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으로 읽는 한국사회 서현의 빨간 도시: 건축으로 목격한 대한민국 (효형출판, 2014)를 읽고 나서 정수복(사회학자/작가) 건축 담론의 부상 의식주. 우리들의 삶은 옷을 입고, 밥을 먹고, 집에 거주하는 시간들로 이루어진다. 생존을 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입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 의 존재를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좋은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 의식주 생활 가운데 주 생활이야말로 인간적인 삶의 가장 근원적인 차원이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입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삶의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야말로 인간답게 살기 위한 기본 조건이 다. 우리들의 삶이 이루어지는 집과 동네와 도시가 위험하고 불안하고 무질서하다면 아무리 잘 입고 잘 먹어도 좋은 삶을 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 사회에 는 옷과 음식에 대한 담론이 풍성하게 이루어졌다. 누구나 자기 몸에 맞는 센스 있는 옷차림을 할 줄 알게 되었으며 누구나 세련된 미각으로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카페와 식당과 상점과 사무실과 아파트의 실내 장식도 많이 좋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생활과 식생활에 비해 주생활에 대한 담론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건축과 도시에 대한 논의가 대중화되고 있 음은 반가운 일이다. 젊은 건축학도가 등장하는 영화 건축학개론, 건축가 정기용의 삶과 건축을 다룬 다큐영화 말하는 건축가 등은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한다. 빨간 도시 의 저자 서현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대학원을 거쳐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한 후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이자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 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김천상공회의소, 해심헌, 효형출판 사옥, <문추헌>등 이 있으며 그가 설계한 <해심헌>은 아름다운 제주 건축 7선 에 선정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집만 짓는 건축가가 아니다. 그는 건축가인 동시에 건축인문학자이자 건 축사회학자이기도 하다. 건축과 도시가 사회적 삶의 물리적 구현이라 생각하는 그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적 바탕 위에서 건축에 대한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1998년 출간 된 첫 번째 건축학 개론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는 건축을 전공하는 학 생들을 포함하여 일반 독자들에게 건축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했다. 이 책은 2005년과 2014년 두 번의 개정을 거치면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서현은 이 책을 통해 경쾌하고 유려한 문체로 인간의 체취와 숨결이 깃든 건축비평의 새 장 을 열었다. 1999년 서현은 동아일보에 서울과 지방 여러 도시의 길 이야기를 연재했 고 1999년 그 글들을 모아 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 를 출간했다. 이 책에는 서 1
울, 부산, 수원, 전주, 군산, 광주 등의 도시에 펼쳐진 길의 모습을 건축가의 시각으로 살핀 글들이 실려 있다. 이후 서현은 2009년 건축을 묻다 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건 축학 개론서를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건축을 둘러싼 역사적, 사회적 문맥을 통해 건축은 무엇인가? 건축은 예술인가? 과연 건축이 예술이라면 무엇을 근거로 예술이 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건축의 궁극적 가치는 무엇인가? 에 이르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진지한 답변을 모색했다. 