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김치학 총서 03 뒷표지 문구 내용 세계김치연구소 김치학 총서_03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초판 1쇄 발행 2015년 12월 20일 글쓴이 박채린, 조숙정, 강진옥, 함한희, 김일권, 서리나, 루치아 슈람프, 김소희 펴낸이 세계김치연구소 펴낸곳 세계김치연구소 주 소 501-841 광주광역시 남구 김치로 86 세계김치연구소 전 화 062-610-1700 팩 스 062-610-1850 홈페이지 www.wikim.re.kr 디자인 및 인쇄 도서출판 선인 주 소 121-050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4다길 4(마포동) 곶마루빌딩 2층 전 화 02-718-6252 팩 스 02-718-6253 메 일 sunin72@chol.com 등 록 1998년 11월 4일 제5-77호 비매품 ISBN 979-11-954378-8-7 94380 C 세계김치연구소, 2015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이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와 세계김치연구소의 서면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비매품 잘못된 책은 바꿔드립니다.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엮은이 세계김치연구소 ISBN 979-11-954378-8-7 ISBN 979-11-954378-6-3 (세트) 세계김치연구소 World Institute of Kimchi 세계김치연구소 World Institute of Kimchi
학 2015-07 김치학 총서 03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The Humanities of Kimchi 엮은이 세계김치연구소 글쓴이 박채린 조숙정 강진옥 함한희 김일권 서리나 루치아 슈람프 김소희 김치담론, 김치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인가? 3 세계김치연구소 World Institute of Kimchi 세계김치연구소
발간사 김치학총서는 세계김치연구소가 매년 개최하는 김치학 심포지엄에서 발표 되는 연구 결과와 토론된 내용을 재구성하여 발간되고 있습니다. 각 분야 권 위자들의 김치에 대한 심도 있으면서 재미있고 유용한 연구 결과를 담고 있어 서 김치를 연구하는 학술도서로 뿐 아니라 김치관련 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 이 알아야하는 김치 지식서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미 알고계시는 바와 같이 세계김치연구소는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과학기 술계 출연연구소 중 하나로 김치산업 발전과 김치 세계화를 위한 종합적 연구 개발이 주 기능입니다. 자연과학분야만을 탐구하는 연구 활동만으로 창의적 인 연구 주제를 찾거나 문제 해결의 아이디어를 얻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은 모든 분들이 동의하는 바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한 이 해와 고찰을 통해 산업계 현안의 해결책을 병행하여 모색하는 것도 김치과학 기술의 발전과 김치문화 융성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 습니다. 이러한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융합적 학술연구 활동을 통한 김 치산업 활성화와 김치문화의 성공적인 세계화야말로 저희 세계김치연구소가 지향하는 목표이기도 합니다. 2013년 김치관련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통합하는 학문 범주로 김치학 (Kimchiology) 을 개창한 후 세 번째로 발간하는 이번 총서는 김치에 대한 4
인지체계와 정서, 그리고 이것들이 김치문화 형성 및 변화에 어떠한 관련성 을 지니고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특별한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번 김치학총서도 연구 현장과 산업 현장에서 유용한 자료로 활용되고 국민들 에게는 우리 고유의 김치 문화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되 길 기대합니다. 끝으로 한 해 동안 연구하신 결과를 총서의 원고로 집필해 주시고 출판을 허 락해 주신 저자분들과 김치학에 관심을 가져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15년 12월 세계김치연구소장 박 완 수 5
차 례 발간사 4 01 김치에 대한 인지와 정서 1 김치담론, 김치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인가? _박채린 11 김치와 장아찌의 범주화에 관한 인지인류학적 연구 _조숙정 47 02 김치에 대한 인지와 정서 2 김치맛 표현에 나타난 한국인의 정서 _강진옥 103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김치문화에 미치는 영향 :일, 주거양식, 테크놀로지와 김치의 상호작용 _함한희 183 6
03 근현대 김치 史 근대시기 김치문화사 연구를 위한 농무시험장의 전개와 채소작물의 재배상황 고찰 _김일권 203 타문화 접촉과 김치문화 : 20C 하와이 이주 한인에 의한 김치 전파 및 김치산업의 성쇠 과정 _서리나 243 04 밖에서 보는 김치 세계화 중부 유럽의 시각으로 보는 김치 _루치아 슈람프 287 김치 세계화 성공사례 및 제언 _김소희 303 2015 제3회 김치학 심포지엄 현장스케치 311 글쓴이 소개 316 7
01 김치에 대한 인지와 정서 1 김치담론, 김치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인가 박채린 김치와 장아찌의 범주화에 관한 인지인류학적 연구 조숙정
김치담론, 김치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인가? 박채린 1. 김치담론의 출발 김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현재 김치는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브랜드로서 의 이미지와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 스스로는 물론 세계인들도 한국의 대표음식으로 김치를 꼽는다. 수년 전 외국 매체에서 선정하는 5대 건강식품 목록에 오르더니 급기야 2013년도에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대 표목록에까지 등재되었으며, 급증한 김치교역량과 국내외 매스컴들의 높은 관심 등을 볼 때 김치가 우리민족 대표음식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여겨진다. 정말로 김치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인가? 그리고, 언제부터, 누가 김치를 우리민족의 대표음식이라고 정하고 사용했는가? 이것이 김치와 김치문화에 대한 대표 담론 1 이자 본질이며, 이것을 추적하고 고증하고 확인하는 것이 본 1_ 담론은 통상 한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정치경제 사회적 행위자들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를 정당화하기 위해 창출하는 논리성을 갖는 언술 체계 혹은 넓은 의미에서의 지식 체계 혹은 하나 의 논리적인 지식 체계 성격을 담고 있고 논리적으로 표출되는 언술 행위 로 정의되고 있다(정재 김치담론, 김치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인가? 11
고의 목적이자 목표이다. 필자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무렵 학교급식이라는 시스템이 없었던 시절에 각각 중학생, 고등학생의 학창생활을 했던 터라 김 치와 도시락에 얽힌 다양한 추억담을 가지고 있다. 성능이 뛰어난 밀폐용기 는 고사하고 냄새나 국물이 새는 것을 막아 줄 비닐랩마저 없었던 때 특유의 냄새와 여기저기로 잘 새어나오는 국물 때문에 여간한 고충이 아니었고, 자 가용으로 등교할 수 있었던 극소수 상류층 자녀를 제외하고는, 만원 버스를 타고 내리는 동안 고이 싸 온 도시락 반찬통 안에서 벌어진 각종 김치테러사 건은 감수성 예민한 여고생들에게 참담한 추억들을 많이 남겼다. 이렇듯 김 치 때문에 창피했던 기억은 많은데 비해 자랑스러웠던 기억은 잘 나지 않는 다. 반면, 도시락이 아닌 집 밥상에서 김치는 빼놓을 수 없는 반찬이었다는 점에서 우리 세대에게 김치는 그야말로 애증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이렇듯 썩 자랑스럽지만은 않았던 존재였던 김치라는 음식이 언 제부터 우리민족의 대표음식이라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던 것일까? 자랑스러 움과 창피함의 간극은 정말 어떤 계기로 메워지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 및 업계에서는 김치가 민족대표음식이라는 타이틀 을 얻게 된 것이 서울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전후해 국가적 필요에 의해 주 도된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언론과 다수의 사람들이 별다른 이의 없이 이를 받아들이고 수긍하면서 이 주장이 거의 일반론으로 수용되고 있는 듯하다. 필자의 개인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시기적인 문제에는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철, 문화연구의 핵심개념,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중에서). 원래 사회과학분야에서 출발한 용 어로 현재 학문분과마다 학자마다 조금씩 다른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본고에서는 김치에 대한 한국인의 생각과 지식체계들이 매체를 통해 발화된 것을 담론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12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정말 그럴까? 최근 필자는 일제강점기 기사에서 김치를 민족음식으로 인식하고 상징적 인 의미를 부여한 바 있었다는 뜻밖의 단서를 찾게 되면서 이제라도 김치담론 의 내용과 변화를 다시 한 번 검증해 보아야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김치는 정말 우리민족의 대표음식이라 할 수 있는 것인지? 언제부터 그러한 인식을 하게 되었는지? 는 김치와 김치문화에 대한 가장 크고도 본질 적인 담론인 만큼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 근거를 토대로 한 고증과 고찰이 뒷 받침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2. 민족음식과 민족대표음식 민족음식 또는 민족대표음식 이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관련 학자들조차도 혼동하여 사용할 만큼 개념과 정의가 모호한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 민족고 유음식(ethnic food)과 민족대표음식(national food)을 구분하지 않고 사 용하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며, 따라서 이에 대한 개념 정리부터 하고자 한다. 민족음식 은 어떤 민족에서 기원하거나 오랫동안 주로 먹어 온 음식으로 그 민족 이미지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는 음식 이라 정의 할 수 있다. 이때의 민족음식 은 민족고유음식(ethnic food)을 뜻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의 민 족에게 나타나는 특징적인 음식 형태라는 의미로 특별한 가치개입이 되지 않 은 문화상대론적 관점의 용어라 할 수 있다. 어떤 특정 민족이 만들어 내고 오랫동안 먹어 온 음식으로 다른 민족과 구별지음(identify)이 가능한 음식 으로 정의되는 우리 민족고유음식(또는 민족음식)에는 김치 외에도 된장, 고 김치담론, 김치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인가? 13
추장, 장아찌, 젓갈, 막걸리 등 다양한 것들이 있다. 2 그런데, 다양한 이 민족음식들 중에서 유독 김치를 민족대표음식 이라 부르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김치라는 음식이 기본적으로 민족고유음식 (ethnic food)의 자격을 갖추되 여기에 긍정적인 민족적 정체성과 일체감 을 유발할 수 있고 대다수 구성원들에 의해 그 대표성이 인지적 심리적으로 수용되어 민족음식들 중에서도 으뜸의 위상을 갖는 음식 즉, 민족대표음식 (national food)이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민족대표음식(national food)이란 다른 나라에 존재하지 않는 그 민족만의 독특한 음식으로 구별지음이 가능한 음식이어야 한다는 기본 명 제 위에, 우리 식생활에서 차지하는 절대 비중이 높고, 일반적으로 가장 많 이 먹는 식품이면서, 대다수가 먹는 음식이라는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거기에 민족 상징으로서의 자부심과 그 대표성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공감이 따라주는 음식인 것이다. 본 연구에서 알고자 하는 것은 김치가 민족 대표음식 인가에 관한 것이므로 그동안 민족음식이라는 용어에 혼재되어 있 던 2가지 개념을 구분하여 사용키로 한다. 2_ 주영하( 음식전쟁 문화전쟁, 2000, 315~316쪽)는 민족음식(ethnic food)은 한 민족이 음식을 통 해 정체성 혹은 민족성을 확인할 때 유효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는 개념으로 이를 통해 민족적 일치 감을 공유하게 된다. 라고 정의하였다. 그러나 정체성이나 민족성, 민족적 일치감이라는 것에는 해 당 민족 스스로 긍정 부정의 주관적 가치가 개입되기도 하므로 용어 사용에 혼란이 발생하고 있 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한 민족의 긍정적 자긍심이 덧입혀진 민족대표음식(흔히 유행하는 말로 국민음식 이라고도 할 수 있음)을 내셔널 푸드라 하여 민족고유음식인 에스닉 푸드와 구별하여 개 념을 명확히 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구별을 둠으로써 김치를 민족대표음식으로서 인식하고 자 각한 것이 언제부터인지를 규명하는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14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3. 김치는 정말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인가? 정말 김치는 우리의 민족대표음식(national food)인지? 를 보다 효과적 으로 밝히고자 본 연구는 조선시대, 개화기 및 일제강점기에서 오늘날에 이 르기까지 통시적 관점에서 사적, 공적 문서와 언론보도를 포함한 다양한 자 료를 조사 분석, 고찰함으로써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 보려 한다. 특히, 김치가 언제부터 우리의 민족대표음식(national food)으로 인식된 것인 가? 를 밝히는데 있어 일제강점기 기사 3 에 나타난 담론들은 중요한 단서를 제 공해 주기에 이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다루려 한다. 김치가 민족고유음식을 넘어서 우리의 민족대표음식(national food)이라 고 하려면 적어도 다음의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본다. 첫째, 우리의 식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 둘째, 지위, 성별, 연령을 불문하고 누구나 일상적, 보편적으로 먹는 음식 인가? 셋째, 민족적 동질감을 공유하고 정체성을 확인하는 수단인가? 마지막으로 우리 스스로가 김치를 민족의 대표음식으로 자랑스러워하는 가? 를 확인하여야 한다. 이같은 조건들에 대한 검증작업을 통하여 김치가 민족대표음식(national food)이라 할 만한 것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3_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http://www.koreanhistory.or.kr)을 통해 검색한 자료들과 세계김치연 구소에서 발행한 일제강점기 김치기록 모음집-동아일보신문기사 1920~1945 (2014)를 참고하 였으며, 조선일보의 기사는 별도로 해당 사이트(http://srchdb1.chosun.com/pdf/i_archive)에서 김장 및 김치를 검색어로 추출하였다. 김치담론, 김치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인가? 15
