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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目 次> 차례 1~3쪽 머리말 4 1. 계대 연구자료 7 가. 증 문하시랑동평장사 하공진공 사적기 7 나. 족보 변천사항 9 1) 1416년 진양부원군 신도비 음기(陰記)상의 자손록 9 2) 1605년 을사보 9 3) 1698년 무인 중수보 9 4) 1719년 기해보 10 5) 1999년 판윤공 파보 10 - 계대 10 - 근거 사서 11 (1) 고려사 척록(高麗史摭錄) 11 (2) 동국통감 척록(東國通鑑摭錄) 11 (3) 고려사절요경인5년(1110) 12 다. 탁회 선조 관련문헌 13 1) 증 종형 헌납군 시서 13 2) 진양하씨 세계변 대동보 발간에 대하여 16 가. 족보 현황 16 1) 족보 발간연혁 16 2) 문중 상계 생몰년도 재구성(추산) 17 가)상계선조 생몰년도 재구성표의 검토 및 宗史상 시사 점 19 나)상계 생몰년도 재구성(추산) 근거 21 나. 문중별 파보 발간에 따른 문제점 21 다. 대책 22 1) 대동보체제 족보 발간 23 2) 수록 기준(안) 24 3) 운수당공파의 계대문제 해결로 족보의 흠결 해소 노력 23 4) 시조공의 현양(顯揚) 및 숭조정신 함양

3 라. 대동보 발간시의 문제점과 대책 24 마. 끝맺음 25 붙임 1. 시조공의 은덕이 기록된 역사서 사료 26 붙임 2. 진양부원군 하공 신도비명 수정 전후 비교표 29 붙임 3. 진양부원군 하공 신도비 음기 내용 정리표 36 붙임 4. 진양부원군 신도비명 내용중 상치부분에 대한 소고 39 <참고> 사료 1-1. 고려역대왕의 직계도 41 사료 1-2. 고려왕조 왕가 계보도-후비포함 42 사료 1-3. 고려왕조 王代表 43 사료 1-4. 고려시대 관직표 45 사료 2-1. 진양부원군 하공 신도비명 Ⅰ<1415년 태종15,영락13> 46 사료 2-2. 진양부원군 하공 신도비명 Ⅱ<1413년 태종13,영락11> 53 사료 3-1. 신도비 음기 <번역문 및 원문> 63 사료4. 문충공 하륜 묘지명 <번역문 및 원문>

4 머리말 宗史란 우리 조상님들이 이 세상을 살아오시면서 이루신 일 들을 체계적으 로 엮어 후손들이 뿌리를 이해하고 이 세상을 통찰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문중의 역사기록입니다. 근세 이전에는 우리글이 보급되지 않아 선비의 학식을 갖춘 특정의 조상님 들께서만 한문으로 기록을 남기셨기 때문에 다양성과 기록분량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우리 문중은 남명학의 줄기를 이룬 영남의 거족 이라 그나마 다행으로 많은 기록을 전수 받고 있습니다. 현세에 들어 한문기 록을 해득하는 일 또한 쉬운 일이 아니어서 문중의 문헌을 통해 종사를 탐 구한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닌 것이 현실입니다. 근래에 우리문중에서 조상님 들이 훌륭하게 이루어 놓으신 가문의 전통을 오늘에 다시 되살리려는 노력과 일족간의 돈목정신이 진작되어 종중회의 재 건, 문중의 역사와 문화를 밝혀 정리하고 홍보하는 도록의 발간 및 홈페이지 의 개설, 판윤공 후손 친목회의 결성 모임 등 경향 각지의 친족들이 단합의 힘을 모으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 진주 충의당 대종회에서 대동보의 발간 여부에 대한 각 문중의 의견 제출 요청에 대하여 우리 판윤공파의 의견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우리 문중의 중요 宗史를 문중의 일족들에게 알려드려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 바 람직하다는 문중 어른들의 말씀에 따라 이 책을 편찬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엮는 과정에서 시조공의 구국 충절이 고려조정과 만백성, 그리고 우 리 후손에게 내린 은덕과 조선 태종 때의 명재상 하륜 방조께서 문중을 아 끼는 정성을 느끼게 되어 자긍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종사연구에서 주요사항은 시조공 다음대부터 6세 박사공 윗대 사이의 선조 계대에 있어서 구족보 계대의 모순점에 관한 것입니다. 창주공께서 1605년 창보이후 1621년 하씨세계변을 찬하면서 창보의 원전인 진양부원군신도비에 박사공이 고려 고종때의 선조라는 근거도 없고 수긍도 되지않는 모순 사항에 대하여 소상하게 밝히셨습니다

5 상술하면 창보시 고려6대(성종)~8대(현종)때 활약한 시조公 (966년추정~ 1011년)과 2세조로 시조공 이후 200년 후인 고려 23대 고종(1213~1259) 때에 벼슬하였다고 진양부원군신도비문에 기록된 박사공을 (2세로)등재하시 면서 그 사이 계대가 절연되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麗史에 거듭 기 록된 시조공의 아들 칙충祖와 현손 준祖가 우리의 직파인지 여부가 자상하 지 않아 족보에 올리는 것은 유보하고 우선 박사공을 2세로 올렸으니 후손 들이 박사공을 시조공의 아들로 오인 할 것을 염려하시면서 후손들로 하여 금 박사공 이전의 선조를 밝혀 開創족보의 모순된 계대를 바로 잡을 것을 유훈으로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2세 칙충조와 5세 준조에 대하여는 고려정사에 기록되어 국사의 일부분이 되고 있어 다행히 칙충조는 1719년 기해보부터 2세조로 모심으로써 위 염 려가 부분적으로는 해소되었으나 그러나 200년의 절연기간은 칙충조 1세대 의 보완만으로는 박사공이 시조공의 손자(족보상 3세)로 등재되어 위 절연기 간이 해소 되지 않는 것입니다. 5세祖 준公에 대하여는 아직도 구족보 계대를 고수하여 조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일부 족친이 있어 문헌을 상고한 바 우리 송정공께서 기록하 여 남기신 송정문집에 고려16대 예종이 준조에게 내리신 어필 시가 우리문 중 판윤-송정 종가에서 가보로 전승되어 오다가 임진병란때 소실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사실이 바로 준조가 우리문중의 直祖임에 대한 문헌상의 고증이 되는 것입니다. 이로써 창보 선조인 창주공께서 준조를 족보에 올리 지 않은 사유인 직조(直祖)여부에 대한 의문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의문점으로 지적될지도 모를 사항은 진양하씨 세계변상 준조의 직함으로 내시주부라고 기록하였는데 이는 고려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기록 이므로 내시위(內侍衛)주부를 약기(略記)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내시위 주부는 조선시대의 환관이 담당하던 직책이 아니고 고려조 궁중 의 의장(儀狀).儀容을 담당하는 종7품의 직책인 것입니다. 따라서 시조공의 현손 준조가 환관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기우에서 우리 조상으로 족보에 등재 하지 않는다면 이는 완전히 오류인 것입니다. 시조공의 후손은 구국순절공신 의 자손으로서 고려 왕조 대대로 관직등용의 특전을 받아 왔으므로 시조공 의 현손이 환관이 될 필요도 없었으며 행여나 여사하였다면 나라로부터 문 책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일인데 고려조정에서 환관으로 봉직한다는 것은 - 5 -

6 어불성설에 해당된다고 하여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창주공께서 내시주부라 고 기록한 시조공의 현손 준조는 우리문중의 5세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준 조를 족보상에 5세조로 모시는 것은 후손으로서 정당하고 당연한 의무입니 다. 1999년 판윤공파가 주도한 기묘보에서 上系 계대를 역사적 사실에 맞게 변 정(辨正)하여 시조공의 현손 준조를 5세조로 올림으로서 송정공께서 족보서 문 말미에서 강조하신 무홀차보(毋忽此譜: 족보의 관리를 소홀히 하지않음따라서 오류를 오류로 방치하지 않음)와 창주공께서 세계변에서 上係 系代 모순점의 변정을 바라는 유훈이 완수되어 비로소 우리종사의 상계 계대가 사실대로 사리에 맞게 정리된 것입니다. 진양하씨 世系辨(창주公 찬) 말미의 유훈 내용 直恐 後人見此譜者 以博士 認爲 平章之子 故聊記一 二 以竢知者 직공 후인견차보자 이박사 인위 평장지자 고료기일 이 이사지자 이 족보를 보는 후손들이 박사공을 시조공의 아들로 인식할까 염려되어 본 세계변에 한,두가지 기록하니 이를 밝혀 알리는 자를 기다린다 깊이 생각해 볼 때 모르고 오류를 범하면 용서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알면서 도 오류를 지속하여 후손에게까지 누를 끼치는 일은 단연코 배제되어야 할 것이므로 본 서를 통하여 이를 강조하고자 합니다. 조상님들의 유업이 현세대를 통하여 후세에 올바르게 전승된다면 우리 당대 의 의무를 조금이나마 이행하는 것이 될 것이므로 일족 여러분께서 이책을 정감을 가지고 읽어보시고 종사에 대하여 다음 세대를 해득시키는 자료로 활용하여 주시면 큰 영광이 되겠습니다 시조공 34세손 송정공파 하홍근 근서 - 6 -

7 1. 계대 연구자료 가. 증문하시랑동평장사 하공진공(河拱辰公) 사적기?~1011, 경종 즉위 전후 ~ 현종 2년 고려 충절신 하공진공(河拱辰公)은 진양하씨(晋陽河氏)의 시조(始祖)이다. 고려 제6대 성종(成宗 13년994)에 압록강 구당사(鴨綠江 勾當使)에 임명(任 命)되었으며 제7대 목종(穆宗)때에는 중낭장(中郎將)으로서 왕의 호위임무를 맡았다. 이어 상서좌사랑중(尙書左司郞中)에 올랐다. 태조(太祖) 왕건(王建)의 손자 대량원군 순(大良院君 詢)을 삼각산 신혈사 에서 모셔와 제8대 현종(顯宗)으로 옹립하는데 공을 세웠다. 현종은 대량원 군 시절 목종의 모후 천추태후(千秋太后)의 외척인 김치양(金治陽)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자식이 없는 목종이 12세 연하의 당숙인 대량원군으 로 왕위를 잇게 하려 했기 때문이다. 김치양은 천추태후와 사통하여 얻은 자 신의 아들이 목종의 후사가 되도록 하기 위해 대량원군을 죽이려 했던 것이 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목종은 고려의 사직이 타성(他姓)에게 넘어가는 것 을 막기 위해 서북면 도순검사(西北面 都巡檢使) 강조(康兆)를 개경으로 불 러들였다. 하지만 개경에 들어 온 강조는 김치양 일파를 제거하는데 그치지 않고 목종(穆宗)을 폐한 뒤 살해하였다. 이것이 강조(康兆)의 정변 이다. 고려가 친송(親宋) 정책을 펴는데 불만을 품고 있던 거란족의 요(遼)나라는 고려의 내우를 침공의 빌미로 삼았다. 요나라 성종(聖宗)은 현종 1년1010 신하로서 임금을 죽인 강조의 죄를 묻는다는 구실로 40만 대군을 직접 이끌 고 우리나라에 쳐들어왔다. 이것이 바로 거란의 2차 침공이다 거란군과 대적한 강조는 통주(通州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패배한 뒤 사로 잡혀 죽음을 당했다. 고려의 주력군을 물리친 거란군은 그 기세를 몰아 개경 을 함락하기에 이르렀다. 현종은 남행으로 몽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몽진행 차가 양주 도봉사에 머무르고 있을 때에 왕의 행재소를 찾아 배알한 하공진 은 거란의 침략 명분이 강조의 시해사건에 있었던 만큼 강조가 이미 사로 잡혀 죽임을 당한 이상 사신을 보내어 화의를 요청하면 반드시 회군할 것입 니다 라며 화의 사신 파견을 상주하였다. 이에 현종은 하공진을 거란 진영 에 보내어 화의를 요청키로 하였다. 고려왕을 추격하여 현종의 행재소와 지척의 거리(자전거로 40분 소요)인 창 화현(昌化縣:현 경기도 양주)까지 도달한 거란의 선봉을 하공진이 화친사의 자격으로 조우하여 능변으로 적들이 추격을 멈추고 되돌아가게 한다. 경각의 - 7 -

8 위기에서 현종이 살아 남아 후일을 기약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공진은 국왕은 어디에 있느냐 는 요나라 성종의 물음에 강남 수만리 밖으로 떠나서 지금 어디에 계신지 알 수 없다 고 답 하였다. 당시 요나라 군대는 비록 수도 개경은 함락 했지만 곳곳에서 고려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 딪히고 있던 터였다. 성종은 하공진으로부터 국왕이 이미 먼 남쪽지방으로 피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이상의 추격을 포기하고 철군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하공진공과 호조 원외랑 고영기(高英起)를 인질로 삼아 함께 데리고 갔 다. 인질이 된 하공진공은 요의 성종에게 충성을 바치는 태도를 취했다. 성 종의 환심을 산 하공진은 고영기와 함께 본국이 이미 멸망하였으니 자신이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점검하고 돌아오겠노라고 청하였다. 물론 탈출을 위한 계교였다. 그동안 보인 거짓 충성심에 하공진을 깊이 신뢰한 요의 성종은 이 를 허락했다. 그러나 고려왕의 환도 소식이 전해지자 마음을 바꿔 하공진에 게 연경(燕京): 현 북경에 살도록 명했다. 첫 계교가 실패하자 하공진은 준마 를 몰래 매입하여 다시 탈출을 도모했으나 발각되고 말았다. 요나라 성종의 직접 신문을 받게 된 하공진은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고려의 신하로서 어찌 두 마음을 품을 수 있느냐 며 너희들을 섬겨 살기 를 원하지 않는다. 고 외쳤다. 성종이 하공진의 기개에 감복하여 갖은 방법으로 마음을 돌려보려고 하였 으나 하공진을 회유할 수는 없었다. 마침내 하공진은 간을 꺼내어 씹히는 참 혹한 죽음을 당하기에 이르렀다. 현종 2년 월의 일이었다. 현종은 하공진의 구국순절에 대하여 교지를 내려 그 공훈을 찬양하고 아 들 하칙충(河則忠)에게 녹과 관직을 올려주었다. 하공진에 대한 현창은 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제11대 문종文宗 6년1052에는 왕이 거란군 침입 때 하공진은 일신을 나라에 바치기로 작정하고 적진에 직접 들어가 세치의 혀로서 대군을 물리 쳤다 고 치하했다. 이와 함께 문하시랑동평장사로 추증하고 공신각에 하공진 의 영정을 모시도록 했다. 또 아들 하칙충에게 품계를 뛰어 넘어 5품직을 내 렸다. 제16대 예종睿宗 5년1110 9월에는 왕이 재상급 고관들과 천수전(天授 殿)에서 연회를 베풀었는데 연극으로 하공진의 업적과 순절을 찬미하자 왕이 감격하여 하공진을 추념한 다음 그의 현손 내시위위內侍衛尉 주부注簿 준濬을 합문지후(閤門祗侯)로 삼고 시(詩)한수를 지어 하사하였다. 이 어필 詩는 판 윤.송정 종손가에서 가보로 전승되어 오다가 임진병란때 소실되었다. 하공진은 세치의 혀로 수십만 대군을 물리쳤으며 그의 장렬한 최후는 오 - 8 -

9 래도록 살신보국(殺身報國)의 표상이 되었다. 조국을 향한 일편단심은 년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참고 : 고려통일 대전지(高麗統一大殿誌) 하공진 편] 나. 족보 변천사항(族譜變遷事項) 1) 1416년 진양부원군신도비 음기(陰記) 상의 자손록(子孫錄) 계대(系代) 始祖 河拱辰...博士公 卓回 -탁회子 정재 -정재子 남수 -남수子 昭 -소子 부심 -부심子 식 -식의子 시원(신도비主 윤린공의 親考 -시 원子 진양부원군 하윤린 -정사.좌명공신 의정공 하륜 시조公과 탁회祖 사이는 부자관계를 기록하지 않았으나 탁회祖이하 부터는 부자 관계를 명시하여 기록하였슴 2) 1605년 을사보(乙巳譜) 을사보 족보는 창주공(滄洲松) 하증(河 )선조께서 창보(刱譜)를 하셨고 서문은 송정 河受一 선조께서 찬(撰)하셨다. 족보는 현재 전해지지 않으며 서문에 의해 족보가 처음 만들어 졌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서문을 을사년(1605)에 찬(撰)하셨으므로 을사보라 칭함. (송정문집 p131참조) 3) 1698년 무인 중수보(戊寅 重修譜) 계대(系代) 一世 天 二世 地 始祖 河拱辰 - 卓回 三世 玄 - 挺才 四世 黃 - 南秀 중수(重修)라는 명을 붙인 것으로 보아 1605년에 처음 족보를 만든후 93년 후에 족보를 다시 중수(重修)를 해서 족보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 족보는 필사본이며 표지는 진양하씨 족보 무인년 3월로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되어있고

10 이때 서문은 滄洲公 河 선조께서 1621년에 창변(創辨)하신 진양하씨 세계변을 85자를 빼고 족보서문으로 수록하였다. 진양하씨 세계변은 하증 선조께서 1605년에 乙巳譜를 창보(刱譜)하시면서 박사공의 계대를 2세로 설정함에 대한 문제점들을 지적하여 남기신 문헌이다. 진양 하씨 세계변은 진양지 추록에 수록 되어 있다 4) 1719년 기해보 계대(系代) 一代 二代 三代 四代 始祖 河拱辰 - 河則忠 - 河卓回 - 河挺才 서문은 지명당 하세응선조께서 찬하셨는데 현 시중에서 볼 수 있는 기해 보 복사본에는 창주공께서 찬하신 진양하씨 세계변을 본 기해보의 서문으로 표제를 바꾸어서 달고 있으며, 단지공 하협(河悏)선조의 손자 하형(河 )선조 께서 발문을 지어셨다. 무인중수보(1698)가 발간된 21년 후 족보를 발간 하 였는 데 이때 시조공의 아드님 칙충(則忠)선조를 시조공의 아드님으로 모셨 다. 칙충공이 시조공의 아드님이란 근거는 다음과 같다. 근거(根據) 동국통감 척록(東國通鑑摭錄) 中略-문종6년(1052) 임진 춘3월에 교서를 내려 좌사랑중 하공진은 통화 28년에 있었던 거란병 침입시에 적에 다달라 일신을 망치면서 세치의 혀를 능변으로 능히 대적을 물리쳐 형용을 그려 공신각위에 모심이 가하다 하고 그의 아들 칙충(則忠)을 불러 5품직을 주고 이어서 그 공훈을 기록하고 상서공부시랑의 벼슬을 추증하다. 이 기록을 근거로 하여 칙충공을 시조공의 아드님으로 수록하다. 5) 1999년 판윤공파 파보(判尹公派派譜) 계대(系代) 始祖 二世 三世 四世 五世 河拱辰 - 則忠 - 失諱 - 失諱 - 六世 濬 - 卓回 七世 挺材

11 판윤공파보(判尹公派譜)는 1999년에 발간되었는데 계대가 3대가 늘어났다 계대가 3대가 늘어나게 된 이유는 준(濬)선조가 시조공의 현손이라는 사서 (史書)에 근거하여 준(濬)선조를 시조공의 현손으로 모신 것이다. 사서 내 용은 다음과 같다. 근거 사서(史書) (1) 고려사 척록(高麗史摭錄) 994년(성종 13년甲午)에 이승건을 압강도 구당사로 삼았다가 얼마 뒤에 하공 진을 보내어 교체하다. 1009년(목종 12년己酉)에 친종장군 유방, 중랑장 유 종, 탁사정, 하공진으로 근전문을 늘 지키게 하다. 1010년(현종 원년경술) 5월에 상서 좌사랑중 하공진과 화주 방어중 유종을 원도로 귀양 보내다 공진이 동 여진을 치다가 패함을 보고 유종이 한탄하더 니 조금 뒤에 여진족 95명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매 유종이 모두 살해한 연고 로 함께 귀양살이를 하다. 12월 계해에 하공진과 유종을 불러 돌아오게 하 고 그 벼슬을 도로 주다 임신에 왕이 후비와 더불어 거란병을 피하여 남으 로 거동 할 새 갑술일에 양주에 도달하여 공진과 호부 원외랑 고영기에게 표상을 받들어 거란 진영으로 화의를 청하다 1011년(현종 2년辛亥) 12월 기 유일에 거란이 하공진을 살하다. 1110년(예종 5년庚寅 )9월 갑술일에 왕이 여려 재상과 천수전에서 연회를 하드니 날이 밝아서야 파했는데 왕이 시를 지어 유신에게 명하여 화답게 하 더니 우인이 있어 선대 공신 하공진을 기려 층미 있는 놀이를 하니 왕이 그 충혼을 추모하여 그 현손 내시위 주부 濬을 합문지후로 삼고 연이어 절 구 시 한수를 지어 하사하다 (2) 동국통감 척록(東國通鑑摭錄國譯) 中略睿宗 庚寅五年 九月 甲戌 王宴諸宰樞于天授殿 達曙乃罷 王賦詩 命儒臣和進 有優人 因戱稱美先代功臣河拱辰 王追念其功 以其玄孫內侍衛主簿濬 爲閤門祗

12 後 仍製詩一絶賜之 - 中略 중략예종 경인 5년(1110) 9월 갑술 왕이 천수전에서 여러 중신(重臣)들과 연회 를 베풀었는데 새벽이 되어서야 파 하였다. 왕이 詩를 지어 유신(儒臣)들에 게 화답시(和答詩)를 지어 올리게 하였다. 어떤 광대가 선대 공신 하공진을 찬미하는 연극을 하였는데 王이 하공진의 공적을 추념하였다. 그 현손(玄孫) 인 내시위주부(內侍衛注簿) 준(濬)을 합문지후(閤門祗侯)로 삼았고 인하여 (詩) 일절(一絶)을 지어 하사(下賜)하였다. (3) 고려사절요 경인 5년(1110) 因戲稱羔先代功臣河拱辰 王追念其功 以其玄孫 衛尉注簿 濬 爲閣門祗候 인희칭고선대공신하공진 왕추념기공 이기현손 위위주부 준 위각문지후 仍製詩賜之 잉제시사지 연극으로써 선대의 공신 하공진(河拱辰)을 칭찬하니,왕은 그 공을 추념하여 그의 현손 위위주부 준을 합문지후로 삼고 시를 지어 하사하였다. 준(濬)선조는 위와 같이 사서(史書)에 명시되어 있는 근거에 의해 1999년 판 윤공파보 보사시 준(濬)선조를 시조공의 현손으로 모신 것이다. 다. 탁회(卓回)선조 관련 문헌 사문박사 탁회公은 고려 23대왕 고종조(1213~1259)때에 벼슬을 하셨다 는 기록이 하륜 의정공께서 세운 진양부원군 신도비와 증헌납군시서에 수록 되어 있다. 시조공께서 辛亥年(1011)에 구국순절 하셨고. 탁회조가 시조공의 아들로써 고려 고종조에 벼슬을 하셨다면 아버지와 아들사이에 년수가 200 여년 차이가 난다. 을사보 창보시에 시조공이신 아버지와 2세조로 계대한 탁회조간의 사이에 200여년 차이가 나는데 이 내용은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할 것이다