그는 미륵사 복원공사 공모전에 출품하면 서 우리 전통 건축에도 관심을 기울여 2012년 사라진 건축의 그림자-전통건축 그 종의 기원 을 출간했고 다시 그 책을 쉽게 풀어 배흘림기둥의 고백-옛 건축의 창조 와 진화 로 펴내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는 전통 건축에 보내는 유미주의적 찬사를 넘어 현대 건축가의 논리적 상상력으로 전통 건축물의 객관적 근거를 드러내려고 했 다. 서현은 건축의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기초를 다지기 위해 여러 방면의 책을 읽고 그 책들에 대한 독서일기를 펴내기도 했다. 2011년에 나온 또 한권의 벽돌 이 그것이 다. 이 책은 그가 인문학적 건축비평서를 쓸 수 있는 저력의 기원을 알게 해준다. 이 처럼 책을 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건축가 서현이 2014년 건축과 도시에 대해 쓴 글을 모아 빨간 도시 라는 책을 펴냈다. 부제 건축으로 목격한 대한민국 이 보 여주듯이 이 책은 도시 속에 투영된 한국사회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건축가 서현의 글쓰기 서현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 건축과에 입학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한국 고교의 반 편성 원칙에 따라 고등학교 내내 이과생으로 교육받아 데카르트의 회의적 사고방 식이 모더니즘을 어떻게 형성해 왔는가는 일언반구도 들은 바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 해야 했다. (258) 그는 대학과 유학 시절 스스로 인문학과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면 서 거의 독학으로 건축의 인문사회과학적 기초를 다졌다. 그 이후로도 그는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아 2011년에는 또 한권의 벽돌 이라는 제목으로 서평집을 출간했다. 도시는 건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설, 음악, 영화에 담긴 도시의 모습은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도시가 지닌 문학적 자산들이고 도시를 의미 있게 만드는 것들이다 (122)라는 문장은 그가 평소에 건축뿐만 아니라 문학과 음악과 영화와 미술에도 마음을 쏟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건축 분야의 전문가를 넘어 일반 대중을 위해 글을 쓴다. 그의 글쓰기는 건축과 대중 사이에 놓인 담을 부지런히 허물고 있다. 집요한 질문과 촘촘한 논리로 쌓아 올 린 그의 글은 탄탄하게 지어진 건축물 속을 거니는 듯한 입체적인 즐거움을 선사한 다. 좋은 건축가는 당연히 글도 잘 쓴다. 글짓기와 집짓기는 서로 통하기 때문이다. 2
둘 다 재료를 쌓아올려 무언가를 짓는 일이다. 글을 짓는 일이나 집을 짓는 일이나 일단은 정확해야 한다. 서현은 정확한 글쓰기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국 어로 정확한 문장을 만들 수 없는 이라면 건축가 이전에 건강한 사회인으로서 문제가 있는 것이다. (271) 사회는 사람들 사이의 소통으로 이루어지고 그 소통은 말과 글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말과 글 사이의 간극을 좁히면서 그 품위를 유지하려는 노력 은 건강한 사회인의 책임이기도 하다. 그런 사회인의 집단이 문화적으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273) 자신들이 물려받은 모국어를 아름답게 쓰려고 하지는 않아도 정확 하게 쓰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집단이라면 자신들에 대한 문화적 핍박을 운위하면 서 개탄할 자격은 더욱 없다. (275) 서현의 문장은 정확하고 탄탄하다. 그러나 그의 글이 정확하고 탄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국회에서 저잣거리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사회는 아직도 무모한 광기와 적 개심으로 가득하다. (117)라는 문장에서 보듯이 그의 글은 때로 신랄하고 때로 날카로 운 풍자와 야유의 언어를 구사한다. 그러나 그의 글은 유쾌하며 톡톡 튀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유명한 상표를 과시하는 외국의 햄버거점들이 햄버거 빵에 얹힌 참깨처럼 도시 곳곳에 들어섰다. (48) 그의 글은 음악처럼 리드미컬하다. 건축은 얼 어붙은 음악이라고들 한다. 건축가는 도시라는 악보에 음악을 쓴다. 거리라는 화판에 건축으로 그림을 그린다. 역사의식으로 무장하고, 상상력이라는 도구로 이 도시를 걸 어 다닐 다음 세대의 마음을 담을 그릇을 만든다. 건축은 그런 작업이다. 건축이란 무엇인가? 서현에게 건축은 무엇일까? 