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 소설의 인물의 욕망과 작가의식 연구 1930년대 풍자소설을 중심으로 Study of the desire of the characters in novel of Chae, Man-Sik and his consciousness - Centered in sati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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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사학위 청구논문 채만식 소설의 인물의 욕망과 작가의식 연구 1930년대 풍자소설을 중심으로 Study of the desire of the characters in novel of Chae, Man-Sik and his consciousness - Centered in satirical novels in thirties 국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국문학전공 이 경 수

2 채만식 소설의 인물의 욕망과 작가의식 연구 1930년대 풍자소설을 중심으로 Study of the desire of the characters in novel of Chae, Man-Sik and his consciousness - Centered in satirical novels in thirties 지도교수 주 종 연 이 논문을 석사학위 청구논문으로 제출함 2002년 월 일 국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국문학전공 이 경 수

3 이경수의 석사학위 청구논문을 인준함 2002년 월 일 심 사 위 원 장 심 사 위 원 심 사 위 원 印 印 印 국민대학교 대학원

4 目 次 Ⅰ. 서론 1 1. 연구사 검토 및 문제 제기 1 2. 연구 방법과 연구 범위 11 Ⅱ. 단편소설에 나타난 인텔리의 희망과 좌절 년대 식민지 교육 정책과 지식인의 개념 근대적 자본에서 소외당한 인텔리의 문제 21 (1) 무력한 지식인과 구조적 모순-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23 (2) 경제적 궁핍과 미래에 대한 암담한 모색- 명일( 明 日 ) 체제로부터 격리되고 억압받는 인텔리의 문제 45 (1) 사회와의 단절 혹은 불화의 문제- 치숙( 痴 叔 ) 45 (2) 보이지 않는 벽과의 싸움 또는 자기분열- 소망( 少 妄 ) 53 Ⅲ. 장편소설 탁류( 濁 流 ) 의 인물의 탐욕과 비극 탁류( 濁 流 ) 의 공간적 배경과 구성에 대한 접근 60 (1) 식민지 체제 하 도시빈민 문제 60 (2) 중심인물의 변환을 통한 이중 구조 인물의 형상화 양상 68 (1) 초봉의 인간적인 한계와 파멸 69 (2) 주도적 인물들의 성격과 영향관계 근대적 인물의 욕망 78 Ⅴ. 장편소설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의 인물의 굴절된 욕망과 타락 88 iv

5 1. 식민지적 현실에서 추( 醜 ) 의 의미와 초극의 문제 인물들의 욕망발현양상 93 (1) 윤직원의 속물적 욕망과 반근대적 가치 95 (2) 탐욕의 가계와 종학의 의미 102 Ⅴ. 결론 107 참고문헌 111 Abstract 117 v

6 Ⅰ. 서론 1. 연구사 검토 및 문제 제기 문학작품은 작가의 날카로운 현실인식을 통해 직, 간접적으로 당시의 시 대상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특히 정치적인 억압과 착취가 횡행( 橫 行 )하는 시대일수록 작가의 사상과 정서는 더욱 예리하게 현실을 비판하고 해부하 게 되는데, 그러한 결과물로서 문학작품은 독자에게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 으키게 되며 당대의 현실을 극명하게 반영한 작품일수록 그 여파가 당대 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생명력을 지니며 장기간 향유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후대의 독자에게도 그 작품의 사상적 파장이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 라, 문학 연구자에게는 문학작품이 지니는 예술적 효용과 더불어 그 작품 에 내재된 시대적 가치를 확인함으로써 창작배경과 함께 작가의 역사의식, 현실인식 등을 엿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봤을 때 일제 강점기 당시 식민지 라는 특수한 사회적 현실을 살 아온 작가들의 작품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고 실제로도 많은 연 구자들을 통해 다양한 논의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런 다양한 논의의 중심이 되는 여러 작가들 가운데 현실을 직시하고 지배 권력의 부 조리에 대하여 탁월한 풍자적 수법으로 비판을 가한 채만식의 문학정신은 다수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당대를 비롯하여 현재에 이르기 까지 단평들은 차치하고 크고 작은 논문 형식의 글들만 살펴봐도 그 개수 가 약 300여 편 가까이 이르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간 채만식에 대 한 논의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의 작업 은 양적으로 방대한 분량상 성과에도 불구하고 채만식이라는 한 작가가 한국문학사에서 가지는 위상을 확인하는 작업 이상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 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동안의 연구 성과들이 그의 문학사적 위치 를 확인하고 그의 문학이 가진 일반적인 특징을 정리하는 작업이었다면 이제는 그러한 논의들을 바탕으로 보다 진일보하고 심도 깊은 논의, 다양 1

7 한 방법론적 모색과 고민에 근거한 논의, 왜곡되고 그릇된 해석을 한 연구 를 바로잡는 논의들이 중점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채 만식 문학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제 시대 문학에 대한 그간의 선행 연구 이후 후대의 연구에 두루 남겨진 하나의 과제이다. 이것은 식민지의 잔재를 깨끗하게 청산하지 못한 현대사의 오류인 탓도 있으려니와 시간의 간극( 間 隙 )이 벌어질수록 역사적 사건을 일반화, 객관화 시켜 볼 수 있는 시 각의 폭이 넓어져 논의의 다양한 모색이 가능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런 다양한 논의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우선 그동안 이루어진 채만식 에 대한 선행연구부터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채만식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그를 추천한 춘원 이광수를 통해 이뤄졌 다. 1923년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처녀작 과도기( 過 渡 期 ) 1) 를 써 한성 도서출판사로 찾아가 출판을 의뢰했으나 좌절된 후, 다시 당시 동아일보사 편집부장이었던 이광수를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2) 그러나 이 작품은 출간 할 수 없게 되고 대신 세길로 가 1924년 朝 鮮 文 壇 12월호에 추천 받게 되는데, 여기서 이광수가 소설선후언( 小 說 選 後 言 ) 을 통해 언급한 평가는 채만식에 관한 최초의 평가가 되었다. 3) 이후 그의 등단 초기작 1) 채만식 당대에는 출간되지 못하고 文 學 思 想 1973년 8 9월호에 연재되었다. 이 작품 외에도 그의 유고 작품을 다수 확인할 수 있는데, 이를 발표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玉 娘 祠, 希 望, (장편) 아시아의 運 命, 野 談, (단편) 黃 金 怨, 現 代 文 學, (단편) 善 良 하고 싶던 날, 藥 業 新 聞, (단편) 上 京 半 世 紀, 新 思 潮, (단편) 少 年 은 자란다, 月 刊 文 學, (중편) 가죽버선, 文 學 思 想, (희곡) 生 命 의 遊 戱, 文 學 思 想, (단편) 不 傳 딱지, 文 學 思 想, (꽁트 1936년 여성 11월호에 발표되었으나 미완으로 재발표됨) 淸 流, 現 代 文 學, (장편 미완성) 無 藏 三 冬, 文 學 思 想, (시나리오) 2) 김홍기, 채만식 소설연구, 연세대 박사논문, 1989, 17쪽 3) 이광수는 여기서 세길로 의 장점으로 소재 선택의 무난함과 능숙한 심리 묘사 등을 들었고, 단점으로 작가의 객관적인 시각이 부족한 점과 작품 분량상 다소 사족이 있었 2

8 불효자식( 不 孝 子 息 ) 과 젖 4) 이 김동인, 방인근, 나도향 5) 등에게 심리 묘사나 서술기법에서 호평을 받으며 작가로서의 소양을 인정받기 시작한 다. 그러나 뒤이어 앙탈, 산동( 山 童 )이, 화물자동차( 貨 物 自 動 車 ),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등 일련의 작품들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이후 평가 역시 부정적 시각과 긍정적 시각으로 양분되는 양상을 보인다. 특히 그에게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는 평자들이 대부분 카프 계열에 속한 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와 카프 계열 문인 간의 불화가 부정적 평가의 한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6) 이는 이들 평가에서 확인할 수 있 는데, 우선 윤기정 7) 은 산동이 에 대해 이 작품에서 취할 점이라고는 부르주아 생활 중 한 부분인 음분( 淫 奔 ) 뿐이다 라며 개인적 분노에서 출발 하여 개인적 복수로 귀결되는 소극성을 지적하였고, 백철 8) 역시 화물자 동차( 貨 物 自 動 車 ) 에 대해 이 작품은 취재한 점으로 보나 표현의 점으로 보나 채씨의 작품으로서는 비교적 성공한 작품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 나 이것은 결코 일반 프롤레타리아 작품을 놓고 볼 때에 그것이 우수한 작 품의 하나란 말은 아니다 라고 언급하며 계급적 증오의 부재와 제재에 있 어 평면적이며 심각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하였다. 이상 평자들의 이러한 지 적은 주로 카프 계열 문학의 선전성, 사상성의 부재를 거론한 것으로, 작품 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자신의 추천작인 까닭에 주관적인 인상 비평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광수, 小 說 選 後 言, 朝 鮮 文 壇, 쪽 4) 이 작품은 원래 貧 第 一 章 第 二 課 라는 제목으로 新 東 亞, 에 연재됐 던 것을 이듬해 女 性, 에 젖 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발효한 것이다. 5) 朝 鮮 文 壇 合 評 會 第 6 回 7 月 創 作 小 說 總 評, 朝 鮮 文 壇, 쪽 6) 채만식과 카프 계열 문인들과의 대표적인 불화는 채만식과 이갑기의 논쟁으로 비롯된 동반자 작가 논쟁이라 할 수 있다. 채만식은 評 論 家 에 대한 作 者 로서의 不 服, 玄 人 君 과 카프에, 玄 人 君 의 蒙 을 啓 함 등의 평문(이상 蔡 萬 植 全 集 10, 창작 과 비평사, 1989 참조)을 통해 프로문학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그가 지향하는 성향 과 달리 조직에서 멀어지게 되는데, 이것이 양자의 지속적인 반목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7) 윤기정, 5월창작개평, 大 潮, 쪽 8) 백철, 文 壇 時 評 12 月 號 雜 誌 를 中 心 으로, 彗 星, 쪽 3

9 의 본질에 대한 평가 작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당대의 평가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세태소설( 世 態 小 說 ) 논쟁이었다. 세태소설이라는 명칭은 임화의 世 態 小 說 論 9) 에서 비롯되었는데, 여기 서 그는 세태소설을 일컬어 작가 자신의 본질이나 현실에 숨겨진 이면을 드러내지 않고 외부적 현실세계의 묘사에만 치중한 소설이라 정의하면서, 채만식의 탁류( 濁 流 ), 박태원의 천변풍경( 川 邊 風 景 ) 을 그 실례로 제 시하였다. 이어 김남천 10) 은 임화의 주장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세태소설 이란 외부적 현실의 단순한 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랄(moral) 이나 도덕 이 주체화되어야 하는 것이라 정의한 후, 탁류( 濁 流 ) 에서는 승재 와 계봉을 통하여 고도의 모랄이 이뤄지고 있으며,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에서는 윤직원이나 창식 등의 부정적 인물들을 통해 생활의 더러움( 醜 )이 묘출된다는 평가와 함께 채만식을 세태 풍속소설가 라 칭하였다. 이에 대 해 백철 11) 은 임화의 세태소설 이라는 용어가 채만식의 소설을 설명하는 데 있어 적합하지 않다고 피력하면서 세태 보다는 사태( 事 態 ) 라는 말로 고쳐야 이치에 맞다고 보았다. 임화와 김남천이 세태소설을 당대 사회적 현 실의 세태 즉 풍속이나 유행, 현상 등을 주제로 하여 단지 묘사에만 의존하는 소설로 정의한 것이라면, 백철은 채만식의 소설이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사 건이나 현상의 스케치 가 아닌 엄연히 원인과 결과가 존재하는 한 과정을 보 여준 것이므로 마땅히 사태소설로 보아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후 1950, 60년대에는 백철 12) 을 제외하고는 채만식에 관한 평가가 지 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김상선 13) 은, 1930년대 그의 9) 임화, 世 態 小 說 論, 東 亞 日 報, ) 김남천, 世 態 風 俗 描 寫 其 他, 批 判, ) 백철, 綜 合 文 學 의 建 設 과 長 篇 小 說 의 現 在 와 將 來, 照 光, 쪽 12) 백철은 채만식 당대에서부터 그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 비평가로써 앞서 언급한 평가 외에 그의 문체적 특징과 풍자의 성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향에서 연구업적을 남긴다. 백철, 朝 鮮 新 文 學 思 潮 史 下, 백양당, 1949 이 저서는 해방 뒤 개관이 추가되어 新 文 學 思 潮 史, 신구문화사, 1980로 재발간 된 다. 백철, 국문학 전사, 신구문화사, ) 김상선, 채만식 문학의 연구사 개관, 중앙대 인문학 연구, 12 13집,

10 문학에 관심을 보였던 김남천, 임화, 안함광 등이 월북하여 비평주류의 맥 이 끊겼고, 임종국의 親 日 文 學 論 의 여파 및 일체의 문단활동에 참여하 지 않았다는 것과 이 시기 문학연구자들의 관심이 1920년대 작가와 작품 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 등을 들었다. 그러나 채만식이 일체의 문단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물론 해방 전까지 카프에서 실질적인 활동상을 보여주지 않았고 카프 계열의 비평가들과 반목을 지면서 여러 지면을 통해서도 카프에 대 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긴 했지만, 해방 이후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 회>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이 통합되면서 1945년 12월 13일 발 족한 <조선문학가동맹>의 소설부 위원으로 채만식의 이름이 등재( 登 載 )되 어 있으며 이후 이기영, 한설야, 권환, 한효, 안함광, 이동규 등이 월북하자 채만식은 양주동, 염상섭, 박태원 등과 함께 중앙집행위원으로 임명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4) 물론 이것이 채만식의 자발적인 가입이었는 지, <조선문학가동맹> 집행부의 강권이었는지는 아직 확인된 바 없지만 개인의 성향이나 간접적인 의사 없이 중앙집행위원으로까지 임명되긴 어 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15) 이렇게 봤을 때 <조선문학가동맹>이 <조선공산 당>의 산하 조직인 점을 감안한다면 미군정과 좌우익의 이념적 대립이 고 착화된 5 60년대 대한민국 초기 정권에 의한 불안정한 시국이 채만식에 대 한 연구를 소극적으로 만든 한 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다. 또한 당시 친일 청산의 파급이 문학계에까지 일어 임종국의 親 日 文 學 論 16) 이 사회적으로 대두된 점은 일견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으 나, 제대로 된 청산이 이뤄지지 못하여 다수의 친일 작가들이 자신의 과오 는 철저하게 숨기고 외면한 채 문단에서 상당한 위상을 가지며 부상한 반 면 해방 이후 역로( 歷 路 ), 낙조( 落 照 ), 민족( 民 族 )의 죄인( 罪 人 ) 등 14) 권영민, 한국민족문학론 연구, 민음사, 1988, 380~398쪽 15) 다만 채만식 가입 당시 중도 성향을 보였던 <조선문학가동맹>이 차후 좌익성향을 분명히 하면서 결국 이념분쟁에 염증을 느낀 채만식이 1946년 이리시로 이사하게 되는 단초를 제 공했던 것으로 보인다. 윤한숙, 새 資 料 로 본 蔡 萬 植 의 生 涯, 文 學 思 想, , 334~335쪽 16) 임종국, 親 日 文 學 論, 평화출판사,

11 몇몇 작품들을 통해 자신의 친일사실을 밝히고 비록 자기합리화적인 면모 는 보일지언정 민족적 과오의 속죄를 꾀하고자 한 채만식이 이 시기에 논 외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당대에서 60년대까지는 채만식에 대한 연구가 초보적인 단평 수 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지만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그 연구의 폭 이 넓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배경으로 많은 논자들이 1970년 서 울에서 열린 제37차 국제 PEN 대회가 < 東 西 文 學 의 諧 謔 >이란 주제로 열 려 채만식 문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을 꼽고 있지만 그 대회 의 성과를 정리한 자료 17) 에서 채만식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찾긴 어려 웠다. 채만식이 갑자기 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국제 PEN 대회가 직접적인 이유라기 보다는 現 代 文 學 이나 月 刊 文 學, 文 學 思 想 등 문예 잡지를 중심으로 채만식의 유고 작품들이 발굴되어 지면에 소개 18) 되기 시 작했고, 그러한 문예잡지에 채만식을 다루는 기획기사들 19) 이 실리기 시작 했으며, 그와 함께 이재흥 20), 유준기 21), 강금숙 22), 이래수 23), 이주형 24), 17) 月 刊 文 學, 에 韓 國 文 學 과 諧 謔 이란 제목의 특집으로 해학문학에 대 해 다루었다. 수록된 글들을 살펴보면 곽종원, 韓 國 現 代 文 學 에 나타난 諧 謔 의 諸 樣 相, 218~222쪽 김동욱, 韓 國 文 學 에 있어서의 諧 謔, 223~229쪽 이주홍, 諧 謔 속의 韓 國 文 學, 230~237쪽 정인섭, 해학의 사상적 배경과 수사학, 238~245쪽 최일수, 우리의 익살과 西 歐 의 諷 刺, 246~253쪽 백 철, 諧 謔 의 이것과 저것, 254~256쪽 임동권, 興 夫 傳 과 여러 놀이들, 256~257쪽 남광우, 春 香 傳 의 數 章, 258~259쪽 김현승, 韓 國 現 代 詩 에 나타난 諧 謔, 260~261쪽 18) 각주 1번 참조. 19) 천이두, 現 實 과 小 說, 創 作 과 批 評, 1966 홍이섭, 蔡 萬 植 의 濁 流, 創 作 과 批 評 제27호, 1973, 58 72쪽 文 學 思 想 1973년 12월호에서 한국현대문학의 재정리 라는 제목의 기획물로 채만 식 문학에 대해 다루었다. 수록된 글들을 정리하면 홍기삼, 諷 刺 와 間 接 話 法, 쪽 천이두, 프로메테우스의 言 語 들, 쪽 정한숙, 狀 況 과 藝 術 의 一 體 性, 쪽 차범석, 現 實 透 視 의 또 다른 얼굴, 쪽 윤한숙, 새 資 料 로 본 蔡 萬 植 의 生 涯, 쪽 6

12 송하춘 25) 등 대학을 중심으로 채만식에 대한 연구가 일기 시작하는 등 복 합적인 이유에 의한 것이라 봐야 옳을 것이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연구 주제와 분량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남기 기 시작하는데, 그 중 본고의 연구 방향과 부합할 수 있는 연구를 중심으 로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면 첫째, 주로 풍자적 특징에 관심을 두는 서사 기법과 문체적 특징에 관한 연구, 둘째, 작중인물의 특성과 행위양상에 초 점을 두는 연구 등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아울러 논의의 성과는 아직 미흡 하지만 채만식의 문학에서 욕망의 발현 양상에 관심을 둔 연구도 찾아볼 수 있었다. 우선 첫째, 채만식의 문학을 풍자성에 두고 서사적 특징을 파악한 연 구 26) 는 그 연구의 분량이나 성과에서 뚜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천이 두는 채만식의 풍자적 성격에 쓰디쓴 웃음, 그 밑바닥에 노기( 怒 氣 )를 깔고 있는 웃음 이라 표현하면서 동시에 당시의 소설 문장의 컨벤션(convention) 을 대담하게 깨뜨리는데 성공하여 한국 신문학사상 최초로 풍자문학을 개 척하였다고 평가하였고, 정한숙은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를 풍자적 측면에 서, 탁류( 濁 流 ) 를 리얼리즘적 측면에서 검토하면서 태평천하( 太 平 天 20) 이재흥, 채만식론, 건국대 석사논문, ) 류준기, 채만식 소설에 나타난 풍자 및 해학성 연구, 고려대 석사논문, ) 강금숙, 한국풍자소설의 연구 채만식 작품을 중심으로, 이화여대 석사논문, ) 이래수, 蔡 萬 植 硏 究, 동국대 석사논문, ) 이주형, 蔡 萬 植 硏 究, 서울대 석사논문, ) 송하춘, 蔡 萬 植 硏 究, 고려대 석사논문, ) 신동욱, 한국현대문학론, 박영사, 1972 홍기삼, 앞의 글, 천이두, 앞의 글, ( 종합에의 의지, 일지사, 1974, 쪽에 재수록) 정한숙, 붕괴와 생성의 미학, 민족문화연구 6, 1972 ( 현대한국작가론, 고 려대 출판부, 1976에 재수록) 이주형, 1930년대 한국 장편소설 연구, 서울대 박사논문, 1984 ( 한국 근대소설 연구, 창작과 비평사, 1995에 재수록) 김충실, 채만식 소설 연구, 고려대 박사논문, 1994 윤영옥, 채만식 풍자소설의 서사기법 연구, 전북대 박사논문, 1998 외 다수 7

13 下 ) 의 풍자성이 작가의 강한 현실비판의식에서 비롯되었고 그 풍자가 붕 괴를 전제로 하여 형성되기 때문에 한층 리얼하게 그려진다고 보았으며, 이상이나 김유정의 작품과 견주어도 그 풍자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하였다. 특히 이주형은 1930년대 장편소설을 분석하면서 당대 장편소설 중 풍자 소설은 天 下 太 平 春 ( 太 平 天 下 ) 밖에 없고 단편소설로는 치숙( 痴 叔 ) 밖 에 없다고 단언하면서 채만식의 문학은 결벽성 짙은 자기비판을 통해 획 득된 부정정신 즉, 자기가 산 사회의 부정적 양상들에 대한 증언의 문학이 라 규정하였다. 최근에는 윤영옥이 풍자는 내용과 형식이 함께 관련되어 있으므로 이를 포괄할 수 있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풍자 적 효과를 유발하는 장치와 채만식 특유의 서사적 기법이 어떤 관련을 맺 고 있는가를 검토하였다. 두 번째로 작중인물에 관한 연구 27) 역시 활발하게 이뤄졌다. 정현기는 삼대( 三 代 ), 탁류( 濁 流 ),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세 작품의 인물들을 분석하면서 이 소설들이 일제라는 질곡을 총체적인 관념으로 파악하여 그 러한 환경적 조건을 전형화를 통해 이뤄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고 있으 며, 배봉기는 단편과 장편소설, 희곡 등 채만식 문학의 전반에 걸쳐 인물의 특성과 형상화되는 양상을 규명하면서 작중인물들이 외부적인 환경 특히 물질적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으며, 긍정적 인물들이 패배와 좌절을 겪는 반면 부정적 인물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거나 현실에 적응하는 양상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인물의 형상화 측면에서 볼 때 내포작가의 개입이 두 드러지고 양식과 장르가 혼합되어 나타나는 점 등도 지적하였다. 인물 연 구에 있어 조남현을 필두로 박미경, 전범진 등은 특히 지식인에 대한 관심 을 보였다. 28) 이중 조남현은 1920년대에서 30년대로 접어들어 지식인 소 27) 장양수, 蔡 萬 植 諷 刺 小 說 의 人 物 考, 동아대국어국문학 4, , 쪽 정현기, 三 代, 濁 流, 太 平 天 下 의 소설세계에 나타난 인물연구, 연세대 박사논문, 1981 김춘택, 채만식 소설의 인물연구, 성균관대 석사논문, 1983 배봉기, 채만식문학의 인물의 특성과 형상화에 대한 연구, 연세대 박사논문, 1981 조영미, 채만식 소설의 인물연구, 홍익어문 15, , 쪽 28) 조남현, 일제하의 지식인 문학, 평민사,

14 설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일제치하에서의 한국 지식인의 소외현상을, 지 식인이 당면한 궁핍화의 문제에서 비롯된 여러 부정적 현상들을 반영하려 한 소설에서 실감나게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사소설적 경향이 짙어지면서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여기서 채만식의 문학을 전근대적 폭력과 강요에서 비롯된 가부장적, 남성적 욕망 이라는 측면에서 접근을 시도한 연구 29) 도 미약하지만 타 주 제의 연관성으로 인한 간단한 언급으로나마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우찬 제는 탁류( 濁 流 ) 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지배적인 욕망체계 안에 존재하 는 인물들과 체계에 진입하지 못하고 겉을 떠도는 인물들, 그리고 새로운 욕망체계를 형성하는 인물들로 삼분하여 초봉이 지배적인 욕망체계에 들 지도 못하고 새로운 욕망체계를 구성하지도 못한 채 좌절하는 데서 탁류 의 비극성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30) 이후 논의들은 르네 지라르의 욕망 의 삼각형을 원용하여 접근을 시도한 바 있으나 단평 수준의 언급에 불과 하였고 최근에 이르러 방민호가 젖, 생명( 生 命 ) 정거장( 停 車 場 ) 근 처( 近 處 ) 등을 욕망의 중개(mediation of desire=본고의 간접화 현상 )로 다룸으 로써 채만식의 문학에서 인물들의 욕망이 결코 간과될 수 없을 부분이며 좀 더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채만식 문학에 대한 선행 연구를 검토해 보았다. 위의 분류 는 다소 임의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각 연구들의 주된 흐름과도 상통하는 한국 현대소설에 나타난 지식인상 연구, 서울대 박사논문, 1983 박미경, 채만식 소설의 지식인상 연구, 성균관대 석사논문, 1986 전범진, 지식인 인물의 유형과 권력의 상관성 연구, 고려대 석사논문, ) 우찬제, 현대장편소설의 욕망시학적 연구, 서강대 박사논문, 1992 이승진, 채만식 장편소설 연구, 강원대 석사논문, 1993 조영미, 채만식 소설의 인물연구, 홍익어문 15, 1996, 169~187쪽 황국명, 채만식 소설연구, 태학사, 1998 방민호, 채만식 문학에 나타난 식민지적 현실 대응 양상, 서울대 박사논문, 2000 ( 채만식과 조선적 근대문학의 구상, 소명출판, 2001으로 재출간) 30) 우찬제의 연구가 채만식 작품에서 인물의 욕망에 대한 최초의 구체적인 언급으로 보 여진다. 물론 이전 논의 중 인물론에서 욕망의 문제를 거론하긴 했지만 일반적인 용어 로서의 욕망 일 뿐 구체적인 접근을 보여주진 못했었다. 그런 점에서 우찬제의 연구는 채만식 문학에서 욕망에 대한 관심 이라는 시각 형성에 상당한 역할을 한 셈이다. 9

15 부분이 있으며, 개별 연구들이 이룬 성과와 가치를 통해 채만식 문학의 현 주소를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아울러 기존 연구가 안고 있는 한계와 문제 점 역시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그동안 채만식 문학에 대한 연구들이 그의 문학적 특징 중 단지 일 면만을 중심으로 파고들면서 편향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명확한 연구 목적을 가지고 문학적 특질을 파악하려 노력하는 것과는 다 른 의미로써, 단적으로 설명하자면 내용과 형식의 불균형성이라 할 수 있 다. 즉, 기존 연구의 대부분은 내용의 영역에 해당하는 작가의식이나 현실 인식, 사회비판적 주제를 다룰 경우 형식에 해당하는 미적, 구조적 특징을 간과하게 되는 경향이 강했고 이와 반대로 미적, 구조적 특징을 중심으로 파악한 연구의 경우 연구 내용에 따라 작가의식이나 현실인식이 변용 되 거나 배제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던 것이다. 뒤에서 다시 거론하겠지만 연구범위의 문제 역시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 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남긴 작품이 15편의 중 장편 소설, 70여 편 의 단편, 30여 편의 희곡 촌극 대화소설 시나리오 방송극, 40여 편의 문학평론, 140여 편의 수필 및 잡문 등 시를 제외한 전 장르에 걸친 방대 한 양이다. 31) 이처럼 많은 작품으로 인해 기존 연구들은 아예 채만식의 전 작품을 대상으로 하거나, 또는 지극히 특정 작품을 대상으로 한 경우, 그리 고 소설과 회곡 등 장르를 명확히 구분하여 대상을 선정한 연구 등으로 나 눠볼 수 있다. 여기서 발생하는 의문점은 과연 채만식의 전작( 全 作 )을 대상 으로 삼은 연구가 얼마나 그 효용적 가치를 발휘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논의 대상이 너무 방만한 경우 개략적( 槪 略 的 )이고 기초적 언급에 불과한 내용설명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즉, 많은 작품들 중 수준 미달의 작품들까지 채만식의 작가의식이나 미적 특질을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가 에 대한 검토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몇몇 작품을 대상으로 연구를 시도할 경우 그에 따른 편향성과 불 균형성을 초래할 위험이 있는 것도 사실이며, 선행 연구에서도 그와 같은 허점이 자주 노출되면서 논의의 타당성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 31) 이주형, 蔡 萬 植 의 生 涯 와 作 品 世 界, 蔡 萬 植 全 集 10, 창작과비평사, 1989, 618 쪽 10

16 나 그것은 앞서 지적했듯이 내용과 형식을 고루 살펴보는 일관되고 균형 있는 시각의 형성, 대상 외 작품과의 문학적 관계를 지속적으로 살핌으로 써 한정된 텍스트로서의 한계를 탈피하려는 작업 등이 병행되면 충분히 보완될 수 있다고 본다. 2. 연구 방법과 연구 범위 근래까지 소설에서의 등장인물은 그 행위 영역이 플롯의 토대 내에서만 존재하고 그들의 사고와 철학 역시 플롯의 지배를 받는다는 입장이 강했 다. 즉 인물들의 행위나 사고의 양상이 플롯의 기능적인 요소로 이해되고 있었던 것이다. 인물의 유형에 대한 구분에 있어서도 평면적 인물과 입체 적 인물 32) 로 분류하여 인물을 지나치게 전형화 시킴은 물론 마치 인물이 플롯의 하위개념인 양 다뤄지고 있었다. 이는 인물이 외부적인 영향이나 내적, 심리적 사고에 영향을 받아 형성되는 인물의 성향을 고려하지 않은 방법으로 오직 소설 내에서만 인물을 파악하려 한데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허구성을 전제로 하는 소설에서 등장인물을 작품 외부로 끌 어내 마치 살아있는 인물처럼 다루는 것 역시 문제가 있지만, 소설 내 이 러한 허구성 역시 현실에 대한 모방에서 비롯된 것임을 감안할 때 인물을 그저 언어로 짜여진 하나의 창조물 정도로 보는 시각은 다소 문제가 있다. 소설 내에서 인물은 다양한 욕망에 의해 다른 인물과 다양한 관계를 형성 하고 있으며 그런 관계가 소설에서 플롯을 구성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 다. 여기서 욕망은 결핍을 전제로 실현을 지향하는 내적인 힘으로써 소설에 서 인물의 행위 및 사건전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면서 스토리를 발생시 키고 진전시키는 역할을 한다. 구체적으로 작중인물의 욕망은 그것을 결정 하는 작가의 욕망, 시대의 욕망(사회의 지배적인 욕망)과 서로 결합하여 서사 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며, 다시 그것은 독서 과정에서 독자의 32) E. M. Forster, 이성호 역, 소설의 이해, 문예출판사, 1975, 77쪽 11

17 욕망과 결합한다. 이러한 여러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욕망은 작게는 서사 단락의 사건을 진행시키고, 크게는 플롯, 서술태도 등의 소설 전체의 구조 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욕망을 잣대로 소설을 분석하는 것은 소 설의 구조와 형식, 내용을 포괄할 수 있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33) 본고는 르네 지라르의 욕망 이론을 중심으로 채만식의 풍자소설의 인물 들의 욕망을 살펴보려 한다. 물론 그의 대부분 작품들이 일제 시대에 쓰여 졌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인물 심리의 기민( 機 敏 )함은 현대소설에 뒤지지 않 을 뿐만 아니라, 그의 풍자성은 대상을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수법으로 비 판하면서 식민지적 상황을 전면 부정하고 체제에 불응하는 자세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욕망의 대상이 시대적 제약을 받는 상황에서 인물이 자신 의 욕망과 이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들의 행위양상이 달라질 수 있 다는 점과 관련이 있는데, 주체적으로 새로운 욕망의 대상을 선정하거나, 새로운 가치 창출 없이 타자의 욕망을 모방하고 경쟁하면서 타락과 파멸 의 길로 접어드는 욕망의 여러 발현과정을 통해 채만식 소설의 특징에 보 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고 보았다. 르네 지라르의 소설분석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삼각형의 욕망([프]désir triangulaire) 은 그의 첫 저서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34) 에서 처음 다뤄졌다. 그는 이 저서에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스탈당의 적과 흑,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와 도스트예프스키의 여러 소설을 예로 들면서, 주인공들의 욕망이, 스스로 그렇게 여기고 있는 자발 적 욕망([프]désir volontaire)이라는 환상을 깨고 비자발적 욕망([프]désir 33) 엄미옥, 김유정 소설의 욕망과 서술상황 연구, 이화여대 석사논문, 1998, 6 7쪽 34) 국내에는 김윤식에 의해 소설의 이론 이란 제목으로 처음 출판된 후 근래에 김치 수, 송의경에 의해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이란 원래의 제목을 가지고 다시 출 판되었다. 김윤식의 소설의 이론 은 영역본( Deceit, Desire and the Novel Self and Other in Literary Structure )을 번역한 것으로 총 12장 중 6, 7, 9, 10장 은 내용의 중복을 이유로 제외하고 여덟 장만 옮겼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원문(프랑 스어본 Mensonge romantque et vérité romanesqus )을 충실히 번역하여 제외된 부분이 없는 김치수 송의경 역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을 중심으로 이론을 서 술하겠다. 르네 지라르, 김윤식 역, 소설의 이론, 삼영사, 1977 르네 지라르, 김치수 송의경 역,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한길사,

