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문론총 제60호 한국문학언어학회 2014. 6. 김종삼 시의 생명의식과 은유의 상관성 연구* 26) 박 선 영** 27) <차 례> 1. 2. 3. 4. 5. 들어가는 말 시적 자아의 변신과 생명의식의 성화 타자의 사물화 양상과 초월적 삶의 추구 음악의 공간화 이행과 초월세계 가닿기 나오는 말 1. 들어가는 말 전후 시인들1)의 시에는 죽음의식이 농후하고 편만하게 나타난다. 가난, 질병, 전쟁 등의 비극적 상황에 처해 있는 인간에게 죽음에 대한 인식은 자연스럽게 찾아들기 때문이다. 전후 시인 가운데 한 명인 김종삼(1921-1984)의 시에도 죽 음의 그림자가 짙고, 넓게 드리워져 있다. 이로 인해 김종삼을 죽음의 시학 을 추구한 시인으로 거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종삼의 시세계의 한 축은 생명의식 * 이 논문은 2014년도 서울신학대학교 교내 연구비 지원에 의한 논문임. ** 서울신학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 전자우편 moolsori34@hanmail.net 1) 대표적인 전후 시인으로는 김종삼, 전봉건, 김광림, 박인환, 김수영, 구상, 신동엽 등이 있는데 이들의 시편에서는 전후의 비참한 현실 인식, 불안의식, 죽음의식 등이 드러난다.
228 어문론총 60호 에 토대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김종삼의 시에는 생명에 대한 깊은 갈망 이 내면의 결을 이루고 있다. 대척점에 놓여 있는 삶과 죽음이 김종삼의 정신세 계를 구성하는 두 축인 셈이다. 그래서 김종삼의 시의식의 전모 파악하기 위해 서는 양 측면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김종삼은 시작 기간에 비해 시작품이 그리 많지 않다. 작품집으로는 십이음 계 (1969, 三愛社), 시인학교 (1977, 新現實社),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1982, 新現實社)라는 시집과 북치는 소년 (1979, 민음사), 평화롭게 (1984, 고려원) 라는 시선집이 있으며, 김광림ㆍ전봉건과 함께 발간한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 (1957, 자유세계사), 김광림ㆍ문덕수와 함께 발간한 본적지 (1968, 성문각) 등 이 있다. 김종삼 시의 시기 구분에 관해서는 시의식의 변모 양상을 밝힌 연구자 들이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았다. 시기 구분이 필요 없다는 주장을 비롯하여 전 기ㆍ후기의 2기 구분, 초기ㆍ중기ㆍ후기의 3기 구분 등이 있다.2) 본고에서는 특 정한 시기에 한정하지 않고 사후에 간행된 김종삼 시전집 에 수록되어 있는 시 전체를 텍스트로 삼을 것이다. 이 가운데서 죽음 이면에 존재하는 김종삼 시인 의 생명에의 인식이 내포된 시편들을 중심으로 살필 것이다. 전후 시인 김종삼의 시에 죽음 이 지배적이고 핵심적인 시의식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현실과 불화 속에 살았던 김종삼 시인의 시에는 절망이 깊고, 죽음의 기운이 서려 있다. 심지어는 자신의 죽음을 갈망하는 죽음지향의식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죽음은 유한성을 지닌 인간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존재론적 한계상황이다. 김종삼 시의 죽음은 유년시절 동생의 죽음, 전쟁을 통한 타인의 죽음, 직접적인 병상 체험을 거치며 스스로 가체험한 죽음 등으로 나타난다.3) 김종삼의 시에서는 죽음이 미학적으로 형상화되고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이는 2) 김종삼 시의 2기 구분을 제기한 민영은 안으로 닫힌 정신 친화성의 회복(민영, 안으 로 닫힌 시정신, 장석주 편, 김종삼 전집, 청하, 1988), 백인덕은 미의식 죽음의식 ( 김종삼 시 연구, 한양대 대학원 석사논문, 1992), 이해금은 전쟁을 원체험으로 하 는 세계상실 의식 죽음을 원체험으로 하는 평화의식( 김종삼 시 연구, 이화여대 대 학원 박사논문, 2001)으로 변모한다고 보았다. 3기 구분을 제시한 이승훈은 페허의식 이웃과 함께 하는 삶의 자세 죽음의식과 죄의식( 삶의 돌각담 쌓기, 한국문학, 1985.2), 반경환은 서구지향적 사고 비극적 세계인식 생활에의 회귀의식( 폐허 속 의 시학, 한국문학, 1988.6)으로 변모한다고 보았다. 3) 김태민, 김종삼 시 연구, 경희대 대학원 석사논문, 1994.
김종삼 시의 생명의식과 은유의 상관성 연구ㆍ박선영 229 다른 전후 시인들의 시편에서 발견할 수 없는 변별점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김 종삼 시의 죽음의식에 관해서는 전면적으로든 부분적으로든 많은 연구가 이루어 졌으며 주목할 만한 성과도 얻었다.4) 그러나 김종삼 시의 죽음 이면에는 삶에의 집념으로서 생명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생에 한줄기 섬광처럼 번뜩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시인이 죽음을 갈망하는 것은 살고 싶은 욕망의 역설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김종삼 시 인의 죽음지향의식은 역설적으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되새겨 자 문하게 만드는 역할 5)을 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삶에의 욕망인 에로 스 (Eros)와 죽음에의 욕망인 타나토스 (Thanatos)를 인간이 지닌 본능의 양면 으로 설명한 바 있다.6) 김종삼의 시를 면밀히 살펴보면, 절망적 현실과 실존을 넘어서려는 생에의 의지가 죽음의 무게만큼 절실하게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생 명의지는 자기 존재와 세상 사이의 화해의 몸짓이자 소통에 상응한다. 시인의 생에의 욕망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초월 7)로 이행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생 4) 이위조, 김종삼 시의 죽음 의식에 관한 연구, 청람어문학 18집, 청람어문학회, 1991.1.; 오형엽, 풍경의 배음과 존재의 감춤, 송하춘 이남호 편, 1950년대의 시인 들, 나남, 1994.; 이한열, 김종삼 시의 죽음의식에 관한 연구, 한국교원대 대학원 석사논문, 1997.; 김현(1998), 위의 글.; 박성현, 한국 전후시의 죽음의식 연구, 건 국대 대학원 석사논문, 1998.; 이승훈, 평화의 시학, 김종삼 전집, 장석주 편, 청 하, 1998.; 류명심, 김종삼 시 연구 -담화체계 및 은유를 중심으로, 동아대 대학원 박사논문, 1999; 김영주, 한국 전후시의 죽음의식 연구, 숙명여대 대학원 박사논문, 1999.; 강연호, 김종삼 시의 내면의식 연구, 현대문학이론연구 제18집, 현대문학 이론학회, 2002.12.; 김춘수, 김종삼 시의 비애, 김춘수 전집 시론 전집 Ⅰ, 2004.; 송경호, 김종삼 시 연구 죄의식과 죽음의식을 중심으로, 서울시립대 대학원 박사논 문, 2006.; 주완식, 김종삼 시의 죽음의 수사학 연구 기도와 애도의 수사학을 중심 으로, 서강대 대학원 석사논문, 2009.; 김정배,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죽음의식 연 구 김종삼과 김수영의 시를 중심으로, 원광대 대학원 박사논문, 2010. 등 대부분의 글에서 논자들은 죽음 에 관하여 거론하였다. 5) 강연호, 위의 논문, 26쪽. 6)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무의식적인 본능이자 충동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내면에 삶과 생성의 본능으로서 에로스 와 죽음과 파괴의 본능으로서 타나토스 가 함께 존재한다 고 보았다. -Freud, Sigmund, 쾌락 원리의 저편, 강영계 역,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09, 116쪽. 7) 초월 은 하나의 존재 양식에서 다른 존재 양식으로 가는 존재론적 돌파를 뜻하며 제약 된 생존에서 제약 없는 존재 양식, 즉 완전한 자유에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Eliade, Mircea, 성과 속, 이동하 역, 학민사, 1997, 19-59쪽.
230 어문론총 60호 명과 죽음은 김종삼 시의 양면을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김종삼 시에 관 한 선행연구는 죽음의식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생명의식에 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김종삼 시의 생명의식을 중점화한 논의는 없으며, 시세계의 변모를 다룬 논문을 비롯하여 평화의식 혹은 기독교의식을 고찰한 논의에서 부 분적으로 거론되었다.8) 이에 본고에서는 죽음 너머에 존재하는 김종삼의 생명에 의 인식을 조명하는 데 중점을 두고자 한다. 이 글에서 주목할 것은 생명의식이 어떠한 시적 형식과 관련성을 맺고 있는 가 하는 문제다. 김종삼의 시는 시행의 단절, 난삽한 한자어의 배치, 의미의 비 약 등을 활용하여 기법의 실험성을 드러내는 경향9)이 다분하다. 그러나 김종삼 시의 생명의식과 관련해서는 수사학적 차원의 은유가 지배적인 원리로 작용하고 있다. 은유는 차이성 속에서 유사성을 발견하는 창조적인 인식의 과정이다. 김종 삼 시인은 은유적 전이 과정을 통하여 고정된 의미의 세계를 확장하고 해방하 는데 이것의 근저에는 의미의 복잡성을 소실시키지 않으려는 의도 가 내재해 있다.10) 김종삼의 시는 은유에 의해 시적 의미의 복잡성이 형성되며 인식의 확 장도 이루어진다. 그래서 김종삼 시의 은유에 관한 고찰은 중요하다. 특히 김종 삼의 시에는 생에의 갈망이 여러 층위의 은유를 구성하는데 이는 시인의 미학적 인 사유의 결이며 무늬이다. 미학주의자였던 김종삼 시인의 시적 미감을 파악하 기 위해서도 이 연구는 필요하다. 따라서 본고는 김종삼의 심연에 자리한 생명 의식에 천착하되, 이것이 어떠한 은유적 의미망 속에서 의미와 긴장을 창출하는 지에 집중할 것이다. 이것은 김종삼 시의 생명의식과 은유적 기법 사이의 상관 성을 밝히는 작업이기도 하다. 김종삼의 시에는 새로운 기법과 형식을 도입하는 실험적인 면모가 강하다. 이 8) 이승훈, 삶의 돌각담 쌓기, 한국문학, 1985,2.; 이승훈, 평화의 시학, 장석주 편, 김종삼 전집, 청하, 1988.; 이숭원, 김종삼 시에 나타난 죽음과 삶, 현대시 2,1. 한국문연, 1991,1.; 홍용희, 꿈과 평화의 시학: 김종삼론, 高凰論集 16집, 경 희대 대학원, 1995.9.; 강연호(2002), 위의 논문.; 정효구, 평화를 주제로 한 試論 혹은 詩論, 시와반시 제14권3호, 2005.가을.; 김옥성, 김종삼 시의 기독교적 세계 관과 미의식, 한국언어문화 제29집, 한국언어문화학회, 2006.4.; 이성민, 김종삼 시의 기독교적 상상력, 조선대 대학원 석사논문, 2007.2; 정창선, 김종삼 시 연구기독교적 구원의식과 상징성을 중심으로, 명지대 대학원 박사논문, 2010.2. 등 9) 이숭원, 위의 논문, 284쪽. 10) 엄경희, 시, 새움, 2011, 232쪽.