1) 김치는 우리의 식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 과거 우리 상차림에서 김치의 중요성과 필수성 (Quintessential) 김치가 오랜 기간 가장 기본적인 반찬이자 필수 부식으로 실제 식탁 위에 올라왔었고 그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 왔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자 현상 이다. 다음 기록을 보면 김치에 관한 기록이 첫 출현할 때부터 한국인의 식사 에서 김치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을 곁들이면 한여름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이면 긴 겨울을 넘긴다. (이규보, 1168~1241) 4 3개월 겨울은 김장김치로 마땅히 견디어 가야하니 문 밖 무배추가 몇 이랑 인고. (박윤 묵, 1771~1849) 5 외국인들의 시선에도 한국인들의 식생활에서 김치와 김장의 비중은 매우 크게 보였던 듯하다. 보리나 밀을 추수한 이후엔 겨울 김장에 대비하여 무나 배추를 심는 일이 일상이다. 또 이른 봄에는 여름에 김치를 담기 위해 배추를 심는다.(Gardner, 1895) 6 한국 사람들에게 김치 없는 식탁은 생각할 수 없다. 주재료인 배추와 무, 고춧가루와 소 금은 어디나 같지만 배추를 담그는 방법은 다양하다.(Underwood, Lillias Horton, 1905) 7 4_ 동국이상국후집 卷 4 <가포육영( 家 圃 六 詠 )>. 5_ 존재집( 存 齋 集 ) 卷 18 <설후( 雪 後 )> 이외 조선시대 김치문화와 관련된 사례는 졸고 조선시대 김치 의 탄생 (민속원, 2013)에 많이 소개되어 있다. 6_ After the barley or wheat crop has been reaped, it is usual to sow turnips and cabbages for the winter kimch'i or pickle. Cabbages are also sown early in the spring, to form the supply for the kimchi during the summer.( Corea by Gardner, 1895) 7_ No Korean considers a meal complete without kimchi and various are the recipes for its making, though the main articles are everywhere the same.( With Tommy Tompkins in 16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월동 준비하는 시절엔 이곳 여자들은 무척이나 바쁘다. (중략) 한국 사람들에게 김 치 없는 식탁은 생각할 수 없다.(Hulbert, 1906) 8 한국 식탁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음식이다.(Horace G. Underwood, 1908) 9 김치는 밥과 함께 매일 식탁에 오른다. 김치 없이 밥을 먹는 한국 사람은 없다.(Urquhart, 1923) 10 조선에서 김치는 빠짐없이 밥상에 오른다.(Drake, 1930) 11 일제강점기 기사를 보면 김치는 조선 사람 밥상 위에 한 끼도 빠지지 못하 는 것 12, 김장은 제철에 하지 못하면 한 겨울동안을 고생 13, 아무리 어려 워도 김장은 해야 하는 것 14 으로 정의되고 있다.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 한 필수품이며 밥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에게는 김치가 반찬으로서 절대적 인 비중을 차지하는 반양식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음식 마련 Korea by Gardner, 1895) 8_ Their kimchi or sauerkraut is made of cabbages which are much coarser and tougher than ours, and busy indeed are the women in the season when it is " put down " for the whole year. (중략) No Korean considers a meal complete without kimchi and various are the recipes for its making, though the main articles are everywhere the same, cabbage, turnip peppers and salt.( The passing of Korea by Homer B. Hulbert, 1906) 9_ they use in various ways, but mainly in the form of salt pickles, which are a most important part of a Korean meal.( The Call of Korea by Horace G. Underwood, 1908) 10_ This kimche is eaten at every meal, along with their rice. No Korean eats without his kimche.( Glimpses of Korea by Urquhart, E. J., 1923) 11_ 하수도는 오랜 가뭄 탓에 다소 불쾌하고 독특한 냄새를 풍기지만 당신이 혐오감을 느낄 만큼 독 하지는 않다. 그것은 조선의 피클인 김치 냄새가 퍼진 것이다. 가울에 그 피클을 담그는데 그 향 은 몹시 역겹다. 그 냄새는 일련 내내 당신을 따라다닐 것이다. 그 냄새는 결코 피할 수도 없고 떨쳐 낼 수도 없다고 마음먹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불행해질 것이다. (H.B. Drake, 일제시대의 조선 생활상, 2000. 55쪽, 99쪽) 12_ 조선 사람 밥상 위에 한끼도 빠지지 못하는 것이 될 뿐 아니라 다른 나라와 같이 회사가 잇서 담 거 파는 법이 없음으로 집집마다 한겨울 동안 소비할 것을 한꺼번에 만들어야하는 것입니다. (조 선 1927.11.13.) 13_ 김장은 제철에 하지 못하면 한 겨울동안을 고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조선 사람 생활에 김장을 중대시하게 되는 원인이 여긔에 잇습니다. (조선 1927.11.13.) 14_ 남에게 구청하는 것 중에 김치나 장을 달라하는 것이 제일 창피한 것 아무리 어려워도 김장은 해야 하는 것이다. (동아 1931.11.10.) 김치담론, 김치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인가? 17
중에서도 1년에 단 1번의 작업으로 몇 달간 식탁에 오르게 될 김치를 어떻게 하면 맛있게 할 수 있는지, 한 번에 큰 금액이 일시에 들어가는 만큼 어떻게 하면 차질 없이 예산에 맞는 김장을 할 수 있을지가 지대한 관심사였다. 15 이 러한 담론 조성의 결과 매년 입동철의 기사는 김장김치 재료의 시세와 작황, 김장을 맛있게 그리고 제때에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조리법 관련 정 보들로 채워진다. 16 김치를 맛있고 값싸게 담그기 위해 연구와 노력하는 것이 가정주부의 의무이자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17 15_ 겨울통김치를 그릇에 썰어놓으면 오색이 영롱한 색택과 냄새에 특별한 맛이 구미 없는 사람의 식욕도 증진시킨다. (조선 1924.11.09.) 조선가정에서는 김치 깍두기를 밥과 마찬가지로 하루 세 때의 항찬으로 식탁을 떠나지 못하 게 되는 그 만큼 김장은 실로 겨울사리과비에 단단히 한몫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김장맛이 틀리 고 보면 그 겨울한철은 모든 음식 맛조차 기우러지는 것 갓습니다. 그러므로 주부된 사람은 무한 단 배추한포기를 골르는 것부터 김장에 대한 일절준비에 실패가 업시하야 금년에는 기어이 갑싸 고 맛있는 것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조선 1928.11.09.) 다른 찬이 아무리 많아도 김치 하나 맛있어야 식사를 잘하게 된다 (동아 1931.11.10.) 16_ <표 1>의 분류에 따른 기사 비율에서 확인되듯이 김장철을 즈음하여 김장재료의 시세와 작황 정 보가 60%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조방법까지 포함하면 김치 및 김장 과 관련한 기사 중 75%에 이르는 분량이 김장 시기를 절대 놓치지 않고, 가능한 저렴하고 맛있는 김치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데 편중되어 있는 것이다. <표 1> 일제강점기 김치관련 기사 306건에 대한 주제 분류 전체기사수 시세 작황 연구대상 기사 영양 제조법 연계 일반 306 179 24 49 54 100% 58.6% 7.8% 16.0% 17.6% 17_ 김장이라는 것은 조선사람의 생활에 잇서서 데어내지 못할 중요한 반찬의 하나입니다. 그럼으로 조선가정의 부인들은 김장을 맛있게 담그는 것으로써 온가족에게 만족한 미각을 주는 것이며 식 욕까지 좌우한다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김치야말로 조선부인네에게는 제일 큰 가사의 하 나일 것입니다. 그러면 가장 맛있는 김장을 담그려면 어떤 재료를 구하야 어떠케 조리하나? 거기 에 대한 노력과 연구가 항상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신보 1935.11.14.) 이 김장 때이야말로 한가뎡 가뎡의 일년 행사중 아마 뎨일 중대한 때인 듯 합니다. 지리한 한 겨을을 지나 다시 날이 더워질 그때까지 맘노코 먹을 가장 큰 반찬인 김치를 맨드는 것이니 얼 마나 큰일이겟습니까 그러나 너나할것업시 재래로 해나려 오든 습관으로서 누구나다 어렵지 안 18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중요한 만큼 부담스럽기도 했던 김치 김치가 차지하는 식생활에서의 큰 비중으로 인해 김장은 성심껏 잘 준비해 야한다, 한국 가정에 김치는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모든 가사 중 우선순위에 자리해야한다 는 입장이 있는 반면, 오히려 김장이 중요한 필수품 이라는 인 식들이 한국인, 특히 가정주부들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 되는 것인지를 피력 하는 부정적인 견해도 존재하였다. 김장에 있어 가장 큰 골칫거리는 한 번에 목돈과 인력이 많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가장은 김장 비용을 마련하느라 고 민해야 하고 부인은 며칠씩 사람들과 일을 분담하며 김장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김장은 고통스러운 절기, 큰 걱정거리 탄식거리, 불 평과 불화의 요인 으로 회자되고 있으며, 게다가 들어가는 재료와 만드는 과 정은 너무 복잡한데 상품시장도 형성되어 있지 않으니 김치를 만드는데 들이 는 노력과 정성을 낮추어 조금 간단하게 하자, 김치를 전문으로 제조 판매 하는 회사가 생겨야 한다 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18 1980년대까지도 김장의 케생각하는 동시에 그다지 귀한 직책인 것도 새롭게 깨다를 여가가 업섯든 것입니다마는 곰곰 히 생각할스록 경제방면과 인력방면으로 중대시 할 바인 동시에 또 그만큼 이중한 책임을 가진 주부의 새로운 연구를 바랄 때이겟습니다. 살돈 들여가며 남편이 시원하게 가초가초 잘사오기 만 하면 저절로 훌륭한 김치가 될 것은 아니겟습니다. 그럼으로 어대까지든지 이때껏 경험에 비 치어 새궁리와, 방법으로써 시험해보는 것이 김장때를 마지한 주부의 한 행사일 것입니다. (동아 1928.11.01.) 우리조선음식으로는 아모러 한 성찬을 느러 노앗다 하드라도 김치 깍둑이 없이는 한술도 못먹습 니다 김치 깍둑이는 저마다 다 담글 줄 알지마는 맛잇게 담그는 것이 문제입니다 같은 솜씨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맛잇을 때도 잇고 맛 없을때도 잇으니 딱한 노릇입니다. (동아 1934.08.29.) 18_ 요사이 여편네들이 길에서 만나면 첫인사가 댁에 김장 다했소 하는 것이다. 참으로 김장 해 넣 는 일이 큰일이다 소금을 드려도 한 바리 고추를 사도 몇말 젓국이나 새우젓도 몇독이 모양으로 크게 버리며 장독대에 놓았던 빈독이란 독은 다 마당으로 나오며 무배추씨슬 물 길러 오는 사람 도 하나 따로 얻어야 되고 실고추 써는 사람 무 배추 다듬는 사람 집안에 사람이 있으면 있는대로 다 필요하며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다 바빠서 쩔쩔매고 돌아가는 것이 김장을 다 잘 해 넣는다 하나 젓국과 새우젓을 구덕이 아니나게 묵히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니 항상 많은 그릇과 독과 항아리를 준비하여 두지 안이하면 아니되므로 김치담그는 것 김장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회 사가 절대로 필요하다 첫째 우리의 가정살림을 간단하게 만들고 부인들에게 여유를 주게 될 것 이오 둘째 집집마다 각각 담그는 것보다 노력이 적어질 것이오, 셋째 전문적으로 김치담그는데만 전력함으로 집에서 담그는 것보다 맛있는 김치를 먹게 될 것이다. 김치담는 회사는 급히 생겨야 김치담론, 김치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인가? 19
