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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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수업의 흐름 차시 창의 인성 수업모형에 따른 단계 수업단계 활동내용 창의 요소 인성 요소 관찰 사전학습: 날짜와 힌트를 보고 기념일 맞춰보기 호기심 논리/ 분석적 사고 유추 5 차시 분석 핵심학습 그림속의 인물이나 사물의 감정을 생각해보고 써보기 타인의 입장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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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단계 08권 TG

50호이키중등진단평가1-32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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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겉표지 모두를 위한 SPR 성경읽기 SPR 로마서 새 번역, 새 해석 조은석 YN 출판사

=뒷표지 =옆표지 로마서 땅끝까지 가는 복음 방정식 조은석 출판사 =왼쪽 날개 =오른쪽 날개 목차 감사와 드림 들어가면서 바울과 바울서신 로마서 읽기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 제10장 제11장 제12장 제13장 제14장 제15장 제16장 나가면서 참고문헌 감사와 드림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말씀사역의 은혜를 허락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12년 아프리카에서 로마서를 강의하면서 참 행복했던 아내 이정림의 손에 드립니다.

들어가면서 2012년, 나는 금문교회 강단에서 매주일 로마서를 강해했다. 이 책은 강단의 강해를 정리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세상과 통하는 곳이다. 세계 모든 인종을 만날 수 있다. 그러면서도 특히 동양인이 많다. 빛나는 눈동자의 금문인 여러분에게 감사한다. 목양실에서, 조은석 목사 바울과 로마서 로마서 읽기 로마서 읽기 u 제1장 1:1-7 인사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1:8-17 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18-23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 속에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1:24-32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u 제2장 2:1-16 2:17-29 u 제3장 3:1-8 참되신 주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범사에 많으니, 우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유대인은 이방인에 비하여 나은 점이 많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입니다. 말씀을 전혀 듣지 못한 자들에 비하여 얼마나 큰 특권을 가진 것입니까? 그런데 믿지 않는 자들이 있었다면? 그들이 믿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신실하심을 부정할 수 있습니까? 즉,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그들의 믿음에 달렸습니까? 아닙니다. 사람은 본래 다 거짓된 존재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참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믿든 믿지 않든 아무런 상관이 없이,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So that youi may be proved right when when speak, and prevail when you judge. 시편 51:4 이 말씀은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죄를 범한 후 선지자 나단 앞에서 드린 말입니다. 그 앞 부분을 마저 읽지요.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Against you only, have I sinned and done what is evil in your sight so that you are proved right when youi sepak and justified when you judge. 시편 51:4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의로우십니다. 당신께서 스스로 증거하십니다. 당신의 말씀이 그렇게 증거하십니다. 당신의 판단이 스스로 증거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판단과 증거가 필요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스스로가 옳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의로우신 분 이시라고 선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니어도 주님께서 스스로 증거하십니다. 우리는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꼼짝도 못하시는 분이시라는 착각 말입니다. 하나님을 우상 섬기듯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지요만.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다윗처럼 범죄한 인간도 하나님께서 선하심을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가 증거했을 때 빛이 났습니다. 만일 다윗이 완전한 사람이었다면, 전혀 죄를 짓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그를 칭송하기 위해 입에 침이 말랐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한 사람일지라도 오히려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어 비난 받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주님께 대하여 할 말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범죄함으로 인하여 오히려 인간은 벗어 던지고 오직 하나님의 성령님만 의지하고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5절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But if our unrighteousness brings out God's righteousness more clearly, what shall we say? 이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요 뜻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덕을 보게 되셨는데(!) 그렇다고 해서, 인간에게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십니까? 이 논리는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는 죄를 지었지만, 그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대업을 이루시고, 십자가로써 사탄 권세를 무찌르시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시고, 사람들의 평화가 되셨으니, 가룟유다는 무죄합니까? 그런 가룟유다에게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오히려 불의하신 것입니까? 이것은 초대교회 시대 위서(위서) 중 하나인 <유다복음서>에 나오는 주제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떤 일이 있어도 의로우십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런 위서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죄, 거짓말 같은 것으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욱 풍성하여 주님의 영광이 되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죄인처럼 심판을 받겠습니까? 우리의 죄와 거짓말로는 하나님의 영광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논리, 즉 8절의 논리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을 행하자!

사도 바울의 말인 8절을 조금 풀어서 읽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죄인으로서 칭의 를 말하니까, 우리가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을 행하자! 고 가르치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한다는데,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어떤 상황에도 나는 예배하네! 나는 이 가사에 큰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가, 젊은이 방식으로 찬양을 드리는데, 나는 다음 세대에 대하여 큰 기대가 있습니다. 나는 선배님 세대를 존경합니다. 지난 주 중에 김준곤 목사님이나 김윤국 목사님의 설교를 다시 들으면서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나는 우리 세대가 큰 고난 속에 지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사리 복음을 지켰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 대하여 염려가 컸습니다. 그러나 우리교회 부목회자들을 보면, 면면이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가르칠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 드려라. 너의 잘 난 상황에서도 교만하지 않도록 해라. 그래서 예배를 건성으로 드리지 않도록. 너의 범죄 한 때도 좌절이 커서 예배를 포기하지 않도록 해라. 다만, 잘 난 상황에서는 자기 자랑이 커지지 않도록 하라. 범죄 한 때는 사유하시는 주님의 은총이 오히려 무시당하지 않도록 하라. 금문인 여러분, 여러분은 예배인간입니다. 예배로써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공로, 우리의 의는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 높임을 받으셔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복음입니다. 이 복음전파가 우리의 생명이요, 사명입니다. 아멘. 3:9-20 죄인

이 세상에 의인은 없습니다. 모든 인간에게서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다 결함이 있습니다. 완벽한 인간이 없습니다. 완벽주의자가 있다고 하지만, 그는 완벽하려는 정신병이 걸린 사람일 뿐입니다. 어떤 인간도 제대로 알고 나면 더러운 면이 다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선생님이 화장실도 가지 않는 줄 압니다. 결혼 대상자로 완벽한 조건을 세우면 결혼하기 어렵습니다. 결혼하고 나서도 그 조건을 그냥 가지고 있으면 결혼생활 하기 어렵습니다. 눈감아 주고, 용서하고,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교회생활도 그렇습니다. 서로서로 이해하고 용납해야 합니다. 서로의 결점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용서해야 합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아브라함이나 모세, 다윗이나 베드로, 바울이나 요한, 모두 불완전한 인간입니다. 흔히 아브라함을 완전한 인간으로 봅니다. 그러나 그는 결점 투성이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받아 가나안 땅에 도착한 직후, 자기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생명을 연장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를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창세기 12:11b-13 모세도 혈기를 끝내 어쩌지 못했습니다. 민수기 20:10-13을 봅시다. 모세가 말했습니다.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민수기 20:10b

그리고 그는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민수기 20:12b 모세가 요단강 건너 가나안을 바라보는 지역에서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산과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신명기 3:24-25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은 부정이었습니다.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신명기 3:26b 모세는 그 혈기 가 그동안의 공로 를 무색하게 할만큼 심각했습니다. 그런데도 모세에 대한 평가는 이렇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민수기 12:3 이 세상에서 모세보다 더 온유한 사람이 없다는 평가입니다. 놀랍습니다. 그러니, 누가 감히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영적인 가나안이라면 천국 입니다. 누가 감히 이런 혈기 를 가지고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까?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이 세상 살면서 부족한 사람끼리 서로 넉넉하게 이해해 주면서 따뜻하게 품어주고 용서해 주면서 살아갈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우리 인간의 죄를 용서하신 예수 그리스도 주님의 은혜로 삽니다. 지난주 우리는 유대인 에 대하여 들었습니다. 말씀을 받고 전수해 온 특별한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문제였습니다. 이제 바울은 로마교회에게 묻습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죄 아래 있습니다. 기록된 바 이제부터 구약성경을 인용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시편 14: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시편 53:1- 다윗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마할랏에 맞춘 노래 다윗입니다. 다윗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평가합니다. 말씀을 깨닫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다 치우쳤습니다. 무익합니다. 선을 행하지 않습니다. 단 한 명도 스스로 알아서 선을 행하지 않습니다. 성선설 성악설 성경은 차라리 성악설 편입니다. 다시 바울은 다윗의 시를 인용합니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시 5:9,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관악에 맞춘 노래

죽은 자를 가득 채운 무덤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은 악취 뿐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독기운 뿐입니다.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시 140:3,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그 혀로 속임을 일삼습니다. 입을 열면 거짓말입니다. 그 입술은 독사의 독이 있습니다.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시편 10:7 시편 9-10편은 뭇랍벤 에 맞춘 노래입니다. 다윗의 시입니다. 그가 아들을 잃고 울부짖으면서 노래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 무슨 말입니까? 자식 잘 죽었다! 저주 받은 것이야! 비록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 고통스럽지만, 그것 때문에 몸부림치며 울지만, 그것으로 영원히 사람들의 저줏거리가 될 수는 업습니다. 시편 51편을 잘 읽어 보십시오. 죄를 지적한 나단 선지자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드린 내용입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시편 51:4 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달게 받겠지만, 사람들의 비난은 용납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비난에는 사랑 이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의 비난을 그대로 수용했다가는 일어설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승냥이처럼 달려듭니다. 죽을 때까지 물고 늘어집니다. 그런 사람에게 무얼 기대하겠습니까? 하나님께 사죄하십시오. 사람에게는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께만 죄를 지었다! 이것은 욥기에 나타난 것이기도 합니다. 욥의 친구들은 고통 중인 욥에게 계속 공격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부르짖습니다.

너희가 내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가 내 마음을 괴롭히며 말로 나를 짓부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 비록 내게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 허물이 내게만 있느냐? 욥기 19:2-4 사람에게 죄를 고백하고, 사람의 사죄를 얻어야 하는 가톨릭은 잘못된 것입니다. 신부가 무슨 사죄의 권한이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앞에만 죄를 고백하고, 주님의 사죄하심만 받을 뿐입니다. 당신의 피를 흘려 죽음으로써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만 내 죄를 사하십니다. 사람이 내게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이사야 59:7- 이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의 평가입니다.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비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용서 없이 비판만 하는 사람은 평강 이 없습니다. 다윗의 평가를 다시 들어봅시다.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시 36:1.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다윗은 인간을 잘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골리앗 같은 사람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힘을 더 의지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무기를 더 신뢰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윗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갔습니다. 사울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예배를 우습게 여겼습니다. 다윗은 예배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법궤가 성소에 들어갈 때, 그는 힘껏 춤을 추었습니다. 그래서 옷이 벗겨져 내리는 것을 몰랐습니다. 미갈이 그를 우습게 여겼으나,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높임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 두려운 분이심을 아는 것, 그것이 지혜입니다. <잠언>의 주제입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도 아는 일입니다. 이 세상 모두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없습니다. 나는 요새 십자가를 계속 만들고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들어오는 입구 방에 가시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여럿 있습니다. 오늘 보시고 누구든지 마음에 원하시는 대로 집으로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가시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마음에 부담이 온다면 무리하실 것 없습니다. 누구나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은 용서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눈으로 사람을 보면 틀림이 업습니다. 불쌍한 존재입니다. 불쌍히 여기십시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습니다. 최근에 자살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회적 지위가 높습니다. 성공의 길을 달려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검찰의 소환장 받고 자살의 고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창 오르고 있는 사람이거나, 더 오를 데 없이 높아진 사람 모두 불쌍한 인간일 뿐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한복음 8:10b, 11b 예수님도 정죄하지 않으시고 다시 기회를 주시는데, 누가 누구에게 정죄의 돌을 던진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죄사함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서로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죄를 무서운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죄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야 사죄함 받을 수 있습니다. 죄를 무서워해야 합니다. 죄를 미워해야 합니다. 죄 짓는 나를 미워해야 합니다. 정당화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끼리 모여서, 죄가 상식이 되는 분위기 를 벗어나야 합니다. 모두 다 죄를 짓는 분위기를 벗어나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십자가 십자가의 은혜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다시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되는 죄인입니다. SPR 내일 한국에서 나의 졸저 <SPR>이 출간됩니다. 어제 통화에서 남궁완 집사님이 한권 사서 부치겠다고 했습니다. SPR은 각각, 거룩, 파송, 안식의 뜻이 있습니다. SPR은 우리교회가 그 뿌리입니다. 진지하게 말씀드립니다. 죄악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우리 모두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이렇게 모두 죽고 말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S, P, R 곧, 거룩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파송 받아, 참된 안식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이 길이 생명의 길입니다. 다같이 기도합시다. 3:19-31

하나님의 의( 義 )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9.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사람은 어떤 행위를 해도 의롭지 않습니다. 도를 닦아도 새로운 인간이 되지 않습니다. 노력하고 힘써도 옛날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의로써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의입니다.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얻어야 합니다. 그길이 천국에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천국 문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다른 객관적 인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의입니다.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깨달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죄인입니다. 믿음은 율법을 파기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굳게 세우는 것입니다. Arthur Gordon은 어느날 갑자기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그는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의사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자네가 어린시절 가장 하고싶었던 일이 무엇이었나? 그는 어린시절 자주 놀러갔던 해변으로 갔습니다. 어렸을 때 자주 들었던 바닷물결소리, 갈매기소리를 들었습니다. 자기의 죄를 모래위에 기록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명예를 위해 살았습니다.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고 힘썼습니다. 참 사랑 없이 살았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곧 파도가 밀려와서 지워버렸습니다. 거기서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해변이 좋은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습니다. 한번 나가 보시지요. 그리고 문제를 모래 위에 기록해 보시지요. James Dobson은 기혼여성들의 우울증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열거했습니다. 1. 사랑이 결핍된 결혼생활 2. 시댁식구들과의 갈등 3. 자기비하 4. 자녀들 문제 5. 경제적 곤란 6. 고독, 지루함 8. 질병 9. 피곤, 시간에 쫓기는 삶 10. 나이를 먹는 것

자기비하가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들이 놀랍게도 자기 자존감이 상당히 낮았습니다. 나는 쓸모가 없는 사람이다. 나는 죽어도 누구 하나 아쉬워하는 사람이 없다. 이런 자기비하는 자기 의에 의존하던 사람이 겪는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의에 의존하는 사람은 결코 자존감의 문제를 겪지 않습니다. 스스로 사랑받는 자 라는 의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자기를 목숨 걸고 사랑해 주는 사람 이 없다는 느낌입니다. 여기서 자기비하가 시동 걸리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높은 사람도 자기비하에 걸립니다. 대학교수도, 의사도, 변호사도, 자기비하를 피할 수 없습니다. 아인시타인이 거리를 걷다가, 손녀 딸에게 했다는 말이 유명합니다. -사람들이 이제는 더 이상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이런 자기비하는 인기인이거나 연예인 같은 사람들에게 특히 큽니다. 인기는 거품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자기 스스로 그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 서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하박국 선지자의 경우 찬양한 것은 이것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박국 3:17-19a 아무것도 없어도 나의 가장 높은 곳에 서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의는 우리를 섬기는 자 로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람을 살리는 일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이 자존감이 큽니다. 사람이 가장 큰 자존감은 살펴주는 데 있습니다. 섬김입니다. 내 몸을 희생했건만, 너 무엇 주느냐? 내 몸을 희생했건만, 너 무엇 주느냐? 교회에 빈자리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섬기는 사람이었을 때입니다.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 주며, 도와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으로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대접을 받기만 하고, 섬김을 베풀지 않던 사람은 가장 위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섬기는 분 으로 오셨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도, 주님께서 섬기는 분이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아프리카 선교사 김평육 선교사님을 생각합니다. 이번에 빅토리아 호수 병원선을 띄운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자기 혼자 먹기로 하면 큰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섬기기로 하니까, 먹이기로 하니까, 할 수가 있습니다. 유럽의 교회가 문을 닫습니다. 미국의 교회도 쇠퇴기에 들어섰습니다. 한국도 미국의 전철을 밟습니다. 그러나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아프리카의 교회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콜롬비아의 교회가 미래가 있습니다. 중국에 러시아에 교회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기쁨으로 하지 않는다면, 촛대 를 옮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섬기는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면, 그 사명을 다른 이에게 옮기십니다. 양과 염소 우리는 섬김으로써 평가 받을 것입니다.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하셨는데, 섬김 이 열매입니다. 봉사가 열매입니다. 바닷가에 나가 모래 위에 써야 할 죄에는 섬김 없이 섬김을 받으려 했던 죄 가 당연히 포함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파도를 이끌어 지워주십니다. 지금부터는 섬기면서 살아라! 사명을 주십니다. 건강을 회복시켜달라고 기도할 때는, 어떻게 섬기면서 살아갈 것인지를

계획하십시오. 특별 새벽예배가 한주일 남았습니다. 새벽이 얼마나 춥습니까? 한번 나오셔서, 음식을 마련해 주십시오. 된장찌개를 끓여도 좋습니다. 하루를 기쁨으로 시작할 수 있도록 섬겨주십시오. 믿음의 식구들에게 할지니라!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 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 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 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 2:14-17 예수님의 의 죽음에서 우리를 건지신 의 십자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Amazing Grace 은혜를 받은 자는, 은혜를 줄 줄 압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이제부터 은혜를 나누어 주면서 살아갈 때입니다. u 제4장 4:1-13 믿음의 의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레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은 의인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의인으로 인정된 시기가 놀랍습니다. 창세기 12장, 13장, 14장의 배경이 아닙니다. 창세기 15장에서 그가 의롭다고 인정 받았습니다.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환상 중에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설이니이다.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그 사람에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믿음은 내가 보는 것 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 을 믿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집에 있는 자기의 종 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있는 별 을 보여주셨습니다. 성경에 기록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세상을 보고 성경을 보면, 성경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을 보고 세상을 보면, 이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으로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먼저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내가 지시할 곳 으로 가라! 아브라함은 가보지 않은 곳을 향해 떠났습니다. 말씀만 믿었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현실은 말씀 앞에 복종시켰습니다. 마음에 일어나는 모든 의심도 말씀 앞에 무릎 꿇렸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의입니다. 여기서 아브람의 믿음으로 칭의 됨 이 났습니다. 아브람은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믿었습니다. 그는 어떤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입니다. 그러면 어떤 믿음입니까?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었습니다. 믿음의 특징은 믿을 수 있는 것 을 믿는다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어야 믿음입니다. 이럴 때, 그의 믿음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사실은 믿음의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믿게 하시니 믿는 것입니다. 믿을 수밖에 없게 하시니 믿는 것입니다. 다메섹 엘리에셀이라는 종 외에 달리 대안( 代 案 )이 없던 아브람이 믿게 된 것 은 어쩌면 오히려 당연한 것 아닙니까? 여기서 안 믿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닙니까? 바울은 이럴 때 다윗을 기억했습니다. 다윗이 말했습니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Blessed is he whose transgressions are forgiven, whose sins are covered. Blessed is the man whose sin the Lord does not count against him and in whose spirit is no deceit. 시편 32:1-2 죄가 사함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사함 받은 것을 믿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시편 32:3-5를 읽습니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함으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내가 이르기를 내 여호와께 아뢰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When I kept silent, my bones wasted away through my groaning all day long. For day and night your hadns was heavy upon me; my strength was sapped as in the heat of summer. Then I acknowledged my sin to you and did not cover up my iniquity. I said, "I will confess my transgressions to the Lord"- and you forgave the guilt of my sin. 시편 32:3-5 내 죄를 사해 주신 하나님을 믿습니까? 내 죄를 사해 주시려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까? 이것이 믿어져야 의로움 입니다. 우리의 의는 믿음의 의입니다.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의는 믿음의 의입니다. 사람이 죄가 있으면 고독 합니다. 이 세상에 혼자라는 것, 그래서 누구와도 마음을 나눌 수 없다는 철저한 고독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어떤 목사님의 칼럼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얼마 전 LA Times에 난 광고입니다. -나에게 전화를 걸어주는 분에게 1불을 드리겠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요. 내게 전화를 걸어주면 1불을 드리겠습니다. 영국 소설의 한 장면입니다. 리버풀 항구에 어떤 노인이 배를 타려고 하다가 막 부둣가로 뛰쳐나옵니다. 근처에 놀던 어떤 소년에게 동전을 쥐어줍니다. -얘야. 배가 떠나갈 때 나를 위해 손을 좀 흔들어 다오. 이런 세상은 허무합니다. 세상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교회 외에 소망이 없습니다. 교회로 나와야 합니다. 이 설교를 듣는 여러분은 교회로 찾아 나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을 만나 주신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육신의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회복시키신 분이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And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God, because anyone who comes to him must believe that he exits and and he rewards those who earnestly seek him. 히브리서 11:6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루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By faith Abraham, when called to go to a place he would later receive as his intertance obeyed and went, even though he did not know where he was going. By faith he made his home in the promised land like a stranger in a foreign country; he lived in tents, as did Isaac and Jacob, who were heirs with him of the same promise. For he was looking forward to the city with foundations, whose architect and builder is God. By faith Abraham, even though he was past age-and Sarah herself was barren-was enabled to become a father because he considered him faithful who had made the promise. And so from this one man, and he as good as dead, came descendants as numerous as the stars in the sky and as countless as the sand on the seashore. 히브리서 11:8-12 믿음의 의.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행위가 아닙니다. 죄인이 무슨 의로운 행위가 나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믿어야 합니다. 세상을 보고 하나님을 보면 의심을 떨칠 수 없습니다. 믿어지지 않습니다. 너무나 크고 놀랍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 이런 죄인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뵙고 나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온 세상에 가득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 그래서 고난 중에 몸부림치던, 세상에서 가장 고독했던 사람 요나,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했습니다.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Those who cling to worthless idols forfeit the grace that could be theirs. But I, with a song of thanksgiving, will sacrifice to you. What I have vowed I will make good. Salvation comes from the Lord. 요나 2:8-9 거짓되고 헛된 것은 세상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날마다 속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은혜를 저버립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세상을 보면, 세상은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중해 한 가운데, 거대한 물고기 뱃속에서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러나 그 상식을 그는 숭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면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믿음으로 그는 살아났습니다. 여러분, 믿어야 합니다. 이 지구에 당신 한 사람만 살고 있다고 해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것입니다. 온 천하 강산보다 귀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소중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When life was ebbing away, I remembered you, Lord, and my prayer rose to you, to your holy temple. 요나 2:7

