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논집제 44 집 2016 년 2 월 Sogang Journal of Philosophy Vol.44, Feb. 2016, pp. 311-349 10.17325/sgjp.2016.44..311 311 존재와시간 에나타난세가지실존 45) 김창래 ( 고려대 ) 주제분류 존재론, 기초존재론, 해석학 주제어 실존, 일상성, 본래성과비본래성 요약문 사람들은 존재와시간 이본래적, 비본래적실존이라는두실존방식을대비시키고, 그 1편은후자를 2편은전자를다룬다고말한다. 전자는존재자에몰입하는실존이고후자는자신을존재앞에세우는실존이다. 따라서이원적으로구성된이책은비본래적실존에서본래적실존에로의이행을촉구한다. 나는이러한해석에반대하여 존재와시간 은일상적, 학문적, 철학적실존이라는세실존방식을다루고따라서삼원적구성을가진다고주장한다. 일상적실존은현존재의무차별적인 우선대개 를뜻한다. 우선대개현존재는손안존재자곁에있고다른현존재와더불어있다. 이있음의방식에서출발해서두가지실존론적변양이이루어진다. 한편둘러보며배려하던손안존재자와뒤돌아보고심려하던다른현존재가오직바라보는관찰의대상이되어눈앞에세워지면서일상적세계는탈세계화된다. 그결과모든존재자를오직바라보는관찰의대상, 눈앞의사물로발견하는학문적실존이시작된다. 다른한편세계안에, 존재자곁에머물던현존재가그 안 과 곁 에서떨어져나와자신을존재자가아닌존재앞에세우면, 존재자만을긍정하던세계는존재자가아닌것만을긍정하는세계로전도된다. 그결과존재자에서시선을떼고존재앞에개별화된자신만을보되, 모든존재자적관련을꿰뚫고보는투명한봄이가능해진다. 이렇게자신을대함이이른바본래적또는철학적실존이다. 존재와시간 의과제는이중적이다. 우선실체형이상학과근대과학의, 존재의의미는눈앞에있음이라는존재이해를비판하고구성된자연에대한일상적생활세계의존재론적우위를증명하고, 나아가존재자에빠져있는일상적, 학문적실존의비본래성과스스로를존재앞에세우는본래적실존에로의전향의필요성을증명해야한다. 이두과제의수행을위해세가지실존을인정하고, 존재와시간 을삼원적구성의관점에서읽는것이필요하다. 투고일 : 1 월 30 일, 심사완료일 : 2 월 16 일, 게재확정일 : 2 월 16 일
312 철학논집 ( 제 44 집 ) I. 하이데거보다 존재와시간 을더잘이해하기 존재와시간 1) 은어떤책이고우리는어떤관점에서이책을읽어야하는가? 나는 1927년에출간되고거의 90년동안열렬한관심속에읽혀온, 그러나여전히완전히이해되었다고는말할수없는 2) 한권의책의내적구조와올바른해석법에대해생각해보려한다. 내가문제시하는책은기획된 존재와시간 이아니라실제로출판된미완성작으로서의 존재와시간 이다. 잘알려진대로 존재와시간 은 평균적이고애매하나마 (5/6) 존재이해를갖는따라서존재물음을던지고답할가능성도갖는 (cf. 6f.) 존재자로서의현존재에대한예비적분석을통해궁극적으로는존재의의미에대한물음에답하려던존재론적기획이었다. 단계적으로해결하려던두과제중의뒤의것, 존재물음의완수라는궁극의과제의해결은이루어지지않았고현재우리가가지고있는 존재와시간 은궁극의의도의실현을위한예비적작업, 이른바기초존재론만을포함하고있다. 이출판된그리고실제로읽혀온 존재와시간 에나의관심을제한한다. 그러므로나의글의주제는존재일반의의미의해명이아니라자신의존재를이해하고있는현존재의실존방식의해명이다. 근본물음은다음이다. 현존재는누구이고, 어떻게존재하고있으며어떻게존재해야하는가? 3) 1) M. Heidegger, Sein und Zeit, Tübingen, 1972. 이하이책은서명, 약호없이쪽수만을표기한다. 인용은주로이기상의번역본 ( 존재와시간, 까치, 1998) 에따랐으나많은경우직접번역하기도했다. 2) 존재와시간 에대한한훌륭한입문서의저자는 존재와시간 이 세상에나오고거의 50년이흐른후 이책이전개한 현존재의기초존재론은이저작의요구에완전히부응하는방식으로수용되지는않았다 (F. W. v. Herrmann, Subjekt und Dasein. Interpretation von»sein und Zeit«, Frankfurt a. M., 1985, 12) 고쓴바있다. 그후로 30년의시간이더흘러갔지만상황이근본적으로는바뀌지않은것같다. 존재와시간 을어떻게읽을것인가? 는여전히하나의문제로남아있다. 3) 잘알려진대로 존재와시간 은원래 현존재에대한특수한해석의길을통해서존재라는개념으로파고들려는 작업이었다. 여기제시된두과제, 현존
존재와시간 에나타난세가지실존 313 현존재분석론으로서의 존재와시간 의과제는 실존의실존성분석 (38) 이다. 이분석은현존재의실존을어떻게 기술 하고 해석 하는가? 통상 존재와시간 은본래성과비본래성간의대립이라는관점아래읽혀져왔다. 즉이책은» 존재자에빠져있는일상적자기, 그들-자기 의존재방식으로서의비본래적실존 «과» 존재자및존재자적관련을벗어나개별화되어존재앞에홀로선본래적자기의존재방식으로서의본래적실존 «을대비시킨다. 그렇게보면 존재와시간 은전자에서후자에로의이행을촉구한책으로간주될수있다 4). 이같은해석은다음의이유에서원칙적으로 ( 정확히는원칙적으로만 ) 정당성을갖는다. 존재를향하는본래적실존과존재자에빠져있는비본래적실존이 존재와시간 의근본전제중의하나인 존재와존재자간의존재론적차이 에의거하고있다는것이그첫째이유이다. 존재와존재자의차이와다름이하이데거의존재론적사유 재에대한해석 과 존재물음에답함 이라는과제에 상응하여 (39) 이책도각기세개의편으로구성된 1부와 2부로구성되었다 ( 기획된차례는 39f. 참조 ). 그러나실제로출간된것은 1부의 1편과 2편뿐이다. 두번째과제는해결되지않았고이과제의해결을위한통로로제시된첫번째과제만이해결되었다. 그래서존재의의미에대한물음을던지며시작한 존재와시간 은존재물음의완수라는작업은아직도여전히 도상에 (437) 있을뿐이라는지적과함께마무리되었다. 바로이점에서 존재와시간 은기획된차례에비추어서뿐아니라그성취된내용에의거해보아도미완성작이다. 애당초제기된존재물음에대한답은없고오직그 물음의존재가능성 (7) 을갖는존재자만이분석되었기때문이다. 물론나의관심은여기에제한된다. 그렇다고아래의글이존재의의미는완전히도외시하고존재자만을분석하는것은아니다. 기초존재론이분석하는존재자는존재이해를가지고있고따라서이존재자의실존분석에는이존재자의존재와관련한존재론적해석도포함되기때문이다. 물론 현존재의존재 는 존재일반 은아니다. 여기까지가나의글이다루는내용이다. 나는현존재라는존재자의실존방식을그의존재와관련하여해명하고자한다. 4) 예를들어조형국의 존재와시간 해석이이런관점에입각해있다. 하이데거의삶의해석학, 채륜, 2009, 251~253 참조 ; 하이데거의철학읽기 : 일상 / 기술 / 무의사건, 누미노스, 2010, 6/7 참조.
314 철학논집 ( 제 44 집 ) 를결정지은근본관점이라면, 이것이현존재의두실존방식을구분하는데에도반영되었으리라는생각은일리있는추정이다. 또한이책의전반부 (1편) 가현존재의비본래적실존을, 후반부 (2편) 가본래적실존을다룬다는 (cf. 232f.) 점도거론될수있는이유중의하나이다. 이런이유로 존재와시간 의수용사는이책이서술하는실존방식은비본래적실존과본래적실존둘뿐이고 5), 이둘이각기 1편과 2편에서구분되어다루어진다는점에서이책은이원적구성을가지고있다고주장해왔다. 많은하이데거연구가들이이같은관점에서 존재와시간 을해석했고 6), 하이데거자신도그렇게해석될소지를적잖이제공한것도부인할수없는사실이다 7). 5) F. W. v. Herrmann, Subjekt und Dasein, 37; A. Luckner, Wie es ist, selbst zu sein. Zum Begriff der Eigentlichkeit, T. Rentsch, Hrsg. Martin Heidegger. Sein und Zeit, Berlin, 2001, 154 참조 ; 박찬국, 초기하이데거의철학을결단주의나주의주의로보는해석에대한비판적고찰, 철학사상, 서울대학교철학사상연구소편, 제30권, 2008, 173. 6) F. W. v. Herrmann, Subjekt und Dasein, 37; C. F. Gethmann, Verstehen und Auslegung. Das Methodenproblem in der Philosophie Martin Heideggers, Bonn, 1974, 267/386, 각주 356; C. Demmerling, Hermeneutik der Alltäglichkeit und In-der-Welt-seins, T. Rentsch, Hrsg. Martin Heidegger. Sein und Zeit, Berlin, 2001, 104 참조 ; 성홍기, 하이데거. 존재에로의행보, 이문출판사, 2001, 76/78f./104f. 참조 7) 존재와시간 의 1편은일상적현존재의존재구성틀에대한형식적논의가주를이루는데반해, 2편에서는관심이현존재의전체성과본래성에로집중된다. 그리고 2편의본래적현존재에대한논의는 1편의현존재의일상성과계속대비되며진행된다. 또한 2편의죽음, 양심, 탓, 시간성, 역사성등에대한모든논의또한본래성-비본래성의이원적구도에의해설명된다. 예를들어본래적인죽음과비본래적인죽음을대비시키는식이다. 독자들은매우자연스럽게일상성과비본래성을같은것으로간주하고 존재와시간 을본래성과비본래성의대립이라는이원적관점에서읽는다. 하이데거스스로도자주일상성과비본래성을동일시한다. 그럼에도불구하고나는이둘을구별해야하는이유가 존재와시간 의내부에있다고생각한다. 나는이를논증하려한다.