건축이 사람을 담는 그릇이라고 표현되는 것처럼 공간은 단지 바라보기 위한 대상이 아니다. 구체적인 인간의 모습과 생활 그리고 그 사회의 부대낌, 사회가 바라보는 미래의 모습을 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이리하여 건축은 건축가가 공간으로 표현하는 시대정신이 되는 것이다. (2005: 248) 그래서 그는 모 든 시대의 건축가들은 그 시대의 모습을 파리에 남겨놓을 책임을 갖고 있다 라는 파 리 시장 시절 자크 시락이 한 말을 소중하게 간직한다. 그렇다. 건축은 단지 대지 위 에 새운 건조물이 아니라 그 안에 인간의 삶이 담기고 사회가 구성되는 방식이 담겨 있는 커다란 그릇이다. 건축은 그 안에 인문학적 차원과 동시에 사회적 차원을 담고 있다. 건축의 가치는 멋있다고 표현될 수 있는 것 너머에 있다. 건축은 우리의 가치 관을, 우리의 사고 구조를 우리가 사는 방법을 통하여 보여주는 인간 정신의 표현이 다. (2005: 306) 빨간 도시 에서 그는 같은 생각을 훨씬 더 간결하게 표현한다. 건 축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담는다. 건축이 아름다운 것은 도시와 역사를 다루는 작업이 고 우리와 우리의 모든 것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121) 3
그는 건축가의 임무를 시대와 역사 속에 위치 지운다. 건축은 일주일의 고민으로 선 택하는 전공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작심하여 시키지 않아도 밤샘 작업을 하고 끝내 이 도시에 역사적 흔적을 남기겠다는 의지로 중무장한 학생들이 가는 길이다. (254) 건축가들은 현대사회의 어느 구성원들보다도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속한 사회를 분석 한다. 그리고 그 사회의 역동성에 맞는 건축적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점에 서 건물은 건축가들이 사회를 대상으로 주섬주섬 늘어놓는 또 다른 형식의 이야기라 고 할 수 있다. (2005: 17) 건축가는 엔지니어이면서 예술가이기도 하다. 논리와 상상 력을 배합하고 기술과 예술을 결합한다. 건축을 공부하려면 필요한 자질은 상상력과 논리적 설득력이다. (261) 건축가는 마치 도공이 자신이 만든 분청사기에 자신의 이름 을 새기듯 자신의 이름을 걸고 삶의 공간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좋은 건축이란 어떤 건축인가? 시끄러운 음악이 꼭 훌 륭한 음악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요란한 형태를 지닌 건물이 꼭 훌륭한 건물이라 고 할 수도 없다. 30초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우리의 기억 속에 들어오겠다고 아우 성치는 광고와 30년을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는 건축은 분명히 다른 존재 의미가 있 다. 겉보기에 별 볼 일 없는 듯해도 만나 이야기해 보면 신선한 느낌을 주는 사람들 이 있다. 언뜻 보기에 무덤덤한 듯 하나 꼼꼼히 뜯어보면 점점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발견되는 건물들도 있다. 우리가 찾아내고자 하는 건물들이 바로 그런 건물들이다. 도 시는 활력 있고 상쾌하여야 하나 방송 광고처럼 시끄럽고 분주할 필요는 없 다. (2005, 83) 건축과 도시는 어떤 관계인가? 도시는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고 여러 건축물들 이 모여 하나의 도시를 이룬다. 그러므로 개별적인 건축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이어지는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서현(2005: 106)은 이렇게 말한다. 공간이 단 지 그 크기나 비례의 문제로만 이야기되는 것은 아니다. 주위의 다른 공간과의 연결 방법, 사용한 재료와 질감의 문제 등 많은 변수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공간 들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지 않더라도 다른 공간과의 관계에 의해 얼마든지 재미있고 음미할 만한 드라마가 생긴다. 그렇다면 르코르뷔지에(2013: 35)가 말하듯이 건축과 도시는 서로 다르지 않으며 하나의 작업, 하나의 문제이다. 그래서 서현은 빨간 도 시 에서 인도네시아의 수라비야, 핀란드의 헬싱키,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등 여러 도시를 떠돌며 시민참여, 교통문제, 환경문제, 안전문제, 옛 건물 의 재활용 등 그 도시들에게서 배울 점들을 보여준다. 살고 싶은 집 서현은 어떤 집을 짓고 싶으세요? 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아, 가을이 왔구나 라고 집주인이 자리에 누웠을 때 느낄 수 있는 집 을 짓고 싶다고 답한다.(299) 어디 서현 뿐인가. 르코르뷔지에에서 안도 다다오에 이르기까지 많은 건축가들이 우리가 일상의 4
