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계율 이해 연구 신 성 현*1) Ⅰ. 서언 Ⅱ. 계율의 의미와 전이 Ⅲ. 동아시아 계율의 전개사 1. 중국계율의 수용 차 례 2. 한국계율의 전개 3. 일본계율의 발전 Ⅳ. 결어: 동아시아 계율의 현대적 의의 국문요약 인도에서 불교승가가 시작되면서 성립된 계율은 중국을 거쳐 한국과 일본에 불 교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변화를 거치게 된다. 인도에서 처음 계율이 만들 어지던 당시와는 다른 시대적 배경, 인도와는 다른 동아시아의 정치 사회 문화 차이로 인해 본래 인도의 계율과는 다른 새로운 계율을 만들어 내고 창출하였다. 본래 인도불교에서 계와 율은 다른 개념으로 사용되었던 단어이었다. 초기불교에서는 계와 율을 분명하게 나누어 설명한다. 계는 주관적인 개인의 결 의로 범계( 犯 戒 )에 대한 벌칙이 없으며, 세간의 윤리도덕에 해당하고 자발적인 면이 *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118 선문화연구 제19집 강조되고 있다. 율은 상가라는 공동체의 규칙으로 범계에 대한 경중( 輕 重 )의 벌칙을 받으며, 세간의 법률에 해당하고 타율적인 규범이다. 중국에서는 계와 율을 나누지 않고 계율을 혼용하여 사용하였다. 계율은 경전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용어이다. 계율이 의미하는 말은 시라의 의미 보다는 상가의 규칙, 즉 바라제목차를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 말은 한국과 일본불교에도 지대한 영향을 그대로 수용하게 되었다. 범망경 이 번역되어 유통 된 후에는 성문계보다는 범망계가 중국불교에서 우위를 차지하였고, 이에 대한 연 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특히 천태지의와 현수법장등에 의해 계율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해석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한국에서도 불교수용과 더불어 계율에 대한 이해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특히 신라에서는 계율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였다. 원광 과 자장에 의해 기틀이 만들어졌다. 통일신라 이전에는 성문계인 사분율 을 중심 으로, 삼국이 통일된 후에는 대승의 범망보살계가 중점적으로 연구되었다. 그 중심 에 원효가 있다. 원효의 계율관은 범망계가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범망계는 출가 자와 재가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계율로서 지범( 持 犯 )의 판단기준은 표면적인 행위 보다는 중생제도라는 내면적 동기에 두어 더욱 중요시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계율은 지눌과 지공에 의해 전승되었다. 지눌의 권수정혜결사문 계초심학인문 은 청규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지공은 무생계( 無 生 戒 )로서 사부대중에게 수계를 하였는데, 그 영향력은 매우 커서 술과 고기를 즐기던 사람들은 이를 끊었고, 무당을 따르던 사람들은 이를 멀리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배불정책가운데서도 기화 휴정, 긍선, 등이 계율정신을 강조하였 으며 근세 학명 동산에 의해서 전승되었다. 일본불교의 계율의 기원은 백제로부터 시작되었다. 계율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던 백제불교는 일본불교의 계율 수용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다. 도광은 도선의 사분율산번보궐행사초 를 가지고 귀국하여 그 해에 의사분율
동아시아 계율 이해 연구 / 신성현 119 초찬록문 依 四 分 律 抄 撰 錄 文 1권을 발표함으로써 중국에서 일본에 최초로 율종을 전래한 사람이 되었다. 이때까지도 구족계의식이 여법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광은 사분율 에 의거해 일본의 비구 비구니들을 규율하였다고 한다. 이로서 일본의 불 교계는 겨우 본격적인 계율을 지향하는 기반을 조성하였다. 천평승보( 天 平 勝 寶 ) 7년(755)에 이르러 당승( 唐 僧 ) 감진( 鑑 眞 )이 동대사에 계단 을 설치하고 구족계와 보살계를 전계하면서부터 일본불교도들은 중요한 생활규범 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가정( 嘉 禎 ) 2년(1236) 동대사에서 자서수계( 自 誓 受 戒 )를 한 각성( 覺 盛, 1194~1249) 과 예존( 叡 尊, 1201~1290) 등에 의해 율종이 부흥되었다. 주제어: 동아시아, 승가, 자비, 계율 Ⅰ. 서언 계율은 불교의 실천적 영역이다. 불교교학의 이론을 담아 실천하는 것이 바로 계율이다. 따라서 불교계율에는 불교만의 독자적 특징을 담고 있다. 불 교인이 불교계율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계율은 본래 계와 율이 합쳐진 말이다. 인도에서 불교가 성립하면서 계와 율은 본래 다른 용어로 각기 구분하여 사용되었다. 계는 출가자와 재가자가 각각 지켜야 하는 바에는 차이가 있으나 승속 모두에게 요구되는 것이며, 자 발적인 의미를 지닌 반면, 율은 출가자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출가자가 해서는 안 되는 처벌규정으로 금지적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율이 제정된 것은 출가 공동체인 승가의 평화와 화합을 유지하여 출가자들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
120 선문화연구 제19집 록 하기 위해서였다. 인도계율은 동아시아 즉 중국, 한국, 일본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변화를 겪게 된다. 이는 계율이 처음 만들어졌던 인도 당시와는 다른 시대적 배경 문화 정치 사회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인도계율이 중국 한 국 일본을 거치면서 현실적으로 지킬 수 없는 조문들도 생겨났으며, 반대로 원래의 계율에는 없으나 새롭게 요구되어 지켜야 하는 조문들도 나타났다. 동아시아에서 계율의 전개는 바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며, 계율의 발전과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은 인도에서 중국, 한국, 일본에 계율이 전승되면서 이들 나라에 적합한 윤리 도덕의식의 틀(paradigm)을 형성 향상시키었다는 점이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출가자를 대상으로 한 소승의 사분율 과 승속을 구분하지 않는 보살계에 해석이 끊임 없이 해석되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본고에서는 동아시아에 계율이 전래되면서 삼국에서 계율의 전개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각 나라별로 계율이 어떻게 수용되고 전개발전 하였는지를 이해하여 보고자 한다. 아울러 그것이 갖는 현대적 의의를 밝혀보 고자 한다. Ⅱ. 계율의 의미와 전이 계율은 산스끄리뜨어로는 śīla - vinaya, 빨리어로는 sīla - vinaya, 티벳어 로는 tshul - khrims ḥdul - ba'이며, 중국어로는 戒 律 로 번역한다. 그러나 계 율은 빨리어와 산스끄리뜨 문헌에서는 그 사용 용례를 찾아볼 수 없다. 계율은
동아시아 계율 이해 연구 / 신성현 121 중국에서 한역하는 과정에서 통합되었다. 인도에서는 계(śīla)와 율(vinaya)이 전혀 다른 뜻으로 사용되었고, 중국에서 다른 의미를 지닌 말이 계율이라는 한 단어로 쓰이면서 그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계(śīla)는 śīl(명상하다 봉사하다 실행하다)이라는 어근에서 파생된 말 이고, 습관성 경향 성격 등의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좋은 습관 좋은 행 위 도덕적 행위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대지도론 에는 시라라고 하는 것은 여기 말( 秦 )로 성선( 性 善 )이라고 한다 라고 하여 그 어의를 설명한 다음에 기 뻐하여 선도( 善 道 )를 행하고 스스로 방일하지 않는 이것을 시라라고 한다 1) 고 그 의미에 대하여 밝히고 있다. 본래 시라는 불교만의 용어가 아닌, 인도 종교 계에 브라타(vrata, 禁 誓 誓 戒 ), 삼와라(saṃvara, 律 儀 護 ) 등과 더불어 종 교적 행위를 나타내는 보편적 용어로 사용되었던 단어이었다. 2) 이처럼 여러 종교에서 쓰고 있던 말을 불교에서 받아들여 계라고 한 것이다. 계는 단순히 금지적인 조문이 아닌 자발적으로 악을 멀리하고자 하는 강한 정신력을 가리 키는 말이다. 이 계는 출가자와 재가자 모두에게 해당되며, 개인의 자발적인 의지 및 결의를 나타낸다. 율(vinaya)은 vi- nī라는 어근에서 파생된 말이고, 이끌어 가다 가지고 가다 제외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 또한 훈련하다 교 육하다 라는 의미에서 규칙 의 의미를 갖는다. 한역에는 조복( 調 伏 ) 이라는 역 어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것은 훈련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3) 또한 비니 모경 에서는 비니( 毘 尼 )는 멸( 滅 )이라 한다. 모든 악법을 멸하기 때문에 비 니라고 한다 4) 고 말하며, 멸( 滅 )이라 해석하고 있다. 또한 비니에는 무릇 다 1) 龍 樹, 大 智 度 論 13( 大 正 藏 25, 153b). 2) 平 川 彰, 석혜능 譯, 원시불교의 연구 (서울: 민족사, 2003), 130면. 3) 신성현, 대승계율연구 (서울: 해조음, 2002), 30면. 4) 毘 尼 母 經 1( 大 正 藏 24, 801a).
