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硏 究 論 文 일제식민지기 경성부 신사 신사 및 제신의 시기별 성격을 중심으로 문혜진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박사과정, 문화인류학 전공 shlove0315@hotmail.com Ⅰ. 머리말 Ⅱ. 1897 1945년의 경성부 신사 Ⅲ. 경성부 신사 및 제신의 시기별 성격 Ⅳ. 맺음말

Ⅰ. 머리말 서구 제국주의의 팽창에서 기독교가 계몽 위생 구원 의 기치를 내세 워 식민정권의 지배를 정당화시키는 논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개종을 강요하여 1), 소위 문화제국주의 2) 라는 폭력을 행사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 다. 일제 식민정권 또한 종교가 폭력을 이용한 강압적인 통제보다 호소력 있고 강력한 도구 3) 이기 때문에, 식민지 조선에 국가신도 4) 를 이용한 종교식민지화 5) 정책을 펼쳤다. 즉, 위로는 식민정권의 지휘 아래 국가신 도의 수행기관인 관공립신사와 창건신사( 創 建 神 社 ) 6) 에서 신사참배와 정신교화를 통한 황민화 정책이 진행되었고, 아래로는 일본인 민간 차원 에서 모국의 신앙의 연장선상에서 신사를 이식하여 식민지 조선에 일본인 의 이주 및 정착 환경을 조성했다. 따라서 식민지 조선에서는 황민화를 위해서든 이주 정착 환경을 위해서든 일본의 신사가 이식되어, 황조신 아마테라스를 비롯한 일본의 신들 7) 을 조선의 말단행정구까지 좌정시키 1) John and Jean Comaroff, Ethnography and the Historical Imagination(Colorado: Westview press, 1992), p. 183. 2) 식민주의(colonialism)는 제국주의 문화를 식민지에 강제 이식시킴으로써 식민지 문 화의 변형, 교체, 파괴를 야기하는 문화제국주의(cultural imperialism)를 수반한다. Conrad Phillip Kottak ed., Mirror for Humanity(New York: The McGraw Hill Companies, 2005), p. 272. 3) John and Jean Comaroff, op. cit., p. 202. 4) 국가신도란 1868년 메이지유신에서 태평양전쟁의 패전에 이르기까지 약 80년에 걸쳐 일본 국민에게 강제된 국가종교이며, 幕 末 維 新 期 신도의 흥륭을 배경으로 신사신도와 황실신도가 결합되어 형성된 민족종교이다. 村 上 重 良, 國 家 神 道 と 民 衆 宗 敎 ( 東 京 : 吉 川 弘 文 館, 2006), 78쪽. 5) 이 글에서는 일제가 식민지배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식민지 조선에 국가신도 를 강제적 으로 이식하여 토착의 우주적 질서를 와해시키고 천황 중심의 우주적 질서로 재편했으 며, 황민화를 뒷받침하는 신들이 좌정한 신사에 조선인의 참배를 강제하여 조선인의 민족성을 변형, 교체, 파괴하려고 한 정책을 종교식민지화 로 규정하고자 한다. 6) 창건신사는 메이지유신 이후 국가적인 의지를 반영하여 황조신과 황실의 조상 및 국사 에 순교한 충신 의사를 제신으로 새롭게 창건된 신사를 일컫는다. 그 예로, 1 메이지 유신의 志 士 를 제신으로 봉제한 도쿄초혼사( 東 京 招 魂 社, 야스쿠니신사의 전신), 2 천황 황족을 봉제한 신사로 神 武 천황을 봉제한 미야자키신궁( 宮 崎 神 宮 ) 가시하라 신궁( 橿 原 神 宮 ) 및 메이지 천황을 봉제한 메이지신궁( 明 治 神 宮 ), 3 근세 지방영주나 국학자를 봉제한 신사로 도요토미 히데요시( 豊 臣 秀 吉 )를 모신 호코쿠신사( 豊 國 神 社 ), 4 존황파나 메이지유신 이후 청일 러일 전쟁의 공헌자 및 明 治 武 勳 의 공신을 봉제한 신사로 노기 마레스케( 乃 木 希 典 )를 모신 노기신사 등이 있다. 이들 신사는 메이지유신 이후 새롭게 발명된 신사로 별격관폐사로 분류되었다. 靑 井 哲 人, 植 民 地 神 社 と 帝 國 日 本 ( 東 京 : 吉 川 弘 文 館, 2005), 101 106쪽. 370 정신문화연구 제36권 제3호

는 종교적 침략을 자행하였고, 이들 신사의 제신( 祭 神 )을 통해 천황 중심의 우주적 질서, 나아가서는 천황의 지배를 정당화시키는 계급적 질서를 재편했다. 식민지 조선에 창건된 신사 전반의 종류에 대한 연구는 전무한 실정이 지만, 식민지 조선의 제신의 성격에 대한 선행 연구로는 오야마 후미오( 小 山 文 雄 )의 神 社 と 朝 鮮 과 스가 고지( 管 浩 二 )의 日 帝 統 治 下 の 海 外 神 社 가 있다. 오야마의 연구는 조선에 창건된 신사 전반의 제신을 분류하여 그 특성을 도출한 것에 의의가 있다. 그는 조선에 봉제( 奉 齊 ) 8) 된 신의 성격을 황조신 아마테라스, 지방의 국토경영에 관계가 있는 신, 거류민에 게 연고가 있는 지역 수호신( 産 土 神 )으로 규정했으며, 그중 황조신의 봉제가 가장 두드러진다고 했다. 9) 또한 스가의 연구는 조선과 대만의 제신을 분석하여, 해외식민지 신사 간의 제신의 차별성을 도출한 것에 그 중요성이 있다. 그는 조선과 해외식민지 신사 간의 제신의 차별성을 일본과 식민지 간의 역사적 연고의 차이에 따른 황조신 아마테라스의 봉제의 유무 로 규정하였다. 즉, 대만의 신사나 삿포로신사( 札 幌 神 社 ) 등의 해외식민지 신사는 일본과의 역사적 연고의 부재로 근대에 새로 발명된 개척삼신( 開 拓 三 神 ) 10) 이 많은 반면, 조선의 신사에는 스사노오와 동일시된 단군의 누님인 황조신 아마테라스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그다 음으로 조선을 개척한 메이지 천황이 많다고 지적하였다. 11) 이들의 일제식민지기 전체 신사의 제신에 대한 일반화 작업은 식민지 조선에 좌정한 신의 성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이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식민지기의 시기별 신사의 특징 및 제신의 성격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가령 경성부의 신사는 한성부 시절인 1898년 아마테라스를 봉제한 중구 남산공원의 남산대신궁을 시작으로 1943년 경성호국신사의 창건까지, 중구 용산 7) 일본 신도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신앙되는 신은 조상신이며, 일제식민지기에 강요된 국가신도의 신은 일본 황실 및 국민의 조상신이자 동시에 충신, 열사, 전사자들의 死 靈 이었다. 박규태, 일본의 신사( 神 社 ) (살림, 2005), 18쪽. 8) 봉제 는 일본 신사에서 祭 神 으로 모시는 것을 의미한다. 9) 小 山 文 雄, 神 社 と 朝 鮮 ( 京 城 府 : 朝 鮮 佛 敎 社, 1934), 141쪽. 10) 개척삼신은 大 國 魂 命 (또는 國 魂 大 神 ) 大 己 貴 命 少 彦 名 命 로, 특히 國 魂 大 神 은 전례 에 없는 새로운 神 名 으로 단군과 조선역대 유공자를 총괄하는 조선의 국혼신을 지칭 한다. 管 浩 二, 日 帝 統 治 下 の 海 外 神 社 ( 東 京 : 株 式 會 社 弘 文 堂, 2011), 349쪽. 11) 管 浩 二, 위의 책, 347쪽. 일제식민지기 경성부 신사 371

