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M 드디어 2시간의 지연 끝에 컴퓨터가 다시 작동을 시작했다. 항공사는 자리를 배정 하고 탑승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와 작별 포옹을 하고 새로 찾은 독일 친 구를 따라 게이트로 이동하였다. 드디어 내 길을 간다는 것에 들뜨기는 했지만, 나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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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영 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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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TM Book 13, Unit 1 - 그리고 출발! 2 두 달 동안 유럽에 배낭 여행 가볼래? 어느 날 방과 후에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 전에 나는 여름방학 때 잠시 프랑스에 있는 친구집에 갔다와도 좋을 지 물어본 적이 있지만 이것은 훨씬 더 좋은 기회였다. 이때가 아니면 내가 언제 유럽을 공짜 로 볼 수 있겠는가? 3 출발 일자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생활은 점점 더 뒤죽박죽이 되었다. 벼락치기 기말 고사 공부에 사로잡혔기는 했지만 뒤로는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혼동이 쌓이고 있 는 것 같았다. 이런 혼돈 속에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여행을 준비하기 위하여 무엇 이 필요한 지 생각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4 항상 미리 생각하시는 우리 엄마는 나의 첫 주를 폴란드에서 해비타트라는 단체와 함께 자원봉사를 하도록 일정을 잡았다. 나는 건축학 학위를 받을 계획이었고, 엄 마는 그것이 대단히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느꼈다. 내가 정말로 해야 했던 것은 유레일 패스와 튼튼한 배낭을 주문하는 것이었다 (두 가지 다 출발 전날 도착 예정 으로) 이것이 내가 준비한 내용의 골자다. 배낭이 도착하자 나는 세면용품과 갈 아 입을 옷가지, 전자제품, 충전기 및 "가자, 유럽으로!"라는 책을 배낭에 챙겨넣 었다. 여행 일정을 만들려고 했었지만 무위로 끝났고, 그래서 여행 일정 없이 떠났 다. 5 나도 모르는 사이 학교가 끝나고 나는 폴란드의 크라크푸 (크라쿠프) 행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 2012년 6월 18일이었고, 나는 7월 29일 돌아오도록 되어 있었다. 비 행기에서 내려 별로 계획도 없이 집에서 수 천 마일 떨어진 대륙에 발을 내딛는다 는 생각에 겁이 났지만, 겁먹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썼다. 나는 자신에게 모든게 잘 될거야, 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일이 잘못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기 때 문이었다. 뿐만아니라 나는 옷가지, 신발, 물병, 돈, (폴란드의 글리비체(Gliwice) 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는) 유레일 패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으로 오는 비행기표 까지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ipad와 응급약품세트, 손전 등 그리고 학교과제로 여름동안 읽어야 할 책까지도 다 챙겼던 것이다. 또한 생각 을 좀 하다보니 2달 동안의 여행 계획을 사전에 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을 깨달았다. 나로서는 최대한의 준비가 된 셈이었다. 6 출발하기 전날 밤, 나는 다음 날 입을 옷을 내놓고 배낭을 챙기고 (앞으로 두 달 동안 매일 휴대할) 짐쌕(gym sack)을 채워놓고 잠이 오기를 기다렸다. 나는 들떠 있었다. 빨리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7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나는 베타 피쉬를 친구집에 맡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 고기를 산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여행에 데리 고 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했다. 나는 짐을 집어서 차에 옮겨 싣고 떠났다. 8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는데, 공항에서 내 여행의 첫번째 지연사태가 발생하였다. 에어 캐나다의 모든 시스템이 다운되었다. 우리는 기다렸 다. 그리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좀 더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나 와 똑같은 비행일정으로 뮌헨까지 가는 가족을 만났다. 공항을 제대로 찾아다니지 못할까봐 걱정했던 부모님은 내가 뮌헨(Munich)에 도착할 때까지 내가 비행기 갈아 타는 것을 도와달라고 그 가족에게 부탁을 하셨다. 그 가족은 친절하게 그렇게 하 겠다고 답하였다. 이처럼 기다림의 단조로움이 잠시 중단되고 나서 아빠는 일 때문 에 떠나셔야만 했다. 나는 아빠와 작별 악수를 했고, 엄마와 나는 더 기다렸다.
2 BTM 드디어 2시간의 지연 끝에 컴퓨터가 다시 작동을 시작했다. 항공사는 자리를 배정 하고 탑승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와 작별 포옹을 하고 새로 찾은 독일 친 구를 따라 게이트로 이동하였다. 드디어 내 길을 간다는 것에 들뜨기는 했지만, 나 는 또한 다소 불안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나는 해낼 수 있는지 확신이 없었다. 그 렇지만 몬트리올에 도착할 때 쯤에는 이미 집에서 수 천 마일을 떠나왔으며 돌아가 는 길이 없었기에 그와 같은 모든 불안감은 사그러들었다. 드디어 뮌헨에 도착하자 나는 지난 10여시간 이상을 함께 여행한 독일 가족에게 감사드리고 작별인사를 했 다. 그리고 크라쿠프행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게이트로 갔다. 크라쿠프에서는 앞으 로 1주일 정도 함께 자원봉사를 하기로 되어 있는 가족이 나를 만나기 위하여 기다 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좀 더 많이 알고 싶어서 안달이 났고, 자원봉사 프로젝 트를 기대하였지만 막상 마지막 비행기로 갈아탔을 때는 무엇보다도 크라쿠프에 도 착하여 뜨거운 샤워장에 뛰어들고 싶은 바램이 간절해졌다.
3 BTM Book 13, Unit 2 - 크라쿠프 그리고 글리비체, 폴란드 2 장시간 끝에 우리는 폴란드에 도착하였다. 내가 옛 수도인 크라쿠프에 비행기를 타 고 간 것이다. 믿기지가 않았다. 세상의 그 많은 곳 가운데 나는 크라쿠프 있었던 것이다. 비록 몇 달 전부터 그 도시가 나의 첫번째 유럽 도착지가 될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대단히 초현실적이었다. 내가 꿈을 꾸는 것이 아님을 볼을 꼬집어 확인해 야만 했다. 나는 2년 전 여름에 페루의 리마에 도착했던 때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때도 나는 똑같이 믿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3 비행기에서 내려 한 패거리의 사람들을 따라 공항 입구까지 갔는데 누군가가 내 이 름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팀 리더인 톰이었다. 여행길에 오르기 전에 나는 톰과 딱 한번 통화를 했는데 그가 어떻게 생겼는 지 몰랐다. 그런 이유로 나는 그 사람이 턱수염을 길렀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치 못했었다. 그런데 수염을 기른 그 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수염을 빼곤 그는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같았 다 그는 짧은 갈색 머리에 가느다란 금속테 안경을 끼고, 키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약간 컸고, 물론, 우리 팀 셔츠를 입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굳게 악수를 했다. 같은 비행기를 탔던 자원봉사 가족이 도착하였고 우리는 나머지 팀멤버들을 기다리기 위하여 윗층의 작은 카페로 갔다. 4 다음 두 시간 동안 다른 사람들이 카페에 드문 드문 들어왔다. 드디어 모두 도착하 여 밴을 타고 호텔로 출발하였다. 차를 타고 가면서 말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나에 게는 그것도 괜찮았다. 공항에서 졸리지는 않았지만, 밴에 올라타자 눈꺼풀이 내려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잠에 골아 떨어지지 않기 위하여 나는 이제 막 시작된 믿을 수 없는 모험에 대한 생각으로 주의를 돌렸다. 잠시 드라빙을 하고 곧 호텔에 도착하였다. 읍내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3성급 호텔이었다. 우리는 냉방이 가동중인 호텔로 들어갔는데 프론트의 직원들이 영어로 우리를 맞이하였다. 놀라웠 다. 투숙 절차를 매끄럽게 마치고 각자 방의 키를 받았다. 나는 뮌헨 공항에서 만 난 나보다 한 살 어린 동료 카일과 함께 3층의 방을 향해 이동하였다. 다른 방들에 비하여 우리 방은 약간 작고 탁하였지만 나에게는 대수로운 것이 못되었다. 5 배낭을 열어보니 배행 중에 압력의 변화로 인하여 구강 청정제가 여기 저기에 샜 다. 구강청정제는 몇 개의 타올과 셧츠를 흠뻑 적시었지만 푸른색 가디건을 초록색 으로 염색해버렸다. 초록색으로! 나는 혹시 세탁하면 물이 빠질까 싶어 신속히 그 것을 호텔 리셉션으로 가져갔다. 불행히도 나는 득도 없이 큰 돈만 써버리고 말았 다; 이미 지울 수 없는 것이었다.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나는 여행의 첫번째 교훈을 배웠다 -- 여행지에도 있는 세면용품은 갖고 다니지 말 것. 6 나머지 하루의 시간은 특별한 인생의 교훈 없이 지나갔다. 나는 다른 팀메이트들과 어울리느라 바빴고, 폴란드의 유명한 보르스치 숩을 맛있게 먹었다. 그 뒤로 나는 시내 구경을 나갔다 돌아와서 단체 미팅과 저녁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내방으로 올라가서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부모님께 폴란드에 무사히 잘 도착했음을 알려드 리고, 이제까지의 여행에 대한 첫 인상과 경험을 말씀드렸다. 전화를 끊고 난 다 음, 나는 씻고 잘 준비를 하였는데 바로 잠이 들지를 않았다. 비록 떠나온 지 겨우 24시간이 조금 넘었지만 집에 있는 보고 싶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맨정신으로 누워 있었다. 어느 순간 친구와 가족의 모든 얼굴들이 희미해지기 시작하였고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4 BTM 비록 새벽 3시에 잠들긴 했지만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어느 때보다도 더 충전된 느낌이었다. 내가 있는 곳은 집보다 7시간이 앞서는 것이어서 내가 눈을 떴을 때 우리 집의 시간은 오후 2시였다. 우리는 전날 저녁을 먹은 곳에서 아침을 먹었다. 그곳은 우리 호텔 바로 옆에 있었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침을 먹고 일부 멤버들은 여행 가방에 모든 짐을 챙겼다. 나는 이미 낭패스러운 구강 청 정제 때문에 그 일을 끝냈으므로 새로 만난 몇 몇 친구들과 함께 구경을 나갔다. 8 우리는 먼저 고대 도시의 장벽 바로 외곽에 위치한 고대의 방어지휘탑인 Barbacoa 로 향했다. 우리는 대부분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1주일 후면 다시 크라쿠프로 돌아와서 정식 구경을 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았 다. 우리는 구경을 계속하여 호로 둘어싸인 바벨 성당 (Wawel Cathedral) 가까이 가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성당에는 St. Stanislaus[1]와 같은 폴란드 역사 에 아주 많은 중요한 역사적 인물들의 지하 묘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벨을 거 닐다가 우리는 소집 시간을 거의 지나쳤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서 돌아갔다. 호텔 에 도착하자 밴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아무도 떠날 준비는 되어 있지 않 았지만, 어떻든 나는 가방을 갔고 로비로 갔다. 한 동안 서성거린 다음 우리는 드 디어 밴에 끼어타고 앞으로 몇 일 동안 자원봉사를 하기로 되어있는 글리비체를 향 해 출발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경치를 즐기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 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잠이 들어버렸다. 9 나는 장차 건축가가 되고 싶어서 1년 좀 넘게 우리 동네의 해비타트 (Habitat for Humanity) 기관에서 자원봉사를 해왔다. 이번 경험의 비용 마련에 도움을 주신 이 모들, 이모부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엄마 덕분에 얻은 폴란드에서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는 건축의 다양한 스타일을 경험하고 세계적으로 다양한 건축을 비 교 및 대조해 볼 수 있는 완벽한 기회였다. 엄마가 이번 여행에 대한 가능성을 염 두에 두고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을 때 나는 엄청 재미 있을 것 같아서 가고 싶다 고 했다. 실제로 재미있었다. 10 그렇지만 이번 여행 경험은 나에게 귀중한 교훈을 주기도 했다. 나는 많은 것을 배 웠다. 건축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팀웍과 협력에 대해서도 배웠다. 나는 우리의 목 표가 최대한 빨리 끝내고 다음 프로젝트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100% 전력을 다하 여 서로를 돕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우리들 가운데 일부는 젊었고, 일부는 나이 를 먹은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똑같은 일을 해낼 수는 없었지만 우리 모두는 똑같 이 기여했다. 팀웍이라는 것은 모든 멤버가 똑같이 노력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또 한 하나의 팀으로 취약하지 않게 일을 성공적으로 끝내기 위하여 팀멤버 각자의 강 점과 약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11 글리비체에서는 마지막 2일만 빼고 매일 작업을 하였다. 나는 시차적응이 되지 않 아 해비타트 프로그램 대부분 동안 수면부족이 계속되었다. 나는 매일 밤 2시에서 3시 30분 사이에 잠이 들었고, 아침에는 7시 30분에 일어나도 되는 데 왠지 자꾸 5 시 30분에 깨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억지로 두 시간 동안 잠을 청해야 했다. 아침 식사 메뉴는 빵과 종류별 치즈, 그리고 고기와 커피 한 잔으로 매일 똑같았다. 그 렇지만 싫지는 않았다. 12 학기 중에는 보통 너무 늦게 일어나서 아침을 먹을 수 없었는데, 하루 동안 지탱하 기 위하여 음식을 좀 먹고자 했던 나로서는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아침 식사 후 나의 정규일정은 짐쌕을 챙기고 밴 옆에서 그룹의 나머지 일행을 만나 밴을 타 고 일하는 곳까지 30분을 가는 일이었다. 현장에 도착하면 하루 일과를 위한 지침 을 받고, 점심 메뉴를 구두로 전달받는다. 질의와 점심 주문이 끝나면 작업이 시작 된다.
5 BTM 그렇지만 매일 현장에서 일만 한 것은 아니었다. 둘째 날은 팀멤버 2명과 함께 '현 장견학' 초대를 받았다. 나는 미국에서 참여했던 주택개량과 비교하여 폴란드에서 의 주택개량은 어떠한 것인지 정말 궁금해서 그 기회를 덥석 잡았다. 폴란드의 해 비타트 창립자인 아담은 우리가 일하는 현장에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카토비 체 (Katowice)까지 우리를 태워다 주었다. 길을 따라 자갈이 깔려 있는 꽤 작은 외 곽의 읍내처럼 보였다. 14 거기서 우리는 우선 폭행 피해 여성들의 쉼터를 방문하여 화장실과 세탁실의 악화 된 몰딩 문제에 대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았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나는 부모 님이 나에게 제공해주신 생활환경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주인들과 자녀들의 작은 방들로 이어지는 복도마다 문이 줄지어 있었다. 방들은 내 침실보다 는 약간 컸다. 일반적인 미국 거실 크기였다. 복도를 지나며 열린 문으로 방안을 얼핏 보았는데, 방에는 침구로 침대가 아닌 소파가 놓여 있었다. 모든 방들이 각기 다르기는 했지만 각 방마다 1-3 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는데, 나는 밀실공 포증세 같은 것을 느꼈다. 15 나는 어떻게 처신할 지 몰라서 묵묵히 가이드를 따랐다. 우리 일행은 간식이 차려 진 방으로 안내되어 아담이 그곳의 직원과 폴란드어로 대화를 하는 동안 기다렸다. 그들은 검토할 것이 꽤 많아 우리는 오랫동안 기다렸다. 나는 이 경험을 제쳐놓고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어쩌면 잘 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비록 나는 그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내가 본 것들이 나에게 여러가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 는 세상과 내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다른 렌즈를 통하여 세상을 목격할 수 있는 기회에 감사했다. 16 우리의 다음 일정은 2 곳의 주택개량 현장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비록 해비타트가 진행한 프로젝트들은 아니었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했던 프로젝트들과 비교 해보고 싶었다. 왠지 나는 글리비체의 개량은 상당한 스파르타 식으로 될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우리가 방문한 첫번째 개량 프 로젝트는 아직 진행중이었다. 작은 프로젝트이긴 했지만 상세한 부분까지 세밀한 주의를 기울인 것이 정말 두드러졌다. 아직 완성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완성되면 근사한 모습이 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두번째 개량 프로젝트는 이미 완성된 것이 었다. 사실 그 가족은 (세 아이들의 엄마는 맥도날드에서 일하신다) 오픈하우스를 하고 있었다. 17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적어도 난 질투를 하고 있었다. 황당하 고 진부하지만 "책을 표지로 평가하지 말라"라는 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밖에서 볼 때 건물은 썩 좋아보이지 않았고 낡아서 폴란드의 생활 수준이 별로 안 좋다는 잘못된 인상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대단히 성공적인 노력을 보고 나는 우 리 모두가 조금이나마 도움을 준다면 명분과 장소에 상관 없이 많은 사람들의 생활 을 상당히 향상 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내가 해비타트 자원봉사를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18 글리비체 학교관사 프로젝트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시멘트를 비비고, 그것을 이 용하여 벽에 단열처리용 부석벽돌을 쌓는 일이었다. 우리는 또한 데이지 체인 방식 으로 (약 40 파운드의) 무거운 벽돌을 여러 층의 계단 위로 올리는 일을 했다. 벽 돌을 다루는 일은 손목을 학대하였고 결국 왼쪽 손목에 흉터를 남겼지만 나는 개의 치 않았다. 마치 전투에서 흉터가 생긴 것처럼 보였고, 나에게는 좋은 추억을 떠올 렸다.
6 BTM 한 번은 점심 시간에 작업현장을 돌며 사진을 찍었다. 공교롭게도 창차 거주민이 될 사람이 도착하기 직전에 사진을 하나 찍게 되었다. (해비타트 규정은 거주민도 집 짓는 일에 노력봉사를 하게 한다.) 사진에 찍혔다고 생각한 그 사람은 나에게 "No Photos"라고 말했다. 그 사람이 찍히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사진을 보여주었지만 그 사람의 얼굴표정으로 보아 여전히 약간 불편한 심기가 있다는 것 을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다시 벽돌 나르는 일을 하면서 그는 누그러졌고 (우리는 서로 옆에 있었다) 서로의 배경은 달라도 우리는 같은 편이라는 것을 깨달 았다. 20 벽돌은 길이 25인치, 폭 7인치 및 높이 3인치 크기였으며, 무게를 감안하면, 계단 위로 전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였고 그 일은 곧 웃음이 넘치는 일이 되었다. 이런 분위기는 나이를 좀 먹은 팀멤버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벽돌을 전달하면서 죽겠다는 식으로 끙끙거리기 시작했고, 내가 따라했다. 그러자 내가 조금 전에 마주쳤던 폴란드 사람도 따라했다. 나는 끊임없 이 오른쪽으로 손을 펼쳐서 아래쪽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벽돌을 받아 반대쪽으로 휙 돌려 왼쪽에서 끙끙대고 있는 친구에게 전달해주었다. 벽돌은 매번 나의 왼쪽 손바닥 바로 윗부분의 손목을 쳤다. 그곳의 자국이 빨간색으로 변하고 피가 나기 시작하였다. 통증이 심할 것 같이 들리지만 통증은 하나도 없었다. 아마 하던 일이 아주 재미있어서 신경도 못썼던 것 같다! 21 하루는 일과 후에 글리비체에서 라디오 탑에 아주 짧지만 대단히 추억에 남는 구경 을 했다. 하나의 라디오 탑에 대하여 그렇게 흥미를 갖는 것은 미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 탑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격자식 목재 탑이다. 이 탑을 이용하여 히틀러가 제 2차 세계 대전을 시작한 것이다. 히틀러는 러시아를 공격하기 위하여 폴란드와 동맹을 형성하려고 시도하였지만 폴란드가 거부하였다. 히틀러는 폴란드 유니폼으로 변장을 한 나치의 엘리트 무장그룹을 글리비체의 라디오탑으로 보냈다. 이 라디오탑에서 변장을 한 나치들은 독일에 반대한다는 발표를 하였다. 한 시간 후 히틀러는 자신이 꾸며낸 메시지에 대하여 폴란드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것으로 응답하였다. 비록 나는 역사에 빠진 사람은 아니지만 솔직히 그것은 상당히 흥미로 운 것이었다. 라디오탑은 실존했던 것이다. 이곳이 바로 인류역사에 영향을 미친 곳이다. 이것은 역사였던 것이다. 22 글리비체에서의 경험을 마무리하기 위하여 우리 팀은 끝으로 글리비체의 유대인 지 구를 돌아보고 저녁을 먹으로 갔다.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 만 음악은 기억한다. 피아니스트 겸 가수 1명에 트럼펫과 다른 가수로 구성된 작은 밴드가 연출한 음악이었다. 대단히 독특하였다. 계산을 하고 난 다음 우리는 아이 스크림 가게를 찾아 나섰지만 주변에는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호텔 로 갔고, 나는 방으로 가서 힘들고 벅찼던 하루 끝에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23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마지막으로 밴을 타고 크라쿠프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한 첫 날,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시내 관광을 안내했던 관광 안내와 함께 보냈다. 날씨 는 아주 좋았고, 분위기는 활기가 넘치고, 즐거울 때는 시간이 빨리 간다는 말과 같이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아이스크림 가판대의 사람이 나에게서 10 즐로티 (Zloty)[2] (미화 $3.50)를 갈취하려고 했던 일만 빼면 그날의 모든 것은 완벽했 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관광 도중 멈추어서 10분 동안 휴식을 취할 때 우리는 대 부분 더위를 식히기 위하여 아이스크림 가판대를 찾아 흩어졌다. 나는 정확한 잔전 이 없었기 때문에 큰 돈으로 계산을 하였다. 나는 한 줌의 동전을 돌려받았다. 잔 돈을 모두 세어봐야 했기 때문에 다소 짜증이 난 상태에서 잔돈을 세기 시작하였 다. 곧 정확히 10 즐로티가 부족한 것을 알게 되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 하는 순간 관광 가이드가 나타났다. 나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하였 고, 그녀는 나와 함께 가판대로 갔다.
7 BTM 그곳에 가서 우리는 줄을 섰다. 우리 차례가 되어 가이드가 직원에게 질문을 시작 하자 그녀는 곧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매니저가 나왔고, 무슨 일인지 물었다. 가이드가 설명하였고, 계산대 직원은 마지못해 10 즐로티 짜리 지폐를 돌려주었다. 그곳을 나오면서 가이드는 그곳의 소규모 상인들 가운데 많은 상인들이 아무 생각 없이 관광객을 갈취한다고 말했다. 나는 특별히 화나지 않았다 어찌됐든 가이드 덕분에 돈을 돌려받았으니. 어쩌면 그녀가 나에게서 돈을 훔치려고 했던 것은 생활 이 힘들고 나는 돈을 쓸만큼 부유한 여행자라고 생각해서 그랬을 수도 있었을 것이 라고 이해하려고 했다. 25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하루는 더 좋게 마무리 되었다. 우리가 일했던 프로젝트의 미 래 입주자들이 자원봉사자들 모두를 위하여 근사한 저녁을 차려주었다. 그 음식은 아주 훌륭했다. 스테이크, 소시지, 여러 종류의 샐러드, 각종 후식, 그리고 스프라 이트가 나왔다. 스프라이트는 일하는 동안 일종의 농담거리였다. 내가 스프라이트 만 마셨기 때문에 팀리더는 스프라이트가 나를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26 저녁을 먹고나서 우리는 배구공을 하나 발견하여 그것을 갖고 놀았다. 그것은 우습 거나 신비로운 것이었는데 무엇이라고 특히 단정할 수는 없었다. 서로 커뮤니케이 션은 안 되지만 모두가 배구를 할 줄 알았다는 것은 우습거나 놀라운 일이었다 어느 것이 더 맞는 지는 모르겠다. 서로의 언어와 문화가 다르고, 우리는 서로 수 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성장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거기에 모여서 배구를 하 고 있는 것이다! 27 그런 막간이 지나고 우리는 수혜자 한 명의 집을 돌아보도록 초대 받았다. 그 집을 나올 때 햄스터가 가득한 새장을 보았다. 나는 영어로 한 마리를 들어봐도 좋을 지 물었다. 아주머니는 기적처럼 이해를 하고 (나의 바디 랭귀지 때문?) 나에게 손들 들이밀고 한 마리를 꺼낼 수 있도록 허락해주셨다. 잠시 햄스터와 놀고난 후 그 아 주머니는 나에게 그것을 갖고 가라고 제안했다. 나는 너무 재미 있어서 아무 생각 도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농담이다. 내 마음에 제일 먼져 떠오른 것은 그것 을 비행기에 밀반입하는 것과 여러 가지 잘 못 될 수 있는 일들이었다. 28 폴란드에서 나의 팀과 함께 일했던 것은 내가 겪었던 최고의 경험들 가운데 하나였 다. 사람들, 언어, 도시, 문화, 음식 등등은 내가 집에서 상상했던 것과는 반대로 진정한 세계로의 눈을 뜨는데 도움이 되었다. 폴란드 해비타트에서의 자원봉사는 그리고 솔직히 미국에서도 역시 -- 내가 살고 있는 안락한 지역 밖의 현실에 대한 통찰력을 주었다. 세상에는 훨씬 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려움에 처해 있는 모든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 한 동안 그런 생각을 했지만 곧 내가 모든 사람을 도울 수는 없어도 작은 노력을 통하여 영향력이 아주 크고 많은 사람들의 삶을 극 적으로 개선해주는 그룹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그룹이 바로 해비타트이다.
8 BTM Book 13, Unit 3 - 아우슈비츠, 독일, 염갱, 폴란드 2 팀의 반이 6월 17일날 떠났는데 이것은 한 주일 반 동안 함께 지낸 나의 룸메이트 를 포함 짧은 기간에 좋은 친구가 된 사람들과의 작별을 의미했다. 아직 반이 함 께 있음에도 그룹은 훨씬 작게 느껴졌고 작별을 할 때면 항상 그랬듯이 다소 허전 함을 느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한 주가 지났고, 내가 홀로 떠나는 순간 모든 것이 한 순간의 꿈처럼 보일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 혼자 떠날 때는 아니었고, 남은 팀메버들이 곧 우리와 함께 아우슈비츠와 비 엘리치카 암염갱(Wielicaka Salt Mine)으로 향했다. 3 내 생각에 그날은 좀 우울하게 시작되었다. 어쩌면 꼭 우울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작별 인사는 분명 울적한 마음이 들게 했다. 아우슈비츠를 방문하는 것은 비록 또 하나의 대단히 감동적인 경험이기는 했지만 기분을 돋구어주지는 못했다. 그곳에 전시된4만여의 남자들과 여인들 및 어린이들의 머리카락이 아직까지도 눈에 선하 다. 거짓말에 당하고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여행 가방들이 눈에 선하다. 가스실 로 바로 보내진 사람들의 의족들도 눈에 선하다. 한 때 히틀러의 희생자들 사용했 던 브러시와 병, 냄비 그리고 신발들이 눈에 선하다. 아직도 그곳을 방문했을 때의 살인적인 더위를 느낄 수 있다. 물론, 그렇게 견딜 수 없는 더위 속에서 변소의 망 우를 퍼내야 하는 죄수가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비록 학교에서 그와 같은 대참사에 대하여 배우기는 했지만 실제로 아우슈비치 시내를 걸어다니는 경험 에는 비교되지 않았다. 내가 느꼈던 불쾌함은 어떤 면으로도 매일 겪어야 했던 죄 수들의 불쾌함과는 비교될 수 없었다. 그것은 대단한 충격이었다. 4 관광을 계속하면서 나의 역겨움은 점점 심해졌다. 나는 내가 본 것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취침 공간은 내 침대보다도 작은 플랫폼에 6명이 잘 수 있는 2층 침대 로 채워져 있었다. 개수대는 지저분한 물이 흐르는 기다란 통이었다. 변소는 높게 만들어 놓은 콘크리트 플랫폼에 조야한 구멍을 파서 만든 것들이었다. 프라이버시 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들로 가득찬 지독한 냄새가 풍기는 그곳에서 용변을 본다는 생각은 아주 혐오스러운 것이었지만, 나치인들이 죄수들에게 변기 아래의 오물을 청소하도록 시켰다는 것을 알고는 더욱 혐오스러웠다. 무엇보다도 가장 견디기 어 려웠던 것은 바로 죄수들이 다른 어떠한 일들 보다 그 일을 선호 했으며, 그 이 유는 나치들은 다른 죄수들 보다도 이일을 하는 자들을 더 불결 하다고 하여 피 했으며, 게다가 실내에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관광은 계속되었지만 나는 결국 듣기를 중단해야만 했다.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었다. 5 끝이 없을 것 같았던 구경이 끝났다. 그리고 점심 시간이었는데 놀랍게도 먹을 수 있었다. 시간에 쫒기어 빠르게 밴에 올라타서 암염갱으로 향했다.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나는 짧은 낮잠을 청했다. 다른 차로 바꾸어 타야 했기에 짧은 낮잠이었다. 차를 바꾸어 타고 낮잠을 잔다면 좋을 것이지만 에어콘이 없는 차를 타고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포기했다. 암염갱에 도착하자 우리는 모두 구경을 시작하기 전에 물 과 아이스 크림을 사고자 달려 나갔다. 물맛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고, 시원한 지 하로 1000 피트를 내려가는 구경이 시작되자 피부로 느끼는 암염갱은 정말 좋았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피곤하여 호텔로 돌아가서 잠자고 싶은 생각만 했다. 그날 하루는 무자비한 태양 아래서 소름끼치는 역사 속으로의 여행으로 충분했다. 6 지칠대로 지친 나는 졸지 않고 엘리치카 암염갱 구경을 즐기려고 애썼다. 솔직히 많은 기억이 없다. 나의 첫 인상은 와, 이 지겨운 것 정말 깊네 였다. 왜냐하 면 우리는 적어도 30분 동안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내려가야 했는데 바닥에 도착해 서 보니 더 깊이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통로는 계속되었고 끝은 보이 지 않았다. 안에서 갱을 지탱해주는 어마어마한 목재구조를 본 것은 기억난다. 그 렇지만 나는 피로에 굴복하여 구경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9 BTM 비록 암염갱 방문은 비몽사몽간에 지났지만 나는 나중에 볼 수 있도록 사진은 많이 찍었다 그렇다고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 나는 사진 촬영을 허용 하는 스티커를 사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지쳐있는 지 그리고 내가 구경 중에 그 갱을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마음을 바꾸었다. 나는5유로 (약 6달러)를 주고 스티커를 사서 사진을 찍어댔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나의 가장 현명한 투자 가운데 하나였다. 8 드디어 구경이 끝나자 우리 일행 아홉명은 작은 엘레베이터에 끼어 타고 지상으로 나왔다. 분위기는 한 층 더 우울해진 것 같았지만 더 이상 지독한 햇볕을 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좋았다. 우리는 밴을 타고 크라쿠프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 자 일부는 헤어지고 한 번 더 작별을 고했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 일행은 방에서 씻은 다음 저녁을 먹기 위하여 만났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옆에 있는 식당에 가서 팀으로는 처음으로 저녁을 같이 먹었다. 바로 1주일 전, 우리는 거기 모여 열렬히 모험을 시작하고자 했었다. 이제는 겨우 4명이 남아서 즐겁지만 조용한 분위기를 나누고 있다. 9 저녁을 먹고 사라와 나는 텍사스에서 온 나이 많은 친구에게 작별을 고하고 기차역 으로 갔다. 사라는 그날 밤 잘츠부르크 (Salzburg)로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거기 서 나는 마지막으로 포옹을 하고 작별을 고하기 전에 유레일 패스를 활성화 시켰다 (폴란드에서는 유효하지 않았기에 바보같은 짓이었다). 나의 친구들은 이제 모두 잘츠부르크, 뮌헨, 비엔나, 또는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등의 다른 도 시를 향하여 가고 있다. 나는 다시 호텔로 걸어갔다. 거의 2주만에 나는 처음으로 혼자가 되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어 행복했지만 새로운 기분이 스며들었다. 지난 17년 동안 나는 항상 가족과 친구가 가까이에 있었다. 거대하게 보이는 이 세 상에 처음으로, 나는 혼자였다 완전히 혼자였다. 특별히 무섭지는 않았지만 안전 하다는 느낌도 없었다. 자유를 느꼈지만 동시에 나의 행동과 결과에 대하여 100%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제약도 느꼈다. 나는 잊을 수 없는 석양의 크라쿠프를 바라보며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10 나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거나 개를 산책 시키는 공원을 거닐었다. 나 는 천천히 호텔로 돌아왔다. 보통 나는 방까지 엘레베이터를 탔다. 오늘은 피곤함 에도 불구하고 계단을 오르고 싶었다. 방문에 도착하자 키홀에 키를 넣고 천천히 돌렸다. 내 방이 나타났고 나는 들어갔다. 룸메이트가 없는 방은 정말 공허했다. 문을 다고 아직 꽤 일렀지만 잠잘 준비를 했다. 나머지 내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 같았다. 내가 겪은 팀웍 경험의 끝이자 거친 모 험의 시작이었다.
10 BTM Book 13, Unit 4 - 바르샤바, 폴란드 2 다음 날 아침 나는 자, 출발이다! 나는 자유인이다! 라고 외치며 깨어났다. 민 첩하게 옷을 입고, 양치질을 하고 배낭을 챙겨서 기차역으로 출발했다. 전날 밤 나 는 기차역에서 돌아가며 시간을 쟀기 때문에 출발 시간 훨씬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불행히도 나는 기차역에서 화장실을 들려야 했고, 그로 인하여 꽤 많이 느려졌다. 우선 화장실을 찾을 수가 없었고, 찾았을 때는 이미 만원이었 다. 내가 늦어지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일을 다 보고 나서야 실제로 기차를 놓칠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다. 3 나는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하여 승강장에 다다랐을 때는 지체할 시간이 전혀 없 었다. 나는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돌아서서 기차에서 떠나려고 하는 순간 그에게 달려갔다. 나는 죄송하지만 이 기차가 바르샤바행인가요? 라고 외쳤다. 그는 와라사바? 택. 택 처럼 들리는 말로 응답했다. 드디어 내가 그를 따라잡았을 때 그는 나의 기차표를 확인하고 열려있는 문쪽을 가르쳤다. 나는 감사를 표하고 올라탔다. 기차의 인테리어는 이상하게 낯이 익었는데 그 때 깨달았다 그것은 호 그와트 익스프레스 (Hogwarts Express)의 내부와 많이 비슷하였다. 바로 그 때, 기 차는 앞으로 출렁하더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나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5 시간의 기차를 타는 것으로. 4 그 기차 여행은 지루하였지만 즐겁기도 하였다. 얼마 동안 나는 머리를 창밖으로 내밀고 스치는 풍경과 끝이 없을 것 같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관망하였다. 지 루해졌을 때 나는 학교의 여름방학 숙제인 읽기를 좀 하다가, 책 읽기가 지루해졌 을 때는 잠을 잤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그러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한 때 검 표원이 와서 나의 기차표와 여권을 검사하였다. 나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나는 기 차를 제대로 탔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목적지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걱정 없이 여유를 부렸지만 이내 사정이 극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것은 전혀 몰랐던 것이 다. 5 바르샤바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크라쿠프에 처음 도착했을 때와는 달리 믿을 수 가 없었다. 기차에서 내려 여러 층의 식당과 상점, 전화 서비스 및 카페가 있는 대 형 복합 건물을 보았다. 바르샤바 기차역(Warszawa Centralna)은 유럽에서 관리가 가장 잘 되는 역들 가운데 하나인데, 정말 근사해 보였다. 그렇지만 그렇게 매력적 인 건물의 외모도 내가 다음에 할 일을 찾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나는 가자 유럽으로! 라는 안내책을 열고 호스텔을 찾았지만 그 책이 그다지 유용한 것 같지 않아 대신 hostelworld.com을 검색하기 위하여 WiFi를 이용할 수 있는 맥도날드를 찾았다. 웹사이트에서 나는 Hostel Tamka라는 호스텔을 찾았다. 예약을 해야할 지 확신이 없어서 나는 호스텔 경험이 더 많은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기다렸지만 답이 없었다. 다소 당황스럽고 희망이 없어서 나는 즉흥적으로 하기로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6 대부분의 호스텔은 가격이 약 80% 였기에 나는 77%의 Hostel Tamka가 괜찮을 것이 라고 생각했다. 나는 2일 밤을 예약했다. 이것이 나의 첫번째 실수였다. 일반적으 로 괜찮음 이라는 리뷰를 감안하면 그 호스텔이 얼마나 형편 없는 지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나의 두 번 째 실수는 택시를 잡아 타고 간 것이다. 역시 그 호스텔이 차 타고 5분 거리에 있다는 것을 미리 알 수는 없었다! 5분 타고 미화 6달러에 해당되는 18즐로티를 썼다! 나는 그와 같은 초짜 여행객 실수를 한 것에 대하여 너무 화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호스텔로 들어갔다.
11 BTM 접수 직원이 나를 따뜻하게 맞으며 예약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녀에게 방금 5분 전 에 예약을 했노라고 했다. 그녀는 나에게 대기실에서 15분 정도 기다리라고 했다. 30분 후에 그녀는 나에게 방 키를 건네주었다. 솔직히 기다리는 것은 싫지 않았다. 나는 급하지 않았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페이스북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키 를 받고 민첩하게 나의 물건을 긁어 모아 열정적으로 계단을 뛰어 방으로 올라갔 다. 문을 열자 두 명의 여성이 있었다 둘 다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으로 깊 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17살의 나이에 낯선 두 여성들과 방 하나를 함께 쓴다 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렇지만 나는 지쳐 있었고, 그것이 정상적인 일일 것 이라고 추정했다. 내 사물을 나의 침대 옆에 높고, 귀중품은 사물함에 넣고, 짧은 휴식을 위하여 침대로 들어갔다. 8 짧은 낮잠을 잔 후 밖으로 나가 탐험을 하고자 물병과 스케치북 및 연필이 들어 있 는 짐쌕과 바르샤바 시의 지도 및 카메라를 집어들었다. 비록 늦은 오후였지만 여 전히 더웠다. 나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 지도 확실치 않았다; 무작정 걷기 시 작했다. 현대 건축물이 많이 보였는데 제 2차 대전 중 바르샤바는 완전히 파괴되었 고 도시 전체가 60년 전에 맨 땅에서 다시 지어졌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었다. 걷기 를 계속하여 공원에 도착하였다. 이곳 저곳 돌며 시간을 갖고 사진을 찍었다. 9 시장끼를 느낀 나는 시티 센터로 가서 저녁을 먹기 위하여 꼬치구이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정식 저녁을 주문했는데 단지 11즐로티, 즉 4 달러 밖에 안 되었다! 나는 밖에 앉아저 저녁을 먹으며 소련이 선물로 준 거대한 시계탑을 바라보았다. 저녁을 마치고 나는 기차역으로 다시 가서 다음 목적지인 베를린으로 가는 기차의 좌석을 예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한 가지 문제는 내가 어디에 있는 지, 어떻게 기차역에 갈 지를 몰랐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딜레마를 한 동안 생각하다가 나는 옆에 앉아 있는 한 남자에게 길을 물었다 바디 랭귀지를 잔뜩 쓰면서. 그렇지만 그럴 필요 가 없었다 그 사람은 영어를 하였다. 바보스런 짓을 한 나 자신이 다소 당황스러 웠지만 나는 그에게 감사를 표하고 나의 길을 떠났다. 10 기차역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국제선 표를 구하고자 길게 줄지어 서있는 것이 보였다.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선택이 없었다. 기다렸지만 줄은 짧아지는 것 같지 않았다. 사람마다 표를 사는 일이 끝없이 오래 걸렸고 줄지어 있는 사람들이 동요 하기 시작했다. 실제 한 남자가 줄에서 나와 표를 사고 있는 한 사람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고 돌려 세우더니 그에게 폴란드 말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비록 나 도 상당히 짜증이 났지만 나는 -- 그런 소동이나 -- 어떠한 충돌도 피하고자 했다.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서서히 그렇지만 분명히 우리는 앞으로 이동하였고, 나는 갔다가 나중에 다시 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기다리기를 계속 하였다. 어떻든 그 밖에 다른 일을 할 만 한 에너지도 없었다. 11 족히 30분은 지나서야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마이크 쪽으로 다가가 여권 과 유레일 패스를 밀어 넣었다. 여직원이 그것을 나에게 밀어내며 폴란드에서는 유 효하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독일로 여행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레일 패스를 사 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을 했던 것이다. 나는 유레일 패스를 집어 넣고 마이너 스 카드를 꺼냈다. 그것을 건네자 여직원이 표 발행을 진행했다. 몇 분 후 그녀는 기차표가 50달러에 상응하는 약 150즐로티라고 했다. 나는 충격 받았다 크라쿠프 에서의 기차표는 겨우 17달러였다. 잠시 생각하다가 그녀에게 진행하라고 했다. 선 택의 여지가 없었다 바르샤바에서 베를린까지 설사 택시 서비스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엄두도 못낼 만큼 비쌀 것이고,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 다.
12 BTM 기차표를 구입한 후 나는 다시 호스텔로 돌아갔다. 그 때 나는 외로움이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대화를 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집에서 수 천 마일 떨어진 곳 에, 정말로 외딴 곳에 있음을 느꼈다. 그럼에도 기차표가 50달러나 한다는 사실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부모님의 돈이기 때문에 내가 손해를 본 것은 아니지만, 어쩐 지 그 점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내가 이번 여행의 비용을 부모님께 갚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부모님이 그것을 기대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또한 나를 위한 부모님의 희생에 어긋남 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또한 벌써 부터 7주 동안의 이번 여행을 완수해야 할 나의 능력에 의심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 에 불안감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13 한 동안 계속하여 걷다가 나는 길을 잃고 내가 어디 있는 지도 모르고 있음을 깨달 았다. 바르샤바 시내의 여러 곳에서 커다란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도움이 안 되었다. 우회 도로와 바리케이드를 친 길이 많았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지 도는 거의 쓸모가 없게 되었다. 일몰은 시작되었는데 나는 아직도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였다. 폴란드의 거리 표지판은 거의 해독이 불가능했고 내가 만난 경찰들은 영 어를 못해서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거리에서 호스텔로 가는 방향으로 걸었는데 알고 보니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곧 바른 길을 찾았지만 또 다시 바리케이드로 막힌 길에 접어들고 말았다. 공포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꽤 늦은 시 간이고 해는 거의 다 졌다. 나는 전에 한 번도 발딛은 적이 없는 도시에 영어나 한 국어를 못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발은 아프고 다리는 지쳤다. 앉고 싶었고 심지어 나무나 어떤 것 아래서 잠을 자는 것도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는 스 스로 독촉하여 계속 움직였다. 14 얼마 후 나는 가로등 아래서 멈추어 한 번 더 지도상에서 나의 위치를 찾았다. 나 는 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큰 길 쪽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작은 뒷골목 길 대신 넓고 뻥뚤린 간선도로로 나온 것에 안심이 되어 호스텔 쪽으로 흘 러가는 군중들을 따라갔다. 드디어 돌아가는 길을 찾았고 침대 위에 쓰러졌다. 어 떻게 된 일인지 그 두 여성은 아직도 자고 있었고, 세 개의 침대가 비어 있었다. 방은 그렇게 나를 달갑게 받아주지 않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는 안전했기 에. 비록 공포에 떨었지만 그 경험을 통하여 나는 그런 상황에서는 침착하게 천천 히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것은 가치 있는 교훈으로 나머지 여 정 동안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날 밤 내가 그처럼 쉽게 낙담 하는 자신의 모습에 좀 불안하기는 했지만 나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잘 되지 않으 면 안 되기 때문에라고 자신에게 말했다. 이것은 두려움을 대처하는 방법으로는 지 극히 바보스러운 방법이었지만 효과가 있었다. 15 다음 날 아침 일어났을 때 나의 모험심은 불과 24시간 전 보다 훨씬 떨어져 있었 다. 샤워실과 화장실은 지저분했고, 접수 직원은 친절하지 않았고, 사교성이 있는 사람도 없었고, 아침은 별로였다. 나는 가방과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나가보니 태 양은 (선글래스를 무색하게) 나의 눈을 뽑아낼 것 같이 느껴졌고, 나의 다리는 걷 기를 거부하였다. 나는 눈을 가리며 억지로 전진했다. 나는 비슬라 강 (Vistula River; 폴란드어: Wisla)를 따라 걸어가 지도에 해야 할 일 목록에 올려진 몇 군데를 구경하기로 하였다. 사진을 좀 찍고 주변을 거닐었지만 거듭 바르샤바와의 진정한 인연을 느끼지 못하였다. 눈에 와 닿는 것이 많지 않았다 비록 그늘의 다 리 아래 앉아서 점심으로 먹은 닭고기는 맛잇었지만. 얼마 후 나는 특별히 무엇을 할 지 몰라 다시 돌아갔다. 모든 것이 낯설어서 나는 집이 그리웠다. 또한 1마일 전력 질주나 하루 종일 수면을 취해 예민해진 신경을 좀 가라 앉혀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13 BTM 호스텔에 도착하여 페이스북에 들어가 친구들 몇 명과 채팅을 시작하였다. 비록 향 수가 줄어들기는 하였지만 안정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무런 구제 계획도 마 련되지 않은 상태로 집에서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나를 두렵게 했다. 그런 생각을 무시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애썼다. 저녁 때가 되었고 시장끼를 느꼈다. 가격 이 저렴한 꼬치구이 식당까지 또 걸어가서 다시 길을 잃고 싶지 않아 호스텔 근처 에서 장소를 찾아보았다. 주변에는 무식하게 말해서 무섭게 보이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심지어 한 명은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아니면 단순히 나의 상상이었 을 수도 있다. 17 그럼에도 나는 재빨리 주변을 돌아보고 한 동양 여자가 중국 식당에 들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폴란드에서 나 외에 다른 동양인을 보는 것은 위안이 되었고 나도 재빠르게 그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인 데 주인이 나에게 중국어를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몇 년 전에 중국어 레슨을 받았지만 기억나는 것이 거의 없어서 못한다고 했다. 다소 실망한 듯 보이는 웨이 터가 나의 주문을 받았다. 나는 쥐죽은 듯이 조용한 식당의 자리에 앉아서 저녁을 먹었다. 다 먹고 나서 바로 계산을 하고 급한 듯이 빠져 나왔다 왜 그런 지 나도 모른다. 18 나는 지금 바르샤바를 아주 방문할 가치가 없는 것처럼 만들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어쩌면 바로 직전에 크라쿠프를 집중하여 방문했기 때 문에 내가 그 도시를 즐기지 못했던 것 뿐이다. 크라쿠프 사람들은 수도가 크라쿠 프에서 바르샤바로 옮겨진 사연 때문에 바르샤바에 대하여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 다 그렇지만 이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바르샤바는 많은 사람들에게 훌륭한 곳 이지만 단지 내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아니었던 것이다. 좋았던 것은 두 번째 날 바 르샤바의 상황이 개선되었다는 것이다. 스웨덴에서 온 룸메이트가 생겼는데 역시 17살이었다. 그는 유로컵 경기를 보기 위하여 아버지와 함께 폴란드에 왔던 것이 다. 19 우리는 서로 인사를 하고 곧 팬 마당에 갔다. 팬 마당은 폴란드의 거의 모든 도시 에 있는 것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술마시고 그 해 바르샤바에서 열리고 있는 유로컵 을 축하하는 곳이었다. 음악을 틀어주는 DJ가 있고, 춤추는 사람들이 있고, 맥주가 끊임없이 돌고 있었다. 새로운 친구와 나는 맥주 하나를 나누어 마셨지만, 솔직히, 나는 맥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후천적 기호라고들 말하지만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약 두 시간 동안 돌아다니다 호스텔로 돌아와 잤다.
14 BTM Book 13, Unit 5 - 베를린, 독일 2 다음 날 아침 일찍 짐을 챙기어 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부른다는 것이 얼마나 비싼 지는 알고 있었지만 새벽 5:30에 역까기 40분을 걸어서 가는 것은 도저히 아니었 다. 바르샤바 기차역(Warszawa Centralna)에 도착하였고 나는 온통 바르샤바를 벗 어난다는 것에 정말 감사하는 생각뿐이었다. 또한 베를린에서 톰이라는 친구를 만 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더 기대에 차 있었다. 그렇다, 나는 이 사람을 페이스북을 통한 중간 친구의 소개로 알 뿐이지만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라고 믿었 다 실제로 괜찮았다. 아쉽게도 그는 나의 도착 후 곧 떠나야 했지만 안드레아와 일사라는 베를린에서 학교에 다니는 내 나이 또래의 여자 아이들 두 명을 소개해주 었고, 그들이 나에게 도시 구경을 시켜주었다. 3 그들의 관광 안내는 최고였다. 미친 소리 같겠지만 그들은 한국의 팝 음악에 아주 깊이 빠져있었고, 그렇게 익숙한 것에 대한 이야기 거리가 있다는 것이 좋았다. 비 록 베를린 역(Berlin Hauptbanhof)에서 그들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고 거의 만나 지 못할 뻔 했지만, 그들을 만났다는 것에 나는 정말 기뻤다. 베를린에 도착하자 나는 스타벅스에 들러서 페이스북으로 톰을 연결하려고 했지만 그는 온라인에 있지 않았다. 실망하여 그가 준 번호로 전화를 하기 위하여 누군가의 전화를 빌려보려고 했다. 내 전화는 작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4 놀랍게도 내가 전화를 빌려달라고 부탁했던 그 사람이 바로 톰이었다 내가 전화 를 하려고 했던 바로 그 사람. 그는 K-pop에 빠진 그의 친구들을 나에게 소개했고 우리는 Aleanderplatz로 향했다. 그곳에서 톰은 떠났고 그 여자 아이들과 나는 베 를린에서 가장 큰 쇼핑 몰인 Alexa로 갔다. 그곳에 도착하자 나는 스타벅스의 와이 파이를 이용하여 다음 호스텔을 찾았고 나오는 길에 버블 차를 샀다 (보바차였 다). 우리는 곧 구경 길에 올랐지만 베를린이 워낙 커서 안드레아와 일사도 길을 잃었다 그리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길을 잃었고, 비에 흠뻑 젖었고 지쳤 지만 우리는 건재했다. 우리는 마침내 Wombat s 호스텔을 찾아갔고 나는 거기서 일단 그 여자애들과 헤어졌다. 5 체크인을 하고 나는 이 호스텔이 지난 번 호스텔 보다는 더 좋기를 바라며 신중하 게 엘레베이터로 갔다. 분위기는 생기가 있었고 느낌이 좋았다. 나는 몇 장의 타올 과 침대 시트와 함께 공짜 맥주 한 병 쿠폰을 받았다 바르샤바에서는 하나도 주 지 않았던 것을! 방에 들어가서 보니 맙소사 만족스러웠다. 깨끗하고, 잘 정돈 되었고, 밝은 색으로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곧 몇 명의 룸메이트를 만났다 이 전에 바르샤바에 여행을 했다가 2012년 아일랜드가 유로국가에서 빠지자 이주한 아 일랜드 사람들이었다. 인사를 다 끝내고 나는 일부 짐을 풀고 내가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잠그어 놓고 맨 위층의 술집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가로등으로 환하게 빛나 고 있는 베를린 거리를 내다볼 수 있었다. 6 또한 시카고의 예술대학인 SAIC 에서 온 엘렌이라는 대학생을 만났다. 나는 그녀에 게 그 학교를 알아보고 있으며 어쩌면 지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 말했고, 그녀는 그 학교에 대하여 이야기 해주었다. 누군가 대화를 할 수 있는 영어를 유창하게 하 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아무 영어가 아니라 미국 영어로 말이다. 비록 그 녀는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갔지만 예술계 학생으로서 그녀의 유럽 모험을 듣는 것은 고무적이었다. 그날 밤 나는 또한 17살에 유럽을 혼자서 배낭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를 잡고 희롱하던 한 여자는 내가 심지어 법적으로 클럽에 들어갈 수 있는 나이도 못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내가 방 으로 들어갔을 때 아일랜드 친구 하나와 여자가 위층 침대 (나는 아래 층을 잡았 다)에서 그것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그 여자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러면 안 돼! 아래 층에 꼬마가 자고 있단 말이야! 라고 말했다. 나는 어떻게 할 지를 몰라 그 들을 무시하고, 씻은 후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잠들었다.