삶을 사는 살림집을 모든 건축의 원점으로 생각했다. 1924년 부모님을 위해 처음 지 은 작은 살림집을 평생 동안 가장 아꼈던 르코르뷔지에는 일찍이 살림집의 위기를 다 음과 같이 진단했다. 집이 가족의 보금자리로 될 기회가 사라지고 말았다. 사람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임대용 주택을 만들었고, 이것은 건축의 개념을 위태롭게 한다. 왜냐 하면 거부할 수 없는 자연 조건 인 태양의 법칙에 따라 거주와 작업과 여가를 위한 장소와 공간을 창조한다는, 건축에서의 분명한 정의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 다. (2113: 35) 안도 다다오는 살림집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썼다. 건축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도 살림집 이란 주제는 나에게 사고의 중심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살림집이야말로 내 건축의 원점이다. (2012: 15) 서현은 계절을 잃은 집, 마당을 대신하여 계단과 엘리베이터와 복도로 이루어진 우리 들의 주거 공간, 아파트를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바람이 느껴지고 비가 들이 치는 공간, 바람이 코끝에 닿는 아파트는 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편안, 안전, 쾌적을 대가로 획일성과 익명성 속에 묻히게 하는 아파트 생활에 대해 문학 평론가 김현은 오래 전 두꺼운 삶과 얇은 삶 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논평한 바 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반포의 서른 두 평짜리 아파트이다. (...) 아파트가 대중 조작에 가장 적합한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거기서였다. 직업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얼굴의 형태가 달라도 거주 공간이 같으면 성격이 비슷해지게 마련인 모양이 었다. 나도 내 아내도 옆집 사람들과 같은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을 보고 듣고, 같은 밑반찬을 준비하고, 같은 식의 음식을 만들고, 그래서 결국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아파트에 살면서 나는 아파트가 하나의 거주공간이 아니라 사고 양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중산층의 사고양식이다. (...) 더 새롭고, 더 넓은 아파트로 가려는 아파트 주민들의 병은 아주 고치기 힘든 병이다. (...) 아파트는 모든 방의 높이가 같 다. 다만 분할된 곳의 크기가 다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파트에서의 삶은 입체감 을 갖고 있지 않다. 아파트에서는 부엌이나 안방이나 화장실이나 거실이 다 같은 높 이의 평면 위에 있다. 그것보다 밑에 또는 위에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아파트이다. 좀 심한 표현을 쓴다면 아파트에서는 모든 것이 평면적이다. 깊이가 없는 것이다. 사 물은 아파트에서 그 부피를 잃고 평면 위에 선으로 존재하는 그림같이 되어 버린다. 모든 것은 한 평면 위에 나열되어 있다. 그래서 한 눈에 들어오게 되어 있다. 아파트 에는 사람이나 물건이나 다 같이 자신을 숨길 데가 없다. 모든 것이 열려 있다. 그러 나 그 열림은 깊이 있는 열림이 아니라 표피적인 열림이다. 한 눈에 드러난다는 것, 또는 한 눈에 드러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깊이를 가진 인간에게는 상당한 형별이 다. (...) 같은 평면 위에서 대번에 그 정체를 드러내는 인간은 두께나 깊이를 가질 수 없다. 두께나 깊이는 차원이 다른 것이 겹쳐서 생기기 때문이다. 김현의 아내는 단독주택을 땅집 이라고 불렀는데 김현이 볼 때 그 땅집이 아름다운 5
