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그림은 고대 인도에서 사용한 명상( 冥 想 ) 의 도구인 만다라 이다. 가운데 위를 향하는 삼각 형과 아래로 향하는 삼각형이 각각 대립하고 있으나 원이 그것을 통합하여 전체성을 부여하고 있다. 전통적인유럽교회의둥근장미창도인간이우주와하나가될수있다는믿음을나타내고 있다



Similar documents
<C0CEBCE2BABB2D33C2F7BCF6C1A420B1B9BFAAC3D1BCAD203130B1C72E687770>

민주장정-노동운동(분권).indd


과 위 가 오는 경우에는 앞말 받침을 대표음으로 바꾼 [다가페]와 [흐귀 에]가 올바른 발음이 [안자서], [할튼], [업쓰므로], [절믐] 풀이 자음으로 끝나는 말인 앉- 과 핥-, 없-, 젊- 에 각각 모음으로 시작하는 형식형태소인 -아서, -은, -으므로, -음

E1-정답및풀이(1~24)ok

6±Ç¸ñÂ÷

<C1B6BCB1B4EBBCBCBDC3B1E2342DC3D6C1BE2E687770>

untitled

최우석.hwp

<C3D6C1BE5FBBF5B1B9BEEEBBFDC8B0B0DCBFEFC8A C3D6C1BEBABB292E687770>

교사용지도서_쓰기.hwp

時 習 說 ) 5), 원호설( 元 昊 說 ) 6) 등이 있다. 7) 이 가운데 임제설에 동의하는바, 상세한 논의는 황패강의 논의로 미루나 그의 논의에 논거로서 빠져 있는 부분을 보강하여 임제설에 대한 변증( 辨 證 )을 덧붙이고자 한다. 우선, 다음의 인용문을 보도록

초등국어에서 관용표현 지도 방안 연구

cls46-06(심우영).hwp

¸é¸ñ¼Ò½ÄÁö 63È£_³»Áö ÃÖÁ¾

0429bodo.hwp

伐)이라고 하였는데, 라자(羅字)는 나자(那字)로 쓰기도 하고 야자(耶字)로 쓰기도 한다. 또 서벌(徐伐)이라고도 한다. 세속에서 경자(京字)를 새겨 서벌(徐伐)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또 사라(斯羅)라고 하기도 하고, 또 사로(斯盧)라고 하기도 한다. 재위 기간은 6

177

제주어 교육자료(중등)-작업.hwp

< BDC3BAB8C1A4B1D4C6C75BC8A3BFDC D2E687770>

01Report_210-4.hwp

<C3D1BCB15FC0CCC8C45FBFECB8AE5FB1B3C0B0C0C75FB9E6C7E D352D32315FC5E4292E687770>



교육 과 학기 술부 고 시 제 호 초 중등교육법 제23조 제2항에 의거하여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을 다음과 같이 고시합니다. 2011년 8월 9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 1.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은 별책 1 과 같습니다. 2.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별책

시험지 출제 양식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체험합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집시다. 5. 우리 옷 한복의 특징 자료 3 참고 남자와 여자가 입는 한복의 종류 가 달랐다는 것을 알려 준다. 85쪽 문제 8, 9 자료

상품 전단지

::: 해당사항이 없을 경우 무 표시하시기 바랍니다. 검토항목 검 토 여 부 ( 표시) 시 민 : 유 ( ) 무 시 민 참 여 고 려 사 항 이 해 당 사 자 : 유 ( ) 무 전 문 가 : 유 ( ) 무 옴 브 즈 만 : 유 ( ) 무 법 령 규 정 : 교통 환경 재

2

DBPIA-NURIMEDIA

화이련(華以戀) hwp

ÆòÈ�´©¸® 94È£ ³»Áö_ÃÖÁ¾

歯1##01.PDF

<5BC1F8C7E0C1DF2D31B1C75D2DBCF6C1A4BABB2E687770>

120229(00)(1~3).indd

< B5BFBEC6BDC3BEC6BBE E687770>

<3130BAB9BDC428BCF6C1A4292E687770>

11민락초신문4호


제1절 조선시대 이전의 교육

사진 24 _ 종루지 전경(서북에서) 사진 25 _ 종루지 남측기단(동에서) 사진 26 _ 종루지 북측기단(서에서) 사진 27 _ 종루지 1차 건물지 초석 적심석 사진 28 _ 종루지 중심 방형적심 유 사진 29 _ 종루지 동측 계단석 <경루지> 위 치 탑지의 남북중심

새만금세미나-1101-이양재.hwp

??

652

歯 조선일보.PDF

<33B1C7C3D6C1BEBABB28BCF6C1A42D E687770>

<C1DFB1DE2842C7FC292E687770>

96부산연주문화\(김창욱\)

???? 1

목 차 국회 1 월 중 제 개정 법령 대통령령 7 건 ( 제정 -, 개정 7, 폐지 -) 1.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 1 2.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 1 3. 경력단절여성등의 경제활동 촉진법 시행령 일부개정 2 4. 대

종사연구자료-이야기방 hwp

정 답 과 해 설 1 (1) 존중하고 배려하는 언어생활 주요 지문 한 번 더 본문 10~12쪽 [예시 답]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한 사 람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으며,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해쳐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04 5

<34B1C720C0CEB1C7C4A7C7D828C3D6C1BEC6EDC1FD D28BCF6C1A4292E687770>

160215

참고 금융분야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 1. 개인정보보호 관계 법령 개인정보 보호법 시행령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전자금융거래법 시행령 은행법 시행령 보험업법 시행령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자본시장과

hwp

580 인물 강순( 康 純 1390(공양왕 2) 1468(예종 즉위년 ) 조선 초기의 명장.본관은 신천( 信 川 ).자는 태초( 太 初 ).시호는 장민( 莊 愍 ).보령현 지내리( 保 寧 縣 池 內 里,지금의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서 출생하였다.아버지는 통훈대부 판무

<C1DFB0B3BBE7B9FD3128B9FDB7C92C20B0B3C1A4B9DDBFB5292E687770>

ad hwp

3. 은하 1 우리 은하 위 : 나선형 옆 : 볼록한 원반형 태양은 은하핵으로부터 3만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 2 은하의 분류 규칙적인 모양의 유무 타원은하, 나선은하와 타원은하 나선팔의 유무 타원은하와 나선 은하 막대 모양 구조의 유무 정상나선은하와 막대나선은하 4.

근대문화재분과 제4차 회의록(공개)

인천광역시의회 의원 상해 등 보상금 지급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의안 번호 179 제안연월일 : 제 안 자 :조례정비특별위원회위원장 제안이유 공무상재해인정기준 (총무처훈령 제153호)이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 (행정자치부령 제89호)으로 흡수 전면 개

교육실습 소감문

1

¼þ·Ê¹®-5Àå¼öÁ¤

109

단위: 환경정책 형산강살리기 수중정화활동 지원 10,000,000원*90%<절감> 형산강살리기 환경정화 및 감시활동 5,000,000원*90%<절감> 9,000 4, 민간행사보조 9,000 10,000 1,000 자연보호기념식 및 백일장(사생,서예)대회 10

歯 동아일보(2-1).PDF

며 오스본을 중심으로 한 작은 정부, 시장 개혁정책을 밀고 나갔다. 이에 대응 하여 노동당은 보수당과 극명히 반대되는 정강 정책을 내세웠다. 영국의 정치 상황은 새누리당과 더불어 민주당, 국민의당이 서로 경제 민주화 와 무차별적 복지공약을 앞세우며 표를 구걸하기 위한

<33352D2D31342DC0CCB0E6C0DA2E687770>

<B9E9B3E2C5CDBFEFB4F5B5EBBEEE20B0A1C1A4B8AE20B1E6C0BB20B0C8B4C2B4D92E687770>

1) 음운 체계상의 특징 음운이란 언어를 구조적으로 분석할 때, 가장 작은 언어 단위이다. 즉 의미분화 를 가져오는 최소의 단위인데, 일반적으로 자음, 모음, 반모음 등의 분절음과 음장 (소리의 길이), 성조(소리의 높낮이) 등의 비분절음들이 있다. 금산방언에서는 중앙

