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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인펜은시험장에서배부 ) - 주관식답안은본인이지참한연필이나볼펜, 지우개등사용가능 - 휴대전화는시험전에전원을끄고감독관에게제출해야함 - 기타응시자유의사항은유인물참조 4. 시험장소 가. Paris Université Paris Diderot ( 파리 7 대학 ) 7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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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블랑쇼에게서 문학의 공간을 통해서 형성되는 공동체 박 규현 ( 성균관 대학교 ) 차 서론 : 프랑스의 68년 5월 사건과 블랑쇼의 문학의 공간 I. II. 죽음의 익명성 시의 실현과 문학적 공동체 III. 부재의, 소외된 공동체의 긍정을 위한 글쓰기의 요구 결론 참고문헌 례 (...) et il lui semble que lui, Vassili Andréitch(Brekhounov), c'est Nikita, et que Nikita, c'est lui, et que sa vie à lui n'est pas en lui mais en Nikita(...) Et de nouveau, il entend l'appel de ce celui qui l'avait interpellé tantôt. "Je viens, je viens!" crie tout son être plein d'une allégresse attendrie. (Léon Tolstoï, Maître et serviteur) 서론 : 프랑스의 68 년 5 월 사건과 문학의 공간 프랑스에서의 역사의 종말La fin de l'histoire, 그리고 철학의 종말La fin de la philosohie에 대한 실제적 긍정 또는 확인의 분기점은 68년 5월 사건을 중심으로 한 60년 대 전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역사의 종말이란 반-역사anti-histoire를 의미하는 것 이 아니라 일직선적 시간성을 토대로 한 역사의 개념의 변화를 의미한다. 철학의 종말La fin de la philosophie 또한 그러한 역사의 개념의 변화로 인한 모든 개념들의 변화, 더 나 아가서 모든 개념들의 전복과 해체에 따른 거대한 로고스의 붕괴를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 다. 1) 형이상학의 선적이고 논증적인 담론에 의지하거나 말들과 표상들 뒤의 기의에 대한 1) "La fin de la philosophie, la fin de l'histoire, la fin de l'homme, la fin de la littérature, la fin de l'art, n'appartiennent pas à un passé révolu; il s'agit de ce qui ne cesse de nous arriver (depuis presque cinquante ans). Notre temps se constitue et se comprend à partir de dire nous, les conditions pour penser une communauté aujourd'hui impliquent la conscience d'appartenir à un suspens de l'histoire, au tournant dans lequel la perte de sens des grands récits historiques appelle à penser autrement notre temps. Ce qui constitue notre temps pourrait être à la limite l'injonction, la tâche de penser par-delà l'histoire, l'homme, la littérature, l'art, sans aucune garantie de réussite et au-delà d'une pure et simple pensée du déclin." Manola Antonioli, L'écriture de Maurice Blanchot, Kimé, 1999, p.58.

추구에 사로잡혔던 현전의 철학La philosophie de la présence 을 대신하여 글쓰기 자체 의 경험을 존중하고 그 안에서의 순수한 의미작용의 움직임에 관심을 가지며 파편의 글쓰기 L'écriture fragmentaire를 선호하는 경향으로 철학의 종말은 그 모습을 드러내었고, 글쓰 기에 대한 관심에 따라 문학의 역할과 위치가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되었다. 그러한 사고 경 향의 변화에는 여러 이름들이 거론된다. 니체Nietzsche, 마르크스Marx, 프로이드Freud, 라 깡Lacan, 하이데거Heidegger, 푸코Foucault, 데리다Derrida... 그리고 그들의 주변에 비트 겐슈타인Wittgenstein이 은연중에 자리잡고 있었던 바, 그의 유명한 구절 말할 수 없는 것 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Ce dont on ne peut parler, il faut le taire 는 철학이나 문학 에서뿐만 아니라 현대 물리학에서도 만장일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으로, 68년의 철학적 -소피스트들의 예를 들면, 그들은 불가해성이란 위대함의 표시이며, 의미에 대한 몰상식한 요구 앞에서 사상가의 침묵은 무기력함의 증거가 아니라 말해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요한 노력의 지표라고 그 독자들이나 청중들을 믿도록 길들이는데 이름으로써 그 최대의 성공 2) 을 거두게 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침묵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말하는 것이 과제가 된다. 끊임없이 말하게 만드는 작업이 바로 글쓰기이다. 여기서 침묵은 글쓰기 이후 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의 움직임의 내면에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그것은 우리가 말하기를 계속해야하는 대상인 어떤 것의 표출을 기다리는 행위에 관련된다고 말할 수 있 다.3) 침묵은 아직 발화되지 않은 끊임없는 중얼거림을 내포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결 국, 글쓰기란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에 관련되기보다는 침묵 속의 말의 폭발과 더욱 많은 관 련을 가진다. 글쓰기는 침묵 속의 끊임없는 말을 말하도록 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때 끊임없는 말은 우리 앞에 열려진 무한한 미지의 공간과 관련을 맺도록 해준다. 미지의 공간은 이제까지 주변에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68년 전후의 사상은 주변, 즉 소외된 것에 관심을 돌리며, 중심을 주변화시키는 것을 커다란 과제로 삼는다.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말 한다고 주장하는 것, 그리고 그를 위해 아직도 우리의 일상성을 진작시키는 모든 전통들과 2) 뤽 페리 알렝 르노 지음, 68사상과 현대 프랑스 철학, 구교찬 외 5인 역, 인간사랑, 1995, p.49. 현대 철학의 중심에는 프랑스 철학이 있다. 프랑스에서보다도 미국에서 더욱 명성을 날린 철학자들(데리다, 푸코 등)도 있을 만큼 현대 철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현대 프랑스 철학의 흐름부터 살펴보아야 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르트르를 지나 소쉬르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구조주의 계통의 철학자들, 그 이후의 푸코, 데리다, 들뢰즈 등 프랑스의 사상가들이 서점 의 현대 철학 진열대를 장식했다. 그러나 정작 현대 프랑스 철학의 분기점으로도 볼 수 있는 68년 5월 사건이나 그 전후의 사상의 경향에 대해서는 상세히 소개된 것이 매우 적은 실정이었다. 이러 한 상황에서 68사상과 현대 프랑스 철학 은 우리에게 현대 프랑스 철학의 흐름과 성격을 이해 하는데 훌륭한 참고서가 된다고 여겨진다. 68년 5월 사건을 이해하는 데 있어 우리는 많은 부분 위의 책을 참고하였음을 미리 밝혀둔다.

