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결정사안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결과 신청인 구명서가 불법구금, 가혹행위, 허위자백 등을 통해 간 첩죄로 조작된 인권침해사건으로 밝혀져 진실규명으로 결정하고 피해자와 가족의 피해 및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 사례. 결정요지 1. 보안사령부는 신청인 구명서를 불법체포 연행한 후, 구속영장이 집행되기까지 41일 동안 영장 없이 가족 및 변호인의 접견을 차단한 채 보안사령부에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구타 등 가혹행위를 통하여 허위자백을 받아 간첩죄로 조작하였다. 2. 서울지방검찰청은 불법구금 등 보안사령부와 안전기획부의 불법적인 수사사실을 알 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청인의 자백에 의존하여 수사서류를 작성한 뒤 서울지방법원 에 기소하였다. 3. 서울지방법원은 구명서가 공판과정에서 간첩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하였음에 도 불구하고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를 통해서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와 수사기관의 허위 보고서 등을 유죄증거로 삼아 구명서에게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 하였는바, 이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헌법적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 전 문 사 건 바-6157,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신청인 구명서 결정일 2008. 11. 18. 주 문 이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진실규명 으로 결정한다. 이 유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297
제4권 Ⅰ. 조사개요 1. 사건개요 가. 신청배경 신청인 구명서(남, 당시 33세)는 서울 명동 소재 코스모스백화점 내 한식점 향진 을 운 영하던 중, 단골손님으로 출입하면서 알게 된 이 (여, 당시 49세)로부터 재일교포 기 를 소개받고, 사업자금을 얻을 목적으로 1982.부터 1985.까지 5차례 일본을 왕래하면 서 기 를 만나고 귀국하였다. 신청인 구명서는 1985. 9. 16. 경기도 광명 소재 본인 자택에서 영장 없이 국군보안사령 부(이하 보안사 라 한다) 수사관들에 의해 연행되어 약 41일간 조사를 받은 뒤, 1985. 11. 4. 서울지방검찰청(이하 서울지검 이라 한다)에 송치되어 조사를 받고, 국가 보안법 제4조제1항2호(국가기밀누설), 6호(허위사실유포), 제5조제2항(금품수수), 제6조 제2항(잠입탈출), 제8조제1항(회합통신), 제3항(미수), 형법 제98조제2항(간첩) 등 위반혐 의로 1985. 12. 2.에 기소되어, 1986. 4. 16. 서울형사지방법원(이하 서울지법 이라 한다)에서 징역 15년 및 자격정지 15 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하여 1986. 7. 22. 서울고등법원(이하 서울고법 이라 한다)에서 징 역 7년 및 자격정지 7년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되어 복역 중 1991. 5. 25. 가석방되었다. 나. 판결요지 피고인 구명서는, 1) 1982. 1. 26.~29., 7. 21.~25., 9. 24.~29., 11. 5.~10. 도일( 渡 日 )하여 재일지도원 기 를 만나 포섭되어, 현 정권에 불만이 있는 친구나 학생을 포섭하여 지하조직을 구축 하고, 고아나 가난한 아이들을 키워 육군사관학교에 보내 고급장교로 양성하라는 등의 지령을 받음으로써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회합 통신하고, 2) 1982. 1.~1982. 11.까지 4차례 도일하여 기 로부터 일화 10만 엔을 네 차례에 걸 쳐 받음으로써 금품을 수수하고, 3) 1982. 9. 25. 기 를 만나 1971.부터 1973.까지 공군에 복무하면서 직무와 관련하여 알게 된 티.엠.오(TMO) 군산비행장의 비행기 보유 현황 등의 내용을 말해주어 군사상 기 298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밀을 누설하고, 4) 1982. 10. 초순경 조 과 만나 녹용수입 관계에 대한 내용을 파악함으로써 기 의 지시대로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하여 간첩하고, 5) 1982. 10. 초순 군산 제일다방에서 친구 채, 후배 조 에게, 동년 10. 하순 동 업자인 박, 김 에게, 1985. 1. 초순 남대문로 팔마부동산 사무실에서 김 사장 에게 광주사태에 관한 말을 함으로써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6) 1984. 5. 초순 고려대학교 앞을 지나가면서 학생시위 상황을 파악함으로써 지령을 받고 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함으로써 간첩하였다는 것이다. 다. 신청취지 신청인 구명서는 보안사 수사관에 의해 강제연행되어 장기간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고 문, 가혹행위로 인한 허위자백을 근거로 간첩행위가 조작되었다며 2006. 10. 23. 진실화해 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하였다. 2. 조사의 근거와 목적 이 사건은 신청인 구명서가 보안사 수사관들에 의해 장기간 불법구금된 채 구타, 물고 문, 전기고문 등의 가혹행위를 당하여 그 실체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하고, 이 사건의 사전 조사과정에서 41일간의 불법구금 등이 확인되었므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 본법 (이하 기본법 이라 한다) 제2조제1항4호에서 정한 진실규명의 범위에 해당하고, 수 사관들의 불법구금, 가혹행위 등도 기본법 제2조제2항, 형사소송법 제420조7호, 제422조 가 정한 재심사유에 해당하여 조사개시의 요건을 갖추었다. 따라서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신청인에 대한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를 규명하고, 기본법 제4장이 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국가로 하여금 신청인과 그 가 족의 피해 및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법적 정치적 화해조치, 국민통합을 위한 필요한 조치 등을 취할 필요성이 있으므로 2007. 11. 20. 조사 개시를 의결하고 조사를 진행하였다.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299
제4권 3. 규명과제 가. 불법구금 여부 신청인은 보안사 수사관들에 의해 1985. 9. 16. 영장 없이 강제연행되어 1985. 10. 26. 구 속영장이 집행될 때까지 41일 동안 불법구금상태에서 수사를 받았다고 하므로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나. 가혹행위 여부 신청인은 강제연행된 후 아무것도 묻지 않고 구타를 당하다가 평양에 간 적이 있는지 를 추궁당하면서 물고문, 전기고문, 성기고문 등 고문을 당하였고, 진술서를 작성하면서 철제의자를 사용한 구타, 볼펜을 사용한 손가락꺾기 등 가혹행위를 당하였다고 하므로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다. 범죄사실 조작 여부 신청인은 지령이나 입북 권유, 국가기밀 탐지 등의 범죄사실을 행한 사실이 없는데, 보 안사 수사관들이 고문 가혹행위를 가하면서 범죄행위를 한 것으로 조작하였다고 하므로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4. 조사방법 가. 자료조사 국군기무사령부 보관자료 3권 439쪽 서울지방검찰청 기록관리과 보존 수사 및 재판기록 13권 3134쪽 국가기록원 보존 판결문 및 수용자신분장 4권 899쪽 보안사의 수사 착수경위 및 수사과정, 검찰의 수사과정, 법원의 재판과정 등을 분석, 검토하였다. 나. 진술조사 신청인 및 참고인 26명 1), 수사관 9명 2) 에 대한 진술청취를 통해 수사과정, 불법구금, 가 혹행위 여부 및 자백의 경위 등을 조사하였다. 300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Ⅱ. 조사결과 1. 사건배경 가. 시대적 배경 1970, 80년대에는 남북한이 정치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치한 상태에서 다방면에서 대 립해오다가, 1980년 남한에서는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세력의 등장으로 북한의 침입 을 방어한다는 명분으로 반공정책을 더욱 강화하여 일부 무고한 사람들까지 간첩으로 만 들기도 하였다. 3) 특히 재일동포와 관련한 간첩사건의 경우는 남한과 일본의 정치 사상적 환경의 차이 로 인하여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이 많았으므로 그만큼 조작의 시비도 끊이지 않았다. 일 본에서 유학 등으로 홀로 한국에 입국한 재일동포들은 한국 내에서 미약한 인적 관계와 언어상의 문제로 재판과정 자체에 어려움을 겪는 한편, 재일동포 친척이나 지인으로부터 생계비 내지 사업자금을 얻거나 얻을 목적으로 일본에 취업 또는 방문했다가 간첩으로 몰려 이렇다 할 사회적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간첩으로 낙인찍히고 사회적으로 주목도 받 지 못하였다. 4) 이 사건을 담당한 보안사 대공처 공작과는 대공사건의 직접적인 수사보다는 주로 공작 업무를 수행하였는데, 첩보 획득을 비롯한 방첩공작, 침투방지공작, 유학장병 활용, 특수 요원 관리, 공작근원 발굴 등의 업무를 하였다. 5) 당시 보안사 수사관이나 공작관 중에는 일본 유학 중에 조총련계 사건에 연루되었다가 보안사에 채용되거나, 보안사 침투공작계 획에 따라 조총련계 가족을 통해 입북하여 간첩교육을 받고 남파된 수사관들이 있었고, 검거된 간첩을 기소하지 않고 협조원으로 활용한 경우도 있었다. 1) 참고인 조, 최, 이 는 사망, 김, 이 는 말소자로 확인되었다. 2) 동 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보안사령부 공작과 수사관은 신, 조, 김, 장, 한 (당시 계장), 최 (당시 공작과 과장)이었고, 구명서의 연행에 참여한 서울 506보안부대 수사관은 권 (말소), 이 (수사계장)이며, 안기부 수사관 김 은 사망하였다. 법무부 회신문(공공형사과-895, 2008. 4. 18.)에 따 르면, 구명서 사건으로 한, 조, 장 이 국가보안유공자 상금을 받은 사실이 확인되었다. 3) 과거의 대화, 미래의 성찰-학원간첩편Ⅵ,국정원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2007), 254쪽. 4) 과거의 대화, 미래의 성찰-학원간첩편Ⅵ,국정원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2007), 288쪽. 5)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김태홍사건기록철 2006~2007, 조사2과 자료 조사보고, 붙임자료 참고인 맹 진술조서 中 일부 인용.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301
제4권 나. 김 및 이 사건 보안사는 1985. 11. 1.에 학원산업계 등 사회각계각층에 지하망을 구축, 각종 폭력소요 를 일으켜 사회혼란을 조성하기 위해 군부침투 김 일당, 나 형제 등 5개 간첩망 16명을 검거하였다고 발표하였다. 6) 김 는 이 의 소개로 1980. 6. 23. 도일하여 재일지도원 기 를 만나 포섭되어 동년 5. 20.부터 6. 11.까지 23일간 북한에 체류하면서 사상교양 및 지령을 받고 국내에 입 국하여 지내다가 1985. 6. 10. 보안사 공작과 수사관에 의해 검거 7) 되고, 1985. 8. 6. 서울지 검에 송치되어 조사를 받고 1985. 9. 2. 기소되어 1985. 11. 23. 서울지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8) 받고 항소하고, 2심에서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고 상고하였으나 기각 되었다. 당시 이 는 소재 불명으로 기소중지되었다. 이 는 1981. 4.경 위 김 와 이 를 알게 되어 이들의 소개로 동년 9. 22. 도일하 여 기 를 만나 포섭되어 1981. 11. 14.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동년 11. 20.부터 12. 15.까지 26일간 북한에 체류하면서 사상교육 및 지령을 받고 일본에 귀환한 후 일본에 거주하다가 1985. 6. 25. 보안사 수사관에 의해 검거 9) 되어 조사를 받고, 기소유예 의견으로 송치되었다. 10) 이 사건은 보안사가 1985. 검거된 김, 이 사건 조사과정에서 신청인 구명서도 재일지도원 기 로부터 포섭되었다는 첩보를 입수하여 1982. 1.부터 1982. 10.까지 일본 을 왕래하면서 사업 차 기 를 만나거나 서신을 교환한 것을 문제 삼아 간첩죄로 처벌 한 것이다. 2. 사건경위 가. 수사 착수경위 1) 수사기록 보안사 대공3과 작성의 1985. 10. 7.자 정보사범 발생 및 검거보고 및 국가보안법위 6) 조선일보(1985. 11. 2.자). 7) 대공활동사, 보안사령부(1987), 418쪽. 8) 85고합968(서울형사지방법원 제14부 판결 재판장 판사 안, 판사 이, 판사 권 ). 9) 위 대공활동사, 425쪽. 10) 김 의 수사기록 중 이 송치서 1035쪽. 302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반 등 피의자에 대한 인지동행보고 11) 에는 피의자 구명서에 대하여 송치간첩 김 및 이 조사과정에서 도피간첩 이 (85. 9. 2. 간첩죄 기소중지)와 의남매를 맺은 후 동 이 의 주선으로 도일하여 재일공작지도원 박 식과 접촉, 도일 시마다 공작원과 접촉 한 행위로 보아 자신들과 같이 포섭되었을 것이라는 진술에 따라 망부식 및 미행 등으로 범증 수집타가 검거동행 하였다고 되어 있다. 한편, 서울506보안부대 대공과는 1981. 이 에 대한 간첩신고가 접수되면서 이 를 비롯한 구명서, 김 등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2) 신청인 및 참고인 진술 신청인 구명서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이 사건 당시 보안사 공작과 갈월동분실에 서 수사관 하는 말이 김 가 너를 얘기해서 잡았다 고 진술하였는데, 12) 제보자 이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1981. 당시 일본을 왕래하던 장모 이 가 장롱에 숨고, 소형카메라나 녹음기 등을 보면 놀라는 등 정신분열증세를 보여서 서울 506보안부대에 수사관으로 근무하던 친구 권 에게 신고하였고, 중구청 대공상담소에 도 같은 내용으로 신고했다 고 진술하였다. 13) 3) 수사관 진술 서울506보안부대 대공과 수사계장 이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거동수상자 첩보 입수보고서(1981. 5. 19.자) 는 본인이 서울506보안부대에 발령받아 근무하기 전에 전임 수사계장에게 보고되었던 것 같고, 실적과 성과 거양을 위해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과거 첩보에 대해 추가 내사하여 수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구명서의 경우 이에 해당하는 것 같고, 추가첩보 입수 보고(1985. 3. 4.자) 및 내사중간보고(1985. 9. 5.자) 를 작성한 권 수사관은 제보자인 이 과는 친구이며, 이 의 신고에 의해 이 및 구명 서에 대해 내사를 진행하였다 고 진술하였다. 14) 구명서를 조사한 수사관 신, 김 및 조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김 가 조사과정에서 구명서를 제보하여 조사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신 은 김 가 기 에게 포섭되어 북한에 갔다 왔다고 자백했고, 이 도 기 에게 포섭되어 북한에 11) 수사기록 국가보안법위반 등 피의자 인지동행보고 (1985. 10. 11.), 75-93쪽. 12) 2007. 12. 6. 진술청취. 13) 2008. 9. 2. 면담조사 14) 2008. 8. 5. 면담조사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303