18 involontaire)이란 것을 밝혀 내고 있다. 35) 이것은 소설에서 주체([프]sujet)와 그가 갈구하는 대상([프]objet)에 대한 욕망이 간단한 직선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그 욕망 역시 지극히 자연발생적이라고 봤을 때 주체에게 열정을 불 러 일으킨 대상을 통해서 주체의 욕망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 의 경우 대상에게서 충분한 욕망의 근거를 찾긴 어렵다. 이와 반대로 욕망 하는 주체 역시 대상과의 관계만으로 욕망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지라르는 주체와 대상을 잇는 직선이 본질적인 것은 아니라고 보고, 주체의 욕망을 자극하고 아울러 욕망의 대상까지 제 시하는 삼자를 생각하게 된다. 즉 주체와 대상, 양 항에 동시에 선을 긋고 삼각형의 관계를 형성하는 중개자([프]médiateur) 가 주체에게 욕망을 암시 하는 것이며, 여기서 발생하는 욕망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닌 비자발적 욕망이 되는 것이다. 36) 이것은 주체가 가지는 대상에 대한 욕망이 중개자의 욕망을 모방함으로 써 생성된다는 의미이며 따라서 주체의 욕망은 중개자에 의해 간접화 되 고 있고, 주체와 대상 사이에는 간접화 현상([프]médiation)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지라르는 돈키호테 나 보바리 부인 에서처럼 주체와 중개자 사이에 경쟁관계가 없는 것을 외면적 간접화([프]médiation externe)라 하고 적과 흑 의 읍장 레날과 발르노의 관계처럼 주체와 중개자 사이 에 경쟁관계가 있는 것을 내면적 간접화([프]médiation interne)라고 하였 다. 37) 즉 외면적 간접화에 해당하는 돈키호테의 경우 그에게 욕망의 중개 자가 되고 있는 아마디스는 책에 나오는 기사의 이름이며 돈키호테 자신 이 그를 동경하여 그 기사의 행위를 모방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을 뿐더러 돈키호테와 아마디스는 현실적으로 만날 수 없는 먼 거리를 형성하고 있 는 것이다. 반면, 내면적 간접화에 해당하는 레날의 경우 발르노를 경쟁의 35) 김진식, 르네 지라르의 욕망 모방과 소설적 진실, 울산대학교 연구논문집 20, 1989, 108쪽 36) 이것을 가리켜 지라르는 <삼각형의 욕망 désir triangulaire>, <중개된 욕망 désir médiattisé>, <모방된 욕망 désir imité>이라 명명한다. René Girard, Mensonge romantque et vérité romanesqus, 16~23쪽(김진식, 앞의 글, 1989, 108쪽 재인용) 37) 김치수, 르네 지라르의 삼각형의 욕망, 앞의 책, 2001, 23 28쪽 13

19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자신이 그를 모방하여 욕망이 형성되는 것은 부정하고 있다. 즉 레날은 자신의 욕망이 지극히 자연발생적인 것으로 보 여지길 바라고 있다. 또한 레날과 발르노의 경쟁관계가 증명하듯 이들의 거리는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가까운 위치에 있는 것이다. 이처럼 외면적 간접화의 경우 주체와 중개자의 거리가 멀고 상호 경쟁적 위치에 놓여있지 않기 때문에 별반 문제될 것이 없지만 내면적 간접화의 경우에는 그 양상이 복잡해진다. 내면적 간접화에서 주체는 중개자의 욕망 에 자극을 받아 모방하게 되므로 동일한 대상을 욕망하게 되는 경쟁관계 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주체는 자신의 모방을 감추고 자발적인 욕망으로 간주되길 원하면서 중개자를 욕망의 방해자로 인식하게 된다. 즉 이렇게 발생한 적대감은 증오와 원한, 선망과 질투의 형태로 드러나게 되 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이러한 내면적 간접화가 주체에 의해 부정 되고 각 개인의 차이점들이 줄어들게 되면서 모방적 욕망의 식별이 어려 워졌다고 지라르는 진술하고 있다. 38) 또한 현대인의 모방적 욕망은 스탕달의 작품에서는 허영 이요, 플로베 르의 작품에서는 보바리즘, 그리고 프루스트의 작품에서는 속물주의 로 나타난다. 속물이란 스스로의 판단과 의지를 갖지 못하고 늘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남의 의견을 추종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특히 그는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의 견해를 무비판적으로 따르고 명사들의 집단에 끼지 못하 면 불안해한다. 예를 들어 프루스트의 주인공 마르셀은 자신이 별로 좋지 않았다고 생각한 여배우의 연기를 유명한 비평가가 극찬하자 자신의 생각 을 바꾼다. 39) 이처럼 현대인은 욕망이 자연발생적이라 믿고 있으며 욕망 의 자율성([프]autonomie)에 의해 자신의 의지가 움직인다고 믿으려 하지만, 결국 주체적인 욕망을 생산해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타인에 의해 욕망된 38) 오직 소설가들만이 욕망의 모방적 성격을 드러내준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성질을 지 각하기가 어려운데, 가장 열렬한 모방이 가장 완강하게 부인되기 때문이다. 중략 낭만적인 혐오감, 사회에 대한 증오심, 고독에 대한 향수, 이 모두가 부화뇌동성과 만 찬가지로 타인에 대한 병적인 관심을 은폐하고 있을 따름이다. 르네 지라르, 앞의 책, 56 57쪽 39) 권택영, 영화와 소설 속의 욕망이론, 민음사, 1995, 165쪽 14

20 대상을 좆아 자신의 욕망의 대상으로 삼아야 안도할 수 있는, 즉 타인(중개 자)이 욕망하는 것만을 욕망할 수 있는 유행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 사이의 차이가 없어진다는 것은 욕망 주체와 중개자 사이의 거리가 더 가까워진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욕망 주체와 너무 가까운 사 이라 온갖 갈등을 빚는 내면적 간접화의 중개자를 지라르는 특별히 짝패 ([프]double)라고 부르고 있다. 이 표현은 각 개인 사이의 변별적인 차이가 점점 줄어들어 욕망주체와 중개자 사이가 쌍둥이와 같이 되어버린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의 모든 욕망에서 만나게 되는 자신과 너무나 유사 한, 그래서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경쟁자에 대한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인간 욕망의 대상이 거의 대동소이한, 다시 말해 무차별 상태에 가까운 상 황에서는 결국 인간은 서로 상대방에 대한 악마와도 같은 짝패인 셈이 다. 40) 본고에서는 이상과 같은 지라르의 욕망이론을 원용하여 1930년대 채만 식의 풍자소설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 시기에 채만식은 식민지적 억압과 착취가 횡행하던 시대적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독특한 풍자적 기법과 문 체를 통해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인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역 시 유형의 다양한 군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 본고에서는 크게 두 가지 양 상으로 구분되는 주인공을 살펴보려 한다. 우선 일제가 제시하는 식민지적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의 형태를 띠려 하지만, 주체적으로 과감하게 의지(욕망)를 세우지 못하는 인텔리를 들 수 있는데, 이들 욕망의 주체들이 시대적 현실에 막혀 스스로 욕망을 드러내지 못하고 아울러 모방할 대상 조차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의 그들의 대응방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두 번 째는 부정적 인물로 분류되는 인물들로 속물근성에 젖어 개인의 물욕, 성 욕에만 집착하는 욕망의 주체를 살핌으로써 그들의 욕망과 근대성과의 관 련여부, 그들의 모방적 욕망의 형성과 그 성격에 대해 파악해 보려 한다. 연구범위 역시 1930년대 창작된 소설 중 일부 풍자소설로 한정하기로 하였다. 여기서 한 작가의 총체적인 작품을 다루느냐, 특징적인 개별 작품 을 선별하여 다루느냐는 연구자가 다루려는 연구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40) 김진식, 앞의 글, 1989, 112쪽 15

21 있다고 본다. 앞서 언급한대로 채만식의 전 작품을 대상으로 총체적인 연 구가 이뤄질 경우 연구대상의 방만함으로 인해 개략적인 내용해설이나 인 물설명의 차원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고, 개별 작품을 선별하여 다룰 경 우 소설이나 희곡 등 장르적 특징을 무시하고 그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만으로 작가의식이나 창작방법, 세계관 등을 결정짓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지만 이것은 양자 나름대로 연구주제에 걸맞게 취사선택 되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채만식의 전 작품을 대상 으로 삼기보다 그의 작가적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30년대의 풍자소설 중 일부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41) 2장에서는 그의 대표적 단편으로 거론되는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명일( 明 日 ), 치숙( 痴 叔 ), 소망( 少 妄 ) 등 네 편의 소설에서 식민지 하 지식인이라는 신분이 어떤 사회적 욕망을 품게 하고 그들의 욕망이 어 떻게 실현되어 가는가를 검토해 볼 것이다. 개별 작품별로 지식인의 성격 과 그들이 처한 상황을 살펴보고 그들의 욕망을 규명해 보려 한다. 또한 소설의 세계는 작가의 욕망에 따라 변형된 세계 42) 이라는 인식 아래 작가 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러한 작품들을 창작하였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 려 한다. 3장에서는 장편 탁류( 濁 流 ) 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장편이라는 분량 적 특성상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등장하는 점을 감안하여 작품배경과 작중 41) 본고가 대상으로 한 작품들을 발표시기별로 정리하면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新 東 亞, 명일( 明 日 ), 朝 光, 탁류( 濁 流 ), 朝 鮮 日 報, 천하태평춘( 天 下 太 平 春 ), 朝 光, 치숙( 痴 叔 ), 東 亞 日 報, 소망( 少 妄 ), 朝 光, 과 같다. 본고에서는 텍스트의 현대적 변용 가능성을 우려하여 될 수 있으면 최초 발표 지면의 원문을 활용하려 하였으나 일간지에 연재된 탁류( 濁 流 ) 나 치숙( 痴 叔 ) 의 경우 해당 신문사의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아 글자를 제대로 판독하기가 어려웠다. 그러 므로 이 두 작품은 최초 발표지면의 원문을 중심으로 하되 창작과 비평사에서 펴낸 蔡 萬 植 全 集 (1989) 을 참고 텍스트로 활용하겠다. 42) 김현, 전체에 대한 통찰, 나남, 1990, 379쪽 16

22 인물에 대해 알아보고 그들이 어떤 욕망관계를 가지고 얽혀 있는지에 대 해서도 검토해 보려 한다. 4장에서는 장편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이 역시 3 장의 탁류와 같은 양상으로 작품들을 검토하고자 하는데 특히 철저하게 탐욕적인 인간들 속에서 드러나는 현실의 추( 醜 )의 문제에 대해 접근해 보 고자 한다. 이상과 같이 본고에서는 1930년대 채만식의 작품들 중 네 편 의 단편소설과 두 편의 장편소설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작중인물의 욕망관 계와 실현 양상을 규명해 보려 하는 것이다. 17

23 Ⅱ. 단편소설에 나타난 인텔리의 희망과 좌절 년대 식민지 교육 정책과 지식인의 개념 1931년 9월에 일어난 만주사변은 일제가 문화정치 를 마감하고 다시 야만적이며 노골적인 탄압과 수탈이 다시 재개되는 결정적 원인이 된다. 만주사변은 일본제국주의가 오랫동안 꿈꾸어온, 중국본토에 대한 대대적 인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일제는 만 주침략을 계기로 민족말살정책을 강화하는 한편 병참기지화정책에 부합되 도록 식민지 수탈정책의 재전환을 강행하였고, 그 수법도 한층 악랄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일본은 군사력과 경찰력을 증강하는 한편, 철저한 사상 통제체제를 갖춰 조선사상범 보호관찰령(1936) 을 실시하여 지식인을 감 시하게 하였다. 또한 1936년 동아일보의 무기정간을 필두로 황민화 라는 슬로건 하에 한민족말살정책을 강행하여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에 이른다. 이와 함께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기지화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의 공업화정책을 적극 추진하며 또한 1937년 본격적인 중국침략 개시 이후 전시체제에 돌입하면서 식량의 수요가 증대하자 1934년 중단되었던 산미 증식이 장려되는 한편, 쌀의 배급제도 및 공출제도가 강압적으로 실시되었 다. 이와 같이 수탈이 강화될수록 총독부의 미곡통제책의 혜택이나 구제금 융정책의 배려를 받는 소수의 대지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중소지주 자작 농 소작농들은 몰락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1) 이렇듯 1930년대는 노골적으로 추진되는 일제의 황민화 정책으로 인해 사회 전반이 사상적, 정치적 통제를 받던 시기로 문학 역시 그들의 통제에 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특히 당시 총독 우가키 카즈시게의 내선융화 정 책은 사회 지도층 인사 및 유력 문학인들의 협조를 강력하게 요구함으로 써, 결국 문학도 그들의 강압에 굴복하거나 역사와 민족적 현실을 외면 또 1) 유성희 박은경,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정책의 특징과 전개과정, 용인대인문사회과학 연구 제1호, 1998, 쪽 18

24 는 우회적으로 다루게 되는 등 자유로운 문학 활동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1930년대에는 지식인을 작중인물로 하는 소설 2) 이 급증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그 이유로는 일제에 의해 소재 선택의 제한을 받던 작가 들이 자신들과 주변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기 시작했고, 기만적인 식민지 교육정책으로 인해 급격히 증가한 지식인이 사회 일원으로써 자리매김할 위치를 찾지 못함으로써 그들의 실직과 빈곤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 점 등을 들 수 있다. 당시의 교육정책을 살펴보면 1932년 농촌진흥운동과 관련하여 식민지 교육 역시 확산됨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농촌진흥운동이 1940년 12월까 지 계속된 관제농민운동으로 30년대 일제식민지통치에 있어서 가장 핵심 적인 정책이었으므로 이 시기의 식민지교육정책도 농촌진흥운동의 범주 속에서 수립되고 실행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제1, 2차 초등교육확충계 획을 통한 공립보통학교의 증설은 한국인아동의 취학률을 높힌다는 명목 하에서 식민지교육체제내로 유인함과 동시에 초보적인 직업교육과 일본어 교육을 집중적으로 실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1930년대 농촌진 흥운동 하의 식민지 교육은 궁극적으로 식민지 한국사회에 대한 경제적 수탈을 강화하고, 사회주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결과적으로 는 193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던 일제의 대륙침략전쟁에 필요한 인적, 물 적 자원을 양성하는 기능을 하였고 3) 아울러 조선인의 정신을 잠식해 들어 감으로써 민족정체성을 붕괴하고 황국신민 이라는 미명 하에 일제의 조선 통치를 완전 고착화시킬 의도를 품었던 것이다. 이렇듯 사회 전반에 걸쳐 불안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채만식은 그의 문 학적 전성기로 불릴 만큼 많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더구나 당대의 많은 작 가들이 일제의 정치적 탄압과 수탈로 인해 피폐해 가는 현실에 절망한 나 머지 문학적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는 경향이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2) 채만식 외에 소설에서 지식인을 주요 인물로 등장시킨 작가로는 김광주( 남경로의 창 공 ), 김남천( 제퇴선 ),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유진오( 행로, 김강 사와 T교수 ), 이태준( 고향, 어떤 날 새벽 ) 등이 있다. 3) 유용식, 1930년대 식민지교육의 확산과 그 성격, 국제여성연구소 연구논총 제6 권 제1호, , 쪽 19

25 일제치하의 비참한 민족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제도적 부조리와 개인의 비인간적, 비윤리적 행위에 대하여 풍자라는 독특한 수법을 이용하여 작품 화시키려 했던 채만식의 비판정신은 그를 30년대 대표적 작가 중 한 명으 로 자리매김하는데 결정적 구실을 한다. 논의에 앞서 이 장에서 다루는 지식인 의 개념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필 요하다고 본다. 이에 대해 조남현 4) 은 지식인의 본질이나 그들 계층 특유 의 문제와 관련한 소설을 묶어 지식인 소설 이라는 개념으로 다룬 바 있 으나 지식인 지시하는 범위가 아주 넓고 또 지식인은 다양한 직업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기에 지식인의 본질, 성격, 삶의 방식을 일률적으로 해 명하긴 어렵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 이은자 5) 는 보다 명확한 방법으로 지 식인의 개념을 제시하는데, 지식인의 규정에 있어 이데올로기의 창출과 같 은 정신활동 및 두뇌적 자질 등 지식인에게 내재해 있는 속성을 기준으로 삼을 것이냐, 아니면 교육 수준의 정도나 직업의 형태 등 구체적 자료로 나타나는 외형적 요인에 따라 기준을 삼을 것이냐의 문제로 여러 학자들 의 기준을 제시한 바 있는데 본고에서는 전자에 속하는 사르트르(J. P. Sartre) 6) 의 주장을 지식인 의 개념으로 보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교사나 학자, 연구원 등 지식 전문가와 기술자 등 실용 지식을 지닌 전문가가 모 두 지식인 이라 불릴 수는 없고 이들 전문가가 지배자의 이데올로기를 거 부하고, 자신 삶의 원리 또는 자신의 현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 이를 4) 조남현은 지식인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면서 또한 중심 사건으로 지식인의 삶의 방법, 지식인 특유의 문제 제기나 해결 과정이 다루어질 경우 지식인 소설 이란 개념 정립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또한 지식인 소설 이 갖추어야 할 세가지 요건으로 지식 인이 주요인물로 나타날 것, 대체로 현실적 욕구와 이상 사이의 갈등이 메인 플롯이 되 어야 할 것, 지식인의 본질과 역능 등에 관한 사유와 각성이 포함되어야 할 것 등을 들 었다. 조남현, 한국 지식인 소설 연구, 일지사, 1984, 12쪽 5) 이은자, 1950년대 한국 지식인 소설 연구, 태학사, 1995, 25 26쪽 6) 사르트르(J. P. Sartre), 지식인을 위한 변명, 세계의 문학, 1978 가을, 60 89쪽 상기 논문은 단행본으로도 번역, 출간되었다. J. P. Sartre, Plaidoyer pour les intellectuels, 조영훈 역, 지식인을 위한 변 명, 한마당,

26 진정한 의미의 지식인이라 하였다. 즉 단순히 지식의 소유에 그치는 사람 은 전문가 에 불과하고 현실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관이 확 고한 사람이야말로 비로소 참된 지식인임을 피력한 것이라 하겠다. 박영희 7) 는 이러한 사르트르의 개념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당시의 시대 상에 맞게 적절하게 분류하였다. 그는 서양에 비해 전문학자의 수가 터무 니없이 적은 당시의 현실을 감안하여 중등학교 이상의 학력으로 취직난이 나, 지식과 환경의 부조화로 고민하는 자를 지식인이라 규정하면서, 이들 지식인을 다시 생활을 위해 사는 지식인과 진리를 위해 사는 지식인으로 나누었다. 채만식이 형상화하고자 했던 지식인은 후자에 속하는 진리에 살고자 했던 지식인 으로 자신이 몸담은 현실사회의 지배층으로부터 소외 당한 채 현실에서 빚어지는 취직난, 경제적 궁핍, 지식과 환경 사이의 부조 화 등과 같은 사회제도의 모순을 인식하고 고민하면서 마침내 갈등과 허 무, 좌절에 빠져버리고 마는 자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갈등과 허무, 좌 절은 지식인의 한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당시 지식인에게 부여된 시대적 사명의 중압감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당시 채만식과 함께 많은 지식인 소설을 발표했던 유진오 8) 의 진술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데, 그들과 같이 당시 지식인들은 식민지 조국이라는 역사적 현실과 개인 의 안위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존재였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2. 근대적 자본에서 소외당한 인텔리의 문제 일제시대의 질곡을 헤쳐온 조선의 민중들에게 근대 란 단순히 중세 내 지는 전근대 로 소급( 遡 及 )할 수 있는 순차적 시기 구분만으로는 인식될 수 7) 박영희, 조선지식계급의 고민과 그 방향, 개벽, 쪽 8) 우리는 우리의 歷 史 的 性 格 을 自 覺 함으로써 우리의 知 性 을 行 動 의 世 界 에까지 二 次 元 化 하여야 한다. 知 性 을 떠난 行 動 은 盲 目 이라하면 行 動 없는 知 性 은 空 虛 라는 것을 잊지 말어야 할 것이다. 유진오, 叡 知 行 動 과 知 性, 朝 鮮 日 報, (백철, 조선작품연감, 193 9, 인문사, 1939, 251~255쪽 재인용) 21

27 없는 개념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근대 란 조국이 식민지화 된 현실 아래 역사적 본질을 전통적으로 계승할 수 없는 조선의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개화라는 발전적 기제( 發 展 的 機 制 )를 통해서야 자신의 존립여부와 방향성을 찾을 수 있는 가치개념의 성격이 강한 것이다. 특히 작가나 평론가를 위시 하여 당대의 지식인에게 불합리한 식민지 현실과 물밀 듯 일고 있는 개화 의 요구는 깜냥에 맞는 역사적 사명과 역할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이어진 다. 그러나 근대성은 곧 조선과의 역사적 단절에서 비롯됐다는 인식과 결 국 서구 근대 사회로부터의 이식과 모방을 통해 근대적 성과를 이뤘다는 이식문학론 9) 은 당대 이들 지식인에게 근대 사회의 초입에 들어선 조선의 기대와 식민화로 인해 겪는 좌절과 혼란이 어떠했는가를 짐작케 한다. 채만식에게도 이러한 당대의 고민은 심각하게 다가왔을 것으로 짐작된 다. 특히 어릴 때부터 근대로 이행되는 격동기를 겪으며 구학과 신학을 두 루 섭렵한 그로서는 근대와 전근대에 대하여 비교적 정확한 인식이 있었 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인식을 실천적으로 소화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혼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희곡 사라지는 그림자 10) 에 대 한 작가의 자평( 自 評 ) 중 근대성에 관련된 진술을 잠시 살펴 보겠다. 1. 조선에는 아직도 봉건적 잔재가 많이 남아 있어 그들은 날로날로 사라져 가고 있다. 이것은 사라지다 남은 구 의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그림자다. 그 리하여 그것이 객관적으로 보면 무가치하다 하더라도 주관적으로는 가장 그 들에게 서러운 현실의 하나이다. 그들은 울며 부르짖되 그러나 사라진다. 2. 이 사라지는 그림자의 자취에 이미 자본주의가 이식되어 있고 또 자체 의 속에서도 초기 자본주의의 싹이 움돋고 있다. 그러나 후자는 그것이 충분 9) 신문학이 서구적 문학 장르와 사조( 思 潮 )를 수용하고 모방하면서 생성 발전하기 시작 했다는 이식문학론은 임화에 의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백철에 이르러서는 19세기까지 의 문예 사조를 이식한 문학이면 근대문학, 20세기의 문예 사조를 수입한 것이면 현대 문학이라고 풀이하면서 근대문학에 대한 독자성을 아예 배제해 버린다. 임화, 新 文 學 史 의 方 法, 문학의 논리, 서음출판사, 1989 백철, 朝 鮮 新 文 學 思 潮 史, 수선사, 1948 이후 이러한 이식문학론은 학계의 꾸준한 문제제기와 연구로 극복되고 있지만 근대를 지나온 이들이 보여준 이러한 시각은 아직까지도 다양한 논란을 낳고 있다. 10) 이 작품은 4장에서 태평천하와의 연관성 문제로 다시 거론될 것이다. 22

28 히 발전되기 전에 전자에게 짓밟힐 운명에 있는 것이다.(전자 즉 외래자본주 의의 얼굴과 표정을 보이지 못한 것은 아무리 특수정세 밑에서 발표하는 우 리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몽롱하게나마 보이지 못한 것은 확실히 나의 실수요 이 작품에 대한 큰 험이다. 함군이 차라리 이러한 점에나 착안하였더면 고맙 기도 하고 설원도 되었을 것을!) 3. 외래세력이 없이 독자적으로 발전한다 하면 아직은 그리 강렬한 것이 없 을 터인데 외래세력이라는 특수관계로 계급투쟁이 강화되어 있다. 이것 역시 충분한 사건 을 가지고 보이지 못하였으나 그 이유는 오로지 우리의 작품이 특수정세 밑에 발표되는 때문이다. 11) 이상의 인용에서 볼 수 있듯이 채만식에게 전근대적 가치는 계승 여부를 검토할 시간도 없이 역사적 급변을 겪으며 사라져 갔고, 식민지라는 특수 정세 아래 외래세력의 영향이 증대됐음을 시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근 대화의 진행이 곧 자본주의화의 진행(내지는 외래 자본주의에 의한 잠식)과 동궤 ( 同 軌 )를 이루고 있다는 인식은 당시 채만식이 지닌 작가의식의 방향을 드 러내고 있으면서도 아울러 근대의 독자적 발전의 가능성의 언급이 없다는 것은 그 스스로 배제했거나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지식 인의 위기와도 상통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채만식이 그의 문학에서 줄 곧 지식인에 대한 관심과 의미를 부여하며 많은 작품들을 발표했다는 점 과 근대의 시발이 외세에 의한 것이었다는 인식은 곧 근대적 자본에 편승 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위기와도 상통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본고 에서는 채만식이 형상화하려 했던 지식인의 모습과 그들에게 내포된 작가 의식을 알아보려 한다. (1) 무력한 지식인과 구조적 모순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채만식은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이전에도 過 渡 期, 앙탈, 蒼 白 한 얼굴들 등 지식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을 여럿 발표했 11) 채만식, 文 藝 評 家 咸 逸 敦 君 의 奇 劇 ), 批 判 1권 8호, ( 蔡 萬 植 全 集 10, 창작과비평사, 1989, 33쪽 재인용) 23

29 다. 그러나 이들 작품들과 이후 발표된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이나 명일( 明 日 ) 등과 같은 작품들은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전 작품들 역시 인텔리의 현실과 그들의 생활고를 다루고 있지만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약했기 때문에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인식 수준 역시 불분명했지 만 이후의 작품들은 현실의 제약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으며 그것들을 향한 주인공의 인식 역시 뚜렷하다. 이것은 1934년 소( 小 )뿌르 와 인테리의 沒 落 過 程 特 히 後 者 의 苦 悶 相 과 그( 略 )에로 轉 落 의 必 然 相. 뿌 르조아와 밋 그 階 級 의 政 治 的 經 濟 的 暴 露. 이상 밋 가지가 압흐로 當 分 間 ( 當 分 間 ) 나의 창작활동의 範 圍 이겟소. 12) 라고 밝힌 채만식의 향후 작품 계획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이 시기부터 채만식은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농민이나 노동자에 대한 소재를 지양하고 자신의 실생활과 주위에서 낱낱이 드러나는 지식인의 모습과 그들의 정치적, 경제적 현실에 보다 가 까이 접근하겠노라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런 그의 발언처럼 채만식은 계속 이어지는 일련의 지식인 소설에서 주인공을 통해 당시 지식인이 어떤 상 황에 처해 있고 어떤 사고를 하고 있는지, 작가의 의식은 어떤 방향으로 변화되어 가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1 인텔리의 취업난과 현실의 문제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은 1934년 新 東 亞 5, 6, 7월호에 나누어 발표되었던 작품으로 흔히 채만식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주인공 P는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적응할 수 없으며, 안정된 직장도 구하지 못하는 무력한 인물로 보일 수 있지만 P의 발언 중에 드러 나는 당시 지식인의 현실과, P와 비슷한 상황의 친구들 M과 H를 볼 때 이 것은 비단 P 개인의 문제가 아닌 당시 사회의 일반적인 현실이라 할 수 있 다. 즉 많은 논자들을 통해 논의가 되었듯이 이 작품의 목적은 주인공 P를 통해 일제의 식민지 정책이 야기하는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 이다. K사장을 찾아갔다 일자리를 거절당하고 방황하는 P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제자리를 찾지 못 12) 蔡 萬 植, 似 而 非 評 論 拒 否, 朝 鮮 日 報,

30 하는 P는 자연스럽게 사회적 현실에 대해 칼날을 가하는 극렬한 비판자의 모습을 띠게 되는데 이는 곧 작가의 목소리라 할 수 있다. 가령 응 저 문맹퇴치운동도 있지. 농민의 구 할은 언문도 몰은단 말이야! 그러고 생활개선운동도 좋고 헌신적으로. 헌신적으로요? 그렇치 할테면 헌신적으로 해야지. 무얼 먹고 헌신적으로 그런 사업을 합니까? 먹을 것이 있어서 그런 농 촌사업이라도 할 신세라면 이렇게 취직을 못해서 애를 쓰겠음니까? 허! 그게 안된 생각이야 자긔가 먹고 살 재산은 있으면서 사회를 위해 서 일도 아니하고 번들번들 논다는 것은 그것은 타락된 생각이야. P는 K사장이 억담을 내세우는 것을 보고 속으로 싱그레니 우섰다. 그러치만 지금 조선농촌에서는 문맹퇴치니 생활개선이니 합네 하고 손끝 이 하-얀 대학이나 전문학교 졸업생들이 몰켜오는 것을 그다지 반겨 하기는 커냥 머릿쌀을 앓을 것입니다 농민이 우매하다든지 문화가 뒤떠러젔다 든지 또 생활이 비참한 것이 근본 원인이 기억 니은을 몰은다든가 생활개선 을 할 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까요. 그러고 조선의 지식청년들이 모다 그런 인도주의자 되여짐니까? ( 新 東 亞 쪽) P가 취직자리를 부탁하러 K사장을 찾아갔다가 이미 일이 그른 것을 알 고 기왕 취직운동은 글러진 것이니 속시원하게 시비라도 해보고 싶은 심 정을 토로하고 있는 장면이다. 여기서 K사장은 식민지 자본에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인물로 그가 주장하는 인텔리의 농촌사업은 현실성 없고 이론적 근거나 토대조차 없는 피상적인 느낌을 주는 훈화이 자 허울뿐인 일제의 농촌계몽운동을 두둔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 내는데, 이것이 P를 자극하여 어떻게 자신은 굶주리고 제대로 된 사회생활 을 해내지 못하면서 남에게 이것저것 가르칠 수 있겠느냐는 항의로 이어 진다. 결국 채만식은 당시 지배권력이었던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K사장 을 내세워 그들의 안일하고 부조리한 현실대책을 비판하고 있다. K사장의 25

31 괴변은 현실의 실상을 회피하려는 일제 당국의 기만적 이상론이며, P의 말 은 현실의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는 하나의 현실론에 가까운 것이다. P의 항변을 통해 농민의 우매, 문화의 뒤떨어짐, 무식, 생활고가 농민들 스스로 가 생활 개선을 할 줄 몰라서가 아님을 피력하고 있으며, 그렇지 못한 근 본책임은 일제의 식민지 교육제도 자체가 조선인을 위한 것은 결코 아님 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고등 교육을 받은 지식인은 이를 타개할 근본적 인 방안이 현 실정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안정된 생활 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고뇌하고 있는 것이다. 13) 특히 여기서 이 작품의 주인공 P와 작가 채만식은 같은 인텔리로서 취업에 상당한 문제를 겪었다는 점, 기성세대와 정책에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가혼 으로 맺어진 아내와 불화를 겪었다는 점 등에서 닮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 다. 즉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P에게 투영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전적 소설을 저자와 주인공의 유사성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시각에서 보면 채만식의 작품은 매우 다양한 자전적 성격을 드러낸다. 레듸-메이 드 인생( 人 生 ) 의 경우 주인공과 저자가 어렴풋이 닮은 것 같은 단계 의 자전적 소설에 해당한다. 14) 즉 이 작품에서 모델이나 배경 등은 작가의 실 생활에서 취한 것이 많으며, 주인공이 드러내는 시대적, 경제적 성격은 곧 작가의 인식과도 일치한다고 봐야 한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일제의 식민지 통치는 그간의 무 단정책에서 문화정책으로 전환되었고, 이를 계기로 몇몇 일간지와 잡지 등 이 발간되었으며 신교육의 기회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고급 지식인을 통한 한국 사회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제의 교육 13) 박정숙, 채만식 작품에 나타난 작가의식 연구, 동아대 석사논문, 1982, 30쪽 14) 채만식은 등단이래 식민지 현실을 비판적으로 묘사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했던 바, 이같은 작업은 그의 소설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인 자전적 성격의 소장 과정과 긴 밀한 길항관계를 맺고 있음이 드러난다. 현실비판적인 경향이 성숙하면서 자전적 요소 는 배제 구축되는 경향을 보였고 반대로 체제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그의 작품에서 자전적인 성격은 두드러진 것이 되었다. 그 자전적 성격에 대해서는 간헐적으로 언급이 이루어져 왔으니 논의는 주로 레듸 메이드인생( 人 生 ) 금( 金 )의 정열( 情 熱 ) 아 름다운 새벽 민족( 民 族 )의 죄인( 罪 人 ) 등을 중심으로 한 부분적 분석에 바쳐져 왔 다. 방민호, 채만식과 조선적 근대문학의 구상, 소명출판, 2001, 23~50쪽 26