절연하는 것, 형이상학, 이데올로기 또는 의식이 망각하거나 은폐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지배적(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며 주변부로 밀려나지 않으려는 것을 주변 화시키려는 과제이다. 4) 주변화시키는데 있어서 최우선의 과제는 주체의 권력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권력pouvoir 을 가진 주체의 소멸화로 비권력non-pouvoir 의 익명의 공동체가 긍정되도록 해야 한다. 더 이상 군중은 한 탁월한 권력의 주체가 교육시켜야 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바로 거기로부터 이러저러한 사상들이 5 월 혁명( 또는 사건) 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며 다시 새롭게 지적 지도를 그리고자 하는데 대한 반론이 나온다. 어쩌면 그러한 지적 지도들은 철학자들의 계 속되는 현학적이고 자아 도취적인 오류일 수도 있다. 고등사범학교의 최고의 인텔리들이 한 교실에 모여 혁명의 추이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논의했을 때, 그 중 한 일원이었던 필립 솔레르스는 실제 혁명은 그곳이 아닌 소요하는 침묵으로 채워진 아무런 주체도 없는 밤거리 에 있었다고 고백한다. 물론,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고 할지라도, 68년을 전후로 한 사상가 들의 작품들과 5 월 혁명은 하나의 동일한 문화적 현상에 속하는 것이기에, 비록 그 형태는 다양하지만 동질적 증후군을 드러낸 사상과 사건이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68 이 가지는 가장 큰 의미는 역사성과의 단절인 바, 그 무엇보다도 지식인들의 닫힌 체계와의 단절이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였다. 본고는 역사성과의 단절이라는 시각에 흥미를 가지며, 그러한 견해를 주장한 사람들 중에서 설가이자 비평가인 블랑쇼의 사고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68 혁명의 공간을 문학의 공간의 실현으로 보았던 소 I. 죽음의 익명성 68년 5 월, 블랑쇼는 작가들과 학생들로 구성된 행동위원회에 참석한다. 블랑쇼가 우선적 으로 이 위원회에서 주목한 것은 구성원들의 익명성에서 기인한 동료 관계camaraderie였 다. 즉, 68년 5 월의 행동위원회에서는, 시위 현장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친구들은 없었지만 즉석 에서 말을 놓고 나이 차이나 따라붙는 명성에 상관 않는 동료라는 관계가 맺어졌다. Or, dans les Comités d'action de Mai 68, aussi bien que dans les manifestations, il n'y avait pas d'amis, mais des camarades qui se tutoyaient aussitôt et n'admettaient ni différence d'âge ni reconnaissance d'une renommée préalable. 5) 블랑쇼는 위원회에 배포된 글 속에서( 익명으로 썼으나 사람들은 쉽게 블랑쇼의 글임을 분간해낼 수 있었다) 끊임없이 주체의 익명성과 권력의 포기를 주장한다. 그는 위원회 안에 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익명의 사람으로 자리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러한 블랑쇼의 주장과는 반대로 작가들은 그들의 신분의 동일성을 표방하는 쪽으로 되돌아 섰으며, 익명성에 의해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도 말을 놓을 수 있는 동료 관계를 포기하였 4) 위의 책, p.49. 5) M.Blanchot, Pour l'amitié, Fourbis, 1996, p.31.

