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연구 48(2014.3.30), pp.99-133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10 20년대 조선어 가정용 백과사전의 출판과 그 내용 - 강의영( 姜 義 永 )의 가뎡보감 류를 중심으로 - 1)노상호 * 국문초록 본고에서 필자는 1910년대와 1920년대에 출판된 가정용 백과사전을 분석여 20세기 초반에 조선인 여성들이 읽고 소비던 지식의 내용과 특징을 살펴본다. 1910년대와 20년대에 상업적으로 출판된 실용서적, 특 히 가정용 백과사전은 당시 저가의 딱지본 출판문화의 중요한 일부분이 었다. 특히 강의영이 출간한 가정보감류의 백과사전들은 순 언문으로 쓴 저가의 실용서이고 그 주된 독자층은 신식 교육을 받지 못한 중장년의 여성이었다. 비록 지금까지 신여성 과 구여성 이라는 이분법적인 관점 이 오랜 시간동안 학계에서 받아들여져 왔으나 필자는 중장년의 여성들 역시 지식의 습득과 소비에 매우 적극적이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주제어: 강의영, 최신무쌍언문가뎡보감, 언문일용가뎡보감, 식민지 여성, 구여성, 신여성, 여 성의 글쓰기와 독서, 가정용 백과사전. *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조교수 (한국문화사 전공)
100 한국학연구 48 1. 서론 식민지 시기 조선의 도서와 출판문화는 1919년 삼일운동 이후 양적으 로, 그리고 질적으로 급속한 팽창을 경험였다. 소위 문화통치 가 출판 과 언론의 자유를 허용자 조선어로 된 미디어는 1920년대에 소자본의 문학동인지, 종교잡지, 소년소녀잡지, 사상잡지에서부터 대자본의 동아일 보와 같은 일간지에 이르기까지 빠르게 성장면서 그 장르와 내용 역시 다양해졌다. 소규모 잡지사, 출판사의 증가, 학생수의 증가에 따른 식자 율의 점진적인 상승은 1920년대를 문화민족주의 가 등장는 시기로 볼 수 있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1) 그러나 이러한 1920년대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은 주로 대중문학의 성립과 매체의 발전, 공교육의 성립 등 근대 성(모더니티) 의 수립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1919년 이전과의 연 결성, 혹은 연속성이라는 측면을 놓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본고에서 필 자가 주목고자 는 출판업자 강의영( 姜 義 永, 1894-1945)은 1910년대 부터 소위 딱지본 출판업자로서 활동을 시작였고 1920년대, 그리고 그 이후까지 꾸준히 출판업에 종사였다. 그가 경영한 영창서관( 永 昌 書 館 ) 은 식민지 시기 동안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인 민간출판사였다. 특히 그 는 1920년대 여성용 백과사전을 발매였는데 그의 편집 전략은 1920년 대 독자층의 양상을 재검토할 수 있는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강의영과 영창서관의 책들에 대한 연구는 주로 고소설 연구와 서지학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갑오개혁이 이루어진 1894년에 출생한 강의영은 1) 1920년대 문화민족주의 에 대한 논의는 미국인 학자 마이클 로빈슨씨(인디애나대학) 가 처음 지적한 이후 다양게 진행되어 왔다. Michael E. Robinson, Cultural Nationalism in Colonial Korea, 1920-1925, Seattle: University of Washington Press, 1988. 삼일운동 이후 식민지 조선의 문화와 교육에 대한 연구는 매우 광범위게 진 행되어 왔기 때문에 본 연구와 관련된 성과들만을 중심으로 언급자면 강진호 외, 조선어독본과 국어문화, 제이앤씨, 2011년; 이영미 외, 딱지본 대중소설의 발견, 민속원, 2009년; 임경석 외, 개벽 에 비친 식민지 조선의 얼굴, 모시는사람들, 2007년; 권보드래, 연애의 시대: 1920년대 초반의 문화와 유행, 현실문화연구, 2003년; 천정환, 근대의 책읽기: 독자의 탄생과 한국 근대문학, 푸른역사, 2003년 등을 들 수 있다.
1910 20년대 조선어 가정용 백과사전의 출판과 그 내용 노상호 101 박문서관에서 출판업을 배우기 시작해서 1914년 왕세창과 동업으로 세 창서관을 세우고 독자적인 출판사업을 시작였다. 2) 최호석의 2010년 연구에 따르면 그는 1917년부터 영창서관으로 독립여 자신만의 사업 을 열었고 그 후 강의영의 출판사업은 굉장히 성공적이었다. 특히 그 중 에서도 여성용 백과사전의 출판이 눈에 띄는데 1926년 영창서관에서 나 온 최신언문무쌍가뎡보감 은 딱지본 실용서적이자 여성용 도서이다. 3) 강의영은 이윤을 목적으로 딱지본 출판업에 종사였고 주로 팔리는 책 을 중심으로 사업을 운영던 인물이었다. 그는 왜 1926년 순 언문으로 된 여성 백과사전을 발매였고 그 내용은 어떤 것이었을까? 1920년대의 문화를 모더니티 를 갈구는 독자들의 시선을 통해서만 설명한다면 이 러한 저가의 딱지본의 유행을 정확히 설명기 어렵다. 오히려 1910년대 에서 1920년대로 이어지는 대중독자들의 소비성향은 모더니티 한 가지 로만 설명기 어려울 정도로 다변화 되었고 그 중요한 흐름 중 나는 고소설과 딱지본들이었다. 다시 말자면 강의영의 딱지본 출판물들을 통해서 보면 1919년 삼일운동을 전후로 한 1910년대와 1920년대를 관통 는 나의 문화적 연속성을 발견할 수 있고 단순히 모던걸 과 모던보 이 로 대표되는 모더니티의 성장만이 아니라 구독자층과 옛 문화와의 상 호관계 등과 같이 지금까지 간과되어 왔던 전통문화의 지속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4) 따라서 본고에서 필자는 1920년대 중후반 딱지본의 형태로 출간된 가 2) 강의영의 생애와 영업에 대해서는 최호석, 영창서관의 고전소설 출판에 대한 연구, 우리어문연구 37, 2010년, 352-353쪽; 방효순, 일제시대 민간 서적발행활동의 구 조적 특성에 관한 연구, 이화여대 박사학위논문, 2001년을 참조. 3) 강의영, 최신언문무쌍가뎡보감, 서울: 영창서관, 1926년. 이 책은 국립중앙도서관과 명지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4) 1910년대에는 해외로부터 소개된 가정학( 家 政 學 ) 과 전통적인 보감류( 寶 鑑 類 )의 공 존이 보이는데, 본고에서는 우선 보감류의 구조와 성격에 대해서만 분석한다. 1910 년대 가정학 교재들이 주로 부덕( 婦 德 )을 강조했다면 보감류는 좀 더 여성들을 위 한 실용적인 정보를 주로 다루었고 전래의 지식을 중심으로 편찬한 특징이 있다. 가 정학 에 대해서는 임상석, 고전여성문학의 연구사적 전환을 위여: 근대계몽기 가 정학의 번역과 수용-한문 번역 신선가정학의 유통 사례,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27, 2013년을 참조.
102 한국학연구 48 정용 백과사전을 분석함으로써 당시 독자층의 다양성, 그리고 한 상업출 판업자가 바라본 조선어 출판물 시장의 형태를 엿보고자 한다. 본 논문 이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사료들은 주로 세 가지로서 먼저 1918년 유일 서관( 唯 一 書 館 )의 가뎡선문보감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그리고 1926년 영창서관의 최신언문무쌍가뎡보감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그리고 년대 미상(1925년 추정)의 언문일용가뎡보감 (미국 프린스턴대학 소장)이 다. 5) 이 세 책들의 제작에 공통적으로 관여한 출판업자는 바로 강의영이 다. 본고는 이 세 가지 종류의 여성용 백과사전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식 민지 초기 가정에서 필요로 했던 일상지식이란 무엇이고 또 누가 주된 소비자였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만약 여성들이 주된 고객이었 다면 이 책을 구매할 수 있는 여성들이 원는 지식콘텐츠란 무엇이었는 지도 고찰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식민지 초기 조선인 여성들 이 어떻게 상업적 출판문화의 성숙과 발전에 관여였고 어떠한 지식을 생성, 공유였는지도 살펴보고자 한다. 6) 5) 강의영이 제작한 여성용 교육도서는 크게 신여자보감 과 같은 도덕용 수양교재와 가 뎡선문보감 (1918년)- 언문일용가뎡보감 (1925년)- 최신언문무쌍가뎡보감 (1926년) 으로 이어지는 실용백과사전의 두 종류가 있었다. 여성들의 도덕적 수양을 위한 교 재는 이미 오랜 세월 존재였고 그 장르의 제작 역시 한학자와 여성 지도자들이 나 서서 주도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 반면 가뎡선문보감 은 출판업자인 강 의영만이 저자로 나올 정도로 텍스트의 제작에 누가 참여였는지가 모호고 딱지 본과 같은 가격과 품질로 제작되었다. 특히 언문일용가뎡보감 은 이미 많이 파손된 상태라서 서지사항을 정확게 파악기 힘들다. 그러나 책의 구성과 내용면에서 가 뎡선문보감 과 최신언문무쌍가뎡보감 과 유사다는 점에서 강의영의 작품으로 추 정된다. 예컨대, 언문일용가뎡보감 은 척독, 가족 간의 칭호, 제사에 관한 예법, 에 티켓, 의학상식, 여행정보, 운세 보는 법 등을 담고 있는데, 이는 기존의 가뎡선문보 감 을 재편집, 보강한 것이었다. 또한 일년 뒤 출간된 최신언문무쌍가뎡보감 역시 거의 유사한 내용을 보여준다. 그 출판연대를 1925년으로 추정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언문일용가뎡보감 은 서지사항을 기록한 페이지가 누락되어 있기 때문에 정 확한 제작 년대를 알 수 없지만 년셰대조일남 을 보면 대정 15년까지 기록되어 있 다. 거의 비슷한 체재와 내용을 보여주는 최신언문무쌍가뎡보감 은 1926년 출판이 라고 명기되어 있고 년셰대조일남 을 대정 16년까지 기록였다. 따라서 내용상 거 의 비슷한 두 책의 출판년도는 대략 1년 전후로 추정된다. 즉 언문일용가뎡보감 은 1926년 전, 아마도 1925년 정도에 출판된 것으로 추측된다. 6) 20세기 초 여성 교육의 변화와 여성성의 형성에 대한 연구로는 Hyaeweol Choi, "Women's Literacy and New Womanhood in Late Choson Korea," Asian Journal of
1910 20년대 조선어 가정용 백과사전의 출판과 그 내용 노상호 103 2. 20세기 여성용 도서의 내용과 생산 먼저 20세기 여성용 도서의 문화사를 이해할 때 우리는 여성들의 독서 가 비단 근대만의 현상이 아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미 조선 후 기부터 사족 여성들을 중심으로 책을 읽고 쓰는 행위가 이루어졌고 허난 설헌, 빙허각 이씨, 사주당 이씨, 혜경궁 홍씨 등 전근대 시기부터 이미 많은 여성들이 글쓰기의 주체로서 활동였다. 여성용 도서의 장르 도 점차 다양화되었는데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백과사전이라고 부를 수 있 는 총서류( 叢 書 類 ) 역시 과거제를 준비는 사족 남성들과 규방의 사족 여성들이 함께 널리 이용던 서적이었다. 최근 18세기 총서류에 대한 역사학계, 문학계, 서지학계의 관심이 높아졌으나 여전히 조선 후기 출판 물의 현황과 상업화 정도, 독서 관행의 성별 차이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분명한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7) 여성용 백과사전의 경우를 놓고 보면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 閨 閤 叢 書 ) 가 그 동안 가장 많은 연구와 관심 의 대상이 되었다. 규합총서 의 경우, 가장 오래된 목판본이 1869(고종 6)년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목판인쇄가 상업적 판매를 위한 것이었는지는 불분명다. 그러나 목판본의 출현은 필사본에 의지던 시기에 비해서 그 유통의 범위를 크게 넓힌 것만은 분명한 듯 보인다. 왜 냐면 현존는 규합총서 의 판본들 중에서 목판본이 가장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가람문고본, 동양문고본, 이경선교수본, 꾸우랑본 모두가 목판본이고 필사본의 경우는 정양완소장본과 규합총서의 축약본인 부 녀필지 등이 있다. 8) Women's Studies 6:1 (2000), 88-115 등이 있지만, 여전히 근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여성교육이 서구화를 통해서 근대화 되었음을 강조는 경향이 강다. 7) 옥영정 외 공저, 조선의 백과지식: 대동운부 군옥으로 보는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년; 옥영정 외 공저, 풍석 서유구와 임원경제지, 소와당, 2011년; 서유구, 정명현 외 역, 임원경제지: 조선 최대의 실용백과사전, 임원경제연 구소, 씨앗을 뿌리는 사람, 2012년. 최근 백과사전에 대한 연구가 활발게 이루어지 고 있지만 상업출판과의 관계나 방각본과의 연관성에 대한 부분은 명확게 드러나 지 않는 것 같다. 8) 정양완, 閨 閤 叢 書 에 대여, 閨 閤 叢 書, 보진재, 1975년, 1-4쪽.
