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영의 공감의 정치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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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기영의 공감의 정치산책 안기영

2 소개글 공감의 정치산책 지금 우리는 극단의 갈등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념의 갈등, 지역의 갈등, 세대의 갈등 등 많은 갈등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갈등해결의 밝은 빛은 보이지 않습니 다. 이념은 구시대의 유물입니다. 지역갈등은 인간을 소외시키는 패권중의에 불과합니다. 세대갈등은 서로에 대 한 이해 부족에 기인합니다. 이제 갈등 해결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갈등과 이념은 결코 우리를 구원해줄 수 없습니다. 공감을 통한 상호 이해의 확대가 필요합니다. 인간, 권력, 정치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 책에서는 동서양의 고전읽기를 통해 함께 공감을 만들고 공감을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함께 공감의 산책을 떠납시다. 동서양의 고전, 주요 문학작품 읽기를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를 되돌아보고 바람직한 내일을 그려보는 것입니 다. 이념,지역, 세대를 뛰어넘는 새로운 공감이 만들어지길 소망합니다.

3 목차 1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 임용한 6 2 우물은 물을 퍼내면 가득 차지만 길어내지 않으면 말라버린다(안대회, 박제가의 북학의) 12 3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수레와 목축) - 연암 박지원(열하일기, 김문수 편) 19 4 서양과의 접촉 - 조선(하멜)과 일본(아담스)의 서로 다른 길(병자호란: 한명기) 29 5 성호의 사회사상 - 벌열사회, 노비제도판, 서얼제도 비판, 여성관(강명관) 33 6 속환녀, 도망자 : 병자호란의 참상 - 한명기의 병자호란 38 7 G2시대 병자호란을 다시 읽자 (한명기 병자호란) 42 8 성호사설 - 강명관, 성호 세상을 논하다 46 9 성선설과 사단칠정논쟁-유림(최인호) 야율초재-한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함은 한가지 해로운 일을 제거함만 못하다(최인호 유림) 공자 - 정치에서 명분을 세우는 것이 제일 중요 - 최인호 유림 임금의 총애를 받는다는 것 - 조광조와 정약용 맹자의 조세정책 - 맹자(박경환) 性 善 說 의 논리와 四 端 - 맹자(박경환) 폐족의 멍에를 극복하고 실학을 완성 - 박석무(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다다) 노자의 정치 - 무위이치(노자-김원중) 상실의 시대 - 무라까미 하루끼 왕과 나 - 이덕일,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지도자 소서노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 하인라인 내가 공산주의와 파시즘을 반대하는 이유(게으름에 대한 찬양) - 버트란드 러셀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 노암 촘스키 최장집교수가 안철수를 떠난 이유 공감의 시대 - 제러미 리프킨 대통령과 최고경영자(CEO)의 리더쉽 차이 게으름에 대한 찬양 - 버틀란드 러셀 129

4 26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 조지 레이코프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 최장집 절반의 인민주권 - 샤츠슈나이더 햄릿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형 인간 돈키호테형 인간 오셀로 - 이유가 있어서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 정의로는 어느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 초가집 정승 오리( 誤 里 ) 이원익 그는 누구인가? 맹자 - 왕자와 패자, 무항산 무항심 문학이란 무엇인가? 어린 왕자 - 생텍쥐페리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포리스트 카터 외딴방 - 신경숙 시장은 정의로운가 - 이정전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영국 보수당의 역사 - 강원택 소명으로서의 정치 - 막스 베버 정치의 발견 - 박상훈 나는 정치인이다 - 올로프 팔메(하수정) 그래도 정치는 덕으로 하는 것이다 - 논어 중국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정치의 황금시대 - 정관의 치 세종대왕과 당태종의 리더쉽의 공통점 인재를 어떻게 구해 쓸 것인가? - 책문(김태완 저) 여자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지 말라 - 카이사르와 여자(로마인이야기, 시오노나나미) 실업대책은 복지로서 해결될 수 없다 - 로마인 이야기(시오노 나나미) 총리 장관후보자는 말을 잘 해야 한다 - 세종처럼(박현모 저) 대선공약과 마키아벨리 - 군주론(마키아벨리) 278

5 51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이념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 원효사상 연구(박태원 저) 법치와 경제성장 - 경제학(맨큐) 청나라를 배워야 한다 - 만주족의 청제국(마크 엘리엇 지음, 이훈, 김선민 옮김) 뇌물은 누구나 비밀스럽게 주고받겠지만, 한밤중에 주고받은 것도 아침이면 드러난다(목민심서 율기6조 청심, 정약290 용) 55 사진 모음 56 이념은 결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조정래, 태백산맥) 57 최소한의 상업, 화폐없는 세상 - 성호, 세상을 논하다(강명관) 58 이용후생 - 북학의(박제가) 59 정조대왕 치세어록(안대회) 60 창조적 계급 - 리처드 플로리다 61 아버지, 어머니 형이 서기관 승진했어요 62 속환녀, 정신대 - 역사의 교훈을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태백산맥, 조정래) 63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 안도현 시 감상 64 박근혜 대통령과 창조경제4인방-빌 게이츠, 마크 저크버그, 카젠버그, 스티브 잡스 65 1월30일은 병자호란 때 조선이 청에 굴욕적으로 항복한 날 66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아들에게 67 친환경농산물유통도 창조경제 영역 68 화냥년 - 역사소설 병자호란(유하령) 69 박근혜대통령의 경제혁신 3개년계획이란 무엇인가? 70 제2의 마우나리조트 참사를 막으려면 71 부산외대생 참사, 씨랜드 화재참사 72 3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창조경제 의 활로 - 이혜훈 최고위원 73 안기영의 최근 소식 그리운 황낙주 국회의장님

6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 임용한 :51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임용한 임용한) 거짓 농본주의 조선시대 사람들의 이상사회는 농본사회다. 농본사회의 적은 상공업이다. 심하게 말해서 상공업을 아예 없 애버리면 속이 시원하겠지만, 아예 없앨 수가 없는 것이 문제다. 상공업도 농업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에 없어서는 안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의 지식인들은 상업은 어디까지나 해당지역에서 자체조달을 할 수 없는 삶에 꼭 필요한 물품 - 조선 사람들의 기준에서 삶에 꼭 필요한 물건이란 먹는 것, 입는 것, 약, 장례에 필요한 물자, 국가적 기 준에서는 국방이었다 - 을 공급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보았다. 여기에 기가 막힌 조건이 하나 더 붙는 다. 이런 경우라 할지라도 상공업이 이윤을 남기거나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 임용한 6

7 왜 그럴까? 상공업은 농업보다 쉽게 돈을 벌게 해준다. 상인이 돈을 벌면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으로 사회가 분화한다. 이건 사회정의에 어긋난다. 백성은 최대한 평등하고 가난하게 살아야만 한다. 주변 사람 이 모두 가난하고 평등해야 의욕과 욕망도 없고, 고분고분하게 말도 잘 듣는다. 인간은 돈을 벌면 그 다음 권력을 추구한다. 자식을 공부시켜 지방 유지로 만들거나 과거에 도전해서 쓸데없이 경쟁률을 높이고 사 회를 험악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사회가 평안하고 안정적이 되려면 극소수의 지배층을 제외하고는 90퍼센 트 이상으 국민이 평등하게 가난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조선의 경제사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사회주의적이다. 상업은 돈벌기가 쉽다, 불공평하다, 그러면 농업을 버릴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이대며 상공업을 억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주 정의롭고 설득력있 는 명분을 찾아냈다. 정직하게 땀을 흘리며 물자를 생산하는 농부는 100원을 버는데, 그 물품을 받아 여기 저기 옮겨주는 교활한 인간은 열 배, 백 배의 수익을 올린다. 이것은 불공평하다. 사람들은 이익을 따라가 는 악한 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농업보다 상업이 돈 벌기가 쉽다고 하면 모두가 농업을 버리고 상업 으로 갈 것이다. 농부가 줄어들면 식량생산은 줄어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먼저 굶어죽게 된다. 이 교활한 논리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눈으로 봐서는 맞는 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얼치기 지식인뿐 아니라 양 심적인 지식인, 학자들도 이 논리에 넘어갔다. 그만큼 현상적 진리의 힘은 무섭다. 그래서 박제가가 주장 하듯이 외국의 다른 세계를 보아야 한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자기 세계에 갇혀 있으면 현상과 자기 경험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다. 조선은 상공업을 증오하고 억제했다. 상공업을 아예 없앨 수는 없으므로 강력하게 국가의 통제 아래 두어 관리했다. 사회는 안정되었지만 국가와 국민은 가난해졌다. 도로, 다리와 같은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 도 없고, 기술을 개발하거나 좀 더 좋은 제품을 만들려는 노력도 실종되었다. 박제가는 이 위장된 농본주의를 공격했다. 진짜 농본사회라고 한다면 농업생산성, 농업기술에 투자하고, 최소한 농업분야에서라도 독보적인 성취를 보여야 한다. 또한 상공업이 농업에 반드시 적대적인 것도 아 니다. 덴마크의 낙농업처럼 상공업이 발달해야 농작물의 판매수익도 좋아지고, 농부도 작물개발과 생산증 대에 더 노력하게 된다. 농업기구만 보아도 중국 양곡기는 1만석을 어렵지 않게 찧어내고, 중국 물레는 한 사람이 하루에 80근의 솜을 뽑는다. 그러나 조선물레는 솜을 하루에 4근 밖에 뽑아내지 못한다. 그 간단한 기구도 사용하지 않고 도리깨질과 타작으로 탈곡을 하니 여러 명이 하루 종일 일해도 10석 밖에 탈곡하지 못하고 쌀에는 돌과 모레가 섞인다. 한편 서양의 그리스나 동양의 중국, 일본에서도 고대부터 수차를 사용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 임용한 7

8 했지만, 우리나라는 조선후기까지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농사기술도 발달하지 않아 파종하는 곡식은 중국보다 몇배나 많고, 수확하는 곡식은 몇 분의 일에불과하다. 중국의 농업환경이 우리보다 우수 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술로 환경을 극복하려고 하지 않고, 토질과 기후 탓만 한다. 그러면서 농업기술을 개발하려는 노력조차 않는다. 겨우 한다는 것이 노농에게 물어서 노하우를 찾아낸다는 정도다. 체계적인 연구와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다. 수차, 베틀, 농기구조차 개량하려는 노력이 없어 농기구의 생산성이 중 구보다 10배 이상 뒤처지는 것이 수두룩하다. 과연 이것이 농본사회인가. 이 위선적인 농본정책 덕에 조선 의 농민들은 극빈의 삶을 영위한다. 우리나라의 가난한 백성은 모두 가 아침저녁 먹을 거리조차 없는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열 가구가 사는 마을에서 하루 두 끼를 해결하는 자가 몇 집 되지 않는다.... 중국의 백성들은 대개가 비단옷을 입고 담 요에서 잠을 자며, 침상이나 탁자를 구비해놓고 산다. 농사를 짓는 자조차도 옷을 벗지 않고 가죽신을 신 으며, 정강이에 전대를 차고 밭에서 소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 시골의 농부들은 한 해에 무명옷 한 벌도 얻어 입지 못한다. 남자나 여자나 태어난 이래 침구가 무엇인지 구경조차 못하고, 이불 대신 멍석을 깔고 그곳에서 아들과 손자를 기른다. 아이들은 열 살 전후가 될 때까지 겨울도 없고 여름도 없이 벌거숭이로 다닌다. 대부분의 농서는 중국 것을 번역하거나 농부의 경험을 옮겨 적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마저도 제대로 수용 하지 않았다.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 임용한 8

9 이익 - 늘 부지런하고 검소하려면 항상 가난하고 미천해야 한다?. 이익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대학자이자 실학자다. 그가 쓴 <성호사설>은 박제가와 정약용을 비롯해 18세기 젊고 진보적인, 혹은 조금이라도 사회에 문제의식이 있다고 생각했던 지식인들치고 읽고 나서 감동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정도였다. 이 책에서 이익은 부와 재물의 축적, 그것을 탐하는 마음이 사회와 백성을 가난하게 만드는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두보의 시에서 이르기를, 고귀한 것이 없으면 미천한 것도 슬프지 않고 부유한 자가 없으면 가난한 자도 자족할 것이다. ( 無 貴 賤 不 悲, 武 富 貧 亦 足 ) 라고 했다. 천하가 모두 미천하고 가난하다면 모든 사람이 부지 런하고 검소해질 것이다. (이익, 성호사설 10권 인사문, 백성을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하려면) 이익의 논법을 정리하면 이렇다. 인간이 행복하게 풍족하게 살려면 부지런하고 검소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인간을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인간은 부유해지면 게을러지고, 사치하게 된다. 그러므로 늘 부지런하고 검소하려면 항상 가난하고 미천해야 한다. 물자가 항상 부족하고, 자신이 천하다 고 생각해야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 즉, 모두 가난하고 미천한 평등상태가 인간이 가장 부유하고 풍족하게 사는 방법이다. 이런 것을 두고 역설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이익은 사람이 농사에 힘쓰지 않게 만드는 여섯 가지 좀벌레로 종(노비), 과거, 벌열(권세가), 기교(기술), 승려, 게으름뱅이를 꼽았다. 장사꾼은 이 여섯 가지 좀벌레에서는 빠졌지만, 일곱 가지를 골랐다면 분명 들어갔을 것이다. 그나마 상업을 빼준 이유는 그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은 약재나 필수품을 조달해주는 공 이 있기 때문이다. 욕망은 인간을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만드는 동인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을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만드는 동인은 재물욕, 이윤, 자기 삶을 좀더 윤택하 게 만들려는 욕망이다. 버나드 맨더빌(Bernard Mandeville)의 말처럼 검약은 이윤을 남기기 위한 행 동 이다. 그래서 현대인은 끊임없는 부의 축적과 성장을 추구한다. 하지만 농업사회에서 근로 의욕을 자 극하는 동인은 좀더 나은 삶, 이윤, 이익이 아니다. 굶어 죽을 수도 있다. 너뿐 아니라 전 인류가 굶 어 죽을 수도 있다. 는 공포였다. 이런 관념으로 세상을 보니 욕망과 이윤을 맹목적으로 거부하게 된다.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 임용한 9

10 소비는 미덕이다. 박제가는 조선사회에 만연한 검약과 극빈이 인간을 춤추게 한다 는 정의를 한마디로 부정한다. 중국은 사실 사치로 망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검소한 데도 쇠퇴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검소하다는 것은 물건이 있어도 남용하지 많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자신에게 물건이 없다하여 스스로 단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북학의 내편, 안장> 이 비수같은 한마디로 박제가는 수백 년을 석권해온 빈곤의 경제학을 통타했다. 있는 것을 절약해서 극 빈 상태로 살려고 하지 말고 생산력을 높여라 생산이 늘면 부가 축적되어 구매력일 늘어난다. 판매량과 이윤이 커지면, 기술이 발달해서 제품은 더욱 좋아지고 물자가 풍부해지니 물품 가격은 도리어 낮아진다. 재물은 우물과 같다. 퍼 쓸수록 자꾸 가득차고 이용하지 않으면 말라 버린다. 비단을 입지 않으므로 나라 안에 비단 짜는 사람이 없다.여공이 없으므로 그릇이 삐똘어지든 말든 개의치 않으므로, 교묘함을 일삼지 않아서 나라에 장인과 가마와 철공소가 없고, 기술도 없어졌다...., 그러니 사농공상 모두가 가난해져서 서로 도울 길이 없다(북학의, 내편, 안장) 이 우물 비유는 박제가의 글 중에서 제일 유명한 구절이다. 이 비유를 통해 그는 소비가 미덕이며, 소비가 생산을 촉진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사회의 악이며, 망국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사 치품 생산도 옹호한다. 사치는 미덕이다. 사람들은 지금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고 있으면 그 밖의 것은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쓸모없는 물 건을 사용함으로써 쓸모 있는 물건을 통하게 하지 아니하면 쓸모 있는 물건도 일부 지역에만 존재하게 되 어 유통하지 못하고 한구석에서만 사용하게 되어 전체적으로는 모자라게 되기 쉽다. 즉 쓸모없는 것으로 쓸모 있는 것을 돕게 하는 것이다.(북학의, 내편, 안장) 사치품이란 기능적 입장에서 보면 세상에 쓸데 없는 물건이고, 사회적 입장에서 보면 서민의 분노와 위화 감만 더하는 위험한 물건이다. 현대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마 90퍼센트는 넘지 않을까. 그러나 박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 임용한 10

11 제가는 이 쓸데없음 이 사실은 엄청난 쓸모 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유통과 부의 순환이 다. 이 주장은 경제사상뿐 아니라 지성사적 기준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박제가의 지성이 현상적 진리 와 감성적 사회학 이란 차단막을 뚫고 사회 내면의 진리에 도달했음을 보여주기 때문 이다. 현재의 우리 사회도 사치는 부가 윗목에서 노는 것이고, 복지를 위한 세금이나 기부만이 아래쪽으로 순환 시키는 제도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유통과 소비도 부의 분배에 세금이나 기분 못지 않 게 큰 기여를 한다. 같은 금액이라도 개인금고에서 정부나 자선단체의 금고로 갔다가 빈민에게 전달되는 돈보다 시장에서 사치품이든 무엇이든 유통구조 속에서 돌아다니는 돈이 훨씬 더 많은 기여를 한다. 어려운 경제이론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99퍼센트의 인간은 구세군의 자선냄비보다는 꽃, 보석, 비싼 옷, 인테리어에 훨씬 쉽게 지갑을 연다. 특히 부자의 지갑을 여는 데는 사치품처럼 좋은 것이 없다. 인간이 진 짜로 삶에 꼭 필요한 것만 적정량 구매하는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면 우리 주변의 상점과 직업의 90퍼센트 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박제가가 사치와 소비를 옹호했다고 해서, 부자들아, 마음껏 착취하고 마음껏 돈을 써라 라고 외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지금껏 도학자들이 가르쳐온 대로 인간의 기초적 욕망이 사회발전을 저지하고, 가난과 불평등을 초래하는 악덕이 아니라 경제발전을 촉진하는 원동력임을 지적하려던 것뿐이다. 박제가의 생각은 21세기에나 적용할 수있는 이론이라고 평가한 학자들도 있지만, 사치와 욕망의 경제학을 긍정하고 인정하기란 21세기인 지금도 어렵다.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 임용한 11

12 우물은 물을 퍼내면 가득 차지만 길어내지 않으면 말라버린다(안대회 안대회, 박 제가의 북학의) :59 우물에서 물을 퍼내면 물이 가득 차지만 길어 내지 않으면 물이 말라 바린다(시장과 우물) ) - 박제가, 북학의 연경의 아홉 개 성문 안팎으로 뻗은 수십 리 거리에는 관아와 아주 작은 골목을 빼놓고는 대체로 길을 끼 고 양옆으로 상점이 늘어서 있다. 시골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점포가 늘어서서 마치 옷에 가선을 두른 것과 같다. 상점은 제각기 점포 이름과 파는 물건 이름을 가로세로로 간판을 세워 걸어 두었으므로 금빛 글자가 휘황찬란하게 빛난다. 큰길에는 따로 판잣집을 더 설치하여 붉게 칠해 놓았고, 곡목 입구나 문 앞에는 제 우물은 물을 퍼내면 가득 차지만 길어내지 않으면 말라버린다(안대회, 박제가의 북학의) 12

13 각기 화표( 華 表 옛날 궁전이나 능 따위의 큰 건축물 앞에 아름답게 조각한 돌기둥)나 목궐 木 闕 을 세워 놓 았다. 점포 안에는 늘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서 마치 연극을 관람하는 인파와 같다. 또 동악묘 東 岳 廟 와 융복사 隆 福 寺 등지에서는 특별한 날을 정해 시장을 여는데 진기한 보물과 괴상한 물건들이 매우 많다. 사농공상중 상이 열의 셋의 비중 우리나라 사람들은 번화한 중국 시장을 처음 보고서는 오로지 말단의 이익만을 숭상한다 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다. 무릇 상인은 사농공상 士 農 工 商 네 부류 백성의 하나이지만 그 하나가 나머지 세 부류 백성을 소통시키므로 열에 셋의 비중을 차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고 입다면 그 나머지는 모조리 쓸모 없는 물건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쓸모없는 물건을 활용하여 쓸모있는 물건을 유통시키고 거래하지 않는다면, 이른바 쓸모있다는 물건은 대 부분 한곳에 묶여서 유통되지 않거나 그것만이 홀로 쓰여서 고갈되기 쉽다. 따라서 옛날의 성왕 聖 王 께서는 보석과 화폐 따위의 물건을 만들어 덜 긴요한 물건으로 더 긴요한 물건의 상대가 되도록 하셨고, 쓸모없는 물건으로 쓸모있는 물건을 사도록 하셨다. 게다가 배와 수레를 만드셔서 험준하고 외진 곳까지도 물건을 유통시키셨다. 그렇게 하고도 천 리 만 리 먼 곳에 물건이 이르지 못할까 봐 염려하셨다. 이렇듯이 백성들에게 폭넓게 베풀어 주셨다. 지금 우리나라는 지방이 수천 리라서 인구가 적지 않고 갖추어지지 않은 물산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과 물에서 얻어지는 이로운 물건을 전부 세상에 내놓지 못하고, 경제를 윤택하게 하는 도 道 를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날마다 쓰는 물건과 할 일을 팽개쳐 둔 채 대책을 강구하지도 않는다. 그러고서 중국의 주택, 수레와 말, 색채와 비단이 화려한 것을 보고서는 대뜸 사치가 너무 심하다! 라고 말해 버 린다. 중국이 사치로 망한다고 할 것 같으면 우리나라는 반드시 검소한 탓에 쇠퇴할 것이다. 왜 그러한가? 물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쓰지 않는 것을 검소함이라고 일컫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진주를 캐는 집이 없고 시장에는 산호 珊 瑚 의 물건 값이 매겨져 있지 않다. 금이나 은을 가지고 점포에 들 어가서는 떡과 엿을 사먹지 못한다. 이런 우리 풍속이 정녕 검소함을 좋아하여 그렇겠는가? 단지 재물을 사용할 방법을 모르는 것에 불과하다. 재물을 사용할 방법을 모르기에 재물을 만들어 낼 방법을 모르고, 재물을 만들어 낼 방법을 모르기에 백성들의 생활은 날이 갈수록 궁핍해 간다. 우물은 물을 퍼내면 가득 차지만 길어내지 않으면 말라버린다(안대회, 박제가의 북학의) 13

14 우물에서 물을 퍼내면 물이 가득 차지만 길어 내지 않으면 물이 말라 바린다. 재물은 비유하자면 우물이다. 우물에서 물을 퍼내면 물이 가득 차지만 길어 내지 않으면 물이 말라 바린 다. 마찬가지로 비단 옷을 입지 않으므로 나라에는 비단을 짜는 사람이 없고, 그 결과로 여성의 기술이 피 폐해졌다. 조잡한 그릇을 트집 잡지 않고 물건을 만드는 기교를 숭상하지 않기에 나라에는 공장 工 匠 과 도 공, 풀무장이가 할 일이 사라졌고, 그 결과 기술이 사라졌다. 나아가 농업은 황폐해져 농사짓는 방법이 형 편없고, 상업을 박대하므로 상업 자체가 실종되었다. 사농공상 네 부류의 백성이 너나 할 것 없이 다 곤궁 하게 살기에 서로를 구제할 길이 없다. 나라 안에 보물이 있어도 강토 안에서는 용납되지 않으므로 다른 나라로 흘러간다. 남들은 날마다 부유해지건만 우리는 날마다 가난해지니 이것은 자연스러운 추세다. 지금 종각이 있는 종로 네 거리는 연달아 있는 시장 점포의 거리가 1리 里 가 채 안된다. 중국에서는 내가 거쳐 간 시골 마을의 점포가 대개 몇 리에 걸쳐 있었다. 또 거기에 운송되는 물건의 번성함과 품목의 다양 함이 모두 온 나라의 물건으로도 미치지 못한다. 점포 한 개가 우리나라보다 더 부유한 것이 아니라 물자 가 유통되느냐 유통되지 못하느냐에 따른 결과이다. 채 판서 蔡 判 書 -이름은 濟 恭 으로 연행 당시 진주사 陳 奏 使 의 부사 副 使 였다. -깨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종루 鐘 樓 의 북쪽 거리는 조금 비좁다. 길을 확장하여 거리를 나란하게 정비하고 시장 사람들이 제 각기 상호를 달고 영남산 면포 판매 남원산 부채와 종이 판매 강삼 江 蔘 나삼 羅 蔘 판매 라는 글자를 대서특필하여 써 붙여서 흥인문 興 仁 門 에서 숭례문 崇 禮 門 까지 제도를 완전히 바꾼다면 대단히 통 쾌하지 않겠는가? 중국은 우물이 아무리 커도 반드시 석판이나 나무판에 구멍을 뚫어 덮는데 입구를 작게 만들어 우물에 빠 지거나 먼지가 들어가는 것을 방지한다. 도르래를 설치하고 두레박 두 개를 매달아 줄 하나는 왼편으로, 하나는 오른편으로 움직인다. 하나가 위로 올라가면 하나는 아래로 내려가게 만들었으니 보통 물을 푸는 것보다 곱절이나 많은 양을 푼다. 우물은 물을 퍼내면 가득 차지만 길어내지 않으면 말라버린다(안대회, 박제가의 북학의) 14

15 박제가 朴 齊 家 (1 750 ~1 80 5) 조선 후기 실학자로 연암 박지원과 함께 18세기 북학파 北 學 派 의 거장이다. 본관은 밀양, 자는 次 修, 在 先, 修 其, 호는 楚 亭, 정유 貞, 위항도인 葦 杭 道 人 이다. 승지 朴 枰 의 서자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1778년 사은 사 채제공의 수행원으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북학의]를 저술했는데, 외국의 선진 문물을 본받아 생산 기술 을 향상시키고, 통상 무역을 통해 이용후생을 실현할 것을 역설했다. 정조의 庶 孼 許 通 정책에 따라 이덕 무, 유득공, 서이수 등과 함께 규장각 검서관이 되었다. 기상이 컸고 성격은 굳고 곧았다. 시문은 첨신 尖 新 하며 활달했고, 필세 筆 勢 는 날카롭고 굳세었다. 학문은 개혁적이면서도 실용적이었는데,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에게 영향을 주었다. 저서로는 [정유집 貞 集 ], [북학의], [ 周 易 解 ] 등이 있다. 우물은 물을 퍼내면 가득 차지만 길어내지 않으면 말라버린다(안대회, 박제가의 북학의) 15

16 규장각과 검서관 규장각은 정부기관보다는 국왕의 필요에 의해 만든 왕실기관에 가까운 관서였다. 규장각은 국왕이 지은 저작이나 기록, 현판 등을 보존하기 위해 창설했다. 중국에서는 송나라 때부터 있던 제도지만 조선에서는 채용하지 않다가 숙종이 창설했다. 숙종의 규장각은 규모도 작아서 종부시옆에 붙은 작은 건물에 불과했 다.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창덕궁 안쪽의 깊숙한 후원인 부용정을 내려다보는 창경궁에서도 제일 풍취 있 고, 아늑한 자리에 규장각을 새로 세웠다. 규장각에는 제학 종1,2품을 책임자로 하고 여러 문신 관료들이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겸직이었고, 규장각의 실무를 주관하는 관원은 검서관이었다. 검서관의 임무는 규장각에서 정리, 간행하는 문서와 책을 교정하고 필사하는 것이었다. 이덕무와 박제가가 귀국한 다음 해인 1779년 3월27일, 정조는 규장각에 검서관이라는 새로운 관직을 마련하고 서얼 중에서 문예가 있 는 사람 4명을 임명했다. 선발된 사람은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서이수였다. 이덕무가39세, 박제가는 30 세, 유득공과 서이수는 31세였다. 박제가 연보 1750년 승지 박평( 朴 枰 )의 서자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1767년 운명적, 역사적인 만남이라 할 수 있는 평생의 벗이자 백동수의 매부인 이덕무( 李 德 懋 )를 만나다. 우물은 물을 퍼내면 가득 차지만 길어내지 않으면 말라버린다(안대회, 박제가의 북학의) 16

17 1766년 이순신 장군의 5대손인 이관상( 李 觀 祥 )의 딸과 결혼했는데, 그녀 역시 서녀였다. 이순신 장군의 집 안은 조선 최고의 무관 명문가였다. 이관상은 2품관까지 승진했고, 6번이나 절도사를 역임한 명망 있는 무 관이었다. 1777년, 정기 사은사의 사신단에유득공의 작은 아버지 유금이 선발되었다. 유금은 이덕무, 유득공, 박제 가, 이서구의 시를 청나라에 가지고 가서 청나라 명사들에게 보여주고, 그들의 서평을 받아 옴. 국내에서 는 공정한 평가도 명성도 기대하기도 힘드니, 외국인 학자에게서 평가를 받아보자는 것이었다. 유금은 이 조원에게 <한객건연집>의 서문을 받음. 1777년 박제가는 정조의 즉위를 기념해서 실시한 증광시에 급제(3등) 1778년 3월 동지사에 박제가와 이덕무를 정사 채제공( 蔡 濟 恭 )의 종사관과 서장관 심염조( 沁 念 租 )의 종사관 으로 임명하여 파견(3월17일). 첫 번째 사행. 1779년3월27일, 정조는 규장각에 검서관이라는 관직을 마련하고 서얼 중에서 문예가 있는 4명을 선발해서 임명했다. 선발된 사람은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서이수였다. 이덕무가39세, 박제가는 30세, 유득공과 서 이수는 31세였다. 1786년 검서관 사직서 제출 1789년 검서관으로 다시 복직 1790년 박제가, 열하에서 벌어진 건륭제( 乾 隆 帝 )의 팔순 잔치에 파견된 특별 사신단의 일행이 되어 두 번 째 로 중국에 갔다. 1790년, 박제가는 이 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시 세 번째 연행을 떠났다. 이번에는 친구 이기원이 그와 함께 했다. 1792년 7월 <규장전운> 완성 후 사임. 부여현감 제수 1792년 9월20일, 부여현감으로부임한 지한 달도 되지 않아 향년 38세였던 박제가의 부인 이씨 사망 1792년 문체반정( 文 體 反 正 ) 사건이 발생. 문체반정은 조선사회의 고루함과 경직성이 어디까지 왔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인데, 박제가, 박지원, 이덕무 등 북학파들이 당시에 유행하는 문체를 따르지 않고 고문의 문체, 또는 이해하기 쉬운 구어체의 저속한 문체를 사용했다는 것을 문제로 삼았다. 1793년 1월, 정조는 박제가에게 반성문을 쓰라는 명령을 내린다. 1793년 5월 충청지역 기근, 어사 이조원이 박제가를 탄핵. 파면됨. 1794년 1월에 다시 검서관으로 복직. 1794년 2월 춘당대무과에서 장원. 정3품 오위장 발령. 1796년 영평현령. 1798년 정조가 전국에 구언령을 내리자 <북학의> 내용 중에서 농업부분을 정리한 <지소본북학의> 저술해 서 올렸다. 우물은 물을 퍼내면 가득 차지만 길어내지 않으면 말라버린다(안대회, 박제가의 북학의) 17

18 1800년 6월28일 정조가 49세의 나이로 사망 1801년 마지막( 네번째) 사행, 연행사 6월 귀국. 이번에는 유득공과 이희경이 동행했다. 정순왕후 고문 중단. 함경도 종성 유배판결. 1803년 2얼 정순왕후가 박제가으 석방을 명령. 그러나 석방되지 않음 1804년 밀고에 의해 석방되지 않은 것이 정순왕후의 귀에 들어가 의금부 당상관 즉시 파면하고 박제가 고 향으로 돌아옴. 1805년 4월25일, 박제가 향년 56세로 사망. 경기도 광주에 있는 엄현에 묻혔다. 우물은 물을 퍼내면 가득 차지만 길어내지 않으면 말라버린다(안대회, 박제가의 북학의) 18

19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수레와 목축) ) - 연암 박지원(열 하일기, 김문수 편) :48 천하를 위해 일하는 자는 진실로 백성들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그것을 본받아야만 한다 열하일기( 熱 河 日 記 ) - 연암 박지원 7월15일 우리나라 선비들이 북경에 다녀온 이를 만나면 묻는 말이 있다. 자네 이번 길에 제일 장관이 무엇이었 나? 장관 몇 가지 골라 얘기 좀 해주게. 그들은 제각기 보고 느낀 것을 생각나는 대로 말한다. 넓디 넓은 요동 천리 들판이 장관이었지. 구요동 백탑이 볼만하더군요. 계문( 薊 門 )의 냇물 낀 숲들이 장 관이었소이다. 노구교, 산해관 망해정, 각산사, 조가패루, 유리창, 동악묘, 북진묘...등 대답이 분분하 여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다. 또 어떤 학식이 높은 선비는 도무지볼 것이 없다고도 했다. 내가 물었다. 어째 아무볼 게 없단 말이 오? 황제가 머리를 깍았고 장( 將 ), 상( 相 )과 대신 모든 관원이 머리를 깍았으며 선비와 서인( 庶 人 )까지 도 모두 그렇습니다. 그러니 문장이 있고 박식해도 한 번 머리를 깍으면 곧 되놈이 되는 것이며 되놈이면 그게 짐승인데 우리가 그 짐승에게서 무얼 볼 것이 있단 말입니까? 또 다른 선비는 이렇게 말했다.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수레와 목축) - 연암 박지원(열하일기, 김문수 편) 19

20 그 산천이 피비린내나는 고장으로 변했고 성인들이 끼친 자취가 묻혀버리자 언어조차 야만의 것을 따르 게 되었으니 무엇을 보겠습니까? 사실 10만 대군을 얻을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산해관으로 쳐들어가 중 원( 中 原 )을 소탕한 다음에야 비로소 장관을 얘기할 수 있겠지요. 이런 말들은 <춘추>를 열심히 읽은 이들의 뜻이다. <춘추>는 중화( 中 華 )를 높이고 이족( 夷 族 )을 낮추어 보 는 사상으로 씌어진 글이다. 그러나 오랑캐의 문제는 오랑캐들에게만 국한 시킬 일이다. 왜냐하면 중국의 성곽과 건물 그리고 인민들이 예전처럼 있어 정덕( 正 德 ), 이용( 利 用 ), 후생( 厚 生 )의 도구도 예전과 다름없 다. 송나라 성리학의 대가들 즉, 주돈이( 朱 敦 頤 ), 장재( 張 載 ), 정호( 程 顥 ), 정이( 程 頤 ), 주희( 朱 熹 ) 등의 학 문도 사라지지 않았으며 한, 당, 송, 명의 좋은 법률과 제도도 변함없이 남아 있다. 그러니 비록 저들은 오 랑캐일망정 중국이 자기네에게 이로워 길이 누려야 함을 알고 이를 빼앗아 원래 지녔던 것처럼 한다. 대개 천하를 위해 일하는 자는 진실로 백성들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그것 을 본받아야만 한다. 성인이 <춘추>를 지으실 때 물론 중화를 어지럽힌 게 분해 숭배해야 할 중화의 진 실을 배격한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 그러므로 진실로 오랑캐를 물리치려면 중화가 끼친 법을 모두 배워 우 리나라의 유치한 문화와 풍속을 고쳐야 한다. 밭갈기, 누에치기, 그릇 굽기, 풀무질 등으로부터 공업, 상업 에 이르기까지도 배워야 한다. 남이 열을 한다면 우리는 백을 하여 먼저 우리 백성을 이롭게 한 뒤 그들로 하여금 회초리를 마련하게끔 하여 저들의 굳은 갑옷, 날카로운 무기에 매질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중국에는 아무런 볼 만한 장관이 없더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나 같은 보잘것 없는 선비가 한마 디 한다면 그들의 장관은 기와 조각에 있고 똥 부스러기에도 있다 고 하겠다. 깨진 기와 조각은 사람들 이 다 버리는 것이지만 민가에서 담을 쌓을 때 그 높이가 어깨를 넘는다면 그것들을 둘씩 둘씩 포개여 뒤 집고 바로 놓고 하여 물결 무늬를 만들 수 있다. 또 넷을 모아 고리처럼, 넷을 등지게 해 엽전 모양으로 만 들면 구멍 난 곳이 영롱하고 안팎이 서로 어리어 저절로 좋은 무늬를 이룬다. 깨진 기와를 버리지 않고 이 렇게 쓰면 세상에 없는 무늬가 된다. 또 집집마다 뜰 앞에 벽돌을 깔지 못할 경우 여러 빛깔의 유리기와 조각과 냇가의 둥근 조약돌을 주워다 꽃, 나무, 새, 짐승 등의 모양을 깔아 만들면 비 올 때 진구렁이 됨을 막을 수 있다. 그러니 부서진 것을 버리지 않고 천화의 도화( 陶 畵 )를 그려놓은 것이다. 똥은 지극히 더러운 것이지만 이를 아껴 밭에 내면 거름이며, 말똥을 줍는 삼태기가 늘 뒤를 따르게 된다. 이렇듯 기와 조각이나 똥 무더기가 모두 장관이니 구태여 성지( 城 池 ), 궁궐, 누대, 시포( 市 鋪 ), 사관( 寺 觀 ), 목축 저 광막한 원야( 原 野 )... 이런 것들만 장관은 아닌 것이다.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수레와 목축) - 연암 박지원(열하일기, 김문수 편) 20

21 차제( 車 制 ) - 수레는 백성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 대개 수레는 땅 위를 굴러가게 만든 것이나 물 위를 다니는 배이기도 하고 굴러다니는 방이기도 하다. 나 라에, 백성들의 쓰임에 수레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주례 周 禮 >에, 임금님의 부( 富 )를 물었을 때 수레게 많고 적은 것으로 대답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이다. 수레는 비단 싣고 타는 것만 이르는 것 이 아니다. 수레에는 융차( 戎 車 ), 역차( 役 車 ), 수차( 水 車 ), 포차( 砲 車 ) 등이 있고 또 숱한 제도가 있지만 갑 자기 그것을 다 얘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타고 싣는 수레는 백성들에게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이어서 그에 대한 연구가 시급하다. 내 일찍이 홍대용( 洪 大 容 ), 이광려( 李 匡 呂 )와 함께 수레 제도를 얘기할 때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수레의 제도는 무엇보다도 궤도를 똑같이 해야만 한다. 궤도를 똑같이 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두 바퀴 사이의 일정한 본을 어기지 않음이다. 그렇게 되면 수레가 천이고 만이고 간에 그 바퀴자리는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니 이른바 <중용> 등의 서책에 나오는 거동궤( 車 同 軌 )는 곧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두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수레와 목축) - 연암 박지원(열하일기, 김문수 편) 21

22 바퀴 사이를 마음대로 넓히고 마음대로 좁힌다면 길 가운데 바퀴 자리가 한 틀에 들 수 있을 것인가? 이 번, 천 리 길에 날마다 숱한 수레를 보았는데 앞 수레와 뒤 수레가 언제나 같은 자국을 따라서 갔다. 그렇 기 때문에 애쓰지 않고도 똑같이 되는 것을 일철( 一 轍 )이라 하고, 뒤에서 앞을 가리켜 전철( 前 轍 )이라 하는 것이다. 성 문턱에 수레바퀴 자국이 움푹 패어 홈통이 이루어진 것은 <맹자 孟 子 >에서 이른 성문지궤 城 門 之 軌 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수레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바퀴들이 온전히 둥글지 못해 바큇자국이 한 틀에 들 수 없다. 그러니 수레가 없는 것이나 같다. 사람들은 우리나라는 길이 험해 수레를 쓸 수가 없다고 한다. 그게 무슨 말인가? 나라에서 수레를 쓰지 않으니까 길이 닦이지 않은 것이 아닌가. 만약 수레가 다니게 된다면 길은 저절로 닦이게 된다. 그럼에도 좁은 길, 험한 길만을 탓하고 있다. <중용>에 배와 수레가 이르는 곳, 서리 와 이슬이 내리는 곳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수레가 어떤 먼 곳에도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중국에도 험한 잔도( 棧 道 ), 양장( 羊 腸 )처럼 위태한 길이 많다. 그러나 수레를 채찍하여 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 후미 진 먼 곳에도 장사치들이나 가족을 데리고 부임하러 가는 벼슬아치들의 수레바퀴가 서로 잇대어 거의 자 기 집 뜰 앞을 지나는 것처럼 한다. 또 우렁차게 굉굉거리는 수레바퀴 소리가 대낮에도 늘 우레치듯 끊이 지 않는다. 중국에 물자가 풍부한데 그것이 한 곳에 지체되지 않고 골고루 유통되는 것은 모두 수레를 이용한 결과이 다. 여기에서 비근한 예를 하나 든다면 우리 사행이 여러 번거로움을 없애버리고 우리가 만든 수레에 우리 가 올라타고, 우리의 짐을 싣고 바로 연경에 닿을텐데 무엇을 꺼려 그러지 않았단 말인가. 영남( 嶺 南 ) 아이들이 백하젓을 모르고, 관동( 關 東 ) 백성들은 아가위를 절여서 장 대신 쓰고, 서북( 西 北 ) 사 람들은 감과 감자( 柑 子 )의 맛을 분간하지 못하며, 바닷가 사람들은 새우나 정어리를 거름으로 밭에 내건만 서울에서는 한 움큼에 한 한 푼을 하니 이렇게 귀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육진( 六 鎭 )의 마포와 고나서의 명주, 영남, 호남의 닥종이와 해서의 솜과 쇄, 충청 서해안의 생선, 소금 등은 모두 백성 살림살이에서 어 는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될 물건들이며 충청도 보은과 청산의 대추나무 천 그루와 황해도 황주, 봉산의 배 나무 천 그루, 한산의 천 이랑 모시와 관동의 벌꿀 천 통은 모두 우리 일상생활에서 서로 바꾸어 써야 하 는 것이지만 이곳에서 천한 물건이 저곳에서는 귀할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은 들었음에도 실지로 보지를 못 했음은 또 어찌된 까닭인가. 그것은 오로지 멀리 운송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사방이 겨우 몇천 리밖에 안 되는 나라에 백성들 살림살이가 이토록 가난함은, 한마디로 나라 안에 수레가 다니지 못한 까닭이다. 누가 어째서 수레가 다니지 못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사대부( 士 大 夫 )들의 잘못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왜냐하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수레와 목축) - 연암 박지원(열하일기, 김문수 편) 22

23 면 그들은 평소에 글을 읽을 때 <주례>는 성인이 지으신 거야 하면서 윤인( 輪 人 ), 여인( 輿 人 ), 거인( 車 人 ), 주인( 人 )을 떠들어댔으나, 그 만드는 기술이나 움직이는 방법 등은 전혀 연구하지 않으니 그것은 그 저 글만 읽을 뿐 그로 인해 유익한 점은 하나도 없다. 황제가 수레를 창조하였으므로 헌원씨( 軒 轅 氏 )로 불린 뒤 백천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공 교한 손을 거치게 됐고 좋은 제도의 통일도 이루게 되었다. 그러하니 연구의 정미롭고 행하기 간편함이 어 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이는 진실로 민생의 살림에 이익이 되고 나라의 경영에 큰 그릇이 아니겠는가. 밭에 물을 대는 용미차( 龍 尾 車 ), 용골차( 龍 骨 車 ), 옥형차( 玉 衡 車 ), 항승차( 恒 升 車 ) 등이 있고 불을 끄는 홍 흡( 虹 吸 ), 학음( 鶴 飮 ) 등의 제도가 있다. 전쟁에 쓰는 포차( 砲 車 ), 충차( 衝 車 ), 화차( 火 車 ) 등도 있다. 뜻있는 자가잘 연구해 그 제도들을 본받는다면 우리나라 백성들의 가난병도 얼마쯤은 나을 수 있겠다. 내 가본 불끄는 수레의 제도를 대략 적어 우리나라에 돌아가 이를 전할 생각이다. (일신수필) 말을 좋아하고 잘 먹일 줄 아는 자에게 목마행정을 맡겨야 한다. 우리나라의 가난은 대체로 목축이 제대로 되지 못한 까닭이다. 나라 안의 목장이라고 해야 탐라(제주)가 있을 따름인데 그곳 마들은 모두 원세조( 元 世 祖 )가 방목한 종자로 4,5백년을 두고 종자를 한 번도 갈지 않 았으니 비록 애초에는 용매( 龍 媒 : 준마), 악와( 神 馬 )와 같은 우수한 종자였을지라도, 마침내는 과하( 果 河 ), 관단( 款 段 :조랑말의 이름)과 같은 것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치이다. 이런 과하와 관단을 대궐 지키는 장 수들에게까지 내려주니 이런 느림뱅이 꼬마말을 타고 어찌 적진을 향해 달릴 것인가. 이것이 첫째로 한심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수레와 목축) - 연암 박지원(열하일기, 김문수 편) 23

24 한 일이다. (중략) 중국에서는 매년 화창한 봄날 풀이 돋을 때 수놈 목에 방울을 달아 내놓아 흘레(교미)를 붙이면 수놈의 임 자는 그 대가로 닷 돈씩 받는다. 그리하여 말이나 노새가 준수한 수놈을 낳으면 또다시 닷돈을 받게 된다. 낳은 새끼가 신통치 못하거나 털빛이 좋지 못하고 길들이기도 어려울 때믄 그 아비되는 말은 반드시 거세 하여 나쁜 종자를 끊어버리는 동시에 종자를 부쩍 크게 하고 길들이기 쉽게 만든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는 목장을 감독하는 관리들이 이런 생각을 못하고 덮어놓고 토산 말로만 종자를 받기 때문에 낳으면 낳을 수록 종자는 자꾸만 작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놈들은 똥통이나 나뭇짐에도 견디지 못할 만큼 열덩 한 것이다. 그런 말이 어찌 군사에 이바지 할 수 있겠는가. 결국은 좋은 종자를 못받은 때문이다. 또 관직에 있는 자가 목망 무식하다 함은 무엇을 두고 이르는 말인가. 벼슬하는 우리 양반들은 허드렛일은 알려고도 않는 버릇들이 있다. 옛날,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누가 마부에게 말에게 콩을 좀 더 주자는 말 한마디 했다가 사람이 좀스럽다고 이조( 吏 曹 ) 좌랑에게 버림닫는 일까지 있었다. 요즘에도 어떤 학사가 말 을 사랑하고 말을 잘 고르는 실력이 백락( 伯 樂 : 말을 보는 안목이 뛰어났던 주나라 사람)이나 다름없었는 데,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옛날에 양고기를 잘 굽는 기술이 있어 도위( 都 尉 ) 벼슬까지 올랐더더니만 요 즘 세상에는 말을 잘 다루는 학사가 다 있네 하고 비방했다는 얘기도 나돈다. 한 나라의 정책으로 이를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수치로 삼아 하인들의 손에만 맡겨두고 있으니 소위 감목 ( 監 牧 )임에도 목마에 대한 지식은 조금도 없다. 이는 능력이 안 되는 게 아니라 배우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이래서 관원들이 목마에 무식하다는 질책이 나오는 것이다. <중략> 참으로 말을 좋아하고 잘 먹일 줄 아는 자를 얻어 목마 행정을 맡긴다면 비록 말 잘 치는 학사라는 놀림은 받을망정 태복( 太 僕 : 목축 담당 고관) 벼슬 감으로서는 적합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태학유관록 8월14일)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수레와 목축) - 연암 박지원(열하일기, 김문수 편) 24

25 근대를 일깨운 선각자 연암 박지원 박지원( 朴 趾 源, 1737~1805)은 18세기에 활동한 조선의 실학자이자 문필가로, 자는 중미( 中 美 ) 호는 연암( 燕 巖 )이다. 연암은 영조( 英 祖 ) 13년에 한성 선비 박사유의 2남2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양반가인 노론 집안의 반남박씨( 潘 南 朴 氏 )였지만 조부 박필균은 부사 벼슬까지 지낸 바 있으나 워낙 청렴해 재산을 모으지 못했 고, 아버지 박사유는 벼슬을 하지못해 집안이 가난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체계적인 공부를 못했던 연암은 열여섯 살 되던 해에 전주이씨 집안의 딸과 혼 인을 한 이후에야 그의 영민함과 재주를 알아본 장인 이보천의 지도로 본격적인 글공부를 시작했다. 또한 장인의 동생이자 처숙부인 홍문관 교리 이양천에게 깊이 있는 학문적 가르침을 받았으며, 처남 이재성과 함께 유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과 관련된 책들을 두루 섭렵했다. 그러나 연암은 적극적으로 벼슬길에 나서지는 않았다. 1765년에 한 번 과거에 응시해 낙방한 후 다시는 시 험에 뜻을 두지 않았다. 당쟁으로 얼국져 있던 당시 조선의 분위기와 세도가들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그는 고래의 전통을 답습하는 유교 학문보다 이용후생( 利 用 厚 生 : 기구를 편리하게 쓰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넉 넉하게 하여, 백성들의 생활을 나아지게 함)을 꾀하는 새로운 학문에 열중했으며, 입신양ㅇ명에는 별다른 뜻을 품지 않았다. 또한 정조가 외척을 등용하지 않으려 했던 것도 연암이 일찍부터 벼슬에 뜻을 두지 않 았던 한 가지 이유가 되었다. 그는 선조의 부마였던 금양위 박미( 朴 彌 )의 5대손이었던 것이다. 대신 그는 열세 살 연상인 홍대용을 비롯한 이덕무, 정철조 등과 교류하면서 청나라로부터 새로운 문물을 적극적으 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북학사상과 서학에 몰두했다. 그러나 풍요로운 정신세계와 실사구시의 학문을 추구했으면서도, 벼슬도 경제적 기반도 없었던 연암의 생 활은 언제나 궁핍할 수 밖에 없었다. 가족들은 광주로 내려보내고 홀로 지내면서 그는 상황이 닿는 대로 격의 없이 살았다. 사흘간 밥을 굻는가 하면, 사흘 동안 술만 마시기도 했으며, 며칠간 책만 읽기도 했다. 그러다가 주변의 문사들이 찾아오면 시와 문장에 대해 논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현실의 모 순을 지적하고 사회 개혁을 논하느라 밤을 새기도 했다. 먹을 것 없는 살림에 여종이 도망을 해버리자 행 랑아범이 남의 집 일을 해주고 얻어온 쌀로 밥을 지어 먹기도 했다. 손님 오면 차 끓이는 주전자에 밥을 지어 맨바닥에서 먹으면서도 몇 날 며칠간 담소를 즐기고 새로운 학문에 심취했다. 정조 등극 초기, 세도를 휘두르던 홍국영에게 벽파( 僻 派 : 조선 영조 때 사도세자를 무고하여비방한 당파) 로 몰리게 되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그는, 가족들과 함께 황해도 금천 연( 燕 巖 ) 골짜기로 이주했다. 그의 호는 바로 이곳의 지명에서 따온 것이다. 이곳에서 연암은 양반의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직접 농사를 지으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수레와 목축) - 연암 박지원(열하일기, 김문수 편) 25

26 며 살았다. 홍국영이 실각하자 연암은 닷 한성으로 돌아왔다. 44세이던 1780년(정조4년), 삼종형인 영조의 부마 금성 위( 金 星 尉 ) 박명원( 朴 明 元 )이 청나라 건륭제 고종( 高 宗 )의 칠순을 축하하는 진하사절로 선발되었고, 박명원 의 권유로 그는 군관의 직함으로 사절을 따라나서게 되었다. 음력 5월25일에 한양을 떠난 사절단은 6월24일에 압록강을 건너 8월1일 북경에 도착했다. 그러나 황제가 피서를 위해 열하의 별궁에 머물고 있었으므로 일행은 서둘러 열하를 향해 길을 떠나 8월11일에 피서산장 의 궁문에서 황제를 알현하고, 황명에 따라 티베트 승려 판첸라마를 예방했다. 사신 일행은 8월15일 열하 를 떠나 20일에 북경에 돌아왔으며, 9월17일 그곳을 출발하여 10월27일에 한양에 도착했고, 이후 박지원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공을 들여 <열하일기 熱 河 日 記 >를 정리해 세상에 내놓았다. <열하일기>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연암은 유명인사가 되었다. <열하일기> 는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스타일과 문체로 인해 같은 사대부 계층에서도 극단적인 평가를 받았다. 신진 사대부들에게는 호감을 산 반면, 기존의 사대부들에게는 극도의 반감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의 진보 적인 사상과 파격적인 문체는 젊은 선비들 사이에서 유행이 되기도 했지만, 얼마 후에는 이러한 실용 문체 에 대한 정치적 반감이 커져,문체반정( 文 體 反 正 ) 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연암은 1786년에 종9품에 해당하는 선공감 감역이라는 관직에 등용되었다. 연암학파 이덕무( 李 德 懋 ), 박제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수레와 목축) - 연암 박지원(열하일기, 김문수 편) 26

27 가( 朴 齊 家 ), 유득공( 柳 得 恭 ), 성해응( 成 海 應 ) 등과 연암의 제자인 이서구 등이 규장각에서 세력을 형성하 며 힘을 쓴 덕분이었다. 그 뒤로 사복시 주부, 사헌부 감찰, 제능령을 거쳐 한성부 판관을 역임한 후, 안의 현감, 면천 군수, 양양 부사를 지냈다. 그가 맡은 관직들은 거의 외직이었고 이권이 오가는 벼슬과는 거리 가 멀었으며, 중상주의를 추구했지만 평생 사대부는 물질로써 사람을 기쁘게 해서는 안된다 는 원칙을 지키며 살았다. 그는 공무를 집행함에 있어 강직하고 청렴했다. 명예 또한 욕심 내지 않아, 안의에서 현감 의 임기를 마치고 한서응로 돌아와 있을 때, 그의 선정을 치하하기 위해 현민( 縣 民 )들이 송덕비( 頌 德 碑 )를 세우려 하자, 비문을 세운다면 내가 앞장서 그것을 깨버리고 주모자는 벌을 주도록 하겠다 며 강경하 게 저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개혁적이었던 정조가 죽고 순조( 純 祖 )가 즉위하면서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분위기로 회귀하자 더 이상 관직에 미련을 두지 않고 물러나 있다가 1805년(순조5년) 10월20일에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10년(순종4년)에 좌찬성에 추증되고, 문도공( 文 度 公 )의 시호를 받았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열하일기>, 작품으로는 허생전 민옹전 民 翁 傳 광문자전 廣 文 者 傳 양 반전 김신선전 金 神 仙 傳 역학대도전 易 學 大 盜 傳 봉산학자전 鳳 山 學 者 傳 등이 있으며, 그 의 저술은 모두 <연암집 燕 巖 集 >에 수록되어 있다. 연암의 사상과 문학 연암은 경직되고 고착화된 생각을 싫어하여 사대주의에 얽매인 형식주의와 보수 성향을 거부했으며 실용 적인 이용후생의 학문을 중시했다. 그의 실용주의적 성향은 북학사상을 주창하고 서학( 西 學 : 동학과 반대 되는 개념, 16세기 이후 조선에 전개된 서양의 학문과 종교, 좁은 의미로 천주교를 의미)을 적극적으로 연 구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조선의 정가와 사대부들은 청( 淸 )을 오랑캐로 취급하고 얕보는 풍조가 강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수레와 목축) - 연암 박지원(열하일기, 김문수 편) 27

28 해 북벌론이 대두되고 있는 때였으나, 연암은 청의 발전된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 다 명( 明 )을 무너뜨리고 들어선 청은 당시 한족( 韓 族 ) 문화를 적극 수용하는 한편 서양 문물까지 도입하여, 18세기 즈음에는 찬란한 문화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따라서 비록 청의 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다해 도 우리의 현실이 개혁되고 풍요로워진다면 그들의 선진화된 문명을 과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바 로 북학( 北 學 )사상이다. 그는 또한 서학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이는 자연과학적 지식의 근원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었다. 특히 천문학에 대한 그의 지식과 사유는 중국 학자들도 놀라게 했을 정도였다. 연암의 사상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토지개혁법인 한전법 限 田 法 을 주장한 것이다. 한전법은 일종 의 토지소유상한제로, 일정 한도 이상의 토지소유를 금지하고 토지를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생산을 최대화 하여 보다 고른 분배를 실현하자는 방안이었다. 또한 반상에 따라 인간의 층위를 구분하는 데 반대했다. 조선사회의 전통적인 사농공상의 계층 구분에 따 른 신분과 상관없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상공법의 발달과 유통경제에 적응할 수있는 기업가적 인간을 바 람직한 인간상으로 보았다. 그 자신이 양반이었음에도 유득공, 이서구 등 서자 출신의 인재들과 어울리며 북학파를 이루어 이러한 생각을 실천했다. 이것이 바로 실사구시를 주창하는 실학사상의 요체이기도 하다. 그의 문학작품들 속에서도 이러한 생각이 잘 나타나 있다. 당시 주조를 이루던 복고 풍조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당대에 맞는 문체 개혁, 즉 법고창신( 法 古 創 新 : 옛것을 거울삼아 새로운 것을 창조함)을 주장하고 실현하고자 했다. 그는 표현의 절제와 문장 조직 방법 등에 있어 당대의 현실과 문학을 연결짓는 사실주의 를 주장했다. 그리고 문장이란 누구든지 자신이 품고 있는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면 된다는 것을 가장 기본 적인 원칙으로 보았다. 따라서 그의 문학작품들은 적절한 비유와 속어적 표현 등을 활용하여 강한 풍자성 을 드러내고 있다. 붕괴되어 가고 있는 조선의 봉건의식과 양반계급의 허세를 꼬집은 양반전 과 허 생전 許 生 傳 호질 虎 叱 등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특히 허생전 은 중상주의적 사상과 함께 이상향을 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당시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점으로 제대로 간파한 수작으로 평가받 고 있다.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수레와 목축) - 연암 박지원(열하일기, 김문수 편) 28

29 서양과의 접촉 - 조선(하멜 하멜)과 일본(아담스 아담스)의 서로 다른 길(병자호란: 한 명기) :20 서양과의 접촉(하멜, 아담스)-조선과 일본의 다른 길 조선의 길 소현세자는 청어 끌려간 뒤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중원의 주인이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북경에서는 독일 출신 선교사 아담 샬(Adam Schal, 湯 若 望 )과 교유하고 서양의 문물과 과학기술의 조선도입을 타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청에 대한 객관적 인식은 조선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북벌을 통해 청에 대한 복수를 표방했던 효종대 이후에는 청에 대한 인식이 더 경직되었다. 경직된 분위기 아래서는 청과의 접촉이나, 청의 간섭을 야기할 수 있는 현안이 생기는 것 자체를 피하게 된다. 경직되고 소극적인 분위기 아래서는 대외인식 자체가 전반적으로 협소해질 수 밖에 없다. 1653년(효종4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의 하멜(Hamel) 일행 36명이 표착해왔을 때 조선 정부가 취한 조처는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한다. 하멜 일행은 본래 1653년 6월 스페르베르(Sperwer) 호를 타고 바타비아(자카르타)를 출발, 타이완을 경유 하여 일본의 나가사키로 가는 길이었다. 이들은 같은 해 8월,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제주도에 표착한다. <하멜표류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조선 조정은 1654년 이들 36명의 진객 들을 서울로 불러들여 금군 ( 禁 軍 )에 편입시켰다. 그들이 화포를 잘 다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선은 청이 이들의 존재를 눈치챌까 서양과의 접촉 - 조선(하멜)과 일본(아담스)의 서로 다른 길(병자호란: 한명기) 29

30 ( 禁 軍 )에 편입시켰다. 그들이 화포를 잘 다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선은 청이 이들의 존재를 눈치챌까 봐 두려워했다. 그 때문에 청 사신이 올 때마다 하멜 일행을 거처에 연금시키거나 남한산성 등지로 이송했 다. 급기야 1655년 일행 가운데 두 사람이 청 사신의 행렬 가운데로 뛰어들어 나가사키 송환 을 호소하 는 사태가 벌어지자 조선 조정은 하멜 일행을 강진( 康 津 ) 등 전라도 지역으로 유배시켜 버린다. 하멜 등은 1666년(현종7년) 9월 조선을 탈출하여 나가사키로 갈 때까지 11년 동안 전라도 일원에 억류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풀을 뽑거나, 멍석을 쩌거나 새끼를 꼬는 등 허드렛일에 사역되었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관련 기록들을 보면 하멜 일행은 화포와 조총 등을 만들거나 다루는 능력이 뛰어났다. 뿐만 아니라 뛰어난 항해술을지니고 있었고, 동인도 회사의 활동을 비롯한 당시 유럽 세력의 동향에 대해서 상세한 정보를 갖 고 있었다. 그들과의 접촉을 통해 당시나가사키의 데지마( 出 島 )를 거점으로 벌어지고 있던 일본과 네덜란 드의 교섭 등 일본의 정세에 대해 중요한 정보를 얻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선은 그렇게하지못했다. 더욱이 전라감영은 하멜 일행8명의 탈출 사실을 조정에 보고하지도 않았다. 조정 또한 1666년 11월에야 일 본 측의 지적을 받은 동래부사의 장계를 통해 그들의 탈출 사실을 인지하고 책임 소재를 구명하려고 시도 했다. 일본의 길 하멜 일행이 조선에 표착하기 53년 전인 1600년, 리프데(Lifde)호라는 네덜란드 상선 한 척이 큐슈의 분고 ( 豊 後 ) 앞바다에 표착해 온 적이 있다. 본래 이름이 에라스무스 호였던 리프데호는 1598년 동방 무역을 우 해 로테르담에서 출항했던 5척의 선단 가운데 한척이었다. 당시 오사카에 머물면서 리프데 호의 표착 소식 을 보고받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 川 家 康 )는 직접 배를 보내 리프데 호의 승조원들을 불렀다. 이 때 이 에야스를 만난 사람이 영국인 출신의 항해장 윌리암 아담스(W. Adams1564~1620)였다. 포르투갈어 통역을 통해 이루어진 면담에서 이에야스는 아담스에게 네덜란드 선박의 도항 이유와 유럽의 정세에 대해 질문했 다고 한다. 당시 일본에는 이미 포르투갈 출신의 가톨릭 선교사와 상인들이 들어와 있었다. 이들은 리프데 호의 표착을 계기로 프로테스탄트교가 일본에 소개되고 자신들의 무역 독점이 깨질 것을 우려하여 이에야 스에게 네덜란드 선원들을 처형하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아담스 등을 외교 자문역으로 임명하 는 등 우대했다. 특히 아담스는 이에야스를 수시로 면담할 t 있을 정도로 깊은 신임을 얻었다. 아담스 등은 영국, 네덜란드와 일본의 교역을 알선하는가 하면 이에야스 앞에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국제정세를 설명 하기도 했다. 이에야스가 아담스를 총애했던 까닭은 그가 뛰어난 조선( 造 船 )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데다 세계정세에 아주 밝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담스는 12세 때부터 런던 근처의 조선소에서 12년간 근무했 고, 드레이크 함대 소속의 함장으로서 스페인 무적함대와의 해전에도 참전했던 경력의소유자였다. 1605년, 아담스가 본국으로 귀환하고 싶다고 호소했지만, 이에야스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대신 그에게 오늘날 서양과의 접촉 - 조선(하멜)과 일본(아담스)의 서로 다른 길(병자호란: 한명기) 30

31 요코스카( 橫 須 賀 ) 부근에 해당하는 미우라 三 浦 지역에 250석의 영지를 하사했다. 하실상 영주로 대접해준 것이다. 아담스도 후의에 감격하여 일본에 귀화했고 일본 여인과 결혼하여 정착했다. 일본인들은 그를 가 리켜 미우라 안진 三 浦 針 이라 불렀다. 삼포에 영지를 지닌 항해사 라는 뜻이다. 이윽고 아담스는 120 톤 규모의 범선을 건조했는데 일본인들은 얼마 후 이 배를 타고 태평양을 횡단하게 된다. 이후 큐슈의 히 라토 平 戶 를 거쳐 나가사키의데지마에는 네덜란드의 상관이 들어선다. 리프데 호의 표착과 아담스 등과의 조우, 그리고 그들에 대한 유연한 대응을 통해 일본의 대외인식은 더 확대되고, 서양에 대한 면역력 은 한층 커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훗날 서세동점 西 勢 東 漸 이 본격화될 때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1666년 10월, 일본측은 하멜 일행의 처리와 관련하여 조선을 기만하려고 덤볐다. 그들은 하멜 일행이 조선 에 표류해 왔음에도 자신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것, 조선이 그들을 억류했던 것 등을 문제 삼으면서 아 란타 阿 蘭 陀 (네덜란드)는 일본의 속군 屬 郡 이며 그들은 공물을 갖고 일본으로 오는 길이었다 고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사실네덜란드와 일본 관계의 실상은 조선이 하멜 일행에게 좀 더 유연하게 적극적으로 접근 하여 탐문했다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조선은 그러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조선도 처음 에는 하멜 일행을 금군에 편입시키는 등 나름대로 활동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조선은 하멜 일행의 존재와 그 들을 처리하는 문제로 말미암아 혹시라도 청의 개입과 간섭을 부르는 것이 너무 싫었다. 청사가 올 때 마다 그들을 연금하다가 끝내는 전라도로 유배시켜 버린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하멜 일행이 항해술, 화포술 등의 기예를 갖고 있었고, 당시의 세계정세에 밝았던 사실을 고려하면 그들이 조선에 머물렀던 14년은 조 선의 당국자들이 바깥 세계의 동향을 파악하는 데 매우 소중한 시간일 수 있었다. 하지만 하멜의 14 년 은 아담스의 20 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요건데 병자호란의 항복을 계기로 청 에 대한 적대감과 혐오감이 굳어지면서 청은 물론, 청 이외의 타자 他 者 를 알려는 관심과 의지 또한 함께 시들어갔던 것이다. 그것은 병자호란으로 말미암은 조선의 충격과 피로감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뜻한다. 그 충격과 피로감에서 벗어나 청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청을 배워야 한다 박지원는 치자 治 者 는 백성과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다면 그 법이 비록 오랑캐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배워야 한다. 오랑캐를 물리치려면 중국의 법제를 모조리 배워 우리의 고루하고 거친 풍습부터 바꿔야 한 다. 박지원이 보기에는 청이 오랑캐가 아니었다. 입만 열면 청을 치자고 외치면서도 현실에서는 수레조 차 변변히 사용하자 못한 채 낙후되어 있던 조선이야말로 진짜 오랑캐 였던 것이다. 바야흐로 청을 배워야 한다 는 북학 北 學 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병자호란을 겪은 뒤 청을 정벌해야 한다 는 북벌 北 伐 이 등장한 뒤로부터 북학으로 전환하기 까지는 100년 이상이 걸렸다. 그것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서양과의 접촉 - 조선(하멜)과 일본(아담스)의 서로 다른 길(병자호란: 한명기) 31

32 서양과의 접촉 - 조선(하멜)과 일본(아담스)의 서로 다른 길(병자호란: 한명기) 32

33 성호의 사회사상 - 벌열사회, 노비제도판, 서얼제도 비판, 여성관(강명 관) :58 성호의 사회사상 벌열사회 ( 閥 閱 社 會 ) 조선사회가 신분사회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원래부터 신분간의 구분이 엄격했던 것은 아니 었다. 천민은 일단 제외되지만 양인( 良 人 )이상이면 과거를 보아 벼슬길에 오를 수 있었다. 양반과 양인의 본질적 차이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경국대전( 經 國 大 典 )에 양반을 무어라 규정해놓은 것도, 양인 은 과거를 칠 수 없다고 쥬정해놓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양반중에서 서얼( 庶 孼 )을 차별하기 시작 하고, 양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과 상민이 차차 벼슬길에서 제외되면서 양반사족과 구분되고 말았 다. 성호는 그런 사정을 尙. 丘 潘 三 姓 란 글에서 소상히 밝히고 있다. 성호는 벌열을 숭상하는 풍습 은 국초에는 그리 심하지 않았다. 아래에 있는 여러 신하들이 풍속을 그렇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임금 도 그렇게 인도했기 때문이다 라고 지적한다. 이런 사례들은 대개 임진왜란 이전의 일이다. 성호는 족 성을 숭상하지 않음 不 尙 族 姓 에서 임진왜란 이후 집안배경을 고려하지 않던 사회분위기가 확연히 달라 졌다고 말한다. 中 古 이전에는 족성을 숭상하지 않았다. 각각 재능과 학문으로 출세하였기에 미천한 출신 중에도 현달한 사람이 있었다. 근래에는 대관( 臺 官 )들이 탄핵하고 공격하는 사람으로 말하자면 문벌과 지체가 한미한 것 을 최상의 제목으로 삼을 뿐이고, 사람의 재증과 도덕성이 어떠한지는 따지지 않는다. 모를 일이다. 맑은 성호의 사회사상 - 벌열사회, 노비제도판, 서얼제도 비판, 여성관(강명관) 33

34 조정의 빛나는 벼슬자리는 죄다 벌열가 자제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란 말인가?( 不 尙 族 姓 제12권 인사문) 다만 문벌만 보고 재능과 도덕성은 살피지 않으니, 이런 법은 빨리 없애버려야 마땅하다. 열두사람(본인, 어머니, 처의 4조) 중에 조그만 흠이 있다해도, 어찌 문벌을 가지고 저 유능함을 덮어버릴 수 있단 말인 가?( 尙. 丘 潘 三 姓 제10권 인사문) 지금 우리나라 풍습은 종족의 부류를 구별하여 노비와 천민은 백세대가 지나도 영화를 누일 길이 없고, 높 은 벼슬아치집안 사람은바보천치도 무리를 지어 벼슬에 오르니, 아아, 아달픈 일이다.( 造 明 제3권 천지문) 서얼 ( 庶 孼 ), 똥구덩이 속의 사람들 서얼의 벼슬길을 막는 문제 庶 孼 防 限 라는 글에서 李 袤 (이무 1600~1684)의 상소를 길에 인용한다. 상 소의 내용은 서얼의 벼슬길을 제한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무는 서얼을 사람 취급하지 않으며 자신을 성취 할 길을 열어주지 않고 차별하기에 서얼 중에는 과연 인격이 비뚤어진 사람이 많은데 이것이야말로 사람 을 똥구덩이에 밀어 넣고 더럽다고 침을 뱉는 격 이라 말한다. 서얼제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양반 남성이 양민의 여성을 첩으로 취해 자식을 낳으면 서자( 庶 子 )가 된다. 만약 천민 여성을 취해 자식을 낳으 면 얼자( 子 )가 된다. 아울러 서얼이다. 조선시대 신분제도는 자식이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도록 규정해 놓았다. 선조, 인조때 개혁시도가 있었고, 정조의 경우 여러 차례 서얼 차별을 금지하려 했으나 차별은 끝 끝내 철폐되지 않았다. 악법은 한번 만들어지나면, 그 악법을 통해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는 이상 쉽게 철 폐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성호의 사회사상 - 벌열사회, 노비제도판, 서얼제도 비판, 여성관(강명관) 34

35 서얼차별 문제를 보면 사대부 체제가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알 수 있다. 서얼문제는 기본적으로 양반-남성 의 성욕문제에서 출발한다. 양반들은 정처( 正 妻 )에 대해서는 그 여성이 오직 자신에게만 성적으로 종속되 는 존재일 것을 요구했다. 그 요구는 사후에도 성적 종속성이 실천되기를 바랄 정도로 강했으니, 이른바 수절이란 남성의 성적 욕망이 만들어내고 여성에게 강요된 윤리다. 자신의 생전과 사후를 막론하고 남성 은 여성에게 신체의 일부나 전부를 희생하여 성적 종속성을 천명할 것을 요구했으니 그것을 실천한 여성 이 다름아닌 열녀다. 양반- 남성은 일단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할 장치로서 정처를 확보하고, 첩( 妾 )을 제 도적으로 존치시킴으로써 잉여의 성욕을 풀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소유물인 노비 여성을 기생으 로 존치시켜 성욕을 충족했다. (기생을 차지하여 첩으로 삼기도 했다)그렇게 해서 태어난 자식은 사회에서 버림받는 천덕꾸러기가 되고 만다. 이게 무슨 짓거리란 말인가. 아비가 잉여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벌인 성행위가 천대받는 인간을 쏟아내다니, 그 자식은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매매되는 사람들 - 노비 성호는 노비제가 폐지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것은 조선사회를 완전히 재구성할 혁명이 아니고서는 불가 능한 일이었다. 성호의 개혁안은 노비의 매매를 금지하는 것이었다. 백성에게 노비의 매매를 금하자 禁 民 賣 奴 (제12권 인사문)에서 그는 노비법을 없애지 못한다면 매매를 허락하지 말자고 말한다. 매매가 금 지되면 첫째, 노비가 남아도는 집안이 생길 것이고 그러면 노비를 부려먹는 데도 한계가 있을테니 노비도 한가할 때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둘째, 노비의 매매를 금하면 백성을 노비로 속여 팔아먹는 일이 사라 진다. 즉, 새로운 노비의 공급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셋째, 노비를 매매하더라도 일정한 기간만 부리도록 하고 자손까지 노비로 삼지 않게 된다. 이 방법은 결국 노비를 없앨 것이다. 이것이 성호의 생각이었다. 성호는 黨 長 과 里 長 (제12권 인사문)에서 조선이란 나라가 허약한 것도 노비 때문이고, 백성이 가난한 것도 노비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노비가 된 사람이 무슨 흥이 나서 농사를 열심히 짓겠는가. 노비가 성호의 사회사상 - 벌열사회, 노비제도판, 서얼제도 비판, 여성관(강명관) 35

36 사회와 나라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일이 무어 있겠는가. 노비가 우들거리는 사회는 저주받은 사 회이고 발전가능성이 없는 사회다. 여성을 길들이는 방법 노비에 대해서 한없는 동정을 표했던 성호. 그렇다면 그는 여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는 부 인에게는 바깥 일이 없다 夫 人 無 外 事 (제13권 인사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자는 안에서 자리를 바로잡고, 남자는 밖에서 자리를 바로잡는다. 남녀가 자기 자리를 잡는 것이 천지 의 대의이다. 사가( 私 家 )의 도는 나라 정치에도 통한다. 그러므로 부인에게는 바깥 일이 없다는 것이다. 부 인의 처지임에도 바깥 일에 간섭을 하면 반드시 집안이 망한다. 하물며 나라의 일이겠는가( 夫 人 無 外 事 제13권 인사문) 성호는 또 여성에게는 공부를 가르쳐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글을 읽고 뜻을 풀이하는 것은 남자의 일이다. 부인을 아침과 저녁, 여름과 겨울, 때에 맞추어 준비해야 할 물건을 준비하고,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맞 아야 한다. 어느 겨를에 책을 읽을 수 있겟는가. 나는 고금의 역사에 통달하고 예의에 대해 말하는 부인을 많이 보았으나, 그들이 그것을 꼭 실천하는 것도 아니었고 도리리 폐해만 한없이 많았다. 우리나라 풍속은 중국과 같지 않다. 무릇 문자의 공부란 힘을 쏟지 않으면 불가능한 법이다. 애당초 부인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 小 學 ]과 [ 內 訓 ] 등의 책도 모두 남자의 임무에 속한다. 부인은 조용히 궁리하며 그 책 에 실린 말을 알아듣고 일에 따라 실천하거나 가르침을 받을 뿐이다. 규방의 부인이 만약 누에치고 길쌈하 는 일을 소홀히 하고 먼저 책을 집어든다면 이 어찌 옳은 일이랴?( 婦 女 之 敎 제16권 인사문) 이런 성호니 여성의 수절은 당연히 찬미의 대상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속 東 國 美 俗 (제15권 인사문)에서 중국도 따라오지 못할 조선의 아름다운 풍속은 미천한 여자도 절개를 지키고 개가하지 않 성호의 사회사상 - 벌열사회, 노비제도판, 서얼제도 비판, 여성관(강명관) 36

37 는 것 인바, 그것은 국법이 개가한 자손의 자손에게는 청직( 淸 職 )의 길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 이라고 말한다. 서얼의 차별에 대해 분노하던 성호는 어디로 갔는가? 아무리 생각이 트이고 진보적인 성호라 할 지라도 그가 조선의 남자였던 이상 남성 중심주의에서 한 차도 벗어나지 않았던 사정을 여기서 짐작할 수 있다. 성호의 사회사상 - 벌열사회, 노비제도판, 서얼제도 비판, 여성관(강명관) 37

38 속환녀, 도망자 : 병자호란의 참상 - 한명기의 병자호란 :34 속환녀, 도망자 병자호란의 참상- 한명기의 병자호란 병자호란의 참상을 다시 배우자 최근에 한명기의 병자호란을 읽으면서 병자호란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새삼 깨달았다. 역 사가 E.H.Carr는 역사는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 라고 했다. 병자호란을 통해서 선조들의 주변정세에 대한 인식과 대응의 문제점과 참혹했던 실상을 다시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진왜란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중고등학교 때 병자호란을 배우면서 인조가 삼전도에서 무릅을 꿇고 항복했고 많은 조선인들 이 청에 끌려갔다는 정도로만 배웠다. 정치인의 무능이 어떻게 비극을 초래하는가 속환녀, 도망자 : 병자호란의 참상 - 한명기의 병자호란 38

39 정치인의 무능이 어떻게 비극을 초래하는가 병자호란은 정치지도자가 무능했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인조와 조정이 주변 정세를 알지 못했고 잘못 대응함으로써 참혹한 결과를 빚었다. 명이 무너지고 청이 새롭게 중원을 장악하 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내정치의 무능으로 전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에도 임 진왜란 때 명이 조선을 도운 것에 대한 보은이라는 명분에 집착하다 전쟁을 초래하였다. 전쟁을 위한 병 력, 군수지원, 훈련, 지휘관의 능력 등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인조는 백성들은 생각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였고 강화도로 도망갈 궁리만 했다. 청은 인조의 생각을 알고 있었고 명에서 귀순해왔던 공유덕, 경중명 등 수군 경험이 풍부한 장군들을 가지고 있 었으며 조선은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결국 강화도로 도망도 못가보고 남한산성에 갇히게 되었 다. 1 월30 일 태양도 빛을 잃었다 홍타이지는 진시( 辰 時 오전7시~9시)에 진영에서 나와 군기를 앞세우고 주악을 울리며 삼전도를 향해 한간 을 건넜다. 청의 입장에서 조선이 한 집안이 되었다 고 하늘에 고하는 의식인 배천의식을 마치고 홍타 이지가 수항단에 오르자 인조는 그 아래 무릎을 꿇었다. 인조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개과천선하겠다고 다짐한 뒤 소현세자와 신료들을 이끌고 삼배구고두례( 三 拜 九 叩 頭 禮 :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린 다)를 행했다. 홍타이지가 신시( 申 時 오후3시~5시) 무렵 자리를 뜬 뒤에도 인조는 밭 가운데 앉아 그들의 지시를 기다렸다가 해질 무렵에야 도성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통고가 내려졌다. 인조는 인질이 되어 심양 으로 가게 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부부와 이별한 채 귀경길에 올랐다. 청군에 잡혀있던 수많은 포로들은 인조를 향해 울면서 절규했다.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시나이까? 인조는 백성들의 절류를 뒤로 한 채 도성으로 향했고 밤 10시 무렵에야 창경궁으로 들어갔다. 인조의 생애에서 가 장 길고도 처참했던 하루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청에 끌려갔나 전쟁이 끝난 뒤, 최명길은 명나라 도독 진홍범( 陳 洪 範 )에게 보낸 자문( 咨 文 )에서 피로인의 수를 50만명으로 추정했다. 쉽사리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수다. 조선이 청의 침략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 을 명 측에 강조하기 위해 피로인의 수를 부풀렸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나만갑이 <병자록>에 서 청군이 철수하는 동안 매번 수백 명의 조선인들을 열을 지어 세운 뒤 감시인을 붙여 끌고가는 것이 하루종일 지속되었다 거나 뒤 시기 심양 인구 60만 가운데 상당수가 조선사람 이라고 서술했던 사실 을 고려하면 피로인의 숫자가 50만명은 아닐지라도 수십만 명에 이르렀을 개연성은 높아 보인다. 청은 어 떤 배경에서 이렇게 많은 수의 피로인들을 끌고갔을까? 청은 일찍이 후금 시절 이전부터 부족한 인력과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피로인들을 획득하는데 골몰했다. 1630년대까지 많이 추산해도 150만이 채 안 되 속환녀, 도망자 : 병자호란의 참상 - 한명기의 병자호란 39

