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 집 Ⅱ 1) 미일동맹 에서 지역적 집단안전보장체제로 오키나와가 던지는 물음 * 水 島 朝 穗 目 次 1. 들어가며 - 북위 27도선에서 보이는 것들 2. 유엔과 미일동맹 3. 헌법과 지역적 집단안전보장 4. 지역적 집단안전보장 모델 OSCE 5. 동북아시아의 협조적 안전보장을 향한 길 6. 맺음말을 대신하여 1. 들어가며 - 북위 27도선에서 보이는 것들 제2차 세계대전 후, 위도가 특별한 의미를 담게 된 장소가 세 군데 있다. 북위 17도선, 27도선, 그리고 38도선이다. 17도선은 1975년까지 남북 베트남을 분단했 던 국경선 이었다. 38도선은 지금도 한반도를 분단하고 있다. 그리고 의외로 알 려져 있지 않은 것이 북위 27도선이다. 1952년 4월 2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 발효되었다. 그날 오키나와는 일본본토로부터 분단 되었다. 강화조약 제3조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북위 29도 이남의 남서제도 를 미합중국을 유 일한 시정권자로 하여 신탁통치 아래에 두는 것으로 하는 유엔에 대한 미합중국의 어떤 제안에도 동의한다. 이와 같은 제안이 제출되고 또한 가결될 때까지 미합중 * 早 稻 田 大 學 敎 授
82 공익과 인권 제3권 제2호(2006) 국은 영해를 포함하여 제도의 영역 및 주민에 대해 행정, 입법 및 사법상의 권력 전부 또는 일부를 행사할 권리를 갖는 것으로 한다 라고, 1953년에 아마미( 奄 美 ) 군도가 일본에 반환된 이후는 북위 27도선 이 오키나와와 본토를 분단하는 국내 국경 이 되었다. 1972년 5월 15일에 오키나와가 본토로 귀속되기까지 20년간, 미 국은 유엔에 신탁통치에 대한 제안도 하지 않았으며(실제로는 유엔가맹국에는 신 탁통치제도를 적용할 수 없었다.), 강화조약 제3조 제2항에 근거하여 잠정통치 를 계속했던 것이다. 오키나와는 류큐( 琉 毬 )처분 (1897년)과 대본영의 오키나와 사 석( 捨 石 ) 작전(1945년)에 이어, 세 번째로 일본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 법치국가 일본은 오키나와에게는 일관된 방치국가 였다. 1) 본토 복귀와 함께, 북위 27도선 이라는 말도 쓰지 않게 되었다. 지금 일본인의 관심은 38도선 이북의 문제, 그것도 납치문제 와 핵문제 로 도배되어 있다. 유 사 관련 3법안이 가결되고 성립되어(2003년 6월 6일), 일본은 다시 전쟁할 수 있 는 나라 가 되었다. 2) 그것은 96년에 시작된 안보 재정의 와 미일 신가이드라인 의 소위 국내법 구체화라고 말할 수 있다. 1951년 구 안보조약의 체결, 1960년의 안보개정(신 안보조약), 그리고 96년의 안보 재정의 와 신가이드라인에 이르는 일 본안보체제의 생성과 전개과정을 조감해 보면, 요석(key stone)인 오키나와의 존재 를 빼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3) 미일안보체제의 구체적 전개에 관해서는 별도로 논하고 있기 때문에 이 보고에 서는 생략하고, 4) 미일안보 재정의 노선에 대한 대안의 길 (Alternative)로서 동북 아의 지역적 집단안전보장체제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으로 한다. 1) 水 島 朝 穂, 武 力 なき 平 和 日 本 国 憲 法 の 構 想 力 ( 岩 波 書 店, 1997), 150면. 2) 水 島 朝 穂 有 事 法 製 の 危 険 な 性 格 は 何 も 変 わっていない 世 界 ( 岩 波 書 店 ), 2003년 7 월호, 32~37면. 水 島 知 らないと 危 ない 有 事 法 製 ( 現 代 人 文 社, 2002), 水 島 編 著 世 界 の 有 事 法 製 を 診 る ( 法 律 文 化 社, 2003) 참조. 3) 水 島 朝 穂 この 国 は 国 連 の 戦 争 に 参 加 するのか 新 ガイドラインと 週 辺 事 態 法 ( 高 文 研, 1999); 森 英 樹, 渡 辺 治, 水 島 朝 穂 編 グローバル 安 保 体 製 が 動 きだす ( 日 本 評 論 社, 1998) 참조. 4) 水 島 朝 穂 編 著 オキナワと 憲 法 ( 法 律 文 化 社, 1998), 同 編 著 ヒロシマと 憲 法 ( 第 4 版 ) ( 法 律 文 化 社, 2003) 참조.
