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알고 기사 쓰기 62 논쟁적 주제 다룰 땐 단정적으로 보도하지 말아야 과학적 사실에 대한 보도 시 주의할 점 양재규 언론중재위원회 정책연구팀장 변호사 기자도 전문가 시대다. 의학전문기자, 경제전문기자 라는 말은 이미 익숙하고 이 외에도 책전문기자, 등 산전문기자, IT전문기자, 스포츠전문기자, 자동차 전문기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기자들이 있다. 과학 역시 전문기자를 필요로 하는 분야 중 하나 다. 과학적 주제를 다룰 경우 전문적 식견과 안목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과학저널리즘을 전공한 한 교 수는 사실에 대한 파악이 부족하면 정보는 왜곡될 수 있다. 온갖 추측과 유언비어가 난무하게 되고 오 해를 바탕으로 한 분란을 낳게 되며, 결과적으로 사 회 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해당 분야는 과학기술 전문가들의 관점을 통해 보도돼야 하며, 정확한 용어와 정보를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어 야 한다 라고 썼다(진달용, 사이버 범죄 첨단화 전 문기자 양성 서두르자, <신문과방송> 2011년 6월 호 50쪽). 흔히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표로 하 는 것이 과학 이고 과학적 이라고 하면 정확성이나 타당성이 당연히 담보돼 있는 것 같지만 과학 분야 에서 다루어지는 문제 중에는 불확정적이며 논쟁적 인 것들이 많다. 이러한 과학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한 기사가 보도될 경우 아무리 불확정적이거나 논 쟁적인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일단 과학적 연구 결 과 라는 이유만으로도 기사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 는 상대적으로 높아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과학적 사실을 보도하거나 과학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보 095
도할 경우 어떤 면에서는 보다 신중히 접근할 필요 가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과학적 사실을 보도하는 경우 기자 가 주의할 점은 무엇인지 지난 9월 2일 대법원에서 선고된 MBC PD수첩 의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 서 안전한가? 관련 민사 판결을 통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사건의 개요 2008년 4월 18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이 우 리에게 불리한 쪽으로 개정됐다. 개정 전에는 30개 월 미만의 뼈 없는 살코기의 수입만 허용됐다. 그러 나 개정된 수입위생조건은 30개월이 넘은 쇠고기(뼈 와 내장도 포함)의 수입도 허용했다. 나아가 30개월 미만의 경우에는 광우병을 일으키는 물질(변형 프리 온 단백질)이 다량 함유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부위 (뇌 눈 척수 척추 머리뼈 편도 회장원위부) 중 일부 마저도 수입할 수 있게 됐다. 이 와중에 MBC는 같은 달 29일 PD수첩 프로 그램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을 방송함으로써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를 공론화했다. 방송의 주된 취지는 미국산 쇠고기 수 입위생조건의 불리한 개정으로 국내에 수입할 수 있 게 된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MBC는 이 보도를 통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 임한 정부의 태도를 강 력하게 비판했다. PD수첩 방송 내용에 대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 생조건 개정을 주도한 농림수산식품부가 이의를 제 기하고 나섰다. 농림수산식품부에서는 MBC PD수 첩 내용 중 상당 부분이 허위임을 주장하면서 같은 해 5월 6일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 및 반론 보도를 구하는 조정을 신청했다. 사건은 조정으로 마무리 되지 못하고 법원 재판으로 이어졌다. 한편 다른 쪽에서는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 한 형사 절차가 개시됐다. 또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 자 및 국내 유통업자들이 MBC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MBC와 PD수첩 제작진이 민 형사상 각종 소송으로 포위된 형국이었다<표>. 재판은 대체적으로 MBC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농림수산식품부가 제기한 정정 및 반론 보도 청구 소송에서만큼은 MBC의 책임을 일부 인 정하는 판결이 연거푸 선고됐다. 마침내 2011년 9월 2일 대법원에서 사실상 관련 재판에 종지부를 찍는 판결 두 건을 선고했다. 형사재판은 무죄였지만, 민사재판의 결과는 역시 일부 패소였다. 다만 대법원은 항소심이 정정보도 를 명했던 세 가지 쟁점 중 두 가지(미국에서 인간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의 대응조치에 관 표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방송 민 형사 소송 판결 결과 소송 제기자 재판 유형 사건명 1심 결과 2심 결과 3심 결과 농림수산식품부 민사재판 정정 및 반론보도 청구 2008.7.31. 원고 일부 승소 2009.6.17. 원고 일부 승소 2011.9.2. 일부 파기환송 (피고 승소) 에이미트, 오래드림 민사재판 손해배상 청구 2010.2.9. 