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한국 일생의례의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고유성 43) 김시덕* Ⅰ. 머리말 Ⅱ. 일생의례의 동아시아적 보편성으로서 관혼상제 Ⅲ. 한국 일생의례의 고유성 Ⅳ. 맺는 말 [국문초록] 한국 일생의례의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고유성을 밝히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이를 위한 분석 기준은 동아시아가 유교문화권에 있기 때문에 유교식 관혼상제를 일생의례의 보편성으로 보았다. 보편성과 고유성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동아시아적 보편성이 서구의 입장에서는 고유 성이 될 수 있고, 그 반대의 논리도 가능하다. 한국 일생의례의 동아시아적 보편성은 다른 민족이나 국가와 마찬가지로 관혼상제의 전통 을 수용하고 있는 점이다. 이에 반해 한국 일생의례의 고유성은 첫째, 동아시아에서 유교식 관 혼상제가 가장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둘째, 유교식 일생의례를 한국의 고유한 문 화에 맞게 변용하여 수용한 것이라고 하겠다. 셋째는 기존의 고유신앙과 유교식 관혼상제가 융 화하여 한국의 고유성을 강하게 드러나게 했다는 것이다. 산업화 도시화로 인해 유교적 성격이 가장 강한 한국의 일생의례 역시 간소화와 변화가 진 행되고 있다. 하나의 습관이 형성되면 변화를 통해 지속되듯, 이러한 외형적 변화는 한국 일생 의례의 고유성을 지속하는 하나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주제어] 일생의례, 보편성, 고유성, 유교식, 유교문화권, 관혼상제, 관례, 혼례, 상례, 제례. * 국립어린이박물관 교육운영과장
70 비교민속학 제 39 집 Ⅰ. 머리말 일생의례(一生儀禮)는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신체의 변화와 사회적 지위변화에 따라 치러야 하는 의례(儀禮)이다. 의례의 내용이나 형식은 지역 이나 민족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 핵심 의미는 세계적으로 보편성 을 갖는다. 이러한 일생의례에는 생활문화를 연구하는 데 필요한 매우 다양한 문화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일생의례에 대한 연구가 인류학이나 민속 학에서 대단히 중요한 분야로 인식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문화론적(文化論的) 입장에서 일생의례를 포함한 의례의 연구 방 법은 대략 7가지정도가 가능하다고 하였다.1) 이 중에서 이번 논의와 직접적으 로 연관되는 것은 없지만 굳이 연결한다면 네 번째의 문화 해석론적 연구라 고 할 것이다. 물론 보편성과 고유성을 따질 때는 이러한 바탕 위에 비교론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다른 민족과의 비교 정도가 아니라 한국 일생의 례의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고유성을 밝히기 위한 방향으로 비교 분석되어야 한다.2) 그러므로 논의 방법은 동아시아권의 일생의례를 거시적으로 비교분석 할 것이다. 따라서 개별 의례의 구체적인 사례분석이나 계층 한정, 현지조사 결과를 제시하는 미시적 분석이 아니라 일반화된 개괄적인 내용을 논증자료 로 제시하는 거시적 분석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 전개될 수 있는 대립적 상대비교보다는 전체적인 거시적 틀에서 비교논의를 진행한다. 일생의례가 세계적인 보편성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고 하더라도 크게는 동 아시아와 서구의3) 비교가 필요할 것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동 1) 鈴木 保 黒田悦子編, ꡔ儀礼 文化と形式的行動ꡕ(東京大学出版会, 1988), i쪽. 2) 동아시아라는 범위는 유교문화권으로 지역적 범위를 한정한다는 의미가 강한 것으로, 이는 아시아의 범위가 광범위하여 보편성을 논하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3) 여기서 사용되는 서구라는 개념은 동아시아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동아시아가 아닌 지 역을 포괄하는 용어로 지금까지 문화론에서 관념적인 상대비교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 던 아메리카와 유럽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한국 일생의례의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고유성 71 아시아(크게는 아시아)와 서구의 일생의례에 있어 가장 큰 차이는 제례( 祭 禮 ) 의 포함여부에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조상숭배와 관련된 제사라는 의례가 일 생의례에 포함되어 매우 중요시 된다. 그러나 동아시아를 제외한 다른 지역 에서는 제사라는 의례가 일생의례에 포함되지 않고, 그렇게 중요시되지도 않 는다. 이렇게 볼 때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성에 속하는 일생의례의 요소는 출생의례, 성년의례, 혼인의례, 죽음의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 서 유교식( 儒 敎 式 ) 일생의례 인 관혼상제( 冠 婚 喪 祭 ) 를 일생의례의 핵심으 로 간주하지만 서구에서는 제례를 포함하지 않는 것이 양쪽의 고유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가 동아시아의 일생의례는 유교적 성격이 강한 것 이 고유성이라면, 서구의 일생의례는 기독교적 성격이 매우 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보편성과 고유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상대성을 인정해야 한 다. 왜냐하면 동동아시아적 보편성이 서구의 입장에서는 고유성이 될 수 있 고, 그 반대의 논리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적 보편성은 그 지역 내에 있는 각 민족의 입장에서는 상대적인 고유성일 수 있기 때문에 보편성과 고 유성의 개념은 상대성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글은 이러한 관점을 토대로 한국 일생의례가 가지고 있는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고유성을 분석하려 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생의례의 동아시아 적 보편성이 어떠한 형태인지 거시적 관점에서 제시하고 이와 비교되는 한 국 일생의례의 고유성을 밝혀야 한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보편성에 대한 논의는 전제 형식이 될 것이고, 고유성은 보다 구체적인 사안들이 제시되고 논의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논의는 통문화적 비교에서 첫 번째 절차로 제시 되는 자료의 제시가 생략될 것이다. 이는 자료의 양이 너무나 방대하고, 자료 의 내용은 이미 다른 글들에서 제시되었고, 독자들에게 인지되어 있기 때문 이다.
