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조사보고서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32조제1항 규정에 따라 2008년 7월 9일부터 2009년 1월 5일까지의 진실 화해를위 한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을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하기 위해 작성되었습 니다.
차례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김세태 등에 대한 보안대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사건 11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25 보안대의 가혹행위로 인한 임성국 사망사건 57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77 동명목재 사건 119 고 윤태현 소령 의문사 사건 155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169 김철 간첩조작 의혹 사건 233 어부 최봉직의 실종 의혹 사건 265 김희권 5 18관련 총기은닉 및 강도조작 의혹 사건 279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297 제24회 제25회 행정고시 면접탈락 사건 333 김상원 의문사 사건 367 김종옥 홍복동 부역조작 의혹 사건 393 지리산 공비토벌대에 의한 강정금 상해 사건 409 박동운 간첩조작 의혹 사건 421 경무대 앞 시위 사건(불능) 461 하주대의 의문사 사건(불능) 471 권두상 인권침해사건(불능) 481 6 25 당시 이적죄로 수감 중 의문사 사건(불능) 491 김영진 간첩조작 의혹 사건(불능) 501 김영옥 불법구금 및 고문치사 의혹 사건(불능) 513
부록 Ⅰ. 진실화해위원회 일반 현황 523 Ⅱ. 진실화해위원회 활동 현황 528 Ⅲ. 진실화해위원회 활동 일지 563 Ⅳ.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보고서 총 목차 570
1권 총론 제1절 조사보고서 개요 1. 위원회 활동 개요 2. 보고서 구성과 주요 내용 제2절 신청사건 처리 및 결정 현황 1. 신청사건 처리 현황 2. 진실규명 및 진실규명 불능 결정 현황 제3절 권고 및 처리 현황 1. 위원회 권고 현황 2. 권고사항 처리 현황 제4절 결정 사건 분석 1. 항일독립운동 및 해외동포사 2. 적대세력관련 사건 3. 민간인 집단희생사건 4. 인권침해사건 제 1 부 민족독립규명위원회 사건 제1절 항일독립운동 사건 이용규의 통영 수산학교 학생운동의 건 김홍배 등 57명의 전남운동협의회 항일운동의 건 하동 의신마을 의병사건 오만수의 경남 고성군 일원에서의 항일독립운동의 건(불능) 이목의 항일독립운동(불능) 구소현의 항일독립운동의 건(불능) 최인환의 항일독립운동의 건(불능) 신정흔의 항일독립운동의 건(불능) 정국래의 항일독립운동의 건(불능) 이원식의 항일독립운동의 건(불능) 제2절 해외동포사 사건 파독 광부 간호사의 한국경제발전에 대한 기여의 건 태권도의 국제적 보급을 통한 국위선양의 건
제3절 적대세력관련 사건 청주지역 신교식 등 8인의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및 강제연행(납치) 사건 김제에서 이석상 등이 적대세력에 의해 희생된 사건 부여지역 윤대선 등 11명의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및 강제연행 사건 예산지역에서 고영준 등 26명의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의 건 대전지역 적대세력 사건 영암지역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 강화지역 적대세력 사건 청원지역 이갑동 등 33인의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및 강제연행 사건 2권 제 2 부 집단희생규명위원회 사건(1) 김포 부역혐의 희생사건 남원지역 민간인 희생사건 나주 다도면 민간인 희생사건(1) 청원 국민보도연맹 사건 영덕 지품면 민간인 희생사건 경기지역 미군폭격사건 광주 민간인 희생사건(1) 거제지역 민간인 희생사건 서산 태안 부역혐의 희생사건 담양 장성지역 경찰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 포항 흥안리 미군폭격사건 3권 제 2 부 집단희생규명위원회 사건(2) 불갑산지역 민간인 희생사건 함양 민간인 희생사건 합천읍 민간인 희생사건 순창지역 민간인 희생사건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1) 의령 미군폭격사건 안동 부역혐의 희생사건 영천 청통면 이영쇠 사망사건 순천지역 여순사건 김해 국민보도연맹 사건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김세태 등에 대한 보안대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사건 결정사안 위원회 조사결과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보안대에서 간첩혐의에 대한 구체적 근 거없이 피해자들을 불법연행 구금 및 가혹행위를 가한 인권침해사건으로 밝혀져 진실 규명으로 결정하고 피해자들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고 권고한 사례. 결정요지 1. 505보안대는 군인 군무원이 아닌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김세태, 장태임 및 김상선을 연행하여 3일 내지 3주간 정도를 수사한 사실이 인정된다. 2. 수사과정에서 헌법 및 군법회의법에 규정된 영장주의 및 적법절차를 위반하여 주거 지에 대한 수색을 거친 다음, 피해자들을 불법연행 및 구금을 하는 위법을 범하였을 뿐 아니라 피해자 김세태에 대하여는 고문까지 가한 사실도 인정된다. 3. 그럼에도 505보안대는 피해자들에 대한 간첩혐의를 밝혀내지 못한 채 무혐의 석방 을 하였는바, 결국 객관적 사실에 바탕한 구체적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무리한 수사를 진 행하면서 불법연행 구금 및 고문을 가한 사실은 위법하고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 로 인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 해당한다. 전 문 사 건 라-7967 김세태 등에 대한 보안대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사건 신청인 김세태 결정일 2008. 8. 19. 주 문 이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진실규명 으로 결정한다. 김세태 등에 대한 보안대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사건 11
제4권 이 유 Ⅰ. 조사개요 1. 사건개요 및 신청요지 피해자 김세태, 장태임, 김상선은 1980. 2. 13.경 전남 신안군 압해면 송공리 소재 거주 지에서 보안대원에 의해 마을 앞 해상에 정박 중이던 신안군청 행정선 신안호로 순차적 으로 불법연행되었다. 1) 피해자 김세태는 위 행정선에서 2일간 및 505보안대 목포분견대에서 1주일가량 고문 가혹행위를 당하면서 북한 왕래 횟수 및 교육내용 등의 간첩행위 관련 진술을 강요받은 후, 광주시 소재 505보안대로 인치되어 반복해서 진술서를 작성하였고 동시에 고문 흔적 을 없애기 위한 마사지를 받는 등 동소에서 정월대보름을 지내도록 구금된 후 3주 만에 석방되었다. 한편, 피해자 장태임 및 김상선은 행정선에서 위 김세태와 동일한 내용의 조사를 받았 으나 가혹행위는 당하지 않았으며 505보안대 목포분견대로 인치된 다음날 석방되었다. 피해자 김세태는 보안대의 조사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인들로부터 간첩가족이라 는 오명을 얻어 생활기반이 붕괴되는 등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했고, 고문후유증 등의 피 해로 고통을 당해왔다며 당시 보안대에서 자신들을 조사한 경위 등을 비롯한 사건진상을 밝혀 달라는 내용으로 2006. 11. 28. 진실 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 원회라 한다)에 진실규명을 신청하였다. 2. 조사의 근거와 목적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이하 기본법 이라 한다) 제1조는 항일독립운 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 학살 의문사 사건 등을 조 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 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 으로 하고 있다. 동법 제2조제1항제4호는 인권침해에 관한 진실규명 대상 범위를 1945년 8월 15일부터 1) 김세태는 망 김남태의 동생, 장태임은 위 김남태의 처, 김상선은 위 김남태 및 장태임의 아들이다. 12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 상해 실종사건, 그밖에 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 으로 정하고 있다. 이 사건은 보안대에 불법연행 구금되어 약 3주간에 걸쳐 간첩행위에 대한 고문 조사 를 받았다는 것인바, 진실화해위원회는 기본법이 정하고 있는 진실규명 대상 범위에 해 당한다고 판단하여 2007. 9. 4. 조사개시를 의결하였다. 3. 규명과제 가. 보안대의 조사 여부 피해자 김세태는 보안대원에게 연행된 후 약 3주간에 걸쳐 간첩행위에 대한 조사를 받 았다는 것으로, 이는 후술하는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 여부에 대한 불가분의 전제가 되므 로 그 조사사실 여부 및 혐의내용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나. 보안대의 일반인에 대한 수사권 여부 먼저 보안대에서 군인 군속이 아닌 민간인인 피해자들을 연행하여 조사하였다는 부 분과 관련하여는, 군형법 적용대상자가 아닌 이들에 대하여 보안대에 수사권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그 수사행위의 적부( 適 否 )가 달리 평가되므로 민간인에 대한 보안대의 수사 권 존부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다. 불법구금 및 불법수색 여부 나아가 피해자들은 범죄사실 고지 및 영장제시의 절차 없이 불법연행되어 신안군 행정 선 및 보안대에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 김상선은 불법적인 주거 수색을 당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그 사실 여부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라. 가혹행위 여부 피해자 김세태는 행정선 및 보안대에서 거꾸로 매달기, 코에 물 붓기 및 전기고문 등의 가혹행위를 당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그 여부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김세태 등에 대한 보안대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사건 13
제4권 4. 조사방법 가. 자료조사 신안군청 행정선 신안호의 근무자 명단 확인 국군기무사령부 국가정보원 및 목포경찰서를 상대로 피해자 김세태에 대한 수사 기록, 정보및보안업무기획 조정규정에 따른 조정자료, 월북자동향자료 등을 제출받고자 하였으나 위 수사기록 및 조정자료 등이 존안되어 있지 않는다는 통보에 따라 자료조사 는 진행하지 못하였다 나. 진술청취 - 피해자 김세태, 김상선, 장태임 - 참고인 김, 이, 고, 김, 김, 장, 강, 조, 손 - 보안부대원 이, 최, 김, 김, 안, 신, 임 Ⅱ. 조사결과 1. 사건경위 사건 외 김남태는 1951. 9. 5. 군에 입대하였다가 행방불명 2) 되었으며, 1993. 7. 30 광주 지방법원목포지원에서 실종선고 심판이 확정되어 3) 1993. 8. 9. 제적처리되었다. 위 망( 亡 ) 김남태의 행방과 관련하여 사건 당시 505 보안대원이었던 이 은 진실화 해위원회 조사에서 505보안대에서 김세태를 조사한 동기는 그의 형인 김남태가 월북하 였기 때문으로 기억하고 있다 고 진술하였고, 당시 신안군 압해면 예비군 중대장으로서 위 이 의 협조요청을 받고 피해자들의 동 향 파악 등 내사활동을 하였던 장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보안대 및 경찰서 지 서에서 위 김남태를 월북자로 관리하고 있음을 확인한 사실이 있다 고 진술하였다. 한편, 피해자 김세태는 보안대원으로부터 월북한 김남태에게 도움을 받고 잘사는 것이 아니냐 는 내용의 조사를 받았다 주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피해자 김상선도 당시 할머니 2) 김남태의 병적증명서에는 1951. 9. 5. 입대하여 1955. 11. 16. 제대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3) 확정사유 : 1959. 10. 1. 생사불명기간 만료. 14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로부터 집을 뒤지러 온 사람이 네 아버지(김남태)가 간첩으로 내려오다가 붙잡혔다고 하 더라 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위 내용들을 종합하면 이 사건은 위 김남태가 월북하였다가 다시 남파되어 그 가족들 과 접촉하였을 것으로 판단한 보안대가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피해자 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여겨진다. 2. 사건 조사결과 가. 피해자에 대한 보안대의 조사 여부 1) 관계기관 조회 국군기무사령부로부터 1피해자 김세태에 대한 수사기록, 2505보안대 대공과에서 작 성한 1980. 2월분 소환 및 연행자 명부, 3망 김남태에 대한 월북자 분류 및 관리여부, 월 북자잔류가족동향파악 등의 자료를, 국가정보원으로부터 4정보및보안업무조정 감독 규정 4) 에 따른 보안대와의 조정자료, 5망 김남태에 대한 월북자로서의 관리대상 여부 등의 자료를, 목포경찰서로부터 6망 김남태에 대한 월북자로서의 관리대상 여부 등의 자료를 각 제 출받고자 하였으나 모두 관련 자료가 없다는 내용의 회신을 받았다 2) 보안부대원의 진술 가) 505보안대 대공과 근무자 505보안대 대공과에서 근무한 이 은 진실화해위원회의 1차 조사시 5) 김세태 및 그 에 대한 조사여부도 모른다 라고 진술한 후, 2차 조사에서는 6) 505보안대 대공과에서 김세태를 조사한 것은 사실이나 내가 조사에 관여하지 않아 조사내용, 방법 및 조사기간 4) 1973.9.25. 대통령령 제6872호, 제5조 (정보사범등의 내사등) 1정보수사기관이 정보사범등의 내사 수사 에 착수하거나 이를 검거한 때와 관할 검찰기관(군검찰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에 송치한 때에는 즉시 이 를 정보부장에게 통보하여야 한다. 제6조 (정보사범등의 신병처리등) 1정보수사기관의 장은 정보사범등의 신병처리에 대하여 정보부장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 2정보수사기관이 정보사범등 월남귀순자 불온문건투입자 및 납북귀환자와 피난 사민에 대하여 심문 등을 하고자 할 때에는 사전에 정보부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그 결과를 지체없이 통보하여야 한다. 5) 2007. 7. 19. 진술청취. 6) 2008. 7. 21. 진술청취. 김세태 등에 대한 보안대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사건 15