水 島 朝 穗 / 미일동맹 에서 지역적 집단안전보장체제로 83 2. 유엔과 미일동맹 이라크 전쟁 직전, 고이즈미 수상은 국제협력체제와 미일동맹 을 함께 중시하 는 입장을 발표했다(2003년 3월 3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의 답변). 그리고 개전 직후에 미국의 무력행사 개시를 이해하고 지지합니다. (3월 20일 기자회견)라고 명언했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에 대한 무력행사는 유엔 헌장을 명확히 위반한 것이며, 5) 수상의 발언은 유엔보다도 미일동맹 을 중시하는 자세를 분명히 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만약 미국이 유엔을 탈퇴한다면, 일본정부에게는 어떤 선 택지가 남겨질 것인가. 일본이 국제연맹을 탈퇴한지 70년이 지난해에, 6) 유엔을 축 으로 한 국제공조제와 미일안보조약을 축으로 하는 미일군사동맹체제와의 사이에 서, 그때까지 보이지 않았던 이념상의 극단적인 선택 의 가능성이 부각된 것이다. 그런데 미일동맹 이라는 말이 인용부호 없이 대충 적당하게 사용된 지도 오래 되었다. 1981년 5월, 스즈키 젠코( 鈴 木 善 倖 ) 수상과 레이건 미대통령이 발표한 미 일공동성명 에서 동맹관계 가 명기되었다. 귀국한 스즈키 수상은, 동맹 개념에는 군사적 함의는 없다 라고 발언하여, 이토( 伊 東 ) 외상이 사임하는 사태로까지 발전 했다. 동맹 의 이해를 둘러싼 스즈키의 혼란 이 보여주는 것처럼, 미일동맹 이 라는 말은, 일본 헌법아래에서는 어떤 유보도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었 다. 단적으로 말하면, 동맹 이란 군사적 협력관계를 본질적 속성으로 하는 개념으 로, 헌법의 평화주의 및 국제협조주의와의 관계에서 정합적으로 설명하기는 곤란 하다. 그러나 항간에는 미일동맹 일변도의 담론이 넘쳐나고 있다. 그래서 이 글 에서는 일본 헌법이 규정하는 안전보장방식에 적합한 형태를 아시아 특히 동북아 시아의 문맥(context)에서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것은 미일동맹 과는 5) 水 島 朝 穂 国 際 法 違 反 のイラク 攻 撃 北 海 道 新 聞 2003년 3월 24일자 문화란. 6) 1933년 3월 27일의 "국제연맹탈퇴통고문"에는 '다수의 연맹(국)은 日 支 사건(일제가 1932 년 만주를 강점하여, '만주국'을 날조한 사건)의 처리에 있어서, 현실에서 평화를 확보하 고자 하기보다는 적용불능한 방식의 존중을 더욱더 무겁다 하여, 또한 장래의 분쟁의 화근을 뿌리 뽑기보다는, 뜬 구름 잡는 이론의 옹호를 가지고 더욱더 귀중하다고 한다 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에 (일본)제국정부는 평화유지의 정책, 특히 동양평화 확립의 근본방침에 대해, 연맹과 전혀 그 소신을 달리 함을 확인했다'라고 하고 있다. 단독행동주의로 치닫는 국가에 공통되는 논리와 심상풍경을 읽어 낼 수 있을 것이다.
