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신문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한다. 영성과 치유 하나님의 길로 돌아서라 영성은 하나님의 개입에 대한 우리의 응답 참된 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길 제 15차 한국 구세군 성장대회 / 구세군 한국선교 100주년 D-730 선포식 현대 기독교 용어 중 가장 흔하게 들을 수있는것의하나가 영성 (spirituality) 혹 은 기독교 영성 이란 말이다. 그러나 기 독교 영성에 대한 개념은 사람에 따라 다 르며, 또한 그 용어가 사용자의 입장에 따 라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기 독교 영성이 정말 어떤 것인지 혼동을 가 져오는 경우가 많이 있다. 영성(spirituality)이라고 부르는 용어는 기독교회 안에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 며 신학사에서 다양한 명칭으로 표현되고 사용되어 왔다. 어떤 이는 영성신학 (spiritual Theology)이라고 부르기도 하였 고, 또 다른 이들은 영성생활(spiritual life), 신심생활(devout life), 내적 생활(interior life), 신비적 수련(Mystical evo-lution) 및 기독교적 완덕신학(Theology of Christian Perfection)등의 이름으로 불려왔다. 1. 영성이란 영성(Spirituality)을 다룰 때에 제일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그 개념의 모호성과 혼 돈이다. 칼 라너(K. Rahner)는 영성이란 인간 이 창조 때부터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초자연적인 생명이며, 세례로 말미암아 죽었던 속사람의 생명이 다시 소생하여 살아난 은총의 생명으로 성체성 사를 통하여 끊임없이 성장, 성숙하는 실 체적인 초자연적 불멸적 생명이다. 라고 정의하였다.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 로부터 비롯되는 성서의 열매(산물)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 영성의 모 든 주제와 내용이 성서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일반 영성은 자기수양과 훈 련을 통하여 자신의 변화를 시도하는데 반하여 기독교 영성은 성령 안에서 우리 와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하여 맺어지는 성령의 열매와 그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영성은 수동적인 하나님의 은사와 능동 적인 인간 삶에의 동참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개입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성은 자연적 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관계들이 양육을 통하여 성숙하 듯이 우리가 영적 삶이라고 부르는 하나 님과의 관계도 다만 점진적으로 발전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영성은 개발되는 것 이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성숙의 자리에서 효과적인 매개자는 성령이시다. 그 성령 의 사역을 돕는 것이 목회자인 것이다. 영 성이 고갈된 현실 속에서 교회가 교회될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영성이기 때문이 다. 교회가 존재하는 근원과 성장의 원천 도 영성에 있으며 그리스도인답게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2. 영성 치유 영성치유는 전인치유이다. 영성치유는 생명현상을 깨닫고,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 을 깨달아 이 를 구현하고 성취하도록 돕는 전인적 치 유이며, 인간성의 성화(sanctification)과정 이다. 즉, 영성치유는 하나님의 신비인 하나님의 형상 그 자체가 지향하는 하나 님과 동료인간 및 피조물과의 깊은 친교 와 연대성을 성취하도록 돕는 전인적 치 유이다. 영성치유는 인간성의 해방이다. 영성치유는 인간성 존엄의 근거이며 영광의 근거인 하나님의 형상 을 상실한 인간을 일깨우고, 인간성을 비 본래적 존 재로 타락시키는 온갖 세상적인 힘과 권 세들, 그리고 망상과 욕망, 오만과 이기적 자기애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복음 안에 서 자유를 얻은 인간, 사랑하는 인간으로 돌아서게 하는 전인치유이며 인간성의 해 방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자기 존재의 다차원적 통전성을 자각하고, 자 기 존재의 근거들과 통일되고 연합되며, 전체 생명에 참여하고 관계하는 생명전 체, 인류전체, 우주전체에 전인적으로 참 여케 하는 치유이다. 영성치유는 영적성숙의 촉진이다. 영성치유는 결국 참 하나님의 형상이 며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영적생명의 성숙을 돕는 전인적 일 장 시 : 10월 3일(화) 오후 2시 소 : 백화산수련원 인도자: 아태부장 로이 프렌스 부장 동부인 사령관 전광표 부장 동부인 참석대상 : 전사관및군우 주 최 : 구세군대한본영 치유로 그리스도인의 내면에 예수 그리스 도가 살아 움직이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할 뿐 아니라, 그의 삶을 몸으로 따라 실천하도록 돕는 체계적 치유이다. 결론 영성생활이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 를 본받는 삶이다. 영성생활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며, 또한 인간의 성화와 구원이다. 모든 피조물과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 을 동일한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다. 그리스 도를 통해 성령의 능력이 주시는 초자연 적인 생명의 완성이 영성생활의 목표이고 영성신학의 탐구영역이다. 영성치유란 곧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꿔 서 치유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회개하라 고하실때회개는 단순히 윤리적인 잘못을 반성하라는 뜻이 아니라 세상의 길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길로 돌아서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이 는 오로지 하나님의 형상인 영성을 회복 할 때 가능한 것이다.