제4권 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김세태의 형이 월북한 것 때문에 조사받은 것으로 기억된다. 대공과에서 특정 사건 조사 시 담당수사관이 아니더라도 사건 내용은 알게 되는데다 김 세태가 고향사람이고 형 친구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 조사 시 본 건에 대하여 진술하지 않은 것은 김세태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과정을 알지 못한다는 이 유도 있었지만 조사과정 일부라도 진술할 경우 김세태가 나를 통해 더 많은 내용을 알아 내려고 할 것 같다는 판단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고 진술하였다. 반면 같은 505보안대 대공과에서 근무자인 김 및 임 은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 여부 내지 신안군 행정선을 동원한 사건조사 여부도 기억나지 않는다 고 진술하였다. 7) 나) 505보안대 목포분견대 근무자 505보안대 목포분견대장 안 를 비롯한 김 및 최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 서 분견대의 주된 업무는 군인사에 대한 신원조사일 뿐 수사는 업무범위에 포함되어 있 지 아니하고 실제 피해자들을 조사한 사실이 없고, 505보안대에서 분견대를 이용하여 피 해자들을 조사하였다면 지원을 하였을 텐데 그런 사실이나 신안군청에 행정선 지원 요청 을 한 사실도 없다 고 진술하였다. 8) 그러나 77. 3.경부터 78. 초경까지 505보안대 목포분견대에서 신안군을 담당하였던 신 은 관내에 대공사찰 관리대상자가 많았는데 에이급(A급)만도 20여 명 정도였고, 특 히 지도면 및 임자면에는 월북자들이 많았고, 안좌도 출신이 월북하여 장관까지 한 사람 이 있었다. 77년도 하반기에 신안군 행정선을 동원하여 신안군 어의도 감정리 거주자 이 이라는 사람을 조사한 사실이 있고, 이후 목포분견대로 재차 연행하여 조사한 사실이 있었다. 당시 위 사건에 대해서는 동네사람인 주모씨라는 사람과 이장( 里 長 )을 정보원 삼 아 내사하였다 고 위 안 등과 달리 분견대에서도 대공사찰 및 수사를 하였음을 진술 하였다. 9) 3) 참고인 진술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피해자 김상선은 80. 2. 13. 동네청년들과 망가진 수로를 보 수하고 집에 가자 보안대원 3~4명이 집을 수색하고 있어 할머니에게 무슨 일인지 묻자 아버지가 간첩으로 내려오다가 붙잡혀서 그런단다 는 얘기를 들었고, 보안대원도 아버지 7) 2007. 8. 1. 및 2008. 5. 20. 각 진술청취. 8) 2007. 11. 19, 2007. 11. 21. 및 2007. 7. 25. 각 진술청취. 9) 2008. 5. 14. 진술청취. 16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가 배에 있으니 보고 싶지 않냐 며 나와 모친을 행정선으로 연행해갔는데 보안대원들은 범죄사실 고지나 영장제시도 하지 않았고, 연행된 일자는 5 18 이전인데다 너무 큰일이 라서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연행된 후 보안대원 한 명이 자신을 모르겠느냐고 해서 자 세히 보자 김(해태) 절단용 기계 판매 행상으로서 서너 차례 집에 왔다간 사실이 있을 뿐 만 아니라 하루는 잠을 재워달라고 해서 숙식까지 제공했던 그 사람이었다. 당시 실제 집 에서 키우던 개 1마리가 이유 없이 죽은 사실이 있을 뿐 아니라, 집 담장에 기대어 설치 한 김 건조대에는 못이 박혀 있어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밤마다 치워지고 해서 누군가 담장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치우는 것이 아닌가 하여 신경이 쓰였 는데, 보안대에서 평소부터 감시를 해왔던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버지에 대한 기 억이나 생일도 모르기 때문에 제사를 지낸 사실이 없다. 다만 할아버지 제사가 보리수확 을 한 직후인 음력으로 6. 초이렛날인데 추도예배식으로 하고 있을 뿐 아버지에 대한 제 사를 지낸 사실이 없다. 연행된 후 신안군청 행정선에서 1주일가량, 505보안대 목포분견 대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석방되었는데 재산 형성과정에 대해서 조사받았다. 목포분견대 에서 작은아버지 김세태를 데리고 가라고 해서 광주에 있는 505보안대에 갔는데 보안대 원은 의사들이 김세태의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모두 확인했으니 서류에 지장을 찍 으라 고 해서 어떤 서류에 지장을 찍어주고 작은아버지를 모시고 왔다 고 진술하였다. 10) 당시 신안군 반공연맹 사무국장으로서 피해자 김세태에 대한 신원보증서를 작성해주 었다는 김 은 김세태는 신안군 압해면 송공리 사람으로 저보다는 5년 연하로 압해면 축협 등의 감사로 일하여 알고 지냈는데, 신안군 도초면 도락리 출신인 망 김 이 목포 보안대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김세태를 석방시키는 데 필요하다며 신원보증을 요청하여 최 로 기억되는 목포보안대 신안군 담당에게 전화하여 내용을 알아본 다음 신원보증 서를 작성해주었는데 위 김 이 보안대에 제출하였다. 김세태를 명분 없이 잡아 들였 기 때문에 명분을 찾기 위해 신원보증을 요청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김세태가 간첩행 위를 할 사람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보증을 해준 것이다. 김세태가 석방된 후 전화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뱀술을 대접하겠다고 했으나 술을 마시지 않는데다 뱀술 이라고 해서 기겁을 하고 거절한 사실이 있다. 오래되긴 했으나 김 을 통해 김세태를 위해 신원보증을 해준 것은 사실이다 고 진술하였다. 11) 피해자 김세태로부터 본건 제보자로 오인받았던 김 은 김세태가 연행된 당일 자신 10) 2008. 6. 4. 2차 진술청취. 11) 2007. 4. 19. 진술청취. 김세태 등에 대한 보안대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사건 17
제4권 의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보안대원 2명에게 행방불명된 위 김세태의 형 김남 태는 김세태보다 나와 더 절친하였으므로 만약 김남태가 마을에 나타났다면 나에게 찾아 왔을 것이라며 오히려 김세태를 변호까지 했음에도 김세태는 나를 본건 제보자로 지목하 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김세태를 6개월에 걸쳐 내사를 하였다는 신안군 압해면 예비군 중대장이었던 장 을 통해서도 무고함이 밝혀졌을 뿐 아니라 김세태의 조카 김상선도 보안대에서 근무한다는 동서( 同 壻 )를 통해 확인하였다. 그리고 김세태가 언제 잡혀가고 며칠 동안 잡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보안대로 연행된 것은 사실이다 고 진술하였다. 12) 피해자 김세태와 같은 마을에 거주하였던 고 는 김세태가 보안대에 연행되었다는 얘기를 들은데다 김세태의 처로부터 남편이 보안대에 끌려갔으니 알아볼 데가 있으면 알 아봐달라는 부탁을 받아 알고 있었고, 실제 위 부탁을 받은 후 목포보안대 수사과장 최 의 집에 전화하였으나 동인이 부재중이라 직접 통화하지는 못한 사실이 있다. 김세태 는 내가 보안대에 제보하였다고 하나 김세태의 형이 월북했는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그 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슨 제보를 할 수 있겠으며, 설사 내용을 안다고 한들 같은 마 을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을 못되게 할 이유가 있겠느냐, 그런 사실이 없다. 김세태가 보 안대에 연행된 시기는 모르겠으나 나도 신안군청 앞 초원다방에서 목포보안대로 연행되 어 김세태의 조카인 김상선의 부동산 매매경위에 대해 조사를 받은 사실이 있고, 위 최 가 석방시켜주었다. 보안대에서 자신을 상대로 김상선의 부동산 매매경위를 조사할 무 렵에 위 김상선이 송공리 온수골 소재 이 와 오촌지간인 사람의 논 3~400평을 구입 한 것은 사실이다 고 진술하였다. 13) 압해면 예비군 중대장이었던 장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505보안대에서 근무 하고 있던 고향선배인 이 상사의 협조요청에 따라 77년경부터 약 3년가량 김세태의 부동산 소유 내역, 자금관계, 혼인 외의 자가 호적에 등재된 사실, 주요 접촉인물 및 주야 간 동태 감시, 망 김남태에 대한 제사 사실 등을 단독 또는 보안대원과 함께 내사를 한 사실이 있고, 보안대에서는 보안대원을 행상으로 위장시켜 내사를 하였으며, 그 외 김세 태와 같은 마을에 거주하면서 정보원 역할을 하였던 망 최 이 피해자들의 동향을 확 인하였다. 내사를 하는 중에 야간 잠복에 방해가 되는 김세태의 개 3마리 및 김상선의 개 1마리를 죽이기까지 하였으며, 김상선의 집은 그 가족이 일하러 나가 집이 빌 때는 집안 에 들어가 누군가가 먹을 밥을 별도로 차려놓지는 않았는지도 확인하였다. 피해자들의 12) 2007. 5. 30. 진술청취. 13) 2007. 6. 4. 진술청취. 18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일가인 김아무개가 101보충대에서 신병교육을 마치면서 작성한 가진 것도 없고 생활도 윤택하지도 않은 김세태가 부락에서 떨어져 외진 곳인 산비탈의 넓은 땅을 사가지고 밤 나무를 심고 염소와 소를 키우고 한다. 김세태의 형이 월북했다 는 내용의 소원수리서를 505보안대에서 본 사실이 있는데 위 소원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하여 내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고, 보안대 및 경찰서 지서에서 김세태의 형 김남태는 월북자로서, 김업태는 행불 자로 관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사실이 있다. 505보안대에서 김세태를 연행할 때 경비정 (신안군 행정선임)을 동원하기도 하였으며, 505보안대 목포분견대에서 김세태 및 그와 자 주 접촉하였던 망 김, 김, 고 까지 연행하여 조사를 하였고, 김세태가 연행된 후 주변 사람들이 신안군 출신으로서 보안사령부 인사참모부에서 근무하였던 망 박 상사 14) 를 통해 구명운동을 하기도 하였다. 목포분견대에서 많이 맞았는지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얼굴이 부어 있는 김세태를 본 사실이 있고, 김세태는 연행 후 약 한 달 만 에 석방되었다 고 진술하였다. 15) 신안군청 행정선 신안호의 기관장으로 근무하였던 이 는 시기는 기억할 수 없으나 목포보안대에서 신안군 압해면 송공리 사람을 조사하는 데 2일가량 동원된 사실이 있고, 당시 조사장소인 상황실의 접근을 금지하여 무슨 내용으로 조사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행정선 갑판에서 보안대원끼리 손으로 송공리 뒷산을 가리키며 7부쯤 되는 저곳에서 교 신을 했을 것이다라고 주고받는 얘기를 들은 사실이 있고, 그 외에도 완도군 보길도, 신 안군 어의리 및 포작도에서 조사할 때도 동원된 사실이 있다. 당시 보안대원은 사병을 포 함하여 총 7~8명 정도였으나 실제 보안대원은 4명 정도였고, 사병들은 그중 한 사람을 손 반장 이라고 호칭하였다. 접안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송공리 앞 해상에 정박한 상태에 서 조사를 하였다 고 진술하였다. 16) 신안군청에서 1979. 10. 9.부터 2007. 12. 31.까지 근무하다가 퇴직한 조 는 1980. 2. 경 신안군 어업지도선에서 통신직으로(통신7급) 근무하던 중 2박 3일간 신안군 행정선 신안호의 통신담당인 장 의 대직근무를 할 때 보안대 또는 안기부의 작전 지원근무를 한 사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전남 신안군 압해면 송공리에서 누군가를 데리고 와서 행 정선에서 조사한 사실이 있고, 당시 조사하는 곳에는 접근통제를 하여 조사내용 방법 및 피조사자가 누구인지는 몰랐으나 조사장소에서 신음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으며, 나 14) 병적증명서에는 1977. 1. 28.부터 1980. 8. 31. 까지 보안사령부 인사처에서 근무한 사실이 기재되어 있다. 15) 2008. 5. 7. 1차, 2008. 5. 28. 2차 진술청취. 16) 2007. 4. 26. 진술청취. 김세태 등에 대한 보안대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사건 19
