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절 조선시대 이전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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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1절 우리 교육 약사 제2장 사천교육의 발자취 제1절 우리 교육 약사 1. 근대 이전의 교육 가. 고대의 교육 인류( 人 類 )가 이 지구상에 살면서부터 역사와 함께 교육( 敎 育 )은 어떠한 형태로든 지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언제부터 이곳에서 삶을 꾸려왔는지는 여 러 가지 유적과 유물로 나타나고 있다. 그 당시 우리조상들의 생활을 미루어 생각해 보면 요즈음 말하는 교육의 제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일정한 절차나 형식을 통한 가르 침은 없었을 것이고, 단순한 본능적 충동에 따라 살아가는 일상생활이 무엇이든 보고 반복하면서 배우고 익히면서 발전해 온 것이 인류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차츰 모든 위험에 대처하게 되는데 이때 단결의 필요를 느껴 가족 씨족으 로서의 결합이 요청되었고, 개인은 집단을 순화, 적응시키는 것이 의도적( 意 圖 的 )인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따라서 개인을 자신과 집단의 안전을 위해서 단체의 테두리 속 에서 길러가야 한다는 제도적 교육이 집단을 터전으로 조직적으로 발전되어 나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신석기와 청동기시대의 정점으로 접어들면서 교육의 형태도 두 가지로 분화의 조짐이 보이게 되었다. 문자( 文 字 )가 없던 원시사회에서는 교육이 인위적( 人 爲 的 ), 조직적( 組 織 的 ) 교육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연적( 自 然 的 )인 생활환경 속에서 터득하는 제반 인습( 因 襲 )의 모방과 답습( 踏 襲 )이 실제적인 교육의 방법이 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분화 의 조짐은 첫째로 보이는 사물에 관한 교육형태로 실제분야의 교육이었고, 보이지 않 는 사물에 관한 교육으로 후일 이론( 理 論 ) 교육으로 불리는 분야였을 것이다. 당시의 이론 교육이라 할 수 있는 내용들은 거의가 정신적이고, 보이지 않는 힘이 나 두려움에 관한 것은 바로 그들의 첫째 목표인 안전( 安 全 )을 꾀하는 실체적인 노력 과 결부되고 응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행해진 교육의 내용은 대체로 다 음과 같은 세 가지 목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첫째, 신체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데 필요한 훈련 둘째, 영혼을 위로하고 달래는데 필요한 예전( 禮 典 ) 의식( 儀 式 ) 등의 훈련 사 천 교 육 사 95

2 제2장 사천교육의 발자취 셋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조화있는 생활에 필요한 관습( 慣 習 ) 금기( 禁 忌 ) 억제( 抑 制 ) 등의 훈련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이 시기의 소년들은 수렵 경작 전투를 배웠고, 여기에 필요한 도구를 직 접 만들며 다루는 방법을 익혔다. 이러한 작업은 그 자체가 그렇게 복잡한 것은 아니 어서 모방과 반복으로도 대개는 배울 수 있었다. 그러므로 실제 교육은 일반적으로 가족에 의해서 행해졌으며, 소년은 부친을 본받 고 소녀는 모친을 모방함으로써 앞으로 가정에서의 역할이나 의무를 배웠다. 그것은 바로 양친의 지식기능( 知 識 機 能 )의 충실한 전달이었으며, 변화라는 것은 거의 찾을 수 없었으니 부모와 같은 수준으로 배웠을 때는 학습이 끝나는 것을 뜻했다. 한편 이러한 생활환경 속에서도 점차로 전문적인 분야가 천천히 움트기 시작했는 데 집단내의 특정인이 다른 사람보다 어떤 한가지 일을 훨씬 더 잘 하는 경우가 나타 났다. 이를테면 우연이든 시행착오든 간에 이전과는 다른 물품이나 도구를 만들어내게 되었고, 그러한 비결이나 비법( 秘 法 )을 자신만이 간직하거나 때로는 자신의 자녀에게 만 이를 전할 만큼 영리하였다. 한편으로는 타인에게도 알려 주어 드디어 인류의 지식과 기술의 발달이라는 계기 가 움터났고, 전문화된 기술지식의 구체적인 전달이라는 계기는 후일의 의도적 형식적 교육을 구체화시켜 갔다. 특히 이 시기는 지난날의 가족단위의 관습은 종족으로 확대 되었고, 드디어 종족의 관습은 사회가 지녀나가야 하는 상속의 규범이 되었다. 예배( 禮 拜 ) 행위는 가족 결합을 위할 뿐 아니라 종족의 결합을 위해서도 필요했고, 이러한 결합의 강화는 종족의 우두머리가 차츰 의술을 비롯해서 제전( 祭 典 )을 주관함으 로써 세속적인 통제력 뿐 아니라 후일 제사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직책을 맡게 되었다. 불가사의( 不 可 思 議 )한 영혼에 관하여 수행해야 할 역할에는 필연적으로 그 전문적 인 지식이 일반 지식으로 전수되고 특정 후계자에게만 계승되었다. 이러한 종족, 혹은 씨족 단계의 제정일치( 祭 政 一 致 )적 통합형태는 씨족권의 확대와 함께 부족연합에서 천천히 왕권 단계의 변화를 부르는 과도기적 기간에 이루어졌다. 첫째, 특정한 사실에 대한 일정한 체계화의 구성 둘째, 의도적 교육을 필요로 하는 계층의 탄생 셋째, 이와 같은 행위를 기록하고 전할 언어 문자의 발달 사회구조에 있어서 이렇게 변화하는 교육체계에 있어서도 최초의 의도적인 교육제 도의 출현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고대 씨족의 습성은 기원 3세기경에 쓰인 <후한서( 後 漢 書 )> <삼국지> <위지동이전( 魏 志 東 夷 傳 )> 등에 그 단편들이 실려 나온다. 이때는 거의 농경 정주생활을 영위하였으나, 그때까지도 강력한 집권적 정치적 조 96 사 천 교 육 사

3 제1절 우리 교육 약사 합조직을 갖추지 못하였던 것 같다. 즉 위지동이전에는 그들의 풍속에는 법규는 적지 않으나 수도( 國 邑 )에는 주사( 主 師 )라고 부르는 이가 있으며, 마을에 함께 살면서 서로 견제하며 지낸다. 라고 한 것을 보면 많은 부족집단들이 연합한 형태로서 그 족장의 권위는 왕권국가와 같은 강력한 단계는 아니었던 듯하다. 그러나 이들 고대 한족( 韓 族 )에게는 일견 전사단( 戰 士 團 ) 같은 청소년 집단이 있었 음을 알 수 있다. 관가( 官 家 )를 중심으로 성곽을 쌓으며, 연소( 年 少 )하고 용감한 자는 모두 등가죽에 큰 새끼줄을 얽어맨다(후일의 지게를 추측함). 또한 굵은 막대기로 이를 뚫고서 종일 큰소리를 내면서 돌을 쌓는다. 조금도 아픔을 느끼지 않으며 모두 즐겁게 일한다. (위 지동이전) 또는 모든 소년들이 특정한 막사에 모여 앞에서 묘사한 그러한 방법으로 종일 큰 소리로 외치면서 걸어 다닌다든지 그것을 보고 용감하다고 한 것 등을 미루어서 이는 당시 행해졌던 일종의 성년식의 훈련 행사로 행했던 강렬한 고행( 苦 行 )의 모습을 전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원시시대의 유습인 가혹한 의식적 행사들은 차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라 의 화랑도와 같은 조직으로 변형되어 갔을 것이다. 이 시기가 되면 <해동석사( 海 東 釋 史 )> <물산지( 物 産 志 )> <식화지( 食 貨 志 )> 등에 실려 있는 진한( 辰 韓 )은 철이 나서 한 ( 韓 ) 예( 濊 ) 왜( 倭 )가 사다 썼고, 또 이군( 二 郡 )에도 공급하였다., 진한은 모든 시 매( 市 買 )에 철( 鐵 )을 썼으니, 중국에서 돈을 쓰듯 하였다. 는 기록 등으로 이미 이 시 기는 철을 사용하는 금속문화가 발달되었던 것으로 보겠다. 역시 해동석사에 실렸다는 <예지풍속지( 禮 志 風 俗 志 )>에는 진한은 시취( 媤 娶 )에 예가 있고 행로( 行 路 )를 서로 사양하였으며, 또는 진한의 무문철전( 無 文 鐵 錢 )이 있고, 진한은 보전( 步 戰 )을 잘 하였고, 병기는 마한( 馬 韓 )과 동일하였다. 등의 기록들로 미루어서 기원 전후로 해서 이 지역에도 역사적인 전환기에 접어들었을 것 으로 생각되어 이때까지의 조잡하고 어리석었던 수준을 벗어나서 한 곳에 머물러 사 는 정주생활 형식의 지역적 결합으로 옮겨가 사유재산 제도의 확립과 계급적 형성이 이루어지는 원시 부족사회에서 부족국가 형태로 옮겨 갔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발전은 모권시대를 거쳐 물질생활의 변천에 따라 남자 중심사회로 전 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군혼( 群 婚 )의 풍습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고, 언 어 속에도 모권숭배의 흔적이 있으므로 고대사회가 모계 중심이었다는 것이 증명되었 다. 부권중심이 되면서부터 씨족에 대한 방위가 요구되었고, 이에 따라 자연히 남성이 가장적 존재가 되고 밖으로 자기 영토권 보호를 위해 남자가 책임지는 의무를 맡게 되 사 천 교 육 사 97

4 제2장 사천교육의 발자취 었다. 윈시시대 즉, 삼국시대 이전에는 생활을 위한 지식, 기술의 전승과 신앙심으로 종교적 행사의 전수와 종족 보호를 필요로 하는 전쟁이 교육의 형식으로 전승되었을 것으로 보며 생활에서 얻은 경험에 의한 예시의 실제 교육이었다면 종교적 관념에 의 한 의식( 儀 式 )에 대한 반복 교육, 신체단련을 위한 실체교육, 농경을 위한 기술교육, 경천사상( 敬 天 思 想 )에 의한 정서교육 등이 두루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앞서 고조선의 건국을 다룬 단군신화( 檀 君 神 話 )에는 환웅( 桓 雄 )이 신시( 神 市 )를 베풀어 홍익인간( 弘 益 人 間 )의 이념을 실현하려고 하였다 라고 나와 있다. 환웅 은 이 홍익인간의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하여 농경사회와 관계되는 풍백( 風 伯 ), 우사 ( 雨 師 ), 운사( 雲 師 ) 등에게 모든 일을 맡겨 교화( 敎 化 )를 하였다 했으며 곰과 호랑이 를 인간으로 화신( 化 身 )시킨 것 등은 모두 교육적 방법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삼국지의 위지동이전에는 조선의 왕 준( 準 )이 망명한 위만( 衛 滿 )에게 박사( 博 士 )직을 주어서 서쪽 변방을 방비케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위만에게 내린 직종은 필 시 교육직종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우리나라의 현 교육법 제1조에서 교육은 홍 익인간의 이념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능력과 공민으로서 의 자질을 구유( 具 有 )하게 하여 민족국가 발전에 봉사하며 인류공영의 이념실현에 이 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고조선의 개국이념이 곧 교육의 이념에 일치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부 여( 扶 餘 )나 옥저( 沃 沮 ) 동예( 東 濊 ), 삼한( 三 韓 ) 등 고대의 부족국가들은 고대국가사회 의 국가형성을 거의 완비하여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계급이 분명하였으며 지배계급 의 윤리관념이 뚜렷이 형성되고 있던 사회였다. 때문에 이 윤리관념을 현실적으로 수 용할 수 있는 교육적 실천방식을 생각해 볼 수가 있다. 고대사회의 공통된 관념으로 나타나 있는 경천사상은 부족국가의 공동의식으로 행 해진 제천의식과 그에 따른 가무( 歌 舞 )가 이를 잘 반영해 주고 있다. 교육적 실천이 다 분히 주술적( 呪 術 的 ) 신앙( 信 仰 )과 관계가 깊었는데 나라의 중대사나 민간행사에서도 반드시 제시받아 그에 의해 행사를 진행했다. 예컨대 소의 발굽, 별 등을 통해 길흉사( 吉 凶 事 )를 점친다거나 어떤 행위를 결정하 는 방식을 결행하는 가치판단의 기준 등은 고대사회 사람들의 윤리관념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다. 박물지( 博 物 誌 )에는 부여와 진한에 문자( 文 字 )가 있어 횡서( 橫 書 ) 또는 좌서( 左 書 )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만일 이때에 문자가 있었다면 고대사회의 교육을 밝혀내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교육은 근본적으로 인간애( 人 間 愛 )로부터 출발하였기 때문에 상대편 인간에게 영향 98 사 천 교 육 사

5 제1절 우리 교육 약사 을 끼쳐서 그로 하여금 가치있는 모습으로 성장하게 하는 일종의 사회기능이므로 인간 사회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근본기능으로서 무릇 사회생활이 있는 곳에는 교육기능 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기게 마련이다. 따라서 교육은 인간이 생활을 시작한 이래 오늘날 까지 행하여 온 작용으로서 사회가 있는 한 앞으로도 영원히 이어져 나갈 것이다. 나. 삼국시대의 교육 1) 개관 삼국시대 이전의 교육은 다른 나라의 고대 사회에서도 볼 수 있듯이 생활이 곧 교 육이고 역사라고 하는 자연적인 교육이 행하여졌으나 삼국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의도 적인 학교교육이 나타나게 되었다. 삼국사기에 있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에 태학( 太 學 )을 세워 자제를 교육 하다 라는 기록은 한국교육사에서 학교교육의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삼국사기 에 의하면 신라는 고구려보다 310년 늦게, 삼국통일 후인 682년(신문왕 2년)에 국학 ( 國 學 )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즉, 신라는 개국 뒤 739년 만에, 고구려는 개국 뒤 409년 만에 학교를 세운 셈이다. 삼국시대 전 역사를 통하여 사상적인 주류를 이룬 것은 불교( 佛 敎 )였다. 그러나 한 국교육은 당( 唐 ) 나라의 제도를 모방하여 한학( 漢 學 )을 가르쳤다. 더욱이 신라가 당의 세력을 빌려 삼국을 통일한 뒤에는 당에 유학생이 왕래하여 유학사상( 儒 學 思 想 )이 전 래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신라에는 진흥왕 때에 유( 儒 ) 불( 佛 ) 선( 仙 ) 3교를 조화하여 조직한 화랑도( 花 郞 道 )가 있어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그러나 삼국통일 뒤에는 유교교육에만 치중하여 그 고유의 특성을 발전시키지 못하였다. 문자( 文 字 )라는 것은 갑자기 만들어서 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구려가 처음 사용한 문자는 아마 부여나 그 밖의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던 문자를 전해 받은 것으로 보인다. 문자의 전달과정이란 곧 학교교육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조 직화된 학교교육이 등장하는 것은 삼국시대의 고구려가 인접한 국가로부터 전래된 문 자에 의해서 시작되었으리라 짐작이 간다. 삼국시대란 시대적 배경은 정복적이고 군사적인 측면이 많이 작용하였으므로 필경 여기에 대처할 전사( 戰 士 )의 양성을 필요로 하였을 것이다. 또한 중앙집권적이며 관료 적( 官 僚 的 )인 정치체제와 계급제도를 갖고 있었으므로 교육제도 역시 다분히 중앙집 권적 계급방식이었다. 따라서 교육의 실제적 가치는 피교육자의 인격함양이나 사회봉 사 천 교 육 사 99