2 예수께서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식사 초청을 받았을 때, 죄인인 한 여자가 많은 사람 앞에서 예수님의 발에 눈물을 쏟고, 머리털을 풀어 그 발을 씻고, 준비해 온 옥 합의 향유를 주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 여자의 행위는 즉시 비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시몬은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비난했고 제자들도 여자를 비난했습니다. 이때 주님은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눅 7:47) 이 말씀에서 주님은 사랑과 용서의 연 관관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인간 상호간의 사 랑을 모두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은 구원의 조건이 됩니다. 또한 인간 상호간의 사랑도 용서의 조건이 됩니다. 사랑의 문제가 다루어진 본문에서, 문 제가 된 것은 시몬의 마음입니다. 그는 이 여자에 대하여 처음부터 죄인이라는 딱지 를 붙이고 있습니다. 남에게 딱지를 붙이 는 것이 곧 남을 비방하는 것이 된다는 의 미입니다. 예수께서는 누구에게도 딱지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인간도 구원받을 수 있 는 가능성을 가진 하나님의 아름다운 피 조물로 대하셨습니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근거, 사랑해야 할 근거가 거기에 있 는 것입니다. 여자의 솔직하고 티 없는 행동을 예수 께서는 용서에 이를 수 있는 많은 사랑 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마음의 진실함을 보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자를 책망하고 있는 제자 들의 마음속에는 정말 빈민구제의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입 술만의 이론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속 에는 사랑 대신 질투와 물질에 대한 욕심 이 차 있으면서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었 으나 예수께서는 어느 쪽이 진실인가를 꿰뚫어 보고 계셨습니다. 시몬은 비평했고 여자는 행동했습니 다. 시몬은 예수께 식사대접을 하였으나 여자는 진실로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 다. 시몬은 자랑스러운 바리새인이었으나 어둡게 살고 어둡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사회에서 떳떳하지 못 한 어두운 과거를 가졌으나 주님을 만나 밝은 생각으로 용서를 빌었습니다. 죄인인 여자를 비난하고 있는 바리새 인 시몬이나 제자들은 자기 자신은 바르 게 살았으므로 하나님께 빚진 것이 없다 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는 계명을 어기지 않았으니 하나님께 용서받 을 빚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장 큰 빚은 사랑의 빚입니다. 사랑하지 않은 것이 그 모든 계명을 어긴 것보다더큰죄인것입니다. 그러므로 예 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고 선언하시고, 새 계명은 곧 사랑임을 말 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 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이 계절에 더 많이 사랑합시다. 허규현 사관님이 어릴 적 살던 광주 양 남동은 미국 장로교 선교회가 자리를 잡 은 곳이었다. 기독교 방송국이 있었고, 많은 교회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중고등학교도 미 션스쿨을 다니면서 신앙이 성장해 나갔 다. 그러다가 22세 때 평소 존경하던 장로 님의 좋지 않은 모습에 충격을 받아 교회 를 떠나 방황하는 길로 들어서기도 하였 다. 그러다가 누님의 집에몇달머물게되 었는데 누님과 함께 군산영문으로 출석하 게 되었고 다시 신앙을 회복하게 되었다. 얼마 후 다시 고향인 광주로 돌아온 그는 이웃을 사랑하는 구세군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광주영문에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주일학교교사와 영문학생교관 을 하며 열심히 충성하였다. 후에 헌신하 게 되었고, 장숙자 사관을 만나 결혼하였 다. 그러나 당시는 사관학교 입교가 어려 운 시절이었다. 입교신청을 했지만 아무 리 기다려도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래서 특무로 지원하여 신평영문으로 발령 을 받았다. 2년 동안 특무생활을 하면서 사관학교 입교 신청을 했지만 또 거절당하였다. 눈 이 사시여서 안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수 술을 하고 사진을 찍어서 정상임이 확인 되면 입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힘들여 사시교정수술을 했는데, 눈이 정 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신청마감일은 다가오는데 눈은 사시이 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도 매일 조금씩 돌아오더니 며칠 만에 정 상으로 돌아와 사관학교에 입교할 수 있 게 되었다. 사관학교 졸업 후 첫 임지는 충주영문 이었다. 몇 명 있던 교인들마저 이사가 버 리고, 교인 한명 없이 눈물로 예배드릴 때 가 많았다. 거기에다 주변이 너무 시끄러 워 위치가 좋지 않았다. 좋은 자리를 찾다 가 사람이 살지 않는 흉가를 구해 전세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 세 들어 살다보 니, 장소나 건물이 너무 마음에 들어 건물 을 사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결국 그 건물을 구입하고 영문도 성장 해가던 중 비상전근발령을 받아 포항영문 으로 가서 사역한 후 다시 상계영문으로 가게 되었다. 먼저 있던 특무님이 본영의 허락도 없이 영문을 팔고 땅을 구입했는 데, 그 땅이 군사보호지역이라 건물을 지 을 수 없는 곳이었다. 꼼짝없이 영문을 철 수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로, 국방부장관, 문화공보부장, 서울시장, 부대장 등등 모두에게 진정서 를 3번이나 보냈다. 그 후에 부대장과 면 담을 할 수 있었고, 어렵게 건축허가를 받 아내어 건축하게 되었다. 돈암영문에서는 3층 건물을 신축하였으며 지역아동들을 위한 독서실을 운영하여 구청장으로부터 공로패를 받기도 하였다. 서대문영문에서 사역시 85주년 기념행사에 85명의 병사 입대 계획을 세웠으나 108명이나 병사입 대를 시키는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일을 행하기도 하였다. 이후 서해지방장관과 남서울 지방장관 을 역임하였다. 34년의 사관생활 가운데 철원, 와동, 충무, 사동, 충주 등 5개 영문 의 건물을 매입했으며, 상계, 돈암, 철원, 율목, 부남, 삭선, 진장, 부평 8개 영문을 신축하였다. 또한 서산복지관, 합정복지 관과 율목, 진장, 합덕, 부남의 어린이집시 설을 위탁받는 등 구세군 자산과 시설 확 장에 공헌을 하였다. 끝으로 허규현 사관님은 후배 사관들에 게 지금은 한가로이 여유를 부릴 때가 아 니다. 모두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 하기 바란다. 하나님의 종은 못할 일이 없 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상의 상황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자신감을 가지 라. 또한 계획성 있는 목회를 하라. 구멍가 게 하나를 운영해도 계획이 있는데, 철저 한 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맞추어 추진하 라. 그리고 하사관 위에 군림하려고 하지 말고, 섬기는 지도자가 되라. 모든 영문 사 관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많은 영혼을 구원 하고 각 영문들이 부흥하는 소식을 듣는 것이 나의 간절한 소원이다. 라는 말씀을 남기시며 공보담당관과의 취재를 마쳤다.