84 공익과 인권 제3권 제2호(2006) 다른 국제협력주의의 발전 형태를 제시하는 예비적 작업이 될 것이다. 3. 헌법과 지역적 집단안전보장 일본 헌법 전문에는, 평화를 사랑하는 여러 국민의 공정과 신의에 신뢰하여, 우리의 안전과 생존을 보지( 保 持 )하려고 결의하였다 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말하는 여러 국민 은 peoples의 의미다. 여기에는 전 세계 각 국 peoples의 평화를 향한 의사에 의거하면서 현 단계에서 국제사회의 조직형태인 유엔의 집단안전보장체제 에 대한 커다란(보기에 따라서는 과도한) 기대가 표명되어 있다. 그러므로 헌법이 상정하는 안전보장방식은 사토 이사무( 佐 籐 功 )에 따르면, 세계연방 또는 세계국가 의 구상을 목표로 하며,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한 동안은 비무장중립의 관계를 모 든 국가 즉 구체적으로는 미 소 양진영의 모든 국가에 대해서도 유지한다는 것 에 있으며, 한쪽 진영에 결정적으로 참가하여 다른 진영에서 가해온 공격에 대해 자국을 방위하는 것 이외에는 일본의 안전보장의 길은 없다는 방식(미일안보체제) 은, 헌법이 이상으로 삼고 예상한 안전보장 형태와는 완전히 다른 7) 것으로 되었 다. 헌법이 상정하는 안전보장 방식을 둘러싸고, 판례는 스나가와( 砂 川 ) 형사특별법 사건에서 두 가지 입장이 대립했다. 1심판결(도쿄 지방재판소)은 유엔의 기관인 안전보장이사회 등이 취하는 군사적 안전조치 등을 최저선 으로 하면서,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세계의 영구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선구가 되려고 한다. 는 입 장을 취했다. 8) 이에 반해서 상고심판결(최고재판소)은, 우리나라의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보장 이라면, 국제정세에 비추어 적절하다고 인정되는 것 을 선택하거나, 타국에 안전보장을 요구하는 것 도 허용된다고 하여, 특정국의 무력 에 의거하는 방식도 헌법9조에 의해 금지당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9) 자위대를 위헌 7) 佐 籐 功 日 本 国 憲 法 概 説 ( 全 訂 新 版 ) ( 学 陽 書 房, 1976), 88면. 이 논점의 해명은 深 瀬 忠 一 他 編 平 和 憲 法 の 創 造 的 展 開 ( 学 陽 書 房, 1987), 동 恆 久 世 界 平 和 のために ( 勁 艸 書 房, 1998) 참조. 8) 동경지방재판소 판결 1959년 3월 30일( 判 例 時 報 180호, 2면).
水 島 朝 穗 / 미일동맹 에서 지역적 집단안전보장체제로 85 이라고 한 나가누마( 長 沼 ) 나이키기지 소송 1심판결(삿포로 지방재판소) 10) 이 내려 진 뒤 올해로 정확히 30년이 되는데, 판결에는 안전보장방식에 관해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자국의 안전과 존립을 다른 여러 외국 국가처럼 최종적으로 군비와 전쟁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국외를 불문하고 전쟁원인의 발생을 미연에 제거하며 또한 국제평화의 유지 강화를 꾀하는 여러 활동으로써 우리나라의 평화 를 유지해 가는 적극적 행위(헌법 전문 제2항 제2단)안에서, 평화를 사랑하는 제 국민의 공정과 신의에 신뢰하여, 우리의 안전과 생존을 보지( 保 持 )하려고 결의 (헌 법 전문 제2항 제1단)한 것이다 라고. 그 후 법원에서 안전보장 방식을 둘러싼 논 점이 전면적으로 다루어지는 일은 없었으나, 적어도 헌법상 미일동맹 의 방향이 당연하게 긍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 그 의미에서 미결상태 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헌법이 유엔의 집단안전보장을 상정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군사적 강제 조치(헌법 제7장)에 대해서는, 제9조 제2항에서 비무장을 선택한 이상, 일본이 당 연하게 관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역적인 집단안전보장의 틀에 대해서는 헌법은 열린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전문, 제9조 및 제98조를 종합적으로 해석 한다면, 헌법은 군사적 수단에 대해서는 차단적 성격을 가지지만, 국제협조주의의 다양한 발전 형태에 대해서는 개방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지 역적인 집단안전보장체제는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 4. 