존재와시간 에나타난세가지실존 315 나는 존재와시간 을이렇게본래성-비본래성의이원적구성으로해석하는방식이단적으로그릇된것이라고말하지는않는다. 그러나원칙적으로는옳아보이는이해석법이충분히 좋은 (gut) 것이라고도생각하지않는다. 이말의의미는우리는 존재와시간 을이보다 더잘 (besser) 이해할수있다는것이다. 언젠가칸트는플라톤의이데아설을비판하면서플라톤을 그가스스로이해했던것보다더잘이해하는일은전혀이상한일이아니라 8) 고말한바있고, 셸링역시라이프니츠해석사를비판하면서 라이프니츠를옳게이해하기위해우선은그가스스로를이해한것보다그를더잘이해해야한다 9) 고말했다. 이것이이른바나은이해 (Besserverstehen) 의문제다 10). 칸트는플라톤이이념 (idea) 이라는철학적문제를사유한것보다더잘사유할수있다는의미에서플라톤보다나은이해를말했고 11), 셸링은라이프니츠를 일반적으로오해한 라이프니츠해석사를극복하기위해서는내적 모순들이적잖이발견되는 12) 따라서오해의소지를제공한라이프니츠의철학체계의내적논리를라이프니츠보다더잘이해해야한다고말했다 13). 바로이두의미에서나는 존재와시간 8) I. Kant, Kritik der reinen Vernunft, Hrsg. R. Schmidt, Hamburg, 1956, B370. 9) F. W. J. Schelling, Propädeutik der Philosophie. Aus dem handschriftlichen Nachlaß, Schellings Werke, Hrsg. M. Schröter, Bd. 2, München, 1804, 39. 10) 이른바 나은이해 는천재적인저자의무의식적규칙부여과정을의식의표면으로이끌어올려명시화하는것으로간주되어왔다.(F. D. E. Schleiermacher, Hermeneutik und Kritik, Hrsg. M. Frank, Frankfurt a. M., 1977, 325; W. Dilthey, Gesammelte Schriften, Bd. V, Hrsg. G. Misch, Göttingen, 1982, 335 참조 ) 그러나이문제를위에서소개된독일관념론의전통에결합시키는가다머에의하면나은이해는저자를저자보다더잘이해하는것이아니라, 텍스트에서논해진사태 (Sache) 를 (H.-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esammelte Werke, Bd. I, Tübingen, 1985, 196) 저자보다더잘이해하는것이다. 나역시이개념을이의미에서사용한다. 나는이문제를종합적으로다룬적이있다.( 김창래, 나은이해또는다른이해?, 범한철학, 범한철학회편, 제51호, 2008, 239~283 참조 ) 11) I. Kant, Kritik der reinen Vernunft, B372, 각주참조. 12) F. W. J. Schelling, Propädeutik der Philosophie, 39.
316 철학논집 ( 제 44 집 ) 을, 자신의책을충분히일관적으로쓰지못한저자보다그리고그비일관성에현혹되어이책을오해한해석사보다더잘이해할수있다고본다. 하이데거스스로본래성과비본래성이마치선언적인 (disjunktiv) 두실존가능성인듯이쓰고 (cf. 42f./179/191/193/311/322) 있지만, 우리는 실존 의문제를하이데거보다더잘이해할수있다. 하이데거해석의역사가하이데거의주장에의거하여본래적-비본래적실존의대립을고정시켜왔지만, 우리는 존재와시간 이라는한권의텍스트의내적논리를불필요한오해의소지를제공한이책의저자보다그리고이저자를따라가며텍스트를오해한해석사보다더잘이해할수있다. 그러므로 더잘 (besser) 이해함의기준은저자의원래의도 (mens auctoris) 도아니고텍스트에서발견되는몇몇문장들의증거도아니다. 기준은 존재와시간 이라는책, 이책이다룬문제, 이문제와관련해서책이펼친내적논리, 즉책의로고스다. 다시말해 존재와시간 이라는철학적건축물의내적구조로부터사태에따라 (sachlich) 그리고로고스의힘에따라주어지는내적필연성, 논리의강제다. 로고스의강제에따라이책을읽으며나는다음의결론에도달했다. 존재와시간 은 본래적실존 과 비본래적실존 을단적으로대립시킨, 이원적으로구성된책이아니다. 이책은 일상적, 학문적, 철학적 실존이라는세가지의실존방식을제시하고있고따라서삼원적구성을가진다. 이하에서나는이두입장을각기 이원적구성 과 삼원적구성 의테제라칭하고, 전자보다후자가 존재와시간 의내적논리, 로고스의요구에 더잘 부합함을논증하고자한다. II. 존재와시간 - 이원적또는삼원적구성? 존재와시간 의이원적구성의테제는존재와존재자간의존재론적차이에입각하여 존재를향하는본래적실존 과 존재자에빠져있는비본래적실존 을구분한다. 나는이구분법을근본적으로는수용한다. 그러나존 13) F. W. J. Schelling, Propädeutik der Philosophie, 39 참조.
존재와시간 에나타난세가지실존 317 재자에빠져있는비본래적실존을다시세분하여 일상적 (alltäglich) 실존 과 학문적 (wissenschaftlich) 실존 으로양분하고하이데거가본래적실존이라부르는것을 철학적 (philosophisch) 실존 이라칭할것을제안한다. 용어의해명부터시작한다. 내가제시한세가지실존의명칭이조금은생소하게들릴수도있다는생각에서다. 하이데거는철학적실존이라는말을전혀사용하지않았다. 나는이용어를본래적실존의동의어로사용한다. 오로지철학적태도만이본래적실존의요건을충족시키기때문이다 14). 하이데거는드물게학문적실존이라는용어를사용하지만이를현존재의실존방식의하나로제시하지는않았다. 나는이를현존재의세가지실존방식중의하나로추가한다 15). 일상적실존이라는용어는전혀생소한것이아니다. 일상성의실존론적의미는 우선대개 (zunächst und zumeist) (16/ 43/113) 이고, 따라서이실존은현존재가 주로 (vorzüglich) (59), 가장가까이 (nächste) (66) 취하는태도, 손안존재자를배려하고다른현존재를심려하며이 존재자들곁에 그리고이들의 세계안에 머무는실존방식이다. 하이데거는이일상적실존과비본래적실존을동일시한다 (cf. 44/181/ 281/321). 바로여기서나의비판적문제의식이출발한다. 정말일상적실존과비본래적실존은같은것인가? 단한가지점에서, 즉철학의유일무이한주제인존재를향하지못하고존재자에빠져있다는의미에서일상적 14) 물론이용어의사용자체는중요하지않다. 본래적 이라는용어가계속사용되어도좋다. 그러나나는철학의유일한주제는존재이고따라서오로지철학만이인간을자신의존재앞에세울수있다는의미에서 본래적 을 철학적 으로변경하였다. 물론여기서는 철학적실존 과 학문적실존 의대립, 즉두실존이일상적실존이라는동일한실존방식에서출발해서정반대의방향으로진행된 전혀일상적이지않은사유과정 의변양태라는점도고려되었다. 용어변경의자세한이유는후술한다.(V장참조 ) 15) 여기서 학문적 이라는말에 철학적 이라는의미는포함되지않는다. 따라서이말은 개별과학적또는실증과학적연구에관련되는 이라는의미이다. 과학적 이라는표현을쓸수도있었으나이표현이 경험적으로확증되어신뢰할만한 이라는뉘앙스를주어사용하지않았다. 한마디로정의하자면 학문적 은 존재자를그물체성, 보편화가능성에서탐구하는 이라는의미로사용된다.
318 철학논집 ( 제 44 집 ) 실존은물론비본래적이다. 그러나이두실존방식의외연도동일한가? 그렇지는않다. 우선대개의실존방식이아니라는점에서 일상적 이지는않지만, 존재자에몰입해있다는점에서 비본래적인 실존방식도있기때문이다. 그것이바로위에서언급한학문적실존이다. 나는이말로현존재가존재자를발견하고만나는하나의방식을의미한다. 즉존재자를 눈앞의사물 (vorhandenes Ding) 로발견하고이존재자를다만 바라보며관찰하는 (hinsehend betrachten) 태도가학문적실존이다. 이실존방식은눈앞존재자라는존재자의관찰과규정의과제에몰입해있다는의미에서본래적이아니라비본래적이다. 그러나이실존은존재자를 손안의도구 (zuhandenes Zeug) 로발견하고이존재자들을 둘러보며배려하는 (umsehend besorgen) 일상적실존과같은것은결코아니다. 눈앞존재자 (Vorhandenes) 와손안존재자 (Zuhandenes) 는다르고, 각각의존재자를 바라보며관찰함 과 둘러보며배려함 이 존재와시간 의내적논리에따르면결코같은것일수는없기때문이다. 바로여기에 존재자에몰입하는비본래적실존 을 눈앞존재자를관찰하는학문적실존 과 손안존재자를배려하는일상적실존 으로세분해야할필연성이있다. 그렇게해야만 존재와시간 의 1편에서엄격하게유지되고있는눈앞존재자와손안존재자의구별이 비본래성 이라는무차별한명칭안에서소멸되어버리지않을수있기때문이다. 그렇다면철학적실존은어떤실존인가? 이것은물론본래적실존, 즉존재자가아니라존재를향하는실존이다. 그러나정확히말해이실존방식을통해현존재가만나는것은존재자체가아니라존재앞으로기획투사된나, 현존재자신이다. 물론이 나 는존재자의세계에빠져있는현존재 ( 그들-자기 ) 가아니라이세계를떠나존재앞에개별화된현존재이다. 그러므로철학적실존은존재자체를대하는실존이아니라 존재를만나려그앞으로스스로를내던지는또는그렇게내던져진존재자 ( 본래적자기로서의현존재 ) 를만나는실존이다. 그러므로세가지실존은현존재가상이한방식으로, 상이한세존재자를만나는방식들이다. 정리해서이렇게말할수있다. 존재와시간 이보여주는다양한실존이있다. 이실존방식은존재와존재자간의존재론적차이에대응하는것이아니다. 만일그렇다면존재를향하는본래적실존과존재자에몰입하는
존재와시간 에나타난세가지실존 319 비본래적실존둘만이가능할것이다. 그러나실존의방식은셋이다. 세가지실존은 존재와시간 이분류한세가지의존재자 ( 손안존재자, 눈앞존재자, 현존재자신 ) 에, 정확히말해현존재가이존재자들을발견하고만나는세가지방식에상응한다. 우선대개현존재는둘러보는배려함의방식에서존재자를발견하고만난다. 이렇게발견되고만나진존재자가손안존재자이고, 이존재자와의왕래의방식이일상적실존이다. 우선대개현존재는일상적으로실존하고있다. 그러나이 우선대개 가지양되는상황이벌어지면일상적실존은상이한두방향으로변양될수있고그변양의결과로나머지두실존이가능해진다. 한편으로 우선대개그런것은아니지만 어떤이유에서 16) 존재자를둘러보고배려하는 실천적행동관계 (59) 가존재자를» 단지 «바라만보며발견하는 (351) 이론적행동관계 (357) 로바뀔수있다. 이렇게 바라보는관찰 이라는이론적, 학문적행동관계에서발견된존재자가눈앞존재자이고, 이존재자를단지관찰하고탐구하는삶의방식이학문적실존이다. 이론가의눈으로눈앞존재자를 바라볼 수있기위해우리는먼저손안존재자를 둘러보던 실천가의눈을감아야한다. 즉실천적, 생활세계적관련의추상적제거가이론적자연의발견을위한전제이다. 바로이의미에서학문적실존은일상적실존의결여적 변양태 (62) 이다. 다른한편일상적실존은정반대의방향으로변양될수도있다. 우선대개현존재는배려해야하는손안의것과심려해야하는타인들안에 흩어져 (129) 있어서 자기를상실하고 또 자기를떠나 (42) 있다. 그는존재자들에빠져비자기, 그들-자기 로실존하고있다. 그러나어느순간 17) 물론우선대개그런것은아니지만 현존재는스스로를존재자들로부터떼어내서존재자가아닌것, 무 (das Nichts) 앞에 16) 예를들어세계를보편법칙의구현체로서의자연으로파악하고이자연을보편법칙에의거해설명하고예측하고, 이예측가능성에따라지배해야한다는목적표상의등장이다. 17) 존재자에만집중하던시선이어느덧 존재자가아닌것 에로향할때, 즉존재자를존재자로만들어주면서스스로는존재자가아닌어떤것에대한물음과이물음의추동력으로서의 놀라워함 (thaumazein) ( 플라톤, 테아이테토스, 정준영옮김, EjB, 2013, 155d) 이라는철학적파토스가등장하는순간이다.