중요도로 인한 사회적 관심과 정책이 집중되고 총선 날짜를 김장철과 겹쳐 잡 는 바람에 투표율까지 떨어질 정도로 영향력은 상당하였다. 19 없어서 안되 는 중요함 이라는 인식은 수용의 태도에 있어 잘 준비해야한다는 마음가짐 과 중압감 이라는 양면성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표 2> 일제시기 김치의 중요성과 필수성 에 대한 인식의 양면성 긍정적 김장을 잘 준비해두면 겨울이 든든 아무리 어려워도 김장은 해야 한다 김장대목 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 특수( 特 需 ) 절기 주부라면 값싸고 맛있는 김장을 만들어야 부정적 큰 걱정거리 탄식거리 불평과 불화의 요인 고통스러운 절기 노동력이 많이 드는 음식 김치를 전문으로 제조 판매하는 회사가 생 겨야 한다. 일시에 큰 금액이 소요되어 부담 할 것 가운데 가장 급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선 1925.11.12.) 한겨울 동안 먹을 김치를 형형색색으로 이름 지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만드는 터인데 같은 분량 을 가지고도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 사오일씩 걸릴 수가 있으니 이것도 적지 않은 폐단이라 하겠 다. (조선 1925.11.8.) 돈푼이나 있는 사람들은 김장바리를 저 들이느라고 분주한데 이것저것 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큰 걱정꺼리며 탄식거리입니다. (중략) 한편에서는 겨울준비에 분망하고 또 한편에서 는 불평과 불화가 꼬리를 이어 일어납니다. 빈한한 사람일수록 좋은 절기가 오면 더욱 고통이 됩 니다. 의미 있는 일이 무의미하게 되는 그 때에 적지않은 눈물과 한숨으로 겨울을 지내게 되니 차 라리 평안을 누리는 겨울이란 이름부터 없었으면 도리어 이런 비애가 없지 않을까 하는데서 조물 주의 원망이 새어 나옵니다. (동아 1926.11.12.) 송구영신하는 설대목 보담도 또는 1년을 두고 모든 음식에 필수품 되는 장담이 보다도 더 중요시 한다. 장은 정월에 담는 올장으로부터 5월, 6월까지에 담는 늦장 담는 이도 있다. 그러나 김장만 은 꼭 수십일의 단기간에 기어코 해야하고 어려운 사람이 장은 흔히 아니 담는이도 있지만은 김 장만은 다만 몇 포기씩이라도 기어이 담는다.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애를 쓰고 힘을 들이 어 주요시하는 이것을 내구성이 없게 하여서 해춘( 解 春 )만 되면 그만 버리게 되는 것이 나는 무엇 보다도 애석하는 바이다 음식사치란 의복사치보다도 더욱 낭비가 된다. 김장만은 더욱이 빈부 를 통틀어 사치품이 된다. (매일 1935.11.26.) 19_ 근대 이후 김장의 중요도와 그에 따른 현상 관련하여서는 졸고인 한국 김장문화의 역사, 의미, 전 개양상, 김치학총서 1. 김치와 김장문화의 인문학적 이해 1권 (세계김치연구소 편, 2013) 참조. 20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음식 자체로서 보다 문화자산으로서 가치와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는 김치 반찬으로서의 중요도와 비중은 감소하는 추세이나 세대별, 개인별 다른 양상이 혼재 오늘날, 한 끼 식사에서 부식으로서 차지하는 김치의 비중은 과거에 비해 낮아졌다. 먹거리의 풍요로움으로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식사 횟수, 장소, 방식도 다양해져 반드시 김치가 있어야만 했던 과거와 상황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김치의 연간 소비량과 인당 평균 섭취량이 점차로 줄어 들고 있다는 통계는 더 이상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다. 그렇다고 온 국민을 동일하게 놓고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 가족만 보더라 도 밥 먹을 때 김치 한보시기를 다 먹는 나와, 한 젓가락도 집어 들지 않는 10대 딸, 요새는 뭘 먹으면 소화가 잘 안된다며 후식으로 김치를 드시는 70 대 어머니가 함께 살고 있다. 다시 말해 여전히 김치가 중요한 필수반찬이기 에 김장을 끝내 놓아야 한 해의 마무리가 완전히 되었다고 하는 세대와 김치 없는 식단이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세대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김장의 필수성에 대한 압박감 감소 반찬으로서의 필수성과 비중이 감소한 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김장을 맛있 게 담아야 했던 과거와 상황이 달라졌다. 사실 김치가 필수적인 중요 반찬이 었기 때문에 김장을 직접 감당해야하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압력은 여타 전통 식품에 비해 강력하게 작용하여 왔었다. 김장을 모든 음식에 필수품이 되는 장 담기보다 더 중시하여, 장은 안 담는 사람도 더러 있는데 김치는 기어이 담으니 알 수 없는 노릇 (매일 1935.11.26)이라고 개탄한 기사의 내용처럼 사회적으로 중요성이 더 강조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기어이 알 수 없는 노 김치담론, 김치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인가? 21
릇 은 된장, 간장, 고추장과 같은 장류의 자가제조율에 비해 김치의 자가제조 율 20 이 훨씬 낮으면서도 오랜 기간 답보상태를 유지하는데 상당기간 영향을 미쳤다. 2000년 초, 상품김치 구매에 대한 소비자 행동패턴을 조사하면서 경험했 던 사례로, 배달김치를 주문한 주부가 남편이 있는 시간을 피해 배송 받을 수 있도록 요청을 하거나 배송시간 혹은 주문확인 전화 시 남편이 옆에 있을 경 우 마치 잘못 온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상품김치를 구매하는 주부 들은 김치를 직접 담그지 않는다는 것에 상당한 죄책감(guilty sense)을 갖 고 있으며, 감추려 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때 김치메이커들이 상품김치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벌여야 했던 마케팅 전략은 어떻게 이 죄책감(guilty sense)의 장벽을 낮출 것이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15년이 흐른 지금은 어떤가? 중요도에 대해서 부정적 수용 입장의 담론이 점점 우세해지고 있는 편이다. 김치를 직접 담근다는 여성의 얘기에 힘든데 어떻게 아직도 직접 담그세요? 라는 존경 어린 반문을 하게 되고, 미국인이 같은 동네 살고 있는 한국인 젊은 새댁에게 김치 담는 법을 아느냐고 물으니 김치는 사먹는 거예요! 라고 답변을 하는 걸 들었다는 경험담에 그렇게 말 할 수도 있겠네요. 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15년 전 김치를 사 먹으면 죄책감이 든다며 애써 숨기려했던 40대 주부들 은 현재 50대가 되었고, 이들에게는 이제 김치를 사먹는 것이 합리적이면서 20_ 2014년 기준 김치 자가제조율은 57%임. 고추장, 간장은 상품시장의 성장이 거의 임 계점에 다다랐을 정도로 자가 제조 비율이 낮으며 된장이 50% 수준으로 아직 상품 시장 성장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식품유통연감 (식품저널, 2015) 2000년 조사자료에 따르면(농촌경제연구원, 김치 수요의 변화와 전망, 2000) 상품김치 구매율 이 23.9%였으므로 2014년 40%대로 상승하는데 약 15여년이 걸린 반면, 된장은 이보다 훨씬 빨 리 50% 수준으로 올라선 후 상당시간 답보상태를 보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22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여유로운 가사 소비활동의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힘이 닿을 때까지는 직접 김장을 하겠다는 70대 노모는 딸이나 며느리가 김치를 직접 담가 먹으리라고 기대하지도 담그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내 세대가 끝나 면 집에서 김장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말한다. 김치 김장의 사회적 가치와 중요도 상승 이제 김치는 실생활에서 반찬으로서보다 사회적인 중요도가 높아졌다. 개 인이 느끼는 필수반찬으로서의 중요도와 강도는 낮아졌으나 사회적 필수성은 더 높아졌다. 반드시 잘 만들어 먹지는 않더라도,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 으로 자리매김하였고 따라서 김장의 중요성에 걸맞는 대안 마련은 개인의 몫 이라기보다 사회 시스템이 감당해야할 몫이 되었다. 김치연구소의 설립, 소 비촉진과 산업활성을 위한 각종 김치관련 정책 입법 마련 등이 그렇다. 김 장을 마련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김장나눔 프로 그램이 운영되는 등 민간차원에서의 움직임도 늘어나고 있다. 또, 집에서 직접 담는 것이 점점 가치 있는 일이 되면서 여전히 김치가 반 찬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직접 담근 장과 김치는 정성이 담긴, 모방 불가능한 고급 선물의 가치를 입게 되었다. 현재 김장철 에 흩어져 있던 가족이 모이는 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담글 줄 아 는 부모세대는 노동력과 경제력을 필요로 하고, 담글 줄 모르기에 얻어먹어 야 하는 자식세대와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상호이해가 공존하 는 가족집단의 경우 김장 유대가 어느 한쪽의 이해만 존재하는 제사나 명절보 다 더 끈끈할 것이다. 김치를 먹는 절대량과 빈도는 줄고 그에 따른 압박감과 스트레스도 감소하 였지만 음식자체로서의 중요도는 낮아진 대신 다른 차원에서의 중요도는 오 김치담론, 김치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인가? 23
히려 상승하였다. 김치와 김장문화는 음식을 넘어서 문화상품으로서 독특한 가치를 지닌 자산이 되면서 국가 종주국으로서의 책임도 생겼고, 유네스코 등재 세계무형문화유산의 전승 주체로서 이를 잘 보전 계승해야하는 책임감 도 주어졌다. 중요한 필수 반찬 이 아닌 중요한 필수 문화소비재 로서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여전히 김치는 한국사회에서 중요하 고 비중있는 음식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하겠다. 2) 우리 민족 대다수가 일상적, 보편적으로 먹는 음식인가? 누구나 늘상 먹는 음식이었다.(Ubiquitous Food) 김치 없이 밥을 먹는 한국 사람은 없다. 고 한 미국인 선교사 엘라수 21 의 증언대로 김치는 지역, 빈부, 지위고하, 성별, 연령을 막론하고 누구나 먹 는 보편적이며 일상적인 기본 찬이기에 진정 평등한 음식이라 할 수 있다. 김 치를 평등한 기본 찬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례는 총독부 내과의사로 근무하였 던 이재택이 이를 의학연구 설계에 적용한 것에서 드러난다. 22 이재택은 조선 사람의 위액이 외국인과 차이 나는 이유가 최하층부터 최상층 계급의 사람들 까지 모두 다 먹고 있는 김치 때문인 것으로 보고, 이 절대적인 기본음식으로 인해 형성된 한국인의 체질에 맞는 병리연구를 시도하였다. 계급을 초월한 음식으로 김치를 선택하였던 것이다. 21_ 미국에서 파송된 선교사로 1904년에 내한하여 개성 호수돈 여학교를 설립하였다. 한국 근현대 100년과 민속학자,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4, 212쪽. 22_ 얼마 전 조선사람의 위액을 검사한 결과 외국사람에 비교하야 다대한 차이가 잇는 것을 발견한 총독부제일내과의사 리재택씨는 그와 가치 위액에 차이가 잇슴을 라 조선사람은 엇더한 분량 에 의하야 약을 씨면 뎍합할가하야 방금녈심으로 연구하는 중인뎨 우선 조선사람의 영양물 중에 큰 부분을 뎜령한 김치 두기 의 세가지에 더하야 어떠한 성분과 작용을 가젓스며 병리상 엇더한 관계를 가젓는 가를 연구하기 위하야 슈월동안 을 두고 최상으로는 리왕직의 각궁가와 최 하로는 행랑살이하는 사람에게 지 그의 만드는 법을 됴사하여. (조선 1923.11.10.) 24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그림 1> 김치 레시피의 확장성과 계급성 김치가 어떻게 계급을 초월한 음식일 수 있는지는 <그림 1>을 통해 설명 가능하다. 통상 김치의 범주는 2~5군까지의 원료로 만들어진 것으로 김치의 초기 원형에 가까운 1군의 짠지도 광의의 김치 범주에 포함된다. 일제강점기 가장 표준적인 김치의 유형은 2+3+4의 조합인데, 조선시대 양반가나 궁궐 에서는 기존 2+3+4군 재료의 조합에 5군의 젓갈, 갖은 해산물, 고기육수까 지 넣어 만들었다. 5군의 재료까지 들어간 최고급 김치나 아주 간단한 2군이 거나 모두 기본형인 1군에 재료의 가짓수와 종류만 추가되는 형태이므로 모 두 김치라는 고유명사에 포괄될 수 있다. 레시피의 확장성이 컸기 때문에 각 자 경제적 여건, 지리적 환경에 맞추어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자료를 보면 서민 계층민들은 2~4군 범위 내의 재료들로 김치 를 만들어 먹었으며, 2군만으로 해결하는 계층, 심지어 배추김치도 거의 먹 지 못하고 1군의 짠지형만을 먹었던 사람들도 1970~80년대까지 상당수 존 재하였다. 외국인들이 남긴 민속지 성격의 자료를 보면 김치에 들어가는 재 김치담론, 김치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인가? 25
