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육축 1. 개설 2. 1961년 수리 전의 육축 3. 육축의 구조 4. 지하유구 조사 5. 실측조사 6. 석축부재의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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崇禮門 精密實測調査報告書 사진 5-3. 태조 때의 축성형식 사진 5-4. 세종 때의 축성형식 사진 5-7. 성벽 철거 전(1880년대) 사진 5-5. 개축된 축성형식 사진 5-8. 단선전차의 통행(1900년 전후) 사진 5-6. 숙종 때의 축성형식 사진 5-9. 성벽 철거 후(1920년대) 라. 女墻 1) 문루(門樓)의 여장 문루여장(門樓女墻)은 체성과 달리 전돌(塼乭)로 여장이 조성되어 있다. <사진 5-10>에서 보이는 여장은 언제 조성된 여장형식인지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조선후기에는 전돌(塼乭)이 여장재료로 자주 사용되면서, 문루의 여 장을 전돌(塼乭)로 개축하여 현재에 이를 가능성도 보인다. 문루에 마련된 전돌(塼乭)로 된 여장은 대부분 총안 (銃眼)이 없는 형식이 많이 보이나, 서울성곽의 혜화문 등지에서는 총안이 마련되어 있는 예도 보인다. 숭례문의 문루 전 후면은 1.2m내외로 상대적으로 낮은 여장을 설치하였고, 좌우 측 협문이 위치한 측면여장 은 1.8m정도로 전 후면보다 높게 축조하였다. 또한 전면 좌우 측의 전면여장에서 측면여장으로 이어지는 일부 구간(길이 1.8m)에는 측면의 높은 여장보다도 약 20 정도 더 높게 조성하였다. 이렇게 전 후면과 측면에 마련된 여장의 높이를 다르게 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측면의 협문(夾門)설치와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 외 특징적인 것으로 문루여장의 네 모서리 하부에 장대석을 세워서 설치하여 의장적인 효과를 보이고 있다. 사진 5-10. 숭례문 내벽전축여장 136
Ⅴ. 육축 사진 5-11. 문루 동측계단상부의 전축여장 2) 체성( 사진 5-12. 문루 모서리부분의 전축여장 城)의 여장 서울성곽의 여장형식은 평여장(平女墻)형식이다. 여장(女墻)은 타( ), 첩(堞) 등의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는 데, 매 여장에는 중앙 하부에 근총안(近銃眼) 1개소를 두고, 이 근총안을 중심으로 좌우 측에 원총안(遠銃眼) 을 두어 2개의 원 총안이 마련되어 있다. 여장과 여장사이에는 타구( 口)를 두어 총이나 활을 사용할 수 있도 록 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일반적으로 여장은 체성 위에서 여장의 기초가 되는 미석(眉石)을 별도로 마련하여 축조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보인다. 일반적으로 여장규모는 폭 0.7~0.9m, 높이 1.2~1.3m내외, 길이 3.0~3.6m 내외의 여장이 많이 보인 다. 숭례문의 좌우 측 체성의 초기 여장 형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현재 서울성곽의 여장은 2가지의 형식이 많이 남아있다. 즉 사괴석크기의 여장 돌을 사용한 형식과 후대에 주로 마련된 장대석형식의 길이가 길고 잘 가공된, 규격이 큰 부재로 마련된 여장면석이 사용된 형식으로 대별된다. 숭례문의 경우 <사진 5-13>으로 보아, 평여장형식인 데, 특이한 것은 서울성곽의 대부분 구간에 마련된 체성의 여장은 전부 미석(眉石)이 사용되지 않은 여장형식 인데 비하여, 숭례문의 좌우 측에 연결된 성벽의 일부구간은 미석(眉石)을 설치하고 여장을 마련하였다. 또한 여장에 사용된 면석의 형식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규격화된 장방형의 여장면석(숙종 때의 형식)이 아니 고 앞선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규격이 작은 사괴석(四塊石)크기의 석재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형식 은 앞선 시기의 여장형식으로, 북악(白岳)지역의 성곽에는 앞선 시기의 여장형식이 잘 남아있어 참고할 수 있 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 5-13. 헐리기 전 숭례문 동측 체성여장 사진 5-14. 총안이 있는 헐리기 전의 혜화문 여장 137