다. 블랑쇼의 익명성에 대한 요구는 자신의 주체로서의 권력의 포기를 통한 타자에로의 열 림을 위한 의무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익명성은 바로 문학적 체험의 진 실 그 자체였던 것이다. 글쓰기나 독서를 통해 체험했던 죽음의 익명성의 경험이 한 개인이 아닌 모두에게 공통된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68 년의 혁명 상황에서 보았던 것이다. 블랑쇼가 유일하게 너 라고 말할 수 있었던 사람은, 그의 오랜 친구인 철학자 레비나스 Lévinas 와, 바로 그렇게 혁명 동안 동료로서 만난 익명의 사람들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 가 크다고 본다. 6) 여기서 블랑쇼의 문학적 체험의 진실이 한 개인의 시적 체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면 그것은 낭만주의자들의 구호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블랑쇼는 시적 체험의 심연에서 주체의 익명성의 공간으로 사라짐으로 인한 타자에로의 열림이 있음을 간파했고 7) 그것이 외적으로 실현된 모습을 보여준 예가 68 혁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 기서 우선 타자에로의 열림으로 가기 위한 주체의 소멸의 문제에 접근하여 보기로 하겠다. 소멸의 문제는 다른 말로 죽음의 문제이다. 블랑쇼는 글쓰기를 통해서 일종의 명확한 죽음une mort juste 이 무엇인가를 천착해 나간다. 예를 들어 그가 가장 자주 다루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인 릴케에게서 찾는 것은 명확한 죽음 의 가능성이다. 릴케에게 있어서 글쓰기 는 익명의 죽음이라는 위험 앞에서 자기만의 유일한 죽음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이 다. 그의 작품 말테의 수기 에 나오는 말테의 문제는 릴케 자신의 인생 전체의 문제이기 도 했다. 8) 말테에게 주어진 의문은 무엇인가? 아직 한 번도 체험되지 않았던 그의 삶의 신비가 그의 앞에서 펼쳐졌었다(...) 세상에, 아직 6) "La phila grecque est réciprocité, échange du Même avec le Même, mais jamais ouverture à l'autre, découverte d'autrui en tant que responsable de lui, reconnaissance de sa pré-excellence, éveil et dégrisement par cet Autrui qui ne me laisse jamais tranquille, jouissance (sans concupiscence, comme dit Pascal) de sa Hauteur, de ce qui le rend toujours plus près du Bien que moi. C'est là mon salut à Emmanuel Lévinas, le seul ami - ah, ami lointain - que je tutuoie et qui me tutoie ; cela est arrivé, non pas parce que nous étions jeunes, mais par une décision délibérée, un pacte auquel j'espère ne jamais manquer." 위의 책, p.35. 7) 블랑쇼의 사고는 낭만주의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그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보아야 한 다. 그것은 마치 낭만주의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던 제네바 학파의 동화identification비평을 고발 하는 그의 비평이 동화를 끊임없이 욕구하는 욕망에서부터 시작하여 그것이 불가능함을 인식함으 로부터 나온 것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조르쥬 풀레나 장 스타로벵스키 같은 제네바 학파의 비평 가들이 오히려 다른 그룹의 비평가들보다 블랑쇼에 다가가기 수월했던 것은 낭만주의에서의 현재 의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먼 과거의 심연으로 돌아가는 시적 체험에 대한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Tous les poètes sont des Narcisse, il ne faut pas se contenter de retrouver là superficiellement la marque du romantisme pour lequel la création-la poésieserait subjectivité absolue, (...) : c'est que le poème où il s'écrit il ne se reconnaiît pas, c'est qu'il n'y prend pas conscience de lui-même, rejeté de cet espoir facile d'un certain humanisme selon lequel, écrivant ou créant, il tranformerait en plus grande conscience la part d'expérience obscure qu'il subirait : au contraire, rejeté, exclu de ce qui s'écrit et, sans y être même présent par la non-présence de sa mort même, il lui faut renoncer à tout rapport de soi(vivant et mourant) avec ce qui appartient désormais à l'autre ou restera sans appartenance. Le poète est Narcisse, dans la mesure où Narcisse est anti-narcisse : celui qui, détourné de soi, portant et supportant le détour, mourant de ne pas se re-connaître, laisse la trace de ce qui n'a pas eu lieu." M.Blanchot, L'écriture du désastre, p.205. 8) L'expérience de Malte a été, pour Rilke, décisive. Ce livre est mystérieux parce qu'il tourne autour d'un centre caché dont l'auteur n'a pu s'approcher. Ce centre est la mort de Malte ou l'instant de son effondrement." M.Blanchot, L'espace littéraire, Folio, 1994(1988), p.166

도 얼마나 더 버려야 했던 것인가, 얼마나 더 잊어버려야 했던 것인가! 왜냐하면 정말로 잊어야 만 하기 때문이었다. Le mystère de sa vie qui n'avait encore jamais été vécue s'étendait devant lui(...) Mon Dieu, de combien de choses il fallait alors se dépouiller, combien de choses fallait-il oublier! Car il fallait vraiment oublier. 9) 말테는 자신의 완전한 죽음을 완수하는데 있어서 자신 앞에 끝없이 펼쳐진 알지 못하는 먼 과거 앞에서 절망한다. 그는 아주 오래 전부터의 자신의 영혼의 무덤Le tombeau de son âme de jadis 10) 속에서 방황한다. 그는 자신이 아닌 익명의 세계와의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서 개별적인 죽음, 끝까지 유일하고 개별화된 개 별적 존재une mort individuelle, individu jusqu'à la fin, unique et indivisé 11) 를 완성하 려 하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개별화된 개인인 나 아닌 누가 죽어가는 것인가? 블 랑쇼에 의하면 일상의 익명의 사람들'on' anonyme 이다. 나 의 죽음의 이면에는 언제나 익 명의 사람들이 함께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나 이전에도 있었고 나 이후에도 있는 것이다. 