122 선문화연구 제19집 섯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참회( 懺 悔 ), 둘째는 수순( 隨 順 ), 셋째는 멸( 滅 ), 넷 째는 단( 斷 ), 다섯째는 사( 捨 )이다 5) 라고 해석하고 있다. 율장에서는 율이 상가의 규칙 이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율에는 바라제목차 (prātimokṣa)와 건도부가 있다. 바라제목차는 금지적인 성격을 지니므로 지 지계( 止 持 戒, vāritta - sīla)라고 하며, 건도부에 설해진 상가의 운영규칙은 비 구들이 단체로서 행동하는 규칙이므로 작지계( 作 持 戒, cāritta - sīla)라고 한 다. 율은 상가의 화합과 질서를 위해 필요한 강제적이고 객관적인 규칙이다. 그러나 율은 이와같이 절대적 강제성을 가지기에 시대와 장소에 따라 율이 현실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에도 강제로 지켜야 하는 폐단이 생기기 쉽다. 본 래 律 은 그 자체로 볼 때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계를 도와 수 행을 증진시키는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律 의 조문 자체에서 시대와 장소를 떠난 보편타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는 율을 절대시 하는 것은 계의 방치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율을 상식과 편리에 따라 개변하거나 부정해서는 더 더욱 안 된다. 율의 가치는 계의 입장에서 살아나 는 것이다. 또한 계의 정신은 율의 입장에서 준수될 때 참다운 것이 된다. 계 와 율은 서로 보완성을 간직하고 있어 계의 정신이 율의 입장에서 나타날 때 율의 조문은 계의 정신에서 살아날 때 가치 있는 것이 된다. 계와 율은 상보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와 율의 상호 보완성은 일 찍부터 인도불교에서 시작되어 왔으며 중국이나 한국에서 계율이라는 단어로 서 되살아 난 것이다. 6) 이상과 같이 초기불교문헌에서는 계와 율을 분명하게 구분하여 설명한다. 계는 주관적인 개인의 결의로 범계( 犯 戒 )에 대한 벌칙이 없으며, 세간의 윤리 5) 毘 尼 母 經 7( 大 正 藏 24, 842a). 6) 신성현, 대승계율연구 (서울: 해조음, 2002), 47면.
동아시아 계율 이해 연구 / 신성현 123 도덕에 해당하고 자발적인 면이 강조되고 있다. 율은 상가라는 공동체의 규칙 으로 범계에 대한 경중( 輕 重 )의 벌칙을 받으며, 세간의 법률에 해당하고 타율 적인 규범이다. 윤리 도덕적인 면이 강한 재가자의 오계와 팔재계, 출가자의 계로서 윤리적인 면은 경전에서, 비구 비구니의 구족계와 상가의 운영규칙은 율장에서 설하고 있다. 대승경전에서는 보살의 수행덕목인 육바라밀 가운데 계바라밀로서 십선계 와 삼취정계를 설하고 있다. 중국불교와 한국불교 등에서는 계율을 혼용하여 사용하였는데, 불교도가 지켜야 할 모든 계가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Ⅲ. 동아시아 계율의 전개사 1. 중국계율의 수용 중국에서는 계와 율을 나누지 않고 계율이라는 한단어로 사용하였다. 계율 은 경전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용어이다. 계율이 의미하는 말 은 시라의 의미보다는 상가의 규칙, 즉 바라제목차를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 다. 이 단어는 한국과 일본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그대로 수용하게 되었다. 범망경 이 번역되어 유통된 후에는 성문계보다는 범망계가 중국불교에서 우 위를 차지하였고,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고승전 에서는 담가 가라( 曇 柯 迦 羅 )가 낙양에서 승기계심( 僧 祇 戒 心 ) 을 번역하고, 이에 의거해 갈마법을 세워서 수계를 행한 것이 수계의 시초이며 중국불교계율의 시작이 었다. 7)
124 선문화연구 제19집 여산에서 백련사( 白 蓮 社 )를 결성하여 중국 정토교의 개척자로서의 역할을 한 혜원( 慧 遠, 334~416)도 계율을 중시하였다. 혜원 자신뿐만 아니라 여산에 사는 대중들은 하나 같이 계율을 잘 지녔다고 전한다. 환현( 桓 玄 )이 승단을 가려내기 위해 명령을 내리는 과정의 내용을 보면, 사문 가운데 능히 경전의 가르침을 펴고 진술할 수 있고 의리를 유창하게 설법할 수 있거나 혹 금행을 반듯하게 닦아 큰 교화를 베푸는데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이에 어 긋나는 스님들은 모두 스님 생활을 그만두게 하여 돌려보내라. 오직 여산만은 도덕이 자리잡은 곳이니, 이번의 수사하고 가려내는 예에서 제외된다. 8) 라고 하며 여산을 제외시키고 있는 것을 볼 때 여산의 계율 풍토를 엿 볼 수 있다. 또한 혜원은 환현이 사문들을 왕권 하에 예속시키기 위하여 사문이 왕자( 王 者 )에 대하여 예배해야 한다고 함에 대하여 사문불경왕자론 을 지어서 사문 은 왕자에게 예배를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여 사문의 자세를 강조하였다. 9) 이것은 중국전통의 예교질서( 禮 敎 秩 序 )와 외래종교인 불교의 계율이 서로 충 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0) 그리고 광율이 5세기 초에 전 래되어 번역되기 시작하였다. 십송율 을 시작으로 사분율 마하승기율 오분율 근본설일체유부율 이 번역되었다. 이로써 중국불교는 오부율( 五 部 律 )을 완전히 갖추어 졌으며, 율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성행하게 되었다. 이 가운데 십송율 이 먼저 유통되었고, 이어 사분율 이 성행하여 중국불교 의 교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6세기경부터는 사분율 이 크게 연구 유통 되었고, 당대에 이르러서는 도선( 道 宣, 596~667) 법려( 法 礪, 569~635) 회 7) 慧 皎, 高 僧 傳 1( 大 正 藏 50, 325a). 8) 慧 皎, 高 僧 傳 6( 大 正 藏 50, 360b). 9) 慧 皎, 高 僧 傳 6( 大 正 藏 50, 360b - c). 10) 鎌 田 茂 雄, 정순일 譯, 중국불교사 (서울: 경서원, 1996), 81면.
동아시아 계율 이해 연구 / 신성현 125 소( 懷 素, 624~697)의 3인이 배출되어 사분율종의 기초를 확립하게 된다. 사 분율 은 율종이 개종되면서 소의경전이 되었고, 많은 율사들이 배출하여 이에 대한 수많은 주석서를 남겼다. 율종에서는 도선이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서, 율종의 교리를 확립하고 남산율종( 南 山 律 宗 )을 열었다. 이 밖에 법려는 상부 종( 相 部 宗 )을, 회소는 동탑종( 東 塔 宗 )을 열어 율종은 삼종( 三 宗 )으로 분파되 었다. 분파의 원인은 계체에 관한 이론의 차이 때문이었다. 그 중에 도선이 이끄는 남산율종이 크게 번성하였다. 도선은 계를 지지계( 止 持 戒 )와 작지계( 作 持 戒 )로 구분하고 그 교리를 계법 ( 戒 法 ) 계체( 戒 體 ) 계행( 戒 行 ) 계상( 戒 相 )의 사문( 四 門 )으로 나누고 있 다. 11) 계법은 부처님이 제정한 계율로서 불살생 불투도 불음행 불망어 불음주 등을 말하고, 계체는 계법을 받은 후 신심( 身 心 )에서 계의 본체를 발 휘하는 것으로 모든 행을 발생시키는 근본, 즉 그름[ 非 ]과 나쁨[ 惡 ]을 막는 근 본적인 역할을 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불음계를 받으면 뒤에 술을 마시는 것 을 억제하게 되는데 이것을 계체라고 한다. 계행은 계를 보존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계를 받은 사람이 계법의 조목에 따라 널리 방편을 닦으면서 삼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계상은 계의 내용과 차별로 5계 10계 250계 등의 조문의 상( 相 )을 말한다. 중국의 남쪽지방에서는 대승보살계가 널리 유행하였다. 보살영락본업경 범망경 보살지지경 보살선계경 등이 번역되어 유통되었다. 이 가운데 범망경 은 중국에서 찬술된 위경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특히 삼취정계가 설해져 있는 보살지지경 은 범망경 과 더불어 중국에서 중요시되어 유행하 고 연구되었고, 범망경 에 대한 많은 주석서가 쓰여 졌다. 양나라 혜교( 慧 11) 道 宣, 四 分 律 刪 繁 補 闕 行 事 鈔 中 ( 大 正 藏 40, 50a - b).
