나 싶어요. 그 럼 위험의 원인이 뭐냐고 이야기할 때 사회적 자연적 이런 말씀하셨는데 잘 모르겠어요. 그 위험이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 하에서 일어났다면 그 원인은 인간의 욕망이나 허영이나 지배적 욕구 이런 것들이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다른 개체에게 위험을 줄 수 있는 원인이라면 그 근본적 원인은 사람에서 찾아야 할텐데 그것은 무엇일까 고찰하는 것도 위험에 대해 논의하는데 도움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들어오자마자 얼핏 말씀하시 는데 대형화라던가 하는 부분 지적하셨는데 대형화는 인간이 많이 죽었다는 거거든요. 인간 숫자가 많이 늘었으니 죽을 때도 많이 죽었겠죠. 또 다른 분은 과학기술 발전에서 원인을 찾는다 하셨는데 사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인간의 수명을 엄청나게 늘렸고 인간 오래 사는데 가장 혁혁한 영향을 미친 것이 과학이잖아요. 네트워크화 되고 복잡화되고 이런 것도... 사실 그걸로 인해 굉장히 우리 사는 것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니 그것들이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고 봐야 균형적인 것이 아닐지. 하나 덧붙이고 싶은 건 위험을 인식하는 문제죠. 뭘 알아야 대처를 하죠. 그런데 아직도 인간이 너무 무식하단 말이에요.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단 말이에요. 그렇다면 우리가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 좀 유식해져야겠단 말이죠. 그렇다고 한다면 과학기술은 더 발전해야 하는 거죠. 질병/금 융위기에 대해서도 유식해져야겠단 말이죠. 아까 금융위기 이야기 하셨는데 그것에 대해

248 서도 우리가 유식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우리나라가 다른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본 나라라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면 파생상품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우리 가 무식해서 관여가 덜 된 거에요. 그러니 이런 경우는 적절하게 무식한 게 도움이 되겠 죠. 유식하게 알고서 대처를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우리가 또 일부러 무식해질 순 없 단 말이죠. 금융에 관해서는 우리가 너무 무식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분야야 말 로 과학기술이나 인문사회과학, 정신의학, 정신분석학 우리가 정신적인 고통에 대해 모르 는 게 너무 많으니 알려고 노력을 해야죠. 그러니 우리가 위험을 인식하기 위해 어떤 공 부를 해야 할지 더 공부를 한다면 주제를 던지신 분께 도움이 될는지 모르겠네요. 이덕환 : 좋은 말씀입니다. 김욱동 선생님이 예술을 통해 위험을 인지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었 는데 지금 강변호사님 말씀 듣고 첨언을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욱동 : 글쎄요... 어떤 말씀을 보태야 할까요. 이덕환 : 강변호사님 말씀하신 위험의 인식과 아까 김욱동 선생님 말씀하신 예술가들의 인식이... 천선영 : 제가 덧붙여도 될까요. 궁금한 게 있었는데, 주로 예로 드신 것이 오래된 것이었는데 지 금 동시대 살고 있는 작가들의 현실 진단을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욱동 : 위험의 인식에 대해 강변호사님이 말씀하셨는데 사회과학자들, 과학자들, 예술가들 인식 하는 게 다 다를 겁니다. 아까 말씀드렸듯 과학자들이 논리적이고 분석적으로 인식한다 면 예술가들은 직관을 통해 인식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risk를 엄밀히 구별한다는 것 은 사실 어렵거든요. 분류상 논의를 위해 나누는 것이 좋겠지만 그것들이 서로 얽혀 있 기 때문에 분류해서 생각할 수 없듯이 결국 위험에 대한 인식도 사실은 과학자들 인식과 예술가들 인식이 다 다른 것 같진 않습니다. 다 힘을 합쳐서 인식을 해야 할 것 같습니 다. 아까 울리히 벡 이야기가 나왔는데 울리히 벡이 본 현대사회에서 가장 큰 것은 환경 파괴거든요. 온난화 현상 초유의 관심사입니다만 환경 파괴가 가장 위험한, 또 가장 현대 대중들이 실감할 수 있는 문제가 환경위기라고 보고 있는데요. 과학자들은 어떤 로고스 에 의존하고 정책기반자들은 아마 에토스쪽에 의존하는 것 같고 예술가들은 파토스쪽에 의존하는 것 같아요. 마치 삼각형의 세 모서리처럼 각각 강조하는 것이 다 다른 것 같습 니다. 환경 위기를 진단하고 그것에 대해 치료를 하는데 있어서도 같이 삼각형 세 모서 리가 함께 있어야 삼각형이듯 세 종사 분야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바람직하다고 봅 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정책적으로 환경 이야기를 최소화할 수 있는가, 과학자들은 과학적 담론, 정책자들은 윤리적 담론, 예술가들은 예술적 담론 이 세 담론이 힘을 합할 때 환경위기 같은 위험 또는 risk를 인식하고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 싶 습니다. 공해만큼 민주적인 게 이 세상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난하든 부자든 모든

249 사람들이 다 똑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기 때문에. 그러니 이런 위험을 인식하고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다른 방향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위험을 깨닫고 함 께 치유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천선영 : risk 인지 문제와 관련해서 제가 아까 같은 문제나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들 각각의 삶의 조건에서 다르게 인지하고 반응하는 메커니즘이 있지 않겠냐 궁금해서 여쭤본 것이 구요. 제가 노망과 치매 사이라는 논문을 쓴 게 있는데, 어느 순간 사람들이 노망이라는 말을 치매로 바꿔 쓰고 있더라구요. 90년대 전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게 사람들 이 더 유식해져서 과학적인 생각을 더 가지게 돼서 노망이라는 개념을 폐기하자라고 했 던 것인가. 전 좀 다르게 봤던 것이, 의사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그랬는데 노망하고 치 매가 결국 같은 현상을 지칭하는 것 아닌가, 그게 만일 같다면 그걸 다르게 표현할 필요 가 있느냐고 했죠. 그 사람들이 절 설득하려고 했던 것이, 노망하고 치매는 다르다는 거 에요. 노망은 인간의 노화를 지칭하는 자연스러운 함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도 있고 사람들에게 질병이 아니라는 인식을 확대시키기 때문에 안 된다 는 거에요. 제가 자꾸 질문했던 건 결국 증상은 같은 것 아니냐, 나이 들어가는 분들이 보이는 특정한 육체적/정신적 상태를 지칭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말이 야니냐고 물었던 거죠. 치매 진단법 등 여러 가지가 있을텐데 우리가 그것을 치매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예전엔 노망 걸린 사람을 지금은 치매 걸렸다고 하는 것 아니냐 딴지를 걸었던 거고 그 것 때문에 노망과 치매에 대한 논문을 쓰게 되었었어요. 거기서 제가 지적하고 싶었던 부분은 단지 지식의 발전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 개념의 전환을 요청했 던 부분이 있었다는 거죠. 결국 90년대 이전에 노망이라고 이야기했던 대상들이 동일한 인물들이었다고 한다면 대상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사회적으로 바뀔 것을 요청하는 부분 이 있었다는 것이 제 주장이었습니다. 특정한 육체적/정신적 상태를 가진 사람들을 가정 내에서 관리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그것을 질병으로 진단해야, 질병으로 구분해내야 할 필요성이 있지 않았나 하는 맥락에서 글을 썼었습니다. 제가 그 생각을 가지고 있었 는데 96년에 제가 유학중이었는데 우연히 한겨레에 실린 박완서씨 칼럼을 읽게 되었어 요. 그 칼럼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냐 하면 제가 느낀 것을 작가는 이렇게 푸는구 나 했죠. 그 칼럼이 뭐였냐면, 이 분이 소위 노망이라고 불렸던 노인을 계속 모시고 살았 었나봐요. 당시에는 어떻게 생각했냐면 나이 들면 노인은 노망들고 노망들면 노인네 모 시고 살아야 하고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에요. 예전엔 그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노인들이 그러는 것을 당연히 수용하고 지냈다는 거죠. 그런데 요 즘은 누구 집에 노인 치매 당했다고 하면 가슴이 내려앉는다는 거에요. 얼마나 많은 사 람들이 고통을 당할 것이며 그것을 통해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이냐 하는 인식이 증가된 다는 거에요. 자기도 덩달아 걱정하고 불안해 하는 것을 본 거에요. 박완서씨가 자기 자 신을 관찰하면서 치매걸렸다는 노인네나 내가 모시고 살았던 노망난 노인네나 같은 상황 에 있는 것인데 그것들을 왜 우리는 지금 그렇게 변한 것인가 쓴 거에요. 전 그게 사회

250 학적으로 말이 되겠다 싶었던 거에요. 작가가 쓴 글을 보면서 제가 생각했던 어떤 부분 을 작가가 집어냈다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그런 식으로 지금 오늘의 risk를 작가들의 목 소리로 내는 방법이 분명히 있을 거 같아요. 김욱동 : 똑같은 상황도 극적으로, 드라마틱하게 영상이나 문자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 문학가나 예술가들의 역할이구요, 그런 같은 현상을 분석적 체계적으로 만드는 것이 과학자나 사 회과학자들의 역할이구요. 방법론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까 파토스 라고 말씀드린 것은 호소하는 대상이 머리가 아니라 뜨거운 가슴이기 때문에 예술가의 담론이 위기를 이해하는데 더 크게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강현 : 저도 동감을 하면서도, 제가 느끼는 사례는 요즘 '아내가 결혼했다'는 영화가 나왔죠. 재 작년인가 책이 나왔을 때 읽었는데 요즘 이혼이 굉장히 많이 발생하잖아요. 그러나 저희 또래에는 이혼이 결코 달가운 것이 아니에요. 나 자신은 물론이고 내 자식도 그걸 한다 면 몹쓸 것, 안해야 할 것이라고 가정을 하고 상황을 봐서 이야길 듣고 난 다음에 그럴 수도 있기 때문에 하고 이해는 다음에 하는 거란 말이죠. 일단 리액션은 나쁜 것이란 생 각을 하니까. 요즘 사회가 이혼이 많고 예전에 비해 성윤리나 이런 것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다가올 사회에 대한 하나의 경종으로서 작가가 표현한 것이 아닌가 저는 그런 생 각을 하고 있어요. 강지원 : 작가의 기법 이런 건 기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작가가 다 똑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시각의 문제에요. 인식이라는 것이 시각의 문제란 말이죠. 노망과 치매엔 자신 의 시각이 들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성매매와 윤락. 윤락은 빙빙 돌아다닌다는 여자라 는 말로 그런 여자들을 낮춰 부르는 말이란 말이죠. 그래서 성매매라는 말로 바꿨어요. 제가 바꾼 겁니다. 또, 장애인을 예전엔 병신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많이 쓰지 않 잖아요. 시각의 차이가 거기에 담겨 있는 겁니다. 작가도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시각이 다를 수 있고, 시각이 다르다는 말은 이념이에요. 보수와 진보 이념의 차이가 바로 시각 의 차이죠. 바로 그것 때문에 어떤 현상을 인식하는 데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겁니다. 우리 가 위험이라는 것을 인식은 하는데 그것을 잘 해야죠. 그걸 이야기하면 아까 말씀드린 유식 무식 이야기죠. 유식 무식 이야기로 접근하는데는 반드시 시각이라는 말이 등장한 다는 거죠. 어차피 이념적인 문제가 사람들 사이에서 떠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전 여기까지만 오늘 할께요. 사람 사이에 정답이 있다고 봐선 안 됩니다. 보수나 진보가 절 대 신념이라고 이야기하면 전 꼴통이라고 봐요. 어떻게든 소통이 필요한 것이고 사람들 을 타도할 적으로 생각하고 치고박고 싸움이나 하면, 전쟁을 해서 적을 때려 눕혀야 한 다는 퍼스낼리티를 갖고 있다면 그 사고 자체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위험입니다. 그래 서 우리가 시각 이야기를 할 때 진보나 보수 어느 편을 들 수 없는 거고 개인마다 생각 이 다 다른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 시각의 공존, 그리고 배려와 존중 이런 것들에 관

251 한 그런 인식을 갖췄음 좋겠어요. 천선영 : 다 나온 이야길 좀 정리해보자면 선생님은 다양성의 공존이라고 하셨지만 저는 그것을 불가피성, 살기 위한 과제, 덕목보다는 좀 더 강한 말씀을 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는 거 죠. risk 문제와 관련해서도 소위 인간들이 점점 더 본능적인 부분들, 소위 문명화 과정 혹은 사회화 과정, 아니면 무엇이라 표현하든 간에 그것이 본능적으로 자연적인 리액션 의 부분을 상실한 게 있지 않은가 싶어요. 자본주의 경제에 사는 일반 시민의 경우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그것이 꼭 지진이 아니더라도 위기 자체를 인지하는 능력 자체를 상실 한 상태에서, 단지 우리가 몰라서가 아니라 모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살고 있다는 거 죠. 그런 상황에서 일반인들이 전문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그 전 문가도 상황을 다 알고 있지는 않은 거에요. 컨설팅 회사의 경우 컨설팅을 받을 때 전문 가들이라고 받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따를지 안 따를지 그 컨설팅이 좋은 건 지 나쁜 건지 알 수가 없다는 거죠. 여러 회사에 컨설팅을 받았을 때 어떤 컨설팅을 따 를 건가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는 거에요. 신문을 볼 때마다 늘 난감한데, 전문가들 의견 해서 뜨잖아요. 우리 문제가 다 답이 있다고 하면 전문가들이 그것에 대해 다 같은 이야 길 해야 할텐데 굉장히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 말을 다 나열해 놓는단 말이죠. 항상 전문 가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모순적 상황에 대한 이야길 하는 겁니다.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그 전문가들도 답이 없는... 김남두 : 아까 강변호사님 그렇게 말씀하셨거든요. 위험, 뭘 이야기하자고 이걸 꺼낸 건지. 사실 저도 그 생각을 했는데, 위험이 문제가 된다 하면 구체적인 내용을 끌어내서 이야기하는 것이 통상적인 방법일 거에요. 그런데 특정한 위험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게 아니라 위험 을 갖고 주제를 잡았단 말이에요. 이것은 여기서 이 유형의 위기에 대해 해법을 마련하 자 그걸 이야기하는 게 아닐 겁니다. 위험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방식, 우리에게 주어지는 방식, 그것이 가지는 특징... 그런 것과 관련해서 지금까지 위험을 인 식해왔던 방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위험이 주어지고 감지된다면 그 아이디어가 문제제기의 핵심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위험이라는 말이 crisis라고 하는 말인데 그리스어에서 비롯된 겁니다. 동사가 krinein인데, 원래 판단하다 구분하다 자르다 이런 말입니다. 그러니 crisis는 골라야 하고 잘라야 하고 선택을 해야 하는 건데 오늘날 우리 가 갖고 있는 crisis의 성격이 할아버지, 할머니, 선생 등 먼저 살아온 사람들에게 들었 었던 이야기를 통해 개인적으로 판단해서 쉽지 않은 범위와 폭을 가진 성격의 것이기 때 문에 특정한 유형으로 문제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위험이라고 하는 일반적인 개념이 논 의의 대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까 과학기술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런 방식으로 위험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데에는 과학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 과학과 밀접하게 연결된, 우리 삶을 의식주서부터 연결짓는, 그 사람들을 살려가는 방식 그것과 관련해서 특정 위험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의 방식 일반이라고

252 하는 것이 어떤 식으로 삶의 체계 자체가 어떤 유형을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 을 수 없게 하는 요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문제가 제기되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겁니다. 지식이라는 말이 삶의 예 측 가능성이라고 하는 측면과 관련해서 오늘날 우리들 삶과 100년 전 사람들의 삶을 비 교했을 때 삶의 예측가능성이 지금 더 나아진 거냐 그렇지 않은 거냐... 물론 이것은 대 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통해 물으려 하는 것은 이를테면 플라톤 이 누가 통치자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해요. 그 말을 통해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아는 사람이, 아는 사람 중에서도 특별한 앎 을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 특별한 앎에 대해 두 가지로 정의 가능한데, 철 학자와 왕을 연결시킨 것은 특정 앎을 정치와 연결시킨 거거든요. 그리고 그것을 의미 있게 공유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둘이 합쳐질 수 있다는 겁니다. 정치라는 것이 사회 에서 하는 기능이라고 하는 것이 다른 사회 기능과 근본적으로 다른 측면이 있는데, 경 제라든지 교육이라든지 여러 사회적 기능들 이런 것들이 부분적인 것임에 비해서 정치라 고 하는 것은 정치공동체와 관련해서는 적어도 정치공동체 전체적인 앎과 관련된다는 것 이 플라톤의 생각일 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엄청난 앎을 가지고 있죠. 플라톤의 논의와 비교해서 지금 대학에 얼마나 많은 학자와 수많은 연구원들이 있습니까. 지금 기본적인 교육기관이라고 하는 게 플라톤 당시 통치자가 되 기 위해 배워야 하는 교육기관보다 훨씬 더 많거든요. 지식이 지배하는 사회가 된 거에 요. 많은 것을 알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할아버지가 살던 때보다 지금 우리가 덜 예측가능한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위험이 이야기되고 있는 측면이 있 어서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제 생각엔 다음까지 이야기해도 분명하 지 않을 거 같아요. 특정한 유형에 대해 이런 것이 좋다 이런 것이 좋다는 것은 각 분야 의 전문가들이 할 이야기인 것 같아요. 이강현 : 위험에 대한 인지 말씀을 하셨는데 강변호사 말씀하신 것 중에서 두 가지 원인을 전 찾 을 수 있을 거 같은데, 하나는 무식이고 하나는 인간의 타인에 대한 배려가 그것이죠. 인 간의 이기심 때문에 특히나 사회적 위험 같은 것이 유발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나는 이기심이고 하나는 무식. 몰라서 은연중에 인공적인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는 거고, 그걸 빼놓는다면 인간이 개인적으로 위험을 피하는 거는 아주 쉽게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결과가 타인이나 사회에 위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배려하지 않고 하는 경우에는 그것이 사회적 위험으로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이덕환 : 이강현 선생님은 자원봉사를 하시는데 기본적으로는 사회적 위험과 관계된 거 아닙니까. 어떤 분야를 골라서 활동을 하실텐데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시는 위험을 골라서 그 분 야에 활동하시게 된 겁니까?

