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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연구 2009 가을호 제32권 제3호(통권 116호) pp. 195~223. 硏 究 論 文 일본의 식민지 철도여행과 창가 - 滿 韓 鐵 道 唱 歌 (1910)를 중심으로 - 구 인 모 * 1) Ⅰ. 서론 Ⅱ. 과거를 향한 여정, 전쟁의 자취를 더듬는 여정 Ⅲ. 식민주의 욕망이 그려낸 상상의 여정 Ⅳ. 다른 식민지 철도창가의 사례 Ⅴ. 국민국가, 제국의 심상지리와 철도창가 Ⅵ. 결론 <참고문헌> <국문요약> I. 서론 일본이 설립한 경부철도주식회사( 京 釜 鐵 道 株 式 會 社 )가 1905년 경부선( 京 釜 線 )을 개통한 이래, 일본의 임시군용철도감부( 臨 時 軍 用 鐵 道 監 府 )가 경성과 신의주 사이 에 군용철도로 부설한 경의선( 京 義 線 )이 1906년 개통되었다. 이어서 1911년 압록 강철교가 개통되어 부산에서 경성, 신의주를 거쳐 만주에 이르는 철도가 조선반도 서쪽을 가로지르게 되었고, 경부선이 개통된 바로 그해 착공되어 1914년 개통된 경원선이 동쪽을 가로지르게 되었다. 이러한 근대기 조선의 철도의 부설이란 각 노선의 연선( 沿 線 )들에 놓인 지역들과 그 주민들이 근대기 이전에 결코 겪어 보지 못했던 기능과 역할은 물론 정체성과 삶의 방식의 변화를 가져온 계기였다. 이러 한 변화란 조선반도의 철도부설이 근본적으로 일본으로 하여금 조선 반도를 식민 지로 삼고 나아가 대륙으로 진출해 가는 가운데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의미심장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 연구교수, 한국근대문학 전공(thdaquino@korea.ac.kr).

196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3호(2009) 하다. 다른 한편으로 조선의 철도부설이란 러일전쟁 이후 새롭게 제국 일본의 식 민지로 편입된 조선에 대한 지식, 경험, 감각 등의 온갖 정보의 이동 속도와 양을 증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더욱 의미심장하다고 하다. 그리고 궁극적 으로 근대기 조선의 철도의 부설이란 일본의 입장에서는 궁극적으로 제국의 판도 와 경계의 실제적인 확장만이 아니라, 식민지에 대한 심상지리(imagined geograph -ies)는 물론이거니와, 상상된 공동체로서의 제국 일본의 상( 像 )을 제공했을 터이다. 그러한 사정을 염두에 두고 볼 때, 무엇보다도 시선을 끄는 것은 조선의 철도 부설이 일본에게는 본격적으로 식민지를 횡단하는 온갖 종류의 답사와 여행을 가 능하게 한 계기였다는 점이다. 예컨대 朝 鮮 西 伯 利 紀 行 (1895) 이래 1920년대 중 반까지 단행본으로 간행된 약 30여 종의 기행문 가운데, 南 韓 旅 行 記 京 釜 鐵 道 案 內 (1905)가 간행될 무렵까지 8편을 제외한 나머지 기행문들이 한결같게 경부선과 경의선의 연선( 沿 線 )을 따라 여행한 기록들이라는 점을 보더라도 그러한데 1), 이러 한 기행문들이란 대체로 미지의 이향으로서 조선에 대한 민족지( 民 族 誌 ethnograp -hy)적 성격마저 띠고 있다. 그런가 하면 조선 철도 연선을 따라 이루어진 여행은 일본의 문학자들로 하여금 문학적 상상력도 환기시킨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예컨대 다카하마 쿄시( 高 濱 虛 子, 1874~1959)가 1911년 도쿄니치니치신문( 東 京 日 日 新 聞 ) 에 연재했다가 2년 후 단행본으로도 간행한 소설 朝 鮮 의 경우,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부산에서 평양을 오가는 여정에서 겪는 사건과 감개란 한결 같게 경부선과 경의선 철도 연선에서 비롯한다. 2) 이러한 기행문이나 소설의 저자 들의 답사나 여행의 체험이란, 근본적으로 이향으로서 조선과 조선인의 삶을 원시 주의(primitivism)의 시선에 근간하여 묘사 혹은 서술하면서, 공공연히 혹은 암암 리에 식민주의(colonialism)의 욕망을 투사하고 기입해 간 과정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3) 그런데 이러한 기행문과 소설의 특징적 국면들이 결합한 시가( 詩 歌 ) 또한 존재 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滿 韓 鐵 道 唱 歌 (1910)이다. 오와타 다테키( 大 和 田 建 樹 1) 櫻 井 義 之, 三. 歷 史 ㆍ 地 誌, 朝 鮮 硏 究 文 獻 誌 : 明 治 大 正 編 ( 東 京 : 龍 溪 書 舍, 1979). 2) 高 濱 淸 ( 虛 子 ), 朝 鮮 ( 東 京 : 實 業 之 日 本 社, 1913); 서기재, 高 濱 虛 子 의 朝 鮮 연구: 여행안내서 로서의 의의, 일본어문학, 16권(한국일본어문학회, 2003), 68~71쪽. 3) 中 根 隆 行, 第 Ⅱ 部 越 境 する 文 學 とジャンル 的 交 涉, < 朝 鮮 > 表 象 の 文 化 誌 ( 東 京 : 新 曜 社, 2004), 66~67쪽.

일본의 식민지 철도여행과 창가 197 1857~1910) 4) 가 경의선이 개통된 바로 그해 4월에 발표한 이 작품은, 당시 일본 문부성( 文 部 省 )의 검정을 거쳐 간행된 고등소학교 창가과( 唱 歌 科 ) 아동용 교재였 다. 알려진 바와 같이 근대기 일본에서 창가는 이미 19세기 말부터 공교육 제도의 교과과정, 주로 소학교에서 이른바 덕육( 德 育 ) 양성의 중요한 과목으로 자리 잡았 다. 이 창가는 독립된 음악교과로서만이 아니라, 다른 교과교육의 교수법에도 응 용되는 비중 있는 과목이었다. 특히 오와타 다테키의 일련의 철도창가는 지명 암 기로부터 지리정보의 관찰과 서술 교육의 중요한 수단이기도 했거니와, 일본인으 로 하여금 근대기 국민국가로 일본의 심상지리를 형성하는 데에 대단히 큰 역할을 했고, 이후 허다한 철도창가류의 원형이기도 했다. 5) 이제 자세히 검토하게 되겠으나 시모노세키( 下 關 )로부터 부산을 거쳐 뤼순( 旅 順 ) 에 이르는 이 작품은 저 기행문이나 소설의 저자들과 그러했듯이, 한편으로는 경 부선과 경의선 그리고 남만주철도의 연선을 따라 조선과 만주 각 지역을, 끊임없 이 근대문명으로부터 격절된 원시의 공허한 공간으로 표상한다. 그리고 철도 연선 의 지역들에 깃든 임진왜란에서 러일전쟁까지 일본 진출 과정에서의 고투를 회고 하는 철도여행 체험을 통해, 현재 일본인의 삶의 물리적 경계를 넘어서는 현존과 동일성을 향한 욕망을 드러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창가라는 대단히 직접적 인 감각에 호소하는 음악적 양식을 통해, 독자이자 가창자이면서 또한 청취자이기 도 했을 수용자가 그러한 욕망을 은연중에 자연스럽게 내면화하는 가능성 또한 지 니고 있다는 점에서, 기행문이나 소설과는 전혀 다른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조선과 만주의 철도여행의 창가가 함의하는 바나, 기행문들과의 차이는 우선 한편으로는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다른 식민지의 철도창가인 臺 灣 周 遊 唱 歌 (1910)와 비교하는 가운데, 또한 만한철도창가 에 앞서 오와다 다테키가 발표한 地 理 敎 育 鐵 道 唱 歌 (1900)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때 보다 분명히 드러나리라 본 다. 이를테면 지리교육 철도창가 의 시발점인 도쿄( 東 京 )의 신바시( 新 橋 )에서 출 4) 그는 일본의 국문학자, 와카( 和 歌 ) 가인이자 창가작사가로서, 도쿄대학( 東 京 大 學 ) 문과대학 고전과 강사와 도쿄고등사범학교( 東 京 高 等 師 範 學 校 ) 교수를 역임했다. 또한 그는 尋 常 小 學 帝 國 唱 歌 (1888), 高 等 小 學 帝 國 唱 歌 (1892) 등의 허다한 창가작품을 발표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地 理 敎 育 鐵 道 唱 歌 (1900)가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하겠다. 日 本 近 代 文 學 館 (편), 日 本 近 代 文 學 大 事 典 ⑴ ( 東 京 : 講 談 社, 1977), 282~283쪽. 5) 山 東 功, 第 四 章 裝 置 として 唱 歌, 唱 歌 と 國 語 : 明 治 近 代 化 の 裝 置 ( 東 京 : 講 談 社, 2008), 126~131쪽.