인생이 피곤하십니까? 누군가 손을 흔들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십니까? 고독하십니까? 아무도 당신을 알아주지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믿음의 주님,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기도가 주님께 이릅니다. 주님의 성전에 이릅니다. 오늘 우리교회 성전은 여러분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발판입니다.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40일 새벽예배가 마쳤습니다. 이제 새로운 40일 차례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40일, 40년을 내다보고 천국을 향해 달려가는 길입니다. Tim Kelley의 <The Reason for God>을 읽다가,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suffering.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님께서 가장 멸시받고, 추웠으며, 가난했고, 쫓겼습니다. 세상의 모든 병을 짊어지셨으며, 죄의 짐을 담당하셨다! 세상의 고난을 이해하는 바른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입니다! 가장 고독했던 예수 그리스도!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육신의 고통을 훨씬 넘어서는, 비교할 수도 없이!, 예수님의 이 단말마의 부르짖음에서 오늘 내게 허락하신 은혜의 소망을 체험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믿음의 의로 오늘을 이겨냅니다. 아멘. 의 義 로마서 4:14-25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지난 1일은 31절 93주년 기념일입니다. 일본이 한반도를 강제로 합병한지 10년 만에 한민족은 모두 일어섰습니다. 교회가 전국적 조직망을 제공했고, 신학적 토대를 제공했습니다. 이후 세계는 한반도를 주목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한반도를 구원하셨습니다. 교회가 부르짖어 응답하신 것도 됩니다. 그러나 더 깊은 뜻은, 교회가 하나님의 구원을 믿은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믿음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곧, 사랑과 은혜 를 믿음으로써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는 생각이라면, 누구나 걸림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아브라함 때는 율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사랑과 은혜를 미리 받았습니다. 그가 믿은 것은 사랑과 은혜를 주시는 주님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민족의 조상입니다. 우리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은 혈통으로는 이스라엘의 조상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써 온 믿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에 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품에 안김!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써 그렇게 가능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의 구원입니다.

내가 부족해도, 나를 사랑하시고, 나에게 은혜와 사랑을 내려주신 주님을 믿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변에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생을 슬프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지만, 참 사랑을 가르쳐 주는 사람도 많습니다. 예수님처럼 완전하지는 않지만, 예수님을 생각나게 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처럼 완전한 사랑을 했대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 어떻게 살아갔는가, 그런 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오실 예수님 을 믿고 기다림으로 받은 은혜의 삶입니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해 주실 것 을 믿는 믿음입니다. 김윤국 목사와 사모 강영욱 박사와 석은옥 사모 1919년 3월 1일은 31만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교회가 그 일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북한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한반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좋은 질문을 품어야 합니다. 오늘 이 때, 위기의 한반도를 두신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실까? 한국교회의 성장이 끝났다고 걱정입니다. 그러나 묻습니다. 한반도의 선교적 사명은 끝난 것일까? 아닙니다. 한반도는 잔치가 끝난 집이 아니라, 이제 막 좋은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 집입니다. 통일이 되고, 북한에 교회가 재건되고, 동시에 남한의 교회가 새로워져야 하는 내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음 으로써 얻을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루신 일입니다. 우리는 믿을 뿐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여기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이미 이루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한반도 역사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동시에 필리핀의 역사입니다. 아프리카의 역사입니다. 남미의 역사입니다. 이스라엘은 영적인 교회 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서는 모든 나라마다, 성경의 이스라엘 자기의 나라 와 자기의 민족 으로 여겨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영적으로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통해 다윗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교회 는 우리 모든 민족 과 나라 를 포함하는 거대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31운동의 정신을 되새겨 봅니다. 그때는 믿을 것이 하나님 외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일어났고, 1% 조금 넘던 기독교인이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은 우리가 받을 축복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하게 하셔서 우리에게 약속 으로 주신 내용입니다. 이 분명한 것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밝고 맑고 환하게 살아갑니다.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축복 입니다. 곁에 있는 분들에게 인사합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가가 기록한 바, 옥합을 깨뜨린 여인처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온전한 헌신은, 사랑을 받기 위한 노력이 아닙니다. 이미 받은 것을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갚을 길 없는 은혜에 드리는 감사입니다. 아브라함의 헌신을 생각합니다. 그는 순종했습니다. 순종함으로써 은혜를 받은 것이라기보다는, 은혜를 받았음으로 순종했습니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네게 복을 주리라! 이것은 이미 축복입니다! 아십니까? 우리를 부르심은, 그 자체로 축복입니다.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아직 손에 주신 것이 없지만,

아직 눈으로 보지 못하지만, 우리는 그 약속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나머지 인생은 주님께서 주신 그 약속의 확증입니다. 이번 주일 우리는 결혼예배 를 드립니다. 이 결혼이 소중한 것은 약속 때문입니다. 소중한 약속이 이 새롭게 되는 가정의 현재와 미래입니다. The Vow 약속 하나를 붙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약속했다는 사실 하나를 붙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게 약속을 주신 주님 그 약속을 믿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 아브라함 그는 약속을 굳게 잡은 사람입니다. 사랑의 약속은 사랑입니다. 그 약속을 믿는 것은, 사막길을 걸어가는 내내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아브라함의 여정을 생각해 봅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심 받았습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새로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처럼, 은혜를 주시고 부르시는 주님을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처럼, 우리는 약속 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의( 義 ) 우리는 아무도 의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의로운 이 말고는 천국에 들어갈 자 없습니다. 천국에 갈 수 없다면 우리는 인생을 헛 산 것입니다. 우리를 의롭다 인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우리는 그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약속 으로 주셨습니다. 그 약속은 신실합니다. 부부가 약속 하나로 맺어지듯, 우리는 약속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신약과 구약 이 말씀을 믿고 의지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 우리는 오늘 새롭게 불러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합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한반도의 미래는 정치가에게 달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이들에게 달렸습니다. 필리핀, 남미, 아프리카, 중국, 러시아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습니다. 온 세상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입니다.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u 제5장 삶 로마서 5:1-11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의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선물 이지, 우리에게서 난 어떤 행위 가 아닙니다. 그러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일입니다. 하나님과 화평하니, 대화가 가능합니다. 기도가 소통합니다. 진정한 즐거움이 샘솟습니다.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우리의 주제는 소망입니다. 사람이 내일을 내다볼 것이 있어야 소망입니다. 환난->인내->연단->소망 이렇게 보면, l 환난은 도리어 축복입니다. 그것은 소망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l l 인내도 축복입니다. 내가 왜 참아야 해? 이것도 참아? 그러나 인내는 소망의 문으로 들어가는 두 번째 관문입니다. 인내할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과 고통, 무기력 상태를 이겨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연단도 축복입니다. 두들겨 맞고, 치이고, 무시당해도, 그건 연단 입니다. 연단은 축복입니다. 소망으로 들어가는 세 번째, 마지막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소망이 부끄럽게 하니함. 무슨 말입니까? 우리 소망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거짓것을 바람이 아니라, 진정한 것을 바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십자가의 은혜가 내게 임했습니다. 이로써 우리를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아직 사랑이 아닐 때,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 때도, 사랑을 시작해야 합니다. 상대가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도 사랑해야 합니다. <호세아서>를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이스라엘 편에서 보면 아무런 사랑의 준비는 물론, 마음에도 없는 사랑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 시작하셨습니다. 호세아에게 고멜 을 선택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삶은 즐거운 것입니다. 즐겁도록 그렇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렇도록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즐거움을 생각합니다. 목회자는 즐거움이 필요합니까? 성도는 즐거움이 필요합니까? 그렇습니다. 어떤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까? 혼자서도 즐기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함께 즐기는 것(esp 가족과 함께)도 있어야 합니다. 이 둘은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운동, 스포츠

음악, 종류 그림, 여행, 공부, 도서관, 서점 하나님의 구원의 열심, 그 능력, 그 사랑을 믿고, 마음껏 즐겁게 살아갑시다. 파괴적인 즐거움: 입맛만 돋구지만 실제로 몸에 좋지 않은 조미료가 다량 포함된 음식이나. 인스턴트, fast food 등처럼 파괴적인 즐거움은 당장은 즐거워 보이지만, 곧 후회나, 허무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영적인 즐거움이어야 합니다. 바다를 볼 때, 바다 속 깊은 곳을 잠수해 들어가거나, 먼 바다로 나가, 진정한 바다의 맛을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산의 경우, 계곡에서 점심 해 먹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렵더라도 정상까지 등반하고 내려오는 기쁨과 같습니다. 성공한 기쁨, 대학에 합격한 기쁨, 그런 모든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있습니까? 죄 사함 받은 기쁨. 이것이 제일 큽니다.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사한 날 늘 기쁘게 살아가리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사한 날 그렇습니다. 참된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죄에서 벗어난 기쁨 사냥꾼의 그물에서 벗어난 새처럼 오, 나의 영혼이 벗어났도다 사냥꾼의 그물에서 새처럼! 어제는 서세원-서정희 부부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서세원 씨가 목사님이 되었고, 서정희 씨는 전도사로 사역합니다. 이들을 부르신 하나님은 놀라우신 분이십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벽 풍경은 이랬다. 새벽 세 시 반에 먼저 일어난 서정희는 커피를 끓이고 차에 시동을 걸어놓는다. 아침이니 블랙커피보다 설탕과 우유를 듬뿍 넣은 커피를 준비한다. 남편을 깨워 미리 챙겨 둔 옷을 입힌다. 한 걸음 뗄 때마다 툴툴거리는 남편을 달래가며 차에 태운다. 졸린 눈을 비비며 운전하는 남편에게 커피를 건네고, 교회에 도착해서 주차할 때까지 서정희의 옷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그래도 함께 새벽 예배를 드리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예전에 저는 새벽에 일어나 예배를 가려다가도 남편이 어디 가. 들어와! 그러면 짐 놓고 들어갔어요. 교회에 못 가게 하면 집에 있다가 남편이 촬영가면 가고요. 남편이 교회에 다니지 않아 힘들어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요. 울면서 기도하는 자매님한테는 가정을 더 잘 돌보세요 그래요. 아이도 더 잘 돌보고 놀러 가자 그러면 얼른 맛있는 거 싸서 나가고, 그럼 감동되는 순간이 올 거예요.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서세원 서정희 부부는 2005년 12월 24일에 집사 안수를 받았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이들이 바닥을 치던 시절이었다. 2002년 서세원이 제작한 영화 <조폭 마누라>는 크게 흥행했고, 큰 성공을 가져다줬다. 당시 그가 진행하던 <서세원 쇼>는 톱스타만 출연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토크 프로그램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미다스의 손 이라 부르며 치켜세웠고, 주변엔 사람이 몰렸다. 그러나 소속 연예인 홍보와 세금 관련 문제로 수사가 시작됐고, 2003년 10월에 구속됐다. 정상에서 한 걸음 내딛자 낭떠러지였다. 서세원은 서정희의 She is at Home 책 서문에서 구치소에 있는 동안 이 세상에서 내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아내다. 그동안 함께해 준 아내, 무조건 내 편이 되어준 아내. 지난 25년 동안 잘못했다면 앞으로 25년은 아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무조건, 끝까지 함께 하자 고 다짐했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가족이 무너졌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무너졌을지 모르지만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 ) 복이라는 것은 물질이 아니었고, 명예나 이름도 아니었습니다. ( ) 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또 하나의 힘은 남편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제가 남편을 너무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 서정희의 주님 中 교회가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이름에 먹칠한다고 비판 받는 세상, 그러나 진실하고 아름다운 꽃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특히 아름답고 귀한 가정을 주신 하나님께로부터, 예배인간들은 주님께서 주신 소중한 것을 지켜나갈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얻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모든 죄를 사해주신 주님 안에서, 삶은 축복입니다. 죽기를 구하지 마십시오. 살기를 구하십시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늘 기도하면서 생각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삶은 축복입니다. 삶이 축복이라면, 여러분의 가정은 축복입니다. 여러분의 직장도 축복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구하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경영하도록 허락받은 기업도 축복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작은 가게라도 스스로 운영하고 싶어 하는지 아십니까?

이 모든 일에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리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던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사랑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5:12-21 아담-예수님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또 이 선물은 범죄 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이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인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설교 준비를 하다가 이런 확신이 들었습니다. 나는 지금 아니면 전할 수 없는 말씀을 전해야 한다. 나는 여기 아니면 전할 수 없는 말씀을 전해야 한다. 나는 여러분 아니면 들을 수 없는 말씀을 전해야 한다. 나는 지금 여기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한 것이 죄사함 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세상에 아담 한 사람 때문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속해 주신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요나의 기도 마지막 부분입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Salvation comes from the Lord. 우리가 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전합니다. 예수님의 인격, 예수님의 임재를 전합니다. 개념이 아닙니다. 생각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삶이요, 죽음이며, 예수님의 재림을 전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한 분 예수님이 나를 살리셨습니다. 나를 살리신 주님께서 당신도 살리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주 예수를 믿으라! 설명하지 마십시오. 대신, 예배에 초대하십시오.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십시오. 첫 사람 아담 때문에 이 세상에 죄가 왔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사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분 예수 그리스도면 충분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모두 살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면 충분합니다. 다른 것을 전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전하십시오. 십자가의 능력을 불신하지 마십시오. 십자가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죄에서 왔습니다. 죄의 권세를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죄는 모든 관계를 깨뜨려 버립니다. 죄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그의 눈동자를 마주볼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것은 그토록 오래 쌓아올린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쓰레기로 바꾸어 버립니다. 죄는 사슬과 같습니다. 어떻게 해보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옭죄어 오는 사슬입니다. 자꾸자꾸 빠져드는 늪입니다. 죄는 고통입니다. 죄는 중독입니다. 죄는 사망입니다. 죄의 열매는 죽음입니다. 한번 죽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죽음입니다. 벌레도 죽지 않는 지옥에서 영원히 그렇게 지내야 합니다. 죄가 그렇게 무섭습니다. 이 무서운 죄는 마귀에게서 왔습니다. 마귀의 전략은 치밀합니다. 일평생, 아니 정말 오래도록 마귀는 인간을 죄인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다 걸었습니다. 이것만 계획하고 추진해 왔습니다. 최선을 다했고, 다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죄를 무섭지 않다고 말합니다. 죄에 대한 두려움을 빼앗아 가 버립니다. 아름다운 포장을 합니다. 겉과 속을 다르게 보이게 합니다. 훔친 사과가 맛있다고 말합니다. 도둑질을 미화합니다. 죄를 짓는 것이 남자답다고 말합니다. manhood. 남성다움을 비정상적으로 강조합니다. 예쁜 여자는 죄가 용서된다고 말합니다. womanhoo. 여성다움을 비정상적으로 강조합니다. 사람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체념, 운명설입니다. 죄를 짓는 것이 인간적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누구인가를 오해하도록 부추킵니다. 실상은, 죄는 죽음입니다. 죄는 무서운 것입니다. 한번 죄를 짓고 나면 결코 본래의 자리에 돌아올 수 없습니다. 두 가지 예화가 생각납니다. 어렸을 때 들었던 예화입니다. 경험삼아 죄를 지어보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은 그를 강물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헤엄쳐 강물을 건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헤엄쳐 강물을 건너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출발지보다 훨씬 아래쪽에 도착했습니다.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죄를 지으면 파괴된 본성은 회복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본래의 자리에 돌아올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회개하면 다 괜찮은 것이 아닌가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그때마다

나무기둥에 못을 하나씩 박으라고 했습니다. 더 이상 못 자리가 없을 정도로 죄를 지었습니다. 이후 그가 물었습니다. 이제는 회개하고 싶습니다. 목사님은 회개할 때마다 하나씩 못을 뽑으라고 했습니다. 모든 못이 뽑혔습니다. 그러나 못자국으로 얼룩진 기둥은 보기가 흉했습니다.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당신의 죄는 사함 받았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었던 사실 자체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 예화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의 은혜를 과소평가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죄를 지었을 때,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죄사함 받습니다. 그 죄를 흰 양털 보다 더 희게, 흰 눈 보다 더 희게 씻어주십니다. 그러나 내가 죄사함 받았다는 큰 사실은 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렸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업습니다. 마치 전혀 죄를 짓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죄사함의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엄청난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해결하셨습니다. 죄의 기억, 주님께 드린 고통과 슬픔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결국, 이 세상에는 한 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는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복음 선포는 모든 죄인에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십자가에 집중합니다. 하루 종일 십자가를 생각합니다. 나무로 십자가를 만드는 일에 집중합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십시오. 예수님께서 모든 죄를 사하셨습니다. 죄 사함 받은 기쁨에 집중하십시오. 여러분은 기뻐할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항상 기뻐할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모두 사해주셨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고요? 마귀가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죄를 사하신 것을 어떻게 아느냐?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사랑하심은 성경에서 배웠네.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Therefore, there is now no condemnation for those who are in Christ Jesus, because through Christ Jesus 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set me free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 로마서 8:1-2 u 제6장 너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 로마서 6:1-2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라. 로마서 6:13-14 우리를 악한 자의 도구로 내주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자, 곧 사탄 이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가룟 유다처럼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돈을 따라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가인처럼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분노를 미끼로 마귀의 앞잡이가 되었습니다. 동생을 살해한 것입니다. 고라처럼 살지 말아야 합니다. 고라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방향을 거슬러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이끌어 가려고 했습니다. 발람처럼 살지 말아야 합니다. 발람은 선지자였으나 돈을 따라서 간 사람입니다. 우리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지난 주간에 나는 멕시코 국경도시 멕시칼리에 있는 신학교에서 강의하고

