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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조사개요 03 II. 조사결과요약 06 III. 문항분석 08 IV. 결과종합 12 V. 통계표 20 VI. 설문안 28

(012~031)223교과(교)2-1

제 14 회월례비정규노동포럼 발제 조돈문한국비정규노동센터대표 토론 김금철건설노조위원장김진억희망연대노조위원장김형우금속노조부위원장윤창호화물연대사무국장홍윤경이랜드일반노조전사무국장 일시 : 2011 년 4 월 5 일 ( 화 ) 오후 4 시 장소 : 금속노조 4 층 4 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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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연수용교재 선거로본대한민국정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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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노사정위원회합의문중관련내용은부록참조 유형간중복을제거한비정규직규모는 < 참고 2> 를참조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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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지제3 호서식] ( 앞쪽) 2016년제2 차 ( 정기ㆍ임시) 노사협의회회의록 회의일시 ( 월) 10:00 ~ 11:30 회의장소본관 11층제2회의실 안건 1 임금피크대상자의명예퇴직허용및정년잔여기간산정기준변경 ㅇ임금피크제대상자근로조건악화및건강상

2015 년적용최저임금인상요구 2015 년적용최저임금요구안 양대노총단일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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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DI 이슈리포트제 18 호 고용없는성장과울산의대응방안 경제산업연구실김문연책임연구원 052) / < 목차 > 요약 1 Ⅰ. 연구배경및목적 2 Ⅱ. 한국경제의취업구조및취업계수 3 Ⅲ. 울산경제의고용계수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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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예상과 달리 4만여 표, 9.7% 득표로 4팀 중 4위에 그치고 말 았다. 결선투표는 쌍용차 77일간 파업투쟁을 이끌었던 전 지부장 한 상균 후보조와 금속연맹위원장과 인천본부장을 지낸 전재환 후보조 가 치렀다. 결과는 한상균 후보의 근소한 차이의 승리였다. 지난

갈등관리 리더십 연구결과 보고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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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구내용은집필자의개인의견이며한국은행의공식견해 와는무관합니다. 따라서본논문의내용을보도하거나인용 할경우에는집필자명을반드시명시하여주시기바랍니다. * 한국은행금융경제연구원거시경제연구실과장 ( 전화 : , *

저작자표시 - 비영리 - 변경금지 2.0 대한민국 이용자는아래의조건을따르는경우에한하여자유롭게 이저작물을복제, 배포, 전송, 전시, 공연및방송할수있습니다. 다음과같은조건을따라야합니다 : 저작자표시. 귀하는원저작자를표시하여야합니다. 비영리. 귀하는이저작물을영리목적으로이용할

120~151역사지도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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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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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편채권총론 제1장채권의목적 제2장채권의효력 제3장채권의양도와채무인수 제4장채권의소멸 제5장수인의채권자및채무자

사회문화적관점에서개발주의비판하기 사회양극화와개발주의 Ÿ Ÿ Ÿ /

노동부의현행법시행방침 한편노동부는기존의입장을재확인하면서 12 월 28 일 노조의교섭창구단일화절차에대한행정고시 복수노조관련부당노동행위업무처리규정을행정예고했다.( 전임자임금지급금지의경우기존법에명시되어있으므로별도의고시가필요하지않다.) 12 월 31 일까지노동조합법이개정되지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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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률제고를위한노동시장개선매뉴얼 제 1 권정책요약집 변양규이승길남재량외 제 1 장도입 제 2 장정책제안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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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세대의근로생애와은퇴과정연구

대한주택보증 ( 주 ) 대한주택보증

01정책백서목차(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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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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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요약 > Ⅰ. 국내은행 1 1. 대출태도 1 2. 신용위험 3 3. 대출수요 5 Ⅱ. 비은행금융기관 7 1. 대출태도 7 2. 신용위험 8 3. 대출수요 8 < 붙임 > 2015 년 1/4 분기금융기관대출행태서베이실시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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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보고서 구조화금융관점에서본금융위기 분석및시사점

목 차 Ⅰ. 조사개요 2 1. 조사목적 2 2. 조사대상 2 3. 조사방법 2 4. 조사기간 2 5. 조사사항 2 6. 조사표분류 3 7. 집계방법 3 Ⅱ 년 4/4 분기기업경기전망 4 1. 종합전망 4 2. 창원지역경기전망 5 3. 항목별전망 6 4. 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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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 구도와 몇 개의 단일 이슈 중심의 신자유주의 네거티브 선거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대체로 민주당의 완승, 한나라당의 대패로 요약된다. 전 국 16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민주당은 7석, 정당 비례대표 35.1%을 차지했고 한나라당은 6석, 정당 비례대표 39.8%를


' 서울여성취업자수 ' 40~50 대가 20~30 대첫추월 - 1 -

조사구번호 가구번호 - 한국종합사회조사 성균관대학교서베이리서치센터 종로구성균관로 전화

92302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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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정당별지방선거투표의향별국정수행평가별국무총리인선평가별정부개각범위의견별사전투표제인지별사전투표참여의향별지방선거성격공감별차기대선후보선호도별성 * 연령별 자영업 (102) 블루칼라 (96) 12.

신규투자사업에 대한 타당성조사(최종보고서)_v10_클린아이공시.hwp

Ⅰ. 조사목적 본조사는전국민을대상으로대통령국정수행지지도, 정당지지도등을 파악하여, 국민여론을파악하는기초자료수집에그목적을둠. Ⅱ. 조사설계 조사대상 전국거주만 19세이상성인남녀 표본수 총 1,035 명조사후, 지역, 성, 연령별사후보정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최대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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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나로 5호

(연합뉴스) 마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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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i 본 연구는 이러한 사회변동에 따른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 전문대 학의 역할 변화와 지원 정책 및 기능 변화를 살펴보고, 새로운 수요와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전문대학의 기능 확충 방안을 모색하 였다. 연구의 주요 방법과 절차 첫째, 기존 선행 연구 검토

한국정책학회학회보

5월전체 :7 PM 페이지14 NO.3 Acrobat PDFWriter 제 40회 발명의날 기념식 격려사 존경하는 발명인 여러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투자도 방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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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등록번호대한민국의새로운중심 행복도시세종 2015 년기준 사업체조사보고서 Report of The Census on Establish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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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 서른잔치는끝났다 - 노동조합운동의새로운주체와노동운동변화 - 일시 ː 2017 년 9 월 15 일 ( 금 ) 오후 2 시 ~ 6 시 장소 ː 프란치스코교육회관 220 호 주최 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KLSI) 후원 ː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한국사무소

목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년노동자대투쟁 30주년기념토론회차 기조발제 87년노동자대투쟁 30년, 한국노동운동의현주소 1. 이원보한국노동사회연구소이사장발표1 1987년노동자대투쟁이후울산지역노동자저항의궤적과노동운동의분화 29. 유형근부산대학교일반사회교육과교수발표2 1987년노동운동과 2000년대비정규노동운동 : 금속산업대공장내사내하청노동을중심으로 57. 손정순한국비정규노동센터연구위원발표3 노동조합의조직화활동경과와결과 79. 이주환한국노동사회연구소연구위원토론1 87년노동운동의한계와노동운동의세대교체실패와교훈 107. 정병모현대중공업노동조합제20대위원장토론2 87년비정규노동운동의재조명 113. 박점규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집행위원토론3 119. 김진억희망연대노동조합나눔연대사업국장토론4 노동운동내여성주의는작동하는가 125. 김금숙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사무처장토론5 조직노동운동밖에서의노동의변화와노동조합의대응 133. 조성주서울시청노동협력관

기조발제 87 노동자대투쟁 30 년, 한국노동운동의현주소 이원보 (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이사장 ) - 1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87 노동자대투쟁 30 년, 한국노동운동의현주소 이원보 _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이사장 들어가는말 1987년 6월민주항쟁과노동자대투쟁이폭발한지 30년이되었다. 흔한말로강산이세번변하고 한세대 의삶으로일컬어지는기나긴세월이흘렀다. 지금도세상을뒤흔들었던노동자들의열띤함성과노도와같은시위투쟁의열기가생생하다. 당시의주역들은어느덧머리가희끗희끗한초로의노인세대로접어들어현장을떠났거나 50대장년의고개를넘어서있다. 87년노동자데투쟁은이들에게는여전히가슴뛰게하는감동의기억으로소생하고있지만새로운세대에게는역사의한장으로기록되고있다. 이연륜동안군부독재는물러가고 선거 라는형식의절차에의해일곱번이나정권교체가이루어지고진보와보수의대립경쟁이치열해졌으나전반적으로보수화경향이짙어졌다. 이사이에노동자는 919만명 (1987) 에서 1,954만명 (2016년) 으로두배를훨씬넘어증가했고국내총생산은 13.6배이상크게늘어나세계 10위권의위세를자랑한다. 그러나국내총생산에대비한피용자보수율은 30년동안 40.0% 에서겨우 5% 증가한데그쳤고 2016년현재도 1995년수준아래에서맴돌고있다. 이간단한통계들은노동에대한배분의왜곡상과 노동없는민주주의 의실상을압축해서보여주고있다. 여기에는여러가지요인이작용했겠지만특히정세변화를등에업은지배권력의통치전략에서비롯된면이크다고할수있다. 1990 년대초반사회주의체제가붕궤되고자본의신자유주의세계화전략이범람하는가운데한국사회는정치적민주화의전진과후퇴를거듭하였고역대정권들은저마다 경제살리기 또는 경제활성화 정책을일관되게추진했다. 이정책들은사실상노동의양보를통해대자본이주도하는양적성장신화를재현하는과정이었으며노동의소외와궁핍화로인한사회양극화는필연의결과이었다. 자본위주의정책경향은이명박근혜정권시기에극도로노골화했다. 이명박정권은서슴없이 기업프렌들리 를내세웠고박근혜정권은시대적의제로제기된경제민주화와사회복지확충공약을팽개치고대자본을위한경제활성화전략을강행했다. 이명박근혜정권의경제성장전략은서민근로대중의불만으로누적되었고세월호참사를비롯한이들정권의반민주 반노동 반평화의지배행태는사상초유의촛불항쟁을불러일으켜스스로괴멸하였다. 문재인정부는과거의적폐를청산하고탈권위의민주주의진전과삶의조건개선및 노동존 - 3 -

중 을강조함으로써촛불항쟁에서나타난국민적요구와기대에부응하는조치들을가시화하고있다. 국민들은오랜기간강요된개발독재신화의주술에서깨어나문재인정부의개혁조치에높은지지도로반응하고있다. 물론경제적조건의변화, 여소야대의의회구도와수구세력의발호, 남북한관계를포함한국제정세의불확실성등이가변적요소로남아있지만아직까지는문재인정부에대한낙관적전망이우세해보인다. 이처럼민주항쟁 30년째다가온오늘의상황은 20년동안혹독한시련과침체의늪에서시달려온노동운동에게는전례없이큰조건의유리한변화이다. 그러나그것만으로우리사회가지향해온최고의가치로서의민주주의가획기적으로발전하고국민의절대다수를차지하는노동자대중의삶과노동운동의조건이저절로개선되지는않는다. 또한조건변화를배경으로주체적인힘을키음으로써노동운동이궁극적으로지향하는사회변혁의목표에다가갈수있다는것도오랜역사의가르침이다. 1. 87 노동자대투쟁과노동운동의급성장 1) 87 노동자대투쟁의특징과의의 1987년 6월 29일, 노도와같은민주대항쟁에밀려마침내전두환정권이항복을선언했다. 노태우민정당대표위원의입을통해공개된특별선언은대통령중심직선제연내개헌등 8개항으로구성되었다. 격렬한분노의함성과최루탄포연으로뒤덮였던온나라가정적속에잠겨들었고민주화투쟁은숨고르기에들어간것처럼보였다. 그러나 6.29선언은노동자들에게는탄압의주인공이바뀔것이라는예상만던져주었을뿐, 절박한삶의과제나권리문제를해결할수있는구체적인방안을제시한것은아니었다. 마침내노동자들은정치적정적을깨고자신의문제해결을위해분노와저항의함성을터트리며스스로떨쳐일어나기시작하였다. 1987년여름, 휴화산의폭발처럼터져나온 노동자대투쟁 이그것이다. 노동자들은 6 29선언 직후부터 3개월여동안전국적으로투쟁을전개했다. 6월 29 일부터 10월 4일까지파업은총 3,255건이었고, 여기에참가한노동자는 121만 8천여명이었다. 노동쟁의건수는전년도인 1986년의 276건에비해 12배나늘어난것이고, 1977년부터 1986년까지의 10년동안발생한파업건수와참가자수에비하면각각 2배, 5.3배에이르는수준이었다 ( 노동부 1988, 15). 노동자투쟁은전국, 전산업에서기업규모에상관없이일어났으며불가침성역처럼여겨졌던재벌기업중화학공업남성노동자들이앞장서전개했다. 노동자들의요구조건은임금인상을비롯하여노동조건개선, 노동조합보장, 현장민주화, 차별철폐등노동현장 - 4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에드리운각종억압과모순을철폐하고인간다운삶을보장하라는것이었다. 노동자들은당시노동법이규정한쟁의절차를깡그리무시하고 선파업-후협상 의탈법적투쟁으로요구조건을쟁취하였다. 대부분기업별로투쟁이전개되었으나지역별, 그룹별, 업종별연대투쟁이초보적인형태로시도되기도했다. 또한노동자들은투쟁을통해수많은노동조합을만들고기존의 어용노조들을축출했다. 노동자들의투쟁은 9월들어대통령선거바람이불기시작하고지배권력이탄압을강화하자약화되었다. 이처럼 1987년 7~9월에걸쳐전개된노동자대투쟁은한여름작렬하는태양만큼이나뜨겁고격렬했다. 노동자들은직접투쟁으로장기간유지되어온노동통제체제를무너뜨리고노동기본권을억압해온노동관계법과지배권력의강권을무력화시켰다. 노동자들은임금과노동조건을사용자측이일방적으로결정해온관행을깨고스스로의힘으로쟁취해냈으며새로운노동조합결성과어용노조의민주화를강제했다. 노동조합의지형은과거생산직중심에서학교, 언론, 병원, 금융등사무전문직, 유통서비스직까지전산업전직종으로확대되었고거대재벌기업에도노동조합의깃발이나부끼게되었다. 많은연구자들은노동자대투쟁을이렇게표현한다. 6월민주항쟁의계승이자연속 ( 신금호, 1987 : 592) 참으로 십년을하루에뛰어넘은 거대한대중운동의비약 ( 엄주웅, 1994 : 164), 근현대사상의최대의민중저항운동 ( 김동춘, 1995 : 100), 노동자들의 거대한인권선언 ( 김동춘, 1997:99), 질풍노도의시기 ( 김유선, 1998) 에 인간다운삶을쟁취하고자항거한일종의노동항쟁 ( 김금수, 2004 : 137) 등으로표현했다. 이처럼노동자대투쟁은우리나라노동운동이시작된이래최대규모의파업투쟁이자노동대중의항쟁이었다. 그것은한국자본주의변화과정에서퇴적되어온노동자대중의불만과요구가일시에분출된거대한투쟁이었으며 1960,70년대및 80년대전반기에걸쳐진행된노동자계급의잠재적역량축적과운동발전의결과이었다. 나아가노동자투쟁은노동자계급의자각과인식을전환시키는결정적계기였으며노동운동과한국사회지형에큰변화를가져오는거대한역사적변곡점의하나가되었다. 노동자들은투쟁과정에서오래짓눌러온사회적무력감이나패배주의를상당부분극복할수있었고투쟁을통해자신들을억압하는체제와각종제도의구조를인식하고자신들의힘과단결이갖는큰의미를깨우쳤다. 노동자들은격렬한투쟁과권력자본의대응양상을목도하면서자신들의투쟁이권력과자본의집합체로서의총자본에대한대응으로서성격을갖는다는것을확인할수있었고, 정치투쟁의가능성과중요성을인식할수있었다. 또한조직적지도성의중요성과넓은범위에걸친연대의필요성도인식하게되었다. 이렇게노동자대투쟁은광범한노동자를단련시키고의식과조직을발전시킨중요한계기를이루었다. 이와같이노동자대투쟁은그야말로 십년을하루에뛰어넘은 거대한대중운동의비약이 - 5 -

었으며, 한국노동운동의여러측면에서획기적인변화를가져오는역사적계기이었다. 노동자대투쟁은수십년에걸쳐방치되었던노동자들의무권리에대한항거였으며, 자본과정부와맞부딪쳐협상함으로써노동정치의가능성이발견된공간이었다. 그런점에서 1987 년여름은정치의발견, 인권의발견, 노동자힘의발견이압축적으로나타났던 역사적시간 이었다. 물론노동자대투쟁은역사적인의의와더불어몇가지측면에서한계도드러냈다. 먼저임금인상등노동조건개선에있어서성과가투쟁의폭발성에비해크지못했다. 조직과투쟁의측면에서자연발생적경향이강했고, 조직적지도력이취약하여매우강고한투쟁을벌이고도투쟁성과가조직적역량의결집 강화로이어지지못했다. 투쟁은사업장단위에서고립, 분산적으로진행되었으며, 연대투쟁이나공동투쟁이전면적으로추진되지못했고, 사업장차원의열악한노동조건과억압적 병영적 비인간적노무관리에는저항했지만, 계급적 제도적요구관철로발전시키지못했다. 노동자들의폭발적인자발적진출이사태전반을압도한데비해, 이를올바른방향으로이끌어갈조직적세력은준비되어있지않았거나역부족이었다. 그결과로노동자대투쟁은노동자들에게분명히인식되거나투쟁방향이목적의식적으로설정되지못했다. 노동자대투쟁에서나타난이들한계는당시노동운동의전반적발전단계를반영한것이었다. 그리고그것은노동자대투쟁이후새로운조직과이념, 투쟁전략과전술의전개과정에서노동자계급스스로가해결하지않으면안될과제이기도하였으며노동자들은이후권력및자본과의치열한대립관계속에서스스로극복해가기시작했다. 2) 87 년이후의노동운동의성장과발전 87년여름석달동안활화산처럼폭발했던노동자대투쟁은종래의자본일방적이었던노사간힘의관계를무너뜨리고사회변화의중심축으로서노동자의위치를확인시킨역사적항거이었다. 석달간의투쟁과정에서스스로단련된광범한노동자들은여름이후변화한정세에조응하면서조직 투쟁 이념등노동운동의주요한측면에서새롭고획기적인변화를일구어나갔다. (1) 민주노조진영의구축 무엇보다가장큰변화는민주노조진영이라는노동운동의새로운주체가형성되고, 민주노조운동이본격화하기시작했다는점이었다. 민주노조운동은 4 단계로진행되었 다. 민주노조운동의폭발적대두 (87 88), 혹독한탄압속에민주노조사수 (89 92), - 6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민주노조총단결과민주노총건설 (93 95), 노동법개정과총파업투쟁 (96 97) 이그것이었다 ( 김유선, 1998). 87노동자대투쟁을계기로결성된새로운노조들은스스로를민주노조라부르고한국노총체제를벗어나지역별, 업종별, 그룹별연대와협력을기초로전국적통일을시도하였다. 먼저제조업분야의민주노조들은 1987년 12월마산창원지역노동조합총연합 ( 마창노련 ) 창립을시작으로 89년말까지 11개의지역별노조협의회 ( 지노협 ) 를결성했고비제조업분야에서는 87년 11월전국사무금융노조연맹 ( 사무금융노련 ) 결성을시발점으로 89년말까지 11개업종별노동조합협의회 ( 연맹 ) 을만들었다. 이후민주노조들은전국노동법개정투쟁본부 ( 전국투본, 1988.8)--> 지역 업종별노동조합전국회의 ( 전국회의,1988.12) 를거쳐전국중앙조직으로서전국노동조합협의회 ( 전노협, 1990.1) 를건설하고비제조업중심으로전국업종노동조합회의 ( 업종회의, 1990.5) 를결성했다. 재벌그룹의노조들도 87년 8월현대그룹노조협의회, 90년대우그룹노조협의회등으로결집하고 90년 11월에는대기업노조연대회의를결성했다. 국가권력과자본은이들새로운운동주체들에대해집중적인공격과탄압을가하지만민주노조운동의거센흐름을막을수는없었다. 민주노조들은 1990년정부의전노협파괴정책을비롯한강력한탄압과1989-95년사이 2,290명이구속되고수천명이해고수배되는상황에맞서조직을사수하고노동조건개선투쟁을전개했다. 특히이들은노동관계법을노동자대중의지위개선과민주노조운동의전진을가로막는 1차적요인으로인식하고노동법개정에총력을기울였다. ILO기본조약비준및노동법개정과민주대개혁을위한전국노동자공동대책위원회 (ILO공대위, 1991.10) 조직과활동은그총체적실천적표현이었다. 그러나권력과자본의공격은더욱가중되었고민주노조진영은전국중앙조직건설을서둘렀다. 이에따라민주노조진영은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 ( 전노대, 1993.6) 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준비위원회 ( 민노준, 94.11) 를거쳐 1995년 11월 11일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 민주노총 ) 을결성하기에이르렀다. 이러한민주노조운동의등장에대해국가권력과자본측은 계급투쟁과폭력혁명노선을추구하는불법집단 사회불안을조성하는불순세력 으로규정하고극렬한탄압을가했다. 민주노조운동의대두와확산은지금까지노동조합운동의총본산으로자처해오던한국노총을위기로몰아넣고스스로변화와개혁을모색하지않으면안되게만들었다. 한국노총은노동자대투쟁다음해개최된대의원대회선언문을통해 지난날의노동운동에대한냉철한자기성찰과겸허한자기비판을통하여운동태세를획기적으로쇄신하고전진적이고창조적인자기혁신과발전을적극도모하지않으면안될중차대한전환기적시점에처해있다 고밝혔다. 이후한국노총은옥외대중집회와시위투쟁등적극적인행동을통해종래와다른모습을보이고운동기조를새로이설정하는등변화와개혁을시도했다. 그러나 1993,94년 노총-경총중앙임금인상합의체결을계 - 7 -

기로대량의조직이탈이일어나면서또다시위기에봉착하였다. 이위기는 1996년 현장과함께하는강한노총건설 을내세우고복수노조금지규정의철폐를공식적으로결의하고나서면서타개의가능성을보였다. 한국노총의새로운개혁시도는 1996 년말이후정부와신한국당의노동법안기부법날치기처리에항의한전국총파업을민주노총과함께전개함으로써재점화되었다. 이로써한국노총은 자본과정권에타협적협조적이라는한국노총의과거이미지를벗고조합원중심으로우뚝서서한국노총의새로운장을열어가고있다 ( 한국노총, 1998 : 258) 고자평했다. (2) 조직 투쟁 이념의변화 1987년노동자대투쟁이후노동조합조직은미조직사업장과함께미조직분야에서조직화가급진전되면서크게확장되었다. 특히재벌그룹및계열사와언론, 병원, 공공부문, 대학, 경제단체, 유통부문에서의노동조합조직화는노동조합운동의지형을크게변화시키고운동영역을획기적으로넓혔다. 그결과로노동조합수와조합원수는 1989년현재 7,883개에 193만 2천여명으로급증했다. 조직률역시 13.8% 에서 18.6% 로크게증가했다. 그러나 1990년대에들면서조직세는감소추세를나타냈다. 곧 1990년이후조직규모는매년 268여개에 5만 6천여명씩줄어들어 1997년에는 5,733개에 148만 4천여명에머물렀고조직률역시한해에 1% 가까이낮아져 1997년에는 1987년 6월현재의 11.7% 보다낮은 11.1% 를나타냈다. 이는기업별노조체계하에서중소영세기업노동자들이나비정규직노동자대부분을포괄하기가현실적으로어려운데다 90년대들어구조조정이강행되고중소영세업체의휴폐업이속출할뿐만아니라노동의유연화의급진전에따라정규직이비정규직으로전환되고있는데서비롯되었다. 이와더불어제도적으로공무원과교원의노조결성권이봉쇄되고있고사용자들의부당노동행위가계속자행되고있는상황에서노동조합의목적의식적인조직확대사업이이루어지지않았다. 특히노동자대투쟁이후새로이대두한민주노조운동진영은권력과자본의치열한공격으로부터기존의조직을지키고새로운조직틀을형성하는데온힘을기울일수밖에없었고한국노총역시조직보존에주력할수밖에없는상황이었다. 한편노동자대투쟁을중심으로 1987년에 3,749 건을기록했던파업은 1988년 1,873 건, 1989 년 1616 건으로여전히폭발적양상을보였으나 1990 년에들어 322건을나타낸후매년감소하여 1997 년에는 78건을기록했다. 이같은감소추세는지난 10년간의교섭과투쟁경험의축적으로노사쌍방이불필요한마찰과쟁의를자제한데서비롯된것으로분석되었다. 그러면서도노동조합운동의주력이대기업으로옮겨감에따라파업건별참가자수와노동손실일수는 - 8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1994 년까지는증가하고있었고 ( 김유선. 2000 : 35) 파업지속일수가매년증가추세를나타냄으 로써투쟁이얼나마완강하게전개되었는지를나타내고있었다 ( 표 1 참조 ). 표 1 1987 1997 년노동조합및노동쟁의추이 노동조합 노동쟁의 연도별 노조수 ( 개 ) 조합원 ( 천명 ) 조직률 (%) 파업건수 ( 건 ) 파업참가자 ( 천명 ) 노동손실일 ( 천일 ) 파업지속일수 1987 4,103 1,267 13.8 3,749 1,262 6,946 5.3 1988 6,164 1,707 17.8 1,873 293 5,400 10.0 1989 7,883 1,932 18.6 1,616 409 6,351 19.2 1990 7,698 1,887 17.2 322 134 4,487 19.1 1991 7,656 1,803 15.4 234 175 3271 18.2 1992 7,527 1,735 14.6 235 105 1,528 20.1 1993 7,147 1,667 14.0 144 109 1,308 19.9 1994 7,025 1,659 13.3 121 104 1,484 21.6 1995 6,606 1,615 12.5 88 50 393 22.6 1996 6,424 1,599 12.1 85 79 893 28.6 1997 5,733 1,484 11.1 78 44 445 22.7 자료 : 한국노동연구원, 2017 KLI 노동통계 이러한파업투쟁추이속에서나타난큰변화는투쟁주체와투쟁역량이광범하게확대되었다는점이었다. 곧투쟁의주체가제조업으로부터사무, 전문, 기술직종등의노동자들로크게넓혀졌으며, 투쟁과제는경제적생활조건의개선에서사회개혁분야로크게확대되었다. 또한투쟁은조합원주도에서노조주도로바뀜으로써조직적 계획적성격을띠게되었고, 아울러지역별 산업별 그룹별연대투쟁과전국적통일투쟁도계획적으로전개되었다. 경제투쟁과정치투쟁의결합도또한높아졌다. 이는조직의보존과확대그리고경제적요구쟁취를위한교섭과투쟁이기존의제도적제약에번번히부디칠뿐만아니라임금인상이나노동조건개선을위한사업장단위의단체교섭만으로는권익향상에한계가많다는인식이넓혀진데서비롯된것이었다. 이에따라정책제도개선에대한요구가높아졌고노동운동탄압에의대응, 경제정의에대한국민적요구와함께정치적민주화와경제민주주의의실현, 민족자주화와민족통일의달성등의과제가정치투쟁의영역속에자리잡게되었다. 이처럼투쟁의주체와영역이확대변화함에따라국가권력과의대결은갈수록격렬하게되었고국가권력과노동운동의대립구도는정치투쟁의고양가능성을높였다. 이로부터노동현장은해고 - 수배 - 구속의악순환이이어졌고구속노동자는 1987-1997 년의 10년사이무려 2,842 명에이르렀다. 노동운동의조직과투쟁이변화발전하면서노동운동이표방하는이념이나운동기조도크게변화했다. 1988년 11월전국노동자대회이후민주노조진영의현장에는 노동해방 이라는깃발 - 9 -

이나부꼈다. 노동해방의내용이어떤것인지공식적으로설명되지는않았지만현상을타개하고개혁또는변혁을이룩하고자하는대중적열망을표현한것으로이해되었다. 한편 1990년민주노조진영의중심축으로등장한전노협은스스로를일방적노사협조주의노동조합운동을극복하고자주적이고민주적인노동운동을전개해나갈수있는새로운조직적주체라고규정하고경제적이익을위한투쟁과함께경제사회구조의개혁과조국의민주화 자주화 평화통일을이룩하기위한투쟁을강조하고산업별노조체계를기반으로하는전국중앙조직건설을목표로내걸었다. 전노협의운동이념은노사협조주의를배격하고사회개혁을지향하며경제투쟁과정치투쟁의결합을기본내용으로하고있으며총자본에대한적극적인투쟁의지와민족문제의해결을위한구체적인목표를제시하였다. 요컨대전노협의운동이념은자본주의체제나임금제도의철폐를전략적목표로내세우고있지않다는점에서혁명적조합주의라고볼수는없지만투쟁성과정치성을강하게띤사회개혁적노동조합주의로평가되었다 ( 김금수, 1995 : 98). 이어 1995년출범한민주노총은노동자를 생산의주역이며사회개혁과역사발전의주체 로규정하면서스스로를 자주적이고민주적인노동조합의전국중앙조직 으로자리매김했다. 민주노총은 노동자의정치 경제 사회적지위향상 과 전체국민의삶의질개선 및 인간의존엄성과평등을보장하는통일조국 민주사회의건설 을목표로제시하면서활동원칙으로자주 민주 통일 연대와단결 투쟁을내세웠다. 한편개혁을추진해온한국노총은 1991년채택한 90년대한국노총의운동기조와활동방침 에서스스로의이념을 민주복지사회실현을위한노동조합주의 로제시했다. 여기서한국노총은노동운동의대내외적상황변화에대응해야할현실적요구에서정치적경제적조합주의의한계와단점을극복하고노조의자주성 민주성확립, 한국자본주의의구조적개혁, 정책결정기구참여, 정치활동의활성화, 노동조직의통일및시민운동과의연대강화등을표방하였다. 또한 1995년에는 1991년의것과유사한내용의 2000년대를대비한노종의운동기조와활동기조 를설정했다. (3) 노동법개악반대 1996/97 총파업 노동운동을제약해왔던노동법은 1989 년여소야대국회에서일부개정되었으나노태우대통령의거부권행사로무산되었다. 노동법은노동운동전개에있어민주적개혁의핵심과제로제기되었고민주노조진영은치열한투쟁을전개해왔다. 이런추이를배경으로문민정부는 1996 년민주노총이한국노총과함께노동계의대표로참여한노사관계개혁위원회 ( 노개위 ) 를구성하여노동법개정을추진했다. 노개위에서는노사정간에노동기본권확충과정리해고제도입등노동의유연화요구가맞서합의를이루지못했고 1996 년 12월 26일신한국당은노개위공익 - 10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위원안보다훨씬후퇴한내용의노동법개정안을안기부법개정안과함께날치기통과시켰다. 민주노총은즉각총파업에돌입했다. 1997 년 2월 28일까지 4단계로진행된총파업은전국적인정권규탄및총파업결의대회와함께전개되었다. 학계, 종교계, 시민사회운동단체들과국제조직들도총파업에대한지지와연대의사를표명하였다. 총파업에한번이상참가한노조는 531개에조합원 40만 4,054 명이었으며총파업전체누계로는 3,422 개노조 387만 8,211 명이참가하여 1일평균 163개노조조합원 18만 400명이참가한것으로나타났다. 아울러전국주요도시에서 30회이상의대규모집회에연인원 150여만명의노동자와시민들이참가한것으로분석되었다 ( 민주노총, 1997 :155-156). 한편한국노총은 1996 년 12월 27일부터 1997 년 1월 15일까지 2단계의총파업을전개했다. 한국노총의총파업은연인원 153만여명이참가한것으로집계되었으며전국각지에서의대중집회와조합원서명운동, 위원장의단식투쟁및철야농성등다양한방식이동원되었다. 양대노총의총파업이장기간지속되고양대노총의연대와공동행동, 시민사회운동및국제조직의지원이확산되자 1997 년 2월김영삼대통령은국민에대해사과하고노동법재개정을천명하였다. 이에따라 1997 년 3월 11일, 국회에서는날치기법안을폐지하고그개정안을의결했다. 이처럼 1996 년 12월 26일부터 1997 년 2월말까지전개된총파업은 87년노동자대투쟁이후급성장한노동운동, 특히민주노조의역량을유감없이발휘한역사적사건이었다. 그것은 1한국정부수립이후최초의총파업으로노동운동역사상최대규모였고 2노동관계법개악에항거한정치파업이며 3계획적이고조직적인형태로완강하고장기간지속되었고 4 사회운동에서노동운동이주축임을확인했으며 5노동자계급의정치세력화의필요성을확인하는중요한계기가되었고 6총자본의세계화, 신보수주의공세에맞선투쟁으로세계노동자의연대와지지투쟁을확보했다는점등의의의를지녔다 ( 김금수, 2004:400-402). 아울러한국노총의개혁을가속화하는계기가되었다. 그러나총파업은한국노동운동이지닌조직투쟁역량의취약성을드러내는등몇가지한계를보였고직접적인요구조건인노동법개정안은날치기노동법의내용과크게다르지않았다. 총파업의한계를절감한민주노총은 1997 년말대통령선거를계기로노동자정치세력화과제에도전하기시작했다. 2. 외환위기와노동운동의침체 1) 노동환경변화에대한정책의대응 1997 년 11 월, 한국은돌연외환위기로인한국가부도사태에직면했고기업의도산과대량실 업사태로온나라가혼란의소용돌이속으로빠져들었다. 김대중대통령당선자는취임도하기 전에위기수습에나섰고황급히외채를끌어들였다. 한국정부는국제금융기구 (IMF) 가구제금 - 11 -

융을제공하는조건으로요구한전형적인신자유주의정책을전면받아들였다. 그리고양대노총의동의하에 IMF 체제극복을위한노사정위원회 를구성하여 2월 6일 경제위기극복을위한사회협약 을성사시켰다. 그내용은노동기본권보장, 기업의구조조정및경영투명성확보, 사회보장제도의확충, 정리해고와근로자파견의법제화등광범한것이었다. 그러나민주노총임시대의원대회에서는쇠파이프가난무하는가운데사회협약안을부결시켰다. 지도부가총사퇴하고비상대책위원회가구성됐지만민주노총이결의한총파업은무산됐다. 그리고 2월 13일임시국회에서는정리해고제와근로자파견제를법제화했다. 이로부터노동운동은극심한혼란과시련으로치닫기시작했다. 국민의정부 는사회협약을제대로이행하지않았고노동현장에는정리해고의광풍이휘몰아쳤다. 비정규직노동자는급증했고일방적인구조조정을무기로한양보교섭으로임금과노동조건은급격히하락했다. 대량실업대책으로추진된 생산적복지 정책은사회보장제도의핵심을빗나간채초보단계에머물렀다. 노동자의저항은격화됐고정권은법과원칙의잣대를들이대억압했다. 2003년들어선 참여정부 는 사회통합적노사관계 를내세우고노동기본권의확충과비정규노동자의보호등을강조했다. 그러나경제사정의악화와자본쪽의반발에직면하여노동운동에대한강경대응으로전환한가운데 노사관계법 제도선진화방안 ( 노사관계로드맵 ) 을발표했다. 그리고 2006 년말비정규보호법을제정했다. 이같은정책의변화는노정간대립으로표출되었고노동현장에는해고와구속의악순환이되풀이되었다. 국민의정부와참여정부하에서구속노동자는 892명, 1,042 명으로급증하였다. 누적되어온노동자들의불만은격렬한저항투쟁으로분출되었고목숨을던지는극한투쟁이빈발했다. 2008 년등장한이명박정권은총선거승리와경제살리기공약을내세워대자본을위한신자유주의성장정책을강행했다. 그러나집권 5년동안경제성장률은외환위기이후가장낮은연평균 2.9% 에그쳤고사회경제적양극화는더욱심화하였고국민적저항은격화했다. 비지니스프렌들리 정부라고자처한이명박정권은노동유연화의확대와노사관계선진화라는두축으로노동정책을추진했다. 정권은노동통제를위해단체교섭창구단일화를전제로한기업단위복수노조제도의도입 (2011), 노조전임자폐지와타임오프제시행 (2010.7), 법과원칙에의한쟁의질서확립등을강행했다. 아울러공공기관의합리화라는명분으로공공부문노조의노동조건의하락을강제했다. 정권은전교조, 공무원노조에대한단체협약개선명령과단체협약해지등일련의억압조치를강행하고, 쌍용자동차노조의정리해고반대투쟁과철도노조의민영화반대투쟁에대해대대적인공권력투입, 대량해고, 구속등잔혹한제재를가했다. 이명박정권하에서 2012 년 10월말까지구속된노동자는 515명에이르렀다.( 구속노동자후원회, 2012.11.1.) 이러한이명박정권의노사관계정책을배경으로노동현장에서는사용자에의한노조파괴가횡행하였다. 주로조직력이강한민주노조들에가해진노조파괴공작에는불법적인직장폐쇄와복수노조제도가악용되고용역깡패와공권력이동원되었다. 아울러사용자들은단체협약해지, - 12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손해배상청구및가압류와같은강압수단을동원하여노조활동을봉쇄하고자하였다. 2013 년 2월출범한박근혜정권은 경제활성화 를앞세워경제민주화와복지확충공약을폐기했다. 경제활성화 는신자유주의시장주의기조하에대자본이양적경제성장을주도하게한다는전략이었다. 이를위해박정권은 노동개혁 을내세워대대적인규제완화와공공부문의사유화그리고노동유연화의확충을통한대자본의이익증대를추진했다. 박정권은 고용률 70% 달성 을설정하고노동의유연화확장을서둘렀다. 노사관계정책에서는 배제와포섭 사탕과채찍 의전통적인분열전략을구사했다. 대선공약의파기이후박정권은민주노총을떠받치고있는기간조직들, 곧공무원노조와전교조를 2013년하반기불법화하였고자본가들은자주적민주적노조들을폭력배를동원하여파괴하는가하면단체협약의해지와막대한금액의손해배상가압류사태로노동조합의숨통을막았다. 민주노총에대한정부의공격은 2013 년 12월민영화반대파업을벌인철도노조간부체포를명분으로한경찰의민주노총본부난입에서절정을이루었다. 박근혜정권의노동운동에대한또하나의공격은정규직노조때문에노동시장이왜곡됐다는내용의이념공세와함께공공기관노동자들의노동조건하락을내용으로하는공공부문의개혁추진이었다. 그한편에박정권은한국노총에대해 노동개혁 과관련한사회적합의를집요하게요구했다. 그리고 2015년 9월 15일 노동시장구조개선을위한노사정합의 를성사시켰다. 그러나정권은한국노총과의약속을깨고일방적으로노동유연화확장을위한일련의제도개혁추진을공식화했다. 기간제노동자의계약기간연장과일반해고제의도입, 사용자에의한취업규칙변경권허용등이그것이었다. 이에한국노총은 2016 년 1월 11일노사정합의안의파기를선언하고노사정위원회를탈퇴하였다. 그럼에도정권은행정지침으로일반해고제도와취업규칙개정을밀어부치는한편임금체계개편을서둘렀고임금피크제와공무원및공공부문의성과연봉제도입을강행했다. 그리고노동개혁에반발하는세력특히민주노총에대해서는잔혹한탄압을가했다. 박정권은 2015년 11월 14일민주노총과 53개사회시민단체가연합하여서울광장에서개최한 전국민중총궐기대회 에물대포와최루액을대량으로무차별살포하였고백남기농민을죽음으로몰아넣었다. 그리고민주노총등에대한압수수색을감행하여수백명을연행조사하고 30명을구속하였다. 1심법원은한상균민주노총위원장에게징역5년벌금 50만원을선고했다. 역사상가장무거운징벌이었다. 이처럼이명박근혜정권은대자본의이익을위해 경제살리기 와반민주적억압정치를강행했다. 그러나경제는살아나지않았고사회양극화는더욱심해졌다. 경제성장률은 3% 수준을넘지못했고한국국민의주요한삶의지표들은 OECD가입국가운데최하위수준에서허우적거렸다. 노동조합과그연대세력들은정권의횡포에온힘을다해저항했고 2016년 4월의총선거에서는야당의무기력에도불구하고박근혜정권 - 13 -

