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북한연구, 16권 2호(2013), C 2013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미시연구소, pp.251~280. 북한 연구의 미시적 접근과 남북 접촉지대 연구*38) 마음체계 통합 연구를 위한 시론 윤철기(북한대학원대학교) 양문수(북한대학원대학교) 남북한은 두 체제로 나뉘어 독자적으로 존재해왔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상호작용해왔다. 남북한의 상호작용은 사회구조에서 일상의 수준에 이르 며 상호작용의 주체가 다차원적인 동시에 상호작용의 양상이 다양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따라서 남북한 사회통합 연구를 위해서는 남북의 상호 작용이 구조의 차원에서부터 일상의 차원까지 어떤 효과가 있고 구체적 으로 어떻게 영향을 받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회통합은 사회구성원들이 주체가 되는 것이고 이들의 일상이 남북관계 의 변화 과정에 의해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북한 연구의 미시적 접근으로서 접촉지대에서 남북한 사람들의 마음체 계의 상호작용 에 대한 분석을 위한 시론적 연구이다. 또한 이 논문은 남북 적십자회담이라는 사례를 통해서 접촉지대를 남북한 상호작용이 두 드러지게 나타나는 공간으로 상정하고, 이 회담에서 남북한 적십자 대표 들의 마음체계의 상호작용이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는지 살펴본다. 주제어: 북한 연구, 미시적 접근, 사회통합, 접촉지대, 마음체계, 상호작 용, 일상생활, 남북한 적십자회담 * 이 논문은 2011년도 정부재원(교육과학기술부 사회과학연구지원사업비)으로 한 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NRF-2011-330-B00138). 북한 연구의 미시적 접근과 남북 접촉지대 연구 251
1. 들어가는 말: 남북한 관계의 중층성 분단 이래 남북한은 동족상잔 이라고 일컬어지는 한국전쟁이 상징 하듯이 끊임없이 적대적 갈등을 겪어왔다. 서해상에서의 수차례에 걸 친 소규모의 무력 충돌을 포함하여 인명이 살상되는 갈등도 지속되었 고, 국제무대에서의 외교적 경쟁에서부터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남북 한 간의 긴장관계는 오늘날까지 여전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갈등이 남북관계의 키워드였지만 두 번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이 대표 하듯이 화해와 협력의 관계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한때는 남북한 간 운동경기가 전쟁과 다름없이 진행되기도 했지만 단일팀을 이루어 세 계를 제패한 경험도 있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아웅산 테러 로 최고 지도자와 정부 고위관계자들에 대한 공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85년에는 전쟁 이후 최초의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진 것이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남북관계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갈등과 화해가 변주되는 남북관계가 분단사의 주요 특징인 것은 분 명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관점에서 적대적 관계를 넘어 평화 공존을 지향해야한다는 것이 일종의 당위적 명제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와 같은 시각 자체가 남북관계를 체제 간의 관계로 그리고 그 관계 마저도 좋거나 나쁘거나 하는 식의 이분법적으로 환원시키는 경향의 토대가 되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1)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남북한은 두 체제로 나뉘어 독자적으로 존재해왔지만 동시에 끊임없 1) 남북관계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공화국 간의 관계, 즉 국가 간의 관계와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한 가치판단이라고 할 수 있는 적대관계(긍 정)와 협력관계(부정)의 단순한 범주로 나누어버린다. 이 경우 자연스럽게 사건 이나 상황이 발생하는 특정 시점이나 기간만이 관계의 고려 대상이 된다. 252 현대북한연구 2013 16권 2호
이 상호작용해왔다고 할 수 있다. 전쟁을 포함하여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든, 협력사업으로 화해적 관계를 유지하였든 혹은 외양적으 로 직접적인 접촉 자체가 없었든지 간에 양 체제 간의 상호작용은 항 상 지속되어왔기에 적대적 혹은 협력적이라고 단절적으로 관계를 규 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남북 간의 상호작용이 지속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각각의 체제가 분 단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2) 체제와 아울 러 체제를 구성하고 있는 남북한 주민들의 의식은 물론이고 일상생활 도 지속적으로 분단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학업생활이나 컴퓨터 게임에서와 같이 일상적인 폭력에서부터 시작하여 국가주의 와 민족주의가 과잉인 사회의식의 수준까지 이러한 것들은 분단 및 남북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남북관계의 변화 그리고 상호작용의 변화는 사회구조적 특성이나 사회구성원의 성격과 연결 되어 변화를 유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남북한 간에 이루어지고 있는 상호작용은 사회구조에서 일상의 수 준에 이르며 상호작용의 주체가 다차원적인 동시에 상호작용의 양상 이 다양하다는 특징이 있다. 남과 북이 상호작용하면서 어떤 경우는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는 경우도 있고, 경우에 따라 상호 타협하거나 혹은 긴장과 충돌이 생길 수도 있다. 이와 아울러 다양한 상호작용은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타협과 충돌이 동시에 일 어나거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호작용의 양상이 변하기도 한다. 따라서 남북관계는 거시적 차원이나 외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과 달 리 대단히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남북한 체제를 2) 이러한 주장의 대표적인 경우가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이다. 백낙청,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 (서울: 창작과 비평사, 1994) 참조. 북한 연구의 미시적 접근과 남북 접촉지대 연구 253