돌아왔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남부 밀림지대 치아파스(Chiapas)에서 왔습니다. 치아파스는 과테말라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멕시코의 최남단 주입니다. 영화 아포칼립스 촬영지가 있는 지역입니다. 아포칼립스(Apocalypse) Passion of Christ를 제작했던 멜 깁슨(Mel Gibson)이 제작한 영화입니다. 학생들은 순박했습니다. 스쳐 지날 때마다 허리까지 숙여 인사했습니다. 얼굴만 약간 검지, 생김새는 한국 사람처럼 생겼습니다. 진지했습니다. 사관학교처럼, 방학 때를 제외하고는 학교 안에서 4년을 보냅니다. 매일 새벽예배가 있습니다.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사회하고 설교하고 기도인도합니다. 식사시간에 줄을 서서 찬양하는 소리는 하늘 높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들이 4년 동안 공부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교회를 세우고 목회하는 것입니다. 멕시칼리는 사막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사막의 일부입니다. 흙먼지 바람이 붑니다. 생각했습니다. 지구의 미래는 문명국이 감당할 것인가? 아닙니다. 자연과 더불어, 순수함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감당할 것입니다. 이들을 불러내셔서 말씀으로, 은혜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온 세상이 변하고, 악에 물들게 될지라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통해 역사하실 것입니다. 문명은 사라집니다.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벌이 사라진다! 벌이 없어지면 농산물을 거둘 수 없다는군요. 셀폰 같은 전자파가 벌을 사라지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문명 아닌 곳에 사는 곳에서 벌이 삽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습니다. 문명이 사라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결국 가난한 나라, 가난한 사람이 소망입니다. 누가복음에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는 주님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가난한 나라 멕시코, 흙먼지가 안개처럼 내려오지 않는 나라 멕시코에서 나는 배웠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영원합니다. 말씀에 분명합니다. 인생은 죄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았습니다. 죽은 자 되었던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했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써 우리가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셨습니다. 부귀도, 명예도, 모든 것도 다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생명도 내려놓으셨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이로써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나는 이번 선교여행에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워야 합니다. 지키려고 하면 잃습니다. 그러나 잃기로 하면 지킬 수 있습니다. 생명의 원리입니다. 생명을 얻으려고 하면 잃습니다. 생명을 버리려고 하면 얻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 법칙입니다. 죽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마음이 편안하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지키려고 하면서 쌓아놓은 것은 모래성 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기로 한 것은 모든 것 중의 모든 것입니다. 나는 아나운서가 되려다 말고 목사가 되기로 한 젊은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나운서는 어두운 소식을 더 많이 전하는 사람입니다. 목회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멕시코 멕시칼리는 사막도시 입니다. 콜로라도 강이 흘러가면서 살려낸 도시 중 하나입니다. 이 강물은 죽기로 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막 한 가운데서 죽임으로써 수많은 생명을 살려냈습니다. 콜로라도 강물을 생각하다가, 십자가에서 흘러내린 예수님의 보혈을 생각했습니다. 나는 멕시칼리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왜 주님께서 사막으로 나가셨습니까? 왜 세례요한이 사막에서, 빈들에서 외쳤습니까? 미드바르! 사막에서 말씀이 납니다! 정글에서 사막으로 모여든 학생들이었습니다. 저들의 눈빛은 빛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떨면서 나아갔습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우리를 불러모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모였다가 결국 흩어져 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였을 때 하나님의 교회 를 형성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세상이 버린 건축자의 버린 돌 을 중심으로 우리가 뭉쳤을 때입니다. 이제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파송하시면, 우리는 새로운 사명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생명의 법칙은 버리는 데 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이 평안한 데 이르러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습니다. 이 세상에 대하여 죽습니다. 정욕에 대하여 죽습니다. 욕심에 대하여 죽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 으로 살아날 줄을 믿습니다. 힘을 냅시다. 우리는 이 세상의 가치를 따를 이유가 없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말합니다. -너는 실패자다. 너는 실패했으므로!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사람이라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나는 이번 교육선교를 통해서, 부정적인 말을 입 밖에도 내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모든 말은 열매를 맺는 법입니다. 주님의 은혜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입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능력입니다. 사막에 강물을 내시는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막을 변화시키는 말씀 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나는 금문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여러분이 염려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모든 일을 이루시는 주님을 찬양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인생의 사막에서 승리의 깃발을 꽂으며, 주님께 영원한 찬양을 드리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나는 이런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의 삶에 은혜와 기쁨이 충만하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고 나아갑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는 다시는 죄에 대하여 종노릇 할 이유가 없습니다. 죄와 나의 관계는 죽은 관계 입니다. 의에 대하여 산 나는 의에 매여있습니다. 의와 나의 관계는 나는 의롭다! 입니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이기리로다. 아멘. 이것이 욥이 끊임없이 추구한 영적인 진리입니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것입니다. 죄 사함 받은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이제 말합니다. 온 세상에 대하여 할 말이 있습니다. 나처럼 당신도 자유합니다. 나처럼 당신에게도 주님의 사랑이 임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u 제7장

하나님의 법 vs 죄의 법 로마서 7:1-25 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라.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하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9.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법이란 무엇입니까? What is law? 오늘 나는 법 에 대하여 말씀을 나눕니다. 우리교회에 법 전문가들이 몇 분 계시니까, 조금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미 가지고 있는 전문지식이 성경이해에 조금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1절. 법은 그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만 그 사람에게 구속력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죽으면, 법적 구속력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인터넷 검색 내용입니다: <민법 제 3조>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 죽은 사람에게도 법적 권리를 부과한 예가 있었습니다. 백골징포 (백골징포)라고 했습니다. 조선시대 국법에 만 60세가 되면 사망자와 함께 군역을 면했습니다. 그런데 부패한 관리들이 죽은 자들의 이름을 그대로 올려 세금을 걷었습니다. 혼인관계법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에만 구속력이 있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재가( 再 嫁 )할 수 있습니다. 이 판례법은 성경에 근거합니다. 하나님의 법 vs. 죄의 법 하나님의 법을 섬기는 마음이 죄의 법을 섬기는 육신을 이겨야 합니다. 이 싸움은 영적 싸움입니다. 사람이 육신으로 살면 망합니다. 영으로써 육신의 정욕을 이겨야 합니다. 바울이 예를 든 것은, 부부관계입니다.

아내가 남편이 살아있다면, 남편의 법에 매입니다. 남편의 아내입니다. 따라서, 다른 남자에게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남자가 죽었다면, 여자는 자유합니다. 어떤 남자에게 가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이 예를 통해서,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육신의 법 이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 에게 갈 수 있습니다. 다른 이=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 예수 그리스도.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가서,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써 율법을 완성했습니다. 따라서 율법의 조문에서 벗어났습니다. 예를 들면, 제사법 같은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는 5대 제사를 레위기 1-7장의 묘사대로 드리지 않습니다. 육신으로 살 때는 율법에 매입니다. 율법의 아래, 율법을 지켜야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육신이 죽고 영으로 살게 되었으니, 율법을 자유함으로 지키게 된 것입니다. 즉, 육신에 따라 억지 가 아니라 즐거움 으로 지키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변하고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계명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계명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계명으로 살아야 하던 때는 죽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으므로, 예수님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님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갈라디아서 2:20

나는 십자가로 죽었습니다. 따라서 죄가 나를 더 이상 주장할 수 없습니다. 나는 죽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는 죄의 법이 나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사탄은 나를 백골징포 하려고 합니다. 내가 미련하다면, 내가 지혜가 없다면 속아 넘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셨다. 대신이라는 말은, 우리 자신이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따라서, 죄의 권세는 나와 관계가 없습니다. 나는 이미 모든 값을 다 지불했습니다! 아멘! 누구도 백골징포 할 수 없습니다.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만난 사람!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 이 사람은 결코 옛날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Therefore, if anyone is ins Christ, he is a new creation; the old has gone, the new has come! 고린도후서 5:17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흘러가 버린 물입니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죽었습니다. 따라서, 이전에 주장하던 죄의 법 은 시효( 時 效 )가 끝났습니다. 白 骨 徵 布 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나를 살리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드릴 가장 큰 것은 예배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예배인간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기쁨을 날마다, 모든 삶 속에서 누리시기 바랍니다. u 제8장 성령의 법 로마서 8:1-17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정죄는 마귀가 합니다. 이제 마귀의 권세는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성령의 법(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이 우리를 해방 시켰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는 죄와 사망에 대하여 죽은 사람 입니다. 죄와 사망은 우리를 징세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인 입니다. 복음으로써 우리는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3. 율법의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연약합니다. 율법의 육신을 따르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죄를 해결하기 위해, 당신의 죄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의 모양을 입고 이 땅에 오게 하셨습니다(성육신). 그리고 죄를 이기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는 더 이상 육신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영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율법의 요구 를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생각해 보십시오. 원리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합니다.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늘 생각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왜 그럴까요? 육신의 생각을 따르면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고,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만일 우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면, 우리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지만,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 곧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그리스도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 곧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우리는 분명히 빚진 자입니다. 그러나 육신에서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습니다. 탐욕 분노 정욕 이기심 그러나 영으로써 육신의 행실을 죽이면 삽니다. 자아를 죽여야 합니다.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우리가 성령님 의 인도하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다시 받지 않습니다. 악령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양자. adopted child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아빠, 아버지 라고 부릅니다. 아빠! 이는 친밀한 호칭입니다. 우리는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성령님께서 친이 우리 속에 있는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인 것을 증언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한다면, 함께 고난 도 받아야 합니다.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 고난을 받으라! 고난을 위한 고난이 아닙니다. 이는 영광을 위한 고난입니다. 주제: 우리는 하나님의 영의 법으로 인도함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영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육신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생각이 중요합니다.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어떻게 버릴까요? 성령님 께 의지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지난 주 중에 어떤 청년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세주시라는 것 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 다 압니다. 그런데 삶에 변화가 없습니다. 늘 같은 고민입니다.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의 내용을 들어보면, 결국 자기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자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잘못된 생각을 버릴 수 있을까요? 현장: 생각을 지배하는 것은 현장 입니다.

교회의 현장, 예배의 자리, 찬양과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생각을 지배하는 현장 현장으로 나아가라! 백문이 불여일견 사진이나 비디오보다도 가서 보아야 합니다. 자녀 교육법 여행을 시켜라. 자녀만 아닙니다. 여러분 스스로도 교육시켜야 합니다. 여행을 하십시오. 선교 mission 가라! 보내라! 가능하면 가야 합니다. 선교현장에 가십시오. 가능하면 거기 오래 머물면서 현장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히십시오. 선교 선교 현지에 나아가 봐야 합니다. 콜롬비아! 콜롬비아를 다녀오면 정말 놀랍게 변합니다. 선교현장에 다녀와야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어떤 현대중공업 다니는 분은, 지난 15년 동안 매년 휴가를 얻으면 아프리카로 온다고 했습니다. 휴가를 단기선교로 사용한다! 극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세계를 품는 그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는 온갖 허드렛일을 합니다. 물건을 나르고, 페인트를 칠합니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주님을 만나뵙는 것입니다. 육체의 고난: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육체의 고난도 중요하지만, 영적인 고난이 중요합니다.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종은 고난을 피합니다. 그러나 자녀는 고난을 선택 합니다. 기왕에 받을 고난이라면 자녀 로서 받읍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Enter through the narrow gate. For wide is the gate and broad is the road that leads to destruction, and many enter through it. But samall is the gate and narrow the road that leads to life, and only a few find it. 마태복음 7:13-14 좁은 문을 선택 하라! 억지로, 할 수 없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고생, 고난, 눈물을 선택하라! 이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선택하라! 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is who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Blessed are you when people insult you, persecute you and falsely say all kinds of evil against you because of me. Rejoice and be glad, because great your reward in heaven, for in the same way they persecuted the prophets were before you. 마태복음 5:11-12 이것은 8복의 총정리입니다.

9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8복의 총정리가 곧 예수님을 위한 고난 입니다. 디모데를 강한 군사로 훈련시키기 위한 바울의 편지를 봅니다.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Timothy, my son, I give you this instruction in keeping with the prophecies once made about you, so that by following them you may fight the good fight, holding on to faith and a good conscience. Some have rejected these and so have shipwrecked their faith. 딤전 1:18-19 이와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Deacons, likewise, are to be men worthy of respect, sincere, not indulging in much wine, and not pursuing dishonest gain. 딤전 3:8 집사들을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A deacon must be the husband of but one wife and must manage his children and his household well. Those who have served well gain an excellent standing and great assurance in their faith in Christ Jesus. 딤전 3:12-13 For physical training is of some value, but godliness has value for all things, holding promise for both present life and the life to come 딤전 4:8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으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But you, man of God, flee from all this, and purse righteousenss, godliness, 럄소, love, endurance and gentleness. Fight the good fight of the faith. Take hold of the eternal life to which you were called when you made your good confession in the presense of many witnesses. 딤전 6:11-12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So do not be ashamed to testify about our Lord, or ashamed of me his prinsoner. But join with me in suffering for the gospel, by the power of God.

딤후 1:8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낭를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For which I므 suffering even to the point of being chained like a criminal. But God's word is not chained. 딤후 2:9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Flee the evil desire of youth, and pursue righetousenss, faith, love and peace, along with those who call on the Lord out of a pure heart. 딤후 2:22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But you, keep your head in all situations, endure hardship, do the work of an evangelist, discharge all the duties of your ministries. 딤후 4:5 결론: 우리는 죄의 법에서 벗어났습니다. 우리를 지배하는 법은 생명의 성령의 법 입니다. 그러므로 자유인입니다. 밝고 건강하게 살아갑시다. 은혜와 기쁨으로 살아갑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읍시다. 고난의 훈련을 피하지 말고, 도리어 즐거이 선택 합시다. 고난의 훈련을 순종합시다. 강한 자가 되십시오. 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리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For God did not give me a spirit of timidity, but a spirit of power, of love and of self-discipline. 딤전 1:7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을 섬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생명의 법을 섬깁니다. 우리에게 이 새로운 법 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를 움직이는 논리 는 세상적이지 않습니다. 강하고 담대하여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세상에 취하거나, 세상에 져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습니다. Therefore, there is now no comdemnation for those who are in Christ Jesus, because through Christ Jesus 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set me free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 로마서 8:1-2 소망 로마서 8:18-27 없도다.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지금 우리는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좋은 곳이라는 생각, 이것은 바른 깨달음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고통입니다. 여기서 영원히 살고 싶다는 소망, 이것은 바른 소망이 아닙니다. 그러나 장차 받을 영광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분명히 소망이 있는 미래 가 있습니다. 지금의 고난의 무게에 비하면, 미래의 영광은 훨씬 더 크고 놀랍습니다. 단순히 현재의 고난의 마이너스 값을 플러스로 바꾸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이 마이너스 10이라면, 미래는 플러스 100쯤 되고도 남는 것입니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 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는니라. 하나님의 아들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림입니다. 일반 피조물 뿐 아니라,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부활의 소망)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기다리는 것이 있습니다.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입니다. 구원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모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얼마나 간사합니까? 얼마나 큰 죄인입니까? 더럽고 추하고 악합니다. 이런 인간이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고 기다리고 바라지 않는다면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어디 있습니까? 사람이 사람 된 것은 그가 소망 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소중한 것은, 그가 소망하는 것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평가받을 때, 그가 누구인가? Who he is? 아니면 그가 무엇을 가졌는가? What he is?가 아니라 그가 무엇을 바라는가? How he looks for?로 평가되는 것입니다. 것을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군대 있을 때, 보초 설 때, 이 문장을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 군인들이 서로 얼굴을 보면서 암송했습니다. 군인들을 기다림이 있어야 합니다. 답답한 마음으로 끝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시편 130편입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시리즈 15편 중 하나입니다. 부르짖음 주를 경외 기다리며 바람 기다림, 기다림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그가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기다림 바람 이상과 같이 적어도 8회 이상 기다림 이 들어 있습니다. 깊은 곳에서 out of depth! 인생의 가장 깊은 곳에서 부르짖는 이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 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 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따라서 성령님의 힘을 입어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성령님에 충만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자기의 감정대로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갑니다. 언제나 겸손하게 주님을 바라봅니다. 기다림입니다. 로마서 본문에서 우리는 12개의 기다림 을 읽습니다. 기도는 기다림입니다. 간구는 기다림입니다. 사랑할 때도, 쫓아가는 사람이 이기는 줄 알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끝내 이기는 법입니다. 사람은 기다릴 줄 모르기 때문에 사랑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캘커타에서 80대 노인 두 명의 결혼식 10대 때부터 사랑했지만 양가 반대. 결국 성혼 아내는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좋은 아내는 기다림의 사람입니다. 망부석. 그 기다림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기다림의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기다림의 여인이었습니다. 한나는 기도로 기다림으로써 아들 사무엘을 얻었습니다. 남편도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집 나간 아내 고멜을 기다린 호세아는 좋은 남편이었습니다. 목회자는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교사도 기다립니다.

기업가도 기다립니다. 이 세상 누구도 기다림 에서 성공과 실패를 결정합니다. 기다림은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고난과 좌절, 실패와 눈물, 죽음과 파멸을 이길 수 있는 힘은 기다림입니다. 기다림 성령님에 충만하지 않으면 기다림 자체를 즐길 수가 없습니다. 좋은 것은 기다림 없이 오지 않습니다. 나무를 심고, 열매를 기다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인스턴스! 즉각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건강식품 이 아닙니다. 건강식품은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줄을 길게 서는 식당. 분명히 몸에 좋은 음식을 주는 식당입니다. 구원을 기다립니다. 인생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은 절망입니다. 하루하루 생각해 봅시다. 자기 인생이란 얼마나 절망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다리게 하시고, 끝내 얻게 하십니다. 아프리카의 에스페란사! 기다림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예수님의 초림을 기다린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재림의 때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바르게 맞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열 처녀 비유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기를 때 기다려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기다림의 끈기를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님을 생각합니다. 태교부터 시작해서 우리를 기다려 주신 분들입니다. 손수건을 가슴에 달아주고 학교 보내놓고 마음 졸이면서 기다렸습니다. 찬 바람 부는 날, 내다보면서 기다렸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미리 나가서 떨면서 아들딸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손 잡고 함께 걸어서 집으로 갔습니다. 이런 기다림으로 오늘 우리가 있습니다.

가정은 기다림의 공간입니다. 서두르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놓고 기도하면서 꿈을 꿉니다. 이런 집이 소망이 있는 집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무엇보다도 구원 을 기다리기를 바랍니다. 돈이나 집이나 직장이나 명예를 기다리지 않고 오히려 구원 을 기다리기를 바랍니다. 영혼구원의 중요성을 알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성령님에 충만할 때 가능합니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성령님에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 로마서 8:31-39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갈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이 질문은 좋은 질문입니다. 가슴에 품고,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질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편 27:1 다윗의 시입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University of Fort Hare는 교훈이 In lumine tuo videbimus lumen 입니다. Latin어인데, 그 뜻은 "In Thy light we see light"입니다. 하나님의 빛에서 우리가 빛을 봅니다. 사람이 어둠에 있을 때 두렵습니다. 빛이라면 두려울 이유가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빛입니다. 그분은 나의 구원이십니다. 아멘.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편 27:4 솔로몬이 지혜 를 구했다면, 다윗은 성전 입니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시편 27:5 성전이 안전합니다. 성전이 피난처 요, 산성 이며, 도피처 입니다. 기도하러 나오십시오. 예배 때마다 놓치지 마십시오. 우리는 성전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홈그라운드의 잇점 모든 전쟁은 홈그라운드여야 합니다. 징기스칸이 전쟁에 승리했다고 하지만, 그의 전투는 실패 를 언제나 전제한 살육 이었습니다. 모든 전쟁은 적을 홈그라운드로 끌어들여 하는 전쟁이어야 합니다. 러시아를 공격했던 나뽈레옹이 실패한 것을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홈그라운드는 교회입니다. 모든 영적 전쟁은 교회에서 이깁니다. 이것이, 우리가 선교지에서 교회를 세우는 목적입니다.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설립한다고 해도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선교는 사회사업 구호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비난 받고, 서구교회가 주저앉고 있지만, 교회가 소망이요, 교회가 대안입니다. 콜롬비아, 중국, 멕시코, 아프리카의 교회는 오늘 이 시대와 내일의 소망이 무엇인지 증거합니다. 원수 마귀의 승리는 무엇입니까? 원수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대적해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원수 마귀가 승부를 건 것은 인간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놓는 것 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떨어진다면 그는 승리한 것입니다. 그러면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을 시험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가는 사랑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2. 사람을 시험하여,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가 이 두 가지 중에 어떤 것을 사용한다고 생각합니까? 두가지 다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시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시험했습니다. 마태복음 4:1-11에 나타난 세 가지 시험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하도록 시험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탄을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둘째로, 사람을 시험했습니다. 오늘 나온 모든 내용입니다: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이 일곱가지로써 원수 마귀는 우리를 종일 죽임을 당하게 하고, 우리는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깁니다. 우리의 힘으로써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깁니다(롬 8:37). 아멘! 이러므로, 원수 마귀는 다시 두 번째 공격을 합니다: 사망, 생명, 천사들, 권세자들, 현재 일, 장래 일, 능력, 높음, 깊음, 다른 어떤 피조물 등. 열 가지입니다. 이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포기하고, 떨어져 나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계획은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누구십니까?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분이십니다. 십자가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습니다. 우리의 소망을 위하여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승천하셨지만 보혜사 성령님을 약속대로 보내주셨습니다. 장차 온 세상을 심판하실 재림주로 오실 분이십니다. 이 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확증 되었습니다. 누구도 그 사랑을 끊어낼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이나 지혜로는 상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써, 우리는 승리하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를 물리치는 것입니다. Prodigal God 탕자를 기다리시고, 탕자를 영접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비난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비난하는 자가 있으니, 큰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비난하면서 두 가지 효과를 가져옵니다. 1.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2.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탕자를 시험합니다. 내가 잘못 왔구나! 나의 귀향이 아버지께 누가 되고 말았구나! 이런 생각으로 다시 두 번째 집을 나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우리에게서 끊어지지 않습니다. prodigal 모든 것을 다 바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탕자가 거짓을 위하여, 창녀에게, 술을 마시면서, 나쁜 친구들과 모든 것을 다 탕진 (prodigal)해 버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죄인 중의 괴수인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모든 귀한 것 중의 귀한 것, 곧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 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온전하고 완전하게 다 탕진 (prodigal)하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죄에 완벽하였고, 주님께서는 구원에 완벽하셨습니다! 인간만 보면 마귀의 승리는 장담할 수 있습니다. 따 논 당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보면, 마귀는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오늘 로마서 8:31-39가 바로 이 사실을 지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마귀의 세력도 결코 승리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의 열심입니다. 하나님의 그 뜨거운 사랑, prodigal love는 결코 건드릴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점이 귀합니다. 마귀의 칼 끝은 우리의 연약함을 겨냥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께서 계십니다. 우리는 약하나 예수님은 권세가 많으십니다.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완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복음 5:48 온전함. 이것은 사탄이 비집고 들어올 빈 틈을 보이지 않음 입니다. 어떻게 우리 연약한, 죄 많은 인간이 그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함으로써 가능합니다. total dependance! 절반은 의지하고 절반은 independent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전한 의지!