의집권여당이참패했다. 그리고세월호참사를비롯한숱한비리들이연이어폭로되 고국정농단실체가드러나면서거대한촛불항쟁이전개되었다. 2) 노동운동의대응 1987년민주항쟁과노동자대투쟁이후 10년동안괄목할만한발전상을보였던우리나라노동운동은 1996년말밀어닥친외환위기와함께급격한변화를강요당했다. 국가부도의위기타개를위한외환위기의도래와함께밀려들어온자본의신자유주의세계화전략아래서노동운동은극도의혼란을겪었고심각한침체양상을나타냈다. (1) 조직율의정체와조직구조의변화 1987년노동자대투쟁을계기로급속히확장되었던노동조합조직규모와조직률은 1989년을고비로매년감소해왔다. 외환위기가도래한 1997년이후에도획기적인반전은일어나지않았다. 1997년이후노조수및조합원수는증감을되풀이하는가운데조직률은 1997 2003년 11% 대에서 2004 2009년 10% 수준으로낮아지고 2010, 2011년에는 10% 선마저도무너졌다. 그리고 2012년부터 10% 초반수준을회복하여오늘에이르고있다. 조합원수는 1996년까지매년감소했으나 1997년부터는증가세로돌아섰고 1990년대후반 140만명수준에서 2000년대중반까지 150만명수준으로늘어나고 2010년대부터는 170만 190만대에접어들었다. 조직구조도여러가지변화를나타냈다. 2015년현재조합원수를성별로보면남성이 76.3% 를차지하고여성은 23.7% 에지나지않았고조직률역시남성은 13.7% 인데비해여성은 5.6% 에그쳤다. 부문별로는민간부문이전체의 86.1% 이고교직원은 3.1%, 공무원은 10.8% 의분포를보였고조직률은각각 9.1%, 14.6%, 66.3% 이었다. 조합원규모별로는 1천명이상이 73.2% 로압도적으로많고 100명미만은 3% 를밑돌고있다. 사업체규모별조직률도 300명이상의대기업은 62.9% 인데비해 300명미만은 12.3%, 100명미만은 2.7%, 30명미만은 0.1% 에불과했다 ( 고용노동부, 2016). 고용형태별로는정규직이 20.2% 인데반해비정규직은 2.0% 이었다. 한편조직형태별로는종래기업별노조가지배적인형태로이어왔으나 2007년부터는초기업단위조합원수가전체의 50% 를넘어섰고 2015년에는 56.7% 까지증가했다. 특히민주노총산하조합원들은 80% 이상이초기업단위에속해있는것으로나타났다. 전국중앙조직별로는한국노총이조직수 2,372개에전체조합원수의 43.5%(84만여명 ), 민주노총이 373개의조직에전체조합원의 32.8%(63만여명 ) 를 - 14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포용하고있으며내셔널센터미가맹조직에 3028 개조직에 23%(44 만여명 ) 의조합원이 분포되어있는것으로노동부통계는분석하고있다. 표 2 1997~2016 년노동조합및노동쟁의추이 연도별노동조합 ( 개 ) 조합원 ( 천명 ) 조직률 (%) 파업건수 ( 건 ) 파업참가자 ( 천명 ) 노동손실일 ( 천일 ) 파업지속일수 ( 일 ) 1997 5,733 1,484 11.2 78 44 444 22.7 1998 5,560 1,401 11.5 129 46 1,452 26.1 1999 5,637 1,480 11.8 198 92 1,366 19.2 2000 5,698 1,526 11.6 250 177 1,893 30.0 2001 6,150 1,568 11.8 235 38 1,083 31.7 2002 6,506 1,605 11.3 322 93 1,580 30.2 2003 6,257 1,550 11.0 320 137 1,298 29.0 2004 6,017 1,537 10.6 462 185 1,199 24.7 2005 5,971 1,506 10.3 287 118 848 48.6 2006 5,889 1,559 10.3 138 131 1,201 54.5 2007 5,099 1,688 10.8 115 93 536 33.6 2008 4,886 1,666 10.3 108 114 809 37.0 2009 4,689 1,640 10.0 121 81 627 27.9 2010 4,420 1,643 9.7 86 40 511 36.2 2011 5,120 1,720 9.9 65 33 429 30.6 2012 5,177 1,781 10.1 105 134 933 31.7 2013 5,305 1,848 10.3 72 113 638 16.5 2014 5,445 1,905 10.3 111 133 651 40.5 2015 5,794 1,939 10.2 105 77 447 21.9 2016 120 2,035 자료 : 한국노동연구원, 위의책 이러한조직규모, 조직률, 조직구조들은우리나라노동조합운동의특징을잘나타내고있다. 곧조직률 10% 는노동조합이노동운동의대표성을장악하고있는가에의문을제기한다. 전체조직률만이아니라양대노총을주축으로보면그심각성은더깊어진다. 여기다기업별노조체계에법률적제도적허점으로인해단체협약적용률은역시 10% 수준에머물고있다. 또한조직구조상으로는남성, 대기업, 공공부문의정규직노동자들이노동조합을지배하고있고여성이나중소영세기업, 비정규직노동자들은절대다수가소외되어있었다. 노동운동진영은매년조직확대를가장중요한사업으로책정해왔다. 그러나계획적인조직화사업은극히부진했다. 특히외환위기이후급증한비정규직노동자들과중소영세기업, 이주노동자등이조직대상에서소외됨으로써조직률저하경향은더욱가중됐다. 이러한상황을배경으로민주노총은 2000년이후전략조직화사업을추진했다. 2003년정기대의원대회에서는비정규직노동자조직화와관련하여 5개년사업계획을수립하고조합원들로부터 5억원의모금계획을결의한끝에 3억여원을거두어들 - 15 -

였다. 이어 2005년정기대의원대회에서는전략조직화사업을조직문화혁신의일환으로정의하고 50억원의기금을모으기로결의했다. 기금은 2006년 1월부터 2011년말까지목표의 44% 인 22억여원이모금되어, 조직화사업에 15억여원을투입했다. 사업은 1기 (2006년시작 ) 와 2기 (2011년시작 ) 로나뉘어지역본부와산별조직들이수행하였고 2기사업의경우 23개지역및산별조직에서 3,495명을조직화한성과를거두었다. 그러나, 핵심사업평가에서는 100점만점에 54.17점에그쳤다 ( 김종진, 2012: 146~147). 2010년 11월현재민주노총의비정규직조합원수는의무금차등납부대상자 4만 9,890명에학교비정규노동자수 2만 220명을합친 7만 110명으로, 그비중은민주노총전체조합원의 10.3%, 전체비정규노동자의 1% 에미달하는수준이었다 ( 김태현, 2012: 22~23). 2017년 1월말현재민주노총의전체조합원 734,369 명가운데비정규조합원수는 181,078명 (24.6%) 으로알려지고있다. (2) 노동자저항투쟁의격화 1997 년까지감소추세를보이던파업건수는 98년이후매년증가하여 2004 년에는 462건을기록하였고그후다시감소추세로들아서서 2010 년대에는 100건이하로까지낮아졌다가 2012 년부터다시 100건을넘어서고있다. 이는하루 8시간이상파업한사업장을집계한것이므로실제로부분파업, 시한부파업등을고려하면투쟁건수는훨씬많아질것이다. 파업참가자수나노동손실일수는시기별로증감추세를보이고있으나파업지속일수는해를거듭할수록늘어나는추세를보이고있다. 이는사건에따라강도를달리하겠지만일단투쟁에돌입하면장기간에걸쳐완강하게전개되었음을나타내고있다. 이는파업의원인가운데외환위기이후구조조정반대및고용안정등경영관련사항이주류를이루고있는데서나타난것처럼노동자들의결정적인생존문제가대두된데서비롯된것으로보인다. 이밖에외환위기이후강제된양보교섭의결과를회복하려는임금인상투쟁, 비정규직노동자권리보장, 공무원및교원의노동기본권확보그리고정책제도개선투쟁등도치열하게전개되었다. 특히 2016 년에전개된현대기아자동차노조의장기간파업과사상최장기를기록한 74일간의철도노조파업, 성과연봉제철폐를내세운공공부문 5개연맹의 9월파업등으로노동손실일수가전년보다 355% 증가한 203만 5천일을기록했다. 파업은일반적으로노동조합의결정적인최후의무기이지만대부분방어적수세적인성격에머물고있고정부자본측의완강한저지와많은제도적법률적인제약, 조직내준비의부족및조합원의저조한참여로인해성과를내지못하는경우가많았다. - 16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1기업구조조정저지투쟁 : 구조조정저지투쟁은대부분의기간산업, 대기업과공공부문에서일어났고치열함만큼이나희생도많았다. 권력과자본쪽은대량해고, 노조간부에대한징계와전환배치, 손해배상과가압류, 노조간부의구속수배등으로노동자들의투쟁에대응했다. 구조조정저지투쟁은대부분기업별로분산되어방어적으로전개되었고노조자체가약화되는사례도빈번하게나타났다. 가장상징적이고격렬했던투쟁은쌍용자동차노조 (2009) 및한진중공업노조의정리해고반대투쟁 (2013), 철도노조의민영화반대투쟁 (2009, 2013) 및 74일에걸친성과연봉제반대투쟁 (2016), 자동차산업의노동시간단축과사내하청철폐투쟁, 사내하청노조의정규직화요구투쟁, MBC, KBS, YTN, 국민일보등언론계노동자들의정권의언론장악반대투쟁 (2011), 유성기업노조의구조조정반대및노동기본권확보투쟁 (2012 2017), 삼성전자서비스노조의노조인정투쟁 (2013) 등이었다. 2비정규직노동자투쟁 : 비정규직노동자들의조직적인투쟁은 2000년말부터광범한분야에서전개되었다. 요구내용은기간제노동자들의정규직화요구가대부분이고사내하청노동자들의원청회사와의직접교섭과정규직화, 특수고용노동자들의노조인정등이잇따랐다. 이들투쟁은농성, 집회, 시위, 점거형태로전개되었으며장기간에걸쳐분신등의극단적투쟁방식에호소하는방식이자주나타나는한편외부와의연대에대한의존도가높은특징을보였다.( 조돈문, 2011 : 143-148) 국가권력은 2006 년 8월공공부문부터비정규노동자대책을강구하지만그내용은원인제거보다는차별완화와같은사후적인내용에그쳤다. 중소영세기업노동자들과비정규직노동자들은정규직노동자들에비해훨씬처절한투쟁을하지않으면안되었다. 이들은노동조건의개선과특히고용의안정을요구했지만제도적약점을빙자한사용자들의거부로번번히좌절되었고그때마다노동자들은극렬한방법으로대응하지않으면안되었다. 이들은비정규직철폐, 임금인상및노동조건개선, 노동탄압의중단과노동기본권보장등의요구조건을내걸고고공농성, 단식과삭발, 노숙농성, 삼보일배등극한적이고처절한방법을동원하여투쟁했고오랜고통에지친노동자들과그가족들이스스로목숨을끊는사례들이빈발했다. 3교사, 공무원의노동기본권확보투쟁 : 1989 년 5월참교육실현을목표로결성된전교조는 1,527 명이해직되는탄압에도불구하고치열한투쟁을전개한끝에 1994 년 3월문민정부하에서현장투쟁을위해해직교사의 조건부복직 을받아들이고합법성쟁취를위한투쟁에나섰다. 전교조는 98년 2월노사정합의를거쳐드디어 99년 7월 1일합법조직으로출범하게되었다. 또한공무원들은국민의정부이후정부의반대를무릅쓰고 2001 년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총연합 ( 전공련 ) 과대한민국공무원노조준비위 ( 공노준 ) 을출범시켜공무원노조법의법제화를요구하고나섰다. 그리고 2002년 3월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 공노총 ) 과전국공무원노동 - 17 -

조합 ( 전공노 ) 이공식출범한데이어 11월에는전공노가공무원노조법제정을요구하며이틀간의총파업을벌였다. 정부는총파업에참가한공무원 2,304 명을징계하고그중 224명을파면또는해임하는강경책을행사했다. 공무원노조의합법화는 4년후인 2006 년 1월 28일에이르러서야이루어졌다. 그러나교원노조나공무원노조는단체행동권이금지됨으로써단체교섭권행사가형해화되었고단체협약체결이지연되거나무시되는경우가빈발했다. 결국교원노조와공무원노조는박근혜정권의탄압정책으로인해 2015 년합법성을박탈당하기에이르렀다. 4임금인상 노동조건개선투쟁 : 외환위기이후양보교섭으로임금및노동조건의저하를감수했던노동조합들은 2000년부터회복투쟁에나섰다. 이투쟁은산별노조와대기업들이주도했다. 산별노조들은매년다양한교섭방식과시기집중투쟁, 총파업등을동원하여임금인상과산별협약, 사용자단체구성등을쟁취해냈다. 이명박정권이래산별교섭에대해사용자들은사용자단체를해체하거나교섭을거부함으로써산별교섭을형해화하는데집중했고정권은이를방치함으로써노사관계를파행으로몰아넣었다. 개별기업의투쟁은공권력투입, 직권중재, 긴급조정권발동등혹독한제재로많은희생을치루기도했다. 이들투쟁과정에서몇몇노동조합들은복수노조의약점을이용한사용자들의집중적인공격을받아파괴의위험에직면했다. 이러한치열한투쟁과정에서상여금의통상임금산입, 사내하청노동자들의정규직인정등법원판결에따라제도정책상에긍정적변화들이기대되었으나최종판결의지체및정권과자본의방관지연작전으로실제효과는크게저감되었다. 5정책제도개선총파업투쟁 : 민주노총은 1997 년노사정위원회합의안부결이후인 1998 년 5월말과 7월초에 IMF재협상을요구하며총파업을벌인이래 2009 년 7월 22일까지 29회의 총파업을포함한총력투쟁 을벌였고총 2,232 개노조, 2,556,731 명이참여했다.( 김태현, 2012 : 37) 한국노총은 1999 년 6월부터 2003 년까지총 8회의총파업과수차의총력투쟁결의대회를전개했다.( 한국노총, 2003 :665) 노동조합의투쟁목표는구조조정중단, 공기업민영화저지, 기간산업해외매각반대, 노동유연화반대및고용안정, 비정규직노동자권리보장, 노동법개악저지, 노동기본권보장등이었다. 그러나총파업은중앙조직의결정에따라수행된나머지현장의사전준비없이진행되었다. 결국총파업은노동자대중을참여시키지못했고국민여론도동원하지못한채현장의피로도만높이게되었다. 민주노총과산별조직들은 2013년이후 10여차례의총파업으로박근혜정권에대항했다. 그가운데 2013년 12월철도민영화에반대한 21일간의철도노조파업과 2015년 11월의총파업과민중총궐기대회, 2016년성과연봉제를반대한철도노조의 74일간의파업등은제도상의제약에도불구하고정권에심대한타격을가했고이에대해정권은대량징계와구속등강경한탄압을가해왔다. 한국노총은대규모집회 - 18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를통해자신의요구와주장을제기해왔다. 이과정에서양대노총은연대전략을구사하는새로운양상을보여주었다. 양대노총위원장의면담과공동대중집회, 그리고공공부문과제조업부문노동조합의공동대책또는투쟁위원회구성과운영등이그것이었다. 6 극한투쟁의빈발 : 노동조합의저항투쟁에대해 1998-2002 년공권력투입건수는 23회나되었고자본측의손해배상청구액은 2000-2003 년에 72개회사에 641억 1,800 만원, 가압류청구액은 63개회사에 1,236 억 3,300 만원에이르렀다.( 이주희, 2004.1 : 61) 자본측의횡포는 2014 년 3월 17개사 1691 억 6천만원, 2016 년 8월 57개사 1521 억여원에이르렀으며 2017 년상반기에도손해배상청구액은 24개업체에 65건, 1867억원에이르렀으며가압류액은 180억원이나되었다 ( 손잡고, 2017. 9.1 기자회견문 ). 이러한잔혹한탄압에견디다못한노동자들은스스로목숨을끊어저항하였다. 그숫자는 1998 2007 년에 12명에이르렀고한국노총에서도 2005 년 6월김태환충주지부장이레미콘노동자들의투쟁지원중자동차에치여숨지는사건이일어나한국노총의격렬한저항을불러일으켰다. 2009 2012 년사이에 5명, 2015 2016 년에 6명의노동자가노동탄압에항의하여스스로목숨을던졌고특히 2013 년에는정리해고된쌍용자동차노동자와가족들의 28번째죽음에이어 10월 31일삼성전자서비스센터최종범노동자의죽음까지스스로목숨을버린노동자는 19명에이르렀다 ( 국회환경노동위원회. 2013 : 14-15). 이와아울러 2008 년이후노동자들이택한저항투쟁방식은고공농성이었다. 이투쟁은 2011 년한진중공업노조의김진숙지도위원 ( 민주노총부산본부 ) 의타워크레인농성으로부터 2013 년 11건에이르기까지노동자들은 151일에서 296일에이르는기간동안굴뚝, 철탑, 종탑등에서처절한농성투쟁을벌였다. 그후최근까지도노동자들은비정규직철폐, 노동탄압의중단, 노동조건개선, 노동기본권보장등의요구조건을내걸고폭염과혹한에목숨을건처절한투쟁을벌였다. 이들극한투쟁은법률적제도적으로조직화와대중투쟁을전개할수없는현실조건의반영이었다. 7노동운동내부의혼란과시련 : 민주노총은 1998 년 2월이후노사정위원회불참과참가, 총파업단행과철회를거듭하다가 1999 년 2월대의원대회에서노사정위원회탈퇴를결정했다. 이후민주노총은잦은지도부교체와정파간대립갈등등으로거듭시련을겪었다. 게다가조직내부에서비리가빈발하는사태에직면했다. 이에더하여민주노총에서는 2004 년초사회적교섭여부를둘러싸고대의원대회단상이점거되고폭력이난무하며신나와소화액까지뿌려지는험악한사태가연이어일어났다. 이사태는조합민주주의에대한몰이해에서비롯된것이기도하지만기본적으로는민주노총내부에오랫동안진행되어온정파간의갈등이노골화하여폭발한것이었다. 조직의혼란상은한국노총도마찬가지였다. 각종비리는예산유용및횡령, 특혜와뇌물수뢰, 부정취업, 회사와의담합등에서성희롱사건까지전국조직에서부터단위노 - 19 -

조에걸쳐이루어져도덕성에치명적인상처를입었을뿐만아니라지도부의잦은사퇴로인한 지도력공백의문제가심각하게제기되었다. 3) 노동운동혁신의시도 외환위기이후노동운동은노동자의기본적인삶의조건마저유지하기어려운상황으로몰린나머지극도의침체양상을보였고노동운동의위기론이팽배했다. 노동운동의위기논쟁은꽤오래전부터제기되어왔지만위기상황은치유되기보다는갈수록더욱심화됐다. 노동운동이위기에처한원인을둘러싸고구조적인한계나노동운동의원리에근거한분석도나타났다. 노동운동의중심축인노동조합의위기는자본주의경제체제에서는구조적인것으로, 위기에빠질위험성은항상갖고있다는주장, 우리나라노동조합들은노동자대중의이익을대변하지못하고있다는점에서대표성 연대성을상실했다는주장, 노동조합이국가와자본의공세에휩쓸려들어갔을뿐만아니라조직내부민주주의가붕괴됐다는점에서자주성, 민주성이위기에처해있다는주장등이그것이었다. 민주노총은민주노조운동의위기와침체양상이민주성, 자주성, 투쟁성, 연대성의원리가노동현장에서부터무너짐으로써더욱가중됐다고보고있었다. 민주성은각종정파들사이의갈등과패권주의의이전투구속에실종됐고, 이로인해현장조합원의불신과냉소는갈수록심화확대됐다. 투쟁성에대한지적은당위적투쟁에복무하기위한성격이짙고판에박은듯되풀이되는집회와시위가조합원들을감동시키기보다는지치게만들어투쟁에대한적극적인참여를가로막고있다는것이다. 또한자본의일상적노무관리체계아래서노조간부들과대의원들은담합관계속에편입됨으로써자주성은약화되거나상실됐고, 자주성의상실은자본이용납하지않은연대투쟁, 정치투쟁참가를꺼리게만들고스스로를기업테두리안에가둠으로써운동성을상실하도록만들었다는비판이제기됐다. 연대성은정규직노조원들이고용안정의안전판으로활용하기위해비정규직노동자를배제하는데서전형적으로나타나고, 정규직내에서도자기이해를앞세워상생을위한배치전환이나일감나누기마저어려운상황이지속되고있다는지적도있었다 ( 김태현, 2012: 18~19) 한국노총도신자유주의세계화의상황변화앞에서총체적인위기로비슷한진단을하고있었다. 노동조합운동이노조간부의부정부패와비리로인한자주성및도덕성의위기, 조합민주주의관료주의화와민주적집중의한계로인한민주성의위기, 노조조직률하락과낮은단체협약적용률에의한대표성의위기, 남성대공장정규직중심의노동운동과노동자간양극화의심화로인한연대성의위기, 현장조직동원력 - 20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및총파업위력의약화로인한운동성의위기, 이념대안전략의부재로나타난정체성의위기, 인적자원의이탈과부족에의한재생산의위기등총체적인위기에봉착해있다는것이었다 ( 한국노총, 2006: 60~71) 이러한진단을바탕으로노동조합진영은심화한운동의침체내지위기상황을벗어나기위해조직운동의혁신을도모했다. 그중심은산별노조건설과노동자정치세력화라는이른바 양날개 전략이었다. 1산별노조건설운동 : 민주노총진영에서는 1997 년산별노조건설방침제출이후 1998 년전국보건의료노동조합, 2001 년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이결성으로이어졌고한국노총진영에서는전국금융노조연맹이 2000 년 3월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 금융노조 ) 으로재편됐다. 이후이어진산별노조건설운동의결과로 1998 년 14만 4천여명 (10.3%) 에불과했던초기업단위조합원수는 2010년말현재 88만 8천여명 (54.1%) 로급증했고 2015년에는 107만 6천여명 (56.7%) 에이르렀다. 특히민주노총의경우는전체조합원의 83.6% 가 30여개산업 업종별조직에분포돼있었다.( 고용노동부, 전국노동조합조직현황. 2016) 산별노조들은단체교섭권의중앙이양, 조직자원의집중 활용, 사용자단체의구성등다양한내용의성과를올렸다.( 민주노총, 2011: 34-36) 그러나산별노조건설운동은당초의계획에비해부진했으며해당산업노동자대부분을포용하지못했고기업별관성을혁파하지못하는등여러가지한계를드러냈다 ( 민주노총, 2012. 9 : 23-34). 또한최근에는보수정권의비호아래사용자단체의해체나사용자들의산업별교섭의기피로어려움을겪고있다. 2노동자정치세력화 : 민주노총은 2000 년 1월 29일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과함께민주노동당을출범시켰다. 민주노동당은 2000년 4월총선거에서 1.2% 의정당득표율을확보한지 4년만인 2004 년 4월총선거에서모두 10명의국회의원을당선시켰다. 그리고 2012 년 4월총선거에서는통합진보당의이름으로 11.4% 의득표율을확보하여 13명의국회의원을배출했다. 그러나진보진영내부의분열과 2012 년부정선거문제로내홍을겪은나머지파탄의위기에직면하였고결국통합진보당이헌법재판소의판결에의해해산당하였다. 최근에는 6, 7개의세력으로분산되었고과거진보진영에서활동했던간부들과활동가들이보수정당에몰려가는양상을보이기도했다. 이러한결과는기본적으로민주노조운동이 노동자중심성주도성 을실현하지못하고진보정단과노동조합의관계를올바르게설정하지못한데서비롯된것이었다. 한편한국노총의정치활동은정책연대와독자정당건설이라는두경로로전개되었다. 정책연대는 1997년에새정치국민회의, 2002-2012 년한나라당, 2013 민주당과이루어졌고 2002년 11 월한국사회민주당 ( 이후녹색사민당으로개명 ) 을결성하여 2004 년총선거에나섰으나 0.5% 득표에그쳐해산되고말았다.( 노진귀, 2007 : 376) 이후한국노총의정치활동은지자체, 총선거등에서정당과관계없이지지후보를당선시키고집권여당또는야당과정책연합을시도하는양 - 21 -

상을보였다. 한편노동조합의사회세력화는민주노총이민중운동진영의중심축으로서전선운동의확대강화를추진한데비해한국노총은시민운동과의연대를확충하고통일운동에참여하는특징을보임으로써 중도적시민단체영역과의소통을활성화 하였다 ( 한국노총, 2007 : 52). 3 노동운동이념의재정립 : 사회주의체제가붕궤되고세기를넘어급변하는상황에대응하여양대노총은새로운운동이념과노선또는운동기조의정립에나섰다. 이를위해민주노총과한국노총은 2000 년 1월각각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 와 21세기위원회 를구성했다. 민주노총의 위원회 는 1년간의논의를거친끝에 노동운동발전전략보고서요지 를대의원대회사업보고서에자료로게재했다. 민주노총은이보고서에서노동운동이지향하는사회는 자본주의사회의모순을극복하고평등을실현하여모두가함께인간다운삶과존엄성이보장되는사회--- 사회전반에걸쳐보다높은가치들을실현하는 평등사회 라고규정했다 ( 민주노총, 2000.10). 그리고평등사회의원리와평등사회로이행하기위한정책을정치연대통일전략정책및제도개선방향, 조직발전전략과함께밝혔다. 그러나이보고서는대의원대회나현장에서토의되거나채택되지못한채자료로만남겨졌다. 한국노총은 2001년인본주의를지도이념으로하고 반신자유주의적연대 를전략개념으로하는운동방향을제시한데이어 2006 년에는 평등복지사회실현을위한참여와사회연대적노동조합주의 를채택했고 2007 년에는 참여와연대의사회개혁적노동조합주의 를운동이념으로내세웠다 ( 한국노총, 2006 : 24-29). 이와같이양대노총은제각기나름대로의논리를지닌운동이념을제시하고자노력하였다. 그러나한국노총의이념은대중적토론과검증을거쳐정립되거나구체적목표와실천계획으로연결되지못했다. 곧밑으로부터의실천에기초하여광범위한조직적기반위에서형성된노선이라기보다는상층지도부를중심으로위로부터 고안된담론 (invented discourse) 이라는취약점을보이고있었다 ( 박준식, 2007 : 25). 또한민주노총은 2001년이후운동이념에대한논의가이루어지지않고선언과 7개항의강령, 20개항의기본과제로대신하고있었다. 4조직운영의혁신 : 양대노총과산업별지역별노조들은침체와위기에서벗어나지못한운동의현상극복을위해여러가지노력을기울였다. 민주노총은 2009년이후총파업을자제하고내부조직혁신에집중하려는모습을보였다. 그일환으로민주노총은 2009년 3월노동운동혁신위원회를구성하고조직의재활성화를도모하는한편 사회연대노총 (2008) 과 노동이존중받는사회 실현 (2010) 을다짐하였다. 이과정에서조직혁신방안으로채택된것이 2007 년의임원직선제결정이었다. 직선제란민주노총에대한조합원대중의신뢰가무너지고중앙과현장의거리가날이갈수록멀어지는상황에서직선제를통해조합원을주체로나서게하고조직을바닥에서부터재조직할수있다는구상에서출발했다. 극에달한정파간의갈등과선거부작용을막자는것도한이유였다. 임원직선제는노동조합조직원리나역할등과관련하여반론이분분하고선거인명부 - 22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확정및취합등현실적어려움에직면하여 2009 년과 2012 년에시행을연기하기로결정했다가 2014 년 12월임원직선제투표를실시한끝에한상균위원장중심의집행부를선출했다. 직선제 1기집행부는박근혜정권의반노동정책을저지하겠다는목표를세우고곧바로총파업조직화에나섰다. 그러나 2015 년 4월과 6 7 월, 9월총파업은당초의계획대로진행되지못했고 11월민중총궐기투쟁에이르러박근혜정권등장후최대규모의대중집회를열수있었다. 하지만이집회에서경찰의무자비한폭력진압으로백남기농민이사망했고한상균위원장은구속됨으로써민주노총의지도력은급속도로약화하였다. 이후민주노총은 2016년총선거정치방침의혼란, 8월정책대의원대회의파행을겪었던데비해가을에최대규모, 최장기간에걸쳐전개된공공부문성과연봉제저지파업투쟁이위력을보였다. 민주노총은거대한촛불항쟁의파고속에서 11월 30일총파업을진행했고정권퇴진투쟁의한중심축으로활동했다. 그러나 2017 년 5월대통령선거에서복수의진보정당후보를지지함으로써또다시혼선을빚었고 6월총파업은최저임금 1만원쟁취의정당성을부각시키기는했으나위력적인투쟁으로발전하지는못했다. 이처럼직선제첫집행부는조직혁신방안의목표로삼았던조합원직접민주주의를증진시키거나조직원리를근본적으로혁신하는데까지나아가지못했다. 또집행부의정세판단과총파업등전략수립은대중적토론을거쳐대중의주체적조건을충분히고려하여수립되지않음으로써종래의결정과정을되풀이하였다. 아울러연이은정치방침의파행이나혼란등은지도력확립필요성을다시한번조합원속에확인시켰다. 결언 : 노동운동의재도약을위한과제 1987 년노동자대투쟁이후급속하게성장했던노동운동이 90년대후반이후극도의침체를넘어위기국면에직면한현상과원인에대해서는많은분석들이제시되었다. 그리고처지에따라나름대로의해결방안도제시되어왔다. 그러나운동현실은쉽사리변화되지않았고노동자들의악전고투는계속되고있다. 낡은체제를대신할새로운체제가여전히들어서지못한상황에서노동자들은낙망을넘어희망의미래를열기위한길을치열하게찾아가고있다. 물론역사는노동운동이란침체와고양, 패배와승리를거듭하면서변증법적으로발전한다고설명하고있다. 지난 30년의굴곡에서도역사의합법칙성이잘나타나고있고따라서희망을잃지말고스스로일어서자는격려성주장도있다. 실제노동현장에는과거와다른새로운양상들이나타나고있다. 예컨대상여금의통상임금산입, 사내하청노동자들의정규직인정, 비정규직노동자의정규직화시도등제도정책상에긍정적변화들이부분적으로나타났다. 조합원수의양적증가나조직률의유지또는상승, 초기업단위노조비중의증가, 신규조직화의진전이나비정규직노동자들의조직적인단체교섭의진전, 희망버스와같은시민사회운동세력의지원, 노동쟁의의증가와투쟁의완강성, 양대노총의 - 23 -

연대지속등이그것들이다 ( 이원보, 2017 : 56). 그러나제도정책의개선은정부와자본가들의완강한거부로근원적인급속한개선으로발전되지못했다. 또한노동운동상의변화한현상들은운동정세를변화시키는데까지는이르지못했다. 노동자계급의단결을규정하는조직체계는초기업노조의증가라는통계상의궁정성에도불구하고아직도기업별노조체계의타성을벗어나지못하고있고노동자의정치세력화는지리멸렬한상태에서벗어나지못한상태다. 결국노동운동은총자본의신자유주의공세에직면하여여전히방어적수세적국면을벗어나지못하고있는것이다. 이제한국의노동자들은수구세력의패퇴와촛불항쟁의요구를받아안고출범한문재인정부와마주하고있다. 문재인정부는전례에드문친노동, 노동존중의시그널을보내오고있고많은노동자들의관심과기대를모으고있다. 그러나민주주의의퇴행과자본일변도의노동유연화의확장이라는위협적인공세가완전히사라진것은아니다. 그렇다면이제노동운동이위기극복을위해해야할일은무엇인가? 각기입장에따라다양한방책들이제시되고있고일부는실천되는경우도있다. 변화된상황을제대로보고노동자계급전체의이해와요구를실현하는활동기조와내용을갖추어야한다는얘기도있고변혁적이념정립과현장조직력복원이급선무라는주장도있다. 지도력의확립, 조직간소통과위상역할의재정립, 운영방식사업관행의개혁, 선거제도상의승자독식구조의극복도제시되어왔다. 민주노조운동을넘어사회연대노조운동으로가야하고끼리끼리제이익챙기기로변질된정파운동을혁파해야한다는주장도강하다. 그런한편에기존대기업정규직중심의조직운동은더이상한계를극복하기어려우므로상황변화에조응하는새로운운동체제를모색해야한다는주장도있고현실적으로희망버스운동과같이일반시민들이직접적인행동으로노동문제에대한사회적해결을도모하는예를주목해야한다는주장도나타나고있다. 모든운동이비슷하지만위기극복을위해가장먼저살펴야할일은노동운동이나아가야할방향을제대로잡는일, 노동운동은어떤사회를어떻게만들것인가를제대로제시하는일일것이다. 올바른전략수립과운동이념또는기조의정확한설정은운동의방향타로서조직투쟁운영등운동의기본적요소들을규정할것이기때문이다. 이를위해조직단위별로전략위원회, 혁신위원회를구성하고광범한현장토론대중토의등을통해전략을정립하고구체적인실천방안을강구할필요가있다. 그리고실천성과에대한평가가구체적으로이루어질때대중적지지와신뢰를확보하여보다확고한발전적전략으로자리잡게될것이다.. 한때노동운동의 양날개전략 으로지칭되었던산별노조체제건설과노동자정치세력화는여전히유효한조직적전략목표다. 산별노조체제는기업별노조의한계를극복하고조직확대, 이념노선의확립, 전반적인사회개혁과정책제도의개선, 노동자정치세력화등계급적노동운동의발전을기약할수있는유력한조직적경로이기때문이다. 따라서지금까지의산별노조 - 24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운동의경험을엄밀히분석진단하고이를토대로산별노조체제를정착시킬수있는운동을전개해야한다. 노동자정치세력화역시광범한대중토론을통해과거역사를평가하고뿔뿔이흩어져있는진보세력들을통합해내야한다. 이와관련하여 현장은확고한단일의진보정당을갈망하고있다 는지적은많은가능성을암시해주고있다. 물론노동자중심의진보정당을위한조직적과제해결, 진보정당내부의정파간갈등과투쟁의해소, 정당활동과대중투쟁의결합등의기본방책도아울러강구되어야한다. 전체노동자의 90% 에이르는비정규직노동자, 중소영세기업및이주노동자들을포괄할수있는조직화결단도중요한숙제이다. 민주노총은이미전략적조직화추진경험을갖고있고한국노총은최근조직확대를위한구체적인활동을가시화하고있다. 또계획적인조직화전략의성공가능성은이미많은비정규직노동자나삼성그룹노동자의조직화경험에서시사되고있다. 이와함께정규직노조의비정규직조직에대한배척이나이로인한분열을해결할수있는원칙과방안을마련하고강력한지도력이요구된다. 정책제도개혁투쟁의중요성은신자유주의적세계화및자본의경영합리화위력이엄존하고있는상황에서아무리강조해도지나침이없을뿐만아니라사회변혁을향한도정에서필수불가결한요소이다. 따라서정책제도개혁투쟁의성격을정리한토대위에서정책참가의목표와원칙을명확히정립하고참가방식의모색과투쟁의병행, 정책역량의강화를위한방안이아울러마련되어야한다. 이밖에관성으로흐른투쟁노선의재정비와위로부터의간부중심결정, 내리꽂기식투쟁, 관료주의적운영과패권주의적분파분쟁등비민주적조직운영의혁신, 조직강화와교육등노동조합일상활동의확충등도운동의재기를위한중요한과업이며특히광범한노동대중의현장토론과교육을어떤내용과방식으로전개할것인가, 그리고상황의압박과운동의침체에눌려있는간부들의용기와자세를가다듬는일등이중요한과제가될것이다. -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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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2017), 87노동자대투쟁 30주년, 노동운동의현주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6월민주항쟁10 주년기념학술토론회 : 6월항쟁촛불혁명한국민주주의 30년의넘나듦과나아감 이주희 (2004) 노사관계 2003년평가와 2004년전망, 한국노동연구원, 매월노동동향 1월호전노대 (1993) 사업보고 조돈문 (2011), 비정규직노동자투쟁의승패와조직력변화, 한국산업노동학회 산업노동연구제17 권제1호한국노동연구원 (2017), KLI노동통계 한국노총 (1998), 1996~97, 그해겨울 총파업에서정책연합으로 한국노총 (2006), 다시힘찬발걸음! 한국노총의운동이념, 운동기조, 발전전략 -------(2007). 사업보고 -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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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1 1987년노동자대투쟁이후울산지역노동자저항의궤적과노동운동의분화 유형근 ( 부산대학교일반사회교육과교수 ) - 29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1987 년노동자대투쟁이후 울산지역노동자저항의궤적과노동운동의분화 유형근 _ 부산대학교일반사회교육과교수 1. 들어가며 1987년노동자대투쟁이있은지 30년이흘렀다. 그투쟁의발원지였던울산에서는 30년이지난현재에도여전히노동자들은파업을벌이고, 집회를열며, 구호를외치며시위중이다. 그런데아래에인용된신문기사들에서나타나듯이, 노동자집합행동의모양새는지난 30년간상당히달라졌다. 인용한기사는지난 30년간울산지역에서노동자집합행동의연간참가자규모가유례없이컸던 3개년 (1989년, 1997년, 2016년 ) 에서고른것으로, 1987년에노조설립이이루어진현대중공업노조와현대자동차노조등울산노동운동을좌우하는대규모노동자조직이연관된사건들이다. [#1] 현대중공업파업농성강제진압 3일째인 1일공권력개입에의한노동운동탄압을항의하는노동자 학생 시민들의격렬한시위가수그러들지않고있는가운데계열사노동자들의동조시위가확산되고있다. 중공업파업노동자 학생 시민등 3천여명은 1일오전 9시부터오좌불숙소와만세대아파트앞민주광장을중심으로전하동 일산동등동구지역곳곳에서화염병과돌을던지며최루탄을쏘는경찰과격렬한시위를벌였다. ( 한겨레, 1989. 4. 2) [#2] 울산시내학계 종교계인사와 24개시민 노동단체로구성된 노동법 안기부법개악철회와민주수호를위한울산지역범시민대책위 ( 공동대표권처흥 ) 와현총련은 11일과 12일오후태화강둔치에서각각 1만5천여명과 1만여명의노동자 시민 학생들이모인가운데 정재성조합원회복기원과김영삼퇴진결의대회 를열고시청쪽도심간선도로를따라 4km 구간에걸쳐거리행진과오토바이경적시위를벌였다. ( 한겨레, 1997. 1. 13) [#3] 민주노총울산본부는 20일울산시남구태화강둔치에서 울산노동자총파업대회 를열었다. 총파업대회에는 23년만에처음으로지난 19일부터동시파업을벌이고있는현대차와현대중공업노조를비롯해전국플랜트건설노조울산지부, 금속노조울산지부등의조합원 ( 경찰추산 6500명, 주최측추산 1만명 ) 이참가했다. 총파업대회참가자들은이어태화강둔치에서울산시청을거쳐다시둔치로돌아오는약 3.5km 구간을행진하며구호를외쳤다. ( 경상일보, 2016. 7. 21) - 31 -