40 던 만주족이 1억5천만 가까운 명의 한족들을 상대하려 할 때 인구부족은 결정적인 약점이었다. 조선에서 사로잡은 피로인들은 단순히 노동력이라기보다는 돈을 받고 판매하는 무역상품 이 되었다. 청으로 끌 려간 피로인들을 데려올 수 있는 방법은 속환( 贖 還 )이 거의 유일했다. 속환이란 청 측 주인에게 몸값을 치 르고 피로인들을 데려오는 것을 말한다. 피로인들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인간 시장 이 서게 되었고, 몸 값을 흥정하는 과정에서 피로인들은 상품 이 되었다. 贖 還 女, 歸 還 女 性 졸지에 청군 장수의 첩으로 전락하여 심양에 도착한 여성 피로인들에게는 뜻밖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 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청군 장수의 만주족 본처들이 자행했던 투기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본처들 가운데는 질투심에 눈이 멀어 조선에서 온 여성 피로인들을 참혹하게 학대하는 자들이 있었다. 심지어 조선 여인들 에게 뜨거운 물을 끼얹는 혹심한 고문을 가하는 여자들도있었다. 이 같은 사태는 청 조정에서도 논란이 되 었다. 1637년 4월, 홍타이지는 도르곤 등 신료들을 불러놓고 공개적으로 공개했다. 조선에서 데려온 여성 들에게 계속 그런 짓을 자행하는 본처들이 있을 경우, 남편이 죽었을 때 순사( 殉 死 )시키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홍타이지까지 직접 나서서 본처들의 투기와 악행을 근절하라고 했던 것을 보면 당시 여성 피로인 들에게 닥쳤던 고난이 얼마나 처참했던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병자호란 당시 심양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인들을 보통 환향녀( 還 鄕 女 ) 로 불렀던 것으로 알고 있 지만 <인조실록>을 비롯한 당시 기록 어디에도 환향녀 라는 용어는 나오지 않는다. 사대부 집안의 부 녀자들은 오랑캐에 실절( 失 節 )한 여자 라는 따가운 시선 때문에 고통받아야 했다. 일부 신료들은 속 환되어 온 며느리에게 조상의 제사를 받들게 할 수는 없다 며 이혼을 허락하라고 요구했다. 출가했던 딸 이 속환녀 가 되어 돌아온 친정 부모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최명길은 속환녀의 이혼을 섣불 리 허락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혼을 허락할 경우 부녀자들이 속환을 포기하고 이역에서 원귀가 되 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속환을 통해 돌아온 부녀자들 모두가 실절했다 고 단정해서는 안된다 고 강조했다.그러나 대부분의 사대부 집안 속환녀들은 본래의 남편으로부터 버림받고 말았다. 피로( 被 擄 ) 로 말미암은 슬픔과 비극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속환녀, 도망자 : 병자호란의 참상 - 한명기의 병자호란 40

41 로 말미암은 슬픔과 비극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도망자, 주회인 주회인들은 심양을 탈출하여 조선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또 어렵사리 조선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고통과 불안 속에서 마음을 졸일 수 밖에 없었다. 탈출과정에서 청 측 관원들에게 붙잡히거나 굻어 죽을 가능성이 높았고, 조선 귀환 이후에는 자신들을 쇄환하려는 조선관원들의 체포를 피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우선 도 망이나 속환을 통해 조선으로 귀환하는 과정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도망자들은 낮에는 산 속 등지에 숨어 있다가 주로 밤을 이용하여 이동했다. 당장 이동하는 도중에 굶어 죽을 위험성이 대단히 높았다. 또 산 속에서 맹수를 만나 희생되는 경우도 있었다. 어렵사리 심양부터 진강( 鎭 江 오늘날의 단둥)에 이르는 만주지역을 통과하더라도, 압록강변에 이르면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변방의 관리들이 청의 힐 책을 우려하여 주회인들의 도강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입국이 좌절된 주회인들 가운데 강물에 뛰어 들거나 목을 매어 자살하는 경우가 속출했다. 1642년 2월, 정언 하진( 河 )은 창성과 삭주 등 압록강 줄 기의 위아래에 백골들이 널려 있고, 그 사실을 보고 들은 사람들 가운데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들이 없 다 며 참혹한 실상을 증언한 바 있다. 주회인들 가운데는 탈출을 시도하다가 도중에 붙잡히거나, 조선으 로의 입국이 좌절되어 도로 심양 등지로 귀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같은 주회인들에게는 가혹한 처벌 이 기다리고 있었다. <심양장계 瀋 陽 狀 啓 >에 보면 탈출에 실패하여 도로 심양으로 귀환했던 조선 피로인 들이 발뒤꿈치를 잘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처럼 피로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끔찍하기 그지없는 것 이었다. 전란의 비극에 휘말렸던 수많은 생령들의 처참한 고통을 생각하면서 오늘 이 전쟁을 다시 성찰해야 할 필 요성을 새삼 절감한다. 속환녀, 도망자 : 병자호란의 참상 - 한명기의 병자호란 41

42 G2시대 병자호란을 다시 읽자 (한명기 병자호란) :43 G2시대 병자호란을 다시 읽자 (한명기( 한명기-병자호란) 임진왜란 후의 격동하는 동아시아 임진왜란 이후 동아시아는 더 격렬한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린다. 누르하치가 이끄는 만주가 명에 도전하 기 시작했던 것이다. 임진왜란 참전으로 쇠망의 기미가 더 뚜렷해진다. 노대국 명은 계속 수세로 내몰린 다. 위기에 처한 명은 조선을 이용하여 만주를 견제하려는 以 夷 制 夷 策 을 구사한다. 임진왜란 때문에 망 해가던 조선을 다시 살렸다 는 은혜 를 내세워 만주와의 싸움에 조선을 계속 끌여들이려 했다. 명을 위해 만주와 싸울 것인가? 만주가 뜨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여 중립 을 지킬 것인가? 양단의 선택 앞에서 조선은 분열되었다. 1626년의 인조반정은 전자를 주장하는 세력들이 일으킨 쿠데타였다. 망해가 던 명 을 선택한 직후인 1627년 만주는 조선을 침략했다. 丁 卯 胡 亂 이었다. 전쟁을 감당할 수 없었던 조선 은 만주와 형제관계 를 맺어 위기를 봉합한다. G2시대 병자호란을 다시 읽자 (한명기 병자호란) 42

43 정묘호란 이후 조선은 명과 만주, 두 나라 모두와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황제의 나 라 명도 잘 섬기고 형의 나라 만주와도 잘 지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명과 만주가 계속 싸웠기 때문이다. 그 틈바구니에서 끼어 있는 조선은 결국 선택의 기로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정묘 호란 이후 명과의 전쟁에서 연전연승하고 더욱 강해진 만주는 조선으로부터 명과 똑같은 대접을 받고 싶 은 유혹에 빠진다. 그리고 1636년, 만주는 마침내 제국 이 되기로 결심한다. 나라 이름도 대청 大 淸 으로 바꾸었다. 이윽고 조선이 명을 의식하여 자신을 제국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자 다시 침략했다. 병자호란이 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직전 조선은 척화파와 주화파간의 논쟁이 격렬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조선은 청 의 침략을 감당할 역량이 없었다는 것이다. 병력의 수, 군사들의 훈련 상태와 전투 경험, 군량 등 군수 지 원 역량, 지휘관의 작전 능력과 책임감 등 전챙의 승패를 가르는 요소가운데 어느 것 하나 청보다 나은 점 이 없었다. 거기에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명 또한 조선을 도울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당쟁으로 국론은 G2시대 병자호란을 다시 읽자 (한명기 병자호란) 43

44 분열(동림당과 엄당)되어 있었으며, 청군의 침략에 수시로 유린되면서 자국을 지키기에도 급급했기 때문이 다. 서로 싸우던 강국 사이에 끼인 채 자위 능력마저 없던 조선은 어떻게 했어야 하는가? 내정과 외교 앙면에 서 극히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했어야 했다. 하지만 인조는 그렇지 못했다. 잃어버린 1 0 년 정묘호란을 겪은 1627년부터 병자호란을 다시 겪는 1636년까지는 정말 중요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결과적 으로 잃어버린 10년 이 되고 말았다. 왕권 보위 에만 골몰하며 안팎의 대국을 볼 줄 몰랐던 인조, 과거 정권의 실정을 한껏 성토했지만 집권 이후 권력과 부에 취해 버렸던 반정공신들, 명분과 의리를 소리 높여 외쳤지만 그것을 지킬 대안은 제시핳지 못했던 언관들, 이들 집권층의 한계와 아집, 불협화음 속에서 내정과 외교는 임기응변과 즉흥적인 미봉책으로 점철되었다. 준비없이 맞이한 전쟁의 결과는 처참했다. 인조는 오랑캐 추장 에게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수많 은 백성들이 죽거나 다쳤다. 포로로 잡혀 끌려간 백성도 수십만이었다. 끌려가는 도중 죽고, 굶어죽고, 맞 아죽었다. 탈출하려다 실패하여 발뒤꿈치를 잘리기도 했다. 수많은 여성 포로들이 청군의 첩으로 전락했 다. 첩이 된 여성들 중에는 청군 본처로부터 끓는 물세례를 받은 사람도 있었다. 몸값을 치르고 돌아왔던 여성 포로들은 고국에서 다시 버림받았다. G2시대 병자호란을 다시 읽자 (한명기 병자호란) 44

45 병자호란은 G2시대의 비망록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바탕으로 정치, 군사적으로도 미국에 버금가는 존재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G2)은 한 반도와 동아시의 미래를 좌우할 태풍의 눈이다. 일본은 보수화와 군국주의 부활로 가고 있다. 센카쿠 열도 ( 尖 閣 列 島 ) 댜오이다오( 釣 魚 島 )의 영유권을 놓고 벌이고 있는 양국 간의 첨예한 갈등은 동아시아를 긴장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병자호란은 과거가 아니다. 어쩌면 지금도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현재일 수 있으며, 결코 오래된 미 래 가 되지 않도록 우리가 반추해야 할 G2시대의 비망록 이다. 무능한 지도자가 얼마나 나라를 망치고 국민을 도탄에 빠지게 하는 것을 병자호란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다. G2시대 병자호란을 다시 읽자 (한명기 병자호란) 45

46 성호사설 - 강명관, 성호 세상을 논하다 :07 성호, 세상을 논하다 星 湖 와 성호사설 星 湖 李 瀷 (1681~1763)의 집안은 驪 州 李 氏 로 조선후기의 알아주는 명문가다. 이익의 집안이 명문가로 도약 한 것은 그의 증조부대부터다. 고조부 李 友 仁 은 일곱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그중에서 이상홍, 이상의, 이 상관, 이상신 등 네 사람이 청요직( 淸 要 職 )에 올랐고, 특히 李 尙 毅 는 요직을 두루 거쳐 좌찬성까지 지냈다. 이익은 바로 이상의의 증손자다.이후 이익의 가문은 남인 명문가로 부상하며 정국의 중심에 선다. 하지만 가문의 聲 譽 는 이익의 대와 와서 몰락의 길을 걷는다. 당쟁 때문이었다. 이익의 집안은 속종 초기에 벌어 진 남인, 서인 사이의 치열한 당쟁에서 남인이 실각하면서 관계에서 배제되기 시작한다. 성호의 아버지 李 夏 鎭 은 1680년 2월 自 黨 의 허목과 윤휴를 두둔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진주 목사로 좌천된다. 이어 3월에 남 성호사설 - 강명관, 성호 세상을 논하다 46

47 인이 정계에서 축출되는 정변( 庚 申 大 黜 陟, 1680)이 일어나자 이하진은 파직되고 평안도 운산으로 유배되었 다가 그곳에서 숨진다(1682). 성호는 아버지의 유배지 운산에서 태어났다.(1681) 경신대출척으로 서인이 정 권을 잡자, 성호의 가문은 과거의 성예를 잃고 말았다. 성호는 중형( 仲 兄 ) 이잠( 李 潛 )에게서 글을 배웠다. 벼슬을 하고자 하여 25세때(1705) 증광시에 응시했지만, 회시( 會 試 )에서 이름을 등록하는 절차인 녹명( 錄 名 )에 문제가 있다하여 시험을 치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 이 성호가 과거를 포기하는 계기가 된 것은 아니었다. 과거를 포기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그 이듬해인 1706년에 일어났다. 1706년9월17일 이잠은 성균관 집사의 신분으로 동궁(뒤의 경종)을 보호할 것, 그리고 남인을 축출하고 노론을 조정에 불러들인 갑술옥사를 이면에서 조정한 김춘택( 金 春 澤 ) 등을 죽일 것을 요 청하였다. 노론정권이 그냥 놔둘 리가 없었다. 이잠은 모진 고문 끝에 사망한다. 이잠의 죽음 이후 성호는 과거를 단념한다. 그의 집안 역시 그 이후 과거를 통한 출세와는 관계가 없었다. 아들 이맹휴( 李 孟 休 )는 1742년 과거에 합격했지만 이잠의 조카라는 꼬리표 때문에 출세는 불가능하였고 1751년에 죽고 말았다. 그 의 집안이 눈에 뜨이는 벼슬을 한 것은 정조때 채제공( 蔡 濟 恭 )을 영수로 한 일부 남인이 정계의 한 축을 담당할 때 이가환( 李 家 煥 )이 등용된 것이 유일하다 하겠다. 성호사설 - 강명관, 성호 세상을 논하다 47

48 사대부로서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성호가 파고든 것은 학문이었다. 그는 1727년 자기 집안의 선산과 농토 가 있는 경기도 안산 첨성리에 정착하였다. 성호는 이곳에서 1763년 세상을 뜰때까지 36년 동안 오직 학문 에 침잠하였다. 그렇게 일구어낸 성호의 학문은 참으로 넓고 깊었다. 문학, 성리학, 예학, 경학, 경세학, 자연과학 등 당시 학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부분에 걸친 깊은 연찬( 硏 鑽 )의 결과로서 그의 학문 은 정말 장관이라 할 것이다. 성호의 학문은 무엇보다 자신의 가문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중 이익 을 필두로 하여 이맹휴, 이용휴, 이병휴, 이가환, 이삼환은 모두 18세기 문인학자로 탁월한 업적을 남긴다. 한 가문이 이렇게 많은 문인학자와 예술가를 배출한 것도 드문 일이다. 그것은 이익이라는 학문적 거목의 영향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그의 학문은 집안의 이가환과 안정복, 권철신 등 제자들에게 이어졌고, 최종적 으로는 정약용에게 이르러 집대성되었다. 성호사설 ( 星 湖 僿 說 ) 성호사설이란 책을 읽어내기가 결코 쉽지 않다. 한문으로 쓰인데다가 모두 3007편이란 방대한 분량 때문이 다. 이 3007편의 글은 천지문( 天 地 門 ), 만물문( 萬 物 門 ), 인사문( 人 事 門 ), 경사문( 經 史 門 ), 시문문( 詩 文 門 ) 다 섯 부분으로 나뉜다. 글이 다루고 있는 제재와 주제에 따라 분류한 것이다. 분류만 이루어졌을 뿐 각 편이 일정한 체계에 의해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즉 [성호사설]의 글 전체가 특정한 주제를 놓고 쓰여진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제자 안정복은 중복되는 것을 가려내고 보다 중요한 1332편을 추려 [성호사설유선]으로 편집했다. 성호사설은 조선시대 지식인의 학문적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주는 저작이다. 그는유학자로서 조 선후기의 사회모순을 직시했던 사람이고, 한편으로 양반이 원래 의지했던 유학(성리학)이란 원칙에 따라 충실히 작동되기를 바랐을 뿐이다. 성호의 생명존중사상 생명존중사상은 성호의 사유에서도 당연히 중추를 이룬다. 다음은 고기 먹는 일 食 肉 이란 글의 일부 다. 백성은 나의 동포이고 만물은 나와 동류다. 다만 초목은 지각이 없어 혈육을 가진 동물과 구별되기에 그것 을 취하여 살아갈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날짐승, 길질승은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의 지를 갖는다는 점에서 사람과 동일하다. 어떻게 차마 해칠 수가 있단 말인가? 동물 중에서 사람을 해치는 동물은 이치상 마땅히 잡아 죽일 수 있다. 또 가축들은 우리 사람에 의해 길러지니, 사람에게 그 몸을 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 산에서, 물에서 절로 나고 절로 자란 것들이 모두 사냥과 고기잡이의 대 상이 되는 것은 또 무슨 이유인가?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만물은 사람을 위해 생겨난 것이다. 따 성호사설 - 강명관, 성호 세상을 논하다 48

49 라서 당연히 사람에게 잡아먹히게 되는 것이다. 이 말에 정자( 程 子 )는 이렇게 답했다. 좋다. 이는 사람 의 피를 빨아먹고 산다. 그렇다면 사람이 이를 위해 생겨났다는 말이냐? 정자의 변론이 또한 분명하다. (고기 먹는일 食 肉 제12권 인사문) 성호는 무조건적인 근본주의자는 아니어서 노인의 봉양, 제사, 손님 접대, 병의 치료에 고기를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다만 육식은 군자로서 부득이한 일인 만큼 부윽이한 마음으로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함 부로 살생을 자행하거나 기탄없이 욕심만을 채우려 한다면 그 결과는 약자의 살을 강자가 뜯어먹는 것을 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호사설의 생명사상은 어디서 유래한 것인가. 나에게 만물이 갖추어져 있다 萬 物 備 我 를 읽어보자. 맹자께서 만물이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 하였다. 이것은 인의 본바탕이 지극히 큼을 형용한 말이 다. 무릇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四 海 와 八 荒, 길짐승, 날짐승과 풀, 나무 등은 모두 다 물 物 인데, 인을 실천하는 사람은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보아 자신에게 귀속시킨다. 이런 까닭에 저 수많은 백성도 모두 나 의 백성이고, 저 오랑캐들도 모두 나의 오랑캐이며, 길짐승, 날짐승과 풀, 나무도 모두 나의 길짐승, 날짐 승과 풀, 나무인 것이다. 나 란 존재는 物 의 상대다. 비록 저와 내가 서로 모습은 다르지만, 내가 저들 을 나의 바깥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모두 껴안아 그것들에 대해 각각 적절하게 처우하는 방도가 있다면, 곧 만물이 내 마음 안에 갖추어져 빠지는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성호가 기대고 있는 만물비아는 맹자 盡 心 章 에 나오는 구절이다. 만물이 모두 나 자신에게 갖추어져 있다 는 것은 세상 만물, 곧 수많은 백성, 오랑캐, 금수, 초목이 비록 나와 유 類 가 다르고 모습이 다르고 성질 이 다를지언정, 모두 나와 구별되지 않는, 또 차별되지 않는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말이다. 인간 역시 그것들과의 연관 속에 있는 존재이며, 그 연관이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니 사물과 인간, 미물의 생명과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는가, 사물과 인간, 미물의 생명과 인간의 생명 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는가. 사물과 인간을 구별하지 않는 것, 그것들의 생명 의지와 존재 이유를 존중 하는 것이 바로 萬 物 備 我 의 사유다. 자신과 만물이 동등한 존재임을 생각하고, 그 마음을 다른 존재 에 미루어나간다면 서 恕 와 인 仁 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그보다 더 크나큰 것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성호사설 - 강명관, 성호 세상을 논하다 49

50 나는 생명사상이 유가의, 그리고 성호 사상으 가장 빛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산과 강을 마구 허물고 파내고 있다. 그것들의 존재 이유, 그것들 속에 깃든 생명은 돌아볼 필요가 없는 타자에 불과 한 것이다. 이러니, 어디 인간의 생명인들 생명으로 보이겠는가? 성호의 생명사상을 되씹어볼 이유가 여기 에 있다. 성호의 토지제도 - 영원히 팔 수 없는 땅( 永 業 田 ) 대부분이 소작농인 실정 성호의 시대에 토지(농지)는 일부에 의해 과점( 寡 占 )되어 있었고, 그 일 부란 다름 아닌 귀족화한 양반이었다. 농민 중 자작농은 일부에 불과했 성호사설 - 강명관, 성호 세상을 논하다 50

51 고, 70퍼센트 이상이 소작농이었다. 그들은 소작료로 소출의 절반을 지 주에게 바쳐야 했다. 궁핍해진 농민은 지주에게 토지를 팔았다. 지주의 거대한 땅은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다. 토지를 잃은 농민은 소작농이 되어 지주를 위해 일하거나, 자기 자신을 노비로 팔거나, 유민이 되거나, 도둑이 되었다. 더 이상 나아갈 데가 없으면 길에서, 들판에서 시체가 되 었다. 농민이 토지를 떠나는 것은 곧 사대부체제의 위기였다. 당연히 토 지의 분배를 주제로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대책을 내놓았다. 한전론 ( 限 田 論 ) 유력한 대책 중 하나가 한전론 이었다.곧 일정한 면적의 토지를 상한 선으로 정하고 그 이상의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박지원 ( 朴 趾 源 1737~1805)의 [한민명전의 限 民 名 田 議 ]는 한전론에 관한 대표적 인 논문이다. 성호는 한민명전 限 民 名 田 에서 한전론을 검토한다. 그 는 이 글에서 한 漢 의 동중서 董 仲 舒 에서 원 元 의 정개부( 鄭 介 夫 )에 이르는 한전론의 역사를 간단히 개괄하고 한전론의 골자를 소개한다. 한전론은 모든 농민에게 일정한 면적의 전지를 일정한 기간 동안 지급하고 그 기 간 중에 불어난 토지는 형제, 자질 子 姪, 인척에게 강제로 분배하는 제도 다. 만약 상한선을 넘어 토지를 보유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럴 경 우 관에서 몰수하여 가난한 자에게 그 땅을 팔고, 땅 값의 반은 국가가 차지하며, 반은 지주에게 지급한다. 그럴 듯 하다. 하지만 성호는 이 주 성호사설 - 강명관, 성호 세상을 논하다 51

52 차지하며, 반은 지주에게 지급한다. 그럴 듯 하다. 하지만 성호는 이 주 장을 반박한다. 즉 토지를 많이 가지고 있을 경우 권력이 강해지기 마련 이고 권력이 강해지면 법을 무시할 수 있다. 가난한 백성에게 팔겠다고 하지만, 나눠줄 것이 아니면 가난한 자가 어떻게 땅을 사겠는가? 또 토 지의 소유자가 이미 고장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누가 감히 그 토 지를 사려고 들겠는가?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형제, 자질에게 나누어준다고 하자. 그러나 이를 형식적으로 나누어줄 뿐이라면, 어떻게 그 불법을 따질 수 있겠는가? 이런 이유로 한전론은 실행될 수가 없다고 성호는 말한다. 토지 공개념 - 균전론 ( 均 田 論 ) 성호는 자신이 일찍이 均 田 論 균전론 을 지어 균전을 주장했다고 말한 다. 균전이란 무엇인가? 성호가 말하는 균전론은 [곽우록 藿 憂 錄 ]에 실린 균전론을 말한다. 그는 곽우록의 균전론을 바탕으로 다시 성호사설에서 균전을 쓴다. 먼전 성호사설의 균전을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균전의 첫머리에서 성호는 왕도정치가 경계를 지향하지 않으면 구차할 뿐이 다. 라고 말한다. 경계 는 토지의 경계선을 정해 토지를 나누는 것 이다. 그것은 곧 토지의 공평한 분배 를 의미한다. 이어지는 빈부 가 균등하지 않고 강약의 형세가 다르다면 어떻게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 릴 수 있겠는가? 라는 문장은, 백성 개개인의 부와 힘이 균등한 형태로 존재해야 국가의 운영이 평화로울 수 있다는 의미다. 수긍할 수 있는 말 성호사설 - 강명관, 성호 세상을 논하다 52

53 이다. 하지만 성호는 토지의 균등한 소유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 한다. 왜냐? 이 사람의 토지를 빼앗아 저 사람에게 줄 수가 업는 법이니, 그것은 각자 자기가 점유한 토지를 자기의 소유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토지를 사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토지의 균등한 분배는 불가능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성호는 말한다. 토지는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무릇 천하의 전지 田 地 는 왕의 땅이 아닌 것이 없다. 백성들이 각각 그 전 지를 자기 이름으로 차지 하고 있는 것은 왕의 땅을 한 때 강제로 점유하 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원래 본 주인이 아닌 것이다. 비유컨대 아 버지의 살림살이 도구를 여러 자식들이 나누어 차지한다고 하자. 어떤 자식은 많이 차지하고 어떤 자식은 적게 차지하겠지만, 아버지가 골고루 나누어 가지라고 명한다면 많이 차지한 아들이 감히 그냥 뻗대며 차지하 고 있지 못하는 법이다. ( 均 田 /제7권 인사문) 모든 땅이 왕의 것이란 생각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토지 공개념이다. 토 지의 사유란 남의 땅을 한때 강점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어찌 땅만 그렇 겠는가. 인가의 삶 역시 장마 뒤 숲 속에 피었다가 사그라지는 버섯과 다 를 바 없다. 잠시 세상에 머무르고 떠날 인간이 자연 을 소유한다는 성호사설 - 강명관, 성호 세상을 논하다 53

54 것은 실없는 농담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토지는 원척적으로 사 유할 수없는 것이다. 이 탁월한 발상을 현실에 적용하려 한 사람이 있었 다. 성호가 인용하는 왕망( 王 莽 BC45~AD23)이다. 왕망은 천하의 전지를 왕전 王 田 이라 했으니, 토지는 사유되는 물건이 아님을 선언하고 부자의 토지를 빼앗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려고 했다. 균전론의 핵심 곽우록에서 성호의 균전론의 핵심은 이렇다. 먼저 한 가족이 평균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재산을 계산해서 그것에 맞추어 일정한 토지를 1호 戶 의 영업전( 永 業 田 )으로 삼는다. 영업전은 영구히 농사를 지어먹을 수 있는 전지 田 地 란 뜻이다. 이렇게 법을 정하여 실행하되 법을 시행할 즈음 땅을 많이 가진 자에게서 땅을 빼앗지 않고 땅을 못 가진 자에게도 영업전보다 더 주지 않는다. 땅을 많이 가져서 팔고자 하는 사람은 영업 전을 제외하고는 허락한다. 토지의 매매를 자유롭게 하되, 오직 그 매매 에 영업전이 포함되어 있는지만 철저히 살핀다. 만약 영업전이 포함되었 다면 그 땅을 사는 자도 처벌하고 파는 자도 처벌한다. 이렇게 영원히 팔 지 못하는 토지가 있으면 결국 토지의 소유는 균등해진다. 왜냐? 파는 자는 항상 빈민이다. 부자들은 빈민의 땅을 사들여 토지를 넓힌다. 그런 데 빈민이 땅을 팔지 못하게 하면 부자들은 땅을 넓힐 수가 없게 된다. 빈민의 토지는 근검에 의해 조금 늘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부자들의 넓 성호사설 - 강명관, 성호 세상을 논하다 54

55 빈민의 토지는 근검에 의해 조금 늘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부자들의 넓 은 땅은 상속을 통해 쪼개진다. 이렇게 되면 결국 모든인민이 균등한 토 지를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이 균전론의 대략이다. 시행할 수 없을 것이다. 성호는 한민명전 에서 자신이 균전론을 저술했지만 천천히 오랜 시 간 실행한 뒤라야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반드시 그 계획을 저지하는 자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반드시 그 계획 을 저지하는 자가 나올 것이니 시행할 수 없기는 매한가지다 라고 말하 고 있다. 그 역시 실현이 불가능한 일인 줄 알았던 것이다. 다만, 사람 들이 혹 균전론을 지녀 바꾸지 않는다면, 반드시 도움이 되는 방도일 것 이다 라 말했다. 그것이 헛된 희망이었음은 후대의 역사가 입증하고 있 다. 개혁의 아이디어를 실천할 정치세력이 없었던 것이다. 성호사설 - 강명관, 성호 세상을 논하다 55

56 성선설과 사단칠정논쟁-유림 유림(최인호) :34 성선설과 사단칠정 논쟁 퇴계 이황 1. 맹자의 네 가지 善 의 단서( ( 四 端 ) 성선설과 사단칠정논쟁-유림(최인호) 56

57 맹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차마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 不 忍 人 之 心 )을 가지고 있다. 선왕들에게는 차마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었으므로 차마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정치( 不 忍 人 之 政 )를 하였다. 차마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차마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 는 정치를 실천한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손바닥 위에서 움직이는 것 같이 쉬울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차마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근거에서이다. 만약 지금 어떤 사람이 문득 한 어린아이가 우물 속으로 빠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면, 누구나 깜짝 놀라 며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되는 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기 위해서가 아니 고, 마을 사람과 친구들로부터 어린 아이를 구했다는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며 어린 아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싫어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다. 이것을 통해서 볼 때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惻 隱 之 心 )이 없다면 사 람이 아니고, 부끄러워하는 마음( 羞 惡 之 心 )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 辭 讓 之 心 )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 是 非 之 心 )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惻 隱 之 心 羞 惡 之 心 辭 讓 之 心 是 非 之 心 仁 義 禮 智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인( 仁 )의 단서( 端 )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 義 )의 단서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 禮 )의 단서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 智 )의 단서이다. 사람이 네 가지 단서( 四 端 )를 가지고 있는 것 은 그가 사지( 四 肢 )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이 네가지 단서를 가지고 있는데도 자신은 선을 실천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해치는 자이고, 자기의 군주는 선을 실천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의 군주를 해치는 자이다. 무릇 나에게 갖추어져 있는 네가지 단서를 모두 확대시켜 가득 차게 할 줄 알면 마치 불이 타오르기 시작 하고 샘이 쏟아나기 시작하는 것과 같아 진다. 진실로 그것을확대시켜 가득 차게 할 수 있으면 천하라도 보존할 수 있고, 만일 확대시켜 가득 차게 하지 않으면 부모조차도 부양 할 수 없다. <해설> 맹자는 여기에서 유명한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 孺 子 入 井 ) 譬 喩 를 통해 자신의 근본사상인 성선 론( 性 善 論 )을 주장하고 있다. 맹자는 사람은 누구나 나면서부터 선한 본성과 그것에 근거한 선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맹자는 위에서 든 사건에서처럼 어떤 사람이든 어린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 면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어린아이를 구하기 마련이라고 한다. 그것은 이해득실을 계산한 결과 나온 의도적인 행위가 아니라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행위이다. 따라서 맹자는 그것이 바로 사람들에게 타고나 성선설과 사단칠정논쟁-유림(최인호) 57

58 면서부터 서한 본성이 있다는 증거라고 본다. 즉 사람의 내면에 갖추어져 있는 선한 본성이 특정한 상황을 경험할 때 순간적으로 선한 마음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선한 마음은 선한 본성이 드러난 단서이자 싹이 며 그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싹이 자신에게 있음을 확신하고 그것을 기 르는 노력이다. 작게는 자신의 부모를 잘 봉양하는 것에서부터 천하는 잘 다스리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성패는 바로 이러한 싹을 키우는 노력 여부에 달려 있다. 孟 子 曰, 人 皆 有 不 忍 人 之 心. 先 王 有 不 忍 人 之 心, 斯 有 不 忍 人 之 政 矣. 以 不 忍 人 之 心, 行 不 忍 人 之 政, 治 天 下 可 運 於 掌 上. 所 以 謂 人 皆 有 不 忍 人 之 心 者, 今 人 乍 見 孺 子 將 入 於 井, 皆 有 惕 惻 隱 之 心. 非 所 以 交 於 孺 子 之 父 母 也, 非 所 以 要 譽 於 鄕 黨 朋 友 也, 非 惡 其 聲 而 然 也. 由 是 觀 之, 無 惻 隱 之 心, 非 人 也, 無 羞 惡 之 心, 非 人 也, 無 辭 讓 之 心, 非 人 也, 無 是 非 之 心, 非 人 也, 惻 隱 之 心, 仁 之 端 也, 羞 惡 之 心, 義 之 端 也, 辭 讓 之 心, 禮 之 端 也, 是 非 之 心, 智 之 端 也. 人 之 有 是 四 端 也, 猶 其 有 四 體 也. 有 是 四 端 而 自 謂 不 能 者, 自 賊 者 也, 謂 其 君 不 能 者, 賊 其 君 者 也. 凡 有 四 端 於 我 者, 知 皆 擴 而 充 之 矣, 若 火 之 始 然, 泉 之 始 達. 苟 能 充 之, 足 以 保 四 海, 苟 不 充 之, 不 足 以 事 父 母. 惕 : 두려워서 조심함 2. 사단칠정론 1 朱 子 의 사단칠정론 주자의 성즉리( 性 卽 理 ) 사상은 맹자의 성선설( 性 善 說 ) 로 직결되는 것이다. 주자가 理 의 선재( 先 在 ) 를 주장하고, 이를 형이상자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성선설에 따른 도덕과 윤리를 사상의 중심에 놓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특히 주자는 맹자의 사단설에 주목하고 있었다. 주자는 맹자가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는 성선설의 근거로 예시하고 있는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 비지심은 情 이고, 이러한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인, 의, 예, 지는 性 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자는 性 과 情 의 관계를 발( 發 )과 미발( 未 發 ), 즉 체( 體 )와 용( 用 )의 관계로 보고 있었다. 인간이 보고, 듣 고, 느낄 수 이쓴 것은 모두 情 때문이며, 이러한 감정이 발현된 것은 性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고 있었던 것이다. 주자는 이러한 情 의 총칭을 七 情 으로 구분하고 있었다. 七 情 이란 원래 예기( 禮 記 ) 에 나오는 인간이 가진 일곱 가지 감정을 말하는데, 이는 기쁨( 喜 ), 분노( 怒 ), 슬픔( 愛 ), 두려움( 懼 ), 좋아함( 愛 ), 미워함( 惡 ), 욕망( 慾 ) 등 인간 감정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칠정은 다만 일곱 가지로 한정한 인간의 심리상태라기보다는 인간이 가진 감정의 총칭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주자는 맹자가 주장한 사단을 이의 발현( 理 之 發 ) 으로, 七 情 은 기의 발현( 氣 之 發 ) 으로 설명하고 양 자를 구분해놓고 있는데, 사단은 理 의 발현이므로 항상 선하지만 칠정은 이치에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성선설과 사단칠정논쟁-유림(최인호) 58

59 수도 있으므로 不 善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자는 마음이 사물에 감촉되지 않은 상태, 즉 마음의 미발( 未 發 )을 性 이라 하고, 마음이 사물에 이미 감 촉된 상태, 즉 마음의 이발( 已 發 )을 情 이라고 규정하면서 사단은 이의 발현이요, 칠정의 기의 발현이 다 ( 四 端 是 理 之 發 七 情 是 氣 之 發 )라고 정의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주자가 성선설을 강조하기 위해서 맹자의 사단과 [예기( 禮 記 )]의 [예운]에 나오는 칠정을 끌어들여 소위 四 端 七 情 의 이론적 설명을 理 氣 論 으로 풀어 설명한 것은 유교를 수양의 도리로까지 확대하고 인간 의 심성문제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위함이었으니, 주자는 이처럼 수평적으로 송대의 성리학을 총 정리하였을 뿐 아니라 공자의 인사상과 맹자의 성선설을 수용함으로써 수직적으로도 유가사상을 총망라하 였으니, 주자야말로 유교에 있어 직선, 평면, 공간에 있어서의 기준이 되는 점, 즉 좌표를 설정한 최고의 집대성자인 것이다. 그러나 막상 주자는 四 端 七 情 論 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이론을 제시하지 않고 깊이 있게 다루지 않고 있었 는데 사단칠정론이 특히 우리나라 성리학에 있어 최대의 쟁점으로 부각하게 된 것은 이처럼 퇴계와 고봉 간에 오간 4년 동안의 치열한 논쟁 때문이었던 것이다. 2 퇴계의 사단칠정론의 수정 정지운( 鄭 之 雲 : 1509~1561)의 천명도설( 天 命 圖 說 )은 결국 天 則 理 也 라는 주자의 철학을 도형으로 형상 화시킨 것이다. 四 端 은 理 에서 나오고 七 情 은 氣 에서 나온다 ( 四 端 發 於 理 七 情 發 於 氣 ) 퇴계는 이는 지나치게 단순명료하여 잘못하면 큰 오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명제라고 생각하고 다음과 같이 정정하여 발표하였다. 사단은 理 의 드러남이요, 칠정은 氣 의 드러남이다. ( 四 端 理 之 發 七 情 氣 之 發 ) 理 와 氣 가 서로 호발( 互 發 )하는 근원이 된다는 내용상의 의미는 같다. 그러나 퇴계는 도덕적 이상이 드러 나서 이발( 理 發 )이 되고, 욕망이나 감정이 드러나서 기발( 氣 發 )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규정하였던 것 이다. 천지간에 理 가 있고 氣 가 따른다. 理 가 있으면 곧 氣 가 조짐하고 氣 가 있으면 곧 理 가 따른다. ( 有 理 便 有 氣 朕 焉 有 氣 便 有 理 從 焉 ) 그러고 나서 퇴계는 이 난해한 명제를 다음과 같은 쉬운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 다. 理 는 기의 장수( 帥 )가 되고, 氣 는 졸도( 卒 )가 되어 천지에 공을 이룬다. 퇴계의 비유는 理 는 기를 부리는 장수요, 기는 이를 따르는 졸병이기 때문에 理 가 기를 주재하고 기는 理 에 순종한다 는 뜻이었던 것 성선설과 사단칠정논쟁-유림(최인호) 59

60 이다. 따라서 理 는 그 자체로는 선할 수 밖에 없으며, 기는 이의 부림을 받음으로써 이의 주재( 主 宰 )에 따 라서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으니, 사람은 마땅히 경( 敬 )을 중심으로 수양으로 氣 를 다스리고 理 를 궁구해야 하는 것이었다. 고봉 기대승 3 高 峯 奇 大 升 의 반론 고봉은 모든 현상은 이와 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찌 형이상학적인 이가 형이하학적인 기의 현상세계 에 스스로 드러낼 수 있겠는가 라고 반문하면서 리와 기는 퇴계가 생각하듯 장수와 졸병의 종속관계나 혹은 병행관계가 아니라 포함관계( 因 說 )이므로 이분화될 수 없음을 문제제기하였던 것이다. 또한 퇴계의 四 端 은 리의 드러남이요, 칠정은 기의 드러남이다 라는 명제가 옳다면 사단은 기없는 리 가 되어 이는 죽은 물건( 死 物 )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모순점을 지적하였던 것이다. 고봉은 주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 주목하고 있었다. 일찍이 주자는 [ 朱 熹 集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 다. 理 와 氣 는 결단코 두 개의 物 이다. 다만 사물 위에서 보면 그 둘은 나누어지지 않은 채 각각 한 곳에 있다. 성선설과 사단칠정논쟁-유림(최인호) 60

61 ( 所 謂 理 與 氣 決 是 二 物 但 在 物 上 看 則 二 物 渾 淪 不 可 分 開 各 在 一 處 ) 주자는 자신의 語 類 에서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결정 짓고 있다. 리가 있으면 반드시 기가 있으니, 분리해서 논할 수 없다. 모든 것이 理 이고, 모든 것이 기이다. 어떤 것이 리가 아닌 것이 없으며, 기가 아닌 것이 있겠는가.( 在 是 理 必 有 是 氣 不 可 分 說 都 是 理 是 氣 那 箇 不 是 理 那 箇 不 是 氣 ) 그리고 주자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理 와 氣 는 분리된 적이 없다( 理 未 嘗 離 乎 氣 ) 고봉은 주자의 이러한 학설을 통해 퇴계의 理 는 氣 의 장수가 되고, 기는 이의 졸도가 된다 는 퇴계의 理 氣 二 元 論 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을 가했던 것이다. 이처럼 퇴계와 고봉 사이에 벌어진 이른바 사칠논변 은 명종 14년(1559년)부터 시작되어 명종 17년(1562 년)까지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퇴계의 나이 59세때부터 62세 때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의 논쟁은 고봉으로 부터 3회의 편지와 퇴계로부터 3회, 도합 6회의 논쟁으로 꼬박 4년간이나 전개되었던 것이다. 朱 子 를 신봉 하는 같은 성리학자이면서도 퇴계와 고봉, 두 사람 사이에 4년간이나 전개되었으며, 후세의 이른바 주리론 ( 主 理 論 )과 주기론( 主 氣 論 )의 사상적 대립을 이끌어낸 발단이 되었고, 퇴계의 理 氣 二 元 論 과 율곡의 理 氣 一 元 論 을 탄생시킨 분수령이 됨으로써 한국철학의 발전에 주춧돌을 놓는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게 되는 것이 다. 4 퇴계의 재수정 퇴계가 고봉의 의견을 받아들여 자신이 수정하였던 四 端 은 理 의 드러남이요, 七 情 은 氣 의 드러남이다 (사단리지발 칠정기지발)란 명제를 또 다시 다음과 같이 재수정하였다. 四 端 은 理 가 드러나자 氣 가 그것을 따르는 것이고, 七 情 은 氣 가 드러나자 理 가 그 위에 올라타는 것이 다.( 四 端 理 發 而 氣 隨 之 七 情 氣 發 而 리 乘 之 ) 마침내 제3의 명제를 결정지은 퇴계의 理 氣 論 을 보면 고봉의 의견을 받아들여 理 와 氣 를 전과 같이 둘로 확실하게 나눈 것이 아니라 서로 따르고( 隨 ) 올라탔음( 乘 )이라는 비유를 통해 理 와 氣 가 동시동 소( 同 時 同 所 )임을 수용하였던 것이다. 즉 자신의 理 氣 互 發 說 에 고봉의 理 氣 兼 發 說 을 포함하여 수용하였던 것이다. 理 와 氣 를 말을 타고 가는 사람 으로 비유하여 자신의 理 를 말을 부리는 사람으로, 氣 는 말로 성선설과 사단칠정논쟁-유림(최인호) 61

62 비유하고 있다. 퇴계가 자신의 理 氣 二 元 論 을 말을 탄 사람은 理 로 말은 氣 에 비유한 것은 어디까지나 理 는 貴 하고 氣 는 賤 하게 보는 理 優 位 說 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즉 사람이 말을 타고 달릴 때 말이 순조롭게 의지에 순응하여 달리는 경우는 理 에 氣 가 순응하는것이며, 사람의 의지를 무시하며 말 스스로의 의지로 달릴 때 에는 氣 가 理 에 불응하는 것이니, 사람은 마땅히 理 로써 七 情, 즉 인간의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음인 것이다. 퇴계에 있어서 理 氣 論 은 주자가 말하였던 만물이 갖고 있던 원리 이기보다는 칠정을 극복하고 사단을 확충하면 하늘과 내가 다름이 없는 천아무간( 天 我 無 間 ) 의 성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수양론과 일치하 고 있음인 것이다. 5 고봉의 절충안 스승께서 말씀하신 사단은 이가 드러나자 기가 그것을 따르는 것이고, 칠정은 기가 드러나자 이가 그 위 에 올라탄 것이다( 四 端 理 發 而 氣 隨 之 七 情 氣 發 而 理 乘 之 ) 란 두 구절은 또한 매우 정밀합니다. 그러나 저의 못난 생각으로는 이 두가지 뜻은 칠정에는 理 와 氣 가 다 있지만 四 端 에는 오직 이발( 理 發 ) 의 측면만 강조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므로 大 升 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개정하였으면 합니다. 情 이 발할 때에는 理 가 동하매 기가 함께 가고 혹은 기가 감( 感 )함에 理 가 탄다( 情 之 發 也 或 理 動 而 氣 俱 或 氣 感 而 理 乘 ) 그러나 고봉의 이러한 折 衷 案 은 퇴계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퇴계 역시 이 치열한 논쟁에 대해 서 이제 그만 끝내고 싶은 厭 症 을 느낀 것처럼 보인다. 의리를 분석하여 밝히는 일은 본래 더없이 정밀하 고 해박해야만 하는데도 학문을 충실하게 하는데는 조금도 도움되는 것이 없고 다만 부질없는 다툼으로 고귀한 학문의 중요한 금기를 범하는 것이 될 뿐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퇴계는 4년여에 걸 친 두 사람의 논쟁을 그만 그치자는 내용의 절구 한 수를 지어 고봉에게 보낸다. 짐을 싣는 두 사람 경중을 다투지만 생각하니 높고 낮음 같아져버렸네 이쪽을 누르고 저쪽으로 돌리자면 짐의 무게 언제나 공평해질까 하하 성선설과 사단칠정논쟁-유림(최인호) 62

63 6 율곡의 理 氣 一 元 論 퇴계의 이기이원론에 대해서 율곡은 퇴계의 병통은 오로지 理 氣 互 發 에 있으니 참으로 애석하도다 라고 평가하고 이기일원론을 주장하였다. 율곡의 비판은 퇴계가 주장하였던 말의 몸은 문제의 대상에서 제외되 고 오직 사람과 말의 의지만을 집약시킨 수양론에 대한 비판이었다. 어쨌든 문밖의 목적지로 달리는 것은 사람의 의지도 아니고 말의 의지도 아닌 말의 몸, 그 자체이므로 사람의 의지인 理 와 말의 의지인 氣 로 이 분화시키는 것은 명칭과 이치를 모두 잃어버려 학설이 될 수 없음 ( 各 理 俱 失 不 成 說 話 矣 )이라고 주장 하였던 것이다. 7 퇴계에 대한 중국 일본의 평가 중국 근대사상가인 양계초( 梁 啓 招 )가 퇴계를 孔 夫 子 와 같은 칭호인 李 夫 子 로 표현함으로써 퇴계를 유학의 완성자로 성인의 반열에 올렸던 것은 격물치지의 학구정신었다. 퇴계의 유학은 일본으로 건너가 제2의 王 仁 이라고 불리울 만큼 일본 정신사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일본근세유학의 개조였던 후지와라 세이카는 퇴계가 발문을 붙여서 간행한 [연평문답]을 열독하였 고, 일본 근세 유학을 열었던 야마사키안사이는 퇴계를 주자의 直 弟 子 조선의 제일 이라고 불렀 다. 성선설과 사단칠정논쟁-유림(최인호) 63

64 야율초재-한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함은 한가지 해로운 일을 제거함만 못 하다(최인호 유림) :12 (칭기스 칸) 耶 律 楚 材 - 최인호 유림 興 一 利 不 若 除 一 害 "한 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한 가지의 해로운 일을 제거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한 가지 일을 만 들어내는 것은 한 가지 일을 줄이지 못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야율초재-한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함은 한가지 해로운 일을 제거함만 못하다(최인호 유림) 64

65 역사상 가장 강력하였던 몽골제국의 세조 쿠빌라이의 뛰어난 정치고문가였던 야율초재는 때문에 인류사상 최고의 정치가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요나라의 왕족 출신으로 대대로 금나라를 섬겼으나 몽고군이 요나 라를 점령하자 칭기스 칸에게 항복한 인물로 군정과 민정을 분리하여 군관이 민중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 고 세제를 정비하여 제국의 경제적 기초를 확립하였던 대정치가였던 것이다. 야율초재는 연경이 몽고군의 손에 들어갔을 때 포로가 되었으나 그의 명성을 들어왔던 칭키스칸이 간곡히 불러 등용했던 사람이었다. 천성이 총명하고 충직하여 직언을 서슴치 않았고, 권세와 이익에 굴하지 않았 다. 아버지 칭키스칸과 오고다이칸 2대에 걸쳐 재상으로 봉직하였는데, 오고다이칸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 위에 오르자 야율초재에게 물었다. 나는 아버지가 이룩한 대제국을 개혁하려 한다. 좋은 방법이 있으면 말해보라 이에 야율초재가 대답했다. 한 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한 가지의 해로운 일을 제거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한 가지 일을 만들어내는 것은 한 가지 일을 줄이지 못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야율초재는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개혁이라면 새로운 사업이나 제도를 시작하여 백성을 번거롭게 만드는 것보다는 원래 있던 일 가운데서 해로운 일, 필요 없는 일을 제거하는 것이 훨씬 백성들을 위한 일이라는 결론을 피력하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그 유명한 한 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함은 한 가지의 해로운 일을 제거함만 못하다( 興 一 利 不 若 除 一 害 )는 정치철학이 탄생된 것이었다. 이는 한 마디로 야율초재의 정치관을 나타내는 말로 조광조가 시행하였던 정치개혁과 반대되는 이론이었던 것이다. 조광조는 썩어빠진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새로은 제도를 창출해내었고, 이를 강력하게 추진해 나갔다. 그러나 대정치가 야율초재의 개혁 방법은 무엇을 하기 위한 개혁이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는 무위의 개혁이었으며, 이와는 반대로 조광조의 개혁은 끊임없이 일을 만들고 새로운 방법을 창안해내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유림 2권 p.273~274) 야율초재-한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함은 한가지 해로운 일을 제거함만 못하다(최인호 유림) 65

66 징키스 칸과 야율초재 징키스 칸과 야율초재 (인터넷에서 퍼옴) 나폴레옹은 115만 평방킬로미터의 땅을 정복했다. 그보다 한 세기 뒤의 히틀러는 219만 평방킬로미터를 지 배했다. 이 두 사람의 정복 면적을 합한 것보다 더 넓은 땅을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대왕이 지배했다. 그 리고 이 세 사람이 차지했던 땅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넓은 777만평방 킬로미터를 차지한 사람이 징키스 칸이다. 징키스 칸의 생애에 관해서는 불분명한 점이 많고 다양한 해석과 모습으로 역사에 등장하였다. 대부분의 모습은 잔인한 정복자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문화재를 파괴한 미개인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징키스 칸의 행동은 적에게 어떠한 동정도 베풀지 않는 초원의 엄격한 전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현재의 시각에서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 글에서는 징키스칸과 그의 참모이자 몽골제국을 단순한 유목국가를 벗어나 중국 역사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게 만든 개혁자 야율초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징키스 칸 생애(1155?~ ) 몽고고원의 광활한 초원은 예부터 여러 유목민족들 사이의 생활 터전이자 전쟁의 장소였고 이 지역에서 분출되어 나온 기마 집단은 아시아와 유럽 각지로 흘러 들어갔다. 초원의 지배자는 수시로 바뀌었고 민족 적, 언어적 구분은 점점 엷어지게 되었다. 1160년대 초 몽고국가의 붕괴로 몽고족의 정치, 사회, 경제적인 몰락을 가져왔고, 분열과 분쟁이 몽고부족들 사이에 만연하였다. 당시 고원은 서른 개 정도의 유목부족으 로 구성되어 있고 다섯 개의 주요 세력권으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의 중국은 금나라가 차지하고 있었고 농경문화를 토대로 살아온 이들은 유목세력을 북방으로 몰아넣고 분열시켜 교류하게 함으로 유목 야율초재-한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함은 한가지 해로운 일을 제거함만 못하다(최인호 유림) 66

67 세력의 이동성을 그들 내부로 한정 시켰다. 징키스 칸의 아버지 예수게이는 한때 몽골의 지도자이자 짧은 동안이나마 몽골 전체를 다스린 적이 있었 던 카불칸의 손자로 메르키트 족의 아내였던 헤엘룬을 납치해서 징키스칸 즉, 테무친을 낳는다. 태어났을 때 왼손에 핏덩이를 쥐고 태어나 최고의 쇠로 만든 아이 라는 테무친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테무친 이 8살이 되자 신부를 구해주고 돌아오는 길에 타타르족에게 살해를 당한다. 예수게이의 죽음 후 몽골부의 사람들은 테무친의 가족들을 버리고 테무친은 가장이 되어 포로가 되기도 하고 여러 동지들을 만나며 성 장한다. 1206년 내륙아시아 여러 민족의 칸으로 선출 되어 대몽골 제국을 만들고 북방 산림부족( 山 林 附 族 ) 평정으로 징키스 칸의 대외 원정이 시작된다. 서하를 직접 침공하고 1209년 조공을 바치게 하고 몽골 제국 을 성립하기 전에 멸망시킨 나이만의 왕자 쿠출루크가 서요( 西 遼 )로 망명하여 그 나라를 약탈하였기 때문 에, 부장 제베를 파견하여 토벌한 후에 병합하였다(1218). 또 서아시아 이슬람 세계의 패자( 覇 者 ) 호레즘국 과 교역하려고 파견한 사절단이 살해되자, 이것을 계기로 서정( 西 征 )을 시작한다(1219). 오트랄 부하라 등의 도시를 공략하였고, 제베와 수부타이가 인솔한 별군( 別 軍 )은 호레즘 국왕 무하마드를 카스피해상의 작은 섬으로 내몰아 굶어 죽게 하였고(1220) 다시 캅카스산맥을 넘어 남러시아로 출동, 러시 아 제공( 諸 公 )의 연합군을 하르하 강변에서 격파하였으며(1223), 크림을 정복한 후 본군에 합류하였다. 본 군은 그에 앞서 발흐를 점령하고 무하마드의 아들 잘랄웃딘과 인더스 강변에서 싸워 크게 격파하였다 (1221). 그러나 뜨거운 열기에 견딜 수 없어 철군하기로 결정하고, 차가타이 오고타이군과 합세하여 귀국하였다 (1225). 이때 이슬람교도의 공예가와 장인( 匠 人 )의 기술을 높이 평가하고 그들을 포로로 데리고 왔다. 정복 한 땅은 아들들에게 각각 분할해주어 나중에 한국( 汗 國 )을 이룩하게 하였으나, 몽골 본토는 막내아들 툴루 이에게 주기로 하였다. 1226년 호레즘 원정에서 귀환한 징키스칸은 서하에 대한 공격들 재개하여 서하를 명망 시키고 하남성의 개 봉( 開 封 )으로 남천한 금에 대한 공격에 나서려 할 즈음 낙마에서 입은 내상으로 인해 1227년 8월 18일 자신 이 세운 주둔지에서 죽었다. 남편으로서의 징키스칸 징키스칸의 아내 보르테는 메르키트족 에게 잡혀가 칠게르의 아내가 됐다가 9~10개월 만에 돌아와 바로 야율초재-한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함은 한가지 해로운 일을 제거함만 못하다(최인호 유림) 67

68 큰아들 조치를 낳았다. 조치가 징키스칸의 아들인지, 칠게르의 아들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적의 첩실이 되 어 능욕 당하고 돌아온 보르테를 소외하지 않았고 곧 태어난 아들에게 몽골족에게 손님처럼 찾아온 아이 라 하여 조치(나그네)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징키스칸 에게는 5명의 황후가 있었지만 정황후( 正 皇 后 )는 항상 보르테였고, 보르테가 낳은 4아들중의 3남 오고타이는 몽골의 칸이 된다. 전쟁터 속의 징기스칸 징기스칸은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전선에 나가 야영을 하면 사병들과 함께 숙식하면서 자기 짐은 직접 메고 다녔다. 적으로부터 빼앗은 전리품은 군사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으며, 병 없이 오래 산다고 하여 장춘진인( 長 春 眞 人 )이라 불리던 중국의 도학자 구처기( 丘 處 機 )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고비사막 북쪽의 황량한 몽골 야생지에서 태어나 거기서 살아왔다. 나는 꾸미기를 싫어하고 단순 한 것을 좋아한다. 실제로 지금까지 내가 입은 옷은 소치기나 말치기와 똑같은 누더기였고, 내가 먹는 음 식도 그들과 똑같다. 전쟁이 나면 나는 항상 앞에서 싸웠다. 그 결과 천하 육방의 모든 세상이 나의 통치 에 복속하고 있다. 나는 백성들을 갓 태어난 내 아이들처럼 돌보고, 병사들을 내 형제같이 사랑한다....( 省 略 ) 또한, 부하의 어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지휘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예수타이만큼 용맹한 사람은 없 어. 그만큼 힘이 쎈 사람은 아주 드물지. 하지만 그는 자기가 오랜 행군에도 지치지 않고, 갈증과 허기를 잘 느끼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에게는 높은 자리를 맡 길 수가 없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아랫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라고 하며 천호장( 千 戶 長 )에 서민출신을 많이 등용했다. 원수는 철저히 갚는다. 징기스칸은 부친을 살해한 타타르족을 1202년에 점령하여 멸망시키고 전후처리 회의에서 타타르는 옛부 터 우리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들을 죽여 왔다. 고 말하고, 타타르인들을 수레바퀴에 대어보고 바퀴보 다 키가 큰자는 모두 죽여라. 완전히 절멸될 때까지 모두 죽여라. 남은 자들을 노예로 삼아라. 라고 하여 타타르족은 멸족 되었다. 또한 1204년 메르키트족을 멸망시키고 임금 토크토아의 아들들이 도망가자 1205년 명장 수베테이를 불러 야율초재-한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함은 한가지 해로운 일을 제거함만 못하다(최인호 유림) 68

69 도망한 자들을 모두 잡아 죽이라고 명령했다. 정복지에 몽골의 전통과 문화를 강요하지 말라. 징키스칸은 유목민족의 신앙인 샤머니즘을 다른 민족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복지 백성들에게 그들이 믿던 신앙을 계속 믿도록 허용하고 장려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서요에서의 불교장려다. 나이만 왕자 출신의 황제 쿠출룩이 기독교를 강요하고 불교를 탄압했기 때문에 불만이 많은 서요인들에 대해 기 존의 종료를 믿도록 하였다. 또한 외국을 점령하면 일반적으로 현지 관료들을 행정관으로 임명, 그들에 의한 자치를 허용하여 질서 유 지와 조공 수행을 담당하게 했다. 이는 점령지 백성에 대해 몽골의 명령에 대한 철저한 복종, 몽골인 지방 관리관 다루가치에 대한 존중에 대한 요구이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다루가치가 거느리고 있는 몽골군을 동원하여 비 협력자 또는 반란음모 혐의자와 그 가족, 친척, 인척과 주민들을 공개적으로 대량 학살하고 가산을 약탈하는 방식으로 보복이 이루어 졌다. 남의 말을 잘 들으면 아는 것이 늘고 현명해진다. 당시 몽골의 인구는 100만에서 200만 정도로 적었고 교육기관도 없었기 때문에 능력 있는 인재가 없었다. 부족국가를 만들고 통일국가를 세운 뒤 세계정복에 나서자, 새로 생겨난 문제들을 처리해 나갈 행정, 문화 분야의 인재가 필요 했고 거란인 옐루아하이, 옐루투와 형제와 나이만의 재상 타타통가, 중국의 선비관료 야율초재를 등용했다. 징키스칸이 서하에서 사냥을 하다가 혼자 있는 아이를 데려다 양자로 삼고, 차간(Tsagan)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감주( 甘 酒 )를 공격할 때 데려갔다. 차간의 아버지는 감주방위를 맡은 서하의 장수로 몽골군에게 항복을 하려했지만 서하군 장병들이 그를 붙잡아 군법에 따라 처형했다. 감주가 몽골군에게 항복하고 징기스 칸이 저항을 계속한 도시에 대한 처리 관례에 따라 모든 주민을 죽 이고 재산을 약탈한 뒤, 집과 시설을 모두 불태워 다시는 아무도 살지 못하게 하라. 고 지시했다. 그러 나 차간이 항전의 책임은 나라에 있지, 주민들에게는 없다며 말하자 너는 아직 어리지만 생각이 올곧다. 아버지에 대한 원수를 용서하라고 하니, 가상하다. 네말대로 하겠다. 라고 하여 명령을 취소하고 차간 부친의 처형을 주도한 장교 36명만 처형했다. 후에 차간은 징키스 칸 천호대의 지휘관이 된다. 야율초재-한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함은 한가지 해로운 일을 제거함만 못하다(최인호 유림) 69

70 야율초재(1189 ~ 1243) 興 一 利 不 若 除 一 害 ( 한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함은 한 가지의 해로운 일을 제거함만 못하다.) 몽골 제국의 2대 칸인 오고타이칸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오르자 야율초재에게 물었다. "나는 아버지가 이룩한 대제국을 개혁하려 한다. 좋은 방법이 있으면 말해보라." 이에 야율초재가 대답했다. "한 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한 가지의 해로운 일을 제거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한 가지 일을 만 들어내는 것은 한 가지 일을 줄이지 못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이는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개혁이라면 새로운 사업이나 제도를 시작하여 백성을 번거롭게 만드는 것보다 는 원래 있던 일 가운데서 해로운 일, 필요 없는 일을 제거하는 것이 훨씬 백성들을 위하는 일이라는 의미 이다. 정복자를 문명화시킨 절세의 문신 ( 文 臣 ) 야율초재( 耶 律 楚 材 : 1189~1243)의 가문은 본래 여진족의 나라 금( 金 )에 멸망한 거란족의 요( 遼 )나라 황족 후예면서도, 대 학자였던 아버지 야율이( 耶 律 履 )는 금나라 조정에서 재상까지 지냈다. 그 역시 17세에 금 나라에 출사하여 칭기즈칸의 군대에 수도 연경(지금의 베이징, 北 京 )이 함락되었던 25세 때까지 금나라 조 정의 벼슬살이를 했다. 청년기에 접어들 무렵 이미 그는 천문, 지리, 율력, 유학, 산술을 비롯하여 불교와 도교 그리고 의학, 점복 등에 상당한 조예를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노래와 악기연주에도 뛰어났다. 그리고 한어( 漢 語 :중국어)와 거란어는 물론이고 여진어, 몽골어에도 두루 정통했다. 금나라 조정이 몽골군의 기세에 쫓겨 남쪽으로 밀려나 수도를 변경( 京 : 지금의 카이펑, 開 封 )으로 옮겼을 야율초재-한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함은 한가지 해로운 일을 제거함만 못하다(최인호 유림) 70

71 때, 그는 따라가지 않고 불교에 귀의했다. 칭기즈칸 3년인 1218년 연경을 장악한 칭기즈칸이 천하의 인재 를 구하고자 물어보니 사람들은 모두 야율초재를 지목했다. 야율초재를 처음 만난자리에서 징기스칸은 말했다. 요와 금은 대대로 원수였다. 그대가 나를 도와준다면 나는 그대의 원한을 씻어주겠다. 그건 지난 일입니다. 제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저 역시도 금나라에서 벼슬을 했는데, 어떻게 군주를 원수로 삼겠습니까. 이후 칭기즈칸은 그를 긴 수염 이라는 뜻인 오도살합리 라고 부르며 비치그치(Bichighchi, 書 記 )에 임명되었고,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한 번은 활 솜씨가 뛰어나 칭기즈칸의 총애를 받는 상팔근 이라는 서하출신 장군이 여러 사람들 앞에서 교만하게 말했다. 지금은 무력을 사용할 때입니다. 야율초재 같은 약해빠진 유생이 전쟁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아무짝에 쓸모없는 사람을 대 칸께서는 너무 아끼시는 것 같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야율초재가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응수했다. 활을 잘 쏘려면 먼저 기술자가 훌륭하게 활을 만들어야 합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마치 천하를 얻는데 활 만드는 기술자 따위는 전혀 필요 없다는 말 같군요. 더군다나 천하를 말 위에서 얻을 수는 있지만 말 위에서 다스릴 수는 없는 법입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칭기즈칸은 후계자로 지목한 셋째아들 오고타이에게 이 사람은 하늘이 내게 주신 선 물이다. 너 역시 앞으로 나랏일과 군사작전에 대한 것은 모두 그와 상의해서 처리하도록 해라. 라고 했 다고 한다. 힘의 패권이 난무하는 세상에서의 문신 ( 文 臣 )의) 역할 징기즈 칸이 사후 유언에는 셋째 아들 오고타이가 2대 칸에 올라야 하는데 넷째 아들인 톨레이(예종)가 당 분간 국정을 대리했다. 야율초재는 오고타이를 재촉하여 다음 칸을 결정할 수 있게 몽골 최고부족회의인 쿠릴타이 를 되도록 빨리 열게 하고 회의를 연지 40일이 넘도록 결말을 보지 못하자 야율초재는 톨레 이를 찾아가 천문과 점복에 대한 해박한 이야기를 늘어놓고는 이번 기일이 지나면 더 이상 길일은 없 다 며 엄포를 놓았다. 이때 몽골귀족들이 믿는 미신을 교묘하게 이용했는데 톨레이는 대리를 끝내고 오 고타이의 등극 날짜가 정해질 수 있었다. 이어서 야율초재는 오고타이의 형인 차가타이에게 찾아가 형이 야율초재-한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함은 한가지 해로운 일을 제거함만 못하다(최인호 유림) 71

72 지만 군신관계에서는 신하인 만큼 동생의 즉위식에서 무릎을 꿇고 엄정한 예의를 갖추어 줄 것을 요구했 다. 후계구도가 확실해지자 몽골군은 본격적으로 중원정벌에 나서게 되었고, 일단 남송과 연합하여 간신히 명 맥을 유지하던 금나라를 공격했다. 그러나 금나라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고 몽골의 정예병과 남송의 군대 가 함께 공격을 하여도 전쟁은 3년 동안 계속 되었다. 1234년 수도 변경이 함락되고 기어이 금나라가 멸망 하자 몽골의 장군인 속불대가 끝까지 저항한 금나라의 도성을 철저히 파괴하고 사람들을 모두 도살하자고 건의했다. 칭기즈칸 이래 몽골군은 정복전쟁을 치르는 동안 미리 항복한 성들은 살려주지만 끝까지 저항 한 모든 도시는 철저히 파괴 하는 게 관습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야율초재는 오고타이에게 건의하였다. 우리 군사들이 이 땅을 얻기 위해 엄청난 피를 흘리며 전쟁을 치른 목적이 무엇입니까. 토지와 백성을 얻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백성을 모두 죽여 버리면 이 땅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더구나 변경은 한 나라의 수도입니다. 진기한 문물과 솜씨 좋은 기술자들이 이곳에 다 모여 있습니다. 만약 도시를 파괴하고 그들을 다 죽여 버리면 칸께서 얻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 않습니까. 오고타이 칸은 성에 진입하여 금나라의 황족만을 잡아 죽일 뿐, 백성과 물건엔 손대지 못하게 하며 이후부 터 점령지에서 관례대로 해오던 파괴행위와 대살육의 풍조가 사라지게 되었다. 오고타이 칸의 사후 야율 초재는 유학자로서 행정, 세제 등을 중원 식으로 바꾸려 노력했지만, 몽고의 지배층과 마찰을 빚게 되어 그 영향력이 축소되고 관직에서 쫓겨나 권력에서 소외된 채, 종실 왕공들이 득세한 토리가나( 脫 列 哥 那 - 太 宗 妃 ) 칭제 시대에 55세의 나이로 죽었다. 유교화와 중원화를 통해 제국건설 정벌과 통일은 많은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생기는 수많은 전쟁과 학살, 문 명파괴와 그 혼란을 이기고 하나의 정치체재로 단일화시키기 때문에 시대의 관점에 따라 많은 해석이 따 른다. 징키스칸에 대한 많은 일화와 평가는 주로 지배를 받아 피해가 컸던 러시아나 회교진영의 종교지식인들과 야율초재-한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함은 한가지 해로운 일을 제거함만 못하다(최인호 유림) 72

73 소련등인데, 이들은 약탈과 파괴를 즐기던 색한 이나 문명을 파괴한 미개한 악마 라는 표현까지 쓴 다. 그리고 긍정적인 평가로는 군사문제나 전쟁문제를 연구하는 병법 전문가들로 독특한 전략가와 정복자 라고 평가를 한다. 그리고 한 나라를 만든 왕의 옆에는 항상 슬기롭거나 지혜로운 충직한 신하들이 있다. 비록 야율초재는 공 식적인 권력을 가지고 휘두르지는 않았지만 인재를 보는 안목이 탁월한 징키스칸과 그의 아들 오고타이에 겐 책사이자 스승이었다. 야율초재가 몽골국의 안정을 위해 내새웠던 유교화( 儒 敎 化 )와 중원화( 中 元 化 )는 원 세종 쿠빌라이에게도 영향을 미쳐 자칫하면 한순간의 북방 유목민족의 중국 지배를 중국역사와 더 나 아가 세계사에도 몽골민족의 이름을 올리는 데에도 영향을 줬다. 야율초재-한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함은 한가지 해로운 일을 제거함만 못하다(최인호 유림) 73

74 공자 - 정치에서 명분을 세우는 것이 제일 중요 - 최인호 유림 :00 공자 - 정치에서 명분을 세우는 것이 제일 중요 (최인호 유림) 喪 家 之 狗 의 신세 공자가 또 다시 위나라를 찾아 갔을 때는 노나라의 애공 6년(BC 489년) 공자의 나이 63세였다. 56세에 시작 된 주유천하가 이미 8년째에 접어든 종반기의 무렵이었다. 공자는 물론 제자들도 모두 지쳐 있었다. 스승 에 큰 기대를 걸고 있던 제자들은 극도의 불만을 표출하기시작했다. 공자가 다시 위나라에 입국했을 무렵 부터는 각자 자생하여 자구책을 모색할 때였다. 공자 - 정치에서 명분을 세우는 것이 제일 중요 - 최인호 유림 74

75 당시 위나라는 공자를 우대하였던 영공은 이미 죽고 그의 손자인 출공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원래는 태자 괴외가 계승하여 왕위에 오르는 것이 법도였으나 아버지의 음탕한 부인인 남자를 죽이는 것을 실패 하고 외국으로 도망쳤다 돌아오려는 것을 무력으로 막았던 사람이 출공이었던 것이다. 공자는 아버지 괴 외를 무력으로 제지한 출공 밑에서 벼슬을 하기 보다는 차라리 굶어죽은 백이와 숙제처럼 인을 추구하겠 다는 뜻을 밝힌다. 정치에서 명분을 세우는 것이 제일 중요 이에 제자들은 크게 실망하였다. 특히직선적인 성격의 자로는 스승의 이런 태도를 간과할 수 없었다. 그래 서 우회적인 방법으로 스승에게 물었던 자공과는 달리 정공법으로 묻는다. 만일 위나라의 임금이 선생님을 모셔다가 정치를 부탁하신다면 선생님은 무엇부터 먼저 하겠습니까? 이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나 같으면 반드시 명분 먼저 바로잡겠다 이 말을 듣자 자로가 대답했다. 아아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느닷없는 자로의 탄식에 의아해진 공자가 다시 물었다. 그것 때문이라 니? 세상 사람들이 선생님이 세상일에 너무 동떨어진 생각을 하고 계시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그 점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이상만 생각하신다는 뜻이겠지요. 도대체 이름 같은 것을 바로잡아서 어찌하시 겠다는 것입니까? 자로로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더 이상은 물러설 수 없는 절체절 명의 순간에도 고리타분하게 만사의 이름부터 바로잡겠다는 스승의 대답을 듣는 순간 단순한 자로는 순간 화가 났던 것이다. 이에 공자는 탄식하여 말한다. 자로 너까지 이러할 수 있단 말이냐! 그리고 나서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군자는 자기가 모르는 일에는 입을 다물고 있는 법이다. 사물의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언어의도리가 맞 지 않는 법이다. 언어가 도리에 맞지 않으면 하는 바의 일을 성취하기 어렵다. 하는 일을 성취하지 못하면 예와 악이 일어나지 못하고 예와 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을 죄과에 알맞게 줄 수가 없게 된다. 형벌이 죄과에 맞지 않으면 백성들은 손발을 안심하고 놓을 곳이 없게 된다. 그래서 군자란 행위가 있으면 반드시 이름이 있어야하고 말을 하였으면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래서 군자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명분이 다. 명분이 바로 이름인 것이다. 공자 - 정치에서 명분을 세우는 것이 제일 중요 - 최인호 유림 75

76 공자가 자로에게 말하였던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 必 也 正 名 乎 ) 라는 정치철학에서 비롯된 정명주 의( 正 名 主 義 ) 는 공자의 정치사상에서 가장 핵심적인 철학이다. 이는 자로의 불평처럼 얼핏 보면 우원한 공론( 空 論 )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든 사물이 자기에게 주어진 명칭이나 명분에 꼭 맞는 올바른 상태에 있 다는 것은 질서의 극치를 뜻하는 것이다. 임금은 임금이란 칭호에 딱 맞는 행동을 하고, 신하는 신하란 이 름에 딱 들어맞는 행동을 하며, 백성은 백성이란 이름답게, 관청이나 학교는 자신의 명분에 딱 들어맞는 상태에 놓여 있다면 그 국가는 원칙에충실하게 다스려지고 있다는 뜻인 것이다. 이는 일찍이 공자가 제나 라의 경공에게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라는 대답과 일맥상통하는 철학이었던 것이다. 各 自 圖 生 자로는 스승의 대답을 통해 임금답지 못한 출공이 다스리고 있는 위나라에서는 절대로 신하 노릇을 하지 않겠다는 스승의 결단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제자들은 각자 뿔뿔이 자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하 였다. 이미 수년 전 노나라에 초빙되어 스승의 곁을 떠난 염구처럼 제자들은 분가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 다. 우선 외교에 뛰어난 자공은 노나라의 초빙으로 사신으로 등용되며, 자로는 위나라의 작은 마을의 읍재 ( 邑 宰 )가 된다. 공자 - 정치에서 명분을 세우는 것이 제일 중요 - 최인호 유림 76

77 임금의 총애를 받는다는 것 - 조광조와 정약용 :12 임금의 총애를 받는다는 것 임금의 총애를 받는다는 것 - 조광조와 정약용 77

78 조선시대 임금의 총애를 받다 비운의 운명을 산 두 사람. 趙 光 祖 와 丁 若 鏞. 조광조 ( 趙 光 祖 ) 조광조는 1519년 12월 20일 37세의 젊은 나이로 정쟁에 휘말려 아까운 목숨을 잃는다. 알성시에 합격하여 사헌부 감찰로 임명됨으로써 정식으로 관직에 진출한 이래 불과 4년만에 일찍이 전제왕조체제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강력한 개혁정치를 단행하였던 한국의 마키아벨리, 조광조는 비참하게 최후를 맞았다. 조광조는 경연( 經 筵 )을 통해 중종에게 수년간 경서를 강론하고 임금에게 갖출 덕에 대해 유세를 계속해왔 다. 이 경연은 중종에게 학문을 강의하는 한편, 정사도 의논하는 아주 중요한 자리였다. 이 자리는 이미 조광조의 독무대가 되었던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조광조가 경연에서 한번 말을 시작하면 끝이 없어서 다 른 사람은 말을 할 기회조차 잡지 못하였다는 것이었다. 추운 겨울이나 무더운 여름날에도 조광조의 일파 인 양팽손, 기준, 박세희, 최산두 등이 계속 발언을 독점하여 어떤 때는 경연이 하루종일 계속되어 같이 임금의 총애를 받는다는 것 - 조광조와 정약용 78

79 있던 신하들은 물론 중종까지도 괴로움을 참지 못해 얼굴에 싫은 기색이 역력히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들 일파는 기성 관리들을 깔보아 비록 상사일지라도 결례하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최인호, 유림 1권) 정약용 ( 丁 若 鏞 ) 다산 정약용도 마찬가지였다. 다산에 대한 임금의 보살핌과 관심이 날로 깊어져 밤이 깊어서야 끝날 때가 많아지자,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시기하고 나섰다. 친구 홍시보( 洪 時 보)가 충고했다. 자네 좀 조심하 게, 우리 청지기에 옥당의 아전이 된자 가 있는데0 그자가 야밤에 정공의 야대( 夜 對 )가 끝나지 않으면옥 당에서 아전을 보내 엿보느라 걱정되어 잠을 자지 못합니다. 라고 했네. 자네는 그런 걸 감당하겠나. 이렇게 해서 자주 임금의 칭찬을 받고, 학문이 깊어질 수록 시기하는 사람도 늘고 그를 해치려는 무리들이 패거리를 지어 비방하기 시작했다. 진사과에 합격했던 시절만 해도 가깝게 지내던 목만중, 이기경, 홍낙안 등도 공격의 칼을 갈았다. 이기경은 한 때는 함께 어울려 과거공부도 하고, 천주교서적도 함께 읽었다. 일 찍이 진사과에 합격하고 다산과 같은 과거에 합격한 동방( 同 榜 )친구. 모두가 그를 외면할 때에도 다산만은 친구란 한번 친구 삼았던 것 자체를 놓아서는 안된다 며 가까이 지냈고, 이기경이 상소로 유배가자 집 안을 도와주고 해배되도록 해주었다. 그렇게 가까이 지냈건만, 이기경은 끝내 우정을 저버리고 천주교에 관계된 사람을 싸잡아 진산사건(윤지충 사건) 을 계기로 사당( 邪 黨 )이라고 공격했다.(박석무,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임금의 총애를 받는다는 것 - 조광조와 정약용 79

80 임금의 총애를 받는다는 것 - 조광조와 정약용 80

81 임금의 총애를 받는다는 것은 달콤한 꿀임과 동시에 독이다. 따라서 절제와 겸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 야 한다. 임금의 총애를 받는다는 것 - 조광조와 정약용 81

82 맹자의 조세정책 - 맹자(박경환 박경환) :13 1. 맹자의 조세정책 적절한 세금이 필요하다. 백규( 白 圭 )가 물었다. 나는 20분의1의 세율을 적용해 세금을 거두고자 하는데 어떻겠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그대의 방법은 오랑캐 나라인 맥( 貊 )의 방법입니다. 만가구나 되는 나라에서 한 사람이 질그릇을 굽는다면 되겠습니까? 맹자의 조세정책 - 맹자(박경환) 82