72 비교민속학 제 39집 Ⅱ. 일생의례의 동아시아적 보편성으로서 관혼상제 일생의례는 인간의 육체적 사회적 지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문화적 장치 로서 발달하였기 때문에 특정한 생사관(生死觀)을 바탕으로 한다. 이 생사관 의 차이에 의해 사회는 각각 다른 일생의례의 모습을 발달시킨다. 다시 말하 면 인간 시간 공간의 기능적 구성체계 로 형성된 특정한 생활과 문화는 바 로 인간의 육체에 대한 생사관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생활관 이라고 할 수 있다.4) 그러므로 동아시아라 하더라도 각 민족이나 사회의 생활 관이 다르기 때문에 동아시아 권역에 있다고 하더라도 일생의례는 공통된 보 편성을 가진다고 보기는 매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는 어쩌면 일생의례의 동 아시아적 보편성이라는 전제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경우 중국에서 출간된 다양한 유교 경전의 전파가 가진 영향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동아시아적 사고 속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진리로서 유교를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교문화권(儒敎文化圈)에서는 유교식 일생의례인 관혼상제 (이하 관혼상제 로 약칭)를 가정의례이면서 인 간의 일생의례로 간주하는 사고는 동아시아적 보편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 다.5) 로버트 레드필드의 도식을6) 응용하면 관혼상제는 중국의 대전통(Great Tradition)이 된다. 관혼상제 라는 용어는 ꡔ예기 禮記ꡕ의 예운 禮運 편에 등장한다.7) 조선시 4) 장철수, 한국의 평생의례에 나타난 생사관, 한림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엮음, ꡔ동아시 아 기층문화에 나타난 죽음과 삶ꡕ(민속원, 2001), 10쪽. 5) 송재용 역시 이러한 견해를 제시한 바 있는데, 이는 한중일 의례라는 관점에서 출발하 여 일생의례라는 특성을 제대로 피력하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단순히 공통성과 다 양성의 비교라는 주제에 맞추어 유교식 일생의례와 각 민족의 고유문화에 기초한 일생 의례 요소를 분명하게 구별하지 않아 비교의 기준이 부족하다[송재용, 한 중 일 의례에 나타난 공통성과 다양성, ꡔ비교민속학ꡕ 21(비교민속학회, 2001. 8), 280쪽]. 6) Robert Redfild, The Social Organization of Tradition, Peasant Society A reader,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1967, pp.25~34. 7) ꡔ禮記ꡕ, 禮運, 冠昏喪祭射御朝聘
한국 일생의례의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고유성 73 대에는 태조의 즉위교서( 卽 位 敎 書 )에도 등장하듯 그 전통은 이미 오래다. 그 리고 동아시아에서는 예( 禮 )의 하나로서, 또한 일생의례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관혼상제는 동아시아에 속한 대부분의 민족, 특히 동아시아 3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경 우 한족( 漢 族 )을 제외한 55개 소수민족의 일생의례는 다양하지만, 관혼상제라 는 기본적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 중 일 세 나라에서 그들 민족 의 일생의례를 다룬 책의 제목이 하나같이 관혼상제 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서 그 보편성을 쉽게 읽을 수 있다. 8) 일본의 민속학자 미야타( 宮 田 登 )가 사람의 일생을 생각해 볼 때 관혼상제 라는 단어는 매우 적절한 키워드다 라 고 9) 한 말은 관혼상제 가 일본의 일생의례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보편성을 지 니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러한 관혼상제라는 보편성은 12세기 송( 宋 )나라 주희( 朱 熹, 1130~1200)에 의해 ꡔ가례( 家 禮 )ꡕ로 정리되지만, 실제적으로는 이미 기원전부터 존재했었다. 즉, ꡔ대대예기( 大 戴 禮 記 )ꡕ가 고대부터 있어 왔고, 3례라고 일컬어지는 ꡔ예기ꡕ, ꡔ주례( 周 禮 )ꡕ, ꡔ의례( 儀 禮 )ꡕ 등을 통해 유교식 일생의례가 점차 확고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례의 원전이 되는 책들은 모두 중국에서 저술되어 중국 중 심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10) 중국을 둘러싼 주변국들은 이들 책을 통해 관혼상제를 그들의 일생의례로 규정하고 있었다. 관혼상제의 영향은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 동일하게 발견된다. 특히 이 들 국가에서 중요한 문화현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조상숭배를 위한 제사는 관 혼상제의 전통이 보편적임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제사문화를 포함하는 관혼상제는 서구와는 변별되는 동아시아적 고유성임과 8) 장철수, ꡔ한국 전통사회의 관혼상제ꡕ(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지두환, ꡔ조선왕실의 통과의례 관혼상제ꡕ(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2004); 鈴 木 清 一 郎, ꡔ 台 湾 旧 慣 冠 婚 葬 祭 と 年 中 行 事 ꡕ( 南 天 書 局 有 限 公 司, 1934); 宮 田 登, ꡔ 冠 婚 葬 祭 ꡕ( 岩 波 書 店, 1999). 9) 宮 田 登, ꡔ 冠 婚 葬 祭 ꡕ( 岩 波 書 店, 1999), 1 面. 10) 사실 중국 중심이라고 하더라도 엄격히 말하면 중국의 중심을 이루었던 한족( 漢 族 )의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74 비교민속학 제 39집 동시에 동아시아 내의 보편성이라고 할 수 있다. 관혼상제는 현대로 이행하면 서 많은 부분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관혼상제라는 큰 틀은 여전히 존속되고 있다. 각 국가별 사례와 의례들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관혼상제 전통의 보 편성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관례( 冠 禮 )의 경우 한국에서는 고구려 태조왕 67년(110) 한나라( 漢 )에 사신 을 보내 안제( 安 帝 )의 원복( 元 服 ) 대착식( 戴 着 式 )을 하례 하였다 는 11) 기록에 서 이미 관례에 대한 인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실제적인 관례는 왕 태자의 관례 방법을 기록했던 고려시대로 12) 보인다. 일본에서는 13) 공가( 公 家 ) 나 무가( 武 家 )에서는 성인이 되었음을 축하하는 원복( 元 服 )을 한다. 또한 머리 묶기( 結 髪 ) 혹은 가관( 加 冠 )이라고 하여 관( 冠 ) 또는 에보시( 烏 帽 子 )라는 검은 색 모자를 씌워주는 성년의례를 한다. 이러한 성년의례는 모두 고대 중국의 풍습을 따와서 행하게 된 것으로 유교식 혹은 한국과 유사하다. 중국에서는 ꡔ가례ꡕ나 ꡔ예기ꡕ, ꡔ의례ꡕ에 따라 관례를 행하였으나 현재는 사 라졌다. 14) 소수민족의 경우 바지입기와 치마입기, 문신과 치아염색 등이 관례 의 하나로 행해지기도 한다. 타이완에서는 유교식 관념의 관례는 이념만 남아 있고, 의례는 소멸되었다. 대신 혼례에 앞서 상두대계( 上 頭 戴 髻 ) 라는 것이 관례를 대신하고 있다. 15) 이는 양가에서 동일한 시간에 머리를 세 번 빗기면 서 신에게 자손번창을 기원한다. 여성의 경우 이 때 머리를 빗겨 비녀를 꽂는 것이 다르다. 이는 관례의 의미가 강하지만, 타이완에서는 혼례의 일부분으로 취급하고 있다. 일본은 무가나 공가에서 관례를 행하기도 했지만, 일반인들은 성별을 구별해 주는 것으로 성인식을 대신하는 바지착복축하( 袴 着 )나 허공장 11) ꡔ 三 國 史 記 ꡕ 券 15, 高 句 麗 本 紀 3, < 大 祖 大 王 >, 五 十 七 年, 春 正 月, 遣 使 如 漢, 賀 安 帝 加 元 服 12) ꡔ 高 麗 史 ꡕ 券 66, 誌 20, 禮 8, 嘉 禮 2, < 王 太 子 加 元 服 儀 >. 13) 宮 田 登, ꡔ 冠 婚 葬 祭 ꡕ( 岩 波 書 店, 1999), 96~104 面 ; 上 野 和 男 외 3인 편, ꡔ 新 版 民 俗 調 査 ハンドブックꡕ( 吉 川 弘 文 館, 1987); 倉 石 あつこ 외 2인 편, ꡔ 人 生 儀 礼 事 典 ꡕ( 初 学 館, 2000), 116~118 面. 14) 陶 立 璠 저, 金 宗 植 역, ꡔ 中 國 民 俗 學 의 理 解 ꡕ(집문망, 1997), 299쪽. 15) 鈴 木 清 一 郎, ꡔ 台 湾 旧 慣 冠 婚 葬 祭 と 年 中 行 事 ꡕ( 南 天 書 局 有 限 公 司, 1934), 165~166 面.