제4권 다녀왔다고 자백했기 때문에 기 를 만난 것 자체가 대공혐의점이라고 할 수 있다 고 진술하였다. 15) 4) 소결 신청인 구명서에 대한 수사는 두 방향에서 진행되었는데, 첫째는 보안사 공작과가 재 일협조망을 통해 조총련 관련 재일교포와 국내인의 접촉을 지속적으로 내사해오던 중 1985. 김 를 검거하기에 이르렀는데, 김 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구명서에 대한 제보 를 받아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것이고, 둘째는 서울506보안부대가 1981.경 이 의 신 고에 의해 거동수상자 이 를 내사하다가 1985.부터 이 와 가까이 지내던 구명서를 추가로 내사한 것이다. 나. 보안사 연행 및 수사과정 1) 유인공작 보안사 대공활동사에는 공작과에서는 김, 이 검거 보도를 하면 입국하지 않 을 가능성이 많다고 판단하여 구명서를 국내에 유인하기 위해 이미 귀국한 중앙회관 사 장 남궁모( 某 )의 협조를 얻어 부사장인 김모( 某 )로 하여금 구명서에게 잠실체육공원 내 의 위락시설 추진 협의를 해야 하니 빨리 귀국하라 는 전화를 걸도록 하는 한편, 공항에 수배 조치를 하고 기다리고 있던 중 8월 28일 구명서가 입국함으로써 유인공작을 성공시 켰다 고 되어 있다. 김 16)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일본에서 박람회가 끝나기 한 달 전쯤 서울사무 실에서 급하게 귀국하라는 연락을 받고 귀국하여 다음날 보안사 수사관을 만났다 면서 당시 보안사 수사관이 하는 말이 구명서가 간첩이다. 조사해야 하니 외국으로 도망가지 않도록 한국에 입국시켜라.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함께 데리고 들어와라 고 했고, 자수시키 겠다 고 하니 구명서 외에 다른 사람들도 검거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을 잡 을 수 없게 되어 안 된다 고 해서 그런 줄 알고 보안사 수사관들의 말만 믿고 시키는 대 로 구명서를 데리고 귀국했다 고 진술하였다. 17) 15) 2008. 8. 14. 진술청취. 16) 1985. 당시 쓰꾸바박람회 내 중앙회관 부사장(사장 남궁 의 사위). 17) 2008. 4. 8. 진술청취. 304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2) 연행 및 인수인계 과정 서울 506보안부대는 이 를 내사하던 중 관련자인 구명서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내사 에 들어가 1985. 9. 16. 구명서를 경기도 광명 자택에서 연행하여 서빙고분실에서 조사하 였고, 1985. 9. 19. 구명서에 대한 동행수사 승인을 상신하였다. 18) 같은 날 보안사 공작과 는 구명서의 신병을 인수받아 19) 갈월동분실에서 조사를 하여 1985. 10. 25.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10. 26. 구속을 집행하였으며, 1985. 11. 4. 서울지방검찰청에 송치하였다. 신청인 구명서는 처음에 연행된 곳을 몰랐는데 2, 3일 쯤 지나 서빙고동사무소에서 알 려드립니다 라는 방송을 듣고 직원에게 물어보아 자신이 연행된 곳이 서빙고대공분실임 을 알았다며, 일주일 후에 갈월동대공분실로 옮겨와 조사를 받았는데, 당시 수사관들도 달랐다 고 진술하였다. 20) 수사관 신 은 구명서가 일본에서 귀국하여 집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집 주변에 잠 복하여 감시하고 있었는데, 얼마 후 서울506보안부대에서 구명서를 연행하였다는 보고 가 사령부에 올라와서 서울506보안부대에서 구명서를 연행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 다 면서 인수증이 1985. 9. 19.로 되어 있으면 이 날짜가 맞을 것이고, 최 과장이 직 접 갔을 것이며, 다음날(9. 20.) 구명서의 압수물품을 인수받기 위해 비교적 높은 직급이 었던 김 수사관이 직접 다녀온 것 같다 고 소상히 진술하였다. 21) 수사관 조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구명서는 인수받기 2, 3일전인 1985. 9. 16. 경에 서울 506보안부대에서 연행하였고, 이 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1985. 9. 21. 에 연행되었다는 기록이 맞을 것이다 라고 진술하였다. 22) 다. 서울지검의 수사과정 서울지검은 1985. 11. 4. 제1회, 11. 6. 제2회, 11. 8. 제3회, 11. 11. 제4회, 11. 13. 제5회, 11. 16. 제6회, 11. 26. 제7회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한 후 1985. 12. 2. 서울지법에 기소(검 사 이 )하였다. 당시 구명서의 처 이 (당시 25세)는 국가보안법 제10조(불고지죄) 위반혐의로 구명 18) 국군기무사령부 입수자료 중 수사승인 상신(1985. 9. 19.), 188-191쪽. 19) 국군기무사령부 입수자료 중 인수증 192쪽(구명서 상기인을 1985. 9. 19.부로 정히 인수함. 장소 : 506분실, 시간 : 9. 19. 22:00, 중령 최 ). 20) 2007. 12. 6. 진술청취. 21) 2008. 8. 14. 진술청취. 22) 2008. 9. 24. 진술청취.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305
제4권 서와 함께 1985. 11. 4. 송치되어 11. 7.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 조사를 받고 1985. 12. 2. 기소유예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라. 재판과정 1) 서울지법 서울지법은 1986. 2. 3. 1차를 시작으로 4. 16. 6차 공판까지 진행하였다. 피고인 구명서 는 재일교포 기 를 만난 것은 사실이나 위 기 가 조총련 관련자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고, 교양 및 지령을 받은 사실 등 대부분의 간첩혐의를 부인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4. 16. 6차 공판에서 피고인에게 포섭되어 범행에 이르렀으나 내용이 경미하고, 입북 권유 를 수차 물리친 점을 정상 참작 하여 징역 15년 및 자격정지 15년을 선고(재판장 이, 판사 서, 강 )하였다. 위 판결에 대하여 피고인은 일부 사실에 대해 범의가 없고, 혐의내용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일부 내용이 국가기밀에 속하는 사항이 아니라는 취지로 서울 고등법원에 항소하였다. 2) 서울고법 서울고법은 1986. 7. 8. 1차 공판을 거쳐 7. 22. 2차 공판에서 사실오인을 주장하는 항소 논지는 모두 이유 없고, 선고한 형량이 너무 무겁다고 인정되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재판장 김, 판사 이, 김 )하였다. 항소 이후 신청인은 상고하려 하였지만, 피고 측 변호인 박 이 국가보안법 피의사 건의 경우 7년형 선고는 최소형량으로 상고해도 별 효과도 없을 뿐더러 기각되면 3개월 만 손해 본다는 권유에 따라 상고를 포기하면서 23) 1986. 7. 28. 형이 확정되었다. 3.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 여부 가. 불법구금 여부 1) 수사기록 보안사 작성의 1985. 10. 7.자 정보사범 발생 및 검거보고 에 따르면, 신청인은 1985. 23) 구명서의 수용자신분장, 652-656쪽, 1986. 7. 22.-26. 접견표 내용 참조. 306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9. (원기록 훼손), 경기도 광명 자택에서 연행되었다. 보안사는 구명서를 검거하기 위해 공항망에 수배조치 등을 취하였고, 1985. 9. 서울5066보안부대에서 구명서를 영장 없이 연 행하였으며, 1985. 9. 19. 보안사 공작과에 인계되어 조사를 받았다. 한편, 1985. 10. 25. 서울 지법에서 발부받은 영장은 10. 31.까지 유효하다고 기재되어 있고, 10. 26. 집행되었다. 위 보고서에 의하면, 당시 신청인 구명서의 처인 이 도 1985. 9. 21. 자택에서 영장 없이 연행되었고, 1985. 10. 17.에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 라 한다)는 국대공(3)-243 호(85. 10. 14.)로 정보사범 검거 통보한 간첩혐의자 구명서는 구속 수사하고, 불고지 이 는 불구속수사 후 기소유예 의견으로 송치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정보사범 신병처리 조 정 지시를 하였다. 2) 신청인 진술 신청인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연행일은) 9. 16.로 기억한다. 10. 26. 검찰에 송치 되면서 연행된 지 꼭 40일이 되는 구나 라고 생각했고, 나중에 억울함을 풀기 위해 연행 날짜인 9. 16.과 10. 26.은 정확하게 기억해두고 있었다 라고 진술하였다. 24) 3) 수사관 진술 수사관 신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서울506보안부대에서 구명서를 연행한 후 2, 3일 후에 사령부에 검거보고를 했고, 사령부에서 바로 신병인수명령을 하여 갈월동분 실로 구명서를 인수받아 조사한 것이다 라면서, 다른 일반 사건에 비해 간첩사건의 경우 사법절차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복잡하기 때문에 구속영장 발부 전에 피의자를 임의동행하여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 고 진술하였다. 25) 수사관 김 역시 검사도 확인했을 텐데, 수사기록의 날짜들이 상식에 맞지 않게 작 성된 것 같다 고 하면서, 간첩사건에 있어서 구속영장 발부 전에 피의자를 연행하여 조 사를 하는 것은 당시 조사 관행이었다 고 진술하였다. 26) 공작과장 최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규정대로 하지 않은 것 같다. 간첩혐의 를 가지고 조사를 하는데, 피의자가 자백하지 않는다고 풀어주는 일은 없다 고 진술하 였다. 27) 24) 2007. 12. 6. 진술청취. 25) 2008. 8. 14. 진술청취. 26) 2008. 8. 13. 진술청취. 27) 2008. 9. 8. 진술청취.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307
제4권 수사관 조 도 영장 없이 장기간 구금하였던 것은 관행이고, 피의자를 영장 없이 구 금하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진술하였고, 구명서의 처 이 에 대해 불고지혐의로 1985. 9. 21.에 검거하여 안기부 불구속수사 후 기소유예 처분 지시가 있을 때까지인 1985. 10. 17.까지 구금되어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당시에는 불고지죄도 부모를 제외하고는 엄격하 게 적용되던 때라면서 이 역시 불고지죄를 적용하여 수사하기 위해 장기구금은 불 가피했던 것 같다 고 진술하였고, 당시 보안사는 국방부와 안기부에 보고하고 조정, 통 제를 받았다. 이 에 대해 불구속 기소유예 처분 지시가 내려왔는데, 통상의 경우처럼 가족의 신원보증서 28) 를 받고 풀어주었을 것이다. 본인이 직접 수사한 것이 아니라 잘 모 르겠지만 통상적으로 처리했을 것이다 라고 진술하였다. 29) 4) 검찰의 불법구금 인지 여부 수사기록 중 보안사가 작성한 국가보안법 위반 피의자 인지동행보고 에는 구명서에 대한 동행일이 정보사범 발생 및 검거보고 와는 달리 1985. 10. 11.라고 허위의 사실이 기재되어 있고 30), 조치의견 에는 범증 충분하나 여죄를 추궁하여 범증 보강 후 구속송 치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 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한편, 보안사 수사관이 작성한 신청인의 진술서 및 피의자신문조서 작성일자가 구속영 장 집행일인 1985. 10. 26.보다 이전인 1985. 10. 14.이고, 이 의 진술서 및 피의자신문 조서 작성일자가 1985. 10. 20.이며, 참고인 전 의 진술서 및 진술조서 작성일자는 1985. 10. 22.일 뿐만 아니라, 그 외 조, 송, 김, 윤, 남궁 의 진술서 및 진술조서 작성일자가 각각 1985. 10. 25.로 기재되어 있는바, 당시 검사는 신청인이 구속 영장 집행 이전에 이미 구속되어 있었고, 더불어 관련 참고인들에 대한 조사도 이루어졌 음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이 중 윤 의 진술서는 1985. 10. 8.로 작성되 었던 것을 1985. 10. 25.로 수정하여 기재하기도 하였다. 또한 복무확인증명서, 군경력증명서, 학원시위 등 국가기밀탐지수집한 사실에 대한 입 증자료인 신문기사에 대한 수사보고서들이 각각 1985. 10. 4., 1985. 10. 10., 1985. 