독자적으로 분석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초래하지만, 3) 남북한 사 회통합과 같이 상호작용과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주제에는 좀 더 정교한 분석이 필요한 이유가 된다. 다시 말해 남북의 사회통합을 고 민한다면 먼저 남북의 상호작용이 구조의 차원에서부터 일상의 차원 까지 어떤 효과가 있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받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제도의 통합과 달리 사회통 합은 사회구성원들이 주체가 되는 것이고 이들의 일상이 남북관계의 변화 과정에 의해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 락에서 이 글이 주목하는 것은 남북한 상호작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는 공간으로서 접촉지대(contact zone) 와 상호작용의 유형으로 마음 의 체계 의 통합이다. 2. 접촉지대와 마음체계의 통합 접촉지대에서 발생하는 마음의 체계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는, 무 엇이 사회구성원을 하나로 묶어주는가라는 고전적 사회통합 논의를 미시적 수준 에서 고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을 거시적 수준에서 체제의 지배 정당성이 사회구성원에 의 해 인정되고 수용되는 체제통합(system integration) 과 개인 및 집단 의 상호작용을 통한 관계성의 증가인 사회활동의 통합(societal integration) 으로 구분할 수 있다면, 마음체계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는 거시적 사회통합의 미시적 기초를 밝히는 연구이다. 4) 미시적 수준의 3) 예를 들어서 남한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연구한다고 하더라도 분단체제는 물론이 고 동시에 연구 대상 시점의 남북관계의 영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254 현대북한연구 2013 16권 2호
사회통합과 관련하여, 통합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방향성을 둘러싼 세 가지의 관점이 있다. 5) 첫째, 사회통합을 구성원들의 기회 권리의 평등성 확대와 소통의 확대에 기초한 연대성의 확장으로 보는 긍정적 시각이다. 둘째, 통합을 통제에 기초한 획일성의 증가로 보는 부정적 입장이다. 셋째, 사회적 관계의 조직화된 패턴을 기술하는 가치중립적 개념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사회통합 논의에 탈근대성(postmodernity)을 도입할 경우,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도 공 동의 가치와 연대성을 형성하는 과정으로 사회통합을 바라볼 수도 있다. 접촉지대에서 남북한 마음체계의 만남은, 예를 들어 사고방식에서 남한 사람의 업적주의 개인주의 다원주의와 북한 사람의 평등주의 집단주의 일원주의의 충돌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 남한 사람들이 북 한 사람들에 대해 가지는 우월감이나 승자의 관용과 같은 정서가 북 한 사람의 동경심이나 자존심과 만나기도 한다. 서로 다른 도덕적 기 준 결과윤리와 동기윤리의 대립 과 규범, 남북한 관계의 미래에 대 한 가치판단도 충돌할 수 있다. 민족 을 둘러싸고도 남북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남북한 사람들의 마음체계의 만남은 다양한 상호작용을 산출할 수 있다. 또 하나 유의할 점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적 위치(position) 에 따라 서로 다른 마음의 체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배적 또는 헤게모니적 마음의 체계가 존재할 수 있고 따라서 남한 사람 및 북한 사람 내부에도 서로 다른 마음의 4) Anthony Giddens, Profiles and Critiques in Social Theory(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2), pp. 92~93. 5) Leon Mayhew, Talcott Parsons: On Institutions and Social Evolution(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2), pp. 12~13, 20. 북한 연구의 미시적 접근과 남북 접촉지대 연구 255
체계가 형성될 수 있다. 접촉지대에서 만나는 남북한 사람들의 마음의 체계는 분석적으로 세 층위 를 가진다. 첫째 층위는, 자신들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만들 어진 마음의 체계다. 둘째 층위는 접촉지대로 진입하기 전 서로에 대 한 인식이 만들어내는 마음의 체계로 첫째 층위와 밀접히 관련이 있 다. 셋째 층위는 접촉지대라는 사회적 공간에서 남북한 사람들의 상호 작용에 의해 만들어지는 마음의 체계이다. 이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치 는 변수들로는, 첫째, 접촉지대의 공간적 효과 접촉 기간, 접촉 목적, 접촉 형태, 접촉 빈도 등 와 둘째, 접촉지대 내부에서 남북한 사람들 사이의 권력관계를 들 수 있다. 개성의 자본-노동관계, 탈북자 거주 지역에서의 원주민-이주민 관계 등이 두 번째의 예가 된다. 셋째, 접촉 지대 내부에서 각 행위자들이 보유한 경제적 자원과 사회적 자본의 분포 등도 변수로 설정될 수 있다. 접촉지대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변 수들의 비대칭적 효과로 갈등 을 내면화하며 따라서 갈등 조정 의 장 마음체계의 재구성의 장 이 될 수밖에 없으며 다양한 마음의 체 계들이 경쟁하면서 상호적 마음의 체계가 형성되어간다고 할 수 있다. 접촉지대의 마음체계의 미시적 통합에서 규범적 지향을 선험적으 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마음의 체계가 상호작용하면 서 만들어지는, 상호적 마음의 체계 를 두텁게 실증적으로 기술하 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공식 담론이 은폐하거나 구조적 설명이 간과 하는 행위자들의 일상 을 복원함으로써 공식 담론이나 구조적 설명 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과 모순을 드러내는 방법이다. 6) 그 과정 6) 일상 속에는 사적인 생활과 공적인 생활이 모두 존재할 수 있으며, 일상은 개인적인 영역과 사회적 영역 모두를 포괄한다. 따라서 단순히 공적 또는 사적이 라는 구분으로 일상을 정의할 수 없다. 박순성 홍민, 북한의 일상생활세계 (서 256 현대북한연구 2013 16권 2호
<그림 1> 상호적 마음체계의 형성과정 에서 마음체계의 충돌 과 순응 이라는 이분법뿐만 아니라 마음체계 사이의 협상 이나 서로의 마음체계를 새롭게 구성 하여 상호적 마음 체계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상호적 마 음체계의 형태가 뚜렷한 경계를 가진 분절화된 형태로 드러나지는 않 는다. 경제적 접촉지대에서 북한 사람들은 협상을 통해 남한 사람의 업적주의를 수용하지만, 자신들의 집단주의나 일원주의를 거래하지 않을 수 있다. 즉 상호적 마음의 체계는 다양한 상호작용의 형태가 결합되어 있으면서 지배적 형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복합체 의 성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 1>은 이상의 논의를 기초로 작성한, 상호적 마음의 체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도식화한 것이다. 남북한의 접촉지대는, 장소(place) 로서의 지리적 공간 과 공간의 울: 한울, 2010), 180쪽. 북한 연구의 미시적 접근과 남북 접촉지대 연구 257