구 동대문구 영등포구 동작구에 걸쳐 총 29사( 社 ) 사( 祠 ) 12) 가 창건 되었다. 이들 신사는 조선총독부의 신사정책에 따라 시기별 창건 양상에 차이를 나타내며, 시기별 창건된 신사의 제신은 조선총독부의 종교식민 화 정책 및 경성에 거주한 일본인들의 삶을 투영한다. 이에 일제식민지기 의 종교식민화 과정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제식민지기에 창건된 신사를 종류별 시기별로 구분하여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일제식민지기 종교문화의 중심지인 경성을 연구 대상으로 조선총독부의 종교식민화 정책의 변화에 따라 1897 1910년, 1910 1930년, 1930 1945년으로 시기를 구분하여 경성부 신사의 문화적 지형을 파악하고자 한다. 즉, 경성부 소재의 신사 종류를 먼저 살펴본 후, 조선총독부의 신사정책의 변화에 따른 시기별 경성부의 신사 및 제신의 성격 변화를 검토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제식민지기 경성부 신사의 종류별 시기별 문화적 지형은 조선에 창건된 신사의 문화적 지형의 축소판으로, 식민지 조선의 종교식민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 이 되리라 생각된다. Ⅱ. 1897 1945년의 경성부 신사 1. 경성부에 창건된 신사 경성에 창건된 총 신사를 명확하게 정리해놓은 문헌은 아직 없기 때문에 일제식민지기 경성 소재 신사( 神 社 ) 및 신사( 神 祠 ) 13) 의 정확한 12) 경성신사( 京 城 神 社 ), 경성신사 섭사 텐만궁( 天 滿 宮 ), 산코신사( 三 光 神 社 ), 한강신사( 漢 江 神 社 ), 한강신사 섭사 시키신사( 志 岐 神 社 ) 및 시신신사( 矢 心 神 社 ), 가토신사( 加 藤 神 社 ) 2 祠, 이나리신사( 稻 荷 神 社 ) 8 祠, 신명신사( 神 明 神 祠 ) 8 祠, 에비스사( 惠 比 須 社 ), 조 선신궁, 경성신사 섭사 하치만사( 八 幡 社 ), 경성신사 섭사 노기신사( 乃 木 神 社 ), 이즈모 대사( 出 雲 大 社 ) 3 祠, 경성호국신사가 있었다. 川 端 源 太 郞, 京 城 と 內 地 人 ( 日 韓 書 房, 1910), 97쪽; 靑 柳 網 太 郞, 大 京 城 ( 朝 鮮 硏 究 會, 1925), 92 93쪽; 京 城 府 敎 育 會, 京 城 案 內 ( 京 城 府 敎 育 會, 1926), 112쪽; 萩 森 茂 編 著, 朝 鮮 の 都 市 ( 大 陸 情 報 社, 1930), 24 29쪽; 長 野 末 喜, 京 城 の 面 影 ( 內 外 事 情 社, 1932), 123쪽; 岩 下 傳 四 郞, 大 陸 神 社 大 觀 ( 大 陸 神 道 聯 盟, 1941), 552 554쪽. 13) 신사( 神 祠 )는 1917년 3월 조선총독부령 제21호로 공포된 神 祠 에 관한 件 에 따르면, 神 社 의 격식에 맞지 않는 것을 神 祠 라고 하여 따로 허가한 것이다. 神 祠 라는 말은 조선에만 있으며, 이와 비슷한 것으로 대만에 祠 가 있다. 神 社 의 존엄 을 해치지 않으 372 정신문화연구 제36권 제3호

수나 위치, 제신을 단정 짓기는 힘든 상황이다. 따라서 일제식민지기에 간행되어 경성에 창건된 신사들을 언급한 문헌들 14) 을 참조하여, 경성 내에 시기별로 건립된 신사, 신사의 위치 및 제신을 정리해보았다. 그 결과는 표1과 같으며, 몇몇 정확한 제신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신사( 神 祠 ) 의 경우, 일본 총본사의 제신을 참조하여 정리하였다. 표1-- 경성부의 시기별 신사( 神 社 ) 및 신사( 神 祠 )의 건립 양상과 제신 연대 신사명 창립 연도 위치 제신( 祭 神 ) 1890년대 남산대신궁 (경성신사의 前 身 ) 1897 중구 남산공원 창건 당시 主 祭 神 은 아마테라스 오오가미( 天 照 大 神 ) 1 柱 15)였으 나, 1936년 국폐소사의 승격조 건으로 오호나무지( 大 己 貴 命 ) 스쿠나히코나( 少 彦 名 命 ), 구니 타마 오오가미( 國 魂 大 神 ) 3 柱 를 합사 1900년대 1910년대 산코신사 ( 三 光 神 社 ) 경성신사 섭사 텐만궁 ( 天 滿 宮 ) 한강신사 ( 漢 江 神 社 또는 熊 津 神 社 ) 한강신사 섭사 이나리신사 ( 稻 荷 神 社 ) 시키신사 ( 志 岐 神 社 ) 시신신사 ( 矢 心 神 社 ) 1902 왜성대 (중구 예장동 혹은 회현동 1가) 1902 중구 남산공원 1912 동작구 흑석동 동작구 흑석동 아마테라스 오오가미 쓰쿠요미노미코토( 月 読 尊 ) 스사노오노미코토 ( 素 戔 嗚 尊 ) 스기와라노 미치자네 ( 管 原 道 眞 ) 스기와라노 미치자네 미야지다케( 宮 地 岳 太 神 宮 또는 宮 地 嶽 神 : 신공왕후와 그 충신 勝 村 大 神 勝 頼 大 神 를 봉제하 고 있음) 고토히라( 金 刀 比 羅 神 ) 이나리신사의 제신: 우카노미타 마( 倉 稻 魂 神 ), 사루타히코( 猿 田 彦 命 ), 오미야노메( 大 宮 女 命 ) 시키신사의 제신: 오진 천황( 応 神 天 皇 ) 시신신사: 신사 출처 불명 면서 간소히 神 社 와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김대호, 1910년대 1930년대 초 경성신사와 지역사회의 관계,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동북아역사 재단, 2008), 96쪽. 14) 川 端 源 太 郞, 앞의 책, 97쪽; 京 城 府 敎 育 會, 앞의 책, 112쪽; 萩 森 茂 編 著, 앞의 책, 24 29쪽; 長 野 末 喜, 앞의 책, 123쪽; 靑 柳 網 太 郞, 앞의 책, 92 93쪽. 15) 신사에서 일반적으로 신령 한 분을 표기할 때 柱 를 붙인다. 일제식민지기 경성부 신사 373

표1-- 계속 연대 신사명 창립 연도 위치 제신( 祭 神 ) 1910년대 1920년대 가토신사 ( 加 藤 神 社 ) 이나리신사 신메이신사 ( 神 明 神 祠 ) 에비스사 ( 惠 比 須 社 ) 1914 용산구 원효로 가토 기요마사( 加 藤 淸 正 ) 1910년대 중반 용산 삼각지(이후 경성신사 섭사로 이전) 이나리신( 倉 稻 魂 神 ) 1917 영등포구 영등포동 아마테라스 오오가미 1920년대 잠시 존재 중구 태평로 1가 에비스( 惠 比 須 ) 신메이신사 1922 동대문구 용두동 아마테라스 오오가미 조선신궁 1925 중구 남산공원 경성신사 섭사 이나리신사 경성신사 섭사 하치만사 ( 八 幡 社 ) 1929 중구 남산공원 이나리신 1929 중구 남산공원 아마테라스 오오가미 메이지 천황( 明 治 天 皇 ) 혼다와케( 譽 田 別 命 ) 히메( 比 賣 神 ) 오타라시히메( 大 帶 姬 命 ) 신메이신사 1932 영등포구 신길동 아마테라스 오오가미 경성신사 섭사 노기신사 ( 乃 木 神 社 ) 1934 중구 남산공원 노기 마레스케( 乃 木 希 典 ) 1930년대 가토신사 1934 용산구 신계동 가토 기요마사 신메이신사 1934 동작구 흑석동 아마테라스 오오가미 신메이신사 1935 용산구 이태원동 아마테라스 오오가미 1940년대 경성호국신사 1943 용산구 용산동 2가 전몰 순국자의 영령 7,447 柱 16) 연대미상 이즈모대사 ( 出 雲 大 社 ) 이나리신사 중구 충정로 1가, 서대문구 충정로 2가 및 충정로 3가 중구 회현동 일대, 중구 필동, 중구 묵정동, 용산구 원효로, 중구 남창동 오쿠니누시( 大 國 主 神 ) 이나리신 16) 안종철, 1930 40년대 남산 소재 경성호국신사의 건립, 활용, 그리고 해방 후의 변화, 서울학연구 제42호(2011), 60쪽. 374 정신문화연구 제36권 제3호

2. 경성부에 창건된 신사의 종류 표1에 나타난 일제식민지기 경성부에 창건된 신사의 특징은 크게 신사의 종류 및 시기별 신사의 건립 양상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경성부에 창건된 신사의 종류, 즉 1 일본 거류민의 단결도모 및 서민신앙 에 근거한 거류민봉제신사, 2 조선총독부에 의해 건립된 관공립신사, 3 메이지기( 明 治 期 ) 별격관폐사( 別 格 官 幣 社 )로 새롭게 발명된 창건신사 를 기준으로 분류 고찰해보고자 한다. 첫째, 일본 거류민의 단결도모 및 서민신앙에 근거한 거류민봉제신사 는 일반적으로 한일병합 이후 조선총독부가 본격적으로 신사제도를 재편하기 위해 1915년 일본 본토의 <관국폐사이상 이하신사제식> 17) 을 식민지 조선에 도입하기 전까지 창건된 신사를 일컫는다. 18)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민화가 본격적으로 강요되기 시작한 1935년 전까지 일본 서민에게 인기 있는 신사들 19) 이 조선총독부의 신사정책과 상관없이 서민신앙의 종교시설로서 경성거주 일본 거류민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창건되었다. 거류민봉제신사는 크게 일본 거류민 유지들이 내셔널리즘 (민족주의)을 고양시켜 재한일본인사회의 일체성을 도모하기 위해 천 황 황족을 봉제한 신사 20) 와 고향의 수호신이나 서민생활 관련 인기 있는 수호신을 권청( 勸 請 )해온 서민종교적 신사로 나눌 수 있다. 경성부에 창건된 신사 중 천황 황족을 봉제한 신사로는 황조신 아마테라스를 모신 경성신사와 신공왕후 및 그 아들 오진 천황( 応 神 天 皇 )을 모신 한강신 사가 있으며, 일본의 대표적인 서민신사로는 텐만궁, 이나리신사, 신메이 신사, 에비스사, 이즈모대사가 있다. 지역시조신이나 수호신을 권청해온 17) 일본 본토의 신사제식의 획일화를 제도 면에서 확립하기 위해서 1914년 1월 신궁제식 령( 神 宮 祭 式 令 ) 과 관국폐사이상 신사제식( 官 國 幣 社 以 上 神 社 祭 式 ) 을 칙령( 勅 令 )으 로, 관국폐사이하 신사제식( 官 國 幣 社 以 下 神 社 祭 式 ) 을 내무성령으로 정해 일본의 모 든 신사에 적용하였다. 村 上 重 良, 天 皇 制 國 家 と 宗 敎 ( 東 京 : 株 式 會 社 講 談 社, 2007), 188 189쪽. 18) 靑 井 哲 人, 앞의 책, 151쪽. 19) 오야마는 식민지 조선에 창건된 서민신앙적 신사들 중 이나리신사( 稻 荷 神 祠 )가 가장 많았으며, 스이텐신사( 水 天 神 祠 ), 야마신사( 山 神 祠 ), 아타고사( 愛 宕 祠 ), 고토히라사( 金 刀 比 羅 祠 ), 에비스사( 惠 比 壽 祠 ) 등도 비교적 많이 창건되었다고 서술했다. 小 山 文 雄, 앞의 책, 141쪽. 20) 山 口 公 一, 韓 日 倂 合 以 前 における 在 韓 日 本 人 創 建 神 社 の 性 格 について, 日 韓 相 互 認 識 제2호(2009), 38쪽. 일제식민지기 경성부 신사 375