김종삼 시의 생명의식과 은유의 상관성 연구ㆍ박선영 231 로 인해 김종삼 시의 형식 미학은 다각적인 차원에서 논의되었다. 이 중에서도 수사학적 차원에서는 동일성에 토대 한 은유 와 동일성을 파괴하는 형식으로서 난유 (亂喩)에 관한 연구의 두 갈래로 진행되었다. 은유에 관한 고찰은 권명옥, 류명심, 김화순, 박선영에 의해 전개되었는데11) 주로 휠라이트, 레이코프 존슨의 은유론을 활용한 이들의 논의는 대치은유를 넘어 상호작용론의 입장에서 은유적 특징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은유적 의미망을 총체적으로 밝히 는 데에는 다소 미흡하였다. 흐루쇼브스키의 이론을 차용한 박선영의 논의는 김 종삼 시의 은유 구조를 총체화하고 있으나 죽음의식에 치중해 있다는 점에서 남 은 과제가 있다. 김종삼 시의 난유에 관한 고찰은 박현수12)에 의해 심도 있게 논의되었다. 그는 김종삼 시의 핵심이 비논리적인 이미지의 병치에 의한 난유, 즉 기의에 도달할 수 없는 기표의 부재를 바탕으로 하여 생긴 비유에 있다고 설 명하였다. 그리고 은유와 난유의 양 측면에 관한 고찰은 주완식에 의해 전개되 었다. 주완식은 김종삼의 시가 믿음의 담론과 불신의 담론으로 나뉘며 전자는 은유로, 후자는 난유로 구사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 논의도 죽음의식에 국한되 어 있다. 한편, 김종삼의 시에서는 주로 병치13)에 의해 은유 혹은 난유가 성립한다. 김 종삼 시의 병치에 관한 고찰은 신규호, 박민규, 김은희의 논의를 들 수 있는 데14) 이들은 김종삼 시의 병치항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단절과 틈, 즉 불연속성 을 조명하는 데 주력하였다. 김종삼 시인은 불연속적 병치구조 속에서 세계의 11) 권명옥, 시와 은유, 인문사회과학연구 제3집, 세명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1996.; 류명심(1999), 위의 논문.; 김화순, 김종삼 시 연구 언술구조와 수사법을 중심으로, 고려대 대학원 박사논문, 2010.; 박선영, 김종삼 시에 나타난 죽음 의 은유적 미감 연구, 한국문학논총 제65집, 한국문학회, 2013.12. 12) 박현수, 김종삼 시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사학, 우리말글 31집, 우리말글학회, 2004.8. 13) 휠라이트는 모든 형태의 비유를 은유로 파악하였으며, 은유를 치환은유인 외유 (外 喩)와 병치은유인 교유 (交喩)로 분류하였다. -Wheelright, Philip, 은유와 실재, 김태옥 역, 한국문화사, 2000, 67-96쪽. 14) 신규호, 무의미의 의미, 시문학, 1989.3-4월호.; 박민규, 김종삼 시의 병치적 특성 연구, 고려대 대학원 석사논문, 2004.; 김은희, 김종삼 시의 불연속성 연구 불연속적 세계관과 병치기법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 중앙대 대학원 석사논문, 2008.
232 어문론총 60호 불연속성을 재현하는 한편, 시인이 지향하는 연속성의 세계를 은밀히 구현하려 고 하였다.15) 그러므로 김종삼 시의 불연속적 병치구조뿐만 아니라 연속성의 의 미맥락에 있는 병치구조, 즉 은유에 관한 연구도 필요하다. 본고에서는 김종삼 시에 나타난 생명의식이 은유의 원리에 토대해 있다는 점에서 은유 고찰에 중점 을 둘 것이다. 은유라는 형식 미학에 관한 고찰은 유미주의적 입장을 고수한 김 종삼 시인의 정신적 지향을 규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김종삼 시의 은유 연구가 어느 정도 전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의식과 은유와의 상관성을 밝히는 논의는 이루어지지 못 하였다. 따라서 본고는 김종삼 시의 생명의식에 천착하여 은유와의 상관성을 밝히는 데 주력할 것이다. 은유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전이 (轉移)16)의 개념으로 파악한 데에서 출발하여 리챠즈, 막스 블랙, 비어즐리, 리꾀르 등을 거치면서 은유의 중요성이 강조되었 으며, 은유의 작용 범위도 점차로 확대되었다. 단순히 A는 B이다 라는 단어의 차원에서 거론되었던 대치 은유는 언술의 차원에서 전개되는 상호작용론으로 발 전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논자들은 은유가 단순히 수사적 장식의 차원이 아닌 인식의 문제라는 데에 합의하였다. 더욱이 은유는 인식의 갱신과 확장을 가져오 는 매우 창조적인 사유작용이다. 리꾀르는 은유에 의해 현존하는 기존의 의미보 다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고 창조하는 이것을 의미론적 혁신 (semantic innovation)17)이라고 말한 바 있다. 본 연구에서는 언술의 차원에서 시적 은유 를 파악한 흐루쇼브스키의 은유 이론을 원용할 것이다. 흐루쇼브스키는 문장 (sentence)이 아닌 지시틀 (frame of reference: frs.)을 은유의 의미 단위로 삼는다. 미결정의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 지시틀 은 텍스트에 있는 불연속적인 요소들 즉 음성, 단어, 문장 등 하부 패턴들에 의해서 완성된다. 지시틀은 상호 침투하는 가운데 은유적 전이가 이루어진다. 전이가 이루어지는 기본적 지시틀은 1차적 지시틀 (fr₁)로, 이에 상응하는 15) 김은희(2008), 위의 논문, 54쪽. 16) 은유는 한 사물에 다른 것의 이름을 부여하는 것인데, 이때 그것은 유(類)에서 종 (種)으로, 혹은 종(種)에서 유(類)로, 혹은 종(種)에서 종(種)으로, 혹은 유추에 의하 여 어떤 사물에다 다른 사물에 속하는 이름을 전용하는 것이다. -Aristoteles, 詩 學, 천병희 역, 문예출판사, 1988, 116쪽. 17) 정기철, 상징, 은유 그리고 이야기, 문예출판사, 2004, 115쪽.
김종삼 시의 생명의식과 은유의 상관성 연구ㆍ박선영 233 부차적 지시틀은 2차적 지시틀 (fr₂)로 세워진다. 다양한 층위로 직조된 시 에서는 여러 개의 지시틀이 구성되기도 한다. 그런데 지시틀의 각 항은 시적 맥락에 기초를 두지만 텍스트 상에 표면화되지 않은 틈 (gap)을 메우는 데에 는 독자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곧 지시틀의 설정은 상당히 주관적이 며 유동적인 것이다. 18) 흐루쇼브스키는 은유 의 개념을 환유, 직유, 의인 등을 아우르는 광의의 개념, 즉 비유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의 지시틀 이론은 김종삼 시의 은유 구조를 총체적으로 밝혀주고, 비유적 텍스트의 다의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해준 다는 점에서 효용성이 크다. 특히 세계의 사물과 존재를 삶의 의미맥락에서 나 열하고자 하는 김종삼 시인의 내적 욕망이 다양한 병치 은유를 낳고 있는데 이 러한 사실은 그의 지시틀 이론으로 충분히 증명될 수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흐루쇼브스키의 이론을 원용하여 김종삼 시의 의미 생성과 더불어 긴장과 미감 을 파악하고자 한다. 2. 시적 자아의 변신과 생명의식의 성화 김종삼 만큼 죽음의식이 일관되게 나타나는 시인도 드물다. 이로 인해 죽음에 의 인식은 김종삼의 시의식의 주류를 형성한다. 그러나 죽음 이면에 시인의 절 박한 생명에의 인식이 자리하고 있음은 간과할 수 없다. 김종삼 시의 생명의식 은 직접적으로 표출되기도 하고, 행간에 함축되어 유추를 통해 드러나기도 한다. 우선 생존 에 대한 무거움이 가벼움으로 이행되는 시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 이를 살펴보자. 한 걸음이라도 흠잡히지 않으려고 생존하여 갔다.// 몇 걸음이라도 어느 성현이 이끌어 주는 고되인 삶의 쇠사슬처럼 생존되어 갔다.// 아름다이 여인 18) Hrushovski, Benjamin, Poetic Metaphor and Frames of Reference with Examples from Eliot, Rilke, Mayakovsky, Mandelshtam, Pound, Creeley, Amichai, and the New York Times, Poetics Today, vol.5, No., 1984, pp.11-13.
234 어문론총 60호 의 눈이 세상 욕심이라곤 없는 불치의 환자처럼 생존하여 갔다.// 환멸의 습 지에서 가끔 헤어나게 되며는 남다른 햇볕과 푸름이 자라고 있으므로 서글펐 다./ 서글퍼서 자리 잡으려는 샘터, 손을 잠그면 어질게 반영되는 것들./ 그 주변으론 색다른 영원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짧은 이야기> 전문 시인은 자신이 낙원에서 추방당한 죄인 임을 깊이 인식하는데(<원정>), 이 원 죄의식은 강박적이거나 방어적인 상태로 드러난다. 시 전반부에는 화자의 수동 적인 삶의 자세가 역력하다. 그는 살아가고 있다기보다는 살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삶이 고통스러울 때 나오는 자세이다. 1연에서 는 생존의 이유가 진술된다. 한 걸음이라도 흠 잡히지 않으려 는 화자의 내면 에는 죄 없는 순수한 세계에 대한 지향성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타자를 지나 치게 의식하는 것은 그의 자유가 억압되어 있음을 입증해준다. 2연에서 나 (fr ₁ ₁)는 어느 성현이 이끌어 주 는 고된 삶을 사는데 이는 쇠사슬 (fr₂)처럼 생존하는 것으로 비유된다. 쇠사슬이 억압 내지 구속을 표상한다는 점에서 화자 의 지상적 삶이 구속의 테두리에 고되게 놓여 있음을 읽어낼 수 있다. 3연에서 는 자신을 세상 욕심이 전혀 없는 여인 또는 이를 환유하는 여인의 눈 (fr₁ ₂)에 비유하고, 다시 불치의 환자 (fr₁ ₃)와 연결하여 은유적 관계에 둔다. 그 는 여인, 불치의 환자 로 변신하면서 무욕과 더불어 소생 가능성이 없는 절망 의 상태를 의미화한다. 이에 비애와 아름다움이 동시에 파생된다. 이들 지시틀은 상호작용하면서 생존하여 갔다 라는 비유적 사건 19)에 의해 의미 수렴을 이룬 다. 이 은유의 고리는 화자의 생존 양태를 무겁고 절망적인 모습으로 그려낸다. 마지막 연으로 오면서 의미의 반전이 일어난다. 희망의 기운이 절망의 그림자 를 따른다. 화자는 자신이 처한 어두운 현실을 환멸의 습지 에 비유하는데, 가 끔씩 이를 벗어나면 남다른 햇볕과 푸름 으로 인해 서글픔을 토로한다. 이러한 내적 상태를 벗어나 자리 잡으려 고 화자는 샘터 에 손을 잠근다. 생명을 표상 하는 물의 근원지인 샘터 에 손을 잠그는 것은 어둠을 벗어나려는 상징적인 행 위로서 생에의 의지에서 발현된 행위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화자가 손을 잠그 19) 비유적 사건(figurative event) 혹은 비유적 상황(figurative situation)은 실제(또는 현실)와 상상의 경계가 깨어지는 순간을 의미한다. - Hrushovski, Benjamin(1984), 위의 논문, pp.26-27.
