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무력도발 위협: 심리전인가, 실체인가? * 김열수(국방대학교) 1. 들어가며 MB 정부 등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 북한의 대남 도발 위협이 2009년에는 대남을 넘어 대 국제사회로 확대되고 있다. 하루가 멀게 쏟아지고 있는 북한발 위협이 전 세계 매 스컴의 헤드라인을 장식한지도 오래 되었다. 평양 방송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조평통 대변인의 목소리는 더욱 앙칼지고 또 높아감에 따라 한국 및 국제사회의 대응 수위도 높아 지고 있다. 북한이 쏟아내고 있는 대남 및 대 국제사회에 대한 위협은 언술적 차원의 공갈을 넘어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의 대남도발 위협은 무력도발도 불사하겠다는 수준으로 커졌 고, 북한의 대 국제사회 도발 위협도 장거리 로켓발사, 제2차 핵실험을 거쳐 ICBM 발사 준 비로 확대되고 있다. 북한의 대남 및 대 국제사회에 대한 도발은 김정일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큰 도박판을 벌이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1) 이 글은 현재의 위기 국면에서 북한이 어떤 도발을 일으킬 것이며 이에 따라 한국은 어떤 방향으로 대응해야 할 것인지를 제시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지난 60여년 동안 북한 의 대남 도발이 어떤 양상과 특징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먼저 분석해보고, 이것을 기초로 북 한이 어떤 도발을 일으킬 것인지를 예상해 보고자 한다. 예상되는 도발 유형별 대응 방향도 제시될 것이다. * 이 글은 국방대학교나 국방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닙니다. 1) 전성훈, 북한 정권의 대남압박에 대한 우리의 대응, 정세와 정책, 2009년 3월호(성남: 세종연구소), p. 9.
2 제2회 북한군사포럼 Ⅱ. 북한의 two-track 전략 1. MB 정부 길들이기를 넘어 대남 도발 위협으로 2008년 이후 북한은 전방위적으로 대남 압박 전략에 나섰다. MB정부 출범 이후 현재까지 북한의 대남 압박 전략은 크게 2단계, 즉 MB 정부 길들이기와 대남 도발 위협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1단계 전략은 MB 정부에 대한 탐색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MB 정부가 출범하 자 북한은 MB 정부의 비핵 개방 3000 을 수정하도록 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시행하 였다. 경제적 조치로는, 개성공단 내 남북교류협회의 남측사무소 정부 직원 11명 추방(3.24), 군 당국자 포함한 남측 당국자의 군사분계선 통과 차단 선언(3.29),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공사 현장에 근무하던 남측 조달청 직원 1명 추방(4.3) 등이었으며, 군사적 조치로는 서해상 에 단거리 함대함 미사일 각각 3차례 발사(3.28/5.30), 10여 차례에 걸친 MIG-21 등 북한 전 투기들의 DMZ 접근, 정치 심리적 조치로는 MB를 역도 로 표현(4.1)하고 제3의 서해교전, 제2의 6.25전쟁 위협 내용(5.8) 등을 북한 선전매체에 등장시켰다. 정치 심리, 경제, 군사 분 야 등에서 나타난 일련의 북한 조치들은 MB 정부를 길들이기 위한 제한된 탐색전 략 (limited probe)이었다. 북한의 탐색전략에 대해 MB 정부가 무시전략으로 대응하자, 북한은 MB 정부를 길들일 수 있는지를 최종적으로 판단해 볼 수 있는 전략적 수준의 사건 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7.11)이다. 북한은 2002년 제1차 연평해전으로 인해 많은 한국 해군 이 사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DJ 정부가 금강산 관광을 지속시켰다는 학습효과를 가지고 있 었다. 따라서 이 사건에도 불구하고 MB 정부가 금강산 관광을 지속한다면, MB 정부에 대 한 길들이기는 북한의 한판 승리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MB 정부는 북한이 피살사건 에 대한 사과와 합동조사를 거부하자 금강산 관광을 중단시켜 버렸다. MB 정부를 길들일 수 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북한의 탐색전략은 일단 실패로 끝난 것처럼 보였다. 북한이 오히려 MB 정부에 순응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그런데 의외의 사건이 터졌다. 김정일 건강 이상설이 바로 그것이다. 김정일 건강을 둘러싼 북한발
북한의 무력도발 위협: 심리전인가, 실체인가? 3 위기가 확대되자, 북한은 MB 정부 길들이기 전략에서 대남 위협전략으로 궤도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북한 스스로의 위기 국면을 타결하기 위해 그 희생양을 한국에서 찾고자 했다. 북한은 한국에 대한 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체제의 결속력을 높이고 주민들의 관심을 위기에 집중시킴으로써 북한 내부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북한의 대남 도발 위 협은 9월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북한은 9월부터 대규모 비행훈련, 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 무력시위를 하기 시작했고, 서북해역상에서 한국의 북한 영해 침범 을 트집 잡아 해상 충돌의 가능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북한 경비정의 실사격 훈련(10.12)과 공대함 미사일 2 발 발사(10.7) 등이 뒤따랐다. 심지어 김일성의 어록을 차용한 대결에서 얻을 것은 통일이 고 잃은 것은 군사분계선 이라는 내용(10.16)이 북한 매스컴을 장식하였다. 북한은 북한의 대남도발이 공갈 전략 (blackmail)이 아님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가시적인 조치가 필요했다. 소위 말하는 12.1조치가 발표되었던 것이다. 11월 중 순에 발표된 12.1조치는 남북관계 차단과 관련된 것이었다. 북한은 11월 12일, 북한 장성급 회담 북측 단장 명의로 12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을 통한 육로 통행을 엄격히 제한하고 차 단 한다는 통지문을 보내왔다. 또한 같은 날 북한 적십자사는 판문점 적십자연락대표부 폐 쇄와 함께 모든 남북 직통 전화를 단절한다고 발표하였다. 역시 같은 날, 북한 외무성 대변 인은 북핵 검증과 관련하여 검증의 핵심인 시료채취를 거부한다고 발표하였다. 단 하루 만 에 3개의 서로 다른 기관이 남북관계 차단과 북핵 검증 거부를 발표했던 것이다. 한국이 무시와 기다림의 전략 을 계속 구사하자, 북한은 2009년 새해와 함께 북한군 총참 모부와 조국통일평화위원회(조평통)가 대남 도발 위협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외무성, 북한 적십자사, 장성급 회담 북한 단장 수준에서 발표되었던 대남 도발 위협이 총참모부와 조평통 수준으로 격상된 것이다. 올해 1월 중순, 북한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우리의 혁명적 무장력은 전면 대결태세에 진입할 것 이라는 성명을 발표하였고, 1월 하순에는 조평통이 북남 사이의 정치 군사 대결상태 해소와 관련한 모든 합의의 무효화 를 발표하였다. 총참 모부의 발표는 군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고, 노동당 통일전선부 소속인 조평통의 발표는 노 동당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다. 이로써 북한의 대남 도발 위협은 한국 정부의 기다림에 대한 점진적 목조르기 (screwdriver)의 형국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4 제2회 북한군사포럼 키 리졸브 훈련이 다가오자 북한은 지상, 해상, 그리고 공중에 대한 도발의 가능성을 언급 하기 시작했고, 개성공단 육로 통행에 대한 차단과 해제를 반복하였다. 