198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3호(2009) 발하여 종착점이자 또한 만한철도창가 의 시발점인 시모노세키, 부산을 거쳐 종 착점인 뤼순에 이르고, 또한 대만주유창가 의 시발점인 키룽( 基 隆 )을 거쳐 대만 을 일주하여 다시 종착점인 타이페이( 臺 北 )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이란, 근본적으로 일본의 철도성, 조선총독부철도국, 남만주철도주식회사, 대만총독부철도부가 함께 그려낸 제국 일본의 철도망은 물론 그 강역과 일치한다. 이러한 철도창가들은 대 체로 그 여정에서 접하는 고향과 이향의 서경을 근간으로 마치 파노라마와 같은 풍경을 묘사한다. 그리고 그러한 풍경이란, 단 한 번도 제 고장을 떠나 본 적이 없 는 학습자들로 하여금 바야흐로 대일본제국의 신민으로 자라날 유소년의 학습자들 에게, 제국 일본의 심상지리를 형성하기에 충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 한 심상지리의 감각을 신체에 각인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인구에 회자되는 지리교육 철도창가 에 비해, 만한철도창가 와 대만주유창가 는 조선과 만주 그리고 대만이 식민지의 처지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작품의 대상이 된 지역들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망각되고 만 듯하다. 이 망각된 과 거로부터 굳이 만한철도창가 를 오늘날 다시 불러내고자 하는 것은, 근대기 일본이 국민국가로서 자기를 정의하는 문화적 표상과 그 방법이 국경을 넘어 조선반도와 만 주, 그리고 대만에도 적용되는 가운데, 어떻게 제국의 심상지리를 형성하게 되었던가 를 검토하는 계기를 제공하리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검토의 과정에서 근대기 일본이 부설했던 광대한 철도 노선망을 통해 이루어진 철도여행만큼 유효한 사례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바로 이러한 사정을 염두에 두고 이 논문은 만주철도창가 를 중심으로 대만주유창가 를 거쳐 지리교육 철도창가 에 이르면서, 근대기 철도여행 의 체험, 특히 식민지 철도여행이 지닌 본질적인 의미를 추적해 가고자 한다. 그리하 여 우선 국민국가이자 제국 일본과 그 식민지들의 심상지리가 형성되는 과정을, 다 음으로는 그 가운데 근대 일본의 국민국가주의가 식민주의로 확장된 과정의 한 단면 을 추적해 가고자 한다. 나아가 철도여행의 창가가 그러한 이데올로기들을 기술적 수단과 문화적 상징들을 통해 육화키는 국면들을 포착해 가고자 한다. 이로써 조선 을 비롯하여 만주, 대만 그리고 일본이 근대기에 체험했던, 매우 특별하면서도 구체 적인 역사적 경험의 양상과 그 의미를 규명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일본의 식민지 철도여행과 창가 199 II. 과거를 향한 여정, 전쟁의 자취를 더듬는 여정 이 만한철도창가 는 기적 울림 씩씩하게 바칸을 뒤로하고 저어 나와 거친 파 도 백 해리 박차고 나아가니 계림팔도 어디더냐(汽笛の響いさましく馬関を跡に漕 ぎ出でて蹴破荒波百海里鶏林八道いづかたぞ) 로 시작되는 제1절을 비롯하여 모두 60절로 이루어진, 적지 않은 분량의 작품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에 맞추어 부르 는 악곡은, 4분의 2박자 바장조에, 두 도막 형식의 행진곡 풍으로, 전형적인 메이 지 창가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작품 전부를 가창하자면 모두 60절에 이르는 만큼, 악곡의 선율도 각 악절마다 다르게 하여 생동감을 더한다. 게다가 각 페이지 에는 다양한 조선과 만주의 풍광을 담은 사진이 수록되어 있 어, 독자들이 작품의 내용과 더불어 미지 의 풍경 또한 감상 하도록 안배했다. 표지와 부곡(付曲) 악보6) 조선철도노선도7) 이 작품은 출발지 인 시모노세키로부터 부산까지는 항로를, 다시 부산부터 뤼순 까지는 철로를 통한 여정을 묘사했는데, 이로써 제1절부터 제 28절까지는 조선반도 를, 제29절부터 마지 만주철도회사노선도8) 막 제60절까지는 만 6) 大和田建樹, 滿韓鐵道唱歌 (東京: 金港堂書籍株式會社, 1906), 1~2쪽. 7) 朝鮮總督府鐵道局(편), 朝鮮の鐵道 (京城: 朝鮮鐵道協會, 1921), 4쪽. 8) 南滿洲鐵道株式會社(편), 南滿洲鐵道旅行案內 (大連: 南滿洲鐵道, 1924), 21쪽.

200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3호(2009) 주와 요동반도를 가로지르는 파노라마를 제시한다. 9) 또한 철로를 통한 여정에 보다 주목해 보자면, 조선반도는 부산부터 경성까지에 이르는 경부선 연선을, 그 가운데 영등포에서 인천까지 경인선 연선을, 다시 경성에서 신의주까지 경의선 연선을 거쳐 가로지르고, 만주 이후는 남만주철도의 주요 노선들을 거치는 여정을 묘사했다. 10) 이처럼 기나긴 여정이란 물론 철도라는 교통수단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 이고, 그리하여 1906년 무렵 조선반도와 만주 지역에 이미 부설된 철도 노선 대부 분을 거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여정이란 이 창가의 작가인 오와타 타테키가 일찍 이 발표한 바 있는 지리교육 철도창가 와 마찬가지로, 작가의 개인적 여행의 체 험보다도, 이미 각 노선의 연선을 따르는 지역에 대한 정보와 지식에 근간하여 썼 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그러한 정보와 지식에 근간한 철도 여행의 여정을 통 해 일본의 문부성은, 바야흐로 제국을 이끌 국민으로 성장해 나아갈 청소년들로 하여금 제국의 강역에 대해 지리적 상상력은 물론, 더 나아가 당시 일본의 국시 ( 國 是 )이기도 했던 만주와 조선 경영의 포부를 품게 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11) 9) 이 작품의 각 절에 등장하는 지명을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1 馬 關 2ㆍ3 釜 山 4 草 梁 ㆍ 釜 山 鎭 6 東 萊 府 ㆍ 東 萊 溫 川 ㆍ 梵 魚 寺 7 勿 禁 驛 ㆍ 甑 城 8 院 洞 ㆍ 三 浪 津 ㆍ 馬 山 浦 ㆍ 密 陽 9 大 邱 10 倭 館 驛 11 金 泉 ㆍ 秋 風 嶺 12 永 洞 驛 ㆍ 落 花 臺 ㆍ 錦 城 山 13 深 川 驛 ㆍ 大 田 驛 ㆍ 鷄 籠 山 14 錦 江 ㆍ 芙 江 驛 15 葛 巨 里 ㆍ 全 義 ㆍ 小 井 里 ㆍ 天 安 驛 ㆍ 溫 陽 溫 泉 16 穀 山 ㆍ 成 歡 ㆍ 安 城 川 17 牙 山 18 烏 山 19 水 原 ㆍ 富 谷 ㆍ 始 興 ㆍ 永 登 浦 20 仁 川 港 月 尾 島 漢 江 龍 山 ㆍ 南 大 門 ㆍ 京 城 大 同 江 ㆍ 平 壤 府 牧 丹 臺 ㆍ 定 州 ㆍ 宣 川 ㆍ 新 義 州 ㆍ 鴨 綠 江 安 東 縣 蛤 蟆 塘 鳳 凰 城 摩 天 嶺 連 山 關 ㆍ 下 馬 塔 ㆍ 楡 樹 林 ㆍ 本 溪 湖 ㆍ 撫 順 ㆍ 奉 天 府 黑 龍 江 渾 河 堡 ㆍ 沙 河 堡 ㆍ 煙 臺 驛 歪 頭 山 萬 寶 山 岡 崎 山 臭 野 津 ㆍ 遼 陽 市 首 山 堡 ㆍ 紅 瓦 塞 ㆍ 海 城 ㆍ 大 石 橋 錦 州 ㆍ 山 海 關 大 石 橋 ㆍ 柝 木 城 ㆍ 大 孤 山 蓋 平 ㆍ 熊 岳 城 得 利 寺 貔 子 窩 ㆍ 普 蘭 店 金 州 灣 和 尙 島 ㆍ 大 連 灣 靑 泥 窪 ㆍ 雙 溝 臺 ㆍ 土 城 子 ㆍ 松 樹 ㆍ 二 龍 ㆍ 老 鐵 山 ㆍ ㆍ ㆍ 旅 順. 10) 또한 이 작품에 묘사된 여정을 도표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지역 이동수단 경로 비고 현해탄 선박 下 關 釜 山 경부선 釜 山 京 城 조선 철도 경인선 永 登 浦 ( 鷺 梁 津 ) 仁 川 경의선 京 城 新 義 州 압록강 渡 江 安 東 線 安 東 奉 天 ( 撫 順 ) 만주 철도 本 線 奉 天 ( 撫 順 ) 大 連 奉 山 線 奉 天 ( 撫 順 ) 山 海 關 旅 順 線 周 水 子 旅 順 본선 周 水 子 驛 11) 編 者, 序 文, 滿 韓 鐵 道 唱 歌 ( 東 京 : 金 港 堂 書 籍 株 式 會 社, 1906), 1~2쪽. 앞으로 이 자료를 인용할 때에는 본문에 면수만 표기하기로 한다.

일본의 식민지 철도여행과 창가 201 그러한 사정은 이를테면 일러 전쟁은 우리 제국의 신기원으로서, 만한( 滿 韓 )의 경 영은 신일본이 한 가지로 따라야 할 국시( 國 是 )이다. 그래서 오늘날 어린 자제( 子 弟 )로 하여금 일찍이 만한의 지리에 통효( 通 曉 )하게 하고자 하는 것은, 오늘날의 급선무로 꼽지 않을 수 없다 12) 는 만한철도창가 서문의 한 대목을 통해서도 충 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철도 여행이란, 앞서 잠시 거론한 제1절의 가사 가운데 계림팔 도 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지금 현재가 아닌 과거의 조선과 만주로의 여정이자, 또한 조선과 만주라는 이향의 낯선 사람들과 삶의 다양한 풍경보다도 임진왜란이 나 청일전쟁 혹은 러일전쟁의 자취를 더듬는 여정이 중심을 차지한다. 그런 점에 서 이 작품에 묘사된 여정은 근본적으로 지금 그곳의 사실보다도 그때 그곳의 기 억이 우위를 차지한 역사적인 것이다. 5. 삼백 척 산위에다 쌓고 버린 진 고니시 유키나가 천년 웅도 드러낸 훌륭한 기 념( 三 百 尺 の 山 上 に 築 き 棄 てたる 残 塁 は 小 西 行 長 千 載 の 雄 図 を 示 す 好 記 念 )[3] 7. 물금역 증성은 위풍초목 떨구고 귀신이라 불린 기요마사 적을 물리친 자취 인가( 勿 禁 駅 の 甑 城 は 威 風 草 木 を 靡 かせて 鬼 と 呼 ばれし 清 正 が 敵 を 防 ぎし 蹟 かや)[4] 10. 도요토미 태합의 정한군 잠시 여기 머물다 그 이름 남긴 왜관역 위지천년 썩지도 않네( 豊 太 閤 の 征 韓 軍 暫 くここに 留 まりて 其 名 を 残 す 倭 館 駅 偉 志 千 年 に 朽 ちもせず)[6] 38. 아라사군 아군( 我 軍 )에 대패한 옛 싸움터 沙 河, 歪 頭 山 봉우리에 높게 걸린 무훈( 武 勳 )의 영예이리니( 沙 河 は 露 軍 を 我 軍 大 敗 せしめし 古 戦 場 歪 頭 山 の 峰 高 く 揚 げしは 武 勳 の 誉 れなり)[22] 40. 오카자키 여단이 고군분투해 그 이름 남긴 오카자키 산, 바라보며 건너는 태자하( 太 子 河 ) 강물도 개가( 凱 歌 )를 부르는 듯( 岡 崎 旅 団 が 苦 戦 せし 其 名 を 残 す 岡 崎 山 見 ながら 渡 る 太 子 河 の 水 も 凱 歌 や 歌 ふらん)[23] 54. 아침 햇살에 빛나는 일장기를 산과 산에 세우고 개가를 부르던 그때 아군 의 마음 떠올려 보네( 朝 日 にきらめく 日 の 御 旗 山 又 山 にさし 立 て 凱 歌 うた ひし 我 軍 の 当 時 の 心 ぞ 思 はるる)[31] 12) 編 者, 위의 글, 위의 책.

