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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연구 제36집 251~287쪽 2015.2. 일제강점기 신민요의 문학정서 연구 36) 신광호( 申 光 浩 )* <차 례> 1. 머리말 2. 신민요의 不 快 情 緖 3. 신민요의 快 情 緖 4. 결론 [국문초록] 이 논문은 노랫말을 통해 표출되는 일제강점기(1910~1945) 新 民 謠 의 문학적 정서 연 구를 목적으로 快 情 緖 와 不 快 情 緖 두 패턴으로 나누어서 신민요의 정서의 양상이 노랫말 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분석하여 노랫말의 정서를 중심으로 신민요의 문 학정서 연구를 진행했다. 신민요는 1930년대를 전후해서 이면상, 형석기와 같은 직업 작곡가, 작사가들에 의해 한 국의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이 접목되어 창조된 한 가요양식이다. 노랫말이 전통 민요에 비해 더욱 시적이며, 많은 노래들이 가사와 음악이 정서적으로 같은 시기 대중가요와 달리 밝고 명랑한 것이 특징적이다. 그러나 출발이 일제 학정의 일제강점기이니 만큼 신민요는 불쾌 정서를 말끔히 극복하지 못해 실패감, 아쉬움, 회한, 원망, 비통, 고뇌, 그리움, 슬픔, 체념 등을 통해 표출되는 不 快 情 緖 와 긍정, 애착, 즐거움, 희망, 예찬, 흥겨움, 여유로움 등을 통해 표출되는 快 情 緖 가 혼재해 있는 양상이다. 신민요는 당시 한민족의 망국의 설움과 민족적 저항의 정서를 암유한 채 한국 전통음악에 뿌리를 내리고 선조들의 맥박과 숨결을 이어나가는 역사적인 사명과 역할을 충분히 이행했다. * 중국 연변대학교 예술학원 교수

252 한국학연구 제36집 신민요의 밝고 경쾌한 정서와 역사정신은 일제치하의 참혹한 현실 대응과 저항의 방법이 었고,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역경을 이겨내고 견딜 수 있는 힘과 용기였으며, 가장 가까운 음악전통으로서 북한과 중국조선족 음악의 형성과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오 늘날 북한과 중국조선족 음악은 바로 신민요의 바통을 잇고 있다. [주제어] 일제강점기, 신민요, 문학정서, 쾌 정서, 불쾌 정서 1. 머리말 이 논문은 노랫말을 통해 보여지는 일제강점기(1910~1945) 新民謠의 문 학정서 연구를 목적으로 한다. 신민요는 1930년대를 전후해서 이면상, 형석기와 같은 직업 작곡가, 작사 가들에 의해 창조된 한 가요 양식 1)이다. 시기상으로는 1920년대 말부터 1945년 해방 전까지 사이인데, 노랫말과 음악이 직업인들에 의해 만들어져 작사자와 작곡자가 분명이 밝혀져 있으므로 기존의 전통 민요와 구별된다. 따라서 노랫말이 전통 민요에 비해 더욱 시적 양상이며, 음악이 서양음악과 접목되어 있다. 그리고 가사와 음악이 정서적으로 같은 시기 대중가요와 달 리 밝고 명랑한 것이 특징적이다. 일제강점기 신민요에 대한 연구는 주로 한국과 북한 및 중국 연변의 조선 족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어 왔다. 한국에서의 신민요 연구는 일찍 1950~60년대에 이미 반야월, 박노홍, 김 지평, 황문평 등에 의해 시작되어 1990년대의 이영미와 김광해 윤여탁 김 만수, 노동은 등의 연구를 거쳐 2000년대의 이소영, 장유정, 정서은 등의 연 구에 이른다. 한국에서의 초기 연구는 일제강점기 체험세대인 일제강점기 당시 현역들 의 단편적인 인상담, 회고록, 가요집 등을 통해 시작되었으므로 가요와 관련 1) 장영철, 우리 나라 신민요, 평양 예술교육출판사, 1995, 7~8쪽.

일제강점기 신민요의 문학정서 연구 253 된 일화 같은 것으로서 학술적인 논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의 글은 신민 요와 같은 일제강점기 가요에 대한 학문적 관심의 시작이라 할 수 있겠다. 1990년대의 연구는 작품의 세계관, 소비자 대중의 수용적 태도 등을 음악 적 요소와 결부시키는 방법, 노랫말의 어휘 빈도에 대한 계량적 연구 방법 등으로 일제강점기 신민요의 향유나 당시 사회상 및 대중의 삶에 대해 탐구 했다. 2000년대의 연구는 일제강점기의 대중가요와 더불어 신민요의 역사적 의의와 위상을 수립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북한에서의 신민요 연구는 최창호와 장영철에 의해 1990년대 중반에 주로 이루어졌다. 최창호의 연구는 한국의 초기 연구와 같이 작곡가나 가수의 생 애, 그리고 노래와 관련된 이야기와 같은 작품 외적인 것이 주를 이룬다. 장 영철의 연구는 신민요의 작품형식, 조식, 선율, 박자 등 신민요의 음악 본체 론적인 연구가 이뤄졌다. 중국에서의 신민요 연구는 1980년대 초 김덕균, 김종수, 김성숙, 최순덕 에 의한 유행가에 대한 시비논쟁과 더불어 시작되었으나 신민요의 외래음 악의 수용과 전통음악의 계승에 대하여 긍정적이었다. 1994년 최순덕의 연 구2)가 신민요의 史的 연구와 음악연구를 병행함으로써 가요연구의 典範이 되고 있다. 이상 기존의 연구들은 인상담, 회고록, 가요집과 같은 일제강점기 체험세 대의 소중한 역사 자료와 학술적 정보와 작품의 세계관과 소비의 수용적 태 도를 음악적 요소와 결부시키는 방법, 노랫말의 어휘 빈도에 대한 계량적 연 구방법 등을 제공하고 있으나 신민요의 문학정서에 대한 본격인 연구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는 인간의 情緖가 가늠과 측정이 지극히 복잡하기 때 문일 것이다. 특히 시, 노래와 같은 문학작품에 나타나는 정서가 일상 삶 속에서 체험하 는 실제 그대로의 정서가 아니라 은유, 상징과 같은 문학적 수법에 의해 상 징적인 언어로 재편성 되어 표현된 것3)이기 때문에 가요의 문학정서 연구가 2) 북경대학 조선문화연구소 편집, 중국조선민족문화사대계, 민족출판사, 1994.

254 한국학연구 제36집 학문적인 모험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와 같은 특수한 시기의 시, 노래 등 문학, 예술 작품의 정서가 연구가 더욱 그러하다. 이런 원인으로 인간의 정서(emotion)연구는 최근까지도 상당히 모호한 정도의 개념화 단계 에 머물러 있다.4) 그러나 문학과 음악이 인간의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情緖의 표현5)으로 서, 결코 비켜갈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본고는 快 情緖와 不快 情緖 두 패턴6)으로 나누어 노랫말을 중심으로 신민요의 문학정서 연구를 진행하 려 한다. 3) 4) 5) 6) 金大幸, 情緖의 本質과 構造, 金大幸 編, 高麗 詩歌의 情緖, 開文社, 1985, 23, 26쪽. 정옥분 외, 정서발달과 정서지능, 학지사, 2007, 12쪽. 扈承喜, 翰林別曲의 詩的 構造와 情緖, 金大幸 編, 高麗 詩歌의 情緖, 開文社, 1985, 145쪽. 快의 정서를 肯定的인 정서로 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대체적으로 love(사랑), joy(행복감, 기쁨, 쾌 감, 즐거움), surprise(놀라움) 즉 만족, 편안함, 행복, 기쁨, 즐거움, 흥미로움, 흥겨움, 설렘, 신바람, 흥분, 놀라움 등의 정서가 속한다. 따라서 또 不快의 정서를 否定的인 정서로 볼 수 있으며 anger (분노), sadness(슬픔, 비애), fear(공포감, 두려움, 무서움) 즉 불안, 긴장, 분노, 슬픔, 절망, 허무, 패배감, 우울, 외로움, 괴로움, 혐오 등의 정서가 속한다. 快 情緖와 不快 情緖는 인류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진화하면서 긍정적인 정서와 부정적인 정서를 형성하게 했으며 역사의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면서 삶에 대한 이상과 세계관적 가치에 의하여 미 적정서를 소유하게 했다. 언제 어디서든 인간의 정서는 인지와 감지에 그치지 않고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표현되어 왔으며, 그 정서 표현은 발설과 그 발설을 통한 상호 간의 의사소통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다. 또한 그 정서표현의 수단과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노래 가요라는 예술형식 에 많이 의존해왔다. 특히 노랫말이라는 시적 문학형식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문학예술작품의 분석과 이해에 있어서도 이러한 연관관계를 전제로 하여 사회, 역사, 문화적 맥락 속에서 작품의 정서를 이해해야 한다. 예술에는 다른 정형적 체계들에 의해 수용될 수 없는 요소 들이 틀림없이 현존한다는 사실이야말로 <미적인 것>, <예술적인 것>, 그리고 <창조적인 것> 등의 특수화한 범주가 생겨나는 진정한 근거이다. 우리는 한편으로 이러한 요소들(특정한 정서, 특정한 리듬)의 특정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고, 또 한편으로는 이것들의 특정한 사회성을 인식할 방도를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레이몬드 윌리엄즈 저, 이일환 역, 理念과 文學, 文學과知性社, 1982, 166~168쪽)고 한 윌리엄즈의 주장을 사회, 문화적 맥락 속에서의 정서와 작가와 사회의 상호 유기 적 연관관계에 대한 역설로 볼 수 있는데, 이 이론은 예술작품으로서의 신민요를 비롯한 일제강점 기 모든 장르의 가요들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하겠다. 신민요의 경우만 보아도 소비자인 대중을 큰 전제로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민요의 정서는 그 노래를 소비하고 향유하는 대중들의 정서라 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신광호, 일제강점기 가요의 정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0, 17~18쪽.