료는 계층별로 매우 편차가 컸으며 하층민이 먹는 김치는 짠지와 2군의 조합 이 대다수였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3 하지만 어떤 유형이든 한국인 모두가 김치를 먹었던 것은 분명하다. 따라 서 보편적이며 모두가 먹는 음식이었기에 그에 따라 전 국민이 오롯이 김치의 영양기능적 혜택을 받고 있다는 주장도 존재하였다. 김치를 기본 찬으로 하 는 조선인에게는 각기병, 곱추병이 비교적 적으며 밥을 주식으로 하는 조선 인의 식단과 체질에 가장 이상적인 음식 24 이라는 담론도 제기되었다. 누구나 먹는 김치에도 계급은 있다 그러나 누구나 먹었기 때문에 평등 음식이었던 김치는 역설적이게도 엄연 히 먹는 사람의 계급이나 경제력을 판단할 수 있는 척도가 되기도 하였다. 1970~80대까지도 김장을 한 뒤 김치를 돌린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양의 김 23_ 여기가 순무를 파는 곳이다, 아니면 무인가? 이들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을 한 번도 본적이 없 다. 적어도 이것들은 한국 사람들이 김치를 만들어 먹는 채소다. 가끔은 배추를 넣기도 한다. 한 국 사람들은 이런 피클을 김치라고 부르는데, 채소를 간단히 씻어 소금물에 담갔다가 꺼낸 다음 고춧가루를 많이 뿌려 양념한다. ( Glimps of Korea, 1923) 그들은 거칠고 맛은 부족하더라도 온갖 채소를 가지고 여러 가지로 요리하지만, 대개는 소금에 절인 피클로 한국 식탁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음식이다. 우리 배추와 양상추의 중간 정도 되는 이 들 배추가 가장 많이 쓰이지만, 우리 순무와 오이만큼 큰 무 또한 매우 중요한 부재료이다. 양념, 견과류, 생선 등이 함께 포함된 최고품 김치는 이방인 대다수에게도 인정받지만, 일반 김치는 이 방인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 ( The Call of Korea, 1908) 한국인에게 김치없는 식탁은 생각할 수 없다. 주재료는 어디에서나 배추와 무, 고춧가루와 소금 으로 같지만 만드는 레시피는 다양하다. ( With Tommy Tomkins in Korea, 1905) 소금에 절인 채소인 김치는 기본적으로 배추와 무를 사용하며 고춧가루, 굴, 기름과 마늘 모두를 소금물에 넣은 후, 약 2달간 숙성시킨다. 140여 가지의 재료가 섞인 김치는 커다란 토기 항아리 에 저장한다.( Things Korea, 1906) 24_ 조선에 각기병이 적은 것은 김치짠지를 먹어 바이타민 을 취하는 까닭인지 연구해볼 문뎨입니 다. 바이타민을 아니먹으면 어린애가 잘 자라지 못하고 각긔병이나 괴혈병이 들리며 어룬도 원귀가 업서지고 각귀가 트넛을 들리게 되는 것이 판명되엇슴니다. (조선 1925.08.19.) 매우나, 맥량한 고추장의 영양가치. 비타민C 가 만흔 관계인지. 조선에 등꼽추가 비교적 적다. (조선 1936.01.03.) 26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치를 담글 수 있으며, 남에게 내보일 수 있을 정도의 풍부하고 다양한 재료를 넣어서 맛있는 김치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지닌 집이라는 것을 의 미했다. 국민의 대부분, 누구나가 만들어 먹었던 음식이기 때문에 김치의 레 시피를 통해 가문의 위세나 가격( 家 格 )이 쉽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의 김치는 계급성을 띠게 된다. <그림 2> 시의전서(19세기 말) 반상식도(좌), 生 活 狀 態 調 査. 平 壤 府 (1932) (우) 김치가 누구나 먹는 보편적인 기본 찬이라는 것은 <그림 2>의 상차림 구조 에서도 확인된다. 한식 상차림에서 김치, 간장, 초장은 기본 구성으로 3첩에 서 9첩에 이르기까지 김치를 먹던지 먹지 않던지 반드시 모든 상차림에 올라 가며 첩수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가장 기본적인 찬이어서 누구나 먹는다는 의미는 가난한 사람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것도 되며, 김치 밖에 없다 는 말은 궁색한 밥상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25 이는 김치가 한상차림의 25_ 칼을 두드리며 생선 없음을 탄식할 것 없나니 (중략) 가난한 선비의 반찬은 김치로 충분하여 라. ( 석주별집( 石 洲 別 集 ) 卷 1 권필( 權 韠 1569~1612)) 김치담론, 김치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인가? 27
구성 내에서는 가장 서열이 낮은 음식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26 이러 한 현상은 실제 현지조사 자료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27 자연히 김치 외에 다 른 반찬을 준비할 수 없다거나 소략한 재료로만 김치를 만든다는 것은 경제적 지위가 낮다는 것을 뜻하였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가난과 비천함, 부덕( 婦 德 ) 부족의 상징으로 취급받게 되었다. 28 다른 반찬을 갖출 여력이 안 되는 사람 들도 먹을 수 있는 김치는 가난한 상차림, 다른 반찬에 비해 비천하고 하찮은 음식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왔고 이는 자랑스러운 음식으로 자리잡는데 부정 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정리하자면 김치는 레시피의 확장성이 다양하여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각자 형편에 맞게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 보편적, 일상적 음식이 될 수 있었 다. 누구나 먹는 일상적 평등한 음식이었지만 개별 김치레시피 안에는 차이 가 존재하였다. 또, 한상차림 내에서도 다른 찬 없이 김치만 먹는다는 것은 가난과 비천함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니 계급적으로 이중성을 보이는 것이다. 이는 한경구가(1994) 김치는 가장 비천한 음식이지만 절대 빠져선 안 되는 반찬 29 이라고 한 것과도 상통한다. 26_ 기본적으로 김치를 만들 때 사용되는 재료들이 지니고 있는 원래의 음식 위계 서열과 관계가 깊 다. 김치의 주재료는 식물성 원료인 무와 배추로 동물성 재료에 비해 위계가 낮다. 마빈 해리스의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참조. 27_ 박효진, 안동의 한 동성마을 밥상차림으로 본 음식등급과 서열의식, 안동대 석사학위논문, 2010, 69쪽. 밥을 먹을 수 있게 하는 맛있는 반찬이라야 반찬이라는 개념이 성립된다. (중 략) 된장, 고추장, 간장과 김치 등의 기본반찬과 나물반찬은 반찬으로 인식되지 않고 대부분이 고기반찬을 반찬으로 지칭하고 있다. 28_ <죄수도 차별> 조선사람에게는 누런 좁쌀밥에 무김치 조각을 한데 뒤석거 아모러케나 갓다가 앙기니(동아 1920.06.03.) 인부들의 식사. 반찬은 단 김치 한 가지(조선 1933 08.09.) <시부모나 남편에게만 좋은 것을 양보해서는 안된다> 어린애 건강을 위하여 조흔 음식 잡수시 오 김치 쪽에 찬밥 차지는 그릇된 옛날의 부덕( 婦 德 )(조선 1934.05.11.) 봄에 다른 반찬이 나오면 천대받는 음식(조선 1935.03.21.) 29_ 한경구, 어떤 음식은 생각하기에 좋다 김치와 한국민족성의 정수, 한국문화인류학 26권 제1 호, 한국문화인류학회, 1994. 28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표 3> 일제시기 김치의 보편성 이 갖는 이중성 평등한 음식 비타민이 많아 조선에 등꼽추가 비교적 적다. 조선음식은 석회분 부족한데 김치가 훌륭한 급식원이다. 우리 체질과 식생활에 반드시 필요 산해진미를 가춘 성찬도 김치 없으면 이 빠 진 그릇 김치가 없으면 얼굴에 코가 없는 것과 같다. 계급 계층의 상징 인부들의 식사. 반찬은 단 김치 한 가지 김치 쪽에 찬밥차지는 그릇된 부덕 봄에 다른 반찬이 나오면 천대받는 음식 가난한 사람에게는 음식사치 부러움의 대상 김치 보편성에 대한 의미와 위상은 변화하고 있다. 과거 김치는 누구나 먹었던 음식이었기 때문에 먹는 사람간의 계층을 구분 하는 방편이 되기도 하였으나 산업화 글로벌화 덕분에 김치보다 더 싼 반찬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게 되었고 단순히 식재료의 종류와 가짓수만으로 서열을 매길 수 없을 만큼 복잡한 변수들이 생겨났다. 30 그러다 보니 김치를 가난의 상징이라고 말하기에는 김치가 지닌 속성의 편차가 너무 광범위해져버린 것이 다. 과거에는 누구나 먹는 음식이어서 가정마다 다른 김치레시피를 통해 계급 적 지위를 확인하기가 비교적 쉬웠던 반면, 지금 김치 재료로 무엇을 사용하 는지는 그 집의 기호나 선호도를 보여주는 지표로서의 성격이 더 커졌다. 한편, 한국인의 일상 식사에서 서양식과 간단식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김치 를 매끼 먹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에 기본 찬이라는 이름이 더 이상 적 합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실시하고 있는 국민건강영양 조사의 데이터를 보더라도 2013년 한국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김 30_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 접어들면서 음식의 위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동물성 음식보다 유기농 채소 의 서열이 더 높기도 하고, 조리의 복잡도가 높더라도 공장에서 대량 생산할 수 있다면 가치가 낮 고 수제 핸드메이드일 경우 높은 가치를 갖게 된다. 또 단순히 식재료의 가격만으로 음식 값이 매 겨지지 않으므로 서열을 매기는 데에는 복잡한 요인들이 작용해야한다. 김치담론, 김치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인가? 29
치를 먹는 횟수는 평균 1.7회 정도로 나타난다. 31 이마저도 하루에 1회 이상 의 외식 또는 급식을 통해 공급받는 실정이다. 그러다보니 일반 가정에서 한 식상차림 기본 찬으로서 김치의 역할은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런데 외식업체와 단체급식소에서 이 기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주문하든 저렴한 음식을 주문하든 무상으로 제공되어야 하는 것 이 김치이며, 단체급식당에서도 김치는 기본 찬으로 제공된다. 한식의 특성 상 한상차림으로 차려지기 때문에 반찬을 리필한다고 돈을 받는 방식은 한국 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편이다. 최근 식당에 가면 추가 주문시 요금을 받는 반 찬들(명이나물, 호박잎 등)이 점차 생겨나고 있지만 여전히 김치는 그 안에 들지 못한다. 한국 정서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저가의 김치가 대량 유통되 는 이유이며, 김치 판매 가격을 제대로 형성하는데 장애요소이다. 누구나 비 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반찬으로 포지셔닝 된 것이다. 그로 인해 고급 김치시장은 잘 형성되어 있지 않게 되었고 이는 김치 상품성 전체가 하 향 평준화되는데 한 역할을 하였다. 즉 보편성이라는 것의 의미가 과거와 동 일하지 않으나 여전히 대다수의 국민이 일상적 보편적으로 먹는 음식으로 생 각하고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3) 김치를 통해 민족적 동질감과 정체성을 확인하는가? 김치는 한민족 고유의 독특한 음식이다. 지금까지 앞서 제시한 민족대표음식의 조건 중 식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 31_ 국민건강영양조사 2013년도 데이터 분석결과, 김치를 하루 1회도 섭취 하지 않는 사람 22.9%, 1 회 섭취 18.3%, 2회 섭취 35.2%, 3회 이상이 23.6%로 나타나 대다수의 국민이 매끼 먹는 반찬이 라는 전제는 더 이상 맞지 않게 되었다. 30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반찬으로서의 보편성과 일상성을 기준으로 김치가 민족대표음식으로서의 요 건을 갖추었다는 사실에 대해 검증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식문화로서 타민 족과 구분되는 독특성을 지니고 있어 김치를 통해 민족적 동질감을 공유하고 그 정체성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인지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단서들을 찾아보 기로 하자. 김치가 다른 민족에게 없는 독특한 음식이라는 사실은 굳이 증명해보이지 않아도 되는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조선시대에도 타문화와의 접촉과 정을 통해 김치가 다른 나라의 절임류와 차별되는 맛을 지닌, 한국인만의 식 문화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혹 통관( 通 官 )의 집에는 우리나라의 침채 만드는 법을 모방하여 맛이 꽤 좋다 한다. 32 북경의 통관( 通 官 ) 집에서 만든 김치를 보니, 역시 우리나라의 방법을 모방한 것인데 그 맛이 꽤 좋았다. 33 동치미[ 冬 沈 菹 ]의 맛이 우리나라의 것과 같다 하는데, 이는 정축년(1637, 인조 15)에 포로 로 잡혀 온 우리나라 사람의 유법( 遺 法 )이라 한다. 34 다음은 외국인이 한국 땅에서 한국인들과 접촉하며 겪은 직접적인 경험을 그대로 실은 민속지적 기록에서 남겨져 있는 글들 중 극히 일부이다. 32_ 개침채( 芥 沈 菜 ) 숭침채( 菘 沈 菜 )는 가는 곳마다 있는데 맛이 나쁘면서 짜고, 또한 갖가지 장아찌 [ 醬 瓜 ]가 있는데 맛이 좋지 못하다. 혹 통관( 通 官 )의 집에는 우리나라의 침채 만드는 법을 모방하 여 맛이 꽤 좋다 한다. 계산기정( 薊 山 紀 程 1803~1804) 제5권 부록( 附 錄 ) <음식( 飮 食 )>. 33_ 영원위( 寧 遠 衛 )나 풍윤현( 豐 潤 縣 )에는 모두 동치미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동치미 맛과 비슷 하였으며, 풍윤현의 것이 더 나았다. 북경의 통관( 通 官 ) 집에서 만든 김치를 보니, 역시 우리나라 의 방법을 모방한 것인데 그 맛이 꽤 좋았다. 이 밖에 갓김치, 배추김치는 가는 곳마다 있었는데 맛이 조금 짰지만 가끔 맛이 있는 것도 있었다. 또 갖가지 장아찌도 있었는데 맛이 좋지 않았다. 연행일기( 燕 行 日 記 ) 제1권 <산천 풍속 총록( 山 川 風 俗 總 錄 )>. 34_ 동치미[ 冬 沈 菹 ]의 맛이 우리나라의 것과 같다 하는데, 이는 정축년(1637, 인조 15)에 포로로 잡 혀 온 우리나라 사람의 유법( 遺 法 )이라 한다. 그러나 가져다가 맛을 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연원 직지 제2권 <출강록( 出 疆 錄 )> 1832년 12월 8일. 김치담론, 김치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인가? 31