崇禮門 精密實測調査報告書 사진 5-15. 서울성곽의 초기 여장형식(북악지역) 사진 5-16. 서울성곽의 후기 여장형식 서울성곽의 초기 여장 입면도 서울성곽의 후기 여장 입면도 그림 5-2. 서울성곽 여장 입면 4. 地下 遺構調査 가. 槪要 각종 실측의 임시기준점(T.B.M)은 편의상 육축상부 중 동측에 위치한 계단을 올라가 협문에 들어서지 않고 좌측에 일렬로 깔아 놓은 바닥박석을 기준으로 하였다. 이 지점은 육축의 상단지점이어서 이 지점을 중심으로 하부의 육축과 상부의 문루를 조사하는데 편리하여 정하였다. 숭례문이 언제부터 육축통로 바닥을 중심으로 지반전체가 현재와 같이 많이 성토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성토된 것은 최근에 일부 이루어진 부분도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오래전 최소한 조선후기 이전부 터 높아진 여건 하에서 이용하여 왔다. 지금까지 숭례문의 성문을 볼 때, 어딘가 모르게 다른 유사한 성문에 비 해 폭과 규모는 당당하게 크나 홍예높이가 낮음을 느끼고 있었으나 어느 정도가 묻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번 실측조사기간 중에 서울특별시에서 추진한 숭례문일원의 공원화계획에 의해, 숭례문 동남지역의 도로가 숭례문까지 접근할 수 있는 공원으로 조성되는 사업이 진행되었다. 지금까지 숭례문은 주변이 도로로 조성되어 섬처럼 되어 있어서 일반 관람객은 숭례문에 접근할 수 없었으나 공원의 조성으로 인하여 일반 관람객 누구나 숭례문에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공원화계획에 맞추어 숭례문 일부구간의 개방에 대비하여 그간 정비하지 못하였거나, 미흡한 부분에 대한 정비의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한 내용의 하나로 중앙통로지역에 바 닥박석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닥박석을 설치하기에 앞서, 원래 숭례문 바닥에 박석이 있었을 것으로는 추정되나 실체가 확인되지 않으므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현재는 바닥이 성토되어 박석은 보이지 않고, 성토된 바닥면을 강회로 포장하 여 이용하였다. 그래서 박석(薄石)포설에 앞서 성문의 원 바닥에 있었던 박석형태와 크기, 포설방법, 재질, 위 138
Ⅴ. 육축 치 등을 확인하고자 홍예를 중심으로 5군데를 지정하여 조사하게 되었다. 조사결과 모든 시굴조사지점에서 박 석이 확인되면서 숭례문은 중앙통로 뿐만 아니라 통로를 통과하여 내부에서 좌우 측으로 돌아 계단으로 통하는 내부에도 박석통로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이로써 숭례문의 원 바닥높이와 박석크기, 석재 종류 등의 박석관 련 자료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통로바닥의 박석이 확인됨으로써 앞으로 숭례문 정비에 좋은 자 료를 제공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육축하부의 조사지점은 5개소(성 외부 홍예의 서벽하단, 내부홍예 서벽하단, 성 내부 서측등성계단의 기저, 성 내부 동측 등성계단의 모서리, 그리고 육축내벽의 서측중간지점 등)를 정하여 바닥박석이 노출되는 깊이의 원 지반까지를 조사하였다. 이 조사로 인하여 박석 외에도 전면홍예의 하부에서는 기저부인 지대석(地臺石), 홍예기석(虹霓基石), 문확석(門確 石)과 박석(薄石)이 확인되어 지금까지 땅속에 묻혀있어 낮게 보였던 숭례문 홍예의 당당한 모습을 가늠하게 되었다. 도면 5-5. 성문 바닥조사 위치도 도면 5-6. 숭례문 외 내벽 입면도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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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육축 사진 5-17. 1번 조사지점 모서리 도면 5-8. 1번 조사지점 실측도 사진 5-18. 1번 조사지점 통로측 이다. 노출된 박석(薄石)과 문확석(門確石), 그리고 문지방돌의 설치위치가 확인되어 원래의 성문바닥과 육축 의 높이를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2) 2번 조사지점(배면 홍예서측하단) 배면홍예의 서측하단 모퉁이지점(2번 조사지점)은 중앙통로를 지나 내측에 마련된 홍예의 서측 홍예기석아래 모 서리부분의 조사였다. 