13 1) 증 종형 헌납군 시서(贈宗兄獻納君詩序) 우리 조상은 대대로 진양(晋陽)의 사족(士族)이었다. 진양은 삼한시대(三 韓時代)에는 진한(辰韓)에 예속(隸屬)되었고, 삼국시대(三國時代)에는 신라 (新羅)에 예속되었다. 고려(高麗)시대에 가서 신라를 통합하였는데, 우리 좌사랑중공(左司郞中公)이 현왕(顯王)의 조정에 공이 있어 증문하시랑동평 장사(贈門下侍郞同平章事)를 증직(贈職)하였고 그 뒤에 사문박사공(四門博 士公)이 고왕(高王)의 조정에 벼슬하였는데, 당시에 바야흐로 난리가 많음 으로 어버이의 늙음을 빙자하여 벼슬을 내놓고 시골로 돌아가 그 아들과 손 자를 가르쳐서 대대로 과거에 올랐다. 그 끝 손자의 증손은 우리 증조인 진원군공(晋原君公)이요, 그 둘째 손자의 증손은 헌납군의 증조인 천남처사(川南處士)이다. 대대로 같은 시골 에서 살며 아침저녁으로 왕래하고 출입할 때 서로 기다리고, 환란이 있으면 서로 구원하며 농사짓고 글 읽는 즐거움을 같이 하고 명절 때에 어울려 놀 며 친애(親愛)함이 돈독하여 촌수가 멀다 해도 조금도 덜하지 않았다. 내가 어렸을 때에 헌납군이 나보다 아홉 살이 많아 먼저 향교에 들어갔고 내 나이 열다섯에 비로소 향교에 가서 같이 글도 읽고 시도 지은 지 5년 만 에 뜻밖에 내가 먼저 급제하고 헌납군은 학업에 더욱 진력하여 그 뒤 12년 만에 높은 과거에 뽑혀 성균관(成均館)에 벼슬하다가 갑자기 예관(禮官)으 로 옮기고 다시 나가 군수가 되었는데 백성에게 은혜로운 정사를 한 점을 사람들이 칭찬하였다. 벼슬을 내놓고 한가히 산수 사이에 있는 지 수십년 만에 조정의 공론이 노성한 사람으로 존중히 여기어 과관(課官)으로 천거하 니 헌납군이 70여세가 되었지만 정신과 기운이 조금도 쇠하지 않아서 조정 에 들어올 적에 긴 눈섭과 흰머리로 화락하게 나아가고 물러가니,주상은 예 로 대우하고 조정의 백관 들은 우러러 쳐다보았다. 거룩한 조정에 빛을 내 는 것이 적지 않았다. 여러 사대부들 중에 안면이 있는 사람은 시詩를 지어 축하하니 좌정승 이곡선생(移谷先生)이 동년생(同年生)이다. 하며 극진한 예로써 대우하고 그 시에 화답해 주었다. 헌납군이 나에게 그 책 위에 서문 을 써 달라 하기에 나는 말하기를 옛날 사람이 재상을 팔 다리라 하고, 간 관을 이목(耳目)이라고 하였다, 팔다리와 이목이 비록 크고 작은 차이는 있 으나 원수(元首)의 한 몸이 된 것은 같으니 어떤 것은 중(重)하고 어떤 것 은 경(輕)하다 할 수 없다. 선비가 이 세상에 나서 임금이 알아줌을 입어서 간관이 되었다면 또한 잘 만났다고 아니할 수 없다. 나는 재주도 없이 공연

14 히 정승(政丞)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헌납군은 임금의 부름을 받아 간관이 되었으니 이것이 모두 조상들이 덕을 쌓고 어진 일을 행한 음덕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발현(發顯)된 것이 아니겠는가. 팔다리의 책임은 내가 참으로 부 끄러움이 많지만 이목의 책임은 그대가 잘해야 한다. 하였다. 헌납군은 말하기를 나는 늙었으나 이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에는 감히 힘 을 다하여 우리 조상에게 욕을 돌아가지 않게 할 생각을 안 할 수 있겠는 가. 하였다. 내가 듣고서 기뻐서 그 말을 서문(序文)으로 쓴다. 註 문충공(휘 崙)이 종형 득부得浮를 위해 지은 시의 서문이다. 동문선에 실려 있다. 헌납군은 조선시대 사간원司諫院 정 오품 벼슬을 말하며 태종 때 세의 나이로 임금의 부름을 받아 간관이 된 것을 적은 글이다. 헌납군의 증조부는 천남 처사이며, 사문박사(卓回)의 끝 손자가 진원군(晋原君) 湜선조의 증조이시다. 문충공보다 연령이 9살 많다. (원문) 贈宗兄獻納君詩序 <河崙 撰> 吾祖宗世爲晋之士族晋在三韓時隷辰韓及三國時隷新羅至高麗氏合新羅吾 左司郞中公有功顯王朝贈門下侍郞同平章事其後四門博士公仕高王朝時方 多難以親老乞免還鄕敎養子若孫連世登第季孫之曾孫則吾曾祖晋原君公仲 孫之曾孫則獻納君之曾祖川南處士公世居一鄕晨夕徃還出入相俟患難相救 農圃圖書之同樂歲特伏臘之與游親愛之篤不以世疎而小殺矣予少日獻納君 長我九年先我在鄕校予年十五而始赴校與之講習唱和者五年予不意濫先登 第獻納君學益進後十二年而捷高科入仕成均驟遷禮官出爲郡寄人稱有惠政 官罷官閑以山水自娛者數十年廷議重老成擧以爲諫官獻納君年餘七十神氣 不小衰及其來朝厖眉皓首進退雍容主上禮貌廷臣聳觀其爲盛朝之賁飾不爲 小矣諸大夫士有舊者爲詩以賀之左政丞移谷先生公謂曰同年生待以優禮和 其詩爲贈獻納君請予序其卷端予曰古之人謂宰相爲股肱諫官爲耳目股肱耳 目雖有大小之殊然其爲元首之一體則同不可以輕重言也士生斯世見知於人 主而得爲諫官亦不爲不遇矣予以不才承乏相職而獻納君彼徵爲諫官豈非祖 宗積累之厚而發於吾二人也哉股肱之責則予實有愧矣耳目之責君其勉之獻 納君曰予老矣苟一息之尙存則敢不盡力以無忝我祖宗爲念哉予聞耳喜之書 以爲序

15 2) 진양하씨 세계변(世係辨) 하씨가 진주의 대성으로서 그 근본은 동일하되 파별이 삼분되니 그 일은 고려 증 문하시랑중서평장사 휘 공진(拱辰)공 이시니 즉 우리의 소자출이 라 역년이 오래되어 자손이 번성하나 병화 뒤에 보첩을 보전치 못하니 오 호라 한 자손으로서 마침내 도인같이 서로 알지 못하게 된다면 어찌 크게 슬프지 아니 하리오 내 이것이 두려워 부지런히 가첩을 구하다가 다행이 이상사(李上舍) 명 덕(明悳)씨 집에서 한권을 얻으니 즉 우리 성족 하여관 河汝灌의 소장한 바라 공경하고 중애하여 견문을 참고삼아 내외 지유를 열기하야 고쳐 일본 을 선사(線寫)하니 길이 가중의 보물이 될 지라 한번 피람(被覽)하면 선대 의 소목분파를 역역히 알게 되니 이 또한 다행치 않으리요? 그러나 세대가 오인되어 의심됨을 그대로 전하지 못하겠기에 변명치 알 수 없는 바라 평장공의 아드님이 탁회 라 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니 변춘정이 지은 진산부원군 윤린(允潾) 신도비에 왈 선세 좌사랑중 휘 공진공이 유공 현왕조 하야 증 문하시랑중서평장사하고 사문박사 휘 탁회 사 고왕조 하다 가 이 친노로 환향이라 하였으니 이를 본다면 평장공은 현종 때요 박사공 은 고종 때니 왕실 13세에 년 수는 200년이 지났으니 박사공이 평장공의 아드님이란 고증이 잘못되었고 또 려사에 현종이 교서를 내려 공신을 기록 할 때 평장공의 아드님 칙충에게 록자를 더하고 문종6년에 또 칙충에게 5 품직을 주었다. 예종5년 우인 금지 비우이 연극으로서 선대 공신 하공진을 칭미하더니 그 공로를 생각하여 현손 내시주부 준濬으로 합문지후로 삼았다하니 이를 본 다면 박사가 칙충과 지후에 직파인지 아닌지는 자상치 않으나 세대가 절연 함은 틀림이 없는 바요 1522년(중종17년, 가정 초년)에 조趙 단성 응경(應 卿)씨가 또한 河家 외예로서 정성을 다 하야 글을 모아서 진양 4대성 족보 를 만드니 3하 4강 10정의 분간이 절연명비라 진주 향사청에 장치하니 마 땅히 상고하여 여온이 없는 터이나 성산 이순(李淳)씨가 내외 족보를 수집 하면서 하씨 내 파중에 탁회로서 칙충의 개명이라고 진주 향사당에서 얻었 다하니 저어하건대 조 단성의 사대성 족보도 고증이 완전치 못 한 바라 또 한 살피건대 려사 의종조에 박사공의 아드님 정재(挺才)공께서 십운시로 장원 되었으니 의종부터 아래로 고종조까지 4대를 지나 7. 8십년이라 어찌 박사공이 70~ 80년 후에 면관하고 아드님이 7. 8십년 전에 장원 할 수 있 겠는가?

16 그렇다면 박사공이 고종조에 벼슬했다는 것은 려사에 나타나지 않았고 또 한 춘정이 어디에 근거한바 되어 말했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대저 세대가 절원하고 화하여 박사공 이상으로 평장공 이하에 궐루되고 산실된 것은 고거 할 수 없는지라 고로 하 승지 락洛이 선대 비문을 지을 새 또한 평장공으로 부터 3. 4대를 지나서 박사공에 이르다 하였으나 이로 서 본다면 어찌 3. 4대 뿐 이리요 후인이 이 족보를 보고 박사공을 평장공 의 아드님으로 오인 할 가 저어하여 애오라지 한두 가지 증거를 기록하여 서 아는 자를 기다리노라 서기1621년 8월 상한 박사 16세손 진사 하증 근지 2. 대동보 발간에 대하여 가. 족보 현황 1) 족보 발간 연혁 가) 1592년 임진왜란 이전 : 족보가 있었으나 임진 병란으로 소실 (1) 송정공께서 찬하신 진양하씨 족보서문에서 족보가 이전부터 있었으나 임진병란때 소실되었다고 기록하셨으며 창주공께서도 하씨세계변에서 임란중에 보첩을 보전하지 못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음. 송정공께서 창주 공이 성보한 임란후 첫 족보인 을사보 서문을 1605년 찬하시면서 족보를 소중히 관리할 것(勿忽此譜)을 후손에게 유훈으로 남기고 있슴. (2) 송정공문집중-어필 모신 쌍 장자와 가훈 적은 두 병풍(御題雙障子 家訓 兩屛風)이 임진병란중 소실된 것은 관리상의 불비에 기인한 것으로 자책하 는 심경을 시문으로 남기셨음. 위 족보관련 (1)항의 족보서문과 (2)항의 가보 소실을 안타까워하는 기 록을 보면 족보와 예종이 하사한 어필이 판윤.송정종가에서 전승되고 있었 으나 임란중 소실되었음을 알 수 있음 (본자료 25쪽하단~26쪽상단 송정문집/춘일회구거春日懷舊居 참조) 나) 1605년 창주공 성보-을사보 (1) 1세 시조공 : 문하시랑 동평장사공 휘 하공진 (2) 2세조 : 고려 고종조 사문박사 하탁회

17 (근거) 진양부원군 신도비문 (영락13년 수정본) : 四門博士諱卓回 仕高王朝 以親老 免官還鄕 사문박사휘탁회 사고왕조 이친노 면관환향 비문에서 박사공은 학사공을 낳고 학사공은 남수공을 낳고...상계의 부자 관계를 명시하고 있으나 시조공과 박사공간의 父子 출생관계 如否는 기록하지 않고 있슴 (3) 하씨세계변에서 박사공을 시조공의 아들로 계대함은 사리에 맞지 않 으므로 고증을 찾아 계대를 시정할 것을 후손에게 유훈으로 남기셨음. (4) 창주공께서 1621년에 창보하셨다고 기록하기도 하나 1605년에 이미 성보하여 송정공께 보여드려 송정공께서 서문을 찬하셧고 동 족보는 현재 서문만 실존함. 기록상 창주공 성보연대는 1605년(을사년)으로 그 슬러 올라가므로 족보의 명칭을 乙巳譜로 하기로 일 시조공 기제사 봉행후 개최한 대종회 고문회의에서 결정. 다) 1698년 무인중수보 -필사본 라) 1차간행 : 1719년 기해보 (1)칙충공을 각문중 족보에서 2세조로 계대한 문중이 많고 고려사 역사서에 의거 시조공 2세로 계대함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여 기해보에 올림. 고려8대 현종16년(1025년)과 문종6년(1052년)에 시조공의 공훈을 기려 아들인 칙충공에게 벼슬을 올려준 사실이 역사서의 기록에 나옴. (2) 운수당공파는 시조공의 후손이기는 하나 중간파분이 실전되어 족보 하 편 끝에 적음. 마) 2차간행 : 1770년 경인보(단목에서 발문을 담, 1774년 하한통 봉사손) 바) 3차간행 : 1820년 경진보 사) 4차간행 : 1900년 경자보 (낙수암에서 중간) 아) 5차간행 : 1936년 병자보 자) 6차간행 : 1965년 을사보 (사곡 하종근 종손 서문) 차) 7차간행 : 1999년 기묘보 (판윤공 파보-신족보계대로 변정) (1) 정보화시대가 열림으로써 옛문헌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됨에따라 기묘 보사시 고려正史에 기록된 시조공의 현손 준조를 5세로 계대하여 모심

18 합문지후공 준祖를 5세로 계대함에 따라 3세와 4세는 고증을 찾지못하여 3세(실휘), 4세(실휘)로 계대하여 신계대를 채용함. 그러나 종전의 구계대 고수 문중에서는 문중별 독자 파보를 만듦으로써 판윤공파의 신계대와 종 전의 구계대로 계대체제가 2원화되고 종전의 대동보에서 각 문중별 독자 파보로 분리됨. (2) 1999년 이후 창주공파, 죽헌공파, 단지공파 등이 문중 파보 독자 발간 (3) 신계대와 구계대의 중요 차이점 계대 구 계대 신 계대 2세 3세 4세 5세 6세 비 칙충 탁회 정재 남수 소 칙충 실휘 실휘 준 탁회 고 300년전 첫간행 기해보 체제 고수 史書에 근거 구족보에 누락된 상 계 3대조를 3세~5세로 올려 변정 (4)운수당의 5대손 진영공의 묘역에서 매비(埋碑)가 발견되어 하륜정승의 서자인 상호군 휘 영이 동 문중의 직조로 고증되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운수당의 조고인 산음현감공 휘 순을 上記 상호군 휘 영의 子로 등재하고 운수당은 시조공 18세로 계대함으로써 비로소 혈족간의 소목관계를 밝힐 수 있게 됨. 운수당공파중 안린을 중시조로 하는 세보파에서 위 내용에 대하여 수정 요구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대법원 상고심에서 족보수록과 관련하여 법적 보호의 대상이 되는 신분상. 재산상의 사건이 아니므로 소송제기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명예훼손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여 상고를 기각하고 원 고 패소 원심을 확정 2) 문중 상계 생몰 연대 재구성(추산 ) 고려왕조 王家 우리문중 系代 휘 수명 王代數(直系) 1 시조 ~7 2 칙충 (칙충의 자) 실휘 ( 손자) 실휘 ( 증손) 준 재세기간 왕조 재세 기간 수명 성종 목종 현종 (현종의 자) 문종 ( 증손) 헌종 ( 손자) 16( 증손) 숙종 예종

19 고려왕조 王家 우리문중 系代 휘 재세기간 수명 王代數(直系) 현손) 탁회 ( 현종 5대손) 정재 ( 6대손) 남수 ( 7대손) 소 ( 8대손) 부심 ( 9대손) 식 12( 10대손) 6 (칙충의 7 ( 왕조 재세 기간 수명 현손) 인종 ( 5대손) 명종 ( 6대손) 강종 ( 7대손) 고종 ( 8대손) 원종 ( 9대손) 시원 ( 1 0대손) 평균 충렬 왕 충선 왕 평균 참고) 사료1-1) 고려역대왕 직계도 참조 가) 상계선조 생몰년도 재구성표의 검토 및 宗史상 시사 점 (1) 시조공과 진강부원군 휘 시원공의 몰년은 역사서와 신도비에 의해 고증 (2) 위 우리문중 직계 선조 연대 추산표는 고려의 직계 기준 역대 왕의 연 대표와 비교 할 때 유사성을 확보하고 있으므로 역사적 실 사례에 근접 한 것임 시조공께서 순절한 현종2년 1011년에 현종은 19세(1009년 17세에 등 극), 칙충공은 16세 (시조공 순절 45세 추정-득남 29세 추정=칙충공 16 세 추정)로 현종과 칙충공은 연령대가 비슷한 동시대인으로 추정됨. 준祖는 역사기록에 의거 시조공의 현손이므로 칙충공의 증손이고 예종도 현종의 증손이므로 위표에서 양인의 재세시기가 비슷한 것은 사실적임. 위표는 직계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며 예종이 준조에게 하사한 어필이 판 윤-송정공파 종가에서 가전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준祖가 우리종중의 직계 선조라는 증거가 됨. 본 종사연구자료 (붙임 1) 25쪽하단~26쪽상단 참조 역사서에서 준祖가 시조공의 현손이라는 기록은 부정할 근거가 없음 (3) 위 상계 재세기간에 대한 추산표는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1대 (다음세대 출생시 까지의 기간)는 30년을 통일적으로 적용한다면 누구나 큰 차이 없이 작성할 수 있을 것임

20 (4) 시조공 탄생시로부터 12세 시원공 몰년까지 361년을 12대로 나누면 1 세대 평균기간은 30.1년이므로 현실적으로 선조 12세대가 재세하였다는 것은 합리성이 있고, 시원공의 몰년은 고증된 것이므로 시조공의 생년을 서기 966년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무리가 없음 시조공의 탄생연도는 고려 조정에서의 지위와 역할을 감안하여 졸년인 1011년에서 45세를 차감하여 추정한 것임. (5) 헌종1년 1095년 시조공(顯廟功臣 河拱辰)의 자손 1인 등사 허용 시조공4세 (실휘)의 재세시대로 추정되는 시기 (1060년~1112년)의 보훈 조치 이므로 4世祖(실휘)의 실존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슴. 판윤종가 (중심) 평균수명 계산 비고 족보 계대 휘 생년 졸년 수명(세) 13 윤린 종파 14 륜 지돈 판윤공파 18 운수당 윤 운수당공파 19 희서 판윤공파 20 면 이하 상동 21 수일 완 억 세희 윤청 달중 경태 우현 봉운 재후 우진 영규 종근 평균수명 대 선조는 30세 이전에 조서하여 대상에서 제외

21 나) 상계 生歿연도 재구성(추정) 근거 계 대 휘 생년 몰년 수명 子출생時 父歿時 연령 연령 역사서,기록고증 시조 칙충 실휘 실휘 준 예종1110년 위위시(衛尉寺) 주부 (종7품) 합문지후(정7품), 비교적 하위직으로 30세 추정 몰년 1011년을 45세로 추정 문종1052년 상서공부시랑 미상 헌종(獻宗) 1년 1095년 十一月, 顯 廟功臣河拱辰 許其子孫一人 入仕 6 탁회 인종(1122~1146)시 문과급제,四門 박사(정8품).30세때 준祖56세로 以 親老免官還鄕 기록과 일치 년 :이자겸의난, 1135년 :묘청의난 사회혼란시기. 7 정재 의종5년1151년 십운시 장원,한림 원학사,.무신정권시대(1170년의종 24~1270 원종11) 8 남수 소 부심 식 시원 평균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군기소윤(軍器小尹). 몽고의 내 침(1231~1254년) 고려24대 원종 (1259년~1274년). 몽고침입시대.벼슬하지 않음 선관서승(膳官署丞).고려25대 충렬 왕(1274년~1308년) 조서하였으므로 생년은 歿年에서 42세를 차감하여 추정. 충선왕 복 위년(1308년) 식목록사. (주) 2세祖~12세祖 간의 평균 나. 문중별 파보 발간에 따른 문제점 1) 대종내 각 문중 파보에서 상계3대의 계대를 통일하지 못함에 따라 족보 계대가 2원화되어 혼란을 일으키고 있음. 2) 파보체계로 분리 발간함에 따라 타문중의 혈족에 대하여 소외감 우려 3) 구족보 체계에서의 문제점 가) 1719년 기해보 발간시 족보등재 기준 적용의 미흡: 시조공의 아들 칙충공은 족보에 2세로 정당하게 모셔졌으므로 역사서 내용을 고증으로 인정한 것이되므로 시조공의 현손 합문지후공 휘 준祖

22 역시 고려정사 내용을 고증으로하여 5세조로 모셔야 함이 타당하나 누락 되고 있음. 호군공의 발문에서 창주공의 하씨세계변을 존중하여 서문으로 올렸는바 창주공세계변에서 환성재공께서 시조공으로부터 3~4대를 지나 박사공 이라고 하신 것을 그 이상 (4대 이상)도 지나 박사공에 이를 수 있다고도 하셨는데 시조공으로부터 4대이면 현손인바 역사서에서 시조공의 현손으로 준祖를 기록하고 있으며 준祖를 지나 그 다음대인 6세조가 박사공이라고 하는 것에는 의문점을 찾을 수 없는 것이고 이는 환성재공, 창주공, 호군공 께서 지적한 론지와도 일치하는 것임. 나) 운수당공파의 계대문제를 밝히지 못하여 혈족이면서 소목관계를 알수 없는 부지소종래 不知所從來의 불명예 흠결을 우리족보에 안겨주고 있음. 다. 대책 1) 대동보체제 족보 발간 가) 대동보 발간은 각문중을 망라하는 사업이므로 각 문중의 합의하에 발간 함이 필수적임 나) 족보 수록 기준을 설정하여 엄격 적용하고 기준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수록 배제 2) 수록 기준(안) 가) 역사서에 수록된 사항은 고증으로 인정하여 반영 나) 역사서 이외 비문이나 문집에 수록된 기록은 해당문중의 해석을 거쳐 대종회의 의견을 참고함. 다) 기존 족보 내용중 오류가 발견되면 수정 - 선대로부터 시작된 오류가 대대로 후손에게 전승되는 것을 척결하고 문 중의 올바른 역사를 후손에게 전해 주어야 함. -우리족보의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진양부원군 신도비에서 원문이나 번역문중 오류사항을 확정하여 동 변정내용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함. 오류내용이 신도비문과 음기를 찬한 변춘정과 윤회, 또는 기타 참여자 등의 이해부족 또는 단순한 착오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으므로 오류를 포함한 그대로의 비문을 금과옥조로 취급할 것 까지는 없는 것임

23 3) 운수당공파의 계대문제 해결로 족보의 흠결 해소 노력 가) 시조공의 후손이라면 혈족내에서 양자를 주고 받는 것은 미덕이며, 큰 집. 작은집의 조상을 구별함이 없이 같은 조상으로 숭조관념을 가져야 함이 마땅. 나) 문제해결(안) 운수당공파중 통합보파는 운수당의 아들 휘 취굉공을 하륜정승공의 2남 상호군 휘 영公의 양현손(養玄孫)으로 입적하여 가칭 상호군공파로하고 시조공19세로 함 다) 고증이 밝혀지면 동 고증에 따라 확정. 4) 시조공의 현양(顯揚) 및 숭조정신 함양 시조공의 충절은 만인의 추앙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려조에는 그 공 훈이 대대로 자손에 미쳐 후손이 입은 은덕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음. 따라서 족보에 시조공을 현양하여 족보와 우리문중의 위상을 제고하여야 할 것이며 조상에 대한 숭조사업을 대대로 계승하여 나가야 할 것임. 시조공께서 후손에 남기신 은덕 (붙임 1. 시조공의 은덕 수록 史書 참조 ) 1) 고려 8대 현종 16년 1025년 시조공의 구국충절에 대한 훈공으로 아들 칙충공에게 록과 관직을 올려줌 2) 고려 11대 문종 6년 (1052년) 시조공을 문하시랑 동평장사공으로 추증하고 공신각에 영정을 모심과 아들 칙충에게 5품직을 제수함. 3) 고려 14대 헌종 1년 1095년 현종조 공신 하공진의 자손1인의 등용을 허락함-4세공(실휘)를 위한 보훈임 4) 고려 16대 예종5년 (1110년) 왕이 천수전 연회후 시조공을 추념하고 현손 하준에게 위위시(衛尉寺) 주부직에서 합문지후직을 제수하고 시 한수를 지어 하사함. 예종이 합문지후公 준祖에게 하사한 어필 시는 판윤.송정공파 종가에서 쌍장자로 모셔져 가보로 전승되어왔는데 임진병란때 소실됨. 5) 고려 26대 충선왕 복위년(1308년)