김종삼 시의 생명의식과 은유의 상관성 연구ㆍ박선영 235 면 어질게 반영되 는 데 있다. 이것은 자아와 세계가 조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한다. 끝으로 그 주변으론 색다른 영원이 벌어지고 있었다 라는 언술에는 고 통스러운 생을 넘어 영원한 세계에 닿고자 하는 시인의 초월적 욕망의 투영되어 있다. 이렇듯 김종삼의 죽음지향의식은 역설적으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되새겨 자문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20) 위 시편에서는 화자의 몸바꿈을 통해 구체화되는 생존 의 양태가 다소 무겁고 어둡게 나타나며, 생에 대한 의지 도 지극히 수동적으로 드러난다. 반면에 아래 시편에서는 시인의 생에의 의지가 능동적으로 드러난다. 내가 죽어가던 아침나절 벌떡 일어나/ 날계란 열 개와 우유 두 홉을 한꺼 번에 먹어댔다./ 그리고 들로 나가 우물물을 짐승처럼 먹어댔다./ 얕은 지형 지물들을 굽어보면서 천천히 날아갔다./ 착하게 살다가 죽은 이의 죽음도 빌 려 보자는/ 생각도 하면서 천천히/ 더욱 천천히 <또 한 번 날자꾸나> 전문 fr₁ fr₂ ₁ fr₂ ₂ 죽어가던 나는 짐승은 (새는) (부엌으로) 들로 (하늘로) (들어가서) 나가서 날아가서 우물물을 얕은 지형물을 날계란 열 개와 우유 두 홉을 먹어대다 굽어보다 위 시는 서사에 기대고 있어 설명적으로 보이지만 지극히 함축적이고 상징적 20) 강연호, 위의 논문, 26쪽.
236 어문론총 60호 이다. 이 시에서는 죽어가던 시적 자아의 생에의 집착이 비유를 통하여 구체적 으로 표출되고 있다. 시적 자아는 몸바꿈을 하면서 세 개의 지시틀을 구성한다. 시의 맥락 속에서 보면, 들로 나간 짐승은 들짐승 에 해당하고 하늘을 나는 것 은 날짐승 즉 새 에 해당한다. 이에 죽어가던 나 (fr₁)는 살려는 본능, 즉 생 에의 의지에 의해 짐승 (fr₂ ₁)과 새 (fr₂ ₂)로 변신한다. 그리하여 부엌으로 들어간 나 의 행위는 들로 나간 짐승 의 행위, 하늘로 날아가는 새 의 행위와 동일한 은유적 의미망 속에 놓인다. 이들의 행위를 시간적 순차성에서 해석하면 환유로도 볼 수 있으나 시적 문맥 속에서는 병치에 의한 은유적 관계로 파악할 수 있다. 충동처럼 드러나는 생에의 욕망은 초월적 의지로 이행된다. 화자가 날계란 열 개와 유유 두 홉 으로 자양분을 섭취하는 것과 짐승 이 우물물 로 수분을 보 충하는 행위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서 본능에 가깝다. 시인의 생명의 지가 발현된 것이다. 그의 시 <두꺼비의 전사>에서 화자는 수없이 많은 차량 밑 을 무사히 지나가는 두꺼비 한 마리 를 보면서 자신과 동일시하는데, 그는 무 교동에 가서 소주 한 잔과 설농탕이 먹고 싶었다 는 진술로써 생명의지를 대신 하고 있다. 한편, 시적 자아는 새 처럼 얕은 지형물 을 굽어보 는데 이는 초월 성을 함축하고 있다. 부엌 이나 들 이 생존을 위한 생활의 공간이라면 새가 날 아가는 하늘 은 초월적 공간을 표상한다. 새 와 들짐승 은 동물의 층위라는 점 에서 동질적이지만 행위에 있어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들짐승 은 거칠고 다소 사나운 동물성을 드러내지만 새 는 유연한 날갯짓으로 초월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시적 대상의 행위에서 파생되는 방향성에 주목해보자. 나 의 행위는 내향성을 지니고 들짐승 의 행위는 외부로의 확대를 드러내며 새 의 행위는 수직적 상승 을 나타낸다. 화자의 변신과 더불어 들짐승 과 새 의 움직임은 역동성을 보이면 서 증폭된다. 바슐라르는 인간의 삶의 가장 깊은 본능들 중의 하나가 가벼움의 본능 21)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시인은 은유적 의미작용을 통하여 내적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시적 자아 나 는 짐승, 새 로 몸바꿈을 하면서 생명의지를 드러내며, 죽음 앞에 내몰린 절망적 상황에서 존재론적 초월을 시도 21) Bachelard, Gaston, 공기와 꿈, 정영란 역, 민음사, 1993, 68쪽.
김종삼 시의 생명의식과 은유의 상관성 연구ㆍ박선영 237 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자아의 회생이 육체적 생존의 차원에서 정신적 초월의 차원으로 이행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과정은 시적 몽상 혹은 환상에 의해 구현 된다. 그의 시 <투병기>의 다시 끝없는 荒野가 되었을 때/ 하늘과 땅 사이에/ 밝 은 화살이 박힐 때/ 나는 坐客이 되었다/ 신발만은 잘 간수해야겠다/ 큰 비가 내릴 것 같다. 에도 생에 대한 의지가 담겨 있다. 황야, 밝은 화살, 좌객, 신발, 큰비 는 의미상 연결 고리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난유 로 해석하기 도 한다.22) 나 (fr₁ ₁)는 좌객 (fr₁ ₂), 즉 앉은뱅이 라는 불구적 존재로 은 유적 변전을 한다. 그는 인간의 존재나 삶을 표상하는 신발 을 잘 간수해야겠 다 는 의지적인 발언으로 존재와 삶에 대한 애착과 집념을 드러낸다. 한편, 시 <한 골짜기>의 한 골짜기에서/ 앉은뱅이 한 그루의 나무를/ 보았다/ 잎새들은 풍성하였고/ 색채 또한 찬연하였다/ 인간의 생명은 잠깐이라지만 에서는 한 그 루의 나무 가 앉은뱅이 로 변전한다. 한 그루의 나무 는 작고 볼품없는 불구의 형상이지만 풍성하 게 붙어 있는 잎새들 과 찬연하 게 드러난 색채 는 아름답 기 그지없다. 존재의 유한성에도 시인은 생에 충실히 임한다. 이것은 죽음의 계 곡을 넘어서는 시인의 자존 23)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생에의 인식은 <산>의 샘물이 맑다 차겁다 해발 3천 피이트이다/ 온 통/ 절경이다/ 새들의 상냥스런 지저귐 속에/ 항상 마음씨 고왔던/ 연인의 모습 이 개입한다/ 나는 또 다시/ 가슴 에이는 머저리가 된다 에서도 나타난다. 하늘 과 땅이 만나는 지점,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산 은 초월성을 표상한 다.24) 산 의 골짜기를 따라 생명의 근원인 샘물 이 솟아난다. 샘물 은 화자의 내면에 생명력을 조성하는데 맑고 차가운 상태에 의해 생명력이 강화된다. 절경 을 이룬 산 을 올려다보고 샘물 에 손을 담그면서 희열을 느끼는 동안 화자의 생명의식이 고조된다. 한편, 산에 울려 퍼지는 새들의 지저귐 속에 과거의 연인 의 모습 이 개입한다. 청각과 시각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화자는 몸바꿈을 한다. 22) 박현수, 위의 논문, 266쪽. 23) 이숭원, 김종삼의 시의식과 생의 아이러니, 태릉어문연구제10집, 서울여대, 2002.2, 37쪽. 24) 산은 이중의 신성성을 지닌다. 즉 이는 초월성에 대한 공간적 상징이면서 성현의 영역이다. -Eliade, Mircea, 종교사개론, 이재실 역, 까치, 1993, 112-114쪽.