10. 17. 부터 21.로 기재되어 있는데, 이 수사보고서들은 신청인의 진술에 따라 관련 입증자료를 수집하여 보고한 내용으로서 신청인의 구속영장 집행일인 1985. 10. 26. 이전부터 구금되 28) 수사기록 중 1197쪽. 구명서의 父 구은섭 명의의 신원보증서 는 1985. 10. 31.로 작성되어 있다. 29) 2008. 9. 24. 진술청취. 30) 형법 제227조 (허위공문서작성등) 공무원이 행사할 목적으로 그 직무에 관하여 문서 또는 도화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변개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308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어 조사받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이고, 송치기록에 첨부되어 있 는 자료이기 때문에 검사도 신청인의 불법구금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1985. 11. 16.자 신청인에 대한 제6회 피의자신문조서는 검사가 피의자에게 검 거일을 물어보고 답하기를 제 기억으로는 9. 16. 검거되어 조사받은 것으로 압니다 라고 기재되어 있다. 5) 소결 수사기록에는 신청인이 1985. 9. 19. 보안사 공작과로 인수인계되었다고 기재되어 있으 므로 최소한 9. 19. 이전에 연행되었고, 신청인과 수사관의 진술을 종합하면 신청인은 서 울506보안부대 수사관에 의해 광명시 자택에서 1985. 9. 16. 영장 없이 연행되었고, 신청 인의 처 이 도 1985. 9. 21. 광명시 자택에서 보안사 공작과 수사관에 의해 영장 없이 연행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연행 당시 신청인과 이 는 연행 사유나 변호인 선임 권, 가족에 대한 연락권의 고지를 받은 적이 없었고, 신청인은 구속영장이 집행된 1985. 10. 26.까지 영장 없이 구속되어 있었으므로 41일간, 이 도 영장 없이 36일 내지 41일 간 불법구금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 신청인은 보안사에서 연행되어 기소될 때까지 변호 사 접견 및 가족 면회가 금지 31) 된 채 약 79일 동안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은 사실도 인정된다. 또한 검사는 불법구금 등 보안사의 불법적인 수사사실을 알았을 것으 로 보이며, 또한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소홀히 하였다고 판단된다. 신청인과 이 는 민간인이었고, 범죄사실 또한 군형법 위반죄가 아니므로 명백히 군 법회의 관할 사건이 아니고, 따라서 보안사의 신청인과 이 에 대한 구속수사 자체가 불법이므로 신청인이 연행되었다가 신병이 검찰에 인도되고, 이 가 연행되어 석방되 기까지의 기간은 모두 불법구금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은 보안사, 조정통제 및 송치절 차를 맡았던 안기부와 검찰 모두 위법사실을 알고 있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신청인 등에 대한 불법구금은 형법 제124조 불법체포감금죄에 해당하며,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확정판결을 받을 수 없으나 불법구금이 확인된 만큼 형사소송법 제420조7호, 제422조 소정의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31) 구명서의 수용장신분장 30쪽. 접견금지 : 이 검사의 의뢰로 11. 7.부터 수사종결 시까지 금지함. 접견금 지해제 : 12. 3. 부로 접견금지를 해제함.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309
제4권 나. 가혹행위 여부 1) 신청인 진술 1985. 신청인이 서울지법에 제출한 탄원서에는 제가 어떠한 급박한 상황에서 수사를 받았으며, 혹독한 고문과 숨을 쉴 수 없는 고통에 못 이겨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꾸며 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고 기재되어 있고, 공판과정에서도 혐의사실에 대해서 지어낸 말이다, 꾸며낸 이야기다 라고 극구 부인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군복을 갈아입도록 한 후 하루 반 동안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구타를 당했다. 하루 반이 지나자 평양에 간 적이 있는지를 추궁하여 간 적이 없다고 하니 하루 동안 꼬박 때렸고, 물고문, 전기고문, 성기고문 등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 수사 관들이 추궁하는 대로 인정하였다. 고문 직후 평양에 다녀왔다 고 시인하고, 어디서 잤 냐 고 해서 평양여관에서 잤다 고 억지로 자백하였다. 서빙고분실에서 조서는 작성하지 않았다, 조부장이 들어오면 손가락에 볼펜을 꽂아 조이는 정도의 고문이어서 좀 편했는 데, 신이라는 수사관은 군용침대봉으로 전신을 구타하고 철제의자로 찍었다 고 진술하면 서 32), 서빙고대공분실에서의 고문에 대해 신청인은 의자에 앉자 뒤로 수갑을 채우고 머 리가 뒤로 젖혀진 채 얼굴에 젖은 수건을 올려놓고 고춧가루 탄 물을 부었다. 양손에 각 각 엄지와 새끼손가락, 양쪽 엄지발가락에 전깃줄을 묶은 후에 전기를 통하게 하는 전기 고문을 서너 차례 받으면서 기절을 했다. 성기에 끈을 묶어서 수사관이 잡아당기는 고문 도 하였는데 거의 탈진하여 자백할 때까지 물고문, 성기고문, 고춧가루고문은 계속 반복 되었다, 갈월동분실에서는 주로 뺨을 때리고 각목이나 철제의자로 온몸을 구타하였고 전기고문도 가했다. 한쪽 엄지와 새끼손가락, 한쪽 엄지발가락에 전깃줄을 감고 전기선이 연결되어 있는 군용전화기를 돌려 충격을 주는 고문이었다 고 진술하였다. 33) 검찰 조사 과정에서도 신청인이 두 번째 조사를 받을 때 혐의내용을 부인했더니 이 검사가 수사기관에서는 인정하더니 여기 와서는 왜 부인 하냐 며 슬리퍼로 얼굴을 때렸 다 면서 그날 밤에 구치소에 신 수사관과 조부장이 와서 검사한테 가서 왜 부인하 냐! 또 부인하면 다시 보안대로 와서 조사받게 할 것이다 라고 협박했다 고 진술하였다. 34) 32) 2007. 12. 6. 진술청취. 33) 2008. 6. 19. 진술청취. 34) 2007. 12. 6. 진술청취. 310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2) 참고인 진술 신청인의 친구 김 35)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상당히 억압, 공갈협박조로 말을 해서 굉장히 살벌했다 며 (조사실 안에 있던 욕조를 가리키며) 여기가 물고문하는 곳이 다 라고 했다 면서 여기서 살아서는 못 나갈 것이다. 여기선 죽어도 아무도 모른다 등의 말을 하면서 억압적으로 조사했다 고 진술하였고, 조사를 받을 때 수사관이 옆방에 구명 서가 있다고 말하였는데, 옆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구명서가 가혹행위를 받 고 있구나 생각했다. 옆방의 비명소리가 정확히 구명서 목소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수사 관이 너도 저렇게 고문을 받을 수 있다고 협박을 했다 고 진술하였다. 36) 향진식당 동업자였던 박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보안사 수사관이 기억나게 해줄까? 좋은 학교 나왔는데 기억이 안 나냐 하면서 따귀를 한 대 때렸다 고 진술하였 고, 37) 같은 동업자 김 은 수사관이 약을 먹겠냐고 물어서 무슨 약이냐 물었더니 신 경안정제라고 했다, 수사관이 당시 화를 내면서 책상을 꽝하고 내리쳤고, 뜨거운 맛을 한번 봐야겠네 라고 했다 고 진술하였다. 38) 팔마부동산 사장이었던 김 은 당시 한두 대 맞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당 시 진술서는 특별히 강요하지 않아도 찍으라면 찍고, 불라면 불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라고 진술하였고, 39) 피혁수출회사를 운영하던 송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보안 사 수사관이 너 지금부터 우리 말 잘 들어. 눈감고 머리 숙여. 우리 말 안 들으면 너 죽 어 라고 협박했다 고 진술하였다. 40) 3) 수사관 진술 수사관 김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피의자를 연행한 후 잠 을 많이 재우지 않았고 밤늦도록 평생자술서나 조서를 작성하는 일이 많았다 고 진술하 였다. 41) 35) 김 는 구명서의 고향 친구이며, 군산에서 병원의 사무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당시 보안사 수사관들에 의해 연행되어 갈월동분실에서 조사받으며, 많은 양의 진술서를 작성하였다고 진술하였으나, 수사기록에 는 김 의 진술서 및 진술조서는 첨부되어 있지 않다. 36) 2008. 2. 13. 진술청취. 37) 2008. 4. 7. 진술청취. 38) 2008. 1. 21. 진술청취. 39) 2008. 1. 16. 진술청취. 40) 2008. 4. 15. 진술청취. 41) 2008. 8. 13. 진술청취.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311
제4권 수사관 조 또한 피의자를 조사하면서 혐의내용을 부인하는 경우, 한두 대 뺨을 때 렸을 수 있지만 그것을 지금 잣대로 고문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면서 신병을 인계받 아 서류작성을 하면서 세부적인 내용을 맞추면서 고문을 했을 수는 있겠지만, 구명서의 경우 무리하게 강압수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고 진술하였다. 42) 공작과장 최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겁도 주고 회유를 하거나 윽박을 질러서 자백을 받는데, 수사관의 스타일에 따라 다르다 면서 손가락 꺾기 같은 것은 특별히 장 비가 없이 할 수 있는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행해진 것이라면 본인은 알 수 없다 고 진술하였고, 43) 수사관 심 과 장 은 고문 가혹행위 사실을 부인하였다. 4) 참고인 이 에 대한 고문 가혹행위 여부 가) 이 의 연행 및 수사과정 보안사의 대공활동사에 의하면 이 검거과정은 현해탄 공작 계획을 통해서 이루어 졌다고 적고 있는데, 먼저 장남 민 을 복무 중인 군악부대로 하여금 악기수리라는 구 실로 외출을 다녀오도록 하여 수사관이 사단 정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민 을 연 행하여 비밀리에 수도통합병원에 후송시켜 붕대로 두면부를 완전히 감고, 산소마스크를 착용시켜 중환자실에 입원시켰다. 한편 이 에 대하여는 민 이 수술을 해야 하는데 부모의 서약서가 필요하다 며 일본에 있는 이 에게 연락하여 빨리 입국하도록 유도, 김포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1985. 6. 25.에 입국하는 이 를 검거하여 조사 44) 하였다. 서울지검은 기소유예 의견으로 송치 받은 이 에 대해 1985. 8. 8.과 8. 20. 두 차례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였다. 45) 이 는 신청인 구명서 사건에 대해 1985. 10. 29. 보안 사에서 참고인 조사 46) 를 받았고, 구명서의 서울지법 5차 공판에서 1986. 3. 31. 증인으로 출두하여 증언을 하였다. 47) 42) 2008. 9. 24. 진술청취. 43) 2008. 9. 8. 진술청취. 44) 보안사 수사관 조 은 이 의 조사 여부에 대하여 이 의 첩보내용도 알고, 검거되었다는 것은 알 고 있지만, 이 는 본인이 직접 조사하지 않아 잘 모르겠다. 여자여서 여자수사관들이 신병을 관리했을 텐데, 계속 갈월동분실에 있지는 않았고, 필요한 경우 갈월동분실에 와서 조사를 받기도 하고 서빙고분실 이나 호텔 등지에서 받았을 것이다 라고 진술하였다.(2008. 9. 24. 진술청취.) 45) 김 수사기록, 1035-1068쪽. 46) 수사기록 중 이 진술서 및 진술조서 (1985. 10. 29.), 1128-1177쪽. 신청인 구명서는 증거목록 중 이 의 진술서 및 진술조서에 대해 부동의 하였다. 47) 수사기록 중 공판조서 5회(1986. 3. 31.), 145-167쪽. 312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나) 고문 가혹행위 여부에 대한 진술 이 48) 의 차남 민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모친 이 는 1985. 당시 군복 무 중인 큰형 민 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받고 귀국하였다가 공항에서 연행되 어 두 달여 만에 가족들과 상봉하였다 면서 모친을 비롯하여 둘째이모, 막내이모, 이모 부, 김, 모친의 고교동창 황, 민 이 복무 중이던 부대 군악대장 김, 친부 민 등이 보안사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고, 심한 고초를 겪었다 고 진술하였고, 모친은 당시 긴 머리를 삭발 당하였고, 온몸이 멍투성이였으며, 한쪽 무릎의 연골이 파 열되어 물이 차는 등 몸이 성한 곳이 없어 물어보니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고 하였다. 사 흘 동안 잠을 안 재웠고, 고춧가루 탄 물을 얼굴에 붓고, 거꾸로 매달고, 무릎을 꿇어앉게 하여 각목으로 맞고 손톱 밑에 핏자국으로 까맣게 되도록 바늘로 찔렸다 고 진술하였고, 외삼촌도 조사를 받다가 구타를 당해 이빨 4개가 부러진 일이 있고, 민 과 함께 근 무하던 군악대장 김 도 보안사 조사과정에서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로 심하게 구타를 당했다는 말을 들었다 고 진술하였다. 49) 한편, 당시 모친은 재일교포 김 과 재혼하여 일본에 살고 있었는데, 모친이 양부를 대신하여 사업 차 북한을 방문한 사실은 있으나, 간첩교육을 받고, 지령을 받았다는 것은 보안사에서 고문을 받으면서 허위로 자백한 것이다 라고 들었다 면서, 상당한 재력을 가 지고 있던 양부 김 은 민단 소속으로 민단과 한국정부에 재정적 기여도 많이 한 것으 로 알고 있고, 이런 점이 고려되어 모친이 공소보류로 풀려나올 수 있었다고 당시 수사관 들이 말해주었다, 모친이 보안사에 구금되어 조사를 받을 당시 김 은 수시로 거액의 돈을 가지고 한국에 왕래하면서 사건 해결을 위해 애썼다 50) 고 진술하였다. 5) 소결 일부 수사관들은 신청인에 대한 가혹행위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일부 수사관은 고문 및 가혹행위에 대하여 일반적인 수준에서 어느 정도 언급하고 있어 보안사 수사관에 의한 가혹 48) 이 와 남편 김 은 1999., 2008.에 각 사망하여 조사하지 못하였다. 49) 2008. 8. 30. 면담조사. 50) 2008. 9. 10.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회신문에 따르면, 김 의 출입국(일본) 관리기록은 다음과 같다. 1985. 6. 26. 입국, 1985. 6. 29. 출국, 1985. 7. 7. 입국, 1985. 7. 10. 출국, 1985. 8. 1. 입국, 1985. 8. 3. 출국, 1985. 8. 19. 입국, 1985. 8. 24. 출국, 1985. 9. 12. 입국, 1985. 9. 14. 출국, 1985. 10. 29. 입국, 1985. 10. 30. 출국.(이 의 출입국관리기록에 의하면, 1985. 6. 25. 입국기록은 없고, 1985. 9. 14, 출국기록만 있다. 따 라서 이 는 기록 및 민 진술에 따라 1985. 6. 25.에 입국하였다가 보안사에 연행되어 1985. 9. 14. 출국하기 전까지 보안사에서 두 달여 가량 구금되어 조사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313
