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수 중앙대학교 교수 1장 소싸움의 역사 2장 소싸움은 민속놀이인가, 축제인가 3장 소싸움의 주인공, 싸움소 키우기 4장 소싸움을 둘러싼 문화요소들 5장 경남지역의 소싸움 특징 224 230 250 260 274 경남의 민속문화 223
1장 소싸움의 역사 로 01 소싸움도 그 때부터 있었을 것으로 가늠할 수 있다. 소싸움은 자연발생적으로 수소들이 영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싸움을 벌였거나 암소를 두고 수소들끼리 위세를 겨루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 리고 농경문화가 정착되면서 목동들이 망중한( 忙 中 閑 )을 즐기기 위한 즉흥적인 놀이로 알려지고 있다. 여름 이 되면 소주인[ 牛 主, 혹은 소를 몰던 목동( 牧 童 )]이 산이나 강가로 소를 몰아 풀을 뜯어 먹였는데, 여러 마리 의 소가 한 곳에 모여 풀을 뜯다보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힘을 겨루는 모습을 보고 자연스레 자기네 소가 이기 도록 응원하게 된 것이다. 점차 사람들이 보고 즐기는 유희적 놀이로 변하였다. 그 규모도 커지면서 소싸움은 마을 단위, 또는 씨족 단위로 확대되어 자신들의 명예나 가세( 家 勢 )를 과시하는 장이 되었다. 현재는 지역 정 체성을 표현하는 축제적 성격으로 변화하였다. 또 소싸움은 끊임없이 사회 문화적 맥락 속에서 변화와 재창 조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관광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 글은 소싸움의 통시적인 흐름을 통해 이것을 둘 러싼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고자 한다. 소싸움을 통해 본 현대성과 관광성은 결국은 전통의 의미와 기능을 재발 견하는 기회도 될 수 있다. 1. 기록에 나타난 소싸움 앞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나라에서 소싸움 놀이가 언제부터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이렇다 할 자료가 없으나 신 라가 백제와 싸워 이긴 전승기념잔치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고, 고려 말엽부터 자생적으로 생긴 민속놀이 지금 여뿔때기(옆으)로 씩 비키(켜)가면서, 이마빼기(이마)를 공격합니다. 앞다리를 살짝 꾸부리고(굽히고), 올려치기! 정통으로 기술이 들어갔습니다. 이어서 뿔치기! 잘한다, 쳐라! 밀어라! 박진감 넘치는 소싸움 장에 해설자의 구수한 입담이 울려 퍼진다. 소들이 머리를 맞부딪치면, 아이쿠! 내 대가리야, 아이고! 이제 고만 싸 우고 싶다. 그래도 주인님이 열심히 응원하고 있는데 도망갈 수도 없고, 모르겠다. 이판사판이다. 박아라~ 이 쯤 되면 심각하게 관전하던 관중들도 박수를 치며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근래의 소싸움 장을 방문하면 장내에 서는 육중한 소 2마리가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기량을 펼치고 있고 관람석에서 관중들은 환호를 지르며 소들을 응원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소싸움장의 풍경은 과거부터 전승되어 온 전통적인 민속놀이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싸움판의 규모가 커졌고 그 진행방식도 대회나 축제형식을 취하고 있다. 소싸움은 경상남도 일원 및 경상북도, 경기도, 강원도 일부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특히 경 상남도 진주시에서 전승되는 소싸움은 우리나라 소싸움의 발상지라는 데 이견이 없다. 진주시의 소싸움은 추 석 명절에 즐겨 하던 놀이로 마을 간의 세력을 과시하던 싸움판이었다. 오늘날의 소싸움은 전국에서 소들이 몰 려와 축제 판을 벌인다. 전통적으로 오래된 소싸움이 진주소싸움이라면 일반적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진 소싸 움은 경상북도 청도소싸움이다. 청도소싸움은 1990년대 영남민속투우대회로 시작하여 1995년에는 전국규모 의 대회형식으로 진행되는 청도소싸움축제로 자리매김하였다. 1999년부터 청도군에서 대대적인 매스컴을 통 한 전국단위의 홍보와 한일친선투우대회, 한우로데오경기 등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하면서 여타 지역에 비해 더 유명해졌다. 소싸움은 과거부터 전래되어 온 민속놀이이다. 하지만 소싸움 놀이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증명할 자료가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언제부터 소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는지를 생각해봄으 로써 소싸움 놀이의 기원을 추측 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소를 기르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2000년 전쯤으 라는 설도 있다. 이처럼 소싸움놀이를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고 다만 기록을 통해서 그 흔 적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소싸움이 전승되었는데 이를 입증할만한 여러 자료들이 전해지고 있다. 소싸움에 대한 직접적 인 문헌자료는 아니지만 조선시대의 고시( 古 詩 )에 소싸움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어 있다. 권벽( 權 擘, 1520~1593, 조선중기 문신)의 습재집권지삼( 習 齎 集 卷 之 三 )에 수록된 칠언시인 관의전( 觀 蟻 戰 ) 8수 중 2수에 문래착인투 우성( 聞 來 錯 認 鬪 牛 聲 ) 이라는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들어보니 소들이 싸우는 소리 같네. 라는 뜻으로 소싸움 을 비유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조선후기 풍속화 중 하나인 경직도(병풍8폭, 충주박물관 소장)에서 소 싸움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경직도의 병풍 8폭 중 첫 번째 장면에 나타나는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름철 초동들이 산이나 들판에 소를 풀어놓았다가 소싸움이 벌어져 나뭇가지로 소싸움을 말리는 장면과 목동이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 그리고 어미 소가 새끼소에게 젖을 주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02 또한 우리나라 최고( 最 古 )의 지방신문인 경남일보의 주필이었던 위암( 韋 菴 ) 장지연은 1909년 11월 29일 자 경남일보에 진주에 얽힌 역사와 문물, 풍물, 습속 등을 다루는 진양잡영( 晉 陽 雜 詠 ) 에서 소싸움에 관한 내 용을 소개하고 있다. 글의 소재는 김시민, 남강, 논개, 옛 전쟁터, 창렬사, 촉석루, 소싸움 등 12종류를 담고 있으 며, 그 중 10~11번째에 소싸움에 관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0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33쪽. 02 손복수, 2012, 한국의 대표 놀이문화 청도소싸움이야기, 서우실, 20~21쪽. 224 경남의 민속문화 225
農 家 八 月 濁 醪 香 (농가팔월탁료향) 秋 穀 重 花 滿 地 黃 (추곡중화만지황) 千 古 英 雄 爭 戰 地 (천고영웅쟁전지) 至 今 留 作 鬪 牛 場 (지금유작투우장) 秋 草 休 耕 牧 子 門 (추초유경목자문) 犍 牛 生 力 奮 如 山 (건우생력분여산) 紛 紛 角 觝 爭 衝 突 (분분각저쟁충돌) 經 勝 齊 軍 破 墨 還 (경승제군파묵환) 농가의 8월에는 술 향기 번져나고 가을곡식 드리운 꽂은 땅이 가득 누렇네. 천고의 영웅들 나라 지킨 이 땅인데 지금에 이르러 투우장이 되었구나. 가을풀 우거지고 밭갈이 쉬었기로 목동들은 한가한데 억센 소 힘이 솟아 그 분기 산 같구나. 엉킨 뿔씨름 다투어 충돌하니 절승한 제군들은 묵군을 파하고 오네. 도 했다. 06 우시장을 중심으로 소의 거래가 활발한 지역에서 비교적 큰 규모의 소싸움이 열렸다. 진주에서는 소 싸움이 있는 날을 상머슴 날 이라 부르기도 하였는데, 소싸움 장소로는 넓은 공한지로서 사람들이 모이기도 좋 고 경기장으로도 적절한 남강변의 백사장에서 주로 열렸다. 경남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의령의 소싸움은 고려 말 당시 진주 목사의 관할에 있던 의령현과 합천군의 속현이었던 신번현(현재는 신반)이 합쳐진 후 이 두 현이 동서로 나눠 서로의 힘겨루기를 소싸움을 통해 했다 고 한다. 그리고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홍의장군 곽재우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낙동강과 남강변에 일제 히 소를 몰아내어 곳곳에서 싸움을 붙여 모래바람과 함성으로 의병들이 많이 보이게 하였으며 정암진 승첩을 이끌어 내는 전략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07 의령지역의 소싸움은 의령천과 정암진의 모래사장, 가례의 한내변, 유곡면의 세간천변, 부림면의 신반천변 등에서 열렸다. 의령을 비롯한 경남지역 일대의 소싸움은 주로 백중에 소싸움은 8월 추석 가을을 전후로 벌어졌으며, 꼴을 먹이는 목동들은 쉬고 있고 주변의 소들이 자연 본능 적으로 싸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34년에 발행된 조선도읍대관에 '진주의 독특한 투우'라 하여 우편국에서 발행한 우표에 촉석루와 소싸움 모습이 담겨져 있다. 소싸움이 벌어진 시기는 확실치 않지만 북한 과학원에서 발간한 조선의 민속놀이 편 에서도 경상남도 진주일대에서는 지금으로부터 오래지 않은 시기까지도 줄다리기와 더불어 소싸움이 큰 연중행사로 되어 왔다. 매년 음력 8월 보름을 전후로 이곳 주민들은 소싸움을 붙이고 그것을 구경하며 즐겼다. 벌써 음력 7월 보름쯤 부터 동구 밖 풀밭에서 소싸움이 시작되어 8월 보름에는 소싸움 판이 크게 벌어진다. 03 고 기록되어 있다. 본문 에는 진주지역의 소싸움이 남강 모래판에서 벌어졌다는 장소와 승리한 소의 장식모양 그리고 싸움소가 되는 조건에 대해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같이 경상남도에서 매년 음력 8월 보름을 전후하여 소싸움이 벌어졌다는 기록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일 제강점기 이전에는 이 일대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규모의 소싸움놀이가 전승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서부터 추석에 이르는 기간 동안 열렸다. 이후, 소싸움은 1960년대까지 진주, 사천, 마산 등 경상남도 일대에서 열렸다. 08 경상남도지역 이외에도 소싸움이 간간히 열렸는데, 김광언에 의하면 1963년 음력 7월 경북 포항에서 소싸움이 열렸다고 한다. 당시 소 싸움 입장료는 50원이었으며 바닥에 모래를 깔고 주위에 새끼줄을 둘렀으며 가운데에 검은 포장을 쳤다. 소 마다 마을이름을 적은 종이를 둘러 감아 놓았다. 다섯 마리의 소가 이어 붙었다 09 고 한다. 포항, 밀양, 고성, 사 천 등 몇몇 지역들은 소싸움이 농한기나 명절날의 놀이로써 소규모의 형태로 벌어졌지만, 오늘날까지 전승되 고 있지 않다. 10 1990년에 지방자치시대가 열리면서 정부는 관광산업의 발전을 통해 지역을 활성화하고자 각 지역의 문 화관광축제를 중점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지역주민에게는 지역문화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관광객에게는 지역문화를 널리 홍보하는 등 긍정적 효과를 가져 왔다. 이로 인해 각 지역을 대표하는 다 양한 축제가 생겨났으며 특히, 경남과 경북지역에서는 축우를 사육하는 농가에서 간헐적으로 열리던 소싸움이 축제의 소재거리가 되면서 축제의 부대행사에 포함되거나 독립적인 축제행사로 개최되었다. 2. 경남 지역에 편중된 소싸움 현재는 소싸움이 진주(1974년), 의령(1993년), 함안(1995년), 김해(1996년), 창원(1998년),창녕(2002 년) 등의 순으로 경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축제가 개최되었고 경상북도에서는 청도(1990년), 대구(1998년), 1996년 이후에는 소싸움이 성행하지 않던 전라북도 정읍, 완주 그리고 충청남도 보은에서도 소싸움이 열리 무라야마 지준( 村 山 智 順 )의 조선( 朝 鮮 )의 향토오락( 鄕 土 娛 樂 ) 04 에 의하면 소싸움이 전승된 지역은 진양, 의 령, 함안, 창녕, 밀양, 김해, 창원, 고성, 사천, 함양, 거창, 합천 등 12곳으로 주로 경상남도에 많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 그 외의 지역은 경기도의 양평, 황해도의 소화, 강원도의 금화, 삼척지역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넓은 농경지를 가진 진주를 중심으로 소싸움이 빈번하게 개최되었고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경 고 있다. 대구지역은 1998년 달구벌축제에서 새로운 이벤트로 소싸움을 기획하여 전국의 주목을 끌었다. 대 구지역은 소싸움이 전승되지 않았지만 인근 지역인 경상북도 청도군 소싸움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아 경기 진 행하고 시설물을 설치하였다. 이후, 대구지역의 소싸움은 대구 달성 전국소싸움 으로 확장되면서 새롭게 개최 하고 있다. 에는 마산, 의령, 사천, 밀양, 김해, 부산 등으로 소싸움이 확산되었다. 1929년 밀양에서는 소싸움을 밀양강가에 서 개최하였고 05 1928년 의령투우대회 때에는 물산품평회에 선발할 소를 예선전을 거쳐 우승한 소를 내보내기 06 동아일보, 1928년 10월 5일자. 03 선희창, 1988, 소싸움놀이, 조선의 민속놀이, 푸른숲, 164쪽. 04 무라야마 지준( 村 山 智 順 ), 1941, 조선( 朝 鮮 )의 향토오락( 鄕 土 娛 樂 ), 조선총독부, (박전열 역, 1992, 집문당). 05 동아일보, 1930년 10월 11일자; 밀양군축산조합에서 제3회 면연합축우품평회를 개최하여 오후 2시부터 투우대회를 밀양강가에서 개최한바 각 등 급에 참여한 사람들은 일등부터 사 등까지였다. 07 토요애 의령민속 소싸움 홈페이지 (http://bull.uiryeong.go.kr/main/) 08 배도식, 2000, 소싸움 놀이의 민속적 고찰, 한국민속학 (제32호), 한국민속학회, 132쪽. 09 김광언, 2004, 동아시아의 놀이, 민속원, 563~564쪽. 10 밀양에서는 1991년 5월에 밀양 남천강 고수부지에서 향토축제인 아랑제 때 투우대회를 개최한 바 있다. 226 경남의 민속문화 227