83 백규가 대답했다. 안됩니다. 그릇이 쓰기에 부족할 것입니다. 맹자가 말했다. 오랑캐 나라인 맥에는 오곡이 자라지 않고 오직 기장만 자랍니다. 또 성곽과 주택, 종묘 와 제사와 관련된 예법이 없고, 제후들이 서로 예물을 보내고 접대하는 일도 없으며, 관직과 관리들도 많 지 않기 때문에 20분의1의 세금을 받아도 충분합니다. 지금 중국에 살면서 인륜을 버리고 관리를 없애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질그릇의 생산량이 적어도 나라를 다스릴 수 없는데, 하물며 관리가 없어서 야 되겠습니까? 堯 舜 이 시행했던 십분의 일 세금보다 적게 하려는 것은 큰 오랑캐나 작은 오랑캐이고, 요 순이 시행했던 방법보다 무겁게 하려는 것은 큰 걸( 桀 )이나 작은 걸( 桀 )입니다. 해설: 각종의 의식이나 제도와 같이 국가의 통치행위와 관련된 문화적 요소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재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자 하 12-10) 맹자의 조세정책 - 맹자(박경환) 83

84 적절한 과세 정책이 필요하다. 맹자가 말했다.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에는 직물을 거두는 것과 곡물을 거두는 것, 그리고 노동력을 징발하는 것이 있다. 군자는 세 가지 중 한가지만을 적용하고 나머지 두 가지는 완화해준다. 그 중 두 가지를 동시에 적용하면 백성들이 굶주려 죽는 일이 있고, 그 중의 세 가지를 동시에 적용하면 부모와 자식이 흩어지게 된다. (진심 하 14-27) 2. 백성은 사직이나 군주보다 귀하다 맹자의 조세정책 - 맹자(박경환) 84

85 맹자가 말했다. 백성이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고 군주는 하찮다. 그러므로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천자가 되고, 천자의 마음을 얻으면제후가 되고, 제후의 마음을 얻으면 대부가 된다. 제후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제후를 바꾼 다. 이미 살진 희생을 마련하고 제물로 바친 곡식이 정결하며 때에 맞게 제사를 지냈는데도 가무이 들거나 물난리가 나면 사직의 신을 바꾼다. 民 爲 貴 社 稷 次 之, 君 爲 輕 (진심 하 14-14) 해설: 백성은 군주의 소유물이고 통치란 곧 백성을 압박하고 수탈하는 것이라고 보던 전국시대의 일반적 인 상황에서 맹자의 이러한 주장은 진보적인 견해 라고 할 수 있다. 3. 정치의 세 가지 중요한 것 맹자가 말했다. 어질고 현능한 사람을 신임하지 않으면 나라가 텅비게 된다. 예의와 의리가 없으면 상하의 관계가 어지 러워지게 된다. 정사를 돌보지 않으면 재정이 부족하게 된다. (진심 하 14-12) 맹자의 조세정책 - 맹자(박경환) 85

86 性 善 說 의 논리와 四 端 - 맹자(박경환 박경환) :56 1. 性 善 說 의 논리와 四 端 맹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차마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 不 忍 人 之 心 )을 가지고 있다. (중략) 孟 子 曰, 人 皆 有 不 忍 之 心 ) 사람들은 누구나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근거에서이다. 만약 지금 어떤 사람이 문득 한 어린아이가 우물 속으로 빠지게 되는 것을 본 다면, 누구나 깜짝 놀라며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되는 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 분을 맺기 위해서가 아니고, 마음 사람과 친구들로부터 어린아이를 구했다는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 며, 어린 아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싫어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다. 이것을 통해서 볼 때,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惻 隱 之 心 )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워하는 마음( 羞 惡 之 心 )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 辭 讓 之 心 )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 是 非 之 心 )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인( 仁 )의 단서( 端 )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 義 )의 단서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 禮 )의 단서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 智 )의 단서이다. 사람이 이 네가지 단서( 四 端 )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가 사지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이 네가지를 가지고 있는데도 자신은 선을 실천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해치는 자이고, 자기 性 善 說 의 논리와 四 端 - 맹자(박경환) 86

87 의 군주는 선을 실천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군주를 해치는 자이다. 무릇 나에게 갖추어져 있는 네가 지 단서를 모두 확대시켜 가득 차게 할 줄 알면 마치 불이 타오르기 시작하고 샘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 과 같다. 진실로 그것을 확대시켜 가득 차게 할 수 있으면 천하라도 보존할 수 있고, 만일 확대시켜 가득 차게 하지 않으면 부모조차도 부양할 수 없다. 惻 隱 之 心 - 仁 羞 惡 之 心 - 義 辭 讓 之 心 - 禮 是 非 之 心 - 智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이해득실을 계산한 결과 나온 의도적인 행위가 아니라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행 위이다. 따라서 맹자는 그것이 바로 사람들에게 타고나면서부터 선한 본성이 있다는 증거라고 본다. 즉 사 람의 내면에 갖추어져 있는 선한 본성이 특정한 상황을 경험할 때 순간적으로 선한 마음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선한 마음은 선한 본성이 드러나는 단서이자 싹이며 그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 한 것은 그러한 싹이 자신에게 있음을 확신하고 그것을 기르는 노력이다. (공손추 상 3-6) 性 善 說 의 논리와 四 端 - 맹자(박경환) 87

88 2. 본성( 本 性 )과 명( 命 )의 차이 맹자가 말했다. 입이 좋은 맛을 추구하고 눈이 좋은 색을 추구하고 귀가 좋은 소리를 추구하고 코가 좋 은 냄새를 추구하고 사지가 안일함을 추구하는 것은 본성( 性 )에 속하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명( 命 )에 달려 있으므로 군자는 그것을 본성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부자간에 인( 仁 )이 있고, 군신간에 의( 義 )가 있고 손님과 주인간에 예( 禮 )가 있고 지혜가 현자에게 갖추어 지고 성인이 천도와 하나가 되는 것은 모두 명에 속하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본성에 달려 있으므로 군자는 그것을 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孟 子 曰, 口 之 於 味 也, 目 之 於 色 也, 耳 之 於 聲 也, 鼻 之 於 臭 也, 四 肢 於 安 佚 也, 有 命 焉, 君 子 不 謂 性 也. 義 之 於 君 臣 也, 禮 之 於 賓 主 也, 智 之 於 賢 者 也, 聖 人 之 於 天 道 也, 命 也, 有 性 焉, 君 子 謂 命 也 해설 : 성선론적인 입장에서 기존의 본성과 명에 대한 정의를 뒤집어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사람의 이목 性 善 說 의 논리와 四 端 - 맹자(박경환) 88

89 구비나 사지가 지닌 욕망을 사람이 타고난 본성( 本 性 )이라고 하는 전통적인 입장에 대해, 그러한 것을 실 현하느냐 못하느냐는 것은 내 자신의 주체적인 노력이 아니라 외부적인 명에 달려 있는 것이므로 그것을 성이라고 불러서는 안된다고 한다. 반면에 인간 관계에서의 仁 義 禮 智 나 지혜나 성인됨과 같은 것은 비록 그 가능성이 하늘에서 부여된 것이라는 점에서는 명이라 볼 수 있지만 오히려 그것이 나의 내면에 갖추어 져 있고 또 그것을 온전히 실현해 내는 것은 전적으로 주체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즉 내가 노력하면 반드시 실현할 수 있지만 포기하거나 노력을 게을리 하면 실현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들은 명이 아니라 사람이 지닌 성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는 진심 상 13-3에서도 성과 명을 주체가 지니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밖에 있는 것인가 그리고 주체의 노력에 의해 얻을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구분하고 사람이 추구해야 할 것은 그가 내면에 지니고 있고 따라서 노력하면 반드시 얻을 수 있는 성( 性 )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진심 하 14-24) 3. 돌이켜 자신에게서 찾음 맹자가 말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ㄷ도 그가 나를 친하게 여기지 않을 경우는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을 반성해보고,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데도 다스려지지 않을 경우는 자신의 지혜를 반성해 보고, 다른 사람에게 예를 갖추 어 대하는데도 그것에 상응하는 답례가 없을 경우는 자신의 공경하는 마음을 반성해보아야 한다. 어떤 일 을 하고서 바라는 결과를 얻디 못하면 모두 돌이켜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한 몸이 바 르면 천하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돌아온다. 그래서 시경에서는 영원토록 하늘의 명을 따르니, 스스로 많 은 복을 구하는구나 고 했다. 孟 子 曰, 愛 人 不 親 反 其 仁, 治 人 不 治 反 其 智, 禮 人 不 答 反 其 敬, 行 有 不 得 者, 皆 反 求 諸 己, 其 身 正 而 天 下 歸 之. 詩 云, 永 言 配 命, 自 求 多 福 性 善 說 의 논리와 四 端 - 맹자(박경환) 89

90 4.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 맹자가 말했다. 순은 농사를 짓다가 떨쳐 일어났고, 부열( 傅 說 )은 성벽 쌓는 일을 하다가 기용되었고, 교력( 膠 력)은 어물 과 소금을 팔다가 기용되었고, 관이오( 管 夷 吾 )는 옥리에게 잡혀있다가 기용되었고, 백리해는 시장에서 살 다가 기용되었다. 그러므로,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어떤 사람에게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 의 근골을 힘들게 하며, 그의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의 몸을 곤궁하게 하며, 어떤 일을 행함에 그가 하는 바를 뜻대로 되지 않게 어지럽힌다. 이것은 그의 마음을 분발시키고 참을성있게 해 그가 할 수 없었던 일 을 해낼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故 天 將 降 大 任 於 是 人 也, 必 先 苦 其 心 志, 勞 其 筋 骨, 餓 其 體 膚, 空 乏 其 身, 行 拂 亂 其 所 爲 所 以 動 心 忍 性, 曾 益 其 所 不 能. (고자하 12-15) 5. 어질지 못한 사람 무릇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긴 후에 남이 업신여기고, 집안도 반드시 스스로 망친 후에 남이 망치 고,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 공격한 뒤에 남이 공격한다. 서경의 태갑에서 하늘이 만든 재앙은 오히려 피 할 수 있어도 스스로 만든 재앙에서는 빠져나갈 길이 없다 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이루 7-8) 性 善 說 의 논리와 四 端 - 맹자(박경환) 90

91 夫 人 必 自 侮, 然 後 人 侮 之, 家 必 自 毁 而 後 人 毁 之, 國 必 自 伐 而 後 人 伐 之. 太 甲 曰, 天 作 蘖 猶 可 違, 自 作 蘖 不 可 活 此 之 謂 也. 6. 어진 정치의 중요성 정치를 하면서도 선왕의 도를 본받지 않는다면 지혜롭다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오직 어진 사람만이 높 은 지위에 있어야 한다. 어질지 못하면서도 높은 지위에 있으면 그의 악을 여러 사람에게 퍼뜨리게 된다. 윗사람이 도를 생각하지 않아서 아래 사람이 법을 지키지 않고, 조정에서 도를 신뢰하지 않아서 기술자들 이 도량형의 표준을 지키지 않고, 군자가 의를 어겨서 소인이 형법을 어기게 되고도 나라가 보존될 수 있 다면 이는 요행일 뿐이다. 그러므로 성곽이 견고하지 않고, 군비가 충분하지 않은 것이 나라 재앙이 아니고, 농사지을 땅이 넓혀지지 않고 재물이 모이지 않는 것이 나라의 해가 아니다. 윗사람이 예를 지키지 않고 아래 사람이 배우지 않으 면 법을 어기는 백성이 생겨나서 나라를 잃는 것은 금방이다. 爲 政 不 因 先 王 之 道, 可 謂 智 乎? 是 以 惟 仁 者 宜 在 高 位, 不 仁 而 在 高 位, 是 播 其 惡 於 衆 也 上 無 道 揆 也, 下 無 法 守 也, 朝 不 信 道, 工 不 信 度, 君 子 犯 義, 小 人 犯 刑, 國 之 所 在 者 幸 也. 故 曰, 城 郭 不 完, 兵 甲 不 多 非 國 之 災 也, 田 野 不 辟, 貨 財 不 聚 非 國 之 害 也, 上 無 禮, 下 無 學, 賊 民 興, 喪 無 日 矣 性 善 說 의 논리와 四 端 - 맹자(박경환) 91

92 폐족의 멍에를 극복하고 실학을 완성 - 박석무(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다다) :49 茶 山 의 유배생활과 업적 1 벼슬살이 마감 폐족의 멍에를 극복하고 실학을 완성 - 박석무(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다다) 92

93 1899년 사헌부 대관 민명혁이 정약용이 혐의를 무릅쓰고 있으면서도 보란듯이 벼슬살이를 하고 있다는 상 소(6월21일)를 올리자 사직상소를 올림(6월22일) 정조는 1개월여동안 허락하지 않다가 형조참의 체직( 遞 職 ) 을 허락(7월26일). 벼슬길을 마감. 2 여유당 다산은 처자를 이끌고 고향으로 내려가 형제들과 한데 모여 경전을 강의하고 서재의 이름을 여유당( 與 猶 堂 )이라고 지어 편액을 달았다. 여유 라는 말은 노자에 나오는 글귀로 망설임이여( 與 兮 ), 겨울에 냇 물을 건너는 것 같이 주저함이여( 猶 兮 ),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함이로다. 다산은 여유당기에서 조심스럽게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자신의 의지를 표명했다. 3 1차 유배 정조의 장례를 마치자 세력을 잡은 벽파는 요직에서 자신의 세력을 기용. 이가환, 이승훈과 한통속이 되어 천주교의 소굴이 되어 사학을 전파하고 있다는 혐의로 정약용을 1801년2월10일 의금부에서 체포. 정약용 일언지하에 거절. 석방되는 분위기에서 서용보가 반대하여 장기(포항시 장기면)로 유배. 4 2차 유배 황사영백서사건으로 1801년 10월20일 경상도 장기에서 압송되어 감옥에 갇혔다가 11월5일에 혐의가 없음 을 인정받고 귀양지가 바뀌어 형인 정약전과 함께 나주까지 가서 11월21일 밤남정에서 하룻밤을 동숙하고 다산은 강진으로 정약전은 흑상도로 귀양을 감 5 폐족( 廢 族 )이 살아갈 길 아들들에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아들들에게 충고하는 것이지만 어찌보면 자신을 채찍질하는 말이기도 하다. 다산이 운명을 극복하는 자세를 알 수 있다. 너희 처지가 비록 벼슬길을 막혔어도 성인이 되는 일이야 꺼릴 것이 없지 않느야. 문장가가 되는 일이나 지식과 이론에 통달한 선비가 되는 일은 꺼릴 것이 없지 않느냐. 꺼릴 것이 없을 뿐 아니라, 과거 공부하 는 사람들이 빠지는 잘못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가난하고 곤궁하게 고생하다 보면 그 마음을 단련하고 지혜와 생각을 넓히게 되어 인정이나 사물의 폐족의 멍에를 극복하고 실학을 완성 - 박석무(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다다) 93

94 진심과 거짓을 알 수 있는 장점을 갖는 것이다. (중략) 부귀영화를 얻으려는 마음이 근본정신을 가리지 않 아 깨끗한 마음으로 독서하고 궁리하여 진면목과 바른 뼈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어진 운명과 불행에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해나가고, 오히려 그것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 다산 의 위대함을 알 수 있다. [전남 강진에 있는 다산초당 전경] 6 실학의 완성 다산의 논맹( 論 孟 )의 주석서와 6경에 대한 해석서(심경밀헌, 낙서고존)는 행위와 실천의 개념이 뚜렷하지 않은 주자학의 성리론( 性 理 論 )을 근본적으로 비판한 내용이다. 주자는 천을 이( 理 )로, 인을 생물지리( 生 物 之 理 )로, 중용의 용을 평상이라 해석하여 관념적인 세계관으로 유학을 체계화했다. 주자와는 달리 다산은 인을 이로 보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다하는 행위개 폐족의 멍에를 극복하고 실학을 완성 - 박석무(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다다) 94

95 념으로 새롭게 해석했다. 주자는 인이란 사랑의 이치( 愛 之 理 )요, 마음의 덕( 心 之 德 )이라고 했지만, 다산 은 인이란 글자 모양대로 사람( 人 )이 둘( 二 )이라는 뜻으로 두 사람 사이에서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해 섬겨 주는 행위로 해석하여 행동이 배제된 경학의 해석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분명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본래의 성품인 덕성을 높이고 선한 길만 선택하는 배움을 통해서 악에 빠지지 않도록 계속 노력하는 항구 적인 능력이 있어야만 올바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인간론, 중세를 뛰어넘은 멋진 사상이었다. 나라를 건 지고 세상을 구제할 논리를 찾아내는 반면, 인간으로 구성된 세상은 올바른 인간들이 주도해야만 변한다 고 여기고, 올바른 인간이 될 수 있는 인간론까지 깊숙이 탐구했다. 이전의 성리학적인 논리에서 한 단계 높은 실행, 실천의 바탕을 마련한 실사구시적인 다산철학을 이룩한 셈이다. 다산은 그가 처한 신분, 시대 환경, 그의 생활여건 아래서 불철주야 연구하고 탐색한 결과 중세를 넘어서는 자신의 학문을 완성했다. 다산초당에서 종합적으로 완성한 다산 과학기술론은 독특한 다산사상의 핵심적인 분야다. 6경4서만을 교 과서로 삼아 거기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일반적인 유학자들과는 분명하게 다른 논리 분야가 바 로 이 과학기술분야에 대한 다산의 생각이다. [기예론]이라는 논문을 통해 기술개발의 중요성과 당위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선진국에서 과학기술을 도입하고 보급하는 것, 새로운 기술개발에 대한 열정 등을 볼 때 역시 다산은 애국자였다. 의술이 발달해야만 인간은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 장수를 누릴 수 있고, 농 기구의 개발로 편하게 짓고 소득을 올리며, 병기의 개발로 외침을 막고 부강한 나라로 만들 수 있다고 했 다. 그가 경세유표의 국가개혁론에서 행정부서에 이용감( 利 用 監 )이라는 새로운 정부 부서를 만들어 기술도 입, 기술개발에 대한 총괄을 담당하자고 했다. 200년전에 주장한 다산의 사상은 역시 탁견이 아닐 수 없다. 반드시 처음에는 경학공부를 하여 밑바탕을 다진 뒤에 옛날의 역사책을 섭렵하여 옛날 정치의 득실과 잘 다스려진 이유와 어지러웠던 이유 등의 근원을 캐볼 뿐만 아니라, 또 모름지기 실용의 학문, 즉 실학에 마 음을 두고, 옛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했던 글들을 즐겨 읽도록 해야 한다. 폐족의 멍에를 극복하고 실학을 완성 - 박석무(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다다) 95

96 <다산의 유배생활 연보> 1801년(신유년) 겨울에 귀양살이로 강진에 도착하여 동문 밖의 주막집(사의재)에서 임시로 거처. 아전들의 폐족의 멍에를 극복하고 실학을 완성 - 박석무(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다다) 96

97 자제를 가르치며 상례연구 1805(을축년)겨울에는 兒 菴 의 배려로 보은산방(고성사)에서 생활 1806(병인년) 가을부터는 제자 이청의 집으로 이사가서 생활 1807(정묘년) 겨울에는 예기( 禮 記 ) 연구의 중요한 분야인 禮 箋 喪 具 訂 (6권) 완성 1808(무진년) 봄에는 다산에서 살게 되었음. 제자들과 토론하면서 [주역]에 관해 묻고 답한 내용을 정리해 [다산문답]이라는 저서를 완성 했고, 제례고정 주역심전 등 24권을 완성 1809년 예전상복상( 禮 箋 喪 服 商 ), 시경강의, 시경강의보유 등 경학에 관한 저서들 완성 1813년 논어고금주( 論 語 古 今 註 ) 40권 완성 1814년 맹자요의( 孟 子 要 義 ) 9권 완성. 다산의 경학사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논맹의 주석서가 완성된 것은 기념비적인 일. 같은 해에 중용자잠( 中 庸 自 箴 )과 중용감의보( 中 庸 講 義 補 ), 대학공의( 大 學 公 義 ) 등이 완성되면서 4서에 대한 연구서가 모두 완료 1815 심경밀험 1816년 樂 書 孤 存 완성되어 6경에 대한 연구서도 착착 끝을 맺음 1817년 해배 1년을 남기고 대전 경세유표 45권을 미완으로 남긴 채 牧 民 心 書 저작으로 손을 옮김 1818년 9.14 해배되기 직전에 牧 民 心 書 48권을 완성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산을 떠남 1819년 돌아온 다음해에 흠흠신서( 欽 欽 新 書 ) 30권을 끝냄 여유당기( 與 猶 堂 記 ) 다산 정약용 자기가 하고 싶지는 않으나 부득이 해야 하는 것은 그만둘 수 없는 일이요, 자기는 하고 싶으나 남이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하지 않는 것은 그만둘 수 있는 일이다. 그만둘 수 없는 일은 항상 그 일을 하고는 있지 만, 자기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그만둔다. 하고 싶은 일은 언제나 할 수 있으나, 남이 알지 못하 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또한 때로는 그만둔다. 진실로 이와 같이 된다면 천하에 도무지 일이 없을 것이다. 폐족의 멍에를 극복하고 실학을 완성 - 박석무(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다다) 97

98 나의 병은 내가 잘 안다. 나는 용감하지만 지모( 智 謀 )가 없고 선( 善 )을 좋아하지만 가릴 줄을 모르며, 맘 내키는 대로 즉시 행하여 의심할 줄을 모르고 두려워할 줄을 모른다. 그만둘 수도 있는 일이지만 마음에 기쁘게 느껴지기만 하면 그만두지 못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마음에 꺼림직하여 불쾌하게 되면 그 만둘 수 없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세속 밖에 멋대로 돌아다니면서도 의심이 없었고, 이미 장성하여서는 과 거( 科 擧 ) 공부에 빠져 돌아설 줄 몰랐고, 나이 30이 되어서는 지난 일의 과오를 깊이 뉘우치면서도 두려워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선( 善 )을 끝없이 좋아하였으나, 비방은 홀로 많이 받고 있다. 아, 이것이 또한 운 명이란 말인가. 이것은 나의 본성 때문이니, 내가 또 어찌 감히 운명을 말하겠는가. 내가 노자( 老 子 )의 말을 보건대,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신중하게 하고[ 與 ],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 경계하라.[ 猶 ] 고 하였으니, 아, 이 두 마디 말은 내 병을 고치는 약이 아닌가. 대체로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뼈를 에듯 하므로 매우 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건너지 않으며, 사방 의 이웃이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자기 몸에 이를까 염려한 때문에 매우 부 득이한 경우라도 하지 않는다. 편지를 남에게 보내어 경례( 經 禮 )의 이동( 異 同 )을 논하고자 하다가 이윽고 생각하니, 그렇게 하지 않더라 도 해로울 것이 없었다. 하지 않더라도 해로울 것이 없는 것은 부득이한 것이 아니므로, 부득이한 것이 아 닌 것은 또 그만둔다. 남을 논박하는 소( 疏 )를 봉( 封 )해 올려서 조신( 朝 臣 )의 시비를 말하고자 하다가 이윽 고 생각하니, 이것은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는 것은 마음에 크게 두려 움이 있어서이므로, 마음에 크게 두려움이 있는 것은 또 그만둔다. 진귀한 옛 기물을 널리 모으려고 하였 지만 이것 또한 그만둔다. 관직에 있으면서 공금을 농간하여 그 남은 것을 훔치겠는가. 이것 또한 그만둔 다. 모든 마음에서 일어나고 뜻에서 싹트는 것은 매우 부득이한 것이 아니면 그만두며, 매우 부득이한 것 일지라도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는 것은 그만둔다. 진실로 이와 같이 된다면, 천하에 무슨 일이 있겠는가. 내가 이 뜻을 얻은 지 6 7년이 되는데, 이것을 당( 堂 )에 편액으로 달려고 했다가, 이윽고 생각해 보고는 그만두었다.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돌아와서야 문미( 門 楣 )에 써서 붙이고, 아울러 이름 붙인 까닭을 적어서 어린아이들에게 보인다. 폐족의 멍에를 극복하고 실학을 완성 - 박석무(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다다) 98

99 노자의 정치 - 무위이치(노자 노자-김원중) :15 老 子 의 정치 - 無 爲 의 治 노자는 주장한다. 세상의 퇴폐와 혼란의 원인인 지식이나 도덕이라는 인위, 그것들의 집적인 인간의 문화 로부터 벗어나 태고의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不 尙 賢, 使 民 不 爭 不 貴 難 得 之 貨, 使 民 不 爲 盜 不 見 可 欲, 使 民 心 不 亂 是 以 聖 人 之 治, 虛 其 心, 實 其 腹, 弱 其 志, 强 其 骨, 常 使 民 無 知 無 欲, 使 夫 智 者 不 敢 爲 也 爲 無 爲, 則 無 不 治 노자의 정치 - 무위이치(노자-김원중) 99

100 (세속의) 현명함을 숭상하지 않아야만 백성이 다투지 않는다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아야만 백성이 도둑질하지 않으며, 욕심낼 만한 것을 보이지 않아야만 백성이 마음을 어지러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그 (백성) 마음을 비우고 그 배를 채우며, 그 뜻을 약하게 하고, 그 뼈를 강하게 하는 것이다. 늘 백성이 알고자 하는 것도 없도록 하고 하고자 하는 것도 없도록 한다. 지혜로운 자들로 하여금 감히 (어떤 일을)하지 못하게 한다. 무위하면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없다. - 3장 백성을 다스리는 법 - 통치자의 몇 가지 유형 원문의 太 上 이란 왕필의 주석대로 大 人 을 뜻하며, 대인이 윗자리에 있는 것을 태상이라고 한다. 즉 가장 높은 임금이니 곧 성인이다. 말하자면 통치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지를 백성이 몰라야만 잘된 정치라는 것이다. 아래 단계로 가면 갈수록 백성은 그 통치자의 존재 자체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太 上, 不 知 有 之 其 次, 親 而 譽 之 其 次, 畏 之 其 次, 侮 之 信 不 足 焉, 有 不 信 焉 悠 兮 其 貴 言, 攻 成 事 遂, 百 姓 皆 謂 我 自 然 가장 뛰어난 자는 그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 다음은 (아랫사람들이) 그를 가깝게 여기고 기린다. 그 다음은 그를 두려워한다. 그 다음은 그를 업신여긴다. (윗 사람의) 믿음이 부족하기에, (아래 사람들도) 그를 믿지 못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가장 뛰어난 자는) 느긋하여, 그 말을 귀하게 여기고 있으나, 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완수되어도 백성은 모두 내가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들 말한다. (17장 통치자의 몇 가지 유형) 노자의 정치 - 무위이치(노자-김원중) 100

101 無 常 心 은 민심으로부터 성인, 즉 통치자는 민심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데 이것이 바로 無 爲 以 治 의 원리다. 無 爲 以 治 란 결국 민심의 향배와 궤를 같이 했을 때 가능한 것이다. 無 常 心 이란 것이 중요한데, 무상심은 사사로움 이 없고 자아가 없는 것이다. 聖 人 無 常 心, 以 百 姓 心 爲 心 善 者 吾 善 之, 不 善 者 吾 亦 善 之, 德 善 信 者 吾 信 之, 不 信 者 吾 亦 信 之, 德 信 聖 人 在 天 下 歙 歙, 爲 天 下 渾 其 心, 百 姓 皆 注 其 耳 目, 聖 人 皆 孩 之 성인은 일정한 마음을 갖지 않고,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 (백성 가운데) 선한 사람에게는 나도 그를 선하다고 여기고, 선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나 또한 그를 선하게 여기기에, 선함을 얻게 된다. (백성 가운데) 미더운 사람에게는 나도 그를 미덥게 여기고, 미덥지 않은 사람에게도 나 또한 미덥게 여기 기에 믿음을 얻게 된다. 성인은 천하에 있으면서 (의지를) 거둬들여 천하를 위해 그 마음을 흐리멍덩하게 한다. 백성은 모두 그 이 목에 집중하지만, 성인은 그들은 모두 어린아이처럼 대한다. 歙 : 거둬들이다 수렴하다 渾 : 흐릴 혼, 섞일 혼 孩 : 어린아이 해 - 49장 無 常 心 은 民 心 으로부터 - 화복은 서로 따르는 법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군주가 지나치게 세세하게 살피고 꼼꼼하게 법령을 정하면 백성이 그것들을 피하 는데 골몰하게 되어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잘라 말한다. 노자의 정치 - 무위이치(노자-김원중) 101

102 其 政 悶 悶, 其 民 淳 淳, 其 政 察 察, 其 民 缺 缺 그 정치가 어수룩하면 그 백성은 순박해지고, 그 정치가 세밀하게 살피면 백성은 원망을 품는다 - 58장 화복은 서로 따르는 법 - 천하를 취하려고 하는 자는 얻을 수 없다 이 장은 정치의 방식을 논하고 있는데, 의도적인 의지나 목적을 두고 행동하는 것을 비판한다. 즉 노자는 여기서도 무위를 통한 정치적 사유의 틀을 확장하고 그 자연스러움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將 欲 取 天 下 而 爲 之, 吾 見 其 不 得 已 天 下 神 器, 不 可 爲 也, 爲 者 敗 之, 執 者 失 之, 故 物 惑 行 或 隨, 或 歙 吹 或 强 或 或 挫 或 是 以 聖 人 去 甚, 去 奢, 去 泰 (누군가) 천하를 취하려고 무엇인가를 하고자 한다면 나는 그가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천하라는 신령한 기물은, (억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억지로) 하려고 하는 자는 실패하고, 잡으려 하 는 자는 그것을 잃는다. 그러므로 사물은 때로는 나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뒤따라가기도 하며, 때로은 숨을 내쉬거나 때로는 입김 을 불기도 하고, 때로는 강하거나 때로는 쇠약해지기도 하며, 때로는 부러지기도 하고, 때로는 깨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성인은 극단적인 것을 없애고 사치스러운 것을 없애며 지나친 것을 없애는 것이다( 去 甚, 去 奢, 去 泰 ). - 29장 천하를 취하려고 하는 자는 얻을 수 없다 - 천하를 취하는 4가지 노자의 정치 - 무위이치(노자-김원중) 102

103 無 爲, 好 靜, 無 事, 無 欲 등은 분명 도의 모습인 동시에 성인이 갖고 있는 미덕이다. 이 네 가지를 통하면 백성이 저절로 다스려진다. 이런 맥락에서 노자는 금령( 禁 令 )을 배제하고 법령을 정비하 지 말것을 요구하고 있다. 조화로운 자연처럼 만물이 자생자화할 수 있다는 말로, 우주와 인간사회도 자연 그대로 둔다면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나갈 수 있다고 본다. 故 聖 人 云, 我 無 爲 而 民 自 化, 我 好 靜 而 民 自 正, 我 無 事 而 民 自 富, 我 無 欲 而 民 自 樸 그러므로 성인은 말한다. 내가 하는 일을 없애니 백성이 저절로 교화되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니 백성 이 저절로 올바르게 되며, 내가 일거리를 만들지 않으니 백성이 저절로 부유해지고, 내가 욕심을 없애니 저절로 순박해진다. 樸 : 통나무, 질박하다, 순박하다 - 57장 천하를 취하는 네 가지 - 道 法 自 然 有 物 混 成, 先 天 地 生 寂 兮 寥 兮, 獨 立 不 改, 周 行 而 不 殆, 可 以 爲 天 下 母 노자의 정치 - 무위이치(노자-김원중) 103

104 吾 不 知 其 名, 字 之 曰 道, 强 爲 之 名 曰 大, 大 曰 逝, 逝 曰 遠, 遠 曰 反 故 道, 大 天 大, 地 大, 王 亦 大, 域 中 有 四 大, 而 王 居 其 一 焉 人 法 地, 地 法 天, 天 法 道, 道 法 自 然 어떤 사물은 섞여서 이루어져 있어 하늘과 땅보다 먼저 생겨났다. 적막하고 쓸쓸함이여, 우뚝 서 있으면서 바뀌지도 않는다. 두루 운행하면서도 위태롭지 않아 천하의 어머 니(근본)가 될 수 있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기에, 그것에 이름을 붙여 道 라고 하며, 억지로 字 (이름)를 붙여 대 大 라고 한다. 대 라는 것은 떠나감 逝 이요, 멀어짐이며, 멀어짐은 되돌아오는 것 反 이라한다. 그러므로 도는 크고 하늘이 크며, 땅도 크고, 왕 또한 크다. 나라안에는 네 가지 큰 것 이 있으니, 왕은 그중 하 나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으며,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스스로 그러 함을 본받는다. - 25장 도법자연 - 道, 德, 物, 勢, 그리고 玄 德 도 와 덕 을 함께 거론하면서 이 둘과 만물의 긴밀한 관계를 설명해나간다. 만물은 객관적 자연 규 율에 따라 성장 발전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출발점이다. 그리고 도 와 덕 을 통해 완정한 道 德 체계를 구성한다. 道 生 之, 德 畜 之 物 形 之, 勢 成 之 是 以 萬 物 莫 不 尊 道 而 貴 德 道 之 尊, 德 之 貴, 夫 莫 之 命 而 常 自 然 故 道 生 之, 德 畜 之 張 之 育 之, 亭 之 毒 之, 養 之 覆 之 도는 (만물을) 낳고 덕은 (만물을) 길러준다 만물이 형태를 갖추게 하고, 형세로 그것을 완성시켜 준다. 이 때문에 만물 중에서 도를 존중하고 덕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없다. 도가 존중되고 덕이 귀하지만 누구도 명령하지 않으며 언제나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노자의 정치 - 무위이치(노자-김원중) 104

105 그러므로 도는 (만물을) 낳고 덕은 (만물을) 길러주며, 성장시켜 모양이 있게 하고 성숙시켜주며 보살펴주 고 덮어준다. (만물을) 낳고도 소유하지 않고, 하고도 의지하지 않으며, 자라게 해주고도 주재하지 않으니, 이를 현묘한 덕이라고 한다. - 51장 도, 덕, 물, 세, 그리고 현덕 - 하늘의 그물 大 網 恢 恢 疏 而 不 失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 듬성듬성하면서도 새어나가는 법이 없다. 恢 : 넓을 회 - 73장 하늘의 그물 - 노자의 정치 - 무위이치(노자-김원중) 105

106 상실의 시대 - 무라까미 하루끼 :36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나(와타나베)는 연극을 공부하는 대학생이다. 나는 나오코를 사랑한다. 동시에 미도리도 사랑한다. 나오코 상실의 시대 - 무라까미 하루끼 106

107 는 정신요양원에서 요양중이어서 매주 편지를 보낸다. 인간으로서 어떤 종류의 책임 같은 거야. 그래서 난 그걸 저버릴 수가 없어.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느끼고 있어. 설사 그녀가 나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 해 도. 한편 미도리도 사랑한다. 그렇다, 나는 미도리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훨씬 전부터 내 가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다만 그런 결론을 내가 오랫동안 회피해왔을 뿐이었다. 문제는 내가 나오코에게 그런 상황 전개를 잘 설명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나오코는 요양원에서 자살을 한다. 나는 그녀의 죽음을 실감할 수 없다. 내 속에는 나오코의 추억이 너무 나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 추억들은 아주 작은 틈새라도 헤집고 잇따라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추억의 분출을 억누르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런 식으로 그녀의 이미지는 밀물처럼 끊임없이 잇따라 나에게 밀려와서, 내 몸을 기묘한 장소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 기묘한 장소에서 나는 죽 은 사람과 함께 살았다. 그곳에는 나오코가 살아 있어서 나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포옹할 수도 있었다. 그 장소에선 죽음이 삶을 결말짓는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죽음이란 삶을 구성하는 많은 요인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나오코는 죽음을 품은 채 거기서 살고 있었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내재해 있는 것이다. 분명히 그 것은 진리였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시에 죽음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나오코의 죽음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이런 것이었다. 그 어떤 진리도 사랑 하는 사람을 잃은 슬품을 치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어떤 진리도, 그 어떤 성실함도, 그 어떤 강인함 도, 그 어떤 부드러움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 슬픔을 실컷 슬퍼한 끝에 그것으로 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는 길밖에 없으며, 그리고 그렇게 배운 무엇인가도 다음에 닥쳐오는 예기치 않은 슬 픔에 대해서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혼자서 그 밤의 파도 소리를 듣고, 바람 소리에 귀 를 기울이면서, 매일 골똘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상실의 시대 - 무라까미 하루끼 107

108 왕과 나 - 이덕일,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지도자 소서노 :53 왕과 나 - 이덕일 김유신 기득권을 지키려는 주류의 카르텔보다 더 강한 것은 세상을 바꾸고 싶은 비주류의 어젠다다. 신숭겸 배현경 복지겸 홍유 논공행상에 대한 불만 없이 마음을 비우고 헌신하면, 결국 그 공로를 인정받게 된다. 소서노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는 사람은 도전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때론 안의 일보다 밖을 바라보는 넓 은 시야가 필요하다 정도전 낮은 자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 볼 때, 혁명의 씨앗이 잉태되고, 그 사상을 옮길 때 혁명의 꽃이 핀다. 황희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려면 이를 알아봐주는 군주를 잘 만나야 하는 시운도 따라줘야 한다. 김육 왕과 나 - 이덕일,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지도자 소서노 108

109 국부와 민부를 모두 아우르는 정책은 수많은 반대에도 굽히지 않고 소신을 다할 때에야 비로서 실현될 수 있다. 천추태후 정권 획득이 목적이 아닌, 정권으로 이룩해야 할 노선이 있을 때 권력을 차지해야 기상을 펼칠 수 있다. 강홍립 때로는 시대가 부여한 악역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사람이 나라를 위해서 더 큰 역할을 한다. 박자청 신분 차별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실력을 바탕으로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하면서 실무를 보좌하면 무한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인수대비 맹목적으로 권력을 잡는 데만 몰두하면 정작 그 권력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을 상실한다 홍국영 자신의 역할을 과대평가한 나머지 군신관계를 뛰어넘어 역린을 건드리면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잃는다. 왕과 나 - 이덕일,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지도자 소서노 109

110 우리 역사의 가장 위대한 여성 리더쉽 소서노는 만주 졸본천( 卒 本 川 )의 토착세력인 연타발( 延 陀 渤 )의 딸로, 북부여왕 해부루( 解 夫 婁 )의 서손이었 던 우태( 優 台 )와 혼인해서 비류와 온조라는 두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우태가 먼저 사망하자 두 아들을 키 우면서 지냈다. 그런데 서기전 37년 북부여에서 주몽이 망명해 소소노가 사는 졸본까지 내려왔다. 이때 소 서노의 나이 32세, 주몽은 21세였다. 소서노에게는 비류와 온조라는 두 아들이 있었고, 주몽은 부여에 임 신한 부인 예씨와 아들 유리가 있었다. 망명객의 처지는 고달플 수밖에 없었다. 주몽이 북부여에서 도망칠 때 따라나선 인물들은 오이, 마리, 협 보 세명뿐이었다. 겨우 세 사람을 데리고 남하했고, 겨우 엄사수를 건너서는 세 사람을 더 얻고 나서 천 명, 건국 운운하는 주몽을 토착세력이 곱게 봤을 리는 없다. 실력도 없이 큰소리만 치는 허세꾼으로 보였 을 것이다. 그러나 소서노는 달랐다. 그 자신이 토착세력의 대표 언타발의 딸이었지만 정체된 현실에 만족 하는 기득권자의 시각이 아니라 졸본의 변화를 추구하는 도전자의 시각으로 주몽을 바라보았다. 소서노는 졸본지역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졸본지역은 흔히 오부족으로 불리는 부족들로 나뉘어 있었다. 졸 본지역의 시대적 과제는 부족통합에 의한 국가창업이었지만 남편 우태가 죽은 후 졸본에는 이를 수행할 능력자가 없었다. 소서노에게 중요했던 것은 토착세력인지 이주세력인지의 여부가 아니라 졸본지역의 시 대적 과제를 수행할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점이었다. 주몽의 명분과 능력에 졸본지역의 유력 세력이었던 소서노가 가세하자 졸본지역은 물론 만주 전 대륙에 엄청난 폭발력을 일으키는 대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연상의 과부 소서노가 주몽이라는 젊은 망명객을 선 택한 것은 만주 전역의 정세를 바꾸어 놓았다. 소서노는 북부여왕 해부루의 손부( 孫 婦 )였으니 북부여에서 망명한 주몽은 엄밀하게 따지면 시가의 정적이었다. 그러나 소서노는 과거의 악연을 털고 미래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주몽을 선택한 것이다. 만주 전역을 아우르는 대제국으로 통일제국 수 당과 천하를 놓고 정면승부를 펼쳤던 천하 제국 고구려는 이렇게 탄생했다. 고구려는 소서노라는 토착세력의 물적 토 대가 주몽이라는 이주세력의 명분과 능력에 힘을 실어주어 건국된 신흥국가였다. 그러나 소서노의 창업의 공은 주몽왕 19년(서기전19년) 부여에서 주몽의 아들 유리가 찾아오면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때가 소서노가 주몽을 왕으로 올린 지 19년째 되는 해였다. 소서노는 당연히 자신의 장남 비류가 태자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태가자 된 인물은 북부여에서 온 유리였다. 유리 를 태자로 삼은 지 6개월만에 주몽은 마흔 살로 세상을 떴고, 태자 유리가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이 때 소서노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 하나는 유리왕과 권력투쟁에 나서는 길이었다. 졸본은 소서노의 왕과 나 - 이덕일,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지도자 소서노 110

111 고향이자 세력기반이었다. 부러진 칼 조각을 들고 부친처럼 세 명의 부하를 이끌고 망명한 유리는 졸본지 역에 자신의 세력이 없는 상태였다. 토착세력인 소서노가 두 아들과 손잡고 유리왕 축출에 나선다면 유리 왕이 승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소서노는 내부 파쟁 대신 다른 길을 선택했다. 또다시 개국의 길, 또 다른 킹메이커의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과거 주몽을 선택할 때 그랬던 것처럼 기존의 성과에 안주하는 대신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로 했 다. 장남 비류도 어머니의 뜻에 따라 동생 온조를 설득했다. 비류는 바닷가에 살자고 주장했다. 장남 비류가 고집을 꺽지 않자 소서노는 장남 대신 차남 온조를 왕으로 선택했다. 그는 온조와 한강 유역에 하남위례성을 쌓고 새 나라를 건국했다. 소서노는 온조왕 13년(서기 전6년)에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단재 신채호가 <조선상고사>에서 소서노는 조선사상의 유일한 여제왕의 창업자일뿐더러, 곧 고구려와 백제의 양국을 건설한 자 라고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 과장만은 아니다. 비록 후대의 역사가들에 의해 고 구려의 개창의 공은 남편 주몽에게 백제 개창의 공은 아들 온조에게 돌아갔지만 이 두 나라는 소서노가 없다면 건국되기 어려웠던 왕국들이었다. 그녀는 주몽을 선택해 대륙국가인 고구려를 건국했고, 온조를 선택해 해양국가인 백제를 건국했다. 한국 사의 원형인 대륙성과 해양성인 소서노의 일생에 온전히 담겨 있는 것이다. 현 사회는 안의 일로 더 시끄 럽다. 안의 일이 물론 중요하지만 때로는 밖을 바라보는 더 넓은 시야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것이 더 큰 결과물을 낳는다는 것을 소서노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왕과 나 - 이덕일,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지도자 소서노 111

112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 하인라인 :44 달은 무자비한 달의 여왕 (The Moon is a Harsh Mistress)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 하인라인 112

113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C. 클라크와 함께 SF 3대 거장으로 꼽히는 로버트 하인라인의 대표작. 휴고 상 최 우수 작품상 수상, 프로메테우스 상 명예의 전당 2075년의 달은 지구에 광물 및 농산물을 공급하는 식민지이다. 혹독한 생활 환경과 총독의 압제, 불공평한 교역조건으로 달 건주민들의 고통은 점점 커져만 간다. 달 세계 중앙 컴퓨터 수리를 담당하는 기술자 마누 엘은 호기심에서 정부 정책을 규탄하는 비밀 집회에 참석하지만, 갑자기 난입한 총독부 무장 친위대의 유 혈 진압 사태에 휘말리고 만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기 이전에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달에 대한 SF 중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을 따를 책은 없다. 우주의 신대륙인 달 세계에 관한 미래적 고찰 속에 자유주의와 인간 해방의 메 시지가 읽힌다. 작품 속에서 그려진 달 세계의 무장 봉기는 소비에트 혁명과 미국 독립 전쟁을 연상시키는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 하인라인 113

114 한편, 박력 있는 우주 서사극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 라는 경구는 현대 영어의 유산이 되었다. <가디언>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 하인라인 114

115 내가 공산주의와 파시즘을 반대하는 이유(게으름에 대한 찬양) ) - 버트란 드 러셀 :02 내가 공산주의와 파시즘을 반대하는 이유 공산주의와 파시즘에 동시에 적용되는 몇 가지 반론 - 내가 보기엔 이것이야말로 가장 결정적이다 - 이 있다. 두 체제 모두 소수의 집권자들이 대다수의 국민들을 미리 생각해 둔 틀에 강제로 짜 맞추 려 한다. 그들은 마치 기계를 제작하는 사람이 재료를 보듯 국민들을 바라본다. 기계 재료들은 자체 내 고유의 발전 법칙이 아닌 제작자의 목적에 따라 많은 변형을 겪게 된다. 생물이 관련된 경우, 특히 인류가 관련된 대부분의 경우에는 자발적 성장만이 일정한 결과를 낳 도록 되어 있어 그 외의 결과들은 강제와 압력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회 전체의 밑그림을 구상하고 있는 파시스트와 공산주의자는 특정 틀에 끼워 맞추기 위해 개인들을 비틀어 버린다. 제대로 비틀어지지 않는 사람들은 죽여 버리거나 강제 수용소로 보내 버린 다. 개인의 자발적인 추진력을 완전히 무시하는 이런 류의 관점이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거나 장기 적으로 정치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인류가 이러한 기형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선 자유로운 성장, 자기 마음대로 해보기, 훈련되지 않은 자연스런 삶이 필수적이다.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와 인내가 요구되는 궁극적인 이유인 것 내가 공산주의와 파시즘을 반대하는 이유(게으름에 대한 찬양) - 버트란드 러셀 115

116 이다. 어쨋거나 나처럼 공산주의와 파시스트의 독재, 둘 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믿는다면 그것들이 유일한 대안 이라고 주장하며 민주주의를 폐물 취급하는 경향에 대해 한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류가 그것들 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하면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되 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공산주의와 파시즘을 반대하는 이유(게으름에 대한 찬양) - 버트란드 러셀 116

117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 노암 촘스키 :50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권력의 중심은 부자 나라들에 있습니다. G3, 때로는 G8로 일컫는 최강대국들,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 금 융기관과 국제기관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거대한 네트워크를 맺고 있습니다. 실 제로 요즘 들어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과점 형태로 이뤄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과점 형태의 시장 으로 변해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강력하고 전제적인 힘을 지닌 소수 집단이 초강대국을 등에 업고, 때로는 국가의 정책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일부 경제 분야를 지배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 노암 촘스키 117

118 하고 있는 상황 입니다. 게다가 세계은행IBRD,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국제기관들 이 세계 경제를 좌우하면서 그 영향력을 더욱 확대해 가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무역기구는 민주주의를 억 압하는 전쟁무기와 다름없습니다. 세계무역기구의 목표는 기업의 경영자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자 는 것이니까요. 결국 모든 면에서 우리 경제는 자유경쟁체제의 껍데기만 흉내내고 있다 는 뜻인가? 금융 부분을 제외한다면 그렇습니다. 실제로 금융시장은 완전히 개방되었습니다. 어떤 규제도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경제만이 아니라 사람까지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금융위기가 반복되는 이 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997년 아시아의 금융위기도 시장의 규제장치가 마비된 결과였습니다. 일반적 인 관측에 따르면, 금융의 탈규제화 때문에 고도 성장과 공평한 분배로 정의되는 50년대와 60년대의 황금 시대가 끝나고 대다수 국민의 실질임금의 정체나 하락, 노동시간의 증가, 사회보장제도의 악화, 민주주의 의 쇠퇴 등으로 특징지워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가 금융시장의 탈규제화와 거의 동시에 닥친 것이 사실입니다. 반면에 생산체제는 금융체제만큼 탈규제화되지 않았습니다. 비교 자체가 어리석은 짓일 정도입니다. 게다가 공공분야는 여전히 국가의 주도 하에 있습니다. 고전경제학파의 자유무역론은 다국적 기업의 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새로운 무역협 정으로 다국적 기업은 자국민과 동등한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 노암 촘스키 118

119 현실의 민주주의는 가짜다 모든 것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 널리 알려진 이론으로 거의 공식 화된 이론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국민이 당사자가 아니라 방관자에 머무는 체제 입니다. 일정한 시간 적 간격을 두고 국민은 투표권을 행사하며 그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지시해 줄 지도자를 선택합니다. 이런 권리를 행사한 후에는 집에 얌전히 틀어박혀 있어야 합니다. 주어진 일에 열중하고 벌어들인 돈으로 소비 하고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요리나 하면서 지내야 합니다. 국가를 성가시게 굴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이런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마르크스주의가 요즘 세상에도 여전히 적용 가능한 이론이라 생각하십니 까? 한 사람의 이름이 붙여진 것은 무조건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마르크스주의나 프로이드 주의처럼 사람의 이름이 붙여진 학설은 일종의 종교로 미화되는 경행이 없지 않습니다. 학설이 그 인물을 신격화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 노암 촘스키 119

120 당신이 한 개인을 신격화한다면, 그것은 조직화된 종교에 입문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실제로 마르 크스주의도 일종의 종교였습니다. 마르크스를 신으로 떠받들며 숭배하는 종교였습니다. 1970년대 프랑스에 서 있었던 사건처럼 마르크스주의에 변화를 주려 했던 학자들은 신성모독죄를 저지른 듯한 죄책감에 시달 려야 했습니다. 그럼 양식을 믿으십니까? 양식만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평등과 자유를 추구한다고 믿을 만한 몇 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폭력을 일삼는 친위대원이 될 수도 있고 성인군자가 될 수도 있 습니다. 모든 것이 환경, 그리고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 노암 촘스키 120

121 최장집교수가 안철수를 떠난 이유 :34 최장집 교수가 안철수를 떠난 이유는? 최장집 교수가 안철수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 이사장직을 사임했다. 안철수 의원이 대선 후 미 국에 체류하면서 읽은 책이 최장집 교수의 노동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이라는 책이었다. 이사장의 역할 수행 문제인가? 최 교수는 지난 1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연구소에서 내가 책임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 다. 이른바 '명사( 名 士 )'로서 이름만 올려놓은 거지 그 안에서 그 이상의 역할을 못하게 된 것" "직함은 이 사장이었지만, 연구소 내부에서 나의 의견이나 아이디어에 특별한 무게가 실리지 않았다. 내가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안철수 의원이 그 방향으로 수용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안의원의 무이념성 때문인가? 안의원은 내가 말한 진보적 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수용했다. 하지만 여전히 무이념을 좋아하는 것은 분 명하다. 안의원 그룹은 주체적인이념을 가지고, 확신한 가치를 추구하며, 그 목적의식을 중심으로 결집된 최장집교수가 안철수를 떠난 이유 121

122 정치조직은 아니다. 구체적으로 (사람을) 거론할 수는 없지만, 이념성 부각을 여전히 부담스럽게 생각한 다 고 말했다. 최 전 이사장이 내일 의 이사장으로 영입될 당시 한 정치학자는 정치인이 가져야 할 세가지 덕목을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로 본다면, 안철수 의원은 윤리적 태도인 에토스 와 사회적 에너지인 파토 스 를 가지고 있지만, 정치적, 정책적 내용인 로고스를 가지고 있지 않다. 최장집교수의 영입을 로고 스 를 채우려는 정략적 선택인지 지켜볼 일이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최장집교수가 안철수를 떠난 이유 122

123 공감의 시대 - 제러미 리프킨 :40 공감이란 무엇인가? 동정은 다른 사람의 곤경을 보고 측은함을 느끼는 감정을 의미한다. 공감은 동정과 정서적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실제 둘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 공감의 감pathy은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의 정서적 상태로 들어가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인 것처럼 느끼는 것을 뜻한다. 수동적인 입장을 의미하는 동정과 달리 공감은 적극적인 참여를 의미하여 관찰자가 기꺼이 다른 사람의 경험의 일부가 되어 그들의 경험에 대한 느낌을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감의 시대 - 제러미 리프킨 123

124 시장거래를 적대적인 관계와 제로섬게임에서 나타나는 경쟁의 결과로 보았던 기존의 관념은 윈윈전략에 기반을 둔 네트워크. 합작이 득세하면서 입지를 잃고 있다. 다른 사람의 관심을 최대로 활용하는 네트워크 는 자산과 가치를 증가시킨다. 협력이 경쟁을. 누를 수 있다. 음모와 조작을 부추기는 권모술수보다는 리 스크를 분담하는 오픈 소스 협력체제가 규범으로 자리잡았다. 윌리엄 페어베언, 하인츠 코후트, 도널드 위니콧은 각자의 방식으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근간을 조 금씩 흔들었고, 개인의 정신과 자아의식의 발달에서 리비도 충동보다는 사회적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점 을 강조하여 인간 본성에 관한 프로이트의 견해를 뒤집었다. 공감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 인간이 선한 것은 처벌이 두렵거나 보상을 바라고 행동하기 때문이 아니라, 공감하는 것이 인간의 본 성 이기 때문이다. 명령이나 약속에 의해 도덕적으로 적절한 행동을 내면화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곤경을 느낌으로써 도덕적 행동을 실체화한다. 중요한 것은 이성의 원천이다. 이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성이 경험을 거치지 않고 접근할 수 있는 아프 리오리한 현상으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나 칸트식 관념은 현실세계에서 우리가 추론하는 방법과 맞지 않 는다. 이성은 경험을 짜 맞추는 방법이고 그래서 많은 정신적 도구에 의지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성 이 경험과 떨어져 존재하는 비실체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험을 이해하고 다루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점이다. 공감의 시대 - 제러미 리프킨 124

125 어떻게 공감이 이루어지는가? 공감의 순간은 거리낌없는 참여도 필요하지만 어는 정도 거리감도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의 느낌에 완전 히 빠져 그 느낌에 압도된다면 자아의식을 잃기 때문에 그들의 느낌을 우리의 느낌으로 상상할 수 없다. 공감은 미묘한 균형감각을 필요로하는 행위이다. 마음의 문을 열고 다른 사람의 곤경을 자신의 일처럼 체 험해야 하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독립적 존재를 만들어주는 자아의 능력까지 버려서는 안된다. 공감에는 너와 나를 연결하는 소통의 통로가 있어야한다. 그래야 두 존재의 정체성을 합치고 공통의 정신적 공간을 확보할수 있다. 마음과 느낌이 있어 다른 사람과의 첫 교제가 가능하지만, 그런 것은 곧 과거의 기억을 통 해 걸러지고 다양한 이성의 힘에 의해 재구성되어 적절한 감정적, 인지적, 행동적 반응을 일으킨다. 이런 공감의 시대 - 제러미 리프킨 125

126 모든 과정을 통해 공감 인식이 형성된다. 공감의 시대 - 제러미 리프킨 126

127 대통령과 최고경영자(CEO) (CEO)의 리더쉽 차이 :19 대통령과 최고경영자의 리더쉽 차이 - 이정전 교수 이정전 교수가 '시장은 정의로운가'에서 말한 대통령과 최고경영자의 리더쉽 차이를 비교해 본다. 이글을 읽는 CEO께서는 동의하지 않을는지 모른다. 단지 유형화한 것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첫째, 최고경영자는 자기 의사대로 불도저식으로 일을 추진할 여지가 많이 있지만 대통령의 경우에는 그 렇지 못하다. 거의 모든 정치현안에 대해서 강력한 반대파가 늘 존재한다. 따라서 최고경영자와는 달리 대 통령은 반대파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탁월한 협상력이 있어야 하며, 반대파를 끌어안을 수 있는 참을 대통령과 최고경영자(CEO)의 리더쉽 차이 127

128 성과 포용성도 있어야 한다. 둘째, 최고경영자는 승진, 보너스, 좌천, 해고, 각종 꼼수 등 다양한 수단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직원들을 요리한 수 있지만 대통령은 그럴 수 없다. 대통령 주위에 포진해 있는 의회, 언론, 권력기관 등 다양한 견 제세력들을 적절히 통제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강력한 지지를 업어야하는데, 그러자면 국민의 사랑과 존경 을 받아야한다. 셋째, 최고경영자는 광고나 상술을 통해서 자사의 상품을 시장에 알리거나 잘 안되면 다시 포장하거나 다 른 상품으로 바꾸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신뢰를 바탕으로하는 대통령은 그렇게 시험삼아 해보았다가 잘 안 되면 집어 치우는 식의 태도를 가져서는 안된다. 대통령은 정책수립에서부터 추진단계에 이르기까지 온갖 공식적 언로를 통해서 끊임없이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반대 의견을 경청하고 설득함으로써 폭넓은 공감 대를 바탕으로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최고경영자는 일방적 의사소통에 많이 의존하 지만, 대통령에게는 쌍방적 의사소통이 특히 중요하다. 대통령과 최고경영자(CEO)의 리더쉽 차이 128

129 게으름에 대한 찬양 - 버틀란드 러셀 :00 게으름에 대한 찬양(In Praise of Idleness) 내가 진심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근로 가 미덕이라는 믿음이 현대 사회에 막대한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행복과 번영에 이르는 길은 조직적으로 일을 줄여가는 일이다. 문명이 시작된 이래오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인간은 열심히 일해도 자신과 가족의 생계에 필요 한 정도밖에 생산할 수 없었다. 비록 그의 아내도 남편 못지 않게 열심히 일했고 아이들도 나이가 차는 대 로 노동력을 보탰겠지만 말이다. 최소한의 필요를 웃도는 작은 양의 잉여물이 생긴다해도 전사나 사제 집 게으름에 대한 찬양 - 버틀란드 러셀 129

130 단에게 돌아갔다. 이처럼 오래 유지되어 왔고 종식된지 얼마 안된 체제이니만큼 그것이 사람들의 사고와 견해에 깊은 흔적 을 남겼으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근로의 바람직성과 관련해 당연시 여기고 있는 많은 내용들이 이 체제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이것들은 산업 사회 이전의 산물이기 때문에 현대 세계에는 적합 하지 않다. 현대의 기술은 여가를 소수 특권 계층만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공동체 전체가 고르게 향유할 수 있는 권리로 만들어 주었다. 근로의 도덕은 노예의 도덕이며 현대 세계는 노예 제도를 필요로 하지 않다. 현대의 기술은 만인을 위한 생활 필수품을 확보하는데 필요한 노동의 양을 엄청나게 줄였다. 일하는 사람들은 장시간 일을 해야만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어 굶어죽게 방치되었다. 왜? 일 은 의무이므로, 사람은 그가 생산한 것에 비례해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근면성으로 대표되는 그의 미덕 에 비례해 임금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노예 국가의 도덕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생겨난 상황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다. 그러니 결과가 비참한 것은 당연할 수 밖에. (8시간 일하는 핀공장)인력의 절반이 완전히 손놓고 노는 동안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과로에 시달려야 한 다. 이런 방식으로 불가피하게 생긴 여가는 행복의 원천이 되기는커녕 온 사방에 고통을 야기시킬 뿐이다. 이보다 더 정신나간 짓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노동 시간이 약간 긴 것 같다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이 주제넘게 제의했을 때 되돌아 온 대답은, 일이 어른들에겐 술을 덜 먹게 하고 아이들에겐 못된 장난을 덜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었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 버틀란드 러셀 130

131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생의 행복과 환희가 충만할 것이다. 신경쇠약과 피로와 소화불량증 대신에 말이다. 필요한 일만 함으로써 기력을 소모하는 일 없이 여가를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여가 시간에 저쳐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므로 사람들은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류의 오락거리들만 찾진 않을 것이다. 적 어도 1퍼센트는, 직업상의 일에 써 버리지 않은 시간을 뭔가 유용한 것을 추구하는 데 바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일들은 그들의 싱계와 관련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독창성이 방해받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나이 많고 박식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표준에 맞출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가의 좋은 점은 예외적인 경우에 서만 확인되는 것은 아니. 행복한 생활의 기회를 가지고 된 평범한 남녀들은 보다 친절해지고, 서로 덜 괴롭힐 것이고, 타인을 의심의 눈빛으로바라보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또한 전쟁을 일으키게 되면 모두가 장시간의 가혹한 노동을 해야 할 것이므로 전쟁 취미도 사라질 것이다. 현대의 생산 방식은 우리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쪽 사 람들에겐 과로를, 다른 편 사람들에겐 굶주림을 주는 방식을 선택해 왔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기계가 없던 예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정력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어리석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리석음 을 영원히 이어나갈 이유는 전혀 없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 버틀란드 러셀 131

132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 조지 레이코프 :42 미국의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왜 서민들이,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와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 정당에 투표할까? 서민들이 보수 정당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사실'을 알고 이해하기만 하면 돌아설 것이라고 진보 진영은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혹은 진실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생각은 환상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체계와, 그 가치를 떠올리게 하는 언어와 '프레임'에 근거하여 정치와 후보자에 대해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 조지 레이코프 132

133 판단을 내린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익과는 반대로 투표하는 것이다. 그들을 투표소 로 들어가게 하는 동기는 바로 그들의 가치 - 보수주의자의 경우에는 엄격한 권위주의적 가치-이다. 프레임이란 무엇인가? 프레임 (fra me)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프레임은 추구 하는 목적, 우리가 짜는 계획,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 그리고 우리 행동의 좋고 나쁜 결과를 결정한다. 정 치에서 프레임은 사회 정책과 그 정책을 수행하고자 수립하는 제도를 형성한다. 프레임을 바꾸는 것은 이 모두를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변화이다. 우리는 프레임을 직접 보거나 만질 수 없다. 프레임은 인지과학자들이 '인지적 무의식(cognitive unconscious)'이라고 부르는 것 의 일부이다. '인지적 무의식'이란 우리 두뇌 안에 있는 구조물인데, 의식적인 형태로 접근할 수 없지만 그 결과물 - 우리가 사고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나, 상식이라고 여기는 것-을 통해 그 존재를 알 수 있다. 또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도 프레임을 추론할 수 있다.모든 단어는 개념적 프레임에 맞추어 정의된다. 우리가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 조지 레이코프 133

134 어떤 단어를 들었을 때, 우리 두뇌에서는 그 단어와 결부된 프레임(또는 프레임의 집합)이 작동한다. 프레 임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을 바꾸 는 것이다. 프레임은 언어로 작동되기 때문에, 새로운 프레임을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가 요구된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다르게 말해야 한다. 미래에 민주당이 승리하고자 한다면, 모든 진보주의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명확하면서도 도덕적이고 보 편적인 전망을 국가에 제시해야 한다. 단순한 정책 프로그램의 나열이 아니라, 더 전통적이며 미국적인 가 치이며 도덕적인 대안을, 미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모든 것들의 배후에 놓인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 TV에 출연한 보수주의자가 '세금 구제' 같이 두 단어로 된 말을 한마디 합니다. 그러면 진보주의자는 자기 생각을 설명하고자 한 단락 짜리 길이로 논설을 풉니다. 보수주의자는 세금을 내는 것이 고통이라는 이미 확립된 프레임에 호소하는 데 '세금 구제'라는 짧은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상대편에게는 확립된 프 레임이 없습니다. 물론 그래도 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미 확립된 프레임(고정된 개 념)이 없기 때문에 훨씬 많은 힘이 듭니다. 인지과학에는 이러한 현상을 거리키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것 을 ' 저인지 (hypo co gnitio n)'라고 하는데, 필요한 생각, 즉 한두 단어로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비교적 단 순하고 고정된 프레임이 결여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저인지'라는 개념은 1950년대 타히티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연구를 수행한 인류학자 밥 레비 (Bo b Levy)는 심리치료사로서 뒤늦게 인류학 연구 에 뛰어든 사람입니다. 그는 왜 타히티에는 그렇게 자살률이 높은지 의문을 풀고자 연구를 시작했 고, 타히티어에 ' 슬픔' 이라는 개념을 지닌 단어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풀론 그들도 슬픔 을 느끼고 경험하지만, 그것을 이름 붙일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정상적인 감정으로 여길 수가 없었습니다. 슬픔을 치유하는 의식도, 슬픔을 위로하는 관습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절실히 필요한 개념을 결여했기 때문에, 결국 그렇게 높은 자살률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진보주의자들은 대단히 저인지 현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보수주의자들도 과 거에는 같은 증상에 시달렸습니다. 1964년 골드워터가 낙선했을 때 그들은 오늘날 그들이 무장하고 있는 개념을 거의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의 40년 동안 보수주의자들은 그 개념적 빈틈을 매웠습니다. 그러 나 우리의 개념적 빈틈은 여전히 그대로 있습니다. 엄격한 아버지 모델과 자상한 부모 모델 프레임을 구성하는 것은 자신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언어를 취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가 아 닙니다. 본질은 그 안에 있는 생각입니다. 언어는 그러한 생각을 실어 나르고 불러 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보수주의자들의 각각의 쟁점들(낙태, 세금징수, 환경문제, 외교정책, 총기규제, 소송개혁 등) 사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 조지 레이코프 134

135 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런 여러가지 입장들이 서로 모순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이 연관관계 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저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군. 이 사람들의 입장은 모아놓으면 전혀 말이 안 되잖아'. 하지만 곧 창피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이 모든 쟁점에 대해 이 사람들과 정확히 반대 입장인데, 그럼 내가 가진 입장들은 서로 어떤 관련이 있는 것지?' 저는 이 질문에도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특히 인지과학과 심리학을 하 는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대답을 찾았고, 그 대답은 예상치 못 했던 곳에서 나왔습니다. 그건 가족의 가치(family values)에 대한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었지요. 저는 왜 보수주의자들이 가족의 가치에 대해 그토록 자주 이야기하는지 자문해 보았습니다. 왜 대통령 선거나 의 원 선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세계의 미래가 핵 확산과 지구 온난화로 위협받고 있는 이 때에, 끊임없 이 가족의 가치에 대해서만 떠드는 걸까요? 이 시점에서 저는 몇 년 전 한 학생이 제출한 보고서를 떨올렸 습니다. 그 보고서는, 우리에게는 국가를 한 커다란 가족으로 보는 은유가 존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 요. 예를 들어 우리에게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있습니다. '미국 혁명의 딸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들들'을 전쟁터에 내보냅니다. 이것은 우리가 국가와 같은 큰 사회 집단을 가족이나 공동체 같은 작은 집단의 기준에서 이해하기 때문에 자연스런 은유입니다. 국가를 가족에 연결하는 은유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난 뒤, 저는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만약 국가를 이해하는 방식이 두 가지 있다면, 가족 을 이해하는 방식도 두 가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보수주의 편의 여러 입장 과 진보주의 편의 여러 입장을 모아 본 뒤, 이것들을 각각 반대편의 은유에 집어 넣어 무엇이 나오는지 보 기로 했습니다. 이것들을 국가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에 집어넣어서 가족에 대한 두 가지 다른 모델을 뽑 아낸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낭ㄴ 것이 ' 엄격한 아버지의 가족 (s trict fa ther fa mily)' 과 ' 자상한 부 모의 가족 (nurtura nt pa rents fa mily)' 모델 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것이 어느 편에 속하는지 아실 겁 니다. 엄격한 아버지 모델: 세상은 원래 험한 곳이고, 앞으로도 험할 것이다. 왜냐하면 바깥 세상에는 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세상은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살아가기가 힘들다. 어디에나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으며, 절대 선이 있고 절대 악이 있다. 어린이들은 -옳은 일을 하기보다는 자기 마음에 드는 일을 더 하 고 싶어한다는 의미에서-나쁜 본성을 갖고 태어난다. 따라서 우리는 자녀들을 선한 사람으로 빚어내야 한 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강하고 엄격한 아버지가 필요하다.아버지는 다음과 같은 일을 할 수 있어 야 한다. - 험한 세상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고 - 살기 힘든 세상에서 가족을 부양하고 - 자녀들을 그릇된 길에서 바르게 인도해야 한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 조지 레이코프 135

136 중략 이 모델에는 '선한 사람(good person)'에 대한 정의도 포함되어 있다. 선한 사람-도덕적인 사람-이란 규 율을 잘 따르며 순종적이고, 무엇이 옳은지 잘 배워서, 옳은 일은 하고 그른 일은 하지 않으며, 자기 이익 을 추구하여 부와 자립을 이룩하는 사람이다. 선한 아이는 자라서 선한 사람이 된다.'나쁜 아이는 규율을 배우지 못하여 도덕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옳지 못한 일을 저지르며, 따라서 부유해질 수 없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해 의존적이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 규율을 갖추어 부유해지든지 그렇지 못 하든지 둘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이때부터 엄격한 아버지는 그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 이는 정치적 으로 보면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상의 생각이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관점에서 어떤 의미를 띠는지 생각해 봅시다. 이 생각에 따르면 사 람들에게 그들이 직접 일해서 벌지 않은 것을 그냥 주는 것은 비도덕적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규율이 허술해져 의존적이고 비도덕적으로 되기 쉽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사회 복지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것도 비도덕적 입니다. 자상한 부모 모델: 엄격한 아버지 세계관은 아버지가 가족의 우두머리라는 믿음에 따라 붙은 이름인데 비해, '자상한 부모'세계관은 젠더 중립적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키우는데 둘 다 동등한 책임을 진다. 모든 어린이는 본성이 선하며 더욱 선해질 수 있다는 것이 그 기본적인 가정이다. 세상 또한 더 나은 곳으로 바 뀔 수 있으며, 또 바꾸어야 한다. 부모가 할 일은 자녀를 자상하게 보살피고 그 자녀들이 다시 다른 사람 들을 보살피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키우는 것이다. 보살핌(nurturance)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공감(empathy)과 책임(responsibility)이라는 두 가지 뜻을 품고 있다. 아이를 키운다면 아이의 울음 소리 만 듣고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려야 한다. 아이가 언제 배고픈지, 언제 기저귀를 갈아 줘야 하는지, 언 제 악몽을 꾸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부모에게는 아이를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다.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돌볼 수 없기 때문에, 아이를 돌보려면 자신 또한 돌보아야 한다. 이 모두가 쉬운 일 이 아니다.아이를 키워 본 사람은 그것이 힘든 일임을 잘 안다. 따라서 부모는 강해져야 하며, 열심히 노 력해야 한다. 또 경쟁력을 갖춰야 하고 많이 알아야 한다. 그 외의 다른 모든 가치는 공감과 책임이라는 가치에 자동으로 딸려 온다. 엄격한 아버지 모델과 보수주의 보수주의자들이 권력을 유지하려며 많은 저소득층의 지지가 필요하다. 따라서 상당수 저소득층과 중산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 조지 레이코프 136

137 층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에 반하여 투표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일은 노 동자 계층의 다수와 복음주의적 개신교 신자들이 가정이나 종교 생활에서 ' 엄격한 아버지' 의 도덕을 따르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다. 보수주의 지식인들은 이것이 정치적 보수주의와 일맥 상통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또한 사람들이 경제적 이해 관계가 아니라 자기의 가치와 정체성에 투표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한 일은 가정과 종교상의 ' 엄격한 아버지' 도덕 과 보수주의 정치 사이에 프레임과 언어를 통해 연결 고리를 놓은 것이었다. 이 개념적인 연결 고리가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설 수 있으려면 강력한 감정적 힘을 지녀야 했다. 이를 달성하고자 그들이 취한 방법이 바로 모든 수단을 동원한 문화적 내전으로서, 즉 엄격한 도덕을 지닌 미국인(소위 보수주의 자)들을 '보살핌'의 도덕을 지닌 미국인(소위 리버럴)들과 싸움 붙이는 것이었다. 이 싸움에서 보살핌의 도 덕을 지닌 이들은 보수주의의 문화적, 개인적 정체성과 생활방식을 위협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보수주의 정치 지도자와 지식인들은 이 목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도전에 직면했다. 그들은 경제 적 정치적 엘리트를 대표하면서 동시에 중간 및 하위 계층 노동자들의 표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보수주의 사상을 대중적인 것으로, 그리고 리버럴/진보주의 사상을 엘리트주의 적인 것으로-실은 그 반대가 진실임에도- 포장할 필요가 있었다. 프레임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일상 언어와 사고를 완전히 바꾸어야 하는 엄청난 문제에 부딪혔다. 이때 '엄격한 아버지'의 도덕은 그들에게 큰 이점이 되었 다. 이 도덕체계에는 '부자들은 손수 돈을 벌었고 부를 누릴 자격이 있는 선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내포되 어 있기 때문이다. 두뇌 집단의 지식인, 언어 전문가, 작가, 광고 에이전시, 미디어 전문가들이 30~40년간 에 걸쳐 작업한 끝에 보수주의자들은 사고와 언어의 혁명적 변화를 이루어 냈다. 언어를 통해 그들은 리버 럴들이 (정책은 대중 친화적임에도) 나약한 엘리트이며 세금이나 축내는 비애국자 - 리무진 리버럴, 라떼 리버럴, 세금 축내는 리버럴, 할리우드 리버럴, 동해안 리버럴, 러버럴 엘리트, 나약한 리버럴 등 - 라는 인상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보수주의자들은 (경제적 엘리트를 위한 정책을 내세우는데도)언어와 몸짓을 통해 대중주의자로 탈바꿈했다. 모두가 싫어하는 리버럴들, 나약한 엘리트들, 세금만 축내는 비애 국자들이 미국의 문화와 가치를 위협하고 있으며, 그들에 대항하여 모든 전선에서 계속 가열차게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보수주의자들에 따르면, 리버럴은 도덕, 종교, 가족, 진정한 미국인들이 아끼는 모든 것을, 나아가 나라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 리버럴과 진보주의자들이 믿고 있는 신화 1. 계몽주의와 함께 탄생한 이 신화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합리적인 존재이므로, 우리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그들은 옳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라는 가정으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 조지 레이코프 137

138 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인지과학에 따르면 사람들은 그런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엄격한 아버지'와 '자 상한 부모'의 프레임은 각각 특정한 논리를 작동합니다. 진실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려면, 그것은 사람 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프레임에 부합해야 합니다 만약 진실이 프레임과 맞지 않으면, 프레임은 남고 진 실은 버려집니다. 2. 계몽주의로부터 유래한 신화가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이익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은 비합리적 이다. 따라서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기 이익에 기초하여 사고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반 드시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투표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 치관에 따라 투표합니다. 그들은 자기가 동일시하고 싶은 대상에게 투표합니다. 물론 그들은 자기 이익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이익에 관심이 없다는 말 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보다도 자기의 정체성에 투표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정체성이 자기 이익 과 일치한다면 두말할 것 없이 그쪽으로 투표할 것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언제나 단순히 자기 이익에 따라서 투표한다는 가정은 심각한 오해입니다. 3. 세 번째 오해는 선거운동을 상업적 마케팅과 동일시하는 은유입니다. 이 은유에 따르면 후보자들은 상 품이고, 쟁점에 대한 후보자의 입장은 상품의 질이나 특성이 됩니다. 이러한 가정은 선거에서 어떤 쟁점을 전면에 내세울지를 여론 조사를 통해 결정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생각만큼 잘 통하지 않습니다. 물론 가끔은 쓸모 있기도 하고, 사실 공화당은 그들의 전략에 이 방법을 가미해서 사 용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진짜 전략과 성공요인은 그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데올로기적인 신념 을 말합니다. 그들은 자기 지지자들의 프레임을 이용하여 자기 지지자들을 향해 발언합니다. 리버럴과 진 보 진영의 후보들은 여론 조사를 따라, 좀더 오른쪽으로 이동하여 더 '중도적'으로 되어야 한다고 결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은 전혀 왼쪽으로 이동하지 않습니다. 그러고도 그들언 선거에서 이 깁니다. 진보주의자들이 실천해야 할 11가지 1. 보수주의자들이 올바른 방향을 택했고 진보주의자들은 배를 놓쳤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 다. 이는 단순히 미디어를 통제하는 데 성공했느냐 하는 문제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결코 사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 조지 레이코프 138

139 소한 문제는 아닙니다만). 그들이 올바른 방향을 택했다는 것은 쟁점들을 그들의 시각에서 프레임으로 구 성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성공과 우리의 실패를 인정합시다. 2. "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라는 경구를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프레임을 사용 하여 그들의 주장에 대항한다면, 그을의 프레임만 더욱 굳게 다져 주고 패배할 것입니다. 3. 진실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는 것만으로는 통하지 않습니다. 진실을 우리의 관점에 맞추어 효과적으로 프레임으로 구성해야 합니다. 4.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도덕적 관점에 입각하여 말해야 합니다. 진보적 정책은 진보적 가치에서 유래합니다. 우리의 가치를 명확히 하고 그 가치에 속한 언어를 사용하십시오. 전문가인 척하는 관료주의 적 언어를 버리십시오. 5. 보수주의자들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십시오. 그들의 '엄격한 아버지'도덕과 그 결과를 확실히 파 악하십시오. 우리가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를 파악하십시오. 왜 그들이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6. 개별 쟁점을 넘어 전략적으로 사고하십시오. 개별적인 정책의 관점에서만 보지 말고 더 큰 도덕적 목표를 염두에 두십시오. 7. 정책안의 결과에 대해 숙고하십시오. 우리도 진보적인 '미끄러운 비탈'형 주도를 만들어 봅시다. 8. 유권자들은 자기의 정체성과 가치관에 투표하며, 이는 꼭 그들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9. 단결합시다! 협력합시다! 진보주의적 사고의 여섯 가지 유형, 즉 (!)사회경제적, (2)정체성 정치, (3) 환겨우의, (4)시민 자유, (5)영적, (6)반권위주의적 진보주의를 상기해 봅시다. 이주 내가 가장 많이 의존하 는 유형이 무엇인지 - 나와 내주위의 사람들이 이 스펙트럼에서 어디에 해당하는지 - 인지 하십시오. 그 리고 각자 지니고 있는 특정한 유형의 사고방식에서 시야를 넓혀, 공통된 진보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생각 하고 말하는 법을 배웁시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 조지 레이코프 139

140 10. 수동적이 되지 말고 능동적이 되십시오. 방어하지 말고 공격하십시오. 항상, 모든 쟁점에 대 하여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단순히 우리의 신념을 말하는 것으론 부족합니다. 그들의 프레임을 사용하지 말고 우리의 프레임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의 프레임만이 우리가 믿는 가치에 부합 하기 때문입니다. 11. 부동층 유권자들에게 우리의 모델을 작동하려면 진보주의적 지지자들을 향해 발언해야 합 니다. 오른편으로 이동하지 마십시오. 오른편으로 이동하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에게 상처를 줍니 다. 이는 우선 진보주의 지지자들을 소외시키고, 부동층 사이에 보수주의 모델을 작동시킴으로써 도리어 보수주의자들에게 보탬이 됩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 조지 레이코프 140

141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 최장집 :23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최장집 교수의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은 칠순에 이른 정치학자가 새벽 인력시장의 일용직 노동자, 봉제 공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 최장집 141