이유는 그것이 많은 것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360-365) 서현이 지은 해심헌, 문추헌 같은 집들은 그가 생각하는 살고 싶은 집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파트 안에 땅 집의 두께와 깊이를 집어넣을 수는 없는 것일까?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 아 파트의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우리 사회는 그런 주거형태 를 허용하지 않는다. 건축사회학으로 읽는 도시 건축으로 목격한 대한민국 이라는 부제가 드러내듯이 빨간도시 는 건축서보다는 정치적인, 정치서보다는 인간적인 건축사회학 책이다. 서현은 이 책에서 공간과 건축 을 통해 사회를 읽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대한민국 도시와 건축의 목격자이자 관찰 자이고 증인이고 분석가이고 진단자이고 대안 제시자가 되기도 한다. 그는 목격자의 관찰을 대중의 언어로 전달한다. 씨족, 일제강점기, 북한, 반공, 군사/향락문화, 경쟁, 거짓말, 과열, 월드컵 등 기형적 인 건축에 새겨진 흔적들은 하나같이 빨갛다. 그래서 그는 대한민국을 빨간도시 로 정의한다. 빨간 도시에는 속도지상 졸속주의, 표류, 우여곡절, 중구난방, 좌충우돌, 무 질서, 주먹구구, 비합리성이 도처에 들어있다.(108) 이 책 속에는 주요 주거공간인 아 파트에서 학교와 결혼식장을 거쳐 장례식장에 이르는, 한국인의 삶이 이루어지는 구 체적 공간들이 차례로 분석된다. 결혼식장은 가문의 자존심이 격돌하는 씨름장이다. 그는 씨족공동체, 종교, 서양이 적당히 버무려진 결혼식 풍경을 풍자적으로 묘사한다. 품위보다는 화려함, 엄숙함 보다는 요란함으로 치장한 예식장 건물에서 빨간 도시의 일면을 목격한다.(54-57) 서현은 장례식장을 관찰하면서 그곳이 망자에 대한 조의의 표시보다는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의 끈끈한 관계를 확인 하는 장소임을 날카롭게 지 적한다. 혈연, 지연, 학연을 중심으로 서로 아는 사람들끼리 뭉치고 모르는 사람은 배 제하는 강한 연고주의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일제 식민지 시대의 유산 인 학교 운동장이 병영과 동일한 모습을 확인한다. 그곳에서 학생들은 서열존중과 권 위주의를 배운다. 군사문화와 학교문화 사이에 획일성과 권위주의가 담겨있는 건설문 화가 있다. 서현은 세종로에 자리 잡은 22층 정부 서울청사가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 는 건물로서 도시 경관을 파괴하고 있는 권위주의 시대의 건물이라고 비판하기도 한 다. 서현은 사회학자가 되어 대다수 한국인들의 재산 축적 과정에 비관과 자조의 질문을 던진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느냐고, 봉급생활자만 봉이 아니냐고 한다. 지 난 세기 우리 사회에서 가문의 명예와 사회의 치욕은 종횡무진 엉켜들었다. 정리되지 않는 과거는 여전히 그냥 덮여있다. (265) 그러나 그는 진보를 믿는다. 이성을 믿고 6
공정한 게임의 존재를 믿는다. 그렇다고 그가 무슨 과격한 사회운동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일단 건축과 도시 공간 속에 나타나는 정의롭지 못한 부분을 드러낸다. 이 사회는 정의롭지 않고 완전히 정의로워질 수도 없다. 그러나 좀 더 공정하게 만 들려는 구성원의 노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사회의 정의롭지 못한 모습은 물리적으로 표현되어 도시에 깔린다.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보다 그렇지 않아도 좋은 곳에서 필요 이상의 대접을 받는 도시는 잘못되어 있다. 때로는 뻔뻔스럽게 드러나고 때로는 교활하게 숨어있는 그 모습을 나는 애써 찾아내고 싶다. (302) 서현은 가장 아름다운 도시는 가장 공정한 사회가 만든다 고 생각한다.(266) 그러면서 다시 현실로 돌아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빠져 있는 도시를 비판한다. 도시는 선택받은 강자에게 맡겨진 스케치북이 아니다. (123) 도시는 정치가나 행정가, 재벌이나 건축가의 손에 의해 장악될 수 없다. 도시는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민주적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좋은 도시를 만드는 일에는 민주적 토론이 필요하다. 그래서 서현은 이렇게 말한다. 토론 없는 결론보다 결론 없는 토론의 가치가 중요하다. (108) 자유로운 사고의 가능성 빨간 도시 를 읽으면서 몇 가지 함께 생각할 질문이 떠올랐다. 저자 서현은 물론 이 미 이 책을 읽은 독자들, 그리고 앞으로 읽을 독자들 모두와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문제다. 건축은 시대정신의 표현이고 사회의 반영이지만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사 고구조와 삶의 방식을 틀 짓기도 한다. 건축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있다면 어떻 게? 건설이 아닌 건축, 제품이 아닌 작품으로서의 건축이 가능한 사회적 조건은 무엇 인가? 그것은 물론 건축가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회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의 이 건축 과 도시에 대한 생각이 달라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건축과 도시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건축과 도시는 건축가와 행정가에게만 맡겨놓 기에는 너무나 중대한 문제다. 