15 BTM 해가 떴고 다음 몇 일 동안 방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호스텔을 나왔다. 안드레아와 일사를 만나서 새로운 호스텔을 찾아 나섰다. 다시 길을 잃었지만 얼마 후 호스텔 을 찾았다. 호스텔에 도착하자 나는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갔다 바르샤바의 호스 텔보다 가구도 더 좋은 깨끗한 공간에 다시 한 번 만끽했다. 젠장, 전날 밤에 묵 었던 곳보다도 더 좋았다. 배낭이 무겁지는 않았지만 어깨를 파고 들기 시작하여 내려놓자 기분이 아주 좋았다. 많이 지체하지 않고 카메라와 짐쌕을 갖고 밖으로 나왔다. 날씨는 아주 좋았다 약간 구름이 끼었지만 더웠다. 바르샤바에서의 뜨거 웠던 날씨로부터 즐거운 휴식이었는데 곧 알고 보니 그 날은 나의 여행 기간 중 날 씨가 자비를 베풀었던 몇 안 되는 날들 가운데 하루였다. 8 우리는 베를린을 걸어다니는 것으로 시작하여 성당과, DDR 박물관, 대참사 기념관 을 방문하고, 나중에는 베를린 벽의 잔해와 체크포인트 챨리 (Checkpoint Charlie) 등 전형적인 관광소들을 구경하였다. 남은 시간은 인간 역사의 가장 의미심장한 유 적지 몇 곳을 방문하는 것으로 채워졌는데 놀랍게도 나에게 그것들은 그 날의 하이 라이트가 아니었다. 9 내가 가장 즐겼던 것은 자동차들이었다. 나는 차에 열광적이다 그리고 독일의 차 들은 현실 같지 않았다. 나는 굳이 이름을 몇 개 대자면 최근 The Dark Knight Rises라는 영화에 특별히 나온 배트모빌(Batmobile)과 (자동차 광이든 아니든 Batmobile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재빠르게 카메라를 잡도록 만든다), 부가티 베이 론 (Bugatti Veyrons) 몇 대, 벤틀리 컨티넨탈 (Bentley Continental) GTs 및 머세 디 (Mercedes) SLS 시리즈 등을 보았다 나 같은 사람이 벤틀리, 부가티 또는 머 세디 벤즈 대리점을 지날 때면 한 덩치의 시간이 눈깜빡하는 것보다 더 빨리 지나 가 버린다. 나는 친구들에게 사진을 좀 찍기 위하여 멈추어도 될 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차와 함께 있는 나의 사진을 좀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몇 가지 더 부탁을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얼굴에 커다란 미소를 한 완전 바보처럼 보였을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 날 하루는 좋은 날이었다. 10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날도 역시 아주 즐거웠다. 진기한 자동차들과 완벽한 날씨 외 에도 우리는 Berliner Fernsehturm TV 탑에 올라갔다. 입장료가 비쌌기 때문에 우 리는 처음에 그렇게 할 가치가 있을까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재 수가 좋았다. 나이 드신 부부가 입장권을 샀다가 차례를 기다릴 시간이 없어서 우 리에게 할인가격으로 팔았다. 우리 입장권은 약 40분 후에 호출될 예정이어서 우리 는 알렉사 백화점 (Alexa Mall)을 돌아보며 휴식을 취했다. 우리가 돌아왔을 때 우 리 입장권의 번호가 너무 달라서 두려움에 빠지기 시작했다 우리 번호는 호출되 고 있는 번호보다 훨씬 작아서 우리는 사기를 당했을까봐 염려했다. 그렇지만, 곧 직원에게 확인을 하자 입장권은 진짜 유효한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엘레베이터 를 타기 위하여 줄을 섰다 여기서 부터 재미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상 당히 유쾌한 경험이었다. 엘리베이터 대기 줄은 원형 대합실까지 길게 늘어졌는데 나는 마치 발사 준비를 하고 있는 우주선에 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11 얼마 기다리지 않아 엘레베이터에 타게 되었다 공간도 없이 어깨와 어깨를 맞대 고 끼어서 탔기 때문에 암염갱의 엘레베이터를 기억나게 했다. 엘레베이터는 꽤 빠 른 속도로 치고 올랐고, 금방 나는 귀가 먹먹해졌다. 엘레베이터를 잠시 타고 우리 는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지상 203 미터였다. 내가 보고 있는 곳이 베를린의 어디 인 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저 베를린의 모습을 전부 보고 싶다는 것 뿐이었다. 나는 360도 전망을 원했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들고 빡빡한 사람들 사이로 비틀비틀 비집고 다녔다. 나는 베를린을 움직이는 자동차와 기차가 있는 커 다란 놀이장으로 생각하는 어린애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동안 시간이 흐르는 줄 도 모르고 있다가 우리가 해야 할 다른 일이 있다는 것을 기억했다.
16 BTM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우리는 드디어 내려가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포츠다머 플라 츠 (Potsdamer Platz)로 향했다. 그곳은 베를린의 한 지역으로 고층 빌딩과 비싼 쇼핑몰로 가득 찬 곳이었다 내가 거기서 할 일은 별로 없었지만 그럼에도 아주 괜찮은 곳이었다. 심지어 한국 서점과 화랑도 보았는데 즐거웠다 안에 있는 내용 물 보다는 그렇게 낯선 곳에서 아주 익숙한 것을 보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남은 하루 시간은 얼떨결에 지났고 나도 모르는 사이 호스텔로 돌아와 잠을 잘 준비가 되어 있었다. 13 이렇게 베를린에서 나의 경험은 마무리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로자-룩셈브 르크-플라츠 (Rosa-Luxemborg-Platz) 근처의 화랑을 찾으려고 했지만 실패하였다. 우리는 걸어서 돌아다니며 공원을 가보는 것으로 아침을 보냈다. 전 날 밤 시끄럽 고 열광적인 축구팬들이 야던법석을 떨어 나를 몇 시간 동안 잠 못 이루게 했던 것 에 비하면 좋았다. 나는 평온함이 필요했다. 마침내 우리는 하우프프반호프 (Hauptbanhof)로 향했다. 거기서 나는 많은 도움을 받았고, 멋지고, 케이팝을 사랑 하는, 그리고 정말로 재미있는 안드레아 그리고 일사와 작별하고 하노바로 출발했 다.
17 BTM Book 13, Unit 6 - 하노바, 독일 2 나는 여행 중 딱 5일만 완전히 게을렀던 것 같다. 하노버가 바로 그 가운데 하루였 다. 그곳에서의 첫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내 말은 그냥 하루 종일 앉아서 먹 기만 하고 영화만 봤다는 말이다. 이것은 엄마의 연줄 덕분에 제공받은 아파트에서 머물렀기에 가능했다. 그것은 엄마 고객의 딸의 아니면 뭐 그런 비슷한 복잡한 관계 아파트였다! 안락한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다. 하노바의 숙소 는 내가 필요로 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 때까지 크라쿠프, 글리비체, 바르샤바 그리고 베를린을 거치면서 나의 여행에서 생겼던 모든 것들을 돌이켜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세계 여행의 초짜로서 나는 이미 압도되어 있 었다! 그리고 마침내 세탁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크게 안심이 되었다. 비록 모든 것이 몇 시간 동안 좋았지만 나는 조금 지루해지기 시작하고 다시 외롭기 시작했 다. 3 그 날 일찍이 호스트인 그레첸 (Gretchen) 역에서 나를 픽업하여 자기 집으로 안내 해주었다. 나는 개인사물을 내려놓은 후 지독한 지루함에서 나를 구제해 줄 것이라 고 알고 있었던 인터넷에 연결하였고, 그녀는 나를 데리고 나가 다음 날 방문할 몇 곳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두 가지 이유로 실천되지 않았다. 한 가지는 내가 너무 피곤하고 게을러 아침 11시까지 잠을 잤던 것이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조차 나는 여행 기록을 위하여 가지고 간 ipad를 꺼내들고 몇 시간 동안 유튜브를 했다. 4 배 속에서 꼬로록 소리가 나서야 멈추고 간밤에 반쯤 먹다 테이블 위에 남긴 라면 과 사탕 종이들을 치우고 먹을 거리를 찾아 시내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보니 날씨 는 꽤 음울했고 부슬 비가 가볍게 내리고 있었다. 비에 별로 신경쓰지 않아서 몸을 한 번 으쓱한 후 시티센터로 걷기 시작했다. 30여분 걸어서 내가 찾고 있던 식료품 점을 찾았다. 불행히도 내 기억으로는 그 날이 일요일이었고, 그 식료품점을 포함 한 대부분의 상점이 가게를 닫았다. 나는 빈 속으로 돌아갈 수 없어서 계속 걸었 다. 5 곧 나는 피자집 하나가 열려 있는 것을 찾았다. 나는 자리에 앉았고 작은 피자 값 을 가르치며 작은 피자 하나를 주문했다. 주문한 피자가 나왔을 때 떠오른 생각은 와, 하노바 사람들의 식욕은 대단하군! 하는 것이었다. 뱃 속이 꼬르륵 거렸기 때문에 나는 재차 생각도 없이 먹기 시작하였다. 피자의 1/8은 손도 못댄 채 드디 어 배가 불러서 멈추었다. 계산서가 왔을 때 영수증에 6,5라고 적힌 것이 보였다. 나는 작은 것을 시켰기에 3,5유로가 되어야 맞는 것이다. 나는 웨이트레스를 불렀 고 우리는 10분 동안 서로 바디 랭귀지를 쓰려고 팔 도리깨질을 하며 각자 다른 말 로 다투었다 그리고 우리는 상대방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였다.
18 BTM 여보세요, 웨이트레스를 부르는 제스쳐를 쓰며 내가 말했고 웨이트레스는 고개 를 끄덕이며 왔다. 미안하지만 계산서가 3,5유로가 아닌 6,5 유로가 나왔어요 *독일어로 뭐라뭐라!* 내 영수증과 메뉴에서 내가 주문한 피자를 가르치며 웨 이트레스가 말했다. 네, 내가 그 피자를 주문한 것은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왜 작은 피자 대신 큰 피 자 값을 나한테 계산한 거예요? *독일어로 뭐라뭐라!* 웨이트레스가 물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나를 지목하며 말했다, 나, 돈 내요, 작은 것. 웨이트레스는 영수증을 한 번 더 지목하고, 그리고 메뉴를 지목하며 내가 큰 피자를 주문해서 6,5 유로를 내야한다고 한다. *독일어로 뭐라뭐라!* 웨이트레스가 우겼다. 나는 몇 초 동안 그녀를 빤히 쳐 다본 다음 메뉴에서 작은 피자의 가격을 지목하고, 영수증을 지목하였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웨이트레스가 심하게 머리를 가로 지으며 말했 다. *독일어로 뭐라뭐라* 아니, 아니, 아니요! 저는 작은 것을 주문했어요. 저한테 잘못된 사이즈를 주신 거예요! *독일어로 뭐라뭐라* 당신이 이해를 못해요. 내가 작은 피자 값을 지목했단 말이에요! *독일어로 뭐라뭐라* 나는 작은 사이즈를 주문했다고요! 작은 거라고요? 아니에요! si! 내가 말했다. 하필이면 그 때 내가 왜 스페인어를 하려고 했는지 확신이 없다.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또 다시 영수증과 메뉴를 지목하였다. 나 는 나 자신을 지목하면서 말했다. 나 주문 작은 것. 피자. 당신, 주었어.나. 틀 린. 주문. *독일어로 뭐라뭐라* 당신이 이해 못하는 것이 뭡니까!? *독일어로 뭐라뭐라* 7 결국 나는 마지못해 포기했다. 여기서 내 주장대로 다투는 것이 의미가 없었기에 나는 그녀에게 6,5 유로를 내겠다고 말했다. 나는 잔돈을 정확히 꺼내주었고 그녀 는 웃으며 받아갔다. 그녀가 왜 웃는 것일까? 그녀는 일종의 승리를 자축하는 것이 었나? 더 이상 거기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마음 먹고 나는 투고 를 부탁했고 약 간의 포일과 봉지를 받아 남은 것을 넣었다. 나는 자켓의 지퍼를 올리고나서 말했 다, 고맙습니다, 비록 그녀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아마 이 해했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 8 밖으로 나왔을 때 비는 전보다 좀 더 많이 내렸다. 나는 걷기 시작하였다. 나는 곧 내가 큰 피자를 받은 것은 다행이었다라고 마음을 바꾸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배 가 고팠을 것이다. 아침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점심에 거의 8 달러를 썼기 때문에 찜찜했던 것이다. 특별한 생각 없이 계속 걸었는데 부슬비가 소낙비로 바뀌었다. 몇 분 안 돼 흠뻑 젖었다. 만약 비가 갑자기 멈추고 바로 햇볓이 쨍쨍 내려 쬐었다 면 사람들은 나에게 왜 옷을 모두 입은 채 수영을 했느냐고 물었을 것이다. 나는 완전히 젖었다. 나는 빨리 집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서 흠뻑 젖은 바지가 엉덩이까지 흘러내리는데도 뛰기 시작했다. 바지의 벨트 루프를 움켜쥐고 달리기를 계속하였 다. 거짓말이 아니다; 나는 분명 덩치 큰 얼간이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니면 그보 다 더 심하게 바지를 엉덩이 반 쯤 아래에 걸치는 랩 가수들이나 폭력배 같이 보였 을 것이다. 심지어 오른쪽 엉덩이를 앞으로 밀고 다음은 왼쪽, 그 다음은 오른쪽, 그리고 왼쪽 엉덩이를 앞으로 밀어내는 그들처럼 그렇게 조깅을 하고 있었다.
19 BTM 조깅을 시작한 지 한 참 후 나는 내가 있는 곳이 어딘 지 몰랐다. 나는 자신에게 저주를 퍼붓고는 돌아섰다. 춥고 실망하여 한 번 더 조깅을 시작하여 다소 익숙한 광경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왼쪽으로 갔다. 그 다음엔 오른쪽. 그리고 왼쪽. 그리 고 다시 왼쪽. 마침내 그곳에 아파트 건물이 나타났다. 나는 키를 꺼냈고 4층의 계 단을 뛰어 올라갔다. 아파트의 문을 열고 일단 들어가자 나는 그냥 문간에 몇 초 동안 서있었다. 주방의 테이블 위에 남겨 온 피자를 던져 넣고, 신발과 양말, 자 켓, 셧츠 및 바지를 벗었다. 이미 너무 많이 벗은 것 같아서 박스 팬티는 벗지 않 았다. 젖은 옷을 모두 모아서 세탁기에 집어 넣었다. 그 일이 끝나자 배낭에서 깨 끗하고 더 중요한 것은 젖지 않은 속옷을 찾았다. 젖은 박스 팬티를 세탁기에 추가로 넣고 기계를 작동 시켰다. 화장실에서 타올을 하나 가져다가 머리와 얼굴, 손 및 다리를 말렸다. 그리고 짐숏과 티셔츠를 입고 긴 의자에 누워 휴식을 취했 다. 10 한동안 유튜브 비디오를 보다가 드디어 움직여야 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충분 히 여유를 부렸기에 다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북쪽의 함부르크나 남쪽의 퀼른 가운데 선택을 해야 했다. 일기예보로 보아 함부르크 보다 퀼른이 날씨가 조금 더 좋은 것 같아서 퀼른을 선택했다. 두 곳 모두 훌륭한 방문지였으나 시간이 대단히 중요하였기 때문에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날 밤 그레첸과 그녀의 남자 친구가 인 사차 들리면서 터키 음식을 좀 가져왔다. 그들은 대단히 친절할 뿐만 아니라 터키 음식은 정말로 배가 고팠던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한동안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였고 나는 다음 날 아침에 퀼른으로 떠나겠다고 알려주었다. 그들은 퀼 른이 멋진 도시이며 나에게 행운을 빌어주었다. 나는 저녁과 그들의 환대에 감사드 렸다. 그들이 떠난 후 건조기에서 옷을 꺼내 조심스럽게 배낭에 집어넣었다. 11 다음 날 아침, 나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잠에서 깨어났다. 특별한 것이 아닌 그냥 아무거나 머리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생각들을 하면서 한동안 누워있었다. 곧 맞 추어 놓은 알람이 터지자 이불을 밀어내고 옷을 입었다. 배가 고파 전날 밤 터키 저녁에서 남은 피타빵을 기계적으로 씹으며 이틀 동안 식탁에 놓여 있던 2리터짜리 콜라병을 홀짝 홀짝 마셨다. 충분히 배를 채운 다음 양치질을 하고, 가방을 들고, 방을 나와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전날 시티센터에서 지독하게 비를 맞으며 뛰었 던 것을 기억하며 메트로를 타고 역으로 갔다. 몇 명의 친절한 사람들이 그곳까지 가는 길을 도와주었고, 대단히 감사했다.
20 BTM Book 13, Unit 7 - 퀼른, 독일 2 하노바를 떠날 때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다. 첫째, 나는 그 안락함과 사생활이 그 리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그렇게 어슬렁거리자고 유럽에 온 것이 아 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내가 여기 온 것은 항상 보기를 꿈꾸어 왔던 몇 가지 예 를 들자면 콜로세움, 판테온, 파르테논, 루브르 박물관, 에게 해, 알프스 산맥, 베니스의 곤돌라 사공, 에펠 탑 등과 같은 유럽의 경치를 탐험하기 위한 것이었다. 퀼른은 명단에 없었지만 이제는 들어있다 퀼른에 발을 딛기도 전에 감동되었기에 내가 퀼른을 추가했다는 것에 정말 기뻤다. 첫 눈에 반하는 사랑이 있다고 믿을까? 전에는 믿지 않았다면 퀼른을 만나고 부터는 분명 그렇다고 믿게 되었다! 농담이 다. 나는 첫 눈에 반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허풍 덩어리라고 본다. 그러나 성베드로 의 대성당이라고 알려진 대성당은 내가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건축기법을 갖 고 있었다. 머리 위로 높이 솟아 있는 그 건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몇 분 동 안 말못하는 바보처럼 그 거대한 고딕양식 건물을 멍하니 서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3 시간이 꽤 지나서야 눈을 딴 곳으로 돌렸다. 기차에서 내려 호스텔을 찾기 시작하 였다. 불행히도 안내를 잘 못 받아 정처없이 한 시간 동안이나 무거운 배낭을 끌고 다녀야 했다. 한 번 더 도움을 청하였을 때 메트로를 타라는 말을 들었다. 한 가지 문제는 가르쳐 준대로 역에 도착하였지만 여전히 호스텔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 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찾아다니는 동안 그곳을 두 세 번 지나쳤다는 것이다 내가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한 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주변에는 택시도 드물었고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는 것도 소용이 없었다. 4 발이 아프기 시작했고 배낭을 지고 다니느냐고 어깨도 아팠다. 갑자기 택시 한 대 가 나타났고 서둘러 택시를 세웠다. 길 건너편으로 뛰어 넘어 택시에 올라타고 기 사에게 예약 확인 사이트에서 뽑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는 주소를 물었지만 나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미안해 하면서 도움을 줄 수가 없다고 했다. 그에게 감 사를 표하고, 택시에서 내려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후 정말 우연히 (아 니면 결국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드디어 호스텔을 발견했 다. 표지판에 이용된 이상한 글자체가 처음에는 알아보기에 너무 어려웠지만 그것 을 본 것으로만 그냥 행복했다. 나는 신이 나서 길을 건넜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 직 입실한 숙객이 한 명도 없어서 가장 좋은 침대 화장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아래층 침대를 고르고 침대 위로 몸을 날렸다. 5 오후 5시, 나는 바로 그 때 그 자리에서 잠에 들 수도 있었다. 잠들지는 않았지만 또 하나의 문제가 모습을 나타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지독하게 외롭기 시작했다. 베를린의 북적대며 생기가 있는 호스텔을 떠올리며, 여기 호스텔은 왜 방에 사람이 하나도 없을까 의아했다. 그렇지만 그 평화가 싫지는 않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 화장실에서 이상한 냄새가 들어오는 것이 느껴질 때까지. 화장실에 가서 창문을 열 었다. 그러자 일찍이 내가 길을 잃고 헤맸던 바로 그 길이 내려다 보였다. 다시 방 으로 들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층 침대는 아주 간단했다, 철제 프레임에 은색 페인트 그리고 흰색 침대 시트. 이 모든 것이 광을 낸 합판으로 보이는 바닥과 아 주 잘 어울렸다. 동시에 방 안의 모든 것이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 만 마음에 들었다. 뭐라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은 나에게 집을 떠올리게 했 다.
21 BTM 잠시 동안 더 주변을 살펴본 후 나는 뭔가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이패드를 꺼내 스카이프를 열었다. 물리적으로 해야 되는 일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 다. 엄마가 온라인에 계셔서 전화를 했다. 그냥 안부를 전하려고 했던 전화는 곧 엄마에게 집에 일찍 돌아가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전화로 바뀌었다. 엄마에게 내가 겪었던 모험의 근황을 알려드렸는데 이내 향수가 더욱 깊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비행기 일정을 바꿔도 될 지 묻자 엄마는 즉각 구슬리는 말로 당연히 안 되지! 그 많은 설거지와 빨래 그리고 청소를 안 해도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아니? 라고 하셨다. 나는 뿌루퉁해졌지만 엄마와 논쟁할 에너지가 없었다. 엄마에게 우는 소리를 조금 했다. 사실은, 우는 소리를 많이 했다. 그렇지만 배가 고프기 시작하 여 굿바이 인사를 하고 음식을 찾아 나섰다. 7 전날 먹은 큰 피자의 비싼 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나는 뭔가 싼 것을 원했다. 우 선 떠오른 생각은 기차역에서 내가 지나쳤던 빵집이었다. 거기까지 다시 간다는 것 은 다소 악몽 같았지만 자신을 강요하여 그렇게 하기로 했다. 어떻든 조만간에 메 트로 시스템 활용하는 방법도 배워야만 할 터였다. 짐쌕과 지갑 및 아이패드를 들 고 밖으로 나갔다. 그제서야 내가 얼마나 쓸데 없이 그 주변을 돌고 돌았는 지 정 확히 깨달았다. 메트로 역은 문자 그대로 바로 그 호스텔 앞에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길을 잃었다는 것에 너무 화가 났다. 역으로 가서 표지판과 불이 깜빡 이는 판넬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한 판넬에 역 근처에 정차하는 다음 기차가 4 분 후에 도착한다고 써있었다. 확인차 젊은 남자에게 내가 제대로 기다리고 있는 지 물어보았다. 나는 곧 메트로를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는 방법을 곧 배워야 했다. 그것은 어렵지 않았다. 각 노선의 마지막 정차역은 노선의 방향을 알려주고, 단지 내가 해야할 일은 승강장만 제대로 찾아가면 되는 것이다. 8 곧 그 빵가게에 도착하여 약간의 음식을 주문했다.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 파인애플 피자와 초콜렛 크로상을 먹었다. 호스텔에 도착했을 때 손에 든 것은 없 는데 속에서는 먹을 것을 더 달라고 했다. 너무 귀찮아서 밖으로 나가지 않고 한 번 더 5층을 올라가 아까 엄마에게 약속한 대로 엄마와 스카이프를 하였다. 오후 7:30 쯤이었고 밖은 아직 환했지만 남은 저녁 시간을 그냥 안에서 지내기로 하였 다. 엄마에게 습진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했다. 습진은 특히 치료할 수 없는 상황에 서는 대단히 괴로운 것이라는 것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앞으로 5주 동안 땀을 너 무 많이 흘리지 말아야 한다고 엄마가 말했다. 7월과 8월에 유럽의 지독한 더위를 감안하면 말은 쉬워도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엄마는 연고나 크림을 구해서 상 황을 좀 개선시키도록 하라고 했다. 엄마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룸메이트가 방금 도착했기에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하겠다고 했다. 9 동료가 있다는 것은 좋았다. 그렇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그들은 옷가방을 열고, 샤 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그리고 저녁 먹으러 나갔다. 그들은 나에게 나중에 술 마실 때 같이 하자고 했다. 나는 생각을 해보고 가게 된다면 나중에 아래층에서 만 나겠다고 답했다. 그렇지만 나는 상당히 지쳤고 갈 계획을 하지 않았다. 또한 술을 마심으로 부모님의 신뢰를 깨는 것이 편치 않았다. 약 한 시간 후 문에 노크 소리 가 들렸고 그것은 그들이 저녁을 다 먹었으며 5분 후에 술을 마시러 간다는 신호였 다. 나는 남아서 잠을 자는 것이 나에게는 최선이라고 판단하여 깨끗한 옷을 들고 샤워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샴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샤워를 건너 뛰 고 땀범벅에 지저분 한 채 잠자리에 들었다. 농담이다! 샤워 선반에 샴푸가 조금 있는 것을 발견하여 그것을 이용했다. 나와서 몇 분 되지 않아 나는 곤히 잠들었 다.
22 BTM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깼을 때 두 명의 룸메이트는 아직 자고 었어서 혼자 아래층으 로 내려갔다. 그 호스텔은 버페식 아침을 제공했는데 4 유로였다. 메뉴는 내가 마 주쳤던 다른 유럽식 아침과 똑같았다: 빵, 크림 치즈, 잘게 썰은 고기, 잘게 썰은 치즈, 커피, 과일 및 몇 가지 다른 것들. 비록 학기 중에는 일찍 일어나 수업 가기 전에 아침을 먹고자 하는 의욕이 없었던 것이 부분적인 이유이긴 하지만 솔직히 나는 아침을 먹는 것이 정말 좋았다. 또한 아침에 배가 고프지 않다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아침을 먹고 돌아왔을 때 룸메이트들은 아직 자고 있었기에 나는 카메라와 짐쌕을 들고 밖으로 탐험을 나갔다. 11 나는 신나게 메트로에 올라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자신있게 타고 갔다. 나는 기차역 근처의 정거장에서 내렸고, 그것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퀼른 성당은 또 다시 내 머리 위에 치솟아 있었고, 나는 다 볼 수 없었다. 우선 나 는 그 주변을 걸었다, 입장을 하기 위하여서는 돈을 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 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가는 곳마다 성당이 있었기에 돈을 내고 입장할 가치가 있 을 지 몰랐다. 그렇지만 입장료가 없다는 것을 알고 들어가기 위하여 줄을 섰다. 내부는 웅장했다. 대단히 웅장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외부가 더 좋았다. 주변을 돌 면서 아침에 보았던 한국인 몇 명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데 모든 한국인들은 외국에 갔을 때 한국인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인사를 했다. 그들은 나의 한국말에 깜짝 놀랐고 대화를 시작 했다. 이번에는 호스텔의 프론트 데스크 직원 외에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 있 다는 것 때문에 나는 행복했다. 심지어 이 만남으로 나의 외로움과 방황의 느낌도 줄어들었다. 12 나는 계속해서 루드비히 박물관으로 가기 전에 거대한 성당을 한 동안 더 길게 바 라보았다. 예술은 내가 정규적으로 많이 감상하는 그런 것이 아니기에 대단한 관심 을 갖고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내 가 3시간 동안이나 구경을 하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 다음 무엇을 할 지 몰라 주변 을 배회하다 Romano-Germanic Museum 앞에 다다르게 되었다. 비록 그날 박물관 구 경에는 충분한 시간을 썼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 보기로 했다. 나는 로마식 건축과 고대 로마의 문화를 정말 좋아하고 나의 라틴어 선생님을 아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보았다 이것은 잘 된 일이었는데 왜냐하면 라틴어 선생님께 잘 보이 는 것이 성공의 열쇠였기 때문이다. 13 그러나 박물관에 들어가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채15분도 지나지 않아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배가 너무 고프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볼 수 있는 것들을 잽싸게 모두 사진으로 찍어 나중에 볼 수 있도록 하고 밖 으로 나와서 음식을 좀 먹었다. 무엇을 먹었는 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중에 정말로 배가 불렀던 것을 기억한다. 사실 배가 너무 불러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30분 동안 -- 거의 음식혼절 상태로 -- 라인강가에 누워야 했다. 나는 30분 동안 주변에서 즐 겁게 비누 거품을 불거나, 유모차를 밀거나, 음식을 먹거나, 졸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막 잠이 들려고 할 때 나는 자신을 일으켜 움직이기 시작했다. 14 나는 원래 가고 있던 방향으로 계속 가다가 퀼른의 현대적 모습을 보았다. 강을 따 라 걸으면서 린더 트뤼플 공장을 가로 질렀다. 나는 그날 특별히 더 할 것이 없어 서 안으로 들어가 입장권을 샀다. 내가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Roald Dahl 의 챨리와 초콜렛 공장 에서 나오는 초콜렛 공장과 연관되는 것이었는데, 그것 은 코코아의 역사, 초콜렛의 장단점, 초콜렛의 이용방법, 구식 초콜렛 가게 전시 등과 같은 것이었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나는 따분해졌다. 그래서 나중에 볼 수 있 도록 모든 것을 사진으로 찍었다. 나의 초콜렛 공장 방문은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이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것이다.
23 BTM 구경이 끝날 즈음 온실같은 곳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문을 발견하였다. 호기 심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자동문이 밀리며 열렸고 내가 작은 방으로 들어갔는데 문이 뒤에서 닫히고 앞에서는 다른 문이 열렸다. 기온은 이미 아주 뜨겁고 습했으 며, 두 번째 문이 열리자 한 바탕의 열과 엷은 안개가 나를 맞았는데 피부가 데인 것 같다. 나는 기겁을 하여 출구를 찾기 위하여 이리 저리 날뛰었다. 드디어 문이 눈에 띄였지만 코코아 나무 방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밖 으로 나온 것에 안도하며 잠시 동안 냉정을 찾았다. 그제서야 나는 온실 밖에서 봤 을 때는 꽤 웃겼을 수도 있었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온실은 전부 유리로 되어 있었 다). 당황한 기분을 느끼며 나와 초콜렛 박물관은 그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16 계속 걸었다. 퀼른의 현대 지역에 있었고 건축이 좋기는 하였지만 주변에는 사람들 이 별로 없었고 다소 황량하게 느껴졌다. 좀 더 걷다가 마침내 지루해셔서 돌아섰 다. 꽤 한참 동안 배회와 탐험을 한 후 대성당의 쌍둥이 꼭두머리가 건물들과 나무 들 위로 솟아난 것을 보았다. 석양을 배경으로 하는 그 장면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벤치에 앉아서 성당의 벽에 비치는 석양의 놀이를 지켜보았다. 특별히 그 시간에 성당을 방문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했다는 것이 기뻤다. 어떤 단어로 도 그 건축물이 발하는 아름다움을 묘사할 수는 없었다. 17 그러다 어느 시점에 거리 피아노 연주자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멀리서 들려 그 쪽으로 걸어가 연주를 감상했다. 가만히 서서 보기만 하였다. 외부에서 휴식을 취 하여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10분이 지나자 또 배가 고프다는 것을 깨닫고 기차역까지 다시 걸어가 전날 저녁에 갔던 빵집으로 들어갔다. 정확히 똑같 은 것을 주문했다 작은 파인애플 피자와 초콜렛 크로상. 똑같이 메트로를 타면서 먹었고 정거장에 왔을 때는 다 없어졌다. 18 방에 가보니 지난 밤 룸메이트는 나갔고 새로운 룸메이트 한 명이 들어와 있었다 셔츠와 박스 반바지를 입은 남자였다. 나는 자신을 소개하고 대화를 시작하였지만 그의 영어를 잘 이해할 수 없어서 실례를 표하고 샤워를 하러 갔다. 샤워장의 샴 푸가 먼저 나간 룸메이트와 함께 사라져서 호스텔에서 제공하는 물먹은 비누로 해 야 했다.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는 지쳐있었다. 가방이 챙겨진 것을 확인하고는 곧 바로 골아떨어졌다.
24 BTM Book 13, Unit 8 - 뮌헨, 독일 2 잘 있어 퀼른, 그리고 안녕 뮌헨! 나는 항상 하루 전에 호스텔을 예약했는데 뮌헨 에서는 다른 것을 해보았다. 나는 마치 바르샤바에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다시 원 점에 있었다. 빈방이 있는 호스텔을 찾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예약을 하지 않은 것은 실수였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호스텔은 완전히 예약되었고 빈방이 있는 호스 텔은 아주 비쌌다 적어도 호스텔은 그랬다. 3 결국 내 계획에 맞는 한 곳 찾을 수 있었다. 체크인을 하자 한국어를 하는 사람들 의 소리가 들렸다: 몇 명이 아니라 여러 명. 나중에 알고보니 이 호스텔은 한국의 한 웹사이트에서 소개되는 잘 나가는 호스텔 가운데 하나였고, 그래서 한국인 여행 자들에게는 아주 잘 알려진 곳이었다. 방에 짐을 내려 놓은 다음 뮌헨 탐험을 나섰 다. 거리로 걸어 나가자 재성과 혁진이라고 하는 20대 초반의 한국인 두 명과 마주 쳤다. 우리는 몇 분 동안 이야기를 하다가 함께 구경을 하기로 했다. 이 즈음에는 낮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4 우리는 정말로 어디로 갈 것인지 몰랐다. 그 사람들은 한국어로 된 유럽 가이드북 을 가지고 왔고, 나는 호스텔에서 받은 지도를 갖고 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어느 쪽으로 갈까 생각하다가 그냥 어디론다 다수의 군중을 따라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 각했다. 우리가 처음에 본 것은 Rathaus-Glockenspiel (글로켄슈필 시청) 벨탑이었 는데 매시간 숫자를 바꾸고 벨을 울리는 쇼를 하였다. 시간은 거의 오후 5시였고, 우리는 기다렸다. 우리 생각에 그렇게 기다릴만 한 가치가 못되었다. 처음에는 괜 찮았지만 또하고, 또하고, 계속되었다. 뜨거운 열기는 머리에 꽂히는데 쇼를 보기 위하여 서서 목을 길게 뽑아야 하는 것은 아주 불편했다. 5 드디어 그날의 5시 축제는 끝났고 군중은 흩어져 갔다. 우리 세 명은 빠져나와서 뮌헨 탐험을 계속하였다. 우리는 이내 아르마니, 구찌, 프라다, 롤렉스 처럼 이름 만 대면 뭐든지 있는 상점으로 가득찬 길을 걷게 되었다. 21만4천 유로나 하는 시 계나 뭐 그런 것에 관심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금방 흥미를 잃었다. 그것은 옳지 않았다 그런 상점들은 전세계에서 돈을 너무 너무 많이 갖고 있는 아주 작은 그 룹들이 단골들이 애용하는 한편 나는 간신히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3세계 국가의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물론 나는 좀처럼 극심한 가난을 만나는 일이 없는 1세계 국가에서 성장하였으며, 좋은 자동차에 대한 나의 애착과 향후 부유하게 살고자 하 는 계획들은 그와 관련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시계에다 30만 달러를 투자할 것 같지는 않다. 6 우리는 좀 더 주변을 걸으며 관광지 몇 곳을 더 둘러보고 일찌감치 돌아왔다. 괜찮 은 식당을 하나 봐두었다가 돌아오는 길에 저녁을 먹었다. 호스텔로 돌아와보니 상 당히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축구 경기를 보고 있었다 나는 너무 피곤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내 방으로 올라갔다. 나는 잠 잘 준비가 되었다. 또다시 새 로운 룸메이트들이 왔다. 우리는 각자 소개를 하였지만 이내 각자 하는 일에 집중 하였다. 모두들 곧 침대에 누워 잠드는 것을 보아하니 우리는 꽤 지쳐있는 그룹이 었다 7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초저녁에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 날은 신나는 계획들이 있었 다. 그렇지만 순간에 상황은 내리막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잠들기 전에 룸 메이트들이 먼저 잠들었는데 그들의 코고는 소리가 컸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과소 평가라고 할 수 있다. 귀청이 떨어질 듯 하였다. 나는 손가락을 귀에 꽂고 머리를 벼개로 감았다. 그렇지만 벼개를 그렇게 유지하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어서 나는 한 쪽 귀는 벼개로 막고 다른 한 쪽 귀는 손으로 막았다. 그것도 아주 불편해서 머 리를 담요 속에 파묻어 버렸다. 이내 나는 숨쉬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귀 속에다 음악을 폭발시키는 수단에 의존했다 적어도 코고는 소리보다는 좋았다. 마침내 나도 잠이 들었다.
25 BTM 내가 깼을 때 이어폰은 빠져나갔고 시끄러웠던 두 명의 룸메이트는 벌써 체크아웃 을 했다. 나는 전날부터 재성과 혁진에게 연락하여 함께 나가려고 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아 혼자서 나가기로 했다. 계획했던 대로 나는 BMW Welt로 향했다. 9 개인적으로 나는 BMW의 대단한 팬은 아니다. 그러나 Welt는 나에게 1시간 30분 동 안이나 환대해주었다. 호스텔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는 11:30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시간을 착각하여 1:30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간에는 덴버 국제공항에서 만났던 아 주머니인 Mrs. Heinz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당황에 휩싸여 나는 메트로로 달려 갔고 그 때서야 나의 아이파드가 오작동하고 있었으며 시간을 잘 못 알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도감과 함께 나는 뒤돌아서 1972년 올림픽 경기 때 건축된 올림픽 스 테이디움으로 향했다. 나는 한 때 블랙 셉템버 (Black September)라고 하는 테러 그룹에 의하여 11명의 이스라엘 선수들이 유괴되어 나중에 살해되었을 때 세계 이 목의 중심이 되었던 그곳을 보고 싶었다. 10 나는 점심 약속에 가기 위하여 오후 1시경에 출발했지만 그래도 내가 또다시 길을 잃는 바람에 시간이 부족했다. 내가 Mrs. Heinz의 오피스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 미 식사를 하러 나갔지만 동료에게 나를 위한 노트를 남겨놓았다. 나는 그 장소를 금방 찾았고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익 숙한 얼굴을 본다는 것은 정말 좋았다. 그녀는 친절하게도 나에게 점심을 사주었 다. 그날은 모든 것이 엉망이고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무엇을 먹었는지 정확히 기 억은 못하지만 크림 소스를 곁들인 닭고기 종류에 소다수와 애플쥬스를 섞은 음료 였다. 맛이 좋았다. 그냥 좋은 것이 아니라 대단히 좋았다. 11 점심을 먹고 난 후 나는 그녀에게 한 번 더 감사를 표하고 내 길을 떠났다. 나는 그곳의 커다란 공원으로 갔다. 그곳은 좋은 곳이었지만 친구와 함께 갔었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그곳에는 개울이 있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수영복을 입고 온화한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바지를 입은 관광객들에게는 최적의 장소는 아니었다. 나 는 천천히 공원을 지나갔는데 곧 커다란 나무들 속에서 길을 잃었다. 족히 한 시간 을 배회한 후 Chinese Tower 라는 매력적인 관광 명소를 우연히 발견하였다. 이 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한국에서 보았던 인상적인 성곽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곳이 뮌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공평하 지 않았다. 12 곧 호스텔로 돌아가 6시경에 도착하였다. 재성과 혁진이 로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에게 나의 하루를 말해주었고 그들은 그들이 했던 일을 나에게 말해주 었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모두 BMW Welt와 올림픽 스테이디움을 다녀왔다, 서로 시 간만 달랐을 뿐이었다. 하루 동안의 모험으로 피곤함에도 우리는 식료품 쇼핑을 가 기로 했다. 나는 곧 기차를 타야 했는데 기차에서의 음식은 싸지 않기 때문에 음식 을 좀 가지고 가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였다. 13 상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기분 전환을 위해 그들과 함께 어울렸다. 우리는 메 트로를 번갈아 타며 이 노선 저 노선을 타봤다. 한 참 후에 우리는 돌아왔다. 그제 서야 나는 나의 기차가 5분 후에 출발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저장소로 달려가 배낭을 가지고 다시 달려나갔다. 짧게 작별 인사를 하고 기타를 타기 위하여 달렸 다. 다행히도 역은 전혀 멀지 않았다. 도착하자 그 기차도 연착이 되어 아직 도착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안도하였다. 배가 고파서 쇼핑을 하는 동안 샀던 바나나들을 먹었다. 이내 빵 덩어리와 누텔라 병도 사라졌다.
26 BTM Book 13, Unit 9 - 찰스브루크, 오스트리아 2 잘츠브루크로 떠난지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나는 뮌헨을 밤에 떠나는 것은 실수였다 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밖은 아주 캄캄했고 설상가상으로 기차까지 고장이 나서 더욱 스트레스를 받았다. 계속 진행을 하기 전에 정거장에서 수리를 하기 위하여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했다. 드디어 잘츠브루크에 도착했을 때 그곳 역은 공사중이 어서 가로등의 반은 꺼져 있었다 버려진 땅처럼 보였다. 안내 데스크와 고객 서 비스는 모두 문을 닫았다. 무엇을 해야할 지 몰라서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어둠 속에서 지도도 없이 호스텔을 찾는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호스텔은 겨 우 10분 거리였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결정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밤 중의 그 시간에 걸어서는 절대로 못 찾았을 것이다. 3 택시를 타고 호스텔 이름을 주었다. 택시 기사는 퀼른에서의 택시 기사처럼 호 스텔이 어디 있는 지 몰랐다. 다행히도 그것을 알아보는 택시 기사가 나의 택시 기 사에게 길을 알려주었다. 10분 후, 그 기사는 멈추어서 말했다, 여깁니다. 저기 M자 보이죠? 그것이 당신의 호스텔입니다. 맞는 것처럼 보였지만 확신할 수 없어 서 기사에게 기다려달라고 했다. 가방들을 챙기고 돈을 지불하고, 그리고 정말로 맞는 장소인 지 확인차 가보았다. 확인하기 전에 돈을 준 것은 좋은 아이디어가 아 니었다. 기사는 내가 눈에서 사라지자 바로 떠나버렸다. 나는 만약에 그가 틀렸다 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만 떠올랐다. 그 기사는 호스텔 이름도 몰랐던 사람 이 아니었던가! 나는 아무렇게나 틀린 건물에 내려진게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고 다 시 들어가 체크인했다. 4 나는 곧장 방으로 갔다. 수면이 필요했다. 엘레베이터에서 두 사람을 만났는데 나 의 룸메이트들이었다. 엘레베이터에서 내린 우리는 긴 복도를 따라 걸어가서 우리 방에 다다랐다 가장 멀리 있는 방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땀을 흘렸기에 내가 제 일 먼저 한 것은 샤워를 하는 것이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자 룸메이트 두 명이 또 합류한 것을 알았다. 우리는 한 참 이야기를 하다가 나를 제외한 모두가 잠자리에 들었다. 샤워 후에 많이 피로하지 않았기에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와이파이로 부 모님과 스카이프를 했다. 부모님께 내가 무사하다는 것을 알려드리는 것은 중요했 다! 5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엘레베이터에서 만났던 두 친구는 떠났고 함께 탐험 계 획을 세운 친구인 릭은 아직 자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침을 먹기 위하여 아래층 으로 내려갔다. 곧 릭이 나와 함께 했고 우리는 길을 떠났다. 비가 오고 있었기 때 문에 우비를 꺼내서 짐쌕 위로 덮었다. 어쩌면 내 모습이 거북이를 닮았을 수도 있 지만 카메라가 젖는 것보다는 낫다. 우리는 잘츠부르크의 중심까지 버스를 타고 가 서 정원을 지나 거닐기 시작했다. 구름과 비가 생기 넘치는 꽃들과 잘 어울렸다. 우리는 또한 모짜르트가 태어난 곳과 생가를 찾아갔다 잘츠브루크에서는 아주 대 단한 것이다. 그들은 심지어 모짜르트 볼스 라고 하는 도시에서만 만드는 특별 한 초콜렛도 있다. 그것은 모짜르트의 초상화가 있는 금박지로 싸인 둥그런 것이었 다. 안에는 우유 초콜렛 볼인데 겹겹이 여러 가지를 넣었다. 맛을 정확히 기억하지 는 못하지만 맛있었다. 6 모짜르트 모험이 끝날 즈음 아침에 끼었던 구름은 완전히 걷혔고 태양이 한 층 더 이글거렸다. 우리는 약간의 언덕을 걸어서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은 기가 막혔고 대단히 아름다웠다. 그곳은 그늘이어서 아주 시원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그곳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좀 더 배회하였는데 릭이 곧 사운드 오브 뮤직 관광을 위하여 떠나야 했다. 그와 함께 같이 갔었어야 했는데 그 순간에는 그러고 싶지 않 았다. 나는 또 다시 혼자가 되어 탐험을 시작하였다.
27 BTM 나는 거기서 가장 큰 관광 명소인 호엔잘츠부르크 성채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 처 음에는 그곳에 가기 위하여 전차같은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요금을 내야 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주저하였다. 다행히도 요금은 11 유로뿐이어서 다음 차를 탈 수 있도록 표를 끊었다. 게다가 행운이 더하여 표 판매대 바로 가까이서 2 유로짜 리 동전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챙기고! 정류소에서는 전면의 모습이 똑같은 기념 품 상점과 음식 가판대들이 우리를 반겼다. 나는 어느 곳에도 들르지 않았다 -- 솔 직히 돈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 엘리베이터는 밖에서 볼 때는 정말 신나게 보인다. 그렇지만 안에는 그 전에 탔던 수 백 명의 땀으로 지독한 악취를 풍겼다. 엘레베이 터는 짧은 시간 타는 것이었으므로 나는 그 동안 숨을 멈추려고 애썼다. 불행히도 그 안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더웠다 마치 온실에 있는 듯이. 다행히도 그 성채는 공기가 훨씬 덜 탁한 에어콘은 없었지만 실내 박물관이어서 좀 식힐 수 있었 다. 8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서 더위를 피하는 가장 좋은 피난처는 실외였다. 나는 파라솔로 그늘이 진 카페에 앉았다. 가벼운 미풍은 바로 열기를 쓸어갔다. 일 찍이 스프라이트 한 병을 샀던 것을 기억하여 그것을 쌕에서 꺼냈다. 나는 바로 걸 어가 얼음 한 컵을 부탁했다. 바텐더가 여기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라고 대꾸 한 걸로 보아 그런 일은 아마도 금시초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필사적으로 미안 하지만 저를 좀 도와주시겠어요? 라고 불쑥 말했다. 내 말을 듣고 땀범벅이 된 미 국인을 가엾게 본 다른 바텐더가 얼음 한 컵을 갖다 주었다. 내가 그들의 공간을 사용하였기에 무엇인가를 샀어야만 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지만 너무 더워 서 생각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얼음 컵에 스프라이트 를 부었다. 그리고 그것을 조금 휘휘 흔들어서 한 모금 마셨다 그 순간은 바로 그날 최고의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다. 9 나는 거기서 약 20분 동안 내 앞에 펼쳐진 거대한 산능선을 바라보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로키산 기슭에서 자란 아이로서 나는 편안한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경치와 시원함을 누리며 몇 시간이라도 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만 일어서서 구경을 마치기로 하였다. 망루만 남기고 다 보았지만 기다 리는 줄이 너무 길어서 건너뛰기로 하였다. 그 성채에서 가장 중요한 명소인 그 탑 의 줄은 디즈니 랜드를 방불케하였다 2 시간 이상이다. 원래 나의 계획은 다른 성채와 미술 박물관까지 계속하는 것이었지만 너무 피곤했다. 그날 밤 다른 기차를 타야 했기에 가방을 찾기 위하여 호스텔로 돌아갔다. 10 버스 정거장으로 걸어갔는데 버스가 막 떠나가는 시간에 도착하였다. 나의 유일한 선택은 기다리는 것뿐이었고, 그렇게 했다. 우연하게도 내가 서있는 줄에 또 한 명 의 한국인이 있었다. 우리는 잠시 수다를 떨었고, 그러다가 버스 연착은 결국 기차 를 놓치게 됨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까지 모든 것은 여유로웠고 편안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나는 서둘러 카페에 가서 와이파이를 이용하여 역에서 만나기로 되어있는 친구에게 연착 상황을 알려주기 위하여 이메일을 보냈다. 11 그리고 더 기다렸다. 나는 스케치북을 꺼내서 끼적거렸다. 안절부절한 나는 일어나 서 바리스타에게 부탁하여 물병에 얼음을 채우고 승강장으로 갔다. 거기 앉아서 이 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크게 틀었다. 사람들의 입이 움직였고 승강장은 북적였지 만 나는 음악만 들었다. 정말 잘츠부르크에서 하루만 더 있었으면 하고 바랬다. 정 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기차가 도착하였고 처음 몇 칸의 객차가 몽롱한 색으로 스 쳐갔다. 잠에서 깨어 기차에 올라탔고, 안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 나는 다시 꿈으로 돌아갔다.