신사로는 산코신사 21), 시키신사 22), 하치만사 23) 를 들 수 있다. 둘째, 경성부에 창건된 신사 중 조선총독부에 의해 건립된 관공립신사 로는 조선의 총진수( 總 鎭 守 )이자 관폐대사( 官 幣 大 社 ) 24) 로 식민지 조선의 국가제사를 수행한 조선신궁이 있으며, 창건신사로는 메이지 천황의 충신 노기 마레스케를 봉제한 노기신사와 전사자의 영령( 英 靈 ) 7,447주 ( 柱 )를 제사 지내는 경성호국신사가 있다. 조선총독부 주도의 관공립신사 와 창건신사는 식민정권의 국가제사의 수행 및 황민화를 위한 신사참배 기관으로 건립되었으며, 경성부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서민신앙과는 괴리되어 있었다. 이러한 식민지 조선에 창건된 신사의 이중적 기능, 즉 식민정권의 국가신도의 수행기관 및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서민신 앙적 종교시설의 역할 분화에 대해 오가사와라 쇼조( 小 笠 原 省 三 )는 해외 신사사( 海 外 神 社 史 ) 의 청진신사 답사기에서 청진신사 [ ] 메이지 천황 과 황조신 아마테라스를 봉제하고 있으며, 경내사로 고토히라궁( 金 刀 比 羅 宮 )이 있는데 이 궁이 오히려 청진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신앙을 결집하 고 있다 25) 고 서술했다. 즉, 조선거주 일본인들은 모국의 삶의 연장선상에 서 그들의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사적기도, 일생통과의례, 세시풍속 등의 모국의 신앙생활을 이어나갈 신사가 필요했고 26), 이는 황조신이나 황실 조상을 모시고 있는 지방의 총진수가 아니라 서민종교적 신사를 중심으로 21) 산코신사는 중풍방지(예방)로 유명한 신사로 오사카에만 소재하기 때문에, 오사카 출 신 경성거주 일본 거류민들이 고향에서 권청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22) 규슈 출신 시키 노부타로( 志 岐 信 太 郞 )가 구마모토 현 아마쿠사 군( 天 草 郡 ) 레이호쿠 초( 苓 北 町 ) 시키( 志 岐 ) 1에서 권청해온 시키하치만신사( 志 岐 八 幡 宮 神 社 )이다. 23) 오이타 현 사람들이 고향의 우사하치만( 宇 佐 八 幡 ) 신앙을 연장하여 권청해온 신사이 다. 小 笠 原 省 三, 海 外 神 社 史 ( 東 京 : ゆまに 書 房, 2004b), 35쪽. 24) 국가신도체제의 기초적인 사격( 社 格 ) 시스템인 관국폐사 부현사 향촌사는 1868 1871년의 메이지정부의 신도국교화정책기에 구축되었다. 즉, 메이지정부는 신도를 국교로 확립하기 위해, 1868년 3월 13일 천황제 국가권력의 종교적 권위를 상징하는 고대국가의 제사 기관인 신기관( 神 祇 官 )의 재흥을 공포하고, 3월 28일 신도와 불교를 분리하는 신불분리령을 공포하였다. 1869년 7월 8일 선교사를 설치하고 1870년 1월 3일 대교선포의 조서를 공포하여 고대 관제에 없던 宣 敎 를 주된 임무로 삼아 국민에 대한 신도적 교화를 시작하였다. 1871년에는 신관세습제 폐지, 신사의 사격 제정, 우지코시라베( 氏 子 調 べ)제도를 신설하는 등 국가신도 체제의 토대를 마련하였다(박규 태, 국가신도란 무엇인가, 종교연구 제29집, 2002a, 232쪽). 국가신도 사격 시스템 의 최상위를 차지하는 관폐사는 황실(궁내성)에서 폐백료를 지출하는 신사로서, 보통 천황 및 그 친족, 공신을 봉제하고 있다. 25) 小 笠 原 省 三, 海 外 の 神 社 ( 東 京 : ゆまに 書 房, 2004a), 175쪽. 26) 문혜진, 한일병합(1910년) 이전 남산대신궁의 종교적 성격에 관한 연구, 鄕 土 서울 제83호(2013), 260 262쪽. 376 정신문화연구 제36권 제3호

표2-- 일제식민지기 경성 소재 신사의 종류 신사의 성격 건립 주체 신사명( 名 ) 창건 목적 관공립신사 조선총독부 조선신궁 창건신사 거류민봉제신사 조선총독부 거류민 유지 미상 일본 특정 지역 출신의 거류민 유지 노기신사 경성호국신사 경성신사 한강신사 텐만궁 이나리신사 신메이신사 에비스사 이즈모대사 산코신사 시키신사 하치만사 내지인(일본인)뿐만 아니라 조선 만 백성을 아우르는 조선의 총진수로서 창건, 국가제사 및 신사참배에 적극 적으로 이용 황민화를 목적으로 천황 중심으로 재 편된 제신을 새롭게 모시거나 전사자 들을 제사 지내기 위해 창건, 후자의 경우 특히 조선인 강제동원의 기제로 국가적 차원의 위령제를 담당 한일병합 이전, 천황 황족을 봉제하 여 내셔널리즘을 고양시켜 조선 내의 일본인사회의 일체성을 도모하기 위 해 일본 거류민 유지들이 창건, 한편 일본 거류민들의 종교생활에도 이용 민중생활 및 특정 생업 관련 인기 있 는 수호신을 권청( 勸 請 )해 모심 모국의 삶의 연장으로 고향의 시조신 이나 수호신을 권청해 모심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언급한 경성부 소재 신사의 종류를 표로 정리해보면 표2와 같다. Ⅲ. 경성부 신사 및 제신의 시기별 성격 조선총독부의 종교식민화 정책의 시기별 구분은 크게 1 한일병합 (1910) 이전, 2 1910 1920년대의 거류민봉제신사의 관공립화 및 국가제 사시설의 완비, 3 1930년대 이후 황민화 정책기 27) 로 나누어볼 수 있으며, 27) 한일병합 이후 조선총독부의 신사정책은 山 口 公 一 의 박사학위논문 植 民 地 期 朝 鮮 に おける 神 社 政 策 と 朝 鮮 社 會 ( 一 橋 大 學 大 學 院 社 會 學 硏 究 科, 2006)를 참조하여 수정한 것이다. 야마구치는 1910년대를 <국가제사의 정비과정>, 1920년대를 국민통합 수단으 로서 <국민의례(신사참배)>의 등장 및 기독교와의 갈등이 대두된 시기, 1930년대 중반 이전을 <만주사변 농촌진흥운동기>로 국민의례가 부상된 시기, 1930년대 중반 이후 를 <황민화 정책기>로 국가제사의 수행, 국민의례의 강요정책의 전개, 조선의 지역사 일제식민지기 경성부 신사 377

이 장에서는 세 시기별로 경성부에 창건된 신사의 역사 및 제신의 성격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1. 1897 1910년의 신사 및 제신의 성격 한일병합(1910) 이전, 경성부에 창건된 신사는 거류민봉제신사로서 남산대신궁, 산코신사, 텐만궁이 있었다. 남산대신궁은 거류민 상층이 일본인사회의 일체성을 도모하고 거류민들의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창건하였으며, 산코신사는 모국 신앙의 연장선상에서 오사카 출신 거류민들에 의해 권청되었다. 반면, 텐만궁은 인기 있는 서민신사로서 창건되었다. 이 신사들의 창건 배경 및 제신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남산대신궁( 南 山 大 神 宮 ) 경성의 일본 거류민들이 대신궁 봉안( 奉 安 )의 의견을 처음으로 제창한 것은 1892년이지만, 기부금 부족으로 무산되었다. 이후 거류민회가 신사 창건을 결의하고 영사관과 합의한 결과, 1898년 거류민 대표 야마구치 다베에( 山 口 太 兵 衛 )가 이세신궁으로 가서 신체를 모셔와, 남산 왜성대에 이세신궁 본전의 100분의 12 크기로 사전( 社 殿 )을 조영하였다. 1898년 10월 3일 천장절에 진좌제( 鎭 座 祭 ) 28) 를 집행했으며, 제일( 祭 日 )은 매년 1월 1일 원시제( 元 始 祭 ), 2월 11일 기원절( 紀 元 節 ), 9월 24일 신궁대제전( 神 宮 大 祭 典 ), 11월 3일 천장절( 天 長 節 )이었다. 29) 남산대신궁의 주제신( 主 祭 神 )은 아마테라스 오오가미이다. 아마테라 스신의 성격은 크게 태양의 여신으로서의 보편신적 성격과 내셔널리스틱 한 특수신(황조신/민족신)적 성격으로 논의되고 있다. 30) 아마테라스는 중세 이후 온시( 御 師 ) 등의 활동에 의해 전국 각지에서 이세신으로 모셔지 게 되었으며, 주로 농촌을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농민들에게 오곡풍요의 신, 농경신으로 폭넓은 신앙을 받았다. 그러나 점차 도시가 발달되면서부 회의 말단까지 <국민의례>의 場 의 설치기간으로 구분하였다. 28) 진좌제는 부정이 없는 장소를 선정해서 사전( 社 殿 )을 짓고 신령을 좌정시키는 제사이다. 29) 京 城 府 史 3권( 京 城 府, 1934), 176 177쪽. 30) 박규태, 일본종교의 현세중심적 에토스: 막말기 신종교를 중심으로, 종교학연구 15(1996), 33쪽. 378 정신문화연구 제36권 제3호