<표 1> 남북한의 접촉지대 제도 장소 제도화 비제도화 경계 (1) 남북협상 (2) 북방한계선(NLL) 남한 (3) 탈북자 거주 지역 (4) 비공식 부문 탈북자 영토 북한 (5) 개성공업지구, 금강산 (6) 인도적 지원, 사회문화교류 해외 (7) 유엔, 6자회담 (8) 탈북자의 해외 거주 지역 제도화 존재 유무라는 두 변수를 사용하여 유형화할 수 있다. 첫 번 째 변수인 장소는, 남북한의 경계 그리고 경계에 의해 공간이 획정 되는 영토 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영토는, 또한 남북한 각각의 영토 내부 그리고 해외의 장소를 상정할 수 있다. 다른 한편 남북의 접촉지 대는, 고안된 제약 인 게임의 규칙 의 존재 여부, 즉 제도화 비제도 화 의 기준을 통해 분류할 수 있다. 7) 이 두 변수를 이용한 도식화가 <표 1>이다. <표 1>은 전형적 대표적 접촉지대의 사례이다. <표 1>의 사례 중 일부는 한반도 분단 이래 지속되는 접촉지대들 이다. 또 다른 사례는 탈냉전 민주화 이후 등장한 접촉지대들이다. 이 새로운 접촉지대들의 형성에는 국제적 탈냉전과 남한의 대북 화해협 력정책, 북한의 경제위기와 남한 내 탈북자의 증가, 북한 핵문제 등이 영향을 미쳤다. 남북한의 비대칭성이 심화되면서, 북한 내부에 남북 경제협력의 지대가 만들어졌고, 남한과 해외에 탈북자 거주 지역 등 다양한 접촉지대가 형성되고 있다. 8) 7) 더글러스 C. 노스(D. North), 제도 제도변화 경제적 성과, 이병기 옮김(서울: 한국경제연구원, 1996), 13쪽. 8) 탈냉전 민주화 이후의 접촉지대는 특성과 행위자의 성격을 중심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첫째, 남북 주민의 공동 거주 지역 으로 서로의 생활세계가 만나는 접촉지대로서의 인천시 남동구 임대아파트와 해외에서 탈북자와 남한 주민이 접촉하는 영국의 뉴몰든(New Malden). 둘째, 남북한의 경제적 관계 에 기초하여 258 현대북한연구 2013 16권 2호
3. 접촉지대로서 적십자회담 9) 1) 적십자회담의 전개 1970년대 이전까지는 미 소의 양극적 냉전구조가 한반도에 영향을 미쳐 남북 간에 실질적인 남북대화나 교류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 러다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 소 간에 평화 공존이 모색되는 등 한반도 주변 정세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남북한은 대화를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 8월 15일 평화통일구상 을 선언하였으 며, 이를 계기로 1971년 8월 20일 남북한 간 최초의 대화인 남북적십 자회담이 성사되었다. 북한이 우리 측의 제의를 수락함에 따라 남북적 십자회담은 1971년 8월 20일 이후 5차례의 파견원 접촉을 거쳐 1971 년 9월 20일 제1차 예비회담을 시작으로 1973년 7월 13일 제7차 본회 담까지 진행되었다. 10) 적십자회담은 북한이 제8차 본회담 참석을 거 부하면서 중단되었고 1974년 7월 10일부터 1977년 12월 9일까지 총 25차에 걸쳐 개최되었던 본회담 재개를 위한 실무회의도 성과 없이 북한의 관료와 노동자, 남한의 기업인 등이 만나는 접촉지대로서의 개성공단. 셋째, 보편적 가치 의 실현을 목표로 북한의 관료와 주민, 남한 비정부기구의 활동가들이 접촉하는 인도적 지원의 현장. 넷째, 남북한 관료와 정치인들이 만나 는 정부 의 접촉지대로서 남북회담과 6자회담 그리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 들이 있다. 9) 이화여자대학교 통일학연구원, 남북관계사: 갈등과 화해의 60년 (서울: 이화여 자대학교 출판부, 2009), 3부; 대한적십자사, 남북적십자회담 40년 (서울: 대한 적십자사, 2011);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찾기 60년 (서울: 대한적십자사, 2005) 참조. 10) 남궁곤 조영주, 남북관계 60년, 남북대화 60년, 남북관계사: 갈등과 화해의 60년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09), 35쪽. 북한 연구의 미시적 접근과 남북 접촉지대 연구 259
진행되면서 1980년대 초반까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 실무회의에서 남북한 적십자 측은 서로 다른 입장을 표명한다. 제7차 실무회의(1975.1.24)에서 한국 적십자는 제8차 본회담을 서울 에서 개최할 것과 노부모 사업을 수락할 것을 촉구하면서, 남북 간 전면적인 문호개방을 통해 하루속히 이산가족의 고통을 풀어줄 것을 강조하였다. 반면 북한 적십자는 서울 분위기 와 조건과 환경 개선 등의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노부모 사업 실현을 거부하는 한편, 6 23 선언 은 분열주의 정책이며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하는 한 인도주의 사 업의 실현은 물론 본회담도 재개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또 제8차 실무회의(1975.2.28)에서 한국 적십자는 노부모와 이산자녀들 간의 사진 교환을, 제13차 실무회의(1975.10.23)에서는 1 신정과 추석을 이용한 이산가족 성묘 방문단의 상호 교환 2 노부모와 이산자녀들 간의 판문점 면회소 및 우편물교환소 운영을 제의하였다. 북한 적십자 는 한국 적십자의 이러한 제안에 대해서 호응하지 않다가, 1978년 3 월 20일로 예정된 제26차 실무회의를 하루 앞둔 3월 19일 평양방송을 통해 한 미 합동군사훈련[1978 팀스피리트(Team Spirit)]을 비난하면서 실무회의를 무기한 연기한다고 선언하였다. 11) 이처럼 남북적십자회 담이 난항을 겪게 되는 국면은 남북한 간의 인도적 교류와 정치적 문 제가 혼재될 때 발생했다. 1985년 5월 제8차 적십자 본회담이 재개된다. 8차 본회담에서는 1984년 11월 20일 남북적십자 본회담 재개를 위한 예비접촉 에서 합 의한 다음 5개항의 실행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11) 남북적십자 실무회의(1974.7.10~1977.12.9) 내용은 남북회담본부 홈페이지를 참조할 것(검색일: 2013.6.1). (http://dialogue.unikorea.go.kr/data/talksummary/11) 260 현대북한연구 2013 16권 2호
1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들과 친척들의 주소와 생사를 알아내며 알 리는 문제 2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과 친척들 사이에 자유로운 방문과 자유로 운 상봉을 실현하는 문제 3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들과 친척들 사이의 자유로운 서신 거래를 실시하는 문제 4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들의 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 문제 5 기타 인도적으로 해결할 문제 또 8차 회담에서 북한 적십자 대표 이종률 단장은 5가지 의제와 공통적으로 관계가 있고,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가장 선결적이고 중핵적인 방도는 자유 왕래임을 내세워 이 문제에 대해서만 합의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한국 적십자 측은 