외국인이 김치의 냄새를 극복하고 그 진정한 맛을 아는 데는 대개 오랜 시간이 걸린다. (중략) 한번 김치 맛을 알면, 타지에서 향수병이 걸린 한국인이 다른 어느 곳에도 없 는 이 아삭아삭하고 톡 쏘는 맛있는 김치를 얼마나 먹고 싶어하는지 쉽게 이해가 간다. 35 조선시대 문집, 선교사들의 견문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민족이라는 개 념을 인식하고 있었든 그렇지 않든 김치는 자타공인 한국인이 오랜 기간 동안 먹어왔고 나름의 형태로 발전시켜 온 한국인의 대표음식임이 틀림없다. 36 그 러다가 일제강점기 식민지배하에 놓이게 되면서 한국인들 스스로에게 민족 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37 김치가 개화기 이전부터 민족대표음식으로서의 요건에 부합하며 존재하여 왔으나 일제강점기 식민지배 아래 지배권력에 대한 대항적 기제에서 스스로 이를 민족정체성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인식하고 민족적 일치감을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자 민족정체성이 투영된 상징으로 표출하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부터로 확인된다. 이는 일제강점기 외국생활 동안 간절히 생각나는 소 울 푸드(soul food)로서 경험담을 소개한 기고문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38 35_ 외국인이 김치의 냄새를 극복하고 그 진정한 맛을 아는 데는 대개 오랜 시간이 걸린다. (중 략) 한번 김치 맛을 알면, 타지에서 향수병이 걸린 한국인이 다른 어느 곳에도 없는 이 아삭 아삭하고 톡 쏘는 맛있는 김치를 얼마나 먹고 싶어하는지 쉽게 이해가 간다. 많은 외국인은 절 대 김치의 맛을 알지 못하고 김치에 대해 계속 심한 편견을 갖는다. 보통의 한국인이 우리의 치 즈를 썩은 우유 라고 부르며 싫어하듯이 말이다. (Ellasue Wagner, Korea; The Old and The New, 1931) 36_ 이에 대한 사례는 김치학 총서 1권 한국 김장문화의 역사, 의미, 전개양상, 김치와 김장문화의 인문학적 이해 (2013)에 더 많이 소개되어 있다. 37_ 유럽의 경우 르네상스 시기 이후, 동아시아의 경우 19세기 말에 와서야 민족이란 개념이 자리 잡 기 시작한 것 이라 하였다. 주영하, 앞의 책 참조. 38_ 별건곤 이라는 잡지 1928년 5월 1일자에는 < 外 國 에 가서 생각나든 朝 鮮 것>이라는 제목으로 당 시 사회 지도급 인사들의 기고가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中 國 에서 약 6년 동안을 잇섯고 日 本 에서 약 8, 9년을 잇는 동안에 여러 가지의 고생을 다 맛보왓스니 故 國 의 어느 것이 생각나지 안엇겟슴닛가 더욱 생각나는 것은 온돌과 김치엿슴니 다. 우리 조선의 김치처럼 맛이 조코 영양에 適 宜 한 것은 업슴니다 (류영준) 늘 김치을 사모하다가 어느 동포의 집에 초대를 바드면 가서 식탁에 안즌 다음에는 념치를 불 32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춘원 이광수의 장편소설 흙 을 보면(동아일보 1932.4.27.일자 연재 분)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돌아온 이박사와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 속 에 김치에는 민족정신이 깃들어 있다 고 말하는 내용이 있다. 동아일보 (1939.01.07.) 기사에도 유사한 내용이 나오는데 김치가 단순히 민족을 식 별해주는 구별 짓기 역할을 넘어서 한민족이라는 정서를 뒤흔드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에 대하여 우리 민족끼리의 공감대가 존재하는 것이다. 김치맛이 아마 조선음식에 잇어서는 가장 조선 정신이 잇지오 하고 대학문과에서 조선 극을 전공하는 김상철이 유모러쓰한 말을 한다. 브라보우! 하고 리박사가 영어로 웨치 고 참 그럿습니다. 김치는 음식 중에 내슈늘 스피릿(National Spirit 민족정신)이란 말슴 이야요. (중략) 딴은 음식에도 각각 국민성이 들어나는 모양이지오 하고 또 한 학생 이, 일본료리의 대표는 사시미(어희)지오, 청료리의 대표는 만두, 양료리의 대표는 암만 해도 로스트치킨(닭고기 구은것)이지오. (동아1932.04.27.) 먹는 것도 젊엇을 때 서양요리를 조하하다가도 나이들 어가면 된장이나 김치맛이 낫다 고 하게 되는데 여기 그 백성의 특유한 정서( 情 緖 (정서))가 잇습니다. (동아 1939.01.07.) 민족정체성이 투영된 민족대표음식 김치는 때로는 민족적 우수성을 입증해 주는 근거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패배주의적 자학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던 것이며, 김치를 통해 민족주의 발로( 發 露 )의 담론과 근대화의 주체가 되지 못 하고 떠밀려가는 피지배 민족으로서의 자성 자책적 담론이 대립하면서 상호 고하고 김치를 막 먹엇고 (유경) 긴 밤을 글 읽다 시장하면 식은 밥에 김치 걸처 먹든 생각 日 本 의 겨울밤에 그것을 생각하 는 이도 적지 안을 것이다 (손진태) 내가 불란서에서 유학하던 중에 제일 그리웠던 것은... 양식을 먹은 뒤에는 언제든지 김치 생 각이 퍽 간절하였다 (이영섭) 김치담론, 김치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인가? 33
공존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싹튼 자랑스런 민족대표음식 담론 근대 자연과학의 도입으로 식품성분 분석이 가능해지면서 확인된 김치의 영양기능적인 가치는 김치를 만들어 먹고 있는 한민족 우수성을 입증할 수 있는 수단으로 최적이었다. 김치 유산균의 장점, 김치 속 비타민과 미네랄 의 이점을 들어 우리 김치가 세계 여느 발효식품보다 우수하다는 점도 역설하 고 있다. 39 일제강점기에 이미 자연과학 지식의 유입으로 김치의 영양학적 우 수성이 입증됨으로써 김치가 이것을 늘상 섭취하는 한국인의 건강에 긍정적 인 기능을 한다는 주장이 존재하였었다는 사실은 놀라울 따름이다. 이와 같 은 사실은 그냥 한국인이기 때문에 김치를 단순히 자주, 많이 먹는 음식으로 만 생각하였던 당시 사람들에게 1970년대 이후 식품학자들이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김치의 항암효과와 각종 기능적 효능 등을 확인해 주었던 것 40 이상으 39_ 조선에 각기병이 적은 것은 김치짠지를 먹어 바이타민 을 취하는 까닭인지 연구해볼 문뎨입니 다. 전에는 사람의 양분이란 것이 뎐분 단백질 지방 세가지면 되는줄 알엇더니 근래에 와서 학자 들이 실험한 결과 그 세가지가 알초잇는 음식을 먹더라도 바이타민을 아니먹으면 어린애가 잘 자 라지 못하고 각긔병이나 괴혈병이 들리며 어룬도 원귀가 업서지고 각귀가 트넛을 들리게 되는 것 이 판명 되엇슴니다. (조선 1925.08.19.) 영양상으로 본 조선김치는 세계에 유래가 없다하는 것을 수원농사시험장기사 겸 수원고농조교 수로 근무 중인 조백현씨의 발견이엿다 세계의 장수국인 불가리아 전 인구 400만중 3천800만 이나 100세 이상의 장수자가 잇게 됨은 요규르트를 애용하는 까닭이라 하였다 유산균이 영양상 중요하다는 것과 이에서 장수에 비제가 된다는 것은 먼저 설명으로 충분히 알게된다 보통우리 가 취하는 음식물 중에는 석회분이 가장 결핍되야 있다 그래서 조선김치는 골격잇는 어류를 넣게 되므로 김치 중에 있는 유산과 어류 중에 있는 석회와 화합하야 유산석회를 조성하고 있다 즉 이 점이 조선김치에 가진바 특징으로 세계적으로 이와가튼 류가 없다는 것인데 이것으로 보아 조선 김치를 더욱 애용케 될 것이오 이것을 많이 먹으면 장수를 할 수 있는 것이 (조선 1931.02.08.) 40_ 종래 연구(주영하, 김치의 문화류학적 연구, 89쪽)에서는 1970년대 식품과학적 연구를 통해 영 양담론이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 절대 빈곤 시기가 끝난 후 과다 열량이 문제되면서 오 히려 식물성 식단에 기반한 건강식의 개념으로 전환하면서 정부의 연구지원에 힙입어 활성화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영양담론의 출현은 일제강점기에 이미 출현하였고, 이때의 논리는 김치를 통 해 한국(조선)인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잘 섭취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34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로 시효적절한 과학적 입증이 아닐 수 없다. 김치를 음식물로만 바라보았던 기존의 패러다임을 처음으로 바꿔준 시초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김치가 영양 학적으로 잘 설계된 우수한 음식이라는 사실은 그 음식을 만들어 먹는 한국인 역시 우수한 민족이라는 점을 역설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 주었다. 이렇게 영양적으로 잘 설계되고 세계적으로 독특한 김치는 민족 고유의 전 통음식이기 때문에 반드시 계승하고 연구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강했다. 41 김 치는 민족적 정체성 및 자존감과 동일시되기에 김치문화의 계승발전은 민족 주권 회복 및 영속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한국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전통 음식으로서 김치 만들기는 주부라면 반드시 익혀야할 가사 기능 이라는 것이다. 조선가정에 주인이 되려는 여자들에게 반드시 배우게 해야 할 일 이 며, 여학교에서 서양요리를 가르치면서 김치와 깍두기 만드는 법 가르치지 않는 것은 불합리 하다고 주장하면서 김치 만드는 법의 교육 = 민족 전통의 제대로 된 계승 에 방점을 두고 있다. 그리하여 매년 입동을 전후해 여학교의 여학생들이 기숙사에서 먹을 김장 김치를 직접 담는 실습 사진은 매우 바람직 한 모습으로 묘사되며 소개되었다. 42 41_ 근대 과학적으로 보드래도 육류보다 채소가 사람에게 이익이 된다는 학설로 우리의 통김치는 다 른데 사람들도 대단히 충찬하는 바 이에 뜻이 잇는 이가 잇어 이러한 우리의 자랑거리 음식이나 마 좀 연구에 개량을 더하야 더욱 빛난 우리의 반찬을 세게적으로 일흠이 잇게 하엿으면 하는 바 올시다. (동아 1937.11.10.) 세계에 자랑하고도 남는 조선음식의 재인식 洪 善 杓 예로부터 내려오는 조선음식 중에는 전 세 게에 소개해도 부끄럽지 안흘 것이 하두 만치마는 내것대로 찾지 못햇고 남의것을 내것 만들기에 급급해서 내것을 찾기에 시기를 노처 버린 것입니다. (동아 1939.01.06.) 42_ 김치 깍두기 조작은 가정 입문 ABC! 조선사람이 김치 깍두기를 먹지 안코는 위장의 안일을 바랄 수 잇는가? 바랄수가 없으니 김장이 가진 의의는 더욱 빛나는 것이다. 김장이란 것이 우리생활 에 잇어서 이같이도 중요한 것이매 장차 가정주부가 될 사람으로 김장의 ABC를 아는 것은 곧 가 정입문인 것이다. 그러기에 각 여학교, 그중에서도 기숙사 잇는 여학교에서는 학생을 총동원하야 김장실습을 하는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주부가 될 때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앞에 맛있는 김 치, 깍두기를 내어 노리라 하는 생각으로 학교김장을 하는 배우는 아가씨들의 솜씨는 별다른 맛 을 풍기는 것이다. (동아 1938.11.27.) 김치담론, 김치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인가? 35
낮았던 민족 자존감으로 인해 흔들렸던 김치의 위상 그런데 우리 민족끼리가 아닌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게 될 때 상황은 달라 졌다. 다른 문화권에 비해 발전 속도가 한 박자 늦었던 개화기부터 일제강점 기는 물론, 1980년대 경제성장기까지도 한국 産 (또는 조선 産 ) 에 대한 자긍 심은 낮았고 아울러 김치는 내세우기 불편한 창피함과 불완전함을 상징하였 다. 동경의 대상은 우리 문화 밖에 있었기 때문에 추구하고 싶은 이미지와 자 랑하고 싶은 상징은 유럽, 미국, 일본 같은 경제대국으로부터 유입된 것들이 었다. 따라서 전통적이라는 말은 근대화되지 못한, 후진적이라는 의미를 지 니기도 했다. 김치는 전통음식이므로 다른 데 내세우기 민망하며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관점으로 조명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김치는 불완 전하고 전근대적인 음식이며 이를 먹는 민족문화 역시 미개하다는 기제가 깔 려있다. 대표적으로 다음 3가지 측면을 후진적인 특징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첫째, 맛과 냄새에 대한 자신감 부족으로 김치가 지닌 매운맛이나 군내, 마 늘냄새와 같은 것은 불쾌감을 주는 감추고 싶은 창피한 문화라는 인식이 존재 하였다. 43 독특한 맛과 냄새, 고추양념이 막 버무려진 채 국물이 흥건한 외형 등 김치가 지닌 물리적인 속성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산 이라는 것 자체가 당시 사회적 통념상 고급스러움이나 세련됨의 가치와는 거리가 있었다. 김치 가 가난한 사람도 먹는 보편적인 음식이다 보니 한국의 국가 위상은 김치의 낮은 서열과 동일시되었다. 둘째, 전근대적 제조 방식 44 에 따른 문제로 만들 때 정확한 계량과 매뉴얼에 43_ 군내가 더럭더럭 나는 김치깍뚝이를 담아가지고 전차 속 가튼데 타시는 것은 좀 말아주셨으면 생각합니다 공연히 여러 사람의 입맛을 덧트리는 것도 미안할 뿐이 아니라 외국손님이 코를 막 고 저의끼리 뒷말을 짓거리는 것도 챙피한 일입니다 (조선 1935.03.21.) 군대난다고 천대받는 김치 (조선 1935.03.21.) 44_ 貧 寒 (빈한)한우리는 洋 料 理 (양요리)와 淸 料 理 (청요리) 硏 究 (연구)보다 김치담그는 法 (법)과 메주 36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의하지 않고 눈짐작, 내림솜씨로 해결하고 있으며 무조건 넉넉하고 화려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필요 이상의 양념과 고명(소)을 낭비하는 것 등을 개선의 대상으로 지적하고 있다. 45 표준화되지 못한 김치 제조방식은 당시의 기술력 과 의식수준의 낙후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셈이라고 생각 46 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위생성에 관한 부분이다. 개천에 나와 김칫거리를 씻어 하천을 오염 시키고, 그 물을 다시 식수로 사용함으로써 도시 위생을 해치고, 가열조리를 거치지 않는 김치의 특성으로 인해 한국인에게 기생충이 많은 주요 원인도 바 로 위생관념 없는 한국인의 김치 때문이라고 지목하였다. 위생 역시 근대과 학에 의해 정립된 개념이므로 이에 대한 무지는 전근대성의 상징으로 생각하 였기 때문인 것이다. 47 와 장( 醫 (의)) 된장담그는 法 (법)과 食 鹽 (식염)의 配 合 法 (배합법)을 調 理 (조리)잇게 合 理 的 (합리적) 으로 硏 究 發 表 (연구발표)함이 先 務 (선무)일것이다. 우리 朝 鮮 (조선)에서 몇 千 年 (천년)먹어온 장과 김치 等 屬 (등속)의 製 造 法 (제조법)에 統 一 (통일)이 잇는가 누구가 合 理 的 紀 錄 (합리적기록)을 남긴 사람이 잇는가 (동아 1936.01.09.) 45_ 분량의 죠화를 잘 마쳐야 될 것인데 우리 죠선 사람들은 그저 눈어림 손어림으로 항상 저울을 삼 기 문에 혹은 맵고 기도하여 너무 달고 시기도하야 심지어 음식의 전부를 바리는 일가지 업 지 않다 그럼으로 아모리 음식을 잘한다는 뎡평을 밧는 집일지라도 다년간 맛해하든 차집이 나가 거나 주부가 업서지면 그 집 음식은 근 절단이다 궁내에서도 지금 잇는 차집들이 나희 오륙십이 갓가웟스니 장차 그대를 이을만한 사람이 업스리라고 걱정이라한다 (조선 1924.11.08.) 깍두기의 고추분량을 반으로 줄이자. 고추량을 1/3 줄여도 맛은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위장이 나 쁜 조선사람에게는 고추를 많이 섭취하는 것이 좋지 않으니 보기에 좋게 하려고 구태여 해로운 것을 많이 넣지 말아야 한다 (조선 1939.12.13 영양연구소/필자 오억) 46_ 朝 鮮 人 (조선인)의 風 俗 (풍속)에 原 因 (원인)한다하고, 或 (혹)은 民 族 的 (민족적) 氣 質 上 (기질상)에 原 因 (원인)해다고 할지모른다. 그렇나 吾 人 (오인)의 見 地 (견지)로서하면 根 本 原 因 (근본원인)은 産 業 上 (산업상)의 發 展 如 何 (발전여하)에 잇다한다. (동아 1932.05.14.) 47_ 장한 뒷 끝에 노변에 쓰레기 산적, 위생상도 대불결, 가정에서도 급히 소제가 필요 (조선 1935.11.18.) 배추를 시처서 소금에 저렷다가 그 소금물을 바더서 나중에 김치국을 붓는 집이 잇다 이것은 얼 핏 생각하면 경제적이라할지는 모르거니와 배추를 저려낸 소금물에는 응당 독이 많이 빠졋을 것이요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미균이 혹 죽기도 하고 혹 살기도 하여 떠러졋을 것이니 이것으로 김치국물을 붓는다는 것은 극히 위험아 일이다. 또 김장에 쓰기위하여 담은 외지를 놋그릇 닥 는 집쑤섬이를 너코 담는 것은 엇더한 가정에서던지 보통하는 일이다 그것은 외지가 보기조코 새 파래지는 까닭이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그속에 만흔 독이 생길것이니 보기에 좀 흉하더래도 그대 로 외지를 담엇다가 쓰는 것이 좋을 줄 생각한다. (조선 1925.11.06.) 한 가지 파( 破 ) 는 기생충 (조선 1936.01.03.) 김치담론, 김치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인가? 37