202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3호(2009) 부산진역을 지나가며 노래하는 제5절을 비롯한 인용한 작품들 모두, 부산진이든 증성이든 혹은 왜관이든, 오로지 임진왜란 명장들의 업적이 서린 곳이기 때문에 기억해야만 하는 장소들이라고 웅변하는 듯하다. 이를테면 오와타 다테키가 본격 적으로 경부선에 오르는 제3절부터 경의선을 내리는 제28절까지, 경부선과 경의선 노선의 모든 역들이 작품에 등장시키지 않는 가운데, 유독 임진왜란의 유서가 깃 든 역들을 굳이 한 개의 절로 떼어 놓았던 것은, 임진왜란이 여전히 현재적 의미 를 지니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제28절 이후 만주의 여정 에서는 더욱 현저한데, 이를테면 러일전쟁 당시 쿠로키[ 黒 木 ] 부대가 도강을 하며 올렸던 함성을 떠올리면서 압록강을 건너는 바로 그 순간부터(28. 黒 木 軍 隊 此 川 を 裂 風 破 竹 の 勢 ひに 渡 して 揚 げたる 鬨 の 声 まじるか 今 も 水 音 に[16]), 노키 장군의 고 전과 히로세 중좌의 전사를 추모하며(55. 乃 木 将 軍 が 苦 戦 せし 名 誉 の 陸 はここなる ぞ 広 瀬 中 佐 が 戦 死 せし 名 誉 の 海 はここなるぞ[32]) 여정이 끝나는 다롄( 大 連 ) 만에 이를 때까지, 만주를 가로지르는 모든 철도 연선들은 마치 러일전쟁의 전적지가 아닌 곳이 없는 듯하다. 그러니까 이 두 지역의 여정은, 역사적 과거가 우위를 차지하는 조선의 여정과, 현재가 우위를 차지하는 만주의 여정이라는 차이를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러한 여 정의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열망했던 대륙진출 을 감격스럽게도 오늘날 일본이 이루었다, 그리고 어쩌면 오늘날 일본이 첫걸음을 뗀 조선과 만주의 진출이란 이미 3백여 년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에 서 수많은 선열들이 그 땅에 피와 땀을 뿌리고 또 함성과 개가를 울리면서 그 땅 에 그들의 혼을 담았다, 그래서 이 조선과 만주는 결코 일본과 무관한 이향이거나 외국이 아니라 일본의 일부이어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이 조 선과 만주는 선조와 선열들이 먼저 첫발을 딛었고, 오늘날 일본인들이 초석을 세 우고 있고, 그래서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땅이라고 노래하고 있는 셈이다. 바 로 이러한 사정에서 인용한 작품 가운데 제40절의 경우, 태자하( 太 子 河 ) 연변( 沿 邊 )의 어느 산야의 이름조차도, 그 지역을 정벌했던 어느 일본 장군의 이름을 빌 어 명명한 것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러한 이향으로의 여정, 특히 과거로의 여 정을 통해 선조ㆍ선열들과 재회하는 일이란, 궁극적으로 독자 혹은 가창자로 하여 금 그들이 처한 삶의 물리적 경계를 넘어서는 현존을 체험하게 할 것이다. 또한

일본의 식민지 철도여행과 창가 203 그러한 현존이란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는 어떤 동일성을 향한 욕망으로 비롯했 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욕망을 통해서 일본은 조선과 만주의 경영자로서의 자 기정체성을 확대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독자ㆍ가창자가 근본적으 로 소학교 학습자들이었던 만큼, 그러한 욕망이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손쉽게 실 현될 수 있었을 것이다. III. 식민주의 욕망이 그려낸 상상의 여정 그런데 이러한 정체성의 상상적 확대가, 이를테면 위에서 인용한 제40절의 명명 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근본적으로 선주민(先住民)의 삶과 역사, 그 지역의 정체 성 자체를 근원적으로 소거해버린다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그러한 사정은 이를 테면 이 창가집에 수록된 삽화들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는데, 조선반도와 관련 된 21매의 사진 가운데 조선인의 모습이 등장하는 것이라고는 겨우 4매에 불과하 다. 그나마 한국풍속 이라는 범박한 제목으로 수록된 4매의 사진에 등장하는 조 선인의 모습도, 낯선 사진기 앞에서 문명의 세계로부터 격절된 오지의 선주민의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그 외 조선의 풍경 또한 오로지 경부선 혹은 경의선 연 선의 철로나 한강철교와 같이 일본이 일구어낸 바가 아니면, 원시의 자연 그대로 이거나 인기척도 없이 허황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러한 사정은 만주와 관 련된 24매의 사진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이 24 매의 사진 가운데 중국인과 한국풍속⑴ 금강(錦江) 그들의 삶을 촬영한 것은, 만주풍속 이라는 제목의 2매, 만주의 가을 이라는 제목으 로 가을걷이 풍경을 담은 1 매, 해성(海城) 시가지, 대석 경복궁 경부선 열차 교(大石橋) 역 정거장, 영구

204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3호(2009) (營口) 중국인 거리를 담은 각 1매씩 더하여 모두 6매에 불과하다. 그리고 나머지 18매의 사진 가운데 러일전쟁 당시의 일본군의 위용을 담은 것들이 9매, 인기척이 라고는 전혀 없는 시가지의 풍경을 담은 것이 9매이다. 이 만한철도창가 가 단순 한 창가집이기 이전에 지리교 과의 부교재로서의 성격 또한 지닌 만큼 이러한 삽화는 자 만주의 가을 해성 시가지 연스럽다고 하겠다. 근본적으 로 이향에 대한 지리적 정보 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앞서 인용한 금강, 경복궁, 경부선 열차, 다렌 시가지 등과 같은 쿠로키 부대 압록강 도강 다롄 시가지 삽화는 이에 충실히 부합한 다. 하지만 이러한 사정을 염 두에 두더라도 이러한 삽화들은 현지의 정치, 사회, 역사적 맥락이 소거된 채 피상 적인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 바로 그러한 사정에서 이러한 삽화들을 가로지르는 시 각이란, 관광지의 풍경에 대한 관광객의 시각과도 흡사하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를테면 이향과 그 선주민의 삶과 기억을 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러한 것들을 탈맥락적이고 탈역사적으로 본다든지, 심지어 화자 자신의 삶과 기억을 자기도취적 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13) 3. 부산 이름난 항구라 손꼽히는 무역장 드는 배 나는 배 쉴 새 없이 잇따른 시가의 흥성거림(釜山は名たたる港にて韓国屈指の貿易場出船入船絶間な く並ぶ市街の賑しさ)[2] 9. 봄가을 두 철 열리는 이름난 대구 시장 모이는 장사꾼 만 명 땅은 또 얼마 나 비옥하던가(春秋二季に開かるる名も大邱の大市場集まる商人一万余土 地の潤いくばくぞ)[5] 13) 닝왕(저)/이진형ㆍ최석호(역), 제7장 이미지의 유혹, 관광과 근대성: 사회학적 분석 (서울: 일신사, 2004), 249쪽.

일본의 식민지 철도여행과 창가 205 14. 물빛 고운 금강 언덕 따라 부강역 쌀 장사 소금 장사 장꾼 들끓는 은성한 장터 ( 水 美 しき 錦 江 の 岸 に 沿 ひたる 芙 江 駅 米 と 塩 との 商 業 に 旅 人 つとい 市 栄 ゆ)[8] 34. 백만 근의 석탄을 밤낮으로 파낸다는 무순 탄광 오른편으로 보고 지나며 이제야 도착하네 봉천부( 百 万 斤 の 石 炭 を 日 毎 に 掘 りて 出 すと 聞 く 撫 順 炭 礦 右 に 見 て 今 ぞ 着 きぬる 奉 天 府 )[19] 47. 생사 시장이라는 개평 지나서 웅악성 성벽 네 면에 물결치듯 일어나 앉는 구릉을 바라보네( 生 糸 の 市 場 と 聞 えたる 蓋 平 すぎて 熊 岳 城 城 外 四 面 に 波 立 てて 起 き 伏 す 岡 ぞ 望 まるる)[27] 51. 서둘러 나아가는 차창 왼편으로 바라보는 절경의 화상도 무역으로 번화 한 다롄만( 進 みも 早 く 行 く 汽 車 の 窓 より 左 にながめやる 風 景 佳 絶 の 和 尙 島 貿 易 繁 華 の 大 連 湾 )[29] 그래서 인용한 작품들은 이 만한철도창가 에서 조선인의 삶에 대한 묘사가 가 장 역동적으로 드러나 있는 사례들이다. 하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이 작품들은 한 결같게 물산이 모이는 곳, 그러니까 경제가 발달한 곳임을 알 수 있다. 환언하자면 과거가 아닌 현재, 문명으로부터 격절된 공허한 자연이 아닌 역동적인 인간의 삶 의 장소로서 조선이란, 오로지 일본의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의미를 지니는 몇몇 지역에 국한된 셈이다. 그러한 조선 표상을 둘러싼 사정은 이 철도 연선을 따르는 여정이 압록강을 넘어 신개지( 新 開 地 ) 만주의 묘사와 표상의 과정에서도 마찬가지 인데, 흥미로운 것은 인용한 제34절, 제47절, 제51절의 경우 살아있는 중국인의 역동적인 면모란 전혀 없다. 이와 같이 화자의 시선이 머무르고 그 욕망이 드러나는 대목이 오로지 경제적 인 의미를 지니는 지역이라는 사정은, 근본적으로 지리교과의 부교재 역할을 했을 이 작품의 창작 의도를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의 근저에 국민국가 일본이 조선과 만주의 경영자로서의 정체성 확대하고자 하는 욕망이 가로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선과 만주에 투사한 자기정체성을 향 한 욕망이 경제적인 욕망과 분리하기 어렵다면, 게다가 그러한 욕망으로 인해 선 주민의 삶과 역사, 그 지역의 정체성마저 탈맥락적이고 탈역사적인 것으로 치환해 버리고 만다면, 이 작품의 화자의 시선과 욕망이야말로 전형적인, 하지만 비루한 식민주의자의 그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식민주의의 욕망이란,