DBPIA-NURIMEDIA

1-1Çؼ³

내지4월최종

주지스님의 이 달의 법문 성철 큰스님 기념관 불사를 회향하면서 20여 년 전 성철 큰스님 사리탑을 건립하려고 중국 석굴답사 연구팀을 따라 중국 불교성지를 탐방하였습 니다. 대동의 운강석굴, 용문석굴, 공의석굴, 맥적산석 굴, 대족석굴, 티벳 라싸의 포탈라궁과 주변의 큰

15강 판소리계 소설 심청전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106월 평가원] 1)심청이 수궁에 머물 적에 옥황상제의 명이니 거행이 오죽 하랴. 2) 사해 용왕이 다 각기 시녀를 보내어 아침저녁으로 문 안하고, 번갈아 당번을 서서 문안하고 호위하며, 금수능라 비

2 국어 영역(A 형). 다음 대화에서 석기 에게 해 줄 말로 적절한 것은? 세워 역도 꿈나무들을 체계적으로 키우는 일을 할 예정 입니다. 주석 : 석기야, 너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인다. 무슨 좋은 일 있니? 석기 : 응, 드디어 내일 어머니께서 스마트폰 사라고 돈

Microsoft Word - 青野論文_李_.doc

<B3EBB5BFB0FCB0E8B9FD20B1B9C8B820B0E8B7F920C0C7BEC828C3D6C1BE29A4BB2E687770>

<B5B6BCADC7C1B7CEB1D7B7A52DC0DBBEF7C1DF E687770>

No Title

부벽루 이색 핵심정리+핵심문제.hwp

입장

PSAT¿¹Á¦Áý ȨÆäÀÌÁö °Ô½Ã (¼öÁ¤_200210) .hwp

京 畿 鄕 土 史 學 第 16 輯 韓 國 文 化 院 聯 合 會 京 畿 道 支 會

<C3D6BFECBCF6BBF328BFEBB0ADB5BF29202D20C3D6C1BE2E687770>

2힉년미술

<B0ADC8ADC7D0C6C428C3D6C1BE292E687770>

PDF

2월 강습회원의 수영장 이용기간은 매월 1일부터 말일까지로 한다.다만,월 자유수영회 원,자유수영 후 강습회원은 접수일 다음달 전일에 유효기간이 종료된다.<개정 , > 제10조(회원증 재발급)1회원증을 교부받은 자가 분실,망실,훼손 및


인 사 청 문 요 청 사 유 서

산림병해충 방제규정 4. 신문 방송의 보도내용 등 제6 조( 조사지역) 제5 조에 따른 발생조사는 다음 각 호의 지역으로 구분하여 조사한다. 1. 특정지역 : 명승지 유적지 관광지 공원 유원지 및 고속국도 일반국도 철로변 등 경관보호구역 2. 주요지역 : 병해충별 선단

김기중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인터넷 내용심의의 위헌 여부.hwp

넓은 들을 배경으로, 낙동강의 풍부한 수자원은 예로부터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꽃피운 상주의 원동력이다. 강은 단순 히 물은 담아 흐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역사 문화를 담고 있는 까닭이다. 또한 강은 크고 작은 여러 하천들이 모여 큰 물줄기를 이룬다. 낙동강 역시 상

< FBBF5BBE7BFAC5FC0CCBDB4C1F8B4DC5FB3AAC8A6B7CEBEC6B5BFB4EBC0C0C3A55B315D2E687770>

기사스크랩 (160504).hwp

(095-99)미디어포럼4(법을 알고).indd

Transcription:

2012학년도 언어능력평가 문제지

왼쪽 그림은 고대 인도에서 사용한 명상( 冥 想 ) 의 도구인 만다라 이다. 가운데 위를 향하는 삼각 형과 아래로 향하는 삼각형이 각각 대립하고 있으나 원이 그것을 통합하여 전체성을 부여하고 있다. 전통적인유럽교회의둥근장미창도인간이우주와하나가될수있다는믿음을나타내고 있다. 오른쪽 그림은 20 세기의 칸딘스키가 그린 몇 개의 원 으로서 공이나 원이 비누 거품처럼 무리 를 이루어 떠돌고 있는데, 이는 원이 더 이상 전 세계를 포괄하고, 그림을 지배하는 유일한 요소 가 아닌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현대인의 영혼이 뿌리를 잃고 분열의 위험에 직면한 것과 무관하 지 않다.

( 가) 관대하신 쿠빌라이시여, 부질없겠지만 높은 보루에 에워싸인 도시 자이라에 대해 묘사해 보 겠습니다. 이 도시에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길들의 계단 수가 얼마나 많은지, 주랑의 아치들 이 어떤 모양인지, 지붕은 어떤 양철판으로 덮여 있는지 폐하께 말씀드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말씀드리는 게 아무것도 말씀드리지 않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저 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도시는 이런 것들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도시 공간의 크기와 과 거 사건들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로등의 높이와 그 가로등에 목매 달아 죽은 찬탈자의 대롱거리는 다리에서 땅까지의 거리 사이의 관계, 그 가로등에서 앞쪽 난간에 묶어놓은 줄과 여왕의 결혼식 행렬을 장식했던 꽃 줄 사이의 관계, 그 난간의 높이와 새벽녘 간통을 저지르다 난간을 뛰어넘는 남자의 급하강 사이의 관계, 창문 홈통의 기울기와 바로 그 창문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당당한 걸음걸이 사이의 관계, 곶 뒤에서 갑자기 나타 난 포함( 砲 艦 ) 의 사정거리와 홈통을 파괴해 버리는 폭탄 사이의 관계, 어망의 찢어진 틈과 부두에 앉아 찢어진 어망을 손질하며 여왕의 사생아로 강보에 싸인 채 이 부두에 버려졌었 다는 소문이 있는 찬탈자의 함선 이야기를 수백 번 되풀이하는 세 노인 사이의 관계로 도시 는 이뤄집니다. 도시는 기억으로 넘쳐흐르는 이러한 파도에 스펀지처럼 흠뻑 젖었다가 팽창합니다. 자이라 의 현재를 묘사할 때는 그 속에 과거를 모두 포함( 包 含 ) 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도시는 자신의 과거를 말하지 않습니다. 도시의 과거는 마치 손에 그어진 손금들처럼 거리 모퉁이 에, 창살에, 계단 난간에, 피뢰침 안테나에, 깃대에 쓰여 있으며 그 자체로 긁히고 잘리고 조 각나고소용돌이치는모든단편들에담겨있습니다. ( 나) 여행자는 티마라 시에 닿습니다. 폐하는 벽마다 간판들이 튀어나와 있는 좁은 거리들을 따라 도시를 가로지릅니다. 눈은 사물이 아니라, 다른 사물들을 의미하는 삼루의 형상들을 바라봅 니다. 펜치는 이[ 齒 ] 뽑는 사람의 집을 가리키고, 큰 잔은 술집을, 미늘창 라진 창)은 수비대의 막사를, 저울은 채소 가게를 가리킵니다. < 중략> ( 끝이 두세 가닥으로 갈 상인들이 판매대 위에 진열해 놓은 상품들도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다른 사물에 대한 기호로서 가치를 가집 니다. 수놓은 머리띠는 우아함을, 금도금한 가마는 권력을, 이븐 루슈드(중세 이슬람의 철학자) 의 책들은 학식을, 발찌는 관능을 뜻합니다. 책장을 넘기듯 시선이 거리를 훑고 지나갑니다. 도시는 폐하께서 생각해야 할 모든 것을 말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되풀이하게 합니다. 폐하 께서는 자신이 티마라를 방문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지만, 사실은 그저 도시가 자기 자신과 각 부분들을 정의하는 이름을 기록하고 계실 뿐입니다. 도시가 이와 같이 조밀한 기호의 껍질 속에 있기 때문에 여행자는 타마라에서 나올 때에 도 도시가 정말 어떤 모습인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숨기고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합 니다. 도시 밖에는 텅 빈 땅이 지평선까지 길게 뻗어 있고 그 위에 펼쳐진 하늘에는 구름이 떠갑니다. 우연과 바람이 만들어낸 구름의 모습들 속에서 여행자는 어느새 범선, 손, 코끼리 의 형상들을 구별하는 데 열중해 있습니다. - 이탈로 칼비노, < 보이지 않는 도시들>