28 BTM Book 13, Unit 10 - 비엔나, 오스트리아 2 나는 비엔나에 꽤 늦게 도착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태양은 이미 거 의 지고 있었다. 엘리제가 마세라티 그란툴스모 (Maserati Granturismo)와 함께 나 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마세라티가 나를 위한 것은 아니고 내가 도착했을 때에 그곳에 있었던 것인데 그것으로도 좋았다. 그렇게 멋진 차 (알다시피 나는 자동차 광이다)를 보게된 것도 좋았지만 익숙한 얼굴을 보게된 것이 훨씬 더 좋았다. 이야 기를 계속하기 전에 친구 엘리제와 그녀의 남편 칼에게 불과 몇 주 전에 폴란드에 서 만난 나에게 그렇게 좋은 숙소와 나의 속을 채워준 음식을 제공해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 3 그들이 방금 이사를 했기 때문에 에어매트리스로 강등되기는 했지만 깨끗한 화장 실, 나만의 방을 갖는 것은 좋았다. 세탁기가 있기를 기대했지만 그것 역시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고속 인터넷 접속이 되었는데 이것은 세탁을 하지 못하는 문제를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았다. 몇 일 만에 처음으로 친구들과 부모님께 스카이프를 할 수 있었다. 그저 모든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4 취침시간이 다가오자 칼과 엘리제는 지도상에서 주요 관광 명소를 지적해주었다. 대부분의 명소는 링 이라고 불리는 곳에 있었으며, 메트로 시스템은 새로운 사 람에게 조차 아주 쉽도록 되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아파트에서 걸어서 10 분 정도 떨어진 류만플라츠 (Reumannplatz) 역을 향해 함께 출발했다. 거기서 엘리 제와 그녀의 남편은 가구 및 세탁기 쇼핑을 하러 갔다. 나는 메트로를 타고 가서 내리자 슈테판 대성당이 반겨주었다 유럽의 대단히 아름답고 인상적인 많은 성 당들 가운데 하나다. 5 나는 걸었다. 그리고 좀 더 걸었다. 비엔나는 아름다운 도시였지만 비엔나에 대하 여 가장 두드러진 추억은 그곳에 있는 동안 내내 온 몸에 줄줄 흘러내린 땀의 추억 이다. 섭씨 44도 (화씨 111도)의 열기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곧 감각을 잃기 시작하여 내가 이미 본 것이 무엇이며 아직 방문하지 못한 곳이 무엇인 지를 잊었다. 폭스가르텐 (Volksgarten)에서 그늘을 찾아 30여분 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 다. 감히 그늘 밖 햇볕 속으로 한 발자국도 내딛지 않았다. 6 눈부신 햇볕이 시야를 가로막지 못하는 그 마법의 자리에서 나는 사람들이 결혼 사 진 찍는 것을 보았다. 햇볓 아래서. 나는 그 사람들이 정말 미쳤다는 생각밖에 들 지 않았다. 그들은 그곳에서 최고의 스마일을 지으며 왠지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넣 는 것처럼 보이는 햇볕을 받아들이며 서있었다. 한 참 후 나는 다시 걷기로 했다. 그들이 턱시도와 거대한 결혼 드레스를 입고 밖에 설 수 있다면, 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나도 기능을 발휘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 아닌가. 열 걸음도 안 되어 나의 결 정을 후회했다. 그 열기를 잠시라도 더 대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는 열을 더 발산하기 때문에 그 역시 아주 현명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순간에는 좋은 아이디어였던 것 같았다. 7 곧 미노리텐키르히(Minoritenkirche)라고 불리는 작은 교회를 발견하고 안으로 들 어갔다. 그곳은 한쪽 코너에서 조용히 기도를 하는 사람 외에는 텅비어 있었다. 머 리가 빙빙 돌고 있어서 똑바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걸을 때마다 발걸음 소리가 크게 울려서 기도하던 여인이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나는 한 손을 들어올려 사 과하고 길게 나무로 된 좌석 통로를 걸어가 앞 줄에 앉았다. 거기서 환기통에서 나 오는 시원한 바람이 나의 얼굴과 몸 전체에 부딪히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좋을 수 가 없었다; 에어콘이 있는 건물에 들어가는 것보다도 더 좋았다. 몇 분 지나자 다 시 정신을 가다듬고 제대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아주 은은 한 음악이 들렸다. 그것은 결코 내가 일상적으로 듣는 음악은 아니었다 성가대의 합창이었다. 그렇지만 그 순간에 그 음악은 최고의 음악이었다. 그 음악은 나를 진 정시켜 주었다.
29 BTM 곧 나의 호흡과 심장박동 소리가 그 음악에 동조하였고 모든 것에 평화로움을 느꼈 다. 그 고요함은 내가 경험했던 그 어떤 고요함과도 같지 않았다. 아주 깊은 고요 함이었다. 심지어 집에서 잠들기를 기다릴 때도 나는 그처럼 깊은 고요함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이 고요했다. 어쩌면 고요함이 그렇게 두드러진 것은 요란한 외부와 밀폐된 내부와의 대조였을 수도 있다. 나는 긴 의자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 다.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부모님, 과테말라에 있는 여동생, 친구들, 할아버지, 할머니, 되는 대로 떠오르는 지난 날들의 추억. 그렇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나는 정말로 복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도 거기 함께 계셔서 내가 겪고 있는 그 놀라운 느낌을 경험할 수 있었기를 바랬다. 부모님과 함께 그 깊은 고요함을 나누 고 싶었다. 그것은 마법이었다. 아이파드로 그 고용함을 담고 싶었지만, 그것이 불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9 내가 이 책 일종의 책같은 것을 쓰기로 마음 먹은 것은 바로 이 성당에서였다. 원래 나는 과거로부터 도망치려고 애쓰다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유와 책임 및 새 로운 세상의 두려움을 경험하는 가출 소년에 대한 픽션을 쓰려고 했다. 모든 구성 도 생각해두었다. 책의 구상이 거의 정점에 이르고 있다고 느낄 무렵 멀리서 시작 되는 공사현장 소리가 들려왔다. 채 1분도 되지 않아 한 그룹의 관광객들이 들어와 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들이 떠났고 성당의 평온이 다시 돌아왔다. 그 때 나는 충분히 진정되어 다시 밖으로 나가 탐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일어나서 성당을 나왔다. 그 성당은 그날 나를 구해주었다. 10 불볕 더위가 다시 한 번 나를 반겼지만 나는 서둘러 지하로 들어가 역으로 갔다. 아이파드를 체크하여 내가 성당에 2시간 넘게 있었음을 확인하고 와우, 아직도 배가 고프지 않네 라고 혼자 생각했다. 마치 큐를 받았다는 듯이 배 속에서 꼬르 록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먹을 거리를 구하러 서둘러 슈테판플라츠 (Stephansplatz)로 갔다. 제대로 생각하지도 않고 맥도날드로 들어갔다. 그것이 첫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식사에 관해서는 여행자들에게 외국에 갈 때는 또는 집에서, 절대로 절대로 맥도날드에서 먹지 말 것을 적극적으로 권한다. 가격 은 8 유로였다. 8 유로씩이나! 8 유로면 훨씬 더 좋은 질과 맛의 근사한 음식을 충 분히 사먹을 수 있는 돈이다. 11 그곳으로 들어가 주문하기 위하여 기다리는 사람들의 긴 줄에 섰다. 음식을 받은 다음 윗층으로 올라가서 먹었다. 그곳은 내가 그 때까지 가보았던 어떤 맥도날드보 다 더 좋았다. 가구는 상대적으로 새것이었고 벽에는 맥카페(McCafe) 라고 하는 문구가 있는 분수대도 있었다. 그렇지만 에어콘은 없었다. 나는 열려 있는 창가에 앉았는데도 맥플러리 (McFlurry)가 금방 녹아들어 오리오 향의 물이 되었다. 나는 그것이 낭비되는 것을 원치 않아 얼른 후루룩 마시고 먹기 시작했다. 나는 한 입씩 물은 빅맥을 목구멍에 밀어넣고 튀긴감자를 입에 쑤셔넣으며 식사를 끝냈다. 그 맛 없는 음식은 배를 채우는 것 외에는 어떤 소용도 없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맥도 날드는 우리 몸 속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닙니다! 12 그 음식과 나의 어리석은 행동에 상당한 역겨움을 느끼며 나는 한 번 더 평온함을 경험하기 위하여 그 성당으로 다시 갔다. 그러나 내가 도착했을 때 성당은 가득찼 고 그런 기분은 느낄 수 없었다. 돌아서서 비엔나의 탐험을 계속했다. 곧 지쳤고 열기로부터 휴식이 필요했다. 가장 가까운 메트로역을 찾아서 엘리제와 칼의 집으 로 돌아왔다. 만나서 저녁을 먹기로 얘기했었기에 내가 돌아갔을 때 그들은 거의 준비가 다 되었다. 우리는 동네 식당에 갔는데 그들은 나에게 시니첼을 먹어보라고 강요했다. 그것은 좋았다; 점심으로 먹었던 맥도날드 보다는 훨씬 좋았다. 그들의 관대함에 감사 표시로 내가 계산을 했다.
30 BTM 저녁을 먹고 오스트리아 전역에서 제일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인 티히아이잘론 (Tichy Eissalon)으로 갔다. 밤은 점점 깊어지는데도 손님의 줄은 짧아지지 않았 다. 그리고 그곳의 아이스크름은 정말 놀라웠다 내가 그때까지 먹어본 것 중에 가장 부드럽고 크림이 풍부하였는데 일종의 패스트리 안에 싸여 있었다. 우리는 밖 의 거리 가까운 곳에 앉아서 그 가게를 둘러싸고 끊임 없이 생기는 소요를 즐겼다. 페라리 한 대가 나르듯 지나갔고, 그 뒤를 몇 대의 진기한 차들이 따라갔다 이런 차들이 엔진에 힘주고 여자들을 태워 날라다니는 것은 그 블럭에서는 일상적 전통 이었다. 드디어 하루를 마감하기 전까지 우리는 그런 소요를 한 동안 바라보았다. 우리는 천천히 걷다가 가끔씩 멈추어 몇 몇 방치된 건물의 안을 들여다 보곤 했다 그냥 재미로. 14 다음 날은 아주 혼돈스러웠다. 잘못된 것들 몇 가지만 말해보기로 하자. 나는 베를 린에서 만났던 친구를 슈테판플라츠에서 만나기로 계획했다. 정시에 도착한 나는 어쩌다가 출구를 잘 못 나가는 바람에 그를 못만났다. 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20분 후, 내가 만나기로 한 장소에 제대로 있는 지 확인해보고 그렇지 않았다는 것 을 깨달았다. 잽싸게 가까운 스타벅스에 달려가서 와이파이를 이용하여 그에게 시 간을 낭비토록 하여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나중에 시간을 갖고 주변을 다시 한 번 더 둘러보았다. 행군 악대가 지나가고 있어 멈추어 구경을 했다. 멋진 튜바 연 주자와 몇 장의 사진을 찍고 거리를 건너가 자연사 박물관 계단에 앉아 스케치를 하였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가기를 시작하자마 자 포기하였다. 햇볕이 너무 뜨거웠고 더 이상 그 뜨거운 열기에 혹사당하고 싶지 않았다. 15 슈테판플라츠로 돌아와 식료품 가게를 발견하여 49 센트를 주고 물을 한 병 샀다. 좀 식히기 위하여 아파트로 돌아갔다가 다시 나와 볶음면을 전문으로 하는 동네 식 당에서 점심을 사왔다. 친구의 아파트에서 그 짭짤하고 맛있는 음식을 걸신 들린 듯 먹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느긋하게 누워서 몇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용기를 내어 한 번 더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갔지만 곧바로 나온 것을 후회했다. 햇볕 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불편했지만 페라리 대리점을 가는 중이었기 때문에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마음 먹었다.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결국 찾았고, 안에서는 에프에프 캘리포니아(FF California)가 나를 향해 미소짓고 있었다. 밖에 는 마세라티 그란툴스모 스파이더가 지붕을 내리고 있었다. 그 차들을 오래, 오래 동안 감상하고 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 차들은 정말로 멋졌다. 충분히 즐기고 다시 아파트로 와서 엘리제가 요리한 맛있는 인디안 음식을 즐겼다. 16 다음 날은 전날과 비슷하게 지나갔다. 나는 좀 더 탐험을 하였고, 친구들이 다음 단계 여정의 일부 계획을 도와주었다 이것이 전부였다. 둘 다 다음 날 직장 때문 에 일찍 나가야 했기에 우리는 그날 밤 작별 인사를 하였다. 아침에 나는 사물을 모두 챙기어 우체국으로 갔다. 거기서 몇 장의 엽서를 한국의 친척들에게 보내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여러 가지를 집에 소포로 보냈다. 그리고 나는 급하게 메트 로를 타고 역시 친구가 해준 말에 의하면 비엔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가운데 하 나인 쇤브룬(Schonbrunn)이라는 큰 공원을 보러 갔다. 친구의 말이 정말 맞았다. 정말 아름다웠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31 BTM 유감스럽게도 나는 시간이 부족하여 금방 메트로로 달려가야 했다. 최대한 많이 보 고 싶었기에 어쩌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었지만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공원을 달렸다. 이렇게까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기술을 동원했지만 모든 것을 다 보기에 는 택도 없었다. 벌써부터 열기가 다가오고 있었고, 그것은 좋은 것이 못됐다. 메 트로로 가는 도중에 나는 어떤 마법으로 공중에 떠 있는 폴란드 남자를 만났다. (그는 나의 글리비체 해비타트 셔츠를 보고는 자기가 어디서 왔노라고 말했다) 나 는 그에게 사진 몇 장을 같이 찍어도 좋겠냐고 물었지만 나는 곧 그에게 줄 유로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진심으로 사과하고 기차를 타기 위하여 서둘러 역으로 갔다. 그러나 거기서 내 갈 길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몇 번씩 길도 잃 었고, 그와 같은 만일의 사태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 자신에게 여유시간을 주지 않 았었다면 기차를 놓쳤을 것이다. 감사하게도 제시간에 역을 갔고 부다페스트로 떠 났다.
32 BTM Book 13, Unit 11 - 부다페스트, 헝가리 2 부다페스트에는 오후 3시경에 도착했다. 우선 꼬치구이를 사서 시장기를 때우고 몇 개의 기차표를 예약하기 위하여 매표소를 찾았다. 카운터 뒤에 있는 여성에게 크로 아티아의 자그레브행 기차의 예약을 부탁했다. 그게 끝나자 자그레브에서 루에카까 지 예약을 부탁했다. 나를 돕던 그 여성은 정말로 개구리처럼 보였는데 가능 하지 않아요 라고 내가 들어보지 못했던 가장 단조로운 말투로 말했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가능하지 않아요 라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처럼 실망스러운 말을 주고 받는 동안 나는 에어콘도 없는 오래된 건물의 답답함을 느끼 기 시작하였다. 내가 목소리를 높여 한 번 더 물었다, 왜 가능하지 않은 거죠? 그래도 내게 돌아온 것은 역시 가능하지 않아요 뿐이었다. 나는 포기했고 다른 사람이 근무할 때 다시 오겠다고 생각하며 떠났다. 물론 나중에서야 나는 다른 국 가에 있는 기차라도 그 국가에 갈 때까지는 예약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 었다. 3 부다페스트는 단지 내가 레톡스 파티 호스텔(Retox PARTY Hostel) 에 이틀 밤을 예약했다는 이유만으로 꼭 흥미로워야 했다. 역에서 나는 관광객 정보 센터로 가서 파티 호스텔 까지의 안내를 부탁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여직원의 말을 잘 못 이해하여 메트로 대신 버스를 탔다. 버스는 내가 가야 할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갔 고, 나는 지도를 보고 이해를 할 수 없었다. 20분이 지나서야 버스에서 내려 젊은 (젊은 사람들은 대개 약간의 영어를 한다) 여인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약간의 대화를 한 후, 나는 다른 버스를 타고 조금 전에 탔던 것과 똑같은 노선을 거쳐 돌 아왔다. 4 역에서 내려보니 메트로로 내려가는 한 세트의 계단이 보였다. 메트로로 내려가서 메트로를 제대로 탔다. 바른 역에서 타고 바른 역에서 내렸는데도 그 호스텔을 찾 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호스텔을 찾기까지 몇 번이나 왔다갔다 했는데 내가 전에 보았던 곳과는 전혀 달랐다. 우선 그 호스텔은 실외 정원이 있었다. 둘째로는 바로 코 앞에 바가 있었다 리셉션 구역이 없다. 와이셔츠를 입지 않은 남자가 나에게 인사를 하고 위층의 일반 캐빈 가운데 하나로 데리고 갔다. 거기서 그는 나를 체크 인 해주었는데 마이너스 카드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현금인출기에 달려간 잠 간동안 기다려 주었다. 물놀이 공원에서 받는 것과 같은 밝은 오렌지색 손목 밴드 와 시계처럼 보이는 (그렇지만 시계는 전혀 아닌) 무엇인가를 받았다. 그것은 실제 방문의 전자키였던 것이다. 5 체크인하는 동안 최근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한 그룹의 사람들과 가벼운 대화를 하게 되었다. 정신 없는 그곳에서 그 사람들을 만나 다소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 꼈다. 분위기는 생기가 있고 여유가 있었다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 을 듯 느껴졌지만 미국에 있는 친구들과 통화를 하며 시간을 갖었다. 통화가 끝나 자 나를 체크인해준 셔츠를 입지 않은 남자가 술집 순례에 나를 초대했는데 보아하 니 호스텔의 거의 모든 사람을 초대한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따라갔었다면 좋았겠 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에게 부모님은 내가 여행중에 허튼 짓 하지 않을 것을 믿고 계신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는 좋은 일이라고 말하고 호스텔은 곧 문자 그대로 텅비었다.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된 기분을 느껴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습도 때문에 한동안 잠을 잘 수 없어서 짜증이 났지만, 내가 어찌 상관하 랴? 나는 부다페스트에 와있는데!
33 BTM 다음 날 아침 나는 헝가리에 있는 대부분 동안 습도가 어떨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 다. 문자 그대로 땀에 흠뻑 젖은 채 잠에서 깨었다 가슴과 배 그리고 팔 위에 땀 방울들이 맺혀있었다. 전날 밤에 세탁을 하여 침대 가장자리에 널었던 셔츠는 몇 시간 전의 상태와 거의 똑같이 젖은 상태였다. 나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과열되어 찬물로 몸을 식히기 위하여 샤워장으로 갔다.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다 난간에 기댄 채 의식이 없는 한 남자를 보았는데 그 사람을 유일하게 똑바로 지탱하는 것 은 그 난간뿐인 것 같았다. 나중에 만난 친구의 말에 의하면 아침 6시에 물을 마시 기 위하여 일어났을 때 그 사람은 자지 않고 만나는 사람마다 블러디 매리 한 잔 할래요? 라고 소리치며 돌아다녔다고 했다. 나는 그 사람을 빙 돌아서 전날 만났 던 두 사람을 따라 구경을 나갔다. 7 그 날은 순조롭게 시작 되었는데 차에 거의 받힐뻔 했었다. 지금도 그 차가 어디서 나왔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후로 상황은 정말 진전되었다. 우리는 호스텔에서 국회 건물까지 갔는데 부다페스트를 가르는 다뉴브 강이 보였 다. 강둑에는 세계2차대전이 끝날 즈음 친나치 그룹에 의하여 처형된 헝가리 유태 인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었다. 그 기념비는 콘크리트에 고정된 금속으로 주조한 여러 켤레의 신발들로 되어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8 우리는 그 도시의 페스트 측과 부다 측을 연결하는 다뉴브 강의 첫번째 다리인 세 체니 체인교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서 우리는 조그만 언덕을 올라갔는데 나는 컨디 션이 너무 안 좋았기 때문에 대단히 힘들었다. 그렇지만 그 전경은 모든 노력의 가 치가 있었다. 물론 무더위로 코는 막히고 온몸의 수분은 증발되었지만 위에서 내려 다보는 경치는 놀라웠다. 집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뒤돌아 생각하며 언제든지 부다페스트가 내 여행의 가장 좋았던 곳으로 여겨질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 다, 호스텔에 에어콘도 없었고, 도시는 그다지 깨끗하지 않았고, 대중 교통수단도 낡았지만 그 모든 것이 아주 잘 어울렸다. 거기에는 아주 유쾌한 분위기가 있었다. 때는 경비대의 경비원들이 교대하는 시간이었다. 9 우리는 멈추어 점심을 먹으며 그 경치를 감상했지만 그 후에 우리가 본 것은 천국 또는 천국에 가까운 것이었다. 우리는 노력 끝에 목욕탕을 찾아냈는데 그것은 수 많은 실내 풀장과 사우나 시설을 갖추고 있는 야외 파티 수영장의 집합체 같은 것 이었다. 그곳은 동상을 유도하는 풀장, 견딜만큼 차가운 물의 풀장, 따뜻한 풀장, 뜨거운 풀장, 아주 뜨거운 풀장, 그리고 미친 사우나 (섭씨 100도!!) 시설들이 있 는데, 그 목욕탕 건물의 노란색 페인트와 날카롭게 대조되는 새파란 물의 야외 풀 장만큼 파격적이지 못했다. 그곳이 동유럽의 모든 미녀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즐기 는 곳이라는 것 또한 해롭지 않았다. 우리처럼 젊은 남자들에게 그곳은 그 어떤 곳 에도 없는 천국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반 나체, 과체중, 털투성이의 남자들도 많이 있었다. 즐거이 볼만한 광경은 아니다. 나는 그 목욕탕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 지 기억 못하지만 5시간 이상이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시원한 물에서, 코 앞에 보이는 수 많은 미녀들과 함께 살인적인 더위를 피하는 데 잘 못 될 일이 뭐가 있겠는가? 10 다음 날은 목욕탕이 없었다는 것 외에는 전날과 비슷했다. 나는 길가에 골아 떨어 진 한 남자에 신경쓰지 않았고, 우리는 구경을 많이 했다. 나는 새로운 호스텔로 옮기는 것부터 시작했다. 계획을 바꾸어 그 아름다운 도시에 하루 더 연장하여 묵 기로 했다. 헝가리 국립 박물관에서 친구들을 만났고, 박물관은 꽤 흥미로웠다. 나 머지 오후는 다뉴브 강 한 가운데 있는 작은 섬에서 라스베가스 벨라지오의 물쇼 처럼 물쇼를 하는 분수에 발을 담그고 낮잠을 자며 보냈다. 네다섯 살 된꼬마가 50 여명 정도 되는 사람들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물에 오줌을 싸기 전까지 그 기분은 정말 좋았고 즐거웠다. 나는 발을 치울 때가 되었고 최대한 빨리 움직이는 것이 좋 겠다고 판단했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그 날 하루의 대부분이다.
34 BTM 오줌싸개 낭패 사건 이후 우리는 그것으로 하루 일과를 끝내고 돌아가기 시작 했다. 전통적인 헝가리 음식을 제공하는 부페에 들려서 음식을 좀 샀다. 내가 그 음식을 실제로 좋아했는 지 확신은 없지만 그 음식은 할 일을 다하여 나의 배를 채 웠다. 나가는 길에 친구들은 나에게 그들의 7월 4일 축제에 함께 가자고 했다 (우 습게도 나는 헝가리에서 여러 명의 영국인들과 함께 있었던 것이다). 그 제안을 받 아들였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또 한 번 거절했다. 아마도 내가 술을 안 마시기로 한 결정은 잘 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믿는 사람들이었기에 꽤 재미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2 그대신 새로운 호스텔로 돌아왔고 그 호스텔 역시 보아하니 한국인들에게 대단히 잘 알려진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스텔에 갔을 때 상당히 많은 한국인을 만 났고, 우리는 모두 야간 하이킹을 나갔다. 우리는 언덕을 올라 자유의 여신상과 아 주 흡사한 조각상에 갔다. 그렇지만 가장 눈에 띈 것은 그 조각상이 아니었다. 위 에서 내려다 보는 전망이었다 나는 할 말을 잊었다. 부다페스트는 너무나도 아름 다웠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부다페스트에서 다른 곳으로 가야 했기에 새로운 친구들과 작별을 해야 했다.
35 BTM Book 13, Unit 12 - 베오그라드, 세르비아 2 세르비아로 들어가는 기차 여행은 흥미로웠다고 말할 수 있지만 대단히 고통스러 웠다 라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우선 그 여행은 헝가리와 세르비아에서의 여권 검사 때문에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렸다. 기차는 정전 때문에 여러 번 한 곳에서는 한 시간 이상 멈추어야 했다. 나는 너무 지루해서 심지어 영어과목 독서 과제인 햄릿을 꺼내들었다. 많은 고등학생들과 같이 나는 세익스피어의 팬이 아니다. 그렇 지만 아마도 그 상황에서 생겨난 반가운 구실로 인하여 나는 햄릿을 대단히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렇지만 햄릿을 다 끝냈을 때까지도 세르비아에 도착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나는 졸음이 오도록 하기 위해 SAT 준비 교재를 꺼냈는데 효과가 즉시 나타났다! 3 얼마 후 검표원이 표를 검사하기 위하여 돌아다니다가 캐빈에 큰 대자로 누워있는 10대 (나)를 발견했다. 그는 꾀죄죄한 손가락으로 내 다리의 털을 한 움큼 당겨 바 로 나를 깨웠다. 그것은 꽤 고통스러웠고 그 사람을 웃으며 봐주기도 힘들었다. 세 르비아 말로 그는 나의 표를 요구했다. 그의 바디랭귀지로 보아 적어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나는 게으름을 피우며 손을 뻐쳐 나의 유레일 패스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 때 그는 나에게 뭐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나는 막연하게 세르비아에서 패스는 못써 라는 말로 알아들었다. 다행히도 캐빈에 영어를 조금 하는 세르비아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이 미친 사람이 뭐라고 말하는 지 통역을 해 주었다. 그는 패스를 자기에게 맡기면 내가 990 데니어 (약 10유로)를 낼 때까지 가지고 있겠다고 했다. 4 나중에 다른 여행자와 한 세르비아 사람이 우리 캐빈에 합류했다. 그 세르비아인은 우리에게 자기 나라의 역사를 좀 설명해주고 나에게는 집시들 을[1] 멀리 하라 고 조언해주었다. 그가 말을 멈춘 뒤로 끝없이 계속되는 여정이 드디어 끝날 때까 지 긴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기차에서 내려 혐오스런 열기 속으로 또 다시 뛰어들 었다. 검표원이 승강장 끝에서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내가 그에게 다가갔고 그는 나를 역내의 현금인출기로 데리고 갔다. 나는 정말로 그 사람과 말을 하고 싶지 않 았지만 그 사람은 그가 알고 있는 영어로 말을 좀 하려고 계속 시도했는데 나로서 는 놀라웠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는 것이다. 맞다, 바로 몇 시간 전에 나를 깨우려고 다리털을 뽑았던 그 사람이 미소를 지었다. 그를 어떻 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몰라서 그냥 계속 노려보기만 했다. 현금인출기에서 1000 데 니어를 꺼내서 그에게 주었다. 그는 잔전을 정확하게 주고 또 한번 미소를 짓고 떠 났다. 얼굴이 붉고 입을 열면 볼이 까불거리는 그 사람은 내가 만났던 사람들 가운 데 가장 괴짜였다. 5 곧 호스텔에 도착하였고 에어콘이 있다는 것에 황홀했다 그렇지만 너무 세게 작 동을 해서 한 밤중에 덜덜 떨면서 잠을 깼다. 또한 500 데니어로 세탁을 할 수 있 다는 말을 듣고 기뻤다. 하노버를 떠난 후 세탁을 하지 못해서 깨끗한 옷이 거의 없었다. 비록 공짜는 아니지만 약 5달러를 쓴 것은 잘 한 것이었다. 몇 시간 안에 나는 지난 수일 동안 몇 번씩 입었던 습기/땀으로 흠뻑 젖은 옷과 달리 신선한 옷 을 챙기게 되었다. 6 나중에 아래층으로 내려가 빵집으로 갔다. 잔뜩 먹을 계획이었는데 아주 커다란 피 자 한 쪽이 겨우 100 데니어라는 것에 아주 기뻤다. 믿을 수 있을까? 그렇게 싼 피 자를 본 적이 없다. 거의 모든 끼니를 그 빵집에서 피자를 먹는 것으로 그것을 최 대한 이용했다. 그곳은 안에는 공간이 많지 않은 그래서 밖에 앉도록 되어있는 - - 가족이 운영하는 작은 곳이었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피자를 주문할 때는 그들도 나를 잘 알게 되었다.
36 BTM 그곳에 처음 갔을 때 잔뜩 배를 채우고 난 다음 샤워를 하기 위하여 방으로 돌아갔 다. 그리고 신선하게 세탁된 옷을 갰다. 그 다음 로비의 한 긴 의자에 몸을 날려서 누웠다. 그 호스텔이 정말 좋았다. 두 개의 방, 두 개의 화장실, 그리고 로비 뿐이 었다 아늑하고 친근했다. 바깥의 열기는 너무 억압적이어서 밖으로 모험을 할 수 가 없어 페이스북으로 미국에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좀 보냈다. 그 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내가 페이스북을 막 나오려고 하는데 친구 윌 이 세르비아로 오고 있는 중이라는 근황이 떠올랐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그곳에 있다는 메시지를 그에게 보내고 만나기로 했다. 정말 믿기 어렵게도 그는 세르비아인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그 친구는 내가 세르비아를 방문했다는 것을 발 견하고 분명 훨씬 더 놀랐었을 것이다. 8 그 날 남은 하루 동안 많은 것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러고 싶지 않았다. 사실 베 오그라드에 체류했던 대부분 기간 동안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몇 사람 만났다 파리에서 온 20대의 여자 두명 그리고 버클리 (미국에 있는 친구를 떠 올 리게 한)를 갖 졸업한 동양인 남자 그렇지만 나는 대부분 평온하고 조용하게 있 고 싶었다. 집이 그리웠고, 그 시간에 친구들, 가족 그리고 내가 매년 여름마다 일 반적으로 했던 평범한 것 들을 생각하고 싶었다. 9 두 번째 날도 저녁 때가지는 첫 번째 날과 비슷하게 지났다. 또다시 확 번지기 시 작한 습진에 대처할 만한 것을 사기 위하여 약국에 갔고, 피자 외에 다른 것도 좀 먹기 위하여 식료품 가게에 갔고, 그리고 나가서 윌을 만났다. 그는 지금은 군사 박물관과 몇 개의 테니스장을 수용하고 있는 옛 요새인 칼레메그단 (Kalemegdan) 주변을 구경시켜 주었다. 우리는 또 한 잔 하러 갔지만 곧 비가 퍼붓기 시작하여 그것으로 하루를 마쳐야만 했다. 내가 호스텔에 다시 도착하였을 때 나는 완전히 젖어있었다. 10 다음 날, 일어나서, 씻고, 옷을 입고 베오그라데를 좀 더 보기 위하여 밖으로 나갔 다. 그 날이 마지막 날이었기에 빈둥거리며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우선 하루 종일 배낭을 끌고 돌아다니지 않기 위해 버스 승객들을 위한 짐보관소에 (기차역의 로커 들은 꽉 차 있었다) 배낭을 내려놓았다. 잘 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도시 전체 거의 도시 전체를 -- 가로질러 걸었기 때문이다. 날씨는 지독하게 더웠지만 계속 걸었다. 그 도시는 성사바사원 (Temple of Saint Sava)와 니콜라 테슬라 박물관 (Nikola Tesla Museum)과 같은 명소 외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지 못하였 다. 내 생각에 그 도시의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여러 권력자들에 의하여 통치되어 온 역사로 인한 광대한 범위의 건축 양식이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정말 놀라웠던 일 은 내가 마주친 계산대 직원이 나에게 한국인이냐고 물어봤다는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세르비아에서 보았던 유일한 동양인은 다른 여행객이었는데 이 세르 비아 여인은 나의 국적을 바로 맞추었던 것이다 아무도 하지 못했던 것을. 11 그 하루의 나머지는 몽롱하게 지나갔다. 교회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셔츠를 입은 나 의 복장 때문에 부적절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한다. 결국 나는 에어콘 이 있는 안락한 호스텔로 돌아와 소피아 (Sofia) 행 기차를 타기 위하여 오후 6시 에 나왔다. 버스 카드에 돈넣는 것을 깜빡 잊어서 적발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모험 을 했다. 곧 기차역에 도착하여 인터넷 카페에 들렸다. 나는 예의로 샌드위치를 주 문했는데 인터넷이 작동되지 않는 것을 몰랐었다, 아니면 암호를 잘 못 받았든지. 12 그 곳에 있는 두 대의 컴퓨터가 심각한 바이러스에 걸려 나는 그냥 앉아서 샌드위 치를 먹고 베오그라데에서 묵었던 일을 생각했다. 그곳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 도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도시도 아니었지만 거기서 많은 것을 얻어왔다. 나는 그 곳에서 미친 검표원에서부터 드래그 레이싱을 하는 경찰과 이제까지 내가 본 가장 예쁜 여자들까지 모든 것을 겪었다. 기차에 올라타야 할 시간이 되어 그런 생각들 을 모두 접고 기차로 갔다. 침대 캐빈은 이미 채워져 있었기에 나는 6개의 자리가 있는 일반 캐빈으로 들어갔다. 우연히도 호스텔에서 만났던 동양 사람을 다시 만나 서 나머지 여행동안 함께 앉았다.
37 BTM Book 13, Unit 13 - 소피아, 불가리아 2 소피아로 가는 여행은 내가 겪었던 중 가장 불편한 것이었고 내 평생 동안 그렇게 불릴 것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객실은 덥고, 후덥지근하고, 비좁은 것의 대명 사였다. 흡연자들이 바깥의 복도에 줄을 서있고, 객실은 담배 연기로 채워졌고 내 옷에 스며들었다. 이번 여행 중 전에도 불편한 적은 있었지만 이것은 최악이었다. 여행은 12시간이었고 매 초마다 극도의 고통이 채워졌다. 기차가 출발하기 시작했 을 때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시원한 저녁 바람은 들어오지 않았다. 차 안은 분명 화씨 100도가 넘었을 것이다.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 나는 2리터의 병음료를 샀다 물 한 병 그리고 라임소다 한 병. 20분도 안 되어 두 병 모두 비웠다. 그렇 지만 아마도 그것을 마시는 동안 동시에 땀으로 모든 것을 배출되었는 지 화장실은 가지 않았다. 마치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땀이 나는 듯 했다. 젠장,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땀이 났다! 3 잠시 후 나는 잠들었다. 고생스런 밤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바로 옆에는 어린 꼬마 가 하나 앉았는데 부모가 그렇게 못하도록 말리는데도 가끔씩 나를 툭툭 찼다. 누 구하나 움직일 수 있는 공간도 없었다. 아침 6시경에 깨어보니 네 명의 승객이 이 미 내렸다. 기지개를 펴며 여유공간을 누리려고 하는 순간 네 명의 새로운 승객이 들어왔다. 그들 가운데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은 날씬했지만 나머지 세 명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한 쪽으로는 그 세명과 왼쪽으로는 우준이라는 한국인 친구 사이에 끼어 앉아 있었다. 그 사람들은 좀 여유가 있는 객실을 찾아보지 않고 경악 스럽게도 비집고 들어왔다. 4 그들이 자리를 잡은 후에도 그 여자가 정착하는 데까지는 한 참 걸렸다. 그들은 족 히 한 시간 동안 자리를 바꾸고 캐빈을 들락날락 하였다. 그런 모든 것들도 내 앞 에 앉은 여자의 행동만큼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불쑥 일어서서 내 자 리와 그녀의 자리 일부를 밟고 올라서더니 두 손을 천장으로 쭉 뻐쳤다. 그리고는 손을 움직여 접착테이프로 감은 스티로폼 같은 덩어리를 여러 개 내려더니 그녀의 치마 속에 넣었다. 그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동작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안 보았 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그녀의 팔에 시커먼 기름이 묻었는데 그녀는 침을 뱉어서 벅벅 문질러 지웠다. 정말 끔찍했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려 고 애썼던 기억이 나지만 형편없이 실패했을 것임을 확신한다. 5 드디어 소피아(Sofia)에 도착하였고 나는 얼른 기차에서 내렸다. 우준에게 작별 인 사를 하고 역내로 들어가 화장실을 찾았다. 화장실을 금방 쉽게 찾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요금을 내야 했다. 화장실 앞에는 작고 나이 먹은 여자가 불가리아 말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는 방금 도착했기 때문에 데니어를 레브(levs)로 바꿀 기회가 없었다. 영어로 레브 돈이 없는데 정말로 화장실을 써야겠다고 설명했다. 서로 각자의 언어로 옥신각신 하다가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어 무조건 안으 로 달려갔다. 들어가서는 안에 화장지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화장지를 가지러 다시 나와야 했다. 실망스럽게도 그곳에는 쪼그리고 앉아야 하는 변기들 뿐이었다. 역겨 움에 쌓여 볼 일을 최대한 빨리 보고 달려나왔다. 바로 그 때 한 영국인 여행자가 도착하였고 그 여자와 내가 했던 것과 정확히 똑같이 옥신각신하기 시작하였다. 내 가 했던 일을 그에게 말해주었다 나는 기분이 상했다, 그러나 남자가 가야만 할 때는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38 BTM 나는 역의 중앙홀로 갔는데 그곳은 사람들로 가득찼다. 여행자는 많지 않았고 떼를 지어 서성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홈리스처럼 보였다. 어디나 파리가 윙윙거렸고 아무리 손바닥을 마주치며 쫒아내도 헛수고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지를 흔 드는 것뿐이었다. 벌레와 싸우는 시간을 줄이고자 주변의 안내센터를 찾아봤지만 운이 따르지 않아서 약간의 통화를 교환하기로 했다. 곧 아테네 (Athens)로 가야 했기에 그것이 논리적인 일 같았다. 주변을 돌면서 아테네 행 차편을 찾는 사람들 을 몇 명 만났다. 우리는 꽤 여러 번 물어보면서 드디어 버스표를 취급하는 오피스 로 안내 받았다. 담당 여직원은 영어를 아주 잘 했다. 그 때처럼 영어가 마음에 와 닿은 적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리스(Greece) 북부에 있는 테살로니키 (Thessaloniki)라는 도시에 다음 날 가는 버스를 예약했다. 역에서 볼 일을 다 끝 내고 천천히 다음 호스텔로 향했다. 7 불가리아에 있다는 것은 꽤 충격적이었다. 집에서 그 먼 곳에 혼자 있는다는 것이 다시 한 번 정말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가는 길에 점심을 먹기 위해 꼬치구이 식 당에 들렸다. 동유럽의 다른 모든 것들과 같이 저렴하였다. 점심을 다 먹고 한 지 역민에게 (바디 랭귀지와 지도를 갖고) 길을 물었다. 가야할 곳까지 겨우 반 정도 갔기에 좀 더 걸었다. 끝이 없을 것 같았던 길을 가고 호스텔 근처에 있는 광장에 도착했지만 한 동안 호스텔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잠시 멈추어 정말 그런 곳이 있기 는 한 지 궁금한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에 몇 명의 사람들이 문자그대로 벽에서 걸 어 나왔다. 내가 지금 막 마법의 세계에 들어왔을 확률은 얼마나 되지? 라고 나 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거의 없었다. 결국 호스텔로 들어가는 문이 아주 작고 눈에 띄지 않아 내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매번 놓쳤던 것이다. 출입구 안에는 대단히 쾌 적하게 보이는 2층 건물 앞의 조용한 정원으로 이어지는 터널이 있었다. 8 체크인을 했지만 지난 밤 손님이 아직 체크아웃을 하지 않아 방에는 갈 수가 없었 다. 밖으로 나가서 탐험을 할 생각도 했지만 압도적인 열기는 나를 로비로 돌아가 앉도록 했다. 그곳에서 친교를 하고 있는 여러 사람들과 합류했다 그렇지만 대부 분 비영어권 사람들로 보였고 나는 그들의 바디 랭귀지 외에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흘렀고 드디어 방으로 가서 이미 두 명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보았 다. 한 사람은 아일랜드 (Ireland)에서 온 샨이고 다른 사람 잭은 캐나다에서 온 대학생이었다. 예의 인사가 끝난 후 우리는 호스텔 안내인이 추천해준 식당에 먹으 러 나갔다. 식당은 아주 좋았고 럭서리하기도 하였는데 건물의 조용하고 낡은 외부 와는 대조적인 것에 놀랐다. 9 음식값과 -- 팁을 주고 났을 때 웨이트레스가 잔전까지 일종의 엑스트라 팁으로 모두 걷어갔을 때는 좀 이상한 순간이었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그녀를 불 러서 우리 돈을 돌려달라고 했다. 그녀는 킥킥 웃으며 돈을 건네주었다. 나는 그 돈을 돌아오는 길에 찾은 아주 저렴한 작은 식료품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데 썼다. 호스텔로 돌아왔을 때는 거의 오후 7시가 되었고 소피아 구경을 시작하기로 한 시 간이었다. 그들은 의회 건물 앞에 모여들고 있었고, 우리는 제 때에 그들을 따라잡 았다. 10 특별히 흥미로운 구경은 아니었고 구경이 끝나자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었다. 나는 두바이 (Dubai)에서 시작하여 두바이로 돌아가는 유람선에서 일했던 한 남자를 만 났다. 얼마나 신날까?! 잠시 나는 그것이 정말 좋은 직업이고 미래일 것이라고 생 각했다. 그렇지만 곧바로 현실로 돌아왔다. 그런 삶은 운 좋은 몇 명에게만 존재한 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단지 환상의 직업일 뿐이다. 11 다시 호스텔, 새로운 룸메이트 한 명이 아주 친절하게도 저녁 식사에서 나를 위하 여 스파케티를 조금 남겨두었다. 그 후 나는 샤워를 하고자 위층으로 올라갔는데 다시 한 번 샴푸를 좀 사야겠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그리스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기에 룸메이트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39 BTM Book 13, Unit 14 - 아테네, 그리스 2 그리스다! 믿을 수가 없었다.나는 그리스에 가보고 싶어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리 스에 가는 꿈을 꾸었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시끄러운 영국 친구들 한 그룹과 호 주(Australia) 사람 한 명과 함께 버스 여행을 했다. 처음에는 피곤했고 잠을 자고 싶어서 혼자 있었다. 그렇지만 멀지 않아 나는 그들 모두와 활발히 대화를 나누었 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이것은 대단히 도움이 되었다. 3 버스 여행은 길었다 정말 길었다. 우리는 화장실을 가기 위하여 삭막한 허허벌판 의 한 가운데 있는 식당에 들렸다. 안에는 작은 스낵점이 있었는데 우리는 모두 정 크 푸드로 배를 채웠다. 그 다음에 나는 화장실을 들렸는데 장식이 아주 잘 되었다 는 것에 즐거이 놀랐다. 스피커에서 터져 나오는 콜미 메이비 노래는 덜 매력 적이었다. 이 노래는 미국에서 어디서나 들었던 것이어서 불가리아에서까지 듣는 다는 것은 너무 심했다. 4 기억이 맞는다면 우리가 테살로니키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경이었다. 나는 버스에 서 만났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오후 6시 아테네행 기차를 예약했다. 호주 친구는 다음 날 떠나기로 되어 있어서 헤어졌다. 기다리는 3시간 동안 우리는 그리스 칩을 우적 우적 먹고 그리스 음료를 마시며 앉아서 이야기를 했다. 한 때 나는 오락실 게임에서 1 유로를 쓰고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전불도저 게임으로 옮겨서 그 기계에 3유로를 잃고 말았다. 화가 난 나는 혹시 동전 몇 개라도 떨어져 나오지 않을까 하여 기계를 흔들기 시작하였다. 실패한 것은 물론 어두운 구석에 앉아 있 던 한 여자가 와서 나에게 머리를 가로저었다. 당황한 나는 손을 들어 사과하고 자 리를 떴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 새로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했다. 실제로 할 일 이 아무것도 없었다. 밖은 너무 더웠다; 우리는 에어콘이 있는 건물 안에서도 땀을 흘렸다. 5 한 세기처럼 느껴진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기차를 타기 위하여 승강장으로 나갔다. 기차는 낚서로 뒤덮인 객차들로 꼭 빈민구역 같았다. 그렇지만 내부는 깨끗하여 5 시간 동안 타야 했기에 감사했다. 그럼에도 그것은 또 한 번의 고통스러울 정도로 긴 여행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영국식 억양을 연습할 기회와 몇 개의 영국 속어를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갖었다. 내가 영국식 억양을 거의 정복할 때 즈음 해는 졌 고, 원래 도착하기로 했던 시간은 지나갔다. 기차는 계속하여 칙칙폭폭 움직였다. 드디어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였고 2시간 연착된 것이었다. 6 아테네는 내가 그렸던 그런 것이 전혀 아니었다. 어떻든 어둠 속에서는 아니었다. 밖은 여전히 꽤 더웠는데 모든 것이 닫혀 있었다 시간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역에는 켜진 불이 몇 개 없었고, 우리 친구들과 나만이 유일하게 깨어있 는 것처럼 보였다. 밖으로 나가서 택시 몇 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친구 들은 자기 호스텔이 어디 있는 지 알고 있었지만 나는 전혀 몰랐다. 그리고 지난 번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나는 역시 주소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운이 좋아 서 그곳을 알고 20유로에 태워다 주겠다는 택시 운전사를 만났다. 나는 흥정을 하 여 10유로로 깍았다; 20유로는 너무 비싼 것 같았다.
40 BTM 떠나기 전에 나는 영국애들과 작별하고 다음 날 아침 페이스북으로 만나서 서로의 계획이 일치되는 지 알아보기로 했다. 10초도 안 되어 내가 올라탄 차는 차선 표시 도 없는 것 같은 도로의 야간교통 사이로 홱홱 틀어대고 있었다. 내 인생에서 승객 으로 그 때보다 더 겁을 먹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기적적으로 우리는 무사히 호 스텔에 도착했다. 리셉션 직원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주 친절한 남자였다. 불 행히도 나는 아주 피곤했고 내가 돈을 냈을 때 그가 거스름 돈을 정확히 못 주자 나는 좀 예민해졌다. 그는 다음 날 거스름 돈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나는 아주 예 민해져서 당장 돈을 달라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방 키를 받기 위하여 예치한 돈이 들어있는 서랍을 열고 내가 받아야 할 몇 유로를 건네주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좀 더 좋고, 좀 더 공손한 사람이었으면 좋았텐데 아쉽다. 8 방에 들어갔을 때 모든 사람들은 곤히 자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씻고 즉시 잠들었 다. 다음 날 아침 10시에 일어나, 이것 저것 찾아보며 여행계획을 세우면서 오전과 오후를 보냈다 어떻든 밖으로 나가기에는 너무 더웠다. 다 마치고 긴장을 풀고 생각을 좀 했다. 7월 12일이었기에 나의 여행은 거의 절반이 지났다. 집에 가고 싶 은 생각이 잠시 들었다. 9 아직도 17일을 더 지나야 한다는 사실은 그 순간 좀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너무 덥고 나를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유는 좋았지만 책임을 진다는 것이 무 엇을 의미하는 지를 점점 더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쉽지 않았다. 세탁을 하고, 음식을 제대로 규칙적으로 먹고, 탈수되지 않도록 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어느 곳에 낙오되지 않도록 하는 책임을 지는 것. 이 모든 것이 내가 예측할 수 있 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내가 부모님께 가장 감사함을 느낀 것은 그러한 순 간들 나의 여행을 돌이켜 보며 생각하던 순간들이었다. 부모님은 언제나 내가 있는 곳 밖의 세계를 볼 수 있도록 커다란 희생을 하셨고 그렇게 하여 내가 성숙하 고 보다 좋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셨다. 10 마침내 나는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드디어 내가 아테네에 간 것이다. 또한 산토리니 (Santorini)에 가는 유람선 표를 예약하기 위하여 여행사를 찾아야 했다. 몇 가지 집어들고 밖으로 나갔다. 숨막히는 더위 속에서 여행사를 찾는 것이 한참 걸렸고 마침내 찾았을 때 그들은 나에게 유람선 표의 할인을 받기 위한 유레 일 패스는 항구의 오피스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비록 실망스러웠지만 그들 에게 감사를 표하고 벼룩시작으로 향했다. 원래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Acropolis Museum)을 방문하려고 했었는데 여행사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여 거의 마감 시간이 가까워졌다. 어떻든 벼룩시장은 더 재미있었고 나는 자신이 그 분위기를 정 말로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가져다 줄 작은 기념품 쇼핑 을 하다보니 땀과 먼지로 뒤덮여 아주 꾀죄죄한 꼴이 되었다. 호스텔로 가서 샤워 를 하고 빈속을 좋은 음식으로 채웠다. 11 호스텔 리셉션 직원 한 명이 나에게 아탈로스라고 하는 식당에 가도록 추천했다. 거기서 웨이터의 추천으로 무사카 (Moussaka)라고 하는 요리를 먹었다. 이것은 감 자, 토마토, 가지 및 다진 고기에 프라이드 스크램블드 에그를 한 층 올린 전형적 인 그리스 요리다. 음식이 좋았다 아마도 그즈음 몇 일 동안 내가 먹었던 음식 중에 가장 좋았다. 경치도 아주 좋았다. 오른쪽으로 헤파이토스 신전 (Temple of Hephaestus)이 있는 경치는 극적이었다. 해는 지고 있었고 아테네 고대의 유적지에 서 반사되는 오렌지 빛은 할 말을 잃게 했다. 해가 지기 시작할 때까지 모든 것을 천천히 바라보았고 때는 다시 호스텔로 돌아가야할 시간이었다. 12 돌아가서 새로운 홍콩 친구 (첸)와 나는 위층으로 올라가 불이 켜져있고 장엄한 분 위기를 발하는 파르테논 신전의 경치를 보았다. 첸은 그리스 독주인 우조 (Ouzo) 한 잔을 공짜로 마셨다. 나는 마시지 않기로 했다, 단지 그 순간에 술을 마시고 싶 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잠시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내일은 긴 하루가 될 것이었기 때문에 얼마 후 나는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41 BTM 내가 쓴 긴 이라는 표현은 완전히 과소평가였다는 것으로 결론났다. 나는 9시 간 동안이나 밖에 있었고 그 후 나는 완전히 골아 떨어질 준비가 되어있었다. 우선 5시간 짜리 관광을 했는데 그 때까지 내가 해 본 관광 중에 최고의 관광이었다. 여 행 중에 만난 테네시에서 온 두 명과 함께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갔다. 베를린에 서 만난 버클리 졸업생은 나에게 실제 현장에 가기 전에 박물관을 먼저 가라고 권 했었다. 그 박물관은 내가 전에 보았던 것들과는 전혀 달랐다. 메인층은 바닥이 투 명유리로 만들어져서 진행중인 발굴현장을 볼 수 있었다. 14 3층에서는 파르테논 신전에 대한 비디오가 상영되어 그것을 한 참 보았다. 그렇지 만 잠이 들었기 때문에 얼마나 봤는 지는 확실치 않다. 테네시 친구가 나를 쿡 찔 러 깨웠고 나는 생각도 없이 일어서서 카메라를 바닥에 떨구었다. 카메라는 쿵하고 떨어졌는데 감사하게도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만약 카메라가 고장났다면 우리 엄 마가 나에게 어떻게 하실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여행 중에 더 이상 사 진을 찍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결론은 아직도 산토리니(Santorini), 로 마 (Rome), 피렌체 (Florence), 베니스 (Venice), 몽펠리에 (Montpellier), 그리고 파리 (Paris)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15 나의 새로운 두 친구는 그들의 호스텔에서 몇 사람들과 저녁을 먹을 계획이 있었 다. 그렇지만 우리는 멈추어서 냉동 그리스 요구르트를 먹었다. 모든 사람들이 보 통 냉동 요구르트를 먹어봤을 것이다. 그렇지만 냉동 그리스 요구르트는 완전히 달 랐다. 나는 미국에서 일반 그리스 요구르트를 먹으며, 도대체 누가 이런 것을 먹 을까? 하고 생각하곤 했었다. 알고보니 그것은 꿀과 함께 먹도록 되어있는 것이었 다. 집에 왔을 때 그렇게 먹어보니 정말 좋았다! 이와 비슷하게 냉동 그리스 요구 르트에는 섞어서 먹을 수 있는 여러 종류의 토핑이 있다. 나는 누텔라와 조각으로 된 비스켓을 선택했다. 아직도 그 첫 스푼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설명할 수 없다. 아테네 주변을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걸어다니면서 나는 정말로 탈수상태가 되었 는데 그 때 그것은 정말 대단했다. 그 순간 심지어 집에 가면 냉동 그리스 요구르 트 장사를 시작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물론, 결코 시작도 못할 것이지만 냉동 그리 스 요구르트를 매일 즐긴다는 생각은 꽤 유혹적이었다. 16 빵집에서 빵 몇 조각을 먹은 후 호스텔로 돌아와서 바로 침대로 갔다. 그렇지만 마 지막 순간 나는 유람선을 타고 산토리니에 가는 것이 내일이라는 것과 내가 마지막 으로 배를 탔던 때 레이크 파월(Lake Powell) 유람선 멀미를 했다는 것을 기억했 다. 멀미를 완화시키기 위하여 4시간의 여행 시간 내내 아이파드를 귀에 꽂아 무엇 인가에 집중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생겼다 내가 가지고 온 이어 폰이 망가졌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가 새로운 세트를 하나 샀다. 17 시간은 겨우 오후 6:30 밖에 안 되었는데도 그 지역의 모든 전자제품 상점은 문을 닫은 것처럼 보였다. 다행히도 애플 가게를 찾았는데 애플은 좋은 품질의 제품을 취급하기 때문에 좋았다. 소피아에서 출발하던 날 아침에 구입한 엉성한 이어폰은 한 번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음성의 질은 형편없었고 귀에 전기 충격이 발생 하는 성향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쁜 소식은 그 가게에 있는 모든 것은 비싸다는 것 이다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렇지만 35분을 걸은 후인지라 나로서는 들어가는 것 외에 달리 선택이 없었다. 직원에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저렴한 이어폰을 요구했고 그는 나에게 40 유로짜리 어배너스(Urbaners) 이어폰 한 세트를 건네주었 다. 40 유로였다! 그렇게 많은 돈을 쓰는 것에 대하여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멀미 가 너무나도 무서웠다. 가격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괜찮았다. 사실은 괜찮은 것 이 상이었다. 고객서비스는 최고였다 전에 내가 받았던 것보다 더 좋았다. 이어폰 역시 품질이 좋았다. 모양을 고려하여 빨간색을 골랐지만 음질과 견고함은 최고였 다. 친절한 직원에게 감사표시를 한 후 호스텔로 돌아갔다.