238 어문론총 60호 연인을 떠올리며 사랑의 감정에 젖어든 나 (fr₁ ₁)는 가슴 에이는 머저리 (fr ₁ ₂)로 변신한다. 에로스의 감정은 생에의 의지에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때 외부세계가 내면화되면서 미적 생명력이 촉발된다. 과거의 기억 으로 들어가 서 지나간 일을 현재화하는 시인은 당시의 감흥에 동화됨으로써 회감 (回感)을 경험한다.25) 여기에는 김종삼 시인의 동일성 회복에 대한 욕망이 내재해 있다. 또 언제 올지 모르는/ 또 언제 올지 모르는/ 새 한 마리가 가까이 와 지저 귀고 있다./ 이 세상에선 들을 수 없는/ 고운 소리가/ 천체에 반짝이곤 한다./ 나는 인왕산 한 기슭/ 납작집에 사는 산사람이다. <새> 전문 천상을 표상하는 천체 와 인왕산 은 공간 메타포를 형성한다. 이 시에서는 청 각의 시각화에 의해 은유적 전이가 발생한다. 새(fr₁)가 지저귀는 고운 소리 는 별 (fr₂)이 발하는 밝은 빛 에 상응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인왕산 기슭 과 천체 는 서로 은유 공간을 이룬다. 그리고 새 와 시적 자아 나 (fr₃ ₁)는 공간 적 인접성에 의한 환유적 관계로 볼 수도 있지만, 감정이입이 된 등가적 존재로 서 은유적 관계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 는 다시 동일한 층위의 산사람 (fr ₃ ₂)으로 변주된다. 산사람 은 이 세상 의 욕심을 버리고 살아가는 순수한 존 재를 뜻한다. 우뚝 속은 산 이 하늘과 가장 가까이 위치해 초월성을 표상한다는 점에서 산기슭의 납작집 에 사는 산사람, 즉 산지기 도 초월성을 부여받는다. 그리하여 새 가 고운 소리 로 지저귀 는 행위는 별 이 밝은 빛 을 반짝이 는 행위, 화자가 깨끗한 심성 을 갖고 사 는 행위와 동일한 의미맥락을 형성한 다. 이에 소리의 결, 빛의 결, 내면의 결이 등가에 놓인다. 그런데 새 의 지저귐 과 별 의 발광이 외향성을 지니는 반면, 납작집 에서 사는 화자의 삶은 내향성 을 지닌다. 전자는 무한으로 확산되는 상상력을 보여주고 후자는 응축 내지 축 소되는 상상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대립이 시인의 은유적 사유 속에서 통합될 수 있는 근거는 납작집 에서 사는 화자의 삶에 내포된 역설성에 있다. 즉 이것 은 가장 내밀한 삶의 추구가 무한한 삶의 확대를 가져올 수 있다는 역설적 진리 에 닿아 있다. 김종삼의 시에는 키 작은, 납작집, 모퉁이, 한 기슭 등 구석진 25) Steiger, Emil, 시학의 근본개념, 이유영, 오현일(공역), 삼중당, 1978, 88-98쪽.
김종삼 시의 생명의식과 은유의 상관성 연구ㆍ박선영 239 곳, 낮은 곳을 의미하는 시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축소지향된 공간의 내 밀함으로 가장 깊이 들을 수 있다는 의미도 내포한다.26) 김종삼 시의 시적 자아는 비록 이 세상 에 살고 있지만 이상세계를 표상하는 천상에 거하는 초월자적 삶을 꿈꾼다. 자아의 몸바꿈을 통해 시인의 생명의지는 수직적 초월의 욕망으로 이행된다. 자아의 변신이 인간의 층위를 넘어 동물의 층위, 사물의 층위와의 병치로 확대되면서 초월적 생명의식이 미학적으로 형상 화된다. 이러한 시의식이 아래 시편에서는 기독교적인 성화(聖化)의 양상으로 드 러난다. 내가 많은 돈이 되어서/ 선량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맘 놓고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리니// 내가 처음 일으키는 微風이 되어서/ 내가 不滅의 平和가 되어서/ 내가 天使가 되어서 아름다운 음악만을 싣고 가리니/ 내가 자비스런 神父가 되어서/ 그들을 한번씩 訪問하리니 <미사에 參席한 李仲燮씨> 전문 1인칭 화자 나 (fr₁ ₁)로 등장하는 시적 자아는 변신을 거듭한다. 우선 그 는 선량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터전을 마련해주 기 위해 많은 돈 (fr₂)이 되 기를 갈구한다. 부자 를 환유하는 많은 돈 은 사용 목적에 의해 숭고한 정신적 가치를 획득한다. 2연에서는 처음 일으키는 미풍 (fr₃), 불멸의 평화 (fr₄), 천 사 (fr₅ )으로 몸바꿈을 하여 아름다운 음악만 싣고 가 려 한다. 아름다움에 대 한 열망의 밑바닥에는 화자의 생에의 의지가 깔려 있다.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자는 살기를 갈구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화자는 초월적 존재인 천사 로 의 변신을 꿈꾸기까지 한다. 또 화자는 자비스런 신부 (fr₁ ₂)가 되어 선량하 고 가난한 자들을 방문하기를 원한다. 이렇게 시적 자아는 사물의 층위, 자연물 의 층위, 관념의 층위, 초월적 존재의 층위로 몸바꿈을 열망하고 있다. 다양한 층위의 지시틀로 변주되면서 화자의 존재감과 지향성이 구체화되는데, 이를 통 해 시인의 인식의 확장과 갱신이 일어난다. 시적 자아는 많은 돈, 미풍, 불멸 의 평화, 천사, 신부 등으로 변신을 희구하면서 초월적 가치 내지 초월적 존 재감을 추구하게 된다. 26) 류명심, 위의 논문, 112쪽.
240 어문론총 60호 이 시는 미사 중에 올리는 기도시다. 시의 제목에서 화자 나 는 미사에 참석 한 화가 이중섭 임을 유추할 수 있다. 이중섭은 한국의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서 양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가난하게 생활했던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에 대해 애틋한 마음이 있었고, 불우한 아이들을 위해 무료로 그림을 가르치기도 했다. 화자의 염원은 이중섭의 내적 지향성을 대변해주는데 이는 지상에서 살아 가는 김종삼 시인의 갈망을 대신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김종삼은 전쟁으로 폐허 가 된 땅에,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맘속에 평화가 깃들기를 갈구했던 생명 의 시인이다. 기독교에 바탕 한 그의 생명의식은 성스러움을 더해간다. 이러한 양상은 시 <마음의 울타리>의 나는/ 밋숀 병원의 圓柱처럼/ 주님이 꽃 피우신 울타리// 지금 너희들 가난하게/ 생긴 아기들의 많은/ 어머니들에게도 그랬거니와// (중략)// 제각기 色彩를 기다리고 있는 새싹이 트이는 봄이 되면 너희들의 부스럼도 아물게/ 되면/ 나는/ 밋숀 병원의 늙은 간호부라고 하여 두잔 다 라는 시구에도 잘 드러난다. 1연에서 나 (fr₁ ₁)는 미숀 병원의 원주 (fr₂) 로 변주된다. 원주는 건물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다. 사물화된 자아는 자신이 병 원을 떠받치는 힘으로 중요한 구성원이라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는 다시 주님 이 꽃 피우 신 울타리 (fr₃)로 식물화 내지 자연화된다. 내부와 외부를 경계하 는 이것은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지닌 보호막 역할을 한다. 화자는 울타리가 되 어 가난하게 생긴 아기들 과 많은 어머니들 을 안전하게 보살피고자 한다. 그에 게 울타리는 현실의 모든 고통에서 아이들을 보호하는 보호막으로, 하나님의 사 랑이 살아 숨쉬는 원망 공간이다.27) 시적 자아가 몸바꿈을 함에 따라 화자의 지 상에서의 사명감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지막 연에서는 미래시제로 제시된다. 화자는 미숀 병원의 늙은 간호부 (fr ₁ ₂)로 변신한다. 새싹이 트이는 봄 이 되면 화자는 스스로를 밋숀 병원의 늙 은 간호부 로 규정한다. 간호부 란 환자의 생명을 돌보는, 약한 자를 위해 희생 을 하는 존재이다. 자신을 늙은 간호부 라고 자칭하는 데에는 생명지향의식이 내재해 있다. 더욱이 그가 소속된 곳이 기독교정신 위에 세워진 미숀 병원 이라 는 점에서 화자 안에 기독교적 생명의식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위 시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 병들고 버려진 아이들에 대해 각별한 마음 27) 최미정, 김종삼 시에 나타난 願望空間 연구, 숭실대 대학원 석사논문, 1998, 80쪽.
김종삼 시의 생명의식과 은유의 상관성 연구ㆍ박선영 241 을 가진 시인의 의식세계가 드러난다. 절망적인 현실을 넘어서고자 하는 김종삼 시인의 생명의식은 성화의 양상을 보이면서 은유적 의미망과 정교하게 엮여 전 개되고 있다. 시적 자아는 인간의 층위를 넘어 사물의 층위, 자연물의 층위로 몸 바꿈을 하면서 성스러운 생명에의 인식을 확대해나간다. 3. 타자의 사물화 양상과 초월적 삶의 추구 김종삼 시의 죽음의식은 시적 자아와 타자들에 의해 구체화되고 있다. 생명에 의 인식도 이와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김종삼 시인은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부단히 이상세계를 추구하는데 그는 현실세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통해 초월적 삶을 구현해내고자 한다. 이러한 시적 지향은 김종삼 시인이 타자들과 그들의 삶을 깊숙이 응시하는 데에서 출발하고 있다. 할아버지 하나가 나어린 손자 하나를/ 데리고 살고 있었다./ 할아버진 아 침마다 손때 묻은 작은 남비,/ 나어린 손자를 데리고/ 아침을 재미있게 끓이 곤 했다./ 날마다 신명께 감사를 드릴 줄 아는/ 이들은 그들만인 것처럼/ 애 정과 희망을 가지고 사는 이들은/ 그들만인 것처럼/ 때로는 하늘 끝머리에서/ 벌판에서 흘러오고 흘러가는 이들처럼// 이들은 기동차가 다니던 철뚝길/ 옆 에서 살고 있었다 <기동차가 다니던 철뚝길> 전문 fr₁ fr₂ ₁ fr₂ ₂ 할아버지와 손자는 (구름은) (바람은) 철뚝길 옆에서 하늘 끝머리에서 벌판에서 흘러오고 흘러가듯 살고 있었다
242 어문론총 60호 시인은 3인칭 화자를 내세우면서 시적 거리를 둔다. 그리고 타자들의 삶을 깊 이 응시한다. 할아버지와 나어린 손자 의 삶은 지극히 서정적인 풍경으로 그려 지고 있다. 비록 이들은 가난으로 결핍된 생활을 연명하지만 현실적 삶에 대해 초월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로 인해 이들의 삶은 애잔함을 넘어 정겨움을 연 출한다. 아침마다 손때 묻 은 작은 남비에다 아침을 끓이는 할아버지의 마음에 는 재미 가 있다. 손때 묻은 남비 는 가난의 기표이지만 아침을 재미있게 끓 이 는 할아버지의 내면상태에 의해 넉넉함을 생산한다. 이들에게는 날마다 신명 께 감사를 드릴 줄 아 는 겸손한 마음이 있으며, 애정과 희망을 가지고 사 는 긍정적 인식이 있다. 피조물의 자리에 머무르며 소소한 일상을 이어가는 이들의 삶은 아름답고 거룩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이들이 살고 있는 철뚝길 은 기동차가 다니던 곳이다. 흘러오고 흘러가 는 것 으로 제시되는 철뚝길은 인간의 유동적인 삶의 양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러한 행위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지상에서의 삶의 자세를 함축하고 있다. 이들은 때때로 하늘 끝머리에서/ 벌판에서 흘러오고 흘러가는 이들처럼 산다. 직유적 표현에 의해 할아버지와 나어린 손자 (fr₁)는 비유적 고리를 형성하는데, 이로 써 부차적 지시틀이 파생된다. 이에 하늘 끝머리 에는 흘러오고 흘러가 는 구 름 (fr₂ ₁)으로, 벌판 에는 흘러오고 흘러가 는 바람 (fr₂ ₂)으로 부차적 지 시틀의 빈칸이 채워진다. 그리하여 철뚝길 에 함축된 유동적 움직임은 하늘 끝 에 떠다니는 구름 의 흐름과 벌판 에서 떠도는 바람 의 흐름과 은유적 대응을 이루게 된다. 지상에 정주해 있는 자연물과 달리 유동적 자연물로의 변주는 화 자의 자유정신을 함의하고 있다. 이러한 은유적 전이에는 지상에서 나그네로 살 아가기를 원하는 시인의 초월적 생명의식이 녹아 있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초월 적 삶에의 인식은 시인의 내면에 울림이 되어 시적 거리를 좁히면서 온다. 곧 시적 거리는 여운의 거리가 된다. 이렇게 타자는 자연물로 사물화되면서 시인의 초월적 삶에의 지향이 구현된다. 그의 시 <동트는 지평선>에서도 이와 유사한 시의식이 나타난다. 이 시의 연인의 信號처럼/ 동틀 때마다/ 동트는 곳에서 들려오는/ 가늘고 鮮明한/ 樂器 의 소리/ 그 사나이는 遊牧民처럼/ 그런 세월을 오래오래 살았다/ 날마다 바뀌어 지는 地平線에서. 라는 구절에서는 사나이 의 존재감에 의해 초월적 인식이 드 러난다. 동트는 곳 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생명의식을 머금고 있다. 사나이 (fr₁