심지어 북한군 총참 모부는 한국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를 북한에 대한 선전포고 로 간주하고 서울이 군사분계선으로부터 50Km 안팎에 있다는 것을 순간도 잊 지 말 것을 경고(4.18)하였다. 이로써 북한의 총참모부는 한국의 대외적 주권에 대해서도 간 섭하기 시작했다. 2008년 이후 북한은 북한 체제의 생존 이라는 큰 전략 속에서 MB 정부에 대한 탐색 전략 의 과정을 거쳐 대남 위협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위협 발언의 주체는 하부 기관에서 총참모 부와 조평통이라는 군과 당의 최고 기관으로 바뀌었고, 도발 위협의 내용도 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으로 바뀌고 있다. 점진적 대남 압박전략이 군사적 도발 위협으로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2. 미국에 대한 관심 끌기를 넘어 체제 생존으로 2008년 한 해 동안 MB 정부의 길들이기 전략이 실패로 끝나자, 북한은 체제 생존과 통미 봉남( 通 美 封 南 )을 목적으로 2009년 새로 등장한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관심 끌기 전략을 추 진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북한은 전략적 수준의 사건이 필요했다. 미국발 경제위기, 악화일로에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관심을 북한으로 돌리기 위해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 카드를 꺼내 들었다. 새 행정부의 국무장관이 유럽 지역을 일차적 순방 대상으로 하던 관례에서 벗어나 아시아를 먼저 순방하면서 한국과의 공조를 과시하자 북한은 전략적 사건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는 북한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북한에 대한 제재 강화라는 안 보리 의장 성명으로 나타났다. 이에 북한 외무성은 6자회담에 다시는 절대로 참가하지 않 을 것 이며 어떤 합의에도 더 이상 구속되지 않을 것 이고, 영변 핵시설에서 나온 폐연료 봉을 깨끗이 재처리 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모니터 요원과 미국 핵 전문가를 추방(4.14)하였다. 또한 북한은 경수로 발전소 건설, 2차 핵실험, 그리고 대륙간탄 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 강행 의지까지 피력(4.29)했다.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과 강인하
북한의 무력도발 위협: 심리전인가, 실체인가? 5 고 직접적인 외교 (tough and direct diplomacy)를 구사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미국은 오히려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를 선도했다. 미국은 북한의 대미 관심 끌기 전략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은 국제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의 협박성 발언과 나쁜 행동에 대해 어떤 보상도 있을 수 없음을 천명 함으로써 북한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클린턴 국무부 장관의 대북 정책도 방향을 선회한 것 으로 보인다. 지난 1월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6자회담을 통해 양자대화의 가능성을 시사 (1.13)했다. 그러나 4월 하순 하원 청문회에서, 클린턴 국무장관은 북한의 오락가락하고 예 측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강력하고 끈질기며 일관되게 대처해야 하며, 굴복해서는 안 된다 (4.22) 고 말했다. 대화의 상대 였 던 북한이 굴복해서는 안 되는 국가 로 바뀐 셈이다. 2) 20년 가까이 북핵 문제를 다루어왔던 미국이 북한의 관심끌기 전략에 쉽게 손을 잡아주 지 않았다. 150일 전투에 돌입한 북한도 쉽게 도박판을 접을 수 없었다. 제2차 북핵 실험은 북핵이 협상용이 아니라 체제 생존용일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2차 핵실험으로 북한은 더 강화된 유엔 안보리의 제재를 받게 될 것이다. 심지어 북한으로 입출항하는 모든 선박의 검색도 결의안의 내용에 포함될 수 있다. 북한이 선택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취한 북한의 행태로 미루어 볼 때, 북한은 오히려 도박판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이 더 크다. 그 도박판이 어디를 향할 것인가? 지난 60여년 동안의 북한 도발 양상을 분석해 보면 북한의 미래 도발을 예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Ⅲ. 과거 북한의 도발 양상과 특징 북한은 1945년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대남도발을 자행해 왔다. 도발 양상과 특징을 도 출해 내기 위해서 지난 60여년의 세월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도발 양상과 특징의 경향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향의 구분을 위해 시기는 김일성과 김정일 통치 기간으로, 냉전기-데탕트기-탈냉전기로, 1945년 이후 10년 단위로, 한국 대통령의 통치 단위로, 그리고 2) 조선일보, 2009년 4월 24일.
6 제2회 북한군사포럼 남북한 국력 격차기 등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남북한 국력 격차기로 구분 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북한이 남한과의 국력 격차가 벌어짐에 따라 대남 도발 양상이 상당 히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1. 북한 국력 우위기 이 시기는 1945년 이후 1960년대 말 까지 약 25년간의 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 북한은 한 국에 비해 우월한 국력을 바탕으로 전쟁을 포함한 끊임없는 폭력 혁명을 추구하였다. 6.25 전쟁 이전까지 북한은 소위 민주주의 민족전선 이라는 간판 아래 남노당에 의한 대남도발 을 자행하였다. 이 시기의 주요 사건으로는 영남 폭동사건( 46.9.15), 제주도 4 3사건 ( 48.4.3), 여순 반란사건( 48.10.19), 남로당 국회프락치사건( 49.4.18) 등이 있다. 북한은 지하 조직과 남파간첩으로 하여금 유격전을 강화하고 한국국회 및 각 기관에 프락치를 침투시켜 정보수집과 모략 와해 공작을 강화하였다. 3) 북한 정권 최대의 대남 도발은 6.25전쟁이다. 북한은 정규전과 남한내에 침투한 유격대의 제2전선과 연계하는 정규 비정규전의 배합전술을 구사했다. 전후복구기의 대남공작은 주 로 평화선전공세에 초점을 두고 전개되었는데, 북한의 위장평화공세는 1958년에 들어 더욱 고조되어 진보당 사건( 58.1.12), KNA기 납북사건( 58.2.6) 등의 대남도발이 계속되었다. 4) 또 한 50년대에는 지상보다는 해상을 통한 간첩 및 무장공비 침투가 증가하였고, 지상을 통한 국지도발은 전 전선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였다. 4 19이후 북한은 겉으로는 위장평화공세를 내세웠으나 남한사회의 무질서와 혼란을 틈 타 또 다시 폭력혁명을 추구하였다. 이 시기에 북한은 청와대 기습사건( 68.1.21), 미해군 프 에블로호 납치사건( 68.1.23),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68.11.3), 미해군 EC-121기 격추 사건( 69.4.15), KAL기 납북사건( 69.12.11) 등 대규모 도발을 감행하였다. 특히, 청와대 기습 사건은 한국의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었다. 2. 남북한 국력 전환기 3) 박헌옥, 북한의 대남도발 반세기, 군사논단, 제14호 및 제15호(1998년 봄 여름 호), p. 284. 4) 박헌옥, 위의 글, p. 285.