일제강점기 신민요의 문학정서 연구 255 2. 신민요의 不快 情緖 신민요는 당시 사회적 현실의 참담함과 대중가요의 지나친 애상적 정서와 퇴폐적인 면을 극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조된 것으로서 노랫말에 한민족 고 유의 밝고 경쾌한 興의 정서가 담겨있다. 그러나 그 탄생과 완성이 일제식민 치하이니 만큼 당시의 민족적 비애가 완전히 극복되지 않아 같은 시기 대중 가요들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애상적인 슬픔의 정서가 남아있다. 당시는 많은 사람들은 범민족적 수난의 역사적 파행 속에서 절망과 시련 을 겪었다. 일제의 경제적 수탈로 인해 고향을 떠나 이국과 타향으로 유리걸 식하는 처지가 되기도 하고, 일제의 동원령으로 강제로 징집이나 징용을 당 하기도 했는데, 가난과 궁핍, 굴욕과 압제 속에서 어렵고 험난한 삶을 살아갔 던 것이 일제강점기의 대중들의 전반적인 삶7)이었던 원인으로 신민요에 당 시 대중들의 이러한 진실한 삶의 정서가 스며있는 것이며, 이는 또한 신민요 의 역사적 사명과 의의 및 가치라고도 하겠다. 1) 실패감과 아쉬움의 정서 : <아리랑>, <오동나무> <아리랑>8)은 金曙汀이 편사하고 작곡한 신민요이다. 이 작품은 음악적 양 상이나 노랫말의 시적 형식과 내용상으로나 시대적인 변화와 발전으로 기존 의 전통 민요들과 달리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당시 한민족의 범민족적 가요 로 부상하여 널리 애창되면서 일제강점기 민족적 저항과 구심적 역할을 하기 도 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노랫말에 많은 새로운 내용이 添加되었다. 7) 李魯亨, 한국 근대 대중가요의 역사적 전개 과정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국문학 전공 문학박사학위논문, 1992, 175쪽. 8) 신민요의 첫 작품으로 흔히 <노들강변>을 꼽고 있다. 이는 <노들강변>이 기존의 전통 민요와 달리 작사자와 작곡자가 밝혀져 있으나 <아리랑>은 오래 동안 작사자와 작곡자가 밝혀지지 않은 채 전 통 민요로만 인식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노래는 1926년에 이미 김서정에 의하여 한국 최초 의 예술영화(무성) 아리랑 의 주제가로서 작사자와 작곡자가 밝혀져 있고, 또 선율형식과 정서면 에서도 기타 신민요의 음악양식과 다른 것이 없으므로 신민요의 첫 작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56 한국학연구 제36집 오늘날 한반도는 물론 한반도 이외의 중국의 조선족 사회와 일본, 우즈베 키스탄과 같은 전 소련 지역의 고려인들에 의해 여전히 애창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의 添 加 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만큼 <아리랑>은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 살든, 무릇 한민족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진정한 민족의 노래 이다. 아래에 <아리랑>의 노랫말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청청 하늘엔 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살이 말도 많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풍년이 온다 풍년이 온다 이 강산 삼천리에 풍년이 온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문전의 옥답은 다 어이하고 동냥의 쪽박은 웬 말인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일제강점기 신민요의 문학정서 연구 257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세상인심은 무정도 한데 요내 마음은 유정도 해라 -<아리랑>(1926) 시적화자는 자신을 버리고 가는 님 으로부터 이별을 당하면서 하늘의 많 은 별 만큼 말이 많은 살림살이 에 대해 하소연하고 있다. 풍년 이 와도 전 혀 기쁘거나 반갑지가 않다. 풍년이 든다고 해도 이미 남의 것으로 되어버린 땅에 풍년이 들어도 동냥쪽박을 차야 하는 신세를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옥답 을 수탈당하고 동냥쪽박 신세에 처하게 된 사실이 한심하기만 하다. 무 정한 세상인심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실패감,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심정을 화자는 토로하고 있다. 화자의 이러한 실패감과 아쉬움의 정서는 노랫말 1절이 버리고, 가시는, 발병난다, 2절의 별도 많고, 말도 많다, 4절의 동냥, 쪽박, 5절의 무정 도 한데, 유정도 해라 등 다소 부정적인 의미의 시적 표현을 통해 절실하게 표출되고 있다. 특히 버리고, 가시는, 발병난다, 말도 많다, 다 어이하 고, 동냥, 쪽박, 무정도 한데, 유정도 해라 등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렇게 <아리랑> 노랫말의 시적 정서는 김소월이 <나무리벌 노래>라는 시 에서 보여주었던 정서와 동일한 정서를 보여주면서 민요를 통해 표출되었던 식민지 조선인들의 한과 설움을 화자의 개인적 정서를 표출하는 서정시의 세 계로 흘러가는 양상으로 식민지 시절 나라와 땅을 잃고 떠도는 유랑민들의 처지와 상황을 풀어내고 있다. <아리랑>에서 보이는 실패감과 아쉬움의 정서는 <오동나무> 9) 에서도 나타 9) <오동나무>는 이규송 작사, 강윤석 작곡으로 창작되어 강석연이 부른 신민요이다. 이 노래는 1927 년에 창작되어 1931년 2월 콜럼비아에 의해 취입 발매되었다.

258 한국학연구 제36집 난다. 이 작품도 비교적 이른 시기의 신민요로서 당시의 한민족의 시대적 처 지와 상황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오동나무 열두 대 속에 신선 선녀가 하강을 한다 에라 이것이 사랑이란다 에라 이것이 설움이라오 홍도백도 우거진 곳에 처녀총각이 넘나든다 에라 이것이 사랑이란다 에라 이것이 설움이라오 아가 가자 울지를 말아 백두산 허리에 해 저물어 간다 에라 이것이 리별이란다 에라 이것이 설움이라오 금수강산은 다 어데 가고요 황막한 광야가 웬일인가 에라 이것이 눈물이란다 에라 이것이 설움이라오 <오동나무>(1927) 시적화자는 오동나무 속으로 선녀가 하강하고, 홍도백도가 우거진 곳으로 사랑하는 처녀총각이 넘나드는 그림같이 아름다움 황홀경으로부터 시작해서 백두산 허리의 落日, 아름다운 강산의 消失, 황막한 광야에 이르는 황폐화 일로의 변화 과정을 묘사하면서 급격한 정서적 하강을 이끌어내고 있다. 화 자의 이런 정서적 하강은 하늘에서 땅에로의 공간적 이동, 신선에서 인간에 로의 능력적 格의 강등, 仙境에서 荒野에로의 상황과 환경적 악화, 有에서 無에로의 존재적 소실 등에 의하여 급격히 변화에 하고 있다. 그리고 사랑은 처음부터 설움과 함께한다. 사랑은 미리 이별을 예비하고 있기 때문에 화자는 사랑의 희비가 엇갈리는 가운데 기뻐하지도 울지도 못하 는 애매한 심정이다. 노랫말 1절에서의 오동나무속 사랑 공간은 백두산 허리 의 落日과 함께 암흑에 빠져버리고, 4절에 이르러서는 이별과 함께 황야로 변해 버린다.