126 선문화연구 제19집 皎, 497~554)의 범망경소, 지의( 智 顗, 538~597)의 보살계의소 2권, 법장 ( 法 藏, 643~712)의 범망경보살계본소 6권, 지주( 智 周, 668~723)의 범망경 의기소 등이 있다. 범망경소 는 현존하지 않으므로 보살계의소 가 현존하 는 주석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범망경 의 본래 제목은 범망경노사나불설보살심지계품제십 이며, 그 내 용은 보살지지경 과 비슷하며, 중국의 계율사상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이 경의 상권에는 노사나불에 대한 설명과 십발취심( 十 發 趣 心 ) 십장양심( 十 長 養 心 ) 십금강심( 十 金 剛 心 ) 십지( 十 地 )의 보살 수도의 사십위( 四 十 位 )에 대 한 설명이 있다. 하권에는 십무진장계품( 十 無 盡 藏 戒 品 )을 설하겠다고 하여 10바라이와 48경구죄를 설하고 있다. 여기에서 비록 바라이라는 말이 사용되 고는 있지만, 율은 아니다. 10바라이란 바라이죄 10조를 나열한 것이다. 바라 이란 근본 율장에서는 교단에서 추방되는 죄를 의미하지만, 범망경 에서는 십중계를 범한 사실이 있으면 가르쳐서 참회하도록 해야 한다. 라고 하며 바 라이는 지옥에 떨어지는 죄로 설명하여 율장에서의 바라이와 이해를 달리한 다. 십중( 十 重 )은 1 고의로 모든 생명 있는 것을 죽이는 것을 금한다[ 快 意 殺 生 戒 ] 2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을 금한다[ 劫 盜 人 物 戒 ] 3 자비심 없이 음욕을 행하는 것을 금한다[ 無 慈 行 欲 戒 ] 4 고의로 망어를 하는 것을 금한다[ 故 心 妄 語 戒 ] 5 술을 사고파는 것을 금한다[ 沽 酒 生 罪 戒 ] 6 타인의 허물을 말하는 것을 금한다[ 談 他 過 失 戒 ] 7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비방하는 것을 금한다[ 自 讚 毁 他 戒 ] 8 욕심을 내어 구하는 사람에게 수치심을 주는 것을 금한다[ 慳 生 毁 辱 戒 ] 9 성을 낸 사람의 사죄를 받지 않는 것을 금한다[ 瞋 不 受 謝 戒 ] 10 삼 보를 비방하는 것을 금한다[ 毁 謗 三 寶 戒 ]를 말한다. 사십팔경계( 四 十 八 輕 戒 )는 스승 혹은 덕 있는 사람을 공경하지 않음을 금
동아시아 계율 이해 연구 / 신성현 127 한다[ 不 敬 師 長 戒 ] 술 마시는 것을 금한다[ 飮 酒 戒 ] 고기 먹는 것을 금한다[ 食 肉 戒 ] 다섯 가지 매운 것을 먹는 것을 금한다[ 食 五 辛 戒 ] 계를 범한 사람을 가르쳐서 참회시키지 않는 것을 금한다[ 不 擧 敎 懺 戒 ] 등 48가지의 계를 금하고 있는데, 식육과 식오신( 食 五 辛 )의 금지, 방생의 권유, 명리사욕( 名 利 私 辱 )의 금지, 추선공양( 追 善 供 養 ), 일상행의( 日 常 行 儀 )의 규정 등은 후세에 많은 영 향을 끼쳤다. 범망경 의 계는 범망계라고 하는데, 그 특징은 재가와 출가를 불문하고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 있으며, 또한 자기의 불성을 개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불성계라는 것에 있다. 즉 부모( 父 母 ) 사승( 師 僧 ) 삼보( 三 寶 ) 등에 대한 효순을 권장하는 것, 자비를 강조하여 중생이 불계( 佛 戒 )를 받 으면 곧 제불의 지위에 들어간다 고 설하고, 불자의 자각에 입각하여 보살도 를 실천하는 것을 기초로 하는 계이다. 또한 이 계를 통하여 붓다의 자비의 극치를 볼 수 있다. 즉 범망계는 대승계의 진면목인 섭율의계 섭선법계 섭 요익중생계 등 삼취정계의 본의( 本 義 )를 구비하고 있으며, 적극적인 작선( 作 善 )을 강조하여 타인을 교화 인도하는 대방편의 진의를 함축하고 있다. 그리 고 효를 이름하여 계라고 한다 고 설하는 등 중국적인 색채를 너무 강하게 띠고 있다는 것이다. 12) 천태종의 지의( 智 顗, 538~597)는 스스로도 계율을 철저히 지켰으며, 제자 들에게도 계를 잘 지키도록 지도하였다고 한다. 지의는 임종 직전에 제자들에 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계란 마음의 말을 제어하기 위한 것이다. 비록 5부의 율을 수지한다고 해도 관 심( 觀 心 )을 하지 않으면 마음의 말은 끝내 조복되지 않는다. 13) 12) 불교신문사 編, 불교경전의 이해 (서울: 불교시대사, 1997), 454-455면. 13) 智 顗, 觀 心 論 ( 大 正 藏 46, 585b).
128 선문화연구 제19집 천태에게 있어 계행은 도를 얻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그러나 청정한 계를 지키고 관심을 하지 않는다면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없음을 말하고 있 다. 또한 삼매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계행이 청정해야 하지만 방심하여 계 14) 를 범하였을 경우 진정으로 참회를 하면 계품이 청정해져서 삼매가 일어 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마하지관 에서는 파계를 하면 전생의 업을 촉 발시켜 병이 난다고 하여 경계시키고 있다. 15) 지의는 계를 권계( 權 戒 )와 실계( 實 戒 )로 나누고 있다. 법화현의 에서는 5 계와 8계 10계 구족계 등의 성문계와 유가사지론 보살선계경 등에서 말하는 보살계를 모두 삼승에 공통하는 권계라 하고, 범망보살계를 계외( 界 外 )의 보살이 설한 실계라 말하고 있다. 이 실계는 또한 상대적이어서 삼승의 권교를 열어 일승의 실교로 귀입( 歸 入 )할 때 모든 계율이 그대로 절대묘계( 絶 待 妙 戒 )가 된다. 마하지관 에서는 구체적인 형식에 의한 사계( 事 戒 )와 계상 에 머물지 않고 공 가 중 등 세 가지 관에 안주하는 이계( 理 戒 )로 나누고, 전자는 천 인 아수라 등 삼취( 三 趣 )의 과보를 얻는다고 하고, 후자는 삼승 및 사교( 四 敎 )의 보살에 배대된다고 하였다. 16) 이와 같이 천태종에서는 일체 계를 절대원돈의 묘계( 妙 戒 )라고 말하고 있다. 지의는 제자들을 지도하기 위하여 10조목의 입제법( 立 制 法 )을 제정하였다. 입제법은 십중계( 十 重 戒 )를 제외하고 처벌규정이 없는 사십팔경계( 四 十 八 輕 戒 ) 가운데 특히 수행생활과 관계된 것만을 골라 새롭게 계목을 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사분율 의 규정도 포함하고 있다. 처벌규정은 상가에서 내보내는 것, 유나직을 한번 맡는 것, 10번의 예불과 대중에게 참회, 3번의 예불과 대중 14) 智 顗, 次 第 禪 門 2( 大 正 藏 46, 485a). 15) 智 顗, 摩 訶 止 觀 8 上 ( 大 正 藏 46, 107c). 16) 智 顗, 摩 訶 止 觀 4 上 ( 大 正 藏 46, 39a).
동아시아 계율 이해 연구 / 신성현 129 에게 참회, 30배와 대중에게 참회하는 다섯 가지 방법이 있다. 재가불자에게 계를 줄때는 범망경 에 의지하여 십중사십팔경계를 주었다고 한다. 17) 화엄종의 법장은 범망경보살계본소 에서 모든 경전을 화교( 化 敎 )와 제교 ( 制 敎 )로 구분하였다. 18) 화교는 일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대소승의 모든 경 전의 교법을 말하며, 불( 佛 ) 보살( 菩 薩 ) 제자( 弟 子 ) 신선( 神 仙 ) 변화인 ( 變 化 人 )) 등 5종인이 설할 수 있다고 하였다. 제교는 신 구 의 삼업으로 짓는 악업을 제지하고 실천 수행함으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율법을 말하며, 부처님만이 설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 화엄경 과 범망경 을 일체시하지 않고 양자의 구별을 명확히 하였다. 이는 법장이 화엄교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입장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법장은 범망경 이 제교에 속하는 것으로 보 았다. 범망경 의 보살계는 보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5종성 모두가 실천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으며, 계율의 조목 주석에서도 유가계를 실교( 實 敎 )가 아 닌 권교( 權 敎 )로 보고 거의 인용을 하지 않았다. 결국 법장이 범망보살계를 보는 관점은 화엄교를 절대시하는 바탕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체보 살이 보살계를 구족하면 신( 信 )과 행( 行 )을 이루고 십주( 十 住 ) 등의 보살위에 오른다고 하였다. 또한 대지도론 의 글을 인용하여 삼취정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첫째 율의( 律 儀 )는 허물을 여의고 끊는 덕으로 법신을 나타내고, 둘째 섭선( 攝 善 )은 만행의 선을 닦음으로써 지혜의 덕인 보신을 이루며, 셋째 섭중생계( 攝 衆 生 戒 )는 중생에게 은혜의 덕을 베풀어 화신을 이룬다. 19) 17) 최기표, 초기 천태교단의 계와 율, 한국불교학 45(서울: 한국불교학회, 2006), 107-114면. 18) 法 藏, 梵 網 經 菩 薩 戒 本 疏 ( 大 正 藏 40, 603b). 19) 法 藏, 梵 網 經 菩 薩 戒 本 疏 ( 大 正 藏 40, 604b).