마귀는 우리에게 스스로 일어서라! 고 주문합니다. 스스로 하나님이 되라고 말합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세기 3:4-5 이렇게 유혹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유혹의 궁극적 내용은, 하나님께로부터 분리 되어, 스스로 독립 하라는 것입니다. 곧 -S"입니다. 그러나 속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의지하는 한, 하나님께 붙어 있는 한, 곧 +S"인 한, 우리는 끝내 승리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8:31-39이 여러분에게 궁극적인 소망이 되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3:16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u 제9장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긍휼 로마서 9:1-18 1-2.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10.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 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야곱은 이스라엘 입니다. 본래 큰 자는 에서 입니다. 순서대로 하자면 하나님께서 에서를 선택하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셨습니다. 왜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습니다.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이것은 사람이 원한다고, 달음박질한다고,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으로 말미암습니다. 곧 하나님의 마음이 닿는대로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당신께서 원하는 자를 완악하게 하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이루실 줄을 믿는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이루실 줄을 믿었습니다. 그는 천사와 씨름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어야 한다고 믿은 것입니다. 오늘 영적 이스라엘 은 누구입니까? 육신의 혈통이 아닙니다. 8절입니다: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영적 이스라엘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녀가 된 사람들, 곧 크리스찬 입니다. 지난 2천년이라는 오랜 역사 속에 유럽이 크리스찬 문화 를 이루었습니다. 유럽 외의 모든 나라는 비 그리스도교 문화 였습니다. 유럽 중심으로 아시아를 동방(오리엔트)이라고 불렀습니다. 아시아만 아니라, 남미와 아프리카가 모두 무시되었습니다. 세계 6대주 중에 남미,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를 식민지 입니다. 지난 세대에 피식민통치를 경험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가난하고, 문명사회에서 떨어진 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교의 대상국이 되었습니다. 우리교회가 선교하는 나라 중에, 남미의 콜롬비아, 아프리카의 르완다-우간다, 아시아의 중국-북한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확실히 가난합니다. 식량 식량을 지원해 주어야 합니다. 물 좋은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오염된 물을 마시고 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계인의 평균수명을 조사한 두 기관의 통계에 따르면 르완다의 평균수명이 46세, 혹은 50세입니다. 아프리카에 평균수명이 40세 미만인 나라가 두 개나 있습니다. 대체로 영양 문제이며 질병 문제이기도 합니다. 질병에는 오염된 물이 주범입니다. 학교 좋은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선 미국이나 한국 같은 선진국에 나가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돌아가서 아프리카의 발전을 위해 헌신할 일군을 양성해야 합니다. 실제로 한국에 여러명이 나가서 공부하고 돌아왔습니다. ATS의 재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무엘은 한국의 한동대학 출신입니다. 지금도 여럿이 한국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원자도 여럿 만났습니다. 한명은 미국에 와서 공부할 계획입니다. 내년에 오려고 준비합니다. 병원 좋은 병원시설이 없습니다. 의사도 지원받아야 합니다. 이번에 백인 의사 부부를 만났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그들은 일생동안 아프리카에서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슈바이처 를 본 것입니다. 정치적 안정

부정부패와 내전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아프리카의 미래를 어둡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프리카가 정치적으로 안정되도록 기도하면서 지원해야 합니다. 신학교육 무엇보다도 아프리카는 신학교육을 지원받아야 합니다. 목회자로 양성되는 과정이 너무 취약합니다. 신학교육이 없기 때문에 이단에 쉽게 빠져듭니다. 이처럼 아프리카는 지원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런 그들을 위한 지원 을 당연히 포함해야 합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우리가 배울 점!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중국-북한의 교회가 순수합니다. 아프리카 르완다-우간다의 교회가 열기가 뜨겁습니다. 남미 콜롬비아의 교회가 젊고 아름답습니다. 분명히 부족한 것이 있는 대륙들이고, 교회가 아직 건강하지 않습니다.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입니다. 그러나, 이 대륙의 교회들은 성장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개척하고, 여기저기에서 복음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무서운 속도로 교회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럽, 북미, 오세아니아의 교회들은 벌써 기력을 상실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이제 말세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말세에 믿음을 보겠습니까? 아프리카의 부흥과 선교열정을 보면서 도리어 도전을 받았습니다. 가르치고 도운 일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배우고 도전 받은 일이 더 큽니다. 따라서 이번에 나는 아프리카에서 보고 배운 것을 오늘 여기 샌프란시스코에 적용하는 데 더 큰 주안점을 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의 선교사역은 계속 아프리카에 집중하고 더 나아가는 대신, 샌프란시스코 지역 부흥과, 금문교회 성장에 한층 더 큰 뜻을 두기로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오히려 당연한 순서이기 때문입니다. 샌프란시스코는 영적으로 침체기에 들어서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가 영적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영적인 재충전이 필요합니다. 나는 그 필요성을 아프리카에서 배웠습니다. 르완다에서 11시간을 버스로 달려, 우간다에 도착했습니다. 훨씬 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버스가 라지에터가 고장나고, 타이어에 문제가 생기면서 가는 길에 여러 차례 버스가 정차했습니다. 그때마다 마을에서 아이들을 유심이 보았습니다. 신발도 없이, 옷도 갈아입거나 하지 않고,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곳곳에 서 있는 교회들마다 성장하는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우간다에서 예배에 참석한 교회는 생명력이 움솟았습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와 금문교회가 세계선교의 베이스캠프라고 생각합니다. 베이스캠프가 건강해야 합니다. 은혜와 사랑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선교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젖줄을 계속 공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메시지를 이렇게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오늘 나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샌프란시스코를 불쌍히 여기신다고. 하나님께서 금문교회를 불쌍히 여기신다고. 왜 에서가 아니고 야곱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 왜 하나님께서 샌프란시스코를 불쌍히 여기시고, 금문교회를 불쌍히 여기시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뜻을 나는 성경을 읽다가 깨달았습니다. 그 뜻을 나는 선교지 아프리카에서 성경을 가르치다가 깨달았습니다. 그 뜻을 나는 르완다와 우간다에서 전도집회에서 설교하다가 깨달았습니다. 아하, 이렇게 선교하는 것이구나! 아하, 이렇게 사람들을 모아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직접 전하는 것이구나! 이렇게 하면 샌프란시스코가 부흥하겠구나! 금문교회가 성장하겠구나! 영적 활기를 띠고 일어서야 하겠습니다! 영적 재충전의 때가 왔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 으로써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 우리 한민족, 이민자는 믿음으로 태평양을 건넜습니다. 나는 우리 금문교회가 성장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금문교회 성장을 원하십니다. 나는 분명히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회가 이 세상의 소금이, 빛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알았습니다. 도전 받았습니다. 아프리카까지 가서 배웠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마음을 열고, 기도해야 합니다. 함께 찬양해야 합니다.

아래층 친교실에 80여 장의 선교사진이 있습니다. 그 사진마다 해설이 들었습니다. 모든 해설들은 그 불쌍한 나라와 교회,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부르짖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없고 그들에게 있는 영적 순수함, 기도, 찬양, 기쁨, 은혜, 그런 것을 오늘 우리가 다시 성령님께 간구해야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선교지에서 배워야 합니다. 나는 배웠습니다. 이제 배웠으니 이제 실천할 때입니다. 교회가 새로워지고, 예배가 새로워지고, 찬양이 열기와 은혜가 넘쳐납니다. 로마서 9-11장은 이스라엘에 대한 장입니다. 바울은 그의 동족 이스라엘이 구원받는 일에 큰 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동족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예수님도 유대인들에게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교회의 가장 큰 박해자는 로마가 아니라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이스라엘과 유대인의 구원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육신을 따라 구원하지 않으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Yet to all who received him, to those who believed in his name,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Children born not of natural descent, nor of human decision or a husband's will, but born of God. 요한복음 John 1:12-13 아프리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피부색이나 문화, 언어의 차이를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 교회에서 설교하면서 그들이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하나님 안에서 형제들을 사랑하는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는 한 형제, 한 자매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밝히 말합니다. 나는 오히려 가난하고, 헐벗고, 불쌍한 저들에게서 배웠습니다. 나는 선생이 아니라 학생으로 거기서 돌아왔습니다. 도전받고 배웠습니다. 오늘 우리가 샌프란시스코를 부흥시켜야 합니다. 여기는 세계 모든 인종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인본주의가 팽배합니다. 인간의 이기주의가 가득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영적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남은자 로마서 9:19-33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 나의 어떤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에 따라서 구원 받습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입니다. 이 같은 사실을 놓고 마음에 평강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절대주권 칼빈주의 우리의 어떤 행위로 구원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 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취직할 때, 어떤 객관적인 기준이 있습니까? 스펙이 아무리 좋아도, 문제는 사주(오너)의 마음입니다. 구원의 길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준비를 잘 했어도, 주님의 뜻에 맞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을 구해야 옳습니다. 구원의 길을 가는 사람은 매일 주님께 여쭈어야 합니다. 주님, 제가 제대로 가고 있습니까? 날마다 여쭙고 또 여쭈어야 합니다.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고 또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영적으로 건강한가? 남은 자=남긴 자 하나님 편에서 볼 때 남은 자는 남긴 자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 외에 구원의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 대신 자기 자신 을 믿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구원의 길에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주로 쓰는 이론은, 등산 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신이 다 같은 신 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신이 산 꼭대기에 자리잡고 앉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그 신에게 가기만 하면 구원 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산을 올라 신에게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다 산을 오르는 좋은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로 다른 등산로를 오르지만, 결국 한가지 구원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 중에, 심지어는 목회자들 중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이런 잘못된 생각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간에게는 선함이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도 하나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선함이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야 구원이 있습니다. 만남 없이 구원이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본래 하나님을 향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죄인이 그러하고, 죄의 속성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아직 연약할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 그 사랑이 우리 구원의 유일한 이유입니다. 가톨릭은 인간의 행위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면죄부 같은 사건도 생겼습니다. 지금은 더 이상 면죄부를 팔지 않지만, 그 정신을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즉 행위로 구원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데레사 수녀 같은 선행 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핏 보면 가톨릭이 대단히 큰 일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얼마 전에 영화로 나왔던 울지마 톤즈 를 통해서 아프리카 선교에서 가톨릭이 단연 돋보입니다. 그러나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사역하는 놀라운 크리스찬이 많습니다. 행위를 구원의 조건으로 강조하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의 선행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의 구원의 어떤 역할을 맡는다는 생각은 놀랍게도 기독교 안에도 침투해 있습니다. 장로교회는 하나님의 절대의지를 강조합니다. 나는 내가 장로교인인 것과, 장로교회 목사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합니다. 심지어 구원이 예정되어 있다 는 예정설 을 주장합니다. 오해하기로는, 구원 받을 사람이 예정되어 있다면 구원받지 못할 사람도 예정되어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정이 아닙니다. 정리해 드립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기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어, 영생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 외에 다른 무엇도 전하지 않습니다. 나는 십자가 외에 다른 무엇도 자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힘쓰고 또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잘 영접해 드리는 것,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 그분을 믿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 잘 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이 좋아서,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이 좋아서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어린들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땅 끝까지 가서 선교하는 것은, 그것이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그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길 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주목하십시오. 십자가 외에 다른 길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끝까지 주님을 따르십시오. 주님의 길에 서십시오. 예수님은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온 세상을 사랑합니다. 원망도, 미움도, 시기도, 질투도 모두 버리고 주님의 편에 섭니다. 남은자 예수님의 길에 끝까지 선 자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남은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남은자는 그루터기입니다. 그루터기는 소망입니다.

거기서 새 싹이 납니다. 외쳐야 합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오직 십자가의 구원! 오직 하나님의 능력! 아멘. u 제10장 아름다운 발 로마서 10:1-2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였거니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아프리카 선교의 보고는 오늘이 끝이 아닙니다. 우리 속에 녹아있기 때문에 언제나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그 은혜와 그 감동, 그 기쁨과 그 감사를 우리는 금문교회 목회 속에 늘 뿜어낼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부흥 물결이 샌프란시스코 리바이벌로 연결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는 누군가 우리에게 전했으므로 들었고, 들었으므로 믿을 수 있습니다. 그 누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듣고 어떻게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입과 사람의 발을 사용하십니다. 절대진리인 성경책을 사람의 언어로 기록하게 하신 것을 보면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언어를 공부하고 우리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우리에게 말씀을 전달한 사람들은 아름답습니다. 이제 우리는 복음전도의 아름다운 발을 가졌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들의 언어를 공부하고, 그들의 역사를 배워서, 그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파해야 할 엄청난 사명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전세계를 상대로 선교하는 꿈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꿈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구원 받는 데 이르는 것이 비전입니다. 로마서는 제3차 선교여행 말미에 기록한 것입니다. 그는 당시 세계의 끝인 스페인으로 가려는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그 길에 그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성인 로마를 거치려고 했습니다.

로마 교회를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박해의 온상지였던 로마, 말하자면 호랑이 굴 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마보다 먼저 중대한 상대는 이스라엘 입니다. 유대인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였고, 그리스도인을 박해했습니다. 교회를 무너뜨렸고, 지도자들을 죽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바울을 죽이지 않으면 먹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40명도 넘었습니다. 로마에 가기 전에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먼저 보냈습니다. 우리는 주일마다 이 책을 읽고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로마서 9-11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이 누군가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합니다. 첫째로, 그들은 혈통의 이스라엘이라는 견해입니다. 둘째로, 그들은 영적인 이스라엘이라는 견해입니다. 이 두 견해는 각각 근거가 있습니다. 동시에 허점이 있습니다. 이번 설교를 통해 나는 새로운 견해를 제시합니다. 이 석 장 안에 들어있는 이스라엘 은 두 가지 identity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혈통의 이스라엘과 영적인 이스라엘입니다. 9장은 영적인 이스라엘을 강조했습니다. 육신이 아니라 믿음으로써 이스라엘 된 자들에 관한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주권 으로써 아브라함을 통해 육적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처럼, 절대주권 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을 영적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10장은 혈통의 이스라엘이 강조되었습니다. 그들은 전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들은 율법을 가진, 대단히 특별한 은혜를 입은 자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합니다. 진정한 복음의 메시지를 새로 들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발길의 아름다움 이 10장의 주제입니다. 나는 분명하게 전합니다. 육신의 자랑을 가진 사람들에게 영적인 은혜를 선포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대단히 중요합니다. 여기서 육신적인 이스라엘 을 특히 구원의 대상으로 삼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사도 바울의 노력과 기도를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 이스라엘은 유대인 들로서 예수님을 죽인 자들입니다. 초대교회 사도들과 교회를 핍박한 제1세력입니다. 결국 사도바울도 그들의 핍박으로 인해 순교한 것입니다. 로마 황제의 손에 죽었지만, 유대인들의 박해가 주원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원수를 사랑하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바울은 원수인 육적

이스라엘에게 복음전하는 아름다운 발걸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상황으로 적용합니다. 아프리카 르완다는 자기 형제와 자매들을 죽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눈을 감고 영의 눈을 뜨고 말씀을 선포합니다. 오래 신앙생활 했다는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목회자의 자녀라거나, 목회자의 형제라는 자부심은 복음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드는 껍질 역할을 맡습니다. 불쌍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선지자가 고향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수가 많습니다. 대접 받지 못하는 선지자가 섭섭해서가 아닙니다. 선지자를 대접하지 못하는, 그래서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향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하신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로마서 9-11장에는 이스라엘 이 두 가지 identity로 사용됩니다. 육적인 이스라엘과 영적인 이스라엘입니다. 9장-영적인 이스라엘 10장-육적인 이스라엘 11장-영적인 & 육적인 이스라엘 그 사람이 누구든지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누구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야 하는 점 에서는 동일합니다. 전하지 않고야 누가 믿겠습니까? 알려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이 소식은 좋은 소식입니다. 어떤 영화 어떤 전사자 형제의 소식을 알려주는 사람 이야기입니다. 어머니는 두 아들을 한꺼번에 잃었습니다. 그런 슬픈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좋은 소식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마을로 들어가 전합니다. 샬롬!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십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우리의 발은 아름답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빌립과 이디오피아 내시 이야기가 사도행전 8:26-39에 등장합니다. 성령님께서 남쪽으로 내려가 가사(Gaza)로 가는 길까지 가게 하셨습니다. 거기서 이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에게 가까이 가라, 하셨습니다. 빌립이 내시가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 보았습니다. 읽는 것을 깨닫느냐?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내시는 빌립을 청해 수레로 올라오게 했습니다. 여기서 빌립은 예수님을 가르쳐 복음을 전했습니다. 내시는 가다가 물을 만나, 세례를 받기를 청했습니다. 빌립은 말씀의 뜻을 모르고 성경을 읽던 내시에게 말씀을 풀어 전파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의 일입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물었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바울이 가르쳐 말했습니다.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했습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들이 듣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들이 듣지 않았더라면 성령세례를 알지도 못하고, 성령충만하게 받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듣고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해외에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은, 그들이 성경을 읽기는 읽어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사도행전은 이처럼 예수님께로부터 듣고 배운 사도들이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파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태복음 28:19-20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한 모든 것 그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전하는 좋은 소식 입니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구원받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최근에 나는 새벽예배를 위해 기도합니다. 새벽예배 정기멤버를 주시옵소서. 지금 우리는 매일 새벽예배 멤버와 토요새벽예배 멤버가 거의 고정 되어 있습니다. 나는 매일 새벽예배 멤버들을 고정시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매일 아침마다 얼굴을 대하고 예배드리는 성도들을 나는 원합니다. 카톡 얼굴을 훝어보는 것처럼, 여러분의 얼굴을 매일 떠올리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성도가 매일 새벽예배 멤버가 되겠습니까? 왕으로 기름부으려고 뿔에 기름을 채워가지고 이새의 집을 방문했던 사무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처럼, 저는 매일 아침 경험합니다. 아직은 없다. 그러나 기다려라. 내가 채우리라. 구원을 위한 기도, 중보기도자가 절대로 필요합니다. 구원을 위해 산을 넘는 아름다운 사람들, 절대로 필요합니다. 나는 새벽예배에 동참하는 여러분을 구합니다. 늦은 밤 형 인간에서 새벽 형 인간으로 생활 패턴을 바꾸십시오.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생각하기 전에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이 새벽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보기도 입니다. 사실, 새벽에 기도하면, 자기기도가 별로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씩 잊혀졌던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위한 중보기도를 새벽에 드리는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새벽기도로 영적인 권위를 회복하십시오. 저 사람은 새벽예배를 드리는 사람이다. 마귀가 놀라게 해야 합니다. 내가 건드렸다가는 곧 하나님께 이르고 말 거야. 저분은 새벽예배를 드리는 분이야. 사람들이 놀라게 해야 합니다. 때로 새벽예배 매일 드린다고 뭐 달라질 것 있어? 그렇게 말하지만, 때로 그래도 새벽에 기도하는 분이셔! 이런 태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존경받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쓸 데 없는 시비를 걸지 않습니다. 마귀도 한걸음 물러서는데 사람이야 닐러 무삼 하겠습니까? 육적인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핍박자였습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은 복음의 반대자였습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은 교회를 무너뜨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은 누구에게나 전파되어야 합니다. 땅 끝까지 가야 합니다. 더더구나 육적인 이스라엘처럼, 거짓된 자부심으로 가득한 교회의 원수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구원이십니다.