제4권 행위를 전부 부정할 수 없다. 나아가 신청인은 재판과정부터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 이르기 까지 일관되게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하여 허위자백하였다고 진술하고 있으며, 참고인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신청인과 일부 참고인은 보안사 조사에서 협박 및 가혹행위를 당하였고,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구타와 보안사 수사관들의 압박이 있었던 점을 인정할 수 있다. 수사관들은 신청인에 대한 가혹행위사실을 직접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이 및 이 사건 참고인들이 조사과정에서 혹독한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하였다는 진술은 이 와 구명서를 조사하였던 보안사 수사관이 동일인인 점에 미뤄볼 때, 이들 모두 조 사과정에서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하였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보안사 수사관들의 신청인, 참고인들에 대한 고문, 가혹행위는 형법 제125조 폭행, 가 혹행위죄에 해당하며,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확정판결을 받을 수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 420조7호, 제422조 소정의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4. 범죄사실 조작 여부 가. 기 에게 포섭되었는지 여부 1) 범죄사실의 요지 및 유죄증거 모두( 冒 頭 ) 사실은 신청인 구명서가 도일하여 이 가 소개해준 기 를 만나 그의 집에 식사를 초대받고, 광주사태 진상, 김일성수령님의 일대기, 아름다운 조국강산 등 북한 관련 비디오를 보고, 조총련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알고도 만나면서 교양을 받고 포 섭되었다는 것이다. 유죄증거는 구명서 및 이, 이 의 법정진술과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 수사 사무관이 작성한 김, 남궁, 남궁, 송 의 진술조서, 박 식에 대한 영사증명 서 사본 등이다. 박 식에 대한 영사증명서에는 직업이 동인당 사장으로 일명 정화수로 행세하고 있고 통명이 기 이며, 수차례 방북하였고, 1976. 조선신보서 편집국 부국장, 1983. 문예동 부위원장 등에 근무한 자라고 기재되어 있다. 2) 신청인 진술 신청인은 1986. 2. 3. 서울지법 1차 공판에서 이 와 이 등이 함께 비디오를 보 았으나, 당시 (간첩)했다고 한 말은 지어낸 말이다. 기 가 조총련의 구성원인지는 몰 314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랐다 고 진술하였고, 1986. 3. 31. 5차 공판에서는 비디오를 볼 때 서재에서 김일성의 사 진을 본 일이 없다 고 진술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광주사태 비디오를 본 것은 사실이나, 수사기관의 고문에 의해 김일성수령님의 일대기, 아름다운 조국강산은 본 사실이 없는데 봤다고 했다 고 진 술하였고, 51) 정회장의 집에 갔을 때 (정회장이) 조총련이나 북한과 관련되어 있다고 할 만한 것을 본 일이 없다 고 진술하였다. 52) 3) 참고인 진술 증인 이 는 1986. 3. 31. 서울지법 5차 공판에서 기 의 집에서 같이 비디오를 보 았다 면서, 기 가 구명서를 구사장이라고 호칭하는 것을 보고 구명서가 완전 포섭되 었다고는 생각 안 들었다. 서로 대화 중 어렵게 구사장 정회장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고 하고, 기 는 이북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기 의 집에 김일성 초상화가 있었 다 고 진술하였다. 보안사 조사에서 김 은 쓰꾸바 박람회장 중앙회관 종업원으로 근무 중 구명서를 따라 동경 우에노에 콘택트렌즈 구입을 위해 외출하였다가 구명서가 형님이라고 친하게 지내는 분을 상면하고, 그 부부와 저녁식사를 한 바 있으나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행동이 나 대화는 발견하지 못했다 고 진술하였고, 53) 남궁 은 1985. 3. 중순경 구명서와 함께 정회장 부부를 만나 식사 및 술을 함께 먹었 으며, 전혀 의심할 만한 행동을 보지 못했고, 구명서 역시 불온 언동을 한 사실이 전혀 없 다 고 진술하였고, 54) 남궁 는 1985. 3. 구명서를 통해 동인당에서 영지버섯 및 녹용엑기스를 구입하였 고, 김 으로부터 구명서가 한 번 인가 여권이 필요하다고 달라고 한 적이 있다고 했는 데 안 된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고 진술하였다. 55) 보안사 조사에서 송 는 구명서가 최 에게 재일교포 정회장의 이사한 주소를 몰 라 편지로 알아봐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회답이 없다며 1984. 2. 11. 본인이 도일했을 때 최 에게 전화를 걸어 편지를 받은 사실을 알아봐달라고 했고, 알아보니 최 가 구 51) 2007. 12. 6. 진술청취. 52) 2008. 6. 19. 진술청취. 53) 수사기록 김 진술서 및 진술조서 (1985. 10. 28.), 961-973쪽. 54) 수사기록 남궁 진술서 및 진술조서 (1985. 10. 25.), 820-833쪽. 55) 수사기록 남궁 진술조서 (1985. 10. 29.), 1178-1191쪽.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315
제4권 명서의 편지를 받은 일이 없다고 하여 그 사실을 구명서에게 알려주었다 면서, 구명서가 찾고자 하던 정회장이라는 사람의 정체에 대하여 들어본 적이 없으며 평소 구명서는 조 금도 수상한 행동이나 언동을 하지 않았다 고 진술하였다. 56) 김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지금 기억나지 않는 내용들이 진술서에 적혀 있는 데, 당시 사실 그대로를 진술했다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그때 만나서 식사를 했다는 그 부부들이 구명서와 나누는 대화가 이상했다면 아마도 그 자리에 서 바로 일어나서 나왔을 것이고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라고 진술하였다. 57) 김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당시 사무실 차원에서 종업원의 여권을 모아 함께 보관하고 있었다면서 본인이 당시 여권을 관리하지 않았고, 구명서가 본인에게 여권을 달라고 한 일도 없고, 이와 같은 내용을 남궁 에게 말한 사실도 없다 고 진술하였다. 58) 송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한약방에서 일하는 조 이 녹용을 사다달라고 하도 부탁을 해서 구명서에게 물어보니 구명서가 녹용을 싸게 살 수 있다고 하면서 이창 수라고 일본에 있는 사람을 소개받아 만난 일이 있다 면서 보안사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을 때 들었던 것처럼 간첩 같지는 않았다 고 하며, 본인 명의의 진술서는 구명서를 검 찰에 송치해야 하는데 몇 가지 미비한 점이 있으니 서류를 보완해야 한다고 하면서 두 번 째 조사하러 가서 작성한 것 같다.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고 진술하였다. 59) 4) 수사관 진술 수사관 신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구명서의 경우 사업자금을 받을 목적으로 이 와 기 를 접촉한 것이 간첩이 된 것이다. 최초 기 접촉 시에는 그가 대남공 작에 관여한 인물인지는 몰랐을 것이다 라고 진술하였다. 60) 수사관 김 은 구명서가 기 의 신분을 모르고 접촉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구명 서의 혐의사실은 기 를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고 진술하였고, 61) 공작과장 최 도 수사관이 신( 神 )도 아니고 100% 옥석을 가릴 수 있는 혜안이 없는 이상 간첩을 검거 하여 조사하는 과정에서 억울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고 진술하였다. 62) 56) 수사기록 송 진술서 및 진술조서 (1985. 10. 28.), 949-960쪽. 57) 2008. 4. 16. 진술청취. 58) 2008. 4. 8. 진술청취. 59) 2008. 4. 15. 진술청취. 60) 2008. 8. 14. 진술청취. 61) 2008. 8. 13. 진술청취. 62) 2008. 9. 8. 진술청취. 316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5) 영사증명서 발급 경위 및 내용 재일지도원 박 식에 대한 영사증명서는 보안사가 안기부 63) 를 통하여 주일본한국대사 관 영사 홍 64) 이 발급(1985. 10. 14.)하여 1985. 11. 9. 추송되어 김 사건과 신청인 사 건의 증거로 사용되었다. 국가정보원이 진실화해위원회에 회신한 공문 65) 에 의하면, 박 식은 1968. 12. 조선신보사 생활부원, 1973. 00. 조선신보사 편집국 문화부 부부장, 1976. 00. 조선신보사 편집국 부국장, 1989. 10 조총련 문예동위원장, 1990. 00. 범민련 재일조선인본부 간사로 활동하였고, 조총련 인물록에 등재 되어 있고, 박 식의 처 오영리는 1980. 01. 조선신보사 편집국 부국장, 조총 련 인물록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다 고 하였으나, 당시 주일본한국대사관 영사 홍 의 재직 여부 및 박 근과 박 식이 동일인인지 여부 에 대한 자료 요청 66) 에는 회신하지 않았다. 한편, 사법경찰관 작성의 1985. 7. 19.자 재일지도원 박 근에 대한 수사보고 67) 에 따르 면, 안기부에서 발행한 조총련 인물록 68) 에 의거 확인한바, 박 식은 1968. 12.부터 조총련 조선신보사 생활부원으로 입직한 후 현재 동사 편집국 부국장으로 재직하는 자로서, 경 남 합천군 삼가면 일부리 864번지 박 근(1932. 6. 19.생)과 1년의 차이가 있으나 박 식 과 박 근은 동일인물이 틀림없고, 박 근(성명 박 식)의 방북사실 조사보고에 의하면, 1981. 5. 23.부터 6. 22.까지 평양미술박람회 참석 방북단원 306명에 포함되어 있는바, 김 가 입북하여 1981. 5. 24. 원산항에서 박 식 부부를 면접한 것으로 보아 김 의 진 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하고, 박 근과 박 식이 동일인물로 보고하였다. 가) 박 식과 기 가 동일인인지 여부 재일지도원 박 식에 대한 수사보고에 첨부되어 있는 주 니이가다 총영사(김 ) 발 신의 외무부 공문 69) 에 따르면, 박 식은 81. 5. 이후 4차례에 걸쳐 방북하였다. 63) 보안사 존안자료 중 3권, 128-130쪽. 64) 외교통상부 회신문(2008. 6. 18.)에 의하면, 1982. 4.~1986. 6. 주일본한국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재직하다 가 의원면직됨. 김양기 간첩조작 의혹 사건(2008. 6. 23. 진실규명 결정) 조사결과, 홍 은 안기부 직원으로 확인된 바 있고, 세 차례에 걸친 출석요구에도 조사에 불응하였다. 65) 2007. 9. 28. 국정원 회신문. 66) 2008. 6. 11. 자료요청 공문. 67) 김 수사기록, 694-709쪽. 68) 조총련간부 신원정보자료(안기부, 1984. 3.) 중 531쪽을 첨부하였는데, 박 식에 대해 성명 : 박 식( 朴 植 ), 남, 생년월일 : 33. 6. 19., 직업 : 조총련-산하단체간부, 가명 : 鄭 華 水 등이 기재되어 있고, 내용 중 동인당 사장, 가명 중 기 등의 내용은 없다. 69) 81. 5. 23.~동년 6. 22., 82. 11. 19.~동년 12. 30., 84. 7. 29.~동년 8. 13., 84. 10. 8.~동년 10. 28.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317