제1차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을 제안하고, 북한 적십자 측은 100명 정도의 예 술단 상호 방문을 제안했다. 12) 이 사안에 대한 절차문제는 이후 실무 접촉에서 협의하기로 합의하였고, 합의에 따라 1985년 9월 20일 분단 40년 만에 처음으로 이산가족고향방문단(50명)과 예술공연단(50명)이 서울과 평양을 동시에 방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8차 본회담을 통해 앞서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난항을 겪었던 실무 접촉과 달리 정치적 쟁점 들이 배제될 때 일정한 성과를 보이게 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같은 해 제9차 본회담과 제10차 본회담이 이어 개최되었 으나 의제 5개항에 대한 의견 차이로 성과 없이 끝나고 만다. 1990년에 들어서면서 9월부터 1992년 9월까지 8차례 개최된 남북 12) 제8차 남북적십자 본회담(1985.5.27~30), 남북회담본부 홈페이지 참조(검색 일: 2013.6.1). (http://dialogue.unikorea.go.kr/data/talksummary/482) 북한 연구의 미시적 접근과 남북 접촉지대 연구 261
고위급회담을 통해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 발효시키고, 3개분과위원회(정치, 군 사, 교류 협력)를 구성하였으며, 5개 공동위원회(화해, 군사, 경제교 류 협력, 사회문화교류 협력, 핵 통제)를 설치하기로 합의함과 아울러 화해와 불가침, 교류 협력 등 3개 분야의 부속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하였다. 특히 제8차 고위급회담에서는 남북기 본합의서 제3장 남북교류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 에 서명 하였는데, 이산가족문제를 포함한 인도적 문제 해결의 제도적 기틀이 마련되었다. 1997년과 1998년에는 북한의 홍수피해로 인해 대북구호물자 전달 절차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적십자 대표 접촉이 5차례 열렸다. 북한은 유례없이 1995년 8월 집중호우로 인한 큰 홍수피해가 발생했음을 공 식적으로 밝히고 유엔에 긴급구호 요청을 한다. 이에 한국 정부는 9월 이후 세계식량기구(WFP)와 유엔아동기금(UNICEF)을 통해 지원하면 서, 민간 차원의 구호는 대한적십자사 를 단일창구 로 하여 독려한 다. 1997년 4월 18일 대한적십자는 남북적십자 간 대표 접촉을 제안 하게 되고, 북측이 이를 수용하면서 5월 3일 1차 접촉이 시작된다. 13) 2차 접촉(1997.5.23~26)에서 남북한은 지원 규모와 시기, 물자 수송 및 인도 인수 지점, 물자전달 방법, 분배과정 입회, 수송차량 및 선박 에서 국기 게양 금지와 적십자 깃발 게양, 물자 포장 등을 놓고 의견을 조율하여 합의에 이른다. 14) 3차 접촉에서 한국 적십자 측은 물자 수송 13) 대북 구호물자 전달을 위한 제1차 남북적십자 대표접촉, 남북회담본부 홈페 이지(검색일: 2013.6.1). (http://dialogue.unikorea.go.kr/data/talksummary/65) 14) 대북 구호물자 전달을 위한 제2차 남북적십자 대표접촉, 남북회담본부 홈페 이지(검색일: 2013.6.1). (http://dialogue.unikorea.go.kr/data/talksummary/215) 262 현대북한연구 2013 16권 2호
및 인도 인수 지점의 추가, 지정기탁 대상자 확인 협조, 분배투명성 보장 문제, 기자 취재활동, 인도요원 편의보장 문제 등 지원 절차의 보완을 요구한 반면 북한 적십자 측은 2차 지원 규모를 1차분보다 늘릴 것과 지원 품목은 쌀 옥수수 위주로 하되 지원 시기는 9월 20일 까지로 해줄 것 등을 요구하였다. 15) 4차 접촉은 한국 적십자 측이 분 배 투명성 문제를 제기하자, 북한 적십자 측이 구체적 답변을 회피하 면서 종료되었다. 5차 접촉에서 북한 적십자 측은 지원사업에서 어떠 한 전제조건이나 부대조건도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국 적십 자 측은 대북지원은 민간 차원의 지원이기 때문에 민간 기증단체들의 분배 결과 확인요청을 합의서에 포함시켜야 함을 역설하고, 지원물자 전달절차 합의서안을 제시하였다. 또 한국 적십자 측은 1, 2차 지원 규모를 유지하려 한 반면 북측은 지원 규모의 확대를 요구했다. 16) 북한의 홍수 피해와 그로 인한 긴급구호의 필요성으로 시작된 5차 례의 대표 접촉을 통해서 남북한 적십자회담의 성격이 변화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과거에 남북한 적십자회담이 주로 인도적 문화적 교류 차원에서 논의가 진행되었다면, 1990년대 후반 이후에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긴급구호의 지원 규모와 방법 등을 놓고 진행되었다. 그런데 대표 접촉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지원물자의 분배 투명성 이 문제시되기 시작했다. 한국 적십자가 분배 투명성 제고 문제를 제기하 게 된 것은 한국 사회에서 북한의 지배 권력에 대한 강한 불신 때문이 다. 긴급구호가 실제로 북한 주민들의 생존에 도움이 되고 있는지 확 15) 대북 구호물자 전달을 위한 제3차 남북적십자 대표접촉, 남북회담본부 홈페 이지(검색일: 2013.6.1). (http://dialogue.unikorea.go.kr/data/talksummary/309) 16) 대북 구호물자 전달을 위한 제5차 남북적십자 대표접촉, 남북회담본부 홈페 이지(검색일: 2013.6.1). (http://dialogue.unikorea.go.kr/data/talksummary/411) 북한 연구의 미시적 접근과 남북 접촉지대 연구 263
인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실제로 분배 투명성이 제고될 때, 대북지원 사업으로 인한 한국 사회 내의 남남갈등 의 불 씨를 잠재울 수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 국제사회에서 제기된 원조의 효과성(aid effectiveness) 문제가 대북지원 사업에도 투영되기 시작했 다는 점을 말해준다. 17) 2000년에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 이후 남북은 남 북적십자회담, 남북장관급회담 등을 통해 이산가족방문단 교환, 생사 주소 확인, 서신 교환, 면회소 설치 문제 등 남북이산가족교류 활성화 와 제도화를 위한 실천 방안들을 활발하게 논의하였다. 2000년 6월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는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항을 구체적으 로 이행하기 위해 이산가족방문단을 교환하고 이산가족면회소를 설 치 운영하는 데 기본적으로 합의하였고, 북으로 가기를 희망하는 비 전향장기수 전원을 송환하기로 합의하였으며, 2001년 9월에 개최된 제4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는 총재급 회담을 개최하여 이산가족문제 의 제도적 해결을 위한 기본 틀을 마련하였다. 남북은 제4차 적십자회담 합의사항 이행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적 십자 실무 접촉을 2002년부터 개최하였고 3차 적십자실무접촉 합의 에 따라 금강산면회소 건설문제 협의를 위한 금강산면회소건설추진 단 회의를 진행하였다. 