130 선문화연구 제19집 법장은 삼취정계를 삼신( 三 身 )에 배대하여 해석을 하고 있다. 선종은 8~9 세기에 걸쳐 교단의 세력이 커지고 발전함에 따라 독자적으로 교단생활을 유 지할 규범이 필요로 하였다. 그래서 청규를 제정하여 종래의 계율에 의한 수 행보다는 청규에 의해서 교단을 운영하고 수행생활을 하였다. 청규는 율장의 건도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시대 요청에 따라 율장의 형태로서 선림의 규범을 규정한 것이 바로 청규인 것이다. 선종은 수행승들의 집단적인 수도생 활의 규범과 주체적인 교단의 조직 및 운영 등을 위해 체계적으로 성문화한 백장청규의 등장과 함께 안으로는 기반을 정비시키고 정착시켰다. 또한 선종 은 처음으로 백장회해( 百 丈 懷 海, 749~814)에 의해서 선종교단으로서 독립되 었다. 백장은 그 당시 선종의 수행이 전통적인 계율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 각하고 대소승의 계율을 절충하여 그 정신을 살리고 현실생활에 적합한 규범 을 제정하여 수행에 힘쓰도록 하였다. 그리고 청규는 생산노동을 규정하고 있 다는 점에 독자성이 있다. 인도불교에서는 생산 활동을 율로서 금지하고 있으 나 중국선종은 노동도 수행으로서의 좌선과 동일시하여 수행의 중요한 덕목 으로 삼았다. 교단의 경제적인 자급자족의 수행생활은 불교가 중국사회에서 잘 적응한 예로 중국불교의 일대혁신을 일으켰다. 2. 한국계율의 전개 삼국시대 가운데 불교가 제일 먼저 공인된 나라는 고구려이다.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소수림왕 2년(372)에 전진( 前 秦 )의 부견( 符 堅 )이 사신과 승려 순도( 順 道 )에게 불상과 경문을 보내온 것에서 시작한다. 이후에 초문사 ( 肖 門 寺 )를 창건하여 순도를 머무르게 하고, 이불란사( 伊 弗 蘭 寺 )를 창건하여
동아시아 계율 이해 연구 / 신성현 131 아도를 머무르게 한 것이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불교를 수용한 것이며 불사( 佛 寺 )의 기원이 되었다. 그러나 불교는 이미 공인되기 이전부터 민간에 유포되 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 불교에서 계율에 관한 기록은 그다지 남아있지 않다. 고구려에 불 교가 전래된 지 20년 뒤 담시( 曇 始 )가 태원( 太 元 )의 말기에 경률 수십부( 數 十 部 ) 20) 를 가지고 와서 불교를 크게 홍포하고 삼귀의계와 오계를 세워 교화하 였다는 설에서 유추하여 볼 수 있을 뿐이다. 담시가 전했다는 경율에 관해서 는 전해지는 것이 없다. 고구려에 경율이 전해진 시기는 중국에서 광율이 번 역되지 않은 시기로 고구려에 전해진 율은 계본과 갈마법에 관한 것이었을 것 으로 추정된다. 그 당시 중국에서는 승기율 과 사분율 의 계본에 의거하여 수계가 이루어졌던 만큼 고구려에 전해진 율도 이와 같은 것으로 삼귀오계에 의한 수계가 이루어졌을 것이라 추정된다. 그리고 고구려는 팔관재법회가 성 행하여 재가자들이 8재계를 수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 진흥왕 12년(551) 에 고구려의 고승인 혜량에 의해서 백고좌법회와 팔관재법회가 열렸다는 기 록이 있는 것을 보면 고구려에는 이전부터 팔관재가 널리 행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국유사 권3 21) 에 의하면, 고구려 말기에 석보덕( 釋 普 德 )에 의해 열반경 이 강설되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보아 고구려에 이미 대승 계가 알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는 제15대 침류왕 원년(384)에 마라난타 ( 摩 羅 難 陀 )가 동진으로부터 건너와 불교를 전하여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때 왕이 융성한 대접을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은 백제에 이미 불교가 알려져서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백제는 궁에 스님을 모시고 교설 을 듣고 불사를 일으키고 승려들을 득도시키는 등 적극적으로 불교를 수용하 20) 慧 皎, 高 僧 傳 10( 大 正 藏 50, 392b). 21) 一 然, 三 國 遺 事 3, 靈 塔 寺 條 ( 大 正 藏 49, 990a).
132 선문화연구 제19집 였다. 백제불교는 특히 계율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이는 계율을 매우 중요 시하였던 동진불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일본불교 의 계율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백제에서 본격적으로 계율이 연구된 것은 겸익( 謙 益 )에 의해 시작되었다. 겸익은 인도에서 범문과 율을 배우고 귀국할 때 5부 율문을 가져와 번역하였 다. 이때 율부( 律 部 ) 72권이 번역되었고, 담욱( 曇 旭 )과 혜인( 惠 仁 )에 의해 율 소( 律 疏 ) 36권이 저술되었다. 이에 왕이 비담( 毘 曇 )과 신율( 新 律 )의 서문을 직접 짓고, 새로 번역된 불전을 태요전( 台 耀 殿 )에 봉장하였다고 한다. 22) 또 백제는 6세기 중후반에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였다. 불경과 불상, 경사( 經 師 ), 율사, 선사 등을 보내어 법을 전하고, 조소, 회화, 조사( 造 寺 ) 등의 기술을 전 수했다고 한다. 23) 일본에서는 선신니( 善 信 尼 ) 등 여러 명의 사미니를 백제로 유학을 보냈다. 이들은 3년 동안 율을 익히고 구족계를 받았다고 한다. 이것 으로 미루어 보면 백제에서는 이미 구족계 의식이 시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 다. 백제는 일찍부터 계율의 연구가 성행하였고, 계율을 중심으로 불교가 발 전하였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전해지고 있지 않으므로 알 수가 없다. 또 백 제에는 보살계가 널리 알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제29대 법왕( 法 王 ) 원년(599) 에는 조령( 詔 令 )을 내려 살생을 금지시키고, 민가에서 기르는 매의 종류를 놓 아주게 하였으며, 고기 잡고 사냥하는 도구를 불살라 살생을 일체 금지시켰다 고 한다. 24) 이는 보살계에서 모두 금지하는 계( 戒 )이다. 이러한 사실에 미루 어 백제는 국가에서 불교의 계율을 실생활에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지키도록 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22) 이능화, 彌 勒 佛 光 寺 事 蹟, 朝 鮮 佛 敎 通 史 上 (서울: 경희출판사, 1968), 33-34면. 23) 황유복 外, 한 중 불교문화교류사 (서울: 까치, 1995), 132-133면. 24) 一 然, 三 國 遺 事 3, 興 法, 法 王 禁 殺 條 ( 大 正 藏 49, 988b).
동아시아 계율 이해 연구 / 신성현 133 신라는 제23대 법흥왕 14년(527)에 이차돈의 순교 이후 불교가 받아들여져 서 국가적 신앙으로 발전하였다. 진흥왕은 불교이념에 의해서 정책을 펼쳐나 갔고, 불교는 국교로서 터전을 마련하였다. 신라는 삼국 가운데 율학의 흥기 가 가장 늦었지만 가장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신라시대에는 성문계에 대한 연 구가 활발했지만, 자장이 수계( 授 戒 )하고 보살계본을 설하였다는 기록 등에서 특히 보살계가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신라에서는 고구려에서 온 혜량( 惠 亮 )에 의해 처음으로 백고좌법회와 팔관재법회가 행해졌다고 한다. 팔관재법 회는 팔재계를 근거로 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신라에서도 불교가 전래된 초창 기부터 포살과 수계의식이 행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진흥왕은 전쟁터에서 죽 은 병사들의 망령을 추도하기 위하여 국가적으로 팔관재회를 베풀었다. 신라의 율학은 원광과 자장에 의해 기틀이 마련되었으며 발전하였다. 원광 ( 圓 光,?~630)은 세속오계( 世 俗 五 戒 )를 화랑도에게 주는 과정에서 불교에 열 가지 조목으로 된 보살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열 가지 조목의 보살계는 범망경 의 십중계를 말하는 것으로 원광은 보살계를 이미 알고 있 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광은 세속오계를 제정하면서 신라가 처해있는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가자에게 현실성이 없고 지키기 어려운 계율을 지키라고 강요한다면 그들은 강하게 거부할 것이라 생각 하였다. 그래서 원광 은 보살계를 새롭게 해석하여 화랑도가 지킬 수 있는 새로운 오계를 제정하였 다. 세속오계는 임금은 충성으로 섬기고( 事 君 以 忠 ), 어버이는 효로 섬기고( 事 親 以 孝 ), 벗은 믿음으로 사귀고( 朋 友 有 信 ), 전쟁에 임해서는 물러나지 않으며 ( 臨 戰 無 退 ), 살생은 가려서 해야 한다( 殺 生 有 擇 ) 다섯 가지 계이다. 이 가운 데 살생유택은 불살생의 금계를 시대상황에 맞게 변형시킨 것으로 봄과 여름 및 육재일( 六 齋 日 )에는 살생을 하지 말고, 소 말 닭 개 등의 가축은 죽이 지 말며, 잘게 썬 고기 한점보다 작은 미물( 微 物 )들은 죽이지 말라 25) 는 등으
134 선문화연구 제19집 로 살생을 최소화할 것을 말하고 있다. 세속오계는 당시 사회 윤리관을 표명 한 것으로 국가와 사회의 현실적인 이익을 바탕으로하고 있다. 세속오계는 시 대적 산물의 대표적인 계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장은 한국 율종의 개창조로서 나는 하루를 계율을 지키다가 죽을지언정 일생을 파계하면서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26) 라고 하며 계율을 자신의 목숨보 다도 귀중하게 여겼다고 한다. 자장은 대국통( 大 國 統 )이 된 이후에 승니의 기 강을 바로잡고 교단을 총관( 總 管 )하였으며, 통도사를 창건하고 금강계단을 세 워 수계의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신라불교 율학의 기틀을 확립하였다. 삼국유사 에서는 자장이 황룡사에서 칠일칠야( 七 日 七 夜 ) 동안 보살계본을 강 설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27) 이 사실은 자장이 출가자와 재가자의 계율을 구 분하고, 성문계의 토대 위에 보살계를 연구하고 선양하였음을 알 수 있는 대 목이다. 자장은 보살계를 대중에게 알리는데 적극적으로 노력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보살계는 신라에 본격적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다. 자장의 보살계 강설 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것으로 금계위주의 성문계보다는 적극적인 보살계 가 신라가 처한 현실에 보다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속고승 전 에 의하면, 자장은 꿈에 도리천에서 온 두 명의 장부에게 오계를 받은 후, 한달 동안 나라 안의 남녀노소에게 오계를 주었으며, 28) 만년( 晩 年 )에는 5부 대중에게 각기 구습( 舊 習 )을 증장케 하고, 다시 강관( 綱 管 )을 두어 감찰을 하 고 유지하게 하였으며, 반달마다 계를 설하고 율에 의해 참회하게 하였으며, 봄과 겨울에 총체적으로 시험하여 지키고 범한 것을 알게 하였다고 한다. 29) 25) 金 富 軾, 三 國 史 記 45, 列 傳 5, 貴 山 참조. 26) 道 宣, 續 高 僧 傳 24( 大 正 藏 50, 639a). 27) 一 然, 三 國 遺 事 4, 義 解 5, 慈 藏 定 律 條 ( 大 正 藏 49, 1005b); 道 宣, 續 高 僧 傳 24( 大 正 藏 50, 639c). 28) 道 宣, 續 高 僧 傳 24( 大 正 藏 50, 639b).