24 시조공의 내외 현손의 현손(즉10대후손)에게 전례에 따라 벼슬길을 열어줌(관직등용) -12세조 휘 시원공(1285~1327)의 재세시대로 진양부원군신도비에 공 은 식목록사(정8품)로 기록됨 6) 고려 27대 충숙왕 12년 (1325년) 역대공신의 공을 기려 그 후손들을 기존제도에 따라 음직으로 등용. 7) 고려 31대 공민왕 5년 (1356년) 역대 공신의 자손을 특별히 등용하여 우대함 (시조공13세 휘 윤린공 시기) 우리문증은 구국충절신의 후손가로서 고려 8대 현종 이후 王家직계 15代 중 7대의 왕으로부터 시조공에 대한 보훈으로 후손선조들이 관직등용의 우대를 받음. 라. 대동보 발간시의 문제점과 대책 1) 문제점 가) 최근 파보를 1999년 이후에 발간한 문중의 경우 1세대기간(30년)이 경 과하지 않아 현실적으로 신족보 발간에 대한 호응을 얻기가 쉽지 않음. 나) 대동보의 경우 각 문중의 수단을 취합하여야하므로 책의 분량이 방대하 여 발간 및 배포가 용이 하지 않을 것임 2) 대책 가) 각 파별 파보 독자 발간은 자제를 요쳥하고 문중별로 족보수요를 파악 하여 발간 여부를 결정. 나) 대동보의 각권을 문중별로 구분하여 제책함으로써<(예) 판윤공 문중:1 권~8권, 송강공 문중: 9권~ㅇ권,.>각 문중단위 권별 수요를 파악하여 발간 및 배포 구 분 문제점 대 책 대동보 소요 여부 현 족보가 1999년 이후에 발간 문중별로 족보 수요를 파악하여 된 문중의 경우 소요기간 (약30 발간여부 결정 년) 미경과 대동보 분량 방대 각문중의 수단 분량의 방대함으 문중별로 제책하여 문중별 권별 로 발간 및 배포의 어려움 수요를 파악하여 발간 및 배포

25 마. 끝맺음 족보는 직계 혈족과 방계혈족의 소목관계를 보여줌으로써 시조공으로부터 내려오는 같은 자손이라는 관념으로 돈목과 단결, 숭조정신을 함양시켜주고 있슴. 문중의 역사서인 족보를 올바르게 기록함으로써 후손들이 조상의 뿌리를 올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조상에 대한 도리이며 후손에 대한 책무임. 후손들이 현재의 위치와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얻는데 있어 바르지 못 한 역사서를 전승함으로 인하여 오도된 길로 인도하여서는 안되기 때문임. 과거사에서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일시적 의견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 나 그 시대에서 보편 타당성이 있으며 합리성이 부여 되어 있다면 과거나 지금이나 판단의 기준은 동일 할 것이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그 가능성을 검 토하고 의견의 차이를 해소하는데 노력을 하여야 할 것임. 종중회의 주요한 역할이 선조先祖의 유업을 계승하여 충효와 돈목,상조를 장 려하는 것이라면 후손이 선대의 실전失傳을 찾아 그 조상을 밝히고 혈족간 의 소목관계를 잇는 일에 적극 지원하여야 할 것임. 뿐만아니라 우리문중에 서 시조공 다음으로 문세門勢를 일으킨 하륜방조의 혈손을 찾아드리는 일에 도 역점을 두어야 함.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섭리에 의해 종중의 결속이 이 루어지는 것이므로 자식이 부모를 찾아 가는 일, 나아가 후손이 조상을 찾는 일을 권장하고 지원함이 마땅할 뿐만 아니라 우리종종회의 주요 현안사항 중의 하나로 하여야 함. 족보의 발간이 당위론적으로 필요하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부담감의 저항 이 더 크게 느껴지는 상황이라면 이 또한 신중히 판단하여야 함. 현실적으로 비용과 그 부담을 감수하려는 의사 여부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임. 따라서 대동보의 발간은 전 문중의 합의하에 추진되어야 함. 요약하면 올바른 역사를 족보에 수록하되 전 문중의 합의하에 시의에 맞게 대동보가 발간되어야 한다는 것임. <집필자 : 판윤.송정공파 하홍근 >

26 (붙임1) 시조공의 은덕이 기록된 역사서 사료 1. 고려사절요 1) 제3권 현종 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16년 을축(1025) - 6월에 교하기를, 강민첨(姜民瞻)과 하공진(河拱辰)의 공로가 모두 현 저한데도 포상이 후하지 못하였으니 각기 그 아들에게 벼슬을 올려주 라." 하였다. 본문(本文) - 六月 敎曰 姜民瞻 河拱辰 功勞俱著 旌賞未優 各加官其子 2) 제4권 문종 인효대왕 1(文宗仁孝大王一) 임진 6년(1052) - 5월에 제하기를, 좌사낭중 하공진(河拱辰)은 통화 28년에 거란 군사가 입하자 적과 맞서 자신을 돌보지 않고 뛰어난 말솜씨로 능히 많은 군사들을 물리쳤으니, 그 형상을 공신각에 그려 붙이고 그 아들 칙충 (則忠)은 계급을 뛰어넘어 5품직을 제수하라." 하였다 -8월에 제하여 한식(韓式)ㆍ문질우(文質牛)등이 성고(聖考)께서 남순(南 巡)하실 때에 호종한 공이 있었다 하여 아울러 좌우위 상장군을 추증하 다. 본문(本文) - 五月 制曰 檢校太師 內史令崔士威 在聖考朝 以淸節直道 屢 有裨益 弘濟艱難 保安宗社 以致中興 可配享廟庭 其甥姪未官 者,超授八品職 左司郞河拱辰 在統和二十八年 丹兵入侵 臨敵 忘身 掉三寸舌 能却大兵 可圖形閣上 超授其子則忠 五品職 - 八月 制以韓式 文質牛 奇理 金悅等 於聖考南巡 扈從有功 竝追贈左右衛上將軍 3) 제6권 헌종 공상대왕(獻宗恭殤大王) 을해 1년(1095) - 현종조 공신 하공진의 자손1인의 등용을 허락하다 본문(本文)

27 - 十一月, 顯廟功臣 河拱辰 將軍宋國華 及庚戌年 如契丹 見留 使副 許其子孫 一人 入仕 시조공 4세(실휘) 재세 (1060~1112추정) 시기에 고려14대 헌종(獻宗 )의 관직 허용은 4세公의 실존 사실을 대변함. 4) 제7권 예종 문효대왕 1(睿宗文孝大王一) 경인 5년(1110) - 9월에 여러 왕씨,재신과 추신에게 천수전(天授殿)에서 주연을 베풀고 밤 을 새우고서야 파하였다. 각각 폐백을 하사하였다. 왕이 시를 짓고 유신 에게 명을 내려 화답하여 올리게 하고, 물품을 차등 있게 하사하였다. 어느 광대가 연극으로써 선대의 공신 하공진(河拱辰)을 칭찬하니, 왕은 그 공을 추념하여 그의 현손 위위시(衛尉寺) 주부(注簿) 준(濬)을 합문지 후로 삼고 거듭하여(仍) 시를 지어 하사하였다. 주)위위시(衛尉寺):의장(儀仗)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 주)합문(閤門) :나라의 의식(儀式) 주)주부(注簿): 각 관청의 종7품 관직/ 지후祗侯: 정7품 관직 본문(本文) - 九月 宴諸王 宰樞于天授殿 達曙乃罷 各賜侑幣 王 賦詩 命儒 臣和進 賜物有差 有優人 因戲稱羔 先代功臣河拱辰 王 追念 其功 以其玄孫 衛尉注簿濬 爲閣門祗候 仍製詩賜之 [판윤공파족보 등재] 위 사료(史料)에 의거 송정공15세 하병태 종손께서 1999년 판윤공파 족보(判尹公派族譜) 기묘보를 발간하시면서 준(濬)선조를 시조공의 현손 (玄孫)으로 모시고 (시조) 하공진-(2세조) 칙충-(3세조) 실휘失諱 -(4세 조) 실 휘-(5세조) 준-(6세조) 탁회로 상계 계대를 온전(穩全)히 변정함 송정공 문집 卷之一 (1권32쪽) / 춘일회구거 2수(春日懷舊居 2首) -금서琴書는 7代 이은 가업인데, 화재 당해 一朝에 없어졌다. 누각은 쓰러져 느티나무 쓸쓸하고, 전원은 황폐해 국화 반쯤 남았다. - 어필 모신 쌍 장자와 가훈 적은 두 병풍(御題雙障子 家訓兩屛風)은 보관이 소홀해 도둑을 맞았으니, 난리 당한 탓이라 말하지 말아라.(誨盜由藏謾 休論喪亂中) 위 예종이 준先祖(1080~1137추정)에게 하사한 어필시(御筆詩)가

28 송정문집에 기록된 판윤.송정가에서 가보(家寶)로 전승하던 어필(御筆) 로 추정되다. 따라서 송정문집의 위 시문은 하증 방조께서 을사년 창보시 진양하씨 세계변에서 박사공이 칙충과 지후에 직파인지 아닌지는 자상치 않으 나 라고 하신 사항에 대하여 박사공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종중은 시조공의 현손이신 준조의 직파인 것을 밝혀주는 문헌임 2. 증보 동국문헌비고(增補東國文獻備考) -정조6년(1782)~광무 年間 편찬, 증보 및 보완 발간 - 廣州지평 이만운 편찬, 박용대 보완발간 1) 충선왕 복위년(1308) 사략 : 현왕조 공신 하공진 노전 양규 등 내외 현손의 현손을 예에따라 각 1명씩 초직을 허용 하다. 본문(本文) 顯王朝 功臣 河拱辰 盧戩 楊規 等 內外 玄孫之 玄孫 例以 一戶一名 許初職 2) 충숙왕 12년 (1325년) 사략 : 역대 공신의 기존 음직 자손은 구 제도에 의하고 갑술년 이후 전공이 있는 자 및 전망인의 자손을 각각 등용하라 하다 본문(本文) 歷代 功臣 蔭職幷依舊制其 甲戌年 以來 有戰功人及 戰亡人子孫 各加余用 3) 공민왕 5년 (1356년) 사략 : 역대 공신의 자손을 특별히 등용하고 장려하라고 명하다. 본문(本文) : 敎 歷代 功臣其子孫 優加 將用

29 (붙임2) 진양부원군 하공 신도비명 수정 전후 비교표 영락 11년 변계량 찬 비명 원전 영락 13년 수정 비명 원전 대비 永樂十一年歲在壬辰冬十月 議 永樂十三年歲在乙未冬十二月議 -원전을 2년 屬季 政府左政丞晉山浩亭先生 囑季 政府左議政浩亭先生 후 수정 良曰 惟我先考種德裕後 良曰 惟我先考種德不食 委祉 -용어 변경: 而予小子再與勳盟 濫登峻秩 後人 而余小子再 勳盟 位冠 정승 의정 且承恩典 封贈三世 此 百僚 且承恩典 封贈三世 此 -2구 委祉後 其碑于墓道 以示來世者 其碑于墓道 以示來世 俾知先 人 位冠百僚 宜 有 辭 塋之所在 而無敢或訛 宜有辭 삭제 而闕焉 子其筆之 季良不敢 而闕焉 君其筆之 季良不敢 -2句 俾知先 辭 謹按 公姓河氏 諱允潾 字所 辭 謹按 公姓河氏 諱允潾 塋之所在 而 開 晉陽望族也 先世仕高麗左 字所開 晉陽大族也 先世有左 無敢或訛 삭 司郞中諱拱辰 有功顯王 司郞中諱拱辰 有功高麗 顯三 제 朝 贈門下侍郞同中書平章事四 -曾祖不仕 삭 朝 贈門下侍郞同平章 事 曾祖 門博士諱卓回仕高王朝以親老免 제 考諱富深 及第隱不仕 官還鄕博士生挺才挺才生南秀南 -박사공~ 以 秀生邵邵生諱 深於公爲 祖自 下4 세 曾祖공 博士而下四世相繼登第曾祖公與 까지 출생관 其兄浩及扶又皆登第以國制廩其 계,급제,포상 母時人歆之 祖諱湜 贈純忠補祚 사실 삽입 祖考諱湜 贈純忠補祚 功臣輔國崇祿大夫判司平府事晉 功臣輔國崇祿大夫判司平府事晉 康君 考諱恃源 贈純忠積德秉 原君 考諱恃源 贈純忠積德秉 義補祚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 義補祚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 政府右政丞判兵曹事 晉康府院 政府右政丞判兵曺事晉康府院 君 娶承奉郞豊儲倉副使鄭諱均 君 娶承奉郞豊儲倉副使鄭諱均 之女 以元至治辛酉四月丁巳 之女 以元至治辛酉四月丁巳 生公姿質異凡兒年七歲丁內憂哭 生公 年七歲 丁內憂 呼泣盡 泣盡哀若成人然庚午始就學癸酉 - 姿 質異 凡 兒 哀若成人然庚午始就學 癸酉 鄕之長者 贈崇祿大夫議政府贊 삽입 鄕之長者 贈崇祿大夫議政府贊 成事判戶曹事姜公諱承裕見而奇 成事姜公諱承裕謂公曰 先世有 - 判戶曹事,見 之 以其子妻 功於國者 其後必昌 以其子妻 而奇之삽입 之 贊成性嚴 公父事之 至正 之 贊成性嚴 公父事之 至正 - 公 曰 先 世 丙戌 始仕忠穆王朝 爲式目都 甲申 始仕忠穆王朝 爲式目都 有功於國者 監錄事 丁亥春 姜氏得吉夢有 監錄事 丁亥春 姜氏得吉夢有 其後必昌삭제 娠 冬 十二月 生男 卽議政公 -初仕年수정 娠 冬 十二月 生男 今政丞公 也 壬辰 授膳官丞 乙未 陞 갑신 병술 也 己丑 授膳官丞 壬辰 陞

30 爲令 丙申 遷門下錄事 高麗 爲令 丙申 遷門下錄事 之季 公廩虛竭 門下府朝夕之 之季 門下府大小供億 一委錄事 費 一委錄事 而責其豊潔 爲 高麗 -관직 발령연 도 수정 爲 - 公廩虛竭,而 公盡心營辦 責其豊潔삭제 錄事者 多乞免 公盡心營辦 錄事者率多乞免 府官稱之 略無難色 府官稱之 戊戌 拜 戊戌 拜 庚子 遭外艱終 - 略 無難 色 삭 宣德郞北部令 庚子 遭外艱終 宣德郞北部令 知肅州郡事 階朝奉 제 制 癸卯 知肅州郡事 階朝奉 制 癸卯 郞 實恭愍王十三年也 僞王 郞 反 帖木兒 蒙 漢兵將入寇 塔思 實恭愍王十三年也 帖木兒率蒙 僞王 漢兵將入寇 其將 諸道軍會西北 僞王敗走 其將 諸道軍會西北 僞王敗走 皆道于肅 公待之無 帥 往 來 皆 道 于 肅 公 待 之 無 帥往來 軍士還者多菜色 闕 其年饑 軍士還者多菜色 闕 其年飢 公減俸祿 又勸郡人之有蓄者相 公減俸祿 又勸郡人之有蓄者相 多所全活 爲政以仁恕 助賑濟 多所全活 爲政以仁恕 助賑濟 抽歛絶而刑罰省 吏民德 爲本 抽斂絶而刑罰省 吏民德 爲本 之 及其見代 涕泣以 送 乙巳 春 還鄕 秋 政丞公登第 明 年 爲史官 公曰 有子立朝 吾老矣 不欲復仕 乃與鄕之父 老 結爲金剛社 優游卒歲 時 倭寇方熾 公語族人曰 吾鄕西 南濱海 島寇歲至 西南人先受 其害 勢必及邑里 宜移就北 村 以避其鋒 至丁巳秋 遂 家結廬于桐谷 明年秋 寇果入 邑里 闔境擾攘 多被刦掠 公 自桐谷 入江城縣之山城 擧家 獨全 鄕人服公先見 政丞公時 爲大司成 上書宰相曰 島夷數 至 老親輒入山城 不勝其艱 今順興府使 儒者也 乞以自 代 除父順興 俾獲安處 宰相 之及其見代至有涕泣以送者乙巳 春 還鄕 秋 議政公登第 年 選爲史官 公曰 有子立朝矣 吾 不必復仕 老 結爲金剛社 倭寇方熾 海 乃與鄕之父 優遊卒歲 時 公語族人曰 吾鄕濱 島寇歲至 其害 明 西南人先受 勢必及邑里 村 以避其鋒 至丁巳秋 家結廬于桐谷 邑人 宜就北 明年秋 多被劫掠 寇果入 公 自桐谷 入江城縣之山城 擧家 - 闔 境擾 攘 삭 獨全 鄕人服公先見 議政公時 제 爲大司成 上書宰相曰 老親所 在島夷數至吾未嘗頃刻而自安 今順興府使 代 儒者也 除父順興 乞以自 - 老 親輒 入 山 宰相 城 不勝其艱 授公府使 階 俾獲安處삭제 - 老親所在,吾 奉翊 先是 公 嘗受員外官 奉翊 先是 公 嘗受添設官 累 未嘗頃刻而自 至奉翊大夫禮儀判書 故 轉至奉翊大夫禮儀判書 故今爲 安 삽입 義其言 庚申春 授公府使 階 府使 因其資云 旣至有惠政 義其言 庚申秋 因其資云 旣至有惠政 - 今 爲府 使 삭

31 九月二十四 제 民 方 慕 悅 而 疾 作 九 月 二 十 四 民方慕悅而疾作 日 謂夫人曰 吾年六十 子亦 日 謂夫人姜氏曰 吾年六十子亦 有何遺恨 況人生脩短 成立 有何遺恨 況人生脩短 成立 皆歸於盡 只有先後 莫非天命 皆歸於盡 只有先後 莫非天命 耳 勿傷心 語竟乃絶 政丞公 耳 勿傷心 奉 柩 歸 晉 陽 以 其 年 十 二 月 甲 聞病備藥 語竟乃絶 議政公 二日而 -문맥 가다듬 음 申 葬于桐房洞坎山北 距先考 至 不及屬纊 辟踊摧折 奉柩歸 墓幾步距先妣墓幾步 始政丞公 于晉陽 晝夜不離側 以其年十二 -葬事일 변경 聞 病 備 藥 倍 道 疾 馳 二 日 而 月甲寅 葬于桐房洞坎山之岡北 甲申 甲寅 至 未及承訣 擗踊摧折 晝夜 距先妣墓九步又其北距先考墓十 不離殯側 棺用全木 槨用七 步 寸 凡喪葬之具 一依文公家 寸 疾馳 棺用全木 槨用七 凡喪葬之具 一依文公家 禮 不用浮屠法 至國朝戊寅 禮 以政丞公定社功 贈忠勤翊戴愼 以議政公定社功 贈忠勤翊戴愼 德守義協贊功臣 特進輔國崇祿 德守義協贊功臣 特進輔國崇祿 大夫門下右政丞判兵曺事晉陽 伯 壬午 以佐命功 加領議政 府事晉陽府院君 公稟資厚重 操履廉簡 不妄語 亦無戲言 未嘗以營 留意 孝友出於天 性 睦於族親 和於鄕黨 愉愉 如也 公之先考早逝 伯父不肯 均分蒼赤 弟侄欲訴於官 公 曰 安敢與叔父爭 力止之 伯 父歿 弟侄以前言 之 公曰 從兄弟相訟 亦不可 及公歿 從兄弟相訟乃分之 政丞公不受 曰 吾先子之所不爲也 吾敢受 乎 請與諸子曰 諸子受 是吾 受也 竟不許 姜氏善治家 動 循禮則 奉親以孝 事夫以順 至國朝戊寅 大夫門下右政丞判兵曹事 伯 壬午 - 不 用浮 屠 法 삭제 晉陽 以佐命功 加領議政 府事晉陽府院君 公稟資厚重 操履廉簡平生不妄語 未嘗以營産留意 性 孝友出於天 睦於族親 如也 亦無戱言 和於鄕黨 愉愉 先考早逝 均分蒼赤 公 -백부 숙부 弟姪欲訴於官 曰 安敢與叔父爭 父沒 叔父不肯 止之 弟姪以前言强之 從兄弟亦豈可相訟 叔 수정 公又曰 - 상동 及公沒 弟姪之子孫與再從兄弟訟諸官分 之 議政公不受曰 吾先子所不 爲也 請與諸子公曰 諸子受 是 吾受也 不許 姜氏善治家 動 循禮則 奉親以孝 事夫以順 敎子孫嚴而恕 待族姻惠 而周 敎子孫嚴而恕 待族姻惠 而周 乙亥夏 寢疾 議政公時爲中樞 乙亥夏 寢疾 政丞公時爲中樞 院使 謁告馳馹 三日而至 嘗 院事 謁告馳馹 三日而至 嘗 藥以進 姜氏曰 汝父逝己久 藥以進 姜氏曰 汝父逝已久 吾至今未亡 足見汝榮養 不願 吾至今未亡 足見汝榮養 不願 飮藥求生也 公涕泣以勤 七月

32 謂議政公曰 人之死 飮藥求生也 公涕泣以勸 七月 初四日 汝及汝娣俱無 初 四 日 謂 政 丞 公 曰 人 之 死 生 不在老少 生 不 在 老 少 汝 及 汝 娣 俱 無 恙 吾 今先逝 豈不自幸 不須 明曰卒 年七十六 恙 吾今先逝 豈不自幸 不須 强進諸藥 進諸藥 明日卒 年七十六 以九月丙午 附于公墓之南十一 以 九 月 丙 午 祔 于 公 墓 之 南 幾 步 戊寅 贈辰韓國大夫人 男 步 戊寅 贈辰韓國大夫人 男 諱崙 奮忠仗義同德定社佐命功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 諱崙 奮忠仗義同德定社佐命功 臣 修文殿大提 臣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 左議政 領經筵春秋館 書雲觀 左政丞 判吏曺事 修文殿大提 學 學 領經筵書雲觀事 監春秋館 事 世子師 晉山府院君 娶奉 - 判 吏曺 事 삭 事 世子傅 晉山府院君 娶奉 翊大夫 禮儀判書星山李公諱仁 제 翊大夫 禮儀判書星山李公 諱仁 美之女 丙戌 封辰韓國大夫 人 女適正順大夫延安府使柳克 恕 政丞男久 中軍都摠制府都 摠制 娶奉翊大夫 知密直司事 李種德之女 長女適吏曺右參議 洪涉 次女適左軍都摠制府摠制 李承幹 庶男三 長 延 皆 美之女 丙戌 封辰韓國大夫 人 女適正順大夫延安府使柳克 恕 議政男久 中軍都摠制府都 摠制 娶 知密直司事 李公種德之女長女適吏曺右參議 洪涉 次女適左軍都總制府摠制 李承幹 庶男三 長 延 皆 幼 永 義興侍衛司大護軍 - 奉 翊大 夫 삭 제 幼 永 義興侍衛司大護軍 庶 女三 長適知谷山郡事金秩 次 適中軍司直張希傑 次幼 府使 男汀 通德郞刑曹正郞 余惟政 丞公道德文章之美 名位勳業之 盛 無有比擬 固嘗謂其必有發 之者久矣 嗚呼 晉陽公之積善 成德 宜享其報矣 而不克有於 其躬者 豈非天將大其報而遲之 也歟 古人有言 爲善無不報 余 府 使 男汀 戶曹正郞 予 惟議 政公道德文章之美 隆 無有比擬 固嘗意其必有發 之者久矣 鳴呼 成德 名位勳業之 晉陽公之積善 宜享其報矣 而不克有於 其躬者 - 庶 女三 長 適知谷山郡事 金秩 次適中 軍司直張希 傑 次幼 삭 제 豈非天將大其報而遲之 也歟 古人有言 爲善無不報 予 於晉陽公而徵之矣 於晉陽公而徵之矣 自今至于千 其流澤之久 餘慶之永 - 自 今至 于 千 萬世 其流澤之久 餘慶之永 又可旣耶 鳴呼休哉 銘曰 萬世 삭제 又可旣耶 嗚呼休哉 銘曰 有流斯長 維蓄其源 有枝斯 有 流 斯 張 維 畜 其 源 有 枝 斯 茂 維固其根 懿哉河氏 實維 茂 維固其根 懿哉河氏 實惟 德門 卓彼左司 克有殊勳 乃