104 한국학연구 48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출판문화의 지속성에 대해서는 이후 좀 더 자세게 서술겠지만 상업출판물의 도래라는 점에서만 보면 20세 기 초를 중요한 전환점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왜냐면 1910년대 말부 터 우리는 여성용 백과사전의 본격적인 유통을 분명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인 여성들의 식자율 향상과 독서관행을 논의해 온 기존의 연구들은 주로 식민지화 이후 공교육의 확대에 초점을 맞추어 왔 다. 예컨대 조선어독본 의 간행과 유통은 분명히 식민지 통치 권력이 언어를 표준화고 그 언어를 여성들에게도 학교 교육을 통해서 보급 고자 였음을 잘 보여준다. 특히 전통적 가족 윤리는 식민지 교육체계 에서도 변지 않고 교과서라는 텍스트를 통해서 보호되었다. 9) 교과서의 유통은 이미 1909년에 전국적으로 22만부에 이르렀고 당시 조선어 교과 서인 국어독본 만을 놓고 보더라도 판매가 3만 8천부 이상, 대여가 3만 3천부에 이르렀다. 거의 비슷한 숫자로 일본어 교재인 일어독본 도 판 매, 대여되었다. 10) 이 중에서 얼마나 많은 숫자의 책들이 여성들에게 갔 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식민지 국가 권력이 책과 지식의 생산에 깊이 관여 기 시작였음은 분명다. 그러나 상업출판물의 발전을 놓고 볼 때 필자는 식민지 국가 권력의 등장만으로는 문화적 발전상을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교과 서로 지정된 조선어독본과 달리 상업출판물들은 무엇보다도 독자들에게 알아야 니 읽어라 라는 식의 강압적인 전략을 취할 수 없었기 때문이 다. 독본의 유통이 국가가 관리는 시험과 진학과 밀접게 관련되어 있던 것과 달리 민간출판물들은 소비자들에게 저희 상품을 구매해 주세 요 라는 마케팅의 전략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딱지본으로 9) 정상이와 신영숙은 1930년대 초반까지 조선인 여성들의 식자율을 대략 8퍼센트 내외 로 추정한 바 있다. 이러한 수치는 낮은 여성들의 취학률(1.2%)를 바탕으로 추정된 것으로 보이지만, 식자율이 언문의 해독률을 의미는지 아니면 일본어 해독률을 의 미는 지는 분명지 않다. 조선어 해독능력을 놓고 보면 8퍼센트는 너무 낮은 수 치이다. (정상이, 여자고등 조선어독본 을 통해 본 여성상, 조선어독본 과 국어 문화, 제이앤씨, 2011년; 신영숙, 일제 한국여성 사회사 연구, 이화여대 박사논 문, 1989년). 10) 조선총독부, 朝 鮮 總 督 府 施 政 年 鑑 명치41,42년판, 162-163, 245-247쪽.
1910 20년대 조선어 가정용 백과사전의 출판과 그 내용 노상호 105 발매된 여성용 백과사전은 전적으로 시장과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려야만 는 입장에 있었고 그 점에서 독본과 다른 출판문화의 양상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먼저 1918년 가뎡선문보감 의 사례를 보면 이 책의 편집 자는 책의 소비와 독서가 단순히 여성의 도덕적 완성을 위한 것이라는 투의 교훈적인 메시지에만 의존지 않는다. 오히려 광고의 초점은 독서 가 생활을 편리게 만들 것이라는 점에 맞추어져 있다. 즉, 책은 어느새 상업 광고의 대상이 되었고 그 서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대져 선문보감이라 함은 유일셔관 쥬무가 대소 인민에 게 지식을 발달기 위야 새로이 편집노니... 졔반 긴 요한 문법의 까다를 일이 만음으로 일홈을 션문보감이라 얏나니 경향에 드러 안진 부녀던지 외시골 산곡 즁 초 동목슈라도 한 법 구람시면 자연 원근간 셔사왕복이며 일용사물의 긴요한 학문이 몃십년 졸업생과 일반이 되어 몃 천리 몃 백리에 궁금한 일이 업시 조셕으로 상통여 거울갓치 알고 안졋실 뿐외라 11) 여기서 판매자는 자신의 고객을 경향에 드러안진 부녀 와 외시골 산 곡 즁 초동목슈 로 잡고 있다. 즉, 이 책은 이미 공교육의 혜택을 받고 있는 학동들을 대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성인 여성과 시골에 있는 층 남성을 주된 소비자로 상정여 제작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 책을 사야 는 이유는 단순히 도덕적 자기 완성이 아니라 셔사왕 복 과 일용사물의 긴요한 학문 을 서점을 통해서 손쉽게 습득할 수 있 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책을 제작, 판매한 강의영은 공교육에서 소외된 이들을 자신의 고객으로 삼아서 이 백과사전을 기획였고 그와 그의 독 자들에게는 출판자본주의(print capitalism)가 식민지 국가 권력이 통제 는 학교 교육을 대체, 혹은 보완할 수 있는 사적인 교육의 매체였던 것이 11) 강의영, 서문, 가뎡선문보감, 유일서관, 1918년.
106 한국학연구 48 다. 특히 가뎡선문보감 을 1922년에 같은 판매자인 강의영을 통해서 발 매된 신여자보감 과 비교해보면 그 저가 딱지본으로서의 성격을 보다 선명히 알 수 있다. 신여자보감 은 정가 80전의 상당한 고가의 도서였 고 크기 또한 25.9*14.9센치미터의 신활자본이었다. 한학자인 김원근( 金 瑗 根 )이 편집자이고 개신교 여성 지도자로 잘 알려진 유각경( 兪 珏 卿 )이 그 책의 서를 썼다. 보통 딱지본들은 21-22센치 정도이고 가격 역시 35 전 내외인 것을 고려면 신여자보감 은 동일한 판매업자가 발매였지 만 딱지본 가격의 2배를 넘는 고가의 상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보더라도 가뎡선문보감 과 신여자보감 의 차이를 분명히 발 견할 수 있는데 신여자보감 은 삼국시대 이래 유명한 여성들의 이야기 를 모아서 소개는 교훈적인 이야기책이다. 내용상으로 보면 신여자보 감 은 여훈서( 女 訓 書 )의 전통을 잇는 점에서 여계서( 女 誡 書 )와 내훈서 ( 內 訓 書 )의 20세기판이라고 보아도 좋을 듯다. 여성들의 도덕성 함양 을 위한 텍스트는 조선시대 동안 활발게 사족 여성들을 대상으로 제작, 유통되어 왔고 15세기 인수대비( 仁 粹 大 妃 ) 한씨( 韓 氏 )의 내훈( 內 訓 ) 을 시작으로 여성용 도서의 주류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임미정이 지적듯이 여훈서는 20세기 초까지 식민지 조선의 상업출판 계에서 여전히 중요한 한 축을 담당였다. 12) 이와 대조적으로 가뎡선 문보감 은 여성 도덕에 관한 내용보다는 실용적인 내용들을 위주로 담고 있고 1923년의 가정척독 시톄언문간독 처럼 이 시기에 발매된 척독류 의 실용서적과 보다 유사한 양상을 보여준다. 즉, 실용서적으로서의 백과사전류가 갖는 특징은 강의영이 발매한 비 슷한 내용의 딱지본 서적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부분이다. 1925 년에 발매된 것으로 추정되는 언문일용가뎡보감 과 1926년 발매된 최 신언문무쌍가뎡보감 은 내용상으로 보나 형식상으로 보나 1918년의 가 뎡선문보감 의 뒤를 잇는 상품들이다. 모두 강의영이 발매한 것으로 보 이는데 특히 최신언문무쌍가뎡보감 은 가뎡선문보감 의 형식을 보다 12) 임미정, 20세기 초 여훈서의 존재 양상과 의미,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19, 2009년, 341-343쪽.