253 이강현 : 그렇죠. 그 부분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아주 디테일한 것이죠. 일반적으로 자원봉사가 왜 필요하냐, 왜 하느냐... 개인적인 동기는 굉장히 많지만 사회적으로 보면 공동체 형성이 라든지 건강한 삶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시민 의 식이 있는 사람이 필요한 거구요. 이덕환 : 그때 시민의식을 강조하실 적에 강조하는 시민의식 분야를 어떻게 선택하세요? 이강현 : 가장 중요한 것은 아까 말씀하신 배려인데 기본적으로 인간은 이기적 동물입니다. 그 이 기심이 타인에게 해를 주지 않는 범위 하에서 이익을 취하는 것, 기본 원칙은 그것이라 고 봅니다. 제대로 알긴 알아도 제대로 지켜지진 않는데 그것을 교육이나 어떤 훈련을 통해 습관화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거죠. 이덕환 : 아까 김남두 선생님 말씀하신 것이 사실은 핵심인데요. 저희가 이런 시각을 가지고 문제 에 접근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강변호사님 말씀하신 것처럼 위험에 대한 인식이라는 게 사실은 정보의 부족, 그걸 무식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그게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 거든요. 그럼 사람들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 수 있을 것인가. 그건 불가능하 기 때문에 결국 위험을 계속 안고 가야 하는 상황인 거구요. 사회가 끝날 때까지 위험은 계속 가지고 가야 하는 거고 그것을 우리가 구체적인 문제를 거론하기 전에 그것을 우리 가 가지고 가야 한다는 인식 하에 이것을 어떻게 볼건가, 그런 것에 대한 이야길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현대 사회가 더 위험하다 이런 식의 이야기들이 많거든요. 그런 데 아까 말씀드렸듯 산업 혁명 이전의 위험을 현대 수준으로 보면 굉장히 작은 것 같지 만, 그 시대에서 과연 그랬을까는 의문이 들거든요. 그 시대 입장에서는 역시 심각한 문 제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페스트 말씀하셨지만 그보다 더 심한 문제, 예를 들어 노동인구 가 줄어들거나 하면 그 자체가 굉장히 심각한 사회위기였을 것이거든요. 그러니 과거와 비교할 때 우리가 굉장히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습니다. 김남두 : 우리가 그때 안 살았으니까 지금 사는 사회에 대해 상당히 과장할 수 있죠. 이강현 : 저는 그걸 이렇게 이해하면 좋겠는데 위험이 더 위험하다고 하면 막연할 것 같고 위험의 소스가 현대사회에서 더 많아진 거 아닌가, 그렇게 보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김남두 : 제가 이야기하려던 포인트를 조금 더 나아간다면 이런 것이 될 것 같습니다. 지식이 그 렇게 많이 필요한 게 삶의 여러 욕구들이 충족되는 것에 있어 글로벌화되지 않았습니 까. 사회가 하나의 유닛이 됐는데요, 지구적인 수준에서 삶의 대단히 많은 부분이 관리된 다 이런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거에요. 관리라고 하는 것이 여러 이유를 지금 왜 그 런지 알기 때문에 그걸 예측해서 막고, 예컨대 어렸을 때부터 예방주사도 맞고 영양을

254 잘 취하고 뭐는 안 되게 하고 뭐는 되게 하고 그거를 상당히 잘하고 있는 거죠. 하지만 그게 작은 단위에서가 아니라 전체 단위에서 하다 보니 파급효과도 전체 단위에서 일어 나는 거죠. 공장이 하나 무너진다고 하면 거기 다니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거기에 투자했 던 홍콩의 투자자, 뉴욕의 투자자도 문제가 되고 투자펀드에 들어가 있는 하버드 학생의 장학금도 문제가 되고 이렇게 얽혀 있는 것이죠. 잘 관리되고 있는 게 틀림없고 점점 철 저히 관리하려고 하겠죠. 지금 보면 제 하루가 다 기록되고 있거든요. 지하철 탈 때 컴퓨 터할 때 다녀간 웹사이트라던지 기록 안 되는 부분이 거의 없단 말이에요. 그렇게 정해 진 틀 속에서 진행이 되고 그게 점점 더해질 거에요. 그 관리의 단위가 전체화되어 있는 데, 관리가 그래야 잘 되니까요. 그래서 일이 터져도 국지적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쉽게 전체적인 문제로 갈 수 있는 거죠. 사실 위험과 소통을 주제로 내걸었을 때 이 주제 속 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관리체제, 이것은 어떤 성격의 것이냐 이것이 사람을 행복하 게 해주는 거고 인간의 여러 종을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성격의 삶의 체제냐 하는 물음이 저는 위험이라든지 이런 것을 일관적으로 개념화시키는 오늘날의 물음 속에 묵시적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덕환 : 교과부가 저희에게 그걸 원하죠. 이 프로그램 자체가 교과부의 정책과제입니다. 강지원 : 과거보다 위험요소가 더 커졌냐 그렇지 않냐 하면 오히려 전 더 줄어든 부분도 많다고 봐요. 그런 반면 새로운 요소가 막 등장한단 말이에요. 이를테면 인터넷. 인터넷이 인간 이 만든 굉장히 유익한 것으로 많은 좋은 점이 있지만 또 그걸로 인한 부작용이 얼마나 많느냔 말이에요. 인터넷 자체가 위험한 것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단 말이죠. 새로운 유형이 뭐가 있느냐 흥분하지 않고 그렇게 논의하는 것이 좋지 마치 과거 사회보다 지금 사회가 더 나빠진 것이라던가 하는 생각은 굉장히 편파적일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이 위험에서 우리가 위험 문제를 다룰 때 앞의 피해라는 이야길 했는데, 위험을 극복한다고 하는 차원에서 다시 이야길 해본다면 용어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건강성의 문제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제가 신체의 위험을 받았다고 하면 이건 육체적 건 강이 손상된 것이거든요. 또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정신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하면 정신 적인 건강성의 회복 문제가 되는 것이구요. 육체적으로 피해를 입었다면 육체적 건강성 을 회복하기 위해 운동도 해야 할거고... 경제적 건강성도 있습니다. 독감에 걸려 사나흘 끙끙 앓다보면 평소에 하지 않던 건강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술 끊자 담배 끊자 운동하자 여러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경제적인 건강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세계적 경제 위기라고 하지만 이런 침체기에 우리 건강의 경제적인 기본 체질을 어떻게 강화해 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거에요. 페니실린도 좋고 응급처방도 해야겠죠. 하지만 그와 동시 에 기본적인 경제 체제를 강화하는데도 노력해야 한단 말이죠. 예를 들어 우리나라 유흥 업소의 매출액이 연간 수 십 조에 달합니다. 이렇게 유흥업소가 많은 나라가 세계에 어 디 있나 보세요. 만일 그것을 1/3 줄였다고 봐요. 그럼 그 돈이 생산자금으로 투입이 되

255 고 경제체제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에요. 또 돈을 꼭 필요할 때만 써라, 차 가지 고 다니지 마라, 왜 장관이 에쿠스 타고 다녀 소나타 타면 되지, 에쿠스 탄다고 일 잘하 는 거 아니자나, 허영 때문이잖아, 과시욕 때문에 그러는 거거든요. 이런 걸 고쳐나가는 거죠. 건강 체질을 바꾸란 겁니다. 사회적 건강. 그걸 위해 제일 사회적으로 강조하고 싶 은 건 신뢰 의 문젭니다. 지금 금융 위기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이 이렇게 도미노 상태 를 일으키고 공황상태를 부르는 건 신뢰의 문제가 크다는 겁니다. 쏠림 현상 같은 거죠. 정부가 무엇을 보증한다, 그런데 이거 뭐 믿을 수 있냐, 이런 식으로 나가게 되면 이건 엄청난 자살골이 돼요. 공동체가 자살로 가는 현상도 생긴단 말이죠. 우리가 앞에 몇 가 지 이야기한 인식 이야길 한 다음에 건강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 방식 에서 오는 선입견, 그것을 신뢰의 문제라고 한다면 왜 우리가 불신하게 되고 왜 못 잡아 먹어 안달이냐 생각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바로 거기에서 소통이 제대로 되면 신뢰를 회 복할 수 있겠죠. 그런데 신뢰사회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다 같이 자살하고 있 는 것이 아니냐, 그 점에 대해 인식과 더불어 이야기했음 좋겠다는 겁니다. 이강현 : 이기심이라고 표현했는데, 자기만을 위한 이기심이라고 했을 때 상대방의 다른 점에 대 한 배려가 없고, 배려가 없기 때문에 신뢰가 생기지 않고... 자원봉사의 목적은 그겁니다. 신용사회 창출, 사회 자본 이런 이야기 하는데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든지 친절이라든지 서비스라든지... 이런 것이 없으니 불신할 수밖에 없죠. 상대방을 존중도 하지 않게 되는 것이고. 강지원 :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경제 위기라는 것이 각 경제 주체가 건강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개인, 정부, 금융기관, 금융회사 스스로가 건강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까 자본주의가 추수 목적으로 빠져나가면 반드시 통제를 받아야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금융기관들이 저렇게 이기적인 욕망으로 투기 자본화 되어 가는 것을 막았어야 되는 겁 니다. 시장이 시장 역할을 못하면 정부 규제를 어느 정도는 해야만 하는 것인데. 그게 정 석이나 마찬가진데 새삼스럽게 이야기를 급선동적으로 한단 말이죠. 어느 한쪽의 시각에 서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저는 그게 아주 공정치 못한 태도라고 봐요. 문제가 금융기관이 그렇게 했으면 막았어야지, 그걸 안했다는 거죠. 김남두 : 그걸 왜 안한 거죠? 강지원 : 그것은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투기 자본들의 각종 로비와 자기 살길을 찾고자 하는 이기적인 욕망 때문인 거죠. 김남두 : 그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건강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거거든요

256 강지원 : 시각의 문제가 있는 거죠. 금융기관뿐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나라 증권시장 에서 맴도는 개미떼들 보세요. 그 양반들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어요. 저렇게 터무니없는 배팅들을 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거에요. 회사들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나라 회사들이 대기업-중소기업 관계해서 자신들의 건강한 덕목, 가치를 찾고 사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이기적인 욕망의 노예가 돼서 짐승만도 못한 그런 추구들을 해나가기 때문에 결국 신뢰 를 잃게 된 거에요. 한종훈 : 저는 좀 다른 생각을 하는데 우리 사회에 법이라는 게 있잖습니까. 법이라는 게 있으니 까 개개인이 욕망이 있지만 법이라는 틀 안에서 그것들이 조정되기 때문에 사회가 유지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지금 이 금융위기가 각 국가별로는 규제하는 시스템을 다 만들어 놨었는데, 이게 전세계가 글로벌라이즈되고 하나가 되고 돈이 흐르다보니 사실 로컬 규 제 시스템은 있었는데, 전체를 보고 규제하는 것이 없다는 거죠. 각각에 있어서는 합법적 인데 전체 월드를 포괄할 시스템이 없다 보니 그 시스템에 대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는 거거든요. 강지원 : 그것이 결국 규제의 문제인데, 법의 규제가 얼마나 강해야 하느냐 약해야 하느냐에 대해 논쟁이 생기는 겁니다. 한종훈 : 전세계 경제 시스템을 총괄하는 규제는 없는 거잖아요. 강지원 : 전혀 없다고도 할 수 없고... 지금 말씀은 세계국가를 만들잔 이야기밖에 안 되는 거에 요. 세계 시스템을 총괄하는 세계국가를 하나 만들자는 이야기밖에 안 되는 겁니다. 김남두 : 그 이야기의 초점은 세계 정부가 좋으냐 나쁘냐를 우리가 판정해야 하는 문젠데, 지금 한선생님 말씀하시는 것에서 드러나는 점은 뭐냐면, 국가에서 정치기능이라고 하는것이 정치라든지 과학이라든지 교육이라든지 여러 가지를 서브팩터로 받으면서 그것을 법을 통해 총괄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국가 내에서의 정치 기능이죠. 그런데 이제 경제라는 것 이 국가 안에 머물러 있지 않잖습니까. 이걸 규제하려면 국가가 못하거든요. 왜, 이해관 계가 국가하고 기업하고 국가 안에 묶이지가 않잖습니까.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전체 방 식으로 총괄해야 하냐고 하는 것은 세계정부가 되야 하든지 뭐가 되든지 없는 거거든요. 글로벌한 차원에서 수많은 결정들이 이루어지고 거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안위가 왔다갔다 하는데 그것을 전체 시각에서 보는 그런 틀이 어떤 방식으로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없는 겁니다. 이강현 : 그게 전혀 없었던 건 아니구요, 있었는데 그걸 없애면서 신자유주의로 가다보니 이런 문 제가 발생하게 된 거죠. 그걸 풀어놓으니까 이렇게 된 거죠

257 강지원 : 푸는 것이 정답이냐 안 푸는 것이 정답이냐 그건 누구도 대답할 수 없고 정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규제를 할 거냐 안할 거냐를 두고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하는 것에 는 정답이 없다고 봅니다. 그 시대에 따라 다르다고 이야기하는데 제가 지금 뜬구름 잡 는 논의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하나 말씀드리자면, 이렇게 국제적으로 세계화되어 있고 이런 세계에서라 하더라도, 한 국가 한 사람 한 사람이 튼튼하다면 피해를 덜 입고 살아 갈 수 있다는 겁니다. 아무리 폭풍이 불어도 면역성이 강하고 튼튼한 사람은 감기 안 걸 립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나라가 건강한가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이렇게 수출을 많이 하 는데도 나중에 계산해보면 몇 푼 남지 않습니다. 무역수지가 상품수지가 그런데 서비스 수지 보세요. 이렇게 해외여행을 해서 수십억 불의 적자가 나는 나라가 어딨어요. 초등학 생들 조기유학을 보내는데 그 교육비를 국내에 쓰면 대한민국에 하버드만큼 좋은 학교 몇 개 만들고도 남습니다. 이렇게 정신 못 차리는 구조를 가지고 우리 스스로 건강하지 못했다는 점을 반성 해야 한다는 거에요. 그러니 세계에서 장사를 못해도 이렇게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거에요. 서비스 수지 중에서 해외에 나가는 돈이 80몇 프로에요. 교육적자를 보세요. 그러니 우린 쇠빠지게 고생해서 자동차 팔고 해서 벌어들인 돈이 3,500억 달런데, 원자재 수입이 3천 몇 백억 달러라는 말이야. 남는 것 얼마 되지도 않 는다구요. 그러니 이런 미친 짓이 어딨습니까. 그 중에 원자재가 차지하는 비율이 얼맙니 까, 원자재 90 몇 프로가 수입입니다. 당장 이 불 절반을 꺼요. 그렇게 하면 우리 한 30 프로 줄일 수 있다는 말이에요. 이렇게 건강하지 못한 못된 버르장머리를 가지고 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위험을 자초하지 않았냐고 이야기할 수 있냔 말이죠. 이 점에 있어 우리 회개를 하고 건강해졌으면 좋겠다는 말씀 드립니다. 이덕환 : 가장 좋은 말씀입니다 이강현 : 제가 자원봉사 시작하게 된 경위도 사실 그렇거든요. 80년대 말에 한국에 들어와서 얼마 안 있어 선거가 있었고 새 정권 들어서니까 곧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더라구요. 그 다음에 노조가 생기면서 노동자 임금이 3년 동안 3배 정도 올라갔는데도 사람들의 불만은 고조되고 사회는 불안하고... 제가 봤을 때 여러 이유를 들 수 있지만 사회문화적 인 민주주의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가 아직도 불안하고 그래서 정치경제가 언젠가 바람 한 번 불면 쓰러질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걸 튼튼히 하기 위해서는 문화적인 또는 사회적인 정신이랄까 체계를 세우는 것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뭐가 좋을까, 이론과 실천이 함께 갈 수 있는 것이, 제가 미국에 있다 보니 미국사회가 건강한 것 중 하나가 자원봉사 활동이더라구요. 개인만 하는 것이 아니고 정부에서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사람들이 하고 싶을 때 당장 어디든 가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 이런 것이 제대로 되어야 하겠다 생각해요. 강변호사 말씀하신 것을 그런 의미에서 저는 굉장히 동의합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건강하지 않으니까 위험이 발생할 확률이 높고

258 발생해도 커질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강지원 : 교육부장관 다 사퇴해야 해요.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조기유학으로 외국에 쏟아 붓는 돈이 얼마인지 계산해봐야 해요. 국내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육도 못해서 다 내보내는 것 아닙니까. 그 장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물어봐요. 그게 교육부 장관이고 그러 니 다 목 잘라야죠. 이덕환 : 이제 정리를 해야 할 거 같은데요. 지금까지 저희가 문진포럼을 이렇게 진행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불만스럽게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더라구요. 토론이 끝나도 결론이 없는 것 같고. 그래서 저희가 녹취를 해서 키워드를 뽑아내고 있습니다. 조금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주시고 마지막으로 꼭 하시고 싶으신 말씀 한 말씀씩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이강현 : 사실 가이드라인이 전혀 없다고는 생각 안했고, 이 주제를 보내주셨을 때 두 가지 목표 를 제시해주셨는데 순서가 없다는 생각은 했거든요. 어떤 위험에 대한 사회적 인식, 그것 에 대한 개선, 원인의 진단과 처방 이런 식으로 가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오프닝 에서 정의를 가지고 너무 오래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천선영 : 정의가 저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구요. 왜냐면 개념이 결국은 시각이고 개념의 조 합이 이론이라 한다면 결국은 이론에 따라서 세계관이 형성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기 때 문입니다. 또 세계관이 형성된다면 그것이 하나의 물줄기가 되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가 그 문제에 집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마디만 덧붙이면 소통에 관 해서도 의견 이야길 하는데 저는 이런 방식이 개인적으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답이 없는 데 답을 내라 하면 그게 더 어거지인 것이고 말이에요. 이덕환 : 또 다른 분들 말씀해주십시오. 송해룡 : 마지막으로 제가 한 문장만 읽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위험을 제로라고 하는 생각처럼 갈 등 없는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모습은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다. 위험 평가에 대한 차이가 갈등을 일으키는지 또 얼마나 일으키는지 갈등이 확대되는지 여부는 무엇보다도 이와 관 련된 커뮤니케이션의 위험과 방법이 관련되어 있다.' 위험은 상당히 주관적이라는 이 부 분에 대해 우리가 깊이 학술적으로 이야기를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편적 이야 기보다는 전문적인 이야기들도 중요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덕환 : 사회가 인식하는 risk도 주관적이라고 보십니까. 송해룡 : 그것은 문화와 커뮤니케이션 양쪽 틀을 가지고 이해를 해야 이 문제를 구조 속에서 이야

259 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조와 표현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이덕환 : 오늘 토론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260 위험과 소통, 2차 포럼

