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복이 이야기 -김순복 傳 1 B_00_ _.indd 1 2015-06-19 12:08:26
목차 순복이네 가족 08. 한수와 금선, 그리고 순복의 탄생 11. 6남매 초등학교 시절 15. 가난과 해방 18. 순복의 기억 속 초등학교 소녀에서 처녀로 20. 6.25 23. 완도로 이사 26. 양재학원 28. 순복의 기억 속 완도 2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2 2015-06-19 12:08:26
결혼과 그 후 30. 사기결혼 34. 고된 시집살이 37. 아버지 꿈 39. 순복의 비밀스런 하소연 40. 이사,이사, 이사 42. 자식 교육 44. 막내 대학 보내기 순복의 요즘 46. 순복의 요즘 48. 요즘 이야기 에필로그 50. 경진이가 할머니께 52. 순복의 추억들 3 B_00_ _.indd 3 2015-06-19 12:08:26
4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4 2015-06-19 12:08:26
이 생애담을 내가 사랑하는 김순복 여사님께 바칩니다. 5 B_00_ _.indd 5 2015-06-19 12:08:26
순복이네 가족 6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6 2015-06-19 12:08:27
한수와 금선, 그리고 순복의 탄생 김한수는 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이었다. 잔 잔한 성품을 가진 그는 학교의 아이들을 몹시 사 랑했다. 이발기계로 아이들의 머리를 직접 깎아 주기도 했고, 왜정 이후 책이 귀할 때 학교 아이 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책을 몇 권 사주기도 했 다. 학교 아이들은 그 책을 공책에 베껴 공부할 수 있었다. 김한수는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많은 애정을 쏟았다. 아들들과 함께 낚시를 가기도 하 고, 딸들에게는 집에서 신사임당이나, 순천의 여 성 국회의원 박순천 같은 훌륭한 여성에 관한 이 야기를 해주었다. 또 아이들이 독서를 많이 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그의 아내 박금선은 성품이 매우 고왔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 학교 소사 등 7 B_00_ _.indd 7 2015-06-19 12:08:27
그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했고, 그들에게 밥도 주었다. 또 집으로 불쌍한 사람이 오면 그냥 내 쫓는 법이 없었다. 김한수는 직업의 특성상 3년마다 한 번씩 전 근을 가야 했다. 그래서 순천, 담양, 인면, 상기면, 완도 등 이 사를 많이 다녔는데, 완도에서는 완도 안에서 두 번 전근을 가게 되어서 그나마 오래 살았다. 그 만큼 추억도 많다. 한수는 넓은 완도 땅에 감나 무, 귤나무를 심어서 학교 아이들에게 졸업 선물 로 주곤 했다. 그의 이런 행동을 학교에서 비석 을 세워 기렸지만, 현재는 학교가 사라져버려서 아직도 그 비석이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완도는 금선의 부지런함이 빛을 발하던 곳이기도 했다. 원체 부지런 했던 그의 아내 금선은 완도에 살 때는 하루에 두 번씩 나가서 바닷가에서 김, 미 역 같은 먹을 거리를 건져왔다. 덕분에 먹을 거 리가 부족한 적이 없었다. 8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8 2015-06-19 12:08:27
1937년 12월 14일 전라남도 순천에서 김한 수와 박금선의 셋째 딸이 태어난다. 김한수는 이 아이의 이름을 순천에서 태어난 복 많은 아이, 순복 이라 지었다. 9 B_00_ _.indd 9 2015-06-19 12:08:27
6남매 순복이는 4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위로 김용남, 김용규 이렇게 오빠가 둘이 있고, 순복 의 아래로 김문자, 김용길, 김용선 이렇게 동생 이 세 명이 있다. 순복의 큰오빠 용남은 순복이 어릴 적에 광주로 고등학교 공부를 하러 떠났기 때문에 순복은 작은오빠 용규와 함께 보내는 시 간이 더 많았다. 순복은 작은오빠를 따라다니며 냇가도 놀러 가고, 낚시도 했다. 산좋고 물맑은 시골의 냇가는 한여름에도 시원했다. 순복에게 큰오빠와의 추억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일제 치하에 있던 우리나라는 신발이 아 주 귀했다. 운이 좋은 아이들은 학교에 배급 나 온 신발을 제비뽑기를 해 얻을 수 있었지만, 대 부분의 아이들은 짚신이나 게다(나막신)를 신고 다녔다. 순복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렇게 신발 이 귀한 시절 순복의 큰오빠 용남은 동생을 위해 10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10 2015-06-19 12:08:27