32 정책은 식민지 통치를 원활하게 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고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그렇듯이 지식인들이 많이 배출된다고 하여 사회가 그 모두를 수 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일제의 정책 전환은 비판적인 젊은이들 을 정신적 무국적주의자로 전락시켜 독립의지를 말살시킴으로써 식민정책 에 순응하는 기능적인 지식인을 양성하는데 있었던 것이다. 인테리 인테리 중에도 아모런 손끗의 기술이 없이 대학이나 전문학교 의 졸업증서 한 장을 또는 조고만한 보통 상식을 가진 직업 엄는 인테리 해마다 천여 명씩 늘어가는 인테리 뱀을 본 것은 이들 인테리다. 뿌르조아지의 모든 기관이 포화상태가 되어 더 수요가 아니되니 그들은 결 국 꼬임을 바더 남게올나갓다가 흔들니는 셈이다. 개밥의 도토리다. 인테리가 아니 되었으면 차라리 노동자가 되었을 것인데 인테리인지라 그 속에는 드러갓다가도 도루 다러나오는 것이 구십구%다. 그 남어지는 모다 억 개가 추처진 무직 인테리요, 무기력한 문화 예비군 속에서 푸른 한숨만 쉬이 는 초상ㅅ집의 주인 엄는 개들이다. 레듸-메이드 인생이다. ( 新 東 亞 쪽) P가 광화문 앞에서 생각하는 장면 중 한 부분인데 무책임한 식민지 교육 정책으로 인해 인텔리가 늘어가는 반면 그들을 수용할 공간은 부족한 모 순에 대해 한탄하면서 인텔리의 모순이자 P자신의 모순적 현실에 대해 자 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신교육의 확대는 면서기 순사 은행 원 기자 의사 변호사 등 다양한 형태의 직업인을 양산하였다. 그러나 채만식은 이들의 출현은 조선인의 본질적인 삶의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안 되며 단지 식민지체제를 강화하는 역할만을 할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현상으로 말미암아 민중들의 정신적 좌절감과 경 제적 궁핍상만 가중되었다는 것이다 P의 의식과 대화에서 엿볼 수 있는 상황은 당시 지식인이 처한 일반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에 있어서 엘리트에의 진입의 기회는 소수 친일적인 사람들에게 독점 15)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비판적 시각이 강하거나 역사적 소명과 개인의 안 15) 조남현 한국현대소설에 나타난 지식인상 연구 서울대 박사논문 1983, 98쪽 27

33 위 사이에서 방황하는 지식인들에게는 사회진입의 기회가 좀처럼 허용되 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구조적 모순에 의한 실직상태와 계속되는 사회 와의 불협화음은 현실 속에서 P의 삶을 위협한다. 필경 무슨 걱정이 생긴 게구려! 노인은 자긔의 말ㅅ거리를 만들려고 아니라는데도 이렇게 걱정을 내어 놋 는다. 그게 모다 가난한 탓이지 저렇게 젊고 똑똑한 이가 저게 모다 가난한 탓이야! 어데 구실( 職 業 )자리 말한다더니 아직 아니 됐수? 네 아직 거 큰일낫구려! 어서 돼야 할 텐데 나두 꼭 죽겠수 이 늙은 것 이! 돈 좀 마련되잖했수? 네, 아직 좀 저걸 어쩌나! 오늘은 물값이야 전기불 값이야 사뭇 받으러 달녀들 텐데! 멫칠만 더 미루십시요. 설마하니 마나님이야 아니 드리겠음니까 암으렴! 실수야 없을 줄 알지만 내가 하도 옹색하니깐 그러는 거지 ( 新 東 亞 쪽) 아들 창선을 자신에게 보낸다는 형의 편지를 박박 찢어버리고 한숨을 쉬 고 있는 P에게 안방 노인이 동정하듯 넌지시 물으며 밀린 방세와 물값, 전 기값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갚을 도리가 없는 P로서는 궁색하게 변 명한다는 것이 며칠만 기다려달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여기서도 P는 자 신의 이러한 궁핍을 노동자도 되지 못하는 인텔리 신세에서 찾고 있다. 그 리하여 아들 창선에 대해서도 흥! 체면! 공부! 죽여도 인텔리는 만들잖는 다. 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의 상황을 통해 당시의 현 실을 짐작할 수 있듯이 P의 이러한 궁핍은 P 개인의 문제가 아닌 당시 조 선의 지식인에게 처해진 일반적인 상황이라는 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 다. 본고에서 직접적인 텍스트로 다루지 않지만 이 작품은 또한 앙탈, 창백( 蒼 白 )한 얼굴들 16) 과 무척 유사한 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채만식 28

34 역시 30년대 당시 경향대로 지식인 중심의 소설을 많이 발표하였고, 연작 을 상기시킬 만큼 다양한 작품들이 서로 내용적 연관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역시 이 두 작품의 연장선에 이 놓여 있다고 봐야 옳을 것이며 이것은 다시 이어서 다룰 명일( 明 日 ) 과도 이 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우선 이 두 작품과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과의 관련성을 간략하게 언급하고 이 장의 말미에 다시 채만식의 일 련의 지식인 계통 작품들을 조망( 眺 望 )해 보도록 하겠다. 앙탈 의 주인공 S는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의 P와 마찬가지로 실직한 인텔리이다. 이 작품이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과 연결지어 생 각할 수 있는 부분은 우선 각 작품 주인공들 앞에 놓인 현실의 가혹함에 있다. 앙탈 에서 S 역시 석 달째 밀린 하숙비를 해결하지 못해 주인 노 파에게 시달리고 있으며 호떡 한 개에 차 한 잔 마실 돈 오전조차 없는, 그 야말로 처량한 룸펜 인텔리겐치아([러]Lumpen intelligentsia) 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역시 자신이 배운 지식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직장을 찾기 위해 취업운동을 벌이지만 그에게 다가오는 식민지 조선의 현실은 여지없이 사회의 결함 17) 을 드러내며 그의 희망을 좌절로 환치시 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그가 그토록 천시여기며 조롱하던 18) 노 동자(금광 노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여기서 S는 레듸-메이드 인생 ( 人 生 ) 의 P처럼 인텔리의 강한 자의식( 自 意 識 )을 보여주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지만 오히려 이것이 작가가 노리는 풍자적 효과 즉, 머리 속에 지식 만 채워 넣은 고급기술자의 역할은 할 수 있을지언정 자신이 처한 현실의 16) 채만식, 앙탈, 新 小 說, 1930 蒼 白 한 얼굴들, 彗 星, ) 작품에서 쓰인 사회의 결함 은 S가 현실의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데서 쓰인 것이 아니라, 취직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과정 중 피상적으로 사용한 단어로 보인 다. 채만식, 앙탈, 新 小 說, 1930 ( 蔡 萬 植 全 集 6, 창작과비평사, 1989, 504쪽 재인용) 18) 노동? 괴롭고도 천한 그 짓을? 내가? 연애 누군지 모르나 어데선지 지금 나를 기 다리는 듯 곱게 있을 미지의 애인은 어떻게 하고? 그리고 돈 많은 호화로운 생활은 어 떻게 하고? 이 고운 손이 고운 얼굴이 노동판에 가서 썩어? 안될 말이다. 채만식, 앞의 책, 505쪽 29

35 모순을 직시하지 못하는 인텔리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19) 이 작 품이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의 전작( 前 作 )으로 볼 수 있는 또 다른 특 징은 주인공의 행위패턴의 유사성이다. 물론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의 P가 앙탈 의 S처럼 양복바지를 자리 밑에 깔아 줄을 잡고, 양말의 구멍을 걱정하다 구두에 가린다며 안심하는 인텔리의 위선적인 면모를 적 나라하게 드러내진 않지만 그 역시 아름다운 여자와 지나칠 때에는 자신 의 헙수룩한 차림새를 상당히 의식한다. 특히 두 작품에서 각각의 주인공 S와 P가 돈을 곱쟁이 쳐서 공상하는 부분은 조선에 근대 자본이 형성된 후 민중이 그에 잠식되어 가는 단면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앙탈 에서 실직 인텔리의 가중되는 생활고와 점점 소실되어 가는 인 텔리의 자의식이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으로 이어지고 있다면 창백 ( 蒼 白 )한 얼굴들 에서는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후반부에서 P가 친구 M과 H를 만나 흥청거리며 유곽( 遊 廓 )으로 들어가는 내용과 연결되고 있다. 창백( 蒼 白 )한 얼굴들 의 주인공 K와 친구 S 역시 취업자리를 얻지 못해 하루하루를 부유하듯 방황하는 룸펜이었다. 전찻삯조차 없는 그들이 왜인 전당포에 K의 시계를 잡혀 서점에서 책을 사고, 한강에 나가 선유( 船 遊 )배 를 빌려 초저녁까지 유흥하고, 식당에 들려 밥을 먹는 등 가진 돈을 모두 탕진할 때까지 돌아다니는 것은 갈 곳 없이 방황하며 하루하루 소진해 버 리려는 무력한 지식인의 모습이다. 낮에 선유배에서 S가 주위를 둘러보며 사방을 다 둘러보아야 우리 팔자 같은 놈은 없고나! 라는 말은 낮에 직장 에 나가 사회 일원으로써의 역할과 제 벌이를 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신세 에 대한 자조 섞인 한탄이라 할 수 있다. 19) 이는 함일돈의 창작계의 이삼( 二 三 ) 고찰 에 실린 산동이 와 앙탈 의 평에 대한 채만식의 반론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거에서 나는 한 얄미운 존재를 본다. 되사리고 없는 것으로 맵시를 내고 체면을 보 려고 하고 허무한 장래를 꿈을 꾸고 이렇게 앙탈하는 얄미운 존재 그 주인공인 S 다. 그러나 그는 몰락하고 만다. 인텔리는 그 관념적 이상과 허옇게 퇴색된 후광을 부여잡 고 앙탈을 하면서 그래도 필연의 세로 몰락이 된다. 채만식, 評 論 家 에 대한 作 者 로서의 不 服, 東 亞 日 報, ,15,17,20,21 ( 蔡 萬 植 全 集 10, 창작과비평사, 1989, 26쪽 재인용) 30

36 2 P가 보여주는 욕망의 성격과 현실의 좌절 소설에서 인물의 욕망은 그의 내면이라 할 수 있는 사상과 정서, 그의 외 면이라 할 수 있는 행위 등을 통해서 드러난다. 특히 채만식의 소설에서는 인물이 품고 있는 욕망은 좌절되거나 왜곡되는 양상을 자주 보여주므로, 여기서는 그러한 인물의 사상과 정서, 행위 등과 나아가 이를 연결고리로 사건으로 구성되는 스토리를 분석하여 채만식 소설에 드러나는 등장인물 의 욕망과 그것의 실현과정, 작품 안에서 형상화되는 양상, 작가의 의도 등 을 파악하도록 하겠다.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에서 욕망의 주체는 주인공인 P이므로 그의 행위와 욕망의 대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대략적인 줄거리를 파악해야 한 다. 이 작품의 경우 이미 작가에 의해서 11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고 각 장의 내용이 이삼일 동안 P의 행적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으므로 그 행 적을 중심으로 각 장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신문사의 K사장을 찾아가 취직을 부탁하나 거절당하고 농촌사업에 대한 논쟁을 벌인다. 복도에서 편집국장 C와 마주쳐 그에게서 이미 취직 이 틀어졌음을 듣고 신문사를 나온다. 2. 광화문 네거리 기념비각 옆에서 사람들을 구경하며 조소한다. 3. P의 식민지 교육정책에 대한 인식과 비판을 엿볼 수 있는 장으로 그 릇된 교육정책으로 인해 인텔리가 과잉공급 되는 현상을 꼬집고 있다. 4. 담뱃가게에서 반발하듯 해태를 한 갑 사들고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길 에 돈과 직장, 여자에 대한 공상이 이어진다. 형에게 온 편지를 읽고 찢어 버린다. 5. P의 이혼과 아들 창선에 대한 과거 이야기가 서술되고 이어 집주인에 게 밀린 방값 재촉을 받는다. 친구 M과 H가 찾아와 서로의 신세에 대해 잡담을 늘어놓다 H의 책을 잡혀 술을 마시자고 조른다. 6. 그날 밤 P와 M, H는 H의 책을 잡혀 선술집과 카페, 그리고 동관을 다 니며 술을 마신다. 동관에서 만난 계집애가 정조의 대가로 20전도 좋다고 하자 포켓 속의 돈을 있는 대로 내던지고 뛰쳐나온다. 31

37 7. 이십 전이라는 정조의 대가와 삼 원쯤 되는 자신의 전 재산을 모두 내 던진 자신의 행위 사이에서 번민한다. 8. P는 밤새도록 갈증으로 시달리다가 새벽에야 겨우 물장수의 물을 마 신다. 앞장에 이어 단돈 이십 전에 정조를 팔아야만 하는 현실에 대한 비 판이 인텔리의 허위에 대한 자조로 계속 이어진다. 9. 돈도 없이 겨우 생활한 일주일이 지나고 하루 종일 돌아다녀 십오 원 을 빌리고 인쇄소의 문선과장 A를 찾아가 다음 날 올라올 아들의 일자리 를 부탁한다. 10. P는 정거장에서 S와 그가 데려온 아들을 만나고 그의 자존심이 처 가에 대한 반감으로 드러난다. 11. 다음날, P는 아들을 인쇄소에 맡기고 레디 메이드 인생이 비로소 겨 우 임자를 만나 팔렸다며 자조한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의 구성은 1장에서 8장까지 이틀 간 P의 행적에 대한 서술이 나열되고 있으며 9장에서 11장까지는 아들을 인쇄소 에 맡기는 과정이 서술되는 두 개의 시간적 층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마지막 장에서 아들 창선을 인쇄소 기술자로 만들려는 이유에 대 한 당위성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실제 작가는 각 장마다 개입하여 P의 사고를 계속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P가 본질적으로 떠안고 있는 문제는 우선 생존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그가 연이어 계속되는 취업운동에 서 떨어지고 자취방의 주인노인에게 돈 졸림을 당하는 것 역시 이러한 생 존의 문제가 보장되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그리고 P는 자신에게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원인이 기성품처럼 인텔리를 찍어내는 사회적 구조의 모순 에서 찾고 있다. 여기서 표면상 드러나는 P의 욕망은 인텔리라는 수준에 걸맞는 직장과 경제적인 안정으로 보이지만 그러한 그의 욕망은 성사될 실마리조차 보이 지 않은 채 좌절되어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 시 말해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한 문제점이 궁핍하고 무기력한 P의 삶이었다면 그에 대한 원인은 수요 없이 찍어내듯 양성하는 인텔리 32

38 즉 그릇된 교육정책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결과를 아들이 겪지 않게 하기 위해서 창선에게 그러한 원인 자체를 제공받을 기회를 박 탈하려 한다. 특히 인텔리를 무력한 문화 예비군 속에서 푸른 한숨만 쉬 는 초상집의 주인 없는 개들 이라 칭한 것은 초상집의 주인 없는 개들이 바로 나라를 잃고 식민지 하에서 계획과 대안 없이 세워지는 교육정책에 대한 항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제적인 궁핍은 인텔리인 P에게만 절박 한 문제가 아닌 당시 대다수 인텔리의 문제였으며 특히 근대 이후로 넘어 와 그 궁핍했던 시대에 밥 20) 의 문제는 아주 절박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취직이 된댓자 사오십 원이나 오륙십 원의 월급이다. 그것을 가지고 빠듯 빠듯 살어간들 무슨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을 택도 없는 것이다. 가령 근실히 해서 월괘저금 같은 것도 하고 집도 작만하고 여편네도 생기 고 사장이나 중역들의 눈의에 들어 지위도 부장쯤으로는 올나가고, 그리하 야 생활의 근거도 안정이 되고 하면 지금 같은 골란은 당하지 아니하겠겠만, 그러나 P에게는 아직도 젊은 때의 야심이 있어 그러한 고식된 안정이나 명 색없는 생활은 도리어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좀더 남의 눈에 띄며 좀더 재 미있고 그리고 자유로운 생활. 물론 그는 지금이라도 누가 한 달에 삼십 원만 줄 테니 와서 일을 해달나 면 마치 주린 개가 고기를 보고 덤비듯이 덮어놓고 덤벼들 것이다. ( 新 東 亞 ) 일반적으로 교육을 시키고 또 그것을 받는 저변에는 上 向 多 種 (upward mobility)을 하려는 내면적 욕구가 깃들어 있는 것이 통례인데, 닫힌 사회 20) 밥의 문제는 가난, 빈부의 대립 관계, 영혼과 물질 사이의 모순 관계 등의 문제로 구체화하여 왔다. 빈부에 대한 문제 의식은 나중에 가서 계층 이론의 차원으로까지 확 대되어가기도 했다. 종래 가난이란 문제를 그래도 여유 있게 다루어온 소설들에 비하여 20세기 이후에 접어들면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리얼리즘 계통의 소설 같은 것은 밥 의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다룬 경우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 치하였던 1920 년대에 밥 의 문제를 사실주의 수법을 써서 심각하게 나타내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그 당시 밥 의 문제는 특히 농촌소설과 사회소설을 통해 많이 다루어졌는데 그 후 30 년대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짙어져갔다. 조남현, 소설원론, 고려원, 1982, 179쪽 33

39 일수록 이러한 일상적이고도 평범한 진리나 욕구마저 통용되지 않는다. 21) 이러한 욕구가 통제당한 P가 아들에게 자신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는 것은 짐짓 당연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P의 그러한 행위가 일종의 좌절에서 비롯됐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P가 K사장에게 일자리를 거절당하고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 담뱃가게 앞으로 가기 전, 길을 걸으면 서 자신의 그림자를 밟으려는 자기 자신과 앞으로 달아나는 그림자에서 P 는 자기의 이중인격의 모순상을 발견한다고 진술하고 있다. 또한 담배가게 에서 주인이 자신을 깔보고 있다는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마코를 살 것을 해태로 사고, 동관의 계집애에 대해서도 장님이 눈병 않는 사람더러 불쌍 하다고 한 셈인가 라며 자조하는 모습 등 좌절하고 패배적인 지식인의 행 위양상을 계속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바로 그가 인텔 리로서 전도유망하고 탄탄한 장래가 보장될 생활을 꿈꾸었고 거기에 대해 소극적이나마 우월의식을 품어왔음을 파악할 수 있고 그러한 우월의식이 좌절당하면서 P의 욕망은 굴절되고 있다는 것이다. P가 일종의 우월의식을 가질 수 있었던 배경은 그가 고등교육을 거쳐 상 당한 지식을 갖춘 소부르주아 축에 끼이는 인텔리 였다는 점이다. 그가 만 약 인텔리가 아니라 노동자였다면 거지가 되었거나 비상수단을 썼을 것이 라는 작가의 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텔리라는 계층에 편입하면서 그 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눈높이가 이미 정해서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가 고등교육을 거치는 동안 투자한 시간과 가치에 따라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문제는 그러한 인텔리 P를 소화할 일자리가 많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리고 앞서 설명하였듯이 P는 그 문제를 식민지의 모순된 교육 정책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삼 원을 열여달 번만 곱집으면 일백오십만 원이 된다. 일박오십만 원 그놈 이 있으면 이렇게 생각함애 억개가 읏쓱해젓다. 삼 원의 열여달 곱쟁이가 일백오십만 원이니 퍽 쉬운 일이다 그놈만 있 으면 백만 원을 드려서 오십 전짜리 십륙 페-지 신문을 하나 했으면 위선 K 21) 신운철, 채만식 문학에 나타난 현실인식 연구, 서원대 석사논문, 1999, 21쪽 34

40 사장의 엉엉 우는 꼴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 新 東 亞 쪽) 여기서 P의 구체적인 욕망은 고등교육을 받은 인텔리로서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는 직장을 원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신분상승의 욕구로 이어지 고 있다. 그리고 작품상으로는 P의 그러한 욕망의 모델로 바로 K사장을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욕망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P와 K 사장은 서로의 존재에 영향을 끼칠 만큼 거리가 가깝다는 사실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거리는 물리적으로 측정이 가능한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P와 K사장 사이에 맺어지는 정신적인 거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P 가 모방하려는 K사장은 P의 현실세계에서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있으며 선 망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르네 지라르에 의하면 이것은 내 면적 간접화([프]médiation interne)에 해당한다. 내면적 간접화에 놓인 주체 와 중개자 사이에는 경쟁관계가 형성되기도 하며 둘 사이의 거리가 가까울 수록 주체는 자신의 모방을 감추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욕망을 파악하 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다. 22)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이론상에 의한 해석일 뿐 K사장을 P의 욕망에 대 한 완벽한 중개자로 보긴 어렵다. P에게 K사장은 안정된 지위를 확보한 선망의 대상임엔 틀림없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실천적인 의지도 없이 입으 로만 떠드는 속물적 인간으로 경멸의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즉 P에게 K 사장은 모방하고자 하는 지위를 얻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동조할 수 없 는 가치관을 가진 인물로서 K사장의 중개 형태를 임의적으로 규정하자면 부정적 중개자 내지는 이중적 중개자 23) 라 할 만한 특성을 지닌 인물이 다. 여기서 P가 겪는 심층적인 갈등은 K사장과 같은 안정되고 인지도 높 은 직장을 얻으려는 일신의 욕망과, 지위에 안존하여 현실에 대해 피상적 인 인식이나 보이는 K사장 같은 인간이 되지 않으려는 인텔리의 자의식 22) 르네 지라르, 김치수 송의경 역,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한길사, 2001, 49 52쪽 23) 물론 본고의 부정적 중개자, 이중적 중개자 역시 넓은 의미에서 지라르의 내면적 간접화에 해당되긴 하지만 P의 욕망과 자의식 사이의 갈등은 엄밀한 의미에서 K사장 에 대한 모방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중개자의 성격을 다소 변형시킬 필요가 있었다. 35

41 사이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P의 갈등의 발단은 식민지 현실에 순 응하고 그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는 인간이 될 것인가, 날카롭게 반응하고 비판하는 인간이 될 것인가 사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그런 갈등 앞에 놓인 식민지적 모순은 자연스럽게 P를 현실 비판적 인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갈등의 결과로 주인공 P는 아들이 자신과 같은 전철을 밟아 비생 산적인 인텔리가 되느니 차라리 노동자로 만들 결심을 하는 것이다. 이것 은 P가 실현하고자 한 자신의 이상이 좌절되자 자신의 성장 과정과 반대 라 할만한 노동자의 길을 통해 안정된 직장을 얻을 수 있을 거란 그의 판 단이지만 그 자체가 이미 좌절된 욕망의 왜곡된 형태이기에 P의 선택은 희망적인 미래와 직결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P가 가진 인텔리로서의 욕망 의 중개자와 창선을 기술자로 만들려는 욕망의 중개자는 서로 상반된 위 치에 놓인다고 봐야 한다. 즉 이 둘을 당시 사회적 지위와 신분으로 구분 한다면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착취계층과 피착취계층으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분명히 함으로써 조선에서 지배 착 취계급이 어떤 존재인가를 제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각은 명일( 明 日 ) 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2) 경제적 궁핍과 미래에 대한 암담한 모색 명일( 明 日 ) 명일( 明 日 ) 은 채만식이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이후 작품 활동 을 중단하였다가 재개할 무렵 쓴 작품 24) 으로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레듸 -메이드 인생( 人 生 ) 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가 레 듸-메이드 인생( 人 生 ) 발표 이후 소설 창작을 중단했다가 다시 활동을 재 개하면서 명일( 明 日 ) 과 같이 전작과 유사한 작품이 나왔다는 것은 활동 중단으로 그의 사회 비판적 시각이 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며, 지 24) 채만식은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발표 이후 약 2년 동안 소설 발표를 중단했다 가 보리방아 를 朝 鮮 日 報, ~22에 발표하고 이어 素 服 입은 靈 魂, 貧 第 一 章 第 二 課, 明 日 등을 발표하며 다시 활동을 재개하게 된다. 36

42 속적으로 인텔리의 문제에 심취하려는 의도를 드러내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1 희망잃은 인텔리의 어두운 자화상 명일( 明 日 ) 은 1936년 朝 光 10, 11, 12월호에 상, 중, 하 로 분 재되어 발표된 작품으로 앞서 살펴본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과는 형 식과 주인공의 상황에서 유사한 측면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25) 그러나 현실적인 측면에서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보다 이 작품에 더욱 암울 한 면이 많다고 하겠다. 우선 주인공은 혼자가 아닌 아들 둘을 둔 가장으 로 변해 있기 때문에 명일( 明 日 ) 에서 주인공의 실직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한 가족의 문제로 확대 되어 있다.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에서 당시 모순된 사회구조로 인해 고등교육을 받고도 그러한 개인의 능력을 소비할 직장을 얻지 못하는 인텔리의 궁핍한 삶을 다뤘다면 명일( 明 日 ) 에서는 그보다 더 나아가 자신의 실직으로 인해 생활고에 시달리는 주인 공 범수와 그의 가족이 마침내 정신적 극단으로 치닫는 양상을 보이고 있 다. 또한 범수와 그의 영주 사이에 현실인식과 가치관의 차이에서 빗어지 는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은 당시의 현실을 절묘하게 풍자하면서 식민지 교육정책의 모순과 인텔리의 경제적 궁핍, 실업문제를 적절하게 비판하고 있다. 아마 설로 공산가바요. 색씨가 전차 철뚝일이라는 것이 나두 그런 거라도 좀 했으면 죽으면 죽었지 그 짓을 해요? 글력만 당해낼 수 있다면 세상에 해먹을 게 없어서 당신이 그 짓을 해요? 25) 배봉기는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과 명일( 明 日 ) 이 두 작품에서 인물 특성과 형상화에 있어 실직한 지식인이 주인공이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방황이 중심 플롯이 되며, 주로 화자시점서술로 인물을 형상화 하는 것과 같은 유사한 측면을 발견하여 한 비교선상에 놓고 다루기도 하였다. 배봉기, 채만식 문학의 인물의 특성과 형상화에 대한 연구, 연세대 박사학위, 1992, 15 35쪽 37

43 내가 무언데? 무어야 당신이지. 괜-헌 객기를 부리지 말어요 있는 땅까지 팔어서 머리속에다 학문만 처쟁였으니 그게 무어야? 씨어먹을 수도 씨어먹을 데도 없는 놈의 세상에서 공부를 했으니 그게 무어란 말이야? 좀먹은 책장허구 무었이 달러? ( 필자 중략 ) 그 사람들은 별수가 있나! 모다들 개밥의 도토리지 인테리들의 운명 이란 빤-히 내다보이는걸. 그래두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직업을 가지구 그놈을 만족해서 아둥바둥 살려구 드는데 당신이야 어데 그렀우? 차라리 그럴테거들랑 자 식들이나 내 걱정은 말구 당신 노상 하구 싶다는 대로 어데든지 가서 을 허든지 허구려 ( 朝 光 ~389쪽) 범수는 옆방 남자가 전차 철둑을 까는 노동자일망정 밥 굶을 걱정은 하 지 않을 텐데, 자신은 머리 속에 학문을 집어넣느라 심신이 약해져 그마저 도 여의치 않다고 한탄한다. 자신의 실직을 공부한 탓으로 돌리고 있는데, 이는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의 P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모순된 교육정 책의 희생양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반면 영주는 범수의 실 직이 그의 유별난 성품과 무능에 있다고 보고 있다. 그녀는 자신들과 같이 가난한 사람들은 교육을 통해서만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누구의 생각이 옳고 그른가는 차후의 문제로 보 인다. 중요한 것은 영주와 같이 범속한 사람들에게 교육이란 자신들의 상 승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 이고 그들에게 있어 상승이란 일제의 지배체제에 순응하며 온갖 이익을 누리는 집단에 편승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희망은 고등교육을 받은 자신의 남편 범수에게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럼 저 양복이라도 잽혀 오구려. 그것마저 잽히구 어떻걸랴구 그러우? 그리 긴하게 양복을 입구 출입을 헐 일은 무었 있나? 38

44 영주는 그래도 느긋한 히망을 지니고 있었다. 남편이 몇 군데 이력서를 보 내두었으니 그런 데서 갑작히 오라는 기별이 올지도 모르는 터에 양복을 잽 혀버리면 일껏 된 취직도 낭패가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또 남편이 밖에 나가 있는 동안만은 행혀 무슨 반가운 소식이나 가 지고 도라오나 해서 한심한 기대를 하는 터였었다. 천하 없어두 그건 안잽혀요. 거 참 괘사스런 성미도 다 보겠네. 하고 범수는 더 욱이려 하지 아니했다. ( 朝 光 쪽) 일단 당장 급하니 양복부터 잡히라는 범수와 그럴 수 없다는 영주와의 갈등은 교육관과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여기서 작가의 인식은 범수를 통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지식인의 무직이 사회제도의 모순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은 다른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우선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이 희곡 인텔리와 빈대떡 이 다. 26) 이 작품은 1934년 新 東 亞 4월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주인공 종 석은 범수와 마찬가지로 무직 인텔리로 아들 하나를 둔 가장으로 그의 가 족이 처해 있는 현실 역시 범수 가족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도입부에서 종 석의 대사를 통해 목돈 오륙천 원을 들여서 인텔리로 만들어 놓은 들 실업 학교를 나오니만 못하다는 한탄을 통해 이 작품에서도 식민지 교육제도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27) 그만큼 식민 지배 아래 놓인 인텔리의 현실은 가혹했으며 그들이 헤쳐가야 할 미래는 암울한 것이었다. 특히 명일( 明 日 ) 에서 자신의 현실을 사회구조적 모순에서 찾는 범수 의 입장에서 그러한 궁핍은 하나의 가혹한 형벌과도 같은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결국 그를 금은상에 진열된 금비녀를 훔치고자 마음먹게 하기도 하고 친구 P의 돈을 훔칠 마음을 먹게 하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보통학교 부터 대학까지 십육 년이나 공부를 한 것이 조그만 금비녀 한 개 감쪽같이 26) 이 작품 외에 앞서 언급한 앙탈, 蒼 白 한 얼굴들,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등도 서로 모티프의 연관성을 이루고 있는 작품들이라 하겠다. 27) 아울러 온 식구가 아침까지 굶었으면서도 친구가 사온 빈대떡을 식자( 識 者 )의 허 식으로 인해 내내 사양하다가 결국 걸인에게 내준 후 한탄하는 종석을 통해 허위에 찬 인텔리의 모습 또한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39

45 숨기는 기술을 배우느니만도 못하다 라는 자조 섞인 결론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2 범수와 영주의 엇갈린 욕망 범수와 영주의 일차적인 소망은 범수에게 안정적이고 사회적 지위도 보 장되는 직장이 얻어지길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레듸-메이드 인 생( 人 生 ) 에서처럼 이미 좌절되고 있다. 오히려 이들에게 욕망의 대상은 그들의 자식인 종석이와 종태에게 있음을 알 수 있다. 욕망관계를 파악하 기 위해 우선 대략적인 내용을 살펴보려 하는데 이 작품은 이미 10개의 장 으로 구분되어 있으므로 이를 바탕으로 하되 범수와 영주의 행위를 중심 으로 알아보겠다. 1. 영주는 빨래를 하고 있고 범수는 주린 배를 잊기 위해 낮잠을 자고 있 다. 영주가 문간방 색시와 난리 이야기, 문간방 색시 남편의 구직 이야기를 하고 있다. 2. 범수, 잠에서 깨어나 아내 영주와 구직 문제에서부터 아이들 교육문 제에 이르기까지 의견 차이를 보이며 설전을 벌인다. 3. 범수와 영주가 상대를 비꼬는 듯한 말다툼을 벌이고 결국 범수가 집 을 나선다. 4. 무작정 종로로 나온 범수는 현기증마저 느낄 허기에 돈 구할 궁리를 하다가 마침 보이는 금은상에 들어가 금비녀를 훔치려다 한다. 그러나 그 의 생각은 시도조차 없이 무위로 끝나고 인텔리의 무능력을 자조한다. 5. 화신백화점 앞에서 만난 거지아이와 행인이 버린 담배꽁초를 탐하는 등 범수의 궁색한 사고가 이어지고 돈을 빌리기 위해 친구 S를 찾으나 말 을 꺼내지 못한다. 우연히 만난 종로한량 P의 돈을 훔치려고 하나 이 역시 무위로 끝난다. 6. P에게 술을 얻어 마신 범수는 자동차 서비스 공장의 최씨를 찾아 큰 아들 종석이의 취직자리를 부탁한다. 7. 범수가 집에 거의 당도했을 때 아내의 큰 목소리를 듣는다. 40