<표 4> 일제시기 김치가 민족정체성의 상징 이라는 인식에 대한 양면성 긍정적 <자랑스러운 음식> 세계에서 유사한 예를 찾을 수 없는 특색 있 는 조선음식, 세계적으로 유명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장수제( 長 壽 劑 ), 조 선김치 꾸준이 밥과 먹을수록 입에 정이 더든다 고기는 금방 질리지만 언제까지 먹어도 변 하지 않고 맛 좋음. 다른 음식에 비해 탁월 일본인이 김치맛 본 후에는 귀국할 생각이 없어지고 서양인도 맛만 보면 미친다. <계승해야 할 전통> 장래주부가 될 여학생들이 배워야 할 일 여학교에서 서양요리를 가르치면서 김치 깍 두기 만드는 법 가르치지 않는 것은 불합리 어떻게 맛있게 만들 수 있을지 연구가 필요 부정적 <부끄러운 음식> 김치 군덕내는 여러 사람의 입맛을 덧트림 김치 가지고 전철타지 말아야 외국손님 이 코를 막고 저희끼리 뒷말 한다. <개선해야 할 전근대성> 어림짐작으로 김치를 담는다. 궁에서도 눈어림 과학적으로 제조법이 마련되지 않아서 집집 마다 담는 법 다르고 지방마다 다르며 해마다 맛이 달라진다. 비위생적인 제조방식 김장쓰레기로 도시 위생에 위해 요소 한 가지 나쁜 것은 기생충 4. 김치는 언제부터 민족의 대표음식(National food)이 되었나? 자존감이 낮은 자는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다. 근대 이전 자료를 통해 이미 그때부터 김치가 한국의 민족대표음식의 요건 <한심한 조선 아동의 보건> 조선인 기생충보유자가 많은 이유는 소채를 생식하는 양과 기회가 많은데 유인한 것 김치나 생식할 야채는 섭씨 73도 가량 열탕에 담거서 (동아 1939.03.08.) 벼락 짠지나 김치에는 소독하지 않흐면 그대로 기생충알이 부착해 잇는 것을 먹는 것이 됩니다. 음식물로 중개되는 것은 전혀 김치에서 더구나 것저리 같은데서 전염되는 것입니다. 김치 맛에는 좀 상관될지 모르나 김치거리를 씻을때는 끓는 물에 한번 당거 내거나 여러번 손으로 문질러 씻 거나 혹은 크롤카루키로 소독하거나 하십시오. (동아 1939.04.21.) 38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을 갖추고 있었으며 일제강점기부터는 민족정체성의 상징으로 스스로 인식 하여 왔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다만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 의해 타자와의 비 교대상이 될 때는 보잘 것 없고 부담스러운 음식으로, 때로는 자랑스럽게 계 승해야 할 전통음식으로, 양면적인 가치가 상충하면서 존재해왔던 것이었 다. 즉, 한국인의 보잘 것 없는 음식이자 부끄러운 음식의 원천이었던 김치 가 1980년대 후반 이후 시대적 상황에 부합하여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자랑 스러운 민족 음식의 상징이 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김치가 민족대표음식이 된 것이라 인식하고 있는 것인가? 일제강점기 기사의 절대량으로는 긍정적인 담론으로 표출되고 있는 비중이 훨씬 높지만, 실상은 김치와 우리 민족의 위상을 부정적으로 동일시하는 경 향이 더 강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민족음식이라는 것이 통상 타문화권 사람 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맛과 냄새를 가진 경우가 많다. 특히 특유의 냄새는 사실 김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지금도 한국인 대다 수가 그 냄새를 유쾌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48 그러다보니 민족정체성을 확 인시켜주는 민족대표음식임을 수용하고 있다하더라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내놓기에는 뭔가 당당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당시 낮아져 있는 국가와 민족의 위상이 이를 가중시켰을 것이다. 의도적인 긍정 담론의 생산을 통해 자랑스러움을 강조하려 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실 제로 퍼져 있는 부정적 담론들을 타파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48_ 본고에서 소개한 많은 기록을 통해서도 외국인들의 기피 이유로 김치에서 나는 생마늘 냄새가 꼽 히고 있다. 김치담론, 김치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인가? 39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다. 이 경우 자랑스러움은 타 인을 통해 강화되기 마련인데 김치 맛을 본 외국인들이 그 맛에 반하면서 세 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조선 1931.2.8.)는 기사와 같이 앞선 문물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타자(외국인)들도 제대로 맛을 알고 나면 반드시 매료되 는 맛을 지녔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음식이라는 증언은 자긍심 고취에 강력 한 작용을 하였다. 49 그리하여 김치가 좀처럼 친숙해지기 어려운 냄새와 맛을 지녔으나 여러 번 접하면 매니아(Mania)가 되어 버리고 마는 마성의 음식이 라는 인식을 강화시키려 한 것이다. 50 하지만 아직 외국인들로부터 김치맛을 49_ 이번 첫 여행에서 음식은 정말로 야만적으로 보였으나, 그때 이후 나는 밥, 장 그리고 김치를 무 척이나 좋아하게 되었다. 15리쯤 지나서 우리는 초가집을 발견했는데 그 곳에서 하룻밤 지내 기로 마음먹었다. 중국에서 돼지기름과 옥수수 빵을 먹은 이후 우리는 정말 마음에 드는 밥과 김 치를 다시 한 번 먹게 되었다. ( Corea by Gardner, 1895) 양념, 견과류, 생선 등이 함께 포함된 최고품 김치는 이방인 대다수에게도 인정받는다. ( The Call of Korea by Horace G. Underwood, 1908) 집안 고유의 비법에 따라 견과류와 양념, 그리고 여러 과일과 채소를 넣어 만든 또 다른 김치는 이방인의 입맛에도 맞아서 인도 음식 처트니보다 훌륭하다. ( A modern pioneer in Korea by William Elliot Griffis, 1912) 소금에 절인 채소인 김치는 기본적으로 배추와 무를 사용하며 고춧가루, 굴, 기름과 마늘 모두를 소금물에 넣은 후, 약 2달간 숙성시킨다. 140여 가지의 재료가 섞인 김치는 커다란 토기 항아리 에 저장한다. 먹을 때쯤 되면 김치는 아삭거리며, 마늘을 넣지 않은 김치는 맛이 더하다. 이 음식 을 먹는 소수 외국인 중 하나인 나는 김장 김치를 만들 때 항상 마늘을 빼서 거부감 있는 냄새를 없앴다. ( Things korea by Horace Newton Allen, 1906) 진정한 김치 냄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무언가가 있다. 어떤 환자가 감사를 표시하는 마음 으로 놓아 둔 작은 항아리에서 냄새가 흘러나오는 것을 찾아내었다. 그 항아리에는 아주 잘 익은 김치가 담겨 있었고, 나는 당장 갖다 버리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막노동꾼이 뿜어내는 입냄새 같은 김치 냄새에 향수를 뿌렸다. 나는 그렇지 못 했지만 그들은 이를 고마워했던 것은 분명했다. 후에 마늘 없이 만든 김치를 맛보도록 권유해 먹어본 순간, 나는 그 맛에 당장 빠지고 말았던 즐 거운 추억이 남아있다. ( Things korea by Horace Newton Allen, 1906) 서양 사람들도 대개는 맛만 보면 미치는 것이 세게 뎨일이라고 하겟슴니다 (별건곤 1928.05.01/ 류춘섭) 50_ 일본에 닥구앙, 나쓰께, 하구사이쓰께들은 말할 것도 업시 우리네의 김치에는 족달불급임니다. 위선 일인들이 우리 나라 김치 맛을 본 후에는 귀국할 생각조차 업서진다니 더 말할 것도 업고 서 양 사람들도 대개는 맛만 보면 미치는 것이 세게 뎨일이라고 하겟슴니다 (별건곤 1928.05.01/ 김치예찬/ 류춘섭) 아마 이 김치에 대하여서는 우리 나라 사람뿐 아니라 서양 사람들도 본국을 다녀온 후에는 자 긔 나라에 가 잇슬 동안에 조선 김치가 제일 생각난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히 보앗슴니다 (별건곤 1928.05.01/ 外 國 에 가서 생각나든 朝 鮮 것- 溫 突 과 김치/유경) 40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인정받게 된 경험 축적의 초기단계로 아직 견고해지기에 그 파급력과 영향력 이 충분하지 않았고 대다수 국민들의 인식을 송두리째 바꾸기에는 역부족이 었다. 이러한 외국인의 사례들을 통해 자신감을 높이기 위한 담론화에 애쓰 지만 민족적 자존감이 한껏 낮아져 있던 당시, 누가 좋다고 하면 위안이 되었 다가도 나쁘다고 하면 금방 위축되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민족 자존감의 회복과 더불어 확고해져 가는 김치의 위상 일제강점기 기사 자체에는 자랑스러운 음식이라는 담론의 비중이 절대적으 로 높지만 이것은 민족정신 고취를 염두에 둔 발화자의 의도적 주장인 경우도 많았을 것이며, 내부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더라도 타자의 시선에 대해 서는 아직 자신감도 확고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서울올림픽 을 계기로 김치가 민족대표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거나 김치 가 영양학적으로 우수하다는 논리가 1970년대 이후에야 시작된 것으로 파악 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민족 정체성 상징으로서 부정적인 인식을 누르고 자랑스러운 한국음식의 상징으로서 긍정 담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해지게 된 것은 타자에 의한 긍정적 인 평가를 많이 접할 수 있게 된 1980년대 후반으로 볼 수 있다. 51 올림픽이 김치가 썩 좋습디다. 좀 맵지 않다면 더 조겠습니다. 우리 독일에는 그런것이 없어요 나는 이번 에 배추씨를 가지고 가서 심어서 김치가티 맨들어 먹을까 하는 군요 어떻든지 일본음식같이 달지 않은 것만은 썩 좋으나 대신 매워서 걱정입니다 (조선 1935.12.12 알메 마리아 콜라양 인터뷰 기사) 방심한 이방인이 한국의 주식인 김치를 처음 먹을 때는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듯하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터지게 한다. 집안 고유의 비법에 따라 견과류와 양념, 그리고 여러 과일과 채소 를 넣어 만든 또 다른 김치는 이방인의 입맛에도 맞아서 인도 음식 처트니보다 훌륭하다. ( A modern pioneer in Korea, by William Elliot Griffis, 1912) 51_ 한경구는 김치가 민족음식의 지위로 승격된 것은 한국인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신감의 상승과 관계있다고 보았다. 김치담론, 김치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인가? 41