한국 일생의례의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고유성 75 보살( 虛 空 藏 菩 薩 )을 참배하는 십삼참배( 十 三 参 り), 치아염색(お 歯 黒 ) 등이 행 해졌다. 이러한 의례는 한국과는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유교식과도 차이를 보인다. 혼례의 경우 중국에서는 소수민족의 다양한 혼인관습이 있지만, 육례( 六 禮 ) 를 강조하고, 16) 친영( 親 迎 )의 절차에 따라 신부가 신랑 집으로 들어가는 형태 이다. 17) 타이완 혼례의 경우 각 절차의 명칭은 바뀌었지만 유교식 육례의 전 통이 지속되고 있다. 18) 그리고 혼례를 치르는 장소가 신랑의 집으로 되어 있 는 것은 관혼상제의 전통을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일본의 경우 역 시 관혼상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유이노( 結 納 )는 일종을 혼약( 婚 約 )을 하는 절차인데, 주육례의 납징 ( 納 徵 ) 혹은 주자 사례( 四 禮 )의 납폐( 納 幣 )와 유사하다. 이러한 대표적인 절차 는 관혼상제에 입각한 동아시아적 보편성이다. 상례의 경우 영육 이중구조 관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복( 復 )의 절차 역 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동일하게 나타난다. ꡔ가례ꡕ의 복은 한국과 중국에서 는 고복( 皐 復 ) 혹은 초혼( 招 魂 )이라고도 한다. 일본에서는 다마요비( 魂 呼 び)라 고 하는데, 용어나 의미, 방법 역시 ꡔ가례ꡕ의 규정과 동일하다. 베트남의 경우 초호( 招 呼 )라고 하여 고인의 영혼이 자식들에게 돌아오도록 부르는 절차와 초 혼( 招 魂 )이라고 하여 고인의 영혼을 초청하는 절차가 분리되어 있으나 19) 원리 는 같다. 또한 용어는 약간씩 다를지라도 내용과 절차는 거의 동일하다. 20) 그 16) 陶 立 璠 저, 金 宗 植 역, ꡔ 中 國 民 俗 學 의 理 解 ꡕ(집문망, 1997), 320쪽. 17) 중국 남부 광시좡족자치구( 廣 西 壯 族 自 治 區 )의 헤이이좡족( 黑 衣 壯 族 ), 야오족( 瑶 族 ), 홍야오족( 红 瑶 族 ), 무라오족( 佬 族 ) 등에서도 반드시 친영을 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김영재 최일춘, ꡔ중국의 혼례문화ꡕ(국립민속박물관, 2008)]. 18) 鈴 木 清 一 郎, ꡔ 台 湾 旧 慣 冠 婚 葬 祭 と 年 中 行 事 ꡕ( 南 天 書 局 有 限 公 司, 1934), 148~182쪽. 19) 양승윤 이병도 송정남, 동남아의 장례문화,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학종합연구센 터 편, ꡔ세계의 장례문화ꡕ(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2006), 134~141쪽. 20) 임종-사망-초호( 招 呼 )-초혼-상주와 주부, 호상 세우기-목욕-반함-벌목례( 罰 木 禮, 부정치기)-입관례-성복례-전구례( 轉 柩 禮 )-발인-노신제-제주례-하혈례( 下 穴 禮 )-성분례-반곡례-조제( 朝 祭 )-우제-압모(성묘)
76 비교민속학 제 39집 러나 중국 소수민족의 경우 현관장( 懸 棺 葬 ), 수장( 樹 葬 ), 천장( 天 葬 ), 화장( 火 葬 ), 매장 등 다양한 장법이 존재하여 각 민족이 고유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제사의 경우 한국과 중국 한족은 ꡔ가례ꡕ의 규정에 입각해 있어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유교의례보다는 불교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즉, 집안에 불단( 佛 壇 )을 설치하고 본존불과 함께 조상신을 모신다. 그러나 세 대별 조상 각각의 위패( 位 牌 )는 없고 하나의 위패에 모든 조상의 영혼이 깃들 어 있는 것으로 상징화 되어 있다. 이 글에서 관혼상제를 일생의례의 동아시아적 보편성으로 규정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따른 문화의 변동을 염두에 둔 통시적( 通 時 的, Diachronism) 전 제이다. 중국의 경우 종주국이므로 더 이상 언급이 필요 없다. 한국의 경우 이 미 고대부터 관혼상제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1) 또한 고구려에서는 혼인을 하면 곧바로 죽어서 입을 옷을 만든다. 는 22) 기록들은 이미 유교적 상 례에 따른 수의( 襚 衣 )의 제도와 염습( 斂 襲 )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또 부여에서 사람이 여름에 죽으면 모두 얼음을 사용한 23) 것은 ꡔ가례ꡕ의 설빙( 雪 氷 ) 제 도와 상통한다. 24) 고려시대가 되면 상복제도( 喪 服 制 度 )라든가 삼년상제( 三 年 喪 制 )가 국가의 제도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고려 성종 대에는 국가의 주요 제도를 유교식으로 개편하고 25), 오복제도를 정하는(성종 4년) 등 유교식 일생의례의 형식들이 내 용 면으로나 의례적으로나 본격적으로 고려에 영향을 끼친다. 26) 이는 관혼상 21) 한국에서는 고대사회에 중국의 관혼상제를 받아들인 흔적이 동이전( 東 夷 傳 )에 수없이 남아 있다. 22) ꡔ 梁 書 ꡕ 卷 54, 列 傳 第 48, < 高 句 驪 >, 已 嫁 娶, 便 稍 作 送 終 之 衣 ; ꡔ 三 國 志 ꡕ 卷 30, 魏 書 30, 烏 丸 鮮 卑 東 夷 傳 第 30, < 高 句 麗 >, 男 女 已 嫁 娶, 便 稍 作 送 終 之 衣 ; ꡔ 南 史 ꡕ 卷 79, 列 傳 第 69, < 高 句 麗 >, 已 嫁 娶 便 稍 作 送 終 之 衣 23) ꡔ 三 國 志 ꡕ 卷 30, 魏 書 30, 烏 丸 鮮 卑 東 夷 傳 第 30, < 夫 餘 >, 其 死, 夏 月 皆 用 冰 24) 다양한 사례들에 대해서는 변태섭의 글[ 한국고대의 계세사상과 조상숭배신앙, ꡔ역사 교육ꡕ 3 4(역사교육연구회, 1958 1959)]; 이필영의 글[ 한국고대의 장례의식 연구, ꡔ한남대학교(인문과학편)논문집ꡕ 17(한남대학교, 1987)]; 김시덕의 글[( 고구려 상례문 화의 정체성, ꡔ역사민속학ꡕ 18(한국역사민속학회, 2004. 6)] 참조 25) 최홍기, 가정의례, ꡔ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ꡕ 1(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159쪽.
한국 일생의례의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고유성 77 제가 동아시아적 보편성으로 자리 잡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 역시 불 교식 장례가 발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빈궁( 殯 宮, もがりのみや)은 유교식 영 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는 이미 고대사회부터 관혼상제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생의례의 동아시아적 보편성은 관혼상제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관혼 상제는 동아시아의 전통사회는 물론 현재까지도 각 민족, 국가에서 일생의례 를 표현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보편화 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국 일생의례의 동아시아적 보편성은 관혼상제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Ⅲ. 한국 일생의례의 고유성 1. 가장 보편적인 것이 가장 고유한 것 한국사회의 유교적 변환 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마르티나 도이힐러는 한국사회가 조선시대에 유교적으로 전환되었다고 그의 저서를 통해 선언하였 다. 27) 이는 유교의 종주국인 중국조차도 잦은 전쟁과 지배민족의 변화로 그들 의 가장 큰 이데올로기였던 유교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지만, 한국은 이를 잘 전승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사실 중국 56개 소수민족의 일생의례 를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관혼상제를 기본으로 한다고는 하지만 각 의례의 실천방법에는 차이가 많다. 특히 문화대혁명으로 28) 전통문화나 소수민족의 26) 장철수, 사당의 역사와 위치에 관한 연구 (문화재관리국, 1990), 10쪽. 27) Martina Deuchler 저, 이훈상 역, ꡔ한국사회의 유교적 변환ꡕ(아카넷, 2005). 28) 마오쩌둥[ 毛 澤 東 ]이 중국 혁명정신을 재건하기 위해 자신이 권좌에 있던 마지막 10년 간(1966~76)에 걸쳐 추진한 대격변이다. 중국이 소련식 사회주의 건설노선을 따라 나 아갈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자신의 역사적 위치에 대한 우려 때문에 마오쩌둥은 역사의 흐름을 역류시키기 위해 사상 유례없는 노력을 기울여 중국의 여러 도시를 혼란상태로 몰아넣었다. 내용은 프롤레타리아의 노선이 아닌 모든 소수민족주의, 전통주의 및 부르 주아 사상을 제거하여 프롤레타리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었으나, 중국의 문화