거기로부터 블랑쇼에게 있어 죽음의 불가능성이 도출된다. 죽어가는 일상의 익명의 사람들on이 된다는 것은 한정된 목표를 지닌 것이 아니라 끝없는 목적성finalité sans fin 을 이루는 죽어감으로, 끝이 없는 것l'interminable 이며, 그것은 바로 블랑쇼의 글쓰 기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향하게 되는 지점이기도 한 것이다. 일상Le quotidien 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장소이며, 익명의 사람들의 장소이며, 주체의 부재의 자리이다. 그러기에 그것은 언제나 소외되지 않은 채 소외된 자리이기도 하 다. 즉 언제나 우리 앞에 있으나 우리는 의식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 익명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곳으로 이끈다.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죽어간다 라는 그러한 명 제에 대해서 블랑쇼는 하이데거에게 빗지고 있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실존적이고 명확한 죽 음이란 일상의 사람들의 죽음이 아닌 개별자의 죽음을 가리키는 바, 사람들은 불명확함 속 에서 죽어가는데, 이는 언제나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이지 내가 죽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 이다.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명확한 죽음의 가능성이란 개인에게 현존재Dasein에 합당하 는 전존재l'être-entier 를 실제적으로 포착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하이데거에 따르면, 존 재자가 아직ne pas encore 이라는 시간으로 포착되는 현존재의 시간에서부터 현존재의 전 체성entièreté du Dasein을 정의하는 일에 문제가 발생한다. 12) 는 일의 불가능에 부딪힌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전체성을 정의하 죽음을 향해 가는 유일한 존재un propre être vers la mort 의 가능성을 상정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일상에서의 사람들의 죽음은 한 순수한 존재의 죽음이 아닌 죽음을 향해 있는 존재의 은폐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한 존재의 죽음에의 기투는 마치 릴케가 자신만의 유일하고 명확한 죽음을 찾고자 글쓰기를 행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9) Rainer-Maria Rilke, Les Carnets de Malte Laurids Brigge, trad. Claud David, Folio, 1991, p.247. 10) M.Blanchot, L'espace littéraire, p.168. 11) 위의 책, p.154. 12) "Il y a donc dans l'essence de la constitution fondamentale du Dasein un constant inachèvement. La non-entièreté sous-entend un restant en attente de pouvoir-être." Martin Heidegger, Etre et temps, trad., François Vezin, Gallimerd, 1986, p.289.

그러나 블랑쇼에게 문제시되는 것은 바로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라는 사실이다. 독서와 글쓰기를 통한 바깥의 경험expérience du dehors 은 주체인 나je 가 아닌 사람들on 이 죽 어 가는 사실만을 확인시켜 준다는 것이다. 13) 그러나 여기서의 사람들의 죽어 감은 앞에서 말한 누구든 상관없는 일상의 죽음과는 구별된다. 비록 나 는 사라졌다 할 지라도 나 의 빈 자리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 가 사라진 자리는 밀도를 가진 일종의 긴장성이 존재하는 자 리로, 바로 바깥의 경험을 통한 사람들의 죽어감을 체험하는 자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 한 일상성이라기보다는 밀도와 긴장성을 지닌 주체성 없는 주체sujet sans subjecivité, 혹 은 나 없는 나moi sans moi 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이때 주체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indécis 상태에 있으며 되어감en devenir 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블랑쇼가 어째서 작가의 모습을 아브라함의 모습에 비유했는가를 알 수 있다. 글쓰기의 움직임을 따 르는 작가는, 아브라함이 아들을 신에게 바치기 위해 모리아 산으로 가는 길에서 완전한 신 앙과 광기 사이의 불안의 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처럼, 텅 빔과 불안의 상태에 있다고 여기 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안에는 이미 아들 이삭의 죽음이 존재한다. 아브라함이란 존재는 타자의 죽음으로 대체된 불안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불안은 이삭의 죽음이 이미 아 브라함의 안에서 수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은 점차로 소멸되어 타자의 죽음을 수 행하기 위한 텅 빈 공간이 되는 것이다. 소멸된 주체를 두고 존재에 대해 논할 수 없으므 로, 존재는 잠시 폐기되었거나 아직 한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해야 한다. 블랑쇼에게 있어 서 중요한 것은 바로 그러한 존재를 대체한 불안의 비표출성Le non-manifeste de l'angoisse 이다. 그리고 주체가 사라진 자리에서 불안의 상태는 죽어가는 사람들Le on qui meurt 의 파편화된 상태에 비교된다. 그는 주체인 나 가 자신의 죽음과 함께 타자의 죽음도 항상 동반하고 가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즉, 타자의 죽음이 나의 진정한 죽음을 수행한다 는 것이다. 블랑쇼는 진정한 죽음이란 결국 사람들on 의 진리 속에서만 실현되는 것으로 본다. 블랑쇼의 사고의 중요 테마 중의 하나는 그렇게 해서 익명성anonyme의 요구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익명성이란 진정한 죽음이란 공적인 죽음La mort commune 의 수행을 가 리키는 바, 68 의 상태는 바로 공적인 죽음 이 실현된 모습으로, 블랑쇼는 그것을 문학의 공 간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타자의 죽음을 수반하는 텅 빈 공간으로서의 나 moi comme espace vide 는 어떤 시간성 속에 거주하는 것인가? II. 시의 실현과 문학적 공동체 주체의 소멸과 함께 익명의 사람들le on anonyme이 죽어가는 사건의 시간성을 알기 위 해 우선 일상의 세계를 하나의 텍스트라고 가정해 보자. 나 라는 독자가 지금maintenant 13) 존재의 확실성을 나타내는 데카르트의 고기토는 블랑쇼에게서 전복된다. 공허의 체험! 비존재의 체험! 나는 말을 시작하는 순간, 나는 ( 나를)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때부터, 나는 내가 존재하 지 않음을, 다시 말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나의 언어행위는 나의 존재를 내게서 걷어간다. 그것은 데카르트의 고키토와는 다른 야릇한 블랑쇼의 고기토이다. 나는 생각한 다. 나는 이제 존재치 않는다. 단어들은 나-자신- 가 아닌 것을 내 안에 자리잡게 한다. 나의 유령 이 나를 차지한다. 나는 내게서 무한히 멀어져 있다. ( 조르쥬 풀레, 비평과 의식, 조한경 역, 탐구당, 1990, p.219.)

