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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 영국 내셔널트러스트 보전지역 탐방기 - 울산지리교사모임 이태국 호수지방에 위치한 힐 탑(HILL TOP) 입구에서 일시 : 2006년 8월 8일(화) -8월 18일(금) 탐방 지역 : 잉글랜드 및 스코틀랜드 지역 후원 : 환경부 주최 : (사)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참가 : 울산지리교사모임

- 영국 탐방 일정 - 2006 년 구 분 일 정 내 용 비 고 울산 출발(02:30) - 인천 국제공항 도착 8. 8 (화) 인천공항 출발 (한국시간 13:30) 런던 히드로 공항 도착 (영국 현지 시각 - 17:05) 런던 출발 애딘버러 (장거리 버스로 이동- 1박) 탐 8. 9 (수) 애딘버러 도착 (07:20) - 렌터카 인수 및, 숙박지 결정 스코틀랜드 내셔널 트러스트 본부 탐방 시내 답사 - 애딘버러 성, 칼튼 힐,조지안 하우스(2박) 방 8. 10 (목) 8. 11 (금) 8.12 (토) 하일랜드 지역 탐방 (글렌코 지역- 빙하지형 답사), 네스 호 글래스고우에서 숙박(3박) 애딘버러에서 호수지역으로 이동 호수지역 도착 (윈더미어)- 글래스미어에서 숙박(4박) 오전 - 힐 탑 방문 오후 - 체스터로 이동 (5박) 일 8.13 (일) 오전 - 체스터 시내 답사 오후 -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아이언 브리지 계곡 일대 탐방(6박) 8. 14 (월) 오전 - 아이언 브리지 철 박물관 관람 오후 - 레이콕 (내셔널 트러스트 지정 보전 마을) 방문 - 바스, 체다협곡을 거쳐 솔즈베리로 이동 (7박) 정 8. 15 (화) 8. 16 (수) 8. 17 (목) 8. 18 (금) 오전- 솔즈베리 대성당 및 스톤헨지 탐방 오후- 세븐시스터즈의 비치헤드 탐방 렌트카 반납 (히드로 공항) 후 런던에서 숙박(8박) 런던 시내 답사 - 자연사박물관, 대영박물관, 내셔널갤러리 (9박) 오전- 런던 답사 및 그리니치(Greenwich) 천문대 탐방 오후-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출발 (영국 현지시간 21:00) 인천공항도착 (15:50) 및 울산 도착

영국 내셔널트러스트 (Nationtrust) 보전지역 탐방기 울산지리교사모임 이태국 이번 영국 탐방은 작년에 울산지리교사모임에서 울산 생명의 숲과 연대를 하여 울 산광역시 온산읍에 위치한 이진리( 梨 津 理 ) 해안 보전 운동을 펼치던 중 한국내셔널 트러스트에서 개최한 2005년, 제3회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보전대상지 시민공모전 에 응모를 하여 대상 (환경부장관상) 을 수상한 기념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영국 내셔널트러스트 보전지역 탐방의 기회를 제공해 주시고 여러 가지 지원을 해 주신 한국내셔널 트러스트 및 환경부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첫째날 (8월 8일) - 울산 이진리( 梨 津 理 ) 에서 영국으로 2006년 8월 8일 새벽 2시 30분, 일행들과 함께 울산시외버스터미널에 모여 인천 국제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보통의 해외여행이라면 설렘이 많았겠지만 이번 영국탐방은 다소 부담이 되는 사항들이 있어 한편으론 무거운 마음이 앞섰다. 일단 이번 여행은 단순히 영국을 관광하는 것이 아니라 내셔널트러스트 보전지역을 탐방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기 때문에 체류 기간 (9일)동안 탐방 경로를 결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울산지리교사모임 회원 4명으로 이루어진 우리 일행은 출발 전 몇 차례 모임을 가지면서 최종적으로 탐방 경로를 영국 북쪽의 스코틀랜드(Schotland)의 애딘버러 (Edinburgh)에서 출발하여 남쪽으로 계속 내려와 마지막에 런던(London)에 도착하 는 것으로 하였다. 또 하나의 어려운 점은 탐방지역을 제대로 돌아다니기 위해서 현지에서 렌터카를 이용하기로 한 점이다. 운전을 맡게 된 나로서는 운전석도 반대 이고 도로주행 체계도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른 상황이 큰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한 때 근대 서구 문명의 중심 국가를 자처했던 영국을 언젠 가는 한 번 가보고 싶었고 또 이런 기회가 앞으로 쉽게 오지 않을 것 같아 다소 힘은 들겠지만 과감하게 진행해 보기로 하였다. 참고로 내셔널트러스트(Nationtrust) 운동이란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을 통해 자 연 및 문화 유산지역의 땅을 매입이나 임차 등의 방법으로 영구 보전하는 운동으로 1895년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었다. 그 당시 영국은 이미 산업화와 무분별한 도시

개발로 인해 자연환경 및 생활환경이 많이 파괴되어 가던 시기였고 동시에 이를 해 결하고자 하는 시민의식들도 서서히 깨어나던 시기였다. 창립 멤버는, 그 당시 빈 민들의 주거지 재개발에 앞장섰던 옥타비아 힐(Octavia Hill) 여사, 공유지 보전협 회의 명예 변호사였던 로버트 헌터(Robert Hunter), 성공회 신부였던 하드윅 론슬 리(Hardwicke Rawnsely) 등의 3명으로 처음에는 아주 초라하게 출발했지만,현재 는 회원 수만 해도 310만 명이 넘는 영국 최대의 시민운동단체(NGO)로 성장하였 다. 한편 그 동안의 발전 과정에서 전 국토의 1.6%, 해안선의 18%, 역사적 건물 200개 이상 등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시민들이 직접 이 운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각종 다양한 체험활동과 이벤트 및 교육활동도 같이 병행하고 있다. 한편 이 운동은 현재 미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전 세계 25개국에 전파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도에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정식으로 출범되었다. 7월 29일, 영국으로 출발하기 10일 전쯤 우리 일행은 다시 한 번 이진리 해안을 찾아가 보았다. 해안에는 벌써 큰 규모의 공장도 세워지고 있었는데 타포니 (Tafoni) 지형이 나타나는 일부 암석만이 위태롭게 남아있었고 대부분은 거의 훼손 된 상태였다. 그리고 화강암 절리( 節 理 ) 등이 잘 나타난 인근 지역의 산들도 흉측 하게 깎여 나가고 있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자연의 유산들이 한순간에 훼손이 되어 버린 광경을 보며 우리는 씁쓸한 마음을 안고 영국으로 향했다. 사진 1. 최근 이진리 해안에 들어서고 있는 공장 사진 2. 최근 원형이 거의 훼손된 이진리 해안 ( 최근 보도 자료에 의하면 울산시와 울산지방해양수산청에서는 온산읍 이진리 해안에 위치한 총 57개의 암석군 중 임야지역에 위치한 암석과 이미 훼손된 암석을 제외한, 신항만 개발지역에 있는 16개의 암석군 중 12개는 원형 보전하고 4개는 이전 복원하여 그 일대를 수변( 水 邊 )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임을 공식적으로 표명하 였다. 또한 이진리 해안을 상징하는 범바위를 최대한 원형그대로 보존하기 위해일 부 해안시설계획을 변경한다는 계획도 발표하였다. - 경상일보 2006년 11월 8일자 )

울산을 출발한지 5시간 정도 걸려 아침 7시 30분경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일행 중 한 분은 다른 일로 이미 서울에 와 계셨기 때문에 공항에서 바로 합류하 게 되었다. 우리는 아직 출발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여유를 가지고 여러 가지 준비 상황을 다시 점검해 보았다. 8월 8일 오후 1시 30분경,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영국의 대표적 관문 인 히드로(Heathrow)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현지시간으로 8월 8일 오후 5시 20분 경 이었다.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11시간이 넘는 장시간 비행에 다소 지친 상태였 지만, 일단 공항 내 버스터미널로 가서 미리 예약해 둔 애딘버러 (Edinburgh)행 차 표를 끊은 다음, 간단하게 터미널에서 빵과 음료로 저녁을 해결하였다. 버스 시간 이 맞지 않아 다시 약 3시간 정도를 기다린 후 승차할 수 있었는데, 버스가 애딘 버러로 바로 가지 않고 일단 런던 시내로 다시 들어가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되는 방식으로 운행되어 우리를 더 힘들게 하였다. 오후 10시가 휠씬 넘어 런던 시내에 위치한 빅토리아 코치 역(Victoria Coach Station)이란 곳에 도착한 우리는 다시 야간 장거리 버스로 갈아탄 뒤. M1 도로를 따라 밤새도록 북쪽으로 이동을 하였다. ( M1은 영국 최초의 자동차 전용도로, 즉 고속도로인데 우리나라로 말하면 경부고속도로 와 같은 존재이다. 참고로 영국의 도로는 크게 세 종류가 있는데 도로 표지판 숫자 앞에 M이 붙으면 고속도로이며, A자가 붙으면 국도, B자가 붙으면 지방도로에 해당된다.) 한편 영국은 세계 최초로 철도(1825년) 및 지하철(1863년)을 운행한 나라지만 상 대적으로 고속도로의 발달은 늦어 1958년에 와서야 정식으로 고속도로가 등장했다 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엄청나게 다른 좋은 점이 있다. 바로 통행료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해 보니 영국의 지형적인 요인도 있겠 지만 우리나라에 비해 굴곡도 별로 없고 노면의 상태도 괜찮아 주행하기는 좋았다. 비행기와 버스를 타고 계속 이동한 탓인지 도무지 영국에 온 실감이 나질 않다가 동이 틀 무렵 문득 잠에서 깨어 차창 밖을 보는 순간, 비로서 영국에 왔다는 기분 이 들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능선의 낮은 언덕과 그 사이에 펼쳐진 푸른 초원들이 밝아오는 여명 속에 그림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전형적인 영국 농촌의 풍경과 함께 힘든 첫 날의 일정도 서서히 지나가고 있었다. 둘째날 (8월 9일) - 스코틀랜드(Schotland)의 수도 애딘버러(Edinburgh)에서 약 10시간이 걸린 장거리 버스 여행(?)은, 8월 9일 아침 7시 20분경 드디어 애딘