제4권 외무부 공문과 판결문의 범죄사실을 비교하면, 판결문 상의 1982. 12. 중순 중앙회관 에서 그곳 전화 783-0780을 이용하여 기 의 전화 03-671-1864로 국제전화를 하여 사 업자금에 대하여 타협도 할 겸 속히 왔으면 좋겠다는 내용 은 기 가 일본에 있으면 서 신청인과 전화통화했다는 것인데, 위 수사보고에 따르면 박 식은 방북 중이었던 기 간이다. 공작과장 최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상호모순된 진술인데, 구명서가 기 와 통화했다는 진술이 잘못된 것 같다 면서, 수사관이 진술의 모순을 바로잡았어야 하는 데, 모순점을 놓친 것 같다 고 진술하였다. 70) 수사관 김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당시 구명서가 기 와 전화통화하였다 고 진술하였기 때문에 진술조서도 그렇게 작성되었을 것이다 면서, 사건기록에 박 식 의 사진이 없다면 특별히 사진을 대조하여 확인하지는 않은 것 같다. 안기부에서 확인하 여준 것이니 확인조사는 하지 않은 것 같다 고 진술하였다. 71) 수사관 신 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김 나 구명서에게 박 식과 기 의 사진을 제시하면서 확인시킨 사실은 없다 고 진술하였다. 72) 수사관 조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중정이 발행한 조총련 인물록을 보니, 김 가 만났다는 동인당 사장인 기 가 박 식과 동일인이며, 박 식과 같은 본적지에 박 근도 동일인으로 기재되어 있어 기 가 재일지도원 박 식이라는 것을 알았다 고 진술하였다. 73) 그러나 위 조총련 인물록에는 박 식이 동인당 사장이며, 일본 이름이 기 라는 기 재도 없다. 나) 영사증명서 발급 경위 수사관 신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조사해보니 기 가 조총련 인물록에 있 는 박 식과 동일인이었다. 이에 대해 안기부에 사실조회를 요청했고, 안기부가 영사증명 서로서 박 식에 대한 신원조회 결과가 온 것이다 라면서, 보안사에서 일본에 있는 사람 까지 조사할 여건이 되지 않으니 관계기관인 안기부에서 조사협조를 받은 것이다 며, 김 가 만난 사람과 구명서가 (만난 사람이) 같은 사람이니까 김 사건 때 발급받은 70) 2008. 9. 8. 진술청취. 71) 2008. 8. 13. 진술청취. 72) 2008. 8. 14. 진술청취. 73) 2008. 9. 24. 진술청취. 318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것을 사본하여 사용한 것이다 라고 진술하였다. 74) 수사관 김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보안사에서 조사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 다. 안기부를 통해 일본에 파견된 직원이 조사하여 확인해준 내용이다 라고 진술하였 고, 75) 수사관 최 과 조 은 박 식에 대한 영사증명서는 안기부가 주일본한국대사 관 영사를 통해 발급한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다) 박 식과 박 근이 동일인인지 여부 사법경찰관 작성의 1985. 7. 19.자 재일지도원 박 근에 대한 수사보고서 상의 박 근 의 여동생 박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오빠 박 근은 국내에서 중학교를 졸업 76) 한 후 부친 박 이 사망(1949. 12.)하기 이전에 오빠 박, 박 등과 함께 일본에 건너가 모두 조총련 활동을 한 것으로 안다. 박 근과 박 은 1978. 이전에 월북하였고, 박 근은 월북하여 결혼하였다고 들었다 고 하면서 1981.경부터 자신도 자주 일본을 왕 래하였으나 일본에서 박 근을 만난 일이 없다고 진술하였고, 1985.경 보안사 수사관 3 명에 의해 박 근이 남파되었다면서 조사할 것이 있다고 연행된 일이 있는데, 조상무( 常 務 )라고 불리던 수사관이 있었다 면서, 당시 보안사에서 조사받을 때 박 근의 결혼사진 을 보여주자, 자기네들끼리 아니네 라고 말했다 고 진술하였다. 77) 수사관 조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박 식(박 근)의 본적지에 가서 알아보고 우리 직원들이 박 근의 동생을 찾아가서 만나보았는데, 박 근의 동생이 오빠 박 근은 아주 일찍 북송되었고, 일본에 있지 않다며 박 근의 사진을 보여주어 박 식과 박 근 이 같은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박 식과 박 근이 다른 사람이어서 이 부분 에 대한 조사는 종결하였다 고 진술하였다. 78) 6) 소결 신청인은 기 를 만난 사실은 인정하고 있지만 범죄사실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다. 수사기록과 판결에 의하면 신청인이 만난 기 는 조총련계의 본명이 박 식이고, 보안 사 작성의 수사보고서에서는 박 식을 월북한 박 근과 동일인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74) 2008. 8. 14. 진술청취. 75) 2008. 8. 13. 진술청취. 76) 2008. 7. 17. 경남 삼가초등학교 회신문에 따르면, 박창 은 1947. 6. 삼가초등학교를 졸업한 사실은 확인 하였으나, 중학교 진학 및 졸업 여부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77) 2008. 6. 24. 면담조사 78) 2008. 9. 24. 진술청취.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319
제4권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결과 박 근과 박 식은 동일인물이 아니며, 박 식이 판결문에서 말한 재일지도원 기 라는 근거도 분명하지 않다. 모두의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은 구명서의 자백뿐인데, 1982. 12. 중순 신청인이 정회장(기 의 이명)과 전화연락하 였다는 진술은 박 식(기 의 본명)이 방북 중이라는 수사보고와 모순되며, 박 근과 박 식은 동일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보안사 수사과정에서 이미 확인된 사실임에도 불구 하고 동일인이라 한 수사보고는 허위의 공문서이고, 위 조총련 인물록에는 박 식이 동 인당 사장인 기 라고 기재되어 있지 않다. 또한 판결에서 증거로 사용한 영사증명서는 공무원이 직무상 작성한 공문서가 아닐 뿐 만 아니라 수사 자료에 불과하고 적법한 증거조사 없이 증거능력을 인정한 것은 증거재 판주의의 위반이라고 할 수 있다. 김 가 1985. 6. 10. 영장 없이 연행 79) 되어 구속영장이 집행 80) 된 1985.7. 20.까지 최 소한 41일간 불법구금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는 기록을 확인하였고, 불법구금상태에서 작성된 진술서 및 진술조서는 그 임의성을 인정하기 어려워 기 의 본명이 정화수라는 진술도 믿기 어렵다. 나아가 이 의 진술도 이 가 보안사에서 고문을 받은 당시의 진술을 토대로 하고 있고 이 의 진술 역시 불법구금상태에서 한 진술을 토대로 하고 있어 믿기 어렵다. 또한 판결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한 참고인 진술 중 김 으로부터 구명서가 한 번 인가 여권이 필요하다고 달라고 한 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는 남궁 의 보안사에서 의 진술은 김 조사결과 사실과 전혀 다르고, 김 이 직접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은 사실도 없는바, 남궁 의 진술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결국 구명서가 만난 기 의 신분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며, 기 를 재일공작원으로 판단한 여러 가지 증거 또한 위법한 증거이거나 사실과 다르다. 나. 국가기밀 탐지 수집 누설 여부 1) 범죄사실의 요지 및 유죄증거 79) 김 수사기록 중 국가보안법 위반 등 피의자 인지동행보고 (1985. 6. 10.)에 의하면, 김 는 1985. 6. 10. 서울 종로구 관수동 도로변에서 동행하였다고 기재되어 있음(60-68쪽). 80) 김 공판기록 중 서울 형사지방법원 구속영장 (49쪽). 이 영장은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이 의 청구 에 의하여 발부한다. 이 영장은 1985. 7월 29일까지 유효하다.(1985. 7. 20. 판사 박 ) 집행일시 : 1985. 7. 20. 13시 30분, 집행장소 : 국군보안사령부, 인치일시 : 1985. 7. 20. 15시 07분, 인치장소 : 서울구치소, 국가안전기획부 김. 320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신청인은 기 에게 1971.부터 1973.까지 공군에 복무하면서 직무상 취득한 군사상 기 밀을 누설하였고, 녹용수입관계의 내용 및 고려대 시위상황을 탐지, 수집하여 간첩하였다 는 것이다. 유죄증거는 공군참모총장이 작성한 복무확인증명서와 군경력증명서 및 공군 본부정보참모부장이 작성한 확인서, 고려대학교 학생처 장학관 최 이 작성한 확인서, 검사작성의 이, 조, 송 의 신문조서, 수사사무관이 작성한 송 의 진술서 및 진술조서이다. 2) 신청인 진술 신청인은 보안사와 검찰 진술과는 달리 서울지법 공판에서 공군복무 중 알게 된 내용 을 기 에게 말해준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였다. 한편, 고대 앞을 저와 처가 지나갔으 나 그때 그런 사실을 본 적이 없다 고 진술하였다. 81)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기 에게 주민등록증을 준 사실도 없고, 군복무 시절 얘 기도 한 적 없다. 친구관계도 물어본 사실이 없다. 당시 보안사에서 수사관들이 가족관계 와 친구들을 적으라고 해서 적어주었더니 사건을 꾸몄고, 자백을 강요받았다 면서 데모 를 보고하라고 한 적이 없으며, 수사관들이 조사받을 당시에 지난 신문을 펼쳐놓고 찍으 라고 해서 그중에 몇 가지를 골라 진술했다 고 진술하였고, 82) 녹용수입관계는 당시 정 회장이 동인당을 운영하고 있어서 정회장으로부터 녹용을 사다가 국내에서 팔면 어떨까 해서 혼자 알아본 것이다 라고 진술하였다. 83) 3) 참고인 진술 가) 군사기밀 수집에 대하여 보안사 조사에서 송 은 철도반(T.M.O)의 임무는 군용화물을 운반하는 임무로 구명 서는 군산역 구내에 소재한 군용화물 수송반 T.M.O 사무실에서 활동하고 잠은 소속대에 들어와서 잤다. 공군에 복무한 장병은 어느 정도 기밀을 알 수 있고, 구명서 역시 군용화물 수송 분야에 복무하였기 때문에 다른 병사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고 진술하였다. 84) 송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공군에 복무한 장병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 고, 비행기가 뜨고 내리기 때문에 눈으로 보면 알 수 있는 것으로 특별한 내용은 아니다 81) 2회 공판조서(1986. 2. 24.). 82) 2007. 12. 6. 진술청취. 83) 2008. 6. 19. 진술청취. 84) 수사기록 송 진술서 및 진술조서 (1985. 10. 25.), 709-718쪽.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321
제4권 라고 하면서, 광주비행장에 F-5 전투기가 있다는 사실은 눈으로 보아도 알 수 있는 일 반적인 내용이고, 군산비행장에 어떤 비행기가 있었는지는 꼭 어떤 직무에 있어야만 아 는 정보가 아니라 군산비행장에 근무했다면 일반적으로 아는 정보 라고 진술하였다. 85) 신청인과 함께 군복무를 하였던 김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군산비행장은 작 은 비행장인 관계로 사병이라면 누구나 직책이나 특기에 상관없이 비행기가 몇 대인지 알 수 있다 면서 보안사에서 조사받을 때 구명서가 군산비행장에 비행기가 몇 대 있다 고 얘기한 사실이 있는지, 군 생활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는지 자꾸 물어보았다 고 진술 하였다. 86) 나) 녹용수입관계 수집에 대하여 보안사 조사에서 조 은 1982. 9.경 구명서를 처음 만나 일본에 계시는 형님이 녹용 을 준다고 한다며 녹용의 국내시세와 소비관계를 물었고, 동년 10.경 향진식당에서 다시 만나 구명서가 중공산 엘크 녹용을 수입하면 세금과 마진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보아 한약제수출입조합을 통해야만 하고 정해진 양만 수입이 되며, 120~130%의 세금 등 약 200%의 경비를 계산해야 한다 등을 알려주었다 고 진술하였다. 87) 조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한 번 만난 것으로 기억한다, 마진이 맞지 않아 구 명서와 사업을 같이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만나지 않았다 면서, 위 내용은 전문적인 내용이라기보다는 녹용수입에 대한 대략적이고 일반적인 내용이다 라고 진술 하였다. 88) 다) 고려대 학생시위상황 수집에 대하여 신청인의 처 이 는 보안사 조사에서 1984. 5. 석가탄신일 직전 오후 2시경 서울특 별시 도봉구 우이동에 있는 도선사라는 절에 불공을 드리기 위해 고려대 앞을 지나간 일 이 있는데, 고려대 학생들이 스크럼을 짜고 무슨 구호를 외치면서 무장한 경찰들과 교문 을 사이에 두고 데모를 벌이고 경찰들은 학생들에게 최루탄을 발사하는 등 데모가 심했 다 고 진술하였으나, 89) 서울지법 공판에서 고대 앞쪽을 지나서 간 적은 있으나 데모하 85) 2008. 1. 11. 진술청취. 86) 2008. 2. 13. 진술청취. 87) 수사기록 조 진술서 및 진술조서 (1985. 10. 28.), 1019-1030쪽. 조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직장관계 때문에 일요일에 남영동에 있는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은바, 일요일이라 일하는 사람이 없다면 서 수사관들이 라면을 끓여주었다 고 진술하였는데, 1985. 10. 28.은 월요일임. 88) 2008. 2. 18. 진술청취. 89) 수사기록 이 진술서 및 진술조서 (1985. 10. 20.), 861-932쪽. 322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는 것을 못 보았다 고 부인하였다. 90) 4) 관련기관 확인서 당시 공군본부정보참모부장 명의의 확인서 91) 는 본 내용은 군사기밀에 해당됨을 확 인한다 는 것이다. 국가기밀 사항 92) 과 관련하여 공군본부는 철도반과 티.엠.오는 임무와 기능이 다르고, 1971.경 군산비행장에 있는 미국 공군은 팬텀기(F-4)를, 한국공군은 F-86 기를 보유하였다가 미국공군은 1981.에, 한국공군은 1985.에 각각 보유 항공기 기종을 변 경하였고, 청주기지는 1978. 창설되었으며, 위 사항들에 대해 일반 공군병사가 알 수 있는 내용인지 여부에 대해 획일적 답변이 곤란하고, 군사기밀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현시점 판단 불가 라고 회신하였다. 93) 당시 고려대학교 학생처 장학관 최 의 확인서 94) 는 고대 석탑축제기간(5. 3.~5. 5.) 중 학생들의 시위가 있었다는 내용인데, 고려대학교 100년사 고려대학교 학생운동 사 95) 에 따르면, 1984. 고려대는 강제징집 후 사망한 故 김두황의 추모식(1984. 4. 17.)을 비롯하여 직권휴학 및 강제징집 폐지, 호국단 폐지 등을 사항으로 철야농성을 벌이는 등 격렬한 가두시위를 전개하였고, 특히 5. 4. 석탑대동제 기간 중에는 강제징집 후 의문의 죽음을 당한 6개 대학 6명의 학생들에 대한 합동위령제를 열었으며, 이러한 격렬한 시위 는 1984. 5.까지 연일 계속되었다. 지식경제부는 녹용수입 관련 사실 확인 요청 에 대해 1982. 당시 녹용은 한국의약품 수출입협의회장 96) 이 추천한 물량만 수입할 수 있었고, 녹용수입에 대한 관세율 60%, 특 90) 5회 공판조서(1986. 3. 31.). 91) 수사기록 확인서, 1193쪽. 92) 구명서는 1982. 9. 25. 10:00경 기 를 만나 1971년부터 1973년까지 공군에 복무하면서 직무와 관련하여 알게 된 내용을 말해주어 직무상 취득한 군사상 기밀을 누설하였다는 것인데, 군에서 수송중대 철도반을 티.엠.오(T.M.O)라고 한다, 티.엠.오는 군사물자 수송과 여행장병 안내를 한다, 군산비행장은 미국공군과 한국공군이 함께 사용한다, 군산비행장에 있는 미국공군은 팬텀기(F-4)를 보유하고 있고 한국공군은 에프 (F)-86기 20대를 보유하고 있다, 에프(F)-86기는 6 25. 당시 사용하던 것으로 기계가 낡아 고장이 자주 난다, 광주비행장에는 에프(F)-5전투기가 있다, 김해공군기지는 케이(K)-1, 대구공군기지는 케이(K)-2, 사천공군기지는 케이(K)-4라고 하고, 그 외에 오산, 수원, 백령도, 제주도, 청주에 공군기지가 있다 는 내 용이다. 93) 2008. 11. 3. 공군본부 회신문. 94) 수사기록 확인서, 확인자 : 고려대학교 학생처 장학과 최, 1195쪽. 95) 고려대학교 100년사 고려대학교 학생운동사(고려대학교 출판부 발행, 2005), 279-284쪽. 96) 2008. 4. 14. 보건복지부 회신문에 의하면, 한약재수출입조합은 1982.당시 및 현재에도 존재하지 않은 것으 로 파악되고, 과거에 한약업자들이 출자한 한국한약수출입조합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한국한약무역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323