동아시아 계율 이해 연구 / 신성현 135 신라시대는 특히 계율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였다. 통일신라 이전에는 성문 계인 사분율 을 중심으로 연구되었고, 삼국이 통일된 후에는 대승의 범망보 살계가 중점적으로 연구되었다. 그 중심에 원효( 元 曉, 617~686)가 있는데, 범 망경종요 1권, 범망경소 2권, 범망경약소 1권, 범망경보살계본사기 2 권, 보살계본지범요기 1권, 영락본업경소 3권, 사분율갈마소 4권 등의 많은 저술을 하였다. 원효는 여러 분야의 저술을 남겼지만, 성문계와 보살계 에 대한 연구도 가장 활발히 하였다. 성문계의 주석서는 현존하는 것이 없고, 현존하는 것은 대부분 보살계에 대한 주석서로, 원효에 의해서 범망경 의 연 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원효는 보살계본지범요기 에서 계는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방편이라고 말 하고 있다. 즉 보살계란 흐름을 거슬러서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는 큰 나루 ( 大 津 )이며, 삿된 것을 제거하고 올바른 것에 나아가게 하는 요문이다 30) 라고 하였다. 이 말은 계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방편임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원효는 범망경보살계본사기 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계행으로서 삼취정계 의 구족을 강조하고 있다. 범망계에 내재하고 있는 삼취정계를 해와 달로 비 유하여 그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계가 해와 달처럼 밝다고 한 것은 간략히 세 뜻이 있다. 첫째는 해와 달의 자체 는 염( 染 )을 떠나고 정( 淨 )을 밝게 하기 때문에 또한 능히 저 어둠을 깨뜨리고 물체를 드러나게 한다. 계도 또한 이와 같아서 자체가 더러움을 버리고 밝고 맑 아서 번뇌의 어두운 법과 장애를 깨뜨려 불성과 여래장 등의 물질을 나타내기 때문에 마땅히 저 해와 달의 뜻에 비유를 하였다. 둘째는 해는 열로써 성품을 29) 道 宣, 續 高 僧 傳 24( 大 正 藏 50, 639c). 30) 元 曉, 梵 網 經 菩 薩 戒 本 持 犯 要 記 ( 韓 佛 全 1, 581a).
136 선문화연구 제19집 삼고, 달은 서늘한 것으로써 성품을 삼는다. 만일 해만 있고 달이 없으면 모든 싹은 타서 열매가 생기지 않는다. 또한 달만 있고 해가 없으면 온갖 싹은 즉시 썩을 것이다. 계도 또한 이와 같다. 만약 비록 섭율의계와 섭정법계만 있고 섭 중생계가 없다고 한다면 오직 자리행만 있고 이타행이 없어서 이승과 같기 때 문에 무상보리의 풍성한 과실이 생기지 않는다. 만약 비록 섭중생계만 있고 섭 율의계와 섭선법계가 없다고 한다면 오직 이타만 있고 자리행이 없어서 도리어 범부와 같기 때문에 능히 보리의 싹이 나지 않는다. 지금 해와 달이 다 있기 때 문에 능히 싹은 썩지도 않고 타지도 않는다. 계도 또한 이와 같아서 능히 삼취 정계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범부나 이승과 같지 않으며 능히 무상보리의 3종 의 과를 감득할 수 있다. 31) 이상의 내용은 계율이 번뇌를 깨뜨릴 수 있으며, 범망계에 내재되어 있는 삼취정계를 구족할 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즉 삼취정계에 자리행과 이타행이 함께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무상보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이다. 원효의 계율관은 범망계를 그 중심으로 하고 있다. 범망계는 출가자와 재가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계율로서 지범( 持 犯 )의 판단기준은 표면적인 행위 보다는 중생제도라는 내면적 동기에 두어 더욱 중요시하고 있다. 원효는 범 망경 과 화엄경 을 일승교로 보고, 화엄경 은 일승만교( 一 乘 滿 敎 ), 보살도 의 실천을 강조하는 범망경 은 일승분교( 一 乘 分 敎 )로 구분하였다. 또한 중 관과 유식을 삼승통교( 三 乘 通 敎 )에 배당하여 범망경 은 화엄경 에 버금가 며, 유가 유식보다는 뛰어나다고 보았다. 의적은 범망경보살계본소 에서 계는 덕의 근본이요. 도는 그로 말미암아 생긴다. 따라서 깨달음의 종자를 흥하게 하고 정법을 이어받는 것과 생사의 오랜 흐름을 끊고 피안에 오르는 것과 중생을 제도하는 것 등이 계로부터 말 31) 元 曉, 梵 網 經 菩 薩 戒 本 私 記 ( 韓 佛 全 1, 588c - 589a).
동아시아 계율 이해 연구 / 신성현 137 미암는다 라고 하였다. 이런 이유로 여래가 보살의 바라제목차를 제정하였으 며, 이 보살계는 진루( 塵 累 )를 고요하게 하고 얽매임에서 해탈시키는 기초이 며 원인을 닦고 결과를 증득하는 근본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보살계에 대 하여 다만 이 계경 의 글과 뜻은 깊고 은밀하여 해석을 잘 해야 하며, 또한 분명하게 알기가 지극히 어렵기 때문에 먼저 과목( 科 目 )을 추려서 간략하게 지귀( 旨 歸 )를 표시한다. 계법은 한량이 없지만, 요약하면 수( 受 )와 수( 隨 )일 뿐이다. 수( 受 )는 곧 업의 근본으로 처음에 법을 받아들이는 것은 몸에 있음 을 나타냈고, 수( 隨 )는 즉 지니는 마음으로 나중에 연( 緣 )을 나타내서 막아 보 호함을 일으킨다 32) 라고 정의하였다. 즉 계율은 받는 것과 이를 따라 지키는 것의 둘로 요약된다는 것이다. 우선 계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이 되는 그릇을 간택하고[ 簡 資 器 ], 이어서 법사가 될 수 있는 덕을 간택하고 있다[ 簡 師 德 ]. 그리고 수계( 受 戒 )의 방법과 궤칙을 말하고[ 受 之 方 軌 ], 끝으로 문답으로 의심을 버리게 하고 있다.[ 問 答 遣 疑 ] 그리고 계를 받아서 지키는 수행( 隨 行 ) 에 대해서도 율의계와 섭선법계, 섭중생계로 나누어서 각각 지키고 어기는 경 우를 다루고 있다. 의적은 유가론 에 의지하여 범망경 을 해석하고, 성문 계를 자주 언급하였다. 그리고 주석을 함에 있어 의적 나름대로 계명( 戒 名 )을 붙이고 계율 조목을 해석하였다. 즉 전쟁이나 군대 또는 무기의 소지 등과 같 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하여 재가자의 경우에는 이에 관여하는 것을 허용하였 다. 이는 전쟁을 겪었던 신라의 시대적 배경 때문에 생겨난 해석일 것이다. 또 세속인의 상업행위를 인정하고 있는데, 이 또한 당시 일반사회의 활발한 상업 활동을 반영한 것이라 보인다. 재가자의 위상을 높이 평가하여 단월도 설법주( 說 法 主 )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불교가 대중화되면서 재가신자 32) 義 寂, 菩 薩 戒 本 疏 上 ( 韓 佛 全 2, 251c).