3 Women 중학교 3학년 때 경남지방 학생수련회에서 사관학교 헌신자로 일어섰다. 그 당시 영문은 내 삶의 전부였다. 영문에 있는 것이 좋았고, 집 을 떠나 경주에서 직장을 다닐 때에도 주말에는 영문에 와서 봉사하고 월요일 아침 첫 버스를 타고 출근하고, 사관님 말씀에는 무조건 순종할 정도로 내 생활은 언제나 영문 중심이었다. 그러나 대학교에 다닐 때 헌신자가 아니었으 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영문 중심 으로 살았던 나에게 세상은 좀 더 자유롭고 크 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적인 직업을 갖고 결혼을 하는 것보다는, 내 인생을 다 걸어 도 손해 보지 않고,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 은 없을지라도 이 길이 확실한 줄 알고 붙잡았 기에 부모님을 비롯한 주위의 끈질긴 만류에 도 굽히지 않고 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 다. 돌이켜보면 이는 하나님의 이끄심이요 나를 부르신 소명임을 깨닫게 된다. 그 이 후 목회 13년차, 내 나이 마흔에 목양담 당사관으로 걸어온 가정과 사역을 살펴보니 부끄러움뿐이요 순간순 간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훈련 계획 속에 진행되어 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첫 임지는 개척사관으로 전라남도 광양으로 파송 받았다. 전도하면 금방 부흥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몰려 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조급함이요 착각이었다. 어느 주일 아침 빈차로 돌아오는 길에 다른 교회 차 속에 가득 찬 교인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초라함을 잊지 못 한다. 두 번째 임지는 85년의 역사를 가진 각계영 문이었다. 농촌 출신이기에 고향에 온 기분이었 다. 영문이 마을 중심에 있어 석양이 질 때쯤이 면 예배당에 불을 환하게 밝혀놓았다. 하루 일 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캄캄한 길에 등대가 되어주고 포근한 안식처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 였다. 마을 주민들의 따뜻한 환송을 받으며, 세 번 째 임지로 옮긴 곳은 중대구 영문이었다. 나의 부족함이 드러날까 부끄러워 남 앞에 나서기를 주저하던 나에게 이곳에서의 사역은 새로운 도 전이 되었다. 영적인 약함을 스스로 느꼈기에 영문에서 다양한 문제를 상담해오고 기도해주 는 것에 자신감이 없었으나 매년 영문에서 사순 절 기간마다 해왔던 성경사경회를 통해 말씀에 대한 눈과 귀가 열리면서 내가 걸어가야 할 사 명과 목적의식이 분명해지게 되었다. 마음 괴롭고 아파서 낙심될 때 내게 소망을 주셨으며 내가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니 앞길 환 하게 보이도다 찬송가 542장이 나의 믿음의 고백이다. 이제 예수 안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 어려 움이 생기면 근심하고 불평하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던 데에서, 지금은 문제가 생기면 내가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해결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소망 중에 나는 하 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부르심의 소망을 따라 주 의 말씀 앞에 순종하고, 성실한 남편의 동역자 가 되어 어디를 가든지 누구에게든지 복음 전하 는 사역자로 세워져있는 나를 바라보며 오늘에 성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끝으로 육신의 부모에게서 신앙 교육을 받지 못한 나의 욕심 때문일까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 신 자녀가 말씀과 기도로 훈련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민족과 열방을 구원하는 통로로 쓰임 받기를 바라며 늘 기도한다. 할렐루야! 전 도 사 역 전도방법 전도지, 메가폰, 악기, 깃발, 현수막 가로전도, 노방전도, 관계전도, 고구마전 도등등수를헤아릴수없는전도용품과 전도 방법론들. 지금까지의 전도 방법들은 많은 시간 의 투자와 대상자들의 형편과 상황 그리 고 그들의 인격보다는, 예수님의 지상 명 령인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해야 하는 사명에만 초점을 맞추고 획일적으로 진행 되어 온 듯하다. 그런 이유로 결신율도 많 기는 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전도방법은 어떨까? 그들을(대상 자) 최고의 레스토랑에 초청한 것처럼 왕 과 같이 대하며 마치 작은 천국을 경험 할 수 있도록 주위 환경과 프로그램들을 전 적으로 그들을 중심적으로 맞추어 놓고 섬기면서 예수그리스도를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주체가 그들(대상자)이 되 게 하는 맞춤전도 말이다. 실 예로 전도프 로그램은 아니지만 본영 교육부가 주최하 는 성민수련회 라는 맞춤형 섬김의 영성 프로그램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맞춤 전도란 무엇인가? 대상자 중심, 단계별 문화적 접근, 생활언어 사용, 팀 사 역을 통한 전도, 멀티채널 등 다양한 수단 을 활용한 비기독인들을 위한 집회 모델 이다. 이를테면 이번 주는 기러기 아빠들 만 모여라. 다음 주에는 40대 주부들만 모 여라. 연령, 직업, 계층을 따로 떼어 놓고 그들만을 위한 환경조성(장소세팅, 음악, 드라마, 분위기, 음식, 프로그램, 선물)을 철저히 해놓고 그들이 주체가 되어 차츰 차츰 그리스도 예수를 몸과 마음으로 알 고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단계별로 대상 의 세분화, 필요 분석, 홍보 및 초청, 프로 그램 기획 및 실행, 사후 양육 등 5단계로 이뤄진다. 맞춤전도 집회의 영향력 1) 전도대상자에게 복음과 함께 실제적 인삶의지침제공 전도대상자들은 복음에만 무지했던 것 이 아니라 복음이 제시하는 놀라운 삶의 지침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와 축복에 대해서도 무지했던 사람들이다. 따라서 맞춤전도 집회는 세대별 귀납 적 복음을 제시함으로 각 세대별 전도대 상자들에게 세대별로 가장 적합한 인생의 지혜와 삶의 지침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받아들이도 록 할 수 있다. 따라서 전도대상자가 복음 과 함께 실제적인 삶의 지침을 제공받는 것이다. 이는 세대별 대상자들의 실제적 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삶의 수준을 향 상시키는데 긍정적으로 기여하게 된다. 2) 가족, 이웃 구원에 대한 적극적, 구체적 관심 전도 요청자들은 자기 가족 또는 이웃 들의 영혼구원과 새로운 삶에 대한 관심 과 노력은 있었으나 개별적으로 여러 번 이들에 대한 전도를 실패를 경험하면서 실망과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맞춤전도 집회는 영문과 함께 적극적인 팀 전도를 시작하는 계기를 가 질 수 있게 한다. 막연한 가족구원이 아니 라 60대 아버지, 50대 친구, 40대 남편, 30 대 남동생 등 구체적인 대상 그룹들이 정 해지면서 가족구원, 이웃구원에 대한 실 질적인 관심이 생기고 이를 위해 노력하 는 기회를 제공하는 장을 마련할수있다. 3) 전도대상자 중심의 사고 전도사역자들은 맞춤전도 집회 봉사를 통해 모든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대상 자로 생각하는 관점의 터닝포인트를 경험 하게 된다. 