이 곳의 홍예기석은 전면의 홍예기석이 3단으로 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길이가 긴 석주형의 장방형 석재를 세운 형태로 된 2단의 홍예기석으로 되어 있다. 조사 전 상부의 홍예기석은 외관상 전부 노출되어 알 수 있었으나, 하부의 홍예기석은 기석 상단의 일부만 보이는 실정이었다. 이 지점을 조사함으로써 내외의 원 바닥높이와 박석의 유무를 확인해 주는 중요한 지점이어서 내벽의 홍예 서쪽 기석하단을 외부와 통로측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도록 ㄱ 자로 조사하였다. 이 지점은 북측의 무사석축하단과 통로측의 바닥유구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조사결과 현재의 강회바닥 1.6m 지점 아래에 홍예기석을 받쳤던 지대석과 박석이 조사되었 다. 조사된 지대석은 통로 측에서 볼 때 가로 1.1m 세로 2.0m 크기로 확 인되었고, 그 위에 약 15 정도 안쪽으로 들어가서 홍예기석의 하부돌이 세 워졌다. 중앙통로 쪽에서 조사된 박석은 원래의 위치로 보이는 곳에 가지런 히 2개가 깔려져 있었다. 사진 5-19. 2번 조사지점 1 안쪽의 박석은 가로 80 세로 70 크기의 정방형 형태이고, 그 바깥의 것은 가로 80 세로 40 장방형의 규격이 다소 작은 박석이다. 그 외에 도 몇 개의 부재가 확인된 박석주변에서 보이나, 박석위치에서 다소 벗어나 고 그 형태가 박석형태와 차이를 보여 박석여부는 추가조사가 필요한 실정이 다. 이 구간의 조사를 통하여 외부홍예 서측모서리(1번 조사지점) 조사지점 의 성과와 함께 육축 기저부의 지대석구조와 육축의 하부, 그리고 박석이 깔 렸던 원래의 육축바닥을 확인시켜주는 좋은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 외 에 조사된 박석 2점은 다른 박석과 그 형태와 크기를 참고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고 여겨진다. 사진 5-20. 2번 조사지점 2 141
崇禮門 精密實測調査報告書 도면 5-9. 2번 조사지점 실측도 도면 5-10. 1번 조사지점 실측도 3) 3번 조사지점(배면육축의 동측) 배면육축의 동쪽 끝 지점(3번 조사지점)으로, 이곳은 육축 내부(북측)의 동쪽 등성계단으로 오르는 지점에서 가까운 곳이다. 이 지점은 숭례문의 육축이 축조된 중앙통로의 바닥면보다 높은 지점으로 외관상 성내부에서 문 루로 통하는 동측계단이 있는 아래쪽 지점이다. 이 지점을 조사하면 중앙통로와 계단바닥과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어, 통로에서 좌우 측의 성벽으로 갈수록 어떠한 지반이 조성되었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 지반차이를 갖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또한 육축내부의 등성계단으로 통하는 바닥이 어떠한 구조의 바닥이었는지도 궁금한 사항이었다. 조사결과 이 지점은 기존 바닥의 1.5m 깊이에서 박석 3점이 육축 선을 따라 나란히 조사되었고, 동측계단의 아래는 계단바닥돌과 계단 북쪽에 있 는 계단의 소매 돌 하단의 엄지기둥을 받치는 지대석에서 엄지기둥을 꽂았 던 홈 자국(2개)과 계단의 바닥돌이 조사되었다. 이곳에서 조사된 박석은 정형적인 형태라기보다 가공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깬 돌 형태의 박석 3점이다. 노출된 박석은 동측에서부터 육축 내벽의 지대석높이로 나란히 잇대어 노출되었다. 가장 동쪽의 것은 폭 80 너비 70 의 자연석 형태이고, 중간의 것은 폭 80 길이 120 의 사다리꼴 형태인데, 이 두 개의 박석 사진 5-21. 3번 조사지점 1 은 잇대는 지점에서 마치 한 돌이 쪼개진 듯 보일정도로 잘 맞대어 깔려 있 었다. 나머지 통로 쪽의 박석은 80 80 내외의 타원형에 가까운 박석 이 조사되었다. 이 지점의 조사로 육축내부의 통로바닥과 계단바닥과는 약 1.44m의 높 이 차이를 보이고 있어 내측 통로와 현재 조사된 문루로 통하는 계단사이 에는 별도의 계단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어 조사가 필요하다. 이 조사로 성 문내측에서는 안쪽에서 좌우 측으로 통하는 통로가 확인되었고, 이 통로의 폭과 경사를 확인하는 부분적인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사진 5-22. 3번 조사지점 2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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