터 아마테라스는 농경신으로서의 측면과 더불어 복신적( 福 神 的 ) 성격이 더해져 현세이익적인 신격으로 변해갔으며, 이세신앙은 근세에 더욱 성행하게 되었다. 31) 이러한 아마테라스의 보편신적 성격은 메이지정부의 국가권력에 의해 천황제 국가의 형성 및 그 이데올로기적 기반으로서 일본 황실의 조상신 의 이미지로 통합되어 32), 황조신 과 동일시되었다. 남산대신궁의 경우, 창건취지에서 거류민 유지들이 황조신 아마테라스를 모심으로써 황실을 존중하고 일본인들의 단결을 도모하려 했다고 밝혔기 때문에 33), 당시 아마테라스를 모신 다른 대신궁처럼 일본 거류민 상층의 내셔널리스틱한 성격의 신으로 모셔졌다고 보아야 한다. 2) 산코신사( 三 光 神 社 ) 산코신사는 1902년 4월 9일 왜성대(중구 예장동 혹은 회현동 1가)에 창건되어 1910년대까지 존재했다. 34) 산코신사는 일본 오사카( 大 阪 ) 조오 토미나( 城 東 南 ) 우에마치다이( 上 町 台 ) 사나다야마( 眞 田 山 )에 진좌해, 옛 날에는 히메야마신사( 姬 山 神 社 )라고 칭했지만, 전국적으로 사나다야마 의 산코( 三 光 )의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지금은 산코신사( 三 光 神 社 )가 되었다. 산코신사는 한제이 천황( 反 正 天 皇, 351 410) 때 창건되었으며, 중풍방지(예방)의 신으로 유명한 미야기 현 센다이 시의 아오소신사( 青 麻 神 社, 三 光 宮 )에서 권청한 이래 중풍방지로 유명해졌다. 산코신사는 일본 전국에 오사카 한 곳만 존재하기 때문에, 일제식민지기 경성부의 오사카 출신 일본 거류민 유지들에 의해 지역수호신으로 모셔진 것으로 추측된 다. 항례제는 매년 6월 1일부터 8일이다. 35) 산코신사의 주제신은 아마테라스, 쓰쿠요미( 月 読 尊 ), 스사노오( 素 戔 嗚 31) 박규태, 일본의 민중신앙과 아마테라스의 변용: 구로즈미교의 경우를 중심으로, 일 본사상 4(2002b) 44쪽. 32) 위의 논문, 45쪽. 33) 우리 일본의 국체( 國 體 )는 신의 정통 후손을 받들어 모심으로써 단일국가를 이룬 데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선조를 신으로서 경애하는 것은 황실 입장에서 보자면 조상 에게 제사의 예를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 입장에서 보자면 황실의 조상을 제사 지내는 근본적 이유가 된다. 이처럼 신을 공경하는 풍습은 곧 황실을 존경하고 공경하 는 의로운 것이다. 우리 일본이 신을 공경하면 결국 국민 통일이 이루어지고, 마침내 황실의 존엄은 배가 된다. 국가가 더욱 공고해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京 城 發 達 史 ( 京 城 居 留 民 團 役 所, 1912), 477쪽. 34) 川 端 源 太 郞, 앞의 책, 97쪽. 35) 산코신사 홈페이지에서 신사의 유래 참조, http://www.eonet.ne.jp/~sankou/npg311.htm. 일제식민지기 경성부 신사 379

尊 ) 등 세 분이다. 이 삼신은 이자나기가 이자나미를 만나기 위해 황천국을 방문한 후, 이자나기가 황천국의 부정을 씻어내기 위해 행한 미소기하라 에(정화의식)를 통해 탄생한 삼귀자( 三 貴 子 )이다. 36) 이들 삼귀자는 산코 신사에서 중풍방지(예방)의 신덕( 神 德 )으로 모셔져 있기 때문에, 경성부 산코신사에서 황실조상신이 아닌 치병신으로 보아야 한다. 3) 텐만궁( 天 滿 宮 ) 텐만궁은 1902년 4월 25일(또는 5월 25일)에 창건되었으며, 1915년 12월 확장공사를 하였다. 37) 경성신사어유서기( 京 城 神 社 御 由 緖 記 ) 38) 에 따르면, 텐만궁은 1915년 7월 허가를 받아 창건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텐만궁은 1902년 창건되어 경성신사와 관계없이 유지되다가, 1915년 8월 16일 조선총독부령 제82호 신사사원규칙 39) 의 포고( 布 告 ) 를 염려하여, 이에 앞선 7월경에 경성신사의 섭사로 허가를 받았을 것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 1915년 당시 신사사원규칙 에 따라 창립허 가를 요청할 즈음, 황조신 아마테라스를 제신으로 올려 접수하는 사례가 가장 많았고, 서민적 신인 고토히라나 이나리신 등을 제사 지내는 신사( 神 祠 )는 무원신사( 無 願 神 社 )로 인가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폐사를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서민종교적 신사( 神 祠 )들은 살아남기 위해 창립허가를 얻은 신사(주로 아마테라스를 모신 대신궁)를 본사로 해서 경내외의 섭사로 종속되어 인가를 받을 수 있었다. 40) 텐만궁의 주제신은 스기와라노 미치자네로 헤이안 시기 제59대 우다 ( 宇 多 ) 천황 시절, 우대신으로 신임을 받던 중, 좌대신 후지와라노 도키히 라( 藤 原 時 平 )의 모함으로 다자이후( 大 宰 付 ) 곤노소치( 權 帥 )의 직위로 유배 36) 오오노 야스마로 저, 권오엽 권정 역, 고사기 상권(고즈윈, 2007), 107 114쪽. 37) 川 端 源 太 郞, 앞의 책, 97쪽; 淸 柳 網 太 郞, 앞의 책, 209 213쪽; 岩 下 傳 四 郞, 앞의 책, 322쪽. 38) 경성신사가 경성부에 제출한 서류로서 1932년 6월 29일자 접수인이 찍혀 있으며, 현재 국가기록원 소장으로 <국폐사관련철( 國 幣 社 關 聯 綴 )>로 분류되어 있다. 39) 조선총독부는 1915년 8월 16일 조선총독부령 제82호 신사사원규칙 을 제정 발포하 여, 모든 신사의 창립과 존폐는 총독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기존의 신사들도 총독의 인가를 받도록 하였다(김승태, 조선총독부의 종교정책과 신사( 神 社 ), 한국기독교 역사연구소소식 제79호, 2007, 64쪽). 이로써 식민정부는 황조신 아마테라스를 모신 신사를 중심으로 기존의 거류민봉제신사의 위계질서를 재편하고 관 공립성도 부여하 면서, 식민지 조선 내의 신사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40) 靑 井 哲 人, 앞의 책, 251쪽. 380 정신문화연구 제36권 제3호

되어 비운의 죽음을 맞이하였다. 41) 그 후 좌대신 가문 및 가까운 주변에 급사하거나 벼락 맞아 죽는 자가 속출하는 등 갖가지 재앙이 끊이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그 재앙을 미치자네의 원령이 일으키는 것이라고 여겨 그의 원령을 달래기 위해 신으로 모셨다. 미치자네의 원령은 뇌신과 습합하여 천신이 되었으며, 뛰어난 학자였던 그의 학문적 재능 때문에 학문의 신으로도 신앙되고 있다. 42) 학문과 문화의 천신을 모신 텐만궁은 하치만 신앙, 이나리 신앙, 이세신앙과 함께 일본 전체 신사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 43) 로 인기 있는 서민신앙으로 식민지 조선에 이식되었다. 2. 1910 1930년의 신사 및 제신의 성격 한일병합 이후 조선총독부는 1910 1920년대의 신사정책으로 국가제 사의 정비 및 기존 거류민봉제신사들의 관 공립화 44) 를 추진하였다. 조선총독부는 1915년 신사사원규칙 을 포고( 布 告 )하여 기존의 거류민 봉제신사의 관 공립화를 통해 이들을 통제하에 넣었으며, 1925년 조선 신궁의 완공으로 국가제사 시설을 완비하였다. 이후 1936년 8월 조선총 독부의 신사규칙의 개정 일도일열격사( 一 道 一 列 格 社 )의 설치 방침 45) 을 포고하여 조선팔도에 식민정권의 제사 지원을 받는 국폐소사( 國 幣 小 社 ) 를 설치하였고, 이로써 조선신궁을 위시한 식민정권의 국가제사 시스템 이 완비되었다. 1910년대 1920년대 경성부에는 조선신궁, 한강신사, 가토신사, 신메이신사, 에비스사, 그 외의 경성신사 한강신사 섭사들이 창건되었다. 이 시기 신사의 특징은 국가제사를 수행할 조선신궁을 위시하여, 경성거주 일본인들의 종교시설로서 황조신이나 황실조상 고 향의 시조신이나 수호신 서민 신앙으로 인기 있는 신들을 모신 신사가 다수 혼재하며, 조선신궁을 정점으로 기존의 신사들이 서열화되는 양상 을 나타냈다. 이들 신사의 창건 배경 및 제신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41) 川 口 謙 二, 神 社 その 御 利 益 と 祭 神 ( 東 京 : 東 京 美 術, 1986), 123쪽. 42) 박규태, 야스쿠니의 신화: 현대일본의 종교와 정치, 종교연구 50권(2008), 54쪽. 43) 박규태, 앞의 책, 225쪽. 44) 김승태, 일본 신도의 침투와 1910 1920년대의 神 社 問 題, 한국사론 16(1987), 294쪽. 45) 정재정 염인호, 서울 근현대 역사기행 (혜안, 1998), 209쪽. 일제식민지기 경성부 신사 381