33 德門 卓彼左司 克有殊勳 乃 厚厥積 以啓後昆 振振晉陽 厚其積 以啓後昆 振振晉陽 維德是勤 厚倫息訟 人服其 惟 德 是 勤 厚 倫 息 訟 人 服 其 義 移家避寇 人服其智 惠于 義 移家避寇 人服其智 惠于 二州 民慕怙恃 義智且惠 顯 -仁義且智 二州 民慕怙恃 仁義且智 顯 融是宜 歛而家居 竟莫以施 義智且惠수정 融是宜 斂而家居 竟莫以施 天錫爾類 乃生英賢 相我聖 天 錫 爾 類 克 生 英 賢 遇 我 聖 主 位極朝聯 - 以 相朝 鮮 主 以相朝鮮 安危呼吸 談笑 從容廊廟 庶績維隆 安危呼吸 談 指陳 從容廊廟 百度維新 泰 勳德之魁 笑指陳 百度 山其重 滄海其容 勳德之魁 斯文之宗 王曰政丞 實予同 維新 泰山其 斯 文 之 宗 王 曰 政 丞 實 予 同 德 定社佐命 懋乃丕績 追爵 重 滄海其 德 定社佐命 予懋丕績 追爵 三世 並峻其秩 旣勳而階 領 容 삭제 三世 並峻 其秩 旣勳而階 領 府維崇 錫之妣爵 辰國是封 位 極 朝 聯, 府維崇 錫之妣爵 辰國是封 不顯潛德 雖死猶生 晉山峩 庶績維隆삽입 不 顯 潛 德 雖 死 猶 生 晉 山 峨 峩 晉水冷冷 瞻彼坎麓 維吉 峨 晉水冷冷 瞻彼坎麓 維吉 之叢 維考維妣 俱葬其中 綿 之叢 維考維妣 俱葬于中 綿 綿流慶 曷其有終 刻銘豊碑 綿餘慶 曷其有終 刻銘穹碑 以告無期 昭玆來裔 孰不公 以告無期 昭玆來裔 孰不公 思 永樂十四年三月 日 思 奉正大夫直藝文館知製敎兼春秋 館記注官僉知承文院事 朴熙中書幷篆 -비명원전을 수정한 영락 13년12월 이 후 3월만에 박희중으로 하여금 비석 에 새길 전서 체 비문을 쓰 게함

34 <진양부원군 신도비명 주요 수정부분 번역> 삭 제 삽 입 委祉後人 복을 후손에게 끼쳤기에 位冠百僚 四門博士諱卓回 사문박사 휘 탁회는 모든 신료들의 우두머리에 있 仕高王朝 고종(高宗: )때 으며 벼슬했는데 以親老免官還鄕 부모님이 연로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俾知先塋之所在 선영의 소재를 알려 而無敢或訛 감히 혹시 잘못 전하는 일 博士生挺才 박사(博士: 卓回)가 정재 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를 낳았고 曾祖不仕 증조는 벼슬하지 아니했다. 挺才生南秀 정재가 남수를 낳았고 先世有功於國者 선대에 고려조에 공이 南秀生邵 남수가 소를 낳았고 있어 其後必昌 후손이 반드시 창성하게 된다 邵生諱 深 소가 휘 부심을 낳았는데 公廩虛竭, 성품이 엄격했는데 於公爲 祖 공公에게 증조부가 된다 而責其豊潔 넉넉하게 마련하도록 책임지 自博士而下四世 우니, 略無難色 박사로부터 아래로 4대에 걸쳐 조금도 어려워하는 기색이 없 相繼登第 계속해서 과거에 올랐다 으니 闔境擾攘 우리나라에 침입했으므로, 曾祖公與其兄 증조부와 그 형님이신 老親輒入山城 어버이가 번번이 산성에 浩及扶又皆登第 호 및 부 역시 과거 들어가게 되니 에 올랐다 不勝其艱俾獲安處 안전하게 지낼 수 있 以國制廩其母 나라의 제도에 따라 그 도록 해주소서 어머니에게 녹祿을 지급했으므로 今爲府使 지금 부사가 된 것이니 不用浮屠法 時人歆之 당시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그 품계를 따른 것이라고 姿質異凡兒 자질이 보통 아이들과 달 한다 랐다 判吏曺事 판이조사, (윤린公의 추증직명) 判戶曹事, 판호조사(의정공의 외조부) 奉翊大夫 봉익대부 見而奇之 한번 보고는 기특하게 여겨 老親所在,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신 곳에 吾未嘗頃刻而自安 저는 잠시도 편안 長適知谷山郡事金秩 장녀는 지곡산군사 한 적이없었습니다 김질에게 출가하고 庶女三 서녀(庶女)가 셋 있으니, 次適中軍司直張希傑 다음은 중군 사직 (中軍司直) 장희걸(張希傑)에게 출가하고, 次幼 다음은 어리다 自今至于千萬世 지금으로부터 천만대에 이르기까지

35 삭 제 삽 입 시문 시문 以相朝鮮 조선의 재상이 되었네 位極朝聯 지위가 조정 신하들 가운데 에서 으뜸이었네 安危呼吸 안위가 경각에 달렸는데 庶績維隆 여러 가지 업적이 높았도다 談笑指陳 담소하며 일을 주선하고 百度維新 온갖 일이 새롭게 되었네 泰山其重 그 무계 태산 같고 滄海其容 그 도량 바다 같으니 주) 1. 변계량의 춘정집 수록 비명 대비 오방재 소재 실제 비석의 비문이 수정된 주요 부분임. 2. 비문에서 서녀부분을 삭제한 대신 박사공이하 10세조 부심공까지의 세계와 특기사항을 추가로 지어 포함시킴 -서녀부분은 비명에서는 삭제하되 비석 뒷면의 음기에서 맨처음에 올림. 3.신도비 연혁 -1412년 태종 12년(영락10년) 임진10월 의정공, 변계량에게 신도비명 찬을 부탁 -1415년 태종 15년(영락13년) 을미12월 비문 교정 (위 수정 전후비교 참조) -1416년 태종 16년 丙申 신년 들어 태종에게 사직허용을 상주하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대신 조회참여는 면해짐 -1416년 3월 박희중으로 하여금 신도비명을 전서체로 쓰게함 -1416년 9월 박희증으로 하여금 신도비음기를 쓰게함 -음기를 관찰한 결과는 신도비를 세운후 비석 뒷면에 각자한 것이라는 의견이 있으며 이는 이시기 이전에 비를 세웠다고 추정해 볼 수 있슴 -1416년 11월 함길도 출장중 귀임길에 정평(定平)관아에서 별세함

36 (붙임3) 진양부원군신도비 음기 내용 정리표 (태종16년 박희중찬) 12세 하시원 13세 14세 하윤린 하륜 15세 김질/곡산부사 16세 도이공/의영고 부직장 /문정 딸1/ 어리다 공 장희걸/중군사직 장미/ 어리다 2딸/ 어리다 3째서녀/어리다 하구/중군 도총제부도총제 복생/ 어리다 홍섭 /이조우참의 이승간 / 이공전/ 공정고副使 좌군도총제부 총제 이신전/ 사재직장 이성전외 2아들 / 모두 어리다 딸1/ 어리다 하 영 /의흥시위사대호군 계생/ 어리다 딸1/ 어리다 장,연 / 어리다 유극서 / 연안부사 유정/호조정랑 유혜생/ 미성 강여위 작은딸/ 어리다 유효산, 2아들 /미성 딸1 / 어리다 장온 / 낭장 장익 /검교한성소윤 장경/학생 아들2,딸1 / 어리다 장필/부사정 아들2,딸2 / 어리다 조전/학생 정환/ 풍저창주부 아들/ 미성 손번/ 사정 아들2,딸1 / 어리다 김남갑 김효우 정하/학생 /사복부정 /회인감무 아들1,딸1 / 어리다 세

37 12세 13세 하윤구 /종부령 14세 하유 15세 16세 하지혼 /한성소윤 /검교한성윤 하지돈 /울산군사 하영/미성 성규/장흥고주부 아들2,딸2/어리다 하지명 /공조정랑 하현/미성 아들2,딸2/어리다 하지행/풍저창주부 거원/ 전객령 이수 / 하유종 밀직부사 을지 /성주목사 / 청천군 을숙 하렴 / 별장 / 낭장 하축 /학생 아들3 /어리다 황유 /학생 최유강 /협주 지사 최수생/호군 최중성/의령현감 황근 /생원 정중산/사직 정신덕/사재령 아들2/미성 모간/감무 주봉의/의정부녹사 정하손 /군위현감 하취유 /개곡처사 하취동 을부/군 /공조전서 기감판사 하승해/상호군 정조,정장 /미성 딸2/어리다 하함/학생, 아들1/미성,딸1/어 리다 하제/부사정 배유문/학생. 딸2/어리다 하경복 /좌군동지총제 하경리/칠원현감 하승호/부사직 아들1,딸2/어리다 17세

38 12세 13세 14세 거원/ 을순 하굉 / 사정 전객령 /중랑장 15세 하응/학생, 아들4/어리다 이지 / 학생 하사호 을빈/ 해령천호 /의정부녹사 아들3, 딸2 /어리다 강원립/학생 을정/ 아들1,딸4 / 전구서승 어리다 박보석,박필석 박응/ 善州知事 /미성 하결 /성균관주부 딸1 /미성 강로 /봉상령 강시중 강안 / 사정 /학생 을생 /산원 세 17세

39 (붙임4) 진양부원군 신도비명 내용중 앞뒤 상치부분에 대한 소고 1. 비문 내용 1례 (재종15년 영락13년 수정비명) 以元至治辛酉四月丁巳 生公 年七歲 丁內憂 哭泣盡哀 若成人然 庚午 始就學 癸酉 鄕之長者贈崇祿大夫議政府贊成事姜公諱承裕謂公曰 先世有功 於國者 其後必昌 以其子妻之 贊成性嚴 公父事之 至正甲申 始仕忠穆王 朝 爲式目都監錄事 丁亥春 姜氏得吉夢有娠 冬 十二月 生男 今政丞公 也 己丑 授膳官丞 壬辰 陞爲令 丙申 遷門下錄事 高麗之季 公廩虛 竭 門下府朝夕之費 一委錄事 而責其豊潔 爲錄事者 多乞免 公盡心營 辦 略無難色 府官稱之 戊戌 拜宣德郞北部令 庚子 遭外艱終制 癸卯 知肅州郡事...(생략)... 公稟資厚重操履廉簡平生不妄語亦無戱言未嘗以營 産留意孝友出於天性睦於族親和於鄕黨愉愉如也 先考早逝 叔父不肯均分蒼赤弟 姪欲訴於官... 위 신도비문중 상호 관련 부분의 원문 및 번역은 아래와 같음 1) (원문)年七歲 丁內憂 (번역) 공 7세에 모친상을 당하였는데.. 丁(정):당하다. 內(내):어머니. 憂(우):喪 2) (원문)庚子 遭外艱終制 (번역) 경자년(1360년)에는 부친상을 당했으므로 遭(조):당하다/ 外(외):밖 / 艱(간):괴로워하다 終(종):죽다/ 制(제):규격대로 하다 3) (원문) 先考早逝 (번역) 부친이 일찍 돌아가셨는데 2. 소고 신도비문 위 1항)과 2항)에서는 진강부원군 휘 시원공의 배위가 먼저 몰하 고 그 33년후에 공께서 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반면 위 3항)에서는 공 이 일찍 몰하셨다는 기록을 분석하여 보면 -위 1항,2항에 의거 공이 배위보다 33년을 더 생존하셨다면 배위께서 2남

40 윤구공을 최대한으로 앞으로 당겨서 20세에 득남하셨다고 가정하더라도 시 원공은 53세에 몰하신 것으로 계산되므로 3)항처럼 공이 일찍 세상을 떠나 셨다(先考早逝 )라고 표현할 수 없는 것임. 뿐만아니라 우리 족보상 휘 시원공의 몰년 1327년(윤린공 7세)와도 상치하 는 것임. -현실적으로 생각해 볼 때 배위께서 장남 윤린공(7세)과 2남 윤구공 형제가 어릴 때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면 공께서는 재취를 맞지 않을 수 없었을 것 이며 이때에 공께서는 20~30대의 연령으로 재취에서 여러 자녀를 두었을 것으로 예상 할 수 있음. 그러나 족보상으로나 문헌상으로 그런 기록은 전연 없슴. 비문에 오류로 판단되는 기록이 발견되는 사유는 현존 碑文의 원작 진양부 원군신도비명을 찬한 변춘정이 우리문중 내력을 잘 모르는 문외인으로서 하 륜 정승으로부터 중요내용을 간지로 받고 문중 내력을 구술로 설명 들을 때 이해의 부족에서 연유한 것으로 봄이 타당 할 것임. 이는 분재문제를 두고 쟁송내용을 기술한 부분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이는 내용의 분별이 어려운 정도이므로 변춘정 본인도 그 내용을 확실히 모르고 기술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임.(원작의 내용은 백부와 숙부를 구분하지 못하 고 있었으나 수정비문에서 伯字를 모두 叔字로 수정함으로써 이해가 약간 용이해 졌음) 비문중 탁회조께서 고려 고종때 사문박사를 지내셨다고 한 부분은 현실적으 로 맞지 않은 기록이므로 하륜 정승에게까지 내려오는 전승 과정중에 착오 가 있었다고 보아야 하며 따라서 신도비문을 문자 그대로를 금과옥조로 하 여 후세에 전승할 것이 아니라 오류가 있는 부분은 변정하여 옳은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 후손들의 오해가 없도록 하여야 할 것임

41 (사료 1-1) 고려 역대왕의 직계도 혈통대수 1세 1태조왕건 2세 3세 4세 5세 6세 2.혜종 3.정종 4.광종 5.경종 7.목종 세종(욱) 6.성종 - 안종(욱) 8.현종 9. 덕종 10.정종 11.문종 혈통대수 16.예종 7세 8세 9세 10세 17.인종 18.의종 19.명종 22.강종 23.고종 20.신종 21.희종 혈통대수 13세 14세 15세 16세 25.충렬왕 26.충선왕 27.충숙왕 28.충혜왕 29.충목왕 30.충정왕 31.공민왕 32.우왕 34.공양왕 20대(8세) 신종의6 대손(8+6) 순종 13.선종 14.헌종 15.숙종 16.예종 11세 12세 24.원종 25충렬왕 17세 33.창왕

42 (사료 1-2) 고려왕조 王家 계보도-후비포함

43 (사료 1-3) 고려왕조 왕대표(王代表) (918~ 년간 34대왕, 혈통대수 17대) 대 왕 명 태조(太祖) 혜종(惠宗)? ~945 정종(定宗) 923~949 광종(光宗) 955~981 경종(景宗) 955~981 성종(成宗) 960~997 목종(穆宗) 980~1009 현종(顯宗) 992~1031 덕종(德宗) 1016~1034 정종(정종) 1018~1046 문종(文宗) 1019~1083 순종(順宗) 1046~1083 선종(宣宗) 1049~1094 헌종(獻宗) 1084~1097 숙종(肅宗) 1054~1105 예종(睿宗) 1079~1122 인종(仁宗) 1109~1146 재위기간 약 사 이름은 왕건(王建), 태봉국 궁예의 신하에서 왕으로 옹립되어 송 도에 도읍을 정하고 개국함. 935년 신라와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함 943~ ~ ~ ~ ~ ~1009 휘는 무(武),태조의 맏아들. 대광인 왕규(王規)의 음모에 신경쓰다 병사함 왕규의 난을 평정하고 불교를 숭상함.서경(평양)에 왕성을 쌓고 천도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 휘는 소(昭). 자 일화(日華). 노비 안검법을 제정하고,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雙冀)의 건의에 따라 과거제를 실시함 휘는 주(宙). 자는 장민(長民). 광종의 아들. 전시과를 제정함. 방 탕한 생활로 정사를 돌보지 않았음 휘는 치(治). 문물제도를 정비하고. 유교를 국가지도의 원리로 삼 아 중앙 직권적 봉건제도를 확립함 휘는 송(誦). 경종의 맏아들. 전시과를 고치고 학문을 장려 하는 등 치적이 많았으나 강조(康兆)에게 피살됨 휘는 순(詢). 천추태후의 강요로 중이 되었다가 강조의 옹립으로 1009~1031 즉위함. 거란의 침입으로 혼란 하였으나. 강화하여 국내가 안정되 고 문화가 발전함 1031~ ~ ~ ~ ~ ~ ~ ~1146 휘는 흠(흠). 왕2년에 천리장성을 쌓고. 국사편찬 사업을 벌임 휘는 형(亨).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천리장성을 쌓고. 장자 상 속과 적서 구별을 법으로 정하였다. 휘는 휘(徽),.자는 촉유(燭幽). 많은 법률을 제정허여 내치의 기초 를 닦음. 학문을 좋아하고 세예에 능함 문종의 맏아들로 즉위한 해에 죽음 휘는 운(運). 문종의 둘째 아들. 동생인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 국 송나라에서 불경을 연구하고 오든 중 고려문화의 융기를 이룸 휘는 욱(昱) 즉위하자 이자의(李資義)의 난을 평정하고 다음해에 신병으로 숙부에게 왕위를 물려줌 문종의 셋째아들. 조카인 헌종을 폐위 시키고 즉위함. 해동통보를 주조하여 화폐 제도를 시작. 고려의 황금시대를 이룸. 휘는 우. 학문을 좋아하여 학교를 세우는 등 학문을 크게 진흥 시켰음 휘는 해(偕) 어린나이로 즉위하여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등을 격 었으나 선정을 베품 김부식에게 삼국사기를 편찬케 함

44 대 왕 명 의종(毅宗) 1124~1173 명종(明宗) 1131~1202 신종(神宗) 1146~1204 희종(熙宗) 1181~1237 강종(康宗) 1152~1213 고종(高宗) 1192~1259 원종(元宗) 1219~1274 충렬왕(忠烈 1236~1308 재위기간 약 사 휘는 현(晛). 인종의 맏아들. 무신을 천대하고 문신을 우대하다. 1146~1170 정중부(鄭仲夫)의 난이 일어 폐위되고, 명종3년에 경주에서 살해 됨 1170~1197 휘는 호(皓). 의종의 동생. 정중부의 추대로 즉위하고 최충헌(崔 忠獻)에 의하여 쫏겨남. 1197~1204 휘는 탁(晫). 인종의 다섯째 아들로. 최충헌이 옹립한 왕임 1204~1211 휘는 영. 신종의 아들. 최충헌을 없애려다 오히려 쫏겨남. 1211~1213 휘는 숙(璹). 명종의 맏아들. 명종과 함께 쫏겨 났다가 최충헌에 게 옹립되어 왕위에 오름. 몽고의 침입을 받아 강화로 천도한 뒤 28년 동안 항쟁 하였으나 1213~1259 결국 굴복함. 몽고를 불교의 힘으로 격퇴하기 위하여 팔만대장경 을 조판함 1259~ ~1308 휘는 정(禎). 몽고에 굴복을 당한 뒤 즉위. 임연(林衍)의 난. 삼별 초의 난 등으로 화평한 날이 없었음. 원(元)나라에 굴복하여. 원의 제국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이는 등 원나라의 지나친 간섭을 받았음 휘는 장(璋). 몽고 황실의 딸과 결혼하고 1298년 왕위에 올랐으 26 충선왕(忠宣 1275~ ~1313 나 7개월만에 충렬왕이 다시복위. 이후 10년간 원나라에 머물다 다시 즉위하여 원나라에서 국정을 봄. 고려와 원나라의 학문교류 에 힘을 씀 충숙왕(忠肅 1313~1330 휘는 도(燾).정사에 영증을 느껴 아들 충해왕에게 양위 하였다가 1294~ 충혜왕(忠惠 1330~1332 행실이 좋지 않자 2년 만에 복위함 1315~ 로 귀양을 가다 병사함 29 충목왕(忠穆 1344~ 충정왕(忠定 1337~1352 공민왕(恭愍 1330~1374 우왕(禑王) 1364~ ~ ~1394 휘는(欣). 원나라에 볼모로 있다가 8세에 원나라에 의하여 즉위 함. 어머니 덕영공주(德寧公主)가 섭정함 휘는 저. 12세에 즉위하여 외가친척인 윤시우(尹時遇)와 즉위 3 년만에 폐위됨 원나라 배척운동을 벌여 친원파인 기(奇)씨 일족을 제거하고. 빼 1351~1374 앗긴 영토를 수복하여 국위를 떨침. 말년에 왕비인 노국공주가 죽자 정사를 그르쳐 최만생(崔萬生)과 홍륜(洪倫)에게 시해 당함 1374~1388 창왕(昌王? 1388~1389 공양왕(恭讓 휘는 정(禎). 행실이 좋이 않아 정사를 혼란에 빠뜨렸음. 원나라 1389~1394 공민왕의 아들, 10세에 즉위하나 1388년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 성계에게 폐위됨 이성계등이 우왕을 내쫒은 후 창왕을 내세웠으나 1년 만에 강화 도로 쫒겨나 10세 때 시해됨 휘는 요. 이성계 일파에 의해 왕위에 올났으나 실권을 빼앗기고 정몽주가 살해당한 후 폐위 당하고 고려는 멸망함

45 (사료 1-4) 고려시대 관직표 품계 정1품 종1품 정2품 종2품 정3품 종3품 정4품 종4품 정5품 종5품 정6품 종6품 문관직 現 在 태사 태부 태보 태위 사도 사공 중서령, 문하시중, 상서령, 6부 판사 (재상겸직) 감수국사 (시중 겸직), 판삼사사(삼사) 부총리 차관보 관리관 상장군 대장 대장군 중장 장관 좌 우복야(상서성), 수국사(재상겸직) 차관 판추밀원사 동지추밀원사 추밀원사(중추원) 좌우상시(중서문하성), 어사대부 (어사대) 추밀원부사 좌우승선(중추원), 상서(6부) 좌우승(상서성), 지사(6부), 사천감(사천대) 이사관 위위경(위위시), 전중감(전중성) 국장 좌우간의 대부(중서문하성), 시랑(6부) 부이사관 군기감(군기감) 어사중승 지어가대사(어사대) 국장 국자사업(국자감), 소감 소경(각사) 좌우사랑중(상서성), 랑중(6부) 시독학사 (시강), 학사(한림원), 합문사(합문) 기거주 기거랑 기거사인 (중서문하성) 어사집산 시어사(어사대) 좌우보궐(중서문하성),좌우사원외랑(상서성) 원외랑(6부), 전중시어사(어사대) 좌우습유(중서문하성),좌우사원외랑(상서성) 장군 서기관 과장 부군수 사무관 계장 중랑장 랑장 원외랑(6부), 전중시어사(어사대) 당후관(중서문하성), 국자박사(국자감) 주사 통신사인 합문지후(합문), 직장(각사) 계장 종7품 주부(각사), 권지합문지후(합문) 정8품 사문박사(국자감), 녹사(각사) 주사보 종8품 율학박사(형부), 직사관(사관) 정9품 학정 학록(국자감) 교위 종9품 율학조교(형부), 서학박사 산학박사(국자감) 정7품 現在 국무총리 중서시랑평장사,문하시랑평장사(중서문하성) 참지정사 정당문학 지문하성사(중서문하성) 무관직 별장 산원 대정 소장 준장 대령 중령 소령 대위 중위 준위 소위