제4권 별소비세 20%였고, 녹용이 대응수출품목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해당 계약서의 내용을 확인해야 판단할 수 있으며, 이러한 내용은 녹용의 수입 업무 종사자는 알 수 있 는 일반적인 내용으로 일반 국민에게 공포되고 있는 내용 이라고 회신하였다. 97) 5) 소결 신청인은 보안사에서 범죄사실을 모두 자백하고, 서울지검에 송치된 후 범죄사실을 대 부분 시인하였으나, 법원에서는 범죄사실에 대해 부인하였다.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 서는 보안사에서 작성한 진술서 및 진술조서를 토대로 하고 있으며 신청인의 불법구금과 고문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의 진술을 기재한 것으로서 진술의 임의성에 의심이 있 어 유죄증거로 하기에 적절치 않다. 1971. 군복무 중에 알았다는 군사기밀은 직무상 취득한 사실이라기보다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며, 98) 고대 앞 학생시위상황과 녹용 수입관계 또한 일반적인 내용에 불 과하여 국가기밀이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나아가 탐지사실을 보충하고 있는 보강증거 는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를 증거로 하지 않는다면, 독자적으로 범죄사실을 인정하 기에 부족하다. 고대 앞 학생시위상황을 탐지하였다는 보안사 및 검찰에서의 진술에 대해 신청인뿐만 아니라 이 도 법정에서 부인한 바 있고, 고려대 최 명의의 확인서는 고려대 석탑 축제기간(5. 3.~5. 5.) 중 학생들의 시위가 있었다는 사실의 확인일 뿐, 신청인의 국가기 밀 탐지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되지 못한다. 녹용수입관계에 대해 조 은 보안사 및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본인이 잘 알고 있 지 않는 내용이라는 점, 구명서를 한 번 만났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 등으로 보아 조 의 진술은 임의성에 의심이 있다. 또한 관세청, 지식경제부, 보건복지부 등 관계기관에 1982. 당시 녹용수입 절차 및 관세 등에 대해 사실을 확인한바, 판결문 상의 녹용수입에 관한 내용은 객관적인 사실과 부합하지 않고, 일반 국민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사항으로 누구나 쉽게 취득할 수 있는 정보라는 것이다. 결국 신청인이 군사기밀을 누설하고 녹용, 학원시위 등 관련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의 97) 2008. 5. 8. 지식경제부 회신문. 98) 대법원 76도1402판결(1976. 7. 27.) 형법98조2항의 군사기밀누설죄는 직무상 지득한 군사상의 기밀을 누설 한 경우에 한해야 성립하는 것이므로 피고인이 일본 동경 재일조선인 총연맹 본부에서 이모와 공소외인 집에서 재일 조총련계인 이복형에게 각 진술한 사실들이 직무상 지득한 것이 아니라면 위 법조 소정의 군 사기밀누설죄를 범한 것으로 볼 수 없다. 324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간첩하였다는 범죄사실을 인정할 증거는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99) 다. 허위사실 유포 여부 1) 범죄사실의 요지 및 유죄증거 신청인의 친구 채, 후배 조 100), 동업자 박, 김, 그리고 팔마부동산 사 장 김 과 광주사태에 대해 대화를 나눔으로써, 목적수행을 위해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하였다는 것이며, 유죄의 증거는 검사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 및 김 의 진술조서, 수사사무관 작성의 조, 채, 김, 박 의 진술조서 등이다. 2) 신청인 진술 신청인은 1985. 11. 11. 검찰 조사에서 팔마부동산 사장 김 에게 광주사태에 관한 말 을 하였다는 보안사에서의 진술을 부인하였고, 1985. 11. 22. 김 과의 대질조사에서 김 에게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지만, 김 의 말이 맞을 것이다 라고 진술하였으나 법정에서 기 가 반국가단체 구성원의 정을 몰랐다고 모두 부인하였다. 3) 참고인 진술 보안사 조사에서 채 은 1982. 8. 추석(10. 1.)에 고향에 조부모 성묘 차 내려온 구명 서가 당시 본인 집에 찾아와 고향 후배인 조 (당시 공군 중위)과 함께 군산 소재 제일 다방에서 만나 광주사태에 관한 얘기를 나눈 사실이 있다 라고 진술 101) 하였고, 김 은 1982. 10. 말경 구명서, 박 와 함께 술을 먹으며 광주사태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고 진술하였고, 102) 박 는 구명서는 한국일보를 좋아했고, 1982. 10. 말경 구명서, 김 99) 대법원 선고 97도985판결(1997. 7. 16.). 현행 국가보안법 제4조제1항제2호 (나)목에 정한 기밀을 해석함에 있어서 그 기밀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방면에 관하여 반국가단체에 대하여 비밀로 하거나 확인되 지 아니함이 대한민국의 이익이 되는 모든 사실, 물건 또는 지식으로서, 그것들이 국내에서의 적법한 절차 등을 거쳐 이미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공지의 사실, 물건 또는 지식에 속하지 아니한 것이어야 하고, 또 그 내용이 누설되는 경우 국가의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기밀로 보호할 실질가치를 갖춘 것이 어야 한다. 100) 주민조회결과(2007. 12. 17.), 1999. 9. 30. 직권말소되었고, 외교통상부 재외동포협력과 회신 결과(2008. 3. 13.)에 따라 주소지는 확인되나 소재확인이 안 된다. 101) 수사기록 채 진술서 및 진술조서 (1985. 10. 27.), 933-948쪽. 102) 수사기록 김 진술서 및 진술조서 (1985. 10. 25.), 790-808쪽.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325
제4권 과의 음주 중에 구명서가 광주사태에 관한 내용을 얘기한 사실이 있다 고 진술하였다. 103) 검찰 조사에서 김 은 1985. 1. 초경 사무실에서 구명서가 광주사태는 경상도 출신 공수부대원만 차출하여 광주로 보내 데모를 진압하면서 여대생의 옷을 찢는 등 난폭하게 굴어 이를 보고 있던 대학생들이 격분하여 일어나게 된 것이며, 그때 희생된 사람들은 신 문에 보도된 것보다는 많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고 진술하였다. 104) 채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고향 군산에서 친구 김 와 함께 구명서를 만난 일은 있으나 광주사태에 관한 대화를 나눈 기억은 없으며, 보안사 조사과정에서 이와 같 은 내용의 진술을 하였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기억나지 않는다 고 진술하였다. 105) 김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판결문에 있는 것처럼 4천 명이 죽었다고 얘기하 지 않았으며, 다른 내용들도 구명서가 한 얘기가 아니라 당시 횡횡했던 풍문들이였다 면 서, 광주사태에 대한 얘기는 당시 모두가 아는 사실 이었고, 빨리 끝내고 나가고 싶은 마음에 본인이 진술한 대로 조서가 작성됐을 것으로 생각하고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고 날인, 급하게 나왔다 고 진술하였다. 106) 박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대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광주사태에 관한 얘기 를 나눴고, 본인은 구명서로부터 듣기 전에 이미 회사에 다닐 때 더 심한 얘기를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보안사 조사 때 그렇게 진술한 것 같다 면서, 광주사태에 관한 얘 기는 당시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내용이고 술자리에서 많이들 하던 얘기다 라고 진술 하였다. 107) 김 또한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광주사태는 일본에 갔다 왔다고 해서, 북한에 서 누군가에게 들어야만 아는 특별한 얘기가 아니다. 전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고 소주 한잔 하면 다 하는 얘기다 라고 진술하였다. 108) 4) 소결 신청인은 위 범죄사실에 대해 검찰 조사에서부터 일부 부인하였고, 기 로부터 지령 을 받은 사실에 대하여는 부인하였다. 그러나 결국 법원이 허위사실로 인정한 내용인 소 위 광주사태 의 진술은 1980. 5. 18. 직후에도 신청인 뿐만 아니라 전체 국민이 알고 있는 103) 수시기록 박 진술서 및 진술조서 (1985. 10. 26.), 834-860쪽. 104) 수사기록 김 진술서 및 진술조서 (1985. 11. 22.), 1565-1570쪽. 105) 2008. 3. 3. 전화조사 106) 2008. 1. 21. 진술청취. 107) 2008. 4. 7. 진술청취. 108) 2008. 1. 16. 진술청취. 326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사실로서 국가보안법상 허위사실 유포죄의 대상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109) 라. 회합통신 잠입탈출 금품수수 여부 1) 범죄사실의 요지 및 유죄증거 신청인은 1982. 4회, 1985. 1회 일본을 왕래하며 기 를 만났고, 일본 출국 전후 기 에게 전화를 하고 편지를 보냈으며, 일본에서 귀국하면서 기 로부터 여비조로 10만 엔씩 총 40만 엔을 받았다는 것이다. 유죄의 증거는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 및 이 의 진술조서, 수사사무관 작성의 박, 남궁, 김, 남궁 의 진술조서 등이다. 2) 신청인 진술 신청인은 법정에서 기 가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인 정을 알지 못했다고 진술하였고, 기 로부터 친분 있는 친구나 학생들을 포섭해서 지하조직을 구축하라, 군사, 학원소요 사태 등에 대해 수집 보고하라, 이 가 살고 있는 아파트 보증금을 찾아 쓰라는 등의 지령을 받은 사실 및 수집, 보고하였다는 범죄사실에 대해 부인하였다. 110) 신청인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수사관들의 강압에 의해 거짓으로 말한 것이다 라 면서 본인이 일본에 갈 때마다 김치며 인삼을 사가지고 가서 선물로 줬고, 기 는 비 행기 삯에 보태라며 여비조로 10만 엔을 주길래 받았다 고 진술하였으며, 111) 이 에 게 돈을 갚으라고 하니까 아파트를 처분해서 갚을 테니 대신 처리해달라고 하면서 도장 을 주어서 받아가지고 왔다 면서, 1983. 말경 정회장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했고, 사업적 으로 어려워진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정회장이 생각났고, 간단한 내용의 연하장을 써 보 낸 것이 전부 라면서, 당시 정회장이 가명을 쓰라고 얘기한 적이 없고, 가명으로 써서 보 낸 일이 없다, 1년 후쯤 김명식 이라는 이름으로 정회장이 연하장을 보내와서, 의아하 게 생각했다. 지금까지도 어찌된 영문인지 알 길이 없어 답답하다 고 진술하였다. 112) 109) 대법원 94도1813판결(1995. 5. 12. 재판장 윤관, 정기승, 이명희). 국가보안법 제4조제1항제6호 소정의 사 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라 함은 그 행위의 내용이 객관적으로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관한 허위사실이어야 하고, 주관적으로 그 행 위가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관한 허위사실이라는 것을 인식하였거나 적어도 그 러한 우려가 있을 수 있다는 미필적 인식하에 이를 유포하면 되고, 반드시 그 목적한 결과를 가져오게 할 것까지를 요하는 것은 아니다. 110) 1986. 2. 3. 제1회 공판조서. 111) 2007. 12. 6. 진술청취. 112) 2008. 6. 19. 진술청취.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327