138 선문화연구 제19집 의 비중이 커진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결과라고 이해된다. 이 밖에도 의적은 노비( 奴 )와 주인은 그 지위가 구별되어 본래 뒤섞일 수 없다고 하였다. 이는 골품제도로 신분을 엄격히 구분하고 있던 신라의 한 단면을 잘 반영한 듯하 다. 33) 의적은 신라가 그 당시에 처해있던 사회적인 배경들을 통하여 직접적 으로 연관하여 보살계를 해석하고 있다. 고려시대는 처음부터 조사선이 성행하였으나 천태종이 개창된 중엽이후에 는 상당한 부진을 보였다. 천태종의 성립부터 지눌에 이르기까지는 선종의 침 체기라 할 수 있다. 일찍부터 구산선문이 열려 선을 우선시하였으므로 율종이 있기는 하였지만 계율은 그리 중요시하지 않았다. 계율의 조목을 따지거나 번 잡한 도덕의 문제를 추구하기 보다는 조사선에 의하여 마음을 깨닫는 것이 시 급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율종은 발전하지 못하고 쇠퇴하여 체계적이고 계획 적인 통제력을 상실하여 교단의 조직과 질서가 무너졌으며, 교단 간에 많은 분란을 일으켰다. 지눌( 知 訥, 1158~1210)이 수선사를 결성하여 결사를 하기 전에는 신라시대 에 보살계가 크게 성행했던 만큼 고려시대에도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보 살계가 성행했다. 또한 고려는 팔관회나 연등회와 같은 행사가 많았던 만큼 재가인들의 팔재계가 성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려의 팔관회는 불교의 8계에 근원을 두었지만, 차츰 불교의 색채를 벗고 신라의 신선적 풍류를 띠고 국가 적인 행사로 변모하였다. 34) 지눌은 결사를 통하여 교단을 바로 세우고 선풍을 진작시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저서도 많이 남겼는데, 청규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 33) 최원식, 신라 보살계사상사 연구 (서울: 동국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2), 92면. 34) 鎌 田 茂 雄, 신현숙 譯, 한국불교사 (서울: 민족사, 1994), 158면.
동아시아 계율 이해 연구 / 신성현 139 권수정혜결사문 계초심학인문 이 있다. 권수정혜결사문 은 10여명의 동 학들이 모여 세속의 명리를 버리고 산림에 들어가 결사하며 수행할 때의 마음 가짐과 행동규칙을 정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청규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계 초심학인문 은 선원청규의 영향을 받아 저술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육조단 경 의 내용을 더욱 간략히 요약하고 있으며, 선학을 배우는 사람의 마음가짐 에 중점을 두고 있다. 내용은 발심 수계 대중화합 공동생활의 주의점 예 불 참회 청법 중생제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35) 여기에서는 불교에 처음 입문한 초심자들은 악한 벗을 멀리하고 착한 벗을 가까이하며 오계와 십계를 받아 지니고 항상 화합하여 도를 닦는 데에만 힘써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대중생활 중에 명심해야 할 사항들과 선정과 지혜를 닦아서 자성을 체 득하고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지공( 指 空, 1330~1363)은 인도출신 승려로 중국을 거쳐 1326년 3월에 고려 에 도착하여 2년 7개월 정도 머물렀는데, 무생계를 통하여 교화활동을 하면서 경전을 번역하고 저술을 하는 등 많은 발자취를 남겼다. 지공은 법신사상과 계율사상을 강조하였는데, 그의 계율사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무생계로 고려에 끼친 영향이 매우 컸다. 무생계의 근거가 된 경전은 무생계경 이다. 이 경은 법신사상에 토대를 두고, 출가자와 재가자를 공통으로 광범위하게 적 용되었으며, 인도의 식생활에 토대를 두고 있다. 지공은 무생계( 無 生 戒 )로서 사부대중에게 수계를 하였는데, 그 영향력은 매우 커서 술과 고기를 즐기던 사람들은 이를 끊었고, 무당을 따르던 사람들은 이를 멀리했다고 한다. 고려 인들은 이 무생계로 말미암아 식생활에서도 육식을 금하게 되었고, 샤만적인 토속제의( 土 俗 祭 儀 )에도 육류의 사용을 철저히 금지하게 되어 갈등을 일으키 35) 박호남, 불교율장의 성립과 대승율의 발달 연구 (성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 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2), 265면.
140 선문화연구 제19집 는 등 심각한 변화를 일으켰다고 한다. 무생계는 출가자와 재가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계율로 지공은 수계를 하고 계첩을 주었다고 한다. 36) 고려불교의 병폐로 인하여 조선시대는 배불숭유정책으로 일관되었다. 조선 은 개국과 함께 불교와 관련된 의식인 팔관회와 연등회, 인왕백고좌법회를 폐 지하였다. 태종은 사찰의 토지와 노비를 국가에 귀속시키고, 종단을 7종으로 축소시켰다. 이러한 배불정책은 불교계를 크게 위축시켰다. 그리고 불교교단 의 타락상에 근거하여 이론적으로 불교사상을 배척하였는데, 정도전의 불씨 잡변( 佛 氏 雜 辨 ) 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하여 조선 초기 일부 학승과 선승들은 당시 유학자들의 배불론의 한계를 인지( 認 知 )하고, 유교와 불교의 공존가능성 및 회통가능성을 근본적인 입장에서 이론적으로 제시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배불론에 대한 불교 측의 대응논리에는 기화( 己 和, 1376~1433)의 현정론( 顯 正 論 ) 이 대표적이다. 현정론 은 숭유배불( 崇 儒 排 佛 )의 시대적 상황에서 핍 박받던 불교를 지키기 위한 노력의 결실로 불교를 대변하고 몰지각한 유생들 을 깨우치며 불교의 참모습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저술되었다. 현정론 에서 는 불교의 기본 계인 오계( 五 戒 )와 유교의 핵심윤리인 오상( 五 常 )을 같은 맥 락에서 비교하고 있다. 불살생은 인( 仁 ), 불투도는 의( 義 ), 불사음은 예( 禮 ), 불음주는 지( 智 ), 불망어는 신( 信 )에 배대시키고 있다. 37) 기화는 윤리적인 면 을 배대하여 불교와 유교는 근본적으로 일치한다고 주장하였다. 성격상 상반 되는 두 교리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악을 멀리하고 선을 가까이 한다는 공통적인 근본입장이 같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 기화는 불교의 자비와 유교 의 인을 불살생에 의해 비교하고 있다. 불교의 천지( 天 地 )는 나와 함께 근본 36) 허흥식, 지공의 무생계첩과 무생계경, 서지학보 4(서울: 한국서지학회, 1991, 141-151면, 허흥식, 고려로 옮긴 인도의 등불 (서울: 일조각, 1997), 95-101면. 37) 己 和, 顯 正 論 ( 韓 佛 全 7, 217c).
동아시아 계율 이해 연구 / 신성현 141 이 동일하고 만물은 나와 한 몸이다 38) 라고 한 동체자비와 유교의 어진 사람 은 천지만물을 자기의 한 몸으로 여긴다 39) 라고 한 것을 동일한 가르침으로 보았다. 그러나 유가는 산목숨을 죽여서 자기 목숨을 유지하는 언행이 일치하 지 않는 행위를 함으로써 모순점을 드러내고 있다. 불교에서는 이 점을 들어 살생은 형제를 죽이는 것과 같지 않은가?라는 반문을 하면서 이를 비판하고 있다. 기화는 양자가 이론적인 면에서는 같다고 볼 수 있지만, 실천적인 면에 서는 엄연히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유자( 儒 者 )들은 인의 도를 이론적으로는 잘 논하고 있지만, 실천이 뒷받침을 해주지 못하고 있으며, 불교는 자비심의 실천으로 불살생이라는 윤리로 경계하여 만물이 나와 한 몸임을 직접적으로 실천하고 있으므로 양교( 兩 敎 )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휴정( 休 靜, 1520~1604)은 선가귀감 에서 선교가 둘이 아님을 밝히면서도 선을 우위에 두고 있다. 그리고 깨달으면 그만이라는 선승들을 깨우치기 위하 여 수행인으로서 지켜야 할 일상적인 행동규범을 간곡히 말하고 있다. 휴정은 계를 법계( 法 戒 )와 심계( 心 戒 )로 나누어 설명하였는데, 법계는 몸으로 범하는 일이 없고, 심계는 생각으로 범하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 또한 4계가 모든 계 율의 근본임을 밝히면서 생각으로라도 범함이 없게 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즉 음욕은 청정을 끊고, 살생은 자비를 끊으며, 투도는 복덕을 끊고, 망어는 진 실을 끊는다. 지혜를 이루어 비록 육신통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살 도 음 망을 끊지 않으면 악도에 떨어지고 영원히 보리의 바른 길을 잃고 말 것이 다 40) 라고 하여 참선을 하는데 계율이 매우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또 마음의 계는 한번 파하면 백가지의 허물이 일어나기 때문에 부처님과 같이 계를 존중 38) 己 和, 顯 正 論 ( 韓 佛 全 7, 219b). 39) 己 和, 顯 正 論 ( 韓 佛 全 7, 219b). 40) 休 靜, 禪 家 龜 鑑 ( 韓 佛 全 7, 639b).