북한의 무력도발 위협: 심리전인가, 실체인가? 7 한국이 북한의 국력을 추월하기 시작한 것은 학자에 따라 견해의 차이는 있으나 그것이 1970년대 초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한다. 한 번 차이가 나기 시작한 국력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 차이가 더 벌어지기 시작했다. 남북한 국력 전환기란 1970년대 초부터 올림픽 이전까지 약 20년 정도의 기간을 말한다. 이 기간 동안 북한은 경제적 침체기를 겪 고 있었던 것에 반해, 한국의 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하고 이에 따라 한국의 국제적 위상도 향상되었다. 데탕트의 분위기 속에서 결실을 맺었던 남북공동성명 발표는 월남의 적화와 함께 스러져갔고 이에 고무된 북한은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대남 도발을 강화하기 시작했 다. 일상적인 침투 도발과 함께 남침용 땅굴과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저하시키는 테러가 이 시기의 특징이었다. 물론 테러의 대상 속에는 한국의 대통령도 있었다. 북한은 표면적으로는 남북대화를 진행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남침용 땅굴을 파는 화 전양면전술을 구사하였다. 남북 적십자 회담 개최 및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는 가운데서도 북한은 남침용 땅굴을 팠던 것이다. 1970년대 고량포 제1땅굴( 74.11.15), 철원 북방의 제2땅 굴( 75.3.19), 판문점 제3땅굴( 78.10.17), 그리고 양구 부근의 제4땅굴( 90.3.3)이 발견되었다. 대통령을 겨냥한 주요 사건으로는 국립묘지 현충문 폭파사건( 70.6.22), 8 15 대통령 저격사 건( 74.8.15), 버마 아웅산 폭파사건( 83. 10. 9) 등이 있었다. 급격한 경제 성장을 경험한 한국이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 게임을 유치하자 북한은 더욱 초조해졌다. 이런 국제적 행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북한은 국내외에서 테러를 일으켰 다. 북한은 1986년 아시안 게임 개막 일주일 전에 김포공항에서 폭발물 테러를 일으켰다. 또한 북한은 중동에서 근무하고 귀국하는 한국의 근로자가 대부분 탑승했던 KAL858기를 폭파( 87.11.29)시켰다. 그 외에도 파주( 70.4.8), 김포( 71.9.17), 20사단 지역( 77.5.3), 한강하 구( 80.3.23), 전곡( 81.7.4), 다대포( 83.12.13)에서의 무장간첩 침투사건, 그리고 소흑산도 ( 71.6.1), 동해안( 78.5.19), 영월해안( 83.8.5), 울릉도( 83.8.13) 무장간첩선 침투 사건 등이 있 었으며 서해안 어선 납북 사건( 89.1.28)도 있었다. 3. 남한 국력 우위기 1990년대 중반, 수해와 가뭄으로 수십만 명이 굶어 죽는 상황이 발생하자 북한은 세계를
8 제2회 북한군사포럼 향해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탈냉전과 함께 찾아온 북한의 식량난, 에너지난 등으로 인해, 북한은 한반도 무력통일 전략을 일단 유보한 채 정권 생존과 체제 생존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은 정권과 체제를 보존할 수단을 미사일과 핵으로 대표되는 대량살상 무기(WMD)에서 찾았다. 걸프전, 코소보전, 아프가니스탄전, 그리고 이라크전을 목도한 북 한은 경제난으로 인해 재래식 전력의 확보가 난망해지자 이를 대체하는 비대칭 전략을 추 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시기의 도발 특징은 양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하나는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에 대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남한에 대한 것이었다. 북한은 1993년 노동미사일 시험 발사를 시작 으로, 대포동 1호 시험발사(1998), 대포동 2호, 노동 및 스커드 미사일 시험발사(2006), 그리 고 장거리 로켓 발사(2009) 등을 실시함으로써 미사일 강대국으로써의 위상을 확보하였다. 또한 북한은 1992년 남북한 비핵화 공동선언 과 1994년 미국과 제네바 합의(Agreed Framework)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에 핵무기 보유 성명을 발표( 05.2)하고, 2006년과 2009년에 각각 핵무기 실험을 단행( 06.10/09.5)하였다. 이 시기 북한의 대남 도발은 서해안 바다 영토 와 정정협정 무실화에 초점을 맞추고 진 행되었다. 비록 철원 북방 비무장지대 무장공비 침투사건( 92.5.22), 임진강 무장공비 침투사 건( 95.10.17),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96.9.18) 등이 있었지만 주로 서해안과 판문점에서 무 력 도발이 발생했다. 북한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 무장병력 투입사건( 95.2.20)과 판문점 무장병력 2개 중대 무력시위( 96.4.5) 사건을 벌인바 있다. 특히, 북한은 연평도 북한 어뢰정 2척 침범( 96.4.19)과 백령도 북한 경비정 5척 침범을 시작으로 1999년에는 제1차 연평해전 ( 99.6.15)을 일으키고, 2002년에는 제2차 연평해전( 02. 6. 29)을 일으켰다. 4. 도발 양상과 특징 비교 가. 도발 양상과 특징의 공통성 북한이 자행해 온 도발 양상과 특징 중에서 공통성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기면(when)에서, 북한은 북한의 국내외 정세와 무관하게 도발을 일으켰다. 김일성 체제하에서 도발을 일으켰으며 김정일 체제하에서도 도발을 일으켰다. 냉전과 데탕트, 그리
북한의 무력도발 위협: 심리전인가, 실체인가? 9 고 탈냉전이라는 외부적 요인도 북한 도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으며, 남북한의 국력 격차도 도발 자체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남북간에 합의했던 각종 규범들도 북 한의 도발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둘째, 대상면(whom)에서, 북한의 도발 대상은 무차별적이었다. 북한은 사람과 물자를 가 리지 않았으며, 국군과 민간인, 한국인과 외국인을 구분하지 않았고, 남녀와 노소를 구분하 지 않았으며, 한반도와 한반도 이외의 지역을 구분하지 않고 도발을 일으켰다. 판문점에서 도끼로 미군을 살해했으며 일본 해안에서 일본인을 강제로 납치해 갔다. 이승복 소년을 죽 였으며 버마와 안데만(andaman) 바다 위에서 폭탄 테러를 일으켰다. 셋째, 장소면(where)에서, 북한의 도발은 땅, 하늘, 그리고 바다를 가리지 않고 자행되었다. 심지어 땅 밑도 도발을 위해 이용되었다. 지상에서는 DMZ 침투, JSA내에서의 도발, 그리고 핵무기 실험을, 하늘에서는 항공기 납치, 항공기 폭파, 미사일 발사를, 바다에서는 어선 납 북, 간첩선 및 잠수함 침투, 연평해전을, 그리고 땅 밑에서는 정규전에 대비해 땅굴을 팠다. 넷째, 수단 및 방법면(how)에서, 북한은 가용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도발을 일으 켰다. 북한은 도끼, 무장간첩, 무장간첩선, 잠수함, 어뢰정, 미사일, 핵 등의 수단을 이용하여 남한 내 사회 혼란, 정부 전복, 대통령 위해, 테러, 어선 납북, 공갈 협박 등의 방법을 동원하 여 도발을 일으켰다. 나. 도발 양상과 특징의 상이성 국력의 전환을 중심의 도발의 양상과 특징의 상이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의 국력이 우위에 있었을 때 북한은 대남적화통일을 목표로 도발을 일으켰다. 남한 내 남로당과 손잡고 정규전과 비정규전을 배합하여 한반도를 무력으로 통일하려 했던 것이다. 6.25 전쟁을 포함하여 가장 폭력적인 도발을 일으켰던 1960년대 말까지, 북한은 주 로 재래식 전력을 수단으로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 이 시기를 대표할 수 있는 북한의 도발 전략은 신속하고 결정적인 행동으로 한반도를 석권함으로써 공산 통일을 이루겠다는 기정 사실화(Fait Accompli)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남북한의 국력이 전환기에 있었을 때, 북한은 남한의 국제적 위상을 저하시킬 목적