42 BTM 이번에는 방으로 직접 들어갔다. 방에 가서 새로운 룸메이트, 민준이 있음을 알았 다. 그는 동양인이었지만 한국인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많이 그을렸다. 그렇지만 나도 한국인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한 국인이었다! 그렇게 조금 놀란 후, 우리는 한국말로 떠들기 시작했는데 비록 전에 는 전혀 몰랐었지만 집에서 수 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한국인을 만났다는 것이 우 리를 단합되게 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그런 것 같았다, 우리가 베니스에 갈 때까 지는. 이것은 나중에 설명한다. 19 샤워를 하고, 블로그를 업데이트하고, 일기를 쓰고, 사진들을 카메라에서 아이패드 로 옮겼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옥상으로 올라가서 파르테논 신전의 놀라운 전경을 보았다. 나는 파르테논 신전의 사진을 여러번 찍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똑같은 사 진을 아테네에서의 첫날 밤, 어제 밤, 그리고 오늘 밤도 찍었다. 나중에 민준은 우 리 모두에게 각각 맥주 한 병과 우조 한 잔씩 사주겠다고 고집했다. 그는 한국에서 는 선배들이 후배들을 데리고 나가 술이나 밥을 사주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나보고 맥주를 마시고 싶으면 자기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믿을 만한 사람과 함께 있 었기에 그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호스텔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말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내가 부정적인 경험을 했던 곳은 바르샤바뿐이 었다. 20 우리는 술을 사가지고 파르테논 신전을 내다보며 앉았다. 그 순간에는 그곳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는 것 같았다. 우리는 많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구체적 으로 무슨 이야기를 했는 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곧 그런 것은 별로 상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맥주 한 병을 다 마시고 독주 한 잔도 마셨는데 시야가 흔들 리며 좀 몽롱해지는 것처럼 느껴졌고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 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고 나는 양치질을 한 후 습관적으로 페이스북을 열었다. 그 러기를 잘했다! 21 어떻게 알았는 지 모르지만 영국 친구들이 나의 호스텔을 찾았고 옥상에 있다는 메 시지를 보냈다. 잽싸게 옥상으로 올라가서 그들을 만났다. 우리는 전날 여러차례 연결이 되지 않아 연락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아주 즐거워 보였으며 나에게 술을 권하였지만 이번에는 사양을 해야 했다. 산토리니 유람선이 다음 날 아침 7시 30분 에 출발하기로 되어있었고, 제 시간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곧 잠자리에 들어야 했 다. 우리는 몇 분 동안 이야기를 하고 저녁 인사를 했다. 그들은 나와 같은 시간에 로마에 갈 계획이어서 우리가 그 때 또 다시 만날 수 있을 지 두고 보기로 했다. 22 첫 날 밤에 거스름돈을 요구했던 것에 대하여 여전히 조금 불편함이 있었지만 나는 리셉션 직원에게 다음 날 아침 5시 30분에 깨워달라고 부탁했다. 잠에서 깨었을 때 는 아직 어두웠지만 소지품을 챙겨서 체크아웃했다. 하드리아누스 도서관 (Hadrien s Library)까지 약 500 피트를 걸었다. 바로 그 옆에 메트로역이 있었 다. 아테네에서는 한 번도 메트로를 이용하지 않았지만 지난 번의 경험들이 있었기 에 자신만만했다. 그것은 정말 전혀 어렵지 않았으며 특히 같은 시간에 여행하는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는 더욱 그랬다. 메트로를 타는 것은 약 20분 정도였지만 나 는 소매치기에 대한 편집증 때문에 훨씬 더 길게 느껴졌다. 나는 메트로에 타기 몇 초전까지만 해도 손을 주머니에 넣어 아이파드와 지갑을 지켜야 한다고 들었다. 젠 장, 심지어 이어폰 줄도 항상 눈에 보이게 해야 된다는 말을 들었다. 좀도둑들은 어린애들을 시켜서 못된 일을 시킨다는 말을 들었기에 나는 메트로에 있는 어린애 들 하나하나를 의심에 찬 피곤한 (아마 붉어진) 눈으로 지켜보았다.
43 BTM 드디어 메트로에서 내렸을 때는 어디로 가야할 지 몰랐다. 그래서 큰 무리의 사람 들을 따라가서 길게 늘어선 매표 줄에 섰다. 내가 줄의 앞에 섰을 때 한 남자가 나 머지 사람들보다 더 급했는지 내 앞에 끼어들어 나에게 고함을 지르고 매표소로 다 가갔다. 그 사람을 그냥 보냈다; 그의 드라마를 상대할 만한 에너지가 없었다. 드 디어 내 차례가 되었을 때는 벌써 7시 20분이었고 내가 계획한 유람선은 7시 30분 에 떠난다. 그제서야 7시 30분 표가 매진되었으며 11시 표만 아직 있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24 게다가 유레일 할인을 받으려면 길 건너편의 여행사에 가야만 한다라고 했다. 내가 그 여행사를 갔을 때는 11시 표도 매진되었고, 그나마 내가 산토리니로 가는 아무 표나 구입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노력으로 또 다른 여행사로 가라고 했다. 그 시점에 저녁 7시까지는 남은 자리가 없다고 들었다. 시인하건데 나는 분별을 잃었 다. 호스텔에서 있었던 돈문제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고, 나의 여행 계획이 깨지고 있다는 것에 좌절감을 느꼈다. 이미 그날 밤과 그 다음 날 밤까지. 3일 째는 로마 로 떠날 계획으로 산토리니에 호스텔을 예약했던 것이다. 나는 오른 손으로 있는 힘을 다해 카운터를 쾅 내려치는 위험 수위의 행동뿐만 아니라 격앙된 외침을 내뱉 을 수밖에 없었다. 자제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 날 아침은 컨 디션이 안 좋았던 것 같다. 25 카운터 뒤의 여자가 몸을 내밀어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 진정 해. 진정해. 진정해. 정말 우습게도 생판 모르는 사람의 그런 제스쳐는 실제 효 과가 있었다. 나는 진정하고 이미 계획을 세웠으며 최대한 빨리 떠나야만 한다고 분명히 설명했다. 그 직원은 딱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비행기를 타라. 그 아이디어 는 전혀 말도 안 되는 것 같았지만 비행기표 값 140 유로는 비교적 괜찮았고, 내가 늦게 도착하여 생기는 여러가지 복합적 문제를 고려하여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나의 카드가 긁혔고 비행기 예매표가 손에 쥐어졌다. 공항으로 가는 버 스를 타러 갔다. 일찍 도착하여 햄릿을 읽고 페이스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수 년의 세월 같았던 시간이 지났고 나는 비행기를 타고 산토리니로 향했다.
44 BTM Book 13, Unit 15 - 산토리니, 그리스 2 비행기는 작은 활주로에 착륙했고 계단이 문 앞으로 밀려왔다. 내가 섬에 있다는 것은 꽤 이상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섬은 아주 커서 느낄 수가 없었다. 시야로는 끝이 보이지 않았고, 언덕과 산, 그리고 또 언덕들만 보였다. 호스텔에 연락하여 유람선이 아닌 공항으로 픽업을 오도록 하였다. 그렇지만 아침의 그 난리통에 시간 이 없어서 겨우 한 통의 이메일만 보냈었다. 알고 보니 나의 메시지는 전달되지 않 았던 것이다. 그곳에 와이파이가 없으므로 호스텔과 확인할 방법도 없이 한 동안 기다리다 택시를 타기로 하였다.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고 다른 승객들을 내리고 태우며 몇 번 우회한 다음 페리사 해변(Perissa Beach)에 도착하였다. 3 나에게는 10 유로밖에 없었는데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틀렸다. 기사는 20유로를 요구했다. 20 유로를! 이게 어떻게 공평할 수 있나? 나는 그에게 돈이 더 이상 없다고 하며 빈 지갑까지 보여주었다. 가지고 있던 10유로를 주었고 그는 타이어에서 끼익 소리가 나도록 차를 몰아 가버렸다. 나는 그 사람들 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조금 미안했다 그렇지만 동시에 전혀 미안하지 않았 다. 내가 만약 매 분 운전할 때마다 거의 1 달러씩 번다면 나는 타운에서 가장 부 유한 십대가 될 것이다! 녹초가 되어 호스텔로 걸어가서 체크인 했다. 긴 하루였지 만 아직 정오도 되지 않았다. 방으로 안내 받자 나는 침대로 뛰어들어 원기회복 낮 잠을 잤다. 4 약 한 시간 후 일어나서 페리사 해변에 가기로 했다. 결국 사람들은 이 낙원에서의 휴식을 위하여 수 천 달러씩 쓰는 것이다! 전에 한 번도 검은 모래로 된 해변을 본 적이 없지만 솔직히 나는 감동받지 않았다. 내가 볼 때 자갈이라고 불러야 할 그 검은 모래는 나의 발을 감싸는 순간 내가 겪었던 것 중 가장 극심한 고통을 주었 다. 거기, 해변의 한 가운데서,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뛰었다. 물이 허리에 찰 때까지 뛰고 또 뛰었다. 고통 속에서 10 미터를 전력 질주하는 동안 어디서 샌 들은 벗겨졌고, 맨발은 매끄러운 바위에 미끄러졌다 (검은 모래 아래에는 거대한 바위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물 속으로 들어갔고 내 몸은 무감각해졌다. 물은 너 무나도 차가웠다. 나는 다시 달려나가 모래가 젖은 곳을 확인하여 해변에 앉았다. 그 소금물에 눈이 쓰렸고, 그 모래에 엉덩이를 데었다. 나는 다시 일어나 물을 헤 치며 들어갔다. 내가 여기서 묘사한 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낙원 과는 전혀 거 리가 먼 것이다. 5 짧은 수영을 하다 그곳에서 발헤엄을 치고 있는 또 하나의 십대를 만났다. 나도 발 헤엄을 치며 대화를 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는 터기에서 왔고 영어를 못하여 우리는 겨우 이름만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실제 대화를 하려고 잠시 더 시도한 후 포기하 고 제스쳐로 다시 들어가겠다고 설명했다. 6 그 다음 몇 시간 동안 수영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해변에서 일광욕을 했다. 선 블록을 쓰지 않아 난생 처음으로 햇볕에 심하게 탔다. 믿어질까? 한국인이 햇볕에 탔다! 나는 정말 그것을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아니면, 적어도 나에게는 그 런 일이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얼마 후 해변에 실증이 나서 친절하 게 나의 물건을 지켜봐준 나이드신 부부에게서 물건을 받아 호스텔의 실내 수영장 을 즐기기 위하여 돌아갔다. 수영장은 좋았지만 그럼에도 실증이 났다. 그 순간 특 별히 할 일이 떠오르지 않아서 온라인에서 유람선의 유레일 할인이 정확히 어떻게 적용되는 것인지 조사를 해봤다. 잠시 웹을 찾아보고 난 후 유람선을 타고 여행하 는 것을 아예 피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를 들면, 유람선을 타 고 로마까지 가려면 다시 4시간 동안 차를 타고 아테네로 돌아가서 다시 몇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파트라 (Patra)까지 가야 한다. 그리고는 시간의 여유도 없이 이 탈리아의 브린디시 (Brindisi)까지 가는 또 다른 유람선에 승선하기 위하여 항구를 찾아야 한다 전체 17.5 시간의 여행을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거친 다음에도 기차를 타고 반도를 거쳐 로마까지 가야 한다.
45 BTM 그 계획은 재앙의 가능성이 너무 많았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진행되고 모든 환승 의 연결이 된다고 해도 그 가운데 하나만 지연되어도 2-3일은 쉽게 없어질 것이다. 나는 결정했다: 산토리니에서 로마까지 비행기를 타고 직행하는 것으로. 전체 여행 시간은 아테네에 잠시 들린다 해도 3시간 미만이다. 승락을 얻기 위해 한 번 더 엄 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간 요인을 설명하고 160 유로의 비용을 말씀 드렸고 엄마 와 나는 그런 문제들을 피하고 시간을 벌기 위하여 돈을 쓸 가치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8 온라인으로 가서 비행기표를 예약하려고 하는데 또 하나의 문제에 부딪혔다. 비행 기표는 노인, 성인, 또는 어린이로 구분되었다. 나는 18세 미만이었기에 어린이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내가 어린이 표 한 개만 예약하려고 하는 순간 어린이들은 혼 자 여행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바로 올라왔다. 그러면 어떻게 나 혼자 집에서 폴란드까지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었다는 말인가? 거짓말을 하거나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나로서는 비행기를 타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계 속 진행하여 성인이라고 주장했다. 현재까지 나는 미성년 음주와 항공사 규정을 위 반했음을 인정한다. 비록 지금은 이미 끝난 일이니까 그로 인하여 문제가 될 수는 없을 것임을 알지만 그 당시에는 꽤 신경을 건드리는 일이었다. 9 출발 날짜와 시간이 정해지자 유일한 걱정은 이 낙원의 섬에서 떠날 때까지 시간을 채우는 것이었다. 30유로를 주고 차를 빌리든지 25 유로를 주고 ATV를 빌려서 섬 전체를 돌아다닐 수도 있었다. ATV를 빌리는 아이디어가 아주 유혹적이었지만 이미 4시 반이 넘어서 본전을 뽑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다시 방으로 가서 새로운 룸메이트들을 만났다. 한 친구는 브라질 (파울로)에서 왔 고 다른 친구는 싱가폴 (사지브)에서 왔다. 우리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그 섬에 있 는 피라 (Fira)라고 하는 도시를 방문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문제가 생겼다; 버스 비가 없었다. 비행기표가 내 계좌의 돈을 말려버렸던 것이다. 사지브가 친절하게도 나의 버스비를 빌려주었다. 피라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단순히 카페와 식당 그리 고 선물가게들만 모아놓은 곳이었다. 나는 푸른 돔의 흰색 건물을 담은 예쁜 카드 를 사지 않았다. 비록 더운 날씨에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괴로울 정도로 더워서 우 리는 바다와 배를 내려다 보며 밖에서 식사를 하고자 했던 원래의 계획을 거부하였 다. 10 우리는 버스로 돌아와 페리사 해변으로 다시 가서 좀 더 편하게 먹을 만 한 저녁거 리를 살피며 걸었다. 우리는 결국 한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솔직히 나에게는 모 두가 똑같이 보였다: 메뉴도 같고, 바깥 자리도 같고, 경치도 같았다. 유일하게 다 른 것이 있다면 색의 조합뿐이었다. 사지브와 나는 그리스 음식을 주문했고 파울로 는 해산물 파스타를 주문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 이라고는 먹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좀 더 먹었다. 음식은 끝내주게 맛있었다. 내 가 주문한 음식은 무사카, 쌀이 채워진 토마토, 그리고 여러 종류의 고기와 야채였 다. 내가 한 동안 먹었던 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다. 검은 자갈의 해변을 내다보니 해안의 파도가 찰랑거리고, 오렌지 빛 석양은 물 위에 반짝이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상상했던 낙원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의 시간을 갖고 즐겁게 보내 며 그곳에 있었다 부모님은 콜로라도의 따가운 햇볕에서 땀흘리고 계시는 그 때 (콜로라도는 산불 시즌이어서 우리 집도 사전 대피령을 받은 상태였다), 그리고 여 동생은 과테말라에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는 그 때.
46 BTM 나를 뺀 가족 모두가 평상의 생활을 하거나 3세계 국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동안 그 정도로 즐겁게 지내야 하는 지 갈등의 순간을 느꼈다. 나는 그 점을 심각하게 생각해보고 내가 식구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이 여행을 최대한 경험 하고, 많은 사진을 찍어서 함께 공유하고, 최대한 명료하고 솔직하게 여정을 알려 주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나는 바다와 음식, 친구들, 그리고 심지어 웨이터에게 우 리 그룹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저녁이 끝나고 우리는 촉촉한 해안을 걸었 다 이제는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에 검은 모래가 더 이상 뜨겁지 않았다. 느낌이 아주 좋았다. 12 호스텔로 와서 보니 나의 발이 붉은 갈색으로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일찍이 시작된 물집이 보기 흉한 굳은살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다. 잠시 수영을 하고 나는 샤워를 하러 갔다. 샤워는 좋았는데 물이 짭짤 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었을 것이다. 그렇다, 내가 양치질을 했던 싱크의 물과 마찬 가지로 샤워장의 물도 짭짤했다. 샤워를 하고 난 다음 나는 사지브에게 버스비와 저녁값을 갑기 위하여 현금서비스 기계를 찾으러 나갔다. 나는 또한 ATV를 타며 하 루를 보내지 않기로 하고 대신 인근의 화산 섬을 탐험하는 크루즈를 타기로 했다 하루 종일의 탐험이 겨우 25 유로뿐이었다. 일을 모두 마치고 나는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13 다음 날 아침 사지브와 나는 수영복에, 샌들을 신고, 셔츠를 입고, 휴대용 가방을 챙기고 로비로 가서 항구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곳에 가자 배들이 잔뜩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어떤 배는 유람선처럼 보였고 다른 배들은 그냥 모터가 달린 범선으 로 보였다. 나는 짙은 청색의 액센트가 있는 범선을 보고 농담으로, 나는 저것을 타고 싶어! 라고 했다. 물론 나는 배멀미 경력이 있기 때문에 정말 농담으로 한 것이었다. 훨씬 더 크고 단단한 배를 원했던 것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유람선을 탄 것은 레이크 파월에서였고,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딱 한 가지는 지독한 배멀미를 한 것인데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피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유감스럽게 되었다: 바 로 그 배가 우리가 타고 유람할 배였던 것이다. 나는 비밀리에 나의 운수를 저주하 고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어차피 설사 멀미를 하였다 해도 위풍당당한 배 를 타고 사진 한 장 없다면 그것도 창피한 일일 것이다. 14 막상 그 문제는 나의 걱정거리가 거의 못되었다. 햇볓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였다. 물에 나가자 햇볓은 거의 내가 불에 휩싸인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피부에 작렬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3년 동안 행군 악대를 하고 지난 몇 주 동안 매일 5-9 시간 씩 걸으면서 생겨난 지독한 양말 자욱을 없앴다. 놀랍게도 그것이 많은 위안이 되 지는 못했다. 최근 햇볕에 데인 등이 많이 아팠다. 그러니까 나중에 아팠다. 그 당 시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왜냐고? 아마도 그 당시 발이 데지 않도록 하는 생각 만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샌달이 아주 뜨거웠고 갑판도 뜨거웠다. 그 상황을 다 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샌달을 신고 그것이 좀 식을 때까지 몇 분동안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었다. 15 우리는 곧 첫번째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화산이었다. 그렇게 뾰족하지 않았으며 구 경 중에 화산이 왜 그렇게 평평한 지 어떻게 생겨났는 지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었 지만 솔직히 많은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이곳에서는 샌달을 착용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는 것과 원하면 배에 계속 있어도 좋다라 고 하는 선장의 발표였다. 사지브도 나도 다른 신발을 가져가지 않았다. 그러나 우 리는 다시 와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하여 모험을 하기로 하였다. 우리가 그렇 게 했다는 것에 기뻤지만 선장이 그렇게 발표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곳을 걷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47 BTM 뜨겁고, 검은 자갈같은 화산암들이 어느새 샌달과 발 사이에 비집고 드는 것이었 다. 도보 거리는 1 마일이 채 못되었다. 그것은 공식적으로 내가 겪은 가장 고통스 러웠던 거리의 도보였다. 정상에 오르자 더 이상 걷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너무 좋 았고 발 밑에 뜨거운 자갈이 없는 그 기분을 즐기며 멍해졌다. 가이드가 여러 곳의 표면에서 올라오는 독성 가스를 지목하던 것, 그리고 같이 갔던 다른 도보자들이 인생은 한 번 뿐이다 (You Only Live Once)라는 약자 YOLO 를 모래 위에 자갈 로 썼던 것이 기억난다. 이것이 내가 그 화산섬에서 경험한 것의 대부분이며, 발 밑에 델 만큼 뜨거운 검은 자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배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 그냥 기뻤다. 그렇지만 나는 샘플을 가져왔는데 상점에서 보았던 그 어떤 기념품보 다도 더 좋았기 때문이다. 17 나머지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배는 계속 전진했고 우리는 배의 옆부분에서 맑고 푸른 물에 뛰어드는 것이 허용되었다. 우리는 해안으로 수영을 했는데 해변 근처의 물은 붉은 갈색이었다. 가이드는 그것이 철분농도가 높은 것과 관련이 있으며 그곳 의 진흙이 피부에 좋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진흙으로 피부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만 해보았다 너무 역겨워 뭐라고 언급할 수 없는 그런 것 때 문에 나는 완전히 정이 떨어졌다. 물의 온기도 나의 상황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약 30분이 지나자 다시 수영하여 돌아갈 시간이 되어 기꺼이 그렇게 했다. 내가 배 로 올라왔을 때도 물이 몸에 그대로 묻어 있었는데 그제서야 모든 것이 완벽해 보 였다. 덥지도 춥지도 않았고 범선을 타고 지중해에 있다는 그 생각만으로도 정말 신나는 것이었다. 18 그 기분은 오래 가지 않았고 나의 등이 다시 타기 시작하였다. 그 다음 정박처는 또 하나의 섬이었는데 그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사지브와 나는 아주 작은 상 점에 들러서 물과 과자를 먼저 샀다. 그리고 식당을 찾기 시작하였다. 네 다섯 개 의 식당이 나란히 있는데 모두 물 위에 떠 있었다. 모두들 똑같은 것을 팔고 있는 것으로 보여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말하자면 이론적으로는 어려웠겠지만, 우리에게 는 어렵지 않았다. 19 우리가 맞닥뜨린 첫 식당의 매니저는 우리를 세우고 팔을 잡으며, 앉아요. 음식 좋아요. 음식 싸요. 라고 말했다. 20개의 자리 가운데 겨우 몇 개만 손님이 있기 에 나는 선장이 권했던 식당을 떠올리며 당신 식당은 캡틴 존스(Captain John s) 식당보다 가격이 싼가요? 라고 물었다. 그 매니저는 그냥, 이해하지 못해 요. 라고 외쳐댔다. 이상했다. 그는 당황하거나 그런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내 얼굴에 대고 그냥 외쳐댔다. 나는 내가 한 말을 천천히 반복하면서 노력했다. 똑같이 큰 소리의 반응만 들었다. 그가 분명히 이해를 했다는 것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그냥 내 질문에 대답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20 그 매니저가 다른 잠재적 손님을 괴롭히러 잠깐 나간 사이 그곳에서 일했던 것처럼 보이는 어떤 사람이, 다른 곳으로 가시는 게 좋을 거예요. 보시다시피 저 매니저 는 좀 지저분해요. 라고 속삭였다. 친구와 나는 재빨리 캡틴 존스로 옮겼다. 그 식당은 부페 스타일이지만 각자 선택한 음식에 따라 가격이 달랐다. 나는 스틱에 꽂힌 문어를 먹었다. 한 입 한 입 맛을 음미하며 먹었는데도 10분 만에 다 먹었다. 그 후 나는 물에서 즐기려고 했지만 아까 오랫동안 물 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는 지 너무 차가워서 즐길 수가 없었다. 어떻든 우리 배는 곧 산토리니로 출발하여 우리 를 그리스 어디를 가나 엽서에서 볼 수 있는 이아 (Oia)에 내려주었다. 그렇지만 나의 첫 느낌은 별로였다. 순간 지갑을 캡틴 존스에 두고 온 것으로 착각하여 깜짝 놀랬다. 내 가방 속에 있었기에 두려움은 짧게 끝났다. 우리는 도심으로 향하는 계 단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48 BTM 거기에는 당나귀를 끌고와서 위에까지 타고 올라가는데 5 유로를 받는 사람들이 있 었다. 돈을 절약하고자 거절했지만 아마 받아들였었다면 더 좋았었을 것이다. 200 개가 넘는 위로 경사진 2-3 피트 길이의 계단을 샌달을 신고 올라가는 것은 여름 내내 했던 운동 중 가장 힘들었다. 그곳을 올라가면서 설상가상이었던 것은 당나귀 를 탄 사람들이 우리를 앞질러 가는 것이었다. 당나귀들은 꼬리 튀기기를 좋아했는 데 우리는 몇 번이나 당나귀 꼬리에 따귀를 양쪽으로 맞았다. 게다가 그 악취는 참 혹했다. 우리가 정상에 올랐을 때 나는 땀을 줄줄 흘렸고 샤워만 할 수 있다면 뭐 라도 다 주었을 것이다. 그대신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이아에 꼭묶여 있었다. 22 표면적으로 볼 때 이아는 피라와 같았다: 수 많은 상점과 식당들. 그렇지만 훨씬 더 아름다웠다. 보이는 곳마다 하얀 벽과 푸른 지붕이었다. 보도는 대리석 처럼 보 이는 것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그곳은 좀 더 시원했는데 그로서 모든 것이 더 좋았 다. 우리는 주변을 배회하며 건물과 사진, 바다 및 배들의 사진을 찍었다. 모든 것 이 정말 아름다웠다. 해가 지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바다 멀리까지 돌출된 한 곳으 로 갔다. 그보다 더 눈부시게 아름다운 석양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오렌지 의 석양 빛이 물과 절벽, 그리고 흰색 벽의 건물들에 반사되었다. 우리는 해가 바 다 속으로 가라 앉을 때까지 바라보았다. 드디어 해가 지자 바로 추워지기 시작했 다. 우리는 서둘러 자리를 떠나 페리사로 돌아오는 차편을 찾았다. 23 우리는 사전에 버스를 타기로 되어 있는 장소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문제는 우리 둘 가운데 아무도 그 설명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버스 정거장 의 위치를 묻기 시작하였고 대략적인 안내를 받았다. 그런데 막다른 길을 마주쳤 다. 우리는 버스 주차장처럼 보이는 곳을 찾았지만 그곳의 버스는 우리 버스가 아 니었다. 시간은 9시였고 출발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버스를 찾지 못하였다. 두려움에 빠지기 시작할 때 버스로 가득찬 또 다른 곳을 얼핏 보았고 달려갔다. 다 행히도 우리 버스는 아직 거기 있었다. 우리가 올라타자 곧 버스는 출발했다. 이 섬의 크기에 대한 아이디어로 치자면 이아의 정 반대편에 있는 페리사까지 버스를 타고 45분 걸렸다. 24 산토리니에서의 체류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아주 싫었지만 또 한 번 따스한 소금물 로 샤워를 하고 소금물로 양치질도 했다. 아이파드를 꺼내 몇 친구들과 채팅을 하 고, 다음 날 밤을 위한 호스텔을 예약하고, 블로그를 업데이트 했다. 그렇지만 아 주 피곤해서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서둘러서 가장 싼 호스텔을 고르고 침대 로 갔다. 친구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그의 나머지 여정에 운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 해줬다. 침대로 올라간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데 새벽 5시 반에 맞추어 놓은 알람 이 단 몇 분만에 울리는 것 같았다. 배낭을 챙겨서 침대 옆에 놓고 옷을 입은 채로 잠을 잤다. 양치를 하고 신발을 신고 택시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기만 하면 되 었다. 25 택시 기사는 나이가 든 남자였는데 이상하리만큼 영어를 잘 했다. 그에게 일출을 보기 위하여 어디로 가야할 지 물었고, 그는 공항에 도착하자 그곳을 가르쳐 주었 고, 나는 그에게 25 유로의 택시비를 지불했다. 안에 들어가자 이미 체크인 줄이 길게 늘어져 있는 것을 보고 일출광경은 포기해야 했다. 내가 체크인 대기열에 들 어서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몽롱하게 지나갔다. 어느 한 순간 나는 검색대를 통과 하고 있었고, 그 다음 어느 순간 나는 공항 상점에서 우조 사탕을 사고 있었다. 얼 마 후 버스가 도착하여 승객들을 비행기로 태워갔다. 나는 계단을 올라갔고, 비행 기 안으로 들어갔고, 자리에 앉았고, 햄릿을 꺼냈고, 안전벨트를 맸다. 몇 분 안에 잠들었다.
49 BTM Book 13, Unit 16 - 로마, 이탈리아 2 아테네에 도착했다는 조종사의 안내방송에 잠을 깼다. 비행기에서 내린 직후 정신 을 못차리고 10여분을 헤매고 나서야 머리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테 네를 두 번째 방문했을 때 기억나는 것은 그것이 전부다. 로마에 가는 비행기를 타 기 위하여 다른 버스에 올라탔고 기내에서 땅콩을 더 달라고 했던 것이 희미하게 기억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로마에 있었다. 또 다시 경이로운 새 장소에 가게 되었다는 것에 흥분했다. 나는 옆에 앉은 여성에게, 콜리세움이 보이나 요? 라고 물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 너는 보이니? 나는 보이지 않 는다고 인정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콜리세움에서 30마일 밖에 있었던 것이다. 짐 찾는 곳에서 나의 배낭이 어디서 토해져 나올까 알아보느냐고 주변을 돌며 잠시 혼동을 한 후 콜리세움을 가보기로 했다. 한 가지 문제는 탐험을 시작 하기 전에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고 덩치 큰 배낭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었다. 3 안내에는 기차역을 찾으라고 되어 있지만 어떻게 찾을 지 전혀 아이디어가 없었다. 제복을 입은 몇 명에게 물어보았고 그들은 교통안내 부스로 가라고 했다. 기차를 타면 돈이 많이 들 것이 분명했다 (유레일 패스를 깜빡 잊고 있었다). 돈을 그렇게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호스텔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인 지 물어보았다. 부스 에 있던 사람은 웃으며 호스텔이 30마일 밖에 있다고 하였다. 나는 그렇게 웃는 것 이 실례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나? 바로 그 때 버스가 단 지 5유로만 한다고 광고하는 다른 부스를 보았다. 기차역에 가는 버스가 있는 지 물어보았다. 있다고 했다. 그래서 결정은 났다. 먼저 현금인출기에서 현금을 꺼내 고 화장실을 가야 했다. 그 다음에 표를 사서 버스를 찾아 나섰다. 4 이제까지 여행에서 한국인들을 여기 저기서 만났지만, 내가 앞으로 마주치게 될 한 국인들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만난 한국인들을 계속 추적하였 다는 것은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함으로 집과 가족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나는 미국에 살고 있고, 그렇다, 나는 미국 시민이다. 그 러면 나는 왜 내가 만난 미국인들을 추적하지 않았나? 내가 미국 시민임을 증명하 는 모든 문건들 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 외에는 확실히 모르겠다. 미 국에는 다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산다. 미국인은 하나의 인종, 하나의 종교, 하나의 민족으로 일반화 될 수 없다. 한국인이라는 것이 나를 정의하는 표현이다. 집 밖에 서 한국말을 쓰지는 않지만, 그것은 나의 첫번째 언어이며, 그것이 부모님과 내가 쓰는 언어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이 바로 내가 한국인을 보거나 한국말을 들으면 자 동적으로 인연을 느끼는 이유일 것이다. 어떻든 버스에 타자마자 그곳에는 한국인 처럼 보이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래서 짐을 자리에 내려놓고 그에게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그는 긍정하였고 우리는 짧은 대화를 하게 되었다.
50 BTM 한 주씩 지날 때마다 외로움의 길고 긴 날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버스를 타고 가 면서 자신에 대한 새로운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아주 인기가 좋은 녀석이라고 생 각하지 않고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혼자서 시간을 갖고 음악을 듣거나, 산 속으로 드라이브를 하거나, 머리 속에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질문에 대 하여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 없이, 또는 주 변에 나의 정신을 지탱해줄 익숙한 무엇이 없이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래서 그 여정이 가끔씩 그렇게 힘들었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영어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 는,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교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곳에 있었던 것이 다. 나는 기차를 타고 걸으며 계속 움직여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가 끔씩 어떻게 해나가야 할 지 전혀 몰랐다. 혼자라는 것은 한 번의 실수도 많은 피 해가 따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그것은 나의 실패에 다른 사람을 끌고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도 의미했다. 약간의 농담이기는 하지만 내가 만약 다른 사람 과 여행을 했었다면 나는 훨씬 더 느긋했고 덜 두려웠었을 것이다. 6 물론 두려움을 보여주는 것은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다. 절대로. 내가 듣기로는 두 려움을 보이는 여행자들은 소매치기, 유괴 및 기타 범죄를 당하기가 훨씬 더 쉽다 고 한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어디에 갔든, 무엇을 했든 고개를 똑 바로 들었고 자신있게 처리했다. 물론 내가 제대로 하고 있다고 확신한 경우는 4번 에 1번 꼴도 안 되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 7 주 동안 그렇게 해내고 이제 그것에 대하여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나의 전략에는 분명 장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아 니면 내가 그냥 운이 좋았던지. 7 드디어 버스가 역에 도착하였고 그 한국인과 나는 서로 헤어지기 전에 짧게 대화를 갖었다. 그는 나의 나머지 여행 기간 동안 잘하라고 했고; 나는 그에게 감사하고 역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 그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로마 안에서 호스텔에 가기 위하여 기차를 타야 되는 것인가? 안내서에는 메트로를 타고 코르네이아 (Corneilia)에서 내려 버스를 타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그런 혼동상황에서 호스텔 에 연락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8 그렇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와이파이가 필요했다. 거리 건너편에 맥도날드가 있었는 데 상황에 딱들어 맞는 것 같았다. 그곳으로 달려 들어가서 아이패드를 꺼냈다. 그 러나 온라인에 접속을 하려고 하자 유효한 전화번호를 갖고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 만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곳에 있는 손님에게 그의 전화번 호를 좀 사용하자가 부탁을 했지만 그 역시 여행자였다. 그래서 역으로 다시 걸어 가 배회하였다. 나는 화장실을 발견하고 그 기회를 이용하였다 비록 50센트를 내 야 했지만. 좀 더 걸어 다니다가 또 다른 맥도날드를 발견하였는데 거기도 똑같은 문제가 있었다. 바로 그 때, 커다란 M 자가 있는 싸인을 보았고, 바로 떠올랐 다. M 은 Metro의 약자였다. 9 싸인의 화살표 방향으로 들어가서 안내서에 명시된 메트로를 찾았다. 내리라고 하 는 곳에서 내렸고, 계단을 올라 거리로 갔다. 왠지 모르지만 뭔가 익숙한 것 아 니면 좀 더 구체적으로 콜로세움 이 보이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역에 서 올라왔을 때 눈에 보이는 어떤 것도 익숙한 것은 분명코 없었다. 인터넷 카페를 하나 발견했다. 크게 기뻐하며 단숨에 그곳으로 갔다. 컴퓨터를 하나 요청하고 hostelworld.com에 접속하여 찾은 것이라고는. 추가적인 길 안내는 전혀 없었 다. 전에도 그랬었던 것처럼 완전히 미아가 되었다. 그 과정이 15분 2초 걸렸고, 사용료는 15분 단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어차피 돈으로 내야할 시간을 다 쓰기로 하 고 계속 앉아서 페이스북을 보기로 했다. 미국에 있는 모든 친구들은 자고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다음 15분이 적용되기 전에 확실하게 로그 옵하고 사용료를 지불했다. 또한 점원에게 내가 타야할 버스를 어떻게 타는 지 물 어보았다. 편리하게도 그 카페에서는 버스표를 팔았고, 곧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51 BTM 내가 내려야 할 곳이라고 생각한 정류소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한적한 곳에 있었 고, 거기서 맥도날드 앞에 있는 또 하나의 정류소를 찾아야 했다. 눈에 보이는 정 류장이 하나도 없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알고 있는 지 물어보았다. 그녀가 나와 함께 걸었고 곧 금색의 아치가 보였다. 나는 근처에서 본 젤라토 가게에 들르기로 마음 먹고 도와준 아주머니에게 감사말을 하고 걸어갔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아이스크림에 대하여 조사를 했었다. 이탈리아는 아이스크림과 비슷한 젤라토를 처음으로 만들어 낸 곳의 하나였다.) 작은 골목길이 그 상점으로 이어졌는데 그곳 에서 색깔을 보고 선택을 하였다: 솜사탕을 골랐는데 파란색이었고, 파란색은 그 순간 먹기에 좋은 색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11 나오는 길에 아직도 그 아주머니가 그곳에 서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맥도날 드는? 라고 말했다. 그제서 그녀가 맥도날드를 하나 사주기 원한다는 것을 알았 다. 나는 많이 혼동되었다. 그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확실치 않아서 그녀를 식당까지 따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그곳에 가자 내가 함께 들어가기를 원 했다. 내가, 맥도날드가 아니라 버스요 했다. 그녀는 혼돈스러운 표정으로 나 를 잠시 쳐다보았고, 잘 못 알았다는 것을 깨닫는 그녀의 얼굴이 변하는 것이 보였 다. 그녀는 슬프게 머리를 가로지으며 떠나갔다. 12 정류소에는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곧 그 사람들 모두가 여행객이며, 대부분 호주인들이고 모두들 내가 찾고 있는 것고 같은 호스텔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을 따라가서 곧 체크인을 하였다 텐트로. 내가 로마의 체류지를 예 약할 때는 신경을 제대로 쓰지 않았던 것 같고 결국 호스텔이 아닌 캠프 사이트를 골랐던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된 것에 기분이 나빴다. 나는 피곤했고 에어콘을 원 했다. 캠프 시설은 침대가 세 개 있고 캔바스 천으로 둘러 쌓였고 몇 개의 알루미 늄 기둥으로 지탱되어 있었다. 날씨는 아주 습하였고 내 옷은 아주 눅눅했다. 이것 도 모두 여행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고 일어나서 짐색을 챙기고 밖으로 탐험을 나갔 다. 그 도시에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까지 문제없이 잘 갔다. 메트로 역에 서 나오자 한 남자와 아이가 모페드에 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이탈리아 사람처 럼 보이지 않았고, 나는 그들에게 어디서 모페드를 구했는 지 물어보았다. 그들은 기차역에 (그것이 어디 있든지 간에) 가면 하루에 30 유로를 주고 스쿠터를 빌릴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지쳤기에 매력을 느꼈지만 그 비용을 쓰지 않고 해낼 수 있 다고 판단했다. 13 볼 것이 참 많았다. 나는 로마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언제나 판테온 신전과 콜로 세움을 보고 이탈리아의 유명한 파스타와 피자를 먹어보는 꿈을 꾸었었다. 모든 것 을 동시에 하는 것은 불가능 했기에 나는 진정하고 현실적으로 되어야 했다. 나의 지도에 따르면 트레비 분수가 가까이 있어서 그곳으로 먼저 갔다. 분수를 구경하는 인파를 생각하면 분수가 있는 지역은 비교적 작아 보였다. 그곳은 돌아다닐 수 있 는 공간이 거의 없었다.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거대하지는 않았지만 분수는 꽤 컸고 아주 구체적이었고, 아름다운 날이었고, 분위기는 쾌활했다. 그렇지만 사람들 이 너무 많아서 나는 갖고 있는 세 개의 동전을 던질 만큼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드디어 내가 맨 앞으로 나갔을 때는 몇 초 되지도 않아 다른 패거리의 사람들이 밀 고 들어와 그들의 차례가 되었다.
52 BTM 남은 하루 시간은 꽤 빨리 지났고 리스트에 적은 모든 사이트를 거의 다 보았다. 즉 산피에트로 (San Pietro)와 판테온 신전 (the Pantheon)을 빼고 다 보았는데 판 테온 신전을 찾고 있는 중에 선글래스를 파는 거리 상인을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그는 특별한 것을 파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는 모조 라이방(Ray Bans)을 팔았 다. 그렇지만 나는 새 선글래스가 필요했다. 집에서 가지고 온 것들을 카토비체 (Katowice) 어디에서 분실했고 크라쿠프에서 구입한 것들은 망거지고 있었다. 나는 에이비에이터스 선글래스를 고르고 가격을 물었다. 상인은 20 유로라고 했다. 말도 안 됐다. 나는 길가의 담요 위에 놓고 파는 원가는 거의 들지 않았을 그런 것을 20 유로에 살 수는 없었다. 나는 10 유로를 역제안 했다. 그는 노 라고 하였다. 내 가 예스 라고 했다. 그는 거절했다. 나는 다시 10유로를 되풀이 했다. 그는 15 유로를 달라고 응수했다. 여전히 너무 비쌌다. 나는 내 값을 다시 말했다. 그는 거 절했다. 나는 똑같은 것을 웹에서 5유로면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했다. 그는 한 숨 을 쉬고는 나의 10유로를 받았다. 15 새로운 가리개를 쓰고 그 도시의 탐험을 계속했다. 모든 것이 인상적이고 모든 것 이 아름다웠다. 그렇지만 콜로세움보다 더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없었다. 내가 그 모습을 처음 본 것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위에서였다. 그 때는 너무 작게 보여서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콜로세움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저것이 바로 그 콜로세움인가요? 라고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내가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확인해주었다. 어떤 결론을 내리기 전에 좀 더 가까이서 봐야겠다고 판단했다. 그 런데 배가 고파서 음식부터 먼저 먹기로 했다. 기념관 옆의 골목길에 있는 식당에 가서 버섯을 올린 페타취니 알프레도를 주문했는데 맛이 대단히 좋았다. 내가 먹는 동안에 몇 명의 거리 악사들이 멈추어 연주를 하였고, 나는 즐거운 저녁을 먹었다. 말로는 여행자 지역 밖의 번화가 음식이 훨씬 더 맛있다고 했다. 아쉽게도 나는 그 런 식당에 갈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저녁을 먹고 젤라토 1인분을 더 챙겼다. 거절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16 손에 젤라토를 들고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나는 또 다시 삼천포로 빠졌는데 이번에 는 잉꼬 두 마리를 들고 있는 아주머니 때문이었다. 내가 멈추기 무섭게 나의 어깨 에 잉꼬 두 마리가 올라 앉았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나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 겠다고 제안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길 한 복판에 있기에 안전하고, 그 나이든 아주머니보다 내가 훨씬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 그렇게 하기로 했 다. 그녀는 도망을 가거나 나의 카메라를 훔치려 하지 않았다. 다만 아주머니는 사 진을 찍고는 돈을 달라고 했다. 나에게 3 유로가 있었고 그 중 절반은 메트로를 타 기 위하여 필요했다. 그녀에게 20 센트를 주었다. 아주머니는 혐오스럽게 나를 쳐 다보고는 3유로를 요구했다. 3 유로를! 17 내 카메라는 원하지도 않았던 10초 미만의 사진 촬영 값에 볼모로 잡혀 있었다. 젠장, 노! 20센트 줄게요. 내가 말했다. 그 아주머니는 머리를 가로 저었 다. 그냥 가버릴려고 했지만, 그 아주머니가 내 카메라를 아직도 갖고 있다. 아줌 마가 손을 내밀었다. 내가 새를 잡아서 그녀의 손에 놓았다. 아줌마는 새들을 자기 어깨에 올려놓더니 또 손을 내밀며 나머지 손으로는 나의 카메라를 등 뒤로 돌렸 다. 그 아줌마는 몸 (카메라) 값을 2 유로로 내렸고 나는, 안 돼요, 20 센트 라 고 응수했다. 그제서야 아줌마는, 오케이, 오케이, 1 유로 라고 하였다. 나는 그것이 내가 받아낼 수 있는 최상의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또한 갈길을 가려면 카 메라를 돌려받아야 했다. 가방에서 돈을 하나씩 하나씩 건져내 그녀에게 주고 나의 카메라를 회수했다. 손에 카메라가 들어오자마자 최대한 빨리 걸어가며 다시는 그 런 상황에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53 BTM 드디어 콜로세움에 갔을 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것은 내가 구글 이미지에서 찾 아 스케치하곤 했던 건축물이었다. 내가 항상 실물을 보고 싶어 꿈꾸었던 건축물이 었던 것이다. 콜로세움은 로마제국의 전성기가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에 건축된 것 으로 믿을 수 없는 당대 공학기술의 상징이다. 내가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데 몇 분 걸렸고, 드디어 받아들이고 났을 때 나는 카메라를 꺼내 다른 관광객에게 콜로 세움을 배경으로 나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족히 20분 동안 그렇게 했다 일련의 다른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면서. 19 그 다음에 내부를 돌아보기로 하였다. 그렇지만 입구에 다다랐을 때는 마감을 하고 있었다. 아무도 들어갈 수는 없고, 오직 나오는 것만 허용되었다. 두 명의 여자들 도 들어가려고 했다. 우리는 혹시 경비 몰래 지나갈 수 있을까 생각도 했지만 그럴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다음 날 또 돌아올 수 있으니까. 라틴어 선생님이 극적 인 마차 경주에서부터 어마어마한 관중까지 자세하게 설명해준 적이 있는 원형 대 경기장 (Circus Maximus)으로 향했다. 그렇지만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실망스러웠 다. 여기 저기에 깨진 맥주병들이 널려 있었고 써커스 맥시머스(Circus Maximus)는 넓은 필드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곳에 그런 것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싸인은 거의 없었다. 20 나는 그냥 산책하러 가기로 했다. 나의 실망은 대단히 컸고 더 이상 탐험할 에너지 도 없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였고 나는 메트로역으로 향했다. 역에 도착하자 1.5 유로를 발매기에 넣었고 표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기계적으로 그것을 들고 마 치 디즈니랜드에 들어가기 위하여 표를 기계에 긁는 것 처럼 게이트의 슬롯에 집어 넣었다. 나는 메트로에 들어가 앉았다. 내가 내려야 할 정거장에서 일어나 나오고, 계단을 타고 올라가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탔고, 다시 정류장에서 내리고, 나의 텐트로 걸어갔다. 누워서 잠에 들면서 아무 감정도 없고 텅빈 로버트 같은 느낌이 들었다. 21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더 이상 전날 밤과 같은 기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사 실은 상당한 활기를 느꼈다. 짐쌕을 챙기어 캠프장을 나갔다. 그러나 버스 정류장 에 가자 기다리는 줄이 길었다. 보기에 일요일은 버스도 적고 배차간격도 멀었다. 기다렸고, 기다렸고 또 기다렸다. 드디어 몇 명은 포기하고 택시를 잡으러 떠났 다. 5분 이내에 나는 메트로역에 있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기에 나는 서두르고 싶었다. 22 나의 첫번째 목적지는 기차역으로 가서 다음날 플로렌스(Florence)에 가는 자리를 예약하는 것이었다. 내가 매표소 줄쪽으로 가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큰 소리로 부 르는 것을 들었다. 잠시 후 나는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친구들의 품에 안기고 있었 다. 이게 믿어질까? 내가 처음 유럽에 갔을 때 나는 세상이 거대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을 시간당 500 마일 이상을 날라서 반대편 대륙에 와 있다. 이제 나는 세상이 전혀 크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이 그렇게 크다면 어떻게 내가 이 친구들을 우연히 만날 수 있었을까??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되어 정 말 좋았고, 우리는 줄에서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샌드위치를 사서 우적우적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23 몇 분 후 내 친구들이 부스로 갈 차례였고, 기다리는 줄이 아주 길었기에 그들은 거의 기차를 놓칠 상황이어서 바로 달려가야 했다. 나는 플로렌스 차편을 예약 및 돈을 낸 다음 다시 돌아가서 콜로세움의 내부를 보았다. 그곳에 도착하여 관광 가 이드를 찾기 시작하였는데 관광그룹에 합류하면 2시간이나 되는 대기줄에 서지 않 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요금은 추가로 18 유로였지만 길 건너편의 로마포롬의 관광도 포함되었다. 그 정도면 괜찮은 가격이라 생각되어 28유로를 건 넸고 주머니에는 달랑 20센트만 남았다. 나도 알고 있다, 내가 특별히 앞을 내다 보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54 BTM 몇 분 안에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믿기지가 않았다!. 전에 라틴어 수업 시간에 오직 듣기만 했던 무엇인가를 직접 보고 있었다. 검투사들이 싸웠던 곳이 바로 이 곳이며, 로마의 최첨단 기술이 만나서 시민들에게 당대 최고의 경기장을 제공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나는 경기장 위의 캔바스가 드리워질 곳과 무대 아래서 사 나운 짐승과 검투사들이 일전을 앞두고 기다리는 대기실이 어디쯤일 것인지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더웠다. 그렇지만 내가 바로 그 콜로세 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냥 견뎌야 했다. 가이드는 설명을 끝내자 우리에게 로마 포롬의 관광이 시작되는 2시 30분까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허용했다. 25 나는 전화나 아이파드를 갖고 가지 않아 시간을 알 길이 없으므로 다른 여행객에게 그들과 함께 어울려도 좋을 지 물어보았다. 그들은 아주 친절하게 동의했고 우리는 탐험을 시작했다. 곧 그들이 신혼여행 중임을 알았고 그들을 축하했다. 그들은 미 쉬건에서 왔고, 미국에서 온 사람들과 사투리가 없는 영어로 대화를 하는 것도 좋 았다. 벤이라는 이 친구는 사진을 정말로 좋아했는데 그가 나를 위하여 멋진 사진 도 몇 장 찍어주었기에 좋았다. 다른 여행자들에게 사진을 좀 찍어달라고 부탁하면 종종 구도나 빛을 조절하지 않고 그냥 셔터 버튼만 눌러주곤 했다. 그렇지만 벤은 정말로 카메라를 아는 친구였다. 그늘로 내 얼굴이 까맣게 되거나, 배경이 지나치 게 노출되거나 하는 일이 없었고 구도 역시 제대로 설정되었다. 26 한 때 두 명의 한국 여자들이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사진 찍는 것을 스쳐 들었다. 그렇지만 서로 상대방의 사진만 찍는 그들을 보고 다가가서 두 사람 함께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그들은 놀라움으로 나를 보며 내가 어디서 왔으며, 왜 거기에 왔으며, 등등의 질문을 하며 한국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아주 쾌활하고 친 절했으며 우리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미소지으며 그들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살은 적이 없는 나의 한국어에 감동받았고, 로마에서 학교를 다니 는 자녀들을 방문중이라고 했다. 그렇게 자랑하는 것은 동양 엄마들의 문화이다. 어떤 이유인지 그런 아주 익숙한 행동이 정말 우습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들 을 축하하고 내 갈 길을 갔다. 한 번은 내가 엄마에게 제대로 자랑할 만한 거리를 주지 못한다고 엄마가 불평하셨던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이 말을 엄마에게 바치고 싶다: 내가 아는 한, 나는 이런 여행을 혼자서 하는 최연소 여행자이며, 당신은 나 의 엄마예요! 자랑 좀 하세요! 27 나머지 관광은 훌쩍 지나갔다; 로마의 황제들이 수 천년 전에 밟았던 그 길을 내가 실제로 걷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친구들과 나는 판테온을 가보고 그리고 관광을 마치면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고, 그렇게 하루 계획이 다 짜여진 것 같았 다. 그렇지만 관광이 끝났을 때 나는 카드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현금으로 20센 트 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래서 관광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지갑 을 가지러 캠프장으로 향했다. 물론 잠시 후 나는 메트로 차비도 없다는 것을 깨달 았다. 로마의 메트로 시스템은 이제까지 내가 방문했던 어떤 다른 나라들의 메트로 시스템 보다도 치안이 잘 되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표 없이 들어간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해보였다. 나는 공황에 빠지기 시작했다. 로마에서 돈도, 물도, 가시적 도움 도 없이 꼼짝 못하게 되었다. 혹시 신혼여행 중인 그 거플을 찾을 수 있을까 하여 다시 달려갔다. 부탁하기 싫었지만 다른 선택이 없다고 느꼈다. 찾고 또 찾았지만 그들은 가고 없었다. 같은 목적으로 그 한국인 아줌마들 아니면 아무 한국인들 을 찾았지만 역시 운이 닿지 않았다.