6 제2장 사천교육의 발자취 사의 기능보다는 계급적 지위와 지배계급 또는 귀족으로서의 소양( 素 養 )에 더욱 비중 을 두고 있었을 것이다. 이 밖에 또 하나 이 시대의 사상적 기반으로서는 불교를 들 수 있다. 불교는 왕실의 적극적인 보호와 지원으로 국가적인 발전으로 이어졌으며 뒤에 삼국문화( 三 國 文 化 )의 찬란한 꽃이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교육적 측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정신면은 물론 사회봉사라는 불교관의 확립으로 교육적인 효과도 충분히 거두었다고 하겠다. 한편, 이 시대에 도입된 유교는 우리나라의 정치면을 비롯하여 정치, 윤리면에도 크게 기여하였으며 한자( 漢 字 )의 수입과 더불어 민족문화의 발전, 또한 교육전반에 지 대한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배경으로 발전한 삼국시대는 유교정치 사상의 발전으로 마침내 학교교육의 문을 열리게 하였다. 고구려에서는 태학, 경당을 설치하고 백제, 신라도 비슷한 교육기관을 두었을 것으 로 보이며 삼국이 모두 관리와 인물의 양성을 위해 당나라에 유학생을 보내어 서로 다 투어서 새로운 문물( 文 物 )을 배워 오기도 하였다. 2) 삼국의 교육 가) 고구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는 건국 초기에 이미 문자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자라는 것은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고구려가 처음 쓴 문자는 부 여시대부터 있었던 문자를 이어받은 것이라고 짐작된다. 중국 문화와 이웃하고 있기 때문에 한자를 상용하게 된 것은 적어도 기원전 2세기 이전의 일이었을 것이며, 최초 의 학교 출현도 문자의 사용과 거의 때를 같이 했으리라고 본다. 학교설립의 최초의 기록은 소수림왕 2년인 서기 372년으로 태학( 太 學 )에 관한 것 이다. 왕은 태학을 설립하고 자제를 교육하였다. 는 게 바로 그것이다. 태학은 귀족자 제의 교육기관이자 관리양성기관으로서 주로 유교의 경전을 가르쳤다. 오경( 五 經 ) 즉, 시경( 詩 經 ) 서경( 書 經 ) 춘추( 春 秋 ) 예기( 禮 記 ) 주역( 周 易 )과 삼국사( 三 國 史 ) 한서( 漢 書 ) 후한서( 後 漢 書 ) 동관기( 凍 關 記 ) 등 삼사( 三 史 )를 비롯하여 삼국지( 三 國 志 ), 진춘추( 晋 春 秋 )가 주된 것으로 보아 중국인이 태학에서 가르쳤던 다른 서적 즉, 역서( 歷 書 ) 의학 ( 醫 學 ) 산학( 算 學 ) 악서( 樂 書 ) 병서( 兵 書 ) 등도 대상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또 태학이 관학( 官 學 )인데 대하여 사학( 私 學 )의 시초라고 생각되는 경당이 있었다. 5세기 이후의 고구려 교육을 알려주는 <구당서기사( 舊 唐 書 記 事 )>에 나오는 이 경당은 본래 고구려 사람들의 풍습이 서적을 사랑하였으므로 민가나 목축업자들의 마을에 큰 집을 지어 100 사 천 교 육 사

7 제1절 우리 교육 약사 만든 학교였다. 경당은 마치 서양 중세기 평민과 승원( 僧 院 )과 같은 성격의 것으로 초등학교 정도 로부터 태학 정도에까지 걸친 교육기관이었다. 일반 평민과 지방부호의 미혼 자제들이 입학하여 이곳에서 독서와 활쏘기를 배웠으며, 교과서로는 오경 사기( 史 記 ) 한서 후한 서, 삼국지 춘추 옥편( 玉 篇 ) 학통( 學 統 ) 학교( 學 敎 ) 문선( 文 選 )등이었는데 그 중 문선 ( 文 選 )을 애독하였다 한다. 아울러 무예도 가르쳐 충효교육과 상무( 尙 武 )교육도 함께 길러 주었으며, 교육사상 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첫째, 일반 대중에게 사학( 私 學 )이 보급되었고, 둘째, 교육이 청소년에서 청년기로 변하고 있었으며, 셋째, 국내의 정세에 맞추어 문 무 일치의 교육을 겸하여 넷째, 교육의 범위가 넓고 높아 초등에서 고등교육기관이었다는 점이다 나) 백제 백제( 百 濟 )는 서기 663년 나라가 망할 때까지 교육에 대한 문헌상의 기록은 없으 나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보면 유교교육이 실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 유학( 儒 學 ) 을 전하여 비조문화( 飛 鳥 文 化 )를 이룬 것은 백제교육에서의 특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고이왕( 古 爾 王 ) 25년(258) 박사 왕인( 王 仁 )으로 하여금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 千 字 文 ) 1권을 전하였다고 하며, 근초고왕( 近 肖 古 王 ) 29년(374)에 고욱( 高 潘 )을 박사로 삼 아 서기( 書 記 )를 짓게 한 사실과 또 무릉왕대에 이르러 오경박사( 五 經 博 士 ) 은양이( 殷 楊 爾 ) 고안무( 高 安 茂 ) 등을 또 성왕( 聖 王 )대에는 왕유귀( 王 柳 貴 ) 왕도량( 王 道 良 ) 등을 일본으로 보내어 그 땅에 싹트는 문화를 북돋워 준 일이 있고, 성왕 원년(523)에 양 ( 梁 )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모시박사( 毛 詩 博 士 )를 청하여 왔고, 무왕( 武 王 ) 3년(602)에 승( 僧 ) 근륵( 勤 勒 )이 역서( 歷 書 )와 천문( 天 文 ) 등의 서적을 일본에 전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실로 보아 고구려의 태학에 버금갈 교육기관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 다. 특히 오경박사는 오경에 능통한 자의 이름이요, 모시( 毛 詩 )는 시경에 밝은 사람의 이름이니 이들이 교육을 행하였을 것이다. 백제는 건국 초부터 왕실이 국가 건설의 중 심이 되어 있었으므로, 전시에는 왕 자신이 무인으로 진두( 陣 頭 )에 나서서 솔선수범으 로 지휘하였고, 관제( 官 制 ) 중 11품이 교독( 交 督 ), 12품이 무독( 武 督 )으로 이들은 각각 문무를 다스리던 벼슬이었다는 사실을 통하여 백제에서는 문무의 교육에 중점을 두었 다고 볼 수 있다. 사 천 교 육 사 101

8 제2장 사천교육의 발자취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하고 충효가 핵심이 된 경학( 經 學 )을 통한 자녀교육과 유별하 는 예속( 禮 俗 )이 이루어져 경로사상이 사회를 정화시켰다고 한다. 백제가 예속이 잘 이루어진 것은 효교육을 통하여 국민정신교육에 힘썼기 때문이며, 의자왕( 義 慈 王 ) 20 년(660) <나 당연합군>에 의해 패망할 당시에 성충( 成 忠 ) 흥수( 興 首 ) 계백( 階 伯 ) 등 3 충신의 충절과 3천여 궁녀의 자결 등은 영원토록 우리의 흉금을 울리는 교훈이다. 또 백제가 망하기 직전 당나라 소정방( 蘇 定 方 )에게 항복한 의자왕의 처절한 모습을 보고 수많은 국민들이 자결했다고 하며, 또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부흥운동을 전개 한 일들은 충의교육에 노력한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충( 忠 )이란 평소에 교육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지 짧은 기간의 효과로 생 각되기에는 어려운 것이라고 볼 때 백제가 국민 전체에게 충이 몸에 배인 교육을 실시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다) 신라 신라는 삼국 중에서 가장 늦게 유학( 儒 學 )이 들어 왔으며, 교육도 화랑도교육과 통 일신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신라 초기 교육 건국(B.C. 57)이후 나물왕( 奈 勿 王 : )대 까지는 천세( 天 勢 )의 간섭없이 자 라온 시대라 할 수 있으며, 고구려를 통하여 중국문화를 수입하면서 국가의 기초를 다 졌다. 소지왕( 炤 知 王 ) 1년(479)에는 고구려의 남침세력에 대항하기 위하여 백제와 동 맹을 맺고 백제를 통하여 중국 남부문화를 받아 들였다. 진흥왕( 眞 興 王 )은 길러온 국력을 가지고 고구려와 백제에 대립하는 입장에 섰고, 고 구려와 적대관계에 있는 수( 隨 )나라 및 당( 唐 )나라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았다. 그러므 로 고구려 백제와의 예속적 관계를 탈피하여 독자적인 노선을 택하며 중국문화를 받아 들이기 시작한 시대라고 보인다 (2) 화랑도 교육( 花 郞 道 敎 育 ) 신라의 삼국통일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 화랑도 교육이고, 그 정신이라고 볼 수 있 다. 진흥왕( )때 徒 衆 雲 集 惑 相 摩 以 道 義 (도중운집혹상마이도의) 라고 하는 것과 원광법사의 세속오계( 世 俗 五 戒 ) 에서 국민정신 교육사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이 다. 따라서 신라가 삼국통일의 원동력을 이룬 화랑도의 기본정신을 효( 孝 ) 제( 悌 ) 충 ( 忠 ) 신( 信 )이라고 할 수 있다. 화랑의 대표적 인물이라고 볼 수 있는 김유신( 金 庾 信 )은 삼국통일의 주역을 담당했 102 사 천 교 육 사

9 제1절 우리 교육 약사 는데 화랑의 정신은 충효가 중심사상이 되어 충( 忠 ) 효( 孝 ) 신( 信 ) 용( 勇 ) 의( 義 ) 등으로 집약된 세속오계에서 국민교육사상이 나왔다고 한다. 신라는 삼국 중에서 지역적인 관계로 종교 및 사회면에서 그들대로의 특색을 살리 면서 외부에서 유입된 문화를 조화롭게 발전시켰다는 것이 특징이다. 신라는 주변 국 가들의 위험을 물리치기 위한 애국적인 국민운동이 요구되었다. 이 화랑도는 소년 때부터 교육훈련을 목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교육기관이나 학 교조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고, 치안을 담당하는 사법적 기능과 군사를 담당하는 국방적 기능, 그리고 평화시에는 청소년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적 기능을 가진 단체였 다. 즉 나라에 충성하는 것으로 도( 道 )를 기르는 단체였다고 한다. 화랑도 교육은 용감한 군인과 실천하는 인물 양성이 첫째였고, 내용적으로는 신라 특유의 종교적 도덕적 교육이 두 번째였다.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한 것으로는 우리 민족의 고유신앙에 윤리와 도덕을 강조하는 유교사상과 종교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불 교와 도교의 충효를 근간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종교적 도덕적 정신을 기르는데 역점을 두었다. 원광법사의 세속오계인 사군이충( 事 君 以 忠 ) 사친이효( 事 親 以 孝 ) 교우유신( 交 友 有 信 ) 임전무퇴( 臨 戰 無 退 ) 살생유택( 殺 生 有 擇 )은 위의 내용들이 들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화 랑도의 교육과정은 지적인 면보다 활동적인 인간교육 생활교육 직관( 直 觀 ) 교육 정서교 육을 중요시하였고, 그 집단 단체가 민주적 조직으로 친화의 소질을 지니고 원만한 인 격자의 완전인 육성에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철저한 단련으로 백절불굴( 百 折 不 屈 )의 실력을 지녀 부귀영달은 꿈에 도 두지 않았으며, 언제나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친다는 신념이 투철하였다. 게다가 가무( 歌 舞 )와 풍류( 風 流 )를 좋아하여 오늘날 전해오는 몇몇 향가( 鄕 歌 )를 보더라도 도 솔가( 兜 率 歌 ) 제망매가( 祭 亡 妹 歌 ) 를 비롯한 모죽지랑가( 慕 竹 旨 郞 歌 ) 찬기파랑가( 讚 耆 婆 郞 歌 ) 등의 주옥같은 가곡이 많음은 진중( 陣 中 )에서도 항상 여유를 가지며 드높은 사기( 士 氣 )를 북돋았다고 본다. 화랑세기( 花 郞 世 紀 )에는 어진 재상과 충성된 신하가 여기서 배출되고 뛰어난 장수 와 용감한 군사가 이로 인하여 생겨났다. 고 적고 있다. 이렇듯 화랑도는 신라의 표 상( 表 象 )이며 온 신라를 지탱해 온 지주로까지 성장하였다. 화랑 출신의 유명했던 사 람으로는 김유신( 金 庾 信 )장군이 있으며 김흠춘( 金 欽 春 ), 죽지( 竹 旨 ), 사다함( 斯 多 含 ), 관창( 官 昌 ), 원술랑( 元 述 郞 ), 비령자( 丕 寧 子 ) 등이 역사에 남는 인물이었다 다. 통일신라의 교육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기 전까지는 화랑도 육성에 힘썼지만, 통일 후에는 국학( 國 學 )을 세웠다. 신라의 통일이 불교의 장려와 유교사상에 있었다고 하나, 중앙집권적인 통일체제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유교의 정치이념을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고유의 화랑 사 천 교 육 사 103

10 제2장 사천교육의 발자취 도 교육이 통일후에는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신문왕( 神 文 王 ) 2년(682년)에 당나라의 국자감( 國 子 監 ) 체제 를 모방한 국학( 國 學 )을 세웠다. 유교의 교육이념에 따라 세워진 이 국학 교육의 목적 은 두 가지 기능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유교사상을 연구 보급하는 유학의 전당으로서 의 기능과 다른 하나는 유교이념에 입각한 국가 관리( 官 吏 )의 양성을 위한 교육기능이 었다. 설립 초기에는 전자를 위한 교육을 했으나 그 뒤에는 점차로 후자를 위한 교육기능 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교육 내용은 역시 유교의 경전( 經 典 )을 중심으로 하였으 며 논어와 효경( 孝 經 )을 필수과목으로 하여 예기 주역 좌전 모시 춘추 문선 등을 교육 하였다. 국학의 입학자격은 관계( 官 階 )가 대사( 大 舍 : 12등급)로부터 무위자( 無 位 者 )까지의 귀족으로 15세부터 30세까지이며, 재학연한은 9년이었으나 재질을 인정받지 못하면 퇴학을 당하고, 재질을 인정받으면 비록 9년이 지나도 허용 받아 벼슬이 대나마( 大 奈 麻 : 1등관), 나마( 奈 麻 : 2등관)에 이른 후에야 졸업하게 되었는데, 이들 국학 학생을 사인( 舍 人 )이라 하였다. 경( 卿 : 6등관) 1명, 대사( 大 舍 : 11 13등관) 사 이속( 史 吏 屬 ) 각 2명과 박사 조 교 등의 교관을 두었다. 국학에는 717년(성덕왕 16년) 광( 廣 )으로부터 문선왕( 文 宣 王 : 孔 子 ) 십철( 十 哲 ) 72제자의 화상( 畵 像 )을 가져다 봉안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유교교육 기관으로서의 체제를 완비하였다. 경덕왕( 景 德 王 )이 태학감( 太 學 監 )으로 고쳤다가 혜공왕( 惠 恭 王 )이 다시 국학으로 고쳤다. 신라는 이 국학제도( 國 學 制 度 )가 정착되어 학문이 융성하여짐에 따라 점차 유 교교육이 관료화되어 원성왕( 元 聖 王 ) 4년(788년)부터는 과거제도라 할 수 있는 국가 고시인 독서삼품과( 讀 書 三 品 科 )를 신설하여 이들의 성적에 따라 상 중 하 3등과 특 4 급( 級 )으로 나누어 인재등용의 방법으로 삼았는데 이는 곧 유능한 인재 등용이었는데 문 무 교체( 交 替 )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신라의 인재등용 방법은 삼국통일 이전까지는 화랑도 교육으로 인물본위 ( 人 物 本 位 )의 교육 제도를 채택하였으나 이후에는 국학의 교육이념을 따라 학벌주의 시험본위의 교육제도로 전환되었다. 국학을 교육제도로 삼아 실시해 온 통일신라시대에는 유교의 번창과 아울러 불교 의 융성으로 수많은 거유( 巨 儒 )와 고승( 高 僧 )이 나와 사회정화( 社 會 淨 化 )와 교육에 크 게 공헌하였으며 이때 나온 몇 사람의 인물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104 사 천 교 육 사