표 1. 전국 소싸움대회 개최 현황 시 군명 대회시작연도 대회기간 (변동가능) 예산지원액(백만원) 행사주관 진주 1974 10월 60 투우협회 대구 1998 9.21~10.1 150 시 김해 1996(격년) 9~10월 20 투우협회 창원 1998 4월 25 투우협회 의령 1993 4월(의병제전) 6 투우협회 함안 1995 10월 투우협회 창녕 2002 9월 투우협회 청도 1990 3월 620 군 보은 2005 9월 군 정읍 1996 5월 58 시 완주 2006 9월 투우협회 * 자료 : 진주시 문화관광과 제공(2003년) 그림 1. 보은한우축제(2008년 9월 7일, 보은군) 그림 2. 의령민속소싸움대회(2008년 9월 14일, 의령군) 최근 각 지자체는 해마다 소싸움을 대회형식으로 개최하여 우량 한우 확보와 한우 개량증식 진흥 및 축산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지역의 축제문화 활성화를 위해 우승한 소주인[ 牛 主 ]에게 상금을 주어 사육의욕을 고취 시키고 있다. 전국에서 소싸움대회가 개최됨에 따라 대회를 주관하기 위해 소싸움의 전승주체를 중심으로 투 우협회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소싸움대회를 운영하는 조직을 지자체와 협력하여 설립하거나 혹은 독자적인 방 식으로 소싸움을 전승하고 있다. 현재 투우협회는 진주, 함안, 의령, 창원, 김해, 창녕, 대구, 완주, 정읍, 보은의 11개 시 군에 설립되어 있다. 11개 시 군의 투우협회는 각 협회 회원들의 권익을 신장하기 위해 한국민속소 싸움협회 11 를 결성하였다. 한국민속소싸움협회는 각 지역에서 전국 소싸움대회를 개최할 때 대진표를 작성하 거나 관련 행사를 총괄한다. 그리고 대회를 개최하는 지역 투우협회에서는 출전 싸움소의 보호와 출전분배 등 대회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준비한다. 또한 소싸움을 그들만의 놀이문화가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문화로 만들어 가고 있다. 그림 3. 청도소싸움대회(2008년 4월 12일, 청도군) 그림 4. 진주전국민속소싸움대회(2007년 10월 4일, 진주시) 11 한국민속소싸움협회는 2009년에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사단법인 허가를 받았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민법 제32조 및 농림수산식품부장관 및 그 소 속청장 소관 비영리법인의 설립 및 감독에 관한 규칙 제4조의 규정에 의하여 한국민속소싸움협회 를 사단법인으로 설립허가를 공고하였다. 초창기에는 한국민속소싸움협회가 전국투우연합회로 불렸으나 사단법인으로 허가를 받으면서 한국민속소싸움협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각 지역의 투우협회는 시 지회로 전환하였다. 현재 한국민속소싸움협회 사무소 소재지는 경상남도 진주시 판문동 146-1번지이며, 대표자는 조위필이다. 228 경남의 민속문화 229
2장 소싸움은 민속놀이인가, 축제인가 작은 판 은 마을 내부 단위이고, 큰 판 은 마을과 마을 단위를 의미한다. 그 예로 진주시에서 전승하는 소싸움은 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 晉 州 城 )을 중심으로 성내( 城 內 )와 성외( 城 外 )의 대결구도로 이루어졌다. 성내에는 진 주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유지( 有 志 )들이 거주하였고, 성외에는 농민들이 주로 생활하였다. 성내와 성외 유 지( 有 志 )들이 기르는 소중에서 작은 판 을 통해 선발된 힘센 소끼리 큰 판 에서 싸움을 붙었다. 큰 판 은 성내 와 성외의 싸움으로, 추석과 같은 세시명절에 벌어졌다. 이때 성내의 소가 출전하게 되면 성내 사람들이 모두가 나와서 풍물을 치며 응원하였고 성외의 소가 출전하게 되면 성 밖 사람들이 응원하였다. 13 소싸움을 행하는 놀 이 주체는 소에게 풀을 먹이던 초동들이거나 상머슴들이었다. 상머슴들은 지역유지들의 집에 상주하면서 일손 을 거들며 평소에 싸움소를 관리하고 소싸움이 벌어지면 주인을 대신하여 참여하였다. 이처럼 소싸움은 추석을 전후하여 매년 음력 8월 보름에 마을주민들이 세력과시의 장으로 벌어졌다. 각 마을에서는 남정네들을 비롯하여 온 마을 사람들이 동원되어 자기 마을의 소를 응원하고 이때는 풍물까지 대 동하여 한껏 흥을 올렸다. 소싸움에 상품이 걸려 있지는 않지만 싸움에서 이기면 마을사람들은 자기가 이긴 것 마냥 즐거워했으며 소 주인이 내는 음식으로 뒤풀이를 하였다. 소싸움이 열리면 마을 유지들은 마을소를 응원 하는 마을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비빔밥, 국밥, 막걸리 등 음식물을 지원했다. 그리하여 남강 백사장에서 추석 전 후 소싸움 판이 열리는 날은 부잣집 뒤주 열어 놓는다. 는 말을 할 정도로 마을전체의 잔치였다고 한다. 14 1920년대 후반부터는 소싸움이 자유분방한 놀이에서 나름의 체계적인 틀을 갖춘 대회형식으로 바뀌었다. 이는 1920-30년대에 발행된 신문(동아일보, 조선중앙, 영남춘추 등) 15 에서는 소싸움을 소싸움대회( 鬪 牛 大 會 ) 1. 소싸움 놀이 에서 대회 로 성장 라고 명시하고 있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현상투우대회( 懸 賞 鬪 牛 大 會 ) 의령( 宜 寧 )에서] 진주시에서 1985년에 발행한 내 고장의 傳 統 에서는 1900년대 당시의 소싸움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 다. 경남의령( 慶 南 宜 寧 )군에서는 전년의 예( 例 )인 투우대회( 鬪 牛 大 會 )를 금년( 今 年 )에도 의령투우회주최( 宜 寧 鬪 牛 會 主 催 )와 의령축산조합후원( 宜 寧 畜 産 組 合 後 援 )으로 오는 십일일 구팔월십육일을 이용하야 청년회운동장에서 현상투우대회( 懸 賞 鬪 牛 大 會 )를 개최하리라는데 현상조목( 懸 賞 條 目 )은 좌( 左 )와 여( 如 )하다더라 봄부터 초가을까지 협의적인 소싸움은 자연발생적으로 있어 왔으며, 소 먹이러 다니는 초동( 樵 童 )들이 마을의 소끼리 싸 움을 붙여 왔고, 나중에는 마을에서 힘센 소를 골라 산등성이나 풀밭, 강변으로 몰고 가 이웃마을 소와 한 판 승부를 겨루 는 이른바, 마을과 마을이 대항하는 큰 판 이 있어 왔다. 진주의 큰 판은 수무바다 라 일컫는 남강백사장이었다. 이때가 되면 수백 개의 차일( 遮 日 )이 백사장을 온통 수놓았으며, 소고삐와 코뚜레를 푼 황소와 함께 영웅처럼 입장하는 상머슴들 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인근에서 모인 군중은 수만 명에 이르러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옛날의 소싸움은 상머슴의 일등( 一 等 ) 일두( 一 頭 ) 우승기급현금신원( 優 勝 旗 及 現 金 十 圓 ) 백목일필( 白 木 一 疋 ) 이등( 二 等 ) 이두( 二 頭 ) 포상기급대부이개( 褒 賞 旗 及 大 釜 二 個 ) 삼등( 三 等 ) 삼두( 三 頭 ) 대부삼개( 大 釜 三 個 ) 사등( 四 等 ) 사두( 四 頭 ) 대부사개농구사조( 大 釜 四 個 農 具 四 組 ) (동아일보, 1928년 10월 5일자) 날이기도 했다. 이것이 나중에는 문중( 門 中 )세력 과시장이 되기도 했고, 또 술과 돈을 건 승부장이 되기도 했다. 싸움에서 이긴 소는 목과 뿔을 비단으로 장식하여 상머슴이 등에 오르고 온 마을 사람들이 농악을 울리며 시가 퍼레이드를 벌인 뒤 유유히 마을로 돌아가면 마을 잔치로 이어져 축제분위기에 젖었다. 12 13 2009년 1월 31일, 제보자: 서병환(진주시 장재동, 87세, 남, 농업). 당시에는 재력이 있는 집에서만 소를 키울 수 있었기 때문에 소싸움은 문중의 세력을 가늠하는 장치로 확 대되었다. 인용문에서도 언급했듯이, 당시의 소싸움을 판 이라 불렀는데, 이를 '작은 판, 큰 판 으로 나뉘었다. 12 진주시, 1985, 내 고장의 傳 統, 진주시, 427쪽. 14 2008년 7월 30일, 제보자: 정현택(진주시, 68세, 남, 수의사). 15 동아일보, 1927년 9월 9일, 각희( 脚 戱 )와 투우대회( 鬪 牛 大 會 ) 진주서 개최 ; 동아일보, 1927년 9월 1일, 각희( 脚 戱 )와 투우대회( 鬪 牛 大 會 ) ; 동아 일보, 1931년 10월 3일, 투우( 鬪 牛 ), 각희대회( 脚 戱 大 會 ) ; 조선중앙, 1933년 9월 26일, 영남명물( 嶺 南 名 物 )의 진주투우대회( 晉 州 鬪 牛 大 會 ) 출전 투우( 出 戰 鬪 牛 ) 삼십여두( 三 十 餘 頭 ) ; 동아일보, 1933년 10월 1일, 각희( 脚 戱 )와 투우( 鬪 牛 ) ; 동아일보, 1934년 9월 15일, 남조선명물( 南 朝 鮮 名 物 ) 투우대회개최( 鬪 牛 大 會 開 催 ) 신문기자구락부주최( 新 聞 記 者 俱 樂 部 主 催 )로 진주남강백사장( 晉 州 南 崗 白 沙 場 )서 ;동아일보, 1935년 9월 19일, 진주투우대회( 晉 州 鬪 牛 大 會 ), 그리고 장추남( 張 秋 男 ), 향토( 鄕 土 )의 정기( 精 氣 )<영남춘추( 嶺 南 春 秋 ) 중앙공중부( 中 央 公 衆 部 ) 남선공논축쇄 판( 南 鮮 公 論 縮 刷 版 )>, 1982, 금호출판사( 金 湖 出 版 社 ). 영남춘추( 嶺 南 春 秋 ) 1935년9월15일자. 230 경남의 민속문화 231
[마산투우대회( 馬 山 鬪 牛 大 會 ) 성황이종료( 盛 況 裡 終 了 )] 지난 십칠( 十 七 )일부터 마산중앙매립지에서 개최된 경남투우대회는 연일 대성항리에 이십( 二 十 )일에 무사히 종료하얏는 바 수상한 우주는 다음과갓다(같다). 갑( 甲 ) 일등 팔십원( 一 等 八 十 圓 ) 의령 황태현( 宜 寧 黃 太 賢 ) 이등 사십원( 二 等 四 十 圓 ) 이수건( 李 壽 建 ) 삼등 이십원( 三 等 二 十 圓 ) 유재수( 兪 載 洙 )을( 乙 ) 일등 사십원( 一 等 四 十 圓 ) 명도홍( 明 道 烘 ) 이등 이십원( 二 等 二 十 圓 ) 장임섭( 張 任 燮 ), 삼등 십원( 三 等 十 圓 ) 우송갑( 禹 宋 甲 ) (동아일보, 1932년 9월 24일자) 부터는 상금이 주어졌다. 이러한 소싸움대회의 우승대가가 현물에서 상금으로 바뀌면서 농민들이나 노동자층 들을 결집시키는 유인책으로 작용하였다. 소싸움대회에 상금이 주어지면서 대회의 규모는 점차 커졌다. 그 결과, 대회를 진행하는 주최가 생겨나면서 대회주최와 놀이주체로 분리되었다. 대회 주최는 지역의 노동공제회와 군농민연맹과 같은 사회단체, 축산계 그리 고 신문기자구락부 등 지역 내의 사회적 권력 집단이었다. 소싸움대회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장으로 농민과 소작농 그리고 노동자층의 관심을 모으기 위한 수단으로 적합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농민이나 노동자 층이 소싸움에 참여한 것은 사회적 고충을 풀 수 있는 오락적 기능과 상금 획득 때문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한편, 소싸움에 대한 경기방식과 승패방식이 명문화되지는 않았지만 놀이주체들 간의 승패 결정 방식은 [영남명물( 嶺 南 名 物 )의 진주투우대회( 晉 州 鬪 牛 大 會 ) 출전투우( 出 戰 鬪 牛 ) 삼십여두( 三 十 餘 頭 )]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원규 심상화는 1930년대의 진주소싸움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진주에서는 매년 추석명절이 되면 남강변백사장에서 투우대회가 있다. 그런대 금년에는 특별히 진주군농회주최로 음력( 陰 曆 ) 팔월십칠팔양일( 八 月 十 七 八 兩 日 )간 예년( 例 年 )에 보지 못한 소싸움이 있을 것이라는데 출전투우( 出 戰 鬪 牛 )가 사십 ( 四 十 )여두나 된다하며 우승우( 優 勝 牛 )에는 오십원( 五 十 圓 ) 가격의 우승기와 만흔(많은)부상이 있다는데 진주일원의 투 우팬 은 당일에 대한기대가 만타고(많다고) (조선중앙, 1933년 9월 26일자) 소싸움이 세 싸움의 형식이라서 싱벽(승부욕)이 앞서는 바람에 그때에는 상대편의 기를 죽이기 위해서 모래를 끼얹거나 상 대소의 꼬리를 잡아당기는 등 심판의 판정에 항의하여 난장판이 되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당시는 정해진 경기 의 규칙 중에서 그때 정해진 것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거나 현실에 맞게 고쳐 사용되고 있는 것도 많은데 그 중에서도 무게 가 비슷하게 나가는 소끼리 싸움을 붙이는 방식, 토너먼트 방식, 심판의 개입, 싸움소의 승패의 판정 기준 등이 이미 1930 년대에 정해져 있다. 16 [남조선명물( 南 朝 鮮 名 物 ) 투우대회개최( 鬪 牛 大 會 開 催 ) 신문기자구락부주최( 新 聞 記 者 俱 樂 部 主 催 )로 진주남강백사장( 晉 州 南 崗 白 沙 場 )서] 매년 추석이 되면 진주에서는 연중행사로 진주 명물의 투우대회를 개최하야 진주지방은 물론 타지방에서도 일부러 구경 하러 오게 되어 대성황을 일으키는데 금년도 진주신문기자구락부에서는 군농회( 農 會 )의 후원을 얻어 남강철교 밑 백사장 에서 오는 이십사일에 투우대회를 개최하는 매년 투우대회에서 우성(우승)을 얻게 되는 소는 가격이 폭등함은 물론 소의 소유자의 성명도 높아지므로 벌서 가입두수가 십여( 十 餘 )마리에 달하야 대성황을 예기하며 인기가 집중되어있는데 상품 이 시기 이후의 소싸움경기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일제식민지기와 한국전쟁으로 인해 사회적 혼란을 겪게 되었고 1930년대까지 소싸움의 대회주체로써 활약했던 농민단체의 해체와 함께 소싸움대회의 전승기반 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1940년대에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전시체제 돌입으로 소싸움대회를 개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그 당시 소싸움은 다리 밑이나 일본인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곳에 숨어서 몰 래 소싸움이 열렸지만 규모가 작은 만큼 겨우 그 명맥만 유지하였다 17 고 한다. 은 다음과 같다. 일등( 一 等 ), 우승기( 優 勝 旗 )(가격 이십가령)외 부상( 副 賞 ) 이등( 二 等 ), 우승기( 優 勝 旗 )(가격 십원가령)외 부상( 副 賞 ) 2. 지역축제 속에 편입된 소싸움대회 삼등( 三 等 ), 우승기( 優 勝 旗 )(가격 육, 칠원)외 부상( 副 賞 ) (동아일보, 1934년 9월 15일자) 1960년대 이후, 경남지역에서 전승하는 소싸움은 대회 성격이 강화되고 지역 축제의 소재로 이용된다. 경상남 도 진주시의 소싸움은 1964, 65년에는 재건국민운동진주시촉진회와 개천예술제대회준비위원회의 주최로 전 대회라고 함은 기술이나 재주를 겨루기 위한 것으로 소싸움대회는 지역의 싸움소 중에서 기량이 뛰어난 소를 가리기 위한 것이다. 대회형식으로서 틀을 갖추기 위해 대회 주최 및 후원단체의 결성, 그리고 우승 소에 대한 상금이 생겨났다. 당시 진주소싸움은 지금의 규모에 비하면 협소하고 출전하는 싸움소의 두수도 적었지 국투우대회 라는 명칭으로 지역 축제인 개천예술제의 특별행사로 개최하였다. 18 그리고 1969년에는 진양호 남 강댐 증축을 기념하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을 초청한 자리에서 소싸움대회가 열렸다. 진주소싸움은 지역 축제 의 부대행사로서 그 명성을 이어나갔는데, 1960년대의 소싸움대회는 해마다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것이 아니 만, 진주시의 소만 참여하는 것이 아닌 경남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소들이 참여할 만큼 큰 규모였다. 이러한 소 싸움대회는 진주뿐만 아니라, 합천, 김해, 마산, 의령, 밀양, 부산 등 다른 지역에서도 열렸다. 소싸움의 놀이주체는 주로 농민, 노동자층이었다. 이때만 해도 근대적 기계를 이용한 공장시스템이 가동 되면서 노동자층이 형성되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소작농들이거나 농사일의 노동력을 제공하던 사람들이였다. 소싸움대회의 시상은 일등, 이등 혹은 갑상, 을상 등으로 순위를 매겼고 우승한 소들에게는 대가( 代 價 )가 제공 되었다. 1927년 대회당시 우승상품은 우승기와 농구( 農 具 ), 필목( 疋 木 ), 쌀( 米 )등의 현물이었고, 1934년 대회 16 고원규 심상화, 1998, 참여관찰과 면담조사를 중심으로 한 전통소싸움의 활성화에 관한 연구, 관광 레저 연구 (제10권 제2호), 한국관광레제학 회, 12쪽. 고원규 심상화의 논문에서는 제보자 김석암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서술하고 있다. 김석암은 1930년대의 초기 진주 소싸움 판에 청년기부 터 따라다녔던 소싸움꾼으로 2005년에 92세의 노환으로 작고하였다. 17 2007년 6월 27일, 제보자: 윤용수(진주시, 68세, 남, 진주투우협회회원) 18 개천예술제40년사편찬위원회, 1991, 개천예술제 40년사, 개천예술재단, 26쪽, 347쪽. 232 경남의 민속문화 233