55 BTM 지난 몇 시간 동안 그곳이 한국인들로 북적댔다고 느꼈는데 이제는 단 한 명도 찾 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냥 다른 여행객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아무 여행객이나. 인도 가족을 만나서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메트로 차비를 부탁했다. 그 아버지는 혼동스러운 모습으로, 미안하지만, 이해가 안 됩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라 고 했다. 저는 1.5 유로가 필요합니다. 메트로 차비 1.5유로를 좀 주실 수 있으 시겠어요? 라고 내가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에게 돈을 주었다. 비록 나 는 그가 나에게 준 도움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 지 그에게 설명하려고 노력하였지 만, 그는 내가 얼마만큼 감사해했는 지 모른다. 29 나는 그에게 감사들 드리고 역으로 떠났다. 나는 살아났다. 이제 텐트에 가서 카드 를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긴장이 풀렸고 지독하게 목이 마르다는 것을 깨달 았다. 곳곳에 대중 식수대가 있었지만 나는 잊고 물병을 갖고 오지 않았던 것이다. 또 다시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는 피곤하고, 빨개진 그리고 땀범벅의 내 얼굴을 한 번 보고는 웃으며 그의 병을 건네주었다. 나는 그에게 감사하고 있는 대로 마셨다. 이런 경험들은 나에게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역할을 해주었 다. 그들은 이 지구에는 얼마나 많은 좋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를 깨닫게 도움을 주었고 그 깨달음은 나를 행복하게 하였다. 나는 이 사람들이 나에게 보여주는 표 본을 따르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와 똑같은 수준의 조건없는 도움을 주기 위하여 최 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자신에게 말했다. 30 부모님과 조부모님은 내가 키우기 쉽지 않은 아이였다고 항상 말씀하셨다. 아기였 을 때 나는 잘 먹지 않았다. 나는 항상 내 뜻대로 하려고 다투었다. 때로 나는 타 인의 감정을 의식하지 못하고 무례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 가장 못된 것은 나는 내 방식을 바꾸기 위하여 한 번도 정말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나의 경험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나는 이제까지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을 전혀 깨 닫지 못하는 맹인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깨달았다: 우리 가족은 부유하지 않다. 내 부모님과 같은 중류층 재정 수준의 그 누구도 매우 비싼 비행기표와 1000 불이나 하는 유레일 패스, 숙박비와 식대로 매주 최소한 몇 백 달러씩 10대의 은행 계좌에 입금해야 하는 그런 여행의 경비에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이다. 31 그러나 나의 부모님은 그 모든 것을 다하셨고 나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여행을 좋아하시지만 그럴 기회를 많이 갖지 못하셨다. 그럼에도 엄마는 내가 나중 에 정착하여 내 힘으로 더 이상 그런 여행을 못할지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내가 세 상을 볼 수 있게 지원해주셨다. 나는 이런 압도적인 감사를 독일의 퀼른에서 처음 으로 느꼈다. 나는 퀼른 성당 옆의 스타벅스에서 엄마에게 스카이프를 하여 어느 날 엄마를 모시고 가고 싶은 경이의 하나를 보여드렸다. 나는 모든 세상이 볼 수 있도록 나의 블로그에서 부모님께 인사를 올렸다. 그럼에도 나는 결코 나의 감사를 전부 보여드릴 수 없을 것 같다. 따라서 이 사람이 나에게 그의 물병을 나누어 주 었을 때 나는 부모님이 원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기로 결심했다. 32 부모님은 내게 전과목 A 학점이나 전과목 최우수 과정의 수업 등록을 기대하지 않 으신다. 또한 부모님은 내가 돈을 많이 버는 전문직을 바탕으로 많은 돈을 버는 사 업가가 되는 것도 기대하지 않으신다. 부모님은 단지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존경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자신의 일을 즐기고 자신이 선택하는 분 야에서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을 기대하신다. 이 모든 것의 첫번째 과정은 내게 주어 진 것에 감사하고, 세상 사람들이 매일 겪으며 살아가는 어려움과 공평하지 못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56 BTM 내가 캠프장으로 돌아왔을 때 한 그룹의 사람들을 바티칸 시 (Vatican City)로 이 동시킬 준비가 된 트럭이 한 대 있었다. 나는 달려가서 지갑을 갖고 나와 올라 탔 다. 산 피에트로는 마감을 하고 있었기에 다음 날 아침에 다시 가기로 했다. 판테 온 쪽으로 걷고 있을 때 행군 악대와 함께 어떤 의식이 시작되고 있는 것을 보았 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보고자 기다렸지만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행사준비 는 끝없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내 갈 길을 가기로 하고 판테온으로 갔지만 그곳도 역시 마감되었음을 알았다. 다음 날 아침 다시 오기로 하였다. 34 나의 기차가 아침 10시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모든 계획을 세우기 시작 했다. 산 피에트로는 7시에 오픈하며, 판테온은 9시에 오픈한다고 들었다. 바티칸 시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과 각 장소에서 보내야 할 시간을 대략 계산하였다. 그 리고 그 모든 사이트와 역을 걷는 시간을 계산하였다. 끝으로 내가 무거운 배낭을 지고 다닌다는 사실과 차편을 기다리는 시간 등을 고려하여 각각 15분씩 추가하였 다. 이 순간은 나의 여행에서 가장 자랑스런 순간이었다. 나는 그 때까지 여행을 통하여 얻은 모든 정보를 포함시켰고, 배낭을 지고 여행을 시작하면 몇 분만에 겪 게 될 것이 확실한 장단지의 뜨거움을 이겨낼 수 있을 지 없을 지 정말로 시험해 볼 것이었다. 35 빨갛게 빛나는 석양 아래서 스페인 광장을 본 다음 나는 캠프장으로 돌아갔다. 메 트로를 타고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다음 버스까지 얼마나 걸릴 지 몰라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얼마나 기다렸는 지 물어보았다. 그것은 또 한 번의 이상한 우연이었다: 그는 내가 불가리아에서 만나 아테네에서 함께 시간을 갖었던 영국 사 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의 나머지 그룹도 그곳에 있었다. 우리는 믿을 수 없 었다; 정말로 믿기 힘든 일이었다!! 곧 버스가 도착했고 우리 모두 올라탔다. 36 캠프장에서 그들은 나를 토가 파티 모든 사람들이 각자 타올로 만든 토가를 입고 참석하는 파티 에 함께 가자고 초대하였다. 기꺼이 그들과 합류했었을 것이지만 산 피에트로와 판테온에 10시 기차 전까지 돌아보기 위해서 나는 캠프를 6시 30분 에 떠나야 했다. 그것은 6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뜻이었다. 또 다시 작별 인사를 하 고 텐트로 돌아왔다. 텐트에서 새로운 룸메이트가 있음을 발견했다 한 명은 파리 에서 왔고, 나머지 한 명은 미국에서 왔다.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했는데 파리에서 온 건축 면허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은 나에게 파리에서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말해주었고, 건축학 공부에 대해서도 조언을 해주었다. 그렇지만 잠시 후 나 는 졸기 시작했고 밤 인사를 하고 잠들었다. 37 다음 날, 산 피에트로의 문이 열리자 나는 5유로를 내고 돔까지 551개의 계단을 뛰 어 오르기 시작했다. 거의 끝까지 갔다. 거의. 그렇지만 4백 몇 번째 계단에서 숨 고르기를 위하여 멈추어야만 했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을 때는 지쳤지만 또한 대단 히 기뻤다. 그 노력은 정말로 가치가 있었다. 해는 막 로마의 지붕 위에 떠 올랐 고; 고요하며 아름다웠다. 다음 15분을 사진을 찍으며 보냈다: 하나씩, 하나씩, 논 스톱으로. 그리고 다시 달려서 내려와야 했다. 그렇게 했다. 38 그렇지만 엘리베이터가 있는 중간 쯤에서 포기했다. 상관말자, 비록 기술적으로 말 하자면 나의 5 유로에는 엘레베이터 사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엘레베이터 사용료가 포함된 표는 7유로였다 나는 좌우지간 올라탔다. 지상에 내려오자 화물 보관소에서 가방을 찾아 판테온으로 향했다. 그곳은 입장료가 없었다. 판테온에 대 하여 내가 본 비디오에서는 그것을 공학기술의 경이로 묘사했다. 정말 그랬다. 그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같이 모든 것이 웅장했다. 그곳에 있었던 시간의 반은 입 을 벌린채 서있었고, 나머지 반은 사진을 찍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오래 걸리 지 않아서 일정에는 차질이 없었다. 심지어 아침 먹을 시간도 있었다! 10시에 나는 플로렌스를 향하고 있었다, 로마에는 일시적인 안녕을 고하고. 로마는 내가 꼭 다 시 와야 할 곳이라고 느꼈다.
57 BTM Book 13, Unit 17 - 플로렌스, 이탈리아 2 기차를 타는 동안 햄릿을 읽으려고 했지만 페이스북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운 좋 게도 1센트에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었다. 운이 없게도 그 때 미국의 집은 한 밤 중이어서 깨어서 대화를 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햄릿을 다시 읽으려고 하다가 대신 잠을 자기로 했다. 막 플로렌스에 도착할 때에 잠이 깨었다. 나는 다음 캠프 사이트의 길 안내서를 잘 못 놓은 줄 알고 잠시 공황의 순간에 바졌었다. 나도 안 다, 충격적이라는 것을, 캠핑장이 아주 저렴하였고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나쁘지 않아서 또 다른 캠핑장에서 묵기로 했던 것이다. 가방을 안팎을 뒤지며 찾 다가 그 안내서가 햄릿 책에 끼어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제서 시간적 여유를 갖 고 특별히 서둘러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약 20여분이 지나 안내서대로 버스를 탔 고 잠시 잠들었다. 누구와 교제를 할 기분도 아니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 다. 3 버스를 타고 약 10분 지났을 때 버스요금 2유로를 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 사에게 가서 잔돈을 잔뜩 사용하여 요금을 냈다 매번 어디를 가든지 항상 잔돈이 잔뜩 생기는 것 같다. 곧 나의 정류소에 도착하였는데 내가 거기서 내렸다는 것 이 아니다. 나는 정류소를 놓쳤고 한 정류소 지나서 내리게 되었다. 언덕을 넘어서 Pizzalle Michelangelo까지 걸어갔다. 이곳에는 대단한 명소가 하나 있다, 정말로. 심지어 나의 지도에는 그곳이 플로렌스의 꼭 봐야 할 명소 20개의 하나로 표시 되어 있었다. 나의 캠프장은 문자 그대로 바로 그 옆이었다 데이빗 조각상 바로 옆. 그런데, 어떻든 그 복제품이다. 4 리셉션에 갔더니 아직 체크인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문제 될 것 없었다. 몇 피트 떨어진 곳에 테이블이 있는 카페가 있었다. 그곳으로 가서 내 물건을 내려놓고 한 동안 끌고 다닌 뒤인터라 기분이 좋았다 스낵을 사러 갔다. 작은 크로쌍을 샀 는데 맛은 좋았지만 나의 배고픔을 충족시키기에는 전혀 충분하지 못했다. 다먹고 난 후 사람들을 좀 만나기로 했다. 가까이에 대학생들처럼 보이는 4명의 한 그룹이 있었다. 그곳으로 가서 내 소개를 했다. 그들은 잠시 약간 놀란듯 보였지만 각자 자기소개를 했다. 5 이 때 나는 혼자 여행하면 더 많이 배운다라고 한 엄마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그 영국 사람들 그룹과 이 학생들 그룹을 통하여 그룹으로 여행하는 사람 들은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며 새로운 사람들과 교제를 추구하지 않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그룹은 지난 한 달 동안 유럽을 여행하면서 영화를 촬영했다고 하 는데 정말 근사한 것 같았다. 같이 앉아서 유럽에 대한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있을 때 나의 자리가 마련되어 들어가도 좋다는 연락을 받았다. 짐을 텐트에 집어넣고 다같이 나갔다. 나는 플로렌스를 볼 계획이었고; 그들은 그날 밤 런던으로 가는 비 행기를 타기 위하여 밀란 (Milan)행 기차를 타러 역으로 향했다. 우리는Piazzale Michelangelo에 있는 젤라토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렸는데 내가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은 아예 젤라토를 (매끼니마다 먹는) 기본 음식의 하나로 삼을까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기 때문이다. 농담이다. 그렇지만 젤라토는 정말 맛있었다. 6 우리는 역에서 헤어졌다. 그 가운데 한 명은 샌 루이 오비스포 (San Luis Obispo) 에 있는 Cal Poly에 다니는 학생이었는데 그 학교는 내가 가고 싶은 톱 3 대학의 하나였다. 그는 내가 페이스북으로 질문하면 답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잠시 외로움 을 덜게 되자 나는 플로렌스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한 때 길을 잃어서 돌아와야 했지만 플로렌스가 정말로 아름다운 도시였기에 문제되지 않았다. 어떤 까닭인지 박물관으로 바뀐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Basilica of Santa Maria Novella) 바 로 앞에서 북미 원주민 (Native American)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종류의 음악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지만 우리 아빠는 아주 좋아하신다.
58 BTM 미국에서 매년 현충일 기념 볼더 크릭 페스티벌이라고 하는 행사에서 이와 비 슷한 음악을 들을 때마다 아빠는 빠짐 없이 그 그룹의 CD를 사셨다. 한 번은 심지 어 지금 저 그룹이 사용하고 있는 것과 거의 똑같은 레인 스틱 (rain stick)도 사 셨다. 이런 이유로 나는 그 음악을 많이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음악을 듣는 것이 좋았다. 나는 앉아서 집을 생각하며 들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 그제서야 움직였다. 배고픈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먹는 것도 잊고 있었다는 것이 이상하지만, 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했는 지 전혀 기억이 없다는 것도 이상 한 일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그 다음에 나는 젤라토로 허기를 때웠다는 것이 다. 8 허기를 때우고 난 다음 플로렌스 곳곳을 돌아다녔다. 실제로 박물관이나 어떤 곳에 들어가지 않고, 그냥 걸었다. 그리고 좀 더 걸었다. 그리고 또 더 걸었다. 지도에 표시된 반드시 봐야 할 명소 20 곳 중에 14 곳을 보고 돌아가기로 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버스나 메트로를 타지 않고 그냥 걷기로 했다. 나쁘지 않았다. 사실 걷는 것이 참 좋았다. 모든 것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렇게 걷는 것은 보도가 Piazzale Michelangelo까지 급경사로 오르는 계단으로 바뀌면서 좀 힘들어졌다 (나는 이 날 을 551 계단을 전력 질주한 것으로 시작하였다). 9 그렇지만 바로 그 때 내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의 하나를 보았기 때문에 그 모든 땀과 어려움은 가치가 있었다. 지평선에 낮게 드리운 해가 플로렌스 전체 를 부드러운 빛으로 비추고 있었다. 나는 캠프장으로 돌아가기 전에 족히 15분 동 안 가만히 서서 경이로움에 빠져 있었다. 방에 들려서 아이패드를 꺼낸 다음 카페 옆의 테이블로 갔다. 베니스 (Venice)에 머물러야 할 곳을 예약해야 했다. 테이블 모두 사람들이 있어서 한 사람에게 테이블을 같이 써도 좋을 지 물어보기로 했다. 몇 주 전에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18살) 조쉬라고 하는 남자를 만났는데 내가 만 난 사람 중에 가장 어린 솔로 여행객이었다 나를 빼고. 우리는 유럽에서의 경험 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내 또래의 누군가를 만났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우리는 공통점이 많았는데 그렇게 어린 나이에 혼자서 여행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10 내가 친구들을 만나러 가야 할 때까지 우리는 한 동안 이야기했다. 내가 떠나기 전 에 조쉬와 나는 서로 페이스북에 올려서 이틀 후 피사에 같이 갈 수 있도록 했다. 텐트에서 테이블로 가는 도중 사람들의 한국말 소리가 들렸다. 그곳에 들려 좀 어 색하게 안녕하세요 라고 했다. 그들은 한국에서 온 대학생들인데 한국 ROTC 소 속이며 자동차를 빌려서 유럽을 여행 중이라고 했다. 그들은 여행 중에 한국 사람 들을 너무 많이 만나서 질렸다고 했지만, 해가 지면 Piazzale Michelangelo에 가서 플로렌스의 야경을 같이 보자고 한 것으로 보아 분명 내가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준 것 같았다. 11 야경은 아름다웠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 중 한 명이 나에게 환타 한 병을 사주었는데 목의 갈증 때문에 기꺼이 받았다. 그 보답으로 나는 그들에게 야 경의 사진을 잘 찍기 위하여 셔터의 시간을 길게 하고 노출을 늘리는 방법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정말로 아름다운 장면을 내다보며 우리끼리 이야기 했다. 나는 콜 로라도에서 종종 차를 끌고 산으로 올라가 볼더(Boulder)의 불 빛을 내려다 보곤 했지만, 이것은 이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부다페스트 다음으로 플로 렌스는 현저한 차이로 내가 본 가장 멋있는 도시였다. 몇 일 후 보게 될 파리 역시 대단히 아름다웠다. 한동안 이야기 하고 우리는 다시 캠프장으로 가기로 했다 그 렇지만 사진부터 찍고. 가까이에 한 그룹의 한국 여자들이 있어서 내가 그들을 불 러 우리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사람들은 마치 내가 미쳤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마치 모르는 사람 아무에게나 도움을 청하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듯 이. 아마 그들이 맞을 수도 있지만 나는 정말로 상관하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그 때 그 사진을 찍지 않았었다면, 우리는 플로렌스에서의 우연한 만남을 기념할 단 한 장의 사진도 없었을 것이다.
59 BTM 캠프장으로 돌아와 내가 막 자리를 떠나 텐트로 가려고 하는 순간 이 새로운 친구 들 가운데 한 명이, 재준아, 내일 와서 같이 아침 먹자 라고 한국말로 했다. 나 는 웃으며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역시 아빠의 말씀이 맞았다는 것에 웃음이 났다. 내가 떠나기 몇 일 전 아빠는 나에게 한국 사람들은 가능하면, 재준아, 와서 같 이 밥먹자 라고 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을 많이 만나라고 하셨다. 아빠가 말씀하신 투와 내가 갓 만난 사람이 하는 말투가 정확히 똑같았기 때문에 정말 우스웠다. 말 투와 말의 격, 눈표정, 그리고 그 엷은 웃음 그 모든 것이 똑같았다. 내가 그들 에게 그 점을 설명하자 그들도 웃었다. 밤 인사를 하고 텐트로 돌아왔다. 텐트에가 서 보니 룸메이트가 들어왔다. 그의 짐은 일찍이 보았지만 그는 없었다. 아니면 그 렇게 생각했을 수도. 알고보니 새로운 룸메이트는 다름아닌 아까 만났던 18살 조쉬 였다. 내가 놀랐듯이 그도 깜짝 놀랐다. 13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는 아직 그 한국 사람들을 만나서 아침을 먹기로 했던 아홉시 전이어서 기뻤다. 나는 공동 화장실에 가서 양치질을 하고 샤워는 하지 않 았다. 사실 산토리니 이후로 타올이 없어서 샤워를 못했다. 호스텔에서는 타올을 주기 때문에 보통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아쉽게도 캠프장은 그렇지 않았다. 역겹다 는 것을 알지만 여행을 한다는 것은 위생에 관해서는 항상 깨끗하고 깔끔한 과정만 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머리는 매일 감았는데 내가 감내할 수 없는 한 가지가 바로 헝클어지고 기름낀 머리였기 때문이다. 머리를 감고 아침 먹으러 친구 들 텐트에 합류했다. 14 그들은 없는 것이 없었다: 밥솥, 냄비, 그리고 온갖 음식. 단 한 가지 늦어진 것은 전날 밤에 콘센트에서 전기 어댑터를 도난당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우리는 이 웃에서 전기 어댑터를 빌릴 수 있어 곧 새로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집에서는 보 통 적어도 하루에 한 끼는 밥을 먹지만 나는 밥을 그렇게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날 밥을 봤을 때는 오랫만에 보는 가장 예쁜 것이었다. 우리는 가스 스 토브로 남은 국도 끓이고 스팸도 요리했다. 비록 그 아침이 내가 먹었던 그리스 요 리나 페투치니 알프레도 같은 맛은 아니었어도, 그것은 내가 여행 중에 가장 좋아 했던 식사였다. 집에서 4829 마일 떨어진 플로렌스의 캠프장에서 다른 한국인들과 함께 친숙한 음식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내 어찌 그것을 즐기지 않을 수 있을까? 15 설거지를 하고 그들과 함께 프라다, 루이비퉁, 입센로랑, 및 구찌 같은 비싸고 고 급 디자인 상표만 취급하는 상점들의 백화점을 방문했다. 그들이 나를 위해 차려준 아침에 대하여 이제는 내가 감사를 표할 차례였다. 그 사람들은 나에게 고객서비스 거래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여자 친구에게 줄 흰색 프라다 지 갑을 샀는데 빨리 때가 타지 않는 것으로 교환하고 싶어했다. 한국인이 말하는 영 어와 이탈리아 사람이 말하는 영어는 잘 통하는 것 같지 않았다. 16 아쉽게도 우리는 교환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들 가운데 한 명은 작 은 화장품 통을 50유로에 샀는데 내가 볼 때는 꼭 연필통처럼 보였고 가격은 6배나 더 비싸서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엄청 비싼 악세사리를 사는 요지를 모르 겠다. 사람들은 그냥 상표 때문에 사는 것 같고 그 상표는 모든 사람들이 특히 동양인들이 다 가지고 있어서 더 이상 그렇게 감동적이지도 못하다. 사실 그곳에서 동양인이 아닌 손님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60 BTM 그렇다고 내가 입는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옷을 제대로 그리고 특히 공개석상에서 흉하지 않은 옷을 입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옷과 가방 그리고 신발에 그렇게 말도 안되는 많은 돈을 써야 할 필요성을 이해할 수 없 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그런 품목들이 추하게 떨어질 때 더욱 그렇다. 어쩌면 나 도 남을 판단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나도 돈만 있다면 끝없이 많은 꿈의 자동차에 큰 돈을 쏟아부을 사람이니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나의 그런 심 리를 악세사리에 많은 돈을 쓰는 것과 똑같이 말도 안 된다고 볼 것이다. 우리 모 두는 각자 다른 관점을 갖고 있으며 거기에는 아무것도 잘 못된 것이 없다는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지나치게 단순화한 표현이라는 것을 알지만, 여행을 더해 가면서 그것이 맞다는 것을 더욱더 깨닫는다. 나는 문화적 사회적 행동에 대하여 태도를 달리하고, 심지어 패션 태도조차 현저하게 다른 다양한 범위의 생활기준을 보았다! 18 백화점에서 나온 뒤 우리는 플로렌스의 심장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렇지만 탐험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식료품을 좀 사기로 했다. 우리는 리들 (Lidl)에 들렸는데 그곳은 할인 수퍼마켓으로 나의 여행 중에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게 해준 곳이다. 우리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며 우리 공간과 다음 공간 사이의 커다란 기둥에 오른쪽 거울을 박을 때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것은 완전히 이상한 것이었다. 상 당수 복층 건물의 주차장에는 기둥이 있지만 문제의 이 기둥은 우리쪽 공간으로 최 소한 6인치 정도 불거져 나왔다. 처음에는 간신히 그것을 비켜갔는데 우리 가운데 오른쪽에 앉았던 두 사람의 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운전자는 차를 바로 세우 기 위하여 후진을 하면서 기둥에 거울을 박았다. 무엇보다도 렌트카였기에 그것은 상당히 당황스런 일이었다. 그것에 대하여 어찌할 일이 없었고 음식을 좀 사야만 했기에 우리는 리들에 들어갔다. 19 나에게 리들은 대단히 특별한 곳이었다. 나는 거기서 처음으로 커피 요구르트를 발 견했다. 좀 역겹다고 들릴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커피 요구르트의 맛을 못봤다는 것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나도 그랬지만 한 번 시험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주 맛 있었다. 그곳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갔는데 커피 요구르트를 사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비록 훌푸드즈(Whole Foods)에 커피 요구르트가 있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놓였는데 맛은 내가 유럽에서 먹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쇼핑을 마치고 우리는 캠프장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고 갈라졌다. 종민과 나는 플로렌스를 보러 갔다. 나머지 두 명은 거울을 수리하기 위하여 푸조 (Peugeot) 대리점을 찾으러 나갔다. 물론 나는 출발하기 전에 젤라토 가게에 먼저 들리자고 우겼다. 나는 그 도시의 탐험을 이미 많이 했기에 길을 찾아다니는 일은 내가 했다. 20 약 3시간 후 우리는 지쳤다. 나머지 두 명 가운데 한 명을 찾았지만 나머지 한 명은 벌써 캠프장으로 돌아갔다 그도 많이 지쳐서 우리는 돌아갔다. 그렇지만 우 리는 멈추어서 기념품부터 샀다. 종민은 집에 계시는 아빠에게 가죽 자켓을 사려고 했고 나는 바닥이 평평한 퓨마 신발이 떨어져 물집이 생기기 때문에 새로운 신발을 사야 했다. 보통 사이즈 9를 신지만 그날은 발가락을 구부려 물집이 터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사이즈 7을 샀다.
61 BTM 그 다음에 우리는 가죽 자켓을 찾지 못하여 캠프장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저녁을 같이 먹고 앉아서 이야기 하다가 화장실에 가서 씻고 잘 준비를 했다. 다음 날 아 침 식사에 또 초대를 받았지만 나는 조쉬를 만나서 피사를 보기로 했기에 거절해야 했다. 우리는 밤 인사를 하고 또 내가 나갈 때 아직 자고 있을 경우를 대비하여 작별 인사를 하고, 파리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들은 파리에서 내가 미국으로 떠 나는 다음 날 한국으로 떠나기로 하여 파리에는 월말에 도착할 계획이었다. 텐트로 돌아와 보니 그날 밤은 새로 들어온 룸메이트가 없어서 나 혼자 독차지하게 된 것 을 알았다. 오랫만에 방 하나를 나 혼자 쓰게 되었고, 좋았다. 그곳에 있는 싱글 침대를 2층 침대 옆으로 바짝 붙여 집에 있는 퀸사이즈와 같은 침대에 큰 대자로 누워서 잤다. 8시에 알람이 터지자 짐을 챙기고 밖으로 나갔다. 나가는 길에 한국 ROTC 친구들이 일어난 것을 보고 들러서 다시 작별 인사를 하고 버스를 타러 갔다.
62 BTM Book 13, Unit 18 - 피사, 이탈리아 2 내가 기차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 55분으로 조쉬를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 5 분 전이었다. 나는 길을 건너 맥도날드 앞에서 기다렸다. 내가 코너에 서있는데 익 숙한 얼굴을 만났다 도저히 믿을 수 없겠지만 내가 맨처음 불가리아에서 만나 아 테네까지 같이 여행하고, 로마에서 마주친 그 친구들과 이제는 여기 플로렌스에 같 이 있는 것이었다. 완전히 미친 일이었다! 톰!, 내가 외쳤다. 그들은 서둘러 기차를 타야 했기에 긴 말은 못했지만 다시 만나기로 했다 영국의 역에서 또는 콜로라도 어디에서. 3 좀 더 기다렸지만 조쉬는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가 마주친 것은 몇 차례 같은 호스 텔에 묵었고, 플로렌스에 내가 타고 온 다음 기차로 왔고, 그리고 캠프장에서 나의 룸메이트였던 여러 차례의 우연함이 있었는데, 그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이상하게 보였다. 결국 9:30이 되었고 나는 그날 저녁 7시 기차를 타기 위하여 플로렌스까지 돌아가기 전에 피사를 보려면 내 갈 길을 가야겠다고 판단했다. 4 버스에 타자 피사까지 같이 갈 좋은 동반자를 찾기 위하여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 다. 왜 그랬는 지 모르지만 나는 그 때 동료의 필요성을 느꼈다 -- 어쩌면 오지 않 은 친구와 같이 가기로 계획을 했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기울어 진 피사의 탑을 밀고 있는 나의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래서 필요한 만큼 많은 사 진을 찍어줄 파트너가 필요했다. 바로 그때 두 명의 한국 여자가 올라탔다. 그들은 좋은 친구들 같았고 말이 많았다. 방해하거나 무섭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들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를 소개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지만 내가 버스에 타기 전에 잠깐 이야기를 했던 한 사람이 그 여자들과 나 사이의 통로에 앉았다. 한 사람이 졸았기 때문에 그들의 말이 멈추었을 때, 나는 이미 브렌넌이라고 하는 최근에 대학을 졸업한 좌석 동료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경험을 나 누고 하루를 같이 보내기로 했다. 운이 참 좋았던 것은 그가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사진 찍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5 피사에 도착하자 우리는 택시를 세웠다. 또는 세울려고 했다. 첫번째 택시가 섰지 만 가까이에 더 많은 사람의 그룹이 있는 것을 보고는 우리가 문도 열기 전에 가버 렸다. 가방마다 요금이 추가되기 때문에 그룹이 크면 클수록 요금을 더 받는 것이 었다. 열받는 일이었지만 곧 겨우 몇 분 뒤에 다른 택시를 잡았다. 10분 뒤 우리 는 피사에서 관광객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명소에 도착하였다. 탑을 보러 가기 전 에 브렌넌이 호텔에 체크인을 해야 해서 잠깐 들렸다. 그는 나의 짐을 자기 방에 내려놓도록 권하여 내가 짐을 끌고 다니지 않도록 했다. 6 그리고 우리는 나가서 호텔로 가면서 얼핏 보기만 했던 피사의 사탑 사진을 여러장 찍었다. 경사의 각도는 믿기 어려웠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했다. 내 가 10학년 때 피사의 사탑을 연필로 스케치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내가 실제로 그 앞에 서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세계사 과목에서 엑스트라 점수를 받기 위하 여 그 스케치를 제출했는데 선생님은 그것을 돌려주지 않았다. 우리가 그곳에 서서 감탄하며 사진을 찍어 대는 동안 그 스케치를 돌려받지 못한 것에 대한 모든 짜증 은 사라졌다.
63 BTM 우리는 그 예의 피사탑 밀기 사진을 찍었고 브렌넌은 기막힌 아이디어를 하나 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 개. 첫번째 아이디어는 바닥에 누워 마치 우리가 그 탑을 지 탱해주는 것 처럼 두 발로 탑을 밀어내는 것이다. 나는 그 사진이 어떻게 나올 지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햇볕이 눈에 들어와 나는 마치 변비에 걸린 모습 같다고 느 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나머지 아이디어는 서로가 탑을 안고 있는 사진을 찍자 는 것이었다. 그 사진은 아주 잘 났왔다. 그리고 아주 창조적이었다! 그렇지만 내 가 무엇보다도 좋아했던 것은 그 건물 주변에서 빈둥대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는 것 이었다. 아주 우스운 것이었다. 탑을 위에까지 올라갈 수도 있고, 여러 성당과 박 물관들도 방문할 수 있지만 입장료가 아주 비싸서 우리는 그냥 길거리 상인들의 기 념품을 둘러보기로 했다. 나는 두 개의 작은 피자의 사탑 조각품과 지갑 두 개를 샀다 하나는 나의 지갑이 낡아서 나를 위해 샀고, 또 하나는 (똑같은 이유로) 아 빠를 위해 샀다. 나의 친구는 시계를 고르고 한 동안 협상 끝에 두 개를 좋은 값에 샀다. 8 그 시계 상인은 나를 향해 모조 구찌 시계를 60유로에 권했다. 나는 거절했는데 시 계를 차지 않기 때문 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는 돈이 60유로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 다. 보기에 그 상인은 그런 이유가 진정한 이유라고 느끼지 못한 것 처럼 그는 자 꾸, 좋은 값이에요, 좋은 거래예요. 절대로 구찌 시계를 60유로에 살 수 없을 거 예요. 사세요. 사셔야 해요. 라고 말했다. 내가 다시 거절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나왔다: 좋은 값이에요. 왜, 시계 안 차세요? 이거 멋있어요! 미안해요, 저는 중학교 때부터 시계를 안 찼어요. 왜요? 그렇지만 구찌는 아주 좋아요. 아~~~~~주 좋아요. 사세요. 그건 모조품이야요. 그리고 저는 시계를 차지 않아요. 오케이, 오케이. 그렇지만 아주 좋은 모조품이에요. 아주 좋아요. 놓치지 마세 요. 선생님,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지만 저는 60유로가 없어요. 선생님 (내 친구에게), 친구분 좀 도와주세요. 노, 노, 나는 친구에게 50 유로를 내라고 하지는 않을 거예요. 오케이, 오케이. 전부 40유로요. 노, 땡큐, 저는 관심 없습니다. 노, 노, 오케이. 30유로요. 이것보다 더 좋은 가격은 없어요. 선생님, 저는 30유로가 없어요. 10유로 밖에 없어요. 내가 지갑을 보여주었다. 오케이. 20유로요. 당신이 반 내고, 친구분이 반 내세요. 선생님, 저는 시계를 차지 않아요. 전혀요. 구찌라도 차지 않아요. 9 내가 그렇게 말을 하고 나자 그는 좀 물러서는 듯 하였고, 우리는 갈 길을 갔다. 그가 얼마나 집요했는 지를 생각하며 어떤 사람들은 살아남기가 쉬운 것이 아니라 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내 나이 또래의 애들도 자기 차를 갖고 있으며, 주택에 살고, 하루 세 끼씩 먹고, 일한 시간만큼 보장되는 일자리도 갖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남자의 세계에서 그는 하루 종일 그의 물건을 그의 관점에서 볼 때 부유한 관광객들에게 등쳐 팔려고 애를 써서 몇 달러도 못벌을 수도 있다. 우리는 브렌넌의 호텔로 돌아갔고 나는 거기서 배낭을 챙기고, 작별 인 사를 하고, 그리고 기차역으로 떠났다. 거리에 나서자 걷기로 했다. 현금인출기를 찾아가서 택시비를 꺼낼 수도 있었지만 걷고 싶었다. 그리고 돈을 아끼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런 결정은 후유증을 일으켰다. 몇 분 후 나는 다리가 너무 아팠고, 길 을 잃었고, 어쩌면 기차를 놓칠 수도 있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도 길안내를 받아 제시간에 기차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자마자 나는 정신을 잃고 골아 떨어졌다.
64 BTM 다시 플로렌스에서 베니스로 가는 기차가 출발하기까지 약 2 시간 정도 있었다. 발 은 지독하게 아팠고 나는 녹초가 되었다. 약국이라고 생각한 곳에 가서 항균 크림 을 좀 사려고 했다. 찾아가서 보니 그들은 아무것도 없었고, 내가 왜 없냐고 묻자 그것은 사실 약국이 아니라고 했다. 아주 혼미스러웠다. 타올을 살 수 있는 곳을 찾기로 하고 계속 걸었다. 역의 아래층으로 내려가보라고 해서 갔지만 타올을 파는 곳은 없었다. 인터넷 카페를 찾아서 30분의 시간을 사서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아 침에 만나지 못한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려고 했는데 그가 이미 나에게 보낸 메시 지를 발견했다. 조쉬가 온라인에 있어서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다.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놓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도 맥도날드에 9시까지 갔고 역 시 9:30까지 기다렸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피사로 가는 기차를 탔다 내가 탔던 기차와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도 나와 같은 시간에 피사탑에 갔었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웃어서 넘기고 미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지 두고보기로 했다. 11 역의 위층으로 다시 올라가 베니스행 기차를 계속 기다렸다. 내가 그곳에 도착하면 어두워질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그전의 경험으로 배운 것이 있어 캠프 장까지 가는 길에 대하여 자세한 내용을 모두 받아 놓았다. 기차에 올라타고 자리 를 잡자 햄릿을 꺼내 들었지만 역시 몇 분 되지 않아 잠에 빠졌다.
65 BTM Book 13, Unit 19 - 베니스, 이탈리아 2 불행하게도 베니스에서 일부 다른 여행객들이 그랬듯이 엉뚱한 역에서 내리는 바람 에 내가 신중하게 세운 계획은 소용이 없었다 그곳에 큰 역이 두 개나 있다는 것 을 모르고 메스트레 (Mestre)라고 하는 엉뚱한 곳에서 내렸다. 다행히도 다른 역으 로 가는 또 하나의 기차가 곧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다. 배가 고파서 음식을 좀 사 먹기로 했다. 반대편 승강장에 맥도날드가 있었다. 비록 평소에는 그곳에서 먹는 것을 절대적으로 싫어하지만 캠프장에는 음식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트랙을 건 너 감자 튀김을 큰 것으로 주문하였다. 손에는 감자 튀김을 들고 다시 트랙을 건너 똑같은 방법으로 넘어왔다. 경찰이 곧 내게 와서 여권을 보여달라고 했다. 나는 그 제서야 그곳에 커다란 싸인에, 철길을 건너지 마시오. 라고 써있는 것을 보았 다. 그것이 기차에 거의 완전히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못보았던 것이다. 3 그들은 나에게 여권을 내놓으라고 계속 요구했지만 거부했다, 왜냐하면 유럽의 경 찰들이 요금을 받아내기 위한 구실을 만들어내는 동안 여권을 볼모로 잡는다는 이 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여권을 분실한다면 나는 완전히 망치게 될 것이 다. 그래서 나는 자신을 방어했다. 기차가 들어왔고 그들에게, 미안하지만 기차 가 왔습니다. 가야합니다 라고 말했다. 경찰들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에게 기차에 타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오늘 밤에 캠프장에 도착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다른 역에 가는 기차가 많이 있으며 내가 반드시 그들을 따 라서 오피스에 가야 한다고 했다. 한 사람은 정말로 화를 내며 나에게 소리를 질렀 다: 너는 미국에서도 경찰을 이렇게 대하니, 어? 나는 잠시 심각하게 혼동되었 고 멈추어서 생각했다. 나는 베니스에 있다. 여권을 볼모로 잡는 경찰 이야기는 전 부 동유럽에서였다. 나는 여행 중에 경찰에 대하여 약간 좋지 않은 태도를 취하게 되었는데 내가 세르비아에 있을 때 세 명의 경찰이 교통법을 어기며 드래그 레이싱 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더 이상 동유럽에 있는 것이 아니었 다. 4 나는 잽싸게 경찰들에게 사과하고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는 겨우 17살이 며, 혼자 여행하고 있고, 여행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반드시 두 가지를 보호해야 하 는데 여권과 지갑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하여 조금 진정이 되었고 우리는 말없이 그들의 오피스로 걸어갔고 나는 여권을 건네주었다. 그들이 검사를 하고 자기들끼 리 이야기를 하면서 몇 분이 지났다. 나는 무엇을 해야할 지 몰라서 감자튀김을 먹 었다. 그들은 드디어 여권을 건네주며, 이번에는 보내주겠다. 똑같은 실수를 다 시는 하지 말라 라고 말했다.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떠났다. 몇 분 안에 기차 가 도착했다. 5 다른 역에 도착한 것은 11시였다. 대운하 (Grand Canal)가 바로 그 앞에 있었다. 모든 것이 대단히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계단에 앉아서 운하를 바라보고 있었고 어 떤 사람들은 커다란 스트링 루프와 비눗물로 커다란 버블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 동안 지켜보고 있다가 캠프장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오른쪽으로 돌아 걸어서 길안내서에 표시된 현대식으로 보이는 다리를 만났다. 그 다리를 건너서 버 스 표를 하나 샀다. 그리고 내가 타야 할 버스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드디어 버스 가 왔을 때는 만원이었다. 사실, 내가 간신히 비집고 들어갈 공간만 있었다. 그리 고 뒤에 있는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배낭을 벗어야 했다.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나 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가는 캠프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은 아주 오랫동안 가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 말이 맞았다. 캠프장에 도착하기까 지는 적어도 25분이 걸렸다. 그곳에 도착하자 체크인을 하기 위하여 긴 줄에 서서 기다려야 했다. 모든 것이 너무 천천히 진행되었고, 나는 지쳐서 그저 자고만 싶었 다.
66 BTM 체크인을 마치자 내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은 캠프장인데도 트레일러들이 있었는 데 그것은 전등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좋았다, 왜냐하면 전등 없이는 찾 아다니기가 좀 어렵기 때문이다. 첫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꼬마 침대에 바로 떨어져 서 잠드는 것이었는데 씻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래서 잠이 깨었고 혹시 엄 마가 무언가를 보냈을 지 몰라 이메일을 체크하기로 했다. 페이스북도 체크하고 블 로그도 업데이트했다. 막 일어서서 나오려고 할 때 누군가 강한 한국어 액센트로 영어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7 그 여자가 체크인 할 때 나는 그녀가 리셉션 직원에게 그녀의 아이폰을 위한 충전 기에 대하여 묻는 것을 들었는데 리셉션 직원에게는 없었다. 나는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지나갈 때 인사를 하고 나에게 충전기가 있는데 빌려도 좋다고 했 다. 그녀는 놀라움으로 나를 보고 베니스에 다른 한국인이 있다는 것에 경이로워 했다. 그것이 나를 혼동시켰다, 왜냐하면 내 경험으로 보아 내가 갔던 곳은 어디든 지 한국인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지는 영국에서 공부를 막 끝내고 한국으로 가 기 전에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미국에서 왔다고 말했고, 그녀는 나의 한국어를 칭찬했다. 우리는 몇 분 동안 이야기했고 그녀는 씻고 전화 를 충전하러 떠났다. 그녀는 충전기가 잠시만 필요했고 금방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8 물론 민지의 금방 온다 라는 아이디어는 내가 정의하는 그 어구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페이스북에서 친구와 채팅을 하였지만 대단히 졸리기 시작했다. 방으로 가기 전에 리셉션 직원에게 충전기를 받아서 아침에 돌려달라고 부탁했다. 얼마되 지 않아 시끄러운 노크 소리에 잠이 깼다. 문을 열고 보니 민지가 충전기를 들고 그곳에 서있었다. 그녀는 나를 깨운 것을 사과하고 빌려준 것을 감사했다. 나는 당 연히, 예, 괜찮아요, 걱정마세요 라고 한국말로 했다. 사실은 잠이 완전히 달아 났기 때문에 대단히 열받았었다. 발의 물집을 손보기에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되어 드디어 구입하게 된 항균 크림을 꺼내 물집 치료를 좀 하였다. 다 끝났을 때 밴드 에이드를 붙이고 잠을 잤다. 9 다음 날 아침 아주 기분 좋게 깼다. 베니스를 탐험할 시간이 하루밖에 없었기에 기 분 좋게 일어나 다행이었다. 짐을 챙기고 그날 밤 캠프장은 만원이었기에 체크 아 웃을 했다. 버스를 타고 다시 메인 역으로 갔고 거기서 다시 다른 역으로 가 새로 운 캠프장에 도착하여 하루 동안 짐을 풀었다. 그리고 그 도시의 탐험을 나섰다. 산타 루시아 기차역 옆의 카페에서 피자를 사서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도를 따라가려고 했는데 곧 길을 잃었다. 그렇게 처음 길을 잃은 뒤로, 나는 어떤 모습 의 방향 감각도 전혀 되찾지 못했다. 막다른 골목을 만나면 뒤돌아서 다른 루트를 시도했다. 10 아무도 없는 어느 곳에 닥쳤을 때는 가만히 서서 군중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비 록 내가 어디에 있으며 또는 다음에 어디로 가야 할 지 전혀 몰랐으면서도 왠지 두 렵지 않았다. 길을 잃는다는 그 느낌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활기찼 다. 해가 떠있었고 하늘에는 구름이 흩어져 있었다. 내가 다리를 지날 때면 곤돌라 가 바로 밑으로 지나갔다. 내가 원했던 것은 단지 몇 시간 동안 끝없이 주변을 배 회하며 탐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했다. 곤돌라를 탈까도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곤돌라를 타는 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즐거울 것 같지 않 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곤돌리아의 사공들은 노래도 안 했다! 80유로를 내거나 아니면 그 비용을 공동부담할 그룹을 찾는다는 것은 가치가 없을 것 같았다.
67 BTM 한 동안 탐험을 하고 나니 목이 말랐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커피 요구르트를 파 는 식료품점을 발견했다. 단 한 가지 문제는 나에게 스푼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뚜 껑을 스푼 삼아 사용하며 반통을 쏟을 때까지 그것을 단순히 마신다는 생각이 떠오 르지 않았다. 그냥 쏟아진 요구를트를 보며 슬퍼해야 할 지 아니면 화를 내야할 지 모르고 바라만 보았다. 쏟아진 것을 닦을려고 했지만 냅킨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나머지를 마시고 계속 걸었다. 12 요구르트로 기운을 좀 차리고 그 유명한 산 마르코 광장 (Piazza San Marco)을 찾 기로 하였다. 조금 배회를 한 다음 리알토 다리 (Rialto Bridge)를 건너 광장 (Piazza)으로 걸어갔다. 대운하를 따라 공터에 다다를 때까지 걸었다. 그곳에서 산 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Santa Maria della Salute)이 눈에 띄였는데, 꼭 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왜 그렇게 느꼈는 지 모르지만 종탑과 산 마르코 광장의 산 마르코 대성당은 금방 잊고 뒤돌아 갔다. 13 드디어 라살루테(La Salute)의 계단에 도착하자 나는 내가 왜 그곳에 있는 지 몰랐 다. 잠시 계단에 앉아서 일찍이 샀던 초콜렛 머핀과 물을 꺼냈다. 녹초가 되어 앉 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였다. 내 뒤에 한국인들이 아주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모터 보트가 붕하고 지나갔다. 갈매기들이 머리 위로 원을 그리며 날았다. 대운하 건너편의 산 마르코 광장 탑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까지 상당한 시간 이 흘렀다. 산 마르코 대성당과 종탑, 그리고 시계탑을 보기로 했던 원래의 계획대 로 돌아가기로 했다. 14 순간적으로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바로 주저 앉아야 했는데 너무 빨리 일어서는 바 람에 거의 정신을 잃을 뻔 했기 때문이다. 몇 초 후에 머리가 맑아져서 다시 대운 하 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ITALIA 라고 가슴에 가로질러 새긴 스웨터를 파는 거 리 상인을 발견하고 다시 한 번 산만해졌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90도가 넘고 햇볕은 무자비하게 나를 내려 쬐는 계절인데도 불구하고 하나 사야겠다는 갑작스런 충동이 생겼다. 20 유로라는 가격표 때문에 흔들렸다 그날 너무 많은 돈을 썼다 고 느꼈다. 그래서 뿌리치고 나와서 계속 갔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곳에서도 똑 같은 것을 15 유로에 파는 상인을 만났다. 지금 아니면 절대 없다라는 느낌에 사기 로 했다. 그것을 바로 짐쌕에 쳐넣었다; 그밖에 그것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보기에 는 너무 너무 더웠다. 15 거래를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관광 가이드는 대성당의 줄이 빠르게 움직일 거 라고 말했다. 대기줄에 섰지만 그 줄은 설명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 줄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햇볕은 정말로 나를 괴롭혔고 나는 그 순간 정지된 움직임 을 감내할 수가 없었다. 다수의 여행 동료들은 나에게 베니스를 보는 것은 하루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것은 베니스를 얼마나 보기를 원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 다. 사실, 그 말은 내가 방문했던 모든 도시에 맞는 말이었다. 훗날 베니스를 다시 방문하기로 하고 대운하를 따라 기분 좋은 산책을 했다. 걷는 중에 아주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한국말로 외치는 여자의 소리가 날카롭게 공기를 갈랐다 그녀 는 사진을 찍을 때 가족에게 다리 옆에 서라고 소리를 질렀다. 콜로세움에서 두 여 자의 사진을 찍어주었을 때 그들이 대단히 고마워 했던 것을 기억하며 그 여자도 사진에 들어갈 수 있도록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제안했다. 16 그녀는, 안돼요! 저리 가세요. 저리 가세요. 우리에게서 떨어지세요. 당신이 우 리 사진 안찍어줘도 돼요 라고 경악하며 말했다. 지금도 그녀가 왜 그런 식으로 반응을 했는 지 모른다. 사실 너무나 충격을 받아서 나는 몇 초 동안 불신에 빠져 있는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는, 저리 가라고 했잖아요! 라고 소리를 지 른 것으로 보아 나의 주저가 그녀를 더 놀래킨 것 같았다. 나는 얼른 비켜가기 시 작했다. 아이들과 아빠를 지나가면서 아이 한 명이, 저 사람 뭐가 문제예요, 아 빠? 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나를 흘깃 보았고, 그는 부 인의 행동으로 굴욕을 당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68 BTM 우리의 눈이 마주치자 그는 다른 곳을 보며 아들에게, 아주, 아주 나쁜 사람이 야 라고 중얼 거렸다. 나는 거의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멈추어 웃음을 터뜨릴 뻔 했다. 내가 환청을 듣고 있었거나 문제가 있는 가족이었다. 나는 멈추어 그의 눈을 보고, 저 좀 보시죠 선생님. 제 눈을 피하지 마세요. 저의 얼굴에 대고 제가 나 쁜 사람이라고 품위 있게 말씀해보시죠 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 말 뜻은 이렇다: 왜 이래! 나는 전형적인 한국인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분명한 동양인이다! 내가 한국말로 제안 했을 때 우리는 같은 민족임이 확인 된 것이었다. 수 백 명이 지켜보는 산 마르코 광장의 한 복판에 있는데 내가 무슨 위험이 되었단 말인가? 18 그들의 무례한 코멘트보다 그들이 베니스를 가족 사진 한 장 없이 떠날 것이라는 것에 더 마음이 상했다. 치솟은 화는 금방 수그러 들었지만 그 일에 대한 생각을 남은 하루 내내 멈출 수 없었다. 어쩌면 내가 그랬듯이 그 엄마와 아빠도 낮선 국 가에 와있기에 두려웠을 수도 있었다. 나는 피해망상증 정도로 나의 지갑과 여권 및 카메라에 대하여 대단히 방어적이었다. 아마 그들도 내가 그랬듯이 그렇게 느꼈 으리라. 그렇다고 해도, 그 적대감은 아직도 나를 혼동스럽게 한다. 30여분이 지난 후 그 생각을 그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쳤고 캠프장에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 비단 가게에 들려서 엄마 스카프를 하나 샀는데 그게 예쁘고 엄마에 게 잘 어울릴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산타 루시아 역까지 가는 표 지판을 찾았고, 버스를 타고 캠프장으로 돌아왔다. 19 도착하자마자 침대 위로 떨어졌다. 룸메이트가 없어서 좋았다. 텐트는 아주 작아서 또 한 명이 비집고 들어왔다면 불편했을 것이다. 사물을 다른 꼬마 침대 위에 놓 고, 신발을 벗고, 낫고 있는 상처에 새로운 밴드에이드를 붙였다. 여섯번째 발가락 처럼 느껴지는 발로 걷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것이었다. 다시 나가 서 베니스의 밤을 볼 계획이었지만 쉬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은 밀란으로 가는 6 시 기차를 타기 위하여5시에 일어나야 했다. 나의 여정은: 베니스에서 밀란; 밀란 에서 벤티밀리아; 그리고 벤티밀리아를 떠나 프랑스로 건너가 니스에 도착하는 것 이었다. 기차에서 기차로 옮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힘든 날이 될 것이다. 그것을 위하여 많은 에너지를 비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캠프장에는 아침 에 깨워달라고 부탁할 리셉션 직원도 없었다. 가방을 챙기고, 양치질 하는 것이 끝 나자 시계 알람을 맞추어 놓고 잠들었다.