206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3호(2009) 바야흐로 국민국가로서의 경계를 넘어 제국으로 자기의 정체성을 확장시켜 나아갔 던 메이지기 일본의 자신감ㆍ자부심과도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20. 인천항 거류 동포 일만 삼천 여 러일전쟁 나자마자 적함 가라앉힌 포구라 네( 仁 川 港 在 留 邦 人 一 万 三 千 余 日 露 の 役 の 手 始 に 敵 艦 沈 めし 浦 なるぞ)[11] 21. 항구의 흥성거림 구경하고서 볼일 또한 마치고 한가하거든 일본공원 월 미도 들러 보시길( 港 の 賑 ひ 見 物 し 要 務 終 りて 余 暇 あらば 日 本 公 園 月 尾 島 ついでにそれも 行 きて 見 ん)[12] 주로 경부선과 경원선을 중심으로 하는 이 작품의 조선반도 여정에서, 다른 지 역과 달리 모두 3절이나 할애하여 경인선 여정, 특히 인천항의 여정이 삽입된 것 은, 인용한 두 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본인 거류지인 인천항을 소개하기 위해서 라고 여겨진다. 다른 철도 연선의 여정이, 서둘러 나아가는 차창으로 바라보는 풍 경( 行 く 汽 車 の 窓 より 左 にながめやる 風 景 ), 그러니까 스쳐지나가는 흐릿한 풍경의 연속이고, 일쑤 이향의 선주민과 그들의 현존조차 흐릿해지고 마는 풍경의 연속인 데에 비해, 일본인 거류민의 삶과 그들이 일구어낸 인천의 풍경은 만주로 향하는 여정에서 잠시 벗어나더라도 반드시 가서 보아야 할 것인 양, 마치 관광안내서와 같은 어투로 되어 있어서 흥미롭다. 그것은 물론 인천이 운향호사건(1875)과 강화 도조약(1876)을 통해 얻은 개항지 가운데 하나일 뿐만 아니라, 대만침략(1874)에 이어 메이지( 明 治 ) 유신 이래 근대 일본의 본격적인 대외진출의 상징적 장소이기 때 문일 터이다. 그러한 사정에서인지 이 작품 이전에 간행된 일본의 조선관련 여행서, 특히 선편을 이용한 여정을 담은 여행서들의 경우에서도, 인천이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4) 심지어 만한철도창가 와 비슷한 시기에 간행된 여 행기 가운데에는 경인선 연선과 인천의 여행이 중심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15) 어쨌든 이 작품에서도 인천의 상징적인 의미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만큼 은 인용한 작품을 비롯한 경인선 연선의 여정을 노래한 작품들에서 분명히 나타난 다. 이러한 대목에서도 나타난 조선과 만주의 철도 연선의 지역들 사이의 경제적, 14) 村 木 正 憲, 淸 韓 紀 行, 1900; 葛 城 天 華, 朝 鮮 半 島 豪 傑 的 旅 行 ( 大 阪 : 又 間 精 華 堂, 1903). 15) 上 村 才 六, 淸 韓 游 踪 ( 東 京 : 東 京 堂, 1906); 田 淵 友 彦, 滿 韓 旅 行 記 ( 東 京 : 時 習 社, 1907); 堀 川 遠, 韓 國 漫 遊 案 內 ( 京 城 : 盛 文 堂, 1907).

일본의 식민지 철도여행과 창가 207 정치적 차원의 비대칭이란, 한편으로는 식민주의의 자신감ㆍ자부심으로도 드러난 다는 사실은 대단히 흥미롭다. 어쩌면 그러한 심성은 앞 장에서 검토한, 화자가 과 거로의 여정을 통해 선조ㆍ선열들과 재회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의 물리적 경 계를 넘어서는 현존을 체험하는 데에도 이미 깃들어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 미만한 식민주의의 욕망과 자신감ㆍ자부심이란, 근본적으로 이 조선과 만주의 철도여행의 여정이 식민주의가 그러낸 상상적 여정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고 하겠다. 아울러 그러한 심성이란 이 만한철도창가 모두에 이미 제시 된 악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2/4박자의 행진곡 풍 aa'bc 식의 선율진행으로 비교적 단순한 악곡으로 반복되는 가운데 자연화 한다. IV. 다른 식민지 철도창가의 사례 만한철도창가 를 둘러싼 이러한 사정은, 이를테면 다른 식민지에 대한 철도창 가 가운데 하나인 臺 灣 周 遊 唱 歌 (1910)와 대비해 보면 더욱 흥미롭다. 이 대만 주유창가 는 대만총독부에서도 간행한 것으로서 대만에 서 소학교 교재로 쓰였고 16), 그래서 이 작품이 간행된 무렵부터 대만의 소학교에서 일본인 학생은 물론 대만 인 학생들도 배우고 불렀을 것으로 여겨진다. 전체 90절 에 이르는 이 작품의 주조( 主 調 ) 가운데 하나는 일견 낯 선 섬나라 대만을 가로지르는 철도 연선에서의 서경인 데, 이는 주로 철도 연선에 따른 여정의 묘사에 보다 비 중을 둔 만한철도창가 의 경우와 사뭇 달라서 흥미롭 다. 아울러 이 대만주유창가 또한 그 첫 절에서 이미 분명히 드러나는 바와 같이, 바야흐로 제국으로 발돋움 臺 灣 周 遊 唱 歌 악보 하는 일본의 자신감ㆍ자부심이 저 만한철도창가 보다 16) 賴 美 鈴, 日 治 時 期 臺 灣 音 樂 敎 科 書 硏 究, 歷 史 硏 究 者 交 流 活 動 硏 究 成 果 報 告 書 ( 東 京 : 財 團 法 人 交 流 協 會, 2000), 7쪽; 日 治 時 期 公 學 校 音 樂 敎 科 書 初 探, 臺 灣 敎 育 史 硏 究 會 通 訊, 第 四 期 ( 臺 北 : 臺 灣 敎 育 史 硏 究 會, 1999), 12~13쪽.

208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3호(2009) 도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1. 국광사해에 빛나는 동아 하늘에 승리를 거둔 우리 일본의 신영토 대만섬을 찾아가보자( 国 光 四 海 にかがやきて 東 亜 の 空 に 覇 をなせる 我 が 日 の 本 の 新 領 土 台 湾 島 をさぐり 見 ん) 11. 몇 백 년 후 팽창을 거듭하리라 정한 시구 개정의 거대함이여 생각만으로 도 기대되네( 幾 百 年 後 の 膨 張 をかねてはかりて 定 めたる 市 区 改 正 のををし さよ 想 ひやるだにたのもしや) 18. 삼백 년 옛적 만 리 파도 헤쳐와 무위 떨친 스페인 산티아고 성 여기에 섰네( 三 百 年 のその 昔 万 里 の 波 を 凌 ぎ 来 て 武 威 を 振 ひしイスパニヤサン チャゴ 城 此 処 に 建 つ) 19. 그 뒤로 화란 왔으나 정 씨가 그 대신 여기에 터 잡네 영고성쇠 변하여 영웅 자취 지금 어디에( 後 にオランダ 来 てりしが 鄭 氏 代 わりてこれに 據 る 栄 枯 はうつる 世 のならひ 英 雄 のあと 今 いづこ) 17) 알려진 바와 같이 일본은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대만을 식민지로 얻게 되어, 본격적으로 제국열강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쾌거로부터 비롯한 자부심이 인용한 제1절의 국광사해에 빛나는 동아 하늘에 승리 라는 구 절에 함축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비단 일본의 승리만이 아니라 동아의 승리 라는 점에서, 대만의 식민지화에 대한 일본의 인식과 입장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이 쾌거의 자부심이란 인용한 제11절에서 알 수 있듯이, 어쩌면 영구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기대로도 연결되는데, 또한 그것은 적어도 대만이 17세기 이후 겪었던 역 사적 질곡을 바라보는 시선마저 결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이 대만주유 창가 는 대만이 역사적으로 중원으로부터 격절된 오지였고, 포르투갈와 네덜란드, 또 정성공( 鄭 成 功 )의 지배를 거치는 동안 대대로 주인이 바뀌어 왔던 땅이고 18), 그래서 대만을 둘러싼 열강의 쟁탈 역사의 마지막이 바로 일본의 지배라고 선언한 다. 나아가 이 일본의 지배를 통해 동아는 서구 열강의 위협으로부터도 몰락한 중화 17) 宇 井 英, 臺 灣 周 遊 唱 歌 ( 臺 北 : 臺 灣 總 督 府, 1910); 臺 灣 周 遊 唱 歌 南 洋 唱 歌 ( 正 增 補 十 三 版 ) ( 臺 北 : 新 高 堂 書 店, 1921); 安 田 寛 외(편), 原 典 による 近 代 唱 歌 集 成 ( 原 典 影 印 Ⅴ) ( 東 京 : ビクターエンタ テインメント 株 式 會 社, 2004), 144~145쪽. 18) 김영신, Ⅱ. 외부세계와의 접촉 ; Ⅲ. 정씨왕국시기, 대만의 역사 (서울: 지영사, 2001).