버러Edinburgh)의 북쪽에 위치한 세인트 앤드류(St. Andrew) 버스 정류장에 도착 하면서 끝이 났다. 애딘버러의 첫 인상은 무척 고풍스러웠다. 15세기 초 인근의 퍼 스(FORTH)로부터 수도( 首 都 )의 자리를 넘겨받은 이 도시는 잉글랜드에 대한 스코 틀랜드(Schotland)의 기나긴 저항과 독립 투쟁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곳이다. 인구 규모면에서는 글래스고우(Glasgow)에 이어 스코틀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약 46만명)이지만 명실상부 스코틀랜드의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도시 이다. 특히 최 근에는 국제페스티벌로 더욱 더 유명해졌으며, 북부의 아테네로 불릴 정도로 매력 적인 멋을 가진 도시이다. 우리가 방문한 시기가 마침 국제페스티벌 행사 기간이 되어서 시내 곳곳에 축제를 알리는 포스터가 부착되어 있었다. 이 축제는 루돌프 빙이라는 오페라 감독에 의해 제안이 되어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고 유럽의 평화와 단결을 위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규모가 큰 축제로 성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 도시의 가장 중요한 전략산업이 되어 있다. (2005년 기준으로 무려 약 3500억원의 경제적 효과가 유발되었다고 함). 오페라, 연극, 음악회, 발레. 재즈, 민속음악 등 모든 형태의 공연이 행해지며. 특 히 이 중에서도 이 축제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일등 공신은 독특하고 창조적 인 형식과 내용을 가진 프린지(Fringe) 라는 공연이다. 변방 또는 주변 이라는 뜻의 프린지는 말 그대로 애초에 주최 측으로부터 정식으로 초청을 받지 못한 무명( 無 名 )의 공연 단체들이 길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료공연을 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누구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는 장점으로 항상 새로 움과 활력이 넘치는 프린지는 현재 페스티벌의 가장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고 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이 축제에 참가하는 예술인과 단체들이 증가하고 있는 데, 대표적인 문화상품인 난타 도 1999년 이 곳의 프린지페스티벌에서 얻은 성과를 토대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으면서 꿈의 무대라 불리는 뉴욕의 브로드웨이 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보다 위도상으로 휠씬 북쪽에 위치해서 인지 8월인데도 늦가을 날씨처럼 제법 쌀쌀한 편이었다. 다소 추위를 느끼면서 버스정류장에서 나온 우리들은 우선 렌터카 영업소 및 스코틀랜드 내셔널 트러스트 본부의 위치를 알기 위해 관광안내 소가 있는 프린시스 거리(Princes Street) 로 향했다. 한편 애딘버러는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동서( 東 西 )로 가로지르는 이 거리를 경계로 북쪽의 구( 舊 )시가지와 남쪽의 신( 新 )시가지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이 도 시의 거리 명칭에는 어떤 의미들이 담겨져 있다. 다소 혼잡한 구( 舊 )도시의 거리 지명에는 마켓 이라는 글자들이 많이 들어가 있는데. 예를 들면 market street, lawn market. grass market 등, 이는 과거에 이 지역이 상업이 발달한 지역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반면 18세기 이후 새로이 계획적으로 조성된 신( 新 )시가지

구역에는 그 당시 잉글랜드의 왕실과 좋은 관계 맺고자 하는 맥락에서 왕실 가문의 이름을 그대로 쓴, 예를 들면 Hanover street, Queen street, George street, Charlotte spuare 등 일종의 사회적 계급 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이는 지명들이 부여되고 있다. 경관적인 특성에 있어서는 구( 舊 )시가지가 약간 무질서한 토지이용을 보이며 고밀 도의 임대 주택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 반면, 신( 新 )시가지는 치밀한 도시계획 끝에 만들어져 직선과 직사각형 광장의 형태를 보이며 우아함을 지니고 있다. ( 하지만 이런 신시가지의 질서 정연함은 이 도시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에겐 때 론 길을 잃어버리게 할 수도 있다. 실제 이 날 신시가지에서 차를 주차한 뒤 나중 에 그 장소를 찾지 못해 한참을 돌아다니기도 하였다. 워낙 건물들이 비슷비슷 해 서...) 프린시스 거리에서 제일 먼저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검은 색으로 단장된, 다소 기괴한 모습으로 서 있는 거대한 탑이었다. 얼핏 보면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우 주선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탑이 바로 중세 영국의 앵글로 색슨족과 노르만족간의 대립을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인 아이반호 라는 작품을 쓴, 스코틀랜드가 낳은 위대한 문인 월터 스코트(Walter Scott :1771~1832)를 기념하는 탑이다. 1844년에 조성된 고딕양식의 이 탑은 높이가 약 60m로서 런던 트라팔카 광장의 넬슨 제독 기념탑보다 일부러 약간 더 높게 설계하여 오늘날 스코틀랜드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상징이 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스코틀랜드인들은 탐구정신이 강하고 창의성이 뛰어나 탐험 및 학문과 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이 많다. 최초로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 인류최초로 남극을 탐험한 스코트. 아프리카를 탐험했던 선교사 리빙스턴, 최초의 전화기 발명자인 벨. 페니실린을 발명한 플레밍, 자유방임주의 경제를 창시한 국부론 의 저자 애덤 스미스, 보물섬 의 작가인 스티븐슨, 피터팬 의 작 가인 제임스 배리, 명탐정 셜록 홈즈 의 작가인 코난 도일 등 모두가 스코틀 랜드 출신이다. 우리는 잠시 탑 주위를 둘러본 다음 건너편 웨이버리 역(Waverly Station) 근처에 위치한 관광안내소로 향하였다. 이른 시간인데도 안내소 안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 로 붐비고 있었다. 렌터카 사무실의 위치를 확인해 보니 다행히 안내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출발 전 미리 예약을 해 둔 차량부터 인수를 하였다. 처음 에는 운전하기가 좀 어려웠지만 연습 삼아 시내를 몇 바퀴 천천히 돌아다니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좀 익숙해지게 되었다. 운전 때문에 많은 심적인 부담이 있었는데 다행이었다. 다만 라운드 어바우트(Round About: 로타리를 말하며, 영국은 대부분 교차로 가 로타리 방식으로 되어 있음)를 통과할 때는 우리나라와 반대방향으로 돌면서 빨리 빠 져 나가야 하기 때문에 항상 긴장이 되었다.

사진3. 스콧기념탑 전경 사진4. 애딘버러 성 입구에서 기념촬영... 오늘의 주요한 일정은 우선 스코틀랜드의 내셔널트러스트 본부 (주소: Wemyss House 28 Charlotte Square Edinburgh EH2 4ET)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미리 방문하기로 연락을 해 둔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는 서둘러 사무실을 찾아갔다. 관광안내소에서 자세하게 위치를 안내해 주어서 다행히 사무실은 쉽게 찾을 수 있 었다. 사무실에서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신 분은 스코틀랜드 내셔널트러스 트의 책임자이신 COINIEACH MACLEAN씨 (본인은 그냥 꼬냑 으로 부르라고 함) 였다. 우리는 서툰 영어였지만 우선 간단하게 방문 목적과 영국에서의 전체 일정에 대해 얘기하였다. 꼬냑(COINIEACH) 씨도 몇 가지 자료를 직접 나누어 주시며 스코틀 랜드의 내셔널트러스트운동에 관하여 간단하게 안내를 해 주셨다. 스코틀랜드는 원 래 역사적으로 잉글랜드와 사이가 안 좋아서 인지 내셔널 트러스트도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그 열정만큼은 잉글랜드에 뒤지지 않은 것 같았다. 한편 우리 일행은 다소 염치가 없었지만 아직 구하지 못한 숙박지에 대한 안내도 부탁 드렸다. 꼬냑 씨는 친절하게 애딘버러에서 숙박할 장소도 구해주시고 다음 날에는 글래스고우에 있는 본인의 집에까지 초청을 해 주셔서 스코클랜드 에서의 숙박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정말 고마운 분이시다. 사무실에서의 일정을 마친 우리들은 숙소 문제로 오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 다음, 서둘러 이 도시의 랜드마크(Landmark)라 할 수 있는 애딘버러 성(Edinburgh Castle)으로 향하였다. 구( 舊 )시가지의 남서쪽 사화산( 死 火 山 )의 화강암부에 우뚝 서 있는 이 성은 과거 이 도시를 지키던 주요 요새의 역할을 한 곳이며 역대 스코 틀랜드의 왕들이 거처한 곳이기도 하였다. 성 안에는 12세기부터 20세기까지 건물 들이 함께 모여 있으며 시가지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도 있어 오늘날 세계각지에 서 몰려오는 관광객들로 늘 붐비는 유명한 곳이다. 성의 입구는 축제기간이 되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줄을 선지 한참 시간 지나서 야 겨우 입장이 되었다. 이 날은 날씨가 맑아서 도시의 북쪽 신시가지와 멀리 북

사진 5. 애딘버러 성에서 내려다본 신( 新 )시가지와 포스만의 전경 해( 北 海 )에 연한 포스만(Firth of Forth)까지 선명하게 조망이 되었다. 성에서 내려 다본 경관은 이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이유를 잘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정말 북부의 아테네라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애딘버러 성을 관람한 뒤 사무실로 다시 돌아온 우리들은 꼬냑 씨의 안내로 첫 날 숙박 장소이자, 내셔널트러스트에서 보전하고 있는 조지안 하우스(THE GEORGIAN HOUSE)를 방문하였다. 사무실에 멀지 않은 신시가지 구역의 샬럿 스 퀘어(Charlotte Square) 7번가에 위치한 조지안 하우스는 과거 이 도시가 상업활동 사진 6. 스코틀랜드 내셔널 트러스트 책임자인 꼬냑 씨와 함께 사무실 앞에서 촬영 사진 7. 조지언 하우스 내부 (출처: 안내 자료집) - 내셔널 트러스트에서 보전하고 있음 으로 한창 번영을 누렸던 18세기 조지 시대의 격조 높은 생활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인 집으로, 이 일대의 건축물들을 설계한 유명한 건축가인 로버트 애덤(Robert Adam:1728-1792)의 작품이다. 조지언 하우스 측에서는 멀리 한국에서 찾아온 우 리들을 위해 특별히 집의 4층 전체를 숙소로 제공해 주셨다. 그것도 일행 모두에게

각자 따로 방을 마련해 주셨다. 너무 파격적인 대접에 우리 일행은 그저 고맙고 황 송할 따름이었다. 언제 이런 경험을 다시 해 볼 수 있을까! 4층에 각자의 짐을 풀어놓은 우리는 건물의 관리인으로부터 간단한 주의 사항을 들은 다음,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 관람객들에게 일부 개방된 내부시설을 둘러보 았다. 내부 장식이 대단히 화려하고 정교하였으며 특히 옛날 가구들과 식기들이 그 대로 잘 보전되어 있어서 18세기 당시의 생활상을 잘 엿볼 수 있었다. 1층 입구에 는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기부할 수 있도록 동전함이 비치해 놓고 있어서 시내 구경 을 위해 집을 나오면서 우리도 약간의 기부금을 내었다. 오후에는 숙소를 정해서인지 한결 더 가벼운 마음으로 애딘버러 시내를 둘러보게 되었다. 저녁 무렵에는 도시 북동쪽에 위치한 칼튼 힐(Calton Hill)이라는 언덕에도 올라가 보았는데 이 곳 역시 전망이 일품이었다. 언덕 중앙에는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케 하는 건축물과 넬슨 기념탑 등이 있었는데 단순하지만 주변 경관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어서 무척 인상적인 곳이었다. 칼튼 힐에서 내려온 우리는 애딘버러 시가지 쪽으로 다시 들어와 저녁을 해결하였다. 한편 이 곳이 고위도에 위치한 관계로 여름에는 밤이 되어서도 별로 어두움을 느끼지 못하였다. 말로만 듣던 백야현상을 여기에서 일부 경험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돌아다니던 우리들은 10시가 훨씬 넘어서 완전히 어두워지자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째날 (8월 10일) -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 지역으로 (글렌코와 네스호 탐방) 오늘의 주요 일정은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 (highland:스코틀랜드의 북부지방을 통칭함) 지역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이번 탐방에서 제일 기대가 되 었던 지역은 단연 글렌코(Glen goe)였다. 스코틀랜드 내셔널트러스트에서도 보전하 고 있는 이 지역은 우리나라에서는 실제 잘 볼 수 없는 빙하지형이 나타나는 곳이 자 경관도 대단히 아름다운 곳이다. 아침 일찍 조지안 하우스(THE GEORGIAN HOUSE)에서 나온 우리는 출발하기 전 애딘버러를 한 번 더 조망하기 위해 동남쪽에 위치한 올드 리키(Auld Reekie: 오래 된 악취라는 뜻을 가지며 원래 애딘버러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함) 산에 잠시 올라가 보았 다. 원래는 어제부터 애딘버러의 동쪽 경계를 이루는 아서즈 시트(Arthur's Seat) 라는 산의 정상을 가 보려고 했으나 시간이 여의치 않아 포기를 하였다. 아서즈 시 트산의 한쪽 옆면에는 솔즈베르 크랙(Salisbury Crags)이라 불리 우는 독특한 경관 의 거대한 암벽 지형이 어제부터 줄곧 우리 일행의 시선을 잡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화산지형임을 알 수 있었다.