1910 20년대 조선어 가정용 백과사전의 출판과 그 내용 노상호 107 확장해서 당시 대중독자들을 위해서 제작된 실용서적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가뎡선문보감 과 마찬가지로 이 책들은 훈민( 訓 民 )적인 성격을 배제고 일상생활에 유용한 정보들을 위주로 담았다. 물론 후술듯이 상당수의 언문내방가사들이 강의영의 백과사전들에 포함되어 있었고 <표1>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용 정보들 역시 새로운 지식이 아닌 전통적 인 지식들로 채워져 있는 점에서 특히 주목을 끈다. 그만큼 20세기 이전 부터 존재해 왔던 실용정보들이 그대로 새로운 인쇄매체로 편입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강의영의 백과사전들은 이런 점에서 1910년대와 20년대에 이르러서 전래의 지식들이 구전에서 인쇄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단계에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13) <표1. 언문일용가뎡보감 목차> 1. 가정모범척독 2. 각당칭호 3. 복닙난법 4. 조부모지방 (삼위에 지방쓰는 법) 5. 츅문쓰는 법 6. 제물차려놋는 법 7. 십삼도각군 8. 일본사람과교제는대주의할일 죠션사람끼리도대단이좃소 9. 명심록 사람사람이 알아둘일 10. 양생월람( 養 生 月 覽 ) 11. 年 歲 對 照 12. 京 城 驛 에서 各 驛 으로가는 參 等 乘 車 賃 金 表 13. 五 行 占 14. 즉셩법 15. 아홉셩군위차 16. 행년법 17. 행년에액달보는법 18. 주공해몽젼서 텬문 일월 셩신 19. 손슈해몽 차시져흉양길지법 20. 궁합법( 宮 合 法 ) 21. 六 甲 22. 일홈푸난법( 解 名 ) 13) 지금까지는 주로 도덕적인 내용을 주로 한 여성도서들이 주된 연구대상이 되어 왔고 혹자는 이를 규훈문학( 閨 訓 文 學 ) 으로 명명였다. 최혜진, 규훈문학 연구, 역락, 2004년, 196-200쪽.
108 한국학연구 48 23. 十 二 輪 24. 病 人 出 入 方 法 25. 순산할때 방위보는 법 26. 九 龍 符 27. 納 奴 婢 吉 日 28. 살이 발발 떨니는대 증험는 법 까마귀 짓는대 증험는 법 29. 개짓는대 증험는 법 귀가 우는대 증험는 법 30. 눈이 발발 떨니는대 증험는 법 자채기는 대 증험는 법 31. 흉년에 주리고 부황을 구원는 묘방 32. 귀책병고치는 신통한 법이라 33. 명의경험방 3. 커뮤니케이션의 주체로서의 여성: 척독 먼저 강의영의 백과사전들( 가뎡선문보감, 언문일용가뎡보감, 최 신언문무쌍가뎡보감 )은 첫 머리에 모두 언문편지글을 싣고 있다. 모범 서간문집인 척독은 20세기 초반 식민지 조선의 상업출판물 시장에서 두 각을 나타낸 대중적 장르의 도서이다. 척독의 역사 역시 조선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식민지 초기 척독의 판매와 유통은 편지 쓰기 가 보다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먼저 대량으로 인쇄된 척독의 사례로는 1867년 목판으로 인쇄된 추사 김정희의 완당척독( 阮 堂 尺 牘 ) 을 선례로 들 수 있다. 완당척독 의 제작 경위와 유통 상황은 본 고의 범위를 벗어나지만 19세기 독자들이 명청 문인들의 척독 소품을 읽 고 모방는데 그치지 않고 조선인의 글을 모범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14) 물론 19세기의 척독과 20세기 초반의 척독은 그 문학적 수준과 독자층에서 큰 차이가 난다. 전자가 문예소품이었다면 후자는 저 자가 불분명한 실용문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차이점 은 20세기 초반 척독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대중들 사이에서도 언문으로 글을 쓸 때도 보다 수준 높고 격식에 맞게 쓰고자 는 욕구가 높아졌다. 이러한 수요에 맞춰서 강의영을 비롯한 많은 상업출판사들이 다양한 언문 척독을 대량생산, 판매였던 것이다. 14) 혜정, 추사 저작의 판본 연구, 사학연구 87, 2007년, 88-89쪽.
1910 20년대 조선어 가정용 백과사전의 출판과 그 내용 노상호 109 비록 이전과 달리 문학적 가치를 많이 잃어버렸지만 20세기 척독들은 당 시 조선인 사회가 전반적으로 글쓰기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적지 않은 공헌을 였다. 15) 이처럼 시장을 통해서 유통된 척독들은 식민지 정부가 편집, 발행는 조선어 독본과 달리 개인들의 사적인 목소리를 여과 없이 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특히 강의영의 백과사전들에는 주로 조선인 여성들이 글쓰기의 주체로서 등장고 그들의 일상생활과 감정이 잘 묘사되어 있 다. 즉, 당시 조선어 독본이 식민지 국가와 일체화된 권력의 텍스트로서 조선인들 위에서 군림고 있었지만 1910년대 후반, 20년대 초반 조선인 여성들은 반드시 국가가 지정한 텍스트인 독본만을 글쓰기의 모델로 삼 지 않았던 것이다. 조선어 글쓰기가 빠르게 대중화되던 시기에 여성들은 스스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였고 백과사전만을 놓고 보면 특히 중장년 의 여성들은 자신들이 참고로 삼고자 는 편지글들을 모방함으로써 스 스로가 커뮤니케이션의 주체로 활약고자 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점 은 삼일운동을 전후로 한 시점에서 여성들이 어머니로서, 시어머니로서, 혹은 친정어머니로서 편지쓰기라는 글쓰기 공부에 많은 관심을 가졌음을 시사한다. 특히 우체국의 전국적인 보급과 함께 증가는 정보망은 비단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여성들의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되었다. 특히 격식에 맞춰서 언문편지를 쓸 수 있는 능력은 그 여성의 교육수 준을 가늠는 척도가 될 뿐만 아니라 그 가족의 수준마저 보여준다는 점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여성의 덕목이었다. 기혼여성들은 광범 위한 조선인 친족집단을 편지로써 매개는 글쓰기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강의영의 백과사전들을 보면 글을 쓰는 여성들은 대개 중간 이상의 재력을 가진 중장년 여성인 경우가 많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예컨 대 한 여성화자는 시어머니로서 며느리에게 주는 편지글에서 너의 남편 은 여러해 동안을 고생한 결과에 외국의 새로운 문명과 고상한 학슐을 배와 가지고 금의환향[]야 여러 청년의 압길을 개척는 즁한 책임자 15) 강혜선, 조선후기 척독문학의 양상, 돈암어문학 22, 2009년, 181-182쪽; 김성수, 근대 초기의 서간과 글쓰기 교육, 한국근대문학연구 21, 2010년, 162-164쪽.
110 한국학연구 48 가 된 것이 당연한 의무라 나의 깃거운 마음은 한량업다 라고 쓴다. 16) 이 문장은 여성화자의 두 가지 측면을 엿볼 수 있게 는데, 첫 번째는 아들을 외국에서 고등교육까지 마치게 할 정도의 재력을 가졌다는 점이 고 두 번째는 장성한 아들이 외국 유학을 는 이유가 여러 청년의 압 길을 개척 도록 는 점에 있다고 말할 정도로 고등교육을 후원는 개화 된 여성이라는 점이다. 이외에도 자식들의 교육을 걱정고 관심을 쏟는 여성화자들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 역시 언문식자능력을 갖춘 기혼 여성들이 강의영의 백과사전들의 주된 고객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중장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척독의 존재는 당시 글쓰기가 얼 마나 조선인 사회에 광범위게 퍼져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권보드래가 지적듯이 1920년대에는 젊은 여학생들이 노자영( 盧 子 泳 )의 사랑의 불꽃 과 같은 연애서간문집에 열광는 시기였다. 사랑의 불꽃 은 당대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를 만큼 대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17) 그렇다 고 중장년 여성들이 글쓰기를 등한시였던 것은 아닐 것이다. 모범척독 은 중장년 여성들의 글쓰기 교육에 대한 관심과 수요를 잘 반영는데 당시 가족에게 편지 쓰는 것은 오늘날 생각는 것보다 휠씬 까다로운 예법과 지식을 필요로 였기 때문이다. 1920년대 가족의 범위는 보통 11촌 혹은 그 이상까지 포함한다. 부당 의 경우는 조부, 아버지, 삼촌, 형, 아우, 아들, 손자, 조카, 사촌형, 사촌조, 사촌조의 손, 오촌숙, 오촌질, 육촌조, 육촌조의 손자, 육촌형과 아우, 칠촌숙과 질, 팔촌조와 손, 팔촌 형과 아우, 구촌숙과 질, 십촌조와 손, 십촌형과 제, 십일촌숙과 질을 모 두 가족 으로 불렀다. 남을 대야 그의 십일촌 이외에 일가는 귀족이 라 함 이라고 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가족 의 범위는 11촌으로 잡 는 것이 보통이었고 여성들은 그 촌수 내의 모든 성원들을 정확한 칭호 와 격식에 맞춰서 대고 연락을 주고 받아야 했다. 18) 그 중에서도 특히 사돈집과의 편지왕복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공 16) 작자미상, 언문일용가뎡보감, 1925년(추정), 11쪽. 17) 권보드래, 연애의 형성과 독서, 역사문제연구 7, 2011년, 117-118쪽. 18) 작자미상, 언문일용가뎡보감, 1925년(추정), 62-67쪽.