김종삼 시의 생명의식과 은유의 상관성 연구ㆍ박선영 243 ₁)는 떠돌며 사는 유목민 (fr₁ ₂)으로 몸바꿈을 한다. 그는 공간적 인접성에 의해 지평선 (fr₂)이라는 자연의 층위와 환유적 관계로 결합하여 초월성을 부 여받는다. 땅과 하늘이 맞닿아 수직적 초월을 암시하는 지평선 에서 오래도록 살았다는 것은 그가 지상적 삶에의 초월을 꿈꾸고 있었음을 내포한다. 위의 시 편에서 시인의 초월적 삶에의 갈망이 타자의 삶에 대한 응시 속에 암묵적으로 드러났다면, 아래의 시 <무제>에서는 문면에 표면화되고 있다. 이세상 모두가 부드롭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랜만에 사마시는/ 부드로운 맥주의 거품 처럼/ 고전압 지대에서 여러 번 죽었다가/ 살아나서처럼/ 누구나 축복받은 사람들처럼 // 여름이면 누구나 맞고 다닐 수 있는/ 보슬비처럼/ 겨울이면 포근한 눈송이처럼// 나 는 이 세상에/ 계속해 온 참상들을/ 보려고 온 사람이 아니다 <無題> 전문 fr₁ ₁ 이세상 모두가 fr₁ ₂ (기적의 생존자들이) fr₁ ₃ 축복받은 사람들이 (너그럽고) fr₃ ₁ fr₃ ₂ 맥주의 거품이 보슬비가 눈송이가 (풍성하고) (조용하고) 포근하고 fr₂ 부드롭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시의 화자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감 속에서 이상세계에 대한 염원을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이 세상에 계속되어 온 참상들 을 보려고 온 사람이 아 니라고 진술한다. 이것은 시인이 살고 있는 현실이 끔찍하고 비참한 상황들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이다. 지상에 부재하는 이상세계는 무제 라는 제목으로 제시 된다. 화자는 이러한 현실 너머의 이상세계를 갈망하는데 이것은 현실세계를 구 성하는 사람들에 대한 바람으로 드러난다. 세상 모두를 향한 화자의 바람은 은유의 고리를 조성하면서 전개된다. 우선 그 는 이 세상 모두 (fr₁ ₁)가 풍성하게 부풀어 오르는 맥주의 거품 (fr₂)처럼 부 드롭 기를 바란다. 풍성하 게 부풀어 오르는 하얀 거품은 환희로 다가온다. 또한 고전압 지대에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 즉 기적의 생존자들 (fr₁ ₂)처럼, 축복 받는 사람들 (fr₁ ₃)처럼 너그럽기를 원한다. 이들에게는 삶에 대한 여유와 감
244 어문론총 60호 사의 마음이 있다. 또한 그는 여름에 내리는 보슬비 (fr₃ ₁)처럼 조용하고 겨울 에 내리는 눈송이 (fr₃ ₂)처럼 포근하기를 원한다. 메마른 대지를 적시며 내리 는 보슬비 와 눈송이 는 생명을 표상하는 자연물로서 안온함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은유적 발상은 시인의 온화한 생명에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들 지 시틀은 화자의 바람을 담은 부드롭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하는 비유적 사건 에 의해 의미론적 통합을 이룬다. 그가 나열한 이상적 삶에 대한 바람은 상충됨 없이 조화로운 얼개를 완성한다. 이러한 은유는 그리 낯설지 않은, 매우 친숙한 대상으로 의미맥락을 형성하여 부드러움의 미학을 구현해내고 있다. 특히, 화자는 모두가, 누구나 라는 시어를 통하여 소외된 사람이 없는 공평 한 세상을 희구하고 있다. 세계를 구성하는 사람에 대한 바람은 세계에 대한 바 람과 직결되어 있다. 마지막 연의 나는 이 세상에/ 계속해 온 참상들을/ 보려고 온 사람이 아니다 라는 언술을 통해 화자는 자신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보러 왔음을 강조한다. 이와 같이 김종삼이 추구하는 현실 너머 이상세계는 세 계를 구성하는 타자에 대한 간절한 바람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은유적 고리에 의 해 구체화된다. 인간의 층위가 사물의 층위, 자연의 층위로 변주됨에 따라 생명 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는 시인의 평화지향의식이 확대된다. 여기서는 타자 일반 이 무생물 내지 자연물로 사물화됨으로써 시인의 초월적 삶에의 의미 확장이 이 루어진다. 이러한 양상은 시 <復活節>의 그리스도는 나의 산계급이었다고// (중략)/ 낯 모를 아이들이 모여 있는 안쪽으로/ 들어섰다 무거운 거울 속에 든 꽃잎새처럼/ 이름이 적혀지는 아이들에게/ 밤 한톨씩을 나누어 주었다 라는 시구에도 나타난 다. 화자는 그리스도 (fr₁)를 나의 산 계급 (fr₂)으로 치환하는데 이는 예수 가 자신의 삶의 지주임을 뜻한다. 산 계급 으로 표현된 그리스도 는 과거적 존 재가 아닌 현재적 존재를 의미화한다. 그리스도의 부활 이 지닌 의미는 지상에 존재하는 아이들 에게로 이동한다. 낯모를 아이들 (fr₁)의 존재감은 꽃잎새 (fr ₂)에 비유된다. 무거운 거울 속 에 들어 있는 꽃잎새 는 삶의 무거움을 함축하 고 있다. 화자는 생기를 잃은 아이들에게 밤 한톨씩 을 나눠주는 상징적인 행위 를 한다. 밤 한톨 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부활의 소망을 담은 사랑 혹은 생명 의 표상물이다. 화자는 무거운 거울 과 같이 절망적인 현실에 살고 있는 아이들 에게 존재론적인 가벼움 과 자유 를 안겨주고 싶었던 것이다. 부활절에
김종삼 시의 생명의식과 은유의 상관성 연구ㆍ박선영 245 행한 화자의 나눔에는 죽음과 같은 현실을 넘어서려는 시인의 초월적 생명의식 이 내재해 있다. 이로 인해 사물화된 타자에게 초월적 생명의식이 전달된다. 그의 시 < 五 月 의 토끼똥ㆍ꽃>에서는 자연물이 의인화되기도 한다. 이 시의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의 체온은 성자처럼 인간을 어차피 동심으로 흘러가게 한 다. 그리고 나서는 참혹 속에서 바뀌어지었던 역사 위에 다시 시초의 여러 꽃을 피운다고,// 메말라 버리기 쉬운 인간 <성자>들의/ 시초인 사랑의 새 움이 트인다 고, 에서는 낙원을 연상시키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봄날 햇볕 속, 대기에는 아지랑이 가 아물아물 피어오르면서 상승적 생명력을 자아낸다. 아 지랑이의 열기 (fr₁)는 인간 성자들의 체온 (fr₂)에 비유된다. 성자 는 따뜻한 체온을 흘러 보내면서 사는 희생적인 종교인을 의미한다. 아지랑이 의 열기는 식 물의 새 움 을 트이게 하 고 여러 꽃 을 피우 며, 성자 의 체온은 때가 묻지 않 는 순수한 동심 을 갖게 하 고 메말라 버리기 쉬운 마음에 시초의 사랑 을 일깨 우 게 한다. 이들이 공유하는 시초의 라는 시원의 시간은 기독교적 에덴 의 시간 을 환기시킨다. 이들 지시틀은 공간적 인접성에 의해 토끼 의 행위와 환유로 연 결된다. 토끼는 충만한 생명의식의 자장 속에서 놀이하며 쉬고 있다. 놀이와 쉼은 생에의 의지를 촉발시켜주는 중요한 행위이다. 놀이와 쉼이 있는 오월 의 완연한 봄 풍경은 마치 인간의 최초 공간 에덴 을 방불케 한다. 이 시에는 타자들로 전 이된 자연물을 통해 시인이 추구하는 초월적 삶이 분명하게 그려진다. 타락하기 이전 기독교적 원형의 세계 대한 시인의 지향성이 묻어 있다. 한편, 김종삼의 시에서 타자 가 불멸의 존재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시인에게 가장 가까운 타자로서 엄마 가 있다. 시 <어머니>의 어머니 나는 아직 살아 있 다고/ 세상에 남길 만한/ 몇 줄의 글이라도 쓰고 죽는다고/ 그러나/ 아직 못 썼 다고 라는 시구에는 시인으로서의 존재감이 강조되는데 어머니 는 그의 정신적 인 버팀목임을 감지할 수 있다. 이런 시인에게 어머니는 불멸의 생을 환기시키 는 존재로, 절대자와 이어주는 대상으로 나타난다. 아침엔 라면을 맛있게들 먹었지/ 엄만 장사를 잘할 줄 모르는 行 商 이란다// 너희들 오늘도 나와 있구나 저물어 가는 山 허리에// 내일은 꼭 하나님의 은혜 로/ 엄마의 지혜로 먹을거랑 입을거랑 가지고 오마.// 엄만 죽지 않는 계단 <엄마> 전문
246 어문론총 60호 이 시에서 시적 화자인 엄마 (fr₁ ₁)는 장사를 잘할 줄 모르는 행상 (fr₁ ₂)인 동시에 죽지 않는 계단 (fr₂)으로 치환되면서 은유적 대응을 이룬다. 행 상 인 엄마는 가게를 얻지 못하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물건을 파는 가난한 삶을 꾸리고 있다. 그녀는 장사를 잘 할 줄 몰라 먹을거랑 입을거랑 충분히 가지고 오지 못하는 결핍의 존재로 현현한다. 그러나 엄마는 내일 이라는 미래적 시간 에는 넉넉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챙겨오게 될 거라고 단언한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힘은 엄마의 지혜 에 앞서 하나님의 은혜 에 근원을 두고 있다. 말하자면 장사를 잘 할 줄 모르는 엄마 가 결코 죽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에서 기 인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삶이 절대자 하나님 에게 달려 있음을 고백한 것 으로, 기독교적 정신에 입각해 있다. 이러한 존재론적 상태는 엄만 죽지 않는 계단 으로 구체화된다. 엄마 가 죽 지 않 는 것은 계단 이 끝나지 않 는 상태와 동일한 의미망을 형성한다. 사실 엄마 와 계단 이 환기하는 바는 다소 낯설고 유사성의 거리가 먼 편이다. 엄마 라는 존재가 유사성의 거리가 먼 사물로 치환됨으로써 시적 긴장성이 커진다. 비유되는 두 단어나 사물이 환기하는 유사성의 거리가 멀수록 시적 긴장이 더욱 더 커지기 때문이다.28) 계단 은 사람들이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층계로 이 루어진 길이다. 상승과 하강을 위한 통로 역할을 하는 계단은 소통의 공간으로 의미화된다. 어머니 의 존재론적 표상으로서 죽지 않는 계단 은 불멸 내지 불굴 의 존재를 형상화함으로써 영원성을 내포하고 있다. 모성적 존재는 화자의 내면 에 불멸의 생에 대한 의지를 촉발하고 고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엄 마 는 인간의 층위, 무생물적 사물의 층위로 변주되면서 불멸의 존재감을 형상화 하는데 여기에 화자의 초월적 삶에 대한 지향성이 깔려 있다. 그의 시 <라산스카>에서는 실존했던 미국의 여류 성악가 라산스카 29)가 불 멸의 존재로 그려진다. 이 시의 집이라곤 비인 오두막 하나밖에 없는/ 草木의 나라// 새로 낳은/ 한 줄기의 거미줄처럼/ 水邊의/ 라산스카// 라산스카/ 인간되 었던 모진 시련 모든 추함 다 겪고서/ 작대기를 짚고서. 에서는 라산스카 (fr₁) 가 새로 낳은 한 줄기의 거미줄 (fr₂)에 비유된다. 거미 가 새로 낳은 한 줄기 의 거미줄 은 강인한 생명력을 표상한다. 끝 행에서는 인간 되었던 모진 시련 28) Richards, I.A., 수사학의 철학, 박우수 역, 고려대학교출판부, 2001, 117쪽. 29) 김인환, 상상력과 원근법, 문학과 지성사, 1993, 105-106쪽.