그리고 전도를 할 때 항상 전도자의 마 음이 중심이 되고 우선이 되는 것이 아니 라 전도대상자의 처지와 환경과 생활스타 일, 언어, 사고방식 등을 존중하고 배려하 는 지혜와 자세가 몸에 배게 된다. 이는 전도를 효과적으로 하는데 좋은 영향을 미친것으로 평가되고 실제로 전도 집회에 찾아온 전도대상자들도 전도사역 자와 봉사자의 정성스런 봉사와 태도에 마음이 많이 열려 프로그램과 메시지 만 큼이나 결신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전도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그러므 로 결신율은 물론 단계별로 정착-양육-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서게 해야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획일적인 전도의 방법도 있지만 대상 자가 주인공이 되는 철저한 서비스와 섬 김에 입각한 맞춤전도 를 적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4 제 15차 한국 구세군 성장대회 / 구세군 한국선교 100주년 D-730 선포식 한국 구세군 100년 선교 2세기의 도약 시동 강 사 아태부장 로이 프렌스 부장 동부인 한국사령관 전광표 부장 동부인 구세군 한국선교 100주년 준비와 선교 2세기의 도약을 위해 열리는 제 15차 한국 구세군 성장대 회 / 구세군 한국선교 100주년 D-730 선포식이 10월 3일(화) 오후 2시 백화산수련원에서 전구세 군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아태부장 로이 프렌스 부장 동부인과 한국사령관 전광표 부장 동부인의 인도 로 개최된다. 금번 대회는 1부 축하공연, 2부 감사예배로 진행되며 공로영문 표창, 장학금 전달식, 연 합병사 입대식, 제 15차 한국 구세군 성장대회 결의문 낭독, 구세군 한국선교 100주년 D-730 선포 식 등으로 진행되어 진다. 한국 구세군은 (1976~1990), 군국성장세미나(1991~1995), 군 국성장대회(1996~2006)를 개최하면서 역사의 전기마다 새로운 목표와 다짐으로 성 장과 부흥을 위한 동기를 부여하였다. 제 1차 성장전략협의회는 1976년 대전헬몬산수양관에서 열려 한국 구세군의 성장 목표를 설정하는 역사의 전기가 되었다. 당시 성장대회에서는 2000년까지의 성장목 표를 500개의 사업처로 설정하고 영문자급과 개척, 성장을 위해 총 매진할 것을 결의 하였다. 3년 뒤인 1979년에 열린 제 2차 성장전략협의회에서는 영문개척과 자급에 우 선하며 100,000 군우 증가를 위한 병력증가 운동에 총 매진할 것을 결의하였으며 1981년 열린 제 3차 성장전략협의회에서는 구세군 의식화 교육과 총력전도를 통한 83년까지의 회개인 15,000명 확보, 200영문 확보를 위한 영문 신개척 주력, 5년 이상 된 영문의 자립, 사관학생 40명씩 입교, 영문 대형화를 위한 1,000명 이상 모이는 영문 10개 이상 확보를 결의하였다. 1983년에 열린 제 4차 성장전략협의회에서는 88년까지 80개영문개척, 사관학교 신축에 전 구세군인이 참여(75주년), 자립금을 위해 5년 이상 된 미자립영문 지원, 청 소년들의 구세군 의식화 교육 및 유능한 사관후보생 육성, 북한 및 해외선교를 위한 기도 및 준비를 결의하였다. 1984년 열린 제 5차 성장전략협의회에서는 구세군 의식 화 교육, 년 회개인 15,000명 확보, 200개 영문 확보를 위한 개척, 5년 이상 된 영문 자 립, 사관학생 80명, 지방별 개척자금 확보, 구세군영문 대형화를 위해 1,000명 이상 모 이는 영문 10개 이상 확보를 결의하였다. 1987년 제 6차 협의회에서는 2008년까지 500개처의 사업처로 확장, 영문개척과 육성을 위한 자금조성 노력 및 자립영문의 개 척영문 적극지원, 영성운동과 교육강화를 통한 사관 및 병사의 자질 향상 도모, 구미, 아시아지역 및 중국과 북한선교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의하였다. 1990년 제 7차 성장전략협의회에서는 2008년까지의 500개 사업 목표를 재확인하 였다. 성령충만함을 힘입어 받은 은사대로 충성하며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구세군 병 사교육을 실시하는 동시에 1개 영문 1개 복지사업 실시, 동구권 및 중국, 러시아, 북한 선교를 위해 준비하기로 결의하였다. 1991년과 1992년의 제 8차, 제 9차 군국성장세미나에서는 구세군 성장을 위해 와 그너 교회 성장 세미나를 개최하여 전도를 통한 성장 동기를 부여하였으며 1994년에 열린 제 10차 군국성장세미나에서는 강력한 선교 역량 배양을 위해 회개인 정착 및 병사 육성을 위한 강의와 집중적인 토의 및 연구 등을 통해 일선 사관들에게 성장의욕 을 고취시켰다. 1996년 제 11차 군국성장대회에서는 1만명의 구세군인들이 21세기를 향해 영적재충전, 복음전파의 활력, 성장의식 고취, 영문개척, 군국자립의식, 해외선교 적 사명을 새롭게 하는 성장촉진 대회를 가졌다. 1997년 열린 제 12차 군국성장대회에서는 사관, 하사관, 군우 등 1,300여명과 14개 해외군국에서 다수의 해외 구세군인 들이 참여하였다. 참석자들은 2008년까지 5백개 사업처, 사관 및 특무 700명 이상, 협력 사역자 300명 이상 확보하여 21세기를 대비하 기로 목표를 세우고 총 13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1999년 백화산수련원에서 열 린 제 13차 군국성장대회는 각 지방 및 사회부, 기관대표 등 60명을 비롯한 구세군 병 사 1,200명이 참석하여 2000년 성년군국을 바라보며 선교 100주년까지 700개의 사업 처 확장,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나기 위한 새 인간운동 추진, 문화사역, 병설사업 활성 화, 한민족 선교, 주는 군국으로의 전환과 성년군국의 사역을 위한 7가지 역점사업 등 을 결의한 후 2000년 자급을 선언하였다. 지난 2003년 열린 14차 대회에서는 구세군 한국선교 100주년과 2008년을 앞두고 내실화와 알찬 성장을 이룩하고 영혼구원과 섬기는 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1200명의 사관과 군우들이 참석하여 선교강화, 재정자립, 사회복지, 교육강화 등에 대 하여 결의하였다. 이번에 열리는 제 15차 한국 구세군 성장대회 및 구세군 한국선교 100주년 D-730 선포식은 100주년을 준비하는 성장대회로서 한국 구세군 의 선교 사 명을 고취하는 결의문이 채택될 예정이다. 구 분 일 자 장 소 제1차 제2차 제3차 제4차 제5차 제6차 제7차 제8차 군국성장세미나 제9차 군국성장세미나 제10차 군국성장세미나 제1 1차 군국성장대회 제12차 군국성장대회 제13차 군국성장대회 제14차 군국성장대회 < 한국 구세군 성장대회 현황 > 1976.11.16~11.19 대전헬몬산수양관 1979.2.12~2.15 대전헬몬산수양관 1981.1.27~1.30 대전헬몬산수양관 1983.1.24~1.27 과천수양관 1984.4.6 서대문영문 1987.2.5~2.7 사관학교 1990.1.22~1.24 대전중앙영문 1991.11.18~11.20 부여 유스호스텔 1992.10.26~10.28 무주 리조트 1994.6.27~6.29 보은 서당골 수련원 1996.4.17~4.25 장충 체육관 1997.8.25~8.28 용평 리조트 1999.10.8 백화산수련원 2003.8.7 백화산수련원 < 구세군 한국선교 100주년가 >