#1은현대중공업노동자들의 1989년 128일투쟁 의한단면이다. 경찰병력이 3일전공장내파업농성장을물리력을동원해해산시킨데대한항의로, 아침 ( 오전 9시 ) 부터공장인근의독신자숙소와사원아파트의공터 ( 민주광장 ) 에는화염병과최루탄이오가고있다. 여기에는노조조직이나사회단체조직등의이름이발견되지않는다. 다만현대중공업파업노동자들 노동조합이아니었음에주의하라 이주축이되어, 전국에서몰려온이름모를학생들과노동자집단주거지의가족 주민들 ( 시민 ) 이시위대에합세해아침일찍부터공권력과의폭력충돌이일어나고있다. 이후에도특정한조직성원이아닌, 경계가불분명한시위대를중심으로격렬한가두투쟁이사원아파트와도로에서열흘가까이이어졌다. 이에피소드는 1987년에어렵게결성한 민주노조 를말살하고자폭력을동원한국가공권력에대한노동자들의폭력적저항의모습을보여준다. #2는정부여당의노동법날치기통과에항의하는전국총파업의일환으로개최된결의대회의모습이다. #1에서와달리 24개울산지역단체들로구성된시민사회조직 ( 범시민대책위 ) 과현대그룹계열사의노조연합단체 ( 현총련 ) 의조직이름이전면에등장했다. 이제시위는공장인근의거주지가아니라시내의넓은공터 ( 태화강둔치 ) 에서열리고있으며, 그곳으로부터시내를향해평화로운행진이이루어졌다. 노동법개정반대라는정치적목적의총파업시위에참여한군중들은 ( 기업경영진이아니라 ) 정부를상대로구호 ( 김영삼퇴진 ) 를외치고있다. #1에서는 3천명의시위대가노동자집단거주지에서오전 9시부터화염병과돌을던지는과격한행동을마다하지않았지만, #2에서는공식조직의깃발아래만명이넘는대규모군중들이 ( 공장도주거지도아닌공공장소에서 ) 평화로운분위기하에집회, 행진. 시위에참석했다. 경찰은 만약의사태에대비하여 주변에서서성거릴뿐이다. #3은가장최근의모습이다. 장소는역시 태화강둔치 였지만, 참여조직은민주노총소속조합원들만보인다. #1과 #2에서보였던시민 학생이나 범시민대책위 등은사건현장에나타나지않는다. 그대신업종과고용형태를달리하는, 금속노조조합원들과플랜트건설노조조합원들 ( 이들은대부분일용직신분이다 ) 이함께민주노총지역본부가주최하는집회에참석했다. 23년만에성사된현대자동차노조와현대중공업노조의동시파업이었음에도, 대회참가자들의구호는제각각이었다. 현대자동차노조원들은임단투승리를, 현대중공업조합원들은구조조정및정리해고중단을요구했고, 플랜트건설노조원들은파업준비중인노조지도부에대한공안탄압에항의하며질서정연하게거리행진을벌인후각자해산했다. 이들 3개의에피소드에서우리는주요행위자, 규모, 연대조직, 사건이일어난장소, 저항의목적과요구사항, 행동의수단과방식, 사건의지속기간등에서유사성과함께상당한변이를관찰할수있다. 이연구는노동자집합행동에서나타나는이러한변화의지점들이지난 30년간한국노동운동의사이클을반영하고있고, 한국사회의거시적구조변동또는노동체제의전환과밀접하게관련되며, 노동운동의권력자원이나교섭력에따라변화를보인다는점에주목한다. 다시말해, 노동자집합행동의통시적모양새를자세히관찰함으로써노동운동의상황과계급역관계의변화를논의할수있는풍부한정보를얻을수있는것이다. 본논문은이러한노동자집합행동에관한정보를기초로민주화이후지난 30년간울산지역노동운동의발자취를충실하게복원하고, 그내부의중요한변화를가시화시키며, 그러한변화에내포되어있는노동사회학적의의를규명하고자한다. 이를위해본연구는울산지역일간신문에보도된노동사건기사를자료로사용해울산지역노동자집합행동에관한세부자료 ( 울산지역노동자저항사건데이터세트 ) 를구축하여분석에사용했다. - 32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본연구는다음세가지문제에초점을둔다. 1 노동자집합행동의장기적궤적, 2 저항행동이발생한부문별 업종별분포의변화, 그리고 3 궤적과분포의변화가반영되어나타나는집합행동레퍼토리 (repertoire) 의시기별 부문별특징등이그것이다. 보다구체적으로연구질문을정식화하면다음과같다. (1) 민주화이후 30년간울산지역노동자저항의궤적은어떻게나타나는가? 이질문은 1987년부터 2016년까지의 30년의시간동안울산지역에서나타난노동자집합행동의빈도와참가자규모, 그리고요구사항과저항의표적이통시적으로어떻게변해왔는지파악하고자하는것이다. 이를통해이른바 1987년노동체제 와 1997년노동체제 로명명되는한국노동체제의거시적변동이지역노동운동의집합행동양상의통시적변화상에어떻게 / 얼마나반영되고있는지, 나아가노동체제전환론에서포착되지못한중요한특징들이집합행동궤적의분석에서는얼마나가시화되는지살펴보고자한다. 본연구에서 30년간의집합행동궤적을세밀하게재구성하는작업은이후논의의출발점을제시해줄것이다. (2) 외환위기이후노동자저항행동의업종별 부문별분포에어떠한변화가나타났는가? 저항의새로운주체들은누구이고어느부문에서출현했는가? 이질문은 1987년노동체제가작동한 90년대후반까지의시기와 IMF 외환위기를겪고난 2000년대이후의시기를비교하여노동자저항행동의장 ( 場 ) 에서의세력변화의 조감도 ( 鳥瞰圖 ) 를그리고자하는것이다. 기존연구들에따르면, 1987년노동체제 는외환위기와노동양극화심화를겪으며본격적인해체의국면으로접어들었고, 그체제를주도했던중화학공업대공장노조들의집합행동은점차 이익집단의저항 으로변형되어간반면, 87년체제에서거의가시화되지않았던노동시장의 약자들 ( 대표적으로비정규직노동자들 ) 의조직화와동원이신자유주의정책이득세한 1997년노동체제 하에서본격화되었다고말한다 ( 노중기, 2008; 조효래, 2010; 박명준외, 2014). 이논문에서는 87년노동체제의대표적인노조운동이여전히동원능력을유지하는가운데, 외환위기이후비정규직투쟁이고조되었던울산지역을대상으로하여, 과연이러한노동운동주체의전환명제가경험적근거를갖추었는지규명하려고한다. 구체적으로, 지난 30 년간의노동자저항행동의장에대한조감도를그림으로써, 외환위기이후에출현한새로운노동자저항의주체들의정체가무엇이며, 그내부구성의측면에서이른바 87년세대 와어떠한차별성을갖는지분석할것이다. (3) 외환위기이후지역노동운동의분화는집합행동의레퍼토리에어떻게반영되었는가? 이른바 1987년세대 의노조운동과 1998년세대 의노조운동간에는저항레퍼토리의측면에서어떠한차이를보이는가? 이질문은앞의 (2) 와연관되어 1987년노동체제하에서등장했던노동운동과외환위기이후에새롭게출현한노동운동간의차별성을그들이집합행동에서동원한저항레퍼토리의측면에서고찰하고자하는것이다. 노동자들의집합행동레퍼토리 (repertoires of collective action) 1) 는노동운동의성격과지향을담고있고, 특정노동 1) 사회운동론에서널리쓰이는 집합행동의레퍼토리 또는 저항레퍼토리 (repertoires of protest) 개념은사회운동세력이자신들의요구를제기하고전달하기위해선택하는저항행동의수단이나방식을의미한다 (Tilly, 1978, 1995; Tarrow, 1995; McAdam, Tarrow and Tilly, 2001; Alimi, 2015). 노동운동연구에서도레퍼토리개념은국내외에서최근들어널리사용되고있다. 특히노동운동의대표적레퍼토리인파업에대한배타적관심을넘어최근에는저항행동의다양한수단들 - 집회, 시위, 작업거부, 기자회견, 시민연대나지역사회연대, 정치파업, 서명운동, 점거, 봉쇄, 태업, 농성, 폭 - 33 -

조합의정체성과전략을이해할수있는통로이다 (Frege and Kelly, 2003; Murray, 2017). 또한그것은행위자의특성뿐만아니라, 정치적체제의변화에따라변천하기때문에 (Tilly, 2010; Gentile and Tarrow, 2009), 운동정체성의공시적 통시적변화를추론할수있는유력한증거가된다. 만약에본논문에서예상하는것처럼, 87년노동체제의산물로출현한노조운동과 2000년대이후출현한노조운동의성격이다르다면, 그것은두집단에서사용하는집합행동레퍼토리에도반영되어나타날것이다. (2) 에서고찰하려고하는부문별 업종별차이에더해, 두집단간에집합행동레퍼토리상의분명한차이가발견된다면, 그것은오늘날한국노동운동의분화 ( 또는분기 ) 의유력한증거가될것이다. 더나아가노동운동의분화가사실일경우, 그분화의경계가무엇이고그의미가무엇인지토론할것이다. 2. 방법과자료 이연구에쓰인방법은저항사건분석 (protest event analysis) 이다. 그것은 1970년대부터사회운동및집합행동연구에서널리활용되어온특정한연구방법으로저항사건의세부적인질적특성들을양화된데이터로전환하여그추이와패턴을통시적으로관찰할수있게해주는내용분석의일종이다 (Olzak, 1989; Rucht and Ohlemacher, 1992; Koopmans and Rucht, 2002; Hutter, 2014). 저항사건분석은대개신문기사를분석대상으로하는데, 본연구도일간신문의기사내용을원자료로삼아 울산지역노동자저항사건데이터세트 를구축하였다. 이자료는울산지역노동자저항사건을다룬신문기사를사전설계된코딩도식에따라양적자료로전환한것이다. 사건발생일, 사건개요, 참가자수, 노조형태, 고용형태, 소속기업, 노조설립연도, 해당노조의조합원규모, 업종, 저항의표적, 저항레퍼토리, 지속기간, 요구, 발생장소, 당국과사용자의억압유무등을모아데이터세트를만들었다. 본연구에서 노동자저항사건 (labor protest event) 은 노동조합, 노동자 ( 들 ), 또는비공식적인노동자조직이나집단등이사용자, 정부당국및여타의관련된집단을대상으로하여그들의집합적이해와요구를전달하거나실현하려고수행하는일체의행동들 로정의한다. 여기에는서명운동과같은매우온건한저항부터폭력행사와같은매우과격한행동까지모두포괄되며, 사용자나정부뿐만아니라노동조합을상대로한행동도그것이요구를제기하는노동자들의집합적이해와관련된것이라면포함한다. 물론개별노동자의단독행동의경우에는이정의에는배제되지만, 1인시위 분신 자살등과같은단독적저항행동의경우는그것이집합적이해의전달과실현을위한행동일경우에는포함했다. 본연구는이를위해울산에서발행되는지역일간지인 경상일보 를주요자료원으로삼았다. 2) 서울에서발행되는전국지에비해지역지는사건의특성에서발생할수있는보도기사의선택편의 (selection bias) 를더줄일수있다. 왜냐하면, 지역지는 ( 전국적으로영향을미치 력, 파괴등 - 이신자유주의시대의노동운동의재활성화노력들에서어떻게사용되는가하는문제에대한관심이높아졌다 (Piven and Cloward, 2000; Gentile and Tarrow, 2009; Gall, 2014; Kelly, 2015; Shibata, 2016; Vandaele, 2016). 국내연구중에서신진욱 (2004) 은민주화이전노동운동의집합행동레퍼토리의변화를사회운동론의시각에서분석했고, 이병훈 (Lee, 2016) 은외환위기이후한국의비정규직운동에나타나는투쟁레퍼토리의변이를포착한바있으며, 최재훈 (2017) 은 희망버스 사례를노동운동레퍼토리의새로운혁신시도로조명했다. 2) 경상일보 를자료원으로선택한이유는그것이울산광역시에서발행되는지역신문중가장오래되었기때문이다 (1989 년 5 월 15 일창간 ). - 34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는 ) 대규모사건뿐만아니라, 지역적이슈로만머무는소규모의온건한저항사건들이훨씬상세하게기사화된다. 신문사의이념적성향에서비롯하는선택편의는이론적으로자료원을다양화하는것으로보완할수있지만, 그것은추가적인비용과시간을요하기에이연구에서는배제할수밖에없었다. 하지만이문제를가능한한최소화하기위해신문기사중에서기자의인상과추론그리고주장이가미된해설 사설 분석기사는코딩자료에서제외하고, 육하원칙에입각한사실보도 (hard news) 내용만을자료수집의최종출처로삼았다. 그리고시간에따른선택편의의잠재적비일관성문제는, 이논문에서다루는시간적범위가 30년이고그중에서초기 2년을제외한나머지전기간을하나의신문에자료를의존한다는점에서크게문제가되질않는다고판단한다. 이연구에서분석단위는울산지역노동자의개별저항사건이다. 특정한단일이슈 ( 예를들면, 구조조정반대파업 ) 를둘러싼노동자들의집합행동은 ( 이론적으로 ) 한개에서수십 수백개의상호연결된개별적저항사건들 ( 기자회견, 성명, 법적소송, 집회 시위, 행진, 파업, 농성등등 ) 의연쇄또는묶음으로구성되기에, 분석단위도그러한사건의연쇄나묶음이바람직할수있다. 그러나이연구에서는그렇게하지않았다. 30년간의노동자집합행동전체를범위로포괄하려는본연구의목적상그러한저항사건들의연쇄 / 묶음을모두정확히구분하기는현실적으로불가능하기때문이다. 대신에이연구는개별저항사건을분석단위로삼았다. 이러한방식을채택할때의장점은집단적저항행동의통시적인패턴에관해매우세밀한지도를만들어낼수있다는점이다. 이것의반대급부로개별사건을분석단위로삼을경우사건들간의 등가성 을가정해야한다는문제가발생한다. 예를들어, 전국에걸쳐수십만명의노동자가참여한며칠간의총파업과 10여명의단위사업장노조원이참여한일회성집회는그규모, 성격, 파급력등에서비교할수없는차이를갖지만, 우리의분석에서는모두 1건의저항사건으로계산된다. 이런등가성가정에서발생하는문제는저항레퍼토리나참여자규모, 사건의지속일수등을고려하거나, 지역노동운동에대한맥락적해석을통해보완할수밖에없다. 자료수집은시기에따라다음과같이진행했다. 먼저 경상일보 가발행되기전인 1987년 7월 1일부터 1989년 5월 14일까지는 부산일보 지면전체를보며울산지역노동사건기사를찾았다. 보충적으로 한겨레신문 (1988년 5월 15일창간 ) 을사용했다. 3) 1989년 5월 15일부터는 경상일보 에의존했다. 경상일보 홈페이지에서기사검색이불가능한 1989년 5월 15일부터 2000년 12월 14일까지는필자가 경상일보 지면전체를직접보고노동사건기사를찾아코딩했다. 2000년 12월 15일부터 2016년 12월 31일까지의기사는 경상일보 홈페이지의기사검색기능을활용했다. 검색어는 노동조합, 노조, 노동자 ( 또는근로자 ), 민주노총, 한국노총, 전교조 를사용했다. 이렇게해서최종적으로집계된노동자저항사건은총 3,762건이다. 코딩의정확성을위해필자가기사를직접읽고모든코딩작업을수행했다. 3) 부산일보 는부산이외의울산을포함한경남지역을직접취재범위에포함하고있다. 한겨레신문 은중앙지이지만, 당시울산지역노동사건을직접현지취재하여기사를작성한점을고려했다. 하지만두신문만으로자료가구성된이시기의저항사건은상대적으로적게집계되거나선택편의가이후시기보다매우클가능성이높다. - 35 -

3. 30 년간울산지역노동자저항의궤적 먼저민주화이후 30 년간울산지역노동자집합행동의궤적과저항의사이클 (cycle of protest) 을조망하고거기서드러나는특징적양상들을규명하고자한다. 이를위해연도별 저항사건의빈도와저항사건참여자규모의통시적변화를함께 < 그림 1> 로나타냈다. < 그림 1> 울산지역노동자저항사건의빈도와규모 ( 단위 : 명, 건 ) * 참여연인원은 3,762 건의저항사건중참여자수를확인할수있는 2,376 건에서집계됨. 지난 30년간울산지역노동자집합행동의궤적은기존의노동체제론 ( 임영일, 2003; 노중기, 2008) 의시기구분과거의유사하다는점을알수있다. 이런유사성은일차적으로 ( 최소한울산에서는 ) 노동체제의변동과집합행동의궤적사이에높은상관성이있다는점을시사한다. 즉 1987년노동체제 와 1997/98년노동체제 라는명명법에서나타나듯이, 한국노동체제의변동시점과노동자저항의사이클에서집합행동의정점이거의같다는것이다. < 그림 1> 에서나타난집합행동의궤적을보다자세히분석해보자. 빈도와규모를모두고려할때우리는지난 30년의시간에서두개의높은집합행동의정점 (peak) 을관찰할수있다. 첫번째정점은 1989년으로이것은 1987년노동자대투쟁에서시작된저항이최고조에오른시기로, 현대중공업의 128일투쟁 으로대표된다. 두번째정점은 1997-98년으로, 이것은노동법개정반대전국총파업과현대자동차정리해고반대투쟁이연달아일어난시기이다. 2000 년대부터는더이상명확하게나타나는투쟁의정점이없이등락을반복하는패턴을보인다. 따라서우리는지난 30년간의궤적에두개의저항사이클이있었다고말할수있다. 저항의 1차사이클 (1987-89년) 은민주화이행과더불어발생한 민주노조운동 의폭발적성장그리고이를억압하고자한국가 자본과의전면적대결국면에서나타났다. 이저항사이클은울산의공업단지에 1970-80년대의수출부문중화학공업의자본투자로형성된산업프롤레타리아트의공세적투쟁이었고, 이런점에서전형적인 맑스식노동소요 ( 실버, 2005) 였다. 이시기노동자투쟁은주로 민주노조 인정을둘러싸고사용자를상대로한작업장단위에서의 - 36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격렬한대립으로나타났고, 국가기구는공권력을동원해이에대한물리적억압을시도했다. 이것은 < 표 1> 과 < 표 2> 에반영되어나타난다. 1987-89년에노동자들이제기한주요요구 (claim) 중 노조활동및단체교섭관련 사안이 114건 (35.4%), 정부및공권력규탄 이 78건 (24.2%) 으로제일높은비중을차지한다. 저항행동의표적 (target) 도대부분회사의사용자 (248건, 77.0%) 로향했다. 이러한양상은이른바 1987년노동체제 의가장중요한특징, 즉작업장수준에서의높은갈등과대립을수반하는불안정한기업별노사관계의특징적모습이라고볼수있다 ( 임영일, 2003: 35-36). < 표 1> 울산지역노동자저항사건의주요요구 ( 단위 : 건 ) 구분 임금및노동조건관련 노조활동 / 단체교섭관련 고용조정 / 해고관련 정부 공권력규탄 노동법 공공정책개입 비정규직문제해결 1987-89 56 114 15 78 2 0 57 322 1990-92 84 72 4 62 6 0 21 249 1993-95 48 109 8 25 22 0 44 256 1996-98 75 95 153 30 142 0 70 565 1999-01 52 122 87 64 41 1 51 418 2002-04 57 113 6 15 63 21 66 341 2005-07 53 144 40 16 46 68 52 419 2008-10 72 117 27 24 43 35 34 352 2011-13 73 124 11 14 17 102 56 397 2014-16 153 70 65 25 25 14 28 380 계 723 1,080 416 353 407 241 479 3,699 기타 전체 < 표 2> 울산지역노동자저항사건의표적 ( 단위 : 건 ) 구분 사용자 중앙정부 지방정부 공안기구 노동조합 기타 전체 1987-89 248 34 18 32 15 1 348 1990-92 182 37 7 17 9 1 253 1993-95 187 42 10 12 12 0 263 1996-98 295 209 39 14 13 5 575 1999-01 218 122 50 24 5 7 426 2002-04 137 112 77 7 10 5 348 2005-07 202 106 78 17 8 8 419 2008-10 213 64 66 2 5 2 352 2011-13 231 56 62 11 27 10 397 2014-16 229 67 51 16 13 3 379 계 2,142 849 458 152 117 42 3,760 이에비해 10년뒤의저항의 2차사이클 (1997-98년) 은 1987년노동체제 의특징적저항행동양상으로부터의전환을보여준다. 이시기의폭발적대중동원은저항의 1차사이클에서민주노조설립을통해집단적저항주체로등장한중화학공업노동자들이고용유연화와기업구조조정등국가 자본의신자유주의적공세에직면하여일으킨방어적투쟁이었다. 저항의 2 차사이클에서주로나타난노동자저항은전지구적인자기조절적시장의확산과노동의 ( 재 ) 상품화시도에대한저항이라는면에서 폴라니식노동소요 ( 실버, 2005) 에가까웠다. 이러한집합행동의성격은요구와표적에도반영되어나타났다 (< 표 1>, < 표 2> 참조 ). 1996-98년의 3년동안노동자저항의요구는주로 고용조정및해고관련 사안 (153건, 27.1%), 노동법 - 37 -

및정부정책관련 사안 (142건, 25.1%) 등에집중됐고, 저항의표적도회사의사용자 (295건, 51.3%) 와더불어중앙정부 (209건, 36.3%) 가두번째로등장했다. 저항의 1차사이클기간에중앙정부를표적으로한사건이 34건에불과한것을감안하면, 2차사이클기간에비로소울산의노동자들이정부를직접적인표적으로한대규모동원을시작되었음을알수있다. 이러한집합행동의성격변화는 1987-89년의저항사이클의결과로형성된기업별노조들의전국적 지역적 산업적측면의조직적연계의확대, 즉민주노총 산별연맹 지역본부등민주노조운동의공식구조형성에크게힘입었다. 중앙정부를표적으로한저항사건은저항의 2차사이클이끝난이후에도높은비중을기록하며상당기간지속된다. < 표 2> 에서보듯이, 김대중 노무현정부시기 (1999-2007년) 에중앙정부를표적으로한저항사건은높은빈도를유지하다가, 이후 2008년강성보수정부가들어선이후부터는중앙정부를표적으로한사건빈도는현저히감소한다. 저항의 2차사이클이끝난이후 2000년대부터는또다른저항의사이클이만들어지지않은채, 집합행동의상승과하강이반복되는양상을보였다. 이시기는 1987년노동체제 의본격적인해체국면으로서, 과거와의단절적측면과연속적측면이혼재되어나타났다. 2000년대이후노동자저항의궤적에서드러나는몇가지특징을살펴보면다음과같다. 첫째, 노동운동의대중동원능력의전반적감소가분명히나타났다. 2000년대이전과비교해저항사건의전체빈도는별로줄지는않았으나, 4) 앞의 < 그림 1> 에서보듯이저항의규모즉참여연인원은그이전시기와비교해크게줄었다. 이러한대중적참여와동원능력의약화는 IMF 경제위기이후노동운동위기의가장중요한지표이자, 이른바 1987년노동체제 의해체가가속화되고있다는유력한징후였다 ( 임영일, 2003: 48). 울산지역에서대중동원능력의쇠퇴는두가지요인이함께작용했다. 한편으로, 현대그룹계열사의대공장노조들로주로구성된이른바 1987년세대 의작업장교섭력이약화되었다. 특히저항의 1차사이클에서동원능력이최고조에달했던현대중공업노조의교섭력쇠퇴및기업종속화가결정적이었다. 다른한편으로, 1998년이후의신생노조들대부분이이전세대의노조들에비해규모가작고대중적동원능력이구조적으로취약한저임금서비스업종이나비정규직처럼노동시장의주변적지위에속한조직들이었다. 이들의경우대공장노조가보유한위력적인작업장교섭력도없을뿐더러, 많은경우노조설립과유지를위한자원동원능력도매우취약했다. 이에따라 2000년대이후울산지역노동자저항의패턴은폭발적대중동원의모습보다는, 상대적으로작은규모의산발적저항사건들의반복적출현양상을보였다. 둘째, 작업장노사관계차원에서 1987년노동체제 가갖는가장중요한특징, 즉작업장수준의높은갈등과대립을수반하는불안정한노동체제의특성은지속되었다. 이를보여주는핵심적지표는 2000년대이후에도노동자저항의요구와관련해 노조활동및단체교섭관련 요구가큰등락없이지속되었다는점이다 ( 앞의 < 표 1> 참조 ). 이요구는주로경영진이나사용자를상대로한집단적노사관계관련사안들로, 노조인정및노조활동보장요구, 부당노동행위중단촉구, 노조탄압중단, 단체협상촉구등을담고있다. 비교적정례적인임단협이이루어진현대자동차노조의경우갈등유발적인교섭패턴이지속되었고, 이른바 협력적노사관계 로전환되었다고알려진현대중공업의경우에도노사협력의물질적기반은매우취약 4) 2000 년대이후의전체저항사건중에서담화적저항 ( 언어적 법률적수단의동원 ) 과같은대중적동원에거의의존하지않는저항이차지하는비중이그이전시기에비해급격히상승하였음을감안해야한다. 1987-2001 년의 15 년동안담화적저항의평균비중은약 23% 였는데비해, 2002-2016 년의후반기 15 년은평균 43% 에달했다. - 38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했으며, 2000년대이후신생노조조직화의시도들대부분은사용자의강한반노조주의와노조회피전략에직면해생존을위한전투적저항을벌여야했다. 이러한 1987년노동체제 와의연속성은한국사회에서노동조합의시민권이대단히취약하다는점을알려주며, 1987년이래민주노조운동의성과가주로 ( 대기업과공공부문에서의 ) 잠정적인작업장시민권의획득에머물렀고, 사회적 또는 정치적 수준에서노동3권의실질적제도화로나아가지못했음을방증한다. 이러한 1987년노동체제 의부정적유산속에서주변부노동시장의저임금 비정규직노동자들은노조결성및교섭의초기비용을줄이는데필요한제도적자원의결핍에항상적으로시달려야했다. 셋째, 이와관련해 2000년대이후노동자저항행동에서 1987년노동체제 의그것과가장크게차이가나는지점은비정규직노동자의집합행동과투쟁이출현하여노동운동의주요저항집단으로등장했다는점이다. 앞의 < 표 1> 에서보듯이, 2000년대이후에노동자저항의요구에서새로운점은 비정규직문제해결 요구가새롭게등장했고, 2000년대중반부터빠르게그비중이증가해, 노조활동및단체교섭관련, 임금및노동조건관련 사안등에이어세번째로빈발하는저항의요구사항으로나타났다. 기존의노동운동진영에서의요구주장뿐만아니라, 비정규직스스로가노동조합을조직하여비정규직철폐나차별해소요구를적극적으로전개하면서울산지역노동운동의새로운주체로등장했음을알려준다. 넷째, 저항의 2차사이클이후노동자저항의표적추이에서눈에띠는것은 지방정부 를표적으로한사건빈도가늘어났다는점이다 (< 표 2> 참조 ). 지방정부를표적으로한사건이증가한데에는노동조합의지역조직공식화 ( 민주노총울산본부 ) 라는저항주체에서의변화와더불어, 지방자치제의확대와울산광역시승격 (1997년) 이라는새로운저항표적의등장이함께맞물렸다. 지방자치업무가확대되면서시장 구청장 교육감등을실질적사용자로둔노동자들 ( 공무원, 지방공공기관, 지자체비정규직 ) 도늘어났고, 이들의저항행동도 2000년대이후비교적활발히나타난것이다. 또한지자체업무가점점더노동자들의삶에많은영향을미치면서지방정부를상대로한집합행동의빈도도늘어나게된상황도이추세에반영된것으로보인다. 결국저항사건의빈도와참여자규모의궤적에서나타나는외환위기이후의울산지역노동자저항행동의궤적은이른바 1987년노동체제 의그것과사뭇다른모양새를취한다. 저항행동의폭발적분출, 대규모대중동원, 전산업부문으로의노동쟁의의전파등으로특정되는저항사이클은더이상출현하지않았다. 그러나저항사이클의부재가노사관계의제도화나저항의온건화로인한것은아니다. 오히려 2000년대이후에도노조인정및노조활동보장을둘러싼작업장수준의집단적노사관계의불안정성은지속되었다. 또한비정규직관련사안이운동의주요요구로등장하며노동운동의장은새롭게재편되었다. 4. 노동자저항의조감도 : 부문별 업종별분포의변화 울산지역은자동차 조선 석유화학등중화학공업남성노동자중심의노동운동이 1987년노동자대투쟁이래로지역노동운동의중심이었다고여겨져왔다. 하지만앞장에서보았듯이, 저항의 2차사이클이후외환위기이후의노동자저항의궤적은상당히다른모양새를보여준다. 여기서는이문제를보다자세히분석한다. 이를위해노동자저항의부문별분포의통시적변화의 조감도 를 울산지역노동자저항사건데이터세트 로부터그렸다. 이를통해본논 - 39 -

문은저항의 1차 2차사이클이나타난전반 15년과특별한저항의사이클없이전개된후반 15년을구분하여, 저항행위자의측면에서두시기사이에일정한교체, 즉새로운노동운동의세대가출현했음을보여줄것이다. 울산노동자저항사건데이터세트 에는저항사건을주도한노조의설립연도도수집됐다. 5) 이를근거로지난 30년동안의저항사건빈도를해당사건의주도적행위자 ( 노조 ) 의설립연도별로분류하여그비중을표시하면 < 그림 2> 와같다. < 그림 2> 노동조합설립연도별저항사건의비중 ( 단위 : %) 우선 < 그림 2> 에서 1987년에설립된노조들의저항사건이지난 30년동안울산지역에서일어난전체저항사건의절반가량을차지할정도로압도적임이눈에띈다. 현대그룹계열사노조들을포함하여약 139개의신규노동조합 ( 약 74천여명의조합원 ) 이 1987-89년시기에결성되었다. 6) 노동자대투쟁으로시작된저항의 1차사이클 (1987-89년) 에서노동운동이이룬가장큰성과는자주적노동조합의대규모조직화이고이들의다수가이후에도활발한집합행동을벌였음을알수있다. 그런데이러한묘사는그림의반쪽에불과하다. 외환위기이후노동운동의재편양상과관련해더욱흥미로운것은 (90년대초중반에는거의출현하지않던 ) 새로운저항사건행위자들이 1998년부터 2004년까지대거조직화되어등장했다는점이다. < 그림 2> 는지난 30년에벌어진모든저항사건에서각출생연도별노조들의상대비중을표시한것이기에, 나이 가비교적어린신생노조들의상대적비중은낮게집계될수밖에없다. 이를고려하여다음 < 표 3> 에서는일정하게노조연령을통제하기위해전체 30년 (1987-2016년) 과후반 15년 (2002-16 년 ) 을구분하여그비중을다시계산했다. 5) 개별노조의설립연도는노동부, 전국노동조합조직현황 ( 각년도 ) 을주로참고했다. 초기업별노조의지부 지회 분회의경우이자료에표기되어있지않기때문에, 이경우에는신문기사와각종 2 차문헌을통해최대한설립연도를확인했음을밝힌다. 노조설립연도집계에서제외된저항사건은노조상급단체, 노조이외조직과연합단체, 개별노동자등이일으킨저항사건, 그리고노조설립연도를확인할수없는일부사례가포함된다. 설립연도가확인된노조의저항사건은총 2,690 건이었다. 6) 노동부가발간한 전국노동조합조직현황 (1989) 을분석해보면, 1987 년 7 월부터 1989 년 6 월까지 2 년동안신규조합 139 개가생겼고, 이에따라 74,009 명의조합원이증가했음을알수있다. 물론여기에는이기간에해산된노조들은포함되지않았다. - 40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 표 3> 노동조합설립연도별저항사건의발생빈도와비중 ( 단위 : 건, %) 사건발생 기간 노조설립연도 1947-86 년 1987-89 년 1990-97 년 1998-04 년 2005-16 년 계 전체 30 년 (1987-2016 년 ) 후반 15 년 (2002-2016 년 ) 231 1,651 43 597 168 2,690 (8.6) (61.4) (1.6) (22.2) (6.2) (100.0) 148 857 33 597 168 1,803 (8.2) (47.5) (1.8) (33.1) (9.3) (100.0) < 표 3> 에서나타나듯이, 민주화이후의울산지역노동자저항사건의행위자를그출생연도별로보면, 대다수가 1987-89년에탄생한노조들과 1998-2004년에탄생한노조들로크게양분됨을알수있다. 앞으로이글에서는앞의집단을 1987년세대 로, 뒤의집단을 1998년세대 로부르고자한다. 전체 30년 (1987-2016년) 을기준으로보면, 87년세대 의저항사건비중이 61.4% 를차지한다. 그러나후반 15년 (2002-16년) 을기준으로보면, 98년세대 의신생노조들이벌인저항사건의비중이약 3분의 1을차지할정도로무시할수없는큰비중을차지한다. 더욱이노조출생연도를 1998-2016년으로연장하면, 그비중은 42.4% 에달한다. 다시말하면, 저항의 2 차사이클이끝난이후부터노동자저항의전체궤적은 87년노동자대투쟁의여파속에출생한노조들 ( 1987년세대 ) 의집합행동과더불어, 외환위기이후출생한신생노조들 ( 1998년세대 ) 의집합행동이더해져나타났음을알수있다. 그렇다면, 1998년세대 의노조들은누구이며, 어느곳에서조직된것일까? 그들은 1987년세대 와무엇이같고무엇이다를까? < 표 4> 노조설립연도에따른업종별저항사건의빈도와비중 1987-1989년설립노조의저항사건 1998-2004년설립노조의저항사건 업종 빈도 ( 건 ) 비중 (%) 업종 빈도 ( 건 ) 비중 (%) 금속 1,251 76.4 건설 212 35.5 교육 239 14.6 금속 167 28.0 비금속제조 90 5.5 공공행정 89 14.9 보건 사회복지 19 1.2 운수 27 4.5 운수 18 1.1 보건 사회복지 16 2.7 금융 5 0.3 교육 15 2.5 전기 가스 수도 1 0.1 비금속제조 13 2.2 기타 13 0.7 기타 58 9.7 합계 1,638 100.0 합계 597 100.0 먼저 1987년세대 와 1998년세대 는업종분포의측면에서확연히다르다. < 표 4> 는두개의노조출생연도에따라저항사건의빈도와비중을분석한것이다. 이를통해우리는두세대간에업종별구성이매우크게차이가난다는점을확인할수있다. 1987-89년에설립된노조들의저항사건 ( 총 1,638건 ) 중에서금속산업의비중은무려 76.4% 에달한다. 비금속제조업까지합하면제조업비중이 80% 를넘는다. 나머지업종은교육서비스 ( 주로전교조에해당 ) 를제외하면매우미미한수준이다. 그에반해, 1998-2004년에설립된노조들의저항사건들 ( 총 597건 ) 은이와는다른양상이다. 우선하나의업종이압도적다수를차지하지않는다. - 41 -