일제강점기 신민요의 문학정서 연구 259 이러한 엄청난 상황적 악화는 실패감과 아쉬움에 휩싸인 화자의 심정 토 로를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정서는 노랫말 매 절을 마무리하는 설움 과 함 께 3절의 울지를 말아, 저물어 간다, 리별이란다, 그리고 4절의 황막한 광야, 눈물 등 부정적인 의미의 시적 표현을 통해 애절히 표출되고 있다. <오동나무>는 이렇게 일제강점기 한민족의 망국민의 설움을 여실히 반영 하고 있다. <아리랑>과 <오동나무>에서 표출되는 실패감과 아쉬움의 정서는 <무정세월>(왕평 작사, 이면상 작곡, 선우일선 노래)과 같은 노래에서도 나 타난다. 2) 회한과 원망감의 정서 : <노들강변> <노들강변>은 신불출 작사, 문호월 작곡으로 된 신민요로서 박부용이 불 러 널리 알려졌다. 중국과 일본, 중앙아시아에서도 아리랑만큼이나 애창되는 노래이다. 이 노래는 1930년 한강 노량진의 노들나루에서 사공의 노래 소리 와 봄버들로부터 얻은 작곡가 문호월의 악상에 동행했던 신불출이 노랫말을 붙여서 창작된 대표적인 신민요이다.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서 매여나 볼가 에헤야 봄버들도 못 잊으리로다 흐르는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 노들강변 백사장 모래마다 밟은 자욱 만고풍상 비바람에 몇 번이나 지나갔나 에헤야 백사장도 못 잊으리로다 흐르는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 노들강변 푸른 물 네가 무슨 망녕으로

260 한국학연구 제36집 재자가인 아까운 몇몇이나 데려 갔나 에헤야 네가 인정 마음을 돌려서 이 세상 쌓인 한을 두둥실 싣고서 가거라 -<노들강변> 10) (1930) 시적화자는 수많은 재자가인 을 데려간 무정한 세월을 노들강가의 봄버들 에 묶어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그리할 수 없음에 깊은 회한과 허무와 원망의 정서에 깊이 빠져있다. 화자는 자신의 심정을 전혀 아랑곳 하 지 않고 흘러만 가는 강물의 무심함이 원망스럽기만 하고, 자신의 무력함을 인식함과 함께 무정한 세월더러 마음을 돌려서 아까운 재자가인 대신 세상 에 쌓인 한 이나 싣고 갈 것을 부탁한다. 화자의 이러한 회한과 원만의 정서는 노랫말 1절의 무정세월, 매여나 볼 가, 못 잊으리로다, 흘러 흘러서, 2절의 자욱, 만고풍상, 지나갔나, 그 리고 3절의 망녕, 아까운, 데려 갔나, 쌓인 한 등의 시적 표현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 그리고 화자는 단지 늙어가는 인생이 아쉬워서 무정세월을 봄버들에 동여 매고 싶은 것일까, 봄버들도 못 잊을 것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남긴다. 의문은 2절에서도 풀리지 않지만 풀릴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는데, 백사 장 도 잊지 못하는 자욱 을 남긴 이 를 그리워하고 있다. 3절에서는 자욱을 남긴 이 를 데려간 노들강변 푸른 물 을 원망하고 있다. 그러면서 화자가 진정 그리워하는 이 가 바로 다름 아닌 재자가인 이라는 것이 밝힌다. 그러 나 노래가 끝나서도 재자가인 의 진정한 실체는 밝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신민요가 대중가요와 함께 일제강점기 망국의 설움 속에서 창작된 가요양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애국자 항일독립투사들을 체포하여 노 들나루를 건너간 일본인들에 대한 항거가 이 작품에 은유되어 있음을 알 수 10) <노들강변>은 1930년에 창작되어 1934년에 취입되었으며, 신민요의 첫 작품으로, 가장 대표적 작 품으로 인정되어 왔다. 이 노래의 창작과정에 대한 최창호의 서술은, 최창호, 민족수난기의 가요 들을 더듬어 (증보판), 평양출판사, 2003, 25~26쪽을 참조하시오.

일제강점기 신민요의 문학정서 연구 261 있는데, 화자는 바로 민족과 조국해방의 역사적 대의를 위한 재자가인 즉 애국항일투사들의 희생을 안타까워했던 것11)이며, 이 노래는 노랫말 속에 일제식민통치의 현실 속에서 느끼는 회한과 일제에 대한 강열한 원망의 정서 를 은폐시켜 표출하고 있다. 이런 은유(은폐)는 일제강점기 기타 장르의 노랫말이나 시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일제강점기라는 식민지통치의 현실 세계에 대한 감각상 의 이해 가 코드의 논리적이고 제도화된 체계를 통해서 표명될 수 없으므로 은유에 의지한 것12)으로서 당시 시대적 상황의 제 양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들강변>의 이런 회한과 원망감의 정서는 <은실금실>(작사 미상, 이면 상 작곡, 선우일선 노래), <사랑의 길은>(조령출 작사, 이면상 작곡 황금심 노래), <능수버들>과 같은 노래에서도 나타난다. 3) 떠나보내는 비통감의 정서 : <앞 강물> <앞 강물>은 김능인 작사, 문호월 작곡으로 된 신민요이며 이은파가 불렀다. 앞 강물 흘러 흘러넘치는 물도 떠나는 당신 길을 막을 수 없거늘 이내몸 두 줄기 흐르는 눈물이 어떻게 당신을 막으리오 궂은 비 후덕이는 내 눈물방울 달빛은 적막한데 당신의 그 얼굴 영화로 오실 날을 비옵는 내 마음 11) 권오성, 동북아 음악 북한음악, 소암 권오성 문집 2, 2006, 253쪽. 12) 다이엘 들라스 쟈크 필리올레 지음, 柳濟寔 柳濟浩 옮김, 언어학과 시학, 인동, 1985, 31쪽.

262 한국학연구 제36집 대장부 어떻게 막으리오 <앞 강물>(1935) 시적화자는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이 불가피한 님 과의 이별에 비통의 눈물을 흘린다. 여인의 눈물로도 님 의 길을 막을 수 없음을 분명히 알고 있 다. 화자의 비통감이 홍수처럼 넘쳐흐르는 강물을 통해 강조되며, 강물이 또 한 떠나는 님 의 길을 막아보고 싶어 마음속에 설치한 장애물이다. 적막한 달빛아래서 흘리는 눈물 속에 떠오르는 님 의 얼굴을 凱旋으로 빌어볼 수밖 에 없는 마음에 화자의 비통은 커지기만 한다. 화자의 비통감의 정서는 노랫말 1절의 떠나는, 막을 수 없거늘, 눈물, 어떻게 막으리오, 2절의 궂은 비, 눈물방울, 적막 등 부정적인 의미의 시적 표현을 통해 애절하게 표출되고 있다. 그리고 노랫말 중의 당신, 얼 굴, 내 마음 등 시어들도 부정적 의미의 시어들과 연결되면서 화자의 비통 감의 정서 표출에 일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노래에서 님 이 주목되는데, 이 님 을 화자 자신만의 님이 아니 라 어떠한 대의명분의 사명으로 길을 떠나는 대장부 로 부각되고 있다. 이는 님 의 길은 반드시 떠나야 하는 길로서 그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다. 때문에 화자는 떠나는 개선의 성공을 빌면서 비통한 이별을 눈물만 흘리고 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인의 눈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떠나간 님 대장부 은 누구이며, 그는 또 무슨 일로 갔느냐가 큰 미스터리로 남는다. 하지만 이 미스터리는 이 노래와 <노들강변>의 노랫말과 연관지어보면 풀릴 듯싶다. <노들강변>이 재자가인 을 통해 일제에 대한 저항을 표출했다면 <앞 강 물>은 님 대장부 로 일제에 대한 저항의 감정을 표출했다고 하겠다. 바로 <노들강변>의 재자가인 과 <앞 강물>의 님 대장부 는 동일한 의미의 상 징적 존재로서 바로 항일구국의 애국자, 항일투사들인 것이며, 따라서 님 대장부 의 길 역시 애국항쟁의 길인 것이 분명하다. <노들강변>의 화자가 애국투사들의 희생을 안타까워했다면 이 노래에서의 화자는 애국투사들의

일제강점기 신민요의 문학정서 연구 263 항거의 굳은 의지를 암시하고 있다. 이는 한민족의 민족적 항쟁이 계속 진행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영화로 오실 날을 비옵는 내 마음 이라는 표현은 일제와의 항전에서 승리와, 凱旋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그러면서도 화자는 생사를 알 수 없는 대장부의 길에 님을 떠나보내는 비통을 주체할 수 없어 한다. 4) 일상적 고뇌감과 그리움의 정서 : <꽃을 잡고> <꽃을 잡고>는 김억 작사, 이면상 작곡으로 된 신민요이며 선우일선이 불 렀다. 일제강점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시대의 아픔이나 혼동과 상관없이 세월 의 무상함이나 임의 상실로 가슴아파하며 평범한 일상을 살았다. 이 노래는 바로 그러한 고뇌감과 그리움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하늘하늘 봄바람에 꽃이 피면 다시 못 잊을 지난 그 세월 지난 세월 구름 같아 잊자 하건만 잊을 길 없는 추억의 그 봄 꽃을 잡고 불러 보던 그리운 노래 불러 보면 떠난 님 그리워 <꽃을 잡고>(1934) 시적 화자는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 위치하면서 흘러간 봄을 추억한다. 하지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어떤 마음도 드러내지 않고 그냥 그리워 할 뿐이다. 화자는 이미 님과 함께 했던 시절의 봄과는 어떤 연결 관계도 없 는 듯하며 막연한 그리움만 남아 있을 뿐이다. 화자의 이토록 담담한 그리움의 정서는 노랫말 1절의 못 잊을, 세월, 2