10 제2회 북한군사포럼 으로 도발을 자행했다. 한국이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북한은 아웅산 폭 탄 테러, 김포 공항 테러, 그리고 KAL 858기 폭파 테러를 일으켰다. 국력의 전환 속도가 빨라지면서 북한의 초조감은 더욱 커져갔고 이것이 테러리즘의 형태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 시기 북한이 사용했던 수단은 주로 테러리즘이었다. 이 시기를 대표할 수 있는 북한의 도발 전략은 한국의 국력을 소진시키기 위한 소모(attrition)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한국의 국력이 완전한 비대칭적 우위에 서게 되자, 북한은 체제 생존에 매달릴 수밖 에 없었다. 공산화 통일은 2차적 목표가 되어버렸고 정권과 체제 생존이 1차적 목표가 되었 다. 국력이 뒷받침 해주지 못하자 북한은 재래식 군비경쟁을 포기하였다. 그 대신 핵과 미사 일로 체제의 생존을 모색하려 하였다. 이 시기 북한이 사용했던 수단은 비대칭(asymmetry) 전력이었다. 이 시기를 대표할 수 있는 북한의 도발 전략은 미국과 국제사회에 대해서는 공갈전략(blackmail)과 벼랑끝 전술(brinkmanship)을, 한국에 대해서는 주로 서해의 북방한계 선(NLL)을 중심으로 한 통제된 압력(controlled pressure)전략을 구사했다. 과거 북한 도발의 양상과 특징이 보여주는 공통성과 상이성은 미래의 북한 도발을 예측 함에 있어서 그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은 한반도 공산화 통일이라는 목표 하에 언제, 어 디서, 그리고 그 대상이 누구든 관계없이 가용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여 도발을 일으 킬 것이라는 점은 명백한 것 같다. 다만 도발 양상의 전체적인 흐름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대남 도발에서 대남 및 대국제사회 도발로, 재래식 도발에서 테러리즘을 거쳐 WMD 도발로, 그리고 대남도발은 다양한 지역에 대한 도발로부터 주로 NLL을 중심으 로 한 서해 북방에 대한 바다 영토에 대한 도발과 판문점에서의 도발로 도발의 양상과 특징 이 바뀌고 있다. 향후에도 북한 도발의 양상과 특징은 이런 경향을 보일 것이다. Ⅳ. 예상되는 북한의 도발 위협과 대응방안 북한의 장거리 로켓발사와 2차 핵실험은 WMD 도발의 연장선상에 있다. 북한은 2006년 유엔 안보리에서 채택된 결의안 1718호와 올해 4월에 채택된 안보리 의장 성명에도 불구하 고 2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2차 핵실험은 보다 강력한 안보리 제재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은
북한의 무력도발 위협: 심리전인가, 실체인가? 11 불문가지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또다시 대남 도발이나 대국제사회 도발을 감행하게 될 것이다. 악순환의 미래가 예고되어 있는 것이다. 북한의 미래 도발 위협을 예측해보고 대응방안을 강구하기 이전에 북한이 도발 위협을 촉 진시키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은 채 도발을 일으켜 왔던 북한인지라 이런 조건을 탐구하는 것이 도발위협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김정일 건강 이상 이후, 특히 올해 최고 인민회의 개최를 전후하여 북한이 단행한 정치 군사 분야의 대대적 개편이 북한 도발 위협을 촉진시 키고 있다고 본다. 1. 북한 도발 위협을 촉진시키는 북한의 대내적 조건 북한이 도발을 일으킬 수 있는 조건이 성숙되어 가고 있다. 대외적 조건과 대내적 조건 모두 그렇다. 북한은 MB 정부를 길들이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미국의 관심을 끌려 고 이것마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과 미국은 북한에 대해 기다림과 무시 전략으 로 일관하고 있고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해 제재를 가하고 있다. 한국은 북한의 제2차 핵실 험에 대응하기 위해 대량살상무기방지구상(PSI)에 전면적으로 참여할 것을 발표하였다. 미 국도 북한을 테러 지원국에서 해제시켰으나 대테러 비협력국 에서는 제외시키지 않았으며, 북한을 다시 테러 지원국으로 재지정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북한의 도발을 촉진시키는 북한 내부의 대내적 조건도 성숙되어 가고 있다. 김정일 건강 이상과 후계자 승계, 그리고 2012년의 강성대국 목표가 북한 정권 전체를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김정일의 초조함이 정책과 인사 개편에 반영되었다. 선군정치를 더욱 가열차게 펼치 기 위한 국방위원회의 강화, 대남 대화 및 협력을 담당했던 담당자들의 숙청, 대남 도발 담 당 부서들의 당 직속으로의 통합, 북한 특수전 부대의 확대, 그리고 군 지도부의 강성인물로 재편 등이 그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조직의 충성 경쟁이 거세게 일어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이 간다. 그 충성 경쟁이 대국제사회 도발은 물론 대남 도발로 연결될 개연성은 더욱 높아져 가고 있다. 도발을 촉진할 수 있는 북한의 대내적 조건만 간단히 살펴보자. 북한은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하고 국방위원을 대폭 증
12 제2회 북한군사포럼 원한 데 이어 종래의 대남부서들을 통폐합하여 이를 국방위 소속으로 이전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개정 헌법은 국방위원장을 국가 최고 지도자 로 명시하고 조약 비준과 파기권, 사 면, 그리고 비상사태 선언 등 추가적인 권한을 부여했다. 이와 함께 국방위원회가 북한의 최고 통치기구 로 부상했다. 2003년 최고인민회의 제11기 1차회의에서 9명이던 국방위원회 위원이 13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5) 국방위원회 의원 13명 중 군복을 입지 않고 있는 인원은 김정일 위원장을 포함하여 4명밖에 없다. 통치기구인 강화된 국방위원회가 타협과 협상보 다는 아집과 독선의 길을 선택할 것이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두 번째 대내적 조건은 북한에서 대남 정책을 담당했던 주요 인물들이 몰락했다는 점이 다. 대남 정책의 실세였던 최승철 전 통일전선부 부부장, 남북회담의 얼굴이었던 권호웅 전 내각 참사, 그리고 남북 경협의 실무 책임자였던 정운업 전 민족경제협력위원회(민경협) 회 장 등 정책 회담 경협의 대남 3인방이 몰락했다. 6) 이들은 각각 혁명화 교육, 가택 연금, 그 리고 경질되었다. 이들을 대신해 대남 강경 비판에 나선 곳이 바로 인민군 총 참모부와 조 평통이다. 세 번째 대내적 조건은 북한의 대남 및 해외 공작 업무를 담당하던 노동당 35호실(조사부, 대외 및 대남 정보 수집)과 작전부(공작원 호송 및 안내) 7) 를 노동당에서 떼어내 인민무력부 의 정찰국으로 통합하여 정찰총국 으로 확대 개편한 것으로 알려졌다. 8) 이에 따라 북한 군 부의 역할과 기능이 더욱 강화되었고 정찰총국은 총정치국, 총참모부와 함께 북한 군부의 3대 실세 기관이 되었다. 노동당 대외연락부는 대외교류국 으로 축소되어 내각에 배속됨으 로써 남북회담 등 공개적인 대남정책을 수행하던 통일전선부만 당에 남게 되었다. 정찰총 국은 공작전문가인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이 지휘하도록 되어 있다. 종래는 공작기관들이 통일전선부와 함께 노동당에 소속돼 있어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대남 공작 활동의 완급과 폭이 조절됐지만, 앞으로는 군부 소속이 되어 정치논리보다 군사논리에 더 충실하게 될 것 5)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롯하여 부위원장 4명(조명록, 김영춘, 이용무, 오극렬), 위원 8명(전병호, 김일철, 백세 봉, 장성택, 주상성, 우동측, 주규창, 김정각)이다. 신임 위원은 김정일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당 중앙위 행 정부장, 로켓 발사 개발 책임자인 주규창 노동당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 주상성 인민보안상(한국의 경찰청장 에 해당),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한국의 국정원에 해당) 수석 부부장 등이다. 6) 중앙일보, 2009년 5월 20일. 7) 이 조직들은 대남, 해외테러, 납치, 파괴 공작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8) 연합뉴스, 2009년 5월 10일.