김종삼 시의 생명의식과 은유의 상관성 연구ㆍ박선영 247 모든 추함 을 다 겪은 라산스카의 삶이 진술된다. 시련과 추함은 인간되었던 이 라는 표현이 함의하고 있듯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숙명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의 삶에서의 시련과 추함을 말한다.30) 노쇠하여 작대기 를 짚고 섰음에도 라산스카 는 여전히 아름다운 불멸의 존재로 인식된다. 한편, 시의 공간은 초목 의 나라, 수변 으로 제시된다. 수변 은 물이 마르지 않는 생명의 근원지다. 물 가에 자리한 라산스카 는 화자에게 순수한 존재이자 불멸의 존재로 인식되고 있 음을 대변해준다. 여기에는 라산스카의 목소리를 통해 정화되고 싶은 시인의 순 수함에 대한 갈망31)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을 향한 염원이 서려 있다. 타자의 사 물화에 의해서 시인의 초월적 생의 추구가 구현된다. 4. 음악의 공간화 이행과 초월세계 가닿기 김종삼의 시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전후의 피폐한 현실 속에서 세계와 불화했던 모습이 역력히 나타난다. 그런 가운데서도 시인은 현실세계와 의 화해를 꿈꾸며 자신만의 이상세계를 만들어간다. 음악, 미술 등의 예술은 그 가 이상세계에 닿을 수 있는 다리가 되어준다. 특히 음악의 소리 는 현실과 이 상의 간극을 좁히면서 화해를 이끌어내는 데 주된 역할을 한다. 그의 시 <행복> 에서 음악과 어우러져서 표출되는 생에의 의지를 만나보자. 오늘은 용돈이 든든하다/ 낡은 신발이나 닦아 신자/ 헌 옷이나마 다려 입 자 털어 입자/ 산책을 하자/ 북한산성행 버스를 타 보자/ 안양행도 타 보자/ 나는 행복하다/ 혼자가 더 행복하다/ 이 세상이 고맙다 예쁘다// 긴 능선 너 머/ 중첩된 저 산더미 산더미 너머/ 끝 없이 펼쳐지는/ 멘델스존의 로렐라이 아베마리아의/ 아름다운 선율처럼. <행복> 전문 30) 강연호, 위의 논문, 32쪽. 31) 맑은 물은 정화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신선한 물은 경신(更新)의 꿈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는 새롭게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물 속에 잠기는 것이다. -Bachelard, Gaston, 물과 꿈, 이가림 역, 문예출판사, 1987, 208쪽.
248 어문론총 60호 1연에서 화자는 자신의 내적 상태와 행위를 나열하면서 행복감을 표현한다. 발걸음에는 생명력이 감돌고 ~자 라는 청류형어미가 반복됨에 따라 속도감이 더해진다. 혼자가 더 행복하다 는 진술 속에는 고독과 자유가 내포되어 있다. 속도감이 잦아든 2연에서는 화자가 발견하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비유에 의해 구 상화된다. 화자의 눈에 아름다움 으로 비친 세상의 모습 (fr₁)은 멘델스존의 로렐라이, 아베마리아의 선율 (fr₂)에 비견할 만한 것이다. 시각과 청각으로 감 각화된 이 상태에서 시인의 충만한 생명의식을 감지할 수 있다. 이에 화자의 역 동적인 행보에 미적 율동감이 실린다. 이것은 부드럽게 펼쳐지 는 긴 능선 과 맞물려 미감을 완성한다. 특히 음악은 초월성을 내포한 산더미 라는 자연공간과 환유로 결합하여 생명의식을 창출한다. 앞서 살펴본 시 <동트는 地平線>의 연 인의 信號처럼/ 동틀 때마다/ 동트는 곳에서 들려오는/ 가늘고 鮮明한/ 樂器의 소리 에도 음악이 생명의식과 결부되어 있다. 동틀 때 가늘고 선명하 게 들려오 는 악기의 소리 (fr₁)는 연인의 신호 (fr₂)로 변주되는데 인간화된 악기 소리 는 애틋한 사랑의 마음을 의미화하면서 시인의 내면에 다정하고 친밀하게 감겨 든다. 이러한 시의식은 <음악>에서도 나타난다. 이 시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 르트의/ 아름다운 플루트 협주곡이/ 녹음이 짙어가는/ 초여름 햇볕 속에/ 어느 산간 지방에/ 어느 고원지대에/ 가난하여도 착하게 사는 이들 사이에/ 떠 오르고 있다/ 빛나고 있다 에서 초여름 햇볕 속 (fr₁)이라는 자연물은 산간 지방, 고원 지대 (fr₂)라는 초월을 내포한 자연공간, 가난하고 착한 사람들 (fr₃)이라는 인 간과 비유적 관계를 이룬다. 무성한 생성과 생장의 계절인 초여름의 햇볕 은 모 든 계절을 통틀어 가장 찬란한 빛을 발한다. 또한 산간 지방 과 고원 지대 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가장 높은 지대로 초월성을 함의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가난 하여도 착하게 사는 사람들 은 지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박하고 순수한 존재를 표상한다. 세 층위의 지시틀은 인접성에 의한 환유로도, 병치에 의한 은유로도 볼 수도 있는 은환유32)의 관계에 있다. 한편, 김종삼의 일부 시편에서는 청각이 시각화되는 특징이 나타난다. 여기서는 오스트리아의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 의 32) 어떤 비유는 은유로 봐야 할지, 환유로 봐야할지 경계선이 모호하고 애매하며 분류하 기가 쉽지 않다. 이때는 은환유 라는 용어로 부른다. -김욱동, 은유와 환유, 민음 사, 2004, 189-199쪽.