직접 나무를 깎아 게다(나막신)를 만들어 주었 다. 오빠가 나무를 깎아 신발을 만들어주던 모습 이 어찌나 신기하고 멋있던지 모른다. 순복아 이 소리는 순복이가 제일 듣기 싫었 던 소리이다. 바로 아버지가 순복을 찾는 소리인 데, 꼭 순복이 공부를 하고 있거나, 친구들과 운 동장에서 놀고 있으면 아버지께서 이렇게 순복 을 찾으셨다. 순복이를 찾으신 이유는 바로 동생 을 보라고 하기 위해서였다. 10살이나 차이 나 는 막내동생을 업어주고 돌봐주어야 어머니께 서 일을 하실 수 있었기에 순복은 꼼짝없이 막내 동생 용규를 보러 가야 했다. 순복은 첫째 동생 문자와는 성격이 정반대였 다. 순복은 손이 빠르고 성격이 급한 반면, 문자 는 손이 느리고, 성격도 꼼꼼했다. 어머니가 설 거지 심부름을 시켜도 순복은 빨리 빨리 끝내버 리려는 반면에 문자는 뭘 그렇게 계속 닦아 냈 다. 순복은 그런 문자가 답답하기만 했다. 이런 성격차이 때문에 둘은 종종 싸우기도 했다. 11 B_00_ _.indd 11 2015-06-19 12:08:27
초등학교 시절 12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12 2015-06-19 12:08:27
가난과 해방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통치 하에 있었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곡식 부터 소나무의 송진까지 안 빼앗아가는 게 없었 다. 어느 날은 순복이네 집에 일본인 순사가 찾 아왔다. 그러고는 놋으로 만든 것들을 전부 다 가져가 버렸다. 정말 빼앗기기 싫어 꼭 꼭 숨겨 둔 세수대야마저 가져가 버렸다. 총알 껍질을 만 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일본인들은 우리의 말 과 이름마저도 빼앗았다. 초등학교 2학년때까지 순복이의 이름은 니시시라 노보꼬 였다. 학교의 모든 수업은 다 일본어로 진행되었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도 일본어를 써야 했다. 수 업을 할 때는 조선인 교사가 혹시라도 조선어를 가르칠까봐 일본인 순사가 교실 앞에 앉아서 감 시를 하곤 했다. 13 B_00_ _.indd 13 2015-06-19 12:08:27
농사를 아무리 많이 지어도 일본으로 다 가져 가버렸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늘 배고픔에 시 달렸다. 그나마 순복네는 아버지가 교장선생님 이셨기 때문에 가족수만큼 쌀을 배급 받을 수 있 었고, 순복은 밥을 굶은 적이 없었다. 먹을 게 없 어 배곯아본 적이 없었던 순복은 그녀의 집인 학 교 사택 앞에 떠놓은 물을 친구들이 쉬는 시간마 다 다 마셔버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쉬는 시 간이 되면 아이들은 우물에 쏜살같이 달려가 두 레박으로 물을 떠 마셨다. 하지만 너무 많은 아 이들이 물을 마시러 몰려갔기 때문에 십분 만에 모두가 다 마시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그래서 몇몇 친구들은 순복이네 집으로 달려와 큰 대야 에 채워져 있는 물을 마셨다. 순복의 어머니는 아이들이 떠놓은 물을 다 마셔버려도 뭐라 나무 라지 않고, 다음 쉬는 시간에 또 마실 수 있도록 물을 다시 떠놓곤 하셨다. 이렇게 친구들이 물로 배고픔을 달래며 살았다는 이야기는 한참 후 동 창회에 나갔을 때나 알게 되었다. 14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14 2015-06-19 12:08:27
그러던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으로 우 리나라가 해방되었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 던 어린 순복에게도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었다 는 소식은 태어나서 들어본 이야기 중 제일 기쁜 소식이었다. 해방 이후 모든 것을 새로 배우기 시작했다. 국어도 이제 더 이상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였고, 산수도 한국어로 다시 배웠다. 왜정 직후에는 변변한 책 한 권 구하기 힘들었기에, 학교 교장이었던 김한수가 책을 구해서 각 반마 다 나누어 주었다. 다른 아이들은 받은 책을 공 책에 한 글자, 한 글자씩 베껴 가며 한글, 수학 등 을 공부했고 순복은 아버지께서 사주신 책으로 공부했다. 평소에도 공부를 곧잘 하고 똘똘하던 순복은 다른 과목보다도 국어를 정말 열심히 했 다. 가, 나, 다 한글 기초부터 차근차근 공부했다. 15 B_00_ _.indd 15 2015-06-19 12:08:27