제4권 3) 참고인 진술 보안사 조사에서 박 는 명동의 향진식당 경영 시 구명서가 일본 형님이란 사람과 전화연락을 했으며, 82. 10.경 여의도 중앙회관의 전화요금청구서에 국제통화요금이 있어 구명서에게 물어보니 일본 형님에게 전화를 했었다고 말한 사실이 있다 고 진술하였고, 113) 김 은 구명서와 형님이라는 분을 만났으며 식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사업이야기를 주로 했으며, 구명서로부터 기 에 대해 우에노에 오면 접대를 잘 받고 여러모로 신세 를 많이 지고 있고 자기를 아끼는 좋은 분이라는 말을 들은 것 외에는 이상하다고 생각되 는 행동이나 대화는 발견하지 못했다 고 진술하였고, 114) 남궁 는 기 는 동인당이라는 한약방을 하는 형님으로서 인간적으로 친동생처 럼 아껴준다는 얘길 들었다 고 진술하였다. 115) 이 는 구명서가 평소 독립하여 식당을 운영하기를 원했고, 일본에서 전주비빔밥집 을 운영하기 위한 사업자금을 얻기 위해서 일본의 정회장을 만난 것이고, 1982. 9. 24. 일본 에 갈 때 구명서가 정회장에게 줄 선물로 김치를 포장한 사실이 있다 고 진술하였고, 116) 남궁 은 1985. 3. 중순경 구명서와 함께 정회장 부부를 만나 식사 및 술을 함께 먹었 으며, 전혀 의심할 만한 행동을 보지 못했고, 구명서 역시 불온언동을 한 사실이 전혀 없 다 고 진술하였다. 117) 박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구명서와의 대화 과정에서 일본을 방문하였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고, 일본에 국제전화를 거는 것을 직접 본 일은 없지만, 국제전화를 한 사실은 알고 있다 고 진술하였다. 118) 김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당시 구명서가 도자기 전시회 및 판매 차 일본에 갔다. 식당에서 종업원들과 함께 도자기를 포장했던 것을 두 번쯤 본 적이 있다 면서, 구 명서가 워낙 사업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며, 재일교포 정회장에 대해서 들은 적은 없고, 일본에 가면 돈 대주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정도만 들었다 고 진술하였다. 119) 113) 수사기록 박 의 진술서 및 진술조서, 834-860쪽. 114) 수사기록 김 의 진술서 및 진술조서, 961-973쪽. 115) 수사기록 남궁 진술조서, 1178-1191쪽. 116) 수사기록 이 진술서 및 진술조서, 861-982쪽. 117) 수사기록 남궁 진술서 및 진술조서, 820-833쪽. 118) 2008. 4. 7. 진술청취. 119) 2008. 1. 21. 진술청취. 328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남궁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나중에 보안사에 조사받을 때 그 재일교포가 조총 련이라고 했는데,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면서, 처음엔 나도 공범이라고 하면서 구명서가 한 일을 유도하듯이 질문했다 고 진술하였다. 120) 김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일본 와세다대학교 유학 시절, 조선장학회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사실이 있다 면서, 당시 주일본한국대사관에 본인을 포함한 여러 유학생 들이 조선장학회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아도 되는지 여부를 문의하여 받아도 된다고 답변 을 듣고 받았다 고 하고, 당시 구명서가 기 를 만나 돌아오는 길에 여비조로 10만 엔 을 받았다면 일본교포사회에서 남한이든 북한이든 불문하고 같은 민족으로 여비로 줄 수 있는 액수이고, 특히 김치 등을 싸다가 주었다면 그 비용이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액수 이다 라고 진술하였다. 121) 4) 소결 신청인은 이 에게 빌려준 돈과 사업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동인당 사장 정창식을 만 난 것일 뿐이고, 그로부터 지령을 받고 목적수행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본을 왕래하였 다는 점은 부인하고 있다. 122) 또한 기 (정회장)가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인지 모르고 있었다고 계속 진술하고 있 다. 123) 위 범죄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신청인의 진술은 임의성에 의심이 가고 다른 참고인 들의 진술만으로 명백히 범죄사실을 입증하기에 부족하다. 결국 이 범죄사실을 입증할 증거는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120) 2008. 1. 29. 진술청취. 121) 2008. 9. 5. 면담조사. 122) 대법원 선고 84도2323판결(1985. 1. 22., 재판장 윤일영, 강우영, 김덕주, 오성환). 국가보안법 제6조제2항 의 잠입죄는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이를 수행할 의사로 국내에 잠입하면 성립되는 것이고, 국가보안법 제6조제2항의 잠입죄를 구성하려면 입국하기 전에 반국가단체 구성원으로부터 지령 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입국 당시 그 지령사항을 실천할 의사와 목적이 있었다는 점도 함 께 인정할 수 있어야만 한다. 123) 대법원 선고 96도2158판결(1996. 11. 12.). 반국가단체의 구성 또는 지령을 받은 자로부터 받는 금품의 가 액이나 가치 또는 금품수수의 목적은 가리지 아니하나, 그 구성요건 상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 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로부터 금품을 수수하여야 할 것이므로, 금품의 수수행위가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위험이 없는 경우에는 금품수수로 처벌할 수 없다.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329
제4권 Ⅲ. 결론 및 권고사항 1. 결론 이 사건은 신청인이 반국가단체인 조총련 관련자인 기 를 만나 포섭되어 지령을 받 고 국가기밀 누설, 허위사실 유포, 금품수수, 입북 제안을 받는 등의 범죄행위를 하였다고 간첩죄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인데,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보안사가 신청인을 41일 간 불법구금한 상태에서 고문 및 가혹행위를 통하여 피의자에게 허위자백을 받아내고 안 기부 수사관의 명의로 서류를 작성하고, 검찰 수사 과정에도 서울구치소로 신청인을 찾아 가 협박을 계속하여 간첩사건으로 조작하여 처벌받도록 한 비인도적, 반인권적 사건이다. 서울지검은 신청인이 수사기관에서 불법구금상태에서 고문으로 허위자백하였다는 말 을 듣고도 수사지휘기관으로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 서를 작성하여 서울지법에 기소하였다. 신청인이 보안사, 검찰에서 한 자백은 고문, 가혹행위로 인한 피의자의 위축 상태가 지 속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허위로 진술한 것으로 판단된다. 신청인 에 대한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는 각각 형법 제124조 불법체포감금죄와 제125조 폭행, 가 혹행위죄에 해당하며, 기본법 제2조제2항, 형사소송법 제420조제7호, 제422조 소정의 재 심사유에 해당한다. 법원은 임의성에 의심이 가는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를 토대로 하고 영사증명을 위법하게 유죄의 증거로 채택하는 등 증거재판주의를 위반하여 판결을 하고 중형을 선고 한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있다. 2. 권고사항 이상과 같이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국가가 하여야 할 화해를 위한 조치에 대하여 다 음과 같이 권고한다. 국가는 보안사와 안기부에 의해 행해진 불법적인 수사를 묵인한 점, 불법구금 및 가 혹행위에 대한 진술을 무시하고 미진한 심리에 의해 중형을 선고한 점에 대해여 신청인 과 그 가족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는 위법한 확정판결에 대하여 신청인 및 가족들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형사소송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심 등 상응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330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별표 1] 사건 관련인 명단 구 분 성 명 조 사 일 시 관 련 성 비 고 신청인 구명서 2007. 12. 6. 2008. 6. 19. 동 사건으로 7년 형 선고 참고인 이 - 구명서의 처, 불고지 혐의로 기소유예 참고인 김 (말소) - 김, 이, 이 간첩사건으로 15년 복역 중 1995. 8. 15. 특별사면 참고인 이 (말소) - 기소중지, 행방불명 참고인 이 (사망) - 간첩사건으로 기소유예 참고인 조 2008. 2. 18. 한의원 근무, 녹용관련 진술 참고인 김 2008. 1. 16. 팔마부동산 사장 참고인 송 2008. 4. 15. 아미산업(피혁수출) 회사 경영 참고인 송 2008. 1. 11. 구명서의 공군 중대장 참고인 채 2008. 7. 28. 구명서의 고향친구 참고인 조 (말소) - 구명서의 고향후배 참고인 김 2008. 1. 21. 향진 및 중앙회관 동업자 참고인 박 2008. 4. 7. 향진 및 중앙회관 동업자 참고인 전 2008. 4. 15. 이 임대아파트 주인 참고인 남궁 2008. 1. 29. 구명서의 고종사촌 형 참고인 김 2008. 4. 16. 쓰꾸바박람회 중앙회관 종업원 참고인 남궁 - 구명서의 고종사촌누나 참고인 김 2008. 4. 8. 쓰꾸바박람회 중앙회관 부사장 참고인 김 2008. 2. 13. 구명서의 고향친구 참고인 이 2008. 9. 2. 제보자, 이 의 사위 참고인 도 2008. 9. 10. 이 의 차녀 참고인 김 2008. 9. 5. 재일유학생 참고인 박 2008. 6. 24. 박 근의 막내여동생 참고인 민 2008. 8. 30. 이 의 차남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331
제4권 구 분 성 명 조 사 일 시 관 련 성 비 고 참고인 민 2008. 8. 30. 이 의 막내아들 참고인 조 (사망) - 구명서 여권 발급 참고인 최 (사망) - 여행사 직원 수사관 신 2008. 8. 7. 2008. 8. 14. 보안사 수사관 수사관 조 2008. 7. 23. 2008. 9. 24. 보안사 수사관 수사관 장 2008. 10. 8. 보안사 수사관 수사관 김 2008. 8. 6. 2008. 8. 13. 보안사 수사관 수사관 한 2008. 9. 19. 보안사 공작계장 수사관 최 2008. 9. 8. 보안사 공작과 과장 수사관 이 2008. 8. 5. 서울 506보안부대 수사계장 수사관 권 (말소) - 서울 506보안부대 수사관 수사관 김 (사망) - 안기부 수사관 332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제24회 제25회 행정고시 면접탈락 사건 결정사안 총무처에서 수립한 시국관련 시위전력자의 행정고시 면접 불합격 방침에 따라 박문화 등 5명이 제24회(1980년) 및 제25회(1981년) 행정고시 제3차 면접시험에서 불합격 처리된 사건에 대하여 진실을 규명한 사례. 결정요지 1. 이 사건은 총무처에서 제24회, 제25회 행정고시 3차 면접시험에서 시국관련 시위전 력을 가진 면접 응시자들을 불합격시킨 사건으로 그중 경북대학교 대학원생 박문화(당24 세)는 2회 연속으로 불합격한 것을 비관하여 자살하였다. 2. 1980. 총무처장관은 앞으로 공무원을 뽑을 때 행정고시에 있어서 국가관에 대한 기 준을 명확히 해라. 학교 다닐 때 시국데모를 한 사람들은 배제하도록 하라 고 구두지시 하였고, 이에 따라, 총무처는 3차 면접시험에서 시국시위 관련자들을 탈락시키기로 방침 을 정하였다. 3. 위 방침에 따라 총무처는 제24회 및 제25회 면접시험 실시 이전에, 면접 응시자들의 각 대학과 국가안전기획부로부터 응시자들의 시위전력 자료를 넘겨받아, 시위전력자 명 단을 작성한 후 면접위원들에게 통보하여 불합격시키도록 요구하였다. 4. 면접위원들은 총무처의 요청에 의해 자율적 평가를 포기하고 시위전력이 있는 자로 지목된 사람들을 탈락시킨바, 이때 박문화, 백종섭, 김현, 윤중기, 윤종규 등 5명은 시위전 력자로 지목되어 면접에서 불합격되었다. 5. 총무처장관의 요구는 면접위원들의 재량권을 제약하는 것이므로 직권남용에 해당하 며, 면접위원들이 자율적 판단을 하지 못하고 총무처 관계자의 요구에 의해 시위전력이 확인된 위 박문화 등에게 불합격 평가를 한 것은 현저하게 재량권을 일탈 내지 남용한 것 이므로 위법하다. 따라서 총무처장관이 제24회 및 제25회 행정고시에서 위 박문화 등에 대해 최종적으로 불합격 처분을 한 것은 위법한 일이다. 6. 총무처장관의 이와 같은 위법한 불합격 처분은 위 박문화 등이 국가공무원으로 취임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직업선택의 자유 및 공무담임권을 침해한 것이며, 불합 제24회 제25회 행정고시 면접탈락 사건 333
제4권 리한 이유로 다른 응시자와 차별하여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고 국가에 의한 중대한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 7. 국가는 제24회 및 제25회 행정고시 면접시험 과정에서 총무처 관계자의 위법한 지시 에 의해 면접위원들이 피해자들에 대해 자율적으로 평가하기를 포기하고 불합격 점수를 주어 2차례에 걸쳐 행정고시 면접시험에 불합격시킨 위법행위에 대하여 박문화 유족 등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8. 국가는 피해자들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피해자들에 대한 위법한 불합격 처분을 취소하는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 문 사 건 라-7184, 제24회 제25회 행정고등고시 면접탈락 사건 신청인 박문석 결정일 2008년 11월 18일 주 문 이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진실규명 으로 결정한다. 이 유 Ⅰ. 조사개요 1. 사건개요 신청인 박문석은 형 박문화가 1980. 제24회 행정고시 2차 시험에 합격하였으나, 3차 면 접과정에서 불합격하였고, 다음해 1981. 제25회 행정고시 3차 면접에서도 불합격한 것을 비관하여 1982. 1.경 경북 청도 야산에서 자살 1) 하였는데, 각종 시위전력이 있는 자들을 국가공무원 임용에서 배제하기 위한 지시에 의해 불합격한 것이라며 2006. 11. 21. 진실 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라 한다)에 진실규명을 신청하였다. 1) 대구 달성군 화원읍장이 발행한 박문석의 호적등본 을 보면, 박문화는 1982. 1. 1. 오후 2시경 경북 청도 군 화양읍 범곡동 산164번지에서 사망하였고, 동년 1. 15. 동거하는 박문수에 의해 사망신고되었다. 334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2. 조사의 근거와 목적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이하 기본법이라 한다) 제1조는 항일독립운 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 학살, 의문사사건 등을 조사하 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 확립과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 을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당시 총무처가 제24회, 제25회 행정고등고시 면접시험에서 시위전력을 이유로 면접위 원들에게 탈락 점수를 주도록 요구하거나 면접위원들의 면접점수와 상관없이 수험생들 을 탈락시켜 불합격된 것이 확인될 경우, 이는 국가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있는 지위를 박 탈한 것으로서 기본법 제2조1항4호가 규정한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인 한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하고 기본법 제4장에 따라 국가가 취할 조치를 권고할 필요가 있어 2008. 5. 6 조사개시를 의결하고 조사를 진행하였다. 3. 규명과제 가. 행정고시 면접탈락자의 시위전력 여부 제24회, 제25회 행정고시 2차 합격생 중에서 시위전력이 있는 사람은 행정고시 3차 면 접시험에서 탈락하였다 하므로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나. 시위전력자 행정고시 면접탈락 정부방침 여부 총무처장관이 행정고시 면접에서 시위전력자는 배제하라고 지시하였는지에 대한 조사 가 필요하다. 다. 면접위원들에 대한 면접탈락 요구 여부 총무처 관계자들이 총무처장관의 지시를 받고 면접위원들에게 시위전력자는 배제하라 는 요구를 하였고, 면접위원들이 그 요구에 따라 면접시험에서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제24회 제25회 행정고시 면접탈락 사건 335