46 (사료 2-1) 진양부원군 하공 신도비명 (Ⅰ) (번역문) 진주 오방재 소재 실존 비문<1415년 태종15,영락13년乙未 撰> 유명 조선국 증 충훈익대신덕수의협찬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부사 진양 부원군 하공 신도비 명 가선대부嘉善大夫 경승부윤敬承府尹 수문전修文殿 제학提學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 세 자좌부빈객世子左副賓客 변계량卞季良1) 지음. 영락永樂2) 13년 을미乙未 : 1415 겨울 12월에, 의정부議政府 좌의정左議政 호정선 생浩亭先生3)이 계량季良 : 변계량에게 부탁하시기를, 돌아가신 우리 아버님께서 는 덕德을 심어 후손들을 위해서 넉넉히 은택恩澤을 끼쳤기에 나 이 보잘것없 는 자식이 두 번이나 공신功臣들의 회맹會盟4)에 참여하고, 외람되게 높은 관직 에 올랐고, 또 임금님이 내리는 은혜로운 특전特典을 입어, 위로 3대에 걸쳐 봉호封號5)를 받거나 증직贈職을 받았소. 이에 묘소 가는 길에 비석을 세워 다 가오는 후세들에게 보여야 하니, 마땅히 문장이 있어야지 없어서는 안 될 것 이오. 그대는 글을 지어주기 바라오. 라고 했다. 계량季良이 감히 사양할 수 가 없었다. 삼가 살펴보니, 공公의 성은 하씨河氏요, 휘諱6)는 윤린允潾, 자字는 소개所開, 진양晋陽의 명망 있는 집안이다. 윗대 조상 가운데 고려高麗 때 벼슬해서 좌사낭중左司郞中을 지낸 휘 공진拱辰은 현종顯宗 때 공훈이 있어 문하시랑동중서평장사門下侍郞同中書平章事에 추증追贈되 었다. 사문박사四門博士 휘諱 탁회卓回는 고종高宗 : 때 벼슬했는데, 부모님이 연로하였기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박사博士 : 卓回가 정재挺才를 낳았고, 정재가 남수南秀를 낳았고, 남수가 소邵를 낳았고, 소邵가 휘諱 부심富深을 낳았는데, 공公에게 증조부가 된다. 박사로부터 아래로 4대에 1) 변계량卞季良 : 조선 초기의 문신文臣. 자는 거경巨卿. 호는 춘정春亭, 본관은 밀양密陽.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대제학大提學에 이르렀다. 조선 초기의 명문장가로 중국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도맡아 지었다. 시호는 문숙文肅. 문집 춘정집春亭集 이 있다. 2) 영락永樂 : 명明나라 제3대 성조成祖의 연호年號 년. 3) 호정선생浩亭先生 : 진양부원군의 아들 하륜河崙의 호가 호정이다. 자는 대림大臨, 본관은 진주晋州. 문과 에 급제하여 벼슬이 영의정領議政에 이르렀다.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에 책록冊錄되 고,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에 봉해졌다. 태종太宗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문집 호정집浩亭集 과 편서로 동국사략東國史略 등이 있다. 4) 회맹會盟 : 공신들과 임금이 모여서 맹세하고 이름을 적어 기록으로 남기는 행사. 5) 봉호封號 : 나라에 공이 있어 국왕이 봉해 줄 때의 칭호. 6) 휘諱 : 일반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은 명名이라 하나, 별세한 사람은 휘諱라고 한다

47 걸쳐 계속해서 과거에 올랐다. 증조부와 그 형님 호浩 및 부扶도 모두 과거에 올랐다. 나라의 제도에 따라 그 어머니에게 녹祿을 지급했으므로 당시 사람들 이 부러워하였다. 조부 휘諱 식湜은 증순충보조공신贈純忠補祚功臣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판사평 부사判司平府事 진강군晋康君이다. 부친 휘諱 시원恃源은 증순충적덕병의보조공신 贈純忠積德秉義補祚功臣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議政府 우정승右政丞 판병조사判兵曹事 진강부원군晋康府院君이다. 승봉랑承奉郞 풍저창부사豊儲倉副使 정균鄭均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원元나라 지치至治7) 신유辛酉 : 1321년 4월 정사일 丁巳日에 공을 낳았다. 자질이 보통 아이들과 달랐다. 7세 때 모친상을 당했는 데, 곡하며 슬픔을 다하는 것이 어른과 같았다. 경오庚午 : 1330, 10세년에 처음 으로 스승에게 공부하러 나갔다. 계유癸酉 : 1333년에 고을의 어른 증숭록대부贈 崇祿大夫 의정부議政府 찬성사贊成事 판호조사判戶曹事 강승유姜承裕공이 보고서 기 특하게 여겨 그 딸을 시집보냈다. 강공姜公은 성격이 엄하였는데, 공은 아버지 처럼 섬겼다. 지정至正8) 병술丙戌 : 1346, 26세년에 처음으로 충목왕忠穆王 : 의 조정에 벼슬하여 식목도감式目都監 녹사錄事가 되었다. 정해丁亥 : 1347, 27세년 봄에는 강씨가 길한 꿈을 얻어 임신을 했다가 12월에 아들을 낳았으니, 곧 의정공議政公 : 河崙이다. 임진壬辰 : 1352, 32세년에 선관서승膳官署丞에 제수되었다. 을미乙未 : 1355, 35세년 에는 선관서령膳官署令으로 승진하였다. 병신丙申 : 1356, 36세년에는 문하부門下部 녹사錄事로 옮겼다. 고려 말엽에는 문하부의 크고 작은 물자 공급을 녹사에게 맡겼으므로, 녹사가 된 사람들은 대부분 모두 그만두려고 했다. 공은 마음을 다해서 마련하기를 도모하니, 문하부의 관원들이 칭찬하였다. 무술戊戌 : 1358, 38세년에는 선덕랑宣德郞9) 북부령北部令에 임명되었다. 경자庚子 : 1360, 40세년에 부친상을 당하여 벼슬에서 물러나 상복喪服을 입고 상주 노릇하여 상기喪期를 마쳤다. 계묘癸卯 : 1363, 43세년에 지숙주군사知肅州郡事가 되었는데, 품계는 조 봉랑朝奉郞10)이었다. 실로 공민왕恭愍王 13년11)이었으니, 가짜 왕 탑사첩목아塔 思帖木兒12)가 몽고족蒙古族 군대와 한족漢族 군대를 거느리고 장차 고려를 침략 하려고 했는데, 여러 도道의 군대가 서북지방에 모였다. 가짜 왕이 패배하여 달아났는데, 장수들이 왕래하는 길이 모두 숙주肅州13)를 경유하였다. 공은 이 7) 지치至治 : 원元나라 영종英宗의 연호 년. 8) 지정至正 : 원元나라 순제順帝의 연호 년. 9) 선덕랑宣德郞 : 고려시대 문관文官 정7품 하下의 품계. 중간에 없어졌다가 1310년부터는 종6품으로 회복 되었다. 10) 조봉랑朝奉郞 : 고려시대 종5품 문관 품계. 11) 13년 : 비석에 새긴 글이나 춘정집春亭集 에 실린 비문에 모두 13년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 계묘 년은 공민왕恭愍王 12년이다. 12) 가짜 왕 탑사첩목아塔思帖木兒 : 고려 충선왕忠宣王의 셋째 아들. 승려가 되어 있다가 쫓겨난 뒤, 원나 라로 도망쳐 원나라 황제에게 아부하여 고려에 갖가지 폐해를 끼쳤다. 원나라 황제로부터 고려왕高麗 王으로 책봉을 받았다. 1364년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고려로 쳐들어 왔으나, 최영崔瑩 등에게 참패 하여 원나라로 돌아갔다. 원래 이름은 왕혜王譓, 탑사첩목아塔思帖木兒는 몽고식 이름이다. 13) 숙주肅州 : 평안남도 숙천군肅川郡의 고려 때 이름

48 들을 대접하는 데 있어 부족함이 없게 하였다. 그 해는 흉년이 들었으므로, 돌아온 군사들은 굶주려서 얼굴이 누렇게 뜬 사람이 많았다. 공은 자신의 녹祿 을 덜어내고, 또 고을 사람 가운데서 곡식을 쌓아두고 있는 사람에게 권하여 도와 구제하게 하여 살린 사람이 많았다. 고을을 다스리는 데 있어 어짐과 용 서를 근본으로 삼아, 백성들에게 거두어들이는 일을 없애고 형벌을 줄이니, 아전이나 백성들이 은덕恩德을 입었다고 여겼다. 다른 사람과 교대하게 되자, 눈물을 흘려 울면서 전송하는 사람이 있기까지 했다. 을사乙巳 : 1365, 45세년 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 해 가을에 의정공議政公 : 河崙이 과거에 급제하였고, 그 다음해 사관史官으로 선발되었다. 공이 말하기 를, 아들이 있어 조정에서 벼슬하니, 나는 다시 벼슬할 필요가 없도다 라 고 하고는, 고을의 노인들과 금강사金剛社라는 모임을 만들어 느긋하게 지내며 세월을 보냈다. 그 당시 왜구倭寇가 한창 날뛰었다. 공이 집안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우리 고을은 바닷가에 있어 섬 오랑캐들이 해마다 침략해 오고 있소. 서남쪽에 사 는 사람들이 먼저 그 해를 입는데, 형세를 보니 반드시 읍내까지 오겠소. 의 당 북쪽 마을로 가서 그 칼날을 피하는 것이 옳겠소 라고 하고는, 정사丁巳 : 1377, 57세년에 집안을 이끌고 동곡桐谷으로 가서 집을 지었다. 그 다음해 가을 에 과연 왜구가 읍내까지 왔으므로 노략질을 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공은 동 곡으로부터 강성현江城縣14)의 산성山城으로 들어가 온 집안이 홀로 온전할 수 있었다. 고을 사람들이 공의 선견지명先見之明에 탄복했다. 의정공議政公이 그 때 대사성大司成15)으로 있으면서 재상宰相에게 글을 올리기 를,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신 곳에 섬 오랑캐가 자주 이르니, 저는 잠시도 편안한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순흥부사順興府使는 유학자儒學者입니다. 바라건 대, 저 대신 그 사람을 대사성에 임명하시고, 저 부친을 순흥부사로 임명해 주십시오 라고 하니, 재상이 그 말을 의롭게 여겼다. 경신庚申 : 1380, 60세년 가을에 공을 부사로 임명했는데, 품계는 봉익대부奉翊大 夫16)였다. 이 이전에 공은 원외랑員外郞17) 관직에 임명되어 봉익대부奉翊大夫 예 의판서禮儀判書에 이르렀다. 그래서 옛날 품계品階를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부임하여 은혜로운 정치가 있어 백성들이 바야흐로 흠모하면서 좋아하 였으나, 병이 나 9월 24일에 부인 강씨姜氏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 나이가 육십이고, 아들도 뜻대로 다 잘 되었으니, 무슨 남은 한이 있겠소? 하물며 사 람의 수명이 기냐 짧으냐 하는 것은 천명天命 아닌 것이 없으니, 모두가 다 끝 나는 데로 돌아가지요. 단지 먼저 가느냐 나중에 가느냐만 있을 따름이니, 상 14) 강성현江城縣 : 단성현丹城縣의 고려 때 이름. 일제 초기 산청군山淸郡에 병합되었는데, 그 지역은 산청 군 단성면丹城面등 남부 일대이다. 15) 대사성大司成 : 성균관成均館의 실질적인 책임을 맡은 관직으로 정3품 당상관堂上官이다. 16) 봉익대부奉翊大夫 : 고려시대 문관 종2품 하下 품계. 17) 원외랑員外郞 : 고려시대 각 관아의 정6품직 관직

49 심하지 마시오. 라고 했다. 말을 마치자 곧 숨을 거두었다. 의정공은 부친이 병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약을 준비하여 이틀을 급히 달려 이르렀으나, 운명殞命하는 것을 보지는 못하였다.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며 마 음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영구靈柩를 받들어 진양晋陽으로 돌아가 밤낮으로 그 옆을 떠나지 않았다. 그 해 12월 갑인일甲寅日에 동방동桐房洞 감산坎山의 산에 안장安葬하였다. 공公 의 어머니 묘와는 9보步 떨어져 있고, 또 그 북쪽 아버지의 묘와는 10보 떨어 졌다. 관棺은 통나무를 그대로 쓰고, 곽槨은 7촌 두께로 했다. 상례喪禮와 제례 祭禮에 필요한 모든 도구는 문공文公 : 朱子이 쓴 주자가례朱子家禮 에 전적으로 의거하였다. 우리 조선왕조朝鮮王朝 무인戊寅 : 1398년에 의정공議政公이 정사공신定社功臣18) 이 됨으로 해서 공에게 충훈익대신덕수의협찬공신忠勳翊戴愼德守義協贊功臣 특진보 국숭록대부特進輔國崇祿大夫19) 문하우정승門下右政丞 판병조사判兵曹事 진양백晋陽伯 을 추증追贈하였다. 임오壬午 : 1402년에는 의정공이 좌명공신佐命功臣20)이 되자,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진양부원군晋陽府院君을 더해주었다. 공은 타고난 바탕이 두텁고 무거우며 몸가짐이 청렴하고 간결하였다. 평생 아 무렇게나 말하지 않았고, 또 농담을 한 적도 없었다. 재산을 늘리는 것에 마 음을 둔 적도 없었다. 효성과 우애는 천성에서 나왔고, 일가들과 화목하게 지 냈고, 고을에서는 온화하게 처신하여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부친이 일찍 돌 아가셨는데, 숙부가 노비를 고루 나누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여러 아우나 조 카들이 관가에 소송을 하려고 하자, 공은, 어찌 감히 숙부와 다툰단 말인 가? 라고 말하며 그들을 말렸다. 숙부가 세상을 떠나니, 아우와 조카들이 전 에 소송하려던 말을 강하게 주장하자, 공은 또 종형제끼리 어찌 서로 소송 을 할 수 있겠느냐? 라고 말했다. 공이 세상을 떠나자, 아우와 조카의 자손 과 재종형제들이 소송하여 요청하니 관가에서 나누어주었다. 의정공議政公은 받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돌아가신 우리 부친께서 하려고 하지 않던 바이 다 라고 했다. 여러 아들들에게 주려고 하자, 공이 말하기를, 여러 아들들 이 받는 것이 곧 내가 받는 것이다 라고 하고는,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강 씨姜氏는 집안을 잘 다스렸고 늘 예법을 따랐다. 효도로써 어버이를 섬기고, 순종함으로써 남편을 섬겼다. 자손들을 가르치는 것은 엄하면서도 이해를 잘 했고, 일가나 인척들을 대하는 데는 은혜로우면서도 두루 마음이 미쳤다. 을 해乙亥 : 1395년에 병으로 눕게 되었다. 그 때 의정공議政公은 중추원사中樞院使로 있었는데, 임금님을 뵈옵고 휴가를 요청하여 역마驛馬를 달려 3일 만에 이르렀 18) 정사공신定社功臣 : 1398년 왕자의 난을 평정한 공이 있는 신하들을 책록策錄한 공신 칭호. 19) 특진보국숭록대부特進輔國崇祿大夫 : 조선왕조 건국 직후의 문관 산계散階 정1품 품계. 그 뒤 곧 없어졌 다. 20) 좌명공신佐命功臣 :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태종太宗이 왕위에 오르는 데 공을 세운 신하들을 책 록한 공신 칭호

50 다. 약을 맛보고서 바치니 강씨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이미 오래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죽지 않아 너의 영광스런 봉양을 보게 되었으니, 약을 마셔서 살기를 구하기를 원치 않는다 라고 하셨다. 의 정공은 눈물을 흘리며 울면서 권했다. 7월 초4일에 의정공에게 일러 말하기 를,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늙었느냐 젊었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너와 너의 누이가 모두 아무 탈이 없으니, 내가 이제 먼저 가는 것이 어찌 다행한 일 아니겠느냐? 여러 가지 약을 억지로 들이려고 하지 말아라 라고 했다. 그 이튿날 한평생을 마치니, 76세였다. 9월 병오일丙午日에 공公의 묘소의 남쪽 11보步 되는 곳에 붙여 안장하였다. 무인戊寅 : 1398년에 진한국대부인辰韓國大夫 人에 추증追贈되었다. 아들은 휘 륜崙인데, 분충장의동덕정사좌명공신奮忠仗義同德定社佐命功臣 대광보 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議政府 좌의정左議政 수문전修文殿 대제학大提學 영경연춘추서운관사領經筵春秋書雲觀事 세자사世子師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이다. 봉익대부奉翊大夫 예의판서禮儀判書 성산星山 이공李公 휘諱 인미仁美의 따님에게 장가들었다. 병술丙戌 : 1406년에 부인이 진한국대부인辰韓國大夫人에 봉해졌다. 공의 따님은 정순대부正順大夫 연안부사延安府使 유극서柳克恕에게 시집갔다. 의 정공議政公의 아들 구久는 중군도총제부中軍都摠制府 도총제都摠制이다. 지밀직사 사知密直司事 이종덕李種德공의 따님에게 장가들었다. 의정공의 맏 따님은 이조우참의吏曹右參議 홍섭洪涉에게 시집갔고, 그 다음 따 님은 좌군도총제부左軍都摠制府 총제摠制 이승간李承幹에게 시집갔다. 의정공의 서자가 셋인데, 장長과 연延은 모두 어리다. 영永은 의흥시위사義興侍衛司 대호 군大護軍이다. 부사府使 : 柳克恕의 아들 유정柳汀은 호조정랑戶曹正郞이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의정공議政公의 도덕과 문장의 아름다움이나 이름과 공훈의 융 성함은 견줄 데가 없다. 진실로 생각해 보니, 반드시 그 복록福祿을 발하게 된 유래는 오래 되었을 것이다. 아아! 진양공晋陽公 : 允潾이 착한 일을 계속하고 덕德을 이루었으니, 그 보답을 누리는 것은 마땅하지만, 그 자신에게서 받지 못 한 것은, 하늘이 장차 그 보답을 크게 하기 위해서 늦춘 것이 어찌 아니겠 는가? 옛사람21)이 말하기를, 착한 일을 하면 보답하지 않음이 없다 라고 했는데, 나는 진양공에게서 이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다. 그 흘러내린 은택恩 澤이 오래 가고 남긴 경사가 긴 것이 끝이 있겠는가? 아아! 훌륭하도다. 명銘은 이러하다. 흐름이 펼쳐져 나가려면, 有流斯張, 그 원천源泉이 쌓여 있어야 한다네. 維蓄其源. 가지가 무성하려면, 有枝斯茂, 21) 옛사람 : 송나라의 문학자 구양수歐陽脩. 이 말은 그의 농강천표瀧岡阡表 에 나오는 말이다

51 그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네. 維固其根. 훌륭하도다! 하씨는, 懿哉河氏, 실로 덕德이 있는 가문이로다. 實惟德門. 우뚝한 저 좌사낭중左司郞中 : 河拱辰은, 卓彼左司, 특별한 공훈이 있었다네. 克有殊勳. 이에 그 덕德을 두터이 쌓아, 乃厚其積, 후손들의 길을 열어주셨도다. 以啓後昆. 미덥고 후하신 진양공晋陽公 : 河允潾이시여! 振振晉陽, 오직 덕德을 부지런히 닦았다네. 惟德是勤. 천륜天倫을 중히 여겨 집안의 송사 막았도다. 厚倫息訟, 사람들은 그 의리에 감복했네. 人服其義. 집을 옮겨 왜구를 피했나니, 移家避寇, 사람들이 그 지혜에 탄복했도다. 人服其智. 두 고을을 은혜롭게 다스렸나니, 惠于二州, 백성들은 부모처럼 사모했네. 民慕怙恃. 의롭고 지혜롭고 또 은혜 베풀었으니, 義智且惠, 현달하여 이름나는 것 마땅하건만, 顯融是宜. 다 거두고 물러나 고향 집에서 살아가, 斂而家居, 마침내 경륜을 펼치지는 못했다네. 竟莫以施. 하늘이 후손을 내려주어, 天錫爾類, 영명하고 어진 인물 낳았도다. 乃生英賢. 우리 성스러운 임금님을 도우시어, 相我聖主, 지위가 조정 신하들 가운데서 으뜸이었네. 位極朝聯. 차분하게 조정에서 일을 처리하여, 從容廊廟, 여러 가지 업적이 높았도다. 庶績維隆. 공훈과 은덕恩德은 으뜸이고, 勳德之魁, 유학의 최고 대가였네. 斯文之宗. 임금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네. 정승이여! 王曰政丞, 실로 나와 덕德을 같이하였나니, 實予同德. 사직을 안정시키고 천명을 도운 그대의 큰 공적을, 定社佐命, 내가 훌륭하게 여기고 있다오. 懋乃丕績. 위로 삼대에 벼슬을 추증하시어, 追爵三世, 그 관직이 모두 다 높았다오. 並峻其秩. 정승공政丞公 : 河崙 공훈으로 품계 받으니, 旣勳而階,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의 관직 높았다네. 領府維崇. 모친에게도 작위를 추증하여, 錫之妣爵, 진한국대부인辰韓國大夫人에 봉했다네. 辰國是封

52 잠겨있던 덕이 크게 드러남에, 不顯潛德, 세상을 떠났지만 살아 계신 것과 같았네. 雖死猶生. 진산晋山22)은 높고 높고, 晉山峨峨, 진수晋水 : 南江은 넘실넘실 흘러가는구나. 晉水泠泠23). 저 감산坎山 기슭을 바라보니, 瞻彼坎麓, 길한 기운 모였도다. 維吉之叢. 아버님 어머님이, 維考維妣, 다 그 속에 안장됐다오. 俱葬于中. 계속 흘러내려가는 경사는 綿綿流慶, 어찌 그 끝이 있겠는가? 曷其有終. 우람한 비를 새겨서, 刻銘豐碑, 가없는 오랜 후세에 알린다네. 以告無期. 밝은 후손들이여! 昭玆來裔, 누구인들 공公을 생각하지 않으리오? 孰不公思. 문학박사 경상대학교慶尙大學校 교수 허권수許捲洙 삼가 번역함 임진壬辰 : 2012년 양력 3월 25일. 22) 진산晋山 : 지리산智異山이라고 보는 설도 있고, 비봉산飛鳳山이라고 보는 설도 있다. 23) 泠泠 : 춘정집春亭集 에 冷冷 으로 되어 있는 것은 잘 못이다. 라는 뜻이다 영령泠泠은 물 흘러가는 소리

53 (원문) 진주 오방재 소재 실존 비문임 有明朝鮮國贈忠勤翊戴愼德守義協贊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領議政府事晉陽府院君 河公神道碑銘幷序 嘉靖大夫敬承府尹修文殿提學同知春秋館事世子左副賓客 卞季良撰 永樂十三年歲在乙未冬十二月議政府左議政浩亭先生屬季良曰惟我先考種德裕後而 予小子再與勳盟濫登峻秩且承 恩典封贈三世此其碑于墓道以示來世者宜有辭而闕 焉子其筆之季良不敢辭謹按公姓河氏諱允潾字所開晉陽望族也先世仕高麗左司郞中 諱拱辰有功顯王朝贈門下侍郞同中書平章事四門博士諱卓回仕高王朝以親老免官還 鄕博士生挺才挺才生南秀南秀生邵邵生諱 深於公爲 祖自博士而下四世相繼登第 曾祖公與其兄浩及扶又皆登第以國制廩其母時人歆之祖諱湜 崇祿大夫判司平府事晉康君考諱恃源 贈純忠補祚功臣輔國 贈純忠積德秉義補祚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右政丞判兵曹事晉康府院君娶承奉郞豊儲倉副使鄭諱均之女以元至治辛酉四 月丁巳生公姿質異凡兒年七歲丁內憂哭泣盡哀若成人然庚午始就學癸酉鄕之長者 贈崇祿大夫議政府贊成事判戶曹事姜公諱承裕見而奇之以其子妻之贊成性嚴公父事 之至正丙戌始仕忠穆王朝爲式目都監錄事丁亥春姜氏得吉夢有娠冬十二月生男卽議 政公也壬辰授膳官丞乙未陞爲令丙申遷門下錄事 高麗之季門下府大小供億一委錄 事爲錄事者率多乞免公盡心營辦府官稱之戊戌拜宣德郞北部令庚子遭外艱終制癸卯 知肅州郡事階朝奉郞實恭愍王十三年也僞王塔思帖木兒率蒙漢兵將入寇諸道軍會西 北僞王敗走其將帥往來皆道于肅公待之無闕其年飢軍士還者多菜色公減俸祿又勸郡 人之有蓄者相助賑濟多所全活爲政以仁恕爲本抽歛絶而刑罰省吏民德之及其見代至 有涕泣以送者乙巳春還鄕秋議政公登第明年選爲史官公曰有子立朝矣吾不必復仕乃 與鄕之父老結爲金剛社優遊卒歲時倭寇方熾公語族人曰吾鄕濱海島寇歲至西南人先 受其害勢必及邑里宜就北村以避其鋒至丁巳秋 家結廬于桐谷明年秋寇果入邑人多 被劫掠公自桐谷入江城縣之山城擧家獨全鄕人服公先見議政公時爲大司成上書宰相 曰老親所在島夷數至吾未嘗頃刻而自安今順興府使儒者也乞以自代除父順興宰相義 其言庚申秋授公府使階奉翊先是公嘗受員外官至奉翊大夫禮儀判書故因其資云旣至 有惠政民方慕悅而疾作九月二十四日謂夫人姜氏曰吾年六十子亦成立有何遺恨況人 生脩短莫非天命皆歸於盡只有先後耳勿傷心語竟乃絶議政公聞病備藥疾馳二日而至 不及屬纊辟踊摧折奉柩歸于晉陽晝夜不離側以其年十二月甲寅葬于桐房洞坎山之岡 北距先妣墓九步又其北距先考墓十步棺用全木槨用七寸凡喪葬之具一依文公家禮至 國朝戊寅以議政公定社功贈忠勤翊戴愼德守義協贊功臣特進輔國崇祿大夫門下右政 丞判兵曹事晉陽伯壬午以佐命功加領議政府事晉陽府院君公稟資厚重操履廉簡平生 不妄語亦無戱言未嘗以營産留意孝友出於天性睦於族親和於鄕黨愉愉如也先考早逝 叔父不肯均分蒼赤弟姪欲訴於官公曰安敢與叔父爭止之叔父沒弟姪以前言强之公又