261 이덕환 : 문진포럼은 몇 가지 주제를 놓고 아무부담 없이 난상토론을 해왔습니다. 보통 한 주제를 가지고 두 차례 포럼을 진행하고, 같은 분들을 모시기도하고, 바꾸기도 하구요. 지난번 에 위험과 소통에 대해서 한번 했는데 이번에는 패널이 다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지난번 이야기 했던 것을 더 얘기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문진이라는 것은 기획위원인 한양대 국문과 선생님이 정해주셨는데, 이게 맹자에 나오는 말이랍니다. 나루를 묻다. 이런 뜻 입니다. 요즘 통합 통섭을 많이 이야기 하는데 우리사회에서 전문가들끼리 소통하는 방 법을 한번 찾아보자 그런 취지입니다.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해왔구요. 토론의 목표가 몇 가지가 있는데 주된 오늘의 목표는 위험에 대한 사회적 인식개선을 위한 방 안모색과 위험을 감지하고, 진단하고, 처방하고, 치유하고, 실천하는 각 단계에 대해서 이야기 나오는 대로 정말 자유롭게 이야기 해주시면 두 학생이 녹취를 하는데 보내드릴 것이고, 수정할게 있으면 충분히 수정해주시고 한번 정리를 해서 내년에 출판을 해볼까 합니다. 위험 이야기를 통해서 위험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묘책을 찾아내거나 소통방안 을 찾아내는 것을 목표로 하진 않고 서로 다른 분야의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 어떻게 해결책을 찾아 낼 수 있을까 하는 탐색모임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엄 선 생님 시작을 해 주시죠. 엄정식 : 기획위원이라고 해서 어떤 주제를 택할까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요. 그중에 하나 이 주 제를 interdisciplinary한 차원에서 논의 할 수 있을 것 같다. 라는 것이 광우병이니 환 경이니 위험요소가 많은데 그것이 직간접으로 과학기술과 관계가 되지만 그 외에도 이 런 것을 인문사회측면에서 조명할 기회가 많거든요.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난 상토론을 벌인다면 그동안의 모임과는 다른 상당히 산뜻한 문제 제기가 되지 않을까. 지 금 이덕환 선생님 말했듯이 우리모임은 다른 모임과는 다르게 문제 자체를 새로운 시각 에서 보자. 어떤 의미로는 우리가 다 위험에 직간접으로 노출되어 있지만 전문가들은 아 니잖아요. 그래야 창의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올 것 같다. 이 주제를 다룰 때 염두 해 두었던 것은 일종의 비유랄까. 의사들이질병을 놓고 보았을 때 어떤 양상으로 이것을 볼 수 있겠느냐. 그랬을 때 질병을 가장 예민하게 감지 할 수 있는 부류가 있는데 그것이 예술가들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염두해 두었던 것은 25시를 쓴 게오 르규가 있는데 문학시인들의 역할은 원자력 잠수함에서 기르는 토끼. 어떤 방법으로도 그 증세가 안 나오는데 토끼가 색깔이 변한다고 그런 역할을 시인 문학가들이 할 수 있 지 않을까. 예를 들면 김지하씨가 오적시 쓸 때 절규 같은 것. 그런데 위험이라는 광범 위한 주제를 문학적 상상력 예감 굉장히 중요하게 접근할 수 있겠다. 그런데 역시 그게 무슨 병이냐를 진단하는 것은 학자들이 아닌가. 과학자들 사회과학자들이 아닐까. 혹여 나 틀리더라도 진단을 하는 역할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처방이 있고, 치유가 있고, 종 교에 관여하는 성직자들이 그런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것을 제대로 못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처방을 학자들이 안하면 누가 할 수 있겠느냐. 우리가 이런 식의 메타포를 쓰고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 위험에 대한 조명이 다각적으로 이루어지면 다양한 전문가들이

262 사귀는 것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이제 저는 철학교수니까 아무래도 개념적인 것 개념 정립이 뭐든지 중요하다. 라 고 생각하고 그게 어느 정도 정립되면 어떤 문제이든지 연역적으로 접근하는데 대게 경 험 과학적에서는 귀납적으로 접근하는데 그런 점도 조금은 필요하다. 라는 관점에서 얘 기가 더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것저것 자료를 읽어보았는데 과학커뮤니케이션 쪽에서도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읽 어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철학에서는 존재론적인 측면과 인식론적인 측면으로 나뉘는데 사실 데카르트 이후에는 인식론적으로 사물에 접근하는 방식에 신경을 많이 안 썼는데 진리를 추가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방법을 고심하지 않았나. 그런 아주 멋진 문제제기를 하거든요. 존재 자체에 뛰어들었지 그 이후에 철학이 인식론으로 옮게 되구요. 그래서 사실 존재론 자체는 우리가 알 수는 없다. 다만 거기에 접근하는 선언적 구조에 대해서 선명하게 밝힘으로서 존재에 다가 갈 수 있을 뿐이다라는 태도거든요. 그런 자세를 위험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보았을 때 우리에게 위험을 야기 시키는 객관적인 사실 그 자체 는 정확하게 짚기 어렵다 그래도 위험을 느끼는 체감 객관적 사실과 상관없이 실제로 위험을 느낄 때 우리쪽 용어로는 인식론적 관점이라 고 하는데 그게 아주 중요한 역할 을 하고 이것을 거꾸로 객관적으로 있는 것을 인식의 주체를 우리가 체감하는 것이 아 니라 우리가 그 사실을 만드는 것이 아니냐. 우리가 실감함으로서 그것이 객관적으로 존 재한다고 사실이라고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논의가 많이 전개되어 왔습니 다. 최근에 사회학자들이 위기담론 세미나 한 것을 알고 있는데 거기서도 위기담론은 인 식론적 관점이잖아요. 그리고 위기 위험, 위기 실체는 존재론적 관점이구요. 그것을 우 리가 나눠서 접근하면 상당히 많은 구체적으로 부각시키지 않을까. 그런 식 으로 화두를 꺼내보죠. 김학수 : 화두가 굉장히 넓네요. 이덕환 : 쭉 이런식 으로 했어요. 중구난방으로. 엄정식 : 저는 중구난방 아닙니다. 이덕환 : 지난번에는 사회학에서 얘기하는 위험사회론 그게 대부분 많이 이야기가 되었어요. 그것 을 반복할 필요는 없고 선생님이 그쪽에는 가장 많이 알고계시죠. 김학수 : 크게는 두 가지 정도는 이야기해야 되지 않나. 위험이라고 했을 때 집단이 느끼든 개인 이 느끼든 상당한 impact을 가져올 가능성. nagative consequentiality를 가져 왔을 때

263 위험이라 하겠지. 지금 사회과학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위험 사회론은 기술이 가져오는 또는 과학연구가 가져오는 부작용에 대해서 논의를 많이 하죠. 핵실험이 가져오는 지구 촌에 대한 강력한 consequentiality. 여기나오는 지진, 태풍은 그런 것은 자연재앙의 개 념인 것이지. 흔히 사회과학에서 초점을 두고 있는 기술이나 과학이 가져오는 side effect로 가져오는 부작용 그것이 그런데 과학기술이 기본적으로는 주요문제 (핵 발전은 전기에너지를 해결하는데 기여했는데 방사선을 가져 온다 던지.) 때문에 사회과학에서 초점을 두었죠. 흔히 말해서 위험사회과학 그러나 큰 범위로 본다면 consequentiality가 포커스개념이 아닌가. 하나는 자연재해가 있을 수 있고, 광우병이나 사스(SARS), AI같은 것은 새롭게 발생되는 위험들이죠. 그렇게 나눌 수 있을 것 같고, 그 side effect가 그 위험들이 굉장히 collective한 것이 있고, 굉장히 individual 한 것이 있다. 지진 태풍은 collective 하잖아. 커뮤니티를 한순간에 위험에 빠뜨리는 그런 반면에 광우병이나 사스 나 에이즈는 원천적으로 보면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collective하다. 할 수 있지만 전염 성을 배제하고 보면 굉장히 individual 하다고 할 수 있죠. 보다 개별적인 것이 있고, 보 다 직관적인 것이 있다는 것. 그런데 개별적인 것이 감지하는 측면에선 더 절실하겠지. 보건관련 위험이 그런 것이거든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급박하고 피부에 와 닿을 정도 라도 다른 사람이 태풍이나 이런 걸 봤을 때 collective하죠. 그런 것들을 구분해서 봐 야하지 않나. 또 하나는 access가 쉽게 되는 것과 쉽게 되지 않는 것. 예컨대 에이즈라 든가 어떤 위험은 access가 쉽게 되잖아요. 예를 들면 핵 같은 것도 마찬가지고 핵발전 소에서 방사선이 유출되었다고 했을 때 거기 안전장치나 그런 것을 보면 access는 낫다 고 봐야지. 그러나 에이즈는 높다고 봐야 되지 않나. 그런 것들에 대한 구분도 위험에 대한 accessability에 따라서 그것에 우리가 느끼는 위험에 대한 감지가 다르다고 봐야 겠죠. 대부분 혼동해서보지. 위험하면 한꺼번에 몰아 부치고. 이덕환 : 지금 그렇게 보시면 경제위기 같은 것은 위험 사회론에서는 어떻게 보나요? 김학수 : 한마디로 위험사회는 기술이지. 경제는 그냥 문제로 보는 거지. problem, danger, crisis 같은 속성이라고, 용어만 다를 뿐이지 보다 이런 용어가 이런데 더 많이 사용한다 뿐이 지 개념들의 본질에 들어가 보면 같은 것이지. 그것은 다consequentiality이거든요. 엄정식 : 그건 내가 이야기 한 것 보다 더 넓은 것 같은데요. 이덕환 : 우 박사님도 얘기를 한번 위험의 감지 이야기가 있었는데 한번 해보시죠. 우찬제 : 아직 문학은 엄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존재론과 인식론에 나눠서 보자면 인식주관자의 인식주체의 상상력이 중요했죠. 근대 이전에는 인식주체가 대개 천분 하늘의 뜻에 따르 려는 것이 많았는데, 근대이후엔 자연과학의 도움을 받아서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264 눈을 얻고, 리얼리즘은 그렇게 시작이 되죠. 근대 이후에 문학 하는 사람들이 가졌던 핵 심적인태도 중의 하나는 실천적인 지성인 이였던 시몬느 베이유가 한 말 중에서. 지금까 지 인류의 역사 중에서 지금 이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시몬느 베이유는 자기가 처해있는 실존이 가장 위험하다고 느껴 실천적으로 행동하다 죽었죠. 그 사람 말대로 하 면 문학하는 사람이 자기가 바라보는 현실이 가장 위험한 현실이란 자의식을 가지고 위 험을 드러내거나 위험으로부터 치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상상의 프리즘을 펼 쳐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위험 그 자체에 대해서 존재론적인 성찰을 위해서는 자 연과학이나 사회과학에서 진단한 과학적 사실에서 도움을 받기도하고, 때로는 앞질러 상 상 할 수 있는 연구에 대한 영감을 주었죠. 프로이트가 고백한 것이 내가 무의식을 과학 적으로 체계화했으나 도스토예프스키를 비롯한 작가들이 이미 표현했던 것이다. 라고 충 격을 주기도 했던 것 같다. 위험을 그려 내거나 위험으로부터 치료를 모색하는 것이 많 은데 김지하 말씀도 하셨고. 제가 우선 한 가지만 먼저 이야기하면 소문과 관련해서 재 밌는 이야기가 있는데 터키의 작품인데 터키에는 명예죄 라는 것이 있어요. 이슬람사회 가 좋은 게 많지만 여성문제와 관해서는 굉장히 가혹하죠. 페미니스트가 가장 싫어하는 핵심적인 것이 여성문제 인데, 여성이 잘못을 하면 남성이법적인 절차 없이 처형 할 수 있는 풍습이 있었던 모양예요. 터키에 야샤르케말 이라는 작가가 있는데요. 재작년인가 파묵이 노벨상을 받았는데, 이 사람도 노 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사람입니다. 이사람 소설 중에서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 라 는 소설이 있습니다. 에스메 라는 아주 이쁜 처녀가 있었고 때문에 굉장히 프로포즈를 많이 받았죠. 그런데 그 마을의 유력한 집안의 남성인 할릴 이 프로포즈를 했지만 에스 메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프로포즈를 거절합니다. 우리도 옛날에 보쌈 이라 는게 있었잖아요. 그런데 터키에도 크즈 카츠르만 이라는 납치혼 풍습이 있었습니다. 계 속 프로포즈를 해도 안 되니까 결국 납치를 해서 결혼을 했어요. 그런데 워낙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에스메는 결혼 후에도 연인이였던 압사스와 인연을 이어갑니다. 그게 발각이 되서 옛날 애인이 남편을 총으로 쏴죽입니다. 할릴네 집안이 동네회의를 열 어서 집단적으로 공개처형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부터 발생이 되는데 에세미라는 여자를 시어머니가 도저히 봐 줄 수가 없는거 예요. 명예죄로 처단해야 하는데 계속 아 들들한테 형이 죽었는데 가만히 있냐고 하니까 처단을 하기 위해서 동네에 소문을 많이 내서 할릴이 억울하게 죽어서 혼이 떠돈다든지. 에스메를 처단하지 않으면 유령이 떠돌 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처단할 주체를 지목하는데 에스메의 아들을 지목해서 어머니를 죽이고 어머니를 불태우게 하는 이야기예요. 이 작가가 감옥생활을 했는데 감 옥에서 들은 실제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는데 독사를 죽였어야했는데 라는 야샤르 케말 의 소설에서 소문에 주목을 했어요. 이를테면 실제 객관적인 사실과 상관없이 집단이 일 으키는 광기와도 같은 소문들이 진실과 상관없이 어떤 왜곡된 사실을 끊임없이 환기하 고, 낳고, 생산하고 그러면서 진실과 멀어진 상황에서 한 인간이 처단될 수도 있는 이런 문제들 이런 소문에 관한 문제를 문학에서 많이 다뤘는데 왜냐하면 문학이 다루고자 했

265 던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통하고 싶다. 라는 인간의 욕망 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아름 답다고 느꼈던 것 선하다고 느꼈던 것 등을 나 이외에 다른 사람과 통하고 싶다는 바람 이 문학을 하게 했고, 소통이 잘 되면 조금 더 소망스러운 사회로 나갈 수 있고, 소통이 잘 안되는 막힌 사회일 경우 작품이 잘 안되고 삶의 질도 떨어지고 이런 말을 많이 하 죠. 위험을 우리사회에서 위험을 가중시키고 야기하는 것 중에 어떤 객관적인 실체에 대 해서 자연과학이나 공학 쪽에서 객관적으로 검증하면 좋겠지만 그것과는 다른 쪽에서 야기되는 위험요소들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문학 쪽에서도 하고 있는데, 그 중하나가 소 문의 문제이고 소문이 실제로 전쟁을 일으키고 크고 작은 갈등을 일으키고 폭력을 야기 하고 인간의 잔혹을 낳게 하고 했죠 이덕환 : 우리사회에서는 괴담이라고 하죠. 우찬제 : 이것이 요즘 인터넷 세상에서 정말 많이 야기되고 있는데, 어제 라디오에서 문근 영이 기부천사로 실명이 거론되어서 나오니 인터넷에 악플이 달렸는데 숨길려면 끝까지 숨기 지 뭐 잘했다고 들춰내고 깜짝쇼 하느냐고 가족사까지 들먹이며 그런 악플이 써지고 있 더라구요. 그러나 저는 악플을 보면서 저는 인간이 어느 정도 악할 수 있는가. 아무런 이유없이. 문근영이 악플러한테 피해를 줬을리도 없고, 그냥 욕을 하는거 거든요. 근데 이 악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은 전쟁이거든 요. 몇 년전에 나온 책 중에 미국 월스 트리트 저널의 유럽판 기자인 피터마스가 1994년에 보스니아 전쟁을 취재해서 그 기간 에 무슨 일이 있었나에 대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이 있어요. 다큐멘터리라는 것은 시나 소설처럼 허구화된 양식보다는 훨씬 직접적인 방법을 취하고 있잖아요. 네 이웃을 사랑하라 라는 책으로 번역이 되었고 90년대에는 잔혹의 역사 라는 책이 있었어요. 네 이웃을 사랑하라 라는 피터마스의 책을 보면서 뉴스로만 접했던 보스니아 전쟁에 서 이런 잔혹한 일이 있었구나. 하는 아주 생생한 실감을 많이 얻었는데 이 전쟁에서 27만 명이 사망하고, 2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는데 그 안에서 벌어진 일들 보면 고환 을 맨 이로 물어뜯도록 시킨다던지 아버지 보는 앞에서 친딸을 강간한다던지. 아무튼 언 급하기 어려울 정도의 참상이 많이 생겼어요. 그래서 이 책의 추천평을 쓴 사람이 너무 잔혹하니까 고등학생이하나 임신부는 보지 말 것. 그만큼 잔혹하다는건데 이때 피터마스 는 이런 얘기를 쭉 하면서 그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야수는 죽지 않고 있었다. 야수는 역사의 긴 풀숲 속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채 습격에 나설 적시를 노리며 잠복해 있 다는 것을 다시 증명해 보인 것이다. 이런저런 에피소드 얘기하면서 이런 얘기를 하더 라구요. 우간다나 유럽이건 캄보디아건 잔인성 경연대회에서는 큰 차이는 없다. 20세기 말에 인간이 그런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는가. 나로서는 한 남자의 고환을 배기 파이프에 묶은 채 오토바이로 몰고 가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그러나 수용소의 증언은 모두 일치하므로 괴롭지만 믿지 않을 수 없다 20세기말에 문명한 대륙이라고 여겨지는 유럽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을 직접 들었다고 하더라구요