김종삼 시의 생명의식과 은유의 상관성 연구ㆍ박선영 249 플루트 협주곡 이 아름다운 선율로 흐르 는 행위가 떠 오르 고 빛나 는 행위로 전이된다. 음악 소리는 해 의 일출을 연상시키는 떠오르는 행위, 해 와 달 의 발광을 환기시키는 빛나는 행위와 동일시되어 역동적 아름다움을 풀어낸다. 생 명의 시간, 초월적 공간, 순수한 존재는 이질적인 층위이지만 그리 낯설지 않은 친숙함 속에서 융합되어 초월적 생명력을 창출한다. 음악은 산간 지방, 고원지 대 라는 초월적 세계와 환유적 관계에 놓여 미적 생명력을 울림으로 만들어낸다. 물/ 닿은 곳// 神羔의/ 구름밑// 그늘이 앉고// 고연한/ 옛/ Gㆍ미이나 <Gㆍ미이나 -전봉래형에게> 전문 이 시에는 절제된 시행에서 여백미가 강조되며, 서정적 감흥도 고조된다. 여 기서는 신고의 구름밑 이라는 공간을 공통항으로 하여 은유적 관계의 지시틀이 구성된다. 물 (fr₁ ₁)이라는 액체적 질료의 자연물은 그늘 (fr₁ ₂)이라는 무 형의 자연물, Gㆍ미이나 (fr₂)라는 음악과 은유적 관계에 놓인다. 물 과 그늘 은 질료의 차이는 있으나 동일하게 유동성을 지니며, Gㆍ마이나 역시 소리의 층위로서 유동적인 속성을 함유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위에서 아래로 하향하는, 즉 천상에서 지상으로 자유롭게 풀어지는 운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유동 성은 자유를 함축하는 기표이다. 구름 밑에 닿아 있는 물 은 물리적인 자연물의 의미를 넘어서 있다. 물은 생명 의 근원으로서 생명력을 환기시키는 상징물이다. 이와 의미론적 대응을 이루는 그늘 은 안식을 주는 기표다. Gㆍ마이나 가 지닌 차분한 단조의 선율은 안식과 더불어 비장미를 전달한다. 신고의 구름 밑 과 환유적 관계로 연결된 이들 지시 틀은 엄숙한 초월적 생명력을 조성하고 있다. 한편, 神羔의 구름밑 이라는 시구 에서 神羔 는 신의 어린양 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를 표상한다. 어린양 과 구름 은 이질적인 층위이지만 시각적인 차원, 특히 색채와 형태에 있어 유사성을 지니 면서 은유적 관계를 형성한다. 이들의 흰색 이미지는 무결점의 순결 내지 순수를 환기시키며, 나아가 어린양 이 지닌 함의에 의해 기독교적인 거룩과 순결을 표상 한다. 구름 은 지상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사물이지만 구름밑 이라는 공간은 지상과 천상의 경계에 있으면서 천상에 닿은 초월적인 표상공간이다. 여기에서
250 어문론총 60호 김종삼 시인의 지향성이 함축된 원망(願望)의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시제에서 김종삼이 전봉래 시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임을 유추할 수 있 다. 김종삼이 동료 시인에게 천상의 세계가 지닌 생명과 자유와 아름다움을 전 하는 것이다. 전쟁 후의 피폐한 현실을 기독교적 초월의지로 넘어서고자 한 시 인의 모습이 발견된다. 이 시에서는 음악의 은유 공간과 초월세계가 환유적 관 계로 결합하면서 시인의 천상에 가닿기가 구현되고 있다. 한편, 김종삼의 시에서 음악 은 천상을 표상하는 초월세계와 환유적 관계로 연결되는 차원을 넘어 은유 적 고리로 결합하면서 공간화되는 차원으로 이행된다. 이 地上의/ 聖堂/ 나는 잘 모른다// 높은 石山/ 밤하늘/ 헨델의 메시야를 듣고 있었다 <聖堂> 전문 이 시는 매우 함축적이다. 화자는 시야에 들어오는 가시적 사물과 귀에 들려 오는 소리를 병치시키면서 의식의 지향성을 담아낸다. 지상에 존재하는 성당 은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성스러운 공간이다. 그런데 1연에서 화자는 지상에 뿌리 내리고 사는 인간들의 절실한 공간인 성당 을 잘 모른다 라고 진술하고, 2연에 서는 높은 석산 과 밤하늘 을 보고 헨델의 메시야 를 듣는다. 1연과 2연 사이 에 생략과 함축에 의해 논리적 비약이 일어난다. 두 연은 인과에 의한 환유적 관계로 볼 수도 있지만 2연의 공간이 성당 의 대체 공간으로 제시되므로 은유 로 파악할 수도 있다. 이에 성당 (fr₁)이라는 신성한 공간은 높은 석산 (fr₂ ₁)과 밤하늘 (fr₂ ₂)이라는 자연적 공간, 헨델의 메시야 (fr₃)라는 음악과 병 치를 이루면서 비유관계를 형성한다. 성당, 석산, 밤하늘 은 공통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한 가시적 공간이다. 그러나 성당 은 사람들이 모이는 성스러운 인공 의 공간이고 석산, 밤하늘 은 자연의 공간이다. 전자가 따뜻한 나눔의 공간이 라면 후자는 차가운 고독의 공간이다. 두 층위의 공간은 이질적이지만 높은 곳 에 위치하여 초월성을 표상함으로써 유사성을 갖는다. 단단한 돌 로 이루어진 석산 은 불멸성을 내포하는데33) 이것은 지상과 천상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초월 33) 종교적 경험의 눈으로 볼 때, 돌의 특수한 존재양식은 시간을 넘어서 있고 생성에 의해 침해되지 않는 절대적 존재의 본질을 인간에게 계시하고 있다. -Eliade, Mircea, 종교형태론, 이은봉 역, 한길사, 1996, 139쪽.
김종삼 시의 생명의식과 은유의 상관성 연구ㆍ박선영 251 지향성을 함의한다. 밤하늘 역시 자연적 공간이지만 초월성이 내재해 있다. 시 인은 초월성을 표상하는 지상 공간을 통해 내밀한 천상으로의 지향을 구현한다. 한편, 불멸의 음악을 환유하는 헨델의 메시야 는 그리스도의 일생을 그린 음 악으로서 세계적으로 애호되는 곡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신으로부터 영감을 받 아 작곡한 성스러운 곡이며 시대를 초월해 있는 불후의 명곡이라는 점에서 영원 성 내지 불멸성을 내포한다. 영원한 생명력과 정화력을 지닌 서구의 고전음악 은 시인에게 유한자로서의 한계와 현실의 고통을 넘어서는 초월적 힘을 부여 하 34)고 있다. 네 지시틀은 상호작용함으로써 화자의 성스러운 초월적 욕망을 의미화한다. 이때 화자는 음악의 변주되는 소리를 통해 시적 감동 속에서 초월 세계인 하늘 에 가닿는다. 김종삼 시인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시각적 요소와 청각적 요소를 병치시켜 초월적 생명의식을 구체화한다. 그의 다른 시 <라산스카>에서는 음악의 층위가 초월적 세계와 병치되어 은유적 고리를 이루 고 있다. 바로크 시대 음악 들을 때마다/ 팔레스트리나 들을 때마다/ 그 시대 풍경 다가올 때마다/ 하늘나라 다가올 때마다/ 맑은 물가 다가올 때마다/ 라산스카 / 나 지은 죄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 <라산스카> 전문 fr₁ ₁ 바로크 음악이 fr₂ fr₁ ₂ 라산스카의 (목소리가) 팔레스트리나 (의 곡)이 들릴 때마다 fr₄ fr₃ 바로크 시대 풍경이 하늘나라가 fr₅ 맑은 물가가 다가올 때마다 나는 죄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 위 시에서는 은환유의 관계에 있는 바로크 시대 음악 (fr₁ ₁)과 팔레스트리 34) 최미정, 위의 논문, 14쪽.
252 어문론총 60호 나의 곡 (fr₁ ₂)을 기본적 지시틀로 삼을 수 있다. 바로크 시대 음악은 웅장하 고 극적이며 활력 있는 예술정신 으로 드러난다. 팔레스트리나 는 이 시대를 대 표하는 작곡가이며 교회음악가다. 그런데 시에 제시된 팔레스트리나 는 들을 때마다 라는 술어를 통해서 인명이 아니라 그가 작곡한 음악을 지칭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음악이 미국의 여류 성악가 라산스카 를 통해 재현된다 는 점에서 라산스카의 목소리 (fr₂)를 하나의 부차적 지시틀로 세울 수 있다. 김종삼 시인은 라산스카 라는 제목으로 세 편의 시를 썼는데 그녀의 목소리에서 천상의 세계를 형상화하고 있다. 이들 지시틀은 동일한 술어의 반복으로 병치 구조를 이루면서 바로크 시대 풍경 (fr₃), 하늘나라 (fr₄), 맑은 물가 (fr₅ )와 은유적 의미망에 놓인다. 하늘나라 가 초월공간이라면 맑은 물가 는 순수한 생 명력을 표상하는 자연공간이다. 그러나 시인의 사유 속에서는 두 공간이 동질적 으로 자리하고 있다. 음악의 층위는 인간의 소리의 층위, 시간의 층위, 공간의 층위로 이동하면서 초월적 인식을 구체화한다. 중요한 것은 라산스카의 목소리 가 화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울림 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천상의 이미지를 빚어내는 라산스카 의 음악적 세계가 순수함과 숭고함의 극치를 보여준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라산스카는 모 든 천상의 이미지를 통합해 가지고 있는 절대 순수의 존재 로서 시인에게 있어 현존하는 부재 35)인 셈이다. 죄가 많은 화자가 근접하기에는 너무 멀게 느껴지 는 곳임에도 그녀의 순수한 세계를 감지할 때마다 라산스카 를 호명한다. 그의 다른 시 <라산스카>의 미구에 이른/ 아침// 하늘을/ 파헤치는/ 스콥소리 에서는 라산스카의 목소리 (fr₁)가 하늘 을 파헤치는 스콥소리 (fr₂)에 비유되기도 한 다. 원예용 모종삽인 스콥 은 하늘 을 파헤치는 기구로 형상화된다. 하늘 을 파 헤치 는 행위로 인해 스콥소리 는 초월적 세계의 비밀을 풀어내는 비유적 소리 가 된다. 라산스카의 목소리 가 지닌 순수함이 하늘을 파헤치 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위 시의 나 지은 죄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 라는 화자의 진술에는 죄 인임에 대한 처절한 자각과 더불어 순수한 세계에 대한 동경이 깔려 있다. 인간 의 목소리와 음악에서 하늘나라 즉 천상을 발견하는 시인의 은유적 발상에는 기 35) 김인환, 위의 책, 105쪽.
김종삼 시의 생명의식과 은유의 상관성 연구ㆍ박선영 253 독교적 초월의식이 흐르고 있다. 특히 음악이 변주된 은유 공간을 통해 김종삼 시인은 천상의 세계에 가닿으면서 시적 감동을 체험한다. 이 시는 김종삼의 예술 과 삶과 죽음에 대한 의식을 라산스카 라는 음악가에게 투사하여 드러낸 것으로, 라산스카는 결국 김종삼에게 있어 미학적 지향이며 동시에 삶의 지향이기도 했던 것이다.36) 김종삼의 시에는 이중섭, 미켈란젤로, 고호, 세잔느, 피카소, 밀레, 말 라르메, 싸르트르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예술가들의 생애나 작품을 통 해 구체화되는 이상세계에는 시인의 초월적 생명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세자아르 프랑크의 音樂 <바리아숑>은/ 夜間 波長/ 神의 電源/ 深淵의 大 溪谷으로 울려퍼진다// 밀레의 고장 바르비종과/ 그 뒷장을 넘기면/ 暗然의 邊方과 連山/ 멀리는/ 내 영혼의/ 城郭 <最後의 音樂> 전문 이 시에는 음악을 통해 이상세계를 갈구하는 시인의 지향성이 잘 드러난다. 1 연에서는 세자아르 프랑크의 음악 (fr₁)이 신의 전원 (fr₂)에 비유되면서 성스 러운 에너지의 근원으로 변모한다. 화자가 음악을 통해 감지한 신의 전원 은 영 원한 목소리, 구원의 목소리와 상통한다.37) 이를테면 구원을 위한 최후 의 방법 으로 인식되는 음악은 신성의 차원에 접목된다. 이것은 공간적 인접성에 의해 심연의 대계곡 과 환유로 결합하면서 장엄하고 웅장한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심연의 대계곡 은 나의 심연 (fr₃ ₁)이라는 내면의 층위가 대계곡 (fr₄ ₁)으 로 공간화된 것으로서, 음악이 화자의 심연에 맞닿아 외계의 내면화가 이루어지 는 지점이다. 1연과 2연에는 음악세계와 미술세계가 병치되어 있다. 음악이 신의 전원으로 서 인간의 깊은 곳을 건드린다면, 밀레로 환유된 공간의 세계는 암연의 주변과 영혼을 둘러싼 성곽이 된다.38) 그러나 두 연은 대립된 상태에 머물지 않고 합일 의 세계를 구축해간다. 음악의 세계는 미술을 환유하는 밀레 의 아름다운 회화 로 연계된다. 그리하여 밀레 의 고장인 바르비종 (fr₅ ₁)과 너머의 변방, 연 산 (fr₄ ₂)이라는 자연적 공간과 환유적 관계로 연결된다. 결국에는 내 영혼의 36) 강연호, 위의 논문, 33쪽. 37) 최미정, 위의 논문, 19쪽 38) 류명심, 위의 논문, 95쪽.