46 8. 낮부터 줄곧 아이들 점심조차 먹이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영주는 젊은 아낙이 가져온 바느질거리를 반갑게 받는다. 9. 집주인이 찾아와 돈 졸림을 당한 후 영주는 과부댁을 찾아 재봉틀을 빌려 쓴다. 10. 종석이가 동생 종태와 함께 두부를 훔치다 들키고, 그 사실을 안 영 주가 아이들을 매질한다. 범수가 돌아와 그 사실을 알고 자조한다. 이튿날 영주는 종태를 사립학교에 데려가고, 범수는 종석이를 서비스 공장으로 데 려간다. 이상의 장 구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범수와 영주의 행동반경 에 따라 분명하게 나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1장부터 3장까지는 부 부의 대화를 중심으로 그들이 겪고 있는 갈등에 대해 서술되고 있으며 4장 부터 7장까지는 범수에 대한 이야기만 서술되는 장으로써 범수가 당면한 문제에 있어 도둑질까지 생각하는 극단적인 면을 드러내고 있다. 다음 8, 9장은 영주에 대한 서술이 이어지고 있는데 살림하는 안주인으로써 생활 적인 걱정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어 10장은 두 아들의 도둑질로 인해 부 부가 겪고 있는 심층적 갈등이 표면으로 표출되고 급기야 도입부에서 그 들이 설전을 벌이던 자신들의 생각을 실행에 옮기게 되는 것이다. 이상의 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범수와 영주의 갈등은 서로 같은 시발점(종석과 종 태)을 가진 두 아이에게 다른 과정을 통해 서로 같은 결말(사회적 성공과 경제 적 안정)을 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풍 자적인 상황이기도 하다. 영주는 아이들을 공부를 식혀서 장래의 히망을 거기다 붙이자는 것이다. 그 는 하다 못하면 자기가 몸둥이를 팔어서라도 아이들의 뒤는 대인다고 하고 또 그의 악지로 그만 짓을 못할 것도 아니었었다. 그러나 범수는 듣지 아니했다. 섯뿔리 공부를 시켰자 허리 부러진 말처럼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빈거충이가 될 것이요, 그러니 그것이 아이들 자신 장 래에 불행하게 할 뿐 아니라, 따라서 부모의 기뿜도 되지 아니한다고 내내 욱 여왔든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가 보통학교의 교과서 같은 것을 참고해 41

47 가며 산술이니 일어니 또 간단한 지리 역사니를 위선 가르치고 있었다. ( 朝 光 쪽) 범수는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의 P처럼 인텔리이면서 계속된 실직 상태에 지쳐있고 또한 그러한 자신의 실직을 식민지 교육정책의 제도적 모순에서 찾고 있다. 범수는 이러한 교육의 모순을 타개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작정한다. 이것은 자신을 잘못된 식민지 교육의 직접적 피해자라 인식하는 범수가 자신과 같은 실패를 답습하게 하지 않 으려는 의도도 있지만 식민지 정책상 조선에서의 교육의 한계와 부조리 역시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영주는 다소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교육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범수의 실직이 교육정책의 모순보다는 범수 개인의 문제를 한정지어 바라보려 하고 있으며 현재 범 수 가족의 이러한 가난을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을 유일한 대안으로써 교육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자신들의 교육관을 본격적으로 적용하게 되는 계기는 아무래도 아이들이 저지른 도둑질의 영향이 크다. 여기서도 범수와 영주의 시각은 다르게 적용된다. 범수의 경우 비록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종로 네거 리의 금은상에서 금비녀를 훔치려다 무위로 끝났고 또한 우연히 만난 P의 포켓에서 돈을 훔치려다 이 역시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바로 자기 자신에게 항거를 한다. 도적질을 하는 것이 왜 나뿌냐-고. 이 말에는 자기로서도 자기에게 대답할 말이 나오지 않이한다. 아-니, 도적질을 하는 것이 나뿌고 악하고 하다는 것보다도 무엇보다도 더 럽다. 치사스럽다. 이 해석이 마침 자기의 비위에 맞엇다. 그래 그는 싱그레-니 혼자 웃었다. 그러면서 마침내 뺏기지 않는 놈은 도적질할 궐리도 없다 고 고개를 끄덕어렸다. ( 朝 光 쪽) 42

48 범수는 도둑질을 자기 합리화하는 방편으로 뺏기지 않는 놈은 도적질 할 권리도 없다 고 얘기하고 있는데, 남에게 도적질을 당할 만큼 치부한 이들은 곧 남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부를 쌓았다는 말과 같은 것으로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어떠한 경위를 통해 부를 형성할 수 있는가를 간접적으 로 확인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주는 아이들의 도둑질을 도덕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는 것이 부모의 도리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다하지 못하여 아이들이 나쁜 마음을 먹게 되었다고 본 것이다. 여기서 작가가 지식인인 범수를 통해 도둑질 하도록 마음먹게 만드는 것 은 단순히 남의 물건을 취하는 행위 이상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조선 의 근대화가 일제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뤄지면서 개화라는 미명 아래 일 제의 식민지 자본이 통제 없이 한반도에 들어왔고 그들은 아직 채 정립되 지 않은 조선의 자본을 도태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작가는 조선에서 강탈당한 것은 주권만이 아니라는 인식, 즉 서민들의 생활해나갈 근저 자 본의 숨통을 쥐고 그들을 서서히 자신들 쪽으로 끌어당기는 간악함이 있 었다는 사실을 범수를 통해 서술하고 있으며 논밭을 팔아 상당한 지식을 쌓은 것 역시 잘못된 식민지 정책에 의한 것이라면 일종의 수탈로 봐야 한 다는 인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 작품보다 앞서 발표된 생 명( 生 命 )의 유희( 遊 戱 ) 에서 주인공 K가 보여준 인식과도 같다고 할 수 있 다. K 역시 이틀 동안 꼬박 굶고 나서 도둑질을 생각할 때 그러한 생각 자 체를 부끄러워하면서도 자신이 그렇게 부끄러워하는 것 자체가 바로 부르 주아 근성이라고 자조하고 있는 것이다. 28) 생명( 生 命 )의 유희( 遊 戱 ) 는 마치 선전문구와도 같이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 아 계급에 대한 K의 생각이 나열됨으로써 작품의 시점을 흐리기는 하지만 28) 흥 도둑질이 창피하다고? 프루동은 무어라고 했는데? 그래도 장발잔이 유리창을 부 수고 빵 한 덩이를 훔치는 것을 보고 그때 감상이 어땠었노? 흥, 도둑질이 창피하다고, 차마 못한다고? 노동도 못하고 월급자리는 구했자 보나 안 보나 그저 두어 달 있다가 나와버릴 것이고, 도둑질은 창피해서 못하고 에잇, 못된 부르조아 근성. 망해가는 부르조아의 유물이라고 배나 드윽 갈라서 소금을 쟁여가지고 박제표본( 剝 製 標 本 )이나 만들어서 박물관에다 진열해 둘 감이다. 채만식, 생명( 生 命 )의 유희( 遊 戱 ), 문학사상,

49 조선에서 근대적 자본의 성격과 한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아이가 너무 자즈라치게 울고 하니까 매질이 과한 줄 알고 문간방 색씨와 또 아랫방의 목수네 어머니가 드러와 매를 빼았고 아이를 데려 내가고 하며 말렸다. 영주는 말리는 대로 내마끼고 그 자리에 쓰러져 울었다. 울면서 남편이 들 어오면 싫것 말이나 해주고 죽어바릴랴고까지 마음을 먹었다. 오직 부모 된 것들이 못났으면 자식이 도적질을 하랴. 도적질도 다른 도적 질이 아니요 배가 고파 남의 두부목판에서 두부 한 모를 훔쳐먹으랴 하는 부끄럼과 노염이 영주로 하여곰 죽고 싶은 마음까지 나게 한 것이다. ( 朝 光 쪽) 이러한 영주의 시각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시대적 상황과 모순을 인식하고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크게 나타난다. 범수는 아이들 이 도둑질 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의 소극적인 시도와 겹쳐 이놈의 자식 승어부는 했노라며 비통한 심정을 토로하지만 영주는 도둑질과 같은 행위 는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원인이 크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음날 범 수는 큰 아들 종석을 N이라는 자동차서비스공장에 넣어 기술을 배우게 하 고, 영주는 둘째 종태를 사립학교에 보낸다. 여기서 범수와 영주의 욕망은 확연히 구분되어 나타나는데 정반대라 할만한 길을 선택한 부모에 의해 자식들에게 놓인 현실 역시 판이하게 전개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는 이 들 부모가 사회적 성공을 위해 모방하려는 중개자들 역시 판이하게 다른 데서 비롯된다. 사실 이들의 욕망은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의 P의 욕 망이 좌절되고 왜곡된 형태가 보다 구체화 된 양상을 띠며 이야기로 구성 되어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 부모에게 이렇게 확연한 차이를 보이도록 선택을 강요하는 시대의 모순을 발견하는 일이다. 범수의 욕망에서 알 수 있듯이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의 P가 아들을 기술자로 만들려는 욕망의 구도와 매우 흡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마치 P의 좌절된 욕망이 아들 창선에게 왜곡되어 나타나듯 범수 역시 인 텔리로서 좌절된 취업의 바람이 종석에게 인텔리의 길을 걷지 못하게 만 44

50 드는 것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범수와 반대되는 모습으로 영주의 욕망 을 분명히 제시하므로 두 사람의 욕망은 비교되게 된다. 29) 범수가 종석을 기술자로 만들려는 욕망은 원래 그가 가진 인텔리로서의 이상이 모순된 현실의 벽에 좌절되어 발생하는 반면 영주가 종태를 공부시키려는 배경은 인텔리인 범수의 실업자 신세를 개인의 무능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또한 두 사람의 이런 욕망의 중개자들 역시 서로 상반된 결과를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런 이들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맺 을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마지막에 범수를 통해 두구 보자 네 방침이 옳은지 내 방침이 옳은지. 라고 되묻고 있긴 하지만 정작 작 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인텔리를 무능하게 만들어버린 교육제도의 모순 과 함께 한 부모 밑의 같은 자식들이 상반된 인생의 선택을 강요하는, 정 신적 초점을 잃어버린 나라 없는 지식인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3. 체제로부터 격리되고 억압받는 인텔리의 문제 (1) 사회와의 단절 혹은 불화의 문제 치숙( 痴 叔 ) 29) 이 작품에서 범수와 영주의 욕망의 대상 비교적 잘 드러나는 편이지만 범수의 경우 자식을 노동자로 만들려는 욕망 을 품게 만든 중개자가 작품 표면상 잘 드러나지 않는 다. 그 이유는 범수가 품은 이상의 욕망이 실질적으로는 욕망이 아닌 좌절의 형태를 띠 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영주의 욕망은 잘 드러난다. 영주의 욕망을 도식으로 그려내면 지배계층 영주 사회적 성공 영주의 욕망은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둬서 자신들과 같은 가난에 찌들어 살지 않길 바라고 있다. 이러한 그녀의 욕망은 어머니로서 품을 수 있는 지극히 일반적인 욕 망이라 할 수 있지만, 학문을 통해 남의 하시를 받지 않는 자리 를 탐하는 그녀의 욕망 은 곧 당시 지배계층에 대한 모방이라 볼 수 있다. 특히 범수와 영주의 엇갈린 선택으 로 인해 독자에게 보이는 현실의 모순성은 배가되고 있는 것이다. 45

51 치숙( 痴 叔 ) 은 동아일보에 1938년 3월 7일부터 14일까지 분재된 작 품으로, 1인칭 관찰자인 나 의 서술을 통해 아저씨의 삶이 이야기되는 형 식을 취하고 있다. 치숙( 痴 叔 ) 의 아저씨는 대학교까지 나온 인텔리로서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감옥에 갔다와서, 중병을 앓으며 아주머니에게 의지 해 생활하고 있는, 적어도 나 에게는 부정적인 존재이자 이해할 수 없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앞서 다룬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의 P나 명 일( 明 日 ) 의 범수처럼 이 작품의 아저씨 역시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고 있 으며 그에 더해 신체적 억압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P나 범수가 무기력한 인텔리의 모습을 노출시켰던 것과 달리 언제든 다시 사회주의 운동을 시작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다만 중병으로 인해 또 다른 신체적 억압을 받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1 보이는 벽과 보이지 않는 벽의 존재 치숙( 痴 叔 ) 에서 우선 관심을 끄는 것은 서술방식으로 볼 수 있다. 1 인칭 화자 나 라는 인물이 전면에 나서 자신에게 숙부가 되는 아저씨의 행 적과 무능함, 그리고 그의 사회주의 사상의 위험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 치 누군가 친근한 이가 던진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아저씨에 대해 부정 적인 시각으로 서술하는 나 와 이념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결 국 단칸방에서 병치레를 하고 있는 아저씨 사이의 긴장감은 사실상 작품 을 이끌어가는 힘이 되고 있다. 우리 아저씨 말이지요? 아따 저 거시키, 한참 당년에 무엇이냐 그놈의 것, 사회주의라더냐 막덕이라더냐, 그걸 하다 징역 살고 나와서 폐병으로 시방 앓고 누웠는 우리 오촌 고모부 그 양반 머, 말두 마시요. 대체 사람이 어쩌면 글쎄 내 원! 신세 간데없지요. 자, 십 년 적공, 대학교까지 공부한 것 풀어먹지도 못했지요. 좋은 청춘 어 영부영 다 보냈지요. 신분에는 전과자라는 붉은 도장 찍혔지요. 몸에는 몹쓸 병까지 들었지요. 이 신세를 해가지굴랑은 굴속 같은 오두막집 단간 셋방 구석에서 사시장철 46

52 밤이나 낮이나 눈 따악 감고 드러누웠군요. 재산이 어디 집터전인들 있을 턱이 있나요. 서발막대 내저어야 짚검불 하나 걸리는 것 없는 철빈인데. ( 채만식 전집 7, 261쪽) 나 는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첫 말부터가 사회주의라더 냐 막덕이라더냐 라는 식으로 자신의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물 론 이 말은 화자가 가진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 역시 좋지 않다는 것을 함 께 내포하고 있으며, 장차 자신과 아저씨가 어떤 문제로 대립하게 되는지 를 암시하고 있다. 뒤에서 다루겠지만 나 라는 화자가 가지고 있는 사회주 의에 대한 피상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은 그걸로 인해 대학교까지 나와 지 식도 써먹지도 못하고, 징역까지 산 전과자 신세에 폐병까지 얻은 아저씨 를 보면서 더욱 확고해진다. 그리고 화자는 어릴 때부터 자신에게 은인이 나 다름없는 아주머니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역으로 그런 아 주머니의 삶을 힘겹게 하는 아저씨가 결국 우호적으로 보일 리 없었던 것 이다. 내가 일곱 살에 부모를 잃었지요. 그러고 나서 의탁할 곳이 없게 됐는데 그 때 마침 소박을 맞고 친정살이를 하는 그 아주머니가 나를 데려다가 길러 주 었지요. 그때만 해도 그 집이 그다지 군색하게 지내진 않았으니깐요. 아주머닌도 아 주머니짐나 종조하럼니며 할아버지도 슬하에 딴 자손이 없어서 나를 퍽 귀애 하겠지요. 열두 살까지 그 집에서 자랐군요. 사 년이나마 보통학교도 다녔고. 아마 모르면 몰라도 그 집안이 그렇게 치패하지만 않았으면 나도 그냥 붙어 있어서 시방쯤은 전문학교까지는 다녔으리다. ( 채만식 전집 7, 263쪽) 인용에서 알 수 있듯이 화자가 아저씨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일단 아주머니를 소박 맞히고 학생 출신의 첩을 얻어 살다가 징역살이에 병까 지 얻은 뒤로는 다시 아주머니에 의탁하는 아저씨의 뻔뻔함에 대한 반감 47

53 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지극히 실리추구적인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아저씨의 삶에 그다지 이익이 될 것 같지도 않는 사회 주의를 못해서 안달인 아저씨가 痴 叔 으로 비쳤을 것이고, 더구나 일본인 상점의 점원으로서 장차 십만 원짜리 큰부자 를 꿈꾸는 그로서 사회주의 는 자신의 야망에 위협물로 보였던 것이다. 여기서 화자가 가진 사회주의 에 대한 생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 서양 어디선가,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름뱅이 몇 놈이 양지쪽에 모여앉 아서 놀고 먹을 궁리를 했더라나요. 우리 집 다이쇼가 다 자상하게 이야기를 해줍디다. 게, 그 녀석들이 서로 구누를 하기를, 자 이 세상에는 부자가 있고 가난한 사람이 있고 하니 그건 도무지 공평한 일이 아니다. 사람이란 건 이목구비하 며 사지육신을 꼭같이 타고 났는데, 누구는 부자로 잘살고 누구는 가난하다 니 그게 될 말이냐. 그러니 부자가 가진 것을 우리 가난한 사람들하고 다같이 고르게 나눠 먹어야 경우가 옳다. 야, 그거 옳은 말이다. 야, 그 말 좋다. 자, 나눠먹자. 아, 이렇게 설도를 해가지고 우하니 들고 일어났다는군요. 아니, 그러니 그게 생 날부랑당 놈의 짓이 아니고 무어요? 사람이란 것은 제가끔 분지복이 있어서 기수를 잘 타고 나든지 부지런하면 부자가 되는 법이요, 복록을 못 타고 나든지 게으른 놈은 가난하게 사는 법이 요, 다 이렇게 마련인데, 그거야말로 공평한 천리인 것을, 됩다 불공평하다니 될 말이요? 그리고서 억지로 남의 것을 뺏어먹자고 들다니 그놈들이 부랑당 이지 무어요. ( 채만식 전집 7, 266쪽) 나 가 인식하고 있는 사회주의가 얼마나 피상적인 것인지는 두 말할 필 요도 없다. 이 경우는 사회주의가 옳은 이념인가 아닌가가 문제가 아니다. 나 의 무지가 전면에 부각되는 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나 의 지식 정도는 극히 한심한 수준이다. 이렇게 자신에 찬 부지( 不 知 ) 를 드러 냄으로써 나 는 아이러니를 유발시키는 인물이다. 다른 말로 해서 극히 신빙성 없는 화자 가 되는 것이다. 30) 또한 화자가 다이쇼(だいしょう 주 48

54 인) 의 말을 여과없이 수용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가 된다. 어린 시절부터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경험했을 그의 정신과 가치관에는 이미 식민지체제 의 관념이 자리잡고 있어 역사의식이나 민족의식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화자는 이미 일제의 지배권력을 나라 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것 이 치숙( 痴 叔 ) 에서 작품 전반에 걸쳐 화자가 부정적으로 대두되는 원인 이 되고 있다. 이렇게 친일적인 인물에 대립되는 인물로 등장하는 아저씨는 장기간 징 역을 산 전력으로 보아 급진적 사회주의 운동가로 짐작된다. 그리고 풀려 난 다음에도 병치레가 끝날 기미를 보이자 다시 사회주의 운동을 준비하 고 있는 중이다. 즉 일관된 사상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나름대로 투철한 사 명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전범진은 이러한 치숙( 痴 叔 ) 의 아저씨를 일관된 이념추구형 지식인으로 분류하고 이 인물형의 특징으로 다음과 같 이 제시하였다. 31) (1) 일정한 사상이나 이념을 갖고 사회(사회주의)운동을 하면서 생활을 도외시한다. (2) 2 5년간의 옥고를 치른다. (3) 출옥해서도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버리지 않는다. (4) 가족의 구성원으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전범진이 제시한 이러한 특징들이 모두 아저씨에게 해당되는 사 항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긍정적 인물로 보긴 어렵다. 보통 부정적 인 30) 배봉기, 앞의 책, 40쪽 31) 일관된 이념추구형 지식인은 억압된 사회체제를 열린사회로 변혁하기 위해 이념적 삶을 사는 인물이다. 기존 권력체제에 도전하는 일관된 이념추구형 지식인은 체제에 의 해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은 감옥에 가서 또 감옥에서 풀려 나 서도 자신의 이념적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이 유형의 지식인은 이념을 추구하는 과정 에서 가족을 돌보지 않고 생활의 문제를 되외시한다. 따라서 이 인물들은 가족의 구성 원에 의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전범진, 지식인 인물의 유형과 권력의 상관성 연구-1930년대 후반기 김남천과 채만 식의 소설을 중심으로, 고려대 석사논문, 1996, 8 9쪽 49

55 물과 대립되는 양상을 보이는 인물은 긍정적 인물로 판단되기 쉽지만, 아 저씨가 보여주는 중산층 출신 동경 유학 지식인 상당수의 출신계급의 한 계와 운동의 관념성, 허구성 32) 은 이념의 정립에만 치중하고 실천적 모색 에 소홀한 인텔리의 모순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작품 에서 아저씨가 급진사상을 지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머니를 대하 는 모습에서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탈피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혼하 자고 친정으로 내쫒고 학생 출신의 첩을 들였다가 징역을 살고 난 다음 오 갈 데 없는 처지에서 다시 아주머니와 함께 살지만 그에게서 아주머니에 대한 소극적 의미의 착취 는 무방하다는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아주머니가 고맙잖습니까? 고맙지. 불쌍하지요? 불쌍? 그렇지 불쌍하다면 불쌍한 사람이지! 그런 줄은 아시느만? 알지. 알면서 그러시우? 고생을 낙으로, 그 쓰라린 맛을 씹고 씹고 하면서 그것에서 단맛을 알어내 는 사람도 있느리라. 사람도 있는 게 아니라 사람마다 무슨 일에고 진정과 정 신을 꼬박 거기다가면 쓰면 그렇게 되는 법이니라. 그러니까 그찜 되면 고생 이 낙이지. 너이 아주머니만 두고 보더래도 고생이 고생이면서 그 고생이 아 니고 고생하는 게 낙이란다. 그렇다고 아저씨는 그걸 다행히만 여기시우? 아니. 그러거들랑 아저씨두 아주머니한테 그 은공을 더러는 갚어야 옳을 게 아 니요? 글쎄, 은공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러니 인제 병이나 확실히 다아 나신 뒤엘라컨 바빠서 원 ( 채만식 전집 7, 쪽) 32) 김성수, 치숙 의 서술방식과 주제의식, 인천어문학 제1집, 1985, 51쪽 50

56 인용의 대화를 잠시 살펴봐도 아주머니에 대한 정이나 도리보다는 병이 나을 동안 잠시 몸을 맡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채만식은 인형( 人 形 )의 집을 나와서, 탁류( 濁 流 ), 아름다운 새벽, 여자( 女 子 )의 일 생( 一 生 ) 등의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당대의 다른 남성작가들과는 달리 여 성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3) 반면에 그는 집 안에서 강제로 시킨 결혼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의무적인 생활만 유지 하다가 자식들(2남 1녀)과 함께 친정으로 돌려보내고 서울에서 여고를 졸업 한 여자와 동거에 들어갔다고 하며 채만식이 함라를 지나는 버스 속에서 장남을 만난 적이 있는데, 성장한 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서로를 몰라봤 다는 일화 34) 역시 그의 첫 결혼생활이 어떠했는지 간접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는데 이는 치숙( 痴 叔 ) 의 아저씨와 매우 흡사하다. 이러한 설정은 본 고에서 텍스트로 다루고 있는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의 P나 태평천 하( 太 平 天 下 ) 의 종학에게서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구습타파의 일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이 작품에서 아저씨의 경우 다소 무책임하다는 지적 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2 아저씨와 나 의 대립된 욕망 치숙( 痴 叔 ) 에서 화자인 나 의 욕망은 비교적 잘 드러난다. 오히려 너 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독자를 곤혹스럽게 만들기까지 한다. 내 이상과 계획은 이렇게든요. 우리 집 다이쇼가 나를 자별히 귀애하고 신용을 하니까 이제 한 십 년만 더 33) 최은정, 페미니즘 시각으로 본 채만식의 인형의 집을 나와서 연구, 인하대 석사논문, 2000 정선영, 채만식 소설의 여성주의, 안동대 석사논문, 1998 송지현, 채만식의 탁류( 濁 流 ) 론 여성주의 형성과 한계를 중심으로, 전남 대용봉논총 제20집, 유금호 채희윤, 탁류의 페미니스트적 독서 시론, 목포대학교논문집 제15집, 등 34) 윤한숙, 새 자료로 본 채만식의 생애, 문학사상, 쪽 51

57 있으면 한밑천 들여서 따로 장사를 시켜 줄 그런 눈치거든요. 그러거들랑 그것을 언덕삼아 가지고 나는 삼십 년 동안 예순 살 환갑까지만 장사를 해서 꼭 십만 원을 모을 작정이지요. 십만 원이면 죄선 부자로 쳐도 천석꾼이니, 머 떵떵거리고 살 게 아니라구요? 그리고 우리 다이쇼도 한 말이 있고 하니까 나는 내지인 규수한테로 장가를 들래요. 다이쇼가 다 알아서 얌전한 자리를 골라 중매까지 서준다고 그랬어 요. 내지 여자 참 좋지요. 나는 죄선 여자는 거저 주어도 싫어요. 구식 여자는 얌전은 해도 무식해서 내지인하고 교제하는 데 안됐고, 신식 여자는 식자나 들었다는 게 건방져서 못쓰고, 도무지 그래서 죄선 여자는 신 식이고 구식이고 다 제바리여요. 내지 여자가 참 좋지 뭐. 인물이 개개 일자로 이쁘겠다 얌전하겠다 상냥하 겠다, 지식이 있어도 건방지지 않겠다, 좀이나 좋아! 그리고 내지 여자한테 장가만 드는 게 아니라 성명도 내지인 성명으로 갈고 집도 내지인 집에서 살고 옷도 내지 옷을 입고 밥도 내지식으로 먹고 아이들 도 내지인 이름을 지어서 내지인 학교에 보내고 내지인 학교라야지 죄선학교는 너절해서 아이들 버려놓기나 꼭 알맞지요. 그리고 나도 죄선말은 싹 거둬치우고 국어만 쓰고요. 이렇게 다 생활법식부터도 내지인처럼 해야만 돈도 내지인처럼 잘 모으게 되거든요. ( 채만식 전집 7, 쪽) 화자는 거의 확신에 찬 목소리로 예순 살까지 십만 원을 모으고, 일본여 자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일본인 학교에 보낼 것이며, 이름부터 말, 생 활법식까지 모두 일본식으로 바꾸겠노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노골적으 로 드러나는 그의 야망은 속물적인 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으며, 민 족의 현실 따윈 안중에도 없는 화자의 역사의식 부재는 철저하게 이기적 인 이익에만 집착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이 작품의 풍자적인 면 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이렇게 화자 나 는 사회구조에 대한 지각이 낮은 데서 오는 몰상식함이 작품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데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사회주의에 대해 52

58 서도 경제란 것은 돈 모아서 부자 되라는 거 아니요? 그런데 사회주의란 것은 모아둔 부자 사람의 돈을 뺏어 쓰는 거 아니요? 라며 자신의 아저씨 에게 묻는 것이다. 여기서 아저씨와 나 의 대화가 원할한 소통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그의 무식에 관련된 문제이자 두 사람의 욕망이 서로 상충되 는 모습을 띠기 때문이다. 우선 일본인 상점 점원인 나 의 욕망은 표면에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는 터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일본인 주인을 따라 착실히 돈을 모으고 정신과 생활을 모두 일본식으로 뜯어고쳐 완전한 일본인화(황국신민화)를 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나 의 욕망은 표면적으로 쉽게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다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욕망구도를 띠게 되었 는가 하는 점이고 그에 대한 답은 조선이 일제의 강압적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또 다른 물음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물음에 대하여 치숙( 痴 叔 ) 에서는 일제의 무력 외에도 일본에 빌붙어서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친일세력의 한 예를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나 라는 인물이 처음부터 자본가였다든지 지주, 권력자의 상황 에서 자신의 부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친일을 일삼은 것이 아니라, 일제의 식민지 체제 내에서 지극히 평범하달 수 있는 민중이 지속적인 정책에 의 해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아저씨의 욕망을 살펴 보면 진보적 사회주의자라는 뚜렷한 대상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작품상으 로는 이렇다 할만한 중개자가 대두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앞선 두 작품에서 주인공의 중개자들이 점점 왜곡되던 차원에서 보다 나 아가 중개자의 유형을 임의적으로 짐작할 수는 있으되 작품에서 실질적인 중개자를 찾을 수 없는 이러한 지식인의 욕망은 그대로 타개책을 발견할 수 없는 암담한 현실과도 일치한다고 볼 수 있으며 지식인 중심의 작품이 거듭될수록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과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작가적 한계가 결국 허무로 귀결( 歸 結 )되는 양상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2) 보이지 않는 벽과의 싸움 또는 자기분열 소망( 少 妄 ) 53

59 소망( 少 妄 ) 은 1938년 조광 10월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앞서 거 론한 치숙( 痴 叔 ) 과 작품의 형식상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소망 ( 少 妄 ) 의 남편 역시 그 아내이자 1인칭 관찰자인 나 에 의해 서술되고 있 으며, 그 화자에게 남편은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대상이다. 반면 치 숙( 痴 叔 ) 에서 화자인 나 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아저씨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때문에 독자가 직접 화자에게 듣는 듯한 효과를 내는데 비해 소망( 少 妄 ) 의 화자인 나 는 그녀의 언니를 상대로 넋두리라 할 만한 얘 기들을 나누고 있다. 또한 주인공으로 설정되는 치숙( 痴 叔 ) 의 아저씨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소망( 少 妄 ) 의 남편은 신문사에 사표를 던지고 자신의 이상과 신념이 통하지 않 는 사회에 대하여 스스로 문을 닫아걸어 버린 상황인 것이다. 1 인텔리의 소극적 저항과 한계 이 작품은 외형상 한 여인이 자신의 언니에게 남편의 기행을 하소연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남편이 아무래도 정신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거라 믿 는 화자 나(아내) 는 의사의 아내로서 부족한 것 없이 살고 있는 언니를 찾 아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다. 그녀의 방문 이유도 남편의 문제를 정신병으 로 단정 짓고 형부의 지인 중 신경전문의가 있으면 어떻게 고칠 길이 없는 지를 묻기 위해 찾은 것이다. 이 작품 역시 치숙( 痴 叔 ) 과 마찬가지로 화 자를 통해 특정인물의 과거나 현재의 상태를 서술하고 있으므로 작품 내 내 이렇다 할 사건이나 화자의 의식변화를 찾아보긴 어렵다. 이와 같이 대 화의 형식을 통해 주인공 대신 화자가 전면에 등장하는 경우 그가 의도적 으로 제공하는 정보만을 받게 되므로 화자의 인식과 태도는 이야기에 지 대한 영향을 주게 되고, 아울러 화자의 가치관이나 청자와의 관계, 서술대 상과의 거리 등은 독자에게 일차적으로 왜곡된 대상을 보여주게 되는 것 이다. 채만식이 1938년에 발표한 치숙( 痴 叔 ), 소망( 少 妄 ), 이런 처지( 處 地 ) 등은 모두 이런 서술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작가는 여기서 화 자 모두를 친일적, 시대순응적 인물로 묘사하여 속물적이고 이해타산적인 면모를 부각시킴으로써 풍자적 효과를 얻고 있는데, 이는 채만식 문학이 54

60 가진 풍자적 특징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소망( 少 妄 ) 에 등장하는 지식인인 남편 역시 앞서 언급한 레듸-메 이드 인생( 人 生 ) 의 P, 명일( 明 日 ) 의 범수, 치숙( 痴 叔 ) 의 아저씨와 같이 식민지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지를 가지고 거기에 저항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명일( 明 日 ), 치숙( 痴 叔 ) 을 통해 점차 발전적으로 형성되던 주 인공의 저항의지와 이면에서 엿볼 수 있는 작가의식은 소망( 少 妄 ) 에 이 르러 무기력한 한계를 드러내고 만다. 치숙( 痴 叔 ) 에서 화자 나 와 아저 씨의 대립을 통해 조선 민중의 정신까지 갉아먹는 식민지 정책과 그에 맞 서는 대립의지는, 같은 구도의 소망( 少 妄 ) 에선 현실의 벽 앞에서 분열 된 자아가 일삼는 각종 기행을 저항의지와 연결시킴으로써 소극적인 저항 의 형태와 그로 인한 한계를 드러내고 마는 것이다. 이는 작가가 소망( 少 妄 ) 을 리힐리즘의 독한 호흡 의 싹 35) 이라 피력한 이 작품의 위상과는 다 소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30년대 중반 이후 일제의 민족말살정 책의 일환으로 가속화되기 시작한 일본어 전용, 창씨개명 등과 함께 지원 병 제도를 실시함으로써 한층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가 작품에 크게 영향 을 끼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이 작품 발표에 앞서 그 해 8월 朝 鮮 日 報 에 기고한 작가의 한계 라는 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여기서 채 만식은 문학의 제재 선택에 있어 시대적 요소인 조선적인 제약 36) 을 언급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선적인 제약은 이 작품에서 남편의 행위를 통 해 드러난다. 남들은 다같이 대학을 마치구 나와서두 삼사년씩 취직을 못해 쩔쩔매는 세 상에 그해 동경서 나오던 멀루 신문사에를 들어갔구 인해 오년이나 말치 없 이 있어왔으니깐 그만하면 신문사 인심두 얻구 또 사장두 자별허게 대접을 35) 그것은, 가령 내 罪 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責 任 은 내가 저야만 할 것인데 少 妄 에 서 은근히 싹이 트더니 앞으로 今 年 一 年 中 에 쓰려는 短 篇 仙 人 의 집 ( 假 稱 )이나 興 甫 의 집 ( 假 稱 )이나 少 妄 以 後 ( 假 稱 )나 錦 衣 還 鄕 ( 假 稱 )이나 그리고 長 篇 怨 章 ( 假 稱 )까지도 뚜렷이 자리를 잡고 앉는 리힐리슴의 毒 한 呼 吸 이다. 채만식, 自 作 案 內, 靑 色 紙, 쪽 36) 채만식, 작가의 한계, 朝 鮮 日 報, , 9 55