266 어디나 전쟁기간에는 참혹한 일들이 많았지만 전쟁이란 공간이 삶에서는 가장 위험한 공간이고 그렇기 때문에 문학에서 인류최초의 세계 문학이라고 얘기하는 호머의 일리아 드도 전쟁문학으로 시작을 하거든요. 위험을 환기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다루는 이야기도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죠. 이덕환 : 위험의 강도면 에서는 압도하는 거네요. 홍성욱 : 어떤 종류의 인간의 주관적인 감정적인 것에 대해서 객관적인 과학적인 대비 속에 이야 기 해 주신 것 같은데, 하나 생각한 것은 이덕환 선생님이 경제위기에 대해 말 씀 하셨 는데. 흥미 있었던 것 중에 하나는 어떤 건 투자고 어떤 건 도박인가 하는 것에 대한 경 제에 대한 문제인데. 예를 들면 기업의 싸움에 돈을 버는 것은 투자고, 그냥 싸우며 돈 을 버는 것은 도박이냐. 어떤 건 정당한 금융이고, 어떤 건 사행금융이냐. 보험이 18세 기에는 사행성으로 인정이 되었어요. 왜냐하면 목숨에 대해서 도박을 한다고 간주가 되 었는데. 보험을 예금이나 주식 이라든지 정당한 영역의 금융상품에 포함시키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해서 보험이 그 안에 안착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보험 하는 사람들이 많이 노력을 했던 것 중 하나가 위험 이라는 것이 계산 가능하다. 라는 것 이였어요. 화 재라든지 그런 것도 무작위로 일어나는데. 연간 통계를 보면 어느 정도 확률을 낼 수 있 다. 자살도 무작위적으로 일어나는데 통계를 내보면 분명히 일정한 통계를 보인다는 것 이죠. 누가 죽는 것과 관계없이 사회적으로 예측이 가능하고 통계가 가능하다. 돈을 번 다고 할 때 보험이 적정한 가격을 정하고 개인도 좋고. 금융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사실 지금 경제위기는 파생금리상품인데 선물이라든지. 퓨쳐라든지 일반적인 스톡보다 파생상 품이 더 규모가 커지고, 더 리스크가 커지고, 미국이 엄청나게 돈을 벌고 우리는 따라가 야 한다고 시작했던 터에 터졌는데. 파생금리 상품 얘기 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은 몇 천 년 전부터 있었다. 실제로 정부의 농산물산업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평가를 합니다. 농작 물이 갑자기 흉작이 들어서 가격이 폭등하든지 폭락하는 걸 막기 위해 출발 했는데. 지 금 일반 다른 금융 상품을 압도 하게 되어 예측하기 힘들어지고 훨씬 더 고단위의 복잡 성이 개입되고 이것을 위해서 슈퍼컴퓨터가 개량이 되고 개발이 되고, 그것 때문에 월가 의 큰손들은 다 슈퍼컴퓨터를 쓰고, 우리나라는 그것이 안 되고 한국을 통털어서 전문가 가 하나도 없다고 하는데. 결국 위험 이라는 게 위기가 생기기전까지는 고수익 고배당을 낳는다고 생각했는데. 우려했던 통제가 안 되고 무너지면 훨씬 더 큰 충격이 될 수 있 다. 라는 것이 지금 이게 경제위기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구요. 관계가 없는 것 같 진 않고, 조금 더 복잡한 레벨에서 관계가 있을 것 같다는 인상이 들었구요. 엄선생님 말씀하신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위험을 계산하는 것은 사실은 위험의 역사와 같이 한다. 확률적인 의미로 보면 위험의 정의가 지금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것 아직 일어나지 는 않았지만 어떻게 일어날까. 라고 하는 것이 위험이 라는 것의 핵심인데요. 광우병도 한국에서 하나도 안 일어났는데 이게 엄청난 충격이 되고, 우리가 스키 타러 가기 전에

267 위험하니까 조심하라. 라는 것도 스키 타러 가면 죽는다. 이것이 아니라 혹시 사고가 날 지 모르니까 조심하라. 라는 것으로 풀이가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스키 타러 간 사람이 일 년에 3600만이고 그중에 몇 명이 다치고 죽고. 치사율이 몇 퍼센트이고, 통계로 쭉 나오기 때문에 위험의 역사와 계산의 역사는 정확하게 맥을 같이하고 있고. 그런 부분이 위험에 대한 객관적인 위험에 대한 접근방식 핵심을 이룬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랬을 때 위험이 실재 하느냐. 안하느냐 또는 얼만큼 실재하느냐. 하는 것은 확률 통계적으로 대 게는 잡히기 때문에 어떤 일은 상당히 위험하다. 어떤 것은 덜 위험하다. 그렇다면 더 위험한일을 자발적으로 하겠다는 사람에게 보수를 더 주던지 그 객관적인 기준에서 볼 때 사람 들이 훨씬 더 위험을 더 크게 보고 있다. 라는 그 부분이 객관적이냐 아니냐에 크게 벗어났다. 라는 것이 전통적인 해석이죠. 거꾸로 객관적으로 상당히 위험한데 사람들이 덜 느낄 수도 있거든요. 그것도 주관 인 것 이구요. 스키 같은 것이 후자의 경우입니다. 상당히 위험한데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서 위험을 덜 느끼고 있고, 베트남전에서 총 맞을 확률이 상당히 안 위험 한데 사람들은 그것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을 하죠. 20세기의 위험연구는 그것으로 부터 출발을 했다고 생각을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떤 것은 위험하다고 느끼고 어떤 것은 덜 위험하다고 느끼는지 그것에 이유는 무엇인가 에 대해서 많은 문제가 제기가 되었고, 위험의 매니지 먼트에 대해서는 이렇게 되었을 때 어떤 식으로 정책 을 펴야 하는지 객관적인 위험이 좁혀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한 것이 20세기 위험인식에 중요한 출발점인 것 같구 요. 보는 시각에 따라서 아예 객관적인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 니다. 우리가 만약에 그렇다면 이것을 왜 따지느냐. 위험은 perception이고 construction이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것이 어느 정도 계산을 통해서 나 오는 것과 인간이 주관적으로 perceive 하는 경우도 있고 많은 경우에는 이 두 가지가 맞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어떻게 하면 맞춰 나갈 수 있느냐 하는 위험 커뮤니케이션 혹 은 규제정책이 핵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찬제 : 그럴 때 가령 우리가 파생상품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 때 상품군들을 놓고 리스크코스트 를 놓고 코스트가 가장 적은 것을 선택 하는 쪽이 있고, 어떤 사람은 코스트를 지불하더 라도 리워드가 많은 쪽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요. 개별적인 경우에 주관적인 위험과 객관적인 위험사이에 차이가 줄어들면 좋을 텐데. 판 단을 할 때 위험하다 위험하지 않다. 라는 판단에 우리가 확률적 통계를 낼 때 가령 광 우병이 미국에서 일어날 확률 매년 통계에 추이를 보면 추정을 하겠죠. 그럴 때 가령 확 률이 0.05%다. 그렇다면 이것은 안심해도 된다. 라든지 그 임계점은 어떻게 판단합니 까? 홍성욱 : 잘은 모르겠는데 사람들의 perceive 하는 위험이 있는데 그것이 무어냐면 natural

268 disaster의 어떤 빈도라고 그래요. 거기 정도까지는 사람들이 take를 쉽게 하는데 natural disaster 라는 것이 결국 인간이 오랜 시간동안 받아들인 경우이기 때문 에 그 것보다 위험이 높은 인간이 만든 환경에서부터 나오는 그런 위험이라고 보는데. 수치는 정확히 생각이 안 나는데 그렇게 어디까지는 쉽게 받아들이는 수치가 있다고 합니다. 우찬제 : 90년대 초반에 한국에서는 분신정국이라는 것이 있었어요. 연세대에서 그때 우리나라에 서 5명이나 분신을 해서 전체가 용광로처럼 들끓고 일어났어요. 제 느낌은 그랬어요. 그 때 외신면에 짤막한 일단기사에 파키스탄인가. 인도주변에 어떤 나라인데 대홍수가 나서 18만 명이 죽었어요. 거기가 어떤 곳이냐면 20년 주기로 대홍수가 나는 거에요. 60년대 후반에도 대홍수가 나서 많이 죽었데요. 그러면 위험하니까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데 그 사람들은 거기가 대홍수가 나면 땅이 기름져서 씨앗만 뿌리면 별로 애쓰지 않아도 된데 요. 그리고 대홍수가 나서 죽는다. 그것은 하늘의 뜻이니까 숙명 하는 거에요. 너무나도 평화롭더라구요. 18만이나 죽었는데 여기는 5명이 죽어서 이러는데. 물론 자연재해 인 공재해 차이가 있지만 아주 놀랍더라구요. 엄정식 : 어떤 집단 무의식 같은 게 있잖아요. 사람의 가치관이나 그런 것이 작동하지 않나. 그런 것은 아주 좋은 예인데 의례 하는 것이니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면 위험을 덜 느끼겠죠. 그것을 조금 더 확대하면 종교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라는 것이에요. 사는 것 자체가 위험하니까 여기서 행복하거나 안전하게 바라지 말고 내세를 기약하라는 메시지가 구원 이나. 체감온도가 어떻게 느껴지는지가 상당히 중요한 것 같아요. 사회학에서 조금 더 분석이 필요한 것인데 어떤 민족이나 집단에 가치관 있잖아요. 그것을 시스템 자체 가 위험에 primeval reference를 준다. 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더라구요. 이덕환 : 홍박사가 위험 확률적 통계적으로 분석을 했잖아요. 사실 확률이나 통계 의미가 성립된 것은 18~19세기거든요. 그리고 되고 나서도 극히 일부지역에서만 통용되지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확률 통계 모르는 지역이고 만약에 확률이나 통계에 모르는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인지하는지 그런 뜻에서 보면 자연적인 재해에서 최재천박사 있었으면 진화적은 그런 것이 맞는 것인지 의심스럽고 아까 말씀 하신 것도 재미있는 예인데요. 우리는 5 명을 말씀 하셨지만 사실은 우리끼리 아무것도 없는 것을 만들고 해요. 그런 예들은 상 당히 많은 것 같아요. 이번에 멜라민 같은거요. 들여다보면 정말로 황당하거든요. 마구 사람들이 만들어 가지고 한달 동안 즐겁게 서로 엔터테인을 한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이 20년 주기로 일정부분은 포기하면서 일정부분은 혜택도 누리면서 감수하는 것을 뒤집으 면 아까 선생님 말씀하신 과학기술의 부작용 그 부분하고도 맞닿는 것 같아요. 한쪽 극 단에서는 자연재해를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반대쪽에서는 자연적인 재해보다도 훨씬 더 낮은 수준의 위험을 과학기술과 링크를 시키면서 부풀리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그 런 면을 생각을 해보면 어떤 사회가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위험의 수

269 준이 있다는 것이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위험에 대한 것인지 자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주관적 이라 그래도 좋고, 쉽게 왜곡이 된다고 해도 좋구요. 말씀하신 아까 소문이 나 괴담이나 crisis나 이런 것에 의해서 아주 간단하게 누가 조작하는 것인 지는 모르겠지만 after fact를 보면 아주 사소한 방법에 의해서 왜곡되고 증폭되고 감춰 지거든요. 우찬제 : 선생님 아까 집단 무의식 말씀하셨는데 집단 무의식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받아들 여질 수 있는 사회 상태 그 상태라면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는데요. 근대 이후에 분화되고 전 문화 되면서 그런 집단 무의식을 인공적으로 왜곡하거나 조작하는 일이 많이 생기잖아 요. 이덕환 : 거의 언제나 있는 것 아닌가요. 우찬제 : 가령 이데올로기적인 국가단체에 의해서 만들 수도 있는 것 이구요. 나치 체제에 의해서 유대인에 대한 그런 것도 그런 것이었겠죠. 이덕환 : 상업적인 이유도 있구요. 우찬제 : 이것의 핵심은 일루전이에요. 환영을 창출 하는 것이에요. 무엇이 위험 하다던지, 위험하 지 않다던지, 괜찮다던지 이런 것들이 대게는 집단적인 환영을 빚어내는 것인데. 종교 적, 예술적, 과학기술을 통해서 일루전을 빚어 낼 수도 있구요. 아까 말씀 하신 경제쪽 에서도 나타날 수 있구요. 환영에 따라서 옛날에 자연 경제로 가면 일루전이 적은데, 금 본위 화폐제도까지는 아주 적었고 지폐화폐로 나오면서 일루전이 커졌고, 신용카드가 나 오면서 굉장히 커지게 되었죠. 일루전은 개인이나 집단에게 모종의 기대를 주죠. 그 기 대는 process가 진행되어 가면서 만족이 되거나 좌절되기도 하고 만족이 되면 상관은 없겠지만 좌절되면 불만이 생기고 분노가 생기겠죠. 그런데 이제 어떤 경우는 멜라민이 나 광우병이 이쪽에 근거로부터 벗어난 일루전이 낳는 쪽에서는 엉뚱한 방향의 분노를 만들어 내려는 정치적인 모종의 의도 같은 것도 있지 않나. 엄정식 : 결국은 우리가 과학 이공분야 계신 분들 같이 안계시니까 아무래도 그쪽으로 연결 을 해 야 할 것 같은데 말하자면 일루전이라는 것은 미신이라고 해도 되고. 우찬제 : 미신과는 다르죠. 엄정식 : 그러니까 내가 얘기 할 때는 그것까지도 포함해서 말을 하는 것인데. 종교가 제 도화되 고 다져진 미신이잖아요. 과학의 발전은 결국 일루전이나 미신의 부분의 영 역을 극소화

270 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과학도 새로운 일루전을 만들긴 하지만, 과학자들이 정답은 아니더라도 검증해 놓고, 과학자들은 열린 자세로 절대적으로 신앙의 자세로 믿는 것이 아니라.. 항상 다시 검증하려는 자세 때문에 우리가 과학자들을 믿잖 아요. 예를 들면 이번에 수술할 때 감동을 많이 받았는데,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 이 감 동을 받았거든요. 굉장히 위험한 수술이라고 하더라구요. 얼마나 위험하냐고 물었더니 하는 것이 안하는 것 보다 덜 위험하다. 라고 하더라구요. 아무튼 오래되서 어차피 위험 하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런데 그것은 확률이 아니더라도 0.001%만 덜 위험해도 하게 되 는 것 있잖아요. 우리가 문화인으로서 현대인으로서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과학이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소력을 갖는 이유가 물론 과학을 믿지 않는 사람은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우리가 과학적인 언어를 조금이라도 더 신뢰를 주는 이유 가 있지 않나. 이승종 : 과학기술 쪽 말씀드리기 전에 위험과 소통이라는 생각하면서 소통 쪽을 더 생각해 보았 습니다. 자료 끝에 보시면 위험을 예방하고 진단하고 치유하는 가장 좋은 일이 소통이라 고 한다. 소통에 굉장히 긍정적인 표현을 해주셨어요. 소통을 생각하면서 인간만이 아니 라 생물체 전반에서 소통이 하는 역할. 왜 소통이라는 것이 필요한가. 물론 커뮤니케이 션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생물체 본능으로 위험을 종족들에게 알리기 위한 수단. 위험을 인지했으면 종족들에게 알려야 하는 종족보존 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이런 것은 동식물 다 있는 것 같습니다. 식물체 보면 위험이 인지되면 향을 발산하는 예를 들어서 동물체 들이 와서 자기를 먹으면 개체에게 알려야 하는데 향을 발산하면 향을 개체들이 인지를 하고 먹으면 해가 될 수 있는 물질을 축적하는 대부분 그런 기능들이 있다고 합니다. 소 통이라는 것이 자기종족보존을 위해서 위험을 전달하는 하나의 본능적인 수단이 되는 것 같아요. 인간에게도 있었는데, 인간은 그것 보다 더 다양하게 소통 하는 법이 있었 죠. 인간에게도 당연히 위험이 인지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본능은 당연히 있는 것 이구요. 과학기술이 발전해오면서 위험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예전 원시시 대에서 위험, 점점 과학기술발전하면서 인식하는 범위가 점점 많아져 가고 있다고 생각 하고 예전은 같은 현상도 운명이다 신의 저주다. 라는 위험이라는 표현보다는 단순한 공 포였는데 과학기술 쪽으로 실체가 밝혀지면서 이것은 위험이다. 라고 인식하기 시작하고 위험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사람들이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특히 과학기술 쪽에서 예측을 어떻게 할 것인가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 위험 을 계속 인식하면서 과학기술이 거기에 따라 발전을 해가는 현상 같구요. 특히 그것 때 문에 인식될 위험이 점점 양이 많아졌다. 그것이 현대사회가 위험한 사회라고 느끼는 또 하나의 요소라고 생각하거든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위험 요소는 있었는데 예전에는 느끼 지 못하다가 이제는 위험이라고 인식하는 것들이 아마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 같습니다

271 엄정식 : 정보가 더 많으니까요.. 이승종 : 물론 과학기술 쪽으로 연관시켜서 말하면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위험을 인식하는 경우 도 있었지만 또 어떤 한 부분에서는 예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위험이 새로 생겨났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쪽으로 보면 두 가지로 분류해서 말을 해 보면 하나 는 물질자체에서 생기는 위험 그것 또 다시분류를 할 수 있을 거에요. 예전부터 있었는 데 위험한줄 몰랐다가 위험하다고 인식 하게 된 물질적인 위험이 있고, 아예 예전에는 없었던 물질이 새로 만들어진 것이 많거든요 대표적인 예로는 플라스틱 같은 것이 있구 요. 새로 만들어져서 그것의 위험요소가 밝혀지는 그런 것들 그리고 바람물질도 굉장히 많을 거에요. 사실 발암물질의 대부분이 예나 지금이나 새로 만들어진 것보다는 원래 있 었던 바람물질이 더 많거든요. 예전에는 암이라는 존재 도 몰랐고 발암물질은 더더욱 그 렇구요. 발암물질 리스트가 몇 백가지가 있습니다. 음식물도 마찬가지고 고기구워 먹으면서 생기는 탄 것 예전에는 그냥 맛있게 먹었 는데 이제는 이거 발암물질이다. 라는 것처럼 과학기술이 발전되면서 새로 인식된 부분이 굉 장히 많아진 것 같아요. 물질만이 아니라 각종 공정기술에서 파생 되는 것도 많구요. 석 유화학공장들 가보면 공정자체가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거든요. 항상 폭발할 수 있는 위 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 이구요.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고려해서 설계를 하는 것이지만 운전상에 실수가 생기면 항상 위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위험요 소라는 것이 있습니다. 과학기술 발전하고 관련해서 얘기 할 때 뒷부분이 부각되어서 표 현되는 것 같습니다. 과학기술발전에 의해서 새로 만들어진 위험요소가 더 많이 이야기 가 되는데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것이 위험요소 라고 되는 순간 과학기술 하는 사람들 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까 빨리 예측, 예방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궁극적으로 치유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는 것인가. 그런 둘 사이에 어떻게 보면 끊임없이 진행될 것 같습니다. 과학기술 발전에서 새로 만 들어진 위험들을 사실 없애 버리는 것이 나은 가. 쉽게 얘기하면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은 방법이냐? 그것은 전혀 다른 토론이 필 요한 것 같구요. 위험 요소 라는 것과 과학기술의 발전과 대비되는 면이 있지만 그런 위 험이라는 것 때문에 과학기술이 뒤로 가야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여기까 지 말씀을 드리고 토론을 했으면 합니다. 이덕환 : 얘기를 조금 더 바꿔서 이런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어요. 홍박사님이 말씀하신 위험의 예 측가능성 확률이 우리에게 등장한 것은 얼마 안되요. 그전에도 사람들은 위험을 느꼈을 거라구요. 위험의 인지수단이 확장된 것은 있지만 우리의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괜히 위 험해라고 자꾸 멀쩡한 것도 위험한 것 이라고 하는 하지만 그것이 삶의 질의 향상에 한 단면인 것 같아요. 삶이 풍요로워지고 안전해지고 편안해지면서 오히려 걱정은 늘어가는 것이 생기는 것 같은데 저는 과연 우리가 자동차에 사고가능성, 자살률, 사망률, 이런 것들은 통계적으로는 가능한데. 예를 들어서 신기술을 도입 했을 때 그것의 위험가능성