건축은 한 사회의 문화적 문법 의 표현이다.(정수복, 2007) 서현은 이 책에서 연고주 의, 권위주의, 획일주의 등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중고등학 교 때 꽃 같은 시절의 문화적 감수성은 모두 뭉개버리고 일사분란하게 강요된 감수 성 (256)을 지닌 학생들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비슷비슷한 그만그만한 평균치의 능력 을 가진 인재를 양산하는 교육체제를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 한다. 체벌로 인한 상처는 시간이 가면 낫는다. 그러나 전체주의적 지식구조와 집단 체조식 감수성의 강요로 생긴 상처는 평생 낫지 않는다. (258) 중요한 것은 자유로움 이다. 사고의 자유, 지성의 자유. (261) 그렇다면 그런 사고의 자유, 지성의 자유를 어 떻게 가르칠 것인가? 그건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집과 도시의 틀 안에서 살아가 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다. 서현은 인문학적 건축학 책들은 건축을 통해 자유 7
로운 사고, 자유로운 지성을 진작시키고 있다. 1) 건축과 사회학의 대화 서현은 빨간 도시 를 건축사회학 이라고 말하면서 건축과 도시 속에 들어 있는 사 회에 대해 논의했다. 아래에서는 사회학자인 필자가 건축가 서현의 논의에 응답하여 건축과 사회학의 대화와 교류를 위한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본다. 사회학은 사회학자들의 밥벌이의 수단에 머무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학문이다. 사회 학은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사회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삶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일에 기여해야 한다. 그런데 사회라는 것이 워낙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것이어서 사회를 바꾼다는 말이 잘 와 닿지 않는다. 두 사람 사이의 상호작 용에서 시작하여 세계체계에 이르는 사회학의 그 무한한 연구 대상에 비해 집에서 도 시에 이르는 구체적인 형상을 만드는 건축은 물질성을 가지고 있어서 몸으로 직접 느 낄 수 있다. 그래서일까? 건축가 승효상은 자신이 건축을 하는 이유를 건축으로 사 람과 사회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부가 서로 닮듯 건물과 사람도 함께 지내면 비슷해진다. 좋은 건축 속에 있으면 사람도 좋아진다. 라고 말한다. 2) 공간을 매개로 인간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건축은 공학과 조형예술의 한 분야로 여 겨진다. 그런데 건축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인간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이라 면 건축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적 성찰을 포함해야 한다. 건축과 도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좋은 건축과 도시를 창조할 수 없다. 말하는 건축가 정기용은 건축을 구태여 학문 적으로 분류하자면 예술이나 기술이 아니라 오히려 인문ㆍ사회과학의 영역에 포함시 키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고 말했다. 3) 그래서 훌륭한 건축가들은 인간과 사회를 알기 위해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의 책을 탐독한다. 건축가들이 건축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좋은 상태로 바꾸려고 한다면 사회학자는 정 작 건축가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 동안 사회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추 상적 개념에 사로잡혀 집과 도시라는 구체적인 물질성을 지닌 대상에 큰 관심을 보이 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사회학자들도 삶이 이루어지는 공간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 1) 많은 건축가들이 건축에 대해 발언하면서 지식인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만 보아도 김석철, 강홍빈, 정기용, 김진애, 승효상, 민현식, 황두진, 김억중, 김기석, 박철 수, 김성홍, 임형남과 조은주, 함성호, 조한 등 많은 건축가들이 건축과 도시에 대한 담론 으로 사회적 발언을 전개한 바 있다. 2) 승효상ㆍ홍동원, 某 用 空 間 (글씨미디어, 2013), 12쪽. 3) 정기용, 사람, 건축, 도시 (현실문화, 2008), 7쪽. 8