142 장 노동자, 기초 생활 수급자, 이주 노동자, 재래시장 상인들, 농민과 청년 비정규직, 신용불량자에 이르 기까지 우리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하층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우리 사회를 진단하고 우리사회와 민 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책이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 노동자는 어느 사회에서든 가장 중요한 생산자 집단이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들은 대부분 임금 소득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 경제활동인구의 90퍼센트 안팎을 차지한다. 자영업자의 비중이 예 외적으로 큰 우리나라도 임금 소득자의 비중은 70퍼센트에 이른다. 자영업자 가운데 자신과 가족노동에 의존해 최저 수준의 소득을 얻는 영세 자영업자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우리 역시 자신의 노 동으로 삶을 운영해야 하는 사람들이 절대다수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귄위주의와 싸우면서 민주화에 걸었던 가장 큰 기대는,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경제적으로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기대와는 달리, 민주화 이후 시간이 갈수 록 노동자들이 시장 상황에 무력하게 휘둘리는 종속적인 지위로 빠져들게 될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일이었다. 다른 정부도 아닌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규모가 정규직에 맞먹을 정도로 확대되었다는 단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존재 조건이 얼마나 취약해졌는가는 잘 드러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노동운동은 보통 사람들의 삶의 현실과 그들의 권익을 대표하는 것으로 표상되었다. 적어도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의 정당성과 도덕성은 도전받거나 의심될 수 없는 것이 었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운동은 더 이상 그런 위상을 갖고 있지 못하다. 갈등과 혼란은 도처에서 목격된다. 지향하는 투쟁의 목표와 방식을 달리하는 세력들 사이에서, 일반 노동 자와 노조원 사이에서, 노조원과 노조 지도부 사이에서, 재벌 대기업 본사의 정규적 노동자와 하청 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에서, 노조에 의해 보호되는 노동자와 영세 중소기업에 광범하게 산재해 있으면서 보호되지 못하고 있는 불안정 노동자 사이에서 누적된 갈등은 여러 형태로 표출되었다. 노동은 모든 사회 구조물의 기반을 이루는 힘이다. 경제성장도 시장도 재벌 대기업도, 그리고 민주 정부도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 최장집 142

143 모두 노동에 기반을 두고 서있다. 따라서 노동의 위기를 말하게 되었다는 것은, 곧 위기의 한국 경제, 위 기의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한국 사회를 걱정하지 않으면 한 되게 되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노동없는 경제, 노동 없는 시장으로 달려 나가는 한국 사회의 바닥으로의 질주 가 계속된다면, 민주주의도 경제 도 유지될 수가 없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그것이 서있는 사회 경제적 기반을 튼튼히 하는 데에 도 최대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 정치과정이 곧 경제력의 크기 내지 시장의 불평등한 효과를 그대로 반영해 온 것 의 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거대 이익 내지 큰 사회경제적 힘들이 일방적으로 대표되고 그들이 압도한 결 과, 우리 사회의 약한 이익 내지 약한 사회경제적 힘들은 정책에 대해 어떤 기대를 걸 수 없었기 때문이 다. 한국정치가 어떻게 달라져아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안철수 현상 안철수가 베스트셀러 작가인 김난도와 다른 것은, 좌절감에 빠진 젊은이들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 최장집 143

144 그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위로하는 감성적 접근에서는 비슷하지만, 중소기업에 대한 재벌 대기업의 횡포,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잘못된 생산 체제, 젊은이들의 창의력을 억제하는 경쟁 만능의 잘못된 사회 운영 원리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폐쇄적 계층화라는 칸막이 사회 의 막힌 통로에 갇혀(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 세대 임을 자 조하면서 좌절감에 빠진 젊은이들을 향해, 이 사회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로 바꾸자고 말하는 그 메 시지는 강력했고 커다란 공감을 불러오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기존의 정당들은 마땅히 자신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려 시도했어야 할 사회경제적 과제 들에 무관심했고, 진보 진영은 반신자유주의, 비정규직 철폐 와 같은 공허한 구호를 내세운 것으 로 일관했다. 다시 말하면 민주당과 진보 정당들이 남겨 놓은 빈 공간을 청춘 콘서트 가 휘젓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안철수 현상은, 앞으로 그의 행적이 어떠하든 또 그것의 정치적 결과가 어떠 하든, 젊은 세대들의 자기 발견과 정치적 각성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한국의 정치발전에 기여했다. T. H. Marshall의 시민권 이론 마셜의 시민권 이론 일찍이 영국의 사회학자 먀셜(T.H. Marshall)dms 시민권citizenship의 개념을 이론화함으로써, 케인스주의 와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영국, 나아가서는 유럽의 복지국가를 발전시키는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 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시민권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즉 시민적, 정치적, 사회(경제)적 시민권은 18세 기 이래 20세기 전반기에 이르기까지 세 단계를 통해 그 내용들을 하나씩 첨가하면서 확대, 발전되어 왔다 는 것이다. 복지국가를 실현하는 기본 정책으로서 사회정책은 사회적 시민권 개념을 중심으로 새로이 개척된 정책 영 역이다. 생산의 효율성 극대화와 성장을 실현하는 경제의 시장 논리와는 달리, 사회적 시민권의 개념은 자 본주의 체제에 내장된 결함인 경제적 불평등의 축소를 가능케 하는 의미 지평을 제공한다. 시민권 이론은 기본적으로 사회 통합의 이론이다. 개인의 기본권, 정치 참여권, 그리고 사회의 경제성장 성과를 분배받을 권리로서 시민권은, 이 권리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개인 또는 집단을 사회 내로 포섭 또는 통합하는 것 을 중심 내용으로 하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사회적 시민권 이론은 성장과 효율성, 개인주의적 시장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 최장집 144

145 경쟁의 경제적 가치 만이 아니라 분배적 정의를 통해 공동체의 성원을 사회 내로 통합할 수 있는 사회적, 도덕적 가치를 사회 발전의 필수적인 요건으로 상정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시민권이 비경제적 개념 이라는 사실이다. 경제 과정에 기여하는 정도에 비례해 부여되는 가치와는 독립적으로, 다시 말해 시장의 변덕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회적권위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권리를 부여받은 것(그러므로 동 시에 의무도 부여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도덕적 원리가 있기 때문에 사적 소유를 바탕으로 한 시장 경 쟁을 내용으로 하는 자본주의와, 정치적 평등의 원리에 힘입어 다수의 지배를 실현하고자 하는 민주주의 가 양립하는, 이른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가 실현 가능해진다. 경제적, 물질적으로 생존 가능하고 도 덕적 사회적으로 통합되는 문명화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극히 단순한 내 용을 갖고 있음에도 마셜의 이론은 사회를 유지하는 데 있어 부정할 수 없는 원리를 이론화했기 때문에 보편성과 함께 커다란 설득력을 갖는다. 민주주의가 아무런 사회 통합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부속 기능 으로 전락하게 되고, 사회 공동체는 해체와 분열, 갈등의 위기에 그대로 노출되고 만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마셜은 사회적 시민권을 사회 유지와 문명화된 생활의 필수 불가결의 정신 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가 가야 할 길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 최장집 145

146 민주주의가 다른 체제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다른 체제보다 보통 사람들의 삶의 질 개선 을 포함하는 시민권을 확대하고 실현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경제 또는 시장의 영역에 서 약자이며 소외된 보통 사람들이 민주주의라는 그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할 수 있을 때 체제로서의 민주 주의가 작동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절차적 방법을 통한 실질적 문제의 해결 또는 개선이 그 핵심 인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절차적 형식적 내용과 실질적 내용이 역동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체제이 며, 따라서 일차원적인 것이 아닌 복합적인 구조와 과정을 갖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갖는 커다란 제약에도 불구하고 광범한 문제 해결의 공간을 가지며, 이 는 민주 정부의 능력의 함수이기도 하다. 우리가 민주주의에 대해 이런 가능성을 기대하지 못한다면 민주 주의에 대한 지지와 신뢰는 허약해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그 중심적 지지 세력으로부터 괴리되기 시작하 는 민주주의는 그 취약함으로 말미암아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거나 민주주의와 갈등 관계를 빚는 힘들에 의해 커다란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시민 생활의 실질적 향상에 기여하도록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일이 민주 정부의 책무라고 할 수 있음에 도 그간의 민주 정부들이 그 책임을 다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민주화 이후 민주 정부들이 보여 준 모습 은 그들이 미눚주의의 핵심이라 할 대표-책임의 연계 고리로부터 상당 정도 벗어나 있다는 것이었다. 중 산층과 서민을 대표한다고 자임했음에도, 민주 정부의 정책적 책임성은 그런 방향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IMF 위기 이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조건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사회 구성원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악화시켜 온 부정적 측면들을 포함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민주 정부들은 우리 사회의 위기를 불러오는 사 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렇다 할 능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이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비전, 의지, 정 책 대안의 부재가 반영하듯, 민주 정부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서와는 다른 대안적 경제정책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리하여 민주 정부를 이 세계화라는 조건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악화시키는 데 앞장섰 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해도, 이를 방치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 결과 사회 양극화가 급속하게 심화되었다. 한편에서는 세계화로 재구조화된 시장경제 경쟁에서의 승자 들, 거대 기업들, 정치인들, 사회 엘리트와 지식인, 그리고 주류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이들의 세계가 있 다. 다른 한편에서는 시장 경쟁의 열패자 내지 탈락자들, 사회계층 구조의 하층에 위치하면서 점차 생산과 소비의 중심 영역으로부터 주변화되고 배제되어 가는 서민들의 삶의 세계가 광범하게 존재한다. 그간 우 리 사회에서 이 두 세계 사이의 격차와 분리는 심화될 대로 심화되었다. 우리는 그동안 정치인들, 언론들 이 사회 통합 을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목표인 듯이 강조하는 소리를 듣는 데 익숙해 있다. 통합을 강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 최장집 146

147 조하는 정치적 담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듯 분리되고 약화되어 가는 영역, 즉 시장에서뿐만 아니라 민주적 권리를 통해서도 대표되고 보호받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다른 영역에 대한 이해와 정책을 말하는 소리를 듣기 어렵다. 사회경제적 문제가 정당들과 민주 정부에 의해 정치적인 문제로 다루어지지 않는 한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는 한 발짝도 진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2012년 19대 총선의 가장 큰 특징은, 민주 대 반민주 의 대립 축을 불러들여 야권 연합을 성사시켰지만 기대했던 승리는 얻을 수 없었으며, 사회경제적 소외 세력의 소리는 대표되지 못했고 노동문제 역시 주요 이슈에서 배제됐다는 점일 것이다. 한민 FTA폐기, 재벌 개혁, 보편적 복지 등 개혁적인 것을 넘어 급진적 이기까지 했던 주장과 수사를 소리 높여 외쳐 댔던 것을 생각하면 커다란 패러독스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진보적 슬로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제대로 정의되지 않았고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통해 실천 가능한 어젠다로 설정되지도 못했다. 유권자들은 정치 슬로건을 단순히 선악으로만 판단하지 않는다.공허한 담론과 추상적 이념의 언어가 지배 하는 곳에서 민주주의의 실체적 성과는 만들어질 수 없다. 그보다는 그런 개혁 사안들을 야당이 실천할 능 력과 진지함이 있는지를 점점 더 중시하기 시작했다. 2012년 19대 총선은 야당 세력이 집권당이 될 수 있 는지에 대해 다수 시민들이 강한 의구심을 보여 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당신들은 누구를 대표하는가? 그 에 기초해 어떤 한국 경제, 어떤 한국 사회를 만들려 하는가? 지난 실패를 딛고, 노동문제를 포함해 사회 경제적 사안들을 좀 더 잘 다루고 유능하게 집행할 대안적 정부가 될 수 있는가? 지금 야당과 진보세력이 대답해야 할 것은, 이 질문에 있다 하겠다. 청년 문제는 노동문제이고 정치 문제다. 오늘의 청년들은 불행하다. 삼포 세대 라는 말, 즉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의미의 이 말은 이 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잘 집약합니다.오늘날 청년들에게 있어 먹고사는 문제는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무엇보다 취업 자체가 어렵다. 청년들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그리고 대학 과정 내내 취업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이른바 스펙쌓기 과정에 들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 교육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고, 대학이 사실상 취업 준비소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오늘의 젊은 세대는 정치, 즉 정치 참여를 통해서라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강제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2010년 지자체 선거는 젊은 세대 문제를 정치적인 이슈로 끌어낸 전환적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 최장집 147

148 선거라 할 수 있다.그 후 정치에 대한 20~30대 젊은 세대의 관심이 높아졌고, 이들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 집단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젊은 세대들은 취업을 위한 노동시장에서 두 종류의 불평등 구조로 고통 받고 있다. 첫째는, 대학 서열화가 가져오는 불평등과 양극화이다. 이는 직업, 직능 기술 교육을 배제한 일반교육 중 심의 대학 제도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그것은 모든 사회경제적 직업, 종이 단일한 위계 구조로 배열돼 있는 고용 수요 측면과, 그에 상응해 스펙과 서열화된 대학에 매달리는 인력의 공급측면이 짝을 이루는 악 순환 구조를 만들어 냈다. 이 구조는 가히 1퍼센트를 위한 99퍼센트의 희생 이라는 말에 비유될 법하 다. 왜냐하면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극히 소수의 취업과 성공을 위해 압도적으로 많은 수가 그 밑을 깔 아주는 열패자의 지위에 놓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소요되는 개인적 희생과 사회경제적 비용이 얼마 나 크고, 지방대생들의 좌절감이 얼마나 큰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둘째는, 하층 노동시장에 위치한 젊은 세대들이 대면하는 대기업 중소기업 간, 정규직 비정규직 간의 양극 화 문제이다. 고용에 대한 중소기업의 기여가 압도적이라 하더라도 젊은 세대들이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 는 이유도 있다. 아무리 취업이 어렵다 해도 비정규직으로서 임금도 낮고, 고용조건도 나쁘고, 전망도 없 고,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노동 관련 기본법들도 효력을 갖지 못하는 하청 중소기업 취업에 삶의 미래를 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중소기업의 고용 수요와 젊은 세대들의 취업 희망 사이에 뚜렷한 불일치가 만들어질 수 밖에 없었다. 청년들을 위한 고용증대는 중소기업에 취업하고자 하는 인센티브를 강화하지 않고서는 어렵다. 선진적 노동시장을 갖는 국가들과 비교할 때,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전체 노 동자들의 절반에 이를 만큼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 특히 신규채용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짐으로써 청 년 노동자들 사이에서 그 비율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둘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같은 산업 및 업종의 같 은 조건에서 같은 노동을 하는 경우에도, 임금이 정규직 노동자의 절반밖에 되지 않고, 기업 내 복지 및 공적인 사회보장을 통한 수혜에서도 배제된다. 청년 피용자들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부정적 효과를 가장 직접적으로 떠안는다. * T. H. 마샬 사회적 시민권 T. H. 마샬은 영국의 시민권을 세 가지로 나누어 분석한 학자로, 영국의 시민권이 세 단계를 거쳐 발전해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 최장집 148

149 왔다고 보았는데, 먼저 그의 시민권과 관련하여 살펴보면, 18세기에는 공민권으로, 19세기에는 정치권으 로, 20세기에는 사회권으로서 시민권이 등장하였다고 한다. T. H. 마샬의 저서인 Citizenship and Social Class and Other Essays(1950)`를 보면 공민권은 사유재산의 자유, 신체의 자유, 계약 체결의 자유, 언 론 출판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종교의 자유, 법 앞에서의 평등과 같이 개인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19세기의 정치권에 대한 설명은 정치권력을 실현하는 데 참여할 수 있는 권리 라고 말하면서 정치권 권위를 부여받은 기구의 일원으로서 또는 선거에 참여하여 일원을 선출할 수 있는 선거인으로서 정치적 힘의 행사에 참여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는 이 권리는 국회나 지방의회 모두에게 일치하는 제도이다. 20세기에 등장한 사회권에 대해서는 교육과 사회서비스에 대해서 그것을 실현하는 제 도임을 밝혔는데, 권리로서의 복지, 복지에 대한 권리, 복지권은 바로 이 사회권과 관련이 있고, 복지권이 사회권과 다르지 않다고 본 것이다. 사회권이 형성되는 시기는 노동자의 사회적 조건을 놓고 계급으로서 의 자본가와 노동자가 치열할 각축을 벌였던 시기로, 마샬은 사회권을 복지권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았 으므로 복지국가 형성은 곧 사회권의 성립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 최장집 149

150 절반의 인민주권 - 샤츠슈나이더 :21 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정치란 무엇이고, 정당이란 무엇이며,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절반의 인민주권 - 샤츠슈나이더 150

151 정치란 무엇인가? 샤츠슈나이더는 정치를 갈등을 동원하고 관리하며 통합하는 역할로 정의한다. 바꿔 말해, 정치란 기본적 으로 사적인 영역에서 발원하는 수많은 갈등들 중 공동체의 존속과 관련된 중요한 갈등들을 공적 논의에 적합한 양식으로 전환하여 광범위한 대중이 그것에 대한 결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일련의 활동이다. 그 렇게 때문에 모든 정치는 갈등을 다루며, 그런 갈등의 중요성에 따라 공적 영역에서 그에대해 우선순위를 부여한 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어떤 갈등은 부처적인 것으로 무시되고 어떤 갈등은 중요하게 부각 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바로 정치의 역할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갈등이 존재하는 사회라면 어디에서나 정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에서는 누가 갈등을 정의하고 그것에 대한 우선순위를 결정하 는가? 그것은 정당이다. 정당이란 무엇인가? 정치와 관련하여 이 책이 갖는 특징은 정당의 역할을 특별히 강조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정당을 사회의 갈등이나 균열을 반영하는 수동적 존재로 인식하는 것을 넘어 그런 갈등을 일정하게 틀 짓고 위계화하는 능동적 존재임을 적극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당을 종속변수로 상정하는 대부분의 연구들과 달리 정당을 독립변수로 상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샤츠슈나이더의 이와 같은 정당론을 체계화한 대표적 연구자인 사르토리(G. Sartor)나 마이어(P. Mair)에게도 계승되고 있다. 정당을 독립변수로 상정한 다는 것은 정치 나아가 민주주의에서 정당이 능동적인 역할을 담당한다는 말이다. 그 중 하나가 유권자들 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정의하고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유권자로 하여금 자신 의 이익과 가치에 부합하는 대안을 좀 더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정당의 주된 기능이자 능력이다. 선거에서 정당들이 제시하는 대안들 간의 경쟁을 통해 정부가 구성된다는 점에서 이는 정치체제로서의 민 주주의 문제와 직결된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절반의 인민주권 - 샤츠슈나이더 151

152 만약 우리가 (인민에 의한 통치와 같이) 민주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에서 출발한다면, 현대사회에서는 민주주의를 실행할 수 없다는 극히 비관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그에게 고대 그리스에서 실천된 바 있는 인민의 지배 로서의 민주주의는 영토나 인구의 크기는 물론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분업체계를 이루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관심사는 고대의 이상을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민주주의 정의를 찾는 데 있었다. 그런 민주주의 정의가 바로 인민에 의한 지배 가 아닌 인민의 동의에 기반한 지배 혹은 정부 이다. 그리고 이러한 동의를 창출하는데 필수적인 조직은 사적 이익을 중심으로 조직된 협소한 범위의 이익집단 이 아니라 공적 이익에 대한 대안을 가지고 광범위한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 정당이다. 현대사회에서 실행 가능한 민주주의는 보통 사람들이 직접 통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뽑은 대표로 하여금 통치하게 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형식을 띨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조건에서도 정당이 어떤 대안을 제 시하고 어떤 갈등을 동원하느냐에 따라 인민주권의 이념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 샤츠슈나이더의 주장이 다. 정당이 근대 민주주의를 만들어 냈으며,...근대 민주주의는 정당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체제 라는 그의 주장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말이다. 문제는 1억8천만명의 아리스토텔레스들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운영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1억8천만 명의 보통 사람들로 구성된 정치 공동체를 어떻게 조직해야 이 공동체가 보통 사람들의 요구에 응답할 수 있느 냐 하는 것이다. 이는 리더쉽, 조직, 대안, 그리고 책임과 신뢰의 체계에 관한 문제이다. 사람들이 현대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꼭 알아야 하는 것과 알 필요가 없는 것을 구별 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구매하기 위해서 기능공이 되거나 아기를 갖기 위해 산부인과 의사 가 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할 때,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게 된다.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정신병으로 귀결될 뿐이다. 그 누구도 정부를 운영할 정부를 운영할 만큼 충분히 많은 지식을 가질 수는 없기에, 무지의 문제를 해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통령, 상원의원, 주지사, 판사, 교수, 박사, 기자 같은 사람들도 우리 나머지 사 람들보다 단지 조금 덜 무지할 뿐이다. 전문가들조차도 어느 한 분야에 관해서는 전부를 알고자 하면서도 그 밖의 많은 것들에 대해서는 무지하기를 선택한 사람들일 뿐이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하는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사람들과 전문가들이 함께 하는 협력의 한 형 식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효과적인 정의는 일반 대중의 권력 뿐만 아니라 그들의 한계도 감안해야만 한다. 그럴 경 우 자유와 리더쉽은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개념들 가운데 가장 주요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지도자들과 조 절반의 인민주권 - 샤츠슈나이더 152

153 직들이 공공정책에 대한 대안을 가지고 경쟁함으로써 일반 대중이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일종의 경쟁적 정치체제이다. 절반의 인민주권 - 샤츠슈나이더 153

154 햄릿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형 인간 돈키호테형 인간 :30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햄릿형 인간) 이 때 햄릿이 등장해 기도하고 있는 왕을 보자 멈춰선다. 햄릿(방백) 기도 중이니 해치우기에는 지금이 가장 좋구나. 해치우자. (칼을 뺀다)가만, 지금 죽이면 저자 는 천당에 가고 나는? 아냐 아버지를 죽인 악당을 천당으로 보낸다? 그러면 복수라고 할 수 없지. 저 악당 이 스스로의 영혼을 깨끗이 씻으며 죽음을 준비하고 있을 때 해치우는 일은 복수가 아니다. 저자에게 나의 아버님이 살해당하셨을 땐 아버님의 죄악이 5월의 봄꽃처럼 활짝 폈을 때다. (칼을 칼집에 도로 넣는다) 칼이여, 제자리에 들어가 숨을 죽이고 있거라. 저 악당이 쾌락을 탐닉할 때, 혹은 도박을 하거나 욕설을 퍼부을 때, 그 밖에 무엇이든 구제받을 수 없는 못된 짓에 빠져 있을 때 복수를 하리라. 어머니가 기다리 시겠다. 너를 지금 살려 두는 것은 네 고통을 연장시키기 위해서다. (퇴장) 햄릿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도 죽은 듯 참아야 하는가. 아니면 성 난 파도처럼 밀려드는 재앙과 싸워 물리쳐야 하는가. 죽는 건 그저 잠자는 것일 뿐, 잠들면 마음의 고통과 육신에 따라붙는 무수한 고통은 사라지지.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결말이 아닌가. 그저 칼 한 햄릿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형 인간 돈키호테형 인간 154

155 자루면 이 모든 것을 깨끗하게 끝장낼 수 있는데,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 남아 현재의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이다. 결국 분별심은 우리를 겁쟁이로 만드는구나. 가만, 아름다운 오 필리아! 기도하는 미녀여, 나의 죄를 위해서도 빌어주시오. 햄릿 : 어머니, 제발 부탁드리오니 양심에다 그렇게 위안의 고약을 바르지 마세요. 어머니, 더 늦기 전에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세요. 저의 솔직한 진언을 용서하세요. 하긴 요즘같이 타락한 세상에서는 정의가 부정에게 용서를 빌어야 하지만요. 뿐만 아니라 옳은 일을 하는데도 굽신거리며 눈치를 살펴야 하 는 세상이지요. 왕비 : 오, 햄릿, 네가 내 가슴을 두 동강 내는구나. 햄릿 : 숙부의 침실에는 가지 마세요. 정절이 없더라도 있는 척하세요. 습관이라고 하는 괴물은 악습에 대 한 감각을 죄다 먹어머리지만 또한 천사와 같은 일면도 있어 항상 점잖고 착한 행동을 하게 되면 처음에 는 어색한 옷 같아도 어느새 몸에 어울리게 해준답니다. 햄릿 :... 아, 죽음의 잔인한 사자가 나를 끈질기게 쫒아오는구나. 나이게 시간이 있으면... 이 모든 걸 말 해줄 수 있으련만. 호레이쇼, 자네는 살아서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내 입장을 올바로 전해주게나.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 극중 왕비 : 재혼을 바라는 것은 욕정일 뿐 진정한 사랑을 아니옵니다. 어찌 죽은 남편을 두 번 죽이는 일 인 재혼을 하여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며 입을 맞출 수 있단 말입니까? 극중 왕 : 당신의 말이 진정임을 의심치 않소. 하지만 인간이란 아무리 결심을 해도 그걸 깨뜨리기는 쉬운 법이오. 의지는 단지 기억의 노예에 불과하기 때문이오. 격정에 사로잡혀 한 맹세도 격정이 사그라지면 함 께 꺼져가듯 세상에 영원이란 없는 것이오. 그러니 우리의 사랑도 운명과 더불어 변할 수 있는 것이니 전 혀 이상한 일이 아니오. 다만 사랑이 운명을 이끄느냐, 아니면 운명이 사랑을 이끄느냐의 문제일 뿐이오. 권력자가 몰락하면 수하의 무리도 떠나가고, 미천한 사람도 출세하면 어제의 원수가 변하여 친구가 되는 게 현실이오. 이처럼 우리의 의지와 운명은 한 배에 탈 수 없는 거라오. 그러니 당신도 지금은 재혼할 생 햄릿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형 인간 돈키호테형 인간 155

156 각이 없겠지만, 내가 죽고 나면 그런 생각도 따라서 죽고 말 것이오. 극중 왕비 : 아, 비록 대지가 양식을 베풀지 않고 하늘이 빛을 내리지 않는다 해도, 낮의 즐거움과 밤의 휴 식을 빼앗긴다 해도, 평생 감옥에 갇혀 고생을 한다 해도, 온갖 기쁨을 박탈당해 재앙으로 멸망한다 해도 영겁의 고뇌가 현재 뿐 아니라 내세에까지 쫒아온다 해도, 어찌 폐하를 잃은 몸이 재혼할 수 있겠습니까? 햄릿 : 아아, 이 더러운 육체여! 차라리 녹아버려 이슬이 되거라. 전능하신 신은 왜 자살을 금하는 율법을 정해서 자살을 못하도록 하시는가! 아, 지루하고 멋없고 살 가치도 없는 세상이여! 정말 지긋지긋하구나. 에잇 더러운 세상! 황폐한 뜰에는 잡초만 자라고 주위는 온통 악취로 숨을 쉴 수 없구나. 그토록 훌륭하셨 던 아버지, 지금의 왕과 비교하면 태양과 암흑의 차이지. 어머니를 끔찍이 사랑하신 아버지, 어머니가 바 람을 맞는 것조차 아까워하시던 아버지셨는데, 오, 신이시여!어머니는 언제나 아버지에게 매달려 사랑을 갈구했지. 그런데 한 달도 못 되어...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 온몸이 눈물에 젖어 아버지의 상여를 따라가던 분이 신발이 채 닳기도 전에 숙부의 품에 안기다니. 오, 신이시여! 이성이 없는 짐승이라 해도 그분보다 더 오래 슬퍼했으련만. 오, 어머니! 어쩌면 이렇게 빠르게 결정하셨나요? 투르게네프가 얘기하는 '햄릿형 인간, 돈키호테형 인간' (1860년 1월10일, 어려운 처지에 있는 문학인과 학자들을 돕기 위한 모임에서 소설가 이반 투르게네프가 행한 연설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세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이 최초로 간행되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출현한 것은 17세기초 같은 해 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 우연의 일치는 우리에게 뜻깊은 일로 생각됩니다. 우리가 제기한 이 두 작품의 친 근성은 우리를 일련의 사상으로 이끌어 줍니다. 나는 이 사상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며, 미리부터 여러분의 관용에 기대를 걸어 볼까 합니다. "시 인을 이해하려면, 시인의 영역으로 들어서야 한다"고 괴테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산문가는 그의 편력이나 햄릿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형 인간 돈키호테형 인간 156

157 탐구에서 독자나 청취자들이 함께 동반되기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돈키호테와 햄릿 - 이 두 타입의 인물 속에서 인간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두 개의 근본적으로 대립된 특 성이 체현되는 듯싶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소의 차이가 있을 뿐 이 두 타입 가운데 하나에 속할 것입니 다. 돈키호테는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요? 피상적이고 하찮은 것에 눈길을 멈추는 그런 성급한 시선으로 그 를 관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기사 소설의 조소를 위해 창조된 인물로서 한낱 슬픈 기사의 모습으로만 그를 보아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는 이상에 대하여 철저하게 몸을 내 맡기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의 이웃과 형제들을 위해서 살며 악을 근절시키고 비록 환상 속의 마법사와 거인들이기는 하지만 압제자인 적의 군사들을 물리치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모습에서는 에고이즘이란 그 흔적조차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는 이처럼 확고부 동한 신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결코 주저하는 법이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는 겁을 모르고 참을성이 많으며 형편없는 음식과 허름한 옷차림으로도 만족해합니다. 그는 겸허한 마음과 위대한 영혼을 지닌 용 감한 인물입니다. 돈키호테는 완전히 미쳐버린 광인으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엄연히 바로 눈앞에 존재하는 사물도 자신의 신념에 열렬히 몰입해 있는 그의 눈에는 마치 초가 불에 녹아 버리듯 사려져 버려, 아무것도 보이 지 않게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가 끊임없이 희극적이고도 굴욕적인 상황에 처하곤 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든 판단력과 말씨 그리고 그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마다 특별한 힘과 위엄성이 나타나 보이는 것은 다름아닌 그가 지니고 있는 이 확고부동한 도덕성 때문입니다. 그럼 햄릿은 과연 어떠한 인물입니까? 그는 다만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며 따라서 그는 에고이스트입니 다. 고귀한 햄릿에게 있어서 자아란, 자기 자신조차도 믿지 않는 자아인 것입니다. 햄릿의 사색이 그 해답 햄릿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형 인간 돈키호테형 인간 157

158 을 얻지 못한 채 언제나 끊임없이 그 출발점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은 바로 그가 자기 영혼의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야 할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삶의 의의도 발견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기인합니다. 따라서 그는 회의론자이면서 그의 머릿속은 언제나 자기 자신의 문제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의 이지는 지 나칠 정도로 발전하여 그의 내면의 세계를 관찰하기에 충분합니다. 햄릿은 과장될 정도로 자신을 힐책하 며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감시하고 자기 내부를 주시하는 것을 큰 만족으로 여깁니다. 또한 그는 자기의 결점 하나하나까지도 잘 알고 있으면 그 결점들을 경멸하며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까지 도 경멸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무엇을 원하며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삶에 대해서 는 강렬한 집착을 갖고 있습니다(...) 압제자로부터 죄없는 사람을 해방시켜 주려는 돈키호테의 시도는 결과적으로 자기가 구해 주려던 이에게 이중의 재난을 가져다 주었을 뿐 실패로 돌아가고 오히려 역효과만을 초래하고 맙니다. 그가 그 자리를 떠 나자마자 그 소년의 주인은 소년을 더 심하게 매질하게 됩니다. 또한 돈키호테는 일개 풍차를 악한 거인들로 착각하고 공격을 가하는 무모한 행동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우스꽝스럽기만 한 이와 같은 장면은 우리로 하여금 그 속에 감추어진 참된 의 미가 무엇인지를 추구하게 해 줍니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자기 자신을 희생하기로 마음먹으면서도 무엇보 다도 먼저 자기의 행위가 초래할 모든 결과에 대해 이모저모 헤아려보고 또한 그 행위가 자신에게 어떤 이득을 가져다줄는지를 거듭 저울질해 본다면 그는 아마도 결코 자기희생에는 적합한 인물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햄릿과 같은 인물에게는 자기희생과 같은 행위는 결코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햄릿형의 인물은 민 중에게 결코 유익한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그들은 민중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며 민중을 올바른 목표를 향해 이끌어 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자신도 가야 할 방향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햄릿형의 인물은 민중을 경멸합니다. 자기 자신조차 존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민중을 존중할 수 있겠습니까?(...) 무릇 대다수의 민중은 산초 판사가 돈키호테를 섬기듯 몇몇 돈키호테와 같은 인물을 헌신적으로 신뢰하며 그들을 위해 봉사하며 한평생을 마치기 마련입니다. 민중은 때로는 이들을 우롱하기도 하고 이들에게 욕 설을 퍼붓기도 하며 이들을 박해하기조차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민중의 박해도 욕설도 두려워하지 않으 햄릿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형 인간 돈키호테형 인간 158

159 며 민중이 던지는 조소조차 잘 감당해 냅니다. 그러나 햄릿형의 인간은 언제나 자기 자신만의 일로써 머리 가 꽉 차 있으며 이들은 늘 고립되어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들은 인류에 대하여 아무런 공헌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햄릿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형 인간 돈키호테형 인간 159

160 오셀로 - 이유가 있어서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50 오셀로 - 이유가 있어서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줄거리 아름답고 착한 마음씨를 가진 데스데모나는 흑인 장군 오셀로를 사랑하게 되고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 고 결혼을 한다. 오셀로의 기수 이아고는 부관의 지위를 카시오에게 빼앗기자 앙심을 품고 복수를 계획한 오셀로 - 이유가 있어서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셰익스피어) 160

161 다. 카시오의 술버릇을 알고 있던 이아고는 일부러 카시오에게 술을 마시게 한 뒤 소동을 일으켜 오셀로로부 터 파면당하게 한다. 그런 다음 카시오한테는 오셀로의 아내인 데스데모나한테 가서 복직운동을 하라고 귀뜸을 한다.그리고 오셀로에게는 카시오와 데스데모나가 밀애 중인 것처럼 거짓 보고를 하여 아내를 의 심하도록 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오셀로와 데스데모나, 카시오는 이아고의 계략에 걸려 든다. 결국 순결한 데스데모나를 침대 위에서 목 졸라 죽인 셀로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고 이아고는 가장 잔혹한 처형을 당한다.. 그러나 이아고의 아내를 통해 진실이 밝혀지자 오 이유가 있어서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의심 때문에 의심하는 것 의심은 인간의 본성인가? 오셀로가 순결하고 아름답고 착한 데스데모나를 목 졸라 죽인 것도 의심 때문이다. 오셀로 - 이유가 있어서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셰익스피어) 161

162 데스데모나 : 어쩌지? 하지만 난 의심받을 짓을 하진 않았잖아. 에밀리아 : 의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런 대답이 통하지 않는 법이죠. 이유가 있어서 의심하는 게 아니 라 의심 때문에 의심하는 거니 까요. 의심이란 스스로 생겨나거나 태어나는 괴물이랍니다. 그렇다. 세상을 살면서 말도 안되는 의심을 받는 경우가 많이 있다. 나는 떳떳하다고 강변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그럴 땐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의심 그 자체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더욱이 이아고 처럼 모함을 잘하는(손수건, 잠꼬대) 사람이 있다면 왠만한 사람이라면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오셀로 - 이유가 있어서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셰익스피어) 162

163 베니스의 상인 - 정의로는 어느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 :35 베니스의 상인 - 정의로는 어느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 누구나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 셰익스피어는 이 희극을 통해 무엇을 그리려고 했을 까? 베니스의 상인 - 정의로는 어느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 163

164 유대인 상인 샤일록은 법을 주장한다. 즉, 차용증서에 명시된 대로 집행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을 거절 하면 나라의 법과 자유는 상처를 입을 것이다.베니스의 법은 아무런 구속력도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 다. 라고 주장한다. 샤일록이 왜 자비를 베풀어야 하느냐고 항변하자 포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포셔 : 자비란 그 성격상 강요되는 것이 아니오.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는 단비와 같은 것으로 일종의 축복 이죠. 나아가 자비는 이중의 축복에 해당되니, 주는 자와 받는 자를 함께 축복하는 것이기 때문이오. 그러 니 유대인이여, 그대가 요구하는 바는 정의이지만 정의만 내세우면 그 어느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 을 명심하시오. 우리는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늘 기도를 드리며, 하느님은 우리 모두에게 서로 자비를 베풀 것을 가르쳐주고 있소. 만일 그대가 자비 없는 정의만을 계속 고집한다면 이 엄정한 베니스의 법정은 부득 이 저 상인에게 불리한 선고를 내리지 수 없소. 샤일록 : 자신이 한 일은 자신이 책임져야겠지요! 저는 지금 법에 호소하고 있는 겁니다. 이 증서에 명시된 담보만을 요구하는 거라고요. 포셔 : 잠깐 기다리시오. 아직 할 말이 남았으니. 이 증서에는 단 한 방울의 피도 원고에게 준다는 말이 없 다. 여기에는 살 1파운드 라고만 적혀 있으니 살을 1파운드만 잘라 가라. 단, 피를 단 한 방울이라고 흘 린다면 그대의 토지를 비롯한 재산은 베니스 법률에 따라 국고에 귀속 될 것이니 명심하라....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려선 안 되며, 살을 잘라내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확히 1파운드만 잘라 내시오. 만일 그 이상 또는 그 이하의 살을 도려낸 결과, 그 무게가 1 파운드에서 조금이라도 무겁거나 가벼워 저 울이 머리카락 한 올만큼이라도 한쪽으로 기울 경우 그대는 사형에 처해질 것이고, 그대의 전 재산은 몰수 당할 것이다. 베니스의 상인 - 정의로는 어느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 164

165 셰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이라는 희극을 통해 그리려고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갈수록 삭막해 져가는 세상 속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법과 정의보다는 자비와 용서, 배려, 톨레랑스가 아닐까? 베니스의 상인 - 정의로는 어느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 165

166 초가집 정승 오리( ( 誤 里 ) 이원익 그는 누구인가? :26 초가집 정승 오리( ( 誤 里 ) 이원익 그는 누구인가? - 이원익과 대동법 - 옛일을 지금의 자리에서 되살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월의 흐름이 일의 맥락을 다루게 틀지어놓 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때, 그 눈으로, 그 일을 살피기보다 지금 내 눈으로 그 일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데, 그렇게 그려지는옛일이 바르게 이루어진 것일 수 있을지 자못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때와 이제의 거리 가 혹 객관성을 마련할 수 있다할지라도 바로 그러한 거리 때문에 닿을 길 없이 사라지는 온기와 냉기, 절 박함과 푸근함의 잃음이 또한 현실이기 때문이다.(정진흥 서울대 명예교수) 이원익은 우리 역사에서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대동법을 건의한 인물 정도이다. 조선 최대의 개혁정책 이라 할 수 있는 대동법이 무엇이며 정책을 입안한 이원익이란 인물은 누구인지 궁금했다. 이원익은 누구인가? 이원익은 1547년(명종2년) 한양에서 출생하였고 1634년(인조12년) 별세했다. 중국어를 현지인처럼 구사하 고, 수령 시절에 만든 장부는 율곡 이이를 감탄시키고 새 모범이 되어 전국적으로 모방될 정도였으며, 전 쟁 중에는 침착하게 병력을 지휘하고 군량을 조달했고, 대동법을 비롯한 제도 개혁안은 나라와 백성이 절 초가집 정승 오리( 誤 里 ) 이원익 그는 누구인가? 166

167 실히 필요로 했던 핵심을 꿰뚫었다. 그런 한편으로 70년을 공직에 있고 그중 40년을 정승을 지낸 사람이면 서 재산이라곤 쓰러져 가는 초가집 한 채였으며, 가족들이 매일의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청백리였다. 이원익은 민생의 안정과 국가의 안녕은 서로 다르지 않으며, 민생 안정을 가장 근본으로 삼고 일을 추진 하면 나머지는 대부분 해결된다 는 신념으로 일했다. 조선 최대의 개혁 대동법의 배경 임진왜란의 후유증은 10년이 넘도록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호조판서 황신은 1611년(광해군3년)에 국가의 세입이 왜란 이전의 십분의이, 삼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지출은 예전 규모에 육박한다고 보고했다. 또한 삼남 지역의 전결 수는 왜란 이전의 113만 결에서 1603년(선조36년)의 양전( 量 田 ) 기준으로 29만결로 격감 해 있었다. 전쟁통에 논밭이 논밭이 불타고 메워지고 한 점도 있지만, 토지문서가 유실되면서 국가가 파악할 수 있는 전결이 얼마 남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니 백성의 살림과 나라의 살림이 모두 말이 아닐 수밖에 없었다. 이 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개혁 조치가 선조 말년에 추진되었으나, 쉽지 않은 일이 정치적 갈등과 맞물려 결 국 시원하게 해결을 본 경우는 없었다. 광해군 초기에 실행된 민생 개혁으로 민간에서 국용의 말을 징발하는 제도를 보다 덜 부담이 되게끔 쇄마 제( 刷 馬 制 )에서 고마제( 雇 馬 制 )로 바꾼 것, 동의보감을 완성하고 간행하여 민간에서 자체적으로 전염병 등 과 싸울 수 있게 도운 것 등이 있으나, 그 중 가장 중대하고 후대에까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대동법 개혁이라 할 수 있다. 초가집 정승 오리( 誤 里 ) 이원익 그는 누구인가? 167

168 공납의 문제점 당시 국가가 요구하는 부담 중에서 백성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공납이었다.공납이란 옛날 동양의 전 통적 세금체제인 전세 租, 요역 庸, 공납 調 중 하나로, 전세는 보유한 토지의 수확량에 비례해 내는 세금, 요역은 병역이나 공공건설 등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 공납은 각 지역의 특산물을 바치는 것이었다. 그 러나 공납은 매우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세금 제도였다. 먼저 재산의 정도에 관계없이 무조건 집집마다 부 과했으므로 형평성이 떨어졌고, 한 번 정한 특산물의 명목은 시대가 바뀌고 기후가 달라져도 그대로인 경 우가 많아서 모레 밭에서 사슴을 잡아 바쳐야 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그리고 화폐와 달리 쉽게 썩고 변질되는 특산물은 운반하는 도중에 이미 바칠 수 없게 되어 버리는 수가 많았다. 그래서 한양 주변의 상 초가집 정승 오리( 誤 里 ) 이원익 그는 누구인가? 168

169 인들이 할당된 특산물을 대신 구해서 납부(방납)하고는 대가로 돈이나 쌀을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폭리를 취하곤 했으니 공납제도야말로 조선 중기 백성들의 가장 힘든 부담이었다. 현실적으로 현지 직송 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방납이 성행할 바에야 국가가 공납에 해당하는 만큼의 세를 쌀이나 화폐로 받고, 그 자금으로 한양 주변의 상인들에게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 편이 더 합리적 이었다. 그래서 이미 전부터 그런 식으로 개혁하자는 목소리가 간간히 있었으니, 중종 때 조광조가 공안을 개정하여쌀로 납부하는 방식을 제안했으며, 선조 때에는 이이가 여러 개혁안의 하나로 특산물의 가치에 상당하는 쌀을 내도록 해서 그것으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자 는 대공수미법을 주장했다. 이준경은 공납 의 폐단을 줄이기 위한 정공도감( 正 貢 都 監 )을 설치하는 것을 검토했다. 조광조, 이이, 이준경은 모두 개혁 을 중시한 사대부 관료들이었고, 사적으로는 이원익과 이런 저런 연결고리를 가졌던 사람들이었으니, 이 원익이 대동법의 선구자가 된 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조선 최대의 개혁 대동법의 시행 그리하여 조선 최고의 개혁 으로 일컬어지게 될 선혜법(대동법) 처음 실시된다. 대상은 경기 일원에 한 정되고, 임시 실행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조선 최대의 개혁 대동법 내용 별도로 하나의 청을 설치하여 매년 봄 가을에 백성들에게서 쌀을 거두되, 1결당 매번 8두씩 거두어 본청에 보내면 본청에서는 당시의 물가를 보아 가격을 넉넉하게 헤아려 정해 거둘어들인 쌀로 방납인에게 주어 필요한 때에 사들이도록 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일부의 사람들이 간사한 꾀를 써 물가가 뛰 게 하는 길을 끊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두 차례에 거두는 16두 가운데 매번1두씩을 감하여 해당 고을에 주 어 수령의 공사 비용으로 삼게 하고, 또한 일로 一 路 곁의 고을은 사객 使 客 이 많으니 덧붙인 수를 감하고 줌으로써 1년에 두 번 쌀을 거두는 외에는 백성들에게서 한 되라도 더 거두는 것을 허락하지 마소서(광해 군 일기) 광해군 즉위년에 상신 이원익이 선혜청을 설치해서 대동법을 시행하기를 청했고, 먼저 경기에 시험하였 다. (...)큰 집안들과 호민들이 방납의 큰 이익이 없어지자, 온갖 방법으로 훼방놓았다. 광해군은 여러 번 폐지하려 했으나, 경기의 백성들이 입을 모아 편하다고 하니, 결국 그대로 시행하였다.(정약용 여유당 전 서) 효종 즉위년(1649년)에 김육은 충청도에 대동법이 실시될 수 있게 했고 나아가 호남에도 대동법이 이루어 초가집 정승 오리( 誤 里 ) 이원익 그는 누구인가? 169

170 지게 하여 오늘날까지 대동법의 일등공신 으로 그 이름을 떨치고 있다. 대동법은 역을 고르게 하여 백성을 편안케 하기 위한 것이니 실로 시대를 구할 수 있는 좋은 계책입니다. (...) 고 상신 이원익이 건의한 것인데 먼저 경기, 강원도 두 도에서 실시하고 호서에는 미처 시행하지 못 하였습니다. 지금 마땅히 먼저 호서에서 시험해야 하는데, 삼남( 三 南 )에는 부호가 많습니다. 이 법의 시행 을 부호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국가에서 영을 시행하는 데 있어서는 마땅히 소민 小 民 들의 바람을 따라 야 합니다. 어찌 부호들을 꺼려서 백성들에게 편리한 법을 시행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효종실록) 대동법 실행의 어려움 왜란 도중에는 중앙에서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당장 쌀이 필요하고 또 부족했으므로 중앙에 내는 전세곡 말고 또 방물 대신의 쌀을 올려보내기란 어려움이 있었다. 또 물건의 유통이 어려워서 막상 중앙에서 쌀을 받아도 그것으로 시장에서 필요한 현물을 구입하기 힘들었다. 전란이 끝난 뒤에도 대량의 쌀을 배편으로 나르다가 전복될 위험, 쌀을 한 곳에 많이 쌓아뒀다가 화재 등 으로 유실될 위험, 평소에 지방 관아에서 쓰던 물자를 쓰지 못하게 된 지방관들이 편법으로 백성들에게 별 세를 거둘 가능성 등의 현실적 문제점이 거론되었으며 무엇보다 지역별로 다른 토지의 상태나 수량을 볼 때 '1결당 몇 두'라는 일률적인 세율을 매기기 어렵다는 점이 걸림돌이었다. 평안도나 황해도처럼 사신이 왕래하는 지역에서는 원래 별도 부담이 큰데, 이들도 일률적으로 내도록 할 것이냐는 문제 제기도 있었다. 그래서 사실 일시에 전국적으로 대동법을 실시하기란 무리가 있었고, 일정 지역에서 시험적으로 우선 실 시해보는 것이 바람직했다. 초가집 정승 오리( 誤 里 ) 이원익 그는 누구인가? 170

171 맹자 - 왕자와 패자, 무항산 무항심 :04 王 子 와 覇 者 의 차이 맹자가 말했다. 무력을 사용하면서 인( 仁 )을 실천하는 것처럼 가장하는 사람은 패자인데, 패자에게는 반드시 큰 나라가 있어야 한다. 덕으로써 인을 실행하는 자는 왕자( 王 子 )이다. 왕자는 큰 나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탕왕은 사방 칠십리의 땅으로 인을 실행했고, 문왕은 사방 백리의 땅으로 인을 실천했다. 무력으로써 사람을 복종시킨다면 사람들이 진심으로 복종하지 않고, 단지 자신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억지로 복종한다. 덕으로써 사람을 복종시킨다면 진심으로 기뻐하며 진정으로 복종하니, 칠십 명의 제자 들이 공자에게 복종한 것이 그 예이다. 맹자 - 왕자와 패자, 무항산 무항심 171

172 孟 子 曰, 以 力 假 仁 者 覇, 覇 必 有 大 國, 以 德 行 仁 子 王, 王 不 待 大. 湯 以 七 十 里, 文 王 以 百 里, 以 力 服 仁 者, 非 心 腹 也, 力 不 贍 也. 以 德 服 人 者, 中 心 悅 而 誠 服 也, 如 七 十 子 之 服 孔 子 也. 맹자 공손추 상(박경환 옮김 p.102) 무항산( 無 恒 産 ) 무항심( 無 恒 心 ) 맹자 - 왕자와 패자, 무항산 무항심 172

173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고정적인 생업[항산]이 없으면서도 항상적인 마음(흔들림없는 도덕적인 마음]을 지니는 것은 오직 선비 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일반 백성의 경우는 고정적인 생업이 없으면 그로 인해 항상적인 마음도 없어 집니 다. 만일 항상적인 마음이 없다면 방탕하고 편벽되고 간사하고 사치스러운 행위를 하지 않음이 없을 것입 니다. 백성들이 죄에 빠지는 데 이른 이후에 그것을 좇아서 형벌에 처한다면, 그것은 백성들을 그물질해 잡는 것입니다. 어떻게 어진사람이 임금의 지위에 있으면서 백성들을 그물질해 잡는 것을 할 수 있습니 까? 그러므로 밝은 왕은 백성들의 생업을 제정해 주되 반드시 위로는 부모를 섬기기에 충분하게 하고 아래로 는 처자를 먹여 살릴 만하게 하여,풍년에는 언제나 배부르고 흉년에도 죽음을 면하게 합니다. 그렇게 한 후에 백성들을 몰아서 선한 데로 가게 하므로 백성들이 따르기가 쉽게 됩니다. 지금은 백성들의 생업을 제정해 주되 위로는 부모를 섬기기에 부족하고 아래로는 처자를 먹여 살리기에 부족하여, 풍년에는 내내 고생하고 흉년에는 죽음을 면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래 가지고서는 죽음에서 자 신을 건져 낼 여유조차 없는데 어느 겨를에 예의를 익히겠습니까? 왕께서 만일 어진 정치를 시행하려고 하신다면 어째서 근본으로 돌아가지 않으십니까? 曰, 無 恒 産 而 有 恒 心 者, 惟 士 爲 能. 若 民, 則 無 恒 産, 因 無 恒 心. 苟 無 恒 心, 放 辟 邪 侈, 無 不 爲 已. 及 陷 於 罪, 然 後 從 而 刑 之. 是 罔 民 也. 焉 有 仁 人 在 位, 罔 民 而 可 爲 也? 是 故, 明 君 制 民 之 産, 必 使 仰 足 以 事 父 母, 俯 足 而 畜 妻 子. 樂 歲 終 身 飽, 凶 年 免 於 死 亡, 然 後 驅 而 之 善, 故 民 之 從 之 也 輕, 今 也 制 民 之 産, 仰 不 足 以 事 父 母, 俯 不 足 以 畜 妻 子. 樂 歲 終 身 苦, 凶 年 不 免 於 死 亡, 此 惟 救 死 而 恐 不 贍, 계 暇 治 禮 義 哉? 王 欲 行 之, 則 合 反 其 本 矣? 俯 : 구부릴 부 贍 : 넉넉할 섬 盍 : 덮을 합 양혜왕 상(p.51~55) 맹자 - 왕자와 패자, 무항산 무항심 173

174 문학이란 무엇인가? :50 장영희- 문학의 숲을 거닐다 문학의 주제를 한마디로 축약한다면 '어떻게 사랑하며 사는가'에 귀착된다. 동서고금의 모든 작가들은 이 한 가지 주제를 전하기 위해 글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며 동서고금을 통해 씌어진 모든 위대한 문학작품들의 기본적 주제는 '같이 놀래?'인지도 모른다는 생 문학이란 무엇인가? 174

175 각이 들었다. 형형색색으로 다르게 생긴 수십억의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고 자리싸움하며 살아가는 이 세 상에서 인간적 보편성을 찾아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해학 궁극적으로 화합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가를 가 르치는 것이야말로 문학의 과업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작가가 자신의 개인적 체험, 또는 상상력을 통해 하나의 허구적 세계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일어날 법한 얘기를 창조해서 말한다. 그건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현실에 얼마든지 있는 일일 수도 있다. 그것은 내 이야기가 아니고 분명 남의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작품 속에서 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중 인물들을 통해서 내가 표출하지 못했던, 나니; 내 안에 있는 것조차 까마득하게 몰랐 던 욕망, 분노, 고뇌, 사랑을 맞닥뜨리게 된다. 등장인물이 아무리 괴팍하고 비현실적인 행동을 한다 해도 인간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갖는 약점, 페이소스, 슬픔과 좌절을 깨닫고 그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 러므로 문학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함께 공유하는 내적 세계에 눈뜨게 한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175

176 그래서 문학은 일종의 대리 경험이다. 시간적, 공간적, 상황적 한계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경험을 다 하 고 살 수 없는 우리에게 삶의 다양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시행착오 끝에 '어떻게 살아가는가', '나는 누구 이며 어떤 목표를 갖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문학을 통해 우 리는 삶의 치열한 고통, 환희, 열정 등을 느끼고 감동한다. 정신적으로 자라나고 삶에 눈뜬다는 것은 때로 는 아픈 경험이지만 이 세상을 의미 있게 살다 가기 위해서는 꼭 겪어야 할 통과의례이다. 다른 사람의 슬픔과 고뇌를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 그에게 동정을 느끼고 "같이 놀래?"라고 말하며 손을 뻗칠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너와 내가 같고,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이 인간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고뇌와 상처를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또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이러한 인간 이해는 필수적이다. 인간이 아름다운 이유는 슬퍼도, 또는 상처 받아도 서로를 위로하며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는가를 추구 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학은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상상력, 창의력, 논리적 분석력도 결국은 인간됨을 제대로 이해하고 가장 인간적인 것을 추구하는 '올바른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같이 놀래?"하며 손내미는 어린아이의 마음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176

177 위화 - 인생, 허삼관 매혈기 모든 독자는 자신의 일상적인 경험과 상상력에 기초해 문학작품을 읽는다. 만약 이 작품이 누군가의 마음 을 움직였다면, 분명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어떤 생각과 감정을 일깨웠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 작품에 대한 그의 이해와 감상은 다른 독자는 물론, 작가의 그것과도 전혀 다를 것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177

178 나는 작가로서, 동일한 내 작품이라도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는다. 생활이 변했고, 감정도 변했기 때 문이다. 그래서 나는 작가가 자기 작품의 서문에 쓰는 내용은 사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느낀 바라고 말하 고 싶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178

179 모든 독자는 문학작품에서 자기가 일상에서 느껴온 것들을 찾고 싶어 한다. 작가나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자기가 느껴온 것 말이다. 문학의 신비로운 힘은 여기서 나온다. 모든 작품은 누군가가 읽기 전까지 는 단지 하나의 작품일 뿐이지만, 천 명이 읽으면 천 개의 작품이 된다. 만 명이 읽으면 만 개의 작품이 되 고, 백만명 혹은 그 이상이 읽는다면 백만 개 혹은 그 이상의 작품이 된다. 신경숙 - 왼딴방 문학이란 무엇인가? 179

180 글쓰기란, 문학이란 무엇인가? 글쓰기란, 그런 것인가. 글을 쓰고 있는 이상 어느 시간도 지난 시간이 아닌 것인가. 떠나온 길이 폭포라 도 다시 지느러미를 찢기며 그 폭포를 거슬러 돌아가는 연어철검, 아픈 시간 속을 현재형으로 역류해 흘러 들 수밖에 없는 운명이, 쓰는 자에겐 맡겨진것인가. 연어는 돌아간다. 뱃구레에 찔린 상처를 간직하고서도 어떻게든 다시 목숨을 걸고 폭포를 거슬러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래 돌아간다. 지나온 길을 따라, 제 발짝 을 더듬으며, 오로지 그 길로. (p.37) 나는 끊임없이 어떤 순간들을 언어로 채집해서 한 장의 사진처럼 가둬놓으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문학으 로선 도저히 가까이 가 볼 수 없는 삶이 언어 바깥에서 흐르고 있음을 절망스럽게 느끼곤 한다. 글을 쓸수 록 문학이 옳은 것과 희망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는 고통을 느낀다. 희망이 내 속에서 우러 나와 진심으로 나 또한 희망에 대해 얘기할 수 있으면 나로서도 행복하겠다. 문학은 삶의 문제에 뿌리를 두게 되어 있고, 삶의 문제는 옳은 것과 희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옳지 않는 것과 불행에 더 문제가 있 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희망 없는 불행 속에 놓여 있어도 살아가야 하는 게 삶이질 않는가. 때로 이 인 식이 나로 하여금 집도를 포기하게 한다. 결국 나는 하나의 점 대신 겹겹의 의미망을 선택한다. 할 수 있 는껏 두껍게 다가가자고, 한겹 한겹 풀어가며 그 속에서 무얼 보는가는 쓰는 사람의 몫이 아니라고, 그건 읽는 사람의 몫이라고, 열 사람이 읽으면 열 사람 모두를 각각 다른 상념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게 좋겠다 고, 그만큼 삶은 다양한 거 아니냐고, 문학이 끼어들 수 없는 삶조차 있는 법 아니냐고. 문학이란 무엇인가? 180

181 현재성을 오래 생각해본다. 너무 속도가 빨라 노래 하나도 따라 부르기 힘든 지금, 내가 붙들 현재란 무엇 인가, 하고. 나는 지나가고 싶지만 과연 무엇을 지나갈 수 있을 것인지, 미래소설이나 가상소설이라고 처 음부터 작정을 해둔 게 아니면 글쓰기는 결국 되돌아보기 아닌가. 적어도 문학 속에서는 지금 이 순간 이 전의 모든 기억들은 성찰의 대상이 되는 거 아닌가. 오늘 속에 흐르는 어제 캐내기 아닌가. 왜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지금 내가 여기에서 무얼 하려고 하는지 알기 위해서. 오늘은 또 어제가 되 어 내일 흐를 것이다. 문학이 언제나 흐를 수 있는 것은 그래서가 아닌가. 정리는 역사가 하고 정의는 사 회가 내린다. 정리할수록 그 단정함 속에 진실은 감춰진다. 대부분의 진실은 정의 된 것 이면에 살고 있겠 지. 문학은 정리와 정의 그 뒤쪽에서 흐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해결되지 않는 것들 속에, 뒤쪽의 약한 자, 문학이란 무엇인가? 181

182 머뭇거리는 자들을 위해, 정리되고 정의된 것을 헝클어서 새로이 흐르게 하기가 문학인지도 모른다. 고 생 각해본다. 다시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기 말이다. 결국 이것도 일종의 정리인 셈인가. 지금, 나. 내가 말한 뒤 쪽을 봐야 하는가. (67~73) 나는 문학을 하고 싶었어. 오빠의 말이 뜻밖이었는지 올케가 물었다. 문학을 하고 싶었다는 사람이 법대엔 왜 갔어요? 오빠는 잔을 들어 단숨에 마셨다. 문학으론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고 판단했지. 뭘 변화시키고 싶었는데요? 사회....중략... 그런 얘기들을 써봐.: 나는 오빠의 얘기를 듣고만 있다. 니가 작가라면 그런 문제들을 외면해선 안 돼. 그 쿠데타가 결국은 광주 일도 불러온 거야. 무시무시한 일이지....몰라, 오빠. 나는 그런 것들보다 그 때 연탄불은 잘 타고 있었는지. 가방을 챙겨들고 방을 나간 오빠가 어디 길바닥에서나 자지 않았는지.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 그 때 왜 그렇게 추웠는지 말야. 김치 를 꺼내다가 잘라서 접시에 올려서 밥상 위에 얹으면 살얼음이 끼어 쭉 미끄러지곤 했어 그릇이 깨지고 김치가 사방으로 흩어졌지. 오빠, 그때 내가 정말 싫었던 건 대통령의 얼굴이 아니라 무국을 끓이려고 사 다놓은 무가 꽝꽝 얼어버려가지고 칼이 들어가지 않은 것 그런 것들이었어. 눈이 내린 아침에 수돗물을 틀 었을 때 말야. 물이 얼지 않고 시원스럽게 나와주면 너무 좋았고, 안 그러고 얼어서 나오지 않으면너무 싫 고 그랬어. 내가 문학을 하려고 했던 건 문학이 뭔가를 변화시켜주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어. 그냥 좋았 어. 문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현실에선 불가능한 것, 금지된 것들을 꿈꿀 수가 있었지. 대체 그 꿈은 어 디에서 흘러온 것일까. 나는 내가 사회의 일원이라고 생각해. 문학으로 인해 내가 꿈을 꿀 수 있다면 사회 도 꿈을 꿀 수 있는 거 아니야? (p.204~206) 문학이란 무엇인가? 182

183 어린 왕자 - 생텍쥐페리 :47 어린 왕자 - 생텍쥐페리 어른들은 나더러 속이 보이건 안 보이건 간에 보아구렁이 그림 따위는 집어치우고 차라리 지리, 역사, 산 수, 문법이나 열심히 공부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해주었다. 이리하여 나는 여섯 살 때 화가로서의 멋진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내 그림 제1호와 제2호가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 때문에 낙담하고 만 것이었다. 어른들은 언제나 스스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어린이들로서는 그들에게 매번 설명을 하고 또 해야 하니 피곤한 노릇이다. 그래서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 나는 비행기 조종하는 법을 배 웠다. 나는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세상 곳곳을 날아다녔다. 어린 왕자 - 생텍쥐페리 183

184 나는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만한 상대도 없이 홀로 지내왔다. 6년 전 어느 날 사하라 사막에서 비 행기 고장을 만나게 되는데 거기에서 어린왕자를 만난다. 어린왕자가 살던 별에는 꽃이 하나 있었는데 심 술궂은 허영심으로 어린 왕자의 마음을 괴롭혔다. 호랑이들이 발톱을 세우고 올 테면 와보라 그래요! 어린 왕자는 약이 올라 도망치고 만다. 어린 왕자는 여러 별을 여행한다. 일곱 번째 별이 지구이다. 장미꽃이 만발한 정원을 보면서 난 이 세상 에 단 하나 밖에 없는 꽃을 가진 부자인 줄만 알고 있었지.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가진 꽃은 경 평범한 어린 왕자 - 생텍쥐페리 184

185 장미꽃이군 그래서 그는 풀밭에 엎드려 울었다. 그 때 여우를 만난다.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길들인 다 는 의미를 말한다. 그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고 이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장미꽃들을 다시 가서 봐. 너의 장미꽃이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꽃이란 걸 알게 될 거야. 그리고 다시 내게 돌아와서 작별인사를 해줘. 그러면 선물로 비밀 하나를 가르쳐 줄게. 어린 왕자는 말한다. 하나뿐인 그 꽃이 내게는 너희들 모두보다 더 소중해. 내가 직접 물을 준 꽃이니까. 내가 직접 둥근 덮개를 씌어준 꽃이니까. 내가 직접 벌 레들을 잡아준 꽃이니까. 불평을 해도, 자랑을 늘어놓아도, 심지어 때때로 입을 다물고 있어도 나는 다 들 어준 꽃이니까. 그건 바로 내 장미꽃이니까.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비밀을 가르쳐준다. 아주 간단한 거야. 오직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그리고 되뇌인다. 네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은 네가 네 장미꽃을 위해서 들인 시간 때문이야. 여우가 말했다.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 너는 영원히 책임이 있 는 거야. 너는 네 장미꽃에 대해 책임이 있어 별들이 아름다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 한 송이 꽃 때문이야...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 집이건 별이건 사막이건 그것을 아름답게 하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지! 어린 왕자 - 생텍쥐페리 185

186 어린 왕자가 지구에 온지 1년이 되는 날 두고 온 장미를 책임지기 위해 자기 별로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어린 왕자는 말했다. 아저씨가 밤에 하늘을 바라볼 때면 내가 그 별들 중 하나에 살고 있을 테니까, 내 가 그 별들 중 하나에서 웃고 있을 테니까, 아저씨에겐 모든 별들이 다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일 거야. 그러 니까 아저씬 웃을 줄 하는 별들을 갖게 되는 거야 어린왕자는 한 그루 나무처럼 천천히 쓰러졌다. 모래바닥이어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거긴 너무 멀 고 몸이 너무 무거워서 갈수가 없었다. 어린 왕자 - 생텍쥐페리 186

187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포리스트 카터 :24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THE EDUCATION OF LITTLE TREE) - 포리스트 카터 FORREST CARTER-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포리스트 카터 187

188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인디언의 후손인 주인공 작은나무가 5살 때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난 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면서 삶과 자연, 그리고 문명에 대해 겪고 배우면서 느끼는 순수한 영혼의 마음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따뜻한 이야기로 잔잔한 감동을 준다. 주인공 작은 나무는 체로키 인디언의 핏줄을 이어받은 소년이다. 체로키족은 미국 동부의 애팔래치아산맥 남쪽 끝에 살면서 농경과 수협생활을 한 인디언으로 1838~1839년에 오클라호마 주로 강제이주 당했지만, 산속으로 숨거나 달아난 사람들도 있었는데 작은 나무는 본래의 고향인 테네시 주에 머무른 그룹의 자손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포리스트 카터 188

189 이다. 1. 자연의 이치 슬퍼하지 마라, 작은 나무야. 이게 자연의 이치라는 거다. 탈콘 매는 느린 놈을 잡아갔어. 그러면 느린 놈들이 자기를 닮은 느린 새끼들을 낳지 못하거든. 또 느린 놈 알이든 빠른 놈 알이든 가리지 않고, 메추 라기 알이라면 모조리 먹어치우는 땅쥐들을 주로 잡아먹는 것도 탈콘 매들이란다. 말하자면 탈콘 매는 자 연의 이치대로 사는 거야 매추라기를 도와주면서 말이다. 그게 이치란 거야. 누구나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사슴을 잡을 때도 제일 좋은 놈을 잡으려 하면 안 돼. 작고 느린 놈을 골라야 남은 사슴들이 더 강해지고, 그렇게 해야 우리도 두고두고 사슴고기를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포리스트 카터 189

190 먹을 수 있는 거야. 흑표범인 파코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 너도 꼭 알아두어야 하고. 꿀벌인 티비들만 자기들이 쓸 것보다 더 많은 꿀을 저장해두지...그러니 곰한테도 뺏기고 너구리한테도 뺏기고... 우리 체로키한테 뺏기기도 하지. 그놈들은 언제나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하고 똑같아. 뒤룩뒤룩 살찐 사람들 말이야. 그런 사람들은 그러고도 또 남의 걸 빼앗아오고 싶어하지. 그러니 전쟁이 일어나고, 그러고 나면 또 길고 긴 협상이 시작되지. 조금이라도 자기 몫을 더 늘리려고 말이다. 그들은 자기가 먼저 깃발을 꽂았기 때문에 그럴 권리가 있다고 하지... 그러니 사람들은 그놈의말과 깃발 때문에 서서히 죽어가는 셈이야... 하지만 그들도 자연의 이치를 바꿀 수는 없어. 2. 이해와 사랑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사랑과 이해는 같은것이었다.할머니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할 수 없고, 또 이 해하지 못하는사람을 사랑할 수는 더더욱 없다. 신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할아버지와 할 머니는 서로 이해하고 계셨다. 그래서 두 분은 서로 사랑하고 계셨다. 할머니는 세월이 흐를 수록 이해는 더 깊어진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보시기에 그것은 유한한 인간이 생각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것들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이었다. 그래서 두 분은 그것을 kin'이라고 불렀다. 할아버지 설명에 따르면, 옛날에는 친 척(kinfolks)'이라는 말이 이해하는 사람, 이해를 함께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loved folks)'이란 뜻으로 쓰였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갈수록 이기적으로 되는 바람에 이 말도 단지 혈연관계가 있는 친척을 뜻 하는 것으로 바뀌고 말았다. 본래의 말뜻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걸로... 할아버지는, 그런 게 kin'이며,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분쟁의 대부분은 이것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하셨다. 물론 할아버지는 아, 거기다 정치가 때문에 일어난는 분쟁도 있지만, 이라고 덧붙이는 걸 잊지 않으셨다. 3. 과거를 알아두어라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포리스트 카터 190

191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내게 지난 일들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하셨다. 두 분은, 지난 일을 모르면 앞일도 잘 해낼 수 없다. 자기 종족이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면 어디로 가야 될지도 모르는 법. 어느 날 정부군 병사들이 찾아와 종잇조각 하나를 내보이며 서명하라고 했다. 새로운 백인 개척민들에게 체로키족의 토지가 아닌 곳에 정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서류라고 하면서, 체로키들이 거기에 서 명을 하자, 이번에는 더 많은 정부군 병사들이 대검을 꽂은 총으로 무장을 하고 찾아왓다.병사들 말로는 그 종이에 적힌 내용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제 그 종이에는 체로키들이 자기들의 골짜기와 집과 산을 포 기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케로키들은 저 멀리 해지는 곳으로 가야 했다. 그곳에 가면 체로키들이 살도록 정부에서 선처해준 땅, 하지만 백인들은 눈꼽만치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황량한 땅이 있었다. 병사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포리스트 카터 191

192 들은 그 드넓은 골짜기를 총으로 빙 둘러쌓다. 밤이 되면 피워놓은 모닥불이 총을 대신했다. 병사들은 체 로키들을 그 원 속으로 밀어넣었다. 다른 산과 골짜기에 살고 있던 체로키들까지 끌려와 우리 속에 든 소, 돼지처럼 계속 그 원 안으로 밀어넣어졌다. 고향 산에서 멀어져가자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가기 시작했다. 비록 체로키의 혼은 죽지도 약해지지도 않 았지만, 어린아이와 노인들과 병자들이 그 까마득한 여행길을 견디기는 힘들었다. 처음에는 병사들도 행 렬을 멈추고 죽은 사람을 묻을 시간을 주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 수는 순식간에 몇 백 몇 천으로 불어나, 결국 전체의 3분의1이 넘는 체로키들이 행진 중에 숨을 거두었다. 그러자 병사들 은 3일에 한 번씩만 매장할 시간을 주겠노라고 했다. 하루라도 빨리 일을 마치고 체로키들에게서 손을 떼 고 싶은 게 병사들의 심정이었다. 병사들은 죽은 사람들을 수레이 싣고 가라고 했지만, 체로키들은 시신을 수레에 누이지 않고, 자신들이 직접 안고 걸었다. 아직 아기인 죽은 여동생을 안고 가던 조그만 남자아이 는 밤이 되면 죽은 동생 옆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면 그 아이는 다시 여동생을 안고 걸었다. 남편은 죽은 아내를, 아들은 죽은 부모를, 어미는 죽은 자식을 안은 채 하염없이 걸었다. 병사들이나 행렬 양옆에 서서 자신들이 지나가는 걸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돌리는 일도 없었다. 길가에 서서 구경하던 사람 들 중 몇몇이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체로키들은 울지 않았다. 어떤 표정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 들에게 자신들의 마음을 내비치고 싶지 않았다. 체로키들은 마차에 타지 않았던 것 처럼 울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이행렬을 눈물의 여로라 부른다. 체로키들이 울었기 때문이 아니다. 낭만적으로 들리기 때문에, 또 그 행렬을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의 슬픔을 표현해주기 때문에, 그들은 이 행렬을 그렇게 불렀다. 하 지만 죽음의 행진은 절대 낭만적일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행렬을 눈물의 여로라고 불렀다. (1838~1839년에 걸쳐 1만3천명 정도의 체로키들이 차 례로 오클라호마의 보호구역으로 강제이주 당했다. 1,300킬로미터의 행진 중에 추위와 음식부족, 병, 사고 등으로 무려 4천여 명 정도의 체로키들이 죽었다고 한다. 옮긴이) 체로키들 모두가 그 행렬에 끌려간 것은 아니었다. 산길에 익숙한 일부 체로키들은 깊숙한 계곡이나 먼 산등성이 쪽으로 달아났다. 이들은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끊임없이 옮겨다니면서 살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증조할아버지의 말년 모습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주셨다. 증조할아버지는 남북전쟁 (1861~1865년, 노예제의 존속을 둘러싸고 북부와 난부 사이에서 일어난 내전. 체로키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인디언 부족들은 남부연합에가담하여 북부의 연방과 싸웠다. 남부의 패배로 인디언들은 이전의 조약상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포리스트 카터 192

193 권리들을 많이 잃었다.옮긴이)의 용사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존 헌ㅡ 모건 장군이 이끄는 남부군 특공대에 가담하여, 보이지 않는 머나먼 곳에 앉아 자신의 종족과 집을 위협하는, 얼굴 없는 유령, 연방군 (북군 을 뜻함-옮긴이) 대항하여 싸웠다. 4. 교회 다니기 할아버지는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목사란 사람들은 하나같이 제멋대로여서, 천당으로 들어가는 문의 손 잡이를 자신이 쥐고 있고, 자신이 허락 하지 않는 한 누구도 그곳으로 들어갈 수 없는 걸로 생각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목사들이 신조차도 그 결정에는 참견할 수 없는 걸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할아버 지는, 목사도 일을 해야 하고, 1달러를 벌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야 한다. 그러면 아무리 목사라 하더라 도 내일이면 돈이 아무 쓸모 없어질 것처럼 돈을 낭비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위스키 제 조업이 아니라도 괜찮지만, 진심으로 땀 흘려 일한다면 목사들이 과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일리 있는 말씀이었다. 그가(목사) 다시 막대기를 휘둘렀다. 얼마 안 가 나는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셔츠가 등에서 흐르는 피를 좀 빨아들이긴 했지만 대부분의 피는 다리를 타고 흘러내려 그대로 신발 속으로 들어갔다. 속옷을 입 지 않아서 피를 흡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발 안이 피로 질척해졌다. 목사는 내 침대로 돌아가라고 하 면서 앞으로 일주일 간 저녁 식사는 없다고 했다. 5. 자연과 함께 사는 삶 씨앗들이 대지의 여신인 모노라의 자궁 속에서 열을 받아 싹을 틔우는 온도는 각각 다르다. 대지가 이제막 따뜻해지기 시작할 무렵에는 아주 작은 꽃들만이 피어난다.대지가 좀더 따뜻해지기 시작할 무렵에는 아주 작은 꽃들만이 피어난다. 대지가 좀더 따뜻해지면 좀더 큰 꽃들이 피어나고, 나무에도 수액이 돌기 시작한 다. 더불어 나무들은 임신한 여자처럼 기지개를 켜며 부풀어오르다가 드디어 가지 끝에 일제히 새싹들을 터뜨리게 된다. 할아버지는 숲을 손상시키지 않고 숲과 더불어 산다면 숲이 우리를 먹여살릴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봄과 여름 동안에는 덫을 놓지 않았다. 짝짓기와 싸움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포리스트 카터 193

194 지 않는 것처럼 동물들도 마찬가지라는 게 할아버지의 설명이었다. 또 할아버지는 설령 짝짓기를 하고 난 다음이라 해도 사람들이 사냥을 계속하고 있으면, 그들은 새끼를 낳아 기를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결국 우리 인간도 굶어 죽고 말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나는 동물들의 번식기인 봄과 여름 동안에 는 주로 물고기만 잡았다. 인디언은 절대 취미 삼아 낚시를 하거나 짐승을 사냥하지 않는다. 오직 먹기 위 해서만 동물을 잡는다. 즐기기 위해서 살생하는 것보다 세상에 더 어리석은 짓은 없다고 할아버지는 분개 하곤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 모든 것들이 정치가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다, 전쟁이 끝나면 사람을 죽이러 갈 수 없으니까 그동안 살인하는 방법을 잊지 않기 위해 동물을 상대로 그 짓을 하게 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그야말로 눈곱만치의 생각도 없이 살생을 당연한 놀이로 알고 그 짓을 일삼고있지만, 조 사해볼 수만 있다면 정치가들이 그것들을 시작한 걸 알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과연 그럴 것 같았다. 할머니는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뭔가 좋은 일이 생기거나 좋은 것을 손에 넣으면 무엇보다 먼저 이웃과 함께 나누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갈 수 없는 곳까지도 그 좋은 것이 퍼지게 된다, 그것 은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할머니는 사람들은 누구나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하셨다. 하나의 마음은 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꾸려가는 마음이다. 몸을 위해서 잠자리나 먹을 것 따위를 마련할 때는 이 마음을 써야 한다. 자기 몸이 살아가려면 누구나 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런 것들과 전혀 관계없는 또 다른 마음이 있다. 할머니는 이 마음을 영혼의 마음이라고 부르셨다. 만일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을 부리고 교활한 생각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해칠 일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이익 볼 생각만 하고 있으 면...영혼의 마음은 점점 졸아들어서 밤톨보다 더 작아지게 된다. 몸이 죽으면 몸을 꾸려가는 마음도 함께 죽는다. 몸이 죽으면 몸을 꾸려가는 마음도 함께 죽는다.하지만 다른 모든 것이 다 없어져도 영혼의 마음 만은 그대로 남아 있는다. 그래서 평생 욕심 부리면서 살아온 사람은 죽고 나면 밤톨만한 영혼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다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그런 사람이 다시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밤톨만 한 영혼만을 갖고 태어나게 되어 세상의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그보다 더 커지면, 영혼의 마음은 땅콩알만한 게 줄어들었다가 결국에는 그것마저도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말하자면 영혼의 마음을 완전히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이 되고 만다. 할머니는 어 디서나 쉽게 죽은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하셨다. 여자를 봐도 더러운 것만 찾아내는 사람, 다른 사람 들에게서 나쁜 것만 찾아내는 사람, 나무를 봐도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고 목재와 돈덩어리로만 보는 사 람, 이런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이었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그런 사람들은 걸어다니는 죽은 사람들이었 다.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꿀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상대를 이해하는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 게다가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포리스트 카터 194