북한의 무력도발 위협: 심리전인가, 실체인가? 13 으로 보인다. 9) 이는 북한의 대남 정책의 무게 중심이 회담이나 협상보다는 군사적 공작과 침투로 옮겨질 것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림 1> 북한 공작기구의 소속 변화 네 번째 대내적 조건은 군 수뇌부가 강성인물들로 대체되었다는 점이다. 김정일은 올해 2월 북한군 수뇌부를 전격 교체했다. 대장인 오극렬 노동당 작전부장을 국방위원회 부위원 장에 임명했다. 10) 또한 차수인 인민무력부장에 김영춘 국방위 부위원장을, 총참모장에 평양 방어사령관인 리영호 대장을 각각 임명했다. 김차수는 1995-2007년 인민군 총참모장을 지 내다가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문제는 김영춘이 1995년 이후 북한의 각종 도 발을 주도해 온 대표적인 강경파라는 점이다. 동해 앞바다 잠수정 침투 사건(1998), 대포동 1호 발사(1998), 제1차 연평해전(1999), 제2차 연평해전(2002), 대포동 2호 발사 및 핵실험 (2006) 등이 모두 그가 총참모장을 맡고 있을 때 일어났다. 11) 그 외에도 북한의 특수전 병력이 종전의 12만 명에서 18만 명으로 6만 명이 더 늘어난 9) 연합뉴스, 2009년 5월 10일. 10) 당 작전부장은 대남 간첩 양성과 침투를 총괄하는 자리이다. 오 부위원장은 1989년부터 20년 동안 당 작 전부장을 지내며 여간첩 이선실 사건(1992), 2인조 무장간첩 사건(1995), 여수 앞바다 반잠수정 침투사건 (1999) 등을 주도한 대표적인 강경파로 꼽힌다. 1979-1988년에는 총참모장으로 일하면서 아웅산 테러 사 건(1983), KAL기 폭파사건(1987)에 연루되었을 것이란 관측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조선일보, 2009년 2월 2일을 참고할 것. 11) 조선일보, 2009년 2월 13일.
14 제2회 북한군사포럼 점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2. 예상되는 북한의 도발 위협 가. 대 국제사회에 대한 도발 위협 제2차 북핵 실험으로 인해 안보리에서는 1718호에 비해 보다 강력한 대북 제재안을 결의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한의 최근 행태로 미루어볼 때 북한의 반응은 순응보다는 반발쪽 으로 기울 가능성이 더 크다. 북한의 반발은 시차와 관계없이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될 것 이다. 하나는 대 국제사회에 대한 도발 위협이고, 다른 하나는 대남 도발 위협이다. 북한의 대 국제사회에 대한 도발은 2008년의 숨고르기를 거쳐 2009년도에 본격화되기 시 작했다. 북한의 대 국제사회에 대한 도발은 미국에 대한 관심 끌기 전략에서 체제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 바뀐 것 같다. 설령 협상이 이루어지더라도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끼리의 협 상 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는 판단도 했을 것이다. 북한은 올해 이미 두 차례에 걸쳐 대 국 제사회에 대한 도발을 감행했다. 앞에서 서술했듯이 제1차 위기는 장거리 로켓발사 안보 리 의장 성명 채택, 제2차 위기는 북한의 반발 제2차 핵실험 경제재재와 무기금수조 치가 포함될 수 있는 강력한 안보리 결의의 과정이다. 그렇다면 과연 북한이 제2차 핵실험 의 결과로 채택된 안보리 결의에 대해 다시 반발하면서 위기를 조성할 가능성이 있는가? 국제사회, 특히 미국이 지금은 북한을 압박할 때이며 협상을 구걸할 필요가 없다 12) 는 입 장을 견지한다면 그럴 개연성이 높다. 러시아가 강도 높은 대북 비난을 한 데 이어 중국이 북한에서 조용히 플러그를 뽑 13) 더라도 북한의 150일 전투 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를 향한 제3차 위기는 핵무기를 소형화하기 위한 제3차 핵실험을 할 수도 있 고 14), 또는 북한이 이미 천명한 것처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수도 있을 것 15) 이다. 이런 상황이 전개된다면 유엔 안보리는 보다 높은 수준의 대북 제재 결의안, 즉 해상 12) 부시 행정부 시절 NSC아시아 담당 선임 국장으로 일했던 마이클 그린 미 조지타운대 교수의 중앙일보 인터뷰 내용. 중앙일보, 2009년 5월 27일, 16면. 13) 구자룡, 중, 북한에서 조용히 플로그 뽑을 것, 영국일간지 INDEPENDENT, 5월 28일 보도 내용, 동아일 보, 5월 29일, A3에서 재인용. 14) 미국의 핵무기 전문가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의 동아일보 e메일 인터뷰 내용. 동아일보, 2009년 5월 27 일, A26. 15) 북한은 사거리 5,000Km 이상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5월 29일 확인되었다. 윤상 호, 북, ICBM발사 준비, 동아일보, 2009년 5월 30일, A1.