78 비교민속학 제 39집 문화적 전통은 모두 부정당하면서 유교적인 모습은 매우 약화되었으나 최근 이를 부흥하려는 노력들이 있다고 한다. 29) 최근에는 간소화와 의례의 산업화 로 인해 다시 변화를 거듭하고 있어 유교 종주국임에도 관혼상제의 전통이 거 의 소멸된 상태에 있다. 이와는 달리 한국은 전혀 다른 방향이다. 굳이 도이힐러의 말을 빌리지 않 더라도 한국이 유교사회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레드필드의 도식을 빌리면 대 전통인 중국의 영향을 받은 주변국의 소전통(Little Tradition)으로 구조화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한국의 문화는 대전통과 소전통의 관계와는 상관없이 대전통 으로부터 전수받은 소전통의 문화적 현상은 독특한 주변성을 가진다. 다시 말 하면 큰 틀에서 관혼상제라는 보편성에 대하여 주변문화(Cultural Marginality)로 서 고유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30) 물론 19세기 말 이후 개화와 가정의례준칙, 31)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 등으로 인해 변화된 부분이 없지 않지만, 유교식 의례 문화의 전통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사실 유교식 관례는 복잡한 형식으로 인해 상류층에서 주로 행해졌다. 32) 그 래서 민간에서는 혼례의 한 부분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아 절차와 형식 역시 대혁명은 비록 농촌에 살던 수많은 인민들을 비켜가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중 국 전체에 심각한 결과를 가져왔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경제정 책이 끊임없이 변경되었기 때문에 경제성장이 더욱 늦어지고 상품과 용역을 분배하는 정부의 행정력이 저하되었다. 29) 2008 UNESCO 세계 무형유산 대표 목록 등재 기준 (2008. 6.16~19, 2차 총회 잠정 확정) 에 따라 중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목록은 한족뿐만 아니라 수수민족의 전통문화 1028점 을 등록 예정이라고 한다. 30) 전경수, 관혼상제의 전통 만들기 : 동아세아 유교문화와 주변문화론, ꡔ역사민속학ꡕ 19 (한국역사민속학회, 2004.12), 56쪽. 31) 이에 대해서는 고원[ 박정희 정권 시기 가정의례준칙과 근대화의 변용에 관한 연구, ꡔ담론201ꡕ 9-3(한국사회역사학회, 2006), 191~223쪽]; 도민재[ 사회변화에 따른 제례의 제 문제, ꡔ유교사상연구ꡕ 16(한국유교학회, 2002), 49~77쪽]; 김시덕[ 가정의례준칙이 현행 상례에 미친 영향, ꡔ역사민속학ꡕ 12(한국역사민속학회, 2001), 81~107쪽] 등의 연 구 참조. 32) 유교식 관례에 대해서는 이문주의 연구[ 성인식으로서의 관례의 구조와 의미분석, ꡔ유교사상연구ꡕ 17(한국유교학회, 2002), 25~50쪽] 참조.
한국 일생의례의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고유성 79 간소화되었지만, 그 전통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1896년의 단발 령과 1969년의 가정의례준칙 에서 관례를 생략함으로써 관례가 소멸하는 듯 했다. 그러나 1973년의 가정의례준칙에서 이를 다시 제정하여 명맥을 잇게 되 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관례는 예절단체, 성균관 등에서는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33) 특히, 1982년 5월 16일 경북 안동군 임하면 천전리 의성김씨( 義 城 金 氏 ) 청계공( 靑 溪 ) 종택에서 행해진 종손 김 의 관례, 2009년 5월 16일 행해 진 영천이씨( 永 川 李 氏 ) 농암( 聾 巖 ) 종택 차종손 이 의 관례 등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는 아직까지 한국에서 유교식 관례가 필요에 의해 실용성을 지니고 전승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 혼례의 경우, 전통사회에서는 2가지 모습이 공존하고 있었다. 하나는 주육례를 따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자의 사례를 따르는 것이었다. 사실 주자의 사례는 주육례를 간소화 한 것이기 때문에 큰 뜻에서는 차이가 없다. 특히 혼례는 인륜지대사( 人 倫 之 大 事 )라고 하여 그 절차를 더욱 중요시했다. 현재 한국에서는 1890년대 이후 예배당식 신식결혼식이 등장하였고, 의례의 산업화에 따라 예식장 혼례가 보편화 되어 있다. 예식장의 의식은 혼례의 전 과정 중 극히 일부에 속하는 것이고, 혼례의 과정인 사주교환, 함보내기(납폐), 예단 등은 반드시 해야 하는 절차로 인식하고 있다. 이는 현대 한국사회에서 는 유교식 혼례 전통이 여전히 유지되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요즘에도 성 균관이나 한국의 집 등에서 이루어지는 전통 혼례 역시 그 수를 무시할 수 없 기 때문에 유교식 혼례전통이 지속되고 있다고 하겠다. 상례와 제례는 유교문화권 국가 중에서 한국이 가장 변하지 않은 나라라고 할 수 있다. 34) 비록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지만 수의( 襚 衣 )를 입히는 염습 이 엄격히 준수되고, 상복을 입는 전통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35) 묘지 난으 33) 국가 혹은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집단적인 성년식을 행해 유교식 관례의 성격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34) 현재 중국에서는 정시( 停 尸 )-초혼( 招 魂 )-보상( 報 喪 )-조언( 弔 唁 )-입렴( 入 殮 )-출빈 ( 出 殯 )-안장( 安 葬 )으로 진행되어 유교식과는 차이가 있다. 35) 도시에서 지속되는 상례의 문화적 전통에 대해서는 김시덕의 글[ 도시 장례식장에서
80 비교민속학 제 39집 로 인해 화장을 하더라도 유교식 상례 절차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역시 유 교식 상례의 현존을 의미한다. 특히, 2007년 7월 20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경상 남도 김해시 장유면 관동리 덕정마을 화재( 華 齋 ) 이우섭( 李 雨 燮 ) 선생의 상례, 2008년 2월 3일부터 진행 중인 경북 안동시 금곡동 학봉 종택 종손 소운( 昭 雲 ) 김시인( 金 時 寅 ) 선생의 삼년상은 한국의 유교식 상례문화가 종가를 중심으로 지속되고 있는 보편적 상례임을 의미한다. 도시화와 직장생활이라는 생활양식의 변화는 관혼상제의 변화를 요구한다. 제사 역시 자유롭지는 못하다. 조선 영조 28년(1752)에 이미 사대봉사( 四 代 奉 祀 )가 보편화 된 36) 이래 그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도시의 직장 생활로 인해 제사 봉행이 쉽지 않아 봉사대수를 2대로 줄이거나, 고위의 제삿 날에 비위를 함께 지내 횟수를 줄이거나, 1년 중 좋은 날을 잡아 한꺼번에 기 제사( 忌 祭 祀 )를 지내기도 하는 등 변화의 모습이 역력하다. 뿐만 아니라 추석 성묘로 10월의 묘사를 대신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사를 지내는 방식은 유교식 그대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종주국인 중국을 비롯하여 동아시아의 다른 민족과 국 가들은 관혼상제 전통을 상실해 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부 의례가 미약하긴 하지만, 관혼상제 전통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아마도 한국 문화 속의 의례 전통이 유교식을 근간으로 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러한 유교식 일생의례인 관혼상제 전통의 지속은 한국 일생의례의 고유성이 라고 할 수 있다. 2. 유교식 일생의례의 긍정적 수용 문화의 변용은 문화를 받아들이는 자들의 문화를 수용하는 태도와 밀접한 지속되는 상례의 문화적 전통, ꡔ실천민속학연구ꡕ 9(실천민속학회, 2007. 2), 107~135 쪽] 참조. 36) ꡔ 朝 鮮 王 朝 實 錄 ꡕ, 英 祖 卷 77, 28 年 7 月 24 日 ( 壬 午 )조.