원고 패소 2011.10.19. 원고 항소 취하 - 대한민국 형사재판 명예훼손 등 2010.1.20. 무죄 2010.12.2. 무죄 2011.9.2. 상고 기각 096 신 문 과 방 송 2011.11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표로 하는 것이 과학 이고 과학적 이라고 하면 정확성이나 타당성이 당연히 담보돼 있는 것 같지만 과학 분야에서 다루어지는 문제 중에는 불확정적이며 논쟁적인 것들이 많다. 과학적 사실을 보도하거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보도할 경우 보다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 보도 부분 및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합의와 관련한 우리 정부의 협상 태도에 관한 보도 부 분)에 대해서는 사실적 주장이 아 니라 의견의 표명일 뿐이므로 정 정보도가 필요 없다는 취지의 판 결을 내렸다. 이로써 결과만 놓고 보면 MBC 는 관련 재판 대부분을 이긴 셈인 데, 유독 한 가지 쟁점에서 보도의 허위성이 인정됐다. 바로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한국인의 유전자형 과 인간광우병 발병 사이의 상관 관계 문제였다. 지난 9월 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왜곡 과장 보도로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기소된 MBC `PD수첩 광우병 보도 사건의 판결 모습. 대한 심리적 거부감 내지는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 이 점에 관한 MBC의 보도는 다음과 같다. 한국인 500여 명의 유전자 분석을 실시한 결과 유전적으로 광우병에 몹시 취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프리온 유전자 가운데 129번째 나타나 는 유전자형은 총 3가지. 이 중 지금까지 인간광우 병이 발병한 사람 모두가 메티오닌 엠엠(MM)형이었 습니다. 즉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섭취 할 경우 인간광우병이 발병할 확률이 약 94%가량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섭취할 경우 광우병이 발병할 확률이 약 94%가량 된다 는 주장은 진위를 떠나 충격적이다. 미국산 쇠고기에 에 충분했다. MBC가 이러한 주장을 대담하게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영국에서 발병한 광우병 환자 135 명을 대상으로 한 과학적 조사 결과가 있었다. 해당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환자의 약 96%가 엠엠(MM)형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관련 논문에 서는 엠엠(MM)형 유전자와 광우병 발병 사이에 상 관관계가 있다 는 주장을 펼쳤다. MBC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인의 94% 가 엠엠(MM)형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한국 인이 광우병에 취약하다 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영국인 광우병 환자들을 대상으 로 한 조사 결과만으로는 엠엠(MM)형 유전자와 광 097
우병 발병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일반화하기에 부족하다고 보았다. 광우병 환자 중에는 엠엠(MM) 형 유전자를 보유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쥐를 대 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엠엠(MM)형 유전자를 보유 하지 않았지만 광우병이 발병한 사례가 보고됐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 대한의사협회, 한국과학기술한림 원 역시 인간광우병의 발병에 다양한 유전자가 관여 하고 하나의 유전형만으로 인간광우병 발병 위험성 이 높아진다거나 낮아진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는 견해를 표명하고 나섰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대법원은 MBC의 해당 보도 부분을 허위의 사실로 보아 특정 유전형만으로 인 간광우병의 발병 확률을 단정할 수 없고 따라서 한 국인이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섭취할 경우 인간광 우병에 걸릴 확률이 약 94%에 이른다고 할 수 없다 는 취지의 정정보도를 명한 항소심의 판단이 정당했 다고 판시했다. 판결의 요지 (1) 과학적 이론은 언제나 정당한 것이거나 증명 이 가능한 것이 아니고, 과학은 진실을 찾아가는 과 정이므로 불확실성은 과학의 정상적이고 필수적인 특성이다. 이렇듯 불확실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는 과학적 연구를 다루는 언론으로서는 과학의 불확실성을 확신하고 그 과학적 연구의 가정과 전제를 잘 살펴 서 신중한 자세로 보도하여야 한다. 