61 했답디다. 그런 것을 헌신짝 벗어 내던지듯 내던지구는 사람마저 저 지경이 됐으니. 허기는 눈 동자가 옳게 백힌 놈은 이짓 못 해먹겠다구 그 무렵에 바싹 더 침울해 허기는 했었지만서두 ( 朝 光, 쪽) 남편은 1930년대의 세계 강대국들이 독재 체제를 강화하거나 약소국 을 침략하거나, 전쟁 준비에 몰두하는 국제 정세를 신문사를 통해 알고 있고, 따라서 또 한 차례의 세계 전쟁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있다. 그리고 큰 규모의 전쟁 목적을 추구하는 일본을 포함한 강대국들 이 사람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며, 사람의 목숨을 뺏는 전쟁을 치러서 경제적 번영을 이루려 한다는 것을 통찰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상황 에서 세상이, 특히 조선이 망해 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세 계적 상황을 모르고 하루하루의 개인적 만족이나 가족의 즐거움을 추 구하는 개인들을 동물, 벌레, 속물이라고 경멸하는 것이다. 37) 이 작품 에서 이러한 대표적인 인물로 손윗동서인 화자 언니의 남편을 들 수 있는데 의사인 그에게 남편은 세상이 곤두서건 인간이 도야지가 되건 돈하고 마누라밖에 모르는 위인 이라며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2 남편의 욕망, 아내의 욕망 이 작품에서도 치숙( 痴 叔 ) 의 아저씨와 마찬가지로 남편의 현실은 암 담하기만 하다. 오히려 치숙( 痴 叔 ) 의 아저씨가 자신의 지병이 나으면 다시 사회주의 운동을 시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반해 남편은 그러한 열정조차 모두 소멸되어 버린, 현실을 개혁하려는 의지조차 암담한 시대적 상황에 사그라지고 비판정신만 드높아진 상태인 것이다. 현실에서 수용되 지 못하는 그의 비판정신은 신문사를 그만두고 건넌방에 칩거하며 아내의 진술대로 책 디리파기, 신문 잡지 뒤지기, 그렇잖으면 끄윽 드러누워서, 웃지두 않구, 이야기두 않구, 그리다가는 더럭 짜징이 나가지굴랑 날 몰아 세기나 허는 각종 기행을 일삼게 한다. 결국 가중되는 조선적인 제약 을 37) 이대규, 채만식의 단편 소설 소망 의 분석과 해석, 한국문학논총 13, , 352쪽 56

62 극복하지 못하고 주인공의 정신이 허무주의로 치닫고 자아가 분열되는 위 기를 보이는데, 이는 곧 작가 채만식의 위기이기도 하다. 왜 그래? 여름에 동복을 좀 입었기루서니 왜 죽는 시늉이야? 혀를 끌끄을 차면서 얼굴 기식허며 말 소리허며 아주 천연스럽구 전대루지, 죄끝두 공허( 空 虛 )헌디가 없어요. 사람이 실성을 허면은 어딘지 말 하는 음성 이며 태도허며 건숭이구 공허해 보이 잔우? 천민? 속물! 세상이 곤두서는데는 태평이면서 옷 좀 거꾸루 입은 건 저리 야단이야? 속물이랏 소리는 노상 듣는 독설( 毒 舌 )이구 나는 그이 눈을 주의해 보 느라구 경황중에두 정신이 없어 저 뭣이냐 사람이 영 미치구 나면 눈ㅅ자가 틀린다구 않수? 그런데 암만 찬찬히 파구 보아야 전대루 정기가 돌구 맑지 머 아무렇지두 않어. ( 朝 光, 쪽) 현실의 부조리에 남다른 인식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돌파할 희망을 찾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은 당대 현실의 한계 앞에 서 결국 친일의 길로 들어서는 채만식의 고민이 엿보이고 있는 것이다. 다 시 말해 작가는 남편을 통해 세상에 대한 예리한 인식과 비판능력을 보여 주면서도 그에게 비정상적인 행위를 하게 함으로써 남편 외에 세상에 순 응하는 모든 인간이 오히려 더욱 비정상적임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려 했다. 하지만 채만식 스스로가 시대의 해법을 가지지 못한 그러한 역설은 오히 려 공허한 외침 내지는 중압감을 견디지 못해 분열되는 인텔리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만 그치고 있다. 그러한 남편의 현실은 결국 삶에 대한 진지한 욕구마저 상실되게 만들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회는 하루하루에 대한 연명만 있을 뿐 삶에 대한 의욕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고 있다. 결국 작품 전반에 걸쳐 남편이 피력하고 있는 것은 세상에 대한 변혁이라고 짐작할 수 있지만 이것 역시 중개자가 없는 상태 즉, 어떤 변혁의 움직임조차 없 이 오히려 더욱 암울한 사회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57

63 아무턴 나두 언니처럼 의사허구 결혼이나 했더라면 시방쯤 언니 부러워 않 구서 엄벙엄벙 아무 근심걱정 없이 살아 갔을꺼야. 네에 옳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언니한테 졌읍니다. 가치( 價 値 )는 어디루 갔 던지 간에 당장 언니가 날보담 팔짜가 좋구 그걸 내가 한편으루 부러워하는 게 사실은 사실이니깐요. ( 朝 光, 쪽) 이에 반해 아내의 욕망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치숙( 痴 叔 ) 의 화 자 나 처럼 아내도 세속적인 욕망에 치중하고 있지만 치숙( 痴 叔 ) 의 나 처럼 극단적인 부정성을 드러내진 않는다. 오히려 한 남자의 아내로서 지극히 소박한 바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당시 시대적 상황이 남 편의 인식처럼 개인적 가치만을 내세우기에는 어렵다고 봤을 때 아내의 세속적 욕망은 속물스러운 욕망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상으로 채만식의 네 편의 단편소설을 중심으로 주인공의 욕망과 그 안 에 숨어있는 작가의 의도를 살펴봤다. 이상의 논의에서 드러나듯이 각 작 품들의 주인공의 의식 속에 작가의 의식이 투영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 었으며 그것은 그의 문학 초기부터 소망( 少 妄 ) 에 이르기까지 일정한 연 관성을 유지하며 심화되어 갔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당대의 지식인으로 서 시대적 고민과 자기 삶의 번뇌를 동시에 짊어져야 했던 채만식의 자전 적인 요소가 일련의 지식인 소설에서 지속적으로 묻어나왔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처녀작인 과도기( 過 渡 期 ) 를 비롯하여 생명( 生 命 )의 유 희( 遊 戱 ), 앙탈, 창백( 蒼 白 )한 얼굴들, 인텔리와 빈대떡 등 앞 서 잠시 거론한 작품들을 비롯하여 본고에서 다룬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명일( 明 日 ), 치숙( 痴 叔 ), 소망( 少 妄 ) 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것은 다시 패배자( 敗 北 者 )의 무덤, 냉동어( 冷 凍 魚 ) 로 연결되고 있 음을 알 수 있다. 치숙( 痴 叔 ) 의 경우 작가가 고백 38) 하였듯이 작품들의 연관성에서 약 간 이탈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초기작부터 계속 보 38) 그러나 내가 시방 痛 哭 하고 싶은 心 情 은 明 日 이 痴 叔 의 方 向 으로나마도 發 展 이 안되고서 少 妄 의 方 向 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채만식, 自 作 案 內, 靑 色 紙, , 76쪽 58

64 이기 시작한 지식인의 생활적 궁핍과 정신적 방황이 소망( 少 妄 ) 에서 자 의식 붕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패배자( 敗 北 者 )의 무덤 과 냉동어( 冷 凍 魚 ) 에 이르러서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39) 패 배자( 敗 北 者 )의 무덤 에서 종택이 불합리한 간접교사 를 하고 있을 수 없 다는 이유로 잡지사를 그만둔 후 자기분열을 겪다 결국 돌진해오는 급행 열차에 정면으로 들이받아 자살을 선택하는 지식인의 자의식은 냉동어 ( 冷 凍 魚 ) 의 주인공 대영에 이르러서는 스미꼬와 딸을 해산한 아내 사이에 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정체되어 버리는 지식인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 다. 39)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에서 생활의 위기를 겪고 있는 명일( 明 日 ) 의 주인공으로부터 신체제론의 논리를 빌어 자신의 문학적 침묵을 변명하는 냉 동어( 冷 凍 魚 ) 의 주인공에 이르는 위기의 심화는 채만식의 정신의 위기의 심화과 정과 엄밀히 대응한다. 이 위기의식이 절정에 이른 순간 들이닥친 체제의 위협은 그로 하여금 사소설 을 통한 자기 방어라는 최후 의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도 록 했다. 방민호, 앞의 글, 2001, 60쪽 59

65 Ⅲ. 장편소설 탁류( 濁 流 ) 의 인물의 탐욕과 비극 1. 탁류( 濁 流 ) 의 공간적 배경과 구성에 대한 접근 탁류( 濁 流 ) 는 朝 鮮 日 報 에 1937년 10월 12일부터 1938년 5월 17일까지 198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장편소설이며, 전체 19장으로 구성되 어 있다. 이 작품은 발표당시부터 임화나 김남천, 백철 등에 의해 세태소설 이나 풍자적 일면으로 많은 논의의 대상 1) 이 되기도 하였고 이후에도 1930년대를 대표하는 장편소설 중 하나로 꼽히면서 비교적 밀도 있는 논 의가 진행되어 왔다. 그것은 이 작품이 정초봉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근 대의 사회적 일면, 즉 당시 가속화되던 조선 서민계층의 빈민화와 근대적 속성을 오해석한 속물적 인물들 2) 의 전횡을 섬세하게 묘사하여 식민지 현 실에 비판을 가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가 의 이러한 현실비판 자세는 단지 작품의 결과만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시대적 근저( 根 底 )의 원인에서 출발하여 결과에 이르기까 지 그 낱낱의 과정을 아주 극명하게 드러냈다는 데 이 작품의 우수성이 있 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배경적 요소는 중요하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인물 욕망의 발현양상에 대해 본격적으로 접근하기 에 앞서 이 작품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살펴보고 그것이 인물 형상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1) 식민지 체제 하의 도시빈민 문제 1) 본고 Ⅰ장 2~3쪽 참조 2) 당시 사회가 근대로 규정되는 여러 근거 증 산업의 발전을 통한 경제성장도 간과할 수 없는 한 조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근대화의 과정 중 경제성장이 지대한 영향을 미 치는 것은 사실이나, 경제성장이 반드시 근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탁류( 濁 流 ) 에서 인물의 심리기저( 心 理 基 底 )엔 조선사회의 경제발전을 통한 부 의 형성 이 곧 근대화로 이해되고 있으며, 그들에게 있어 근대적 속성은 이성( 理 性 ) 의 간섭을 배제하고 타인을 자기 욕망의 매개물로 취급하는 탐욕지향적 성향이 강 하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60

66 문학작품에서 배경의 비중( 比 重 )은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중 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투영하려 한 가치관의 밀도는 인물의 존재만으로는 결코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 시 공간적 배경의 절 실함과 인물의 행위양상이 적절히 배합될 때라야 온전히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탁류( 濁 流 ) 의 시 공간적 배경은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억압과 수탈의 대상이 되던 서민들의 터전과 일치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독자는 식민지 당시 서민들의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와 함께 작가가 의도한 주제에 근접하여 인물들의 행위를 바라볼 수 있게 되 는 것이다. 3) 또한 이 작품의 제목 濁 流 는 청류( 淸 流 ) 와 반의어의 관계에 있는 단어로, 작품 첫머리에서 지도를 내려다보며 청류가 탁류로 변해가는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을 통해 같은 자질에도 흐르는 장소의 청탁( 淸 濁 )에 따라 탁류가 되고 마는 인간사의 현실을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다. 즉, 이 것은 당시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작품의 현실을 보다 강하게 각 인시키려는 작가의 의도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를 통해 작중인물들의 굴절되고 급기야 파탄에 이르는 삶을 암시하고자 했다. 금강( 錦 江 ) 이 강은 지도를 펴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둥께서 남 북으로 납작하니 째져가지고는 한강( 漢 江 )이나 영산강( 榮 山 江 )도 그러키는 하지만 그것이 아주 재미잇게 벌어저 있슴을 알 수 잇다. 한 번 비행기라도 3) 이은숙은 탁류( 濁 流 ) 중 특히 배경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작가들이 일반적 으로 문학작품에서 자연경관을 묘사하는 일반적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 한다. 첫째는 작품의 공간적 배경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을 구체적 인 현실로 이해하도록 하기 위한 수단으로의 이용이다. 둘째는 작품의 전체적인 주 제를 암시하기 위한 수단으로의 사용이다. 셋째는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예고하기 위한 방법으로의 이용이다. 넷째는 주인공의 정서적 상태를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 한 목적으로의 사용이다. 이은숙, 문학작품 속에서의 도시경관-채만식의 탁류를 중심으로, 상명여대사회과학 연구5, , 5 6쪽 탁류( 濁 流 ) 는 이은숙이 제시한 이유에 모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제 목과 배경을 통해 암시되는 작품의 주제성은 채만식의 다른 작품에서도 자주 확인 할 수 있는 채만식 특유의 문체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61

67 타고 강줄기를 따러가면서 내려다보면 또한 그럼직할 것이다. 저 준험한 소백산맥( 小 白 山 脈 )이 제주도( 濟 州 道 )를 건너보고 뛰엄을 뛸듯 이, 절라도의 뒷데숙이를 급하게 달리다가 웃뚝 또 한번 웃뚝 놉히 소꾸친 갈재( 蘆 嶺 )와 지리산( 智 異 山 ) 두 산의 산협물을 바더가지고 장수( 長 水 )로 진안( 鎭 安 )으로 무주( 茂 朱 )로 이러케 역류하는 게 금강의 남쪽 줄기다. 그놈이 영동( 永 同 ) 근처에서는 다시 추풍령( 秋 風 嶺 )과 속리산( 俗 離 山 )의 물까 지 바드면서 서북( 西 北 )으로 좌향을 돌려 충청좌우도( 忠 淸 左 右 道 )의 접경을 흘러간다. (필자 중략) 여기까지가 백마강( 白 馬 江 )이라고 이를테면 금강의 색동이다. 여자로 치면 흐린 세태에 찌들지 아니한 처녀적이라고 하겟다. 백마강은 공주 곰나루에서부터 시작하야 백제( 百 濟 ) 흥망의 꿈자최를 더드 머 흘은다. 풍월도 조커니와 물도 맑다. 그러나 그것도 부여 전후가 한참이지, 강경이에 다다르면 장꾼들의 흥정하 는 소리와 생선 비린내에, 고요하든 수면의 꿈은 깨어진다. 물은 탁하다. ( 朝 鮮 日 報 ) 서두( 序 頭 )가 소설의 공간인 군산이 아닌 갈재( 蘆 嶺 )와 지리산 사이 산협 의 금강 발원지부터 시작되고 있다. 여기서 다소 장황하게 금강이 거치는 여러 지명을 나열하다가 공주, 부여를 지나 강경, 군산에 이른다. 그리고 흐린 세태에 찌들지 않은 처녀 처럼 맑은 청류는 많은 굽이를 거치면서 수면의 꿈이 깨어지고 탁류로 변하는 상황은 순수하고 맑은 꿈을 간직한 스물 한 살 처녀 초봉이 고태수, 장형보, 박재호 등의 속물적이고 악랄한 인간들을 거치면서 탁류 와도 같은 인간이 되고 말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금강이 지나는 조선 땅 곳곳을 훑다가 공주 곰나루에 이르러서는 백제 흥망의 꿈자취를 더듬어 흐른다 고 하여 마치 우리 민족이 당시 역사 적 흥망의 길에 접어들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4) 그리고 그 흐름이 탁류 4) 여기에서 反 植 民 地 的 투쟁이 긴박한 생존권의 문제로서 제기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작가 蔡 萬 植 이 반식민지적 투쟁의식을 간직했다고 하더라도 작품 제작의 과정에 서 그것을 直 說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작가로서의 역량 이전의 현실적인 强 壓 때문이 62

68 로 변하여 더 이상 갈곳을 잃은 곳이 바로 장꾼들이 흥정하는 소리 와 생 선 비린내 진동하는 군산 시가지이다. 이상과 같이 서두의 상징적인 배경 설정은 주인공 초봉의 개인적인 비극을 통해 민족적 운명으로까지 시각을 확대하려 한 작가의 의도를 간취( 看 取 )할 수 있으며, 또한 초봉과 그 가족의 운명을 통해 도시빈민층의 빈곤한 사회적 현실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음 을 알 수 있다. 예서부터가 조선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지금은 개복동과 연접된 구복동( 九 福 洞 )을 한데 버무려가지고 산상정( 山 上 町 )이니 개운정( 開 運 町 )이니 하는 하이칼라 이름을 지엇지만, 예나 시방이나 동네의 모양다리는 그냥 그 대중이고 조금도 개운은 되질 않았다. 그저 복판 에 포도장치( 鋪 道 裝 置 )도 안한 십오 칸짜리 토막길이 잇고, 길 좌우로 연달 어, 평지가 있는 둥 마는 둥하다가 그대로 사뭇 언덕비탈이다. 그러나 언덕비탈의 언덕은 눈으로는 보이지를 않는다. 급하게 경사진 언덕 비탈에 게딱지 가튼 초가집이며, 낡은 생철집 오막사리들이, 손바닥만한 빈틈 도 냄기지 아니하고 콩나물 길듯 다닥다닥 주어백혀, 언덕이니라 짐작이나 되지 언덕은 보이지 아니하다. 이 개복동서 그 너머 둔뱀이로 넘어가는 고개 를 콩나물고개라고 하는데, 시럽시 제격에 맛진 이름이다. 개복동, 구복동, 둔뱀이, 그리고 이편으로 뚝 떠러져 정거장 뒤에 잇는 스 래( 京 浦 里 ), 이러한 몃 곳이 군산의 인구 칠만 명 가운데 육만도 넘는 조선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어깨를 비비면서 옴닥옴닥 모여 사는 곳이다. 면적 으로 치면 군산부의 몇십분지 일도 못 되는 땅이다. ( 朝 鮮 日 報 ) 20, 30년대 일제의 식민지 산업화정책은 조선의 점진적인 구조적 발전 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필요, 일본자본의 이식에 따른 것이었기 때 문에 도시로 유입되는 노동인력을 수용하기에는 그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여건 하에서 도시로 유입된 농촌의 이농민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실 었다. 그렇다고 그냥 부퉁켜 안고 좌절할 것이냐. 그 장벽의 어느 한귀퉁이라도 뚫으려 는 작업을 하지 않는 한, 작가가 아닌 被 植 民 地 民 의 일원으로 전락되는 것이었다. 홍이섭, 蔡 萬 植 의 濁 流, 創 作 과 批 評, 봄, 60쪽 63

69 업자군을 형성하게 된다. 이들 중 일부가 도시주변의 국유지나 민유지에 토막이나 움집을 짓고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들이 이른바 토막민( 土 幕 民 ) 이다. 5) 인용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조선 토막민들의 후진한 취락지역( 聚 落 地 域 )에 이어서 일본인 주거지역에 대한 설명이 잇따르고 있다. 작가가 직 접 일본인 주거지역이라 밝히진 않지만 작품에서 예서부터가 조선 사람 들이 모여 사는 곳 이라 밝힌 만큼 인용 다음에 이어지는 정리된 시구( 市 區 ), 근대식 건물, 사회 위생시설 등 문화도시다운 모습은 바로 일본인 주거지역에 대한 설명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일본에 대한 비판이나 부정 은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었으므로, 작가는 군산 시가지의 모습을 한일간 민족의 현실이라는 직설적인 대비( 對 比 )에서 살짝 비켜, 다수의 빈곤계층과 소수의 풍요를 누리는 계층으로 나눠 제시하면서 소수가 누리는 풍요의 정체가 무언인지 가늠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작품 속에 거명되는 동네 이름들은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모순되 고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묘사한 것이라 하겠다. 당시 군산은 칠만의 인구 가 밀집하여 살고 있던 대처( 大 處 )로서, 그 중에 육만이 넘는 대다수의 인 구는 이땅의 원주민인 조선인들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생활하는 공간 은 고작 개복동, 구복동, 둔뱀이로 전체 시가 면적에서 일부에 불과했다. 반면에 시가지 대부분은 소수의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인데 시가의 중 심인 본정통, 전주통을 향해 뻗어있는 요지였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 또한 대조적이어서 조선인들의 집들은 모두가 게딱지같이 작은 초가 요, 낡은 생철 오두막이었지만, 일본인들의 집은 문화주택으로서 그들이 모여 사는 동네는 문화도시다운 면모를 갖춘 고급주택가였던 것이다. 채만식은 이렇게 시가지를 나누어 조선인과 일본인의 살아가는 모습을 5) 그러나 식민지하의 산업정책은 이들을 수용하지 못하는 파행성을 지니고 있었고 그로 인해 도시에서의 실업자군을 형성하였다. 숙련된 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이들은 단 순한 육체노동을 요하는 날품팔이 등의 일용노동에 의지 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행상 이나 직공 직인, 점원 등의 일을 하기도 하였으나 생계를 유지해 나가기에는 최악의 조건이었으며 상층으로의 신분상승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들은 도시 주변에 토막을 짓고 방 한 간에 가족원 5~6인이 공동생활을 하였으며 하 루하루의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데 급급할 정도로 최악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현종철, 일제지배하 도시빈민 생활 연구 대도시 土 幕 民 을 중심으로, 경희대 석 사논문, 1996, 63~64쪽 64

70 비교하고, 야만사회와 문명사회로 대조되게 함으로써 민족자존의 의미를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즉 이 땅의 원주민이요, 주인으로서 주권을 상 실당하고, 생존권과 모든 기득권을 박탈당한 채 일제의 간교한 농간에 의 해 투기행위에까지 휘달려 도시 빈민층으로 추락하는 부조리한 세태를 보 여주고자 했다. (2) 중심인물의 변환을 통한 이중 구조 탁류( 濁 流 ) 는 전체 19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분량만 해도 200장 원고지 2, 300여매나 될 만큼 채만식 소설에서 가장 긴 소설로, 주인공 초 봉 주위에 온갖 군상( 群 像 )들이 모여 자신의 탐욕과 속악( 俗 惡 )한 일면을 드 러내며 한데 뒤엉켜 있다. 이렇듯 이 작품이 초봉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전체 내용의 맥을 관통하며 전개를 이끌고 있는 인물 역시 초봉으 로 이해되기 쉽지만, 그녀의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을 감안한다면 인물 들과의 관계를 주도하며 극적 전개를 결정한다고 보긴 어렵다. 이렇듯 그 녀가 주인공이면서 작품의 전면에서 주도적으로 위치하지 못하는 것은 초 봉을 나락으로 이끄는 고태수, 장형보, 박제호 등 외부적인 요인을 보다 부 각시키기 위한 작가의 의도로 보인다. 이 작품이 일제의 강압 아래 수탈당 할 수밖에 없는 민초들의 삶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면 외부적 요인 으로 부각되는 부정적 인물들은 곧 일제의 가혹한 수탈의 상징이 된다고 볼 수 있다. 6) 또한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긍정적 인물들로 인식되고 있는 남승재와 계 봉 역시 작품에서 내용을 이끄는 주도적 인물로 볼 수 있다. 특히 남승재 6) 이에 대해 임종국은 초봉의 주변에 등장하는 부정적 인물 중 일본인이 단 한 명도 등 장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며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시대성의 고찰에 문 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임종국, 한국 문학의 민중사 일제하 문학의 민중의식, 실천문학사, 1986, 347~348쪽 물론 작품 중에 일본인이 등장하여 얻어지는 상징적 효과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당시의 창작 현실에 비춰 일본인을 노골적인 부정적 대상으로 삼기 어려웠을 뿐만 아 니라, 이미 일본의 억압과 착취가 횡행한다는 전제 아래 동족 간에 행해지는 갖은 술수 와 간계가 오히려 탁류( 濁 流 ) 의 작품성을 더욱 높이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본다. 65

71 는 초봉을 비롯하여 고태수, 박제호, 장형보 등 모든 인물과 관계를 형성하 면서 작품 전체를 관망( 觀 望 )하며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의 역할을 담 당하고 있다. 물론 승재와 채봉(계봉의 오식)이는 단편적인 삽화, 대화를 통 해 그들의 성격과 의식의 성장을 드러내고 있을 뿐,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사건에 연계되지는 못하고 있다 는 비판과 함께 이 소설에는 초봉이가 관 계하는 플롯만이 존재할 뿐 승재와 계봉이 중심이 되는 플롯은 성립되지 않는다 7) 고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남승재나 계봉의 중요도나 역할이 상기 부정적 인물들보다 떨어지는 것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이는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에서 손자 종학이 단 한 번도 작품에 등장하지 않으 면서 전반적인 내용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과 유사한 경우로써, 작품의 구성력과 시사성을 높이기 위한 작가적 고심이 남승재나 계봉의 상징성을 높이는 개작( 改 作 )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탁류( 濁 流 ) 를 읽는 독자는 이런 말을 들으면(어쩐지 이상하더 라니 하고) 짐작되는 게 있을 것이다. 탁류( 濁 流 ) 는 실상 전편 완결을 시 켰던 것을 후반 8, 90회 그 어림부터 너무 안된 대문이 많기에 백 회 이후는 재퇴고( 再 推 敲 )를 하는 중인데, 역시 한번 더 붓질을 한 만큼 좀더 미끈해진 구석이 없지는 않으나 그 개신 또 내 머리의 피로에서 오는 이상을 반영하여 전호가 연맥이 닿질 않기 때문에 조리없이 진행된 곳이 군데군데 드러나보인 다. 8) 明 日 의 方 向 을 좀더 넓고 世 俗 的 인 世 界 에서 發 展 시켜 보자던 것이 長 篇 濁 流 다. (필자 중략) 그러나 濁 流 가 林 和 氏 의 所 說 대로 종시 世 態 를 世 態 대로 그려놓기만 했지 희미하고 未 洽 하나마 거기에 어떠한 積 極 的 인 作 者 의 意 慾 이 果 然 보인 게 없었는가? 또 金 南 天 氏 에 依 하면 미상불 그 積 極 的 인 作 者 의 意 慾 이 보인 7) 나병철, 1930년대 후반기 도시소설 연구, 연세대 박사논문, 1989, 163~164쪽 8) 채만식, 잃어버린 10년, 朝 鮮 日 報, ~26 ( 채만식 전집 3, 504 쪽 재인용) 66

72 게 事 實 인 듯한데 그것을 갓다가 作 品 을 잡어놓은 蛇 足 으로 괄시를 해야 할 것인가? 9) 은 탁류( 濁 流 ) 가 한창 발표되던 중에 쓴 자작해설문( 自 作 解 說 文 )으로, 이미 쓰여진 작품에서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로 후반 8, 90회 정 도는 다시 써야 하고 30회 정도는 아예 개작의 수준으로 고치고 있음을 말 하고 있다. 여기서 채만식이 무슨 이유로 다 쓴 원고에 개작까지 마음먹었 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역시 자작해설문인 를 참고하면 어느 정 도 납득할 수 있다. 채만식은 임화가 자신의 소설을 단지 세태의 묘사에만 그친 수준의 것이라는 말에 반발하면서 세태묘사 이상의 것 즉, 적극적인 작자의 의욕 이 있었음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적극적인 작자의 의욕이란 채만식이 기존작품에서 줄곧 이어온 사회비판 의지를 뜻한다고 볼 수 있으며 실제 작가의 이러한 의지를 담은 인물이 바로 남승재와 계봉 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봤을 때 10장 태풍( 颱 風 ) 은 이 작품에서 전 후반부 를 가르는 중요한 기점이 되고 있다. 이 장에서는 김씨와 놀아나던 고태수 가 한참봉에게 맞아죽고, 초봉이 장형보에게 겁탈당하면서 이야기의 전개 가 급속하게 전환되고 있으며 10장을 중심으로 전 후반부로 나눠 봤을 때, 상기 인용에서 작가가 후반부에 공을 들였다는 말처럼 전 후반부의 전개가 서로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탁류( 濁 流 ) 에서 전반부에 해당하는 1장 인간기념물( 人 間 記 念 物 ), 2장 생활 제일과( 生 活 第 一 課 ) 등에서 9장 행화( 杏 花 )의 변( 辯 ) 에 이르기까지는 작품의 거의 대부분의 인물이 등장하고 비슷한 비중으로 작품 세계를 점 유하면서 장의 시작이 전환적, 불연속적이었던 것이 후반부에 해당하는 11장 대피선( 待 避 線 ), 12장 만만한자의 성명은 에서 마지막 19장 서곡( 序 曲 ) 에 이르기까지는 작품이 현저하게 초봉에게로 집중되어 그녀와 다른 인물 사이의 일종의 위계질서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10) 그리고 그녀를 중심으로 전반부에서는 고태수가, 후반부에서는 장형보와 남승재가 주도 9) 채만식, 自 作 案 內, 靑 色 紙, ~77쪽 10) 황국명, 채만식 소설연구, 태학사, 1998, 297~302쪽 67

73 적 인물로서, 사건의 전개를 이끌고 있으며 인물간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인물의 형상화 양상 장편소설은 그 분량의 특성상 당시의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인물 의 욕망과 그 욕망의 실현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각 인물의 유형을 분 류해야 한다. 더구나 본고에서 다루는 탁류( 濁 流 ) 는 그 양식적 특성상 장편소설로 단편소설과 달리 다양한 인물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 가 운데 중심을 이루는 인물로 정초봉을 꼽을 수 있다. 따라서 초봉의 성격을 파악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인물과의 관계형성 을 파악하기 위해 초봉을 비롯하여 여타 주요인물의 성격과 유형을 살펴 보도록 하겠다. 탁류( 濁 流 ) 에 대한 많은 논의 중 인물에 대한 연구가 차지하는 비중 은 상당히 크다. 이것은 이 작품이 인물의 정형성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동 시에 그러한 인물들이 식민지라는 사회현실 속에서 허위의식과 무능력한 형태로 대응하는 모습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발표 초기에서 거 론됐던 세태소설 논쟁 역시 이러한 이 작품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탁류( 濁 流 ) 에서는 그 성격상 비교적 분명하게 선인형과 악인형으로 나 눠지는데 이렇게 이분화 된 인물들은 우리 고소설에 흔하게 보이며 이는 주제와 구조의 정형성을 가져오게 한다. 탁류의 부정적인 평가는 바로 이 러한 인물들의 전형성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보아진다. 11) 이들 인물들은 다시 긍정적 인물과 부정적 인물, 중립적 인물로 유형화시켜 생각할 수 있 다. 12) 11) 유금호 채희윤, 탁류의 페미니스트적 독서 시론, 목포대학교논문집 15, 1, , 7쪽 12) 조남현, 소설원론, 고려원, 1982, 이보다 앞서 이주형은 탁류( 濁 流 ) 의 인물유형을 상승계층 과 몰락계층 으로 나누 었고, 박노태는 이에 속물계층 을 추가하여 분류하였으나 개념상 조남현이 제시한 것 68