순복의 기억 속 초등학교 그 옛날 해방 막 돼아서는 학교서 노는 것은 운동틀 도 없고, 그냥 쉬는 시간에 공기 놀이도 하고 오제미도 하고, 땅따먹기도 하고 그런 것도 하고 그러고 놀지 뭐. 나는 뭐냐, 운동을 잘 못해서 그런 것도 잘 못해. 잘 하 는 애들은 잘해, 줄넘기도 잘 하고. 한 시간 끝나믄 한 십 분 쉬어. 요즘 애들은 나가서 노냐? 안 나가지. 그때는 다 나가. 막 뛰어나가서 물먹고 싶은 사람은 물먹고 그 랬지. 왜정 때도 그러고. 그 때 졸업하고 금방 육이오가 돌아왔어. 그때는 졸업을 오월에 했어. 그래가지고 졸업 하며는 인제 친구들 못 만난다고 울고, 좀 있는(잘 사는) 애들 중에 몇 명은 중학교 못 간다고 울고 그러더니 학 교 졸업식하고 친구들이 집에 안가고 울고, 선생님 집 으로 갔다 우리 집으로 갔다, 며칠을 그러다 헤어졌어. 16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16 2015-06-19 12:08:28
소녀에서 처녀로 17 B_00_ _.indd 17 2015-06-19 12:08:28
6.25 18 갑자기 밖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 다. 어린 순복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했 다. 이게 무슨 일인지 아직 사태 파악이 안 되던 순간 큰 굉음과 함께 집의 유리들이 다 깨졌다. 집 옆 논에 폭탄이 떨어진 것이었다. 어린 순복 은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온 몸이 벌벌 떨렸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마을 곳곳에 불이 나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비명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 후에 좀 잠잠해져 나가보니 마을은 폐허가 되어 있었고, 사람들이 잿더미가 된 곳에서 숯과 못을 줍고 있었다. 이런 광경을 본 순복은 경기 를 일으켰다. 몸이 떨렸고 계속 구역질이 났다. 이러다간 순복이가 죽겠다 싶어서, 오빠들이 그 위험한 상황에서 순천까지 걸어가서 약을 사왔 다. 순복은 그 약을 먹고 좀 나아졌다.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18 2015-06-19 12:08:28
6 25전쟁이 시작되었다. 가족들은 피난을 떠 나기 시작했다. 모두 함께 가면 다 같이 죽을지 도 모른다는 압박 때문에 오빠들 둘 따로, 아버 지 따로, 순복이와 동생들 따로 이렇게 피난을 갔다. 어머니께서는 시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집 에 남으셨다. 순복은 동생 3명과 교감선생님의 아들까지 5명을 데리고 피난을 갔다. 피난이라 고 해봐야 순복은 아직 14살 이었기에, 동생 4명 을 데리고 멀리 가지 못했다. 그저 폭탄이 떨어 지는 소리가 들리면 폭탄을 맞지 않기 위해 막냇 동생을 업고 다른 동생들 손을 잡고 산속으로 산 속으로 올라갈 뿐이었다. 산속에서는 먹을 것도 없어 편지봉투에 싸온 미숫가루를 조금씩 먹으 며 버텼고, 그러다가 폭탄 소리가 잠잠해지면 동 생들을 데리고 산 아래로 내려왔다. 그렇게 3개 월이 지나고,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이 이 루어지면서 북한군들이 북쪽으로 철수하기 시 작했다. 그때 북한군들이 철수하면서 마을의 학 교나, 면사무소에 불을 지르고 갔다. 집에 남아 19 B_00_ _.indd 19 2015-06-19 12:08:28
계시던 어머니께서는 혹시라도 북한군이 관사 에 불을 지를까봐 전전긍긍 하시면서 아침 일찍 집안 살림을 담장 넘어 옆집으로 넘겨놓으셨고, 불이 날까 두려움에 떨며 시어머니와 함께 몸을 숨기고 계셨다. 다른 사람들은 물건들을 밭에 숨 겨놓고 했는데, 순복이네 집은 그럴 정신도 없 었다. 선생님들과 따로 피난을 가신 아버지께서는 북쪽으로 올라가고 계셨다. 계속해서 북쪽으로 올라가시던 아버지 머리 위로 까마귀가 울기 시 작했다. 그 모습을 보신 아버지께서는 뭔가 잘 못될 것 같음을 직감하여 더 이상 북쪽으로 올라 가는 것을 그만 두시고 다시 내려오셨다. 아버지 의 직감이 아니었더라면 순복이는 아버지와 생 이별할 뻔했다. 20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20 2015-06-19 12:08:28
완도로 이사 한 차례 생지옥이 지나가고 순복이는 완도로 이사를 가게 된다. 트럭을 타고 한참을 덜컹거리 는 흙길을 가다가 한 선착장에 다다르게 된다. 그 순간 순복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순복은 놀 라고 만다. 바로 바다가 있었기 때문이다. 말로 만 들었던 바로 그 바다가 눈앞에 있었다. 순복 은 그때 바다를 처음 보았다. 옷을 벗고 수영하 는 사람들의 모습도 처음 보았다. 물장구 치며 노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주 즐거워 보였다. 순 복은 이렇게 넓은 물을 만난 게 너무나도 신기 하고, 어릴 적 작은오빠와 냇가에서 놀던 경험도 생각이 나서 바다로 곧장 뛰어갔다. 뛰어가 물을 양손 한 가득 떠 세수를 했다. 냇가 물처럼 시원 하고 상쾌할거라고 생각했는데 물은 너무 짰다. 그러나 이렇게 짠 물이라도 순복은 신기하고 좋 21 B_00_ _.indd 21 2015-06-19 12:08:28