면회소 건설에 합의함으로써 6 15 공동선언 이후 정착되어 가는 이산가족 상봉은 제도화 수준으로 발전하였으며, 곧 향후 상봉 기회의 증가는 물론 이산가족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 한 협의 창구가 상설화된다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2007년에는 2차 17) 국제 사회에서 원조의 효과성 에 대한 논의는 파리선언 을 참조할 것. The Paris Declaration on Aid Effectiveness and the Accra Agenda for Action(OECD, 2005), pp. 1~11. 264 현대북한연구 2013 16권 2호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고, 이후 개최된 9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는 상봉정례화 문제를 논의하여 겨울철을 제외하고 분기별 1회씩 연간 400명 정도씩 이산가족이 상봉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남과 북은 2000 년 8월 15일부터 2010년 12월까지 18차례에 걸친 대면 상봉으로 1만 7,989명이 상봉하였으며 7차례 화상 상봉으로 3,748명이 상봉하였다. 2010년에는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적십자 회담을 개최하였지만 성과가 없었고 추가회담이 예정되었으나 북한 의 연평도 도발로 인해 중단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적십자회담 전개 과정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다른 회담과 비교할 때 회담이 지속된 기간과 횟수가 상대적 으로 많았고 오래되었다는 점이다. 박정희 정부시절부터 시작된 접촉 은 일정 기간 단절된 경우가 없지 않았으나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 지 40년에 걸쳐 지속되었던 까닭에 접촉의 횟수도 많아졌다. 이것은 정부 간 남북대화나 시민사회의 남북 접촉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부록 참조). 회담의 역사가 길고 횟수가 많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회담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배경이 된다. 적십자회담에 특화된 전문 가가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참여하는 사람은 교체될 수 있으나 지식과 정보의 전수가 가능하며 결과적으로 회담 당사자들에 대한 충 실한 이해가 가능할 수 있다. 그리고 반복적인 만남은 남북 참여자에 게도 친밀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 18) 또한 회담의 진행과 관련된 일정 한 틀이 형성되어 반복되는 소모적 논란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도 상 18)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적십자회담이 반복되면서 남북한 참여자 간에 공감대 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적십자사 직원 가운데 회담 참여가 가장 많은 직원 K씨의 증언(2012.6.20). 북한 연구의 미시적 접근과 남북 접촉지대 연구 265
호이해 증진에 도움이 된다. 둘째, 공식적으로 민간조직이지만 실질적으로 정부와 밀접하게 관 련된 준정부 조직에 가까운 단체의 특성상, 대화나 접촉 그 자체가 거버넌스 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정부의 관련 담당자가 접촉이나 회담에 직접 참여하였지만 적십자 조직의 민간담당자도 참가하였다. 북한의 경우 명실상부한 민간조직이 없다는 점에서 참여자들의 배경 에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았고, 남한의 경우도 적십자사가 공공조직이 라는 점에서 순수 민간단체는 아니지만 민간인들이 회담 대표로 참여 한 적도 많았다는 점에서도 다른 회담 특히 정부 간 회담의 참여자들 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주체가 다양하다는 특성은 주체 간의 균열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 하지만 동시에 참여자의 배경별로 남북한 간에 일정한 유대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제한된 범위의 참여자이고, 이들이 부 분적으로 공적 부분에 관련된 사람들이지만 회담의 경험이 사회적으 로 확산되도록 하는 데 참여자의 다양성이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다. 셋째, 남북의 적십자라는 독자적 기관이 중심이며 이들이 국제 조 직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남북적십자회담에 국제적십 자가가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남북 적십자회담에 국 제적십자가 참여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남북이 회담을 진행하는 과 정에서 갈등을 완화하고 회담을 지속하게 만드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19) 넷째, 이산가족이나 대북(혹은 대남)지원과 같이 비정치적인 문제 19) 조금 성격은 다르지만 체육 교류와 다양한 국제 체육기구의 역할을 참고할 수 있다. 중재자의 역할을 국제기구가 담당하면서 체육 교류는 다른 분야에 비해 남북 간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266 현대북한연구 2013 16권 2호
가 적십자회담의 주요 의제이지만 실제로는 남북관계 특히 정치적 상 황과 통치자의 역할이 적지 않았던 회담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첫 번째 회담도 최고지도자 간의 결정에 따라 가능하였으며, 남북관계 가 경색된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적십자회담도 거의 열리지 못했다는 경험이 적십자회담 역시 정치적 예속성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다섯째, 최근에는 개성 지역이 남북 간 시민사회 부분의 협상이나 교류의 중심 지역이었으나, 적십자회담은 개성 지역뿐만 아니라 상대 적으로 다양한 공간을 활용하였다. 남한 지역과 북한 지역뿐 아니라, 남북한 이외 지역에서 대화가 이루어졌다. 현재는 닫혀 있지만 금강산 지역에 남한 정부가 건설한 시설들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섯째, 인도주의의 실천이라는 명백한 목표가 있었으나 남북한의 특수한 이해나 필요성에서 대화가 진행된 경향이 없지 않다. 인도적인 지원이나 이산가족 문제뿐만 아니라 금강산과 같이 상대방에 대한 인 도적 지원 사업이 경제협력 사업과도 연관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2) 접촉지대로서 적십자회담 적십자회담은 앞에서 분류한 접촉지대의 기준에 따르면 경계 지역 에서 이루어지는 제도화된 접촉지대라는 특성이 있다. 실질적인 회담 이 이루어진 지리적 위치는 남북한 지역인 경우도 있고, 해외 지역인 경우도 있지만 회담이 이루어지는 곳은 원칙적으로 남북의 관할권이 없거나 유보된 지역인 경우(판문점 금강산 등)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경계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도화 차원에서 본다면 장기 북한 연구의 미시적 접근과 남북 접촉지대 연구 267