십자가는 능력이 있습니다. 지난 주 중에 젊은 청년 두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중 하나는 교회를 처음 나와 본 청년이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복음이 전파된 것을 감사합니다. 그가 미국 방문을 통해 교회를 찾아오게 된 것은 놀랍습니다. 헌금카드 기록 소개 그는 비행기표를 지불했지만, 정말 소중한 데 돈을 낸 것입니다. 나는 이 청년들이 주님의 놀라운 일군으로 쓰임 받게 된 것을 가장 기뻐하고 또 기뻐합니다. 복음을 전합시다.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전도는 귀하고 또 귀한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복음의 불길이 타올랐습니다. 복음 아니고는 상처가 치유되지 않을 것을 저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오신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아니고는 아무런 소망이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배드릴 때 가장 순수하고 깨끗합니다. 가장 아름답고 귀합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리바이벌을 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나는 그 음성을 듣습니다. 그렇다. 내 뜻이다. 내 뜻은 너희가 부흥하는 것이다! 이 음성을 듣고 또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확신하고 그 확신에 거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오늘 여기 전해야 하겠습니다. 콜롬비아 선교의 때가 다가왔습니다. 기도함으로 합력해 주십시오. 사람들은 금문교회는 대단히 큰 교회인 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작은 교회지만, 온 세상에 복음의 빛을 발하는 아름답고 귀한 교회입니다. 복음의 물결이 여기에서 퍼져나갑니다. 복음의 물결은 전도와 선교로 나갑니다. 따지고 보면 전도와 선교는 한가지입니다. 굳이 나누자면

금문교회에서 직접 나가는 음성은 전도 입니다. 금문교회에서 비행기를 타고 나가서, 거기서 퍼뜨리는 음성은 선교 입니다. 우리는 선교가 강한 교회입니다. 이제 전도가 강한 교회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를 복음의 불덩어리로 변화시켜야 하겠습니다. 성령님이 불길로 타오르는 샌프란시스코를 꿈꾸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모든 눈물과, 억압과, 고통과, 상처와, 시기와 멸시가 다 성령님의 불길로 타버리고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만 남는 참된 은혜의 해를 선포해야 합니다. 복음에 집중합시다. 모든 불순한 것을 태워버리는 성령님의 능력으로써 예수님의 십자가에 집중합시다. 우리의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태어나기를 아름답게 나서가 아닙니다. 복음으로 다시 났습니다. 거듭났습니다.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그 꽃을 들고 집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그 꽃을 들고 집으로 가서, 사랑하는 식구들 품에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메시지가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할 말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한국 사람들은 술과 골프 얘기 빼면 할 말이 없다고 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풍속도입니다. 우리는 사랑에 대하여, 화해에 대하여, 은혜에 대하여, 믿음에 대하여, 소망에 대하여 말해야 합니다. 열정이 없으면 이런 말을 낼 수가 없습니다. 이런 열정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생겨납니다. 샘솟듯이 솟아나는 은혜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는 발걸음이 달라집니다. 아름답게 변화합니다. 나는 여러분의 삶을 축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든, 복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샌프란시스코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합시다. 샌프란시스코는 동성애가 유명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사는 샌프란시스코는 부흥으로 유명해야 합니다. 은혜가 풍성해야 합니다. 놀라운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u 제11장 남은 자와 이방인 구원 로마서 11:1-24 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기록된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9.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는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 그들이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멸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 이는 혹은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짇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23.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이스라엘의 선택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이방인 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등불 역할을 감당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문제는 이스라엘입니다. 등잔 밑이 어둡습니다. 목수가 집에 쓸 도마가 없습니다. 대장장이 집에 식칼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가장 못된 짓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핍박합니다. 그러면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포기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남은 자 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겨두셨습니다. 나는 그 남은 자 가 유대인 크리스찬이라고 봅니다. 사도 바울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이방인 구원을 위해 쓰임 받고 있습니다. 온 세상 구원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11:25-36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말합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오해합니다. 구원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구별 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을 먼저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열어가셨습니다.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나왔습니다. 요한복음 4장.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육신의 혈통으로는 다윗의 자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세상에 구원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스라엘이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구원이 가장 어렵습니다. 이스라엘이 본래 맡았던 등대 역할은 남은 자 가 할 것입니다. 그것이면 충분 합니다. 이제 이스라엘 전체의 구원의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전체의 구원 문제는 다다음 주일에 말씀드립니다. 지금은 남은 자 이스라엘을 통한 이방인 구원으로 집중해서 말씀드립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그 많은 사람을 먹이는데, 큰 돈 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벼이어면 충분합니다. 남은 자 는 오병이어 와 마찬가지입니다. 적은 무리 작은 교회 하나님의 손에 들리면 충분합니다. 다윗의 물멧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구원을 거부합니다. 모두 망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로 남은자를 남기십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그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여기서 접붙임 의 은유(metaphor)를 이해합니다. 이방인들은 저들의 뿌리에서 잘려나와 이스라엘의 뿌리에 접붙여집니다. 이방인들이 구원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은 시기가 나서 시기가 하나의 동기가 되어 구원의 길로 들어설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고, 살게 되기를 바라시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편지는 로마서 로서, 이방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이방인들이 스스로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면서 동시에 바울의 동족인 이스라엘 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가지인 이스라엘을 아끼지 않고 잘라내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이방인인 너희들이 교만하지 말아서 잘려나가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선택과 불순종을 통한 버려짐이 이방인들에게는 하나의 좋은 교훈입니다. 그 교훈을 받아 이방인들이 든든히 서야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PK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교회에서 자라나면서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길로 빠져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 된 자가 먼저되어, 예수님 모르던 가정의 자녀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 받은 그들이 먼저 믿었던 자들의 구원을 위해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바울은 PK 출신입니다. 그리고 그 PK 가정들의 구원을 위해 비신자 출신 기독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전도설교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노인이나 젊은이나, 누구나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으로 살아났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죽었다가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생각을 예수님께 집중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은자로 역사하십니다. 힘이 없는 자, 연약한 자입니다. 강한 자는 사라지고, 제풀에 넘어집니다. 연약한 자가 남아서, 하나님의 손으로 새 역사를 쓰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누구에게나 역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피가 내 영적 혈관을 타고 흐르기를 원합니다.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 모두가 예수님의 생각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십자가를 만들고, 십자가의 그늘에 서서, 언제나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다 십자가의 그늘 아래로 초청하는 것입니다. 그 초청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청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심장 을 가지고 전파합니다.

구원 받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전파합니다. 그중에도 먼저 믿었다가 실족한 사람들도 당연히 포함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아름다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합니까? 나는 여러분이 말씀에 더 알아가며 구원의 놀라운 긴장 속에 자라가기를 바랍니다. 머물지 말고 성장해야 합니다.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습니다. 은혜 아래서 자라갑시다. 설교: 은사와 부르심 본문: 로마서 11:25-36 교독: 41 찬송: 149, 4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이스라엘이 불순종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도리어 이방인들에게는 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로마교회는 이방인들 교회입니다. 로마서를 수신하는 로마교회는 바로 이 사실, 즉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써 혜택을 받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 신비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이것이 어째서 신비입니까? 이스라엘이 우둔하게(마음이 강퍅하게) 된 것은 그 스스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바로 나 애굽 의 역할을 맡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지 않았습니까? 아이러니칼하게도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통하여 이방인이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인 로마교회 는 도리어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이스라엘의 구원 을 위하여 기도에 합력해야 합니다. 끝내 이스라엘도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이방인이 충분히 구원을 얻어서 이스라엘이 시기가 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방법입니다. 시기가 남 축구 종주국 영국을 꺾은 한국 태권도 종주국 한국이 메달을 가져오지 못할 때 목회자와 장로의 가정들이 평신도나 불신자의 가정에게 영적으로 밀릴 때 기존의 특권이 무시당하고, 시기심 이 일어나, 긴장하고 성장하면 좋은 일입니다. Back to Jerusalem 이것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인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앞당기려는 노력 아닙니까? 이스라엘-이방인 구도는 either or가 아니라 both and입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은혜입니다. 바울이 특히 이스라엘 을 언급한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핍박하는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두 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구별 없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힘을 써서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방해하고 핍박하고 믿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도가 망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믿지 않아서 그들이 끝끝내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이스라엘에게 부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이스라엘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스라엘이 반대하고 불신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방인 전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방인을 통하여 결국 이스라엘도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당구에서 뜨리쿠션(Three Cushion)이 있습니다. 직접 공을 치는 것이 아니라, 간접으로 돌아와서 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막는다고 하나님의 후회하심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자면,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지금 교회의 원수가 된 자들입니다. 그러나 택하심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조상 때부터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은 반대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은사와 부르심을 후회하실 일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우리는 믿음으로 된 가족입니다. 우리 중에 자녀문제로 고통을 겪는 분이 계십니까? 유아세례를 베풀 때, 우리는 이 점을 생각합니다. 그 아이가 깨닫고 주님을 고백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아이는 일평생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안된다고, 인간은 포기하는 수가 생기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온전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끝내 구원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끝내 이루실 것입니다. 오늘 여기서 우리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 얻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전도 하고 선교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디모데전서 2:4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열 개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All nations!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편견 을 버려야 합니다. 종족에 대한 편애를 버려야 합니다. 그건 죄악입니다. 끝내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저는 콜롬비아로 갑니다. 아프리카처럼, 콜롬비아를 사랑합니다. 금문교회는 사실 콜롬비아 선교가 주력입니다. 첼리타 할머니의 시집도 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콜롬비아만 아니라, 모든 나라를 사랑합니다.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닙니다. 그러나 해야 하므로 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 라. 마태복음 28:18-20 모든 민족. All the nations. 우리는 인종을 가리지 않고 땅 끝까지 달려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콜롬비아 선교를 위해 헌신하는 내용을 소개합니다. 존 월터라는 청년이 있습니다. 20대 후반입니다. 그가 버클리의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I-20 form을 발행하려고 합니다. 우리교회가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주고 있습니다. 가서 가르치는 일이 중요합니다. 아울러 와서 공부하게 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지도자를 양성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그랬습니다. 선교사들이 한국 땅에 왔습니다. 와서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을 해외로 불렀습니다. 미국에 영국에 독일에 학생들이 갔습니다.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날 한국이 세계에 우뚝 선 나라로 성장하게 된 배경은, 교육입니다. 그 교육의 장을 선교사들이 놓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서구가 이스라엘 처럼, 기존의 기독교 문명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기나는 시점입니다. 한국을 부러워 합니다. 그러나 한국도 이미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도 시기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예배를 보면, 아프리카와 남미의 교회들이 무섭게 성장하고, 예배가 뜨겁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서구가 시기가 납니다. 따라서 우리도 같은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교육해야 합니다. 와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 66권을 소중하게 여기고, 가르칩니다. 금문교회의 교육선교는 성경교육입니다. 아프리카에 있을 때부터 집필을 시작한 영어 책이 있습니다. 지금 250페이지 가깝게 썼습니다. 그 교재가 이번 콜롬비아에서 사용될 것입니다. 올해 안에 미국에서 출간되기를 바랍니다. 출간되면 아프리카의 여러 언어로 번역될 것입니다. 스페인어로도 번역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교회 강단에서와 성경공부 때 전해진 것들이 세상으로 전파되어 나갑니다. 직접 가서 강의로, 오게 해서 교육으로, 책을 써서 교재로, 이런 의미에서 우리 교육은 말씀교육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 구원의 역사에 쓰임 받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u 제12장 부흥을 꿈꾸는 예배 로마서 12:1-13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러분의 기도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주중에 저는 콜롬비아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주일 밤에 출발해서, 월요일 정오 조금 넘긴 시간에 보고타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우리가 지원하는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가로 6미터 세로 12미터의, 세상에서 정말 작은 교회에 속하는 사랑과 은혜교회 를 방문했습니다. 성도들을 기쁜 마음으로 만났습니다. 함께 기도하면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찬양드렸습니다. 후사가수가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서 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까지 모두 30시간을 강의했습니다. 모세오경이 과목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약 28명. 대부분 젊은이들이었습니다. 대개 사역자들이었습니다. 가까운 도시의 어떤 신학교 교수도 방문했습니다. 졸업생들도 몇 명이 참석했습니다. 우리가 특별히 지원하는 미겔 페르난데스 목사님도 만났습니다. 모든 강의가 녹화되었습니다. 사실 녹화 기계는 물론 누가 그 일을 감당해 줄 것인가, 우리는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떠나는 날, 기계는 마련되었는데, 두 시간마다 컴퓨터에 저장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강의에 집중해야 하는데, 참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짐을 싸는 마지막 순간에 결국 비디오 가져가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콜롬비아에서 돌아와서 비디오 앞에서 녹화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콜롬비아에 제가 가르치던 학생 중에 올해 2월에 졸업한 미겔 앙헬이라는 젊은이가 있습니다. 그는 전문 사진사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제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SPR을 실천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오랫동안 유원지에서 사진을 찍으며 살았는데, 이번에 어떤 일로 그만두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몇 년에 걸친 공사 끝에 두 달 전에 아파트가 완공되었고, 세를 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수입이 들어오기 시작한 시점이 정확하게 자기가 일을 그만두게 된 시점과 일치한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위에 계신 하나님의 섭리라고 했습니다. 이번에 강의를 녹화하는 일을 그가 전담했습니다. 유원지 일을 계속했더라면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또 다른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모두 8개의

DVD로 녹화해서 표지까지 깨끗하게 만들어 가지고 왔습니다. 이것을 내일 월요일 아프리카 선교사님에게 전달해 드릴 예정입니다. 사실 30시간 동안 비디오 앞에 앉아서 녹화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학생들과 교류하는 일 없이 실감나게 진행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참 하나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콜롬비아 선교로 아프리카 신학교 강의까지 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참 감사드립니다. 수요예배 때 후사가수가 장로교회에서 설교했습니다. 아주 특별한 은혜가 임했습니다. 10년 전, 지하에 셋방 살던 교회였는데, 지금은 큰 교회당으로 이전했고, 주일에 1부와 2부 예배를 드리는 중견교회로 성장했습니다. 제가 가르치던 윌리암 로드리게스 전도사님이 10년째 목회하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거의 다섯 차례 이상 수요예배 설교를 했는데, 이번에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 은혜의 내용은 부흥 이었습니다. 10년전, 처음으로 그 교회를 방문했을 때, 지하실을 내려섰습니다. 그때 짐승처럼 울부짖던 기도를 지금도 기억합니다. 태어난 지 6개월 된 아이가 지금은 열 한 살입니다.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그가, 헬라어와 히브리어 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목회자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둘 다 교회를 사랑하는 아이들로 잘 자라났습니다. 후사가수가장로교회는 주일마다 2부예배를 드립니다. 수요예배 때도 교회가 가득합니다. 지금 세 군데 지교회를 세웠고, 돌아가면서 예배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콜롬비아 선교여행이 특별히 저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금문교회에 놀라운 부흥을 안겨주는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합니다. 현재 우리교회가 세계 곳곳에 펼쳐가는 교육선교의 아름다운 장을 이번에 확증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교회가 크게 부흥하는 교회가 될 시기가 왔다고 믿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신 부흥이 반드시 이뤄지리라고 믿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부흥이 금문교회를 통해 이뤄질 것을 믿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로마서의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인 예배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하시고 기뻐하시며 온전하신 뜻이 곧 예배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곧 거룩함입니다. 나는 금문교회의 부흥이 예배회복 으로 오리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뜨겁고, 살아있고, 심령을 감화감찰하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선포될 때, 금문교회 예배는 회복되리라고 믿습니다. 회복된 예배의 금문교회는 반드시 부흥하리라고 믿습니다. 예배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밀려듭니다. 샌프란시스코를 부흥케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는 이 자리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 놀라운 비전을 품고 돌아왔습니다. 오면서 이번에는 정말 많은 기도와 묵상, 말씀읽기로 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참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나는 샘물처럼 솟아나는 기쁨의 예배를 드리는 금문교회를 비전으로 보았습니다. 이 자리가 차고 넘치는 비전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이뤄져야 할 주님의 뜻이라고 믿습니다. 부흥은 십자가 아래로 모이는 것 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해주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악한 습성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감정어린 대응방식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인생을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참 예배의 시간을 기다리고 사모하는 길입니다. 이런 부흥의 예배가 오늘부터 우리교회에 임할 줄 믿습니다. 가장 약한 자를 들어서 가장 강하게 사용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약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변명하지 않습니다. 솔직합니다. 하나님께 솔직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도 솔직합니다. 강한척 하지 않습니다. 발톱을 내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참 사랑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십자가 외에 자랑하지 않습니다. 은혜의 주님을 찬양하고 또 찬양합니다. 거룩하신 주님 앞에 경배드립니다. 예배의 시간을 사모하고 또 사모합니다. 결코 예배시간에 늦지 않습니다. 일찍 나와서 기도로 준비하면 할수록 은혜가 더한 것을 체험합니다. 나는 사자처럼 부르짖을 것입니다.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보고, 확신을 가지고, 은혜의 말씀을 전할 것입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이 세상은 시험이 많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길은 싸워야 할 영적 싸움터입니다. 한 걸음이라도 자칫하면 넘어집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간구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 되는 일이 없습니다. 요행으로 무엇이 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부흥의 때가 왔습니다. 애굽을 떠났을 때, 광야를 지났을 때, 이스라엘은 부흥이 왔습니다. 요단강을 건너면서, 돌 열 두 개를 강가에 쌓아 놓으면서 기억 할 내용을 삼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간증 입니다. 기억하고 기도하며,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승리하여 가나안 땅을 쟁취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온 맘과 온 영혼을 다 하여 주님께 경배드려야 할 때입니다. 모든 문을 활짝 열고, 우리 구주 예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말씀에 서서, 말씀 중심으로 교회가 우뚝 서 나갈 것입니다. 말씀을 믿습니다. 내가 확신하는 것이 있습니다. 부흥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반드시 이뤄질 것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나는 이사야의 말씀이 우리교회 부흥이라고 분명히 믿습니다. 기드온 300의 비전을 이루리라! 저는 기드온에게 주신 비전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비전이라고 분명히 믿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이것은 이뤄질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간구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샌프란시스코 이 땅에 주님의 부흥을 허락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14-21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박해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예배를 방해합니다. 그들을 축복하라고 했습니다.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요? 박해 받음으로써 우리가 더 낫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더 커지고, 교회가 더 깨끗해집니다. 온전해집니다. 기도를 더 하게 되고, 말씀을 더 사모하게 됩니다. 교회가 박해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핍박이 없을 때 내부에서 붕괴되기 마련입니다. 여러분, 인생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먹을 것이 늘 넉넉한 나라, 아프리카나 남미보다는, 추위가 극심해서 얼어 죽기도 하는 나라, 그런 나라가 사람들이 정신을 차립니다. 준비하고 노력하지요. 고난을 많이 겪은 사람들이 강합니다. 그들은 용서 를 바로 이해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인류학적인 통찰력으로 그치는 말씀이 아닙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 때는 많은 고난 이 있었습니다. 교회를 지키고 확장하는 선교에 많은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하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 자신이 많은 원수가 있었습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고, 무조건 바울을 미워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 예수님 때문에 박해 받는 경우에 국한한 말씀입니다. 우리 개인의 죄와 잘못으로 어려움을 겪지 말아야 합니다. 그건 피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 박해는 오히려 환영하고, 나같은 죄인이 예수님 때문에 박해 받는 일을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길입니다. 그제는 1994년 르완다 내전을 그린 영화 Shooting Dogs 를 시청했습니다. 아이들을 대피시키다가 살해당하는 신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트럭과 항공기로 탈출할 기회가 있었지만 거부했습니다. 자기가 목회하던 마을과 그 사람들을 버리고 떠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라면 그럴 수 있는가? 여러분, 내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지금은 비교적 안전해졌지만, 콜롬비아를 갈 때마다 품었던 질문이었습니다. 파스카는 게릴라가 점령한 마을입니다. 수요예배 설교를 맡았습니다. 출발 직전 보고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파스카가 위험하니 출발하지 말라는 경고였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선교사님의 질문에 침묵으로 대답했습니다. 파스카로 가는 30분 동안 얼마나 길고 길었던지요! 설교하는 내내 마음이 옥죄어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서면 목회자로서 나는 내 설교를 듣는 교인들과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을 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선교지에 나갈 때마다 나는 하나님께 내 가족과 교회를 맡겨드렸습니다. 지금 내 목회가 그렇습니다. 가까이 있던 어떤 목회자 가정은 목회자 부친을 병으로 잃었습니다. 전염병 도는 마을에 심방 가서 전염되어 죽은 것입니다. 목회자는 가족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목회자 뿐 아닙니다. 여러분이 선교지에 나간다면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사명을 받으면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도망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무기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악으로 오는 적군을 악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무기는 오직 선 뿐입니다. 그러므로 맞고 찔려 순교하는 것입니다. 고난이 우리를 오히려 강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것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군사가 되게 하시려는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가져오는 사람들, 소위 원수 들을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수들은 오히려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들입니다. 기도하게 하고 주님 앞에 무릎 꿇게 합니다. 아르헨티나 선교지를 다녀온 분 이야기입니다. 1년에 100만 불 버는 한인이 참 많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가 젊은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좋은 차를 사서는 주말을 기다립니다. 주말이면 그런 차를 타고 교회에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많이 생긴 시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성가대 봉사를 하며, 주일학교 교육을 위해 기도하는 대신, 그들은 자기의 향락을 위해 시간을 사용합니다.