았다. 이사 가는 날 배도 처음 타보았다. 살림살 이를 가득 실은 배를 타고 또 한참을 갔다. 처음 타는 배는 어지러웠다. 토도 했다. 그래도 처음 보는 풍경에 순복의 기분은 나쁘지만은 않았다. 완도로 이사오고 나서 며칠이 지나자, 바다를 처음 봤을 때와는 다르게 순복의 기분은 많이 안 좋아져 있었다. 그 원인은 바로 외로움이었다. 완도는 너무 외로웠다. 오빠들과 남동생은 공부 하느라 광주에서 살고 있었고, 여동생도 오빠들 과 동생의 살림을 해주기 위해 광주에 있었다. 완도에서는 아버지, 어머니, 순복 이렇게 셋이 서만 지냈다. 언제 한번은 어머니가 작은오빠의 병간호를 하기 위해 잠시 광주로 가셨는데. 그때 아버지께서 밤 늦게 들어오시는 바람에 순복은 옆에 빨래방망이를 놓고 잠을 청했다. 혹 도둑이 라도 들어올까 무서웠던 것이다. 완도에서는 중 학교도 다니지 않고 집에서 수를 놓거나 아버지 께서 가져다 주신 책과 신문을 읽으며 시간을 보 냈다. 그렇게 집에만 있었기에 순복의 외로움은 22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22 2015-06-19 12:08:28
더욱더 커져만 갔다. 해와 달이 바다로 넘어오 고, 넘어가는 모습을 볼 때면 이곳은 예전에 내 가 살던 곳과 완전 동떨어진 곳이라는 생각이 들 어 더 외로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밖에서 뻐꾹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육지에서도 듣던 뻐 꾹새 소리가 이곳에서도 들리니 마치 오래된 친 구를 만난 것 마냥 반가웠다. 순복은 자기도 모 르게 미소를 지었다. 23 B_00_ _.indd 23 2015-06-19 12:08:28
양재학원 24 완도에서 산 지 햇수로 3년째 되던 해에 스무 살이 된 순복은 섬 생활의 무료함을 온 몸 으로 느끼게 되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바다는 위 험하다며 집 밖으로 잘 나가지도 못하게 하셨고,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가장 친한 친구인 말 녀와도 놀 수 없었다. 그렇게 집에만 틀어박혀 수예나 하고 책을 읽는 생활에 물려버린 순복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바로 집 근처에 있던 양재학원 이었다. 순복은 양재학원을 보자마자 다니기로 마음을 먹었다. 바느질하고 수예하기 를 좋아하기도 했고, 무엇을 해도 집 안에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부모님께서도 양재학 원 다니는 것을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순복이 양 재학원에 다니며 신부수업을 받고 싶어하는 줄 아셨기 때문이다. 순복은 드디어 집 밖에 나가서 놀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24 2015-06-19 12:08:28
순복은 꽃을 좋아한다. 무슨 꽃인지 이름은 몰 라도 싱싱하게 핀 꽃을 보면 기분도 상쾌해지고 좋았다. 그래서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 여름 에는 학원이 끝나고 정신 없이 길가에 핀 꽃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이 바람에 어머 니, 아버지께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 다 큰 처녀 가 늦게까지 집에 안 들어온다며 꾸중을 들었다. 이렇게 꾸중을 들어도 볕 좋은 날에는 어김없이 길가에 쪼그려 앉아 꽃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 다. 매번 이렇게 순복이 늦게 들어오자 아예 어 머니께서 학원으로 데리러 오시기까지 했다. 25 B_00_ _.indd 25 2015-06-19 12:08:28
순복이의 기억 속 완도 "섬에서 살 때 친구이름이 박말녀라고 있어. 집에 와 잠도 자고 아주 가깝게 살았다. 박말녀라고 바로 옆집 사니까 왔다 갔다 하고, 저녁에 와서 잠도 자고 그랬지. 완도서도 첨에는 외로웠는데 나중에 다 알고 만나고 그 랬지. 첨에 가면 어디든지 외로워 왜냐면 동네가 멀어, 학교 관사가 붙어 있으니까. 완도에서는 학교 옆에 집 이 있었어. 완도 살 때 문신했지 말녀랑 우정문신. 바늘 끝에다가 잉크를 묻혀가지고, 콕 찌르면 이렇게 되어야. 이게 죽으믄 없어진다 하더라. 광주 가서도 결혼해가지 고 한 번 만났어. 중학교 때 학교에 천막치고 영화 같은 거 많이 해. 영화도 변사가 있어. 그 사람 아직도 살아있 다고 티비에 나오드라. 변사가 해 주는 영화 저기서 하 면 변사로 하는 사람. 우리는 다른 데로 발령 나서 가부 렀는디, 걔는 거기 와서 연극, 서커스 하는 남자 만나가 지고 연애해서 시집갔다고, 지금은 광주 안 가니까 내 가 모르지." 26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26 2015-06-19 12:08:29