1) 한강신사 일명 웅진신사( 熊 津 神 社 )라고도 하며, 노량진 흑석리(현 효사정)에 위치 했다. 인도교 46) 가교 건설자( 請 負 人 ) 시키 노부타로( 志 岐 信 太 郞 )가 1912년 다이쇼( 大 正 ) 천황의 즉위를 기념하고 아울러 고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성 거류민들을 위하여 사재 십수만 원을 들여 한강의 용신( 水 神 )으 로 모셔 신전을 건립하였다. 항례 대제일은 매년 봄(5월 4일), 가을(10월 3일 또는 4일)로 일본인 참례자가 멀리서도 구름같이 모여들었다고 한 다. 47) 주제신은 스기와라노미치자네, 미야지다케산, 고토히라( 金 刀 比 羅 神 ) 이다. 48) 미치자네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학문과 문화의 천신이다. 고토히라는 콘비라(Kumbhira)를 한역한 것으로 갠지스 강에 서식하는 악어를 신격화한 이름이며, 불법의 수호신인 약사여래 12신장의 하나로 구비라( 宮 昆 羅 ) 대장( 大 將 )이다. 악어신은 용신 또는 해신( 海 神 )으로서 바다에서 무사하기를 빌거나 기우제( 祈 雨 祭 )를 지내는 등 물을 관장하는 신으로 일본에 습합되어 곤비라대관현( 金 比 羅 大 權 現 )이 되었으며 49), 한 강에 인접한 한강신사에서 고토히라는 한강을 다스리는 용신으로 모셔졌 다. 또한 미야지다케는 제신의 이름이 아니라 후쿠오카 현( 福 岡 縣 ) 호쿠쓰 시( 福 津 市 )에 소재하는 미야지다케신사를 일컫는다. 미야지다케는 신공 왕후( 神 功 皇 后 )를 주제신으로 하며, 신공왕후를 보좌한 충신 가쓰무라 대신( 勝 村 大 神 ) 가쓰요리 대신( 勝 頼 大 神 )을 같이 모시고 있다. 이 신사는 약 1,600년 전 신공왕후가 삼한정벌의 출정에 앞서 미야지다케( 宮 地 嶽 山 ) 의 정상에 제단을 설치해 기원을 드리고 출항한 것에 유래하며, 신공왕후 의 승리를 기념하여 운수대통이나 상업 번창으로 유명한 신사이다. 50) 한강신사에서 신공왕후는 1915년 신사사원규칙 의 공포 이후 황실조상 을 모셔 허가를 받기 위한 일환으로, 그리고 한일병합 이후 신공왕후의 삼한정벌 신화에 의거하여 조선과의 우월한 역사적 인연을 과시하기 위해 모신 것으로 사료된다. 46) 한강인도교는 한강철교와 평행으로 한강에 가설된 인도철교로서 1917년 10월에 건설 되었다. 47) 萩 森 茂, 앞의 책, 28쪽; 藤 井 龜 若, 京 城 の 光 華 ( 朝 鮮 事 情 調 査 會, 1926), 217쪽. 48) 萩 森 茂, 위의 책, 28쪽. 49) 川 口 謙 二, 앞의 책, 80쪽. 50) 총본사 홈페이지의 제신, 유래 참조: http://www.miyajidake.or.jp/keidai/index.html. 382 정신문화연구 제36권 제3호

(1) 섭사 이나리신사( 稻 荷 神 社 ) 한강신사의 섭사 이나리신사에 대한 구체적인 창건경위 및 연대에 대한 기록은 없으며, 단지 이나리신사가 섭사로 존재했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나리신사는 일본 전체 신사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51) 인기 있는 서민신사로서 식민지 조선에서도 서민신앙으로 가장 많이 창건된 신사( 神 祠 ) 52) 이다. 해외의 이나리신사에서는 주로 우카노미타마( 倉 稻 魂 神 ), 사루 타히코( 猿 田 彦 命 ), 오미야노메( 大 宮 女 命 ) 이 삼신을 이나리신으로 모셨 다. 53) 이나리는 원래 벼의 성장을 의미하며, 수확한 벼를 신에게 바치는 것에서 이나리( 稻 荷 )라는 이름이 붙여진 오곡풍양의 농경신이다. 54) 이후 후카쿠사에 하타씨 일족이 들어와 지역생활의 중심 집단이 되면서 하타씨 일족의 우지가미인 이나리신 으로 변모하였으며, 하타씨 세력의 상업권 확대와 더불어 근세를 거치면서 상공업의 수호신으로 그 신앙권을 확장시 켰다. 55) 해외에서 이나리신은 농경신이자 상업수호신으로 일본인에게 친근한 민중생활의 수호신으로 모셔졌으며 56), 식민지 조선에서는 한일병 합 이후 일본인들의 저조한 농업종사 비율 대비 높은 상공업 종사 비율 57) 에서 농경신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상공업의 수호신으로 모셔졌음을 알 수 있다. (2) 섭사 시키신사( 志 岐 神 社 )와 시신신사( 矢 心 神 社 ) 시키신사는 규슈( 九 州 ) 구마모토 현( 熊 本 縣 ) 아마쿠사 군( 天 草 郡 ) 레이 호쿠 초( 苓 北 町 ) 시키( 志 岐 ) 1에 소재하는 시키하치만궁신사( 志 岐 八 幡 宮 神 社 )로 제신은 신공왕후의 아들 오진 천황( 應 神 天 皇 )이다. 58) 섭사는 본사의 51) 박규태, 앞의 책, 23쪽. 52) 小 山 文 雄, 앞의 책, 141쪽. 53) 이나리신사의 본사 후시미이나리신사( 伏 見 稻 荷 神 社 )의 주제신은 倉 稻 魂 神, 猿 田 彦 命, 大 宮 女 命, 田 中 大 神, 四 大 神 등 다섯 신이다. 54) 瓜 生 中 澁 谷 申 摶, 日 本 宗 教 のすべて ( 東 京 : 日 本 文 芸 社, 1996), 53쪽. 55) 박규태, 교토와 도래인: 하타씨와 신사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문화연구 45권 (2009), 267 268쪽. 56) 小 笠 原 省 三, 앞의 책(2004a), 38쪽. 57) 한일병합 이후 조선총독부의 일본인의 직업별 인구구성 비율 통계자료에 따르면, 1917 년 농업은 11.31%에서 점차 감소하여 1942년에는 3.88%였으며, 공업은 1917년 13.33%에서 1942년 18.74%, 상업은 1917년 28.98%에서 1942년 25.33%, 공무자유업 은 1917년 26.79%에서 1942년 39.48%로, 상공업 자영업 공무원의 직업 비율이 높 았음을 알 수 있다. 송규진 변은진 김윤희 김승은, 통계로 본 한국근현대사 (아연, 2004), 102쪽. 일제식민지기 경성부 신사 383

제신과 인연이 깊은 신을 주로 모시기 때문에, 한강신사의 제신인 신공왕 후의 아들, 오진 천황을 주제신으로 모시는 시키신사가 규슈 출신인 시키 노부타로( 志 岐 信 太 郞 )에 의해 고향에서 모셔진 것으로 사료된다. 반면, 섭사 시신신사는 그 출처가 불분명하다. 2) 가토신사( 加 藤 神 社 ) 가토신사는 규슈 구마모토 현 구마모토 시 구마모토성 내에 소재하는 신사로, 구마모토 주민들이 번주( 蕃 主 )로서 산업보호 학문장려 문화 개척 등 구마모토의 발전에 초석을 놓은 가토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창건하였다. 경성부에는 1914년 용산유지들의 요청으로 용산 원효로에 모셔졌으며 59), 이후 1934년 용산구 신계동에도 창건되었다. 주제신은 가토 기요마사( 加 藤 清 正 ) 60) 이며, 임진왜란에 참전한 왜장 가토가 용산에 주둔한 역사적 사실에 기인하여 조선에 대한 우월의 상징으로 모셔졌다고 사료된다. 61) 3) 신메이신사( 神 明 神 祠 ) 신메이신사의 주제신은 아마테라스로, 1917년 영등포구 영등포동과 1922년 동대문구 용두동에 창건되었다. 62) 신메이신사는 원래 중세 이후 온시( 御 師 ) 등의 활동에 의해 일본 전국 각지에 세워졌으며, 일반대중 사이에는 현세이익적 성격의 이세신앙으로 자리 잡고 있다. 63) 따라서 이 시기에 창건된 신메이신사의 아마테라스는 황민화를 강제하기 위한 황조신이라기보다는 일본 서민의 현세이익적 성격의 이세신으로 경성거 주 일본인들의 종교시설로서 창건되었다고 볼 수 있다. 58) 구마모토 현 신도청년회 홈페이지의 시키하치만궁신사( 志 岐 八 幡 宮 神 社 )의 유래 및 역사 참조. http://www.kumamoto shinsei.jp/shrine map/modules/gnavi/index.php? lid=201&cid=15. 59) 가토신사 총본사 홈페이지의 유래 참조, http://www.kato jinja.or.jp/kiyomasa.html. 60)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 家 臣 )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하였고, 도요토미의 사후, 도쿠 가와( 徳 川 )의 가신이 되어, 세키가하라 전투의 활약으로 구마모토 번주( 熊 本 藩 主 )가 되었다. 61) 靑 柳 網 太 郞 의 大 京 城 ( 朝 鮮 硏 究 會, 1925) 210 213쪽의 왜성대 지명 유래 설명 부분 을 보면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의 용산 주둔, 왜인장수들의 조선왕도 점령에 대한 우월적 역사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62) 岩 下 傳 四 郞, 앞의 책, 552 554쪽. 63) 박규태, 앞의 논문(2002b), 44쪽. 384 정신문화연구 제36권 제3호