1987-89년세대에나타나지않았던건설업, 공공행정등이 1위 (35.5%) 와 3위 (14.9%) 의비중으로등장한다. 물론금속산업도두번째비중 (28.0%) 을차지하지만, 이경우거의대부분제조업사내하청노조들이다. 그외에도운수, 보건 사회복지, 금융, 기타서비스업등 3차산업에속하는여러군소업종들이나타나는것을알수있다. 이를통해우리는 1998년세대 의노조들은그이전세대의노조들과전혀다른곳으로부터출현했음을알수있다. 건설업, 금속산업 ( 사내하청 ), 공공행정등의주요업종과함께 3차산업에속하는다양한종류의노조들그리고다양한업종의비정규직노조들이저항사건에참여했다. 2000년대초중반이후울산지역노동자저항의풍경은그이전 1987년세대 가만들어온것으로부터상당히달라져있는것이다. 이들은 IMF 외환위기이후새롭게노조로조직된집단으로서, 1987년이후지역노동운동의중심세력으로표상된자동차 조선등의금속산업대공장의남성정규직노동자들과는업종, 부문, 고용형태, 성별등에서상당히다른특성을지닌행위자들이라는점에서울산지역노동운동의새로운세대로불릴수있다. < 표 5> 울산지역노동자집합행동의부문별 시기별분포 금속산업 비금속제조업 교육서비스 공공행정 건설직종 비정규직 구분현대현대운송직접간접기타자동차중공업고용고용 1987 X XX X X 1988 X X XX 1989 XX X X 1990 X XX X 1991 X X XX X 1992 X XX 1993 X X XX X 1994 XX X X 1995 X X X 1996 X X X 1997 X X 1998 XX X 1999 X XX X 2000 X X X 2001 XX 2002 X X X 2003 X X X X 2004 X X X 2005 X X XX X 2006 X X X 2007 X X X 2008 XX X 2009 XX X 2010 X X 2011 X X X 2012 X X X X XX 2013 X X X X 2014 X X X X X 2015 X X 2016 X XX * 해당연도에발생한전체사건에서차지하는비중이 10% 이상이면 X, 25% 이상이면 XX 로표시. ** 금속산업중 기타 에는비정규직노동자의저항사건은제외. *** 건설직종 은건설플랜트업종, 건설기계 ( 레미콘, 덤프, 타워크레인 ), 건설기능인력을포함. - 42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그렇다면, 이러한노동운동의새로운세대가수놓은집합행동들은이전의 1987년세대 의그것과합쳐져울산지역노동운동에어떠한무늬를만들었을까? 이를알기위해지난 30년간울산지역노동자집합행동의부문별 업종별 조감도 를그려보고자한다. < 표 5> 로나타난전체조감도는울산지역노동자저항사건데이터세트를근거로매년저항사건보도중해당조직 부문 업종에관한사건비중이 10% 이상을차지한경우를표시한것이다. 이조감도는시기별로울산지역노동운동의중심무대가어디로이동했는지잘보여준다. 조감도에서가장주목되는것은전체 30년을전반 15년 (1987-2001년) 과후반 15년 (2002-2016년) 으로양분하면, 두시기의부문별 업종별저항의분포가확연히다르다는점이다. 전반 15년은금속산업을중심으로한제조업노조들의집합행동으로꽉차있다. 저항의 1차사이클 (87-89년) 에는현대중공업노조의저항이정점을나타냈고, 91-93년은기타금속산업노조들이그바통을이어받았으며, 7) 저항의 2차사이클 (96-98년) 에와서현대자동차노조가저항의중심으로부상했다. 이후 2001년에는비금속제조업 ( 주로화학섬유업 ) 의저항사건이돌출적으로큰비중을보였다. 8) 주목되는것은, 후반 15년에들어서현대자동차노조를제외하고는모든제조업노조들의저항의물결이잦아들었다는점이다. 즉저항의 2차사이클이끝난이후 1987년세대 에서저항을지속한조직은거의현대자동차노조만남게되었다. 9) 조감도의후반 15년 (2002-16년) 은전반 15년과확연히다른모습을보인다. 새로운업종과부문에서노동자저항의주체들이출현했다. 새로운저항의물결을먼저선도한집단은교육서비스업 ( 교원노조 ) 과공공행정 ( 공무원노조 ) 부문이었다. 이들은과거수십년동안노동3권이박탈당해왔지만, 김대중 노무현정부시기특별법형태의노조합법화가이루어지면서조직화와동원을위한기회가열렸다. 그다음으로 2005년부터건설업노동자들이저항의물결을만들었다. 건설플랜트일용직, 레미콘 덤프 타워크레인기사, 건설기능공들은 IMF 외환위기당시극심한생계의압박을겪은이후불만이고조되면서 2000년대초중반부터신규조직화가전국적으로이루어졌다 ( 주종섭, 2010). 건설직종조직화와투쟁의물결이 2005년건설플랜트노조파업투쟁을계기로울산지역에도당도했다 ( 조형제, 2007). 물류 운송분야의경우기존에는택시노동자들이주로이업종을구성하고있었으나, 화물연대 (2002년결성 ) 와울산항예인선노조 (2009년결성 ) 등이추가되면서이부문에서도저항사건이빈발했다. 무엇보다후반 15년의조감도에서주목되는것은비정규직노동자들의투쟁물결이다. 그중에서도제조업사내하청, 민간업체또는지자체의사업서비스업 ( 경비원, 청소용역 ) 의간접고용노동자들이지속적으로저항행동에나섰다. 그밖에도유통업계약직 (2007년) 과학교비정규직노동자 (2014년) 등의직접고용비정규직들도새롭게저항에나섰다. 앞서살펴본건설업및운송업노동자들대부분이일용직이거나특수고용직인것을감안하면, 비정규노동자들이 2000년대중반이후지역의노동자집합행동을주도한세력중하나임을알수있다. 이처럼 30년간의노동자저항의조감도에나타나는울산지역노동운동의궤적은크게보아두개의세대로구분된다. 예전세대는저항의 1차사이클의폭발적투쟁기 (1987-89년) 에조 7) 이시기에현대정공울산공장과효성금속의구조조정이진행되었고, 현대그룹의중견계열사들 ( 현대강관, 현대중전기, 현대중장비, 현대로보트산업등 ) 의인수 합병이있었다. 이외에도현대자동차 1 차부품사노조들의투쟁도이시기에나타났다. 8) 2001 년에울산남구지역의화섬 3 사 ( 효성, 태광, 대한화섬 ) 구조조정과정리해고반대투쟁이진행되었다. 당시울산에는이에따른파업, 고공농성, 공장탈환투쟁, 장외농성, 연대집회, 가두시위등이매우격렬한형태로이루어졌다. 9) 예외적으로 2014-16 년에현대중공업노조의저항행동이부활했다. 노조집행부의교체와조선산업구조조정이이러한저항행동부활에기여했다. - 43 -

직된노조들이라면, 새로운세대는저항의 2차사이클과그직후의변화된형세, 즉외환위기이후노동양극화가가속화되는상황에서조직되었다. 10) 이둘은조직화의시기만다른게아니다. 업종이나고용형태의측면에서상이하다. 전자는자동차 조선등 2차산업의대공장정규직이주축세력이었다면, 후자는 3차산업의여러업종과주변부노동시장의비정규직들로구성된집단을포괄한다. 이러한노동자저항의새로운세대의출현은울산산업구조의변화와도일정한상관성을갖는것으로보인다. 1980년대까지만하더라도울산은전형적인 공업도시 (industrial city) 의면모를보였다. 1987년노동자대투쟁은이러한산업구조 - 제조업종사자가 77.4% 를차지하는제조업중심도시 - 를배경으로터져나왔다 ( 유형근, 2012). 이후도시의고도화가진행되며 1997년광역시승격을전후하여 3차산업의종사자가제조업종사자를추월했고, 현재는전체사업체종사자의약 64% 를 3차산업이차지하는도시가되었다. 물론지금까지는제조업종사자의절대규모가계속조금씩증가하고있고다른광역시도와비교해제조업종사자비중 (2015년현재 35.7%) 이월등히높은것은사실이지만, 1970-80년대의중화학공업자본투자로형성된공업도시와는질적으로다른복합대도시로탈바꿈된것이다. 이에따라노동자의집단적저항도제조업뿐만아니라, 3차산업의다양한부문들에서분출하게되었다. < 그림 3> 에서보듯이, 2002년이후부터비제조업부문노동자의저항사건빈도가제조업을추월하였다. 물론아직까지는빈도가아닌사건의규모 ( 참여자수 ) 의측면에서는제조업노조들이압도적우위를점하는것은분명하다. 그러나울산지역에서저항의 1 2차사이클의투쟁고조기에나타났던 철의노동자 나 골리앗전사 의이미지는현재울산의노동자저항행동의지배적형상으로부터대단히멀리떨어진과거의일이된것은분명해보인다. 이에더해앞서언급했듯이, 비정규직노동자의투쟁도 2000년대중반부터급증해정규직노동자의그것과거의대등한빈도로발생하고있다 (< 그림 3> 의우측참조 ). < 그림 3> 업종별 ( 좌측 ) 및고용형태별 ( 우측 ) 노동자저항사건빈도추이 ( 단위 : 건 ) 10) 2000 년대초반이래로새로운노조조직화시도들이증가한요인중하나는민주노총지역본부나산별노조 ( 연맹 ) 의지역조직, 그리고민주노동당지역위원회의인적 물적자원이그때부터미조직 비정규조직화에투입되기시작했다는점, 그리고비정규직문제가심각해지면서비정규직노동운동을적극적으로고민하고현장에서그들을조직화하려는현장활동가들의노력을빼놓을수없다. - 44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이상에서보았듯이, 울산지역노동자저항의조감도를통해우리는지역노동운동이두개의구별되는세대로구성되어있음을알수있다. 앞선 1987년세대 가주로금속제조업의대공장남성노동자들로구성된노조들로서지난 30년간울산지역노동자집합행동의물결을이끌어왔음은부인할수없다. 그러나외환위기이후 3차산업이나주변부노동시장에서출현한 1998년세대 는 ( 비록그규모가앞선세대보다작을지라도 ) 최근 15년간의지역노동운동에새로운저항의물결을만들어내었다. 이두세대는크게보아전국적인저항의 1차사이클에서출발한 민주노조운동 의전통을공유하지만, 업종과부문, 노동시장지위, 기업규모등의여러측면에서매우이질적인집단임이확인되었다. 그렇다면, 두세대의노동운동은집합행동의양상의차원에서무엇이얼마나다를까? 이와관련해본논문은외환위기이후한국노동운동에서 노조전투성의분화 ( 조효래, 2010: 51-55) 또는 노동운동의이중구조 ( 손영우, 2012) 가나타났다는논의에주목한다. 이들논의는주로대기업정규직노동조합과비정규직노동조합사이의집합행동의차이가분명해졌다고말한다. 즉오늘날대기업노조들은단체교섭의제도화에힘입어제도적전투성을통해이익집단행동전략을전개한반면, 비정규노동자들은요구주장의제도적통로가봉쇄된상황에서사회운동적전투성전략에의존해힘겨운생존투쟁을벌이고있다는것이다. 이러한노조전투성전략의이원화논의는이논문에중요한함의를던진다. 즉노조집합행동전략의분화는그에적합한운동의전술, 즉저항레퍼토리의분화로이어질가능성이크기때문이다. 다음장에서우리는울산지역노동자저항의레퍼토리를프리즘으로삼아이문제를들여다볼것이다. 이를통해두노동운동세대가직면한현재적과제가무엇인지토론할것이다. 5. 노동자저항레퍼토리의분기 : 2000 년대중반이후를중심으로 노동자집합행동의패턴과형태, 즉노동자저항의레퍼토리는노동운동의상황과변화하는계급관계의윤곽에관한정보를담고있다 (Kelly, 2015). 많은연구자들이공식통계를사용하여파업추세와패턴을파악하려고하는것도이를통해노동운동과계급관계의변화를추적하려하기때문이다. 우리의목적도크게다르지않다. 노동자저항레퍼토리의분화를파악하기위해본논문에서는 < 표 7> 과같이그것의유형을구분했다. < 표 7> 노동자저항레퍼토리의분류 제도적저항 위반적저항 구분담화적저항시위성저항대결적저항폭력적저항 정의와사례 언어적 정보전달적수단및법률적방법을통한저항 ( 예 : 기자회견, 성명서, 고소 고발 진정, 서명, 청원, 항의서한, 선전전등 ) 합법적 제도적수단을주로사용한물리적저항 ( 예 : 집회, 합법파업, 시위, 행진, 항의방문, 집단조퇴, 태업, 단식등 ) 비합법적또는불법적수단을사용한비폭력적인저항 ( 예 : 작업거부, 농성, 방해, 봉쇄, 점거, 기타불법집회 시위등 ) 폭력이나신체적충돌을수반한저항, 재산및자기신체의파괴등 ( 예 : 폭력행사및폭력충돌, 재산파괴, 분신 자살등 ) - 45 -

우선노동자저항레퍼토리를그것의온건성 / 과격성을기준으로제도적 (institutional)/ 위반적 (transgressive) 저항으로대별한다. 제도적저항은합법적 관행적수단으로인정되는저항레퍼토리를사용한집합행동을가리킨다면, 위반적저항은현행법 제도의허용범위를넘어선레퍼토리를활용한집합행동을의미한다. 제도적저항은다시담화적 (discursive)/ 시위성 (demonstrative) 저항으로구별하고, 위반적저항은다시대결적 (confrontational)/ 폭력적 (violent) 저항으로나눈다. 4개의저항레퍼토리의조작적정의와각각의범주에해당하는수단들을 < 표 7> 에정리했다. 11) 먼저제도적 / 위반적저항레퍼토리를구분하여지난 30년간의궤적을표시해보면 < 그림 4> 와같다. < 그림 4> 는우선상이한레퍼토리가두번의저항의사이클을지배했음을알려준다. 즉 1989년에정점을기록한저항의 1차사이클은위반적레퍼토리의비중이매우높은데비해, 1998년에정점을찍은저항의 2차사이클의경우제도적레퍼토리의비중이압도적으로높아졌다. 두레퍼토리의비중이거의엇비슷하게나타나다가제도적레퍼토리의상대적빈도가높아지기시작한시점은대략 1990년대초반이다. 1987년세대 의저항레퍼토리의온건화 / 제도화가바로이시기부터진행되었음을알수있다. 그이후최근까지제도적저항사건은완만한상승추세를보였다. < 그림 4> 제도적 / 위반적저항사건의빈도추이 그렇다면왜저항의 1차사이클이끝난 1990년초반부터제도적저항레퍼토리의우세가나타났을까? 크게보아세가지요인을지적할수있다. 첫째, 주로대기업사업장을중심으로 1987년세대 노조들이점차공식조직 (formal organization) 으로정립되었고, 이에따라집합행동의제도화가진척되었다. 12) 게다가현총련, 전노대, 민주노총등노조연합단체의전 11) 저항레퍼토리의범주별구분과정의는신진욱 (2004), Rucht(1998), Tarrow(1989) 등을참고해필자가재구성한것이다. 12) 저항사건의행위자를 공식조직 ( 단위노조와연합단체 ) 과 비공식집단 ( 현장조직, 파업위원회, 비대위, 비공식적노동자 / 활동가의네트워크, 개별노동자집단등 ) 으로이분화해보면, 1987-90 년기간의저항사건의주체로 비공식집단 이매우높은비중을차지한다. 초기 4 년간전체저항사건 (443 건 ) 중 비공식집단 이저항주체인경우는 202 건으로 45.6% 이다. 특히저항이격렬했던 1987 년과 - 46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국적조직화가이시기에이루어지면서노동운동의투쟁양상도과거에비해온건한제도화의경로를밟았다. 둘째, 현대그룹계열사를중심으로한대기업의노사관계와단체교섭이점진적으로제도화되었고, 이에따라국가의직접적인물리적억압이 80년대에비해감소했다는점을지적할수있다. 이과정에서저항의 1차사이클에설립된주요대기업노조들에서는 1987년체제의 게임규칙 이형성되었고, 이것이저항레퍼토리의변화를초래했다. 그렇다면구체적으로어떤형태의레퍼토리가이러한변동을주도했을까? 저항레퍼토리의세부추이를보다자세히파악하기위해이번에는노동자저항레퍼토리를더세분하여 4개로구분하여그추이를제시했다. 네개의범주를구성하는레퍼토리중사용빈도가가장높은 3개만골라그변화추세를표시한것이 < 그림 5> 이다. < 그림 5> 저항레퍼토리의세부수단별추이 ( 단위 : 건 ) * 저항레퍼토리별상위 3 개만표시. < 그림 5> 를종합적으로보면, 담화적 시위성레퍼토리의추세적증가, 대결적 폭력적레퍼토리의추세적감소를재확인할수있다. 이러한추세적변화는저항의 1차사이클이끝난 1990년대초반부터진행되어저항의 2차사이클에들어와본격화된것으로나타난다. 저항의 1차사이클을지배했던레퍼토리들, 특히작업거부 ( 불법파업 ), 농성, 조업방해, 폭력등을대신하여합법파업, 집회, 행진, 기자회견, 성명서등의제도적레퍼토리들이울산지역노동자저항의형태로널리사용되었다. 그러나이변화를완전한 대체 로말할수는없다. 13) 여전히 1989 년은각각 64.0%, 53.3% 로높아진다. 1991 년에들어서면사태가급변하여, 그비중은 6.3% 로떨어지고이러한추세는 2016 년까지지속된다. 30 년의전기간동안의평균비중은 8.6% 이다. 13) 저항의 1 차사이클을지배했던위반적레퍼토리들은이후최근까지울산지역에서주기적으로재출현했다. 특히점거농성, 고공농성등은 1998 년현대자동차정리해고반대투쟁, 2001 년화섬 3 사구조조정반대투쟁, 2005 년건설플랜트노조파업, 2010 년현대자동차비정규직공장점거투쟁등에서유사한형태로반복되었다. 반면에, 1989 년현대중공업 128 일투쟁 에서나타난노동자집단주거지와융합된폭력적가두시위의레퍼토리는이후울산지역에서는더이상출현하지않았다. - 47 -

대결적 폭력적저항은 2000년대이후에도빈발했다. 여기서우리는두가지측면을보다세밀하게들여다볼필요가있다. 첫째, 제도적저항 ( 즉담화적 시위성저항 ) 중에서도구체적으로어떤레퍼토리가지배적으로사용되었는가? 이는주로 1987년세대 의저항레퍼토리의통시적변화의성격에관한질문이다. 둘째, 위반적저항이 2000년대이후에도상당한빈도로유지된현상은무엇을의미하는가? 이것은 1998년세대 라는지역노동운동의새로운행위자들의저항행동의특성과관련되는질문이라고할수있다. 먼저제도적저항의세부레퍼토리별변화에서주목되는부분을살펴보자. 앞의 < 그림 5> 에서저항의 2차사이클시기에가장크게증가한저항레퍼토리가집회와기자회견임을확인할수있다. 그중에서도조합원대중의직접적인동원에기초한집회사용의급증은보다상세한논의가필요한현상이다. 왜냐하면그것은 1987년이후한국노동운동의특성변화를반영하는변화이기때문이다. 저항의 2차사이클에들어와집회레퍼토리가급증한것은, 이시기에노동자들이자신의요구를대중적동원을통해이제작업장밖의공공영역으로가시화시키는집단적노력을본격화했음을의미한다. 저항의 1차사이클시기에울산의노동자들은작업거부, 조업방해, 점거농성, 가두시위등위반적저항을과감하게사용해주로사용자와관리자에예기치않은타격을입히는저항형태 손상의논리 (logic of damage) 에의존했다. 그러나저항의 2차사이클에서는집회나합법파업같은제도적수단으로써보다많은수의노동자들을동원하여그힘으로요구를관철하려는 수의논리 (logic of numbers) 가우선되었다. 14) 손상의논리 에서 수의논리 로의이동을통해우리는 1987년민주화이행이후민주주의의공고화단계에서국가와조직노동간의관계가보다제도화되고예측가능한상호작용으로점진적으로전환되고있었음을알수있다. 또하나주목할지점은, 집회의증가가저항의표적 (target) 이나저항장소 (site) 의변동과연관되어있다는점이다. 즉집회의빈도증가는이제현장의노동자들이 ( 사용자를거치지않고 ) 직접중앙정부를상대로구체적인요구사항을제기하게된변화가반영되었다. 저항의 2차사이클 정확히는 96/97년노동법개정반대전국총파업 부터이제울산의노동자들은중앙정부를직접적인저항의표적으로삼기시작했다. 이에따라중앙정부를주요표적으로한저항사건의빈도는 1987-95년에는연평균 10여건에불과했지만, 1996-98년에오면연평균 70건으로급증했다 ( 앞의 < 표 2> 참조 ). 그이후에도중앙정부를표적으로한저항사건은노무현정부후반까지큰비중을유지했다. 또한저항스케일의상승은자연스럽게집회장소에서의변화를수반했다. 울산지역노동자저항사건데이터세트 에서집회장소를시기별로구분해서계산해보면, 1995년까지는사업장내부에서의집회가약 70% 를차지했다. 그러나 1996-98년부터사업장외부에서개최된집회의비중이더많아졌다. 주목할점은이러한추세가이시기에만국한되지않았다는점이다. 대략 2010년까지전체집회중사업장외부가차지하는비중이 70% 이상줄곧유지됐다. 90년대초반까지저항레퍼토리로서집회는작업장내부에서동료노동자들의단결력을높여사용자에게압력을가하는주된수단으로사용되었다. 이에비해저항의 2차사이클부터노동자들은공공영역과시민사회에서주로사용자나정부당국을저항의표적으로삼고, 다른기업의노동자, 시민, 그리고미디어를자신에게우호적인청중으로만들려는가장대중적인동원수단으로집회를사용하게되었다고말할수있다. 15) 14) 손상의논리 와 수의논리 에대해서는 della Porta and Diani(2006: 171-176) 을참조하라. 15) 집회와함께 90 년대후반부터레퍼토리사용이급증한기자회견도이와유사한논리를가진다. 단, - 48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이처럼저항의 2차사이클을계기로 2000년대이후의시기는여러형태의제도적레퍼토리가저항의전체궤적을이끄는주된수단으로사용되었다. 그러나위반적레퍼토리의빈도가 2000년대에들어와서도등락을거듭하며꾸준히지속되었다는점을유의해야한다. 다음에서는 2000년대초반이후울산지역노동자저항레퍼토리의궤적, 특히위반적레퍼토리의전개양상이보여주는특징을살펴보려한다. 이를위해최근들어위반적저항과제도적저항간의 비동조화 현상이나타남에주목할필요가있다. 앞의 < 그림 4> 에서제도적저항과위반적저항의곡선을세밀히보면, 2000년대중반까지는한쪽이상승하면다른쪽도상승하고, 반대로한쪽이하강하면다른쪽도하강하는식으로두곡선이대체로동조화되어궤적을그린다. 그런데 2000년대중반이후의궤적은이러한경향에서벗어나있다. 다시말하면, 두저항레퍼토리간의상관관계가최근 10 년에는비동조적이거나때로는반대의경향을보이고있는것이다. 16) 이러한제도적 / 위반적레퍼토리간의비동조화는두레퍼토리가별개의노동자조직에의해차별적으로활용되는경향이강화되었음을의미한다. 즉두레퍼토리간의비동조화는지역노동운동의세대분화와그에따른저항레퍼토리의분기가반영된것으로해석할수있다. 보다정확히말해, 제도적레퍼토리의증가는주로 1987년세대 의노조들과관련되는것이라면, 2000년대중반이후위반적레퍼토리의궤적은 1998년세대 의신생노조들의저항행동양상과매우밀접한관련성을갖는다는점이다. < 그림 6> 1987 년세대 와 1998 년세대 의저항사건빈도및레퍼토리별비중추이 지역노동운동의두세대간의저항레퍼토리의분화는 < 그림 6> 에서명확히나타난다. 1987-89년에설립된노조들은 90년대이후노사관계의제도화가진전되면서예상되었던 저항레퍼토리의온건화 경향이분명하게나타났다. 담화적 시위성저항의비중은지속적으로상승한반면, 대결적 폭력적레퍼토리는최근으로올수록거의나타나지않는현상이되었다. 기자회견은주로노조가자체적인대중동원이어려운상황에서언론을매개로공공영역에자신의요구와항의를제기하는레퍼토리로널리사용되었다. 이와더불어기자회견의급증은 90 년대초반시민운동의발전에따라그곳에서널리쓰이는레퍼토리가노동운동부문에도전파된결과로해석해볼수도있을것이다. 16) 지난 30 년을 10 년을단위로나누어관행적저항사건의빈도와위반적저항사건의빈도사이의피어슨상관계수를측정해보면, 1987-1996 년은 0.48, 1997-2006 년은 0.63 으로양 (+) 의관계를보이지만, 2007-2016 년은 -0.12 로부 (-) 의관계가나타났다. - 49 -

이에반해, 1998-2004년에설립된노조들의저항레퍼토리로시야를옮기면이야기는달라진다. 2000년대이후대결적 폭력적저항의비중이전반적으로매우크고, 레퍼토리별비중변동이뚜렷한패턴을발견하기힘들정도로극심하다. 이것은포스트-외환위기시기의신생노조들이직면한노사관계의불안정성이매우크다는점을알려준다. 특히 2005-07년과 2011-13년의두시기는저항이폭증하였는데, 이것은주로비정규직노조의격렬한저항행동에기인한것이다. 이시기에폭력적레퍼토리의비중도크게늘어나 1987년직후와비교해별로차이가없을만큼 폭력의재출현 현상이나타났다. 전체폭력적저항의궤적은 U자형태를보였다. 울산지역에서 1987-89년에총 46건의폭력적저항사건이벌어진후폭력은감소하여 1999-2001년에오면 9건으로최저수준으로떨어졌다. 그런데이추세가이후역전되어폭력적저항이계속증가하여 2011-13년에 35건을기록했다. 실제로폭력적저항이다시상승추세로돌아선후반 15년간, 총 95건의폭력적저항사건이발생했다. 그중에서비정규직노동자들이연루된폭력적저항은 64건으로전체의 67.4% 를차지한다. 특히최근 6년 (2011-16년) 으로오면, 이러한쏠림이더심해지는데, 같은기간전체 46건의폭력적저항사건중에서비정규직노동자는 39건 (84.8%) 의사건과직접연관되었다. 비정규직노조들의폭력적저항사건참여가빈발하면서정부당국과사용자의억압 (repression) 도 2000년대중반이후에는이들에게집중되었다. < 그림 7> 은지난 30년간폭력적저항사건의빈도와정부 사용자의 억압 17) 이수반된사건빈도추이를정규직 / 비정규직으로나누어본결과이다. 정규직노동자의폭력적레퍼토리사용빈도와정부 사용자의정규직노동자에대한억압건수는전시기에걸쳐추세적으로감소한반면, 비정규직노동자의경우는 2000년대이후두지표모두추세적상승을나타낸다. 2000년대중반이래로노동자들의폭력적저항과정부 사용자의억압간의갈등적상승작용이대부분비정규직노동자투쟁의장에집중되었음을알수있다. < 그림 7> 정부당국과사용자의 억압 을수반한저항사건의빈도와비중 17) 울산지역노동자저항사건데이터세트에서정부당국과사용자의 억압 에대한조작적정의는다음과같다. 즉담화적저항레퍼토리를제외한전체저항사건 ( 시위성 대결적 폭력적사건 ) 에서 1 경찰등공권력의개입, 2 징계 해고등회사의인사상제재나불이익처분, 3 해당사건에서경찰에의한연행자의발생, 4 해당사건과직접관련된구속자의발생등 4 가지중에서적어도하나이상이수반된경우 억압 으로집계했다. - 50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비정규직노조중에서도폭력적레퍼토리에가장많이연관된집단은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조와건설직종노조 ( 건설플랜트 건설기계 ) 였다. 18) 두노조운동은 IMF 외환위기이후노동시장분절이심화되는가운데주변부 2차노동시장에서새롭게출현한저항집단을대표한다. 이들은동원과교섭의과정에서기존작업장질서에대한적극적분란 (disturbance) 을통해자신의요구를알리고권익을실현하고자하는 하층계급집단의저항운동 (Piven and Cloward, 1979) 의성격이매우강했다. 두집단이곧잘폭력적저항레퍼토리를선택하게된데에는합법적인이해대변기제의결핍과이에의존한자본의완강한반 ( 反 ) 노조전략이주요하게작용했다. 자동차공장의사내하청고용관계또는건설업의다단계하도급구조가노사관계에미치는구조적제약은분명했다. 원청자본과의제도적 합법적채널을통한협상은제도적으로봉쇄되며, 교섭성사여부는원청사용자의 선의 에의존할수밖에없다. 이러한제약이이들의저항방식이폭력을포함한위반적레퍼토리로쉽게나아가도록한것이다. 현대차사내하청노동자들은작업장안에서점거농성, 연좌시위, 살쾡이파업, 작업방해등 손상의논리 에기초한위반적레퍼토리를광범위하게사용하면서원청관리자나공권력과의폭력적충돌을마다하지않았다 ( 유형근 조형제, 2017). 이과정에서원청사용자와공안기구는핵심활동가의연행 구속 해고, 조합원들에대한민사상손해배상청구등의강력한억압으로대응했다. 건설플랜트노동자들은초기동원과정에서울산시내에서의가두시위, 상경투쟁, 원청업체시설점거, 건설현장의출입구봉쇄, 공권력과의폭력충돌등의다양한위반적레퍼토리들을사용해자신들의 연합적힘 을과시함으로써막혀있던집단교섭의장을열려고했다 ( 주종섭, 2010: 196-200). 이에대해공권력은물리적탄압으로, 주요건설업체사용자들은파업참여조합원에대한 블랙리스트 작성등으로보복적탄압으로대응하면서폭력과억압의상승작용이나타났다. 다른한편, 비정규직노동자들의저항행동의급진화와대조적으로, 울산지역노동운동의 1987년세대 를대표하는현대자동차 / 현대중공업노조의저항행동레퍼토리는최근으로올수록온건화 제도화되었다. 현대자동차노조는강력한작업장교섭력에기초해노동법의쟁의절차를준수하는대단히규격화된부분파업위주 최근 10년동안평균적으로하루 4시간의단속적인부분파업이지배적패턴이다 의행동레퍼토리가관례화되었다 (Yoo, 2012). 지난 30년간의현대자동차의파업패턴의변화는 처음에분란을초래하는대결로출발한집합행동의형태가어떻게규격화되고결국에는관례화되는지에관한좋은사례 (Tarrow, 1994: 106) 를제공한다. 또한최근구조조정에반대하며집합행동의부활을알리고있는현대중공업노조도유사한행동패턴을보인다. 저항의 1차사이클시기에만연했던위반적레퍼토리 ( 점거, 작업거부, 고공농성, 폭력적가두시위등 ) 대신에최근의집합행동에서는제도적레퍼토리가압도적이다. 2014-16년에현대중공업노조가일으킨저항사건중에서시위성저항 ( 주로부분 파상파업, 집회, 행진 ) 은 60.5%, 담화적저항 ( 주로기자회견 ) 은 38.3% 를차지한다. 이에비해폭력적저항은단한건도나타나지않았다. 이상에서우리는저항의 2차사이클이종료된이후 2000년대중반부터울산지역노동운동의두세대간에는업종 부문 고용형태등의내부구성뿐만아니라, 지배적인저항레퍼토리에서도뚜렷한분기가나타났음을확인했다. 이른바 1987년세대 의금속산업의대공장노조들 18) 후반 15 년 (2002-16 년 ) 동안폭력적저항레퍼토리에연루된노조조직들중에서 2 건이상의폭력적저항에연루된조직은다음과같다.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조 (30 건 ), 건설플랜트 건설기계노조 (23 건 ), 민주노총울산본부 (6 건 ), 화물연대 (6 건 ), 전교조 (5 건 ), 전공노 (4 건 ), 현대자동차지부 (3 건 ),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2 건 ), 울산지역연대노조 ( 청소용역, 2 건 ), 울산문화예술회관노조 (2 건 ), 울산항운노조 (2 건 ). - 51 -

의집합행동은이제법적 제도적허용범위를벗어나지않는온건한레퍼토리가지배적형태로자리잡은반면에, IMF 외환위기이후출현한노동운동의새로운무리 ( 특히그중에서도비정규직노조운동 ) 는현행법 제도를위반하는급진적레퍼토리에의존하는경우가상대적으로많았다. 결론적으로, 오늘날울산의지역노동운동은운동의출현시기와업종 부문 고용형태의측면에서구분될뿐만아니라, 저항레퍼토리의측면에서도명확하게구별되는, 두개의노동운동세대 가병존하고있다고말할수있다. 6. 결론 : 요약과평가 이글은민주화이후 30년동안울산노동자들의저항사건자료를기초로지역노동운동의변천과정을그것의궤적, 부문별분포, 저항레퍼토리의측면에서살펴보았다. 저항사건분석의방법론은민주화와세계화의이중적도전의파도를헤쳐온 30년간의노동운동의궤적과양상에대한정밀한 지도그리기 를가능케했다. 비록울산지역에한정된자료를분석하였지만, 이렇게확보된정밀한지도를통해본논문은노동자저항행동의몇몇대표적사례연구들에서얻을수없는, 민주화이후 30년간의노동자집합행동의전체적모양새를파악할수있었다. 본연구가초점을둔세가지문제에대한연구결과를요약하면다음과같다. (1) 노동자집합행동의통시적궤적 : 빈도와규모, 요구와표적의측면에서살펴본울산지역노동자저항의궤적은기존의노동체제론에서말하는한국노동운동의시기구분과유사한모양새를보였다. 노동자대투쟁으로촉발된저항의 1차사이클은수출부문금속산업 ( 주로현대그룹계열사 ) 의남성노동자들이주도적세력이되어민주노조인정요구를중심으로, 사용자와국가공권력을상대로한작업장단위에서의격렬한노동소요로특징지을수있다. 10년뒤에출현한저항의 2차사이클은이제단위노조와전국적연합단체의공식조직을구성한금속산업노동자들이국가 자본의신자유주의공세에맞서방어적투쟁을벌인시기였다. 그러나저항의 2차사이클이끝난노동양극화가가속화된외환위기이후부터울산지역노동자저항의궤적은그이전과달라졌다. 이제특별한저항의폭발현상은더이상나타나지않았다. 대중동원능력이전반적으로감소한가운데, 노동시장분절심화를반영하여비정규직고용을둘러싼새로운노동문제들이저항의주요요구사항으로전면에부상했다. 물론그이전과마찬가지로집단적노사관계의불안정성은크게개선되지않았지만, 외환위기이후의집합행동궤적은이른바 1987년노동체제하에서형성된노동운동의특성이점차약화되고있음을분명히보여주었다. (2) 노동자저항행동의부문별분포의변화 : 업종과부문, 고용형태에따라노동자저항행동의시기별분포는외환위기이후부터노동운동의전환이분명해지고있음을잘보여준다. 저항행동의주체에초점을맞추어분석해보면, 지난 30년은크게두개의시기로구분되었다. 전반 15년 (1987-2001년) 은 1987-89년에노조결성이이루어진, 주로금속산업노동자들의집합행동이압도적인비중을차지했다면, 후반 15년 (2002-2016년) 은그이전에모습을보이지않던업종과부문에서노동자저항행동이분출된시기로특징지을수있다. 공공부문, 건설업, 서비스산업그리고무엇보다비정규직노동자들의집합행동이이시기에노동자저항의새로운세력으로등장했다. 이들은대부분 IMF 외환위기이후에노조설립이이루어졌다 - 52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는점에서지역노동운동의새로운세대 ( 이른바 1998 년세대 ) 로부를수있다. 이에반해 1987 년세대 의저항행동은 ( 현대자동차노조를제외하면 ) 외환위기이후부터빈도와규모뿐만 아니라, 그비중또한크게감소했음을알수있었다. (3) 저항레퍼토리의시기별 부문별특징 : 이주제와관련해본연구에서밝히고자했던것은앞서말한 1987년세대 와 1998년세대 간에존재하는노조조직화시기, 부문과업종, 고용형태상의차이에서더나아가, 실제저항행동패턴에서도명시적인차이가확인되는가하는점이었다. 1987년세대 의노조운동은지난 30년동안대체적으로위반적저항에서제도적저항으로지배적레퍼토리의변천을겪었다. 그이동은 90년대초반부터나타났지만, 완연한특징으로자리잡은것은 2000년대중반부터였다. 이제이들은쟁의관련법 제도의합법성의경계내에서보장된제도적레퍼토리에의존해자신들의권익을실현하고자한다. 이에반해, 1998년세대 의노조운동, 그중에서도특히비정규직노조운동의저항레퍼토리는현행법 제도가허용하는범위를넘어서는위반적레퍼토리를더자주선택해왔다. 나아가 2000년대중반이후지역노동운동의장에서 노동자폭력의재출현 현상이나타난것은비정규직노조의격렬한투쟁과이에대한국가 사용자의억압사이의갈등적상승작용이 ( 마치 80년대말과유사하게 ) 다시등장했기때문이었다. 이처럼 2000년대중반이후지역노동운동에서나타난저항레퍼토리는노조운동세대별로분화되었고, 정규직 / 비정규직간에저항레퍼토리의온건성 / 급진성의분기가명확하게드러났다. 이런점에서오늘날울산지역노동운동은노조운동의출현시기, 업종과부문뿐만아니라, 집합행동의패턴에서도뚜렷이구분되는 두개의노조운동세대 가병존하고있음을확인할수있다. 다음으로이논문의주요한발견점에대한평가와그함의를논의하고자한다. 본연구에서가장주목되는분석결과는오늘날두개의구분되는노동운동세대가병존하고있다는점이다. 1차노동시장에속한제조업대공장중심의 1987년세대 의노조운동과, 주로 2차노동시장에서출현한비제조업 비정규직중심의 1998년세대 의노조운동이그것이다. 그런데 30 년의시간을전체적으로돌아보면, 집합행동의빈도와전투성의측면에서볼때, 2000년대중반이후울산지역에서 1987년세대 의집합행동은쇠퇴했거나온건화 규격화된반면에, 1998년세대 가노동자저항의장에서그중심을차지하게되었다. 그렇다면이러한저항주체의이동현상을 노동운동의세대교체 로까지평가할수있을까? 다시말해, 제조업대공장의정규직노조운동의역사적사이클은이제쇠퇴와침체로들어섰고, 주변부노동자혹은비정규직노동자의투쟁이이를대체하는국면으로완전히들어선것일까? 이에대해서는아직까지는유보적인답변을내놓을수밖에없다. 그이유는다음과같다. 첫째, 1998년세대 의노조운동은장기적생존가능성, 즉노동조합조직의유지와활동의지속이라는측면에서매우어려운조건속에놓여있다. 조돈문 (2011) 의지적처럼, 단적으로비정규직투쟁은투쟁의패배가조직력의약화로곧장이어질리스크가대단히크고, 이로인해비정규직노동자들의조직적구심점이꾸준히상실되며, 그들의계급주체로의형성이진전되지못하는결과를낳곤한다. 이에비해 1987년세대 의노조운동은국가와자본의가혹한물리적탄압에도불구하고단위노조-산별연맹-총연맹의공식구조를완성하여비교적안정적인조직력을확보했다. 물론그한계도명확하다. 즉 1987년세대 의노조운동이주로대기업과공공부문에서의작업장시민권의획득에머물렀고, 사회적 또는 정치적 수준에서노동3권의실질적제도화로나아가지못한결과, 후발노동운동세대인주변부노동시장의저임금 비 - 53 -