272 김학수 선생님이 과학기술의 부작용 할 때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거든요. 과학자들이 위 험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저는 회의적 이에요. 아주 심플한 것은 가능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과연 가능한 것인지 그것은 기 술자체에 어떤 위험요소가 내제되어 있다기 보다는 그 기술을 사회가 받아들여서 그것 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서 위험요소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스펙트럼은 완 전히 다른데 그것을 미리 예측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 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승종 : 최근에 얘기 되고 있는 것 중에 나노테크놀로지. 그 분야에 재료 자체가 나노수준 의 작은 스케일인데 물론 자연에도 나노수준의 물질이 있거든요. 기술이 발전하면 서 나노 스케일의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져요. 그런데 새로운 나노재료들이 과연 인 간에게 어떻 게 작용될 것인지 검증이 안되고 막 만들어지고 있거든요. 기술은 막 발전해져서 나가는 데 재료는 만들어져서 새로운 기능이나 성능이 있는데 과연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일상 적으로 쓰일 때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고려를 해봐야 하지 않나. 아까 말씀 하신 것처럼 자동차가 많아져서 사망률 통계가 나온다던지 그 재료들이 쓰이면서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면 그때부터 통계들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게 생각만 하 면 과학기술의 부정적인 측면만 보는 것 같은데 이런 일들은 기술이 퍼지면서 통계수치 가 나왔던 일들이 역사적으로 자주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덕환 : 저희들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바로 그거거든요. 부작용에 대해서 개발한 사 람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것 아니냐.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가장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것을 사회가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개발자들이 상상을 못할 것 같아요. 거기서 파 생되는 가능성 있는 위험이 무엇인지 김학수 선생님이 이야기를 해주시죠. 일반적으로 collective 하게 과학기술의 부작용이라고 하는 것 같거든요. 김학수 : 위험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생존에 방해 된다는 것을 위험이라고 느끼죠. 그렇다면 생존 에 방해가 된다. 생존에 확률적으로 위협이 되는 것들이 위기고 위험이다. impact가 크면 큰 위험으로 되겠구요. 그렇다면 그것은 존재론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것이겠고 과학 적으로도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겠구요. 언제나 복수로 존재하기도 하구요. 그렇다면 복 수로 존재한다면 우선순위가 중요 하겠구나. 언제나 복수의 위기가 공존하고 있다. 그러 면 우리는 한꺼번에 다 못 다루니 우선순위가 생길 것이다. 그런 우선순위를 정리를 잘 해 주는 것이 매스미디어다. 오늘의 위험은 이거다. 하는 탑뉴스들이 위험이거든. 그리 고 collective 차원에서는 정리해주는 것이 국가정보원이 있고. 국가정보원은 national 차원에서 어떤 위험들이 국가 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는가를 점검하는 시스템이고 거기도 우선순위가 존재할 것이라고. 그런데 새로운 위험들도 나타나고. 또 예전 위험들은 사라 지고. 그러면서 우선순위도 바뀌겠죠.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얘기한 것은 예전의 문제들 을 우리가 우선순위 위에 놓았던 문제들은 사라지고 밑에 가볍게 있었던 새로운 위험들

273 이 선점이 되겠지. 예전에 상상 못했던 것도 큰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지. 거기에 과 학을 들이대고 커뮤니케이션을 들이대면 생존의 위험을 느낄 때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파워풀 하거든요. 그런 커뮤니케이션을 접하면 우리는 언제나 눈독을 들이게 되고 촛점 을 맞추게 되어있다. 커뮤니케이션의 일차적인 의미로는 위험을 알려주기 때문에 우리가 위험에서 살아남을 근거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죠. 위험에서 문학이야기가 들어갈 수 있 는데 문학이 본질적으로 위험을 다루는 것이지요. 문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극적요소 가 있어야 하고 미적요소가 있어야 하고 극적요소라고 함은 기본적으로 갈등구조에서 플롯이 만들어 지는데. 그 갈등은 필연적으로 위험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문학에서 다 루는 극적요소는 대체로 일반사람들이 감지 못하는 potential 위험을 드러내주게 하는 것 이죠. 그런 것 들이 우리로 하여금 선각자적인 역할을 하는 것 이죠. 사람이잘 상상 할 수 없는 새로운 위험을 디스커버리 시켜주는 것이죠. 그러면 그것이 한 시대를 풍미 하는 또 그 시대에 중요한 인지를 하게 되겠지요. 그런데 문학은 우 교수님 말처럼 diffusion도 한다. 그래서 새로운 위험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깨닫지 못한 것을 확 깨닫 도록 diffusion도 한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남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왜곡된 다는 것은 constructive thinking을 내 놓는 것이거든요. 부정적으로 했을 때 왜곡된 아 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겟지. 그러나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길이다. 인간은 언제나 건 설적이기 때문에. 긍정적이든 어쨌든 기본 인포메이션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그리고 위 험의 숙명이 파워풀할 수밖에 없는 구조 그다음이 그런 위험이 개별적 차원이 있고, 공 동체적 차원이 있는데 공동체적의 위기는 대부분 혼자 대처를 못하고 항상 같이 경쟁을 함으로 인해서 경제위기가 기본적으로 individual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개인이 극 복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문제가 확대되어 있다면 그것은 collective 차원이 되는 것이 죠. 지금의 경제위기가 그런 차원. 그래서 두 가지 기능이 있는데 위험을 알려주는 기 능. 개인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사안이 벌어졌을 때. 집단적으로 대응 할 수밖에 없는 구조. 지금 두 가지 구조가 커뮤니케이션의 기능을 한다. 일단사이언스를 들이대면. 그 래 이게 위험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은 위험하다고 생각 하지 않다. 그것 이 사이언스가 위험을define 하는데 기여할 것이고. 소위 fact finding은 아마 그런 측면 에서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이 위험이 정말 위험한지 안한지 define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두 번째 과학이 기여하는 것은 solution이다. 그 위험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는가. 우리분야에서 신기술을 많이 연구하는 이노베이션과 커뮤니케이션 이것이 많이 연구 됐던 겁니다. 볍씨 옥수수 새로운 씨앗들 나온 것 커뮤니케이션이 제일 오래된 곳 이 농업사회학 분야 이다. 왜냐면 커뮤니티를 만들어 같이 활동해야 하니까요. 새로운 곡식 품종이 나왔는데 안 쓰는거야. 그러면 diffusion 때문에 광고도 내야 되고, 기사도 실어서 내야하고. 한번 심었다가 1년 농사를 망칠 불확실성이 가장 크잖아요. 제일 문제 가 되는 것은 불확실에 관한 것도 따지고 보면. 옵션이 복수가 되었을 때 불확실하다 이 거지. 첫 번째가 옵션이 하나도 없을 때가 불확실한 것. 옵션이 복수가 됐을 때 불확실 한 것. 이노베이션은 옵션이 하나도 없을 때 보다는 훨씬 더 다른 불확실성이지. 그렇게

274 놓고 봤을 때 이노베이션 그 자체가 목표로 하고 있는 성과를 얻어낼 것인가 아닌가. 그 다음이 side effect인데 문제는 대체로 과학자들은 첫 번째 걱정에 도전적일 거에요. 하 지만 일반적으로는 두 번째 것에 관심을 많이 가질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걱정거리의 종류가 완전히 다른 것이지요.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두 번째 걱정거리가 굉장히 consequentiality가 높은 것으로 인지될 때가 있다. 지난번 광우병이 대표적인 예가될 수 있구요. 질병은 개인에게 바로 타격을 주는 것으로 인식을 하기 때문이죠. 원천적으 로 보면 FTA가 본래 이슈인데 그건 사라지고 광우병이 완전히 압도해버렸어요. 그것이 왜 그러냐 하면 이명박은 한미 FTA가 가장 큰 걱정 거리였고, 많은 사람들은 한미 FTA는 consequentiality로 받아들이지 않은 거에요. 위험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이 용어다. 광우병 같은 경우는 아주 극단적인 용어란 말이에요. 아까 말한 사이드이펙트 문제도 우리가 방사선 폐기물 같은 경우나 energy shortage가 큰 문제 아닙니까. 거기 서 안전하지 않았을 때는 생기는 방사선 문제는 side effect 아닙니까. 그런데 방사선은 치명으로 나야지만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energy shortage는 나에게 다 해결된 것으로 보이고 그러니 이 문제가 메이저 위험을 그대로 다미너티 해버린 상황이 죠. 그런 현상으로 해석을 하면. 그것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현명하게 대처 할 수 있는 것이죠. 엄정식 : 소통 있잖아요. 소통의 중요한 역할 특히, 현대사회에서 그쪽에 전공이고 그래서 미디 어 있잖아요. 국가적 차원에서 국정원에 담당한다. 소통을 원활하게 담당 수행한다. 라 고 이야기를 했지만 순기능 못지않게 역기능이 있지 않느냐. 그것이 위험을 가중시키는. 가령 국가 같으면 위정자들이 정권 수행하는 목적이 있어 가지고 사태를 몰아 가는게 있자나요. 남북문제도 그렇고 광우병도 사실은 언론사들이 숨겨져 있긴 하지만 사실 숨 겨져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본질적으로 비즈니스 아니에요. 장사꾼들이다. 이거에요. 김학수 : 언론은 위험을 파는 기업이지요. 엄정식 : 그렇지요. 장사를 잘 하려면 광고주를 끌어들여야 하고 광고주를 끌어들이려면 센세이셔 널리즘을 팔아먹고 살아야 한다. 이것이죠. 그러려면 상당히 위험 분위기를 조성해야 사 람들이 거기에 예민하니까. 그러다 보니 구조적으로 언론이 사실을 왜 곡시키는 체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또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특출난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지능도 그렇고 경험도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과도한 고만 고만한 사람들이 엄청난 문제 를 다루자나요. 언론인들이 엄청난 가치를 창출하면서 깊이 생각하면서 연구하지는 않자 나요. 이런 것은 지금부터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진단을 제대로 해야 제대로 나 오듯이 그런 점들이 사실은 보여야 될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홍성욱 : 소통은 맨 끝에 잡혀 있는 것 같은데요. 핼리페트로스키가 대중적인 그 책에서 지 적하

275 고 있는 것이 새로운 기술이 발전할 때 엔지니어들이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 예측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처음에는 굉장히 보수적인 자세를 취한다고 해요. 다리라던가 철교를 놓을 때는 교각을 두껍게 놓거나 하다가 어느 정도 괜찮으면 점점 교각을 넓히거나 높 게 하고 위험도를 증가시키다가 또 보수적으로 갔다가.. 또 위험도를 증가시켰다가..이런 것이 기술사회에서 계속 반복되는, 그래서 이 사람은 기술에서의 사고가 긍정적인 역할 을 한다고 이런 이야기를 해요. 과학기술들이 야기시키는 여러 가지 새로운 위험에 대해 분석을 잘 해주셨는데, 예전에 수돗물 바이러스 문제가 있었잖아요. 분명히 그때는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는데 새로 운 기술이 나오면서 몇 년 사이에 새로운 기술이 발달해서 그것이 검출이 된다는 거에 요. PCR같은 새로운 기술이 개발 되면서 그거로 하면 나오고 우 리가 썼던 국제적인 과 거 스탠다드로 하면 분명히 안 나오고.. 이러니 어떻게 하란거냔 거죠. 이러니 새로운 과학기술이 검출방법개발 같은 것 들을 통해 새로운 위험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제가 예전에 artificial life에 대해서 연구하는 분을 만난 적이 있었어요. 이것은 굉 장히 간단한 바이러스를 가지고 실험을 하는 것 인데.. 어떤 유전자가 필요가 없 다 생각해서 knock out하거나 빼네요. 그리고 나서도 잘 살고 있으면 또 다른 유 전자를 떼어내요. 그래서 가장 최소한의 유전자 단위로 살아있는.. 우리가 생명체 라 생각하는 생명체를 만들어 보는 거에요. 사실 바이러스도 쓸데없는 유전자가 많거든요. 그래서 하나하나 떼어보면서 가장 최소한 으로 남겨 놓고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그게 무엇이냐 하는 실험인데, 이것 이 미국에 서는 아주 위험한 실험이거든요. 한국은 아직 별로 제제가 없어서 미국과 다르게 실험을 하고 있는데 그러면 그 실험은 위험한 것이 아니냐. 이 위험성에 대해 어떻게 하느냐. 이미 미국에서는 이 위험에 대해 분석이 됐는데 이 분석이란 것은 이건 분명히 새로운 것 인데 그전에 있었던 없었던 것을 extrapolate시켜보는 분석이에요. 맨 처음 recombinant-dna나왔을 때 어떤 쪽에서는 안전다고 하고 어떤 에서는 위험하다고 하 고 위험하니까 제한을 해야 하고 과학자들은 이것이 지금 앞으로 엄청난 무궁무진한 시 장이 될 수 있는 것인데 위험하다고 하니까.. 찬성 쪽 에서의 얘기는 지금은 recombinant-dna가 혁신적인 과정이지만 원래는 오랫동안 진화적인 과정에서 일어났 던 일을 실험실에서 짧은 시간내에 반복적으로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폈고, 지금 은 받아들여지긴 했지만. GMO를 봐도 비슷한데 지금은 아주 필요한 기술인데 이런게 환경이나 인간이나 동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겠느냐 하는 것에 대해 반대 입장에서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굉장히 조심해서 실험을 많이 해야 한다. 하고 찬성하는 쪽은 동물 실험을 하기는 하지만 그거 보다는 변이가 일어나고 조작하고 했던 일들은 자연과정에 서 계속 있었던 일이다. 진화과정을 통해서 일어났던 일에 불과하다. 오히려 저는 왜 그 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는데 어떤점 에서는 과학자들이 위험에 대해서 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있어요. 지구온난화 라던지 오존에 대해서는 과학자들이 오히려 더 래디컬하다.. 이런걸 보면 과학자들의 입장도 균일하지 않은게 아닌가

276 우찬제 : 어제 런닝머신 오일을 하나 샀는데 통에 경고가 써있기를, 만약에 한 공간에 러 닝머신 3대 이상에 오일을 쳤다면 반드시 창문을 열어서 환기를 시켜라. 라고 있더 라구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경고문이 있었어요. 엔지니어의 실험실은 진공상태에 있지 않으니까 맥락을 고려할 때 가령 상품화와 관련된 기술, 그다음에 지구온난화 라던지 좀 더 래디 컬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당장은 그것과는 멀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법 이라던지 규제 그런것과 도 연관이 있을 수도 있구요. 가령 확률이나 통계에 저는 그런 위신 같은게 있 거든요, 가령 경제 통계같은 경우에도 종속변수 독립변수 더미변수 라는 것이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물가상승률이나 더미변수에 따라서 KDI통계, 한국은행통계, 지경부 통계 가 다르게 나타나거든요. 이런것도 마찮가지로 광우병에 대해서 위험하다 위험성의 정도 라던지 통계를 보면 어떤 과학자냐에 따라서 통계지표가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되거든요. 변수를 어떤 것으로 사용했느냐. 수돗물처럼 어떤 기자재를 사용했느냐. 결국에 변수나 기자재를 사용하는 사람의 선택 주체의 생각, 윤리적인 감각과도 관련 되어 있지 않느 냐. 라고 생각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광우병 영향이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그런 변수 를 쓸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구요. 그렇다면 근대문화인이 확실히 신뢰하고 싶어하는 통계지표에 대해서 일반적인 대중들은 혼란스러움이 있고 혼란이 엉뚱한 위험 을 가중시킬 수 있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이 지적 된 거겠지만 엔지니어 의 실 험실이 진공상태가 아니라는 점, 그 실험실이 어떤 맥락에서 터득 됐느냐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는, 과학기술에 윤리를 강조하는 분들이 이미 얘기를 많이 했을 텐데요. 이덕환 : 기술자들이 가지고 있는 윤리의식 가치관이 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자료에 그대 로 반 영이 되는 것이죠. 어떤 면을 보고 지구온난화 같은 것이 문제가 오히려 덜 보도 되기 도 하고 그럴까요? 홍성욱 : 과학자들의 대부분이 지구 온난화의 위험성을 방조하고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이덕환 : 저는 그렇게 안 보는데 홍성욱 : 오히려 굉장히 보수적인 입장, 온난화가 별로 위험하지 않다. 예를 들어서 CO 2는 증가 를 하지만 CO 2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이런 쪽의 이야기를 하는 쪽은 보통 사람들에게 보 수적인 정치가들로 생각되고 있고, 과학계에서는 지구온난화가 사실이고CO 2에 의한 것 이다. 이대로 두면 50년 뒤에는 굉장히 위험해진다. 이덕환 : 이슈자체가 굉장히 불확실한 문제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과학계가 혼란스럽게 대 응을 할 수 밖에 없구요. 지금 현재 진행 되고 있는 지구온난화가 언제까지 진행 될 것이냐. 일반적으로 말하듯이 uncontrollable state로 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예측을 못하

277 는 것이구요. 예를 들어서 70년대는 굉장히 내려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 그래프가 확 돌아섰는데 그때 상당히 기상학하고 그런 사람이 혼란스러웠어요. 지금은 꽤 오랬동 안 올라갔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없는데, 지구의 역사를 보면 언제든지 꺾일 수가 있어요. 아마 거기서 논란이 생기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에 아직도 불확실한 것이 인간이 배출한 CO 2가 원인이냐에 따라서 굉장히 논란이 많은데 그리고 CO 2가 원인이냐 결과라는 것이 문제가 많아요. 이슈라는 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 때문에 혼란스 럽게 보이는 것 같아요. 아까 김학수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이 굉장히 재미있게 들렸는데요. 광우병의 진짜 concern이 무엇이냐. 일부에서는 FTA가 광우병의 핵심이고 일부는 건강문제로 보 이 고, 그 한 가지 문제를 두고 서로 다른 면을 보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할 것 같아요. 그 런데 이것이 사회적인 이슈로 보면 이것은 파워게임으로 변질될 수 있고 거기부터는 정 치인 것 같아요. FTA를 더 강조하고 싶은 사람하고 건강을 더 강조하고 싶은 사람들의 힘겨루기죠. 서로 이해를 못하고 서로 관점이 다른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어떤 논란으 로 테이블에 올라왔을 때는 거기부터는 정치문제인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는 이해를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를 잘하면서 서로 모르는척 하는 것이죠. 엄정식 : CO 2문제 있자나요. 우리가 실제로 원인이냐 결과냐 그것은 조금 더 테크니컬 하다 고 그래도 산업 혁명 이후에 지구에 다른 factor가 없었단 말이죠. 공업화나...다른 factor가 없었는데. 그렇다면 과학기술에 원인을 직접적인 원인을 거기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닌 가 그렇게 보거든요. 이덕환 : 한쪽에서는 이렇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가 엄청난 양의 CO 2를 배출을 하죠. 자연에 서 배출하는 상대적인 비교문제가 있는데 우리는 엄청난 양이라고 생각하는 데 자연은 그것보다 더 엄청난 양을 배출하고 있어요. 과학기술계 의견에는 우리가 아직도 자연을 통제하고 엄청난 영향력을 착각하지 말아라. 우리는 아직도 형편없는 존재다. LA 산불 한번 나면 거기서 나오는 CO 2의 양은 상상할 수 없는 양이에요. 지금까지 발견된 사실 을 보면 즉, 산업혁명 전에도 이정도의 많은 온도상승 하강이 굉장히 자주 있었어요. 엄정식 : 그것과 절대비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여전히 있고, 인공적으로 그것이 함 축 하 는 의미가 있자나요. 이덕환 :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죠. 그것은 아닌 것 같구요. 이런 것은 설득력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과거보다는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데 과거에는 그런 것에 대한 인식도 없었고 이산화탄소 배출하는 것이 대 수냐. 우리사 회에도 LPG LNG차 있잖아요. 이게 90년대는 청정연료 자동차였는데 지금은 교토의정 서 보면 오염이 가장 심한 자동차에요. 예전에는 CO 2를 오염원으로 안 봤는데 그것을