그리고 과학적 불확실성은 그 과학적 연구가 첨단과학이거나 논쟁 적인 과학적 주제에 관한 것일수록 높아지는 것이므 로, 언론은 보도 과정에서 과학적 연구의 한계를 언 급하지 아니하거나 근거 없이 그 의미를 확대하여 보도하는 것을 경계하여야 한다. (2) 현재까지의 과학 수준이나 연구 성과에 의하 여 논쟁적인 과학적 사실의 진위가 어느 쪽으로든 증명되지 아니한 상태에 있음이 분명하고, 아직 그러 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 학계에서 일반적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경우 언론이 논쟁적인 주제에 관 한 과학적 연구에 근거하여 그 과학적 연구의 한계 나 아직 진위가 밝혀지지 아니한 상태라는 점에 관 한 언급 없이 과학적 연구에서 주장된 바를 과학적 사실로서 단정적으로 보도하였다면 과학적 사실에 관한 언론 보도는 진실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할 것 이다. (3) 따라서 그 언론 보도의 내용에 관한 정정보도 를 청구하는 피해자로서는 과학적 사실이 틀렸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증명할 필요 없이 위와 같이 과학적 사실의 진위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점 을 증명함으로써 그 언론 보도가 진실하지 아니하 다는 데에 대한 증명을 다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기사 쓰기 적용 그동안 법원은 언론 보도의 진실성 문제와 관련해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아 보도 내용의 중요 부분이 진실에 합치한다면 그 보도의 진실성은 인정된다 고 줄곧 판시해 왔다. 이런 식의 판단 기준에 비추 어 보면 해당 보도상의 문제점(한 가지 예를 들자 면 지금까지 인간광우병이 발병한 사람 모두가 엠 엠(MM)형이었다 는 부분)은 사소한 부분에 오류가 있거나 수치를 다소 과장한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098 신 문 과 방 송 2011.11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는 과학적 연구 주제를 언론에서 다룰 때는 보도 과정에서 과학적 연구의 한계를 언급해야 하며 근거 없이 그 의미를 확대해석해서도 안 된다. 연구의 한계에 대한 언급 없이 단정적으로 보도하면 그 언론 보도는 진실하지 아니한 것으로 보겠다는 것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숨은 요지라고 본다. 볼 수도 있었다. 이것은 개인적인 의견일 뿐만 아니 라 대법관 세 사람의 의견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다 수 대법관들은 이번에 조금은 다른 관점을 취했다. 판시 사항에 자세히 나와 있는 것처럼 불확실성 을 내포하고 있는 과학적 연구 주제를 언론에서 다 룰 때는 반드시 신중한 자세로 보도해야 한다는 것 이다. 즉 보도 과정에서 과학적 연구의 한계를 언급해야 하며 근거 없이 그 의미를 확대해석해서도 안 된다. 좀 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과학적 사실을 보도할 때 함부로 단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연구의 한계에 대 한 언급 없이 단정적으로 보도하면 그 언론 보도는 진실하지 아니한 것으로 보겠다는 것이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숨은 요지라고 본다. 동시에 이번 대법원 판결에는 입증책임의 배분 이 라는 좀 더 난해한 법리적인 쟁점 또한 포함돼 있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볼 때 인간광우병 발병과 엠엠 (MM)형 유전자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지 혹은 없 는지 알 수 없다. 어떤 연구 결과를 보면 상관관계 가 있어 보이지만 학계에서는 아직 정설로 받아들이 고 있지 않다. 이럴 때 일반인은 잘 모르겠다, 알 수 없다 고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재판은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일단 소송이 제기되면 법원은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려야 한 다. 모르겠다, 알 수 없다 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 지 못한다. 이런 재판의 속성으로 인해 필요한 것이 입증책임 이다. 입증책임 이란 어떤 사실을 증명할 책임이 누구에 게 있는지에 관한 문제인데 입증책임이 효력을 발휘 하는 결정적인 경우가 바로 사실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때 이다. 사실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으면? 입증책임을 지는 사람이 불이익을 받게 된다. 그러면 이번 사건처럼 보도가 허위임을 주장하며 정정보도를 청구하는 경우 보도의 허위성 에 대한 입증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보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자, 즉 원고 측에 입증책임이 있다. 만일 보도의 허위성을 원고 측이 증명하지 못하면 언론사 측은 정정보도 청구 소송에서 쉽게 승소할 수 있다. 문제는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이 보도의 허위성에 관한 입증책임을 피해자에게서 언론사로 전환시키 는 것과 같은 결론을 내린 데에 있다. 대법원은 피해 자가 언론 보도에 제시된 과학적 사실이 틀렸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증명할 필요 없이 그 진위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점만을 증명하면 보 도의 허위성 입증책임을 다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고 했다. 이번 판결대로라면 정정보도 청구 소송의 입증책 임에서 다소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언론사가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다만 이러한 식의 입증책임 전 환이 모든 경우에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며 과학적 사실에 관한 보도에 국한돼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 다. 0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