11 제1절 우리 교육 약사 강수( 强 首 ) : 중원경( 中 原 京 : 충주)의 사량( 事 梁 ) 사람이다. 효경 곡례( 曲 醴 ), 이 아( 爾 雅 ), 문선( 文 選 )에 능통하였고 태종무열왕( 太 宗 武 烈 王 )때 당나라에 가는 국 서( 國 書 )를 맡아 왕래하면서 크게 공헌하였다. 이때의 공로로 사찬( 沙 樹 )의 벼 슬을 받았다. 그의 이름이 강수( 强 首 )가 된 것은 태종무열왕이 처음 그를 보았 을 때에 두골( 頭 骨 )이 뒤로 툭 튀어나왔다고 해서 강수( 强 首 )선생이라 부른데서 생긴 이름이다. 그는 설총( 薛 聰 )과 함께 역( 易 ), 서( 書 ), 시( 詩 ), 주례( 周 禮 ), 의례( 儀 禮 ), 예기( 禮 記 ), 좌전( 左 傳 ), 공양전( 公 羊 傳 ), 곡량전( 穀 梁 傳 ) 등의 9경( 經 )으로 국학에서 제 자들을 가르쳤다. 원효( 元 曉 ) : 진평왕( 眞 平 王 ) 39년 (671년)에 나서 신문왕( 神 文 王 ) 6년(686년) 에 입적( 入 寂 )한 신라말의 고승이다. 속성( 俗 性 )은 설( 薛 ), 아명( 兒 名 )은 서당( 誓 幢 )이요, 원효는 법명( 法 名 )이다. 시호( 諡 號 )는 화정( 和 淨 ), 진덕여왕 2년(648년) 황룡사에서 중이 되었고 2년 뒤 에 당나라로 유학을 가다가 실패하자 분황사에 들어가 불교의 보급에 매진하였 다. 스스로 소성거사( 小 性 居 士 )라 부르고 속세에 나가 무애가( 無 寐 歌 )를 부르며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민중교화에 힘썼다. 그는 불교사상의 종합과 실천에 노력 한 정토종( 淨 土 宗 )의 선구자였다. 당의 금강삼매경( 金 剛 三 昧 經 )을 해독하였으며 대승기신론소( 大 乘 起 信 論 疏 )등 많은 저서를 후세에 남긴 고승이다. 설총( 薛 聰 ) : 신라의 석학( 碩 學 ) 원효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요석공주( 瑤 石 公 主 ) 이고 신라의 3문장( 文 章 ) 중 한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유달리 총명하여 경사( 經 史 )에 밝았다. 강수( 强 首 )와 함께 9경을 후학들에게 가르쳤으며 이두( 吏 讀 )를 집 대성하였고 벼슬은 한림( 翰 林 )을 지냈으며 화왕계( 花 王 戒 )를 지어 신문왕을 충 고한 일화가 전한다. 최치원( 崔 致 遠 ) : 신라 말의 대학자이다. 호는 고운( 孤 雲 ), 시호( 諡 號 )는 문창후 ( 文 昌 候 )이다. 경주 사량부( 沙 梁 部 )에서 나고 12세에 당나라로 유학가서 17세때 과거에 급제하여 선주표수현위( 宣 州 標 水 顯 尉 )를 거쳐 승무랑시어사내공봉( 丞 務 郞 侍 御 使 內 供 奉 )이 되었으며 자금어대( 紫 金 魚 袋 )를 하사받았다. 황소( 黃 巢 )의 난에 고병( 高 騈 )의 종사관으로 따라 나가 격문을 써서 이름을 날렸다. 돌아와서 는 신라의 벼슬을 하고 지냈으며 시무( 時 武 ) 10조를 내었다. 말년에 그는 주유 천하( 周 遊 天 下 )를 하다가 해인사( 海 印 寺 )에 들어가서 생을 마쳤다고 전한다. 그 의 저서로는 사육집( 四 六 集 )과 계원필경( 桂 苑 筆 耕 ) 20권이 있으며 봉안사 비문, 석순응전( 釋 順 應 傳 )이 있다. 사 천 교 육 사 105

12 제2장 사천교육의 발자취 라. 고려시대의 교육 1) 개관 신라의 자멸로 전쟁 없이 평화 속에서 수립된 고려는 신라의 문물제도를 크게 수정 함이 없이 계승하였다. 그러나 일찍부터 태조( 太 祖 )는 교육제도에 많은 관심을 써 온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사( 高 麗 史 )의 기록에 의하면 태조 13년, 서경( 西 京 )에 행차하여 학교를 창설하고 수재 정악( 廷 帽 )을 명하여 서학박사( 書 學 博 士 )로 하였다. 또 달리 학 원( 學 院 )을 창설하여 육부( 六 部 )의 생도를 모아 교수하였다. 태조는 흥학( 興 學 )을 듣고 면포( 綿 布 )를 하사 하였다. 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의 교육은 통일신라 교육을 토대로 내적 면에서 불교를, 외적 면에서 유교를 병행하였으며 고려 태조( 년)는 불교를 국교( 國 敎 )로 하여 정신적인 지주로 삼았고, 정치면에서는 인재 등용을 위하여 유학을 통한 유교사상을 치국( 治 國 )의 이념 으로 한 교육이 이루어졌다. 원래 유교사상이란 공자( 孔 子 )의 덕치주의( 德 治 主 義 )로 인의( 仁 義 )를 기본으로 하 고 교육사상은 인문주의( 人 文 主 義 )로 충효 인애 신의 평화의 중화( 中 華 )사상을 건설하 는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의 교육사상이 고려에서도 받아 들여졌으므로 후기에는 척불( 斥 佛 )운동이 일어났고, 주자학( 朱 子 學 )을 받아들여 성리학( 性 理 學 )으로 바뀌었으며, 이후 조선조까지 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므로 고려의 교육사상은 태조에서 원종( 元 宗 )에 이르기까지 유( 儒 ) 불( 佛 ) 2대 사상의 지배하에서 발전된 교육사상과 충렬왕( 忠 烈 王 ) 이후 주자학의 유입으로 교육 사상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태조의 십훈요( 十 訓 要 )에서 아국가대업( 我 國 家 大 業 ) 필자제불호위지력( 必 資 諸 佛 護 衛 之 力 ) 고창선교사원( 故 創 禪 敎 寺 院 ) 차견주지범( 差 遺 住 持 焚 ) 수각치기업( 修 各 治 其 業 ) 이라 하여 국가의 대업은 제불호위에 의한 것이므로 선 교( 禪 敎 )의 사원을 짓고 주지를 파유하여 분수수업( 焚 修 修 業 )할 것을 밝혔다. 또 천하 학교( 天 下 學 校 ) 위선조술( 爲 先 祖 述 ) 요순지풍( 堯 舜 之 風 ) 사수주공지도( 事 修 周 孔 之 道 ) 라 한 것으로 보아 유학도 크게 장려하여 고려사회의 2대 주류를 형성하였을 것으로 보아 유학사상이 서로 합쳐지면서 고려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교 육사상은 선성선사( 先 聖 先 師 )의 문묘( 文 廟 )를 중외학교( 中 外 學 校 )에 두고 봉사( 奉 祀 ) 하여 인격을 이념화하고 유학의 핵심사상인 인( 仁 )의 근본을 효라 하여 윤리적 이념을 지향했으며, 유교적 도덕으로 국민을 감화( 感 化 )시켰다. 고려 말기의 교육사상은 주자학의 전래로 성리학이 전파되었는데 성( 性 )이란 물질 106 사 천 교 육 사

13 제1절 우리 교육 약사 이 아니고, 하나의 영체( 靈 體 )이므로 적연하동( 寂 緣 下 同 )하고 보대청명( 寶 大 淸 明 )하여 천지를 비추는 존재라고 주장하는 설이다. 이러한 주자학을 전래한 자는 안향( 安 珦 )인 데, 그는 충렬왕 11년에 제학( 提 學 )으로 왕을 따라 원( 元 )에 갔다가 주자전서( 全 書 )를 보고 공자와 주자의 상( 像 )을 그려가지고 온 것이 시초이다. 안향( 安 珦 )은 주자학에 교육사상을 두고 공자의 도를 배우려면 먼저 회암( 晦 庵 )을 배워야 한다. 고 학생들에게 권했으며, 만년에는 주자상을 걸어 놓고 항상 경모하고 호( 號 )를 회암( 晦 庵 )이라 하였으며, 불교란 의( 義 )를 어기어 이협( 夷 狹 )의 류( 類 ) 라 하 면서 반불( 反 佛 )사상을 부르짖었다. 더욱 이색( 李 穡 ) 정몽주( 鄭 夢 周 ) 등이 성리학을 강구하면서 배불사상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불교식의 애장( 哀 葬 ) 제의( 祭 儀 )의 의식을 버리고 주자 가례( 家 禮 )의 유교식 의례를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면서부터 유교식 생활양식이 싹 트기 시작했고, 그 여파가 조선시대까지 전하여지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고려 말에는 주자사상인 성리학이 학교교육의 이념이 되기에 이르렀으며, 유교사상이 정신면과 생 활면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고려시대의 학교제도는 태조 13년(930년)에 서경에 경학( 京 學 )을 세웠고, 992년 (성종11년)에 국자감( 國 子 監 )을 창립하였으며 문종 7년(1053년)에 사학( 私 學 )이 일어 나기 시작하여 최충( 崔 沖 ) 등 12인이 사설의 학당을 개설하여 소위 사학십이도( 私 學 十 二 徒 )를 이루게 되었다. 1271년(원종 12년)에는 동서학당( 東 西 學 堂 )을 세웠다. 지방에 는 이와 대등한 향교( 鄕 校 )가 있었으며, 국자감과 향교에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문선 왕묘( 文 宣 王 廟 )를 두고 이를 중심으로 학문을 강의하는 명륜당( 明 倫 堂 )이 있었다. 특기할 것은 중국 후주인( 後 周 人 ) 쌍기( 雙 冀 )의 건의를 받아들여 광종 9년(958년) 과거제를 실시한 일이다. 과거제가 시행됨에 따라 유학이 일어나게 되었고 대유학자나 대정치가가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학교는 과거를 위한 시험 준비에만 급급하여 뒷날 에는 과거제도의 폐해도 크게 나타났다. 2) 문교정책 앞에서 기술했듯이 고려시대의 학교는 태조 13년(930년) 서경(평양)에 처음 설치 되었다. 태조가 평양을 순찰할 때 그 곳에 학교가 없음을 보고 정악( 廷 帽 )을 서학박사 로 삼고, 서경에 머물면서 학원을 창설하여 6부의 학도들을 가르치게 하였고, 면백( 綿 帛 )을 하사하고 권장해 의( 醫 ) 복( 卜 )도 같이 가르치게 하여 곡식 백석( 百 石 )을 내려 학보( 學 寶 )를 만들고 학업에 힘쓰게 하였다. 사 천 교 육 사 107

14 제2장 사천교육의 발자취 또한 태조는 경주에도 신라 신문왕 2년(682년)에 설치되었던 국학을 그대로 존치 시켜 지방자제를 교육하도록 한 것으로 보아 건국 초기부터 교육기구를 두고 문교정 책에 힘써왔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교육기구를 널려 설치하고 국가적인 견지에서 교육을 장려하였다는 것은 광종( 光 宗 ) 9년(958년)의 과거제도에서 볼 수 있다. 광종 때는 이미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체제가 되어 유학적 교양을 갖춘 인재를 등용시킬 수 있을 만큼 사회적 여건이 성숙되어 가고 있었다. 태조가 교육정책에 힘을 기울인 요인은 당시 지방 호족들을 포섭, 유교주의 이념인 충효사상을 주입하여 그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며, 또한 관리 양성기관으로서의 학교 창설을 잊어버리지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광종은 958년 후주( 後 周 )에서 귀화한 쌍기( 雙 冀 )의 건의로 관리를 선발하는 과거제 도를 실시하여 인재를 등용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와 같은 과거제도가 고려에 채택됨 으로써 학교 교육이 진전을 가져 왔을 뿐 아니라 과거의 시험 과목이 곧 유교 교과목 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인하여 교육 내용면에서 볼 때 과거제도가 본래의 인격 완성이란 교육 본래의 목적이 상실되고 학교 교육은 과거를 치르기 위한 준비 교육기 관으로 바뀌어지고 말았다. 성종( 成 宗 : 년)때는 지방 학생들을 위하여 유경학습( 留 京 學 習 ) 및 십이목( 十 二 牧 )에 박사를 파견, 훈회( 訓 誨 )함으로써 지방교육에 힘쓰고, 개성에는 국자감을 설치하 였다. 또한 성종은 수서원( 修 書 院 )을 설치하여 독서를 권장하는 등 문교 정책에 힘썼다. 문종( 文 宗 )시대에는 해동공자( 海 東 孔 子 )라는 칭호를 받은 최충( 崔 沖 )이 교육을 위 하여 힘쓴 결과 큰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문종부터 예종( 睿 宗 : 년)대까 지 70여 년은 외적의 침입이 없었고, 국내에는 평화로운 시대에 있었던 것으로 문물이 크게 발달했던 시대였다. 최충의 학제는 구재( 九 齋 )로 나누어 구재학당( 九 齋 學 堂 )을 두었으며, 교육방법으로 서 교관은 자신이었으나 때에 따라서는 문도( 文 徒 )중에서 급제하여 아직 관에 근무하 지 않는 자로 우수한 선비로 뽑아 특별 강사로 삼아 가르치게 하고 있다. 인종( 仁 宗 : 년)에 와서는 국학을 국자감으로 환원시키는 학교의 학식 ( 學 式 )을 완비하였는데 삼학( 三 學 )으로 국자학( 國 子 學 ) 태학( 太 學 ) 사문학( 四 文 學 )을 두었고, 잡학( 雜 學 )으로 율학( 律 學 ) 서학( 書 學 ) 산학( 算 學 )을 두어 신분에 따라 입학이 달랐다. 또한 고려의 교육부흥이라 할 수 있는 충렬왕 33년(1308년)에는 안향( 安 珦 ) 의 건의로 국자감을 성균관( 成 均 館 )으로 개칭하고 이의 운영을 위하여 담학전( 秊 學 錢 ) 을 두었다. 108 사 천 교 육 사