1910 20년대 조선어 가정용 백과사전의 출판과 그 내용 노상호 111 적인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자유연애가 드물던 당시 사회에서 혼인은 당 사자들의 의견보다는 부모들의 위치와 지위가 중요했고 사돈집에 자신들 의 교육 수준을 보여줄 수 있는 편지글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일이 었다. <표2>의 대화는 딸을 가진 친정어머니와 아들을 장가보내는 시어 머니 사이에 오고 간 편지글의 예이다. 친정어머니는 사돈집안에 대한 정중한 안부인사와 함께 적절한 사위 칭찬을 잊지 않아야 했고 무엇보다 도 자신의 딸을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을 완곡게 전달고 있다. 미 거온 녀식을 친녀갓치 무휼교훈시기 바라고 밋사오며 라는 문장은 자신의 딸을 걱정는 여성의 목소리를 생생게 담고 있으면서도 자신 의 감정을 너무 많이 드러내서는 안 되던 당시 글쓰기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표2> 19) 샹 장 요사이츈일이졈졈화창온대시즁긔운평안시고당후만안시며밧 사돈께오서도안강시압고합내제졀이균안오신잇가향회간졀이오며 이곳은무고압고일긔쳥명은온화와대례를슌셩압고 사위를뵈오니 행동이슉셩심과범졀이극가심이진실로비문의경사오니야즁무궁 오며녀식은년유미거와아모것도몰으오니미안무렴온바혼슈범백도 불셩모양이오니여러가지로슈괴오며말삼심요이만긋사오니일긔쳥신 와우례를무사이지내압고내내 시봉일안오시며미거온녀식을친녀갓치무휼교훈시기바라고밋 사오며 셔방님의풍용이눈에삼삼와인마를수이보내겟사오니재행보내 시기를바라압나이다. 년 월 일 사돈 (셩) 샹장 19) 전게서, 41-43쪽.
112 한국학연구 48 답 상 장 향회즁 글월을밧자와가득반갑사오며련와가나리오셔 긔운평안시고 밧사돈께오서안강오시며슬대외분평안시니 위행만만이압고일길신량와대례슌셩온일희행이오며혼해이무사 도달와우례를잘지내압고며나리극가와소망에넘사오며 존당에서 깃거사랑시오니열친함을더욱비할대업사나이다자식은미거불사 온인사를과이칭찬시오니슈괴미안오며혼슈범백을넘우과도이 섯사오니불안오이다말삼슈요이만적사오니내내긔운평안시기바 라오며자식은보내시라는때보내겟삽나이다. 년 월 일 사돈 (셩) 샹장 <표2>의 수준으로 글을 쓰는 여성들은 이러한 식자능력을 학교의 교 실에서 배우지 않았다. 이러한 사교적 화법은 당시 조선인 여성의 에티 켓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1920년대 자녀를 시집보낼 정도의 나이라면 아무리 빨라도 1890년대 초반이나 혹은 그 이전의 출생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900년대 청소년기를 보낸 여성이라고 해도 당시 여성교육기 관은 거의 전무다시피 였고 따라서 여성들은 학교교육이 아니라 가 정교육을 통해서 에티켓을 배우고 식자능력을 갖출 수밖에 없었다. 즉 조선어독본을 읽고 배우지 않더라도 조선인 여성들은 서로를 당후 와 존당 이라고 부르면서 자신들만의 격식과 예절을 차려서 의사소통을 였다. 20) 또한 <표2> 이외에도 많은 양의 모범척독들이 강의영의 백과사전들에 소개되어 있다. 이 편지글들을 편집한 편집자는 우에 긔록한 편지들은 20) 위르겐 버마스는 이처럼 친밀한 관계 사이의 편지교환에 주목였는데, 적절한 말로 꾸며진 가족편지 가 사적 영역의 의사소통행위로 중요한 역할을 였다고 지 적였다. 이러한 사적인 의사소통행위는 그 행위의 주체가 자기의 이야기를 직접 서술는 실험과 경험을 한다는 점에서 주체성에 대한 실험 이었다. 비슷한 맥락에 서 20세기 초기 여성의 편지쓰기행위는 근대적인 글쓰기 주체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위르겐 버마스, 공론장의 구조변동: 부르주아 사회의 한 범주에 관한 연구, 나남, 2001년, 140-141쪽.
1910 20년대 조선어 가정용 백과사전의 출판과 그 내용 노상호 113 다만 격식의 대강을 말함 이라고 자신의 편집 의도를 밝힌다. 물론 모든 조선인 여성들이 이러한 수준으로 글을 쓸 수 있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글들은 나의 모델이자 격식 의 틀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였다. 그리고 그러한 격식 이라는 정보를 인쇄해서 발매함 으로써 출판업자들은 돈을 벌 수 있었고 독자들은 누구라도 그 돈만 지 불면 그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다시 말자면 정보가 상품화 되어서 시장에서 판매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상업출판물 시장이 활성화 되기 이전에는 반드시 여성교육의 전통이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야지만 격식 에 맞는 글쓰기를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출판자본주의의 발전 이후에는 누구나 35전만을 지불면 예법에 맞는 글쓰기를 배울 수 있었다. 편지를 쓸 때 모범척독을 보고 베낀 것이라고 더라도 격식 의 대중화 현상은 이러한 상업출판물을 통해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21) 이 런 의미에서 여성용 백과사전은 기존에 가학( 家 學 )으로 전승되어 온 격 식 을 보다 대중화였고 상품화였다. 특히 1920년대까지 많은 여성들 이 정규 학교교육에서 배제되었음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출판자본주의의 순기능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여성들은 잡지, 혹은 딱지본 을 구입함으로써 자신들도 시장을 통해서 지식의 유통과 재생산에 참여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22) 21) 모범척독의 상업출판은 1945년 이후에도 발견된다. 그 한 예는 학원사( 學 園 社 )에서 1959년 김익달( 金 益 達 )의 편집으로 출간된 生 活 全 書 (4) 書 簡 文 全 書 이다. 2,200원 에 판매된 이 책은 학원사의 생활총서의 4권에 해당한다. 이 총서는 國 民 醫 學 全 書 (5,000원), 育 兒 全 書 (1,500원), 式 辭 演 說 雄 辯 全 書 (1,500원), 實 用 育 産 全 書 (3,500 원), 家 庭 敎 育 全 書 (3,500원), 趣 味 娛 樂 全 書 (근간), 現 代 新 聞 全 書 (근간)로 구성 되었다. 학원사의 서간문전서 는 여성독자만을 대상으로 한 상품이 아니라는 점에 서 언문일용가뎡보감 과 차이가 있다. 그러나 편지글 교환의 주된 대상 중 나는 여전히 가족과 친족이었고 부록편 의 自 他 呼 稱 區 別 表 는 1920년대의 그것과 유사 다. 특히 가족의 범위를 10촌, 11촌으로 잡고 10 寸 以 上 叔 父 行 을 族 叔, 族 姪 이라고 고 10 寸 以 上 兄 弟 行 을 族 兄, 族 弟 라고 였다. 生 活 全 書 (4) 書 簡 文 全 書, 학원사, 1959년, 777-778쪽. 22) 정보의 상품화는 대중문화의 발전과 근대문화의 성숙에 큰 부분을 차지고 특히 출 판자본주의는 이런 점에서 근대문화를 이해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동아시아의 경 우 상업출판의 성장을 주로 명청대의 중국과 토쿠카와시기의 일본에만 주목, 연구 여 왔다. 19세기 조선의 출판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아직 더 많은 연구가 필요지만
114 한국학연구 48 4. 유용한 일상지식: 에티켓과 의학 상식 1920년대 여성들이 일상생활에서 필요로 는 정보는 우리들이 상상 는 것보다 상당히 다양다. 그 중에서도 새로운 에티켓과 의학 상식 은 기혼여성에게 요긴한 정보이다. 특히 에티켓과 의학 상식은 여성성과 모성을 어떻게 정의는가라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공적인 자리에서 여성들의 행동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그리고 어머니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는가 라는 문제는 조선인 사회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어 온 문제였 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의 여성 에티켓에 대한 논의는 주로 복식의 문제 에 집중되었다. 이는 풍속개량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여성들 의 저고리가 지나치게 짧아진 점이라든지 가채를 지나치게 화려게 치 장는 점 등은 이미 조선 후기부터 사회적인 비판과 논의의 대상이 되 었다. 23) 그러나 여성들의 신체에 대한 규율은 20세기에 들어와서 보다 정교게 변화는데, 특히 외부 활동이 많아진 여성들의 행동규범에 대 한 논의는 기존의 복식에 대한 논의와 달리 스스로의 행동을 일정한 기 준에 맞추고자 는 자발적인 노력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새로운 식사예절을 소개는 일본사람과 교제는 대 주의할 일 이라는 장은 언문일용가뎡보감 에 나오는데, 이후 1930년대 생활개 선운동 수준은 아니지만 1920년대 당시 조선인 여성들, 특히 중장년 여 성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서 어떠한 공적인 논의를 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장에서 소개되는 내용은 조선인 여성이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인 여성처럼 행동라는 것이 아니라 조선인 여성들도 근대적인 례 식 을 익혀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즉, 기존에 미담을 읽음으로써 강의영의 백과사전들은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출판자본주의가 성숙된 단계에 있 었음을 보여준다. 동아시아의 출판자본주의에 대한 단행본 연구로는 Mary Elizabeth Berry, Japan in Print: Information and Nation in the Early Modern Period,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6, Kai-wing Chow, Publishing, Culture, and Power in Early Modern China,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3 등이 참고가 된다. 23) 조효순, 조선조 후기 여성복식과 개량논의: 박규수의 내복편을 중심으로, 복식 4, 1981년, 4쪽.