5 영적무장성회 교회성장부 주관으로 7.31(월)~8.3(목) 까지 백화산수련원에서 이재습 사관(참 령.영천영문 담임사관)을 주강사로 연인 원 6,622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적무장성 회를 개최하였다. 사령관 전광표 부장은 개회예배에서 대회인사의 말씀을 하였으며 미 남군국 장철종 사관(정위.알링톤영문 담임사관) 의 찬양과 대천영문 주양분 전도사의 전 도 간증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시간 시간마다 전라지방 찬양팀의 뜨 거운 찬양 속에 진행된 성회는 9번의 집 회를 통해 모든 참석자들이 은혜 충만한 시간이 되었고 교육관에서 개최된 유년 집회에서도 이촌영문 어린이 찬양팀이 참석하여 은혜로운 때가 되었다. 헌신예 배는 서기장관 박만희 부정령의 축도로 마쳤다. 청년부 주관으로 8월 7일(월)부터 10일 (목)까지 청소년 650여명과 사관 및 봉사 자 50여명 총 7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백화산수련원에서 청소년을 위한 파워캠 프가 개최되었다. 개회예배는 사령관 전광표 부장이 인 도하였으며 53명의 사관 헌신자가 등록 되었다. 홍콩 준군국에서 유미혜 참령, 청 년부서기관 외 6명의 학생이 캠프에 참석 하였다. 교육부 주관으로 8월 21일(월)부터 23 일(수)까지 백화산수련원에서 31명의 정 교통신교육 이수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 5기 정교연수회가 개최되었다. 2박 3일간 의 일정으로 진행된 정교연수회는 시종일 관 은혜 속에 진행되었으며 사령관 전광 표 부장이 헌신예배를 인도하며 교육이수 자들에게 수료증을 전달하였다. 선교신학대학원 가을학기가 8월 14일 (월)부터 17일(목)까지 사관학교에서 개최 되었다. 총 35명의 사관이 등록한 가운데 진행된 가을학기는 사관학교장 신문호 참 령의 개회예배 인도후 나사렛 대학교 임 호찬 교수, 감신대 이성민 교수, 한일장신 대 차정식 교수 등이 강의하였으며 헌신 예배는 서기장관 박만희 부정령이 인도하 였다. 사령관 전광표 부장(동)이 8월 4일(금) 오전 11시 태안군수와 국회의원, 군의회 의장과 노인지회장, 지방사관과 군우 500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태안 노인복지관 개관식을 인도하였다. 태안 노인복지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연건평 410평의 건물을 태안군으로부터 위탁받아 노인복지사업을 시작하게 되었 으며 행사 후 태안영문 군우들이 봉사하 는 가운데 경로잔치가 열렸다. 사회복지부에서는 1차 / 8월 3일(목) 10 명, 2차 / 8월 14일(월) 6명의 중국 조선족 어린이 총 16명을 초청하여 국립의료원 흉부외과 김병열 과장의 집도아래 심장병 무료수술 지원사업을 전개하였다. 16명의 어린이 중 14명은 구세군에서 수술비를 전액 지원하였다. 심장병 수술 비 무료 지원 사업은 전년도까지 총 80명 이 수혜를 받았다. 충서지방은 8월 8일(화) 지방 사관과 군 우, 모산영문 푸드뱅크, 나눔의집 직원 총 28명이 수해지역인 강원도 평창군을 방 문하여 평창군 환경복지과장 공무원의 안 내를 받아 수재민 돕기 봉사활동을 전개 하였다. 수해봉사에 참여한 군인들에게 간식 약 2,100명분과 컨테이너에서 상주하는 수재민 약 170명에게 삼계탕 및 10,816,280원 상당의 물품을 전달하였다. 안성영문과 안성 노인복지회관에서는 지난 7월 27일(월)부터 29일(수)까지 안성 시 금광면에 집중호우로 인한 제방붕괴로 인해 298가구 758명의 이재민이 발생하 자 복구단 및 주민 500명에게 급식을 제 공하였고 안성여중에 임시 거처하고 있는 수재민 150여명에게 식사와 간식을 매일 제공하였다. 천안여성현장상담센터에서는 피서철 무디어지거나 약화되기 쉬운 성의식에 대 한 심각성을 알리고 건전한 성의식을 일 깨우고 건전한 성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사회적 관심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8월 2 일(수)부터 4일(금)까지 대천해수욕장에 서 피서객들을 대상으로 성매매 예방 및 에이즈 예방 캠페인을 실시하였다. 석림사회복지관은 7월 20일(목) 서산시 청 앞 현관에서 조규선 서산시장, 서해지 방관 권성달 참령, 석림복지관장 정성채 참령, 서혁선 LG화학 대산공장장 및 임직 원 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동목욕 차량 기증 전달식을 갖고 이동목욕차량을 배정받았다. 이어 사회복지 공동모금회로부터 12인 승 스타렉스 차량을 후원받아 선교와 지 역사회 봉사에 기동성을 더하게 되었다.
6 언니, 누가 나에게 내 인생에서 일어났던 가장 큰 사건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예수님을 만난 일 이었 다고 아무 주저 없이 고백할 수 있어. 아버지가 약에 취해서 대학교 강의실로 찾아오고 하는 것이 싫어 멀 리멀리 도망 온 미국이야. 학교에 소문이 나서 남학생 들도 약쟁이 딸 이라고 하면 다 아니까 제대로 된 사 람한테는 시집도 못 갈 것 같아서. 이 넓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정말 막막하고 외롭고 무서웠어. 말도 안통하고, 가지고 온 돈도(3,000달러) 다 떨어지고. 그러다 시작한 게 중국집 종업원이었고 나중에는 파출부를 비롯해서 별것 다 했어. 먹고 살려 고, 길에서 안 자려고 일만 했어. 술집, 화류계 빼고는 다해본것같아. 대학까지 나왔지만 말이 안 통하니까 몸으로 때우 는 일 밖에는 없었어. 방세와 밥값을 매일 걱정하면서. 이를 악물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어. 새벽부터 그 다음 날 새벽까지 발바닥이 아파 서있지 못할 정도로 몸으 로 때우는 일만 했어. 삼년 정도 지난 후, 문득 내 자신 을 돌아보니 조그만 집도 두어 채 사고, 새 차도 사고, 은행에 돈도 십이만 달러 정도 있었어. 그런데 자예 는 없는 거야. 거기엔 즐거움도, 웃음 도, 사랑도, 자존심도 없는, 정신적으로 너무나 마르고 황폐해버린 밑바닥 인생에서 돈만 조금 움켜진 한 여 자가 서 있더라. 마치 정신없이 산꼭대기까지 헉헉대고 올라왔는데, 그 위에는 절벽 외에 아무것도 없는 그런 곳에 서 있는 나를 본거야. 내 인생에서 참 힘든 마른 사막 같은 시 절이었어. 나는 내 자신이 싫었어. 언니, 그날은 1984년 8월 3일이었어. 밤 9시경이었 지. 새 차를 산지 일주일도 안 되어 차사고가 났던 그 날, 집 근방에 있는 교회에 들어갔어. 캄캄한데 앉아서 난생 처음 기도 라는 걸 해 봤어. 하나님이 진짜 살아 있나요? 그렇다면 나로 하여금 알게 해줘요. 지금 내 영혼은 말라 비틀어져 있으니까 눈앞에 있는 십자가를 보면서 그냥 독백하듯 중얼 거렸어. 언니, 이 말은 정말 믿어줘. 저 먼 하늘에서 눈이 멀 정도로 너무너무 환한 빛이 왼쪽에서 부터 내게 비쳐 왔어. 정신이 아득해진 나는 선 자리에서 쓰러졌어. 눈 을 뜨니까 사람들(그 교회 목사님과 재직원들)이 내 주 위에서 웅성대고 있고 내가 두어 시간 동안 기절해 있 었대.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서 구급차를 부르려고 했다는 거야. 너무 너무 신기한건 내가 그 깨어난 이후부터 예수 님 이 살아 있는 게 믿어지는 거야. 내 마음이 평화스 럽고 사랑이 저절로 흐르는 물처럼 나오기 시작 했어. 설령 온 세상 사람들이 나보고 미쳤다고 해도 난 그날 밤그환한빛과내몸이까무러친경험을잊어버릴수 가없어. 그건내한평생에서너무나큰사건이었거든. 그날 밤 이후로 나는 집도, 차도, 돈도 다 처분해 버 렸어. 예수님이 정말 살아 있다는 걸 안 이후로는 그런 물질들이 내게 아무런 기쁨을 주지 않는다는 걸 알았 거든. 그로인해 나는 신학교를 나와 목사가 되었고, 다 시 구세군에 들어가 사관이 되어 남을 위해 살게 된 거 야. 나는 다시 태어 난다해도 이 일이 좋아. 예수님 안 에서는 가난해도 기쁘고, 남을 돕는 것도 기쁘고, 항상 그냥 진심으로 눈물이 글썽이도록 기뻐. 내 삶에서 그날 밤 내 기도를 들어 주고, 나를 만나 준 예수님 때문에 나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어. 나는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 이해가 돼. 나도 그분 이 날 만나주기 전에는 안 믿어졌던 걸 어떡해. 내가 아 는 건 예수님이 살아 있고, 영원히 나를 사랑하시고, 내 가 필요할 때 항상 달려와 주신다는 거야. 