한국 일생의례의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고유성 81 관련을 가진다. 타문화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때는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타문 화를 긍정적으로 수용할 경우에는 그들의 상황에 맞는 부분만 선택적으로 수 용하고, 나머지는 배척한다. 한국 일생의례는 동아시아적 보편성인 관혼상제 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각 의례를 행하는 데에는 보편성과 고유성이 공존 한다. 이는 관혼상제라는 의례를 받아들여 공인되고 정착되는 과정에서 선택 성이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즉, 하나의 의례를 수용하여 행하는 데 있어 필요 없는 부분은 제거하고, 그 부분에 고유한 문화 혹은 제3의 문화를 대입하는 형 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관혼상제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난다. 37) 관례의 경우 유교식에 따라 모든 사람이 관례를 치르기는 쉽지 않았다. 그 래서 통상 장가들기 전에 간단한 절차에 따라 상투를 틀어 관례를 대신한다. 여자의 경우 계례( 笄 禮 )를 생략하고 바로 머리를 올리는 경우도 많았고, 댕기 풀이라고 해서 친구들과 모여 즐기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특히, 서민들이 행했던 진새례, 진새먹이기, 진새턱, 들돌들기, 농사장원뽑기 등은 유교식 관 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의례이지만 농경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례였다. 이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힘을 가늠하는 의례로 노동능력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의례이다. 38) 이는 신분에 따라 관례를 행하는 방법이 다양했음을 의미한 다. 즉, 이러한 다양한 서민들의 관례방법은 유교식 관례와는 또 다른 한국 일 생의례의 고유성이라고 할 수 있다. 혼례의 경우 아시아적 보편성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친영( 親 迎 )의 유무이다. 한국에서 친영의 역사는 고려시대의 경우 주로 왕실에서 행하였 다. 39) 일반인으로서는 최충헌의 아들 성( 珹 )이 희종( 熙 宗 )의 딸과 혼인을 할 때 친영하였다는 것만 40) 확인된다. 이규보( 李 奎 報, 1168~1241)는 옛날엔 부인 37) 사실 이러한 현상은 불교적, 도교적인 것도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자료가 부 족하여 조선 초기까지 유행했던 불교식 의례는 물론 도교적 의례 형태가 어떻게 수용 되어 있는가를 읽기에는 무리가 있다. 38) 이는 일본의 역석( 力 石 ) 민속은 치카라모찌( 力 持 ち)라고 하여 경기처럼 되어 있는데, 들돌들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39) ꡔ 高 麗 史 ꡕ 66, 志 20, 禮 8, < 嘉 禮 - 王 太 子 納 妃 儀 >.
82 비교민속학 제 39집 을 맞이할 때 부인이 남편의 집으로 시집오게 되어, 그 부인의 집인 처가에 의 뢰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장가갈 때 남자가 처가로 가게 되어 무릇 자기의 필요한 것을 다 처가에 의거하니 장인 장모의 은혜가 자기 부모와 같 다. 41) 이 기록은 고려 시대에 이미 친영의 제도가 소개되었지만 그대로 따르 지 않고 전통적인 서류부가( 婿 留 婦 家 ) 제도를 42) 따랐음을 알게 해 준다. 조선시대의 경우 왕실에서는 친영을 받아들였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친영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정도전( 鄭 道 傳, 1337~1398)은 친영( 親 迎 )의 예( 禮 )가 폐지되어, 남자가 여자의 집에 들어가게 되는데 부인이 무지하여 자기 부모의 사랑을 믿고 남편을 경멸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교만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날로 커져서 마침내는 남편과 반목하 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가도( 家 道 )가 무너지는 것은 모두 시작이 근엄하지 못한 데 서 연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에 있는 사람이 예를 지어서 이를 정제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 풍속을 통일시킬 수 있겠는가? 신은 성경( 聖 經 )을 상고하고 본시( 本 始 )를 삼가서 혼인편( 婚 姻 篇 )을 짓는다. 고 43) 하였다. 유형원( 柳 馨 遠, 1622~1673)은 지금 왕실에서는 모두 친영을 행하나 사대부가는 고루하여 서류부가한다. 고로 처를 취했다 하지 않고 장가를 들었다 한다. 이는 양 이 음에 따르는 것으로 크게 남녀의 의를 잃은 것이다. 고 44) 하였다. 40) ꡔ 高 麗 史 節 要 ꡕ, 高 宗, 6 年 7 月, 崔 忠 獻 以 其 子 珹 尙 前 王 女 <중략> 親 迎 之 日 諸 王 宰 樞 百 官 具 公 服 以 從 41) 李 奎 報, ꡔ 東 國 李 相 國 集 ꡕ 卷 37, 祭 外 舅 大 府 卿 晉 公 文 葬 所 行, 古 者 親 迎, 婦 嬪 于 壻, 其 賴 婦 家, 無 有 幾 許. 今 則 娶 妻, 男 歸 于 女, 凡 已 所 須, 婦 家 是 據, 姑 舅 之 恩, 有 同 怙 恃 42) 고려시대의 서류부가혼에 대해서는 권순형의 글[ 고려시대 婿 留 婦 家 婚 에 대한 연구, ꡔ이대사원ꡕ 제30(이대사학회, 1997)] 참조. 43) 鄭 道 傳, ꡔ 三 峰 集 ꡕ 卷 13, 朝 鮮 經 國 典 上, 禮 典 < 婚 禮 > 條, 親 迎 禮 廢, 男 歸 女 家, 婦 人 無 知, 恃 其 父 母 之 愛, 未 有 不 輕 其 夫 者, 驕 妬 之 心, 隨 日 以 長, 卒 至 反 目, 家 道 陵 替, 皆 由 始 之 不 謹 也. 不 有 上 之 人 制 禮 以 齊 之, 何 以 一 其 風 俗 哉, 臣 稽 聖 經 謹 本 始, 作 婚 禮 篇. 44) 柳 馨 遠, ꡔ 磻 溪 隧 錄 ꡕ 卷 25, 婚 禮 申 明 親 迎 之 禮 條, 今 國 家 王 子 婚 姻 皆 行 親 迎 之 禮
한국 일생의례의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고유성 83 안정복( 安 鼎 福, 1712~1791)은 친영에 대해 ꡔ가례ꡕ의 본문에 보인다. 속례에는 없다. (중략) 우리나라 사람들은 친영의 예를 행하지 않는다. 그것은 고구려 때 부터 있어온 풍속이라고 45) 하였다. 이긍익( 李 肯 翊, 1736~1806) 역시 근래에 와서 사족( 士 族 )의 집에서 혼인날 저녁 에 ꡔ가례ꡕ에 따라 행사하는 것을 진친영( 眞 親 迎 ) 이라 하고, 신랑이 저녁에 신부의 집에 가서 신랑 신부가 서로 절하고 혼례의 잔치를 행하고는 그 이튿날 시아버지 와 시어머니를 알현하는데, 이것을 반친영( 半 親 迎 ) 이라 한다. 고 46) 하였다. 이러한 기록은 조선에서는 친영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았음을 잘 알려준다. 이는 부처제( 婦 處 制, Uxorilocal Residence)인 고구려 서옥제( 婿 屋 制 )의 전통이 강했기 때문에 부처제( 夫 處 制, Virillcal Residence)인 친영을 수용하지 않았던 것 으로 보인다. 47) 그러나 타문화의 긍정적 수용에 따라 고유의 서류부가 혼속과 혼례의 절차를 잘 융화시켜 자신의 문화로 정착시켰던 것이다. 반친영의 민속은 신부 집에서 혼인예식을 치르고 다시 신랑 집으로 돌아간 다는 의미의 우귀( 于 歸 )라는 절차를 만들어내게 된다. 우귀란 절차 명칭은 다 분히 신랑의 입장에서 명명된 것으로 신랑이 장가를 갔다가 다시 자신의 집으 로 돌아오는데, 이 때 신부와 함께 온다는 것이다. 이를 신부의 입장에서 본다 면 신행( 新 行 )이 되는 것이다. 우귀는 기본 3일을 위시하여 달묵이, 해묵이 등 도 나타나고 있다. 이 절차는 ꡔ가례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 고유의 민속 으로 유교식 혼례를 긍정적으로 수용한 단적인 예가 된다. 상례의 경우 더 많은 사례들이 있으나 가장 큰 차이는 길제( 吉 祭 )와 개장( 改 葬 )의 추가에 있다. 이에 대해 ꡔ상례비요 喪 禮 備 要 ꡕ에서는 ꡔ가례ꡕ에는 길제 而 士 大 夫 家 固 陋 苞 簡 婿 留 婦 家 故 不 曰 娶 妻 而 曰 入 丈 家 是 反 陽 從 陰 大 失 男 女 之 義 45) 安 鼎 福, ꡔ 順 菴 先 生 文 集 ꡕ 14, 雜 著, < 婚 禮 酌 宜 >조. 46) 李 肯 翊, ꡔ 燃 藜 室 記 述 ꡕ, 別 集 12, 政 敎 典 故, < 婚 禮 離 婚 >조. 47) 일본의 신랑영입혼( 聟 入 り 婚 ) 역시 서류부가와 유사한 것이고, 요메이리콘( 嫁 入 り 婚 ) 은 친영과 유사하다.
