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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 권의 책을 펴내며 평화 만들기( 에 수시로 게재했던 글들을 재편집하여 세권의 단행본을 낸다. 세 권의 책들은 연작물은 아니지만 서로 상통하는 내용이 많다. 다만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사 안별로 묶어 한 권씩 순차적으로(책의 제목을 달리하면서) 펴낼 것이다. 그런데 글을 쓴지 6~7년 만에 책을 펴내기 위해 수정보완하다 보니 예상치 못했던 장벽이 나타났다. 책을 펴내는 현재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관점과 몇 년 전에 글을 쓸 당시의 관점의 차이가 어느 정 도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정세분석의 결이 다른 점도 드러났다. 과 거에 쓴 글의 관점 정세분석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시 절의 흐름 속에서 다시 성찰해 보니 약간 어긋난 점, 결이 다른 점, 느낌이 다른 점, 눈높이가 다른 점이 드러났다. 그런데 필자는 이러한 장벽을 우회하기로 했다. 과거의 글을 무 턱대고 재단하여 현재의 관점에 걸맞게 꿰어 맞추려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칫하면 과거의 판단은 모두 잘못되었고 현재 의 판단은 모두 옳다는 전칭부정( 全 稱 否 定 ) 전칭긍정( 全 稱 肯 定 )의 2분법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글을 쓸 당시의 정세

6 판단에 대한 믿음을 송두리째 부정하면 현재의 정세판단이 진리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현재의 판단력에도 문제가 내재해 있을 가능성 이 있으므로 현재의 관점을 진리의 잣대로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특히 첫 번째 저작인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에 정세판 단의 어긋남이 상대적으로 많이 드러나는 것 같다.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은 2003년 3월에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때를 서술의 출발점으로 삼으므로, 정세 분석의 오류를 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 이어 두 번째의 전쟁 상대로 북한, 세 번째의 상대로 이란을 상정하고 있다고 예전의 글에서 예상했는데, 지금 보 면 이 예상은 빗나갔다. 이럴 경우 현재의 정세판단에 따라 과거의 글을 손질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저자는 그대로 놔두었다, 이라크 전 쟁 당시 국내외의 석학들이 이라크에 뒤이어 북한을 상대로 한 전쟁 을 미국이 일으키고 그다음에 이란을 공격할 거라고 예상했으며 저 자 역시 그러한 예상을 신뢰했다. 이렇게 예상이 빗나갔지만 과거의 정세판단 자체를 전면부정하 기 보다는 현재의 정세판단과의 다름이 존재하는 측면에 주목했다. 당시 정세 판단할 때의 집단지성에 더욱 큰 무게를 두기 때문에 정 세판단의 어긋남을 대폭 수정하지 않았다. 위와 같은 변명 아닌 변명을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장황한 설 명문을 붙이니 독자 여러분들께서 너그럽게 받아주시기 바란다.

7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의 머리말 부시 대통령을 전범 재판에 회부하고 싶은 심정으로 이라크 전 쟁과 반전평화 운동 을 펴낸다. 부시 대통령은 권좌에서 물러나자마 자 국제 전범 재판소의 법정에 서야 한다. 그를 이라크 전쟁의 주범 으로 기소하는 반전평화 운동의 힘이 강하면 전범재판에 회부될 것 이다. 그러나 반전평화 운동의 힘을 능가하는 제국 미국 이 건재하 는 한 그에게 면죄부가 발행될 것이다. 만약 부시가 범부( 凡 夫 )로서 잔인무도한 이라크 전쟁을 저질렀다 면 후세인에 앞서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것이다. 墨 子 非 攻 편 에 殺 一 人 謂 之 不 義 今 至 大 爲 不 義 功 國 則 弗 之 而 非 從 而 譽 之 謂 之 義 라는 문구가 있다. 이 문구를 우리말로 해석하면 한 사람을 죽이면 그것을 불의( 不 義 )라고 말하고 오늘날 최대의 불의는 의롭 지 않게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른 짓이라 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를 좇아 칭송하면서 의( 義 )로움이라고 말한 다. 이처럼 전쟁을 일으켜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사람을 많이 죽일 수록 영웅 의인( 義 人 )이 되는 세태는, 묵자가 생존했던 고대(춘추전 국 시대)나 현대(21세기)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8 한 사람을 죽이면 사형 언도를 받는데 전쟁에서 많은 사람을 죽 일수록 영웅이 되는 말세( 末 世 ) 의 표상이 부시 대통령이다. 부시는 이라크 전쟁에서 죄 없는 사람들을 많이 죽인 살인자 임에도 불구 하고 미국인들에게는 영웅이다. 수난자인 이라크 민중의 관점에서 보면 살인마( 殺 人 魔 )인데도 영웅시되고 있다(빈 라덴 등의 이슬람 게릴라들이 살인마 부시를 그토록 증오하며 테러 행위에 나서는 심정을 미국인들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쟁을 지속되는 게 아 닐까?). 살인마 부시이든 살인자 부시이든 전범재판의 대상임에 틀림 없다. 이렇듯 전범 재판에 회부되어야 하는 부시 대통령이 오히려 평화주의자를 자처하는 모습은 적반하장( 賊 反 荷 杖 ) 의 극치이다. 2008년 1월 중동국가를 순방 중이던 부시 대통령은 사람들은 나를 전쟁광 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평화구축의 초석을 세웠으며 실 상 자유는 중동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나는 나 자신이 전쟁 광이 아니라 평화주의자라고 생각한다. 며 강변했다. 자신은 평화주의자인데 전쟁광 으로 비난 받는 까닭을 알 수 없 다는 부시의 양심 불감증에 경악할 뿐이다. 이라크 전쟁의 주역인 부시가 평화주의자라면, 제2차 대전의 주역(히틀러, 무솔리니, 일본 의 쇼와 昭 和 천황)도 평화주의자이다. 히틀러가 평화주의자이면 히 틀러에 의한 유대인 학살도 평화적인 행동이 된다. 쇼와( 昭 和 ) 천황