제4권 중에 목포항에서 하선할 때 피조사자가 전부터 알고 있던 새마을지도자 김세태임을 알게 되었다. 당시 4~6명이 작전에 참여하였으나 그 사람 중 아는 자는 없었다 고 진술하였 다. 17) 신안군 행정선 신안호의 선장으로 근무하였던 강 은 시기는 기억하지 못하겠으나 보안대는 신안군 행정선을 지원받아 신안군 지도면 포작도 및 어의리, 완도군 보길도에 서 사건조사를 한 사실이 있다. 피해자 김세태에 대해서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압해도 송공리에 지원을 나간 기억이 나는 것 같다 고 진술하였다. 18) 피해자 김상선은 손위동서인 손 이 안기부에서 근무하는 동생 손 으로부터 전 해 듣고 알았다며 보안대에서 조사받은 나를 위로하였다 고 진술하였다. 이에 대하여 손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舊 안기부 목포출장소에서 청원경찰 로 근무하다 89년도에 퇴직하였을 뿐 보안대와는 관련이 없다. 청원경찰로서 사건조사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본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둘째형인 손 과 동서지간인 김 상선을 모른다. 위 김상선이 당한 일을 형에게 얘기한 사실이 있는지는 기억이 없다 고 위 사실을 부인하는 진술을 하였다. 19) 4) 소결 가) 보안대의 피해자 조사 여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 응한 보안대원들은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사실을 부인하고 있 으나 분견대의 업무에 대공사찰 업무가 포함되어 있고, 분견대에서도 행정선을 동원하여 사건조사를 한 사실이 있다는 보안대원 신 의 구체적인 진술, 보안대에서 피해자 김 세태를 조사하였다는 행정선 근무 공무원 강, 이 및 조 의 진술, 반공연맹 신 안군지부 사무국장 김 의 신원보증 경위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 보안대원의 요청으로 피해자들에 대한 내사를 하였다는 예비군 중대장 장 의 구체적인 진술, 보안대원에게 김남태와의 관계를 설명하였다는 김 의 진술, 보안대에 연행되어 김상선의 부동산 매 매경위에 대해 조사를 받고 평소 알고 있었던 보안대원의 편의로 석방되었다는 고 의 진술, 안기부 청원경찰 손 이 본건을 인지하고 있었던 사실로 미루어볼 때 피해자들 을 505보안대에서 조사한 사실이 인정된다. 17) 2008. 7. 15. 진술청취. 18) 2008. 5. 28. 진술청취. 19) 2008. 6. 25. 진술청취. 20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특히, 피해자 김세태가 처음부터 조사 관여 보안대원으로 지목하였던 이 은 뒤늦게 나마 김세태를 505보안대에서 조사한 것은 사실이고, 위 사건조사에 관여하지는 않았지 만 동인이 고향사람이라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면서 김세태에 대한 조사사실을 모른다는 기존 진술을 번복하였다. 나) 피해자에 대한 혐의내용 보안대원 이 의 피해자 김세태의 형 김남태가 월북한 것 때문에 조사한 것으로 기 억하고 있다 는 진술, 예비군 중대장이었던 장 의 김세태와 같은 동네사람인 훈련병 이 작성한 김남태가 월북하였다는 내용이 포함된 소원수리서를 확인하기 위하여 내사를 하였고, 실제 보안대 및 경찰서 지서에서도 김남태를 월북자로서 관리하고 있음을 확인하 였다 는 진술, 김 의 김세태가 연행될 무렵 우연히 조우한 보안대원에게 김남태가 마 을에 나타났다면 내게 찾아왔을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는 진술, 피해자 김상선의 아버지 가 간첩으로 내려오다가 붙잡혔기 때문에 주거지를 수색한다고 했다는 보안대원의 말을 할머니로부터 전해 들었고, 보안대원이 아버지가 행정선에 있으니 보고 싶지 않냐며 나와 모친을 행정선으로 연행하였다 는 진술을 종합하면 보안대에서 망 김남태가 월북한 것으 로 판단하고 잔여 가족과의 연계 여부에 혐의를 두고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나. 보안대의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 여부 1) 관련규정 등 국군보안부대령 20) 제1조에 의하면, 보안부대는 군법회의법 제44조제2호에 규정된 범 죄 21) 에 대한 수사권이 있다. 군법회의법 제2조에 의하면 군법회의는 군형법 등에 대한 재판권이 있는바, 군형법 제1조 제1항 내지 제3항은 군인 및 군무원 등에게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보안부대는 원칙적으로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다. 또한 민간인에 대 하여는 군형법상의 특별규정이 아닌 국가보안법위반이나 형법상 간첩죄는 군법회의 관 할이 아니다. 따라서 보안부대는 민간인의 국가보안법 위반이나 형법상 간첩혐의에 대한 수사권이 없다. 20) 1980. 1. 23. 대통령령9734호 21) 1973. 10. 10. 법률제2630호, 제44조제2호 : 군형법제2편제1장(반란의죄) 및 제2장의 죄(이적의죄), 형법제2 편제1장(내란의죄) 및 제2장의죄(외환의죄), 군형법제80조, 제81조, 국가보안법 반공법 및 군사기밀보호 법에 규정된 죄 김세태 등에 대한 보안대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사건 21
제4권 2) 소결 결국, 505보안대는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법적 근거없이 피해자 들을 수사하였는바, 이는 위법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다. 불법구금 및 불법수색 여부 1) 피해자 및 참고인의 진술 요지 피해자 김세태는 범죄사실 및 구속이유 고지를 비롯한 영장제시도 받은 바 없이 구정 (설) 직전에 연행되었다가 행정선에서 2일간, 목포분견대에서 1주일 정도, 505보안대에 인치된 후 동소에서 정월대보름을 지내도록 구금된 다음 3주 만에 석방되었다 진술하고, 피해자 김상선은 행정선에서 1주일 정도, 목포분견대에서 1박을 한 다음 석방되었고, 연행에 앞서 불법적인 주거 수색을 당하였다고 진술하였다. 그 외 예비군 중대장 장 은 위 김세태가 연행된 후 한달여 정도 후 석방되었다고 진 술하고, 행정선 기관장 이 는 보안대의 지원기간을 2일 정도로 기억하고, 같은 조 도 지원 첫날은 연행자가 없었으며 이틀째 되는 날 사람을 데리고 왔고, 그 다음날 목포 항에 귀항하였다고 진술하였다. 2) 소결 피해자 김세태와 김상선의 진술부분 중 행정선에서의 조사기간이 일치하지 않고 있으 나 김세태의 진술과 행정선 승선원의 진술이 일치되는 점에 비추어 김세태는 3주간 정 도 22), 장태임 및 김상선은 3일간 조사받았음이 인정된다. 그러나 당시 보안대의 이러한 조사는 망 김남태가 월북했다거나 국내잠입을 하였다거 나 잠입하여 가족들을 만났다거나 하는 등의 구체적 사실에 근거한 기초적 혐의조차 확 보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나아가 장기간의 내사과정을 통하여 위 김세태의 농 수협 대출금을 통한 자금조성 사 실, 동인이 임의개간하여 식재하거나 가축을 방목한 임야는 국유지라는 사실, 동인의 호 적에 혼인 외의 자가 입적되어 있음을 인지한 사실, 그 외 추도예배식의 제사 봉양 사실 을 확인하는 등의 방법으로 일상적인 동향을 감시해 왔다면, 강제연행하여 수사할 필요 성이나 영장없이 체포해야 할 긴급성이 인정되지 않음에도 영장에 의하지 아니한 체포 22) 정월대보름이 1980. 3. 1.이므로 1980. 2. 13.부터 기산할 경우 날짜로는 18일로 환산되고 있다. 22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구금을 한 것이므로 명백한 불법체포 구금에 해당한다. 한편, 위 김상선의 주거지에 대한 수색도 적법한 체포를 전제로 하는 긴급행위에 해당 되지 아니하므로 위법하게 수색하였음이 인정된다. 23) 라. 가혹행위 1) 피해자 및 참고인의 진술 요지 피해자 김세태는 보안대원으로부터 거꾸로 매달기, 코에 물 붓기 및 전기고문 등의 가 혹행위를 당하였다고 진술하였다. 그 외, 행정선 승선원 조 는 피조사자의 신음소리를 듣고 누군가 당하고 있다고 생 각하였다, 예비군 중대장 장 은 목포분견대에서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얼굴이 부 어 있는 김세태를 본 사실이 있다 고 각 진술하였다. 또한 김 은 석방된 후 문병시 김세태를 본 순간 엄청난 일을 당했구나라는 인상을 받은 정도로 얼굴 전체 특히 눈 주변이 파랗게 변해 있었고 모골이 삐쩍 말랐는데 그대로 두면 죽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고 진술하였고, 24) 고 는 김세태가 석방된 후 입원해 있 는 병원을 찾아가 몸보신을 하라며 6~7만원인가를 주고 온 일까지 있고, 당시 김세태는 고통을 당하였다는 얘기를 했으나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 하였다. 2) 소결 피해자 김세태의 구체적인 진술이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김세태의 상태를 목격하였다 는 참고인들의 체험 진술에 의하면 김세태가 보안대에서 가혹행위를 당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다. Ⅲ. 결론 및 권고사항 1. 결론 505보안대는 군인 군무원이 아닌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23) 헌법(제8호)제10조, 군법회의법(법률 제2630호) 제242조(긴급구속), 제246조(현행범인과준현행범인), 제 251조(압수,수색,검증), 제252조(영장에 의하지 아니한 강제처분). 24) 2007. 4. 12. 진술청취. 김세태 등에 대한 보안대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사건 23
제4권 김세태, 장태임 및 김상선을 연행하여 3일 내지 3주간 정도를 수사한 사실이 인정된다. 나아가 위 수사과정에서 헌법 및 군법회의법에 규정된 영장주의 및 적법절차에 따른 영장 및 그 제시도 하지 아니하고 주거지에 대한 수색을 거친 다음, 동인들을 연행하여 위 기간 동안 불법구금하는 위법을 범하였을 뿐 아니라, 위 김세태에 대하여는 고문 가 혹행위까지 가한 사실도 인정된다. 한편, 내사과정에서까지 주거침입, 재산권침해 및 사생활침해 등의 위법을 범한 사실까 지 확인되고 있다. 그럼에도 보안대는 피해자들에 대한 어떠한 혐의도 밝혀내지 못한 채 무혐의 석방을 하였음은 물론 김남태의 월북 및 잠입활동 여부 등에 대한 아무런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 고 있다. 결국 객관적 사실에 바탕한 구체적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무리한 수사를 진행하 였음을 알 수 있다. 피해자들은 본건의 원인을 제공한 사실이 없거니와 일방적으로 수사대상자로 선정되 어 사생활을 감시당한 피해자에 불과하므로 불법구금 등의 불이익한 처분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고, 피해자들이 군입대한 위 김남태의 생사 여부나 제대 후 미귀가 사유조차도 알지 못하여 오랜 기간 한( 恨 )을 품고 살아오던 상황에서 국가가 이를 해소해주기보다는 오히려 혐의에 대한 구체적 근거도 없이 수사에 착수, 고문 가혹행위를 가하고 끝내 간 첩혐의의 오명을 떠안고 살아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보안대의 수사는 부당한 공권력 행 사에 해당함이 명백하다. 또한, 보안대의 연행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를 통한 수사행위는 법령이 정한 요건 및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였으므로 본 사건은 위법하고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 해당한다. 2. 권고사항 위 사건에 대하여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기본법 제4장에 따라 국가가 행할 조치에 관 하여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국가는 위법하고 부당한 공권력 행사과정에서의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에 관하여 피해 자들에게 사과하고, 피해자들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 요하다. 24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결정사안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결과 오주석 등이 불법구금, 가혹행위, 허위자백 등을 통해 간첩죄 로 조작된 인권침해사건으로 밝혀져 진실규명으로 결정하고 피해자들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 사례. 결정요지 1. 안기부는 피해자 오주석 등을 불법체포 연행한 후,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50여 일 동안 가족 및 변호인의 접견을 차단한 채 안기부에 불법구금한 상태에서 구타 등 가혹 행위를 가하고, 잠 안 재우기 등 강압적 조사를 통해 허위자백을 받아 간첩죄로 조작하였 음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안기부의 조치는 헌법상 보장된 신체의 자유 를 침해하고 헌법 상 원리인 적법절차의 원리 를 위반하여 피해자들의 인권을 침해한 것이다. 2. 서울지검은 오주석이 간첩혐의를 부인하였음에도, 안기부 수사관으로부터 당한 가 혹행위로 인한 위압적인 분위기가 검찰 조사에까지 이어진 상태에서 자백에 의존하여 검 사작성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한 뒤 서울형사지법에 기소하였다. 3. 서울형사지법은 피해자 오주석이 공판과정에서 장기간의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로 인 해 허위자백을 한 것이며, 간첩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고 일관되게 호소하였고, 일부 참고 인들 역시 진술을 번복하였음에도 검찰에서의 허위자백과 조작된 증거물을 증거로 채택 하여 징역 10년형을 선고하였다. 또한 서울고법에서는 징역 7년형을 선고하였고, 대법원 에서는 이를 그대로 확정하였다. 결국 이는 법원이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헌법적 의 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 전 문 사 건 바-3894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신청인 오주석 결정일 2008. 9. 9.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25