69 BTM Book 13, Unit 20 - 몽펠리에, 프랑스 2 잠에서 깨어 눈을 비비고, 양치질을 하고, 가방을 들고, 체크아웃을 했다. 산타 루 시카 역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몹시 지친 그리고 그렇게 흥겹지도 않은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 보았다. 음란스럽게 이른 시간이었고 나 역시 베니스를 떠날 준비가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기차에 올라타자 니스로 가는 것에 대단히 흥분되 어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몇 일에 한 번씩 친구 브라이언에게 이메일을 보냈 고, 프랑스에서는 그의 집에서 몇 일 머물게 될 것이었다. 내 친구를 벨그레이드의 집에서 만난 후 한 참 시간이 흘렀고, 또 하나의 익숙한 얼굴을 보러 간다는 것이 매우 기뻤다. 3 오랜 시간 동안 여행을 했다. 정말 기차에 넌더리가 나고 있었다. 내가 맨 처음 바 르샤바에서 기차에 탔을 때는 모든 것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색채 조합만 빼면 해 리와 론 그리고 헤미온이 호그와트까지 타고 갔던 것과 똑같은 기차였다. 수 야드 마다 객실로 열리는 문이 달린 주통로가 있다. 이번 여행에 내가 타고 있는 기차들 은 객실 조차도 없었다. 그렇지만 독일과 이탈리아 및 프랑스의 기차들은 훨씬 빠 르고, 컨디션도 좋고, 훨씬 편안했다. 그래도 해리 포터 여행은 아무리 많이 해도 질리지 않는다. 단, 세르비아에서 불가리아로 가는 여정은 제외! 4 밀란까지 약 4시간 걸렸다. 처음에는 기차에서 내린다는 것만으로 안도가 되었지만 환승 기차가 바로 떠난다는 것을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 내가 탔던 기차가 연착되 었던 것 같았다. 내가 바꿔타야 할 기차가 있고 밀란에서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짐을 모두 가지고 전력 질주하여 급히 승강장으로 갔다. 5 나는 기차 끝까지 달려갔다가 같은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베니스에서 온 기차는 내 가 달리고 있는 승강장과 내가 가야할 승강장 사이에 정차하고 있었지만, 문은 한 쪽으로만 열려있었다. 정말로 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중간에 배낭 으로 한 사람을 쳤지만 멈추지도 않고, 죄송합니다! 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괜 찮기를 바라며 계속 달렸다. 잠시 후 나는 벤티밀리아 (Ventimiglia)로 가는 기차 에 가서 올라탔고, 몇 초 후 기차는 출발했다. 6 내 기억이 맞다면 그 여정은 3시간 정도 걸렸다. 나는 그냥 앉아서 유럽 지도를 보 며 이탈리아 전체를 횡단하는 나의 여행 궤도를 추적하였다. 잠시 후 창밖을 내다 보았다. 밖의 날씨는 꽤 우울해 보였고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캐나다 여자 클레어 와 함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여자도 니스로 가는 중이었다. 벤티밀리아에 도착하자 우리는 니스 기차로 바꿔탔는데 환승 시간이 너 무 촉박하여 간신히 타게 되었다. 기차는 아주 만원이어서 자리는 거의 없고 통로 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7 바로 뒤에서 문이 닫힐 때 우리의 배낭을 스치며 닫혔다. 우리는 앉을 만한 곳을 찾아서 기차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우리는 둘 다 한 시간 동안 서있고 싶지 않 았다. 다행히도 간신히 둘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았다. 밖의 날씨는 맑아졌는데 내가 출발한 곳에서 꽤 많이 왔기에 놀라운 일은 아니었고, 경치는 정말 아름다웠 다. 기차는 바다를 끼고 달렸는데 프랑스 남부의 맑은 물과 아름다운 해변의 경치 가 대단했다. 기차는 아주 작은 모나코 공국을 지나갔는데, 수도 몬테 칼로의 거리 에는 기막힌 차들이 널려있다고 들어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클레어와 작별 인사를 하고 프랑스의 모든 기차역마다 있는 작은 상점인 릴레이 샵에 있기로 한 브라이언을 찾기 시작했다.
70 BTM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그를 보지 못했다. 전화를 꺼내 그의 집에 전화를 했다. 그의 엄마가 전화를 받고 그와 통화중이라고 했다. 나는 브라이언에게 내가 도착했으며 릴레이 앞에 있다고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브라이언도 역의 릴레이 앞에 있 다고 했다. 그가 지하층의 릴레이 앞으로 확인하러 간 사이 몇 분이 흘렀다. 그러 는 도중에 나는 주변을 돌아보고 내가 있는 역에는 지하층이 없는 것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전화가 끊어졌다. 내 전화를 보니 완전히 죽어 있었다. 9 나는 니스에 떨어져 친구도 찾을 수 없고, 인터넷 접속도 안 되고, 전화도 죽은 지 경이 되었다. 전화를 빌리려고 했지만 언어장애와 그 번호를 다시 연결하는 어려움 으로 시간이 꽤 걸렸다. 드디어 지나가던 한 사람이 내 말을 이해하고 친절하게 그 의 전화를 빌려주었다. 친구의 엄마에게 다시 연결되었고, 전화가 끊어진 것을 사 과드리고, 저는 니스의 기차역에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오! 그러면 그렇지! 피터, 우리는 몽펠리에 있어, 니스가 아니야! 라고 했다. 나는 놀라서 말도 못했다. 그들은 내가 있는 곳에서 꼬박 3시간을 운전해야 가는 곳에 있었다. 어어. 10 내 계획은 금방 무너졌다. 비록 주소를 받기는 했지만 내 친구가 자기 집을 이야기 할 때 그는 항상 니스 옆 이라고 설명했기 때문에 그 주소를 자세히 보지 않았 던 것이다. 내가 그의 집에 오늘 밤에 못 간다면 다음 날 몇 시간 모나코를 방문하 고자 했던 나의 계획은 망치게 될 것이다. 11 그 남자에게 전화를 쓰도록 해주어서 감사하다고 하고 몽펠리에로 가는 기차가 있 는 지 알아보기 위하여 줄에 섰다. 감사하게도 곧 출발하는 기차가 하나 있었다. 9 유로를 내고 승강장으로 갔다. 내 기차는 A 승강장에 있었는데 아주 멍했던 나는 F 승강장까지 한 참을 가서야 내 실수를 깨달았다. A 승강장으로 다시 돌아와 기차를 타고 빈 캐빈에 자리를 잡았지만 1등석 티켓이 없었던 나는 거기서 곧바로 쫒겨났 다. 나는 그 순간 1등석의 커다란 가죽 의자와 여유있는 공간 보다 못한 것은 고려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캐빈으로 살짝 들어갔다. 그곳의 승객들은 인도인 커플 이었는데 역시 몽펠리어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12 곧 기차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각자 자기 활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아이패드 로 어떤 쇼를 보기 시작했고 나는 나의 계획을 어떻게 조정해야할 지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현재로서는 모나코까지 갈 수가 없기에 나의 일정에서 빠져야 했다. 바 로셀로까지는 가능할 수 있지만, 두고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브라이언에게 전화 하여 가고 있는 중이며 도착시간이 저녁 9시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13 그 후 뭔가 생산적인 것을 하기 위한 시도로 햄릿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약 두 시 간 후에 몽펠리에로 가는 또 다른 기차를 타기 위하여 다른 기차로 바꾸어 타야 한 다고 들었다. 도착하자 나는 일어나서 손을 올려 가방을 잡았다. 그렇지만 나와 마 찬가지로 몽펠리에로 가는 다른 승객들 인도인 커플과 다른 여자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들은 몽펠리에로 가는 거 아닌가요? 라고 내가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맞아요, 맞아요, 우리 그래요. 이 기차가 몽펠리에 까지 바로 가는 거예요 라고 대답했다. 나는 완전히 황당했다! 왜 나에게는 다른 일정을 주었을까? 나는 그냥 있기로 하고 전화를 빌려 친구에게 도착시간을 8시로 정정하여 알려주었다. 14 몇 분 지나서 내가 왜 내리도록 되어 있었는 지 알게 되었다. 기차는 만원 예약이 되었고 금방 꽉 찼다. 사실 이내 자리를 찾는 한 사람이 나타났다 아마 내가 앉 아 있는 자리였을 것이다. 나는 기분이 엉망이었다. 그리고 걱정 되었다. 들키면 당연히 쫒겨날 것이다. 조용히 있기로 했다. 몽펠리에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나 와 함께 있었던 동료들은 상황을 이해했고 내가 처음에 들켰던 차장이 아닌 다른 차장이 왔을 때, 프랑스 여자는 모든 것이 이상 없으며 모두 제자리에 있는 것이라 고 말했다.
71 BTM 기차는 8시 조금 전에 도착했다. 역은 개조 공사 중이었고 엉망이었다. 그렇지만 제대로 내린 역이었다! 다시 전화를 빌려서 브라이언에게 전화를 했는데 이제는 그 의 전화번호가 암기되었다. 그가 전화를 받았고 그의 부모님이 나를 데리러 오시는 중이라고 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친구의 엄마 M Harte가 에스컬레이터로 올라오시 는 것이 보였다. 드디어! 낯 익은 얼굴이다! 너무 행복해서 그 순간 나의 모든 피 로가 그냥 싹 없어지는 듯 하였다. 우리는 곧 역에서 나가 그들의 차에 탔다. 16 그들은 나를 앞 좌석의 승객석에 앉도록 하여 프랑스 남부를 잘 볼 수 있도록 배려 해주셨다. 가는 도중에 그들은 포도원과 다양한 지형 및 기타 명소들을 지목하였 다. 집에 도착하자 그들은 집에 있는 개들에 대하여 신경쓰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하고자 했지만 나로서는 개들을 상관하지 않았다.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 지 하루만에 베니스에서 몽펠리에까지 유럽의 상당한 면적을 횡단했는데 내 생각에 개 두 마리 때문에 더 나빠질 것은 없었다. 친구를 보게 된 것은 정말 좋았다. 믿 을 수가 없었다! 콜로라도 볼더에서 만난 사람이 여기 프랑스의 자기 집에서 나를 반겨주었던 것이다! 그보다 많이 어린 겨우 1학년인 여동생도 있었다 Marni는 오 빠의 친구 한 명이 방문한 것에 열정으로 가득차 있었다. 17 드디어 경계심을 풀고 안도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하노버와 비엔나에서 친구의 집에 있을 때보다도 더 좋았다. 이 사람들은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고, 기분 이 대단히 좋았다. 여기서 머무는 동안의 내 기억은 다소 흐릿한데 어쩌면 은행의 잔금을 확인하고, 예약을 하고, 어디서 무엇을 먹어야 할 지 생각하고, 방문할 곳 을 찾고, 교통편을 익히고, 개인 사물을 지키는 등의 끊임없는 긴장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은 정말 피곤한 일이었다. 18 그렇지만 첫날 밤 저녁으로 피자를 먹고 친구 집 뒤뜰의 풀장에서 수영을 했던 것 은 기억한다. 그리고 진짜 침대에서 잠들고 다음 날 아침 늦게 일어났던 것을 기억 한다. 정정 내 시계가 새벽 5시에 울려서 친구의 아빠가 올라와 나를 깨워 알람 을 끄도록 하셨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 어떤 것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19 내가 깨었을 때 우리는 아침을 먹고 해변의 날을 위하여 가방을 챙겼다. 나는 수영 반바지에 티셔츠 그리고 샌달을 착용하였다. 우리는 곧 프랑스 남부의 아름다운 뱃 사장으로 향했다. 그 지역은 장엄한 산과 근처의 해변으로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해변은 더웠지만 산토리니처럼 숨막히게 강렬하지는 않았다. 또한 그곳에서는 여성 들이 상반신 누드로 일광욕을 하는 것이 지극히 보통이라는 것도 대단히 놀라웠다. 미국에서는 절대로 평소에 볼 수 있는 관행은 아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실제로 상 반신 누드의 여자들이 정말로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솔직히 인정하건 데, 미심쩍었었다. 20 친구와 나는 우선 다이빙을 하러 갔지만 물이 너무 차가워서 곧 다시 나왔다. 잠시 후 우리는 조깅을 하기로 하였다. 나는 여행 중에 계단을 뛰어 오르고, 버스와 기차를 잡으려고 달렸던 것을 제외 하고 -- 전혀 운동을 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정 말 신났다. 결국 나의 장딴지는 여전히 좋았지만 심장은 기대 밖으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콜로라도주의 높은 고도 (해발 1 마일)와는 달리 해수면 고도에 서 달리고 있었으므로 쉬웠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3분도 못되어 피곤해졌다. 우리는 내가 숨을 가다듬기 위하여 걷다가 다시 조깅을 시작했다. 겨우 2분만에 다 시 내가 피곤해지자, 우리는 멈추기로 했다. 우리는 돌아갈려고 했지만 대신 완전 히 어린 애들이 하는 것을 하기로 했다. 모래밭에 구덩이 파기였다. 그렇다, 나는 그 멀리 프랑스 남부까지 구덩이를 파러 간 것이었다. 그렇지만 크고 인상적인 구 덩이였다.
72 BTM 한 번은 브라이언이 마실 것을 사러 나갔고 나는 계속 팠다. 그가 돌아왔을 때 우 리는 시원한 냉차 캔을 즐기고 계속 파나갔다. 놀랍게도 진흙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물에서 300 피트 정도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진흙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 하지 못했었다. 곧 6인치의 물이 고였다. 시간이 좀 지나 이번에는 내가 가서 음료 를 사올 차례였다. 내가 소다수, 크로쌍, 그리고 바세트를 가지고 돌아왔다. 비록 모래가 다 끼어들기는 했지만 나는 게걸스럽게 먹었다. 우리는 계속 팠다. 사실 우 리가 파기를 멈추었던 것은 구덩이가 갑자기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한 번 시작되자 금방 무너졌다. 그래서 우리는 머리만 내놓고 완전히 모래 속에 몸을 묻 기로 했다. 우리는 그렇게 꽤 있었다. 나는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을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우리는 정말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22 우리가 막 모래에서 빠져나올 때 친구의 아빠가 와서 돌아갈 때가 됐다고 말씀하셨 다. 우리는 셔츠를 걸쳐 입고 차에 올라 탔다. 돌아오자마자 바로 샤워를 하러 갔 다. 머리에 모래가 박힌 것을 견딜 수가 없었고 소금물로 피부의 느낌이 이상했다. 우리가 해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가 돌아왔을 때는 벌써 오후 6시가 다 되었다. 친구와 나는 가족이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 저녁을 먹 으로 갔다. 웨이터는 아주 쾌활했고 공손했다. 나는 웨이터의 말을 전혀 알아들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주문하는 것을 친구가 도와주었다. 곧 음식이 도착하기 시작했 고, 한 코스가 끝나면 다음으로 결국 네 코스 식사가 되었다. 정말로 내가 먹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맛이 있다는 것은 알았다. 23 커다란 접시 위에 놓인 여러 후식 가운데서 메뉴를 고른 다음 친구와 나는 앉아서 학교 이야기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는 것, 우리가 좋아하는 선생님, 싫어하는 선 생님, 좋아하는 수업, 싫어하는 수업 등과 같은 보통 10대들의 소재에 대한 이야기 를 했다. 그렇지만 솔직히 나는 학교에 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학교와 친구 들, 그리고 무엇인가를 정말로 배웠다는 느낌으로 교실을 걸어나오는 그 기분이 그 리웠다. 바로 그 때 나는 실제로 학교에 다니는 것은 아주 쉬운 것이라는 것을 깨 달았다. 매일 공부해야 하는 잔인한 시간을 제외하면 삶은 쉽다 또는 꽤 간단하 다. 굳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 자기 침대에서 자고, 학교에 가고, 시간 표에 맞추어 다른 강의실로 가고, 학교에서 받은 숙제를 하고, 다 끝나면 좀 더 잠 을 자면 된다. 24 여행을 하는 것은 집에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개인적인 책임과 생각이 따른다. 유 럽에서도 나는 분명히 배우고 있었다. 미적이나 문법 또는 라틴어를 배우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누구이며,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 우선 순위를 정하는 방법, 시간을 관리하는 방법, 각기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 그 리고 온갖 다양한 사람들을 존중하는 방법 등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배우는 것은 쉽거나 간단하지 않았다. 사실 내가 배운 많은 것들을 나는 어렵게 배웠다. 우리가 대화를 마쳤을 때 브라이언이 아빠에게 전화를 하여 우리를 픽업하게 하였다. 우리는 도로에서 야생 돼지를 찾으며 몇 분을 보냈고 그 날에 대한 나의 기억은 이게 전부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양치질을 하고 침대 에 떨어져 깊은 꿈으로 빠졌다.
73 BTM 다음 날 아침 나는 10시 반에 깼다. 10시 반!! 더디지만 차분한 아침이었고 나에게 는 몇 가지 옵션이 있었다. 나는 중세의 성채 유적인 Les Baux와 로마의 유적을 좀 둘러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우리는 먼저 로마 유적에 들렸다. 그것 들은 나에게 특별히 더 흥미롭지는 않았다. 나는 이미 로마와 불가리아에서 로마제 국의 유적들을 많이 보고 왔던 터이다. 그래도 내가 있는 바로 그곳에서 로마의 광 장과 주택에 대하여 라틴어 선생님께서 가르쳐 준 모든 것을 볼 수 있었으며, 선생 님의 말씀이 어쩌면 그렇게 모두 맞는지 놀라웠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Lex Baux로 갔다. 아주 아담했지만 대단히 매력적인 관광지였다. 그곳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기 념품과 간식 상점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친구와 나는 흥미로운 화랑을 발견했지 난 그것을 다 보고 난 다음에는 더 이상 알씬 거리고 싶지 않았다. 일반적인 관광 명소를 피하는 것은 특히 유럽에서는 어렵지만 나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혼자서 탐 험하는 것을 선호한다. 26 이전까지 나는 항상 편안한 여행을 했다. 한국에 갔을 때는 언제나 내가 잘 곳과 먹을 음식이 제공되었다. 언제든지 여러 곳으로 나를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 었다. 우리 가족이 페루에 갔을 때도 모든 차편은 미리 마련되어 있었고, 그 나라 사람들의 집과 비교하여 호화로운 호텔에 묵었다 그렇지만 하루 저녁의 호텔비는 미국에서 모텔의 하루 밤과 비슷하였다. 그렇지만 이런 모든 편의는 다른 모든 여 행자들이 보는 것만을 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여행은 내가 생각하는 여행에 훨씬 더 부합했다. 나는 여행의 진정한 목표는 그 나라를 탐험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그리고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글리비체에서의 첫 주를 빼고 나는 여행일정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것을 좋아했다. 이제 여 기 Lex Baux에서 나는 이아 (Oia)에서 느꼈든 유쾌하지 못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 다. 즉, 나는 진정 그곳을 경험하고 있지 않으며, 오직 따분하고 상업적인 관광 명 소만 보고 있는 것이었다. 27 Les Baux를 보고 난 다음 우리는 올리브 오일 공장으로 갔다. 할 것은 많이 없었지 만 대단히 아름다운 가든이 있었다. 나는 올리브 젤리처럼 보이는 샘플을 좀 먹어 보고 가든에서의 산보를 즐겼다. 친구 엄마는 우리에게 누가를 좀 사주셨는데 맛이 아주 좋았다. 압박에 시달리지 않는 것은 정말 좋았다. 좋은 친구와 그 가족과 함 께 프랑스의 사랑스런 시골을 달리면서 드디어 햄릿을 다 끝냈다. 너무 덥지도 춥 지도 않은 날씨 또한 극적으로 달랐다. 그리고 드디어 야채식을 보강할 수 있게 되 어 정말 좋았다. 나는 결코 대단한 야채식 팬은 아니었고 가능할 때마다 야채를 피 하려고 했었다. 28 어렸을 때는 사실 심지어 시금치 샐러드를 계속 토하기까지 했다. 하루 저녁은 엄 마가 전화를 받으로 방을 나가셨을 때 심지어 당근을 모두 개수대에 버렸던 적도 있었다. 사실 부모님은 내가 끊임없이 그렇게 했다는 것을 전혀 모르셨다. 그런 음 식은 나에게 구역반사만 일으켰다. 그렇지만 이제 내가 야채를 갈망하고 있다. 야 채를 요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야채를 먹기가 어려웠다. 몇 년 전이었다면 정말 좋아했었을 것이지만, 이제는 아니다. 야채를 좀 먹은 날과 그 렇지 않은 날을 비교할 때 느낌의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야채 가 있을 때마다 최대한 많이 먹기를 꺼려하지 않았다. 29 브라이언 집에 있으면서 또 하나 정말 좋았던 것은 친구의 엄마가 친절하시게도 내 옷을 세탁하여 밖에 널어주셨다는 것이다. 지내기가 좋았다. 그렇게 위해주고 돌봐 주시는 것은 집에서 수 천 마일 떨어져 있다는 사실과 가족을 보고 싶다고 느끼게 했다.
74 BTM 다음 날은 월요일이어서 늦게까지 잘 수 없었다. M Harte는 직장에 가야 했고, 친 구의 여동생은 승마 레슨이 있었고, 친구는 미술 클래스에 가야 했다. 우리는 일찍 움직였고 나는 그의 아빠와 함께 승마장에 갔다. 얼마 후 나머지 가족도 거기서 만 났다. Marni를 내려준 다음 나는 가까운 공원으로 가서 두번째 여름방학 독서 과제 물인 Tom Stoppard가 쓴 Rosencrantz and Guildenstern are Dead를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벤치에 앉았다가 좀 더 밝고 안락함을 찾아 분수대 바닥에 앉았다. 몇 분 후 분수대의 가장자리로 옮겨서 일일가방을 벼개로 삼아 누워서 읽었다. 곧 잠들었 다. 나는 두 주인공이 동전 던지기를 하는 요점을 이해하지 못했고 잠이 들었다. 몇 초나 지난 것 같았는데 나는 쿡찔려 잠을 깨고 가야할 시간이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벌떡 일어섰고 아이파드가 주머니에서 분수로 풍덩 빠질뻔 한 것을 간신히 구했다. 31 우리는 먼저 여동생을 승마 레슨장에서 픽업했는데 자기가 탔던 조랑말에 대하여 끝없이 말을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승마 팬이 아니지만 여기 이 사람은 분명 그렇 다! 우리는 식료품점에 들려서 점심을 샀고, 그 도시의 심장으로 들어갔다. 친구와 나는 내렸고 친구가 주변을 좀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내가 가장 기억하는 것은 함 께 갔던 공원이었다. 그 공원은 흥미로운 기념비들과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그 당 시 나는 그 공원이 어떤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내가 미국으 로 돌아왔을 때 5학년 (7년 전) 이후로 만나지 못했던 한 친구가 페이스북에 공원 사진 한 장을 올려놓은 것을 보았다. 그 사진은 어렴풋이 눈에 익었기에 그 장소를 물어보았다. 알고보니 우리는 정확히 같은 시간에 같은 도시에 있었으며, 그 사진 은 바로 그 공원의 사진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32 공원 다음에 우리는 내가 바르셀로나 (Barcelona)로 가는 표를 사러 기차역으로 갔 다. 긴 줄에서 기다렸지만 결국 다음 날 바르셀로나로 가는 기차표가 매진 되었다 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긴 그 때가 관광시즌의 피크 타임이었다. 나는 하루를 더 기다렸다가 떠나야 했다. 그렇지만 이것은 또 하나의 문제를 초래했다; 파리에 가 는 표는 스페인에 도착해서야만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차의 자리 하 나를 잡기까지는 적어도 하루는 기다려야만 할 것 같았다. 파리에서 집까지의 비행 기가 정해진 상태를 고려하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었다. 나는 바르셀로나 관광을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파리로 가는 다음 기차를 물어보았다. 좌석이 있는 가 장 빠른 일정의 기차는 이틀째 되는 날 아침 7시 였다. 이 기차를 타던지 아니면 같은 날 저녁 10시 뿐이었다. 전혀 모르는 대도시에서 새벽 1시에 호텔을 찾아야 하는 것을 정말로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못해 아침 기차의 좌석을 예약했다. 33 시간이 거의 한 시가 되어 우리는 미술 레슨을 위하여 미술 박물관에 같이 갔다. 나도 참여할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나는 여러 주 만에 처음으로 그림을 그 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흥분되었지만 그러한 기분은 4시간 내내 박물관에 있 는 예술품을 분석하게 될 것이라는 말에 죽고 말았다. 처음에는 즐거웠지만 곧 단 조로웠다. 다리는 피곤해졌고, 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고, 갈증은 거의 참을 수 없었다. 드디어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햇볕을 보게 되어 아주 좋았다. 우리는 대 중 교통을 이용하여 친구의 아빠가 기다리고 있는 곳까지 갔고, 그리고 나는 잠에 빠졌다.
75 BTM 집에 왔을 때 나는 샤워를 하고 쉬면서 페이스북을 체크하기로 했다. 그 밖에 어떤 것도 할 에너지가 없었다. 얼마 후 친구 엄마가 나를 아래층으로 부르셨다. 그곳에 가보니 친구 엄마는 우리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지 모르지만 친구와 내가 화해 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친구와 나 사이에 어떤 문제 가 있었는 지 전혀 몰랐다. 알고보니 브라이언은 그날 4시간 동안의 미술분석 수업 에 내가 실망한 것에 기분이 상했던 것이다. 나는 즉시 사과했고 그는 과민반응 한 것에 사과로 응답했다.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하여 같이 앉았고, 나는 또 한 번 굶 주린 듯 잔뜩 먹었다. Mr. Harte는 풀장에서 발견한 폭이 1.5인치가 넘는 죽은 거 미를 갖고 들어오셨다. 나는 거미를 무서워하지 않지만 이 거미는 엄청 컸다. 좀 혐오스러웠다. 우리는 커다란 곤충과 커다란 거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녁 을 다 먹었을 때 나는 그 대화로부터 양해를 구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해두자. 35 다음 날 나는 또 게을렀다. 우리는 다시 꼬마 아가씨를 조랑말 타기 레슨에 데려다 주었다. 이번에는 친구의 엄마가 심부름을 가야 하셔서 그곳에 있으면서 기다렸다. 나는 친구와 함께 여동생을 보살피는 것이 싫지는 않았지만 그 말들 때문에 정말로 파리가 어마어마하게 꼬여들었다. 나는 파리를 싫어한다. 정말로 싫어한다. 도착 후 얼마 되지 않아 파리들이 우리 주변에 떼로 몰려들었다. 종아리에 앉은 파리를 보고 찰싹 치면 그 파리는 몇 초 되지 않아 다시 돌아오곤 했다. 다리, 팔, 얼굴, 눈, 그리고 셔츠까지 그곳에 있는 동안 내내 가리지 않고 아무데나 앉았다. 드디어 레슨이 끝나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짐을 정리하고 Rosencrantz and Guildenstern are Dead을 꺼내 다시 읽었다. 그 날 남은 시간은 그게 전부였다. 몇 일 남지 않았기에 나는 다시 솔로 여행자 모드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그냥 편히 앉아서 쉬고 싶었다. 36 출발시간은 빨리 다가왔다. 나는 5:30분 알람에 맞추어 깨었고 양치질을 하고 ITALIA 스웨터를 입고, 배낭을 걸쳐 메고, 신발을 신고 집에서 나왔다. Mrs. Harte 가 친절하게 정류장까지 차로 데려다 주셨다. 전차가 도착하였고 나는 Gare? 라 고 물었다. Gare는 불어로 기차역이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단어 하나밖에 몰랐고, 기사는 왕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예의 미국 여행객 패션으 로 내 말을 반복했다. 그는 머리를 가로짓고 몇 초 동안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는 영어할 줄 아세요? 라고 물었다. 물론지요! 라고 내가 대답했다. 나는 내가 왜 처음에 불어를 하려고 했는 지 모르겠다. 나는 그에게 전차가 역까지 가는 지 물었다. 37 바로 그 때 친구의 엄마가 나를 보내기 위하여 돌아오셨다. 브라이언과 그의 모든 가족이 나에게 베풀어준 배려에 대한 감사를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들이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여행을 마쳤을 지 모르겠다. 그들의 친절과 편안한 공간은 그 때에 내 가 필요로 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내내 텐트에서 잠을 잔 후 고된 유럽 여행의 마지막 과정에 앞서 진짜 집에서 잠을 자게 된 것은 정말 좋았 다. 친구와 그의 가족은 단지 내가 필요로 했던 것을 제공한 것 이상으로 훨씬 많 은 것을 해준 것이었다. 내가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는 동기를 주었던 것이 다. Mrs. Harte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나는 전차를 타고 기차역으로 향했 다.
76 BTM Book 13, Unit 21 - 파리, 프랑스 2 내가 도착했을 때 여느 때와는 달리 시간이 꽤 많이 있었다. 그게 좋았다. 우선 화 장실에 들렸고, 다음에는 기차의 도착을 알려주는 커다란 전광판을 서서 보았다. 내 기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아직도 족히 20분은 더 있어야 했다. 기차가 도 착했을 때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올라탔다. 기차는 유럽에서 가장 빠른 TGV였다. 짐을 집어 넣고 Rosencrantz and Guildenstern are Dead와 카메라를 꺼내들고 앉았 다. 몇 분 후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내 옆에 앉았다. 곧 기차는 움직이기 시 작했다. 3 꽤 많이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책을 집어들었지만 이내 깊이 잠들었다. 옆자리에 앉은 젊은 여자에게 나의 머리가 굴러서 넘어갔던 것이 어렴풋 기억나는 것으로 보아 아마 깊은 잠에 빠졌던 모양이다. 잠에서 깨었을 때 기차는 파리까지 20분을 남겨놓았고, 그 젊은 여자는 10 피트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너무 쑥스 러웠다! 내가 탔던 칸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는데 내 머리가 다른 사람의 공간까 지 굴러서 넘어갔다는 생각과 어쩌면 침을 질질 흘리며 그녀의 귀에 바싹 대고 코 를 골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전혀 몰랐다는 듯이 행동하기로 하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4 기차에서 내려 내가 처음 한 일은 호텔을 찾는 일이었다. 그렇다, 호텔이라고 했 다. 나는 엄마에게 파리에 있는 동안은 호텔에 머물고 싶다고 말했고 가격도 호스 텔에 머무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결국 4일 동안 100 유로의 차이가 났는데 좀 비싸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지만 침대와 방을 혼자 쓰고 싶은 바램을 거부할 수 가 없었다. 그 값에는 룸 서비스와 개인 샤워실, 개인 개수대, 그리고 나만이 접근 할 수 있는 사물 공간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잠을 잘 때도 방해받지 않고 매일 짐을 싸서 체크아웃을 해야 하지 않아도 됨을 의미했다. 나에게는 도저히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좀 잘 못 길들여진 것일 수도 있지만, 지난 6 주 동안 유럽을 거치면서 호스텔과 캠프장에서 묶었던 것에 대한 댓가로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호텔이 오성급 호텔은 아니었다: 그런 것과는 전 혀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파리의 주요 명소에서 멀리 떨어진 삼성급 호텔이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좋았다. 5 비록 내리기는 제대로 내렸지만 그래도 한 참을 걸어야 했다. 그리고 결국 길을 잃 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도는 내가 걷고 있는 길과 일치하지 않은 것 같았다. 사 람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모두가 나를 무시했다. 아마 그들이 영어를 못해서일 것 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단지 십대가 요청하는 도움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 로 사람들이 응대를 거부한다는 것은 이상하게 보였다. 사기나 강도를 당할까봐 두 려워서 그랬던 것일까? 6 답이 없었다. 백주 대낮에 평평한 바닥의 나이키 신과 격자무니 반바지, 그리고 흰 색 브이넥을 입은 내가 그렇게 무섭거나 위협적으로 또는 범죄를 저질 수 있는 사 람으로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점점 좌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의 도하지 않은 과격한 힘으로 배낭을 내려놓고 포기했다. 그곳에 서서 여행 중 힘들 때마다 나를 계속 움직일 수 있게 해준 아이파드를 듣기로 했다. 음악을 듣는 것은 언제나 편안함을 주었다. 집에서 가장 즐겨 들었던 음악 리스트를 아이파드에 올려 왔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좌절하거나, 집이 그립거나, 또는 무서웠을 때는 언제나 아이파드에 의존했는데, 어떤 때는 매일 하루에 한 번 이상 그렇게 해야만 했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한다.
77 BTM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차를 지켜보았다. 빵집의 직원이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가게의 프론트에 가져다 놓는 것을 보았고, 사람들이 식사를 하기 위하여 식당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깊게 호흡을 하고 내 안에 있는 모든 공기를 빠짐없이 내 쉬었다. 얼마 후 한 노인이 다가와서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순간 경계하였지 만 그는 인도 출신의 아주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는 것도 아주 많았다. 그는 세계 곳곳을 다녔다 심지어 콜로라도 덴버까지도! 나는 그에게 루애버뉴(Rue Avenue)에 있는 호텔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 나를 따라와라 고 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5분도 안 되어 나는 그 호텔 앞에 서있었다. 그에게 넘치도록 감사를 표했고, 그는 커다란 미소와 함께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을 돕는 일일지 도 모르는 -- 자신의 일로 돌아갔다. 바로 그 때 나는 그분과 같은 사람들이 인간 됨에 대한 나의 믿음을 회복시켜 준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사실이었고 지금도 사실 이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상이나 보답은 없고 오직 좋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 얻어지는 개인적인 만족감이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 기분은 분명 값으로 계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8 호텔로 들어가자 리셉션 직원이 기쁘게 나를 맞이해주었다. 220유로를 내고 4층까 지 걸어 올라갔다. 방에 들어가서 가방을 내려놓고 침대 위로 몸을 날렸다. 그때의 기분을 표현할 수가 없다. 내 가슴 속에 있던 느낌은 그것이 두려움이었든, 걱정 이었든, 또는 향수였든 그저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여행 내내 나와 함께 했던 육체적 통증이었다. 나는 그것을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몰랐다. 내가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은 주먹을 불끈 쥐고 계속 가는 것 뿐이었다. 그렇지만 바로 그 순간 모든 통증이 사라졌다. 나는 그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웃으면서. 9 몇 분 동안 그렇게 최고 행복하고 편안한 시간을 갖고난 다음, 전날 밤 오페라 하 우스에서 2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던 친구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늦었다고 생각해서 순간적으로 펄쩍 뛰었다. 그렇지만 아이파드로 시계를 확인하니 1:15분이었다. 내 가 메트로를 타면 호텔에서 오페라까지 45분은 분명 걸리지 않을 것이다. 휴대용 가방을 챙기고 출발했다. 불과 20분 전에 안내받았던 그 길을 걸어 내려갔다. 오른 쪽으로 틀어 메트로 역이 있는 큰 길로 가서 계단을 뛰어내려가 표를 한 장 샀다. 메트로에서 자신있게 돌아다녔다. 내가 두려워 할 것이 뭐가 있겠나? 모험을 거의 마쳐가는 중이고, 행복했고, 학교 친구를 만나게 될 것이었다. 10 나의 짐작과는 달리 기차는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5분전 두시에 막 도착하여 계획했던 선물을 살 시간이 거의 없었다. 친구를 찾으며 앞에서 한 동안 서성거렸다. 우리는 또 한 명의 페어뷰 학생과 같이 만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비록 그녀도 내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 같은 학교를 다녔지만 한 번도 만나지 못했었다. 사람들 속에서 내가 기다리고 있는 익숙한 그녀의 얼굴을 찾으며 서서 기다렸다. 드디어 대략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한 여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어색하게 느 껴졌지만 우리는 둘 다 혼동된 표정으로 서로를 향하여 다가가서 내가 물었다. 너 클레어 맞니? 그래, 그리고 너는 피터? 그게 내 이름이야! 셜리는 아직 못봤니? 아니 아직 그렇지만 그 애가 좀 늦어진다고 말을 했어. 아, 그래. 그럼 좀 기다리자.
78 BTM 그 날 햇볕은 무자비 했기 때문에 우리는 팔레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가 드리우는 좁은 그림자 공간에 앉았다. 몇 분 후, 우리는 스타벅스에 가서 음료를 사기로 했 다. 우리가 돌아왔을 때 친구는 아직 없었고, 어쩌면 그녀를 놓쳤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클레어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우리는 가로등 기둥이 만 들어준 작은 그늘 아래서 햇볕을 피했다. 몇 분 후 셜리가 길을 건네는 것이 보였 다. 나는 그 우스꽝스런 실감나지 않는 느낌이 또 들었다, 고향의 친구를 파리에서 만난다는 것은 너무 웃기는 일이었다. 내가 이미 겪었던 많은 우연의 마주침들 보 다 훨씬 더 어색하고 어리둥절 했다. 12 우리는 먼저 갤러리아 라파예트 (Galleria Lafayette) 갔다 내가 보고자 했던 목 록의 1순위는 아니었다. 우리는 말도 안 되게 비싼 물건들을 팔고 있는 상점들을 지나서 맨 위층으로 갔다. 옥상으로 올라갔을 때 나의 후회가 싹 사라졌다는 것을 인정한다. 사실 옥상부터 먼저 갔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좋은 곳에서 나는 파리의 모습을 멀리까지 내다 볼 수 있었다. 그 전경 속에 원뿔 을 닮은 작은 형체 에펠 타워 가 보였다. 진짜 에펠탑!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 다. 잽싸게 카메라로 잡아놓고 좀 더 바라보았다. 우리는 옥상에서 좀 더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내려왔다. 처음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랐지만 클레어 삼촌의 술집에 가기로 하고, 그곳에서 뭣 좀 마실 수 있기를 바랬다. 그러나 우리가 갔을 때 그 술집은 문이 닫혀 있었다. 우리는 옆 가게로 갔고 그곳에서 클레어는 관대하 게도 우리에게 박하향이 나는 음료를 사주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내가 첫 모금을 마실 때까지도 몰랐던 갈증을 완전히 해소시켰다. 13 우리는 파리의 곳곳을 걸어다녔고 그렇게 하루가 빨리 지나갔다. 나도 모르는 사이 저녁 때가 되었다. 놀림을 받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피자를 먹었다. 그렇다 나는 파리까지 가서 피자를 먹었다. 그렇지만 피자는 맛이 아주 좋았다 그 이유는 프 랑스가 수 백년 동안 피자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은 피자를 자기들이 발명했다고 주장한다. 피자 한 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우리는 모두 마지막으로 물을 벌컥 마시고는 떠났다. 그리고 우리는 노트르담 (Notre Dame)이 있는 길을 걸 어서 영국식 술집에 다다랐다. 원하면 술을 주문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술을 마실 수 있는 법적인 나이는 못 되었지만 유럽에서는 아무도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 다), 이미 피곤함을 느꼈고 알콜 음료는 좋은 아이디어가 못될 것 같았다. 게다가 정말로 메트로에서 술기운에 비틀거리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14 어느 시점에 우리는 클레어의 삼촌이 우리를 에펠탑까지 데려다 줄 수 있을 지 알 아보기로 했다. 에펠탑까지 걷기에는 너무 멀었다. 그렇지만 클레어의 삼촌은 어디 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메트로로 향하기 시작했다 나는 호텔로 돌아 고 싶었다. 파리는 막 깨어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거리를 메웠다. 식당은 가득 찼고, 활기찬 대화가 허공을 채웠으며, 거리의 사람들은 비집고 들어서야 했으며, 여분의 공간은 없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하루가 닫히고 있었다. 모든 것이 흐려 지기 시작하였고, 심지어 메트로에서는 거의 깜빡 졸뻔 했다. 15 역에서 무거운 다리를 끌고 내려 호텔까지 긴 오르막 언덕 길을 오르기 시작하였 다. 거리에는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어슬렁 대는 사람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 다. 그들이 위험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좀 겁먹지 않을 수 없 었다. 당당하게 보이고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거리를 걸 었다. 호텔에 도착하자 또 하나의 도전이 있었다. 전자카드를 스캔하고 문을 잡아 당겼다. 움직이지 않았다. 더 세게 당겼다. 갑자기 문이 쉽게 열렸다. 나는 사람 이 없는 리셉션 공간을 지나서 걸어갔다. 그곳의 모든 것은 으스스했고 불모지 같 았다. 특별히 어둡거나 춥지도 않았지만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 붐볐던 것에 익숙해 져 있었다.
79 BTM 집을 떠난 이후로 향수를 완전히 잊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지만 마지막으 로 혼자 있어서 무서웠던 때는 퀼른 (Cologne)에서 였는데 그때 나는 길을 잃은 좌 절감에 거의 붕괴되었었다. 나는 얼른 두려움을 제쳐놓고 계단을 뛰어 올랐다: 1 층, 2층, 3층, 4층 방에 도착했을 때 바깥 문을 열고 (무슨 이유인지 문이 두 개가 있었다) 재빠르게 두번째 문의 키홀에 키를 넣고 최대한 빨리 돌렸다. 문을 열고 닫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잠그었다. 17 방의 안전함에 마음이 놓이자 짐쌕과 카메라를 침대 위에 던져 놓고, 하이킹 배낭 도 비웠다. 옷이 다 쏟아져 나왔다. 갈아 입을 옷을 한 벌 골라서 샤워장으로 갔 다. 따뜻한 물 아래서 한 동안 쉬면서 졸뻔 하다가 작은 샴푸통을 머리에 부었다. 눈을 꼭 감고 머리를 감았다. 눈을 떴을 때는 모든 것이 붉었다. 내 발, 바닥, 물, 벽, 손 모든 것이. 무슨 일인지 몰랐기 때문에 나는 공포에 잡히기 시작했다. 곧 코피를 쏟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아마도 피로 때문이었을 것이다. 머리를 숙이고 샤워장에 한동안 서있었다. 어쩌면 한 2분 정도였을 것이다. 코를 풀고 또 풀어서 피가 흘러 나오도록 했다. 드디어 밖으로 나왔을 때 침대 위에다 모든 것을 어질러 놓은 자신에 대하여 실망했다. 정말 침대 위에 쓰러지고 싶었다. 청소하고 정리하 는 것을 하고 싶지 않아서 모든 것을 침실용 탁자 위로 쏟아붓고, 불을 끄고, 침대 로 파고 들어가 잠에 떨어졌다. 18 다음 날 아침 늦게까지 자고 깨었을 때는 좀 어리둥절했다. 내가 어디에 있는 지 인식하는데 잠시 시간이 걸렸지만 바로 일어나서 양치질을 하러 갔다. 그 다음에 아이파드를 꺼내 일을 했다. 침실용 테이블 위에 있는 사물들을 전부 침대 위로 내 던졌다. 책과 지도, 전자제품, 충전기, 세면도구 등에서 옷을 골라냈다. 그리고 옷 을 전부 개고 앞으로 남은 마지막 여행기간 4일 동안 입을 겉옷을 같이 놓았다. 나 는 연속 4일은 고사하고 다음 날 입을 옷도 계획하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내가 제 정신이 아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19 그렇지만 여행 중에는 특히 혼자 여행할 때는 정리가 핵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 다. 하노바와 비엔나 및 몽펠리어에 있었던 때를 빼고 나는 항상 내 사물을 아주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은 언제든지 사물의 소재를 정확이 아는 것이었다. 나는 일반적으로 물건을 분실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렇지만 여행 중에 지갑, 카메라, 여권 또는 차표 등을 분실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치명적일 수도 있다. 농담이다. 언제든지 어려운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복잡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개인의 사물을 제대로 관리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더 좋다. 20 그럼 내가 왜 옷을 정리하고 있었을까? 입을 옷이 전혀 없는 상황이 아니면 옷을 분실하는 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걱정이 되어서 그랬던 것 같았다. 여행이 시작된 날부터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을 때까지 나는 날 짜를 세었었다. 그 날이 이제 겨우 4일 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마지막 순간 허겁지겁 모든 것을 챙기면서 뭔가를 빠트리는 위험이 없도록 하고자 여러가 지를 정돈하고자 했던 것 같았다. 이제 내가 해야할 일은 샤워를 하고 나면 옷을 세탁용 플라스틱 가방에 던져넣기만 하면 되었다. 떠나기 전 날 밤 플라스틱 가방 을 배낭에 집어넣기만 하면 준비가 되기 때문이다.
80 BTM 나는 상당히 무기력함을 느껴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가득찬 거리로 다시 나가고 싶 지 않았다. 옷과 관련된 노력을 끝내고 각각의 겉옷을 TV 테이블 위에 한 무더기로 올려놓았다. 작은 스케치북에서 네 장의 종이를 찟어서 각각 26일, 27일, 28일 및 29일로 라벨을 만들었다. 그리고 각 겉옷의 위에 하나씩 놓았다. 갈 준비가 되었다 거의. 그리고 나머지 일에 신경을 썼다. 메인 스케치북, 비행기 스케쥴, 파리 지 도, 카메라, 지갑, 여권, 짐쌕, 아이패드, 아이파드, 그리고 이어폰을 꺼내놓았다. 마지막으로 나머지 나의 사물을 배낭에 집어너었다. 그리고 지도와 카메라, 지갑, 아이파드 및 이어폰을 짐쌕에 넣었다. 내가 휴대하고 다녀야 여러 가지 아이템들 때문에 빠짐없이 사물을 챙기는 일이 더 부담스러웠다. 22 모든 것을 마치고 페이스북에 접속하였다. 셜리가 클레어 집에서 잠을 자고 돌아와 보니 그녀가 돌아오기 전에 이미 나머지 가족이 박물관 관광을 떠났기 때문에 하루 를 쉬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계획이 없었기에 오페라 하우스에서 2시에 또 만나기로 했다. 시간은 거의 정오였고 식료품을 좀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 인가 좀 맛있는 것이 필요했다. 샌달을 신고, 지갑을 집어넣고, 그리고 밖으로 나 갔다. 바로 거리 맞은 편에 햄버거를 파는 패스트푸드 음식점이 있었다. 따뜻하고 맛있는 샌드위치를 사서 우적우적 먹으며 걸었다. 어제 밤에 왔던 길을 되돌아서 식료품점을 보았다고 생각한 곳으로 갔다. 그것은 정말 아주 작은 식료품점이었다. 선반에서 초콜렛, 바나나, 크래커, 소다 등등 가격에 맞을 것 같은 간식거리를 무 엇이든 바스켓에 넣기 시작했다. 쇼핑이 끝나자 호텔 방으로 돌아갔다. 23 다행히도 문이 열려 있어서 또 다시 대중 앞에서 챙피함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시 계단을 뛰어 올라 방으로 들어갔다. 시간은 오후 1시였다, 그래서 다시 30분 정도 집에 가는 꿈에 젖어들었다. 거의 다 갔었다. 한 시 30분에 나갔다 -- 2시까 지 도착하려면 최소한 30분은 필요했다. 셜리는 나보다 15분 후에 도착하였다 전 날에 비하면 아주 많이 양호해진 것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지 확실치 않았지만 샹젤리제(Champs-Élysées) 거리를 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는 메트로에서 내려 방향을 잘못 들어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는 커다란 박물관으로 가고 말았다. 우리 둘 다의 우선 순위 목록에 포함되지 박물관으로 각각 9 유로씩이나 하는 입장권이 너무 비싸서 우리는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내가 꼭 보아야 할 것으로 남아있는 유 일한 박물관은 루브르(Louvre) 박물관이었다. 24 드디어 우리가 샹젤리제에 갔을 때 나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개선문 (Arc de Triomphe)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좀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하여 달려가고 싶기도 하 였지만 나는 딴 곳에 마음이 쏠렸다. 람보기니나 페라리 및 내가 기대했던 다른 수 퍼자동차들이 거리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자동차 딜러들이 거리에 줄지어 있었다. 푸조, 시트로엔, 토요타 등 뭐든지 부르는대로 다 있었다. 각 딜러마다 멈 추어서 사진을 찍는 것이 셜리에게는 대단히 짜증스러운 것이었다는 것을 나는 알 았다. 우리는 근사한 것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은 있지만 그것들을 생산할 가능성 은 거의 없다 라고 말하는 회사가 모델로 만든 여러 대의 콘셉트 자동차들이 전시 되어 있었다.