320 철학논집 ( 제 44 집 ) 세울수있다. 그때현존재가발견할수있는것은눈앞존재자도아니고손안존재자나다른현존재도아니고오로지무앞에홀로선자기자신뿐이다. 이렇게존재자에빠져있는자신을부정하고스스로를 무, 즉 모든존재자의없음 앞에세우고이를통해본래적자기를대하게되는순간이바로일상적실존이철학적실존으로 변양 (267) 되는순간이다. 학문적실존과꼭마찬가지로철학적실존역시일상적실존의변양태이다. 그러므로실존은우선대개일상적이다. 이실존으로부터전혀일상적이지않은학문적, 철학적실존에로의변양이이루어진다. 이두변양의과정이각기 존재와시간 의 1편과 2편의주된내용을이룬다. 그러므로전체로서의 존재와시간 은 일상적삶의세계, 학문적으로사물화또는자연화된세계, 존재자를떠난철학이상상하는, 존재자가아닌어떤것 ( 존재, 무 ) 의세계, 그리고이세세계에서각기가능한인간의세가지실존방식, 일상적, 학문적, 철학적실존 을보여주고있다. III. 현상적출발점으로서의일상적실존 현존재분석론의물음은 현존재는누구이고어떤방식으로존재하는가? 이다. 물론현존재는자연의보편법칙을탐구하는과학자일수도있고본래적인나를찾는철학자일수도있다. 그러나우선대개는아니다. 적어도위의물음이문제시하는현존재는그렇지않다. 분석론이현상학적방법을취하고현상학의방법적모토가 사태자체로 (Zu den Sachen selbst)! (27/34) 라면, 이학문이먼저다가가야할사태자체는있는그대로의그리고보이는그대로의현존재여야한다. 그는 어떠한임의의존재와현실의이념이갖다붙여지거나 또는 이이념에의해윤곽잡힌» 범주들 «이덮어씌워진 (16/cf. 27f.) 현존재가아니라, 자신을자기자신안에서보여주는 (28) 그대로의현존재, 현상으로서의현존재일뿐이다. 현존재의이같은현상적실상에이르는길을하이데거는일상성에서찾는다. 그일상적인내보여줌에서이존재자의현상이발견되어야한다.
존재와시간 에나타난세가지실존 321 현존재에로이끄는주도적인접근양식은 [ ] 이존재자가자신을그자신에있어그자신에서부터내보여줄수있게끔그렇게선택되어야한다. 분명히그양식은존재자를그것이우선대개존재하고있는그대로, 즉그것의평균적인일상성에서제시해주어야한다.(16) 현존재는분석의출발에서한특정한실존함의차별성에있어해석하지말고오히려그의무차별적인우선대개에있어열어보여야한다.(43) 무차별적인 (indifferent), 즉그어떤차별화도이루어지기이전의우선대개가일상성의유일한의미이다. 이말은그조어의방식 (All-täglich-keit) 에서도알수있듯 현존재가그안에서» 매일 (alle Tage)«머물러있는그런실존함의양식 (370) 을뜻한다. 매일매일반복하는일상이현존재가우선대개자신을보여주는바로그방식이다. 그렇다면이방식은구체적으로무엇인가? 이물음에아직은답할수없다. 왜냐하면일상성, 우선대개는구체적이고사태내용적인무엇을지시하지않는 형식적 (114) 18) 표현일뿐이기때문이다. 이표현은 우선대개 라는방식만을지적할뿐, 그방식의내용에대해서는아무런언급도하지않는다. 이것은현존재의 실존의어떻게 (Wie) (370) 이지어떤 무엇 (Was) 도아직아니다. 그러므로우선대개로서의일상적실존에는아무런평가적의미도포함되어있지않다. 평가될내용이도대체없기때문이다. 우리가이형식적표현을탈형식화해서 빠져있음, 배려된» 세계 «곁에존재함, 곁에몰입해있음 (176) 이라고다소구체화해도사정은달라지지않는다. 이역시현존재가존재자들안에빠져있다는단순한사실만을기술할뿐, 이사실에대한어떤평가도내리지않기때문이다. 그러므로일상적실존, 이매일매일우선대개의실존을 본래적 의반대말로서의 비본래적 이라는말로수식해서는안된다. ( 적어도아직은안된다. 왜냐하면 본래적 이라는말이아직규정되지않았기때문이다.) 일상성은그저현존재의현상적실상, 우선대개, 본래있는그대로의모습이상다른것이아니다. 그러므로하이데거가 비 본래적이라칭했던일상적실존은실은 현존재는본래어떻게있는가? 라는물음에대한답변일뿐이다. 여기서 본래 라는말은 모든차별화이전 만을의미하고 비본래적의반대 라는의미는아직갖지 18) F. W. v. Herrmann, Subjekt und Dasein, 37 참조.
322 철학논집 ( 제 44 집 ) 않는다 19). 이내용적으로공허하고어떤차별화하는규정도받지않은 우선대개 라는개념이전적현상이근본적으로개념적사유실천인철학에게도대체무엇을의미할수있는가? 이것은 단적인기술과묘사 의대상일수는있어도 사유하는해석 의대상일수는없지않은가? 그러나하이데거는이 우선대개의내용없는무차별성 이 아무것도아닌것은아니며 오히려현존재의 한긍정적현상적특징 (43) 이라고말한다. 어떤의미에서그런가? 이무차별한우선대개가현존재의 존재자적우선 (43) 을형성하고있고따라서이것이현존재분석론을위한 출발점 (66), 현존재의단적인사실로서의우선대개라는현상을 존재론적, 실존론적으로 (184), 즉이존재자의 존재와관련하여 (64) 해석하기 [ ] 위한현상적근본토대 (184) 를이룬다는점에서그렇다 20). 그러므로현존재와그의실존방식을그모든 19) 우리는지금단계에서우선대개라는의미에서 본래 라칭해진이일상적실존이어떤조건아래서 비본래적 이라는규정을받게되는지를이해하기위해노력해야한다. 나는이문제를일상적실존과철학적실존의관계를다룰때상세히논할것인데 V장참조. 간단히결론을선취하면다음과같다. 철학은전도된세계 (verkehrte Welt) 다. 그러므로일상인에게본래적인것이철학에게는비본래적으로된다. 20) 여기서 현상적 (phänomenal) 과 현상학적 (phänomenologisch) 의개념쌍의의미를정확히알아야한다. 전자는 현상의만남의양식에서주어지고설명가능한것 을, 후자는 제시와설명의양식에속하며이러한탐구에서요구된개념성을이루고있는것 (37) 을의미한다. 간단히말해전자는현상을단적으로 기술 하는태도이고, 후자는현상과그기술의결과를학술적, 개념적으로 해석 하는태도이다. 이개념쌍은 세계내부적존재자를 단적으로 묘사하는 존재자적 (ontisch) 태도와이묘사된내용을이 존재자의존재 와관련하여 해석하는 존재론적 (ontologisch) (64) 태도의개념쌍에, 그리고 실존함자체 에관계하는 실존적 (existenziell) 태도와 실존의존재론적구조를이론적으로투명하게 해석하려는 실존론적 (existenzial) (12) 태도의개념쌍에대응한다. 우리는특정존재자와이존재자의현상을현상적, 존재자적, 실존적으로기술하고묘사할수있다. 그리고이기술의결과는다시이존재자의존재와관련하여현상학적, 존재론적, 실존론적으로해석해야한다. 중요한것은
존재와시간 에나타난세가지실존 323 내용적풍부와차별화가능성에서탐구해야하는현존재분석론은바로이무내용적, 무차별적우선대개에서출발해야한다. 그리고일상적실존으로부터학문적, 철학적실존에로의변양과정을추적하는우리에게이는다음을뜻한다. 우선대개의일상성은그특유의무내용성과무차별성으로인해모든내용을취할수있고모든방향으로차별화될수있다. 즉일상성은모든탈형식화와차별화의출발점이다. 이제우리는이우선대개에서출발해서우선대개가정반대의방향으로차별화되는상이한두길을따라걸어야한다. IV. 일상적실존에서학문적실존에로의변양 일단 형식적 표현으로서의이 우선대개 를탈형식화해보자. 현존재는우선대개 무엇 을하고있는가? 우선대개그는과학을하거나철학을하지는않는다. 그는과학이전적, 철학이전적방식으로살고있을뿐이다. 그렇다면이우선대개의삶의구체적내용은무엇인가? 이에대한 존재와시간 의답변은 손안의것곁에있음 그리고 타인들과더불어있음 (181) 이다. 현존재는우선대개과학자도철학자도아니다. 그는예를들어망치와펜치등작업도구들곁에있고작업장의동료와함께있는목수이다. 그는물품을만들기위해필요한도구와재료에마음을써야하고, 또함께물품을만드는작업장의동료는물론이고이물품의 착용자와이용자 (70) 에게도마음을써야한다. 이것이일상적실존이펼쳐지는곳, 현존재가우선대개그안에머물러있는곳, 그의 세계 (71/387) 다. 이세계안에존재자는단둘뿐이다. 자신이아닌모든현존재는뒤돌보며심려해야 (rücksichtig fürsorgen) 할타인이고현존재가아닌모든존재자는둘러보며배려해야 (umsichtig besorgen) 할도구이다. 도구의 사용, 다룸, 제작 (352) 기술 과 해석 의결과는정면으로배치된다는점이다. 왜냐하면현상적 존재자적, 실존적으로 가장가까운것, 잘알려진것이 현상학적 존재론적, 실존론적으로는 가장먼것이며잘안알려진것이기 (43) 때문이다.