84 비교민속학 제 39집 와 개장 2개조가 없으나 고례( 古 禮 )와 구준( 丘 濬 )의 ꡔ가례의절 家 禮 儀 節 ꡕ에 따라 보입한다. 고 48) 하였듯이 필요에 의해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ꡔ사례 편람 四 禮 便 覽 ꡕ에 의하면 ꡔ가례ꡕ에는 없으나 ꡔ상례비요ꡕ에서 고례를 채택하 여 보입하였으므로 이에 따른다. ꡔ상례비요ꡕ의 기록은 오히려 자세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보태어 넣어 참고하여 보기에 편리하게 하였다 고 49) 하였다. 이 는 ꡔ가례ꡕ의 규정이 부제( 祔 祭 )를 지내면서 새로운 신주를 사당에 부묘( 祔 廟 ) 할 것을 윗대 조상에게 고하고, 그 다음 절차인 대상( 大 祥 )에서 탈상을 하고, 담제( 禫 祭 )를 지내면서 신주를 사당에 봉안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ꡔ상례비요ꡕ 와 ꡔ사례편람ꡕ에서는 담제에서 신주의 분면을 개제( 改 題 )하고, 신주의 봉사대 수를 바꾸는 일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길제의 조항을 별도로 삽입하여 이를 분명하게 했던 것이다. 또한 ꡔ사례편람ꡕ에서는 ꡔ가례ꡕ의 거상잡의 居 喪 雜 儀 를 생략하고 대신 개장 항목을 추가하였다. 도암은 개장은 어떤 연고로 무덤이 무너져 시신 과 관이 없어질 우려에서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세속에서 풍수설에 따라 까 닭 없이 옮기니 매우 잘못된 것이다 라고 50) 걱정하고 있다. 이는 당시 어떤 이 유에서든 개장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었고, 이에 대한 규범이 없었기 때문 에 ꡔ사례편람ꡕ에 개장을 추가한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이와 함께 ꡔ가례ꡕ는 순장의 방식을 구체화 하여 사자의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이 강하고, ꡔ사례편람ꡕ은 시신을 처리하는 방법을 강조하여 고인과 유족 의 관계 속에서 행해지는 상례임을 강조하는 개념이 강조되고 있다. 51) 그래서 ꡔ가례ꡕ보다 ꡔ사례편람ꡕ의 상례절차가 더욱 정교해지는데, 이는 후자가 전자보 48) ꡔ 喪 禮 備 要 ꡕ, 吉 祭, 按 家 禮 無 吉 祭 改 葬 二 條 今 采 古 禮 及 丘 儀 補 入 49) ꡔ 四 禮 便 覽 ꡕ, 吉 祭, ( 按 ) 吉 祭 家 禮 所 無 而 備 要 旣 採 古 禮 補 入 故 今 亦 從 之 而 備 要 所 載 則 猶 欠 詳 備 故 就 其 中 更 加 添 修 俾 便 於 考 閱 50) ꡔ 四 禮 便 覽 ꡕ, 改 葬, ( 備 要 ) 古 者 改 葬 爲 墳 墓 以 佗 故 崩 壞 將 亡 失 尸 柩 也 世 俗 或 於 風 水 之 說 有 無 故 以 遷 葬 者 甚 非 也 51) 전경수, 관혼상제의 전통만들기 : 동아세아 유교문화와 주변문화론, ꡔ역사민속학ꡕ 19 (한국역사민속학회, 2004.12), 67쪽.
한국 일생의례의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고유성 85 다는 조상과 자손의 관계를 더 중요시한다는 것으로 이 또한 고유성이라 할 수 있다. 상복 역시 오복제도를 기본으로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변형이 있었 다. 조선시대에는 서류부가형 혼인과 관련하여 장인 장모의 은혜가 커 상복 을 입을 때 30일을 더 중하게 여겨 휴가날짜를 늘려주기도 하였다. 태종 15년 예조에서 상복제를 정할 때 옛 풍속인 서류부가 혼속에 따라 외조부와 처부 모의 복을 당하면 휴가날짜를 30일 더 주었는데, 옛 풍속을 그대로 따르면 친소( 親 疏 )에 차가 없어 미편( 未 便 )하므로 외조부모의 대공( 大 功 )에는 20일, 처부모의 소공( 小 功 )에는 15일 더 주도록 한다. 고 52) 하여 ꡔ가례ꡕ와는 다른 상복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이 역시 한국 일생의례의 고유성이라고 할 수 있 을 것이다. 한편, 제사의 경우 크게 변용되는 부분은 없다. 그러나 첫째, 기제사에서 음 복을 하는 것이 변용의 한 모습이다. ꡔ가례ꡕ에는 기제사에서 음복을 하지 않 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으나 ꡔ사례편람ꡕ에서는 기일은 초상의 나머지이다 라고 53) 그 의미를 설명하면서 음복을 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한국에서 기제사에 반드시 음복을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음복을 그만큼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음복에 종교적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54) 둘째, 제사의 윤회봉사( 輪 回 奉 祀 ) 혹은 제사의 분할이다. 한국에 서 제사분할 관습은 전국적인 분포는 아니지만, 산간과 도서지역 등지에서 나 타난다. 55) 제사분할 혹은 모셔가기는 4대까지 조상의 제사를 장남이 모두 지 낸다는 예서( 禮 書 )의 전통과는 달리 형제가 제사를 분할하여 나누어 지내거나 형제가 조상의 제사를 번갈아가면서 지내는 관습이다. 56) 셋째, 사대봉사( 四 代 52) ꡔ 朝 鮮 王 朝 實 錄 ꡕ, 太 宗 15 年 (1415) 1 月 15 日 ( 甲 寅 )조. 53) ꡔ 四 禮 便 覽 ꡕ, 祭 禮, < 忌 日 > 54) 김시덕, 유교식 제사 실천을 위한 감모여재도, 한국종교민속연구회, ꡔ종교와 그림ꡕ (민속원, 2008), 271~274쪽. 55) 김미영, 제사 모셔가기에 나타난 유교이념과 양반지향성, ꡔ민속연구ꡕ 9(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 1999), 202쪽.