264 한국학연구 제36집 절의 지난, 구름 같아, 잊자 하건만, 추억, 그리고 3절의 그리워, 떠난 님 등 부정적인 의미의 시적 표현을 통해 애틋하게 표출되고 있다. 그러나 화자의 담담한 그리움의 정서는 하늘하늘, 봄바람, 꽃 과 같은 긍정적 의 미의 시어들을 통해 더욱 두드러지게 표출되고 있는바, 이 시기 대중가요들 에서 흔히 보이는 그리움의 상투성과 같이 절실함이 느껴지지 않는 담담한 어조다. 岸曙는 이 노랫말을 창작할 당시의 심정과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억 한다. 어느 느즌 봄날이외다. 잎은 하용업시 떨어지고 한갓되이 푸른 봄만이 뜨거운 여름을 기다릴 외다 지나간 옛날을 생각하면 사람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없지 않올수없을것이외다. 사람도 저와같이 스러운생각만 가슴에 남기고 슬어질것이외 다. 생각하면 모두다뜬구름에 뜬바름이건만은 그러나 어디 사람의일이야 그렀습니 까. 봄바람이 불 에는 모도다 좋아라고 흥이저지만은 그 흥이끝나지못해서 모도 다 이저버리고 말지안습니까 이리하야 지나간 옛일을돌아볼 의 서러운心情은 누 라구서 가엾다하지안을수가 있습니까 그러한 생각을 가젔는지라 노래같은 것을 하나 지어보고 싶었습니다 말하자면 봄바람이 휘돌아서 지나간옜일을 돌아보면 역시 이즐수가 없어 한갓되이 슬픈생각에 운다는 것이외다. 詩가아니요 歌詞로지 었든 것을 李면상씨가 와서보고자미있다면서 가저갔습니다. 가저다가 作曲하야 된 것이 지금 말하는 < 을잡고>외다 을잡고의노래를 누구에게 작곡시키고 누구에 게 불리우려고 쓴것이아니외다. 그러나 우연히 그렇게되어서 世上에 알게된것이외 다.13) 김억의 이상과 같은 창작담을 통해 이 노래의 노랫말은 시대적인 감상적 정서는 있지만, 이러한 감상은 당시의 한민족의 민족적 비애나 시대적 상처 13) 거리의 리 인 十大歌手를 내보낸 作曲 作詞者의 苦心記, 三千里 (1935.11, 150~160쪽. 단국대학교 부설 동양학연구소,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한국문화자료총서 일상생활과 근대 음성매체 유성기 라디오, 민속원, 2007, 146쪽에서 재인용.

일제강점기 신민요의 문학정서 연구 265 에 대한 은유와 상징의 적극적인 표출인 것이 아니라 남녀의 사랑을 주제로 지나간 옛일에 대한 일상적 순간에 느낀 시인의 삶의 고뇌와 번민이다. 그러므로 이 노래 노랫말에서의 님 이 조국이나 과거의 민족적 번영 등에 대한 예술적 승화와 상징이 아니고, 시적으로 설정된 인물일지라도 일상에서 의 실존적 존재인 사랑하는 님 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作者가 처한 역사 일 제식민치하의 시대적인 슬픔의 정서가 흐르고 있다. 이 노래의 이런 일상적 고뇌와 그리움의 정서는 <진달래 수첩>(조명암 작 사, 이봉룡 작곡, 이난영 노래), <님전 화풀이>(조명암 작사, 김용환 작곡, 이 화자 노래)와 같은 노래들에서도 나타난다. 5) 이별의 슬픔과 체념의 정서 : <물결 따라>, <날 다려 가소> <물결 따라>는 추야월 작사, 이면상 작곡으로 된 신민요이며 선우일선이 불렀다. 물결 따라 배가 가나 배를 저서 물이 가나 물결 따라 배가 가면 돌아올 길 언제이랴 에헹 에에 헤에야 에헤 에 돌아올 날 언제이랴 물결 따라 님이 가나 님을 따라 물이 가나 천리정처 가는 배에 이 마음도 싣고 가소 에헹 에에 헤에야 에헤 에 내 마음도 싣고 가소 <물결 따라 : 별한>(1935) 시적화자는 떠나는 님의 뒷모습에 대고 자신의 마음도 가져가라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화자의 이런 하소연이 님에게 들릴 리가 없고 물결 소리만 높 을 뿐이다. 화자는 노랫말 1절에서 물과 배의 물리적 상관관계를 전제하면 서, 떠남 을 예시함과 동시에 돌아옴 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2절에 이르러

266 한국학연구 제36집 서 떠날 님 이 등장하는데, 1절 시작부분에서 전제되었던 물과 배의 물리적 상관관계의 원리가 반복되면서 물처럼 님 을 따라가고 싶은 심정을 토로하 고 있다. 그런데 이는 화자 자신마저도 따라 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마음만 싣고 가라고 할 뿐이다. 떠나는 님과 함께 가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냉정한 현실적 여건이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이 장애가 바로 일제강점치하라는 지극히 부조리한 사회적 현실이다. 그리 고 이 생이별은 님이 정착할 곳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데, 당시의 조선이 아니라 만주나 일본 또는 러시아 등과 같은 먼 해외인 것으로 보여 진다. 그 러기에 화자는 자신이 따라 갈 수 없음을 분명히 알고 있어 그저 마음만 싣 고 가 달라고 할 뿐이다. 따라서 생이별의 아픔이 더욱 커지고 있다. 화자의 이러한 이별의 슬픔과 체념의 정서는 노랫말 1절의 돌아올 길 언 제이랴, 돌아올 날 언제이랴, 에헹, 2절의 천리정처 가는 배, 이 마음도 싣고 가소 등의 다소 부정적인 의미의 시적 표현을 통해 애절한 어조로 표 출되고 있다. 그러나 에헹 에에 헤에야 에헤에 와 같은 조흥구의 사용으로 화자 자신의 비애에의 침잠을 저지하고 있다. 이는 한국 전통 민요들에서 흔히 보이는 것 으로서 신민요가 서양음악과의 접목과 함께 한국 전통 민요를 傳承한 장르라 는 것을 노랫말의 정서적 양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물결 따라>에서 보여지는 이별의 슬픔과 체념의 정서는 <날 다려 가소> 에서도 나타난다. 이 노래는 사마동 작사 이면상 작곡으로 된 신민요이며 1937년 황금심의 노래로 발표되었다. 굽이굽이 감돌아드는 락동강 물이 길다 해도 일만 간장 다 녹이는 이내 맘에야 비길손가 날 다려 가소 날 다려 가소 야속한 우리 님아 날 다려 가소 날 다려 가소

일제강점기 신민요의 문학정서 연구 267 장장추야 긴긴 밤에 피리소리도 처량하다 님을 그려 섰는 벽에 어느 누구가 알아주랴 날 다려 가소 날 다려 가소 야속한 우리 님아 날 다려 가소 날 다려 가소 푸릇푸릇 봄배추는 찬 이슬 오기만 기다리고 남원 옥중 춘향이는 리도령 오기만 기다린다 날 다려 가소 날 다려 가소 한양천리 가신 님아 날 다려 가소 날 다려 가소 -<날 다려 가소>(1937) 시적화자는 굽이굽이 감돌아 흐르는 락동강 물도 이별로 아픈 화자의 마 음에 비길 수 없고, 긴긴 가을밤에 님을 그려도 누구하나 알아주는 이 없고, 또 봄배추가 이슬 내리기를 기다리고, 옥중의 춘향이 리도령 오기만을 기다 리듯이 님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애타는 마음을 하소연하고 있다. 이 노래의 정서는 <물결 따라>에서 보이는 정서와 비슷한 양상이다. 그러 나 <물결 따라>의 화자는 님과의 이별을 앞두고 님과 함께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토로했다면, 이 노래의 화자는 이미 님과의 이별이 시간적으로 많이 지나서 지쳐있는 상태이다. 화자는 님이 그리워 님 가신 천리 한양로 가고 싶으면서도 돌아올 줄 모르는 님이 한편 원망스럽고 야속하기까지 하다. 화자의 이러한 이별의 슬픔과 체념의 정서는 1절의 굽이굽이, 일만 간 장, 비길손가, 다려가소, 야속한, 2절의 장장추야, 처량하다, 그려 섰 는, 알아주랴, 그리고 3절의 찬 이슬, 기다리고, 등 부정적인 의미의 시 적 표현을 통해 애절하게 표출되고 있다. 1절의 굽이굽이 와 2절의 장장추 야, 그리고 3절의 푸릇푸릇 의 표현도 화자의 이러한 정서표출에 크게 기여 하고 있다. 특히 노랫말의 시적 구조상 후렴부분이 본 절과 양적으로 대등하여 매 절 이 4행씩으로 되어있는데 본 절과 후렴부분이 각각 2행으로 되어있다. 따라

268 한국학연구 제36집 서 노랫말 전체 12행이 본 절과 후렴부분도 각각 6행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노랫말 전체의 반을 차지하는 6행의 후렴부분에서도 날 다려 가소 라는 語 句가 무려 12차나 출현하고 날 다려 가소 날 다려 가소 로 3행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노랫말의 구조적 특징이 시인이 신중히 선택한 시어들 못지않게 화자의 정서표출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데, 이들에 힘입어 화자의 이별의 슬 픔과 체념의 정서가 더욱 진실하게 표출되고 있다. 3. 신민요의 快 情緖 신민요에는 또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과 질적으로 상반되는, 反常的 으로 밝은 快 情緖의 노래들도 있다. 이 노래들은 한국 山河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국토예찬, 봄맞이, 풍년 맞이 14) 등을 주제로 한 밝고 명랑한 정서의 노래들이다. 이 노래들의 밝고 경쾌한 정서는 한민족 고유정서인 興과 일맥 상통의 양상을 띤다. 신민요의 이러한 밝은 정서에 대해서 일제식민치하의 현실을 외면했다는 일각의 비판적 시각도 있는데, 그것은 신민요의 밝고 경 쾌한 정서가 일제강점기 한민족의 보편적인 정서가 애상적 정서라는 오늘날 의 통념과 인식에 상반되기 때문이다. 신민요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시각과 주장을 보면 다음과 같다. 신민요 속에는 당대 식민지 시대를 태평스럽게 기쁨이 넘치는 시대로 그리면서 터무니없는 낙관주의적 경향의 주제들이 담겨 있는 것이다, 문맥상 봄이 왔기 때문 에 처녀와 총각의 가슴이 흥에 겨워한다는 발상부터가 진부하고 구체성이 결여되 어있다, 강점기라고 하는 가혹한 배경적 현실 상황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14) 장유정, 일제강점기 한국 대중가요 연구 유성기 음반 자료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 국문학과 국문학전공 문학박사학위논문, 2004, 134쪽.