278 오염원 이라고 하면 그게 가장 큰 오염원이에요. 우리의 인식이 바뀌고 아까 말씀하신대 로 우선순위가 바뀌면서 CO 2가 사회적 문제가 된 것은 사실 이구요. 그 다음에 우리 삶 에 수준이 올라가서 투자를 할 수 있는 여력도 생겼거든요.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여력도 생겼구요. 위험성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이 기회에 거기다가 투자를 하는 것은 굉장히 바람직하다고 봐요. 항상 대안은 찾아야 하니까. 이 기회에 한번 찾아보자. 홍성욱 : 다른 의견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데. 그래도 제가 선생님 말씀 들으 면서 계속 이상한 부분은 인간이 배출한 CO 2가 지금의 온도상승에 기여를 하고 있다. 라는 것은 기상학자들의 컨센서스가 아닌가요? 이덕환 : 컨센서스 라고 보기 어렵다. 아마 내가 너무 분위기가 너무 그쪽으로 가 있어서 목소리 를 못내는 사람들이 있 지 않느냐. 제일 대표적인 예가 70년대 CO 2 배출수준에 대책이 없었거든요. 오일쇼크 대책이 없었는데 굉장히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어요. 그때 아 무도 그 얘기를 못 했는데 분위기는 제가 말한 것이 맞아요. 과연 fact로 밝혀질 것인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암튼 불확실한 것이고. 아까 말한 것은 어떻게 보세요. 단 순하게 위험을 보는 시각이 아니라 폴리티컬 게임이다. 김학수 : 모든 문제가 초기에 발생되었을 적에 그 문제에 성격이 변하는 것은 분명하지. 많 은 사 람들이 개입되고 많은 임플리케이션이 보태지면서 여러 가지 정치적인 파워게임 요소도 들어가겠지. 흔히 파워게임으로 보면 굉장히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데. 파워라는 것이 win아니면 lose니까..바로 그런 점 때문에 파워게임을 하면 또 어필을 하죠. 심플 하거든, 보는 눈을 심판하게 만들죠. 그래서 어필을 하게 되죠. 파워개념 이라는 사회과 학자적으로 어떻게 디파인 하냐면 다른 사람의 행동의 방향을 내가 제어할 수 있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법을 만들 때 제어하지요. 엄정식 : 영향력을 미친다 이거죠. 김학수 : 어쨌든 간에 여기에 정치적인 요소가. definition에는 정치적인 임플리케이션이 개 입 안 됐다고 볼 수는 없지. 그런 측면에서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모든 사안에 대해 서 지구온난화 문제도 마찬가지고 맨 처음 그 문제가 떠오를 적에 소수의 사람들에 대 해서 떠오르는데 그러면서 공감대를 얻어가는 과정이 복잡하고 심플하지 않지. 예를 들 면 나는 지구 온난화 같은 경우는 소위 21세기에 들어서 비로소 사람들은 지구촌 관점 을 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지 않았나 라고 생각을 해요. 그전에는 국가별 대륙별 이였거 든요. 이제는 인간들은 상당히 위험들을 지구촌의 관점에서 보는 요인이 된 것이라고 봐 요. 원천적으로 그런 관점에서 나왔지만 그래서 제 결론은 맨 처음 문제가 나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얻으면 거기에 정확한 과학적인 definition이나 확률을 가지고 그

279 렇게 됐다고 말할 순 없어요. 그걸 정의하는데 도움은 되지만 결정적일 수는 없지요. 문 제는 자기의 생존에 위협이 된다고 느끼는 정도는 상당히 주관적이거든. 그게 아무리 과 학이 사실이야! 아니야! 라고 주장을 들이대더라도 그걸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나 공 감대를 얻었을 때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되는거라. 그것이 설사 정치적인 게임 이더라도 황우석사태도 과학적리서치의 윤리가 핵심이었냐. 황우석이란 영웅이 핵심이었나. 난후 자로 보거든. 황우석이 많은 사람들에게 impact를 주고 공감대를 얻고 그랬으니까. 뉴스 는 바로 그런 것 때문에 생긴 것이지. 이덕환 : 황우석 사태는 너무 복잡하구요. 엄정식 : 광우병이 나아. 김학수 : 광우병도 제가 보기에는 용어가 중요했었다. 정치적인 게임은 그 보다 덜하지 않 는가. 이덕환 : 저는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광우병 케이스에 저는 그 주장을 했어요. 광우병에 관련된 과학적 fact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모른다는 것 밖에는 없다. 상당히 많은 요구들이 있었는데 fact를 내놓아라 그렇다면 사태가 진전 될 것이다. 그런데 내놓을 fact가 거의 없는 것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괴담을 넘어서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거든요. 그런 경우 에 사회혼란을 해소 하는 방법이 과학적 fact를 들이대면서 해결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 라 이것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이슈였고, 그렇다면 정치적으로 풀어야하는 것이 아닌 가. 어떻게 보면 자연처럼 확실하게 다가오는 실체가 있으면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대응 할 수 있지만 어떤 사회적 위험은 폴리틱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대표적으로 저는 광 우병으로 보고 있어요. 멜라민은 왜 생겼는지 모르겠어요. 왜 한달 동안 사회가 그렇게 시끄러웠는지를 정말 황당한 것 가지고 얘기를 했었거든요. 광우병은 과학기술적인 fact 는 거의 알려진 것이 거의 없고 이슈는 FTA가 있었고, 건강문제가 있었고, 건강 안전 문제가 있었고 거기에 과학기술계는 제공할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었구요. 예를 들어서 프리온이 무엇인지 광우병이 어떻게 소에서 소로 전이되고 인간으로 전이되는 그런 위 험 확률이 전부 추정이고 확인된 것은 하나도 없는 상황 이였는데 그런 경우에는 과학 적 fact를 요구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는 것이죠. 김학수 : 과학적 fact가 결정적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결정적일 수는 없지. 그렇지만 과학 fact가 도움이 된다면 information이 available 하게 되야 하겠지. 적인 이덕환 : 그건 저도 동의를 합니다. 김학수 : 아무리 과학적인 fact가 결정적인 사안이라도 안 된다. 광우병은 프리온, 멜라민, 광우

280 병, 프리온을 예를 들면 엄청난 은어가 광우병 하면 일단 엄청난 이모션을 동 반하거든 요. 즉, 용어자체가 결정적 이었다. 또 하나는 어떤 문제가 공감대를 이루어 가는 와중 에 사회과학에서 다루는 용어중 복수적인 무지라는 것이 있어요. 목소리 큰 사람이 자꾸 주장 하니까. 목소리 큰 사람만 계속 어필하고 나머지는 사라지는. 기후변화도 혹시 목 소리가 높은 사람들이 available하고 그 외에는 죽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제3자 가 볼 때는 지구온난화는 확실하구나. 라고 인식 하게 되는 것이죠. 사회과학에서 많이 연구하는 것인데 어쨌든간에 그것이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한다면 그 문제가 어떤 형태 로 공감을 얻어서 최우선이 된다던지 차선의 우선순위가 된다는 것이 결코 사회에 나쁜 것은 아니지 않겠느냐. 대표적인 것이 선거때죠. 선거는 온갖 존재하는 모든 위험들을 들추어 내는 것이죠. 그런데 선거 끝나고 나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그게 되게 중요 한 거라고 해서 그거 때문에 투표하고 그러잖아. 그 사람 찍고 와 마찬가지로. 그 시대 에 존재하든지 존재하지 않든지 이미 큰 덩어리는 건드려봤자 주목을 못 끈다고. 그러니 까 사회에 이런 문제가 있을 수 있어. 그런 문제를 딱 꺼내야 한다고. 설령 그것이 우리 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라도 꺼내는 것으로 말미암아 사회 공감을 이끌어 checking mechanism이 된다고. 사실 선거의 의미는 거기에 있거든요.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광 우병 같은 것도 지나치게 건강에 많이 치중해 있다. 사회과학에서 collective memory 라고 해요. 집단기억의 경험을 겪거든요 그러면 이것이 차후에 바탕이 되어서 IMF 같은 것 경제위기가 왔을 때 굉장히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대처 능력도 높아졌다고. 사실 은 광우병 같은 것도 우리에게 아마 상당한 collective memory를 줬을 겁니다. 다른 문 제가 났을 때 대처를 잘 할 수 있게끔 할 수 있죠. 홍성욱 : 위험 관련해서 사회를 이야기 할 때 사회가 단일하지 않다는 말씀이신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광우병을 놓고 논란이 된 것은 과학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래도 미국소를 먹었을 때 광우병 걸릴 때 확률이 낮다. 는 것은 추정을 할 수가 있는데, 그 정도 확률 이 낮으면 다른 어떤 이익 그러니까 FTA를 하면서 얻을 수 있는 이익과 이 정도 위험 은 교환할 수 있지 않느냐. cost benefit를 우리가 감수해야 하지 않느냐 라고 했던 그 룹과 할 수 없다. 나는 먹기 싫은데. 왜 수입해서 먹으라고 하느냐. 지금 멀쩡히 있는데. 왜 그걸 강요를 하고. 나의 건강을 위협 하느냐고 이야기 했던 그룹사이의 트러블이죠. 그것이 정치라고 보아도 좋고 세계관의 이해관계 차이. 대립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바람 직하게는 이 두 그룹이 같은 인간그룹이고 정부나 지식인은 이들의 이해를 미디에이트 하고 네고시에이트 해주면 좋은데 한쪽은 정부가 있고 다른 쪽은 민간이 있고, 민간에 정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정부 대 민간의 싸움 마치 70~80년대와 연속적인 정부가 잘못하고 있고 우리는 까부숴야 하는 입장에서의 갈등 조정자가 없어진 갈등 커뮤니케이션이 파국의 형태로 간 것이 아닌가. 결국은 촛불이 과 격해지고 진압 하는 방식으로 끝나고..어떤 종류의 컨센서스 없이 야당은 야당대로 이런 형태로 위기가 간 것이 아닌가. 그래서 저는 더 커뮤니케이션이 위험과 소통을 엮는 것

281 이 의미가 있지 않나. 라고 생각을 하고 앞으로도 위험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 저는 매 리 더글라스가 통찰력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한 사회는 위험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 다. 위험은 수백 수천 가진데. 다 위험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만 위험으로 생각하고 다른 것들은 무시하고 대신 그 위험은 그 사회에선 심각한건데 다른 사회에서 보면 왜 저러고 있냐. 하는 것들을 위험으로 생각하고 이런 것이 문화적인 어떤 세계관 적인 정치적인 위험의 선택에 위험의 포트폴리오를 구성에 관련되어 있고 그것은 현대 사회도 마찬가지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 메리더글라스의 주장이고. 그런 선택에는 그 사 람들의 세계관 자연을 어떻게 보느냐 무엇을 수용하느냐와 관련되어 있는 것인데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굉장히 우리사회에도 그 정도 위험은수용 가능하다고 봤던 사람들 있 고, 아닌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실패가 원인이 아닌가. 또 그 실패의 이유는 정부가 한쪽 입장에 섰다고 비춰 졌기 때문에 결국은 그것을 풀어나가는 조정자가 분명치 않았고 이런 상태에서 양쪽의 의견 차이는 싸움으로 밖에 번질수 없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위험 관리에서도 위험을 다르게 보는 사 람들이 존재한다. 이 위험을 딴거랑 바꾸면 하겠다. 난 이건 take 못하겠다. 라는 사람 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게 우리사회의 중요한 핵심이 아닌가 합니다. 이덕환 : 이게 가장 재미없는 문제인데. 광우병 문제가 증폭되었던 것은 사실은 처방하고 초기단 계의 일차적 책임이 사실은 언론도 아니고 정부도 아니고 정치 아닌가요. 정치가 그 역 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가 박정희 정권때는 정치가 필요 없을 적에는 청와대 가 다 해주면 되니까. 그런데 민주화가 되고나서는 우리 사회가 정치를 필요로 하죠. 각 종 이유로 해서 다양한 의견들이 표출되는데 그것을 조정역할을 해야 하고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어느 한편의 입장에 서있어야만 하고 소위 말해서 정치가 조화롭게 조정을 해 주고 치유를 해주고 그래야 하는데. 그 기능이 우리사회 가 민주화는 되었는데 소위말해 서 괜찮은 수준에 대해서 정치는 전혀 경험을 해보지 못한 상황에서 이게 더 극으로 치 닫은 것 아닌가 언론도 그 역할을 할 수가 없죠. 언론도 가장 공정해 봤자 중립적으로 사태를 알려주는 것 밖에는 못하고 김학수 : 정치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이덕환 : 예를 들어서 광우병의 경우에 정치를 이야기 하게 된 이유는 광우병 중간 이후에 는 그 프레셔가 과학기술계로 왔는데. 과학기술계가 기술적 fact를 수집해서 알려 주고 적당한 방법으로 알려주면 해결 될텐데 왜 안알려주냐. 라고해서 한번 움직였는데 저는 굉장히 위험하게 봤는데 결국 사회의 이해관계 대립인데 단순하게 광우병을 보는 시각의 차이 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다른 시각을 활용한 것이죠. 결국 사회 관계 에서 이해관계를 해소시키는 것이 정치뿐 아닌가요

282 우찬제 : 그런데 그게 다른 경우와는 달리 이해관계가 대립한 사람들 다른 주장을 한거죠.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논거가 필요한데 위험하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거도 위험하지 않 다. 라고 주장한 사람의 논거도 과학기술적인 통계에 의지하고 있었 거든요. 이덕환 : 거기서 주고받은 이야기들 중에는 뭔가 과학적 합리적인 내용은 없었고 그냥 무 감정적 일방적인 주장 이였지.. 작정 우찬제 :서울대 농대 수의학과 교수가 통계를 내고. 이덕환 : 서울대 수의학과 두 양반이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서울대 수의학과는 나오면 안되요. 소동이 진행되는 중간에 과학적으로 뒷받침 될 주장은 한번도 나온적이 없었고 자기들 에게 유리한 정보만 이야기 했을 뿐이지. 거기에 과학계가 나와서 이것은 근거가 불확실 한 자료이며 이것은 괜찮은 자료라는 것을 가르쳐 줬다면 아마 이쪽에는 아무것도 안 남았을 거에요. 이승종 : 저도 비슷한 생각인데, 만약에 그런 상황 이였다면 그 상황까지 절대 가지 않았을 거에 요. 이덕환 : 거기는 논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주 첨예하게 대립되었던 이해관계를 아무도 서로 다독거려서 풀어줄 생각은 안하고, 끝없는 갈등이 증폭되어서 나온 결과인 것이고, 이것 이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는 위험인 것 같아요. 누구도 해결할 사람은 없고 누군가 한쪽 이 깨질 때까지 붙어야지 된다. 라고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문제 인 것 같아요. 엄정식 : 난 이것이 재미난 포인트 같은데..루소가 진정한 민주주의는 그 인민들이 신으로 구성되 어야 가능하다. 라고 얘기를 한 적이 있거든요. 진짜 전부다 주권을 내가 가지고 있다. 나는 자유롭게 판단하고 거기에 책임을 진다. 판단의 근거를 내 스스로 가지고 있다. 주 체들로 구성이 되야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보는데, 그것은 신들이 아니니까 가능하지 않잖아요. 그렇지만 어느 정도는 그래야 한다. 그래서 정치발전이고 민주주의가 발전된 다. 계몽이 반드시 민주주의와 같이 따라가야 하잖아요. 이덕환 : 그런 의미에서..정치는 각자가 신이면 정치 필요 없지 않나요? 엄정식 : 페르시아 아테네 전쟁이 일어났을 때 아테네 인구가 30만밖에 없었는데..어떻게 때 려 부실 수 있었냐면 토론을 해서 어떤 결론에 도달했느냐 하면 우리는 전부다 시 민들이 군주다. 쟤네는 황제가 하나고 우리는 30만이 군주니까 30만대 1인 싸움에서 우리는 이 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주체의식을 가지고 자기가 주장한 것에 대한 것을 책임