195 부리는 걸 그만두지 않으면 영혼의 마음으로 가는 문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비로소 이해라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더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영혼의 마음도 더 커진다. 할머 니는 이해와 사랑은 당연히 같은 것이라고 하셨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사랑하는 체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우리는 봄과 여름 동안에는 덫을 놓지 않았다. 짝짓기와 싸움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 지 않는 것처럼동물들도 마찬가지라는 게 할아버지의 설명이었다. 또 할아버지는 설영 짝짓기를 하고 난 다음이라 해도 사람들이 사냥을 계속하고 있으면, 그들은 새끼를 낳아 기를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결국 우리 인간도 굶어 죽고 말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나는 동물들의 번식기인 봄과 여름 동안에 는 주로 물고기만 잡았다. 인디언은 절대 취미 삼아 낚시를 하거나 짐승을 사냥하지 않는다. 오직 먹기 위 해서만 동물을 잡는다. 즐기기 위해서 살생하는 것보다 세상에 더 어리석은 짓은 없다고 할아버지는 그 모 든 것들이 정치가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다. 전쟁이 끝나면 사람을 죽이러 갈 수 없으니까 그동안 살인하는 방법을 잊지 않기 위해 동물을 상대로 그 짓을 하게 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그야말로 눈 곱만치의 생각도 없이 살생을 당연한 놀이로 알고 그 짓을 일삼고 있지만, 조사해볼 수만 있다면 정치가들 이 그것들을 시작한 걸 알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과연 그럴 것 같았다. 내 영혼은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바람과 나무와 시냇물과 새들이 불러준 그 부드러운 노랫소리로 내 마음이 깨끗이 씻겼기 때문이다. 몸의 마음만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을 이해하거나 신경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 역시 몸의 마음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았고이해도 하지 못했다.그래서 자연은 나에게 지옥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고, 내 출생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으며, 악의 씨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자연은 그런 말들이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래서 드들과 함께 있노라니 나도 그런 말들을 잊 을 수 있었다. 6. 죽음의 노래 때로는 혹독한 겨울도 필요하다고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정리하고 보다 튼튼히 자라 게 하는 자연의 방식이었다. 예를 들면, 얼음은 약한 나뭇가지만을 골라서 꺽어버리기 때문에 강한 가지들 만이 겨울을 이기고 살아남게 된다. 또 겨울은 알차지 못한 도토리와 밤, 호두 따위들을 쓸어버리 산속에 더 크고 좋은 열매들이 자랄 기회를 제공해준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포리스트 카터 195

196 외딴방 - 신경숙 :37 외딴방 - 신경숙 1. 외딴방을 이야기 하고 싶다. 신경숙의 외딴방과 엄마를 부탁해를 읽었다. 그 중에서도 외딴방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 가슴 속에 있는 외딴방을 꺼내 보여주었다. 나에게도 외딴방이 있다. 언젠가는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들 가슴 속 한켠에는 외딴방이 자리잡고 있다. 운명처럼 주어진 가난, 삶의 힘겨움... 그러나 우리는 힘겹다고 느낄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살았다. 많은 자녀들을 기르신 어머니,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동생들 을 돌보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큰 형...우리는 언제나 우리 가슴 속의 외딴방을 드러내고 대화하고 화해할까. 신경숙은 그런 외딴방을 꺼내 보여주었다. 자신은 외딴방을 이야기 하지 않으려 한다면서도 외 딴방을 보여주었다. 그러기에 외딴방은 감동을 준다. 나에게도 외딴방이 있다. 이제 외딴방을 이야기 하고 싶다. 외딴방 - 신경숙 196

197 몇년 전에 썼던 글이다. <우리시대 누나와 추석> 들녘에 벼가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길가에 코스모스가 활짝 필 때면 어김없이 추석은 찾아왔다. 추석이 다가오면 서울로 돈 벌러 간 누나들이 두 손에 선물보따리를 가득들고 버스에서 내린다. 온 가족들이 마중 을 나간다. 추석은 동네 누나들이 맞선을 보는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읍내 다방들은 맞선을 누나들과 상 대 총각들로 만원을 이루는 것이 추석의 풍경이었다. 대학에 가서 우리시대의 누나들이 얼마나 저임금에 힘들게 생활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누나들의 저임금을 바탕으로 70년대 서울 구로공단과 안양시 등의 방 직업체들이 수출역군으로 호황을 누렸던 것이다. 그 시대의 누나들이 40, 50대 주부들이 되었다. 지금은 방직공장들도 우리나라를 떠나 중국으로 동남아로 떠났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선진국을 바라보는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이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그렇지만 우리 시대 누나들의 땀과 희생이 잊혀질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나의 외딴방을 꼭 이야기 하고 싶다. 2. 신경숙의 글쓰기, 문학이란 무엇인가 글쓰기란, 그런 것인가. 글을 쓰고 있는 이상 어느 시간도 지난 시간이 아닌 것인가. 떠나온 길이 폭포라 도 다시 지느러미를 찢기며 그 폭포를 거슬러 돌아가는 연어철검, 아픈 시간 속을 현재형으로 역류해 흘러 들 수밖에 없는 운명이, 쓰는 자에겐 맡겨진것인가. 연어는 돌아간다. 뱃구레에 찔린 상처를 간직하고서도 어떻게든 다시 목숨을 걸고 폭포를 거슬러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래 돌아간다. 지나온 길을 따라, 제 발짝 을 더듬으며, 오로지 그 길로. (p.37) 나는 끊임없이 어떤 순간들을 언어로 채집해서 한 장의 사진처럼 가둬놓으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문학으 로선 도저히 가까이 가 볼 수 없는 삶이 언어 바깥에서 흐르고 있음을 절망스럽게 느끼곤 한다. 글을 쓸수 록 문학이 옳은 것과 희망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는 고통을 느낀다. 희망이 내 속에서 우러 나와 진심으로 나 또한 희망에 대해 얘기할 수 있으면 나로서도 행복하겠다. 문학은 삶의 문제에 뿌리를 두게 되어 있고, 삶의 문제는 옳은 것과 희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옳지 않는 것과 불행에 더 문제가 있 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희망 없는 불행 속에 놓여 있어도 살아가야 하는 게 삶이질 않는가. 때로 이 인 식이 나로 하여금 집도를 포기하게 한다. 결국 나는 하나의 점 대신 겹겹의 의미망을 선택한다. 할 수 있 외딴방 - 신경숙 197

198 는껏 두껍게 다가가자고, 한겹 한겹 풀어가며 그 속에서 무얼 보는가는 쓰는 사람의 몫이 아니라고, 그건 읽는 사람의 몫이라고, 열 사람이 읽으면 열 사람 모두를 각각 다른 상념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게 좋겠다 고, 그만큼 삶은 다양한 거 아니냐고, 문학이 끼어들 수 없는 삶조차 있는 법 아니냐고. 현재성을 오래 생각해본다. 너무 속도가 빨라 노래 하나도 따라 부르기 힘든 지금, 내가 붙들 현재란 무엇 인가, 하고. 나는 지나가고 싶지만 과연 무엇을 지나갈 수 있을 것인지, 미래소설이나 가상소설이라고 처 음부터 작정을 해둔 게 아니면 글쓰기는 결국 되돌아보기 아닌가. 적어도 문학 속에서는 지금 이 순간 이 전의 모든 기억들은 성찰의 대상이 되는 거 아닌가. 오늘 속에 흐르는 어제 캐내기 아닌가. 왜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지금 내가 여기에서 무얼 하려고 하는지 알기 위해서. 오늘은 또 어제가 되 어 내일 흐를 것이다. 문학이 언제나 흐를 수 있는 것은 그래서가 아닌가. 정리는 역사가 하고 정의는 사 회가 내린다. 정리할수록 그 단정함 속에 진실은 감춰진다. 대부분의 진실은 정의 된 것 이면에 살고 있겠 지. 문학은 정리와 정의 그 뒤쪽에서 흐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해결되지 않는 것들 속에, 뒤쪽의 약한 자, 머뭇거리는 자들을 위해, 정리되고 정의된 것을 헝클어서 새로이 흐르게 하기가 문학인지도 모른다. 고 생 각해본다. 다시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기 말이다. 결국 이것도 일종의 정리인 셈인가. 지금, 나. 내가 말한 뒤 쪽을 봐야 하는가. (67~73) 나는 문학을 하고 싶었어. 오빠의 말이 뜻밖이었는지 올케가 물었다. 문학을 하고 싶었다는 사람이 법대엔 왜 갔어요? 오빠는 잔을 들어 단숨에 마셨다. 문학으론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고 판단했지. 뭘 변화시키고 싶었는데요? 사회....중략... 그런 얘기들을 써봐.: 나는 오빠의 얘기를 듣고만 있다. 니가 작가라면 그런 문제들을 외면해선 안 돼. 그 쿠데타가 결국은 광주 일도 불러온 거야. 무시무시한 일이지....몰라, 오빠. 나는 그런 것들보다 그 때 연탄불은 잘 타고 있었는지. 가방을 챙겨들고 방을 나간 오빠가 어디 길바닥에서나 자지 않았는지.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 그 때 왜 그렇게 추웠는지 말야. 김치 외딴방 - 신경숙 198

199 를 꺼내다가 잘라서 접시에 올려서 밥상 위에 얹으면 살얼음이 끼어 쭉 미끄러지곤 했어 그릇이 깨지고 김치가 사방으로 흩어졌지. 오빠, 그때 내가 정말 싫었던 건 대통령의 얼굴이 아니라 무국을 끓이려고 사 다놓은 무가 꽝꽝 얼어버려가지고 칼이 들어가지 않은 것 그런 것들이었어. 눈이 내린 아침에 수돗물을 틀 었을 때 말야. 물이 얼지 않고 시원스럽게 나와주면 너무 좋았고, 안 그러고 얼어서 나오지 않으면너무 싫 고 그랬어. 내가 문학을 하려고 했던 건 문학이 뭔가를 변화시켜주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어. 그냥 좋았 어. 문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현실에선 불가능한 것, 금지된 것들을 꿈꿀 수가 있었지. 대체 그 꿈은 어 디에서 흘러온 것일까. 나는 내가 사회의 일원이라고 생각해. 문학으로 인해 내가 꿈을 꿀 수 있다면 사회 도 꿈을 꿀 수 있는 거 아니야? (p.204~206) 3. 신경숙의 꿈 언젠가는, 별을 향해 높고 아름답게 잠든 새들을 언젠가는 보러 갈 거야. 아무리 우리를 업수이 여겨도 내 이 마음 버리지 않을 거야. 언젠가 그들을 내 눈으로 보러 갈 그날을 기약하며 나는 살아갈 거야. 별을 향 하고 숲속에서 자고 있는 새들은 나를 용서하겠지.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용서하겠지. 숲을 평화로운 자믕 로 아름다이 뒤덮고 있던 밸로들의 무리를 내 눈으로 보려 갈 거야. 너도 같이 가겠니? (p.106) 나의 무의식은 될 수 있으면 그 시간과 그 공간으로부터 머리 떠나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내게 묻어 있 는 공단의 냄새를 나는 샅샅이 털어내고자 했는지도.(p.162) 최홍이 선생이 소설을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 대신 시를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으면 나는 시인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랬었다. 나는 꿈이 필요했었다. 내가 학교에 가기 위해서, 큰오빠의 가발을 담담하게 빗질하기 위해서, 공장 굴뚝의 연기를 참아낼 수 있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소설은 그렇게 내게로 왔다.. (p.176~177) 4. 신경숙의 외딴방 외딴방 - 신경숙 199

200 서른일곱 개의 방 중의 하나. 우리들의 외딴방. 그토록 많은 방을 가진 집들이 앞뒤로 서 있었건만, 창문 만 열면전철역에서 셀 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나노는 게 보였다. 구멍가게나 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육교 위 또한 늘 사람으로 번잡했었건만, 왜 내게는 그 때나 지금이나 그 방을 생각하면 한없이 외 졌다는 생각, 외로운 곳에, 우리들. 거기서 외따로이 살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인지.(p.47) 그날, 하계숙에게, 너는 우리들하고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더라, 고 말하던 하계숙에게, 너희들의 얘 기를 쓰지 못한 건 가슴이 아파서였다고 했으면 변명이 되었을까. 그냥 생각만으로도 먼저 가슴이 아파버 려서 쓸 수가 없었다고. 미안하다고, 그 때 나는 겨우 열여섯이었다고. 그녀들을 부끄럽게 여긴 게 아니었 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곳을 걸어나오지 못했다. 나는 어떤 운명의 모습 앞에서 기겁을 하곤 그곳을 도망 쳐나온 사람이었다. 도망쳐 나와서는 다시는 그 근처엔 얼씬거리지조차 않았던 사람이었다. 나는 멋도 모 르고 그 징검다리를 건너왔지만 그건 건너온 게 아니었다. 내가 언제 어디에 있으나, 내가 태어나고 자라 온 마을과는 반대의 의미로, 그러나 그와 똑같은 비중으로 외딴방은 내 안에 살고 있었다. 다만 내가 너희 와 글쓰기로 정면대결을 하지 못했던 건내가 태어난 마을을 생각할 때 가지게 되는 행복 같은 건 어디서 도 엿볼 수 없고, 오빠와 외사촌과 함께 자야 하는 좁은 방이나, 다락에 갇힌 듯한 막막함, 오로지 살아나 가야 한다는 생각에 딛게 되는 무거운 발짝 소리 같은 것만 떠오르는데다가 턱하니 희재언니의 모습이 나 를 가로막아서였다. 희재언니가 그 모습으로 거기에 있는 한 나는 그것으로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내 친구 들이었던 그녀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를 몰랐다. 외딴방으로 걸어들어간 건 열여섯이었고 그곳에서 뛰어나온 건 열아홉이었다. 그 사 년의 삶과 나는 좀처럼 화해가 되지 않았다. 자연 속에서 중간다리도 없이 갑자기 공장 앞으로 걸어가야 했던 나와, 거기에서 보았던 내 나이 또래, 혹 외딴방 - 신경숙 200

201 은 대여섯 살 많은 처녀들 앞에 놓인 삶의 질곡들과 자연의 숨결이 끊어진 이 도시를 나는 어떻게 받아들 여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우리들하고는 다른 삶. 나하고는 다른 사람. 하계숙에게서 우리들하고는 다른 삶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 는 엄마를 떠올리며 멍해졌다 사실은 나, 하계숙의 말처럼 내 여고시절이나 글을 읽지 못하는 내 어머니를 부끄러워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어쩌면 나는 좀더 일찍 어머니가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모르고 싶었기에 알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불경을 펴놓고 계시지 않은가, 성경을 읽 고 계시지 않은가, 하면서. 그러구선 현실에선 어머니가 당황하실 정도로 말할 수 없이 상냥하게 굴면서 사죄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어머니에 대해서는 이렇게라도 마음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있었으나, 여고시 절에 대해서는? 그 시절에 대한 현실 속에서의 내 대응은 야릇한 것이었다. 사실은 야릇하다는 것도 모르 고 지내고 있으면 어떤 순간들이 내게 다가와서 넌 야릇해, 라고 일깨우곤 했다. 첫 책에 기록된 내 약력 을 읽은 시 쓰는 선배가 영등포여고 나왔대, 모르고 있었잖아. 나도 그 학교 나왔는데, 후배 만났네, 하며 반가워했을 때 나는 그가 내게 몇반이었느냐, 국어는 누가 가르쳤느냐, 물을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러다가 기회가 생기자 얼른 자리를 외면했다. 내 여고시절은, 나 자신이 나 스스로를 무슨 비밀을 가진 사람으로 취급하며 나를, 천성이 낙천적이었던 나를, 내성적으로 만들어 왔다. 여간 친하지 않으면 그 시절 얘기를 함구해버리면서, 내가 내 자신에게 받은 함구령을 하계숙은 한마디로 질책하고 있었다. 너는 우리들 얘기 는 쓰지 않더구나, 하면서. 우리들하고는 다른 삶을 사는 것 같더라, 하면서 나는 하계숙과 전화를 끊고 방 안을 서성거리며 그녀에게 화를 냈다. 나를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순정한 첫사랑을 밖에 두고 문을 닫아 버린 사람 취급하다니. 그러나 하계숙 얘기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들 얘기를 쓰지 않았다. 딱 한 번 시도해 본적은 있었다. 그 글은 하계숙이 읽지 못했다는 첫 소설집 마지막에 실려 있다. 하지만 그녀, 하계숙이 그 글을 읽는다고 해도 그녀는 그 글이 그 시절 우리들 얘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정직하지 못하고 할 수 있는껏 시치미를 떼었으니까. 내 젊음에 대해, 나라는 존재에 대해, 자신은 없고 생생한 아 픔만이 승해서 범한 건너뜀., 이건 소설이다, 하면서도 나는 죽을 것같이 가슴이 아팠다. 그 가슴 아픔을 숨기려고 나는 서둘러 십 년 후 이러이러했다고, 끝을 내놓았다. 정면으로 쳐다볼 자신이 없어 얼른 뚜껑 을 닫아버리며 나는 느꼈다. 내게는 그때가 지나간 시간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낙타의 혹처럼 나는 내 등 에 그 시간들을 짊어지고 있음을, 오래도록, 어쩌면 나, 여기 머무는 동안 내내 그 시간들은 나의 현재일 것임을. 이후, 육 년의 세월이 더 흘러 지금이 되었고, 그 동안에도 나는 그때의 이야기가 문장으로 튀어나오려 하 면심호흡을 하며 밀어넣고 뚜껑을 닫았다. 그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어서가 아니다. 나는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냈으니까. 어떻게 그녀들이 이끌어내진다 해도, 나는 그 속의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한번 자신을 잃으면 다시 회복하기는 힘들어지는 것이다. 뚜껑을 외딴방 - 신경숙 201

202 닫아버리는 것으로만은 되지 않아 이렇게 집을 도망쳐왔으나 하계숙은 끈질게게 여기까지 따라와서 내 이 마에 얼음을 똑똑똑 떨어뜨리며 속삭인다. 뭐라고 변명을 해도 너의 진심은 부끄러움에 있는 거야, 우리를 부끄러워하는 거야. 밤어선을 내다보며 닫아버린 뚜껑을 열어보는 지금도 자신감은 회복되지 않는다. 이 글이 마무리되었을 때 이 글이 과연 어떤 형태를 띠고 있을지 나도 모르겠다.이렇게 마주 앉아 있지만나는 글을 쓰면서도 계속 도망칠 것 같다. 틈만 나면다른 이야기 속으로 건너가려고 할 것 같다. 벌써 기승전결 의 이야기 형식을 내 손에서 놓아버리고 있지 않나. 가장 접근하기 쉬운 그 형식을 놓아버리고 어쩌자는 것일까. 어쩌리라는 마음도 사실 없다. 다만 내가 짐작하는 건 이렇게 나는 도망치려 하면서 다시 돌아오 고 도망쳐서도 다시 자의로 돌아오고 하며 완성될 것 같은 느낌밖에. 너무나 오래 마음속에 삭여온 일이 라, 보탤 것도 뺄 것도 없으니 내가 도망치지 않고 앉아 있는 시간에 날줄 씨줄이 짜지겠지. 외딴방 - 신경숙 202

203 시장은 정의로운가 - 이정전 :40 시장은 정의로운가 - 이정전 우리나라 학자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의 책이 많이 읽혔다는 것은 우리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고 정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장은 정의로운가 는 우리나라 학자가 쓴 정의에 대한 책이다. 정의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쉽게 소개하면서 우리 사회가 정의로 운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사회의 각 영역별로 정의의 원칙을 세우고 실천해야 하며, 우리 사 시장은 정의로운가 - 이정전 203

204 회를 정의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지도층의 솔선수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 전체의 통일된 정의의 원칙은 환상이다. 정의에 대한 또 하나의 환상이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한 가지 통일된 정의의 원칙이 확립되고 사회 구성 원 모두가 이를 잘 지켜야만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는 생각이다. 사실 정의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똑부러지 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지만, 각 개인은 마음 속으로 막연하나마 나름대로의 정의의 원칙 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사람마다 여러 가지 정의의 원칙들을 마음 속에 품고 있다 가 상황이 달라짐에 따라서 적용하는 정의의 원칙도 수시로 바꾼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점이다. 정치, 경제, 사회의 각 영역별로 독자적 정의의 원칙이 있다. 정치영역은 각 개인이 시민권을 행사하는 영역이면서 각 개인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말 한다. 경제영역은 직장이라든가 시장 등과 같이 주로 생계에 관련된 영역이다. 사회화 영역이란 가족, 학 교, 이웃 등과 같이 대체로 서로 알고 지내며, 사람들 사이의 직접적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일상생활이 이 루어지는 영역이다. 전반적으로 보면 정치 영역, 경제 영역, 사회화 영역 등 모든 영역에 걸쳐서 가난한 사람들이나 부자들이 나 어떤 정의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정도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와 같이 사회가 영역별로 분화되고 각 영역별로 독자적 정의의 원칙이 지배하는 현상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다. 서구 근대화 과정의 한 유산이며, 그 만큼 의미심장한 현상이다. 막스 베버Max Weber, 하버마스 J.Habermas 등 수많은 세기의 석학들이 이 근대화 과정에 주목하고 심혈을 기울여 그 원인과 특성을 규 명하였다. 이들에 의하면 사회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분화되고 합리화되는 것은 근대화의 특징이 다. 우리의 삶의 영역이 세 가지 영역으로 분화되고 각 영역별로 독자적인 정의의 원칙이 지배하는 현상 역시 그런 분화 및 합리화의 큰 흐름 속에 있다. 영역별로 정의의 원칙을 세우고 지키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 그러므로 어떤 특정 영역을 지배하는 정의의 원칙은 옳고 다른 것은 틀렸다고 한 마디로 잘라 말하기 어 렵다. 또한 어느 특정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서 우리 사회가 정의로운지 아닌지를 일률적으로 말하기도 어 렵다. 우리의 삶이 다수의 영역으로 분화되고 각각이 독자적으로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사회 전체적으로 이들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이루어진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아니 그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 면, 오늘날의 사회는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만일 모든 사람이 경제적으로 잘사는 것 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른 것을 하찮게 여긴다면, 오직 시장의 원리에 따라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운영하 는 것이 타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난해도 좋으니 모두 평등의 원칙만으로 우리 사회를 꾸려나가야 할 시장은 정의로운가 - 이정전 204

205 것이다. 평등도 중요하고 약자보호도 중요하고 경제적 풍요도 중요하다면, 결국 각 영역별로 알 맞는 정의 의 원칙을 세우고 이를 지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고 현실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경제 영역에서는 성과주 의에 입각해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생산을 많이 하도록 하며, 정치 영역은 평등의 원칙에 입각해서 분 배를 고르게 하고, 사회화 영역에서는 필요의 원칙에 따라 알맞게 나누어 쓴다면 우리 사회는 잘 조화된 사회가 될 수 있다. 바로 이런 사회야말로 정의로운 사회요, 일찍이 철인 플라톤이 꿈꾸던 이상적 사회다. 플라톤에 의하면, 영역별로 적절히 분화되고 이들 사이에 균형과 조화가 잘 이루어지는 사회가 곧 정의로 운 사회다. 그는 지혜, 용기, 그리고 절제를 사회의 세 가지 주된 덕목으로 꼽으면서 정의란 이 세 가지 덕 이 계속 조화롭게 유지될 수 있게 만드는 힘이라고 규정하고, 영역별로 각자가 자신의 것을 하는 것 이 곧 정의라고 하였다. 사회를 정의롭게 만드는 일은 지도층의 솔선수범으로부터 시작되어야 새로운 정의의 원칙을 세우는 것이 절실하고 중차대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일 단 원칙이 정해지면 그 원칙을 일관성 있게 지켜나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 정의로운 사회란 원칙이 잘 지켜지는 사회 다. 따라서 원칙이 잘 지켜지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긴요하다. 이때 특히 절실한 것은 사회 지도층의 솔 선수범이다. 우리 사회를 정의롭게 만드는 일은 지도층의 솔선수범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시장은 정의로운가 이정전, 김영사, 시장은 정의로운가 - 이정전 205

206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영국 보수당의 역사 - 강원택 :03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영국 보수당의 역사 보수주의는 이전의 것을 무조건 지키는 것이 아니다 보수정치는 영국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는 영국 보수당의 역사다. 보수주의는 재미없고 지 루하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어떻게 그런 보수정당이 오랫동안 살아남았고 집권했는가 의 원인을 영국 보수당의 역사를 통해 드러낸 책이다. 보수주의를 이전의 것을 지켜야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우리나라의 보수주의자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가르쳐 준다. 19세기 영국 보수주의 전통을 확립한 로버트 필, 벤자민 디즈레일리를 통해 영국 보수주의의 전통, 즉 끊 임없이 사회변화를 수용하고 옛 것을 무조건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개혁을 앞장 서서 실천하는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의 장기집권을 끝내고 보수당의 집권을 가능하게 한 캐머런 총리를 통해 보수당이 어떻게 살아남고 강한 생명력으로 집권하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보수주의의 아버지 로버트 필 19세기 영국은 산업화에 따른 사회변화에 정치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였다. 중산층으로 선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영국 보수당의 역사 - 강원택 206

207 거인수 확대하고 선거구를 조정하는 개혁법과 외국에서 들여오는 곡물에 관세를 부과하는 곡물법의 폐지 여부가 중요한 현안이었다. 로버트 필은 보수당의 지도자로서 개혁법을 받아들이고 곡물법을 폐지하였다. 1832년의 개혁법이 정치적 승리였다면, 1864년의 곡물법 폐지는 그들을 위한 경제적 승리였다. 이러한 조 치는 향후 보수당의 지지기반을 확대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다. 필의 곡물법 폐지는 보수 당이 언제나 기득권을 지키려고만 하는 반동적인 집단이 아니라 내부적인 반발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요구 와 변화에 대응할 역량을 갖는 정치조직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보수당은 1846년 분열 이후 집권하지 못했 고 1874년이 되어서야 가능하게 되었다. 보수당의 아버지 디즈데일리 (Benja min Dis ra eli) 시련에 빠진 보수당의 운명을 회복시킨 것은 전적으로 디즈데일리라는 지도자의 공이었다. 디즈데일이는 보수당이 1846년 곡물법 파동 이후 1874년까지 자유당의 장기집권으로 어려움을 겪던 보수당을 구하고 이 후 1906년까지 약 30년간 보수당의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만든 인물이었다. 디즈데일리는 이런 정치적 성공 뿐만 아니라 당의 사회적 지지 기반을 넓혔고 당이 대표하는 이념적 지평도 확대시켜 오늘날의 보수당으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영국 보수당의 역사 - 강원택 207

208 로 성장할 수 있게 만든 초석을 닦았다. 디즈데일 리가 보수당의 아버지(founder of the Party)라는 평가를 듣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디즈레일리가 보수당 재건에 큰 기여를 했지만 처음에 보수당은 그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출 신 성분은 보수당 주류와는 너무 달랐다. 디즈fp일리는 농촌에 넓은 토지를 소유한 귀족이 아니었다. 그는 소설을 쓰는 작가였고 도시의 상인출신이었다. 어린 시절에 국교도로 개종했지만 영국으로 이민 온 유태 인의 아들이었다. 디즈데일리는 보수당이 더 이상 사회개혁 법안에 대해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주요 이슈 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으로 전환하면서 수권정당으로의 신뢰감을 높였다. 공장과 공공위생 관련 법안, 노 조의 권리에 대한 제한적인 인정, 주택과 지방정부 개편 등 사회개혁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디즈레일리의 이러한 사회개혁에 대한 주장은 보수당이 더 이상 변화와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이 아니며 개혁법 도입으로 변화된 유권자 층에 대해 적극적으로 다가서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는 오늘날까지 인용되는 명연설을 통해 보수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제시했다. 그는 보수당만이 현재 영국의 제도를 보존 할 할 수 있고, 대영제국을 수호할 수 있으며, 일반 국민의 생활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연설 은 당시 언론의 커다란 주목을 받았고, 디즈레일리가 제시한 보수당이 자임한 세 가지 역할은 이후에도 보 수당의 중요한 정치적 사상으로 남게 되었다. 디즈레일리는 보수당을 사회개혁의 주창자일 뿐만 아니라 국가통합과 대영 제국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했다. 디즈레일리의 뛰어난 점은 자신이 처해 있는 시대의 특 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사항을 찾아내고 그 이슈를 선점하는 안목과 능력에 있었다 년 총선(보수당 350석, 자유당 242석)을 통해 보수당은 이제 잉글랜드 지역과 소수의 특권계급에 의존하는 정당이 아니라, 모든 지역과 모든 계층에게 호소력을 갖는 실질적인 전국정당 이 될 수 있었다. 디즈레 일 리가 보수당에 남긴 가장 큰 족적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당 조직의 측면에서나, 그리고 선거 지지라는 측 면에서 보수당이 전국적인 정당이 될 수 있게 한 것이다. 데이비드 카메론 (Da vid Ca mero n) 영국수상 현재 현국수상은 데이비드 캐머런이다. 1966년생으로 2010년 43세의 나이로 보수당을 총선승리로 이끌면서 수상에 올랐다. 1997년 존 메이저가 총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이후 8년동안 세 명의 당수가 기대감 을 갖고 등장했지만 무기력하게 물러났고 2005년 당시 39세의 캐머런이 보수당의 당수직에 올랐다. 캐머런은 이튼과 옥스퍼드 대학 출신으로 1997년 총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2001년 총선에서 처음으로 당선된 신참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보수당 내에서 그의 정치적 경력이 그리 짧은 것은 아니다. 대학 졸업 후 보수당 조사국에 들어갔으며 메이저 정부에서 재무장관이었던 마이클 하워드의 특별보좌역을 각각 거 쳤다. 그리고 민간 방송회사의 부서 책임자로 7년을 보낸 후 정치에 입문했다. 의원이 된 이후에 당내에서 정치적 으로 빠르게 성장했고 2004년 마이크 하워드 당수 하에서 예비내각의 주요 당직을 맡았다. 하지만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영국 보수당의 역사 - 강원택 208

209 토니 블레어가 노동당 당수가 되기 이전 11년간 의정활동을 하면서 노동당 예비내각에서 내무장관 등 보 직을 다양하게 경험한 것에 비해서 캐머런은 겨우 4년의 의회 경험만을 갖고 있었고 중요 보직을 맡을 기 회도 적었다. 보수당으로서는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젊은 정치인을 선출하는 모험을 선택했는데 세 차례 의 총선 참패가 이러한 모험을 감행하게 했다. 캐머론의 온정적 보수주의 co mpa s s io na te co ns erva tis m 데이비드 캐머론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 자유주의적 색채를 가지면서 당의 개혁과 근대화가 필요하다는 입 장을 대표하고 있다. 카메론은 시장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정책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약자를 배려하고 분배 를 중시하는 진보적 색채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러한 기조는 온정적 보수주의 compassionate conservatism'로 요약할 수 있다. 카메론은 사회적 이슈에 보수당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한다고 주장했 다. 보수당이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환경보호에 대한 적극적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나무와 연두색을 넣 은 새로운 당로고를 제정하기도 했고 또, 의사당까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기도 했다. 환경 뿐만 아니라 젊은 유권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블레어의 노동당이 보수당의 무기를 빼앗아 갔다면 카메론은 역으로 전통적인 노동당의 정책에 대해 공세를 편 것이다. 그 결과 결국 보수당은 노동당의 오랜 집권을 물리치고 정권을 차지했고 캐머론은 영국수상이 되어 영국을 이끌고 있다. 지지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 집권하는 길 어느 길이 옳은지는 영국 정당들의 집권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전통적 지지자들의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블레어는 제3의 길을 통해 노동당의 집권을 가능하게 했다. 캐머론도 대처의 유산을 당내에서 제거 하려 한다는 대처주의자들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당의 지지를 넓혀 집권했다. 결국 보수당이든 노동당이든 과감한 개혁을 통해 지지의 지평을 넓힌 정당이 승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지의 지평을 넓히고, 그리 고 국민들을 통합하여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정당이 될 때 국민들은 지지를 보낸다. 그래야 젊은 세대들 의 지지도 얻을 수 있다. 보수당이 살아남은 원인 첫째는, 보수당은 대단히 권력을 열망하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집권하기 위해서 최대한 현실과 타협했다. 디즈fp일리 수상은 빌어먹을 너의 원칙을 버려라. 그저 당에 충실해라 라고 말한 적이 있다. 둘째는, 유연한 때문이다. 변화를 고집스럽게 거부하지 않았다. 자유당이나 노동당이 추진한 정책도 필요 하다고 판단되면 수용하고 모방했으며, 이전 정부가 커다란 정치적 논란 뒤에 실행한 정책을 그 뒤에 보수 당이 집권하더라도 되돌리려고 하지 않았다. 셋째는, 보수당은 당의 외연을 넓혀왔다.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보수당이 노동계급의 이익을 수호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수당은 디즈레일리나 볼드윈처럼 필요하다면 사회개혁도 적극적으로 추진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영국 보수당의 역사 - 강원택 209

210 했다. 뿐만 아니라 애국주의 정당, 제국의 정당과 같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공동체적인 요소를 보수당 의 전통에 포함시켰다. 디즈레일리가 보수당의 기반을 닦은 지도자로 평가받는 것은 기존질서와 헌정체제의 수호라는 보수당의 전통적 가치에 사회개혁과 애국주의 정당이라는 중요한 두 가지 요소를 추가했기 때문이다. 사회개혁을 통해 보수당을 어는 한 계급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정당이 아니라 모두의 정당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러 한 보수주의의 전통은 보수당의 명분과 기반을 크게 확대시켰으며, 이것이 보수당이 이긴 원인이다.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강원택, EAI, 2008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영국 보수당의 역사 - 강원택 210

211 소명으로서의 정치 - 막스 베버 :31 소명으로서의 정치-막스 베버 지배의 세 유형과 카리스마적 지도자 어떤 지배든 이를 정당화하는 근거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아득한 옛날부터 통용되어 왔으며 사람들 은 이를 지키려는 성향을 갖는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되는 신성화된 관습의 권위다. 과거 (씨족사회에서 소명으로서의 정치 - 막스 베버 211

212 의) 가부장과 (고대 이집트나 중국의 황제, 터키의 술탄과 같은) 가산제 군주가 행사하던 전통적 지배가 이 유형에 속한다. 다음으로 비범한 개인의 천부적 자질, 즉 카리스마에 의거한 권위를 들 수 있는데 카리스마적 지배라 고 말할 수 있는 이 유형에는 (옛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와 같은) 예언자, 정치분야에서는 (페리클레스와 같은) 선출된 전쟁 지도자, (고대 로마공화정의 호민관에서 볼 수 있었든) 시민의 직접 투표로 뽑힌 통치 자, (클레온과 같은) 뛰어난 데마고그, (현대 민주주의에서 볼 수 있는 ) 정당 지도자들이 행사하는 지배가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합법성에 의거한 지배가 있다. 이는 제정된 법규의 타당성에 대한 신뢰,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부여된 객관적 권한, 그리고 법규가 규정하고 있는 의무를 기꺼이 수행한다는 복종의 관념에 따 른 지배로서, 근대적 공무원 을 비롯해 그와 유사한 형태로 권력을 갖게 된 사람들에 의해 행사되는 지 배 형태다. 인간의 정치에 있어서 가장 전형적인 지배의 유형은 카리스마적 지배이다. 왜냐하면 정치에 대한 가장 높 은 차원의 표현인 소명이라는 개념은 바로 여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예언자나 전쟁 지도자 혹은 민회나 의회의 위대한 데마고그와 같은 카리스마에 헌신하는 것은, 그 인물 개인을 내적으로 소명을 받은 지도자로 인정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사람들이 그에게 복종하는 것은 전통이나 법규 때 문이 아니라 그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이들은 (소명이라는) 그 말이 갖고 있는 가장 본래적 의미에서 소명 을 가진 정치가들이다. 정치가들이 동원하는 권력 자원에 관한 것으로 관료제이다. 관료제는 하나는 인적 요소로서 행정 관리와 다른 하나는 물질적 요소로서 행정 수단으로 구성되며 근대국가는 아주 특별하다. 왜냐하면 근대국가에서 만 이 두 권력 자원이 서로 분리된 채 매우 제도화된 통치 조직 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이 물 질적 통제 수단에 대해 독자적 처분권을 가졌던 모든 신분제적 기구들의 권한을 박탈하고는, 그 대신 국가 자신을 최정점의 위치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독립된 관료 체제가 없었던 고대 민주주의에서와는 달리 대규모 국가 관료 체제를 갖게 된 근대 이후 정치가들의 존재는 어떤 모습일까? 근대국가로의 전환 과정에서 점차 일시적 내지 부업으로 봉사하는 보좌 인력만으로는 정치를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된다. 정치를 자신의 직업으로 삼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그 하나는 정치를 위해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에 의해(혹은 정치에 의존해서) 사는 것이다. 직업으로서 정치에 의존해 사는 사람은 정치를 지속적 소득원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인 데 반해, 정치를 위해 사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고 볼 수 있는데, 정치를 위해 살 수 있으려면 이럴 경우 정치는 흔히 말하듯 남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즉 자산가나 특히 금리생활자에 의해 수행된다. 그러나 재산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정치적 지도층 소명으로서의 정치 - 막스 베버 212

213 의 길을 열어 주고자 한다면 이들은 보수를 받아야 한다. 근대 국가에서 보수를 지급하는 방법은 당연히 정당, 신문사, 협동조합, 건강보험공단, 지방자치단체, 국가기관 등에 있는 모든 종류의 관직들 이다. 따라서 정당간의 모든 투쟁은 본질적 목표를 위한투쟁인 동시에 관직 수여권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명사 정당 체제는 유권자가 확대되면서 해체되고 새로운 정당 조직이 출현했는데, (대중정당이라고 불릴 만한) 이 새로운 정당 조직 형태는 민주주의, 보통선거, 대중 동원 및 대중조직의 필요성, 매우 엄격한 규 율의 발전 그리고 지도부 내에서 고도의 통일성이 낳은 결과이다. (원외에 있는 지역)명사들의 지배와 (원 내에 있는 명사를 뜻하는)의원들의 주도적 역할은 막을 내렸다.이제는 의회 밖에 있는 전업 정치가들 이 정당 조직을 손에 넣었다. 권위 있는 당 강령을 만드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원내 의원이 아니며 후보 지 명도 더 이상 지역 명사들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대신 당원 전체 회의에서 출마할 후보와 (전당대 회에 이르기까지) 여러 상급 대의기관에 보낼 대의원을 선출한다. 아마 이렇게만 말한다면 일반 당원이 우 위에 선 어떤 정당정치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베버는 외형적으로 전당대회가 중심이 되는 제도와 절차 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당을 움직이는 힘은 머신(machine)과 지도자라고 말한다. 머신이란 선거 승리에 기여하고 그 대가로 관직 배분권에 접근하고자 하는 정치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이후 대중이 투표권을 갖고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정치에 동원됨에 따라 이들 머신은 지도자와 대중을 직접적 으로 연결하는 조직으로 기능하게 되는데, 이처럼 자신들이 추종하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열렬한 하층 동원 정치를 주로 귀족 정치인 내지 보수 정치인들이 조롱하여 머신 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이 말이 제아무리 부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하더라도, 베버는 1투표권을 갖게 된 대중, 2이들이 추종하는 지도자, 3이 양자를 결합함으로써 영향력을 갖고자 하는 머신, 이 세가지가 민주주의 정치의 중심 요소라 는 사실을 단호하게 인정했다. 정치가에게 요구되는 자질 정치를 직업이자 소명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 정치가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다음 세 가지 자질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열정, 책임감, 균형적 판단이 그것이다. 여기서 열정이란 객관적인 의미를 갖는 것으로, 대의 및 이 대의를 주관하는 신 또는 (인간 과 신 사이에 있는 수호신으로서)데몬에 대한 열정적 헌신을 가리킨다. 불모의 흥분 상태 라고 부를 만 한 그런 내적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단지 열정을 갖는다는 것만으로는-그것이 제아무리 순수한 것이라 하더라도-정치가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다. 대의 에 헌신하는 또 다른 형태로서, 대의에 대한 책임성이 행동을 이끄는 결정적인 길잡이가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균형적 판 단이다. 정치가가 가져야 할 매우 중요한 심리적 자질로서 균형적 판단은 내적 집중력과 평정 속에서 현실 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자, 달리 말하면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 소명으로서의 정치 - 막스 베버 213

214 윤리적 지향성을 갖는 모든 행위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고 화해하기 어려운 대립적인 두 원칙을 따른다 고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는 신념 윤리를 따르는 원칙이고 다른 하나는 책임 윤리를 따르 는 원칙이다. 신념 윤리는 무책임과, 책임 윤리는 무신념과 동일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당연히 그런 문 제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념 윤리의 원칙에 따라서 행동하는가(종교적으로 표현하자면 기독교도는 올바른 행동을 할 뿐, 결과는 신에게 맡긴다는 식), 아니면 책임 윤리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가(우리는 우리 행동의 예견 가능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식) 사이에는 심연과 같은 깊은 차이가 있다.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를 조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사 우리가 목적에 의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원칙 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목적이 어떤 수단을 정당화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윤리적 계율 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종류의 것이든 정치를 하겠다고 하는 사람, 특히 정치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런 윤 리적 역설을 자각하고 있어야 하고, 또한 이 역설들의 중압에 압도되어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치가는 모든 폭력/강권력에 잠 복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소명으로서의 정치 정치란 열정과 균형적 판단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구멍 뚫는 작업이다. 만약 이 세상에서 불가능한 것을 이루고자 몇 번이고 되풀이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마 가능한 것마저도 성취하지 못했을 거라는 말은 전적으로 옳고 모든 역사적 경험에 의해 증명된 사실이다. 그러나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지도자이면서 또한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영웅일 수밖에 없다. 지도자나 영웅 은 아니라 해도, 모든 희망이 깨져도 이겨 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의지를 갖추어야 한다.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 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말할 확신을 가진 사람, 이런 사람 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 을 가지고 있다. 결국 베버가 말하려는 것은 신념 윤리 없는 책임 윤리 혹은 책임 윤리 없는 신념 윤리에 이끌리지 말고, 어떻게든 실력을 쌓아 두 윤리의 실천적 결합을 이루라는 것이다. 소명으로서의 정치, 최장집 엮음, 박상훈 옮김, 2011, 폴리테이아 소명으로서의 정치 - 막스 베버 214

215 정치의 발견 - 박상훈 :28 정치의 발견 - 박상훈 정치는 중요하다 상식이라 불리는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의견은 정치하지 말라 는 것이다. 정치는 더러운 인간들이나 하는 짓 이고, 믿을 수 없는 직업 을 대표하는 말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정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정치의 발견 - 박상훈 215

216 은 많지 않으며 직업 정치인이라는 말은 거의 욕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당연히 정치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 다만 정책의 우선순위와 방향을 약간만 바꾸더라도 부조리 한 현실을 개선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정치가 인간 사회의 미래를 모두 책임질 수는 없다. 그러나 예산의 일부만이라도 잘 쓰인다면, 결핍된 조건을 가진 많은 아이들이 내일의 삶을 스 스로 개척하도록 도와 줄수는 있다. 그것이 정부로부터의 온정적 시혜가 아니라 민주정치가 책임성을 발 휘해야 할 과업이자 시민의 정당한 권리로 인정된다면 더 나은 사회를 향한 공동체적 토대른 좀 더 튼튼 해질 것이다. 좋은 제도와 법을 통해 사회경제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지고, 수 많은 이해 당사자들이 참여하고 함께 실천함으로써 자치의 기반이 확대될 수도 있다. 민주주의를 정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시민 스스로 만든 법과 제도에 시민 스스로 복종하는 체제라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법이나 제도가 만들어진다 해도 시민이 입법자가 아니라 면 그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렇듯이 노동자도 호남도 비정규직도 여성도 농민도 자영업자도, 권력 의 향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집단적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그들인 시민권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치가 중요하다는 것은 정치가 모든 것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상황 내지 인간이 만든 사회문제를 개선 하는 데 있어서 매우 유력한 수단이자 방법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당이 집권할 수 있을 때, 사회적 약자 집단도 무시당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온정에 의존하지 않는 주체적 시민 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도 커진다. 국가 간 민주주의의 성취를 통계적으로 조사 연구한 성과들이 몇 개 있다. 그에 따르면, 가장 설득력 있는 결론은 다음 두가지다. 하나는 진보 정당의 경쟁력(집권 기간, 득표 경쟁력 등)이 큰 나라일 수록, 다른 하 나는 (보통 노조 조직률, 노사협약 적용률, 노조의 중앙 집중화 정도로 평가하는) 노동조합의 힘이 강할수 록 좋은 지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노동을 배제하는 정도가 덜할수록 그리고 진보적인 정당들 도 상당한 득표를 하고 집권의 전망도 있는 나라들이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하고 건강하고 평화롭게 살 가 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념적, 계층적 대표의 범위가 충분히 넓은 사회일수록 그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집단들의 관심과 이익 이 평등하게 고려될 수 있다. 진보 정당의 경쟁력이 낮아 집권의 가능성이 없는 민주주를 보수 독점적 정 당 체제라 할 수 있는데, 이럴 경우 그 사회의 하층이나 약자 집단의 이해는 대표되기 어렵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 불평등과 빈곤 문제, 다양한 사회 해체 양상으로 고통 받게 된 이유는 자본주의 때문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가 진보 정당 있는 민주주의, 노동 있는 민 주주의의 길을 더 깊고 더 넓게 개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의 발견 - 박상훈 216

217 정치는 누가 어떻게 하는가 정치 없이 인간 사회의 평화와 안전, 복리를 이룰 수 없고, 정치 없이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진작시키기 어렵다. 정치의 역할은 인간이 사회를 필요로 하는 그 순간 불러들여졌다. 정치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지향하면서도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강제력이라는 요소를 필요로 한 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다. 정치가 갖는 이런 반인반수의 양면성 내지 회피할 수 없는 윤리적 딜레 마 는 천사의 요소와 악마의 요소를 모두 가진, 인간이라는 피조물의 운명적 한계에서 비롯된다. 막스 베버는 정치에 관련된 모든 윤리적 문제의 독특성 은, 인간이 만든 조직에 내재해 있는 정당한 폭력/강권력이라는 특수한 수단 그 자체 에 의해 규정된다고 말한다. 그는 현대 정치가 대면하는 가장 대 규모의 정치 조직체인 국가에 주목하는데, 그에 따르면, 국가란 특정의 영토 내에서 정당한 물리적 폭 력/강권력의 독점을 (성공적으로) 관철시킨 유일한 인간 공동체 이자 폭력/강권력을 사용할 권리의 유 일한 원천 으로 정의된다. 인간은 천사가 아닐뿐더러 천사에게 국가를 맡길 수 있는 것도 아님은 자명하 다. 국가를 둘러싼 권력 투쟁을 그 핵심으로 하는 정치의 세계에서 의도의 선함만을 강변하는 신념 윤 리 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치 행위에서 잘못된 선택이 가져올 결과는 재난에 가까울 수 있기 때문에 결과 에 대한 신중한 판단을 중시하는 책임 윤리 가 매우 중요하다. 정치에서 조직과 제도의 퇴화를 막는 궁극적인 요소는 조직과 제도라는 그런 인위적 장치들을 운영하는 사람에 있으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역할이다. 리더쉽 없는 정당 민주주의의 필연적 결과는 정파나 도당과 같은 강한 소수 내지 비가시적 권 력 이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베버에게 있어서 정치란 열정과 균형 감각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 으로 이해된다. 베버는 정치에서 책임 윤리의 부재를 일종의 정치적 죄악으로 본다. 사랑의 윤리는 악에 대해 폭력으 로 대항하지 말라. 라고 말하지만 정치가에게는 거꾸로 너는 악에 대해 폭력으로 저항해야 한다. 안 그 러면 너는 악의 만연에 책임이 있다. 라는 계율이 더 타당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현대 국가와 같은 대규모 공동체에서 (정당이라는) 이런 운영 조직 없이 선거가 제대로 치러질 수 있으 리라고 생각할 수 없음은 누구의 눈에도 자명해 보인다. 실제로 정당은 민주주의, 보통선거제, 대중 동 원 및 대중조직의 필요성 그리고 지도부의 고도의 통일성과 매우 엄격한 규율의 발전 등이 낳은 결과 이 기도 하다. 그렇다면 정당이면 다 되는가? 아니다. 정당에서도 결굴 지도자가 중요하다. 지도자와 그 추 종자는 모든 정당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기본 요소이다. 정치란 위험한 분야이고 잘못된 결정이 파국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자각이 더해지면, 누구든 타인의 정치의 발견 - 박상훈 217

218 의견 내지 이견을 존중하는 자세를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자세는 자연스럽게 이념과 가치의 다원주의, 타인에 대한 인간적 정중함과 관용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적 이성을 갖게 한다. 알린스키는 운동가들에게 자신의 생각이나 이념, 가치를 수혈하거나 계몽하려 하지 말고 보통 사람들의 경험의 세계에 기초해 대화할 것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알린스키는 의사소통은 청중의 경험 안에서 이 루어져야 하며 타인의 가치관을 온전하게 존중해야 한다 라는 점을 누구보다 강조했다. 알린스키는 말한다. 사람들은 익숙한 경험이 주는 안전함으로부터 갑작스럽게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의 경험에서부터 새로운 방식으로 나아가기 위한 다리를 필요로 한다. 좋은 정치가나 제대로 된 조직가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다리를 놓기보다 그들을 계몽하고 가르치려 는 방법으로 실천하는 것은 대중을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 정치가라면 대중의 실제 경험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튼튼한 다리를 만들고 뚜벅뚜벅 건너서 자신의 길을 넓혀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반체제가 아니라 체제 내부에서 일해 나가는 것 의 중요성을 알린스키만큼 설득력 있게 말하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그러면서 알린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변화의 정치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전 제 조건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세상을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있는 그 대로의 세상에서 그것의 법칙대로 일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받아들이면 변화에 대한 열망이 사라지지 않을까? 알린스키는 그 반대라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는 모습으로 세상을 바꾸어 나가려는 우리의 바람 이 약화되는 것은 아니라며, 오히려 그렇게 할 때 변화와 개혁의 의지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고 바로 그 부분에서 한 개인이 갖는 내면의 강함은 더 깊어진다는 것이다. 권력에 가까이 갈수록 타락하지 않을까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권력의 부패는 권력 자체에 있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 있다.... 권력은 삶의 진정한 본질이며 원동력이다. 그것은 몸에서 피를 순환시키고 생명을 유지하는 심장의 힘이다. 그것은 공동의 목적을 위해 위로 솟아올라 단결된 힘을 제공 하는 적극적 시민 참여의 힘이다.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란 생각할 수도 없다.... 성 이그나티우스 는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권력과 권한이 필요하다 라고 말했다. 권력을 알고 이해하며 두려워 하지 않는 것, 그것은 권력을 건설적으로 이용하면서 통제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 권력없는 삶은 죽음이 다. 권력없는 세상은 유령 같은 황무지, 죽은 땅이다. 정치가가 할 일은,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고 그래서 사람들이 알고 싶고 참여하고 싶게 이끄는 다리 놓기 를 하는 것이지, 대중의 무관심과 무지를 탓하며 스스로 민주적 가치를 버리는 데 있 지 않다.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것들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제공해 줄 수 있는 적극적인 정치 전략은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당시 그들에게는 정 정치의 발견 - 박상훈 218

219 치보다 혁명이 중요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혁명은 유물사관에 의해 필연적으로 도래할 어떤 것이었고 그것을 가능케하는 추동력은 거리와 공장에서의 계급투쟁으로 이해되었다. 대중의 경제적인 고통은 자본 주의에 대한 불만을 극대화하고 자본주의를 전복하고자 하는 혁명의 열정을 강화시켜 주는 것으로 이해되 었다. 레닌이 말했듯이, 상황이 나쁠수록 혁명은 앞당기기에 유리하다는 식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현실의 민주정치가 가져다준 기회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현실의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형식적 민주주의 로 폄하되었다. 정부에 참여할기회는 거부되었고, 다른 정파와의 협력도 비난받았다. 특히 타 정파와의 협력이나 타협을 주장하는 것은 계급투쟁의 열정을 분산시킨다는 이유로 공격받았다. 이들이 버린 정치의 공간을 장악한 것은 이탈리아에서는 파시즘, 독일에서는 민족사회주의(나치즘)였다. 이런 반민주적 혁명의 길을 열었던 조르주 소렐은 이렇게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조롱했다. 정치는 인간이 천사가 되지 않는 한 언제나 꼭 있어야 하는 불가피한 것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길은 정 치를 선용하는 방법을 찾는 데 있지 정치 없는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혁명론은 무엇보다도 종말론적 사고를 강화하기 쉽고, 실제 혁명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갖는 반정 치적인 사고 경향 때문에 혁명 이후를 전체주의 사회로 이끌기 쉽다. 불평등의 원리로 조직된 시장 메커니즘이 생산적 자원의 분배와 할당을 지배하는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평등화의 가장 강력한 기제는 민주주의이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정치적 평등의 원리에 따라 조직된 민 주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정치와 국가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현실의 불평등 체제 를 안정화시키는 데 기여하기 쉽다. 사회의 균열 기반 위에 위치한 여러 집단들의 이익과 열정을 복수의 정당들이 경쟁적으로 동원하여 자신 들의 지지 기반을 확대하고자 하는 파당적 경쟁의 효과가 작용하지 않는 한, 자본주의 시장의 분배 구조에 서 소외되어 있는 약자들의 요구가 국가의 정책 결정에 반영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싸움 민주주의가 사회적 합의에 가까운 지지를 받게 된 것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 이르러서다. 다시 말해 파시 즘과 나치즘 그리고 뒤이는 세계대전의 비극적 경험을 거치고 나서야 좌파는 혁명을 포기하고 우파는 착취를 포기하는 길 을 받아들였고, 그 위에서 민주주의가 비로서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화로서의 민주주의와 현실로서의 민주주의를 구분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스스로 민주주 의를 말하면서 나는 어떤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고, 왜 내가 그런 민주주의를 주장하는지가 분명해져야 한 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현실을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정치적 무기가 아니라 그저 듣기만 좋은 공허 한 담론 내지 우리를 잘못된 실천으로 이끄는 이데올로기가 되기 쉽다. 기본적으로 나는 민주주의든 사회주의든 그 어떤 것도 인간의 삶을 모두 책임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 정치의 발견 - 박상훈 219

220 서 인간이 만들어 가고 실천해 가야 할 것들을 과도하게 이상화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치를 벗어난 삶? 얼 마든지 가능하다. 정치를 벗어나서도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민주주의를 벗어난 삶? 마찬가지다. 제 아무리 좋은 민주주의가 도래한다 해도 인간의 고민과 새로운 상상은 끝이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완벽 한 최선이고 모든 것이어서가 아니라 그간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실천해 온 가치와 목표가 소중하고 여전 히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개선해 가야 할 것들이 많기에, 그에 맞게 인간이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민 주주론을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현대 민주주의는 시민의 직접 지배 체제가 아니라 시민의 동의에 의한 지배 체제다. 혹은 일반 시민의 지지에 정당성의 기초를 둔 정당과 정치가들의 경쟁 체제 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점에서 현대 민주주의는 대중과 정치 엘리트가 협력하는 체제 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좋은 정당이라면 지지자와 정치가 사이의 좋은 협력의 체계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대규모의 영토 국가, 대규모의 시민, 사회적 기능의 분화와 전문화 등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사회의 민주주 의를 말하면서 시민의 직접 통치 내지 집회 민주주의, 광장 민주주의를 대안으로 말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동시에 위험한 일이다. 실천될 수 없는 민주주의를 말한다면 그것을 사람들을 민주주의와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 직접민주주의는 대의제와 선거 민주주의를 보완할 뿐 인간이 진공상태에서 살 수 없듯이 민주주의 역시 모든 차이와 갈등이 사라진 광장의 집회장에서 순수한 열정만으로 실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문제의 핵심은 대의제를 제대 로 하고 투표를 중요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데 있으며, 이 사실을 부정하고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직접성 의 가치는 대의 민주주의를 튼튼하게 발전시키면서 그 기초 위에서 다양한 시민 참여의 실험과 제도를 창조적으로 모색하고 보완해 가자는 관점에서 접근해야지, 대의제와 선거 민주주의는 진 정한 민주주의가 아니고직접 민주주의와 추첨제가 진짜 민주주의 라고 보는 것은 현실이 아닌 신화를 붙 들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인간 사회에서 지배와 통치, 폭력의 요소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인간 사회의 정치가 아닐 것이다. 천사가 아닌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한 정치는 필요하고, 그 위험한 분야를 담대하게 다룰 사람도 필요하고, 그만한 기술과 역량 그리고 전문적인 지식도 필요하다. 민중적인 것, 진보적인 것의 가치만 앞세우면서 현 실의 민주주의를 부정하거나 경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당정치와 사회갈등 아무리 민주주의 정치체제라 할지라도 정당정치가 사회 갈등을 폭넓게 조직하고 동원하고 통합하지 못한 다면 그 때의 시민 주권 은 사실상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정치 상식으로는 갈등의 조직, 동원, 통합 이라는 말, 게다가 이게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는 말이 도통 이해되기 어려울지 모른다. 정치의 발견 - 박상훈 220

221 그러나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다가오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허상에 불과한 것이 된다. 갈등이란 지역, 종교, 소득, 직업, 성, 고용형태 등 우리가 서로를 정의하는 사회적 차이를 뜻한다. 민주주 의는 이런 갈등 때문에 불러들여진 정치체제이고 또 가f등 때문에 존재한다. 갈등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존 재할 이유가 없다. 이렇듯 민주주의는 갈등에 기반을 둔 정치체제다. 우선 사적 이익집단이든 공익적 사회집단이든 이들이 동원할 수 있는 사회 갈등의 범위는 그리 넓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 집단은 각자의 협소한 이익과 관심의 범위를 넘어 갈등을 폭넓게 조직하려고 해도 어느 수 준에 이르면, 갈등의 범위를 확대하자니 기존의 참여자가 줄고, 이들의 참여를 유지하자니 갈등의 범위를 축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르 샤츠슈나이더는 사회집단에 의한 정치적 동원 의 불완전성 법칙 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에서 갈등의 범위를 확대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사회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전달하는 것은 정치의 기능이다. 그리고 현대 정치의 핵심 기구는 정당이다. 갈등이 공적 영역에서 정당에 의해 조직되면 갈등의 규모는 커지지만 갈등 의 수는 줄어든다. 민주정치의 비결은 여기에 있다. 정치학에서 말하는 정당은 수많은 정의를 갖는다. 가장 고전적인 정의는 조직화된 사회적 의견 혹은 서로 경합하는 세계관 을 뜻하며 따라서 그런 세계관이나 의견의 수가 둘이면 양당제, 그 이상이면 다 당제라고 한다. 정당이 학교와 노조, 가족으로 깊이 내려갈수록 정당들은 서로 다른 세계를 이루고 그들 세계 안에서 공통 의 정치적 가치를 덜 갈등적으로 다루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사적 영역의 이슈들이 평화적으로 공 적 영역과 접합되고 그들 사이의 차이가 더 넓은 가치와 비전 아래서 통합된다.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어울릴 수 밖에 없기에 모임을 가질 때마다 정치 이야기는 안 돼. 를 외치는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우리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정치를 부정하지만 정치 갈등의 격렬함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삶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정당들이 지금보다 더 사회생활과 생활 세계 안으로 깊이 들어와야 하는 것이 한 국의 현실이다. 물론 정당이 발전되어 있다 해도 사회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전환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느 사회든 상층 계급은 이를 막으려고 하고, 그래서 공적 영역 및 정치, 정당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동원하는 데 열심히기 때문이다. 정치, 정치인, 정당을 공격하고 비당파성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갈등의 규모를 통제하려는 이들 의 대표적인 전략이다. 저자(샤츠슈나이더)는 정당은 다수의 동원에 적합한 특수한 형태의 정치조직, 갈등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위계화하여 가장 큰 규모의 대중을 동원함으로써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라고 말한다. 정 당을 통해 갈등의 수를 줄이되 갈등의 규모는 사회화해서, 가장 바람직한 공익이 무엇인지를 정당들이 서 로 달리 대표하게 하고, 그렇게 형성된 두 개 내지 세 개 정도의 대안이 선거에서 경합하게 하는 것, 그것 정치의 발견 - 박상훈 221

222 이 좋은 민주주의의 조건이라는 말이다. 그렇지 않고 정당이 공직자를 선출하는 데 머무를 뿐 대안을 조직 하고 정치가 무엇을 둘러싼 것인가를 결정할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면 시민은 온전한 주권자가 아 니라 절반의 주권자일 수밖에 없다. 그 경우 이들은 정치를 버리고 기권을 선택함으로써 주권자임을 포 기한다. 기권은 바로 이들이 원하는 선택지와 정당 대안이 억압되어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갈등의 체제 도덕적인 인간을 민주주의의 전제로 보거나, 민주주의를 이상화된 어떤 규범적 질서로 이해하는 접근과는 달리, 이 책은 민주주의를 갈등에 기반을 둔 혹은 갈등을 둘러싼, 갈등의 체제 로 이해한다. 중요 한 것은 이런 현실 속에서 어떻게 공동체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가에 있는 것이지, 서로 나뉘어 다툰 다는 이유로 갈등을 부정하고 혐오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민주주의란 스스로 옳다고 확신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체제 라는 정의는 그가 얼마나 정치를 인간적이고 현실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누군가 필자에게 왜 민주주의라는 가치 내지 이념을 좋아하는지를 묻는다면 무엇보다도그것이 평등의 원 리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평등의 원리가 아니라면 민주주의를 평범한 보통 사람들 의 권능에 공동체의 운명을 맡길 수 있는 정치체제라고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또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이 비범한 일을 해내는 민주적 성취에도 경탄하기 어려울 것이다. 시민으로서 권리를 갖는 데 있어 서 재산, 교육, 태생,신념 등과 같은 자격 조건을 따지지 않는 정치체제는 민주주의가 유일하며, 공적 이 슈를 둘러싼 논의와 결정 과정에서 일정 연령 이상의 구성원 모두 평등한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상상은 오로지 민주주의에서만 가능하다. 갈등의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싸움에 구경꾼을 끌어들이거나 배제하는 데 성공하느냐에 따라 승자가 되기 도 하고 패자가 되기도 한다. 정당은 유권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는 방식을 통해 이들을 조직한다. 갈등의 수를 줄이는 일은 정치가 수행하는 핵심적인 기능이다. 정치는 갈등들 간의 지배와 종속을 다룬다. 민주주 의 사회가 존속할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잠재된 갈등들에 대해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관 리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갖는 위대한 장점 가운데 하나는, 사회 하층의 요구와 경험을 이해하고 통합하는 일을 다른 어 떤 통치 체제보다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간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사적 갈등 에서는 강자들이 승리하는 반면 공적 영역에서는 약자들이 자기방어를 위해 세력을 규합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경쟁하는 정치조직들과 지도자들이 만들어 낸 대안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보통의 시민이 선택 하는 정치제제이다. 노동있는 민주주의 정치의 발견 - 박상훈 222

223 민주주의는 어떻게 작동될 때, 보통의 평범한 시민을 위한 정치체제가 될 수 있을까? 가장 강력한 설명의 하나는 기업운영-노사관계-정당 체제-정책 결정 과정에서 노동의 시민권이 얼마나 폭넓게 보장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노동과 민주주의 사이의 관계를 조사한 학자들이 강조하듯이, 노동자들의 이익과 열정을 대변하는 노조와 정당의 힘이 강한 나라일수록 계층 간 불평등 정도는 작고 빈 곤율도 낮다. 투표율은 어떨까? 노동의 정치적 대표성이 클수록 높다. 범죄율도 낮고 사회적 약자 집단에 대한 보호의 수준도 높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 준다 가끔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느냐 를 따져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민주주의가 밥 먹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정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경제적 분배 효과가 계층별로 달라질 때, 민주주 의는 인정된다. 그 경우 어느 사회집단이든 정치 참여의 욕구가 자신들의 필요로부터 발생하며, 결과적으 로 개인과 민주주의 사이이 결합이 튼튼해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주의의 문제는 아직까지 이런 함수 관계를 만들지 못했다는 데 있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투표를 거부한 54퍼센트의 유권자들, 그리고 전체 노동자의 54퍼센트에 해당하는 850만 비정규직의 눈으로 볼 때, 정치를 누가 하든 자신들의 삶이 크게 달 라질 것이 없다고 한다면, 민주주의는 참여의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말이 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오 늘날 한국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고 가는 주범은 다른 것이 아닌, 노동 배제적이고 하층 배제적인 사회 그 리고 그 위에 서있는, 노동 없는 정치가 가난한 보통 사람들을 절망으로 이끌고 있다는 데 있다 할 것이 다. 정치가의 책임 윤리 정치 행위 내지 정치적 선택의 윤리성은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하는 측면만이 아니라, 바람직한 성과를 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결과의 측면 에서도 고려되어야 하고, 이 양자의 균형을 만들어 가는 것이 정치 가에게 부여된 책임성 혹은 책임 윤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적인 삶을 풍부하게 하는 정치 민주주의하에서는 진보도 여러 정치 세력의 하나이고 스스로의 권위와 영향력은 다른 정파와의 민주적 경 쟁을 통해 성취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보수 없는 진보 세상 을 꿈꾸는 것은 민주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전체주의에 가까운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보수 등 다른 정파와 정치적으로 경쟁해야 한다. 그렇 지 않고 이념이 다르다고 적대하거나 인격적으로 배척하고 무시하는 식은 곤란하다. 그건 진보적인 태도 라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인간적인 가치와는 양립하기 어렵다. 정치적 이성이란 기본적으로 불확실성에 대한 존중, 무지의 가능성에 대한 자각, 진보만이 지배하는 세상 이 아닌 이념과가치의 다원주의, 누구든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의 존중, 타인에 대한 인간적 정중 정치의 발견 - 박상훈 223

224 함과 관용 등을 내용으로 한다. 정치에 주목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허용하고 있는 정치라는 가능의 공간을 지금보다 더 활짝 열어야 한다. 진보의 열정이 정치적 이성과 만나고 그것이 좀 더 넓고 풍부한 인간적인 기초 위헤서 성장해 갈 때 진보 정치는 매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매력을 갖게 될 때 진보는 한국 정치의 주변을 박차고 나와 민 주주의의 발전에 중심적 기여자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정치의 발견, 박상훈, 2011, 폴리테이아 정치의 발견 - 박상훈 224

225 나는 정치인이다 - 올로프 팔메(하수정 하수정) :38 나는 정치인이다 - 올로프 팔메 스웨덴이 사랑하는 정치인 - Olof Palme 정치는 더러운 인간들이 하는 짓 정치는 더러운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고, 정치인은 믿을 수 없는 사람들 이라는 것이 우리사회의 정치 와 정치인에 대한 인식이다. 또한 정치적 이라는 말 속에는 겉과 속이 다르고 거짓말을 잘하며, 어떤 문제에 확실하게 태도를 드러내지 않지 않는, 즉 솔직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어느 누가 자 신을 정치인이라고 나서겠는가? 정치학을 전공한 대학 동기 모임에서도 투표 안한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 기 하곤 한다. 그러면 아니 정치를 공부한 사람이 투표를 안한다는 것이 말이 되니? 인류가 투표권을 얻 나는 정치인이다 - 올로프 팔메(하수정) 225

226 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 가며 쟁취한 것인데. 투표 안한 사람은 앞으로 정치나 선거이야기 할 자격 이 없다 라며 핏대를 올려가며 논쟁한 적이 있다. 심지어 정치인 조차도 자신은 정치적인 아닌 것처럼 행 동한다.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기타도 치고 노래도 부른다. 심지어 정치의 정 점에 서 있는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를 싫어한다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반정치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반정치주의는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반정치주의란 정치가 좋아졌으면 하는 건설적 비판과는 다르 다. 우리가 반정치주의라 할 때 그것은, 정치를 경멸하고 조롱함으로써 일반 시민들이 정치에 기대를 걸 지 못하게 하거나 정치의 가능성에 대한 냉소주의를 강화시키는 태도나 경향 을 가리킨다.(박상훈, 정치 의 발견, p.22)이러한 극단적인 반( 反 )정치적인 태도는 정치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는 권력을 다루는 것인데, 권력 현상은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곳에는 어디 든지 있게 마련이 다. 그리고 정치는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다. 정치가 중요하다는 것은 정치가 모든 것이어서가 아니라 인간 의 상황 내지 인간이 만든 사회문제를 개선하는 데 있어서 매우 유력한 수단이자 방법이기 때문이다. (박 상훈, 정치의 발견, p.33)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그의 책 담대한 희망 에서 정치에 나선 오바마에게 많은 사람들이 왜 정치판 처럼 더럽고 추잡한 곳에 뛰어들려고 하는가? 를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 회의적 시각을 갖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정치에는 또 다른 전통이 있다....그것은 아주 단순하 고 분명한 생각에 기초를 두고 있다. 우리는 서로서로에 대해 관심과 이해 관계를 갖고 있고, 그 때문에 우리를 하나로 결집시키는 힘이 분열시키는 힘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 그것이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 이 그런 생각이 옳다고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해도 상당한 성취를 이룰 수 있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약간만 조정해도 모든 어린이가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도록 도와줄 수 있고 국가적으로 당면한 여러 어려운 문제들에 잘 대처할 수 있다. 그렇다. 정치는 중요하고 바람직하다. 올바른 정치를 통해 우리 사회를 바꿔갈 수 있고, 그런 소명을 가진 정치인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은 자랑스럽게 나는 정치인이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며, 반정치주의는 배격되어져야 한다. 반정치주의로 이득을 보는 세력이 존재하고 그들에 의해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가 끊임없이 생산되고 확산된다는 점에서, 반정치주의는 분명한 권력 효과를 갖는 이데올로기가 나는 정치인이다 - 올로프 팔메(하수정) 226

227 아닐 수 없다. (박상훈, 정치의 발견, p.23) 선거에서도 투표율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정책선거보다는 상대 방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유권자들의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자극하여 투표율을 떨어뜨리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누가 정치를 부정하는가? 누가 사람들을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가? 누가 투표율 을 떨어뜨리려하는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정치, 또는 정치인이 긍정적인 의 미로 받아들여지는 나라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외는 있는 것이다. 팔메는 스스로 정치인이라는 점을 자랑했다. 그는 정치의 즐거움을 알았다. 또한 대중에게 그 즐거움을 맛 보게 했다. 대중이 정치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으며, 참여하게 만들었다. 정치인으로서 팔메는 중간자적인 애매한 입장이나 외교적인 입장은 없다. 호불호가 분명한 사람이었고 이점이 팔메의 특징이었다. 팔메는 연설에서 직접화법을 구사했다. 감정을 자극했다. 대중이 정치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좋은 정치인은 바 른 가치관에 온전한 도덕성을 지니되, 탁월한 설득력을 갖춘 협상가이자 조정자여야 한다. 팔메는 정치 활 동에 대중을 끌여들였다. 그는 미디어를 충분히 활용했다. 연설을 통해 여론을 형성하고 이를 압박의 도구 로 썼다. 그가 살아서 정치를 할 때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정치인은 아니었다. 팔메는 사방에서 끓어오르는 증오와 존경 사이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1986년 거리에서 총에 맞아 비극적으로 사망 한 이후 스웨덴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2012년 스웨덴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1위 가 넬슨 만델라(8.9%), 2위가 어머니(8.5%), 3위가 올로프 팔메(7.9%)가 차지했다. 팔메는 북유럽이 공유하 는 얀테의 규범, 라곰의 미덕 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정치인으로서 그는 늘 약자의 편에 서서 사 민주주민주의를 옹호했다. 거대한 자본주의 흐름에 맞서 세금을 올리고 노동자의 권리를 강하하며, 보편 적 복지의 층을 촘촘하게 다졌다. <팔메의 삶과 죽음> 가. 출생과 어린시절 팔메는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의 외스테르말름 지역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작은 할아버지는 금 융회사를 경영했고, 할아버지는 큰 보험회사를 성공적으로 경영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보험회사에서 나는 정치인이다 - 올로프 팔메(하수정) 227

228 부사장으로 열심히 일했다. 팔메는 네 살에 글을 줄줄 읽는 등 신동 취급을 받았다. 핀란드 출신의 할머니 부터, 독일어를 구사하는 엄마, 프랑스인 가정부, 인도계 영국인 삼촌까지 집안은 국제적인 분위기였다. 자연스럽게 팔메는 자신의 노력을 더해 5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게 된다. 팔메가 7세이던 해에 사망했 다.11세에는 식투나의 기숙학교에 입학하여 다녔다. 나. 대학시절과 스웨덴 총학생연합 의장 17세이던 1944년 스웨덴 일간지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 의 스포츠 담당 편집자로 여름 인턴을 시작했 고 그해 스톡홀름대학교에 입학했다. 스포츠에서 영역을 점차 음악, 공연 예술에서 고민 상담까지 넓혀갔 다. 그의 직설적이고 날카로운 표현은 이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특히 팔메의 공연 평론은 신랄 하기로 유명했다. 1950년까지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 의 자유기고가로 일했다. 1945년에는 군복무를 마 쳤다. 팔메는 스톡홀름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신청하여 미국-스칸디이비아 교류재단 의 지원으로 장학금을 받고 미국 오하이오의 케니언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1년만에 캐 니언대학교 과정을 마친 후 미국을 횡단하는 여행을 하면서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눈뜨게 되었다. 그의 눈에 비친 미국의 모습은 누구나 자유로울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가난한 자와 부자, 유색인과 백 인 사이의 극심한 차별과 불평등, 그 안에 자유는 없었다. 1948년 올로프 팔메가 21살에 케니언을 졸업하 면서 쓴 논문은,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프레드리히 폰 하이에크(Friedrich von Hayek)의 노예의 길 (Road to Surfdom)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었다.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 에서 사회주의와 계획경제는 결 국 독재를 불러 민주주의의 종말을 야기한다고 썼다. 팔메는 그의 논문에서 하이에크의 자유에 대한 개념 을 비판한다. 팔메의 관점에서 자유란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재량을 갖는 것이 다. 1948년 스웨덴으로 돌아온 팔메는 스톨홀름 대학교 법학부에 복학했으며 스웨덴총학생연합의 국제부장으 로 활동했다. 국제학생연합은 1946년 체코의 프라하에서 설립되었으나 집행위원회가 동유럽 중심으로 구 성되어 있어 조직의 성향은 공산당과 가까웠다. 그래서 비정치적 성향을 원하는 21개 조직 대표들이 국제 학생회의를 조직했다. 팔메는 유럽을 두루 다니며 회의에 참석했으며, 국제학생회의가 나아갈 방향과 학 생 복지 개선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뛰어난 언어능력과 조정 능력으로 그는 언제나 회담의 중심에 있었 다. 전 세계 학생들 간의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인도네시아, 일본에 이르는 아시아 국가를 다녀오기도 했다. 다. 리스베트 벡-프리스와의 결혼 나는 정치인이다 - 올로프 팔메(하수정) 228

229 스웨덴 총학생연합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팔메와 리스베트는 겨울 산행을 통해 가까워졌다. 리스베트는 심리학을 공부하는 중이었는데 특히 아동심리에 관심이 많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기술자로, 팔메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리스베트는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어하는 젊고 당 찬 여성이었고 사민당 지지자였다. 어떤 면에서는 팔메보다 급진적이었다. 1956년 팔메와 리스베트는 약혼 한 지 4년 만에 결혼했다. 리스베트는 더 일찍 결혼하고 싶어 했지만, 팔메가 일을 시작한 이후 너무 바빠 결혼을 미뤘던 것이다. 두 사람은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스웨덴 교회에서 가까운 가족만 초대해 결혼식 을 올렸다. 라. 타게 에를란데르의 보좌관 팔메가 정치에 입문해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 에른란데르의 비서직을 수행하면서부터이다. 1953년 팔메는 7년차 총리 에를란데르의 보좌관으로 일을 시작했다. 팔메는 일에 몰입했다. 국방부에서 일을 시작 한 첫해, 그는 거의 매일 밤늦게까지 일했다. 사무실에 있는 소파에서 잠들기도 예사였다. 거의 일중독자 수준이었다. 당시 리스베트와 약혼한 사이였지만 일이 너무 바빠 결혼도 미뤘다. 약혼한 지 4년만에 결혼 했는데, 팔메는 신혼여행 기간에도 그해 가을에 있을 의회 선거를 준비했다. 매년 휴가 가기 가 리스베 트의 결혼 조건이었을 정도다. 팔메는 에를란데르의 연설문을 쓰고, 메모하고, 공약을 준비하고, 토론회 자료를 점검하는 등 여러 분야를 두루 관장했다. 팔메가 좀 더 폭넓게 정치계에 이름을 날리게 된 계기는 1956년 에를란데를의 모스크바 방문 때였다. 마침 에를란데르는 독감에 걸려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이 때 스 웨덴을 대표해 흐르시 쵸프를 만나 협의를 진행한 것은 29세의 올로프 팔메였다. 그 후 팔메에게는 에를 란데르의 그림자, 막후 총리 등의 별명이 따라붙었다. 에를란데르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그에게 아직 부족했던 사회민주주의자로서의 가치관이 자연스레 자리 잡아 갔다. 에를란데르는 팔메를 아들처럼 아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팔메를 그의 곁에 잡아 둘 욕심은 없었다. 연금제도 개혁을 둘러싼 국민투표 에서 승리하고 연이은 총선을 사민당의 대승으로 이끈 에를란데르는 그 과정을 함께 한 팔메가 보좌관으 로 남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 1957년 팔메가 보좌관으로 일한 지 5년째 접어들었을 때, 에를란데 르는 스웨덴 남쪽에 위치한 중소 도시 옌셰핑에 의회 의원 자리가 하나 공석으로 있다는 것을 듣고, 팔메 를 그 자리에 추천한다. 이후에도 팔메의 정치적 후견인으로 그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왔다. [올로프 팔메 연표] 나는 정치인이다 - 올로프 팔메(하수정) 229

230 1927 탄생 1947~48 미국 오하이오 캐니언 대학교 인문학사(정치학, 경제학 전공) 1949 사민당 가입 1951 스톡홀름 대학교 법학사 1952~53 스웨덴 총학생연합 의장 1953 세계 학생회의 참가(아시아 6개국 방문) 1953~63 사민당 출신 총리인 타게 에를란데르의 보좌관 1955~61 스웨덴 사민당 청년 리그 지도자 및 위원 1956 리스베트 벡-프리스와 결혼 1958~86 의회 의원 1963~65 무임소 장관 1965~67 교통및 통신부 장관 1967~69 교육문화부(교회부) 장관 1969~86 스웨덴 사민당 의장 1969~76, 1982~86 스웨덴 총리 1976 사회주의 인터내셔날 부회장 1986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 마. 타게 에를란데르 타게 에를란데르는 귀족 집안과는 거리가 먼 중산층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교사였으며, 집안 분위기는 청교도적이지만 자유로웠다. 그는 룬드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공부한 우수한 학생이었고, 가족과 그가 속한 공동체에서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그는 경제공황이 한창이던 1932년에 31세로 의회 의원이 되었고 정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건강부 장관이 되었다. 20세기 초반 스웨덴은 유럽에서 가장 가 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자연환경은 척박했고 출생률은 낮아 인구가 줄어만 갔다. 이 때부터 국가 차원에 서 인구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훗날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군나르 뮈르달(Gunnar Myrdal)에게 이를 분석하기 위한 연구가 맡겨졌다. 뮈르달은 부인인 말바 뮈르달 (Alva Myrdal)과 함께 인구 감소의 원인과 대책을 분석한 인구문제의 위기 (1934)를 펴냈다. 연구의정부 쪽 책임자가 에를란데르였다. 인구문제에 관한 뮈르달의 연구는 스웨덴 복지 제도와 사회정책의 초기 방향을 설정하는 데 길잡이가 되었다. 나는 정치인이다 - 올로프 팔메(하수정) 230