일제강점기 신민요의 문학정서 연구 269 다, 노래에서 드러나는 애정의 정서적 형태로서의 흥 은 다분히 몰가치적이다, 신 민요에 나타나는 애정의 주제는 주로 애정 자체에만 집착할 뿐 삶의 총체성이나 사실성과의 연관 속에서 드러나는 애정의 폭과 깊이를 도외시하고 있다.15) 이노형의 이 비판은 신민요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인식을 잘 말해 준다. 확실히 신민요는 봄이나 처녀총각의 사랑을 주제로 많이 다루면서 낙 관주의적 양상으로 興의 정서를 고취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민요의 이러한 밝고 경쾌한 정서가 주로 애정 자체에만 집착할 뿐 삶의 정체성이나 사실성과의 연관 속에서 드러나는 애정의 폭과 깊이를 도외시하고 있는 역사적 위배가 아니라, 오히려 일제에 대한 분노감의 역설 적 표출이었고, 조국광복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었으며, 고단한 삶에 찌들고 암담한 현실에 빛을 잃어가고 있는 민중의 쓰라린 상처와 3.1운동 이후 사회 에 만연한 우울과 패배의식을 극복하기 위한 예술적 극복과 대응, 그리고 일 제에 대한 예술적 저항이었다고 하겠다. 작곡가 全基玹이 <조선타령>의 노랫말에 대해 다음과 같이 極讚한 바 있다. 朝鮮打令이야 말로 詩人劉道順氏에 力作인데 그야말로 유감없이 朝鮮에 精氣를 그린 劉道順氏의 一大傑作이외다. 이 노래는 우리 三千里半島江山의 幸福을 祝願 한 노래임니다. 白頭山에서 精氣뻐쳐 남 끝 濟州道漢挐山까지 三千里江山은 비 탄폭을 느리운듯한 기름진 錦繡江山임에 世界에 자랑인 아름다운 東山이외다 이것 을 우리가 차지하고 있으면서 우리의 것을 우리가 슬 사람인 것입니다 果然힘을 주고 蘇生을 줄 노래의 하나입니다.16) 이상의 평가를 통해서 신민요 노랫말에서의 봄, 사랑 등의 주제는 삶의 총체성이나 사실성과의 연관 속에서 드러나는 애정의 폭과 깊이를 도외시 15) 李魯亨, 한국 근대 대중가요의 역사적 전개 과정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국문학 전공 문학박사학위논문, 1992, 164~181쪽. 16) 姜弘植 의 부른 <朝鮮打令>, 三千里, 1935.11, 150~160쪽.

270 한국학연구 제36집 한 것이 아니라 일제식민치하의 지극히 부조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예 술적 극복과 대응이었으며 또한 일제에 대한 예술적 저항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밝고 명랑한 快 情緖의 신민요들이 우울하고 침통한 당시의 한 민족에게 슬픔과 고통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용기와 희망을 주면서 일제강점 기 망국민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었던 것이 분명하다. 1) 현실 긍정과 애착의 정서 : <방아타령> <방아타령>은 김동환 작사, 안기영 작곡으로 된 신민요이며 강석연이 불 렀다. 일제의 토지조사사업(1910~1918)의 실시와 함께 대다수의 사람들이 대량의 토지를 일본인들에게 빼앗기면서 절대적 빈곤에 빠져 농촌을 버리고 일본 만주 등지의 노동시장으로 흘러갔다. 이 노래는 바로 1911년부터 1920년 사이 일제의 換位移民 자유이민시기 와 강제집단이민시기(1931~ 1945)17)를 전후해 창작되었다. 시기적으로 이 노래는 나운규의 무성영화 <아리랑>(1926년)의 주제가로 취입된 <신조아리랑>과 거의 비슷한 시기인 1920년대 후반에 창작되었으며, 1932년에 무성영화 방아타령 의 주제가 18)로 사용되었다. 돌밭에 해당화 빨갛게 필 때 우리네 가슴도 빨갛게 탄다 이 강산 좋은 강산 떠나지 말자 하늘에 뜬 구름도 달 두고 간다 에헤야 좋구나 방아로구나 이 강산 좋은 강산 떠나지 말자 17) 김철수 외, 中國朝鮮族歷史常識, 연변인민출판사, 1998, 4쪽. 18) 최창호, 민족수난기의 가요들을 더듬어, 평양출판사, 2003, 220쪽.

일제강점기 신민요의 문학정서 연구 271 가을이면 벼이삭 누렇게 익고 우리네 마음도 누렇게 익네 화목한 좋은 동네 떠나지 말자 인심도 좋은 이웃 여기서 살자 앞내 강변 수양버들 누가 심었나 바람 불 때 가루오루 서로 얽힌다 같은 방아 발짓하는 우리들도 강바람에 서로 얽힌 두 가닥버들 -<방아타령>(1920년대 후반) 시적화자는 철따라 피는 꽃과 곡식들이 빨갛게, 누렇게 물들고 익는 강산 과 동네 에 대한 애정이 깊다. 해당화 빨갛게 필 때 면 해당화와 함께 가슴 이 빨갛게 타고, 벼이삭이 누렇게 익는 가을이면 또 함께 가슴이 누렇게 익는다. 이런 심정의 화자는 구름이 달을 두고 가듯 말고, 바람 불 때 서로 얽히는 강변의 수양버들처럼 서로 얽히면서라도 이 강산 을 떠나지 말자고 한다. 호소에 가까운 어조로 떠나지 말 것을 청유하고 있는 화자는 얽혀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화자의 이렇듯 간절하고 강열한 심정은 1절의 빨갛 게 필 때, 빨갛게 탄다, 좋은 강산 떠나지 말자, 에헤야 좋구나, 2절의 누렇게 익는, 화목한 동네, 여기서 살자, 그리고 3절의 가루오루 서로 얽힌다 등의 시적 표현을 통해 간절하게 표출되고 있다. 그런데 이 <방아타령>은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제가 경제수탈의 목적 으로 조선농촌의 황폐화를 막기 위해 농촌진흥운동 을 일으키면서 조선중소 농민층과 빈농층을 회유하여 식민지배 체제 안으로 끌어들여 자기들의 식량 공급에 차질 없이 하려는 정책을 쓴 이 시기에 영화주제가로 불림으로써 일 제의 식민통치에 공조하는 친일성향의 가요로 오해 받을 수 있는 소지가 있 다19)고 하겠다.

272 한국학연구 제36집 그러나 이 시기가 또한 조선농민의 소작쟁의가 활발해짐에 따라 일제에 의한 합법 농민운동에 대신하여 혁명적 농민조합운동이 확산되면서 식민지 배체제에 일정한 위협을 준 시기이기도 하여 이 노래의 친일성향에 대한 오 해의 소지는 배제될 수 있다고 본다. 오히려 일제의 강제집단이민이 시작된 이듬해에 고향을 떠나지 않을 것을 주제로 영화주제가로 불렸다는 것은 일제 의 강제이민정책에 대한 당시 민중들의 저항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 데, 바로 노랫말을 통해 현실긍정과 정서로 표출되고 있다고 하겠다. <방아타령>의 이러한 현실긍정과 애착의 정서는 <삼천리강산 에라 좋구 나>(전수린 작사 작곡, 신카나리아 노래), <한가위 노래>(추야월 작사, 이면 상 작곡, 선우일선 노래), <어부사시가>(정사인 편사, 정사인 작곡, 왕수복 노래), <개나리 고개>(작사 미상, 이면상 작곡, 성우일선 노래), <그네 뛰는 처녀>(작사 미상, 이면상 작곡, 선우일선 노래), <여자의 직장>(박용호 작사, 전기현 작곡, 선우일선 노래) 등의 노래들에서도 나타난다. 2) 즐거움과 희망감의 정서 : <뻐꾹새>, <봄이 왔네> <뻐꾹새>는 추야월 작사, 이면상 작곡으로 된 신민요이며 왕수복이 불렀다. 한국 詩歌에는 뻐꾹새가 많이 등장하는데, 뻐꾹새의 등장은 고향의 정취 를 짙게 하여 향수의 정서를 유도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 노래에서도 뻐 꾹새가 등장하는데 고향은 더없이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 봄바람이 가벼웁게 불고요 붉은 꽃이 아릿다이 피는데 이 산에서도 뻐꾹 뻐꾹 저 산에서도 뻐꾹 뻐꾹 뻐꾹새가 날아든다 19) 강만길, 고쳐 쓴 한국현대사, 창작과 비평사, 2000, 120~131쪽.