결혼과 그 후 27 B_00_ _.indd 27 2015-06-19 12:08:29
사기결혼 28 양재학원을 졸업하고 난 후의 생활은 전과 같 았다. 그냥 집에 앉아서 책 읽고 수나 놓고 있었 다. 그러던 어느 날 순복의 집으로 낯선 사람이 찾아왔다. 순복은 누구인지 몰라 그냥 인사만 하 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 수를 놓았다. 수를 놓 고 있는데 약간 흥분하신 듯한 아버지의 목소리 가 들려왔다. 아 글쎄, 섬 사람한테는 시집 안 보낸다니까 요. 우리 집안이 광산 김 씨 집안이요. 배 타고 이런 사람한테 어떻게 시집을 보내요! 아 게다 가 외아들이요? 나는 외아들한테는 시집 안 보 내요! 그 낯선 사람은 중매쟁이였다. 그 후에도 종 종 다른 중매쟁이들이 집으로 찾아왔지만 아버 지께서는 그때마다 같은 이유로 거절하셨다. 그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28 2015-06-19 12:08:29
렇게 수많은 중매쟁이들이 왔다 가고 꽤 오랜 시 간이 흐른 뒤 어머니 아버지 마음에 딱 드는 조 건의 사람이 나타났다. 전라남도 영암군 군선면 에 사는 사람인데, 3형제에 군악대 장교라고 했 다. 순복의 결혼 상대가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순복은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작은 보따리 하 나 싸들고 종이에 적힌 주소지로 갔다. 먼 여정 이었지만, 남편을 만난다는 생각에 정신이 없어 힘든 줄도 몰랐다. 어떤 사람일지 너무 궁금해서 생김새나, 성격을 상상해보려 해도 평소에는 잘 만 돌아가던 머리가 딱딱하게 굳어버려 잘 가늠 이 되지 않았다. 잔뜩 긴장하고 예비남편의 집에 도착했을 때 순복은 순간 너무 당황하고 놀라서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원래 기대라는 게 있 지는 않았지만, 순복의 눈 앞에는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이 떡 하니 버티고 있었고, 순복을 기다리 는건 예비 시어머니, 시아버지 그리고 예비 시누 4명과 예비 남편이었다. 예비 남편은 군악대 장 교가 아니라 하사관 이였고, 심지어 외아들 이었 29 B_00_ _.indd 29 2015-06-19 12:08:29
다. 순복이 제대로 사기당한 것 이었다. 그날 밤 순복은 마음이 너무 답답해 잠도 안 오고 해서 밖으로 나와 마루에 걸터앉았다. 일단 예비남편 집에 왔으니 하룻밤은 보내고 다시 집 으로 가야 하는데, 중매쟁이가 거짓말을 해서 완 전 아무것도 없는 남자한테 시집을 가게 생겼으 니 이 일을 어찌할까? 이런저런 걱정을 하고 있 을 때, 갑자기 방문이 살며시 열리더니 예비 남 편이 방 밖으로 나와 순복 옆에 앉았다. 순복이 예비 남편을 바라보니 어두워서 그런지 얼굴은 잘 보이지 않고, 큰 귀밖에 안보였다. 그런데 갑 자기 예비남편이 순복에 입에 입을 맞추었다. 순 복은 순간 아찔했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아 꼼 짝없이 결혼을 해야겠구나! 순복의 예비 남편의 이름은 박정기이다. 1934 년 3월 1일 전라남도 영암군 군선면에서 태어났 다. 정기는 6살 때 일본에서 일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갔다가, 초등학교 5학년때 해방 이 되어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6.25이후 30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30 2015-06-19 12:08:29
에 영암 중학교, 목포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에 미군부대 근처 폐기물 처리장에서 일을 하다가 군에 입대하게 된다. 정기는 순복을 처음 만났을 때 딱 촉이 왔다. 아주 영리하게 생긴 예쁜 처녀로구나. 정기 마음 에 딱 들었다. 순복과 정기는 겨울에 초등학교가 방학인 틈 을 타 교실 안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31 B_00_ _.indd 31 2015-06-19 12:08:29