324 철학논집 ( 제 44 집 ) 그리고타인과의관계에서일어나는» 업무 «, 사업, 사건, 사고 (387f.) 등이일상적실존의내용을이룬다. 우선대개» 사람 «은그가종사하고있는그것» 이다 «(»Man ist«das, was man betreibt). (239/cf. 322) 물론사람은우선대개이런식으로실존하지만이것이그의유일한실존방식은아니다. 존재자를발견하고만나는그의방식이바뀌면그는존재자를다른방식으로보고, 존재자에다른방식으로마음쓰고, 존재자와다른방식으로관계한다. 그러면존재자자체가다른것으로되어버린다. 예를들어그의손에 너무무겁거나너무가볍던망치 (360/cf. 157) 가어떤이유로 질량을가진 따라서 중력의법칙아래서있는물체사물 (361) 로바뀔수있다. 그러면현존재는더이상이존재자를둘러보며배려하지는않고그저바라보며관찰하게된다. 이존재자는더이상손안의도구가아니라눈앞의사물로발견된다. 어떤조건아래서이런전환이일어나는가? 이것은 현존재로하여금학문적탐구의방식으로실존할 (in der Weise wissenschaftlicher Forschung existieren) 수있게끔해주는실존론적으로필연적인가능조건 (357) 에대한물음이다. 이미암시했듯이이조건은 일상적실존의중단 이다. 왜냐하면둘러보는배려와뒤돌보는심려가살아있는한, 바라보는관찰, 눈앞존재자의발견은가능하지않기때문이다. 마당을산책하던한근대인이떨어지는사과를그의주린배를채울먹거리로 ( 둘러 ) 보았다면, 그는떨어지는물체사물도그사물을잡아당기는중력도바라볼수없었을것이다. 둘러보고뒤돌보는눈이감길때비로소바라보는눈을뜰수있고도구와타인을단적인눈앞의사물로관찰할수있다. 손에너무무거워힘겹다거나손에너무가벼워못질이용이하지않다는등못박는도구로서의망치의특성이망각되고 은폐되어야 (130) 처음으로 (95) 질량을가진물체가눈에들어온다. 이렇게우선대개 세계의세계성을건너뛰는 (66/130) 과정이바로일상적실존이전혀일상적이지않은학문적실존에로차별화되는과정이다 21). 21) 이차별화의시발점이일상적실존이고그결과물이학문적실존이라는점에서전자는후자의근원이고후자는전자의파생태이다. 그래서하이데거는두실존의관계를이렇게규정한다. 인식함은세계-내-존재로서의현존재의한존재양태 (Seinsmodus) 이며그것은자신의존재자적기초를이존재구성틀에
존재와시간 에나타난세가지실존 325 인식함자체는선행적으로일종의 이미 - 세계 - 곁에 - 있음 안에근거하고있다. [ ] 이러한 이미 - 곁에 - 있음 은우선단순히어떤순수한눈앞의것을움직이지않고멍하니바라보는것이아니다. 배려함으로서의세계 - 내 - 존재는배려되고있는» 세계 «에의해서마음을빼앗기고있다. 인식함이눈앞의것을관찰하는규정함으로서가능하기위해서는선행적으로세계와배려하는상관맺음에결함이생기는것이필요하다. 모든제작함, 사용함등을단념하고배려함이이제오직다만안에 - 있음의양태에만, 즉 곁에 - 그저 - 단지 - 머무름 으로만있다. 이러한세계에대한존재양식에근거해서 [ ] 그리고이러한존재양식의양태로서그렇게만나는것을분명하게바라봄이가능하다. [ ] [ 이제 ] 모든형태의사용과이용을중지한상태에서눈앞의것을인지함 (Vernehmen des Vorhandenen) 이수행된다.(61f.) 우선대개손안에있던존재자의손안에있음이인위적으로외면되었고그결과존재자는눈앞의것으로발견되었다. 손안존재자 에서 눈앞존재자 에로의이같은변화는무엇을의미하는가? 정말하나의존재자가다른존재자로변신을했는가? 두존재자모두이미거기에있었는데그중하나만을둘러보던현존재가그하나를외면하고시선을다른곳으로돌리자비로소나머지하나도바라볼수있게되었는가? 그렇지않다. 변한것은존재자자체의존재방식도아니고현존재의시선의방향성도아니다. 이것은실존하는현존재에게또는현존재의실존에서일어난하나의총체적인 전환 (357/361/364) 이다. 존재자를보는현존재의눈은 둘러봄과뒤돌봄 에서 바라봄 으로바뀌었고, 존재자에마음쓰는방식은 배려와심려 에서 배려와심려의결여적양태로서의무관심 으로 22) 바뀌었다. 존재자와맺는관계의방식은사용과다룸에서 객관화 (363) 와관찰로바뀌었다. 그러나이모든변화의근거에놓인것, 즉근본적으로변한것은존재자를해석하는현존재의관점, 그관점을지배하는존재이해이고, 이바뀐존재이해에따라존재자를발견하고그존재자와관계하는실존의방식이다. 우리는만나게되는손안의것을» 새로 «눈앞의것으로바라본다 (ansehen). [ ] 세계내부적인존재자와의배려하는왕래를주도하던존재이해가전 가지고있다. (61) 22) 이무관심은통상학문적객관성내지보편타당성의이름으로정당화된다.
326 철학논집 ( 제 44 집 ) 환되었다.(361) 이제존재자는손안의도구가아니라눈앞의대상이고, 존재자의존재의미는손안에있음이아니라 눈앞에있음 (362) 이다. 이러한존재이해가 주도적으로 됨에따라 눈앞의것일체가 그리고오로지이것만이 주제화된다. (362) 이제현존재는손안존재자를배려하며사용하던방식이아니라오직 눈앞의것의발견되어있음만을기대하는 (363) 방식으로존재한다. 이렇게눈앞존재자를그눈앞에있음에서 규정하고 (62/cf. 193), 인식하고 (61) 탐구하는 (357) 삶, 이것이바로학문적실존이다 23). 물론이실존방식은일상적실존이눈앞존재자의관찰과인식이라는관점에서차별화됨에따라그리고우선대개의세계-내-존재의세계성이추상적으로삭제됨에따라가능해진것이다. 그의미에서이실존은전혀일상적이지않다. 그러나이 않음 은학문적실존이 실존 이아님을의미하 23) 이실존의구체적인내용을설명할필요는없을것이다. 나는이설명을하이데거의다음의글과이에대한약간의주석으로대신한다. 만나게되는존재자의도구성격이간과될 (übersehen) 뿐만아니라또한그와함께모든손안의도구에속하는그것, 즉그의자리 (Platz) 도간과된다. 그의자리는아무상관이없다. [ 이렇게손안의것을몰아내고이존재자의자리에들어선 ] 눈앞의것이도대체자신의» 장소 (Ort)«를잃어버리게된다는것이아니다. 자리 (Platz) 가시공상의한위치 (Raum-Zeit-Stelle) 로, 다른것에비해서아무런특징도가지지않는» 세계의점 (Weltpunkt)«이된다. 바로거기에손안의도구의주위세계적으로제한되었던자리의다양성이순수한위치의다양성으로변양될뿐만아니라또한주위세계의존재자에도대체경계가철폐된다 (entschränkt). (361f.) 여기서경계란손안존재자들이있어야할자리와그렇지않은자리간의경계이다. 작업장에는망치, 톱, 못, 대패가있어야하고그옆휴게실에는커피머신, 잔, 설탕, 쿠키가있어야한다. 이제작업장과휴게실의경계가철폐된다. 그러면우선대개의세계안에서구별되던이두실존공간은모두기하학적공간으로, 그리고일상적으로실존하는현존재에게는각기다른손안의것인망치, 커피, 쿠키는모두연장을갖는사물로평준화된다. 이무차별적세계 ( 자연 ) 에서의무차별적인삶의방식이곧학문적실존이다.
존재와시간 에나타난세가지실존 327 는것이아니라다만 일상적 실존이아님만을의미할뿐이다. 학문적실존역시현존재가존재자를발견하고그존재자와관계를맺는특정한방식을보여준다는의미에서분명하나의실존이고, 그렇게실존하는현존재역시우선대개의현존재는아니지만그럼에도하나의현존재, 학문에의해규정된 [ ] 우리현존재 24) 임에는틀림없다. 일상성이 존재함의한방식 (eine Weise zu sein) (371) 이듯이, 인식 역시현존재의한 존재양식 (Seinsart) (61) 이고 학문 또한하나의 실존의방식 (Weise der Existenz) (357) 이다. 그러므로우리는일상적, 학문적실존둘을모두승인해야하고또한이둘을구별하기도해야한다. 이구별의필연성은 존재와시간 의내적체계안에서결코지양될수없는 손안존재자와눈앞존재자간의차이 에있다. 그러나이두실존방식은같은점도갖는다. 둘은모두존재를그리고존재앞에선본래적자기를향하지않고특정 존재자 만을향하고그 존재자 에몰입하고있는자기만을향한다는점에서는같다. 즉일상적으로실존하는현존재가손안존재자 ( 도구 ) 의사용에서자기를망각하듯이학문적으로실존하는현존재역시눈앞존재자 ( 사물 ) 의관찰에서자기를망각한다. ( 본래적자기를대함이본래적이라는전제아래 ) 이두실존은모두비본래적이고이점에서는동일하다. 지금까지밝혀진것, 그리고그로부터제기되는물음은다음이다. 현존재는손안존재자곁에머물면서일상적으로실존하거나눈앞존재자를자기앞에세우면서학문적으로실존한다. 이두실존이 비 본래적이라면본래적인실존은어떤것인가? 이물음에답해야우리는비로소비본래적이라는말을사용할권리를가질수있을것이다. V. 일상적실존에서철학적실존에로의변양 앞서나는현존재의우선대개의일상성은 현존재는본래어떻게있는가? 라는물음에대한답변이라고말한바있다. 그런데하이데거는이본 24) M. Heidegger, Was ist Metaphysik?, Frankfurt a. M., 1965, 24.
328 철학논집 ( 제 44 집 ) 래의상태를비본래적이라칭한다. 자명한것중의하나는 비 본래란본래의부정이라는점이다. 그러므로 본래 라는개념이내용적으로규정되지않는한, 그부정적상관개념으로서의 비본래 또한규정될수없다. 아직까지는 본래 도 비본래 도내용적으로는텅빈형식적표현일뿐이다. 이상황에서확실하게말할수있는유일한것은이둘은정면으로반대되는실존의상태를지시하고있다는점뿐이다. 물론우리는그반대되는두상태가구체적으로 무엇 인지는아직모르고있다. 그렇다면이렇게 본래 의구체적내용이아직규정되지않은마당에하이데거는무슨의미에서그리고무슨권리로저우선대개의 본래 ( 일상성 ) 를 비본래적 이라칭하는가? 이렇게칭하는하이데거는물론 일상적으로실존하는하이데거 가아니라 철학적으로실존하는하이데거 다. 분명한것은스스로를 전도된 (verkehrte) 세계 25) 라이해하고있는철학은자신과는정반대인우선대개의일상적세계를 본래적 이라칭하면서이와는거꾸로된자신의세계를 비본래적 이라부르기를원하지않고있다는것이다. 이점에서일상적우선대개를비본래적이라규정함은하이데거자신의표현대로하나의 폭력 (Gewaltsamkeit) (311/cf. 313) 이다. 일상인들이우선대개그안에거주하고있는, 그래서그토록친숙하고 자연스러운 (318) 본래 의세계를비본래적세계로전도시킨다는의미에서폭력이다. 그러므로우선대개의무차별성으로서의일상적실존이철학적실존에로변양되는과정은우선대개의일상적세계를폭력적으로전도시키는과정이다. 일단우선대개의일상성에서출발하자. 25) G. W. F. Hegel, Phänomenologie des Geistes, Hrsg. v. J. Hoffmeister, Hamburg, 1952, 121. 하이데거는철학의본질에대해언급할때면자주헤겔의이표현을인용한다.(M. Heidegger, Grundprobleme der Phänomenologie, Gesamtausgabe, Bd. 24, Frankfurt a. M., 1975, 19 참조 ; M. Heidegger, Die Grundbegriffe der Metaphysik, Gesamtausgabe, Bd. 29/30, Frankfurt a. M., 1983, 34) 이말로그가의미하는것은정말철학이전도된세계라는것이아니라, 일상인이보기에전도된철학의세계가본래의세계고이세계의관점에서보면일상인의세계가전도된세계라는것이다. 즉철학은일상인의전도된관점을 본래대로바로잡으려한다 M. Heidegger, Die Grundbegriffe der Metaphysik, 34.