북한의 무력도발 위협: 심리전인가, 실체인가? 15 봉쇄를 넘어 헌장 제7장에 의한 집단안보의 가능성마저도 있다. 나. 예상되는 대남 도발 위협 북한은 지난 60여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용한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전방위적 동시다 발적으로 도발을 일으킬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북한의 예상되는 도발을 국외와 국내로 구분하고, 국내는 다시 물리적 도발(지상 지하 해상 공중 사이버)과 심리전 도발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해외에서는 1 해외 주재원, 유학생, 여행객을 대상으로 납치 및 테러, 2 해외 주재 상사 및 한국 기업에 대한 테러 및 사보타지 주도, 3 해외 주재 공무원 및 군인 납치 및 테러, 4 해외 동포 포섭 및 납치 등의 도발을 일으킬 수 있다. 국내 지상에서의 도발은 1 DMZ상에서의 도발, 2 JSA 내에서의 도발, 3 대통령 및 주 요 요인 암살 및 납치, 4 개성공단 근로자 억류, 국내지하에서의 도발은 1 제5의 땅굴 등 이 예상된다. 해상에서의 도발은 1 제3의 연평해전, 2 공기부양정을 이용한 서해5도 일부 섬 점령, 3 서북 해역상의 한국 함정 및 어선에 대한 미사일 발사, 4 영해 및 공해상에서 어선 및 상선 납북, 5 간첩선, 잠수함, 잠수정/반잠수정 침투 등이 예상된다. 공중에서의 도발은 1 국적기에 대한 테러 및 납치, 미사일 발사 시도, 2 사고를 위장한 남한의 특정 시설물에 대한 미사일 발사, 3 영공을 수호 중인 한국 공군기에 대한 미사일 발사 등이 예상된다. 사이버상에서의 도발은 1 민간기업은 물론 한국 정부 및 안보 기관에 대한 헤커 및 기능 작동을 중지시키거나 오류를 발생시킬 수 있는 사이버전을 감행할 수 있다. 심리전 도발은 1 한국 사회 내부 혼란을 유도하기 위한 대규모 소요 사태 유도, 2 총파업 유도, 3 60여개의 달하는 친북 사이트를 활용한 남남 갈등 유도 등이다. 북한 도발을 제3장에서 언급한 도발 양상의 변화를 기준으로 그 우선순위를 정해 본다면, 국내> 국외, 그리고 해상>지상>공중>지하의 순이 될 것으로 본다. 특히 해상 도발은 서북해 역상을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16) 그 이유는 조평통이 지난 1월 전면대결태세 에 진입할 것을 천명하면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불법적인 것이며, 서해 우리측 영 16) 북한군은 이미 올 1월 이후 해안포 사격훈련을 2배 가량 늘렸으며 해안포도 대부분 갱도 밖으로 노출돼 있어 언제든지 사격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 공군 전투기들의 훈련 횟수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배가량 늘었다. 1월 17일 이후 5월 초까지 북한 전투기들이 백령도에서 북한 쪽으로 64Km 상 공에 설정한 가상선인 전술조치선을 1087회나 접근했으며, 전술조치선을 넘어 해주까지 비행한 경우도 있었다. 조선일보, 2009년 5월 9일.
16 제2회 북한군사포럼 해에 대한 침범행위가 계속되는 한 우리 혁명적 무장력은 이미 세상에 선포한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그대로 고수하게 될 것임을 명백히 밝혔고, 조국이 통일되는 그날까지 조선 서해에는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 이 아니라 오직 우리가 설정한 해상 군사분계선만이 존 재하게 될 것 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이 PSI 전면 참여를 선언하자 북한 조평 통은 그 다음날 바로 이를 "선전포고로 간주한다"고 발표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자신이 임의로 설정한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사수하기 위해 서북 해역상에서 도발을 일 으킬 가능성이 있다. 도발의 양상은 NLL을 중심으로 밀어내기 형태의 반복적 도발이 아니 라 서북 해역상의 한국 함정 및 어선에 대한 해안포 사격, 지대함 또는 함대함 미사일 발사 나, 공기부양정을 이용한 서해5도의 일부 섬을 점령하는 방식으로 도발할 수도 있다. 이런 도발을 일으키기 전에 북한은 서해에서 어선을 먼저 납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 서해 상에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이유도 미래의 도발 수단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상에서의 도발은 개성공단 근로자를 억류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미 류씨를 억류한 경험이 있는 북한은 여러 가지 트집을 잡아 적게는 수 명, 많게는 개성공단 전체 근로자를 인질로 잡을 수도 있다. 특히, 북한이 서해상에서 도발을 일으키고 그 결과가 자신에게 불리 하다고 판단되면,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또한 안보리에서의 대북 경제제재의 강 도가 높아진다면, 이에 대한 보복으로 근로자들을 인질로 잡을 수도 있다. 또한 DMZ보다는 JSA에서의 무력도발 가능성도 크다고 본다. 한국이 JSA 경계 임무를 미군으로부터 전환 받은(2004.11.1) 후, JSA에는 한국군이 북한군과 얼굴을 서로 마주 보면 서 근무를 하고 있다. 작년 말에 북한은 JSA내의 북한군 초소를 신축하여 감시와 방호능력 을 향상시켰고, 내부 관측에 대한 제한으로 북한군이 중화기를 반입하여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북한은 DMZ에서의 도발보다는 JSA에서의 도발을 더 유리한 것으로 판단 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이 다른 지역에서 도발하여 그 결과가 나쁘다고 판단할 경우, JSA내 의 한국군을 대상으로 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의 무력도발 위협: 심리전인가, 실체인가? 17 3. 대응 방향 가. 북한 핵위협 대응 (1) 회담의 틀 문제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는 외교적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6자회담의 틀이 순 조롭지 못하다면 2+2, 또는 미-북 회담도 가능할 것이다. 6자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회담 결과의 국제성을 인정받을 수 있고, 4대 강국이 포함되어 있어 북한이 쉽게 배반할 수 없으며, 한국의 분담금 비용이 줄어들 것이라는 장점이 있다. 미-북 회담은 북한이 일관 되게 선호하는 회담 형식이고 이럴 경우 한국이 소외될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1994년의 제네바 합의도 미-북간 회담의 결과였다. 한국은 회담의 결과에 따라 분담금만 내 야 될 것이다. 만일 2+2회담이 이루어지면, 러시아와 소련이 반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의 교착상태를 벗어날 수 있고, 한국의 이익이 반영되며, 적절한 분담금을 지불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2) 군사대비태세 및 국가대비태세 강화 외교부, 통일부, 그리고 국방부의 역할은 다르다. 필요에 따라 같은 목소리를 낼 필요도 있고 다른 목소리를 낼 필요도 있다. 외교부는 국제관계라는 큰 틀 속에서 북한을 바라볼 필요가 있고, 통일부는 민족의 차원에서 북한을 바라볼 필요가 있으나, 국방부는 한국에게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주체가 북한이라는 차원에서 북한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국방부가 외교부나 통일부를 대변하는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미국 국무부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미국의 합참은 북한이 핵무 기를 보유했을 수도 있다 라는 가정에 근거하여 북한을 바라보고 있다. 핵전쟁 의 가능성 에 따라 군사준비태세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방부는 미국 합참의 고민을 이해함과 동시에 이 고민이 반영된 군사준비태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NSC도 국가적 차 원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3)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파기? 1992년 남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북한이 제1 2차 핵실험 을 단행함으로써 이 선언은 무효화되어 버렸다. 북핵 해결을 위한 회담이 지진 부진한 가운