고난이 없으니, 유럽교회가 텅 비었습니다. 한국교회가 텅텅 비어갑니다. 우리교회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문제가 없습니까? 문제가 있고, 고난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도하지 않는 것은 정말 더 큰 문제 아닙니까?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화목하라. 싸울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편에 서면 모두가 나를 돕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문제가 있습니까?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비온 후에 땅이 굳습니다. 고난의 시절이 지나가면서 인생이 굳어지고 단단해지는 것입니다. 풍란 아프리카에 있는 풍란이 콜롬비아에도 있습니다. 뿌리를 땅에 박지 못하는 풍란이 그렇게 아름답습니다. 아까 사진 보셨지요? 눈에 부시도록 아름다운 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을 때, 오히려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것입니다. 축복하라! 우리는 저주할 권리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축복합니다.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욥을 괴롭힌 친구들, 얼마나 고통스러웠습니까? 그러나 욥은 끝내 그들을 용서했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모두 화목했고, 모두 화해했습니다. 해피 엔딩! 결국 성도들의 길은 이런 해피엔딩입니다. 고난 중인 여러분, 주님의 축복을 빌어드립니다. 바울은 박해하는 유대인들을 복음으로 대했습니다. 십자가 이것이 선 입니다. 십자가는 이깁니다. 늘 이깁니다. 십자가로 대하십시오. 그리고 누구에게나 십자가의 사랑으로 다가가십시오.

이것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입니다. 욥을 생각하십시오. 친구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게 승리의 길입니다. 그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에게 승리를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u 제13장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로마서 13:1-10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 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주보광고를 보면서 설교합니다. 오늘 권위를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했습니다. 여기 권위는 세상의 권위 를 포함합니다. 조세를 받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도 다 주라고 했습니다.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빛 외에는! 그렇다고 해서 사랑을 빚 안 지려는 소극적인 태도로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라! 이 계명은 모든 율법의 명령을 다 포함하는 적극적인 계명입니다. 오늘 금문교회 주보를 보면서 설교합니다. 교회가 체계를 갖추어 나가야 합니다. 이제부터 제대로 합시다. 그동안 우리가 기도한 것이 안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안 이루어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다 됩니다. 오늘부터 주보의 내용을 자세히 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내용을 여러분의 기도에 포함시키기를 바랍니다. 기드온 300 비전을 놓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기도의 십일조 를 드립니다. 새벽예배에 30명이 참석합시다. 이것은 당장 가능합니다. 나올 만한 분을 추천 받겠습니다. 두 명이 추천하면 나오는 것입니다. 성가대에 30명을 목표로 합니다. 이것도 두 명의 추천을 받으면 성가대원이 됩니다. 수요예배는 주일예배의 과반수가 나와야 정상입니다. 수요예배는 삼일예배 입니다. 삼일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 시험에 들지 않기 를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주일과 주일 사이에 큰 사건이 터질 수 있습니다. 그걸 막기 위해서 삼일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의 순서를 맡은 성도는 당연히 토요 새벽예배 에 나와야 합니다. 하루 전 토요일 새벽에 나와서 마음을 주님께 다 드리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당연합니다. 그래야 주일에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받을 것 아닙니까? 사랑은 명령입니다. 율법이 명령이듯, 사랑은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해야 마땅한 것 아닙니까? 예수님을 사랑하는 길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성도들을 사랑하는 길, 바로 그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3:16 이 말씀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그린 말씀이 없습니다.

세상의 질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잘못된 정부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정부 상태로 끌고 가면서 투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질서를 지키면서 평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전입니다. 교회는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해 나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드온 300비전을 위해 우리는 준비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명령입니다. 샌프란시스코 복음화를 위해 우리는 기드온 300 용사가 필요합니다. 기드온 300 비전을 위해 우리는 활성화 된 교회 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우선 새벽예배부터 시작합니다. 새벽기도의 십일조 입니다. 그리고 수요예배 를 드립니다. 수요예배의 과반수 입니다. 성가대부터 시작합니다. 주일예배의 십일조입니다. 사랑=율법의 완성 율법은 사랑으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명은 사랑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라. 요한복음 14:15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한복음 15:9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15:12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13 사랑은 명령 입니다. 선택이 아닙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죽음 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사랑=삶 권세에 복종하라! 1. 세상권력-의무/양심 2. 하나님의 명령-사랑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 사랑의 빚은 져라! 사랑의 빚을 주라! 갚을 수 없도록 주라! 사랑은 악을 행하지 않는다. 악을 버리라.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예화. 맹인 신생아의 부모 아기를 업고 등반. 아기를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랑은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부모로서 자녀에게 행하는 가장 큰 악은 네가 부끄럽다 는 말입니다. 가장 큰 것은 네가 자랑스럽다 는 말과 태도입니다. 어떤 올림픽 선수 어머니 네가 2등 했어도 나는 자랑스럽다. 4년 후에 그가 금메달을 땄습니다. 남편으로서, 아내의 결함을 채워가는 사랑 연세대, 김중기 교수. 고쳐가며 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도망쳤던 어린양을 어깨에 둘러메고 돌아오시는 주님! 어깨에 둘러메고! 자랑입니다. 내 아들입니다! 내 딸입니다! 돌아온 탕자를 자랑스럽게 여기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십자가를 자랑합니까? 사도 바울은 나는 십자가 외에 자랑하지 않는다 고 했습니다. 모두 다 배설물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십자가를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는 갚을 수 없는 은혜 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갚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지난주일 헌금송을 주일 저녁 목사위임예배에서 또 들었습니다. 이번 주일에 나누라는 뜻인 줄 알고 나눕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갚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사랑의 빚 외에는 빚을지지 말아야 합니다. 물질의 빚 없는 삶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셨으므로 이루실 것입니다. 그 약속 믿고 기도하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로마서 13:11-14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시기는 언제입니까? 전쟁의 소문이 꼬리를 물고,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하늘에 닿습니다. 인권이 짓밟히고, 불안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언제입니까? 잠들어 있을 때가 아닙니다. 깰 때입니다. 막연히 잘 되겠지... 그런 태만이 금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구원의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가까웠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낮이 가까웠습니다. 밤이 깊으면 낮이 그만큼 가까운 법입니다. 언제까지나 밤이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둠의 일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빛의 갑옷을 입으면 밤에 속할 수 없습니다. 밤에 다니더라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밝은 빛이 빛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어둠에 속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는 소속이 다릅니다. 그의 소속은 빛입니다.

빛의 갑옷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했습니다. 빛의 갑옷을 입은 것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것이 같습니다. 그렇다면, 빛의 갑옷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으로 옷 입는다는 것은, 그의 생각과 행동이 예수님과 일치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의 영이 예수님의 영에 인도함 받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 생각 모든 것이 예수님 중심입니다. 문이 돌 때 축을 따라 돌 듯이, 우리의 회전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입니다. 이 시대는 어둠입니다. 이 시대의 문화는 어둠의 문화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시대를 본받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는 어떤 복음전도자를 만났습니다. 미국 사람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그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시간을 많이 들였습니다. 다른 종교에 대하여 관용하지 않는다고 비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지금 미국 사람들의 삶이 정상입니까? 그러면 복음은 왜 전합니까? 다들 제대로 살고 있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전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의 출발점은 문화는 존중해야 할 것이다 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문화가 아니면 그 문화는 수정 되어야 할 문화입니다. 성경은 이 시대는 어둠 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 어둠의 시대에서 어둠의 자식 처럼 살아야 되겠습니까? 그러면 서로 비판할 일도 없고, 그저 살아남기, 곧 생존이 최선이 되는 것입니다. 그게 맞습니까? 나는 신학대학원에서 문화와 선교 과목을 강의했습니다. 내 학생들 자체가 여러 인종이 섞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문화의 차이가 분명히 있습니다. 같은 문화 안에 세대의 차이도 있습니다. 선교의 전략적 차원에서 그런 차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고려하다가 꼼짝도 하지 못하고 목회가 그저 문화사역 으로 그치고 마는 수가 생깁니다. 이건 안 됩니다. 나는 CCSF에서 Multi-Cultural Bible Study를 인도했습니다. 버클리 성경공부 때도 여러 인종이 참여했습니다. 거기서 문화의 차이는

문화적 차이를 지나치게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업경영에서도 오히려 공통점 을 강조해야 합니다. 전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인터넷 세상이 되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공통점이 승부처입니다. 이런 점에서,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세상에 민감하지 마십시오. 세상은 그저 그런 것입니다. 아프리카나 남미나, 세상은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행복해야 합니다. 가정이 평안해야 합니다. 인간은 죄인입니다. 인간은 죄를 씻음 받아야 합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공통점 이 있습니다. 어둠에서 벗어나 빛으로 나와야 합니다. 이것을 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알아듣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문화적으로 설명 해야 한다고 문화강박관념에 사로잡히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문화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문화의 차이는 산일 수도 있고 강일 수도 있습니다. 사막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여기 머물러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시대, 이 문화는 어둠입니다. 문화를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문화를 극복 해야 합니다. 어둠에 속하지 말아야 합니다. 낮에 속한 사람답게 단정히 행해야 합니다.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 술, 노름, 도박, 그런 것은 안 됩니다.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 가정을 지켜야 합니다.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 평화를 지켜야 합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옷은 나를 가려줍니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던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나게 합니다. 피 흘림 없이 가죽옷이 가능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없이 예수님으로 옷 입는 일이 가능합니까? 예수님을 옷 입는 것은 부담 이 아닙니다. 창피 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랑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자랑하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을 선포하는 일에 가장 기쁜 사람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귀한 빛의 옷을 입으면 누가 누구를 빛내는 것입니까? 내가 옷을 빛냅니까, 옷이 나를 빛냅니까? 나는 목사가운을 입으면서 이 본문을 의지합니다. 가운 없이 강단에서 설교하는 것을 비하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나도 1부예배 때는 가운을 입지 않습니다. 다만 내 죄를 가려주시고, 옷 입혀 주신 주님을 늘 기억하면서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가운을 입으면 가운을 자랑하는 일입니다. 목사 안수를 받지 못하면 입을 수 없는 옷입니다. 이 옷을 입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말씀과 성례를 집례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보이지 않는 옷 을 입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을 자랑하십시오. -이 옷을 보세요. 얼마나 귀한지 아십니까? -참 귀하네요!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얼 먹으러 가든가, 무얼 보러 가는 일 대신, 하나님의 일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세상은 경쟁 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우리는 평화 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얻으신 것은 경쟁의 열매가 아니었습니다. 다 주고, 베풀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난 열매였습니다. 먼저 달린다고 해서 선착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화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를 전해야 합니다. 이 세상만 말한다면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천국 을 봅니다. 영원에서 영원을 보노라면, 이 세상은 순간 입니다. 순간이 달라야 얼마나 다릅니까? 인간은 거기가 거기입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남자도 여자도, 흑인도 백인도, 거기가 거기입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입니다. 모두 죄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모두 천국에 가야 합니다.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습니다.

이런 보편성과 공통성이 우리가 안고 살아가야 할 인간의 본질입니다. 이 세상은 어둠입니다. 미국도 어둠, 한국도 어둠입니다. 아프리카도 어둠, 멕시코도 어둠입니다. 이 어둠을 비출 빛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보편성입니다.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어느 민족에게나 어느 대륙을 가서라도 결국 우리가 선포하고 전해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정욕을 위해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예수님의 피값으로 주고 사신 몸입니다. 더럽고 추한 일에 집중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욕을 버려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의 삶을 주장해 주시옵소서. 방탕하지 않고 술 취하지 않으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않고, 다투거나 시기하지 않게 하옵소서. 빛의 갑옷을 입게 하옵소서. 악한 영의 화살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빛의 갑옷을 입혀 주시옵소서. 아멘. u 제14장 죽은 자와 산 자의 주님 로마서 14:1-12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에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초등학교 6학년 교실, 30년도 더 지난 옛날이야기입니다. 담임교사는 때가 많은 어떤 개구쟁이 아이의 가슴에 바보 라고 썼습니다. 그 아이의 회고담입니다. 나이가 60이 다 되었는데, 그는 그때 열두 살 때 기억으로 지금도 시달린다고 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다가도 나는 바보 아니야? 이 질문이 온 몸을 얼어붙게 했습니다. 사도바울의 권면입니다. 믿음이 약한 자라도 그는 주인이 계시다. 주인이 따로 계신데 함부로 그분의 종을 비판할 수 있느냐? 그 주인 앞에 어떻게 책임을 지려고 그러느냐? 또 말합니다. 너도 한 주인의 하인이다. 그 주인께서 네가 비판하며 사는 것을 옳게 보지 않으신다. 더욱이 너와 네가 비판하는 그 사람의 주인은 한분이시다. 이런 점에서 너와 그 사람은 한 형제 다. 어째서 그를 업신여기고 비판하느냐? 먹고 먹지 않는 것은, 레위기 11:1-47과 신명기 14:3-21a 등에 규정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거룩 하게 성별된 민족입니다. 거룩함을 유지하는 여러 영적 생활 중에 하나가 식생활에도 영적 긴장을 품는 것입니다. 거룩한 성도는 식물은 그런 구별조건이 없지만, 생물은 정결하게 구별된 것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생물을 크게 동물, 물고기, 새, 곤충 등 네 가지로 나누고, 각각 정결함의 기준을 두었습니다. 동물 중에서는 되새김질과 쪽발이 조건이었습니다. 물고기는 비늘이 조건이었습니다. 새는 어떤 특정한 조건이 없이 바로 정결한 새의 종류를 열거했습니다. 곤충은 발로 뛰는 것이 정결했습니다. 이런 규정의 근거는 건강이 아닙니다. 제사입니다. 모든 생물 중에 먹을 수 있는

구분이 있고, 모든 먹을 수 있는 중에 제물로 쓸 수 있는 것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먹거리 구분 근거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향한 발걸음입니다. 아십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로 사람은 누구나 어떤 동물, 물고기, 새, 곤충이든지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결하고 부정한 규정이 사라진 것입니다. 성도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거룩하게 되고 정결하게 되기 때문에, 동물, 물고기, 새, 곤충에 의해서 어떤 영향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성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아직 여기까지 이르지 못한 사람은 믿음이 연약합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통한 정결케 됨을 믿지 못하는 성도입니다. 그러나 이것 보세요. 그들이 그 믿음에 이르지 못했다고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업신여기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 약한 자들은 점차로 신앙이 자라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길러내신 방법도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의심했고, 서로 경쟁했으며, 깎아내렸습니다. 배반했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보고 부활을 경험했으면서도 도망치다가 옛날 갈릴리 바닷가로 다시 나갔습니다. 부르심 이전으로 돌아가 그물을 밤새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렇다고 주님께서 그들을 비판하시거나 업신여기셨습니까? 아닙니다. 도리어 사랑을 회복시키시고,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게 하셨습니다. 문제는 우리 주님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은 자에게 대하여 아무런 할 일이 없습니다. 산 자에 대해서는 정성을 기울일 수 있습니다. 믿음을 북돋아 주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지금 연약한 사람도 도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정교육이요 이것이 학교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먹으면 살고,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러나 먹고 마시는 것으로 인생이 다 결정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천국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먹는 일 외에 날의 구분 에 대해서도 믿음이 없는 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날 에 대하여 아직 확신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았으면, 모든 날이 다 복된 날 입니다. 그러나 아직 예수님을 만나기 전, 구원의 기쁨으로 자유하기 전, 구약의 규정에 따른 날들을 지키는 연약한 믿음이 있습니다. 유월절이라든가, 칠칠절 같은 날입니다. 또 안식일 같은 날입니다. 그런 날에 얽매이는 자는 약한 자입니다. 오늘도 무슨 흉일 기일 따지는 자는 아무래도 강한 자가 아닙니다. 강한 자는 언제나 항상 일정한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을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셨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영적 태도입니다. 그런데 약한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날 이 된 것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것 보십시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그들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1. 먹는 것과 2. 날을 지키는 일은 중요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전에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모든 생물을 다 먹습니다. 오늘 우리는 유월절, 칠칠절, 부림절 등에 구애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모이고, 언제나 기도드립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지키는 사람들이어서 예수님의 구원의 능력을 채 확신하지 못하는 자라고 할지라도 비판하거나 함부로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이 자라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14:4a)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서 남 은 주님입니다. 주님께서 그의 주인이신데 누가 감히 그분의 종을 비판합니까?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14:10a-b) 여기서 하인 이 형제 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같은 하인 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주님 아래 우리는 평등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고, 그렇게 하셔서 우리를 값으로 사셨 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너나없이 모두 주님의 하인 이며, 우리끼리는 형제 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바탕으로 우리는 형제들끼리 비판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떤 형제는 믿음이 크고, 어떤 형제는 믿음이 적습니다. 아직도 음식을 가려먹거나 어떤 절기의 날을 더 중히 여기는 자는 십자가의 온전한 믿음 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모든 음식은 십자가의 보혈 아래 다 좋습니다. 모든 날은 십자가의 보혈 아래 다 귀합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가치 와 구원의 능력 을 이해하는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통하는 깨달음입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비판하거나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형제요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믿음 없는 자들을 비판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불쌍히 여기시고 가르치시고 깨우치셨습니다. 우리도 비판하는 대신, 가르치고 깨우쳐야 합니다. 교사는 공부 못하는 학생을 비판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계속 반복하고 또 반복합니다. 한국에서도 좋은 교사를 만났습니다. 나는 미국 와서도 좋은 교사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들은 내가 모른다고 무식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바보 라는 말을 미국 교사들이 쓰는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길을 모른다고 꾸짖지 않았습니다. 미국 처음 왔을 때니까, 25년 전 일입니다. 길을 묻자, 버스를 함께 기다려주고, 버스에 먼저 올라 기사에게 나를 부탁하고, 버스가 떠날 때 손을 흔들어 준 사람도 있습니다. 길을 잃었다고 하자 잠간 기다리라고 하고, 집에 가서 차를 가지고 와서 태워 집 앞에까지 내려다 준 사람도 있습니다. 그때 차를 타고 간 거리는 꼭 네 블록이었습니다. 왜 집에 다 와서 자기 집도 못

찾느냐고, 바보 아니냐고 꾸중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주제는 믿음이 약한 형제자매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이 바로 설 수 있도록 힘을 다하여 도와주고 또 깨우치라는 것입니다. 이게 바른 교사의 자세요, 이게 바른 형제의 태도입니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14:8 그렇습니다. 살아도 죽어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주인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살려내셨습니다. 우리 목숨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아멘!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받으신 것처럼! 우리는 서로 모자란 부분을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살아 있는 동안에는 우리는 정말 서로를 위해 헌신하고 수고하고 용납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죽음이 오기 전까지는! 죽은 자는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살아있을 때만 우리가 그에게 할 일이 있습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여호수아 1:1-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모든 산 자와 죽은 자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산 자에게만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먹을 것과 날을 강조하다가, 산 자에게 실망 을 안겨주거나, 실족 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대단히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형제를 조건 없이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예수님께서도 모든 조건 을 무시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따라 판단된다면, 모두 사형 입니다. 그러나 의문에 따른 판단이 아니라 사랑 에 따른 판단으로써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합니다(요한복음 6:63).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영으로써 살리신 것입니다.