라, 그 해의 특정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임시적 성격의 행사였다. 진주시의 소싸움은 1972년 제1회 전국새마을투우대회 를 기점으로 매년 열리게 되었다. 경남일보가 주 최하고 경상남도청과 진주시청, 진양군청이 공동 후원하여 마산, 진양, 산청, 창녕 등 인근 지방에서 40여두가 출전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19 이 대회는 1970년대 박정희정권 당시 중앙 정부에 의한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농 촌재건운동인 새마을 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74년에는 전국새마을투우대회 로 열리던 소싸움대회가 진주 지역의 축제인 개천예술제( 開 川 藝 術 祭 )의 부대 행사로 편입되었고, 1983년에 진주전국민속소싸움대회 로 대회명칭을 변경했다. 진주전국민속소싸움대회는 해마다 논개제(5월), 개천예술제(10월)의 축제시기에 맞 춰 전국 규모의 대회로 열린다. 소싸움은 매년 개천예술제의 부대행사로 참여하면서 가장행렬, 각종 전시 및 공 연을 이어 가장 볼만한 행사로 발전하였다. 진주지역에 전승하고 있는 소싸움이 지역축제로 개최되면서 놀이적 성격이 변화되고 있음을 팸플릿에 명 시된 소싸움대회의 목적과 정의를 통해 알 수 있다. 표 2. 소싸움대회 목적과 정의의 변화 내용 1970년대 1980~90년대 2000년대 목적 사육농가의 의욕고취와 민속예술의 전 래를 목적으로 한다. 가축의 개량증식을 도모하고 양축가의 사육 의욕의 고취와 과학적 사양기술 개발로 축산 농가 증대에 공헌함을 목 적으로 한다. 유일무이하게 그 원형대로 보존하고 전 래를 목적으로 한다.(시민의 볼거리와 관광상품화) 그림 5. 제8회 추석맞이 토요애 의령민속소싸움대회(2012년, 출처: 의령소싸움홈페이지) 정의 1. 한우 모우로서 지역사회의 전통인 투 우대회를 말한다. 2. 우수한 한모우의 선발전시에 임하여 한우사양을 양양 한다. * 자료 1) 대회규정이 없었던 1970년대는 진주투우협회 월례회의록인 1974년도 투우협회 총칙참조. 2) 1980, 1990, 2000년대는 대회 팸플릿에 명시된 대회 규정 참고. 1. 한우 모우로서 한국진주 민속투우대 회를 말한다. 2. 우수한 한모우의 선발과 관광상품화 와 시민의 볼거리로 만들기 위함이다. 1970년대의 소싸움대회는 소싸움의 전승과 축산 농가에 사육고취를 장려하는 것이 일차적 목적이었다. 소싸움대회가 지역 축제로 편입되면서 행정기관인 경남도청, 진주시 그리고 지역 언론사들이 대회에 관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지역사회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행사로 성장하게 된다. 2000년대에는 소싸움대회가 관광객 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서 또 시민들의 볼거리로서 재편성되고 있다. 경상남도 지역의 중심에 위치한 의령군에서도 1998년부터 전국단위의 소싸움대회를 개최하여 박진감 넘 치는 경기를 보여주고 있다. 의령군의 소싸움은 지역축제의 부대행사로서 개최되는 것이 아니라 추석맞이 특 별행사인 독립축제로 개최되었다. 2009년에는 소싸움대회를 수시로 개최할 수 있는 상설소싸움경기장을 개장 하였고 2012년에는 의령읍 무전 정암리 일원에 9만 8천 660여m2에 30억 원을 들여 생활민속관, 농기구전시 관, 소싸움관련 전시장을 갖춘 전통농경문화테마파크를 개관했다. 전통농경문화테마파크는 이미 개장된 민속 소싸움 경기장(상설소싸움경기장) 을 중심으로 18의병장의 활약상과 숲속 무대로 꾸며진 의병도시 숲, 의령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유통 판매를 위한 농산물종합유통 19 경남일보, 1972년 11월 13일자. 센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올해 2012년에 개최된 추석맞이 의령민속소싸움대회 는 9월 30일, 10월 1일 양일 간 의령 전통농경문화테마파크 내 상설소싸움경기장에서 열렸다. 의령민속소싸움대회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 든 싸움소 200여두가 출전하여 뜨거운 한판승부를 벌였다. 창원시 소싸움은 창원시투우협회 주관으로 1998년 첫 대회를 개최한 이래 지금까지 창원시를 전국에 알 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창원민속소싸움대회는 매년 창원시외버스터미널 공터에서 열리다가 2011년부터는 창 원시 의창구 북면 온천구역 내에서 열렸다. 2012년 창원민속소싸움대회는 전국에서 명성을 날리는 싸움소 200 여두가 참가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30경기 이상 열렸고 관람객들은 소싸움을 보기 위해 창원을 방문하였다. 창녕군에서도 2002년부터 전국민속소싸움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 해 개최된 제10회 창녕 전국민속소 싸움대회 는 5일간 개최되었으며 창녕 부곡온천관광특구 내 소싸움경기장에서 열렸다. 소싸움대회는 창녕군 이 주최하고 (사)한국민속소싸움협회 창녕군지회(지회장 박재홍)가 주관하여 창녕군을 비롯한 전국 10개 지 역의 지회에서 150여 마리의 우수한 싸움소가 출전하였다. 소싸움대회에서 한 판 승부가 끝나고 주어지는 휴 식시간에는 틈틈이 장기자랑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흥미를 더하고, 경품권 추첨을 통해 송아지를 비롯해 창녕 군 농 특산물 등 다양한 경품도 제공한다. 경상북도에서 유일하게 소싸움이 열리는 청도군은 1990년 영남 민속투우대회를 시작으로 독립적인 축 제로 성장하였다. 매년 3.1절 기념행사로 개최되며 초창기에는 자계서원 앞 넓은 서원천변에서 열렸다. 제1회 영남 민속투우대회를 개최할 당시만 해도 청도지역에는 싸움소의 수가 미미하여, 김해, 진주 등 인접지역의 싸 움소들을 빌려오기도 했다. 50여두의 적은 소로 대회형식을 갖추어 그 명맥을 유지하는 동안 소싸움의 매력에 관심을 보이는 관객의 수가 늘어나게 되었다. 또한 대중매체, 방송을 통한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매년 대회 규 234 경남의 민속문화 235
3. 소싸움을 이끄는 주체, 투우협회 설립 그림 6. 청도소싸움경기장 외부 모습(출처: 한국우사회) 그림 7. 청도소싸움경기장 내부 모습(출처: 한국우사회) 1960~70년대부터 소싸움에 관여한 주체는 농가에서 소를 기르던 사람들이거나 어릴 적부터 진주, 사천, 밀양 의 우시장( 牛 市 場 )을 돌아다니면서 소를 다루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축산업에 종사하 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소싸움을 쉽게 접했고 다년간 참여 경험이 많다. 해방 이후의 진주소싸움은 소싸움에 관심을 가졌던 지역유지들과 소를 가진 농민들을 중심으로 열렸다. 1970년대부터는 농촌에 소형 경작기가 보급되면서 농경우로서 소의 존재 가치가 약화되고 토지개발과 사회적 환경의 변화로 인해 진주 지역의 농가들이 외곽으로 이주하였다. 그리하여 소싸움을 붙일 수 있는 공간이 제한 되고 싸움소의 수가 줄어들게 되어 소싸움은 전승단절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 기 위해서 지역유지와 농민들은 한국투우협회 21 라는 운영조직을 결성하였다. 한국투우협회는 1970년 2월 15일에 제1대 회장 심재열(당시 진주가축병원 원장)을 중심으로 지역유지들 과 수의사 또는 한의사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직접적으로 소를 기르기보다는 60년대 간헐적으로 열리는 소 모가 급성장하여 전국 최대 규모의 소싸움대회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95년부터는 여타 대회와 비교하여 규모 면에서 뒤지지 않을 정도로 외형적인 성장을 하게 되었고, 1999년에는 일본의 챔피언을 지낸 싸움소 3두가 청 도를 찾아와 국제적인 소싸움대회를 벌이기도 했다. 동시에 청도소싸움은 문화관광부에서 지정한 한국의 10 대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되었다. 2003년에는 청도소싸움이 서울 하이페스티벌의 초청을 받아 동대문 운동장에서 2일간의 소싸움 경기를 벌이고 동대문운동장에서 광화문까지 퍼레이드를 벌였다. 같은 해 부천영상단지에서 추석을 전후로 10일간, 2004년 추석 부산무역센터 광장에서 4일간의 행사에 참여했다. 이후, 청도소싸움은 2009년에 상설소싸움경기 장이 개장되었고 현재는 전국 유일하게 우권을 발행하여 경마, 경륜과 같은 배팅 사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20 2012년 현재, 청도소싸움축제에서는 사전 예선전을 거치고 올라온 90여두 싸움소들의 토너먼트 빅 매치, 경기의 흥미를 높이고 경기장을 청홍으로 구분하여 응원전을 전개하는 청 홍 응원전, 소싸움 대회의 마스코 트인 카우와 붕가를 둘러싼 이야기를 전달하는 황소 나가신다 난장퍼레이드, 창작 소 조형물 전( 展 ), 이색적인 체험장으로 꾸며지는 황소문화ZONE, 옛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와 농경문화체험ZONE 등 청도소싸움 축제에서만 볼 수 있는 거리공연, 다채로운 전시 및 체험활동을 제공하고 있다. 싸움대회에 참여한 소들을 치료해주면서 소싸움을 전승시키기 위해 모였다. 22 그리고 진주, 사천, 고성, 하동, 산 청 등 인근 지역에서 소를 키우던 우주( 牛 主 )들이 협회에 가입하였다. 우주란 싸움소를 훈련시켜 소싸움 놀이 에 출전시키는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사람을 칭한다. 한국투우협회는 한 때 협회 내부 분열로 산청투우협회로 분리되어 나왔다가 2002년 9월 4일 양 투우협 회간의 합의를 통해 진주투우협회로 통합하고 명칭을 변경하였다. 13대 회장 김성주의 재임기간에는 타 지역 에서도 투우협회가 생겨났다. 1990년 3월에는 청도에서 투우협회가 발족되었는데, 초대 회장인 이대상을 중심으로 변이술, 김재옥, 서 치도, 김광웅씨 등이 청도 지역 내에 싸움소를 사육하고 있는 사람들로 결성하였다. 청도투우협회 주최, 주관으 로 1990년 제1회 영남 투우대회를 시작했고 1998년 제9회 대회부터는 전국단위의 청도소싸움축제로 개최하 면서 최대 규모의 소싸움대회로 발전시켰다. 소싸움이 오늘날까지 전승 가능한 이유는 전승주체인 투우협회가 소싸움이 축산발전에 도움이 될 뿐 아 니라 문화유산으로서 전승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진주투우협회의 경우는 1978년 사단법인 으로 등록하기 위한 창립총회에서 소싸움대회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근래의 소싸움은 지역 축제로 편입되면서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관람객에게 다양한 여흥거리로 제공하 고 외부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관광 상품으로 변화하였다. 축제장에서 보이는 소싸움의 짜릿한 승부는 지역 민과 관광객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로 다가갔다. 그리하여 소싸움은 지역민들을 위한 볼거리로써 지역에서의 중 요한 이벤트로 자리매김하였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소싸움대회가 늘어나고 대회의 횟수가 증가하자 싸움소의 부족현상이 나타났다. 일반 (생략) 해마다 한우 사육 수는 증가하고 있으나 우량한우 부족으로 자급자족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축산인은 투 우협회를 조직하여 우량한우 확보와 한우 개량증식의 진흥 및 축산의 발전은 기여함은 물론 한우의 체위를 향상함으로서 육류를 증식 케하여 외국에서 육류수입을 지양하기 위하여 해마다 대회를 개최하고 우량우에 상을 주어 사육자의 사육의 욕을 갖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적으로 대회의 재정규모가 큰 시 군에 비해 합천군이나 함안군과 같이 재정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시 군은 싸움소의 부족으로 인해 대회를 개최했다가 중단하였다. 그리고 안성과 옥천지역에서는 지역축제기간에 이벤 트성으로 소싸움대회를 잠깐 개최하다가 지속적으로 운영을 하지 못하고 중단하였다. 20 류정아, 2009, 민속축제의 관광자원화 과정에 대한 비교문화적 고찰: 소놀이축제를 중심으로, 실천민속학연구 (제14호), 실천민속학회, 24~25쪽. 21 본래, 1970년 투우협회가 창설되던 당시의 명칭은 한국투우협회였으나, 2002년에 진주투우협회로 명칭을 바꿨다. 이후, 2009년 진주투우협회는 ( 사)한국민속소싸움협회가 설립되면서 진주시지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본문에서는 과거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소싸움 전승의 맥을 이어 오는 진주 투우협회의 명칭을 그대로 표기하거나 한국민속소싸움협회 진주시지회로 표기한다. 22 2008년 7월 30일, 제보자: 정현택(진주시, 68세, 남, 수의사) 한국투우협회에서 진주투우협회로 통합되기 전까지 협회회원으로 초창기 한국투우협회 총무를 맡았다. 초창기 회원이었던 수의사와 한의사들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협회에서 물러났고, 본인만 투우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협회 내부기록 및 운영을 맡았다. 236 경남의 민속문화 237