9 이 평화주의자라면 천황의 군대가 종군위안부를 성 노예로 삼아 집 단윤간한 것도 평화적인 행동이다. 그런데 종군위안부를 성 노예로 삼아 여성의 성을 집단적으로 강탈한 짓은, 식인종보다 더욱 악랄한 행위가 아닐까? 墨 子 魯 問 편에 殺 其 父 而 賞 其 子 何 以 異 食 其 子 而 賞 其 父 者 哉 (전쟁에서 그 아 비를 죽게 하고 그 아들에게 상을 주는 것이 그 자식을 잡아먹고 그 아비에게 상을 주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묵자가, 중국의 식인( 食 人 ) 풍습 1) 을 전쟁터의 살인에 빗대어 한 말 이다. 전쟁터에서 아버지를 죽게 하고 그 아들이 상을 받는 풍습은, 아들을 잡아먹고 그 아비가 상을 받는 식인과 무엇이 다른가? 라는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전쟁터에서의 살인이 식인의 풍습보다 더 악 질적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묵자의 명구( 名 句 )이다. 이 명구를 종군위안부에 적용하면, 종군위안부를 성 노예로 삼은 일은 식인( 食 人 )에 버금가는 것이며, 종군위안부를 집단윤간한 일본 군은 식인종보다 더 극악한 전범집단이다. 이러한 전범집단의 수장 인 일본군 수뇌들이 제2차대전 직후에 열린 전범재판소에 회부되어 사형당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위와 동일한 논리를 이라크 전쟁에 입력해 보자. 아부 그라이브 1) 초( 楚 ) 나라의 남쪽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교( 橋 )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에서는 누구 나 맏아들을 낳으면 잡아먹는데 그를 먹으면 그 동생에게 좋다고들 말합니다. 그리고 맛이 좋으면 그 임금에게 바치는데 임금을 기쁘게 하면 그 아비에게 상을 준다고 합니 다. 어찌 나쁜 풍습이 아니겠습니까. ( 墨 子, 魯 問 편)

10 형무소에 수용된 이라크인들을 성고문하고 무고한 이라크 민중을 집 단살인(Genocide)한 것은 식인( 食 人 )에 버금가는 행위이며, 이런 짓 을 저지른 미군은 전범집단이다. 그러므로 전범집단의 수장인 부시 대통령과 부시 정권의 수뇌부는 마땅히 전범 재판소에 회부되어야 한다. 부시 대통령이 평화주의자인지 살인자인지 살인마인지 식인종 인지의 진위여부를 전범 재판소에서 가린 뒤 인류평화를 저해한 죄 악이 인정된다면 일본군 수뇌들처럼 죗값을 받아야 한다.