18 제2회 북한군사포럼 데 북한의 핵실험이 계속된다면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파기를 신중히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무궁화 꽃을 다시 피워보자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모험이 필요하다. 북한처럼 NPT와 IAEA를 탈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 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설명을 생략한다. 그러나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의 완 전한 포기에 대한 지렛대를 중국이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안보리 결의에도 불구하고 중국 이 실질적으로 북한에 대한 제재를 소홀히 한다면, 이런 주장도 신중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한국보다 오히려 일본에서 더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4) 핵무기의 재반입? 1991년 미국의 아버지 부시 정부는 구소련의 해체와 함께 핵무기의 전 세계로의 확산이 예상되자 고르바초프와의 회담 등을 통하여 전 세계에 퍼져 있던 미국의 단거리 미사일용 핵탄두와 전술핵무기를 철수시켰다. 이로써 주한 미군이 보유하고 있던 모든 핵무기가 한 국에서 철수되었다. 2차 핵실험으로 인해 북한의 핵무기 보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일부 단체에서는 철수했던 핵무기를 다시 한국에 들여와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비대칭적 안보 위협에 놓여 있는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이를 당연히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럴 경우, 북한이 회담 자체를 거부할 수 있는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미국도 구소련 과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미국 마음대로 할 수도 없다는 현실적인 한계도 있다. (5)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북한의 제2차 핵실험으로 인해 한국의 '핵 주권' 문제가 부상하고 있다. 핵주권과 관련된 문제가 한미 원자력 협정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1973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 협정에 따라 미국의 사전동의나 허락 없이 우라늄을 농축하거나 재처리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협상을 통해 '핵주권'을 가지게 되면, 한국은 연간 3억 달러가 넘는 원자력발전 연료용 농축우라늄 수입비용을 아낄 수 있다. 또한 재처리를 거치면 원자력 발전 후 발생하는 고준위폐기물의 붕괴열량이 100분의 1로 감소해 폐기물 처리장의 이용률이 100배로 향상되고 관리기간은 30만년에서 300년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방사성독성도 170분의 1에서 360만분 의 1로 감소되고, 우라늄 이용률도 현재보다 60~100배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17)
북한의 무력도발 위협: 심리전인가, 실체인가? 19 정치권 일각에서 핵주권이 등장하는 이유는 한미 원자력 협정이 미일 원자력 협정에 비 해 지나치게 불리하게 체결되었기 때문이다. 1988년에 발효된 미일 원자력협정으로 인해 일본은 핵연료 사이클 계획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 41년 동안 묶여 있던 한 미 원자력 협정은 2014년에 그 시효가 끝난다. 따라서 재개정을 위해 한국은 미국과 2012년 부터 협상하도록 되어 있다. 지금 당장보다 협정을 개정하기 위해 미국을 압박하는 것은 옳지 않다. 41년을 기다려 협상하는데 몇 년을 못 기다릴 이유가 없으며, 한국이 이를 촉구 할 경우 오히려 일본 수준의 핵연료 사이클이 훨씬 못 미치는 협정이 체결될 수도 있다. 따라서 긴 호흡을 가지고 치밀한 사전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의 걸림돌은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핵 처리와 농축시설을 갖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점 이다. 이것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도 관건이다. (6) Extended Deterrence의 명문화? 미국의 동맹국이나 우방국에 대하여 제3국이 핵공격을 위협하거나 핵능력을 과시하려 들 때 미국의 억제력을 이들 국가에 확장하여 제공하는 것이 확장된 억제이다. 한국과 미국은 1978년 제11차 한미안보협의회(SCM) 이후 매년 공동성명에서 핵우산 제공((provision of a nuclear umbrella)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왔다. 2006년 북한의 핵실험 직후 열린 제38차 한 미안보협의회 공동성명에서는 확장억제의 지속 보장 을 명기함으로써 핵을 보유한 북한의 위협에 대하여 핵우산의 신속한 전개를 확인하고 구체화하였다. 이미 SCM 공동성명에는 이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하여 이를 한미 정상간에 명문화해 보고자 하는 노력이 가시화되고 있다. 약속의 주체를 양국 국방장관 간의 수준에서 양국 정상 간의 수준으로 한 단계 격상시켜보자는 것이다. 이것이 성사되면 한국과 미국이 북한에게 경고 하는 정치적 군사적 상징성은 크다고 본다. 불안해하는 국민들을 어느 정도 안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회담의 틀을 바꾸는 경우가 있더라도 북한 핵 프로그램을 폐기시키 기 위한 회담을 진행시켜야 하며, 한국 안보를 담보할 수 있는 양국 정상간의 Extended 17) 김광수, 한국 핵연료 주기 완성땐 경제 환경 막대한 이익, 정치 안보 가치는 덤, 한국일보, 2009년 5월 29일; 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0905/h2009052903080491040.htm(검색일: 2009.05.31)
20 제2회 북한군사포럼 Deterrence를 명문화할 필요가 있으며, 그리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군사대비태세 및 국가 대비태세가 선행되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핵주권 을 가져야 할 것이고, 상황 변화에 따 라 핵무기의 한반도 도입과 남북비핵화공동선언의 파기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나. 북한 미사일 위협 대응 (1) 한미 미사일 협정 개정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계기로 정치권에서는 한국의 미사일 개발을 제한하는 한미 미사일 협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2001년 체결된 한미 협정에 따라 한국은 300km/500kg까지의 탄도미사일 개발만 하도록 되어 있다. 사거리 제한이 풀릴 경우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 전체의 군비 경쟁을 촉발할 우려도 있지만 북한의 미사일에 대 응하기 위해서는 사거리와 중량을 늘릴 필요는 있다. 순항미사일은 한미 미사일 협정과는 관련 없기 때문에 개발에 제한이 없다. 그러나 각 미 사일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한국이 순항미사일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따라서 북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되 주변국을 자극하지 않을 정도의 사거리(700Km 내외)와 중량을 지닌 탄도 미사일을 개발하기 위해서 미국과 협상을 벌일 필요가 있다. 이 적기를 놓치면 미국과의 협상도 어려워질 수 있음도 유념해야 한다. 협정을 체결한 기간도 7년이 경과되었 다는 점도 결코 불리하지 않다. (2) MD 참여 추진? MD 참여에 대한 목소리도 만만찮다. 이 모든 것들이 북한발 미사일 위협 때문이다. 미국 이 주도하는 MD에 일본은 전면 참여했지만 한국은 현재까지도 참여하고 있지 않다.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은 MD의 군사적 가치보다 주변국을 의식한 정치적 이유 때문에 가입을 미뤄왔다. 이로 인해 MD는 국제정치의 중심이자 국내 논쟁의 중심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일부의 주장처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계기로 한국은 MD에 참여할 수도 있다. 그 러나 미국형 MD보다는 한국형 MD(KAMD)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MD의 효과성이 완 벽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도 논쟁의 대상이 된다.