제4권 주 문 이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진실규명 으로 결정한다. 이 유 Ⅰ. 조사개요 1. 사건개요 가. 신청배경 신청인 오주석(이하 피해자라 한다)은 춘천시 소재 (주)새시대체인의 영업이사로 재직 중, 1980. 5. 8.부터 5. 25.까지 한국슈퍼체인협회 주관, 일본의 (주)가스미 스토아 초청으 로 일본 유통업계 연수 및 시찰 목적으로 도일하여 연수 중 재일교포 친척인 안, 김, 오 등을 잠시 만나고 귀국하였다. 오주석은 일본 연수를 다녀온 지 약 3년 후인 1983. 3. 11. 춘천시 소재 본인 자택에서 영장 없이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라 한다) 남산분실로 연행되어 약 50여 일간 조사 를 받은 뒤, 1983. 5. 16. 서울지방검찰청에 송치되어 조사를 받고 구국가보안법 제2조(간 첩 또는 간첩방조), 형법98조제1항(간첩), 구국가보안법 제4조제1항2호(간첩) 등 위반죄 로 기소되어 1983. 11. 1. 서울형사지방법원(이하 서울지법이라 한다)에서 징역 10년, 자 격정지 10년을 선고받고 항소하고, 1984. 3. 6. 서울고등법원(이하 서울고법이라 한다)에 서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고 상고하였으나, 1984. 6. 26. 대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나. 판결요지 피고인 오주석은 1980. 5. 8. 일본 유통업계 연수 차 도일하여 1) 1980. 5. 12. 재일 북괴공작원 안 과 김 를 접촉하고, 안 에게 춘천시와 춘 천 근교 군부대 현황과 남한의 국내 정세 등 국가기밀을 누설함으로써 간첩행위를 방조 하고, 2) 동일, 위 안 으로부터 춘천지역의 군부대 주둔 상황, 춘천 거주 월북자 가족 수, 26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라이온즈클럽의 이북 출신자 소개, 김 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는 등의 지령을 받고 일 화 2만 엔과 김 칼라사진 1매 등을 받아 회합, 금품수수하고, 3) 1980. 5. 18. 재일 조총련 오, 오 길을 만나 4만 엔을 받아 회합, 금품수수하고, 4) 1980. 5. 25. 김포공항에 입국하여 잠입하고, 5) 1980. 5. 26. 오 과 전화통화를 하여 통신연락하고, 6) 1980. 6. 3. 안 에게 편지를 발송하여 통신연락하고, 7) 1980. 6. 초순, 김 에게 안, 김 부부 접촉 사실을 고지하여 편의를 제공 하고, 8) 1980. 6.~1983. 3. 춘천지역 검문소 현황, 춘천 근교 군부대 현황 등 국가기밀을 탐 지, 수집하고, 9) 1981. 2. 초순 안 으로부터 편지를 수신하여 통신연락하고, 10) <월간 새마을 금고> 81. 4. 호에 게재된 의료보험에 관한 해설 을 모아놓아 국가 기밀을 수집하고, 11) 1982. 1. 25. 죽림동 방위협의회에 참석하여 방위지원위원회 내규책자를 모아놓아 국가기밀을 수집하고, 12) 1982. 10~1983. 1. 이 과 접촉, 군납에 대한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하고, 13) 1983. 2. 중순 안 으로부터 편지를 수신하여 통신연락하였다. 다. 신청취지 피해자는 안기부 수사관에 의해 강제연행된 후 장기간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고문, 가 혹행위로 인한 허위자백을 근거로 간첩행위가 조작되었다며 2006. 6. 12. 진실화해위원회 에 진실규명을 신청하였다. 2. 조사의 근거와 목적 이 사건은 피해자가 안기부 수사관들에 의해 장기간 불법구금된 채 구타, 물고문, 잠 안 재우기 등의 가혹행위를 당하여 그 실체가 조작되었다는 것이므로 진실 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이하 기본법이라 한다) 제2조제1항 4호 1) 에서 정한 진실규명의 범위에 1) 기본법 제2조제1항4호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 상해 실종 사건, 그 밖에 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 사건.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27
제4권 해당하고, 수사관들의 불법구금, 가혹행위 등도 형사소송법 제420조 7호, 제422조가 정한 재심사유에 해당하여 기본법 제2조 제2항의 요건을 충족한다. 따라서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피해자에 대한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를 규명하고, 기본법 제4장이 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국가로 하여금 피해자와 그 가 족의 피해 및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법적 정치적 화해조치, 국민통합을 위한 필요한 조치 등을 취할 필요성을 인정하여 2007. 10. 23. 조사 개시를 의결하고 조사를 진행하였다. 3. 규명과제 가. 불법구금 여부 피해자는 안기부 수사관들에 의해 1983. 3. 11. 구속영장 없이 강제연행되어 1983. 5. 7. 구속영장이 집행될 때까지 58일 동안 불법구금상태에서 수사를 받았다고 하므로 이에 대 한 조사가 필요하다. 나. 가혹행위 여부 피해자는 안기부 수사관들에 의해 간첩행위를 한 것으로 자백을 강요받으면서 잠 안 재우기, 도구에 의한 구타, 통닭구이, 물고문 등의 가혹행위를 당하였다고 하므로 이에 대 한 조사가 필요하다. 다. 범죄사실 조작 여부 피해자는 안기부 등 수사기관에 의해 고문, 가혹행위를 당하면서 재일( 在 日 ) 친척으로 부터 교양, 지령을 받고 목적수행을 위해 잠입하여 군사기밀 탐지 등의 간첩행위를 한 것 으로 조작되었다고 하므로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4. 진실규명 조사방법과 경과 가. 자료조사 서울지방검찰청 기록관리과 보존 수사 및 재판기록 27권 5783쪽 28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안기부의 수사착수 경위 및 수사과정, 검찰의 수사과정, 법원의 재판과정 등을 분석, 검 토하였다. 국가기록원 보존 수용자신분장 650쪽 나. 진술조사 피해자 및 당시 공동피고인 4명, 참고인 19명 2), 수사관 11명 3) 에 대한 진술청취를 통해 수사과정, 불법구금, 가혹행위 여부 및 자백의 경위 등을 조사하였다. Ⅱ. 조사결과 1. 사건배경 대법원이 사법부 과거사정리 차원에서 검토한 1972~1987년 동안의 시국 공안사건 판결 가운데 불법구금과 고문 등 재심사유가 있는 사건 중 국외 사건의 대다수는 재일동 포관련 사건이다. 4) 이와 같이 일본이 시국 공안사건의 주요 지리적 배경이 된 것은 지 리적으로 남북이 가깝다는 이유뿐 아니라 일본사회와 재일교포사회의 특징 때문이다. 일본은 공산당, 사회당 같은 사회주의 이념을 표방하는 정당들이 합법화되어 의회에서 활동하고, 공산주의 문헌들이 합법적으로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곳이며, 재일동포들 또 한 민단, 조총련 등 각자의 소속과 상관없이 부모, 형제, 친척, 친구 등을 통해 서로 교류 하면서 왕래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5) 한편 한반도는 남북한으로 분단되어 이념대결 양 상을 보여왔다. 남한과 재일동포사회의 접촉은 위와 같은 사정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발 생했다. 일본사회와 재일동포사회의 특성을 잘 알지 못하고, 한국에서 일본을 방문하여 자연스럽게 북한과 친숙한 친척 등 재일동포를 만나고 귀국하는 행위나, 일본에서 북한 을 옹호하는 친척, 친구와 함께 자라나 한국에 들어와 활동하는 행위는 남한사회에서는 간첩행위로 쉽게 해석될 수 있었다. 이런 상황 하에서 재일동포와 관련된 간첩사건은 부 모형제 친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이 회합 통신죄, 의례적으로 주고받은 여비가 금 2) 당시 공동피의자로 조사를 받았으나 최종적으로 불기소된 이 은 사망하였음. 3) 참고인 및 수사관 진술청취 현황은 별표1 참조. 4) 대법, 시국 공안사건 판결 중 224건 재심대상 선정. (2007. 2. 1.). 동아일보, 1면. 5) 국정원과거사진실규명을 통한발전위원회. (2007). 과거의 대화, 미래의 성찰. 284쪽.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29
제4권 품수수죄, 우연히 대화한 내용이나 전달한 일간신문, 잡지 등이 간첩활동 6) 으로 되었으 므로 끊임없이 조작 시비가 있었다. 1980년 이후 국군보안부대는 한국에 와 있는 재일동포 유학생들에 대한 조사에 집중하 였으나 수사권이 없어 안기부 수사관의 이름으로 사건 발표를 하였고, 안기부는 한국인 의 일본에 대한 방문, 취업, 밀항 등과 관련된 사건에 집중하여 조사하는 경향이 있었다. 7) 이 사건은 1978. 8.~1980. 11. 동안 오주석, 김성규, 송, 안교도, 김, 이, 김 8) 이 친척 9) 인 조총련 안, 김 를 만나거나 서신왕래가 문제가 되어 안기부의 수 사를 받고 간첩죄로 처벌받은 사건이다. 2. 사건경위 가. 수사착수 경위 1) 기록상의 정황 안기부의 김 에 대한 인지보고에 따르면, 1982. 12.경 김 가 수년 전부터 재일거 주 조카인 김, 안 부부와 상호 서신교환을 계속해오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 후 김 및 주변인물에 대한 신원을 예의 내사한바 김 의 사위 송 과 당질 김성규 등 이 기술연수 및 산업시찰 차 도일 중 김 의 주선으로 위 안, 김 부부 접촉 사 실을 포착, 계속 내사결과 이들이 귀국 후 간첩으로 암약중임을 인지 10) 하였다고 되어 있고, 1983. 2. 11. 안기부 작성의 첩보보고서 (보고자(부호) 110-08) 11) 에 따르면, 전 이 본인의 집으로 잘못 배달되어 온 김 발신, 김 수신의 서신 12) 에서 우리 조국 6) 박원순. (1997). 국가보안법연구2. 434쪽., 재인용 국정원과거사진실규명을 통한발전위원회. 앞의 책. 289쪽. 7) 국정원과거사진실규명을 통한발전위원회. 앞의 책. 287쪽. 8) 이, 김 은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았으나 불기소 석방된바, 1983. 6. 10. 공안부장 검사가 검찰총장에 올린 공안사범에 대한 불기소 승인 품신 에 따르면, 범증은 충분하나 사안이 비교적 경미하고 피의자의 친인척이 본건으로 기소될 예정이며, 자신들의 잘못을 깊이 뉘우쳐 정상 참작할 사유가 있다고 하여 1983. 6. 14.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9) 김, 안 은 부부관계로, 사건 관련자들과 친척관계에 있다. 국내연락책으로 지목된 김 는 김 의 아버지인 김 의 여동생이고, 김성규는 김 의 당질, 송 은 김 의 사위, 이 은 김 의 남편, 김 은 김 의 4촌 동생이다. 오주석은 김 의 어머니인 오 의 당질이다. 안교도는 안 의 4촌 동생이다. 사건 관련인의 관계도는 별표2 참조. 10) 수사기록 인지보고 (1983. 4. 22.), 3177~3192쪽. 11) 국정원 회신문 (수삼-49)(2007. 1. 27.). 12) 오착 서신이 첩보보고서 (1983. 2. 11. 작성)에 첨부되어 있다. 30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은 미군이 철수하면 반드시 통일될 것이다. 조국이 통일되면 고모도 만나고 얼마나 좋겠 습니까 등의 불순한 문구를 발견하여 신고하였다고 되어 있고, 1983. 4. 27. 안기부 작성의 압수조서 13) 에 의하면, 전 이 1983. 4. 27. 김 발신, 김 수신의 서신을 임의 제출하여 이를 압수하였다고 되어 있는데 압수된 서신은 1983. 2. 11.자 첩보보고서 에 첨부되어 있는 서신과 같다. 결국 오주석에 대한 조사는 안기부의 인지동행보고 14) 에 따르면 1983. 4. 22. 당부에서 피의자 김 의 진술에 의해 1980. 5. 오주석이 도일하여 재일북괴공작원 안 을 접촉 한 사실이 있어 동 진술에 의거 하여 착수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2) 수사관 진술 당시 내사에 참여한 안기부 수사관 이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조총련 간부 등에 대한 동향감시나 정보들을 수집하는데 확증이 없는 경우 그냥 두고 있다가 첩보나 단서가 들어오면 확인 작업을 하게 된다. 이 사건은 서신첩보가 들어와 첩보 서신을 바탕 으로 본격적 수사가 진행되었다 고 진술하였다. 15) 당시 김 조사에 참여한 수사관 임 도 첩보서신의 내용 중 미군이 철수하면 통 일이 될 수 있다, 새해를 열렬히 축하한다 와 같은 표현을 보고 조사를 하게 되었다고 진술하면서 1983. 2. 11. 수집된 서신을 1984. 4. 27. 송치 단계에서 압수조서로 만든 것이 다 라고 진술하였다. 16) 3) 소결 기록 및 수사관들의 진술에 의하면 안기부는 조총련 관련 재일동포와 국내인의 접촉을 지속적으로 조사해오다가 당시 잘못 배달된 서신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나. 안기부 수사과정 안기부 수사관들은 1983. 4. 22. 김 를 조사하던 중 피해자의 안 접촉 사실을 듣 고, 1983. 4. 24. 피해자를 춘천 집에서 연행, 17) 안기부 남산분실에서 조사를 진행하였고 13) 수사기록 압수조서 (1983. 4. 27.), 3459~3465쪽. 14) 수사기록 인지동행보고 (1983.4. 24.), 1179~1188쪽. 15) 2008. 7. 2. 진술청취. 16) 2008. 7. 8. 진술청취.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31