정규직노동자들은노조의조직적생존가능성을높일수있는제도적자원이항상결핍된상태에서투쟁에나서야했다. 단적으로노동자대투쟁 30주년이오늘날 노조할권리 는대부분의노동대중에게요원한과제로남아있다. 둘째, 집합행동의레퍼토리의측면에서도 1998년세대 의노조운동은아직까지레퍼토리의혁신 (innovation) 을이루어내었다고말하기힘들다. 다시말해외환위기이후의새로운노조운동들은국가와자본의변화된대응전략에효과적으로도전할수있는혁신적인운동방식 ( 저항레퍼토리 ) 를새롭게창출해내지못한것이다. 오히려많은경우에그들은 1987년세대 노조운동이주로저항의 1차사이클에서보여준소위 전투적조합주의 에서전형화된레퍼토리전통을답습하는경우가많았다. 그러나제조업대공장노조들의과거전투성이주로그들의작업장교섭력 (workplace bargaining power) 주로노조의 현장권력 을사용해사용자에게경제적타격을입히는작업장수준에서의파업행동을벌일수있는조직적역량 을기반으로한것이었다면, 1998년세대 들의작업장교섭력은매우취약하여그에의존한저항레퍼토리의효력은별로클수없었다. 간헐적으로그들은시민사회연대, 진보정당과의협력, 지방정부와의정치적교섭, 지역노조의실험등대안적인노동의힘의원천을개발하기도했지만대개일시적이었고, 그것이안정적인 연합적힘 (associational power) 로이어지지는못했다. 셋째, 온전한의미에서 노동운동의세대교체 를말하기위해서는, 집합행동주체에서의변화뿐만아니라, 노조운동에서그동안과소-대표된새로운운동세대의이해와요구가노동조합내부구조와조직문화에얼마나반영되었는지도평가해야한다. 이측면에서는아직까지대단히부정적인평가를내릴수밖에없다. 대공장단위노조뿐만아니라, 지역본부, 산별노조, 총연맹등각급노조의내부의사결정구조는여전히 1987년세대 의노조운동이배출한인물과세력이그핵심을차지하고있고, 비정규직 청년 여성 이주자등저항행동의차원에서오늘날새롭게등장한노동자집단들의이해대변구조는 장식품 이거나 주변화된존재 에머물고있다. 따라서종합적으로볼때, 오늘날노동운동의장 ( 場 ) 에는조직화와동원의주기가다르고, 업종과부문및노동시장지위가구별되며, 집합행동의패턴이명확히구분되는 1987년세대 와 1998년세대 가함께위치하고있다. 그러나양자간에는 조직적자원과집합행동성향간의비대칭성 이지배하고있어서전자의후자로의대체나교체를말하기는힘들다고할수있다. 즉 1987년세대 는여전히강력한 조직적자원 을보유하고있으나그들의 집합행동성향 은이제감소했거나온건화 규격화되었으며대체로기득권을방어하는투쟁에몰두하고있다. 이에반해, 1998년세대 의 집합행위성향 은기존의노사관계를타파하려하거나법 제도적제약을넘어서려는전투적성향을강하게보이지만그것이실제조직적성과로이어질수있도록해주는 조직적자원 은대단히취약한상태에머물고있다. 오늘날한국노동운동이여전히치열한투쟁과실천에도불구하고새로운단계로발전하지못하고있는데에는이러한 비대칭성 이가로놓여있다고말할수있다. 향후새로운노조운동이성장하여노동운동의위기를타개하는주도적세력이되기위해서는, 노조조직의생존가능성을높일수있는제도적 정치적환경의마련, 국가와자본의변화된대응전략에적합한혁신적인저항레퍼토리의개발과전파, 그리고노조운동내부구조에서의대표권의재구성등의노력이경주될필요가있을것이다. - 54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참고문헌 노중기. 2008. 한국의노동체제와사회적합의. 후마니타스. 박명준 권혜원 유형근 진숙경. 2014. 노동이해대변의다양화와새로운노사관계형성과정. 한국노동연구원. 손영우. 2012. 왜노동조합이전투적이고갈등적인전략을선택하는가?: 한국노조운동의정치적기회구조의한계와이중구조의출현. 사회과학연구, 20집 1호. 40 74쪽. 신진욱. 2004. 사회운동, 정치적기회구조, 그리고폭력 : 1960-1986년한국노동자집단행동의레퍼토리와저항의사이클. 한국사회학, 38집 6호. 219 250쪽. 실버, 비버리. 2005. 노동의힘 : 1870년이후의노동자운동과세계화. 백승욱 안정옥 윤상우옮김. 그린비. 유형근. 2012a. 한국노동계급의형성과변형 : 울산지역대기업노동자를중심으로, 1987-2010. 서울대학교사회학과박사학위논문. 유형근. 2012b. 20세기울산의형성과역사적변천 : 공업도시, 기업도시, 노동자도시. 사회와역사, 95권. 5 37쪽. 유형근 조형제. 2017. 현대자동차비정규직의정규직되기 : 투쟁과협상의변주곡, 2003-2016년. 산업노동연구, 23권 1호. 1 45쪽. 은수미. 2008. 20년간의노사관계변화 : 역사적접근. 은수미 정주연 이주희. 산별노사관계, 실현가능한미래인가?. 한국노동연구원. 임영일. 2003. 신자유주의적구조조정과노동체제전환. 경상대학교사회과학연구원편. 신자유주의적구조조정과노동운동 : 1997-2001. 한울. 21 74쪽. 조형제. 2007. 사회적합의 모델의가능성탐색 : 울산건설플랜트노조의파업사태를중심으로. 아세아연구, 127호. 122 145쪽. 조효래. 2010. 노동조합민주주의. 후마니타스. 주종섭. 2010. 한국의건설노동자조직화과정과노동운동연구 : 중층적노동통제와건설노동자의저항을중심으로. 전북대학교대학원사회학과박사학위논문. 최재훈. 2017. 집합행동의개인화와사회운동레퍼토리의변화. 경제와사회, 113호. 66 99쪽. Alimi, E. 2015. Repertoires of Contention in D. della Porta and M. Diani (eds.). The Oxford Handbook of Social Movements. Oxford University Press. della Porta, D. and M. Diani. 2006. Social Movements: An Introduction. Blackwell Publishing. Frege, C. and J. Kelly. Union Revitalization Strategies in Comparative Perspective. European Journal of Industrial Relations, 9(1), pp. 7 24. Gall, G. 2014. New Forms of Labour Conflict: A Transnational Overview in M. Atzeni(ed.). Workers and Labour in a Globalised Capitalism. Palgrave Macmillan. Gentile, A. and S. Tarrow. 2009. Charles Tilly, Globalization, and Labor's Citizen Rights. European Political Science Review, Vol. 1(3), pp. 465 493. Hutter, S. 2014. Protest Event Analysis and Its Offspring in D. della Porta(ed.). Methodological Practices in Social Movement Research. Oxford University Press. pp. 335 367. Kelly, J. 2015. Conflict: Trends and Forms of Collective Action. Employee Relations, Vol. - 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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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2 1987년노동운동과 2000년대비정규노동운동 : 금속산업대공장내사내하청노동을중심으로 손정순 (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연구위원 ) - 57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1987 년노동운동과 2000 년대비정규노동운동 : 금속산업대공장내사내하청노동을중심으로 손정순 _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연구위원 1. 들어가며 올해는 1987년노동자대투쟁 ( 이하 87년대투쟁 ) 30주년이되는해이다. 87년대투쟁은한국전쟁이후최대규모의노동자투쟁이었고, 현재까지이어지고있는한국노동사회의구조와형세를정초한투쟁이었다고할수있다. 그리고현재한국노동사회의핵심적인이슈에는 비정규노동자 가존재하고있다. 모든노동자투쟁이그러한것처럼투쟁의핵심적자원은단결과연대이다 (Gumbrell-McCormick and Hyman, 2013). 이는 87년대투쟁이, 그리고 2000년대이후비정규노동자의투쟁이증명하고있다. 87년대투쟁의성과로형성된한국노동사회의구조위에서 2000년대투쟁한비정규노동자의성과에대해서는평가가엇갈린다 1). 하지만대체로동의되고있는사실은 2000년대비정규투쟁을통해한국의노동사회에대한구조적균열은일으키지못해왔다는점이다. 그리고그근저에는연대의부재와 87년대투쟁의성과에안주하려했던비정규노동의한계가존재한다. 87년대투쟁은한국사회노동자계급전체가저항하고투쟁한사건이었다. 그리고이과정에지금의비정규노동자또한인간답게살기위해노조를만들고, 임단협을진행하였으며, 지역에서의연대에기반해전노협의지역기반인지역노조협의회에서핵심적인역할을하기도하였다. 이글은비정규투쟁에서 87년대투쟁당시와 2000년대비정규투쟁과정에서상징적인역할을했던두개의사례를놓고비교함으로써, 87년당시에는 ( 제한적이기는하지만 ) 유의미한성과를낳았던비정규투쟁이왜현재는그러하지못했는가를고찰하고자한다. 그리고이를통해 87년대투쟁이만들어낸성과와더불어한국노동사회의구조적한계지점들을반추해볼수있을것이다. 이글에서살펴보고자하는사례는 87년노동자대투쟁시기포항제철사내하청노동자의투쟁과 2000년대이후현대차사내하청노동자의투쟁이다 2). 두개의투쟁사례모두제조업 -대공장내간접고용비정규노동자의투쟁이라는공통점을지니고있다. 이두개의사례를살펴보는이유는 87년대투쟁시기와현재간접고용비정규노동자투쟁모두제조업내대공장이핵심공간이었기때문이다. 당연히두사례노조의투쟁은단순비교할수는없다.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구조와맥 1) 물론 2000 년대이후모든비정규투쟁의성과를개별적인사안별로평가한다면분명성공과실패를명확히가를수있을것이다. 하지만현재한국노동사회의구조적변화의흐름을창출해내지못하고있다는점에서는대체로평가가일치하리라판단된다. 조직노동으로조직된비정규노동자의규모가증대하고있다는점에서는유의미한진전이며이러한진전이기존조직노동과는구별되는조직과이념등에서새로운노동조합운동흐름을만들어내겠지만 ( 그리고그러한징후가드러나고있지만 ), 기존의조직노동과질적으로구별되는흐름은아직까지는가시화되지는않고있다. 2) 포항제철 ( 현포스코 ) 은포항과광양등에두개의사업소가있다. 이글에서살펴보는사업소는포항제철포항사업소의사례이다. 한편사내하청업체를현장에서지칭하는명칭은다양하다. 당시포항제철에서는사내하청업체를 협력업체 로지칭하였으며, 현재는 파트너사 로지칭하고있다. - 59 -

락, 그리고당시노동조합을둘러싼제도적조건자체가상이하기때문이다. 이런점에서투쟁주체로서의노동조합의활동에초점을맞춘다. 노동조합운동이일정하게결과를낳기위해서는노동조합을둘러싼구조와행위자요인들이맞물려작용한다. 이글은구조보다는행위자, 즉당시투쟁주체였던노동조합에초점을맞춤으로써상이한사회 경제적구조와제도적조건이지만주체들의행위전략이어떠한함의를지니고있는지를논의하고자한다. 그리고이를통해현재의비정규노동운동이간과하고있는지점을확인할수있을것이다. 자료는 87년대투쟁당시포철사내하청노동조합활동가에대한인터뷰자료와성공회대노동사연구소가소장하고있는노동사아카이브중포철노동조합관련 1차자료, 그리고필자가 2000년대중반이후사내하청노동관련한조사 연구자료에기반하고있다. 2. 1987 년노동자대투쟁과포철사내하청노동조합 1) 87 년노동자대투쟁과포항제철비정규노동조합의결성 (1) 포항제철내사내하청의도입과노동조건 3) 포항제철에서사내하청활용의역사는오래되었다. 포철은고로완공에따른공장가동이본격화되기시작한 1970년대중반에이미정규직생산직노동자를중심으로한내부노동시장기제를완성하였다 ( 손정순, 2011). 사내하청노동또한동일하다. 포철은포항사업장이완공된되기도전인 1971년 2월에 협력사업부 를신설해고로완공과동시에활용할사내하청업체를선정, 육성하였다. 그결과, 1973년, 포항제철의고로가첫가동되면서부터포항제철작업장내에는 협력업체 로불리우는사내하청이본격적으로활용되기시작하였다. 1973년당시의하청업체수는 16개업체, 인원수는 2,700명을넘는수준으로서, 1973년당시포항제철전체정규직직원 ( 사무직포함 ) 3,973명의 69% 수준이었다. [ 표 1] 포항제철의인력규모 구분 1973년말 1981년말 생산규모 260 만톤 850 만톤 정규직 3,973 명 14,621 명 사내하청 20개업체, 3,213 명 22개업체, 7,251 명 * 출처 : 포항제철 (1996), 포항제철 (1989). 1980년대기간동안포철내사내하청은약 20~25여개사내하청업체에연평균 7,800여명의사내하청노동자가포항제철내작업장에서근무하고있었던것으로나타나고있다 ( 포항제철 1989:805). 당시사무직을포함한포항제철내전체인력규모가 14,000여명임을감안한다면, 약 1/2 수준의사내하청노동자가존재하고있던셈이다. 직영정규직은철강공정설비의진행상황에대한감시적노동과자동화된설비를전자적으로제어하는업무를주로담당하고있는데비해 ( 박준식, 1991), 이들사내하청노동자의경우는원료하역및관리, 슬래그등의부산물관리, 스카핑등의철강제조의현장업무, 그리고각종설비의유지 보수업무를주로담당하였다. 이들업무영역은대체로고열과분진, 소음등에노출될수밖에없는대표 3) 포항제철내사내하청노동의도입 전개와관련해서는손정순 (2011) 의내용을요약한것임을밝힌다. - 60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적인 3D 업무영역으로서사내하청노동자의노동조건이상당히열악했을것임을짐작할수있다 4). 이당시포항제철사내하청노동자의임금, 노동조건에대해구체적인수치로조사된자료는현재까지는확인된바가없지만, 87년대투쟁직후포철내사내하청노동자의임금수준은직영정규직대비 60~70% 수준이었던것으로나타나고있다 ( 정희태, 1988:83; 민주언론운동협의회, 1988). 사내하청노동활용목적이비용절감이라는고전적인활용양상을그대로드러내보이고있는것이다. 나아가이들직영정규직노동자와사내하청노동자와의작업장내관계또한철저한신분적위계구조로편제되어있었다. 우선작업과정에서사내하청노동자가포철정규직노동자에의해지휘 감독을받고있었을뿐만아니라, 작업장내정규직-사내하청간관계는 마름-소작관계 로표현될정도로전근대적이었다 ( 민주언론운동협의회, 1988). 비단작업장내관계뿐만이아닌작업장밖의영역에서도차별이존재했다 5). 금속산업내정규직-사내하청노동간관계가종사상지위에기반한신분적차별에기반하고있었다는점이 20여년전포항제철에서이미전형적으로나타나고있던것이다. (2) 포철협력업체노동조합의결성과투쟁 우리의투쟁은포항공단 8 만노동자들의권리를 10 년앞당기는투쟁이될것입니 다. 6) 87년대투쟁과정에서포항지역에도노동자들의투쟁과노조결성이본격화된다. 1987년 7 월, 지역철강공단내강원산업 ( 현현대제철포항사업장 ) 에노동조합이결성되었고, 이후동양석판, 부산파이프, 흥화공업, 조선내화와포철의보수 정비업무를담당하고있는플랜트직종노동자또한노조 ( 포항지역건설노조 ) 를결성하였다 ( 민주노총포항시협, 1997) 7). 87년대투쟁과정에서노조결성을위한포항제철내노동자의투쟁은사내하청노동자로부터시작하였다. 포항사업장내전기통신설비를담당했던영남통신이라는사내하청업체에노조가설립된것이다. 1987년 7월사내하청노조가결성되자포철은하청업체와의하청계약해지라는, 현재에도널리활용되는전형적인방법으로업체를폐업시킴으로써노조결성을추진한사내하청노동자들을실질적으로전원해고하였다 8). 1987년당시에는영남통신뿐만아 4) 실례로포철사보의직영생산직노동자간담회글에서사내하청노동자들이직영정규직노동자의임금, 노동조건을상당히부러워한다는내용이언급되고있으며 ( 우리는자랑스러운산업전사들, 쇳물, 1974 년 12 월호 ), 열악한사내하청노동자의처우를개선하는데원청인포철이노력해야한다는언급도나타나고있다 ( 좌담 : 기본의실천으로, 쇳물, 1981 년 4 월호 ). 포철내사내하청도입및전개과정에서이러한열악한노동조건과저임금, 그리고업체의업무처리미숙등으로인해사내하청노동자의경우이직이높았던것으로나타나고있다 ( 민주언론운동협의회, 1988). 5) 노동과정상에서정규직노동자에의한모욕적 차별적대우, 작업복차별, 작업장내출입시출입구지정, 통근버스 작업장내후생복지시설이용차별등이이의대표적인예이다 ( 정희태, 1989:84; 이철호, 1989). 지금이랑똑같아요. 직영은노란색, 협력은파란색, 이렇게딱구분되게돼있어요 ( 인터뷰자료 ). 6) 포철사내하청노조결성당시노조설립활동가들의발언내용중일부. 민주노총포항시협 (1997). 7) 1985 년전두환정권의유화국면이후포항지역에서도민주화운동세력이결집, 1987 년 4 월포항민주화운동연합을결성해지역내종교단체와함께포항철강공단노동자에대한노동인권상담과노동기본권선전활동등을전개하였다 ( 민주노총포항시협, 1997). 이단체는포항노동문제상담소와함께이후포항지역노동운동과정에서시민사회진영의연대체로자리잡았다. - 61 -

니라, 삼품공업, 포항로공업, 한진기업등다른포철내사내하청업체들또한노조를결성하려하였지만원청인포철의압력등으로인해노조결성에까지이르지못했다 9). 비단사내하청노동자뿐만아니라정규직노동자또한민주노조건설추진위를결성해포항민주화운동연합의지원을배경으로노동조합설립을시도하였지만사측의개입으로인해실패하였다. 포철에서사내하청노동조합이결성된것은이후 1년이지난 1988년 6월 26일이었다. 1987년영남통신의노조설립실패이후제철정비, 삼풍공업, 동일기업, 포항로공업등포철내사내하청업체 4곳의노동자들과지역의노동문제상담소등이연대해 포철협력업체노조설립추진위원회 를결성하였다. 이후 1988년 6월 26일노조설립총회를함께개최하고동시에설립신고서를포항시에제출하는방식으로포철내에사내하청노조가설립된것이다. 조직형태는사내하청업체별로설립된기업별노조였지만공동총회개최와공동설립신고서제출을통해원청인포철의노조탄압을사내하청노동조합간연대를통해극복하려했다 10). 하지만그과정이원만히진행된것은아니었다. 87년대투쟁당시의노조결성과정전반이그러했듯이포철사측또한완강하게노조를부정하는입장이었다 11). 1988년사내하청노조결성당시에도포철은지역내공안기관의도움속에서구사대를동원한설립신고서탈취시도와평민당야당당사농성을폭력적으로강제진압함으로써사내하청노조를와해하려시도하였다. 이에대해포철 4개사내하청업체소속노동자 2,500여명은포철정문앞집회와작업장내작업거부, 농성등의파업으로저항하였다 ( 민주노총포항시협, 1997). 결국 1988년 6월 29일, 포철이사내하청노조설립을인정하였고그결과로포항제철정규직노조또한설립되었다. 기존에간선제로선출된노사협의회근로자위원이주축이되어사측주도로포철정규직노조가설립된것이다. 포철의물리적인탄압속에서복수의사내하청노조가출범할수있었던핵심적인자원은지역의포항노동문제상담소를매개로한사내하청업체별노조활동가그룹의결속과연대였다. 이에더해노사협의회라는제도적통로의활용또한보조적인자원을제공하였다. 이미 87년이전부터포철내사내하청업체에서는노조결성시도가간헐적으로이어져왔으며, 노조설립의핵심활동가들은 1차적으로노사협의회를이용, 근로자위원으로활동한경험을축적하고있었기때문이었다. (3) 협노련의건설과포항지역민주노조협의회 ( 준 ) 활동 8) 당시업체폐업후해당업체의업무는타사내하청업체로분산시켰고, 비조합원만고용승계하는방식으로영남통신노조조합원전원을해고하였다. 지금도원청이사내하청노조원을해고하기위해널리활용되는방식이다. 9) 포철의압력은사내하청업체에만국한되지않았다. 포철에인접한철강공단은포철로부터철강원자재를공급받는제강 압연업체들뿐만아니라포철고로로부터부산물과가스등을직접공급받아가공하는업체, 부자재를포철에전속납품하는업체들이소재하고있다. 포철은이들업체에대한물량중단, 계약해지등의압력을통해 1987 년포항지역에서결성된노조중 10 개업체를해산시켰다 ( 민주언론운동협의회, 1988). 10) 영남통신깨지는거보니까, 안되겠는거에요. 이게뭐한두군데만해서는안되는구나. 지금처럼업체들전체를하지않으면안되는구나, 생각한거죠. 그래서일단큰데를중심으로 5~6 개업체를동시에조직하려한거죠 ( 인터뷰자료 ). [ 표 1] 에서드러나고있는것처럼당시포철내협력업체의인원규모는현대공장의사내하청과달리규모가큰편이었다. 당시포철사내하청노조활동에서핵심이었던제철정비의인원규모는약 1,800 여명이었다. 11) 당시포철의최고경영진이었던박태준회장은 87 년대투쟁에대해 고로에불을끌지언정, 포철에노조는안된다 고언급하였다. 당시삼성, 현대등재벌회장들의전근대적노조관과동일한입장이었던것이다. 이러한입장은포철내에노조가설립된이후에도포철사측의대 ( 對 ) 노조관계에지속적으로반영되어폭력적인병영적노무관리는계속되었다. - 62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포철사내하청노조가최종적으로결성됨과동시에사내하청업체별로임단협이진행됨과아울러타사내하청업체에도노조가결성되었다. 1988년말까지포철에는 9개사내하청업체에약 4,800여명의노동자가노조로조직되었다 ([ 표 2] 참조 ). 포철포항사업장내사내하청업체소속노동자의 1/2이넘는규모이다. [ 표 2] 포항제철사내하청노조결성현황 (1988년말) 업체명 업체설립일 조합원수 조합설립일 주업무분야 삼풍공업 1972. 12 472 1988. 06 연주및분괴스카핑 포항로공 1971. 05 767 1988. 06 고로, 코크스로및연와보수 선일기업 1981. 05 127 1988. 06 스케일작업 제철정비 1982. 01 1,522 1988. 06 기계및전기정비 동일기업 1971. 12 767 1988. 07 열연및후판제품구내조업 성림기업 1976. 12 960 1988. 07 선강및압연지역노무작업 동정정비 1972. 12 99 1988. 10 전기분야정비작업 영일기업 1985. 10 101 1988. 12 구내운송작업 한진기업 - 72 1988. 12 구내운송작업 합계 - 4,887 - - * 김기훈 (1989), 포항제철 (1989), 포항제철 (1996) 등의자료재구성. 포철내사내하청노조가속속결성되면서 1988년 11월 10일, 포항제철사내하청노조간연 대체인포항제철협력업체노동조합연합회 ( 약칭, 협노련 ) 가결성되었다. 협노련은포항지역 내에서최초로구성된노조간연대체였다. 포철 이라는동일한원청과의하청관계였기에자연 스럽게사내하청노조간연대체결성으로나아간것이다. 또한이러한연대체구성은원청인 포철의노조활동탄압에대해대응하기위한과정이었다고할수있다 12). 이후협노련은 협 노련신문 까지발간하면서조합원규모를 7천여명 ( 광양포함 ) 까지확대하였다. 1989년으로들어서면서협노련은풍산금속 ( 안강 ) 에대한공권력투입및지도부강제연행에 대한대응과강원산업노조민주화투쟁에대응하는과정을거치면서한단계더높은연대체 구성에나서게된다. 1989년 2월, 포항지역민주노조협의회준비위원회 ( 이하 포민노협 ) 를 결성하고협노련의장이포민노협준비위의장을역임한것이다. 이연대체는포항지역차원 에서노조간연대를구현하기위해협노련이적극주도해설립한연대체이다 13). 1989년하반 기들어서포민노협에대한참여노조는 37개노조, 17,000여명에이를정도로성장하였고 ( 이 상철, 1991), 1990년 1월에출범한전노협의포항지역노조협의회로역할하였다 ([ 표 3] 참조 ). 12) ( 노조 ) 설립신고서를인정했을뿐이지노조자체를인정한거는아니었어요. 노조가만들어지고나서도계속탄압을해오니까요 ( 인터뷰자료 ). 13) 풍산금속탄압에대해지역차원에서대응하기위한것도있었지만, 다연관된업체들이니까요, 포철하고. 그러니까같이해야한다고본거죠. ( 인터뷰자료 ). - 63 -

[ 표 3] 포민노협 ( 준 ) 가입노조현황 (1989 년말 ) 구분노조명조합원수구분노조명조합원수 포철사내하청 업종 제철정비 2,400 동양석판 300 삼풍공업 600 조선내화 500 보성건설 150 한국협화화학 70 동성정비 200 동국산업 400 한진기업 500 강원산업 1,800 선일기업 150 태성기공 300 삼일기업 100 철강한합산업 80 삼정강업 - 공단삼일운수 100 포항로공업 1,600 대동철강 250 대전공업 300 동일철강 100 궤도공영 100 대한비오시가스 100 대성기업 250 동남상운 250 포항의료원 70 서라벌식품 - 성모병원 250 포항건설일용노조 500 동대부속병원 200 선린병원 200 전교조 - * 전노협 (1990), 포항지역현황보고서 ( 성공회대노동사연구소노동사아카이브, ILH-i8088) 협노련을중심으로한지역내연대투쟁은활발한편이었지만, 작업장내임단협과정에서의연대활동은결과적으로미흡한편이었다. 1989년풍산금속공권력투입과강원산업노조민주화투쟁연대등지역내노조투쟁에대한연대는상대적으로활발히전개되었지만, 협노련차원에서의공동임단투등의임단협에서는기업별노조의관성이그대로나타났다. 협노련차원에서진행된 1988년월동비 14) 투쟁과 1989년공동임단투, 공동파업등이모두일부사내하청노조의돌출적인행동으로실패로귀결했기때문이다 ( 민주노총포항시협, 1997) 15). 그에따라포철사내하청노조는개별화된기업별노조차원에서임단협교섭만을진행할수밖에없었다. 비록공동임단투는실패로귀결하였지만, 차별적인노동조건개선을위한협노련차원의노력은계속되었다. 협노련신문 을통한노동조합활동공유를통해사내하청노조간의공동임단투효과를내고있었고, 이를통해정규직과사내하청노조간임금격차를줄일수있었던것이다 16). 14) 명칭은월동비이지만실제로는연말성과급성격의보너스이다. 15) [ 표 3] 에서나타나고있는것처럼협노련에서가장규모가큰노조는제철정비였다. 포철은사내하청업체설립과정에서일부자본금을출자하기도하였는데제철정비가이에해당되는업체였다. 이들자회사성격의사내하청업체들은포철정규직보다는임금수준이낮고다른비 ( 非 ) 자회사사내하청업체보다는임금수준이조금높은편이었다. 이런점에서공동임단투보다는독자적인임단협교섭을선호할수밖에없었고, 이런점을원청인포철이이용해사내하청노조간분열을야기하기도하였다 ( 이상철, 1991). 16) 조금나아지기는했죠. 물론정규직도올리니... 무엇보다도노조가생김으로써직영이막대하는것들이많이좋아졌어요. ( 인터뷰자료 ). 87 년대투쟁직전의포철임금격차수준은 1/2 수준이었던반면, 노조결성이후에는 60~70% 까지상대적으로임금수준이올라갔다 ( 정희태, 1988:83; 민주언론운동협의회, 1988). - 64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4) 협노련에대한탄압과뒤늦은정규직노조의등장과와해 1989 년도에들어서면서협노련과포민노협출범이공식화되자이에대한공안차원의탄압 또한본격화되었다. 1989 년 6 월협노련의장에대한구속을시작으로 1990 년 1 월, 협노련의 포민노협탈퇴, 그리고전노협출범직후에는 2 대포민노협의장과간부진을구속하였다. 그 리고전노협출범과함께본격화된노동조합업무조사등을통해협노련과포민노협의와해를 추진하였다. 당시포항지역노조, 특히포철사내하청노조에대한전방위적인회유와압박을 통한협노련분열과포민노협탈퇴는포철과지역내경찰, 안기부등공안기관의합작품으로 서짧은노동운동기간에비해공권력의탄압은여타지역에비해강한편이었다 ( 안영배, 1991) 17). 특히 1990 년조합원직선제를통한포철노조위원장선거를앞두고포항지역내노 조간연대체를와해시켜야할필요성이제기되면서포철협노련과포민노협에대해지역공안 기관의탄압이집중되었고, 결국 1990 년중반에이르러협노련과포민노협은실질적으로기능 이정지되어와해되어버렸다. 협노련이와해되어개별화된사내하청노조만이존재하는상황속에서 1990 년 8 월, 포철 정규직노조에민주파집행부가당선, 출범하게되었다. 포철내사내하청노조의활동이쇠잔 해지는시기에민주파집행부가출범함으로써사내하청노조결성이후작업장차원에서는시 도해보지못했던원하청연대가구현될기반이마련된것이다 18). 1980 년대후반포철정규 직내에는 민주소리, 민족포철 등 2 개의민주파현장그룹이활동하고있었다. 이들현장조 직이중심이되어 1988 년사내하청노동자와동시에노조를결성하려했지만, 사내하청노동 자에대한정규직노동자의반감우려와준비미흡으로인해결국동시출범하지못했다 ( 김기 훈, 1989). 사내하청노동자에대한우월의식이정규직노동자의노조조직화와연대에장애 물로역할한것이다. 하지만 2 년뒤에등장한민주파포철노조또한 1990 년하반기들어전개된정부와포철의전 방위적인노조탄압과배제 무력화속에서조합원집단탈퇴로인해 1991 년초에사실상와해되 어버리고말았다 19). 최소한작업장차원에서의원하청연대는시도조차못한채포철노조가와 해되어버린것이다. 포철노조의와해속에서 87 년대투쟁과정에서노동조합으로조직되었던 포철사내하청노동또한대부분은개별화된기업별노동조합으로의존재해오고있는상황이다. 17) 포철이국영기업이다보니안기부가깊이개입했어요. 회유, 납치, 협박에서부터시작해서조폭을이용해서야밤퇴근길에야구방망이로패기도하고... 대중조직에대한경험이짧다보니까그런거에쉽게굴복할수밖에없는측면도있죠. 저같은경우에도노조만들겠다고하니까, 돈을선물보따리에담아서놓고가더라구요 ( 인터뷰자료 ). 18) 포철노조박군기집행부는출범직후지역언론사와의인터뷰에서협력업체노동자의처우개선과연대에도관심을쏟겠다고언급하고있다 ( 이대환, 1990). 가시화되지는못했지만최소한정규직 - 사내하청노조간연대의개연성은존재하였다고할수있다. 포철에사내하청노조가설립된이후정규 - 비정규노조간공식적인연대는이루어지지못했지만현장조직과사내하청노조간의연대와협의는지속적으로존재해왔다. 계속만났죠. 원래협력업체노조띄울때, 같이띄우려고했었으니까요. 이후에도협노련이라든가포민노협활동에포철현장조직들도비공식적으로같이했습니다. 박군기집행부가들어서면서뭘해볼수있겠다싶었는데, 금방그리되면서... ( 인터뷰자료 ) 19) 당시포철사측은 10 명이출마한최초의위원장직선제하에서민주파집행부가 1 차선거에서과반을넘겨당선될것을전혀예상하지못했다 ( 이대환, 1990). 민주파후보가당선되자마자사측은노무관리만을전담하는이사를임명하면서 포스코뉴스, 노무관리 라는소식지를신설해포철노조에대해지속적으로이데올로기공세를가하였다. 이후포철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의사전누출과조합선물사기사건조작을계기로사측은간부에대한징계 해고, 조합원에대한불이익처우 ( 주택융자금회수, 병역특례해제를통한군입대등 ) 협박과노조혐오론을유포하면서노조집단탈퇴를조직하였다. 그결과 1990 년 9 월에조합원 19,000 여명에이르던포철노조는 1991. 7 월에는 270 명수준으로감소하였고, 1992 년 7 월에는조합원수십여명수준의휴면노조로전락하였다 ( 안영배, 1991). - 65 -

