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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과 학기 술부 고 시 제 호 초 중등교육법 제23조 제2항에 의거하여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을 다음과 같이 고시합니다. 2011년 8월 9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 1.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은 별책 1 과 같습니다. 2.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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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동북아역사논총 42호 금융정책이 조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제 대외금융 정책의 기본원칙은 각 식민지와 점령지마다 별도의 발권은행을 수립하여 일본 은행권이 아닌 각 지역 통화를 발행케 한 점에 있다. 이들 통화는 일본은행권 과 等 價 로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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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佛敎學報 第 48 輯 서도 이 목적을 준수하였다. 즉 석문의범 에는 승가의 일상의례 보다는 각종의 재 의식에 역점을 두었다. 재의식은 승가와 재가가 함께 호흡하는 공동의 場이므로 포 교와 대중화에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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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영화연구

제1절 조선시대 이전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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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이전> ⑴ 문명의 형성과 고조선의 성립 역사 학습의 목적, 선사 문화의 발전에서 국가 형성까지를 다룬다. 역사가 현재 우리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었음을 인식하고, 역사적 상상력을 바탕으 로 선사 시대의 삶을 유추해 본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국가가 형성되고 문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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延 世 醫 史 學 제12권 제2호: 29-40, 2009년 12월 Yonsei J Med Hist 12(2): 29-40, 2009 특집논문 3 한국사회의 낙태에 대한 인식변화 이 현 숙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1. 들어가며 1998년 내가 나이 마흔에 예기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되었을 때,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들 너무나도 쉽게 나에게 임신중절을 권하였다. 나 역시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를 넘어서 둘도 많다 는 정부의 가족계획사업 슬로건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자란 터라서, 아이 둘이 있는 상태에서 셋째를 낳는다는 결심을 하기까지 상당한 용기와 고집이 필요하였다. 당시 한국은 셋째 아이의 경우, 의료보험혜택조차 제공받지 못하는 잉여인간 취급을 받았 으며, 나와 같은 상황에서 대부분의 내 지인들은 낙태를 선택하였다. 1) 당시 나는 낙태를 죄악시하는 가톨릭 국가였던 푸에르토리코에 거주하고 있었고, 나를 담당했던 산부인과 의사는 산모의 건강이 위험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은 낙태수술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2) 만일 내가 그 때 한국에 있었다면 나와 내 아이의 인생이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이처럼 낙태를 용이하게 생각하는 사회분위기는 축복받으며 태어날 수 있는 생 명조차도 쉽게 사라지게 할 수 있다. 2009년 산부인과 의사 구술면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1950년대 이후 산부인과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이면에 낙태도 있었다는 점이 누차 지적되었다. 낙태는 산부인과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것이다. 오늘날까지 낙태는 산부인과에서 의료보험이 되지 1) 낙태란 태아를 자연분만기에 앞서서 인위적으로 모체 외로 배출하거나 태아를 모체 안에서 살해 하는 것 이지만, 한국형법상에서 인공임신중절보다 넓은 개념이다. 모자보건법상 인공임신 중절수 술은 태아가 모체 외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시기에 태아와 그 부속물을 인공적으로 모체 외 부에 배출시키는 수술을 말한다(모자보건법 제2조 6호). 양현아, 여성 낙태권의 필요성과 그 함 의, 한국여성학 21-1, 6쪽. 본고에서 사용하는 낙태는 일반적인 용례에 따라 인공임신 중절의 의미이다. 2) 낙태를 죄악시하는 가톨릭 국가인 푸에르토리코에서는 10대 임신이 출산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 아서 아이가 아이를 키우는 어린 미혼모의 양산이 오히려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곳의 일반 의 사들이 낙태를 꺼리므로 낙태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낙태 공장과 같은 병원이 존재하였다.