존재와시간 에나타난세가지실존 329 일상성안의현존재는 누구이고 (114) 그현존재는우선대개어떻게있는가? 존재와시간 은첫번째물음에 그들 (das Man) (128) 이라고답하고, 두번째물음에 그들 로서의현존재는우선대개배려된세계의 곁에있고 (145/175/337) 그세계안에 빠져있다 (176/338) 고답한다. 이곁에있음과빠져있음의구체적내용이 무엇 인지생각해보자. 말하자면학문적실존의경우에서와같이변양의출발점으로서의일상적실존의무차별적, 형식적우선대개를차별화하고탈형식화하는것이다. 존재와시간 은빠져있는 그들 의존재상태를현존재의 거기 (Da) 를구성하는주요계기들인 말, 시야, 해석 (167) 에상응하여 잡담 (167), 호기심 (170), 애매함 (173) 으로규정한다. 현존재는스스로말하지않고 그들 의말을따라하고, 스스로보는것이아니라오직새로운것만을보려하고, 자신의존재가능까지도 그들 의해석에따라결정한다 26). 말하고보는것은물론이고, 자신이무엇이어야하는지를해석하는방식까지도모두현존재자신이아니라 그들 에의해결정된다. 그래서 그들 안에숨어있는현존재는 가장큰소리로그리고가장자주나-나 (322/cf. 115) 라고외치지만, 그렇게외치는나는진짜의 나 가아니라 그들 안에 흩어진 나, 그들-자기 (das Man-selbst) (129) 일뿐이다. 그는비본래적자기에머물러있고본래적자기란 이제비로소 [ ] 발견해야할 (129) 어떤것이다. 이상은 존재와시간 이 그들 과 빠져있음 을설명하는 25~27, 35~38절의내용의압축적요약이다. 쉽게읽어낼수있는바이지만일상적현존재의존재방식은자기상실 26) 현존재는자신의말이말에서논의되고있는것 ( 존재자 ) 을드러내어보여주는지는생각하지도않고남들이말한것을그저 퍼뜨려말하고뒤따라말한다. (168) 그는존재자를보고 그것의존재에이르기위해보려고애쓰는것이아니라 다만그 겉모양 만을보고, 이보다더새로운것을보려하고, 그새것에서다시금새것으로뛰어들기위해 (172) 서만본다. 또한현존재는스스로에게어떤존재가능성이열려있는지, 어떤가능성을향하여스스로를내던져야하는지는생각하지도않고오로지 애매한 공공적인해석되어있음 에의거하여이런저런존재자적가능성을향해서기획투사한다. 그러면서정작자신의본래적인 가능성은무력화시킨다. (173)
330 철학논집 ( 제 44 집 ) 의상태로, 잃어버린그자기는되찾아야할본래적자기로서술되어있다. 그래서사람들은일상적으로실존하는현존재는본래의자기를상실한방식으로살고있고그점에서비본래적이라생각한다. 즉일상성과비본래성을단적으로동일시한다 27). 나는이런해석에결코동의할수없다. 그이유의해명이일상적실존으로부터철학적실존에로의변양과정에로다가가는통로역할을할수있을것이다. 잡담, 호기심, 애매한해석은현존재의우선대개의실존방식이다. 그러나이방식을비본래적이라칭함은사태의본질에맞지않고최소한아직은이른것같다. 두가지이유로그렇다. 첫째, 현존재는그저 그들 의세계곁에있고그안에빠져있을뿐이다. 이것은있는그대로의일상적현존재에대한존재자적, 실존적, 현상적기술의내용일뿐이다. 이기술이어떤평가와해석도포함하지않는단적인기술이라면, 여기에는본래적, 비본래적과같은평가적표현이포함되어서는안된다 28). 그런평가적언어의사용은현존재의실존함의방식에대한존재자적, 실존적, 현상적기술의내용이어떤의미를갖는지를이존재자의존재와관련하여존재론적, 실존론적, 현상학적으로해석한이후에나가능하게될것이다 29). 그런해석이최초로 본래 의구체적의미를해명한후에우리는비로소정당하게비 27) 앞의각주 4), 5), 6) 에서언급한문헌들이그예다. 28) 물론어떤도덕철학적평가를뜻하는것은아니다. 사실의단적인기술이아니라기술된사실의의미에대한물음이제기되고있다는점에서평가적이다. 의미는기술되는것이아니라부여되는것이고따라서부여하는자의평가에의존적일수밖에없다. 그점에서평가적이다. 29) 예를들어 그들 에빠져있는일상적현존재는그저빠져있을뿐이다. 이빠져있음은단적인사실로기술의대상이될수는있다. 그러나이빠져있음이비본래성을의미한다고말한다면, 이것은빠져있음이라는사실의기술의결과가아니라그사실이갖는의미에대한해석의결과이다. 그것도철학적해석의결과다. 이점에서본래적, 비본래적이라는술어는평가적언어이고철학의언어이다. 실제로철학하지않는자그누구도자신이빠져있는상태를비본래적이라자책하지는않는다. 결코그럴수없는데, 누군가그런자책을시작한다면그는이미철학의언어로자신의삶을평가하고있고따라서이미철학적인방식으로실존하는것이기때문이다.
존재와시간 에나타난세가지실존 331 본래라는말을사용할수있다. 둘째, 이미여러차례언급되었듯이비본래란본래와의관련없이그자체만으로는사용될수없는개념이다. 왜냐하면 비 본래적이라는말은그자체적극적으로어떤 무엇 일수는없고다만그 무엇 ( 본래 ) 이아니라 ( 非 ) 는데자신의유일한규정을갖기때문이다. 그러므로비본래성이라는말은본래가아직규정되지않은지금의상태에서는사용되어서는안되고일상성과동일시되어서는더욱안된다. 이상의두가지이유에서나는철학적실존에로의변양의출발점은비본래성이아니라일상성이라고주장한다. 그러므로이변양의과정은비본래적실존에서출발해서본래적실존에이르는단선적인길이아니라, 일상적실존에서출발해서그일상성의현상적실상을기술하고, 그기술된내용을현존재의존재에비추어해석하고, 이해석에따라현존재에게본디요구되는상태를그의 본래 로규정하고, 이본래를가지고 우선대개의본래 를 비본래 로 폭력적으로 전도시키는과정이다. 변양은비본래로규정된일상성에서출발하는것이아니다. 오히려일상성이변양의끝에서비로소비본래로규정된다. 우선대개현존재는 그들 안에흩어져있고세계안에빠져있다는사실은확인되었고이에대한단적인기술도이루어졌다. 지금부터는일상적실존에서철학적실존에로향하는변양의과정이추적되어야하고, 나아가일상적빠져있음의의미를현존재의존재, 그가본디 되어야하는그것 (145) 과의관련아래서해석해야한다. 이것은이른바이해 (Verstehen), 기획투사 (Entwerfen) 의문제다. 하이데거에의하면현존재는이해의방식으로존재하고, 이해는늘자기이해, 현존재가자기자신을만나는방식이다. 이해를통해현존재는어떤자기를만나는가? 물론현실적자기가아니라가능적자기이다. 현존재는 그의가능성으로존재하며 따라서 자기자신을언제나 자신의 가능성들로부터 (145) 이해하기때문이다. 이가능성의이해가바로기획투사, 현실적인나에서나를떼어내어 (ent) 아직은되지못한, 그러나되기를원하는나를향해내던짐 (werfen) 이다. 이가능적인나, 내던짐의 그리로 (Woraufhin, Woraufzu) 30) 가바로이내던짐에서내가만나 30) M. Heidegger, Vom Wesen des Grundes, Frankfurt a. M., 1965, 18, 22.
332 철학논집 ( 제 44 집 ) 는 나 이다. 나는나를그리로내던지면서거기에서있는나를나로이해한다. 이점에서기획투사로서의이해는곧 자기이해 (263) 다. 그런데내가나를내던지는거기에서있는그나는우선대개존재자들안에, 물론조금더나은삶의조건아래서있는나일뿐이다. 이를테면 거주, 생계, 출세등 (297) 의조건에서현실적인나보다는조금더나아진가능적인나이다. 현존재의실존은우선대개이런식으로진행된다. 조금더나은집에사는나, 조금더많이버는나, 조금더알려진나를향한점진적이동이다. 그러나이이동이아무리많이진행되고그로인한삶의변화가아무리크다해도내가여전히존재자들곁에머물고존재자들안에빠져있다는사실에는아무런변함이없다. 나의가능성과기획투사는여전히 그들 의해석되어있음 (194) 에의해지배되고, 이지배아래서나는오직존재자안에빠져있는나만을만날뿐이다 31). 그런나에나는아무런불만도갖지않고아무런문제도발견하지못한다. 존재자들안에머묾은 집안에있음 (Zuhause-sein) 과같이편안하고 친숙하다. (189) 왜냐하면일상적으로실존하는나는존재자를긍정하며존재자가아닌어떤것도긍정하지않기때문이다. 존재자의 안 (in) 과 곁 (bei) 이곧나의집 (Hause) 이다. 그런데어느순간 - 물론우선대개는아니지만 - 내안의철학적본성이잠들어있던철학적자기를일깨워존재자를긍정하던관점으로는도저히납득할수없는따라서전혀일상적이지않은기획투사를강요한다. 나는내가긍정하고 소망하던 (195) 이또는저가능성이아니라, 이모든가능성의단적인부정이라는특이한가능성에로나를내던진다. 그가능성은죽음, 존재자로서의나의 세계-내-존재의» 끝 «(234) 이다. 이끝에서는모든존재자가, 그리고존재자들에게허용되던모든가능성이끝난다. 죽음이란모든가능성의 불가능성의가능성 이라는 극단적 (250) 가능성이기때문이다. 이제긍정되던존재자전체는무의미안으로 가라앉아버린다. (187) 내가그 곁 과 안 에머물며편안해하고친숙해하던존재자의집은사라지고 집떠나있음 (Nicht-zuhause-sein) 과이떠나있음의 섬뜩함 31) 하이데거는이같은, 존재자들의세계내부에서의기획투사를 소망 (195) 이라부른다. 이것은존재자들의세계안에머무는비본래적기획투사다. 이기획투사는본래적기획투사의 실존론적변양 (195) 일뿐이다.