가 왔다. 민주주의와 다양성을 주장하는 사회학자라면 그런 가치들이 공간 속에 어떻 게 표현되어야 하는 지를 연구해야 한다. 아니 그에 앞서 지난 근현대사를 거치며 살 아온 공동의 삶이 도시 공간 속에 어떤 흔적으로 남아있는지를 살피고 그것들의 의미 를 반추해야 한다. 모든 땅엔, 과거의 기억이 손금과 지문처럼 남아있다. 우리 모두 에게 각자 다른 지문 指 紋 이 있듯이 땅도 고유한 무늬 地 文, landscript를 가지고 있 다. 더러는 자연의 세월이 만든 무늬이며, 더러는 그 위에 우리의 삶이 연속적으로 새긴 무늬이다. 이는 우리가 땅에 쓴 우리 삶의 기록이며 이야기이다. 따라서 땅은 장대하고 존엄한 역사서이며 그래서 귀하고 귀하다. 4) 건축은 그런 지문을 읽으면서 땅과 사람이 요구하는 새로운 요소를 덧대는 일이다. 건축가는 기존의 도시 공간에 새로운 건물 하나를 잇대어 지음으로써 건물 주변을 새롭게 만들 수 있다. 그것이 사 회학자는 가질 수 없고 오로지 건축가만이 갖는 힘이다. 그렇다면 사회학자는 그런 건축가의 작업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건축은 부분을 전체와 관련 지워 이루어진다. 부분들이 조합되어 전체를 이루며 하나 의 건물로 완성된다. 건축의 모든 부분은 마치 텍스트의 단어와 같이 그것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달려 있다. 5) 건축학이 건축 요소들이 조합되는 법칙을 찾아내고 연구 하는 작업이라면 사회학은 사회의 구성요소들을 밝히고 그것들이 조합되는 방식을 찾 아내는 작업이다. 사회 속에서 관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있는 대로 관찰하고 그것들 안에 숨어있는 문법의 요소들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리고 거기에 새 로운 문법의 구성요소들을 추가하면서 기존의 문법요소들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6) 건축과 도시는 삶을 담는 그릇이다. 그것은 단지 바라보기 위한 대상이 아니다. 구체 적인 인간의 모습과 생활 그리고 그 사회의 부대낌, 사회가 바라보는 미래의 모습을 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이리하여 건축은 건축가가 공간으로 표현하는 시대정신이 되는 것이다. 7) 그러나 사회 속에는 건축과 예술을 포함하여 정치 경제, 법, 가족, 교 육, 의료 등 인간의 삶의 모든 측면이 담겨있다. 사회학은 그 모든 것을 포괄한다. 사 회학은 사회과학의 한 분야가 아니라 사회과학 전체를 감싸 안으면서 인문학과 대화 하는 기초학문이기 때문이다. 사회학이야말로 인간과 사회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가장 광범위한 영역의 학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사회학은 건축을 적극적 관심의 영역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8) 4) 승효상, 홍동원, 윗글, 20쪽. 프랑스의 수도 파리의 장소들에 새겨진 지문 을 해석한 책으 로 정수복, 파리의 장소들- 기억과 풍경이 도시미학 (문학과지성사, 2010)을 볼 것. 5) 정기용, 윗글, 301쪽. 6) 이런 작업의 하나의 보기로 정수복,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당연의 세계 낯설게 보기 (생 각의 나무, 2007)를 볼 것. 7) 서현,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인문적 건축이야기 (효형출판, 2005), 248쪽. 8) 사회학자의 건축 비평의 보기로 정기용의 공공건축에 스며들어 있는 일상성과 공공성을 연 구한 김무경, 건축에서의 일상성 과 공공성 : 정기용의 공공건축 연작을 중심으로 문화 와 사회 16권(2014년 봄/여름호), 105-141쪽을 볼 것. 9
건축가들은 현대사회의 어느 구성원들보다도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속한 사회를 분석 한다. 그리고 그 사회의 역동성에 맞는 건축적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9) 건축가 가 사회를 분석하면서 건축으로 사람과 사회를 바꾸려한다면 사회학자도 그들이 하는 일을 함께 할 수 있다. 