30 / 延 世 醫 史 學 제12권 제2호 않고 현금으로 계산되는 주 수입원 중 하나이다. 인구 억제 정책에 성공한 한국은 21세기 들어 대표적인 저출산 국가가 되어, 이제는 인 구감소를 염려하고 있다. 출산장려 정책으로 전환한 정부는 이제 낙태에 대한 인식의 전환 을 꾀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최근 몇몇 산부인과 의사모임에서 낙태를 더 이상하지 않 겠다는 선언을 하고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불법낙태신고센터를 운영하는 등 내부 고발의 가 능성까지 대두되고 있다. 이에 개원 산부인과 병원 사이에서는 암묵적으로 시술되던 낙태 수술을 스스로 거부하거나 중단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3) 이러한 변화상은 보 건복지가족부가 출산력을 높이기 위해 불법낙태를 근절하려는 움직임과 밀접한 관련이 있 는 것으로 보인다. 격동의 한국현대사는 이처럼 낙태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도 빠른 변화를 보이고 있다. 4) 본고는 이번 산부인과 의사 구술사업 결과물과 2001년 낙태에 대한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를 이용하여 한국사회의 낙태에 대한 인식변화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그것이 가지는 함 의를 추출해 보고자 한다. 2. 낙태에 대한 법적 제한과 현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해 낙태를 하기로 결정하면, 우리는 낙태시술을 잘하는 병원에 관한 정보를 수집한 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시술을 받는다. 그러나 실제 한국의 형법체계 에서는 낙태를 죄로 규정하고 있다. 1953년에 제정된 형법 27장에서 따르면, 태아는 생명체 이기 때문에 태아를 낙태시키는 것은 죄를 범하는 것이며 따라서 낙태를 하는 부녀나 부녀 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서 낙태를 하도록 한 사람 모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5) 그런데도 불구하고 낙태가 이처럼 공공연하게 불법이라는 의식 없이 자행되었던 원인은 어디에 있었을까? 여기에는 인구 억제정책을 강력하게 펼쳤던 정부의 낙태 방조가 결정적 인 역할을 하였다. 형법에 따르면 모든 낙태가 불법이었지만, 모자보건법시행령 제 15조에 서 낙태를 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를 둠으로써 낙태를 법적 허용하였다. 모자보건법에서 는 낙태를 임신중절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낙태가 형법상 금지된 행위라는 점을 희석시키고 있다. 6) 3) 산부인과 불법낙태 단속 분위기 확산, 메디컬투데이 (2010. 1. 8). 4) 한국의 낙태에 대한 역사적 변화상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고할 수 있다. 전효숙 서홍관, 해 방 이후 우리나라 낙태의 실태와 과제, 의사학 12-2, (2003). 5) 박숙자, 여성의 낙태 선택권과 입법과제 연구, 한국여성학 17-2, 82쪽. 6) 이선순, 재생산권으로서의 낙태에 관한 법여성학적 고찰, 여성학연구 16-1, 113쪽. 주10에서 재

한국사회의 낙태에 대한 인식변화 / 31 그러나 예외적인 경우라는 것도 사실은 극히 제한적이어서,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 령령이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본인 또는 배우 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 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 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히 해하고 있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로 한정하였다. 낙태를 했던 내 지인들 가운데 이에 해당하는 경우는 누구도 없었으니, 내 지인들과 이 를 시술해 준 의사들 모두 범법자였던 것이다. 이처럼 체포되지 않은 범법자들은 어느 정 도나 있었을까?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15세에서 44세까지 배우자가 있는 부인의 인공임신 중절은 1994년도 총 임신 대비 인공임신중절 28.4%였고, 1997년 26.1%, 2000년에는 24.1% 였다고 한다. 7) 감소추세에 있기는 하지만 배우자가 있는 임신한 여성의 아이도 4분의 1 가 까이 태어나지 못하고 있다. 1970년대나 1980년대의 경우, 그 수치는 더 올라갈 것이다. 15세에서 44세까지 배우자가 있는 부인이 경험한 평균 인공임신중절 경험 횟수는 1978년에는 1.2회, 1985년과 1988년에 는 1.1회, 2000년에는 0.7회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8) 현재 50-60대의 결혼한 한 국 여성이라면 평균적으로 한 번 이상 인공임신 중절 수술을 경험하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이 기혼 여성에 관한 수치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실제 그동안 행해진 임신중절수술 횟 수는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인다. 갤럽이 1994년과 2001년에 두 차례에 걸쳐 추적 조사한 바에 따르면, 9) 낙태 경험이 있 는 여성은 38.6%(1994년)과 38.8%(2001년)이며, 낙태 빈도는 평균 2.0회(1994년)와 1.9회 (2001년)로 나타나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10) 이 분석에 따르면 낙태 경험률은 18-29세 여성의 경우 경험자가 열 명 중 한 명꼴이었으나, 30대는 45.1%로 급상승하고, 40 대의 낙태 경험률이 58.3%로 가장 높다. 내 나이 또래의 여성들은 반 이상이 낙태를 경험 하였다는 의미이다. 이를 알기 쉽게 표로 만든 것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인용. 7) 안형식ㆍ김해중,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및 대책 수립 연구 - 연구 계획 및 설문조사 중간발표, 한국모자보건학회 제17회 춘계학술대회 연제집, (2005), 24쪽에서 재인용. 8) 같은 논문. 9) 허진재, 피임과 낙태에 관한 국민의식 조사, AD Information (2001. 6), KOBACO, 134쪽. 10)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무작위로 추출 선정된 만 18세 이상 남녀 1천 488명(기혼자 1천64명) 을 대상으로 면접조사 방법으로 진행된 것으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2.5%P라고 한다. 같 은 논문, 136쪽에서 재인용. 이는 안형식ㆍ김해중의 설문조사 수치와는 조금 다르다.