1910 20년대 조선어 가정용 백과사전의 출판과 그 내용 노상호 115 내적인 덕성을 함양한다는 여성 독서의 목적은 사라지고 백과사전을 읽 음으로써 쉽고 빠르게 근대적 지식을 습득한다는 소비의 목적이 두드러 지게 나타난다. 이러한 새로운 부녀자 에티켓은 언문일용가뎡보감 에서 드러나듯이 중장년층의 독서인들에게 중요한 관심거리가 되었다. 예컨대 편찬자는 음식좌셕에 례식을 알지 못면 인격에 관게되는 일이 젹지 안슴니다 라고 겉으로 드러나는 매너와 내면의 인격을 연계시켜서 생각였다. 물 론 기존의 미담류 역시 외적으로 도덕성을 드러낼 것을 요구지만, 1920년대 백과사전은 그러한 내적인 도덕성에는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 지 않는다. 즉 인격을 좌우는 교제상의 지식 은 단순히 소비의 대상 이고 그 소비를 통해서 손쉽게 자신의 인격 을 높일 수 있다. 간단한 사 용설명서를 읽는 것처럼 백과사전의 독자는 례식 을 소비한다. 따라서 이 책은 교제가 만은 저 사람[일본인들]에 교제는 쥬의를 드러두는 것 도 쓸데업는 일이 안일 듯함내다 라고 말면서 여성들에게 적극적으로 소비를 권장한다. 24) 이처럼 내적인 도덕성에서 외적인 매너와 례식 으로의 전환과정은 1920년대를 통해서 나타나는 소비취향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 한다. 물론 백과사전 자체는 고가의 소비재가 아니지만 이 책을 구매 는 여성 독서인들은 그만큼 지식의 구매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 다. 그리고 이것이 출판문화의 새로운 소비주의 경향이라면 <표3>는 그 러한 소비력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자신의 도덕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중 요한 수단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좋은 소비자가 바로 매너를 갖춘 근 대여성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자본주의적 삶의 표현이었다. 24) 언문일용가뎡보감, 92-93쪽.
116 한국학연구 48 <표 3> 졋 가 락 을 쪽 쪽 빠 라 먹 지 마 시 요 모 든 사 람 이 만 히 모 힌 곳 에 셔 는 슈 다 한 것 도 자 미 업 고 너 므 말 업 는 것 도 자 미 업 는 거 시 요 내 몸 의 장 쳐 와 자 긍 는 뜻 시 잇 는 말 은 단 졍 코 삼 갈 것 이 니 쇼 인 의 행 실 이 요 다 른 사 람 의 쓸 대 업 는 말 이 라 도 참 고 듯 는 즁 에 는 몸 에 유 익 한 일 이 잇 스 니 듯 끼 시 려 는 모 양 을 보 이 지 마 시 요 남 고 야 기 는 즁 에 어 더 드 른 말 은 공 부 로 할 고 긔 록 야 두 엇 다 가 때 를 따 라 응 용 시 요 ( 밑 줄 강 조 필 자 ) 여기서 볼 수 있는 예의 바른 여인은 기존의 미담들이 강조한 내면의 도덕성과는 큰 차이를 가진다. 소비자로서의 여성들은 책을 통해서 올바 른 에티켓을 익히고 젓가락을 쪽쪽 빨아 먹지 않고 다른 사람의 쓸대 업는 말이라도 참고 듯는 태도를 갖추면 충분히 주변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즉, 이러한 현상은 지식의 상품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1910년대와 20년대의 출판자본주의의 성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첫 번째는 앞에서도 지적였듯이 예의범절이 그 동안 부모에 서 자식으로 전수되던 형태를 벗어나서 책의 저자에서 책의 독자로 전달 되는 형태로 변화한 것이다. 이 점은 격식 과 례식 에 대한 일반인들의 접근성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에티켓이라는 지식의 상품화 가 행동의 규격화를 초래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자면 조선어 식자능 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통된 행동양식을 취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조선어 텍스트가 유통되던 시장이 기존의 신분을 뛰어넘는 새로운 독자 공동체를 만들어 낼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1910 20년대 조선어 가정용 백과사전의 출판과 그 내용 노상호 117 우리는 여기서 훌륭한 여성이라는 여성성이 열녀 와 현모 에서 지 혜로운 소비자 로 변화는 한 단면을 발견할 수 있다. 김윤선이 지적 듯이 에티켓의 학습은 문명화의 과정을 선택적으로 그리고 편의적으로 겠다는 소비주의의 표현이었다. 25) 소비주의의 성장은 이전처럼 자기희 생을 통한 덕성의 현실적 체현이 아니라 올바른 정보를 소비함으로써 자 신의 인격과 지위를 높여갈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왔다. 따라서 조선 후 기 열녀현모 에서 20세기 초의 현모양처 로의 전환과정은 연속성과 함 께 단절성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출판자본주의의 성장은 여성 예법의 단 순화, 그리고 보편화를 초래한 한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1910년대, 20년대의 가정용 백과사전의 독자들은 1930년대의 모던걸 과는 분명한 차이점을 가진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영화의 보급 과 함께 찾아온 새로운 대중문화는 중장년층 여성들을 타겟으로 한 백과 사전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특히 백화점과 영화로 대변되는 모더 니즘의 대량소비문화와 달리 백과사전들은 조선 후기 이래의 민간지식들 을 폭넓게 수용였다. 이 점은 뒤에서 상술듯이 점복술의 측면에서 가장 분명게 드러나지만 가정지식의 측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일본 인과 교제는대 주의할 일 에 이어서 나오는 명심록 을 보면 이 장은 모두 80개의 짧은 언문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장은 음식관리법, 미 용지식, 위생에 대한 정보 등을 다양게 포함한다. 예컨대 계란의 자웅 판별법, 곱슬머리를 펴는 법, 담배 끊는 법, 목소리를 좋게 는 법, 머리 빠지지 않게 는 법, 송이버섯을 집에서 재배는 법, 집에서 우유 만드 는 법, 얼굴을 얗게 는 법 등은 당시 여성들의 미용과 음식에 대한 정보 수요를 잘 반영한다. 구전에만 의존던 기존의 전달방법에서 벗어 나서 강의영을 비롯한 민간출판업자들은 이러한 지식들을 문자화시키고 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20세기 이전 여성들의 요리는 단순히 주방에만 국한된 행 위가 아니었고 조리, 숙성 등 다양한 범주를 포함였고 그만큼 1910년 25) 김윤선, 근대 여성매체 신여성에 나타난 여성의 소비문화, 동양학 45, 2009년, 17쪽.
118 한국학연구 48 대 가정보감들은 요리법 만을 따로 분리해서 싣고 있지 않는다. 중산층 가정주부 의 등장을 근대화된 부엌의 시작으로 보는 관점도 있지만 여성 혼자서 조리만을 담당는 핵가족식의 부엌은 20세기 초반 당시 세계적 으로도 매우 드문 경우에 속였다. 26) 여전히 대다수의 여성들은 재료의 손질, 저장, 숙성 등을 다른 여성들과의 협업으로 수행였고 여성들이 요리 만을 담당한다는 개념은 매우 생소한 것이었다. 즉 이미 가공된 재 료들을 이용해서 요리 만 는 것은 여성들이 필요한 지식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27) 기록상으로는 1913년에 처음으로 조선어 요리책이 출 판되었다고 지만 현존지 않는다. 따라서 식민지 시기 초기에 있어서 여성들이 원는 지식은 오늘날 볼 수 있는 중산층 가정주부의 그것보다 는 오히려 조선시대 이래로 내려온 여성의 지식, 즉 가축의 사육부터 시 작해서 음식의 가공까지를 포함한 보다 폭넓은 지식에 가까웠을 것이고 그만큼 명심록 의 경우가 당시 소비자의 취향에 더 적합한 형태였을 것 이다. 또한 당시 여성교육이 제한적이던 상황에서 책의 소비와 독서는 육아 를 담당던 여성들에게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응급의학지식이다. 명심록 에서는 육아의 담당자인 여성들에게 필요한 의학지식을 상세게 기록였다. 이질에 걸린 아이를 치료할 때는 괴 화 한 돈중 과 기각 한 돈중 을 세 번 다려서 먹이고 어른이 이질에 걸 렸을 때는 동일한 약재를 닷 돈씩 세 번, 네 번 정도 먹이라고 였다. 이 응급처방이 얼마나 의학적으로 정확한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여성독 자들이 단순히 유희, 혹은 도덕적 교육만을 위해서 책을 읽지 않았던 것 만은 분명다. 그 이외에도 목구녕에 가시빼는 법, 목쉬인대, 밤에 잠이 아니오거든, 개의 물인대, 배암의게 물인대 등은 일상생활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건강은 물론 가족들의 건강을 일차적으로 돌보는 입장 26) Rachel Laudan, Cuisine and Empire: Cooking in World History,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3, 252-260쪽을 참조. 27) 현재 남아 있는 기록상으로 보면 최초의 요리책은 방신영이 쓴 조선요리제법 (1942 년판)이다. 이 책은 이미 1913년에 초판본이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불행히도 현재 1913년판은 전해지지 않는다.