86 비교민속학 제 39집 奉 祀 )의 일반화이다. 송대에 만들어진 중국식의 조상제사는 신분에 따라 봉사 대수를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18세기 중반에는 이미 신분을 막론 하고 모두 4대봉사를 하고 있음이 실록의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57) 이러한 한국 관혼상제의 변형된 세부 사실들은 중국식의 ꡔ가례ꡕ를 어떻게 수용하였는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즉, 우리 문화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 고 비판 없이 수동적으로 수용하였느냐 아니면 당시의 사회문화적 환경에 맞 게 능동적으로 수정하여 수용하였는가 여부이다. 차이가 있다는 것은 한국 사 회에 맞게 수정하려는 노력이 가미된 능동적 수용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관혼 상제의 세부적 절차나 방법에서 ꡔ가례ꡕ의 규정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부분적으로 다르게 행해진 사실들은 관혼상제를 한국적 상황에 맞게 변용하 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한국에서 행해지는 관혼상제는 한국의 것이며, 이 것이 한국 일생의례의 고유성임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출생의례의 경우 관혼상제라는 말에서처럼 유교식 의례에서는 규정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출산의례는 다양한 기원의 방법과 삼칠일, 백 일, 돌 등 다양한 의례들이 행해져왔다. 이러한 의례는 일본의 슛산이와이( 出 産 祝 い), 우부야아게( 産 屋 明 け), 오시치야(お 七 夜 ), 하츠미야마이리( 初 宮 参 り), 오쿠이조메(お 食 初 め), 시치고산( 七 五 三 )이나 58) 중국의 세삼( 洗 三 ), 첨분( 添 盆 ), 만월( 滿 月 ), 조주( 抓 周 ) 등과도 59) 차이가 있다.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유교식과는 관련이 없지만 출생의례가 고유하게 발달 되어 있다. 56) 제사의 분할에 대해서는 김미영의 연구[ 제사 모셔가기에 나타난 유교이념과 양반지 향성, ꡔ민속연구ꡕ 9(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 1999), 197~241쪽]; 이창기의 연구[ 제 주도 제사분할의 사례연구, ꡔ민족문화논총ꡕ 13(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2), 193 ~212] 참조. 57) 중국 송대의 제사관습에 대해서는 육정임의 연구[ 송대 조상제사와 제례의 재구상- 계급의 표상에서 종족결집의 수단으로, ꡔ한국사학보ꡕ 27(고려사학회, 2007), 313~349] 참조. 58) 倉 石 あつこ 외 2인 편, ꡔ 人 生 儀 礼 事 典 ꡕ( 初 学 館, 2000), 40~54 面. 59) 陶 立 璠 저, 金 宗 植 역, ꡔ 中 國 民 俗 學 의 理 解 ꡕ(집문망, 1997), 288~293쪽.
한국 일생의례의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고유성 87 3. 유교식 일생의례와 고유신앙의 융화 한국 입장에서 유교식 일생의례는 밖에서 온 문화이다. 따라서 타문화가 들 어와 받아들여지고 공식적인 인정을 받는 세 단계는 시차단계가 있다. 60) 이 과정에서 새로이 유입된 유교식 의례 문화는 조선의 다양한 기존 문화요소와 접촉하면서 문화융화(Acculturation)를 일으키게 된다. 그 결과 유교식 의례 문 화와 기존의 의례 문화가 상호작용을 하여 서로 좋은 점을 선택하면서 그 실 체를 지속시킨다. 61) 고유신앙과의 융화는 앞 절에서 언급한 긍정적 수용과도 관련이 있다. 그러 나 절을 달리하여 논하는 것은 신앙적 요소가 전혀 없는 관혼상제에 고유한 신앙적 요소가 가미되어 서로 융화되는 모습을 통해 한국 일생의례의 고유성 을 밝히기 위해서다. 혼례의 경우 신부가마에는 반드시 목화씨를 깐다든가, 서낭당을 지날 때 종 이를 던지는 등은 예서 어디에도 규정되지 않은 한국만이 가진 고유성이기도 하다. 또한 신부가 시댁으로 처음 들어갈 때 짚불을 넘게 하고, 신랑이 부뚜막 에 한 쪽 발을 올리고 바가지에 담은 국수를 먹는 것 역시 한국적 고유성이다. 그리고 신부 가마에 호피를 덮은 것이나 솥뚜껑을 들썩이는 것들 역시 유교식 혼례 절차에는 보이지 않지만 유교식 절차와 적절히 융화되어 조화를 이루어 고유성을 짙게 한다. 상례의 경우, 첫 번째로 보이는 것이 사자밥이다. 62) 사자밥은 고유신앙적 요소임과 동시에 불교의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 상례의 현장에서는 고인을 저승까지 잘 모셔달라고 부탁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차려야 한다는 주장 이 있는가 하면, 돌아가신 것만 해도 억울한데 고인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저 60) 홍순창, 신라 유교사상의 재조명, ꡔ신라문화제학술발표회논문집ꡕ 12(동국대학교 신 라문화연구소, 1991), 203쪽. 61) 김시덕, 한국 유교식 상례의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논문, 2007), 82쪽. 62) 일본의 경우 마쿠라메시( 枕 飯 )가 이와 유사한 절차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88 비교민속학 제 39집 승사자에게 밥까지 차려주느냐며 차리지 않아야 한다는 63) 주장도 있다. 그러 나 유교식으로 진행되는 한국의 상례에서 사자밥은 매우 중요한 의례요소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둘째는 취토( 取 土 )이다. 지금까지 취토는 유교식인 것처럼 인식되어 왔으나 유교식 예서( 禮 書 ) 어디에도 취토에 대한 내용은 없다. 취토는 매장을 하기 위 해 하관을 하고 흙을 덮기 전에 반드시 상주가 옷섶에 흙을 담아 관 위에 뿌려 야 매장을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64) 아마도 상주가 직접 매장에 참여해야 한다는 관념이 이러한 신앙적 행위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셋째는 무속과 관련된 굿과 같은 의례와 신앙의 부가이다. 65) 대표적인 것은 호남의 진도씻김굿이라고 할 수 있다. 시신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씻김굿을 행 함으로써 고인의 영혼을 편안하게 저승으로 천도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경상도 지방의 오구굿과 서울 지방의 지노귀굿, 함경도의 망묵굿, 평 안도의 수왕굿, 제주도의 시왕맞이 등도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굿은 자리걷 이 라고도 할 수 있는데, 고인이 가지고 있었던 이승의 모든 원한과 인연을 끊 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신앙적 요소는 유교식 생사관과 차이를 보이 는 부분이다. 63) 경북 청도군 이서면 신촌리 인암( 忍 菴 ) 朴 孝 秀 (1906~1996) 옹의 상례(1997년 1월 조사) 에서 조사되었다. 64) 중국의 일부 소수민족에서는 효자가 흙 두 삽을 넣은 후 전문가들이 매장한다고 하여 유사한 면이 없지 않다[ 陶 立 璠 저, 金 宗 植 역, ꡔ 中 國 民 俗 學 의 理 解 ꡕ(집문망, 1997), 345쪽]. 65) 이러한 민간신앙과 융화된 구체적 사례들에 대해서는 장주근의 연구[ 한국 민간신앙 의 조상숭배-유교 제례 이외의 전승 자료에 대하여, ꡔ한국문화인류학ꡕ 15(한국문화 인류학회, 1983), 63~80쪽]; 무속의 조상숭배, ꡔ한국문화인류학ꡕ 18(한국문화인류학 회, 1986), 95~107쪽; 최길성의 연구[ 조상숭배의 한 일 비교, ꡔ한국문화인류학ꡕ 18(한 국문화인류학회, 1986), 129~146쪽]; Roger L. Janelli 임돈희(Dawnhee Yim Janelli)의 연구 [ 한국 조상숭배 의식의 연구, ꡔ한국문화인류학ꡕ 7(한국문화인류학회, 1975), 145~ 156쪽; Ancestor Worship and Korean Society, Stanford University Press, California, 1982, 148~176 쪽].