4) 에비스사( 惠 比 須 社 ) 경성부에 에비스사는 1920년대 중구 태평로 1가에 창건되어 잠시 존재한 것으로 되어 있다. 64) 에비스는 오쿠니누시( 大 國 主 神 )의 장자로 낚시를 아주 좋아하는 칠복신의 하나인 고토시로누시( 事 代 主 命 )라는 설 이 있지만, 출처가 확실하지 않은 신이다. 65) 에비스는 중세에는 농업의 신, 어업의 신(풍어의 신, 배의 안전을 수호하는 신)이었지만, 시장이 발달하면서 시장의 신이 되어 근세에는 상업수호신이 되었다. 66) 에비스 사가 창건된 중구 태평로 1가는 1910년 이후 일본인 거주지역으로 확장된 상업지구로서 67) 에비스신은 일본 상인들의 상업수호신으로 모셔진 것으 로 사료된다. 5) 조선신궁( 朝 鮮 神 宮 ) 일제는 침략으로 식민지를 개척할 때마다 식민정권의 제사를 수행할 관폐대사( 官 幣 大 社 )를 건립했으며, 이를 식민지 백성 전체를 아우르는 총진수( 總 鎭 守 )라고 불렀다. 68) 조선신궁 창건계획은 1912년 조선총독부 의 예산에 오르면서 착수되었으며, 1918년 3월 22일 남산 중턱의 한양공원 에 조선신궁의 조영공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1919년 7월 18일에는 관폐대사의 사격 및 그 제신을 정하고, 1920년 5월 27일 착공하여 1925년 10월 15일에 완공하였다. 69) 조선신궁은 주지하듯이 동화정책 및 황민화 를 수행한 국가신도의 전진기지로서, 식민정권의 국가제사를 수행하고 신사참배를 강제한 식민지 조선을 대표하는 신사였다. 조선신궁의 주제신은 황조신인 아마테라스와 사후( 死 後 ) 식민지 조선 의 개척신으로 등극한 메이지 천황으로, 조선총독부의 황민화 정책에 부합되는 신이었다. 즉, 식민지 조선의 국가제사 공간인 조선신궁에 64) 川 端 源 太 郞, 앞의 책, 97쪽; 京 城 府 敎 育 會, 앞의 책, 112쪽; 萩 森 茂, 앞의 책, 24 29쪽; 長 野 末 喜, 앞의 책, 123쪽; 靑 柳 網 太 郞, 앞의 책, 96쪽. 65) 瓜 生 中 澁 谷 申 摶, 앞의 책, 40쪽. 66) 川 口 謙 二, 앞의 책, 33 35쪽. 67) 박찬승, 러일전쟁 이후 서울의 일본인 거류지 확장과정,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5권 제2호(2002), 131 134쪽. 68) 김대호, 1910 1920년대 조선총독부의 朝 鮮 神 宮 건립과 운영, 서울대학교 석사학위 논문(2003), 12쪽. 69) 정재정 염인호, 앞의 책, 208쪽; 김철수, 조선신궁 설립을 둘러싼 논쟁의 검토, 순천향 인문과학논총 제27집(2010), 166 175쪽. 일제식민지기 경성부 신사 385

황실조상신을 제사 지냄으로써 일본 천황 중심의 우주적 질서를 구축했으 며, 이로써 조선신궁이 일본 천황의 종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조선신궁에서 아마테라스는 현세이익적인 이세신의 성격이 배제 되어 있다. 한편 메이지 천황은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조선의 개척신으로 조선과의 우월적 역사를 상징하는 황실조상신으로 모셔졌으며, 식민지 조선에서 아마테라스 다음으로 많이 봉제된 신이다. 70) 6) 경성신사 섭사 이나리신사와 하치만사( 八 幡 社 ) 경성신사 섭사 이나리신사는 원래 용산 삼각지에 소재했던 신사로 1910년 중반에 창건되었으며, 1929년 12월 25일 허가를 받아 경성신사 섭사가 되었다. 이후 1931년 6월 13일(또는 1930년 6월 30일) 경성신사 경내에 후시미이나리사( 伏 見 稻 荷 社 )를 창건하여 용산 삼각지에서 신체를 모셔와 진좌제( 鎭 座 祭 )를 거행하였다. 예제일은 매년 6월 13일이다. 71) 이나리신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농경신이자 상업수호신으로 식민지 조선에서는 대부분 상업수호신으로 모셔졌다. 하치만궁은 1929년 12월 25일 허가를 받아 임시로 경성신사 본사( 本 社 ) 의 옛터에 창건하여 완공식을 올린 후, 1931년 4월 본전( 本 殿 ), 폐전( 幣 殿 ), 배전( 拜 殿 )을 신축하여 천좌제( 遷 座 祭 )를 거행하였다. 매년 8월 15일이 예제일이며, 제신은 혼다와케( 譽 田 別 命 ), 히메( 比 賣 神 ), 오오다라시히메 ( 大 帶 姬 命 )이다. 이는 오이타 현( 大 分 縣 ) 출신의 경성 거류민들이 고향의 우사하치만사( 宇 佐 八 幡 社 ) 신앙을 연장한 것이다. 72) 하치만은 현재 일본 전국 약 2만 5,000사( 社 )가 존재해 신사의 수로서는 가장 많으며, 대표적인 서민신사 중 하나이다. 73) 하치만신은 대장장이 오키나( 翁 )가 나타나 나는 곤다 천황 74) 이다 라고 이름을 말한 것에서 대장장이의 신이 되었으 며, 가마쿠라 이후 막부의 수호신이자 무신( 武 神 )이 되었다. 이후 불교와 습합해서 하치만 대보살( 八 幡 大 菩 薩 )로 국가수호신으로 신앙되었으며, 민간에 퍼져 재액 운수대통 순산 자녀를 보살피는 서민의 신 75) 으로 70) 本 田 總 一 郞, 知 っているようで 知 らない! 日 本 神 道 ( 東 京 : 日 本 文 芸 社, 2006), 177 179쪽. 71) 小 笠 原 省 三, 앞의 책(2004b), 452쪽; 岩 下 傳 四 郞, 앞의 책, 322쪽. 72) 小 笠 原 省 三, 위의 책, 452쪽; 岩 下 傳 四 郞, 위의 책, 322쪽. 73) 瓜 生 中 澁 谷 申 摶, 앞의 책, 56쪽. 74) 곤다( 誉 田 ) 천황은 신공왕후의 아들 오진 천황이며, 이에 하치만신을 오진 천황이라 한다. 386 정신문화연구 제36권 제3호

폭넓은 신앙을 낳았다. 76) 식민지 조선에서 하치만신은 일본인들이 타 민족 속에서 살게 되자 조국수호, 특히 일본제국의 강력한 군비가 무엇보 다고 기대되었기 때문에, 식민지 조선을 비롯한 해외신사에 무신( 武 神 )으 로 모셔지게 되었다. 77) 3. 1930 1945년의 신사 및 제신의 성격 1930년대 이후의 일제의 신사정책은 황민화 실시기로 볼 수 있다. 1931년 만주침략 이후 조선이 중일전쟁의 지원을 위한 후방이 되면서, 총독부로서는 한반도에 대한 물적 인적 이데올로기적 통제를 가할 필요가 생겼다. 이에 일제는 조선인들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동화정책을 실시하게 되었고, 1936년 8월 5일 새로 부임한 미나미( 南 次 郞 ) 총독은 신사제도의 정비 및 확대를 통해 내선일체에 기반한 황민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즉, 1936년 8월 1일 신사제도 개정 에 대한 칙령을 통해 일도일열격사( 一 道 一 列 格 社 ) 일읍면일신사( 一 邑 面 一 神 社 ) 를 공포 설치하여, 조선인의 신사참배를 본격적으로 강제하고 국민 의례로서 체화시키고자 했다. 그 결과, 경성신사와 부산의 용두산신사가 국폐소사( 國 幣 小 社 )로 승격되고, 뒤이어 대구신사, 평양신사, 광주신사, 강원신사, 함흥신사, 전주신사도 승격되었다. 그리고 일읍면일신사 의 실시로 1936년 524개였던 신사가 1945년 1,062개소로 급증했다. 78) 또한 일본의 대륙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고양시키기 위한 승전 기원제나 전사자 위령제가 국가적 차원에서 거행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는 식민지 조선에서의 호국신사의 건립으로 이어졌다. 79)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부응하여 1930년대 이후 경성부에는 1934년 천황지 배의 정당화를 위해 새롭게 발명된 창건신사인 노기신사가 창건되었으며, 1936년 경성신사가 국폐소사로 승격되고, 1943년 조선인 강제동원의 기제로서 국가적 차원의 전사자의 위령제를 수행할 경성호국신사가 창건되었다. 또한 조선총독부의 황민화 정책의 실시로 경성부에서 황조 75) 本 田 總 一 郞, 앞의 책, 154쪽. 76) 瓜 生 中 澁 谷 申 摶, 앞의 책, 56쪽. 77) 小 笠 原 省 三, 앞의 책(2004a), 35쪽. 78) 김승태, 앞의 논문(2007), 67쪽. 79) 山 口 公 一, 앞의 논문(2006), 115 183쪽. 일제식민지기 경성부 신사 387