사진 8. 애딘버러 동쪽 경계 지점에 형성되어 있는 솔즈베르 크랙(Salisbury Crags) 의 전경 그 옛날 3억 5,000만 년 전 쯤 애딘버러에는 화산활동이 있었다고 하며 그 후 이 곳은 바다에 가라앉았다가 다시 솟아오른 다음, 여러 차례의 지각운동을 거치면서 마지막으로는 빙하의 영향을 받으면서 현재 이 도시의 모습이 만들어 졌다고 한다. 한마디로 애딘버러는 지형과 지질을 연구하는 측면에서도 좋은 학습장소가 될 수 있는 곳이다. 한편 이러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영감을 받아 현재 근대 지질 학의 아버지 로 우뚝 선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동일과정설 ( 과거에 작용했던 모든 지질학적 과정들이 현재에도 또한 일어나고 있다는 설)을 만든 제임스 허턴(James Hutton:1726~1797)이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는 사람이지만 18세기 이전까지 지구의 역사는 불과 6000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그 당시 사람들의 고정 관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으며 지구의 역사를 까마득한 지질학적 시간으로 되돌려 놓은 최초의 장본인이다. (최근 국내에도 시간을 발견한 사람 이라는 제목으로 제임스 허턴의 일대기가 소개된 책이 번역돼 나와 있다.) 후일 제임스 허턴은 지질학의 대가인 찰스 라이엘 및 다윈의 진화론 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우리는 올드 리키산 에서 솔즈베리 크랙과 애딘버러 시가지를 다시 한 번 조망한 다음 산에서 내려와 다시 내셔널트러스트 사무실에 잠시 들렸었다. 출발하기 전에 어제 숙소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전할 려고 했으나, 꼬냑씨 가 아직 출근하지 않으셔서 다른 직원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약간의 기부금을 전 달한 뒤 바로 출발하였다. 애딘버러를 빠져나온 우리는 오늘 저녁까지는 일정상 다시 글래스고우(Glasgow) 로 돌아 와야 되기 때문에 서둘러 글렌코로 향하였다. 오전 내내 운전을 하여 어느 덧 글렌코와 바로 연결되는 A82번 도로에 접어들었다. A82번 도로 주변은 너무나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 많아 장시간 운전을 해도 전혀 피곤함을 느낄 수 없었다. 끊 임없이 나타나는 호수와 빙하지형들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

이 스코틀랜드 지역을 여행한다면 꼭 권해주고 싶은 코스였다. 사진 9. 스코틀랜드의 대표적인 명승지인 글렌코의 모습 (U자형의 빙하지형이 잘 나타남) 점점 더 북쪽으로 갈수록 하일랜드 특유의 장엄하면서도 황막한 경치가 펼쳐졌으며 서서히 글렌코가 보이기 시작했다. 원래 글렌코는 아주 오래전인 1692년 글렌코의 대학살 (정치적 이유로 이 곳 주민들 200여명이 무참하게 학살당한 사건)이 있었던 장소 사진 10. 스코틀랜드의 전통의상을 입고 백파이프를 연주하시는 할아버지 사진 11. 네스호와 우르콰르트 성을 배경으로 여서 역사적으로 보면 슬픔과 한이 서린 장소이다. 그러나 실제 가까이에 본 글렌 코는 너무나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어 보는 사람 누구에게나 탄성을 자 아내게 하는 곳이다. 이윽고 글렌코에 도착한 우리는 잠시 주변의 경관에 흥분을

하며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U자형의 거대한 빙하지형을 막상 눈으로 직접 가까이에서 보니 너무나 좋았다. 수업시간에도 생생 하게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법 오래 동안 글렌코에서 머문 우리들은 북쪽으로 계속 더 올라가 보았다, 오 늘의 최종 목적지는 한 때 괴물소동으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네스호(Loch Ness)로 정했다. 이 호수는 스코틀랜드 북쪽에 위치한 포트 윌리엄(Fort William)에 서 인버네스(Inverness)까지 이어지는 단층대의 북쪽에 위치한 길이 39km, 최고 수 심이 305m에 달하는 대규모의 호수이다. 우리는 시간상 일단 네스호의 북쪽에 위 치한 지금은 폐허가 된 우르콰르트 성(Urquhart Castle) 까지만 가고 다시 되돌아 사진 12. 광대한 스코틀랜드 하일랜드 지역의 풍경 오기로 하였다. 네스호의 북쪽 서안 기슭에 위치한 이 성은 한 때 이 지역에서 제 일 규모가 큰 성이였다고 한다. 원래 16세기에 건축되었지만 1692년경 명예혁명으 로 축출된 제임스 2세파의 수중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당시 정부지지자들에 의해 파 괴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일반인들도 들어갈 수 있도록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었는 데 비록 페허가 된 성도 이렇게 아름다운 호수를 배경으로 남아 있으니 나름대로 휼륭한 관광자원이 되고 있었다. 좀 더 하일랜드 지역을 돌아보고 싶었지만 이미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늘의 숙박지인 글래스고우로 다시 출발하였다. 네스호(Loch Ness)에 서 돌아오는 길에는 이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로 알려진 로몬드 호수(Loch Lomond)를 거쳐서 왔다. 글래스고우(Glasgow)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10시가 훨씬 넘어서였다. 이미 어두 어진 상황에서 집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는데 몇 차례나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어렵게 꼬냑 씨와 다시 재회할 수 있었다. 꼬냑 씨 부부는 밤

늦게 도착한 우리 일행을 다시 반갑게 맞이해 주시며 미리 준비해 두신 저녁 까지 제공해 주셨다. 너무도 고마우신 분들이다. 다음에 기회가 되어 혹시 한국을 방문 하신다면 꼭 보답을 해 드려야겠다. 꼬냑 씨의 저택은 2층 건물의 주택의 2층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많은 책들로 둘러 싸인 서재와 집안 곳곳에 걸려 있는 많은 그림들이 인상적이었다. 서재의 한쪽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면서 우리 일행은 꼬냑 씨 부부와 이런저런 얘기를 같 이 나누게 되었다. 하지만 영어가 서툰 우리 일행들 때문에 아마 많이 답답하셨을 것이다. 얘기 중 말문이 막히면 서로 쳐다보며 웃기만 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 는 게 무척 후회가 되는 날이었다. 한편 꼬냑 씨는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다 고 하시며 (서울, 경주, 이천 등을 방문함) 한국 방문 시 본인이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 던 고려시대의 상감청자를 일부러 보여주시기도 하셨다. 아무튼 여러모로 배려를 잘 해 주신다. 동양에서 온 낮선 이방인들, 그것도 4명씩이나 이렇게 집으로 까지 초청을 해 주시니...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원래 정이 많다고 하더니만... 얘기를 하다 보니 이 날도 거의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로 좋은 경험을 한 날이었다. 네째날 (8월 11일) - NT의 발상지인 호수지방(Lake Districk)을 향해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오늘은 스코틀랜드를 떠나 잉글랜드로 내려가야 된다. 꼬 냑 씨도 매일 애딘버러와 글래스고우를 출 퇴근하시기 때문에 좀 바쁘신 눈치였다. 우리 일행도 서둘러 짐을 챙기며 간단히 아침을 먹은 다음, 바로 집을 나서게 되 었다. 꼬냑 씨는 우리 일행이 많이 걱정되시는지 큰 길까지 나오셔서 마지막 작 별인사를 해 주셨다. 이제 스코틀랜드를 생각하면 반드시 꼬냑 씨도 떠오를 것이 다. 한편 아침부터 내내 휴대폰에서는 우리나라 외교통상부에서 보낸 문자 메시지가 들어오고 있었다. 영국의 히드로 공항에서 항공기 테러 기도 사건이 발생했으니 각 별히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상세한 내용은 잘 알 수 없었지만 테러는 사전에 적 발이 된 것 같았고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한국에 계신 분들 이 더 걱정하실까 염려되었다. 우리는 약간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서둘러 글래스고우를 빠져 나갔다. 오늘 도착하게 되는 호수지방(Lake Districk)은 실제 이번 영국탐방의 제일 핵심적 인 지역이다. 왜냐하면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이 시작된 영국에서도 그 발상지가 되 는 곳이기 때문이다. 일단 오늘 중으로는 호수지방까지 가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부지런히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중간에 고속도로에서 빠져나

오다가 다른 길로 잘 못 접어드는 사태가 발생했다. 지금에 와서 하는 말 같지만 원래 여행 중에는 이렇게 길을 한 번씩 잃어버리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계획에도 없는 곳을 들릴 수 있고 긴장감도 더 생기게 되니까... 영국의 중앙부를 가로지르는 페나인 산맥을 거의 동( 東 )에서 서( 西 )로 다시 넘다 시피 한 우리들은 오후 늦게 서야 호수지방 관광의 중심지인 윈더미어 (Windermere)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잉글랜드의 호수지방은 캠브리아(Cambria) 지 방으로도 불리어지고 있는데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영국의 국민들 이 가장 많이 즐겨 찾고 있는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우리는 일단 윈더미어 (Windermere)의 관광안내소에 들려 호수지방의 기본적인 정보를 수집하였다. 주말 이 되어서인지 안내소나 거리마다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래서 숙박 장 소를 정하는 것도 굉장히 힘들었다. 널리 알려진 관광지여서 그런지 요금도 비싼 편이었고 무엇보다 빈 방이 거의 없었다. 일단 윈더미어에서는 숙박 장소가 여의치 않아 호수지방을 구경도 할 겸해서 여러 마을들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사진 13. 엠블사이드에 있는 브리지 하우스 사진 14. 워즈워드 시인 일가의 묘지 - 조그만 다리위에 집이 세워짐 - 글래스미어의 세인트 오스월드 교회 뒤편 윈더미어를 벗어나 처음 우리가 가 본 곳은 윈더미어에서 북쪽으로 약 8km 지점 에 위치한 엠블사이드(Ambleside)란 조그만 마을이었다. 성수기여서 그런지 이곳도 생각보다는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어 적당한 방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편 이 마을에는 옛날 한 스코틀랜드인 구두쇠가 토지세를 내지 않기 위해 짧은 돌다리(Stock Beck이라 불리우며 17세기에 세워짐) 위에 이 집을 짓고 살았다는 재미있는 사연을 간직한 브리지 하우스(Brige House)라는 이름의 조그만 집이 있 다. 현재는 내셔널 트러스트에서 이 집을 인수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사무실 및 상 점으로 이용하고 있었는데, 정말 호수지방 곳곳이 내셔널 트러스트와 관련되어 있 음을 실감했다. 우리는 일단 시간이 너무 늦어 이 마을에서 저녁을 해결하였다. 식사 후에는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어두워졌지만 호수지방 북쪽의 중심지인 케즈