2) 87 년포철사내하청투쟁의성과와한계 87년대투쟁은국가의후견속에서이루어지는자본의병영적통제구조하에서인간답게살기위한노동자의저항이었다. 이러한점은포철사내하청노동의경우도동일하였다. 여기에차별적인임금 노동조건과위계적인신분제적질서에기반한작업장관계에대한불만이더해진것일뿐이다 20). 1988년부터 1990년까지짧은기간이었지만포철사내하청노조는노조설립준비단계에서부터포철내사내하청노동자간연대로시작해이후포항지역차원의연대까지연대의지평을넓히는데주력해왔다. 작업장내사내하청노동자를조직하기위한협노련건설에서부터시작해작업장밖철강업종노조와의연대를위한포민노협건설이그것이다. 짧은기간이었지만포민노협은 1990년출범한전노협의포항지역조직으로역할하였다. 이시기포철사내하청노조의건설은노동자대투쟁의과정전반과유사한목적하에노동조합이설립되었다. 노동자도인간이다 라는구호하에포철사내하청노동조합또한출범하였지만, 당시포철사내하청노동조합은또다른목표또한지니고있었다. 바로직영과의차별해소라는목표였다 21). 비록짧은기간이었지만, 공동임단투와공동파업을통해오랜기간동안존재해왔던포철작업장내직영-정규직간의차별적인격차해소를목표로해왔다는점이다. 하지만사내하청노조와정규직노조간의 시간의불일치 는이를구현할작업장내연대를불가능하게만들었고, 당시정부의민주노조진영에대한전면적인억압 배제는국영기업이었던포철에서는정규직노조의부재 와해속에서더욱더증폭되어나타났다. 여기에작업장내사내하청노조간의공동임단투의실패속에서개별업체차원에서의임단협으로만그쳤다는한계를보이며개별화된것이다. 3. 2000 년대간접고용비정규운동과사내하청노동조합 1990년대기간동안내재되어왔던간접고용비정규노동문제는 1997년 IMF 경제위기를계기로한국의노동사회진영에서핵심적인문제로등장하였다. 사실, 1990년대중반이후노동연구진일부가비정규노동자문제를제기하였지만, 당시의조직노동은일반적으로무관심했었던상황이었다. 1997년 IMF 경제위기를계기로비정규직이급속히확산되기시작하였고, 1999년 1/4분기에임시 일용직비중이 50% 를넘어서면서본격적으로사회적이슈가되었고, 2000년대들어비정규노동자의투쟁과조직노동의조직화노력이본격화되었다. 이러한비정규노동자의투쟁과노조조직화노력에서두드러진지점은제조업내간접고용비정규노동자의투쟁과조직화양상이분출하였다는점이라할수있을것이다. 2000년대이후간접고용비정규노동과관련한많은조사 연구에서드러나고있는것처럼고용불안과 20) 포철사내하청노조가설립된직후현장에배포된성명서에는당시사내하청노동자로서의작업장내불만과연대의필요성을주장하고있다. 협력업체근로자들이여! 우리들권리를위해하나로뭉치자!, 포철협력업체노동조합설립추진위원회 (1988. 6. 29.)(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사료관, http://db.kdemocracy.or.kr/). 21) 89 년도임단투를통해얻을려고했던거는몇 % 라는임금인상목적도있지만, 노란색직영과의차별을없애자는목적도있었죠. 워낙에불만이많았으니까요. 물론지금처럼과같은, 불법파견투쟁이라든가이런거는당시에는없었기때문에포철원청을상대로하지는않았죠. 이런점이지금에서보면한계입니다 ( 인터뷰자료 ). - 66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차별적인저임금, 신분제적작업장관계등으로인한불만이누적되어왔기때문이다. 이들간접고용비정규노동자투쟁과조직화가분출하였던사업장대부분은 87년대투쟁과정과이후한국노사관계를주도해왔던대공장이주를이루어왔다. 그리고불법파견투쟁을통한 정규직화, 즉 87년대투쟁의성과로나타난내부노동시장진입을목표로해왔다는공통점을지니고있다. 이들대공장내비정규노동의조직화흐름을통해 87년대투쟁이후한국노동운동의한계, 내지는문제점을직시할수있을것이다. 이하에서는 2000년이후간접고용비정규노동운동의전개를현대차를중심으로 5개의시기로구분해고찰하고자한다 ([ 표 4] 참조 ). (1) 제 1시기 (1998~2002) : 사내하청노동자투쟁의즉자성과지원과연대의즉자성이시기에조직된사내하청노동자는고용불안에기인한즉자적인반응속에서사내하청노동자만의조직화와저항이전개되어온시기라할수있다. 1998년한라중공업사내하청노조결성의사례가대표적인예로서사실이러한흐름은 1997년 IMF 경제위기이전부터간헐적으로존재해왔던사내하청노동자저항과정에서도드러난부분이라할수있다 22). 그러나이시기후반부에이르면캐리어사내하청투쟁을통해작업장내전체사내하청노동자의조직화와정규직연대가사내하청노동자의조직화와저항에핵심적인요인이라는점이부각되기시작하였다. 캐리어의사내하청노동자의조직화형태 ( 사업장내전체사내하청의조직화 ) 와수단 ( 원하청연대 ) 은이후대공장내사내하청노동자를조직화하는전형적인방식으로자리잡았다 23). 하지만, 자본의광주공장철수위협앞에정규직노동조합 노동자의연대철회와구사대폭력사태로귀결되면서대공장내비정규직조직화과정에서정규직-비정규직연대가무엇을의미하는지깊은고민을조직노동에게각인하게된계기가되기도하였다. 또한캐리어사내하청노동조합의투쟁은이후금속산업내사내하청노동자투쟁과정에서연대의문제와더불어또다른주요한조직화경로를제시하였다. 바로파견법을이용하는것으로서불법파견투쟁을통한대중적인조직화의가능성을제시했다는점이다. (2) 제 2시기 (2002~2006) : 불법파견투쟁을통한사내하청노조결성과미흡한원하청연대 2000년대이후전반적인사내하청노동자의투쟁이최고조에달했던시기라할수있다. 이시기사내하청노동자의투쟁은곧불법파견투쟁이었고, 이는현재까지도제조업대공장내비정규노동운동의흐름을규정하고있다. 현대차를비롯해기아차, 한국GM, 현대중공업, 하이닉스, 금호타이어등제조업내주력대공장에서사내하청노동조합결성이봇물처럼이루어지면서금속노조의주도로불법파견고소, 고발투쟁이본격화되기시작하였기때문이다. 22) 대표적인사례가 1996 년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의조직적인저항과, 1997 년가을의아시아자동차사내하청노동자투쟁이었다. 당시의투쟁은노조조직화를목표로한투쟁이라기보다는작업장내불만, 내지는고용불안에기인한즉자적인일회성투쟁이었고, 개별사내하청업체차원의조직화였다. 23) 캐리어사내하청노동조합의결성과정에대해서는한국비정규노동센터현장리포트팀 (2001) 참조. - 67 -

[ 표 4] 금속산업내사내하청노동운동의시기별구분및특징 구분제 1 시기 (`98~`02) 제 2 시기 (`03~`06) 제 3 시기 (`07~`10) 제 4 시기 (`10~`13) 제 5 시기 (`14~ 현재 ) 자본의대응양상 - 무관심 방기에기반한무대응기조 - 수세적대응 - 공세적대응 - 정치적, 이데올로기적공세 - 공세적교섭 ( 정규직화교섭 ) 사하노조대중동원역량 - 자생적인조직화 : 하청업체별조직화 - 현장사하노조의주체적활동 - 상급연맹을중심으로한목적의식적조직화결합 - 산별노조를통한조직화 - 지역 + 공단을중심으로한전략조직화 - 불법파견정규직화 를매개로한신규조직화 -`10 년, 비지회총파업의실패로인한조직력훼손 - 사내하청노동자의정규직화를위한특별교섭의전개 수단 / 매개 - 고용불안에대한즉자적대응 - 불법파견투쟁 - 대공장의산별전환을통한 1 사 1 조직 - 불파에대한법원의판결 - 특별교섭과정규직화 원 - 하청연대 - 사내하청노동만의투쟁 - 불파투쟁을매개로한원하청연대틀구성시도 - 산별전환을통한원 - 하청연대 - 소극적지지 지원 - 소극적지지 지원 대표사업장 한라중공업사내하청, INP 사내하청, 대우캐리어사내하청, 기아차 ( 광주 ) 사내하청 현대차를 비롯한 완성차 사업장 기아차화성지회, 대우타타, 현대차전주지회 현대차비정규직 3 지회 * 출처 : 조효래 (2008), 조돈문 (2011), 김정호 (2010:3 장 ), 송보석 (2012), 유형근 조형제 (2017) 의내용에기반하여필자변형 현대차비정규직 3 지회 - 68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이시기불법파견투쟁은 정규직화 라는당시조직노동의요구를구현하는수단이자, 조직화의매개로서역할하였다. 사내하청노동자의정규직화라는제 1의요구를어떻게구현할것인가라는수단으로서의불법파견투쟁이었고, 이를위한노동조합으로의조직화를구현하는매개로서의불법파견투쟁이었던것이다. 그러나노동부의불법파견판정, 즉행정적조치만으로는현장사내하청노동자의정규직화요구가현실화되기에는한계가있을수밖에없었다는점이드러나기시작하였다. 공식적인사법절차로들어가면서 불법파견이아니다 라는검찰의판단이내려지기시작했고, 이로서법 제도투쟁만으로사내하청노동자의정규직화가불가능할수도있다는점이가시화되기시작한것이다. 결국, 작업장내에서정규직화라는비정규노동자의핵심적요구가구현될수있는법적정당성과더불어노동조합이라는조직적기초가마련된상태에서이러한요구를구현하는마지막관문으로서의원하청연대만이남아있었던상황이었다. 이시기사내하청투쟁을둘러싼원하청연대의구현은크게 2가지방향으로전개되었다. 첫번째는현대차의사례로서 2003 년사내하청노동자의노조결성초기에현대차노조의규약변경을통해사내하청노동자를직가입하는방향으로연대를구현하자는것이었다. 이는정규직 -사내하청노동자간하나의조직내에서통합한다는맥락에서가장높은수준의원하청연대라할수있었지만, 간접고용비정규노동의핵심이었던대공장영역에서는대부분조합원총투표에회부조차하지못하는상황에머무르고있었다. 위원하청연대가비교적초기에진행되었던것이라면, 두번째방향은바로불법파견판정이본격화되면서나타난단사차원에서의원하청연대회의의결성이었다 24). 공동결정, 공동투쟁, 공동책임 이라는 3대원칙속에서운영되어왔던완성차차원의원하청연대회의는그러나실질적으로는별다른성과를내지못한채사실상기능정지되어버렸다. 완성차사업장에서불법파견특별교섭을몇차례진행한것이외에는별다른성과를내지못한것이다 25). 현대차의경우, 2005년 5공장사내하청노동자해고반대농성 26) 과사내하청노조의독자파업으로인해완성차대공장내원하청연대회의는기능정지되었다. 그결과대공장부문내사내하청노동문제는사내하청노동조합만의독자적인교섭, 나아가파업을통해해소할수밖에없게되었고, 그에대응하는원청자본의탄압또한사내하청노동조합에집중되면서사실상대공장부문내사내하청노조가약화되는계기가되었다. 결과적으로이시기금속산업내사내하청노동의핵심적인문제는불법파견투쟁을통한정규직화요구가봇물처럼제기되는상황속에서이를뒷받침할원하청연대의기반을어떻게마련할것인가가핵심이었지만이지점에서정규직노조와상급단위등조직노동은지도, 조정력을발휘하지못한상황이었던것이다. 24) 현대차는 2004 년 8 월 20 일 불법파견원하청연대회의 를결성하여, 2005 년 1 월대의원대회에서공식기구로추인받았고, 기아차는 2005 년 5 월에 원하청연대회의 를발족시켰다. 25) 물론 2005 년하반기, 기아차화성과 GM 대우창원공장에서정규직노조의연대총파업시도, 2005 년현대차전주공장의사내하청지회결성과정에서보여준정규직지부의연대, 2006 년기아차 3 주체간합의서작성등부분적인성과또한존재한다. 그러나 2005 년하반기현대차 5 공장의사내하청노동자파업, 2007 년 9 월기아차화성도장라인의파업에서극명하게드러났던것처럼작업장내정규 - 비정규직노동자간의이해불일치문제를단위사업장, 나아가작업장차원에서는해소할수없었던상황이었다. 사내하청노동자의정규직화라는점이작업장내현장조합원에게는고용상의문제로, 노동조합전체로는작업장권력의문제로제기될수밖에없었기때문이다. 26) 당시현대차사내하청노동자의농성은신차투입에따른라인재배치와그에따른사내하청노동자의해고문제였다. 자본의저강도구조조정에따른인원재배치과정에서사내하청노동자가최우선적으로해고된것이다. - 69 -

(3) 제 3시기 (2007~2010) : 사내하청노동자투쟁의침체와대공장산별전환을통한 1사 1 조직의한계불법파견투쟁이법 제도적인한계로인해침체로접어들었지만, 주요제조업내사내하청노동자를조직화할수있었던새로운계기가전개되었던바, 바로대공장노동조합의산별전환과그에따른 1사 1조직방침이었다. 15만명이라는거대노조로재탄생한금속노조는 2007 년대공장내사내하청노동자에대해서는 1사 1조직방침에입각해대공장내비정규노동자를정규직지부에직가입시키는방안을제시하였다 27). 간접고용비정규노동자조직화를대변하는 1사 1조직 방침은 정규직-비정규직연대 를하나의조직체안에서구현한다는긍정적측면에도불구하고이시기대표적인사내하청노동자투쟁이었던기아차화성공장사내하청노동자의도장라인점거파업을통해그한계를드러내었다. 정규직-사내하청간의물리적충돌로까지이어진이파업은 크게뭉쳐고용을지킨다 는대공장의산별전환이실제로는정규직조합원의이해만을 지킨다 는것을드러낸것이다 ( 임영일, 2009). 이시기또다른사내하청노동자의투쟁으로는산업단지지역내중소사업체의불법파견, 나아가불법인력공급업문제를전면화한기륭전자투쟁이었다. 이투쟁은대공장위주의조직노동이간과해왔었던중소사업장내불법파견문제, 나아가불법적인인력공급업문제를전면에제기하였다는점에서이후금속노조가지역 공단전략조직화사업을전개하는계기가되기도하였지만, 오히려불법파견투쟁의한계를드러내는계기가되기도하였다. 무엇보다불파투쟁이기업내노동시장에갇힌투쟁으로서, 초기업 적인노동운동의지향 흐름과배치될수밖에없다는것을드러낸것이다. (4) 제 4시기 (2010~2013) : 불파투쟁의재점화와자본의총공세제 4시기금속산업내사내하청노동자투쟁의계기는 2010년 7월 22일에내려진사내하청노동자에대한대법원의판결이었다. 이판결은봉쇄된것으로생각됐던 정규직화 라는사내하청노동자의요구가실현될수있는최소한의법 제도적기반을마련한것이기에 2000년대후반들어서침체되어왔던금속부문내사내하청노동자투쟁을다시금제고하는효과를낳았다. 그리고이판결의영향속에서 2010년 11월 15일, 현대차시트사업부동성기업의업체폐업및재계약과정에서촉발된현대차사내하청노동자의파업은 2000년대이후사내하청노동자투쟁의성과와한계를집약하고있다. 비정규노동자투쟁에대한원청자본의억압과탄압은여전히상수였을뿐만아니라더욱더세련되고강해진반면에 28), ⅰ) 실리주의적정규직집행부의미흡한원하청연대, ⅱ) 당시금속노조의조정역량의미흡, ⅲ) 사내하청노동투쟁주체의과잉목표와투쟁전술등에따른문제와한계점은지속되었다. 결국 2010년하반기노동사회를뒤흔들었던현대차사내하청노동자의점거 농성파업은 100명이넘은해고와 1,000명이넘는징계자, 그리고사상최대의손배와가압류로일단락되었다. 27) 이시기금속노조가제시한또다른전략조직화방안은삼성, 포스코등의무노조재벌사조직화와중소하청사업장내노동자조직화를위한지역공단조직화사업이었다. 28) 현대차는대법원판결이내려지자마자사법적절차를이용한재상고와헌법소원제기, 그리고 소송당사자인최병승개인에게만적용된다 고주장하였다. 결코노동우호적이지않은법리 법절차를세련되게이용한것이다. 나아가이과정에서시간을벌게된현대차는하청업체를통한회유와사내하청노조에대한탄압과이데올로기적공세또한병행하였다. 2010 년 11 월 15 일시트사업부동성기업폐업건은이의대표적인예이며, 파업과정에서도 연봉 4,000 만원짜리비정규직 이라는이데올로기적공세를기획재정부및고용노동부를통해전개하기도하였다. - 70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5) 제 5시기 (2014~ ) : 정규직화특별교섭과 절반의성공 2013년이후현대차와정규직-사내하청노조간에사내하청노동자의정규직전환을위한특별교섭이전개된시기로서쟁점은정규직전환을 어떻게 할것인가의여부였다. 당시사내하청노조는당연히모든사내하청노동자의정규직 전환 이었다. 전환배치없이현재의담당업무에서근속을 100% 인정받아현대차의 정규생산직노동자 로전환되는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요구는원청인현대차의반대와단순중재자역할에머무르고있는정규직노조의태도, 그리고와해된비정규직지회의지도력으로인해성공할수없는것이었다. 2010년현대차비정규직파업의결과로정규직지부와비정규직지회사이의연대는사실상와해되었기때문이다. 2012년 2월대법원의불법파견확정판결과계속되는사법부의불법파견판결의여파속에서 29) 현대차는정규직노동자의대규모퇴직에대비한생산직인력채용의필요성을배경으로 사내하청노동자의신규채용 방식을특별교섭에서제기하였고, 이후일부수정된안을배경으로해당내용이관철되었다. 최종적으로는약 6천여명의사내하청노동자가신규채용, 또는일부근속인정방식으로현대차의정규직노동자가되었다. 이미대공장내사내하청노동운동이거의대부분와해되었거나침체되어있는상황하에서사내하청노동자의정규직화라는요구가변형된형태로관철된셈이다. 2) 2000 년대금속산업내간접고용비정규운동의성과와한계 2000년대간접고용비정규노동운동의핵심은 불법파견투쟁을매개로한조직화와정규직화 라할수있다. 불법파견투쟁을통한노동조합조직화사업은금속부문의사내하청노동자의실상을대중적으로알리고 2004년과 2010년사내하청노동자의노조조직확대, 그리고 신규채용 이라는제한적이면서변형된형태이기는하지만현대차사내하청노동자의정규직화를이끌어내는핵심수단으로역할하였다. (1) 불법파견투쟁의의의와한계하지만, 불법파견투쟁으로집약되는금속산업내비정규노동운동은 2000년대노동운동전반에한계를드러내는계기가되기도하였다. 첫번째는노사관계의사법화현상에기인한노동조합운동의취약성이다. 작업장내노동문제는 1차적으로는노동조합의단협으로해결하는것이가장바람직하다. 문제는사내하청노조가이러한단협을강제할역량이부족한상태라는점과최소한의요구기반마련을위해작업장내문제를법에의존하면서수반되는문제점이다. 정책당국및법원의법해석에따라노동조합운동의전반적인기반이취약해질수있기때문이다. 두번째문제점은노동조합운동의기업중심성, 특히결과적으로대공장중심성을강화하는효과를낳는조직화전술로서, 궁극적으로는산별노조라는 2000년대민주노조운동진영의 29) 2014. 9 월서울중앙지법은현대차울산공장사내하청노동자 1,200 여명의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다시금사내하청노동자가현대차의정규직임을인정하는판결을내렸다. 이에더해 2015. 2 월에는아산공장사내하청노동자 7 명중근속 2 년미만인 3 명을제외한 4 명에대해현대차정규직이라는대법원판결이내려졌다. 이판결이중요한이유는직접생산공정뿐만이아니라서브 (sub) 라인등간접부서의 2, 3 차사내하청노동자까지도현대차의정규직으로간주했다는점이다. 사내하청노동자입장에서보면 2010 년대법원판결보다더진일보한판결인것으로서현대차는사실상모든사내하청노동자를정규직으로전환할수밖에없는상황에내몰렸다. - 71 -

지향을제한하는효과를낳고있다는점이다. 불법파견의판정기준은작업장차원에서이루어지게된다. 그에따라직접고용, 정규직화의공간적대상은사용사업주가 1차적인대상이다 30). 이러한상황을고려할때불법파견투쟁을통해정규직화를달성하고자하는조직화방침이작업장내에서어떤효과를낳을지는명확하다. 이는불법파견정규직화의대상을대공장내 2, 3차사내하청으로넓히더라도여전히남는문제점이다. 대공장내사내하청노동자의정규직화는노동시장내기업규모별분단구조를완화하기위한조직노동의노력이병행되지않는다면, 대-중소기업간격차라는노동시장내기업규모별분단구조를고착화시킬가능성이더높다 31). (2) 원하청연대와정규직 이기주의 (?) 1987년노동자대투쟁과 2000년대비정규운동과의비교에서가장두드러진차이점은바로원-하청연대부분이라할수있다. 1987년당시의포항제철과 2000년대이후대공장내비정규노동운동에서가장주요한차이는바로원하청연대이다. 포철의경우, 1988년, 사내하청노동조합이설립되면서우선적으로사내하청노조간연대가이루어졌지만곧이어설립된정규직노조가사측의어용노조에가까운상황하에서작업장내연대를구현하기에는한계가있을수밖에없었다. 비록국가의공안적탄압으로인해실질적인성과로이어지지는못했지만, 사내하청노조는협노련을통한대공장내연대, 포민노협을통한철강공단지역내연대로나아간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간접고용비정규연대투쟁의지형은 87년과는달랐다. 87년노동자대투쟁을통해설립된정규직노조가확고히자리잡고있었으며, 무엇보다도산별노조라는조직형태로인해작업장안밖의연대가용이한조건이었기때문이다. 87년대투쟁이후 20여년의시간이흐른후캐리어와현대차등금속산업내대공장의사례에서드러난것은정규직노동조합 노동자는작업장내비정규노동에대해소극적이거나, 때로는적대적으로변화했다는점이다. 이와관련해서는크게두가지지점을언급할수있다. 첫번째는정규직노조조합원의식의변화양상이다. 과거의 계급적연대 로표현되었던단일하면서도균질한동지적연대지향에서의사 ( 疑似 ) 금융자산가화되면서개별화 파편화되어가고있다는점이다 32). 그리고대공장내정규직조합원이이러한변화양상을뒷받침하는근거는기업규모별분단구조에기반하고있는재벌계내부노동시장의고용과임금등에서물질적보상이었다. 이러한조합원의식은평상시에는 실리주의적비자발적연대 ( 박종식, 2010) 로나타나지만, 대공장내비정규노동조직화에대한정규직노조의집중적인자원동원 투여를통한연대, 또는작업장내사내하청노동자의고용 임금상의분배요구가전면화할경우에는극단적반감으로표출되고있기도하다. 30) 2000 년대후반이후불법파견투쟁이오로지완성차 - 대공장에서만진행되어오고있는현실은이를반영하는것이라할수있을것이다. 31) 이런점에서정이환 (2006) 은한국의노동시장에서정규 - 비정규간고용형태별격차해소보다기업규모간격차해소가더중요한문제일수있다고언급하고있다. 32) 이는정규직노동자이해의다기화 다변화를의미하지만, 노동자문화, 특히생활문화영역에서의퇴행적인양태로도드러나고있다. 제가시를통해서그려왔던, 노동자대투쟁때선봉에섰던노동자들이지금은골프장, 룸싸롱, 노래방가는데선봉에서고있는것이아닌가하는생각을합니다. 87 년당시의자신들과똑같았던비정규직노동자들이지금도여기저기서싸우고있는데말입니다. 일상생활에서계급적연대라는가치를지켜내는노동문화의중요성을다시금생각합니다. 백무산심사위원장의인사말, 2011 년제 2 회비정규노동수기공모전 (2011. 12. 13). - 72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두번째는노동조합은자본으로부터자주적인조직이어야하지만, 조합원의단기주의적이해로부터도독립적인조직이어야한다는점이다 (Hyman, 1997). 2007년기아차의 1사 1조직원칙관철과 2017년 1사 1조직원칙의폐기는모두대공장정규직조합원의단기주의적이익극대화성향을반영한귀결이라할수있을것이다. 당시 1사 1조직원칙은 정규-비정규직연대 라는운동차원의가치를구현하는것이기도했지만, 작업장권력의분점을통한통제의측면또한존재하며 33), 이런점에서비정규직노동자에게정규직노조는 불만의관리자 역할을수행한것이라할수있을것이다. 하지만, 사내하청노동자의고용과분배상의요구가전면화되면될수록 정규직이우위를점해왔던작업장권력의분점 고용 임금상의물질적이익의일부포기등, 기존작업장권력을지녀왔던정규직노동자이해의보장이용이하지않을수있다는점이드러나면서조직노동내사내하청노동자를다시금별도의조직으로분리했던것이다 34). 결과적으로 2000년대이후정규직중심의조직노동은 조합원의기득권보호 라는노동 조합 의역할을수행하기위해사내하청노동을이용하는, 일종의 도구적합리성 에기반한비정규정책을구사해왔다고할수있을것이다. (3) 사내하청노동자의정규직화경로 : 내부노동시장편입전략 2000년대이후간접고용비정규노동조합운동의방향또한기존조직노동의운동전략에부합하는것이었다. 원칙적으로민주노총을위시한조직노동이 차별철폐 정규직화 라는원칙을제시하고, 금속노조가불법파견투쟁을통한조직화와정규직화경로를제시하면서사내하청노동자의정규직화라는요구가관철될수있는기반이마련된것이다. 하지만사내하청노동조합은 원하청연대미비 부재로인한작업장교섭력 (workplace power) 확보곤란 원청대자본의사내하청노조배제로인한연합적힘 (associational power) 확대곤란등으로인해사내하청노동자에게정규직화의경로와전망을제시하지못했다. 위요인들은간접고용비정규노동에우호적이지않은제도와맞물리면서결과적으로사내하청노조의조직력을약화시켜왔고, 비정규노조의교섭에기반한정규직화방안이무력화됐던것이다. 사내하청노동자들또한이러한상황속에서정규직이되기위한 도구적합리성 에입각한양태를추구해왔다 35). 불법파견투쟁을통해달성하고자한대공장내내부노동시장편입이주는편익은매우크다는점에서차별철폐등전체비정규노동자의이익을위한공장밖연대에는소극적이었다 ( 유형근 조형제, 2017). 나아가원하청연대의미비 부재를배경으로노조의힘에기반한정규직화경로가실질적으로봉쇄되면서특별채용방식이라는왜곡된형태의 33) 이는금속노조내에서 1 사 1 조직원칙이구현된사업장대부분이정규직조합원의수가더많은경우에한정되어진행되었다는점에서도어느정도드러나고있다. 사내하청노동자가정규직조합원대비 2 배를넘는조선, 철강등의사업장에서는 1 사 1 조직을위한규약개정을시도조차하지못했다. 34) 기아차지부가 2007 년말부터 1 사 1 조직을추진한요인중하나는 2007 년도장라인점거파업의영향이컸다. 사내하청노조의독자파업으로인한불이익으로조합원의불만이지부지도부에쇄도하였고, 이는사내하청노조를지회로편제하게된주요원인중하나였다. 금속노조의 1 사 1 조직원칙은비정규직지회의독자파업권을인정하지않고있기때문이었다. 2017 년기아차지부의사내하청지회분리또한불법파견사내하청노동자의정규직화교섭과정에서정규직화의규모를놓고서전개된정규직지부와사내하청지회간갈등과지회의 wildcat 파업이이유였다. 비정규직지회의 ( 잦은?) 독자파업이 1 사 1 조직편제의근거이자배제의이유가되고있는것이다. 35) 이러한점은현대차비정규직지회의조합원수추이가불법파견과관련한행정적, 법적판단이내려질때마다급증후급감한것에서도어느정도나타난다 ( 유형근 조형제, 2017). - 73 -

정규직화 에경도될수밖에없었던것이다. 정규직되기 위한과정에서사내하청노동자또 한일종의 도구적합리성 에기반한양상을보여왔던것이다. 4. 결론 : 1987 년조직노동과비정규노동운동 제한적인사례이기는하지만이글에서살펴본두개의사례는일면같은듯하면서도다른지점을지니고있다. 글의모두에서언급한것처럼차별적인조건에처해있는간접고용비정규라는공통점이외에도두개의사례모두내부노동시장이완성된대공장내투쟁이었다는점이다. 포철은 1968년설립초기부터일본철강업종의내부노동시장을도입해운용해왔으며 36), 그에따라 1987년당시국내제조업대기업에서는매우드물게정규직-비정규직으로이중구조화된내부노동시장체제가완성된상황이었다. 자동차, 조선등제조업내여타대기업의경우 87년대투쟁의결과로 1990년대들어내부노동시장이완성되었고, 이후 2000년대들어간접고용비정규노동자의조직화와투쟁이본격화하였다. 양자의유사성과달리노조의조직적힘을확보하기위한연대의방향은달랐다. 포철사내하청노동에서협노련의건설은자연스러운것이었다고할수있다. 원청이같은사내하청업체였기때문이다 37). 하지만포철사내하청노조의연대는포철이라는기업내에만한정되지는않았다. 산업구조와기업간관계측면에서포철과밀접히연관된철강공단내노동조합과의연대로까지나아갔다. 연대의범위가지역으로까지확대되었을뿐만아니라, 비록짧은기간이었지만포항지역의조직노동을대표하는위치에까지이르렀다. 2000년대자동차업종을중심으로한조직화된사내하청노동의연대는달랐다. 2000년대간접고용비정규노동을대표하는상징적인지위에있었고, 금속노조라는조직형태로인해부족한자원을동원하기위한연대의지평은더넓어졌다. 정규직되기 ( 유형근 조형제, 2017) 위한목표하에서연대의 1차적이면서도주요한대상은작업장내정규직노조였으며이마저도궁극적으로사내하청노조가원하는수준과형태에이르지못했다. 이는역으로 10년이넘는지난시기간접고용비정규노동운동이정규직으로대표되는조직노동을변화시키지못했음을의미한다. 그에따라이는작업장내사내하청노동자들또한자신들의도구적합리성에입각해 특별채용 이라는정규직되기를사실상추수하는것으로귀결하였다. 물론이러한차이는비정규노동에대한주체들의인식의차이, 그리고정규직노조의유무와도밀접히연관되어있는부분이라할수있다. 87년대투쟁당시포철사내하청노동자는자신들의사용자가 포철 이라는점을분명하게인식하지못했을뿐만아니라 38), 작업장내에연대할정규직노조가실질적으로존재하지않았기때문이다. 그렇지만차별적인임금, 노동 36) 후지 ( 富士 ) 제철, 야하타 ( 八幡 ) 제철, 일본강관등일본의 3 개철강사를중심으로구성된 일본그룹 (Japan Group) 이제철소건설과운영 보수 정비분야의기술이전, 교육 훈련을통한생산직노동자양성프로그램까지모든것을주도해건설한제철소가지금의포철이었다. 이과정에서정규직 - 사내하청으로구조화된당시일본철강업종의내부노동시장기제또한도입되어운영되었다 ( 손정순, 2011). 37) 광주에소재한아시아자동차의경우도 87 년대투쟁과정에서사내하청업체에노조가결성되어사내하청업체노조간협의회 ( 아시아협력업체노조협의회 ) 를구성하기도하였으며, 포철협노련과동일하게협의회차원의신문을발간하기도하였다. ( 성공회대노동사아카이브, ILH-i204920). 38) 그때는불파나이런게없었으니까요. 알고있었다면지금처럼불파투쟁을했겠죠. 그렇더라도당시에노조를만들었던궁극적인목표는포철이었습니다. ( 인터뷰자료 ). 현재금속노조에소속된포철 ( 광양 ) 사내하청지회는금속노조의방침에따라불법파견소송을제기해지난 2016 년광주고등법원에서승소하였다. 이소송당사자들은 1980 년대말부터포철 ( 광양 ) 사내하청업체에서근무하다가노조활동으로해고된해고자들이었다. - 74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조건, 신분제적작업장내위계질서, 나아가앞서언급했던다양한형태의탄압과배제에포철이존재하고있다는점은분명히인식하고있었다 39). 2000년대이후한국노동사회내비정규노동운동과관련한대체적인방향은불법파견투쟁을통한정규직화에초점이맞춰져왔다. 지난 10여년간간접고용비정규노동은불법파견투쟁을통해정규직화에 ( 부분적으로 ) 성공함으로써내부노동시장에진입했지만이는제조업내내부노동시장이내-외부노동시장간큰격차에의해구조적으로지지 ( 支持 ) 되고있음을반증한셈이다. 그리고타이라 (Taira, 1980) 가언급한것처럼노동시장내커다란격차가구조적으로존재한다는점은오히려내외부노동자연대를불가능하게하는조건으로역할하고있다. 하지만현재의조직노동은이러한한계점을인식하면서지역-중소사업체조직화에주력하고있다. 이런점에서지금한국의노동사회에는 정규직되기 위한비정규노동자의노력과중소영세사업체의열악한노동조건개선을통한 차별해소 라는두개의노력이공존하고있다. 87년대투쟁과 2000년간접고용비정규노동자투쟁이라는 두개의시간 이공존하고있는것이다. 39) 부수적으로는포철사내하청과현대차의사내하청간차이점은조직적힘을극대화하기위한연대의대상과더불어대 ( 對 ) 정부관계로집약되는제도적자원과의관계또한중요하였다. 전노협을위시한당시조직노동전반에대한정부의전면적인공안적탄압이설립된지얼만안된포철사내하청노조를실질적으로와해시켰기때문이다. - 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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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3 노동조합의조직화활동경과와결과 이주환 (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연구위원 ) - 79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노동조합의조직화활동경과와결과 이주환 _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연구위원 1. 들어가며 이글에서는최근한국의노동조합조직화추세와특징을검토하고자한다. 먼저, 주로고용노동부 전국노동조합조직현황 자료를바탕으로지난 10년간한국의노동조합조합원규모및구성의변화추세를살펴볼것이다. 이를통해 2010년이후두드러지게노동조합조합원이증가한영역을특정할것이다. 다음으로, 상기분석을통해특정된부문의전형적인조직화사례를검토하여, 최근노동조합건설과정에서나타나는특징들을살펴볼것이다. 이러한특징들을 1987년노동대투쟁으로부터비롯된조직화모델과의연속과불연속이라는측면에서논의할것이다. 2. 노동조합조합원규모및구성의변화 고용노동부가발간하는 전국노동조합조직현황 을기초로최근 10년간노동조합조합원규모와구성이어떻게변화해왔는가를살펴봤다. 고용노동부는매년 1~2월 노동조합현황정기통보 조사표를고용노동부와지방자치단체에설립신고가돼있는노조를대상으로우편발송한후회수하여그결과를바탕으로 전국노동조합조직현황 을작성하여발표한다. 그런데이조사는회수율이 30~40% 정도에불과하며, 전국공무원노조, 건설노조, 화물연대등법외노조소속노동자들은조합원수집계에서제외기때문에서신뢰도와타당도에문제가있다는지적을받고있다 ( 곽상신 2012). 다만, 조직형태, 조직규모, 상급단체등노조의조직적속성을추정할수있는전국단위통계로는이자료가유일한바, 여기서는그러한한계를인식하면서도분석대상으로삼았다. 따라서여기서분석결과로서인용되는수치들은지난 10여년의대략적인변화경향성을드러내는 근삿값 으로인식되어야한다. - 81 -

1) 노동조합조직률과조합원규모변화 그림 1 노동조합조직률및조합원수추세 : 1995-2015 년 ( 단위 : 천명, %) 자료 : 고용노동부, 전국노동조합조직현황각년도. 그림 1 을통해지난 20년간의노조조합원수규모변화를살펴보면, 크게네가지의시기를구분해볼수있다. 첫째, 1997년 IMF 경제위기여파로인해조합원수가급감했다가어느정도과거수준을회복한 2001년까지다. 둘째, 2001년과 2006 년사이의정체기다. 셋째, 조합원수가갑작스레증가한뒤조금씩감소한 2007년부터 2010년까지다. 마지막으로, 꾸준한증가세를보이고있는 2011년이후의시기다. 여기서는주로 2000년중반이후의변화에대해서검토하겠다. 2000년대중반부터 2010년까지노조조직률및조합원수의변동에가장큰영향을준요인은공무원들의노조건설과합법성획득여부였다. 2007년공무원의노조결성및가입이합법화됐다. 그결과 2006년 155만 9천명이었던조합원수는 2007년 168만 7천명으로한해동안약 12만 8천명 (8.2%) 이증가했다. 대부분공무원조합원들이었다. 그러나 2007년정점을찍었던조합원수는 2009년에는 164만명으로약 4만 7천명가량이감소했는데, 여기에는 2009년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법외노조화가영향을줬던것으로보인다. 1) 전국공무원노조는법외노조가됐지만그실체는여전히존재하고있는바, 전국노동조합조직현황자료상 2007-2010년의조합원수감소추세는현실을잘못반영하고있는것으로판단된다. 2010년이후노동조합조합원수규모는꾸준히증가했다. 2010년 164만 6천명이었던노동조합조합원수규모는연평균 3% 씩성장해, 2015년 193만 8천명으로 1) 2009 년전국공무원노동조합으로통합한전공노, 민공노, 법원노조세조직중민공노와법원노조는기존에설립신고가되어있음에따라지금도조합원수집계에들어가고있는것으로추정된다. - 82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5년동안약 29만 2천명 (17.7%) 이증가했다. 2010년이후증가한조합원들을적용법규별로구분해보면, 거의대부분이교원이나공무원이아닌노조법을적용받는노동자들이다 ( 그림 2 참조 ). 노조법을적용받는조합원수는 2010년부터 2015년사이 28만 2천명 (20.0%) 이증가했고, 교원노조법과공무원노조법을적용받는조합원은 1 만 4천명가량 (5.9%) 증가하는데그쳤다. 그림 2 적용법규별노동조합조합원수추세 : 2006-2015 년 ( 단위 : 천명 ) 자료 : 고용노동부, 전국노동조합조직현황각년도. 2) 성별노동조합조합원의구성변화 그림 3 성별노동조합조합원수및전년대비증감률 : 2006-2015 년 ( 단위 : 천명, %) 자료 : 고용노동부, 전국노동조합조직현황각년도. - 83 -