투우대회는 축산개량 장례의 목적도 될 뿐 아니라 농민들의 위안도 식혀주는 것이므로 우리지방 민속놀이를 다음세대에 길이 이어나갈 따뜻한 유산이 되도록 여러분들의 절대적인 지원이 있으시기를 희구하는 바입니다. 23 1978년 당시 진주투우협회의 사업목적은 한우 개량 증식과 체위향상 그리고 축우 농가들의 사육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있었다. 이 당시는 종축개량협회가 출범하여 비육소로 적합한 체중증가와 생산성 향상을 통한 소 득증대라는 측면을 강조하였다. 전국적으로는 한우품평회가 열려 한우의 개량증식을 도모하고 축가의 사육의 욕을 높였고 소싸움의 육성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아울러 소싸움이 전통 민속놀이로서 계승되어야 한다는 필 요성이 제기되는 시점이기도 했다. 투우협회는 경기의 규정과 요강을 정비함으로써 소싸움대회를 단순한 놀이 에서 벗어나 스포츠적인 경기로서 운영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하였다. 한 지원이 투우협회와 지역사회와의 관계성을 분명히 드러나게 보여준다. 그리고 지역의 소싸움이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전승 가능케 하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모아진 수익금은 현수막, 책자에 관한 홍보비, 방 송국 초청, 이벤트 임대비, 시상금, 우주들의 유니폼과 신발, 심판복, 풍물 단원 사례비, 그리고 모래와 계류장 설치비 등 대회 진행비로 사용한다. 투우협회는 지역사회와의 상호적 피드백을 통하여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협회 기반을 만들고 있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각 지역의 투우협회는 소싸움대회의 시합규정 정비와 시상제 도입 등을 통해 지속 적으로 소싸움을 변화시켜 가고 있다. 4.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상설소싸움경기장 건립 무엇보다 소싸움을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된 기반은 상설소싸움경기장(이하 상설경기장)의 건립이다. 이전까지 는 백사장이나 넓은 공터에 임시 경기장을 짓던 것과는 달리 관람석, 본부석, 울타리를 갖춘 경기장을 만들었다. 현재 상설경기장은 경상남도 진주시, 의령군 그리고 경상북도 청도군 세군 데에 있다. 상설경기장 건립 후에는 주말마다 소싸움경기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이러한 상설소싸움경기장의 개설은 지역사회 구성원들에게 전통 소싸움의 본고장이라는 자부심을 높여주었을 뿐 아니라 관광상품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계기가 된다. 그림 8. 진주투우협회 월례회의 모습(2008년 1월) 그림 9. 진주투우협회 월례회의 모습(2008년 1월) 진주투우협회는 소싸움대회가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매달 월례회의를 연다. 협회운영 전반에 대한 것과 전국규모의 대회준비에 관해 회의를 진행하는데 대회 당일에 조직적이고 효율적인 업무 처리를 위해 대 회 운영위원을 구성하여 각각의 역할을 미리 분담한다. 대회 운영위원회는 협회장, 부대회장, 재무국장, 총무 국장, 대회준비위원장을 중심으로 심판, 경기운영, 방송진행, 기록팀, 그리고 출입문을 책임지는 회원들로 구 성된다. 이들은 대회 몇 일전부터 소싸움대회를 알리기 위해 대내외로 홍보활동을 벌인다. 홍보책자를 돌리거 나, 대회 장소에 애드벌룬 및 현수막을 매달고, 신문과 방송매체를 통해 소싸움대회의 개최를 알린다. 그리고 대회 기간 중, 투우협회 회원은 출전하는 싸움소들이 머무는 계류장 관리와 경기장 안으로 싸움소를 내보내는 일 등을 책임진다. 대회출전 두수에 비해 경기장 계류장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타 지역협회의 참여두 수 80%를 먼저 계류장에 배분하여 타 지역의 참여를 도모하였다. 투우협회 회원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대회 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한다. 소싸움을 진행하는 대회경비와 운영자금은 투우협회 회원이 매달 지불하는 월례회비와 지자체 및 지역 유지들의 후원을 통해 조성된다. 초창기의 투우협회는 대회 운영자금 부족과 상금조달이 어려웠다. 그리하여 투우협회 회원들은 협회 창립 때부터 월( 月 ) 회비를 만 원 정도씩 내어 수익금의 일환으로 모으기 시작했고 행 정기관뿐만 아니라, 지역단체에서 보조금을 지원받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지역의 경제적 사회적 연계망을 통 경상북도 청도군의 상설경기장 건립은 다른 지역에 영향을 주었다. 청도군은 1999년 당시 농림부로부터 상설경기장 건립을 인가받아 전통소싸움을 세계적인 관광 상품으로 유치하기 위해 시 도와 국가의 지원을 받 았다. 청도소싸움이 1998년 정부가 지정한 문화관광 축제가 되고 2002년 청도 소싸움장이 착공에 들어가게 되 자 이에 자극을 받은 진주시와 의령군은 뒤늦게야 소싸움의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상설경기장 건립을 추진하 였다. 2002년도에 진주시에서는 본격적으로 소싸움의 본고장이라는 명예를 회복하고 소싸움을 새로운 관광 상 품으로 개발 육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구체적으로 진주시의 상설경기장 건립을 위한 움직임은 2002 년 8월에 전통소싸움 경기에 관한 법률 이 국회를 통과하자, 상설경기장 건립 타당성 조사 및 기본 계획을 세 웠고 그해 12월에 착수하였다. 경기장 활성화를 위해 소싸움을 경마게임과 같이 공식적인 갬블사업을 추진하 려 했으나 시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상설경기장을 2005년 상반기까지 건립하기 위해 국회의원, 도의원, 시민 등으로 구성된 소싸움 경기장 유치추진위원회 와 실무추진위원회 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유치작업에 들어갔다. 유치추진위원회는 진주시장, 진주시의회의원, 교육청장, 경상대학청장, 진주관광협의회, 진주국제대학 관광센터, 농협중앙회, 그리고 진주 투우협회회장 등 26명으로 구성되었다. 실무추진위원회는 경남일보, 진주 MBC,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진 주지부, 진주시여성단체협의회, 진주투우협회 부회장 등 18명의 임원으로 구성 24 되었다. 2003년에 각계각층에서 구성된 유치추진위원회와 실무추진위원회는 간담회를 열어 상설경기장을 유치 할 때까지 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에 필요한 사항을 제시하였다. 지역 내의 실권자들로 구성된 유치추진위원회 와 실제 상설경기장의 추진과 활동을 담당하는 실무추진위원회의 업무를 구분하여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23 1978년 8월 진주투우협회 창립총회 회의록. 24 2003년 8월 5일자 진주소싸움 경기장 유치추진위원회 간담회 회의자료 참고. 238 경남의 민속문화 239
그림 10. 진주전통민속소싸움경기장 내부모습(2007년 10월 4일, 진주시) 그림 11. 의령상설경기장 내부모습(2012년, 출처: 토요애 의령민속 소싸움 홈페이지) 서이다. 진주시는 상설경기장을 유치하기 위해 진주는 소싸움의 발원지이며 전국에서 가장 많은 대회를 개최 하여 경험이 축적되어 있고, 오늘날도 격주로 상설대회를 열고 있다는 점, 산학연 컨소시엄 구축으로 우수싸움 소 확보 등 경기운영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점, 지리적 여건과 접근성, 관광인프라구축이 잘 되어 있고 지역정서 및 오래된 역사성을 바탕으로 성공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 등과 같은 공략을 내세웠다. 이에 맞서 의령군에서도 상설경기장을 유치하기 위해 건립 타당성을 들면서 지역 유치의 당위성을 주장하였다. 구체적으 로 의령군은 소싸움 경기에 관한 법률은 농촌지역을 살리기 위한 입법인 만큼 의령군의 입법취지에 가장 합당 한 점, 남해고속도로가 인접해 부산, 마산, 창원, 김해 등과 인근 경남의 중심지역으로 접근성이 매우 용이한 점, 100여 년 전부터 공식대회가 개최되었다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전국에서 최다 체급별 챔피언인 싸움소 4두 를 보유하고 있는 점 25 등을 내세워 투우대회의 전통과 역사가 살아있는 고장임을 역설했다. 진주시와 의령군은 상설경기장 설립을 위한 유치 명분으로 각 지역의 소싸움 원조론 을 전면에 내세웠다. 상설경기장은 도( 道 )에 서 한 곳만 유치 가능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하여 진주시와 의령군과의 수차례 중재와 조정이 있었다. 진주시와 투우협회에서는 상설경기장의 건설을 위하여 직접 진주시민을 대상으로 공동 성명서를 받아내 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주시와 의령군의 의견 불일치로 결정이 미뤄졌다. 결국, 상설경 기장의 결정권은 농림부로 넘어가게 되었다. 농림부는 이미 허가된 청도소싸움경기장의 결과를 지켜본 뒤 허 가를 하겠다며 잠정적으로 허가를 유보하였다. 한편, 청도소싸움경기장은 시공사의 부도와 운영권을 놓고 발 생한 이해관계 대립 등으로 건설 마무리를 짓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청도소싸움경기장의 문제점 때문에 경상 남도의 상설경기장의 사업성이 불투명하게 되었다. 하지만 진주시에서는 농림부로부터 허가신청이 반려된 상 설경기장 건립을 독자적으로 추진하였다. 26 진주시는 투우협회를 비롯한 사회 각계의 여론을 수렴하여 지역의 실정에 맞도록 계획을 대폭 수정하여 진주시 순수비용으로 상설경기장을 건립하였다. 총 45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진양호근처 1만 5000여 평의 부지에 3000석 규모 그리고 100마리의 싸움소가 쉴 수 있는 계류장 시설을 갖춘 현대식 건물인 전통소싸움경기장을 설립하였다. 이후, 의령군에서도 진주시의 상설경기장 건설에 자극을 받아 2009년에 상설경기장을 개장하였다. 소싸 움경기장은 의령읍 무전 정암리 일원에 9만 8천 660여m2에 30억 원을 들여 생활민속관, 농기구전시관, 소싸 움관련 전시장을 갖춘 전통농경문화테마파크를 2012년에 완공하여 개관하였다. 전통농경문화테마파크는 상 설소싸움경기장, 의령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유통 판매를 위한 농산물종합유통센터 로 구성되어 관람객들 에게 볼거리 제공 및 지역 농 특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청도상설소싸움 경기장의 경우는 2000년에 착공되어 우여곡절 끝에 2007년 1월 준공되었다. 상설소싸 움의 개장이 늦춰진 이유는 처음에는 경기장 시설미비의 문제가 지적되었으나 소싸움을 갬블산업을 위한 제도 25 경남일보, 2004년 3월 5일자. 26 2008월 2월 13일, 제보자 : 박연출(진주시, 남, 공무원) 240 경남의 민속문화 241
적 준비가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다. 다른 경마나 경륜장 사업은 공영공사가 운영의 주체이지만, 청도 군의 경우 민간사업자인 우사회가 많은 출자를 한 상태이다. 그러면서 법적 사업운영자인 청도군이 설립한 청 도공영사업공사와 실질적인 자본참여자간에 사업운영권을 놓고 오랜 기간 동안 의견의 차이를 보였다. 두 기 관은 위탁영업범위와 영업이익률 배분방식을 놓고 협의를 한 끝에 2010년 12월 청도 소싸움경기사업 상설개 장협약에 대한 합의를 하였다. 27 상설경기장의 총 부지면적은 79,656m2, 관람석 11,845석으로 지난 2011년 9 월 3일에 개장되어 주말마다 관람객들이 청도소싸움경기장에서 경마장의 마권( 馬 券 )처럼 우권( 牛 券 )을 구입 해 베팅할 수 있게 되었다. 소싸움은 보다 더 박진감과 즐거움이 넘치는 레저문화로 자리매김하였다. 청도상설 경기장은 마치 야구장같이 우권을 발급하며, 홍 청 응원석으로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으로 즐비 한다. 각 지자체들은 소싸움을 위한 새로운 공간 구성을 주도해나갔으며 상설경기장을 중심으로 주변지역과의 연계를 통해 관광지를 구축하였다. 상설경기장의 설립으로 소싸움이 열리는 장소는 고정화되었고 경기장, 스탠 드 관람석, 계류장, 운영본부석, 방송 앰프시설 등 현대적인 기반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상설소싸움의 건립을 계기로 지역사회는 전통소싸움의 본고장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획득함과 동시 에 소싸움을 대표적인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고자하는 전략도 구사하게 된다. 그림 12. 진주토요상설소싸움대회(2008년 8월 2일, 진주시) 그림 13. 싸움소를 이끄는 우주들의 모습(2007년 6월 30일, 진주시) 5. 매주 주말마다 개최하는 상설소싸움경기 그림 14. 토요상설소싸움대회 행운권(2008년 6월 7일, 진주시) 그림 15. 토요상설소싸움대회 홍보차량(2007년 6월 30일, 진주시) 경상남도의 진주, 의령 경상북도의 청도에서는 매주 주말마다 상설소싸움경기를 개최하고 있다. 주말마다 상 설소싸움이 열리면서 관람객들은 추석 전후로만 볼 수 있던 소싸움 경기를 수시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소싸움 을 대중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진주시에서 상설소싸움경기를 가장 먼저 개최하였는데, 2001년 부터 진주시와 진주투우협회의 주관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벌인다. 