윅(Keswick)까지 가보기로 하였다. 케즈윅은 원래 양모와 가죽산업으로 유명한 곳 이었지만, 튜더 시대(15~16세기) 에 흑연이 발견되면서 부터는 연필박물관까지 건 립될 정도로 연필산업의 중심이 된 곳이다. 그리고 마을 동쪽에는 스톤헨지보다 더 오래되었다는 고대의 캐슬린 환석( 環 石 )도 있다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 볼 수가 없 었다. 일단 우리는 다시 숙소를 구하기 위해 윈더미어 쪽으로 차를 돌렸다, 오는 길에 갑자기 차에서 냄새도 많이 나고 소음도 심해 좀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이날 은 길도 좀 헤메면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차에 조금 무리가 있었던 모양이 었다. 밤 11시가 휠씬 넘어서 다행히도 글래스미어(Grasmere)에 위치한 한 호텔 에서 어렵게 방을 구할 수 있었는데 숙소 문제로 정말 힘든 저녁 일정이 되었다. 다섯째날 (8월 12일) - 마침내 힐 탑(Hill Top)을 방문하다 어제 너무 늦게 숙소를 정하는 바람에 미처 글래스미어(Grasmere)를 볼 수 없었 던 우리들은 호텔에서 주는 아침을 먹고 난 뒤 마을을 잠깐 둘러보기로 하였다. 우 리가 잠을 잤던 호텔 이름도 워즈워드 호텔 이었는데 바로 이 마을이 영국의 계관 시인이자 유명한 낭만파 시인이었던 워즈워드(wordsworth: 1770-1850)가 9년간 (1799-1808년) 머물며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곳이다. 원래 태어난 곳은 호 수지방 북쪽의 코커머스(Cockmouth)이지만 여생을 마감한 곳은 글래스미어 근처의 라이덜마운트(Rydal Mount)이다. 워즈워드는 내셔널트러스트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내셔널트러스트를 창설한 사람들에게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인물이었으며 영국인들의 자연관에도 많은 영향 을 준 시인이다. 우리에게도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은 뛴다 로 시작되 는 무지개(Rainbow) 라는 시로 잘 알려진 시인이다. 호텔 근처에 있는 세인트 오 스월드(St.Osward) 라는 교회 뒤편에 마침 시인과 그의 가족들의 묘지가 있다고 해 서 잠시 들러보았다. 13세기에 세워졌다는 아주 고풍스러운 교회의 안쪽에는 시인 이 심었다던 몇 그루의 주목나무가 있고 그 아래에 그의 부인과 여동생 및 자녀들 의 무덤이 나란히 안치되어 있었다. 묘지라기보다는 조그만 하천으로 둘러싸인 주 변 경관이 무척 아름다워 공원처럼 느껴졌다. 마을 전체의 경관도 마치 우리가 동 화 속의 한 마을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아름다웠는데 우리가 묶었던 호텔과 이 마 을 대부분의 집들은 근처에서 채취한 돌(슬레이트)로써 벽면을 단장해 놓아 더욱 더 운치가 있었다. 마을을 이리저리 둘러본 다음 오늘의 주요 목적지인 니어 소리(Near Sawrey)의 힐탑(Hill Top)으로 가기 위해 다시 윈더미어&보니스(Windermere & Bowiness)에 위치한 선착장으로 향하였다. 선착장에서는 차를 싣고 호수를 건너가는 카페리호가 운항되고 있었다. 이미 호수지방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많은 차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힐탑으로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가야 되기

때문에 우리도 차에 탄 채로 배에 승선을 한 다음 호수를 건너갔다. 호수 건너편에 서 다시 힐탑 까지는 두 가지 방식의 길이 있었다. 하나는 차로도 갈 수 있는 포장 되어 있는 길, 또 하나는 숲과 들판을 가로지르는 다소 힘든 길 (일명 public foot path : 사유지라도 들어갈 수 있으며 자연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거의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음), 우리는 좀 더 호수지방의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일부러 후자를 선택하였다. 호수지방은 내셔널트러스트에서 관리하는 지역이 많기 때문에 가는 길 곳곳에서 오 크(oak) 나뭇잎이 그려진 내셔널 트러스트의 표시판을 볼 수 있었다. 힐탑 으로 가는 길은 너무도 아름다운 길이었다. 전형적인 영국 시골의 모습을 간 직하고 있는 주변 경관과 함께 푸른 초원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양떼들의 모습은 결코 잊을 수가 없는 길이었다. 왜 이곳이 보전되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약 1시간 정도 걸어서 드디어 힐 탑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힐탑 입구에는 유달리 일본인 관광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나중에 안내인에게 물어보니 이곳이 일본인 들이 특히 많이 즐겨 찾고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실제 힐 탑에 있는 베아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 여사의 집안에는 영어와 함께 일본어로 적혀진 안내판을 볼 수 있었다. (안내인의 말로는 하루에도 수 백 명 이상의 일본인 관광객들이 이곳을 들린다고 한다) 힐 탑은 베아트릭스 포터 여사가 1902년, 27살 미혼의 나이로 쓴 처녀작 피터 래빗 이야기 : The Tale of Peter Rabbit : 동물들을 통해 인간에게 소박한 삶과 사랑 의 메시지를 전한 영국의 대표적인 동화 를 출판하여 번 돈으로 구입한 작은 농장과 집을 말하며 여사는 생애의 절반을 이 집에서 보내었다. 어릴 적부터 호수지방을 여행했던 여사는 이곳의 풍경을 배경으로 독창적인 동화의 세계를 그려나갔으며, 이곳의 아름다운 자연을 영원히 유지한다는 조건 아래 내셔널 트러스트에 기부하 였다고 한다. 실제 이곳은 지금 현재도 그녀의 유언에 따라 그림책 속에 나오는 것과 똑 같은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을 안쪽에 마련된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한 다음 실제 힐 탑으로 들어가 보어가 보니 거의 100년 전의 모습 그대로 정원과 집이 보전되어 있었다. 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집안 내부 관람은 시간 차이를 두고 순서대로 입장할 수 있었다. 2층으로 이 루어진 집안 내부에서는 할머니 몇 분이 자원봉사를 하시며 안내를 하고 계셨다. 집안의 가구와 각종 생활용품들이 너무나 소박하여 베아트릭스 포터 여사의 생활이 얼마나 검소하였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힐탑을 관람하고 난 뒤 우리는 다시 주차를 해 놓은 곳으로 돌아와서 윈더미어 호 수 남쪽에 위치한 레이크사이드(Lakeside)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과거의 방식대로

사진15. 내셔널트러스트 표식판 - 힐탑 입구 사진 16. 힐탑 입구에서 단체로 기념 촬영 석탄을 투입하여 운행되는 증기기관차가 다니고 있었는데 실제 증기기관차를 접해 보지 못한 우리들도 호기심에 한 번 기차를 타보기로 하였다. 기차는 레이크사이드 (Lakeside)에서 하버스웨이트(Haverthwaite) 까지만 운행되었다. 왕복 40여분 정도 의 짧은 시간 동안만 운행이 되어 다소 아쉬움이 있었지만 호수지방의 자연을 생각 한다면 이 정도도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증기기관차를 타 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어느덧 호수지방에서의 일정도 거의 끝이 나고 있었다. 한편 이틀 동안 호수지방을 돌아다니면서 경험한 사실이지만 이 일대의 많은 도 로들이 사실 차로서 다니기에는 너무 좁다는 것이다. 반대편에서 차가 지나갈 때면 거의 백미러가 부딪힐 정도였다. 나중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은 얘기지만 일부러 마을 사람들이 길을 넓히지 않는다고 하였다. 도로를 확장하게 되면 그만큼 차들이 더 많이 다니게 되고 소음과 공해가 심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 마차가 다니기에 적당한 폭을 현재에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어느 책에서 도 본 사실이지만 영국인들은 도시에 살면서도 항상 전원생활을 꿈꾸고 주택 또한 아파트 보다는 정원이 있는 단독 주택을 많이 선호한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주 택 가격도 단독주택이 제일 비싸고, 제일 싼 주택은 아파트라고 한다. 영국인들이 자연을 많이 동경한다는 사실을 실제로 알려 준 또 하나의 사례가 있 다. 바로 도버해협을 연결하는 터널 공사로 인해 런던과 파리를 잇는 철도를 새로 이 건설할 때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프랑스인들은 새로운 철도를 어디로 건설할 것인가를 두고 서로 자기 지역으로 철도가 통과하도록 하기 위해 경쟁이 벌어진 반 면, 영국에서는 그 반대의 현상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이 영국 에서 크게 확산된 이면에는 어느 정도 영국 국민들의 이러한 심성도 작용했을 것이 다.

힐탑과 호수지역의 일정을 마친 뒤 우리는 오늘의 종착지로 정해둔 체스터 (Chester)로 향했다. 밤 10시가 넘어 도착한 체스터는 밤이어서 그런지 제대로 도 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우리는 역 근처에 위치한 호텔에 숙소를 정한 다음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 하였다. 여섯째날 (8월 13일) -중세도시의 원형 체스터와 산업혁명의 발상지 아이언브리지 잉글랜드의 중앙부의 서쪽, 웨일즈(Wales) 지방 북쪽과의 경계지점에 위치한 체 스터(Chester)는 영국에서는 요크(York)와 함께 중세의 모습이 가장 강하게 남아있 는 도시이다. 전체 길이가 3km 정도가 되는 중세의 성벽으로 둘러 쌓인 이 도시의 역사는 서기 79년, 그 당시 로마인들이 이 도시를 흘러가고 있는 디 강 (River Dee) 유역의 기름진 토지를 방어하고, 서쪽의 웨일즈인을 방어하기 위해 성벽을 쌓는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성벽은 중세 때 다시 복원한 것이며 체스터 (Chester)의 주요한 볼거리는 이 성벽 안쪽에 거의 다 위치하고 있었다. 그림 1. 성곽도시 체스터의 그림 지도 - 출처: 체스터 관광안내지도 우리 일행이 아침 일찍 관광안내소를 거쳐 제일 먼저 들른 곳은 이 도시의 중심 부에 위치하고 있는 체스터 대성당이었다. 현재 체스터의 시청사와 마주하고 있는 이 곳은 원래 베네딕트회 수도원이었다가 헨리 8세 이후 성당으로 변모한 곳이다. 현재의 건물은 1250년경부터 250여년의 세월을 들여 재건한 것이며, 최근까지도 여러 가지 보수를 거쳐 가며 이 도시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성당으로 자리 잡고 있 었다. 약간씩 빗방울이 흩날리는 가운데 마침 성당 안에서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와 함께 아름다운 미사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의 발길은 저절로 성당 안으로 향

하게 되었다. 밖에서 본 모습도 고풍스러웠지만 성당 내부의 모습 또한 매우 아름 다웠다. 일행 중 한분은 미사곡에 심취하신 듯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시지 않으시 기도 했다. 우리는 성당 내부를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마침 성당의 뒤뜰에서 성벽으로 올라가 는 계단이 있어 성벽으로 올라가 보았다. 성벽 위는 성벽을 따라 사람들이 걸어 다 닐 수 있도록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미 많은 시민들과 관 광객들이 성벽위의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이 성벽에는 동서남북 방향으로 전체 4개의 성문이 있는데 우리는 일단 동문 쪽 성벽을 따라 디 강(River Dee)이 보이는 곳까지 가 보기로 하였다. 특별히 동문 입구의 위쪽에는 1897년에 만들어져 이 성벽의 상징이 되고 있는 아름다운 시계탑이 세워져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있었다. 다시 성벽을 내려온 우리들은 성 안의 중심가에 위치한 유명한 쇼핑 아케이드 거 리인 로즈 (The Rows)를 가 보았다. 로즈(The Rows)는 성 안의 주요 도로가 교차 되는 더 크로스(THE CROSS)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 16세기에서 18세 사진 12. 체스터 성 안의 중심가인 더 로즈에 세워져 있는 아름다운 경관의 건물들 - 현재 대부분 상가 건물로 활용되고 있다. 기에 걸쳐서 만들어진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곳이다. 흰 색의 벽에 검은 목재 가 대들보로 들어가 있는 건물들이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는데 특히 각 건물의 2층 부분의 발코니가 서로 옆 건물과 연결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눈길 을 끌었다. 고풍스런 중세적 외관과 근대적인 쇼핑 가게들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성곽과 시내 중심지역의 답사를 마친 후, 일행은 체스터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그로브너 박물관(The Grosvenor Museum)을 가보았다. 박물관은 무료로 관람 할 수 있었는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었 다. 체스터(Chester)의 역사적 형성과정을 모형을 통해 알기 쉽게 전시하고 있었으 며 관람객들이나 학생들이 체험하거나 학습할 수 있는 코너들과 시청각실이 많이