고된 시집살이 32 군인과 결혼하는 바람에 식만 올렸지, 남편은 금방 또 부대로 돌아가 버렸고, 6개월에 한 번씩 만 집에 들어왔다. 결혼한 후 남편이 군을 제대 할 때까지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 렇게 혼자서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중을 들며 살 았다. 그나마 좀 다행인 것은, 시누들이 다 결혼 해서 다른 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집에 없다는 것 이었다. 그래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추운 겨울날 시집간 순복에게는 불 피우는 것 조차 쉽 지 않았다. 영암에 한 달 내내 눈이 내리는 바람 에 시아버지께서 불 피우라고 꺾어다 주신 아카 시아 나무들은 다 젖어있었다. 물기를 잔뜩 머금 은 나무들은 불에 잘 타지도 않았다. 게다가 아 카시아 나무의 뾰족한 가시에 찔리고 긁혀 양 손 이 멀쩡할 날이 없었다. 또 물을 기르는 곳은 왜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32 2015-06-19 12:08:29
이리도 멀리 있는 것인지, 물 길러다 밥 하는 것 도 너무 힘들었다. 순복은 매일 밤 방에 들어가 서 울었다. 어머니, 아버지와 살던 시절이 너무 나도 그리웠다. 잔소리는 시어머니보다 시아버지가 심했다. 시아버지는 맨날 남편을 따라가라며 면박을 주 시다가도, 순복이 한 번 남편이 왔을 때 따라가 려고만 하면 죽어서 나가라고 순복을 못 가게 했 다. 그리고는 계속 일만 시키셨다. 남편을 6개월 에 한번씩 보며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다 보니 너 무 힘들어서 도저히 못 견딜 지경이었다. 순복은 남편을 만나러 가기로 결심하고, 원주로 가는 버 스표를 샀다. 순복은 옆집 부인에게 돈을 빌려서 아이를 데리고 무작정 남편을 찾아갔다. 순복은 남편을 찾아가면 좀 나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더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남편은 다시 영암으 로 돌아가라고만 하고, 어차피 군 부대에서 살았 기 때문에 얼굴을 못 보는 것도 똑같았다. 그렇 게 일 년이 지나고 순복은 다시 돌아가야만 했 33 B_00_ _.indd 33 2015-06-19 12:08:29
다. 1년전 돈을 빌려준 부인이 순복이 돈을 갚지 않자 시부모님께 이 사실을 말해버린 것이다. 남 편에게 빌린 돈만 받아 다시 영암으로 돌아왔다. 순복은 첫째로 딸을 낳았다. 딸을 낳은 것이 이렇게도 서러운 일인지 그전에는 몰랐다. 딸을 낳자마자 시아버지의 구박이 시작되었다. 그 뒤 로 순복은 또 아이를 낳았는데 또 딸이었다, 셋 째도 딸이었다. 셋째까지 딸을 낳자 시아버지의 구박은 더 심해졌고, 순복이 넷째를 임신했을 때 는 이번에도 딸을 낳으면 집에서 쫓아내겠다고 까지 했다. 다행히 넷째는 아들이었다. 34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34 2015-06-19 12:08:29
아버지 꿈 남편이 1970년에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자, 온 시댁식구가 인천에서 함께 모여 살기 시작했다. 시누들까지 함께 살자 순복은 더 힘들어지게 되 었다. 이번에도 딸을 낳으면 집에서 쫓아내겠다 고 하시는 시아버지에, 순복이 한 음식이 맛 없 다며 토 달고, 순복이 입술에 루즈만 살짝 발라 도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화장하냐며 면박을 주 는 시누이들까지 있으니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더 이상은 못 살 것 같다 고 느끼게 된 어느 날, 순복의 꿈속에 몇 해 전 돌 아가신 아버지가 나오셨다. 순복아, 걱정하지 마라. 앞으로는 모든 일이 다 잘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순복을 위로해 주시며 순복에 게 열쇠를 건네주셨다. 신기하게도 꿈을 꾼 지 35 B_00_ _.indd 35 2015-06-19 12:08:29
1년만에 남편이 돌아오고, 남편과 같이 살기 시 작했고, 시집살이도 좀 덜 해졌다. 완전 좋아졌 다고는 할 수 없지만 모든 일이 전보다 나아지 기 시작했다. 순복은 이 꿈을 절대 잊지 못한다. 36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36 2015-06-19 12:08:29
순복의 비밀스런 하소연. "그 때는 결혼만 했지 군인이랑 결혼을 해가지고 시 어머니아버지 시중들고 힘들었지. 시집가서 저 뭐냐 할 아버지가 집에 없었어. 6개월만에 한번씩 오는 거, 아무 것도 모르고 시집을 가서 그때 얼마나 고생한 줄 아냐. 아휴." 37 B_00_ _.indd 37 2015-06-19 12:08:30