일제강점기 신민요의 문학정서 연구 273 이 산에서도 뻐꾹 뻐꾹 저 산에서도 뻐꾹 뻐꾹 이 강산에 풍년이 온다네 이 강산에 풍년이 온다네 봄바람이 버들잎을 날리며 리화 도화 방긋이 웃는 봄 이 산에서도 뻐꾹 뻐꾹 저 산에서도 뻐꾹 뻐꾹 금수강산 좋을시구 봄노래하며 뻐꾹 뻐꾹 짝을 지어서 뻐꾹 뻐꾹 이 강산에 풍년이 온다네 이 강산에 풍년이 온다네 -<뻐꾹새 : 포곡성> (1933) 시적화자는 가벼운 봄바람에 붉은 꽃이 아름답게 피고, 배꽃과 복숭아꽃이 만개한 봄날의 정취에 흠뻑 젖어 풍년이 들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쌍쌍이 날아예는 뻐꾹새의 노래 소리가 화자의 즐거움과 희망감의 정서를 더 욱 고조시켜 주고 있는데,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희망도 나타내고 있다. 화자의 이러한 즐거움과 희망감의 정서는 노랫말 1절의 봄바람이, 붉은 꽃, 아릿다이, 뻐꾹새, 풍년이 온다, 2절의 버들잎을, 리화 도화, 방긋 이 웃는, 봄, 짝을 지어 등 긍정적 의미의 시적 표현을 통해 밝게 표현되 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당시의 식민통치하의 우울이나 비애 같은 것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지극히 밝은 어휘들이다. 화자의 이런 어조는 짝을 지어 날아 예는 봄 뻐꾹새의 노래 소리 속에 봄의 약동과 화사함을 더해준다. 이러한 정서의 형성과 고조에 반복적 수법이 또한 크게 기여하고 있다. 노 랫말을 보면 1절 3행과 4행의 이 산에서도 뻐꾹 뻐꾹/ 저 산에서도 뻐꾹 의

274 한국학연구 제36집 語句가 같은 절 6행과 7행에 꼭 같이 나타나 반복되고 있는데, 이는 2절의 3행과 4행에서도 꼭 같은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 이렇게 같은 어구와 행이 전체 노랫말에서 3번 출현해 반복된다. 그리고 또 1절 8행의 이 강산에 풍 을 년이 온다네 의 어구가 9행에서 다시 반복될 뿐만 아니라 2절의 8행과 9행에서도 꼭 같은 형태로 나타나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반복법이 선택된 시어들과 함께 이 노래의 즐거움과 희망감의 정서적 형성과, 고조 및 표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봄이 왔네>는 유도순 작사, 김준영 작곡으로 된 신민요이며 강홍식이 불 렀다.20) 이 노래는 큰 인기를 얻으면서 전례 없는 매출 기록을 남긴 노래이 다. 명쾌하고 밝은 정서로 일제강점기하에서 시들고 찌들었던 한민족의 상처 입은 마음을 위로해주었던 이 노래는 밝고 경쾌하며 생기발랄한 정서로 快 情緖의 신민요의 대표적인 노래이다. 봄이 왔네 봄이 와 숫처녀의 가슴에도 나물 캐러 간다고 아장아장 들로 가네 산들산들 부는 바람 아리랑 타령이 절로 나네 음 음음음 괭이 들고 밭가는 저 총각의 가슴에도 봄은 찾아 왔다고 피는 끓어 울렁울렁 콧노래도 구성지다 멋들어지게도 들려오네 음 음음음 20) <봄이 왔네>는 또 <처녀 총각>이라고도 한다. <처녀 총각>은 발표된 후 두 번에 걸쳐 修整되었는 데 첫 번에는 제목을 <봄 타령>이라고 고치고 가사는 원 가사를 그대로 두었으며 선율이 원래의 E 내림조에서 F 장조로 조성을 옮겼다. 그러나 두 번째는 해방 후 북한에서 수정되었는데 제목 자체도 <새봄을 노래하네>로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가사도 원해의 2절에서 3절로 늘어났고 음악부 분에서 선율도 소절이 원래의 24소절에서 4소절 늘어난 28소절로 되었으며 조성도 두 번째로 수정 된 F 장조에서 G 장조로 올려졌다.

일제강점기 신민요의 문학정서 연구 275 <봄이 왔네 : 처녀총각>(1933) 시적화자는 봄의 光景 속에서의 처녀총각의 봄맞이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봄을 맞은 숫처녀는 산들산들 부는 봄바람과 함께 즐겁고 상쾌한 심정으로 나물 캐러 가고 있다. 그러는 숫처녀의 입에서는 아리랑 타령이 흘러나온다. 봄은 밭을 가는 숫총각의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역시 콧노래가 절로 난다. 봄날의 이렇듯 아름다운 情景을 묘사하는 화자의 마음 또한 처녀총각 못지않 게 즐겁고, 흥겹고 희망에 부풀어 있다. 화자의 이러한 정서는 1절의 봄, 숫처녀, 아장아장, 산들산들, 타령, 음음음음, 2절의 총각, 찾아 왔다, 끓어, 울렁울렁, 콧노래, 구성지 다, 멋들어지게 등의 지극히 긍정적인 의미의 시적 표현을 통해 경쾌하게 표현되고 있다. 특히 1절의 아장아장, 산들산들, 2절의 울렁울렁 과 같은 시어들을 통해 더욱 생동하게 표현되고 있으며, 1절과 2절의 마지막 행의 조 흥구 음 음 음 음 도 이러한 정서 표출에 일조하고 있다. <뻐꾹새>와 <봄이 왔네>의 즐거움과 희망의 정서는 <맵시가 좋네>(천아 토 작사, 김교성 작곡 선우일선), <동백꽃 필 때 : 섬 시악시>(작사 미상, 이면상 작곡, 선우일선), <개나리>(작사 미상, 문호월 작곡, 이은파 노래), <봄맞이>(김봉혁 작가, 김면균 작곡, 이난영 노래)와 같은 노래들에서도 나타난다. 3) 국토 예찬과 긍정의 정서 : <조선 타령>, <조선 팔경가> 예로부터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나 노래가 많았다. 일제강점기에도 한민족의 민족주체성과 민족정서의 함양을 취지로 국토를 예찬하는 노래들 이 많이 창작되었다. 특히 이 노래가 창작된 1934년은 신민요가 본격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사상 최전성기를 형성한 해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창 작된 대표적인 노래가 바로 <조선타령>, <조선 팔경가>와 같은 신민요이다.

276 한국학연구 제36집 <조선 타령>은 유도순 작사, 전기현 작곡으로 된 신민요이며 강홍식이 불 렀다. 아 백두산 솟아서 정기를 뻗치니 삼천리 산야 에라 좋아 얼싸 에라 좋아라 오대 강 십대 산 널린 곳에서 즐겁다 조선을 축복하세 아 전답에 오곡이 금하를 치니 삼천리 산야 에라 좋아 얼싸 에라 좋아라 금강산 묘향산 산과 산들은 아 문물이 찬란한 꽃 같이 피었으니 삼천리 산야 에라 좋아라 얼싸 에라 좋아라 압록강 두만강 강과 강들은 아 뛰어 난 인물이 수많이 났으니 삼천리 산야 에라 좋아 얼싸 에라 좋아라 영웅과 호걸에 문장이 나네 <조선타령>21)(1934) 일제강점기 신민요 중에서 예찬을 주제로 하는 신민요는 공간을 노래하는 것과 시간을 노래하는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아름다운 국토를 노래 하는 것이고 후자는 역사성을 노래하는 것이다. 한민족의 역사 인물을 노래 21) <조선타령>은 당시 <조선타령>이라는 제목으로 된 노래가 두 곡 더 있는데 異河潤 작사, 전수린 작곡의 <조선타령>과 김용환 작곡 작사자 未詳의 <조선타령>이다. 그러나 이 세 곡은 가사가 다를 뿐만 아니라 음악의 선율이 다르다. 이런 원인으로 같은 제목에 작사자, 작곡자를 정확히 밝혀서 구분한다.