간 지속되었고, 횟수도 적지 않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그 어떠한 남북 한 간 협상보다 제도화의 수준은 높다고 할 수 있다. 20) 접촉지대로서 적십자회담은 다음의 몇 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첫 째, 간헐적인 중단에도 불구하고 가장 지속적으로 회담이 진행된 결과 가장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남북한 마음의 체계가 접촉하였던 공간이 었다. 또한 반복된 적십자회담은 회담 자체의 제도화 수준도 높였지만 동시에 마음체계의 상호작용도 구조화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 적으로 접촉의 형식이 일정하게 유형화되었고 공동의 마음체계가 형 성되는 조건이 구축되었다. 반면에 회담 기간이 정해져 있고 일정 시 간 동안만 접촉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접촉의 범위는 상대적으로 넓 지 않다고 할 수 있다. 21) 둘째, 40년에 걸친 장기화된 접촉은 필연적으로 접촉지대의 성격 변화를 가져왔다. 인도적 문제 해결이라는 명분은 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남북한 각자가 처한 현실의 차이(국력을 포함하여)는 적십 자회담이라는 접촉지대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북한이 경제적으로 열악해지고 남한의 상대적 우월성이 심화됨에 따라 마음체계의 상호 작용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22) 예를 들어 남북한의 국력이 비슷하였던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에는 대등한 관계의 접촉 국면이 마련되었지만, 남한의 국력이 북한을 앞서면서 남한이 주도하 는 접촉지대로 변화하였다. 이산가족상봉과 같은 공동이익 실현이 의 20) 현재는 활용되지 못하고 있으나 금강산 지역에 건축한 이산가족상봉장이 운용 된다면 적십자회담을 위한 전용 공간이 생길 것이라는 사실 자체가 높은 수준 의 제도화를 반영한다. 21)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지역과 차별된다. 22) 공식 비공식 회담 비용을 남한이 부담한다면 실질적으로 접촉지대에서 남북한 의 형평성은 유지되기 어렵다. 268 현대북한연구 2013 16권 2호
제가 되었던 경우라고 할지라도 남한의 반대급부 제공이 동반되면서 남한의 우월적 지위가 지속되었다. 국력 격차가 아니라 접촉이 반복되 면서 참여한 남북한 사람들의 마음체계가 변화하고, 회담 공간에서 창출된 새로운 마음의 체계는 다음 회담으로 이어졌다. 셋째, 적십자라는 조직이 갖는 인도적 문제 해결이라는 공동의 목 표를 공유하는 접촉지대였다는 점이다. 비록 갈등과 긴장도 있었지만 목표 자체에 대한 논란은 회피될 수 없었다. 참여 주체의 내적 동기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단일 목표와 가치의 구현을 추구한 접촉 지대가 적십자회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적십자 정신의 구현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명제였고 따라서 정치 이념적 갈등이 발생할 가 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공간이 되었다. 넷째, 다중적인 접촉지대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공식회의에서 남 북한은 자신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강조한 반면 공식회의에서 제기 되었던 문제들은 별도의 접촉에서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이중적 접촉구조는 적십자회담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23) 그러나 적십자회담은 적십자 담당자, 남북관계 담당자뿐 아니라 남한 의 경우 대학교수 등 순수한 민간 인사들이 참여하였다. 따라서 세부 적으로 본다면 공식-비공식 접촉지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준에 따른 다층적이고 중층적인 접촉지대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조 건에서는 당연히 마음체계의 상호작용도 복합적으로 생겨날 가능성 이 있다. 다섯째, 접촉지대의 균열구조가 비균등적인 경향이 있다. 북한과 달리 다원주의적이고 민주적인 남한의 경우 참여 주체가 다양하다. 23) 당국회담뿐만 아니라, 민간 부분의 접촉에서도 비공식 통로의 중요성이 항상 이야기되는데 적십자회담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K씨 증언 참조. 북한 연구의 미시적 접근과 남북 접촉지대 연구 269
북한은 통제된 체제의 특성상, 그리고 전 사회를 관리하는 당적 지배 의 특성상 남북대화에서 단일한 입장을 유지한다. 반면 남한의 경우 민주화 이후 국가 부분의 통제가 근원적으로 어려워졌다. 앞에서 이야 기한 바와 같이 남한 대표의 다양성은 남과 북의 접촉과정에서 새로 운 긴장이나 갈등을 야기하고 있으며, 주로 남한 진영에서 생겨날 수 있다. 4. 나가는 말: 마음체계 통합을 위한 접촉지대로서 적십자 회담 접촉지대로서 적십자회담의 특성과 회담의 진행을 검토한 결과 마 음체계 통합을 위한 다음의 몇 가지 주요한 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간헐적으로 만들어지는 그러나 장기간 반복적으로 형성되는 접촉지대라는 공간적 특성이 마음체계의 통합과 어떤 연관을 맺는가 하는 것이다. 공간의 형성이 연속적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접촉지대에 새롭게 형성된(혹은 조정된) 남북한 마음의 체계는 각각의 공간으로 돌아가면서 소멸될 수도 있고, 독자적 마음체계의 변형을 초래할 수도 있다. 또한 공간의 형성이 반복되면서 독자적 마음체계들이 어떻게 통합되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즉, 접촉지대의 공간적 특성과 마음체계 통합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다. 둘째, 지속성에서 가장 오래된 남북한의 접촉지대라는 차원에서 마 음체계의 변화를 다각도로 살펴볼 여지를 제공할 수 있다. 회담이 반 복되는 과정에서 시대별로 마음체제의 통합 과정이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마음의 체계 가운데 구체적으로 어떠한 요소들 270 현대북한연구 2013 16권 2호
이 변화하고 있고 그렇지 않은가를 검토하고 그 원인을 규명할 수 있 다. 특히 적십자회담은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졌지만 지향하는 목표의 변화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는 점에서 마음체계의 구성 요소들 간 변 화의 차별성과 형성되는 공동의 마음체계 구성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 하다. 셋째, 접촉지대의 참여 주체 구성의 다양성을 고려하여 집단별 성 분별로 마음체계의 통합의 어떻게 다른지를 분석할 수 있다. 앞에서 이야기하였듯 남북한 적십자회담에는 적십자운동 전문가, 남북관계 전문가, 정부 관료(정보기구, 통일부 등)에서 민간기구 담당자가 참여 한다. 비록 남쪽만큼의 다양성은 부족하지만 북한도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마음체계의 상호작용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반복되는 가운데 참가 인원들의 교체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상황 변화 를 고려하면 참여집단별 마음체계의 변화 여부에 대한 연구는 중요한 작업이 된다. 