283 지는 정치적으로 발달된 형태이다. 미국도 민주주의가 쇄락 하는 것이 우민들이 개입 하 잖아요. 우리가 그나마도 서구의 200년 민주주의 사회를 안 밟고 투쟁을 거쳐서 형식적 으로만 민주화가 되어있지 시민들 각자가 성숙해 있지 않다는 것이고. 도덕적으로나 정 치적으로 우선 자기가 한말에 책임을 안 지려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자 유 의식의 폭이 넓어지니까 행동이 따르는데 의식 하고 식견이 따라오지 않는 것이죠. 그것이 완전히 거품 이였다. 그것이 광우병과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고 그런데다 아까 김학수 선생님 얘기 했다시피 매체로서 언어가 미스틱 하니까 거기에 대해서 체감이 덜 한데, 광우병 하면 광견병과 같이 연상이 되고, 지금 정치적이라는 것이 넓은 의미에서 정치적이기도 하고 좁은 의미로 정치적이기도 하다 말이에요. 정치라는 것이 사회적이라 는 것이에요. 실체하고는 상관없이 인간들끼리 만들어낸 하나의 관념이라는 것이거든요. 그런 점 에서는 광우병 보다 더 좋은 예가 없지 않을까. 그것이 형식적으로만 민주화되 고 산업화 되고, 좀 더 철학적으로 인문학적으로 말하면 정체성의 문제로 야기되는 것이 아닌가.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이 정치적 뿐만 아니라 특히 남한 사람들이 갖는 문 제가 정체성의 위기 있잖아요. 이것은 실제로는 군사독재 이상의 억압 속에서 살면서 굉 장히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것 있는데 그런 정체성에서 나오는 것 같구요.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관점인 것 같습니다. 우찬제 : 아까 잔인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보편적으로 언론이 보도를 할 때 기본적으로는 뉴스가치를 측정하고 그것을 판단 한다고 하는데 가령 그것의 가치가 있다. 라고 여겨지 는 선택되는 것들을 보면 굉장히 잔인한 스캔들이 많아요. 친일문제도 많이 얘기 되는데 미당이 친일을 했다. 미당은 순진한 사람이라서 80년대 초에 무엇이냐고 이야기를 했냐 면 나는 그때 시를 쓰는 사람이 뭐를 아느냐. 식민체제가 100년 이상 갈 줄 알았다. 내가 죽을 때 까지 이 체제인데 그것을 내가 어떻게 하냐. 미당이 친일을 한 근거가 되 는 습작시를 들춰 내면 언론에 대서특필이 되요. 1945년 이 시기에 일반인들은 모르지 만 오장환이란 시인이 있었어요. 이 사람은 친일을 하기 싫어서 일본에 탄광가서 막노동 자로 살고 거의 나뭇짐이나 지고 살았거든요. 해방되고 나서 다시 시를 써요. 오장환이 란 시인은 조선시인으로서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 했다 그렇게 들춰내면 그런 것 은 관심이 없어요. 이건 스캔들이 될 수 없어요. 대부분의 언론들이 미당이 친일을 발표 했다. 이런 것만을 취하거든요. 광우병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죠. 사실은 확률적으로 봤 을 때 문제가 없었다. 이런 거는 재미가 없으니까. 상업성이 떨어지잖아요 그러니까 문 제가 되는 쪽. 그리고 새로운 정권교체에 대한 이해관계가 맞물려서 그런 것. 기본적으 로 언론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중재하는 방식에 대해서 근본적인 성찰이 있어야 할 것 같 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 그룹내에 영토화된 사고, 딱딱하게 굳어진 사고, 예를 들어 서 이해관계의 그룹이면 합리적인논거도 추론과정도 필요없이 목소리를 높여서 으쌰으 쌰해서 거기서 벗어나는 사람은 배신자로 낙인찍고, 비 민주화된 미성숙된 분위기가 벌 인 난장판이죠. 누가 나서서 그게 아니다. 이런 것은 가령 선생님처럼 이게 과학적인 근

284 거가 없이 과학자들을 동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목소리가 어느 정도 설득력 있게 전달이 안되는 것이죠. 그러니 진실은 미궁에 빠지죠. 우리사회에 어떤 느낌이 있느냐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많이 줄어들었는데, 버스를 타면 운전기사가 라디오를 크게 틀 어요. 승객은 듣고 싶지 않은데 그냥 들어야 돼요. 그 누구도 시끄러우니까 볼륨 좀 줄 여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저어하는 느낌이 있어요. 저 사람 졸리니까 그러는가 보다 아니면 귀찮아서 이처럼 목소리 높은 사람. 고성사회. 이런 목소리 높은 사회. 여기있는 논거도. 추론 과정도 설득력도 없고 그러니 소통부재와 억제와 강제가 난무하고 상업화된 스캔들만 유포되고 괴담이 많아지는 것도 그것에 대한 반항심리 이 런것도 상당히 작용 할 것 이라구요. 진실이 설득력 있게 유포되는 세상 이라면 아무리 인터넷이 괴담이 쫙 유포되서 쫙 몰리는 이런 분위기는 아니지 않을까. 엄정식 : 우리가 첫 시작할 때 위험에 대한 객관적 사실의 측면이 있는데, 그런 위험은 사 실은 어느 정도 사실을 보여주면 어느날 갑자기 거품처럼 사라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것은 과학이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자연과학이 1차적으로 담당이 큰 것 같고, 사회과학 이 어떻게 이런 현상이 벌어졌는지 해명하는 것을 공감함으로서 상당히 줄어지는 것이 있는데, 그런데 실제로 객관적인 유형은 배척이죠, 그것을 없앨 수 없으면 minimize 해 야 하고, minimize 할 수 없으면 위험의식을 최소한으로 갈 수 있도록 의연 해진다 그 러죠. 그런데 나는 또 하나 과학과 다른 측면에서 요소들이 있는데, 여기 종교 하는 사 람은 없지만 우리가 미신에 기댄다던지 신앙을 갖고 그런 것은 사실을 알고 싶은 것은 아냐. 단지 위로 받고 싶은 것이지 그런 측면이 사람에게는 있다구요. 예를 들면 부부싸 움을 해도 부부들이 사실을 규명하다가 쥐어 터지잖아요. 진짜로 중요한 것은 사실규명 이 아니라구요. 현상을 받아들이는 것. 거기서부터 minimize해 가는 것 믿고 싶은 것의 근거를 대주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선순환 할 수 있도록...그런 것들도 우리가 같이 생각 해보면 좋겠네요. 홍성욱 : 저는 광우병 케이스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고 생각하고 있고. 정치가 부재했던 것 도 참 큰 문제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도 약간은 전통적인 사람이여서 갈등 을 봉합하 는 것은 역시 정치의 역할이다. 라고 믿고 있는 사람인데요.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도 아 무런 역할을 못했거든요. 그게 조금 더 큰 맥락에서 보면 한국의 정당 정치가 다뤄 왔던 사회적 갈등과는 다른 차원의 갈등이 아닌가. 혹은, 차원이 다르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정치인들이나 정당정치에서 다뤄왔던 문제가 아니었던 예를 들어 노예문제 라던지 가정 의문제 청소년 교육의 문제는 많이 다뤄 왔는데 엉뚱한 문제를 가지고 위험이라는 문제 를 처음으로 맞닥뜨렸던 것이 아닌가 하구요. 그러니까 전통적인 방법에서의 한계 정치 인들도 다른 갈등문제는 봉합해 보았지만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모르는 그러니까 과학자들에게 기대는 과학자들아 사실을 이야기 해 달라. 사실을 알면 이 사태가 수그러 들것 같은데 그렇다고 과학계에서 뭐가 나오는 것 같지도 않고, 과학계도 나뉘어져 있고

285 나오면 그것 자체가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더 큰 문제를 불러 일으키고 사실은 그런 어떤 새로운 종류의 위험은 정치가 맞딱 드렸던 케이스가 아닌가 싶구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겠느냐. 저는 그렇게 생각 합니다.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진 않지만 fact는 유용하고 중요하다. 위험을 따질 때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cost benefit 고려죠. 예를 들어서 엄청나게 작은 위험인데 그것을 우리가 take함으로서 엄청나게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당연히 take해야 하고, 위험은 굉장히 큰데 그것을 take함으로서 얻을 수 있 는 이익은 작다면 그것은 조금 더 고려를 해봐야 하는 경제적이건 문화 적이건 과학적 인사실 그 위험이 정말 얼마나 정말 위험한가. 그다음에 참여와 소통 우리가 다 계산 했 으니까. 너희는 다 받아라. 그런 것이 아니라 그 과정부터 다양한 state들을 참여해서 논의를 계속 오픈 시켜 나가는 것 그래서 신뢰를 구축해 나가고 그 과정이 전체 소통 이라고 부르는 과정이 아닌가, 소통이 우리가 판단 다 해놨으니까 생각해봐라. 가 아니 라. 판단을 해 나가는 과정부터 한번 같이 하는 것. 지금 이 광우병 사태의 경우는 다 해 놓고 문제가 터졌을 때. 사회적인 코스트는 훨씬 더 크고 우리한테 위해를 더 많이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배운게 아닌가. 김학수 : 내가 아까 어떻게 여기 정치가 개입 되어 있냐고 물어봤죠. 정치는 근본적으로 선 택의 문제지. 선택 choice. 그래서 정당이 존재 하는 것이고 여야가 존재하는 것 이고 그런데 광우병은 선택이 아니잖아.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느냐 안하느냐는 선택의 문제야. 광 우병 자체는 선택의 문제는 아니거든 그러니 광우병만을 가지고 정치가 개입하기 어렵 다고.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 하느냐 마느냐 수입조건은 어떻게 하느냐 그것은 선택의 문 제고 그것엔 정치가 개입할 수 있어요. 정치의 본질은 그런 문제가 있어요. 선택의 문제 만이 갈라지고 하니까 조정이 가능하고 협상이 가능하고 이렇게 되는데, 나중에 결국 그 렇게 됐지만 맨 처음 광우병이 사람들을 끌어 모은 힘은 그 자체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 라 사람들에게 직감적으로 다가온 consequentiality가 상당한 통일체를 만들어 버렸다 고 붉은악마처럼.. 언론 대학원에 수업을 하는데 시청앞에 다 갔더라고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광우병자체 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치가 개입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나중에 소고기의 수입의 문제를 깨닫게 되면서 정치가 개입할 수 있는 소지가 있었는데 그것을 놓친 면 은 있다. 과학과 연관 시켜서는 정말 광우병의 본질을 파헤치는 과학자가 몇명 늘어났는 지. 광우병을 해결하려고 마음먹은 과학자가 얼마나 늘어났는지. 이런 것이 과학계에 던 질 수 있는 질문이 아닌가. 이승종 : 마지막에 지적해 주신 부분은 과학재단에서도 끝 무렵에 그런 부분을 정책적으로 지원하 면 안 되느냐. 하는 말들이 교과부나 정부부처에서 있었어요. 사회적인 이슈에 해당되는 그리고 그것을 과학기술적인 방법으로 접근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정책적인 차원 의 연구과제로 충분히 만들 수는 있거든요. 정책적인 사회적 이슈가 있고 나면 한동안

286 그런 효과들이 남게 됩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좋은 결과들이 나온다고 한다면 나름대 로 순기능도 있다고 생각 합니다. 위험 이라고 하는 새로운 위험이 인식되었을 때 과학 기술적인 방법으로 궁극적인 해결방안이 어떤 것이 좋으냐 했을 때. 과정을 생각해보면 제일먼저 과학기술자들이 시도 하는 것이 이것이 정말 위험이냐 예측 가능한 것이냐. 소 위 예측 가능 하다고하면 정량화 의미구요. 그런 예측 가능하고 정량화가 가능하다면 그 다음은 그것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어떤 경우든지 이게 새로운 위험이라고 사 회적으로 인식이 되는 것이 신뢰 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 자들의 동기가 되고 그것을 예측할 수 있는 정량화 최소화 할 수 있는 물론 완전히 없 어질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대게는 아마 인식된 위험을 최소화 한다. 그런 과정에서 소통이 필요하고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공유 해야 하고 사안에 따라서 소통을 넘어서 교육까지 필요 하다고 생각 하구요. 단순히 어떤 사실을 안다고 해서 위험이 최소화 되 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들은 교육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교육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서 콜레스테롤 같은 경우 콜레스테롤이 많은 사람들이 나쁘다고 하는데, 반드 시 그런 것만은 아니거든요. 좋은 콜레스테롤도 있고 나쁜 콜레스테롤도 있고 어떤 사람 들은 콜레스테롤도 어느 정도 섭취를 해줘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이런 것이 그야말로 교육의 문제거든요. 우찬제 : 인식된 위험이나 인식되지 않은 잠재적인 위험을 최소화 시켜 나가는 것은 기본적 으로 아주 중요한 사항으로 생각이 되구요. 문학쪽 에서는 과학자들뿐만 아니고 일반인들에게 가져야 할 태도를 많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얘기를 하는 것 보다 시 두편을 인용 한 번 해보겠습니다. 잘 아시는 시인 중에서 신경림 시인의 고장난 사진기 라는 시인데요. 인식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시입니다. 나는 늘 사진기를 들고 다닌다. 보이는 것은 모두 찍어 내가 보기를 바라는 것도 찍히고 바라지 않는 것도 찍힌다. 현상을 해보면 늘 바라 던 것만이 나와 있어 안심한다. 바라는 것도 찍히고 바라지 않던 것도 찍힌다고 썼는데 현상을 해보면 바라는 것만 나와 있어 안심한다고 썼어요. 그러니까 현상을 해보니까 바 라던 것만 찍히는구나 그러면서 어떻게 썼냐면 바라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이 환시 였 다고. 나는 너무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내 사진기는 내가 바라는 것만 찍는 고장난 사 진기 였음을. 한동안 당황하고 주저했지만 그래도 그 사진기를 나는 버리지 못하고 들고 다닌다. 고장난 사진기여서 오히려 안심 하면서...굉장히 아이러닉한 시인데요. 흔히 얘 기하는 아전인수 이런 것에 대한 아이러니를 드러낸거죠. 실제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기 싫은것은 보지 않고 듣고 싶은것만 듣고 듣기 싫은 것은 듣지 않으려고 하는 이런 것으로는 사물이나 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단순하고 자명한 진리에 대해서 고 장난 사진기라는 사물을 빌어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인식 주체에게 인식의윤리 태도 이 런 것 들이 위험을 인식하거나 넘어서면서 최소화 하면서 진실한 소통으로 나아가는데 개인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 아닐까. 이 시를 보면서 생각을 했구요. 이것이 기 본적인 자세라면 조금 더 적극적인 것 중의 하나는 T. S. 엘리엇의 황무지 라는 시에

287 서 서구 문명의 황폐화된 그런 위험상황을 보면서 그가 마지막에 기댄 것은 동양의 지 혜였습니다. 마지막에 강조하는 메시지가 주라 공감하라 자제하라 라는 것 이였습니 다. 문학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윤리학 에서도 강조하는 것 일텐데 그런 덕목 들이 위험 사회를 넘어서 진실한 소통이 이뤄지는 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개개인들이 한 번씩 되새겨봐야 할 과제가 아닌가 생각 합니다. 김학수 : 이의를 제기 하겠습니다. 아까 신경림씨의 고장난 사진기. 우리사회과학적으로도 중요한 개념인데 선택적 주목. 그걸 덕목이라기 보다도 위험과 관련해서 덕목이 아닌 것 같아서 내가 언급을 하는 것입니다. 선택적 주목이라는 것은 기존의 경험에 쌓인 것이 그 다음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이죠.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위험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선 택적주목이 새로운 위험을 못 보게 하는 늘 익숙한 위험만 눈여겨 보고 그것만 큰 관심 을 갖고 오히려 선택적 주목 이라는 개념이 갖고 있는 본질이 있습니다. Principle 즉, 인간은 한 순간에 하나밖에 주목하기 못한다. 동시주목 이라는게 없다. 그렇게 해야만 그 다음 생각을 할 수 있다. 대부분은 주목 안하고 넘어가지 바로 행동으로 넘어가버린 다고 왜냐하면 습관 때문이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면 선택적 주목이라는 것이 커뮤 니케이션 관점에서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지 주목을 끌 수 있으냐. 이런 것이 광고 같은 곳에 중요하게 사용되는 것이죠. 우리가 선택적 주목 하는 것이 생명을 가진 것들 의 본질이기 때문에 사스 같은 것들에 주목 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 쉽지 않죠. 사스의 이름을 지은 세계보건기구 의 사무총장의 글을 읽어 봤어요. 그 친구가 뉴욕타임즈의 기 자를 했더라고 세상에 없는 질병이 나타난거야. 이거 사람들에게 빨리 어떻게 알릴 수 있는가. 자기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하는 그런 글이야 다시 원점으로 가면 수많은 위험들 이 나타나고 새로운 바이러스 어떻게 선택적 주목 속에 들어가게 만드느냐 이게 중요할 수 있지. 안 그러면 우리가 상당한 위험을 그냥 지나 칠 수가 있지. 우찬제 : 선생님 말씀하신 것과 제가 말한 시는 다르지가 않은데요? 이 시가 아이러니 라고 이야 기를 했거든요 선택적 주목한 것에 대해서 이 시는 반성이 된다. 라고 얘기를 하고 있거 든요. 가령 정치인들은 선택적 주목한 것에 대해서 계속 집착하거나 설득하거나 그것을 강변하거나 하겠지만 문학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라고 얘기를 하면서도 이게 아닐 수도 있다. 라고 끊임없이 반성하고 있거든요. 주목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혹시 더 중요한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거든요. 선생님 말씀하신 것과 제가 이야기한 것이 다르지 않다. 이덕환 : 좋은 이야기 많이 나눴습니다. 저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위험문제는 선택이 개 입된 문제인 것 같아요. 아니면 막다른 골목에서 패닉하는 상태 밖에는 없거든요. 그런 경우 에는 항상 불만스러운 것이 과학기술에서 나오는 정보가 혹시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 가지고 문제가 해결 될 것 이라고 보지는 않아요. 그러면서

288 도 과학기술계에는 프레셔가 굉장히 심하게 와요. 이승종 교수님 말씀하셨지만 정부가 나서서 사회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부에서 과학자들은 왜 준비 안하느냐 라고 하는 것이 불안스럽게 보여요. 이런 것이 또 하나의 왜곡을 만드는 자료로 활용 될 것 같거든요. 여기서 얘기하는 치유의 방법으로서의 소통은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 아닌가. 우리 가 새 로 맞이하는 정말로 민주화된 사회에서 제대로 된 정치. 정당의 정치가 포함 되서 국민 들의 정치의식도 굉장히 중요한게 아닌가 싶구요. 또 하나는 우리사회에 서는 옛날 일을 너무 아름답게 기억을 해요. 노스텔지어 모드가 너무 지나치다는 것이죠. 새로운 위험에 대한 공포가 너무 강화되는 것 같아요. 이것이 사람들을 점점 더 궁지에 몰아넣는 것 같 아요. 문학예술에서 과거 향수를 자르는 작업을 했으면.. 우찬제 : 그래서 저희가 자주 이야기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 생태문학하는 사람들이 전원적 인 것 자연적인 것에 대해서 굉장히 대지적이고, 편안하고, 모성적인 것을 많이 이야기 하거든요. 문명사회에 살면서 야만적인 원시에 대해서 너무 시대착오 적으로 향수만 강 조 하면 안된다. 문명화되고 진화 된것의 장단점, 과거에 대한 장단점을 뚜렷하게 대비 해야지 옛날 것은 향수로 남아 있는 장점만 부각 시키고, 지금은 위험한 요소, 부정적인 요소만 대비시키면 완전히 시대 착오적이 되거든요. 엄정식 : 저는 마지막으로. 우리가 인문학적인 과학적인이야기 한 것 같은데 에피테투스 철 학자 인데 그 사람은 이 세상을 두 부분으로 나눈다고 했어요. 내가 어찌해볼 수 있는 세상과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세상으로 나눈다고 했어요. 무지한 사람들은 어찌 해볼 수 없는 것 에 대해서 집착 한다고, 그만큼 어찌해 볼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괴로운 것이 있잖아요. 그래서 결국은 우리가 어찌 해볼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의무다. 어찌 해볼 수 없는 것 은 안하는 것이 의무다. 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위험에 대한 담론도 우리가 어찌해 볼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이고, 그것을 잘 냉철하게 판단해서 해결하는 그것이 우리가 갖는 부분 아닌가 생각이 들고 근데 아까 정치 얘기 관련해서 사실 어찌해 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종교거든요. 그런데 종교가 정치와 야합을 하면 할 역할이 없어지는 것이죠. 그만큼 우리는 삭막한 세상에 살아야 하거든 요. 그런 점을 두루두루 살펴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아니였나 생각해봅니다