15 제1절 우리 교육 약사 3) 교육제도 가) 관학( 官 學 ) 관공학( 官 公 學 )의 준말로서, 사학( 私 學 )과 대립되는 명칭이다. 고구려의 태학( 太 學 ), 신라의 국학( 國 學 ), 고려의 국자감( 國 子 監 ), 조선의 성균관( 成 均 館 )과 그 외 향교 ( 鄕 校 )나 동서학당( 東 西 學 堂 ) 오부학당( 五 部 學 堂 ) 등도 여기에 속한다. 고려시대의 교육기관으로 개경( 開 京 )에는 국립인 국자감, 동서학당, 그 뒤에 오부 학당 및 사립인 십이공도( 十 二 公 徒 )가 있었고, 지방교육 기관으로는 각 군에 향교 및 서당이 있었다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신라의 국학이 당나라 제도를 모방하면서도 모 방에 그치지 않고 관제나 내용이 신라의 특징을 살리고 있음에 비추어 고려의 국자감 은 그 명칭이나 편제가 당나라 제도를 그대로 본떴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관학( 官 學 )은 국가에서 세운 관학( 官 學 )이나 공학( 公 學 )을 더 상세히 설명하 고자 별도 기술한다. (1) 국자감 국자감( 國 子 監 )은 607년 중국 수( 隋 )나라에서 창시되어 고려에서는 992년(성종 11 년) 태조 이후의 교육기관이던 경학( 京 學 )을 국자감으로 개칭하여 설치하였다. 1275년 (충렬왕 1년)에는 국학( 國 學 ), 1298년에는 성균감( 成 均 監 ), 1308년(충선왕 즉위)에는 성균관( 成 均 館 ), 1356년(공민왕 5년)에는 다시 국자감, 1362년에는 또다시 성균관으 로 고쳐 조선으로 계승된 중앙의 최고 교육기관이다. 국자감은 성종이 중앙과 지방관제를 정비하여 관리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관리양 성기관의 기능도 가지게 되었는데, 여기에 국자학( 國 子 學 ) 태학( 太 學 ) 사문학( 四 門 學 )등 유학( 儒 學 )전공의 3학과, 율학( 律 學 ) 서학( 書 學 ) 산학( 算 學 ) 등 실무적 기술을 습득하는 3학을 두어 이들을 경사육학( 京 師 六 學 )이라 하였다. 이중 앞의 3학은 모두 유교의 경전과 문학을 전공하는 기관으로, 학과와 구별없이 학생의 신분에 따른 구별이었으며, 지배계급의 자제로서 장래 고급관원으로 출세하 려는 자들이 입학하였다. 한편 율학 등 3학은 일종의 직업학으로 전문직으로 나갈 계급이 낮은 신분의 자제들이 들어갔다. 국자감의 정원은 국자학 태학 사문학이 각각 300명으로 모두 900명이었고, 율학 등 3학은 미상( 未 詳 )이며, 각 학과마다 박사 조 교가 교수하였다. 공부한 내용은 국자학 태학 사문학이 모두 같으며 효경 논어를 공통 필수과목으로 하고, 주역 상서( 尙 書 ) 주례( 周 禮 ) 예기( 禮 記 ) 모시( 毛 詩 ) 춘추좌씨전( 春 秋 左 氏 傳 ) 공양전 ( 公 羊 傳 ) 곡량전( 穀 梁 傳 ) 등은 전공교과로 하였다. 공부하는 연한은 국자감 시험에 응 사 천 교 육 사 109

16 제2장 사천교육의 발자취 시하는데 필요한 6년과 국자감 시험에 합격한 후 3년이 지나야 최종 시험인 예부시 ( 禮 部 試 )에 응시할 수 있어 9년이 소요되었으며, 율학 서학 산학은 6년이 소요되었는 데 이를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학 명 입학자격 정원 교 수 학 과 비고 국자학 문무관 3품 이상 자손 300 박사.조교 역.시.서.3예 3전 춘추.효경 논어 등 태 학 문무관 5품 이상 자손 300 사문학 문무관 7품 이상 자손 300 율 학 문무관 8품 이상의 자손 및 서인 <국자감 수학 내용 및 인사자격> 박 사 법률 서 학 8서 산 학 산수 성종 11년(992년)에 개경( 開 京 )에 설립된 국자감은 이후 예종 4년(1109년)에는 그 안에 문무 7재( 文 武 七 齋 )를 두었고, 같은 해 9월에는 왕이 손수 참석하여 선성( 先 聖 ) 선사( 先 師 ) 공자상( 孔 子 像 )에 헌작( 獻 酌 )의 예를 올렸다. 이 국자감이 일종의 국립종합 대학교로서의 명목을 갖추게 된 것은 17대 인종 때였다. 그는 동방( 東 方 ) 학자들이 한사( 漢 史 )의 역사는 잘 알면서도 제 나라의 역사에는 어 두움을 개탄하고 김부식( 金 富 式 )에게 정사( 正 史 )를 찬( 撰 )하게 하였고, 식목도감( 式 目 都 監 : 지금의 법제처)으로 하여금 학제를 상정( 詳 定 )하는데 힘쓰게 하였는데 그 학제 와 입학자격은 앞에서 보았다. 문종은 1063년(문종 17년)에 사학( 私 學 )이 융성하고 관학( 官 學 : 국자감)이 부진하 자 교관의 책임이라 책망하고 국자감의 질적 향상을 꾀하여 직제를 제정하였다. 즉 제 거( 提 擧 : 종 2품) 동제거( 同 提 擧 : 종2품) 관구( 管 句 : 정3품) 판사( 判 事 : 정3품) 각 2 명, 제주( 祭 酒 : 종3품) 사업( 司 業 : 종4품) 승( 丞 : 종6품) 각 1명, 국자박사(정7품) 각 2명, 학유( 學 諭 : 종9품) 4명, 직학( 直 學 : 종9품) 서학박사(종9품) 산학박사(종9품) 각 2명과 이속( 吏 屬 )으로 서사( 書 史 ) 기관( 記 官 ) 각 2명을 두었고, 그 후에도 대사성( 大 司 成 : 정3품) 명경박사( 明 經 博 士 : 정8품) 율학박사(종8품) 명경학유( 明 經 學 諭 : 종9품) 율학조교 등을 두었다. 예종 4년(1109년)에는 과거 합격자를 십이도( 十 二 徒 )에 많이 빼앗기자 과거 응시자 를 위하여 국자감에 여택재( 麗 澤 齋 : 주역) 대빙재( 待 聘 齋 : 尙 書 ) 경덕재( 經 德 齋 : 毛 詩 ) 구인재( 求 仁 齋 : 周 禮 ) 복응재( 服 膺 齋 : 載 禮 ) 양정재( 養 正 齋 : 春 秋 ) 강예재( 講 藝 齋 : 武 學 )의 7재를 두고 전공별 강의를 하였다. 숙종 6년(1101년) 국자감에 서적포( 書 籍 涯 )라는 국립도서관을 설치하고, 1562년 성균관으로 개칭된 뒤에는 강예재가 없는 6 재를 사서( 四 書 )와 오경( 五 經 )을 전문적으로 강의하는 9재로 바꾸어 성리학 중심의 교 110 사 천 교 육 사

17 제1절 우리 교육 약사 육으로 전환하였다. (2) 동서학당 동서학당( 東 西 學 堂 )은 원종( 元 宗 ) 2년(1261년)에 수도인 개경( 開 京 )의 동서 양쪽에 두 학교를 둔 것을 말하는데 별감( 別 監 )을 보내어 학문을 가르쳐 교도( 敎 導 )하였다는 조서( 詔 書 )를 내린바 있다고 한다. 원종은 태자 때에 원나라에서 지냈으며, 그곳에서 성리학의 융성을 직접 보고 와서는 학당을 세우고 판비서성사( 判 秘 書 省 事 ) 김궤( 金 軌 ), 상서좌승 선문렬( 宣 文 烈 )을 별감으로 삼아 유학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지방에는 향교가 있는데 반하여 중앙의 귀족 자제는 국자감에 입학할 수 있게 하였 고, 수도에 사는 서민 자제의 교육기관으로 동서학당을 세웠다. 이 동서학당은 후에 오부학당( 五 部 學 堂 )으로 발전되었다. 또한 공양왕 때에 와서는 성리학자 정몽주( 鄭 夢 周 )가 성균관의 책임자로 있으면서 학교의 부흥을 위하여 노력하는 가운데 유학이 발 전되었고 중앙의 동서에 두었던 학당이 뒤에 5개 학교로 되었다. (3) 향교 향교( 鄕 校 )는 지방의 교육기관으로서 고려시대의 향교에 대한 기록은 흔하지 않으나 성종( 成 宗 ) 5년(986년)에 여러 지방의 학생들이 경사( 京 師 )에 머물러 공부하는 것을 어렵게 여긴다는 말을 듣고 학생들을 고향에 돌아가게 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성종 6 년에 지방행정구획인 12목( 牧 )에 경학( 經 學 ) 의학박사( 醫 學 博 士 ) 각 1명씩을 파견하 여 지방 학생들을 가르치게 하였는데 이것이 향교의 시초라고 전해진다. 또 다른 이야 기로는 향교제도를 창시한 성종은 고려조 역대 왕 중에서 가장 유교를 숭상하고 교육 정책에 역점을 둔 임금으로 국자감을 위시한 동서학당 향교를 확장 내지는 신설하였 고, 교육제도에 대한 확고한 기반을 닦았으며, 그는 국민개학( 國 民 皆 學 )을 교육방침으 로 삼아 어질고 착하며 면학에 열의 있는 자는 성적의 높고 낮음을 평가하여 관리로 등용하였으며 모든 주( 州 ) 군( 郡 ) 현( 縣 )의 장리( 長 吏 )나 백성들 중에서 가르칠만한 자 가 있으면 골라 가르치라고 했는데, 이를 위하여 향교의 설립이 불가피하였다고 한다. 서울의 사학( 四 學 )과 마찬가지로 향교도 성균관의 하급 관학으로서 문묘( 文 廟 ) 명륜 당( 明 倫 堂 ) 및 중국 조선의 선철( 先 哲 ) 선현( 先 賢 )을 제사하는 동무( 東 黛 ) 서무( 西 黛 )와 동재( 東 齋 ) 서재가 있어 동재에는 양반, 서재에는 서류( 庶 類 )를 두었다. 향교는 각 지방관청의 관할에 두어 부( 府 ) 대도호부( 大 都 護 府 ) 목( 牧 )에는 각 90명, 도 호부에는 70명, 군에는 50명, 현에는 30명의 학생을 수용하도록 하고, 종 6품의 교수와 정 9품의 훈도( 訓 導 )를 두도록 경국대전에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의 일이다. 나) 사학 사학( 私 學 )은 국가에서 설립한 관학에 대응하는 말로 관공학의 보충적 기능을 가진 사 천 교 육 사 111

18 제2장 사천교육의 발자취 교육이라고도 볼 수 있고, 관공학의 독자적인 의의와 기능을 가진 교육으로 볼 수 있 는 자주성을 보다 중시하고 독자적인 의의를 갖는다고 할 것이다. 고려시대 사학의 교 육사적으로 특기할 사실은 관학이 그 제도에 비하여 활발하지 못하였던데 대하여 사 학의 대두와 그 진작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고려 이전에도 사학은 있었지만 학교라고 불릴만한 것은 없었고, 문종( 文 宗 )때 와 서 해동공자로 일컫는 최충( 崔 沖 )으로 하여금 사학을 일으키게 하였다고 본다. (1) 구재학당 구재학당( 九 齋 學 堂 )은 문종 9년(1055년)에 관직에서 물러난 최충( 崔 沖 )은 군국대사 ( 軍 國 大 事 )에 관한 왕으로부터의 자문을 받았으며 문종 22년(1066년) 8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후진교육에 힘썼다. 그 당시 국학은 시설면이나 교육면에서 유명무실한 상태에 있었으므로, 향학열에 불타는 청년들, 특히 과거를 보려는 응시자들은 최충이 개설한 사숙( 私 塾 ) 학교에 모여 들었고, 이 때문에 학반을 구재로 나누어 가르치게 되 었는데 이를 구재학당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고, 이 학당을 시인들은 시중( 侍 中 ) 최공도( 崔 公 徒 )라 불렀다. 고려시대 사학은 태조 때 정악( 廷 帽 )이 서경에 세운 숙( 塾 )이 시초이나 최충이 세운 구재는 시설이나 교육면에서 국자감을 훨씬 능가하여 과거응시자가 몰리자 학반을 구 재로 나누었다고 하는데 구재로는 악성( 樂 聖 ) 대중( 大 中 ) 성명( 誠 明 ) 경업( 敬 業 ) 조도( 造 道 ) 솔성( 率 性 ) 진덕( 進 德 ) 대화( 大 和 ) 대빙( 待 聘 )으로 나누었으며, 학과는 5경( 五 經 : 역 시 서 예 춘추)과 3사( 三 史 : 사기 한서 후한서)를 중심으로 하고 여기에 시부사장 ( 詩 賦 詞 章 )의 학에 기운 것이었으나, 그것은 시문( 詩 文 )을 위주로 하던 당대의 풍조와 과거 준비하는 목적을 놓고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런데 구재의 명칭들이 암시하듯 이는 유교의 공부하는 단계를 표시한 것으로 그 중 성명( 誠 明 )과 솔성( 率 性 )은 중용에서 딴 것이었다. 중용은 도학( 道 學 )의 중추가 되는 책으로서 대학과 함께 예기에 포함되어 왔던 것을 정자( 程 子 )가 한 책으로 따로 따내 어 사서( 四 書 )의 하나로 한 것인데 최충은 그보다 45년이나 앞서 중요에 주목, 그 책 안의 어구를 따서 재명( 齋 名 )을 삼았으니 그 교육방침의 탁월성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구재의 운영은 매년 여름철이면 하기 강습회의 하나로 하과( 夏 課 )를 개설하였는데, 특히 귀법사( 歸 法 寺 )의 승방( 僧 房 )을 빌려 문도( 門 徒 ) 중의 과거 급제자로서 임관( 任 官 )하지 않은 실력자를 강사로 삼아 교수하게 하였다. 또 선진들 중에서 구재를 방문 하는 사람이 있으면 각촉부시( 刻 燭 賦 詩 )하는 즉흥시회( 卽 興 詩 會 )를 열어서 그 작품의 우열에 따라 석차를 정하고, 간단한 연회를 베풀어 종일토록 흥을 즐기게 하였다. 그 런데 이 연회석에서도 각 문도들의 예의동작 등이 나가고 들 때 예를 지키고, 나이에 따라 질서를 차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니 학문을 위한 학문 이 아니라 유정( 有 情 ) 사제( 師 弟 ) 도의( 道 議 ) 등에 관한 실천윤리 곧, 학행일치( 學 行 112 사 천 교 육 사

19 제1절 우리 교육 약사 一 致 )의 기풍진작을 앞세웠던 교육의 일면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학풍은 각 지방 향교는 물론 고을의 서사( 書 社 : 글방)에까지 크게 영향을 끼쳤다. 구재는 최충의 사후에도 문헌공도( 文 憲 公 徒 )라 하여 오랫동안 과거응시자의 준비기 관으로 존속되었다. 구재가 번성하자 11명의 학자들이 그 학풍을 모방하여 사립학교 를 열었는데, 구재를 포함하여 이를 12도( 十 二 徒 )라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관학은 더 욱 위축되고 사학만이 발달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2) 12도 십이도( 十 二 徒 )는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사학기관으로서 가장 알려진 것은 12개 학 교인 12도이다. 이 12도는 해동공자의 칭호를 받던 최충( 崔 沖 )이 창시하였다. 최충은 해주 출생으로 문무를 겸비한 당시의 학자로서 72세에 관직에서 물러나 자신의 여생 을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인 학자이다. 문종은 교육발전을 위해 힘을 썼으나 관학인 국학을 지도하는 교수의 무책임한 지 도로 약화되던 때에 유학의 태두( 泰 斗 )이며, 정계의 원로인 최충이 직접 나서서 청년 교육을 담당하자 전국에서 청년들이 구름 모이듯 모여 와 그의 사숙( 私 塾 )을 찾는 학 생들로 꽉 메웠다고 한다. 최충은 이들에게 학반을 나누어 구재로 정하고 교육에 힘썼다. 여기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보려는 사람들이었는데 그 학행( 學 行 )이 예절 바르고, 덕을 쌓는 이 들이어서 그 칭찬이 대단하였다고 한다. 이같이 최공도의 교육성과가 알려지자 명성 높은 유신( 儒 臣 )을 모으니 이것이 12도였는데 12도는 설립자의 시호나 호, 벼슬 이름 을 딴 것인데 다음과 같다. <사학 12도> 설립자 이름 관직이름 12도 이름 연대 비고 최충( 崔 沖 ) 문하시중( 門 下 侍 中 ) 문헌공도( 文 憲 公 徒 ) 문종 정배걸( 鄭 倍 傑 ) 문하시중( 門 下 侍 中 ) 홍문공도( 弘 文 公 徒 ) 웅천도( 熊 川 徒 ) 노단( 盧 旦 ) 참지정사( 參 知 政 事 ) 광헌공도( 匡 憲 公 徒 ) 김상빈( 金 尙 賓 ) 국자제주( 國 子 祭 酒 ) 남산도( 南 山 徒 ) 김무체( 金 無 滯 ) 복사( 僕 射 ) 서원도( 西 園 徒 ) 은정( 殷 鼎 ) 문하시중( 門 下 侍 中 ) 문충공도( 文 忠 公 徒 ) 김의진( 金 義 珍 ) 평장사( 平 章 士 ) 양신공도( 良 愼 公 徒 ) 황영( 黃 榮 ) 정경공도( 貞 敬 公 徒 ) 숙종 유감( 柳 監 ) 충평공도( 忠 平 公 徒 ) 문정( 文 正 ) 문하시중( 門 下 侍 中 ) 정헌공도( 貞 憲 公 徒 ) 문종 서석( 徐 碩 ) 시랑( 侍 郞 ) 서시랑도( 徐 侍 郞 徒 ) 설립자미상 귀산도( 龜 山 徒 ) 사 천 교 육 사 113