이탈로 칼비노가 그리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 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도시가 아니라 환상적인 가 상의 도시들이다. 마르코 폴로가 중국의 황제 쿠빌라이 칸에게 자신이 방문했던 도시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된 이 작품은 55 개의 도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 도시들은 기억, 욕망, 기호, 교환, 눈, 이름, 죽은 자, 하늘 같은 명사와 섬세한, 지속되는, 숨겨진 같은 형용사로 이루어진 제목과 함께 번호가 매겨져 번갈아 가며 등장한다. 이 도시들은 기억, 욕망, 기호 등 수 많은 것들의 총체이다. 그리고 도시는 경제학 서적에서 설명하듯 교환 의 장소이다. 하지만 이때 교 환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다. 언어, 욕망, 추억 들도 교환될 수가 있다.

사 장 어, 이창수. 오늘부터 우리 사원이니 그리 아슈, 그러구 회계과장. 사원 병 네. 사 장 당장 용돈두 필요할테니 이달 월급일랑 선불하도록 하쇼. 우리 회산 외국인 상대라 옷채 사원 병 림도단정히해야거든.ᄀ우선양복도한벌짓구구두두매게구. ᄂ 현금은 딸라 지폐밖엔 없는뎁쇼. 사 장 더욱좋지. 왜딸라못쓴댔어? 청 년 ( 정에게) 아씨 염려하신 덕분으로 같은 회사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사원 정 사원 병 참 잘됐군요. 그럼 이게 이달 월급입니다. 백딸라. 청 년 백 딸라! 이렇게 많이 주셔요. 이게 우리 돈으로 얼맙니까? 사원 병 흐흐 ᄃ 당신이 좋으면 우리도 좋으니까 사원 갑 그럼 오늘은 일찌감치 퇴근해도 괜찮소. 별로 일도 없으니까. 사원 을 양복점하고 양화점은요, 길가 바로 맞은편에 있으니까 사원 병 어디 미끈허니 갈아입어 보쇼. 이쁜이가 뭐라고 허나. 청 년 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아씨. ( 복도로 퇴장) 사원 정 사원 병 ᄅ 꼭 성공하셔요. ( 정의 목소리로) ᄆ 그래야 우리도 산답니다. - 중략 - 사원 병 틀렸어! 형님. 아까 왔던 자식이 누굴 데불고 오는데. 야냐, 웬 사람헌테 끌여와. 옷두 사원 정 사원 을 아까 그대루구. 또진땀뺄일이생겼군요. 발각났군 그럼. 사원 갑 애 어름어름할 게 아니야. 빨리 아버지께 알려. ( 일동 사장실로) 사원 병 아버지 왔어요. 왔어.

사 장 누가 왔다구 야단들이냐? 사원 정 아녜요, 아버지. ( 귓속말) 사 장 글쎄 그럴 줄 알았지. 사람놈이 너무 미련하더라. 얘들아, 실수했단 안 된다. 자칫하단 아버지 아들 할 것 없이 다아 떼가구 밑천 놓는 판이다. 정신 바짝 채리구 아예 사장이 니과장이니해선못쓴다. 일 동 네, 아버지. ( 청년과 사복, 복도로 등장.) 사 복 여기냐? 청 년 네. 사 복 틀림없지. 청 년 틀림없어요. 여기서 받았어요.( 노크) 사 장 너.( 갑에게) 가서 문을 열어라. 그리고 너희들은 살림방을 꾸미는 척하구 있어. 사원 을 아버지. 난, 난 자꾸만 떨려. 그냥 달아나 버리죠. 아버지. 사 장 에끼 못난 자식. 사내 녀석이 그래 가지구서야 어데다 쓰겠니? ( 갑, 문을 연다. 사복과 청년 들어선다.) 사 복 사장 계십니까? 사원 갑 사장이요? 사 복 회사 책임자 말이오. 사원 갑 우리 아버지 말씀이요? 세대주는 아버지올시다만 어데서 오셨죠? 사 복 용산서원( 署 員 )* 인데요. 저 여기가 간편무역사죠? 사원 갑 간편무역사? 청 년 네, 그렇습니다. 이분이 바로 전무입니다. 그리고 회계과장이 제 지장을 찍구 돈을 내 주셨어요. 그렇죠, 전무 선생님. 사 복 지금 말이 옳습니까? 사원 갑 전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 이해하기 곤란합니다. 청 년 아까 그러지 않았어요. 왜. 사 복 헛헛 이 젊은 친구가 아직두 발악을 합니다. 그려. 저 사장을 잠깐 사원 갑 그런 분은 없다니까요. 사 복 참, 사장이 아니라 춘부장을 좀 봤으면 합니다. 사원 갑 네, 그러시죠. 아버지, 손님 오셨습니다. 사 장 오냐. 침대 맡긴 것 가져왔느냐.( 나온다) 청 년 오! 사장님! 사 복 선생님 간편무역 사장이십니까? 청 년 그렇습니다. 이 분이 바루 사 장 잘못 아시구 오신 모양이군. 사원 갑 용산서에서 오셨어요. 사 장 나한테? 무슨 일루? 사 복 이 남자가 선생 회사에 취직했다는 뎁쇼. 사 장 천만에! 대체 누구입니까? 이 남자는 난 생면부지올시다. 청 년 아닙니다. 사장, 그런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금방 제가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하지 않았 어요. 전 여기 사원이에요, 사장. 사 복 ( 빰을 갈기며) 임마, 아직두 거짓말이야, 응?

청 년 아녜요. 나으리는 몰라요. 나으린! 아씨! 회계과장 증인이 있습니다. 아씨! 아씨가 아십 니다. 회계과장이한달월급을선불해주시구, 양복을사입으라구딸라지폐를주셨어요! 사 복 임마, 떠들지 말어. 글쎄 이 미련한 친구가 누굴 속여보겠다구 백 불짜리 지폐를 위조해 가지구 백주에 서울 네거리를 횡행합니다그려. 헛헛 그러군 월급을 받았다? ( 머리를 갈기며) 임마, 뭐 양복을 짓겠다구? 가짜 돈을 찍으려면 남이 봐두 그럴 듯하게 맨들어. 진짜 백 불짜린 구경도 못 했을 자식이. 가자, 임마. 실례 많았습니다. * 서원( 署 員 ) : 세무서, 경찰서 따위와 같이 서( 署 ) 자가 붙은 관서에 근무하는 사람. - 오영진, <정직한 사기한( 詐 欺 漢 ) >