54 曰從兄弟亦豈可相訟及公沒弟姪之子孫與再從兄弟訟諸官分之議政公不受曰吾先子 所不爲也請與諸子公曰諸子受是吾受也竟不許姜氏善治家動循禮則奉親以孝事夫以 順敎子孫嚴而恕待族姻惠而周乙亥夏寢疾議政公時爲中樞院使謁告馳馹三日而至嘗 藥以進姜氏曰汝父逝己久吾至今未亡足見汝榮養不願飮藥求生也公涕泣以勤七月初 四日謂議政公曰人之死生不在老少汝及汝娣俱無恙吾今先逝豈不自幸不須强進諸藥 明曰卒年七十六以九月丙午附于公墓之南十一步戊寅 贈辰韓國大夫人男諱崙奮忠 仗義同德定社佐命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修文殿大提學領經筵春秋館 書雲觀事世子師晉山府院君娶奉翊大夫禮儀判書星山李公諱仁美之女丙戌封辰韓國 大夫人女適正順大夫延安府使柳克恕議政男久中軍都摠制府都摠制娶知密直司事李 公種德之女長女適吏曺右參議洪涉次女適左軍都總制府摠制李承幹庶男三長延皆幼 永義興侍衛司大護軍府使男汀戶曹正郞予惟議政公道德文章之美名位勳業之隆無有 比擬固嘗意其必有發之者久矣鳴呼晉陽公之積善成德宜享其報矣而不克有於其躬者 豈非天將大其報而遲之也歟古人有言爲善無不報予於晉陽公而徵之矣其流澤之久餘 慶之永又可旣耶鳴呼休哉銘曰有流斯長維蓄其源有枝斯茂維固其根懿哉河氏實維德 門卓彼左司克有殊勳乃厚厥積以啓後昆振振晉陽維德是勤厚倫息訟人服其義移家避 寇人服其智 惠于二州民慕怙恃 義智且惠顯融是宜歛而家居竟莫以施 天錫爾類乃 生英賢相我聖主位極朝聯從容廊廟庶績維隆勳德之魁斯文之宗王曰政丞實予同德定 社佐命懋乃丕績追爵三世並峻其秩旣勳而階領府維崇錫之妣爵辰國是封不顯潛德雖 死猶生晉山峩峩晉水冷冷瞻彼坎麓維吉之叢維考維妣俱葬其中綿綿流慶曷其有終刻 銘豊碑以告無期昭玆來裔孰不公思 永樂十四年三月 日 奉正大夫直藝文館知製敎兼春秋館記注官僉知承文院事 朴熙中書幷篆

55 (사료 2-2) 진양부원군 하공 신도비명 (Ⅱ) (번역문) ( 1413년 태종13,영락11 변계량찬 춘정집 수록 비명임) 유명 조선국 증(贈) 충근익대신덕수의협찬공신(忠勤翊戴愼德守義協贊功臣) 대광보국 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진양부원군(晉陽府院君) 하공 (河公) 신도비명 병서 영락(永樂) 11년 임진년(1412, 태종 12) 겨울 10월에, 의정부 좌정승(議政府左政 丞) 진산(晉山) 호정(浩亭 하륜(河崙)) 선생이 계량(季良)에게 부탁하여 말하기를, 나의 선고(先考)께서는 덕을 심으시고는 스스로 보응(報應)을 누리지 않고 복을 후 손에게 끼쳤기에, 소자가 두 번이나 공신들의 회맹(會盟)을 주도하고, 벼슬이 모든 신료들의 우두머리에 있으며, 은전(恩典)을 입어 위로 3대까지 봉호(封號)를 받거나 증직(贈職)되었다. 이는 묘도(墓道)에 비석을 세워 후세 자손들에게 보임으로써 선 영의 소재를 알게 하여 감히 혹시 잘못 전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 자면 마땅히 글이 있어야 할 것인데 그 글이 없으니, 그대가 글을 지어 주게. 하므 로, 계량은 감히 사양하지 못했다. 삼가 살피건대, 공의 성은 하씨(河氏), 휘는 윤린(允潾), 자는 소개(所開)이니, 진양 (晉陽)의 대족(大族)이다. 선대에 좌사낭중(左司郞中) 휘 공진(拱辰)이 고려조에 공 이 있어 삼조(三朝)를 통해 현달하였고 문하시랑동평장사(門下侍郞同平章事)의 증직 을 받았다. 증조의 휘는 부심(富深)인데, 급제했으나 은거하여 벼슬하지 아니했다. 조부의 휘는 식(湜)이니 증 순충보조공신(純忠輔祚功臣)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 夫) 판사평부사(判司平府事) 진원군(晉原君)이다. 부친의 휘는 시원(恃源)이니 증 순 충적덕병의보조공신(純忠積德秉義輔祚功臣)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 정부우정승 판병조사(議政府右政丞判兵曹事) 진강부원군(晉康府院君)이다. 승봉랑 (承奉郞) 풍저창 부사( 儲倉副使) 정균(鄭均)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원(元) 나라 지 치(至治) 신유년(1321, 충숙왕 8) 4월 정사에 공을 낳았다. 7세에 모친상을 당했는데, 울부짖으면서 슬픔을 다함이 마치 어른과 같았다. 경오 년(1330, 충숙왕 17)에 처음으로 취학(就學)했다. 계유년(1333, 충숙왕 복위 2)에 고을의 장자(長者)인 증 숭록대부(崇祿大夫) 의정부 찬성사(議政府贊成事) 강공(姜 公) 휘 승유(承裕)가 공에게 말하기를, 선대에서 나라에 공이 있는 자는 그 후손이 반드시 창성하게 된다. 하고, 자기의 딸을 공의 아내로 삼게 했다. 찬성공은 성품 이 엄격했는데, 공이 아버지처럼 섬겼다. 지정(至正) 갑신년(1344, 충목왕 즉위년)에 처음으로 충목왕(忠穆王)의 조정에 벼슬 하여 식목도감 녹사(式目都監錄事)가 되었다. 정해년(1347, 충목왕 3) 봄에 부인 강씨(姜氏)가 길몽을 꾸고 난 뒤에 임신하여 겨

56 울 12월에 아들을 낳았으니, 지금의 정승공(政丞公)이다. 기축년(1349, 충정왕 1)에 선관서 승(膳官署丞)에 제수되고, 임진년(1352, 공민왕 1)에는 승진하여 선관서 영(膳官署令)이 되었다. 병신년(1356, 공민왕 5)에는 문하녹사(門下錄事)로 옮겼다. 고려 말기에 국가의 창 고가 텅 비어서 문하부(門下府)의 아침저녁 식사 비용을 녹사에게 일임시켜 넉넉하 게 마련하도록 책임지우니, 녹사가 된 자들은 대부분 면직되기를 빌었다. 그러나 공 은 심력을 다해 주선하여 마련하고 조금도 어려워하는 기색이 없으니 문하부 관원 들이 칭찬했다. 무술년(1358, 공민왕 7)에 선덕랑(宣德郞) 북부 영(北部令)에 임명되었다. 경자년(1360, 공민왕 9)에는 부친상을 당했으므로 벼슬에서 물러나 복제(服制)를 마쳤다. 계묘년(1363, 공민왕 12)에는 지숙주군사(知肅州郡事)가 되어 품계가 조봉랑(朝奉 郞)에 이르렀으니, 실로 공민왕 12년이다. 위왕(僞王 덕흥군(德興君))이 반기를 들자 첩목아(帖木兒 최유(崔濡))가 몽고병과 한병(漢兵)을 거느리고 우리나라에 침입했으 므로, 각 도(道)의 우리 군사들이 서북(西北)에 모이니 위왕이 패하여 달아났다. 그 장수들이 왕래하는 길이 다 숙주(肅州)를 거치게 되었는데, 공이 그들을 대함에 부 족함이 없었다. 그해는 흉년이어서 돌아가는 군사 가운데 굶주려서 얼굴이 누렇게 뜬 자가 많았다. 공이 봉록(俸祿)을 덜고 또 고을 사람 중 비축한 양식이 있는 자에 게 권유하여 서로 도와 구제하게 한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 사람이 많았다. 정사를 하는 데 인자하고 관대함을 근본으로 삼아 거두어들이는 것은 없어지고 형벌은 줄 어드니, 아전과 백성들이 은덕으로 여겼고, 다른 사람으로 갈리게 되자 눈물을 흘리 며 전송했다. 을사년(1365, 공민왕 14) 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가을에 정승공이 과거에 급제하 고, 이듬해 사관(史官)이 되었다. 공이 말하기를, 조정에 벼슬하는 아들이 있고 나 는 늙었으니, 다시 벼슬하고 싶지 않다. 하고, 고을의 부로들과 함께 금강사(金剛 社)를 결성하고 한가히 노닐면서 세월을 보냈다. 당시에 왜구(倭寇)가 한창 치성(熾 盛)했는데, 공이 족인(族人)에게 이르기를, 우리 고을은 서쪽과 남쪽이 바다에 접 해 있어서 해마다 왜구가 오기만 하면 서쪽과 남쪽 사람들이 먼저 그 해를 입는데 필시 읍리(邑里)에까지 미치게 될 형세이니, 북촌(北村)으로 이사하여 그 칼날을 피 하는 것이 좋겠다. 고 했다. 정사년(1377, 우왕 3) 가을에 드디어 가족을 이끌고 가서 동곡(桐谷)에 집을 마련 했는데, 이듬해 가을에 왜구가 과연 읍리에 들어와 온 경내가 소란스러웠고 겁박과 약탈을 당한 자가 많았다. 공은 동곡에서 강성현(江城縣)의 산성(山城)으로 들어가 온 집안이 홀로 안전하게 되니, 고을 사람들이 공의 선견지명에 탄복했다. 정승공이 그때 대사성(大司成)이었는데, 재상에게 글을 올려 말하기를, 섬 오랑캐가 자주 침 범해 와서 연로한 어버이가 번번이 산성에 들어가게 되니 그 어려움을 견딜 수 없 습니다. 지금의 순흥 부사(順興府使)는 선비입니다. 바라건대, 저 대신 그를 대사성

57 에 임명하고 저의 부친을 순흥 부사에 임명하여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주소 서. 했다. 재상이 그 말을 의롭게 여겨, 경신년(1380, 우왕 6) 봄에 공을 부사(府 使)에 제수하니, 품계는 봉익대부(奉翊大夫)였다. 이보다 앞서 공은 일찍이 첨설관 (添設官)을 받고 누차 옮겨서 봉익대부 예의 판서(禮儀判書)에 이르렀던 까닭에 지 금 부사가 된 것이니, 그 품계를 따른 것이라고 한다. 부임한 뒤에는 어진 정사를 베풀어서 백성들이 바야흐로 사모하고 즐거워하는 상황 이었는데 병이 들고 말았다. 9월 24일에 부인에게 말하기를, 내 나이 예순이고 아 들도 제대로 자립했으니, 무슨 유한(遺恨)이 있겠소. 하물며 인생의 길고 짧음은 천 명 아님이 없어서 모두 저승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다만 선후가 있을 뿐이니 상심하 지 마시오. 하고, 말을 마치고 나서 곧 운명하였다. 정승공이 영구(靈柩)를 모시고 진양(晉陽)에 돌아가 그해 12월 갑신에 동방동(桐房洞) 감산(坎山) 북쪽에 장사 지 내니, 부모의 묘와는 불과 몇 보 떨어져 있다. 처음에 정승공이 부친의 병환 소식을 듣고 약을 준비하여 길을 배나 빨리 달려 2일 만에 도착했으나, 임종에 미치지 못했는데, 가슴을 두드리고 발을 구르며 지극한 슬 픔으로 밤낮 빈소 곁을 떠나지 않았다. 관은 전목(全木)을 쓰고 곽의 두께는 7치로 했으며, 모든 상장(喪葬)의 용구(用具)는 일체 주자가례(朱子家禮) 에 의거하고 불교의 법식을 쓰지 않았다. 조선조 무인년(1398, 태조 7)에 이르러, 정승공의 정사공(定社功)으로, 공에게 충근 익대신덕수의협찬공신(忠勤翊戴愼德守義協贊功臣) 특진보국숭록대부(特進輔國崇祿大 夫) 문하우정승 판병조사(門下右政丞判兵曹事) 진양백(晉陽伯)을 추증(追贈)하고, 임 오년(1402, 태종 2)에는 정승공의 좌명공(佐命功)으로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진양 부원군(晉陽府院君)을 가증(加贈)하였다. 공은 타고난 바탕이 후하고 진중하며 몸가짐이 청렴하고 간결하여, 망녕된 말을 하 지 않고 농담도 하지 않았으며, 일찍이 집안 살림살이에 마음을 쓴 일이 없었다. 효 도와 우애는 천성에서 나왔으며, 친척 간에 친목하고 고을 사람들에게 화순하여 즐 거워하는 모습이었다. 공의 선고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백부가 노비를 고르게 분배 하려 하지 않아 아우와 조카가 관청에 소송하고자 하자, 공은 어찌 감히 숙부와 쟁송(爭訟)한단 말이냐? 하며 힘껏 말리었다. 백부가 돌아가시자 아우와 조카가 전 에 소송하려던 말을 강경히 주장하니, 공은 종형제 사이에 서로 소송하는 일도 옳 지 않다. 했다. 공이 돌아가신 뒤에 종형제가 서로 소송하여 드디어 재산을 나누게 되었는데, 정승공은 받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우리 선고께서 하시지 않았던 일인 데, 내가 감히 받을 수 있겠는가. 했다. 여러 아들에게 주기를 청하니, 공이 말하기 를, 여러 아들이 받는 것은 곧 내가 받는 것이다. 하고, 마침내 허락하지 않았다. 부인 강씨(姜氏)는 집안을 잘 다스렸으며, 일상의 행동은 예법에 따랐다. 효도로써 어버이를 받들고 순종으로 남편을 섬겼다. 아들과 손자를 가르치는 데는 엄하면서 도 너그럽고, 족친과 인척들을 대하는 데는 은혜롭고도 두루 미쳤다. 을해년(1395, 태조 4) 여름에 병으로 누우니, 정승공이 당시에 중추원사(中樞院事)로 있었는데 휴

58 가를 청하고 역말을 달려 3일 만에 도착하여 약을 먼저 맛보고 올리자, 강씨가 너 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이미 오래인데 내가 오늘날까지 죽지 않아서 흡족하게 너 의 영광스러운 봉양을 받았으니, 약을 먹고 살아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했다. 공이 울며 권하니, 7월 4일에 정승공에게 말하기를,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늙고 젊음 에 달려 있지 않다. 너와 너의 누이가 모두 무사할 때 내가 이제 먼저 가는 것이 어찌 다행이 아니겠느냐. 억지로 여러 가지 약을 내올 필요가 없다. 하고, 이튿날 돌아가셨으니, 향년이 76세이다. 9월 병오에 공의 묘 남쪽 몇 보쯤 되는 곳에 부장 (祔葬)했다. 무인년(1398, 태조 7)에 진한국대부인(辰韓國大夫人)에 추증(追贈)되었 다. 아들의 휘는 윤(崙)이니 분충장의동덕정사좌명공신(奮忠仗義同德定社佐命功臣) 대광 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좌정승 판이조사 수문전대제학 영경연서운 관사 감춘추관사 세자부(議政府左政丞判吏曹事修文殿大提學領經筵書雲觀事監春秋館 事世子傅)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이다. 봉익대부 예의 판서(禮儀判書) 성산 이공(星 山李公) 휘 인미(仁美)의 따님에게 장가들었는데, 병술년(1406, 태종 6)에 진한국대 부인에 봉해졌다. 딸은 정순대부(正順大夫) 연안 부사(延安府使) 유극서(柳克恕)에게 출가했다. 정승의 아들 구(久)는 중군도총제부 도총제(中軍都摠制府都摠制)인데, 봉익대부 지 밀직사사(知密直司事) 이종덕(李種德)의 따님에게 장가들었다. 장녀는 이조 우참의 (吏曹右參議) 홍섭(洪涉)에게 출가하고, 차녀는 좌군도총제부 총제(左軍都摠制府摠 制) 이승간(李承幹)에게 출가했다. 서남(庶男)이 셋 있으니, 장(長)과 연(延)은 모두 어리고 영(永)은 의흥시위사 대호군(義興侍衛司大護軍)이다. 서녀(庶女)가 셋 있으 니, 장녀는 지곡산군사(知谷山郡事) 김질(金秩)에게 출가하고, 다음은 중군 사직(中 軍司直) 장희걸(張希傑)에게 출가하고, 다음은 어리다. 연안 부사의 아들은 정(汀)인 데, 통덕랑(通德郞) 형조 정랑(刑曹正郞)이다. 내가 생각건대, 정승공의 도덕과 문장의 아름다움, 지위와 공훈의 성대함은 비길 사 람이 없으니, 진실로 일찍이 그 복을 발하게 된 유래가 오래되었을 것이다. 아, 진 양공(晉陽公)이 선을 쌓고 덕을 이룬 것으로 보면 의당 그 보응을 누렸어야 할 것 인데, 능히 자신의 몸에 향유하지 못하였으니, 어찌 하늘이 장차 그 보응을 크게 하 기 위하여 늦춘 것이 아니겠는가. 옛사람이 말하기를, 선을 행하면 보답이 없지 않 다. 했다더니, 나는 진양공에게서 그것을 확인했다. 지금으로부터 천만대에 이르기 까지 그 끼친 덕택의 장구함과 남은 경사의 영원함이 또 다함이 있겠는가. 아, 아름 답도다. 명(銘)은 다음과 같다. 흐름이 긴 내는 / 有流斯張 그 원천이 깊고 / 維畜其源

59 가지가 무성한 나무는 / 有枝斯茂 그 뿌리가 견고하네 / 維固其根 아, 훌륭하도다 하씨 집안이여 / 懿哉河氏 진실로 덕 있는 가문일세 / 實惟德門 우뚝한 저 좌사낭중(左司郞中)은 / 卓彼左司 능히 나라에 공훈이 있었으며 / 克有殊勳 선(善)을 두터이 쌓아 / 乃厚其積 후손의 복을 열었네 / 以啓後昆 인후(仁厚)하신 진양공은 / 振振晉陽 부지런히 덕을 닦았는데 / 惟德是勤 인륜을 중히 여겨 집안의 송사를 막으니 / 厚倫息訟 사람들이 그 의에 감복하고 / 人服其義 왜란을 미리 알고 집을 옮기니 / 移家避寇 사람들이 그 지혜에 탄복했네 / 人服其智 두 고을에 은혜를 베푸시니 / 惠于二州 백성들이 부모처럼 사모하고 / 民慕怙恃 어질고 의롭고 지혜까지 있었으니 / 仁義且智 현달한 영화를 누려 마땅하건만 / 顯融是宜 거두어 집으로 물러나 지내면서 / 斂而家居 마침내 포부를 베풀지 않았네 / 竟莫以施 하늘이 효자를 주어 / 天錫爾類 능히 영명하고 어진 아들을 낳으니 / 克生英賢 성주의 지우(知遇)를 입어 / 遇我聖主 조선의 재상이 되었네 / 以相朝鮮 안위가 경각에 달렸는데 / 安危呼吸 담소하며 일을 주선하고 / 談笑指陳 낭묘에 조용히 앉으시니 / 從容廊廟 온갖 일이 새롭게 되었네 / 百度維新 그 무게 태산 같고 / 泰山其重 그 도량 바다 같으니 / 滄海其容 훈덕의 으뜸이고 / 勳德之魁 유학의 종장일세 / 斯文之宗 임금 말씀에 정승은 / 王曰政丞 실로 나와 덕을 함께 했으니 / 實予同德 정사와 좌명의 공에 / 定社佐命 내가 그 큰 공을 아름답게 여긴다 하시고 / 予懋丕績 위로 삼대에 걸쳐 관작을 추증하니 / 追爵三世

60 그 벼슬 모두 다 높았네 / 竝峻其秩 정승공 공훈으로 품계를 받음에 / 旣勳而階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의 지위 높았고 / 領府維崇 모친에게도 관작을 추증하여 / 錫之妣爵 진한국대부인(辰韓國大夫人)에 봉했네 / 辰國是封 잠긴 덕이 크게 드러남에 / 不顯潛德 비록 죽었으나 오히려 산 것이니 / 雖死猶生 진양의 산 높디높고 / 晉山峩峩 진양의 물 차갑구나 / 晉水冷冷 감산(坎山) 기슭 우러러봄에 / 瞻彼坎麓 길한 기운 가득하니 / 維吉之叢 부모의 묘소 / 維考維妣 모두 그 가운데 안장되었네 / 俱葬于中 계속 이어질 남은 경사 / 綿綿餘慶 어찌 끝이 있으랴 / 曷其有終 큰 비석에 명을 새겨서 / 刻銘穹碑 고하기를 무궁히 하니 / 以告無期 밝고 밝은 후손들 / 昭玆來裔 누군들 공을 생각지 않으리 / 孰不公思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 홈> 고전번역총서 >춘정집 >춘정집 제12권 >신도비명(神道碑銘) >유명 조선국 증 충근익대신덕수의협찬공신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부사 진양부원군(晉陽府院 君)하공(河公) 신도비명 병서 -동문선 제121권 (원문) (1413년 태종13, 永樂11年 변계량 찬 춘정집 수록 비명임) 有明朝鮮國贈忠勤翊戴愼德守義協贊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領議政府事晉陽府院 君河公神道碑銘 幷序 永樂十一年歲在壬辰冬十月 議政府左政丞晉山浩亭先生 囑季良曰 惟我先考種德不 食 委祉後人 而余小子再 勳盟 位冠百僚 且承恩典 封贈三世 此其碑于墓道