이사, 이사, 이사 38 순복은 남편이 준위가 되자 그때부터 남편과 함께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남편과 함께 사는 일 은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편 직업의 특성 상 1년마다 새로운 지역으로 발령이 나서 1년마 다 이사를 다녀야 했다. 어찌나 이사를 많이 다 녔는지 일일이 다 세기도 힘들다. 첫째 아이 경 희는 학교를 배정받아놓고 다니지도 못하고 바 로 전학 간 적도 있다. 둘째 아이 현이는 초등학 교에서 고등학교 때까지 6번이나 전학을 다녀 야 했다. 시골로만 이사를 다니다 보니 집 구하기가 정 말 하늘의 별 따기였다. 특히 해를 거듭할수록 아이들이 많아지자 더 힘들어졌다. 아이들이 너 무 많다고 집을 못 구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1988년 남편이 제대를 하고 난 후, 순복은 인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38 2015-06-19 12:08:30
천광역시 부평구 십정동에 작은 상가를 짓고 그 위층에 살면서 완전히 정착하게 된다. 그 후에 상가 1층에 작은 슈퍼를 연다. 아직 아이들이 학 업을 마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슈퍼를 운영하면 서부터는 잠을 충분하게 잘 수 없는 게 힘들었지 만,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39 B_00_ _.indd 39 2015-06-19 12:08:30
자식 교육 40 순복은 경희, 현이, 주영이, 창범이, 성호까지 다섯 남매를 거의 혼자 키우다시피 했다. 혼자 다섯을 키우려면 힘이 부칠 법도 한데, 순복은 그런 것 모르고 아이들을 정말 열심히 키웠다. 아이 다섯을 데리고 자연농원으로 소풍을 가기 도 했다. 순복은 아이들 공부에 있어서는 굉장히 자유 로웠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공부하라는 소리를 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공부를 잘해, 순복은 학부모들 사이에서 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이었다. 몇몇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공 부를 잘 하는 비결이 뭐냐며 물어오기도 했다. 이런 학업에 대한 자유로운 사고는 80이 되어서 도 여전하다. 순복은 대학을 가지 않고 대안학교 에 다니는 손녀에게도 재수하라는 말 대신 이렇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40 2015-06-19 12:08:30
게 말한다. 어디서 뭘 하든 열심히만 해라. 순복은 슈퍼를 하고 남편은 자동차 운전학원 에서 강사를 하면서 아이들을 다 대학교까지 보 냈다. 아이들 학업이 다 끝나자마자 순복은 슈퍼 일을 그만두었다. 41 B_00_ _.indd 41 2015-06-19 12:08:30
막내 대학 보내기. "느그 삼촌(박성호-막내 아들)이랑 엄청 싸웠어. 대 학 안 간다고 지랄해가지고. 음악 한다고, 대학 안 간 다고. 그래도 아부지한테 그 음악 하는 기계 있잖냐, 큰 거, 그거 사주면 대학 간다 그래가지고, 갔잖냐. 으휴." 42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42 2015-06-19 12:08:30
순복의 요즘 43 B_00_ _.indd 43 2015-06-19 12:08:30
순복의 요즘 44 슈퍼를 닫고 남편과 둘이 살기 시작 하면서, 순복은 남편과 단둘이 여행을 가기도 하고, 자 식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이렇게 다 닌 곳이 꽤 된다. 제주도부터 시작해서, 홍콩, 태 국, 말레이시아, 발리, 싱가포르, 영국, 독일, 프 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 정말 많은 곳을 여행 했다. 이 중 말레이시아는 순복의 생일 기념으로 온 가족이 함께 간 여행 이였다. 순복의 생일 파 티를 하기 위해 딸과 손녀가 케이크를 사왔다. 기대되는 마음으로 상자를 열어보았는데 이게 웬걸? 케이크에 순복의 이름이 붉은색에 가까운 진한 분홍색으로 쓰여있었다. 순간 조금 당황했 다. 생일에 붉은 이름이라는 게 썩 마음에 들지 는 않았지만, 곧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순복은 빨간 이름보다도 가족과 함께하는 이 순간 이 여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44 2015-06-19 12:08:30
행이 좋았다. 순복은 노인대학에서 노래를 전공했다. 누군 가가 노인대학을 다닌 이유를 물으면 순복은 그 냥 다른 할머니들도 다 노인대학에 가니까 본 인도 간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순복 은 아직도 배움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다. 순복은 2011년 노인대학을 졸업했다. 순복은 요즘 매일 하루에 한 개의 일정만 소화 한다. 하루에 한 가지 이상을 하면 힘이 들어서 안 된다. 월요일- 실버댄스, 화요일-한문공부, 수요일-목욕가기, 목요일-노래교실, 금요일-장 보기, 토요일-청소하기, 일요일-빨래하기. 이렇 게 순복의 일주일은 잘 짜여있다. 오늘도 순복은 이 일정 중 하나를 소화하고 있다. 45 B_00_ _.indd 45 2015-06-19 12:08:30