일제강점기 신민요의 문학정서 연구 277 하는 것도 예찬을 주제로 하는 신민요의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조선타령>은 삼천리산야의 아름다움을 노래함과 함께 한민족 역사와 인 물도 노래하면서 시공간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시적화자는 시작부터 열정적 인 어조와 힘이 넘치는 남성의 목소리로 삼천리 산야 조선을 축복할 것을 강열하게 권유하고 있다. 화자는 긍지의 정서 속에 깊이 빠져 있다. 화자가 소리높이 노래하는 삼천리 산야 는 백두의 정기를 받아 산마다 기 상을 뽐내고, 전야마다 오곡이 백과 넘쳐나고, 찬란한 문화가 꽃피고, 영웅호 걸과 같은 뛰어난 인물이 많은 나는 곳이다. 화자의 이러한 긍정의 정서는 노랫말 1절의 백두산, 정기를 뻗치니, 삼 천리 산야, 좋아라, 얼싸, 즐겁다, 축복하세, 2절의 금하를 치다, 금강 산, 묘향산, 3절의 찬란한 꽃, 압록강, 두만강, 그리고 4절의 뛰어난, 영웅, 호걸, 문장 등의 긍정적 의미의 시적 표현을 통해 강열하게 표출되 고 있다. 특히 백두산, 정기를 뻗치니, 축복하세, 찬란한 등의 표현을 통해 더욱 구체적이고 강열하게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매절 첫 시작마다 사 용된 감탄사와 조흥구의 반복이 화자의 정서적 형성과 고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국토에 대한 화자의 극찬은 당시로서는 지극히 이색적이며, 동시기 快 情 緖의 대중가요들에서 보이는 모호한 희망 이나 새 세상 이 아니라, 조선 실 재의 역사와 山河이다. 일제강점기 내내 일제가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근저로부터 말살하려고 갖 은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다. 이러한 시대적 환경 하에서의 국 토예찬은 일제와의 정면대결이나 다를 바 없는 것으로서, 이는 국토예찬을 통한 민족주체성의 적극적인 標榜과 고취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 창작자들 의 증언이 이를 유력하게 뒷받침해주고 있다. 먼저 이흥렬의 창작담을 보도록 한다. 그 무렵의 모든 젊은이들이 다 그러했듯이 나도 조국을 빼앗은 일제에 대한 적개 심으로 두 눈에 독기가 서려 있었습니다. 내 마음의 불길 같은 저항심이 우리의

278 한국학연구 제36집 삼천리금수강산을 <바우고개>로 표현했습니다. 다음은 이면상의 창작담이다. 나라를 빼앗긴 탓으로 하여 민족의 존엄이 무참히 짓밟히던 그때에는 향토애나 조국애를 노래한 애국적 가요들은 일제 총독부 학무국검열계와 경찰의 탄압대상이 되었다. 가요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 우심해짐에 따라 나는 주로 민요조의 노래를 창조하였다. 그것은 일제가 부식시키는 퇴폐적인 가요의 범람 속에서 우리 민족의 고유한 선율을 현대적 미감에 맞게 살려나가기 위해서였다 대부분의 가요들이 비탄에 젖어 생기를 잃고 있을 때 나는 밝고 명랑한 음조로 조선의 넋을 노래해보 려고 애썼다. 나라 잃은 민족의 슬픔을 명랑한 선율로 이겨나가고 싶은 생각에서였 다.22) 이상의 증언을 통해 작곡가들을 포함한 당시의 대부분 조선청년들이 일제 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를 안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조선타령>과 같은 신민요의 밝은 快 情緖는 애정 자체만의 집착이나 현실도피와 외면이 아니라 민족주체성 고취를 통한 나라 잃은 망국의 슬픔 달래기와 현실극복의 적극적인 예술적 대응과 抵抗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저항 정신이 <조선타령>과 같은 신민요의 노랫말을 통해서 긍정의 정서로 나타난 것이다. <조선타령>의 이러한 국토예찬의 긍정적 정서가 <조선 팔경가>에서도 표 출되고 있다.23) 이 노래는 왕평 작사, 형석기 작곡으로 된 신민요이며 선우 22) 북한, 통일신보, 1989. 1.14; 장영철, 우리 나라 신민요, 예술교육출판사, 1995, 35쪽에서 재인 용. 23) <조선 팔경가>는 해방 후 한국에서는 <대한 팔경가>라고 제목을 바뀌었지만 북한에서는 원래 제목 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가사도 많이 바뀌었다. 1절 2행의 한나산 이 백두산 으로, 속세 를 떠났구나 가 창공에 솟았구나 로, 2절 1행의 석굴암 아침경 이 총석정 해돋이 로, 2행의 해운 대 저녁달 이 동해의 푸른 물 로, 그리고 3절의 백두산 천지가엔 선녀의 꿈이 길고/ 압록강 여름에 는 떼목이 경이로다 가 여름의 부전고원 록음이 우거지고/ 평양은 금수강산 행복의 락원이라 로 개사 되었다.

일제강점기 신민요의 문학정서 연구 279 일선이 불렀다. 에 금강산 일만 이천 봉마다 기암이요 한나산 높아 높아 속세를 떠났구나 에헤라 좋구나 좋다 지화자 좋구나 좋다 명승의 이 강산아 자랑이로구나 에 석굴암 아침경은 못 보면 한이 되고 해운대 저녁달은 볼수록 유정하다 에 백두산 천지가엔 선녀의 꿈이 길고 압록강 여름에는 떼목이 경이로다 -<조선 팔경가>(1935) <조선 팔경가>는 공간을 노래하는 부류에 속하는 신민요이다. 시적화자는 자긍심에 넘치는 어조로 금강산, 한라산, 석굴암, 해운대, 백두산, 압 록강 등 명산과 절경에 대한 찬미로 조선의 자연을 소리높이 노래하고 있다. 화자의 이러한 예찬과 긍정의 정서는 1절의 기암이요, 높아 높아, 좋구 나 좋다, 에헤라, 지화자, 자랑이로구나, 2절의 아침경은, 저녁달은, 유정하다, 3절의 천지가, 선녀의 꿈, 경이롭다 등 긍정적 의미의 시어와 시적 표현을 통해서 긍지높이 표출되고 있다. 이 밖에 매절 첫 부분의 감탄사 에, ~로구나, ~로다 와 같은 어미와 에헤라 좋구나 좋다 는 후렴의 조흥구도 화자의 긍정적인 정서표출에 일조 하고 있다. <조선 팔경가>의 이러한 긍정적인 정서도 <조선타령>의 경우와 마차가지로 국토예찬을 통한 한민족의 민족주체성 고취와 표방으로서 일제 강점기 부조리한 현실극복을 위한 적극적인 예술적 대응과 저항이었다고 하 겠다. <조선타령>과 <조선 팔경가>의 국토예찬과 긍정의 정서는 <양양 팔경

280 한국학연구 제36집 가>(조명암 작사, 김용환 작곡, 선우일선 노래), <백두산을 바라고보>(박영호 작사, 전기현 작곡, 모란봉 노래), <대동강 물결 우에>(박영호 작사, 전기현 작곡, 모란봉 노래) 등의 노래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4) 흥겨움과 여유로움의 정서 : <울산 타령>, <꼴망태 목동> <울산 타령>은 고마부 작사, 조명암 개사, 이면상 작곡으로 된 신민요이며 왕수복이 불렀다.24) 이 노래는 울산의 자연경관과 더불어 좋은 인심과 젊은 남녀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했다. 동해나 울산에 밤나무 그늘 경개도 좋지만 인심도 좋구요 큰 애기 마음은 열두 폭 치마 실 백자 얹어서 전복쌈일세 에헤야 에헤라 울산은 좋기도 하지 울산의 큰 애기 거동 좀 보소 삽살개 재워 놓고 문밖에 서서 님 오실 문전에 쌍초롱 달구요 이제나 저네나 기다린다오 에헤야 에헤라 울산은 좋기도 하지 24) <울산타령>은 월북 作者들인 改詞者 조령출(조명암)과 작곡자 이면상의 작품임에도 해방 후의 남 한에서 금지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은 <울산타령>으로 굳어졌지만 처음 곡명은 <울산 아 가씨>였다. 이 노래는 왕수복이 일본에서의 고학 중 서울에 들렸다가 작곡가 이면상에게 부탁해서 창작된 것이며, 왕수복 이 노래를 일본의 조선인 집단부락에서 불렀다. 그러나 빅타레코드에 의해 <울산 큰 애기>라는 제목으로 황금심이 불러 취입되었다. 바로 이 때문에 이 노래는 이고범 작사, 김월신 작곡의 <울산 큰 아기>와 혼동을 빚곤 했는데, 다시 <울산타령>으로 제목을 고쳤다. 해방 후 북한에서 또 한 번 제목과 가사, 선율도 일부 고쳤는데, 제목은 <우리의 동해는 좋기도 하지>로 바뀌고 가사는 원래의 2절에서 3절로 늘어났는데, 원래 가사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 신민요의 문학정서 연구 281 <울산타령>(1938) 시적화자는 울산의 절경 밤나무 그늘과 열두 폭 치마와 같은 큰 애기 의 인정, 그리고 울산의 먹거리 실백잣 얹은 전복쌈을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개도 지쳐서 잠든 깊은 밤까지 님 오시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울산 큰 애기 의 애간장 타는 심정과 거동을 통해서 울산의 젊은 청춘들의 아름다운 사랑 을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화자의 어조는 흥겨움과 여유로움이 넘치고 있다. 이러한 정서는 노랫말 1절의 밤나무 그늘, 인심도 좋구요, 열두 폭 치마, 실백잣, 전복 쌈, 에헤라, 2절의 거동 좀 보소, 님 오실 문전에 쌍초롱 달구요, 이제나 저제나 등 긍정적 의미의 시어와 시적 표현을 통해 정겹게 표현되고 있다. 이 노래의 흥겨움과 여유로움의 정서도 당시의 시대적인 정서와는 상반되 게 이색적인 정서로서 한민족 고유의 서민생활과 세태에서 진실하게 묻어나 오는 정서이다. 이러한 민족정서의 함양은 일제의 한민족 문화말살 만행과 대치되는 것으로서 현실외면이 아니라 일제하 현실적인 부조리에 대한 불만 과 부정이며 無視 내지 저항의식의 표출인 것이다. 설령 신민요가 당시 일제치하의 현실을 외면했다고 하더라도, 일제와 타 협, 동조하거나 적극적인 친일을 감행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 박수는 보내지 않을망정 무작정 부정하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신민 요의 밝고 긍정적인 정서가 당시의 사회적인 상황에서 좋지 않는 영향도 있 었을 수도 있겠지만 일제식민치하 한민족의 민족적 자긍심을 자극한 점에 대 해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울산타령>의 이러한 흥겹고 여유로운 정서는 <꼴망태 목동>에서도 나타 나는데, <꼴망태 목동>에서는 더욱 흥겹고 여유로운 양상이다.25) 이 노래는 25) <꼴망태 목동>은 1975년 6월 19일 [공연활동의 정화대책]에 의하여 금지곡으로 선정되었으며 1983년에 또 다시 [공연윤리위원회]에 의하여 금지곡으로 선정되었으며 그 이유는 작사자가 월북 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1987년 8월 18일의 [공연금지해제조치]에서 보류된 월북작가 가요 88곡에