142 선문화연구 제19집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41)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서 깨달음을 얻기를 바란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반드시 지계하고 깨달음을 얻을 것을 말하고 있 다. 긍선( 亘 璇, 1767~1852)은 참선수행자들을 위하여 수선결사문 을 저술하 였다. 여기서는 수선결사를 제창하는 뜻과 결사운영의 제반 사항들을 체계적 으로 엮고 있으며, 뒷부분에 사중규승 과 식지변설 을 첨부하고 있다. 수 선결사문 에서는 유 노 불의 삼교를 비교하면서 유교의 오상( 五 常 )을 불교 의 오계와 동일하게 보고 있다. 사중규승 은 수선결사 대중들이 지켜야 할 청규로 선수행의 방향을 말하고 있으나 어디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등의 구 체적인 내용이 없다. 청규의 내용을 보면 1 이 문에 들어오면 다만 활구를 참상( 參 商 )함으로써 자성을 돈오하는 것을 급무로 하고, 예불 전경( 轉 經 ) 등 일체 행사( 行 事 )는 연을 따라 수작( 酬 酌 )하며 가히 굳건히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2 우리는 다분히 부모에게 태어나지 않음이 없다. 이와같은 무리는 다 악취에 빠져 밤낮으로 대고뇌를 받는다. 통히 심부( 心 腑 )를 얽어 각기 대분지 ( 大 憤 志 )를 발하여 이런 중생들을 널리 제도하기를 원해야 한다. 3 간절히 허망한 것을 짓지 말고 금계를 굳건히 지녀야 한다. 4 인욕으로 역순( 逆 順 ) 의 경계를 관해야 한다. 5 청정걸식은 비구의 정명( 正 命 )이다. 이 외에는 사 명( 邪 命 )에 속하므로 버려야 한다. 6 이 문에 들어오면 다만 걸식으로 구해 야 한다. 노병고( 老 病 苦 )가 있어 걸식을 하지 못할 때는 자비심으로 수호해야 한다. 7 회중( 會 中 )에 청정하지 않은 자는 제명( 除 名 )하여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42) 긍선은 선을 우위에 두고 성문계와 대승계보다는 중국의 선종과 같이 대소승계를 적절히 수용하여 간단하게 청규를 제정하고 있다. 참선수행 41) 休 靜, 禪 家 龜 鑑 ( 韓 佛 全 7, 639b - c). 42) 亘 璇, 修 禪 結 社 文 科 釋, 寺 中 規 繩 ( 韓 佛 全 10, 547-548a).
동아시아 계율 이해 연구 / 신성현 143 을 함에 있어 기본적으로는 지계하여 자기를 청정히 하고, 자비심으로 대중을 두호하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기를 염원하며 열심히 수행정진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는 안팎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던 시기이다. 일제시 대는 일본불교의 영향으로 대처식육( 帶 妻 食 肉 )을 하는 자가 많았으나, 한편으 로는 계율을 수호하기 위해서 힘쓰는 자가 있었다. 이 시대는 대처식육을 수 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큰 문제로 대두하였다. 이 문제로 인하여 불교정화 운동이 일어났고,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되었다. 이 시기에 용성( 龍 城, 1864~1940)은 청정지계를 주장하였다. 선율병행( 禪 律 並 行 )과 선농일치( 禪 農 一 致 )를 강조하고, 청소년운동의 행동지침으로 세속오계를 제정하였다. 세속 오계는 국가에 충성하고( 國 家 忠 誠 ), 부모에게 효도하고( 父 母 孝 道 ), 사장을 공경하고( 師 長 恭 敬 ), 벗은 신의로 사귀고( 交 友 信 義 ), 전쟁은 지혜로 이긴다 ( 戰 爭 智 勝 ) 라는 것이다. 학명( 鶴 鳴, 1867~1929)은 조선의 선을 중국과 일본에 알렸으며, 서민들을 제도하고 깨우치기 위해 역동적인 삶을 문학작품으로 형상화한 문필가이다. 그리고 선농일치를 주장하며 선불교를 개척하기 위해 힘썼다. 학명은 탁발과 시주에만 의존하던 기존의 불교계를 비판하고, 노동과 참선을 병행하는 반선 반농운동( 半 禪 半 農 運 動 )을 주창하고, 내장선원규칙 제정하였다. 이 내장선원 규칙에서는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자의 자격을 새로 출가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기존의 승려는 부지런한 성품이 있는 자에게만 한정하고 있다. 파계( 破 戒 )와 사행( 邪 行 ), 폐습( 弊 習 ) 등은 일체 금하고, 범패를 학습하고 찬불( 讚 佛 ) 자찬( 自 讚 ) 회심( 回 心 ) 환향곡( 還 鄕 曲 ) 등을 짓거나 창( 唱 )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43) 이 운동은 당시 불교계에 매우 참신하고 혁신적인 불교운 동이었다.
144 선문화연구 제19집 선사이면서 율사인 동산( 東 山, 1890~1965)은 계율은 도에 들어가는 요긴한 문이며, 세상을 벗어나는 바른 길이라며 적극적으로 계를 지킬 것을 주장하였 다. 그리고 해( 解 )와 행( 行 )이 둘이 아닌 하나로 보았다. 해와 행을 나누고 다 르다고 한다면 온전한 깨달음이 아니라고 하였다. 또 5계와 10계, 250계, 범 망경보살계 등의 계를 지닌 때가 자성을 회복하는 때이며, 자성을 회복하는 때가 계와 정을 지닌 때임을 말하고 있다. 동산은 보살계 수계산림을 자주 열 어 범망경 을 강설하고 대승계율이 무엇인가를 천명하였다고 한다. 44) 3. 일본계율의 발전 일본불교의 계율의 기원은 백제로부터 시작되었다. 계율을 중심으로 발전 하였던 백제불교는 일본불교의 계율 수용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다. 원흥 사가람연기 에는 일본의 최초 니승( 尼 僧 ) 선신니가 고구려의 비구 혜편( 惠 便 ) 으로 부터 득도하였고, 선신니( 善 信 尼 ) 등 대중이 백제로 유학을 가서 이부승 가( 二 部 僧 伽 )에서 비구니계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고 한다. 45) 숭준( 崇 峻 ) 3년 (590) 백제에서 수계한 비구니들은 일본으로 귀국하여 반달마다 포살을 하였 는데, 이 때문에 출가하여 수계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46) 일본불교는 백제의 종말기부터 중국과 직접 왕래를 시작하고, 많은 승려들 을 유학 보냈다. 이 가운데 도광( 道 光, 653~678)은 중국에 들어가 도선 만의 43) 강유문, 내장선원일별, 불교 46-47 合 號, 83면. 44) 동산대종사 문집편찬위원회, 동산대종사 문집 (부산: 범어사, 1996) 참조. 45) 元 興 寺 伽 藍 緣 起 ( 大 日 本 佛 敎 全 書 118), 140면. 46) 日 本 史 料 21, 崇 峻 紀 3년, 庚 戌 3 月 條 ( 日 本 書 紀, 217면) 참조.
동아시아 계율 이해 연구 / 신성현 145 ( 滿 意 ) 회소 등에게서 계율을 배웠다고 한다. 도광은 도선의 사분율산번보 궐행사초 를 가지고 귀국하여 그 해에 의사분율초찬록문 依 四 分 律 抄 撰 錄 文 1권을 발표함으로써 중국에서 일본에 최초로 율종을 전래한 사람이 되었다. 이때까지도 구족계의식이 여법하지 않았으므로 도광은 사분율 에 의거해 일 본의 비구, 비구니들을 규율하였다고 한다. 이로서 일본의 불교계는 겨우 본 격적인 계율을 지향하는 기반을 조성하였고, 중국에 유학하고 돌아오는 사람 들에 의해서 사분율 의 주소( 註 疏 )가 전래되어 계율사상이 널리 유포되었다 고 한다. 47) 일본불교는 승니령( 僧 尼 令 )에 의해서 불교의 정책이 보호에서 통제로 전환 을 하게 된다. 대보( 大 寶 ) 1년(701) 대안사에 27조로 구성된 승니령을 설치하 였다. 조명을 열거하면, 觀 玄 象 條 卜 相 吉 凶 條 自 還 俗 條 三 寶 物 條 非 寺 院 條 取 童 子 條 飮 酒 條 有 事 可 論 條 作 音 樂 條 聽 着 木 蘭 停 婦 女 條 不 得 輒 入 尼 寺 條 禪 行 條 任 僧 綱 條 修 營 條 方 便 條 有 私 事 條 不 得 私 蓄 條 遇 三 位 以 上 條 身 死 條 准 格 律 條 私 度 條 令 俗 人 敎 化 條 出 家 條 外 國 條 齋 外 布 施 條 梵 身 捨 身 條 등이다. 그 내용은 환속형( 還 俗 刑 )과 고사형( 苦 使 刑 )의 벌칙, 일반승니에 대한 규제, 삼강( 三 綱 ) 승강( 僧 綱 )에 대 한 규제 등이다. 48) 천평승보( 天 平 勝 寶 ) 7년(755)에 이르러 당승( 唐 僧 ) 감진 ( 鑑 眞 )이 동대사에 계단을 설치하고 구족계와 보살계를 전계하면서부터 일본 불교도들은 중요한 생활규범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49) 가정( 嘉 禎 ) 2년(1236) 동대사에서 자서수계( 自 誓 受 戒 )를 한 각성( 覺 盛, 47) 채인환, 백제불교계율의 전래와 전파, 한국불교학 11(서울: 한국불교학회, 1986), 99면. 48) 石 田 瑞 磨, 이영자 譯, 일본불교사 (서울: 민족사, 1995), 47-52면. 49) 채인환, 백제불교계율의 전래와 전파, 한국불교학 11(서울: 한국불교학회, 1986), 100면.