우리도 영으로써 육신의 행실을 죽이면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에게만 아니라,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습니다. 살림. 그렇습니다. 살리심 받은 성도는 살리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소극적으로 부정적으로 약한 자들을 판단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알려야 합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지키도록 도와야 합니다. 금문교회는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가 가득한 교회여야 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활기 가 가득한 교회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고 힘써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살리는 교회여야 합니다. 교회를 산 자들이 모이는 자리로 만들어야 합니다. 서로 용서하고 받아들이며, 격려하고 위로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서 힘써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 모두 살아있습니다. 몸이 아프고 때로 문제가 고통스럽게 하지만, 우리는 지금 살아있습니다. 이건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올 때까지 서로 용납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도와줍시다. 죽으면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죽어도 할 수 없고, 상대가 죽어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둘 다 살아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서로 용서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도와줄 수 있고 등을 긁어줄 주 있으니? 우리가 함께 살아 있다는 것은 아무리 기뻐하고 또 기뻐해도 충분히 기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믿음을 따라 행하라 로마서(Romans) 14:13-23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딛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15.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19.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20.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22.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다음과 같이 본문을 해설합니다. 13. 우리는 서로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형제들이 부딪치거나 거치게 될 어떤 함정 같은 것이라도 그 앞에 두지 말아야 합니다. 나 스스로가 그에게 함정 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 때문에 망하게 되거나, 나 때문에 일을 그르치게 되어서도 안 됩니다. 1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것이 다 거룩 합니다. 거룩함의 반대는 속됨입니다. 거룩하지 않다고, 즉 속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문제입니다. 15. 생각해 봅시다. 음식 문제가 있어서 당신이 형제를 근심하게 했다면, 사랑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 서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써 그 형제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그런 형제를 당신의 음식 먹는 일로 망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16. 여러분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십시오. 선하게 하려고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안에서, 그분의 이름으로 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비방거리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17. 생각해 보십시오. 먹고 마시는 문제는 얼마나 지엽적인 문제입니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의는 하나님 말씀 순종입니다. 의는 곧 말씀 순종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를 영접할 때 비로소 받게 되는 인정 입니다.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희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축복입니다. 18.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가 크리스찬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또 사람에게서도 칭찬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도 섬기기 때문입니다. 1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씁니다. 화평은 평화를 만들어가는 일, 곧 peace making입니다. 서로 덕을 세움은, 다른 이들과 함께 있을 때, 그들을 배려하는 일입니다. 이기심을 버리고 그들의 입장에 서는 일입니다. 20. 음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부차적인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할만큼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다 먹여주십니다. 맨손으로 광야에 나갔던 이스라엘이 메추라기와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런 부차적인 음식 때문에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한다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만물은 깨끗합니다. 그런데 거리낌으로 먹으면 다 악한 것입니다. 예수님 밖에 서면 다 거리끼는 것입니다. 억지요, 파괴적인 것입니다. 거리끼지 말아야 합니다. 자루 속의 송곳처럼, 그렇게 튀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21. 형제를 거리끼게 하는 일을 버려야 합니다. 그럴 가능성이 보이면, 차라리 고기도 먹지 말고, 포도주도 마시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라도 형제를 거리끼게 한다면 하지 않는다! 이런 마음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사람, 이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22.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입니다. 그 믿음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스스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않는 자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스스로 걸림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거기서 걸려 넘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이미 믿음의 주 이신 주님을 모시고 삽니다. 주님 안에 살면서서,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23. 먹는 것을 믿음을 따라 해야 합니다. 의심은 믿음의 반대입니다. 믿음을 따라 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다 죄입니다. 먹는 것도 죄입니다. 먹기는 잘 먹었는데, 그것으로 형제를 넘어지게 했다면, 그건 죄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돌아서서, 형제를 세우는 일에 쓰임 받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해야 형제를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믿음의 주님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습이십니다. 결론입니다: 주님께서 피로 사신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모든 형제 자매들에게 축복 이 되게 하십시오. 여러분을 만나고 나면 산소 를 마신 것처럼 기뻐지게 하십시오. 그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목표를 두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 주실 것입니다. 형제 자매들을 배려하시고, 그들의 고통을 여러분이 끌어안고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 주실 것입니다.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사람: 세상을 살다 보면 아름다움은 부분이 아니라 전체입니다. 예를 들면, 저 사람은 얼굴이 아름답다, 그러는 것은 눈이 아름답다는 말이 아니라, 조화 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얼굴만 아니라 몸 전체로 풍기는 인상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서 나는 생각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가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주님,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름다운 것입니다. 기도하는 손, 이 그림은 대단히 유명합니다. 전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곳이 없습니다. 누구나 사랑합니다. 이 그림은 두 친구 중 희생하는 친구의 손을 그린 것입니다. 친구를 위해 일하고 밥하는, 거칠어진 손, 그 손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재빨리 스케치해서 그려낸 것입니다. 수많은 일로 거칠어졌습니다. 그러나 아름답습니다. 봉사하는 손, 섬기는 손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덕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베드로후서 1:5-8 그러니까, 믿음이 있다면 거기에 덕 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덕 이후에는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 등이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그 첫 번째 단추가 바로 덕 입니다. 무슨 덕입니까? 인생은 모델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궁극적인 모델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덕 이 있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낙심한 자에게 소망을 주셨고, 병든 자를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배우기 전에 제자들은 형제를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용서 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먹고 마시는 것을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 으로 드러내셨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다고 해도, 누구 하나 그런 믿음이 없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생각해서 먹을 것을 절제해야 합니다. 형제를 실족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교지에 가서, 대접을 받습니다. 그럴 때 주는대로 먹어야 합니다. 나중에 토할지라도 말입니다.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로마에서도 로마의 법을 따르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 가 다를 때입니다. 이럴 때는 순교 를 각오하고 반대해야 합니다. 오늘 다루는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에 거치는 것이 없는 경우에 한정 됩니다.

형제를 실족하지 않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길은, 자기 자신이 거침돌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스스로 거치는 돌이 되지 말라!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사는 방식 등이 거침돌이 도지 않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덕 입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다니며 만난 아이들을 끌어안고 온 세상을 향하여 외친 김혜자의 말입니다. 바람 같은 걸로, 먹을 것 같은 걸로, 세상 그 무엇으로도 사람을 슬프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는 괜찮으니까! -내가 뭐 그런 뜻으로 했나! 모든 것을 내 중심으로 행동하고 나서는, 알아서 이해하라! 는 식으로 툭 던지고 만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거치는 돌입니다. 특히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들에게! 내가 좋으면 뭐든지 한다! 이것은 현대의 이기주의입니다.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를 위해 자기를 절제하는 것, 양보하는 것, 배려하는 것, 이것이 덕 입니다. 그 사람을 만나고 나면, 배려되는 느낌이다. 대접 받는 느낌이다. 이것이 귀한 사람입니다. 봉사와 섬김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인생의 목적은 바로 이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의 구별을 양 과 염소 로 하셨습니다. 양은 남을 배려한 사람들 입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본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헤아려서, 우리의 입장에 서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분이십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그런 분 이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델 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입장을 생각하셨습니다.

내 배 부르면 됐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0:1-16은 포도원 비유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일군을 부릅니다. 이른 아침, 즉 오전 6시에 사람을 부르러 나갔습니다. 하루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 는 약속을 했습니다. 오전 9시에 나갔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겠다. 정오와 오후 3시에 나갔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겠다! 제11시, 곧 오후 5시에 나갔습니다. 이때는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그들에게 묻습니다. 어찌하여 너희는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이 때는 얼마를 주겠다거나 상당하게 주겠다 는 약속이 없습니다. 일군이 묻지도 않았지만, 대답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렇게 한 후, 오후 6시에 일을 마치고 하루 일당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5시에 와서 한시간만 일한 사람들이 한 데나리온 을 받았습니다. 먼저 온 자들이 더 받을 줄 알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역시 한 데나리온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불평을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주인이 말했습니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있다. 당신은 당신의 것이나 가지고 가라. 주인의 정신은 일군의 입장을 고려한 것입니다. 특히 마지막 한 시간 일한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그를 고용하기로 한 것은, 그가 불쌍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인은 일군의 입장에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먼저 온 사람은 자기의 입장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착한 주인 이 나쁜 사람 으로 둔갑해 버리는 것입니다. 천국 비유입니다. 천국은 어떤 곳인가? 서로 입장을 헤아리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분이셨으니까, 예수님을 본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예배가 그렇습니다. 예배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한 마음과 한 입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라 로마서 15:1-13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3.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돌보라고 힘 주신 것입니다. 형이 동생을 돌보는 것은 마땅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로써 자기의 이익 을 도모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리어 지혜 없는 자를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덕 과 선 이라는 열매가 나도록 그렇게 해야 합니다. 사랑을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덕과 선은 온갖 역경 중에서야 얻을 수 있는 열매입니다. 우리의 모델을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어떻게 사셨습니까? 모든 이들의 비방 을 받으며 사셨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왜 비방합니까? 악한 자가 선한 자를 비방합니다. 선한 자는 비방 대신 축복하는 법입니다. 용서를 말하고, 소망을 가르칩니다. 사람은 그 입의 열매로 복록을 누리는 법입니다. 지금 바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로마교회에 전합니다.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여태까지 기록한 로마서 의 특징은 교훈 입니다. 그 교훈의 중심에 소망 이 있습니다. 그 소망의 근거는 성경 입니다. 바울은 구약성경을 바탕으로 로마교회가 마땅히 가져야 할 소망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 소망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소망을 품은 사람들은 서로 받습니다. 배척하고 절망하지 않습니다. 남미에서 탄광이 무너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소망 을 품고, 서로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소 모두 살아났습니다.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 여 주사 6.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형제들끼리 서로 사랑하고, 서로 용서하며, 서로 받아야 합니다.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나는 보편성 에 주목합니다. 그것이 사도바울이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로마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공통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차이를 자꾸 강조하면 내 편 과 네 편 편가르기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칼 마르크스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했는데, 그가 아마도 성경을 읽다가 착안한 것 같습니다.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는 서로 다른 노선입니다. 일제 때 항일운동의 노선도 서로 다른 두 노선입니다. 대한민국의 학생운동의 두 계열도 서로 다른 노선입니다. 이 둘이 기형적으로 하나로 뭉친 것이 북한 수령주의 입니다. 마르크스는 기본적으로 민족주의자 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세계 모두를 아우르는 노동자들에게 주는 객관적인 가치를 역설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신학을 이렇게 가닥 잡을 수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아 민족주의 에 뿌리를 두는 사람 같습니다. 그러나 영혼 이라는 점에서 세상 모든 인류를 하나로 보는 점에서 객관적인 진리 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보는 이스라엘은 결국 교회 입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혈통이나 민족적 집단도 다 녹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1차세계 대전의 근거도, 2차세계대전의 근거도 모두 민족주의적 폐쇄성 입니다. 특히 일본을 주목해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은 일본의 우월성을 근거로 대동아 단결을 외치며 대동아를 손아귀에 넣고 지배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온 세상의 형제자매는 모두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 받은 한 형제 자매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소식 하나를 전합니다. 데오 목사의 편지입니다. Dear Pastors Dearest Pastors Greeting in HIS LOVING NAME, JESUS I miss you and would want to share with you what is ticking in me today as i meditate and reflect on the bible. I came across to the TRUTH as old as the millenarian gardens of Gethsemane; THE GREAT COMMISSION. Mt 28:19.. Beside the ultimate God's purpose to worship Him, i discovered that the ultimate purpose for the church life is to fulfill the great commission. It is as if i hear the voice of Jesus echoing strongly AND SADLY in the ears of the post modern church in Rwanda:" Why are you still in Jerusalem and yet your itinerary goes beyond your social cultural setting, far overseas to the cross cultural groups?" Pray for me, i am stirred up and motivated to mobilize Christians for the positive response to the obedience of the GREAT COMMISSION. We have to live or die for it. It is worth it. African church is paralyzed both arms and legs. we neither go for the mission nor support it. that is why we are always dependent on westerners' merciful hands. Now Koreans have picked up Revelation and God is blessing you as obedient children. we feel sad and with low self esteem before Jesus as disobedient children. Our world view that we are poor is constantly oppress us a heavy weapon of the devil. We do have syndrome dependance. we need deliverance. Please pray for us as i mobilize our church leaders and Christians to stand up for the mission as an imperative commandment of Jesus to the church. NB if you have any secret for obedience, please do not hesitate to pray and instruct

me. yours faithfully halom! Deo 아프리카의 형제 하나가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제 세상을 향하여 열린 마음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우리가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선교의 비전을 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만 들여다보고 있다가는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없는 돈으로 힘을 다하여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살 길입니다.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특별히 찬양드림에 한 목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환난과 전쟁, 슬픔과 고통이 있지만, 우리가 서로 예배드림으로써 용서하고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유럽에서 전쟁할 때입니다. 1차세계대전 The Christmas Truce 1914 From Oh! What A Lovely War 크리스마스 때였는데, 한쪽 병사들 중에 크리스마스 찬양이 흘러나왔습니다. 모든 병사들이 함께 찬양했습니다. 그동안 전쟁이 중단되었습니다.

그 다음날 전쟁이 속개되었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예배드리는 동안, 전쟁이 그쳤습니다. 우리가 함께 예배드리는 것이 소망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face to face 어제 새벽예배 길에 홈리스 한 명을 만났습니다. 다운타운 스타벅스 출입문 근처였습니다. 비스듬히 누워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는 빙그레 웃었습니다. Miles 생각이 났습니다. 차로 가서 동전을 몇 개 꺼냈습니다.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가니, 그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적이라도 눈을 마주치면, 사랑이 오갑니다. 그의 얼굴을 보십시오. 하사,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축복입니다. 성도의 입에서는 축복이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망의 하나님 이십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우리에게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써 소망이 넘치게 하십니다. 성령님의 능력, 그 능력을 힘입어, 여러분의 얼굴에서, 삶에서, 일거수일투족에서 소망 이 넘쳐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u 제15장 15:1-13 한 마음과 한 입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라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3.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돌보라고 힘 주신 것입니다. 형이 동생을 돌보는 것은 마땅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로써 자기의 이익 을 도모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리어 지혜 없는 자를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덕 과 선 이라는 열매가 나도록 그렇게 해야 합니다. 사랑을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덕과 선은 온갖 역경 중에서야 얻을 수 있는 열매입니다. 우리의 모델을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어떻게 사셨습니까? 모든 이들의 비방 을 받으며 사셨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왜 비방합니까? 악한 자가 선한 자를 비방합니다. 선한 자는 비방 대신 축복하는 법입니다. 용서를 말하고, 소망을 가르칩니다. 사람은 그 입의 열매로 복록을 누리는 법입니다. 지금 바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로마교회에 전합니다.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여태까지 기록한 로마서 의 특징은 교훈 입니다. 그 교훈의 중심에 소망 이 있습니다. 그 소망의 근거는 성경 입니다. 바울은 구약성경을 바탕으로 로마교회가 마땅히 가져야 할 소망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 소망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소망을 품은 사람들은 서로 받습니다. 배척하고 절망하지 않습니다. 남미에서 탄광이 무너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소망 을 품고, 서로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소 모두 살아났습니다.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 여 주사 6.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형제들끼리 서로 사랑하고, 서로 용서하며, 서로 받아야 합니다.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나는 보편성 에 주목합니다. 그것이 사도바울이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로마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공통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차이를 자꾸 강조하면 내 편 과 네 편 편가르기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칼 마르크스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했는데, 그가 아마도 성경을 읽다가 착안한 것 같습니다.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는 서로 다른 노선입니다. 일제 때 항일운동의 노선도 서로 다른 두 노선입니다. 대한민국의 학생운동의 두 계열도 서로 다른 노선입니다. 이 둘이 기형적으로 하나로 뭉친 것이 북한 수령주의 입니다. 마르크스는 기본적으로 민족주의자 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세계 모두를 아우르는 노동자들에게 주는 객관적인 가치를 역설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신학을 이렇게 가닥 잡을 수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아 민족주의 에 뿌리를 두는 사람 같습니다. 그러나 영혼 이라는 점에서 세상 모든 인류를 하나로 보는 점에서 객관적인 진리 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보는 이스라엘은 결국 교회 입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혈통이나 민족적 집단도 다 녹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1차세계 대전의 근거도, 2차세계대전의 근거도 모두 민족주의적 폐쇄성 입니다. 특히 일본을 주목해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은 일본의 우월성을 근거로 대동아 단결을 외치며 대동아를 손아귀에 넣고 지배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온 세상의 형제자매는 모두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 받은 한 형제 자매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소식 하나를 전합니다. 데오 목사의 편지입니다. Dear Pastors Dearest Pastors Greeting in HIS LOVING NAME, JESUS I miss you and would want to share with you what is ticking in me today as i meditate and reflect on the bible. I came across to the TRUTH as old as the millenarian gardens of Gethsemane; THE GREAT COMMISSION. Mt 28:19.. Beside the ultimate God's purpose to worship Him, i discovered that the ultimate purpose for the church life is to fulfill the great commission. It is as if i hear the voice of Jesus echoing strongly AND SADLY in the ears of the post modern church in Rwanda:" Why are you still in Jerusalem and yet your itinerary goes beyond your social cultural setting, far overseas to the cross cultural groups?" Pray for me, i am stirred up and motivated to mobilize Christians for the positive response to the obedience of the GREAT COMMISSION. We have to live or die for it. It is worth it. African church is paralyzed both arms and legs. we neither go for the mission nor support it. that is why we are always dependent on westerners' merciful hands. Now Koreans have picked up Revelation and God is blessing you as obedient children. we feel sad and with low self esteem before Jesus as disobedient children. Our world view that we are poor is constantly oppress us a heavy weapon of the devil. We do have syndrome dependance. we need deliverance. Please pray for us as i mobilize our church leaders and Christians to stand up for the mission as an imperative commandment of Jesus to the church. NB if you have any secret for obedience, please do not hesitate to pray and instruct me. yours faithfully halom! Deo 아프리카의 형제 하나가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제 세상을 향하여 열린 마음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우리가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선교의 비전을 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만 들여다보고 있다가는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없는 돈으로 힘을 다하여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살 길입니다.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특별히 찬양드림에 한 목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환난과 전쟁, 슬픔과 고통이 있지만, 우리가 서로 예배드림으로써 용서하고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유럽에서 전쟁할 때입니다. 1차세계대전 The Christmas Truce 1914 From Oh! What A Lovely War 크리스마스 때였는데, 한쪽 병사들 중에 크리스마스 찬양이 흘러나왔습니다. 모든 병사들이 함께 찬양했습니다. 그동안 전쟁이 중단되었습니다. 그 다음날 전쟁이 속개되었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예배드리는 동안, 전쟁이 그쳤습니다. 우리가 함께 예배드리는 것이 소망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face to face 어제 새벽예배 길에 홈리스 한 명을 만났습니다. 다운타운 스타벅스 출입문 근처였습니다.