지역적 집단안전보장 모델 OSCE 유엔 헌장은 전 세계적인 규모의 보편적인 집단안전보장체제와 함께, 지역적 집 단안전보장체제를 상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제8장의 지역적 약정 또는 기관 (regional arrangements or agencies) 이다. 하지만 Dumbarton Oaks에서 출발한 유 엔집단안전보장의 이상형은 미국의 의향으로 집단적 자위권(제51조)이 도입되어 9) 최고재판소 대법정 판결 1959년 12월 16일( 判 例 時 報 208호, 10면). 10) 札 幌 지방재판소 판결 1973년 9월 17일( 判 例 時 報 712호, 24면)
86 공익과 인권 제3권 제2호(2006) 어쩔 수 없이 변용 내지 변형될 수밖에 없었다. 11) 냉전시대를 통해 두 군사동맹 블럭(NATO와 구 바르샤바조약기구)이 형성되어 계속 대립해 온 것은 주지의 사 실이다. 그러나 NATO도 구 바르샤바조약기구도 헌장 제8조에서 말하는 지역적 약정 또는 기관 이 아니라, 다수 국가 간의 지역적 집단방위조약체제이며 헌장 제 51조의 집단적 자위권에 근거한 조직이었다. 미일안보조약도 두 국가 간의 지역적 집단방위조약이었다. 그 본질은 모두다 지역외의 제3국을 가상의 적 으로 하여 대항하는 군사동맹조약이며 유엔의 집단안전보장체제와는 원리적으로 다르다는 것 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지역적 집단안전보장과 지역적 집단방위체제가 동일시되는 상황이 오랫동안 계 속되었는데, 70년대 중반 이후 유럽에서 하나의 변화가 나타났다. 그 계기는 1975 년의 유럽안전보장협력회의(CSCE) 최종의정서 (헬싱키 선언)이다. 그것은 (1) 안 전보장협력, (2) 경제 과학기술협력, (3) 인도적 분야 및 기타 분야에서의 협력 이라는 3개의 쟁점(basket)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 번째 바스켓은 인적 접촉, 정 보, 문화, 교육 의 네 분야의 협력으로 이루어진다. 인적 접촉 에서는 청소 년 회합 과 스포츠 교류등도 들고 있으나, 가족의 끈을 기초로 하는 접촉 및 정 기적인 회합, 가족의 재결합 을 제일 먼저 들고 있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이리 하여 CSCE의 발족과 헬싱키 선언에 있는 국경을 초월한 인간의 접촉에 관한 규 정은 폐쇄적인 동유럽 국가의 내부를 바꾸어 가는 중요한 힘이 되었다. 그런데 미국은 다국 간 협력 틀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 적이 거의 없었 다. CSCE가 탄생했을 때도 닉슨 정권은 소극적 자세를 취했다. CSCE가 베를린 장벽 의 붕괴에서 시작된 동서대립의 해소(냉전의 종결)에 기여한 역할은 지극히 크다. CSCE 프로세스로 타국의 의도에 관한 의문의 여지가 없는 정보(인권존중의 룰을 지키는 것을 포함)가 가능한 한 광범위한 범위에 걸쳐 제공되게 되었다. 이 신뢰양성조치 는 CSCE에 의해 도입된 것이다. 신뢰양성조치 는 기본적인 신뢰, 즉 안전보장 딜레마를 서서히 해소하며 민주화 과정을 용이하게 하는 원칙적이고 양면적인 기대의 안전성이 창출된다 라는 우수한 효과를 가져왔다. 12) 11) 高 野 雄 一 集 団 安 保 と 自 衛 権 ( 東 信 堂, 1999), 57~70면. 12) P. Schlotter, Die KSZE im Ost-West Konflikt, 1999, S.347. 또, 宮 脇 昇 CSCE 人 権 レジームの 研 究 ( 国 際 書 院, 2003)는 풍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水 島 朝 穗 / 미일동맹 에서 지역적 집단안전보장체제로 87 냉전종결 이후, 유고 분쟁 등 각지에서 복잡한 사태가 발생했다. CSCE는 1994 년 동유럽안보협력기구(OSCE)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이후 이런 분쟁에 비군사적 활동(사절단, 감시단 파견 등등)을 축으로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귀중한 성과를 올 렸다. 유엔 헌장 제8장의 지역적 약정 또는 기관 은 안보리 아래에서 군사적 강 제조치를 지역적으로 실시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헌장 제53조), 헬싱키 선언 은 군사적 강제행위에 대한 참가를 금지하고 있으며 평화유지활동에도 제한을 가하고 있기 때문에, 13) OSCE는 신뢰양성을 기초로 하여 철저히 비군사적 수단으로 짜여 있다. OSCE는 유엔 집단안전보장의 단순한 지역 판이 아니라 가상의 적을 두지 않고 지역의 모든 국가를 포괄하는 지역적 집단안전보장체제의 이상형에 가깝다. OSCE 가맹국은 현재 55개국. 