1910 20년대 조선어 가정용 백과사전의 출판과 그 내용 노상호 119 에 있는 경우가 많았고 따라서 독서는 그러한 실용적인 지식을 얻기 위 한 행위였을 것이다. 28) 특히 언문일용가뎡보감 의 마지막 부분에 실려 있는 명의경험방 은 전근대의 의학지식이 근대 인쇄매체로 전사( 傳 寫 )된 경우라고 할 수 있 다. 29) 불행히도 파손으로 인여 명의경험방 의 전체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그 중에서 부인과( 婦 人 科 )와 관련된 내용은 아래와 같이 출산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었다. 이러한 응급처방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전 근대적인 경험방 으로 무시될 수 있지만 식민지 시기 병원과 의사가 부 족한 상황에서 이러한 응급지식은 기혼여성들에게 귀중한 정보일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표4>와 같은 경험적 지식을 단순히 비과학적, 혹은 전근대적인 것 이라고 부르는 근대화론 은 당시 독자들의 현실을 간과 는 오류를 범는 것이다. 난산이라는 건강상의 위험에 대처기 위해 서라면 효과가 있다고 는 모든 처방전을 모아놓는 것이 경험주의에 입 각한 과학적 행동방식이었고 강의영과 같은 상업출판업자들은 그러한 경 험적인 지식을 모아서 상품화한 것이다. 난산이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거 나 인간이 그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밖에 없었다면 이러한 경험 방 의 상품화나 혹은 유통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즉, 당시 근대적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들이라고 더라도 책의 소비와 독서를 통한 지식의 습득은 상당한 부분 긍정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점을 고려면 1910년대, 20년대 중장년 여성들이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춘향전과 같은 딱지본 소설을 읽었다는 구여성 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반드시 재고 되어야 할 것이다. 30) 28) 언문일용가뎡보감 1926년, 95쪽. 29) 경험방 의 수집, 편집과 열람은 실용서적의 편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의 경우에도 19세기 동안 驗 方 의 편찬과 상업출판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출판물들 은 언문일용가뎡보감 과 같은 가정용 백과사전과 마찬가지로 전문적 의사들이 편 찬지 않고 아마츄어들이 간단한 의학지식의 보급를 목적으로 는 경우가 많았다. Yi-Li Wu, Reproducing Women: Medicine, Metaphor, and Childbirth in Late Imperial China,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0, 71-72쪽. 30) 최근 신여성 과 구여성 에 대해서 소현숙과 김수진은 모두 이 두 가지 구분이 그녀 들의 사회적 현실을 제대로 반영기 보다는 나의 담론으로서, 기표로서 작용였
120 한국학연구 48 <표4> 태 가 동 야 루 혈 되 거 든 대 두 황 권 을 살 마 거 재 고 연 야 두 어 탕 긔 를 먹 그 면 즉 시 평 안 니 라 어 싀 [ 파 손 ] 태 가 동 거 든 해 바 라 기 꼿 슬 달 여 먹 으 면 즉 차 니 라 태 가 그 저 동 한 데 도 조 흐 니 라 난 산 아 희 비 루 져 신 고 거 든 살 구 씨 한 아 흘 거 피 야 쪽 여 한 편 은 날 일 자 쓰 고 한 편 은 달 월 자 써 셔 끌 노 도 로 붓 치 고 밧 그 로 달 은 꿀 로 싸 서 환 을 맨 드 러 백 비 탕 에 삼 켜 나 리 면 즉 효 니 라 태 는 동 고 즉 시 낫 치 못 는 대 랭 수 로 심 써 셰 수 한 즉 기 운 이 크 게 행 야 즉 시 낫 나 니 라 태 가 아 직 동 치 못 한 대 헛 심 과 이 쓰 거 든 매 돌 중 쇠 자 웅 을 모 도 물 에 닥 혀 먹 으 라 문 에 임 한 지 오 래 고 나 치 못 거 든 갈 보 리 셔 되 를 물 에 폭 다 려 한 사 발 마 시 면 낫 나 니 라 오 래 비 루 저 낫 치 못 난 데 무 근 며 조 를 간 을 게 가 루 맨 드 러 더 운 물 에 타 먹 으 면 즉 시 나 오 되 만 일 태 동 [ 이 내 용 은 파 손 으 로 분 실 ] 이처럼 독서와 지식의 상품화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기반이 없었다 면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교양에 대한 논의들은 조선인 독 자들 사이에서 빈약한 기반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1930년 대에 들어서면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남성 의사들이 위생과 보건에 대 한 지식을 대중매체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전파한다. 예컨대 1934년 경성 제국대학 산부인과 의사 윤태권( 尹 泰 權 )의 글을 보면 20년대의 지식의 상품화가 지식의 전파를 위한 중요한 기반을 만들었음을 엿볼 수 있다. 다고 주장였다. 신구 의 이분법이 얼마나 당시 여성들의 실생활과 행동양식을 반 영는지는 앞으로 더 많은 논의가 필요다고 생각한다. 소현숙, 강요된 자유이혼, 식 민지 시기 이혼문제와 구여성, 사학연구 제104호, 2011년, 주2 참조; 김수진, 신여 성, 열려 있는 과거, 멎어 있는 현재로서의 역사쓰기, 여성과 사회 제11호, 2009년.
1910 20년대 조선어 가정용 백과사전의 출판과 그 내용 노상호 121 윤태권은 잡지 별건곤 에서 임신중의 섭생법, 임부독본 이라는 글을 썼 는데, 이 글은 의사라는 자신의 직업과 이름을 공표고 쓴 글이기 때문 에 다수의 익명의 저자들이 쓴 명의경험방 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는 다. 그러나 독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윤태권이 제공는 지식은 1920년대 의 명의경험방 보다 더 좋은 상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다시 말자면 근대적 과학 과 전근대적 경험방 이라는 이분법은 사실 당시 독자들에 게 큰 의미를 갖지 않고 개별 독자들은 보다 나은 정보를 시장에서 취사 선택겠다는 입장을 취할 뿐이다. 즉, 시장에서 두 개의 정보가 경쟁 면서 더 나은 정보가 선택되어 가는 과정이 1920년대에서 1930년대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다음의 예를 보면 산부인 과 의사인 윤태권은 가임기의 여성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평이한 (언문) 문장으로 다음과 같이 여성의 건강과 출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시외 등지에 산보를 야 신선한 공긔를 쏘이게 며 또한 적당게 운동을 야 신체에 잇는 모든 긔관에 작용을 잘 활동케 야 근육의 발달을 잘 식 혀서 해산할 때에 쓰는 힘을 양성야 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임신 만삭이 되면 충분히 몸을 휴양할 필요는 잇습니다. 그럼으로 광산에 잇는 부 인이 임신을 면 해산 전후야 약 10주간의 휴가 가 잇게 되며 교원이나 보모가튼 직업 부인도 약8주 간이나 휴양도록 정해 잇는 것은 이러한 리유가 잇는 것입니다. 또한 처음 임신신 부인은 해산 이라는 것을 겁을 먹는 일이 잇스나 결코 념려실 것이 아니며 부인은 누구던지 출가면 임신고 따라서 해산는 것이니 안심함이 필요합니다. 그 럼으로 고래로 나려오는 태교라는 것이 잇서서 임 신 중에 정신과 신체에 대해야 안심케 며 또 건전 케 는 것이 잇습니다. 31)
122 한국학연구 48 여기서 필자는 명의경험방 과 별건곤 을 읽는 독서행위 사이에는 단절성보다는 연속성이 강함을 지적고자 한다. 물론 의사 윤태권이 제 공는 지식은 의료행위를 의사라는 전문가 집단에게 맡기고 의사와 환 자의 분리를 확실한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이에 반여 1920년대 가정용 백과사전은 환자, 혹은 환자의 보호자가 의사 역할을 담당고 특정한 약으로 건강에 대한 위협에 대처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처럼 의사와 환자의 명확한 분리가 1930년대에 들어가면서 지면에서도 분명히 나타 난다. 그러나 각도를 달리해서 생각해보면 의사라는 전문직 집단도 자신 들의 권위를 단순히 국가면허의 소지자라는 측면에서만 대중들에게 보여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동안 유통되어 오던 기존의 의학지식(경험방) 을 자신들의 지식으로 치환시키기 위해서 글쓰기와 읽기에 주목였 다. 32) 즉, 윤태권이라는 의사는 애초 이러한 글을 쓸 때 당시 여성독자들 이 글을 읽을 준비와 능력이 있으며 보다 정확한 지식을 선별해서 습득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집필을 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인식의 기저에는 조선인 사회에서 합리적인 여성독자들이 광범위게 존 재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이러한 믿음은 한 순간에 생긴 것이 아니 라 1920년대, 혹은 그 이전부터 출판자본주의를 통해서 형성된 여성들의 읽기 관행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였을 것이다. 5. 신과 여성: 점치는 방법 지금까지 가정용 백과사전의 소비자이자 독자로서의 여성의 모습을 31) 윤태권, 임신중의 섭생법, 임부독본, 별건곤 제73호, 1934년, 32-33쪽. 32) 예컨대 1926년판 최신언문무쌍가뎡보감 의 신부음식금기 는 규합총서 의 약물 금긔 와 몇 가지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새로운 내용도 포함였다. 1926년판 최신 언문무쌍가뎡보감 은 임산부 금기 약물을 23가지 들고 있다. 이 중 모두 14가지만이 규합총서 와 일치한다. 즉, 임신 중에 특정한 음식을 금해야 한다는 정보는 이미 19 세기부터 여성들도 독서를 통해서 배우는 지식이었다. 강의영, 최신언문무쌍가뎡보 감, 유일서관, 1926년, 135쪽.