상설소싸움경기는 2001년부터 서장대 밑 고수부지에서 시작하였는데, 2006년부터는 겨울기간을 제외한 3월부터 11월까지 현대식 규모의 원형 상설경 기장에서 진행하고 있다. 진주시에서는 상설소싸움경기를 홍보하기 위해 진주시 산하 부서에서 소유하고 있는 셔틀버스, 관용차량 을 이용하여 매주 토요일 소싸움경기가 열립니다!! 라는 배너광고를 부착하여 대외적으로 알렸다. 28 지역민과 관광객들에게 토요일마다 소싸움대회가 열린다. 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고 진주 하면 소싸움 을 연상하 게 만들기 위한 진주시의 의도로 살펴 볼 수 있다. 투우협회 회원들은 상설소싸움경기를 통하여 자신들의 싸움 소 기량을 평가하고 무명( 無 名 ) 소들의 이름을 알릴 기회로 활용한다. 의령군은 상설경기장이 개장되고 2010년부터 토요애 의령 상설소싸움대회 를 준비하였지만 예산부족과 출전싸움소의 확보가 어려워 주말 경기를 진행하지 못했다. 이후, 어느 정도 기반을 갖추고 나서야 상설소싸움 을 개최하였다. 초창기에는 의령 상설소싸움대회를 토요일에 개장하였으나 진주시가 토요일에 개최하는 바람 에 일요일로 변경하였다. 싸움소의 출전이 중복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진주시의 상설소싸움은 산청, 사천 27 고원규, 2011, 소싸움으로 본 문화관광, 대왕사, 67쪽. 28 경남일보, 2006년 5월 8일자. 등 인근지역에서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참여두수가 많지만 의령은 지역의 싸움소가 절대적 으로 부족해 타 지역의 소를 초청해 경기를 개최한다. 의령군 상설소싸움경기는 한국민속소싸움협회 의령군지 회가 주최, 주관하고 의령군, 의령군의회, (사)한국민속소싸움협회, 의령축협을 중심으로 후원한다. 2011년 경 우는 총 50두가 출전하여 3체급인 태백, 한강, 백두로 나뉘어 단판시합을 벌였다. 경기 중간에는 농 특산물 경 품추천 및 송아지 경품추천을 하여 관람객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그리고 대회가 끝나고 대진결과를 관람객들 에게 공개함으로써 승리한 소의 기량을 파악하여 다음 경기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청도군의 경우는 주말 상설소싸움대회를 토, 일요일에 걸쳐 청도상설경기장에서 개최하고 있다. 상설소 싸움대회는 하루에 10~15개정도의 시합이 열리는데, 특종과 일반종의 구분 없이 갑, 을, 병 3등급으로 경기를 치른다. 청도 또한, 단판승부로 승리가 결정된다. 청도소싸움은 매주 주말마다 우권을 구입하여 소싸움의 승부 에 따른 내기를 걸 수 있어서 관람객들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주말에 상설소싸움대회를 개최하게 되면서 발생한 가장 큰 문제는 싸움소의 부족이다. 전국대회를 준비 하는 소들은 상설경기의 참가를 꺼려하기 때문에 항상 싸움소가 부족하다. 싸움소의 부족은 상설경기의 경기 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각 지역의 상설소싸움경기는 타 지역 우주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경기의 50% 배분을 의무적으로 두고 있다. 하지만 먼 지역의 우주들은 지리적 여건상 참여하기 어려워 진 주는 의령, 사천, 산청, 합천, 함양 등 인근지역에서 대거참여하고 청도의 경우도 대구, 의령 등 지역 출신의 투 242 경남의 민속문화 243
우협회 회원들이 대부분 참여한다. 상설소싸움경기의 출전 방법은 출전을 원하는 우주가 직접 지역 투우협회에 사전 등록을 하고, 서로 비슷 한 중량과 힘을 겸비한 싸움소들을 비교해 대진표를 작성한다. 진주시의 경우, 관람객들에게 좋은 경기를 보여 주기 위해 A, B경기로 구분하는데, A경기는 큰 대회를 참가한 소들이나 전국대회를 몇 번 참가 해본 경력이 있 는 소들 간의 시합이고 B경기는 싸움을 시작하는 햇소들로 구성된 입문의 장이다. 싸움소의 부족으로 입상경 력이 없는 소들을 B경기에 투입하는 것이다. B경기의 소들은 3번 정도 싸워 심의위원들이 싸움소의 실력을 인 정하면 A경기로 참여할 수 있다. 29 대진표를 작성하는 심의위원은 투우협회에서 회장, 부회장, 사무국장, 심판 등 4명으로 구성되고, 매주 월 요일마다 우주들이 신청한 싸움소를 먼저 비교하여 대진표를 작성하고 출전 싸움소의 충원이 필요하면 투우협 회 내 심의위원의 심의를 거쳐 남은 대진표를 작성한다. 다음은 심의위원들 간의 대화 중 일부 내용이다. 30 윤근이 호준이하고 B 넣어줄게 니 몇키로고? 이다. 이렇게 싸움소가 선정되면 싸움소를 가진 우주들이 경기출전에 합의를 하고 대진표를 작성한다. 상설소싸움경기의 출전사례비는 지자체에서 모든 경비를 지급한다. 진주시의 경우는 상설소싸움경기 참 여시 출전사례비 지급기준을 2분 이내 승부 시 미지급, 2분~5분 이내 승부 시 70% 지급, 5분~10분 이내 승부 시 100% 지급, 10분 이상 승부 시 130% 지급으로 규정하였다. 외지 출전대상우의 경우는 경기가 5분 이내에 끝나면 운반비만 지급한다. 31 이에 대해 투우협회에서는 진주시에서 정한 규정에 반박하기도 한다. 경기시간이 2분이라 할지라도 싸움소가 멋지게 승부를 낸 경기라면 경기로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협회 회원의 주장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진주시와 지속적으로 협의하여 2007년 말에는 한 경기 당 갑종은 오십만 원, 을종은 사십만 원, 병종은 삼십만 원으로 출전사례비를 차등 지원하였다. 또 경기시작 후 5분 이상 싸운 우주들 모두에게 출전 사례비를 지급하고 5분 이전에 끝이 날 경우 심판진의 판정에 따라 지급할 수도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32 이처 럼 진주시에서 정례적으로 개최되는 상설소싸움경기 때마다 출전사례비를 지급하는 것은 진주투우협회 회원 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의 투우협회 회원들의 참여를 끌어 들이는 유인책으로 사용된다. 상설소싸움경기는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문화장치로서 그 역할을 하며, 지역의 투우협회 회원들도 관광객들에게 좋은 경기를 보여주고자 다각적인 노력을 기한다. 일반 을에 있잖아 우리는 갑이다. 우리 무대포랑 한 번할까 6. 황소들의 혈전, 볼거리로서의 소싸움 호준이랑 엮어놨으니깐 일주일동안 관리해줘라 최계장, 왕별한번 넣어봐라 왕별하고 삼봉하고 하면 어떻노 스릴은 있지 최희준 왕별하고 김정열 삼봉하고 넣어봐라 특갑아니가 왕별이도 게임만 하면 힘이 장사다. 정사장, 늑대가 일반갑인가요? 특을, 요번에 730kg 거제 최명길하고 꾹대하고 최창선 고성하고 엮어보지 햇소끼리 호봉이 늑대하고 붙여보소 대진표는 심의위원의 풍부한 경험과 싸움소에 대한 기량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이들의 선택 과 주관에 의해 작성된다. 예를 들면, 심의위원들 중에서 싸움소 호준이 와 같은 특정 소를 지목하면 남은 심의 위원들이 같은 급에 해당되는 소들 중에서 호준이 와 견주어 싸울 만한 소를 거론한다. 심의위원들은 소들의 기 량에 대해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지목된 소와 물망에 오른 몇몇 소들을 견주어 어느 소가 적합할지를 고려한다. 이때는 두 싸움소를 붙였을 경우, 지목된 소가 상대소를 피하지 않고 잘 싸울 수 있는지의 여부를 고려하는 것 소싸움은 두 소들 간의 뿔을 부딪치며 힘겨루기를 통해 상대 소를 제압하는 것이다. 싸움소들이 격렬한 경기를 보이면 관람객들은 두 손을 부여잡고 긴장한 상태로 관람한다. 그러나 싸움소들이 정해진 시간을 두고 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싸우는 시간이 길어지면 관람객들은 다소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전국민속소싸 움대회와 토요일마다 열리는 상설소싸움경기 때에는 관광객들의 지루함을 달래고 흥미를 북돋기 위해 시합 중 간 중간에 다양한 이벤트를 펼친다. 이벤트는 관람객들이 소싸움을 즐겁게 관람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사물놀이, 지 역 가수 등을 초청하여 경기장 내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행운권 추첨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수시로 쌀, 자전거와 같은 경품을 증정한다. 소싸움대회의 대회장 주변에는 축제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소싸움경기장 곳곳에 는 홍보풍선을 하늘에 띄우고 체험프로그램으로 소달구지 끌기 및 먹거리 제공을 위해 장터를 개설하였다. 경 기 중간 중간에는 상인이 관람석을 돌아다니며 먹거리를 팔기도 한다. 진주시는 지역 축제인 개천예술제 및 남강 유등 축제의 행사장과 상설경기장 간에 셔틀버스를 운행하여 관람객들이 소싸움대회장을 쉽게 찾아 올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한다. 그리고 투우협회는 대회복장을 통일시 켜, 대회운영자로서의 주체성을 보여주었다. 대회진행요원은 주황색으로, 출전우주들은 빨강, 파랑색의 조끼 복장을 입어 관람객과 구분시켰다. 출전우주들은 관중의 호응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관람객들을 향해 손을 흔 들거나 싸움소를 응원하는 다양한 퍼포먼스를 취하면서 관람의 재미를 창출하고 있다. 29 2008년 5월 23일, 제보자 : 강귀희(진주시, 64세, 남, 진주투우협회원). 30 2008년 10월 13일, 제보자: 이도판(산청시, 54세, 남, 前 진주투우협회 회장). 31 2006년 12월 26일 진주투우협회 월례회의록 참고. 32 2008년 1월 진주투우협회 월례회의록 토요상설 소싸움대회 출전료 지급 지침 참고. 244 경남의 민속문화 245
그림 16. 진주전국민속소싸움대회 무료셔틀버스 (2007년 10월 3일, 진주시) 그림 17. 행운권 제공(2007년 10월 3일, 진주시) 그림 20. 우주들이 머무는 임시숙소(2007년 10월 3일, 진주시) 그림 21. 우주들이 머무는 임시숙소(2007년 10월 3일, 진주시) 그림 18. 소달구지 끌기 체험프로그램(2007년 10월 3일, 진주시) 그림 19. 출전 대기 중인 싸움소(2007년 10월 3일, 진주시) 그림 22. 경기장 밖에서 머물고 있는 싸움소(2007년 10월 3일, 진주시) 그림 23. 경기장 밖에서 머물고 있는 싸움소들(2008년 9월 14일, 의령군) 전국규모의 소싸움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싸움소는 대회 참가 기준에 적합한 싸움소만 출전가능하며, 16 강 이상 기량을 가진 싸움소들이다. 전국단위의 소싸움대회가 개최하면 전국각지에서 우주들은 자신의 싸움소를 트럭에 싣고 경기장에 도착 한다. 대회 며칠 전부터 경기장 주변에서 숙박을 하며 현지적응을 하는 것이다. 경기장 주변에는 소들이 머무 는 계류장이 즐비한데, 지역별로 구분되어 있다. 각각의 계류장은 소들의 이름이 붙여져 있고 해당되는 싸움소 를 계류장에 묶어둔다. 싸움소를 보호하고 관리하기 위해 우주들도 함께 야외에서 생활한다. 싸움소 근처에서 휴대용 텐트를 치거나 차안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계류장 부근에는 전국에서 모이는 우주들과 싸움소, 그리고 여물통, 치료약품 등이 너부러져있는데 그야말로 진풍경을 이룬다. 경기장에 들어서면 싸울 준비를 갖춘 두 소들로 집중된다. 울 장 가운데에 서있는 싸움소는 계류장에 있 을 때와는 전혀 딴판이다. 소들은 모래바닥을 부비며 전의를 불태우듯 우렁차게 울기도 하고 앞 뒷발을 굴러 사방으로 모래를 튀기거나 바닥에 몸을 비빈다. 소싸움대회가 시작되면 상대에 따라서 경기양상도 달라진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싸워보지도 않고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머리를 돌려 뒤로 달아날 수 도 있다. 싸움을 겨뤄볼만한 상대를 만났을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머리를 맞대고 힘을 다해 밀어 붙인다. 잠시 떨 어졌다가 다시 머리를 맞부딪칠 땐 뿔이 부딪치는 소리가 관중석 끝에서도 들릴 정도이다. 우주들의 표정에 도 관중들의 표정에도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한 소가 뒤로 밀리다가 도망가 버리면 우주들의 표정은 희 비가 교차한다. 그림 24. 경기장 밖에서 싸움소를 위한 여물준비(2007년 10월 3일, 진주시) 그림 26. 혈전을 벌이는 싸움소(2009년 9월 14일, 의령군) 그림 25. 경기 후, 치료받고 있는 싸움소(2007년 10월 3일, 진주시) 그림 27. 혈전을 벌이는 싸움소(2008년 4월 12일, 청도군) 246 경남의 민속문화 247