코소보 분쟁으로 NATO의 폭격을 받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공화국도 2000년 11월에 가맹했다. 수개월 전까지 전쟁상태였던 나라 라도 곧바로 가맹, 복귀시키는 것을 보면 OSCE의 협조적 안전보장에 대한 접근태 도를 잘 알 수 있다. 그러면 아시아 지역 특히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이런 협조적 안전보장의 틀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 5. 동북아시아의 협조적 안전보장을 향한 길 동북아시아는 일본의 과거청산 이 가장 필요한 지역인 동시에 자연발생적 경 제권으로 발전할 수 있는 미래의 생산 의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라고 말해진다. 또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냉전구조가 존속하고 있는 지역(한반도와 대만해협)이 다. 여기에는 주변 3대 핵보유국(미, 러, 중)과 2대 경제권(미, 일)이 존재한다. 그 러나 여기에는 OSCE와 같은 지역적 집단안전보장의 틀이 결여되어 있으며 한반 도에는 평화조약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100만 이상의 군대가 겨우 수 킬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대치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에는 미일과 한미의 양조약이 존재하 며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14) 가능성과 위험성이 양립하고 있는 지역이라고 할 수 13) 籐 田 久 一 国 連 法 ( 東 大 出 版 会, 1999), 353면. 14) Soong Hee Lee, Die OSZE und Suedkorea, in:ifsh(hrsg.), Jahrbuch zur Organisation
88 공익과 인권 제3권 제2호(2006) 있다. 아시아 전체로는 94년 7월, ASEAN 지역포럼(ARF)이 발족했다(북한도 2000년 에 참가). ARF는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 지역적 안전보장협력기관이다(22개국+ EU). 이 지역에서 유일한 정부 간 포럼이라고 해도 좋다. 매년 여름에 열리는 장 관회의를 중심으로 한 일련의 회의 연속체 그 자체를 가리키며 상설사무국을 갖고 있지 않다. ASEAN 방식 이라고 불리는 느슨한 운영과 조직 형태 등, 독특한 특 징을 갖고 있다. 자유로운 의견교환을 중시하며 합의에 의거한 회의운영을 원칙으 로 한다. 비공식적 대화를 중요시하며, 공식적 절차와 제도화를 가능한 한 배제하 는 것에 특징이 있다. 오키나와의 테게(대강)주의 와도 상통하는 느슨하고 개략적 인 협력관계라고 할 수 있다. 신뢰양성의 촉진과 예방외교의 전개, 분쟁에 대한 충실한 접근이라는 프로세스를 설정하여 활동하고 있다. 걸음은 느긋하나 착실하 게 전진하고 있다. 단 ASEAN국가는 적어도 ASEAN국가 사이에서는 내부문제 불간섭 원칙을 극단적으로 강력하게 유지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그런 사정을 고 려하여 타국의 국내문제를 보다 솔직하게 터놓고 토의하는 것을 가맹국에게 인 정하는 유연한 관계 가 존재한다(태국은 98년, 개입을 인정하는 이 제안을 거 부). 15) 93년 이후 한국정부는 ARF와 병행하여 동북아시아에서 mini CSCE 형의 안전 보장대화를 추구해 왔다. 그 이유는 분단 상태에 있는 한반도의 안전보장 유지에 대한 불안이 고조되었기 때문이다. 16) 또 소위 Track Two 형태의 회의로 93년 발 족한 아시아 태평양 안전보장협력회의 (CSCAP)가 있다. Track Two 란 정부 간 공식 대화인 Track One 과 구별되는 민간주도의 대화를 지칭한다. 이미 동북아시 아 협력대화 (NEACD)아래 몇 개의 Track Two 의 대화가 개최되고 있다. 17) 북 일 정상회담 직전에 북한이 NEACD에 참가를 표명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für Sicherheit und Zusammenarbeit in Europa(OSZE), 2001, SS.469-476. 15) W.T.Tow. ed., Asia's Emerging Regional Order: Reconciling Traditional and Human Security, 2000, p.125-6. 16) Soong Hee Lee, a.a.o., S.474. 17) D カピー/P エバンス= 福 島 安 紀 子 訳 レキシコン アジア 太 平 洋 安 全 保 障 対 話 ( 日 本 経 済 評 論 社, 2002), 22~224면.