74 (1) 초봉의 인간적인 한계와 파멸 탁류( 濁 流 ) 는 전체적으로 초봉이 전락하여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중 심 플롯으로 삼고 있고 그녀를 중심으로 여러 인물들이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에 대한 논의는 초봉을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양상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초봉을 뚜렷한 자의식 없이 주변의 상황 에 끌려가는 희생양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 반면 그녀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녀 자신의 책임으로 보고, 그녀의 비극적인 운명을 선택의 잘못으로 해 석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최근에 들어서는 이들 양쪽의 의견에 대해 수용 과 검토를 거치면서, 초봉의 성격이 주변의 환경에 의해 변화되었다는 입 장을 보이기도 한다. 다시 말해 다소 우유부단한 면모도 보이지만 타고난 천성은 유순한 초봉이 열악한 환경과 부정적 인물들에 의해 영향을 받아 성격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그녀의 청초하고 유순한 성격 이 결말에 다다를수록 다소 극단적으로 변모되어 가는 것은 그녀의 부모 인 정주사 내외와 고태수, 박제호, 장형보 등 부정적 인물의 영향 탓이라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본고에서는 그러한 그녀 성격의 변모 과정 을 살펴보고자 한다. 초봉은 3년제 여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신교육을 받은 여성이면서도 신 여성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그녀의 타고난 천성이 그러 한 탓도 있으려니와 그의 부친 정주사의 몰락과도 관계가 있다. 정주사가 미두장( 米 豆 場 )에 나가는 것 외엔 변변한 소일을 하지 못하는, 즉 가장으로 서 스스로의 권위를 유지할 만한 수준의 생산 활동을 못하는 상황에서 성 인으로 성장한 초봉에게로 가족 부양의 책임이 떠넘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녀에게 가족 부양의 책임은 자기희생을 통해서라도 가족들의 안위를 돌 봐야한다는 관념이 강하게 지배하여 결국 고태수와 원치 않는 결혼을 결 정하게 되는 배경으로 작용함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작가는 초봉을 근대적 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주형, 채만식 연구, 서울대 석사논문, 1973, 32 34쪽 박노태, 채만식 소설연구-인물유형을 중심으로, 영남대 석사논문, 1989, 42쪽 69

75 인물로 성장할 기회를 부여받고도 근대성을 획득하지 못한 인물로 그리고 있다. 13) 즉 남성적 권위에서 벗어나 주체적 삶의 기회를 얻었음에도 불구 하고 자신의 전근대적 결함에 의해 가시거리 내의 평이한 삶만 쫒는 한계 를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초봉이는 비단 오늘 일뿐 아니라, 크고 적은 일이고 간에 누구한테든지 저 하고시픈대로 고집을 세운다든가 속에 있는 말을 조백잇게 해대지를 못한다. 속이야 다 우렁이속가티 잇으면서 말을 하려고 하면 가령 그것이 억울하다든 지 분한 경우라든가 기운이 거트로 시언시언하게 내뿜기지를 안코 속으로만 숙으러들어, 목이 잠기고 눈물이 아플선다. ( 朝 鮮 日 報 ) 인용은 작품 초반으로, 박제호의 아내 윤희에게 모진 의심과 히스테리를 당하면서도 뭐라 변명 한마디 해대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것은 후반부에서 초봉의 성격이 변화하는 과정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기 위 해 작가가 일일이 개입하여 초봉을 직접 설명한 것 중 하나로 작품의 문학 성을 다소 떨어뜨리기는 하지만, 윤희와의 작은 마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초봉의 우유부단하고 소극적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초봉은 전반부에서는 순진하고 단순하여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펴지 못 하는 소극적인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자기주장과 타산적인 면모 는 미약한 형편이다. 초봉이 고태수를 선택하게 된 동기는 현실적으로 정 주사와 유씨의 작정 이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이 작용했으며, 그 배경은 집안이 가난했기 때문이다. 즉 집안의 가난은 초봉의 행동과 의식을 제약 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되었으며 거기에다 그녀의 소극적인 성격이 원 하지 않는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이러한 성격이 결정적 인 변화의 계기를 맞게 되는데, 그 원인은 주지하다시피 장형보의 겁탈과 고태수의 죽음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에게 새로운 사고의 13) 이 작품이 여성중심의 소설이면서도 전작 인형( 人 形 )의 집을 나와서 의 노라와는 사뭇 다른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노라의 경우 자기 삶이 불행하다는 인식하고 그 불행 이 스스로를 한계 지우는 여성들의 가치관에 있다고 보고 자기 삶의 모순을 탈피하려 는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탁류( 濁 流 ) 에서 초봉은 자기 삶에 대한 불행의 인식이 가족부양의 책임 아래 번번이 묵과( 過 )되고 있는 것이다. 70

76 전환을 주게 된다. 초봉이는 시게치는 소리에 비로소 제정신이 들었다. 그럼, 군산을 떠나야지! 하면서, 놀랜 것처럼 벌떡 일어나 안즈면서 혼잣말을 한다. 그리 서두는 품 이 방금 혼자말을 하든대루 당장 옷을 채려 입고 뛰처나설 것 갓다. 불쾌한 기억이, 내 자신도 내자신이려니와 남의 의목에서 오래오래 가시잔 흘 이 군산 바닥이 실엇다. 더구나 장가놈이 잇서서 위험하다. 하는 눈치가 아 프로 솔언찬흘상 부르니 진즉 피하느니만 갓지 못하다. ( 朝 鮮 日 報 ) 인용은 이 작품에서 최초로 보여주는 그녀의 주체적인 사고이다 싶을 정 도로 타인의 개입 없이 스스로 서울행을 결정하는 장면이다. 그녀의 서울 행은 바로 박제호를 통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에서 비롯되지만, 역시 남성적 권위 안에서 자신의 안위를 찾으려는 그녀의 전근대적 사고 는 초봉의 삶이 장차 비극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작품 후반부에 가서는 더 이상 청초한 매력을 갖춘 희생양의 면모 는 보이지 않는다. 다음은 형보와 동거하기로 작정한 초봉이 보여주는 악 착스럽고 속물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면 첫재, 이애 아프루다가 네이름으루 하나 허구, 내이름으루 하나 허 구, 생명보험 하나씩 얼마짜리? 천 원짜리. 천 원짜리? 천 원짜리가 둘이면 가만 있자 얼마씩 부어가누? 형보는 까막까막 구누를 대보다가 그랬다! 하면서 고개를 꾸빽한다. 그건 그러쿠 그 댐은, 그새 박제호두 그래왓스니깐 너두 나무 양식 집 세는 다아 따루 내려니와, 그런 것 말구두 가용으루 다달이 오십 원씩 내 손 71

77 에다 쥐이주어야지? 그러자면? 매삭 백 환이 훨씬 넘는데 그러치만 할 수 잇나! 박제 호만큼 못한대서야 안될 말이지. 그럼 그것두 자아 그랫다! 그러구 또, 그 담은, 돈을 한목아치 천 원을 나를 주어야 한다? 천 환? 현금을? 그래. 그건 좀 문젠걸? 돈이 업는 건 아니지만 장사는 미천이라 놔서 한목세 천 환을 집어내구 보면 그만큼 수입이 준단 말이야! 시방 육천 환을 가지구 주물러서 매삭 이백 환 가량 새끼가 치는데, 만약 천 환을 업세구 보면 아무 래두 어렵겟는걸? 대관절 현금 천 환은 무엇에다 쓰려구 그리누? 우리 친정두 먹구 살게시리 한끄터리 잡어주어야지! 얘! 이건 바루 기생 여대치는구나? 머, 내가 기생보담 날 건 잇다드냐? 무서운데! 또 있다 우리 친정 동생들 서울루 데려다가 공부시켜 주어야 한다! ( 朝 鮮 日 報 ) 초봉은 박제호로부터도 버림받게 되자 형보의 동거 제의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녀가 형보에게 요구하는 동거의 전제조건은 상당히 이악스럽다. 유순하고 수줍은 그녀의 처녀적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지금 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초봉이 전락하는 과정은 환경적인 요인과 그의 성 격적인 결함이 빚어내는 결과라 볼 수 있는 것이다. (2) 주도적 인물들의 성격과 영향관계 탁류( 濁 流 ) 가 전체적으로 초봉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고, 청초하고 순진하던 그녀가 인간적으로 황폐해지고 결국 장형보를 죽임으 로 해서 스스로 파멸의 길로 치닫는 과정이라고 볼 때 이러한 단초를 제공 하는 부정적 인물들에 대한 서술은 당연히 자세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 러한 부정적 인물들은 모두 초봉을 연결끈으로 해서 각기 나름의 이해관 72

78 계가 얽히게 되고 그녀가 나락에 빠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들의 성격을 살펴볼 때 초봉과의 관계가 더욱 중요하지만 그것은 다음 절에서 다루기로 하고 이들이 모두 한 선상에서 엮어지는 모습을 잠시 살펴보도 록 하겠다. 먼저, 정주사의 경우를 살펴보기로 한다. 선비 집안의 자제로 태어난 그 는 구한말 선친이 신구학문을 겸해 가르쳐 소시에는 십 년 넘게 군청의 고 원을 지내기도 했다. 나이 들어 군청에서 밀려난 그는 가산을 정리하여 군 산바닥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은행, 미두 중매점, 회사를 전전하다가 여의치 못하자 미두에 빠져든다. 그러다 밑천 한 푼 없는 빈털터리가 되어 미두꾼에서 하바꾼으로 전락한 신세이다.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신세로 전락한 정주사에게 자신의 딸 초봉의 혼담 은 귀가 솔깃한 얘기였다. 그것은 초봉의 신랑 되는 사람에게 한 밑천을 얻어 쓸 수 있으리란 계산에 따른 것이었다. 그렇게 슬슬 얼버무려 혼인을 하고, 혼인을 하고 나서는 그 신랑이라는 사 람이 속 트인 사람이고, 돈냥이나 제 손으로 주무르는 형편이면, 또 혹시 몇백 원이고 몇천 원이고 척 내주면서 아 거 생화도 없이 놀고 하시느니 이걸로 무슨 장사라도 소일삼어 해 보시 지요? 이러랄 법도 노상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 초봉이가 그렇잖은 아이니까, 제 남편더러 그렇게 해달라고 조르기라도 할는지 모르는 것 그래 저희들이 그런 소리를 하거들랑 짐짓 원, 그게 될 말이냐! 고 그래서야 내가 돈에 욕기가 나서 혼인을 한 것이 되지 않느냐? 고, 준절히 이르다가 그래도 저희들이며 옆엣 사람들이 나서서 무얼 그러느 냐고 권면은 할 테니까, 그때는 못이기는 체하고 그 돈을 받아 한밑천삼 아서 장사를 해 미상불 그렇게 어떻게 잘만 하면 집안 셈평도 펼 수도 있 기는 있으렸다! ( 채만식 전집 2, 52 53쪽) 73

79 정주사의 이러한 생각은 초봉에게 혼담을 넣는 이가 은행원 고태수임을 알면서 더욱 분명해진다. 중매를 서는 김씨에게 서울에서 천석지기 과부의 외아들에다 양반이요, 경성에서 전문대학교까지 나왔다는 말을 들으면서 한 오륙백 원? 오륙백 원쯤 가지고야 넘고 처져서 할 게마땅찮고 아마 돈 천 원은 둘러주겠지. 혹시 몇 천 원 척 내놓을지도 모른다 는 생각 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정주사의 이러한 속물적인 생각은 그에게서만 그 치면 그의 인간적인 단점으로 볼 수 있겠으나 이러한 모습은 그의 아내에 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외양두다 똑똑허구 허긴 헌데, 어찌 눈짜가 좀 독해 뵙디다아? 아냐, 거 그 사람의 눈이 독한 눈이 아니야 그러구 저러구 간에, 여보! 그렇게까지 흠을 잡아낼래서야 사우감을 깎아맞춰야 하지, 어디 정주사는 발을 따악 개키고 몸뚱이를 좌우로 흔들흔들, 양말 벗어던진 발샅 을 오비작오비작 후비고 앉아서, 누구와 구누나 하는 듯이 눈을 연신 깜짝깜 짝, 자뭇 유유한 태도다. 글쎄 나도 그것이 무슨 대단한 흠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단 말이지요, 머 아뭏던지 사람은 그만하면 괜찮겠읍디다. 괜찮구말구! 그만하면 그런데 거, 그 사람이 술을 좀 먹는 모양이지? 이번에는 정주사가 탈을 잡는 체한다. 한즉은 유씨가 이번에는 차례 돌림이 나 하듯이 부리나케 그것을 발명하기를 (필자 중략) 그리하여 그들은 이미 악취가 나는 것도 그것을 번연히 코로 맡고 면으면서 실끔 외면을 하고는, 하나가 혹시 어찌 좀 퀴퀴허우? 할라치면 하나가 얼른 내달아 아냐. 구수한 냄새를 가지구 그리는구려. 하고 달래고, 그러다가 또 하나가 그런데, 어쩐지 좀 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군! 할라치면, 하나가 서슬이 시퍼래서 향깃허구면 그리시우. 74

80 하고 새수빠진 소리를 하는 것을 지천을 하던 것이다. 이렇듯 사리고 조심하여 눈을 가리고 아웅한 덕에, 내외의 의견은 더 볼 것 도 없이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 채만식 전집 2, 쪽) 이렇듯 딸의 혼사에 있어 딸의 행복을 우선 고려해야 할 부모의 입장에 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쫒는다. 그러나 이것이 이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식민지 지하에서 빈민층 전체의 문제라 볼 수 있다. 생활은 점점 궁핍해지면서 뚜렷한 대안이 제시되는 않는 이들의 삶에 고태수 같 은 배경을 가진 인물은 다시 없이 훌륭한 사윗감인 것이다. 그러나 고태수의 이러한 배경은 헛소문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는 은행원 으로 근무하면서 소절수를 위조하여 거액을 유용하면서 방탕한 생활을 하 고 하숙집 주인여자이자 초봉과의 중매쟁이인 김씨와 간통을 하는 둥 근 본적으로 타락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방탕하고 타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장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관계는 서울에서부 터 시작되지만 군산에 내려와서 단짝처럼 가까워진 것은 고태수의 배경이 크게 작용한다. 고태수는 표면적으로 은행에서 당좌계를 맡고 있는 직원으 로 남의 돈을 아무도 모르게 빼서 쓸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런 그가 오 입판에 뛰어 들면서부터 큰 돈이 필요했고 돈을 충당하기 위해 소절수 위 조라는 부정을 저지르는데 있어 형보가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형보 역시 소절수를 위조하여 돌린 돈에서 일부를 자신이 가지고 고 태수가 마련한 돈으로 같이 향락도 즐기는 등 이들의 관계는 정상적인 친 구의 관계라기보다는 서로의 이익이 맞아떨어져 공존하는 관계이다. 소절 수를 위조하고 하숙집 주인여자와 간통하는 등 일견 영악해 보이는 고태 수가 어떻게 장형보를 미덥고 절친한 친구로 생각했는지는 모르나 그는 끝까지 의리를 지킬 각오까지 하고 있었다. 이들의 이러한 이익 관계는 장 형보가 고태수에게 상대적 결여감을 느끼면서 서서히 깨어지기 시작한다. 우선 장형보의 외모부터 정상적이지 않다. 그의 퀭하니 광채잇는 눈은 크기도 간장종지 한 개만큼씩은 하다. 이 사람을 목간탕에서 보면 더욱 기괴하다. 75

81 고리라의 뒷다린 듯십게 오금이 굽고 발이 박그로 벌어진 두 다리 우에, 그 놈 등 뒤로 혹이 달린 짫운 동체가 부터 잇고, 다시 그 위로 목아지는 잇는 둥 마는 둥, 중대가리로 박박 깎은 박통만한 큰 머리가 괴상한 얼굴을 해가지 고는 척 올라안즌 양은, 하릴업이 세게 풍속사진 가튼 데 잇는 아메리카 인데 안의 토템 이다. ( 朝 鮮 日 報 ) 이 작품에서 초봉의 삶에 가장 큰 악영향을 미치는 인물이 장형보인 점 으로 미뤄 외모에서부터 그를 기괴하고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다루려는 의 도가 있었겠지만, 이렇게 정상적이지 못한 모습은 자신이 그 치부를 낱낱 이 알고 있는 고태수가 표면적으로나마 상당한 신임을 얻으며 정상적인 생활을 해나가는 것에 대하여 음흉한 질투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 여 고태수를 파멸시키고 자신이 이익을 얻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 다. 형보는 늘 두 가지의 엉뚱한 게획을 품고 지낸다. 첫째, 그는 제가 제 손수 무슨 농간을 부리든지 혹은 누구를 등ㅅ꼴을 처서 든지, 좌우간 군산을 떠나 북쪽으로 국경을 벗어날 그 시간 동안만 무사할 돈 이면, 돈 만 원이고 이삼만 원이고 상말로 임금마누라가 망건 사러 가는 돈이 라도 더퍼노코 들고 뛸 작정이다. 뛰어서는 북경으로 가서 당대 세월 조흔 금제품 밀수( 金 製 品 密 輸 )를 해먹 든지, 훨씬 더 내려안저 상해로 가서 게집장수나 술장수나, 또 두 가지를 겸해 해먹으려는 것이다. ( 朝 鮮 日 報 ) 박제호는 초봉이 결혼하기 전에 근무하던 약국 주인이다. 제호는 겉으로 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의 풍모를 하고 있지만, 속은 엉큼한 호색한이다. 그 는 자기 약국에 근무하던 초봉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고 있었으나, 그 낌새 를 알아차린 아내의 감시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남편 고태수가 죽던 날 형보에게 추행을 당한 뒤 고향을 떠나가는 초봉 을 열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그는 그녀를 꾀어 자신의 욕망을 채우게 된 다. 초봉과 동거를 하며 달콤한 나날을 보내다가 그녀의 배가 불러오자 실 76

82 증이 나기 시작한다. 이럴 즈음에 형보가 나타나 초봉이를 넘겨달라고 하 므로 그는 도망치듯 슬그머니 그녀의 곁을 떠난다. 초봉을 취하고 버리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치사하고 위선에 찬 박제호의 행동은 그의 부정적 인 물특성을 충분히 보여준다. 14) 그러니 그동안 저 계집의 정조의 경도( 硬 度 )를 시험해 보지도 않고서, 그의 정조도 얼굴 생김새와 가티 점ㅅ수가 노프러니 미덧든 밋고 안 밋고 할 여 부도 업시 의심 한번 해보지도 안흔 제호 제 자신이 속일머리 업는 등신 이 엇구나 시펏다. 어 참, 그러케 하롯밤 관계가 잇엇슬 뿐 아니라 형보는 제호의 낯꼬치 변한 것을 보고, 오냐 일은 잘 되어간다고, 좋아하면 서 하든 말을 잇댄다. 그것두 참 다아 인연이라구 할른지, 공교롭다구 할른지 아, 어린것 하나가 생겼습니다그려! 바루 저게 그거지요. 형보는 고갯짓을 해서 뒤를 가리킨다. (중략) 제호는 초봉이에게로 얼굴을 돌리려다가 못하고서 그대로 다음말을 게속한 다. 나는 이 담장에서 아주 깨끄시 손을 끈켓습니다. 나는 몰으구서. 고의 가 아니라 말씀이지요. 몰으구서 남의 궐리를 침해햇든 맥시니까요, 허허 그리구 뒷일은 두 분이 상의껏 다아 조처하십시요. 나는 인제부터 아무 상관 두 업는 사람입니다. 제호는 종시 형보를 맞대노코 하는 소리는 하는 소리나, 그것이 다 초봉이 더러 알아들으란 말임은 무론이다. ( 朝 鮮 日 報 ~ 3.27) 또한 고태수가 방탕한 생활을 하며 결국 간통현장에 죽기까지 간접적인 영향을 준 사람이 바로 장형보라 할 수 있다. 고태수는 군산지점으로 내려 오면서 방탕한 생활에 빠졌고, 그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공금에 손을 대 기 시작한다. 그 유용한 액수가 늘어나게 되자, 그것을 변제하기 위해 다시 14) 권혁준, 채만식 문학 연구, 성균관대 박사논문, 2000, 55쪽 77

83 더 많은 돈을 횡령한다. 마침내 횡령한 액수가 감당 못할 만큼 늘어나자 투기로 미두에 손을 대었으나 더 큰 손해를 본다. 이렇게 정주사 내외, 고 태수, 박제호, 장형보가 순차적으로 초봉과 관계되면서 그녀는 점점 파멸 의 길로 들어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3. 근대적 인물의 욕망 단편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욕망관계가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는 반면 장편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욕망관계를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고태수, 장형보, 박제호의 욕망은 초봉에게 집중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성적으로 초봉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탁류( 濁 流 ) 의 경우 그들은 모 두 뿌리 뽑힌 자들로서 근대라는 도시의 나쁜 악습만을 먼저 받아들이는 정신적인 불구자들이며, 또 자본 즉 화폐경제로의 이행이라는 세계에서 그 부재의 경제에 대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은 탈취적 인물들이다. 이는 남승 재를 제외한 모든 인물에게 해당된다. 이렇듯이 남성과 여성을 평행하게 부정적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런 해결할 수 없는 평 행선에 인물들을 위치하게 함으로써 그 대립된 인물들 너머의 적대적 세 계에 의하여 보잘것없는 허약한 인물들의 벗어날 수 없는 억눌림을 비극 적으로 보여주려는 데에 있다. 남성에 의해서 지배당하다 마침내 파멸로 끝이 나는 이러한 여성의 수난사와 같은 이야기의 방향은 사회라는 거대 한 구조와 그 사회를 움직이는 권력이라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힘에 의해서 속박당하는 민중들의 비극성을 나타내고 있다. 15) 여기서는 고태수와 장형보, 박제호 등 초봉에게 성적 욕망을 품으며 파 멸하거나 떠나버리는 그들의 욕망관계에 대해서 파악해 보려 한다. 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윤리적인 문제와 인간적인 결함이 내재되어 있는 타락한 인물들이라는 부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고 그들이 욕망의 대상으로 삼은 15) 유금호 채희윤, 탁류의 페미니스트적 독서 시론, 목포대학교논문집 15, 1, , 8 10쪽 78

84 초봉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모두 치사하고 간악한 방법을 동원하여 접근한 다. 우선 고태수부터 살펴보면, 그가 군산에 내려오기 전 서울에 있을 때는 상당히 모범적이고 근면한 생활을 한다. 남의 집 품팔이로 근근이 살아가 는 가난한 편모 밑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에 급사로 들어가 일하 며 밤에는 상업학교까지 다녀 졸업한 후 상사의 눈에 들어 정식직원으로 채용되기까지 하지만 이년 후 군산으로 내려오면서 스스로 억제하고 있던 욕망의 끈이 풀리면서 급기야 방탕한 생활에 빠져 버리고 만다. 고태수에 게 자신의 가난한 집안과 급사 출신이라는 점은 그것을 벗어나야겠다는 자극을 주어 근면한 생활을 하도록 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한 전력이 알 려질 리 없는 군산지점에서는 유흥 과 계집 에 대한 욕망을 통제할 수 없 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방탕한 생활에 빠진 끝에 공금을 횡령하여 쓰기 시작했고 그것을 메우기 위해 더 큰 금액을 횡령하면서 급기야 장형보를 통해 미두 에까지 손을 뻗어보지만 더 큰 손해만 떠안고 만다. 결국 돈을 횡령한 사 실이 언제 들통 날지 하루하루가 불안한 고태수는 죽어버리면 고만이지.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초봉은 거의 유 일한 희망이자 낙이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그런, 기분이 가라앉는 순수한 찻집이 없으니 소용없는 말 이고, 그냥 선창이나 공원으로 거닐까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은 어제 밤을 새 워 술을 먹은 몸이 고단해서 내키지를 않는다. 그러다가 문득, 제중당으로 초 봉이나 만나보러 갈까 해본다. 어제 낮에 들렀더니 요전번 전화할 때의 말대 로, 알기는 알겠는지 얼굴이 발개가지고 대응하는 게 달랐고, 그것이 태수한 테는 퍽 유쾌했다. 태수는 초봉이를 두고 생각하면 할수록 절로 입이 벙싯벙싯 벌어진다. 그는 초봉이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도 견딜 수 없이 기쁘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초봉이와 결혼이나 해서 단 하루나 이틀이라도 재미 를 보기가 마지막 소원이요, 그런 다음에는 세상 아무것에 대해서도 미련이 없을 것 같았던 것이다. ( 채만식 전집 2, 85 86쪽) 79

85 고태수의 이러한 마음은 내연의 관계에 있던 김씨의 속내와 맞아떨어져 김씨를 통해 혼담이 오고가다 결국 초봉과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열흘 후 김씨의 남편 한참봉에게 맞아죽기 전까지 태수의 욕망은 눈에 쉽게 들 어나는 편이다. 고태수는 자신의 욕망에 대한 통제기제가 무너지면서 성적 욕망과 경제적 욕망에 사로잡혀 스스로 파멸에 이르는 인물이고 또한 그 러한 욕망에 이르는 과정에서 불법적인 행위와 계략을 일삼는 부정적인 단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욕망의 관계를 살펴보는데 있어서 눈여겨봐야 할 인물은 오히려 장형보 라 할 수 있다. 우선 그의 외모부터가 남에게 호감을 사기 어려운 모습을 하고 있다. 그에게 장애인이라는 불리한 조건은 어릴 때부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를 능멸하고 천대하는 이유가 되었으며 이것이 그의 인생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형보는 제가 외양으로부터서 한팔 꺾이는 곱사요, 그렇키 때문에 처음 대하 는 사람한테 불쾌한 인상을 주는 것으로 인해 받는 멸시가 위선 큰 손실인 줄 을, 잘 알고 잇다. 그렇키 때문에 그는 위정 점잔을 부려, 그 점잔으로써 억올 한 체면의 손실을 때우군 하는 게 항투다. 미상불 세상 사람들은 형보가 꼽사요, 또 형용이 추하게 생겼대서, 속을 주 기 전에 더퍼노코 멸시를 햇고, 이 멸시 속에서 형보는 자라낫고, 살아왓고, 지금도 살고 잇다. 꼽사 병신 비러먹게 생긴 얼굴 무섭게 생긴 상판대기 특별히 그리고 극히 드물게 우연한 기회로 친하지는 사람 가령 죽은 고태 수 가튼 그런 사람 외에는 대개들 뒤꼭지다 대고 혹은 맛대노코 그를 능멸 을 하고 구박을 주고 했다. (필자 중략) 형보는 세상에 대해서 피가 나두룩 핍절한 앙심을 먹고, 마침내는 세상을 80

86 통으로 원수를 삼고서 넉자 다섯치의 박절한 일신을 부지했다. 그리하는 동안에 삼십여 년을 지내온 지금에는, 소년ㅅ적과 이십 안팍 때의 그러틋 불타든 앙심은 닭위질 대로 닭위저서 그놈이 한 개의 천품으로 구더 버렷다. 세상에 대한 울분이나 저주는 다 이저버렸다. 그런대신 꼬부라진 심청과 억 짓 뱃심으로다가 살기 띠운 체세를 하기를 바루 물이나 마시듯 담담하니 무 심코 해나갈 뿐이다. 그러므로 그가 가령 점잔을 부리더래도 그것은 저편을 존경하는 덕이 잇서 그런 게 아니고, 그역 억지엣 뱃심일 따름이다. 고흔 꾀고리가 가을이면 회색으로 변하는 것과, 형보의 심청이 그처럼 꼬부 라진 것과는 단지 생리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의 차이박에는 더 달을 게 업는 것이다. ( 朝 鮮 日 報 ) 이와 같이 형보는 흉한 외모와 그 천성이 음흉하여 마치 조물주에게 저 주받은 악의 화신인 양 그려지고 있다. 그는 못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려서부터 멸시와 구박을 받으며 자란 나머지 세상을 원망하며 살아왔다.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하면서도 늘 긴장 속에 살아온 형보는 처세술에 있 어서도 비정상적인 방법, 즉 어떤 방법을 쓰든 남의 약점을 이용해서 자신 의 이익을 취하는 방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16)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 중에 빌어먹게 생긴 병신 이라는 자기부정은 자 신의 추한 외양에 대한 저주이지만, 또한 이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기도 하다. 즉 자신의 외양의 못남을 스스로 먼저 말함으로써 자신 의 거친 행동의 허점을 카무플라주(camouflage)하여 동정심을 유발하는 것 이다. 17) 그의 욕망의 형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와 고태수의 관계를 살펴 야 한다. 작품에서 여러 번 거론되지만 그에게 인간적인 관심과 정을 준 인물은 작품 표면상 고태수가 유일하다. 실제로 고태수는 장형보를 미덥 16) 이것은 고태수와 장형보와의 관계, 정초봉과 장형보와의 관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장형보는 고태수의 인간적인 약점과 그의 비리를 이용하여 목돈을 마련할 궁리를 하고, 또 한 초봉에게도 성관계를 맺은 것을 빌미로 하여 결국 그녀와 동거를 하게 된다. 그러나 장 형보의 이러한 약삭빠름과 비열함은 결국 그의 죽음의 원인이 되게 한다. 17) 권혁준, 앞의 책, 63쪽 81

87 고 절친한 친구 로 생각하지만 장형보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은 그저 소절 수 위조나 오입질에 그의 병정 노릇 따위나 하는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생 각을 가졌던 게 분명하다. 즉 고태수는 인간과 인간의 동등한 친분이라고 본 반면에 장형보는 정상인과 장애인의 불균형적인 만남이라고 여기고 있 었던 것이다. 이러한 심리는 장형보가 고태수야 어찌 됐든 그를 이용하여 한몫 잡아보려 한 일이나 그를 죽음에 몰아넣고 그의 아내인 초봉을 강간 하는 일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장형보는 고태수를 질투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고태수가 표면적으로 안 정된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한 여인을 사랑할 수 있는 정상적인 생 활을 하고 있다면 장형보 자신은 어릴 때부터 소외받고 멸시당하며 결국 음지로 물러나 있는 비정상적인 생활을 해왔던 것이다. 이를 르네 지라르 의 삼각형의 욕망으로 도식화하면 고태수 장형보 근대성 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장형보가 꿈꾸는 욕망은 표면적으로 정상적인 삶의 추구라 할 수 있는데 그에게 그러한 모델은 바로 고태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에 의해 장형보가 기형적인 외모와 비길 데 없이 악한 심성을 가진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은 바로 근대성의 획득에 실패한 인 물을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고태수와 같이 정상인은 시대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반면 장형보의 경우 선천적으 로 그러한 흐름을 준비할 정상적인 기회를 박탈당했고 그러한 상대적 상 실감이 비정상적 방법으로라도 흐름에 편승하려는 욕구를 발생시키는 것 82

88 이다. 르네 지라르는 삼각형의 구조에서 주체와 중개자 사이의 거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분석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바로 이 둘의 거리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소설작품들은 두 가 지 기본적인 범주로 집약할 수 있는데 두 범주 안에서 부차적인 구분들은 무한히 가능하다. 중개자와 주체가 각각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가능성 이라는 두 구형( 球 形 )에서 둘 사이의 거리가 서로 접촉하지 않을 만큼 충분 히 떨어져 있을 경우, 우리는 그것을 외면적 간접화(mdiation externe)라고 부른다. 또한 그 두 구형이 서로 어느 정도 깊이 침범할 만큼 그 둘 사이의 거리가 상당히 좁혀져 있을 경우, 우리는 그것을 내면적 간접화(mdiation interne)라고 부른다. 18) 고 하였다. 즉 여기서 장형보의 욕망은 내면적 간접 화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장형보의 경우 꼽추라는 장애는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엄청난 절망과도 같은데, 이에 반해 고태수는 외형상 정상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고태수의 비리와 난봉을 낱 낱이 알고 있는 장형보로서는 고태수에게 질투와 선망을 품을 수 있는 것 이다. 19) 장형보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는 정상인의 삶이 결코 이룰 수 없는 욕망이라는 사실은 좌절이라는 형태를 띠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욕망의 18) 이것을 도표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중개자 주인공 중개자 주인공 세르반테스와 플로베르의 경우 스탕달의 경우 르네 지라르, 김치수, 송의경 역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한길사, 2001, 49 50쪽 19) 질투와 선망은 삼중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즉 대상의 존재, 주체의 존재, 질투나 선 망을 받게 된 자의 존재가 그것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 결점(질투와 선망) 은 삼각형 에 속한다. 즉 우리는 질투의 대상이 된 사람에게서 절대로 모델을 지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질투에서 질투하는 자의 관점을 취하기 때문이다. 내면적 간접 화의 모든 희생자들이 그러하듯이, 이 질투하는 사람도 자신의 욕망이 자연발생적이라 고, 다시 말해서 그 욕망이 중개자의 개입보다 선행한다고 주장한다. 르네 지라르, 앞의 책, 53쪽 83

89 형태 즉 중개자인 고태수가 가진 소유물을 빼앗고 싶다는 강탈의지를 가 지게 된다. 이제 장형보에게 고태수는 자신이 가지고 싶었던 것을 선점하 는 교묘하고 악마적인 적 내지는 경쟁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장형보 가 고태수에게서 빼앗으려 한 것이 바로 초봉이다. 그러나 만일 그러한 것만이라면 형보는 잊고 말 수도 있고 그런 대로 참을 수도 있고 하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태수를 해칠 악심도 생길 기회가 없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것을, 형보에게 무서운 자극을 주는 게 무엇이냐 하면 초봉이다. 고 마침으로, 오도독 깨물어 먹기 좋게 생긴 것을 갖다가 태수가 따악 차지 를 하고는 밤과 아침 저녁으로 갖은 재미 다 보고 하는 것을 형보 저는 건탕 으로 건넌방 구석에 처박혀 끙끙 앓아가면서, 듣고 보고 하기라니, 도저히 견 디기 어려운 악형을 당함과 같았다. 조, 묘하게 생긴 조게, 갈데없이 내것이 될 텐데! 그는 조석으로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혓바닥으로 입술을 핥는다. 저, 원수가 얼른 후딱 때가서 콩밥을 먹어야 할 텐데! 이런 생각을 그동안 몇번째 했는지 모른다. 사실 그는 가만히 앉았으면, 오늘이고 내일이고, 아니 이따가 저녁때쯤 태 수가 경찰서로 붙잡혀 갈 테고, 붙잡혀가는 날이면 조것 은 내것이 될 테라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채만식 전집 2, 쪽) 장형보의 이러한 욕망은 결국 고태수를 죽음에 몰아넣고 초봉을 겁탈한 다. 그리고 다시 박제호의 첩살이를 하는 초봉을 찾아가 그녀의 딸을 빌미 로 박제호를 보내 버리고 동거에 들어간다. 결국 장형보가 초봉에 대하여 이렇게 집착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의 성욕에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고태수에 대한 결여 의식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탁 류( 濁 流 ) 를 르네 지라르의 삼각형의 욕망으로 정리한 연구는 이승진의 논 문 20) 에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는 욕망의 주체를 장형보로 보았을 때 대 20) 이승진, 채만식장편소설연구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와 탁류( 濁 流 ) 의 구조분 석, 강원대 석사논문, 1993, 29 33쪽 84