존재와시간 에나타난세가지실존 333 (Un-heim-lichkeit) (188) 이나를위협해온다. 나는모든존재자들에서떨어져나와 가장고유한, 개별화된내던져져있음의순수한사실앞 (343) 에홀로서게된다. 이가능성은나만의것이고 가장고유한 (263) 것이기에나는철저하게 그들 로부터분리된다. 나는존재자 곁 에있는것도존재자들의세계 안 에있는것도아니다. 이제내앞에존재자라곤아무것도없다 (nichts). 오직무 (das Nichts) 만이있을뿐이다. 아니내가그 무앞에 (vor dem Nichts) (266) 서있다. 무, 이규정할수없는무의유일한규정성은 모든존재자의없음 이다. 나는내가둘러보며배려하고, 뒤돌보며심려하던모든존재자의없음이라는이극단적인가능성에로나를내던진것이고, 이 가장고유한극단적인존재가능 으로부터나자신을이해한다. 나는더이상도구를 둘러보며 (69/131/146) 배려하지 (131/146) 도, 타인을 뒤돌보며 (123/131/146) 심려하지 (131/146) 도, 사물을 바라보며 (61/69/351/ 357) 관찰하지 (61) 도않는다. 나는모든존재자들과의관계로부터투명하게 (durchsichtig) 된나를그가장깊은 나 에이르기까지 꿰뚫고본다 (durchsehen) (146) 32). 이제나는내가누구일수있고누구여야하는지를비로소 잘이해하게 (146) 되었다. 그래서나는나에게말한다. 이나, 존재자들의 끝으로부터규정된 (264) 나, 존재자들의없음 ( 무 ) 앞에선나가본래의나이고그나의삶이 본래적실존 (263) 이다! 물론이말은존재자를떠나스스로를존재앞에세우는자, 철학하는자의말이다. 존재자를긍정하고오직존재자만을긍정하던일상적현존재는존재자를부정하되그 끝까지 (305) 부정하면서이제본래적, 즉철학적인방식으로실존하게되었다. 철학이라는이름은본래적실존을표현하기에가장적합한말이다. 이학문은본디존재자가아닌존재에대한학문이상다른것이아니기 33) 때문이다. 이상은일상적실존에서본래적실존으로의변양, 이른바철학적실존의 32) 둘러봄 (Umsicht) 과뒤돌봄 (Rücksicht) 은꿰뚫고봄 (Durchsicht) 으로변양되었다. 그리고이에따라배려나심려도이배려와심려를자신의 결여적 (194) 양태로거느리고있는말의본래적인의미에서의 염려 (194), 본래적인염려 (196) 로되었다. 33) M. Heidegger, Grundprobleme der Phänomenologie, 15 참조.
334 철학논집 ( 제 44 집 ) 생성에대한서술이었다. 그런데이를설명하는하이데거의언어에는적어도두가지의조금은기이한, 즉일상인의관점으로는이해하기어려운문제가있다. 나는이두문제를다루며철학적실존에대한나의숙고를마무리하려한다. 첫째문제는하이데거가현존재의일상성, 무차별적우선대개를 도피 로규정하고있다는것이다. 그들 안에그리고배려된» 세계 «곁에몰입해있음은현존재의도피와같은것, 자기자신으로부터의즉본래적인자기로있을수있음으로부터의도피와같은것을드러낸다. 현존재는자기자신과자신의본래성앞에서도피하고있다.(184) 이인용문은우선대개본래적인자기로있던현존재가그들안에빠져들면서자신을등지고본래적자기로부터도피한다는의미로읽힌다. 우선대개본래적인자기로있는자만이이자기로부터도피할수있고아직본래적자기가되지못한자는그자기로부터도피할수도없기때문이다. 그러나현존재는우선대개본래적자기로가아니라그들-자기로있었다. 그렇게보면그에게도피란적절한표현이아닌것같다. 다른하나는일상적실존과철학적실존간의관계의문제다. 지금까지우리는일상적실존에서철학적실존에로의변양, 우선대개의 그들-자기 가비로소본래의자기를찾아가는과정을살펴보았다. 이에상응하여하이데거는 본래적인자기자신의존재는 [ ] 그들 의실존적인변양 (130/cf. 267) 이라말한다. 그런데놀랍게도하이데거는동시에 그들 -자기는본래적인자기의실존적인변양 (317) 이라고쓴다. 도대체무엇이무엇의변양이라는말인가? 이두규정은서로충돌하고있다. 이충돌은어떻게든해명되어야한다. 이상두개의문제는 우선대개 란현존재가본래있는상태라는의미에서의 본래 (1) 와철학적실존을본래적이라지칭할때의 본래 (2) 의충돌과도관련이있다. 이문제들이해명되어야우리는비로소일상적실존과본래적실존의관계의본질을정확하게파악할수있을것이다. 도피의조건은도피하는자가먼저그가도피해나오는그곳에있어야한다는것이다. 거기에있는자만이거기에서도피할수있다. 아직거기에있지않은자는도피조차할수없다. 그렇게보면존재자에빠져있었을
존재와시간 에나타난세가지실존 335 뿐인현존재는도피와같은것을행할수도의도할수도없었다. 그는그가거기서도피해나왔다는그본래적자기에대해알지못했고따라서그자기로부터의도피를생각할수도없었을것이기때문이다. 그는그저그가본래있던그대로빠져있었을뿐이다 34). 그렇다면어떤의미에서이빠져있음을도피라표현함이정당화될수있는가? 주목할것은현존재의도피를언급하고난후하이데거는바로 존재자적-실존적성격부여를존재론적-실존론적해석과혼동해서는안된다 (184) 고쓰고있다는점이다. 내가보기에는여기에문제해결의실마리가있다. 이미언급했듯이 35) 현상적실상은존재자적, 실존적, 현상적으로기술된다. 그리고이기술된내용의의미는존재론적, 실존론적, 현상학적으로해석되어야한다. 기술의결과는현존재는존재자에빠져있다는단적인사실이다. 이사실에도피와같은의미는전혀또는아직포함되어있지않다. 그러나존재론적으로, 즉이존재자의존재와관련해서보면빠져있음이라는단적인사실이현존재는그가본디되어야하고이미되었어야할그자기로부터부단히도피하고있다는식으로해석될수있다. 양심은현존재를본래적자기에로부르고있는데 (cf. 276f.) 현존재가이부름을지속적으로흘려듣는다면, 그는아무것도하지않은것이아니라들어야할것을듣지않은것이고가야할곳으로가지않은것이다. 이 않음 이적극적으로해석되면도피라표현될수있다. 즉빠져있음이라는현상적실상이현상학적으로해석되어도피라는의미를가지게된것이다. 빠져있음은현상적기술의언어이고도피는현상학적해석의언어이다 36). 기술된사실과해석된의미사이의충돌은 34) 이것은플라톤의동굴속의죄수들의상황과도같다. 죄수들은나면서부터동굴벽만을보고있었고동굴밖에빛의세계가있다는사실도모르고있었다.( 플라톤, 국가, 박종현옮김, 서광사, 1997, 514a~515a 참조 ) 그들은그저동굴안에빠져있었을뿐이다. 그런데어떤철학자가나타나서죄수들에게 당신들은태양으로부터도피하고있다. 라고말한다면그들은이표현의의미를우선대개는이해할수없을것이다. 35) 각주 20) 참조. 36) 다음의예가이해에도움을줄수도있을것이다. 어떤사람이아무말도하지않고있다고하자. 그는할말도없고말할필요도느끼지않는다. 그런데
336 철학논집 ( 제 44 집 ) 존재자적, 현상적으로 가장가까운것은존재론적, 현상학적으로 가장멀다 (43) 는원칙에의해쉽게설명될수있다. 본래 (1) 과본래 (2) 의선후관계그리고일상적자기와철학적자기간의변양의관계문제도같은식으로설명될수있다. 현실성의관점에서 현존재는본래어떻게있는가? 라고묻는다면, 이물음에는존재자적, 실존적, 현상적으로답해야한다. 이것은현상적실상에대한물음이기때문이다. 그때의답은 현존재는 본래 (1) 빠져있다. 이다. 그러나가능성의관점에서 현존재는본래어떻게있어야하는가? 라고묻는다면, 이물음에는존재론적, 실존론적, 현상학적으로, 즉이존재자의존재와관련해서답해야한다. 이것은현실적이지는않지만기대되고요청되는가능적상태에대한물음이기때문이다. 그답은 현존재는 본래 (2) 존재자를떠나존재자가아닌것앞에서있어야한다. 이다. 전자의본래 (1) 는현상적기술의결과이고따라서현실적, 시간적선후관계를뜻하는사실의언어이다. 반면후자의본래 (2) 는현상학적해석의결과이고따라서가능적인근거부여의관계를뜻하는평가적언어, 철학의언어이다. 일상적으로는시간적으로앞선것이본래의것이지만철학적으로는근거를부여하는것이근거를부여받아비로소있게된것보다존재론적으로앞선것이고 37) 따라서본래적이 누군가가그에게 당신은침묵하고있다. 고말하면그는이렇게답할것이다. 나는침묵한것이아니라아무것도하지않은것이다. 주어진현상적실상만을놓고볼때그는아무것도하지않았다. 그런데누군가그의말을듣기를원하는사람이있다면그리고이원함과관련해서보자면그사람의말없음은침묵으로해석될수있다. 우리는 신의침묵 이니 님의침묵 이라는말을이런용례로사용한다. 여기서침묵이란실제로신과님이말을하지않았다는현상적실상을기술하는표현이아니라, 신과님의말을듣기를원하는사람이있음에도불구하고그기대가충족되지않았다는사실의표현이다. 침묵은실제로일어난일을단적으로기술하는언어가아니라, 일어난일을일어나야했던그러나일어나지않은일과의관련아래서해석하는언어이다. 도피 라는표현도같은맥락에서이해될수있다. 37) 본래적자기와일상적자기의관계는근거와파생태의관계이다. 비본래성은그밑바탕에가능한본래성을가지고있고 (259), 현존재가비본래적일수있는것은 그가그의본질상가능한본래적인한, 다시말해서자기자신을자
존재와시간 에나타난세가지실존 337 다. 전자의관계에따르면현존재는본래 (1) 일상적이지만후자의관계에따르면현존재는본래 (2) 철학적이어야한다. 그리고본래 (1) 의관점에서보면, 즉관찰된실상을존재자적, 실존적, 현상적으로기술하기만한다면, 일상적우선대개의현존재가나중에비로소본래적자기로변양된다. 그러므로본래적자기는그들-자기의변양이다. 그러나본래 (2) 의관점에서보면, 즉기술의결과가가져야할의미를존재론적, 실존론적, 현상학적으로해석해본다면, 본래적인자기가자신을망각하고스스로로부터도피해서 그들-자기 의일상성에빠진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자기 가본래적자기의변양이다. 두본래의충돌뿐아니라두변양의충돌도모두존재자적, 현상적으로가장앞선것은존재론적, 현상학적으로가장늦은것이라는원칙에의해설명된다. 이모든것이의미하는것은궁극적으로하나다. 일상적으로실존하는자의세계와철학적으로실존하는자의세계는정반대의세계라는것이다. 일상적으로본래적인것은철학적으로비본래적인것이고일상적으로앞선것은철학적으로늦은것이다. 그의미에서철학은전도된세계다. 그래서철학자는일상인이본래적이라, 앞선것이라부르는것에폭력적으로부정의문자 ( 非 ) 를써붙인다. 그래서일상인은아무것도하지않았음에도도주했다는평가를받게되고그의우선대개본래의상태는비본래적이라규정된다. 왜철학은일상성을부정하고일상성의전도를추구하는가? 이유는단순하다. 그것이바로철학적사유에고유한부정의정신이기때문이다. 철학자들은파르메니데스가 사람들이많이밟고다니는길 38) 을벗어난이래줄곧자신이아닌것, 타자에대한사랑으로일관해왔다. 그래서플라톤은신이아닌인간에게신적지혜를추구하라고했고, 하이데거도존재자인현존재를존재앞으로불러세우는것이다. 철학은본디 지금여기, 우선대개, 존재자로서의나 에대한부정이다. 그리고그상상적으로부정된상태를본래적세계라불러왔다. 플라톤이어두운동굴에서벗어나 생성하는모든것들을생성하게해주면서스스로는생성하지않는태양 기것으로하는한에서가능하다. (42) 38) H. 딜스 /W. 크란츠 ( 엮은이 ), 소크라테스이전철학자들의단편선집, 김인곤외옮김, 아카넷, 2005, 274.