水 島 朝 穗 / 미일동맹 에서 지역적 집단안전보장체제로 89 그런데 ARF의 발전 가능성은 한계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 논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미, 일, 중의 3국관계가 ARF에서 무의식중에 강한 영향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97년에 미일안보조약을 탈냉전용으로 맞추어 업 그레이드한 신가이드라인 (미일방위협력지침)으로, 중국 지도부는 미국이 군사동 맹 강화에 의한 관여정책으로 임한다는 메시지를 발표해 버렸다. 둘째는 미국의 정권교체(부시정권)에 따른 대중국정책의 불안정화이다. 18) ARF의 장래는 결코 낙 관할 수만은 없지만 안전보장대화의 축적이 ARF의 경험을 풍부하게 하는 것은 확실하며, 근래의 ASEAN과 OSCE와의 협력개시 등의 사정도 부가되어 발전의 맹아는 충분히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단지 이 지역의 특수성으로서 국가의 아 이덴티티의 문제가 있다. 그것은 협조적 안전보장개념에서 인권과 민주적 정치체 제와 관련된 부분이 제외되어 있는 점에서도 나타난다. 19) 이런 의미에서 유럽의 평화, 인권, 민주적 통치를 공통으로 하기에는 더욱 시간이 필요하다.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도 장기적인 시야에서 보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북한 핵문제나 소위 납치문제 로 이 지역의 긴장이 일찍이 없었던 수준에까지 강화되어 있는 상 태다. 이라크 전쟁이 끝나 미국이 동북아시아 지역을 다음 표적으로 삼는다고 한 다면,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파멸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유럽의 EU처 럼 아시아의 AU가 탄생하는 것은 먼 미래의 일이 될 것이다. AU라는 개념은 2002년 7월, 아프리카 통합기구 (OAU) (가맹국 53개국)가 아프리카 연합 (AU) 으로 명칭을 변경한 결과 아시아에서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6. 맺음말을 대신하여 스나가와( 砂 川 )판결로부터 44년, 나가누마( 長 沼 )판결로부터 30년이 경과한 지금, 일본을 둘러싼 안전보장환경은 냉전시대와 크게 달라졌다. 일본 헌법이 상정하는 18) M. Manger, Die OSCE Kein Vorbild für das ASEAN Regional Forum?, in:ifsh(hrsg.), a.a.o., S.485. 19) 国 際 法 学 会 編 日 本 と 国 際 の 法 の 百 年 (10) 安 全 保 障 ( 三 省 堂, 2001), 9면.
90 공익과 인권 제3권 제2호(2006) 안전보장 방식도 또한 더욱 창조적 발전을 해야 하는 기대를 안고 있다. 냉전시대 의 미일동맹 을 새로운 형태로 진화 시킬 것인가. 20) 그렇지 않으면 헌법이 상정 하는 집단안전보장을 지역적으로 재구축할 길을 추구할 것인가. 지금 중요한 분기 점에 서 있다고도 생각된다. 적어도 이전과 같은 미일동맹 노선을 걷는다면, 부시 정권의 선제공격 전략에 편승하여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의 지위는 지극히 미묘해 질 것이다. 차라리 헌법의 평화주의와 국제협조주의를 21세기의 새로운 시점에서 위치 매기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이 지역에서 협조적 안전보장(OSCE형태의)으로 접근할 가능성을 찾는 것이 요구된다. 그때는 한국과의 협조관계가 극히 중요하 다. 21) 북한도 포함하여 이 지역에서 지방자치체간의 협력 교류도 이미 많이 축적 되어 있다(북한과는 돗도리현( 鳥 取 縣 )의 사카이미나토시( 境 港 市 )와 원산시의 제휴 가 유일한 채널). 덧붙여 일본의 납치피해자 문제 뿐만 아니라 한국에 존재하는 납치피해자 문제도 함께 해결하는 시점이 필요할 것이다. 협조적 안전보장 접근이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진전된다면 위에서 서술한 헬싱키 선언 의 세 번째 바스켓 의 가족의 재결합 과 같은 해결법으로 난민이나 납치피해자 구제도 가능할 것이 다. 미일동맹 을 축으로 아시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의 협조적 안전보장의 틀 속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상대화하며 재구축해가야 할 것이다. 추기: 본 논문은 水 島 朝 穗, 地 域 的 集 團 安 全 保 障 と 日 本 國 憲 法 ( 法 律 時 報 2003년 6월호 게재)에 약간 가필한 것이다. 20) 船 橋 洋 一 編 同 盟 の 比 較 研 究 ( 日 本 評 論 社, 2001), とくに 34~49면 참조. 21) アジアネットワーク リポート2001 ( 朝 日 新 聞 社, 2001), 6~31면; 大 久 保 史 郎 / 徐 勝 編 現 代 韓 国 の 民 主 化 と 法 政 治 構 造 の 変 動 ( 日 本 評 論 社, 2003), 406~407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