마련되어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울산에도 현재 박물관 건립계획을 추진 중에 있지만 전시할 유물이 많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많은 유물을 전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용면에서 얼마나 울산이라는 도시를 잘 표현하고 구성할 수 있 는지가 더 중요함을 그로브너 박물관(The Grosvenor Museum)에서 엿 볼 수 있었 다. 사진 13. 체스터의 상징 East cate clock (1897년 제작) 사진 15. 체스터의 성곽. 위에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한편 이 박물관에서 뜻밖의 전시물을 만날 수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바로 윌리암 스미스(William Smith ;1769~1839)라는 사람에 의해 제작된 한 장의 지질도였다. 비록 원본은 아니었지만 이곳에서 거의 실물 크기의 이 지도를 접할 수 있으리라고 는 생각도 못하였다. 이 지도는 1815년 윌리암 스미스 혼자의 힘으로 만들어낸 세 계 최초의 지질도이며 몇 년 전 이 사람의 일대기를 정리해 놓은 책 ( 세계를 바꾼 지도 -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이 국내에서도 발간되어 흥미를 가지고 읽어 보았던 터라 더 관심이 가게 되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당연히 대동여지도를 만드신 김정 호 선생이 생각나게 된다. 살아생전 보다는 사후에 더 인정을 받은 점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원래 탄광의 측량 기사였던 스미스는 우연히 지층구조의 배열 형태에서 일관성을 발견하고 그 이후 20년간 온갖 역경을 딛고 혼자의 힘으로 영국의 지하세계 구조를 밝혀나가면서 그것을 이 한 장의 지도에 압축하여 표현하게 된다. 그런데 그 정확성이 오늘날 현재의 지질도와 비교해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아무튼 대단한 사람이다. 지표위의 지형도 그려내기 힘 든 데 땅속의 구조를 그려 낼 수 있다니... 그것도 혼자의 힘으로 박물관 관람을 마친 뒤 우리는 다시 디 강(River Dee)으로 향하였다. 원래 계획은 곧바로 아이언브리지(Iron Bridge)로 갈려고 했으나 강에서 운항되는 배를 타고 한 번 가보자는 의견이 나와 왕복 2시간 정도 소요되는 유람선을 타고 강을 따라 가면 서 체스터의 외곽을 더 둘러보았다. 원래 체스터는 디 강이 바다와 연결되어 있어

15세기 이전 까지는 항구도시의 기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강 하구에 퇴 적물이 많이 쌓이게 되자 배들이 인근의 리버풀(Liverpool) 항구로 가게 되면서 지 금은 항구로서의 기능이 쇠퇴하게 되었다고 한다. 체스터에서 일정을 마친 다음에는 오늘의 주요 목적지인 아이언브리지 계곡 (Ironbridge Gorge)으로 향하였다. 아이언브리지 계곡은 비록 내셔널트러스트와는 직접 적인 관계는 없지만 약 250년 전, 당시 이 지역의 유명한 철기 제조업자였던 아브라함 다비 1세(Abraham Darby)가 종래의 숯을 이용하여 철을 제련하던 것을 효율이 높은 코크스 (석탄을 높은 온도로 가열하여 얻는 일종의 고체연료로 숯보다 높은 온도를 유지시켜 철 생산량을 증대시킴) 로 바꾸는 기술을 최초로 완성시킴으로써 산 업 혁명의 중심지가 된 곳이다.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에 온 이상 한 번 가볼 만한 곳이라 생각되었다. 체스터에서 조금 지체가 되어 오후 늦게 도착한 아이언브리지 계곡(Ironbridge Gorge)에서는 더 이상 과거 산업혁명 당시의 크게 번성했던 마을과,.거기에서 나오 던 소음과 검은 연기는 볼 수 없었다 지금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유유히 흘러 가고 있는 아름다운 세번 강(River Severn)의 좁은 계곡을 따라 들어서 있는 평화 롭고 조용한 마을만이 있을 뿐이었다. 다만 마을 한 쪽에 다소 독특한 외관의 현대 적 시설을 갖춘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새하얀 연기만이 이곳이 과거 산업혁명의 발상지임을 묵묵히 말해 주고 있었다. 사진 16. 세계최초의 철교이자 세계문화유산인 아이언브리지 전경 우리는 일단 이 마을의 상징이자 가장 유명한 유산 중의 하나인 아이언 브리지 (Iron Bridge)를 찾아 갔다. 마을의 거의 중앙부에 위치한 이 다리는 1779년 이 마을의 유명한 장인( 匠 人 )이였던 다비 1세의 손자인 아브라함 다비 3세가 시공하여 완성시킨 세계 최초의 철교이다. 마을 이름도 이 철교의 이름을 땄으며, 아이언 브 리지는 아브라함 다비와 그의 산업을 말해주는 아름답고 섬세한 증거물로 남아 있

었다. 가까이에서 본 철교는 영국에서 가장 길다는 세번 강(River Severn)과 조화를 이 루며 다리라기보다는 하나의 예술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름다운 자태 를 갖고 있었다. 다리는 가운데가 약간 솟아있는 형태이며, 힘을 지탱하기 위하여 아치형 철골구조로 되어 있었다. 세계 최초의 철교라지만 최근에 만든 것처럼 날렵 하면서도 단단해 보였다. 한마디로 공학( 工 學 )과 미학( 美 學 )의 절묘한 만남이었다. 아이언 브리지 계곡 일대에는 철교 이외에도 철 박물관(Museum of Iron), 콜포드 도자기 박물관(Coalport China Museum), 잭필드 타일 박물관(Jackfield Tile Museum) 등 크고 작은 박물관들이 10여개 정도 있는데 최근(1986년) 유네스코에 서도 이 마을의 가치를 인정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철교 주변을 몇 차례나 돌아다니며 구경하다가, 근처에 위치한 철 박물관 (Museum of Iron)으로 가보았다. 시간이 너무 늦어 문을 닫은 철 박물관은 일단 내일 둘러보기로 하고 맞은편에 위치한 전시관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글린웨드 갤러리 라 불리 우는 삼각형 모양의 다소 특이한 외관을 가진 이 전시관 안에는 다 름 아닌 과거에 철을 녹여 쇳물을 만들어 내던 용광로가 그대로 전시돼 있었다. 마 감 시간이 되어서인지 관리인이 막 문을 닫을 려고 하였는데, 우리는 잠시 양해를 구하고 전시관 내부를 구경하였다. 용광로는 무려 1709년에 건설된 것이었다. 한편 다비 1세가 완성시킨 이 용광로를 통해 영국은 삼림의 황폐화도 방지하고 비 싼 목재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석탄을 사용, 비용도 절감하고 높은 생산성을 이 룩하는 등 제철의 역사를 바꾸어 갈 수 있었다. 사진 17. 글린웨드 갤러리 - 세계 최초의 코크스를 이용한 용광로가 이 안에 전시돼 있음 전시관을 보고 난 뒤 그곳을 빠져나오자 이미 밖에는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일단 오늘은 이 곳에서 숙박을 하기로 하고 내일 오전에 다시 철 박물관과 주변의 시설 들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오늘은 조금 여유가 있는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

았다. 어느덧 전체일정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어 좀 정리를 할 필요도 있었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아이언브리지 근처로 향했는데 마침 그곳에서 파키스 탄 사람들이 운영하는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식당 메뉴판에 rice 라는 낱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며칠 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먹지 못한 일행은 오래 만에 포식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며 여유로운 저녁시간을 가 질 수 있었다. 일곱째날 (8월 14일) - 마을 전체가 NT의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레이콕(Lacock) 아침 일찍 일어나 우선 블리치 힐 야외박물관(Blists Hill Open Air Museum)을 가 보았다. 일종의 민속촌처럼 약100여 년 전 이 지역의 생활모습을 재현해 놓은 곳이 었는데 입장료가 다소 비싼 관계로 우리는 관람을 포기 하고 곧바로 철 박물관과 다비하우스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철 박물관에서는 철을 이용하여 만든 각종 생활용품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고 과 거 아이언브리지일대의 역사와 교통망, 그리고 실제 철을 이용해 철제 바퀴를 만 들어 내는 과정을 보여주는 광경도 비디오 화면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박물관의 1층 입구에는 각종 기념품을 판매 하는 매장이 있어 우리는 같이 오지 못한 울산지 리교사모임 선생님들에게 나눠줄 간단한 기념품을 구입하였다. 박물관에서 나온 다 음에는 박물관 위쪽 언덕에 위치한 다비하우스를 가 보았다. 로즈힐과 데일하우스 의 두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이 곳은 대대로 다비 가( 家 )의 사람들이 살아왔던 곳이 다. 집안 내부에는 생활 용품들이 철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물품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는데 과거 이 일대의 영화( 榮 華 )를 주도했던 가문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소박한 세간 살이 들이 많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원래 이 가문은 근검절약을 미덕으 로 하며 공동체 생활을 하는 독실한 퀘이커 교도였다고 한다. 아이언브리지 일대의 탐방을 마친 다음 우리는 서둘러 레이콕(Lacock)으로 향하였 다. 레이콕은 박물관과 수녀원, 그리고 이를 둘러싼 마을 전체가 내셔널트러스트에 의해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는 곳이다. 원래 이곳은 1232년에 건축된 수녀원이었는데 1540년 당시 국왕인 헨리8세가 신하였던 윌리엄 샤링턴에게 매각 함으로써 저택으로 이용되기 시작하였으며, 1944년 윌리엄 샤링턴의 후손에 의해 내셔널 트러스트에 기증되었다. 이 때 90여 채의 가옥을 포함한 마을 전체가 기증 되었는데, 현재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임대형식으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내 셔널 트러스트에서는 이 마을을 하나의 전통 공동체로 유지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가옥의 구조나 색상에 대한 관리뿐만 아니라 마을 구성원도 엄격하게 제한하여 원 래부터 살았던 마을 주민들의 후손들에게만 원칙적으로 임대한다고 한다. 직계 후 손이 없는 경우에도 어떤 식으로든 친척 관계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임대를 허용함

으로써 공동체간의 유대 관계를 유지시켜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사진 18. 내셔널 트러스트 기념품 가게 앞에서 사진 19. 소박한 레이콕 마을의 전경 마을 입구에는 마을의 규모와는 반대로 제법 넓은 주차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 리는 차를 주차한 다음 걸어서 마을 입구로 들어갔다. 입구에서부터 내셔널트러스 트 표지판을 볼 수 있었으며 마을에는 내셔널트러스트에서 운영하는 가게도 있었 다. 우리는 일단 가게에 들러 여러 가지 물품들을 구경하였다. 내셔널트러스트의 모 든 운영은 정부의 지원 없이 회원들만의 자발적인 참여와 지원으로 이루어지기 때 문에 어느 정도의 수익 사업도 필요한 것이다. 가게 안에서 물품을 구매하시는 분 들은 주로 나이 드신 할머니들이었다. 우리는 이 가게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다음 천천히 마을 전체를 둘러보았다. 우리나라의 전통 시골 마을처럼 소박하고 조 용한 마을이었다. 최근에는 오히려 마을의 전통적인 풍경이 영화 촬영 장소로도 많 이 활용되고 있다고 하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해리포터의 마법사도 여기에서 일부 장면이 촬영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동안 영국을 다니 면서 실제로 보게 된 사실이지만 지역마다 가옥구조나 재료가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곳 레이콕도 지붕의 형태나 색감이 독특하였는데 이 일대가 석회암 지대이다 보니 석회암이 주 재료로 많이 쓰인 것도 볼 수 있었다. 레이콕을 탐방한 후, 우리는 오늘의 종착지인 솔즈베리(Salisbury)로 가기 전에 잠 시 웨섹스 지역의 바스(Bath)와 체다 협곡(Cheddar Gorge)을 경유하였다. 바스 (Bath)는 영국이 아닌 로마와 와 있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고대 로마 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 이였다. 일정상 자세히 도시를 볼 수 없어 무척 아 쉬웠지만 차안에서 스쳐 지나가면서 보아도 상당히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도시임을 느낄 수 있었다. 바스(Bath)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지금 말하는 목욕 (Bath)의 어원이 된 곳으로 원래 온천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20세기에 들어와 크