오영진의 극적 세계관은 ' 돈' 과 ' 도덕' 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창출된다. 이 문제들 사이에서 ' 법' 의 문제가 부각되고, ' 법' 이 하는 역할에 따라 극의 형태와 세계관의 변화가 일어난다. ' 법' 의 본래 목적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것이라 면 오영진 희곡에서는 ' 법' 의 이와 같은 수행능력이 실현되었을 경우와 그렇지 않았을 경우 에 따라 극 형태가 달라진다. ' 돈' 과 ' 도덕' 의 대립에서 ' 법' 이 ' 도덕' 을 수호하고 ' 돈' 을 패배 시켰을 경우 ' 법' 은 본래 목적과 기능을 실행했기 때문에 희극적 구조를 성립한다. 반대로 ' 돈' 과 ' 도덕' 의 대립에서 ' 법' 이 ' 도덕' 을 수호하지 못하고 ' 돈' 의 승리를 이루게 하였을 경우 비극적 구조를 성립한다. ( 가) 내가 알아차린 무리 뒤에 있는 두 그룹에는 눈에 띄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ᄀ 그들이 입고 있는 의복은 상당한 신분에 속하는 것들이었다. 그들은 분명 귀족, 부호, 변호사, 무역업 종 사자, 증권투자가, 사회의 중산층, 책임을 지고 자기 사업을 이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 다지 내 주의를 끌지 않았다. 사무원 무리는 눈에 띄는 그룹이었다. 그 무리는 두 양태로 뚜렷이 나누어졌다. 천한 집안 의 젊은 사무원들이 있었는데, ᄂ 몸 에 꽉 조이는 코트, 밝은 색 부츠, 기름을 발라 넘긴 머 리칼, 거만한 입술을 한 젊은이들이었다. 정확한 용어는 아니지만 사무주의라 할 수 있는 어 떤 활기는 제쳐 두고라도, 그들의 모습은 약 1년 혹은 1년 반 전에 유행했던 것과 완벽하게 똑같은 것 같았다. 그들은 상류사회의 우아함을 벗어던졌다. 그리고 이것은 그 무리를 가장 잘 정의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든든한 고위 사무관 혹은 견실한 오랜 동지들 의 무리는 잘못 알아볼 리 없었다. 검정이나 밤색의 코트와 바지로 그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ᄃ 흰 나비넥타이와 양복 조끼, 견고해 보이 는 널찍한 구두, 긴 양말과 긴 구두를 신고 그들은 편안히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약간 머리가 벗겨졌다. 그들은 양손으로 늘 모자를 벗었다 다시 쓰며, ᄅ오래된 것 같은 짧은 금 줄을 단 시계를 차고 있었다. 그들의 시계는 책임의 가장이었으며, 실제로 아주 엄숙한 가장 이었다. 다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는데, 대도시에 난무하는 대단한 소매치기꾼들 족속에 속한다는 것을 나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무리들을 무척 호기심을 가지고 쳐다보았다. 어떻게 그들이 신사로 오해되었는지 상상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지나친 솔직함을 풍기는 그들의 ᄆ 넓은 소맷부리는 그들의 성격을 대번에 무심코 드러냈다. -에드가엘런포, 군중속의남자

( 나) 지프가 사태진 언덕길을 꺾어 내리받이 길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그러한 모든 것을 보았던 것이다. 사건이라고 부를 수 없는 사소한 일, 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것은 가 장 강렬한 인상을 가지고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사람들은 a늙은 부부였다. b 경적 소리에 놀란 그들은 곧 몸을 피하려고는 했지만, 너무나도 놀라 경황이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은 갑자기 서로 손을 부둥켜 쥐고 뒤뚱거리며 c 곧장 앞으로만 뛰어 달아나는 것이다. d 고무신이 벗겨지자, 그들은 다시 집으려고 뒷걸음친다. 하마터면 그 때 차는그들을칠뻔했던것이다. 이것이그때일어났던이야기의전부다. - 중략 -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역력히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잔영이 좀처럼 눈앞에서 사라 지질 않았다. 누렇게 들뜬 검버섯의 얼굴, 공포와 당혹의 표정, 마치 가축처럼 무딘 몸짓으 로 뒤뚱거리며 쫓겨 가던 그 뒷모습, 그리고 그 위급 속에서도 서로 놓지 않으려고 꼭 부여 잡은 메마른 두 손, 북어 대가리가 꿰져 나온 e남루한 봇짐을틀어잡은또하나의손, 고무 신짝을집으려던그또하나의손, 떨리던손. - 이어령, 풍경 뒤에 있는 것 학자들은 오늘날 의복의 상징주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첫째, 옷은 전통 과 종교의식을 보존하기 위한 도구 역할을 한다. 둘 째, 옷은 자아 미화를 위해 사용된다. 셋째, 정체성과 관행에 관한 문화적 가치가 옷을 통해서 보강된다. 넷째, 권위와 역할이 옷 을 통해 차별화된다. 다섯째, 옷은 신분의 표시와 획득에 이용된다. 의복은 옷 자체로만 멋 을 창출해 내지 않으며, 내적으로 피부색 체형 등, 외적으로는 모자 신발 손수건 가방 양산 등 이함께어우러져의복의멋내기를수행한다. 고전주의는 보편절대적인 미( 美 ) 의 관념에 입각하여 엄격한 규칙을 세우고 복잡보다 간명( 簡 明 ) 함을,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것을, 토속성보다 도회성을, 노골적인 것보다 우아함을, 파격 보다 균제( 均 齊 ) 를 중시하는 귀족문화였다. 반면 낭만주의는 자아( 自 我 ) 에 대한 확인과 그 내 부에로의 침잠( 沈 潛 ) 을 바탕으로 내면에야말로 진실이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근대주의는 넓은 의미로는 교회의 권위 또는 봉건성을 비판하며 과학이나 합리성을 중시하고 널리 근대화를 지향하는 것을 말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기계문명과 도회적 감각을 중시하여 현대풍을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이러한 성향은 시각적인 부분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단순히 글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시각적 읽기의 대상으로 삼았다.

나는 한국인을 보았다. 천 년을 그렇게 살아 온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뒷모습을 만 난 것이다. 쫓기는 자의 뒷모습을. 그렇게 여유 있게 차를 비키는 이방인처럼 세련되어 있 지 않다. 운전수가 뜻 없이 웃었던 것처럼, 그들의 도망치는 모습은, 꼭 길가에서 놀던 닭 이나 오리 떼들이 차가 달려왔을 때, 날개를 퍼덕거리며 앞으로 달려나가는 그것과 다를 게 없었다. 악운과 가난과 횡포와 그 많은 불의의 재난들이 소리 없이 엄습해 왔을 때에, 그들은 언제나 가축과도 같은 몸짓으로 쫓겨 가야만 했던 것일까? 그러한 표정으로, 그러 한 손길로, 몸을 피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가? 우리의 피붓빛과 똑같은 그 흙 속에 저 바 람 속에 우리의 비밀, 우리의 마음이 있다. ( 가) 아이젠슈타인은 자신의 영화 <10 월> 을 분석하면서 영상의 함축적 의미에 대해 그의 관점을 제시하였다. <10 월> 은 볼셰비키가 러시아에서 권력을 잡았던 1917년 10월의 사건을 축하 하기 위해 1927 년에 제작된 영화이다. 분석 부분의 첫 장면은 ᄀ 신과 국가를 위하여 라는 구절이 적힌 화면으로 시작한다. 그 다음 이 구절의 신 과 관련되었다고 볼 수 있는 기독교

교회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그런 다음 화면에 힌두교의 종교적 상( 像 ) 이 나타나고, 계속해서 부처의 상, 이슬람 사원이 보이며, 다양한 다른 종교의 이미지들이 나타나다가 마지막 장면 에서 시베리아의 제의용 마스크에서 절정에 달하게 된다. 시퀀스 * 는 아이젠슈타인의 말에 따르면 이 화려한 바로크 교회로부터 모든 종류의 성스러운 이미지를 거쳐 나무로 만든 제 의용 우상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내려온 신들의 세습 에 대해 묘사한 것이다. ( 나) 아이젠슈타인은 수용자들이 이 시퀀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이라고 기대했는가? 그는 영 상을 통해 의미를 발생시키는 데 있어서 갈등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서로 다른 두 이미지를 병치하는 몽타주 는 충돌하는 이미지들의 의미 합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도록 수용자의 마음을 자극한다. 구체적으로 신과 국가 시퀀스에서 수용자들은 신에 대해 갖고 있었던 최초의 관점과 그 다음에 이어지는 각각의 이미지들 사이에서 모순되는 느낌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여기서 아이젠슈타인은 수용자들이 편집 장면 과 정신적인 씨름을 함으로써 단순히 어떤 낡은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가정하지는 않 았다. 오히려 그는 영화제작자가 수용자들을 위해 계획해 놓은 결론에 수용자 스스로 도달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는 이 시퀀스가 수용자로 하여금 신성한 것의 진면목을 밝힘 으로써 ᄂ 반종교적인 결론을 내리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가정했다. ( 다) 여기에서 갈등은 신 이라는 개념과 그것을 상징화 한 이미지 사이에서 발생한다. 처음의 바로크 이미 지에서는 개념과 이미지가 같은 의미를 갖지만, 각각의 연속적인 이미지가 등장함에 따라 개념과 이미 지는 점점 분열된다. 점진적인 신들의 세습은 개개의 새로운 이미지가 신이라는 개념과 비교되는 과정 을 통해 계속 이어지면서 결국 그 개념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여기까지 이르게 되는 모든 과 정은 결정된 것일 뿐만 아니라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에 의해 이미 머릿속에서 고안해놓은 것이다. 전 통적인 영화가 관객의 감정을 촉발하고 발전시켜 왔다면, 여기서는 마찬가지로 전체적인 사고의 과정 역시 불러일으키고 촉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암시를 얻게 된 것이다. - 아이젠슈타인 - ( 라) ᄃ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A] 는 아이젠슈타인의 주장은 다소 건방지고 퇴행적인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이젠슈타인의 주장을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감독의 오만 한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취급해버릴 수는 없다. 수용자의 관점을 직관적으로 알아채고 이 같 은 직관을 수용자의 반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능력이 바로 감독의 능 력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ᄅ 언어가 아닌 영상이나 이미지의 경우에는 수용자들이 의 미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보다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역할을 하도록 유도된다. 따라서 수용자 들이 스스로 내린 결론이, 감독이 유도한 바로 그 결론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무시해서는 안될것이다.