61 以示來世 俾知先塋之所在 而無敢或訛 宜有辭而闕焉 君其筆之 季良不敢辭 謹 按 公姓河氏 諱允潾 字所開 晉陽大族也 先世有左司郞中諱拱辰 有功高麗 顯 三朝 贈門下侍郞同平章事 曾祖考諱富深 及第隱不仕 祖考諱湜 贈純忠補祚功臣 輔國崇祿大夫判司平府事晉原君 考諱恃源 贈純忠積德秉義補祚功臣大匡輔國崇祿大 夫議政府右政丞判兵曺事晉康府院君 娶承奉郞豊儲倉副使鄭諱均之女 以元至治辛酉 四月丁巳 生公 年七歲 丁內憂 呼泣盡哀 若成人然 庚午 始就學 癸酉 鄕之 長者贈崇祿大夫議政府贊成事姜公諱承裕謂公曰 先世有功於國者 其後必昌 以其子 妻之 贊成性嚴 公父事之 至正甲申 始仕忠穆王朝 爲式目都監錄事 丁亥春 姜 氏得吉夢有娠 冬十二月 生男 今政丞公也 己丑 授膳官丞 壬辰 陞爲令 丙 申 遷門下錄事 高麗之季 公廩虛竭 門下府朝夕之費 一委錄事 而責其豊潔 爲 錄事者 多乞免 公盡心營辦 略無難色 府官稱之 戊戌 拜宣德郞北部令 庚子 遭外艱終制 癸卯 知肅州郡事 階朝奉郞 實恭愍王十三年也 僞王反 帖木兒 蒙 漢兵將入寇 諸道軍會西北 僞王敗走 其將帥往來 皆道于肅 公待之無闕 其 年饑 軍士還者多菜色 公減俸祿 又勸郡人之有蓄者相助賑濟 多所全活 爲政以仁 恕爲本 抽斂絶而刑罰省 吏民德之 及其見代 涕泣以送 乙巳春 還鄕 秋 政丞 公登第 明年 爲史官 公曰 有子立朝 吾老矣 不欲復仕 乃與鄕之父老 結爲金 剛社 優游卒歲 時倭寇方熾 公語族人曰 吾鄕西南濱海 島寇歲至 西南人先受其 害 勢必及邑里 宜移就北村 以避其鋒 至丁巳秋 遂 家結廬于桐谷 明年秋 寇 果入邑里 闔境擾攘 多被刦掠 公自桐谷 入江城縣之山城 擧家獨全 鄕人服公先 見 政丞公時爲大司成 上書宰相曰 島夷數至 老親輒入山城 不勝其艱 今順興府 使 儒者也 乞以自代 除父順興 俾獲安處 宰相義其言 庚申春 授公府使 階奉 翊 先是 公嘗受添設官 累轉至奉翊大夫禮儀判書 故今爲府使 因其資云 旣至有 惠政 民方慕悅而疾作 九月二十四日 謂夫人曰 吾年六十 子亦成立 有何遺恨 況人生脩短 莫非天命 皆歸於盡 只有先後耳 勿傷心 語竟乃絶 政丞公奉柩歸晉 陽 以其年十二月甲申 葬于桐房洞坎山北 距先考墓幾步距先妣墓幾步 始政丞公聞 病備藥 倍道疾馳 二日而至 未及承訣 擗踊摧折 晝夜不離殯側 棺用全木 槨用 七寸 凡喪葬之具 一依文公家禮 不用浮屠法 至國朝戊寅 以政丞公定社功 贈忠 勤翊戴愼德守義協贊功臣 特進輔國崇祿大夫門下右政丞判兵曺事晉陽伯 壬午 以佐 命功 加領議政府事晉陽府院君 公稟資厚重 操履廉簡 不妄語 亦無戲言 未嘗以 營 留意 孝友出於天性 睦於族親 和於鄕黨 愉愉如也 公之先考早逝 伯父不肯 均分蒼赤 弟侄欲訴於官 公曰 安敢與叔父爭 力止之 伯父歿 弟侄以前言 之 公曰 從兄弟相訟 亦不可 及公歿 從兄弟相訟乃分之 政丞公不受曰 吾先子之所 不爲也 吾敢受乎 請與諸子曰 諸子受 是吾受也 竟不許 姜氏善治家 動循禮 則 奉親以孝 事夫以順 敎子孫嚴而恕 待族姻惠而周 乙亥夏 寢疾 政丞公時爲 中樞院事 謁告馳馹 三日而至 嘗藥以進 姜氏曰 汝父逝已久 吾至今未亡 足見 汝榮養 不願飮藥求生也 公涕泣以勸 七月初四日 謂政丞公曰 人之死生 不在老 少 汝及汝娣俱無恙 吾今先逝 豈不自幸 不須 進諸藥 明日卒 年七十六 以九

62 月丙午 祔于公墓之南幾步 戊寅 贈辰韓國大夫人 男諱崙 奮忠仗義同德定社佐命 功臣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左政丞 判吏曺事 修文殿大提學 領經筵書雲觀 事 監春秋館事 世子傅 晉山府院君 娶奉翊大夫 禮儀判書星山李公諱仁美之女 丙戌 封辰韓國大夫人 女適正順大夫延安府使柳克恕 政丞男久 中軍都摠制府都摠 制 娶奉翊大夫 知密直司事李種德之女 長女適吏曺右參議洪涉 次女適左軍都摠制 府摠制李承幹 庶男三 長 延 皆幼 永 義興侍衛司大護軍 庶女三 長適知谷山 郡事金秩 次適中軍司直張希傑 次幼 府使男汀 通德郞刑曹正郞 余惟政丞公道德 文章之美 名位勳業之盛 無有比擬 固嘗謂其必有發之者久矣 嗚呼 晉陽公之積善 成德 宜享其報矣 而不克有於其躬者 豈非天將大其報而遲之也歟 古人有言爲善無 不報 余於晉陽公而徵之矣 自今至于千萬世 其流澤之久 餘慶之永 又可旣耶 嗚 呼休哉 銘曰 有流斯張 維畜其源 有枝斯茂 維固其根 懿哉河氏 實惟德門 卓彼左司 克有殊 勳 乃厚其積 以啓後昆 振振晉陽 惟德是勤 厚倫息訟 人服其義 移家避寇 人 服其智 惠于二州 民慕怙恃 仁義且智 顯融是宜 斂而家居 竟莫以施 天錫爾 類 克生英賢 遇我聖主 以相朝鮮 安危呼吸 談笑指陳 從容廊廟 百度維新 泰 山其重 滄海其容 勳德之魁 斯文之宗 王曰政丞 實予同德 定社佐命 予懋丕 績 追爵三世 並峻其秩 旣勳而階 領府維崇 錫之妣爵 辰國是封 不顯潛德 雖 死猶生 晉山峨峨 晉水冷冷 瞻彼坎麓 維吉之叢 維考維妣 俱葬于中 綿綿餘 慶 曷其有終 刻銘穹碑 以告無期 昭玆來裔 孰不公思 출처 :春亭先生文集卷之十二 碑誌

63 (사료 3-1) 진양부원군 하공 神道碑 陰記 (번역문) 좌의정공左議政公은 서녀庶女가 셋이었는데 첫째는 곡산부사谷山府使 길질金秩에 게, 둘째는 중군사직中軍司直 장희걸張希傑에게 시집갔고 셋째는 아직 어리다. 도총제都摠制<하구河久>는 사헌부감찰司憲監察 김음金音의 따님을 두 번째 부인으 로 맞아 둔 아들이 하복생河福生인데 아직 어리다. 총제摠制<이승간李承幹>는 다 섯 아들을 두었는데 맏이는 이공전李恭全은 공정고부사供正庫副使이고 둘째는 이 신전李愼全인데 사재직장司宰直長이고 그 다음은 각각 이성전李誠全, 이순전李純 全, 이항전李恒全인데 모두 어리고 한 분의 따님도 아직 어리다. 대호군大護軍 <하영河永>은 문하시중門下侍中 이성림李成林의 서녀庶女에게 장가들어 둔 아들이 하계생河繼生인데 아직 어리고 따님도 아직 어리다. 곡산谷山 <김질金秩>은 두 딸은 두었는데 큰 따님은 의영고부직장義盈庫副直長 도이공都以恭에게 시집을 갔 고 한 따님은 아직 어리다. 사직司直<장희걸張希傑>의 아들은 장미張美인데 어리 고 두 딸도 아직 어리다. 정랑正郞 <류정柳汀>은 중랑장中郞將 김태준金台俊의 따 님에게 장가들어 둔 아들이 류혜생柳惠生인데 미성未成이고 두 따님을 두었는데 큰 딸은 강여위姜汝爲에게 시집을 갔고 작은 딸은 어리다. 용담현령龍潭縣令 정 여해鄭汝海의 따님에게 다시 장가들어 세 아들을 두었는데 큰 아들은 류효산柳 孝山으로 丞公 미성이며 나머지는 어리고, 딸 하나도 아직 어리다. 증우정승공贈右政 <하시원河恃源>의 둘째 아드님인 종부령宗簿令 하윤구河允丘는 딸이 둘인데 첫째는 낭장郞將 장온張蘊에게, 둘째는 밀직부사密直副使 이수李守에게 시집을 갔 다. 종부령宗簿令 <하윤구河允丘>의 아들은 검교한성윤撿校漢城尹 하유河游이다. 낭장郞將<장온張蘊>의 아들은 검교한성소윤撿校漢城少尹 장익張翼이고 따님은 사복 부정司僕副正 김남갑金南甲에게 시집을 갔다. 밀직密直 <이수李守>의 따님은 성주 목사星州牧使 하유종河有宗에게 시집을 갔다. 한성윤漢城尹<하유河游>는 아들이 넷 인데 맏이는 한성소윤漢城少尹 하지혼河之混이고 그 다음은 울산군사蔚山郡事 하 지돈河之沌, 공조정랑工曺正郞 하지명河之溟, 풍저창주부豊儲倉注簿 하지행河之涬이 다. 검교소윤撿校少尹<장익張翼>은 아들이 셋인데 맏이는 학생學生 장경張慶, 다 음은 부사정副司正 장필張弼, 그 다음은 미성이며 딸은 사정司正 손번孫磻에게 시 집을 갔다. 부정副正<김남갑金南甲>의 아들은 회인감무懷仁監務 김효우金孝友이다. 울산군사蔚山郡事<하지돈河之沌>는 아들이 셋으로 맏이는 하징河澄인데 미성이 며 나머지는 어리고, 딸은 셋인데 첫째는 장흥고주부長興庫注簿 성규成揆에게 시 집을 갔고 나머지는 어리다. 공조정랑工曹正郞<하지명河之溟>의 아들은 셋인데 큰 아들은 하충河冲인데 미성이고 나머지는 어리다. 두 딸도 아직 어리다. 풍저창주부豊儲倉注簿<하지행河之涬>는 한 아들과 두 딸을 두었는데 모두 어리 다. 학생學生<장경張慶>은 두 아들과 한 딸을 두었는데 모두 어리다

64 부사정副司正<장필張弼>은 아들이 둘인데 모두 어리고, 네 딸을 두었는데 첫째 는 학생學生 조전趙全에게, 다음은 풍저창주부豊儲倉注簿 정환鄭煥에게 시집을 갔 고 나머지는 어리다. 회인감무懷仁監務<김효우金孝友>는 한 아들을 두었는데 어 리고 딸은 둘인데 첫째는 학생學生 정하鄭何에게 시집갔고 하나는 어리다. 사정 司正<손번孫磻>은 아들이 둘이고 딸이 하나인데 모두 어리다. 증판사평공贈判司 平公<하식河湜>의 차남은 전객령典客令을 지내다가 퇴로한 하거원河巨源인데, 여 섯 분의 아들을 두었다. 맏이는 청천군菁川君 하을지河乙沚이고 둘째는 낭장郎將 하지숙河之淑이며, 군기감판사軍器監判事 하을부河乙桴, 중랑장中郞將 하을순河乙洵, 해령천호海領千戶 하을빈河乙玭, 전구서승典廐署丞 하을정河乙汀이고 딸은 둘인데 첫째는 선주지사善州知事 박응朴膺에게, 그 다음은 봉상령奉常令 강로姜璐에게 시 집을 갔다. 서자庶子는 산원散員 하을생河乙生이고 서녀庶女는 학생學生 강시중姜 時中에게 시집을 갔다. 낭장郎將<하지숙河之淑>의 아들은 별장別將 하렴河濂이며 딸은 셋인데 첫째는 협주지사陜州知事 최유강崔有江에게, 그 다음은 사재령司宰令 정신덕鄭新德에게 그 다음은 군위현감軍威縣監 정하손鄭賀孫에게 시집을 갔다. 군기감판사軍器監判事<하 을부河乙桴>는 네 아들을 두었는데 맏이는 개곡처사介谷處士 하취유河就濡, 그 다음은 공조전서工曺典書 하취동河就東, 상호군上護軍 하승해河承海, 부사직副司直 하승호河承浩이다. 중랑장中郞將<하을순河乙洵>의 아들은 사정司正 하굉河浤이며 따님은 학생學生 이지李之에게 시집을 갔다. 해령천호海領千戶<하을빈河乙玭>는 네 아들을 두었는데 큰아들은 의정부녹사議 政府錄事 生 하사호河斯浩이며 그 나머지는 어리고, 딸은 셋이었는데 첫째는 학생學 강원립姜元)에게 시집을 갔고 나머지는 아직 어리다. 전구서승典廐署丞<하을 정河乙汀>은 한 아들과 네 딸을 두었는데 모두 어리다. 선주지사善州知事<박응朴 膺>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는 박보석朴輔石, 둘째는 박필석朴弼石인데 모두 미성이고 딸은 둘인데 첫째는 성균관주부成均注簿 하결河潔에게 시집을 갔고 그 다음은 미성이다. 봉상령奉常令<강로姜璐>의 아들은 사정司正 강안姜晏이다. 별장 別將<하렴河濂>은 네 아들을 두었는데 맏이가 학생學生 하축河蓄이며 나머지는 어리고 딸은 학생學生 황유黃瑜에게 시집을 갔다. 협주지사陜州知事<최유강崔有 江>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맏이는 호군護軍 최수생崔首生이고 차남은 의령현감宜 寧縣監 최중성崔仲成이며 딸은 생원生員 황근黃瑾에게 시집을 갔다. 사재령司宰令 <정신덕鄭新德>은 세 아들을 두었는데 맏이는 사직司直 정중산鄭仲山이며 나머지 는 미성이고, 딸은 둘인데 첫째는 감무監務 모간牟侃에게, 다음은 의정부녹사議 政府錄事 주봉의周鳳儀에게 시집을 갔다. 군위현감軍威縣監<정하손鄭賀孫>은 아들 이 둘인데 큰아들은 정조鄭調이고 다음은 정장鄭獎인데 모두 미성이고 두 딸은 모두 어리다. 개곡처사介谷處士<하취유河就濡>의 두 아들 중 맏이는 학생學生 하 함河涵이고 다음은 미성이다. 한 명의 딸은 어리다. 공조전서工曺典書<하취동河 就東>의 아들은 부사정副司正 하제河堤이며 세 딸을 두었는데 첫째는 학생學生 배

65 유문裵有文에게 시집을 갔고 나머지는 어리다. 상호군上護軍<하승해河承海>는 두 아들을 두었는데 맏이는 좌군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 하경복河敬復이고 둘째는 칠원 현감漆原縣監 하경리河敬履이다. 사정司正 <하굉河浤>의 아들은 다섯인데 맏이는 학생學生 하응河凝이고 나머지 는 어리다. 좌의정공이 희중熙中에게, 근원은 같아도 분파分派되면 언젠가는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처럼 된다고 옛사람들이 슬퍼했던 것을 깊이 감복하지 않을 수 있겠 는가? 그대가 이미 선고先考와 그 자손을 빠뜨림 없이 썼는데, 게다가 같은 할 아버지와 같은 증조부를 둔 형제와 자손을 기꺼이 함께 기록케 한 것은 이것 을 후손들에게 보여서 서로 잊지 말게 하려는 뜻이다. 라고 하였다. 그래서 비문에 이어서 이것을 비의 뒷면에 썼다. 같은 해 9월 갑신甲申 영락14년 병신 1416년 박희중朴熙中 삼가 적다. (진양부원군 神道碑 陰記 원문) 左議政公庶女三長適谷山府使金秩次適中軍司直張希傑次幼 都摠制再娶司憲監察 金音女生男福生幼 摠制男五長恭全供正庫副使次愼全司宰直長次誠全純全恒全皆 幼女一幼 大護軍 娶門下侍中李公諱成林庶女生男繼生幼女一幼 谷山生女二長 適義盈庫副直長都以恭一幼 司直生男美幼女二皆幼 正郞娶中郞將金台俊女 生 男惠生弱 女二 長適學生姜汝爲 一幼, 再娶龍潭縣令鄭汝海女 生男三 長孝山弱 餘幼 女一幼 贈右政丞公 次男宗簿令諱允丘 女二 長適郞將張蘊 次適密直副使 李守 宗簿男撿校漢城尹游 郞將男撿校漢城少尹翼 女適司僕副正金南甲 密直 女適星州牧使河有宗 漢城男四 長漢城少尹之混 次知蔚山郡事之沌 工曺正郞之 溟 豊儲倉注簿之涬 撿校少尹男三 長學生慶 次副司正弼 次弱 女適司正孫磻 副正男懷仁監務孝友 蔚山男三 長冲弱 餘幼 女三 長適長興庫注簿成揆 餘幼 正郞男三 長冲弱 餘幼 女二幼 注簿男一女二皆幼 學生男二 皆弱 女一幼 副 司正男二 皆幼 女四 長適學生趙全 次適豊儲倉注簿鄭煥 餘幼 懷仁男一幼 女二 長適學生鄭何 一幼 司正男二 女一皆幼 贈判司平公次男典客令致仕諱巨源 男 六 長菁川君諱乙沚 次郎將之淑 判軍器監事乙桴 中郞將乙洵 海領千戶乙玭 典廐 署丞乙汀 女二 長適知善州事朴膺 次適奉常令姜璐 庶男散員乙生 庶女適學生姜 時中 郎將男別將濂 女三 長適知陜州事崔有江 次適司宰令鄭新德 次適軍威縣監 鄭賀孫 判軍器男四 長介谷處士就濡 次工曺典書就東 上護軍承海 副司直承浩 中郞男司正浤 女適學生李之 千戶男四 長議政府錄事斯浩 餘幼 女三 長適學生 姜元立 餘幼 廐丞男一女四皆幼 善州男二 長輔石 次弼石 皆弱 女二 長適成均

66 注簿河潔 次弱 奉常男司正晏 別將男四 長學生蓄 餘幼 女適學生黃瑜 陜州男 二 長護軍首生 次宜寧縣監仲成 女適生員黃瑾 司宰男三 長司直仲山 餘弱 女二 長適監務牟侃 次適議政府錄事周鳳儀 軍威男二 長調 次獎 皆弱 女二皆幼 介 谷男二 長學生涵 次弱 女一幼 典書男副司正堤 女三 長適學生裵有文 餘幼 上 護軍男二 長左軍同知摠制敬復 次漆原縣監敬履 司正男五 長學生凝 餘幼 左議 政公謂熙中曰 同源分派 遂成路人 古人所悲 可不深以爲感哉 子旣書先考子孫 無遺矣 同祖同曾祖兄弟子孫 勿憚幷書 以示來裔 使之不相忘也 於是 續書之 是年九月甲申 朴熙中 謹識 주)위 음기를 찬한 연대 是年은 신도비를 세운 1416년 병신년을 말하며,동년 3월에 박희중이 신도비문을 전서체로 쓰고 그후 비를 세운 것으로 추측되며, 6개월 후인 9월에 大小家 친족의 수단을 받아 마감하고 음기를 이면에 碑刻한 것으로 보임

67 (사료4) 문충공 하륜 묘지명 (번역문) 유명조선국 분충장의 동덕정사 좌명공신 대광보국 숭록대부 진산부원군 수문전대제 학 령경연 춘추관서 운관사 세자사 시문충 하공 묘지명 병서 有明朝鮮國奮忠仗義同德定社佐命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晉山府院君修文殿大提學領經 筵春秋館書雲觀事世子師諡文忠河公墓誌銘 幷序 윤회(尹淮) 하씨(河氏)의 조상은 진주(晉州)에서 나와 한 고을의 명망 있는 집안이 되었다. 좌 사낭중(左司郞中) 휘 공진(拱辰)으로부터 고려에 벼슬하여 현왕조(顯王朝)에 공을 세워 오랑캐를 평화롭게 하고 적을 물리쳐 일대의 명신이 되었다. 그 뒤에 탁회(卓 回)라는 분은 고왕조(高王朝)에 벼슬하여 사문박사(四門博士)가 되었고, 박사로부터 사대(四代)가 잇달아 과거에 올라 대대로 명망 있는 사람이 있어 경사를 심고 선행 을 쌓아서 공에 이르러 가문이 더욱 번창하였다. 공의 휘는 윤(崙)이요, 자는 대림(大臨)이다. 증조는 휘 식(湜)이니, 박사의 5대손으 로, 징사랑 선관서승(徵仕郞膳官署丞) 증 순충보조공신 보국숭록대부 판사평부사 진 강군(贈純忠輔祚功臣輔國崇祿大夫判司平府事晉康君)이요, 조부 휘 시원(恃源)은 식 목녹사(式目錄事) 증 순충적덕병의 보조공신(贈純忠積德秉義輔祚功臣) 대광보국 숭 록대부 의정부 우정승 판병조사 진강부원군(判兵曺事晉康府院君)이요, 아버지 윤린 (允潾)은 봉익대부 순흥원사(順興院使) 증 충근익대신덕수의협찬공신 대광보국 숭록 대부 영의정부사 진양부원군(贈忠勤翊戴愼德守義協 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領議政府 事晉陽府院君)이고, 어머니 강씨(姜氏)는 증 진한국대부인(贈辰韓國大夫人)이니, 검 교예빈경 증 숭록대부 의정부찬성사 판호조사 휘 승유(承裕)의 딸이며 모두 공의 귀함으로 증직을 얻었던 것이었다. 지정(至正) 정해년 봄에 강씨가 길몽을 꾸고 태 기가 있어 그 해 12월 기축일에 공을 낳았다. 공은 어렸을 때부터 우뚝이 보통 아이와 같지 않고 10세에 배우기 시작하여 전수 받으면 대번에 외웠다. 나이 14세에 경자년 국자감 고시에 합격하였으니, 행촌(杏 村) 이대부(李大夫)가 바로 그때 시관이었고, 19세에 을사년 과거 시험에 합격하였 는데, 초은(樵隱) 이문충공(李文忠公)과 목은(牧隱) 이문정공이 그 좌주였다. 문충공 이 한 번 보고는 큰 그릇으로 여겨 곧 그 아우 예의판서(禮儀判書) 인미(仁美)의 딸 로서 아내를 삼았다. 그 때 두 공이 사문(斯文)의 종주가 되어 학사(學士) 대부(大 夫)가 모두 그 문하에서 나오게 되었다. 공이 사우(師友) 사이에 주선하면서 강론을 연마하여 학문이 날로 전진되었다. 정미년에 춘추관에 뽑혀서 겸열(檢閱)과 공봉(供 奉)이 되었다. 홍무(洪武) 원년 무신에 감찰규정(監察糾正)을 고시하고, 기유년에 감