제4권 1983. 5. 3. 구속영장 18) 을 발부받아 1983. 5. 7. 구속을 집행, 1983. 5. 16. 서울지방검찰청 에 송치하였다. 피해자 외 김성규, 송, 안교도도 피해자와 같은 일자에 구속되어 송치 되었다. 다. 서울지방검찰청의 수사과정 서울지방검찰청은 5. 22.부터 공동피의자들에 대한 조사를 하여 피해자에 대한 1983. 6. 3. 1회 피의자신문조서, 1983. 6. 8. 2회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한 후 1983. 6. 14. 공동피고 인 4인과 함께 서울지방법원에 기소(검사 임 )하였다. 라. 재판과정 서울지방법원은 1983. 9. 13. 제1차를 시작으로 10. 18. 제5차 공판까지 진행하였다. 피 고인인 오주석은 간첩혐의를 부인하였으나 서울지방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인정해 11. 1. 피해자에게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 판결을 선고 19) (재판장 서, 판사 정, 김 )하였다. 위 판결에 대하여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의 폭행과 협박 등의 고문에 의 한 증거능력이 없는 증거를 채택하였다는 취지로, 검사는 형량이 가볍다는 취지로 각각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하였다. 서울고등법원은 1984. 1. 24. 제1차 공판을 시작으로 3. 6. 제4차 공판에서 피해자에게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 20) (재판장 김, 판사 박, 유 )하였다. 위 판결에 대하여 피고인 21) 들만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은 1984. 6. 26. 기각(대법관 윤, 정, 김, 오 )하였다. 17) 수사기록 인지동행보고 (1983. 4. 24.) 1179~1188쪽. 18) 안기부는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하였으므로 사후영장을 발부받아야 함에도 사전영장을 발부받고 5일이 지 나 집행하였다. 19) 당시 공동피고인이었던 김성규는 무기징역, 송 은 징역8년, 안교도, 김 는 징역3년을 선고받았다. 20) 항소심에서 김성규는 징역 10년, 송 은 징역 7년, 김 는 징역 3년(집행유예 5년), 안교도는 징역 1년 6월(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21) 김 는 상고 포기함. 32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3. 사건 조사결과 가. 불법구금 여부 1) 수사기록 등의 정황 가) 피해자 수사 수사기록 22) 에 따르면, 안기부는 1983. 4. 24. 피해자를 영장 없이 연행하여 약 보름간 구금상태에서 아래와 같이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보이는데, 피해자는 4. 25. 제 1회 진술서(50쪽)를 작성하고, 제1회 피의자신문조서(58쪽) 조사를 받고, 1959.~1961. 동 안 재일친척 오 과의 서신 연락, 1980. 5. 일본 연수 시 재일친척 안, 김 등을 만난 시각 등까지 자세히 기술하고, 위 진술서에 국가기밀 탐지, 금품수수, 통신연락 등 범죄사실 대부분의 내용을 자백하였고, 4. 27. 제2회 진술서(55쪽), 제2회 피의자신문조서 (92쪽), 4. 29. 제3회 진술서(53쪽), 제3회 피의자신문조서(82쪽), 4. 30. 제4회 진술서(41 쪽), 제4회 피의자신문조서(56쪽), 5. 2. 제5회 진술서(18쪽), 제5회 피의자신문조서(29쪽) 조사를 받았다. 나) 공동피고인 수사 김성규(4. 23. 연행)는 1983. 4. 26. 제1회 진술서(86쪽)를 시작으로 같은 날 제1회 피의 자신문조서(74쪽), 4. 28. 제2회 진술서(50쪽), 제2회 피의자신문조서(74쪽), 4. 30. 제3회 진술서(66쪽), 제3회 피의자신문조서(118쪽) 등 방대한 분량의 진술서 및 조서작성 조사 를 받았다. 송 (4. 22. 연행)은 1983. 4. 23. 제1회 진술서(38쪽)를 시작으로 4. 2.4. 제1회 피의자 신문조서(29쪽), 4. 26. 제2회 진술서(46쪽), 4. 27. 제2회 피의자신문조서(82쪽), 4. 29. 제3 회 진술서(30쪽), 4. 30. 제3회 피의자신문조서(46쪽) 등 조사를 받았다. 안교도(4. 27. 연행)는 1983. 4. 29. 제1회 진술서(19쪽)를 시작으로 같은 날 제1회 피의자 신문조서(49쪽), 5. 2. 제2회 진술서(20쪽), 제2회 피의자신문조서(75쪽) 등 조사를 받았다. 김 는 1983. 4. 6.부터 서울 중구 필동 소재 성심병원에 입원 23) 중인 상태에서 1983. 4. 22. 제1회 피의자신문조서(56쪽)를 시작으로 4. 23. 제2회 피의자신문조서(32쪽), 4. 25. 22) 수사기록 인지동행보고 (1983. 4. 24.), 1179쪽. 23) 1983. 10. 18. 법정에 제출된 나 작성의 소견서 에 따르면 김 는 1983년 4월 5일 본원(중대 성심병 원)에 내원, 4월 6일 입원하였다.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33
제4권 제3회 피의자신문조서(57쪽), 제4회 피의자신문조서(32쪽) 등 조사를 성심병원에서 받았다. 2) 피고인들의 진술 가) 피해자의 진술 서울지방법원 공판에서 피해자는 1983. 3. 11. 안기부에 연행 뒤 수사관으로부터 권총 을 머리에 대고 신문할 수 있다 는 등의 위협을 당하고 침대봉으로 구타를 당하면서 안 으로부터 간첩지령을 받았다고 자백하라고 강요 받았다고 하고, 24) 서울고등법원 공 판에서는 1983. 3. 11. 안기부 춘천지부를 통하여 서울 남산 소재 안기부로 연행되어 신 문을 받았다 고 진술하였고, 25) 항소이유서(1983. 12.), 상고이유서(1984. 5. 8.)에서도 1983. 3. 11. 오전 8시에 안기부 수사관에 연행되어 서울 남산 소재 안기부로 가서 침대 봉으로 구타를 당하면서 안 으로부터 간첩지령을 받았다고 자백을 하라고 강요받아 단순한 친척 상봉에 불과하다고 말하였으나 다시 구타당하였다 고 진술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는 친목계 여행을 다녀온 다음날인 3월 11일 새벽에 신원을 밝히지 않은 남자 4명으로부터 본인의 집에서 연행되어 안기부 남산분실에서 50여 일 넘 게 불법구금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 고 진술하였다. 26) 나) 공동피고인들의 진술 공동피고인 김성규는 서울지방법원 공판에서 금년(1983) 3. 10. 노량진동에 있는 사무 실(조선신약주식회사)에 안기부 직원 두 사람이 찾아와 동행을 요구하여 남산 중턱에 이르자 고개를 숙이라고 하여 그때부터 금년(1983) 5. 7. 서울구치소로 넘어올 때까지 줄곧 그곳에 있었다 고 진술하였다. 27) 같은 송 은 1983. 3. 9. 수사기관에 연행되어 현재까지 구금상태로 조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 고 진술하였다. 28) 같은 김 는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중 퇴원 전날인 1983. 3. 9. 안기부에 연행되었다 고 진술하였다. 29)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김성규는 1983. 3. 10. 휴무일인 근로자의 날에 영업부서 담 24) 서울지법, 5차 공판(1983. 10. 18.). 25) 서울고법, 1차 공판(1984. 1. 24.). 26) 2007. 8. 21. 진술청취. 27) 서울지법, 5차 공판(1983. 10. 18.). 28) 서울지법, 2차 공판(1983. 9. 27.). 29) 서울지법, 5차 공판(1983. 10. 18.). 34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당이라 출근하였다가 사무실로 찾아온 세 명 30) 의 남자들에게 이끌려 차에 태워져 안기부 남산분실로 연행되어서 송치될 때까지 계속 안기부에서 조사받았다 고 진술하였다. 31) 송 은 1983. 3. 회사(동아건설주식회사) 사무실(부평공장)로 남자 두 명이 찾아와 업무관련 자문을 구한다며 밖으로 유인하여 차에 태우더니 머리를 쥐어박아 항의했더니 옆구리를 세게 때린 후 남산분실로 연행하였다. 검찰에 송치될 때까지 계속 안기부에서 조사받았다 고 진술하였다. 32) 안교도는 1983. 2. 말 봄방학 기간에 당시 재직하고 있던 비안고등학교로 수사관 셋이 찾아와 권총으로 위협하여 집으로 이동해서 안 이 보낸 편지를 압수했다. 그리고 안 기부 안동분실로 끌려가 조사받고 다음날 귀가하였다 며, 1개월 후인 1983. 3. 말 안기부 에서 학교로 연락이 와서 그날로 서울 세종호텔로 와서 안기부 수사관에게 남산분실로 연행당해서 송치될 때까지 계속 안기부에서 조사받았다 고 진술하였다. 33) 3) 기타 참고인들의 진술 오주석의 처 심 은 서울지방법원 공판에서 남편 오주석이 금년(1983) 3월경에 연 행되었다 고 진술하였고, 34) 송 의 처 이 은 송 이 83. 3. 9. 연행되었고, 모 김 도 교통사고로 테헤란 병원 입원 중이었던 83. 3. 9. 연행되었다 고 진술하였고, 35) 진실화해위원회원회 조사에서 피해자의 아들 오 은 1983. 3. 초순 개강 후 얼마 안 돼서 어머니 심 의 전화로 아버지 오주석이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 진술하 였고, 36) 피해자의 처조카인 이 는 오주석이 1983. 3. 11. 연행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으며 그 래서 오주석이 계약한 건물에 대한 잔금 처리를 대신 처리했으며 3. 중순경 춘천시내에 오주석이 연행되었다는 소문이 났다 고 진술하였다. 37) 30) 공판기일과 달리 3명의 수사관에 의하여 강제연행된 것으로 진술하였다. 31) 2007. 10. 8. 진술청취. 32) 2007. 11. 14. 전화청취(미국거주). 33) 2007. 9. 19. 진술청취. 34) 서울지법, 4차 공판(1983. 10. 11.). 35) 서울지법, 4차 공판(1983. 10. 11.). 36) 2007. 9. 5. 진술청취. 37) 2007. 10. 16. 진술청취.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35
제4권 4) 수사관들의 진술 당시 피해자를 연행한 안기부 수사관 이 는 진실화해위원회원회 조사에서, 연행날 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오주석을 춘천에서 연행하여 장기 구금한 것 같다며 장기 구 금은 우리가 반성할 일이다. 중간에 귀가시키거나 하면 증거를 없앨 수 있어 장기간 구금 하는 경우가 있었다 고 진술하였다. 38) 송 을 연행한 안기부 수사관 이 은 당시 피의자 송 을 아침에 회사에서 구속 영장 없이 연행하였는데, 50여 일 동안 안기부에 구금한 것은 당시 수사관행상 어쩔 수 없는 일로 이는 검찰이나 법정에서도 용인된 부분이라고 진술하고, 다른 공동피의자들도 비슷한 기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고 진술하였다. 39) 안기부 수사관 박 는 자백을 받을 때까지 장기 불법구금을 하였다 며, 간첩사건의 경우 순순히 자백하는 경우가 없고 조총련 사건은 증거도 빈약하여 추궁하여 자백을 받 으려고 장기 구금을 하였다고 진술하였다. 40) 김 를 조사한 안기부 수사관 임 는 간첩 수사는 48시간 내 구속영장 받아서 조 사하기 어렵다. 자백을 바로 하는 경우가 없다, 그래서 영장 없이 데려오고 조사하는 것 이 관행이었다 고 진술 41) 하여 영장 없이 연행하고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장기간 불 법구금상태에서 조사하였음을 시인하였다. 김 를 조사한 안기부 수사관 김 는 사건 수사 초기에 검찰과 협의를 하고 수사 진행하면서도 상의를 한다 고 진술하였고 42), 송 을 조사한 안기부 수사관 우 은 피의자를 연행해 왔을 때 검찰에 연락한다, 직접 가기도 하고 검사가 부 내로 오기도 하 여 사건에 대해 협의를 한다 고 진술 43) 하는 것으로 볼 때, 검찰도 송치 이전에 사건에 대 해 인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안기부의 불법구금 사실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5) 기타 확인서 공동피고인이었던 송 의 출근표 (동아건설산업주식회사)에 의하면 44), 3. 9. 란에 08:30 행불, 3. 10.~4. 25.까지 무단결근, 4. 26.자로 휴직 처리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38) 2008. 6. 19. 진술청취. 39) 2008. 7. 2. 진술청취. 40) 2008. 7. 22. 진술청취. 41) 2008. 7. 8. 진술청취. 42) 2008. 6. 17. 진술청취. 43) 2008. 7. 15. 진술청취. 44) 공판기록 송 출근표 (1983. 10. 18., 서울지법, 5차 공판). 36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송 에 대한 인지동행보고 에 의하면 45) 송 의 연행일자는 4. 22. 18:00, 연행장소 는 동아건설 부평공장 기계과 사무실로 되어 있다. 위 인지동행보고 를 작성한 수사관 이 는 동행한 날에 이렇게 범죄사실을 상세히 알 수는 없기 때문에 연행일 전에 데리고 와서 조사를 했을 거다. 당시에는 동행일에 인 지동행보고를 쓰지 않는 경우도 있다. 4. 22.보다는 앞서서 연행한 게 맞는 거 같다 고 진 술 46) 하였다. 6) 소결 참고인들의 진술, 수사관들의 진술, 확인서 등을 종합하면 안기부에서 작성한 인지동행 보고 등은 허위작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피해자의 연행시점은 1983. 3. 11.이며 사전구속 영장은 1983. 5. 3. 발부되어 1983. 5. 7. 집행되었으므로 피해자는 58일 동안 영장 없는 불 법구금상태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음이 인정된다. 당시 공동피고인이었던 김성규(59 일간: 3. 10.~5. 7.), 송 (60일간: 3. 9.~5. 7.), 안교도(약 40일간: 3월 말경~5. 7.), 김 (60일간: 3. 9.~5. 7.)도 영장 없이 안기부에 연행되어 구속영장이 집행될 때까지 약 60 여 일 동안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이 불법구금은 형법 제124조 불법체포감금죄에 해당하며 47),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확정판결을 받을 수 없으나 불법구 금이 확인된 만큼 형사소송법 제420조7호, 제422조 소정의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수사검 사는 이런 범죄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나. 가혹행위 여부 1) 피고인들의 진술 가) 피해자 진술 피해자는 1983. 10. 18. 서울지방법원 5차 공판에서 1983. 3. 11. 연행되어 10일간 수사 관으로부터 침대봉으로 무수히 구타당하면서 안 으로부터 간첩지령을 받았다고 자백 하라고 강요받았다. 단순한 친척 상봉에 불과하다고 간첩지령 자백을 완강히 거부 부인 45) 수사기록 인지동행보고 (1983. 4. 22.), 2225쪽. 46) 2008. 7. 18. 진술청취. 47) 형법제124조(불법체포, 불법감금) 1재판, 검찰, 경찰 기타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보조하는 자가 그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을 체포 또는 감금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 정지에 처한다.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37