32 / 延 世 醫 史 學 제12권 제2호 <표 1> 낙태횟수 구분 없다 1회 2회 3회 4회 5회 이상 무응답 전체 61.2 17.3 10.4 6.4 1.2 0.9 2.6 18~29세 89.5 8. 1.0 - - - 1.0 30대 54.9 25.4 11.8 4.0 0.4 0.4 3.2 40대 41.7 27.0 17.6 3.8 5.1 1.8 3.4 50세이상 53.9 11.9 12.9 16.0 0.5 1.9 2.9 허진재, 피임과 낙태에 관한 국민의식 조사, 135쪽에서 전재. 실제 2004년 11월부터 2005년 8월까지 전국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연구 결과에 따르 면, 연간 시술 건수는 35만 590건으로 추정되며, 기혼 여성 20만 3230건 미혼여성 14만 7360건이라고 하였으며, 또 기혼 여성 10명 중 4명꼴로 낙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인공임신 중절을 한 이유에 대해 미혼여성의 95%가 미혼 등 사회경제적인 이유를, 기혼 여성의 75%는 가족계획을 들었다고 한다. 11) 여전히 30만 명 이상의 태아가 매년 경제 적인 이유로 사라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낙태를 하는 주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경제소득이 향상되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낙태의 원인에도 변화가 있었을까? 앞서 인용한 갤럽 조사에서 낙태 원인에 대한 결 과를 표로 비교 제시한 것이 있어 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2) <표 2> 낙태이유 순위 1994년 2001년 이 유 비 율 이 유 비 율 1 피임실패/원하지 않아서 58.3 피임실패/원하지 않아서 58.9 2 산모의 건강이 나빠서 14.8 산모의 건강이 나빠서 14.8 3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10.6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11.8 4 나이 차이를 두려고 8.7 나이 차이를 두려고 9.6 5 임신중 약을 복용해서 8.4 임신중 약을 복용해서 6.6 6 아들을 낳으려고 5.0 아들을 낳으려고 5.4 7 태아건강에 문제가 있어서 2.7 태아건강에 문제가 있어서 2.1 허진재, 피임과 낙태에 관한 국민의식 조사, 135쪽에서 전재. 11) 동아일보 (2005. 9. 13); 이선순, 앞 글, 109쪽, 주2에서 재인용. 12) <표1>과 <표2>는 KOBACO에서 내는 광고정보지 AD Information (2001. 6)에 실린 피임과 낙태 에 관한 국민의식 조사 에서 인용한 것임.