나는 그 사랑 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줘야 한다고 믿고 있어. 난, 많이 가진 건 없지만 내가 아는 예수님을 언니에 게도 소개해주고 싶어. 교회 가거나 헌금 내는 게 중요 한 게 아니야. 가장 중요한건 내 속에 있는 소중한 걸 다른 사람에게 진심과 사랑으로 나누어 주는 거라고. 예수님이 내게 그러셨어. 그래서 언니에게 내 일생 의 가장 소중한, 내가본예수님 의사랑을나누 어주고싶었던 거야. 언니, 사랑해. 영원한 언니 동 생 자예가 구세군의 자선냄비 모금이 한창이던 2002 년 12월 16일 충청지방 용촌영문에 16대 담임사 관으로 부임하게 되었습 니다. 용촌영문이 있는 정 방리는 26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95%가 65세 이상의 어르신들로 농사를 지으 며 살아가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입니다. 처음 이삿짐 을싣고교회로오는길은한번도접해보지못한굽 이굽이 강원도를 연상시키는 시골길 이었습니다. 행정구역으로는 대전광역시이지만 대전에 사는 분 들도 용촌동을 이야기하면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 도착하니 영문과 주변 환경에손볼것이많았습 니다. 도심에 살고 있는 가족들이 용촌영문의 환경을 보고는 고생 많이 하겠다며 눈물을 흘리고 돌아갔습 니다. 그러나 저는 가족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너무나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짐 정리를 대충 끝내놓고 마을을 한 바퀴 도는 중에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습니다. 우리마을 전체를 성 령의 두루마기로 폭 싸안으시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저의 목회철학은 삶으로 보여주는 따뜻한 목회를 하는 것이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 입니다. 부임당시 용촌영문은 주일성결회 예배에 6명 이 모이는 작고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사람은 없고 할 일은 많은 교회였습니다. 저는 군우들에게 돈이 없다 고 가만히 있지 말고 영문주변과 마을을 청소라도 해 서 주변을 아름답게 하자는 제의를 하였습니다. 그리 고 곧 바로 21일 특별 저녁기도회를 가지면서 3가지 기도제목을 정하였습니다. 1. 재래식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수리, 2. 찬양 연주 기 구입, 3. 선교용 자동차 구입 기도회가 시작되고 며칠이 지나 찬양 연주기를 보 내주셨고 화장실을 수리할 수 있는 헌금이 모아져 하 나님의 은혜가운데 화장실 수리를 마쳤으며 또한 선 교용 자동차 까지 응답해 주셨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 은 화장실 수리 작업을 하던 기사 이천훈 씨가 우리 교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던 중 술을 끊었다는 놀 라운 고백을 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영혼구원 을 위해 눈물의 기도를 올려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는 그를 교회로 인도하셨고 3년 반이 지난 지금은 용 촌영문의 든든한 자산부교님으로 세우셨습니다. 용촌영문에서는 3년 반 동안 4번의 들꽃 전시회를 가졌습니다. 구세군을 알리고 용촌교회를 알리기 위 해 방송을 통하여 시골인 용촌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 았습니다. 첫해 들꽃전시회를 기획한 것은 마을어르 신들께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긍심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두 번째는 그냥 보고 끝나는 것 은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장애가정을 돕기 위한 전 시회를 열었습니다. 그 수익금으로 장애로 인해 몸 한 쪽이 마비된 장애우 가정의 재래식 부엌을 입식으로 고쳐드렸습니다. 세 번째 전시회는 낙엽카드 전시회를 겸하면서 주 일학교 어린이들을 참여시키고 그 수익금으로 소년소 녀 가장 3명에게 사랑의 후원금을 전했습니다. 네 번 째 전시회에는 시각 장애인 3명에게 도움을 드렸습니 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하신지 감사할 뿐입니다. 부족해서 부끄러운 저를 세워 하나 님의 귀한 도구가 되게 하셨고, 시골에 부임하여 달란 트를 개발하게 하심을 날마다 감사하고 있습니다. 3 년 반 동안 마을어르신들을 초청하여 경로잔치를 3번 치르고, 장애 가정 돕기 들꽃전시회를 4번하여 얻은 총 수익금 500만원을 봉사기금으로 전달했습니다. 그동안 군우들도 늘어나서 이제는 22명 정도가 성 결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올해 용촌영문 표어가 제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인데 부제는 주 님! 제가 하겠습니다 입니다. 주일예배를 드리고 광 고시간에 저희 군우들과 함께 고백합니다. 하나님사 랑, 교회사랑, 이웃사랑 실천을 주님! 제가하겠습니 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마을을 아름답게 만들어서 지친 영혼들이 찾아와 쉬게 하고 다시금 새 힘을 얻어 돌아갈 수 있도록 용촌교회가 그 일에 쓰임 받고 싶습니다. 시골에 있으면서도 늘 평안하고 자연 과 더불어 영혼사랑에 비전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마지막에 고백하는 말도 여전히 한가지 입니 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7 진보영문 79년동안 줄기찬 역사 지역섬김과 영혼구원에 최선 지난 79년 동안 진보영문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린다. 1927년 3월5일 구세군 이촌영문 부위 조동윤 사 관이 진보영문을 지영으로 개척하였다. 구 면사무소였던 빈집을 무상으로 대여받 아 1년 동안 예배드린 것이 진보영문의 시작이었다. 1932년 6월 10일 이촌영문 지영에서 독립하여 구세군 진보영문이 되 었다. 진보영문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1932년 참위 박천수사 관은 일제탄압으로 사직하였고, 1936년 정위 정명학사관은 불의의 사고로 소천하 였으며, 1936년 7월에 부임한 참위 송성 호 사관은 일제탄압으로 청송경찰서에 가 서심한고문을당한후3일동안구류를 살다가 석방 후 사직하였다. 참위 이형우 사관도 심문받다가 사직하여 일본으로 갔 다. 부관 천병철 사관은 많은 탄압 속에서 도 10년간 영문대지 100평을 구입하여 영 문부흥의 기초가 되었다. 1951년 4월 10일에 대지 100평의 대지 위에 28평의 영문을 신축하였다(구영문). 1954년 5월 10일 기존대지에 200평을 증 평하고 11평의 사택을 건축하였다. 1963 년 1월 1일 임명받은 진보영문 초대 정교 박춘식 선교정교님은 진보면장 재직 시 지역사회와 영문을 위하여 많은 헌신과 봉사를 하였다. 미자급으로 어려움을 겪 던 영문은 1971년 3월 30일자급을 선포하 였다. 1974년 1월 12일 학생회 월간지 초 막 을 처음으로 출간하였고 1974년 3월 1 일에는 처음으로 세계기도일 예배를 권태 화 재무님 가정에서 전군우가 드렸다. 1975년 4월 15일 영문건물과 사택이 도시 계획선에 저촉되어 진안리 30의 2( ) 200 평을 55만원에 분할 구입하였다. 1977년 11월 30일 추현동 168번지에 진보 분영을 신설하기 위해 영문에 15만 원 보조로 삼칸스레트 집을 매입하여 예 배처로 사용하기로 하고 김주홍 병사를 임시 임명하였다. 