한편, 진주-통영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서울, 중부지방 등 대도시 지역에서의 접근성이 개선되었다. (2008년 5월 23일 114회 진주전국민속소싸움대회,제보자 : 이준석 (진주시 가좌동, 49세, 남)) 주말이면 관광버스와 승용차로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대개 싸움소의 육중한 외형과 기술구사에 따른 박진감 때문에 소싸움이 재미있어서, 흥미로워서 이곳에 찾아온다. 관광객들 은 투우협회에서 나누어주는 대진표를 미리 받아 전통상설경기장 스탠드에 앉아서 싸울 소들 간의 실력을 평 가한다. 누가 이길 건지 추측을 하고 그 소를 응원한다. 이들 중에는 특 갑종경기나 호평이 나있는 유명한 소들 의 경기만을 선택하여 관람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진주시의 상설경기장에서 소싸움을 관람하고 있는 관광객들은 대개 60대 이상의 노인 분들이다. 이들에 게 소싸움은 어릴 적에 경험했던 볼거리로서 과거의 향수를 자극한다. 그리하여 소싸움을 구경하기 위해 일부 러 소싸움 장을 찾아오고 있다. 가족단위나 40~50대의 중장년층들은 인근 관광지인 진양호를 구경하고 우연찮게 소싸움을 하고 있는 것 을 보고 이곳에 들르기도 한다. 경기장 곳곳에는 20~30대 젊은 층도 보이는데, 처음 소싸움을 접한 이들은 육 중한 두 소들이 싸우는 스펙터클한 광경이 생소한 듯 탄성을 자아내며 관람한다. 전국소싸움대회의 경우는 관광객이 많을 때는 하루에 600명 정도에 이르지만 상설 소싸움대회를 방문하 는 관람객들은 50~100명 정도이다. 진주시와 의령군에서 제공하는 소싸움상설경기는 관람객들을 확보하기 위해 입장료가 무료이다. 이제 관광객들은 매주 주말만 되면 가볍게 소싸움을 구경할 수 있어 소싸움은 연중행 사가 아닌 흔히 볼 수 있는 볼거리가 되었다. 한 달에 서 너 번, 소문 듣고, 구경한지 30년 정도 되었어요. 소와 관련된 직업은 아닌데, 1962,4년인가 장대동 근처, 강 가에서 봤어요. 그때 저는 열 살 밖에 안 되었어요. 그때는 울 장도 없었고, 백사장 모래밭에서 했어요. 싸우고 밀고 붙이는 게 재미있지, 오늘은 취미로... 놀러왔어요. 재미있거든. 매주 토요일마다 하더라고. (2008년 8월 2일 진주상설소싸움경기,제보자 : 김성호 (진주시 상대동, 61세, 남) 계모임이 진양호에 있어서 잠깐 들렀는데 우연히 (소싸움경기장)오게 되었다. 재미있네, 이기고 못 이기고 본께 재미있네, 남강에서 했을 때는 봤지, 서장대 밑에서 했을 때는 이벤트 같은 게 없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안 봐서 잘 모르겠는데, 많 이 커졌어. 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했긴 했는데. 시설이 많이 좋아졌어. 옛날에는 서서봤는데, (2008년 8월 2일 진주상설소싸움경기, 제보자 : 박동자 (사천시, 66세, 여)) 자주 안 오고 모처럼 (소싸움 경기장)왔어. 간혹 왔지. 남강백사장에서 할 때 왔지 어릴 때 국민(초등)학교 때부터 다녔 다. (오늘은)심심해서 찾아왔어. 취미는 없는데, 오늘은 시간이 있고 해서, 나만(나이 많은)사람이 취미가 있나. 그냥 보는 거지. 지금이나 예나 똑같다. 시설은 다르지만 옛날에는 백사장에서 했지만, 경기하는 모습이나 비슷하지. 소싸움은 기술이 없고 힘으로 하는 거라서, 싸움은 똑같다. 느끼는 광경만 다른 거지. 진주 소싸움 일 년에 한번은 했나. 요 근래야 많이 했지, 서장대 밑에서 할 때. 그전에는 일 년에 한 번도 했을 꾸마(거야), 우짜다(어쩌다) 한번 했지. 지금이야 전문적으로 하지만 옛날에는 소먹이 갖고 싸움 붙이곤 했지. 옛날에는 경기가 자주안하고 해서 재미가 있었는데 흥미가 있었는데, 그야말로 국 민들 정서가 깃들고 해서 지금은 다른 볼거리가 많고 해서... 별로지. 요즘은 우리가 느꼈던 민속놀이, 전통 이런 거는 지금 느끼는 게 없잖아요. 옛날하고는 달라요. 지금은 볼거리가 되었잖아요. (중략) 박력이야 지금이야 강해. 소를 잘 먹이니깐 소자체가 강하다이가. 농사짓는 소를 몰고 와서 붙이고 했는데, 지금은 보약먹이고 그런갑데, 그러니깐 크고 힘도 세고. (2008년 5월 22일 114회 진주전국민속소싸움대회, 제보자 : 이종수 (진주시 봉곡동, 76세, 남)) 20년 전에 처음 보게 되었다. 지금처럼 경기장 같은 것은 없었고 말뚝 박아서 했지. 개천예술제 구경하러갔다가(서장대 밑 에서 할 때) 소싸움구경도 하고, 뿔 치기 뭐 그런 것 재미있지. 흥미를 느끼는 거라, 그렇기 때문에 자꾸 찾아가고 그러는 거야. 보고 있으면 재밌잖아. 모든 경기는 응원하는 쪽이 있다. 운동선수도 마찬가지고, 동물도 마찬가지고 내가 저소가 잘 하는가보다 판단해서, 그쪽에 마음에 쏠려가지고 마음속으로 응원 하는 거지. 그런 식으로 느껴지는 거라. 처음에는 잘하 다가 끈질기게 하다가 못하다가 도망가는 것들이 있다. 248 경남의 민속문화 249
3장 싸움소의 주인공, 싸움소 키우기 에게 선별 기준을 가르쳐주는 것을 꺼린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싸움소의 기준은 언급하되, 오랜 경험과 숙련 을 통해 습득한 개인적 변별 방법을 언급하는 것을 금기시 한다. 최근에 투우협회에 가입한 우주들은 싸움소에 대한 정보가 생소하다. 때문에 월례회의나 대회가 열릴 때 마다 참여하여 1960~70년대부터 소싸움에 관여해온 사람들로부터 싸움소의 성향과 먹이, 훈련방법, 싸움소를 고르는 안목 등을 배운다. 누구 소가 싸움소로 가능성이 있다, 누구 소의 종자가 좋다, 싸움소는 이렇게 키워야 한다. 는 등 경험적 정보를 교류하고 우주들은 사양방식을 취사선택하여 자신에게 맞게 적용한다. 우주들마다 싸움소를 선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 사례를 살펴보자. 싸움소를 선별할 때 다른 사람은 큰 소가 된 기준에서 싸움소의 가능성을 살펴보지만 나는 송아지 때부터 선별한다. 그리고 나중에 장래 이 소가 싸울 수 있는가를 결정짓는 다섯 가지의 기준이 있다. 그 중 3가지 이상이 해당되면 가능하다고 본다. 맨 처음 송아지 때 머리 생김새를 보고, 그다음은 눈을 보고 그다음에 뿔 자리를 봐서 뿔이 어떻게 날것인가를 보고 그다음 에 꽁지(꼬리) 등의 순으로 본다. (2007년 6월 30일, 제보자 탁경득, 사천시, 67세, 남, 진주투우협회회원) 싸움소로서는 400kg이상 되면 윤곽이 드러난다. 소는 2살쯤이다. 소는 어느 정도 뿔 발굽 꼬리 몸 전체를 보고 이 소는 싸움소로 힘을 쓰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 되는 소는 1년 동안 지켜보고 살을 찌워서 육류로 만든다. 용맹성은 눈에서 나온다. 사람도 눈이 작아야 간이 크다고 한다. 눈이 작아야 성질이 못된 것이 보인다. 몸매가 잘빠져야 한다. 몸이 굴곡이 1. 싸움소 발굴과 싸움소 조건 없고 등이 발라야한다. 목이 길어야한다. 목이 길면 넘어서 뿔 밑을 칠 수가 있다. 목이 짧으면 호흡곤란이 빨리 온다. 목 이 긴 소가 유리하다. 다리는 상관없다. 이빨을 보면 나이를 알 수가 있다. 꼬리가 짧으면 끈기가 없다. 척추에서 내려오기 때문에 길어야 힘을 잘 쓴다. 내가 원리를 생각했다. 80%이론으로 맞아 떨어진다. (2007년 6월 30일, 제보자 이도판, 산 싸움소는 몸체가 큰 것은 물론이고 머리 위로 치켜세워진 위력적인 뿔이 있어, 사람들의 접근을 불허한다. 싸움 청시, 54세, 남, 前 진주투우협회 회장) 소는 우리나라 수소로, 대개 그 빛깔이 진한 황갈색이기 때문에 황소라 하기도 하는데, 드물게 검은 줄무늬가 있는 소를 칡소라 한다. 이는 등에다 칡 줄을 감아 놓은 듯이 가로로 얼룩진 무늬를 띠는 소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싸움소는 구입이나 매매 교환 등의 방법으로 획득한다. 우주가 개인 축가에서 우수한 싸움소 의 정자를 구입해서 암소에게 수정하여 새끼를 받아 기르거나 우시장에서 직접 송아지를 구입하여 싸움소로 성장시킨다. 혹은 소싸움대회를 돌아다니며 소를 직접 보고 소주인과 직접 거래를 통해 구입하거나 우주끼리 싸움소를 서로 교환하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어릴 적에 키우던 소를 싸움소로 기르기 전에 다른 주인에게 팔 고 어느 정도 싸움소로 성장시킨 뒤 돈을 더 얹어 주고 본래 주인에게 다시 파는(혹은 자신의 소와 맞바꿈) 맞 교환 방법도 있다. 싸움소를 발굴하는데 있어서는 우주들의 안목이 중요하다. 과거에는 승부욕이 강하고 싸우는 기질이 있는 소를 주로 출전시켰지만, 오늘날에는 대회우승 을 위해 좋은 기량을 가진 싸움소를 선별해야하기 때 문이다. 싸움소를 구별하는 데에 과학적 근거는 없지 만, 우주들 개개인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 해 선별한다. 대부분의 우주들은 우수한 싸움소의 발 굴이 대회 우승과 직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타인 그림 28. 싸움소에 관한 정보를 나누는 우주들(2008년 1월 14일, 진주시) 싸움소는 무엇보다 싸움기질을 가진 공격본능과 외형적인 생김새가 중요하다. 진주투우협회 회원들에 의 하면, 싸움소의 선별은 보통 생후 10개월 정도의 수송아지 일 때 이루어지는데, 싸움소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눈은 작고 매서워야 하는데 이는 소가 겁이 없고 상대 소에게도 무섭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싸 움소가 될 수 있는 체형은 귀가 작고 목이 굵고, 가슴은 넓으며, 등과 뒷다리, 꼬리가 길어야 한다. 엉덩이는 등 보다 낮고, 앞다리 사이는 넓고, 이마는 두껍고 뿔 사이가 좁아야 한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되는 뿔의 모양새도 중요한 요건으로 간주된다. 싸움소의 뿔의 종류는 그 생김새에 따라 천향각( 天 向 角 ), 전향각( 前 向 角 ), 후향각( 後 向 角 ), 일자각( 一 字 角 ), 천지각( 天 地 角 ), 옥뿔 등 다 양한 이름이 있다. 천향각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뿔, 줄여서 천각( 天 角 )이라고도 한다. 하늘을 향해 노고지리 날개처럼 뻗은 뿔을 노고지리뿔이라고 한다. 전향각은 앞으로 향하여 뻗는 뿔로, 전각( 前 角 )이라고 한다. 후향 각은 뒤로 젖혀져 있는 뿔로, 후각( 後 角 )이라고도 하는데 뿔이 뒤쪽으로 뻗어 있어서 싸움소로는 가치가 떨어 진다고 한다. 일자각은 소의 머리 양쪽 옆으로 평평하게 뻗은 뿔로, 비녀뿔이라고도 한다. 천지각은 소의 뿔이 하나는 위로, 하나는 아래로 뻗은 뿔로, 짝째기뿔이라고도 한다. 옥뿔은 안으로 굽은 뿔을 의미한다. 이 중에서 노고지리뿔이 곧고 위로 잘 뻗어 있어 싸움소로서 가장 적합하다. 상대방 소를 공격 할 때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다. 골뱅이처럼 말려들어간 뿔은 싸움소로서 가치가 없다. 우주들에 의하면 뿔의 아 랫부분이 굵고 튼튼하면서 끝으로 갈수록 뾰족하면 상대방을 공격하는데 이상적이라 한다. 250 경남의 민속문화 251
는 소의 위가 튼튼해지고 싸울 때 호흡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대회가 가까워지면 우주들은 콩, 고구마 등을 영 양가 높은 사료와 배합해서 먹인다. 경기직전에 체급조절을 위해 음식량을 줄이기도 하는데, 대신 체력 보강 을 위해 인삼과 보약을 달여 먹이는 경우도 있다. 1936년 당시에 기록된 신문기사를 통해서 소에게 인삼을 먹 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진주명물( 晉 州 名 物 ) 투우광경( 鬪 牛 光 景 ) 진주에서는 칠월( 七 月 ) 백중( 伯 仲 )이나 팔월( 八 月 ) 추석( 秋 夕 )을 이용( 利 用 )하야 투우( 鬪 牛 )를 성대( 盛 大 )하게도 힘을 쓴 다. 심한 사람은 투우기( 鬪 牛 期 )가 되면 소에게 인삼( 人 蔘 )도 삶아 먹인다는 것이다. 33 그림 29. 싸움소 눈(2007년 6월 30일, 진주시) 그림 31. 하늘 위로 뻗은 뿔(2007년 6월 30일, 진 주시) 그림 30. 등이 곧은 싸움소(2007년 6월 30일, 진주시) 그림 32. 하늘 위로 뻗은 뿔(2008년 6월년 8월, 진주시) 싸움소는 대개 2살부터 싸움을 시작하며 6~7살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15살 정도까지 싸울 수 있다. 우주 들은 경험이 적은 1, 2살의 햇소들에게 상대적으로 약한 소와 싸움을 붙여 자신감을 심어주는데 이것을 스파링 붙인다. 라고 부른다. 우주들은 어린 소 두 마리를 스파링을 시켜 자신의 소의 싸움기질을 보고 싸움소인지 아 닌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싸움소로 클 가능성이 있으면 그때부터 싸움소의 사양방식에 맞춰 키우게 된다. 영양가 높은 먹이나 보양식을 먹이는 것은 마치 사람에게 인심과 보약이 효력이 있듯이 소에게도 효력이 있기를 바라는 우주의 바람이 담겨 있다. 이와 같이 소에게 보양식을 주는 관습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오 늘날에는 과거의 먹이와는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약간의 개인차가 있다. 예를 들어 평소에는 보리, 쌀, 콩 등을 삶은 먹이를 하루 3번씩 기본적으로 주지만, 대회출전을 위한 체력관리 차원에서 우주들은 대회 한 달 전부터 인삼, 도라지, 낙지뿐만 아니라, 심지어 닭, 개 등을 고아 먹이기도 한다. 힘을 내서 우승하라는 우주의 강한 집 념으로 연결된다. 간혹 대회 출전 때에는 출전 전에 막걸리나 소주를 먹이기도 하는데 이는 출전 전 소를 흥분시키기 위해 서이기도 하고 소가 머리를 박으면서 싸울 때 고통을 참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싸움이 끝나면 갈증을 해소하고 시원하게 해 주기 위해 냉수나 사이다를 병째로 소의 입에 넣어 마시게 하는 우주들의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리고 싸움소를 자세히 보면 전부 뿔을 다듬은 흔적이 있다. 우주들은 싸움소의 뿔도 다듬어주는 데, 대회 출전을 위해 전날에 대패나 칼, 낫 등의 연장으로 뿔끝을 날카롭게 다듬고 사포로 문질러서 표면을 매 끄럽게 만들어 준다. 진주투우협회 윤용수씨의 경우 생고무, 불칼, 번개 3마리의 싸움소를 기르고 있다. 사육방식은 계절별 로 먹이도 다르고 훈련방법도 다르다. 하루에 먹이를 아침, 점심, 저녁으로 세 번 주는데 여름에는 사료를 주고 겨울에는 짚만 먹인다. 여름에는 사료를 먹이고 겨울에는 짚만 먹인다. 훈련은 여름에는 아침 5시에 일어나면 둑으로 운동 1시간 15분 갔다 오고 죽을 먹이고 쉬었다가 점심 먹고 저녁 5시쯤 산 으로 훈련 간다. 그리고 갔다 와서 저녁으로 죽을 먹인다. 겨울에는 춥기 때문에 해가 뜨고 점심 먹고 훈련을 나간다. 잠은 사육장에서 자는데 평소에는 번개와 불칼과 묶어두고 생고무는 따로 둔다. 여름에는 아침, 저녁으로 2번 항상 소독약을 뿌 2. 싸움소의 사양관리와 훈련 려준다. 겨울에는 춥기 때문에 등위로 이불을 덮어준다. 그리고 뿔 관리는 시합 나갈 때만 한다. 처음에는 낫으로 다듬고 유리로 다듬는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매니큐어로 발라준다. 발톱 다듬는 것은 평소에는 훈련을 많이 시켜서 다듬지는 않지 만 걸을 때 발톱 두 개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면 다른 사람을 불러서 소를 잡으면 낫으로 깎아 준다. (2007년 6월 27일, 제 싸움소들은 일반 한우와는 달리 대회 우승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우주와의 밀접한 관계를 기반으로 한 독특 보자: 윤용수(진주시, 68세, 남, 진주투우협회회원)) 한 사양방식으로 길러지게 된다. 운동선수들이 체력을 위해 음식을 신경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싸움소 역시 보 통의 소들은 구경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좋은 먹이들로 체력관리에 노력을 기울인다. 1960~70년대부터 싸움소는 평소에 콩, 밀, 보리껍질 등을 끓인 화식( 火 食 )을 먹였다. 화식을 주는 이유 33 영남춘추, 1936년 8월 15일자. 252 경남의 민속문화 253