한국사회의 낙태에 대한 인식변화 / 33 열 명 중 7명에 가까운 여성이 피임 실패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계획에 없었던 아 이를 중절 수술을 하였다고 대답하였다. 낙태의 원인 역시 시대가 변해도 별로 변하지 않 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2009년 1월 7일 공포된 모자보건법에서 몇 가지를 개정하였는데, 그 구체적인 내 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공임신중절수술 허용 기간을 임신한 날부터 28주일 이 내에서 임신 24주일 이내로 변경하였다. 둘째,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우생학적 또 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의 종류에서 유전성 정신분열증, 유전성 조울증, 유전성 간질증, 유전성 정신박약, 유전성 운동신경원 질환, 혈우병 및 현저한 범죄경향이 있는 유전 성 정신장애를 삭제하고, 앞으로는 연골무형성증, 낭성섬유증 및 그 밖의 유전성 질환으로 서 그 질환이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질환의 경우에만 가능하게 하였다. 셋째, 인공 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전염성 질환의 종류에서 수두, 간염, 후천성면역결핍증 및 전 염병예방법 제2조 제1항의 전염병을 제외하고, 앞으로는 풍진, 톡소플라즈마증 및 그 밖에 의학적으로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전염성 질환의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하였다. 13) 태 아의 건강을 위주로 인공임신중절을 할 수 있는 질병을 극도로 제한하면서, 낙태를 할 수 있는 범위를 더욱 축소한 것이다. 이처럼 현재 법에 따르면 여성들은 임신하였을 경우, 낙태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모자 보건법상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규정은 더욱 더 엄격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는 별다른 제재 없이 낙태가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이처럼 엄격한 법조문을 60년 가까이 존치시키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문제는 국가의 필요에 의해 언제든지 이 법조문은 낙태를 행한 여성이나 의료인을 처벌하는데 아주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이 바로 현재 의료계가 긴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94년만 해도 아이를 하나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고 정부에서 아우성칠 때이 다. 낙태 현실은 7년이 지난 2001년에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갤럽이 이에 관한 동일한 조사를 실시하지 않아서 최근의 변화상을 알 수가 없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14) 낙태를 하는 가장 큰 요인이 피임실패와 경제적인 이유라는 것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13) 모자보건법 시행령 일부개정령(2009. 7. 8), 보건복지가족부 홈페이지(http://www.mw.go.kr). 14) 갤럽은 대신 성별 행복도에 대한 인식 조사 를 실시하였다. http://www.gallup.co.kr의 갤럽리포트 참조.

34 / 延 世 醫 史 學 제12권 제2호 3. 낙태에 대한 인식변화 여성이 자신의 몸에 생겨난 태아를 인위적으로 낙태하는 것을 사회문제로 보고 국가가 처벌대상으로 삼은 것은 고대 로마부터였다고 한다. 원래 고대 로마법에는 태아는 모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고 보아 낙태가 처벌되지 않았는데, 200년 경 세베루스 황제 시대 부터 여성이 낙태를 하면 이것은 남자가 가지는 자녀에 대한 기대를 파괴한다는 이유에서 처벌하기 시작하였다. 15) 낙태를 태아의 생명을 살해하는 범죄로 파악하기 시작한 것은 기 독교 사상의 영향 하에 있던 중세 교회법과 독일 보통법이었는데, 생산 수단으로서 인구 확보가 필요하였기 때문이었다. 1532년의 카롤리나 형법에서는 태아를 생명이 있는 태아와 생명이 없는 태아로 구별하여 전자를 낙태했을 때는 살인죄로 처벌하였다. 16) 태아를 구별 하지 않고 생명으로서 간주하여 낙태죄로 처벌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후이며, 현재와 같은 죄의 의미를 가진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였다고 한다. 17) 박정희 대통령의 모친이 늦둥이였던 박정희를 임신하자 이를 낙태하기 위해 높은 곳에 서 뛰어내리고 또 간장을 퍼마셨다고 그의 전기에서 전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 전근대 사 회에서도 원치 않는 임신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낙태를 하고자 하는 여성들은 여전히 존재 하였다. 동의보감 에서는 졸인 누룩이나 독성이 강한 부자며, 쇠무릎풀, 구맥, 계심 등을 태를 떨구는 낙태약으로 지목하였는데, 동양 전통의학에서 오랜 기간 사용하였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 조선시대에 사생아를 임신하여 낙태를 하려고 할 때 미륵불이나 부처님의 코를 조금 긁어먹으면 효과가 있다는 속설도 있었다고 한다. 18) 그러나 한국의 전근대사회에서는 낙태가 큰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선시대 형법 에서 구타로 인해 낙태한 것만 기술하고 있어 낙태란 곧 타태죄( 墮 胎 罪 )에 해당하였으며, 그 주체는 타인으로 한정하였다. 19) 실제 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 에 기 재된 낙태 기사는 대부분 임신한 여자를 때려서 낙태하게 된 경우였다. 예컨대 임신한 부 녀자를 구타하여 낙태하게 하였을 때 장 1백대를 치도록 하였다. 20) 형체가 이루어지지 않 은 태아는 임부의 신체 일부를 손상한 것으로 취급하여 구타 상해로 규정하였는데, 자녀 낙태에 대한 것은 없었다고 한다. 21) 사실 임신한 여성의 낙태는 워낙 은밀하게 진행되는 15) 이재상, 형법신강 (1989), 83쪽; 오정진, 법에 나타난 낙태문제, 여성과 사회 8, (1997), 98쪽. 16) 같은 논문. 17) 오정진, 앞 글, 98쪽. 18) 신동원, 조선 사람의 생로병사 (한겨레신문사, 1999), 30-33쪽; 전효숙 서홍관, 앞 글, 132쪽. 19) 전효숙 서홍관, 앞 글, 132쪽. 20) 사헌부에서 비리를 저지른 지양근 군사 이종직에 대한 치죄를 건의하다, 세종실록 卷 40, 세종 10년(1428년), 무신 2번째 기사; http://sillok.history.go.kr에서 인용. 21) 전효숙 서홍관, 앞 글, 132쪽.