20 제2장 사천교육의 발자취 최충이 설립한 문헌공도가 문종17년(1068년)에 세워졌기 때문에 다른 공도도 거의 문종 때를 전후해서 세워졌다 한다. 인종 때 과거 합격자는 거의 12도에서 나왔다. 그 러나 이같이 합격자가 많아지자 이들 간에 여러 가지 알력이 일어났는데, 인종 11년 (1133년)에는 소속도를 옮긴 자는 과거의 예비고사 격인 동당( 東 堂 ) 감시( 監 試 )에 응 시할 권리를 박탈하는 사례까지 나타났다. 고려 중기에 국자감의 운영이 부실하고 향교내 학당이 궤도에 오르지 못했던 시기 에 유학교육 발전에 기여한 바는 지대하였다. 그 이후 무신의 난, 외적의 침입으로 교 육이 전반적으로 침체에 빠지게 되었다가 공민왕 때는 그 부흥에 힘쓰기도 했으나 공 양왕 3년(1391년)에 고려의 멸망과 함께 폐지당했다 (3) 서당 고려의 서당( 書 堂 )에 관한 기록은 송( 宋 )나라 사람 서긍( 徐 兢 )이 쓴 고려도경( 高 麗 圖 經 )에 나와 있다. 여염의 거리에는 경관( 經 官 )과 서사( 書 司 )가 두셋씩 서로 바라보이며 서민 자제의 미혼자가 무리로 모여 스승에게 경( 經 )을 배우며 조금 장성하고 나서는 저희끼리 벗을 택하여 사원( 寺 院 )으로 가서 강습하고 그 아래 어린 무리들도 역시 향( 鄕 )선생을 찾아 배운다. 여기에서 미루어 보면 서당의 수가 꽤 많았던 것으로 보이나 더 자세한 것은 알 수 가 없다. 다만 고려는 이처럼 사학으로서의 서당도 꽤나 융성하였던 것 같고 사원에서 도 강습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4) 과거제도 고려의 과거제도는 후주인( 後 周 人 ) 쌍기( 雙 冀 )의 건의로 광종 9년(958년) 당나라 제 도를 모방하여 창설하였고, 이것은 신라 국학이래로 인재등용에 있어서는 국학을 졸업 한 사람이나 당나라 유학생 가운데서 뽑았던 일에 비하여 진일보한 제도였다. 그러나 그 역시 당나라의 제도를 따른 것으로 응시과목이 국자감의 교육내용에 상응하였다. 매년 과거행사는 각 지방의 장은 과거응시 지망자를 지방향교에 모아 고시( 考 試 )한 것으로부터 개시되었다. 각 지방관은 응시자 중에서 1 3명을 뽑아 중앙으로 보냈는데 이때 선발된 사람을 진사( 進 士 )라 하였다. 이 진사의 시험은 제술( 製 述 )인 시와 논문, 명경( 明 經 )인 유교의 경전해설의 두 과목으로 나누어 보았으며, 이 밖에 제업( 諸 業 )이 라 하여 의( 秉 ) 복( 卜 ) 지리 율(법률) 서( 書 ) 산( 算 ) 등의 시험도 행하였는데 전국에서 올 라오는 진사의 수는 매년 400여 명이었다고 한다. 이 400여명의 진사들은 중앙에 모여 국자감에서 행하는 시험을 치렀고, 감시( 監 試 )라 불리는 시험이 곧 등용의 여부가 결정 되는 최종 시험이었다. 114 사 천 교 육 사

21 제1절 우리 교육 약사 이 감시에 급제하는 합격자의 수는 정원이 없었고, 급제자는 3등급으로 나누어 평가 하였다. 13대 선종( 宣 宗 )대에 들어서는 진사와 제업의 시험을 3년에 1회씩 실시하였으 며, 14대 헌종( 憲 宗 ) 때부터는 2년에 1회씩 실시하기로 하고 다시 방침을 바꾸었다. 의종( 毅 宗 )때는 무단( 武 斷 )정치로 인하여 과거의 법이 크게 문란하였던 것이 흠이었 는데, 고려의 과거제도에는 무과( 武 科 )가 없었던 것이 또 하나의 결점이었다. 그 후 공민 왕 때에는 이목은( 李 牧 隱 )이 무과설치를 요구하여 상서( 上 書 )까지 올렸으나 시행을 보지 못했다. 이 밖에 과거에는 승과( 僧 科 : 敎 宗 試 와 禪 宗 試 )가 있었으며, 무신( 武 臣 )의 등용을 위한 과거는 공양왕 2년(1390년)에 실시하였기 때문에 고려시대에는 영향을 주지 못 하여 거의 없었다. 과거의 응시 자격은 양인( 良 人 ) 이상이면 응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천민이나 승려의 자식은 응시할 수 없었다. 양인 이상은 응시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농민은 사실상 응시하지 못하였다. 응시의 절차는 3차에 걸쳐 시험을 보게 하였다. 처음에는 매년 과거를 실시했으나 성종때에는 3년( 式 年 試 )에 한번씩 실시하였고, 헌종 때에는 격년으로, 그 후에는 매년 또는 격년으로 실시하였다. 1차 시험에서는 중앙(개경)에서 선발한 자를 상공( 上 貢 ), 지 방에서 선발한 자를 향공( 鄕 貢 ), 외국인 중에서 선발한 자를 빈공( 賓 貢 )이라고 하였다. 2차 시험은 1차 시험에 합격한 삼공( 三 貢 : 상공 향공 빈공)들을 국자감에서 다시 선발(국자감시 : 재시), 이에 합격한 자( 貢 士 )와 국자감에서 3년이상 수학한 학생, 벼 슬에 올라 300일 이상 경과한 자들이 최종시험인 3차시험(동당감시 : 東 堂 監 試 )을 보 게 하였다. 합격자는 제술과는 갑 을의 2과로, 명경과는 갑 을 병 정의 4과로 나누었다. 합격자 의 정원은 없었으나 중기 이후 대체로 33명이었다. 이와같은 과거는 예부에서 관장하 였고, 시험관을 지공거( 知 貢 擧 )라 하였다. 그리고 최종 시험에서 1등을 장원( 壯 元 ), 2 등을 아원( 亞 元 : 榜 眼 ), 3등을 탐화( 探 花 )라고 하였고, 빈공에서 합격한 자를 별두( 別 頭 )라고 하였다. 때로는 동당감시에 합격한 사람도 임금이 다시 시( 詩 ) 부( 賦 ) 논( 論 ) 으로 친히 시험을 보게 하여 등급을 정하는 복시< 覆 試 : 염전중시( 簾 前 重 試 ) 중시( 重 試 )>제도가 있었다. 이러한 복시는 성종 때 처음 시작하였으나 상례적인 제도는 아니 었다. 최종시험에 합격한 자에게 홍패( 紅 牌 )를 주었는데 이것이 곧 합격증이었다. 이 와 같은 과거제도는 지공거와 합격자가 좌주( 座 主 )와 문생( 門 生 )의 관계를 맺어 일생 을 통하여 그 예를 부자지간과 같았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학벌이 형성되어 출세의 배 경이 되었다. 의종 이후 이 과거제도는 문란하여져 공민왕 때 이색( 李 穡 )은 지공거 이인복( 李 仁 사 천 교 육 사 115

22 제2장 사천교육의 발자취 復 )과 논의하여 원나라의 제도를 모방하여 향시( 鄕 試 ) 감시( 監 試 : 會 試 ) 전시( 殿 試 )의 3단계의 제도를 확정하고, 시험관인 지공거도 시험 1일 전에 임명하도록 한 일이 있었 다. 과거 이외에 5품 이상인 관리의 자제에게는 1명에 한하여 정치적 특혜를 인정하여 과거시험을 거치지 않고 관리에 채용한 음서제도( 蔭 敍 制 度 )가 있었다. 초기의 과거시험은 제술과( 製 述 科 : 진사과) 명경과( 明 經 科 ) 잡과( 雜 科 : 의 복과)를 두었으며, 1136년(인종 14년)에 이르러 정비되었다. 제술과와 명경과는 문관 등용시험 이었으나, 제술과를 더욱 중요시하였다. 고려시대를 통하여 제술과의 합격자가 6,000 여 명이나 되는데 명경과 합격자는 450명 정도인 것으로 보아 당시의 귀족들이 경학보 다 문학을 숭상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잡과는 위의 양보다 그 격이 낮았다. 마. 조선시대의 교육 1) 개관 조선시대의 교육은 고려말에 극심했던 불교의 폐단을 없애기 위하여 태조 이성계 ( 李 成 桂 )의 배불숭유( 排 佛 崇 儒 )를 지도이념으로 삼았다. 초기에 민심을 통일하는 수단 으로 공( 孔 ) 맹( 孟 )의 충효를 근본으로 하는 삼강오륜( 三 綱 五 倫 )사상을 적극 장려한 결 과 유학이 널리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조선은 개국과 함께 유교를 국교로 정하였기 때문에 성균관( 成 均 館 )과 성리학( 性 理 學 )은 조선시대 교육의 근간( 根 幹 )이 되었던 것이다. 태조 6년(1397년)에는 고려말의 국자감을 모방하여 성균관을 짓고 이듬해에는 성균관 문묘( 文 廟 )와 명륜당( 明 倫 堂 )을 지어서 중앙의 교육기관을 정비하였다. 지방에는 관학인 향교를 두어서 교육제도를 확 립한 조선은 교육정책에 힘을 쏟았다. 유교의 교육목표는 한마디로 수신( 修 身 ) 제가( 齊 家 ) 치국( 治 國 ) 평천하( 平 天 下 )하는 수기치인( 修 己 治 人 )이라 하겠다. 성리학에서는 성현을 본받고 배우며 도달하는 법성현 을 강조하게 되고 군자( 君 子 )로서 노력하고 배워서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학문 의 지표로 삼았다. 그러나 조선왕조에 있어서 교육사상은 성리학이 골고루 정착화 되거나, 생활화 되 지 못하고, 그 기능이 선발된 특수계층에만 강조된 나머지 사장( 詞 章 ) 중심의 교육과 관념 논쟁으로 치달아 실생활이나 사실( 事 實 ), 사물의 학문을 경시하게 된 것은 안타 까운 일이었으며 이에 대한 반발이 18세기 실학( 實 學 )사상의 대두였다. 실학파의 교육론은 청( 淸 )나라의 고증학과 서학( 西 學 )의 영향에서 역사의 변천과 사회적 실정을 바로 파악해서 민족의 각성과 자아의 올바른 향방을 수립하는 것으로 116 사 천 교 육 사

23 제1절 우리 교육 약사 했다. 즉 실생활에 적응되는 실천적 교육관을 확립하고자 노력했다. 실로 실학의 신흥 학풍은 당시 교육의 궁극적 목표인 과거를 통한 입신영달( 立 身 榮 達 )에의 집념에서 유 래되었다고 지적하는 교육풍토 쇄신, 사회적 통습이었던 노동을 천시하는 관념을 타파 하고자 노력했다. 이 학풍은 유향원( 柳 響 遠 )을 비롯해서 홍대용( 洪 大 容 ) 정약용( 丁 若 鏞 ) 등으로 이어 져 후일 개화사상으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2)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조선시대의 교육제도는 유교와 더불어 고려 것을 그대로 이어받아 이를 발전시켰 다. 갑오경장까지 조선왕조의 교육제도는 최고 학부로서 성균관을 비롯해서 사학( 四 學 ), 지방의 향교, 서원, 서당으로 구성되었다. 조선은 초기부터 유교주의 국가이념을 바탕으로 한 교육기관을 증설하고 백성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확대시켰다. 인문교육기 관으로는 중앙에 국립대학인 성균관을, 중등교육을 위하여는 서울에 4부 학당을, 지방 에 향교를 설치하였다. 향교에는 각 군 현의 인구에 비례하여 정원을 책정하였다. 학생들은 군역( 軍 役 )이 면제되었는데, 농번기에는 방학을 맞아 농사일을 돕고 농한기에는 기숙사인 재( 齋 )에 거처하면서 공부하였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는 초등교육기관으로서 서당이 있어, 훈 장 접장( 接 長 )의 교수 아래 한자( 漢 字 )의 초보와 습자( 習 字 )공부가 이루어졌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서원( 書 院 )이 각지에 설립되면서 선현을 제사하기도 하고 지방 의 양반 자제들을 교육하여 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한편, 기술교육은 의학 역학( 譯 學 ) 산학( 算 學 ) 율학( 律 學 ) 천문학 지리학 등으로 나누어 각각 전의감( 典 醫 監 ) 사역원( 司 譯 院 ) 호조 형조 관상감( 觀 象 監 ) 등 해당관청에서 가르쳤다. 이들 기술학은 당시 잡학이라 하여 천시되었으며, 중인( 中 人 ) 계층의 자제가 이를 세습적으로 배워 기술관이 되었다. 교육을 이수하고 관리가 되기 위해서는 과거에 합격하여야 한다. 교육의 기회가 거 의 양반에게 독점되었으며 과거 역시 양반들이 독차지하였다. 과거에는 문과와 무과가 있다. 양반사회에서는 가장 중요시된 문관 채용시험은 생진과( 生 進 科 : 소과)와 문과(대 과)의 두 단계로 나뉘었다. 생진과에는 4서 5경으로서 시험 보는 생원과( 生 員 科 )와 시 ( 詩 ) 부( 賦 ) 표( 表 ) 책( 策 ) 등 문장으로 시험하는 진사과( 進 士 科 )가 있었는데, 양반자제 들은 초시( 初 試 ) 복시( 覆 試 )에 모두 합격하면 과에 따라서 생원 또는 진사라고 불렀다. 생원 진사는 성균관에 입학하거나 대과에 응시할 자격을 부여받았는데, 대과에서는 초시 복시를 통해 합격하면 전시( 殿 試 )에서 그 등급이 결정되었다. 생진과에서는 200 사 천 교 육 사 117