제4권 4. 조사방법 가. 자료조사 1) 행정고시 관련 각종 자료 2) 제24회, 제25회 행정고시 2 3차 합격자 명단, 3차 면접 시험위원 명단, 제24회, 제25 회 행정고시 3차 면접 불합격자 2차 점수, 행정고시 3차 면접 불합격자 대학별 징계 내역, 행정고등고시 면접탈락자 현황, 공무원임용시험령 등 관계 법령, 1977.~1983. 관보 2) 경북대학교 문서 1978.~1979. 학생징계대장, 1977.~1981. 학장회의록, 1976.~1981. 경북대신문 축쇄판 3) 신문 및 잡지 서울신문 등 일간지 기사, 고시계 나. 진술청취 신청인 박문석(박문화의 동생), 박문수(박문화의 형) 제24회, 제25회 행정고시 2회 연속 탈락자 백종섭, 배국열, 김현, 제25회, 제26회 행 정고시 2회 연속 탈락 윤종규 총무처 관계자 3) 5명 제24회 행정고시 면접위원 4) 6명, 제24회 행정고시 출제위원 오 2) 제24회, 제25회 행정고시 면접탈락자 사건을 조사하기 위하여 면접탈락자 명단 및 불합격자 점수 및 사유, 행정고시 부적격자 명단, 시국관련 문제행위자 통보, 학사징계 탈락자 명단, 신원 특이자 처리, 참고첩보 등 행정고시 면접 관련 자료 입수를 위해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 서울정보센터, 중앙인사위원회, 국가정 보원 등으로 공문을 발송하였으나 국가정보원은 해당사항이 없다며 기원-448(2008. 10. 22)로 반송하였고, 국가기록원은 자료 없음을 확인하였고, 중앙인사위원회에서는 기타 관련자료 관련 규정에 의해 모두 폐 기되었다 고 인재채용과-124(2008. 2. 5)로 회신하였고, 행정안전부에서는 제24회, 제25회 행정고시 시험 위원의 소속이 기재된 전체 명단(제24회 51명, 제25회 41명) 과 시험 성격, 합격선 및 불합격자 2차 점 수, 연도별 통계 를 채용관리과-756(2008. 7. 11)로 회신하였다. 3) 황 은 이 의 후임으로 1981. 8. 17.~1981. 11. 2. 까지 고시국장을 역임하였고, 이후 고시국이 인사 국으로 편입되었음. 4) 제24회 행정고시 면접위원은 강, 김, 양, 박, 구, 손, 조, 박, 김, 박 이다. 박 (1926년생)은 노환을 이유로 면담조사를 거부하였다. 강 (2004.경), 박 (2006.경) 는 사망하였고, 구 는 10년 전에 중풍에 걸렸으며, 김 은 인적사항을 확인하지 못하여 조사하지 못 하였다. 336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제25회 행정고시 면접위원 5) 6명 박문화의 대학 지도교수 김, 경북대학교 법정대 행정학과 76학번 동기 6) 문, 김, 유, 박, 장, 심, 행정학과 77학번 최, 장, 법정대 정치외 교학과 76학번 권, 박문화의 동네 친구 서 제24회 행정고시 면접탈락자 윤중기(제25회 미응시), 제24회 행정고시 면접탈락 후 제25회 행정고시 합격자 7) 최, 김, 나, 정, 양, 제25회 행정고시 면접 탈락 후 제26회 행정고시 합격자 8) 김, 예 제23회, 제24회 사법시험 면접탈락자 한 Ⅱ. 조사결과 1. 사건배경 1980. 전후한 10여 년간 대학생들은 유신철폐, 긴급조치철폐, 학원자유, 노동자 권익 등 을 쟁점으로 전국적으로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이를 막기 위해 정부는 중앙정보부와 후 신인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라 한다) 주도하에 학원 문제 발생 시마다 관계기관 대 책회의를 개최하는 등 범정부차원에서 대책을 강구하였는데 9), 그 예가 교련교육 학도호 국단 교수재임용제 졸업정원제 교수분담지도제 제적생 및 해직교수 처리 등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대학생들이 형사처분을 받거나 학사징계를 받았다 10). 5) 제25회 행정고시 면접위원은 구, 이, 김, 최, 김, 유, 박, 유 이다. 최 은 질의서를 발송하였으나 답변을 거부하여 조사하지 못하였다. 제24회, 제25회 행정고시 2회 연속 면접위원 은 구, 김, 김, 박 이다. 6) 경북대 법정대 행정학과 76학번 동기 강, 권, 김, 김, 김, 김, 김, 남, 민, 박, 박, 박, 황, 배, 배, 신, 심, 엄, 오, 이, 이, 이, 장, 채, 최, 허 에게 이메일 질의서를 조사4팀-616(2008. 6. 2)으로 발송하였으나, 대 부분 답변이 오지 않았고, 이들 중 김, 박, 박, 장, 심 은 면담 및 전화조사를 하였다. 7) 제24회 행정고시 면접탈락 후 제25회 행정고시 합격자 중 인적사항이 확인된 김, 나, 김, 김, 조, 최, 한, 최, 유, 곽, 신, 양, 정 에게 질의서를 조사4팀 -958(2008. 8. 19)으로 발송하였으나 최, 김, 나, 정 만이 답변하였고, 양 은 전화조사 를 하였다. 8) 제25회 행정고시 면접탈락 후 제26회 행정고시 합격자 중 인적사항이 확인된 손, 박, 김, 박, 정, 예 에게 질의서를 조사4팀-958(2008. 8. 19)으로 발송하였으나, 김 과 예 만 답변 하였다. 9) 국가정보원 발전위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학원 간첩편(Ⅵ)-, 233쪽. 10) 국가정보원 발전위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학원 간첩편(Ⅵ)-, 27-28쪽. 1979. 10.~1980. 5. 17. 기간 제24회 제25회 행정고시 면접탈락 사건 337
제4권 총무처에서는 1980년도부터 사법시험 응시자들에 대해 시험성적 외에도 국가관, 사명 감, 충성심 등을 평가에 반영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면접시험을 강화하는 한편, 출신학교 로부터 개인의 자료를 제공받고 안기부에 1, 2차 시험 합격자 명단을 통보하여 재학 중 시국과 관련된 문제 행위자를 별도로 통보받아 합격 심사에 반영시키고 있었다. 11) 당시 행정고시와 사법시험은 총무처장관이 관장하였으며, 시험 실시 주무부서는 총무처 고시 과였다 12). 행정고시는 공무원임용시험령이 정한 응시연령(20세~32세)에 해당하는 불특정 다수 인을 대상으로 공개경쟁시험을 통하여 최종합격자를 결정하고, 채용후보자 등록, 신원조 사 등 일정한 절차를 거쳐 5급 공무원으로 임용하는 시험으로 13), 국가공무원법 제33조 제1항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응시할 수 없었다. 14) 제15회(1974.)부터 제23회(1979.)까 지 2차 합격자 중 제21회(1977.) 3명만 최종 불합격한 사례를 제외하고는 모두 2차 합격 자와 최종합격자의 숫자가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최종 불합격자는 없는 것 15) 으로 확인되 었다. 그런데 제24회, 25회 행정고시 면접에서 2차 합격생이 대규모로 탈락한 사건이 발 동안 283회에 걸쳐 연인원 29만 명이 시위에 가담했고, 1일 최고 가담인원은 89,250명에 이르는 학원소요 가 발생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조치사항으로는 계엄 전국 확대, 휴교는 1979. 10. 27.~ 11. 18.간 全 대학, 1980. 5. 18.~8. 31.간 전 대학에 내려졌고 징계조치(제적 등)를 당한 학생의 수는 모두 541명이었다. 11) 총무처에서 파견된 보안사령부 소속 4급 박 이 1982. 9. 6. 작성한 참고첩보 문서 총무처 사법고시 응시자 중 신원특이자 처리에 부심 보고서, 2007. 9. 18. 진실화해위원회 제54차 전원위원회에서 진실규 명 결정한 제23회 제24회 사법시험 면접탈락 사건 사건기록 中. 12) 법무부 사법시험 홈페이지(http://www.moj.go.kr/barexam/) 연혁 참조. 2002년 이전에는 총무처, 행정자 치부 고시과에서 사법시험과 행정고시 시험을 주관하였다. 2001. 3. 28. 사법시험법이 공포 시행됨에 따 라 주관부서가 변경되어 2002년 이후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에서 사법시험을 주관하고 있다. 13) 국가공무원법 제28조 및 공무원임용령 제2장제1절, 공무원임용시험령 제21조 내지 제23조. 제24회 행정고 시의 시험은 공무원임용시험령에 따르면 3급을류공개경쟁채용시험 이었고, 1981. 6. 18. 개정된 공무원시 험령에 의해 제25회 행정고시의 시험은 5급을류공개경쟁채용시험 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4) 국가공무원법[일부개정 1978. 12. 5 법률 제3150호] 제33조(결격사유) 1 다음의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공무원에 임용될 수 없다.<개정 1973. 2. 5, 1978. 12. 5> 1. 금치산자 또는 한정치산자 2. 파산자로서 복권되지 아니한 자 3. 금고이상의 형을 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5년을 경과하지 아니 한 자 4. 금고이상의 형을 받고 그 집행유예의 기간이 완료된 날로부터 2년을 경과하지 아니한 자 5. 금고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는 경우에 그 선고유예 기간 중에 있는 자 6. 법원의 판결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여 자격이 상실 또는 정지된 자 7. 징계에 의하여 파면의 처분을 받은 때로부터 5년을 경과하지 아니한 자. 15) 1974.~1979. 서울신문, 관보 행정고시 2차 합격자 공고 및 최종합격자 공고. 338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생하였다. 2. 사건경위 제24회, 제25회, 제26회 행정고시의 최종합격자는 각각 187명, 128명, 109명 등 총 424 명이다. 16) 그런데 제24회(1980.) 행정고시의 선발예정인원은 250명(단, 제2차 시험성적이 전 과목 평균 57점 이상이어야 한다)으로 1차 선택형 필기시험, 2차 논문형 필기시험, 3차 일반 면접시험 17) 과 서류심사를 거쳐 최종합격자 18) 를 결정하였다. 1980. 12. 11.~12. 중앙 청에서 시행된 3차 면접시험에 2차 시험 합격자 208명이 응시하여 187명은 통과하여 최 종합격하였으나 21명은 면접시험에서 불합격하였다. 제25회(1981.) 행정고시의 선발예정인원은 150명이었다. 1981. 12. 21.~22. 중앙청에서 열린 3차 면접시험 19) 에 제25회 2차 시험 합격자 121명, 시험규정에 따라 1, 2차 시험을 면제 20) 받은 제24회 면접탈락자 20명(윤중기는 미응시) 등 총 141명이 응시하여, 제25회 2 16) 별첨 자료 1 참조. 17) 제24회, 제25회 행정고시 3차 면접시험 면접위원으로 활동한 박 은 1981. 2월호 고시계 기고 글에서 1980년도 제24회 행정고등고시에서 처음 실시된 개인면접시험(1일간)과 집단면접시험(7인을 2인 시험관 이 45분 내지 50분간 시험하는 것)에 필자는 처음으로 참여하였기 때문에 이것에 대하여도 약간 언급하고 자 한다. 토의문제는 다음과 같다. 공무원으로서의 정신자세를 공직관, 국가관, 윤리관 이라는 3개 착안 점에서 말문을 열어 토의시켰으며, 필자는 1980년대 한국행정상과 공무원의 역할 을 길게 토의시켰다 고 적시하였고, 당시 총무처 고시1과장 하 는 제24회 행정고시 면접시험에서 관련 규정에도 없었는데 시 범적으로 집단면접시험을 도입하였다고 진술(2008. 10. 6, 조사)한바, 제24회 행정고시 면접시험에서도 집 단면접시험이 시행되었다. 18) 공무원임용시험령 [1980. 8. 1 법률 제9988호]. 동시행령 [1981. 6. 18 법률 제1360호] - 제3차 시험은 합격 불합격만을 결정하되, 면접시험과 실기시험을 병과하였을 경우에는 면접시험과 실 기시험에 각각 합격한 자를 제3차 시험 합격자로 결정하였다. 최종합격자의 결정은 제3차 시험합격자 (제3차 시험을 거치지 아니한 시험에 있어서는 제2차 시험합격자) 중에서 제1차 시험과 제2차 시험성적 을 합산한 성적 순위에 의하되, 이 경우에 그 배점비율 등은 동률로 하였다. 다만, 제1차 시험과 제2차 시험을 병합하여 실시하는 경우에는 그 시험성적 순위에 의하되, 이 경우의 각 과목별 배점비율 등은 동률로 하였다. 19) 행정고시 3차 시험 불합격에 관한 진정 에 대한 총무처 민원회신문[고일125-367, 1982. 2. 3] - 당시 행정고시 3차 면접시험은 수험생의 공무원으로서의 적격성과 자질을 평가하는 것으로서 2명의 면접시험위원이 수험생과의 면담, 수험생 간의 일정한 주제에 대한 집단토의식 면접을 통하여 1 공무 원으로서의 정신자세, 2 전문지식과 응용능력, 3 의사발표의 정확성과 논리성, 4 용모, 예의, 품행 및 성실성, 5 창의력, 의지력, 기타 발전 가능성 등의 평정 5개 요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2명의 위 원이 각각 15점 만점에 평균 10점 이상을 주어야 하며, 위 5개 요소 중 어느 한 요소에 2위원 모두 하 (1점) 로 평정하지 아니하여야 합격하게 되어 있었다. 20) 행정안전부 인사실 채용관리과-756(2008. 7. 11), 공무원임용시험령 제12조의2-1980. 이전 행정고시에서는 1차 시험에 합격한 자에 대하여 다음회 시험에 한하여 1차 시험을 면제하는 규정만 존재하다가, 1980. 8. 1. 제3차 면접시험에 불합격자한 자와 불의의 사고로 제3차 시험에 응시하 제24회 제25회 행정고시 면접탈락 사건 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