1976년 9월 정위 박종 하 사관 동부인이 부임하면서 모든 성도 가 하나가 되어 4,000만원의 헌금으로 연 건평 140평인 현재의 영문건물을 신축하 여 1980년 12월 12일 헌당예배를 드렸고, 1981년 6월 17일 사택 신축공사가 시작되 었다. 부위 문원식 사관님과 모든 군우님 들의 헌신으로 1,300만원을 들여 27평의 현재 사택을 아름답게 신축할 수 있었다. 1984년 1월 30일 청송교도소 제 1감호소 무연고자 10명과 자매결연을 맺고 친교 의 시간과 영치금을 전달하기도 하였다. 1991년 2월 9일에는 3명의 정교임명(임남 호, 김주홍, 박원길)이 있었다. 1995년 2월 5일 경선옥 교육정교, 박승 환 청년정교의 임명이 있었다. 1996년에 는 5,700만원의 예산으로 300평의 대지를 매입하였다. 이곳은 지역사회와 영문을 위한 봉사시설로 이용할 예정이다. 2000 년 3월 20일 영문의 노후된 전기시설, 천 정수리를 2,700만원으로 수리하였고 9월 에는 개인특별헌금으로 낡은 스레트 지붕 을 판넬로 교체하였다. 진보영문은 영문 개영 후 79년의 오랜 역사 가운데 현재까지 34명의 사관이 영 문과 지역구원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봉사 하였다. 지금은 수자원 개발공사에서 상수도 보호란 명목으로 건물을 매입하여 많은 주택과 상가가 헐리고 젊은 일꾼들은 도 시로 이동하며 지역인구가 감소하는 가운 데 있으나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의 수에 있지 않음을 기억하여 지역주민의 영혼구 원을 위하여 모든 군우가 최선을 다해 복 음을 증거하는 가운데 있다. 김삼석 고등정위는 선교사들에 의해 개화의 문이 활짝 열리기 시작한 1901 년 1월 29일 경북 의성군 금성면 학미리 605번지에서 부친 김태두와 모친 이춘 여의 두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 는 어릴 때 부친이 승천하여 모친의 손 에 양육되었으며, 모친은 이미 호주장로 교선교회 선교사들의 전도를 받아 예수 를 믿게 된 한국교회의 초기성도였다. 더욱이 그녀는 학미리에서 30리 떨어진 의성제일장로교회에 출석하다가 학미 리 마을에 친히 장로교회를 개척하여 봉 사한 신앙의 용장이기도 하다. 김사관은 어릴 때부터 모친을 따라 교회에 출석하여 신앙하는 가정에서 자 랐고, 어린 시절부터 독서에 뛰어난 취 미를 갖고 문학에 꿈이 큰 소년으로 자 라면서 교회 목사님들의 서가에서 많은 책을 읽었으므로 동리에서는 해박한 소 년으로 통했다. 그는 1918년 18세 때 김윤현과 결혼 하였고, 부인은 1900년 8월 20일에 이웃 마을인 사곡면 화전리에서 김병익씨 차 녀로 태어나 19세에 결혼한 다음해 1919년 그곳 장로교회에서 회개하였다. 이 무렵 장로교에 다니던 형님 김우석이 구세군 사부동영문(현 노매실영문, 1909.3.9 개전)으로 교적을 옮김으로 모 친 이춘녀씨도 믿음을 통일해야 한다. 면서 아우 삼석과 함께 전 가족이 교적 을 구세군으로 옮겼다. 1927년 김삼석, 김윤현 동부인은 구세군사관학교 거화 수 학기에 입학하여 1928년 6월 25일 구세군사관(참위)으로 임관되었다. 그는 사관임관 후 경주영 담임사관 (1928.6.25)을 시작으로 인천영 (1929.9.19), 부토리영(1931.6.24), 원동 영(1936.7.23) 등지에서 영문사관으로 봉직하였다. 그러다가 당시 어려운 경제 적 여건을 견디기 힘들어 잠시 휴직 했 으나 곧 돌아와 1937년 6월 23일 함경 북도 함흥영문을 개척하였다. 그 후 1940년 한국구세군이 일본인 지휘권아 래 구세단 이 되면서 일제강점기의 집요한 신사참배 강요 때문에 1941년 다시 구세군을 떠나야했다. 그런 맥락에서 부친의 뒤를 이은 김 성활 정령(전 사령관)이 구세공보 100 주년을 위한 제언 (2006. 7. 1. p.7)에서 일본신사참배문제 를 들어 지금이라 도 교단적인 회개의 기회가 있어야 할 것이다. 라고 한 말은 한국선교100주년 을 맞는 우리에게 새로운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제언이라고 생각된다. 김삼석 사관은 1946년 6월 17일 다시 경북영덕영문에 부임하여 사관봉직을 출발하였다. 그 후 그는 1948년 7월 7일 영덕영문을 이임하여 서대문영문(현 서 울제일영문)담임사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서울에서 1950년 6.25전쟁을 맞게 되었다. 사변 통에도 피난하지 않고 천 연동사택에 은거하며 영문을 열고 예배 를 인도했다. 그러나 괴뢰군이 영문을 내무서로 징발하여 사용함으로 인해 가 족들은 쫓겨나 임시로 현재 구세군빌딩 이 들어선 자리에 있던 작은 한옥에 거 했다. 장형일 부령에 의하면 한 주일밖 에 서대문 공중예배는 더 계속 못하고 영문사관은 거의 남하하고 본영은 공산 군의 후송치료소, 사관학교는 공산경찰 (내무서)본부가 되고 정동, 천연동의 사 관주택에서도 모두 퇴거당했다 고 했 다.(한국구세군사 p.181) 1950년 8월 23일 오전 8:30분경 종로 2가에 있는 기독교협의회 에서 왔다는 한 청년이 김 사관을 불러냈다. 그날 괴 뢰군은 서울에 잔류하고 있던 수십 명의 교회지도자들을 검거했다. 김 사관도 바 로 공산당 내무서의 기독교지도자 일제 검거령에 의해 체포되어 젊은 청년에게 끌려간 후 소식이 끊겼다. 6.25전쟁으로 그는 납북되어 생사를 모르나 순교자로 간주한다. 부인 김윤현 고등정위는 6.25사변이 일어나면서 영덕에서 경찰 관이었던 큰아들 네 가족이 공산당의 총 탄에 몰살당한 뼈아픈 비보를 듣는 고통 도 당하였다. 그러나 그는 여사관의 직위로 남편 김삼석 사관이 납치된 후에 부군이 지키 던 서대문영문을 사수하였고(1951) 1953년 6월 청학관 관장직을 겸직하다 1998년 6월 26일 오전 10시 승천하였 다. 김남석 사관 동부인은 기도의 사람, 성경의 사람, 그리고 신실한 구령의 사 람들이었다. 또한 자녀들을 거룩한 종으로 키운 훌륭한 교육의 부모였다. 슬하에 장남 김성진, 차남 김성활 정령(증경사령관), 장녀 김정란(정운희 목사부인), 삼남 김 성호(장로교 목사), 차녀 김영자(목사부 인)를 두었다. 그의 가족은 부친 김삼석 고등정위, 아들 김성활 정령, 손자 김종 우 정위(뉴욕한인영문)로 3대째 구세군 사관 가문을 이어가고 있다.
8 제133회 1 2 3 보내실곳:110-061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1가 58-1 구세군회관 10층 본영 편집부 앞 상품 : 믿음상(1명) 도서상품권(5,000원권) 6매 소망상(2명) 도서상품권( ) 3매 사랑상(5명) 도서상품권( ) 2매 마감:9월 30일 해답 및 당첨자 발표:구세공보 2006년 11월호 당첨자 4 5 6 7 8 9 10 11 12 13 14 131회해답및당첨자 김찬철 강원도 철원군 양관모 전북 임실군 박효진 충북 옥천군 구세군 긴급구호사역 소개 구세군 전광표 사령관은 수해봉사 와 관련하여 북한지역의 홍수피해 동 포들을 위해 의류 약 3000점과 신발 800점을 한국 기독교 교회협의회를 통해 북한에 전달할 예정이다. 또한 용산 미 8군에서는 9월 17일 (주) 미 8군 운동장에서 미군 장교들 가로 1. 랍비돗의 아내로 이스라엘의 네 번째 사사가 된 여 선지자로 이름이 벌 이라는 의미가 있음(삿 4:4) 3.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유대 백성들이 종교적으로 타락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에게 여호와의 율법 을 가르치기 위해서 아닥사스다 왕에게 예루살렘 귀환을 요청하여, 유대인을 인솔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제사장(스 7:1~28) 4. 포로에서 귀환한 사람 중 시하와 함께 느디님 사 람의 두목이 된 사람(느 11:21) 5. 잇사갈 지파의 성읍 중 한 곳(수 19:20)-에 0 0 7.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던 사람들을 핍박하던 바울이 이 곳에서 변화되어 복음의 증거자가 되었음(행 9:3) 9. 