한국사회의 낙태에 대한 인식변화 / 35 개인적인 일이라 출산력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던 전근대 사회의 국가 권력이 굳이 이를 발 각하여 형벌을 줄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 강점기 이후 일본식으로 형법이 본격적으로 개정되면서 낙태죄에 대한 개념이 변 화하였다. 1912년 일제 의용 형법에서 조선시대와는 달리 자녀를 낙태한 경우에 대한 처벌 규정이 생겼다. 22) 물론 여기에는 일본이 수용하였던 서양 법의 영향이 존재하였지만, 일제 가 황국의 신민을 생산하는 출산을 적극 장려하였던 정책을 추진하였으므로 낙태를 큰 죄 로 인식하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해방 이후 낙태죄는 1953년 형법제정에서 규정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정부 초안의 낙태 죄에 대한 규정을 두고 국회에서는 처벌론과 허용론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한국전 쟁이 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낙태폐지론자들은 가난한 가정에서 임신한 경우 합법적으로 낙태를 인정해 주는 것이 옳고, 여러 번 출산 경험을 가진 부녀가 다시 임신을 하여 분만 하게 되면 생활고와 함께 신체가 임신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쇠약해진다는 점을 지적 하였다. 23) 그러나 낙태가 국가의 형벌 대상임이 규정되었지만, 낙태는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번 산부인과 구술조사사업에서 인터뷰에 응하였던 가톨릭 대학교 강남성모병원 원장 을 역임하였던 김승조 교수는 (해방 이후) 당시에는 피임약도 없었고 법이 널리 피임방법을 몰랐고. 첫째, 일반 수준이 피 임 방법을 몰랐고. 의사들이 명확하게 교육시키지를 못했고. 하여간 그런 의료체계 그런 게, 안되어 있었으니깐. 24) 라고 하여 원치 않은 임신에 낙태가 횡행하였다는 것을 증언하였다. 또한 1960년과 70 22) 일제 의용 형법에서 규정한 낙태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전효숙 서홍관, 앞 글, 132쪽에서 재인용. 제212조 잉태한 부녀가 약물을 쓰거나 또는 기타의 방법으로써 타태한 경우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213조 부녀의 촉탁을 받거나 또는 승낙을 얻어 타태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이로 인하여 부녀를 사상에 이르게 한 자는 3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214조 의사, 산파,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을 받거나 또는 승낙을 얻어 타태에 이르 게 한 자는 3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이로 인하여 부녀를 사상에 이르게 한 때에는 6 월 이상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215조 부녀의 촉탁을 받지 않거나 또는 그 승낙을 얻지 않고서 타태한 자는 6월 이상 7년 이하 의 징역에 처한다. 전항의 미수범은 벌한다. 제216조 전조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사상에 이르게 한 자는 상해죄와 비교하여 무거운 것에 따라 처단한다. 23) 형법제정자료집 (1990), 450-458쪽; 이선순, 앞 글, 112쪽에서 재인용. 24) 김승조 인터뷰(2009. 8. 28).