일본의 식민지 철도여행과 창가 209 세계의 질서로부터도 벗어나, 새로운 역사를 설계하고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선 언한다. 이 동아의 승리 란 결국 새로운 역사, 아( 亞 )서구 일본이 동아에서 실현하고 자 하는 새로운, 또한 다른 문명의 시작이라는 자부심과 기대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어쩌면 이러한 자부심과 기대감만 두고 보자면 앞서 검토한 만한철도창가 의 경우와는 사뭇 다르다. 이를테면 만한철도창가 는 그 땅에 먼저 첫 발을 들여 놓 았던 선조와 선열들, 그리고 오늘날 일본인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영통(communion) 과 재생의 감각과 체험이나, 동질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공허한 시간을 가로지르 는 신념의 완성에 주안점이 놓여 있다고 하겠다. 그런가 하면 대만주유창가 에서 는 그러한 감각, 체험이나 의지는 분명히 드러나 있지 않고, 그보다는 누구도 영원 한 주인이었던 적이 없는, 그래서 누구라도 주인이 될 수 있는 대만이라는 지역에 서 이제 일본이 영원한 주인이고자 하는 욕망이 더욱 당당히 드러나 있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한철도창가 와 대만주유창가 는 예정된 미래가 실현되는 지 역으로서든, 혹은 누구라도 주인이 될 수 있는 지역으로서든, 문명의 세계로부터 격 절된 오지이자 선주민의 삶과 역사, 그 지역의 정체성마저 소거되어 버린 공간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흥미롭게도 공통점을 지닌다고 하겠다. 2. 남북 길이 일 백 리 둘레 이 백 구십 리 작은 섬 더하여 그 넓이 규슈만 하여라( 南 北 長 さ 一 百 里 めぐりは 二 百 九 十 余 里 小 島 あわせてその 廣 さ 九 州 と ほぼひとし) 8. 사위는 산이 둘러싸고 지세 교토와 닮았으니 제절로 이룬 성벽 실로 만대 의 방비이네( 四 面 は 山 にかこまれて 地 勢 京 都 にさも 似 たりおのづからなる 城 壁 はげに 萬 世 のかためなり) 37. 예까지 몇 리나 지세 높고 가파르고 그 위에 다안 다자 두 개울 있으니 하코네 터널이 떠오르네( 此 処 まで 数 里 のその 間 地 勢 嶮 岨 のその 上 に 大 安 大 甲 二 溪 あり 箱 根 のトンネル 想 ひやる) 19) 인용한 작품들을 비롯한 대만주유창가 의 화자는 대만이라는 지역 전체는 물 론이거니와 제8절의 타이페이, 제37절의 다안( 大 安 )ㆍ다자( 大 甲 )라는 지리적 공간을, 19) 宇 井 英, 臺 灣 周 遊 唱 歌, 安 田 寛 외(편), 위의 책, 144~145쪽.

210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3호(2009) 처음은 대단히 사실적이나 마지막에는 흔히 일본 유수의 도시와 비교 혹은 유비적 으로 묘사하기 일쑤이다. 일본인으로서 화자 자신의 삶과 기억에 근간하여 대만 이곳저곳을 이처럼 일본과의 유비를 통해 이해하고 묘사하는 태도란, 일견 이향에 매혹되어 여행하고 관찰하는 주체의 어쩌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렇게 이 해하고 묘사한 대만이라는 지역은, 일본인 독자ㆍ가창자에게 대단히 친숙한 심상 을 환시시킬 수도 있겠으나, 반면에 대만인 독자ㆍ가창자로서는 제 고장의 고유한 정체성이 소거된 마치 타향인 듯한 위화감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나아가 인용한 작품들에 따르면 규슈 섬을 연상시키는 대만이라는 지역은, 일본에서는 전혀 다른 지역인 교토와 하코네가 마치 한 곳에 존재하는 매우 기묘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 와 같이 이향인 대만을 고향인 일본에 투사하여 이해하는 인식은, 결국 대만이라 는 지역을 탈맥락적인 공간으로 표상하게 한다. 28. 북녘 온 산의 생번을 막고저 요소에 철조망을 펴치고 익용선을 세웠네( 北 部 諸 山 の 生 蕃 を 防 ぐためとて 要 所 には 鉄 条 網 を 張 り 渡 し 隘 勇 線 を 設 けたり) 75. 예서 5리 바다 위로 아스라이 보이는 소유구 길이 1리 폭 반리 온 집이 사슴 키우네(これより 五 里 の 海 上 にかすかに 見 ゆる 小 琉 球 長 さは 一 里 幅 半 里 何 れの 家 も 鹿 を 畜 ふ) 79. 황택 나날이 두루 미쳐 배움의 뜨락에 생번 아이 저도 남만 못지 않으려 모여와 우리 나라말 꽃이 피네( 皇 沢 日 々に 霑 ひて 学 びの 庭 に 蕃 童 がわれ 劣 らじと 集 ひ 来 て 御 国 言 葉 の 花 ぞ 咲 く) 84. 섬[필자 주: 紅 頭 嶼 ] 둘레 9리 남짓 태고의 모습 보는 듯 자못 가련한 만 민 이 천만이 산다 하네( 島 のめぐりは 九 里 あまり 太 古 のさまを 見 る 如 きい とあわれなる 蛮 民 が 二 千 ばかりも 住 むと 聞 く) 20) 인용한 작품들에 묘사된 바를 통해서 보자면, 대만은 생번( 生 蕃 ) 혹은 만민( 蠻 民 )이 태고의 모습 그대로 사슴을 키우고 살고, 이따금 산을 넘어 병화( 兵 火 )를 일 으키는 문명 이전의 지역 그 이상은 결코 아니다. 그나마 제75절과 제84절이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선주민의 삶과 지역의 정체성이 유일하게 드러난 사례이다. 20) 宇 井 英, 위의 글, 安 田 寛 외(편), 위의 책, 146~147쪽.

일본의 식민지 철도여행과 창가 211 사실의 여부를 떠나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묘사된 대만 선주민의 삶이란, 그 지역 의 어떠한 역사적 변천에도 무관하게 문명한 외부세계와 격절된 채 면면하게 이어 져 오늘날에도 이른 것처럼 여겨진다. 이로써 이 작품의 화자가 근본적으로 마치 서구의 세계가 비서구의 지역에 대해 흔히 취하는 원시주의(primitivism)의 시각으 로 대만과 그 여정을 묘사했다는 사실은 자명하게 드러난다고 하겠다. 이러한 시 각은 또한 제79절이 시사하는 바, 일본의 식민지 경영이 베푸는 황택( 皇 澤 ) 즉 철도 부설이나 시구개정, 교육의 기회와 계몽의 비전을 통해 대만은 비로소 남만 못지 않은 문명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궁극적으로 식 민주의의 근간을 이룬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이와 같이 기묘한 상 상적 공간으로서, 선주민의 삶과 기억, 지역의 정체성마저 소거된 공간으로서 대 만을 표상한 다음에 비로소 식민지에 대한 욕망과 그것이 빚어낸 환상을 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3. 산에는 금은 바다에는 소금 제차 제당 과실류 논에 벼는 두 번 여무는 실로 제국의 무진장( 山 に 金 銀 海 に 塩 製 茶 製 糖 果 実 類 水 田 に 稲 は 二 度 みのるげに 帝 國 の 無 尽 蔵 ) 72. 옛성 지나 타구항 종관철도 이에 이르고 장삿배 언제나 한 데 모이니 온 갖 물산 나날이 산을 이루네( 舊 城 過 ぎて 打 狗 港 縦 貫 鉄 道 ここに 尽 く 商 船 常 に 輻 輳 し 百 貨 は 日 々に 山 を 為 す) 90. 이제 되돌아가는 길 황금 캐는 목단갱 서방 금과석 보물산은 이어지네(これ より 元 へ 帰 る 道 黄 金 掘 り 出 す 牡 丹 坑 尚 も 瑞 芳 金 瓜 石 宝 の 山 は 連 なれり) 21) 앞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대만주유창가 의 주된 내용은 철도 여정의 서 경이나, 이 여정은 곧 다양한 대만의 물산 산지를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금이 나 은과 같은 귀금속, 석탄이나 석유와 같은 광물은 물론 소금이나 설탕, 미곡, 과 실, 약초 등에 이르기까지, 이 대만주유창가 는 대만 철도 연선에 온갖 물산이 넘 쳐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사정은 물론 이 대만주유창가 또한 지리교과의 부교재로 활용되었을 터인 만큼 어쩌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21) 宇 井 英, 위의 글, 安 田 寛 외(편), 위의 책, 144, 148쪽.

212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3호(2009) 러한 묘사가 결코 단순한 지리정보의 서술로만 볼 수 없는 것은, 인용한 제3절과 제90절이 웅변적으로 시사하는 바를 통해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인용한 절 을 비롯하여 이 작품은 제국으로 발돋움하는 일본의 자신감ㆍ자부심으로부터 시 작되나 실상은 오로지 식민지 대만에 대한 경제적 욕망을 한껏 투사하는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은 대만을 그야말로 제국의 무진장 혹은 보 물산 즉 마치 일본의 발길이 닿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주인 없는 보물섬과 같이 묘사한다. 그런데 만한철도창가 의 경우 일본의 입장에서 경제적인 의미를 지니는 몇몇 지역들만이 선주민의 역동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삶의 장소로서 묘사되는 반면, 대만주유창가 의 경우 그야말로 무진장의 보물산과 같은 지역들에서는 대만 선 주민의 그림자조차 찾을 길 없다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점은 결코 간과할 수 없 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조선과 만주 그리고 대만의 지리적 차이, 이 두 지역을 식 민지로 삼는 과정의 차이나, 두 식민지에 대한 일본의 입장의 차이로부터 비롯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차이를 넘어서는 공통점이 있다면, 이 두 작품 모두 대상으로 삼은 각각의 지역들을 경제적 욕망으로 비롯한 비루한 상상적 풍경으로 묘사하고 표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상적 풍경으로 묘사하고 표상 하는 글쓰기, 나아가 매체가 바로 철도 창가라는 것이 이로써 자명해 진 셈이다. V. 국민국가, 제국의 심상지리와 철도창가 앞서 만한철도창가 와 대만주유창가 의 경개( 梗 槪 )를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작품들은 근본적으로 단순하게 반복되는 운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사실은 결 코 단순하지만은 않은 복잡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를테면 부산, 아니 시모노세 키에서 뤼순에 이르는, 키룽에서 대만을 일주하여 다시 타이페이에 이르는 하나의 플롯을 근간으로, 허다한 지역과 그곳에 얽힌 사연들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파노라 마적인 서사의 요소도 다분히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서사의 요 소가 농후한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두말한 나위도 없이 글쓰기 주체로서 화 자의 시선과 그에 따라 이루어진 묘사하고 하겠다. 또한 그러한 시선과 묘사의 특