24 제2장 사천교육의 발자취 명, 대과에서는 33명이 선발되었다. 무관시험도 역시 초시 복시 전시를 거치는데, 초 시에서는 서울과 각 도의 병영에서 200명을, 복시에서는 서울의 병조에서 행하되 28 명을 선발하였는데, 이들을 선달( 先 達 )이라 하였다. 기술관 채용을 위한 잡과에는 역과 의과 음양과 율과의 4과가 있는데, 양반의 서자 나, 중인계급에서 응시하였다. 과거에 합격하지 않고 음서( 蔭 敍 )나 취재( 取 才 )를 거쳐 서 관료가 될 수 있었으나, 이러한 경우에는 요직으로 나가기가 어려웠다. 이와같은 교육제도와 과거제도는 갑오개혁을 전후하여 크게 바뀌었다. 조정에서는 개화운동의 일환으로 1886년 최초의 근대학교인 육영공원( 育 英 公 院 ) 을 설립하여 신식교육을 실시하고, 1895년 교육입국조서( 敎 育 立 國 調 書 ) 를 발표하여 소학교 사범학교 외국어학교 의학교 등을 세워 관립학교 제도를 확립하였다. 이와 더불어 폐단이 많았던 과거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관리임용법을 채용하여 종래의 양반 상인이나 문반 무반의 구별을 없앴다. 가) 성균관( 成 均 館 : 국립대학) 고구려의 태학, 신라의 국학, 고려의 국자감 성균관 조선왕조에 와서는 성균관의 명칭을 계승하여 태조 6년(1397년)에 현재의 자리인 숭교방( 崇 敎 坊 )에 건물을 짓고 이듬해 문을 열었다. 강의하는 명륜당과 유교선현을 모신 문묘, 유생들이 거처하는 재 ( 齋 )를 두었다. 경국대전( 經 國 大 典 )에 의하면 지사( 知 事 : 정2품) 1명, 학론( 學 論 : 종9품)까지 37 명의 교직원이 배정되었다. 유학생의 정원 및 취학자격은 정원 200명으로서 생원( 生 員 ) 진사( 進 士 ), 즉 한성시( 漢 城 試 )와 향시( 鄕 試 )에 합격한 사람을 우선으로 하고 미달 될 때에는 사학( 四 學 )의 생도나 국가유공자의 직계자손으로 능력을 보아 보충하고 관 리로서 취학을 희망하는 자는 허락했다. 성균관은 양현고( 養 賢 庫 )라는 부설기관을 두고 기숙하면서 공부하는 유생들의 일 용 물품의 공급과 숙식의 뒷바라지를 책임졌다. 따라서 성균관에서는 국가가 정식으로 지급한 토지 외에도 많은 보조를 받음으로써 유일한 국립대학으로서 왕이 친히 문묘 에 제사지내며, 거동도 잦아서 유교이념에 입각한 학술의 연마와 지도적 인재를 배출 하는 총 본산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고자 했다. 성종 때에는 형관청( 亨 官 廳 ) 도서관인 존경각( 尊 經 閣 : 서고)도 완성되었으며, 조선 왕조 500년 동안 몇 차례 기복은 있었지만 최고 학부로서의 위치에는 변함이 없었다. 성균관에서 이루어진 교육 내용은 118 사 천 교 육 사

25 제1절 우리 교육 약사 첫째, 강독( 講 讀 )으로 사서( 四 書 : 논어 맹자 중용 대학), 오경( 五 經 : 시전 서전 주 역 예기 춘추)과 여러 가지 역사서적 등을 강독하고, 둘째, 제술( 製 述 )로 의( 疑 ) 논( 論 ) 부( 賦 ) 표( 表 ) 송( 頌 ) 명( 銘 ) 잠( 箴 ) 기( 記 )이고 셋째, 서법( 書 法 )으로 해서( 楷 書 ) 행서( 行 書 ) 초서( 草 書 ) 등이 있었다. 강독에 있어서 대학 1개월, 논어 맹자 각 4개월, 시전 서전 춘추 각 6개월, 주역 예 기가 각 7개월로 정해져 있었다. 이러한 강독 분수( 分 數 : 성적)는 5단계로 나누어져 대통( 大 通 ) 통( 通 ) 약통( 略 通 ) 조통( 祖 通 ) 조통 이하의 5등급으로 구분되었다. 성균관의 학칙( 學 則 )은 학령( 學 令 )을 비롯해서 권학사목( 勸 學 事 目 ) 구재학규( 九 齋 學 規 ) 원점절목( 圓 點 節 目 )등에 규정되어 있으며 특히 학령에는 성균관에서 행하여진 아침 행사, 매월 행사를 비롯해서 독서 제술 강독성적 벌칙 자치제 등에 관해서 싣고 있다. 성균관 유생들은 그들대로의 자치활동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어서 이를테면 국 가 정책에 실정( 失 政 )이 있거나 명군의 풍습이나 가르침에 해가 될만한 일이 있다고 보았을 때는 유생들이 소( 疏 )를 올려 탄핵도 하였으며 그들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단식인 권당( 捲 堂 ), 수업거부인 공재( 空 齋 ), 등교거부인 공관( 空 館 ) 등의 집단행동을 하기도 하였다. 1894년의 갑오개혁은 성균관의 역사에서 중요한 굴절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갑 오개혁이 단행되면서 과거제도가 폐지되고, 근대적인 교육개혁이 추진되면서 일정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때 성균관은 개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유학과 도덕 을 지켜 나가는 방향으로 전환되었으며, 1946년 성균관대학의 설립으로 그 전통은 계 승되었다. 1785년(정조 9년)에 편찬된 태학지( 太 學 志 )에는 성균관 건물 배치도 및 성 균관 제도의 변천과정, 유생의 활동내용 등의 자세한 기록이 수록되어 있어서 조선시 대 성균관의 역사를 아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에 여기 덧붙인다. 나) 사학( 四 學 : 국립대학 부속학교) 사학( 四 學 )은 조선시대 관립 교육기관으로 사부학당( 四 部 學 堂 )이라고도 한다. 고려 시대에는 개경( 開 京 )과 조선시대에는 한성( 漢 城 )의 각 부( 部 )에 두었는데, 당시 모든 제도는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었으나, 이 제도는 중국에도 없던 것을 고려 말 유학 진 흥의 현실적 요청에 따라 설치하여 조선에 내려와 발전을 본 관학( 官 學 )으로, 지방의 향교와 달리 문선왕묘( 文 宣 王 廟 )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처음에는 1261년(원종 2년)에 동 서부에 학당을 설치하여 별감을 두고 가르치다 사 천 교 육 사 119

26 제2장 사천교육의 발자취 가, 뒤에 유교가 불교보다 승하여 사상계를 지배하게 되자 개경의 각 부에 학당을 설 치하여 5부학당으로 발전하였다. 조선에 들어와서 고려의 제도를 그대로 두어 서울을 동 서 남 북의 5부로 나누어 여기에 학교를 하나씩 설치하기로 하여 5부학당( 五 學 )이 라 하였으나, 북부학당은 끝내 설치하지 못하고 1445년(세종27년)에 폐지되어, 동학 ( 東 學 ) 서학( 西 學 ) 중학( 中 學 ) 남학( 南 學 )등 4부 학당만이 존속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학사( 學 舍 )가 없어서 대부분은 사원( 寺 院 )을 이용하였으나 1410년(태종 10년) 성명방( 誠 明 坊 )에 남부학당이 설치됨을 계기로 이후 나머지 학당도 모두 건물을 갖게 되었다. 학당은 재사( 齋 舍 : 기숙사) 제도를 마련, 그 운영비용을 국가에서 부담 하였다. 국가에서는 학생의 교육을 위해 학전( 學 田 ) 노비( 奴 婢 ) 잡물( 雜 物 )등을 사급 ( 賜 給 )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북 연안에 있는 여러 섬들의 어장( 漁 場 )을 주어 그 세( 稅 ) 로서 비용을 충당하게 하였다. 처음에는 교수 훈도 각 2명을 두고 성균관 관원으로 겸직하게 하였으나, 뒤에는 각 1명씩을 감하는 대신 겸직을 없앴다. 그리고 예조( 禮 曹 )와 사헌부( 司 憲 府 )에서 학당의 수업상태를 항상 감독하였다. 이곳에 입학한 사람은 서울에 사는 세가( 勢 家 ) 양반 자 제로서, 8세가 되면 입학자격을 주어 소학( 小 學 ) 사서오경( 四 書 五 經 )을 배우고, 15세 가 되어 승보시( 陞 補 試 )에 합격하면 성균관기재( 成 均 館 寄 齋 )에 입학하게 된다. 이것은 커다란 특전으로 기재생은 성균관 상재생( 上 齋 生 )과 똑 같은 대우를 받았 다. 학당에서는 5일마다 시험을 치르고, 예조에서는 달마다 시험을 쳐서 1년의 성적을 임금에게 보고하였다. 사학의 유생은 15일은 제술( 製 述 ), 15일은 경사( 經 史 )를 강독하 여 우수한 사람 5명을 뽑아 생원 진사시험에 직접 응시하게 하였으며, 매년 실시되는 유월도회( 六 月 都 會 )의 우등자도 1, 2명은 생원 진사의 회시( 會 試 : 覆 試 )에 직접 응시 ( 直 赴 )하게 하였고, 또한 사학 유생에게는 원점( 圓 點 )에 따라 알성시( 謁 聖 試 )를 볼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성균관 유생과 함께 유교사상을 지키기 위하여 소행( 疎 行 ) 권당( 捲 堂 )등의 학생운 동을 하는 수도 있었으며, 정치적으로 새로 진출한 사림( 士 林 )을 도와 훈구( 勳 舊 ) 관료 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때로는 사상적으로 대립되는 불승( 佛 僧 )과 산사( 山 寺 )에서 격 투를 벌이기도 하였는데, 이때마다 이들에 대한 처벌 논의가 있었지만 그 벌은 가벼웠 고, 도리어 이를 가상하게 여길 정도였다. 임진왜란 때 학당이 불타서 다시 건물을 지은 뒤에는 학생수가 격감되어 사실상 유 명무실한 존재가 되었고, 한말에는 이들 관학이 부진하여 외국인에 의해 사학( 私 學 )이 세워졌을 때 학교 이름에 학당을 붙여 배재학당 등으로 불렀다. 120 사 천 교 육 사

27 제1절 우리 교육 약사 다) 종학( 宗 學 : 왕실학교) 종학( 宗 學 )은 왕족의 자제들을 교육시키는 왕족 위주의 교육기관이다. 다른 학교와 는 달리 예조의 감독을 받는 것이 아니고, 종부사( 宗 簿 寺 )의 감독을 받았다. 국조보감 ( 國 朝 寶 監 )에 의하면 종학은 세종 11년(1429년)에 설치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 로는 같은 왕 10년(1428년)에 설치되었다 한다. 이렇게 설치된 종학은 연산군 때에 폐지되었다가 중종( 中 宗 ) 때 다시 재건되었으나 중종 이후에 와서는 폐지되었다. 이 종학의 교육과목은 경술과 문예( 文 藝 )를 주로 하 였으며, 입학 자격은 종친자제( 宗 親 子 弟 )로 15세 이상이고, 정원은 40명에서 50명으 로 증원되기도 했다. 라) 향교( 鄕 校 : 중등학교) 고려시대에 설치된 향교는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공립중등교육기관으로 지방재정 에 의해 설치 운영되었다. 태조 원년(1392년)에 각 도의 안찰사( 按 察 使 )에 명하여 그 지방 향교의 발전 여부에 따라 지방관의 근무성적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고, 크게 교 육의 쇄신을 꾀하였다. 그리하여 지방행정 단위였던 부( 府 ) 목( 牧 ) 군( 郡 ) 현( 縣 )에 향 교 1개씩을 두고 운영하게 하였다. 경국대전에서는 학생 정원과 교수 훈도직을 정규 관원으로 임명토록 하고 있으며 학생의 정원과 자격 기준을 부와 대도호부 목 단위에서는 90명을 정원으로 간주하고, 16세 이하인 자는 정원 외로 보았다. 이하 도호부 70명, 군에는 50명, 현에는 30명으 로 규정하였다. 후일에 가서는 거의 폐지되었으나 초기 향교에는 종3품의 교수, 종9품 의 훈도가 배정되었는데 경상도에는 교수 12명 훈도 55명이었고, 사천의 곤양향교와 사천향교에는 각각 훈도 1명이었다. 향교 설립의 목적은 성현에 대한 향사( 享 祀 )와 유생에게 유학( 儒 學 )을 가르치는 교 육기능과 함께 지방의 문화 향상과 풍토진작 등 재원을 삼게 했으며, 후일에는 상당 수준의 자체 재산을 확보하기도 했다. 관학인 향교는 교생들에게 항상 시험 성적의 우수자에게 소과복시( 小 科 覆 試 )에 응 시케 하고 군역 과세의 면제 등 적극적인 정책으로 지방 향교 교육에 기여한바 컸다. 그러나 중종 때부터 관학 정책의 모순 등으로 퇴폐상을 드러냈으니 양반이나 사대부 자제들이 향교를 꺼리게 되었고, 이에 편승한 족계 외의 중서민층 자제가 입학하여 군 역을 면하는 기피장소로 변하였다. 향교 퇴폐의 이유로는 물론 중종조 이후 관학과 함께 사학인 서원의 증가도 있겠으 사 천 교 육 사 121

28 제2장 사천교육의 발자취 나 자체적인 모순으로는 유능한 교수와 훈도가 지방 수령의 감독하에 있기를 싫어하 게 되어 정계 투신이나 사학 등으로 빠져 나간데서 큰 원인이 있다 하겠다. 유생들도 학문하는 목적이 과거를 보아 출세하는데 있기 때문에 사학의 유능한 학자를 따랐으 니, 지방 향교는 쇠퇴 일로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향교의 쇠퇴를 방치하지는 않아 실록( 實 錄 ) 중종조의 기록에서 교수의 오랜 근무를 강조하고 있고, 학전( 學 田 )의 지급, 재상 자제들의 관학 취학과, 선조조의 제독 관( 提 督 官 )의 파견 등은 그 일례라 하겠다. 임진왜란 이후 향교 부흥책도 변함이 없는데 인조( 仁 祖 ) 때의 향교 권학수목( 勸 學 修 目 ), 효종( 孝 宗 ) 10년(1659년) 송준길( 宋 浚 吉 )의 향학지규( 鄕 學 之 規 ), 현종( 顯 宗 ) 5 년(1664년)에는 평안도 방면에 교양관( 敎 養 官 )을 두어 유생을 교육하였다는 기록과 숙종( 肅 宗 ) 5년(1679년)에는 유학진흥을 위하여 경상 전라도에 제독관을 다시 복직시 켰다는 기록 등은 중향교( 重 鄕 校 ) 부흥정책의 일면을 나타내고 있다. 고종 31년(1894년) 갑오개혁으로 과거제도가 폐지되어 교육제도와 교육기관의 정 비로 향교는 이름만 남아 문묘석존( 文 廟 釋 尊 )만을 제사지낼 따름이었다. 한일합방( 韓 日 合 邦 : 1911년)이후 발효된 조선총독부령으로 성균관을 경학원( 經 學 院 )으로 개칭하 고 문묘만을 봉안하였으며, 지방에는 문묘직원을 명예직으로 두고 부윤( 府 尹 ) 군수( 郡 守 )의 감독하에 문묘를 지키고 서무에 종사케 했다. 학전( 學 田 )의 소관으로 융희( 隆 熙 ) 4년(1910년)에 향교재단 관리규정을 정하고 부 윤 군수로 하여금 정리케 하고 그 수입은 부근의 공립학교, 또는 지정하는 학교의 경 비와 문묘의 행사비로 충당케 하였으며, 그 후 동재산관리규정은 폐기되고, 문묘의 유 지와 제향비 및 사회교육사업에 충당케 되었다. 광복후 전국 유림의 총의에 의하여 본 이름으로 환원된 성균관은 옛날 제도를 혁신 하여 교육과 문화사업에 주력하는 한편, 성균관 대학을 경영하고 유도회( 儒 道 會 )를 조 직하여 총 본부를 성균관에 두고 각 도에 지부를 설치하여 유도발전과 윤리 확립 진흥 에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으며, 각 도별로 향교재단법인을 설립하고 유림대표 중에서 이사를 선출하여 향교 재산의 적절한 관리와 운용을 하고 있으며, 향교에 따라 건물의 유지와 문묘의 제사 지내는 일에 약간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향교도 있으나 지금은 자치단체의 지원을 일부 받는 곳도 있다. 광복 후 전국 유림본회의 결의에 의하여 오성< 五 聖 : 공자( 孔 子 ) 안자( 顔 子 ) 자사 ( 子 思 ) 증자( 曾 子 ) 맹자( 孟 子 )>, 이현< 二 賢 : 정명도( 程 明 道 ) 주회암( 朱 晦 庵 )>외에 중국 의 현유( 賢 儒 ) 113위( 啓 聖 祀 포함)의 위패를 매안( 埋 安 )하고, 우리나라 18현( 賢 )을 합 하여 총 25위를 종사( 從 事 )하게 확정지었다. 122 사 천 교 육 사