제4권 하였더니 비눗물을 코에 붓는 등 고문을 당했다, 5월 초쯤 진술서 초안을 내놓고 베끼 라고 하여서 이를 베끼는 중 간첩 구절을 고쳐 쓰니 고문을 다시 가하여 수사관 작성 초 안 그대로 작성하였다, 구치소에서 검사가 신문을 할 때 친척을 찾아간 것이지 간첩활 동이나 포섭당한 사실이 없음을 털어놓고 공정하게 수사하여 억울함을 없애달라고 탄원 하였지만, 도리어 안기부 수사관이 (구치소로) 5~6차례 내소하여 검사조서대로 시인하 지 않으면 다시 고문을 한다고 위협한 사실이 있다, 간첩이 아님을 극구 주장하고 수사 관이 마음대로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에 날인을 거부했더니 수사관들이 삥 둘러싸고 위 협하면서 전신을 묶고 비눗물을 또 붓겠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날인을 하였다, 검찰에 송치된 후에도 안기부 수사관이 5~6차례 구치소로 찾아와 안기부에서 한 것처럼 시인하 지 않으면 다시 안기부로 가서 고문하고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처럼 처리할 것 이라며 위 협했다 고 진술하였고, 당시 법원에 제출한 항소이유서, 상고이유서에도 같은 취지의 글 을 기재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도 연행 후에 안기부 수사관들이 며칠 동안 잠을 재우지 않 고 자술서를 쓰라고 강요해서 외울 정도로 작성을 많이 하였고, 졸려고 하면 옷을 모두 벗게 하고 벌을 서게 하였다, 주심문관 심 이 안 이 너를 포섭하지 않았냐는 질 문에 아니라고 대답하자 옷을 벗으라고 하더니 엎드려뻗쳐를 시킨 후에 군용침대 각목으 로 구타를 하였다, 간첩을 했다는 진술이 사실이 아니어서 진술을 바꾸겠다고 하자 안 기부 수사관이 손과 발에 몽둥이를 끼워 책상사이에 매다는 통닭구이 고문을 하고 얼굴 에 수건을 덮고 물을 붓는 물고문을 하였다, 검찰 조사 직전에 안기부 수사관이 구치소 로 찾아와 검사조서에 순순히 인정하고 날인하지 않으면 안기부에 다시 끌려갈 거라고 협박하였다 고 진술하였다. 48) 나) 공동피고인들의 진술 공동피고인 김성규는 1983. 10. 18. 서울지방법원 5차 공판에서 1983. 3. 10. 회사에서 안기부로 연행되어 굵은 각목으로 구타당해 정신을 잃고 깨어나면 각목을 무릎에 끼어 꿇어앉게 한 뒤 위에서 힘껏 내리밟는 고문과, 협박을 받아 수사관들이 작성한 조서를 베 껴 쓸 수밖에 없었다 고 진술하였고, 같은 송 은 1983. 3. 9. 안기부로 연행되어 유서를 강제로 작성하고 수건을 얼굴에 덮고 물을 붓기, 책상 사이에 올려놓고 뺑뺑 돌리기 등의 고문을 당하였으며 무릎 사이에 48) 2007. 8. 21. 진술청취. 38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각목을 넣고 비틀고 머리를 책상에 짓찧는 등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문을 당하였 다 고 하면서 검찰 조사 시, 서명, 날인을 거부하였더니 수사관이 들어와 고문을 해서 실 신하였다 고 진술하였고, 같은 김 는 1984. 1. 24. 서울고등법원 2차 공판에서 수사기관에서 엄한 조사를 받 고 성심병원에 입원한 사실이 있다 고 진술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김성규는 안기부 수사관들이 안 을 조총련인지 알고 만 나지 않았느냐고 계속 물어봐 부인하자 야전침대 각목으로 구타하고 그 각목을 무릎 뒤 쪽에 끼우고 허벅지를 밟고, 잠을 계속 안 재워서 너무 괴로워 수사관들이 원하는 대로 진술서를 수십 번 써주었다, 사형을 시켜버리겠다, 가족들도 조사하겠다는 협박을 당해 서 수사관이 불러주는 대로 진술서를 그대로 베껴 썼다 고 진술하였고, 검찰 수사단계에서 검찰에서 조사받은 당시 안기부 수사관이 입회하여 겁이 났었다 고 진술하였고, 49) 송 은 안기부에서 물고문, 통닭구이 고문, 구타로 인해 하혈(항문에 피가 고이고 변을 볼 때 핏덩어리가 나옴)을 수차례 당하였고 그로 인해 빈혈로 여러 차례 쓰러졌다, 부인이 끌려와 옆방에서 옷 다 벗기고 수모를 당하니 빨리 자백하라고 협박당하고 유서 를 강제로 작성하였다 고 진술하였고, 검찰에서 검찰 조사 시 검사에게 억울하다고 하자 서기가 안기부 서류만 보고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해서 서명, 무인을 거절했더니 검사와 서기는 나가고 안기부 수사관들이 들어와 말 못 할 고문을 당해 실신했는데, 깨어보니 손가락에 인주가 묻어 있었다 며 강 제 날인을 주장하였고 너무 억울해 법정에서 피신서에 서명 무인한 적이 없다고 말했 다 고 진술하였고, 50) 안교도는 안기부에서 손, 발, 각목에 의한 구타로 기절하였다, 잠을 못 자게 해서 꿈 속같이 멍해진 상태에서 진술서를 작성하였다 고 진술하였고, 51) 한글의 쓰기, 읽기가 어려웠던 김 는 안기부에 연행된 후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물어봐서 답을 잘 못하니까 때렸다. 뭘 쓰라고 했는데 한글을 잘 몰라 쓰지 못하니까 수 사관이 구두를 벗어서 때렸다. 그 이후로는 뭐 쓴 기억은 없다, 구두로 맞은 기억이 많 은데 구둣발에 맞아 기절을 해서 깨어보니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고 진술하였다. 52) 49) 2007. 10. 8. 진술청취. 50) 2007. 11. 14. 전화청취(미국 거주). 51) 2007. 9. 19. 진술청취. 52) 2007. 10. 1. 진술청취.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39
제4권 2) 참고인들의 진술 재소자였던 윤 은 1984. 2. 7. 서울고등법원 2차 공판에서 복역 중에 송 을 알게 되었는데 수사기관에서 맞아서 몸이 안 좋다고 송 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처음 며 칠 동안 일어나지도 못하고 모든 거동을 할 수 없었으며 대소변 보러 가는 것도 못 보았 다 고 증언하였다. 피해자의 처조카인 이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피해자를 교도소에서 면회할 때 피해자로부터 수사관들이 잠도 못 자게 하고 무지하게 때려서 괴로움에 벽에 머리를 부딪쳐 죽고 싶었다, 검찰 조사 때도 안기부 수사관이 찾아와 협박하고 괴롭혔다 는 이 야기를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53) 김 의 주치의였던 나 은 안기부 수사관들이 간첩혐의가 있다는 김 를 병원 으로 데려와 진찰 및 입원을 시켰는데 당시 김 는 혀의 강직과 사지마비의 전환장 애 54) 증상이 보였다, 치료상 심층 인터뷰가 필요한데 상위스텝에서 너무 깊숙이 인터 뷰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소견서에 고혈압이나 다발성치핵이 있는 걸로 보아 다 른 과 검진도 받은 거 같다 고 진술하였다. 55) 당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보였던 손 은 피의자들이 검찰 조사 시 진술을 거부하거 나 부인할 경우 안기부 수사관을 불러 협조를 구하기도 한다 고 진술하였다. 56) 3) 수사관들의 진술 김 수사관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오주석 사건에 참여한 기억이 전혀 없으며, 위 사건 수사기록 중 송 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의 본인 서명도 본인 글씨가 아닌 것 으로 보이며 조총련 사건은 조사해본 적도 없고 사건을 조사할 때 가혹행위를 한 적도 없 다고 진술하였다. 57) 우 수사관은 김 수사관이 송 을 신문했는데 신문과정에 트러블이 있었는 지 여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가혹행위를 한 적이 없다 고 진술하였다. 58) 53) 2007. 10. 16. 진술청취. 54) 나 (중앙대학교 용산병원 신경정신과 의사)에 의하면, 전환장애란 생리학적인 취약점에 과도한 스트레 스가 가해졌을 시 신체, 운동기능에 이상이 오는 장애를 말한다. 55) 2007. 10. 31. 진술청취 56) 2007. 12. 26. 진술청취. 57) 2008. 6. 24. 진술청취. 당시 공동피의자인 송 주신문관. 58) 2008. 7. 15. 진술청취. 당시 공동피의자인 송 부신문관. 40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김 수사관은 김 가 안기부에서 조사받다 문제가 생겨서 당시 안기부와 가까운 거리에 있던 중대 부속 성심병원에 입원하였는데 그때부터 김 를 담당하여 임상신문 을 진행하였기 때문에 자신은 가혹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진술하였다. 59) 임 수사관은 (김 의 임상심문은) 의사 소관이 아니기 때문에 임상 심문의 여 부를 묻거나 의사, 가족, 변호인 입회 없이 진행하였다, 김 가 한글 사용에 어려움이 있어 진술서는 작성하지 않았고 피신서만 수사관이 작성해 변호인이나 가족의 참관 없이 읽어주어 피신서 확인을 하였다 고 진술하였다. 60) 박 수사관은 처음 자술서를 작성하게 하려고 녹취를 할 때는 며칠씩 잠을 재우지 않고 조사를 하기도 하지만 가혹행위나 고문은 절대 없다 고 진술하였다. 61) 안 수사관은 피의자들이 인신이 장기간 구속되어 있으니까 집에도 귀가하지 못하 고 자유롭지 못해 패닉 상태에 빠지면 자기가 하지 않은 일도 했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 다 고 진술하였다. 62) 심 수사관은 나는 고문이나 가혹행위를 한 사실은 없으나 수사관마다 성격과 수 사 요령이 달라서 뺨을 때리거나 한 수사관이 있다 고 일부 가혹행위 가능성에 대해 진 술하였다. 63) 이 수사관은 (당시 피의자 김 의 소견서를 보니) 당시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 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증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조사를 하다 보니 이런 일(김 가 수사 받던 중 입원)이 생길 수도 있었다, 증거가 없이 수사해야 하니까 소리는 크게 지른다. 수사관마다 욱하는 사람들이 윽박지르거나 몇 대 때릴 수 있다. 구타 등은 있을 수 있지만 고문은 없었다 고 진술하였다. 64) 안 수사관은 이틀 정도 말을 걸지 않아 심리적 압박을 주었다, 65) 이 수사관 은 일반적으로 수사하는 데 따귀 정도는 때린다, 66) 이 수사관은 수사관마다 어느 정도의 구타는 있을 수 있다. 고문까지 가느냐 안 가느냐의 차이이고 피의자 중 진술 번 복이 심한 경우는 수사하는 데 애를 먹는다 67) 고 진술하였다. 59) 2008. 6. 17. 진술청취. 당시 공동피의자인 김 의 주신문관. 60) 2008. 7. 8. 진술청취. 당시 공동피의자인 김 의 부신문관. 61) 2008. 7. 22. 진술청취. 당시 의견서를 작성. 62) 2008. 6. 20. 진술청취. 63) 2008. 6. 26. 진술청취. 신청인 오주석의 주신문관. 64) 2008. 6. 19. 진술청취. 신청인 오주석의 부신문관. 65) 2008. 6. 20. 진술청취. 당시 공동피의자인 김성규 부신문관. 66) 2008. 7. 2. 진술청취. 당시 공동피의자인 김성규 주신문관. 67) 2008. 6. 30. 진술청취. 당시 공동피의자인 안교도, 이 부신문관.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41
제4권 이 수사관은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이후에는 검찰 송치 시 대기 중이다가 검사가 부르면 피의자가 번복하는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할 수도 있는데 본인이 그런 적은 없다, 이, 임, 우 수사관 등은 피의자가 진술을 번복하거나 하면 검찰에서 안기부에 연락을 해서 설득을 하라고 한다. 그러면 안기부에서 피의자를 면회하여 안기부에서 진술한 정황 등을 설명하면서 검찰에서도 동일하게 진술하라고 설득하는 경우가 있다 는 취지의 진술을 하였고, 우 수사관은 송 을 만나러 간 적은 없어서 송 이 강제로 무인을 하였는지의 여부는 모르겠지만 모르는 일이니 부인하기도 어렵다 고 진술하였다. 4) 기타 확인서 공판기록에 첨부된 김 의 소견서 68) (나 발행)에 의하면 김 는 1983. 4. 5., 4. 6., 2회에 걸쳐 본원[중앙대학교 의과대학부속 성심병원] 응급실에 내원하여 치료한 후 1983. 4. 6. 본원 신경정신과에 입원함. 입원 당시 불안, 불면증, 식욕부진, 흉부압박감, 심 계항전, 두통, 현기증, 시력감퇴, 항문출혈 및 혀의 강직과 사지마비 증상으로 본태성 고 혈압, 다발성치핵, 전환장애의 임상진단하에 치료한 후 1983. 5. 4. 퇴원함 이라고 기록되 어 있다. 당시 중앙대학교 부속 성심병원 의사 나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안기부 수사 관들이 김 가 간첩혐의가 있다고 하면서 응급실로 데리고 온 것 같다. 혀의 강직과 사 지마비 증상이 나타났으며 이는 간첩혐의로 조사받아 스트레스가 상당해서 나타날 수 있 는 증상이다 라고 진술하였다. 69) 5) 소결 수사관들은 피해자 및 공동피고인들에 대한 가혹행위 사실을 직접적으로 인정하고 있 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피해자 및 공동피고인 등은 재판과정부터 진실 화해위원회 조사에 이르기까지 안기부 남산분실에서 구타, 물고문 등의 고문과 가혹행위 를 당하여 허위자백하였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으며, 참고인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피 해자 및 공동피고인들은 안기부에서 가혹행위를 당하였고, 검찰 수사과정에서도 수사관 들의 압박이 있었던 점을 인정할 수 있다. 특히 공동피고인 김 에 대한 임상심문은 임 상심문 여부에 대한 의사의 소견 없이 심문을 진행한 사실이 있고, 같은 송 은 검찰 68) 공판기록 김 소견서 (1983. 10. 18., 서울지법, 5차 공판). 69) 2007. 10. 31. 진술청취. 42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조사과정에서 안기부 수사관에게 상해를 입었고 기절하였던 중 강제날인 당하였다고 진 술하였다. 위 가혹행위는 형법 제125조 폭행가혹행위죄 70) 에 해당하고 형사소송법 제420 조7호, 제422조 소정의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4. 범죄사실 조작 여부 피해자는 안기부 남산분실에서 범죄사실에 대하여 모두 자백하였고, 서울지방검찰청에 서는 일부 범죄사실에 대해 시인하였는데, 법정에서부터 모두 부인하는 취지의 진술을 하였다. 법원에서 채택한 피해자에 대한 유죄증거는 오주석, 김 의 일부 법정진술, 증인 김, 신, 하, 이, 안 의 각 증언, 검사작성의 오주석, 김 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 사법경찰관 작성의 김, 신, 하, 이 의 각 진술조서, 사법 경찰관 작성의 각 수사보고서와 북송 및 연고자명단 등본, 영사증명서, 압수된 여권, 사 진, 책자 등이다. 가. 간첩방조 여부 1) 범죄사실의 요지 피고인 오주석은 1980. 5. 9. 슈퍼마켓체인 연수 차 도일하여, 1980. 5. 12. 재일 북한공 작원인 안 을 만나 교양을 받고 춘천시와 춘천 근교 군부대 현황, 춘천 내 월북가족 현황 등을 파악하라는 지령을 받고 춘천 내 공공기관, 춘천지역 댐 이름 등에 대한 국가 기밀을 누설함으로써 위 안 의 간첩행위를 방조하였다는 것이다. 2) 관련증거 가) 유죄증거 유죄증거는 피해자의 법정진술과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 김, 신, 하 의 법정진술 및 사법경찰관 조서, 영사증명서 등이다. 검사작성의 피의자의 신문조서는 안기부의 고문 및 가혹행위를 가한 수사관이 피해자를 위협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것으로 안기부에서의 심리적 압박상태가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협박행위 70) 폭행가혹행위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5년이다.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43