1910 20년대 조선어 가정용 백과사전의 출판과 그 내용 노상호 123 합리적인 지식의 소비자라는 측면에서만 고찰해 보았으나 이러한 측면만 으로는 당시 여성들의 독서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 가장 큰 이 유는 대중서의 독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던 지식은 반드시 근대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을 끄는 내용 중 나는 점치는 방법이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별자리 점이나 토정비결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점복술( 占 卜 術 )은 당시 여성을 위한 백과사전에서 큰 비 중을 차지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대중들이 소비는 여성지나 일간지 에서 오늘의 운세, 별자리 점 등이 빼놓을 수 없는 정보들이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정보들을 지식의 범주에 넣지 않는다. 그러나 언문일용 가뎡보감 과 같은 1920년대 백과사전들은 상당한 분량을 점술, 해몽, 궁 합 등의 방법을 소개는 데 할애였고 그러한 정보들을 앞에서 서술한 의학지식, 에티켓, 글쓰기 등과 동일한 범주에서 다루었다. 이 점은 20세 기 초반 가정용 백과사전들, 특히 강의영이 발매한 백과사전들이 보여주 는 흥미로운 특징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1920년대 가정용 백과사전들은 오행점, 즉셩법, 아홉셩군위차, 행년법 등 다양한 점복술을 소개는데, 그 중요 한 공통점은 독자 스스로가 이 책들을 구매해서 읽으면 스스로 자신의 길흉을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오행점의 경우를 보면 상중 의 괘를 항목별로 나누고 그것에 해당는 길흉의 내용을 설명되어 있다. 오행점을 칠 때는 먼저 츅왈턴언재고디즉응신기명의감이슌통금모녀 모월모일모셩명금년길흉미능샹지오니복걸신명은길흉션악을물비쇼시 셔졍셩으로길흉을판단심을두번바라나이다 라는 구절을 낭독고 모 두 30개의 괘를 통해서 운세를 본다. 오행점은 5행이 다섯 번 변화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3,125개의 괘가 나올 수 있지만 언문일용가뎡보감 의 경우에는 그 중 30개만을 추려서 소개한다. 소위 상괘란 금목수화토 로서 긔란과 봉황이 샹셔를 드리고 거복과 룡이 경사를 례니 재앙 은 가고 복록은 만 벼살이 자연오리로다. 해왈 다삿 별이 맑으매 날 이 광채나고 사람이 괘를 만나면 자손이 창셩고 기리 영화를 누리리 라 고 풀이였다. 33)
124 한국학연구 48 이러한 점복술의 전통과 그 전래는 20세기 전반기 동안 꾸준히 지속되 었는데 상업출판물들이 이러한 전통지식의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였음 을 알 수 있다. 흥미롭게도 동일한 오행점의 정보가 1962년 대구에서 출 판된 가정백사길흉보감( 家 庭 百 事 吉 凶 寶 鑑 ) 에 고스란히 실려 있다. 대 구시 향촌동13번지에 위치한 향민사 출판사는 박창서를 발행인으로, 박 창규를 편집인으로 해서 250원에 이 책을 발매였다. 그러나 향민사의 가정백사길흉보감 은 강의영의 보감들과 달리 글쓰기 교육을 위한 모범 척독을 삭제고 단지 점복술과 전래구전지식만을 담고 있다. 34) 이러한 변화는 아마도 새로운 학교의 보급을 통해서 여성들의 글쓰기 교육이 많 은 부분 학교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내용상 의 유사점은 식민지 시기 딱지본 출판사들이 저작권이 불분명한 컨텐츠 를 너도나도 출판던 관행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행점 의 경우, 가정백사길흉보감 의 제1편 비결 에 실려 있고 언문일용가 뎡보감 와 마찬가지로 금목수화토 를 가장 좋은 점괘로 소개한다. 1962 년 보감 역시 오행점을 치기 전에 반드시 축왈 천언제시며 지 언제 시리오 고지 즉응나니 감이 순통소서 금유 모부 모방 모동거는 성 명생신이 모년 모월 모일에 금년신수 길흉을 미동상지오니 복걸신명은 물비 소시소서(세번을읽는 법이니라) 라는 주문을 낭독도록 지시한 다. 상괘인 금목수화토 의 내용은 언문일용가뎡보감 과 <표 5>과 같이 사실상 동일다. 둘의 차이는 전자가 벼살이 자연오리로다 라고 한 부 분이 삭제되어서 복록이 오리로다 라고 바뀐 부분이다. 이외에도 30궤 만이 소개된 점도 이 두 보감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35) 33) 언문일용가뎡보감, 1926년, 110쪽. 규합총서 최신언문무 쌍가뎡보감 오두, 부자, 반묘, 아갈, 슈은, 파두, 우살, 의이, 웅황, 삼능, 사향, 사퇴, 망쵸, 목 단, 계피, 과화, 반, 남경, 통초, 건강, 별갑, 붕사, 건칠, 도인, 우황, 뇽노, 귀젼 우, 금박, 은박, 찰자셔. 반묘, 우황, 부자, 수은, 파두, 삼능, 우슬, 대극, 셕유황, 망쵸, 졔피, 괴화, 조기, 홍화, 단목, 반, 남셩, 통쵸, 구맥, 전강, 도인, 지담, 상산, 모근 등. 34) 박창규 편, 가정백사길흉보감, 대구:향민사, 1962년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35) 오행점을 보는 방법은 목편( 木 片 )에 금, 목, 수, 화, 토 를 새겨서 윷처럼 던져서 그에 해당는 점사( 占 辭 )를 찾는다. 천태산인( 天 台 山 人 ), 年 中 行 事, 1 月 篇 正 月 風 俗
1910 20년대 조선어 가정용 백과사전의 출판과 그 내용 노상호 125 <표 5> 언문일용가뎡보감(1926년판) 긔란과 봉황이 샹셔를 드리고 거 복과 룡이 경사를 례니 재앙은 가고 복록은 만 벼살이 자연오리로 다. 해왈 다삿 별이 맑으매 날이 광 채나고 사람이 괘를 만나면 자손이 창셩고 기리 영화를 누리리라 가정백사길흉보감(1962년판) 기린과 봉황이 상서를 드리고 용 과 거북이 경사를 례나니 재앙은 가고 복록이 오리로다. 해왈 다섯별 이 밝으매 늘이 광채나나니 사람이 이괘를 만나면 자손이 창성고 영화 를 기리 누리리라. 이처럼 강의영과 같은 출판업자가 여성 독자들을 위해서 점복술의 백 과사전을 발매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가장 큰 원인은 소비자들의 수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고 우리는 그러한 수요를 당시 중장년 여성들 이 가족 내에서 수행던 종교적 역할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다. 강의영 의 백과사전에 등장는 점복술 중 나인 즉셩법을 보면 인간은 모두 10살부터 63살까지 자신의 연령에 맞춰서 즉셩 을 갖는다. 그리고 그 성( 星 ) 에 따라서 그 해의 운세를 주관는 보살이 있다. 즉, 20세의 남 자는 그 해 토즉셩, 아미보살, 죵괴, 셤에든 일희몸 이고 20세의 여자는 제용즉셩, 최졍보살, 태을, 밧해듯 돗해몸 이다. 즉셩법 에 따르면 이외 에도 미륵보살, 여래보살, 관음보살, 지장보살, 보현보살, 대세지보살, 약 사보살, 말리보살 등이 있는데 중장년 여성들은 자신과 가족들의 나이에 맞춰서 그 해의 수호보살에게 정성을 드리고 가족의 안녕을 기원였다. 다시 말자면 여성들은 남편이나 자녀들을 위해서 불교사찰, 혹은 무 ( 巫 )를 방문해서 수호를 위한 역할을 수행해야 했고 그만큼 점복술은 어 머니로서, 아내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중요한 정보였다. 1920년대 종교계의 비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당시 여성들의 종교 활 동은 기복적인 색채를 강게 갖고 있었다. 그만큼 기혼여성들의 종교 활동은 일상적인 것이었다. 특히 기독교인이 아닌 경우, 고성염불의 기도 가지가지, 동광 40호, 1933년, 24쪽.
126 한국학연구 48 는 당시 중장년 여성들이 주로 행던 종교 활동이었다. 조승미의 연구 에 따르면 당시 불교계는 이러한 여성들의 기복적 수련활동을 개혁고 자 노력였다. 36) 특히 새해를 맞을 때 많은 여성들은 집안에 제용즉 성 (혹은 제용직성( 處 容 直 星 혹은 라후직성( 羅 睺 直 星 ) )에 해당는 나이를 맞는 자녀들을 위해서 액땜을 는 의식을 행였다. 언문일용 보감 에 따르면 여성의 경우 20살이 이에 해당한다. 이때 짚으로 사람 형상을 만들어서 그 뱃속이나 머릿속에 동전을 넣고 저녁에 내다 버리면 그 해의 액을 때운다 고 믿었다. 이병기에 따르면 이러한 풍습은 1930 년대 초반까지 남아 있어서 보름 전날이면 어린아이들이 떼를 지어서 돌 아다니면 제웅이나 조롱이나 주시오 라고 제웅( 處 容, 혹은 제용, 제 옹) 을 얻으러 다녔다고 한다. 37) 그리고 명절의 유희로 알려진 윷놀이, 즉 쳑사법 역시 신년의 운세 를 보는 방법으로 이용되었다. 언문일용가뎡보감 에 따르면 쳑사 의 방법은 매년 원조와 상원일 평명에 쇼세한 후 차일년 신슈태평이 지내 기를 츅원며 윳을 따해 던져 세번에 길흉을 판단 는 것이었다. 이는 윷놀이가 운세를 알려주는 주술적, 종교적 의례로 기능였음을 보여주 는데, 산술적으로 보면 도/개/걸/윷/모 다섯 가지 경우 수의 세 제곱으로 125개의 괘를 만들 수 있다. 특히 그 점괘의 내용을 보면 당시 결혼적령 기에 있거나 혹은 혼인한 여성들이 주된 행위자였음을 알 수 있는데 남 자아이를 낳는지 여자아이를 낳는지와 같은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운세 풀이가 많이 등장기 때문이다. 38) 36) 조승미, 한국의 문화: 근대 한국불교의 여성수행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34권, 2006년 참조: 개야개야 복술개야 소리크게 짓지마라 울어머니 놀라시면 정신없어 염불못해 울어머니 앉은 모양 문수보살 강림한 듯 희고 짧은 머리카락 귀밑으로 드 리우고 백팔염주 목에 들고 굵은단주 손에들고 향피우고 정신차려 입은 딸삭 손은 딸각 눈을 반쯤 감으면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모든 벌을 면시고 사후극락 원면서 삼매입정 옵시고 서쪽해를 모를레라, 박영수, 신녀의 노래, 불교 제 8호, 1925년 2월, 서울: 불교사, 78쪽, 조승미 388쪽 재인용. 37) 이병기, 慣 習 와 行 事 의 正 初, 별건곤 60호, 1933년, 13쪽. 또한 위의 동광 에 따르면 이러한 짚으로 만든 인형을 芻 靈 이라고도 였다. 38) 언문일용가뎡보감, 1926년, 125-128쪽.