81 BTM 샹젤리제를 따라 개선문으로 걸어가면서 우리는 세포라 상점을 마주쳤다. 사내인 나는 화장품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셜리의 제안에 들어가기로 동의했다. 어떻 든 셜리는 자동차에 대한 나의 강박적인 행동으로 고생을 했으니까. 세포라 점포 안에서 내가 처음 알아본 것은 재규어 (Jaguar) E-type이었다. 파리에서는 섹시한 자동차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그 다음에 알아본 것은 샤넬 5(Chanel No. 5), 샤넬 22, 패리스 바이 코티 (Paris by Coty) 등의 거대한 향수병 들이었다. 그들의 향수가 어떤 것인지는 전혀 몰랐지만 비싼 것이라는 것은 확신했 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런 것을 쓴단 말인가?! 우리는 계속 걸었고 그렇게 많 은 화장품들이 전시되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솔직히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은 립스틱과 마스카라뿐이었고, 심지어 나머지 화장품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쓰 이는 지조차도 모를 정도였다. 26 우리는 드디어 개선문으로 갔다.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내 가 맨 위까지 올라갔었다면 관점이 달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입장료는 없었지만 기다리는 줄이 너무 길었다 맨 꼭대기까지 가보려면 적어도 한 시간 또는 그 이 상은 걸렸을 것이다! 우리는 그냥 그 아래서 다리를 휴식시키며 앉아 있었다. 비록 전날은 훨씬 더 많이 걸었지만, 피로에 대한 나의 육체적 지탱능력이 한계에 가까 워진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걸어도 힘들었고, 날이 갈 수록 무자비한 햇볕 아래서 는 더욱 약해지는 것 같았다. 휴식을 끝내고 우리는 샹젤리제로 다시 이어지는 지 하터널로 들어갔다. 27 돌아가는 길은 반대쪽 길로 걸었다. 그러면서 그곳에 갈 때 했던 것과 거의 같은 것을 했다. 그렇지만 샹젤리제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대신 에펠탑이 있는 오른쪽으 로 갔다. 길을 따라 가다가 성당이 하나 보였는데 왜 그랬는 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곳에 들어가보기로 하였다. 나는 이미 20여개 넘게 많은 성당을 보았기 때문에 또 다른 성당을 보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성당에 들어가자 천장에 걸려 있는 콜로라도주 기가 보였다. 모든 주의 기가 전시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정말 특이하였는데 왜 그들이 그렇게 했는 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래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28 교회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포 시즌즈 호텔 (Four Seasons Hotel)을 보았는데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비록 저급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자동차광인 나에 게 페라리 엔조 (Ferrari Enzo)를 보게 되는 것은 언제든지 나의 하루를 충족시키 기에 충분하다. 페라리 (Ferrari)뿐만 아니라 마이바흐 (Maybach) 57s과 애스턴 마 틴 (Aston Martin) DB9가 호텔 앞에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꺅하고 비명 을 지르며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댈 때 셜리는 눈을 수십번 눈을 굴렸을 것이라고 추정하지만, 나로서는 역시 그것을 걱정할 수 없었다. 내가 무지하거나 야박하고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페라리 엔조가 날이면 날마다 내 앞에 나타나 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유럽 전역에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 그 차가 자주 나타나 는 듯 했다. 몇 주 후, 부다페스트에서 만나고 로마에서 마주쳤던 한 친구가 모나 코에서 보았던 똑같은 (정확히 똑같은 차, 번호판도 똑같은) 차의 사진을 올렸다. 29 자동차 주위를 뛰어다니고, 사진을 찍으며, 열광하는 나에게 갑자기 많은 에너지가 생긴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것은 순간의 폭발이었다. 나는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셜리도 그랬다. 우리는 겨우 세시간 동안 밖에 있었지만 둘 다 지쳤 다. 나는 항상 에펠탑 보기를 꿈꾸어 왔고, 드디어 직접 보게 되면 대단히 행복하 고 힘이 넘칠 것이라고 상상했었다. 그리고, 나는 행복했지만 에너지가 없었다. 어 쩌면 그 날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런 날들의 하루였을 지도 모른다. 도 중에 기념품 가게에 들려서 친구들 기념품을 사려고 했지만 너무 힘들었다. 각 친 구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지만 포기했다. 집어치자. 선반에서 소 형 에펠탑 몇 개를 집어서 점원에게 건넸다.
82 BTM 드디어 도착하자 우리는 잔디밭 위에 한 곳을 찾아서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하 고 싶지는 않았지만 신발이 발톱을 물어뜯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신발을 벗었 다. 그리고 오래 오래 동안 잔디 위에서 쉬었다. 한 때 20여명의 고약한 한국인들 이 우리 앞에 털썩 주저앉았고, 나는 한 동안 흥미롭게 그들을 주시하였다. 그리고 나는 다시 에펠탑을 응시하였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밤에 보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들었기에 아직 탑을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시간은 빨리 지나갔고, 곧 해가 지기 시작하고 경치는 약간 어두워졌고 오렌지색으로 변했다. 우리는 일어나 서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했는데 실제 걸려야 할 시간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31 나는 거리에 다니는 차들에 또 다시 매료되었다. 거리에는 벤틀리가 많이 지나다녔 는데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페라리 F430이 한 대 있는 건물을 지났는데 역시 멈추어서 보아야 했다. 드디어 다시 샹젤리제에 들어섰을 때 비록 ¼ 마일 밖에 안 되는 거리였지만 우리는 루브르 박물관까지 버스를 타기로 했다. 발과 다리가 너무 아팠고 나에게는 여분의 버스표가 있었다. 그렇지만 문제 는 우리가 엉뚱한 버스를 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정류소에 앉아서 원하는 버스를 기다렸지만 결코 오지 않았다. 우리는 포기하고 그 다음에 온 버스에 무조건 올라 타고 버스가 다음 거리에서 방향을 꺾지 않기를 바랬다, 왜냐하면 거기서 꺾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루브르까지 바로 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많은 버스들이 거기서 꺽지 않고 지나갔는데 우리는 하필 그곳에서 꺾는 유일한 버스를 탔던 것이었다. 우리는 내려서 버스 타기를 포기하고 1/4마일을 걸어갔다. 32 우리가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박물관은, 당연히, 닫혀있었다. 나로서는 어차피 그날 박물관에 들어갈 갈계획이 아니었었기에 실제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단지 해질무렵의 루브르 박물관을 보러 갔을 뿐이고, 그 상황은 아주 완벽했다. 모든 것 이 오렌지로 물들었고, 온도는 시원해졌고, 약간의 시원한 미풍도 있었다. 우리는 분수대 옆에 앉아서 그날 하루의 마지막 한 조각을 즐겼다. 그 후 셜리는 자기 아 파트로 돌아갔고 나는 에펠탑을 향해 출발했다. 비록 무엇보다도 호텔로 돌아가 자 고 싶었지만 그날 밤 에펠탑을 올라가보기로 결심했다. 내일은 루브르 박물관을 보 기로 했고, 그 다음 날은 나머지 보고 싶은 것들을 보기로 일정이 잡혀 있었다. 마 지막 날에는 일어나서 기차를 타고 공항으로 갈 시간만 있을 뿐이었다. 33 그런데 우선 뭔가를 먹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에펠탑 근처의 모든 음식은 비싸서 일찍이 사두었던 바나나와 녹은 초콜렛을 좀 먹기로 했다. 초콜렛을 살 때마다 항 상 녹았기 때문에 일기장에는 초콜렛을 샀던 자신을 꾸짖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 다. 초콜렛 포장지를 빨아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결국 초콜렛을 버려야 했다. 남은 것은 바나나 뿐이었다. 껍질을 벗겨서 버린 다음 한 번 더 메트로를 타 고 에펠탑으로 향했다. 34 도착하여 내가 제일 먼 저 한 것은 그저 감탄에 빠져 쳐다본 것이었다. 에펠탑의 조명이 켜져 있었는데 그 장면은 내가 본 것 가운데 가장 장엄했던 것 중의 하나였 다. 그 밝은 오렌지색의 구조물은 짙푸른 하늘에 우뚯 솟아 있었다. 곧 오후 9시가 되자 조명은 반짝이기 시작했다. 오고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 인상적인 건축물 아래 서 낭만의 밤을 보내고 싶어하는 커플들에게 장미와 샴페인을 파는 사람들이 있었 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나는 저녁의 그 상인들이 낮에 물을 팔던 바로 그 사람들 이라는 것을 이내 알아채렸다. 나는 또 한 번 사람들이 생계를 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며, 단지 생존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가라는 생각에 사 로잡혔다. 낮에 한 가지 물건을 팔고 밤에는 또 다른 것을 팔아야 한다는 그런 생 각을 나는 결코 못했을 것이다.
83 BTM 동시에 나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라는 궁금증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항상 돈을 따르지 말고 성공을 향하여 노력해야 하며, 성공하면 돈 이 따른다고 들었다. 고등학교 3년을 통하여 나는 다른 학문분야에 집중하는 것보 다 나의 예술적 재능과 창조성을 발휘하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서 나는 호화주택과 호텔을 설계하며 인생을 보내는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판단했 다. 그렇지만 여기 이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그 사람들은 어떤 집에 살고 있을 까?, 어떤 이웃이 있을까?, 그들의 주거지는 안전한가? 등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질문들은 곧 폴란드, 세르비아, 불가리아, 그리스 및 페루 에서 보았던 건물들과 사람들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때 나는 건축분 야에서 내 경력을 어디에 맞출 것인지에 대한 마음의 변화를 겪었다. 쉽지는 않겠 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집이 되어주는 친환경적이며, 비싸지 않고, 복잡하지 않고, 안전한 구조물들을 설계하는 방법을 공부하기로 했다. 이런 생각에서 나를 힘들게 떼어냈을 때는 이미 캄캄한 밤이었다. 36 또한 거기에는 어느 곳이나 사람들이 북적였다. 심지어 그날 밤, 그렇게 북적이는 군중들 속에는 내가 베를린에서 만났던 한 사람이 있었다. 나는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보기 전에는 그 사실을 몰랐었다. 다행히도 에펠탑의 대기줄은 꽤 짧았다. 표 를 사는데까지 20분 밖에 걸리지 않았고,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완 벽한 다리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돈을 더 내고 엘레베이터를 타겠는가? 뿐만 아니 라, 그것은 그저 아무 계단이 아니라 에펠탑의 계단이었던 것이다. 1층에 올라가서 나는 휴식을 취했다. 플랫폼을 따라 걸으며 사진을 찍으려고 했지만 너무 어두워서 어려웠다. 2층으로 올라가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지만 역시 너무 어두웠다. 멈추어 서 한국 여자애들에게 그룹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제안하며, 그 대신 나의 사진을 찍 어 달라고 부탁했다. 사진은 철제 난간 배경과 내 얼굴만 나왔다. 37 내가 구입한 표는 맨 위까지 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곳까지 가서 최상부까 지 가지 않는다는 것은 낭비 같았다. 그렇지만 최상부까지는 엘레베이터를 타야만 갈 수 있고, 모든 사람들이 파리의 야경을 보겠다는 똑같은 생각으로 왔기 때문에 엘레베이터를 타기 위한 줄은 꽤 길었다. 두 시간 넘게 기다려 엘레베이터를 타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경치가 충분한 가치가 있었기에 불평할 것이 못되었다. 드디 어 맨 위로 올라갔을 때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은 마치 아이들 놀이 세트처럼 보였 다. 비록 어두워서 많이 볼 수는 없었지만 모든 것이 아주 작게 보였다. 38 또한 모두들 어깨와 어깨를 마주대고 서있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바람이 불었고 약 간 추웠다. 중앙에는 토마스 에디슨이 에펠탑의 맨 위에 있는 구스타브 에펠의 아 파트에서 그를 방문했던 실제 크기의 묘사가 마네킹과 함께 있었다. 세상의 꼭대기 에 있는 기분을 좀 더 즐길 수 있도록 남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내려가야 했 다. 시간은 11:45이었고 서두르지 않으면 메트로 운행이 멈출 것이었다. 하강이 30 분 걸릴것이고 메트로 역까지 또 20분이 걸릴 것으로 짐작했다. 39 도착해서 보니 나의 짐작이 거의 정확하게 맞았다. 나중에 메트로가 새벽 1:15까지 운행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늦는 것보다 일찍 가는 것이 더 좋았다. 메트로에 탔을 때 졸지 않기 위하여 애를 써야 했다. 20분 후 나의 역에 도착하여 내렸다. 또 한 번 파리의 어두운 거리를 지났고, 거리는 흡연자와 음주자들고 가득찼고, 다시 당 당하고 확고하게 보이도록 노력했다. 호텔에 도착하자 들어가서, 비틀거리며 계단 을 올라, 침대 위로 몸을 날렸다. 양치질을 하려고 다시 일어났지만 곧바로 침대로 다시 들어가 바로 잠들었다.
84 BTM 다음 날 아침 9시에 일어나 신속하게 짐쌕을 챙기고, 이빨을 닦고, 27일 이라고 표시된 세트의 옷을 입고, 더러운 옷을 세탁용 백에 쳐넣은 다음 호텔을 떠났다. 호텔을 나서기 직전 플로렌스에서 만났던 3명의 대학생에게 잊지 않고 메시지를 보 내 그날 만나기로 한 계획을 취소하였다. 그들이 지정한 목적지가 너무 멀었기 때 문이었다. 내가 메트로를 타고 그곳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라고 그 전 날 호텔의 수위가 말해주었었다. 41 그리고 밖으로 나가 다시 그 식품점에 들려 하루 동안 먹을 간식을 샀다. 또한 길 을 건너가 아침으로 샌드위치를 샀다. 마치 내일은 없다는 듯이 샌드위치를 우적우 적 먹었다. 배가 많이 고팠는데 그 전 날 먹은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지도 모르고 그저 메트로를 타고 있으며, 어느 시점에서는 1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샌드위치를 게걸스럽게 먹고, 위를 보고 나의 타이밍이 완벽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그때 메트로가 샤들레 역에 정 차하였다. 내려서 안내 내용대로 1호선을 탔다. 그것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 지는 역시 전혀 몰랐다. 위에 있는 노선도를 쳐다보고 팔레 루아얄 루브르 박물관 (Palais Royal Musée du Louvre)라고 표시된 정거장을 찾았다. 그곳이 내가 내릴 곳이었다. 42 그 정거장은 내 여행중 가장 대단한 발견을 한 곳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말하기를 루브르 박물관의 메인 입구로 들어가지 말고 기다리는 줄이 훨씬 짧은 대 체 입구를 찾으라고 말해줬다. 나는 사람들이 아치 옆의 입구 라고 하는 것이 무슨 말인지 실제로 알 수가 없어서 아이엠 페이 (I.M. Pei) 피라미드를 통하여 들 어가기로 했다. 내가 찾은 입구는 곧바로 루르르 박물관의 지하로 들어갔다. 내가 기다린 전체 시간은 1분이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표를 구입 하는 것뿐이었고,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구입 이라는 말에 따옴표를 붙인 이유는 실제 로 돈을 내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18세 미만의 사람은 입장료가 무료 였다. 그때까지는 아주 행복한 아침이었고, 내가 본 첫번째 복도로 갔다. 데논 (Denon)이었다. 5유로를 주고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서 그렇게 루브르 관광을 하였 다. 43 루브르 박물관을 하루에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틀만에 보는 것도 불가능했다. 1 주일 만에 보는 것은? 그것도 불가능 하다. 솔직히 그 박물관을 공평하게 보려면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 지 확실히 모른다. 그날 거기서 7시간을 보냈는데 내가 본 것이 전체의 작은 일부였다라고 해도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본 것은 나폴레 옹 3세의 거처; 고대 이집트의 예술 작품;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플랑드, 네덜 란드, 벨기에, 러시아, 스위스 및 스칸디나비아 등의 그림들; 그리스, 이집트, 에 투리아 및 로마의 조각상들이었다. 이러한 것들을 본다는 것은 그 가치를 모르면 의미가 별로 없다. 오디오 가이드가 있었음에도 내가 본 대부분 것들의 진정한 의 미를 알 지 못하고 나왔다. 44 물론 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미켈란젤로의 다잉 슬레이브; 라메스 2 세의 거대한 조각상;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더 레이스메이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더 터키쉬 배스; 사모트라케의 윙드 빅토리; 및 파올로 베로네세의 웨딩 피스트 에 가나 등과 같은 유명한 작품들도 보았다. 이런 작품들에 대하여 내가 배 운 것에 정말로 감명받았다. 예를 들면, 모나리자는 그 미소와 감상자를 따르는 두 눈 등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렇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모나리자가 왜 그렇게 뛰어난 지를 모른다. 내가 그것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 지 조차 몰랐다. 그냥 돌아다니다가 사람들로 가득찬 방을 마추쳤다. 멀리 보이는 작 은 점을 보았지만 그것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85 BTM 그렇지만 내가 닌텐도 3DS의 오디오 안내 화면을 보았을 때 나는 그곳이 바로 모나 리자가 있는 방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자리에 멈추어 지나온 발걸음을 되짚어 가 득찬 사람들 속을 누비며 나아가 모나리자 앞으로 갔다 최대한 가까이 갈 수 있 을 만큼. 그곳에는 난간이 있어 약 10 피트 정도에 머물러야 했다. 또한 그 작품은 방탄 차폐물로 보호되고 있었다. 그것은 작았다. 놀랍게도 작았다. 나는 놀랐다. 정말!? 이 작은 유화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란 말인가?! 바로 맞은 편에는 더 웨딩 피스트가 있었는데 내가 본 것 중 가장 큰 그림이었다; 그 콩알만 한 사각 의 그림보다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 46 다섯 시간이 지나자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여 자리를 떠났다. 박물관 뒷편 근처의 계단에 털썩 주저 앉아서 가지고 간 간식을 먹었다. 그리고 산책을 하다가 비가 오 기 시작하여 다시 돌아왔다. 돌아와서 다시 메트로의 입구를 찾으려고 했지만 실패 하였다. 그렇지만 기다리는 줄이 없는 또 하나의 인기 없는 입구를 발견했다. 짐쌕 을 검색대의 벨트에 올려놓고 다시 피라미드 바로 아래의 루브르 박물관으로 들어 갔다. 많은 것들 가운데 더 터키쉬 배스와 더 레이스 메이커 및 고대 이집트의 전 시물과 같이 상층에 있는 전시물들을 구경하였다. 두 시간을 더 보고 난 다음 다시 지쳤고, 하루를 마무리 하기로 했다. 오후 6시였고 하늘에는 구름이 있었다. 그 시 점에 나는 그냥 호텔로 가고만 싶었다. 역으로 가는 계단을 뛰어내려가 메트로에 올라탔다. 47 메트로에서 내려 작은 동네 식당에 들러 배를 채웠다. 배가 고파 혼났다! 구운닭 피타 빵을 게걸스럽게 먹고 여러 차례 케찹을 떠다가 감자튀김을 하나도 남기지 않 고 다 먹어치웠다. 내가 더 달라고 할 때마다 웨이터는 나를 이상하게 보았지만 나 는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감자튀김을 하나 하나 케찹에 담구어 먹기를 좋아하는데 쿼터 크기의 케찹 하나로는 충분하지가 않았다. 배를 채우고 난 다음 직원에게 계 산을 하고 감사를 표했다. 호텔에 돌아왔을 때는 거의 7시가 되었다. 침대에서 페 이스북으로 채팅을 하며 뒹글거리다 샤워를 했다. 그 후 곧바로 침대로 갔다 아 마도 고등학교 이후로 가장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시간일 것이다. 48 제대로 열두 시간의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 9시에 깨었다. 한결 좋아진 기분으로 침대에서 튀어나와 양치를 하고, 짐쌕을 챙기고, 다시 거리로 나갔다. 피자 가게에 들러서 아침을 먹었다. 배가 정말로 고파서 쓰러지기 전에 무엇을 좀 먹어야 겠다 고 느꼈다. 14인치 치즈 피자를 시켜서 다 먹었다. 피자값 10유로를 내고 메트로에 갔다. 바스티유 (Bastille) 감옥을 가서 보았는데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인상적이 지 않았다. 실망감을 느끼면서 루브르 박물관으로 다시 가기 위하여 Rue de Rivoli 로 가는 길을 찾고자 하였다. 불행히도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되어 길을 잃고 말았 다. 정말 한참 동안 단 하나의 거리 표지판도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표지판을 보 았을 때는 내가 엉뚱한 방향으로 적어도 ¾ 마일은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아 서서 다른 거리를 시도하였다. 그날은 정말로 운이 안 좋았던지 또 다시 엉뚱한 길 로 접어들었다. 다시 시도하여 원하던 길로 접어들었다 세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는 법! 49 햇볕을 즐기며 거리를 걷다가 문득 몇 몇 사람들에게 기념품을 사오라는 엄마의 당 부가 기억났다. 제 때에 기억했다는 것에 안도하는 한편 사람들이 좋아할 것을 결 정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뒤돌아 조금 전에 보았던 현금인출기를 향하여 갔 다. 현금을 좀 인출하여 기념품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실제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지 않았고, 곧 임무를 완성하고 얼굴엔 미소를 머금고 거리로 나왔다. 하루가 저물면 해는 질 것이었지만 나는 어떤 면에서는 내 여행의 마지막 임무를 해낸 것 이었다.
86 BTM 특별한 이유도 없이 노트르담을 향하여 똑바로 걸었다. 아이파드를 보니 3시쯤 되 었다. 때마침 많은 것을 하고 싶지 않아서 노트르담의 내부를 보기 위한 줄에 섰 다. 내가 줄을 서고 얼마 후 한 미국 여자가 바로 내 앞에 들어섰다. 나는 그녀에 게 점잖게 뭐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녀는, 네가 오기 전에 우리가 여기 있었어 라고 시비조로 말하며 그녀 옆의 여자를 지목하였다. 나는 묻는 듯이 그녀를 보았 다. 그녀가 웃기려고 하는 것인지, 무례를 범하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독하게 멍청한 짓을 하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나는, 아닙니다. 미안하지만 당신은 실수하고 있는 것 같군요 라는 말을 천천히 해주었다. 51 비록 내 앞에 두 명이 더 들어서는 것이 큰 차이는 아니었을 것이지만 내가 정당하 게 얻은 자리를 그렇게 쉽게 포기할 의사가 없었다. 그녀는 입 밖으로 침을 튀기면 서 큰 소리로 다투었다. 그녀는 나보다 먼저 그곳에 왔다고 되풀이 했다. 그녀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 갑자기 옷을 갈아입 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다른 한 여자가 자기 친구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실제로 내 가 자기들 앞에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물러섰지만 놀라움과 분노를 동시에 전해주는 듯이 뒤틀어진 얼굴을 계속하고 있었다. 52 노트르담의 내부를 돌아다닌 다음 밖으로 나가 맨 위로 올라가기 위한 줄에 섰다. 시간도 있고 몇 유로 남은 것이 있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진짜 우연하게도 나는 두 명의 한국 남자들 뒤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나를 소개해야 될 지 확실하지 않아 서 잠시 기다리기로 하였다. 아이파드를 들으며 스스로 즐기고 있었다. 드디어 들 어가게 되자 우리는 아주 좁은 나선형 계단을 타고 층계참까지 올라가라는 지시를 들었다. 내 앞에 있던 남자들은 영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였고 그와 같은 지시에 어 리둥절 하였다. 나는 5.5 유로를 지급한 다음 그들을 도울 수 있을 지 알아보았고 나머지 동안 함께 올라갔다. 53 수백개는 되어 보이는 계단을 오른 다음 우리는 노트르담의 옥상에 올랐다. 대단히 아름다웠고 첫번째 날 갈레리아 라파이에트 (Galleria Lafayette) 옥상에 올랐었던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거기서 나는 내가 묵는 호텔의 바로 옆에 있는 Sacre Coeur 이 보였고, 물론 파리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것 같은 에펠탑도 보였다. 무엇보다 도 집에 가고 싶었지만 마지막일 것으로 보이는 유럽의 한 도시를 내다보며 다소 우울함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정말로 파리를 좋아한다는 것도 발견했다. 정말 아 름다고 우아했으며 미국에서는 그와 비슷한 것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가는 길이 사람들로 꽉 채워져 걸어다니기도 힘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는 16GB의 메모리 카드에 최대한 많은 추억과 이미지를 담어내기 위하여 카메라 로 사진을 찍어댔다. 괴물 석상 사진도 찍었는데 그것은 좀 익살스러운 멋이 있다. 드디어 나는 종탑까지 올라갔고 그것은 내가 유럽의 유명 건축물 상부에 오른 마지 막이 되었다. 54 그날 밤 6시경 호텔로 돌아왔다. 기념품과 선물을 모두 포장한 다음 조심스럽게 배 낭에 넣으면서 모든 사물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탁물도 챙겨서 집어넣었다. 모든게 정리되어 다음 날 아침에는 지금 입고 있던 옷을 집어넣기만 하면 될 것이 다. 그리고 난 다음 페이스북에 접속하여 플로렌스에서 만났던 한국인 친구들의 메 시지를 발견했다. 그들은 만나기를 원했고, 그래서 나는 배낭을 풀고 짐쌕을 꺼냈 다. 그렇지만 곧 짐쌕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지 메트로를 타기 위하여 아이파드가 필요했고, 차비로 약간의 돈이 필요했으며, 혹시 모를 음식과 음료 정 도가 필요했다. 셔츠 아래 돈가방을 차고, 아이파드를 테니스 반바지에 집어넣고, 한 귀에 이어폰을 끼고 리셉션으로 내려갔다. 내가 갈 곳까지 얼마나 걸리는 지 물 어보았고, 한 시간 걸린다는 말을 들었다. 메트로를 타고 한 시간이다! 시간은 거 의 8시가 되어서 9시까지 친구들이 있는 곳까지 가기 위하여 서둘렀다. 또한 내가 그때까지 사용했던 것보다 더 가까운 곳에 메트로 역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87 BTM 더 가까운 곳에 있는 역은 훨씬 더 붐볐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표를 구입하느냐고 몇 분 기다리기는 했지만 들뜬 기분은 계속 움직이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때 좋은 기분이 나를 배신하였다. 나는 테니스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항상 손을 주머니 에 넣어 아이파드를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아이파드를 왼 쪽 주머니에 넣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표를 산 다음 승강장을 향해 걸어갔다. 10 초도 안 되어 갑자기 음악이 끊어지고, 어떤 힘이 다리를 치고 난 다음 바지가 살 짝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머리를 왼쪽으로 홱 돌렸고 어떤 사람이 동시에 나의 어 깨를 툭 쳤다. 눈을 동그랗게 뜬 그 사람은 내 앞에 있는 군중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그랬어! 저 사람이 그랬어! 가봐! 라고 말했다. 56 그 아이파드는 사실 저금을 하여 부모님께 알리지도 않고 샀던 것이다. 그것은 내 물건들 가운데 가장 비싼 것 중의 하나였고, 성취감과 지성 및 반항의 상징이었다. 제대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앞에 있는 사람에게 달려가 내 아이파드를 내놓으 라고 했다. 그는 내 아이파드를 가져가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의 불룩한 주머니 를 지목하며 그가 가져갔다고 우겼다. 그 남자는 지목하고 있는 내 손을 쳐냈다. 바로 그때, 그 생각이 들었다. 내 어깨를 툭 쳤던 그 녀석이 바로 도둑이었던 것이 다. 그리고 그는 이미 멀리 가버렸다. 나는 메트로로 돌아가서 타는 수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뒤에 있는 대단히 화가 났을 그 남자는 의식하지도 못하고 터 덜 터덜 걸었다. 어깨를 치며 지나가는 사람들에 의하여 밀리고 몸이 돌려지기도 하였다. 다시 몸을 앞으로 돌려 걷기 시작했다. 57 나는 충격 속에 메트로에 앉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똑바로 앞을 보았다. 진정 하고 생각을 제대로 하고자 했다. 그 순간 나의 1순위는 포트 마이요 (Porte Maillot) 역으로 가서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이미 그랬던 것보다 더 허술해지 면 안 되었기 때문에 고개를 똑바로 드는 것은 또 하나의 중요한 일이었다. 58 포트 마이요에 도착하자 친구들을 만나기 위하여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우리는 6 번 게이트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단지 1번, 2번, 3번 게이트만 보였다. 우리는 서로 만나는데 문제가 있으면 포기하지 않고 9:30까지 기다리기로 하였다. 그들이 보이 지 않자 그들의 렌트 카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주차장으로 갔다. 그들이 차를 반 납하고 메트로를 타고 역에 왔다는 것을 몰랐었다. 나는 실망하기 시작했다. 그들 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결국 다시 돌아가 밖으로 나갔다. 한국말을 하는 두 명의 여자가 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들에게 달려가서 6번 게이트가 어디에 있는 지 물었다. 그들은 몰랐다. 그들에게 감사하다고 하고 달려갔다. 그리고 식당 근처 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 안전요원을 발견했다. 그에게 다가가서 내가 전화를 좀 사 용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 미친 사람인 듯이 나를 보았고, 아마 나는 그 순간에 미쳤던 것 같았다. 나는 아이파드를 도난 당했기 때문에 역내에서 와이 파이를 사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소를 짓고, 나를 코너의 의자에 앉히 고, 그의 전화를 건네주었다. 59 친구들이 메시지를 남겼을 것으로 생각하며 페이스북에 접속하였다. 메시지는 없었 다. 그에게 감사하다고 하고 일어섰다. 그는 나를 세우고는, 잠깐, 정지. 10유로 야 라고 했다. 깜짝 놀라서 나는 뭐라고요? 라고 불쑥 내뱉었다. 그는 그냥 웃으며, 농담이야 라고 했다. 나는 웃고 그에게 감사했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 에 다시 역으로 돌아왔다.
88 BTM 드디어 9:30이 되었고 지났다. 친구들은 만나지 못했고 나는 메트로로 가서 호텔로 돌아갔다. 이 날의 마지막 몇 시간은 재난이었다. 도저히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었 다. 소매치기에 화가 났고, 친구들에게 화가 났다. 또 배도 고팠다. 내가 내릴 정 거장에 도착하자마자 나에게 소매치기를 했을 그 사람을 찾아보았다. 지중해 인종 으로 보이는 20대의 줄무늬 폴로 셔츠를 입고 있는 남자. 운이 따르지 않았다. 그 래서 걸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아무 이유 없이 다른 길을 타기로 했다. 이유 는 전혀 없었다. 아주 캄캄했고 가로등도 별로 없었다. 결국 길을 잃게 되었는데 이상한 것은 두렵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우연히 빵집을 만났고 들어가서 키시를 조금 샀다. 비록 몇 일 전에 친구 엄마가 해준 것의 맛에 근처도 못갔지만 속을 채 우기 위한 것은 되었다. 마음 속에 어떤 목적지도 없이 다시 배회를 시작했다. 드 디어 루 애버뉴(Rue Avenue)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더 할 일이 없어서 호텔로 향했 다. 61 방에 들어가서 모든 것을 침대에 던져버리고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당했던 모든 것에 대하여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나자 모든 분노가 사라졌다. 이상하게도 왜 그 런지는 모르지만 기분이 좋았다. 좀 더 생동감을 느꼈다. 자신에게 이유를 물었지 만 답이 없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샤워장으로 성큼 들어섰을 때 그 답이 떠올 랐다. 내 아이파드를 훔친 그 녀석을 패주고 싶었던 만큼이나 그에게 고마웠다. 그 렇게 도난 당한 것에 행복하지 않았지만 그 절도는 범죄의 희생자가 된다는 끊임 없는 두려움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 살고 있는 내가 얼마나 행운인가를 깨 닫게 해주었다. 62 내가 사는 곳에 도둑이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범죄는 어디서나 일어난 다 는 것을 나도 안다. 그렇지만 나는 누구도 소매치기에 당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 했다. 내가 알고 있거나 만나는 대부분의 성인들은 많은 학생들이 그렇듯이 직업을 갖고 있다. 아마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이 전혀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다고 느꼈다: 나는 많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특혜가 있는 세계에 살 고 있다. 새로운 아이파드를 위하여 300 달러를 모으는 것은 쉽지 않았고 300 달러 라는 돈은 나에게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누 구도 먹고 살기 위하여 그런 물건을 훔쳐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모든 생각을 마치고 샤워실에서 나와 나머지 세탁물을 챙기고 마지막으로 배낭을 챙기 고, 잠들었다.
89 BTM Book 13, Unit 22 - 돌아오는 길 2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깨어났다. 비행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 다. 잠들기 전에 샤워를 했음에도 꽤 오래동안 여행을 하게 될 것이므로 샤워를 또 한 번 했다. 용모를 깔끔히 단정한 다음 마지막으로 계단을 타고 아래로 가서 체크 아웃을 했다. 메트로로 걸어가서 어제 밤 그 사람을 한 번 더 찾아보았지만 그는 없었다. 나의 귀중품이 느슨하거나 눈에 띄지 않도록 확실히 하고 승강장으로 갔 다. 메트로는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특히 주변을 살피는 것을 빼곤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위로해주거나 바쁘게 해줄 음악이 없었지만 동시에 그런 상황도 좋았다. 샤틀레(Chatelet)에서 내려 샤를르 드 골(Charles de Gaulle) 공항으로 가 는 기차로 바꾸어 탔다. 기차는 메트로보다도 더 시간이 길었다. 3 공항에 도착하자 어디로 가야할 지 몰랐다. 어디도 비행기가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 건물은 비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 지는 않았다. 내가 이곳에 언제 다시 올까 생각하며 주변을 돌았다. 드디어 터미 널 B 라고 쓰여있는 아래로 표시된 화살표 싸인을 보았다. 내가 갈 터미널이었다. 계단을 달려 내려갔지만 몇 초 사이로 전차를 놓쳤다. 두번째 전차가 오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보딩 패스를 프린트하고 배낭을 수속하 기 까지 꽤 많은 시간을 잃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은 잘 한 일이었다. 캐나다 항 공의 티켓 프린트 기계는 대단히 속도가 느렸고, 다른 승객들도 아주 많았다. 기다 리는 동안 샌달을 신고 서있는 여자애를 보고, 샌달을 신어도 되는데 나는 왜 운 동화를 신고 있지?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특별히 할 일도 없어서 배낭을 내려놓 고 샌달을 끄집어냈다. 운동화를 포함하여 모든 것을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좀 더 기다렸다. 4 배낭 수속이 되고 탑승권을 받자 게이트로 향했다. 점심을 사먹었는데 공항의 표준 음식 규정에 따라 대단히 비쌌다. 커피 요구르트를 하나 샀는데 형편 없었다. 다소 실망을 안고 43번 게이트를 찾아 거대한 공항을 거쳐 나갔다. 그곳에 도착하자 대 기실은 완전히 만원이고 탑승하기 전에 앉아 있을 곳이 없었다. 바닥에 앉아서 아 이패드를 꺼내 페이스북을 확인했다. 전 날 밤에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이 온라인에 있어서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내가 그들을 기다렸던 것만큼 나를 기다렸다고 했 다. 그제서야 나는 그들이 6번 게이트가 아닌 6번 출구에서 기다렸다는 것을 알았 다. 우리는 다음 여름에 한국에서 만나기로 계획을 세웠다. 5 얼마 안 있어 나는 비행기에 탔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앉았다. 사실 나는 아이 패드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음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비행기가 이 륙을 시작하자 그 생각은 희미해졌다. 갑작스러운 깨달음이 떠올랐다: 내가 해냈 다! 절대로 해낼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을 해냈다. 여행이 시작되기 몇 주 전 나는 엄마에게 여행을 한 달로 줄여달라고 했었다. 나는 또한 한 때 해외에서 집으로 전 화하여 집에 일찍 가도 좋을 지 물어보았었다. 여러 번 도저히 해낼 수 없다고 느 꼈었다. 그렇지만 그 모든 몸부림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해냈고 신나 는 모험을 했다. 6 비록 자세한 것들은 꿈에 묻히겠지만 결코 잊혀지지 않을 이 여행에서 간직해야 할 것들이 정말 많았다. 비행기가 아직도 상승하고 있는 그 때 나는 내가 느낀 감정을 소중히 여기며 앉아 있었다. 아홉개 국가 18개 도시의 여행을 해냈다는 것은 오늘 날까지 내 인생 최고의 자랑스런 순간이었다. 비록 여행의 관점이 최대한 많은 곳 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는 유럽 대륙을 그렇게 훑었다는 것을 후회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여행의 모든 것이 다양한 문화를 보고 경험하기 위한 것만 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여행은 또한 자신에 대하여 배우는 것이며, 좌 절과 어려움 및 기쁨을 대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90 BTM 항상 활동하는 것은 나의 소유물 뿐만 아니라 시간 관리, 태도 및 불굴의 강인함을 포함한 내 인생의 모든 순간에 책임을 다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유럽은 내가 그 밖에 어느 곳에서도 배울 수 없는 교훈을 가르쳐 주었다. 훗날 다시 돌아가 탐험을 더 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나의 경험에 만족했다. 길었던 7 주를 마치고 집으로 가게 되어 행복했다. 8 여기서 끝을 내도 좋을 것이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말 진정한 해피엔딩까지는 아직 몇 시간이 더 남았다. 파리에서 몬트리올까지의 일곱시간 비행은 놀랍게 지나 갔지만 그것은 여정의 반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 몬트리올에서 시카고로 가야 했 고, 시카고에서 콜로라도 덴버까지 가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북아메리카에 돌아온 것으로 기뻤다. 또한 화장실을 들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때 부모님께 전화하여 거 의 집에 다 왔다고 알려드렸다! 9 이제 세관을 통과할 때였다. 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줄 방향으로 안내를 받았 다. 조금 혼동되었지만 시간이 말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랜 비행으로 다소 집 중이 안 되었고 멍하였으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신경을 쓰지 않았다. 10 바로 그때 누군가, 어디서 오셨습니까? 라고 묻는 것을 들었다. 누구도 나에게 말을 붙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돌아보았다. 그렇지만 내가 뒤돌아 봤을 때 한 여 성이 나를 보고 있었다. 다소 혼동이 되어, 저에게 물어보셨나요? 라고 말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부모님은 한국에서 오셨지만 나는 미국에서 태어났 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녀와 가족은 필리핀에서 왔으며 로스엔젤레스 근처에 살고 있다고 했다. 곧 그녀의 가족과 나는 각자의 여행으로 얻은 경험을 나누었다. 여행 의 기복, 소매치기 사고, 우스웠던 이야기들, 그리고 흥미로운 일들 등. 그녀의 딸 이 가을에 대학에 들어가고 나는 몇 주 후 대학에 지원을 시작해야 하였기에 대학 에 대한 이야기도 하였다. 우리는 웃으며 좋은 시간을 갖었고, 나는 긴장을 풀었 다. 그때는 모든 것이 아주 간단해보였다. 대학 및 대학 지원에 대한 이야기조차도 평소와는 달리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다. 다시 영어로 말을 하게 되어 좋았고 또한 좀 더 익숙한 사람들 주변에 있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11 알고보니 우리는 각자의 짐이 빠지지 않고 올바른 비행기로 옮겨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플라스틱 통에 담긴 짐의 사진을 볼 수 있는 줄에 서있었던 것이 었다. 다 마치고 우리는 게이트로 향했다. 나의 비행기는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 고, 그 가족의 비행기는 한 시간 채 못되게 남았다. 우리의 게이트가 서로 나란이 있었기데 우리는 계속 대화를 했다. 우리는 여행 중에 찍은 사진들을 서로 보여주 며 여행 중에 있었던 실망스러웠던 이야기들을 했다. 한 때 그 엄마는 나에게 치즈 버거를 사주었는데 그녀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불과 몇 분 전에 만났 고 어떤 것이라도 받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되어 처음에는 거절하였지만 그 녀가 강요하여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받았다. 왜냐하면, 짐작되겠지만, 배가 고팠 기 때문이었다. 12 시간은 지났지만 우리 둘 다의 비행기가 연착되어 같이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그 가족의 비행기가 탑승을 시작했고 나는 그들에게 안전한 여행을 기원했다. 나의 연 결편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시카고에 도착하면 나는 다음 게이트까지 전력으로 달 려야 할 것이다. 중간 기착 시간은 이미 짧은데 연착으로 그 시간은 더 짧아질 것 이었다. 드디어 비행기가 탑승을 하였다. 신속하게 자리를 잡고 시카고까지 4시간 의 비행 시간 동안 잠들었다. 시카고에 도착하자 공항을 가로질러 다음 게이트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그곳까지 30분 안에 가야 했다. 겨우 제시간에 도착하였고 비행 기는 게이트에 있었다. 그렇지만 그 비행기는 기계적 문제가 있어서 모든 승객들은 고객 서비스로 돌아가서 스케쥴을 다시 잡아야 했다. 처음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가 고객 서비스를 찾았다. 덴버로 출발하기로 되어 있는 실망한 사람들의 긴 줄로 쉽 게 찾을 수 있었다.
91 BTM 내 차례가 될 때까지 한 시간 넘게 줄에 서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모두 그 상황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 날 밤 덴버로 가는 비행 기에 더 이상 빈자리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을 호텔로 보낸다는 말이 나왔다. 우리 모두는 다음 날 덴버에 도착해야만 했기 때문에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나는 에스테 스 파크에 1박 트레이닝 캠프에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개학 첫날 신입생들을 돕기 로 한 3학년 및 4학년 그룹에게는 필수로 요구되는 것이었다. 내가 그 캠프에 가지 못하면 나는 그 그룹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것이 세상의 끝은 아닐 것이다. 그렇 지만 나는 즐거운 시간을 갖으며 다른 사람들 돕는다는 것이 아주 좋은 경험일 것 같아서 하고 싶었던 것이다. 14 내가 카운터에 갔을 때 여직원은 이미 다른 많은 실망한 승객들을 상대했던터라 나 에게는 그날 밤에 나를 덴버까지 가게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고 딱 잘라 말했 다. 좌절에 빠진 나는, 경고도 없이 비행기를 취소하면 백업 비행기가 있어야 되 는 것 아닌가요? 라고 물었다. 물론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어떤 항공사 도 백업 비행기는 없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장시간 비행 기를 탔고 내 침대에서 떨어져 다른 곳에서 또 하루 밤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내 가 같은 질문을 몇 번 반복하였고, 그 여자는 나에게 보스와 이야기를 해보겠느냐 고 했다.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나는 옆으로 빠졌고 한 남자가 왔다. 그는 무엇이 문제냐고 물었고 내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 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지만 나에게 밤 열한시 비행기의 대기자 명단 에 올려주겠다고 제안했다. 호텔에서 하루 밤을 지내는 것 외에는 그것이 유일한 선택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대기자 명단에 오르기로 동의했다. 7번째 였다. 다시 게이트로 가서 좀 더 기다렸다. 15 나이트 크루 (Knight Crew) 라고 불리는 학교의 리더쉽 프로그램 담당자에게 전 화를 하여 내 상황을 설명하고 만약 내가 트레이닝 캠프에 참가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 지 물어보았다. 답은 간단했다: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6시에 덴버로 가는 비행기가 있는데 내가 서두르면 캠프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정말로 11시 비행기에 탈 수 있기를 바랬다. 그날 밤을 시 카고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잠시 후 비행기에 탑승이 시작되었다. 물론 표를 갖 고 있는 승객이 먼서 탑승했다. 그리고 그들은 대기자 명단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 했다. 이름이 불리는 사람들이 한명씩 비행기로 걸어들어갔다. 나는 그곳에 앉아서 모든 힘을 다하여 내 이름이 불리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불렸다. 안도의 한 숨을 내쉬고 탑승했다. 비록 내 뒤의 사람들에 대하여 미안하였 지만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었다. 드디어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자리에 앉아 부모 님께 전화하여 새벽 1시에 도착할 것이라고 알려드렸다. 그리고 전화를 끄고 이륙 을 기다렸다.
92 BTM Book 13, Unit 23 - 즐거운 우리 집 2 비행기서 내리자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님이 터미널 밖에서 기다리고 계 실 것이었다. 나는 DIA 밖으로 찾아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수하물 찾는 곳으로 가 서 가방을 찾아 밖으로 나갔다. 부모님이 안 보여서 전화를 걸었다. 부모님은 몇 분 거리에 계셨다. 5분 후 엄마의 흰색 스바루 임프레자가 와서 멈추었다. 운전석 에는 엄마가, 승객석에는 아빠가 계셨다. 여동생은 아직 과테말라에 있었다. 어쨌 든 나는 부모님을 뵙게 되어 너무 즐거웠다. 농담이다, 그렇지만 정말 좋았다. 여 행을 가기 전에 나는 부모님과 관계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이 세상에서 어떤 다른 부모도 우리 부모님처럼 자식을 위해 그렇 게 희생하거나 자식을 그렇게 많이 믿지는 못할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3 배낭을 트렁크에 넣고 엄마와 포옹을 하고 아빠와 악수를 하고, 차에 탔다. 이번에 는 아빠가 뒷자석에 나와 함께 앉으셨다. 차에 타자 옆에 닭도리탕이 보였다. 나는 시카고에서 이륙하기 직전부터 비행기에서 진한 닭고기 스튜가 먹고 싶다고 엄마에 게 말했다. 바로 그때 내가 부모님께 느낀 사랑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여행에 서 친구들은 오고 갈 수 있으며, 친구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정말 힘든 일을 돕거나 도울려고 하거나 또는 나를 위하여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부모는 다르다, 아니면 적어도 나의 부모님은 다르다. 내가 새벽 한 시에 도착하는데도 엄 마는 마다하지 않으시고 귀가 환영 음식을 준비하셨고, 아빠는 불과 몇 시간 후에 는 일터로 가셔야 하는데도 엄마와 함께 DIA까지 차를 몰고 오셨다. 다 먹지는 못 했지만 내가 여름 내내 먹었던 것 중 최고였다. 4 집에 오는 길에 부모님께 나의 여행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내가 본것, 내가 먹은 음식, 내가 만난 사람들, 내가 겪은 경험들. 나는 평소 공항에서 집까지 한 시간 동안 차타는 것을 싫어했는데 그날 밤은 시간이 더 걸렸더라도 불평하지 않았을 것 이다. 여행의 모든 순간을 말해드리고 싶었다. 특히 엄나는 여행을 좋아하시기 때 문에 내가 본 모든 것에 대하여 말해드리고 싶었다. 엄마는 유럽을 못 보셨기에 나 는 그것을 최대한 자세하게 묘사하여 엄마가 마음 속으로 그것을 정확히 그려보실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내가 약속했듯이 부모님을 유럽에 모시고 갈 때는 부모님 이 직접 보실 수 있을 것이다: 호텔의 옥상에서 보는 웅장한 파르테논 신전; 솟아 오르는 콜로세움, 반짝이는 에펠탑; 그리고 그 밖에 유럽의 모든 아름다움을 직접 보실 수 있을 것이다. 5 드디어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현관의 계단을 마치 기적을 기다리는 계단인 듯 올 라갔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내가 기억하는 것은, 와우, 우리 집이다.. 라고 나 에게 한 말뿐이다. 그 순간을 여러 주 동안 끊임 없이 꿈꾸었었고, 내가 드디어 집 에 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우리는 모두 곧 잠자리에 들었다. 몇 시간 후에 일어나 서둘러 일과를 시작해야 했기에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시차로 인 하여 부모님보다 좀 더 오래 있다가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힘들 것을 알면서 똑 딱거리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40시간 후면 캠프는 끝날 것이고 부족한 잠 을 살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잠에 빠졌다.
93 BTM 일곱시 알람은 2초만에 울린 듯하고 나는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가방 (이번에는 학교 갈 때 쓰는 보통 가방?)과 침낭을 챙기어 문밖으로 나갔다. 엄마가 바로 따라나오셔서 학교까지 태워다 주셨다. 학교에서 학급 친구들을 여럿 만났고 서로 따뜻하게 인사했다. 돌아와서 모두들 다시 만나니 좋았다. 우리는 모두 학교 버스를 타고 에스테스 파크로 향했다. 그렇지만 나는 신이 났음에도 곧 잠에 떨어 졌다. 어쩔 수가 없었다! 시차가 덮치기 시작했고 그것은 즐겁지 않았다. 정말 솔 직히 트레이닝 캠프가 즐겁기는 하였지만 나는 캠프 내내 잠을 독촉하는 것과의 싸 움을 해야 했다. 젠장, 나는 심지어 머쉬멜로 굽기를 할때조차 잠에서 깨어나지 못 했다. 감사하게도 미팅은 빨리 지나갔고 우리는 곧 버스에 올라타고 볼더로 향했 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침대로 파고들어 14시간 동안 내리잤다. 7 여름의 마지막 2 주가 훌쩍 지나갔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2주였을 것 이다. 모든 것은 아주 긍정적이었고 감사할 것이 아주 많았다. 여행에서 돌아오며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세계의 많은 다른 사회들보다 훨씬 더 유복하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달았다. 비록 나는 돈이 문제가 되지 않는 상류층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 만 나에게는 머리를 덮어주는 지붕이 있고, 들어가서 잘 수 있는 침대가 있고, 식 탁에는 음식이 있고,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시고, 그리고 심지어 내 차도 있다. 나 는 정말로 미니밴 운전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피도-밴 이라고 이름을 지었 다. 그렇지만 솔직히 나는 아직도 그 밴을 운전하기 싫어한다. 그럼에도 나는 불평 할 것이 하나도 없다.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힘든 것은 학교 공부인데, 전 세계의 다른 사람들이 매일 겪는 일들과 비교해보면 그것을 어려움 이라고 보기는 어렵 다. 8 내가 돌아오고 1주일 후에 여동생이 과테말라에서 돌아왔는데 우리는 상당히 전형 적인 좋아하고/싫어하는 남매의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보게 되어 즐거웠다. 종 종 가족들을 상대하는 것이 견딜 수 없을 때도 있었지만, 식구들은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나의 가족이며, 그들은 언제든지 나와 함께 할 것이며, 나 를 지지해줄 것이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밖에서 보내고 나니 오직 즐거움만이 감 돌았다. 바로 그때 나는 다시 가족과 함께 하게되어 행복했다. 9 우리는 서로가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기에 가족 캠핑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우리는 볼더에서 두 시간 거리의 콜로라도 뷰엔나 비스타에 차를 몰고 갔다. 우리는 모두 마무리 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가족 여행을 위하여 뒤로 미루었다. 나는 내 인생에 서 최고의 시간을 갖었기에 그렇게 한 것은 정말 잘 한 것이었다. 우리는 많은 것 을 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했던 모든 것을 즐겼다. 비록 여동생은 내내 잠을 잤지 만 심지어 두 시간 동안 차를 타는 것도 즐거웠다. 내가 유럽 모험 이야기를 하는 계속 하는 동안 우리는 초콜렛으로 덮인 산딸기 젤리 (듣기보다는 맛이 더 좋다)와 Dip n Dots 아이스크림을 아삭아삭 먹었다. KOA 텐트장에 도착하자 우리는 평생 동 안 집에 있던 흉하게 보이는 바로 그 텐트를 설치하였다. 그 다음에 우리는 휴대용 버너 위에 올려놓은 납작한 돌 위에 베이콘을 구워 먹었다. 나는 이번 가족 여행에 조금 앞서 부모님이 나를 엘도라도 스프링스에 데리고 가셔서 그런식으로 해주신 이후로 돌 위에 구워먹는 한국식 베이컨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10 결국 저녁 시간이 돌아왔지만 우리는 먹지 않았다. 점심으로 배가 너무 불렀던 것 이다. 그래서 우리는 프린스톤 산의 온천으로 갔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목욕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날은 불평할 수 없었다. 가족들 및 주변의 다른 사 람들과 재담을 하고; 돌을 굴리고 모래를 파서 눕기에 알맞도록 안성마춤의 뜨거운 곳을 만들고; 여동생과 물을 튀기는 모든 것들이 너무 재미 있었다 어쩌면 집 에 돌아왔다는 것이 좋았을 수도. 해가 저물자 우리는 물가로 내려가서 별이 하나씩 나타나는 것을 바라보았다. 별보기는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날 밤 은 즐겼다. 야외에서 늦은 밤에 따뜻한 물에 떠있는 것의 그 무엇이 전부 너무 즐 거웠다.