신을 모신 신메이신사 이외의 서민종교적 신사의 창건이 단절되었다. 이 시기 경성부에 창건된 신사의 역사 및 제신의 성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신메이신사( 神 明 神 祠 ) 조선총독부의 황민화 정책의 실시로 인하여, 1930년대부터 경성에서 출신지역의 시조신이나 수호신, 인기 있는 서민종교적 신사의 창건은 단절되었다. 이에 반해 1932년 영등포구 신길동, 1934년 동작구 흑석동, 1935년 용산구 이태원동에 신메이신사가 창건되었다. 이것은 신메이신사 의 성격이 이세신앙에 근거하는 현세이익적 신사임에도 불구하고 황조신 인 아마테라스를 모시기 때문에, 총독부의 일읍면일신사 정책과 맞물려 서 경성 및 지방 소규모 행정구역에 대량 창건된 것이다. 특히 국폐소사의 참배가 불가능했던 지방의 소규모 행정구역에서는 신메이신사가 신사참 배의 강제기관으로 이용되었다. 80) 따라서 전시체제하에 신메이신사의 아마테라스는 황조신적 성격으로 보아야 한다. 2) 경성신사 섭사 노기신사( 乃 木 神 社 ) 노기신사는 천황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81) 메이지신 정부에 의해 새롭게 발명된 창건신사이다. 노기신사에는 부부가 함께 모셔져 있다. 노기는 군인으로서는 낮은 평가를 받았는데, 메이지 천황이 죽자 부부가 함께 순사했다. 부부의 순사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충의를 슬로건으로 삼을 필요가 있었던 당시 일본 지배층과 군부는 그를 군신으로 조작했다. 이와 아울러 1923년에는 도쿄 아카사카의 노기 저택 장소에 노기신사가 세워지며, 그는 메이지정신의 구현자라는 이미지를 부여받게 된다. 82) 경성부에서도 그와 메이지 천황의 관계를 고려하여 메이지 천황을 모시는 조선신궁 옆에 노기신사를 창건하자는 여론이 일어, 1932년 9월 노기신사 건설회가 조직되었다. 1934년 9월 13일 진좌제( 鎭 座 祭 )를 거행하여 매년 9월 13일에 예제를 올렸다. 또한 1936년 노기사보물관 및 숙위사( 宿 衛 舍 ) 80) 2011년 7월 14일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도 J씨(1929년생) 인터뷰. J씨는 일제식민지기 청산도에 신메이신사가 소재했으며, 매월 학교의 신사참배 및 군사강제동원 시에 군인 환송식에도 신사참배를 했다고 얘기했다. 81) 창건신사의 주제신은 천황, 황족, 천황의 충신이 대부분이다. 82) 박규태, 앞의 책, 45쪽. 388 정신문화연구 제36권 제3호

를 완공하여, 대제 때마다 공개하여 일반인에게 정신교육 을 하는 기관으 로 사용하였다. 83) 3) 국폐소사 경성신사 1936년 8월 1일 신사제도 개정에 대한 칙령 중 일도일열격사 의 공포로 경성신사는 국폐소사로 승격하게 된다. 당시 국혼신( 國 魂 神 ) 봉제가 국폐소사의 승격조건의 하나로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경성신 사는 1934년 4월 조선국혼신( 國 魂 大 神 ) 1좌( 座 ), 오호나무지( 大 己 貴 命 ) 스쿠나히코나( 少 彦 名 命 )를 1좌로 아마테라스의 좌우에 합사하였다. 84) 국혼신, 오호나무지, 스쿠나히코나는 개척삼신으로, 스쿠나히코나가 오호나무지 85) 를 도와 국토(이즈모지방)조성 및 경영의 대업을 이룬 신화와 관련이 있는 신격이다. 즉, 오호나무지는 스쿠나히코나의 보좌로 국토통일의 대업을 이룬 후, 대국을 이루었다는 의미의 오쿠니누시( 大 國 主 命 )로 이름을 바꾸며, 이후 아마테라스의 명으로 니니기의 천손강림 때 국토를 이양하게 된다. 따라서 식민지에서의 오호나무지 스쿠나히 코나의 봉제는 천손 일본 천황이 오셨으니 지금까지 잘 경영해오던 국토를 이양한다는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상징하는 신격이다. 또한 순순 히 국토를 이양한 오쿠니누시는 그 답례로 니니기의 아들 아메노호히노 미코토가 세운 이즈모대사에서 그와 그의 후손들의 제사를 받게 되는 데 86), 국혼신은 이 신화에 착안하여 식민지를 흔쾌히 이양해준 식민지 국토의 신령 으로 재발명되었다. 다시 말해서 조선, 만주, 중국, 하와이, 남양에 이르기까지 빈번하게 봉제( 奉 齊 )된 개척삼신은 일본 천황에게 국토를 이양하고 이에 대한 답례로 식민지 국토신을 제사 지내준다는 신화적 상징의 신격이며, 따라서 식민지 조선의 각 도의 국폐소사에 이들 개척삼신이 모셔진 것은 천황지배의 정당화를 상징하며, 이로써 황민화 정책 강화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83) 小 笠 原 省 三, 앞의 책(2004b), 452쪽; 岩 下 傳 四 郞, 앞의 책, 322쪽. 84) 김철수, 조선신궁 설립을 둘러싼 논쟁의 검토, 인문과학논총 제27집(2010), 166쪽. 85) 스사노오의 아들 혹은 6대손 오오쿠니누시의 어릴 적 이름이다. 86) 박규태, 앞의 책, 49 51쪽. 일제식민지기 경성부 신사 389

4) 경성호국신사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 결과 일본군의 사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 87) 당시 식민지 조선에 주둔했던 나남의 제20사단은 중일전쟁에 투입되었고, 경성부의 제19사단은 소련과 전쟁 중이었다. 88) 이에 따라 내무성 신사국은 국가적 차원의 위령제 의 증설을 위해 1938년 11월 25일 회의에서 일본 본국의 130개에 달하는 초혼사를 호국신사로 개칭할 것을 결정했으며, 1939년 3월 14일자로 관계법령이 반포되면서 식민지 조선의 각 지방에도 호국신사제도가 확립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겼다. 1939년 6월 30일 경성과 나남에 호국신사의 건립이 확정되고, 경성호국신사는 1943년 11월 26일 경성부 용산구 용산정(현 용산중학교 뒤편)의 약 2만 1,971평의 부지에 완공되었다. 89) 경성호국신사의 제신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의 전사자들의 영령( 英 靈 ) 7,447주( 柱 ) 90) 로, 일본군 전몰자뿐만 아니라 조선인 전사자도 조선인 징병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일부 합사되었다. 영령 은 메이지정부가 발명한 신격으로, 메이지유신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치룬 보신( 戊 辰 )전쟁 에서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도쿄초혼사(야스쿠니 전신)에서 호국의 영령 으로 합사( 合 祀 )함으로써, 영령은 국가=천황을 위해 순직한 자, 즉 호국의 신 이란 상징을 부여받았다. 91) 이후 영령은 야스쿠니를 비롯한 호국신사의 임시제에 합사되어 봄, 여름의 예대제( 例 大 祭 )에서 제사를 받으며 호국의 신 으로 거듭났으며, 식민지 조선에서도 전사자 영령은 합사제( 合 祀 祭 )와 위령제 라는 사회극적 제의를 통해 전시체제하 에 조선인 징병을 위한 사회적 홍보수단으로 이용되었다. 4. 경성부 신사 및 제신의 성격 지금까지 조선총독부의 신사정책에 따른 시기별 경성부 신사의 창건 87) 중일전쟁의 사망자 수는 18만 8,196명이다. 안종철, 앞의 논문, 54쪽. 88) 정호기, 전쟁사자 추모공간과 추모의례, 식민지의 일상 지배와 균열 (문화과학사, 2006), 386쪽. 89) 안종철, 앞의 논문, 54쪽, 57 58쪽. 90) 위의 논문, 59 60쪽. 91) 中 村 直 文 NHK 取 材 班, 靖 國 知 られざる 占 領 下 の 攻 防 ( 東 京 : 日 本 放 送 出 版 協 會, 2007), 52 55쪽. 390 정신문화연구 제36권 제3호