한국 일생의례의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고유성 89 넷째는 신앙성이 강한 놀이요소가 융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진도다시래기 가 그 중의 대표적인 것으로, 상가 마당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며 극을 꾸며 노 는 놀이다. 고인의 죽음으로 인해 슬픔과 상실감에 빠진 상주들을 위로하고 달래기 위해 펼치는 가무극적 연희라는 점에서 특별한 전통으로 간주되고 있 다. 66) 이러한 출상 전에 행하는 놀이로는 밤달애(전남), 대돋움(경북), 빈상여놀 이(경북), 대떨이(전남), 잿떨이(충남), 상여흐르기(충남) 등이 있다. 이와는 달리 장지에서 행해지는 놀이도 있는데, 진사모시기(충북), 가래장구 지우기(충남), 산다위(추자도) 등이 있다. 장례놀이는 이미 고대사회부터 있었다. 고구려에서는 초종에는 곡을 하고, 장사를 치를 때는 북을 치고 춤을 추면서 즐거이 보낸다. 고 67) 하였고, 신라에 서는 군고취대 100명을 주어 음악을 연주하게 하였다. 고 68) 한다. 그리고 최 근까지도 상여( 喪 轝 )로 운구할 경우 반드시 선소리꾼의 선창에 따라 후창을 하는 상여소리를 하고, 장지에서는 회다지 소리가 빠지지 않는 것 역시 한국 상례의 고유성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전통이 지속되는 과정 에서 유교식 상례가 도입되어 고유신앙과 융화되어 한국식의 고유한 모형으 로 정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고유신앙과 새로운 문화의 융화는 이론상 2가지 형태로 전개된 것 으로 보인다. 하나는 기존의 고유문화에 타문화의 요소를 선택적으로 수용하 여 융화시키는 형태이다. 다른 하나는 기존의 고유문화가 오히려 타문화적 요 소에 선택적으로 수용되어 주류가 되지 못하는 형태이다. 한국의 경우 지금까 지 보아온 것처럼 후자에 속하는데, 이 역시 한국 일생의례의 동아시아적 보 편성에 대한 고유성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다른 나라나 민족에 66) 임재해, 장례 관련 놀이의 반의례적 성격과 성의 생명 상징, ꡔ비교민속학ꡕ 12(비교민 속학회, 1995), 273~274쪽; 한양명, 일생의례의 축제성 : 장례의 경우, ꡔ아시아일생의 례의 비교연구(2009년도 비교민속학회 춘계학술대회 발표요지집)ꡕ(비교민속학회, 2009), 259~280쪽. 67) ꡔ 北 史 ꡕ 卷 94, 列 傳 82, < 高 句 麗 >, 初 終 哭 泣, 葬 則 鼓 舞 作 樂 以 送 之 68) ꡔ 三 國 史 記 ꡕ 卷 13, 列 傳 3, < 金 庾 信 > 下, 給 軍 樂 鼓 吹 一 百 人
90 비교민속학 제 39집 서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Ⅳ. 맺는 말 한국 일생의례의 동아시아적 보편성은 유교문화의 영향에 따라 유교식 일 생의례인 관혼상제의 전통이라고 보았다. 관혼상제는 동아시아의 전통사회는 물론 현재까지도 각 민족, 국가에서 일생의례를 표현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보 편화 되어 있었다. 보편성과 고유성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동아시아적 보편성 이 서구의 입장에서는 고유성이 될 수 있고, 그 반대의 논리도 가능하다. 한국 일생의례의 동아시아적 보편성은 다른 민족이나 국가와 마찬가지로 관혼상제의 전통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한국 일생의례의 고유 성은 첫째 가장 보편적인 것이 가장 고유한 것으로 보았는데, 이는 동아시아 에서 유교식 일생의례인 관혼상제가 가장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아마 세계적으로 드문 한국 일생의례의 고유성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는 유교식 일생의례를 한국의 상황에 맞게 변용한 것이라고 하겠다. 관혼상제 의 대 전통은 중국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정리된 의례의 규범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만들어진 관혼상제는 한국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한국의 사정에 맞게 수정하여 수용하면서 소전통으로서 한국 적 모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기존의 고유신앙과 유교식 관혼상제가 융화하여 한국의 고유성을 강하게 했다는 것이다. 혼례의 짚불, 상례의 사자밥, 씻김굿, 상여놀이 등과 같 은 것이 있다. 이는 아무리 유교식 의례가 정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원래의 생활관 등을 전혀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융화된 것이다. 따라서 이들 고유성과 타문화는 상호 문화융화를 하여 필요한 부분을 서로 끌어들이는 형태로 발달하여 한국적 고유성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유교적 성 격이 가장 강한 한국의 일생의례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변화가 진
한국 일생의례의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고유성 91 행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산업화 도시화라는 생활양식의 변화에 기인한다. 하나의 습관이 형성되면 변화를 통해 지속되듯, 69) 이러한 외형적 변화는 한국 일생의례의 고유성을 지속하는 하나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시대적 변화에 따른 의례의 간소화는 한국적 고유성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적 보편성에도 영 햐을 미친다. 그 중의 하나가 3일장으로 마치는 상례일 것이고, 장례식장을 혼 례식장을 이용하는 신문화이다. 특히 화장은 전 세계적인 추세로서 어쩌면 세 계적 보편성을 향한 일보일 것이다. 제사의 봉사대수를 줄이는 간소화, 특정한 날을 잡아 한꺼번에 기제사를 지내는 것 등도 간소화와 관련된 한국적 고유성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ꡔ 家 禮 ꡕ ꡔ 高 麗 史 ꡕ ꡔ 高 麗 史 ꡕ ꡔ 高 麗 史 節 要 ꡕ ꡔ 南 史 ꡕ ꡔ 東 國 李 相 國 集 ꡕ ꡔ 磻 溪 隧 錄 ꡕ ꡔ 北 史 ꡕ ꡔ 四 禮 便 覽 ꡕ ꡔ 三 國 史 記 ꡕ ꡔ 三 國 志 ꡕ ꡔ 三 峰 集 ꡕ ꡔ 喪 禮 備 要 ꡕ ꡔ 順 菴 先 生 文 集 ꡕ ꡔ 梁 書 ꡕ ꡔ 燃 藜 室 記 述 ꡕ ꡔ 禮 記 ꡕ ꡔ 朝 鮮 王 朝 實 錄 ꡕ 김영재 최일춘, ꡔ중국의 혼례문화ꡕ, 국립민속박물관, 2008. 장철수, ꡔ한국 전통사회의 관혼상제ꡕ,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지두환, ꡔ조선왕실의 통과의례 관혼상제ꡕ,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2004. 고 원, 박정희정권 시기 가정의례준칙과 근대화의 변용에 관한 연구, ꡔ담론201ꡕ 9-3, 한 국사회역사학회, 2006. 권순형, 고려시대 婿 留 婦 家 婚 에 대한 연구, ꡔ이대사원ꡕ 제30, 이대사학회, 1997. 69) ラヴェッソン(Ravaisson, Jean-Gaspard-Fèlix Lachè) 著, 野 田 又 夫 訳, ꡔ 習 慣 論 ꡕ( 岩 波 書 店, 200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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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일생의례의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고유성 95 The East Asian Universality and Peculiarity of Korean Rites of Passage. 70) Kim, Shi-dug* This paper is trying to look into the East Asian universality and peculiarity of Rites of Passage. The analytical method is that since East Asia is being sit in the middle of the Confucian culture, the four ceremonial occasions such as the one of coming-of-age, the one of marriage, the one of funeral and the one of ancestral worship are conceived as universality of Rites of Passage. However, the universality and peculiarity can be relative in nature. For example, from the Westerners perspective, the East Asian universality can be peculiarity and vice versa. The East Asian universality of Rites of Passage has in common with other ethnics or countries is that Koreans accept the tradition of the four ceremonial occasions as well. On the contrary, there are three unique characteristics which are the peculiarity of Korean Rites of Passage has; the first one is that Korea is the only place where the Confucian four ceremonial occasions are remained as a fully intact form. The second one is that the Confucian Rites of Passage were being accepted and fit into the Korean culture. In other words, the Confucian Rites of Passage were transformed and emerged into the Korean culture. The third one is that harmonizing folk beliefs and myth with * The National Children s Museum of Korea
96 비교민속학 제 39집 the Confucian Rites of Passage strongly shows Korean peculiarity. Due to the industrialization and urbanization, the Korean Rites of Passage having the rigid Confucian style are changing such as the ceremonies themselves getting simplified. Once a kind of custom is patterned, it will be continued through the constant changes. Accordingly, these kinds of external changes can be defined as one principle maintaining the peculiarity of Korean Rites of Passage. [Key-Words] life-long ceremonies, universality, peculiarity, Confucian style, Confucian culture, the four ceremonial occasions, the one of coming-of-age, the one of marriage, the one of funeral, and the one of ancestral worship. 이 논문은 2009년 6월 23일 투고되어 2009년 7월 1일부터 8월 10일까지 심사위원이 심사하고 2009년 8월 20일 수정 완료하여 2009년 8월 25일 심사위원 및 편집위원회에서 게재가 결정된 논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