텍스트에 접하기 이전에 이미déjà 수많은 익명의 독자들이 텍스트를 맞대고 있었다고 가정 할 수 있다. 지금의 나 는 죽어감의 수동성passivité du mourir 에 이끌려 나 라고 말할 수 있는 주체의 권력을 상실하고, 그 상실 속에서 이미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 들 어간다. 블랑쇼에게 사건으로서의 죽음mort이 아닌 죽어감mourir이 중요한 이유는 죽어감 이 주체의 소멸 속에서 사람들의 죽어감에 동참하고 있는 행위의 지속성을 나타내기 때문이 다. 다시 말하면, 나의 죽음으로서는 끝나지 않는 끊임없는 죽어감의 진실에 다가감을 가리 키는 것이다. 그러한 경험이 말해주는 것은 늘 나 의 죽음을 선행하는 사람들의 죽어감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나의 완전한 사라짐, 즉 죽음은 불가능한 것이 된다. 내가 타인들과 함께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행해지고 있는 것이지만 각각의 개개인에게는 매번 유일 한 사건이 된다. 독서에서의 그 순간은 책의 부재를 경험하는 순간과 일치하며, 책의 부재 는 책을 선행하는 사람들의 죽어감, 달리 말하면 일종의 먼 과거를 알린다. 이 먼 과거와의 관계는 선적인 시간성 속에 속하는 사람들의 일상성La quotidienneté du on 이 아닌 새로 운 공동체와의 관계 속으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on은 자연nature 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끝없는 글쓰기나 독서의 작업에 서 체험되는 주체의 죽어감의 수동성passivité du mourir에로의 이끌림을 통해서 오는 것이 다. 우리는 여기서 블랑쇼가 수동성을 재능인 동시에 극단의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작업 tâche 이라고 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에 의하면 글쓰기나 독서에서의 재능don이란 주체의 권력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으로부터의 소외와도 같은 작가나 독자의 미약함으로부터 온다. 그것은 물러섬이며, 제거됨이며, 뿌리뽑힘이며, 무엇보다도 자아의 사라짐이다. 재능이란 부 여할 권력을 남겨 놓지 않는 수동적인 정열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은 곳 에, 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곳에, 저항하면서도 나 스스로를 데려다 놓도록 강요하는 것이 다. (C'est) retrait, soustraction, arrachement et d'abord suspens de soi. Le don serait la passion passive qui ne laisse pas le pouvoir de donner, mais me déposant moi-même, m'oblige en me désobligeant là où je n'ai plus, ne suis plus,(...) 14) 재능이란 결국 영웅적인 삶에 도전하는 자유로운 주체에게 주어진 것이 아닌, 수동적 정 열에 이끌려 타자의 압력과 바깥의 경험La pression de l'autre et l'expérience du dehors 하에 드러나는 주체의 적나라하고도 미약한 모습을 가리킨다. 블랑쇼에게 있어서 수동성을 특징짓는 것은 망각이다. 망각을 통해 먼 과거를 기억해 낸다. 즉 망각은 일종의 기억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때 기억해내는 먼 과거란 다만 우리가 밟았던 지나간 삶 의 자취와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닌 타자의 공간 그리고 비존재의 영역에까지 관련 된 것이다. 그는 이것을 기억할 수 없는 것l'immémorial 이라고 말한다. 즉, 선적인 시간성에 속하는 것도 아니며, 우리의 지식의 역사l'histoire du savoir에 한 번도 들어오지 않은 것 으로, 우리는 영원히 그것의 진실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우리의 역 사로부터 빗겨간 것으로 다른 역사autre histoire 에 속하며, 죽어감에의 수동성에 의한 주 체의 소멸에 의해서 마치 순수한 긍정pure affirmation 처럼 경험되는 것이다. 15) 14) M.Blanchot, L'écriture du désastre, Gallimard, 1993(1980), p.141.