현대의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수용자의 능동적인 의미 생산을 강조한다. 문학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난 순간부터 독자적인 생명력을 가지며 이는 다른 텍스트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 다. 특히 이미지는 단어, 문장, 문단으로 구분되는 언어와는 달리 의미 전달을 위한 변별 단위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수용자들이 이미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이미지 생 산자나 텍스트 생산자의 권한 밖의 일이라는 것이다. 진객이 말한다. 지방마다 풍속이 다르고 즐겁게 노래하거나 슬프게 우는 표현 방식이 천차만별이지만, 그러나 사 람이 지닌 애락의 정은 표현되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법입니다. 대개 마음이 안에서 움직이면 소 리가 마음에서 흘러나오는데, 이는 처음 듣는 다른 양태의 음과 소리를 써서 표현한다 해도, 잘 알아듣는 사람은 이를 어떻게든 스스로 알아차려 실수를 범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에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그의 벗 종자기가 그의 뜻을 들어서 알아냈고, 예인이 경을 치자 자산이 그 마음의 애상함을 알아냈으며, 노나라의 어떤 사람이 새벽에 슬피 우는 소리를 듣고 안연이 그 집 에 생이별이 있음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몇 가지 예를 볼 때, 어찌 상음( 常 音 ) * 의 지식 을 빌리고 곡도( 曲 度 ) * 의 체험을 빌려서야 안 것이겠습니까? 대체로 마음속에 슬픔이 있는 사람은 겉모습이 이로 인해 움직이고, 비통한 감정이 있는 사람은

그 소리가 이로 인해 애상해지게 마련이니, 이것은 저절로 속마음과 겉모습이 상응하게 마련이어 서 숨길 수 없는 것인데ㅡ 오직 남달리 밝은 정신을 가진 사람만이 이에 정통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무릇 잘 알아듣는 사람에게는 소리가 복잡하다는 것이 어려움이 되지 않고, 애당초 알아들 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소리가 간단하다는 것이 쉬운 것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소리 를 잘 알아듣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해서 그 때문에 소리에 알아들을 수 있는 이치가 없다 거나, 풍속이 천차만별임을 보았다고 해서 성음( 聲 音 ) 에 애락( 哀 樂 ) 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 다. 선생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현명하다고 해서 반드시 사랑스러운 것이라 말할 수 없고, 어 리석다고 해서 반드시 미운 것이라 말할 수 없다 고 말입니다. 그러나 현명함이 있은 뒤에야 사랑 하는 감정이 생겨날 수 있고, 어리석음이 있은 뒤에야 미워하는 감정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들을 같은 명칭으로 부르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뿐이지요. 마찬가지로 애락의 정이 생겨나는 것 또한 그럴 만한 연고가 있어서인데, 이것은 바로 ᄀ. 그러므로 진 실로 애락이 이처럼 소리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라면, 이는 더욱이 소리 안에 감정의 실질이 포함 되어 있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되니, 어찌 감정의 실( 實 ) 과 소리의 명( 名 ) 이 떨어져 있다고 하 겠습니까? 선생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즉 계자는 시를 가려 모아 예를 보고 나서 풍과 아의 좋고 나쁨을 구별했고, 공자께서는 소 라는 악이 선미( 善 美 ) 가 일치하기 때문에 그 훌륭함을 찬탄했다 라고 했으니, 이러한 평론이 음조( 音 調 ) 에 근거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이는 도대체 무슨 말이겠 습니까? 또한 사양이 금( 琴 ) 을 타는데 공자께서 이 소리를 들으시고 문왕의 훌륭한 면모를 알았 으며, 사연이 위나라 영공에게 곡을 헌사하자 그 곡이 망국의 음임을 사광이 알았다는데, 이런 사 실로 보건대 어찌 그들이 시의( 詩 意 ) 를 명확히 알고 난 후에야 판단을 내리고, 예를 익힌 뒤에야 논평을 내렸겠습니까? 이것은 그들이 모두 듣고 알아차리는 능력이 신묘하여, 여러 날 동안 두고 두고 되풀이해 듣지 않아도 곧바로 그 소리가 좋은지 나쁜지를 판별할 수 있었던 것이며, 이 때문 에 이전의 사관이 미담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선생은 구구하게 사소한 식견을 갖고 눈으로 본 바를 모두 획일적으로 단정하여 한계로 삼으니, 이는 옛 현인의 정교하고 미묘한 식견 을 기만하고 공자님의 신묘한 통찰을 저버리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상음( 常 音 ) : 일정한 음조 * 곡도 : 음악의 리듬, 박자, 장단 인간의 감정은 각기 서로 다르며 악곡에 대한 이해는 자신에 의거하므로, 자신이 원래 먼저 품고 있던 정감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심정이 평온하고 조화로워 애락의 어느 쪽으 로도 치우침이 없다면, 어떤 정감도 먼저 표출될 것이 없으므로 결국 조급함과 차분함만을 나타내 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애락의 어떤 정감이 드러나게 된다면, 그것은 심정에 이미 어떤 일정한 정 감이 있다는 것이므로 평온하고 조화로운 감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람을 조급하고 차 분하게 만드는 것은 소리의 효능이고, 애락은 정감이 기울어진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리에 따라 조급함과 차분함이 생긴다고 보고, 그에 근거하여 애락이 모두 성음에서 비롯되는 것 이라 말해서는 안 됩니다.

여자1 : ( 쇼핑백에 담긴 ᄀ구두를 건네며) 구두야. 신어봐. 남자1 : 이젠내구두까지맘에안들어? 내가거지야? 여자1 : 갖고 싶다고 그랬잖아. 남자1 : 내가? 내가 언제? 여자1 : 꼭말을해야아는건아니야. 니구두가나한테그렇게말했어. 남자1 : 내구두는그런말한적없어. 여자1 : 니 구두를 똑바로 봐. 다 헐어빠진 구두를. 말을 하잖아. 어떻게 작가가 사물의 소리를 못들어? 남자1 : 난 원하지도 않는데, 왜 다 니 마음대로야? 여자1 : 너를 사랑하니까. 남자1 : 이건 사랑이 아니야. 구속이야. 구속. 니 마음대로 나를 치장하고 싶어 하는 폭력! 여자1 : 아이 씨발, 그럼 언제까지 그 거지같은 구두를 보고만 있으란 말이야? 남자1 : 그만! 그만해! 피곤해! ( 사이) 우리 그만 하자. 그래. 우리 그만 만나자. 여자1 : 뭐라구? 그 말 진심이야?