비스듬히 누워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는 빙그레 웃었습니다. Miles 생각이 났습니다. 차로 가서 동전을 몇 개 꺼냈습니다.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가니, 그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적이라도 눈을 마주치면, 사랑이 오갑니다. 그의 얼굴을 보십시오. 하사,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축복입니다. 성도의 입에서는 축복이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망의 하나님 이십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우리에게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써 소망이 넘치게 하십니다. 성령님의 능력, 그 능력을 힘입어, 여러분의 얼굴에서, 삶에서, 일거수일투족에서 소망 이 넘쳐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15:14-21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1.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운전할 때는 도로를 잘 읽어야 합니다. 도로를 읽는다는 말은, 마치 교과서를 읽듯이, 도로의 전체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도로가 구부러졌는지 직선인지, 바닥은 고른지 물기나 눈이 덮였는지 알아야 합니다. 백미러와 사이드미러를 자주 확인해서 앞차와 옆 차의 상태를 파악해야 합니다. 졸음운전하거나 술 취한 차는 없는지, 뒤에 바싹 따라붙거나 크락숀을 울리며 달려드는 차는 없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자기 혼자 운전 잘 하는 사람은 운전 잘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도로를 잘 읽어야 합니다. 영화관에서도 영화의 흐름을 읽어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였어? 묻습니다. 그렇게 물을 거면 집에서 기다렸다가 물을 거지, 시간 쓰고 돈은 돈대로 다 내고 그 무슨 꼴입니까? 책을 읽듯이, 도로를 읽어야 하고 영화를 읽어야 합니다. 대화도 그렇습니다. 남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으면서 자기 말을 해야지, 자기 말 할 순서만 기다렸다가 달려드는 사람과는 대화가 되지를 않습니다. 아이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딴청 부리는 자도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아닙니다. 눈을 맞추면서 울 때 같이 제일 슬피 울고 웃을 때 세상에서 가장 기쁘게 웃어주는 사람, 아십니까?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그리운 사람입니다. 로마서 15장 14절에서 21절까지 읽고 나서, 그래, 사도 바울이 자기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는데, 왜냐하면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했어. 그러니 나도 교회 있는 곳에는 개척하지 말아야지 한다면, 그는 로마서를 읽은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5:14-21은 로마서 15:1-33 중의 한 부분입니다. 로마서 15장은 로마서 1-16장의 한 부분입니다. 로마서는 사도바울의 제3차 선교여행의 전체 흐름 중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돌아서서 출발지였던 안디옥이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로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다시 출발하여 제4차 선교여행을 기획, 스페인까지 가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스페인까지 가려면 시간도 노력도 경비도 모두 만만치 않습니다. 바울은 로마까지 가면 그때부터 로마교회의 도움을 얻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로마교회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 을 알고 있다고 썼습니다. 바울이 새삼스럽게 무슨 교육을 할 만큼 문제가 있는 교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 습니다. 말자면 리마인드(remind) 시켜줄 모양으로 로마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에게는 로마도 남의 터 인 셈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를 지나서 다음 행선지로 가려는 것입니다. 바울이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는 계획을 세운 것은, 첫째로 자기가 교회를 세워 교회가 존재하는 고린도 지방에 일할 곳이 없었습니다. 일군을 세웠기 때문에 오히려 그가 없어야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처지였습니다. 둘째로, 자기가 세우지 않았지만 로마에는 이미 교회가 존재하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소위 호랑이

굴 에 해당하는 로마는 온갖 핍박에도 불구하고 그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은혜 가운데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셋째로, 서바나(스페인)는 상대적으로 복음의 불모지였습니다. 따라서 고린도나 로마가 아니라 스페인으로 가려는 목적을 세운 그에게 고린도나 로마는 남의 터 인 셈입니다. 이런 맥락을 무시하고, 무조건 교회가 있는 도시나 지방 에서는 사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다면, 로마서를 잘 못 읽은 것입니다. 그가 떨치고 일어나 가야 할 사명, 곧 이방인을 이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 (롬 15:16)이 동력 이 된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교사역입니다. 그를 위하여 바울은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역사하신 결과입니다. 바울은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교의 행진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 때문에 1-3차 선교여행을 감당했고,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 그 은혜 때문에 로마를 거쳐 스페인까지 가려고 합니다. 아니, 무엇보다도 그 은혜 때문에 바울은 생명을 얻었고, 매일 고난을 통과하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사역해야 할 목적이 생겼습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15:16 남의 터 위에... 그러면 샌프란시스코는 교회가 많은데, 왜 하필 또 다른 교회 입니까? 이 질문은 1994년 금문교회를 개척할 당시 많이 들었던 것입니다. 2년 후 노회에서도 똑같은 질문공세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나의 일관된 대답은, 우리는 불신자들을 주목합니다 였습니다. 여태까지의 논지 흐름을 따라 이해해야 합니다. 로마서 15장만 보겠습니다. 바울의 목적은 분쟁을 피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형제들끼리 비방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왜 좋은 일 하는데 인간끼리 다툼이 일어납니까? 자랑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도 안에서 모든 자랑을 다 내려놓습니다(18절). 자기를 내세울 때 싸움이 일어납니다. 자기를 낮추고, 예수 그리스도만 높이면 다 되는 것입니다. 사명을 잊어버리고 있으면 옛날에 집착하게 되고, 과거의 영화를 확대재생산하여 오늘의 위안으로 삼으려는 어리석은 욕망을 낳습니다. 그렇게 되면 먹느니 먹지 않느니, 이방인이니 이스라엘이니 하면서 분쟁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고린도교회에서 이런 분쟁을 겪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는 땅 끝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입니다. 그러므로 여기는 언제나 낯선 땅, 선교지입니다. 실제로 샌프란시스코는 한인들만 쳐도 교회에 나가는 비율이 20%나 될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는 소수의 한인들, 특히 그리스도인 한인들을 상대로 교회들 중에 무한경쟁의 불꽃을 튀기는 대신 불신자를 향해 문을 여는 교회로 성장해야 합니다. 로마서 전체를 보겠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 받은 바울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로마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구원 얻은 은혜 를 전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생각나게 하려는 목적 입니다. 왜 바울이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사역 대신 이방인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 그리고 미지의 땅 로마를 밟으려고 하는지, 그리고 끝내 지구의 끝 인 스페인 까지 가려고 하는지,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의 터 위에 건축하는 행위 는 곧 분쟁 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끼리 물고 먹고 싸우는 대신, 불신자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말입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한인교회가 30개쯤 됩니다. 너무 많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거주 한인 중에 주일에 교회 나가는 인구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20%를 넘지 못합니다. 말하자면 믿지 않는 인구가 80%나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위한 구원사역을 감당할 교회는 더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인교회들은 함께 힘을 다하여 80% 비신자 한인들을 구원하고, 더 많은 비신자 타종족들을 위한 선교의 깃발을 바로 여기서 높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금문교회는 바로 여기에서 하나의 말씀과 찬양이 아름다운 교회 로 성장하는 다이내믹스를 발판으로 삼아, 그동안 콜롬비아, 러시아, 중국, 멕시코, 아프리카 등지로 교육선교의 기치를 높이 걸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전파의 행진을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바울은 움직이는 사람 입니다. 그의 동력은 한 자리에 머물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보면 바울과 같습니다. 같아야 합니다. 동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행하는 하나님의 일 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땅 끝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19:20 우리는 세상과 경쟁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는 세상을 섬깁니다. 우리는 빼앗지 않습니다. 도리어 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패배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용서하고,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승리 때문임을 세상은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구원 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의 구원의 열심이 얼마나 큰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얼마나 변하지 않는 존재인가를 아십니다. 인간은 정말 정말 어쩔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아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열심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동력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님을 통해 안 사람들은, 그의 사랑의 길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걸어 나간 것은 수많은 고난 과 환난이 기다리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니, 여태까지 고난으로 부족해? 그래서 로마까지 가겠다는 거야? 그건 호랑이 굴 아니야? 스페인이 어디야? 거기는 복음의 황무지 아니냐? 바울은 자기의 생명을 내려놓았습니다. 자기의 자랑도 다 버렸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사람은 가장 귀한 것을 붙들었을 때, 그는 동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붙들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비로소 그 말을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 넓이, 그 높이를 모두 알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을 붙드는 길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그 길을 멈추지 않습니다.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습니다. 샌프란시스코는 한인교회가 30개나 됩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충분하거나 오히려 넘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예수님의 일은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비결은 운동 입니다. 우리는 일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입니다. 복음전도할 대상을 바라보십시오. 언제 우울증에 걸릴 틈이 없습니다. 아프려고 해도, 아파 누웠을 시간이 없다! 그래서 감기도 지나가고 암도 지나가는 것입니다. 가만히 않아서 건강 걱정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습니까? 며칠 전 신문에 외과의사를 소개했습니다. 그의 말이 디스크의 80%는 치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했습니다. 일종의 양심선언이었습니다. 손 댈 필요가 없는 것을 손 댔다는 것입니다. 환자는 쓸데 없는 일에 값비싼 진료비를 지불한 것입니다. 그러면 묻습니다. 80%는 어떤 일이 생긴 것입니까? 자연치유 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치유하신 것입니다. 세상에 자연치유라는 것은 존재하지가 않습니다. 저절로 낫는다니! 에너지 보존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시간이 지나면 상실되게 되어 있고,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늙어갈 뿐입니다. 병은 시간과 함께 더 깊어지는 법입니다. 그런데 치유라니! 하나님의 능력이요,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고치시는 까닭은, 죽어가는 우리를 살리시는 이유는, 죄를 짓고 또 지으며, 하나님의 뜻을 계속 저버리는 우리를 살려주시는 이유는 구원의 열심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래서 고린도를 떠나 로마를 가려는 목적을 세웠고, 그 로마를 경유하여 스페인까지 가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땅 끝까지 가는 목적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건강의 목적이 건강 뿐이라면 그건 그 자체로 시간낭비 아닙니까? 돈 버는 목적이 계속 돈 버는 일이라면 그건 정말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계속 산 위로 밀어올리려는 그리스 신화의 어떤 벌 받은 인간 이야기 아닙니까? 우리는 예배까지 가야 합니다. 예배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입니다. 바울이 로마를 가려고 하고, 스페인까지 가려고 하는 목적은, 거기서 교회 를 세우고,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려는 데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그의 예배 길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막힌 것을 헐어내실 것입니다. 물이라면 갈라내실 것입니다. 불이라면 꺼버리실 것입니다. 예배를 위하여! 샌프란시스코가 존재하는 것은, 예배를 위하여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샌프란시스코를 소돔과 고모라 와 비교합니다. 정말로 샌프란시스코가 멸망할 도시라면 여기는 교회가 없어야 하고, 예배드리는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주님의 백성들이 많습니다. 모든 주님의 백성들은 서로 경쟁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의 법칙은 서로 주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사랑하는 길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이 모두에게 임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칙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여러분을 볼 때, 여러분의 사는 원리는 분명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서 예수 그리스도 가 드러나야 합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비밀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숨겨진 것이 이기심 일 때, 여러분은 혐오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깊은 곳에 가려진 것이 명예욕 일 때 여러분은 결국 버림받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이 인기 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텅 빈 극장 한 구석에서 허전한 마음으로 통곡하는 날이 곧 올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발견된다면, 여러분은 안전합니다. 여러분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예배라면, 여러분은 염려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바로 그 사람, 그가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대학이나 대학원, 직장 등의 추천서 를 씁니다. 말미에 결론으로 쓰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토록 찾던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목사입니다.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할 책무가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 그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사람 입니다. 곧 예배인간 입니다. 그는 아직도 예배를 모르는 사람을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름 난 관광지를 찾아다니는 여행객이 아닙니다. 우리는 돈을 더 벌 목적으로 탐험하는 탐험자도 아닙니다. 우리는 예배를 목적으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예배는 우리의 오늘을 내일로 연결하는 목적 입니다. 지난 주중에 우리교회 주일학교 김성진 목사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주일학교 어린이 하나가 굉장히 변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부모에게 물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지난 3개월 동안 가정예배 드린 일 외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가정예배 드린 외에 아무 일도 없었다! 우리교회 주일학교는 가정예배 를 위해 특별히 기획하고, 교육하고, 설교하고, 학부모들과의 교류를 구체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금문교회 주일학생들이 경험하는 가정예배는 금문교회의 예배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지난 주중에 어떤 성도로부터 예배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예배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습니다! 이건 놀라운 일입니다. 금문교회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제 새벽예배는 신기록을 깼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예배에 나오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의 주중 3대예배는 주일예배, 수요예배, 새벽예배입니다. 예배를 목표로 세우기를 바랍니다. 왜 하필 교회만인가? 이런 질문은 사탄이 주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을 의심 해 보게 만드는 전략, 하와에서 써서 성공했던 바로 그 전략입니다. 꼭 교회를 가야 예배를 드릴 수 있나? 집에서는 왜 안돼? 꼭 교회에 가서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들으시나? 숲에 가면 더 마음이 정돈되던데. 교회는 시끄러워. 금문교회는 애기들도 많고. 정말 애기들이 많아. 교회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구원의 방주입니다.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 는 이상한 논리를 주장한 사람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용납하시 않으십니다. 피 흘려 교회를 세우시고, 친히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정면으로 거역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교회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이 없습니다. 교회는 예배가 있습니다. 예배에 말씀선포 와 세례 및 성찬 등의 성례 가 있습니다. 교회는 천국의 모형입니다. 여러 가지 불완전한 모습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완전한 성경이 있습니다. 성경으로써 개혁 하고 또 개혁하는 교회여야 합니다. 나는 단적으로 말합니다. 교회에서 자주 보는 사람은 천국에서 다시 만날 확률이 그만큼 높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노력하고 확보한 시간 을 다시 시간 을 위해 쓴다면, 그것은 낭비 입니다. 힘써 번 돈을 재투자 를 위해 쓴다면, 그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배를 위해 시간을 쓰십시오. 예배 길을 위해 여러분의 개스를 사용하십시오! 어제는 개스를 넣는데, 갤런당 5불이 넘었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이 조금만 넣고 뚜껑을 닫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 개스로 어디 갈 것인가? 나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교회 를 목표로 시간을 쓰시고, 개스를 쓰십시오. 그러면 그것은 마른 펌프에 퍼붓는 마지막 한 바가지 물이 될 것입니다. 펑펑 물이 쏟아져 올라올 텐데, 그 모든 물을 더 많은 사람들이 예배드릴 수 있는 일에 사용하십시오.

나는 올해만 해도 휴가 를 얻어 금문교회 예배드리러 온 여러 금문인을 만났습니다. 오늘도 결혼기념일 휴가를 샌프란시스코 호텔로 잡고, 예배드리러 나온 금문인이 있습니다. 지난달에도 있었습니다. 몇 개월 전에는 신혼여행을 금문교회로 와서 예배드리고 간 금문인 부부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미리 한국에서 만나고 그들이 여기 도착하기 전에 보낸 엽서를 통해서 읽었습니다. 금문교회로 신혼여행 간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사실을 전하면서 그렇게 부러워 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배신혼여행! 세상에 이런 말도 다 있습니까? 예배인간 사이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강남스타일 이 빌보드차트 1위라고요? 나도 보다가 웃기는 했지만, 그런 노래, 그런 춤이 유행하는 이 세상은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말세입니다. 예배, 예배, 예배의 자리로 몰려드는 사람들, 그 물결이 이 세상을 움직입니다! 구원의 행렬, 그 행진에 들어야 합니다. 거기 줄 서야 합니다. 그게 살 길입니다. 나는 금문교회가 기드온의 용사 비전이 이뤄질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바깥에서 그 300명이 채워지는 비전이 아니라, 기존의 금문인들이 모두 변화되어, 주일예배, 수요예배, 새벽예배에 몰려드는 데서 이뤄지는 것임을 믿습니다. 다른 누가 새롭게 오지 않아도 바로 여러분이 교회 와 예배 를 사랑하고 사모하는 동안 부흥 은 바로 여러분의 인생에서,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의 진로에서 활짝 열리게 될 것입니다. 수요예배는 주일과 주일 사이의 시험 을 방지할 목적입니다. 한국교회는 전통적으로 삼일예배 라고 불렀습니다. 새벽예배는 하루를 주님께 드리겠다는, 주님과 동행하겠다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시험에 들었습니까? 삼일예배로 나오십시오. 자주 시험에 빠집니까? 삼일예배로 나오십시오. 더 자주 시험에 듭니까? 당신은 틀림없이 새벽예배 깜입니다. 예배를 사모하십시오. 사도바울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일을 붙드십시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전진 하십시오. 행진 하십시오. 여태까지의 고생이 아직도 부족하냐? 그런 질문에는 이렇게 답하십시오.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

가데스 바네아에 선 여호수아와 갈렙은 외쳤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 곧 우리의 적, 우리의 문제, 우리의 고통, 우리의 고난,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먹고 소화하여 힘을 내어 주님의 일을 하도록 하는 양식 입니다. 우리가 달궈지도록 태우는 연료 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기회 를 주셨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그 소중한 일 을, 직장 을, 비자 를, 건강 을, 주셨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왜 하나님께서 그처럼 잘 나가는 차 를 주셨는지, 그 차에 개스를 넣을 수 있는 돈 을 주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도 그 결론이 예배 에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예배를 위하여 교회로 차를 몰고 달려나오는 대신, 쓸데없는 데 가고, 쓸데 없는 사람 만나고, 쓸데 없는 말을 하고, 쓸데 없는 일에 집중하는 당신은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시편 49:20 나는 교회를 사랑합니다. 처음 이 교회당을 받았을 때, 주차장 자리는 쓰레기장이었습니다. 나는 펜스를 걷어내고, 매일 삽질과 낫질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흙바닥에 엎드려 뒹굴면서, 부르짖었습니다. 주님, 여기로 차가 들어가게 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아니, 함께 뒹굴며 흙일과 페인트, 먼지를 뒤집어 쓰고 노동하던 우리 소수의 금문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2008년 8월, 공사가 시작된 바로 그달부터 시작된 미국의 불황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금문교회 공사는 4년 지난 지금 다 끝났습니다! 할렐루야! 우리교회는 불황을 통과한 것입니다! 그동안 새벽예배 불길을 끄지 않았습니다. 단 두 사람이 모일 때도 많았지만 우리는 기도의 불을 끄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두 하셨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영적으로 도전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밭길을 헤쳐나가 우리를 구원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를 벗어나, 로마를 향해, 그리고 로마를 거쳐 스페인까지 가는 길을 기획한 것처럼, 오늘 우리는 예배의 자리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다니엘을 사자에게 밥이 되어 죽인다는 법령을 알고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내가 이등병 때입니다. 사단장의 특명으로 사단 전체가 주일 오전에 작전을 나갔습니다. 간첩이 출몰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예배시간이 되었는데 산에서 머무는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보고하지 않고 부대교회를 향해 걸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산을 다 내려오고, 부대 정문을 통과해 교회까지 가는 한 시간 동안 누구도 나를 제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 저자 윈 형제가 경찰서를 그렇게 빠져나왔다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내가 그 증인이었으니까요. 그뿐 아니라, 그 일이 있은 지 한달 후, 나는 연대본부 교회에 비공식 파견 나가 수요예배 설교를 맡았습니다.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드린 사람이 연대장이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대표기도를 시켰고, 그는 순종했습니다. 교회로 나오십시오.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어 주신 주님의 교회를 향해 나오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당하는 모든 고난과 문제, 질병과 인간관계의 고통은 교회 예배를 통해 해결될 것입니다. 그래도 예배드리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영영 그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모든 아름다운 기회는 예배를 드리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거역하면 배반하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은 반드시 엄수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축도까지, 그 시간에 집중하십시오. 딴 생각을 버리십시오. 도로를 읽는 사람은 운전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영화를 읽는 사람은 영화를 잘 보는 사람입니다. 예배를 읽으십시오. 찬양에 집중하고, 기도에 집중하십시오. 그날 주시는 영의 만나에 흠뻑 젖어드십시오. 만나를 즐기고 즐기십시오. 마음 깊이 빨아들이십시오. 한국 사람은 참 이상합니다. 먹는 자리에서 먹는 이야기를 합니다. 예배드리면서 딴 생각 하는 것은 더 이상합니다. 말씀에 집중하십시오. 나는 어떤 사진을 전공한 젊은 금문인이 앉는 자리를 따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자리가 목사님을 가장 잘 보고 그 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앉는 자리를 지정석 으로 해 드리고 싶습니다. 거기는 목사의 얼굴이 가장 잘 보이고, 거기는 목소리가 잘 들리고, 거기는 가장 깊이 말씀에 집중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를 찾아내셨나요? 지금 앉은 자리, 거기가 거기입니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앉았습니까? 늦어서? 아니면 남들 눈치가 보여서? 아니면 축도 전에 빠져나가기 좋아서? 아니면, 아니면? 예배! 예배가 동력입니다. 예배가 목적입니다. 예배인간으로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을 부르신 목적입니다. 그를 위해 여러분을 흙으로부터 지어내셨고, 죄악의 죽음으로부터 구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라는 엄청난 값을 지불해

내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예배로 초청하시는 사랑의 주님을 거역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배반하지 마십시오. 거역과 배반의 삶은 지나간 삶으로 이미 충분하지 않습니까? 기도 은혜의 주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교회로, 예배의 자리로 언제나 나아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에서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소서. 예배의 자리로 달려가는 목적을 주시옵소서. 온 세상 사람들을 복음전도의 기회로 삼게 하옵소서. 그래서 지치지 않고 완주하게 하옵소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참된 행복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5:22-33 로마방문 계획 u 제16장 16:1-16 인사 16:17-20 평강의 하나님께서 16:21-27 문안과 찬양

나가면서 2012년은 아름다운 해였다. 참고문헌 Barth, Karl 로마서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