94 BTM 그리고 우리는 텐트로 돌아와 양치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빠와 여동생은 잠들 었지만 엄마와 나는 2시에 살짝 빠져나와 유성우를 구경했다. 나는 실제로 전에 유 성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그렇게 인상적일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 여름의 피크였고 별들은 하나씩 연이어 하늘을 갈랐다. 어떤 것은 흐렸 고, 다른 것들은 선명하였다; 어떤 것은 겨우 0.5초밖에 안 되었고 어떤 것은 훨씬 오랫동안 볼 수 있었다. 여덟개를 보고 비틀거리며 텐트로 돌아가 잠들었다. 12 다음 날 우리는 일찍 시작하였다. 일찍 시작하였다는 내 말은 9시쯤을 말한다. 아 침을 먹고 텐트를 접고, 가방을 챙기고, 급류 래프팅 장비를 임대해주는 여러 곳 가운데 한 곳으로 갔다. 구명조끼와 헬멧을 모두 착용한 후에도 실제로 시작하기까 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그렇지만 곧 출발했다. 꽤 격렬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레 벨 2 및 레벨 3급 수준의 물살이 크게 감동적이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보트가 바위 에 부딪혀서 아빠가 내쪽으로 고의로 굴러 떨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고무보트 밖으로 날아가 떨어졌을 때 그런 물살도 아빠에게는 위협이 되었다. 나는 즐거웠고 재미있었다. 행복하지 않을 것이 무엇이 있나? 우리는 점심으로 싱싱한 스테이크를 구워먹었고, 누구도 어떤 일로도 스트레스를 일으키지 않았다. 길을 잃을까, 위험 에 빠질까, 잠잘 곳 찾을 일, 먹을 음식 구하는 일, 그리고 심지어 외롭고 무서운 것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비록 집에 온 지 1주일이 조금 넘었지만 이 런 편안한 삶이 마냥 좋았다. 그리고 모든 순간이 감사했다. 13 곧 하루의 래프팅이 끝나갔고, 다 끝났을 때 나는 지쳐있었다. 우리가 래프팅 장비 를 내려놓고 차에 타자마자 나는 잠들었다. 오늘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놀라웠던 경험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내게 팀웍 의 의미를 재정립하도록 도와주었고, 세상 물정에 밝도록 가르쳐 주었고, 보다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을 보여주었고, 긍 정적인 자세의 중요성을 설명해주었고,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내게 있는 모든 것과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는 사고방식을 주었던 바로 그 경험이었다. 그 여정은 어떤 면으로나 쉽지 않았지만 여행의 하루 하루는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교훈을 가르쳐 주었다. 어쩌면 그 여정이 그렇게 힘들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엄마가 없는 곳에서 아기가 결국 스스로 진정하 는 방법을 배우듯이 말이다. 성장하면서 우리는 엄마가 멀리 있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챙겨주시지 못하는 것에 서서히 익숙해진다. 사실 우리가 세상에 발들여 놓고 약 20여년이 될 즈음이면 한 지붕 아래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14 마찬가지로 나는 나의 경험이 진정으로 나의 안락한 공간으로부터 나를 밀어냈다고 믿으며, 바로 그 이유로 나는 오늘 내가 취하는 행동과 문제를 다루는 방법에 대하 여 더욱 자신감을 갖는다. 또한 그 경험은 누구든지 실제로 만나보기 전에는 절대 로 평가하지 말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여러 경우에 동료 여행자들은 어떤 지역 의 사람들이 다른 지역의 사람들보다 더 무례하거나 더 좋다고 말을 많이 해주었지 만, 실제로 그와 같은 일반화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발견했다. 나는 타인으로부터 받는 태도와 존중의 수준은 주로 내가 보여주는 자세와 존경에 근거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인간에게 의도된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할 것이며, 사람들을 알기도 전에 평가하는 사람들도 항상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돕 고자 하며 올바른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항상 더 많이 있으면 좋겠다.
시편강설-경건회(2011년)-68편.hwp
30 /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경건회 (2011년 1학기) 시편 68편 강해 (3) 시온 산에서 하늘 성소까지 김헌수_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교장 개역 19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 로다 20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사망에서 피함이 주 여호와께로 말미암 거니와 21 그 원수의 머리 곧 그 죄과에 항상 행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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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연구개발비 년도매출액 년도광고선전비 년도매출액 년도 각 기업의 매출액 년도 산업전체의 매출액 년도말 고정자산 년도말 총자산 년도연구개발비 년도매출액 년도광고선전비 년도매출액 년도 각 기업의 매출액 년도 산업전체의 매출액 년도말 고정자산 년도말 총자산 년도연구개발비 년도매출액 년도광고선전비 년도매출액 년도각기업의매출액 년도 산업전체의 매출액
정 관
정 관 (1991. 6. 3.전문개정) (1991. 10. 18. 개 정) (1992. 3. 9. 개 정) (1994. 2. 24. 개 정) (1995. 6. 1. 개 정) (1997. 3. 14. 개 정) (1997. 11. 21. 개 정) (1998. 3. 10. 개 정) (1998. 7. 7. 개 정) (1999. 8. 1. 개 정) (199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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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원 柳 馨 遠 (1622~1673) 1) 유형원 연보 年 譜 2) 유형원 생애 관련 자료 1. 유형원柳馨遠(1622~1673) 생애와 행적 1) 유형원 연보年譜 본관 : 문화文化, 자 : 덕부德夫, 호 : 반계磻溪 나이 / 연도 8 연보 주요 행적지 1세(1622, 광해14) * 서울 정릉동貞陵洞(정동) 출생 2세(1623, 인조1) * 아버지 흠欽+心
006 007 007 009 012 012 012 013 013 013 018 019 033 045 051 052 060 066 067 077 083 084 099 108 117 118 122 135 140 141 141 142 143 143 145 148 154 01 006 007 007 009 " # $ % 02 012 012 012 013 013 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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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호천사' 한비야의 이라크에서 보낸 편지 "수돗물 5 일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학교엔 화장실 없어 아무데나 '볼일' "외국인 떠나라" 구호단체도 공격대상 오지 여행가로 유명한 한비야(45)씨는 6 월 16 일부터 이라크 모술에서 2 개월여 구호활동을 벌였다.바그다드 유엔 사무실 폭파사건에 이어 모술에서도 대규모 총격사태가 벌어지자 지난달 말 예정을 2
이명숙초고.hwp
우리나라 전래동화와 함께 하는 한국어 교수법 이명숙(동화사랑연구소 교수) 재외동포를 위한 한국어교사여러분! 우리 재외동포2~3세 들에게 자신들의 뿌리를 알게 오랜 언어와 문화적 전통을 가진 대한민족의 정체성을 갖게 해주어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정정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얼마나 노력을 하고 계십니까? 우리나라의 문화를 알게 해주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우리나라의
분 후 가구수 현 행 조 후 가구수 가구수 비 장호원 진암5 468 부 발 무촌3 579 백 사 현방1 6 243 증포1 448 증 포 갈산1 769 진암5 281 기존 자연마을 진암9 8 187 코아루아파트 369세대 무촌3 271 기존 자연마을 무촌4 5 308 효
이천시 치 조례 일부개조례안 의안 번호 41 제출연월일 : 2010. 10.. 제 출 자 : 이 천 시 장 개이유 장호원 중 자연마을인 진암5, 부발 중 무촌3, 백사 중 현 방1, 증포 중 증포1, 갈산1, 중 중 담1, 관 중 관2 내 규아파트 및 빌라의 개발에 따른 대규모 인구유입으로 을 분()하여 주민편의는 물론 대민행 서비스를 강화해 나가자 하는 것임.
인천광역시의회 의원 상해 등 보상금 지급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의안 번호 179 제안연월일 : 2007. 4. 제 안 자 :조례정비특별위원회위원장 제안이유 공무상재해인정기준 (총무처훈령 제153호)이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 (행정자치부령 제89호)으로 흡수 전면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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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순복이네 가족 08. 한수와 금선, 그리고 순복의 탄생 11. 6남매 초등학교 시절 15. 가난과 해방 18. 순복의 기억 속 초등학교 소녀에서 처녀로 20. 6.25 23. 완도로 이사 26. 양재학원 28. 순복의 기억 속 완도 2 순복이 이야기. B_00_
순복이 이야기 -김순복 傳 1 B_00_ _.indd 1 2015-06-19 12:08:26 목차 순복이네 가족 08. 한수와 금선, 그리고 순복의 탄생 11. 6남매 초등학교 시절 15. 가난과 해방 18. 순복의 기억 속 초등학교 소녀에서 처녀로 20. 6.25 23. 완도로 이사 26. 양재학원 28. 순복의 기억 속 완도 2 순복이 이야기. B_00_
대표이사 K, L 4. 주식회사 동진여객 대표이사 M 피고보조참가인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N 법무법인 O 제 1 심 판 결 부산지방법원 2014. 6. 12. 선고 2014구합20224 판결 변 론 종 결 2015. 5. 8. 판 결 선 고 2015. 8. 21
부 산 고 등 법 원 제 1 행 정 부 판 결 사 건 2014누21387 여객자동차 사업계획변경 인가처분 취소청구 원고, 항소인 1. 경원여객자동차 주식회사 대표이사 A 2. 대한여객자동차 주식회사 대표이사 B 3. 신흥여객자동차 주식회사 대표이사 C 원고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D 법무법인 E 피고, 피항소인 부산광역시장 소송대리인 변호사 F 피고보조참가인
종사연구자료-이야기방2014 7 18.hwp
차례 1~3쪽 머리말 4 1. 계대 연구자료 7 가. 증 문하시랑동평장사 하공진공 사적기 7 나. 족보 변천사항 9 1) 1416년 진양부원군 신도비 음기(陰記)상의 자손록 9 2) 1605년 을사보 9 3) 1698년 무인 중수보 9 4) 1719년 기해보 10 5) 1999년 판윤공 파보 10 - 계대 10 - 근거 사서 11 (1) 고려사 척록(高麗史摭錄)
목 차 국회 1 월 중 제 개정 법령 대통령령 7 건 ( 제정 -, 개정 7, 폐지 -) 1.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 1 2.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 1 3. 경력단절여성등의 경제활동 촉진법 시행령 일부개정 2 4. 대
목 차 국회 1 월 중 제 개정 법령 대통령령 7 건 ( 제정 -, 개정 7, 폐지 -) 1.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 1 2.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 1 3. 경력단절여성등의 경제활동 촉진법 시행령 일부개정 2 4. 대도시권 광역교통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일부개정 3 5.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일부개정 4
□2004년 사순절 묵상 자료집□
2014년 사순절 묵상 및 신약성경 통독 자료집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순절 이 름 연락처 뉴 욕 효 신 장 로 교 회 42-15 166th St. Flushing, N Y 11358 Tel. 718-762-5756/2525 담 임 목 사 문 석 호 (Th. D / D. M in ) 2 2014년 뉴욕효신장로교회 사순절 묵상 자료집 사순절을 이렇게 보냅시다. 사순절에서
2012 年 度 第 5 回 韓 国 語 スピーチ 大 会 日 付 場 所 : 2012. 10. 14.( 日 ) : 松 筑 建 設 会 館 長 野 韓 国 教 育 院 協 賛 企 業 案 内 あすなろ 信 用 組 合 参 加 者 全 員 に商 品 券 大 韓 航 空 韓 国 往 復 の 航 空 券 1枚 ( 株 )CommPlusBiz 家 庭 用 真 空 掃 除 機 3台 순 서 학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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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2016.05.03(화) "갈등없는 성과연봉제 도입" 홍보하던 동서발전, 부당노동행위 정황 성과연봉제 노사합의안 찬반투표 당시 동서발전 울산화력본부 기표소 모습 공기업 발전회사 중 처음으로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에 대한 노사합의가 이뤄진 한국동서발전이 직원 들의 찬성 투표를 유도하기 위해 부당노동행위를 벌인 복수의 정황이 나왔다. 직원들에게 동의서를
눈먼 부엉이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이정엽 작가와 함께 하는 BOOK TALK 이정엽 일시 : 2015년 2월 13일 (금) 오후 6:00 7:00 장소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제게, 그리고 제 작업에 영향을 준 책 몇 권을 소개하고자합 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 같은 경우, 책을 읽으면서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 를 떠올리는
제565호 2 사보 길환영 사장 신년사 2014년을 참된 공영방송의 원년으로 만듭시다 사랑하는 사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1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 다. 지난 2013년은 그 어느 해보다 KBS 콘텐츠의 우수성을 국내외에 널리 알렸고
사보 2014년 1월 6일 월요일 vol.565 신년호 공영방송 미래 위해 한 마음 한 뜻으로 나아갑시다 갑오년 새해가 밝았다. 60년 만에 찾아온 청마( 靑 馬 )의 해다. 방송통신의 융합, 케이블과 종편 콘텐츠의 급격한 성장 등 2014년 미디어 환경 변화는 더욱 거세 질 전망이다. 공영방송 KBS는 영향력 1위, 신뢰도 1위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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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103 109 112 117 119 123 142 146 183 103 Guide Book 104 105 Guide Book 106 107 Guide Book 108 02 109 Guide Book 110 111 Guide Book 112 03 113 Guide Book 114 115 Guide Book 116 04 117 Guide Book 118 05
無爲旅行의 세상에 대한 삿대질 005
無 爲 旅 行 의 세상에 대한 삿대질 005 무위여행 소개글 목차 1 김정일의 붕괴는 북한주민들에게는 축복 8 2 善 의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 정책은 폐기되어야 9 3 정치인은 국민에게만 負 債 의식을 가져야 한다 11 4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다 13 5 침략의 원흉을 비판하고 단죄하는 게 순서다 15 6 김수해님께 다시 드립니다. 17 7 이런 개 풀 뜯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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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원-삼성전자주식회사 본 사 :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매탄 3동 416번지 제조원 : (주)아이젠 삼성 디지털 비데 순간온수 세정기 사용설명서 본 제품은 국내(대한민국)용 입니다. 전원, 전압이 다른 해외에서는 품질을 보증하지 않습니다. (FOR KOREA UNIT STANDARD ONLY) 이 사용설명서에는 제품보증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분실되지 않도록
5 2012년, 세종문화회관 무대를 채워나갈 공연과 무대를 빛낼 헤로인을 <문화공간>에서 만나보세요. 02 Look of sejong 한방 치유 음악회 <동행> contents september 2012 NO.342 04 SEOUL CULTURE SCHEDULE 서울
ART + MYTH 제우스와 세멜레, 헤라의 삼각관계 그리고 헨델의 오라토리오 세멜레 CLASSIC in CINEMA 영화 와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오페라 DANCE 한량무 Gugak Q&A 다악( 茶 樂 ) 마음을 치유하는 음악 국악계에 부는 새바람, 힐링 창작무용극 백조의 호수 9 september 2012 no.342 5
산림병해충 방제규정 4. 신문 방송의 보도내용 등 제6 조( 조사지역) 제5 조에 따른 발생조사는 다음 각 호의 지역으로 구분하여 조사한다. 1. 특정지역 : 명승지 유적지 관광지 공원 유원지 및 고속국도 일반국도 철로변 등 경관보호구역 2. 주요지역 : 병해충별 선단
산림병해충 방제규정 산림병해충 방제규정 [ 시행 2015.9.9] [ 산림청훈령 제1262 호, 2015.9.9, 일부개정] 산림청( 산림병해충과), 042-481-4038 제1장 총칙 제1 조( 목적) 이 규정은 산림보호법 제3 장 " 산림병해충의 예찰 방제 에서 위임된 사항과 산림병해충( 이하 " 병 해충 이라 한다) 의 예방 구제를 위하여 병해충의 발생조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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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 09 + September 004 008 052 058 065 076 079 082 086 090 092 094 096 098 2009.09 +September 4 2009 + September 5 6 2009 + September 7 Letter 1 Letter 01_ Letter 02_ Letter 03_ Letter 04_ Letter 05_
김기중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인터넷 내용심의의 위헌 여부.hwp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인터넷 내용심의와 그 위헌 여부에 관한 소론 - 서울고등법원 2011.2.1.자 2010아189 위헌법률심판제청결정을 중심으로 한국정보법학회 2011년 5월 사례연구회 2011. 5. 17.발표 변호사 김기중 미완성 원고임 1. 서론 헌법재판소는 2002. 6. 27. 99헌마480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등 위헌확인사건에 서 불온통신 의 단속에
이 지역은 '마카티'입니다 외국인이 많은 곳이죠 안녕하세요, 사장님! 특정한 욕구를 가진 외국인이 많습니다 그리고 거리를 지날 때... 마사지... 뭐라고요? 마사지... 마사지가 뭔지 짐작이 가죠 마사지... 순금 마사지보다 좋습니까? 네! 순금 마사지요? 이 거리에
필리핀은 7천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거의 모든 섬에는 친절한 사람들이 가득하죠 변두리로 가서 탐험할 계획이지만 도착하자마자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곧바로 대도시의 뒷골목에 갔죠 이국적이고 성적이며 숭고함이 있는 곳입니다 자유롭게 다니며 마음을 사로잡는 곳에 들렀습니다 도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시골의 문명은 과거의 신에서 시작됐으며 수많은 세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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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도전정신이 빛난 블루클럽 최 승 노 자유경제원 부원장 블루클럽은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등장했다. 남자들의 미용 이라는 사업 아이템으로 여성 중심의 이 미용실에 부담을 느꼈던 남성들을 위한 새로운 시 장의 개척이다. 또한, 당시 5,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 정책으로 소비자들로 부터 큰 호응을 얻었고 직접 헤어디자이너들을 양성하여
1998년~1999년의 일기
1998년~1999년의 일기 자주달개비 소개글 2012년 4월 어느 날 14년 전에 끄적거려 놓았던 쾌쾌묶은 낡은 노트를 발견하고 이곳에 얾겨 적어보았다. 다시 정리하면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정리가 되는 듯하여 의미있는 일이 되었다. 목차 1 1998.9.28(주인없는 집) 5 2 1998.9.29(돌아가고 싶은 그 때) 9 3 1998.10.3(아버지의
Ⅰ- 1 Ⅰ- 2 Ⅰ- 3 Ⅰ- 4 Ⅰ- 5 Ⅰ- 6 Ⅰ- 7 Ⅰ- 8 Ⅰ- 9 Ⅰ- 10 Ⅰ- 11 Ⅰ- 12 Ⅰ- 13 Ⅰ- 14 Ⅰ- 15 Ⅰ- 16 Ⅰ- 17 Ⅰ- 18 Ⅰ- 19 Ⅰ- 20 Ⅰ- 21 Ⅰ- 22 Ⅰ- 23 Ⅰ- 24 Ⅰ- 25 Ⅰ- 26 Ⅰ- 27 Ⅰ- 28 Ⅰ- 29 Ⅰ- 30 Ⅰ- 31 Ⅰ- 32 Ⅰ- 33 Ⅰ- 34 Ⅰ- 35
(자료)2016학년도 수시모집 전형별 면접질문(의예과포함)(최종20150716).hwp
2016학년도 수시모집 전형별 면접질문 전형 : 지원자의 면접태도, 가치관, 사고력, 표현력 등을 통해 지원자의 인품 및 기초소양을 평가 - 전체모집단위(의예과, 스포츠헬스케어학과 제외) 2단계 : 면접 20% 적용 전형 : 지원자의 인품 및 기초소양을 평가, 지원 모집단위에 대한 적성, 관심도 평가 및 관련된 질문을 통하여 해당학문을 수학할 수 있는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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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도서관도큐06
4 8 10 14 18 22 24 26 30 31 4 5 6 7 8 9 10 11 12 13 파워도서관 세상을 읽는 지혜, 미래를 이끄는 힘, 해운대도서관 책이 있어 행복한 도서관 해운대신시가지 주민들의 숙원인 해운대 도서관이 4월 2일 개관하게 되었다. 해운 대구 양운로에 위치한 도서관은 지하 2층 에서 지상 4층의 책을 펼친 모양의 현대 적 감각으로 지어져
vol 123 스페셜 테마 통 2+
사보 통 4월호(통권 제123호) + 발행일 2012년 4월 30일 + 발행인 이승한 + 발행처 홈플러스 그룹 PR 사회공헌 부문(02-3459-8207) +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701-2 + 편집기획 및 디자인 디자인여백(02-3141-2760) + 인쇄처 성전기획(02-2275-5561) 2012 April Vol. 123 인재를 위한 따뜻한 경영,
래를 북한에서 영화의 주제곡으로 사용했다든지, 남한의 반체제세력이 애창한다 든지 등등 여타의 이유를 들어 그 가요의 기념곡 지정을 반대한다는 것은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는 반민주적인 행동이 될 것이다. 동시에 그 노래가 두 가지 필요조 건을 충족시키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제2 발제문 임을 위한 행진곡 의 문제점 임 과 새 날 의 의미를 중심으로 양 동 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1. 머리말 어떤 노래가 정부가 주관하는 국가기념식의 기념곡으로 지정되려면(혹은 지정 되지 않고 제창되려면) 두 가지 필요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하나는 그 가요(특히 가사)에 내포된 메시지가 기념하려는 사건의 정신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
노인복지법 시행규칙
노인복지법 시행규칙 [시행 2012.2.5] [보건복지부령 제106호, 2012.2.3, 타법개정] 제1조(목적) 이 규칙은 노인복지법 및 동법시행령에서 위임된 사항과 그 시행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 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1조의2(노인실태조사) 1 노인복지법 (이하 "법"이라 한다) 제5조에 따른 노인실태조사의 내용은 다음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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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5 18 민주화운동왜곡 대책위 등 주최 토론회 ( 5 18 민주화운동 왜곡과 대한민국 ). 2013년 5월 30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 5 18 민주화운동 왜곡과 한국의 보수 --5 18 민주화운동 왜곡 현상과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 1) 조희연(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 성공회대) 1. 들어가면서: 518 왜곡현상을 접하는 우리의 당혹스러움
2008.3.3> 1. 법 제34조제1항제3호에 따른 노인전문병원 2. 국민건강보험법 제40조제1항의 규정에 의한 요양기관(약국을 제외한다) 3. 삭제<2001.2.10> 4. 의료급여법 제2조제2호의 규정에 의한 의료급여기관 제9조 (건강진단) 영 제20조제1항의 규
노인복지법 시행규칙 [시행 2010. 3. 1] [보건복지가족부령 제161호, 2010. 2.24, 일 보건복지가족부 (노인정책과) 02-2023-85 제1조 (목적) 이 규칙은 노인복지법 및 동법시행령에서 위임된 사항과 그 시행에 관하여 필요한 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1조의2 (노인실태조사) 1 노인복지법 (이하 "법"이라 한다)
Ⅱ.수사결과 붙임1 피고인별 공소사실 요지 및 처리결과 참조 Ⅲ.TV홈쇼핑 업계의 실태 및 문제점 도입목적 및 현황 TV홈쇼핑 시스템은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 주는 한편,양질의 제품을 개발하고 유통과정을 단순화시켜 이를 염가로 최종소
공개되는 범죄사실은 혐의일 뿐 확정된 사실이 아님을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보담당관 제3차장검사 전현준 전화 02 530 4304 / 팩스 02 530 4220 보 도 자 료 2012.12.17.(월) 자료문의 : 첨단1부장 검사실 주책임자 : 부장검사 박근범 제 목 TV홈쇼핑 MD 뭐든지 다한다? -TV홈쇼핑 납품비리 사건 중간 수사결과
성희롱(성폭력)예방_뉴스레터2013-3호_20131218(최종).hwp
이런 것도 성희롱(성폭력)? 2013-3호 2013.12.20 목 차 [사례] 불쌍해서 어떡해...당신 눈엔 어때 보여요? [분석] 짝사랑과 스토킹 [시선] 성매매, 이런 게 궁금해요(1) 성희롱이란 무엇일까요? 아주대학교 성폭력상담센터는? * 본 메일은 아주대학교 성폭력상담센터에서 기획한 것으로 교직원과 학생 여러분들에게 성희롱/성폭력 관련 실제 사례와 이에
대학연합교회 샤인 강단 문서답같은 대답을 제자들에게 주 었던 것은 사실 숨겨진 칭찬이었습 무식하고 가난한 제자들이었 생활, 사회생활 등 말씀대로 하지 않는 모습이 너무 많습 특별 히 일주일에 한 번밖에 없는 주일예 신앙인 것입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에 경고하시는 부분이
2015년 교회 구호 하나님을 경외하고 모두가 복을 받자! 샤인스토리 VOL.3 JANUARY 대학연합교회 3대비전 샤인랜드 패치코리아 북한선교 발행인 대학연합교회 담임목사 김형민 발행처 샤인랜드프레스 편집인 전기훈 홈페이지 WWW.UCC.OR.KR 연락처 02)463-5271 새벽예배의 열기가 뜨겁다! 1월은 하나님께 예의를 갖추는 달입니다!
호랑이 턱걸이 바위
호랑이 턱걸이 바위 임공이산 소개글 반성문 거울 앞에 마주앉은 중늙은이가 힐책한다 허송해버린 시간들을 어찌 할거나 반성하라 한발자국도 전진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일삼는 자신이 부끄럽지 않느냐 고인물은 썩나니 발전은 커녕 현상유지에도 급급한 못난위인이여 한심하다 한심하다 호랑이 턱걸이 바위! 이처럼 기막힌 이름을 붙이신 옛 선조들의 해학에 감탄하며 절로 고개가
는지, 사법시험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지, 교육에 의한 양성이라는 구호에 맞게 교 육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점검하거나 평가가 이루어진 바 없다. 대개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는 쪽에서 로스쿨 제도의 폐해에 대해 지적을 하면 로 스쿨 협의회 등 로스쿨과 직접적인
로스쿨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의 문제점과 대안 대한변협 법조인양성제도특위 부위원장 변호사 김태환 1. 서론 2. 교육에 의한 양성 은 말장난에 불과 3. 로스쿨 교육의 폐해 가. 높아진 진입장벽 나. 지나치게 짧은 교육과정 다. 교과과정의 문제점 라. 학원 의존도 심화 마. 허울뿐인 특성화, 전문화 교육 바. 부실한 학사관리 사. 교육에 의한 법조인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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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8. 4 Sector Update 자동차 (OVERWEIGHT) 7월 내수판매 - 브레이크가 걸린 수입차 판매 조현렬 [email protected] 2 22 7762 임은영 [email protected] 2 22 7727 7월 수입차를 포함한 한국시장 수요는 13만6,874대로 전년동기대비 12.1%감소. 개별소비 세 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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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2 2012 _ 13 G >> CONSUMER 2 2012-2013 / 14060 9 788992 695596 ISBN 978-89-92695-59-6 ISBN 978-89-92695-57-2 2012-2013 GLOBAL CONSUMER GLOBAL ISSUE 1 GLOBAL CONSUMER 2 GLOBAL MARKET 3 GLOBAL DESIGN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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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 차명예금, 계좌송금, 계좌이체와 관련된 형법상의 문제점 박 동 률 *77) 목 차 Ⅰ. 머리말 Ⅱ. 예금, 계좌송금, 계좌이체의 민사적 법률관계 Ⅲ. 예금과 횡령죄 Ⅳ. 계좌(현금)송금과 횡령죄 Ⅴ. 계좌이체(전자자금이체)와 형법 Ⅵ. 차명예금과 횡령죄 Ⅶ. 맺음말 Ⅰ. 머리말 소위 삼성특검에서 삼성의 차명예금을 이용한 비자금 조성이 문제된 바 있고
*165호_전체
www.lisa.or.kr 165 2011 11 11 www.lisa.or.kr November 165 2011.11 2011 September 2011 September 12,094,000 3,000,000 15,094,000 17,627,960 10,100,000 27,727,960 41,967,320 35,000 10,000 42,012,320
4) 이 이 6) 위 (가) 나는 소백산맥을 바라보다 문득 신라의 삼국 통 일을 못마땅해하던 당신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더 커지는 것이라는 당신의 말을 생각하면, 대동강 이북의 땅을 당나라에 내주기로 하고 이룩한 통 일은 더 작아진 것이라는 점에서,
1) ᄀ 2) 지은이가 3) (라)에서 학년 고사종류 과목 과목코드번호 성명 3 2009 2학기 기말고사 대비 국어 101 ( ) 일신여자중 ꋯ먼저 답안지에 성명,학년,계열,과목코드를 기입하십시오. ꋯ문항을 읽고 맞는 답을 답란에 표시하십시오. ꋯ문항배점은 문항위에 표시된 배점표를 참고하십시오. (가) ᄀ환도를 하고 폐허가 된 서울에 사람들의 모습 이 등장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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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일구는 사람들 (27호) 2 3 4 6 13 14 15 깨달음의 두레박 칼럼 프로그램 탐방 이모저모 만나고 싶었습니다 아름다운 인연 후원자 소개 동전모금참여업체 소개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 발행인 : 법등 / 제27호(2009년 9월) 발행처 : 금오종합사회복지관 구미지역아동센터 연꽃어린이집 전 화 : (054)458-0230 / 팩스 : (054)458-0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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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관광 핵심이야기 99선 서울의 숨겨진 99개 이야기 2015.12 서울시 관광정책과 목 차 자연/경관 1 1. 한양도성의 경계가 된 선바위 3 2. 싸움은 화합의 씨앗? 싸움의 터에서 사랑의 터로 바뀐 천변 풍경 5 3. 억새인 듯 억새 아닌 억새 같은 갈대! 7 4. 서울의 전망 좋은 곳. 9 5. 큰 결정은 이곳에서. 11 6. 숯에서 나온 검은 물,
zb 2) 짜내어 목민관을 살찌운다. 그러니 백성이 과연 목민관을 위해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건 아니다. 목민관이 백성 을 위해 있는 것이다. 이정 - ( ᄀ ) - ( ᄂ ) - 국군 - 방백 - 황왕 (나) 옛날에야 백성이 있었을 뿐이지, 무슨 목민관이 있 었던
zb 1) 중 2013년 2학기 중간고사 대비 국어 콘텐츠산업 진흥법 시행령 제33조에 의한 표시 1) 제작연월일 : 2013-08-21 2) 제작자 : 교육지대 3) 이 콘텐츠는 콘텐츠산업 진흥법 에 따라 최초 제작일부터 5년간 보호됩니다. 콘텐츠산업 진흥법 외에도 저작권법 에 의하여 보호되는 콘텐츠의 경우, 그 콘텐츠의 전부 또는 일부 를 무단으로 복제하거나
재선양 한국인을 위한 교민 간담회(2014.9.29).hwp
재선양 한국인을 위한 교민 간담회 (일시 : 2014년 9월 29일, 장소 : 선양시 롯데시네마) (심양시출입경관리국) 1. 비자 (2013.9월 시행된 신출입경관리법에 근거) (1) 심양시에서는 한국기업을 장려하기 위해서 심양시에 특별하게 공헌을 한 기업에 대해 격려하 기 위해 투자기업의 등기자본이 300만 달러 이상, 투자 납세 20만 위안 이상의 기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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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배당 알리안츠글로벌비즈플랜보험 약관 제1관 보험계약의 성립과 유지 제1조 보험계약의 성립 제2조 청약의 철회 제3조 약관교부 및 설명의무 등 제4조 계약의 무효 제5조 계약내용의 변경 제6조 보험대상자(피보험자)의 변경 제7조 계약의 갱신 제8조 계약자의 임의해지 제9조 계약의 소멸 제10조 보험나이 제2관 보험료의 납입(계약자의 주된 의무) 제11조 제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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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과 상처에서 벗어나 행복한 부부로 사는 법 이럴 거면 나랑 왜 결혼했어? (이수경 지음/라이온북스/2012년 5월/340쪽/14,000원) - 1 - 이럴 거면 나랑 왜 결혼했어? (이수경 지음/라이온북스/2012년 5월/340쪽/14,000원) 책 소개 지고는 절대 못사는 부부 를 위한 결혼생활 코칭! 이 책은 아내가 먼저 읽고 남편에게 건네야 하는 책이다.
망되지만, 논란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광주지역 민주화 운동 세력 은 5.18기념식을 국가기념일로 지정 받은 데 이어 이 노래까지 공식기념곡으로 만 들어 5.18을 장식하는 마지막 아우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걱정스러운 건 이런 움직임이 이른바 호남정서
제1 발제문 임을 위한 행진곡 은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노래다 -정부의 5 18 공식기념곡 지정에 반대하는 다섯 가지 이유- 조 우 석 (문화평론가, 전 중앙일보 기자) 운동권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을 둘러싼 시비로 한국사회가 다시 소모적 논 쟁에 빠져든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노래를 5 18 광주민주화운동(이하 5 18 광주 혹은 광주5 18)의 공식기념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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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가족정책 동향보고 주요 기관 정책동향 기관 ( 12. 10. 18 10. 24) 주요 내용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 여성가족부(장관 김금래)는 10월 22일(월)부터 여성포털사이트 위민넷 (www.women.go.kr)을 통해 여성근로자들이 알아야할 주요 제도를 안 내하고, 전문가 상담 서비스를 시작함. 위민넷에 소개되는 여성노동 관련 제도는 근로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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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4 - - 55 - - 56 - - 57 - - 58 - - 59 - - 60 - - 61 - - 62 - - 63 - - 64 - - 65 - - 66 - - 67 - - 68 - - 69 - - 70 - Ⅰ 추진 배경 ISO 26000 등 사회적 책임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발전하고 윤리 투명 경영이 기업경쟁력의 핵심요소로 부상하면서 단순한 준법경영을
2015년 2월 12일 사랑의 동삭교육 제 2014-4호 (2월) 5 2015년 2월 12일 사랑의 동삭교육 제 2014-4호 (2월) 6 겨울이 되면 1-4 박지예 겨울이 되면 난 참 좋아. 겨울이 되면 귀여운 눈사람도 만들고 겨울이 되면 신나는 눈싸움도 하고 겨울이
2015년 2월 12일 사랑의 동삭교육 제 2014-4호 (2월) 1 2015년 2월 12일 사랑의 동삭교육 제 2014-4호 (2월) 2 제2014년 - 4호 ( 2월 ) 펴낸이 : 안 승 렬 교장선생님 도운이 : 박 명 덕 교감선생님 편집인 : 정 경 순 선생님 Tel. (031) 618-9671 학부모회장님 글 1 2월 동삭 교육활동 1.13 신입생 예비소집
*199호_전체
www.lisa.or.kr 199 2014 9 9 www.lisa.or.kr September 199 2014.9 2014 August 2014 August 2014 August 2014 August 2014 August 2014 August 2014 August 2014 August 2014 August 2014 August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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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회 순례 ④ 忠節과 禮의 名門 : 김녕김씨(金寧金氏) 高興 貫祖墓 奉安으로 金寧史를 새로 쓰다 金寧金氏中央宗親會 篇 金鍾彬 중앙종친회장 VS 김녕김씨중앙종친회가 지난 2013년 4월 6일 전남 고흥(高興)에 새로이 조성한 김녕김씨(金寧金氏) 관조(貫祖) 김녕군(金寧君) 시호(諡號) 문열공(文烈公) 휘(諱) 시흥(時興)님의 묘역을 봉안(奉安)함으로써 김녕종사(金寧宗史)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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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목 차` 제 1 장 조사개요 Ⅰ. 조사 배경 1 Ⅱ. 조사 목적 3 Ⅲ. 조사 설계 3 제 2 장 문헌조사 Ⅰ. 도시별 일반 개황 4 Ⅱ. 아웃바운드 및 방한관광 현황 10 제 3 장 관광소비자 FGD 조사 Ⅰ. 해외여행 인식 및 행태 17 Ⅱ. 해외 여행국가별 이미지 평가 23 Ⅲ. 해외 여행국가별 여행 경험 평가 26 Ⅳ. 관광상품 컨셉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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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94호 2015년 5월 15일(금요일) 07 (10) 경인지역 뉴스의 중심에 서다 - KBS 보도국 경인방송센터 KBS 보도국 경인방송센터 이민영 팀장 공영방송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수신료 이메일, 메시지 등을 통해 업무에 관해 소통을 하죠. 뉴스가 끝나고 업무를 마감하면 10시가 좀 넘어요. 를 납부하는 시청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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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연구목적 한국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차기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방향 및 과제를 제안코자 하는 것임 정책 참여단체 대한설비건설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 벤처기업협회, 전국상인연합회,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코스닥협회,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한국여성벤처협회, 한국외식업중앙회,
무공수훈신문(35호)교체
무공훈장 보국훈장받은사람 신문 나라사랑 알리기 신문 무훈정신으로 자유민주주의 수호하자 2015. 2. 1/ 35호 회장 : 박종길(무공수훈자회 회장) 발행인 : 신동설 편집인 : 맹태균 인쇄인 : 이철구 편집주간 : 강성원(무공수훈자회 사무총장) 발행처 : 청미디어 서울, 다 10927 나라를 위해 희생한 자는 나라가 책임을 진다 국가보훈처, 명예로운 보훈
화판
1 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 Limited 2009 2 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 Limited 2009 3 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 Limited 2009 4 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 Limited 2009 5 The Economist
아래 임시관리자님은 각 후보별로 응답을 정리해 주셨는데
존칭은 생략하고, 답변은 기호순(?)입니다. 글자색은 편의를 위해 구분한 건데, 혹시 맘에 안 드시는 분은 따로 알려주세요. ##### 신멤버 영입에 따른 카게의 운영방향, 정체성 ##### Q. 신멤버 영입을 기정사실화 하고 논의하시는 건가요? 일단 신멤버 영입 원천봉쇄 아 니었나요? 지금 신멤버 관련 제재는 나중에 해도 될 문제 같은데요... 팬덤 분열의
지 생각하고,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이 작업을 3번 반복 하는 것만으로 하루가 다 간다. 그들이 제작진에게 투쟁하는 이유는 그들이 원하는 재료를 얻기 위해서다. 그 이상의 생각은 하고 싶어도 할 겨를이 없다. 이 땅은 헬조선이 아니다. 일단
진짜 헬(hell)은 자유의지 가 용납되지 않는 곳 김 다 인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회나 성당을 다니지 않는 사람도 빨간 글씨로 적힌 12월 25일을 즐긴다. 일본인, 중국인 친구들이 한국은 왜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냐고 묻는 말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해 봐도 답이 안 나온다. 석가 탄신일도 공휴일이어서 공평하다는 말 만 되풀이한다. 느닷없이
Contents November 1st 2014 16 12 20 10 04 [결혼성공기] 골키퍼가 있어도 골은 들어가더라 06 [진격인터뷰] 웨딩플래너 김홍미 실장에게 결혼이란? 10 [신혼여행지] 대한민국 신혼 여행지 BEST 5 14 [웨딩노하우] 실속있는 셀프웨딩
KoreanJournal 1 Contents November 1st 2014 16 12 20 10 04 [결혼성공기] 골키퍼가 있어도 골은 들어가더라 06 [진격인터뷰] 웨딩플래너 김홍미 실장에게 결혼이란? 10 [신혼여행지] 대한민국 신혼 여행지 BEST 5 14 [웨딩노하우] 실속있는 셀프웨딩 준비에 도움되는 유용한 5가지 TIP 대표 : 고진석 발행인/편집인
2012.12 Ver 1.0 olleh WiFi Call 가입확정번호 WiFi Call 부가서비스 3G공용무료차감 동의 지정번호무제한(1,000원/월 비즈콜(4,000원/월 비즈콜 그룹코드( 결합( 홈 홈퉁 제휴형 olleh WiFi Call 발신 시 3G무료통화에서
2012.12 Ver 1.0 2012.12 Ver 1.0 olleh WiFi Call 가입확정번호 WiFi Call 부가서비스 3G공용무료차감 동의 지정번호무제한(1,000원/월 비즈콜(4,000원/월 비즈콜 그룹코드( 결합( 홈 홈퉁 제휴형 olleh WiFi Call 발신 시 3G무료통화에서 통화도수에 따라 50%만 차감됩니다. Call끼리무제한(1,000원/월
1.기본현황 연 혁 m 본면은 신라시대 ~고려시대 상주목에 속한 장천부곡 지역 m 1895.5.26한말에 이르러 장천면(76개 리동),외동면(18개 리동)으로 관할 m 1914.3.1행정구역 개편으로 상주군 장천면과 외동면이 병합하여 상주군 낙동면 (17개 리,25개
목 차 1.읍면동 기본현황 2.지방세 징수현황 3.소규모 주민숙원사업비 집행현황 4.예산 집행현황 5.예산 미집행 현황 6.고액체납자 현황 및 징수(독려)현황 7.관외체납세 징수(독려)현황 8.특수시책 확인자 낙 동 면 장 김 진 숙 (인) 부 면 장 차 정 식 (인) 주 민 생 활 지 원 담 당 김 영 욱 (인) 민 원 담 당 전 용 희 (인) 산 업 담
#SPS/C-5050.B.
PARTS BOOK SPS/C-5050 Series SPS/C-8050 Series Purposes H : Heavy material This is a parts book. It cannot be used as a manual. CONTENTS A BC D EF G HI J K L M N O P Q R ST U V W X Y Z Machine Body Mechanism
포스코 사회공헌 활동 백서 2003_2006
2003~2006 POSCO Community Relations White Book 2003~2006 054-220-0114
기자생활 잔흔들19
기자생활 잔흔들19 bohemian 소개글 목차 1 당-청-당 엇박자 전면무상보육 실시되나 마나 8 2 MB임기말 사정3인방 모두 검찰출신 '퇴임 후 안전판?' 9 3 日 독도영유권- 美 英 동해의 일본해 표기 조용한 외교문제? 10 4 홍준표, 손학규에 왜 연속 맞짱토론 제안하나 12 5 박근혜, 호남최고위원배제 홍준표 행보에 급브레이크 14 6 2012대선,
1106 학원과정
02.764.0027 02.3445.0027 04 36 42 10 16 30 04 05 1961 1999 2002 2004 2009 2010 2015 06 07 10 11 1.720.000 1.540.000 1.800.000 1.620.000 12 13 1.200.000 1.080.000 1.720.000 1.540.000 1.720.000 1.540.000
CONTENTS 표지 설명 자기만의 독특한 남성적 카리스 마를 내면화시킨 배우 최민수. 그가 SBS 주말극장 태양의 남 쪽 을 통해 2년여 만에 브라운 관에 복귀했다. 선 굵은 서사의 중심 인물이 되어 돌아온 그가 벌써부터 화제의 중심인물로 떠 올랐다. 사진 서창식 H
2003 September 09 주말극장 태양의 남쪽 아침연속극 이브의 화원 커버스토리 태양의 남쪽 의 최민수 SBS TV 추석특집 프로그램 프로그램 탐험 해결! 돈이 보인다 CONTENTS 표지 설명 자기만의 독특한 남성적 카리스 마를 내면화시킨 배우 최민수. 그가 SBS 주말극장 태양의 남 쪽 을 통해 2년여 만에 브라운 관에 복귀했다. 선 굵은 서사의
640..
제640호 [주간] 2014년 12월 25일(목요일) http://gurotoday.com http://cafe.daum.net/gorotoday 문의 02-830-0905 구로구 새해 살림살이 4,292억 확정 구의회 제242회 정례회 폐회 2015년도 세입 세출예산안 등 13건 처리 의원사무실 설치 예산 전액 삭감, 교육 복지 분야에 쓰기로 구로구의회(의장
5월호(작성중).hwp
투표.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운영위원 윤선희 작년에 이어서 올해까지 휴일이 얼마 없어 괴로워했는데, 뜻하지 않게 6월에 휴일이 생겼다. 바 로 6.2 지방선거날이다. 휴일이 많았던들 하루 더 쉬라는데 즐겁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 시 회사 동료들과 어떤 약속을 잡다가 6월 2일에 하는게 어떻냐는 제안을 했다. 그러자 나보다 어 린 한 친구가 하긴,
삼외구사( 三 畏 九 思 ) 1981년 12월 28일 마산 상덕법단 마산백양진도학생회 회장 김무성 외 29명이 서울 중앙총본부를 방문하였을 때 내려주신 곤수곡인 스승님의 법어 내용입니다. 과거 성인께서 말씀하시길 道 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어울려야만 道 를 배울 수 있
2014 2 통권 342호 차 례 제목 : 백양역사의 초석 사진 : 모경옥 단주 2 7 8 12 14 17 20 30 32 34 36 38 42 45 곤수곡인법어 성훈한마디 신년사 심법연구 이상적멸분( 離 相 寂 滅 分 ) 59 경전연구 論 語 78 미륵세상 만들기 스승을 그리며/김문자 점전사 편 용두봉 음악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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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도 운영관련 업무처리안내 개정사항(신구문 대조표) 분야 P 2012년 안내 2013년 안내 개정사유 Ⅱ. 의 운영 3. 의 연혁 Ⅲ. 사업 8 20 12년: 사회복지사업 개정 201 2년: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오타수정 13 사업의 대상 1)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저소득 주민 2) 장애인, 노인, 한부모가정 등 취약계층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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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Ⅰ. 조사개요 1 Ⅱ. 조사지역과 그 주변환경 2 1. 자연 지리적 환경 2 2. 고고 역사적 환경 9 Ⅲ. 조사내용 31 1. 조사지역 일대의 문화재 현황 31 2. 조사지역 일대의 민속 지명분야 39 3. 조사지역 일대의 고고 역사학적 분야 41 (1) 조사방법 41 (2) 조사지역의 현황 및 변화상 41 (3) 조사내용 46 Ⅳ. 종합고찰 및 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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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 부 보고서 Ⅰ. 조사 개요 1. 조사 배경 및 목적 o 문화적 여유가 생기면서 만화영화 주인공이나 연예인 등의 캐릭터를 넣어 개발한 캐 릭터상품이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데, 앞으로 도 계속해서 신세대의 소비문화 를 창출해 나갈 것으로 예상됨. - 그동안 어린이들 사이에 유행했던 캐릭터로는 미키마우스, 세일러문, 아기공룡 둘 리, 바비, 헬로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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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18 2015. 08 서로에게 힘을 주는 행복충전소! 예배를 앞둔 교회 앞마당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삼삼오오 모여든 부부들, 언뜻 봐도 고소한 향이 풍기는 신혼부부다. 다양한 이벤트와 실험정신(?)으로 행복한 다락방을 만들어가는 이들의 얼굴에는 서로를 향한 깊은 관심과 사랑이 담겨 있다. 비슷한 환경이어서 더욱 통하는 게 많다는 10교구 신혼부부다락방이
2005년 6월 고1 전국연합학력평가
제 1 교시 2015학년도 9월 모평 대비 EBS 리허설 2차 국어 영역(B형) 김철회의 1등급에 이르게 해 주는 [보기] 활용 문제 미니 모의고사(문학편) 1 유형편 [1]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 를 참고하여 (가)를 이해할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은? (가) 머리는 이미 오래 전에 잘렸다 / 전깃줄에 닿지 않도록 올해는 팔다리까지 잘려
참여연대 이슈리포트 제2011-10호
2016. 3. 23. 국민 위에 군림하고 권력에 봉사하는 검찰 박근혜정부 3년 검찰보고서(2015) 차례 일러두기 5 1부 박근혜정부 3년, 검찰을 말하다 1. [종합평가] 청와대 하명기구의 본분에 충실하였던 검찰 조직 8 [별첨] 2015 검찰 주요 수사 23건 요약 표 18 2. 검찰 윤리와 검사 징계 현황 23 3. 청와대와 법무부 검찰과의 관계 29
3) 지은이가 4) ᄀ에 5) 위 어져야 하는 것이야. 5 동원 : 항상 성실한 삶의 자세를 지녀야 해. 에는 민중의 소망과 언어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입니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가능성은 이처럼 과거를 뛰어넘고, 사회의 벽을 뛰어넘고, 드디어 자기를 뛰어넘 는
(가) 2) (가) 학년 고사종류 과목 과목코드번호 성명 3 2009 2학기 기말고사 대비 국어 101 ( ) 염창중 말할 수 있게 되어 어머니가 다시 주시거든 나에게 갚 아라. ꋯ먼저 답안지에 성명,학년,계열,과목코드를 기입하십시오. ꋯ문항을 읽고 맞는 답을 답란에 표시하십시오. ꋯ문항배점은 문항위에 표시된 배점표를 참고하십시오. (가) 우리 중에는 전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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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자저널 한국방송기자클럽 발행인 오건환 편집인 김형태 월간 발행처 2011 09 September www.kbjc.net 1990년 6월 20일 창간 서울시 양천구 목1동 923-5 방송회관 12층 T. 02) 782-0002,1881 F. 02) 761-8283 제150호 PD수첩 '광우병 보도' '제 38회 한국방송대상' 무죄 확정 수상작 선정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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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6-936호 WEDNESDAY JOURNAL 수요저널은 모바일버전 뉴스와 동영상뉴스, PDF 서비스도 제공합니다. 앞서가는 뉴스! 홍콩 수요저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 딤후3:5 홍콩 중국을 알려주는 주간소식지- 홍콩수요저널 www.wednesdayjournal.net 2014년 9월 10일 Publisher
불국사
불국사, 이젠 내 손안에서 제대로 보고 느낀다! - 문화재청, 사물인터넷?증강현실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내 손안의 불국사 개통 - 2015-04-15 / 불국사, 이젠 내 손안에서 제대로 보고 느낀다! / 정책뉴스 http://www.korea.kr/policy/pressreleaseview.do?newsid=156046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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