남자1 : 그럼넌, 이런내가좋아? 여자1 : 좋다. 너를 죽이고 싶을 만큼. 남자1 : 난 니가 싫어. 지긋지긋해. 니 몸, 니 목소리, 니가 하는 모든 게 싫어. 너랑 같이 있으 면 자꾸 싸우게 돼. 사람이 격이 떨어진다고. 여자1 : 이게 우리의 격이야. 고상한 척 하지 마. 남자1 : 그러니까 헤어지자고. 여자1 : 도대체 왜? 남자1 : 몰라서 물어? 난 가진 게 없으니까. 난 별볼일없으니까. 아니 넌 가진 게 없으니까. 그 래 넌 별볼일없으니까. - 중략 - 여자1 : 도대체 누구를 만나고 다니는 거야? 도대체 어떤 꿈을 꾸는 거야? 도대체 어떤 상상을 하고 다니는 거야? 도대체 누구한데 무슨 얘기를 듣고 다니는 거야. 도대체 어떤 책을 읽고 있는 거냐구? 도대체 왜 이러는데? 남자1 : 말해줄까? 넌, ᄂ내가다읽은책이야. 됐어? 여자1 : ᄃ 그 바다 생각나? 니가 나를 업고 바닷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던 바다. 그때처럼 나 를 업어봐. 남자1 : 난너를업은적없어. 여자1 : 업었어. 업었다구. 남자1 : 억지 부리지마. 그리고 나, 지금 너랑 헤어지려고 하는 거야. 바보야. 여자1 : 그러니까 업어 보라고. 노력해봐. 얼른! 남자1, 여자1 을 업는다. 남자1, 조금 있다가 여자1 을 내려 놓는다. 여자1 : (ᄅ 꽃으로 남자1을 때리며) 나쁜 새끼. 개새끼. 너 때문에 하게 된 말, 너 때문에 생 남자1 걸어간다. 긴 습관. 너 때문에 먹는 음식. 너 때문에 가게 된 곳. 너 때문에 부르게 된 노래. 너 때문에하게된거짓말은다어떻게하라고? 왜? 왜? 왜? 여자1 : 야! ᄆ반지는주고가! 남자1 : 결국, 이렇게 더러운 건가? ( 사이) 그래, 이 더러움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지 않을 거야. 남자1, 반지를 여자1 에게 주고 간다. 여자1 : ( 연기하듯 과장되게) 너 때문에 하게 된 말, 너 때문에 생긴 습관. 너 때문에 먹는 음 식. 너 때문에 가게 된 곳. 너 때문에 부르게 된 노래. 너 때문에 하게 된 거짓말은 다 어떻게 하라고? ( 사이) 우리 그 무엇에도 기대지 않고 이 고통을 뛰어넘을 수 있을 까? 부재도 잊어 가면서. 부재에 익숙해지면서. ( 사이) 그래, 원래 나는 하나가 아니었 는지도 몰라. - 중략 -

남자1 : 도대체 누구를 만나고 다니는 거야? 도대체 어떤 꿈을 꾸는 거야? 도대체 누구한데 무슨 얘기를 듣고 다니는 거야. 도대체 어떤 책을 읽고 있는 거냐구? 도대체! 왜 이 러는데? 남자2 : 말해줄까? 형은 내가 다 읽은 책이야. 읽고 읽고 또 읽다가 다 외운 책이라구. 그리고 형은 너무 구려. 됐어? ( 사이) 남자1 : 입맞춰줘. 마지막으로. 남자2 : 안돼. 할 수 없어. 느낌이 없을 거야. 남자1 :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남자2 : 억지 부리지마. 그리고 나. 지금 형이랑 헤어지려고 하는 거야. 남자1 : 그러니까 노력해봐. 빨리! 남자1, 남자2 와 입맞춘다. 남자1 : 고마워, 느껴줘서. 비겁한 놈! 남자1, 꽃을 든다. 남자1 : 너 때문에 하게 된 말, 너 때문에 생긴 습관. 너 때문에 먹게 된 음식. 너 때문에 가게 된 곳. 너 때문에 부르게 된 노래. 너 때문에 하게 된 거짓말. 너 때문에 맞게 된 냄새 는다어떻게하니? 남자1, 남자2 에게 꽃을 준다. 남자2, 꽃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걸어간다. 남자1 : 야! 반지는 주고 가! 남자2 : 정말 유치하고 더럽다. ( 사이) 남자2, 반지를 남자1 에게 주고 간다. ( 사이) 남자1 : 너 때문에 하게 된 말, 너 때문에 생긴 습관. 너 때문에 먹게 된 음식. 너 때문에 가게 된곳. 너때문에부르게된노래. 너때문에하게된거짓말은다어떻게하라고? ( 남자1, 무언가를 쓴다.) 남자1 : 우리 그 무엇에도 기대지 않고 이 고통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부재도 잊어 가면서. 부재에 익숙해지면서.( 사이) 그래, 원래 나는 하나가 아니었는지도 몰라. - 김태웅, 링링링링

< 보기> 사건은, 의미는 반복되는 순환 속에서 차이를 발견할 때 생성된다. 어제의 내가 오 늘의 내가 아니듯 변하지 않는 진실은 모든 것이 변한다 는 사실뿐이다. 돌아보면 내 가 버린 그 무엇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라는 것도 실 은 알고 보면 수많은 요소들의 반복과 순환이 집적된 한 순간의 미망( 迷 妄 ) 일 수도 있다. ( 중략) 이 작품은 형식이 주제이고 주제가 형식이다. 차고 차이는 이야기를 통 해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결국 관계일 것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관계. 시간도, 사물도, 공간도, 그리고 삶과 죽음도, 만남과 이별도 ᄀ 미술(Art) 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아득한 옛날 에는 그들이 색깔 있는 흙으로 동굴 벽에 들소의 형태를 그렸다면, 오늘날에는 물감을 사서 게시 판에 붙일 포스터를 그린다. 예전에는 영험이 있다고 숭배를 받는 대상이 미술이었다. 우리들이

미술이라 부르는 말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미술가들의 모든 행위를 미술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것이다. 미술에 대한 이런 관점을 미술 감상에 적용할 수 있다. 풍경화가 그의 집을 연상하게 하기 때문 에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친구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초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 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우리들은 모두 그림을 볼 때에 우리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영 향을 끼치는 여러 가지들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기억들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을 즐기게 도와준다면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다. 다만 우리가 우려해야 할 점은 어떤 엉뚱한 기억이 우리 들에게 편견을 갖게 할 때이다. 예를 들어 등산을 싫어하기 때문에 산 그림으로부터 본능적으로 등을돌린다든지할때에는그림감상을방해한혐오감이우리마음속에있는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좋아하고, 그 아름다움을 작품 속에 표현해준 미술가들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미술가들도 그러한 취향에서 벗어나지 않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플랑드르의 위대한 화가인 루벤스(Rubens) 가 그의 어린 아들[ 도판1] 을 그렸을 때 그는 분명히 아들의 귀여 운 얼굴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그는 우리들이 그의 아들을 귀엽게 보아주기를 원했 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주제에 관해서만 주목하는 것은 일종의 편견일 수 있으며, 이것은 감상자로 하여금 매력이 덜한 소재를 다룬 그림을 거부하게 만든다. 독일의 유명 한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도 루벤스가 자기의 포동포동한 아들에게 가졌던 것만 큼의 애착과 사랑을 가지고 그의 어머니[ 도판2] 를 그렸을 게 틀림없다. 고생에 찌들린 늙은 어머 니를 진실되게 그린 뒤러의 습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선을 피하고 싶은 충동을 줄 만큼 충격적 이다. 그러나 우리가 처음에 느낀 반감을 극복하기만 한다면 한 작품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은 그 소재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어떻게 보면 아름다운 것에 관한 문제는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냐에 관한 취향과 기준이 다르다는 데 있다.