스데반의 순교로 인해서 흩어진 사람들이 복음을 증거 했던 지역 중 한 곳(행 11:19)-베00 11. 구약성경 에스겔의 저자로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 를 경고하고, 이스라엘의 위로와 구원을 선포한 선지자(겔 1:1~3) 12. 다윗이 왕위에 올라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선대하려고 찾을 때, 므비보셋이 있던 지방(삼하 9:4~5) 13. 빌라도의 후임으로 부임한 유대 총독으로 드루실 라의 남편(행 24:24~27) 14. 유다를 침공했던 앗수르의 왕으로 아들 아드람멜 렉과 사레셀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왕(사 37:37~38) 세로 2. 이스라엘과 싸운 아모리의 다섯 왕의 나라 중 한 곳(수 10:5)-라00 3. 열리라는 뜻으로 예수님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안 수하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신 말씀(막 7:34) 6. 예수님이 살려 준 나사로가 살던 장소로 이곳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벌어짐(요 12:1~2) 8. 여호와를 돕지 않으므로 저주 받은 성읍(삿 5:23) 10. 포로에서 귀환한 느디딤 자손 중의 하나(스 2:44)-게00 11. 모세가 이 산에 돌을 세우고 모든 율법을 기록하 고, 번제단을 쌓을 것을 말함(신 27:4~7) 방예원 경북 포항시 박덕화 충남 홍성군 김윤호 서울 노원구 박용호 대전광역시 서구 김분례 충남 보령시 과 그 가족들 약 1,200여명이 참여 한 가운데 Super sunday 특별집 회를 열고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수해 가 심한 강원도 인제 평창 지역에서 헌신적으로 구호활동을 펼친 구세군 의 긴급구호사역을 소개하고 특별모 금을 실시하여 전달하게 된다. 국제소식 지난 8월 7일(월) 앨리스터 켄스 부 장 (Commissioner Alistair Cairns)의 부인인 매저리 켄스 부장(Commissioner Magery Cairns)이 승천하였다. 매저리 켄스 부장(Commissioner Magery Cairns)은 1973년부터 3년간 한국에서 서기장관 부인, 여성사업서 기관으로 사역하였으며 1976년 호주 동군국 서기장관, 여성사업서기관, 1979년 남아프리카군국 사령관(부장 승진)으로 사역하다 1983년 은퇴한 바 있다. 장례식은 그녀의 사위인 데이비드 리스 참령이 인도하였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최악의 물난리로 막대한 인명 및 재산피해를 입고 어려움을 겪고 있 는 강원도 인제군 북면 수해지역을 방문하시어 많은 도움과 사랑을 손 길을 보내주신 구세군대한본영 자원봉사자 여러분께 늦게나마 진심으 로 감사드립니다. 백년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호우는 아름다고 수려함을 자랑하 던 내설악의 산간 계곡을 순식간에 황폐한 허허벌판으로 만들었고, 마 을이 있던 곳은 모래, 돌, 바위에 파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차마 눈뜨 고는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사망 실종 30명, 부상70명, 이재민 1,200명, 주택 469가구, 농경지, 상수도, 교통, 통신, 전기 등 4,7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산 및 인명피 해가 발생하여 복구하는데 많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 다. 수마가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도,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에도 점차 재기의 모습이 보입니다. 가족을 잃고 집을 잃고 참담한 심정에 빠진 수재민에게 결코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해준 고마운 분들의 도움으로 가장 피해가 극심했던 한 계3리 지역에도 10여일 만에 도로와 전기, 통신의 응급복구가 완료되었 고, 유실이나 침수된 주택, 농경지 등은 궂은일을 마다않고 한걸음에 달 려 온 전국방방곡곡의 자원봉사자와 군인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도움으 로 이제는 컨테이너 박스에서 어렵게나마 일상을 되찾고 있습니다. 또한, 몸만 빠져나와 당장 의식주 해결이 막막한 수재민들에게 쌀, 물, 라면, 옷, 신발, 의약품, 생필품, 가전제품 등 많은 위문품을 보내주 신 것은 고맙고 고맙습니다. 어려울 때 받은 도움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며, 수혜를 받은 많은 분들은 앞으로 봉사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리오며, 귀 기관의 무궁한 발전과 번영 을 기원합니다. 강원도 수해지역에서 온 강원도지사 편지 전광표 사령관님께 먼저, 지난 수해 시 강원도민들이 희망을 가지고 재기할 수 있 도록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도움을 주신데 대하여 깊은 감사 를 드립니다. 여러분께서도 현장에서 또는 언론 등을 통해 생생 히 보셨겠습니다만 수해가 남긴 흔적이 너무나 커 우리 도민들의 힘만으로 감당하기에 는 벅찬 것이었습니다. 이런 때에 여러분께서 보여주신 사랑과 봉사, 나눔의 실천은 우 리 도민들에게는 어둠 속의 한줄기 빛이었고 무엇보다 큰 힘이자 희망이었습니다. 도민 모두는 성금과 물품을 보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주시고 여름휴가도 반납한 채 수해현장에서 희망을 일궈 주신 민 관 군 여러분과 기업체, 자원봉사자, 출향도민 등 많은 분들의 은혜를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시련이 당장은 힘들고 어 렵지만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사랑의 열매와 땀방울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항구복구에 도 정성을 다 할 것입니다. 이번 시련이 반드시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끝까지 지켜봐 주시고 앞으로도 강원도 더 많이 사랑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다시한번보내주신성원에감사드리며 더운 날씨 에 건강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2006년 8월 강원도지사 김진선 드림 구세군대한본영 자원봉사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장 안호열입니다. 먼저 바쁘신 가운데에서도 불구하고 저희 기린면을 방문하여 참다 운 자원봉사를 해 주신 봉사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 다. 시간당 69mm, 3시간동안 194mm라는 사상 유래 없는 폭우로 인해 수해를 겪고 있던 우리 면은 여러분들이 보여 주신 참 봉사를 통해 칠 흑 같은 암흑 속에서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점 우리 기린면민을 대신해서 다시한번깊은감사를드립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응급복구를 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저희 면 을 방문하실 때에는 좋은 추억과 훈훈한 인심을 가득 가져가시길 바랍 니다. 끝으로 여러분의 건강과 가정의 평안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