도시공간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회학자라면 우선 도시 공간 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규정하고 길들이는지를 연구해야 하고 그런 연구의 바탕 위에 서 주체적이고 개성적이고 창조적인 삶이 가능한 공간 구성의 원칙과 방법을 건축가 들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시인이자 건축가인 함성호는 건축사회학 이라는 부제를 가 진 일련의 시에서 그런 작업을 시작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잠실 롯데 월드-건축사회학 저것은 거대한 욕망의 성채다. 이성을 살해한 음울한 중세의 성벽과 빛나는 P.C. 자기질 타일 외장의 롯데 월드 그것은 무엇을 방어하고 있나요 당신을, 우리를, 무산대중을? 꿈과 희망의 동산이요, 사랑과 행복의 당신의 휴식 공간 롯데는 우리를 모두 젊은 베르테르의 사랑에 빠지게 한다 욕구의 끓는 기름과 조갈의 불화살을 쏴 끊임없이 당신을 상품화하고 끊임없이 당신을 당신이 소비하도록 구애한다 여러분은 지금 롯데 월드로 가시는 전철을... 욕/망/을/드/립/니/다 내리시면 바로 당신을 진열해드립니다 이 지하철은 저 성채의 비밀 통로인 모양이다. - 함성호 시집, 56억 7천만년의 고독 (문학과지성사, 1992), 111쪽 9) 서현, 윗글, 17쪽. 10
서울, 서울, 서울- 건축사회학 서울은 너무 새로운 도시예요 삼성동 무역회관은 승천하는 용의 모습이 아니라 신군국주의의 섬뜩한 총구예요 니껜 세께이가 표방한 이천년대 무역한국 의 모습은 자위대의 해상 훈련과 엔 블록의 좌표점 어디에 위치할까요? (최고의 건축은 아무것도 건축하 지 않는 것이라니까요?) 서울은 꼬리 아홉 달린 여우 의 조화같애요 저 청상과부의 아름다운 그림자를 주 의 하세요 서울은 광난다-누가 이렇게 밤새 닦어놓 았나 번쩍번쩍합니다, 수입 완제품인 서울 함성호 시집, 56억 7천만년의 고독 (문학과지성사, 1992), 129쪽, 부분. 프랑스의 건축가 크리스티앙 드 포잠박은 젊은 시절 병든 도시가 정신분열적 인간을 만든다는 생각을 갖고 그렇게 병든 인간을 치유하는 건축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램 콜하스는 맨해튼은 서구문명의 종착 단계의 무대이다 라고 갈파했다. 10) 건축가 서현은 건축은 우리의 가치관을, 우리의 사고 구조를 우리 가 사는 방법을 통하여 보여주는 인간정신의 표현이다 라고 썼다. 11) 말하는 건축가 정기용은 한국의 현대 건축가들이 우리 사회의 진정한 건축적 요구를 파악하지 못했 기 때문에 사적인 취향은 난무하나 공공성은 찾기 힘들게 되었고 그 결과 우리다운 정체성을 지닌 건축과 도시를 만들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비판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사회적 조절자 social coordinator가 되어 무주 주민들의 다양한 사회적 요 구를 파악하고 그것을 공공건축으로 표현함으로써 건축이 인간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했다. 12) 건축가들이 건축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노 력한다면 사회학자들은 사회학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 한다. 정기용은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사회학자 의 질문이기도 하다. 두꺼운 삶이 가능한 주거와 도시는 어떤 모습을 해야 하고 두터 운 삶이 가능한 사회는 어떤 사회를 말하는가? 이런 문제를 놓고 사회학자와 건축가 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자극하면서 인간적인 건축과 도시와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기 10) 램 콜하스(지음), 김원갑(옮김), 정신착란병의 뉴욕 (태림문화사, 1987) 11) 서현, 윗글, 306쪽. 12) 김무경, 윗글, 129쪽. 11
여할 수 있을 것이다. 12
참고문헌 김무경, 건축에서의 일상성 과 공공성 : 정기용의 공공건축 연작을 중심으로 문화 와 사회 16권(2014년 봄/여름호): 105-141쪽. 김현, 1993, 김현 문학 전집 14권- 우리 시대의 문학: 두꺼운 삶, 얇은 삶, 문학과 지성사. 르코르뷔지에(지음), 정진국(옮김), 2013(1965), 르코르뷔지에의 사유, 열화당. ----------------, 이관석(옮김), 2012(1954), 작은집, 열화당. 서현, 2014, 빨간도시, 효형출판. ----, 2005,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효형출판. 승효상ㆍ홍동원, 2013, 某 用 空 間, 글씨미디어. 안도 다다오, 2012, 건축을 꿈꾸다, 안그라픽스. 정기용, 2008, 사람, 건축, 도시, 현실문화. 정수복, 2010, 파리의 장소들- 기억과 풍경이 도시미학, 문학과지성사. 정수복, 2007,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생각의나무. 콜하스, 램(지음), 김원갑(옮김), 1987, 정신착란병의 뉴욕, 태림문화사. 함성호, 1992, 56억 7천만년의 고독, 문학과지성사.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