231 (타게 에를란데르와 올로프 팔메가 함께 자료를 살펴보는 모습. 1969년 팔메는 에를란데르의 뒤를 이어 스웨덴 총리이자 사민당 대표가 되었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스웨덴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1901년에 태어난 에를란데르는 전 쟁 이전 시기를 살았고, 경제공황도 경험했다. 스웨덴이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 터다. 에를란데르가 총리로 재임했던 시기와 맞물린다. 스웨덴은 중립을 선언한 덕에 전쟁의 화염에서 벗 어날 수 있었으며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또한 전쟁 중에 독일에 철광석 등을 공급해 자본을 축적했 다. 에를란데르는 이를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일궈 냈다. 한 때 과학자를 꿈꾸었던 타개 에를란데르는 과학 기술의 발전이 미래의 원동력이라고 믿었고 기술 개발을 위해 정부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에를란데르 는 정부와 기업 간의 합의를 통해 스웨덴의 경제를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유럽에서 가장 높은 소득을 창출 하는 나라 중 하나라 이끌었다. 경제 번영과 사회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에를란데르 정부 덕에, 전후 전 유럽의 정권이 보수당으로 넘어갈 때에도 스웨덴의 사민당은 제1당의 자리를 지켰다. 에를란데르 는 1946~1969년까지 총리를 지냈다. 1936년9월에 당선된 페르 알빈 한손은 10년, 타게 에를란데르는 23년, 올로프 팔메는 암살당하기 전까지 10 년가량 총리직에 있었다. 한손, 에를란데르, 팔메에 이르기까지 세 사람의 총리로 44년간 사민당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스웨덴의 행운이었다. 사민당은 총리를 자주 바꾸지 않고 오랫동안 집권한 덕에, 정권을 둘러싼 소모적 분쟁을 줄이고 장기적 관점으로 정책을 결정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세계대전 후 번영을 밑 거름 삼아 복지 제도의 근간을 마련하고 스웨덴 사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었다. 한손은 국민의 집 강 령을 내세워 복지 제도의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냈다. 에를란데르는 강한 사회 를 외치며 재임 기간 동 나는 정치인이다 - 올로프 팔메(하수정) 231

232 안 국민건강보험과 연금제도를 개혁함으로써 스웨덴 복지 제도의 틀을 잡았으며, 공공 분야를 강화해 전 쟁 후 스웨덴이 일군 풍요를 사회로 돌려보냈다. 팔메는 거기에 자유의 개념을 더해 스웨덴 복지 제도의 근대화를 일구어 냈다. 에를란데르는 옷차림이나 생활양식도 무척 검소했다. 그는 총리가 된 이후에도 스톡홀름 서쪽 외곽 지역 에 위치한 방 3개짜리 아파트를 세내어 살았다. 당시에는 총리용 관저가 따로 없었다. 23년간 총리 생활을 마치고 나서는 임대주택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러자 오랜 기간 나라를 위해 일한 원로 정치가를 위해 사민당 동료 정치인들이 갹출해 사택을 지어 주었다. 에를란데르가 유독 검소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직 전 총리였던 한손은 임기 중에도 늘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고, 심지어 전차에서 내리다 심장마비로 사망했 다. 팔메 역시 총리로 재직하는 동안 남들처럼 전철을 타고 다녔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보고 놀라 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여행객들이 스톡홀름 시내를 걷다가 지나가는 삶에게 길을 물었는데 알고 보니 그 게 스웨덴 총리 팔메더라는 식의 무용담이 심심치 않게 돌아다녔다. 의회 의원들도 매우 소탈한데 특별히 그렇다기보다는, 대부분의 스웨덴 사람들이 사치와는 거리가 멀다. 의회 의원 역시 보통 사람 중 하나일 뿐, 높은 지위에 올라도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특별 대우 없이 검소하게 사는 것은 스웨덴의 정치인 을 포함한 전반적인 문화다. 바. 팔메와 복지의 근대화 팔메가 집권한 시기는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시기와는 뚜렷이 구분된다. 1950년대까지가 사회 안전을 최 우선으로 하는 계급 정치의 시대였고, 1960년대는 정부, 자본가, 노동자의 합의주의를 바탕으로 대연정을 펼친 시기였다. 팔메가 열었던 1970년대는 근대성과 평등의 새 시대로 한층 강한 리더쉽을 요구했다. 팔메 의 노선은 세계 정치사에 큰 시사점을 준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보수 정권이 득세하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팔메는 스웨덴 역사상 가장 강한 정부를 이끌었다. 팔메가 총리가 된 1969년부터 총리직에서 내려온 1976년 사이 스웨덴의 지니계수는 눈에 띄게 낮아졌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보육 시설, 교육 기회는 확대되었다. 민주주의 지수도 높아졌다. 팔메의 정치는 강한 정부가 결국 삶에 있어 개인의 자유와 대외적으로는 국가의 자유를 강화한다는 것을 보여 주 었다. 의회 의원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한 인터뷰에서 그는 사회적 번영이란 가난을 예방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일정선 이상의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의 스웨덴 복지 제도가 미처 챙기지 못했던 부분까지 포함해 사회안전망을 한층 더 촘촘하게 만들었으며, 변화하는 가치관과 생 나는 정치인이다 - 올로프 팔메(하수정) 232

233 활양식에 따라 제도를 근대화했다. 물론 그 동력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강한 정부였 다. 전쟁이 끝난 이후 스웨덴을 비롯한 서부 유럽과 미국은 유례없는 경제적 번영을 경험했다. 그에 따라 사람 들의 기대도 커졌다. 복지 개념도 변하고 있었다. 약자를 구제하고, 사람들이 실업이나 질병, 가난에 닥쳤 을 때에 이들을 지원해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게 하는 것은 이제 구시대적 복지가 되었다. 예방적 복지의 차원을 넘어, 넘치는 풍요를 거름 삼아 높아진 삶의 질에 대한 기대에 어떻게 부응할 것인지가 새로운 질 문으로 떠올랐다. 성장의 열매를 나누는 차원이 아니라, 복지를 성장의 동력으로 인식해 기회의 평등을 보 장하고,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생산적 복지의 시대가 도래했다. 197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총리가 된 팔메는 복지에 근대성의 가치를 더했다. 사민당의 공약에도 변화가 생겼다. 과거에는 완전고용과 사회 안전을 전면에 내걸었지만, 1960년대에는 삶의 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전까지 복지 모델이 남성 이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것을 전제로, 가족을 기본 수급자로 정해 디자인한 것이라면, 팔메는 이를 성별에 상관없이 각 개인이 제도의 수혜자가 되도록 발전시켰다. 사. 팔메의 죽음 팔메는 1986년 2월28일 부인, 그리고 아들 내외와 함께 영화 관람을 한 후 집에 돌아가다가 어떤 남자의 총 격으로 사망했다. 오늘날까지 범인을 잡지 못한 것은 물론 죽음을 둘러싸고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곳에서 스웨덴의 총리 올로프 팔메가 암살당했다. 1986년 2월 28일. 팔메가 쓰러진 스베아베 겐 거리에는 그 사실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스웨덴의 복지> 나는 정치인이다 - 올로프 팔메(하수정) 233

234 스웨덴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며서부터 청소년기까지 아이에 대한 양육수당이 부모에게 지급된다. 학비도 없다. 18세 이후 대학에 진학하면 학생 수당이 나오고 무이자나 다름없는 장기 대출을 받을 수 있어 부모 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다. 실업수당도 있다. 전국민의료복지법에 따라 2012년도 기준 개인당 연간 의료비는 병원비가 9백 크로나(약15만원), 약값이 1천8백 크로나(약 30만원)가 상한선이다. 그 이상부 터는 나라에서 부담한다. 여성인구의 80퍼센트가 경제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실업률도 여성이 더 낮다. 경 제적 이유로 결혼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노인이나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퇴직 후에는 이전의 급여에 따라 일정액을 매달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 지자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약자를 보살핀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대신해 장을 봐주는 서비스까지 있다. 정서적 건강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데 지자체가 운영하 는 성인교육 시설에 가면 노인들이 매일같이 모여 여가 활동을 하면서 적적함을 달랜다. 전통적으로 가족 과 지역공동체가 담당하던 역할을 사회가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등록금 제도의 개혁> 교육은 삶의 기회를 열어 주는 가장 확실한 길이자, 사회적 계층을 넘나들 수 있는 마법의 열쇠 같은 것이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수가 줄어든다. 교육은 개인의 삶에 있어 선택의 자유를 최대치로 올려 주기 위한 핵심 요소다. 고등 교육제도 개혁은 시민의 평등과 사회적 번영을 위한 필수 요건이었다. 사회적 요청을 무시한 채 대학을 부르조아 계층만의 상아탑으로 남겨 둘 수는 없었 다. 중산층 이상의 소수만 대학을 다닐 수 있다면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계층은 계속 노동자로 남을 것이다. 그는 무상교육에 학생 수당 제도까지 도입될 경우, 시민의 세금으로 교육 서비스를 부담하는 만큼 대학은 공부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 열심히 학업을 연마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수과목이나 시험처럼 어떤 형태로든 성취도를 측정하는 틀 없이 마냥 자유롭게 둘 수는 없었다. 아무나 대학에 입학해 쉬운 과목만 골라 들으며 오랫동안 학교에 머무리게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교육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 려 있지만, 과정을 마치기 위해서는 필수과목과 시험, 통과 제한을 두어 성취도를 관리할 수 있게끔 학제 를 디자인하기로 했다. 팔메는 학생수당과 장기대출을 혼합한 수정안을 밀어붙였다. 수정안은 매달 일정액 (2,492크로나, 약41만원)의 학생 수당을 주고, 그보다 더 필요한 경우 한 달에 그 두 배에 해당하는 금액 (4,764크로나, 약78만원)은 대출을 받으면 된다. 대출받은 금액은 졸업 후 최장 25년까지 (60세가 되기 전까 지, 연소득의 5%안에서) 차근차근 갚아가면 된다. (2011년 기준 대출 이자는 연 1.9%) <팔메의 외교정책> 나는 정치인이다 - 올로프 팔메(하수정) 234

235 팔메는 역대 스웨덴의 어떤 총리보다도 국제 문제에 적극 개입했다. 팔메는 정치인은 모든 일에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며, 복합적인 문제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라고 했다. 1968년, 노동 절 기념 연설에서 스웨덴의 중립 노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스웨덴의 중립 정책은 자결권을 말합니다. 전쟁이 있을 때 중립을 지키며, 평화의 시기에 어느 쪽에도 치 우치지 않는 것입니다. 군사동맹을 맺지 않으며 어느 열강 구도에도 가담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세의 압력에 치우치지 않으며, 확고하고도 일관성 있게 우리의 노선을 결정하고자 합니다. 중립은 고립 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나라인 우리의 영향력은 미약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류의 평화와 중 재, 민주주의, 사회정의를 위한 노력까지 작은 것은 아닙니다. 중립은 침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스웨덴은 베트남, 칠레, 쿠바, 포르투갈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고 중동 분쟁에도 중재자로 활약했다. 대 부분의 국가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테러 집단으로 대할 때, 팔메는 의장인 아라파트를 만나기도 했다. 이는 PLO를 공식 조직으로 대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스웨덴은 아프리카 해방운동을 후원한 첫 번째 서방국가이기도 하다. 나미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모잠비크, 앙골라, 잠비아, 짐바브웨 등의 민족해방전 선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 남아공의 인종 분리 정책에 대한 스웨덴의 대응은 적극적 중립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 준다. 1970년 10월 유엔25주년 기념 총회의 연설을 통해 그는 미소 열강을 날카롭게 비판해 동유럽과 아시아, 아 프리카 등 약소국의 지지를 받았다. 팔메는 냉전을 비판하는 데서 한 걸은 더 나아가 열강의 눈치를 보느 라 할 말을 못하는 중소국을 모아 제3의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나는 정치인이다 - 올로프 팔메(하수정) 235

236 1968년 당시 교육부 장관이던 팔메가 반베트남전 시위대와 함께 행진하는 모 습. 그의 오른쪽에 모스크바 주재 북베트남 대사인 응우옌토쩐이 있다. 이날 팔메의 행진 및 연설 이후 미국과 스웨덴의 외교 관계는 급격하게 얼어붙 었다. 1968년에는 베트남 반전집회에 참여하여 행진하고 연설을 했다. 스웨덴은 중립국이지만 역사적으로 미국 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왔는데 스웨덴의 집권당 출신 교육부 장관, 그것도 차기 총리로 거론되는 인물이 베트남전 반대 시위에 참여한 것이다. 이는 미국의 신경을 자극했고 스톡홀롬 주재 미국 대사를 소환하였 다. 팔메가 암살당하기 일주일 전 마지막 연설도 아파르트헤이트에 관한 것이었다. 스웨덴 민중의 모임에 참 석한 그는 남아공 정부의 인종 분리 정책은 개혁이 대상이 아닌 제거의 대상 이라며 비판의 강도를 높 였다. 만약 세계가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하기로 결심하면, 아파르트헤이트는 사라질 것이다...<중략>... 아파 르트헤이트는 인류를 좀먹는 제도다. 우리는 남아공 흑인 민중을 지지한다고 선언함으로 아파르트헤이트 나는 정치인이다 - 올로프 팔메(하수정) 236

237 체제를 고립시켜야 한다. 우리는 이 역겨운 제도를 뿌리 뽑아야 할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아파르트헤이트 는 개혁의 대상이 아닌 제거의 대상이다. (1986/2/21) 모든 사람은 정치인이다 그는 모든 사람이 정치인이라고 했다. 누구든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움직이면 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정치를 정당 사이의 어젠다 싸움이 아닌 일상 활동으로 만들었다. 정치가 일상의 담 론이 되고, 적극적으로 발언하며, 투표로 심판한다. 그가 대중에게 정치의 기쁨을 알게 해 모든 사람을 정 치인으로 만들었다는 점이야말로 팔메가 스웨덴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이라 할 만하다. (끝) 올로프 팔메(OLOF PALME), 하수정 지음, 폴리테이아, 2012 나는 정치인이다 - 올로프 팔메(하수정) 237

238 그래도 정치는 덕으로 하는 것이다 - 논어 :43 그래도 정치는 덕으로 하는 것이다 - 논어 - 동서양의 많은 정치철학이 있다. 저마다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이며,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지 나름 대로 이 론이 있다. 그런데 오래된 춘추전국시대의 공자라는 사상가의 생각과 말을 담은 논어가 오늘날의 정치에 도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젊었을 때는 무슨 고리타분한 공자님 말씀 으로 생각되던 것이 이제는 마 음에 와 닿는 것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까. 원래 사상이란 것이 인간이 만들어 낸 관념에 불과하고 부분 적인 진리에 불과한데 젊었을 때는 청춘의 특권인 열정 때문에 쉽게 특정 이념에 몰입하기 쉽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한번 논어가 말하는 정치의 의미를 음미해보기 위해 정치 관련 문장을 모아 본다. 1.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는 덕으로 하는 것이다( 爲 政 以 德 ) 정치란 바르게 하는 것이다. 그래도 정치는 덕으로 하는 것이다 - 논어 - 238

239 子 曰 爲 政 以 德, 譬 如 北 辰, 居 其 所 而 衆 星 共 之.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북극성은 제자리에 있고 모든 별들이 그를 받들며 따르는 것과 같다. (제2편 위정)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에 대하여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정치란 바르게 한다[ 正 ]는 것입니다. 선생 께서 바른 도리로써 이끌어 주신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은 일을 하겠습니까? (제12편 안연) 2.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하는가?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써 다스려야 한다.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형벌을 면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올바른 인재를 등용하여 그릇된 사람 위에 두면 그릇된 사람을 바르게 만들 수 있다. 子 曰 道 之 以 政 齊 之 以 刑, 民 免 而 無 恥,. 道 之 以 德, 齊 之 以 禮, 有 恥 且 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들을 정치로 인도하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형벌을 면하고도 부끄러워 함이 없다. 그러나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은 부끄러워할 줄도 알고 또한 잘못을 바로 잡게 된다. (제2편 위정) 季 康 子 問 政 於 孔 子 曰 如 殺 無 道, 以 就 有 道, 何 如? 孔 子 對 曰 子 爲 政, 焉 用 殺? 子 欲 善, 而 民 善 矣. 君 子 之 德 風, 小 仁 之 德 草. 草 上 之 風, 必 偃.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서 물었다. 만일 무도한 자를 죽여서 올바른 도리로 나아가게 한다면 어 떻겠습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선생께서는 정치를 하는 데 어찌 죽이는 방법을 쓰시겠습니까? 선생 께서 선해지고자 하면 백성들도 선해지는 것입니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입니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기 마련입니다. 3.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은 어떠해야 하는가?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 답고 아들은 아들 다워야 한다.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서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 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합니다. 경공이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진실로 만일 임 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 아들이 아들답지 못하다면, 비록 곡식이 있은들 제가 그것을 얻어먹을 수 있겠습니까? 4.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신뢰이다. 신뢰가 없으면 정부가 존립할 수 없다. 그래도 정치는 덕으로 하는 것이다 - 논어 - 239

240 子 貢 問 政, 子 曰 足 食, 足 兵, 民 信 之 矣. 子 貢 曰 必 不 得 已 而 去, 於 斯 三 者, 何 先? 曰 去 兵. 子 貢 曰 必 不 得 已 而 去, 於 斯 二 者, 何 先? 曰 去 食, 自 古 皆 有 死, 民 無 信 不 立. 자공이 정치에 대해서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식량을 풍족하게 하는 것, 군비를 넉넉히 하는 것, 백성들이 믿도록 하는 것이다. 자공이 말하였다. 어쩔 수 없어서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세 가지 가 운데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군대를 버린다 자공이 여쭈었다. 어쩔 수 없어서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식량을 버린다. 예로부터 모두에게 죽음은 있는 것이 지만, 백성들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는 존립하지 못한다. 5. 국가경영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인재등용이다. 바른 사람을 등용하여 위에 두면 그릇된 사람을 바르게 만들 수 있다. 번지가 인( 仁 )에 대하여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앎[ 知 ]에 대하여 여쭙 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다 번지가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바른 사람을 등용하여 그릇된 사람의 위에 두면, 그릇된 사람을 바르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다. (제12편 안연) 仲 弓 爲 季 氏 宰, 問 政, 子 曰 先 有 司, 赦 小 過, 擧 賢 才. 曰 焉 知 賢 才 而 擧 之? 曰 擧 爾 所 知 爾 所 不 知, 人 其 舍 諸? 중궁이 계씨의 가재( 家 宰 )가 되어 정치에 대해서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먼저 실무자들에게 일을 분담시키고, 작은 잘못은 용서해 주며,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거라. 어떻게 현명한 인재를 등용합니 까? 네가 아는 사람을 등용하거라. 네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야, 다른 사람들이 그를 내버려두겠느 냐? (제13편 자로) 6. 어떤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하는가? 정치인의 자질로서 다섯 가지 미덕과 물리쳐야 할 네 가지 악덕 子 張 問 於 孔 子 曰 何 如 斯 可 以 從 政 矣? 子 曰 尊 五 美, 屛 四 惡, 斯 可 以 從 政 矣. 子 張 曰 何 謂 五 美? 子 曰 君 子 惠 而 不 費, 勞 而 不 怨, 欲 而 不 貪, 泰 而 不 驕, 威 而 不 猛. 子 張 曰 何 謂 四 惡? 子 曰 不 敎 而 殺 謂 之 虐 不 戒 視 成 謂 之 暴 慢 令 致 期 謂 之 賊 猶 之 與 人 也, 出 納 之 吝, 謂 之 有 司 자장이 공자께 여쭈었다. 어떻게 하면 정치에 종사할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미덕을 존중하고, 네 가지 악덕을 물리친다면, 정치에 종사할 수 있다. 자장이 말하였다. 무엇을 다섯 가지 미덕이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은혜를 베풀되 낭비하지 않고, 수고롭게 일을 시 그래도 정치는 덕으로 하는 것이다 - 논어 - 240

241 키면서도 원망을 사지 않으며, 뜻을 이루고자 하면서도 탐욕은 부리지 않고, 넉넉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으 며,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은 것이다. 자장이 말하였다. 무엇을 네 가지 악덕이라고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르쳐 주지도 않고서 잘못했다고 죽이는 것을 학대한다고 하고, 미리 주의를 주지도 않고서 결과만 보고 판단하는 것을 포악하 다고 하며, 명령을 내리는 것은 태만히 하면서 기일만 재촉하는 것을 해친다고 하고, 사람들에게 고르게 나누어 주어야 함에도 출납을 인색하게 하는 것을 옹졸한 벼슬아치라고 한다. (제20편 요왈) 7. 위정자는 어떤 태도로 일해야 하는가? 빨리 성과를 보려 하지 말고, 작은 이익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먼저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고 게을리함 이 없이 열심히 일해야 한다. 子 夏 父 宰, 問 政, 子 曰 無 慾 速, 無 見 小 利. 欲 速 則 不 達, 見 小 利 則 大 事 不 成. 자하가 거보의 읍재( 邑 宰 )가 되어 정치에 대해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빨리 성과를 보려고 하지 말고, 작은 이익을 추구하지 말아라. 빨리 성과를 보려하면 제대로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추구하면 큰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子 路 問 政, 子 曰 先 之 勞 之. 請 益, 曰 無 倦 자로가 정치에 대하여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먼저 앞장서서 솔선수범하고 몸소 열심히 일하거 라 좀더 설명해 주기를 청하자 말씀하셨다. 게을리 함이 없어야 한다. <논어>, 공자 지음, 김형찬 옮김, 2005, 홍익출판사 그래도 정치는 덕으로 하는 것이다 - 논어 - 241

242 중국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정치의 황금시대 - 정관의 치 :05 중국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정치의 황금시대 - 당태종 이세민의 貞 觀 의 治 - 貞 觀 의 治 란? 貞 觀 의 治 는 627년부터 649년까지 23년동안의 당나라 태종의 시대를 말한다. 중국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정치의 황금시대였다. 정관시대의 사회는 아주 평화로웠다. 거리에 물건이 떨어졌어도 주워가는 사람이 없 었고, 밤에 문을 잠그지 않아도 되었다. 이때 당나라의 국제적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법제 관념은 더욱 명확해졌으며 당나라 3백년 역사를 위한 제도를 다졌다. 왜 이 모든 업적이 정관시대에 이루어졌는가? 피비린내 나는 현무문의 변 중국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정치의 황금시대 - 정관의 치 242

243 당태종 이세민은 아버지 이연(당 고조)을 도와 당나라를 세우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나 세자(이건성)와의 후 계다툼을 벌이게 되고 결국 현무문에서 형과 동생, 그리고 그 아들들을 죽이고 아버지를 겁박하여 황제의 자리에 오른는데 이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을 현무문의 변이라 부른다. 화합정치로 민심을 얻다 국가 통치권을 손에 넣은 첫날, 이세민은 황제의 이름으로 포고령을 내렸다 이건성(태자)에 가담했던 무리들의 죄를 더 이상 묻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민심을 얻기 위한 정 책들을 추진했다. 불교와 도교의 개혁 중지를 선언하고, 관리들에게 국가 정책에 관한 저마다의 의견을 상 소의 형식으로 황제에게 올리도록 하고, 후궁에서 기르던 매와 사냥개를 풀어주도록 하고, 공물헌납제도 를 폐지시키고, 3천명의 궁녀들을 자유롭게 풀어 주는 정책을 추진했다. 또한 태자쪽의 대표적인 문신 위 징과 장수 설만철을 포용했다. 이들은 태종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세민은 관대할 뿐 아니라 매우 민첩하고 과감했다. 적절한 수단과 방법이 갖춰지면 뒤돌아보지 않고 과감하게 행동을 취했다. 덕분 에 천하의 사람들은 더욱 더 그를 신뢰했다. 王 道 를 택할 것인가, 覇 道 를 택할 것인가? <위징과 봉덕이 논쟁> 태종이 즉위하고 두달 정도 지났을 때, 태종과 위징, 그리고 봉덕이 세 사람이 혼란한 세상을 수습하기 위 한 논쟁을 벌였다. 태종 :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졌기에 통치가 금세 효과를 보지 못할까 두렵구나. <중략> 위징 : 성인이 천하를 다스리면 아랫사람과 윗사람 모두 한마음이 되어 나라를 금세 안정 시킬 수 있습니 다. 그렇다면 삼 년도 늦은 것입니다. 공자 역시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지요. 봉덕이: 상고시대 이후부터 사람의 마음은 계속 악해졌습니다. 진( 秦 )대에 법률을 이용하고 한 대에 왕도 와 패도를 함께 쓴 것은 모두 천하를 바르게 다스리려는 노력이었습니 다. 다음 그것을 이룰지 못했을 뿐 이지요. 위징은 책을 읽고 탁상공론이나 펼치는 서생에 불과합니다. 그런 그의 말을 따르신다면 국가는 자 칫 패망의 길로 빠질 것 입니다. 위징 : 각 시대에는 저마다의 통치법이 있습니다. 때문에 큰 혼란이 있고 나서는 신속하게 선정을 베풀었 던 것입니다. 황제와 전욱, 상탕, 주 성왕이 바로 그 예입니다. 만약 상고시대 이후로 사람의 마음이 악해 지기만 했다면 지금 사람들은 모두 귀신이나 도깨비가 되어버렸다는 말입니까? 왕도란 회유를 통해 인정( 仁 政 )을 베푸는 것이며, 패도는 강력한 법률로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가리킨다. 태종은 위징의 의견을 받아들어 왕도정치를 선택했다. 바로 덕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노선을 걷게 된 것이다. 사람을 근본으로 하라 중국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정치의 황금시대 - 정관의 치 243

244 이인이본( 以 人 爲 本 )은 국가 통치에서의 근본은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세민의 이름에 민 이라는 글 자기 있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서 이민위본 대신에 이인위본이란 말을 쓰게 되었다. 이민위본은 중국 역사상 가장 선진적인 민본사상이라 할 수 있다. 정관시대에는 이덕화민과 이민위본을 고집스럽게 관철했 다. 이는 정관의 정치노선이자 치국의 기본 원칙이었던 것이다. 민본사상을 주장한 가장 대표적인 학자는 바로 맹자다. 맹자는 나라에서 가장 귀한 것은 백성이요, 토지는 그 다음이며, 군왕은 가장 중하지 않 다. 민심을 얻어야만 나라를 얻을 수 있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세민은 이런 맹자의 사상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군주는 국가를 근간으로 하고 국가는 백성을 기본으로 한다. 백성을 핍박해 군주를 받들게 하고 그들의 살을 잘라 자신의 배를 채우면, 배는 부르겠지만 몸은 죽어지고, 군주는 부자가 되지만 나라는 망하고 만 다. 예부터 군주의 재난은 바깥이 아닌 그 자신으로부터 야기된다고 하였다. 원하는 것이 많으면 막대한 재물을 써야 하고 재물을 얻기 위해서는 무거운 세금을 거둘 수 밖에 없다. 세금이 무거워지면 백성은 근 심하며, 백성이 근심하면 나라는 위기에 처한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군주 또한 존재할 수 없다. 짐은 항상 이를 마음에 새기고 있기에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다. 정관4년, 방현령은 기쁜 마음을 애써 누르며 국가의 갑장( 甲 仗 갑옷과 무기)이 수나라 때의 규모로 갖추어 졌음을 보고했다. 마땅히 기뻐할 줄 알았던 이세민은 웬일인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수나라가 멸망한 것은 갑장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네. 오히려 매우 풍족했지. 하지만 수나라 백성들은 어 땠는가? 백성들이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지자 결국 사회혼란이 야기되지 않았는가? 그래서 짐은 백성들 의 세금을 가볍게 해 그들의 배를 불리고자하는 것이네. 백성들이 편해지면 나라 역시 저절로 안정될 것이 니 말일세 법에 의한 처벌은 임시 방편이지만 백성들을 보살피는 정책은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었다. 정치이념으로 이인위본 은 당시에는 매우 선진적인 이론이었다. 이 이념은 정부가 국가의 기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국가 기초 질서 수립과 장기적인 이익 추구를 무엇보다 중요시하고 있는 점을 설명해준다. 이러한 이념을 통해 사회적 역량을 한데 모을 수 있으며 이들이 국가를 위해 일하 도록 만들 수도 있다. 이인위본. 거의 모든 시대에서 이 이념을 추구했지만 실천하기가 결코 쉽지 않 은 이상이었던 것이다. 비용절감, 작은 정부로 백성들을 편안케 하라( 開 源 節 流 ) 정관시대, 국가는 이제 막 전란에서 벗어나 국력은 턱없이 약했고 사회는 더없이 빈곤했다. 전쟁으로 인한 사망을 제외하더라도 인구의 유실 문제는 매우 심각했다. 정관시기, 가장 많을 때의 총 인구는 300만호 정 도였다. 수나라의 800만호에 비하면 반도 안 되는 수준인 것이다.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만 이러한 상황에 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때 이세민이 선택한 것이 개원절류[ 開 源 節 流 : 재원을 늘리고 지출을 줄인다는 중국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정치의 황금시대 - 정관의 치 244

245 뜻, 순자( 荀 子 ) 부국편에서 유래]다. 아래의 몇 가지 내용들이 이 정책을 대표한다. 가. 궁녀해방 3천명의 궁녀들을 해방시켰다. 이는 궁궐의 비용을 절약하고, 인구의 증가를 유도하는 한편, 인간의 본성 에도 충실할 것임을 밝혔다. 나. 종실혜택 줄이기 전국시대의 황제는 종실에게 적지 않은 혜택을 주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봉작이었다. 친왕의 아래는 군왕이고, 그 아래는 현공이었다. 당시 왕으로 책봉된 이가 많았는데 이들은 국고를 탕진하고 있었 다. 봉왕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그 방법이 바로 군왕을 줄이고, 분명한 공로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 두 현공으로 강등하는 것이다. 이로써 국가의 재정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다. 주현의 합병 정관원년 2월, 현과 주를 줄이고 합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통치와 백성의 부담 경감에 도움이 되는 정책인데 이세민은 후자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 주현 관리를 줄이면 그들에게 지급되는 봉록을 크게 줄 일 수 있다. 라. 조직의 간소화 정관 원년, 태종은 방현령에게 중앙의 문무 대신들의 숫자를 643명으로 줄일 것을 명령했다. 조직의 간소 화는 실행이 가장 힘든 정책이었다. 하지만 이세민의 강력한 주장으로 방현령, 두여회는 최선을 다해 완수 했다. 이 덕분에 두 사람은 방모두단( 房 謀 杜 斷 ) 이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이 되었다. 조직의 간소화나 주현의 합병정책으로 정부 운영비용을 줄였을 뿐만 아니라 당나라의 번영을 위한 밑거름을 다질 수 있었 다. 마. 전쟁줄이기 전쟁은 국력을 가장 많이 낭바하는 것으로 재산뿐 아니라 인명도 큰 손실을 입었다. 바. 국력증강 이세민은 통치자는 곡식 창고를 늘릴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투자해야 한다 라고 주장했다. 태종은 국가를 살찌우는 것보다 백성의 배를 불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백성이 부유해지 고 삶이 안정되면 국가 발전은 물론 세계 평화까지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태종은 자주 세금 감면 정책 을 발표했는데 이은 사회적 축적을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 정관2년, 태종은 전국적으로 의창제도를 실시 했다. 평소에 식량을 비축해두고 흉년이 들면 빈민 구휼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소통의 리더쉽-직언을 받아들이는 황제 태종은 황제의 중요한 결정(낙양궁 보수공사)이나 후궁 간택의 과정 등 민감한 문제에 이르기 까지 신하들 의 간언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였다. 중국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정치의 황금시대 - 정관의 치 245

246 태종은 왜 납언( 納 言 :직언을 받아들이는 것)을 중시했을까? 첫째, 태종은 피비린내 나는 현무문의 변을 통해 황제에 즉위했다. 이는 부담이 되었고 부담은 다시 동기 로 바뀐 것이다. 천하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지혜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납언은 신하들 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둘째, 이세민과 그의 신하들은 수 왕조를 거쳐왔는데, 수나라는 오랫동안 분열되었던 위진남북조시대 이 후의 통일 왕조였다. 그들은 모두 수나라의 멸망의 목격자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신하들의 간언을 받아들 이지 않았던 수 양제의 모습은 그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것이다. 셋째, 이세민은 무공으로 출세한 인물이다. 수많은 전쟁을 거치면서 탁월한 군사가 되었던 것이다. 전장에 서의 지휘권은 불가침의 영역이다. 하지만전략을 수립할 때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수렴해야 하는 법 이다. 어떤 방법으로 신하들의 간언을 독려했는가? 첫째, 태종은 종종 신하에게 자신의 의견을 담은 정책을 발표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4품 이상의 관리들은 반드시 이 명령에 따라야 했다. 둘째, 간관( 諫 官 )의 역할을 강화했다. 간관은 전문적으로 간언하는 관리였는데 간의대부, 좌우습유, 좌우 보권 등이 이에 해당되었다. 간의대부의 관직은 정5품으로 항상 황제의 곁은 지키며 찬성이나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위징이 바로 간의대부였다. 간관을 없애버린 수 양제와 그 비중을 더욱 늘린 태 종, 그들의 통치는 천양지차였다.간언 관련 제도의 수립은 납언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조치임에 틀림없 다. 셋째, 각 부문의 관리들이 자신의 직무를 다할 것을 강조했다. 이견이 있으면 언제든 알리게 했는데 특히 관리들 스스로 생각을 하게 했다. 무조건 위사람의 의견에 동조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태종은 무슨 일이든 신하들과 함께 토론했다. 정책 시행 여부 뿐만 아니라 국가 정책 수립 역시 신하들과 의 토론을 통해 진행했다.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만인의 천하다 태종은 이 말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는 늘 군신이 한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함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를 실천했을까? 각자 맡은 직무를 충실히하는 것 외에, 황제의 납간 역시 신하의 충성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방법 이었다. 황제의 납간 덕분에 정관시대의 신하들은 그 어느 왕조보다 서로의 지혜와 힘을 합칠 수 있었다. 이는 정확한 정책 수립에 큰 도움이 된다. 국가 통치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책 효율성 또한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좋은 의견을 채택하고 격려하면 다른 사람들도 자극을 받아 적극적으 로 자신의 의견을 내놓게 된다. 황제의 납간은 조정과 황제의 위신을 세워줄 뿐 아니라 국가에 대한 백성 의 믿음 또한 공고하게 해준다.공자는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국가가 바로 설수 없다고 했다. 民 無 信 卽 不 立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정관시대에서 손꼽히는 것은 바로 조화로운 군신관계다. 이렇게 밝고 건강한 군 신 관계는 바로 신하들의 간언을 너그럽게 받아들였던 태종에게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바 중국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정치의 황금시대 - 정관의 치 246

247 른 사고를 가진 신하들만이 간언할 수 있는 법이다. 덕분에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윗사람에게 아첨이나 하던 신하들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다. 시대의 명신 위징 ( 魏 徵 ) 정관의 치에서 주인공은 바로 황제인 이세민이다. 그리고 믿음직한 모습으로 주인공을 뒷받침하는 이는 바로 위징이다. 이들은 군신 관계의 모범으로 역사서에 기록되어 오랫동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구당서 위징전에서는 그를 용모는 보잘것없지만 담력과 지식이 남달라 거침없이 간언을 했다. 황제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지라도 정작 자신은 낯빛 하나 바뀌지 않았다. 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위징은 태자(이건 성) 측이었고 심지어 극단적인 방법으로 이세민을 제압하라는 의견을 냈던 사람이었다. 태자는 이를 받아 들이지 않았고 선공의 기회를 뺏앗기고 말았다. 현무문의 변 이후, 이세민은 과거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 위징을 중용했다. 위징의 성공 비결과 다음의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평민 출신이었던 그는 백성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둘째, 박학다식했던 그는 특히 춘추공양학에 정통했다. 그중에서도 이덕화민( 以 德 化 民, 덕으로 백성을 다스린다) 의 이론과 실천에 담다른 열정과 신념을 갖고 있었다. 셋째, 성격이 직선적이고남에게 굽히는 법이 없었다. 넷째, 남다른 배짱과 그것보다 더 뛰어난 지혜가 있었다. 또한 성심성의껏 간언했을 뿐 아니라 간언의 기 교도 잘 알았다. 위징은 간언의 요령을 잘 알았다. 먼저 황제를 치켜세운 후 비판하는 방법을 썼다. 자고로 이 일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폐하 뿐이십니다. 처럼 말이다. 이 방법은 황제가 잘못을 고치게 하는데 도움이 되며 불 필요한 오해를 막을 수도 있다. 위징은 생각을 정리하고, 증거를 내세우며, 황제를 설득하는 간언의 3박자 를 훌륭하게 수행해냈다. 그의 간언은 황제가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이를 고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결국 국가 발전에 큰 힘이 되었다. 황제가 자신을 칭찬할 때에도 위징은 이 모든 것이 황제 덕분이라는 겸 손의 말을 잊지 않았다. 언제나 황제가 있었기에 뜻을 굽히지 않고 옳은 말을 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그 가 이런 말을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물론 사실이기도 했거니와 다른 한편으로는 황제의 체면을 살려 주기 위해서였다. 절대 황제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런 방법으로 황제를 격려함으로써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알려준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간언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익을 위해 서 하는 충언임을 명확히 인식하면 의사 표현 노하우가 생기고 간언의 기술도 향상된다. 정관10년,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었던 월왕(월왕, 태종의 넷째 아들) 이태는 이를 이용해 대신들, 특히 위 징을 제압하려 했다. 그래서 그는 대신들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황제에게 고했다. 황제를 화를 냈다. 황제 의 서슬 퍼런 모습에 놀란 방현령 등은 연신 바닥에 코를 박으며 잘못을 빌었다. 하지만 위징은 얼굴빛 하 중국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정치의 황금시대 - 정관의 치 247

248 나 변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아무도 월왕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유가의 이론에 따르면 친왕과 대신들 은 지위가 동등합니다. 대신들은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이니 황제가 예로써 이들을 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 입니다., 설령 대신들이 잘못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친왕이 이들을 모욕하거나 벌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 게 생각하면 수나라의 예는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것이지요. 만약 지금이 도가통하지 않는 혼란의 시기라 면 친왕은 말할 것도 없고 모두가 제멋대로 행동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개명의 시대입니다. 어질고 현명한 군주께서 저희를 이끌고 계신데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위징의 말을 들은 황 제는 금세 노기를 거두며 말했다. 그대의 말이 조목조목 이치에 맞으니 따르지 않을 수가 없구나. 짐은 부자지간의 정을 앞세워 말했지만 그대는 나라의 법률을 이야기했다. 이제부터 종3품 이상의 대신들은 친 황을 만나도 예를 갖출 필요가 없다. 당태종 시기의 명신 - 위징 위징의 죽음 정관 17년, 위징의 병세가 깊어지자 황제는 태자를 대동하고 그를 찾았다. 위징의 병세가 더욱 위독해진 것을 안 황제는 그를 붙잡고 정신을 잃을 만큼 슬피 울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황제는 꿈 속에서 의 관을 단정히 갖춘 위징의 모습을 보았다. 꿈이 하도 이상해 잠에서 깬 황제에게 누군가가 위징의 죽음을 중국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정치의 황금시대 - 정관의 치 248

249 알려왔다. 군신간에 뭔가가 통했던가 보다. 위징의 죽음은 태종에게 있어 크나 큰 손실이었다. 이 때 태종 은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사람이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히 할 수 있고, 옛일을 거울삼으 면 흥망성쇠를 알 수 있으며, 다른사람을 거울삼으면 자신의 잘못을 알 수 있다. 짐은 이를 모두 가졌기에 항상 스스로를 단속할 수 있었지만 이제 위징이 세상을 떠났으니 거울 하나를 잃은 셈이구나! 정관19년, 위징이 죽은 지 2년이 지난 해, 요동 정벌에 실패한 이세민의 군대 행렬이 장안으로 돌아왔다. 비참한 상황 앞에서 이세민은 한탄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위징이 살아있었더라면 짐의 요동 정벌을 막았을텐데, 그랬다면 오늘같이 비참한 패배도 없었을 것을. 사실 진작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계획을 반대했다. 하지만 누구도 태종을 설득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이세민은 뼈저린 실패를 경험하고 나 서야 위징을 떠올렸다. 이러한 위징의 모습은 천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감동을 전해준다. 위징 그는 감히 간언했으며 능히 간언했고 훌륭히 간언했다. 이 말만큼 위징을 잘 나타내는 표현은 없을 것이다. 태평성대를 이루다. 당나라의 변화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사회 치안이 잘 갖춰졌으며, 둘째, 도덕 숫준이 높 아졌고, 셋째, 외부의 적은 없어지고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 넷째,사회와 국가에 상당한 수준의 재화가 축적되었으며, 마지막으로 기본적인 국가 제도가 모두 수립되었다. 정관4년에 달성한 이런 성과들은 정관 의 치에서 가장 대표적인 업적이다. 정관의 치, 멍센스( 孟 憲 實 ) 지음, 에버리치홀딩스, 중국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정치의 황금시대 - 정관의 치 249

250 세종대왕과 당태종의 리더쉽의 공통점 :45 세종대왕과 당태종 리더쉽의 공통점 세종대왕과 당태종의 리더쉽의 공통점 250

251 새로운 정부가 시작되었다. 새로 출범한 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선거 때 누구를 지지했는지 여부 를 떠나 모든 국민이 바라는 바다. 새로운 정부의 성공이 국가발전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러난 정 부의 평가를 현 시점에서 하기는 어려우나 국민과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은 거의 모든 평가에 서 일치한다. 그런데 신하들의 충언을 받아들이고 토론을 통해 합리적으로 국가를 경영했던 세종대왕과 당태종의 통치를 다룬 세종처럼 과 정관의 치 란 책이 나온 것이 MB정부가 출범한 2008년이라는 점에서 씁쓸하기만 하다. 결국 지도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군주시대에도 국가를 번영시킨 경우는 덕으로 정치를 하고, 백성 및 신하들과 소통하고 토론하여 합리적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인재를 등용하였다. 위력이나 엄한 법률로 다 스려야 한다는 한비자나 마키아벨리의 통치이론은 권력을 쟁취하고 신생정부를 운용할 때 부분적으로 타 당하나 수성( 守 成 )의 시대의 국가를 운영할 때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세종대왕과 당태종의 사례 에서 볼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정부가 시작하는 시점에서 우리나라와 중국의 가장 정치가 꽃피웠던 세종 대왕 시기와 당태종시기의 정치를 살펴봄으로써 역사를 통해 지혜를 얻었으면 한다. 세종대왕과 당태종의 리더쉽의 공통점 251

252 우리나라 역사의 임금 중에서 가장 훌륭한 분을 고르라면 단연 세종대왕을 꼽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정치 의 황금시대, 정관의 치를 이룬 당태종이 으뜸이다. 세종대왕과 당태종은 시대는 다르지만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아 덕으로 나라를 다스렸으며, 신하 및 백성들과 소통했으며, 인재를 등용하여 나라를 훌륭하 게 나라를 다스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세종처럼(박현모 저)과 정관의 치(멍센스 저)를 통해 세 종대왕과 당태종이 훌륭한 통치자가 될 수 있었던 점을 찾아보자. 1. 인본주의 통치철학 세종대왕 - 백성이 임금을 세워서 다스리게 했다 백성들이 하려고 하는 일을 혼란스럽지 않게 하려고 임금을 세워서 다스리게 했다. ( 民 生 有 欲 無 主 乃, 必 立 君 長 而 治 之 ) 그런데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찌 다스리는 체통에 해롭지 않겠는가 (세종실록 13/06/20) 일종의 국왕추대설로 조선 건국기 정도전의 백성관이나 조선 후기 정약용의 원래의 정치론 [ 原 政 ] 내지 아래로부터의 정치[ 下 而 上 ]와 맥을 같이하는 구절이다. 세종은 즉위교서에서 어짊을 베풀어 정치를 일으키겠다( 施 仁 發 政 )고 밝힌다. 정치를 일으킨다는 것은 인재 를 기르고 쓰는 일[ 養 賢 用 材 ]이야말로 왕의 가장 큰 역할이라고 보고, 어진 인재를 끌어오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 [ 食 而 民 天 ] 세종은 국왕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을 세금을 걷는 것이 아니라 굶주리 는 백성을 구제하는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당 태종 - 사람을 근본으로 하라 ( 以 人 爲 本 ) 이인이본( 以 人 爲 本 )은 국가 통치에서의 근본은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세민의 이름에 민 이라는 글 자기 있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서 이민위본 대신에 이인위본이란 말을 쓰게 되었다. 이민위본은 중국 역사상 가장 선진적인 민본사상이라 할 수 있다. 정관시대에는 이덕화민과 이민위본을 고집스럽게 관철했 다. 이는 정관의 정치노선이자 치국의 기본 원칙이었던 것이다. 민본사상을 주장한 가장 대표적인 학자는 세종대왕과 당태종의 리더쉽의 공통점 252

253 바로 맹자다. 맹자는 나라에서 가장 귀한 것은 백성이요, 토지는 그 다음이며, 군왕은 가장 중하지 않 다. 민심을 얻어야만 나라를 얻을 수 있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세민은 이런 맹자의 사상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군주는 국가를 근간으로 하고 국가는 백성을 기본으로 한다. 백성을 핍박해 군주를 받들게 하고 그들의 살을 잘라 자신의 배를 채우면, 배는 부르겠지만 몸은 죽어지고, 군주는 부자가 되지만 나라는 망하고 만 다. 예부터 군주의 재난은 바깥이 아닌 그 자신으로부터 야기된다고 하였다. 원하는 것이 많으면 막대한 재물을 써야 하고 재물을 얻기 위해서는 무거운 세금을 거둘 수 밖에 없다. 세금이 무거워지면 백성은 근 심하며, 백성이 근심하면 나라는 위기에 처한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군주 또한 존재할 수 없다. 짐은 항상 이를 마음에 새기고 있기에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다. 정관4년, 방현령은 기쁜 마음을 애써 누르며 국가의 갑장( 甲 仗 갑옷과 무기)이 수나라 때의 규모로 갖추어 졌음을 보고했다. 마땅히 기뻐할 줄 알았던 이세민은 웬일인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수나라가 멸망한 것은 갑장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네. 오히려 매우 풍족했지. 하지만 수나라 백성들은 어 땠는가? 백성들이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지자 결국 사회혼란이 야기되지 않았는가? 그래서 짐은 백성들 의 세금을 가볍게 해 그들의 배를 불리고자하는 것이네. 백성들이 편해지면 나라 역시 저절로 안정될 것이 니 말일세 법에 의한 처벌은 임시 방편이지만 백성들을 보살피는 정책은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었다. 정치이념으로 이인위본 은 당시에는 매우 선진적인 이론이었다. 이 이념은 정부가 국가의 기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국가 기초 질서 수립과 장기적인 이익 추구를 무엇보다 중요시하고 있는 점을 설명해준다. 이러한 이념을 통해 사회적 역량을 한데 모을 수 있으며 이들이 국가를 위해 일하 도록 만들 수도 있다. 이인위본. 거의 모든 시대에서 이 이념을 추구했지만 실천하기가 결코 쉽지 않 은 이상이었던 것이다. 2. 소통의 리더쉽 세종대왕 - 세종대왕은 토론을 좋아하는 군주였다. [ 樂 於 討 論 ] 세종대왕과 당태종의 리더쉽의 공통점 253

254 세종은 신하들의 말을 듣고 좋은 아이디어를 채택하는 데 매우 적극적이었는데, 특히 말끝마다 경들의 의견을 말해보라. 고 하여 신료들을 토론에 초청하곤 했다. 이 때문에 그 당시 신하들은 세종을 토론을 즐겨하는[ 樂 於 討 論 ] 군주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면 세종은 어떻게 회의를 운영했는가? 충분한 찬반토론을 거쳐 발생할 수 있는 소지를 미리 짚어본 다음, 그 일을 주관할 사람에게 전적으로 담당[ 專 掌 ] 하게 하는 것이 세종의 회의방법의 첫 번째 원칙이다. (충분한 토론과 전적인 일임) 또한 함께 정사를 의논하다가 좋은 의견이 나오면 그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세종의 회의운영의 두 번째 원칙이 었다. (토론 중 좋은 의견이 나오면 힘 실어주기) 세종이 주관하는 회의석상에서 황희의 역할은 중요했습니다. 회의내용을 왜곡 없이 정리하고, 핵심을 뽑 아내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세종의 어전회의에서 허조는 황희 정승과 함께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다. 일 만들기 좋아하는 안숭선, 조말생 등이 여러 가지 정책제안을 내놓으면 그 제안이 잘못될 수 있는 소지를 지적해 내는 것은 허조의 몫이었다. <세종실록.에서 꼬치꼬치 따져 묻는 허판서의 모습을 찾는 일 은 어렵지 않다. 말라깽이 송골매 재상[ 瘦 鷹 宰 相 파리할 수, 매 응]이라는 별명만큼이나 깐깐하고 철저 하게 어떤 정책의 그늘, 즉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과, 최악의 경우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허조의 반대 는 회의참석자들의 집단적 착가, 즉 집단적 징후(Groupthink Syndrome)의 한계와 단점을 방지하는데 기 여했다. 그런 허조를 배제하지 않고 계속 회의에 참여해서 말하게 한 세종의 자세도 놀라운 것이었다. 세 종은 허조는 고집불통이다 (세종실록 15/10/23)라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지만 끝까지 그의 의견을 경 청했고, 제기된 문제점을 해결한 뒤에야 그 정책을 시행하곤 했다. 토론을 통해 사전에 문제점을 발견하고 예방한 것이다. 허조는 다음과 같이 유언했다. 세종의 은총을 만나 간( 諫 )하면 행하시고, 말하면 들어주시었으니[ 諫 行 言 聽 ], 죽어도 한이 없다 (세종실록 21/12/28) 당태종 - 직언을 받아들이는 황제 태종은 무슨 일이든 신하들과 함께 토론했다. 정책 시행 여부 뿐만 아니라 국가 정책 수립 역시 신하들과 의 토론을 통해 진행했다.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만인의 천하다 태종은 이 말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는 늘 군신이 한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함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를 실천했을까? 각자 맡은 직무를 충실히하는 것 외에, 황제의 납간 역시 신하의 충성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방법 세종대왕과 당태종의 리더쉽의 공통점 254

255 이었다. 황제의 납간 덕분에 정관시대의 신하들은 그 어느 왕조보다 서로의 지혜와 힘을 합칠 수 있었다. 이는 정확한 정책 수립에 큰 도움이 된다. 국가 통치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책 효율성 또한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좋은 의견을 채택하고 격려하면 다른 사람들도 자극을 받아 적극적으 로 자신의 의견을 내놓게 된다. 황제의 납간은 조정과 황제의 위신을 세워줄 뿐 아니라 국가에 대한 백성 의 믿음 또한 공고하게 해준다.공자는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국가가 바로 설수 없다고 했다. 民 無 信 卽 不 立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정관시대에서 손꼽히는 것은 바로 조화로운 군신관계다. 이렇게 밝고 건강한 군 신 관계는 바로 신하들의 간언을 너그럽게 받아들였던 태종에게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바 른 사고를 가진 신하들만이 간언할 수 있는 법이다. 덕분에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윗사람에게 아첨이나 하던 신하들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다. 어떤 방법으로 신하들의 간언을 독려했는가? 첫째, 태종은 종종 신하에게 자신의 의견을 담은 정책을 발표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4품 이상의 관리들은 반드시 이 명령에 따라야 했다. 둘째, 간관( 諫 官 )의 역할을 강화했다. 간관은 전문적으로 간언하는 관리였는데 간의대부, 좌우습유, 좌우 보권 등이 이에 해당되었다. 간의대부의 관직은 정5품으로 항상 황제의 곁은 지키며 찬성이나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위징이 바로 간의대부였다. 간관을 없애버린 수 양제와 그 비중을 더욱 늘린 태 종, 그들의 통치는 천양지차였다.간언 관련 제도의 수립은 납언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조치임에 틀림없 다. 셋째, 각 부문의 관리들이 자신의 직무를 다할 것을 강조했다. 이견이 있으면 언제든 알리게 했는데 특히 관리들 스스로 생각을 하게 했다. 무조건 위사람의 의견에 동조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3. 인재등용 세종은 인재는 천하 국가의 지극한 보배이다. 장점을 살려서 단점을 극복하게 하는 것이 인재를 등용하 는 사람의 책무인데, 세종은 그것을 국왕의 마음먹기와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 人 材 之 本 在 政 而 已 ]고 했 다. 즉 국왕이 두루 인재를 구하되 절실한 마음을 가지고, 비록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더라도 국가를 위 해 등용한다면 인재는 구해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세종대왕과 당태종의 리더쉽의 공통점 255

256 세종의 인재쓰기 원칙 첫째, 세종은 모든 인재에게는 장단점이 있는데, 지도자는 바로 인재의 장점을 발견하고 적 합한 지위에 배치해서 공적으로 허물을 덮게 해야 한다 고 보았다. 둘째, 세종은 인재의 개성과 신념을 존중하되, 그 이질적인 인재들의 아이디어를 합금해서 뛰어난 정 책을 만들어내곤 했다. 실제로 세종시대의 재상 중에서 허조는 원칙을 강조한 법가적 인물이었고, 황 희는 중용을 실천한 유가적 인물이었으며, 소를 타고 다니며 피리를 불었다는 맹사성은 기필[ 期 必 ]하 지 않은 도가적 인물이었다. 그리고 변계량은 문장과 예법에 밝은 불가적 인물이었다. 이들은 어전 회의라는 용광로에서 각자의 특장 점을 발휘하면서 좋은 국가정책을 만들어냈다. 셋째, 세종은 정승의 역할을 특히 중시했는데, 그 선발에 정성을 기울이되 일단 발탁한 다음엔 의심하지 않고 맡겼다. [ 疑 之 勿 任 任 之 勿 疑 ] 넷째, 유능한 인물이 잘못을 범했을 경우, 다시 기회를 주어 실수를 만회할 수 있게 했다. 사람의 마음이 란 잃었던 직임을 그대로 다시 주면 그 전의 허물을 벗기 위해 마음을 고치는 것이다.(세종실록 17/06/17) 처음에는 뇌물과 간통으로 탄핵을 받기도 했던 황희는 조리있는 말로 회의 내용을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잘 조절하였으며, 10년동안 인사를 담당하면서 대쪽 재상 으로 간언을 아끼지 않았던 허조, 기필[ 期 必 ] 하지 않는 인물로 허름한 집에 살면서 늘 소를 타고 다녔으며, 피리를 즐겨불었던 맹사성, 무능해서 곤장 맞던 별 볼일 없는 관리였으나 조선 최고의 명장으로 거듭난 김종서, 미천한 신분이었으나 발탁되어 과학 기술 발전에 기여한 장영실 등 많은 인재들이 세종의 치세를 이루었다. 당 태종 국가 통치권을 손에 넣은 첫날, 이세민은 황제의 이름으로 포고령을 내렸다. 이건성(태자)에 가담했던 무 리들의 죄를 더 이상 묻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민심을 얻기 위한 정책들을 추진했다. 또한 태자 쪽의 대표적인 문신 위징과 장수 설만철을 포용했다. 이들은 태종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세민 은 관대할 뿐 아니라 매우 민첩하고 과감했다. 적절한 수단과 방법이 갖춰지면 뒤돌아보지 않고 과감하게 행동을 취했다. 덕분에 천하의 사람들은 더욱 더 그를 신뢰했다. 4. 노블리스 오블리제 세종대왕 - 친하들, 친손자의 과전을 감하다 천재와 땅에서 일어나는 재앙의 있고 없는 것은 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이지마는, 배포조치[ 配 布 措 置 ]를 세종대왕과 당태종의 리더쉽의 공통점 256

257 잘 하고 못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다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덕이 없는 사람으로서 큰 기업을 이어받아 능히 평화롭게 잘 다스리지[ 治 平 ] 못하여, 아래 백성들이 굶어 죽게 되었으니,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여 장차 깊은 못에 떨어질 것만 같다. 자손이 번성하고 많은 것이 경사라고는 하지마는, 한갓 하늘이 주는 국 록[ 天 祿 ]을 허비하고 건물을 수리[ 營 繕 ]이 또한 많아, 감응[ 感 應 ]으로 부른 재앙이 아닌가 생각되어 심히 부끄럽다. 그 나머지 나의 종친[ 宗 姓 ]들의 과전은 갑자기 감할 수 없으므로 친아들, 친손자의 과전을 감하 려고 하는데, 여러 사람의 뜻은 어떠한가(...) 금후로는 대군의 밭은 250결에 지나지 말게 하고, 여러 군의 밭은 180결에 그치게 하라. 이 토전[ 土 田 ]을감하는 것이 어찌 천견[ 天 譴 ]에 답하고백성의 굶주림을 구제할 수 있겠는가마는, 그러나 공경하고 두려워하기를 심하게 하매,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세종실록 19/01/12) 당태종 - 봉왕을 줄이다. 전국시대의 황제는 종실에게 적지 않은 혜택을 주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봉작[ 封 爵 ]이었다. 친왕[ 親 王 ] 의 아래는 군왕이고, 그 아래는 현공[ 縣 公 ]이었다. 당시 왕으로 책봉된 이가 지출을 줄이면 백성들의 부담 을 줄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봉왕을 줄이기로 했다. 그 방법은 바로 군왕을 줄이고, 분명한 공로가 있 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현공으로 강등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국가의 재정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었 다. 5. 창조와 문화국가 비전 왜 훈민정음 창제가 가장 위대한 업적인가? 첫째, 영토를 넓히거나 제도를 정비한 군주는 우리나라나 다 른 나라에도 있었지만 백성들을 위해 문자를 만든 임금은 세종이 유일하다. 둘째, 정음이 창제됨으로써 다 른 모든 업적이 더 큰 의미를 갖게 되고, 더 효과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다. 예컨대 그가 북방 영토를 넓히 고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예제를 정비했다 하더라도 그것의 의미와 목적을 신료와 백성들이 이해하지 못 했다면 그렇게 빠른 시일안에 추진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일 을 잘 하기 위해서라도 말 을 잘 통하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세종은 몸소 보여주었다. 세종은 문자라는 권력을 백성에게 주어서, 백성의 수준을 높이려 했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 이라는 말 을 유교 지식인들의 수사학 차원에서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실제 상황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백 성들의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 세종의 생각이었다. 조선 백성들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 세종대왕과 당태종의 리더쉽의 공통점 257

258 기 위해서 정음을 창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종대왕은 당태종 처럼 즉위하는데 피비린내나는 현무문의 변 같은 극적인 비극은 없었다. 아버지 태종이 길을 닦았고, 그 위에서 창조와 문화융성을 이뤄낸 수성의 군주였다. 반면 당태종은 자신의 과거를 보완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두 임금 모두 훌륭하게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나, 한글창제라는 창조와 문화국가의 비전에서 볼 때 세종대왕이 한 수 위라고 평가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세종대왕과 당태종의 리더쉽의 공통점 258

259 인재를 어떻게 구해 쓸 것인가? - 책문(김태완 저) :42 인재를 어떻게 구해 쓸 것인가? (1447년, 세종29년 문과별시) 인재를 어떻게 구해 쓸 것인가? - 책문(김태완 저) 259

260 세종, 과거시험에 인재를 구해 쓰는 법 출제 세종에게도 인재를 가려내는 일이 제일 어려웠던 듯 합니다. 어제나 그렇듯, 인재는 도처에 널려 있습니 다. 그러나 정작 믿고 일을 맡길 만한 인물을 구해 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닝었습니다. 조금 쓸 만하다 싶으면 고려왕조에 대한 단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거나, 그도 아니면 왕자의 남으로 숙청되었거나, 죄를 뒤 집어쓰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세종은 인재를 구하는 아이디어를 얻고자 1474년 과서시험 문제에 인 재를 구해 쓰는 법 을 출제했고, 강희맹의 답글이 장원급제하였습니다. 우리는 책문과 답글에서 인재를 쓰는 법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세종은 말한다 ( 王 若 曰 ) 책문에서 세종은 말한다. 누군들 들어서 쓰고 싶지 않겠는가마는, 인재를 쓸 수 없는 경우가 세 가지가 있 다. 첫째는, 임금이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 경우이다. 둘째는, 인재를 알아도 쓰려는 마음이 절실하지 못한 경우이다. 셋째는 인재와 뜻이 서로 맞지 않는 경우이다. 또한 현명한 사람이 어진 임금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임금과 뜻이 통하지 않는 경우이다. 둘째는 임금이 인재를 공경하지 않는 경우이다. 셋째는 임금과 인재의 뜻이 맞지 않는 경우이다. 인재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견문이 많고 총명하며 재주가 있으나 탐욕스런 사람 2. 신중하고 성실하며 몸가짐을 조심하고 지조를 굳게 지키나( 抗 節 ) 속마음은 부드러운 사람 3. 행정 처리를 잘해 이름이 드러나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으 나 일벌이기를 좋아하는 사람 4. 어리석고 거칠며 사려가 없고 학문을 하지 않았으나 마음이 정직한 사람 5. 오랑캐를 누를 만한 위엄을 갖고 있으나 늘 자신을 단속하는 사람 6. 학문을 좋아해 게르리지 않고 모든 행실이 다 착하나 자기만 옳다고 여겨 자기 재능만 믿는( 自 用 ) 사람 7. 자기 생각을 굳게 고집하지만 아는 게 없는 사람 8. 정직하고 지조가 굳으며 청렴하고 한결같으나 재능이 없는 사람 9. 재물을 탐하고 여색을 좋아하며 끊임없이 재물을 긁어 들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 10. 온갖 일을 총괄하면서도 스스로 만족하지 않고 날마다 혁신하는 사람 11. 두려운 것을 대수롭잖게 여기고 마음속에 뚜렷이 주관을 세워 혼 자 서는 사람 12.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하느라 겨를이 없으면서도 은총과 영예를 받는 것을 더욱 조 심하는 사람 13. 위 아래를 돌아보지 않고 더들먹거리고 큰소리치면서 혼자 유능한 체하는 사람 14. 몸도 인재를 어떻게 구해 쓸 것인가? - 책문(김태완 저) 260

261 목숨도 아끼지 않고 마음 속으로 임금을 사랑해서 자신과 남을 헤아리지 않고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있 는 일이건 아니건 가리지 않고 죽을 때까지 힘을 다하는 사람 등이다. 인재를 등용하고, 인재를 양성하며, 인재를 분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저마다 마음을 다해 대답하도록 하라. 강희맹은 답한다 ( 臣 對 ) 강희맹은 답한다. 세상에 인재가 있었던 적이 없다고 하지만, 올바른 방법으로 구하면 항상 남아돌아갑니 다. 또한 세상에 인재가 없었던 적이 없다고 하지만, 인재를 구하는 올바른 방법을 잃어버리면 늘 부족합 니다. 제가 지난 옛날을 두루 고찰해보았더니, 나라가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지는 발단은 모두 어떻게 인재 를 양성하고 가려서 쓰는가 하는 데 달려 있었습니다. 인재를 어떻게 구해 쓸 것인가? - 책문(김태완 저) 261

262 인재를 분별하는 것 인재는 참으로 세상 모든 나라의 가장 중요한 보배입니다. 임금은 마땅히 교화를 숭상해서 현명한 사람을 널리 불러 모으고, 마음을 밝게 해서 인재를 분별해야 합니다. 또한 자신을 비우고 인재를 등용해서, 변화 하는 추세에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대처해서는 안됩니다. 인재를 알아보고 등용하는 것 하늘이 인재를 내는 것은 반드시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세상에 비록 쓰이지 못한다 할지라도, 구 차스러워서는 안된다. 임금과 신하 사이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다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임금에게는 인재 를 들어 쓰지 않는 페단이 있는 것이고, 신하는 인재가 어진 임금을 만나지 못하는 세가지 경우에 대해 한 탄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위와 아래가 서로 막히고 감정이 서로 통하지 않아, 임금은 날로 고립되고 인재는 날로 떠날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에 맞는 사람만 등용해서는 안된다. 온 세상에 인재는 한없이 많다. 그러니 임금은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인재를 존중해야 한다. 다양한 기준 을 가지고 인재를 등용한다 하더라도, 세상의 인재를 다 들어 쓸 수 없습니다. 마음에 맞는 사람만 등용하 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버린다면, 사람들은 결국 임금이 좋아하는 것에 감정을 맞추고, 임금이 숭상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 임금의 욕구에만 맞추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간사한 것이 생겨나고 혼란이 자라납니 다. 얼굴이 서로 다르듯, 마음도 서로 다르다. 사람의 형상과 모습은 대략 같은 듯해도 자세히 나누어 보 면 만 가지요, 기호와 욕구가 대체로 같은 듯 해도 상세하게 따져보면 만 가지로 분별됩니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해야 한다. 세상에 완전한 재능을 갖춘 사람은 없지만, 적합한 자리에 기용한다면 누구라도 재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 다. 모든 일을 다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입니다. 단점을 버리 고 장점을 취하면( 棄 短 錄 長 ), 탐욕스런 사람이나 청렴한 사람이나 모두 부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점만 지적하고 허물만 적발한다면, 현명하고 유능한 사람이라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은 쓸 수 인재를 어떻게 구해 쓸 것인가? - 책문(김태완 저) 262

263 있고, 어떤 사람은 쓸 수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재능있는 사람만 찾아서는 안됩니다. 장점을 취하면 누구라도 쓸 수가 있습니다. 아주 어리석은 사람을 완전히 뜯어고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단점만 보완하 면 누구라도 쓸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착한 점은 많고 잘못이 적다면, 그는 완전한 재능을 갖춘 사 람에 버금가는 사람입니다. 만약 잘못은 많지만 착한 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는 보통사람 가운데서 그 래도 나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본받을 만한 점은 없어도, 일을 시키면 공이 조금은 있을 것이니 등용 할 수 있습니다. 물리치고 버려야 할 사람들 그러나 만일 재능을 살펴보아도 취할 것이 없고 덕을 따져보아도 본받을 점이 없는 사람, 백성들에게 해만 끼치고 다스리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 권력을 믿고 멋대로 포악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교 화를 통해서 민심을 순박하게 하는 데 가뢰와 같은 존재이므로, 마땅히 물리치고 버려야 할 사람들입니다. 재물만 탐하고 여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쓸모가 없다. 책문에서 열거한 14가지 인재는 명칭이나 특징이 다양하지만, 총괄적으로 나누면 3가지 부류입니다. 완전 한 재능을 갖춘 인재가 여섯, 선한 점은 많고 허물이 적은 인재가 일곱, 함께 일을 하기 어려워서 물리쳐 야 할 인재가 하나입니다. 이 중에서 오직 재물만을 탐하고 여색을 좋아하며 끊임없이 재물을 긁어 들이면 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쓸모가 없습니다. 재물을 탐하면 사회 정의를 해치 고, 여색을 좋아하면 예를 해칩니다.또한 재물을 긁어 들이면 인을 해치고, 부끄러운 줄을 모르면 지혜를 해칩니다. 사람으로서 어질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하며 예의가 없는 사람은 바로 교화를 통해 민심을 순박 하게 하는 데 가뢰와 같은 존재이므로, 마땅히 물리치고 버려야 할 사람들입니다. 인재를 양성하는 방법 성인은 교화를 물레와 화로로 삼아, 한 시대의 인재를 빚어내고 단련시킨다. 인재는 성인이라는 뛰어난 대 인재를 어떻게 구해 쓸 것인가? - 책문(김태완 저) 263

264 장장이가 빚어내는 데 따라 여러 가지 그릇으로 바뀐다. 성인의 교화는 불이 물체를 녹이는 것과 같습니 다. 불기운이 약하면 물체가 녹지 않듯이, 성인의 심기가 미약하면 교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인이 마음을 맑게 다스리고 교화를 숭상해서 어진이를 격려한다면, 억지로 교화를 완성하려고 기대하지 않아도 저절로 교화될 것이고, 만믈이 제대로 자라나기를 기대하지 않아도 저절로 잘 자라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임금과 신하가 서로 공경( 同 寅 協 恭 ) 되어, 태평성대 가운데서도 가장 커다란 공적을 누리게 될 것 입니다. 책문 (김태완 저, 소나무), 2004 인재를 어떻게 구해 쓸 것인가? - 책문(김태완 저) 264

265 여자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지 말라 - 카이사르와 여자(로마인이야기 로마인이야기, 시오노나나미) :38 여자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지 말라 - 카이사르(로마인 이야기) 카이사르는 왜 그토록 여자한테 인기가 있었으며, 게다가 그 여자들한테 원한을 사지 않았는가? 잘 생기지는 않았으나 기품이 있고 교양과 풍자, 유머를 갖춘 재미있는 남자 고대 로마에서 미남의 평가 기준은 여자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단정한 용모였던 모양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결코 미남이 아니다. 젊은 시절부터 뺨에는 주름이 깊이 새겨져 있었고, 40대 후반부터는 머리 가 눈에 띄게 후퇴하는 바람에 가운뎃 부분의 머리카락까지 이마 쪽으로 끌어내려서 대머리를 감추느라 고심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마른 체격에 키가 크고 행동거지에 기품이 있었다고 많은 역사가들이 썼으니까, 전체적인 자태는 좋았을 것이다. 또한 세계가 그를 중심으로 돌기 시작하기 전에, 즉 40대까지 여자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지 말라 - 카이사르와 여자(로마인이야기, 시오노나나미) 265

266 의 그는 항상 빚더미에 올라 앉아 있었기 때문에 유복할 리도 없고, 여자의 허영심을 채워줄 만한 권력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자라는 여자는 모두 카이사르를 좋아했다. 카이사르가 말을 재미있게 하는 남자라는 것은 그의 저술에서 볼 수 있는 교양과 풍자와 유머의 절묘한 배합을 보면 충분히 짐작이 간다. 카이사르의 화려한 여성편력 - 카사노바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카이사르는 자기 차례가 오기를 줄지어 기다리는 상류층 부인들을 모조리 맛보는 빛나는 영광을 누렸다. 카이사르의 최대 채권자인 크라수스의 아내 테우토리아, 남편이 오리엔트에 출정해 있는 동안 얌전히 집 을 지켜야 했을 터인 폼페이우스의 아내 무키아, 폼페이우스의 부장으로 역시 전쟁터에 나가 있는 가이비 우스의 아내 로리아, 원로원 의원의 3분의1이 카이사르에게 아내를 도둑맞았다고 말하는 역사가도 있다. 카이사르의 애인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여자는 훗날의 클레오파트라를 제외하면 세르빌리아일 것이다. 나 중에 카이사르 암살의 주모자가 된 브루투수의어머니 세리빌리아는 재혼을 거절하면서까지 카이사르의 애 인으로 남아 있기를 고집한 여자였다. 이런 여자들은 모두 로마의 상류층에 속한다. 미장원이나 양장점에 서 자주 마주치는 사이다. 그런데 서로 질투하거나 싸우지도 않은 채, 자기 차례가 오기를 얌전히 기다리 면서 차례로 그의 애인이 되었으니 유쾌한 일이다. 정보도 당장 전달되는 사이였을텐데. 하지만 카이사르 가 치마 두른 여자라면 아무나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사생활이 문란한 여자는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취 향에 맞는 여자를 골랐고, 그것도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서가 아니라 자신이 원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 여자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지 말라 - 카이사르와 여자(로마인이야기, 시오노나나미) 266

267 닌가 여겨진다. 남자가 강렬히 원하면, 여자다운 여자는 굴복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많은 여성들을 편력했는데도 그에게 원한을 품은 여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 여자한테 인기가 있는 것도 남자의 소망이지만, 과거의여자 한테 원한을 사지 않는 것이야말로 모든 남자가 마음 속에 몰래 품고 있는 소망이 아닐까 싶다. 제구실을 하는 사나이라면 스스로 추문을 자초하지 않는다. 따라서 추문은 여자 가 남자한테 화가 났을 때 일어난다. 그러면 여자는 왜 화가 나는가. 화가 나는 것은 상처를 입었기 때문 이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여자는 상처를 입는가. 여자가 추문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화가 나는 것은 남자가 여자의 금전적 도움을 받고도 무정하게 등돌 려버렸을 때이다. 빚을 내서라도 화려한 선물 공세 - 여자는 선물을 싫어하지 않는다 첫째, 사랑하는 상대를 화려한 선물로 공략한 것은 여자가 아니라 카이사르 쪽이었다. 이것도 그가 막대한 빚을 진 이유가 되었지만, 빚이 늘어나니까 선물 같은 건 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할 여자는 아내뿐이고, 다 른 여자는 값비싼 선물을 주는 남자를 사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카이사르가 세리 빌리아에게 선물한 600만세스테르티우스짜리 진주는 한때 로마 여인들의 화제를 독차지했다. 그게 만일 사실이라면 팔라티노 언덕 위의 호화저택을 두 채나 살 수 있는 금액이다. 애인을 숨기지 않고 공공연하게 둘째, 카이사르는 애인의 존재를 숨기지 않았다. 그의 애인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아니, 여자의 남편까 지 알고 있었으니까 비밀도 아니었다. 오리엔트에 출정중인 폼페이우스나 가비니우스도 아내가 카이사르 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래서는 스캔들이 될 수 없다. 공공연 하면 여자는 정실 이 아닌 정부에 불과하다 해도, 그것을 불만스럽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관계를 끊지 않고 모른 척하지 않는다 셋째, 역사적 사실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차례로 관계한 여자들 가운데 어느 누구하고도 결정적으로 인연 을 끊지 않았던 모양이다.다시 말해서 관계를 청산하지 않았던 것이다. 무려 20년 동안이나 공공연한 애인 여자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지 말라 - 카이사르와 여자(로마인이야기, 시오노나나미) 267

268 이었던 세르빌리아의 경우, 카이사르는 그녀와 관계를 끊은 뒤에도 그녀의 소원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려고 애썼다. 그녀의 아들 브루터스가 폼페이우스 편에 가담해서 자기한테 칼을 돌렸을 때도 전투가 끝난 뒤 브 루투스의 안부를 걱정했고,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자 당장 세르빌리아에게 그 소식을 전하게 했다. 또 한 클레오파트라가 공공연한 애인이 된 뒤에도 세르빌리아의 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국유지를 싸게 불하해 주는 등 공인이라면 해서는 안될 일까지 했다. 세르빌리아의 아들 브루터스가 어떻게 느꼈는지는 별문제 지만.관계를 완전히 끊지 않는 것은 다른 여자들과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카이사르가 아내와 함께 참석한 잔치에서 옛 애인을 만났다고 하자. 같은 계층에 속해 있으니까 우연히 만날 확률도 높았을 것이다. 그런 경우 평범한 남자라면 난처하게 여긴 나머지 본의아니게 모르는 척하고 지나칠 것이다. 그런 데 카이사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내한테는 잠깐 기다리라고 말해놓고, 참석자들이 모두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당당히 옛 애인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손을 상냥하게 잡으면서 묻는다. 어떻게 지내시오? 별고 없으시죠? 여자는 무시당했을 때 가장 깊은 상처를 입는 법이다. 거듭 말하지만 여자가 무엇보다도 깊은 상처를 입는 것은 남자한테 무시당했을 때다. 이탈리아의 어떤 작가가 말하기를 카이사르는 여자들한테 인기가 있었 을 뿐만 아니라, 그 여자들한테 한번도 원한을 산 적이 없는 보기 드문 재능의 소유자 라고 말했다. 여자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지 말라 - 카이사르와 여자(로마인이야기, 시오노나나미) 268

269 실업대책은 복지로서 해결될 수 없다 - 로마인 이야기(시오노 나나미) :13 실업대책은 복지로 해결될 수 없다 (로마인 이야기-시오노 나나미) ( 개혁을 추진한 그락쿠스 형제) 실업은 복지로 해결될 수 없다 실업대책은 복지를 확충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일자리를 주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실 업자는 단순히 일자리를 잃었기 때문에 생활수단을 잃은 것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이유를 잃 어버린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은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존엄성을 유지해간다. 따라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자존심은 복지로는 절대로 회복할 수 없다.그것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일자리를 되찾아 주는 것이다. 실업자 증가로 인한 사회불안 기원전 2세기 후반에 로마를 덮친 사회 불안은 과거처럼 평민층이 귀족계급 대해 정치적 평등을 요구하며 일으킨 항쟁과는 달랐다. 기원전 2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항쟁은 사회정의를 요구하는 빈민층과 부유층 사 이에 일어났다. 사회불안은 흔히 경제불안에서 시작되며 경제불안은 실업자 증가라는 형태로 모습을 나타 낸다. 실업대책은 복지로서 해결될 수 없다 - 로마인 이야기(시오노 나나미) 269

270 티베리우스 그락쿠스의 개혁정책 기원전 134년 호민관에 출마하여 당선된 티베리우스 그락쿠스는 들짐승도 날질승도 저마다 보금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돌아가면 마음껏 쉴 수 있는 곳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은 로 마 시민들에게는 햇볕과 공기 밖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집도 없고 땅도 없이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헤매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라고 연설했다. 자작농들이 부채 때문에 땅을 빼앗기거나 대농장과 값싼 노예로 가격경쟁에 밀려 땅을 헐값에 내놓은 결 과 실업자들이 출현하게 되고 이들이 도시로 몰려들게 되면서 사회문제가 되었다. 무산자가 되면 병역을 짊어지지 않아도 되지만 자존심을 소중하게 여기는 로마시민에게는 이제 더 이상 제구실을 하는 어엿한 로마시민이 아니다 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것이며, 로마시민권 소유자로 구성되는 로마군단도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티베리우스는 농민에서 무산자로 전락한 이들에게 농지라는 재산을 주어 자작농에 복귀시킴으로써 로마시 민층의 기반을 건전하게 하고, 실업자를 구제하는 동시에 사회불안을 해소하려고 하였다. 부정임차된 임차지를 환수하여 무산자에게 재분배하여 농지에 정착시키고(농지법) 당장의 생활비와 포도 재배와 목축 등 선행투자를 위해 보조금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빚을 갚지 못해 땅을 내놓게 되 면 허사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르자 원로원 의원들이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개인에 대한 보조금을 국고에서 지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로마의 속주로 편입된 페르가몬 왕국의 영토에서 들어오는 조세를 영농자금의 재원으로 삼으려고 티베리우스의 제안은 원로원의 권한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티베리우스 그락쿠스는 반대파의 철봉에 맞아 죽었으며, 테베레 강에 버려졌다. 가이우스 그락쿠스의 개혁정책 기원전 124년 호민관에 선출된 동생 가이우스 그락쿠스는 자작농 육성정책 뿐만 아니라 복지정책을 추진 했다. 곡물법 이 그것인데 국가가 일정량을 사들여 그것을 시가보다 싼 값으로 공급하는 법안이다.실업 자 구제가 자작농 육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공공사업법 을 제출했다. 상하수도, 항만공 실업대책은 복지로서 해결될 수 없다 - 로마인 이야기(시오노 나나미) 270