그림 3 에서성별노동조합조합원수추세를살펴보면 ( 막대그래프 ), 2010년에비해 2015년사이남성조합원은 128만 5천명에서 145만 6천명으로, 5년간 17만 1천명 (13.3%) 이증가했고, 동기간여성조합원은약 36만 1천명에서 48만 2천명으로 12만 1천명 (33.5%) 이증가했음을확인할수있다. 즉, 2010~2105년사이남성조합원이약 5만명더많이증가했지만, 증가율은여성조합원이상대적으로더높았다. 이에따라한국노동조합조합원이성별구성은 2010년에는남성 78.1%, 여성 21.9% 였던데서 2015년에는남성 75.1%, 여성 24.9% 로여성의비중이상대적으로높아지는방향으로변화했다. 한편, 그림 3 에서성별조합원수의전년대비증가율 ( 꺾은선그래프 ) 을살펴보면, 2010년이후여성조합원수의증가폭이남성조합원수증가폭보다두드러지게높았던시기는 2011년, 2012년, 2015년이었다. 2011년과 2012년의증가추세는해당시기조합원이급증한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들의결성이영향을준것으로추측된다. 2011년만들어진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들에는현재 8만명이상이가입돼있고, 조합원의대부분이여성조합원이다. 2015년의경우에도학교비정규직을비롯한공공부문무기계약직과비정규직여성노동자의조직화가영향을줬을것으로보인다. 3) 조직유형별노동조합조합원의구성변화 그림 4 조직형태별노동조합조합원수추세 : 2008-2015 년 ( 단위 : 천명 ) 자료 : 고용노동부, 전국노동조합조직현황각년도. - 84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조직형태별조합원수변화를나타낸 그림 4 를보면, 2010년이후산별노조소속조합원들의증가추세가두드러짐을확인할수있다. 산별노조조합원수는 2010년에서 2015년사이 74만 5천명에서 95만 4천명으로, 약 19만 9천명가량 (28.1%) 이증가했다. 기업별노조조합원수는완만한증가추세를보여 2010년에서 2015년사이 75만 5천명에서 84만명으로약 8만 5천명가량 (11.3%) 증가했다. 한편, 지역 업종별노조조합원수는 2010년과 2015년각각 14만 4천명과 14만 5천명으로거의차이가없었다. 이에따라한국노동조합조합원의조직형태별구성은 2010년산별노조 45.3%, 지역 업종별노조 8.8%, 기업별노조 45.9% 에서, 2015년에는산별노조 49.2%, 지역 업종별노조 7.5%, 기업별노조 43.3% 로, 산별노조조합원의비중이상대적으로커지는방향으로변화했다. 그림 5 노동조합조직규모별조합원수추세 : 2007-2015 년 ( 단위 : 천명 ) 자료 : 고용노동부, 전국노동조합조직현황각년도. 한편, 그림 5 에서보듯, 2010년이후조직규모별노동조합조합원수에서는 500명이상대규모노동조합의조합원수증가와 100인미만소규모노동조합조합원수의동시증가가두드러졌다. 1천명이상대규모노동조합에속한조합원수는 2010년대비 2015년, 117만 7천명에서 141만 9천명으로약 24만 2천명가량 (20.6%) 이증가했고, 500명이상 1천명미만규모의노동조합에서는같은기간 11 만 4천명에서 14만 5천명으로 3만 1천명가량 (26.0%) 이증가했다. 한편, 가장소규모노조인 50인미만규모의노동조합에서도 3만 3천명에서 5만명으로 1만 7천명가량 (51.5%) 이증가했고, 50인이상 100인미만규모의노동조합조합원수는 5만 5 천명에서 6만 3천명으로약 8천명가량 (14.5%) 이늘었다. 나머지범주의노동조합들에서는동기간큰변화가없거나다소감소했다. 이에따라한국노동조합조합원 - 85 -

의조직규모별구성은 2010 년 500 인이상노조 78.6%, 100 인이상 500 인미만노조 16.1%, 100 인미만노조 5.4% 에서, 2015 년 500 인이상노조 80.7%, 100 인이상 500 인미만노조 13.5%, 100 인미만노조 5.8% 로다소양극화됐다. 4) 총연합단체별노동조합조합원의구성변화 그림 6 노동조합총연합단체별조합원수추세 : 2006-2015 년 ( 단위 : 명 ) 총연합단체별조합원수의변화를나타낸 그림 6 을보면, 2) 2010년이후양대노총에소속된조합원의증가추세보다는총연합단체에가입하지않은미가맹조합원수의증가추세가더빨랐음을확인할수있다. 다만이러한추세는 2010년이전에도존재했다. 한국노총의조합원수는 2010년 72만 9천명에서 2015년 84만 3천명으로 5년동안약 11만 4천명 (15.6%) 이증가했고, 같은기간민주노총의조합원수는 58만명에서 63만 6천명으로약 5만 6천명 (9.7%) 이증가했다. 반면미가맹조합원수는 33만 4천명에서 45만 9천명으로약 12만 5천명 (37.4%) 이증가했다. 이에따라한국노동조합조합원의총연합단체별구성은 2010년한국노총 44.3%, 민주노총 35.3%, 미가맹 20.4% 에서, 2015년에는한국노총 43.5%, 민주노총 32.8%, 미가맹 23.7% 로미가맹조합원의비중이상대적으로커지는방향으로변화했다. 2) [ 그림 6] 에서민주노총소속조합원수는과소추산된수치다. 민주노총에속해있지만법외노조로구분되는전국공무원노조, 건설노조, 화물연대등의조합원수가포함되지않았기때문이다. - 86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그림 7 노동조합총연합단체별조직수추세 : 2006-2015 년 ( 단위 : 개 ) 한편, 그림 7 에서보듯, 총연합단체별노동조합조직수의변화는상대적으로훨씬더극적이었다. 즉, 총연합단체에가입하지않은미가맹노동조합의수가크게늘어났다. 2010년부터 2015년사이한국노총소속의단위노동조합의수는 2,292개에서 2,372개로 5년동안 80개 (3.5%) 만증가했고, 같은기간민주노총소속의단위노동조합의수는 432개에서 373개로오히려 59개 (-13.7%) 가감소했다. 반면미가맹단위노동조합수는 1,696개에서 3,049개로 1,353개 (80.0%) 가증가했다. 이에따라한국노동조합의총연합단체별구성은 2010년한국노총 51.9%, 민주노총 9.8%, 미가맹 38.4% 에서, 2015년한국노총 40.9%, 민주노총 6.4%, 미가맹 52.6% 로미가맹조직수의비중이가장커지는방향으로변화했다. 2010년과 2015년사이전체조합원수대비총연합단체미가맹조합원수의비중이 20.4% 에서 23.7% 로 3.3% 포인트증가한반면, 같은기간전체노동조합조직수대비미가맹조직수의비중은 38.5% 에서 52.6% 로약 14.1% 포인트가증가했다. 즉, 조합원수증가추세보다조직수의증가추세가 4배이상더빨라, 소규모미가맹노동조합 의증가추세가두드러졌음을확인했다. 한편, 이는기업단위복수노조가제도적으로허용된 2011년에특히두드러졌다. 2010년대비 2011년의미가맹노조수는 560개가늘어나전년대비증가율 33.0% 를기록했다. 같은시기미가맹노조의조합원수는약 3만 2천명이늘어나증가율 9.7% 를기록했다. 또한복수노조허용제도가시행된 2011년 7월이후 2012년 11월까지신규로설립된노조들은 1,020개였는데, 이중미가맹조직이 865개 (84.8%) 로거의대부분을차지했고, 616개 (60.4%) 가이미노조가있는사업장에서만들어진복수노조들이었다. 즉, 기업단위복수노조허용제도는총연합단체에가입하지않은소규모기업별노조의건설을자극했다. - 87 -

5) 총연합단체별산별조직의구성변화 : 2005 년과 2015 년비교 그림 8 은양대노총의 2005년과 2015년사업보고서에제시된조직현황을비교정리한것이다. 2005년과 2015년사이 10년간양대노총소속산업별조직의구성변화양상을보면다음과같은점이두드러진다. 첫째, 한국노총과민주노총모두제조 / 건설업부문보다는서비스업부문에서조직확대가활성화된산별조직들이더많았다 ( 그림 8 에서음영표시가된조직들 ). 둘째, 서비스부문의조합원수증가를주도한것은기업별노조의연맹체인산별연맹이아닌초기업단위조직인산별노조였다. 민주노총에서는공공운수노조와서비스연맹내학교비정규직들의노조가, 한국노총에서는금융노조가서비스부문조직확대를주도했다. 셋째, 제조 / 건설업에서는제조업보다는건설업의조합원증가추세가훨씬두드러졌다. 넷째, 고용형태로보면, 주로무기계약직이조합원수증가를주도한것으로추정된다. 공공부문및학교내무기계약직과비정규직, 금융기관무기계약직등이증가한조합원수의상당수를차지하고있는것으로판단된다. - 88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그림 8 한국노총과민주노총소속상급연합단체 2005 년과 2015 년비교 총연맹비노조법부문서비스부문제조 / 건설업부문직가입 2005.12 2015.12 2005.12 2015.12 민주노총 민주노총 한국노총 한국노총 742개 / 627,684명 개 / 698,026명 3,223개 / 87,154명 3,329개 / 948,790명 공무원노조 ( 참관조직 ) 공무원노조 한공연 1개 / 107,933 명 1개 / 73,000 명 5개 / 8,380 명 전교조 전교조 증감 : 8,380명증가 1개 / 90,983 명 1개 / 53,000 명증감 : 72,916명감소 공공연맹 금융산업노조 금융노조 162개 / 105,655 명 37개 / 85,448 명 35개 / 100,098 명 민주버스노조 자동차노련 자동차노련 1개 / 1,588명 484개 / 99,652 명 487개 / 98,793 명민주택시연맹공공운수노조전택노련전택노련 1개 / 11,834 명 61개 / 157,095 명 905개 / 102,606 명 891개 / 97,748 명운송하역노조연합노련연합노련 33개 / 3,787명 349개 / 59,620 명 384개 / 67,988 명 화물연대 항운노련 항운노련 1개 / 9,704명 43개 / 36,818 명 41개 / 36,766 명 사무금융연맹 사무금융연맹 공공노련 공공연맹 104개 / 68,006 명 67개 / 57,963 명 55개 / 53,681 명 90개 / 33,563 명 서비스연맹 서비스연맹 체신노조 우정노조 68개 / 14,556 명 70개 / 53,367명 1개 / 30,399 명 1개 / 28,296 명 병원노련 보건의료노조 해상산업노련 해상노련 12개 / 37,795 명 1개 / 41,789 명 50개 / 29,561 명 52개 / 21,561 명 언론노련 언론노조 외기노련 외기노련 12개 / 19,014 명 1개 / 12,252 명 28개 / 23,203 명 28개 / 23,203 명 대학노조 대학노조 정보통신노련 IT사무서비스노련 1개 / 8,987 명 1개 / 6,009 명 27개 / 20,624 명 37개 / 50,772 명 시설노련 민주일반연맹 관광서비스노련 관광서비스노련 31개 / 1,150명 2개 / 5,012명 72개 / 15,305 명 85개 / 17,897 명 IT연맹 정보경제연맹 철도산업노련 철도사회산업노조 5개 / 33,028 명 15개 / 4,722 명 4개 / 6,875 명 1개 / 9,173 명 여성연맹 여성연맹 의료산업노련 의료산업노련 21개 / 3,369 명 3개 / 3,550 명 5개 / 6,201 명 13개 / 9,004 명 비정규교수노조 비정규교수노조 사립대학노련 사립대학노련 1개 / 1,000 명 1개 / 1,351 명 15개 / 4,586 명 26개 / 7,159 명 교수노조 교수노조 담배인삼노조 담배인삼노조 1개 / 1,100 명 1개 / 327명 1개 / 6,289 명 1개 / 6,053 명 증감 : 21,964 증가 출판노련 출판노련 33개 / 3,238 명 24개 / 2,424 명 아파트노련 증감 : 23,356 명증가 62개 / 3,036 명 금속산업연맹 금속노조 금속노련 금속노련 65개 / 156,340 명 1개 / 152,476 명 397개 / 119,524 명 497개 / 128,905 명 건설산업연맹 건설산업연맹 화학노련 화학노련 65개 / 22,000 명 4개 / 43,540명 459개 / 80,680 명 431개 / 80,825 명 화학섬유연맹 화학섬유연맹 섬유유통노련 섬유유통노련 67개 / 27,199 명 23개 / 18,354 명 118개 / 24,246 명 91개 / 22,497 명 증감 : 8,831명증가 식품산업노련 식품산업노련 38개 / 18,949 명 54개 / 22,247 명 고무산업노련 고무산업노련 13개 / 10,657 명 14개 / 10,805 명 광산노련 광산노련 14개 / 5,150 명 10개 / 4,839 명건설산업노조 1개 / 18,523 명증감 : 29,435명증가 직가입조직 직가입조직 노총직가입 노총직가입 90개 / 10,499 명 개 / 14,748 명 12개 / 5,539 명 개 / 명 - 89 -

6) 요약및함의 전국노동조합조직현황 과한국노총및민주노총의 사업보고서 조직현황자료를분석한결과다음과같은사실을확인할수있었다. 첫째, 2000년대중후반까지정체또는감소추세를보였던노동조합조합원수는최근꾸준하게증가해 2010년과 2015년사이약 29만 2천명이증가했다. 다만, 임금노동자대비노동조합조합원의비율인조직률은 2010년이후에도 10.1~10.3% 수준에서정체돼있다. 둘째, 조합원수증가추세는남성노동자보다는여성노동자에게서, 공무원과교원보다는노조법적용노동자에게서, 제조업노동자보다는건설업과서비스업노동자에게서상대적으로더두드러졌다. 특히공공서비스영역의무기계약직또는비정규직여성노동자의노동조합건설과가입추세가가장두드러졌던것으로파악됐다. 셋째, 노동조합조직형태별로봤을때는지역 업종별노조조합원은감소한반면, 산별노조와기업별노조에속한조합원수는증가했다. 특히산별노조조합원의증가추세가두드러졌다. 조직규모별로봤을때는 500인이상의대규모노동조합과 100인미만소규모노동조합에서동시에조합원수증가추세가나타나고있었다. 다만대규모노동조합의증가추세가훨씬두드러졌다. 넷째, 상급단체수준에서봤을때는양대노총에속한조합원보다미가맹노조들에속한조합원수증가추세가더빨랐다. 특히소규모미가맹기업별노조수의증가가주목할만한현상으로부각하고있었다. 여기에는 2011년부터시행된기업단위복수노조허용제도가영향을준것으로파악됐다. 이상의한국노동조합조직화추세를뒷받침하는동학을보다심층적으로이해하기위해서는다음의두질문에대한답변이구해져야할것으로판단된다. 먼저, 왜소규모미가맹기업별노조들의증가추세가두드러지며, 그것이함의하는바는무엇인가. 이를테면복수노조제도의변화가총연합단체가입노조와미가맹노조에게미친영향은어떻게다른가. 그리고무엇이미가맹기업별노조들의건설을자극했는가. 다음으로, 왜공공부문과서비스부문에서초기업단위노조의여성조합원의증가추세가두드러지게나타나고있는가. 이러한부문의조직화과정은제조업정규직남성노동자들의전통적인조직화경로와비교해서어떤특징을갖고있는가. 다음절에서는후자의질문에대해서답하고자한다. - 90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3. 최근신규노동조합조직화의경로와특징 여기서는 2010년이후조합원수가상대적으로가장크게증가한공공서비스영역의조직화경로를보다심층적으로살펴볼것이다. 먼저, 노동조합조직화라는행위는사회운동적실천이자설득적의사소통이라는전제적인식을제기할것이다. 이를바탕으로현실의노동조합조직화경로를보다풍부하게포착할수있도록돕는도식을구성할것이다. 다음으로, 최근에발생한공공서비스영역의대표적인조직화사례와제조업부문의전형적인조직화사례를비교할것이다. 이를통해최근조직화추세가노동운동의전망과관련해주는함의를살펴볼것이다. 1) 조직화경로에대한전제적인식과일반적도식화 노조가없는일터에서의조직화시도는현장노동자들에게노동조합의필요성을납득시키는의사소통과정이자, 노동현장의지배적권력관계를 노동이배제된관계 에 노동이참여한관계 로바꾸기위한사회운동적실천이라고할수있다. 이러한전제적인식에기초하면, 노동조합조직화가이뤄지는경로와관련하여다음과같은일반적도식을제기할수있을것이다. 첫째, 노동조합이없는노동현장에서노동조건이나노동통제에변화를야기하는특정한계기가발생한다. 불안과분노를느끼고있는노동자들중일부가이러한계기를타고노동현장의현실을변화시키기위한수단으로서노동조합조직화를선택한다. 즉, 조직화의초동주체로서나선다. 감정과사회운동간의논의에따르면 3) 불만의누적만으로는시민의사회운동참여는이뤄지지않는다. 안전한세계 에대한믿음이약화되고불확실성과불안이증폭되고또이에대한분노가형성되어야만, 즉, 불안과분노등의역동적인감정이매개돼야불만을해소하기위한행동이시작될수있다. 요컨대불안과분노를자극하는구체적인계기가노동현장에서발생하지않는다면, 노동조합조직화는거의시도되지않을것이다. 노동조합건설에나서거나참여한다는것은개인에게매우위험성이높은선택이다. 노조를만든다는것은노동현장을지배하는질서를변화시키려는시도한다는뜻이고, 이러한시도로인해노동조건결정권과노동과정통제권을갖고있는사용자와적대적관계가형성될수도있기때문이다. 권력을가진사용자와적대적관계는포괄적인불이익처우로이어질수있으므로, 개인들은별다른계기가 3) 제프굿윈, 제임스재스퍼, 프란체스카폴레타. (2012). 열정적정치 - 감정과사회운동. 한울아카데미. - 91 -

없다면노동조합조직화시도를하지않는다. 노동현장에대한불만이있더라도참거나개인적인해결책을찾고, 아니면불만거리를회피하기위해새로운일자리로떠나간다. 즉, 조직화를시도하는초동주체가형성되기위해서는, 노동현장에대한일상적인불만이아니라, 변화를추진하는동력이될수있는 불안과분노 가 특정한계기 를통해형성되어야한다. 둘째, 초동주체들을중심으로노동조합건설을통해이루고자하는타산적목표와도덕적규범이설정되고, 이를중심으로노동현장에서공론화가진행된다. 이러한설득적의사소통행위가성공한다면, 초동주체들이노동현장에서이미형성하고있는사회적연결망을따라변화의수단으로서노조에대한희망과참여의지가확산된다. 사회운동이론의프레이밍접근에따르면, 4) 조직화초동주체들이제기하는주장이현장의노동자들에게공감을받고설득력있게다가가기위해서는다음과같은조건들을충족해야한다. 먼저, 발화자들, 즉조직화의초동주체들이주장하는변화의목표와수단이청중들, 즉현장노동자들의일상경험속에서체감될수있는것이어야한다. 요컨대, 실제이해관계개선으로이어질수있고, 쉽게현실화될수있는합리적인주장이라평가돼야한다. 다음으로, 현장노동자들의조직화참여행위가도덕적인것으로정당화될수있어야한다. 즉, 초동주체와현장노동자들이공유하고있는공통의문화적도식과도덕적규범등에기초해야한다. 마지막으로, 사전적인조건으로서, 초동주체들에대한 평판 이노동현장에서긍정적으로형성되어있어야한다. 초동주체에대한긍정적인평판은이들이주도하는조직화에대한근원적불안감을통제하고, 초동주체가제기하는주장의진실성을신뢰할수있도록하는보증으로기능한다. 이러한조건을충족한의사소통행위를통해 분노가희망으로전환 될때노조에대한참여가확산될수있다. 한편, 조직화시도초기노조에대한희망과참여의지의확산은, 초동주체들에대한긍정적평판을공유하고있는, 즉, 초동주체들과개별적연결망을형성하고있는현장노동자들을중심으로이뤄질것이다. 그리고또한편으로강조되어야할점은, 초동주체들이추진하는공론화과정은현장노동자들만을대상으로하는것은아니라는점이다. 공론화과정은국가, 시민사회, 사용자의반응역시고려하면서진행되어야한다. 셋째, 노조를건설하고, 국가, 조합원, 시민사회, 사용자등과의관계구조를정립하기위한전술적실천이추진된다. 즉, 국가의법적절차에따라조직을설립하고, 조합원직접선거를통해지도부를선출하며, 시민사회공론화를통해공공성을인정받고, 사용자와단체교섭을통해노동현장을변화시키고자한다. 일반적으로초동주체들 4) Benford, R. D., & Snow, D. A. (2000). Framing processes and social movements: An overview and assessment. Annual review of sociology, 26(1), 611-639. - 92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과현장노동자들은이러한관계구조정립을위한실천과관련된지식이부족한바, 이는노동조합상급단체등의지원과함께진행된다. 또한편으로, 이전의공론화단계에서만들어진담론들이이단계실천전술의양상에영향을미친다. 자본주의체제에서노조는사회의유지를위해다양한행위자들의이해관계충돌을조정하고매개하는중간조직으로서기능한다. 5) 이를테면노동조합은단체교섭제도를기반으로자본가와노동자간이해관계갈등을조정하고, 정책참여기구를통해국가와시민사회를매개한다. 노조가노동현장의권력관계에영향을미치는행위자가되기위해서는이러한사회적행위자들과안정적인관계구조를형성하고그로부터인정을받아야한다. 이를테면국가로부터제도적인정, 즉 합법성 을획득해야하고, 노동자로부터정치적인정, 즉 대표성 을획득해야하며, 공론장을통한시민사회의인정, 즉 공공성 을획득해야한다. 그럴때만이사용자와의관계에서핵심적인권리, 즉 교섭권 도안정적으로행사될수있다. 이러한다차원적인관계구조를형성하기위해서는정치및제도적절차와규칙에관한지식, 그리고다양한기술적지식등이요구된다. 이에따라일반적으로신규노조들은경험자와전문가로부터지원을받는다. 즉, 다른노조나노조연합단체, 사회운동단체등이조직화에결합하여신규노조를지원한다. 또한노조가공론화과정에서사용자, 국가, 시민사회를대상으로어떠한담론을형성하였는가는이러한관계구조형성을위한실천의양상에직접적으로영향을미친다. 마지막으로, 노조가다차원적관계구조속에서안정화되면, 교섭과쟁의를통해사용자가노동현장의노동조건과노동통제를변화시키도록요구한다. 즉, 사용자가 노동이참여한관계 를노동현장의지배질서로서인정하도록만든다. 이상의내용을종합하여요약하면 그림 9 와같이나타낼수있을것이다. 그림 9 노동조합조직화일반적경로의도식화 조직화발단단계 조직화전개단계 노동조합관계구조형성단계 집단적노사관계안정화단계 - 노동현장변화계기감지 : 불안과분노및행동의지를가진초동주체의형성 -타산적목표와도덕적규범의설정과공론화 : 노조를통한변화가능성에대한희망과참여의지의노동현장확산과전파 - 국가로부터합법성인정 - 조합원으로부터대표성인정 - 시민사회로부터공공성인정 - 사용자와단체교섭및상호작용진행 : 노동현장을지배하는노동조건및노동통제결정규칙의변경 5) Gumbrell-McCormick, R., & Hyman, R. (2013). Trade unions in western Europe: Hard times, hard choices. Oxford University Press. - 93 -

2) 공공서비스부문과민간제조부문조직화사례비교 2010년이후한국의노동조합조합원수증가추세를주도한것은주로공공서비스부문의대규모초기업단위노동조합과총연합단체에속하지않은소규모기업별복수노조였다. 6) 여기서는전자의조직화추세가주로어떤경로로진행됐으며, 이는기존의민간제조부문기업별노조조직화추세와비교해어떤특징을갖는지를검토할것이다. 이를위해 2010년경추진된두개의노조조직화사례를심층비교할것이다. 하나는 1987년노동자대투쟁의영향아래형성된민간제조부문남성정규직생산직노동자들조직화의특징을전형적으로드러내는사례이다 (A노조사례 ). 다른하나는최근활발해진공공서비스부문여성비전형노동자조직화중가장적극적인변화를이뤄냈다고평가받는사례이다 (B노조사례 ). 먼저, 양노조에대한기본적인정보를제시하고, 다음으로, 앞에서제기한조직화경로의도식에따라, 조직화의계기와초동주체의형성 조직화의제설정과공론화과정 다차원적관계구조형성을위한실천과그결과등의측면을살펴볼것이다. (1) 기본정보 비교되는조직들의기본정보는다음과같다. 먼저, A노조는화학제품제조부문의다국적기업한국지사에서 2009년만들어진산별노조기업조직이다. 정규직남성노동자중심의전형적인생산직노조이나, 설립초기에는비정규직여성노동자들을포괄하고처우개선을이뤄내기도했다. B노조는설립직후전면파업등의투쟁을통해생산현장을장악하고사용자를압박하여노사합의를안정적으로이뤄냈다. 그러나곧사용자의적극적인반노조대응을겪으면서집단적노사관계불안정화와조합원의감소를경험했다. 해당기업생산직의 90% 이상이가입해있던조직에는현재약 8분의 1 규모인 80여명만남아있다. 그러나포기하지않고완강하게실천을이어가서노조설립 5년만인 2014년에사용자의노조인정과단체협약체결을이뤄냈다. 다음으로, B노조는 2000년대들어건설된노동조합중가장규모가큰전국단위산별노조의지역조직으로, 각급학교의무기계약직과비정규직여성노동자들이주로가입해있다. 2010년교육감선거직후사용자와의협력적관계아래에서 2천명규모로최초조직화에성공했다. 이후이조직이모태가돼전국적인산별노조가건설됐 6) 고용노동부의전국노동조합조직현황자료에는잘포착되지않지만, 건설부문과운송부문의특수고용노동자들, 그리고설치및수리서비스노동자들의조직화추세역시 2000 년대들어새롭게발생한현상이고, 노동조건개선과사회경제적민주주의향상에크게기여했다고평가할수있다. 다만, 여기서는지면의한계등으로인해공공서비스부문초기업단위노조조직화에집중하고자한다. - 94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으며, 현재 B 노조의조합원수는 2 천 7 백명가량이다. B 노조는설립초기에는조리 배 식담당노동자들만포괄했으나, 현재는행정지원직종과교육보조직종등도다양하게 포괄하고있다. 2013 년사용자와최초로단체협약을체결하였다. < 표 2> 비교대상노동조합조직화사례들의기본특성 A노동조합 B노동조합 부문 -화학제품제조 -교육서비스 노조건설시기 -2009년 -2010년 단체협약최초체결 -2014년첫단체협약체결 -2013년첫단체협약체결 단체교섭단위 -기업단위 -지역단위 핵심직종 -생산직중심 -초기: 조리, 배식등중심 -사무직/ 비정규직포괄실패 -후기: 포괄직종다양화 사용자 -다국적기업한국지사 -지역교육청 조직형태 -산별노조기업지회 -산별노조지역지부 조직규모 -670여명 80여명 -2천여명 2천7백여명 (2) 조직화계기와초동주체의형성 가. A 노조사례 A기업의생산직노동자들은종업원의복지와권리보다는성과주의와노동유연성을우선시하는기업경영방침, 그리고일방적인노동시간및물량배정관행등으로인해사용자에대한불만을누적하고있었다. 노조설립이추진된 2009년기준으로 A 기업은생산직인력의 5분의 1가량을성과급과호봉급이적용되지않는 무기계약직 으로고용하고있었다. 무기계약직은대부분중년여성들이었다. 정규직남성생산직들에게는서로동일한일을하고있음에도성과주의개인평가제도를적용하여매년임금인상률을차등적용했고, 이로인해 2010년기준으로 10년차생산직동기들사이에월급이 20만원정도까지차이가났다고한다. 또한다품종소량생산체계임에도그에걸맞은생산관리역량을갖추지못해본부별로물량이불공평하게배정됐다. 이를테면한쪽에서는물량이없어장갑하나갖다쓰는것에도관리자들이눈치를줬고, 다른쪽에서는노동자들이점심시간에 3교대로나눠서식사를해야할정도로높은노동강도와초과노동에시달렸다. 그러나 A노조가설립되기전까지해당기업은 32년간무쟁의를기록한 노사평화사업장 이었다. 즉, 누적된불만그자체는노조조직화를추동하는힘을갖고있지않았다. 노동조합건설을추진하게된직접적인계기는사측이추진한구조조정의여파에대한집단적불안과분노의형성이었다. A기업은막대한영업이익을기록하고 - 95 -

있음에도, 당시의세계적인경제위기를빌미로 2008년과 2009년연속으로인력구조조정을단행했다. 요컨대연령이높은생산직노동자일부를정리해고했고, 전체생산직에대한임금삭감을단행했다. 이로인해 A기업의생산직노동자들은노동현장이안전하지않은곳이라인식하게됐고, 노동현장을그렇게만든사용자들의행동에대한분노를품게됐다. 이러한분노가행동의지로표출됐다. 정리해고대상이된고참노동자들과선후배관계를형성하고있는상대적으로젊은노동자들몇명이조직화초동주체로나섰다. 이들중과거다른기업에서노조활동을해본경험이있고, 또지역에서노조운동을하는활동가와연고관계가있는노동자가중심이되어비밀스럽게노조건설을준비했다. 초동주체들은빠르고선명한변화를원했다. 때문에노조건설준비를시작한지일주일만에, 사용자대응전략과전술에대한치밀한준비없이, 현장노동자들에게서노동조합가입원서를받기시작했다. 또한당시가입이가능했던여러초기업노조또는노조상급단체들중에서상대적으로가장전투적이라는평가를받는금속노조로의가입을선택했다. 회사측의구조조정안발표를 2주앞두고기습적으로조직화가시작됐다. 나. B 노조사례 B노조에속한학교비정규직노동자의법률상지위는대부분학교회계직원이다. 학교회계직원이란 초중고각급학교에서교육및행정업무등을지원또는보조하기위하여필요한근로를제공하고학교회계에서보수를받는자로서공무원이아닌근로자 를의미한다. 2000년 초중등교육법 제30조의 2( 학교회계의설치 ) 의신설로학교회계직원일자리가공식화됐다. 이들은열악한노동조건과노동통제의문제를지속적으로호소해왔다. 학교회계직들은 학교회계 라는불안정한재정원천에보수를의존하고있음에따라, 법정최저임금수준의보수도보장받지못한경우가종종있었고, 방학중에는일을하지않아보수를받지못하고있었다. 또한상당수가만성적인고용불안과법제도적권리로부터의배제로인해고통을받고있었다. 학교비정규직이노동현장에는불만이누적돼있었다. 이러한열악한노동조건으로인해학교비정규직에대한조직화시도가꾸준히전개돼왔다. B노조가만들어진 2010년이전학교비정규직조직화시도가발생한계기는크게두가지로구분할수있었다. 먼저, 학교, 즉 사업장 상황으로인해계약해지나임금삭감, 비인간적처우등을겪고, 이로인해불안과분노를느낀노동자들이노조설립이나가입에나서는경우였다. 다음으로, 학교비정규직과관련된 법제도및정책 의변화가추진될때, 불확실성을느끼는당사자들이노조를통해정책개입을시 - 96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도하는경우였다. 전자의조직화시도는대부분실패했고, 후자는부분적으로성공했다. B노조의건설계기는후자와유사했다. 그러나그이전과근본적으로다른점이있었다. 요컨대교육감직접선거라는 개방적인정치적기회 가조직화의계기를구성하고있었다는점이었다. 이를테면 B노조의초동주체들은외부의힘에의해진행된노동현장의변화혹은정책의변화에수동적으로반응하여조직화를시도한것이아니라, 교육감선거라는정치적기회에능동적으로참여하여자신들의노동현장을변화시키기위한구체적인이니셔티브를직접만들어내고자했다. 이러한전략적계획수립이가능했던것은 B노조의초동주체들이이미조직화의시도및실패경험을갖고있었기때문일것으로보인다. B노조의초동주체들은노무현정부에서공공부문비정규직대책을추진했던 2004년, 불확실한상황에불안과분노를느끼며 지역일반노조에가입하여 도교육청비정규직현장위원회 로활동한경력을갖고있었다. 이들의노조활동은 1년만에중단했지만, 학교급식조리사협회 로조직적유산을남기고상호관계를이어가고있었다. 이들은 2010년전국동시지방선거를맞아자신들의처우개선요구를수용하는후보를지지하고지원하기로했다. 즉, 불안과분노를경험했던초동주체들은정치적기회를능동적으로사고하여 희망 을선취했다. 이들은 교육감후보의선거운동에적극적으로결합했다. 후보는애초에는당선가능성이가장높은후보가아니었지만, B노조초동주체들의헌신적인노력등에힘입어지지율을끌어올리고당선됐다. 당선후교육감은학교비정규직의처우개선과노조활동보장을공식적으로약속을했고, 실제로 B노조초동주체들의적극적인참여속에서이를추진했다. (3) 의제설정과노동현장공론화 가. A 노조사례 A노조초동주체들은 A기업측에서자신들이지역사회에자리잡은다국적기업으로서, 사회공헌활동에적극적이며직원들이일하기좋은조직이라고홍보하고있는바는허상이며, 실제로노동현장에서는폭력과억압이발생하고있다고폭로했다. 성과주의평가제도로인해관리직에게줄서는문화와불합리한요구에도상명하복을하는문화가만연해있고, 회사내부부조리에대한이야기를외부에하는것은취업규칙에따라징계사유로다루고있다는것이었다. 초동주체들은이를개선하기위한방안으로서, 구조조정중단및고용안정보장 생산직전체기본급인상 무기계약직임금및승급차별개선 생산직 개인근무평가제도 개편 노조전임자인정과사무 - 97 -

실제공등을사용자가수용할것을요구했다. 이를현장의조합원들에게직접설득하여공론화하고, 금속노조지역지부등의지원을받으며전면파업등공세적인수단을추진하여이러한주장을관철시키고자했다. A노조초동주체들의주장은조직화초기현장노동자들로부터폭넓은공감과동의를획득했다. 이를테면노사관계를갈등적인것으로인식하고파업등전투적인수단을통해문제를해결해가려는태도는부조리한인사관리에억압당해온현장의중년남성노동자들의문화적경험에정서적으로호응하는것이었으며, 이에따라도덕적으로옳은것으로정당화됐다. 또한 A노조초동주체들이제기한임단협요구들은노동현장의뿌리깊은부조리를해결하기위한것이라평가됐다. 한편, A기업은 1977년창립이래연평균 15% 씩성장해왔고, 연간 1천억원규모의순이익을내고있었으며, 사무직에대한처우는업계최고수준을유지하고있었던바, A노조초동주체들이제기한요구들을사측이수용하는것은비용의타산측면에서그렇게어려운일이아니라고여겨졌다. 애초초동주체들의선후배관계 20-30명으로출범한노조는급속도로규모를확대해, 며칠만에생산직의 90% 이상을포괄하게됐다. 또한기습적이고공세적인방식으로제기한임단협요구들을대부분관철시킨채로노사합의에이를수있었다. 그러나사측이 A노조의요구를수용하고노사합의를한것은초동주체들이공론화한노동현장의문제점과해결방안에대해동감하거나납득을해서가아니었다. 2009 년의 A노조의성공은사측이노조가생길것이라고는전혀예측을못하고있다가무방비상태에서밀린것에더가까웠다. 7) 사용자들, 특히당시 A기업에부임해있던미국인사장은노조측의태도와요구를기업의평판과경영권을침해하는부당하고불법적인것으로인식했고명확하게그러한입장을밝혔다. 2009년임단협직후 A기업측은경험많은노무관리담당임원을영입했다. 또한관련전문기관으로부터자문을받았다. 이후애초의노사합의를부정하고단체협약체결을거부했으며, 파업에참여한이들에게징계를내리고손해배상을청구했다. 또한 A노조가다른행위자들과관계구조를형성하지못하도록능동적으로공론작업을진행했다. 즉, 국가를상대로 A노조쟁의행위의불법성을다퉜고, 조합원들을대상으로노동조합탈퇴를회유했으며, 지역시민사회에 A노조가발생시킨지역경제의피해를공론화했다. 즉, 노사간격렬한담론투쟁과인정투쟁이시작됐다. 이로인해현장노동자들이노동조합의주장에동감하는정도가약화됐다. 탈퇴가이어졌다. 7) 회사가아무런방비를못했어요. 노조가생길거라고는생각도못했고. 인사과장이나이런사람들이어떻게할줄을몰랐어요. 금속노조의지원. 와서회사열어라. 교섭나와라. 이런데안나올수없으니어중이떠중이된거죠. 방비를아예못했어요. 노조에대한걸전혀생각을못한거예요. 그래서물밀듯이터져버린거죠. -A 노조위원장인터뷰 (2014 년 8 월 ). - 98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나. B 노조사례 B노조의초동주체들은자신들이국가와사회의미래를책임지는학교에서학생들의건강을책임지며일하고있지만, 일반적인국민들이누려야할법제도적권리를보장받지못하고있으며, 이로인해생활고와고용불안을감내하고있다고주장했다. 그런데한편으로, 조리사들은그럼에도학교급식노동현장에서는조리원에비해상대적으로나은처우를받고있는편이었다. 이에따라 B노조의초동주체들은조합원인조리사들에게비조합원인조리원까지포괄하여처우개선을요구할필요가있다고설득했다. 이러한논의과정을거쳐 B노조의초동주체들은지역교육청에게 교육감직접고용 방학중휴무와무보수관행의개선 호봉급임금체계도입 조리실담당자에게위험수당지급등포괄적인요구를제기했다. 당시교육청의예산과권한의한계로이러한요구는대부분관철되지못했지만, 근무일수확대 명절상여금과근속수당신설등당사자가체감할수있는노동조건개선이약속됐다. B노조의초동주체들은이렇듯학교비정규직의노동조건이개선약속을 교육감, 공무원노조와전교조, 노동운동조직과학부모조직등과함께 언론과대중매체 를통해서 B노조의경계를넘어지역사회에서공론화했다. B노조가이뤄낸성과는조합원들로부터환영받았을뿐만아니라, 비조합원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 그리고이해당사자가아닌국민들로부터도관심을받았다. 국민이라면누구나누려야할권리로부터배제되어있는이들이스스로의 권리찾기 에나선것이라는태도는일반적인국민들의도덕적규범에부합하는것이었으며, 나아가이들이학교에서아이들의먹거리를책임지는사람들이라는점때문에이들의주장은공론장에서보다쉽게정당화될수있었다. 또한 B노조가이뤄낸성과는비용타산성이나실현가능성에도거의의심받지않았다. 이는 B노조의초동주체들에대한긍정적인평판만으로가능한것이아니었다. B노조초동주체들의긍정적인평판과진실성에더해, 실질적인사용자이자국가기관인교육청에서약속했다는점, 전교조와공무원노조등학교노동현장내에서이들에대한관리직급들의노동조합이함께했다는점, 교육기관이제공하는서비스의질을감독하는학부모조직이찬성하고있다는점등이만들어낸시너지효과였다. 200명정도의학교급식조리사들의조직으로출발한 B노조는금세 2천명규모의조직으로성장했다. 한편, 언론과대중매체를통해서공론화한것이지역사회에서중요한반향을만들어내긴했지만, 노동현장의학교비정규직들이 B노조의가입원서를작성하도록만드는데는다른요소가필요했다. 즉,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과직접대면하여공론과가입원서를전달하는역할을누군가해야했다. B노조의초동주체들은해당광역도의 2천 - 99 -