68 검수사(監檢收司)로서 토지를 측량하고, 신돈(辛旽)의 문객으로 부사(副使)가 된 자 를 탄핵하였으므로 신돈에게 미움을 받아 파직되었다가, 지영주안렴사(知榮州按廉 使)로 기용되자 김주(金湊)가 그 정사와 행실이 제일이라고 아뢰었다. 임자년에 고 공좌랑(考功佐郞)으로 불러 제수하고, 계축년에 판도좌랑(版圖佐郞)으로써 교주 강 릉도 찰방(交州江陵道察訪)이 되었고, 갑인년에 제릉서령(諸陵署令)이 되고, 을묘년 에 사헌부 지평과 전리 정랑(典理正郞)이 되었다. 병진년에 전교부령 지제교에 올랐 다가, 전의부령(典儀府令)으로 옮겼고, 정사년에 전법총랑 보문각 직제학에 올랐으 나, 전례대로 지제교를 맡았다. 이로부터 제직(除職)이 되었으나, 모두 관직(館職)을 띄었고, 또 판도총랑으로 교주도안렴(交州道按廉)이 되었다. 무오년 전리총랑이 되 고 기미년에 전교령 성균대사성에 오르고, 경신년 9월에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고, 신유년에 기복(起復)되어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가 되었으나, 상을 끝낼 수 있도록 청하니, 허락하였다. 임술년에 삼복이 끝나자 우부대언(右副代言)이 되고, 계해년에 우대언(右代言)에 옮기고 얼마 안 되어 전리판서(典理判書)가 되었고, 갑자년에 밀 직제학(密直提學)이 되고, 을축년에 첨서(僉書)에 오르고, 그 가을에 태조 고황제(太 祖高皇帝)가 국자전부(國子典簿) 주탁(周倬) 등을 보내니, 공이 서북면(西北面)에 영 접하였으며, 돌아갈때에 공이 사표(謝表)를 받들고 함께 가니, 주탁 등이 매우 예우 하였다. 정묘년에 동지(同知)에 오르고, 무진년 봄에 무신 최영(崔塋)이 군대를 일으켜 요양 (遼陽)을 범하려 할 때, 공이 힘껏 불가함을 진술하였더니, 최영이 노하여 양주(襄 州)로 추방하였다. 여름에 최영이 패하자, 공이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 을사년 봄 에 다시 동지(同知)가 되었고, 가을에 영흥군(永興君) 왕환(王環)이란 자가 일본에서 오니 공이 인척(姻戚)으로 평소에 왕환의 얼굴을 알았기에 그가 왕환이 아님을 말 하였다가 광주(光州)에 귀양갔다. 경오년 봄에 울주(蔚州)에 옮겼다가 여름에 윤이 (尹彛)ㆍ이초(李初)의 옥사가 일어나자 모든 귀양살이하던 사람을 청주에 모아 둘 적에 공이 사면되어 진주로 돌아왔다. 신미년 여름에 전라도 도관찰사에 기용되었 고, 임신년 여름에 돌아오니 우리 태조가 이미 임금이 되었다. 계유년 가을에 다시 공을 기용하여 경기좌도 관찰사가 되었었다. 공이 비로소 민호(民戶)의 농토 개간의 정도여부에 따라 부역을 정하니 토호들은 싫어하였으나, 백성들은 그 공평함에 복 종하였다. 여러 도가 모두 본받아 드디어 제도로 정해지게 되었다. 그 때에 태조가 계룡산으로 서울을 옮기려고 이미 공사가 시작되었을 때, 공이 힘 껏 간언하였기 때문에 따랐다. 갑술년 3월에 첨서중추원사(僉書中樞院事)가 되었고, 을해년 4월에 중추사(中樞使)에 옮기고, 7월에 아버지의 상을 당하였고, 병자년 4월 에 기복되어 예문춘추관 학사가 되어 사퇴를 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고황제가 사표(謝表)한 글이 불공하다고 하여 우리 나라에서 그 문장을 주관한 자인 정도전 을 입조(入朝)하게 하였다. 또 우우(牛牛) 등을 보내어 독촉을 하니, 공이 관반(館 伴)이 되었는데, 태조가 은밀히 조신들에게 보내는 문제를 물었다. 모두들 관망만하 고 굳이 보낼 필요가 없다고 하였으나, 공만이 보내는 것이 편리하다고 하여 정도

69 전이 크게 감정을 품었다. 7월에 태조가 이지(李至)를 보내어 일을 주달하려 하였을 때, 사신이 아뢰기를, 오직 하관반(河館伴)이라야 사명을 다 할 것입니다. 하고 함 께 가기를 청하였다. 공이 명나라 조정에 이르러 상세하고 분명하게 아뢰어 일이 풀리게 되었다. 정축년 정월에 정도전이 군대를 일으켜 국경을 나갈 것을 의논하려 하면서, 공을 꺼려 계림부윤으로 내보냈더니, 그 해 봄에 왜추(倭酋) 몇 명이 무리 를 거느리고 경상도에 와서 항복할 것을 청하므로 4월에 공이 관찰(觀察)ㆍ절제(節 制) 제공과 더불어 이 일을 처리할 것을 의논하였더니, 의논을 주장한 자가 실책하 여 왜추가 도망갔다. 6월에 공 등을 체포하여 순군(巡軍)에 치대(置對)하였고, 7월 에 수원부에 안치되었고, 10월에 풀려 나고, 무인년 7월에 충청도 도관찰사가 되었 다. 9월에 상황(上王)이 왕위를 계승하자, 불러 정당문학이 되고, 10월에 정사공(定社 功)을 책정하여 공이 1등으로 진산군(晉山君)의 봉작을 받고 들어가서 건문황제(建 文皇帝)의 등극을 축하하였고, 기묘년 12월 참찬문하부사가 되었다. 경진년 4월에 찬성사에 오르고, 5월에 판의흥삼군부사 겸 판상서사사(判義興三軍府事兼判尙瑞司 事)가 되고, 9월에 문하우정승 판병조사(門下右政丞判兵曹事)에서 관작이 승진하여 백(伯)이 되고, 11월에 금상이 즉위하였고, 신사년 정월에 좌명공(佐命功)을 녹하매 공이 또 1등에 있었고, 윤 3월에 병으로 사퇴하니 영삼사사(領三司事)가 되고, 4월 에 지공거가 되어 지금 지신사(知申事) 조말생(趙末生) 등 33명을 뽑았고, 7월에 관 제(官制)가 고쳐지매 영사평부사 겸 판호조사(領司平府事兼判戶曹事)가 되어 비로소 국내에 통행하는 저폐(楮幣)를 만들어서 나라의 용도를 풍부하게 할 것을 청하였다. 임오년 6월에 명나라 조정에 가서 명명(明命) 악장(樂章) 두 편을 받을 때에 교서를 내려 권장하였다. 10월에 의정부 좌정승 판이조사(議政府左政丞判吏曹事)로 지금 황제의 등극을 축하 할 적에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이첨(李詹)이 부사(副使)가 되었다. 공이 명나라 서 울에 도착하자 이공(李公)과 더불어 예부(禮部)에 글을 올리기를, 새 천자께서 등 극하여 천하가 더불어 새롭게 되었으니, 우리 임금의 벼슬도 고쳐 주기를 바랍니 다. 하였더니, 황제가 아름답게 여겼다. 영락(永樂) 원년 계미 4월에 명나라 사신 도지휘사(都指揮使) 고득(高得) 등과 함께 고명(誥命)과 인장(印章)을 받들어 오니, 임금이 더욱 귀하게 여겨 하사한 물건이 실로 후하였다. 갑신년 6월에 가뭄으로 면 직할 것을 빌었고, 을유년 정월에 좌정승에 복직되어 세자사(世子師)를 더하였고, 병술년에는 공이 각 종파의 절 주지(主持)들이 전토와 노비를 많이 점유하여 돈놀 이를 하고, 여색에 빠져 재물을 좀먹고 대중을 미혹시킨다고 건의하여 각도의 주 (州)와 군(郡)에 한두 절만 남기고 모두 철거하였으며, 그 전토와 노비는 나라에 귀 속시키게 하니 임금이 이 의견을 따르자 식자들이 통쾌한 일이라고 칭찬하였다. 정해년 4월에 문사들이 중시(重試)를 치룰 때, 공에게 명하여 시권을 읽도록 하여 지금 예문관 제학 변계량(卞季良) 등 10명을 뽑고, 7월에는 가뭄으로 임금의 처소 를 옮기기를 청하였었다. 무자년 2월에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가 되고, 신묘년 3월

70 에는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지금 평양판관 권극중(權克中) 등 33명을 뽑았고, 임진 년 8월에 좌정승에 복직되었으니, 공이 이 때에 네 차례나 국권을 잡았다. 갑오년 4월에 국가에서 주관(周官)을 모방하여 정부의 모든 사무를 나누어 육조(六 曺)에 귀속시키고 공을 영의정부사로 삼았으며, 을미년 10월에 또 좌의정이 되었다. 병신년 봄에 공의 나이가 70이 되었으므로 옛 일에 의거하여 치사(致仕)하기를 요 청하였으나 임금이 오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공이 수차례 여쭈니, 임금이 특별히 우대하여 조회에는 참여하지 않게 하더니, 4월에 이르러 허락하고는 진산부원군(晉 山府院君)으로 사제(私第)로 나아가도록 하였는데,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는 반드 시 자문을 하였다. 그 해 10월에 임금이 함길도(咸吉道)에 사신을 보내어 선왕(先王)의 능침(陵寢)을 두루 살피려 하자 공이 스스로 갈 것을 청하였더니, 임금이 늙었다고 민망히 여겼 으나 그 뜻을 가상히 여겨 친히 교외에 나가서 전송을 하였다. 공이 이미 일을 끝 내고 돌아오려 할 때, 병이 나자 임금이 이 소식을 듣고 급히 내의(內醫)를 보내어 치료하게 하고, 내주(內廚)에서 반찬을 제공하니 문병하는 중관(中官)이 길에 잇달 았다. 11월 6일 계사에 정평(定平) 관사에서 졸하였다. 부고가 이르자 임금이 심히 애도하여 눈물을 흘리고 3일 동안 조회를 폐하고 7일 동안 소찬(素饌)을 하고, 예관을 보내어 교서를 가지고 가서 치제하였다. 또 유사에 게 명하여 호상(護喪)하여 서울로 돌아오게 하여 본제에 빈소를 차리고는 임금과 세자가 친림하여 조문과 제전을 하고 시호를 문충(文忠)이라 하였다. 관아에서 장례 식을 맡고 특별히 하였으니, 공에 대한 사후의 영예가 참으로 유감이 없다고 할 수 있었다. 명년 정유 3월 11일 정유에 사자(嗣子) 도총제공(都摠制公)이 관을 모시고 진주(晉州) 동방등(桐房洞) 감산(坎山) 언덕에 있는 선영 동쪽에 부장(附葬)하였으 니, 공의 유언을 따른 것이었다. 공은 천품이 중후하고 식견이 밝고 도량이 넓으며, 조용하고도 간소하여 평생에 빠 른 말과 급한 얼굴빛이 없었으나, 단정히 묘당(廟堂)에 있다가 의심나는 것을 판결 하고 계책을 정할 때에는 그 기운이 씩씩하여 조금이라도 훼방과 찬양으로써 그 마 음을 움직이지 않았었다. 정승이 되었을 때는 대체(大體)만을 힘쓰고 까다롭게 살피 지 않았으며, 아름다운 정책과 은밀한 의견으로 임금에게 도움이 컸으며, 물러나서 는 일찍이 남에게 누설을 한 일이 없었다. 자기 몸가짐이나 사람들을 만날 때에 한 결같이 정성으로 하되 거짓이 없고, 종족에는 어질고, 벗에는 믿음 있고, 아래로 노 복에 이르기까지 모두 은혜에 감복하고, 인재를 추천함에 늘 부족하게 여기고, 지극 히 작은 착함도 반드시 취하되 그 작은 허물은 덮어 주었다. 집에 거처할 때는 살 림살이를 다스리지 않고 사치를 좋아하지 않으며, 잔치 놀이를 즐겨하지 않았다. 성 품이 글읽기를 좋아하여 손에는 책을 놓지 않고 여유있게 휘파람과 시를 읊으면서 침식을 잊고, 경사자집(經史子集)을 연구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는 음양(陰 陽)ㆍ의술(醫術)ㆍ성경(星經)ㆍ지리(地理) 등에 이르기까지도 극히 정밀하였으며, 예 악과 여러 제도는 모두 공이 상정(詳定)한 것이었다. 후생을 권면하고 의리를 토론

71 함에 매우 부지런히 하였으며, 국정을 담당한 이래로 오로지 문한(文翰)을 맡아서 외교의 사명(辭命)과 문사(文士)의 작품이라도 반드시 공의 윤색(潤色)과 인가(印可) 를 거친 뒤에 정하였다. 일찍이 어명을 받아 태조실록(太祖實錄) 15권을 수찬해 서 올리었다. 스스로 호를 호정(浩亭)이라 하였는데 문집 약간 권이 있다. 미리 유 서(遺書)를 써서 상자 속에 간직하여 자손에게 교훈을 하였으되 자세하여 빠진 것 이 없었고, 또 상장(喪葬)에는 한결같이 주자가례 에 의거하고 불교 의식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공이 세상을 떠나자 그 집에서 유서가 발견되어 모두 그 말을 따랐 다. 부인 이씨(李氏)는 지금 진한국대부인(辰韓國大夫人)으로 봉작을 받았다. 아들 하나 를 낳았는데, 이름은 구(久)이며 중군도총제부총제(中軍都摠制府摠制)이다. 딸 둘이 있는데 맏딸은 한성부윤 홍섭(洪涉)에게 시집가고, 다음은 경상좌도 도절제사 이승 간(李承幹)에게 시집 갔다. 손자 복생(福生)은 어리고, 외손, 다섯은 모두 도절제사 의 아들인데 첨전(忝全)은 전(前) 공정고 부사(供正庫副使)요, 신전(愼全)은 사재직 장(司宰直長)이요, 다음은 성전(誠全)ㆍ안전(安全)ㆍ항전(恒全)이다. 서자 셋이 있는 데 장(長)과 연(延)은 모두 어리고, 영(永)은 의흥시위사대호군(義興侍衛司大護軍)이 다. 서녀(庶女) 셋이 있는데 맏딸은 곡산부사(谷山府使) 김질(金秩)에게 시집가고, 다음은 중군사직(中軍司直) 장희걸(張希傑)에게 시집가고, 다음은 어리다. 명(銘)은 다음과 같다. 진산은 푸르고 / 晉山蒼蒼 진수는 넘실넘실 / 晉水泱泱 아, 아름다운 땅의 신령스러움 / 猗歟地靈 호정을 낳았구나 / 生我浩亭 선생의 자질 / 先生之質 옥처럼 윤택있고 엄준하네 / 玉潤而栗 시원스런 흉금은 / 洒落胷中 개인 달과 맑은 바람이라 / 霽月光風 하늘이 동방을 도우시어 / 天眷東方 우리 임금을 돕게 하시네 / 俾輔我王 여러 말과 계책을 들어 주시니 / 言聽計從 천년에 한번 나는 기회로다 / 千載一逢 공을 정승으로 삼아 / 爰立作相 백관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니 / 百僚是長 공로가 종묘사직에 있고 / 功在廟社 은택은 어려운 백성에 미쳤다오 / 澤被鰥寡 이단을 배격하여 / 觝排異端 도학을 밝히시니 / 唱鳴道學

72 공이 이 때에 / 公於是時 당나라의 한유가 되고 / 唐之昌黎 두 조정에 계책을 정하여 / 定策兩朝 친히 국사를 도왔으니 / 親扶日轂 공이 이 때에 / 公 是時 송나라 치규라네 / 宋之稚圭 미연에 밝게 알아 / 明炳幾先 계책이 헛됨이 없었으니 / 無遺策 누구와 비슷한가 / 誰其似之 장막 속의 장자방이라오 / 帷幄子房 충의와 정성이 / 忠義精誠 위로 흰 해를 꿰었으니 / 上貫白日 누구와 같은가 / 誰其似之 한 평생 분양이라오 / 終始汾陽 사업이 넓고 덕이 높아 / 業廣德崇 나라의 원로이네 / 宜國黃 칠순에 마치시니 / 七旬而終 어찌 장수라 이르리오 / 孰云其壽 팔 다리가 없어진 듯 / 股肱之虧 임금께서 슬퍼하고 / 元首傷悲 철인이 돌아가시니 / 哲人之萎 길가는 나그네도 눈물지었다 / 行路涕洟 아, 선생이시여 / 嗚呼先生 이제 돌아가시다니 / 今也卽亡 이름을 솥에 남기고 / 名留鼎 신은 고향으로 돌아갔오 / 神返故鄕 울창한 선영에 / 有 先塋 길이길이 간직하고 / 其永于藏 돌 다듬어 글을 새겨 / 鑱石銘辭 먼 장래에 보이리 / 用示攸長 (원문) 有明朝鮮國奮忠仗義同德定社佐命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晉山府院君修文殿大提 學領經筵春秋館書雲觀事世子師諡文忠河公墓誌銘 幷序

73 河氏之先 出於晉陽 爲一鄕望族 自左司郞中諱拱辰 仕高麗樹功顯王朝 和戎却 敵 爲一代名臣 其後有諱卓回 仕高王朝 爲四門博士 自博士以下四世登科 世有 聞人 毓慶積善 至於公而門益大 公諱崙 字大臨 曾祖諱湜 博士五世孫 徵仕郞 膳官署丞 贈純忠補祚功臣 輔國崇祿大夫判司評府事 晉康君 祖諱恃源 式目錄 事 贈純忠積德秉義補祚功臣 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右政丞 判兵曹事 晉康府院 君 考諱允潾 奉翊大夫順興府使 贈忠勤翊戴愼德守義協贊功臣 大匡輔國崇祿大夫 領議政府事 晉陽府院君 妣姜氏 贈辰韓國大夫人 檢校禮賓卿 贈崇祿大夫議政府 贊成事 判戶曹事諱承裕之女 皆以公貴得贈 至正丁丑春 姜氏得吉夢有娠 以其年 十二月己丑生公 公自幼嶷然 不類群兒 十歲就學 旣授輒成誦 年十四 中庚子國 子監試 杏村李文貞公 其試官也 十九 中乙巳科 樵隱李文忠公 牧隱李文靖公 其座主也 一見器之 卽以其弟禮儀判書仁美之女妻之 于時 二公宗主斯文 學士大 夫咸出其門 公周旋師友之間 講論切磋 學問日進 丁未 選入春秋館 爲檢閱爲供 奉 洪武元年戊申 試監察糾正 己酉 監檢收司量田 劾辛旽門客之爲副使者 忤旽 罷 辛亥旽誅 起知榮州 按廉使金湊上其治行策一 壬子 召拜考功佐郞 癸丑 以 版圖佐郞 察訪交州江陵道 甲寅 除諸陵署令 乙卯 歷司憲持平 典理正郞 丙 辰 進典校副令 知製誥 改典儀 副令 丁巳 遷典法摠郞 寶文閣直提學 依前知製 誥 自此除職皆帶館職 又以版圖摠郞 按廉交州道 戊午 轉典理摠郞 己未 陞典 校令 成均大司成 庚申九月 丁外憂 辛酉起復 判典校寺事 乞終喪 許之 壬戌 服闋 授右副代言 癸亥 移右代言 尋判書典理 甲子 入密直 爲提學 乙丑 進 簽書 秋 太祖高皇帝遣國子典簿周倬等來 公迎接于西北面 其還也 公奉謝表偕 行 倬等甚禮重之 丁卯 改同知 戊辰春 武臣崔瑩欲興師犯遼陳 公力陳不可 瑩 怒 放之襄州 夏 瑩敗 公得還 己巳春 復拜同知 秋 有稱永興君王環者 來自 日本 公以姻戚 素知環貌 言其非眞 見放于光州 庚午春 移放于蔚州 夏 尹 彝 李初之獄作 會諸流人于淸州置對 公得兌 歸晉州 辛未夏 起爲全羅道都觀察 使 壬申夏 代還 我太祖旣受命 癸酉秋 再起公 觀察京畿右道 公始以民戶墾田 多少定賦役 豪 雖惡之 而人服其均 諸道皆效之 遂爲定制 時 太祖欲遷都雞龍 山 旣興役 公力諫 從之 甲戌三月 復簽書中樞院事 乙亥四月 遷中樞使 七 月 丁內憂 丙子四月 起復藝文 春秋館學士 辭不就 高皇帝以表辭不謹 徵我主 文者鄭道傳入朝 且遣牛牛等官督之 公爲館伴 太祖密訪廷臣以遣否 皆顧望以爲不 必遣 公獨言遣之便 道傳大銜 七月 太祖欲遣李至奏 使臣謂惟河館伴可以將命 請與之俱 公至朝廷 敷奏詳明 事果得解 丁丑正月 鄭道傳議擧兵出疆 忌公 出 爲雞林府尹 其春 倭酋數人率衆 至慶尙道請降 四月 公與觀察節制諸公 議所以 處置者 主議者失策 倭酋逸去 六月 逮公等于巡軍置對 七月 安置水原府 十 月 得自便 戊寅七月 拜忠淸道都觀察使 九月 上王嗣位 召拜政堂文學 十月 錄定社功 策公爲第一 賜爵晉山君 入賀建文皇帝登極 己卯十二月 參贊門下府 事 庚辰四月 陞贊成事 五月 判義興三軍府事 兼判尙瑞院事 九月 拜門下右政

74 丞 判兵曹事 進爵爲伯 十一月 今上卽位 辛巳正月 錄佐命功 公又在一等 閏 三月 以病辭 拜領三司事 四月 知貢擧 取今知申事趙末生等三十三人 七月 改 官制 因領司平府事 兼判戶曹事 始請造境內通行楮貨 以贍國用 壬午六月 獻覲 天庭 受明命樂章一篇 賜敎奬諭 十月 拜議政府左政丞 判吏曹事 入賀今上皇帝 登極 知議政府事李詹爲之介 公至朝廷 與李公上書禮部 以爲新天子旣與天下更始 矣 請改賜吾王爵命 帝嘉之 永樂元年癸未四月 偕朝使都指揮使高得等 奉誥命印 章以來 上益重之 賜賚甚厚 甲申六月 以旱乞免 乙酉正月 復左政丞 加世子 師 丙戌 公以各宗寺社住持多點土田奴婢 殖貨冒色 蠹財惑衆建白 於各首州郡 量置一二寺 餘皆革去 其土田奴婢悉屬於公 上從之 識者稱快 丁亥四月 重試文 士 令公讀卷 取今藝文館提學卞季良等十人 七月 又以旱請避位 戊子二月 領議 政府事 辛卯三月 知貢擧 取今平壤判官權克中等三十三人 壬辰八月 復左政丞 公至是四秉國勻矣 甲午四月 國家倣周官 分政府庶務 歸諸六曹 以公領議政府 事 乙未十月 又拜左議政 丙申春 公年七十矣 以故事乞致仕 上久未之許 公數 以告 上特優公不朝 至四月乃許 以晉山府院君就第 國有大事 必以咨焉 其年十 月 上欲遣使咸吉道 巡視先王陵寢 公請自行 上愍其老而嘉其志 親出郊餞之 公 旣卒事 將還疾作 上聞之 亟遣內醫治疾 內廚調膳 中官問慰 絡繹於道 十一月 初六日癸巳 卒于定平公廨 訃至 上悼甚 哭之流涕 輟朝三日 素膳七日 遣禮官 賚敎致祭 且命有司護喪還都 殯于京第 上及世子親臨弔奠 賜諡曰文忠 官庇葬事 有加 公之哀榮 可謂無憾也已矣 明年丁酉三月十一日丁酉 嗣子都摠制公奉柩歸 祔晉州梧坊洞坎山之岡先塋之東 遵治命也 公天資重厚 識明而量弘 雍容簡默 平 生無疾言遽色 至其端委廟堂 決疑定策 其氣毅然 略不以 譽動其心 爲相 務存 大體 不事苛察 嘉謨密議 啓沃弘多 而退未嘗泄於人 處已接物 一誠無僞 仁於 宗族 信於朋友 下至僮僕 皆懷其惠 薦進人材 嘗若不足 片善必取 而掩其小 過 居家不治生 不喜奢麗 不樂宴遊 性好讀書 手不釋卷 悠然嘯詠 至忘寢 食 經史子集 無不通究 至於陰陽 醫藥 星經 地理 皆極其精 禮樂制度 皆所 詳定 勸勉後生 商確義理 亹亹忘倦 當國以來 專典文翰 事大辭命 文士著述 必經公潤色 印可而後乃定 嘗奉旨 修太祖實錄一十五卷上之 自號浩亭 有文集二 十卷 預爲遺文 藏之巾笥 訓誨子孫 纖悉周備 且誠以喪葬一体朱子家禮 無作佛 事 公旣沒而書出 其家如其言 夫人李氏 今封辰韓國大夫人 生一男曰久 中軍都 摠制 女二人 長適漢城府尹洪涉 次適慶尙左道都節制使李承榦 孫男一人 福生 幼 外孫五人 皆其節制子也 恭全 前供正庫副使 愼全 司宰直長 誠全 安全 恒全 庶男三人 曰長 曰延 皆幼 曰永 義興侍衛司大護軍 庶女三人 長適谷山 府使金秩 次適中軍司直張希傑 次幼 銘曰 晉山蒼蒼 晉水泱泱 猗歟地靈 生我浩亭 先生之質 玉潤而栗 灑落胸中 霽月光 風 天眷東方 俾輔我王 言聽計從 千載一逢 爰立作相 百僚是長 公在廟社 澤 被 寡 觝排異端 唱鳴道學 公於是時 唐之昌黎 定策兩朝 親扶日轂 公於是 時 宋之稚圭 明炳幾先 籌無遺策 誰其似之 帷幄子房 忠義精誠 上貫白日 誰

75 其似之 終始汾陽 業廣德崇 宜國黃 七旬而終 孰云其壽 股肱之虧 元首傷 悲 哲人之萎 行路涕洟 嗚乎先生 今也則亡 名留鼎彝 神返故鄕 有鬱先塋 其 永于藏 鑱石銘辭 用示攸長 <출처 : 浩亭先生文集卷之四 -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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