여기에서 특히 미술 감상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그들은 그들이 실제 생활에서 본 것들을 똑같이 그려내는 화가의 솜씨를 칭찬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제일 좋 아하는 그림은 실물과 꼭 같이 닮아 보이도록 그린 그림이다. 물론 이같이 실물처럼 표현해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가시적인 세계를 충실하게 표현하는 데 쏟아 부은 그들의 끈기와 솜씨는 평가받을 만하다. 과거의 위대한 미술가들은 세밀한 것을 묘사하는 데까지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 도판2] 의 작가 뒤러가 산토끼를 그린 수채화 습작([ 도판3]) 은 이와 같은 끈기를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그러나 렘브란트(Rembrandt) 가 그린 코끼리의 소묘([ 도판4]) 를 보고, ᄂ 세부 묘사가 덜 되었으니 좋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렘브란트는 목탄으로 그린 몇 개의 선만으로 도 코끼리의 주름진 피부의 느낌을 우리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주는 그런 요술을 부리고 있다.

현대 미술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 사람들은 흔히자연형태를왜곡하는것에대해서불 평을 한다. 그러나 디즈니의 영화나 만화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듯이 사물을 보이는 대로 묘사하지 않고 다르게 변형시켜 서 묘사하거나 때로는 왜곡시킴으로써 풍자 나 유머 같은 효과를 거두는 경우가 있다. 마 찬가지로한현대화가가어떤것을자연형 태 그대로가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그렸다 면, 그들이 자연 그대로 그리지 못해서가 아 니라 디즈니의 만화가 추구했던 효과를 위해 서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래 [ 그림 1] 과 [ 그림2] 가 동일 화가의 작품이라는 점 이 그것을 증명한다. 아침 일찍 형을 만나러 갔다. 그는 문 밖에 서서 하늘을 치어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뒤로 가 서 문을 막고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형님, 말씀드릴 것이 있는데요. 말해보렴. 하고형은곧내쪽으로돌아서서고개를끄덕였다. 대단한 것도 아닌데 그게 쉽게 나오지 않는데요. 형님, 아마도 아주 옛날 미개인들은 사람을 잡 아먹었는가 보죠. 그게 나중에야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달라져서 어떤 사람은 사람을 잡아먹지 않고 오로지 착하게 살려고 노력한 덕분에 결국 사람답게 살게 된 것이겠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변 함없이 사람을 잡아먹고 해서 - 여전히 벌레나 마찬가지로 살고 있지요. 그 중 어떤 자는 물고기 가 되고, 새가 되고, 원숭이가 되고 하다가 마침내 인간이 된 것이지요. 그런데 어떤 자는 착하게

살려고 애쓰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벌레로 남아 있고요. 사람을 먹는 인간은 그렇지 않 은 인간에 비해 정말로 부끄럽겠지요. 아마 ᄀ벌레가 원숭이를 보고 부끄러워하는 것보다 비교가 안될 만큼 그 부끄러움의 정도가 심할 것입니다. 역아( 易 牙 ) 가 자기 자식을 삶아서 걸주( 桀 紂 ) 에 게 먹였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까마득한 옛날의 일입니다. 그런데 반고( 盤 古 ) 가 천지개벽을 한 이후 줄곧 사람을 먹어 오다가 역아의 자식에까지 이르렀고, 쉬시린에서부터 줄곧 사람을 먹어 오다가 랑쯔춘에서 잡힌 남자에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 다. 지난 해 성내에서 죄수가 처형되었을 때 폐병 환자가 그 사람의 피를 만두에 적셔 먹은 적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먹고 싶어 합니다. 형님 혼자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겠지만 그 렇다고는 해도 형님이 그들과 한패가 될 건 없지 않습니까. 사람을 먹는 인간이 무슨 못할 짓이 있겠습니까. 나를 잡아먹고 다음에는 형님을 잡아먹을 것입니다. 길은 오직 하나, 한 발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개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두가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옛날부터 사람을 먹고 살아 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라도 우리가 열심히 마음을 고쳐 사람을 먹어서는 안된다고 말해야 합니다. 형님, 저는 형님이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난번에 소작인이 와서 소작료를 감해 달라고 했을 때 형님은 안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처음에 형은 냉소 일변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갈수록 눈빛이 험악해지더니 내가 놈들의 내 막을 들추어내자 그 순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대문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자오 씨도 그 개도 섞여 있었다. 그들은 쭈뼛쭈뼛 망설이면서 집 안으로 들어왔다. 어떤 자는 얼 굴을 잘 볼 수가 없었는데 헝겊 같은 것으로 가린 모양이었다. 어떤 자는 예의 거무칙칙한 얼굴에 이를 드러내놓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언제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놈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한패거리이고 사람을 잡아먹는 인간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그들 사이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행위에 관해서 견해가 일치하고 있지 않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옛날부터 먹어왔으니까 잡아먹 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측과 잡아먹어서는 안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잡아먹는 측의 두 부 류의 인간이 있는 셈인데 그들은 자기들의 속마음이 탄로날까봐 내가 하는 말에 벌컥벌컥 화를 내다가도 겉으로는 싱글벙글 웃어 보이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형이 느닷없이 무서운 얼굴로 고함을 쳤다. 모두 꺼져버려! 미치광이를 보고 뭐가 좋아서 이러고들 있는 거야! 그때 나는 또 놈들의 교묘한 수법 하나를 알아챘다. 놈들은 개심은커녕 벌써 함정을 마련해 놓 고 있었던 것이다. 미리 미치광이라는 구실을 준비해 두었다가 나에게 그것을 뒤집어씌울 요량이 었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나를 잡아먹는다 해도 누구한테 비난받을 리도 없고 개중에는 잡아먹혔 어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여럿이 작당하여 악인 하나를 잡아먹었다는 소작인의 이야기도 바로 다름 아닌 이 수법이다. 이것이야말로 놈들이 사용하는 상투적인 수법인 것이다. 천라오우도 버럭 화를 내더니 나에게 달려왔다. 그러나 내 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놈들에 게죄다말해주었다. 여러분, 마음을 고쳐먹으시오. 진심으로 회개하시오. 알겠소? 이제부턴 사람을 잡아먹는 인간은 이세상에서용납되지않을뿐만아니라살아갈수도없을것이오. 여러분이 끝내 개심하지 않으면 당신들 자신이 잡아먹힐 것이오. 아무리 많이 태어나도 진실한 인간에게 파멸당하고 말 것이오. 마치 사냥꾼이 늑대를 잡아 없애 버리는 것처럼! - 벌레처럼 말 이오! 놈들은 모조리 천라오우에 의해서 밖으로 쫓겨났다. 형도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었다. 천라오우 가나를달래면서방으로데려다주었다. 방안은칠흑처럼캄캄했다.

ᄀ 이것들이 나를 죽이려고 그러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그 무게가 속임수라는 것을 깨닫고는 발버둥 치며 빠져 나왔다. 몸 전체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끝장이 날 때까지 말해 주었다. 이 놈들, 지금 곧 회개하라. 진심으로 회개하라! 지금부터 사람을 잡아먹는 놈은 용서받지 못한 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 - 루쉰, 광인일기( 狂 人 日 記 )

모든사물은연구하지않으면확실하게알수없다. 옛날부터줄곧사람을잡아먹었다는것은나 도 알고는 있지만 그리 확실하지는 않다. 아는 역사를 뒤적여 조사해 보았다. 역사책에는 연대는 적혀있지 않았지만 페이지마다 仁 義 道 德 이라는 글자가 꾸불꾸불하게 씌어 있었다. 좀체 잠이 오지 않아 나는 밤새도록 자세히 조사해 보았다. 그 결과 글자와 글자 사이에 글자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식인( 喰 人 ) 이라는 두 글자였는데 책을 온통 채우고 있었다. 책에는 이토록 많이 씌어져 있다. 소작인은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했다. 게다가 그는 히죽히죽 웃기까지 하면서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흘겨보지 않았던가. 나도 인간이다. 놈들은 나를 잡아먹고 싶은 것이다!