제4권 로 볼 수 있어 임의성에 의심이 있어 증거능력 인정에 문제가 있다. 나) 피해자 진술 피해자는 1차 공판(1983. 9. 13.)에서 안 으로부터 대남비방 및 북괴 우월성에 대한 교양을 받은 사실이 없으며, 안 에게 춘천 군부대 현황에 대해 말한 적도 없고, 안 으로부터 지령을 받은 적도 없다, 5차 공판(1983. 10. 18.)에서 침대봉으로 구타를 당 하면서 안 으로부터 간첩지령을 받았다고 자백하라고 강요받은 사실이 있다 고 진술 하였다. 항소이유서에서도 연수 차 도일시 김 의 집을 방문하기 전까지 조총련인 줄 알지 못했고 그래서 육친의 정으로 그 집을 방문하였지 선전교양이나 북괴찬양에 대한 말을 들은 적도 없고 안 에게 국가기밀을 누설하지도, 교양과 지령을 받은 사실도 없다 고 진술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1980. 5. 12. 안 의 집에 방문해서 김일성 사진을 목격하 고 안 이 조총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몇 십 년 만에 만나는 친척이라 안부 묻고 2시간 만에 헤어졌다. 그 시간 안에 어떻게 저런 이야기들(교양, 지령내용)이 다 가능한지 모르겠다, 당시 내 재산이 10억이 넘었는데 금품을 받고 지령을 받고 포섭 을 당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고 진술하였다. 다) 참고인 진술 유죄증거로 채택한 김, 신, 하 71) 의 사법경찰관 작성의 진술조서의 요지는 김 는 오주석이 연수소에서 50대 남녀를 만나고 있다가 인사를 시켜주어 인사를 하 였다 72), 신 은 연수 기간 중 오주석, 하 과 같은 방을 사용했는데 5. 12. 오주석 씨가 50대 남자와 40대 여자를 만나는 것을 보았고 그날 관광 후 24:00에 돌아와 보니 하 혼자 잠을 자고 있었다 73), 하 은 오주석, 신 과 같은 방을 사용했는데 5. 12. 오주석의 친척 되는 사람이 왔다는 말을 듣고 50세 전후로 보이는 중년부부와 오주석씨 가 나가는 것을 보았다 74) 고 진술하였다는 내용이다. 김 는 서울지방법원 공판에서 오주석이 친척을 만난다고 나가서 자고 들어왔는지 71) 김, 신, 하 은 당시 오주석과 일본 연수를 함께 간 일행들이다. 72) 수사기록 김 진술서 및 진술조서 (1983. 4. 30.), 1486~1501쪽. 73) 수사기록 신 진술서 및 진술조서 (1983. 4. 29.), 1637~1665쪽. 74) 수사기록 하 진술서 및 진술조서 (1983. 4. 29.), 1666~1698쪽. 44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잘 모르겠고 밤에 자는데 누가 와서 자다 말고 일어나 인사를 받은 기억이 난다 75) 고 증 언하였고, 신 은 오주석이 친척을 만난 날과 자고 온 날을 기억하지 못한다 76) 고 하 였고, 하 역시 약 50대로 보이는 부부인 듯한 사람들이 오주석을 찾아왔으나 오주석 이 그 친척 집에 찾아가거나 자고 왔는지는 모르겠다 고 증언하였다. 77) 김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안기부 수사관이 오주석이 40, 50대 남녀와 만나 지 않았냐 하고 흐름을 일러주어 그대로 작성하였다 고 진술하였고, 78) 신 은 오주석 과 같은 방을 사용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오주석과 같은 방을 사용했다는 당시 기숙사 방 배치도는 수사관이 이미 그려진 걸 보여줘서 그렇다고 했고, 법정에서 오주석을 찾아 온 50대 부부를 소개받았다는 건 그렇게 질문을 해서 부부인지 잘 모르면서도 그렇게 증 언했다 고 진술하였고, 79) 하 은 일본 연수 시 오주석과 같은 방을 사용했는데, 오주 석이 만난 사람들이 동창인 줄 알고 있었다며 왜 수사기록의 본인진술에 그들을 부부라 고 진술했는지 모르겠다 고 진술하였고, 80) 장 은 일본 연수 시 본인이 오주석과 같 은 방을 사용했고 하, 신 과는 같은 방을 사용하지 않았다 고 진술하였다. 81) 라) 기타 증거 안 에 대한 영사증명서는 피고인이 증거로 동의하지 않았고, 원 진술자를 신문한 기록도 없으므로 법원은 형사소송법 제315조에 의하여 증거능력을 인정한 것으로 보이나 이는 위법한 증거채택 82) 이다. 증거능력의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피해자의 범죄사실을 단 독으로 입증하기에 부족하고, 1983. 5. 7. 주일본대한민국대사관 영사(1등서기관 박 ) 발급의 영사증명서로써 안 은 후꾸시마현 조선 초, 중급 학교 교장이며 반국가단체 인 조총련의 구성 간부로서 동 단체에 지도적 임무에 종사하는 자 라고 기술되어 있다. 국가정보원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안 의 조총련 인물록 등재 여부 확인서류 는 발견되지 않았다 83) 고 하고 안기부가 제출한 안 에 대한 사실조사결과보고(1983. 3. 75) 공판기록 김 증인신문조서 (1983. 10. 4., 서울지법 3차 공판). 76) 공판기록 신 증인신문조서 (1983. 10. 4., 서울지법 3차 공판). 77) 공판기록 하 증인신문조서 (1983. 10. 4., 서울지법 3차 공판). 78) 2007. 10. 28. 진술청취. 79) 2007. 11. 5. 진술청취. 80) 2007. 9. 20. 진술청취. 81) 2007. 9. 19. 진술청취. 82) 서울고법 2006노2317(2007.5.31.) 판결, 영사증명이 영사가 직무상 증명할 수 있는 사항에 관하여 작성한 문서로 인정될 수 없다 며 그 증거능력을 부인하였다. 83) 2007. 8. 29. 국정원 회신문(수삼-797).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45
제4권 11.) 84) 는 안 에 대한 동향 및 신상관계 지실자가 없어 구체적인 사상 파악이 곤란하다 는 내용으로 안 이 후꾸시마 조총련 초중급학교 교장 재직 중이라는 경력만을 인정하 고 있다. 3) 소결 법정에서의 진술은 안 을 만난 사실 외에는 부인하고 있으며, 수사보고서 및 북 송 85) 및 연고자 명단등본, 영사증명서, 압수된 여권 등은 범죄사실을 독자적으로 입증하 기에 부족하다. 김, 신, 하 에 대한 사법경찰관 작성의 진술조서 및 법정진술 또한 피해자가 친척으로 생각되는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 이외에는 내용이 없어 피해자의 진술이 가혹행위로 인하여 허위의 자백일 가능성이 높은 한 독자적으로 피해자의 유죄의 증거로 쓰기에 부족하고 다른 증거는 없다. 특히 영사증명서의 작성에 대한 법적 근거 86) 뿐만 아니라 내용 또한 근거가 없거나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였을 가능성이 있어 모두 믿 기 어렵다. 결국 피해자의 간첩방조의 점은 유죄의 증거가 없이 내려진 판단으로 보인다. 나. 국가기밀 탐지 여부 1) 범죄사실의 요지 및 유죄증거 피해자의 범죄사실 8항, 10항, 11항, 12항은 모두 피고인 오주석이 재일 북한공작원 안 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그 목적수행을 위하여 춘천지역 검문소 위치 등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하여 간첩하였다는 것이며, 유죄증거는 검사작성 피의자신문조서, 이 과 안 의 법정증인 및 사법경찰관작성의 각 진술조서, 수사보고서와 책자 2이다. 2) 관련 증거 가) 피해자의 진술 검사작성 피의자신문조서는 앞에서 정리한 대로 증거능력에 의심이 가고, 피해자도 서 울지방법원 공판에서 혐의사실 모두를 부인하였다. 84) 2007. 1. 27. 국정원 회신문(수삼-49). 85) 안 의 처남인 김, 김 의 북송관련 명단. 86) 2008. 8. 4. 자료입수보고.,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입수한 주일본국대사관의 회신문에 따르면, 영사증명서 제도가 30년 전에 있었는지 여부는 법령에 근거가 없어 확인할 수 없으며, 영사가 서류를 직 접 작성하여 발급해주는 영사증명서 제도는 없다고 하였다. 46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피해자는 1983. 9. 13. 서울지방법원 1차 공판에서 안 에게 지령을 받은 사실도 없고 목적수행을 위해 검문소 등의 위치, 의료보험에 관한 해설 설명문(월간 새마을 금고 수 록), 방위지원위원회 내규책자, 군납에 관한 사항 등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한 적이 없다 고 진술하였고, 항소이유서 및 상고이유서에서도 마찬가지로 단순히 마을금고에서 주는 것(월간 새 마을금고 )을 집에 비치 보관한 것이다, 방위(지원)위원회 내규책자는 배부 받아 가지 고 있었는지도 알지 못하였다, 이 과의 대화는 군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것이 아 니라 일반적 대화였다 고 범죄사실을 부인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는 서울을 자주 다녀서 검문소 위치를 잘 알고 비행장 등 군 부대는 춘천 사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며 30년을 넘게 춘천에서 살았기 때문에 알 수 밖에 없는 내용이다, 마을금고 이사여서 그냥 나누어준 책을 보관한 것이다, 내규책 자라는 것은 본 적도 받은 적도 없다, 이 과 친해 자주 사무실에 놀러가서 사업, 일 상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레 나누었는데, 안기부 조사 시 평생 자술서에 친구관계에 이 을 썼더니 이렇게 조작된 것 같다 라고 진술하였다. 나) 참고인 및 수사관 진술 1 방위지원위원회 내규책자 수집에 대하여 춘천시 죽림동 전 동장 는 1983. 10. 11. 서울지방법원 4차 공판에서 검사와 피고 인의 변호인의 질문에 오주석에게 방위협의회 내규책자 등을 배포하였다, 1982. 1. 방 위지원위원회 내규책자를 병무계 직원을 시켜 방위협의회 위원들에게 돌리라고 하였다, 내규책자에는 비밀취급, 기밀사항이 없었다 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당시 피해자인 피고 인 오주석의 질문에는 방위지원위원회에 관한 책자를 위원들에게 직접 주지 않고 병무 계 직원을 시켜 돌린 것이고, 이를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며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배포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일부 사실을 번복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1981. 봄 안기부 직원이 찾아와 오주석에 대한 동향 관찰을 지시하고, 1981. 여름 오주석의 방위협의회 활동, 모임 활동 등에 대한 동향 관찰을 지시 하여 오주석 동향에 대해 지속적으로 보고하던 중 안기부 직원이 방위협의회 내규책자를 만들라고 하여 병사계 직원을 시켜 내규책자를 만들어놓자 안기부 직원이 그것을 가져갔 다, 오주석에게 그 책자를 주거나 배포한 적이 없다, 서울지방법원 증언 (1983. 10. 11.) 에 대해 증언내용(오주석에게 위 내규책자를 배포하였다)은 사실이 아니며 그렇게 진술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47