요즘 이야기 "저 뭐냐 (한문이)60때는 다 기억이 나더니 80이 다 돼니까 아무리 해도 다 잊어먹고, (몸이 아파 수술을 많 이 해서) 워낙 마취를 많이 해서 기억이 않나 그냥 다니 는 거여 가까우니까. 12년 째 다니는데, 오래 다녔어 노 래교실도 오래 다니고. 노래교실에서는 노래배우지. 트 로트 요즘 별로 없어 발라드. 보여주까 책? 세 달에 한 번씩 사. 봄에 인제 어제 샀어. 다 있어. 씨디도 있어야. 씨디도 나와. 이게 만원이여. 18곡이 들었더라, 18곡 들 었어. 가요도 있고, 락도 있어. 락은 배울라면 엄청 힘들 어 소리 막 질러야 되니까. 장윤정 껏도 있고, 새로 나왔 다 신곡이다. 요번에는 트로트도 많이 있고. 다 있어 별 노래. 어제 꽃피고 새 울면 배웠다. 꼼꼼하게 잘 가르 쳐. 만원이여 이것하고 이것(노래 악보 집과 씨디)하고. 노인대학도 졸업했어. 할머니들 가니까 나도 배워야 지. 노래방기계 새로 사심. 2년전에. 노인대학 졸업했어 졸업장 있으꺼?" 46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46 2015-06-19 12:08:30
에필로그 47 B_00_ _.indd 47 2015-06-19 12:08:31
경진이가 할머니께 할머니는 아직도 비밀이 많다. 할머니 집을 나 서는 나에게 아까 비밀로 하라고 한 이야기는 절 대 어디 가서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신다. 할머니! 걱정 마세요! 저 지금 입 꾹 다물고 있어요!. 48 할머니, 할머니 인터뷰를 하고 나서는 왜 이렇 게 할머니 생각만 하면 눈물이 핑 도는지 모르 겠어요. 아침이고 저녁이고 시도 때도 없이 그래 요. 할머니 참 힘들게 사셨구나, 정말 고생 많이 하셨구나 이런 생각부터 들어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데도 눈물이 나려고 해서 참느라 목구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48 2015-06-19 12:08:31
멍이 뜨거워요. 할머니가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했던 거는 절대로 말 안 했어요.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이제 제가 우리 엄마보다도 할머니에 대 해서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할머니가 꼭 아버 지가 박정희 시대 때 제전복(박정희 시대 때 공 무원한테 입게 한 옷) 입고 다니셨다는 이야기 써달라고 하셨는데 그거 못 써서 죄송해요. 언제나 쿨하고 프리한 우리 할머니. 완전 사 랑해요. 49 B_00_ _.indd 49 2015-06-19 12:08:31
순복의 추억들 50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50 2015-06-19 12:08:31
순복의 아버지 김한수 아랫줄 첫 번째 순복의 어머니 51 B_00_ _.indd 51 2015-06-19 12:08:42
순복의 초등학교 시절 (아랫줄 두 번째) 순복 양재학원(셋째줄 왼쪽 두 번째) 52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52 2015-06-19 12:08:42
순복 양재학원 (둘째줄 오른쪽 두 번째) 양재학원 실습모습 양재학원 이론 수업 모습 53 B_00_ _.indd 53 2015-06-19 12:08:43
순 복 의 결 혼 식 순 복 의 남 편 박 정 기 54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54 2015-06-19 12:08:44
순복,정기, 그리고 세 자매(왼쪽부터 주영, 현이, 경희) (아래)순복과 다섯 남매(왼쪽부터 주영, 현이, 창범, 성호, 경희) 55 B_00_ _.indd 55 2015-06-19 12:08:44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학교에서 준 상 순복 노인대학 졸업사진 56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56 2015-06-19 12:08:44
노인 대학교 단체졸업사진(왼쪽 두 번째 줄 두 번째) 순복 졸업장 57 B_00_ _.indd 57 2015-06-19 12:08:46
말레이시아에서의 생일 파티 58 순복이 이야기. 말레이시아에서의 케이크 컷팅 식 B_00_ _.indd 58 2015-06-19 12:08:46
태국 여행 발리여행 59 B_00_ _.indd 59 2015-06-19 12:08:47
60 로드스꼴라 6기 생애사 프로젝트 편집: 쏠(배경진) 디자인: 쏠(배경진) 글쓴이:쏠(배경진) 순복이 이야기. B_00_ _.indd 60 2015-06-19 12:08: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