적십자회담을 접촉지대로 설정하고 수행할 수 있는 마음체계 연구 는 다른 접촉지대의 마음체계 연구와 결합되어 다시 한 번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분단의 남북 관계에서 체제의 구성원들이 어떤 상호작용을 하고 있으며, 이것이 다시 순환론적으로 체계의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규명 하는 중요한 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 접수: 6월 17일 / 수정: 7월 22일 / 채택: 7월 26일 북한 연구의 미시적 접근과 남북 접촉지대 연구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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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Microscopic Approaches of the North Korean Studies and the Study for the Contact Zones : A Preliminary Study for the Integration of Mind-System Yoon, Cheolgee(University of North Korean Studies) Yang, Moonsoo(University of North Korean Studies) Each system of North and Korea exist independently since Korea was divided, but two Koreas interact on each other. The agents of interaction are multidimensional from social structure to everyday life and the aspects of interaction are various. Accordingly, we need to examine how North-Sount Korea interaction on each other and what the results are in order to study the social integration of inter-korea. Because the social members are the subjects of social integration, whose everyday life are influenced by the interactions of inter-korea. This paper is a preliminary study to analyse the interactions of mind system of the North-South Koreans in the contact zones as a microscopic approach of the North Korean studies. And this paper postulate that the North-South Red Cross conferences were a contact zone as spaces which the interaction 북한 연구의 미시적 접근과 남북 접촉지대 연구 275
of inter-korea showed up best in this context, and is concerned with integration of mind system of the representative of the North and South Korean red cross as a type of interactions. Keywords: North-Korea studies, social integration, contact zones, mind- system, interactions, everyday life, the North-South Red Cross conferences 276 현대북한연구 2013 16권 2호
<부록> 남북적십자회담(1971~2013년) 회담 일자 회담명 장소 1971년 8.29 제1차 남북적십자 파견원 접촉 중감위회의실 8.26 제2차 남북적십자 파견원 접촉 중감위회의실 8.30 제3차 남북적십자 파견원 접촉 중감위회의실 9.3 제4차 남북적십자 파견원 접촉 중감위회의실 9.16 제5차 남북적십자 파견원 접촉 중감위회의실 9.20 제1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9.29 제2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10.6 제3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10.13 제4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10.20 제5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10.27 제6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11.3 제7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11.11 제8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1.19 제9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1.24 제10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12.3 제11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12.10 제12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12.17 제13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1972년 1.10 제14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1.19 제15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1.28 제16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2.3 제17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2.10 제18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2.17 제19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2.21 제1차 남북적십자 의제문안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2.24 제2차 남북적십자 의제문안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2.28 제3차 남북적십자 의제문안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3.6 제4차 남북적십자 의제문안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3.10 제5차 남북적십자 의제문안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3.17 제6차 남북적십자 의제문안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3.24 제7차 남북적십자 의제문안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4.17 제8차 남북적십자 의제문안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5.9 제9차 남북적십자 의제문안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북한 연구의 미시적 접근과 남북 접촉지대 연구 277