제4권 한 이유는 법원에 출석하기 전 안기부 강원지부 담당직원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증언을 잘하고 오라고 해서 방위협의회에 관한 범죄사실을 만들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안 기부 직원의 요구를 거절할 수가 없어서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고 진술하였다. 87) 당시 방위협의회 위원이었던 장, 죽림동 동장이었던 88), 89) 은 진실화 해위원회 조사에서 위와 같은 내규책자를 제작하거나 본 적이 없다고 진술하였다. 당시 안기부 수사관 이 는 방위지원위원회 내규책자에 대해 보강증거가 필요해서 무 리를 한 것 같다. 내규책자를 오주석이 수집했는지 확인을 하지 못한 것 같다. 자백이 있으 니까 동장에게 내규책자에 대해 확인하고 그렇게 증거를 수집한 것 같다 고 진술하였다. 90) 2 군납 납품 관련 내용 탐지 수집에 대하여 이 은 사법경찰관 작성의 진술조서에 군납은 군부대를 통하지 않아 신경이 쓰인 다, 2군단 본부와 주로 계약을 한다, 군납 사업이 힘들다, 군납은 KS 마크가 있는 제품만 군납하게 되어 있다 는 이야기를 오주석과 나누었다고 진술하였으나 91), 서울지방 법원 공판에서는 오주석과 나눈 군납 이야기는 직업에 대한 애로사항의 토론 정도에 불 과한 이야기였다 고 증언하였다. 92)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도 오주석이 군납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고 군대에 KS 마크 제품을 납품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안기부 수사관이 어떤 제품을 납품하냐고 물 어서 KS 마크 제품이라고 답했는데 이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라고 진술하였다. 93) 수사관 이 도 참고인 이 에 대한 조사에 대해 수사가 완벽할 수는 없다. 사실이 확대되어 정리될 수는 있었을 것이다 라고 진술하였다. 94) 다) 기타 확인서 및 증거물 유죄증거로 채택된 수사보고 95) 는 의암검문소가 실재하고 춘천시 근화동에 미군부대가 주둔한다는 내용의 실재 사실에 대한 확인서가 첨부된 보고서와, 또 다른 수사보고 96) 는 87) 2007. 9. 6. 진술청취. 88) 1982. 6. 16.~1983. 3. 2. 동안 죽림동 동장 재직. 89) 1983. 3. 3.부터 죽림동 동장 재직. 90) 2008. 6. 19. 진술청취. 91) 수사기록 이 진술서 및 진술조서 (1983. 4. 30.), 1870~1886쪽. 92) 공판기록 이 증인신문조서 (1983. 10. 4., 서울지법 3차 공판). 93) 2007. 9. 7. 진술청취. 94) 2008. 6. 19. 진술청취. 95) 수사기록 수사보고 (1983. 4. 30.), 1905쪽.. 96) 수사기록 수사보고 (1983. 4. 30.), 1899쪽. 48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오주석의 춘천새마을금고 이사 재직 사실을 확인하는 내용으로 위 범죄사실들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 내규책자 수집과 관련된 수사보고 97) 는 오주석의 죽림동 방위협의회 의원 재직 사실만을 확인하는 내용일 뿐 오주석이 내규책자를 수집하였는지 여부는 판단할 수 없다. 또한 유죄증거인 책자는 월간 새마을금고 (새마을금고연합회 발행) 1981년 4월호 의 의료보험에 관한 해설(Ⅰ) (74-76쪽) 이라는 설명문과 춘천 죽림동 방위협의회 내규 책자이다. 수사보고들은 모두 피해자의 자백을 보강하는 증거들로 범죄사실을 독자적으 로 증명할 수 없고 춘천 죽림동방위지원위원회 내규책자는 공식적으로 제작된 것이 아닌 안기부 수사관의 요청에 의하여 동장이 만들어 제출한 압수물에 불과하다. 3) 소결 피해자는 안기부, 검찰에서 위 범죄사실에 대하여 자백하였으나 이는 위에서 보듯 불 법구금된 상태에서 강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증거능력이 없고, 법정에서는 위 범죄사실을 부인하였다. 참고인들의 진술, 사법경찰관 수사보고와 압수 물건들은 범죄사 실을 독자적으로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유죄증거인 내규책자(증제25호)는 춘천시 죽림동 동장들과 방위협의회 위원들이 만들 거나 본 적이 없다고 진술한 점, 가 안기부 수사관의 지시에 의해 내규책자를 병 사계 직원에게 만들게 한 것이라고 진술한 점으로 보아 이는 국가보안법 위반죄 범죄수 사에 종사하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을 받게 한 것 98) 으 로 형사소송법 제420조7호, 제422조의 재심사유에 해당하며, 는 법정에서 피해자 에게 위 내규책자를 배포한 적이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 위증을 하였을 개연성이 높아 이 는 형법 152조 위증죄에 해당하며 99) 형사소송법 제420조2호 100), 제422조의 재심사유에 해당된다. 이 은 당시 피해자에게 군납과 관련해서 질문한 적이 없고 안기부 진술내용 일부도 97) 수사기록 수사보고 (1983. 4. 30.), 1887쪽. 98) 국가보안법제12조(무고, 날조) 1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이 법의 죄에 대하여 무 고 또는 위증을 하거나 증거를 날조 인멸 은닉한 자는 그 각조에 정한 형에 처한다. 2범죄수사 또는 정보의 직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이나 이를 보조하는 자 또는 이를 지휘하는 자가 직권을 남용하여 제1항의 행위를 한 때에도 제1항의 형과 같다. 다만, 그 법정형의 최저가 2년 미만일 때에는 이를 2년으로 한다. 99) 형법 제152조(위증, 모해위증) 1법률에 의하여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하여 피고인, 피의자 또는 징계혐의 자를 모해할 목적으로 전항의 죄를 범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100) 형사소송법 제420조2호 원 판결의 증거된 증언, 감정, 통역 또는 번역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허위인 것이 증명된 때.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49
제4권 사실과 다르다고 진술하고 있어, 피해자가 군납 관련 국가기밀 탐지 수집에 대한 범죄사 실을 증명할 증거가 부족하다. 춘천 검문소 위치 등 국가기밀 탐지와 월간 새마을금고 책자 수집의 범죄사실은 피 해자가 부인하고 있고, 검사의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이 없고, 사법경찰관 수사보고 및 책자는 확인서 또한 객관적 사실을 보고하는 문서에 불과하여 독자적으로 범죄사실을 입증하기에 부족하다. 결국 피해자의 국가기밀 탐지 수집 범죄사실은 충분한 증거가 없이 인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 회합 통신 및 금품수수 여부 1) 범죄사실의 요지 및 유죄증거 피해자에 대한 범죄사실 2항, 3항, 5항, 6항, 13항은 피고인 오주석이 반국가단체인 조 총련의 구성원 안, 오 등과 서신 및 전화로 연락하고 금품을 수수하였다는 것이 며, 유죄증거로는 피고인 오주석의 법정진술 및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와 사법경찰 관의 수사보고이다. 2) 관련 증거 가) 피해자 진술 피해자는 이 범죄사실에 대해 안기부와 검찰 조사에서 자백하였으나 법원의 공판에서 대부분 부인하였는데, 1983. 9. 13. 서울지방법원 1차 공판에서 김 가 서울 고모에게 안부 전해달라며 준 사진을 받았을 뿐이며 안 이 준 2만 엔은 김 에게 돌려주었 다, 오 과 오 길이 친척이어서 만났고 오 길이 식비로 주는 2만 엔만 받았다, 오 과 통화한 일은 있으나 단순히 도착했다는 안부전화였다, 안 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없다, 안 으로부터 서신을 받았으나 바로 찢어버렸다 101) 고 진술하였고,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안 에게 받은 2만 엔은 김 에게 돌려주었다, 몇 십 년 만에 고모 오 과 오 길을 만나 그 친척의 정에 오 길이 준 돈 2만 엔을 받았다, 안 의 편지를 받아 찢어버려서 내용을 잘 모른다. 편지는 딱 한 번 받은 적이 있고 그 편지를 찢어버렸다 고 진술하였다. 101) 서울지법, 2차 공판(1983. 9. 27.). 50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나) 기타 확인서 사법경찰관의 작성의 수사보고 102) 는 오주석이 안 으로부터 받은 2차 서신을 수사 기관에 적발될 것을 우려 파기하여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진술에 따라 쓰레기통의 위치 등을 확인하였다는 내용에 불과한데 피해자 자백의 증거능력이 부인되므로 이는 독자적 으로 범죄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 3) 소결 회합 통신연락 및 금품수수의 범죄사실에 대한 유죄증거는 피해자의 자백뿐이다. 따라 서 피해자 자백의 임의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위 범죄사실에 대한 증거는 없다. 나아가 피해자가 친척인 오 길로부터 일화 2만 엔을 수수한 것은 몇 십 년 만에 만난 친척 어른이 준 돈이라는 점은 인정되므로 오 길이 반국가단체 구성원이라는 증명이 없 는 상태에서 피해자가 오 길로부터 금품을 수수하였다는 사실만으로는 반국가단체 구 성원과의 금품수수를 인정하기 어렵다. 103) 수사기록에 포함된 안 발송, 오주석 수신의 편지도 판결에서 증거로 사용되지 않 았고, 서신을 파기하여 버렸다는 쓰레기통 위치를 찍은 사진과 수사보고서 역시 범죄사 실을 입증하는 증거로는 부족하다. 따라서 피해자의 반국가단체 구성원과의 회합 통신, 금품수수의 사실은 증거가 없다. 라. 편의제공 여부 1) 범죄사실의 요지 피해자는 1980. 6. 초순 김 가( 家 )를 방문, 안 으로부터 받은 김 사진을 보여 주고 김 에게 안, 김 부부 접촉 사실을 고지하여 안 에게 편의를 제공하 102) 수사기록 수사보고 (1983. 4. 29.), 1721쪽. 103) 대법 96도2158(1996.11.12.) 판결.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로부터 받는 금품의 가액 이나 가치 또는 금품수수의 목적은 가리지 아니하나, 그 구성요건상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로부터 금품을 수 수하여야 한다고 할 것이므로, 금품의 수수행위가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 게 할 위험이 없는 경우에는 금품수수죄로 처벌할 수 없다. 대법 84도1796(1984.10.10.)판결. 국가보안법 제5조 제2항의 금품수수는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 령을 받은 자로부터 그 정을 알고 금품을 수수함으로서 성립되고 그 금품수수의 목적이 무엇이건 동죄의 성립에는 영향이 없다.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51
제4권 였다는 것이며, 유죄증거는 피해자 및 공동피고인 김 의 법정진술, 검사의 각각 피의 자신문조서, 사진 1장이다. 2) 관련 증거 가) 피해자 진술 피해자는 안기부, 검찰에서 자백하였으나 법정진술, 항소이유서 및 상고이유서에서 김 를 만나 안 이 조총련으로 사상이 다르고 적대관계이니 친척이라도 편지 내왕을 해서는 안 되고 내왕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는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고, 진실화해위원 회 조사에서는 당시 김 를 만났으나 사진이 있어서 주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조심하 자는 이야기는 한 것 같다 고 진술하였다. 나) 참고인 진술 김 는 서울지방검찰청 조사에서 1980. 6. 오주석이 방문해서 김 내외의 사진을 주고 본인 사진은 보여주기만 하고 다시 가져갔으며, 김 부부가 조총련으로 일본에 서 활동하고 있고 어렵게 사는 것 같다며 이런 얘기는 남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하여 조심 하자 고 진술하였다. 104) 1983. 10. 18. 서울지방법원 5차 공판에서 오주석을 만났을 때 남에게 절대로 말하지 말라 는 말을 들은 사실이 없고, 검사에게 조사받을 때 검사가 조서를 다 써놓고 그냥 손도장 찍으라고 해서 찍고 말았다 고 진술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오주석이 아들 만나러 가는 중에 잠시 우리 집에 온 기억이 있는데 조총련 소리는 들은 기억이 없다. 사진(증제21호)도 본 기억이 없다 고 진술하였 다. 105) 3) 소결 피해자 자백의 임의성이 부인되고 법정진술이 김 와 만난 사실은 인정하고 나머지 는 부인하는 상황, 공동피고인 김 가 검사작성 피의자신문조서의 임의성을 부인하고 있고 김 의 법정진술 또한 오주석을 만난 사실만 인정하고 서로 조심하자는 언급 여 부 등이 있었다면 피해자의 편의제공 고의를 인정할 수 없고, 김 의 사진이 있다고 해 104) 검찰기록 김 제2회 피의자신문조서 (1983. 6. 10.), 4203~-4205쪽. 105) 2007. 10. 1. 진술청취. 52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서 범죄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106) Ⅲ. 결론 및 권고사항 1. 결론 이 사건은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조총련 관련 친척과 수십 년 만에 만나 대화하고 전화, 편지, 금품을 주고받은 사실을 확대하여 간첩죄 등으로 유죄판결 받게 한 사건이다. 안기 부는 피해자를 비롯한 피의자들을 영장 없이 불법연행한 후 수십 일에서 60일까지 장기간 불법구금한 상태에서 고문 및 가혹행위를 통하여 피의자들의 허위자백을 받아내고, 보강 증거를 날조하는 등 위법한 수사를 거듭하였고, 검찰 수사과정에서도 안기부가 찾아가 협 박을 계속하여 간첩사건으로 조작하여 처벌받도록 한 비인도적, 반인권적 사건이다. 안기부는 피해자를 비롯한 피의자들을 영장 없이 불법연행한 점,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60일 가까이 불법구금한 점과 피해자에 대한 증거날조 및 안 가 허위증언한 것 등은 각각 형법 제125조 불법체포감금죄, 제125조 폭행, 가혹행위죄, 국가보안법 제12 조 무고, 날조죄, 형법 제152조 위증죄에 해당되며, 형사소송법 제420조2호, 7호, 제422조 가 정한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서울지방검찰청은 안기부의 위법적인 수사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치하 였고, 피의자들의 인권침해 여부 및 범죄사실에 대하여 철저히 수사하지 않고 안기부에 서 있었던 자백에 의존하여 검사작성 피의자신문조서만을 작성한 뒤 서울지방법원에 기 소하였다. 법원은 피해자 및 피고인들이 위법수사와 증거의 문제점을 호소함에도 듣지 않고, 검 사작성 피의자신문조서 상의 자백을 토대로 보강증거들을 덧붙여 중형을 선고하였다. 피 고인들의 자백을 제외한 증거들만으로는 범죄사실을 입증할 수 없으므로 결과적으로 법 원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결과를 초래했다. 106) 서울고법 74노329제4형사부(1978.11.28.) 판결, 단순한 대면이나 그들의 목적수행을 위한 활동과는 아무 런 관련 없이 전연 다른 의도 하에서의 모임이나 순수한 인도적인 의미에서의 도움은 반공법 제5조 소정 의 회합죄나 제7조 소정의 편의제공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