일본의 식민지 철도여행과 창가 213 징을 결정하는 시간과 공간의 인식이다. 이러한 사정은 일단은 이 만한철도창가 나 대만주유창가 가 근본적으로는 철도 여행을 묘사한 여정이므로, 또한 대부분 저마다 다른 지역을 묘사한 각각 모두 60절과 90절의 연장체의 형식으로 이루어 져 있으므로 그러할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흔히 근대적 교통수단인 철도는 이전의 자연과 유기적으로 결부되어 있던 시간과 공간의 연속체를 소멸시켜, 인간의 교통을 자연 세계로부터 분리시켰을 뿐만 아니라, 자연 자체를 축소시켜 그저 풍경 혹은 경관의 지위로 격 하시키고, 철도 연선 지역 나름의 현재성 혹은 아우라를 박탈해 버렸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그러한 풍경, 경관의 관찰자로서 인간의 지각을 파노라마의 형태로 변 화시켰다고 한다. 22) 이 만한철도창가 나 대만주유창가 또한 근본적으로는 근대 기 철도 여행이 초래한 폭넓은 변화의 양상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또한 이러한 철도창가 작품들은 대체로 4절 미만의 여타의 학교창가에 비해 상당히 긴 연장체 의 형식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개의 절에 한 개 혹은 그 이상의 지역을 묘사하면서, 마치 달리는 열차의 창문을 통해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듯 한 속도감을 느끼게 하는데, 이 또한 철도여행의 체험과 흡사하다. 한편 시모노세 키 혹은 부산으로부터 뤼순을, 키룽으로부터 타이중( 臺 中 )과 타이둥( 臺 東 )을 거쳐 다시 타이페이를 잇는 철도 노선 위에서, 마치 점과 같은 개별 지역들에 관한 역 사 경제 지리적 정보와 지식을 기입( 記 入 )해 나아가듯 창작한 작품이었다는 점에 서도 그러하다. 즉 이러한 철도창가는 독자ㆍ가창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비단 지리 교과의 부교재일 뿐만 아니라, 텍스트는 물론 이미지와 음악까지 마치 주석처럼 첨부된 총체적인 가상체험의 철도여행 안내서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 철도창가들 의 가상체험적 여정의 근저에 가로놓인 시공간의 인식이란, 작품에 등장하는 각각 의 지역과 유기적으로 결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좌표축과도 같은 노선도 위에 균질적이고도 통일적으로 배치된 기하학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한 사정은 조선총독부, 혹은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간행한 철도여행 안내서와도 적지 않게 닮아 있기도 하다. 23) 22) 볼프강 쉬벨부쉬(저)/박진희(역), 2. 기계앙상블 ; 3. 철도 공간과 철도 시간, 철도여행의 역사 (서울: 궁리, 1999). 23) 朝 鮮 總 督 府 鐵 道 局 (편), 朝 鮮 鐵 道 路 線 案 內 ( 京 城 : 朝 鮮 總 督 府 鐵 道 局, 1912); 南 滿 洲 鐵 道 株 式 會 社 京

214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3호(2009) 그런데 파노라마와 같은 풍경의 체험이라는 측면에서는 범속한 철도 여행이나 만한철도창가 와 대만주유창가 나 마찬가지인 듯하나, 실상 후자의 두 철도창가 의 경우 관찰로부터 비롯한 것이 아니라 가상체험으로부터 비롯한 상상된 것이고, 그래서 또한 독자ㆍ가창자로 하여금 또 다른 가상의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 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러한 가상체험과 상상이란 이향으로서 조선과 만주 그리고 대만이라는 신개지에 대한 단순한 이국취향의 고취의 차원을 넘어서, 확장 된 국민국가로서 일본의 정체성은 물론 그 심상지리를 재현하고, 나아가 독자 혹 은 가창자로 하여금 그것을 상상하게 하는 기술적 수단이라고 여겨진다. 이 만한 철도창가 와 대만주유창가 의 글쓰기 주체의 시선, 묘사, 시공간 인식으로 이루 어진 서술과 묘사의 기법은, 신개지 조선과 만주의 공허한 개별지역과 각각의 풍 경들을 수평적이면서도 다면적인 시야로 이동하면서, 단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 는 독자, 가창자에게 연속체로서의 풍경, 파노라마를 제시한다. 그것은 이를테면 일본과 조선과 만 주 그리고 대만 사 이에 어떠한 물리 적 격절도 존재하 지리교육 철도창가 일본전국 철도노선도(1892) 24) 남만주철도회사 노선도(1913) 25) 지 않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인 듯한 이미지와 환 상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지니고 있 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글쓰기의 원형이 오와타 다 테키가 이미 발표 城 管 理 局 (편), 朝 鮮 鐵 道 旅 行 案 內 ( 東 京 : 南 滿 洲 鐵 道 株 式 會 社, 1915); 서기재, <지도> 소유의 관점 에서 본 한국 근대 관광 의 의의, 일본어문학, 38호(한국일본어문학회, 2008), 285~293쪽. 24) 鐵 道 省 (편), 附 錄 : 鐵 道 路 線 圖, 日 本 鐵 道 史 ( 東 京 : 鐵 道 省, 1921). 25) 拓 殖 局 (편), 南 滿 洲 鐵 道 株 式 會 社 路 線 槪 圖, 南 滿 洲 鐵 道 株 式 會 社 要 覽 ( 東 京 : 拓 殖 局, 1913).

일본의 식민지 철도여행과 창가 215 한 지리교육 철도창가 나 그 외 그가 발표한 허다한 철도 창가들임은 두말할 나 위도 없다. 1. 기적 한 소리 신바시를 이제 우리 기차는 떠나네 아타고 산으로 숨어들어간 달을 여행길 벗으로 삼아( 汽 笛 一 聲 新 橋 をはや 我 汽 車 は 離 れたり 愛 宕 の 山 に 入 りのこる 月 を 旅 路 の 友 として) 2. 오른편은 다카나와 센가쿠지 마흔 일곱 의사 무덤 있는 곳 눈은 녹아도 남은 이름은 천년 뒤까지도( 右 は 高 輪 泉 岳 寺 四 十 七 士 の 墓 どころ 雪 は 消 えても 消 えのこる 名 は 千 載 の 後 までも) 5. 쓰루미 가나가와 뒤로 하고 가면 요코하마 스테이션 항구를 바라보면 수많은 배 연기는 하늘을 그을릴 만큼( 鶴 見 神 奈 川 あとにしてゆけば 横 濱 ステーシ ヨン 湊 を 見 れば 百 舟 の 煙 は 空 をこがすまで) 11. 지선을 뒤로 하고 되돌아와 건너는 사가미 바뉴가와 해수욕으로 이름난 오이소 보이고 물결 잔잔하네( 支 線 をあとに 立 ちかへりわたる 相 模 の 馬 入 川 海 水 浴 に 名 を 得 たる 大 磯 みえて 波 すゞし) 19. 세상에 이름 드높은 오키츠 도미 종 소리 울리는 세이겐지 키요미즈로 이 르는 에지리에서 가보면 머지않아 구노산( 世 に 名 も 高 き 興 津 鯛 鐘 の 音 ひゞ く 清 見 寺 清 水 につゞく 江 尻 よりゆけば 程 なき 久 能 山 ) 33. 자비로운 아츠다 신사 세 가지 신기의 하나 그 쿠사나기 신검( 神 劍 ) 우러 러 보네 동포 사천만(めぐみ 熱 田 の 御 やしろは 三 種 の 神 器 の 一 つなるその 草 薙 の 神 つるぎあふげや 同 胞 四 千 萬 ) 26) 이 지리교육 철도창가 의 가장 중심을 차지하는 내용은, 우선 제1절이나 제11 절의 경우와 같은 도카이도( 東 海 道 ) 연선의 모두 85개 지역, 산요ㆍ규슈( 山 陽 ㆍ 九 州 ) 연선의 모두 128개 지역, 오슈ㆍ이와키( 奥 州 ㆍ 磐 城 ) 연선의 모두 156개 지역, 호쿠리쿠( 北 陸 地 方 ) 연선의 모두 105개 지역, 칸사이ㆍ산구ㆍ난카이( 関 西 ㆍ 参 宮 ㆍ 南 海 ) 연선의 모두 85개 지역의 서경이다. 예컨대 이 작품의 첫 장이라고 할 수 있는 도카이도 편 만 두고 보면, 서경이 주를 이루는 부분은 모두 66절 가운데 29개 절이다. 다음으로는 그 지역에 깃든 유서 깊은 명물, 역사와 그에 대한 회고 라고 하겠는데, 이와 관련된 부분 또한 모두 29개 절이다. 또한 근대 서구에 비견 26) 大 和 田 建 樹, 東 海 道 篇, 地 理 敎 育 鐵 道 唱 歌 ( 第 1 輯 ) ( 東 京 : 開 成 館, 1900).