338 철학논집 ( 제 44 집 ) 을향해등정했을때 39), 하이데거가존재자에빠져있음을거부하고 존재자를존재자로있게해주면서스스로는존재자가아닌존재 를향했을때, 철학은늘일상인의본래를부정하고전도된의미에서의본래를추구하고있었다. 그것이철학의정신이고, 이정신에따라실존함이철학적실존이다. 이실존을철학의언어로표현해서본래적실존이라부른다. 물론이실존이가능한모든실존의근거이다. 존재자가아니라존재앞에서야한다는철학자의의무를망각해서인간은도구와타인에빠지고일상적으로실존하게된다. 그리고다시손안존재자를배려하고다른현존재를심려해야하다는일상인의의무를져버리면서도구와타인을물체로간주하고학문적으로실존하게된다. 그러므로인간이사는방식은세가지다. 철학자로살거나, 일상인으로살거나, 아니면과학자로살거나. 철학은첫번째의삶만을본래적이라부른다. 따라서뒤의둘은비본래적이다. 그러나과학자가되기위해서뿐아니라철학자가되기위해서도인간은우선대개일상인이어야한다. 이것이가능한모든삶의방식의단하나의출발점이다. VI. 이원적구성의테제를거부하고삼원적구성의테제를수용해야하는이유 나는 존재와시간 에는세가지의실존이제시되어있고따라서이책은삼원적구성을갖는다는사실을입증하기위해노력해왔다. 그렇게보아야하는이유는 존재와시간 이라는한체계적구조물의내적논리의강제다. 이것은말하자면 존재와시간 의독법문제다. 나의주장은이원적구성의테제에따라이책을읽을때감수해야하는단점이있고, 삼원적구성의테제에따라읽을때얻을수있는장점이있다는것이다. 아주정확하게는아니지만단점과장점들은대칭적이다. 즉삼원적구성의테제에따른독서가주는장점이이원적구성의테제에따른독서에수반되는단점을극복하게해준다. 많은것이거론될수있겠지만나는대표적이라 39) 플라톤, 국가, 509b 참조.
존재와시간 에나타난세가지실존 339 여겨지는다음의세문제만을논의에포함시킨다. 1. 과학비판, 2. 실체형이상학의해체, 3. 2편에나타난눈앞에있음이라는용어의비일관적사용. 첫째, 세가지실존이아니라두가지실존만을인정할경우, 다시말해일상적실존과학문적실존을비본래적실존으로뭉뚱그릴경우, 존재와시간 의독서는피할수없이비본래성에서본래성에로의이행에집중하게된다. 물론이이행이중요하지않은것은아니지만, 이이행만이지나치게강조되면 존재와시간 이이룬성과중에매우중요한다른것들이은폐될위험이있다. 그중하나가근대과학에대한하이데거의비판이다. 존재와시간 의우리말옮긴이는이책의의미를 과학의논리가뿌리를내리고있는삶의문법을탐구하고 이를 과학의논리로부터해방시키기위한노력 40) 이라규정한바있다. 실제로 존재와시간 의 1편에서진행된세계의세계성분석 (14~24절), 안에있음에대한논의 (28~38절) 는근대이후자연과학적세계상의독점적지배에대항해우리의일상적생활세계의존재론적권리를회복하려는작업으로볼수있다. 하이데거는 니체와역사주의그리고생철학에의해그기조가결정된사유가지배하던세기의자식 41) 이었고, 이세기의과제는딜타이와후설이보여주었듯이자연주의와실증주의를비판하고일상적생활세계의건강성을수호하는것이었다. 이런문제의식이망각되지않기위해서는일상적실존에서세계의세계성이탈락되어이실존의결여적파생태로서의학문적실존이등장하는변양의과정이반드시기억되어야한다. 학문적실존을하나의실존방식으로인정하지않을경우, 이실존의파생성을드러낼수없고그결과일상적실존의근원성도은폐되고말것이다. 둘째문제는서양존재론의역사의해체의문제인데, 이는첫번째문제와도관련이있다. 근대과학의배후에근대주관주의형이상학이서있고이형이상학이그리스실체존재론의근대적변형물이상다른것이아니라는나의진단이그릇된것이아니라면, 하이데거의과학비판은근대주 40) 존재와시간 ( 이기상옮김 ) 의옮긴이해제, 587; 이기상, 존재와시간. 인간은죽음을향한존재, 살림, 2006, 34/44f. 참조. 41) H.-G. Gadamer, Der Denker Martin Heidegger, Gesammelte Werke, Bd. III, Tübingen, 1987, 224.
340 철학논집 ( 제 44 집 ) 관주의형이상학에대한비판을거쳐고대실체존재론에대한비판으로소급되어야하고, 궁극적으로는이존재론에서배태된 (cf. 22) 서양존재론의전통전체를해체해야한다. 이전통을통해줄곧유지되고관철되어온존재이해에따르면존재는실체, 현존자 (ousia) 이고, 그의미는 늘현재의방식으로있음 이다. 이실체의발견이시원의존재론에서일어났던이른바존재와시간의분리이고이분리의전통이해체의대상임을 존재와시간 의저자는자신의주저의 6절에서더할나위없이인상적으로보여준바있다.(cf. 25f.) 이에따르면존재는 ( 생성, 소멸, 운동, 변화의지평으로서의 ) 시간의저편에, 다시말해 항상현재의방식으로눈앞에있는어떤것 이 - 우리의문제맥락에서다시표현하면 학문적실존이바라보고관찰하는눈앞존재자 가 - 아니다. 존재와시간은함께사유되어야하고존재의의미는시간안에서발견되어야한다. 바로이사유의실천이이른바존재론의역사의해체의기획이고이는 존재와시간 의주요문제들중의하나이다. 그런데오직비본래성에서본래성에로의이행이라는관점에서만이책을읽으며눈앞의것의존재론에대한비판의의미는놓친다면, 정작 존재와시간을함께사유 하려는기획자체는 존재와시간 안에서자신의자리를찾지못하게될것이다. 물론해체는기획된차례에는포함되어있었지만출간된 존재와시간 에서는본격적으로다루어지지않은문제다. 이것은미출간된 2부의주된내용이었기 (39f.) 때문이다. 그러나해체의정신만큼은 존재와시간 의밑바탕에면면히흐르고있다. 그것은실체형이상학적존재이해, 존재란 항상현재의방식으로눈앞에있음 이라는 (21f./95f./201/203) 견해에대한비판적태도이다. 이비판적태도의구체화가바로과학비판이고해체의기획이었다. 이비판적기획들의의미가퇴색되지않기위해서는역설적이게도이존재이해에따른실존의방식 ( 학문적실존 ) 이인정되지않으면안된다. 셋째문제는이른바 눈앞존재자 (Vorhandenes) 를둘러싼비일관적언어사용의문제다. 이내분명해지겠지만이것은비단용어상의문제에불과한것이아니라실은앞서논한두문제그리고그논의에서내가우려했던사태와도관련이있는것이다. 일상적실존과학문적실존의구분그리고후자에대한전자의존재론적우위가비교적잘유지되던 1편에서는손안
존재와시간 에나타난세가지실존 341 존재자와눈앞존재자의명칭이엄격하게구분되어사용되었고눈앞에있음은오로지우리가사용할수도또스스로실존할수도없는물체사물에한정해서사용되었다.(42~45/68ff./73f./75/81/85/133/135/143/181) 이일관적이던언어사용이 2편에서는다소동요된다. 예를들어하이데거는 주위세계» 안의 «손안의것과눈앞의것 (334, 31~32행 ), 배려된손안의것과눈앞의것 (341, 12~13행 ) 등의표현을사용한다. 그러나일상적실존의배려를손안의것에제한하는 (66/67/69/103/187) 1편의언어사용에따르면눈앞의것은세계안에있을수도없고배려될수있는것도아니다. 그것은눈앞에있고따라서관찰의대상일뿐이기때문이다. 이렇게손안의것과눈앞의것을한데뭉뚱그리며두존재자의분명한차이를약화시키는표현들이 2편에서는적잖이발견된다 42). 또한그는 빠져있는존재이해 를 눈앞에있음으로서의이해 와동일시하는가 (304, 15~16행 ) 하면, 배려된손안의것과눈앞의것에빠져있음 (328, 20~21행 ) 이라쓰면서마치현존재가눈앞의것을배려할수있고또눈앞존재자에빠질수있다는듯이쓰고있다. 그러나 1편의언어사용에의하면현존재는도구와타인, 즉세계에빠지는것이지눈앞의것에빠지지는않는다.(118/119/123/128/170/175/176/177/179). 또한현존재적공간성의시간성을다루는곳에서그는 손안의것과눈앞의것을가까이함 ( 거리-없앰 ) (368f.) 이라는표현을사용하는데, 정작 1편에서이문제를다룰때에는실존론적공간규정, 즉 가까움의성격 을갖는것은 일상적인왕래에서만나게되는손안의것 (102) 이지눈앞의것이아니라고 (102) 말한바있다. 분명한것그리고의아한것은 2편의적잖은곳에서눈앞존재자라는개념이 1편에서의용례와는다르게사용되고있다는점이다. 물론 1편에서는손안존재자에대비되어사용되던눈앞존재자가 2 편에서는넓은의미로확대되어사용되었다고말할수도있다. 자주는아니지만가끔씩하이데거는눈앞존재자를세계내부적 (innerweltlich) 존재자 ( 손안존재자와눈앞존재자 ) 의의미로사용하기도하기때문이다 43). 하지만 42) 343, 5~8행 /10~12행, 351, 28~30행, 364, 16~17행. 43) 예를들어 안에있음 을공간적규정과대비시키며그는 잔안의물, 옷장안의의복, 강의실안의의자 와같은손안존재자의 눈앞에있음 (54/132) 에대해말한다. 그러나이런용례는현존재의 안에있음 과세계내부적존
342 철학논집 ( 제 44 집 ) 이것도설명은아닌것같다. 왜냐하면 2편에서도하이데거는자주눈앞존재자라는말을정확히 1편의용례에부합하는방식으로사용하기때문이다 44). 이유를설명하기는어렵지만분명하게말할수있는한가지는 1편에서엄격하게유지되던손안존재자와눈앞존재자의구별이 2편에서는흔들리고그경계가흐려지고있다는점이다 45). 왜일까? 설명은어렵다. 1 편에서는일상적실존과학문적실존의구별이유지되었으나 2편에서는이두실존이무차별적으로비본래적실존안으로통합되어논의가진행되다보니하이데거자신에게도손안존재자와눈앞존재자의구분이흐려졌을수도있다. 일리는있지만증명할수는없는추정이다. 그러나반대로 1편에서유지되던일상적실존과학문적실존의, 둘러보는배려와바라보는관찰의, 그리고손안존재자와눈앞존재자의구분이 2편에서도엄격하게유지되었더라면, 이같이혼란스러운언어사용을피할수있었으리라는점은확실하게말할수있다. 하나더확실하게말할수있는것이있다. 이혼란스러운용어의사용을 존재와시간 이라는, 1편과 2편으로구성된하나의통일된텍스트의내적로고스가금지하고있다는점이다. 학문적실존을현존재의실존방식의하나로인정하고삼원적구성의관점에서 존재와시간 을읽어야하는이유이다. VII. 존재와시간 이걷는두가지길 출간된 존재와시간, 즉하이데거의현존재분석론은 1 편과 2 편으로 재자의공간점유를대비하는맥락에서만발견된다. 44) 306, 2~3행, 307, 30~31행, 311, 5~6행, 313, 32~37행, 316, 17~20행, 318, 5~8행, 320, 5~8행, 323, 1~11행참조. 45) 이흐려짐과더불어실체존재론의해체의기획의대상 ( 항상현재의방식으로있는눈앞의실체 ) 도눈에서사라진다. 그리고실체존재론에근거하여이눈앞의것을인식하려는과학을비판할수있는명분도사라진다. 이점에서위에서논의한, 삼원적구성을수용해야할세가지이유들은서로서로연관된것이다.