90 상을 색욕으로 보고 중개자를 초봉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고태수나 박제호의 욕망을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고태수가 결혼하기 전에는 초봉에게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그들이 결혼하고 난 후 초봉을 성 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점이나 장형보가 고태수를 죽음에까지 몰아넣으 면서 초봉을 차지하는 점 등을 설명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초봉은 그녀와 관계를 맺는 세 명의 부정적 인물들로 인해 살인까지 저 지르는 신세로 전락하면서 성격이 변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초봉의 이러한 성격변화는 환경이 인물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고려하면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우선 초봉이 전락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한 것은 고태수와의 결혼이다. 그녀는 남승재와 고태수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고태수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모친에게서 결혼을 하고 나면 태수가 장사 밑천으로 돈을 몇천 원 대 주어서 부친이 장사 같은 것을 하게 한다는 그 말을 듣고는 다시는 더 여부없 이 태수한테로 뜻이 기울어져 버렸다. 그거야 태수가 미리서 마음을 동요시킨 것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만한 조 건이고 보면 필연코 응낙을 않진 못할 초봉이다. 그러나 시방 초봉이는 제 마음의 한편 눈을 감고서라도 태수한테 뜻이 있어 서가 아니요, 그 유리한 조건 그것 한가지 때문이라고 해서나마, 안타까운 제 심정의 분열을 짐짓 위로하고 싶을이만큼 일변으로는 승재한테 대하여 커다 란 미련과 민망스러움이 간절했다. ( 채만식 전집 2, 153쪽) 결국 초봉은 헛소문에 불과한 것이지만 고태수의 집안과 학벌에서 그의 집안에 끌렸고 부친인 정주사에게 장사 밑천을 대주겠다는 말에 결심을 굳힌 것이다. 이것은 작품 전반부에 기술되는 그녀의 소극적이고 순진한 성격에서도 예견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여기서 정주사의 장사자금이 초 봉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고 고태수가 그 욕망의 중개자가 된다. 그러나 독 자들은 고태수에게 그러한 초봉의 욕망을 만족시켜 줄만한 여력이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임의적으로 부정적 중개자 라 부르기로 하겠다. 독자들은 이미 초봉의 욕망이 달성되지 못할 것을 알고 있는 상황 85

91 이지만 초봉은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초봉의 이러 한 욕망을 좌절시키는 인물은 고태수가 아닌 바로 장형보인 것이다. 장형 보가 간계를 부려 고태수를 죽음에 몰아넣고 자신을 겁탈함으로써 부친 정주사의 장사자금이라는 욕망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도식은 박 제호와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돈 오십 원이 그리 푸달지다구? 쓰기 나름이지 그걸랑 두어두구 서, 반찬거리며 전등세, 수도세, 식모 월급, 그런 거나 주라구 집세는 내 가 따루 줄 테구, 또 나무 양식두 따루 드려보낼 테니깐, 알겠지? 응, 그리구 참, 달리 무엇 살림 작만할 게 있다든지, 옷감 가튼 걸 끈누라구 모개돈이 들 겟거든랑, 날더러 달라구 말을 하구. 초봉이는 지금 약삭밝은 셈을 따져보고 잇다. 수도세, 전등세, 식모 월급 다 치더라도 십 원이 채 못될 것이고, 반찬거리 래야 제호의 밥상을 어설푸지 안케 하기로 하더래도 한 달에 이십 원이면 족 할 것이고. 그런즉 오십 원에서 이십 원이나, 잘하면 이십오 원씩은 남을 것이니, 그놈 을 친정집으로 내려보내 주리라. 종차야 제호더러도 다 설파를 하게 될갑세, 위선 얼마 동안은 친정 권솔들을 멕여 살려라 어째라 하기도 실상 거북하고 하니 애여 그러케 하는 편이 옳겠다. ( 朝 鮮 日 報 ) 초봉은 고태수가 죽고 난 후 서울로 떠나는 기차에서 우연히 박제호를 만난다. 그때 초봉에게 박제호의 이미지는 결혼 전 자신이 근무하던 약국 주인이자 부친 정주사의 친구로, 사람 좋고 호탕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박 제호의 속마음 역시 그녀가 약국에 근무할 때부터 초봉에게 음흉한 흑심 을 품고 있었으나 그의 아내 윤희의 감시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봉은 다시 그런 박제호의 꼬임에 넘어가 그와 동거하게 된다. 상기 인용은 그와의 동거에서 그녀가 매달 받는 생활비를 계산해보 는 장면으로 초봉은 군산의 가족들에게 얼마간이라도 돈을 보낼 수 있다 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를 도식화하면 86

92 박제호(부정적 중개자) 정초봉 돈 과 같은데, 이 역시 박제호가 부정적 중개자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독자로서는 이들의 관계가 계속 지속되지 못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 나 이 역시 앞서 고태수와의 욕망관계와 마찬가지로 장형보에 의해서 무 너지고 만다. 초봉에게 두 번이나 결정적인 좌절을 안긴 장형보는 그녀에 게 욕망을 암시하고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방해하는 존재 로서 증오 의 대상 21) 이 되는 것이다. 독자가 봤을 때 부정적 중개자들은 그녀에게 결정적인 좌절을 안길 인물이긴 했으나 초봉에게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 켜 줄 인물로 인식되고 있었던 반면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장형보는 매 번 그녀의 욕망을 좌절시키는 실질적인 인물로서 나중에 초봉에게 살인을 당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21) 르네 지라르, 앞의 책, 52쪽 87

93 Ⅳ. 장편소설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의 인물의 굴절된 욕 망과 타락 1. 식민지적 현실에서 추( 醜 ) 의 의미와 초극의 문제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는 朝 光 에 1938년 1월호부터 동년 9월호까 지 9회에 걸쳐 연재된 장편소설이다. 1) 전체 15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 인공 윤직원 영감의 삶을 중심으로 가족과 기타 주변 인물들의 행위양상 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장편소설은 금전과 성에 광적으로 집착하 는 인물들이 전면에 나서서 벌이는 탐욕적 세계이자, 지주와 고리대금으로 상업자본을 형성한 윤직원의 부( 富 )에 의해 간신히 존속( 存 續 )되고 있는 대 가족의 형태, 즉 근대성과 자본주의에 밀려 나락을 걷는 가부장적 대가족 제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윤직원이 치부하는 과정과 비윤 리적인 면모, 그리고 주변인물의 대부분이 부정적 인물이라는 점 2) 은 일반 적으로 알려진 이 작품의 풍자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러한 부정 적 측면의 부각은 작가의 설명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金 南 天 氏 는 天 下 太 平 春 을 朝 鮮 의 新 文 學 이 있은 지 三 十 年 에 일찌기 1) 朝 光 에 연재될 때의 제목이 제1회는 天 下 平 春 이었다가 제2회부터는 天 下 太 平 春 으로 나오는데 이를 두고 몇몇 논자들이 이 작품의 표제가 天 下 平 春 天 下 太 平 春 太 平 天 下 의 순으로 변경된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이는 명백한 오류로 보인다. 2회분 ( 朝 光 )의 작품 후미에 作 者 附 記 (165쪽)를 붙이면서 1회분의 天 下 平 春 은 天 下 太 平 春 의 오기( 誤 記 )임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1948년 12월 단행본으로 재간행될 때 太 平 天 下 ( 同 志 社 ) 로 개제되어 출판된다. 즉 이 작품의 표제는 天 下 太 平 春 에서 太 平 天 下 로의 변경만 있었던 것이다. 2) 물론 대부분의 논의가 종학을 이 작품의 유일한 긍정적 인물로 보고 있지만, 종학의 경우 작품 전반에서 행위주체로서의 뚜렷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작품 말미 동경에서 온 전보를 통해 정보의 형태로 등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에서 종학은 인물 이상의 역할과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즉 탁류( 濁 流 ) 의 남승재와 궤 를 같이 하는 인물로서 작품의 직접적 개입없이 윤직원 욕망 형성과 좌절에 결정적 영향을 끼쳐 플롯을 진행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88

94 例 가 없게시리 이 作 品 에는 否 定 的 人 物 만이 登 場 되었다고, 그렇듯 否 定 的 人 物 만의 登 場 이 아무래도 文 學 의 本 道 가 아니라는 눈치로서 말을 했다. 事 實 나도 그 길을 平 生 두고 가려고는 않고, 그 길 否 定 面 만 否 定 面 만 골라내는 것이 危 險 하다는 것을 또한 우리네 스승이 경계한 바이라 잊어버 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否 定 面 을 通 하여 其 實 肯 定 面 을 主 張 하기 위해서의 否 定 面 은 決 斷 코 有 毒 하지는 않은 것이다. 더구나 그렇게밖에는 붓( 筆 )을 댈 수 없는 事 情 이나 否 定 面 을 통해서야 만 그 肯 定 面 이 도리어 迫 力 있이 보여질 手 法 上 의 境 遇 가 또한 없는 게 아니 다. 3) 30년대 후반에 세태소설이 성행하게 된 중요 요인은 전형적 환경에서 행동할 수 있는 긍정적 전형을 등장시키기 어렵다는 데 있었다. 극도로 열 악해진 현실 상황에서, 환경의 전형성을 살리려면 인물의 정형성이 상실되 고(세태소설의 양상), 반대로 (긍정적)인물의 전형성을 살리려면 환경과 괴리 된 관념적 성격을 낳게 된 것이다. 이처럼 긍정적 인물의 전형을 등장시키 기 어려워진 시대적 제약을 역이용한 것이 바로 풍자의 방법이다. 4) 즉 풍 자가 인물이나 배경, 사건 등을 부정적으로 형상화하여 작가가 내심 긍정 적으로 의도한 효과를 누린다는 점에서 채만식의 위와 같은 진술 역시 풍 자에 대한 언급이라 볼 수 있다. 이는 30년대 평단에서 최재서 5) 를 기점으 3) 이어진 진술을 좀 더 살펴보면 작가는 현실의 추를 통해 문학적 미에 도달할 수 있음 을 피력하고 있다. 아무턴지 나는 눈치는 먹더래도 한동안 天 下 太 平 春 의 方 向 도 버릴 수는 없다. 그 러한 否 定 面 의 對 肯 定 面 의 關 係 를 알아볼 줄 모르고 文 學 的 으로 表 現 된 現 實 의 醜 를 文 學 的 美 로 보지를 못하고서 文 學 的 醜 로 역이는 聖 者 들이 있으나, 그런 분들이 讀 者 의 한 사람인 것을 나는 대단히 폐로와하는 同 時 에, 그들에게는 손쉽게 キクチカ ン 이나 한 平 生 읽고 있으라고 勸 면을 해둔다. 채만식, 自 作 案 內, 靑 色 紙, 쪽 4) 나병철, 1930년대 후반기 도시소설 연구, 연세대 박사논문, 1989, 169쪽 5) 당대를 문단의 위기로 인식한 최재서는 풍자문학을 위기의 타개책으로 제시하고, 문학 에 임하는 태도를 수용적 태도, 거부적 태도, 비평적 태도로 삼분한 후 이중 비평적 태 도가 나머지 양자를 적절하게 조절하며, 이지적 작용으로 자연히 유머나 풍자가 부수적 으로 따른다고 보았다. 89

95 로 한식 6) 으로 이어지며 풍자문학에 대한 논의가 일기 시작했고, 이후 채 만식의 상기 언급과 같은 안목은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치숙( 痴 叔 ),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등의 작품으로 연결돼 명실 공히 그 시대를 대표할 만한 풍자작가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채만식이 말한 부정면 즉, 추( 醜 ) 의 성격과 범위에 대해 잠시 살 펴볼 필요가 있다. 김남천이 쓴 부정적 인물 이라는 용어를 굳이 부정면 으로 고쳐 쓴 이유는 인물 외에도 현실 속에서 추( 醜 )가 발견되는 다양한 요소들 이를테면 시대, 환경, 사건 등 을 고려했기 때문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발표 이전의 작품들 면면을 살펴보면 그가 이 작품 발표에 즈음하여 갑자기 암울한 시대적 현실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것 역시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실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가 작품 전체에 걸쳐 인물의 부정적 측면을 유감없이 풍자하고 있다 는 점이고,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분명히 함으로써 부정적 인물은 부정적 시대에서 배태될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채만식이 말한 현실의 추( 醜 ) 란 탐욕적 욕망에 점철된 인간군상들, 다시 말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제반 인물들로 설명될 수 있으며, 이 현실 의 추( 醜 )를 작가가 의도한 문학적 미( 美 ) 로 환원하기 위해서는 부정적 인 물들의 욕망을 파헤치고 그들의 욕망에 내재된 반역사적, 반근대적 성격을 밝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즉 조선의 자주적 민족성이 유린당하는 암울한 시대에서 추( 醜 ) 란 반근대적이고 체제 순응적인 인물들의 반역사적 탐욕 以 上 批 評 的 態 度 에 關 하여 내가 말한바에 過 히 틀림이 없다면 主 로 그 態 度 를 表 現 하 는 諷 刺 文 學 이 時 代 에 適 合 할것은 自 然 히 推 測 될 것이다. 作 家 가 積 極 的 으로 時 代 를 統 一 할수없는 以 上 消 極 的 으로나마 人 心 의 機 微 을 捕 捉 하려 면 그는 이 態 度 외에 取 할 아모런 態 度 도 發 見 치 못할 것이다. 최재서, 諷 刺 文 學 論, 朝 鮮 日 報, ~28 (백철, 현대 평론 수필선, 한성도서, 1955, 132쪽 재인용) 6) 풍자라고 말하는 것은 더 말할 수 없이 모순에 싸인 현실에 대하여 그 현실을 抛 棄 할 수 없는 자로서 그 현실이 가지고 있는 모순과 불합리를 정면으로 공격할 수 없는 때 에 간접으로 혹은 측면으로부터 그를 적발하여 그에 저항하며 그와 격투하는 문학상의 한 방법을 말함이다. 한식, 풍자문학론 대하여, 동아일보, ~27 (김영택, 한국 근대 소설 의 풍자성 연구, 인하대 박사논문, 1989, 17쪽 재인용) 90

96 과 일치한다면 미( 美 ) 란 그들 탐욕의 극한에서 몰락을 예고할 수 있는 새 로운 세대와 가치를 제시함으로써 얻어지는 역사의식의 고취라 볼 수 있 다. 이렇게 볼 수 있는 이유는 채만식이 여러 작품을 통해 구세대의 몰락 혹 은 신구세대의 갈등이라는 모티프(motif)를 사용하여 아들세대가 아버지의 기대와 뜻을 충족시켜주지 못하거나, 아니면 아버지가 평생 쌓아올린 성과 들을 아들세대의 독단적 사고와 행위로 붕괴시키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기 때문인데,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를 비롯하여 낙일( 落 日 ), 사라지는 그림자, 당랑( 螳 螂 )의 전설( 傳 說 ) 7) 등이 바로 그 작품들이라 할 수 있 다. 8) 이들 작품들은 모티프의 유사성을 중심으로 작품상 연관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낙일( 落 日 ) 의 경우 송참봉의 첫째 아들 상근이 수형( 手 形 )을 위조하여 군산식산은행에서 삼만 오천원을 끌어다 쓴 점이나 세째 아들 상천이 사회주의운동을 하다 형사에게 연행되는 것은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와 유사하고, 사라지는 그림자 의 김선달 일가에서 당랑( 螳 螂 ) 의 전설( 傳 說 ) 의 박진사 일가로 이어지는 경제적 몰락의 비극적 양상 역 시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각 작품에서 구시대를 대변하는 인물인 송참봉, 김선달, 윤직원, 박진사 는 모두 상당한 가산을 축적하고 있거나 축적했었던 인물들로, 참봉, 선 달, 직원, 진사 라는 근대적 세계와 이질적인 직함( 職 銜 )에서 드러나듯 개화 의 시대를 소화하고 대처할 능력이 없는 봉건적 전형성을 띠고 있다. 이들 7) 각 작품의 최초 발표지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落 日, 別 乾 坤, (희곡) 사라지는 그림자, 東 光, (희곡) 螳 螂 의 傳 說 人 文 評 論, (희곡) 본고에서는 蔡 萬 植 全 集 9, 창작과 비평사, 1989를 참고하였다. 8) 조남현은 채만식의 소설과 희곡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모티프 중 주제의 형성에 크게 관여하거나 스토리 전개에 필수적인 것으로 작용 하는 모티프로 제한하여 다섯 항목으로 정리하였다. 그 다섯 항목은 첫째, 인테리의 무능, 둘째, 사회주의자 또 는 그에 대한 비난, 셋째, 구세대의 몰락 혹은 新 舊 世 代 의 갈등, 넷째, 罷 業, 다섯째, 허 무주의적 태도이다. 조남현, 蔡 萬 植 文 學 의 주요 모티프, 高 麗 大 民 族 文 化 硏 究 20, , 231~234쪽 91

97 은 기껏 허소치( 許 小 痴 )의 모란 족자를 헐하게 사들여 감상하거나( 낙일( 落 日 ) ) 삼천석지기 가산을 탕진하고 선산마저 뺏길 위기에 놓였거나( 사라 지는 그림자 ) 명창대회나 찾아다니고 열다섯 동기( 童 妓 )에게 몸이 달거나 (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 구세대의 양반층으로 가산 탕진의 이유조차 인식하 지 못하고 있는 시대적 낙오를 겪고 있다.( 당랑( 螳 螂 )의 전설( 傳 說 ) ) 이들에 게 보이는 가부장적 권위는 근원적인 결점 및 단절하지 못한 부정성( 不 淨 性 )으로 인해 대가족적 질서와 가치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가족 들의 중심에서 권위를 세우려 하지만 이들의 뒤를 이을 다음 세대들은 이 미 이들의 정신과 가치의 계승을 거부하고 있으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구세대와의 불화를 전면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이처럼 구세대적, 전근대적 모습들을 추( 醜 ) 로 인식하고 있는 것 은 채만식 스스로가 조선의 근대성 획득 과정에서 얻은 선험적 관념이 있 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조선의 근대성은 외세가 결정적 영향 을 미쳤고 결국 식민지라는 저해요소에 의해 왜곡된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이 같은 근대성의 저해 및 왜곡의 원인을 이전 세대에서 찾아야 함에도 불 구하고 그 책임과 결과가 현 세대에 넘겨지는 모습은 채만식에게 비판적 시각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고, 식민지적 현실에 발전적으로 대응하지 못 하고 탐욕만 추구하는 구세대는 조선 사회에서 부정면 으로 밖에 비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구세대와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님을 희곡 제향( 祭 饗 )날 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9) 채만식은 제향( 祭 饗 )날 에서 동학 접주로서 개혁의지를 불태우다 처형당한 조부 김성배와 3 1만세운동에 앞장 선 후 망명의 길에 오르는 부( 父 ) 영수, 그리고 앞선 2대가 지닌 정신의 고도( 高 道 )를 이어받아 사회주의 운동가로 성장한 상인 등 3대를 통해 강력한 지배 권력에 대항하는 불굴의 투쟁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이전 세대의 정신과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으로 채만식이 추구하는 현실의 추( 醜 )의 세계와 미( 美 )의 세계가 확연한 가치로 구분된 세계임을 분명하게 9) 世 態 的 인 것도 아니요, 否 定 에 依 한 逆 說 的 인 것도 아니요, 내딴에는 가장 健 實 하게 나가보았다는 것이 희곡 祭 饗 날 ( 朝 光 紙 丁 丑 十 一 月 )이다. 채만식, 앞의 글, 1939, 78쪽 92

98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채만식의 문학에 나타나는 세대 모티프 의 존재는 당대 조선의 역사적 가능성을 묻는 문학적 방식이었음이 드러 난다. 처녀작 과도기( 過 渡 期 ) 에서 마지막 유작( 遺 作 )인 소년( 少 年 )은 자 란다 에 이르기까지 그의 문학이 세대 모티프로 점철되어 있음은 역사 적 가능성에 대한 탐색이 그만큼 깊고 지속적이었음을 의미한다. 즉, 채만 식의 세대 모티프는 역사철학의 문제에 접근한다. 10) 다시 말해 낙일( 落 日 ) 에서 사라지는 그림자,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로 이어지는 신구세 대의 갈등은 제향( 祭 饗 )날 에서 그 극복의 가능성으로 모색되고 있으며 그것이 작가가 진정 표출하고자 한 식민지적 근대 극복의 의지임을 알 수 있다. 2. 인물들의 욕망발현양상 인물의 욕망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의 풍자성 이 어디서 기인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의 풍자성에 대해 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화자가 걸출한 입담을 과시하며 전면에 등장하여 작품 전반에 걸쳐 관여하는 독특한 서 술방식인데, 이는 작품의 판소리 수용여부와 관련이 있다. 채만식의 문학 을 판소리와의 연관성에서 접근하려는 움직임은 그의 문장이 풍자적 효과 를 유발하기 위해 설화체( 說 話 體 )를 끌어들였다는 당대의 인식 11) 에서부터 10) 방민호는 채만식의 세대 모티프에 대하여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모 티프의 특성을 감안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분류를 제시하였다. 1구세대의 몰락에 초점이 맞추어진 작품 2신 구 세대교체를 통한 역사적 구원에의 기대를 드러낸 작품 3세 세대 이상의 누적을 통해 역사를 초월한 전망에 접근하고 있는 작품 등 이상 세 가지 분류인데, 여기서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는 첫번째 분류에 해당하고 제향( 祭 饗 ) 날 이 세번째 분류에 해당함으로써 결국 작가의 비판정신은 현실극복 의지로 귀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방민호, 채만식과 조선적 근대문학의 구상, 소명출판, 2001, 230~323쪽 11) 醜 나 否 定 的 인 것을 雜 多 하게 그리는데는 說 話 體 를 取 하는 것이 捷 徑 일 것이다. 逆 說, 諷 刺, 嘲 弄 이 氏 의 手 中 玩 物 인데 작자가 광망자이기를 그만두지 안는 限 이야기쪼( 調 )는 93

99 확인되고 있는데 이어 70년대에 들어서 그의 요설체( 饒 說 體 ) 문장이 구어 ( 口 語 )를 통해 무질서한 흐름에서 빚어내는 자연발생적 리듬으로 이어진다 는 시각 12) 은 80년대 접어들어 판소리에 대한 패로디적 수용에 대한 연구 로 본격 이어지면서 활발하게 거론되었다. 13) 특히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의 경우 판소리를 수용한 흔적을 뚜렷하게 찾아볼 수 있다. 우선 화자가 전면 에 등장하면서도 치숙( 痴 叔 ), 소망( 少 妄 ), 이런 처지( 處 地 ) 등의 작품과 달리 삼인칭 시점을 사용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는데, 이는 마치 전기수( 傳 奇 )가 군중 바로 앞에서 책을 읽어 주거나 고수( 鼓 手 )의 북장단 에 맞춰 서사적인 이야기를 엮어내는 광대의 모습과 흡사하다. 또한 구변 좋은 화자를 통해 서술되는 윤직원 일가의 여러 사건들도 요약과 묘사가 반복되며 극적으로 제시되는데, 이는 판소리에서 광대의 창( 唱 )과 아니리 의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판소리 양식의 전면 채용은 작가 가 의도한 풍자적 효과를 원활하게 전달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전체 15장의 서술구성 역시 이 작품에서 눈 여겨 봐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가 표면적으로 윤직원의 탐욕이 형성되는 과정과 몰락상을 그리고 있다면, 작품상 드러나는 시간인 이틀은 그 행위 의 개연성을 설명하기에 다소 짧은 시간임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이 이틀 이라는 시간 속에 설득력 있는 플롯을 형성하기 위하여 동 시간 내 다양한 장소의 사건과 과거의 사건을 어지럽게 삽입하는 방식을 취하면서 예의 그 재기어린 입담으로 인물에 대하여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풍자성이 두드러지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작품 전면 에 등장하는 부정적 인물들이라 하겠다. 특히 윤직원이 가족들에게 강요하 버리지 못할 것이다. 김남천, 現 代 朝 鮮 小 說 의 理 念 - 로만 改 造 에 對 한- 作 家 의 覺 書, 朝 鮮 日 報, ~18 12) 천이두, 프로메테우스의 언어들-채만식의 문장, 문학사상, , 309~315쪽 13) 최원식, 채만식의 고전소설 패러디에 대하여, 한국고전산문연구, 동화문화사, 1981 이인숙, 현대소설의 판소리 수용 연구, 고려대 석사논문, 1982 나병철, 앞의 책 외 다수 94

100 는 욕망과 이를 방관하거나 또 다른 탐욕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려는 가족 들의 모습은 인물들의 시대착오적 본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하겠다. 다시 말해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는 윤직원을 중심으로 그들 가족들이 형 성하는 욕망의 가계도 라고 봐도 무관할 정도로 인물들의 욕망이 큰 비중 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 욕망이 형성되는 과정과 그 근저를 파악하는 작 업이 작가의 의도에 보다 가까이 접근하는 방법임을 알 수 있다. (1) 윤직원의 속물적 욕망과 반근대적 가치 윤직원은 부와 명예 그리고 성 등 복합적인 욕망으로 점철된 인물이다. 그리고 그에게 이러한 복합적인 욕망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으로 대지주이 면서 은행에 현금이 10만 원 가까이 예금되어 있는 그의 부를 들 수 있다. 이러한 부가 그의 성실하고 정당한 노력의 결과라고 보기 어려운 것은 그 의 부친 윤용규 대부터 축재의 방식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윤용규는 삼십이 넘도록 노름방을 전전하며 투전장이나 뽑기, 방퉁이질이나 일삼는 불성실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 2백 냥이 생겨 부 를 이루는 기반이 되는데, 이 2백 냥 또한 그 출처가 모호한 것을 보면 정 당한 방법으로 취했다고 보긴 어려운 것이다. 아무튼 윤용규는 2백 냥을 가지고 고리대금업을 해서 가산을 늘려 약 3천석거리의 땅을 윤직원에게 물려준다. 윤직원은 그 땅을 이용해 지주로 군림하면서 소작농민들을 착취 하여 소득을 올리고 사정이 어려운 농민의 땅을 갈취하였으며, 거기다 고 리대금업인 수형할인까지 겸해서 만석거리 땅에다 은행에 거금까지 저축 해 놓은 부자로 성장하는 것이다. 윤직원이 이렇게 악착같이 재물에 집착 했던 것은 어릴 때부터 이익에 밝았던 그의 소양 때문이기도 하지만 윤용 규가 화적들에게 비참하게 살해당한 것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노적과 곡간에서 하눌을 찔을 듯 불길이 솟아 올르고, 동리 사람들이 그제 서야 여나믄 뫃여들어 쓸데없이 물을 끼얹고 하는 판에, 발게벗은 윤두깹이 가 돌아왔읍니다. 화적은 물론 벌써 물러갔고요. 95

101 윤두깹이는 피로 물들어 참혹히 죽어넘어진 부친의 시체를 안고 땅을 치면 서 이놈의 세상이 어느 날에 망하려느냐! 고 통곡을 했읍니다. 그리고 울음을 진정하고도, 불끈 일어서 이를 북북 갈면서 오-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 고 부르짖었읍니다. 14) 윤직원 영감이, 젊은 윤두깹이쩍에 겪든 격난의 한 토막이 대개 그러했읍 니다. ( 朝 光 ~162쪽) 당시는 고을의 수령이 백성들의 재산을 토색질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화적떼들이 날뛰던 구한말이라는 어지러운 시대상황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이 대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단순히 윤직원의 부친이 재물을 훔치러 들어온 도적들에게 죽임을 당한 사건을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냐, 우 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 라는 말은 윤직원의 세상에 대한 부정과 배타적 태도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으로써 기존의 사회질서를 부정하고 있는 그의 역사의식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비뚤어진 현실인식에서 기 인하는 것으로 주인공의 비정상적 성격이 내포하는 문제성을 사회적 현실 과의 관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예라 할 수 있다. 15) 젊었을 때부터 모진 일을 겪으며 형성된 윤직원의 부정적인 현실인식과 부에 대 한 맹목적인 집착은 그가 대하는 대부분의 타인들이 오로지 부와 욕망의 대상으로만 여겨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윤직원이 지닌 부의 성격이 드러난다. 그가 소작농 착취로 부를 쌓고 서울에 와서는 수형할인으로 부를 쌓아 신흥 자본가의 기틀을 쌓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물질지향은 근대화의 이행과정에 서 오로지 자본의 변화 발전만 수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윤직원이 봉건 사회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자본의 변화에 그토록 민감하게 대처하면서도 그가 여전히 봉건적 성격이 강한 인물로 남는 것은 근대적 정신 즉, 휴머 14) 동지사판의 추가분.. 15) 최정윤, 채만식 소설의 인물유형연구, 전남대 석사논문, 1993, 22쪽 96

102 니즘과 과학적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자연, 인간, 사회를 관찰하고 이해하 려는 정신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1장 윤직원 영감의 귀택지도 와 2장 무임승차 기행 에서는 장 제목에 서도 알 수 있듯이 윤직원의 이러한 봉건적 수전노 같은 성격이 잘 드러난 다. 집 앞까지 인력거를 잘 타고 와서는 50전을 내라는 인력거꾼에게 괜한 말시비를 붙어 기어이 25전으로 깎고는 20전으로 못 깎은 것이 못내 아쉬 워 그놈의 인력거꾼을 잘못 만나서 실갱이를 허구, 애맨 돈 5전을 더 쓰 구 히였구나! 하고 역정을 내는 장면이나 춘심이와 명창대회를 보러 가기 위해 버스를 타서도 일부러 10원짜리 지전을 내밀어 5전하는 버스비를 아 끼고는 좁은 뽀수 타니라구 고생헌 값을 이렇기 도루 찾는 법이다. 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가 얼마나 금욕에 사로잡혀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또한 나이가 일흔 두 살임에도 불구하고 집요할 정도로 집착을 보이는 그의 성 욕은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인 그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끊임없이 첩을 들이면서 거기에 모자라 지주라는 신분적 우위를 이용하 여 소작인의 딸을 취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이나 윤리적인 제지를 받는 경 우는 전혀 없다. 그가 소작인들의 생존권 여하를 쥐고 흔드는 봉건적 권력 은 일제의 가혹한 수탈이 더욱 드세지던 30년대 말 당시의 암울한 상황에 서 당시 일제의 간악한 행위와 일치한다. 이러한 인물이 작품의 중심에 놓 이면서 가족들에 의해 서서히 몰락을 예고하는 여러 사건들의 발생은 역 사의식의 부재에서 오는 아둔한 친일 지주의 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윤직원 영감은 칠원 오십전이면 산다는 그 반지를 사주기는 사줄 요량입 니다. 하기야 돈 칠원 오십전만 놓고서 생각하면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 래도 명색이 동기 체껏인데 칠원 오십전짜리 반지 한 개로 아탕발림을 시키 다니, 도리어 헐한 셈입니다. 제 법식대로 머리를 얹기자면 이삼백 원 오륙백 원이 들군 할 테니까요. 그래, 잘라먹지 않고 내일이고 모레고 사주기는 사줄 텐데, 춘심이년이 못 믿어워서 그러는지 까부느라고 그러는지, 밴돌밴돌 말을 안 듣고는 애를 태 워 줍니다. 생각하면 밉기도 하고 미운 깐으로는 볼퉁이라도 칵 쥐어질러 주 97