여개나되는각급학교를방문하기에는수가모자랐고, 또현장의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을설득하기위해필요한전문적이고기술적인지식이부족했다. 이러한부분을지원하기위해해당지역의민주노총지역본부활동가들과당시민주노동당지역위원회의활동가들이결합했다. 뿐만아니라특정한노동운동정파는내부결의를통해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의조직화를능동적으로결정하기로나섰다. 다른노조와노동단체에서일하던이들이자기일을그만두고학교비정규직조직화에결합했다. 이러한이들이 B노조의초동주체와더불어지역사회미시적연결망을누비며,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교육감과 B노조의합의를전달하고노동조합가입원서를수거했다. (4) 다차원적관계구조형성의추진과그결과 가. A 노조사례 A 기업노사는국가, 노동자, 시민사회등을청중으로하여치열한담론투쟁과인 정투쟁을진행했다. 여기에는불법적인행동과물리적인폭력까지동반됐다. 노조와 사용자의상호대응과정을정리하면다음과같다. 첫째, 외부에서영입한노무관리임원을내세운기업측은 A 노조가국가, 노동자, 시민사회등과관계구조를형성하지못하도록막는공세적인전략과전술을추진했 다. 주로국가와의관계, 즉 합법성 을박탈하는데초점이맞춰져있었다. 당시노동 계로부터 기획탄압 이라불린공세적인전략 전술의내용은다음과같다. 먼저, 노조 간부활동을능동적으로 불법화 하고 8) 이를바탕으로사용자가법제도적관계에서 우위에선다. 다음으로, 징계위원회를통한징계와해고, 고소고발및손해가압류등 합법적인수단 을통해 불법을저지른 노조의활동을억누르고, 다양한공론화작업 을통해노동현장에대한통제력과시민사회에서의정당성을약화시킨다. 마지막으로, 이렇게노조에게서쟁의의합법성과정당성, 그리고현장장악력을빼앗고나면조합 원들에대한개별적인회유와협박을실시하여노조에서탈퇴시킨다. 2009 년 9 월부터 2010 년말까지 A 기업에서도이러한상황이되풀이됐다. A 기업 사측은이미내용적으로합의한단체협약의체결은지체하고, 임단협당시파업의참 여자에대한징계와제재절차를적극적으로추진했다. 또한노조측이이에항의하 며설치한천막농성장을철거하기위해경비용역을새벽에투입했고, 9) 이과정에서 8) 주요방식은세가지다. 첫째, 과거같으면그렇지않을상황에서도의도적으로직장폐쇄를실시하여노동조합의사업장점거나파업등단체행동을불법화하는방식이다. 둘째, 노동조합의농성장등에경비용역을투입하고, 특히노조핵심간부들에게시비를걸도록하여물리적인충돌을조장하는것이다. 셋째, 앞의두가지방식과병행하여, 각종첨단장비를통해노조간부들의활동을세심하게감시하고, 이중에서불법적이라판단되는것들을증거로서채집하는것이다. - 100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발생한물리적충돌빌미로해고와징계, 고소고발과손배및가압류를더욱강하게추진했다. 충돌사태에대한사측의책임은경비용역회사말단직원들에게전가됐고노측의책임은노조임원에게지워졌다. 이후현장에서노조탈퇴를요구하는회유와압박이추진됐다. 개인근무평가제도를통해조합원과비조합원간임금인상률이차별적으로적용됐다. 노조에가입해있는고참직원들에게하수구청소등평소직무와상관없는허드렛일이맡겨졌다. 그외에도다양한방식들을통해노조탈퇴가강요됐다. 한때 670여명이었던조합원수가 80여명으로줄었다. 둘째, 수세에몰린노조는노동현장에서의권력관계불균형을해소하기위해더욱적극적으로시민사회와정치권등과의관계형성에집중했다. 금속노조지역지부등이이를적극적으로지원했다. A노조는외부의제도적권력과여론의압력을사업장내부로끌어들여사용자의태도를변화시키려고시도했다. 즉, 노사갈등문제의스케일을 사업장 에서 지역사회 와 국민국가 수준으로상승시키는조정을추진했다. 이는파업이라는수단을통해생산현장을장악하여사용자를압박하는전술은 A기업에게큰영향을줄수없다는사후적인깨달음에근거한것이기도했다. A기업은다품종소량생산을하는다국적기업의지사이기때문에, 동일한제품을생산하는회사가전세계 60개정도존재했다. 생산이중단돼도모기업의다른자회사로부터상품을들여와공급을지속할수있었다. 10) A노조는이러한인식을바탕으로제도적권력과여론의압박을통한문제해결을추진했다. 즉, 시청의시장실을점거하면서지자체가노동현장의문제해결에나설것을요구했고, A기업본사, 주한미국대사관, 주한상공회의소, 청와대, 정부종합청사등에서시위를전개했다. 이렇게다각도로압력을가하는과정을통해, 노동자들은 A기업에대해종합적인시각과폭넓은정보를확보했고, 이를바탕으로새로운방향의공론화작업을추진했다. 즉, A기업을단순히노동자를탄압하는기업만이아니라, 국내법을지키지않으면서도제도적혜택을받고있고, 수익을주주배당으로외국으로빼가는외국계기업, 11) 기업의사회적책임을내세우지만, 뇌물수수등불법으로노동문제를다루는기업 12) 등으로재프레이밍했다. 요컨대 A기업이형성하고있 9) 이당시용역회사는 2012 년금속노조 SJM 지회에에서의과도한폭력행사로사회적으로물의를빚은컨택터스의전신이었다. 이회사는 A 노조에게폭력을행사한것이인정돼영업정지를당했다. 10) 우리회사가한 50 명규모국내기업이었으면, 이렇게투쟁했으면진작상황이끝났을거예요. 미국계기업이고전세계적인그룹이었다는걸, 그영향력을몰랐던거죠. 전세계에우리와비슷한제품을생산하는회사가 60 여개가있다고생각하면돼요. 우리가그런것도모른거죠. 파업을해봤자회사가타격을별로안받는거예요. 창고직원이물량이막들어오고있다는거야, 그래서평택물류센터에가봤더니재고가엄청들어와있더라고. 우리가파업을하니까걔네가그렇게대처를한거지. -A 노조위원장인터뷰 (2014 년 8 월 ). 11) 예컨대다음기사를참고하라. 조경희기자, [ 단독 ] 한국 노조핍박하면서고배당일삼는내막 - 100% 지분가진외투기업 아낌없이다가져간다, 파이낸셜투데이 2012 년 11 월 26 일. 12) 예컨대다음기사를참고하라. 김성태기자, 한국 뇌물의혹해명불구 ' 일파만파 ', 프라임경제 - 101 -

는국가와시민사회의관계구조자체를문제화할수있었다. 한편, 이렇듯 지역사회중견기업의노사갈등 문제를 국내법을어기는외국계기업 의문제로스케일을상승시키자, 그전에는잘움직이지않았던법제도가작동하기시작했다. 2013년검찰과노동부가 A기업을압수수색했고, 대표이사가국정감사증인으로불려나갔다. 국정감사직후노사교섭이재개됐고, 이후 4개월여의교섭끝에노사합의에이르렀다. 단체협약체결과해고자일부복직이합의됐다. A노조는결국지난한과정을거쳐결국노동조합의지위에대한인정을성취했다. 나. B 노조사례 2010년조직화된이래 B노조는조합원, 국가와사용자, 시민사회등을상대로안정적인관계구조를형성해가고있다. 즉, 대표성, 합법성, 교섭권, 공공성등의권력자원을안정화하고있다. 여기에는조직화를위한공론화과정에서형성된 권리찾기 프레임이어느정도영향을준것으로추측된다. 즉, 이들의주장과활동에대한도덕적정당화가보편적으로수용되면서, 조직을확대하고다차원적관계구조를상대적으로용이하게형성할수있던것으로보인다. 핵심내용은다음과같다. 첫째, 학교회계직노동현장의대표성을전국적으로확보했다. 즉, B노조의조직화사례를계기로전국적으로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건설붐이일었고, 이를바탕으로전국단일의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건설됐다. 조직을통합하는과정에서각조직의문화차이, 임원및집행부구성에대한이견등으로인해내부분열이발생하기도했지만, 현재학교회계직노동현장을대표하고있는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공공운수노조교육공무직본부, 전국여성노동조합등은 14만명가량의학교회계직노동자들중 8만 5천명 ( 조직률약 60%) 이상을조직하고있는것으로알려져있다. 둘째, 집단적노사관계를안정화하는데기반이되는제도개편을성취했고, 국가수준에서정치적으로목소리를낼수있는기반을마련했다. 이를테면 2010년이전조직화시도를번번이무산되게만들었던, 실질적인권한책임자 ( 교육감 ) 와법제도상단체교섭의사용자 ( 학교장 ) 의불일치문제가 2014년대법원판결을통해완전하게해결됐다. 현재법률상학교비정규직의사용자측단체교섭당사자는교육감이다. 법률적판단이내려지기전인 2013년부터학교비정규직노조들이일부교육청과단체협약을체결했으며, 2015년에는모든지역에서교육청과노조간단체협약이체결됐다. 또한전국단위세력이된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들은일부국회의원과제휴하여학교 2013 년 2 월 18 일. - 102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회계직의법적신분을 교육공무직 으로안정화하기위한법안을꾸준히제기하고있다. 현정부에서이러한흐름은가속화될것으로추측된다. 셋째, 지역시민사회에서주요한사회세력으로부각될잠재성을확보하고있다. 대부분의광역시도단위지역에서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들은가장규모가큰시민사회세력중하나이다. 또한대부분의지역에서민주노총, 전교조, 공무원노조등노동조직뿐만아니라, 교육관련시민단체들과도네트워크를형성하고있다.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들은아직조직의현안이나노동문제외에는목소리를내고있지않지만, 지역시민사회에서유력한세력으로부각될잠재성을갖고있는것으로보인다. 3) 사례비교의함의 1987년노동자대투쟁의영향권에서형성된모델에따른민간제조부문의조직화사례와최근활성화되고있는공공서비스부문의조직화사례를비교한결과, 조직화모델과관련하여다음과같은함의를도출할수있었다. 첫째, 두모델은서로다른 공간적특성 을가진노동현장을전제로형성되었다. 이를테면민간제조부문의조직화모델은문화와규범을공유한동질적인노동자들이대규모로모여있는, 상대적으로규모가큰하나의노동현장 ( 밀도높은근거리공간 ) 을노동조합이장악하기위한모델이다. 반면공공서비스조직화모델은분산돼있으며이질적인문화와규범의영향을받는노동자들이모여있는, 상대적으로규모가작은복수의노동현장들 ( 밀도낮은원거리공간 ) 에노동조합이침투하기위한모델이다. 예컨대학교들은분산돼있으며개별학교에서일하는노동자는 100인미만이고, 교원, 행정직원, 회계직원등서로다른규칙을적용받는직종들로구분된다. 2010년이전에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적용된전자의조직화모델, 이를테면 계약해지된학교비정규직노동자를내세워단체행동을하고노동현장을장악하기 가전혀성공하지못했던것은이러한공간적특성에대한전략적고려가없었기때문이다. 둘째, 민간제조부문조직화모델에서조직화의계기는일반적으로환경변화에따라수동적으로형성되는반면, 공공서비스부문조직화모델에서는조직화의계기를미리예측하고준비할수있는가능성이상대적으로높다. 민간제조부문노동현장의노동조건및노동통제는상품시장과경영방침에따라변화한다. 시장상황과경영진의판단은수시로변화하며그방향을노동자가미리알기는쉽지않다. 또한이러한것들의변화가노동조건이나노동통제에미치는영향은비공개적이고불확정적이다. 그러므로변화에대응하기위해노동조합이라는 위험한수단 을미리선택하기는쉽지않다. 반면공공서비스부문의노동조건과노동통제는명문화된법제도및정책, 행 - 103 -

정지침등에따른다. 이에대한변화의추구는공개적으로이뤄지며, 또한제도적절차에따라계기적으로진행된다. 그러므로공공서비스부문의노동자들은예정된선거나정책변화에개입하기위하여미리노동조합을조직화할수있다. 셋째, 민간제조부문조직화모델에서초동주체들은일반적으로노동현장내부의비공식적인근거리관계망에속에서출현한다. 반면공공서비스부문조직화모델에서는공식적인원거리관계망에속에서초동주체가출현하는것이효과적인조직화에기여할수있다. 일반적으로제조업공장에서노동조합건설은비밀리에추진된다. 사용자와관리자의사전개입과차단을막기위해서다. 그렇기때문에노동조합을건설하고자하는의지를가진초동주체들은노동현장내부 개인적평판 을기초로동료를확대해간다. 동질적인일을하는노동자들이모여있는공장에서, 개인적평판은일반적으로지연, 학연, 혈연등미시적이고비공식적인연결망에따라형성되고확산된다. 그러므로조직화초동주체들의확산도마찬가지다. 반면공공서비스부문의사업장은소규모이고분산돼있다. 또한사업장내부에는서로다른규칙을적용받는직종의노동자들로구분돼있다. 그러므로 B노조에서학교급식조리사협회가했던것처럼, 분산된사업장들을연결하는특정직종의연결망이나조직이노동조합조직화에우선적으로나설때보다포괄적인스케일의조직화가가능해진다. 넷째, 민간제조부문조직화모델에서노동조합의의제설정과공론화과정에서는 투쟁 프레임이가장활성화될가능성이높은반면, 공공서비스부문조직화모델에서는 권리 프레임이가장활성화될가능성이높다. 민간제조부문의노동현장은 대면적장소 의성격이강하다. 때문에노동자들은노동조건과노동통제를지배하는규칙의결정이추상적규칙에따라이뤄지는것이아니라특정한 인격적주체 에따라이뤄진다고여길가능성이높다. 또한노동조합조직화는사용자가독점해왔던노동현장의규칙결정권과물질적자원의일부를노동자들이가져가는 ( 빼앗는 ) 것으로인식되기쉽다. 그러므로사용자가노동조합에비협조적일경우, 조직화에나선노동자들에게노사관계는 사용자와의전투 로은유될가능성이높다. 근거리공간에서노사간전투 에필요한것은노동현장외부의지지 ( 공공성 ) 나승인 ( 합법성 ) 이아니라, 현장장악력이다. 반면, 공공서비스부문의노동현장은제도적공간의성격이강하다. 즉, 노동조건을정하는규칙이명확하고공개적이며, 또한직종에따라규칙이다르다. 이에따라조직화에나선노동자들은같은사업장에서일하는동료와동일한제도를적용받을권리를우선시할가능성이높다. 또한공공서비스노동자들의노동조건개선을위해적용되는자원은누군가가독점하고있던것이아니라, 국가의예산, 즉국민모두에게적용되는 공공재 이다. 그러므로공공서비스노동자들은조직화를사용자로부터자원을빼앗아오는것이아니라자신들이 공공재에참여할권리를인 - 104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정받는것 이라고우선적으로여길가능성이높다. 이경우에는외부의지지와승인이상대적으로더중요해진다. 상대적으로시민사회와국가등을대상으로하는다층적인관계구조의형성을중요하게고려할가능성이높아진다. 마지막으로, 공공서비스부문조직화모델은민간제조부문조직화에있어서도변형되어적용될수있다. 지금까지제기한 1987년노동자대투쟁의영향아래만들어진민간제조부문조직화모델의특성은사실상 300인이상사업장을대상으로한것이다. 1987년노동자대투쟁을통해형성됐던소규모사업장의기업별노조들은얼마지나지않아대부분사라졌다. 13) 분산돼있는소규모중소영세기업사업장들을초기업단위로조직화하기위해서는, 그리고지불능력이취약한사용자들을상대하는조직화모델을새롭게만들어내기위해서는, 학교비정규직노조들의건설로부터형성된공공서비스부문조직화모델에서교훈을이끌어낼필요가있다. 14) 13) 2015 년전국노동조합조직현황자료에따르면 30 인미만사업장조직률은 0.1% 30 인이상 100 인미만사업장조직률은 2.7% 100 인이상 300 인미만사업장조직률은 12.3% 300 인이상사업장조직률은 62.9% 였다. 14) 실제로금속노조의산업단지중소영세기업조직화사업단은대부분 권리 를가장우선적으로내세우고있다. - 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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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1 87 년노동운동의한계와노동운동의세대교체실패와교훈 정병모 ( 현대중공업노동조합제 20 대위원장 ) - 107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87 년노동운동의한계와노동운동의세대교체실패와교훈 정병모 _ 현대중공업노동조합제 20 대위원장 들어가는말 반갑습니다. 제일먼저이런중요한토론회에참여한것을기쁘게생각합니다. 저는현장에서노조활동을해온사람으로서토론회에주제에걸맞는얘기를하는데에많은한계도있고역량도부족하겠지만제생각을적어보겠습니다. 물론이얘기는정리되지못한순전히제개인의생각임을다시한번말씀드립니다. 발제하신유형근교수의 87년대투쟁이후.. 를여러차례읽었습니다. 저는발제하신유형근교수의분석에대부분공감합니다. 다만학자들이보고있는분석과현장에서느끼는차이를말하고싶습니다. 1. 87 년노동운동의한계 저는 87년에있었던노동자들의대투쟁과 90년대초까지있었던노동자들의비합법투쟁과거리투쟁은노동자들의절박성에서시작되었다고생각합니다. 노동조합이없던시절에할말못하고살았던노동자들이스스로노조를만들고, 그노조를통해삶의질개선을위해투쟁하던 87년에노동자대다수가동참했던것은당연한일이었습니다. 그때는오히려합법적인투쟁을하자고하는것이이상했습니다. 그러나현대중공업노동자들은 87년, 88년, 89년, 90년투쟁을거치면서점차로합법투쟁을주장하는지도부의방침에순응해갔습니다. 정권과자본의대공장노조분리정책에의해현중노조와현대차노조는비슷하지만확연히다른노조활동을해왔습니다. 작업장특성이다른현대차노조는임단협을비교적순탄하게마무리할수있었지만, 현중노조는단한번도제대로마무리하지못했습니다. 현대차노조와달리현중노조는합법적인활동조차도자본과정권의무자비한탄압에의해앞장섰던지도부과활동가들이대거구속되고수배되고해고당하면서, 지도부공백에서오는혼란을되풀이하는것에부담을느끼기시작했습니다. - 109 -

임. 단협을시작하면한번도정상적인지도부가제대로체결하지못했고, 비상대책위, 또는수습대책위가마무리해야했습니다. 지도부는정상적인임기를마치는집행부는없었고 2개월, 5개월, 7개월만에새로운지도부를구성해야했습니다. 그러다보니현장에서는가능한한합법적인절차를밟고합법투쟁을해야겠다는정서가자리를잡았고, 지도부조차도합법적인방법으로투쟁을해야겠다는생각이강해졌습니다. 또한합법적인투쟁으로내부문제를해결하는것도벅찼던현중노조는법외장외투쟁에앞장서거나거리투쟁을하는것은점점요원해졌습니다. 이러한모든것은현중노조가갖고있는내부역량에문제였고, 노동자들의의식수준이갖는한계에서비롯되었다고생각합니다. 다시생각해보면 87년에는우리노동자들이공세적으로투쟁을시작했다면 88년이후에는수세적인방향에서투쟁을할수밖에없었던것도한요인으로생각합니다. 현중노조가가장치열하게투쟁했던 88년말에서 89년 3월말까지이어졌던 128일투쟁 은노동자들이목적의식적으로투쟁을기획하고준비한투쟁이아니라, 자본과정권의민주노조파괴공작에맞선노동자들의저항이만들어낸투쟁이었다고생각합니다. 128일투쟁 은자본의공세에맞서서어쩔수없이만들어간, 밀려간투쟁이었지만현중노동자들은처절한투쟁으로맞섰고, 현중노동자들을지키고엄호하기위한전국단위의수많은노동자들과단체들의지원과연대에힘입어승리할수있었습니다. 그이후 90년골리앗투쟁, 93년현총련총파업을통해위력적인노동자들의힘을과시했지만실질적으로조직을안정화하는것에는한계가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현장의요구와바램은단위노조를안정적으로만들어내는것도방점이갈수밖에없었고, 산별연맹으로전환과민주노총안정화를통한내부조직의안정화에조직을집중할수밖에없었습니다. 2. 노동운동의세대교체실패와교훈 87년민주노조운동이활성화되면서자본은조직되어있는정규직노동자들을부담스럽게생각했다. 90년이후자본은이문제를해결하기위해이른바 신경영전략 을구상하고현장에적용시키기시작했다. 여기서자본이 90년부터시행한 신경영전략 전체를얘기하는것은생략하기로하겠습니다. 현중노조는 신경영전략 에맞서연구팀을구성하고조직적으로대응했지만, 미숙한대처와부족한역량때문에많은한계를절감했고, 서서히조직력이무너졌습니다. - 110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이와함께현중사업장에는 87년이후대졸신입사원은꾸준히뽑았지만, 현장직노동자들은 96년이전까지는단한명의노동자들을채용하지않았습니다. 정규직노동자들을뽑으면바로노조의조직이되고노조의조직력이강화된다는생각에정규직채용은중단하고, 부족한현장의노동력은비정규직으로채워갔습니다. 그래서많은비정규직노동자들이양산되었지만정규직노동자들은비정규직노동자들의문제를자기문제로보는것보다는, 정규직의보호막으로생각하는노동자들이많았다. 때문에비정규직노동자들의처우문제나조직화문제를소홀하게생각했고, 좀더적극적인활동가조차도소극적인연대를하거나지지하는것으로책임을다했다고생각하는수준이었습니다. 비정규직이늘어나고, 현장의많은생산공정이소사장제로바뀌어가는것을보면서도조직의한계와능력부재로대안을찾지못했고, 정규직과비정규직의인식차이는점점커져만갈수밖에없었습니다. 정규직은비정규직을보호막으로생각했고, 비정규직은정규직을연대의대상이아닌타도의대상으로생각하는지경에이르렀습니다. 다행히현중자본은 96년부터엄격한선발기준에의해순차적으로정규직노동자들을채용하기시작했는데 2017년현재이렇게순차적으로들어온노동자들의숫자가 5천여명가까이됩니다. 안타깝게도 96년이후현중조합원이된노동자들은 97년말노동법개악저지투쟁을경험한일부를제외하고는현중노조침체기를함께경험했습니다.2013년말 20대집행부출범이후새롭게노조활동을경험한신세대노동자로자리를잡아가고있다. 다만이신세대노동자들은신세대답게매우솔직하고, 어쩌면당돌한생각을갖고있기도하다. 87년이전세대와다른방식의사고를하고있어서신. 구세대의합의와협동이노조조직의확대화의관건이라할수있습니다. 또이와함께가장예민하고중요한문제인비정규직노동자들의조직화문제는정규직노동자들이앞장서조직하고, 자리잡도록엄호할책임이있습니다. 현중노조는이문제를돌파하기위해다양한시도와노력을하고있는데, 20대집행부가하청지회와함께했던하청노조가입운동을예를들수있습니다.16년투쟁도마무리하지못하고 17년투쟁을하고있는 21대집행부도, 1사 4 노조를추진하면서현대중공업안에있는사내하청지회와일반직노조를한조직으로묶으려는규약개정을시도하고있습니다. 자본의최대알레르기를일으키고있어서만만하지는않지만, 현중노조는이를관철하려는노력을계속해나갈것입니다. - 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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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2 87 년비정규노동운동의재조명 박점규 (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집행위원 ) - 113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87 년비정규노동운동의재조명 박점규 _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집행위원 1. 87 년비정규노동운동의재조명 - 금속산업대공장사내하청을중심으로 1987년노동운동과 2000년대비정규노동운동을비교분석한것은대단히흥미롭고새로운시도다. 비정규직이외환위기이후급증하면서비정규노동운동이확산되었다는일반적인식과달리 1987년당시에도조선, 철강업을중심으로광범위하게사용되어왔던사내하청과, 노동자대투쟁이라는격변적정세에사내하청노동운동이어떻게성장, 발전, 쇠락했는지를보여주는글이다. - 포항제철이라는대공장에서사내하청노동운동이하청업체 ( 협력업체 ) 를넘어원청을상대로단결하고연대하는것을넘어지역노동운동의중심으로정치투쟁을전개했다는것은현재비정규직노동운동에시사하는점이대단히크다고할수있다. 비정규직노동자가사업장을넘어서산업적, 지역적연대의중심에서있었기때문이다. - 포철사내하청노조의연대는포철이라는기업내에만한정되지는않았다. 산업구조와기업간관계측면에서포철과밀접히연관된철강공단내노동조합과의연대로까지나아갔다. 연대의범위가지역으로까지확대되었을뿐만아니라, 비록짧은기간이었지만포항지역의조직노동을대표하는위치에까지이르렀다. - 이글은 30년전인 1987년에도정규직과비정규직이현장에서어떻게갈등하고분열했는지도보여준다. 노동시장의분절화가노동자들의단결과연대를어떻게저해했고, 정규직노동운동이비정규직과연대하지않으면어떤결과를초래하게되는지도살펴보고있다. - 115 -

2. 2000 년대비정규노동운동 - 발제문은 2000년대비정규노동운동을비판적으로분석한다. 현대차사내하청노동운동을분석한결과 간접고용비정규노동운동이정규직으로대표되는조직노동을변화시키지못했음을의미한다. 그에따라이는작업장내사내하청노동자들또한자신들의도구적합리성에입각해 특별채용 이라는정규직되기를사실상추수하는것으로귀결하였다. 고결론을낸다. - 또한 2000년대이후한국노동사회내비정규노동운동과관련한대체적인방향은불법파견투쟁을통한정규직화에초점이맞춰져왔다. 지난 10여년간간접고용비정규노동은불법파견투쟁을통해정규직화에 ( 부분적으로 ) 성공함으로써내부노동시장에진입했지만이는제조업내내부노동시장이내 -외부노동시장간큰격차에의해구조적으로지지 ( 支持 ) 되고있음을반증한셈이다. 고분석하고있다. - 현대차사내하청을중심으로한금속산업사내하청노동운동이산업과지역적연대와단결로 비정규직철폐 와 비정규악법폐기 로나아가지못하고, 불법파견정규직화운동으로축소되고, 특별교섭 을통해 조합원만정규직되기 로좁혀져 정규직신분상승운동 이되어버린것은부정하기힘든현실이다. - 손정순박사는 2000년대비정규노동운동에대해 조직노동으로조직된비정규노동자의규모가증대하고있다는점에서는유의미한진전이며이러한진전이기존조직노동과는구별되는조직과이념등에서새로운노동조합운동흐름을만들어내겠지만 ( 그리고그러한징후가드러나고있지만 ), 기존의조직노동과질적으로구별되는흐름은아직까지는가시화되지는않고있다 고분석하고있다. - 116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3. 사내하청투쟁평가 가. 경제양극화가노동양극화로 - 2009년 1,137개에불과했던재벌들의계열사수가 7년만인 2016년에는무려 1,736개까지늘었다. - 2017년상반기반기보고서에따르면 10대그룹상장사의영업이익은 39조 3400 억원으로지난해보다 72.1% 급증했으나나머지 1813개상장사는 1.3% 증가했다. 전체상장사영업이익에서 10대그룹이차지하는비중은 59.5% 로 13.2% 상승했고, 삼성과현대차, SK, LG 등 4대그룹계열상장사의영업이익은상장사전체의절반이넘는 50.6% 에이르렀다. - 자산상위 30대그룹소속 178개상장사의 2017년 3월말기준사내유보금은 691조 5000억원으로역대최대치를기록했다.(2012년 515조 4000억원 ) - 삼성전자평균영업이익률은 2008년 5.7% 에서 2013년 13.8% 로상승했으나협력업체영업이익률은 2008년 4.6% 에서 2013년 4.2% 로감소했다. 현대차의영업이익률은 2008년 5.8% 에서 2013년 8.9% 로, 현대차계열협력사의영업이익률은 8.2% 에서 9.3% 로증가했는데비계열협력사의영업이익률은같은기간 3.6% 에서 3.3% 로감소했다. - 즉, 외환위기이후 20년동안재벌체제가개혁되기는커녕더욱공고화되었고, 재벌 3~4세로승계를위해재벌기업이중소업종까지장악해경제양극화가극심해졌다. 지난 20년동안원하청불공정거래와납품단가후려치기를바로잡지못한결과다. - 경제양극화가노동양극화로이어졌다. 금융위기직후인 2008년과 5년뒤인 2013 년사이삼성전자의평균임금은 6190만원에서 9995만원으로 1.6배가량늘어났지만, 협력사들의평균임금은 3313만원에서 4465만원으로 1.3배가량증가 ( 격차 53.5% 44.7%) 하는데그쳤다. - 현대차의평균임금은 2008년 6774만원에서 2013년 9458만원으로증가했는데, 같은기간현대차비계열협력사의임금은 3948만원에서 5289만원수준 ( 격차 58.3% 55.9%) 에지나지않았다. 현대차계열사인협력사들의임금은 6193만원 ( 현대차대비 91.4%) 에서 9005만원 (95.2%) 으로증가했다. - 117 -

나. 사내하청노동운동평가 - 외환위기이후 2000년대비정규노동운동은하청업체가아닌원청을상대로한운동으로만들어졌다. 1987년포항제철사내하청노동자들이군사독재정권과자본의극렬한탄압때문이겠지만하청업체노조를만든것과는 2000년대사내하청은단한곳에서도하청업체별노조를만들지않았다. - 포항제철광양사업소의삼화산업노동자들은 1980년대사내하청업체노조를만들어투쟁을하다최근에포스코사내하청지회로명칭을변경해사내하청노동의사용자가누구인지를분명하게드러냈다. 원청사용자책임을분명하게한것이다. - 1999년태동한금속의사내하청노동운동은 2003년현대차사내하청을필두로대대적인노조결성이이루어졌고, 2005년지엠대우창원공장고공농성연대파업, 2006~7년비정규직법저지파업, 2009년금속비정규투쟁본부등공장과지역을넘어정치사회적투쟁을전개했다. - 기륭전자 94일단식투쟁, 현대차사내하청 296일고공농성과희망버스투쟁등금속사내하청노동운동은사회적지지와연대를만들어내는중요한거점의역할을했다. 금속사내하청노동자들의선도적인투쟁으로비정규직문제를사회적으로제기하고이를반드시해결해야한다는것을만들어냈다는것은분명한사실이다. - 그럼에도불구하고발제문의지적처럼사내하청노동운동이 정규직신분상승운동 으로축소된것은사실이다. 파견자체를폐기하는투쟁으로나아가지못하고불법파견정규직화운동으로축소된것도마찬가지다. - 이에대한반성과성찰로기아차화성공장사내하청노동자들은일부신규채용에반대해모든사내하청정규직전환과사내하청제도폐지를요구하고있고, 현대위아광주사내하청노동자들은광주부품사비정규직지회를만들어사내하청을공단차원에서조직하는투쟁을전개하고있다. - 정규직노동운동이단결과연대의정신을훼손하고기업의울타리에안주하고있고, 금속사내하청노동운동역시새로운노동운동으로나아가지못하고공장내 2등노동자로안주하고있는모습을보이고있는것또한사실이다. - 이를넘어서기위해서는비정규직사내하청노동자들의전국적인연대체건설과공동투쟁의복원이필요하다. - 118 -

토론 3 김진억 ( 희망연대노동조합나눔연대사업국장 ) - 119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최근한국의노동조합조직화추세와특징토론문 김진억 _ 희망연대노동조합나눔연대사업국장 조직화추세와특징분석전반적으로동의한다. 특히조직화경로에대한분석은개인적으로도관심이높고글로정리하고싶다는생각을하고있었는데적합한개념과논리로잘정리되었다. 한가지예를들면조직화일반적경로의도식화, 노동조합관계구조형성단계에서의주요기준을합법성, 대표성, 공공성으로정리한것등잘정리되었다. 큰도움이되는글이다. 향후후속논의를통해발전시켜나가면좋겠다. 이글의가장큰목적과의미는사례분석과비교를통해실천적함의, 시사점을도출하는것이라생각한다. 따라서이글의내용에전반적인동의를전제로몇가지를첨언하는방식으로토론을하고자한다.( 향후민간제조업, 공공서비스업외에민간서비스업, 기술서비스업, 100인이하영세소기업, 건설등의영역을더연구하고각영역의특징과시사점과동시에더포괄적으로일반화시도를하면좋을듯하다 ) 미조직조직사업에서몇가지두드러진양상과특징, 시사점을나열하면 1. 특정시기, 사회정치적조건에영향을받는다! - 87년민주화항쟁과권위적지배체제약화 : 전국적으로폭발적인조직투쟁 - 2010년민주진보교육감선거 : 학교비정규직대거조직 - 2017년촛불혁명과문재인정부등장 : 공공부문선도, 전부문조직확대예상 2. 민간부분보다공공부문이상대적으로더조직하기쉽다. - 민간사용자는노조여부가직접적으로이윤에영향을미처적극적대응 - 공공부분은상대적으로적극적대응동인이약하고 공공성 인정이용이함. - 121 -

3. 사전준비과정이조직화성공, 규모에상당한영향을미친다. - 초등주체를통한준비과정이조직의규모, 사용자의태도에영향을미친다 : 인정이냐탄압이냐. 노조초기사용자는여러가지수단사용하나그수단의효과여부에따라추가대응및태도가바뀐다 - 특히전국사업장의경우사전준비를통한전국망형성이중요하다. - 준비과정이부족한상황에서는어려움에처하는경우가많다. -> 불안과분노가특정계기를통해형성되더라도내적역량형성, 사용자대응등에대한치밀한준비없이는어려움에처할경우가많다.( 구조조정, 현안을앞두고노조결성서두렀으나사측의이데올로기공세, 회유, 탄압에약화되는경우가많음 ) - 반면에계기에의해분노가폭발하는시점에준비과정이부족한상황에서선택이필요한경우도많다. 4. 초기준비과정은비공개로진행되어야보다진전된결과를만들수있다 - 초기노조를인정할사용자는거의없다. 어떠한식으로든대응한다. - 특히민간부분은더욱그러하다. - 비공개준비기간 -> 노조건설직전반공개, 공개활동과정필요 5. 초기기세, 분위기가노조규모, 안착화여부에큰영향을준다. - 불안과분노가희망과결합할때가장큰폭발력, 기세를만들수있다. - 노동자상당수는노조의필요성에대해포괄적공감이있다. 이 - 하지만현실가능성, 부익에대한공포, 두려움이행동으로나서지못하게한다. - 망설임, 관망, 이기심이내재되어있기도하다. - 이를넘어노조가입행동에나서려면희망과전망, 기세분위기가필요하다. 6. 현장의힘 ( 쟁의행위 ) 만가지고노조건설, 유지, 확대하기에는어려움에직면하는경우가많다. - 현장의힘을기초로사회적힘을조직할필요하가있다 - 글에서시민사회와국가등을대상으로하는다중적관계구조형성에동의한다. - 공공서비스모델의다른영역으로의적용에동의한다. - 확고한현장장악력이있는소수의경우를제외하곤현장의힘 ( 투쟁전략?) 만으로는한계에부딪치는경우가많다. - 사회적힘조성과사용도또다른형태의투쟁이다. - 122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87 년노동자대투쟁 30 주년기념토론회 - 진정한노동자의힘은 현장의힘 ( 투쟁전략 ) + 사회적힘 ( 연대전략 ) 이함께병행되어야가장큰힘을만들수있다. - 사회적힘은그냥오는것이아니라일상적연대속에축적되고만들어지는것이다. 이를사회연대투쟁전략이라고해도될것같다. 사람을봐야한다. 사람을중심에놓고조직사업을해야한다. - 한국사회에서노동조합은큰결단이필요하다. - 노동조합으로인한어려움과불이익은그간여러경로의체험, 경험, 주변이야기로전해들었다. - 수많은노동조합이조직화에실패하거나소수화된경험이있다. 그경험에참여했던다수, 그것을전해들었던노동자들은필요성과당위를넘어경계, 관망, 두려움, 이기심을복합적으로내면에담고있다. - 이러한실패의경험 ( 불가피하게어쩔수없는경우가많다 ) 을최소화하고노동조합할권리를주체적으로찾아나갈수있도록 (1) 사회적, 정치적, 법제도적분위기를조성하고 (2) 조직사업방향과원칙을정립할필요가있다. (3) 전략적사고와준비가필요하다. 줄탁동시가필요하다. - 이는 (1) 노조할권리를위한법제도개선 ( 합법성인정폭확대 ) 이기도하고 (2) 사회정치적분위기흐름조성 ( 시민사회로부터공공성인정 ) 이기도하지만중요한것중하나는 (3) 노동자간연대와지지지원 이다. 조직된정규직노동자가비정규직에게손을잡아주는것이다. 이는비정규직노동자에게희망과전망일수있다. - 특히공공부분상당수사업장의경우, 정규직공공부문노조가비정규직조직화를지원한다면노조안착화가능성이높다. - 민간부문도하후상박임금등동일노동동일임금연대와동시에하청업체노동자의주체적노조결성을지원한다면상당한진전을이룰수있을것이다 - 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