북한의 무력도발 위협: 심리전인가, 실체인가? 21 다. 북한 핵과 미사일 대응 (1) PSI와 남북해운 합의서 정부는 북한의 제2차 핵실험 직후 남북해운 합의서를 존중하는 가운데 PSI에 전면 참여한 다고 발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SI와 남북해운합의서를 상황에 따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예상되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수립하여 이를 PSI에 참여하는 국가와 사전에 협의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한국이 시나리오별 대응방안을 채 준비하지 못 한 점을 이용하여 한국을 시험해 볼 수도 있다. (2) 핵과 미사일에 대비한 전력 구비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는 이미 국방개혁 기본계획 수정안 에 어 느 정도 반영되어 있다. 국방부는 핵시설과 미사일 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합동원거리공격 폭탄(JSOW)과 통합정밀직격탄(JDAM), 그리고 합동공대지순항미사일(JASSM)을 당초 계획 보다 많이 도입할 계획이다. 또한 사거리 1,500Km의 현무 3C의 순항 미사일도 개발 중이 다. 18)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입 시기와 그 수량 등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라. 북한 대남도발 대응 (1) 과거 북한의 도발에 대한 한국 대응의 일반적 패턴 한국은 북한이 제2의 6.25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억지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북한의 도발에 대한 억지는 비교적 실패했다고 본다. 국내로 침투한 도발 세력에 대해서는 그것이 어떤 형태의 도발이었던 대부분 이를 소탕하였다. 그러나 소탕 자체가 도발에 대한 억지를 담보해 주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이런 소탕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지속적으로 도발을 일으켰 기 때문이다. 북한은 왜 지속적으로 도발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물론 북한 스스로가 판단하는 도발의 정치적, 군사적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발에 대응하는 한국과 미국의 인식과 행동 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한국은 북한에 대한 응징이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북한을 응징하지 않았다. 또한 한국은 응징을 원했지만 미국은 한국의 국지전 18) 한국일보, 2009년 5월 26일, P. 5
22 제2회 북한군사포럼 에 연루(entrapment)되어 이것이 전면전으로 비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의 응징 을 자제토록 권유했다고 볼 수 있다. 대침투 작전권이 유엔사에 있었을 때에도, 연합사 창설 이후 대침투 작전권과 평시 작통권이 한국군으로 전환되었을 때에도 동일한 경향을 보였다. 북한 도발에 대한 한미간의 소극적 대응이 북한에게 나쁜 인식을 심어준 학습 효과가 있 다. 즉, 북한은 북한이 도발하더라도 한국은 소탕만 할 뿐, 대북 응징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미군의 인명이나 재산이 관여되지 않는다면 미국은 한국 단독의 대북 응징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19) 6.25직후부터 한국이 북한의 도발에 대해 이 스라엘식 군사적 응징을 가했더라면, 북한의 도발은 이 학습의 틀 내에서 상당히 자제되었 을 것이다. (2) 대남 도발 대응 북한의 대남 도발에 대해서는 즉각 응징보복(tit-for-tat)을 해야 한다. 특히, 서북 해역상의 도발과 JSA내의 도발에 대해서는 좌고우면할 것이 아니라 사전에 마련된 SOP에 따라 즉각 대응해야 한다. 제1연평해전이 보여 주었듯이 즉각 응징만이 오히려 확전을 방지할 수 있 다. 개성공단의 근로자 억류 가능성에 대해서도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며 북한의 태 도에 따라 전면적인 철수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2012년의 대내외 정세는 복잡하다. 한국과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다. 중국에서는 제5 세대 지도자가 새로 등장한다. 러시아에서도 대통령 선거가 계획되어 있으며 푸틴 총리가 대통령 후보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2012년은 김일성 생일 100주년이고 김정일 70회 생일 임과 동시에 북한이 주장하는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해이기도 하다. 또한 현재의 계획대로 한다면 전작권 전환이 계획되어 있는 해이기도 하다. 전작권 전환 일정은 복잡한 국내외 정세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 자존심만이 능사가 아니다. 미래를 담보받기 위해 자존심을 잠 시 내려놓을 필요도 있다. 전작권 전환에 대해서도 신중한 검토와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 이미 한미 국방부 장관은 싱가폴에서 개최된 샹글리라 회의에서 매년 안보 상황 평가를 전작권 전환의 고려요소로 포함시킬 것을 합의하였다. 이에 더하여 NSC 사무처의 부활과 국가비상기획위원회의 부활도 신중히 고려해 볼 필요 19) 1976년 미루나무 절단사건이 발생했을 때, 한국에서는 준전시 상태인 DEF-Ⅱ가 발령되었고, 대규모 무기 를 동원한 미국의 위력 앞에 김일성이 사과문을 발표함으로써 사건은 종결되었다.
북한의 무력도발 위협: 심리전인가, 실체인가? 23 가 있다. 북한의 대남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안보태세와 위기관리체제에 대한 전반적 인 재검토는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 Ⅴ. 나오며 북한은 이제 공공연하게 유엔 안보리마저 무시하는 형태로 도발 위협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장거리 로켓 발사이후 안보리 의장 성명이 발표되자 북한은 안보리가 북한에 사죄해 야 된다고 했다. 2차 핵실험으로 보다 강화된 안보리 결의안이 채택될 전망이 있자 북한 외무성은 유엔 안보리가 더 이상의 도발을 해오는 경우 그에 대처한 우리의 더 이상의 자 위적 조치가 불가피하다( 09.4.29) 는 담화를 발표했다. 이로써 북한은 안보리 상임이사국 전체와 대결을 벌이는 국면, 즉 도박판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북한의 도발이 심리전 수준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밝혀졌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개 성공단 입출입 통제 및 운영에 관한 사건, 그리고 장거리 로켓 발사 및 제2차 핵실험이 이를 증명해 준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대한 제3차 도발이 ICBM 발사 준비로 가시화되고 있다. 북한의 한국에 대한 제3차 도발도 서북해역상을 중심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북한은 1994년 의 위기 국면보다 더 강도 높은 위기 국면을 조성하고 있는 셈이다. 걸프전시 유엔 안보리는 이라크에 대해 필요한 모든 수단 을 사용하도록 결의하기까지 무려 11개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 결의안들 중에는 이라크에 대한 통상 및 금융금지라 는 경제제재(제661호), 이라크 입출항 선박에 대한 정지(제665호), 대 이라크 항공 교통 금지 (제670호) 등의 조치가 있었다. 유엔 안보리가 필요한 모든 수단 을 결의하기 위해 경제제 재와 해상봉쇄를 먼저 결의했던 것이다. 20) 2차 핵실험에 대한 안보리 결의안이 군사적 제재 조치까지는 가지 않겠지만, 만일 북한이 ICBM을 발사하거나 또는 제3차 핵실험을 감행한 다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도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에 의한 1994년판 외과수술식 타격(surgical strike)이나 안보리의 필요한 모든 수단의 사용 결의도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안보리의 이라크식 결의가 있기 전에 도박판을 빨리 접어야 한다. 20) 국방군사연구소 역, 미국방부의회최종보고서 걸프전쟁 부록(서울: 국방군사연구소, 1993), pp. 3-27.
참고문헌 1. 전성훈. 2009. 북한 정권의 대남압박에 대한 우리의 대응. 정세와 정책 (3월호). 성남: 세종연구소. 2. 박헌옥. 1998. 북한의 대남도발 반세기. 군사논단. 제14호 및 제15호(봄 여름 호). 3. 국방군사연구소 역. 1993. 미국방부의회최종보고서, 걸프전쟁 부록. 서울: 국방군사연구소 4. 최근 중앙 일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