254 어문론총 60호 보호벽 (fr₃ ₂)이라는 내면적 층위와 성곽 (fr₅ ₂)이라는 인공적 공간의 층위 로의 은유적 전이가 일어난다. 세자아르 프랑크의 음악 은 밀레 의 그림과 연결 되어 화자의 영혼을 보호하는 성곽 으로 위치한다. 이렇게 비가시적인 음악의 세계는 미술의 세계와 병치되어 구체성을 획득하는데 이때에 외부세계의 내면화 가 실현된다. 이와 같이 구원의 표상물로 제시된 세자아르 프랑크의 음악 바리 아숑 은 은유적 변주 속에서 시인의 초월의지를 드러낸다. 변주되는 음악 소리 를 통해 시인은 기독교적 초월세계에 가닿으며, 이로써 불화했던 현실세계와의 조우가 이루어진다. 5. 나오는 말 전후 시인 김종삼의 시에는 죽음에의 인식이 강하게 표출된다. 하지만 그 이 면에는 절망적 현실과 실존을 넘어서려는 시인의 생에 대한 절실한 몸부림이 존 재하고 있다. 이것은 자기 존재와 세계 사이의 화해의 몸짓이자 소통이라는 점 에서 중요하다. 본고는 김종삼 시의 생명의식이 은유라는 시의 형식과 깊이 연 관되어 있음에 주목하고, 이들의 상관성을 밝히는 데에 주력하였다. 은유 고찰을 위해 본고는 흐루쇼브스키의 지시틀 이론을 원용하였다. 2장에서는 김종삼의 시에서 시적 자아의 변신에 의해 생에의 의지가 드러나 면서 점차 성화되고 있음을 살폈다. 시적 자아는 인간의 층위에서 부단히 몸바 꿈을 시도하며, 사물의 층위와 자연물의 층위로 변신하면서 성스러운 생명에의 인식을 확대해나간다. 시적 자아는 여인, 불치의 환자, 좌객, 머저리, 늙은 간호부 로 변신하면서 다소 불구적이거나 불완전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하고 산사람, 자비스런 신부, 천사 등으로 변신하면서 성스러운 존재감을 나타내 기도 한다. 새 로 몸바꿈을 하는 시편에서는 시인의 가벼움에의 욕망이 표출되 고 있다. 그리고 산 이 지닌 초월적 공간성의 토대 위에서는 성스러움이 발현되 며 쇠사슬, 돈, 원주 라는 무생물과 별, 미풍, 울타리 라는 자연물로 사물 화되면서는 초월적 생명력이 보다 구체화된다. 자아의 변신으로 시인의 생명의 지는 수직적 초월의 욕망에 의해 성화(聖化)의 양상을 띠면서 미적 형상화를 이 룬다.
김종삼 시의 생명의식과 은유의 상관성 연구ㆍ박선영 255 3장에서는 현실세계를 구성하는 타자들의 사물화 양상에 의해 김종삼 시인의 초월적 삶이 구현됨을 밝혔다. 이것은 타자의 삶에 대한 응시 속에서 암묵적으 로 드러나기도 하고 문면에 직접적으로 표면화되기도 한다. 시의 타자는 할아버 지, 나어린 손자, 사나이, 엄마, 라산스카 등 특정한 사람과 세상 사람들, 낯모를 아이들, 인간 성자들 등 불특정 다수로 제시된다. 인간의 층위는 주로 구름, 바람, 보슬비, 눈송이, 꽃잎새, 아지랑이 등 자연물의 층위로 변주 되고 있으며, 계단, 거미줄, 맥주 거품 등 무생물적 사물의 층위로 변주되기 도 한다. 특히 유동적 자연물은 흐름, 발광 등의 움직임에 의해 시인이 지향하는 초월적 삶의 유연함과 자유로움을 미학적으로 형상화해낸다. 그리고 엄마, 라 산스카 는 사물화되어 불멸의 존재감을 형성하면서 강인한 생명력을 의미화하고 있다. 김종삼 시인은 사물화되고 있는 타자들의 존재와 삶의 양태를 통해 자신 이 추구하는 초월적 삶을 구현해내는데 이러한 지향성은 기독교정신에 접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4장에서는 김종삼의 시에서 음악의 층위가 공간화로 이행되면서 초월세계에 가닿기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고찰하였다. 모짜르트의 플루트 협주곡, G 마이 나, 헨델의 메시아, 바로크의 음악, 세자아르 프랑크의 음악 등 음악의 층위 는 은유와 환유의 고리를 형성하며 의미를 확장해간다. 음악의 층위는 산더미, 산간 지방, 고원지대, 하늘, 신고의 구름밑 등의 천상을 표상하는 초월적 공간과 환유적 관계로 결합하기도 하고, 석산, 밤하늘, 하늘나라, 변방, 연 산 등의 은유 공간으로 변주되어 초월세계를 경험하기도 한다. 또한 음악의 층 위가 변주된 물, 맑은 물가 라는 자연은 무한한 동적 생명력을 의미화하고 산 더미, 석산, 연산 등은 부동성에 의한 불멸성을 의미화한다. 음악 소리 의 전 이 과정을 통해 시인은 기독교적 초월세계에 가닿으며 불화했던 현실세계와 조 우하고 있다. 이 장에서는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시각적 요소와 청각적 요소가 병치되어 초월적 생명의식을 구체화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음악의 공간화 이행으로 미적 생명력을 울림으로 풀어놓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전후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김종삼 시의 생명의식은 시적 자 아, 타자, 음악의 은유화 양상을 통하여 구체화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미학주의 자 김종삼의 생명에의 인식이 은유라는 시적 장치에 의해 정교한 의미망을 구성 하고, 이로써 시의 의미 창조는 물론 긴장과 미감이 창출되고 있음을 밝혔다. 이
256 어문론총 60호 연구는 그동안 주력하지 못했던 김종삼 시의 생명에 대한 인식과 은유의 상관성 을 고찰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주제어 생명의식, 은유, 상관성, 흐루쇼브스키, 지시틀 이론, 시적 자아, 변신, 타자, 사물화, 음악, 초월세계 참고문헌 강연호, 김종삼 시의 내면의식 연구, 현대문학이론연구 제1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02.12, 5-36쪽. 권명옥, 시와 은유, 인문사회과학연구 제3집, 세명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1996, 1-17쪽. 김욱동, 은유와 환유, 민음사, 2004. 김은희, 김종삼 시의 불연속성 연구 불연속적 세계관과 병치기법의 상관관계를 중심으 로, 중앙대 대학원 석사논문, 2008. 김인환, 상상력과 원근법, 문학과 지성사, 1993. 김태민, 김종삼 시 연구, 경희대 대학원 석사논문, 1994. 김화순, 김종삼 시 연구 언술구조와 수사법을 중심으로, 고려대 대학원 박사논문, 2010. 류명심, 김종삼 시 연구 -담화체계 및 은유를 중심으로, 동아대 대학원 박사논문, 1999. 민 영, 안으로 닫힌 시정신, 장석주 편, 김종삼 전집, 청하, 1988 박민규, 김종삼 시의 병치적 특성 연구, 고려대 대학원 석사논문, 2004. 박선영, 김종삼 시에 나타난 죽음 의 은유적 미감 연구, 한국문학논총 제65집, 한국문 학회, 2013.12, 339-371쪽. 박현수, 김종삼 시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사학, 우리말글 31집, 우리말글학회, 2004.8, 247-272쪽. 반경환, 폐허 속의 시학, 한국문학, 1988.6, 328-345쪽. 백인덕, 김종삼 시 연구, 한양대 대학원 석사논문, 1992. 신규호, 무의미의 의미, 시문학, 1989. 3.4.(3월호 85-91쪽/4월호 79-89쪽.) 엄경희, 시, 새움, 2011. 이숭원, 김종삼 시에 나타난 죽음과 삶, 현대시 2,1, 한국문연, 1991.1, 282-294쪽., 김종삼의 시의식과 생의 아이러니, 태릉어문연구 제10집, 서울여대, 2002.2, 23-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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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어문론총 60호 Abstract A Study on Correlation between Awareness of Life and Metaphor in Kim Jong-sam s Poetry Park, Sun-young One of distinctive features found in post-war poet Kim Jong-sam s poetry is awareness of death. But behind the sense of despairing death is his strong will to overcome the bleak reality and existence. This is an important element in that it corresponds to his conciliatory gesture and communication between his being and the world. However, previous studies on Kim s poems have mostly focused on the theme of death awareness and little attention has given to consideration of awareness of life. Likewise, not much efforts have been made to explore close relations between the awareness of life and metaphor in his poems. In this regard, this article put emphasis on finding correlation between awareness of life and metaphor in Kim s poems. To do this, I used Hrushovski's frame of reference theory that helps to understand metaphor at the discourse level. The awareness of life reflected in his poems is taking shape as metaphors of poetic self, others or music. First, his will to live is gradually sanctified by the transformation of the poetic self. Second, transcendental life pursued by the poet is realized by the reification of others consisting of the world. Third, as layers of music are shifted to spatialization, the poet s arrival at the transcendental world is achieved. Based on these factors, this article highlighted Kim s awareness of life unfolds as it creates delicate semantic network by the poetic device of metaphor. This article is meaningful in that it explored the correlation between awareness of life and metaphor in Kim Jong-sam s poems that have attracted little attention from the academic circle until now. Key words Awareness of Life, Metaphor, Correlation, Hrushovski, frame of
김종삼 시의 생명의식과 은유의 상관성 연구ㆍ박선영 259 reference, poetic self, transformation, others, reification, music, transcendental world 접 수 일 : 2014년 5월 10일 심사기간 : 2014년 5월 19일 ~ 6월 1일 게재결정 : 2014년 6월 19일 (편집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