회담 일자 회담명 장소 5.12 제10차 남북적십자 의제문안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5.19 제11차 남북적십자 의제문안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5.22 제12차 남북적십자 의제문안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6.5 제13차 남북적십자 의제문안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6.16 제20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7.10 제21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7.14 제22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7.19 제23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7.26 제24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7.27 제1차 남북적십자 진행절차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8.3 제2차 남북적십자 진행절차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8.9 제3차 남북적십자 진행절차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8.11 제25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중감위회의실 8.29~9.2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 본회담 평양 9.12~16 제2차 남북적십자회담 본회담 서울 10.23~26 제3차 남북적십자회담 본회담 평양 11.22~24 제4차 남북적십자회담 본회담 서울 1973년 1.28 제1차 남북적십자 실무대표 접촉 중감위회의실 3.20~23 제5차 남북적십자회담 본회담 평양 5.8~11 제6차 남북적십자회담 본회담 서울 7.10~13 제7차 남북적십자회담 본회담 평양 1974년 2.25 제2차 남북적십자 실무대표 접촉 중감위회의실 3.11 제3차 남북적십자 실무대표 접촉 중감위회의실 4.3 제4차 남북적십자 실무대표 접촉 중감위회의실 4.29 제5차 남북적십자 실무대표 접촉 중감위회의실 5.22 제6차 남북적십자 실무대표 접촉 중감위회의실 5.29 제7차 남북적십자 실무대표 접촉 중감위회의실 7.10 제1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7.24 제2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8.28 제3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9.25 제4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11.5 제5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11.29 제6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1975년 1.24 제7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278 현대북한연구 2013 16권 2호
회담 일자 회담명 장소 2.28 제8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3.26 제9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5.8 제10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7.21 제11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8.22 제12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10.23 제13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11.28 제14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1976년 2.12 제15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4.10 제16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6.9 제17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8.20 제18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10.19 제19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12.10 제20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1977년 2.11 제21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4.28 제22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7.15 제23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10.14 제24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12.9 제25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중감위회의실 1985년 5.27~30 제8차 남북적십자회담 본회담 서울 8.26~29 제9차 남북적십자회담 본회담 평양 12.2~5 제10차 남북적십자회담 본회담 서울 2000년 6.27~30 9.20~23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남북공동선언 이행 을 위한) 제2차 남북적십자회담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금강산 금강산 2001년 1.29~31 제3차 남북적십자회담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금강산 2002년 9.6~8 제4차 남북적십자회담 금강산 10.31~11.2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 실무 접촉 금강산 12.15~17 제2차 남북적십자회담 실무 접촉 금강산 2003년 1.20~22 제3차 남북적십자회담 실무 접촉 금강산 11.4~6 제5차 남북적십자회담 금강산 2004년 5.24~25 제4차 남북적십자회담 실무 접촉 금강산, 김정숙휴게소 2005년 7.12~13 제1차 이산가족 화상상봉 적십자 실무 접촉 개성, 자남산여관 8.23~25 제6차 남북적십자회담 금강산 북한 연구의 미시적 접근과 남북 접촉지대 연구 279
회담 일자 회담명 장소 10.5 제2차 이산가족 화상상봉 적십자 실무 접촉 개성, 자남산여관 10.7 제3차 이산가족 화상상봉 적십자 실무 접촉 개성, 자남산여관 2006년 2.21~23 제7차 남북적십자회담 금강산 3.17~22 제5차 남북적십자 실무 접촉 금강산 2007년 3.9~10 제6차 남북적십자 실무 접촉 (이산가족면회소 건설 추진을 위한) 금강산, 금강산호텔 4.10~13 제8차 남북적십자회담 금강산, 금강산호텔 11.28~12.1 제9차 남북적십자회담 금강산, 금강산호텔 2009년 8.26~8.28 제10차 남북적십자회담 금강산, 금강산호텔 10.16 제7차 남북적십자 실무 접촉 (북한, 인도적 지원 요청) 남북교류협력협회사무소 2010년 9.17 제8차 남북적십자 실무 접촉 개성, 자남산여관 9.24 제9차 남북적십자 실무 접촉 개성, 자남산여관 10.1 제10차 남북적십자 실무 접촉 개성, 자남산여관 10.26~27 제11차 남북적십자회담 개성, 자남산여관 280 현대북한연구 2013 16권 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