29 제1절 우리 교육 약사 마) 서원( 書 院 ) 서원( 書 院 )은 조선( 祖 先 ) 또는 선현( 先 賢 )을 봉사( 奉 祀 )하는 사( 祀 )와 제자를 교육 하는 재( 齋 )가 결합 성립된 것으로서 지방의 유풍( 儒 風 )을 진작시키고 연학( 硏 學 ) 수양 ( 修 養 )의 도장으로 중종 36년(1541년) 풍기( 豊 基 ) 군수(뒤에 곤양군수) 주세붕( 周 世 鵬 )이 안향( 安 廖 )의 고향 순흥( 順 興 )에 세운 백운동( 白 雲 洞 ) 서원이 그 효시라 하겠고, 뒤이어 인종 명종 연간에는 그 수가 증가 일로에 있었다. 사학( 私 學 )은 고려 중기 이후 교육사상 중요한 지위를 차지해 왔고 한편으로는 선 조 또는 선현의 신주( 神 主 )나 영정( 影 幀 )을 봉안 재향하는 사묘( 祠 廟 )는 오래전부터 시 작된 것으로 특히 여말 주자학의 발흥( 勃 興 )과 함께 더욱 각종 사우( 祠 宇 )의 설립이 성 행하여 종묘( 宗 廟 ) 가묘( 家 廟 ) 등 선조를 봉사하는 혈통 중심의 것과 문묘 생사당( 生 祠 堂 : 생존자를 신화한 것) 일반 사우 등 국가 또는 사회에 공로가 있는 이를 사사( 祠 祀 )하는 것이 있어 성종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사묘( 祠 廟 ) 건립이 일반화 되어 갔다. 이러한 사학과 사묘가 서원으로 융합된 것이니 백운동서원도 그 곳이 고려의 명유 ( 名 儒 ) 안향의 옛 살던 곳이었던 만큼 현지 군수가 그 사우를 세워 주자의 백록동( 白 鹿 洞 ) 학규( 學 規 )를 채용하고 안향을 봉사하는 한편 유생의 독서 강론의 편의를 도와 교 육의 기능도 병행한 것이다. 그 뒤 후임 군수였던 퇴계( 退 溪 ) 이황( 李 滉 )이 이 서원의 장래를 위하여 국가의 보 조를 청하여 명종 5년에 소수서원( 紹 修 書 院 )이라는 칙액( 勅 額 )과 서적 노비 전결( 田 結 ) 등의 하사로 국가의 공인을 받으니 이것이 사액서원( 賜 額 書 院 )의 시초라 하겠다. 때마 침 각지의 향교가 폐이( 廢 弛 )하니 서원 중 유서있는 것에 대하여는 소청에 따라 편액 ( 扁 額 )을 사급( 賜 給 )하고 재정상의 보조를 주어 이를 장려하니 각 지방에서는 유지의 출자( 出 資 )와 국가의 보조로서 선현의 연고지에 서원을 사설( 私 設 )하는 일이 성행하여 명종 이전에 설립된 것이 29원, 선조( 宣 祖 )대에 12원, 숙종대에는 80에서 90원을 헤 아린다고 <문헌비고학교고( 文 獻 備 考 學 校 考 )>에 기록되어 있다. 이 같은 서원의 많은 설치는 양적인 증대만이 아니라 또 이 서원은 일종의 특권적 인 것이어서 이에 부속된 밭과 토지는 면세되고 양민( 良 民 )이 원노( 院 奴 )가 되어 군역 을 피하는 곳이 되었으며, 유생은 향교보다도 서원에 들어가 강습수도 보다는 유식모 의( 遊 食 謀 議 )를 일삼고 중앙 정계의 붕당과 안 밖이 되어 당론에 급급하고 서원을 근 거로 천민을 토색( 討 索 )하는 악폐를 이루게 되니 흥선대원군( 興 宣 大 院 君 )이 서원에 일 대 수술정책을 써서 고종 2년(1865년)에는 가장 세력이 있던 청주 화양동( 華 陽 洞 )의 만동묘< 萬 東 廟 : 송시열의 남긴 명으로 건립, 명신종( 明 神 宗 ), 의종봉사( 毅 宗 奉 祀 )>를 사 천 교 육 사 123

30 제2장 사천교육의 발자취 철폐 하고 같은 해 첩설서원( 疊 設 書 院 )을 철파( 撤 罷 )하여 전국 679개소의 서원 중 47 개소만을 존치하고 사설을 엄금하였다. 대전회통( 大 典 會 通 )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외방( 外 方 )의 사원( 祠 院 )을 금지함을 범하고 청설하면 관찰사는 나처( 拿 處 )하고 수령은 3등율로 죄를 다스리고 수창( 首 倡 )한 유생은 멀리 귀양보낸다. 각도 사액서원에 조정에서 품하지 않고 자의로 배향한 자는 도신( 道 臣 )은 중추 ( 重 推 )하고 지방관은 파직하고 수창한 유생은 3년을 한정하여 과거를 정지한다. 각 도 각 읍의 영당( 影 堂 ) 정사( 精 舍 )도 명목을 달리 세운 자는 사원측에 의하여 감죄( 勘 罪 )하고 생사당( 生 祠 堂 )은 엄단한다. 서원에서 위전( 位 田 )을 청하여 본도에서 사사로이 여수( 與 受 )한 자는 엄중하게 죄를 다스린다. 사원( 祠 院 )을 첩설( 疊 設 ) 하거나 사설( 私 設 )을 금하며 위반할 때는 곧 부수어 없 애고 무거운 법으로 다스린다. 당시의 폐지되지 않고 남게 된 전국의 서원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서원명 사주( 祠 主 ) 소재지 비고 숭양( 崧 陽 ) 서원 충 공( 忠 公 ) 우현보 문충공( 文 忠 公 ) 정몽주 경기도 개성 용연( 龍 淵 ) 서원 문익공( 文 翼 公 ) 이덕향 경기도 포천 강한사( 江 漢 祠 ) 문정공( 文 正 公 ) 송시열 경기도 여주 노강( 鷺 江 ) 서원 문열공( 文 烈 公 ) 박태보 경기도 과천 우저( 牛 渚 ) 서원 문열공( 文 烈 公 ) 조 헌 경기도 김포 파산( 坡 山 ) 서원 문간공( 文 簡 公 ) 성 혼 경기도 파주 덕봉( 德 峯 ) 서원 문정공( 文 貞 公 ) 오두인 경기도 양성 현절사( 顯 節 祠 ) 문정공( 文 正 公 ) 김상헌 경기도 광주 심곡( 深 谷 ) 서원 문정공( 文 正 公 ) 조광조 경기도 용인 사충( 四 忠 ) 서원 충헌공( 忠 獻 公 ) 김창집 경기도 과천 충렬사( 忠 烈 祠 ) 문충공( 文 忠 公 ) 김삼용 경기도 강화 홍절사( 紅 切 祠 ) 장렬공( 莊 烈 公 ) 권 율 경기도 고양 돈암( 遯 岩 ) 서원 문원공( 文 元 公 ) 김장생 충청도 연산 124 사 천 교 육 사

31 제1절 우리 교육 약사 서원명 사주( 祠 主 ) 소재지 비고 충렬사( 忠 烈 祠 ) 충민공( 忠 愍 公 ) 임경업 충청도 충주 표충사( 表 忠 祠 ) 충민공( 忠 愍 公 ) 이봉상 충청도 청주 창렬사( 彰 烈 祠 ) 문정공( 文 貞 公 ) 윤 집 충청도 홍산 노강( 魯 江 ) 서원 문정공( 文 貞 公 ) 윤 황 충청도 노성 무성( 武 城 ) 서원 문창후( 文 昌 候 ) 최치원 전라도 태인 필암( 筆 岩 ) 서원 문정공( 文 正 公 ) 김인후 전라도 장성 포충사( 褒 忠 祠 ) 충렬공( 忠 烈 公 ) 고경명 전라도 광주 서악( 西 嶽 ) 서원 홍유후( 弘 儒 侯 ) 설 총 경상도 경주 소수( 紹 修 ) 서원 문성공( 文 成 公 ) 안 향 경상도 순흥 금오( 金 烏 ) 서원 충절공( 忠 節 公 ) 길 재 경상도 선산 도봉( 道 峯 ) 서원 문경공( 文 敬 公 ) 김굉필 경상도 현풍 남계( 藍 溪 ) 서원 문헌공( 文 獻 公 ) 정여창 경상도 함양 옥산( 玉 山 ) 서원 문원공( 文 元 公 ) 이언적 경상도 경주 도산( 陶 山 ) 서원 문순공( 文 純 公 ) 이 황 경상도 예산 흥안( 興 岸 ) 서원 문정공( 文 正 公 ) 손준길 경상도 상주 옥동( 玉 洞 ) 서원 익성공( 翼 成 公 ) 황 희 경상도 상주 충렬사( 忠 烈 祠 ) 충렬공( 忠 烈 公 ) 송상현 경상도 동래 충렬사( 忠 烈 祠 ) 충무공( 忠 武 公 ) 이순신 경상도 고성 포충사( 褒 忠 祠 ) 충강공( 忠 剛 公 ) 이술원 경상도 거창 창렬사( 彰 烈 祠 ) 문렬공( 文 烈 公 ) 김천일 경상도 진주 창렬( 彰 烈 ) 서원 충정공( 忠 正 公 ) 박팽년 강원도 영월 충렬( 忠 烈 ) 서원 충렬공( 忠 烈 公 ) 홍명기 강원도 금화 포충사( 褒 忠 祠 ) 충무공( 忠 武 公 ) 이순신 강원도 철원 청성묘( 淸 聖 廟 ) 청혜후( 淸 惠 候 ) 백 이 황해도 해주 태사사( 太 師 祠 ) 장절공( 壯 節 公 ) 신승겸 황해도 평산 문회( 文 會 ) 서원 문성공( 文 成 公 ) 이 이 황해도 백천 봉양( 鳳 陽 ) 서원 문순공( 文 純 公 ) 박세채 황해도 장연 노덕( 老 德 ) 서원 문충공( 文 忠 公 ) 이항복 함경도 북청 사 천 교 육 사 125

32 제2장 사천교육의 발자취 서원명 사주( 祠 主 ) 소재지 비고 삼충사( 三 忠 祠 ) 제갈량( 諸 葛 亮 ) 악 비 문천상( 文 天 祥 ) 악 비 평안도 영유 표절사( 表 節 祠 ) 충렬공( 忠 烈 公 ) 정 기 평안도 정주 무열사( 武 烈 祠 ) 석 성( 石 星 ) 이여송 평안도 평양 수충사( 酬 忠 祠 ) 정 허( 淸 虛 ) 휴 정 사명당( 泗 溟 堂 ) 유 정 평안도 영변 충민공( 忠 愍 公 ) 충장공( 忠 莊 公 ) 남이흥 평안도 안주 병산( 屛 山 ) 서원 문충공( 文 忠 公 ) 유성룡 경상도 안동 바) 서당( 書 堂 ) 서당( 書 堂 ) 교육은 고구려 때부터 있었던 민중 자제 교육기관이었던 경당(# 蓋 堂 )을 그 시초로 볼 수 있다. 글방으로도 불러진 서당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서 민 중들의 자제들을 위한 민간이 설립하고 운영한 사설 교육기관이었다. 조선시대에 와서 문치( 文 治 ) 주의적 국가 성격과 유교적인 교화에 의한 영향력으로 또한 과거를 지향하는 집념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겹쳐져서 웬만한 마을이면 서당이 있게 마련이었다. 서당교육의 처음 목적은 사학이나 향교, 혹은 후일에는 서원에서의 입학을 위한 준비 기관이었으나 실질적으로 지방의 청소년에게 한문의 독해력을 기르 고 유교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을 이해시키는데 적지 않은 공헌을 하였다. 그 설립은 기본 자산이나 인가를 요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누구나 뜻 있는 사람이 면 훈장 한 사람과 방 한 칸으로써 마음대로 설치할 수 있었다. 그 설립 운영의 형태는 다음과 같다. 훈장자영서당 : 훈장 스스로가 자신의 생계를 도모하기 위하거나 혹은 후진을 가르치려는 교육 취향으로 세운 서당 유지독영서당( 有 志 獨 營 書 堂 ) : 재정능력이 있는 사람이 자기 집의 자제 및 친척 의 자제를 교육시키기 위하여 훈장의 보수를 단독으로 부담하고 세운 서당이다. 때로는 친척이 아니라도 이웃 집 자제에게도 무료로 수업케 하였다. 유지합동서당( 有 志 合 同 書 堂 ) : 마을의 유지들이 합쳐서 훈장을 초빙하고 교실을 마련하여 자기들 자제에게만 교육시킨 서당이다. 촌락( 村 落 ) 합동서당 : 마을 전체가 마련했던 것으로 훈장을 모시고 마을 아이들 을 가르친 서당으로 동성( 同 姓 ) 마을에 흔했던 것이다. 126 사 천 교 육 사