블랑쇼에게는 그 먼 과거의 도래가 시의 실현과 관계한다. 그에게 먼 과거는 신성함le sacré 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주목할 만한 점은, 블랑쇼가 유독 독일 시인 횔덜린에 대한 글에서만 수차 신성함에 대해 언급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밝히는 데에는 블랑쇼가 야스퍼스의 글에 바친 서문과 문학의 공간 에 마지막 부분인 횔덜린 의 도정 이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그 글들을 통해 우리는 블랑쇼가 가장 위대하게 평가하 는 시인 중의 한사람이 횔덜린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횔덜린에게서 먼 과거와의 관계, 즉 신성함과의 관계는 그의 시들 속에서 익명의 존재가 된 시인 자신과 신성함과의 관계로 나타나는데 이 관계는 다름 아닌 사랑이라고 한다. 블랑 쇼에 따르면 시는 신성함과 소멸된 주체의 관계가 반복되는 곳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그 반 복의 움직임 자체가 바로 리듬이다. 여기서 블랑쇼는 놀랍게도 횔덜린의 시적 체험과 니체 의 영겁 회귀Eternel Retour 를 한자리에 갖다 놓는다. 16) 영겁 회귀를 신성함과의 소통 행 위로 본 것이며, 그 소통이 시 자체라는 것이다. 17) 그리고 블랑쇼가 생각하는 문학적 공동 체란 이 소통과 관계된다. 여기서 신성함과의 소통을 수행하는 주체인 나 는 소멸되어 텅 빈자리lieu vide 가 되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 텅 빔의 자리에서 블랑쇼에 따르면 우 정amitié 이 성립한다. 이 때의 우정은 누군가와의 관계가 아닌 회귀하는 움직임 자체와의 관계를 의미한다. 그 움직임과 나 가 아닌, 나 의 사라짐으로 드러난 익명의 죽어가는 사람 들le on anonyme qui meurt 과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블랑쇼에게는 문학 적 공동체communauté littéraire 라고도 불릴 수 있는 것이다. 블랑쇼에게 있어서의 진정한 나 는 그러한 관계가 이루어지는 장소로, 그는 그것을 가리켜 중성적인 것neutre이라고 부 른다. 그의 책 나를 동반하지 않았던 자Celui qui ne m'accompagnait pas 를 보면, 중 성적인 것은 나레이터도 그의 동반자도 아닌 한정되지 않은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즉, 중성 적인 것은 나레이터와 동반자 사이에 존재하는 틈으로, 그 둘을 연결시키는 동시에 떨어뜨 려 놓기도 하는 공간이다. 나를 동반하지 않았던 자Celui qui ne m'accompagnait pas 는, 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동체의 부재, 혹은 부정적 공동체를 그리고 있다. 그 이유는 공동체는 중성적 인 것에 위치하는데 그것은 서로 간의 벌어진 틈이기 때문이다. 나레이터와 그의 동반자는 15) 조르쥬 풀레에 따르면, 모리스 블랑쇼는 프루스트보다도 더 극심하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나선 사람이라고 한다. 조르쥬 풀레, 비평과 의식, p.220. 16) (...) Un dieu fou, comme Hölderlin et comme Nietzsche le surent toujours et jusqu'à ne plus le savoir, éveille encore pour les hommes d'aujourd'hui une pensée qui ne se laisse pas maîtriser, soit qu'on l'entende comme le pressentiment que même l'ordonnance divine serait sous la menace d'un dérangement qui est "hors" d'elle tout en lui appartenant, soit que cette pensée fasse surgir, par Dionysos, en une alliance incompatible, la présence du dieu, qui n'est que présence et l'extériorité radicale qui exclut toute présence, y compris celle du dieu. Le dieu fou : la présence du dehors qui a toujours déjà suspendu, interdit la présence. Soit l'énigme de l'eternel Retour qui, portée par Nietzsche, ne le fut pas moins par Hölderlin, peut-être." M.Blanchot, "La folie par excellence"(pp.9-33), préface in Karl Jaspers, Strindberg et Van Gogh et Van Gogh, Swedenbourg, Hölderlin, Ed. de Minuit, 1976, pp.31-32. 17) 블랑쇼에게 있어서 시적 언어는 다른 말로 최초의 말이기도 하다. 블랑쇼에 따르면 최초의 말을 기다림이 광기라고 한다. 먼 과거의 도래는, 시적 언어가 지나가는 자리를 만들기 위한 주체의 소 멸에 의한 것으로, 블랑쇼의 눈에는 이 최초의 말들에 가장 충실하게 자신을 내어준 이들 중의 한 사람이 바로 횔덜린이다.