라는 우리 민족 최초의 최대 국제행사를 치르기 위해 마케팅적 필요에 의해 자랑스러운 민족음식 으로의 대표성이 더욱 특화되었고, 성공적 행사 개최와 그에 따른 국가의 경제적 지위 향상으로 민족적 자존감이 올라가면서 긍정과 부정의 담론이 상충해 왔던 일제강점기와 달리 민족대표음식으로서 김치에 대 한 자긍심도 견고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해외여행 개방으로 외국과의 접 촉이 많아지면서 그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개별적으로 확인하게 되는 기회가 많아졌고, 국가적 필요에 의해 김치과학기술부문에 연구비가 적극 투입되어 과학적 입증자료가 본격적으로 많아진 것도 이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특히 일제강점기 김치에 대한 부정적 담론 형성에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력 을 미쳤던 일본인에 의한 김치의 선풍적 인기는 격발요인이 되었다고 판단된 다. 따라서 김치가 민족대표음식으로서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일제강 점기부터이나 긍정적 인식이 더 강화 견고해지기 시작한 것이 1980년 후반 부터라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52 구분 개화기 이전 일제강점기 서울올림픽 이후 식생활에서 중요도 일상성과 보편성 민족 정체성의 상징 자랑스러운 민족음식으로 내면화 21세기, 위상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민족대표음식 김치 이제 김치는 음식으로서의 필요성이 줄어든 대신 현대 사회의 신민족주의 53 52_ 김치가 국제적 공인을 받아 가는 과정에 대해서는 임재해( 김치문화의 인문학적 가치 인식과 세 계화의 길, 김치학 총서 2. 김치의 인문학적 이해, 세계김치연구소 편, 2014, 19~27쪽)의 글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53_ 세계화로 국가 정체성이 약화되면서 문화 정체성에 집착하는 민족주의를 가리켜 신( 新 )민족주의 라 부른다. 신민족주의는 국가 정체성의 약화에 대한 보상 심리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42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부상과 맞물려 오히려 자랑스러운 민족대표음식이라는 상징성이 더 강화된 측면이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으로서 사회적 공인이 뒷받침 되었기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여 승인받을 수 있었고, 각종 한국 문화 알리기 행사에 대표적 음식문화로 소개된다. 자랑스러운 민족의 상징이 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도록 잘 보전해야하므로 소비촉진을 해야 하고, 김치 의 우수성을 홍보하면서 외국인의 취식도 늘리고 민족적 우수성을 간접적으 로 알릴 수 있으니 기능성 연구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김치를 음식물로써 섭 취하는 량은 어쩔 수 없이 줄어들겠지만 문화자원으로서의 가치(독창성, 자 부심)는 더 제고해야만 한다. 일제강점기에 긍정적 부정적 담론이 공존하였 다면, 현재는 사회적 공감대 위에서 긍정적 담론만이 표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한국의 국가 위상이 올라간 만큼 김치에 대한 자신감이 상승하면서 김치 냄새를 꺼리는 외국인을 만나게 된다고 해서 김치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서양의 치즈와 다를 바 없는 그저 문화차이라고 생각한다. 54 몇 달 전 만난 이탈리아 거주 교포는 비즈니스 미팅이 있는 날은 하루 전부터 김치 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상대를 위한 배려이지 창피함 때문이 아니다. 부끄러운 음식이라거나 전통적 폐습이라고 했던 부정적 수용과 그에 따른 담론은 거의 사라졌고 다만 전통음식이기 때문에 아직 현대적 요구에 부응하 지 못하고 있거나 수출에 장애가 되는 요소들은 국제 기준에 맞추어 개선해야 한다는 합리적 제안이 이루어지고 있다. 55 54_ 근대시기 외국인 선교사들은 김치 냄새를 견디기 힘들어 하면서도 자신들이 먹는 치즈와 같이 그 저 타자에게는 견디기 힘든, 민족고유음식에서 맡을 수 있는 독특한 향이라고 생각하였다. 타자 가 견디기 힘들어 한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 일은 아니라고 여길 수 있는 것은 자문화에 대한 자긍 심에서 기인한다. 55_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산업표준 및 위생 규격 설정과 준수, 섭취량 제고와 세계화 김치담론, 김치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인가? 43
5. 맺음말 본 연구는 김치가 민족대표음식인가?, 언제부터 김치는 민족의 대표음식 이 되었는가? 를 확인하기 위해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그리고 이 시대에 존재하였던 기록들을 분석하여 김치담론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정리해본 것 이다. 결론적으로, 김치가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 보편성과 대 중성, 민족정체성의 상징이라는 측면에서 가히 대한민국을 대표할만한 민족 음식이라 할 만 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아울러 민족대표음식이라는 심리적 수용과 인정은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급 조된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이미 김치가 우리의 민족정체성의 상징으로 우수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존재하였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오늘날 김치담론은 훨씬 복잡한 양상을 지니고 있다. 단순히 민족대표음식 인가, 아닌가? 또는 언제부터인가? 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민족에 있어 김치 문화가 갖는 본질적 의미와 가치를 찾는 것, 김치 세계화에 대한 것, 미래 우 리민족의 생활과 김치 및 김치문화 관계의 지속성 등 많은 담론의 주제들이 검토되고 논의 되어야 할 것이다. 김치에 대한 미래 담론의 형성과 재정립의 과정에서 고려할 요소들은 많 다. 긍정적인 요소로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등으로 문화자 산으로서의 가치가 커짐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나는 스스로의 자부심과 바깥의 시선들, 그에 맞춰 진행될 관련 산업분야의 활성화와 그에 따른 사회 적 지원과 육성이 있다. 반대로, 부정적 요소로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 라 필연적이라고 여겨지는 김치 소비량의 지속적 감소와 그에 따른 김치의 경 (glocalization)를 위해 나트륨 주공급원으로서의 오명 씻기 작업이 필요하다는 내용. 44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제적 가치 하락, 나트륨 주공급원이라는 오해로 인한 건강식품 이미지 퇴색, 자본주의 이해관계망 속에서 앞의 요소들과 연계되어 나타날 수 있는 푸드 패 디즘(food faddism) 56 의 김치 공격 등이 있다. 이 모든 요소들에 대하여 미 리 준비하고 제때 대응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김치는 과거로부터 시작되어 현 재까지 누려온 민족대표음식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지, 아니면 과거 의 유물로 전락하게 될 것인지가 결정될 수 밖에 없고, 그에 대한 기본적 방 향성은 담론으로부터 시작 된다. 아직 우리에게 음식에 대한 담론, 이데올로기 등의 표현과 개념이 낯선 것일 수 있으나 유구한 역사를 거쳐 진화되어 오면서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민 족대표음식으로 자리 잡은 김치의 미래를 위해서 앞으로 김치에 대한 거대 담 론이 형성되고 활성화 되도록 어떤 학문적, 사회적 노력을 해 나가야 할 것인 지 많은 논의와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56_ 푸드 패디즘은 먹거리가 건강과 병에 미치는 영향을 과대평가하는 것 으로, 먹거리를 나쁜 음식 과 좋은 음식으로 나눠 그 효과를 과장시키는 것이다.(경향신문 2015.09.19 <푸드 패디즘의 선동 아직도 믿나요> 중에서) 김치담론, 김치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인가?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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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장아찌의 범주화에 관한 인지인류학적 연구 조숙정 1. 머리말 1) 문제제기: 김치란 무엇인가?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음식이자 민족음식 가운데 하나가 김치 라는 데에 이 론( 異 論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한경구 1994 참조). 2001년 7월에 국제식 품규격위원회는 한국 배추김치를 기준으로 작성된 김치 규격을 국제식품규 격(Codex)으로 채택했고, 1 이제 이 음식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Kimchi 라 는 새로운 영어 단어가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2 2004년에는 한국의 대 표 식품학자들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하여 김치백과사전 (김치사전편집위원 회 2004)을 편찬하였다. 이 사전은 1409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우 1_ 코덱스(Codex)는 Codex Alimentarius(food code의 라틴어)의 약어로서 FAO와 WHO가 합동으 로 운영하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Alimentarius Commission)에서 식품의 국제교역 촉진과 소비자의 건강보호를 목적으로 제정되는 국제 식품규격이다. (김치사전편집위원회 2004: 1400) 2_ Kimchi Codex 규격에 따르면 김치는 주원료인 절임 배추에 여러 가지 양념류(고춧가루, 마늘, 생 강, 파, 무 등)를 혼합하여 제품의 보존성과 숙성도를 확보하기 위하여 저온에서 젖산생성을 통해 발표된 제품 으로 정의된다(김치사전편집위원회 2004: 1401). 김치와 장아찌의 범주화에 관한 인지인류학적 연구 47
리나라에서 발간된 각종 문헌에 나오는 김치를 찾아내어 3000여 종을 소개 한다. 이와 함께 중국, 일본, 태국, 유럽 등의 절임채소 음식을 소개함으로 써 김치의 비교문화론적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김치의 세계화 라는 국가정책의 일환으로 2010년 1월에는 김치 관련 연구개발 및 식품산업의 발 전을 목적으로 세계김치연구소 가 정부 지원으로 설립되었고, 2013년부터 김치학(Kimchiology) 이라는 융복합 성격의 새로운 학문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동시에 김치학 심포지엄 이라는 학술회의를 매년 개최하고 김치학 총 서 도 발간하고 있다. 또 2013년 12월에는 김장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 가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 재되었다. 이러한 대내외적인 예들은 한국 사회에서 재인식된 김치의 음식문 화로서의 중요성 및 국제사회에서 높아진 위상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정책적 학술적으로 김치 가 강조되고 논의될 때마다 여기서 말하 는 김치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새삼스런 의문이 든다. Kimichi, 김치의 세계화, 세계김치연구소, 김치학, 그리고 김치백과사전 등이 공통으로 포함하고 있는 김치 라는 말은 모두 같은 것을 지시하는가? 김치 라는 같은 단어로 다른 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측면은 없는가? 필자가 여기서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김치학에서 말하는 김치란 무엇인가? 이다. 세계김치 연구소는 김치학 을 체계적으로 정립하여 하나의 독립학문으로서 위상을 확 보하는 것 을 김치학의 최종 비전으로 밝히고, 김치학(Kimchiology) 체 계정립과 확산은 김치가 먹는 음식으로서뿐만 아니라 학문의 주체로서도 세 계인들의 관심과 호응을 유도함으로써 김치종주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는 점 을 의의로서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세계김치연구소 2014: 11). 세계김치연구소가 두 번째로 펴낸 김치학 총서의 프롤로그에는 김치학의 48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정의 (2014: 9~12)라는 제목으로 김치학을 소개하고 있는데, 김치학을 다 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김치학(Kimchiology)은, 김치(Kimchi)와 학문(logos)을 합친 말로, 한민족의 대표적인 식품이자 문화인 김치에 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김치학의 학문영역은 김치에 들어가는 재료 수만큼이나 연구대상 범주가 넓다. 따라서 김치학의 범위는 김치 의 원재료 문제부터 운송, 담그기, 포장, 저장, 유통, 취식, 먹으면서 발생하는 관계, 느 낌, 표현방식과 관계되는 언어, 예술에 이르기까지 김치의 라이프사이클 전체를 포괄해 야 한다.(세계김치연구소 2014: 9, 11) 김치학의 정의와 연구 범위를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위 내용은 우리가 지금 상상하고 있는 바로 그 김치 를 떠올리게 한다. 즉, 배추김치, 깍두기, 총각김치, 열무김치, 파김치, 오이김치, 갓김치, 백김치, 동치미 등 수십 종 의 다양한 종류의 김치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중에서도 빨간색의 포기배추김 치가 단연코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표 김치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김치학에 서의 김치는 우리가 매일 먹고 있는 대표 반찬인 김치와 동일한 것처럼 생각 된다. 그러나 김치학 심포지엄 과 김치학 총서 에서 비교문화론적 관점에서 중 국의 옌차이( 腌 菜 또는 醃 菜 ) (자오 2013) 또는 파오차이( 泡 菜 ) (임재해 2014: 25) 및 일본의 쓰케모노( 漬 物 ) (아사쿠라 2013), 그리고 서양의 피클(pickle) 이나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 (이시게 2014: 261, 266; 윤덕노 2014: 243; 슈람프 2015)를 바로 그 김치 와 대응관계 속에 서 다루는 상황을 접하게 되면 혼란스럽다.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인의 일상 의 밥상에서, 바꿔 말해 음식 범주에 대한 인치체계에서 파오차이, 쓰케모 김치와 장아찌의 범주화에 관한 인지인류학적 연구 49