배경 및 제신의 성격을 살펴보았다. 이를 토대로 일제식민지기 경성 소재 신사의 제신의 시기별 경향 및 성격을 표1을 참조하여 정리해보면, 1915년 이전의 제신의 성격은 조선총독부의 신사창건에 대한 제재의 부재로 아마테라스, 신공왕후와 같은 거류민 상층의 내셔널리스틱한 신과 중풍방지(예방)의 삼귀자, 스기와라노미치자네, 고토히라, 이나리신 등의 서민신앙적 신들이 위계적 질서 없이 혼재하였다. 반면, 1915년 신사사원규칙 의 포고 이후, 1915년부터 1930년까지 경성부 신사의 제신의 성격은 경성부에 좌정한 신들의 위계적 질서화를 나타냈다. 즉, 신사사원규칙 의 포고 이후, 서민신앙적 신을 모신 신사는 창립허가 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황조신 및 황실조상신을 봉제( 奉 齊 )하여 창립허가 를 받은 경성신사 한강신사의 섭사로 들어갔으며, 이에 경성에 좌정한 일본 서민신앙적 신들이 황실조상신 밑으로 재편되는 신들의 위계적 질서화가 이루어졌다. 게다가 1925년 식민지 조선을 대표하는 관폐대사 조선신궁에 황조신 아마테라스와 메이지 천황을 봉제함으로써, 식민지 조선에 아마테라스 이하 만세일계의 일본 황실계보의 신성성을 공표함과 동시에 황실조상신이 명실 공히 조선 최고의 신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한편 1930년대 이후의 경성부 신사의 성격은 황민화 정책의 실시로 인한 서민신앙적 신들의 단절 및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신들, 즉 임진왜란의 왜장 가토 기요마사 메이지 천황의 충신 노기 마레스케 일본 천황에게 국토이양을 상징하는 개척삼신 호국의 신인 전사자의 영령이 두드러진 경향을 나타냈다. 일제식민지기 경성 소재 신사의 식민지적 성격의 신은 1930년대 이후 신사참배 강제기관에 모셔진 신들로 볼 수 있다. 즉, 조선인에게 강압적으 로 신사참배를 받은 신은 일본 천황 지배의 정당화를 뒷받침하는 신들로, 이들을 식민지 조선의 침략신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일제식민지기 일본인 의 주거류지( 主 居 留 地 )인 남산 일대에 거주했던 중구 토박이회 회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92), 일제가 경성부에서 신사참배를 강제한 곳은 조선신궁, 경성신사, 경성호국신사, 노기신사 4사( 社 )였으며, 그중에서도 조선신 궁 및 경성신사의 참배가 가장 심하게 강제되었다. 이들 신사의 침략신은 조선신궁의 황조신 아마테라스와 조선의 개척신 메이지 천황, 경성신사 92) 2012년 6월 18일 중구 토박이회 인터뷰. 일제식민지기 경성부 신사 391

의 황조신 아마테라스와 개척삼신, 경성호국신사의 전사자 영령, 노기신 사의 메이지 천황의 충신 노기 마레스케이다. 이들은 천황의 조상신과 충신, 식민지 국토의 상징적 이양신으로, 이들에 대한 조선인의 신사참배 는 일본 황실조상 및 충신을 섬기고 조선의 국토이양을 인정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함축한다. 따라서 신사참배는 이들 식민지 침략신에게 숭경의 마음을 표함으로써 조선인을 천황의 신민으로 개조시키려는 상징적 폭력이었으며, 일제의 상징적 폭력에 대한 조선인의 치욕감으로 3 1운동 때에도 파괴되지 않았던 신사가 광복 후 8일간 136건의 방화와 파괴를 맞이하였다. 93) IV. 맺음말 일제식민지기 경성부에 이식된 일본 신사는 종교식민화의 상징기관인 조선신궁뿐만 아니라 일제식민지를 경험한 이들의 기억 속에 망각되어버 린 일본 거류민들의 서민종교적 신사들도 혼재했다. 일제식민지기에 일본인들은 조선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그들의 삶에 필수적인 일생통과 의례 및 세시풍속을 수행할 신사가 절실했으며, 모국의 삶의 연장선상에 서 고향의 시조신이나 지역수호신, 혹은 생업과 관련된 수호신을 이식해 야 했다. 따라서 일제식민지기 신사들은 위로는 신사참배를 통한 황민화 기관으로, 아래로는 모국신앙의 이식을 통해 조선에서의 일본인 이주의 확대 및 정착의 필수시설로 작용하며, 식민지 조선의 종교식민화에 핵심 적 역할을 수행했다. 경성부에 창건된 일본 신사의 종류로는 크게 일본 거류민의 단결도모 및 서민신앙에 근거한 거류민봉제신사, 조선총독부가 건립한 관공립신 사, 메이지 시기 별격관폐사로 새롭게 발명된 창건신사가 존재했다. 특히, 거류민봉제신사는 일본인들이 낯선 조선 땅에서 그들의 문화를 유지하며 조선에 정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관공립신사 및 창건신사는 식민정권의 국가제사를 수행하는 제의시설로 신사참배를 통한 황민화 정책에 적극적으로 이용되었다. 경성 소재 신사의 시기별 93) 辻 子 實, 侵 略 神 社 ( 東 京 : 新 幹 社, 2003), 187쪽. 392 정신문화연구 제36권 제3호

창건 양상의 특징으로는 1930년대 이후 황민화 정책의 실시로 아마테라스 등 천황 지배의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는 신격 이외의 서민종교적 신사의 창건이 단절된 것을 들 수 있다. 일제식민지기 경성부 신사의 제신의 시기별 성격은 1915년 이전 거류민 상층의 내셔널리스틱한 황실조상신 및 서민신앙적 신의 혼재, 1915년 이후부터 1930년까지 황실조상신을 거점으로 한 식민지 조선에 좌정한 신들의 위계질서화, 1930년대 이후로는 천황지배의 이데올로기를 뒷받침 하는 신들, 즉 천황의 충신, 개척삼신, 전사자 영령의 봉제가 두드러지는 경향을 나타냈다. 또한 신사참배의 강제기관에 봉제된 식민지 조선의 침략신으로는 황조신 아마테라스, 조선의 개척신 메이지 천황, 식민지 양도를 상징하는 개척삼신, 호국의 신인 전사자의 영령, 메이지 천황의 충신 노기가 조선인의 황민화 정책에 동원되었다. 일제식민지기 신사참배는 조선인으로서의 민족성의 상실을 강제당한 트라우마 이며, 이러한 굴욕적 트라우마 로 인해 일제식민지기의 다수의 소규모 서민신앙적 신사의 존재는 일제식민지기를 경험한 이들의 기억 속에서 망각 되었다. 문예학자 로렌스 랭거는 트라우마 는 손상된 자아 라고 규정했으며, 손상된 자아에 의해 비영웅적 기억은 파괴되고 망각되 기 마련이라고 했다. 하지만 트라우마는 파괴되고 망각된 기억과 똑바로 직면할 때 치유될 수 있다. 일제식민지기의 일본 신사는 그저 망각되어야 할 치욕의 역사가 아니라 치유되어야 할 청산의 역사이며, 일제식민지기 의 파괴되고 망각된 일본 신사에 대한 기억은 향후 다각도로 수정되고 재현되어야 할 것이다. 일제식민지기 경성부 신사 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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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요약 경성부에 신사는 한성부 시절인 1898년 아마테라스를 봉제한 중구 남산공원의 남산대신궁을 시작으로 일본 거류민이 거주지를 확장하는 곳마다 창건되었다. 즉, 1898년 남산대신궁(경성신사 전신)을 시작으로 1943년 경성호국신사의 창건까지, 중구 용산구 동대문구 영등포구 동작구에 걸쳐 총 29사( 社 ) 사( 祠 )가 창건되었다. 이 29사( 社 ) 사( 祠 )는 일제식민지기 전반에 걸쳐 조선총독부의 신사정책에 영향을 받으며 시기별 차별성을 나타내고 있다. 기존의 경성 소재 신사에 관한 국내의 선행 연구는 조선신궁에 치우쳐 있으며, 그 외의 신사 및 제신에 관한 연구는 희박한 실정이다. 반면, 식민지 조선에 창건된 신사의 종류 및 제신에 관한 일본의 선행 연구는 몇 편 있지만, 이들 연구는 식민지 조선의 전반적인 신사 및 제신을 일반화한 것으로 시기별 구체적인 신사의 창건 양상 및 제신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일본 신사의 제신은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을 투영하며, 특히 식민지 신사의 제신은 일제의 종교식민화와 밀접히 연관 되어 있다. 즉, 일제식민지기에 이식된 신사는 위로는 신사참배를 강제한 국가신도의 대표기관으로, 아래로는 모국의 신앙의 이식을 통한 조선거 주 일본인( 在 朝 日 本 人 )들의 확장 및 정착을 위한 종교적 기관으로 작용하 며, 식민지 조선의 종교식민화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식민정권의 종교식민지화 정책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은 식민지 조선의 수도 경성부의 신사를 연구대상으로, 시기별 신사의 종류 및 제신의 성격 변화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이 연구는 경성부 소재의 신사와 제신의 문화적 지형 및 조선총독부의 종교식민화 정책과 신사와의 관련성을 이해하는 데 그 중요성이 있으며, 일제식민지 기 조선의 종교식민화에 이용된 신사 및 제신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투고일 2013. 6. 20.. 심사일 2013. 7. 29. 게재 확정일 2013. 8. 5. 주제어(keyword) 종교식민화(Religious Colonization), 경성 소재의 신사(Japanese Shinto Shrines in Keijyo), 경성 소재 신사의 제신(Gods of Japanese Shinto Shrines in Keijyo), 경성 소재 신사의 종류(Kinds of Japanese Shinto Shrines in Keij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