282 한국학연구 제36집 조명암 작사, 김용환 작곡, 이화자 노래의 신민요이며, 석왕산 기슭을 배경으 로 한 목동의 방목에 대한 묘사를 통해 흥겨움과 여유로움의 정서를 진실하 게 표출하고 있다. 꼴망태를 둘러메고 소를 모는 저 목동 고삐를 툭 툭 치며 콧노래를 부르다가 이랴 이 소야 어서가자 정은 님 기다릴라 으응 석왕산 바라보며 소를 모는 저 목동 곰방대를 툭 툭 털며 잎담배를 피워 물며 이랴 이 소야 어서가자 정든 님 기다릴라 으응 <꼴망태 목동>(1938) 시저화자는 석왕산 기슭에서 방목하는 목동의 一擧一動에 대한 묘사를 통 해서 목동의 흥겨움과 여유로움을 표출하고 있다. 목동은 고삐를 툭 툭 치며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곰방대를 툭 툭 털며 잎담배를 피워 물기도 하면서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다. 화자의 흥겨움과 여유로움의 정서는 노랫말 1절의 둘러메고, 콧노래, 이랴, 으응, 2절의 곰방대, 툭툭 털며, 잎담배를 피워 물며 등의 시어 와 시적 표현을 통해 생동하게 표출되고 있다. 특히 툭 툭 이라는 부사의 사 용이 여유로움의 정서적 형성에 큰 기여를 하고 있음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여유로움의 정서 형성에 있어서 제일 핵심적인 요소는 소 에 있는 것으로서 소의 등장이 화자의 餘裕綽綽함과 흥겨움을 조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비록 노랫말 후렴부분에 이랴 이 소야 어서가 자 라는 표현이 있지만, 노랫말 전체에 짙게 흐르는 여유로움에 가리어서 어 서 본연의 빠른 의미의 急促함이 완벽히 차단되어 있다. 도 포함되었었다.

일제강점기 신민요의 문학정서 연구 283 화자의 이러한 흥겨움과 여유로움의 정서는 현실외면도, 나태한 민족적 열 등성의 표현도 아니라, 당시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완벽한 無視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이렇듯 완벽하고 철저한 무시가 바로 한민족의 고유정서인 흥의 정서와 여유로움의 정서 표출이라고 하겠다. <울산타령>과 <꼴망태 목동>의 이러한 흥겨움과 여유로움의 정서는 <사 랑가>(작사 미상, 이면상 작곡, 선우일선 노래), <먼동이 터온다>(유도순 작 사, 김준영 작곡, 강홍식 노래), <개나리고개>(작사 미상, 이면상 작곡, 선우 일선 노래), <붉은 댕기>(작사 미상, 이면상 작곡 선우일선 노래), <산간처 녀>(왕평 작사, 김용환 작곡, 김용환 노래), <날라리고개>(이부풍 작사, 이면 상 작곡, 박단마 노래) 등의 노래에서도 나타난다. 4. 결론 이상의 분석을 통해 신민요의 정서는 실패감, 아쉬움, 회한, 원망, 비통, 고뇌, 그리움, 슬픔, 체념들을 통해 표출되는 不快 情緖와 긍정, 애착, 즐거 움, 희망, 예찬, 흥겨움, 여유로움 등을 통해 표출되는 快 情緖가 혼재해 있는 混合情緖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민요의 이 혼합적 정서 속의 불쾌 정서는 일제강점기가 한민족 역사의 가장 참담하고, 처절하고, 가혹한 수난기라는 것에 대한 유력한 증거이며, 또 한 당시의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았던 만큼 상실과 이별의 슬픔, 분노 의 정서와 기쁨, 희망, 사랑 등의 다양한 정서들을 예술적으로 승화하면서 불가항력적이고 부조리한 현실을 살았다는 것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신민요의 밝고 경쾌한 쾌의 정서는 애정 자체만의 집착이나 현실 도피와 외면이 아니라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시대적 경험 속에서의 한민족 의 역사적 민족적 성숙과 조국광복, 민족해방에 대한 확신과 긍정에서 기인 하는 여유이며, 민족주체성 고취를 통한 나라 잃은 망국의 슬픔 달래기와 현

284 한국학연구 제36집 실극복의 적극적인 예술적 대응과 抵 抗 이었으며,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절망 하지 않고 역경을 이겨내고 견디는 삶의 에너지 역할을 했다고 하겠다. 이것 이 바로 신민요가 가지는 역사적 의의와 예술적 가치일 것이다. 그 만큼 신 민요는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망국의 설움과 일제에 대한 한민족의 민족적 저 항의 감정을 암유한 채 한국 전통음악의 음악전통을 계승하고, 한민족의 생 활과 애환이 스민 한겨레의 얼을 현대적 미감에 맞게 담고 있는 시와 음률로 서 그 역사적인 사명과 역할을 했다. 신민요는 우리 음악의 가장 가까운 음악전통으로서 오늘날 북한과 중국조 선족 음악의 형성과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북한과 중국조선족 음악은 바로 신민요의 바통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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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 한국학연구 제36집 [中文摘要] 日帝强占期新民谣的文学情绪研究 申光浩 本论文以歌词为主 以 快情绪 与 不快情绪 情绪系统分类分析方法 着重 探讨了日帝强占时期韩国新民谣的文学情绪类型及特征 新民谣是形成和发展于韩国殖民地时期即从 20世纪 20年代末至 40年代中 期 传唱于韩民族社会的崭新的民族歌谣形式 是一批良知的作曲家为了克 服当时极度悲哀的情绪状态 扭转消沉的音乐氛围 传承韩民族悠久历史的 音乐艺术文化传统所创造的音乐艺术形式 新民谣 词作家 作曲家 在 扭 转消沉的音乐氛围 的层面达到一定程度的目的 在 传承韩民族悠久历史的音 乐艺术文化传统 方面得到了一些成就 但因当时是一个韩民族民族史上最残 酷和严峻的历史时期 新民谣 词作家 作曲家 未能实现 克服当时极度悲 哀的情绪状态 的社会 政治目标 因此它所体现的是 快 与 不快 两个系统情 绪并为一体的 混合情绪 快情绪 系统里有 肯定 眷恋 愉快 希望 礼赞 兴高采烈 绰绰 有余 等情绪 不快情绪 系统里有 失败感 惋惜 悔恨 怨望 悲痛 苦恼 思念 悲哀 断念 等情绪 新民谣暗含着韩民族的亡国之恨抵抗情绪(精神) 承载着韩国传统音乐的 音乐传统和时代气息充分履行了它的历史使命和义务 做出了历史性的贡 献 新民谣的这种情绪 精神 是韩民族抗敌日本侵略者的一种手段和方 法 是克服殖民统治下残酷现实的勇气和力量 它的情绪 尤其是快情绪 A Study on the Literary Sensibility of the New Folk Songs in the Colonial Era Shen, Guanghao

일제강점기 신민요의 문학정서 연구 287 作为最近 最直接的音乐传统 对北韩和中国朝鲜族音乐形成和发展行使了 莫大的影响力 如今的北韩和中国朝鲜族音乐正传承着它的情绪和精神 关键词 : 日帝强占期, 新民谣, 文学情绪, 快情绪, 不快情绪 논문투고일 : 2015년 1월 5일 심사완료일 : 2015년 2월 15일 게재확정일 : 2015년 2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