그림 33. 여물 끊이는 솥(2007년 6월 27일, 진주시, 우주 윤용수) 그림 34. 싸움소 여물(2007년 6월 27일, 진주시, 우주 윤용수) 사례 (1) 우주 윤용수 34 하루에 훈련 1번 정도 나간다. 소에 성격에 따라 훈련을 시키는데 싸움소 생고무 는 둑으로 훈련 갔다가 돌아올 때 반드시 쉬어줘야 한다. 생고무는 빗질을 좋아하고 때리는 것을 싫어한다. 그리하여 평소에 몸에 붙은 쇠파리를 파리채나 기타 도 구로 때려잡는 것을 싫어한다. 처음에는 이 소를 훈련시킬 때는 소의 성향을 파악하지 못해서 소에게 몇 번 받힐 뻔하였다. 둑으로 걷는 반복 훈련을 통해 소의 기질을 파악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소가 쉬어야 할 때에는 반드시 쉬도록 내버려 둔다. 이 소는 운동하러 가기 전 주인이 고삐를 붙잡으면 운동 나갈 것을 안다. 훈련을 가지 않으려고 할 때에는 조심스럽게 다 루어주어야 한다. 또 다른 싸움소 불칼 은 순하기 때문에 타이어를 끼우며 훈련을 한다. 나는 훈련시킬 때 둑까지 자전거 를 타고 소는 뛴다. 불칼도 순해서 빗질을 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훈련을 시킬 때는 타이어를 끌면서 둑을 왕복한다. 마지 막 소 번개 도 때리는 것을 싫어한다. 평소에는 순한데 시합에만 나가면 거칠어진다. 평소 아침에는 둑으로 훈련을 나가지 만 저녁에는 산을 오른다. 성격이 거친 소는 같이 훈련을 받으면 싸움이 붙을 수도 있기 때문에 훈련 나갈 때는 불칼과 다 른 소 번개 와 같이 나가지만 성격이 사나운 생고무와는 같이 나가지 않는다. 소의 몸집이 작아도 승부욕이 강해 큰 소에 게 덤비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번갈아서 오전에는 불칼과 번개, 오후에는 생고무로 시간대를 바꿔가면서 훈련시킨다. 그리 고 평소 소를 방목시킬 때에도 불칼과 번개는 근처에 묶어두지만 생고무는 따로 묶어둔다. 그림 35. 싸움소 사료(2007년 6월 27일, 진주시, 우주 윤용수) 그림 36. 싸움소를 빗질하는 윤용수(2007년 6월 27일, 진주시) 사례 (2) 우주 이을부 35 싸움소 큰우 는 싸움을 해보면 괜찮은데 싸움을 잘 안하려고 한다. 시합 전에 타이어로 끌고 2시간 정도 살살 걸어준다. 소 가 훈련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억지로라도 훈련을 시켜야한다. 매일 하루라도 훈련을 안 시켜주면 그 다음날부터 소가 운 동을 안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훈련은 보통 한 마리씩 해준다. 싸움소는 잘 먹이는 것만큼 관리와 훈련도 중요시한다. 우주는 경기에 출전시키기 위해 평소에 싸움소를 잘 관리하며 꾸준하게 가꿔준다. 우주는 이른 아침부터 우사( 牛 舍 )를 청소하고 깨끗한 짚을 깔아 주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아침식사로 여물을 먹이고 야외에 돌아다니게 하거나 매어 놓는다. 오후쯤에는 털을 빗겨 주 거나 브러시로 긁어 싸움소를 손질해 준다. 특히 여름에는 소독약을 자주 뿌려 소의 위생에 신경을 쓴다. 소 주인은 평소에 싸움소 관리를 하면서 규칙적인 훈련을 시킨다. 훈련을 시키지 않으면 살이 찌고 동작 이 느려서 싸움소로서 기능을 잃게 된다. 시합을 출전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만반의 준비를 해두어야 하므로 싸 움소는 싸움이 없을 때에도 대부분 주인과 함께 훈련을 한다. 싸움소를 매일 일정시간 훈련을 시키는데, 훈련 방법은 일정한 거리를 달리게 하여 순발력과 지구력을 기르고, 짐 끌기를 하여 체력을 연마하고 인내심을 기른 다. 짐 끌기는 평평한 둑이나 주변의 산을 훈련장소로 지정하여 반복적으로 타이어를 끌게 하거나 산을 오르게 한다. 그리고 땅에 말뚝을 엑스(X)자 형태로 박아 두어 뿔을 박거나 갈게 한다. 평소에 우주는 싸움소의 기질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소의 성향에 따라서 훈련방법을 달리하는 것 이다. 사례 (3) 우주 백인상 36 싸움소 백호 의 성격은 집에서는 순한데 시합에만 나가면 긴장을 한다. 소를 훈련시킬 때 체력강화와 기술을 한두 가지만 집중적으로 시킨다. 훈련은 산으로 많이 오르고 하루에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정도 한다. 여름에는 오전에 겨울에는 주로 낮에 훈련을 시킨다. 여름에는 사람이 힘든 것처럼 소도 힘들어한다. 산에 올라갈 때 싫어해도 매일 가는 코스는 가주어야 한다. 오르막길을 올라가기 때문에 정상에서 일분 정도 쉬어서 내려온다. 소는 자기가 쉬는 장소에 가면 알아서 쉰다. 처 음에 모를 때는 많이 힘들었으나 10일정도 길들이면 가능하다. 소도 감정이 있기 때문에 마음에 안 들어도 절대로 때리지 않고 장난치듯이 달래준다. 이렇듯 소의 성격을 알고 있어야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고 길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들은 소들을 함 부로 다루지 않고 마치 자식과 같이 다룬다. 싸움소로서의 상품성은 사양방식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싸움소를 어떻게 사양관리 하느냐에 따라 즉, 소를 잘 먹일수록, 훈련을 잘 시킬수록 그리고 싸움소와 호흡을 잘 맞춰야 대회우승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의 정성이 대단해질 수밖에 없다. 우주들은 만일 대회에서 패배 34 2007년 6월 27일, 제보자: 윤용수(진주시, 68세, 남, 진주투우협회회원) 35 2007년 6월 30일, 제보자: 이을부(진주시, 35세, 남, 진주투우협회회원) 이을부는 큰우, 만불, 호탄1, 2, 3, 4호를 기르고 있다. 36 2007년 6월 30일, 제보자: 백인상(진주시, 29세, 남, 진주투우협회회원) 백인상은 백호, 독사, 돌풍, 천하무적을 기르고 있다. 254 경남의 민속문화 255
라도 하면 다음 대회에 우승을 향한 자존심대결로 이어져 다음 경기를 대비해 더 강도 높은 훈련을 진행한다. 우주들은 대회 종료 후, 몸에 상처가 난 싸움소를 치료 해준다. 전통적인 치료방법으로 우주들 사이에서 는 오줌 습포( 濕 布 )를 사용한다. 오줌 습포는 소싸움으로 생긴 이마의 상처에 사람의 오줌과 약초를 넣고 끓 인 물을 수건(헝겊) 등에 적셔서 환부에 대어 염증을 치료하는 것이다. 대회장을 돌아다녀보면, 상처 난 싸움 소를 치료하기 위해 머리 부분에 수건으로 감싸놓은 소들을 볼 수 있다. 민간요법으로 상처의 소독과 뜸의 효 과가 있어 우주들 사이에서 자주 이용한다. 혹은 일시적인 고통을 줄이고 상처 난 곳을 치료하기 위해 핑크스 킨이나 연고를 발라준다. 3.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싸움소의 기술 두 마리의 소가 싸움터에 나가면 처음에는 서로 노려보며 탐색전을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달려들 어 떠받으면서 싸움을 시작한다. 소싸움은 두 소들 간의 대항전으로 화려한 기술을 구사하며 저돌적인 소들이 관람객들로부터 많은 환호를 많이 또 인기가 있다. 그만큼 흥미진진한 경기이기 때문에 긴장감도 한층 고조 된다. 소가 싸울 때면 대개 주인도 소의 옆에 붙어서 열심히 응원을 하는 게 보통이다. 양쪽 소가 싸움이 붙으 면 주인은 소의 머리 쪽에 붙어 서서 잘한다, 박아라, 찔러라, 찍어눌러라 등의 명령성 구호를 외치면서 소 의 사기를 돋운다. 소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소들의 강력한 힘이다. 힘이 압도적으로 센 소는 비슷한 기 술의 소는 물론 더 나은 기술을 가진 소라도 능히 제압 할 수 있다고 하니 강력한 힘이야말로 소싸움에서 최대 강점으로 활용된다. 그러나 힘으로만 승부가 난다면 오산이다. 소싸움은 다양한 기술로 재미를 더한다. 소싸움 이 시작되면 상대 소를 이기기 위해서는 힘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다. 진주투우협회에서는 관람 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소싸움의 기술을 다음과 같이 8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37 첫 번째는 들치기 이다. 자신의 뿔로 상대 소의 뿔 밑을 들어 올리면서 걸어 상대 소의 목을 비트는 기술 로 싸움소의 노련미와 체력을 동시에 요하는 기술이다. 두 번째는 머리치기 이다. 정면에서 상대 소의 머리를 치며 공격하는 기술로 소싸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기술이다. 세 번째는 목치기 이다. 긴 뿔로서 상대 소의 귀 뒤 급소를 공격하며 상대 소의 목을 안아 밀치는 공격이 다. 싸움소끼리의 신경전이 펼쳐지면서 이어지는 공격기술이다. 네 번째는 뿔치기 이다. 뿔을 좌우로 흔들어 상대의 뿔을 치며 공격하는 기술로 직접적인 공격이라기보 다는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이다. 다섯 번째는 옆치기 이다. 크게 옆으로 돌아 상대 소의 옆구리 쪽 배를 공격하는 기술로 경기를 마무리할 때 사용하는 결정적인 공격기술이다. 여섯 번째는 뿔걸기 다. 상대방의 뿔을 걸어 누르거나 들어 올리는 공격으로 잘 단련된 뿔을 이용한 적극 적인 공격 기술이다. 일곱 번째는 밀치기 이다. 온 힘을 다해 서로 밀어 붙이는 기본 기술로 싸움소의 기초체력과 특유의 뚝 심을 필요로 하는 기술이다. 힘이 모자라는 소가 뒤로 밀리다가 머리를 땅에 부딪칠 수도 있으므로 상당히 위 험하다. 여덟 번째는 연타 이다. 이것은 뿔치기 뒤에 머리치기로 이어지는 연속 공격 기술로 상대 소에게 틈을 주 지 않고 공격하는 것으로 승률이 높은 기술이다. 우주들에 따르면 8가지 기술 이외에 싸우는 형태에 따라 좌우치기, 배치기, 찍어 누르기, 덮치기, 힘겨루 기 등의 기술로 파생된다. 좌우치기 기술은 뿔로 상대방 소의 머리 양옆을 연이어 공격하는 것인데 마치 권투 선수가 좌우공격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 기술이다. 이러한 싸움소의 기술은 다년간 경험이 있는 우주들에 의해 구전되었다. 소는 머리와 뿔만 이용하기 때문에 싱겁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다양하고 재미있는 소싸움 기술을 알고 본다면 소싸움 특유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 4. 싸움소 이름 붙이기 소싸움대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투우협회 내에서는 2001년부터 싸우는 소들을 구분하기 위해 싸움소에게 개체명 을 붙이고 있다. 개체명이란 소를 부르는 호칭으로 대회와 같은 공식석상에서 쓰여 지는 소의 이름을 말한다. 과거에는 소를 부를 때 누구누구 댁 소, 김약국 소, 한의원 소 등 주인의 택호나 직업, 지역명을 따서 붙 였다. 현재는 주인의 특징을 가져와 소 이름으로 붙이거나 혹은 점박이, 덩치, 번개, 노랑이, 곱슬이, 순둥이 등 소의 모양새와 성격을 보고 개체명을 붙인다. 현재 진주투우협회 회원들은 히트, 생고무, 불칼, 타이슨 등 다양 한 이름을 붙인 싸움소들을 보유하고 있다. 개체명은 우주들의 개인 기호와 지역의 특성을 보여 줄 수 있는 인 근의 산이나 자연환경의 명칭을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싸움소의 개체명을 돈을 주고 작명소( 作 名 所 )에 서 이름을 짓는 경우도 있다. 혹은 대회에서 우승한 소들의 이름을 따서 짓는 경우도 있다. 이는 소에게 좋은 개 체명을 붙여줄수록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다는 우주의 기대심리가 투영된 것이다 소에게 개체명을 부여하는 것은 우주가 소를 자연스럽게 부르고 쉽게 길들이기 위한 의도가 크다. 뿐만 아 니라 싸움소들이 격렬한 경기를 하다보면 모습이 비슷비슷해 일반 관중들이 서로 분간하기 힘들기 때문에 관 람객의 편의를 위해 붙이게 되었다. 또 대회출전 때마다 싸움소의 등에 대웅이, 비호, 반성1호 등과 같이 개체 37 참진주 소싸움 홈페이지(http://bulls.jinju.go.kr/main/) 그림 37. 소등에 개체명을 적고 있는 우주(2007년 6월 23일, 진주시) 그림 38. 싸움소의 개체명(2007년 6월, 23일, 진주시) 256 경남의 민속문화 257
명을 새기고 동일하게 대진표나 홍보책자에도 개체명이 게재된다. 마땅한 개체명이 없을 경우에는 무명( 無 名 ) 으로 대회에 내보내기도 하였다. 38 우승한 소의 개체명은 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몸값이 상승하 여 대회 인지도를 높였다. 소의 등에 기재된 개체명을 통해 우주들은 자신의 식육점, 농장의 상호명 혹은 지역 을 홍보하는 등의 효과를 얻고 관람객들은 두 소가 싸울 때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이점이 생겨났다. 소의 개체명 은 우주에게 대회의 우승을 상징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38 1982년부터 2008년까지의 진주전국민속소싸움대회 팸플릿을 살펴보면, 2001년부터 우승 순위에 소의 개체명과 우주의 이름을 같이 표기하였고 소의 개체명이 없을 경우에는 무명( 無 名 )으로 표기하였다. 258 경남의 민속문화 259
4장 소싸움을 둘러싼 문화요소 1. 소와 관람객을 구분하는, 소싸움 판 소싸움 판은 소싸움 경기가 벌어지는 장소로, 도시 개발이 전개되기 이전에는 주로 백사장이나 논밭, 공터 등 에서 열렸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백사장이 모래로 되어 있기 때문에 소 발굽에 자갈이 끼일 염 려가 덜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백사장의 모래를 많은 쌀에 비유하여 이곳에서 소싸움을 개최하면 다음 해 의 농사가 풍작이 된다고 믿었기 39 때문이었다. 1960~70년대의 진주소싸움은 아무런 안전시설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으나 차츰 구경꾼들이 몰리게 되면 서 안전과 질서를 위한 장치가 필요해졌다. 진주투우협회는 싸우던 소가 군중 속으로 뛰어 들어가거나 인파가 싸우는 소의 움직임을 따라 다니는 무질서를 막기 위해 새끼줄로 울 장을 만들었다. 사방에 말뚝을 박고 새끼 줄을 쳤는데 길이가 100m 정도 될 정도로 넓었다고 한다. 40 새끼줄이 소싸움장과 구경꾼을 경계로 구분하면서 구경꾼들은 그 선을 넘어 갈 수 없게 되었고 울 장 밖에서 소싸움을 관람하였다. 투우협회에서는 새끼줄만으로 감당 못 할 정도로 많은 관람객이 몰리면 아예 긴 횡목을 박아 방책을 만들기도 하였다. 강물 쪽에는 방책이 없 어 반달 모양의 소싸움장이 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1980년대에는 소의 몸길이와 패배해서 돌아가는 소의 시간 적 여유를 고려하여 울 장을 원형으로 만들었다. 1960년대 진주지역의 소싸움은 지금의 동방호텔과 합동주차장이 있는 장대동 남강 백사장, 장대동 강 건 너 문화예술회관 대나무밭, 그리고 진주농업고등학교 부근의 넓은 공터에서 열렸다. 그 당시 오늘날의 장대동 동방호텔 부근과 그 옆 진주시외버스터미널(합동주차장) 뒤쪽은 모두 백사장이었다. 소싸움은 매년 다른 장소에서 개최되었다. 1972년에서 1977년까지는 공설운동장 서편 보조경기장에서, 1978년에는 진주시장( 市 長 ) 이병내가 진양호( 晉 陽 湖 ) 근처의 공터를 임시 소싸움경기장으로 만들었다. 이곳 은 지리적으로 시의 중심과 멀리 떨어진 탓에 관람객이 찾아오기에는 불편함이 있어 1980, 81년에는 서장대 고수부지 밑 남강 백사장으로 옮겨와 경기를 치렀다. 하지만 1982년 진주시에서는 서장대 밑 남강부지의 대회 장소에서의 소싸움 개최는 도시 미관 저해와 하천오염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허용하지 않았다. 1982~86 년에는 다시 공설운동장에서, 1987년에는 서장대 및 고수부지로 옮겨왔다. 진주시는 1989년에 이곳을 체육( 시민)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모래를 뒤덮었다. 평소에는 체육시민공원으로 민속씨름을 하는 장소로 사용하였고 소싸움대회가 개최 될 때는 소싸움대회 장소로 사용하였다. 2005년도까지 서장대 밑 고수부지는 체육(시민) 공원인 동시에 소싸움 대회가 열려 시민들은 소싸움 장으로 인식하였다. 41 이후 소싸움은 서장대 밑 고수부지 에서 개최되어 오다가 2006년 진주시 판문동에 진주전통상설경기장 설립을 계기로 매년 이곳에서 경기를 치 르고 있다. 소싸움 장은 매회 다른 지역에서 개최되면서 싸움소와 관람객의 구분이 명확해졌다. 과거의 소싸움 은 넓은 공터만 있으면 벌어졌다. 관람객의 안전을 위해 줄을 쳤는데, 관람객은 줄 너머로 소싸움을 앉아서 혹 은 서서 구경하였다. 심하면 줄을 넘어가 응원하기도 하였다. 오늘날에는 상설경기장이 설립되면서 소싸움 장 소가 고정화되었다. 관람의 편의를 위해 지정된 장소에서만 열리고 스포츠 경기처럼 좌석에서 울 장을 내려다 보며 관람하게 되었다. 2. 소싸움 경기의 규칙 그림 39. 장대동 소싸움장(1970년대,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그림 40. 남강 고수부지 소싸움장(1990년대,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과거의 소싸움은 소의 크고 작음에 구애받지 않고 힘과 기술로 한판승부를 겨루었다. 근래에 와서 대회형식으 로 전향함에 따라 경기승패의 정확성과 공정성을 가리기 위해 대회 규정과 경기방법 등이 제도화되었다. 40 2008년 7월 30일, 제보자: 정현택(진주시, 68세, 남, 수의사) 39 고원규 심상화, 1998, 앞의 글, 13쪽. 41 1992~94년에는 고수부지 부근 천수교( 千 壽 橋 ) 교량 건설로 인하여 서장대에서 개최를 못하고 공설운동장 뒤편으로 임시로 옮겨 가기도 하였다. 260 경남의 민속문화 261