존재와시간 에나타난세가지실존 343 구성되어있다. 1편에서는일상적현존재의우선대개의존재구성틀이아무런평가적관점의개입없이다만형식적으로분석된다. 그러나현존재의실존의 전체성 (233) 이문제시되는 2편에서는 1편에서진행된예비적분석이시간성의빛아래서 반복 (304/cf. 311f.) 된다. 이제현존재는자신의 지금여기 와 우선대개 의지엽적국면에빠져있을수만은없고, 탄생과죽음의» 사이 «(233) 로한정된그의실존전체에대해, 다시말해그의기재해온현사실성과도래하는존재가능성에관계하고태도를취해야한다. 현존재는다른누가아니라바로자기자신이이실존전체에대해 탓이있다 (285/281) 는양심의소리를들어스스로를자신의 고유한자기 (273) 앞에세울수도있고, 그렇지않고여전히 그들-자기 (272) 안에빠져있을수도있다. 자신의실존전체에대한이태도가본래성과비본래성을가름한다. 현존재는죽음에대해서도, 양심의부름에대해서도, 기재와현재와도래에대해서도본래적또는비본래적태도를취할수있다. 이렇게보면 존재와시간 의 2편의모든논의는본래성과비본래성의이원적대립의구도아래진행될수밖에없다. 2편의저자는크지않은목소리로그러나쉬지않고비본래적실존에서본래적실존에로이르는길을걸으라고말한다. 이촉구가얼마나인상적이었는지사람들은이길이곧 존재와시간 이걸은길이라고오인할정도이다. 그러나이길은 존재와시간 이아니라이책의 2편이걸은길이다. 그렇다면이길의시발점은어디인가? 존재와시간 은예사롭지않은두개의길을걷는다. 첫번째길의끝이두번째길의시작이다. 첫번째길의끝에서하이데거는이렇게물었다. 이제까지의연구가도대체현존재를전체로서시야에담았는가? (230) 답은부정적이다. 두번째길의시작에서그는지금까지 획득한것은무엇인가? 라고묻고현존재의 근본구성틀, 세계-내-존재 (231) 라고답했다. 2 편의저자가현존재의전체성을찾아두번째길을떠날수있기위해이미 1편의저자는현존재의세계-내-존재에이르는길을걸었어야했다. 이길은고대의실체존재론, 이존재론의근대적재현으로서의주관주의형이상학, 그리고이모든것위에기초하고있는과학적세계상을버리고우선대개의현존재가그안에있는세계, 즉세계-내-존재에이르는길이다. 이길에도물론대립의도식이있다. 그것은우선대개의세계-내-존재의일상
344 철학논집 ( 제 44 집 ) 성과구성된자연의추상성간의대립이다. 이대립에직면하여 1편의저자는후자에서전자에이르는길을걸으라고 2편에서보다더큰목소리로그리고더강한톤으로요구한다. 그러나사람들은 2편의저자의촉구보다 1 편의저자의요구를흘려듣는것같다. 그럼에도불구하고이길은분명 존재와시간 의 1편이걸은길이다. 비록 존재와시간 전체가걸은길은아니지만말이다. 그렇다면이길의시발점은또어디인가. 그것은고대그리스의실체존재론이, 근대주관주의형이상학과근대과학이, 한마디로존재의의미를 늘눈앞에있는존재자의눈앞의있음 에서발견한서양의존재망각의역사가걸었던길의끝이다. 그끝에는늘현재의방식으로있는실체라는존재자, 사유하는나 (res cogitans) 와연장을갖는사물 (res extensa), 바라보는관찰에의해포착될수있는한에서의존재자 ( 눈앞존재자 ) 가서있다. 존재망각의역사가걸었던이추상화하는길의끝에서하이데거는다시이길이발원해나온근원적출발점으로, 일상적현존재의 우선대개 로되돌아온다. 물론 1편의논의는이렇게추상적자연에서일상적세계로되돌아오는길을일상적실존이학문적실존으로변양되는과정으로설명한다. 그렇게해서일상적실존의 근원성 (88) 과학문적실존의파생성을입증하기위해서이다. 이것이 존재와시간 의 1편이걸은길이다. 그러나 존재와시간 이라는그하나의책의 1편의저자는누구이고 2편의저자는또누구인가? 물론그하나의하이데거다. 그하나의하이데거, 그한권의 존재와시간 이존재망각의역사의끝에서일상적우선대개에이르는길을걷고다시일상적실존에서본래적실존을향하는길을걷는다. 이긴길에는세개의역이있고두개의길이있다. 학문적실존, 일상적실존, 본래적실존이그세개의역이고, 1편의길과 2편의길이이역들을이어준다. 존재와시간 은실체형이상학과과학주의를비판하여일상적생활세계로되돌아온후다시이모든길의종착역인철학자의세계로향한다. 물론마지막역이 - 적어도우리철학하는사람들에게는 - 궁극의목표지이지만그렇다고처음의두역이거치지않아도되는역인것은아니다. 첫번째길의끝에서비로소두번째길을떠날수있기때문이다. 이온행로가한권의 존재와시간 이걸은길이다 46).
존재와시간 에나타난세가지실존 345 ( 표 ) 비본래적실존 본래적실존 실존일상적실존학문적실존철학적실존 현상적양상 우선대개 차별화된흔치않은 차별화된흔치않은 만나는존재자 손안존재자와다른현존재 눈앞존재자 현존재자신 봄둘러봄과뒤돌봄바라봄꿰뚫고봄 염려배려와심려무관심염려 태도빠져있음대상화 앞질러달려가봄 현상학적해석 도구사용에서자기망각 사물관찰에서자기망각 무앞에서자기의발견 46) 지금까지의논의내용은첨부한표와같이정리될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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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 철학논집 ( 제 44 집 ) <Abstract> Drei Existenzweisen in Sein und Zeit Kim Chang-Rae (Korea Univ.) In der Regel pflegt man zu sagen, dass Sein und Zeit die uneigentliche und eigentliche Existenz einander gegenüberstelle und jede von beiden je das Hauptthema des ersten und zweiten Abschnitts des Buches ausmache. Das uneigentlich existierende Dasein sei in die Seienden verfallen und das eigentlich existierende stelle sich hingegen vor dem Sein als vor seinem Grunde. Demnach sagt man weiter, das Sein und Zeit habe eine zweier Komposition und verlange daher von seinem Leser einen Übergang von der uneigentlichen zur eigentlichen Existenz. Man pflegt das Sein und Zeit so zu lesen und auszulegen. Gegen diese übliche Deutung des Buches einwendend stellt die vorliegende Arbeit ihre These: das Sein und Zeit handle von drei Existenzweisen, d.h. von der alltäglichen, wissenschaftlichen und philosophischen und habe daher eine dreier Komposition. Die alltägliche Existenz bedeutet das indifferente Zunächst und Zumeist. Zunächst und zumeist ist das Dasein bei dem Zuhandenen und mit dem Mitdasein. Von dieser Alltäglichkeit ausgehend finden zwei existenzielle Modifikationen derselben statt. Einerseits werden das umsichtig zu besorgende Zuhandene und das rücksichtig zu fürsorgende Mitdasein in ein hinsichtig zu betrachtendes Vorhandes umgestellt und danach wird die alltägliche Welt sozusagen entweltlicht. So existiert jetzt das Dasein wissenschaflich, d.i. entdeckt jedes Seiende nur als vorhandenes Ding. Andererseits läßt sich das Dasein, das bei und in den Seienden blieb, diesem Bei und In entfernen und vor dem Sein stehen, das selbst nicht ein Seiendes ist. Dann tritt an die Stelle der alltäglichen Welt, in welcher nur das Seiende etwas ist und das, was nicht ein Seiendes ist, nichts ist, die sog. verkehrte Welt des Philosophen, in welcher das Seiende
존재와시간 에나타난세가지실존 349 nichts ist und das, was nicht ein Seiendes ist, das Nichts ist. Wer in dieser verkehrten Welt sich selbst sieht und zwar mit der von den Seienden ungetrübten Durchsicht, existiert als eigentliches Selbst, d.h. philosophisch. Die Aufgabe des Sein und Zeit ist zweierlei. Einerseits hat es das substanzontologische und wissenschaftliche Seinsverständnis, nach dem der Sinn von Sein nichts als Vorhandenheit ist, zu kritisieren und den ontologischen Vorrang der alltäglichen Lebenswelt gegenüber der substanzmetaphysisch und wissenschaftlich konstruierten Natur-Welt zum Beweise zu bringen. Andererseits hat es alle Existenzweise, nur in den Seienden aufzugehen, sei es die alltägliche oder die wissenschaftliche, als uneigentlich zu beurtelen und den Weg zur eigentlichen und philosophischen zu öffnen. Um der Ausmachung dieser zweifachen Aufgabe gerecht zu werden, hat man die drei Existenzweisen anzuerkennen, obzwar nicht als gleichberechtigte, und das Sein und Zeit aus der Perspektiv der dreier Komposition zu lesen und auszulegen. Key words: Existenz, Alltäglichkeit, Eigentlichkeit und Uneigentlichke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