각자 작품의 근원적 고독에 연결되어 있음으로 해서, 중성의 문학의 공간 속으로 침잠하게 되는 것이다. 나레이터와 동반자 사이에는 어떠한 관계도 없는데, 이는 그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을 구별하는 개성적인 모습을 잃어버림으로 인해서 익명의 존 재가 되려 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을 떨어뜨려 놓는 빈 장소의 긍정에 의해서만 가능한 작품의 경험을 함께 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작품의 경험 속에서 나레이터와 동반자는 서 로 상대방에게 감탄한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대단히 특별하지 않은가? Sommes-nous si extraordinaires l'un pour l'autre? 18) 새로운 문학적 공동체는 작품의 경험을 통해 일종의 밀도 짙은 긴장성을 만들며 존재하 게 된다. 그와 같은 문학적 공동체는 작품을 향하는 글쓰기나 독서의 경험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문학적 공동체와 관련하여 글쓰기나 독서 행위의 매개물인 책의 존재의 측면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III. 부재의, 소외된 공동체의 긍정을 위한 글쓰기의 요구 블랑쇼는 존재라는 말을 인간이라는 주체보다는 책에 초점을 맞추어 자주 언급한다. 그 가 주체의 죽어감 대신 책의 죽어감mourir d'un livre 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 주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블랑쇼에 따르면, 책이 글쓴이의 지식의 전체성totalité du savoir을 가리키는 한 그 책은 아직 시적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책은 죽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누구 의 소유도 아닌 익명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 때에만이 책은 모두의 책이 되며, 시는 일 상의 것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죽어감이란 것은 책에 쓰여진 것이 소멸되어 가는 움직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궁극에는 책의 부재를 긍정하며 말의 폭발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책이 사 라진 자리에서 폭발하는 말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는 것이 아닌 익명의 상태에 있는 모 든 사람들에게 속하는 말이다. 19) 결국, 말은 발화자를 알 수 없는 말들로, 바로 익명의 사 람들on anonyme 의 말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말들이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무엇 인가? 그것은 이제까지 소외되었던, 즉 부재의 공동체의 긍정을 가리킨다. 공동체는 어느 누구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있는 것이며, 중성적인 것에 결합된 것이다. 중성적인 것이 그 토대이며, 이름이며, 허구 대신 권위를 가지는 실재하지 않는 동반자의, 보이 18) M.Blanchot, Celui qui ne m'accompagnait pas, Galliamrd, 1987(1953), p.88. 19) 블랑쇼에 따르면, 그러한 책의 죽어감과 시의 실현의 상태를 잘 나타내 주는 것이 바로 68년 5월 학생운동이다. Contrairement aux révoutions traditionnelles, il ne s'agissait pas de seulement prendre le pouvoir pour le remplacer par un autre,..., mais de laisser se manifester, en dehors de tout intérêt utilitaire, une possibilité d'être-ensemble qui rendait à tous le droit à l'égalité dans la fraternité par la liberté de parole qui soulevait chacun. Chacun avait quelque chose à dire, parfois à écrire (sur les murs); quoi donc? cela importait peu. Le Dire primait le dit. La poésie était quotidienne." M.Blanchot, La communauté inavouable, Minuit, 1983, pp.52-53.

지 않는 동반자의 이타성이다. La communauté ne désigne personne. Elle est, elle se conjugue au neutre. Le Neutre est le fond, le nom, l'altérité du partenaire invisible, du partenaire fictif, qui prend autorité au lieu de la fiction. 20) 공동체는 주체들에 의해서 정의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실체가 아니라 부재이기 때문 이다. 낭시Nancy 의 La communauté désoeuvrée, 블랑쇼의 La communauté inavouable, 바따이유의 L'absence de la commuanauté 는 모두 그러한 텅 빔, 중성적 인 것 의 경험이 가져다주는 공동체의 성격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블랑쇼에게 있어서 소외 의 제일 원인은 신 대신 바로 그 텅 빔이다. 풀레에 따르면, 신자들에게는 신이 편재하듯 이 블랑쇼에게는 텅 빔이 편재 21) 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블랑쇼에게 있어서 신성의 개 인적 구현은 부재하는 공동체에까지 이르는 주체의 소멸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 의 죽 어감으로 인해 지복béatitude 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구원을 부정하면서도 그가 고집스 럽게 계속해서 다루었던 작가 카프카에게서 구원의 주제를 찾으려 했던 블랑쇼에게 신에 대 한 성찰이 없었을 리는 없다. 부재하는 공동체란 어쩌면 그 뒤에 소외된, 숨겨진 신을 감추 고 있는 지도 모른다. 22) 글쓰기와 구원의 주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여기서 자신의 사생활을 고집스럽게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았던 은둔의 작가 블랑쇼의 생에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 다고 생각된다. 거의 마지막에 그가 내놓은 책 중의 하나인 20여 페이지밖에 안 되는 짧은 글 나의 죽음의 순간L'instant de ma mort 은 자서적인 성격을 띤 글이라고 한다. 데리다Derrida 는, 나의 죽음의 순간L'instant de ma mort 을 해석한 책 거주처 Demeure 를 내놓는데, 여기서 그는 블랑쇼의 글이 2차 대전 중의 그의 경험과 그의 글쓰 기와의 관계에 대한 증언이라고 해석한다. 나의 죽음의 순간 을 보면, 젊은이( 블랑쇼) 는 한 순간 집에 쳐들어온 군인에 의해 죽음의 위험에 처한다. 총살당하기 직전 그는 일종의 지복( 至 福 ) 을 느낀다. 말하자면, 젊은이는 죽음의 순간을 일종의 망각의 가벼움처럼 겪었던 것이다. 블랑쇼의 글쓰기는 그 망각에 대한 기억으로, 그 망각은 죽어감의 수동성 속에서 망각에 의해 다시 체험되는 것이다. 망각에 의해 망각을 기억하는 행위가 글쓰기이다. 글쓰 기는 그의 죽음의 순간을 다시 체험하는 것이며, 그 행복의 순간을 다시 사는 것이다. 블랑 쇼의 글쓰기는 그 순간의 반복을 행할 뿐이다. 다만 죽음 자체이기도 한 가벼움의 느낌만이 거주하거나, 혹은, 더 명확히 말하자면, 이제부 터는 항상 요청 중에 있는 나의 죽음의 순간만이 거주한다. 20) Cristophe Bident, M.Blanchot Partenaire invisible, Champ Vallon, 1998, p.451. 