271 사 같은 공공사업을 진흥하여실업자를 구제하려고 하였다. 원로원은 호민관 가이우스의 정책이 표모으기, 인기정책, 권력집중, 권력의 사물화라며 공격했다. 무지 한 백성은 정치적 목적에서 이루어진 일도 사리사욕에 사로잡혀 저질러진 일로 믿기를 좋아하는 족속이 다. 동생 가이우스도 목이 포로로마노의 연단위에 효수되고 동지들(3,000명)의 시체와 함께 테베레 강에 던져 졌다. 기원전 121년 가우우스가 죽은 뒤에는 복고의 의지를 드러냈는데 자작농 장려정책은 완전히 좌절되었고 그락쿠스 형제의 생각은 70년이 흐른 뒤에 인간에게 눈을 뜨도록 강요할 수 있을 만한 권력을 가진 율리우 스 카이사르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카이사르는 집정관에 취임한 기원전 59년에 농지개혁이자 실업대책인 농지법 을 70년만에 되살렸고 실 업자나 제대군인에게 토지를 주어 여러 속주에 이주시켰다. 카이사르의 복지는 일하는 복지 카이사르가 생각한 복지는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생계비가 보장되는 일자를 얻을 수 있을 때까지 일시적 으로 지원해주는 것이다.공짜로 밀을 배급받는 사람의 수가 무려 32만명에 이르고 있었는데 단번에 15만명 으로 줄였으며, 어떤 경우에도 15만명 이상 늘리는 것을 금지했다. 실업대책은 복지로서 해결될 수 없다 - 로마인 이야기(시오노 나나미) 271

272 총리 장관후보자는 말을 잘 해야 한다 - 세종처럼(박현모 저) :40 총리나 장관후보자는 말을 잘해야 한다 역사에서 인사의 지혜 배우기 박근혜 정부의 초대 총리후보자가 지명되었다. 청문회 인준과 국회동 의를 거쳐 임명되면 장관들이 임명될 것이다. 그야말로 인사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인사에 관한 지혜를 배워보는 것도 유 익할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세종대왕과 같은 훌륭한 임금이 계셨 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그 많은 찬란한 업적을 가능케 한 것은 무엇일까. 그 것은 세종의 탁월한 국가경영 능력 때문인데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인사이다. 인사가 만사라고 하지 않았던가. 세종은 능력만 있다면 문벌과 신분을 따지지 않고 기용하였다. 서얼 출신인 황희를 중용하고, 비록 학문은 낮지만 성실하고 일심봉공하는 최윤덕을 정승에 임명하고 천민 출신인 장영실 등을 기용하여 물시계를 비 롯한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켰다. 특히 세종은 정승을 임명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내가 작은 벼슬을 제 수할 때도 반드시 마음을 기울여서 고르는데, 하물며 정승이리요 라고 했는데, 훌륭한 정승을 선발하면 나라의 근심을 없앨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총리나 장관후보자는 말을 잘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초대총리 후보자가 청문회를 해보지도 못하고 낙마했다. 그는 당선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 기 위해서 사퇴를 했다. 그리고 제기된 모든 문제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참으로 아쉽다. 언론이나 국민과의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당선인으로서는 인물 신상털기식 청문회라면 누가 나서겠는가 라며 제도개선을 말씀하셨다. 완벽한 사람은 없는 것이고 국정운영 능력이 있다면 들어 써야 할텐데 답답한 심정이다. 세종께서는 황희에게 제기된 수 많은 문제점(뇌물수수, 간통 등)에도 불구하고 정승으로 썼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놓쳐서는 안되는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국민과의 소통능력이 다. 국민들에게 진실을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법치와 원칙을 생명같이 여기는 박근혜정부에서 또 다 시 위장전입, 병역의혹, 부동산 투기를 한 사람을 정승이나 재상으로 임명할 수는 없지 않는가? 대통령께 총리 장관후보자는 말을 잘 해야 한다 - 세종처럼(박현모 저) 272

273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세종은 정승은 일 은 물론이고 말 도 잘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심봉공하는 자세로 일을 성공적으로 잘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 않게 국가가 지금 하는 일이 백성과 임금에게 무슨 의미를 갖는가를 적절히 설명하고 설득하는 능력이 필수적 인 것이라고 보았다. 최윤덕을 정승에 임명하는 과정에서 최윤덕은 수상이 되어도 좋은 인물이다. 다만 말하는 것이 절실하지 못하다 며 고민하는 모습에서 세종이 정승의 자격조건에서 말을 잘 하는 것을 중 요하게 보았음을 알 수 있다. 영의정 황희 - 경륜, 모책, 덕망, 검증의 인물 황희( 黃 喜 1363~1452)는 태종 때 도승지를 세종 때는 18년간 정승을 지냈으며, 세종은 그를 경륜이 뛰어나 고 아이디어가 풍부하며, 인재선발 및 정리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경은 세상을 다스려 이 끌 만한 재주와 실제 쓸 수 있는 학문을 가지고 있도다. 모책( 謀 策 )은 일만 가지 사무를 종합하기에 넉넉 하고, 덕망은 모든 관료의 사표가 되기에 족하도다. 아버님이 신임하는 바이며, 과인이 의지하고 신뢰하는 바로서, 정승되기를 명하였더니 진실로 온 나라가 바라보는 바에 부응하였도다. 묘당에 의심하는 일이 있 을 때면 경은 곧 시귀( 蓍 龜 ;본보기)였고, 정사와 형벌을 의논할 때면 경은 곧 저울대였으니, 모든 그때그때 의 시책은 경의 보필에 의지하였도다 (세종실록) 신하들의 부정적 평가 즉, 심술이 바르지 못해 반대자를 중상하고 뇌물 받기를 좋아하는 황금 대사 헌 이라는 비판도 있었고 박포 장군의 아내를 집안 토굴에 두고 간통한 비리도 있었다. 그러나 세종은 이 러한 약점보다는 탁월한 사태파악 능력으로 국왕이 중심을 잡지 못할 때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자리에 총리 장관후보자는 말을 잘 해야 한다 - 세종처럼(박현모 저) 273

274 적합한 인재를 추천하는 국정운영 능력을 훨씬 높게 평가하고 중용하였다. 세종 치세의 허조, 최윤덕, 안 숭선 등이 황희의 천거와 후원을 받은 인물들이다. 세종은 영의정의 덕목 중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일 과 함께 말 도 잘해야 한다는 대목이다. 일심봉공하는 자세로 일을 성공적으로 해야 하지만 그 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국가가 지금 하는 일이 백성과 임금에게 무슨 의미를 갖는가를 적절히 설명하 고 설득하는 능력이라는 점이다. 정치 는 행정 의 범위를 넘어서는 의미와 소통의 영역이기 때문이 다. 이조판서 허조 - 인사시스템 확립 허조( 許 稠 1369~1439)는 세종 때 10년동안 인사를 담당하는 이조의 수장을 10년간 지냈으며, 훗날 정조에 의해서도 황희와 함께 세종을 좌우에서 보필한 인물로 평가받을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다. 가장 중요한 역 할은 인사시스템을 확립한 것이다. 허조의 인사시스템은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간택( 揀 擇 )이다. 어떤 관직을 임명할 때 먼저 이조의 낭관( 郎 官 )으로 하여금 후보자의 자질, 그리고 부패혐의, 가족관계까 지 꼼꼼히 살피도록 했다.( 精 加 揀 擇 ) 둘째는 평의( 評 議 )이다. 이조 내부의 관원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재 차 평론을 거듭하도록 했다.후보자가 그 자리에 적합한지, 더 나은 적임자는 없는지에 대해서 내부의 전문 가들로 하여금 격력히 토론하였다. ( 更 與 評 論 ) 셋째는, 중론( 衆 論 이다. 이조 밖의 여론을 들어보는 것이다. 특히 고위 인사의 경우 이조의 적합판정에도 불구하고 조정 안팎의 의론이 좋지 못할 수 있는데 중의( 衆 議 )가 합한 연후에야 임명하도록 했다. ( 衆 議 孚 同 然 後 任 之 ) 인사시스템보다 운영능력이 아닐까 세종 치세의 뛰어난 인물들은 이러한 인사검증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사시스템보다 중요한 것이 세종과 허조의 운영능력 아닐까. 세종은 왕이 적임자를 직접 골라써야 한다 는 의견에 대해 내 한 몸으로 사람들의 어질고 어질지 못한 것을 다 살필 수 있겠는가. 반드시 인사담당 자의 정선( 精 選 )을 기다려 내가 다시 살펴서 제수할 수 밖에 없다 고 하여 이조판서의 재량권을 존중했 다. 허조의 뛰어난 점은 인재를 지키는 일이었다. 인재의 선발 못지 않게 유능한 관직자를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힘들여 까다롭게 선발한 인재가 간사한 자들의 모함에 빠져 희생되는 것은 개인 의 불행일 뿐만 아니라 국가적 손실이라고 보았다. 인재를 얻어 맡겼으면 의심하지 말고, 의심이 있으면 맡기지 말아야 한다 ( 任 則 勿 疑 疑 則 勿 任 )이는 허조의 생각이자 세종 자신의 신념이었다. 총리 장관후보자는 말을 잘 해야 한다 - 세종처럼(박현모 저) 274

275 강희맹의 인재 분류 - 뛰어난 인재와 물리쳐야 할 인재 문장가였던 강희맹은 과거시험에서 세종의 인재를 쓰는 법에 대한 문제에 답하면서 국가의 운명을 맡길 만한 뛰어난 인재 와 물리쳐야 할 인재 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위엄이 오랑캐를 제압할 수 있어도 자기 공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 마음 중심을 확고하게 세워 자질구레한 절도에 얽매이지 않는 사 람, 누구보다 바쁘게 일하면서도 자기 이름이 드러나는 것을 조심하는 사람, 그리고 충성스런 마음이 매우 강렬하여 나라가 위태로울 때 목숨을 바치는 사람 은 모두 국가의 운명을 맡길 만한 신하이자 한 시대 의 뛰어난 인재 이다. 반면에 재주가 있더라도 반드시 물리쳐야 할 사람도 있는데 여색을 밝히고, 끊임 없이 재물을 긁어 들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 이 그것이다. 공정한 인사와 공직자를 아끼는 마음 인사를 담당자의 고충은 승진하는 사람은 자기능력 때문이며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 람은 불만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기도청의 인사를 담당했던 어떤 국장은 인사업무를 담당하면서도 직원들로부터 오히려 존경을 받았다. 먼저 공정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일일이 당사자들에게 인사원칙을 말해주고 불만을 해소시켜 주었다. 불만 있는 직원들에게는 승진한 이 사람이 경력이 오래 되었고, 더 고생하지 않았느냐 며 설득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사를 공정하게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 리고 직원들에게 대한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사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허조의 졸기에는 반드시 경조( 慶 弔 )와 문병( 問 病 )을 친히 하였다 고 적혀 있는데 이 때문에 까다롭고 꼬치꼬치 혼내는데 도 사람들이 허조를 미워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세종의 정치는 무엇인가? 백성들의 평범한 생활을 위해서 국왕과 신하들이 비범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백성들이 매일 비상한 각오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위정자들이 하루하루를 진실된 마음으로 실 제에 도움이 되는 정치를 위해 정성과 지성의 노력을 기울이는 정치이다. 민생들이 하고자 함이 있는데 임금이 없으면 어지러워지므로 반드시 임금을 세워서 다스리게 하였는데,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을 받지 않는다면 다스리는 체통에 해롭지 않겠느냐 (세종실록) 정치와 정부의 존재이유이다. 새정부의 출범과 함 께 그런 세종의 정치가 펼쳐지길 소망한다. 총리 장관후보자는 말을 잘 해야 한다 - 세종처럼(박현모 저) 275

276 세종처럼, 박현모, 미다스북스, 2012년 개정판 총리 장관후보자는 말을 잘 해야 한다 - 세종처럼(박현모 저) 276

277 대선공약과 마키아벨리 - 군주론(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 :36 대선공약과 마키아벨리 서양의 고전인 군주론(IL PRINCIPE)을 쓴 마키아벨리에 대한 평가 는 아주 상반된다. 그러나, 동양의 한비자 처럼 정치와 권력을 냉철 하게 보았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한 마키아벨리가 오 늘의 대선공약을 어떻게 보았을까? 군주론 제18장(군주는 어디까지 약속을 지켜야 하는가)을 보면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다. 그는 군주가 신의를 지키며 기만책을 쓰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칭송받을 만한 일인지만 위대한 업적 을 성취한 군주들은 신의를 별로 중시 하지 않고 오히려 기만책을 써서 인간을 혼란시키는 인물이며 그들 은 신의를 지키는 자들에게 맞서서 결국에는 승리를 거두었다고 말한다. "군주는 짐승의 방법을 잘 이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여우와 사자를 모방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자는 함정에 빠지기 쉽고 여우는 늑대를 물리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함정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를 혼내주려면 사자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명한 군주는 신의를 지키는 것이 그 에게 불리할 때 그리고 약속을 맺은 이유가 소멸되었을 때, 약속을 지킬 수 없으며 또 지켜서도 안된다. 이 조언은 모든 인간이 선하다면 온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란 사악하고 당신과 맺은 약속을 지 키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 자신이 그들과 맺은 약속에 구속되어서는 안된다" 오늘의 상황을 놓고 보았을 때 대선공약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바람직 하지 않다고 판단될 때 약속을 지 켜서는 안되며, 그것도 과감하게 약속을 버리는 악행을 일거에 해서 되풀이할 필요가 없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시혜(은혜)는 조금씩 베풀어야 한다. 그래야 그 맛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 날과 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들을 소통의 대상이 아닌 통치의 대상으로 간주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군주를 국가나 사회로 본다면 대선공약을 무조건 지키는 것 보다는 집권초기에 재검토를 해서 이 대선공약과 마키아벨리 - 군주론(마키아벨리) 277

278 행을 해야하는 공약과 이행해서는 안되는 공약을 구분하고 우선순위를 다시 조정하는 것이 옳다. 박근혜 당선자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으로 신뢰를 얻었다. 또한 우리 사회의 신뢰가 무너져 있 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법치와 신뢰를 지키는 길이 경제가 성장하고 우리사회가 선 진화되는 길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변화하는 운명의 풍향과 상황에 자신의 행동을 맞춰야 하며, 가급적이면 올바른 행동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아야 하지만 필요하다면 악행을 저지를 수 있어야 한다는 마 키아벨리의 충언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군주론 마키아벨리, 강정인 김경희 옮김, 까치, 2008 대선공약과 마키아벨리 - 군주론(마키아벨리) 278

279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이념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 원효사상 연구(박태원 저) :56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이념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오래전부터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시대정신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이념 뿐만이 아니다. 지역갈등, 세대갈등도 뛰어넘어야 한다. 분명히 우리 국민은 새로운 틀을 원 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국민대통합을 이루게 하는 새로운 시대정신, 새로운 이념은 무엇일 까?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왜 그것을 멀리서 찾으려 하는가! 그것은 너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 자유주의 사회주의를 뛰어넘으려는 많은 시도들이 있었다. 사회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제3의 길 등... 원효는 말한다. "자기가 조금 들은 바 좁은 견해만을 내세워 그 견해에 동조하면 옳다고 하 고 그 견해에 반대하면 모두 잘못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마치 갈대 구멍으로 하늘을 보는 사람이 갈대 구멍으로 하늘을 보지 않은 사람은 모두 하늘을 보지 못하는 자라고 하는 것과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이념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 원효사상 연구(박태원 저) 279

280 도 같다. 이런 것을 일컬어 식견이 적은데도 많다고 믿어서 식견이 많은 사람을 도리어 헐 뜯는 어리석음 이라고 한다" ( 菩 薩 戒 本 持 犯 要 記, 한국불교전서) 원효는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가 무덤에서의 경험을 통해 중요한 것을 얻게 되었다. 모든 세계가 오직 분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요, 모든 차별 현상들이 오직 마 음 헤아림의 산물이로다. 마음의 분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은 없는 것이니, 어찌 마음 밖 에서 따로 구하리 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인데 마음 밖에서 찾으려 했던 것이 문제였다. 자유주의 사회주 의라고 하는 이념이라는 것도 우리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식의 부분임에도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우기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마음 속에 있 는 것을 모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그것이 새로운 시대정신이며 새로운 이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마음을 모으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선거이다. 선거는 국민들의 마음을 모으는 것이다.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사람이 당선이 되는 것이다. 선거가 치러지면 후보자는 국민들에게 많은 약속을 한다. 예전에는 공 약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매우 중요해졌다. 세종시 원안을 둘러싸고 빚 어졌던 상황을 돌이켜보면 선거공약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공약을 만드는데 참여한다. 그래서 선거공약이 중요해졌고 후보자는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공약을 만들어 발표한다. 그리고 이제는 책으로 만들 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공약집에 국민들의 마음이 담겨져 있고, 시대정신도 이 공약집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 ) 원효사상연구, 박태원 지음, UUP, 2011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이념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 원효사상 연구(박태원 저) 280

281 법치와 경제성장 - 경제학(맨큐 맨큐) :32 법치와 경제성장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법치, 즉 법을 잘 지켜지는 것과 경제성장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 까?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오래전부터 법치를 강조해왔다. 2007년 경선 당시 줄푸세를 주 장할 때도 법치를 강조했고,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으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할 때 도 법치가 강조되었다. 국가성장 전략으로 법치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치와 경제성장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세계은행 환경경제학 연구부가 2005년 국부는 어디에 있는가?: 21세기를 위한 자본의 측 정 이라는 경제발전에 대한 다양한 유형의 자본의 상대적 기여도를 평가하는 연구를 하였 법치와 경제성장 - 경제학(맨큐) 281

282 다. 결론은 한 나라의 자연자원(석유,천연가스,석탄,광물자원 등)과 생산된(또는 구축된 자 본:기계,장비, 건축물,도시용지 등)자본의 가치를 단순히 더한 것만으로는 그 나라의 소득수 준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유한 나라들의 국부의 80%가 무형의 자본이다. 즉,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 효율적인 사법제도, 분명한 재산권, 효과적인 정부 등 무형의 자산이 거 의 모든 부유한 나라에서 국부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부유한 나 라들이 부유한 이유는 대체로 국민들이 지닌 기술과 경제활동을 뒷받침하는 제도의 질 때 문 이라는 것이다. 세계은행의 경제학자들은 무형의 가치를 계량화했는데 법치가 국가들의 무형자본의 57%를 설명하고, 교육은 36%를 설명한다. 법치지수 1위는 100점 만점에 99.5점을 얻은 스위스, 미 국은 91.8을 기록했다. OECD국가들의 평균은 90점. 이와는 대조적으로 나이지리아의 법치 지수는 5.8에 불과했다. OECD 회원국들의 평균 재산은 44만달러인데 이중 자연자원이 1만 달러, 생산된 자본이 7만6,000달러, 그리고 막대한 규모인 35만4,000달러가 무형자본이다. 반면에 저소득 국가의 1인당 재산은 평균 7,216달러인데 자연자원 2,075달러, 생산된 자본 1,150달러, 무형자본 3,991달러였다. 국부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세계은행의 획기적인 연구는 법치와 훌륭한 교육제도가 경제 발전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설득력있게 입증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법치수준은 어떤가? 몇 년전 세계은행이 발표한 각국 통치지표에 따르 면 우리나라의 법치 수준은 100점 만점에 74점으로, 다른 OECD국가들의 평균이 90점을 웃 도는 데 비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낮게 평가되고 있다. 법치, 교육 등 무형 자본은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고 총자산을 증가시킴으로써 경제를 성장 시킨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법치의 강조는 단순한 법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 라 경제성장의 전략인 것이다. 법치가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법의 제정과 집행이 공정 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또한 권력있는 자에게 준엄하게 서민들에게는 따뜻해야 국민들의 신 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맨큐의 경제학) 법치와 경제성장 - 경제학(맨큐) 282

283 ( ) 법치와 경제성장 - 경제학(맨큐) 283

284 청나라를 배워야 한다 - 만주족의 청제국(마크 엘리엇 지음, 이훈, 김선 민 옮김) :24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 아! 淸! 우리 민족에게는 병자호란으로 삼전도의 치욕 뿐만 아니라 수십만의 청에 끌려간 사람들, 청에 끌려갔다 돌아와서 또 다시 버림을 받아야 했던 속환녀들, 이런 비극을 안겨준 청나라. 과연 이 청나라는 어떤 나라 인가? 청나라를 배워야 한다 - 만주족의 청제국(마크 엘리엇 지음, 이훈, 김선민 옮김) 284

285 중국이 급성장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과 더불어 G2로 부상하여 이어도 근처의 방공식별구역선포로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동북아 긴장을 만들고 있는 중국, 이제 우리는 중국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병자호란은 결코 역사속의 과거가 아닐 수 있다. 오늘을 사는 정치인들은 병자호란 때의 인 조를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의 무능이 어떻게 나라와 백성들을 비참하게 만들었는가를 되세기고 두 눈을 부 릅떠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과 중국방문, 러시아 푸틴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이런 의미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바라는 경제성장과 발전도 튼튼한 외교와 안보위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청나라를 배워야 한다 - 만주족의 청제국(마크 엘리엇 지음, 이훈, 김선민 옮김) 285

286 <미국의 B52 전략폭격기> 소수민족으로 중국을 지배했고 오늘의 중국을 형성한 청나라 인류사에서 만주족만큼 큰 역사적 위업을 이룩한 예는 드물다. 만주족은 16세기 말에 발흥하여 불과 수십 년 만에 국가체제를 완비하고 명나라를 정복했다. 이후 청은 정복사업을 지속하여강역을 명의 두 배 이상 으로 확장시켰으며, 1911년까지 동아시아를 지배했다. 한족과 비교하여 350대 1로 소수였던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지배한 사실은 흔히 기적 이라고 칭해 진다. 청이 획득한 강역과 그것을 유지하가 위해 창안한 통치기술 및 이념은 현대 중국으로 계승되었다. 현재 중국의 강역은 청이 물려준 지리적 유산이며, 신강과 티베트의 독립운동으로 인한 마찰과 주변국가 와의 국경선을 둘러싼 갈등은 그 유산의 어두운 일면이다. 또한 중국이 자국 내 민족간의 관계에 대한 원 칙으로 표방하고 있는 민족대가정 民 族 大 家 庭 의 民 族 大 團 結 이란 구호는 청대의 滿 漢 一 家 개념의 확대판이다. 이러한 성취와 유산에도 불구하고 만주족은 역사에서 평가절하되어 왔다. 종래의 역사가들은 청 초기, 즉 입관을 전후한 짧은 시기를 다룰 때에만 만주족을 청의 주체로 부각시키고, 청 초기 이후로는 만주족이 지 배민족이라는 사실을 청사의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지 않았다. 이러한 중국중심적 시각 에 따르면 만주 족은 청 중기부터 자신의문화와 언어를 상실하고 한족 속에 융해되어 버렸으며 따라서 만주족이 청조의 지배집단이었다는 사실은 청대사에서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중국중심적 시각과 내륙아시아적 시각 이 책의 저자인 마크 엘리엇은 이런 중국중심적 시각 과 달리 만주족이 한화되었거나 혹은 만주족의 중국지배가 만주족이 한화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종래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저자는 만주족 이 청말까지도 자신들의 민족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다수의 피지배민족에 대한 소수 지배민족의 통치 를 견지했다고 주장한다. 만주족이 자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중국보다 내륙아시아의 전통에 영향을 받았고 그것을 통치에 지속적으로 활용했다는 저자의 주장은 이른바 내륙아시아적 시각 을 그 바탕에 두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만주족이 정체성을 유지하고 소수의 지배민족으로 다수의 피지배민족을 통치할 수 있었 던 기제를 팔기에서 찾는다. 팔기제는 무술연마와 근면강직을 강조하는 만주족의 전통을 중심으로 기인들 을 하나의 민족집단으로 결집하는 기능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청나라를 배워야 한다 만주족, 그리고 그들의 조상인 여진족은 조선과 장구한 세월을 접경하여살아왔고 때론 갈등하고 때론 혼 청나라를 배워야 한다 - 만주족의 청제국(마크 엘리엇 지음, 이훈, 김선민 옮김) 286

287 융해 왔다. 여진족은 국가를 수립하기 훨씬 전부터 조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만주족으로 변모 하여청제국을 수립한 이후에는 조선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만주족과 조선의 관계가 이처럼 불가 분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동한 한국에서 만주족이나 청사에 대한 학술적 연구는 외국 학계만큼 활발하지 못했다. 청나라를 배워야 한다 - 만주족의 청제국(마크 엘리엇 지음, 이훈, 김선민 옮김) 287

288 뇌물은 누구나 비밀스럽게 주고받겠지만, 한밤중에 주고받은 것도 아침 이면 드러난다(목민심서 율기6조 청심, 정약용) :14 (목민심서 율기 6조 청심) 부임( 赴 任 ) 6조 1. 임명을 받음( 除 拜 ) 다른 벼슬은 구해도 좋으나 목민의 벼슬은 구해서는 안된다. 수령의 직분은 덕이 있더라도 위엄이 없으면 제대로 할 수 없고, 뜻이 있더라도 밝지 못하면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니, 제대로 할 수 없는 경우는 백성이 그 해독을 입어 괴로움을 당하고 길바닥에 쓰러질 것이다. 사람들이 비난하고 귀신이 책망하여 그 재앙이 후손들에게 미칠 것이니 이런데도 어찌 수령 자리를 구해 서야 되겠는가? 새 수령 맞이에 필요한 말의 사용료를 이미 공적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백성에게 거두 는 것은 왕의 은혜를 감추고 백성의 재물을 노략질하는 것이니, 그래서는 안된다. 뇌물은 누구나 비밀스럽게 주고받겠지만, 한밤중에 주고받은 것도 아침이면 드러난다(목민심서 율기6조 청심, 정약용) 288

289 2. 부임하는 행장 꾸리기( 治 裝 ) 행장을 꾸릴 때 의복과, 안장을 얹은 말은 본래 있는 그대로 써야 하며, 새로 마련해서는 안된 다.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아껴 쓰는 데 있고, 아껴 쓰는 것의 근본은 검소함에 있다. 검소해야 청렴할 수 있고, 청렴해야 자애로울 수 있으니, 검소함이야말로 목민하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힘써야 할 일이다. 어 리석은 자는 배우지 못하고 무식해서 산뜻한 옷에 좋은 갓을 쓰고 좋은 안장은 신임 수령의 인품이 어떠 한가를 그의 의복과, 안장을 얹은 말의 차림새로 알아본다. 만약 사치스럽고 화려하면 씽긋 웃으며 알 만하다 하고, 만약 검소하고 질박하면 놀라며 두렵다 고 한다. 청렴함은 손해를 보니 행하기 어렵다고 하겠지만, 검소함은 비용도 들지 않는데 어찌 쉽게 행하지 못하겠 는가? 이부자리와 베개, 솜옷 외에 책을 한 수레 싣고 간다면 맑은 선비의 행장이 될 것이다. 3. 조정에 하직하기( 辭 朝 ) 전관( 銓 官 )에게 두루 하직 인사를 할 때에 감사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전관은 국가를 위해 사람을 뽑아 썼으니, 여기에 사사로운 은혜를 들먹여서는 안된다. 수령은 자격에 따라 관직을 얻었으니, 이를 개인적인 은혜로 마음속에 품어서는 안된다. 전관과 자리를 같이하더라도 관직에 후보자로 추천해준 것에 관해 얘기해서는 안되며, 전관이 만약 그 말을 꺼내거든, 다만 명공( 明 公 )이 변변치 못한 재목을 잘못 천거하셨습니다. 일을 그르쳐 훗날에 명공께 누를 끼칠까 몹시 두렵습니다. 라 뇌물은 누구나 비밀스럽게 주고받겠지만, 한밤중에 주고받은 것도 아침이면 드러난다(목민심서 율기6조 청심, 정약용) 289

290 고 대답할 일이다. 아전과 하인이 맞이하러 오면, 장중하고 화평하게, 또 간결하고 과묵히 접대해야 마땅하다. 수리(이방)가 읍총기( 邑 總 記 )를 바치면 마땅히 즉시 돌려주고 묵묵히 다른 말이 없어야 할 것이요, 이어서 자제나 친척, 손님들을 단속하여 억지로 요구하여 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 다음날 아침에 수리를 불러 그 고을의 큰 폐단 되는 일 한두 가지를 물어보고, 듣고 나서는 묵묵히 다른 말이 없어야 한다. 만약 그 폐단이 커서 반드시 고쳐야 할 일이어든, 두루 하직 인사 다니면서 일찍이 그 지방의 감사( 監 司 )를 지 낸 사람과 함께 고쳐 바로잡을 방법을 의논해야 한다. 4. 부임 행차( 啓 行 계행) 부임하는 길에는 오직 엄하고 온화하며 과묵하기를 마치 말 못하는 사람처럼 해야 한다. 지나가는 길에 기 피하고 꺼리는 것이 있어 아전이 제 길을 버리고 둘러가는 경우가 있는데, 반드시 제 길로 가 사특하고도 괴이한 미신을 타파해야 한다. 지나다가 들르는 관부( 官 府 )에서는 마땅히 선배 수령들과 함께 다스리는 이 치를 깊게 논의해야지, 농담으로 밤을 지새워서는 안된다. 5. 취임( 上 官 ) 아전과 하인들이 인사하고 물러가면 말없이 혼자 단정히 앉아 백성을 다스릴 방도를 생각해야 한다. 너그럽고 엄숙하고 간결하고 치밀하게 규모를 미리 정하되, 오직 그때 그때의 사정에 알 맞게 하며 스스로 굳게 지켜나가야 한다. 안정복의 [임관정요]에서는이렇게 말했다. 천리간에는 습속이 같지 않고, 백리간에는 기풍이 다르다. 한 도 안에서도 산간과 해안지대의 풍토가 다르고, 한 현 안에서도 읍과 촌의 숭상하는 바가 다르다. 장사꾼 이 모이는 곳의 민심은 간교하고, 농사꾼이 사는 곳의 민심은 질박하다.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마땅히 형 세를 살펴서 대처해야 할 것이다. 6.업무를 시작함( 事 ) 이튿날 새벽에 출근하여 정사에 임한다. 상급관청에 올리는 보고문서 가운데 응당 전례에 따라도 좋은 것은 곧바로 서명날인하고, 그 사리를 따져 야 할 것은 모름지기 아전들의 초안을 바탕으로 다듬고 글을 만들어 그들에게 다시 쓰게끔 한다. 뇌물은 누구나 비밀스럽게 주고받겠지만, 한밤중에 주고받은 것도 아침이면 드러난다(목민심서 율기6조 청심, 정약용) 290

291 민간에 내리는 명령은 함부로 서명날인해서는 안된다. 반드시 다음의 6전( 典 ) 36조를 참고하여 일일이 검 사하고, 그 안에 조금치도 간계와 허위가 들어 있지 않음을 분명히 안 뒤에 서명날인하는 것이 옳다. 혹시 의심스러운 것은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수리( 首 吏 )와 담당 아전을 불러 자세한 사정 을 조사하고, 그 본말을 분명히 안 후에 서명날인하는 것이 옳다. 늘 보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일을 잘 아는 체하고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여 의심스러운 것을 두루뭉수리하게 그냥 놔둔 채, 문서 끝에 서명만 착실히 하다가 아전들의 술수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다. 혹 그 읍의 잘못된 전례로서 이미 오래 되었고 또 매우 불합리한 것 같은 경우, 보고할 기한이 급박하지 않으면 서명날인하지 않은 채 개혁을 도모하며, 기한이 급박하거나 혹 일이 얽혀서 쉽게 변경시킬 수 없는 것은 일단 명령을 내려놓고 천천히 개혁할 것을 도모한다. <!- 이날 사족( 士 族 )과 백성들에게 영을 내려 고질적인 폐단이 무엇인지 묻고 의견을 구할 것이다. 율기( 律 己 ) 6조 1.바른 몸가짐( 飭 躬 ) 일상생활을 절도 있게 하고, 옷차림은 단정히 하며, 백성들을 대할 때에는 장중하게 하는 것이 옛날부터 내려오는 수령의 도( 道 )이다. 밝기 전에 일어나서 촛불을 밝히고 세수하며 옷을 단정히 입고 띠를 두른 후 조용히 앉아서 정신을 함양 한다. 얼마쯤 있다가 생각을 풀어내어 오늘 해야 할 일들의 순서를 정한다. 제일 먼저 무슨 공문을 처리하 고, 다음에는 무슨 명령을 내릴 것인가를 마음속에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는 제일 먼저 할 일을 잘 처리할 방법을 생각하고, 다음 할 일을 잘 처리할 방법을 생각하되, 사욕을 끊어버리고 하나같이 천 리( 天 理 )를 따르도록 힘써야 한다. 공사에 여가가 있거든 반드시 정신을 모으고 생각을 안정시켜 백성을 편안히 할 방책을 헤아려내어 지성 으로 잘되기를 강구해야 한다. 치현결( 治 縣 訣 )에서ㅗ는 벼슬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두려워할 외( 畏 ) 한 자뿐이다. 의( 義 )를 두 려워하고 법을 두려워하며 상관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두려워하여 마음에 언제나 두려움을 간직하면, 혹시 라도 방자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니, 이로써 허물을 적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뇌물은 누구나 비밀스럽게 주고받겠지만, 한밤중에 주고받은 것도 아침이면 드러난다(목민심서 율기6조 청심, 정약용) 291

292 정요( 政 要 )에서는 벼슬살이에는 석 자의 오묘한 비결이 있으니, 첫째는 청( 淸, 맑음)이고, 둘째는 신( 愼, 삼감) 이며, 셋째는 근( 勤, 부지런함) 이다 라고 하였다. 일을 처리할 때 언제나 선례만을 좇지 말고, 반드시 백성을 편안히 하고 이롭게 하기 위해서 법도의범위 내에서 변통을 도모해야 한다. 만약 그 법도가 나라의 기본 법전이 아니며 현저히 불합리한 것은 고쳐서 바로잡아야 한다. 정선( 鄭 瑄 )은 하늘은 한 사람을 사사로이 부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개 많은 가난한 자들을 그에 게 부탁하려 함이요,하늘은한 사람을 사사로이 귀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개 많은 천한 자들을 부탁하 려 함이다. 가난하고 천한 사람은 제 힘으로 먹고 살면서 제 일을 경영하고, 제 피땀으로 얻은 것을 제가 쓰니, 하늘이 오히려 너그럽게 볼 것이요, 부귀한사람은 벼슬을 하여 녹을 먹되 만민의 피땀을 한 사람이 받아쓰니, 하늘이 그 허물을 경계하는 것이 더욱 엄중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많이 말하지도 말고, 갑자기 성내지도 말 것이다. 백성의 윗사람 된 자는 움직이고 정지하며, 말하고 침묵하는 것을 아랫사람이 모두 살피어 의심쩍게 탐색 하는 법이니, 방에서 문으로, 문에서 고을로, 고을로부터는 사방으로 새어나가서 한 도( 道 )에 다 퍼지게 된 다. 군자는 집안에서도 말을 삼가야 하거늘, 하물며 벼슬살이할 때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비록 시중드 는 아이가 어리고 시중드는 종이 어리석다하여도, 여러 해를 관청에 있으면 백번 단련된 쇠와 같아서, 모 두가 기민하고 영리하여 엿보아 살피는 것이 귀신과 같다. 관아의 문을 나서기만 하면 세세한 것도 모두 전하고 누설한다. 사방의 풍속이 각기 다르니 나에게 친숙하지 않은 것은 마음에 거슬리겠지만,그래서 꾸짖고 화를낸다면 역시 견문이 좁고 괴팍한 것이다. 수령이 악인을 만나서 이곳의 인심이 순박한데도, 네가 그것을 어지럽 히니 죄가 더욱 중하다 고 꾸짖으면 사람들이 다 기뻐할 것이지만, 수령이 이곳 인심이 극악하여서 이 런 일이 일어났구나 라고 꾸짖으면 사람들이 다 노여워할 것이다. 실언하여 뭇사람의 노여움을 불러일으 킨다면, 역시 어리석은 짓이 아닌가? 하물며 그 이른바 극악하다는 것은 모두 쌀이나 소금, 오이나 채소 같은 작고 보잘 것 없는 물건으로 인한 것이고, 백성들에게 포학스럽게 대하는 자나 법을 어긴 자에게는 노여워하지도 않으면, 어찌 뭇사람의 마음을 복종시킬 것인가? 전에 내가 조정에 있을 때에 공경대신들을 보면 언제나 그 말씨와 안색이 편안하고 착한 듯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옛사람들만 못할지라도 역시 편안하고 착한 자는 반드시 많은 사람을 얻고 높이 오르지만, 우악 뇌물은 누구나 비밀스럽게 주고받겠지만, 한밤중에 주고받은 것도 아침이면 드러난다(목민심서 율기6조 청심, 정약용) 292

293 스럽고 사나운 자는 대부분 중도에서 넘어진다. 그래서 나는 편안하고 착한 것이 좋은 기상인 줄 안다. 군자가 무겁지 않으면 위엄이 없으니, 백성의 윗사람 된 자는 진중해야 한다. 동진의 사안( 謝 安 )은 조카의 승전보고를 듣고도 바둑두기를 그치지 않았고,후한의 유관( 劉 寬 )은 새로 지어 입은 조복에 누군가 국을 엎질렀으나 놀라거나 성내지 않았으니, 모두 평상시에 충분히 생각하고 헤아려 둔 바가 있었기 때문에 일을 당해서도 당황하지 않은 것이다. 관아 안에 호랑이나 도적이 들거나, 수재나 화재가 나고 담장이 무너지거나 지붕이 내려앉고, 혹 지네나 뱀이 요 위에 떨어지거나 시중드는 아이가 잘 못하여 물을 엎지르고 술잔을 뒤엎는 일이 있더라도, 모름지기 고요히 앉아서 천천히 그 까닭을 살펴야 한 다. 또한 암행어사가 출도( 出 道 )하거나, 좌천이나 파면 등 죄를 묻는 통보서가 갑자기 오더라도 말씨나 안 색을 달리하여 남의 비웃음과 업신여김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술을 끊고 여색을 멀리하며 노래와 음악을 물리쳐서 공손하고 단정하고 위엄있기를 큰제사 받 들 듯 할 것이요, 감히 놀고 즐김으로써 거칠고 방탕해져서는 안될 것이다. 송나라의 매지( 梅 摯 )가 소주( 韶 州 )를 맡아 다스릴 때에 벼슬살이의 고질병에 관한 글을 지어말하였다. 벼슬살이에는 다섯 가지 병통이 있다. 급히 재촉하고 함부로 거두어들여 아랫사람한테 긁어다가 위에 갖다바치는 것은 조세의 병통이요, 엄한 법조문을 함부로 둘러대어 선악을 명백히 가리지 못하는 것은 형 옥( 刑 獄 )의 병통이요, 밤낮 술잔치에 빠져 나랏일을 등한히 하는 것은 음식의 병통이요, 백성의 이익을 침 해하여 사사로이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것은 재물의 병통이요, 많은 계집을 골라 노래와 여색을 즐기는 것 은 음란의 병통이다. 이 가운데 하나만 있어도 백성이 원망하고 신이 노할 것이니, 편안하던 자는 반드시 병들고 병든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벼슬살이하는 자가 이를 알지 못하고 풍토의 병을 탓하니, 잘못된 일이 아닌가. 상산록( 象 山 錄 )에 이르기를 술을 좋아하는 것은 다 객기( 客 氣 )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맑은 취미로 잘 못 생각하는데, 술마시는 버릇이 오래 가면 게걸스러운 미치광이가 되어 끊으려 해도 되지 않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마시면 주정부리는 자가 있고, 마시면 말 많은 자가 있으며, 마시면 잠자는 자도 있는데, 주정만 부리지 않으면 폐단이 없는 줄로 여긴다. 그러나 잔소리와 군소리는 아전이괴로이 여길 것이요, 깊 이 잠들어 오래 누워 있으면 백성이 원망할 것이다. 어찌 미친 듯 소리지르고 어지러이 떠들며 넘치는 형 벌과 지나친 곤장질만이 정사에 해가 된다고 하겠는가? 수령이 된 자는 술을 끊지 않으면 안될 것이 다 라고 하였다. 뇌물은 누구나 비밀스럽게 주고받겠지만, 한밤중에 주고받은 것도 아침이면 드러난다(목민심서 율기6조 청심, 정약용) 293

294 2. 청렴한 마음( 淸 心 ) 청렴은 수령의 본래의 직무로 모든 선의 원천이며 모든 덕의 근본이다. 청렴하지 않고서 수령 노릇을 잘할 수 있는 자는 없다. 뇌물은 누구나 비밀스럽게 주고받겠지만, 한밤중에 주고받은 것도 아침이면 드러난다. 아전들은 늘 이 일은 비밀이라 사람들이 아무도 모릅니다. 퍼뜨리면 제게 해로울 뿐이오니 누가 감히 퍼 뜨리겠습니까? 라고 말한다. 그래서 수령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뇌물을 흔연히 받지만, 아전은 문을 나서자마자 마구 떠벌려 자신의 경쟁자를 억누르고자 하니, 그 소문은 삽시간에 사방으로 펴지건만 수령 은 깊이 들어앉아 고립되어 있어서 전혀 듣지 못하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양진( 楊 震 )이 형주자사로 있을 때 왕밀( 王 密 )이 창읍( 昌 邑 )의 수령을 제수받고서 밤에 금 열근을 품고와 내어놓으면서 어두운 밤이라 아무도 모릅니다 라고 말하니, 양진이 하늘이 알고 신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아는데, 어찌 아무도 모른다고 하오 라고 대답하자, 왕밀이 부끄럽게 여기고 물러갔다. 과격한 행동과 각박한 정사( 政 事 )는 인정에 맞지않아 군자가 내치는 바이니 취할 것이 아니다. 정선은 사대부들이 덕을 손상하게 되는 것은 이름을내려는 마음이 너무 급한 데서 오는 일이 많은 것이 다. 라고 하였다. 정선이 말하기를, 전에 어른들의 말씀을 들으니, 상관이 탐욕스러우면 백성은 그래도 살길이 있으나,청 렴하면서 각박하면 곧 살길이 막힌다 하였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청렴한 관리의 자손이 많이 떨치지 못하 는 것은 바로 그 각박함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내려오는 잘못된 관례는 고치도록 결심하고, 혹 고치기 어려운 것이 있으면 나는 범하지 말아 야 한다. 관아의 비용으로 쓰기 위해 자질구레한 명목으로 백성들에게 거둬들이는 돈은 결코 관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이런 종류의 예는 일일이 들 수 없으니, 모름지기 수령된 자가 의리를 헤아려서 천리에 어긋나고 왕법( 王 法 )에 거슬리는 일은 절대로 자신이 범해서는 안된다. 혹 여러모로 구애되어 혁파하기 어려운 것은 비록 고칠 수는 없더라도 나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 무릇 자기가 베푼 것은 말도 하지 말고 덕을 주었다는 표정도 짓지 말며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도 하지 말 것이다. 또한 전임자의 허물도 말하지 말 것이다. 뇌물은 누구나 비밀스럽게 주고받겠지만, 한밤중에 주고받은 것도 아침이면 드러난다(목민심서 율기6조 청심, 정약용) 294

295 청렴한 자는 은혜를 베푸는 일이 적어서 사람들이 이것을 병통으로 여긴다. 스스로 자신을 책망하는 데 무 겁게 하고, 남을 책망하는 데 가볍게 하는 것이 옳다. 청탁이 없으면 청렴하다 말할 수 있다. 3. 집안을 다스림( 齊 家 ) 몸을 닦은 후에 집을 다스리고, 집을 다스린 후에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천하의 공통된 원칙이다. 고을을 다스리려는 자는 먼저 자기 집을 잘 다스려야 한다. 한 고을을 다스리는 것은 한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다. 자기 집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어떻게 한 고을인 들 다스릴 수 있겠는가? 집안을 잘 다스리는 데는 몇가지 요점이 있다. 첫째, 데리고 가는 사람의 수는 반 드시 법대로 해야 하고, 둘째 치장은 반드시 검소하게 해야 하고, 셋째 음식은 반드시 절약해야 하고, 넷 째 규문( 閨 門 )은 반드시 근엄해야 하고, 다섯째 청탁은 반드시 끊어야 하고, 여섯째 물건을 사들이는 데는 반드시 청렴해야 한다. 이 여섯 가지 조목에 법도를 세우지 못하면 수령으로서의 정사를 가히 알 만하다. 청탁이 행해지지 않고 뇌물이 들어오지 못한다면, 이것이 집을 바로잡은 것이다. 나의 지위가 높아지면 아내와자식부터 나를 속이고 저버리게 된다. 남편을 공경하지 않는아내가 없으며, 아버지를사랑하지 않는 아들이 없는데, 어찌 속이고 저버릴 마음이 있겠는가? 그러나 도리를 아는 사람이 적어서 혹은 안면에 끌리기도 하고, 혹은 재물에 유혹되기도 하므로, 청탁이 행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이 른바 아녀자의 인( 仁 )이다. 살을 찌르는 듯한 통절한 참소로 어떤 아전을 제거하라 하기도 하고, 혹은 쓸 만하지 않은 어떤 사람을 천거하기도 하고, 혹은 갑 에 대한 판결은 여론이 원통하다고 하고, 혹은 을 의 옥사( 獄 事 )는 원님의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등, 아래에 있는 간사한 자들이 온갖 계교로 이 간질을 한다. 그러면 어진 아내와 순진한 아이들은 그들의 술수에 빠져서, 스스로는 공정하게 아뢰는 것이 라 생각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고자질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남의 말을 들을 때 금방 신임하지 말고 천천히 사리를 따져 만약 그의 말이 과연 충직함에서 나온 것이라면 겉으로 드러 내지 말고 잠자코 그 일을 선처해야 한다. 만약 그의 말이 간사한 자들의 꾀에서 나온 것이라면 경위를 캐 내고 내막을 들추어내되, 본 사건 외에 청탁한 죄까지 더해 반드시 법에 명백히 비춰 크게 징계해야 한다. 아내와 자식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니 그들의 말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아내와 자식도 그런데 하물며 그 나머지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4. 청탁을 물리침( 屛 客 ) 친척이나 친구가 관내에 많이 살면 거듭 단단히 단속하여, 남이 의심하고 비방하는 일이 없게 함으로써 서 뇌물은 누구나 비밀스럽게 주고받겠지만, 한밤중에 주고받은 것도 아침이면 드러난다(목민심서 율기6조 청심, 정약용) 295

296 로 좋은 정을 보존하도록 해야 한다. 친척이나 친구가 본 고을이나 이웃 고을에 살면 한번은 초청하여 보고 한번은 가서 보며, 때때로 선물을 보내되, 비록 날마다 보고 싶지만 예에는 한계가 있으니, 초청하기 전에는 절대로 오지 말기 바란다. 편 지 왕래도 역시 의심과 비방을 살 터이니, 만일 질병이나 우환이 있어서 서로 알려야 할 경우에만 몇자의 편지를 써서 풀로 봉하지 말고 직접 예리( 禮 吏 )에게 주어 공개리에 보내도록 하라 고 약속하라. 늘 보면 친척들이 때를 틈타 청탁을 하여 인심을 잃는 일이 거듭 쌓이면, 수령이 떠난 후에는 강은 흐르되 돌은 그대로 남는 것처럼 뭇사람들의 분노가 여기저기서 일어나 잘 지내지 못하는 자가 많으니, 어찌 두려 워하지 않을 것인가? 무릇 조정의 고관이 사사로이 편지하여 청탁하는 것을 들어줘서는 안된다. 가난한 친구와 궁한 친척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즉시 영접하여 후하게 대접해 보내는 게 마땅 하다. 선인( 先 人 )께서 일찍이 말씀하셨다. 가난한 친구와 궁한 친척은 잘 대접하기가 정말 어렵다. 진실로 청 렴한 선비와 고상한 벗은 비록 지극히 가난하고 궁할지라도 친구나 친척을 찾아 관부에 오려고 하지 않는 다. 나를 찾아오는 자는 대개 조심성도 없고 어리석거나 구차하고 비루한 사람들이니, 혹은 그 얼굴이 밉 살스럽고 이야기조차 흥미가 없으며, 혹은 무리한 일을 청탁하고 요구가 끝이 없으며, 혹은 닳아빠진 신발 을 신고 남루한 옷차림에 이가 득실거리며, 혹은 내가 일찍이 액운을 만나 궁했을 때에는 전혀 돌보거나 불쌍하게 생각지도 않던 자들이다. 형세가 좋아지니까 아첨하며 붙는 그 정상이 밉살스러워서 내가 온화 하고 흡족히 대접하기가 극히 어려운 것이다. 5. 씀씀이를 절약함( 節 用 ) 수령 노릇을 잘하려는 자는 반드시 자애로워야 하고, 자애로워지려는 자는 반드시 청렴해야 하 고, 청렴하려는 자는 반드시 검약해야 한다. 씀씀이를 절약하는 것은 수령의 으뜸가는 임무이 다. 배우지 못하고 무식한 자는 겨우 한 고을을 얻기만 하면 교만방자하고 사치해져 절제하는 바 없이 손닿는 대로 함부로 써버리고, 부채가 많아지면 반드시 탐욕스럽게 된다. 탐욕을 채우려면 아전과 더불어 일을 꾸 미게 되고, 아전과 더불어 일을 꾸미면 그 이득을 나누어야 되며, 그 이득을 나누게 되면 백성의 고혈이 뇌물은 누구나 비밀스럽게 주고받겠지만, 한밤중에 주고받은 것도 아침이면 드러난다(목민심서 율기6조 청심, 정약용) 296

297 마르게 된다. 그러므로 씀씀이를 절약하는 것은 백성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힘써야 할 일이다. 의복과 음식은 검소한 것을 법도로 삼아야 한다. 조금만 법도를 넘어도 씀씀이에 절도가 없어 져버린다. 함부로 낭비하면 재정이 딸리게 되고, 재정이 딸리면 백성을 착취하게 된다. 6. 베풀기를 좋아함( 樂 施 ) 절약만 하고 쓰지 않으면 친척이 멀어진다. 기꺼이 베푸는 것은 덕을 심는 근본이다. 연못에 물이 괴어 있음은 장차 흘러내려서 만물을 적셔주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절약하는 사람은 능히 베 풀 수 있고, 절약하지 못하는 사람은 베풀지 못하게 마련이다. 기생을 불러 가야금 타고 피리 불게 하고, 비단옷 입고 높은 말에 좋은 안장을 쓰며, 상관에게 아첨하고 권세 있는 자들에게 뇌물로 바치는 돈이 하 루에 수만 전을 넘고 1년에는 억만 전이나 되는데 어찌 친척들에게 베풀 수 있겠는가? 아껴 쓰는 일은 베 품의 근본이다. 내가 귀양살이 하면서 수령들을 보면, 나를 동정하고 도움을 주는 자는 옷차림이 반드시 검소했고,나를 돌보지 않은 자는 화려한 옷을 입고 얼굴에 기름기가 돌며 음탕한 것을 즐겼다. 권문세가를 후하게 섬겨서는 안된다. 1. 임무교대( 遞 代 ) 해관( 解 官 ) 6조 수령직은 반드시 교체가 있기 마련이다. 교체되어도 놀라지 않고 벼슬을 잃어도 연연해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존경할 것이다. 속담에 벼슬살이는 머슴살이 라고 했으니, 아침에 승진했다가 저녁에 쫒겨날 수도 있을 만큼 믿을 수 없음을 이른 말이다. 그런데 수령으로서 천박한 자는 관아를 자기 집으로 알아 오랫동안 누리려 생각하고 있다가, 하루아침에 상급관청에서 공문이 오고 여각( 旅 閣 )에서 통보가 있으면 어쩔 줄 몰라 하기를 마치 큰 보물이라도 잃어버린 것같이 한다. 처자는 서로 쳐다보며 눈물 흘리고 아전과 종들은 몰래 훔쳐보고 비 웃는다. 관직 외에도 잃는 것이 많으니, 어찌 한심스러럽지 않은가? 그러므로 옛날의 현명한 수령은 관아 를 여관으로 여겨 이른 아침에 떠나갈 듯이 늘 문서와 장부를 깨긋이 해두고, 항상 행장을 꾸려놓아 마치 가을 새매가 가지 앉아 있다 훌쩍 날아갈 듯이 하고, 한 점의 속된 애착도 마음에 품지 않는다. 교체한다 는 공문이 오면 즉시 떠나고, 활달한 마음가짐으로 미련을 갖지 않았으니, 이것이 맑은 선비의 행실이다. 뇌물은 누구나 비밀스럽게 주고받겠지만, 한밤중에 주고받은 것도 아침이면 드러난다(목민심서 율기6조 청심, 정약용) 297

298 2. 돌아가는 행장( 歸 裝 ) 맑은 선비의 돌아갈 때의 행장은 모든 것을 벗어던진 듯 조촐하여 낡은 수레와 야윈 말인데도 그 산뜻한 바람이 사람들에게 스며든다. 6. 훌륭한 수령은 떠난 후에도 사랑이 남는다. ( 遺 愛 ) 죽은 뒤에 사모하여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면, 그 수령에 대한 백성들의 사랑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 다. 유정원이 통천군수로 있을 적에 은혜로운 정사가 많았다. 부교리( 副 校 理 )를 제수받아 그가 단지 말 한 필 의 행장으로 임금의 부름에 응해 가니, 백성들이 어른, 아이를 가리지 않고 말머리를 둘러싸고 소리내어 울며 더러는 길바닥에 누워 일어나지 않으니, 그가 위로하며 타이르고 떠나갔다. 후에 고을 사람들이 동 비( 銅 碑 )를 만들어 그의 덕을 칭송하였다. 뇌물은 누구나 비밀스럽게 주고받겠지만, 한밤중에 주고받은 것도 아침이면 드러난다(목민심서 율기6조 청심, 정약용) 298

299 사진 모음 :22 정면 사진(2005년) 사진 모음 299

300 최근 사진(2011년) 사진 모음 300

301 경기도의회 예산결산위원장으로 경기도예산 현안 언론브리핑(2002년) 사진 모음 301

302 사진 모음 302

303 최근 사진(2011년) 사진 모음 303

304 최근 사진 잘 듣겠습니다 사진 모음 304

305 잘 받들겠습니다 사진 모음 305

306 경기도의회 한나라당 대표의원으로 지방자치 현안에 대해 박근혜 대표께 설명 경기도의회 한나라당 대표의원으로 진보적 시민사회단체 대표와 도정현안 논의(2005년) 사진 모음 306

307 노인복지센터에서 급식봉사활동 지역 새마을부녀회와 함께한 즐거운 시간 사진 모음 307

308 사진 모음 308

309 이념은 결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조정래 조정래, 태백산맥) :16 이념은 결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훌륭한 문학작품일 수록 인간과 사회, 그리고 권력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이 있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 즐거리나 흐름보다도 작가가 인간과 사회, 그리고 권력과 국가 등에 관한 통찰을 항 상 찾는다. 훌륭한 작품일수록 그러한 통찰력을 볼 수가 있다. 서민영 선생은 태백산맥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이념이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고 믿고 자신의 농토를 공동 소유화해서 공동으로 경작하고 분배하는 공동체 실현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서민영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작가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념은 결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조정래, 태백산맥) 309

310 탐욕적인 인간 하늘이 세상만물을 창조하실 때 상호간에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생존해 나갈 수 있는 질서와 지혜를 주셨 지. 그 질서를 인간의 말로 하자면 먹이사슬이고 지혜는 동면을 위한 영향섭취나 갈무리가 되겠지. 그런 데, 만물 중에서 유일하게 하늘의 뜻을 거역한 존재가 일찍부터 있었어. 그게 바로 인간이야. 하늘이 내린 지혜를 활용하되 탐욕적 이기( 利 己 )를 채우는 무기로 악용하기 시작한 거야. 인간의 역사란 탐욕을 채우기 위해 지혜를 악용해 가며 인간끼리 살육을 되풀이해 온 기록에 불과해. 뱀이나 개구리가 동면을 위한 영양 섭취를 하나 다음해 봄까지 빈사상태로 견딜 수 있을 정도만 하는 것이고, 개미나 벌이 겨우살이 갈무리를 하지만 마찬가지로 해동이 될 때까지 필요한 최소량의 먹이만을 보관해. 그런데 인간은 어떤가. 다음해 봄 까지가 아니라 자신의 평생을 위해,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자손대대로 이어질 갈무리를 하고자 탐욕한 것 이야. 그 탐욕의 부가 상대적인 빈을 낳게 되고, 더 큰 탐욕을 채우고 지키기 위해 필연적인 폭력이 조직 화되고, 그 폭력에 대항하고자 하는 또다른 힘이 결속됨으로써 필연적으로 살육이 자행되는 것 아닌가. 먹 이다툼을 해서 동류끼리 살육을 자행하는 것도 인간뿐이야. 동물끼리 상대방의 생활터전이나 사냥터를 침 범하지 않는 것은 모든 동물들의 불문율이네. 동물들이 동류끼리 싸우는 경우가 있긴 하지. 그러나 그건 먹이 때문이 아니라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힘겨룸이지. 힘세고 건강한 수컷이 암컷을 차지함으로써 우량 한 새끼를 낳게 하려는 것, 그것이야말로 싸움이 아니라 종족보존을 위한 신성한 의식 아닌가. 그런데 인 간들이 스스로를 일컬어 뭐라고 했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건 신의 섭리를 거역한 존재로 서 당연히 저지르게 된 자만이야. 탐욕과 자만으로 가득 찬 인간사회는 착취를 위한 폭력이 조직화되고 상 대적으로 인간의 노예화와 굶주림이 상습화되었네. 모든 만물은 신의 섭리에 따라 골고루 나눠 먹고 겨울 이념은 결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조정래, 태백산맥) 310

311 을 무사히 넘기는데 인간만은 헐벗고 굶주려 죽어갈 수밖에 없게 된 거야. 그건 인간들 스스로가 만든 지 옥이지. 그 지옥 다음에 올 것이 무엇이겠나. 파멸이지. 그 극점에 이르러 하나님은 인간들을 일깨우고 구 원하기 위해서 예수를 보내신 거야.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하신 말씀이 서로 사랑하며 고루 나누어 먹 으라 는 것이었네. 곧, 박애의 실천 으로 스스로 만든 지옥에서 벗어나 천국을 얻게 되리라는 일깨움 이었지. 그러나 인간들은 그 일깨움을 알아듣지 못했어.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실천한다는 성직 자들까지 인간의 탐욕과 자만을 키워 하나님을 욕되게 했네. 중세 암흑시대가 그 좋은 증거 아닌가. 성직 다들까지 그 모양이었으니, 인간이란 과연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 존재인지 회의로워. 나 스스로부터 말 이야. 인간의 탐욕에 대한 통찰은 FOR R E ST CAR TE R 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 들 (TH E E D U CATI ON OF LITTLE TR E E )에서) 말한 자연의 이치를 연상시킨 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인디언의 후손인 주인공 작은나무가 5살 때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난 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면서 삶과 자연, 그리고 문명에 대해 겪고 배우면서 느끼는 순수한 영혼의 마음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따뜻한 이야기로 잔잔한 감동을 준다. 주인공 작은 나무는 체로키 인디언의 핏줄을 이어받은 소년이다. 체로키족은 미국 동부의 애팔래치아산맥 남쪽 끝에 살면서 농경과 수협생활을 한 인디언으로 1838~1839년에 오클라호마 주로 강제이주 당했지만, 산속으로 숨거나 달아난 사람들도 있었는데 작은 나무는 본래의 고향인 테네시 주에 머무른 그룹의 자손 이다. 자연의 이치 이념은 결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조정래, 태백산맥) 311

312 슬퍼하지 마라, 작은 나무야. 이게 자연의 이치라는 거다. 탈콘 매는 느린 놈을 잡아갔어. 그러면 느린 놈들이 자기를 닮은 느린 새끼들을 낳지 못하거든. 또 느린 놈 알이든 빠른 놈 알이든 가리지 않고, 메추 라기 알이라면 모조리 먹어치우는 땅쥐들을 주로 잡아먹는 것도 탈콘 매들이란다. 말하자면 탈콘 매는 자 연의 이치대로 사는 거야 매추라기를 도와주면서 말이다. 그게 이치란 거야. 누구나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사슴을 잡을 때도 제일 좋은 놈을 잡으려 하면 안 돼. 작고 느린 놈을 골라야 남은 사슴들이 더 강해지고, 그렇게 해야 우리도 두고두고 사슴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거야. 흑표범인 파코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 너도 꼭 알아두어야 하고. 꿀벌인 티비들만 자기들이 쓸 것보다 더 많은 꿀을 저장해두지...그러니 곰한테도 뺏기고 너구리한테도 뺏기고... 우리 체로키한테 뺏기기도 하지. 그놈들은 언제나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하고 똑같아. 뒤룩뒤룩 살찐 사람들 말이야. 그런 사람들은 그러고도 또 남의 걸 빼앗아오고 싶어하지. 그러니 전쟁이 일어나고, 그러고 나면 또 길고 긴 협상이 시작되지. 조금이라도 자기 몫을 더 늘리려고 말이다. 그들은 자기가 먼저 깃발을 꽂았기 때문에 그럴 권리가 있다고 하지... 그러니 사람들은 그놈의말과 깃발 때문에 서서히 죽어가는 셈이야... 하지만 그들도 자연의 이치를 바꿀 수는 없어. 인간이 만들어내는 그 어떤 새로운 주의나 주장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문제를 근본 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고, 인간의 행복을 절대적으로 보장할 수가 없네. 그런 회의를 바탕으로 하여 보자면 인간의 역사는 끝없이 발전한다는 변증법적 논리나, 물질중심의 가치 체계로 인간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드는 유물론이나 다 동의할 수가 없어. 난 크리스천 입장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유물사관이나 마르크시즘을 상대로 감정으로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야. 지배와 피지 배로 얼룩져 온 인간사의 모순을 해결하고 불합리를 개혁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그런 것은 소중하 고 값진 거지.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내는 그 어떤 새로운 주의나 주장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문제를 근본적 으로 해결할 수가 없고, 인간의 행복을 절대적으로 보장할 수가 없네. 왜냐하면 인간이란 탐욕과 자만을 버리지 못하는 한 제아무리 새로운 주의나 사상을 내세워도 거기에는 또다른 모순과 불합리를 내포하게 마련이야.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근본적으로 신뢰할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네 마르크시즘은 핍박받는 민중을 혁명세력으로 응집시킴으로써 최초의 불꽃이 되었고, 혁명을 성취시킴으로 써 최후의 불꽃이 되었네. 공산주의 정치체제를 수립함으로써 마크크시즘은 정작 살해당하기 시작한 거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내세움으로써 새로운 지배계층이 형성되었고, 그에 따라 공산주의적 계급사회가 이 루어지면서 공산주의적 귀족이 생겨나게 되었지. 그리고 전인류적 인민해방이라는 미명하에 코민테른이란 이념은 결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조정래, 태백산맥) 312

313 국제조직을 만들어 세력 팽창을 꾀했는데, 소련의 그 팽창주의가 황금만능이란 자본주의를 앞세운 미국의 패권주의와 어떻게 다른지 나로선 구분이 안 되는구먼.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근본적으로 신뢰할 수 없 고, 그 어떤 것도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네.그래서 그분은 기독교사회주의의 실천이 그 길이라 믿 고, 자신의 농토를 공동소유화해서 몸소 농사를 짓는 생활을 한다는 결론이었다. 그분을 교장 자리에 끌어 내고자 했던 자신의 의도가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나를 생각하며 손승호는 그분이 전에 했던 말을 새롭게 되새기고 있었다. (태백산맥 3권) 이념은 결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조정래, 태백산맥) 313

314 최소한의 상업, 화폐없는 세상 - 성호, 세상을 논하다(강명관 강명관) :58 최소한의 상업, 화폐없는 세상 장사꾼은 사익을 추구하는 무리 - 상인혐오론 말발굽 마제 馬 蹄 에서 성호는 이렇게 말한다. 성왕 聖 王 이 만든 제도는 농업에 힘쓰게 하고, 상업을 억제했는데 이유는 백성들이 생을 영위하는 데에 서 먹을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저 장사꾼들은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는 무리에 불과하니, 백성들 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제6권 만물문, 말발굽 馬 蹄 ) 성호는 상인을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백성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부류로 본다. 유가의 근저에 깔려 있 는 상인 혐오론 이다. 성호가 상업을 완전히 부정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는 인간의 간람 奸 濫 한 짓 때 최소한의 상업, 화폐없는 세상 - 성호, 세상을 논하다(강명관) 314

315 문에 천하가 다스려 지지 않는데, 간람한 짓은 재물이 부족한 데서 생기고, 재물의 부족은 농사에 힘쓰지 않는 데서 생긴다고 말한다. 이어 농사를 해치는 여섯 종류의 좀과 같은 존재가 있다고 말하는데, 그 여섯 이란 노비, 과거 공부, 벌열, 기교, 승려, 게으름뱅이다. 성호는 상인은 그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한 다. 상인은 본래 사민 四 民 ( 士 農 工 商 ) 중 하나로 물화를 유통시키는 이로움이 있다. 소금, 철, 포목, 비단 같은 물품은 상인이 아니면 운반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제12권 인사문, 여섯가지 좀 육두 六 蠹 ) 성호는 상인과 상업의 긍정적 기능을 고려했던 것이다. 최소한의 상업만을 인정 하지만 상업을 최소한의 것 으로 생각하는가, 최대한의 것 으로 생각하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성호는 말하자면 최소주의자이고, [성호사설] 곳곳에서 상업에 대한 최소주의자의 입장을 견지한 다.그는 되살려 시행할 수 있는 한나라의 법 漢 法 可 復 (제22권 경사문)에서 한나라 문제 文 帝 때의 일을 예거한다.문제는 검소한 생활을 본보기로 실천한 왕이었으나 그 시기의 백성들은 도리어 사치에 젖 었다고 한다. 성호는 그 원인을 문제의 명에 따라 등통 鄧 通 이 화폐를 주조해 유통시킨 데서 찾는다. 화폐 는 물화의 유통을 자극한다. 곧 화폐로 인해 상업이 발달한다. 상업의 발달은 결국 사치를 낳는다. 논리의 비약이 있지만,성호는 나름의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었다. 뒤에 언급하겠지만 그는 물화의 유통이 초래하 는 사치의 예를 북경과의 무역에서 찾았다. 21세기의 우리로서는 상업과 화폐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상 상할 수도 없지만, 성호의 시대에는 그 존재가치가 지금과 같지 않았다. 성호눈 화폐와 상업에 대한 자신 의 논리를 단호히 펼친다. 성호는 시장도 최소한으로 개설할 것을 주장한다. 그는 허시 墟 市 '근세에 와 서 향읍 鄕 邑 에서 곳곳에 빈터를 만들고 날마다 질세라 아침에 나가 저물어서야돌아오는 풍습이 있어 폐 단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만약 시장을 같은 날일정한 시간 동안 열게 한다면, 그 중 소소한 시장은 금하 지 않아도 저절로 사라져 어지러이 다투는 걱정이 없어질 것이다 라고 말한다. 성호의 시대에 이미 향촌 곳곳에 시장이 출현했던 바, 그는 모든 시장을 같은 날 일정한 시간 동안 열어서 불필요한 시장을 없애자 하였다. 성호는 물자의 최소한의 유통을 주장하는 최소주의자다. 예컨대 가장 중요한 것은 쌀 미강 米 綱 (제16권 인사문)에서 물건 중 운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곡식이고 소금과 철이 그 다음이며, 이것들 외에 는 다른 지방의 것을 기다리지 않고도 백성들이 스스로 해결하여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즉 곡식과 소 금, 철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외에는 유통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국제무역은 사치품을 위해 쌀과 포목을 유출시킨다 최소한의 상업, 화폐없는 세상 - 성호, 세상을 논하다(강명관) 315

316 외국과의 상업, 곧 무역 도한 같은 이유로 비판한다. 성호는 사신단의 무역 奉 使 貿 易 (제11권, 인사문) 에서 조선과 중국의 무역이 갖는 속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자신의 시대에 와서 무역의 폐단이 이루 말 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 단언하다. 가장 큰 폐단은 은의 유출이다. 성호는 재화도 곡식도 없는 나라살 림 (제16권 인사문)에서 국가 재정의 부족을 걱정하면서 그 이유를 북경과의 무역에서 찾는다. 곧 국내 은광에서 캐낸 광은 鑛 銀 이 적지 않지만 그것은 쉽게 낡아버리는 비단과 쓸데없는 그릇, 완호물 玩 好 物, 사치스런 식품을 사오는 데 들어가고, 광은이 모자라면 왜은 倭 銀 을 쓰게 되는데 왜은이란 것도 거저 생기 는 것이 아니고 우리 쪽의 쌀과 포를 주고 바꾼 것이다. 결국 북경과의 사치품 무역은 국내의 광은은 물론 쌀과 포목까지 국외로 유출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상업을 억제하고 농업을 장려하는 것, 백성을 부역에 함부로 동원하지 않고 세금을 극히 적게 거두어 그 결과 백성들이 즐거이 농사를 짓고 소출이 풍성해지는 사회가 성호가 바란 이상사회다. 화폐없는 세상 성호가 화폐를 비판한 것은 궁극적으로 화폐의 존재가 백성을 궁핍하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성호에 의하면, 백성을 부유하게 만드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농사에 힘쓰게 하는 것, 둘째, 검소 한 삶을 가치 있게 여기도록 하는 것, 셋째, 토색질을 금지하는 것이다. 상업에는 화폐가 제일 가는 도구이다. 이런 이유로 화폐의 유통은 결국 상업을 부추긴다. 성호는 화폐가 유통되면서 백성들이 장사로 얻을 수 있는 몇 갑절의 이익을 바라고 쟁기를 팽개치고 시장을 떠돌기에 농 사를 망치고 있다고 말한다. 검소한 삶을 가치있게 여기도록 하려면 사치를 금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화려한 옷과 장신구, 원근의 크고 작은 기호품을 구입하는 데 돈보다 편리한 것은 없다. 최소한의 상업, 화폐없는 세상 - 성호, 세상을 논하다(강명관) 316

317 토색질을 금지하는 것 역시 화폐와 관련이 있다. 성호는 토색질을 금지하려면 먼저 토호를 억제해야 하며, 토호의 작간은 고리대금업 보다 심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귀족과 부호들은 억만의 돈을 쌓아놓고 있다가 풍년이들면 곡식을 사들여서 개인적으로 비축해놓는다. 그 러다 흉년이 들면 곡식을 내다팔아 돈을 빨아들인다. 거기다 관청의 세금과 사채를 한꺼번에 돈으로 내라 고 독촉하기 때문에 백성은 그해 수확을 깡그리 긁어내어 갚는다. 겨울을 나기도 전에 여덟 식구가 벌써 굶주리게 된다. 이것이 일 년 내내 부지런히 몸을 부려 얻은 재물이 백성에게 있지도 않고 나라에 있지도 않고, 남김없이 놀고먹는 무뢰한 자들에게 돌아가는 이유다. (제16권 인사문, 벼슬길은 넓고 돈은 많다 仕 廣 錢 多 ) 성호의 화폐 폐지 주장이 허황한 소리로 들리는가. 금융자본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월스트리트를 지 배하는 극소수 인간의 탐욕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궁핍으로 몰아넣는다.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낸 화폐의 노예가 되었다. 화폐가 없는 세상을 꿈꾼 성호의 말은 결과 허황하지 않다. 이익인가 박제가인가 성호보다 한 세대 뒤에 활동했던 박제가는 국내 상업은 물론 국제적인 무역을 통해 물자를 유통시켜 생산 을 자극하자고 주장했다. 박제가가 상업과 무역이 갖는 긍정적인 속성을 지적한 반면 성호는 그 반대편의 어두운 그늘을 지적한다. 모든 교환과 무역은 균등하지 않고 불균등하다는 것이 성호의 관점이었다. 성호 최소한의 상업, 화폐없는 세상 - 성호, 세상을 논하다(강명관) 317

318 는 농민이 모두 토지를 갖는 소농이 되어 먹고 입을 것을 스스로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삶이 윤택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 무역에 목을 매고사는 한국사회는 성호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 다. 농업을 보호하기는 켜녕농업을 해체하여 한국의 자본주의가 발달했다고 주장하며 자동차와 휴대폰을 팔기 위해 농업을 포기한다고 선언까지 한 바 있다. 하지만 이게 올바른 길인가. 인간의 미래를 위해서라 면 박제가가 아닌, 성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의 상업, 화폐없는 세상 - 성호, 세상을 논하다(강명관) 318

319 이용후생 - 북학의(박제가 박제가) :25 이용후생( 利 用 厚 生 ) 북학의 자서( 自 序 ) 이용( 利 用 )과 후생( 厚 生 )은 둘 중 하나라도 갖추어지지 않으면 위로 정덕( 正 德 )을 해친다.1) 따라서 공자께서 인구를 불리고 풍족하게 해 주며 그 다음에 백성에게 교화를 베풀어 라! 2)라고 말씀하셨고, 관중( 管 仲 )은 의식( 衣 食 )이 풍족해진 다음에 예절을 차리는 법이 다 라고 말했다. 현재 백성들의 생활은 날이 갈수록 궁핍해지고 있다. 상황이 이런 데도 불 구하고 사대부가 팔짱을 낀 채 바라만 보고 구제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습속에 젖어 편안히 안락을 누리면서 실정을 모른 체할 것인가? ( 朴 齊 家 의 北 學 議 自 序 ) 이용후생 - 북학의(박제가) 319

320 1) 서경 ( 書 經 ) 대우모 ( 大 禹 謨 )에 나오는 구절로 우( 禹 )가 순( 舜 ) 임금에게 아뢴 내용이다. 덕은 선 정을 베푸는 것에 있고, 정치는 백성을 기르는 데 있습니다. 물과 불과 쇠와 나무와 흙과 곡식을 잘 가꾸 시고, 정덕과 이용과 후생을 조화롭게 성취하십시오 ( 德 惟 善 政, 政 在 養 民, 水 火 金 木 土 穀, 惟 修 : 正 德 利 用 厚 生, 惟 和.) 여기서 정덕은 백성의 덕을 바로잡는 것을, 이용은 백성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것을, 후생 은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생각은 진상본 의 농업과 잠업에 대한 총론 에 서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박제가의 주장은 박지원의 열하일기 ( 熱 河 日 記 ) 도강록 ( 渡 江 錄 )에서 이 용이 있은 뒤에야 후생이 가능하고, 후생이 있은 뒤에야 덕을 바로잡을 수 있다. 쓰임을 편리하게 하지 못 하고서 삶을 풍요롭게 누릴 수 있는 자는 거의 없다. 삶을 풍요롭게 누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떻게 그 덕 을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 利 用 然 後 可 以 厚 生, 厚 生 然 後 正 其 德 矣. 不 能 利 其 用 以 能 厚 其 生, 鮮 矣. 生 其 不 足 以 自 厚, 則 亦 惡 能 正 其 德 乎?)에서도 비슷하게 주장되고 있고, 연암집 ( 燕 巖 集 ) 홍범우익서 ( 洪 範 羽 翼 序 )에서도 이제 내가 오행의 쓰임에 대해 먼저 말할 텐데 그것으로 구주( 九 疇 )의 이치를 쉽게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용이 있은 뒤에야 후생이 가능하고, 후생이 있은 뒤에야 정덕이 가능하기 때 문이다 ( 今 吾 先 言 五 行 之 用, 而 九 疇 之 理 可 得 而 明 矣, 何 則? 利 用 然 後 可 以 厚 生, 厚 生 然 後 德 可 以 正 矣 )라고 재차 언급된다. 비슷한 사유를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 이 말은 논어 ( 論 語 ) 자로 ( 子 路 )에서 공자께서 위나라에 가셨을 때 염유가 말을 몰았다. 공자 께서 백성들이 많구나! 라고 말씀하시자 염유에 백성들이 많은 다음에는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요? 라고 물었다. 공자께서 그들을 부유하게 만들고...교육을 시켜라! 라고 말씀하셨다.( 子 適 衛, 신 有 僕. 子 曰 : 富 之,... 曰 敎 之 )라고 한 것을 말한다. 이용후생 - 북학의(박제가) 320

321 정조대왕 치세어록(안대회 안대회) :24 정조치세어록 글과 말을 적극적으로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한 말의 정치가 한국의 역대 통치자 가운데 글을 가장 많이 쓴 사람이 바로 정조다. 정초처럼 글을 많이 쓴 통치자는 세계 적으로도 그리 많지 않다. 어릴 때부터 날마다 일기를 써서 훗날 국가의 편년체 사서인 일성록( 日 省 錄 )의 모태가 되게 하였다. 게다가 정조는 중요한 글의 대부분을 자신이 직접 썼다. 그 점은 정말 특별하다. 한 정조대왕 치세어록(안대회) 321

322 술 더 떠 말도 많이 했다. 정조는 과묵한 군주가 아니었다. 말과 글이라는 의사소통의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자신의 통치이념과 마음을 분명하게 백성들과 신하들에게 밝혔다. 그런 점에서 정조는 글과 말 을 적극적으로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한 말의 정치가였다. 신하들과 자주 대화의 자리를 갖고 다양한 주제 로 논쟁을 했다. 그는 어느 국왕보다도 자주 대궐 밖으로 나가 시민들을 불러모아 그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자기의 의도를 밝혔다. 심지어는 굶주린 지방의 백성들이 서울에 떼를 지어 몰려오자 정조는 직접 그들을 만나 사연을 듣고 위로하였다. 요컨대 정조는 백성들과 신하들을 직접 대면하여 의사를 소통하는 것에 큰 비중을 두었고, 글을 통해 자기 생각을 적극적으로 밝힘으로써 나라를 이끌고자 애썼다. 백성이 배고프면 나도 배고프다 임금님이 기거하는 침실의 동쪽과 서쪽 벽에 재해를 입은 여러도를 세 등급으로 나누어 고을 이름과 수령 의 성명 및 세금 경감과 구휼과 관련한 각 조목을 죽 써놓았다. 한 가지 일을 할 때마다 그 위에 친히 기 록하셨다. 그리고는 신하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백성이 배고프면 나도 배고프고 백성이 배부르면 나도 배부르다. 더구나 재해를 구하고 피해를 입은 백 성을 돌보는 것은 특히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서둘러야 한다. 이것은 백성의 목숨이 달려 있는 사안이므로 잠시라도 중단할 수 없다. ( 民 飢 卽 予 飢, 民 飽 卽 予 飽, 況 救 災 恤 荒, 尤 當 汲 汲 如 不 及, 此 是 民 命 所 關, 不 可 斯 須 間 斷 ) 況 : 하물며, 더욱 尤 : 하물며, 더욱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양육하는 방법 편안하게 하고 양육하는 방법이 있다. 맹자는 항상 恒 産 이 있으면 항심 恒 心 이 있다 고 하였다. 생업을 잘 꾸려 재산을 넉넉하게 만드는 것은 물건을 베푸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온 나라 안 백성이 농업에 힘쓰고 부역과 세금을 가볍게 매겨 위로는 부모를 섬기고 아래로는 처자를 부양하여 절박한 고통은 없이 편안히 삶을 영위하는 즐거움을 누린다면, 백성의 생업은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풍족하고 백성의 마음은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안정될 것이다. 다만 생업을 잘 꾸려 재산을 넉넉하게 하는 길은 나 홀로 위에서 운영할 수 없다. 진실로 국왕의 근심을 나누어 가진 신하들이 어떻게 왕명을 펼치느냐에 달려 있다. 임금은 나 를 버린다 임금된 자의 도량은 그와는 반대이다. 나 라는 한 글자를 버리고, 꺼리지 않고 말하도록 문호를 넓게 열어 숨김이 없는 말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남의 결점까지 산의 숲처럼 숨겨주고, 더러운 것까지 강 정조대왕 치세어록(안대회) 322