옛날 옛적에 한 왕이 살았는데, 그는 어느 날 자기의 궁정요리사를 불러 명령을 내렸다. 그대는 나의 충직하고 훌륭한 요리사지. 나는 지금 50여년 전에 맛보았던 음식을 다시 먹고 싶다 네. 그 당시 짐의 선왕은 동쪽에 있는 나쁜 이웃 왕과 전쟁을 했었지. 그 때 그 왕이 싸움에 이겨 우 리들은 도망을 쳐야만 했어. 우리는 숲속에서 길을 잃어 허기와 피로에 지쳐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 에서 어느 조그만 오두막을 발견하게 되었지. 그 오두막에는 한 노파가 살고 있었는데, 그 노파는 뛰어나와 우리를 반기면서 손수 부엌에서 곧 무엇을 들고 나왔는데 그것이 바로 산딸기 오믈렛이었 어. 내가이오믈렛을한입입에넣자마자나에겐기적처럼힘이되살아나는것같았고또새로운 희망이 샘솟는 것 같았어. 그대가 만약 짐의 이 마지막 소원을 성취시켜 준다면 짐은 그대를 사위로 삼을 걸세. 그러나 만약 나의 기대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면 그대는 죽어야만 하네. 이말을듣자궁정요리사는다음과같이대답하였다. 폐하! 정 그러시다면 교수 형리를 곧장 불러주십시오. 물론 저는 모든 식재료와 양념에 대하여 훤 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오믈렛을 만들 때 어떻게 저어야 마지막 제 맛이 나는지도 잘 알고 있 습니다. 하지만, 폐하! 저는 죽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제가 만든 오믈렛은 폐하의입에맞지않을것입니다. 왜냐하면, 가. 이모든아우라는제가도 저히 마련하지 못하겠습니다. - 발터 벤야민, < 산딸기 오믈레트> 연극무대와는 크게 대조되는 영화의 사정을 회화에서의 사정과 비교 검토해 보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선 다음과 같은 질문, 즉 카메라맨은 화가와 어떤 관계에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답하기 위하여 외과의사라는 개념을 원용하여 보자. 외과의사는 마술사와는 극단적으로 대조가 되는 사람이다. 손을 얹어 환자를 낫게 하는 마술사의 태도는 환자의 몸에 깊숙이 손을 대는 외과의사의 태도와는 다르다. 마술사는 자신과 환자와의 자연스러운 거리를 계 속유지한다. 더정확히말하면마술사는환자위에얹은손을통하여환자와의거리를줄이기도하고 또 그의 권위를 통하여 그 거리를 크게 늘이기도 한다. 이에 반해 외과의사는 환자에 정반대의 태도로 접근한다. 즉 그는 환자의 내부 속에 깊숙이 들어감으로써 환자와의 거리를 크게 줄인다. 외과의사는 마술사와는 달리 결정적인 순간에 그의 환자를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 대신 수술 을 통하여 그의 내부로 파고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나 마술사와 외과의사의 관계는 화가와 카메라맨 의 관계와 같다. - 발터 벤야민,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권 마담 골동품 가게. 낮 권마담과화투치고있는최하경과강형사. 권마담은지친표정이다. 권마담: 나안해! 장사도못하게하고, 벌써몇시간째야? 대체왜들이래? 강형사: 그러고보이요새는동양화찍는놈들이안보인다. 그쟈! 권 마담 :( 살짝 놀라며) 응? 최하경 : 찍어보면 연대 바로 나오는데 걔네들이 바본가? 권마담: 먹이고종이고, 일단수백년먹고들어가는거몰라? 쯔쯔쯔! 최하경:a( 화투내려치며) 먹은그렇다쳐! 몇백년묵은한지가어딨어? 권 마담 : 중국 가봐! 돈만 주면 종이고 먹이고 다 수백 년 된 것들이야! 그런데 정말 어려운 강형사 건조선왕실에서만든거야! 벌써질이다르지! : 한지는뭐다똑같아보이던데... 권 마담 : b 아니지! 나무가 다르니 결도 달라. 사람이 다르니 두께도 달라. 물이 다르니 때 깔도 달라. 조선 백지만 있으면, 그냥 감정 500 년 이야! 최하경: 놀고있네! 그런게어디있냐? 권 마담 : 어딨기는? 만들면 되지! 어느산속냇가판타지연결 ( ). 밤 권 마담 V.O : 조선시대에 궁중에서 쓰던 종이가 아주 귀했거든. 그래서... 실록 같은 거 만들 기 전에 자료로 썼던 종이들을 재활용했잖아.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 풍덩! 얼음과 함께 가라앉는 돌. 이강준, 얼음물 속에 서서 오래된 고서들을 물에 담갔다 빼고, 다시 담그고... 그런 이강준의 옆으로 마치 귀신처럼 나타나는 조선시대의 사람들. 권마담V.O : 그걸세초라고그러는데, 무지무지깨끗하고찬물에씻은다음에... 최하경 V.O : 먹물이 종이에서 빠져? c 권 마담 V.O : 궁중 백지라고 했잖아! 그 종이 요새로 따지면 일종의 코팅지 거든! ( 조선시대로 이강준이 간 것처럼... 당시의 세초식이 엄숙하게 벌어진다.) * V.O : 보이스 오버(Voice-over). 영상과 일치되지 않는 대사. 골동품 가게. 낮 크리넥스 티슈 한 장을 툭 뽑아서 티슈 양쪽으로 조심스럽게 분리하는 권 마담. 권 마담 : 자, 이게 원래 그림 원접 이야. 근데, 이걸 족자에 그냥 대면 쭈그러들고 쉽게 찢어 지든. 그래서! 요놈, 배접이라는 똑같은 종이 한 장을 딱! 뒤에 대는 거지! ( 다시 원래대로 탁! 소리 나게 붙이는 권 마담. 그 위에 매직으로 선을 쭉 긋는다.) 권 마담 : 세월이 흐르면 뒤에 배접에도 먹물하고 물감이 스물 스물! 그걸 이렇게 떼 내면 그 강 형사 림이두장! 원접하고배접! : 그라몬 똑같은 그림이 나오나? 권 마담 : 아니지. 한 단계가 더 필요하지. 회음수! 회음수를 배접에 쫙 뿌려주면... 이게, 이 게매직이야. 나도딱한번봤다니까!

최하경 권마담 : 그게 누군데? : 국보급떼쟁이있어!d김홍도가살아와도지껀지아닌지못알아봐~ 강형사: 박가말하는기가? 그놈은요새뭐하노? 갤러리비문복원실. 밤 공장 창문에 내려쳐지는 검은 색 커튼, 전등이 켜지고... 작업대 위 벽안도( 배접) 을 바라보는 이강준과 박 가. 박가: 먹도제대로안묻고... 수백년지난배접이뭐이렇게흐릿하냐? 이강준 : 그래서 아저씨 부른 거 아냐! 박 가 : 이 정도면 아슬아슬인데? 나도 여기까진 해 본 적 없어. 까딱하면 홀라당 다 태울 수 도 있어! 잘못 쓰면 회음수가 독약이야! 이강준 : ( 말 가로채며) 그럼 e보약으로한재잘지어봐! 박 가 :( 돌아보며) 아까 말한 거 어떻게 된겨? 호진사 사장 :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 예. 뭐 하냐? 니들? 한지위에회음수를떨어뜨려보는박가. 아무런이상이없자씩웃는박가. 시험관달린분무기를들고배접종이위에회음수를촘촘히뿌리는이강준. 작업대 불빛 아래 뿌려지는 회음수는 작은 무지개를 만들며 종이 위로 사뿐히 내려앉는다. 코가 닿을 정도로 바싹 얼굴을 붙이고 작업대 위 배접을 유심히 살피는 이강준. 박가:f종이를보지말고꽃을봐. 꽃이피면그림도핀거야. 이강준 :( 되뇌며) 꽃이 피고... 선이 선명해지고, 색감도 살아나고, 낙관도 드러나고... 벽안도 배접이 꽃피기 시작한다. 놀라는 사람들. 박 가가 시선을 옮기며 소주잔을 기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