해방 이전에는 등을 먼저 돌린 소가 경기에서 지는 것으로 판정하였다. 이때에는 단순히 승패만 중요시 했 을 뿐, 특별히 소싸움의 경기방법과 규칙은 중요시 되지 않았다. 경기에서 우승하기 위해 우주들은 경기 도중에 자신의 소 등 뒤에 서서 상대방 소 눈에 발로 흙을 차 넣기도 하고 구경꾼들은 소들이 싸우는 곳 가까이 와서 소 등을 때리거나 발로 차는 등 부정적 관행을 일삼았다. 진주소싸움은 1970년대에 들어 투우협회가 결성되면 서 정현택(당시 협회 총무)을 중심으로 대회 정관 및 규정을 명문화시켰다. 투우협회는 협회운영의 제도적 방 침으로 대회 정관과 대회의 원만한 진행, 판정시비와 질서유지, 그리고 소싸움대회의 체계화를 위한 대회 규정 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982년에는 한국투우협회라는 이름의 사회단체로 등록하면서 대회 규정 및 규칙도 정 립하였다. 그러나 초창기에는 대회 규정이 정해져 있었지만 이미 자유분방한 형태의 소싸움에 익숙한 우주들 은 규정을 지키지 않아 경기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42 고 한다. 다음은 1980년에 진주투우협회에서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기 위해 내부에서 정한 대회 규정 및 규칙이다. 5. 대전을 명할 시는 즉시 대전을 하여야 하며 만약 대진을 명한 후 15분이 경과하여도 대전에 응하지 않으면 기권 또는 일방패자로 판정한다. 6. 대전 시작 후 30분이 경과하여도 소싸움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는 추첨으로 승패를 결정한다. 7. 대전 중 축우 측 응원자는 대전을 방해하는 행위 또는 이에 준하는 행위도 인정되는 모든 행위에 대하여 심판원은 응원자의 퇴장 또는 패자로 판정할 수 있다. (단, 빨간 유니폼이나 이에 유사한 표시는 금한다.) 8. 대전 중 본 규정에 명시된 관계자 외 하인을 막론하고 장내 출입을 금한다. 만약 축우 측 응원자의 무질서한 출입 으로 장내 질서를 물란 게 하였을 시는 심판원이 판정에 따라 패자로 결정할 수 있다. 9. 심판 상 이의가 생겼을 시는 심판장이 결정하는바에 따른다. 만약 심판장의 결정에도 계속 의의가 생겼을 때는 기 권 또는 패자로 선언할 수 있다. 10. 대회 진행 중 본부요원에게 폭언 및 폭행을 가한 자는 사직 당국에 고발은 물론 해당 축주에 대하여 당해 및 차 3 년에 대하여 본 투우대회에 출전자격을 박탈한다. 사단법인 진주투우협회 대회 규정 및 규칙 제 5조 : 대전 투우대회 규정 대전은 각종별로 토너먼트로 진행한다. 제 1조 : 목적 가축의 개량 증식을 도모하여 양축가의 사육 의욕의 고취와 과학적 사양기술 개발로 축산농가 소득 증대에 공헌함 을 목적으로 한다. 규칙 1. 본 대회 진행 중 고의 또는 모든 사고(인축 공통)에 대하여 본 대회(주최)로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2. 대회장은 대회진행상 대회의 진행자가 심판의 결정권을 지명위임 할 수 있다. 제 2조 : 정의 * 출처 : 1980년도 진주투우협회 월례회의록. 1. 한모우로서 지역사회의 전통인 투우대회를 말한다. 2. 우수한 한모우의 선발전시에 한하여 한우 사양을 양양시킨다. 대회 규정에는 대회 출전자격과 방법, 그리고 소싸움의 승패 결정방식 등이 명시되어 있다. 승패를 결정 제 3조 : 출전 1. 국내에서 사육한 한모우의 축주는 하인을 무관하고 출전시킬 수 있다. (단, 필요에 따라 축주의 거주 지역을 제한할 수 있다) 2. 투우 대회에 출전시키고자하는 축주는 출전 신청서(별도서식)를 제출하고 소정의 검사를 받아야 한다. 제 4조 : 심사 1. 심사위원은 3명으로 구성하고 대회장이 심사위원장이 되며 필요에 따라 심사위원을 증감할 수 있다. 2. 출전을 신청한 축주는 심사위원의 지시에 따라 심사에 응해야 한다. 3. 심사위원은 축전 축주의 등급(갑, 을, 병)을 심사 구분한다. (단, 그 때 사항에 따라 특갑, 특을과 특병도 선정할 수 있다.) 4. 투우가 대전 중 대항을 거부하고 후퇴한 경우 1분 이상을 경과할 시는 패자로 판정한다. 하는 심판의 역할이 분명해졌으며, 울 장을 중심으로 우주와 구경꾼이 분리되었다. 대회 규정은 경기에 참여 하는 우주들의 기본 지침서가 되었으며, 대회에 참여하는 우주들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하나의 규율로 작용하 게 되었다.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우주들에게는 그에 해당되는 제재가 따르도록 표기되어 있다. 또한 소싸움대회 동안 사행성 도박을 성행하거나 경기에 편법적으로 참여하는 우주들이 증가함에 따라 이를 금지하는 행동지 침을 강화 하였다. 예를 들어, 1986년 제 4조 심사의 규정에 대회 명예나 질서 및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는 행 위 등에는 해당 축주는 물론 해당 축우에 대하여도 3년간 본 투우대회의 출전자격을 박탈한다. 심판원의 요청 에 의하여 양측 우주의 합의(일방패자로 간주될 때)로 일방패자의 승부를 가름할 수 있다. 약물 및 그에 유사 한 생약제나 그 외 식물성이나 동물성 분비물이나 이에 유사한 외부 도포나 살포는 퇴장하며 비눗물로 씻고 지 정된 수의사의 지시에 따라 제거한 후 대전에 임한다. 단, 상황에 따라 대전에 영향을 미칠 때는 출전을 거부당 한다. 관중이나 경기 진행상 포악한 투우는 출전을 정지 시킬 수 있다(대회장 및 심사, 심판의 합의 하에). 43 라 42 2008년 5월 23일 제보자 : 강귀희(진주시, 64세, 남, 진주투우협회원). 43 1986년 대회규정, 진주투우협회 회의록참조. 262 경남의 민속문화 263
는 문구를 삽입하여 규정을 강화하였다. 해를 거듭할수록 소싸움 경기는 예상치 못한 우발적인 사고가 발생하게 되었고 이를 대처하기 위한 새 로운 규정들이 생겨났다. 때로는 경기규모와 시기에 따라 규정 자체가 적절하게 변경되거나 삭제되기도 한다. 매년 전국단위의 소싸움대회와 같이 큰 경기에는 전국에서 소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경기 소요시간이 많이 걸 린다. 한정된 기간과 시간에 대회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경기시간을 단축시킬 필요가 있다. 가령, 2008년 진주 전국민속소싸움대회에 338두가 참가했는데 6일내에 경기를 마치기 위해 하루에 약 60경기가 치러졌다. 때문 에 심판들은 빠른 시간 안에 싸움소의 승패를 결정해야만 한다. 기존의 대회 규정 제4조에는 투우가 대전 중 대항을 거부하고 후퇴한 경우 1분 이상을 경과할 시는 패자로 판정한다. 대전을 명할 시는 즉시 대전에 임하 여야 하며 만약 대전을 명한 후 15분이 경과하여도 대전에 응하지 않으면 기권 또는 일방패자로 판정한다. 대 전 시작 후 30분이 경과하여도 소싸움이 아니라고 판단될 때는 추첨으로 승패를 결정한다. 라고 명시되어 있 지만 2008년 10월의 대회 규정에는 경기도중 상대방 소가 후퇴할 경우 1분경과 후 심판이 승패를 결정한다. 로 축소 개정되었다. 대회 규정에는 1분이라고 제안되어 있지만, 승패의 결정방식은 심판들의 재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심판은 그들만의 규칙으로 빠른 경기를 진행한다. 예를 들면, 대항 중 한 소가 등을 돌리고 링을 반 바퀴 이상 돌거나, 상대는 도망을 가다가 섰는데 공격소가 쫓아가지 않거나, 상대 소가 5초 이내에 돌아오지 않는 등의 경 우에 해당되는 소를 심판이 호각을 불어 패한 것으로 인정해버리는 것이다. 만약 대회규정에 따라 1분도 채 안 되어 자신의 소가 졌다고 판정될 경우 우주들은 심판에게 항의를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소싸움대회의 운영을 위한 대회 정관과 대회 규정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시행한 것은 당시 진 주투우협회가 처음이었다. 진주투우협회가 만든 대회 정관과 규정은 이후 타 지역에서의 투우대회 정관과 규 정에도 반영되고 있다. 대회 정관과 규정의 명문화는 활발한 대회 진행을 도모하고, 오늘날 소싸움대회가 체계 적으로 만들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을 때, 내려가던 추가 다시 올라와 멈추는 수치로 소의 무게를 측정하였다. 이때, 우주는 소의 무게가 덜 나가 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무게 측정 할 때, 재빨리 추를 잡아 무게를 적 게 측정하거나, 우주가 뒤에서 발로 저울을 지그시 누르기도 했다. 이를 저울치기 라 부른다. 이러한 관행은 우 주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졌는데, 소의 무게가 줄면 상대적으로 무게가 적은 소들과의 경기를 치루기 때 문에 경기에서 유리해진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소의 흉부를 자로 재어 체형을 가늠하였다. 당시 협회의 총무이자 수의사였던 정현택 을 비롯한 수의사들의 주관 하에 소의 무게 측정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개체별 심사는 정확하지 않아 부정적인 방법들이 속출하였다. 오늘날에는 전자저울의 도입으로 소의 무게를 자동으로 측정한다. 부정적인 관행들이 사 라졌고 동시에 소의 무게 측정을 둘러싼 이의제기도 줄어들었다. 대회 초창기의 개체 심사는 대회 당일에 이루어졌으나, 오늘날의 개체 심사는 대회 참여 두수의 증가로 대 회 경기 전날에 이루어진다. 진행은 대회주최 측에서 2명, 각 지역 협회에서 추천한 사람 1명씩의 입회하에 싸 움소의 종별 심사를 분류하고, 진주투우협회 회장단(회장, 부회장 포함)의 승인에 따라 이루어진다. 대회 규정에 의하면 개체에 따른 등급은 갑, 을, 병종 3등급으로 나누어진다. 1983년쯤부터 기준 체중을 월등하게 초과한 소의 출전이 증가하여 일반종과 특종으로 구분하기 시작하였다. 2005년부터는 <표 3>과 같이 종전의 3등급(갑, 을, 병)을 특갑종, 갑종, 특을종, 을종, 특병종, 병종 6등급으로 세분화 하였다. 45 표 3. 유형별 싸움소의 몸무게 변화 (단위: kg) 종별 1983 1984 1990 1993 1994 2003 2005 2008 특갑종 811~무제한 821~무제한 갑종 601~700이상 621이상 630이상 650이상 670이상 741이상 741~810이하 751~820이하 특을종 696~740이하 706~750이하 을종 501~600이하 521~620이하 530~630이하 550이상 570이상 651이상 651~695이하 661~705이하 특병종 616~650이하 626~660이하 3. 소싸움의 체급규정과 승패 병종 500이하 520이하 530이하 550이하 570이하 580이하 615~580이하 600~625이하 * 자료 : 진주투우협회 월례회의록 참고 초창기의 소싸움은 소의 나이와 외형을 육안으로 보고 비슷한 체형끼리 대결을 붙였다. 우주는 상대방 소가 자 신의 소보다 크거나 불리한 점이 있으면 싸움을 붙이지 않기도 했다. 두 우주간의 합의가 있어야만 소싸움을 붙일 수가 있었다. 44 오늘날에는 눈짐작으로 소를 구분하여 경기를 치르기보다 경기의 형평성을 부여하기 위해 소의 무게에 따라 갑, 을, 병종 3등급으로 나누어 경기를 치른다. 무게에 따른 등급은 개체별 심사를 통해 구별 하는데 진주소싸움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1970~80년대에는 달관심사 라 하여 선망 있는 심사위원 3명이 소의 외관을 보고 어림잡아 무게를 정하 였다. 투우협회 내에서 소싸움 경험이 많고 사회적 지위 등을 고려한 세 명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하였다. 개체 별 무게 측정방법은 추가 달린 일반저울을 이용하여 소의 몸무게를 달았다. 심사위원은 소가 저울 위로 올라갔 체급의 세분화는 싸움소의 보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종과 일반종의 체급으로 나누어지기 전에는 두 소간의 무게가 약 50~100kg까지 차이가 났다. 이러한 차이를 줄이기 위해 투우협회에서는 자체 회의를 통해 체급을 세분화시켜 싸움소를 보호하고자 하였다. 6체급의 갑종에서 811kg이상은 특 갑종으로, 나머지는 일반 갑종으로, 을종에서 696~740kg은 특을종, 나머지는 일반을종이 된다. 그리고 병종에서 616~650kg은 특병종, 615~580kg은 일반병종으로 구분된다. 또한, 580kg이하의 소는 대회에 참가할 수 없도록 규정하였다. 투우협 회에서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싸움소의 몸무게에 제한을 둔 것은 육안으로 보기 좋은 외형과 체격을 갖춘 싸 움소들이 싸울 때에도 어느 정도 힘이 받쳐 주어 관광객들에게 좋은 경기를 보여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 44 2009년 1월 31일, 제보자: 백준상 (진주시 명석면, 79세, 남, 농업). 45 경남일보, 2005년 5월13일자. 264 경남의 민속문화 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