216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3호(2009) 할 만한 근대문명을 성취한 득의의 찬탄이라고 하겠는데, 이와 관련된 부분은 모 두 4개 절이다. 인용한 제1절, 제11절, 제19절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의 주된 풍경은 대체 로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시선의 주체가 묘사한 것이다. 이 이동하 는 시선은 모두 48음절로 이루어진 한 절에서 두 군데 혹은 세 군데의 지역을 묘 사하는 만큼, 상당한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이 감각이란 다름 아닌 철도의 체험으 로부터 비롯한 것일 터이고, 이로써 이 작품의 독자나 가창자는 이미 첫 절 부터 마치 열차에 앉아서 차창을 내다보며 여로에 오르는 체험을 떠올리거나 혹은 미루 어 짐작하는 경험하게 될 터이다. 이 짧은 내용과 작품 내의 시간에 이루어진 묘 사의 중첩이 마치 파노라마와 같은 풍경을 연출해 낸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러한 풍경 또한 무한히 연속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실 그 가운데 삽입된 풍경들로 인 해 단속적이기도 하다. 그 삽입된 풍경은 인용한 제2절, 제5절, 제33절의 경우와 같이, 대체로 역사에 대한 회고와 근대문명에 대한 찬탄이 일어나는 순간 등장한 다. 이를테면 제2절은 오른편은 으로 시작하는데, 이러한 장면의 전환이란 달리는 열차 안에 위치한 화자의 시선의 전환이자, 파노라마와 같은 풍경들 가운데 특히 주목해야 할 어떤 의미 혹은 가치를 담고 있기도 하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런데 이와 같이 주목해야 할 의미 혹은 가치를 담고 있는 장면이란, 우선 인 용한 제2절의 경우 저 센가쿠지 마흔 일곱 의사 무덤, 그러니까 근세 오이시 구 라노스케( 大 石 内 蔵 助 )의 충( 忠 ) 과 의거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27) 또한 제 33절의 경우 日 本 書 紀 등을 통해 알려진 아마테라스 오미카미( 天 照 大 神 )의 건국 신화에 따르면 이 쿠사나기 신검이라는 신기( 神 器 ), 즉 아마노무라쿠모노츠루기( 天 叢 雲 剣 )는 아마노카가미( 八 咫 鏡 ), 야사카니노마가타마( 八 尺 瓊 勾 玉 )와 더불어 만세 일계( 萬 世 一 系 ) 현인신인 천황의 권위, 특히 무위( 武 威 )관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27) 겐로쿠 아코 사건( 元 祿 赤 穂 事 件 )을 일컫는다. 도쿠가와 막부 시대 중기에 발생한 주군( 主 君 ) 복수 ( 仇 討 ち) 사건으로서, 1701년 4월 21일)에도( 江 戶 ) 성에서 아코( 赤 穂 ) 번주( 藩 主 ) 아사노 나가노 리( 浅 野 長 矩 )가 갈등을 빚고 있던 도쿠가와 가의 가신( 旗 本 ) 키라 요시히사( 吉 良 義 央 )를 참( 斬 )하 려 했으나 실패하여, 막부로부터 할복 처분을 받았다. 아사노의 신하인 오이시 구라노스케( 大 石 内 蔵 助 良 雄 ) 외 46명의 사무라이는 1703년 1월 30일 키라의 사저에 진입하여, 주군 아사노 대신 복수를 하고 키라의 목을 주군의 묘소 앞에 바쳤다. 이 일로 오이시 구라노스케와 46명의 사무라 이도 막부로부터 할복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이들의 유해는 센가쿠지에 매장되었다.

일본의 식민지 철도여행과 창가 217 없다. 이 두 가지 모두 근대 일본의 국민국가주의와 파시즘, 심지어 식민주의의 중 심을 이룬 것임은 굳이 췌언을 요하지 않는다. 이러한 역사의 의미와 가치가 산포 한 일본 전국을 망으로 연결하는 철도 연선이나, 이 연선의 여정의 가상적 체험으 로 인해, 이 지리교육 철도창가 는 일본이라는 국민국가의 공통감각을 환기하고 심상지리를 상상하도록 하는 효과를 환기시켰을 터이다. 또한 이를 통해 이 작품 은 근대 일본의 국민국가주의의 문화적 상징을 제공한다고도 하겠다. 이러한 지리교육 철도창가 를 원점으로 하여, 만한철도창가 와 대만주유창가 가 각각 창작되는 과정이란, 궁극적으로는 20세기 초 동아시아 지역을 둘러싼 국 제정치의 역학 구도에서, 발군의 패권을 차지한 일본이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 제국으로서의 자기 확장의 욕망을 구현해 나아가고자 했던 시점에서 대만을 비롯 하여 조선과 만주를 타자로 삼아, 마치 쾌속으로 질주하는 열차와 같이 국민국가 일본의 자기정체성을 확장시켜 나아가는 파노라마와 같은 풍경을 그려 가는 과정 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신바시에서 출발하여 시모노세키를 거쳐 신의주와 뤼순에 이르는, 혹은 타이페이에 이르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철도 연선 각 지역의 묘사란, 부단히 근대 일본이 자신의 정체성과 욕망을 투사하여 각 지역을 제국의 지방으로 표상하는 일이었고, 나아가 이를 통해 제국의 자신의 상을 확인하고 거대한 심상 지리를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철도창가들이란 방대한 자기 발 견과 성장의 송가( 頌 歌 )라고 하겠다. VI. 결론 그러므로 이 자기 발견과 성장의 송가로서 철도창가란 달리 보자면 제국의 상 상적 동일성과 심상지리를 환기하는 양식이었다고 하겠는데, 앞서 검토한 바와 같 이 오와다 다테키의 지리교육 철도창가 에 이어 만한철도창가 를 창작했던 사 정만 두고 보더라도 이미 그러하다. 그런데 이 철도창가라는 미디어는 근본적으로 국민국가 일본의 공교육과정 특히 심상소학교의 창가 교재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 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 철도창가가 일본인들로 하여금 국민의 공통감 각, 상상된 공동체로서 국민국가 일본, 식민지들, 나아가 제국의 심상지리를 일찍

218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3호(2009) 부터 내면화하고자 하는, 즉 국민국가주의와 식민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심미화하는 양식이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정에서 앞서 언급한 만한철도창가 의 편자 서문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서문의 효용론적인 입장이 가 리키는 바는, 일본의 소학교 학습자들을 장차 미래의 국민이자 제국의 신민으로서 육성하는 데에 식민지에 대한 지식이 필수 불가결하다는 것, 또한 그것은 단지 지 식의 차원만이 아니라 감각의 차원에서 내면화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편집자나 일본 문부성의 취지, 나아가 국민국가 일본의 국시란, 7ㆍ5조 12음절이 한 행을 이루고 다시 네 행이 한 연을 이루는 엄격한 음수율의 형식의 가사와, 이 러한 가사와 완벽하게 조우하는 음악적 형식이 무한히 반복되는 가운데, 가장 기 억하기 쉽고 가장 간단히 즐길 수 있는 악곡으로, 독자 혹은 가창자의 신체에 깊 숙이 각인되었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철도창가라는 양식은, 앞서 검토한 풍경 묘사의 사례들이 이미 시 사하는 바와 같이 한편으로는 파노라마적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하나의 고정된 시점에서 바라보는 풍경의 무한한 연속만을 제시할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점의 변화란 이를테면 앞장에서 살펴 본 오른편은 다카나와 센가쿠지 마흔 일곱 의사 무덤 있는 곳 눈은 녹아도 남은 이름은 천년 뒤까지도 와 같은 작품에서 나타나는 어떤 특별한 의미를 제시하는 순간이 아니면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국민국가 혹은 제국이 허용한 시선, 그리고 정서에 따라서 제 고향은 물론 이향의 삶과 기억, 정체성을 바라보게 하는 권력이 작동한다. 철도여행이 자연으로부터 현재성과 아우라를 박탈하면서 자연스럽게 풍경의 차원으로 격하시켰다면, 이러한 권력은 철도여행의 주체 혹은 철도창가의 독자나 가창자로 하여금 수동적인 태도 를 암암리에 요구한다. 그리고 그러한 철도창가는 근본적으로 음악이 지닌 감각적 직접성으로 이러한 권력이 쉽게 은폐되기도 한다. 바로 그러한 사정에서 만한철 도창가 의 다음 한 절은 여러 모로 음미해 볼만한 여운을 남긴다. 60. 아, 청국도 한국도 모두 친한 이웃나라이네, 서로 가까이 오가며 풀어야 할 문제 많아라(ああ 清 国 も 韓 国 も 共 に 親 しき 隣 国 ぞ 互 いに 近 く 行 きかひ て 研 かん 問 題 数 多 し)[34] 인용한 화자가 느끼는 청국과 한국의 친근함이란, 우선 만한철도창가 를 일별 해 본 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의 입장에서는 근세는 물론 근대 이후 일