103 고 싶습니다. 그러나 괘-니 함부로 잡두리를 했다가는 담박 소갈찌가 나서 뽀루루 달아 나 버리고는 다시는 안 올 테니, 그렇게 되고 보면 여섯번 만에 겨우 반성공 을 한 것이 도로아미 타-불이 될께 아니겠다구요. ( 朝 光 ~177쪽) 동기 춘심이와 반지 하나로 성 거래를 흥정하고 난 윤직원이 반지값과 자신의 잇속을 따져보는 모습은 윤직원의 이러한 부정적인 모습을 잘 나 타내고 있다. 특히 윤직원이 성적 대상으로 삼고 있는 소작농의 딸이나 동 기들은 나이가 기껏해야 열 너댓 살 밖에 되지 않는 어린 소녀들로서 사리 분별은 물론이거니와 성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저항력이 떨어지는 대상 이다. 그러한 점을 철저히 악용해서 자신의 색욕을 채우려는 비윤리적인 그의 욕망은 바로 당대의 지배세력과 결탁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더구나 당대를 태평천하 라 외치는 윤직원으로서는 자신의 이 익이 식민지 지배 권력에서 나온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참 장헌 노릇이여 아 이 사람아 글시, 시방 세상으 누가 무엇이 그리 답답히여서 그 노릇을 허구 있것넝가? 자! 보소, 관리허며 순사를 우리 죄선으루 많이 내보내서, 그 숭악헌 부랑당놈들을 말끔 소탕시켜 주, 그러구 또 이번에 그런 전쟁을 히여서 그 못된 놈의 사회주의를 막어내주니, 원 그렇 게 고맙구 그렇게 장헐 디가 어디 있담 말잉가? 어-참, 끔직이두 고맙구 장헌 노릇이네! 게 여보소, 이번 쌈에 일본은 갈디읍시 익이기넌 익이렸 대잉? 그야 여부 없지요! 익이구 말구요! 그럴 것이네. 워너니, 일본이 부국갱병허기루 천하 제일이라넌듸 어- 참, 속이 다 후련허다. ( 朝 光 쪽) 한말 수령에게 토색질을 당하고, 화적떼에게 습격을 당하는 등 곤욕을 치렀던 윤직원과 같은 지주에게 일제 식민 체제는 고마운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일제식민체제는 소수 지주계층의 이익을 제도적으로 보호해 주었으 98

104 며, 식민체제가 강고해지면 할수록 그 체제에 기생하는 자신들의 이익도 안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본의 중국 침략을 고맙구 장헌 노릇 이라 고 인식하는 윤직원을 단순히 바보나 백치라고 불 수는 없다. 오히려 자신 의 이익에 걸맞는 체제를 지원하는 교활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야 타당 할 것이다. 16) 윤직원은 소작농을 착취하고 수형할인을 하여 얻은 막대한 부을 이용해 서 소위 가문을 빛나게 할 네 가지 방책 을 준비한 후 자신이 세운 계획에 가족들이 순응하여 줄 것을 요구한다. 네 가지 방책 중 2천원을 들여 족보 를 위조한 것과 그에게 향교의 가장 상석인 직원 직함을 얻어낸 것, 그리 고 집안 문벌을 닦기 위해 추진한 양반혼인 등 세 가지는 이미 그런대로 성공하였고 마지막 한 가지가 남아 있었다. 다시 그 다음 마지막 또 한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이게 가장 요긴하고 값나 가는 품목( 品 目 )입니다. 집안에서 정말로 권세 있고 실속 있는 양반을 내놓자는 것입니다. 군수 하나와 경찰서장 하나 게다가 마침맞게 손자가 둘이지요. 하기야 군수보다도 도장관( 道 知 事 )가 좋겠고, 경찰서장보다는 경찰부장이 좋기는 하겠지만, 그건 너무 첫술에 배불으자는 욕심이라 해서, 알맞게 우선 군수와 경찰서장을 양성하든 것입니다. ( 朝 光 쪽) 윤직원 가문을 빛낼 마지막 방책이란 바로 집안에서 권세 있는 공무원 이 나오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자신의 바람을 이뤄줄 인물로 종수와 종학을 꼽고 있다. 그러나 군수가 되길 바라던 종수는 군수 운동을 한다는 명목으로 조부 윤직원의 돈을 물 쓰듯 쓰면서 방탕한 생활 에 급기야 부친 창식의 첩인 옥화와 동침할 뻔 했던 사건까지 발생함으로 써 이미 군수 자리는 요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제 마지막 희망으로 종 학만 남았는데 그는 마치 윤직원의 기대에 부흥이라도 하듯 우등한 성적 16) 배봉기, 채만식 문학의 인물의 특성과 형상화에 대한 연구, 연세대 박사논문, 1992, 83 84쪽 99

105 으로 고보에 합격 하고 동경으로 유학을 떠난 엘리트였다. 그러나 그 종학 역시 윤직원이 그토록 싫어하던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동경 경시 청에 잡혀 들어가고 만다.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오죽이나! 윤직원 영감은 팔을 부르걷은 주먹으로 방바닥을 땅! 치면서 성난 황소가 영각을 하듯 고함을 지릅니다. 화적패가 있너냐아? 도적놈 같은 수령( 守 令 )덜이 있너냐? 재산이 있 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ㅅ세넌( 末 世 )는 다아 지내가 고오 자아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 마다 공명헌 정사( 政 事 ) 오죽이 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 動 兵 )을 히여서, 우리 죄선놈 보호히 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것 지니고 앉아서 편안허게 살 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넌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 어난 부잣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 지가 편안하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 상 망쳐 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 ( 朝 光 쪽) 인용은 종학이 잡혀 들어갔다는 말에 윤직원이 분노하며 내뱉는 말인데 그의 역사의식이 구제하기 어려울 만큼 퇴보되어 있으며 인생관 역시 지 독할 정도로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윤직원 일가의 몰락을 예견하는 조짐으로 연결되고 있다. 윤직원 일가의 몰락은 윤직원의 그릇된 현실인식, 그가 이룬 부가 시대에 역행하는 편법적인 방법으로 형 성되었다는 사실에서 이미 예견된 사실이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부를 중심 으로 기생하는 가족들의 욕망과 종학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세대가 보여주 는 구세대에 대한 거부 내지는 저항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윤직원의 욕망 17) 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윤직원은 권력에 강한 17)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욕망은 대부분 단순하게 서술되고 있다. 그 이유라면 우선 작품 전반에 걸쳐 윤직원을 중심으로 서술됨으로써 다른 인물들의 행위와 사고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다뤄지지 않았고, 대부분의 인 물들이 부정적 인물들로서 그들이 추구하는 욕망을 대부분 작가가 미리 말해버리 는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들의 욕망을 쉽게 알 수 100

106 집착을 보이고 있으며 자신보다 60년이나 연하인 어린 소녀들을 욕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모습은 비할 데 없는 속물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가 이처럼 권력에 대하여 강한 집착을 보이는 것은 당대를 태평천하로 보고 있는 그의 인식에서 비롯된다. 그에게 있어 지극히 태평천하이기 그 지없는 이 시기는 일제강점기로써 국가 간 힘의 논리가 철저하게 작용하 던 암흑기였고 더구나 그는 젊었을 때부터 평민 출신으로 지금의 부를 불 리기까지 화적떼나 고을 수령에게 적잖은 재산을 강탈당했기 때문에 그가 자신이 지닌 재력을 이용해 도모하는 신분상승의 욕구는 곧 자신의 재산 을 보호하기 위한 가장 안전한 방편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 히 부친 윤용규가 수차 토색질을 당했던 고을 수령 백영규의 행태는 윤직 원에게 그야말로 증오의 대상이자 권력이 가산을 보호하는 역할을 넘어 보다 늘릴 수 있음을 잘 보여준 인물로서 훗날 그의 손자들을 군수와 경찰 서장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욕망의 단초를 제공하는 셈이다. 이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백영규 윤직원 군수, 경찰서장 이상의 삼각형은 표면적으로만 드러나는 윤직원의 욕망을 형상화 한 것 이다. 윤직원에게 권력지향적, 신분상승적 욕구가 발생하여 종수와 종학에 게 군수와 경찰서장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인다. 집안에서 권세 있고 실속 있는 양반 만 나와 준다면야 윤직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기 때문 이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다시피 그의 욕망은 단지 권력지향적 욕구가 전 있는 것이다. 101

107 부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윤직원 부친 윤용규가 고을수령 백영규에게 화적 들에 대한 고변을 놓다가 잡혀 들어가 2천 냥의 뇌물을 써서야 겨우 풀려 날 수 있었던 것과 윤용규가 화적들에게 비참한 죽음을 당한 것은 윤직원 에게 권력이 어떤 용도로 쓰일 수 있는지 분명히 자각하게 했으며 소작농 착취와 수형할인을 통한 부의 형성을 비롯하여 인력거 삯이나 버스비를 깎는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지독한 수전노적 면모는 재산을 불리 는데 있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인물임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 러므로 상기 삼각형의 경우처럼 권력지향성은 곧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고 불리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수단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여기서 그가 중개자로 삼은 고을수령 백영규 역시 덕망이 높아 주위에서 추앙받는 관리는 결코 아니었다. 화적을 잡기보다 부자를 토색하기 가 더 긴하고 재미있는 일로 여기는 인물로서 백성들을 수탈하면서 관직을 치부 의 도구로 전락시킨 인물로 윤직원이 그를 모방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 연한 일로 여겨진다. 윤직원은 온갖 비열한 방법을 동원하여 축재하고 숱 하게 첩을 갈아 치우면서도 거기에 모자라 어린 소녀들까지 유린하는 속 물이었다. 이렇듯 많은 부조리를 내재하고 있으며 도덕적, 윤리적 제재의 대상이 되는 속물이 바로 윤직원이듯 그가 모방하고자 하는 인물 역시 속 물의 범주를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18) (2) 탐욕의 가계와 종학의 의미 전술하였듯이 이 작품에서는 윤직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 하고 있다. 특히 윤직원은 자신의 부를 바탕으로 철저한 가부장적 권위를 행사하려는 인물로서 외형상 본인을 비롯하여 증손자에 이르기까지 대가 족이 일가를 이루어 살고 있다. 그러나 아들 창식은 첩을 얻어 나가 살고 18) 속물만이 진정으로 다른 속물을 안다. 그가 다른 속물의 욕망, 즉 그의 존재의 본질 자체를 모방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복사본과 원본 사이의 통상적인 차이를 찾아낸다 는 문제는 있을 수 없는데, 원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적절한 이유 때문에 그러하다. 속물의 중개자는 그 스스로 또 하나의 속물, 즉 첫번째 복사본이다. 르네 지라르, 김치수, 송의경 역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한길사, 2001, 쪽 102

108 있으며 종수는 군수 운동을 위해, 종학은 경찰서장으로 만들기 위해 일본 으로 유학을 보낸 상황이다. 즉 나가있는 이들은 이미 윤직원과 융화할 수 없는 인물들로 성장되어 있으므로, 본가에 남아있는 그들의 본처를 배제한 다면 윤직원 일가는 이미 대가족의 모습이라 볼 수 없다. 또한 대가족이 등장하는 소설은 각 세대가 그 시대를 연상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 데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에서도 윤직원이 조선말 인물이라면 창식은 개 화기, 종수와 종학은 일제암흑기를 표상하고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본 고에서는 이들 인물들의 시대적 상징성과 퇴폐적 탐욕의 일면을 살펴보고 자 한다. 윤직원을 비롯한 그의 가족들은 조선말부터 개화기를 지나 암흑기에 이 르기까지 다양한 세대를 이루며 살고 있지만 이들 가족들의 관계는 정상 적인 대가족의 모습이라기보다 자신들의 가치를 중심으로 군집된 형태 이 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윤직원의 가족들 중 종학을 제외하고는 다들 뚜렷한 가치관을 찾아보기 어렵다. 윤직원이 봉건적인 대가족 제도를 지향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윤직원이 가부장적인 권위 아래 그의 아들과 손자들이 순종하며 사는 것 또한 아니다. 외형적이라도 그나마 대가족적인 형태를 띠며 살 수 있는 것 은 바로 윤직원의 재산 때문이지 그의 권위는 이미 무너져버린 것이다. 그 리하여 그의 아들 창식과 손자 종수 역시 윤직원이 가진 재산을 탕진하며 미래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조차 없이 살고 있는 것이다. 5장 마음의 빈민 굴 에서는 이 집안 식구들의 내력이 서술되고 있는데 우선 창식부터 살펴 보겠다. 창식은 성격부터가 윤직원과 달리 유순하고 남과 사소한 시비조차 붙지 않는 인물로서 뚜렷하게 하는 일도 없이 음주와 노름, 첩질로 소일하고 있 는 위인이다. 더구나 경제관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 친척이든 친구든 누구라도 아쉬운 소리를 할라치면 쉽게 돈을 빌려주었다가 떼이기 일쑤인 것이다. 보다 못한 윤직원이 그를 준금치산선고 까지 시켜버렸지만 그는 아예 아버지의 도장까지 위조하여 윤직원의 재산을 축내고 있는 것이다. 남에게 쉽게 돈을 내어주는 창식도 기부금만은 절대로 내지 않는다. 작 103

109 품 내에는 그리 뚜렷한 이유를 찾을 수 없지만 사학( 私 學 ) 하나를 후원하고 있는 한 인사가 창식에게 기부금을 청하러 왔을 때 학교가 없어서 공부를 못하기보다는 돈이 없어서 있는 학교도 못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 까? 라는 말에서 그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윤주사는 종시 정신은 마작판의 바닥에다가 두고, 손만 꿈지럭꿈지럭, 족 기 호주머니에서 전보를 끄냅니다. 이놈 사만이 분명 일을 낼 테란 말이야, 으응 이 사람아, 마작판에 몬지 앉겠네! 가만있자 내, 이 전보 좀 보구우 윤주사는 외인손에 든 전보를 손꾸락만 눌러 만지작만지작, 접은 것을 펴 가지고는 또 한참이나 딴전을 보다가 겨우 눈을 돌립니다. 번역 해논 열석자 를 읽기에 그다지 시간과 수고가 들 건 없었읍니다. 빌어먹을 놈! 마땅찮게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전보를 아무렇게나 도로 우그려 넣고는 에라 모른다! 하고 여태 어려워하던 사만을 집어, 따악 소리가 나게 내쳐 버립니다. 옳아! 바루 고자야! 아니나 다르까, 손아래 째보가 일사만방입니다. 끝수래야 일흔일백설흔! 빌어-먹을 놈! 윤주사는 아들 종학이더러 전보 조건으로 또 한번 욕을 합니다. 그러나 아 까치는 옳게 그 전보 내용에다가 욕을 한 것이지만, 이번치는 만관을 놓친 화 푸리로다가 절로 나와진 욕입니다. ( 朝 光 ~256쪽) 인용은 창식이 마작판에서 노름을 하다 동경에서 온 전보를 보는 장면 이다. 노름에 정신이 팔린 창식은 민서방이 몇 번이나 긴한 전보가 왔다고 말해도 마작판에서 손을 떼지 못하다가 겨우 전보지를 펴 보게 된다. 전보 내용은 종학, 사상 관계로, 경시청에 피검 으로 아들이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경시청에 잡혀 들어갔다는 내용인데도 창식은 빌어먹을 놈 만 연발 할 뿐 노름판에서 일어날 줄 모르고 결국 민서방을 시켜 윤직원 집으로 보 104

110 내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이미 오래 전에 가장으로서의 역할이나 노력을 포기한 것을 의미하고 아울러 경제관념 또한 희박한 그가 부정적 인물로 분류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창식의 맏아들인 종수는 윤직원이 군수감으로 생각하고 있는 인물이다. 열 일곱 살 되던 해 서울로 공부하러 올라왔지만 입학시험에 세 번이나 떨 어지고는 아예 포기를 해버리고 주색잡기에 뛰어든다. 이러던 것을 보다 못한 윤직원이 공부로 군수가 되긴 글렀으니 인맥이라도 태워 군수가 되 게 할려고 고향에 군 고원으로 내려 보낸다. 그러나 종수 역시 윤직원의 도장을 위조해서 돈을 끌어다 방탕한 생활을 벌이지만 명목이 군수 운동 비와 교제비로 쓴다고 하니 윤직원도 어쩌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십여 년 화류계에서 치어난 종수도, 어쩐지 압기가 되는 듯, 이 장면에서만 은 대번 얼굴을 들고 치어다볼 담이 나덜 않고, 마침 문턱 안으로 한발 디려 놓는 비단 양말을 신은 다리로부터 천천히 씃어 올라갑니다. 놀먐한 비단 양말 속으로 통통하니 살진 두 다리, 그 중간께를 리치렁거리 는 엷운 보이루 의 검정 통치마 연하게 물결 치는 치마주룸을 사풋 눌른 손낄 곱게 끊진 힌 저구리의 앞섭끝 볼룩한 젖가슴에 맺어진 단정한 고롬 이렇게 보아 올라가는 종수는 어느덧 저를 잊어버리고, 과연 시방 순결을 의미하는 여학생을 맞느니라 싶은 일종의 엄숙한 기분에 잠겨갑니다. (필자 중략) 남녀는 동시에 숨이 맥히게 놀램니다. 종수는 앉은 자리에서 뒤로 벌떡 너 머질 뻔하다가 겨우 몸을 가누어 고개를 푹 숙이고, 게집은 홱 몸을 날려 마 루를 쿵쿵 구두는 신었는지 어쨋는지 대문을 왈카닥 삐그덕 그 다음에는 조 용하고 맙니다. 게집이 달아나자 종수도 정신을 채려 좆기듯 세계사업사 를 도망해 나왔 읍니다. (게집이 누구더냐는 것은 창피하니 덮어두고 싶으나 그건 무책임하고 윤주 사 창식이(그러니가 바루 종수의 부친)의 둘째 첩 옥화였읍니다) ( 朝 光 쪽) 105

111 인용은 종수가 뚜쟁이 집에서 여자를 불렀다가 부친 창식의 첩인 옥화 와 마주치는 장면으로 윤직원 일가의 타락상이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하마터면 관계를 맺을 뻔한 이들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듯 윤직원을 비롯 하여 아들 창식과 손자 종수, 그리고 윤직원이 희롱하려는 동기 춘심과 모 종의 관계로 진전될 것임을 암시하는 증손자 경손 등 일가가 마치 타락의 가계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욕망만으로 점철된 윤직원 일가에서 손자 종학은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작품상에는 실질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작품 전체 를 관통하며 미래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인물이 바로 종학이다. 윤직 원이 생산하는 부에 비해 아들이나 손자를 통해 소비되는 지출의 규모가 더욱 크므로 종국에 윤직원의 몰락은 필연적인 것으로 예견되고 있지만 부정적인 부나 권력이 또 다른 부정적인 힘에 의해 붕괴되는 것은 결코 발 전이 아니라는 것을 작가는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부정적인 권력의 견제를 위한 발전적 해법이 필요했던 것이고 이 작품에 서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종학이라 할 수 있다. 즉 역 사의식이 부재된 윤직원이 외부의 물리적인 힘에 의해 파멸하는 것이 아 닌 그의 손자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인 종학을 내세워 윤직원의 욕망을 한 꺼번에 좌절시키고 새로운 희망에 대한 암시를 주고 있는 것이다. 106

112 Ⅴ. 결론 이상으로 채만식의 1930년대 소설 중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명 일( 明 日 ), 치숙( 痴 叔 ), 소망( 少 妄 ) 등 네 편의 단편소설과 탁류( 濁 流 ),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등 두 편의 장편소설을 중심으로 작중인물의 환경과 행동양식, 그리고 그들의 욕망관계와 발현양상을 르네 지라르의 삼각형의 욕망 을 원용하여 살펴보았다. 작중인물의 욕망분석을 통하여 드러나는 작가의 의도와 함께 소설의 세계는 작가의 욕망에 따라 변형된 세계 라는 인식을 가지고 작가의 욕망과 정신을 탐구하는 것이 본고의 실 질적인 관심사였다고 할 수 있었다. 본고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우선 채만식의 단편소설에 대한 검토가 있었다. 채만식의 경우 자신의 자전적 요소가 내재된 일련의 지식인 소설들 과도기( 過 渡 期 ), 생명 ( 生 命 )의 유희( 遊 戱 ), 앙탈, 창백( 蒼 白 )한 얼굴들, 인텔리와 빈대 떡,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명일( 明 日 ), 치숙( 痴 叔 ), 소망 ( 少 妄 ), 패배자( 敗 北 者 )의 무덤, 냉동어( 冷 凍 魚 ) 등 을 발표하면서 그들 작품을 통해 사회비판의지를 표출하고 있는데, 본고에서는 이들 작품 의 연관성을 살피되 작가의 의식이 보다 분명하게 표출된 네 편의 단편을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본고에서 텍스트로 선정한 네 편의 단편소설들은 모 두 지식인이 중심인물로 등장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하나같이 경제적인 궁 핍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러한 경제적인 궁핍이 개인의 무능이나 나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모순에서 비롯되었다는 그들의 인식이 욕망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만주사태를 계기로 문화정책을 종식하고 보다 가혹한 수탈과 함께 식민 지의 황국화를 가속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교육을 활성화한 것이 지식인의 경제적 궁핍으로 이어졌다는 주인공들의 인식은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의 P나 명일( 明 日 ) 의 범수처럼 무기력한 양상으로 치달았다가 치숙( 痴 叔 ) 의 아저씨나 소망( 少 妄 ) 의 남편에 이르러서는 저항의 한 107

113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지식 인 중심의 소설이 연작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는 전제 아래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과 명일( 明 日 ) 을 살펴보았다. P가 아들을 기술자로 만들기 위한 선택에 대해 마치 비교대상을 설정하기 위한 것처럼, 범수와 영주의 욕망은 그 발현과정에서부터 모습을 달리하고 있었다. 이것은 남편 범수의 오랜 실업자 신세가 크게 작용하고 있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범수의 경우 자신이 룸펜의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 식민지 교육 정책상 한계와 부조리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반면에 영주는 오랜 실업이 남편의 무능과 안일함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두 아들 을 각각 기술자와 인텔리로 만들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 이들 작품 이 현실을 심층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문제의 해법 역시 다소 피상적이 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일제치하 교육제 도의 모순과 그에 파급되는 인텔리의 실업 문제를 직시하고 비판하려는 날카로운 작가의식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치숙( 痴 叔 ) 과 소망( 少 妄 ) 도 그 형식과 특성상 같은 범주에서 다룰 수 있는 작품으로, 본고에서는 각각 작품의 화자로 등장하는 일본인 상점 점원과 아내의 욕망에 접근하면서 일본인 상점의 점원이 염원하는 부의 형성과 가치관의 타당성 여부, 아내가 추구하는 지극히 평범한 여성상을 통해 현저하게 드러나는 현실인식 수준 등은 '나'라는 인물이 처음부터 자 본가였다든지 지주, 권력자의 상황에서 자신의 부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친일을 일삼은 것이 아니라, 일제의 식민지 체제 내에서 지극히 평범하달 수 있는 민중이 지속적인 정책에 의해 시나브로 물들어가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또한 아저씨와 남편의 욕망을 각각 분석해 보면 주체와 대상 사이에 뚜 렷한 중개자가 대두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는 앞선 두 작품 의 지식인 P와 범수 역시 엄밀한 의미에서 중개자의 역할을 상정할 인물 이 보이지 않았던 점을 감안한다면 중개자의 유형을 임의적으로 짐작할 수는 있으되 작품에서 실질적인 중개자를 찾을 수 없는 당시 지식인의 욕 망은 그대로 타개책을 발견할 수 없는 암담한 현실과도 일치한다고 볼 수 있으며 지식인 중심의 작품이 거듭될수록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과 108

114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작가적 한계가 결국 허무로 귀결( 歸 結 )되는 양상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작품의 자전적 요소를 감안할 때 작가 스스로 가 의식의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가중되는 시대적 중압이 결국 작가에게 원치 않는 선택을 하게 되는 심적 고민이 작품에서 표출되고 있었던 것이 다. 다음은 채만식의 장편 소설 중 탁류( 濁 流 ) 와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의 인물을 중심으로 다뤘는데 우선 탁류( 濁 流 ) 의 경우를 살펴보면 초봉 이라는 한 여인이 여러 부정적 인물들을 만나면서 청초하고 순진하기만 했던 성격이 어떻게 굴절되어 가는가를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초봉에게 접근하는 부정적 인물들은 하나같이 초봉을 성욕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 었으며, 초봉 역시 그들에게 금전적인 욕망을 품었다. 여기서 초봉의 욕망 이 자신의 가족들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이들 세 사람 의 부정적 인물들은 간접적으로나마 중개자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령 고태수의 경우 결혼하면서 정주사의 장사자금을 약속했고, 박 제호의 경우 동거에 들어가면서 매달 받는 생활비로 가족들을 봉양할 수 있었으며, 장형보 역시 그녀에게 큰 돈을 약속했던 것이다. 독자들은 이미 이들의 도움이나 약속이 신빙성 없는 허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 만, 정초봉에게 매번 실질적인 욕망의 좌절을 안기고 급기야 파멸로 이끈 사람은 장형보 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녀에게 장형보는 '욕망을 암시하고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방해하는 존재'로서 '증오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고 결국 초봉의 살인이라는 파국으로 치닫는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작가는 그녀가 여러 부정적 인물들에게 유린당하고 결국 전락하고 마는 탁류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일제치하에서 경제적 타락과 정신적 굴절을 겪 는 식민지의 암담한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주인공 인 초봉 외에 전반부는 고태수가, 후반부는 장형보, 남승재가 작품 전개를 주도하면서 비극적 현실에서 남승재라는 긍정적 대안의 제시함으로써 인 물들의 근대성 회귀의 문제도 도출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졸부 윤직원과 그의 가족들의 왜곡된 관계를 다룬 작품으로 윤직원이 세운 가문을 빛낼 필생의 네 가지 방책이 하나씩 좌절되어 가는 109

115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태평천하( 太 平 天 下 ) 를 검토해 보았다. 논의에 앞 서 이 작품이 전적으로 부정적 인물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 여 이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추( 醜 ) 의 의미를 구세대의 몰락과 신구세대 의 갈등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모티프의 연관성을 보이는 몇몇 작품들도 함께 검토해 보았는데, 이를 통해 작가가 표출하고자 한 전 근대적 가치의 한계와 극복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작품의 모 든 인물이 윤직원을 중심으로 속물적 탐욕을 품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들이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욕망과 타락의 가계를 살펴봤고 아울러 그 안에서 도출되는 그들의 필연적인 몰락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윤직원은 가문 빛내기 사업의 일환으로 손자인 종수와 종학에게 군 수와 경찰서장을 강요하는 것은 친일지주로서 권력지향적인 면모까지 노 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있지만, 그가 단지 권력욕구 또는 신분상승욕구 에 의해 군수와 경찰서장 자릴 탐내는 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 다. 그의 부( 富 )의 근간이 되는 부친 윤용규 시절부터, 수령 백영규에게 화 적떼에 대한 고변을 넣었다가 오히려 2천냥을 뺏긴 일 하며, 권총강도가 자기 집을 간간이 드나들던 일 등은 윤직원 영감에게 권력의 필요성을 절 감하게 했던 것이다. 즉 윤직원 영감이 군수와 경찰서장을 갈망하는 실질 적인 이유는 자신의 재산을 잘 지켜줄 든든한 울타리로서의 역할을 기대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의 욕망의 중개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었다. 풍자가 부정적 인물이나 상황을 전면에 도출시킴으로써 대상에 대하여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수법으로 비판하는 기법이라고 봤을 때 인물의 욕망 관계를 밝히고 그 안에 숨겨진 작가의 진정한 의도를 살펴보는 일은 반드 시 필요한 작업이었다고 본다. 다만 르네 지라르의 이론을 원용하는 과정 에서 인물의 욕망관계를 지나치게 유추 확대한 부분은 그대로 본고의 한계 가 되고 있음을 밝혀 둔다. 이 문제는 추후 논의에서 욕망의 범주에 국한 된 인물 특성이 아닌 인물의 전체적인 행위양상은 물론 주변인물과의 관 계로 확대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극복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110

116 참 고 문 헌 1. 기본 자료 가) 채만식의 단 장편소설 레듸-메이드 인생( 人 生 ), 新 東 亞, 명일( 明 日 ), 朝 光, 탁류( 濁 流 ), 朝 鮮 日 報, 천하태평춘( 天 下 太 平 春 ), 朝 光, 치숙( 痴 叔 ), 東 亞 日 報, 소망( 少 妄 ), 朝 光, 蔡 萬 植 全 集 1~10권, 창작과 비평사, 1989 (이주형 최원식 염무웅 정해렴 이선영 전광용 등 편집) 나) 평문 修 學 旅 行 의 追 憶, 新 東 亞, 作 家 의 限 界, 朝 鮮 日 報, , 9 自 作 案 內, 靑 色 紙, 다) 기타 자료 김남천, 世 態 風 俗 描 寫 其 他, 批 判, 박영희, 朝 鮮 知 識 階 級 의 苦 悶 과 그 方 向, 開 闢, 백 철, 文 壇 時 評 12 月 號 雜 誌 를 中 心 으로, 彗 星, , 綜 合 文 學 의 建 設 과 長 篇 小 說 의 現 在 와 將 來, 照 光, , 조선작품연감, 1939, 인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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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Abstract Study of the desire of the characters in novel of Chae, Man-Sik and his consciousness - Centered in satirical novels in thirties by Yi, Gyung-Su Dept. of Korea Language & Literature Graduate School, Kookmin university Seoul, Korea This paper is to analyze the revelation modes of desires presented in Chae's novel by application of désir triangulaire of René Girard and to examine author's hidden intention and perception of the times through the desire relations among the characters. Chae left his footmarks on the history of the Korean sarcasm. His sarcasm was to criticize the objects indirectly and in a roundabout way, denied the entire value from colonization and didn't comply with the existing system. There was found his author consciousness. Under a situation where the object to be desired was restricted by the times, their activities modes would be dependent to where to put their desire and ideal. And then without creation of new values, they imitated the desire of the others (dominant or manager) and came to be destroyed gradually. This was the characteristics of Chae's novel, which gave the reason to related to the désir triangulaire of René Girard. Chae published a series of novels of characters originated from 117

123 intellectuals. In his chapter 2, they objected the belief of some intellectual presented in the thirties. In his novel, the intellectual was described not as those who have simple and practical knowledge but as those who denied the dominant's ideology and led his own principle of life with interest in his present situation. In other words, his meaning of intellectual was based on authenticity. I suggested that he introduced the intellectuals with critical thinking for realization of his spiritual value against the more terrible Korean annihilation policies, thought restrictions and political oppression after 1931 Manju War. After Manju war, Japan accentuated the cultural policies under severe sufferings of people and also the imperialism of colony. In this respect, the Japanese government vitalized the education and finally this led all people to extreme economic poverty. This kind of author's consciousness was described in his characters from enervated P of Ready-made life and Bumsu of Myungil to resistant uncle of Chisuk and a husband of Somang. But their resistance was passive and didn't overcome the self-disintegration. This disintegration was developed from P or Bumsu to uncle or a husband gradually and when more developed, there was no intermediary of desire but just some conclusion without it. When considering the autobiographical elements of this novel, he showed his limit of consciousness under the oppressing feelings of the times and finally chose the unwanted things in his psychological description. In the third chapter Takryu, I tried to approach the author's consciousness through desire relation among characters. In this novel, he described that a woman called as Chobong met some negative personages and she became distorted and perverted from her purity to destructive. The personages approaching Chobong 118

124 considered her as an object of sexual desire, while she saw them as financial means. The overlapped desire among Chobong and her negative men was continuously frustrated by a man, Jang, Hyung-Bo. He was an interrupter of her desire. And Chobong abominated him extremely and finally killed him. Jang was the existence of interrupter against Chobong's desire but other men, Ko, Tae-Su and Park, Jae-Ho were not those who satisfied Chobong's desire. Chae suggested in this novel that by application of the image that Chobong was violated and trampled down by various negative personages and finally fell into becoming a murderer, those who were suffered and enervated under Japanese Imperialism was presented. Besides Chobong, main character, in the first half of this novel, Ko, Tae-Su and in the second half, Nam, Sung-Jae appeared as main characters presenting the positive alternatives against the reality. By doing this, Chae verified the revolution to the modernity. Chae presented the background of the various personages representing the city slum and colonization and then he showed the dark reality of colonized people with economic destruction and spiritual distortion. In the fourth chapter Taepyung Chunha, the desires of the characters were comparatively clearly and simply described. For this reason, in the first half of the novel, the old Yoon, Chi-Won was centered and described. And the behaviors and ideas of others were not relatively detailed. Chae adopted the Pansori (Korean Opera drama) style and the narrators explained the desires of the characters in advance. And Chae symbolized the main character, old Yoon as an extreme snobbish, in describing that he was a rich landowner going with the times, he accumulated tremendous wealth by exploitation of poor tenant farming, he was a perfect egoist attaching to political power in citing four projects for the success 119

125 of his family and he recognized the world as egocentric. When noting that this novel consisting of entirely negative characters, the main concept Chu(Ugliness 醜 ) was examined in destroyed past generation and new conflicting generation. Through it, Chae's will to overcome premodern values limit was presented by his characters. Also in noting that the snobbish desire was described as centered in old Yoon, their relationships consisting of desire and destruction was examined and furthermore their indispensable ruin was verified. Like this, Chae criticized the snobbish personage like an old Yoon and his family under constant viewpoint and described clearly the landowners who infringed and dishonored people as dirty flatter under Japanese colony.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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