36 / 延 世 醫 史 學 제12권 제2호 년대 들어서 루프나 기타 복강경, 피임기술 등이 발전한 것이 낙태율을 저하시키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음을 지적하면서, 그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미아리에 성가병원이라고, 낙태를 하루에도 수십 건씩 하는 병ㆍ의원들이 많았죠. 그래서 내 가 가톨릭 주임교수로 있을 때는 가톨릭 프렌치(Franchise) 병원을 많이 돌아 다녔는데, 지금 특히 기억나는 게 미아리에 성가병원이 있었어요. 아휴, 거기는 매일 밤 사고치고 들어오는, 낙태 때문에. 그 동네에 유명한 한국에서, 서울에서 낙태하는 낙태 전문병원이 있었어, 우리 나이면 다 아는데. (낙태하려는 여성을) 옆에 쫙 놓고. 25) 낙태를 죄악시 하는 가톨릭 전문병원마저 낙태 사업에 바빴던 당시의 현실을 통해, 낙 태가 산부인과의 큰 사업이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산모가 아이를 낳으려고 베드마 다 좍 누워있듯이, 당시 낙태하려는 여성들이 한꺼번에 누워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의 낙태 현상에 대해 서울대학교 장윤석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때는 낙태가 대부분은 개인병원이구요. 어, 법으로 걸리는 낙태하는 거는 다 개인병원이고. 소위 대학병원에서 소파수술 하는 거, 그거는 적응증이 되는 것만 하잖아요. 가령 낙태의 적 응증, 있잖아요. 그런 것만 대학에서 하고. 불법, 소위 그, 낙태라면은 불법이죠. 불법이라는 말이 거기에 포함되는 거죠. 불법 낙태, 법에 걸리는 유산행위, 그건 다 개인병원에서 하죠. 근데 그게 옛날에는 우리 야간개업 할 적에도 사실은 그거 먹고 살았던 거에요. 그거 없었으 면 굶어 죽었죠. 26) 야간 개업이란 공공병원에 근무하는 의사가 퇴근 후 자신만의 병원에서 환자를 받는 것을 말한다. 1960년대와 70년대 공공 병원 의사의 월급이 적었기 때문에, 27) 생계를 위해 많은 의사들이 야간 개업을 하였는데, 산부인과 의사의 경우는 주로 인공임신중절 수술이 었다. 한국최초의 시험관 아이를 탄생시켰던 장윤석 교수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서울대 산 부인과 조교는 무급으로 오히려 돈을 의국에 2천 원 씩 냈다고 한다. 6년 동안 무급조교생 활을 하였던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면, 그래서 야간개업이라는 게 있었죠. 그래서 야간개업을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야 간개업을 했어요. 그게 이제 사실 아주 따지고 보면 위법이죠. 근데 그때는 뭐 달리 생계를 25) 같은 글. 26) 장윤석 인터뷰(2009. 8. 12). 27) 위와 같음.

한국사회의 낙태에 대한 인식변화 / 37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으니까 그냥 용인한 거죠. 그니까 뭐 학교에 적을 두고 연구하고 하는 거는 하고 싶거든요. 근데 돈은 없고. 그러니까 그런 비상한 방법이 있었던 거죠. 기본적인 생계조차 보장하지 못하였던 당시 모순적인 국가제도와 일반 대중의 이해가 결합된 것이 산부인과 야간 개업이었으며, 낙태의 현실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국민 소득이 증가하면서 이러한 관행은 사라졌다. 2009년 현재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970년 이후 38년 사이 243배로 증가하였 다. 28) 그렇다면 이러한 소득 증가는 낙태 자체에 대한 인식 변화를 가져왔을까? 1994년과 2001년에 행해진 갤럽의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그림 1> 낙태에 대한 견해 (단위:%) 허진재, 피임과 낙태에 관한 국민의식 조사, 135쪽에서 전재. 위 조사결과는 낙태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낙태가 일종의 살인이라는 의견이 점차 줄고 살인이 아니라는 적극적인 견해가 오히려 늘고 있다. 이는 최근 낙태를 규제하려는 정부의 움직임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다. 그러나 낙태를 규제 하는 것에 대해서는 또 다른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28) 1인당 국민소득 38년 새 243배로 증가, 연합뉴스 (2009. 12. 21).