21) 조르쥬 풀레, 비평과 의식, p.224. 22) 블랑쇼는 인간 중심의 관점을 가진 사르트르처럼 제도화된 종교가 인간의 가치 체계에 미친 영향 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신과의 관계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고 보인다. 단지 무신론자일 수도 있었던 파스칼이 주사위를 던져 무 대신 신을 택했다면 그는 무나 부재하는 신, 숨은 신을 택 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여기서 신이란 여타의 제도화된 종교와 관련된 신이 아닌. 독일의 낭만주의자들이 인정하였듯이 종교적 체험과 시적 체험이 일치하는 경지( 즉, 그것은 결국 문학의 고유영역이 되는 것이다) 속에서 인정되는 그 어떤 타자를 말한다. 블랑쇼가 글쓰기의 순수한 움직 임을 따르는 작가를 신의 명령에 따라 아들을 살해하러 가는 아브라함이나, 부재하는 신의 도래를 기다리며 신의 말(Parole de Dieu) 에 복종하는 사산분리 되어 유랑하는 민족 유태인에 비교했던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Seul demeure le sentiment de légèreté qui est la mort même ou, pour le dire plus précisément, l'instant de ma mort désormais toujours en instance. 23) 죽음mort의 순간을 위해 죽어가는mourir 행위, 즉 사라짐의 행위에 의해 지속시키고자 하는 것, 그것은 글쓰기의 행위를 통해서 부재중인 것, 소외된 것을 기억해내고 긍정하는 일인 것이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은 그의 고유한 죽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아우슈비 츠에서의 유태인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기도 하며, 더 멀리는 현재의 시간에 존재하지 않는 먼 과거로부터 도래하는 타자를 기억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결론 이상과 같이 블랑쇼에게서 독서와 글쓰기가 다가가는 문학의 공간을 통해서 어떻게 일종 의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블랑쇼에게서 문학의 공간, 즉 중성적인 것은 독서와 글쓰기가 불가능한 곳에서 시작된다. 언어가 소멸하는 곳, 언어가 파괴된 그 지점부 터 바깥(dehors) 과의 관계에 의해 새로운 본질적 언어가 생성된다. 본질적 언어는 거의 비 언어 24) 에 가까운 것으로, 표현 불가능함의 진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블랑쇼는 자신의 책 발설할 수 없는 공동체La communauté inavouable 의 결론 부분에 부쳐 말할 수 없 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는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문구를 다시 인용하며, 침묵하 기 위해서는 새로운 말, 즉 본질적 언어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 그 새로운 언어는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와 떨어져 유토피아적인 세계를 꿈꾸도록 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미 지의 자유의 공간에서 맺어지는 새로운 관계, 즉 일종의 공동체와 관련된 것으로 소외된 부 재 자체를 기억하게 해주는 것이다. 참고문헌 I. 블랑쇼의 작품 Blanchot, M., Celui qui ne m'accompagnait pas, Gallimard, 1987(1953). -, L'espace littéraire, Folio, 1994(1955). -, L'écriture du désastre, Gallimard, 1993(1980). -, La communauté inavouable, Ed. de Minuit, 1983. -, L'instant de ma mort, Fata Morgana, 1994. -, Pour l'amitié, Fourbis, 1996. -, "La folie par excellence"(pp.9-33), préface in Karl Jaspers, Strindberg et Van 23) 유랑, 소외의 상태 등의 의미를 상대적으로 부각시켜 줄 수 있는 거주처 에 대한 의미를 강조하 기 위해 'demeurer' 란 단어를 일부러 거주하다 라고 번역하였다. M.Blanchot, L'instant de ma mort, Fata Morgana, 1994, p.20. 24) 블랑쇼는 이를 비이성적 언어, 비변증법적 언어라고도 하였다.

Gogh, Swedenbourg, Hölderlin, Ed. de Minuit, 1976. II. 블랑쇼에 관한 참고문헌 Antonioli, M., L'écriture de Maurice Blanchot, Kimé, 1999. Bident, C., M.Blanchot Partenaire invisible, Champ Vallon, 1998. Derrida, J., Demeure, Galilée, 1998. III. 기타 참고문헌 Heidegger, M., Le temps et l'être, trad. François Vezin, Gallimerd, 1986. 뤽 페리, 알렝 르노 지음, 68 사상과 현대 프랑스 철학, 구 교찬 외 5 인 역, 인간사랑, 1995. Rilke, L-M., Carnets de Malte Laurids Brigge, trad. Claude David, Folio, 1991. Résumé La communauté blanchotienne à travers l'espace littéraire PARK Kyou-Hyun Notre article vise à examiner la possibilité d'une communauté, communauté qui se forme dans l'espace littéraire. Le mot commuanuté n'est pas sans rapport avec le communisme de Marx. Dans l'essai de L'amitié consacré à une approche du communisme, Blanchot lie encore une fois le destin de ce qui a été pensé sous le nom de communisme à l'avenir tout autre qui nous attend. Cependant, en ce qui concerne la communauté blanchotienne, nous avons pointé sur la dimension ouverte à l'accueil immédiat de l'autre dans l'expérience de la lecture et de l'écriture. Et particulièrement, nous avons remarqué le fait que Blanchot trouve une correspondance entre ce qui s'est passé en Mai 68 en France et l'espace littéraire dans lequel l'écrivain ou le lecteur vit l'expérience de la mort anonyme. En Mai 68, Blanchot voit la réalisation de la poésie quotidienne et la mort publique et anonyme à travers l'absence de livre. L'écriture fragmentaire remplace le livre. Tout le monde parle en toute liberté. Là, surgit la parole de Nous. Pour Blanchot, l'écriture est une tâche interminable qui doit répéter ce qui se révèle dans la vérité de l'anonyme du on, comme ce qui nous est depuis toujours comm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