일본의 식민지 철도여행과 창가 219 본의 대륙진출을 둘러싼 고투의 역사에서 비롯한 향수와 애착에서 비롯할 터이나, 실상 그것은 근대 이후 식민주의의 비루한 욕망과 폭력의 자기정당화 이상은 아니 라고 하겠다. 그러한 사정은 경부선과 경의선의 부설과 운용의 역사를 돌이켜 보 면 더욱 그러하다. 이를테면 이 두 철도노선의 부설과정에서 조선과 중국의 자발 적인 철도 부설을 방해하고, 엄청난 규모의 토지와 선주민들의 노동력이 희생되었 으며, 이로 인해 심지어 선주민들 사이에서 반철도운동까지 일어났던 사정은, 인 용한 이 작품에서는 미화되어 있거나 혹은 완전히 소거되어 있다. 28) 그리고 일본 과 조선, 그리고 중국이 함께 풀어야 할 문제란 실상은 미곡을 비롯하여 온갖 자 연자원의 폭력적인 일본 이출( 移 出 )을 둘러싼 것일 터인데, 이 또한 이 친근함이라 는 대단히 역설적인 정서를 근간으로 행진곡 풍 악곡의 경쾌한 이미지와 어우러진 채 아무런 갈등도 없이 봉합되고 말아 버린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러한 오와다 다테키의 철도창가는 비단 소학교 교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넘어서, 또한 소학교 학생이라는 제한된 가창자군을 넘어서 그야말 로 국민창가로서 인기를 구가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예컨대 지리교육 철도창가 는 1897년 이후 이른바 전국의 명소와 철도여행을 노래한 허다한 대중음악이 유 행했던 분위기에서, 29) 음악가 니시노 도라기치( 西 野 虎 吉 )가 자신의 악단을 이끌고 도카이도 철도 연선에서 무려 53회나 걸쳐 이 작품의 연주회를 열고, 이로써 그 연선의 청소년을 비롯한 많은 청중들이 이 작품을 따라 부르게 되면서 큰 인기를 누렸던 것으로 보인다. 30) 그래서인지 몇 차례 걸쳐 유성기음반으로 취입되어 발매 된 바도 있다. 31) 심지어 오노 우메와카( 多 梅 稚 )가 작곡한 악곡은 < 學 徒 歌 >라는 제 28) 朝 鮮 總 督 府 鐵 道 局 (편), 第 1 章 國 有 鐵 道 : 創 設 時 代, 朝 鮮 の 鐵 道 ( 京 城 : 朝 鮮 鐵 道 協 會, 1921), 16쪽; 정재정, 한말ㆍ일제초기(1905~1916) 철도수송의 식민지적 성격, 한국학보, 제29집(일지사, 1982), 166~169쪽; 정재정, 경부철도 부설에 나타난 일본의 한국침략정책의 성격, 한국사연구, 44집(한국사연구회, 1984), 110~119쪽; 정재정, 대한제국기 철도건설노동자의 동원과 연천주민 의 저항운동, 한국사연구, 73집(한국사연구회, 1991), 109~124쪽. 29) 高 野 辰 之, 10. 名 所 と 旅 の 流 行 歌, 流 行 歌 明 治 大 正 史 ( 東 京 : 春 秋 社, 1934), 185~206쪽. 30) 三 浦 俊 三 郞, 第 四 十 章 音 樂 圖 書 と 作 曲 家, 本 邦 洋 樂 變 遷 史 ( 東 京 : 日 東 書 院, 1931), 316~318쪽. 31) < 鐵 道 唱 歌 >(음반번호 ニッポノホン1210, 연주 納 所 文 子, 반주 納 所 辯 之 郞, 발매 1907년 경); (음 반번호 オリエントA429-434, 연주 納 所 文 子, 발매 1910년대); (음반번호 ヒコーキ1305, 연주 長 浜 秀 子, 반주 中 村 軾 帝 蓄 お 伽 樂 團, 발매 1919년 경); (음반번호 ヒコーキ4359, 연주 花 房 靜 子, 반주 渡 辺 吉 之 助, 발매 1919년 경). 昭 和 館 (편), SPレコード60,000 曲 總 目 錄 ( 東 京 : アテネ 書 房, 2003).

220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3호(2009) 목으로 普 通 敎 育 唱 歌 集 에 수록되어 조선에도 알려졌고, 또 이 곡은 후에 유성기 음반으로도 취입되어 발매된 바 있다. 32) 나아가 이 지리교육 철도창가 에 대한 향수로 인해 최근에도 여러 차례 다시 음반으로 취입되고 발매된 바 있다. 33) 이러한 철도창가의 대중화 가운데 만한철도창가 는 일본에서 유성기음반으로 까지 발매된 듯하나 34) 지리교육 철도창가 만큼의 인기를 얻었던 것 같지는 않 고, 대만주유창가 는 음반으로 발매된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35) 그리고 1945년 이후 일본이 이들 식민지를 잃어버리면서 이들 식민지 철도창가에 대한 기억 또한 완전히 사라거나 혹은 지워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시 일본, 조선, 대만의 소학교 학습자들에게 이 식민지의 철도창가는 어떤 의미와 감각 그리고 기 억을 남겼을까. 이와 관련하여 오늘날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아마도 일본인 학습자들은 대만과 조선, 만주를 식민지로 얻어 바야흐로 제국 열 강의 반열에 오른 일본의 자신감ㆍ자부심을 아무런 위화감 없이 자기화해 나아갔 을 것이다. 반면에 조선과 대만의 학습자들은 제 고향을 마치 이향과 같이 위화감 을 안고 바라보며 식민지 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아갔을 것이다. 비록 이러한 의문에 대한 충분한 답을 채 얻기도 전에 만한철도창가 는 일본, 한국 혹은 중국 그 어느 지역에서도 한결같게 망각되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불구 하고 오늘날 동북아시아 지역은 서로 다른 의미에서 여전히 저 만한철도창가 의 마지막 절에 긴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이 만한철도창가 를 다시 돌아보는 일은, 근대기 한국과 중국에 남긴 제국주의의 표상과 그 흔적이 지 닌 의미가 단지 과거에 국한될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이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32) 朝 鮮 總 督 府 (편), < 學 徒 歌 >, 普 通 敎 育 唱 歌 集 ( 京 城 : 朝 鮮 總 督 府, 1910); 음반번호 닛 노홍 K200-B (NIPPONOPHONE 6217), 연주 발매 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편), 한국유성기음반총목록 (서울: 민속원, 1998); 安 田 寬, 日 韓 唱 歌 の 源 流 ( 東 京 : 音 樂 之 友 社, 1999). 高 仁 淑, 近 代 朝 鮮 の 唱 歌 敎 育 ( 福 岡 : 九 州 大 學 出 版 會, 2004). 33) < 鉄 道 唱 歌 全 曲 - 地 理 教 育 鉄 道 唱 歌 全 5 集 334 番 >(음반번호 KICG3252-4, 연주 ボニージャックス, 반주 キングオーケストラ, 발매 2007. 11.); 安 田 寬, 唱 歌 という 奇 蹟 十 二 の 物 語 ( 文 春 文 庫 346) ( 東 京 : 文 藝 春 秋 社, 2003). 34) < 滿 韓 鐵 道 唱 歌 >(음반번호 コロンビア30435, 작사 藤 晃 太 郞, 작곡 古 關 裕 而, 편곡 奧 山 貞 吉, 연주 霧 島 昇 松 原 操 松 平 晃 コロンビア 合 唱 團, 반주 コロンビア オーケストラ, 발매 1928년 이후 미상); 昭 和 館 (편), 위의 책. 35) 外 地 錄 音 資 料 硏 究 プロジェクト, 日 本 コロンビア 外 地 錄 音 : 臺 灣 編 ( 大 阪 : 國 立 民 族 學 博 物 館, 2007); 昭 和 館 (편), 위의 책.

일본의 식민지 철도여행과 창가 221 타자에 대한 인식은 물론이거니와 경부선과 경의선 그리고 남만주철도 연선 지역 들의 표상들과 그것을 둘러싼 기억들이 여전히 서로 다른 시선과 욕망으로 갈등하 고 길항하는 가운데 여전히 결코 작지 않은 의미를 시사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 한 사정에서 만한철도창가 는 물론이거니와 그 원점의 지리교육 철도창가 나 그 연장선의 대만주유창가 는 여전히 문제적이다. 참고문헌 김영신, 대만의 역사. 서울: 지영사, 2001. 닝왕(저)/ 이진형ㆍ최석호(역), 관광과 근대성: 사회학적 분석. 서울: 일신사, 2004. 볼프강 쉬벨부쉬(저)/박진희(역), 철도여행의 역사. 서울: 궁리, 1999. 서기재, <지도> 소유의 관점에서 본 한국 근대 관광 의 의의. 일본어문학 제38호, 한국일본어 문학회, 2008, 285~293쪽. 서기재, 高 濱 虛 子 의 朝 鮮 연구: 여행안내서 로서의 의의. 일본어문학 제16권, 한국일본어문 학회, 2003, 68~71쪽. 정재정, 경부철도 부설에 나타난 일본의 한국침략정책의 성격. 한국사연구 제44집, 한국사연구회, 1984, 110~119쪽. 정재정, 대한제국기 철도건설노동자의 동원과 연천주민의 저항운동. 한국사연구 제73집, 한국 사연구회, 1991, 109~124쪽. 정재정, 한말ㆍ일제초기(1905~1916) 철도수송의 식민지적 성격. 한국학보 제29집, 일지사, 1982, 166~169쪽. 한국정신문화연구원(편), 한국유성기음반총목록. 서울: 민속원, 1998. 葛 城 天 華, 朝 鮮 半 島 豪 傑 的 旅 行. 大 阪 : 又 間 精 華 堂, 1903. 高 濱 淸 ( 虛 子 ), 朝 鮮. 東 京 : 實 業 之 日 本 社, 1913. 高 野 辰 之, 流 行 歌 明 治 大 正 史. 東 京 : 春 秋 社, 1934. 高 仁 淑, 近 代 朝 鮮 の 唱 歌 敎 育. 福 岡 : 九 州 大 學 出 版 會, 2004. 南 滿 洲 鐵 道 株 式 會 社 京 城 管 理 局 (편), 朝 鮮 鐵 道 旅 行 案 內. 東 京 : 南 滿 洲 鐵 道 株 式 會 社, 1915. 南 滿 洲 鐵 道 株 式 會 社 (편), 南 滿 洲 鐵 道 旅 行 案 內. 大 連 : 南 滿 洲 鐵 道, 1924. 大 和 田 建 樹, 地 理 敎 育 鐵 道 唱 歌 ( 第 1 輯 ). 東 京 : 開 成 館,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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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식민지 철도여행과 창가 223 은 대륙진출이 일본의 역사적 운명임을 암시했다. 이를 통해 그는 근대 문명 의 상징인 철도를 통해, 일본의 자부심을 한껏 드러내는 가운데, 조선과 만주 의 선주민의 존재를 소거하는 한편으로 식민주의의 물질적 욕망과 환상을 한 껏 드러냈다. 이러한 사정은 대만철도창가 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식민지 철도창가의 공통된 국면임이 드러난다. 또한 지리교육 철도창가 와 비교해 보면, 이 만한철도창가 를 비롯한 식민지 철도창가란 근대 일본의 국민국가 주의가 국경을 넘어 식민주의로 성장해 가는 장면을 확인하게 된다. 이로써 이러한 철도창가라는 양식은, 가상의 철도여행과 파노라마적 풍경의 체험을 통해 상상된 공동체로서 제국 일본의 심상지리를 표상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정에서 근본적으로 소학교 음악교재였던 이들 철도창가들 이란 국민국가주의와 식민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심미화하는 미디어였다고도 하겠다. 투고일:2009. 7. 13. 수정일:2009. 8. 28. 게재확정일:2009. 9. 8. 주제어(keyword):철도창가(railroad song), 오와타 다테키(Ōhwata Tateki), 철도여행 (railroad journey), 심상지리(imagined geographies), 국민국가주의 (nationalism), 식민주의(colonial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