146 선문화연구 제19집 1194~1249)과 예존( 叡 尊, 1201~1290) 등에 의해 율종이 부흥되었다. 이 중에 예존은 계율을 연구하고 호지한 율승으로 적극적으로 포살과 안거 등을 행하 였다. 관원( 寬 元 ) 3년(1245) 별수( 別 受 )를 결행하고 별수계자( 別 受 戒 者 ) 26명 을 배출해낸 것과 사미니를 준 것이 주목되며, 사미니에는 그 2년 후에 육법 계를 주었으며, 다시 2년 후 건장( 建 長 ) 원년(1249) 법화사에서 12명에게 비 구니계를 주었다. 이것은 비구니라는 신분이 율종부흥이라는 형태로 일본에 서 처음으로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예존은 서대사를 중심으로 계를 설 하거나 수계를 통하여 사회구제 활동에도 노력하여 보살이라 추앙되었다. 또 인성( 忍 性, 1217~1303)은 극락사를 열고 관동에 율종을 넓히고, 계단을 만들 어 별수를 행했다. 구제활동도 활발하여 평상시의 시식 시약은 물론이고 다리 놓기, 우물파기, 목욕탕, 병원, 천민집단 형성, 살생금지의 장소 63개소를 정 하는 등 적극적이며 다채로웠다. 살생금지는 살생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을 곤 란한 처지에 빠지게 하여 비판을 받았다. 50) Ⅳ. 결어: 동아시아 계율의 현대적 의의 계율은 삼학( 三 學 ) 가운데 첫째로 불도( 佛 道 )를 실천하는 기초이며, 삼장 ( 三 藏 ) 가운데 하나로 불교교학 가운데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육바라밀 가 운데 계바라밀로 보살이 반드시 수행해야 할 덕목이다. 이와 같이 중요한 위 치에 있는 계율을 불교도에게 한정시키지 말고 그 정신을 현대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확산시킨다면 인류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는 보 50) 石 田 瑞 磨, 이영자 譯, 일본불교사 (서울: 민족사, 1995), 201-202면.
동아시아 계율 이해 연구 / 신성현 147 다 빨리 올 것이다. 계율은 불교도들이 지켜야 할 행위규범으로 신구의( 身 口 意 ) 삼업으로 나쁜 업을 짓는 것을 방지하고 육근( 六 根 )을 보호하여 선근을 증장시킨다. 계는 자 발적으로 악행을 멀리 떠단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윤리도덕이며, 율은 상가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비구 비구니들이 지켜야 할 상가의 규범으로 세간의 법률과 같아서 강제적이다. 계율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가장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며, 시대와 장소를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여 왔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교단과 수행자들에게 항상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계율을 떠 나서는 개인의 깨달음과 교단의 평화를 생각할 수 없다. 불교 계율은 항상 그 시대의 환경에 맞게 제정되어 수행되었다. 초기불교 에서는 오계를 비롯하여 8계, 10계, 250계 등을 지켜 개인은 자발적으로는 악 을 멀리하려고 노력했으며, 또 상가라는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율 을 강제적으로 지키도록 하였다.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의 수행덕목인 육바라 밀 가운데 계바라밀로서 십선계와 삼취정계를 수행하였다. 이 계의 내용은 삼 업에 관한 일상적인 실천덕목들로 자발적인 결의로서의 계율이다. 그리고 십 선계를 스스로 행할 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행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중국불교 에서 계율사상의 전개는 성문계로부터 대승보살계로의 변화과정이다. 5세기 초에 성문계가 번역되기 시작하여 크게 유행하였고, 연구도 활발하였다. 그 중에 사분율 이 크게 성행하여 사분율종의 소의경전이 되었다. 그리고 사 분율 에 의거한 수계의식 등이 이루어졌다. 또 대승경론에 설해진 대승보살 계가 유행하였는데, 범망보살계가 대표적이다. 범망보살계에서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적극적인 선행을 강조하였다. 또한 선종에서는 기존의 계율이 그 당시의 수행생활에 적합하지 않다고 믿고 계율의 정신을 살리면서도 새롭게 변형된 청규를 제정하여 교단을 운영하고 수행자들의 수행덕목으로 삼았다.
148 선문화연구 제19집 성문계에서 금지하고 있는 노동을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수행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 교단이 경제적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한국불교도 그 영 향을 크게 받아 재가자들에게 맞는 계율을 제정해 실천하도록 하였다. 대체적 으로 보살계의 연구가 성행하였고, 계율의 정신과 시대적인 배경을 조화롭게 받아들여서 제정한 청규를 실천하였다. 때로는 지나친 계율의 실천으로 부정 적인 측면을 양산하기도 하였지만, 나와 남을 함께 배려하여 윤리적인 사회가 될 수 있도록 공헌한 것도 사실이다. 불교의 계율에는 자비와 평등, 평화의 실천이 있다. 불교는 자비의 종교로 일체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자비를 실천한 다. 자비는 인간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방법론을 말하고 있다. 모든 인간에게 악을 떠나 선을 행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 선행 속에는 생명의 존엄성이 내재해 있다. 계율 가운데 불살생계는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길 뿐 만 아니라 억압받고 있는 생명을 살려주는 방생의 의미도 포함한다. 생명의 존엄은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이 평등하게 존귀하다는 것이다. 자타가 둘이 아 닌 하나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자비는 나와 남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며, 나의 고통과 행복뿐만 아니라 타인의 고통과 행복을 함께 고려한다. 그래서 타인의 고통을 함께 의식하고 함께 괴로워하고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한 다. 이처럼 자비의 힘은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이 평화 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이 지구상의 평화는 불교의 계율사상을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할 때 온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출가수행자와 같은 계율을 지킬 필요는 없지만, 가장 기본적인 오계만이라도 지킨다면 인류의 삶의 질은 더욱 향상될 것이다. 개인 의 일상생활부터 악을 멀리하려고 노력한다면 이 거대한 세계 또한 변화할 것 이다. 이 지구상에 당면하고 있는 전쟁, 갈등, 폭력, 부정부패, 환경파괴, 약물
동아시아 계율 이해 연구 / 신성현 149 남용 등의 사회적인 문제는 개인의 생활을 변화시킴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공동체의 질서는 나를 생각하는 만큼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할 때 유지될 수 있다. 계율은 개개인의 올바른 깨달음을 위하여, 교단의 청정과 화합을 위하 여, 중생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제정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종교에 얽매이 지 않고 불교의 계율을 한 가지만이라도 지킨다면, 이 세상은 청정하고, 화합 하여 평화를 유지할 수 있고, 이익과 안락함을 얻어 피안에 이를 수 있을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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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Study on Understanding of Vinaya Pitaka in East Asia Shin, Sung - hyun Sila Vinaya, which was established along with the start of Buddhist Sangha, experienced great and small changes in the acceptance procedure to Korean and Japanese Buddhism. Their periodic background, culture, political, social, cultural climate different from India s created their own novel Sila Vinaya. Originally, Sila and Vinaya had been used as different concepts. The early Buddhism divided up Sila and Vinaya distinctively. Sila is a subjective resolution of individuals, and has no penalties of violation. It corresponds to morals and ethics of the world, and puts emphasis on spontaneity. Vinaya is a regulation of monastic community, and has penalty of gravity. It corresponds to a law of the world and heteronomous. China didn t divide up Sila and Vinaya and used them together. The word Sila Vinaya was created in the process of scripture translation. It was used to refer to regulations of monastic community, Paṭimokkha, and accepted to Korean and Japanese Buddhism affecting them profoundly. Since Brahamajala Sutra was translated and distributed, Brahamajala Sila held a
156 선문화연구 제19집 dominent position over Shravaka Sila and was studied actively. Especially, Cheontae Jiui and Hyeonsu Beopjang interpreted and understood Sila and Vinaya freshly. Korea started to understand Sila and Vinaya as accepting Buddhism. Silla did active research on Sila Vinaya. Won - gwang and Ja - jang built its foundation. Before unified Silla, Dharmagupta Vinaya was a center of the research; and after unified Silla, Brahamajala Bodhisattva Sila took the position. Won - hyo was a key figure of the research. His Sila Vinaya concept focused on Brahamajala Sila. It was applied to both monks and lay people, and its criteria was internal motive of liberation of sentient beings. In the Koryo Dynasty, Sila Vinaya was passed down by Ji - nul and Ji - gong. Ji - nul s Gwonsujeonghyegyeolsamun and Gyechosimhaginmun were influenced by Cheonggyu. Ji - gong gave commandments to the fourfold assembly by Musaenggye. It had a profound impact onf people, making them quit enjoying alcohol and meat and avoid shamans. In Joseon Dynasty, despite its anti - Buddhism policy, Gi - hwa, Hyu - jeong and Geung - seon focused on Sila Vinaya spirit, and it was handed down by Hak - myeong and Don - san in modern times. Sila Vinaya of Japanese Buddhism was based on Baekje. Baekje Buddhism, Sila Vinaya - centered, played an absolute role to acceptance of Sila Vinaya in Japanese Buddhism. Do - gwang obtained Do - seon s Sbunyulsanbeonboguelhaengsacho and published the first volume of Uisabunyulechochanrokmun, to become the first initiator of Yule-jong to Japan in China. Because Upasampada ritual was not legal until that time, he was said to regulate Japanese Bhikkhu and Bhikkhuni under Dharmagupta
동아시아 계율 이해 연구 / 신성현 157 Vinaya. This managed to create foundation aiming at real Sila Vinaya in Japanese Buddhism. Ever since Kim - jin, a Tanng Dynasty monk, installed a stairway in Dongdaesa and spread Upasampada sila and Bodhisattva sila in the seventh year of Cheonpyeongseungbo(755), Japanese Buddhists were handed down major living criteria. Yule - jong was reestablished by Gak - seong( 覺 盛, 1194~1249) who received Buddha s precepts on his own in Dongdaesa in the second year of Ga - jeong(1236) and Ye - jon( 叡 尊, 1201~1290) Key words: East Aisa, Sangha, Maitri-karuna, Sila Vina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