1910 20년대 조선어 가정용 백과사전의 출판과 그 내용 노상호 127 <표 6> 도 도 윳 나 무 가 봄 을 만 난 괘 라 잉 남 리 라 一 一 四 天 遯 山 如 木 逢 春 도 도 도 아 해 가 어 미 일 은 괘 라 잉 녀 리 라 一 一 一 乾 爲 天 如 兒 失 母 도 도 개 고 기 가 물 을 일 흔 괘 라 一 一 二 天 地 否 如 魚 失 水 도 도 걸 어 두 운 밤 에 초 불 을 어 든 괘 라 잉 남 리 라 一 一 三 天 風 姤 如 暗 得 燭 이러한 종교적 지식과 의례들은 여성 독자이 독서를 통해서 초자연적 인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나의 주술적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타인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주술적 행위를 사악한 마법 (witchcraft)이라고 보면 위에 제시된 정보들은 여성들이 가족들의 생명력 을 앗아가는 초자연적 힘에 대항기 위해서 생명력을 강화는 대항적 주술을 얻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적어도 여성들은 오행점, 쳑사법, 처 용인형의 제작과 같은 방법을 통해서 잠재적인 위협을 중립화 할 수 있 는 능력을 갖출 수 있다고 믿었다. 물론 여성들이 이처럼 대항적인 주술 을 습득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 중 나는 가족 내에서 자신들이 갖 는 위상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남성들이 학교 교육을 통해서 혹 은 직장을 통해서 근대적 합리성의 담지자로서 새롭게 가족 내에서 자리 매김고 있었다면 여성들은 종교적 역할을 통해서 아내, 그리고 어머니
128 한국학연구 48 로서의 역할을 강화였다.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의 근대화의 과 정을 보면 전통적 주술 행위는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근대 한국에서도 가정용 백과사전이 전근대로부터의 주술적 지식을 보존, 전파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 이다. 39) 예컨대 여성들이 대항해야 할 초자연적 존재 중 나는 야광이 혹은 야광귀 라고 불리는 귀신이었다. 약왕( 藥 王 ) 혹은 야광( 夜 光 ) 이라고 기록된 이 귀신은 연말연시에 집에 찾아와서 어린이들의 신발을 훔쳐서 도망간다고 믿어졌고 신발을 잃어버린 아이는 불길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였다. 야광귀 이야기는 서울과 경기를 비롯해서 충 북, 전남, 경남 등지에서 널리 발견되는데, 당연히 여성들은 인간의 생명 력을 위협는 귀신 혹은 마녀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자 였 다. 40) 물론 이러한 지식과 주술적 힘을 전근대적 유산이라거나 혹은 결 국 사라져 버릴 문화였다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강의영과 같은 1910년대와 20년대 가정용 백과사전의 편찬자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 았던 것 같다. 주술적 지식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있었고 판매되었다. 오 히려 전통적 지식이야말로 당시 여성독자들이 원는 정보였고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돈이 되는 정보였을 것이다. 따라서 20세기 초반 여성독자들과 교육용 상업도서의 관계는 지금까 지 생각되어 온 것보다 휠씬 더 긴밀했다. 여성의 독서는 단지 도덕성의 함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지식을 획득고 독서를 통해서 자신 의 힘을 강화(empowerment)시킬 수 있었다. 특히 소비라는 선택권과 시 장이라는 학교를 가진 중장년의 여성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서 지식 을 습득했고 국가와 학교가 가르치지 않는 정보들까지 자신들의 지식의 범주 속에 포함시켰다. 언문으로 습득한 주술적 힘은 여성들이 직업을 39) Pamela J. Stewart, Andrew Strathern, Witchcraft, Sorcery, Rumors and Gossip,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pp.1-6. 40) 이영식, 횡성지역 세시풍속 연구: 귀신날을 중심으로, 강원민속학 21, 2007년, 334-335쪽.
1910 20년대 조선어 가정용 백과사전의 출판과 그 내용 노상호 129 갖지 않고 학위를 취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족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 을 수 있는 중요한 지식기반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소비와 독서의 목표 는 개인적이다. 이러한 사적인 독서관행은 중장년 여성들이 단지 수동적 으로 구여성 의 지위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형성과 유 지에 관여고자 였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6. 결론 요컨대 1920년대 강의영이 발매한 가정용 백과사전은 당시 식민지 정 규교육을 받지 않은 중장년의 여성들이 소비고 열람한 지식, 정보, 문 자의 세계를 잘 보여준다. 순 언문으로만 제작된 이 책들은 식민지 초기 중장년 여성들의 독서가 대체로 도덕 교육과 유희를 위한 것이라는 기존 의 관념을 깨고 글쓰기, 의학지식, 그리고 종교적 의례와 같은 실용적인 지식의 습득, 그리고 유용한 정보의 유통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음을 증명한다. 물론 여기서 말는 지식이란 시험에 통과거나 학위를 취득 해서 취업을 기 위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살펴본 지식이란 주로 여성 독자들이 자신이 속한 가족과 친족집단 내에서 자신의 지위를 유지거 나 향상시키기 위한 정보들의 총체이다. 예컨대 언문으로 격식에 맞게 편지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은 여성이 친족 내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주체로 서 활약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새로운 에티켓과 의학지식은 중장년 여 성들도 얼마나 적극적으로 사회적 변화에 대응고자 였고 일상지식의 담지자이자 신체와 건강의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수행였는지를 잘 보여 준다. 따라서 최근 몇몇 연구자들이 지적듯이 신여성 과 구여성 의 이분법적인 관점은 이제 재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독자로서, 소비자로서의 구여성 들의 역할과 역량은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20세기 초 여성의 직업 활동이 제한적이던 상황을 고려면 여성 들의 독서와 학습이 남성의 그것과 달랐다는 점은 그다지 놀라운 사실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언제나 가족이라는 사적인
130 한국학연구 48 영역 내에서 남편이나 남동생에게 의존는 매우 수동적인 존재였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당시 여성들의 지식 소비를 제대로 이해지 못한 것 이다. 많은 여성들이 언문을 읽을 수 있다면 손쉽게 시장을 통해서 새로 운 지식을 획득할 수 있었다. 특히 점차 활성화되는 상업출판물의 시장 은 학교라는 공적인 기관 이외에도 지식이 전파될 수 있는 새로운 미디 어와 네트워크로서 작동기 시작였다. 그만큼 계몽과 야만, 근대성과 전근대성, 남성과 여성, 신여성과 구여성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만으로 는 1920년대 식민지 조선 사회와 문화가 가진 역동성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본고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성들이 읽고 배 우던 척독의 전통, 가정용 지식의 전래, 그리고 초자연적인 힘에 맞서서 싸울 수 있는 의례 등은 학교 교육에 포함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조선 인들의 일상생활과 문화생활에서 중요한 일부분을 차지고 있었다. 그 리고 그 지식의 실행자이자 소비자는 바로 중장년 조선인 여성들이었다. 따라서 1930년대부터 늘어나는 지식인들의 대중적 글쓰기와 새로운 지 식 서적의 상업출판은 이러한 폭넓고 성숙된 소비 독자층이 조선사회에 미리 존재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참고문헌 기본자료 강의영, 가정선문보감, 유일서관, 1918년. 강의영, 최신언문무쌍가뎡보감, 영창서관, 1926년 (국립중앙도서관, 명지대학교 도서관 소장). 김익달 편, 生 活 全 書 (4) 書 簡 文 全 書, 학원사, 1959년. 박창규 편, 가정백사길흉보감, 대구:향민사, 1962년. 윤태권, 임신중의 섭생법, 임부독본, 별건곤 제73호, 1934년. 이병기, 慣 習 와 行 事 의 正 初, 별건곤 60호, 1933년. 작자미상, 언문일용가뎡보감 미상: 미상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게스트 (Gest) 동아시아도서관 소장], 년대미상(1925년 추정). 조선총독부, 朝 鮮 總 督 府 施 政 年 鑑 명치41, 42년판.
1910 20년대 조선어 가정용 백과사전의 출판과 그 내용 노상호 131 천태산인( 天 台 山 人 ), 年 中 行 事, 1 月 篇 正 月 風 俗 가지가지, 동광 40호, 1933년. 참고자료 강진호 외, 조선어독본과 국어문화, 제이앤씨, 2011년. 강혜선, 조선후기 척독문학의 양상, 돈암어문학 22, 2009년. 권보드래, 연애의 형성과 독서, 역사문제연구 7, 2001년. 권보드래, 연애의 시대: 1920년대 초반의 문화와 유행, 현실문화연구, 2003년. 김미영, 1920년대 여성담론 형성에 관한 연구: 신여성 의 주체형성 과정을 중심 으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3년. 김선남, 韓 國 女 性 雜 誌 의 構 造 的 特 性 硏 究, 出 版 雜 誌 硏 究 5-1, 1997년. 김성수, 근대 초기의 서간과 글쓰기 교육, 한국근대문학연구 21, 2010년. 김수진, 신여성, 열려 있는 과거, 멎어 있는 현재로서의 역사쓰기, 여성과 사 회, 2009년. 김윤선, 근대 여성매체 신여성에 나타난 여성의 소비문화, 동양학 45, 2009년. 김혜경, 식민지 근대가족의 형성과 젠더, 서울: 창비, 2006년. 방효순, 일제시대 민간 서적발행활동의 구조적 특성에 관한 연구, 이화여대 박 사학위논문, 2001년. 서유구, 정명현 외 역, 임원경제지: 조선 최대의 실용백과사전, 임원경제연구소, 씨앗을 뿌리는 사람, 2012년. 소현숙, 강요된 자유이혼, 식민지 시기 이혼문제와 구여성, 사학연구 104, 2011년. 옥영정 외 공저, 조선의 백과지식: 대동운부 군옥으로 보는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년. 옥영정 외 공저, 풍석 서유구와 임원경제지, 소와당, 2011년. 위르겐 버마스, 공론장의 구조변동: 부르주아 사회의 한 범주에 관한 연구, 나남, 2001년. 이영미 외, 딱지본 대중소설의 발견 서울: 민속원, 2009년. 이영식, 횡성지역 세시풍속 연구: 귀신날을 중심으로, 강원민속학 21, 2007년. 임경석 외, 개벽 에 비친 식민지 조선의 얼굴, 모시는사람들, 2007년. 임미정, 20세기 초 여훈서의 존재 양상과 의미,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19, 2009년. 임상석, 고전여성문학의 연구사적 전환을 위여: 근대계몽기 가정학의 번역과 수용-한문 번역 신선가정학의 유통 사례,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27, 2013년. 전미경, 1920-30년대 남편 을 통해 본 가족의 변화-신여성과 별건곤을 중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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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 20년대 조선어 가정용 백과사전의 출판과 그 내용 노상호 133 Abstract "Encyclopedias in Inner Chamber: a Microcosm of Korean Women and their Knowledge in Print in the 1910s and 20s" Ro, Sang-ho(Ewha Womans University) In this article, I would like to analyze Korean female readers and their consumption of printed knowledge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Specifically, I analyze Korean home encyclopedias of the 1910s and 20s, which were made for mid-age Korean women who did not receive formal school education. The home encyclopedias were designed to circulate useful knowledge for married women, so they instructed how to write a letter formally, how to care for children in an emergency, and how to tell fortunes. By analyzing commercial imprints for women, I argue that the home encyclopedias are microcosms of the female reading culture in transition. 노상호 소속 :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전자우편 : sro@ewha.ac.kr 투고일 2014.1.21. / 심사완료일 2014.3.28. / 게재결정일 2014.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