33 제1절 우리 교육 약사 서당의 교육내용은 강독( 講 讀 : 읽기) 제술( 製 述 : 짓기) 습자( 習 字 : 쓰기) 세 가 지였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강독은 처음에 천자문으로부터 시작하여 동몽선습( 童 蒙 先 習 ) 통감( 通 鑑 ) 소학 ( 小 學 ) 사서( 四 書 ) 삼경( 三 經 ) 사기( 史 記 ) 당송문( 唐 宋 文 ) 및 당율( 唐 律 )로 올라갔다. 서 당에 따라서는 춘추( 春 秋 ) 예기( 禮 記 ) 근사록( 近 思 錄 )을 읽힌 곳도 있었다. 둘째, 제술은 일반적으로 오언절구( 五 言 絶 包 ) 사율( 四 律 ) 십팔구시( 十 八 句 詩 ) 작문 ( 作 文 ) 등을 가르쳤다. 셋째, 습자는 처음에 천자문, 동몽선습 등을 한자 한자씩 가르쳤다. 그 다음에 일장 ( 一 章 )의 대의( 大 意 )를 가르치며 다음 글자를 붙여 소리나게 읽는 것을 가르치고 다음 에 구두( 句 讀 )의 문리( 文 理 )를 가르쳐 마지막에는 학습자 스스로가 풀이하여 읽도록 했다. 특히 강독에 있어서는 학습자의 능력에 맞게 범위를 정하였으며, 종일 숙독시켜 훈 장과 학생은 그 읽는 수를 세었다. 숙독한 것은 다시 그 다음날 암송시켜 통한 후에야 그 다음을 공부케 했다. 이리하여 학생의 재질에 따라 우수한 자는 빨리 그 학업을 이 루었고, 둔한 자는 낙오되거나 늦게 도달했다. 위와 같이 서당이 비록 사설 교육기관이라고 해도 당시 민중 자제의 문자교육과 국 가문화인 유교적 교화에 끼친 영향은 막중했던 점으로 국가가 직접적으로 개입 후원 하지는 안했으나 이를 장려치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에 효종( 孝 宗 ) 10년(1659년) 에 제주( 祭 酒 ) 송준길( 宋 浚 吉 )에게 명하여 서당학규를 개정케 하니, 이것이 이른바 향 학지규( 鄕 學 之 規 )이다. 비록 조선시대의 서당이 자생적인 기초 교육기관이었으나, 국민 대중의 문자교육과 그 마을의 도덕적 예교적( 禮 敎 的 )인 고을 풍속을 이루고 순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음 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며, 한편 사회교화로서의 향약( 鄕 約 )을 비롯한 상휼( 相 恤 ) 등은 자체 교육의 습속형성에 있어서 서당이 차지한 비중은 가히 중심적이었다고 할 것이다. 특히 오늘에 와서 옛 서당의 훈장들이 행했던 사람과 사람간의 몸소 학문과 진리를 전하고 받고자 한 교육을 다시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스승이란 말이 도통( 道 統 ) 학문 ( 學 問 ) 은의( 恩 義 ) 인덕( 人 德 )등과 동의어가 되는 것도 여기에 있다. 교육은 본래 인격 과 인격이 부딪히는 만남 에서 이루어진다고 함은 오늘날이라고 해서 변함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기에 결국은 교육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서로가 아낌없 는 성실과 굳건한 신념과 소신으로서 학생과 교사가 대화하는 것이 어떠한 교육 방법 사 천 교 육 사 127

34 제2장 사천교육의 발자취 보다 몇 배의 살아 있는 성과를 부르게 된다. 교육은 결과적으로 인격과 인격의 만남 에서 인간적 성장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보면 서당 한 가지만 해도 우리에겐 오랜 우리 나름의 교육체제와 내용을 지녀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계성은 중국 이외의 문명권을 외면해 왔고, 교육내 용 역시 유교의 기정( 旣 定 ) 교과서만을 금과옥조( 金 科 玉 條 )로 삼아 왔다는 점이다. 시대의 변천에 맞는 사상적 전통이나 과학, 기술교육이 부진하게 되었음은 서당교 육이 지녔던 국민대중적인 교육적 열의를 발전적으로 승화시키지 못했던 아쉬움은 반 성해야 할 것이다. 사) 기술교육 조선시대 기술교육( 技 術 敎 育 )은 잡학( 雜 學 )이라 했다. 잡학은 천역잡사( 賤 役 雜 事 ) 라 하여 이에 종사하는 사람을 매우 천시( 賤 視 )하였다. 과학( 科 學 )의 발달은 기술의 향상을 뒷받침하였다. 조선 전기( 前 期 )의 과학은 천문 학( 天 文 學 ) 역학( 歷 學 ) 수학( 數 學 ) 농학( 農 學 ) 천체에 관한 관측, 기후 등 정밀한 관측 기의 제작 발명 등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자격루( 自 擊 漏 ), 행루( 行 漏 ), 앙부일구( 仰 釜 日 晷 ), 현주일구( 懸 珠 日 晷 ), 천평일구( 天 平 日 晷 ), 정남일구( 定 南 日 晷 ), 일성정시의( 日 星 定 時 儀 ), 혼의( 渾 儀 ), 간의( 簡 儀 ), 혼상 ( 渾 象 ) 등 천문기상 관측기 등이 그것이었다. 이들 가운데 자격루는 가장 정밀하고 정확한 것으로 세종 20년(1438년) 장영실( 張 英 實 )등이 왕명에 의하여 나무로 만든 물시계로 동자( 童 子 ) 인형같은 모양이다. 다음은 측우기의 발명인데 측우기는 세종 24년(1442년)에 측우에 관한 제도를 만 들어 중앙에는 서운관( 書 雲 觀 )에 쇠로 된 것을 설치하여 관원( 觀 員 )으로 하여금 우량 ( 雨 量 )의 깊고 낮음을 측량하여 기록하게 하였다. 이 밖에도 역학( 歷 學 ), 의학( 醫 學 ), 지리학( 地 理 學 )도 크게 발달하였다. 다음은 공장( 工 匠 ) 교육을 들 수 있다. 공장( 工 匠 )은 제조업에 종사하는 자로서 경공장( 京 工 匠 )과 외공장( 外 工 匠 )으로 구 분한다. 경공장은 공조( 工 曹 ) 및 봉상사( 奉 常 寺 ), 내의원( 內 秉 院 ), 상의원( 尙 衣 院 ), 군 기사( 軍 器 寺 )로 되어 있다. 또 직종으로는 능라장( 綾 羅 匠 ), 초립장( 草 笠 匠 )을 비롯한 98종이 있었다. 외장공은 지방관아에 소속된 공장( 工 匠 )으로서 지방별 직종정원을 규정하고 있다. 중앙, 지방의 공장은 명부를 만들어 공조( 工 曹 )나 도( 道 ) 또는 관에 비치하였다. 128 사 천 교 육 사

35 제1절 우리 교육 약사 2. 개화기 및 일제강점기의 교육 가. 개화기의 교육 이조 5백년의 오랜 쇄국정책도 국제조류에는 어쩔 수 없어 고종( 高 宗 ) 19년(1882 년)에는 구미 제국과 수호조약을 맺고 근대화 지식을 교육시키기 위하여 동문( 同 文 )학 교 육영공원( 育 英 公 院 )을 세워 자주적 실력을 갖추는데 노력하기 시작하였다. 1870년대에 외국과 수교관계를 맺고 문호를 개방하면서 개화사상이 싹텄다고 본 다. 이 결과로 외국의 새로운 제도와 기술을 도입하여 근대문화를 이룩하려는 움직임 이 활발해지고 근대식 학교교육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886년 정부가 미국인 교사 3명을 초빙하여 세운 육영공원( 育 英 公 院 )과 미국 선교사가 세운 배재학당( 培 材 學 堂 ) 이화학당( 梨 花 學 堂 )이 한국 최초의 근대식 학교였다. 국가가 제도로서 구교육을 청산하고 현대식 교육을 맞아들인 것은 갑오개혁의 이 듬해인 1895년의 일로 이 해에 관립 한성사법학교, 외국어학교 등이 설립되었으며, 상공학교 법관양성소 광무학교 육군유년학당 전무학당 등 실업계통 학교도 세워졌다. 그러나 1905년 일본과의 을사조약 체결로 교육의 주도권은 일본으로 넘어갔고 교육 관계 법령도 그들에 의해 개정 또는 제정되었다. 당시의 국가위기 의식은 교육구국사 상으로 전개되어 전국적으로 애국지사 또는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사립학교가 많이 나타났는데 배재학당을 비롯해서 경신학교 숭실중학 한국 최초의 여자교육기관인 정 신( 貞 信 )여학교 호수돈( 好 壽 敦 )학교 이화학당 등이 기독교 선교사 아펜셀라 와 원드 우드 등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1894년 갑오경장( 甲 午 更 張 )은 조선사회가 봉건적 전통을 탈피하고 근대 국가로서 의 체제를 향한 전환기였으며, 1896년 동학혁명과 함께 한국의 근대화를 위한 문화혁 명( 文 化 革 命 )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조선왕조의 과거제도가 철폐되고, 신분에 의한 교육의 제한이 없어지고 사부학당 향교 등의 교육기관이 교육적 기능을 정지시 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어 1895년 2월에 고종은 반상( 班 常 )을 떠나서 백년대계를 교육에 둔다고 하는 교육입국에 관한 조서( 詔 書 )를 내리게 되었다. 이를 요약하면 교육 없는 나라가 설 수 없고, 옛 사람의 찌꺼기만 쫓는 것이 교육이 아니오 교육의 실체는 덕육( 德 育 ) 체육( 體 育 ) 지육( 知 育 )에 있다는 새 교육의 대강령 세가지를 지적하고 교육입국의 큰 이상을 재차 강조 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정부는 1895년에 한성사범학교를 비롯하여 외국어학교 사범학교 의학 사 천 교 육 사 129

36 제2장 사천교육의 발자취 교 상공학교 등이 생기고 이어 같은 해 7월에는 처음으로 소학교령이 공포되어 초등 교육의 관제가 정하여져 만 8세로부터 15세에 이르는 아동으로서 수업연한은 5년, 고 등과 2 3년으로 규정하였다. 는 1899년 중학 관제를 공포하여 수업연한은 7년으로 하되 이를 심상과( 尋 常 科 )와 고등과( 高 等 科 )로 나누며 심상과는 4년, 고등과는 3년으로 하였다. 조선 총독 부 관보에 보면 관립보다 사립학교가 훨씬 많음을 볼 수 있다. 즉, 합방전인 1909년까 지 설립된 사립학교는 1,402교가 있었고, 종교계에서는 기독교가 666개교, 천주교가 46개교, 불교가 5개교, 기타 교가 48개교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부는 이 시기에 계속하여 모든 학교의 제도와 규칙을 공포하였는데 그 내용을 보 면 다음과 같다. <제 학교관제 및 규칙 공포 일람> 학교 관제 및 규칙 ㅇ한성사법학교 관제 ㅇ외국어학교 관제 ㅇ성균관 관제 ㅇ소학교령 ㅇ한성사법학교 규칙 ㅇ성균관 경학과 규칙 ㅇ소학교 규칙 대강 ㅇ보조공립 소학교 규칙 ㅇ의학교 관제 ㅇ 관제 ㅇ상공학교 관제 ㅇ외국어학교 관제 ㅇ농상공학교 관제 공포 연대 1985년 04월 16일 1985년 05월 10일 1985년 07월 02일 1985년 07월 19일 1985년 07월 23일 1985년 08월 09일 1985년 08월 12일 1986년 02월 20일 1986년 03월 24일 1986년 04월 04일 1986년 06월 24일 1900년 06월 27일 1904년 06월 08일 (자료 : 경남교육연감 92년판) 1904년 러 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한일의정서를 성립시켰고, 이듬해 을사 보호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 때 설치된 통감부는 식민지 교육의 기본정책을 수립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교육법령을 만들어 공포했다. 교육법령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130 사 천 교 육 사

37 제1절 우리 교육 약사 <통감부 교육법령> 교육법령 공포연도 법령구분 ㅇ사범학교령 ㅇ고등학교령 ㅇ외국어학교령 ㅇ보통학교령 ㅇ고등여학교령 ㅇ사립학교령 ㅇ사립학교 보조규정 ㅇ공립사립학교 인정규정 ㅇ교과용도서 검정규정 ㅇ실업학교령 ㅇ실업학교령 시행규칙 ㅇ고등여학교령 시행규칙 ㅇ사립학교령 시행규칙 ㅇ고등학교령 시행규칙 ㅇ외국어학교령 시행규칙 ㅇ보통학교령 시행규칙 1906년 1908년 1909년 칙령 41호 42호 43호 44호 22호 62호 학부령 14호 15호 칙령 학부령 통감부는 종전의 학제를 다시 고쳐 초급학년부터 일본어를 필수화시키고, 학교를 고등학교라 개칭하여 대학이나 전문교육기관과의 단계식 연결을 기할 수 없게 만들어 최종적인 완결교육이 되는 것으로 하였다. 전형적인 우민화( 愚 民 化 )정책을 펴나갔던 것이다. 나. 일제강점기의 교육 1) 일제교육정책( 日 帝 敎 育 政 策 ) 1910년 한일합방( 韓 日 合 邦 )과 함께 조선총독부가 설치되면서 본격적인 일제( 日 帝 ) 의 식민통치가 시작되었다. 일제는 한민족의 민족의식과 민족문화를 말살시키기 위하 여 한국사의 인식체계를 왜곡 조작하였고, 신문 잡지 등 언론매체를 폐지시켜 암흑 속 으로 몰아넣었으며, 수십만권의 배일( 排 日 ) 민족적인 출판물을 압수하여 태워 버리는 등 식민지 경영을 위한 가혹한 무단( 武 斷 ) 통치에 착수하였다. 그리하여 일제의 무단 통치는 신성한 학문의 보금자리인 학교에까지 뻗쳐 교직원 에게 금테를 두른 양복을 입히고 모자를 쓰게 하고 긴 칼을 차게 하였으니 청소년 학 생들은 칼을 차고 제복을 입은 교사의 모습에서 경찰이나 헌병을 연상하고 공포에 떨 게 하였다. 사 천 교 육 사 131

38 제2장 사천교육의 발자취 1911년에 발표된 조선교육령 은 민족의식을 말살하고 식민통치를 위한 기초적 일 본어 교육과 최소한의 기술교육만을 한국인에 허용하였으며, 과거의 전통적 기초 교육 기관이던 서당을 강력히 단속하여 90%가 넘는 학령( 學 齡 ) 아동을 문맹으로 묶어 놓았 다. 초대 총독 사내정의( 寺 內 正 毅 )는 교육에 대한 방침에 관해 담화를 발표하여 시세 ( 時 勢 )와 민도( 民 度 )에 맞는 교육 을 실시할 뜻을 발표한 뒤에 금후 조선 교육은 오로 지 유용한 지식과 온전한 덕성을 양성하여 제국신민( 帝 國 臣 民 )된 자질과 품성을 갖추 게 하는 것으로서 주안( 主 眼 )을 삼지 않으면 안 된다. 고 하였다. 일제의 한국인 교육방침이 충성스럽고 어진 제국신민을 기르는데 있음을 드러내 었다. 이 점은 새로 제정된 조선교육령 제2조와 제3조에 잘 나타나 있으니, 즉 제 2조 는 교육의 교육에 관한 칙어( 勅 語 )의 취지에 기초하여 충량( 忠 良 )한 국민을 양성함을 본의로 한다. 고 하였으며, 제3조는 교육은 시세( 時 勢 ) 및 민도에 적합하게 할 것을 기하여야 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저들이 이 나라를 병합하여 그 판도의 완전한 일부로 만들고 한국인을 동화( 同 化 ) 하여 철저한 일본인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식민정책의 근본이었던 만큼 밖으로는 무력으로서 한국인을 탄압하여 그 반항정신을 꺾고, 안으로는 교육을 수단으로 하여 민족의식을 빼앗고 문화를 말살하려는 정책은 일본의 입장으로 보아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며 노동력의 확보를 위하여 실업교육에 치중하였을 것이다. 2) 식민지 교육 일본은 한국통치 초기에 일시동인( 一 視 同 仁 ) 을 부르짖고 한국인을 천황( 天 皇 )의 적자( 赤 子 ) 라는 허울좋은 미명으로 선전하여 보통교육의 보급을 급선무로 한다는 방 침을 내세웠지만 실제에 있어서 병합이래 10년 동안의 학교 실적은 한마디로 식민지 화 교육 외에는 없었다. 1912년 학교실황( 實 況 )과 1919년 5월말 현재의 학교 실황을 비교하면 여러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일제의 호언과는 달리 이 기간에 학교의 수가 실제로 줄었다. 즉, 1912년에 1,717개였던 학교가 거의 10년에 달한 1919년에는 1,320개교로 줄 고 있다. 그러나 학생 수는 103,051명에서 131,973명으로 증가하였고 증가폭은 약 3 만 명으로 나타나고 있음은 교육에 대한 통치자의 성의 부족과 동시 한국인의 일본 통 치에 대한 불신의 표현이기도 하다. 교육에 대하여 일제의 성의 부족은 당시 일본인 교육 상황과 비교할 때, 즉 1919년 한국인 공립보통학교가 482개교인데 비해 일본인 132 사 천 교 육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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