노, 피클 등은 한국 음식의 범주로 말하자면 김치 가 아니라 일종의 장아찌 에 해당하는 음식들이기 때문이다. 학술적 맥락에서는 경우에 따라서 김치 라는 말이 장아찌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도 사용되고, 장아찌와 대조범주를 이루는 좁은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 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3 이러한 언어 사용은 한국인이 김치를 먹어온 오랜 역 사와 음식문화의 변화의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치와 장아찌가 소금에 절인 채소 음식이라는 한 음식 범주에서 기원한 것이지만, 재료나 담금법 등 조리방법의 혁신적인 발달과 함께 별개의 음식 범주로 분화되었다는 한국 음 식문화사의 맥락 안에서 연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는 이러한 통시적 관점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김치학에서 말하는 김치 의 개념과 범위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김치학의 연구 대상인 김치 는 오늘날 한국 음식문화에서 별개의 음식 범주인 김치 만을 지시하는가? 아니면 김치 와 구별되는 장아찌 도 포함하는 개념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김치학이 추 구하는 김치 연구는 비교문화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김치와 장아찌를 포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치학을 정의하는 그 어디에서도 장아찌가 상 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세계김치연구소 2014: 9~12 참조). 와인, 올리 브, 면류 등 다양한 음식분야의 학문 분과들이 세계적으로 정립되고 활성화 된 것처럼 김치학 이 그러한 위상을 가진 학문 분과로서 정립되기 위해서는 우선 연구 대상인 김치 를 보다 학술적인 개념으로 분명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한민족의 대표적인 식품이자 문화인 김치 (세계김치연구소 2014: 9) 3_ 예를 들어, 한경구(2013: 284~285)는 저장성 절임채소음식으로서 독일과 네덜란드 사람들이 먹는 사우어크라우트를 김치의 먼 사촌으로서 아주 넓은 의미의 김치의 하나로 볼 수도 있[다] 고 말한 다. 여기서 앞의 김치 는 장아찌와 대조를 이루는 좁은 의미의 김치일 것이고, 뒤의 김치 는 김치와 장아찌를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김치일 것이다. 50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라는 지극히 자문화중심적인(ethnocentric) 서술은 결코 김치학의 연구 대 상으로서 김치란 무엇인가? 더 나아가 김치학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명 확한 답을 주지 못할 것이다. 김치학이 잠정적으로 넓은 의미의 김치를 전제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장아 찌가 배제된 좁은 의미의 김치에만 연구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사실 오늘 날의 김치와 관련된 한국의 음식문화, 즉 김치와 장아찌의 음식 범주에 대한 인지체계 및 이용 양상을 반영한다. 다시 말해, 김치학을 논할 때 현대 한국사 회에서 일반 사람들이 김치와 장아찌를 어떻게 개념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 화적 이해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통시적 관점에 서 김치와 장아찌의 관계에 대한 음식문화사적 이해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2) 연구 목적과 방법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필자는 김치와 장아찌의 음식 범주와 관련된 한국 음식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를 시도해 보고자 한다. 즉, 본고는 김치 와 장아찌 관련 언어 분석에 의거해 오늘날 민중들이 김치와 장아찌를 인지하 고 분류하는 문화모형(cultural model)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민 간에서 사용되고 있는 김치 의 개념이 학술적으로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의 양자로 암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김치 의 개념과 어떤 차이와 관계에 있는 지를 명시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음식문화사적으로 김치와 장아찌의 범주 관계를 추적하고 그 공통 기원 및 분화를 논할 수 있는 민속명칭(folk term)을 제시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본고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된다. 우선 필 자는 민간에서 인지되는 김치란 무엇인가? 를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 출 것이다. 즉, 김치의 어휘적 명칭체계와 범주화 방식의 발견에 초점을 김치와 장아찌의 범주화에 관한 인지인류학적 연구 51
맞추어 김치의 민속구분법(folk classification)에 대한 민속지식(folk knowledge)을 밝힐 것이다. 4 이를 위해서 전라북도에서 수집된 경험적 자 료에 의거해 전라도 김치에 대한 민족지적 사례를 기술 분석하도록 하겠다. 둘째, 성분분석(componential analysis)을 이용해 김치와 장아찌가 별개 의 음식 범주로 구분되는 의미관계를 살펴볼 것이다. 즉, 오늘날 민속지식에 서 김치와 장아찌가 상호 관계 속에서 정의되는 방식을 살피고, 김치가 장아 찌와 대조를 이루는 음식 범주로서 좁은 의미로 개념화되어 있음을 보여줄 것 이다. 셋째, 지역별 김치와 장아찌의 민속명칭들의 비교 분석을 통해서 김치 와 장아찌의 역사적 관계 및 넓은 의미로서 김치의 개념 사용의 근거를 제시 할 것이다. 과학지식에서 김치 는 장아찌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정의되는 데, 이것은 김치와 장아찌를 저장성 염절임 채소음식으로서 한 뿌리에서 분 화된 것으로 보는 그 기원에 대한 역사적 관점과 관련된다. 오늘날 민속지식 차원에서는 김치와 장아찌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문화적 인식은 발견되지 않 는다. 하지만 민간에서 사용되고 있는 김치와 장아찌 관련 언어 표현에는 그 역사적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흔히 김치 에 대응하는 사투리로 치부되는 고유어 지 가 바로 그것이다. 즉, 일상생활의 말 속에 남아 있는 김치와 장아 찌의 공통 어휘소(lexeme) 지 의 전국적 분포와 사용 양상을 통해 두 음식 범 4_ 여기서 민속지식 은 일반사람들 즉 민중들이 오랜 기간을 두고 축적해온 지식 으로 정의한 함한 희(2008: 13~14)의 용례를 일반적 의미로서 따른다. 지식의 위계구조를 전제하는 계급(class)보다 는 지역(locality)을 근간으로 접근하는 차원 이라는 점에서 지역지식(local knowledge)으로도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세상을 지각하고 이해하고 설명하고 행동하도록 하는 인지 또는 지식체계로서 의 문화라는 구디너프(Goodenough 1957)의 개념에 준하는 것이지만, 한 사회 내 지역 공동체와 지역적 특수성이 강조되고 있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대조를 이루는 과학지식(scientific knowledge) 이란 학자들에 의해서 학술적 탐구를 목적으로 생산된 일반 목적적 지식이고 국가에 의해서 보급되는 표준화된 지식이다. 따라서 민중의 일상생활에 토대한 문화로서 상대성을 함축하 는 민속지식은 일반성을 추구하는 과학지식과 그 목적과 범위,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 차이가 있 다. 즉, 두 지식체계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사고체계이므로 양자 사이의 차이가 지식의 옮고 그 름이나 우열관계로 단순히 환원될 수 없음을 물론이다. 52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주의 공통 기원과 범주의 분화를 논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한편으로는 김치 의 어원 및 음식문화 연구에서 방언형 지 에 대한 재고의 필요성을 제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김치를 옌차이, 쓰케모노, 피클 등 세계 절임채소음식들과 대응시킬 때 그 비교의 층위와 맥락에 주위를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고 자 한다. 이 연구를 위해서 경험적 자료를 수집하기 위한 현지조사 방법과 문헌 연 구가 병행되었다. 이 연구에 사용된 경험적 자료는 필자가 2006년(조숙정 2007)과 2007년(조숙정 2008b)에 전라북도에서 김치의 명칭과 범주화 연 구를 수행한 현지조사 자료에 토대한다. 그리고 2015년 7월부터 11월 사 이에 이루어진 김치와 장아찌의 구분법에 대한 인터뷰 자료가 새로 추가되었 다. 즉, 7월과 11월에 전주시와 부안군에 거주하는 70~80대의 주요제보자 (key informant)를 다시 인터뷰하여 김치와 장아찌의 의미관계에 대한 자 료를 보완하였다. 또한 8월에는 지역별 김치와 장아찌의 명칭 비교를 위해서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인터뷰 조사를 통해 김치와 장아찌에 대한 자료를 추가 하였다. 5 한편, 지역별 김치와 장아찌의 명칭 비교를 위해서는 필자가 직접 조사한 전라북도와 충청남도를 제외한 전라남도(이기갑 외 1998), 경상남북 도(김지숙 홍기옥 2009; 임재해 2014)와 제주도(김순자 2013) 지역의 자 료는 문헌 자료를 이용하였다. 그리고 2015년 11월에 부산과 진주의 경상남 도 지역의 김치와 장아찌의 명칭과 범주에 대한 인터뷰 자료를 보완하였다. 6 5_ 충남 홍성군의 제보자는 모두 세 명으로, 여성 제보자는 각각 1930년생과 1935년생이고, 남성 제 보자는 1936년생이다. 6_ 경남의 제보자 세 명은 여성 두 명과 남성 한 명이다. 부산의 제보자는 1934년생 남성과 1940년 전 후생의 여성이고, 진주의 제보자는 1926년생의 여성이다. 경남 부산과 진주의 자료는 부산 출신의 언어인류학자인 왕한석 서울대 명예교수가 제공해준 인터뷰 자료를 인용한 것이다. 자료를 제공해 주신 왕한석 교수님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김치와 장아찌의 범주화에 관한 인지인류학적 연구 53
성별분업에 의한 주된 활동 영역의 차이로 성별에 따라 문화적 지식의 내적 변이(intra-cultural variation)가 존재한다는 것은 여러 사회에 대한 인 지인류학적 연구들이 이미 보고한 바 있다(왕한석 1996b; Conklin 1955; Berlin 1992 등). 음식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살림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특히 주부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전문적 지식 이기 때문에, 남성보다는 여성 이, 미혼자보다는 기혼자가 김치 및 장아찌와 관련된 더 세부적이고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을 것으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조숙정 2007: 86). 따라 서 이 연구는 기혼인 여성 화자, 특히 노년층을 주요제보자로 선정했다. 즉, 2015년 기준으로 70~80대인 주요제보자들은 대부분 1930~40년대에 출 생한 여성들로서 1950~60년대에 혼인을 하고 주부로서 살림을 해온 사람 들이다. 이와 함께 남성 화자들과 30~40대 젊은층 제보자들의 진술도 분석 자료로서 활용되었음은 물론이다. 2. 이론적 배경 본고는 김치와 장아찌라는 음식 영역에 대한 문화적 강조와 어휘 분화의 발달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서 민족과학(ethnoscience) 또는 넓게는 인지 인류학(cognitive anthropology)의 분석틀을 사용한다. 민족과학 연구 는 언어와 문화는 밀접히 관련되고 전자가 후자를 이해하는 데 열쇠를 제공 한다. 는 사피어(Edward Sapir) 이후 언어인류학의 관점을 계승함으로 써, 언어학적으로 정향된 접근법(linguistically oriented approach) (Casson 1981: 4)을 취한다. 민족과학 연구는 사람들의 정신 속에 있는, 그래서 사회적 행위와 달리 직접적인 관찰이 불가능한 인지 또는 지식 체 54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계로서의 문화를 언어 분석을 통해서 접근할 수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Goodenough 1956; Conklin 1955, 1962; Frake 1961, 1962; Tyler 1969; Casson 1981). 민족과학 연구의 초기에 중요한 이론적 논 의의 토대를 형성한 학자 중 한 명으로 평가되는 프레이크(Charles O. Frake 1962)의 글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개별 문화의 명칭체계의 분석은 물론 그 성원들의 인지 세계를 완전히 드러내지는 않 을 것이지만, 그 인지 세계의 중심 부분을 확실히 두드릴 것이다. 문화적으로 중요한 인 지 자질들(cognitive features)은 그 문화의 한 표준적 상징체계에 의해 사람들 간에 의사 소통될 수 있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자질들의 주 부분은 의심할 바 없이 개별 사회에서 가장 유연하고 생산적인 의사소통의 장치인 언어 속에 부호화될 것이다. 또한 가장 빈 번한 의사소통을 필요로 하는 인지 자질들은 표준적이고 비교적 짧은 언어적 이름을 가 질 것이라는 점을 여러 증거가 보여주는 것 같다. 인지적 부호화가 언어적이 되고 또 효율적이 되는 한, 표준적이고 쉬이 추출해 낼 수 있는 언어 반응 즉, 명칭들(terms) 의 지시적 사용에 대한 연구는, [개별 문화의] 인지체계를 지도화하는 데 효과적인 출발 점일 것이다.(Frake 1962: 30) 7 이와 함께 타일러(Stephen A. Tyler 1969)의 글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토착민들이 그들의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는 오래된 인류학의 관심사다. 우 리는 다른 민족들의 정신적 과정을 어떻게 추론하는가? 이러한 과정들은 언어를 통해 서 가장 쉽게 들어갈 수 있다고 가정해 왔고, 최근 연구들의 대부분은 언어에 지도화된 정신적 부호들(mental codes)을 발견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환경에 있는 것들의 이름은 어떤 다른 민족의 환경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지표이고, 이 사람들이 그들의 7_ 프레이크(Frake 1962)의 인용문은 왕한석(1996a: 19)의 번역을 참조하였음을 밝힌다. 김치와 장아찌의 범주화에 관한 인지인류학적 연구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