323 과 바다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가슴속에 쌓아둔 것을 남김없이 털어놓을 수 있도 록 만들어야 한다. 민심은 무형의 성이다. 성 城 이란 옛 사람들이 갑작스런 난리에 대비하려는 목적에서 쌓은 것이다. 그러나 민심을 껴안는 것은 無 形 의 성이고 성을 높이 쌓는 것은 有 形 의 성이다. 3천 명이 한마음이었기에 주나라 무왕 武 王 은 성을 쌓아 흥했고, 장성 長 城 을 만 리나 쌓아 난을 대비했으나 진시황은 그 때문에 망했다. 城 者 (성자), 古 人 所 以 築 斯 待 暴 之 意 (고인소이축사대폭지의). 然 拱 以 衆 心 (연공이중심), 無 形 之 城 也 (무형지성야). 屹 彼 崇 墉 (흘피숭용), 有 形 之 城 也 (유형지성야). 故 三 千 同 心 (고삼천동심), 周 武 所 以 築 斯 而 興 (주무소이축사이흥), 萬 里 延 袤 (만리연무), 秦 皇 所 以 待 暴 而 亡 (진황소이대폭이망) 새로워야 눈이 번쩍 뜨인다 사람이란 낡은 것에는 무덤덤하고 새것이라야 귀가 솔깃하고 눈이 번쩍 뜨이는 법이다. 그래서 새로운 관 직을 만들고 인선에 최선을 기하여 나라와 사람 모두가 이 사람이라야 이 자리에 적임자라고 인정해야 한 다. 그래야만 행실을 장려하고 예술을 진흥시키는 길에 보탬이 되리라 정조대왕 치세어록(안대회) 323

324 세상에 버릴 인재는 없다 군주가 인재를 쓰고자 할 땐 제 아무리 작은 재간을 가졌어도 버려도 좋을 만한 사람은 없다. 흠결이 있는 큰 인물과 장점이 있는 작은 인물까지 다 거두고 끌어안아, 포용하고 양성하는 나의 무리 속으로 들어가도 록 해야 한다. 누군들 버리고, 누군들 쓰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가르쳐도 따르지 않고 이끌어도 따르지 않 는다면, 그 때에는 죄를 묻고 물리치며 섬으로 변방으로 귀양을 보낸다. 이들이 개과천선하면 다시 기용하 고 그렇지 못하면 그만이다. 그 중에서 어둡고 완고하여 개과천선할 줄 모르는 자나 화내고 원망하며 개과 천선하려 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나라를 어지럽히고 해치는 신하이므로 만물을 살리는 천지와 같은 어진 임금이라도 용서할 수 없다. 죽이고 없애도 아까울 것이 없다. 大 抵 人 君 用 人 (대저인군용인), 雖 斗 之 才 (수두소지재), 元 無 可 棄 之 人 (원무가기지인). 尺 朽 寸 長 (척후촌장), 猶 當 俱 收 竝 蓄 (유당구수병축), 使 得 備 於 涵 容 鑄 之 列 (사득비어함용도주지열), 則 何 人 之 可 棄 (즉하인지가기), 何 才 之 不 可 用 哉 (하재지불가용재)? 如 有 敎 之 而 不 率 (여유교지이불솔), 導 之 而 不 我 從 (도지이불아종), 則 於 是 罪 之 斥 之 (즉어시죄지척지), 瘴 癘 之 魑 魅 之 (장려지리매지), 能 變 則 復 用 (능변즉복용), 不 能 變 則 已 之 (불능변즉이지). 或 冥 頑 而 不 知 變 (기혹명완이부지변), 怨 而 不 欲 變 (원대이불욕변), 則 是 亂 臣 也 賊 臣 也 (즉시난신야적신야), 雖 天 地 好 生 之 仁 (수천지호생지인), 不 得 以 貸 之 (부득이대지, 則 誅 之 之 (즉주지극지), 無 惜 也 (무석야). 홍재전서 권 133, 고식 5, 대동의 길로 나가자 과인이 세손으로 있을 때부터 당쟁의 폐단을 깊이 알고 있어서 선악을 뒤섞어 놓거나 옳고 그름을 동일하 게 처리하는 것으로 당평책의 귀결을 삼아서는 결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중략) 이제부터 나를 섬기는 조정의 신하들은 이 당이다 저 당이다 하지 말고, 또 느슨한 주장이다 준엄한 주장 이다 하지 말라! 일체 예전 폐습을 씻어버리고 다함께 대동( 大 同 )의 길로 나아가 나라와 더불어 기쁨과 정 의를 나누도록 하라.(중략) 이제부터 나는 기용하고 내칠 때 당파와 색목 두 단어를 먼저 마음에 새겨두지 않고 오로지 그 사람됨만 을 보아 어진 이를 기용하고 모자란 이를 내칠 것이다. 대동단결을 위해서는 조직을 통합시킬 새로운 비전이 있어야 한다. 정조대왕 치세어록(안대회) 324

325 정조대왕의 묘인 건릉(경기도 화성시 소재) 나라의 뿌리를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종합해서 말하면, 지금 나라의 피폐함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큰 병에 걸린 사람이 원기가 쇠약하고 혈맥 이 막히고 혹이 불거진 꼴이다. 기강이 문란하여 임금이 존엄하지 못하고, 언로는 막혀 강직한 말이 나오 지 않으며, 역적인 잇달아 발생하고 의리 있는 자는 갈수록 숨어든다. 위기의 증세가 심해 아침저녁을 기 다릴 만큼 절박하다. 이번에 특별히 네 개의 조목을 말한 목적은 나라의 뿌리를 튼튼하게 만들자는 데 있 다.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길은 백성에게 달려 있고, 백성을 배양하는 길은 먹을 것에 달려 있으며, 먹을 것이 풍족해야 교육이 가능하다. 교육하고 난 다음에도 반드시 조심스럽게 지켜주고 도와주어 이익을 베풀어야 한다. 이것이 나라를 보존하는 큰 근본이다. 아! 오늘날 나라의 형평을 한번 살펴보라! 개혁한ㄴ 것이 옳겠 는가? 아니면 답습하는 것이 옳겠는가? 큰 저택이 기울면 기둥 하나라 막기 어렵고, 온갖 냇물이 한꺼번 에 터지면 조각배로는 건너기 어렵다. 정조대왕 치세어록(안대회) 325

326 창조적 계급 - 리처드 플로리다 :54 창조적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creative class) 리처드 플로리다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란 무엇인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의 내용을 알 수가 없다. 개념조차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창조경제는 연구소와 산업현장의 일터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결코 공무원들의 책상앞에서 만들 어지는 것이 아니다. 직원들과 함께 모여 창조성을 통해 기술혁신을 이뤄내고 새로운 방법을 창안해내 는 것이지 개념을 두고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창조적 계급 - 리처드 플로리다 326

327 창조경제를 개념화 시킨 사람은 리처드 플로리다 토론대대학교 교수인데 그는 그의 저서 "창조계급 CREATIVE CLASS" 창조경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드러커는 기초적 경제 자원, 경제용어로 말하자면 생산수단 은 더 이상 자본도 아니고, 자연 자원도 아니며... 노동 도 아니다. 그것은 지식이고 앞으로도 지식일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창조 성 - 지식에서 유용한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는 것 - 이 주요한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내 공식에서 지 식 과 정보 는 창조성의 도구이자 재료이다. '혁신'은 새로운 기술적 인공물의 형태이건 새로운 사업 모델 혹은 방법이건 간에 창조성의 산물이다. 창조성, 창조계급의 개념은 개념 자체에 갖고 있는 것처럼 개념이 확실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다. 왜냐하면 사회의 변화가 현재도 진행 중이며, 창조계급 자체가 스스로도 계급의식을 갖고 있지도 않다. 박근혜정부는 침체에 빠진 한국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창조성을 바탕으로 우리 경제를 혁신하자는 것이 다. 따라서 창조경제는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창조적 계 급은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기술, 새로운 독창적 내용을 창조한다. 정부와 공기업, 그리고 민간에서 이 러한 창조적 계급들이 혁신을 만들어내는 것이 창조경제이다. 플로리다의 창조적 계급 이 책은 새로운 사회계급의 대두에 관해 다루고 있다. 당신이 과학자나 기술자, 혹은 건축가나 디자이너, 작가, 예술가, 음악가라면 그 계급의 일원이다. 또 사업, 교육,건강관리, 법 분야나 다른 직종에 종사하면 서도 창조성을 중요한 업무요소로 활용하고 있다면 역시 그 계급의 일원이라 할 수 있다. 국가 노동인구의 30% 이상에 해당되는 3,800만명이 미국의 창조적 계급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일의 방식, 가치관과 욕구, 일상생활의 구조 등에서 깊고 심각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으며, 계속에서 가져올 것이다. 창조적 계급은 창조성을 조달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독자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 창조성은 경제 성장의 원 동력으로서, 그 영향력에 의해 창조적 계급은 사회의 지배적인 계급이 되었다. 이 새로운 계급의 부상과 그 가치를 이해해야만 외관상 관련 없어 보이는 우리 사회의 전면적인 변화들을 이해할 수 있고, 미래를 보다 더 지혜롭게 펼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창조적 계급 - 리처드 플로리다 327

328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광범위한 사회 변화는 삶과 일의 방식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변화들, 즉 우 리의 일터, 여가 활동, 공동체, 일상생활에서 점점 축적되고 있는 변화들과 관계가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 다. 우리가 추구하는 다양한 생활양식에서부터 자신의 스케줄을 짜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여기에는 공통된 사실이 있었다. 경제 성장의 근본 적 원천으로서 창조성의 역할과 새로운 창조적 계급의 부상이 바로 그것이다. 사회는 굉장히 분별 있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그 변화를 이끄는 논리는 이 시점에서 불확실한 것이다. 여전히 변화는 계속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다양하면서도 외관상으로 무관해 보이는 많은 실마리들이 동시에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한 양상이 깊어질수록 이제 그 변화를 이끄는 힘은 분명해지고 있다. 그 원동력은 경제화 사회의 핵심요소로서 인간 창조성의 부상이다. 창조적 계급 리처드 플로리다 토론토대 교수 여기서 나는 커다란 역설에 직면했다. 심지어 내가 창조적 계급의 부상과 영향력에 기술하고 있는 동안에 도 창조적 계급의 구성원들은 그들 자신을 하나의 계급(class, 공통의 기질과 관심사를 가진 긴밀한 사람 들의 집단)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실상 자신들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그들이 주도하고 있는 사회적 변화에 의식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당혹스런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식경제 창조성 창조적 계급 - 리처드 플로리다 328

329 우선 경제 영역에 대해 생각해 보자. 많은 사람들이 현재 우리가 정보 경제 혹은 지식 경제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사실은 우리 경제가 지금 인간 창조성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창조성은 경제적 이익의 결정적인 원천이다. 자동차에서 패션, 음식산업, 정보기술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전 산업 분야에서의 승자는 창조할 수 있으며 계속 창조할 수 있으며 계속 창조하는 사람들이다. 창조계급의 규모 경제가 창조성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새로운 계급, 소위 창조적 계급의 부상으로 드러났다. 고용된 전 인구의 30%에 해당되는 3,800만의 미국인들이 이 새로운 계층에 속한다. 나는 창조적 계급의 핵에 과학, 공학, 건축, 디자인, 교육, 미술, 음악, 엔터테인먼트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포함시킨다. 그들의 경제적 기 능은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기술, 새로운 독창적 내용을 창조하는 것이다. 창조적인 환경 오늘날의 전문가들은 그들 자신을 법인의 관리나 조직인간이 아닌 광범위한 창조집단의 일원으로 간주한 다. 따라서 그들은 고무적인 창조적인 환경, 즉 기회와 문화시설 뿐 아니라 다양성에 개방적이고 그들 자 신을 표현하고, 그들의 독자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역에 끌린다. 우리 시대의 깊고 지속적인 변화는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변 화는 감지하기가 더 어렵다. 그러한 변화는 작고 점진적인 변화가 일상생활에 점차 축적되어 발생하기 때 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수십 년 동안 쌓이다가 이제 와서야 표면에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창조적 경제 창조적 계급 - 리처드 플로리다 329

330 오늘날의 경제는 근본적으로 창조적 경제이다. 나는 선진국들이 정보 기반의 지식 경영 경제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분명 동의한다. 지식 경제 의 부상을 개괄적으로 설명한 피터 트러커 는 이 견해의 가장 유명한 대표자이다. 늘 선견지명이 있는 드러커는 이렇게 기술했다. 기초적 경제 자 원, 경제용어로 말하자면 생산수단 은 더 이상 자본도 아니고, 자연 자원도 아니며... 노동 도 아니 다. 그것은 지식이고 앞으로도 지식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창조성 - 지식에서 유용한 새로운 형태를 창 조하는 것 - 이 주요한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내 공식에서 지식 과 정보 는 창조성의 도구이자 재 료이다. '혁신'은 새로운 기술적 인공물의 형태이건 새로운 사업 모델 혹은 방법이건 간에 창조성의 산물이 다. 창조적 계급 - 리처드 플로리다 330

331 아버지, 어머니 형이 서기관 승진했어요 :07 아버지, 어머니! 형이 서기관 승진했어요 새해시작과 함께 온 집안경사 새해가 시작되었다. 올해는 갑오년, 청마의 해라며 서로들 행운을 기원해준다. 그런데 우 리 집안에 경사가 터졌다. 셋째형 형수한테 카톡으로 형이 서기관 승진했다는 소식이 전해 왔다. 형은 연말부터 가슴앓이를 했었다. 최근 몇 년동안 승진에서 밀렸기 때문에 정년을 감 안하면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 듯 싶은데 기도하는 마음으로 안타깝게 지켜볼 수 밖에 없었 다. 그런데 이번에 승진한 것이다.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다. 날아갈 듯 하다. 너무 기뻐 눈 물이 흐르는데 돌아가신 부모님이 이 소식을 아시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하니 눈물을 참 을 수 없다. 어려운 가정 형편때문에 대학을 접고 공무원의 길로 아버지, 어머니 형이 서기관 승진했어요 331

332 대학 예비고사에 실패한 뒤 바로 군에 입대했고 제대후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집안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사실 대학에 합격해도 막막하였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 니까. 고등학교 때 어머니는 저에게 이놈아, 우리 형편에 어떻게 대학을 가냐 고 하셨다. 아버님이 내가 네 살 때 돌아가시고 7남매의 어려운 살림을 꾸려온 어머니로서는 당연한 말 씀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기를 꺽는 말씀이셨지만 일찍 철이 들어 어머니를 이해하고 있 었기 때문에 한번도 그 말을 들을 때에도 서운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형은 9급공무원 이었는데 당시 형은 나에게 기어이 군수까지 한다 고 말했다. 당시는 지금과 같이 투표 로 군수를 뽑는 것이 아닌 임명직이었고 군지역은 서기관이 군수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드 디어 형이 그런 서기관에 오른 것이다. 적극적인 공직생활 공직에 있으면서 항상 긍정적인 자세를 넘어 적극적인 자세로 일을 했다. 지방공무원이면서 도 인맥을 넓게 쌓았다. 중앙부처든 감사원이든 형은 관계를 맺고 이어나갔다. 일을 하면서 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나에게도 가끔씩 청와대에, 아니면 중앙부처에 아는 사람이 있는 지를 물었다. 국회에 있을 때는 부군수를 모시고 와서 예산을 확보하고 가셨다. 전남도지사 를 몇 분이나 모셨다. 그만큼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형이 서기관 승진했어요 332

333 형수님, 형이 꿈을 이루도록 뒷받침해주셔서 감사해요 드디어 꿈을 이뤘다. 나는 형수한테 형이 꿈을 이루도록 뒷받침해주셔서 감사해요 란 말 을 전했다. 형이 몇 년동안 승진에서 밀리면서 사실 마음고생이 많았어요 라고 하신다. 곁에서 얼마나 안타까워 하셨을까. 벌써 큰 형은 영광에서 광주로 올라오셔서 저녁을 사주 시고 가셨단다. 얼마나 기쁘셨을까. 아버지 돌아가시고 가장의 역할을 해오신 큰 형은 항상 동생들이 의지하는 기둥이었다. 그런데 동생이 서기관에 승진했다니 담박에 올라오신 것 같 다. 열흘이 지났지만 아직도 흥분이 가라않지 않고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글썽해진다. 아버지, 어머니 형이 서기관 승진했어요 333

334 속환녀, 정신대 - 역사의 교훈을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태백산맥 태백산맥, 조정래) :49 병자호란-속환녀 속환녀, 일제시대-정신대 정신대, 역사의 교훈을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임진왜란 7년동안 거의 전 국토가 유린되면서 얼마나 많은 조선의 여인들이 짓밟혀는가에 대해 눈을 감고 있다. 논개라는 의기의 충절에 대해 말하면서 많은 여인들이 짓밟힌 것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 속환녀, 정신대 - 역사의 교훈을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태백산맥, 조정래) 334

335 병자호란 때에도 수만명의 여인들이 끌려갔고 돌아온 여인들을 화냥년이라 비난하며 진실을 외면했다. 일제시대에 정신대문제도 일부에서 문제를 제기하고는 있지만 정치권이 전면적으로 나서고 있지는 않다. 박근혜대통령은 줄기차게 정신대문제의 사과를 요구하며 정상회담을 거부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여야를 떠나고 보수와 진보를 떠나 이제 이 문제의 진실을 깨닫고 일본의 진정어린 사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리고 역사에서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힘이 없을 때는 항상 이런 참혹한 비극을 겪어야만 한다는 것을, 그것은 어제의 일이 아니라 오늘의 일이며 내일의 일이다. 그것은 결코 역사에서의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우리가 역사에서의 교훈을 잊는다면 오늘과 내일의 우리의 딸들의 문제일 수 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시대 이 땅의 여성들이 겪어야만 했던 참혹한 실상들을 알아야 한다. 최대한 관 련 도서와 자료를 찾아야겠다. 태백산맥과 정신대 문제 결혼-여자와 사는 것, 아니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여자와 성을 나누는 것, 그것은 생각만 해도 저항감이 치미는 일이었다. 그가 동정을 떠나보낸 것은 버마 전선에서였다. 상대는 정신대여자였다. 여자의 음부가 그렇게 진저리처지게 추악하고 토악질나게 더러운 것인 줄은 물랐었다. 천막 안으로 뛰어들어 발기한 그 것을 정신없이 여자사타구니 사이에다 디밀었고, 그리고, 배설이 몰아오는 폭풍에 휩쓸려 정신이어릿거리 다가 풍덩 빠져버린 허망한 구덩이, 바지를 추슬러올리다가 문득 눈길이 멎은 곳, 그것은 노출되어 있는 여자의 음부였다. 붉은 속살을 드러내며 헤벌어진 음부는 가래침 같기도 하고, 고름같기도 한 정액을 머금 고 있었고, 음부꼬리로는 그것이 질질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거무튀튀한 색깔의 음부 가장자리는 정액이 맥질이 되었는데, 듬성듬성 난 음모들은 맥질된 정액의 끈끈함에 풀 죽어 거무튀튀한 피부에 달라붙은 채 속환녀, 정신대 - 역사의 교훈을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태백산맥, 조정래) 335

336 어지러운 무뉘를 수놓고 있었다. 시궁창! 그 느낌과 함께 토악질을 하며 천막을 뛰쳐나왔다. 수많은 남자 들이 싸질러 놓은 정액을 닦아낼 여유도 없이 음부를 드러내놓고 있는 그 여자가 바로 동족이라는 사실을 환기한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그후로 여자와 성관계를 해본 적이 없었다. 젊은 육신이 일으키는 성욕은 수음으로 처리되었고, 깨끗한 여자의 그곳이 그럴 리가 없다고 스스로를 일깨우고 생각을 고쳐먹으려 애 써보았지만 첫 경험을 통해 판 박혀진 그 더러움과 추악함은 이겨내지지 않았다.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여자는 전쟁의 수라장 속에서 살아나기나 한 것일까. 목숨을 부지했다면 고향 으로 돌아오기는 했을까. 어찌할 수 없이 수음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그 기억에 사로잡히고, 그 기억 을 찢어대며 안쓰러운 마음으로 떠올려야 했던 그 얼굴을 기억할 수조차 없는 여자에 대한 염려, 심재모는 그 생각을 다시 되풀이하고 있었다. 다시 고향에 돌아왔다 한들 그 몸으로 어떻게 살까. 시집을 갈 수도 없을 것이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못 견뎌 고향에서 살 수도 없을지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을 잇고 있는 심재모의 머리를 스치는 말이 있었다.남자의 강간은 범죄로 생각하지도 않고, 강간을 당한 여자는 그것이 사건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일반적 현상이라는 권 서장의 말이었다. 심재모는 자신이 그 여자에 대해서 했던 생각이 바로 권서장이 했던 말의 반증인 것을 깨달았다, 그 여자가 무슨 잘못을 저질로 손가락질을 당하고, 고향에서 쫒겨나야만 하는가. 그 여자는 가엾고 불쌍한 피해자일 뿐인 것이다. 나라 잃어버린 남자들의 빙충맞음으로 여자들이 당한 수난이었다. 그렇게 고통 받 은 여자들이 도대체 몇 명일까. 일본놈들은 극비에 붙인 채 전국 방방곡곡에서 여자들을 강제로 끌어갔으 므로 그 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고, 그 여자들은 만주에서 버마에 걸치는 광대한 동남아 전선에고루 보내졌기 때문에 그 수는 상상보다 많을 것이리라. 3만...아니 5만, 심재모는 고개를 갸웃했다. 7만... 그 전선이 얼마나 넓은데, 10만...심재모는 더 이상의 수를 헤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은 다 어찌 된 속환녀, 정신대 - 역사의 교훈을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태백산맥, 조정래) 336

337 것일까. 분명 해방이 되었는데도 그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회적으로 한 번도 거론된 일이 없지 않았는 가. 심재모로서는 그건 너무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임시정부가 귀국해 대대적인 환영식을 벌이고, 광복군 이 의기양양하게 귀국해서 기세를 올리고, 죽음을 면한 학도병들은 끌려갈 때와는 정반대의 당당함으로 개선 아닌 개선을 앞세우고 돌아와 조직체를 만들고 법석이었는데정신대라는 존재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사회는 여자들이 당한 일이라서 대수롭지 않게 여겨 잊어버리고 말았을까. 정신대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면 나라 체면을 깍고위신을 손상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덮어버리고 만 것일까. 여자들 스스로가 창피스럽고 부끄러워 남모르게 꼭꼭 숨어버린 것이었을까. 심재모는 무수하게 반 짝이는 별들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있었다. 속환녀, 정신대 - 역사의 교훈을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태백산맥, 조정래) 337

338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 안도현 시 감상 :37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안도현 연탄재 발로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자신의 몸뚱아리를 다 태워가며 따끈 따끈한 아랫목을 만들 던 저 연탄재를 누가 감히 함부로 발길질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는가? 자신의 목숨을 다 버리고 이제는 하얀 껍데기만 남겨 놓은 저 연탄재를 감히 누가 함부로 발길질을 할 수 있는가?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 안도현 시 감상 338

339 내가 누구에게 짓밟혔을 때 많이 위로해주던 시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짓밟힌다고 하는 것 견디기 어려운 슬픔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따뜻함이 되고 타버린 뒤에도 다른 사람이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길을 만들어주는 연탄재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우리 모두가 그러한 연탄재가 됩시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 안도현 시 감상 339

340 박근혜 대통령과 창조경제4인방 인방-빌 게이츠, 마크 저크버그, 카젠버그, 스티브 잡스 :59 대한민국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과 창조경제4인방-빌 게이츠, 마크 저크버그, 카젠버그, 스티브 잡스 340

341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마크 저크버그 페이스북 회장 박근혜 대통령과 창조경제4인방-빌 게이츠, 마크 저크버그, 카젠버그, 스티브 잡스 341

342 <카젠버그 드림웍스 대표> 박근혜대통령은 창조경제의 4인방이라 불리우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 마크 저 크버그 페이스북 회장, 카젠버그 드림웍스 대표, 스티브잡스 애플 회장 중 고인이 된 스티 브 잡스를 제외한 3명과 면담했다. 이들로부터 창조경제에 대한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다. 창 조경제를 배우려는 사람들은플로리다 교수의 '창조적 변화를 주도하는사람들'이라는 책과 창조경제4인방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하기 바란다.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를 비판하려면 이러 한 이해의 바탕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현재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창조경제는 없다 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창조경제는 이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미래이다. 그리고 그것 은 고정된 이론일 수 없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의 창조경제에 대한 글이 있어 퍼온다 박근혜 대통령과 창조경제4인방-빌 게이츠, 마크 저크버그, 카젠버그, 스티브 잡스 342

343 박근혜 정부 창조경제-스티브잡스에게 배워라 ( 想 像 의 라이프 2.0에서 퍼옴) 박근혜 새정부의 핵심국정과제인 창조경제 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꾸준히 창조경제라는 개 념을 설명하고 있으나, 국회나 언론은 그 실체가 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이런 상황이 되자 박근혜대통령은 지난 4월3일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새정 부가 추구하는 창조경제는 과감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며 창의성을 우리경제 핵심가치로 두고 과학기술과 ICT(정보통신기술) 융합을 통해 산업과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과 문화가 융합해서 새로운 부가 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 이라고 직접 설명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대통령의 직 접적인 진화에도 불구하고 창조경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연두 각부처의 업무보고를 내용을 보면 과거 MB정부 때의 정ㄹ책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을 뿐 만 아니라 과거 같은 구태의연한 방식에 그대로 머물고 있어 정말 창조경제란 것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 심스럽다. 박근혜 대통령과 창조경제4인방-빌 게이츠, 마크 저크버그, 카젠버그, 스티브 잡스 343

344 창조경제 개념부터 모호하다 창조경제(Creative Economy)란 용어를 처음 만들어 사용한 사람은 영국의 경영전략전문가인 존 호킨스 2001년 저서인 <창조경제 The Creatiove Economy)에서 창조경제란 새로운 아이디어, 즉 창의력으로 제 조업, 서비스업 및 유통업, 엔터테인먼트산업 등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 이라고 설명하고 창조경제를 연 구개발, 출판, 소프트웨어, TV와 라디오 방송, 산업디자인, 영화, 음악, 완구류, 광고, 공연예술, 건축, 공 예, 비디오게임, 패션, 미술 등 15대 분야로 분류하고 있다. 현재 영국, 호주, 이스라엘 등이 창조경제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데 새 정부의 창조경제는 이들의 개념 을 일부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1997년 블레어 저웁의 문화미디어스포츠부(DCMS)가 창조경제 정책 을 주도했다. DCMC는 광고, 건축, 예술품, 디자인, 영화, 음악, 소프트웨어 등 13가지의 분야를 창조산 업(Creative Industries)이라고 정의했다. 국제연합무역개발회의( 國 際 聯 合 貿 易 開 發 會 議, 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rade and Development, 약칭 UNCTAD)의 창조산업 에 대한 정의 및 분류도 아래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이와 유사하다. 그런데 이들의 창조경제는 문화산업이 중심이라는 점에서 문화외에도 ICT와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박 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창조경제론과 스티브 잡스 박근혜 대통령과 창조경제4인방-빌 게이츠, 마크 저크버그, 카젠버그, 스티브 잡스 344

345 그러면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창조경제란 무엇일까? 그동안 박근혜정부가 밝힌 창조경제 의 정의를 보 면 다음과 같다. 1 전혀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 2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를 추구하는 것 3 창의성을 우리경제 핵심가치로 두고 과학기술과 ICT(정보통신기술) 융합을 통해 산업과 산업이 융합하 고 산업과 문화가 융합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 등이다. 그런데 이러한 창조경제론 의 정의를 듣고 있으면 자연스레 한 인물이 떠오르는데 그 인물은바로 고인 이 된 애플의 전 CEO 스티브 잡스 이다. 스티브 잡스는 2007년 6월 아이폰을 선보이면서 스마트시대를 열었고 2010년 아이패드를 선보이면서 태블 릿PC시대를 열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대별되는 스마트혁명은 IT산업은 물론 우리의 디지털 라이프 자 체를 혁명적으로 바꾸어놓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 혁명은 계속되고 있다. 2008년 7월 애플이 앱스토어를 공식적으로 발표하면서 IT산업의 에코시스템은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이동통신사업자들에게 휘둘리 던 휴대폰단말기 제조업체 및 SW개발자들을 해방시켰고 누구나 자유롭게 앱을 등록할 수 있고 판매할 수 있는 앱스토의 개방형시스템은 그 뒤 IT산업의 표준이 되어버렸다. 애플의 모토가 다르게 생각하라 (Think Different)이다. 스티브잡스의 철학이기도 한 이 모토는 수많은 젊은이들과 개발자들에게 새로운사고의 틀을 제공하고 있다. 인문학과 IT의 결합이라는 어프로치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패션매장 같은 애플스토어는 IT제품을 단순히 전자제품으로만 취급 했던 우리의 사고의 틀을 깨버렸다. 애플은 패션트렌드를 선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첫 사례이다. 스 티브잡스야말로 혁신적인 제품을 창조해내며 세상을 열광시킨 이 시대의 아이콘이자 박근혜정부가 말하는 창조경제 의 상징적 아이콘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찌보면 박근혜정부가 꿈꾸는 창조경제는 스티브잡스와 같은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인재를 양성해 남보다 먼저 새로운 제품, 새로운 카테고리, 새로운 산업들을 만들어 냄으로써 경제를 성장시키고 일자리를 창조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창조경제, 스티브잡스에서 배워야 할 점 따라서 박근혜정부가 창조경제를 성공시키려면 스티브잡스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할 듯 하다. 박근혜 대통령과 창조경제4인방-빌 게이츠, 마크 저크버그, 카젠버그, 스티브 잡스 345

346 1. 장기적인 비전과 안목 스티브잡스는 그의 성공비결에 대해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 (Stay Hungry, Stay Foolish)고 말했다. 항상 갈망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우직하게 나아가는 것,열정과 꿈, 그 꿈을 이루기 위한 행동이야말로 스티브잡스의 삶에서 배워야 할 덕목이다. 창조경제란 당장 뭔가 손에 안 잡힐 수도 있으며 실패도 있을 수도 있다. 스티브잡스 역시 실패를 경험했 던 인물이다. 문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신이다. 창조경제는 박근혜정부 5년안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10년, 20년, 30년이 걸릴 수도 있다. 창조 경제의 핵심분야가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문화콘텐츠, 지식기반서비스 분야는 제조업과 달리 하루아침 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는 투자를 하지 않는다. 사업성과도 단기로 이루어 진다. 평가기준도 허울 뿐인 건수 위주이다. 이 때문에 창조경제가 정부주도로는 절대 만들어 질 수 없다 는 비관론이 팽배하다. 우리경제가 창조경제로 나아가려면 장기적 비전과 안목, 장기적 투자가 필요하다 하겠다. 2. 사고의 획기적인 전환 애플의 모토가 Think Different'이다. 사고와 발상의 전환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쉬운 일 이 아니다.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삼성전자가 세계스마트폰 시장점유율 1위 업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Fast Follower'에 불과하다는 평 가를 받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관료주의적이고 상명하달식 삼성전자의 조직문화 때문이다. 삼성전자 는 결코 애플 이나 구글 이 될 수 없다는 자조적인 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바로 창의 보다는 관리 를 비전(꿈)보다는 성과(실적) 를 중시하는 삼성전자의 풍토 때문이다. 정부는 삼성전자보다 더 관료주의적이고 상명하달식이며 관리중심, 단기성과중심의 풍토에 젖어 있다. 이 번 각 부처 업무보고 역시 내용을 보면 MB정부 때랑 다른게 전혀 없다. 약간씩 표현만 바뀌었을 뿐만 아 니라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부처간 이기주의나 칸막이도 여전하다. 따라서 우리경제가 창조경제로 나아가 려면 정부 및 산업계의 사고전환 및 이를 뒷밭침할 수 있는 시스템의 대수술이 필요하다 하겠다. 박근혜 대통령과 창조경제4인방-빌 게이츠, 마크 저크버그, 카젠버그, 스티브 잡스 346

347 3. 핵심인재의 육성 스티브잡스는 최고의 인재를 모으는 한편 팀을소규모로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팀을 세계 최고수준으 로 유지하기 위해서 스티브잡스는 최고가 아닌 직원이 수없이 해고를 해야한다고 믿었다. 일류팀이 한두 명의 이류를 넣으면 그 사람은 자기와 비슷한 수준의 이류를 모으려고 하기 때문에 회사는 결국 이류와 삼류투성이가 되어버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티브잡스가 사람을 뽑을 때문 단순히 실력만 보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대한 사랑과 위대한 제품을 만들 고자 하는 열정도 함께 봤다. 애플에서는 일이 힘들다. 위대한 제품을 만들기위해서 밤과 주말에도 일을 해야할 때가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열정이 중요하다. 또한 스티브잡스는 애플을 사랑하게 되면 애플을 위해서 최선을다할 것이고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따라 오게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애플을 사랑하는 사람을 직원으로 뽑았다고 한다. 이처럼 스티브잡스가 열정이 가득하고 애플을 사랑하는 최고의 인재들을 모으는데 집중했던 것처럼 우리경제가 창조경제로 나아가려면 열정이 가득하고 창의적인 핵심인재를 키우 는데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교육은 획일적이고 암기식 위주 교육이다. 대학입시 형 교육에다 하향평준화(2류3류만 대량생산하는) 교육 에 쩔어 있다. 따라서 우리경제가 창조경제로 나아 가려면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핵심인재를 육성할 수 있도록 교육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수술할 필요가 있다. 4. 소프트 파워 중심 애플의 혁신 뒤에서는 하드파워보다 소프트파워가 중심에 서 있다. 애플이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 채택한 기술들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고 그 안에 들어가는 부품들도 결코 혁신적이거나 최초가 아니다. 그럼에 도 애플 아이폰이나 아이패드가 혁신적 제품으로 분류될 수 있었던 것은 소프트웨어 및 디자인 혁신 때문 이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결코 하드웨어나제조업 육성에 있지 않다. 소프트웨어, 문화콘텐츠, 디자인, R&D 등 소프트파워가 중심이다. 이들 소프트파워가우선 커져야 애플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 소프트파워 부분은 쉽게 육성하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 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도 쉽지 않다. 하드웨어나 제조업은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첨단공정 및 설비를 갖춘 공장을 건설하고 기술개발을 통해 생 산혁신을 이루면 되지만 소프트파워 산업은 단순히 인프라만 구축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자생적인 발전 생태계를 조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심형첨단산업단지 -R&D-핵신인재 양성-상생협력 생태계-비지니스 환경 조성-인큐베이팅 및 벤쳐투자환경 등 매우 복잡다단한 정책이 필요하며 이들 정책은 관주도만으로는 박근혜 대통령과 창조경제4인방-빌 게이츠, 마크 저크버그, 카젠버그, 스티브 잡스 347

348 성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경제가 창조경제로 나아가려면 소프트웨어,문화컨텐츠, 디자인, R&D, 지식기반서비스등 소프트파워 산업을 키워야 하며 이를 위해서 하드웨어성 인프라투자보다 자생적 발전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혁신없이는 창조경제도 없다 위에서 몇가지 언급을 했지만 우리경제가 창조경제로 나아가려면 1창의적이고 열정적인 핵심인재의 양 성 2소프트웨어, 문화콘텐츠, 디자인, R&D 등 4대 소프트파워산업의 육성 3민간중심의 자생적 발전 생 태계 조성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선 국가 전반적 혁신이 우선 이루어져야 한다. 1창의적이고 열정적인 핵 심인재의 양성을 위해선 교육시스템의 혁신이 2소프트웨어, 문화컨텐츠, 디자인, R&D등 4대 소프트파워 산업의 육성을 위해선 정부의 조직, 인력, 예산, 사업관리시스템의 혁신이 3민간중심의 자생적 생태계 조 성을 위해선 벤쳐중심의 경제시스템 혁신이 필요하다. 혁신없이 창조경제는 있을 수 없다. 과거와 같은 구 태의연한 방식으로 창조경제를 만들겠다고 한다면 안 보나마나 실패로 끝날 것이다. 아예 기대 안하는 것 이 좋다. 朴 대통령 "어렵게 생각하면 답 안나오는 게 창조경제" 헤럴드경제 입력 :37 [헤럴드경제=홍성원 기자]박근혜 대통령은 17일 "어떻게 보면 너무 쉬운 것인데 너무 어렵게 생각하면 답이 안 나오는 것이 창조경제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미래창조과학부ㆍ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를 받고난 뒤 질의응답 시 간에 "창조경제가 무엇이냐 이야기하다보면 말로하기가 뭣한데 사실은 오늘 이런 성공사례들이 창조경 제"라며 "옛날에 '대장금'이라든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을 수출하는 것만 생각하면 창조경제가 아니고, 거기 다 생각을 더해서 '포맷을 수출하자'하고 발전하면 그게 또 창조경제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박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방통위 업무보고에서 '나는 가수다', '아빠 어디가' 등의 한류콘텐츠가 중국에서 시청률 1위라는 설명을 들은 뒤 나온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창조경제4인방-빌 게이츠, 마크 저크버그, 카젠버그, 스티브 잡스 348

349 박 대통령은 그러면서 "한류 콘텐츠 수출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이 것보다 좋은 일은 없다"며 "한류콘텐츠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세계 주류 문화로 지속 발전할 수 있도 록 정부와 민간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 민관 협력의 중요성을 스마트카(Car)를 예로 들어 설명하기도 했다. 그 는 "스마트 카 같은 것도 창조경제 아니겠습니까"라면서 "그런데 이 부분에 있어서 무언가 해 보려고 해도 인프라가 아직 부족하고 제도적인 어떤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이 부분은 정부가 나서서 민간하고 협력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창조경제의 정의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에 "경제주체들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과학기술과 IT를 접목하고 융복합을 촉진해 새로운 시장과 일 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홍성원 박근혜 대통령과 창조경제4인방-빌 게이츠, 마크 저크버그, 카젠버그, 스티브 잡스 349

350 1월30일은 병자호란 때 조선이 청에 굴욕적으로 항복한 날 :42 1월30일은 병자호란 때 조선이 청나라에 굴욕적으로 항복한 날 지금부터 377년 전인 1637년 1월30일은 조선이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굴욕적인 항복을 한 날이다. 지난 번에 한명기 교수의 병자호란 을 읽으면서 우리가 그날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병자호란은 정치지도자의 무능이 얼마나 백성들을 처참하게 만드는가를 잘 보여준다. 박근 혜대통령은 미국과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중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중국방문 때는 중국어로 대학생들에게 연설을 하고 정치지도자들과는 신뢰관계를 맺 고 있다. 지난번 방공식별구역 설정문제로 조성된 동북아의 긴장이 쉽게 해결된 것은 성공 적인 외교관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명나라는 쇠퇴하고 청나라가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국제정세에 눈을 감았다. 쇠퇴 하고 있는 명나라에는 군신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청나라는 오랑캐로 멀리했다. 떠오르는 거대 중국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피곤하다. 기존의 제국 이 쇠퇴하고 새로운 제국 이 떠오르는 전환기마다 한반도는 늘 위기를 맞았다. 지혜롭게 대 응하지 않는다면 G2시대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의 두 번의 전쟁을 치렀으면서도 조선 조정은 아무런 대책없이 병자호 란을 맞았다. 12월9일 압록강을 건넌 청군은 질풍같이 내달렸다. 이렇다 할 저항이 없었다. 무능한 조정은 1월30일은 병자호란 때 조선이 청에 굴욕적으로 항복한 날 350

351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오로지 전쟁이 일어나면 백성들은 어떻게 되든 임금과 조정 은 강화도로 피난을 가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청은 인조가 강화도로 도망가는 길을 차단해버렸고, 인조는 14일 저녁 남한산성에 도착했다. 불과 5일만의 일이다. 조선의 임금 인조는 1637년 1월30일 삼전도의 수항단에서 조선을 침략한 청나라의 홍타이지 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개과천선하겠다고 다짐한 뒤 소현세자와 신료들을 이끌고 삼배구고두례( 三 拜 九 叩 頭 禮 )를 행했다.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 아리는 의식이었다. 수십만명이 청나라로 끌려갔다. 끌려간 사람(피로인)들 가운데 여성들이겪어야 했던 고통은 더 처참했다. 사로잡힌 뒤 능욕을 당하거나 그것에 저항하다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청 군은 아이가 있는 여자라고 해서 봐주지 않았다. 젊고 예쁜 여자들은닥치는 대로 끌고 갔다. 당시 사로잡힌 여인들 가운데는 아이를 데리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았는데 청군은 여인들을 끌고 가면서 아이들을 죽이거나 내팽개치는 만행을 저질렀다. 저항하는 여인들은 살해되었 다. 1월30일은 병자호란 때 조선이 청에 굴욕적으로 항복한 날 351

352 청군 장수의 첩으로전락하여 심양에 도착한 여성들은 청군 장수의 만주족 본처들이 자행했 던 투기로 고통을 받았다. 심지어 조선 여인들에게 뜨거운 물을 끼얹거나 혹심한 고문을 가 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돈을 주고 사오는 속환을 통해 돌아온 것이 확실한 여성은 속환녀( 贖 還 女 ) 로, 어떤 방식 을 통해 돌아왔는지 확실하지 않는 경우에는 귀환여성( 歸 還 女 性 ) 이다. 인조실록을 비롯 한 어느 기록에도 환향녀( 還 鄕 女 )라는 용어는 나오지 않는다. 1월30일은 병자호란 때 조선이 청에 굴욕적으로 항복한 날 352

353 사대부 집안의 부녀자들은 오랑캐에게 실절( 失 節 )한 여자 라는 따가운 시선 때문에 고 통받아야 했다. 일부 신료들은 속환되어온 며느리에게 조상의 제사를 받들게 할 수는 없 다 며 이혼을 허락하라고 요구했다. 속환녀와의 이혼을 섣불리 허락해서는 안 된다는 반대 론도 있었지만, 대부분 사대부 집안 속환녀 들은 본래의 남편으로부터 버림받고 말았다. 1월30일은 병자호란 때 조선이 청에 굴욕적으로 항복한 날 353

354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아들에게 :35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아들에게 사랑하는 아들아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모든 청소년들이 성장의 아픔을 겪게 마련이지만 너도 못지 않게 겪었다. 아빠는 항상 너를 믿고 기다렸고 너는 잘 이겨냈다. 비록 너는 수능점수에 실망하고 있지만 아빠는 이 정도 성 적도 감사한다. 1학년 때 성적이 바닥으로 떨어져 많이 힘들어했다. 고민 끝에 경북 상주의 산골의 고시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아들에게 354

355 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해서 정상 궤도에 올라섰다. 너를 대단했다. 그 어려운 상황을 이겨낸 경험은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큰 힘이 될 것읻. 네가 고시원에서 집으로 오는 날 아빠가 너 를 보고 싶은 마음에 서두르다 차가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가드레일을 받았는데 다른 차가 없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고3때 네가 중학교 때 공부를 하기 위해 친구들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하며 빠져 나왔다면서 긴장하면 자꾸 그 때 구타당하는 장면이 떠올라 집중이 안된다고 신경정신과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할 때는 아빠로서 역할을 못한 것에 한없이 미안하고 그 때 네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을까 생각하며 가슴이 아팠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같이 운동하면서 가깝게 지내던 친 구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했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아들에게 355

356 [항상 웃음을 선사하는 아들-종범] 그런데 모든 것을 이기고 오늘에 이르렀다. 정말 잘 커줘서 고맙다. 아빠는 아들이 항상 정 의롭고 친구를 소중하게 여기도록 강조했는데 요즘 친구들이 많은 것을 보면서 잘 키웠다는 생각이 든다.그리고 너는 항상 우리 가정에 웃음을 만들어 주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는 것은 성인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것을 의미 하고, 성인이 된다는 것은 갖게 되는 인격체로서 존중을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사회적 책임 을 지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는 그러한 책임감을 갖고 살기 바란다. 그리고 한마디만 당부하고 싶다. 天 上 天 下 唯 我 獨 尊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말이 있는데 불교에서 사용되는 말인데 세상에서 네가 가장 중요하고 존귀한 존재라는 뜻이다. 너는 독 립된 인격체이다. 남을 따라가려고만 하지말고 너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면서 올바르고 멋있는 인생을 설계하며 살아가기 바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아들에게 356

357 2014년 2월 6일 종범의 졸업식날 아빠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아들에게 357

358 친환경농산물유통도 창조경제 영역 :07 친환경농수산물유통도 I T기술과 결합하면 창조경제의 하나의 영역 될 수 있다. 오늘 서울에서 손아래 동서와 송파에서 점심을 하고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평촌IC에서 내렸 다. 내려오자 마자 농수산물도매시장이 있는데 화장실에 들렀다 나오는데 농산물검사소가 눈에 띄었다. 내가 의정활동하면서 도입을 주장했고 도매시장별 검사체계 추진계획을 확정하는데 역할을 했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한 번 방문하여 어떻게 운영되는지 보고 싶었다. 오늘은 용기를 내어 들어갔다. 의외로 직원들은 도의원을 지냈다고 하고 의정활동하며 5년 간 도매시장별 검사소 설치를 위해 노력했다고 하니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경기도는 도매시장별 검사체계 없어 도의원이 된 후 연일 신문에서 보도되는 잔류농약 과다검출 결과를 보면서 우리 경기도는 친환경농산물유통도 창조경제 영역 358

359 과연 잔류농약으로부터 안전한지 궁금하여 서울시 농수산물도매시장을 찾아다녔다. 당시 서 울시는 도매시장별로 검사소를 설치하여 잔류농약검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기도는 잔 류농약검사는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에서만 실시하는데 검사기간이 오래 걸려 효과가 전혀 없었다. 도매시장별 검사체계 도입 내가 도의원이 되고 집요하게 다룬게 몇가지가 있는데 도매시장별 잔류농약검사체계 도입도 그 중 하나의 주제였다. 당시 경기도는 예산은 부족하지 않았는데 문제는 인력확보가 문제 였다. 당시에는 행정안전부에서 시도 공무원 정원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어 도입이 쉽지 않았다. 도정질문을 비롯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물 고 늘어졌다. 서울시민은 안전한 농산물을 먹고, 경기도민은 농약에 노출된 농산물을 먹 으란 말인가? 도청 공무원들과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공감은 하지만 공무원 정원을 확 보하지 못해 어렵다는 답변이었다. 그러던 중 행안부가 정원운영에 융통성을 주었다. 그 틈 을 이용하여 도매시장별(수원, 안양, 안산, 구리) 검사소 설치계획을 수립하였고, 나는 2006 년도에 도의원을 마쳤다. 안양농수산물도매시장에 검사소 설치 안양에 검사소를 설치한 것은 2009년도였다. 설치를 알리는 현수막을 보면서 얼마나 기쁘던 지 방문하여 보고 싶었지만 왠지 기분이 내키지 않아 그만 두었었다. 오늘 우연하게 방문하 였는데 검사소 소장님께서 성의 있게 설명해 주셨다. 친환경농산물유통도 창조경제 영역 359

360 서울시보다 수준높은 검사 현재는 서울시보다 검사수준이 높다. 방사능 측정장비도 갖추고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부 적합 비율이 연도별로 낮아지고 있는데 검사를 강화하고 있는 측면과 생산자인 농민들이 고 독성이나 맹독성 사용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방사능검사도 실시하고 있는 데 부적합 결과가 없다는 설명도 있었다. 수입산, 국내산 유통수산물 방사능 검사를 총 221 건을 했으나부적합이 없었고 수산물 44건중 3건에서 0~1Bq/kg의 세슘이 검출되었으나 기 준치 100Bq/kg이하라는 것이다. 잔류농약검사체계는 농민, 소비자 모두에게 바람직 친환경농산물유통도 창조경제 영역 360

361 잔류농약검사체계를 갖춤으로써 농약으로부터 안전한 농산물이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보다 많이 유통되면 농민들도 좋고 도시의 소비자도 좋을 것이며, 갈수록 대형 마트 등에 역할을 빼앗기는 농수산물 도매시장의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도매시장-친환경농산물유통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앞으로 친환경농산물의 생산과 유통이 확대될 것이다. 현재의 제한된 친환경농산물유통에서 대량유통에 대비한 유통체계를 갖춰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내가 다른 분야에서 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누군가는 나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이어받아 노력할 것이다. 굳이 내가 한 일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하게 생각 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삶이고 문화이고 문명이고 역사이지 않겠는가? 친환경농수산물유통도 창조경제의 하나의 영역 박근혜대통령께서 주창하시는 창조경제, 창조경제는 새로운 아이디어, ICT융합을 통해 새로 운 산업을 만들어내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친환경농산물유통도 IT 기술과 결합하면 창조경제의 한 영역이 될 수 있다. 친환경농수산물유통도 미래산업이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IT기술이 융합되면 새로운 성장산업이 될 것이다. 창조경제는 관료의 책 상에 있지 않고 일의 현장에 있다. 친환경농산물유통도 창조경제 영역 361

362 화냥년 - 역사소설 병자호란(유하령 유하령) :36 화냥년 - 역사소설 병자호란 G2시대 외교과제를 보여주는 것 이 소설은 G2시대의 강대국으로 떠오른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를 잘못했 을 때 국민들이 어떠한 참상을 겪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한 측면에서 박근혜대통령께서 중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만든 것은 다행한 일이다. 방공식별구역을 둘러싼 동북아긴장을 무 사히 넘긴것도 이러한 외교의 성과이다. 강대국인 미국과의 관계도 돈독하게 해야 하는 것 화냥년 - 역사소설 병자호란(유하령) 362

363 은 물론 당연하다. 화냥년은 이땅의 무능한 남성의 초라한 자화상 378년전 청나라의 침입으로 시작된 병자호란. 불과 며칠만에 한양이 점령당하고 강화도로 피신하려다 실패하고 남한산성에서 버티다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했다. 세자가 인질 로 끌려갔고 삼학사가 죽임을 당했다. 많은 사람들이 청에 끌려갔다. 포로들은 석 달을 걸었다. 1월30일 한양을 출발해서 4월17일에 심양에 도착했다. 행군 중에 얼어 죽고 주려 죽은 이가 발에 밟혔다. 주검에 걸려 넘어져 또 주검이 됐다. 포로들은 앉기 만 하면 저고리를 벗어 이를 잡았다. 굶주려 앙상하고 씻지못해 더러운 몸뚱이에 이민 끓었 다. 오랑캐들은 그 와중에도 여인네들을 끌고 가 성욕을 채웠다. 화냥년-포로의 입장에서 병자호란을 생생하게 그려 역사소설 병자호란 화냥년 은 포로의 입장에서 겪은 병자호란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 다. 스무살의 청년 李 康 과 열일곱의 처녀 조선. 그들은 포로가 되어 청에 끌려간다.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청군의 겁탈의 공포 속에서 강( 康 )은 선( 鮮 )을 줄곧 보호한다. 심양에서도 선 을 겁탈하려는 수흐를 피범벅이 되도록 짓이겼다가 처벌을 받기도 했다. 선은 속환되어 고 향에 돌아간다. 속환되어 오는 여자들은 홍제천에서 세정의식을 갖는다. 홍제천에서 몸을 앃으면 절개가 회복된다는 것이다. 화냥년 - 역사소설 병자호란(유하령) 363

364 환향녀의 실상 오랑캐가 쳐들어온 강화도에서 사대부들이 왜 그렇게 집안 여자들을 자결시키려고 혈안이 됐었는지를 선은 속환되고 나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조선에는 엄연히 재가녀자손금고법 ( 再 嫁 女 子 孫 禁 錮 법)이 있었다. 수절하지 않은 재혼한 여자의 자식들은 과거에 응시할 수도 없었다. 오랑캐에게 능욕당한 여자들이 집안에 있다는 것은 곧 집안 남자들의 과거 응시나 관로( 官 路 )까지도 막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었다. 속환된 여자들은 집안을 몰락의 길로 몰 고 가는 화근 덩어리였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목숨을 부지해서 돌아왔는데 아무도 그 목숨 을 환영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데 죽은 사람 취급을 했다. 이들에게는 혈육의 정보다 사대부 의 가치가 더 중요했다. 그러나 양민들은 달랐다. 돌아온 혈육들을 부등켜안고 위로했다. 비 록 초근목피를 끓여 먹더라도 돌아온 여자들을 내치지 않고 받아들였고 돌봤다. 선은 그들 이 부러웠다. 사대부 집안의 여자라는 것이 원망스럽고 한스러웠다. 선엑 있어서 진짜 전쟁 은 포로로 끌려갔을 때가 아니라 속환된 뒤, 홍제천을 건너라도 강요받았을 때부터 비로소 시작되었다. 심양으로 끌려갈 때는 같은 처지의 포로들과 함께였고 강도 옆에 있었다. 그러 나 속환된 뒤 양반가 여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집안을 상대로 홀로 싸워야 했다. 그것은 애초 부터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소복을 입혀 놓고 귀신이 되길 바라는 부모, 시부모, 남 편이나 오라비를 상대로 한 매 순간이 전쟁이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그들이 원하는 대 로 죽을 때까지 숨어서 지내야 했다. 이강 부모의 원수를 갚다 이강의 아버지 이준효는 포로장사를 하는 호조판서 조경호(조혈귀)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 려다 결국 조판서에 의해 불에 타죽는다. 홍타이지가 죽은 어수선한 틈을 이용하여 강은 태안으로 조윤노를 찾아가 죽인다. 선은 수 흐에 의해 다시 초원으로 끌려가고 강 또한 선이 수흐에 의해 끌려간 것을 알고 찾아간다. 아무르와 강트므로는 선과 강의 아이들이다.이들은 이제 열여섯살의 나이로 이곳 산간마을 에서 젊은 삶을 시작하였다. 조선포로들에게 자유를 찾아주는 일. 제 나라도 해결해주지 못 한 그 일에 이제 마을 젊은이들이 앞장서게 된 것이다. 화냥년 - 역사소설 병자호란(유하령) 364

365 인구의 1 0 퍼센트가 끌려감 최명길은 전쟁이 끝난 직후 포로로 끌려간 조선 백성이 50만명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그 당 시 조선의 인구를 어림잡아 6~7백만명이라고 본다면 10퍼센트 가까운 사람이 끌려간 셈이 었다. 화냥년은 임진왜란 때 명군과 관계한 여자들 우리는 흔히 병자호란 이후 속환된 여자들을 환향녀( 還 鄕 女 )라 불러싿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당시 사료 어디에서도 환향녀 라는 용어는 나오지 않는다. 임진왜란 당시 명군과 관 계한 여자들에게 붙여져서 병자호란의 피해자인 여자들에게까지 붙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화냥년 - 역사소설 병자호란(유하령) 365

366 박근혜대통령의 경제혁신 3개년계획이란 무엇인가? :32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이란 무엇인가? 경제성장 패러다임의 변화 박근혜대통령께서 예고하셨던 경제혁신3개년계획 이 마침내 발표되었다. 거시전략 뿐만 아니라 세부정책까지 치밀하게 짜여져 있기 때문에 정리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대강을 정리 해보자. 과거의 경제성장 전략이 분배와 정의는 뒷전으로 미루고 일방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 었다면 사회안전망 확충, 분배, 여성, 청년 고용확대 등 분배정의를 선순환시키는 패러다임 의 변화가 확연하다. 또한 수출위주의 경제에서 수출-내수가 균형을 이루는 경제전략이라는 점도 과거와는 다르다. 박근혜대통령의 경제혁신 3개년계획이란 무엇인가? 366

367 3대 핵심전략은 기초가 튼튼한 경제, 역동적인 혁신경제, 내수-수출 수출 균형경제 첫째, 기초가 튼튼한 경제전략은 공공부문 개혁,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 사회안전망 구축 이 핵심과제이다. 사회안전망 확충이야말로 우리경제가 여러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고, 중심 을 잡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주춧돌이라는 인식은 과거 경제의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에 대한 인식변화를 알 수 있다. 둘째, 역동적인 혁신경제 전략은 창조경제를 통해 신기술, 신산업, 신시장을 개발해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개척하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라인 창조경제타운과 17개 광역시도에 설치될 오프라인 창조경제혁신센터, 청년창업과 엔젤투자펀드 확충, 과학기술, ICT, 문화컨텐츠, 인터넷기반 융합산업을 통해 역동적인 경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기후, 환경, 에너지 등 범세계적인 문제에도 선제적으로 대비하여 새로운 사업을 창출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기회로 삼겠다는 것도 눈에 띄는 정책이다. 이를 위해 청정화 력과 친환경자동차, 탄소 포집, 저장(CCS)에 기술개발투자를 확대해서 민간의 혁신활동을 지원하고 소각장, 매립지 등 기피시설을 친환경 에너지 타운 으로 조성하는 시범사업도 금년부터 시작해서 점차 확대해 나간다는 것이다. 셋째, 내수와 수출의 균형성장 전략은 우리경제가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 해서는 내수와 수출, 제조업과서비스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도권과 지방 등 모든 부문이 균형있게 성장해서 그 결실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균형경제는 내 수기반 확대와 투자여건 확충, 청년 여성 고용률 제고의 3개과제를 중심으로 추진된다. 내수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서 국민들의 소비를 짓누르고 있는 가계부채와 전세값 상승 문제를 최 우선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곧바로 기획재정부가 월세의 세액공제를 통해서 1개월치의 월세를 지원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이면서 투자수요가 많은 보건, 의료, 교육, 금융, 관광, 소프트웨어 등 5대 유망서비스업의 민간합동 T/F를 통해 규제를 전면 검토하고,인허가부터 실제 투자가 이루어지는 전 과정에 걸쳐 불편이 없도록 원스톱 서비를 지원하겠다는 것이 새롭게 눈에 띈다. 이를 통해 5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박근혜대통령의 경제혁신 3개년계획이란 무엇인가? 367

368 경제의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여성 인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라는 인식에서 우수한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로 경력단절을 겪지 않도록 생애주기별로 약한 고리를 해소하여 여성 일자리를 150만개 만들겠다는 정책, 시간선택제 채용 등도 새로운 정책들이다. 4% 경제성장, 1 인당3만불 만불, 고용률 70 % 달성 경제혁신 3개년계획을 통해 2017년, 임기내에 4%대 경제성장, 고용률70%달성, 1인당 국민 소득의 3만불을 넘어 4만불 시대의 초석을 다져놓겠다는 것이다. 저성장의 장기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간의 불균형, 인구고령화, 비정상적인 관행들이 경제의 효율성 과 역동성을 저해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 대한민국이 다시 한 번 대도약 학기 위해서 반드 시 이뤄내야 할 과제이다. 다시 뛰자 다시 시작하자! 이것이 박근혜대통령의 외침이다. 경제혁신의 청사진이 마련되었다. 우리 함께 다시 뛰자. 그래서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만들어가자. 박근혜대통령의 경제혁신 3개년계획이란 무엇인가? 368

369 비정상의 정상화 - 진돗개정신으로 해야한다 2014년 업무보고에서 박대통령께서는 비정상적인 제도와 관행을 정상화시키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며 진돗개는 한 번 물으면 살점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안놓는다고 한다.우리 박근혜대통령의 경제혁신 3개년계획이란 무엇인가? 369

370 는 진돗개 정신으로 해야 한다 고 진돗개정신을 강조하셨다. 이제 우리도 진돗개 정신으로 나아가자. 흔들리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 그리고 국민의 평가를 받자. 박근혜대통령의 경제혁신 3개년계획이란 무엇인가? 370

371 제2의 마우나리조트 참사를 막으려면 :52 마우나리조트 참사 희생자 영결식 제2의 마우나리조트 참사를 막으려면 안전불감증이 부른 참사 부산외국어대 10명의 신입생 젊은이들이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희생된 마우나리조트 참사. 폭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지붕이 붕괴한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폭설이 내 려 지붕에 쌓여 있었기 때문에 안전에 대한 매뉴얼만 마련되어 있었다면 쉽게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안전불감증이 불러온 참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소잃고 외양간 고쳐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또 잊을 것이고 또 다시 재발될 것이다. 그래서는 안된다. 사고의 원 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제2의 마우나리조트 사고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소 잃고 제2의 마우나리조트 참사를 막으려면 371

372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는데 가장 큰 잘못은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아 또 다시 소를 잃는 것이다. 이번 마우나리조트 사고를 계기로 다시는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안전메뉴얼 마련해야 첫째,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할 때에는 계약 이전에 화재, 붕괴를 비롯한 주변에 안전저해요 소들이 없는지 꼼꼼하게 살피고 이를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러한 확인절차는 시설관 리자와 이용자 양측에서 함께 이행되어야 한다. 즉, 시설관리자는 시설 및 주변의 안전을 확 인하고, 이용자는 이용자의 측면에서 필요한 안전 사항을 확인하고 필요한 보완을 요구해야 한다. 둘째, 시설 안전관리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 시설안전 책임자가 책임감을 가지고 안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다중이용시설의 출입구에 안전점검 검사내용, 화재예방점검 등 안전사항과 점검일자 점검기관, 점검책임자 등이 표시된 판넬을 제작 부착하도록 한다. 재해행정전달체계 보완 재해대책 관련 행정전달체계의 보완이 필요하다. 폭설, 폭우 등 기상이변으로 인한 재해예 방 행정이 일선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원인을 분석하고 행정전달체계를 꼼꼼히 살 피고 보완을 해야 한다. 건축제도 개선 필요 건축설계, 시공상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기후변화로 폭설, 폭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이를 반영한 제도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면 안전관련 참사는 막을 수 있다. 1999년 씨랜드화재 제2의 마우나리조트 참사를 막으려면 372

373 참사 당시 희생된 19명의 어린아이들의 또래들이 이번에 대학생이 된다. 이번 마우나리조트 참사를 계기로 안전메뉴얼을 마련하고, 재해행정과 건축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여 다시는 씨랜드 화재참사, 마우나리조트 참사와 같은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오늘을 사 는 우리들의 책무이다. 제2의 마우나리조트 참사를 막으려면 373

374 부산외대생 참사, 씨랜드 화재참사 :58 젊은 학생들을 하늘나라로 보내면서... 안전불감증이 없는 하늘나라에서 꽃피우길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불의에 하늘나라로 떠나는 그대들의 영혼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후배들을 구하러 무너진 건물에 다시 들어갔다가 희생된 학생회장 양성호씨의 죽음 앞에 비 통한 마음이다. 황망하게 아들과 딸을 잃어버린 부모들의 슬픔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우 리 어른들이 조금만 더 세심한 관심을 가졌더라면 이 쓰린 고통을 막을 수 있었을텐데... 부디 안전불감증이 없는 하늘나라에서 못다 피운 젊음의 꽃을 피우길 기도한다. 부산외대생 참사, 씨랜드 화재참사 374

375 불타는 씨랜드수련원( ) 씨랜드 화재참사, 부산외대생 붕괴참사 우리 큰 아이가 여섯 살 때 경기도 화성에서 씨랜드화재참사가 발생했다. 그 때 희생되지 않았다면 이제 대학생이 되었을 것이다. 1999년 6월 당시 텔레비전을 보면서 어린 눈에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는지 친구들이 왜 죽었어? 라고 물으며 슬픈 표정을 짓는 아이를 보면 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화재참사의 근본을 따지기 위해 씨랜드화재참사백서 를 발간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다 중이용 시설인 수련원이 숙박시설이 아닌 교육연구시설로 분류되어 화재예방시설이 미비한 점, 이미 각종 점검에서 문제점이 드러나고 심지어 고발조치되었음에도 2,3백만원의 벌금에 그쳤던 점, 화재시 소방차의 진입이 어려웠던 도로의 문제점 등 그 후 몇 년 간 이런 문제점 들을 개선하기 위해 끈질기게 매달렸었다. 그러나, 건축법의 문제 등은 쉽게 개선되지않았 다.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참사가 일어났을까. 원인은 기둥이 없이 무게를 덜 받는 부위에 강철을 적게 사용하는 PEB(Pre-engineered Metal Building Systems) 공법으로 지어진 건 물이 많은 눈의 하중을 이기지 못해 지붕이 붕괴했다고 지적되고 있다. 안전요원 미배치 등 여러 문제점들도 제기되고 있다. 부산외대생 참사, 씨랜드 화재참사 375

376 컨테이너 박스를 붙여놓은 씨랜드 숙소 부산외대생 참사, 씨랜드 화재참사 376

377 기둥없이 무게를 덜받는 곳에 강철을 덜 사용한 공법으로 시공된 마우나리조트 가장 큰 문제점은 안전불감증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은 다중이용시설의 이용에 있어서 안전불감증이다. 부산외 대학생 참사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그리고 제도적인 개선은 다시 흐지부지된다. 우리 는 이번에 드러난 문제점을 반드시 고쳐야 한다. 관리자, 이용자 안전 매뉴얼이 마련되고 계약시 확인돼야 무엇보다 다중이용시설 이용에 있어서 건물관리책임자와 이용자의 각각의 매뉴얼이 마련되 어야 한다. 이용계약 때 건물운영책임자는 화재, 붕괴 등 안전에 대한 점검이 이루어졌는지, 안전사고시 대피요령 등을 확인하고 이용자는 사전에 선발대가 먼저 안전을 확인하는 절차 가 마련되어야 한다. 부산외대생 참사, 씨랜드 화재참사 377

378 관심갖고 노력하면 안전사고 막을 수 있다 최근 폭설이 내려 일주일 전에 인근지역에서 건물 붕괴사고가 잇따랐는데도 이 리조트를 비롯한 폭설지역 건물운영자들에게 어떤 경고조치도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재라는 지 적이 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진다면 이러한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다 는 것이다.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철저한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젊은 영 혼들을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다. * 경기도청의 공무원이 다중이용시설 정문에 안전점검검사내용, 화재예방점검 등 안전사항 과 점검일자 점검기관 등의 판넬을 제작 부착하는 것을 제안해 주었다. 부산외대생 참사, 씨랜드 화재참사 378

379 3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창조경제 의 활로 - 이혜훈 최고위원 :01 3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창조경제 의 활로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 한동안 시중에 유행하던 유머 중에 3대 불가사의란 것이 있었다. 김정은의 마음, 안철수의 생각, 그리고 박근혜의 창조경제... 이런 얘기가 돌만큼 창조경제에 대해서는 많은 설들이 난무했지만 아직도 오해가 많고 아쉬움이 가시지 않은 것 같다. 창조경제라는 공약이 나온 지 1년이 지난 지금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는 창조경제는 무엇일까. 궁금한 마음에 일단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창조경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최다 추천횟수를 기 록한 답변이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룬 한강의 기적을 다른 말로 포장한 것으로, 정부 가 당시 삼성과 같은 우량중소기업을 찾아내서 전폭적으로 지원해 키워주는 제도 였다. 의 외의 답변이었지만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올려놓은 공식적인 답변에 비해 추천횟수가 무려 세 3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창조경제 의 활로 - 이혜훈 최고위원 379

380 외의 답변이었지만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올려놓은 공식적인 답변에 비해 추천횟수가 무려 세 배나 되었다. 일반 국민들의 의식은 그렇다 치자.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정책방향마저도 평생 경제문제 를 고민해온 필자가 창조경제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막연하게 머릿속에 그렸던 그림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 때가 있다. 소위 박근혜정부 탄생에 참여했다고 알려저 있는 필자로서 지난 1년간 사석에서 담당자들을 만날 때마다 해 왔던 충언들을 묶어서 공개적으로 얘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창조경제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설명은 우리 국민의 상상력을 과학기술과 ICT와 접목 해서세상에 없는 새로운 산업과시장을 만드는 것 이다. 평범한 주부가 음식물 쓰레기 건조 기를 만든 경우와 대학생이 친구와 친목도모를 위해 페이스북을 만든 경우를 대표적인 사례 로 들고 있다. 이런 일들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새로운 부처도 만들었다. 그 부처의 업무는 국가가 과학기술과 ICT기술역량을 강화하고 지원하는 일들에 포인트를 맞추고 있다. 우주기술 자립 및 세계 선도형 원자력기술 개발, 사이버 보안 강화 및 글로벌 웹 표준 이용 환경 조성, 줄기세포 연구, 국가초고성능컴퓨팅 육성 등등..., 모두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들만 이루어지면 창조경제가 만개한 것이라고 믿어도 될까? 시장에서는 대박이 분명한 아이디어인데도 자금줄이 없어서 아이디어가 사장( 死 藏 )되는 경 우가 허다하다. 기술은 확식하기 때문에 수익이 눈앞에 뻔히 보이는데도 투자자를 못찾아 기회를 놓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아이디어도 기술도 확실하고 투자자도 찾았는데 복잡하고 오랜 시일이 걸리는 행정규제 때문에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NASA(미국 항공우주국)에서 열( 熱 )을 동시에 균일하게 전달하는 신소재개발에 참여했던 한 한국인 과학자가 아내가밥을 자주 태우는 것을 보고는 그 소재로 냄비를 만들면 음식을 쉽게 태우지 않는 대박 상품을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얻어 사업을 시작했지만 곧 실패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나라 금융기관은 전년도 사업실적과 담보물건을 제출해야만 자 3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창조경제 의 활로 - 이혜훈 최고위원 380

381 금을 빌려준다. 그 과학자는 충분한 자금을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새로운 창의력과 새로운 기술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또 양자가 접목되는 환경을 국가가 만들 어 나가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일은 이미 국민들이 스스로 창 의력과 기술을 접목해 사업 아이디어로 가지고 있는 것을 상품으로 만들어 팔 수 있도록 창 조금융도 터주고 행정규제도 터주고 각종 걸림돌을 제거해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금융의 경우만 해도 복잡한 행정서류나 담보물건 없이 기술과 아이디어만으로 대출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려면 이 기술과 아이디어가 과연 시장성이 있는가, 그래서 돈을 빌려주 면 되갚을 수 있는가 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전문성과 역량을 키워야 한다. 창업과정을 가로막고 있는 각종 행정규제를 미래창조과학부로 모두 이관해서 거기서 한꺼번 에 풀어주라는 주장은 아니다. 범정부 TF를 만들어서 차제에 다양한 창업유형별로 창업의 전 과정을 꼼꼼히 따져보면서 걸림돌이 되는 불필요한 규제는 풀고 도움이 필요한 단계는 과감한 지원책을 수립해 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행정규제를 푸는 일과 병행해 창업 유형별로 어떤 행정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각 행정절차 단계별로 어떤 부처, 어떤 부서에서 어떤 서류를 요구하는지, 얼마나 기간이 걸리는지 등등 3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창조경제 의 활로 - 이혜훈 최고위원 381

382 인허가 심사를 거쳐야 할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모든 내용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는 규제 매뉴얼이라도 만들어주자. Q&A와 안내를 도와주는 원스톱 서비스 도우미도 배치해주 면 좋겠다. 창조경제를 너무 크게 너무 어렵게 너무 관념적으로만 고민하지 말자. 오히려 현장에서 막 혀있는 부분들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풀어주는 방법을 고민해 보는 역발상이 필요할지도 모 른다. 3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창조경제 의 활로 - 이혜훈 최고위원 382

383 안기영의 최근 소식 :13 안기영의 최근 소식 383

384 안기영의 최근소식 새봄에 안부를 묻습니다. 안녕하시지요? 새 봄이 다가왔습니다. 며칠전 주말농장에 다녀왔는데 겨우내 추위를 견뎠던 새싹들이 부끄럼 많은 처녀처럼 살며 시 세상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저의 블로그에 저의 소식을 궁금해하시는 많은 분들이 방문하고 계십니다. 덕분에 일주일 후면 블러그 방문자수가 2만명을 돌파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새누리당의 이필운 안양시장 예비후보를 비롯해서, 경기도의원, 안양시의원 후보를 열심히 도울 것입니다. 아내는 여전히 직장을 잘 다니고 있고 아들은 재수 중이고 중3 딸은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 습니다. 선출직은 유권자로부터 잊혀질 때 가장 힘든다고 하는데 저 역시 그런 느낌을 갖습니다. 그러나,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안기영의 최근 소식 384

385 안기영의 최근 소식 385

386 어려운 때를 긍정적 사고로 이겨내고 있습니다. 어려운 때이지만 왜 안될까 고민하면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책을 읽고 좋은 사람 과 깊게 사귀면서 보람있게 보내려고 합니다. 책은 지난 1년간 좋은 책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100권이상 읽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부분을 발췌하여 블러그에 옮겼습니다. 나중에 좋은 책을 낼 때 참고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요즘은 앞으로 일을 하게 되면 G2시대 초강대국이 된 중국과 불가분 협력사업을 해야 되기 때문에 중국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안기영의 최근 소식 386

387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이기는 삶입니다. 언젠가는 말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저를 핍박하고 짓이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용서했습니다. 그것이 이기는 삶입니다. 누구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 다. 저는 지난 대통령선거 때 경험했습니다. 그동안 갈등했던 많은 사람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동안 미웠던 사람들이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누구를 미워하고 증오하면 결국 그 화가 자기에게로 돌아옵니다. 정신 뿐만 아니라 정신도 병들게 합니다. 안기영의 최근 소식 387

388 제가 정치적으로 아직 성공하지 못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저의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 입니다. 이것은 의례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이전에는 저도 잘 몰랐습니다.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저도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이 쌓인 것 같습니다. 다음에 지역 주민들 앞에 설 때는 더 욱 완숙한 모습으로 설 것 같습니다. 더욱 더 실력을 연마하여 지역주민들 앞에 서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일하며 여러분 곁에 있겠습니다. 건강하세요. 2014년 3월 6일 안기영 올림 안기영의 최근 소식 388

389 그리운 황낙주 국회의장님 :27 그리운 황낙주의장님 황낙주 의장님을 그리며 어제 국회헌정기념관에 행사가 있어 참석하고 나오다가 벽면에 붙어있는 역대 국회의장 초 상화가 들어왔는데 자주 지나쳐갔는데 오늘 따라 의장님이 그립다. 국회의원 7선의 국회의 장님으로부터 정치철학을 이어받은 것을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줄을 잘 서서 벌써 출세라는 것을 한 사람도 많지만 나는 그 분 가까이서 정치와 권력을 배운 것 만 으로도 좋다. 그리운 황낙주 국회의장님 389

390 (경찰에 의해 신민당사에서 끌려나오는 장면) 일반인들에게는 5.17계엄으로 국회가 봉쇄된 상태에서 국회에 들어가시다가 계엄군에 총검 에 의해 쫒겨나는 사진이 많이 알려졌고 1979YH무역 여공들의 신민당사 점거사태 때 여당 에 여공들이 불쌍하지도 않은가. 빨리 해결하라 고 여당에 요구했고, 결국 진입 경찰에 얼굴이 짓이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나쁘게 알려진 것은 국회의 날치기 장면이다. 당시 예산안은 항상 날치기로 통과되었다. 그 분은 수행비서관(직책은 국제담당비서관)인 나를 애제자로 여기시고 정치를 가르쳐주셨 다. 잘못된 생각은 무섭게 야단을 치셨다. 젊은 놈의 생각이 그렇게 삐뚫어져가지고 어디 에 써먹겠노? 뒤에서 야단을 치시면 마치 송곳으로 찌르듯이 전율이 오곤 했다. 지역감정 해결에 솔선수범 의장님은 나를 채용하시면서 이력서가 수백장 쌓였고 너의 학력, 이력 다 보았는데 너가 호남출신이라 채용했다 고 하셨다. 당신 혼자서라도 지역감정 해결에 솔선수범하시겠다는 의지가 강하셨다. 당시 의장비서실엔 호남출신이 유독 많았는데 사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 이었다. 의장님도 지역구를 가지고 계셨고 오죽 취직민원이 많았겠으며, 그 오랜 정치활동 기간 아 는 지인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리운 황낙주 국회의장님 390

391 의장님은 같은 신한국당 의원보다도 야당의원들과 가까웠던 것 같다. 같이 야당하면서 고생 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이 있으면 나눠쓰셨다. 후원금을 보낼 때도 야당의원에게 더 많이 보내셨다. 물론 오점도 있다. 평가는 전체를 놓고 해야 오랜 정치역정 중에는 물론 오점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정치인을 평가할 때는 전체를 보아 야한다. 또한 사건의 이면의 이야기를 모르는 것이 많다. 곁에서 본 의장님은 항상 정의로운 분이셨다. 그래서 지도자는 그냥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국가관과 사회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장님은 여권의 선거법 강행통과를 반대하시다가 결국 김영삼대통 령과 사이가 벌어져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하셨는데 그 때는 매우 결연한 자세를 보이셨다. 역사에 오점을 남겨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정치는 여야라는 두 날개로 펼치는 것이다. 그 분으로부터 배운 것을 정리하려면 책 한 권 분량이 될 것이다. 그 중에서 우선 떠오르는 어록 몇가지를 소개한다. 새가 좌우의 두 날개로 날 듯이 정치도 여야의 두 날개로 펼쳐진다. 아무리 좋은 상황에서도 상대방은 사지까지 몰지 말고 여지를 남겨라 그리운 황낙주 국회의장님 391

392 결혼식 주례사는 수행을 했기 때문에 너무 자주 들어 말씀 요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부부는 서로 존중해야 한다. 남편이 자기 사랑하는 아내를 존중하지 않고 누구에게 존중 해달라고 하겠는가? 아내가 자기 남편을 존중하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 존경해달라고 하겠는 가? 유독 서로 존중할 것을 강조하셨다. 그리운 황낙주 국회의장님 392

393 안기영의 공감의 정치산책 블로그 안기영의 공감의 정치 산책 저자 안기영 발행일 :25:07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복제와 전재를 금합니다.

조선왕조 능 원 묘 기본 사료집 -부록 : 능 원 묘의 현대적 명칭표기 기준안 차 례 서 장 : 조선왕실의 능 원 묘 제도 11 제 1부 능 원 묘 기본 사료 Ⅰ. 능호( 陵 號 ) 및 묘호( 廟 號 )를 결정한 유래 1. 건원릉( 健 元 陵 ) 21 2. 정릉( 貞 陵 ) 22 3. 헌릉( 獻 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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