게 쇠퇴하였다가 최근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는 역사적인 도시이며 1988년에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에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바스(Bath)를 통과하여 저녁 무렵에 우리가 도착한 곳은 체다 협곡이었다. 체 다 협곡은 120m가 넘는 높이의 석회암 바위들이 도로(B3135) 양쪽 편을 따라 병 풍처럼 펼쳐져 있는 좁은 협곡지대인데 생각보다는 길이가 짧아 약간 실망스러웠 다. 이 협곡은 과거 마지막 빙하기 때 이 일대의 멘디프 고원을 빠르게 흐르던 물 살이 침식작용을 통해 만들어 놓은 곳이다. 원래 이곳은 치즈의 숙성과 보관에 적 당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있는 석회동굴을 이용하여 대량의 치즈를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우리가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석회동굴과 치즈 생산 광경을 볼 수 없어 다소 아쉬웠다. 체다 협곡 입구에 위치한 마을의 한 중국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다음 솔즈베리 (Salisbury)로 향하였다. 생각보다 솔즈베리는(Salisbury) 멀었다. 밤이었고 길 폭도 좁고 표지판도 잘 안보여서 여러 번 길을 헤메이면서 찾아갔다. 솔즈베리에 도착했 을 때에는 거의 12시가 다 되어서였다. 오늘도 숙소문제를 해결 할려니 여러 가지 로 힘든 상황이 많았다. 밤 늦게 거리를 돌아다니며 숙소를 구하는 과정에서 현지 경찰관의 안내까지 받으면서 우여곡절 끝에 숙소를 구할 수 있었다. 힘들게 정한 숙소 안에서 이번에는 방문을 여닫는 카드식으로 된 열쇠가 잘 작동이 안 되었다. 종업원과 함께 비좁은 통로에 짐을 들고 이리저리 방을 몇 차례나 옮기게 되자 모 두가 지쳐버렸다. 겨우 방을 정하게 되자 어느덧 시간은 새벽2시가 넘어가고 있었 다. 여덟번째날 (8월 15일) - 솔즈베리, 스톤헨지, 그리고 세븐시스터즈를 가다. 어제 밤에 너무 늦게 잠이 드는 바람에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나게 되었다. 벌써 다 른 일행들은 출발 준비를 마치고 안내실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렌트한 차를 반납하는 날이기 때문에 좀 서둘러 여러 곳을 둘러봐야 했었다. 우선 솔즈베 리에 도착한 이상 이곳의 대표적인 유적인 솔즈베리 대성당(Salisbury Cathedral)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켄터베리 대성당과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유명한 대성당이며 특히 현존하는 4개의 마그나카르타(Magnacarta :대헌장) 중 하나가 이곳에 있는데 가장 보존상태가 좋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일단 아침식사도 뒤로 하고 성당부터 찾아갔다. 성당은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 근처에서도 내셔널트러스트에서 운영하는 가게를 볼 수 있었다. 이윽고 도착한 성당의 입구에서 바라본 성당의 규모는 대단히 크고 아름다웠다. 38년(1280년-1310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완성된 이 성당은 영국에서는 가 장 높은 123m의 첨탑을 자랑하고 있다. 전면에는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른

사진 20. 솔즈베리 대성당의 전경 시간인데도 내부관람이 가능하여 우리는 일단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밖에서 와 마찬가지로 성당 안에서도 웅장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마그나카르타가 전시된 방 (Chapter House)은 성당 한쪽에 따로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안내를 해 주 시는 분이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어로 된 마그나카르타 설명서를 보여 주시기도 했다. 이곳에서 한국어로 된 설명서를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마그나카르타는 1215년 당시 존 왕의 실정에 견디다 못한 귀족들이 왕 과 대결하여 런던의 템즈 강 변의 러니미드란 곳에서 왕에게 승인하도록 한, 원 래귀족들의 요구를 기초로 작성된 문서이다. 후일 영국 및 여러 나라 헌법의 기초 가 된 이 문서는 처음에는 조항이 없었다가 18세기 이후 63개조로 정리되었으며 현재는 권리청원 및 권리장전과 함께 영국의 3대 성전( 聖 典 )으로 불리어 지고 있다. 성당을 관람한 뒤 우리는 솔즈베리 평원에 위치한 스톤헨지(Stonehenge)로 곧장 향했다. 공중에 걸려있는 돌 이라는 뜻을 가진 스톤헨지는 워낙 유명한 관광지여서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도 이미 수많은 관람객들이 몰려 와 있었다. 스톤헨지의 형성 과정 및 그 의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수많은 해석이 나오고 있는 데 아직까지 명 쾌한 결론은 맺지 못하고 있어 아마도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을 것 같다. 멀리서도 볼 수가 있었지만 우리는 입장료를 내고 가까이 가서 보기로 하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스톤헨지는 관람객들이 직접 만져볼 수도 있었다지만 지금은 훼 손이 우려되어 주위에 줄을 원형으로 둘러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람 하도록 하고 있었다. 근처에 있는 매표소와 기념관도 약간 지하로 내려가 설치되어 있었다.

사진 21. 현재의 스톤헨지 주변 모습 사진 22. 보존 작업 후 스톤헨지 주변 모습 -주변을 지나는 두 개의 도로 (왼쪽이 A303, 오른쪽이 A344 ) * 자료출처 - 스톤헨지 안내 자료집 입구에서 배부되는 안내 자료에 의하면 최근 영국 정부는 내셔널 트러스트 (National Trust)및 잉글리시 헤리티지(English Heritage) 그리고 영국도로공사 (Highways Agency), 등 관민( 官 民 ) 협동으로 스톤헨지에 대한 대대적인 보존 작업 계획 을 수립했다고 한다. 앞으로 10년이 걸린 다는 이 계획의 주된 작업은 관광 객의 접근 및 차량으로 인한 진동과 매연으로 인해 훼손의 우려가 있는 스톤헨지를 보전하는 차원에서 이 주변을 지나는 두 개 도로(A303, A344)는 폐쇄시키는 대신, 부근에 지하 터널을 뚫어 지상으로는 차가 통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진 23. 스톤헨지를 배경으로 사진 24. 솔즈베리 평원의 풍경 - 현재는 가까이 접근할 수 없게 해 놓았다. - 둥글게 말아놓은 건초더미들이 인상적이다 또한 현재의 주차장은 폐쇄시키고, 3km 떨어진 곳에 최첨단 방문객 센터를 만들 어 그곳에 지하 주차장을 만들 것이라 한다. 방문객 센터 안에는 각종 전시, 교육시 설 그리고 서점, 기념품 매장, 카페 등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부터 스톤헨지 까지는 따로 랜드 트레인(Land train)이라는 것을 설치하여, 관광객을 이동시킬 것이라 한다. 대단한 계획이었다. 물론 스톤헨지가 세계적인 고대 유산이 어서 이런 계획이 나올 수 있겠지만 과연 우리나라도 똑 같은 상황에서 이러한 계 획을 수립할 수 있을지...

우리 울산에도 반구대 암각화라는 세계적인 유산이 있는 데, 최근 이 곳을 관광지 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진입도로 개설 및 전시관 건립 문제가 논란이 된 적이 있었 다. 원래의 계획은 암각화 근처까지 진입도로를 개설하고 전시관을 설치하는 것이 었는데, 다행히 여러 시민단체와 학계의 반발로 다소 떨어진 곳에 일단 진입도로와 주차장이 설치된 사례가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오히려 관광객들이 조 금이라도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 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현실 이다. 하루 빨리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훼손의 우려가 심각한 자연 및 문화 유산 근처에는 가급적 새로운 인공적 시설물이나 접근 도로를 설치해서는 안 될 것 이다. 스톤헨지를 천천히 둘러본 다음 오늘의 주 목적지인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에 일부 구간에서 도로 정체현상이 심하게 있었다. 앞차와의 간격이 얼마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도 순간적으로 시선을 아래로 향 하다가 앞차의 뒤쪽 범퍼를 들이받은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히 가벼운 충돌이어서 양쪽 차량 모두 다친 사람은 없었고, 현장에서의 사고 수습도 상대방 운전수가 친 절하게 응대해 주어 별 어려움 없이 끝날 수 있었다. 영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접촉 사고가 일어나도 서로에게 언성을 높이며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일은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정말로 사람들이 느긋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큰일 날 뻔하였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교통사고 까지 일어나면 이만저만 힘든 일이 아니다. 물론 나중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 렌트카 회사에서 이것저것 사고와 관련하여 추가 서류(영어로 작성)를 요구하여 좀 골치가 아팠지만... 도로에 정체현상이 계속 진행되어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목적지인 세븐시스터즈 (Seven Sisters)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영국 남동부의 이스트 서식주(East Sussex)에 위치한 이 곳은 화이트 클리프(White Cliff)의 일부로 일곱 개의 기복을 가진 해안의 절벽이다. 화이트 클리프란 도버 해협을 따라 5.5마일의 해안에 걸쳐 이어지는 새하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해안의 절벽들을 말한다. 이는 탄산칼슘 성 분을 가진 생물체들의 껍데기가 오랜 세월 퇴적하여 생긴 쵸크(chalk) 층으로 부드 럽고 깍이기 쉬운 성질을 갖고 있으며, 지질시기 중의 하나인 중생대의 백악기( 白 堊 期 )라는 명칭의 기원이 된 곳이기도 하다. 영국인들이 자랑하는 해안 중의 하나인 이곳은 멀리서 보면 마치 아름다운 일곱 자매가 하얀 드레스를 걸치고 푸르른 바다를 향해 늘어서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하여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로 불리어지고 있다. 내셔널트러스트는 이 근방 일대의 4백ha 정도의 석회석 지대와 초원, 농장, 그리고 산책길을 소유하고 있다. 농장 이외에는 누구라도 자유로이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고 있는 곳이라 한다.