38 / 延 世 醫 史 學 제12권 제2호 <그림 2> 낙태 규제에 대한 견해 (단위:%) 허진재, 피임과 낙태에 관한 국민의식 조사, 135쪽에서 전재. 위 조사결과는 낙태가 살인이라는 점을 대부분 인식하지만 너무나 쉽게 낙태를 할 수 있는 한국적 현실을 좀 더 규제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동의하는 한국인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틀에서 볼 때, 낙태를 규제하는 찬성자가 오 히려 줄었음을 알 수 있다. 무어라 말할 수 없다는 층이 늘어난 것은 낙태를 하는 여성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이들도 증가하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여론 조사라는 것이 기법과 질문 방법에 따라 교묘하게 조작을 할 수 있는 것인지라, 전문 연구에서 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 고 위의 자료를 통해 낙태에 대한 인식변화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었다. 4. 결론 2009년 산부인과 의사 인터뷰 사업의 결과물 자료를 활용하여 낙태에 대한 법적 제한과 현실, 그리고 그 인식의 변화상을 추적해 보았다. 그 결과 낙태에 대해서 한국인은 상당히 이중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낙태의 주된 원인은 피임의 실패와 경제적 인 이유였다. 피임에 실패했다고 모든 사람들이 낙태를 하는 것이 아니므로 실제적으로는 아이를 낳아서 기를 수 없는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또한 70% 이상의 사 람들이 낙태가 살인이라는 점은 동의하지만, 불가피한 경우 낙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 다. 그리고 낙태가 살인이라는 인식이 점차 줄어들어가는 경향을 보여 주고 있었다.

한국사회의 낙태에 대한 인식변화 / 39 오늘날과 같은 낙태에 대한 형법적인 규제는 20세기 들어 시작되었는데, 형법상 한국에 서 낙태는 불법이며 그 허용 범위도 극히 제한적이다. 낙태에 대해 점차 엄격해지고 있는 추세라고 할 수 있으며,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낙태죄로 의료계와 여성들 가운데 범법자를 양산할 수 있다. 출산력을 높이는 것이 정부의 목표가 되면서 앞으로 낙태에 대 해서는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이 매우 높아, 의료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해야 하는 여성에 대한 배려나 논의가 도외시되 고 있다. 내가 마흔이 넘어서 아이를 낳고 병원에 누워있을 때, 내 옆 침상에는 푸에르토리 코인 미혼모가 있었다. 그녀를 돌보던 어머니는 나와 같은 나이였는데, 그녀 역시 17살에 엄마가 되어 그때 이후로 자신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나는 그녀와 밤새도록 이 야기 하면서, 어린 나이에 출산하는 것이 한 여성의 인생을 어떻게 송두리째 바꾸는 지 생 생하게 알 수 있었다. 현재 한국사회는 여성에게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세 아이를 키워 본 나로서는 그것이 얼마나 무리한 요구인지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낙태에 대한 법률적 규정은 국가와 사회의 필요성에 의해 좌지우지되었지, 재생산의 주체인 여성에 대한 배려는 거의 없었다. 내 세대의 출산과 낙태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서 한국 사회나 정부로부터 별 다른 배려를 받지 못했다. 출산과 양육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이 땅의 여성에 대한 보다 많은 배려가 이루어져 내 딸 세대는 나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기대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핵심어: 낙태, 인공임신중절, 인공유산, 산부인과 의사, 갤럽 여론조사, 피임기구, 보건복 지부

40 / 延 世 醫 史 學 제12권 제2호 Abstract Changes in Attitude toward Abortion in Korea LEE Hyun-sook Korea Culture Institute of Ewha Womans University This research focused on the ideals and the reality, specifically the changes in attitudes concerning abortion in Korea. Nowadays, the Korean government struggles against the problems of low fertility and population aging. Until a few years ago, they had tried to reduce fertility and very generous in abortion even though it has been illegal since 1953. Attitudes toward abortion have continuously changed depending on the needs of society. In the Choseon dynasty, there was no abortion penalty for women and we can see that abortions were carried out from the many remedies for abortion in the Donguibogam( 東 醫 寶 鑑 ), medical books of this dynasty. In the colonial period (1910-1945), Japanese Imperialism criminalized abortion and this continued after liberation in 1953. Although abortion is officially a crime in Korea, there have hardly been any accusations since then. However, the government is trying to control abortion and this is presenting obstetricians with a difficult situation. According to interviews with retired obstetricians, abortion was the one of the main causes of the growth of gynecology in 1960's and 70's Korea, and it was quite popular. After contraceptive devices became common, the rate of abortion decreased. However, attitudes about abortion did no change much. According to a Gallup survey in 2001, Koreans did not want to be restricted regarding abortion, though most of them considered it as killing a life. It reveals that it hardly changed for Korean attitude towards the abortion between 1994 and 2001. Only the attitude of government has changed depending its needs. Key words: Abortion, Attitude Toward Abortion, Fertility, Obstetrician, Gallup Research, Contraceptive Dev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