289 언론보도

290 언론보도1 (서울신문, 일자) 21세기 新 다빈치 프로젝트-통섭을 말하다 1+1= 새코드 이해는 학문간 벽 허물기부터 통섭( 統 攝 ) 은 왜 필요한가. 통섭을 둘러싼 많은 논의들에 문제점은 없을까. 통섭이 안정적으로 한국 사회에 도입되기 위해서는 어떤 접근법이 필요하고,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 서울신문은 6회 에 걸친 21세기 신( 新 )다빈치 프로젝트-통섭을 말하다 를 마감하며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대표하 는 석학들의 대담을 마련했다. 인간을 공부하는 동물 로 스스로를 칭하는 경희대 영어학부 도정일 명예교수(책읽는사회만들기 국민운동 대표)와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 으로 꼽힌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가 거침없는 생각을 쏟아냈다. 서강대 철학과 엄정식 명예교수가 사회를 맡아 대담을 진행했다. 두 교수는 통섭 이 더 이상 스쳐 지나가는 유행이 아닌 중요한 사회적 과제라 는데 동의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노력해 학과간의 벽을 허무는 단계에서부터 천천히 접근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1 통섭은 왜 화두로 떠올랐나 엄정식 교수 대학 사회와 언론 등 곳곳에서 통섭이 화제다. 일각에서는 유행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지만 학문적 필요성이나 학문 구분의 발전 방향을 놓고 볼 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분명하다. 오랫동안 통섭에 대해 고민해 오신 도 교수께서 왜 한국 사회에서 통섭이 화두가 됐는 지를 진단해 달라. 도정일 교수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연구영역의 독자성뿐 아니라 유사하거나 연관이 있는 분야간 에 대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분과( 分 科 ) 현상이 오랫동안 진행되다 보니 자신의 영역 을 지키기 위한 단절현상이 당연시되고 있다. 학문발전은 물론이고 사회발전이나 정책개발 및 시 행 과정에서 단절현상은 매우 좋지 않다. 이런 반성에서 통섭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덕환 교수 통섭을 처음 주창한 에드워드 윌슨의 본거지인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큰 관심을 보 이고 있다. 이는 절실한 필요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학문간의 분과는 이제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장벽의 정도가 아니라 서로를 비하하고 폄하하는 일도 다반사로 이뤄지고 있다. 자연과학에서는 인문사회학 무용론이 나오고, 인문사회학에서는 거꾸로 자연과학 무용론이 나온 다. 급속히 발전한 한국사회의 문제를 과학기술의 책임인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도 있다. 이를 해결 하기 위해서는 인문사회 분야와의 교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다행히 과학계 내부 에서는 현실적인 필요성에 의해 융합연구가 확대되는 추세다. 이를 인문사회까지 연결시키는 노력

291 이 필요하다. 엄 교수 통섭에 관한 논의와 시도는 20세기 초부터 상당히 활발하게 있어 왔다. 물리학을 중심으 로 학문을 통합하려는 움직임도 있었고, 철학계에서도 논리실증주의자들이 보편언어를 찾고자 했 다. 윌슨은 이 시도를 생물학으로 옮겨 좀 더 발전시킨 것으로 봐야 한다. 중요한 것은 통섭이 수 입학문이라는 점이다. 기술은 그냥 수입하면 되지만 학문은 배경과 사연이 더 중요하다. 지적 문 화적 풍토를 수입하지 않으면 나중에 또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개인적 으로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 가 통섭에 적용되면 좋을 것 같다. 담이 낮으면 도둑이 생기고, 담이 높으면 이웃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안된다. 이 같은 마음가짐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 교수 통섭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통섭학이라는 별도의 학문이 아니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다. 어느 한 가지 학문이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곤란하다. 물리학이 나 생물학 등에서 비롯된 자연과학의 객관적인 방법론이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는 안된다. 다만 이 방법론을 모든 분야에 적용해 보려는 시도 자체는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새로 운 시도이니만큼 어려움도 있고, 기존 영역에서의 부정적인 비판도 있다. 그러나 자연과학의 객관 화된 시각을 인문학에서 활용하는 것은 분명히 기초적인 통섭의 단계가 될 것으로 본다. 거꾸로 자연과학에서 인문학적인 상상력과 주관성을 도입하려는 시도도 활발해지고 있다. 도 교수 문제는 통섭이 이렇게 하자. 고 정해 놓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되지도 않는 다는 것이다. 통섭이 정말 필요한가.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언어를 연구하는 사람 입 장에서 말하자면 유전학, 진화론, 진화심리학 등의 학문도 언어 연구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통섭을 궁극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관건은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는 것이 다. 즉 연구대상을 새로 발견하고 확장할 수 있는가, 대상에 대한 통찰을 더욱 과학적이고 인문학 적으로 깊이있게 할 수 있는가 등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같은 실제적이고 학문적인 이득의 유 무가 통섭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정당성을 결정해 줄 것이다. 이 교수 100% 동감한다. 학문의 발전을 위한 통섭은 근원적인 이유가 있는가를 짚어봐야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더욱 낮은 수준의 통섭을 생각해야 한다. 지금의 학생들과 교수들은 모두 분화된 학 문에 익숙해져 있다. 상당히 혼란스러운 일이다. 인문사회 관련 교양을 들을 때는 자연과학의 부 정적인 인식을 듣고, 자연과학을 들을 때는 인문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듣는다. 학문이 아 닌 단지 골고루 아는 낮은 차원에서의 통섭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2 통섭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 엄 교수 두 가지를 합치다 보면 아무래도 어느 한쪽이 더 힘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특히 강자는 식민지적으로 취합하려는 경향이 있다. 인문학의 경우 과학과 통합되면서 과연 학문 으로 존립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다. 제우스의 불칼 이나 이카루스의 날개 와 같은 신화는 이미 아무도 믿지 않는다. 과학기술이 인문학의 근거인 상상을 앞서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마찬가지로 천

292 문학자들의 방식대로만 별을 보면 알퐁스 도데, 생텍쥐베리, 윤동주의 별은 볼 수 없다. 통섭의 시도에서 염려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학문의 영역이 가만히 있어도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학문 분야가 떼를 써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 다.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철학의 경우 현재는 수세기 전의 철학과 달리 철학사 적인 측면만 남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학을 논하기 위해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던 공 간, 시간, 죽음 등의 개념은 과학기술의 등장으로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자연 과학이 철학이라는 학문의 근간을 흔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도 교수 어느 한쪽으로의 일방적인 통섭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인문학이 과학을 이해하 고, 과학이 인문학을 이해할 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인문학과 과학이 통섭하자고 해서 함부로 합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예술을 포함한 인문학과 과학은 엄연히 시각이 다르고, 분야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르다는 전제 위에서 시작해야 한다. 과학은 일단 자연현 상에 대한 보편적인 진실을 추구한다. 도정일은 세포로 되어 있다. 는 말은 사실이지만 나라는 인 간에 대해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세계는 입자로 구성돼 있고, 우주를 지배하는 힘은 네 가 지 밖에 없다. 는 말도 분명히 사실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낼 수 없다. 이 교수 통섭과 비슷하지만 좀 다른 개념인 융합의 경우 공학 분야에서는 상당히 오랜기간 모색 돼 왔다. 로봇공학을 하는 사람은 심리학, 미학, 전자공학, 기계공학을 모두 시도하고 이해해야 한 다는 것이 정설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로봇공학은 수많은 학문들과 연관을 맺으며 발전해 왔고, 영역이 넓어지는 만큼 발전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융합의 결과는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분화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물론 융합 과정에서 사멸하는 분야도 있다. 도 교수 학문융합, 통섭은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간에 전혀 몰랐던 탐구의 영역을 생산해낼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인문학 분야가 진화론 으로 대표되는 생물학적 발견을 참조하지 않고서는 진 행이 되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것을 두고 생물학이 모든 학문을 점령하는 제국주의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은 말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지나친 분화의 결과가 교 육에도 반영돼 있다는 점이다. 통합적 감성이나 세계관을 가질 기회도 없이 기능적인 전문인이 되 고 다문화적인 세계관을 가질 수 없는 파편적 인간으로 성장하고 있다. 인문학이 변해서 이 문제 를 해결해야 한다. 대학의 교양교육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인문학이다. 인문학이 통섭적 사고를 가 져야 교육이 변하고 사회가 변할 수 있다. 3 통섭의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엄 교수 통섭이 본격화되면서 용어에 대한 논란도 있다. 통섭이나 컨실리언스(Consilience) 라는 말을 쓴 윌슨의 성향 때문인지 환원주의나 제국주의적인 느낌을 갖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문 진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는데, 통섭을 궁극적인 목적이 아닌 방법의 하나 정도로 취급하고 싶 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나루터 가는 길을 함께 찾아가는 것이다. 나루터까지 함께 쉽게 간다 면 자신들의 목표들도 좀 더 쉽게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통섭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공

293 감하지만 방법론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다양하지 않을까. 요즘 대학가에서는 통섭학과, 통섭 대학원을 만든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교수 통섭에서 방법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연과학에서 탐구의 문제는 끊임없이 변해 왔다.19세기 말 한국에 처음으로 서양의 자연과학이 도입됐는데, 지금까지 계속 새로운 방법 이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 자연과학에서도 확실한 것은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방법에 초점 을 맞춰서 통섭을 얘기한다면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시각을 공유하는 식으로 접근한다면 문제 가 없을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통섭이나 융합과 관련된 문제 가운데 하나가 획일화 다. 여러 단계의 통섭이 있을 수 있는데 단 하나의 기준만 세우고 여기서부터 통섭 이라고 한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통섭 학과나 통섭대학원을 만든다는 얘기들이 있는데 통섭의 첫 단계를 시각과 인식의 공유라고 본다 면 하나로 합치는 것이 아니라 합쳐서 여러 개가 다시 나와야 한다. 도 교수 통섭학과나 통섭대학원은 희극적이다. 통섭학과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문과 학문사이의 결합이나 통합은 필요하고, 가능하겠지만 통섭을 전문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통섭의 기본 정신과 전혀 맞지 않는 사고방식이다. 가장 자율과 객관적이 강조되는 문학에도 통합적 접근이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된 것이 아니다. 문학비평에 정신분석과 언어학이 들어오는 데만 40 50년이 걸렸다. 필요한 일이라면 누가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서 진행되게 마련이다. 다만, 활발한 논의를 통해 진행한다면 좀 더 효과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엄 교수 통섭을 논의하면서 기대하는 바가 크다. 많은 것을 시도하고 말할수록 얻는 것도 많겠지 만, 비난이나 비판도 있을 수 있다. 언제나 자기 반성은 중요하다. 그것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을 더 빨리 파악할 수 있고, 궤도를 수정할 수도 있도록 해준 다. 가능하다면 모두 함께 모여 논의하고 격려한다면 분명히 통섭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 을 것으로 생각한다. 정리 박건형기자 엄정식 교수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미국 미시간 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아메리카학회 회장, 철학연구회 회장, 한국 철학회장을 지냈다. 서강대 재직 시절 행복한 철학자 라는 별명으로 불리 며 고전철학부터 과학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강의를 진행했다. 특히 과학철학 강의를 통해 과 학기술과 현대인의 행복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저서로 철학 입문서로 유명한 철학이란 무엇인가 를 비롯해 지혜의 윤리학 확실성의 추구 분석과 신비 자아와 자유 등이 있 다. 이덕환 교수

294 서강대학교 화학과, 과학커뮤니케이션 협동과정 교수. 비선형 분광학, 양자화학, 과학커뮤니케이션 을 전공했고 미 코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와 대외활동 모두에서 주목받는 흔치 않은 과 학자로 2006년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 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분야를 가리지 않는 폭넓 은 과학지식으로 사회 교육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확실성의 종말 먹거리의 역사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등 베스트셀러 과학서적을 번역했다. 도정일 교수 문학평론가. 경희대학교 영어학부 명예교수. 대한민국 전역에 세워진 기적의 도서관 을 기획하고 감독한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상임대표다. 잡지 편집장, 동양통신 외신부장을 거쳐 미국으로 유학,1983년부터 경희대학교에서 비평이론 강의를 시작했고 이론교육에 힘을 쏟았다. 특히 이화 여대 최재천 교수와 4년 동안 만나 나눈 논쟁을 담은 책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대담 은 한 국 사회 최초의 본격적인 통섭담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295 언론보도2 (국민일보, 일자) [여의도 포럼] 나루터 가는 길 '논어'의 미자( 微 子 )편에 '문진( 問 津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공자가 제자인 자로( 子 路 )에게 나루터 가 어디인지 물어오라고 당부하는 대목에서 나온 말이다. 그것은 몇 가지 측면에서 묘한 여운을 남긴다. 누구든지 낯선 길을 가다 보면 길을 잃고 헤맬 때가 있다. 이 경우 어떻게 해야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지 묻게 된다. 나루터는 강 건너 목적지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이다. 그런 의 미로 이 표현은 어떤 일을 할 때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으 로 이해할 수 있다. ' 問 津 포럼'이 만들어진 이유 최근 교육과학기술부는 '문진 포럼'을 발족시켰다. 인문사회학과 과학기술분야를 전공하는 전문가 40여명이 모여 특정한 주제를 선정하고 난상 토론을 벌이는 모임이다. 여기에는 아직 특정한 목 표가 정해져 있지 않다. 가령 행복과 같은 넓은 주제에 대해 종교학자, 심리학자, 철학자, 문학자, 생물학자, 건축가, 기계 공학자 등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자신의 관점을 개진한다. 철학자는 행복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묻고, 심리학자는 심성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킴으로써 행복 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을 지적하는가 하면 의사는 건강과 행복 간의 긴밀한 상관관계를 논 의한다. 또 생물학자는 게놈 프로젝트를 언급하며 행복은 추구되는 것이 아니라 조작될 수 있음을 예견하고 기계 공학자는 로봇의 개발이 행복에 주는 영향력을 이야기하며, 종교학자는 자연이나 신의 섭리와 같은 불가항력적 요소가 행복과 관련하여 갖는 중요성을 역설한다. 이렇게 다양한 관점에서 전통적인 행복의 개념이 오늘날 어떻게 변질되고 있으며, 다가올 미래의 세대에도 바람직한 행복관이 어떤 것이겠는지를 진지하게 모색하는 것이다. 앞으로 '교육'이나 '위험' 등 많은 주제가 다루어질 것이다. 이 모임에 '문진'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 은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학문적으로 지금은 서둘러 목적지를 정하고 급하게 그곳으로 치달려갈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전통적 가치관이나 인생관, 혹은 세계관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는데 그것이 새로운 것으 로 대체되지 못하는 동안 우리는 극도의 혼란기를 겪고 있음을 실감한다. 아직도 중세적 사고방식 이나 주자학적 생활 태도를 버리지 못한 채로 정보화와 세계화의 물결 속에 깊숙이 진입해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심각하게 문제의식을 느끼고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사람들은 바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이들이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고 정황을 정확하게 진단해주어야 정책 입안자 들이 제대로 처방할 수 있으며 일반 시민들도 안심하고 새로운 현실에 대처할 수 있다

296 그러나 오늘날 학문은 극도로 분화되고 상호 간에 지나칠 정도로 단절돼 있어 각 분야의 전문가 들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자기가 수행하고 있는 연구의 성과가 과연 어떤 함축을 지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목표 설정보다 개념 정립부터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학계에서는 학문의 '융합'이나 '통섭'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 되고 있다. 그것은 학문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야 할 다음 세대의 교육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여기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좋은 담은 좋은 이웃을 만든다'고 했다. 담이 너무 낮으면 함부로 트고 지내다 가 다투기 쉽고, 너무 높으면 소통이 불가능해서 결코 이웃이 될 수 없음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이것은 학문의 세계에서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과도기적 혼란기에는 그 가르 침이 어쩌면 모든 분야에 적용되어도 좋을지 모른다. 목적지를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려 하기 전에 먼저 나루터로 가는 길을 묻는 지혜가 필요하다. 엄정식(서강대 명예교수 철학)

2힉년미술

2힉년미술 제 회 Final Test 문항 수 배점 시간 개 00 점 분 다음 밑줄 친 부분의 금속 공예 가공 기법이 바르게 연결된 것은? 금, 은, 동, 알루미늄 등의 금속을 ᄀ불에 녹여 틀에 붓거나 금속판을 ᄂ구부리거나 망치로 ᄃ두들겨서 여러 가지 형태의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들 수 있다. ᄀ ᄂ ᄃ ᄀ ᄂ ᄃ 조금 단금 주금 주금 판금 단금 단금 판금 주금 판금 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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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사항이 없을 경우 무 표시하시기 바랍니다. 검토항목 검 토 여 부 ( 표시) 시 민 : 유 ( ) 무 시 민 참 여 고 려 사 항 이 해 당 사 자 : 유 ( ) 무 전 문 가 : 유 ( ) 무 옴 브 즈 만 : 유 ( ) 무 법 령 규 정 : 교통 환경 재 시 민 문서번호 어르신복지과-1198 주무관 재가복지팀장 어르신복지과장 복지정책관 복지건강실장 결재일자 2013.1.18. 공개여부 방침번호 대시민공개 협 조 2013년 재가노인지원센터 운영 지원 계획 2013. 01. 복지건강실 (어르신복지과) ::: 해당사항이 없을 경우 무 표시하시기 바랍니다. 검토항목 검 토 여 부 ( 표시) 시 민 : 유 ( )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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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2 3 4 5 6 또한 같은 탈북자가 소유하고 있던 이라고 할수 있는 또 한장의 사진도 테루꼬양이라고 보고있다. 二宮喜一 (니노미야 요시가즈). 1938 년 1 월 15 일생. 신장 156~7 센치. 체중 52 키로. 몸은 여윈형이고 얼굴은 긴형. 1962 년 9 월경 도꾜도 시나가와구에서 실종. 당시 24 세. 직업 회사원. 밤에는 전문학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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