사진 25. 비치헤드 알림판-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실제 모습대로 그림을 그려 설명하고 있음 우리는 이스트본을 통과하여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비치헤드(Beach Head)라는 곳까지 가보았다. 이제까지의 영국에서 봐 온 경치와는 또 다른 경치가 점점 펼쳐 지고 있었다. 날씨도 너무 좋았고 바다와 어우러진 이곳의 해안경관이 우리의 탄성 을 자아내게 하였다. 차 안의 라디오에서도 마침 헨델의 메시아가 흘러 나오고 있 어 더욱 더 분위기를 띄워주고 있었다. 이윽고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들은 좀 전의 접촉사고는 다 잊어버리고 마냥 어린아이들처럼 좋아하며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사진 26. 빼어난 경관을 가진 비치헤드의 모습 - 새하얀 석회암과 푸른 바다의 조화 세븐 시스터즈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비치헤드는 한쪽으로는 100m 가 훨씬 넘는

새하얀 석회암의 해안절벽이, 또 한쪽으로는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는 한마디로 그림 같은 절경이 펼쳐져 있는 곳이었다. 만약 우리나라에 이러한 경치를 가진 곳 이 있었다면 벌써 개발이 진행되어 많은 상업시설이 들어섰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 에서는 식당을 겸한 휴게소 1개와 주차장시설 이외에는 별다른 시설 없이 자연 그 대로의 모습대로 보전되고 있었다. 심지어는 바닷가의 절벽 쪽으로는 대단히 위 험한 곳인데도 간단한 안전 시설 조차 거의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아마 사고가 나더라도 그건 개인의 책임일 뿐이라는 듯...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하며(?) 거의 절벽 끝까지 걸어가서 사진을 찍고, 경치를 둘러보고 있었다. 1965년 이후 영국의 내셔널트러스트에서는 1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많이 파괴된 해안선을 매입하여 보전하는 운동, 일명 넵튠 계획(Enterprise Neptune) 을 추진 하여 왔는데 그 결과 2003년 현재 약 965km의 해안선을 매입하게 되었다. 이는 스코틀랜드의 해안선을 제외한 영국 전체 해안선의 약 18%에 달하는 규모이다. 이 운동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회원 수도 대폭 증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측면은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게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갯 벌이나 해안사구, 해안암석 군( 群 ) 등의 각종 해안지형들은 태풍이나 해일과 같은 자연재해로부터 인간을 보호해 주는 천연의 방파제이자 많은 생물들의 서식처이기 도 하다. 그 동안 우리나라도 간척사업 및 임해지역 공단 조성과 관광지 개발 등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해안 지역이 많이 파괴되어 왔는데 하루 빨리 해안지형 보호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 계획이 수립되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 보전지역을 이렇게 탐방하게 된 계기가 된 것도 바로 울산의 이진리 해안 경관 보전 운동 때문이었다. 타포니 현상을 비롯하여 각 종 특이한 해안 지형이 나타나는 이진리 해안도 현재 산업도시인 울산의 지속적인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그 원형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은 우리 일행에게 좀 더 의미가 있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비치헤드를 끝으로 오늘의 일정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어느덧 렌트 카를 반납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원래 계획은 이 근처 앨프리스턴(Alfriston)에 있는 내 셔널 트러스트가 취득한 최초의 문화유산인 클러지 하우스(Clergy House:목사관)도 잠시 가 볼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Alfriston Clergy House 는 원래 14세기에 건립되었으나 그 후 세월이 흘러 상당히 훼손된 상태에서 1896년 내셔널 트러스트가 그 당시 10파운드의 돈으로 취득하여 복원한 곳으로 내셔널트러스트 운 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세븐 시스터즈를 출발해 반납 장소인 런던 히드로 공 항으로 향하였다. 어둠이 깔리는 무렵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공항 근처에 위치한 렌트 카 회사를 다소 힘들게 찾아내었다. 그 동안 제법 정이 들었던 차여서 그런지 막상 반납을 하려 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7일 동안 달린 거리는

1400km가 조금 넘었다. 매일 200km 정도는 달린 셈이었다. 렌터카 사무실에서 영 수증을 받고 나오니 어느덧 저녁 8시가 넘어서 있었다. 이제 내일부터 모레까지는 마지막으로 런던에서의 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의 숙소는 영국으로 오기 전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 놓았기 때문에 찾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 고 무엇보다 한인( 韓 人 ) 민박집이어서 마음이 한결 더 편안해졌다. 렌터카 회사에서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다시 공항으로 돌아온 우리들은 일단 지하 철을 타고 런던 시내 화이트채플(Whitechaple)역 근처에 위치한 민박집으로 향했 다. 민박집 근처에 가서 연락을 하자, 잠시 뒤 주인아저씨께서 직접 차를 몰고 나 오셔셔 우리 일행을 맞이해 주셨다. 주소에 나와 있었던 집은 본인의 집이었고 민 박집은 근처에 따로 있었다. 고향이 전라도라고 하신 주인아저씨는 이 곳 런던에 는 선교 목적으로 오시게 되었다고 한다. 민박집에는 우리 일행 이외에도 벌써 다 른 일행들이 많이 묵고 있었다. 주로 대학생들이었다. 시설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숙박비가 저렴했고 무엇보다 오래 만에 우리나라의 음식(김치에 미역국 뿐 이었지 만)을 맛볼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아홉번째날 (8월 16일) - 런던 시내 탐방 (자연사 박물관, 대영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런던에서의 첫날, 아침부터 해결해야 할 사항이 생겼다. 바로 영국의 내셔널 트러 스트 본부를 방문하는 일이었다. 사전에 방문하기로 약속을 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 에 일단 민박집 주인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를 통해 다시 본부의 위치를 확인해 보 았다. 본부는 숙소에서 다소 떨어진 곳(주소: Warrington WA5 7WD)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시간과 테러 기도 사건 등 여러 가지 여건상 방문하기가 다소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민 끝에 방문을 포기하는 쪽으로 결정하고, 본부 측에는 전화 연락을 통해 우리의 사정을 얘기하며 양해를 구하였다. 우리는 아쉬움이 많았지만 일단 스 코틀랜드의 본부를 방문한 것에 만족을 하며 런던 시내 탐방을 위해 민박집을 나섰 다. 지하철을 타고 시내에서 우리가 제일 먼저 가게 된 곳은 런던에서도 상류층의 주 거지역으로 잘 알려진 사우스 켄싱턴 (South Kensington)역 근처였다. 이 일대는 자연사 박물관(Nature History Museum)을 비롯하여 과학박물관(Science Museum),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ictoria & Albert Museum)등 유명한 박물관과 함께 주 위에는 런던의 대표적인 큰 공원 및 많은 레스토랑과 호텔이 밀집하여 있는 곳이 다. 우리는 이 중에서 일단 자연사박물관을 가 보기로 하였다. 1880년에 원래 대 영박물관의 분관으로 개관한 이곳은 크게 생물관과 과학관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100년이 넘은 역사로 인해 많은 볼거리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이른 시간이었 는데도 벌써 많은 입장객들이 줄을 서 있었다. 관람객의 대부분은 부모와 함께 온 어린학생들이었다. (현재 영국은 토니블레어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이 집권한 이후 모든 국립박물관은 무료로 개방되고 있다고 한다.) 생각보다는 빨리 입장이 되었는데, 박 물관 입구에서는 항공기 테러 기도 사건 때문인지 경관들이 일일이 입장객의 가방 을 조사하고 있었다. 우리는 일정상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었기 때문에 중요한 전시물을 중심으로 서둘러 관람하였다. 관람을 마친 뒤 박물관 입구의 잔디밭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은 다음 우리는 일단 오후에 다시 내셔널 갤러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이제부터는 각자 헤어지기로 하였 다. 일행 중 두 분은 이미 런던을 여행한 적이 계셨기 때문에 각자 자유롭게 돌아 다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잠시 일행과 헤어진 뒤, 나는 서둘러 근처에 위치한 로열 앨버트 홀(Royal Albert Hall)과 하이드 파크(Hyde Park)를 가 보았다. 가는 길에 갑자기 소나기가 퍼부었다. 런던의 날씨는 변화가 심해 하루에도 몇 차 례 소나기가 내린다더니 제대로 경험을 하는 것 같았다. 로열 앨버트 홀(Royal Albert Hall)은 로마의 원형극장을 본 떠 만든 돔형의 건물 로, 인도의 황제까지 겸하며 영국의 황금시대를 이룩했던 빅토리아 여왕 (1819-1901)이 부군인 앨버트 공의 갑작스런 죽음을 슬퍼하며 만든 것이다. 1871 년에 완성된 이 건물은 8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으며 일 년 내내 음악 콘서트 와 각종 행사가 진행된다. 특히 여름 시즌에는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밤, 고전 및 현대음악을 아울러 연주하는 프롬나드 콘서트(Promenade Concert)라고 불리 우는 공연이 벌어지는데 시민들에게 아주 인기가 있다고 한다. 영국이 낳은 유명한 팝 음악 그룹인 비틀즈의 첫 콘서트도 여기에서 열렸다고 한다. 영국에 오면 꼭 개인 적으로 여기에서 열리는 음악회를 꼭 한번 보고 싶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매 우 아쉬웠다. 한 동안 소나기가 제법 퍼부어 앨버트 홀 입구에서 잠시 비를 피한 다음, 비가 그치자 맞은 편에 위치한 하이드파크(Hyde Park)를 가 보았다. 이 공원은 원래 헨 리8세의 개인 사냥터였다고 하는데 17세기 초 부터는 일반들에게 공개가 되었고 지금은 런던을 대표하는 공원이자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곳이 되었다. 비가 온 직후여서 그런지 하이드파크의 경치가 더 아름답게 보였으며 수령이 오래된 큰 키 의 나무들이 멋진 자태로 짙은 녹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하이드파크를 천천히 걸어서 나온 뒤 다시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면서 도착한 곳은 한 때 런던 사교 계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불룸스베리(Bloomsbury :런던 북부의 주택가로서 경제학자 인 케인즈,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 미술평론가 로저 프라이, 소설가 포스터 등 유명 예술가 와 학자들이 많이 살았던 곳) 근처에 위치한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이었다. 동서고금의 유명한 유물들을 총 전시해 놓은 영국을 대표하는 이 박물관은 1753

년에 설립되어 현재 연간 수백 만 명의 관람객들이 찾아오는 세계 최초의 국립박물 관이다. 이 박물관은 원래 자연 과학자이자 의사였던 한스 슬론(1660-1753) 경과, 세계사에 관심을 가지고 고서( 古 書 )를 주로 수집했던 로버트 코튼 경, 이 두 사람 의 방대한 수집품과 왕실로부터의 기증품을 합한 것이 기본 골격이 되었다고 한다. 한스 슬론 경의 영향으로 처음에는 자연과학계의 박물관이라는 인상을 많이 주었지 만 후일 자연과학 관계의 소장품들은 자연사 박물관으로, 회화는 내셔널 갤러리로 각각 옮겨졌다고 한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에 위치한 대열람실 부터 가 보았다. 우선은 대 열람실의 규모에 압도를 당했다. 대열람실은 지름 45m의 원형의 형태로서, 중앙에 카운터가 있고 거기서부터 방사상으로 좌석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열람실 주위를 둘 러싸는 서가와 서고의 전체 길이가 40km나 된다고 한다. 서가에는 엄청난 양의 책 들이 진열 되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박물관보다는 이 열람실이 더 인상적이고 부럽기까지 했다. 이 거대한 사색의 전당에서 과거 대영제국의 힘이 여기서 나왔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았다. 20세기 전 세계의 사회, 정치, 경제,혁명 분야에 큰 영향을 준 마르크스(K. Marx :1818-1883)도 이 곳 런던에서 생활했을 때, 날마 다 이 곳에 와서 G-8 좌석에 자리를 잡고 유명한 자본론 을 썼다고 한다. 한 동안 열람실 관람을 한 다음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박물관 안에서는 단 체관광을 온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었으며 특히 중국인 관람객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한때 일본인 관광객들이 단체로 유럽을 많이 관광하였다는데 이제는 중국 사람들이 그 뒤를 잇는 듯 했다. 중국의 성장을 단적으로 볼 수 있는 것 같았 다. 90여개가 넘는 전시실로 이루어진 박물관 한 쪽에는 지난 2000년도에 만들어진 한국관(67실)도 있었는데 전시된 자료들이 너무 적었고 다른 나라의 전시관과 비교 해 봤을 때 많이 초라해 보였다. 5천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가 이런 정도의 모 습으로 비추어진다니,,,, 씁쓸한 마음도 들었지만 한편으론 이 박물관을 어떤 시각 으로 보느냐에 따라 생각을 달리 할 수도 있다. 어느 책에서인가 대영박물관에서 진짜 영국제는 수위뿐이다 는 말을 본 적이 있다. 농담반 진담반의 말이지만 의미 있는 말이라 생각된다. 합법적이었던 불법적이었던 전 세계에서 가져온 유물로 채 워 놓은 이 박물관이 과연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은 개인에 따라 생각이 다르겠지만, 유물도 자연과 마찬가지로 원래의 자리에 원래의 모습대로 있는 것이 그 가치가 있지 않나 생각이 되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박물관을 돌아다니다, 어느덧 일행과 만날 시간이 되어 서둘러 약속 장소인 내셔널 갤러리로 발걸음을 옮 겼다.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 중에 하나이자 교통의 중심지인 트라팔카 광장 (Trafalgr Square)의 북쪽에 위치한 내셔널 갤러리(Natinal Gallery)는 영국이 세계

적으로 자랑하는 미술관이다. 13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의 유럽 회화의 진수를 볼 수 있는 무려 2천3백점이 넘는 방대한 그림들이 66개의 전시실에 소장되어 있는 곳으로 프랑스가 자랑하는 루브르 미술관에 못지않은 곳이다. 제대로 감상하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이 날은 마침 마감 시간을 연장해 밤 9시까지 문을 연다 고 해서 다소 느긋한 마음으로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수 많은 작품들 중 특히 존 컨스터블(Constable, John :1766-1837)과 윌리암 터너 (Turner, Joseph Mallord William :1775-1851)의 작품들을 주목해서 보았다. 두 화가 모두 영국에서는 국민화가로 추앙될 만큼 유명하지만 서로의 화풍은 대조 적이었다. 이스트 앵글리아의 서픽 주에서 태어난, 농촌 태생의 컨스터블은 주로 영국의 전원 풍경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데 반해, 런던에서 태어난 도시 태생의 터 너는 낭만주의 풍의 화가답게 자연의 위대한 모습을 다소 모호하면서도 격한 필치 (그래서 터너의 그림은 가까이서 보면 무얼 그린 건지 잘 알수 없고 몇 미터 떨어져서 봐야 지 무슨 그림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로 그려내고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존 컨스터블은 내셔널트러스트와도 상당히 관련이 있는 화가이다. 그가 그 린 건초수레 라는 작품 안에 그려져 있는 윌리 롯(Willy Lot)의 집은 영국의 전 원을 상징하는 기념물이 되어 후일 실제로 그 집이 내셔널트러스트에 기증이 되었 으며, 내셔널트러스 50주년 기념집 에는 권두 그림으로도 선정되었다고 한다. 또한 컨스터블이 그린 전원풍의 많은 그림들은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으며 그 당시 영 국인들에게 일어나고 있었던 여러 가지 자연 보존 운동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되었 다고 한다. 한 권의 책이나 한 장의 그림도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할 수 있음을 이번 영국탐방을 통해 새삼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림 2. 건초수레 - 컨스터블 作 사진 27. 내셔널 갤러리에서 열린 음악회 그림 출처:http://www.imoon21.com/modern/land/constable/dry.htm 한참 동안 그림을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으 로 가 보니 마침 미술관의 한쪽에서 작은 실내음악회가 개최되고 있었다. 아마도 정기적으로 이곳에서 공연이 이루어지는 모양인데 미술관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것

이 이렇게 좋은 감흥을 주는지는 몰랐다.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연주자들의 모습을 보고, 직접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니 음악 속으로 완전히 몰입되었다. 어느 새 많은 관람객들이 악단을 둘러싸고 자연스럽게 모여 들어 음악회의 청중이 되어 있었다. 미술관이 잠시 콘서트홀이 되었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척 행복한 시간 이었다. 로열 앨버트 홀에서 음악 감상을 못했던 아쉬움이 다소 해소되는 것 같았 다. 어느 덧 영국에서의 마지막 밤도 이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마지막날 (8월 17일) - 도크랜드, 그리니치 천문대 그리고 다시 울산으로 드디어 영국에서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모두가 며칠 더 있었으면 안 되겠느냐는 소리가 나왔다. 막상 떠나야 될 날이 오니 아닌 게 아니라 하루가 아쉬웠다. 오늘 영국에서의 마지막 방문지는 출발시간을 고려해 런던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 치한 그리니치 천문대로 결정하였다. 지리교사로서는 방문하지 않을 수 없는 장소 이기도 하다. 시차에 관해 수업을 할 때 학생들에게 많이 얘기하는 곳인데 이제야 직접 가보게 된다는 마음에 약간의 설렘도 생겼다. 아침 일찍 숙소에서 나온 우리 는 일단 템즈 강변에 위치한 웨스트민스트 선착장으로 향했다. 그리니치 천문대까 지는 배로도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템즈 강 변의 풍경도 볼 겸해서 배를 타 고 가보기로 하였다. 사진 28. 도크랜드의 전경 -런던의 새로운 금융과 상업의 중심지로 개발된 곳 사진 29. 템즈 강 변에 위치한 빅벤과 국회의사당 템즈 강변을 따라 그리니치로 향하는 도중, 강변에서 최근 런던의 변화를 볼 수 있 었던 부분이 있었다. 바로 런던 도심에서 동쪽으로 8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도 크랜드(Docklands)였다. 1880년대 런던의 관문 항구로 개발된 이곳은 1960년대 중 반까지는 유럽의 가장 번성한 상업항구 중의 하나였다. 그 이후 정보화시대가 도래 하면서 시설의 노후 및 수송형태의 변화 등으로 지역경제가 급속히 쇠퇴하여 결국 폐허처럼 방치되어 왔던 곳이다. 이런 쇠퇴한 지역의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1981 년 런던도크개발공사(LDDC)가 설립되었고, 이후 이곳은 17년간의 재개발 끝에 최

근 약 2700여개의 기업체가 입지하면서 런던의 새로운 금융과 상업의 중심지로 변 하게 되었다. 또한 이 지역의 인구도 과거에 비해 2배 정도 증가를 하여 민간자본 유치를 통한 구( 舊 )항만 재개발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 총 4개의 지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면적은 대략 240만평 정도이다. 약 80억 파운드의 개발 비용이 투자되었다고 하 는데, 그 중 민간자본이 63억 파운드(이것도 대부분 해외자본을 유치함)를 차지하 였다고 한다. 특히 도크랜드의 중심부인 커너리 워프(Canary Wharf)에는 최근 첨단 산업까지 발달하고 있다. 도크랜드 지역에 접한 템즈 강변에는 독특한 외관의 현대 적 건물들도 많이 들어서 있었다. 개발의 결과에 대해 도시학자들 및 현지 주민들 에게서 비판도 많이 있는 곳이지만 대도시 런던의 또 다른 한 면을 볼 수 있는 지 역이다. 실제 자세한 답사를 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언젠가 다시 런던을 방문할 기 회가 온다면 꼭 한 번 들려볼 것이다. 출발한지 약 1시간 후 그리니치 선착장에 도착한 우리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 은 이제는 위스키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커티삭(Cutty Sark)이라는 이름의 커 다란 범선이었다. 런던의 동쪽에 위치한 이곳은 과거 대영제국의 관문이었다. 수 많 은 탐험선들이 이 곳으로 드나들었는데 이 범선도 그 중 하나였으며, 1869년에 진 수한 이후 중국, 인도 등지에 차를 운반하는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과거의 영화( 榮 華 )를 뒤로 한 채 말없이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니치 천문대는 선착장에 걸어서 20여분 정도 거리에 있었는데 약간 언덕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주변은 그리니치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으며 공원 안에는 국립 해양박물관도 있었다. 천문대 입구에 도착하여 언덕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템즈강 을 비롯하여 멀리 런던 시내의 전경까지 한 눈에 들어왔다. 천문대 앞마당 바닥에 는 스테인레스 강으로 처리한 본초자오선(경선 0도)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내부에는 붉은색의 레이저선도 내보내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바로 동경과 서경이 분리되는 것이다. 영국 천문학자들은 오랫동안 그리니치 천문대를 위치 측정의 기준으로 삼 아 왔으며, 특히 경도의 기준이 되는 본초자오선은 1851년에 이미 정해져서, 1884 년 마침내 미국의 워싱턴에서 열린 만국지도회의를 통해 전 세계 자오선의 기준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본초자오선 경계선에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경계선의 왼쪽, 오 른 쪽으로 발을 옮기게 되면 거의 하루를 왔다 갔다 하는 셈이 된다. 우리도 그 자 리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은 다음 천문대 내부를 둘러보았다.

원래 천문과 항해에 필요한 자료를 얻기 위해 1675년에 설립된 그리니치 천문대 는 세워질 당시의 이름은 왕립 그리니치 천문대(Royal Greenwich Observatory)였 다. 그러나 이곳의 천문 관측 기능은 20세기에 들어와 런던 시가지가 스모그 및 고 층건물, 네온사인 등에서 나오는 불빛으로 인해 관측이 곤란해지자 더 맑은 하늘 을 찾아 1945년 그리니치 남쪽 서섹스 주 이전하게 되었으며, 다시 1990년에는 대 학과의 밀접한 유대관계에 대한 필요성을 느껴 케임브리지 대학의 천문학 연구소로 옮기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거의 천문대의 기능은 없어지고 시계나 천문 관련 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사진.30 본초자오선 좌, 우에 표시된 도시들 사진 31.그리니치 천문대 앞마당에 설치되어 있는 (오른쪽에 서울도 표시되어 있다) 본초자오선의 경계선에 서서 천문대 관람을 마친 다음 우리는 다시 배를 타고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 왔다. 이제 거의 모든 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저녁에 출발하는 비행시간을 맞추기 위해 우리는 다시 민박집으로 돌아가 짐을 챙긴 다음 지하철을 타고 히드로 공항으로 향 했다. 공항에는 며칠 전 항공기 테러 기도 사건의 여파로 삼엄한 경비가 펼쳐지고 있었 다. 액체로 된 물건은 일체 소지할 수가 없었다. 공항검색대를 통과할 때는 온몸을 샅샅이 수색당하기도 했지만 안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이해하였다. 다시 10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우리는 인천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공항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셔널트러스트의 최호진 부장님으로부터 안부 전화가 왔었다. 전화를 먼저 해 드렸어야 하는데... 무사히 잘 도착했다는 인사말을 나 눈 다음, 우리는 울산으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하였다. 공항에서 저녁을 해결한 다 음 다시 버스에 몸을 실어 울산에 도착한 시간은 다음 날 새벽 1시가 훨씬 넘어서 였다. 출발할 때는 사실 여러 가지 걱정도 많이 되었고 다소 무거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몸은 좀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뿌듯함으로 채워졌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내셔널트러스트 활동 프로그램에 직접 참가하 지 못한 점이다. 하지만 출발에서 도착할 때 까지 만난 많은 사람들, 그리고 내셔 널트러스트의 보존지역과 그 외 많은 유적지와 아름다운 풍경들... 아마 영국 에서의 열흘 동안은 오래 동안 잊지 못할 추억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역사와 전통,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최대한 유지해 갈려는 영국 인들의 의지를 짧은 기간이었지만 직접 볼 수 있었던 것이 큰 보람이었다. 아직 우 리나라에서의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이 짧은 역사로 인해 여러 가지 헤쳐 나가야 할 어려운 일들이 많지만 정부에서나 국민 모두가 좀 더 우리나라의 자연과 문화유산 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과 관심을 가진다면 지금보다 더 큰 사회적 운동으로 성장 할 것임을 믿는다. 그리고 현재 법제처에서 심의 중인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자산에 관한 국민신탁법 도 하루 빨리 정식으로 제정이 되어 한국의 내셔널트러스트 운동 에 큰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끝으로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에서도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하게 해 주신 내셔널트 러스트 관계자 여러분 및 후원해 주신 환경부 측에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