11 [제 1부 ] 이라크 전쟁 13 들어가는 말 15 이라크 전쟁의 숨 막혔던 순간 18 자원 약탈 조폭 전쟁 23 미국은 석유 날강도 29 돈과 이라크 전쟁 31 미군, 열화우라늄탄 퍼부어 41 미군의 성( 性 )고문 성( 性 )학대 46 김선일 증후군 과 평화 불감증 66 부시와 神 들의 전쟁 108 종교사회적 관점에서 본 이라크 전쟁 113 이라크 전쟁은 미국 멸망의 서막? 128

12 [제 2부 ] 반전평화 운동 133 미국 영화가에 반전물결 137 베트남전 반대와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의 차이 142 이라크 민중은 왜 투쟁하나 145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50가지 논점 153 이라크 파병반대 운동 평가 175 전 세계 반전평화 운동의 구도 278 아시아의 평화 운동 개관 년도의 평화통일 운동 400 반미+반전 운동의 시너지 효과 427 양심적인 군사비 납세거부 운동 444 국제연대에 왕도 없다 455 Corea 운동의 의미 460

13 제1부 이 라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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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들어가는 말 이라크 전쟁과 관련하여 평화 만들기( 에 기고한 글들을 뒤늦게 선보인다. 광속도의 삶을 살고 있는 한국인들 에게, 이라크 전쟁은 한물간 전쟁놀이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이라크 현지에서는 미군과 무슬림 무장 게릴라 사이의 치열한 전투 가 벌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라크 전쟁을 지금도 거론할 만하다. 특히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전쟁광들이 이라크에 이어 북한 에서 전쟁을 일으키려고 한 점에서, 이라크와 한반도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이라크의 전쟁 이야기를 하면서도 긴장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라크 전쟁의 긴장감은, 전쟁 전야에 백악관에서 벌어진 긴박한 상황을 담은 글 이라크 전쟁의 숨 막힌 순간 에서 잘 드러난다. 부 시 대통령과 그를 에워싼 네오콘(Neo-Con)들(체이니 부통령 등)이 전쟁에 미쳐 날뛰면서 일으킨 전쟁을 한마디로 규정하면 자원 약탈 조폭 전쟁이다. 자원 약탈 조폭 전쟁 은 이라크의 자원(석유)을 강탈하기 위해 집요하게 기획한 이라크 전쟁을 냉소적으로 다룬다. 미국의 석유 강탈이 어느 정도로 잔악했던 것이었나를 드러내는 미 국은 석유 날강도 를 읽어 보면, 자원 약탈 조폭 전쟁이라는 규정 제1부 이라크 전쟁 15

16 이 적절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라크의 석유를 날강도한 전쟁광 집단 부시 정권의 돈줄을 파헤친 돈과 이라크 전쟁 은, 전쟁 관련 기업제품의 불매운동을 주창한다. 이어 인간 안보(human security)의 차원에서 세 편의 글 미군, 열화우라늄탄 퍼부어, 미군의 성( 性 ) 고문, 김선일 증후군 과 평화 불감증 을 싣는다. 미군, 열화우라늄탄 퍼부어 는, 비인도적인 무기인 열화우라늄탄을 퍼부은 펜타곤을 비판한다. 미군의 성( 性 ) 고문 은, 2004년 5월 아부 그라이브 형무소 안에서 벌어진 미군의 성고문에 관하여 쓴 글이다. 워싱턴 포스트 등의 미국 언론이 이 라크인 죄수들을 상대로 한 외설적인 성고문 사진을 공개하는 바람 에 포르노 군단 미군의 모습이 여지없이 폭로되었다. 필자는 워싱 턴 포스트 보다 앞서서 평화 만들기 에 성고문 사진을 게재하면서 해설을 곁들였으나, 이것이 문제가 되어 사진 해설을 삭제한 뒤 평 론 중심으로 쓴 것이 미군의 성( 性 ) 고문 이다. 젠더(Gender) 문제 와 이라크 전쟁의 관련성을 극적으로 보여 준 글이다. 2004년 6월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알카에다와 관련이 있는 게 릴라 단체)에 의해 납치된 김선일 씨(가나 무역의 사원). 그를 납치 한 무장 세력 측이 이라크 파병 한국군의 철군을 요구했다가 수용될 가능성이 없자 처형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 사건을 에워싸고 온 국민이 김선일 증후군 에 시달렸다. 그런데 무장 세력에 대한 피 의 보복을 주장하는 국내 냉전 수구 세력의 평화 불감증 으로 말미 1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7 암아 김선일 증후군 을 평화적으로 치유하지 못한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김선일 증후군 과 평화 불감증 을 썼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의 배후에 있는 기독교-이슬람교의 종교전 쟁을 다루기 위해 부시와 神 들의 전쟁, 종교 사회적 관점에서 본 이라크 전쟁 을 싣는다. 두 편의 글 모두 네오콘이 믿는 기독교의 전쟁신( 戰 爭 神 )에 관한 것이다. 부시와 神 들의 전쟁 은, 부시 대통 령이 神 의 이름으로 전쟁을 선포한 점을 기술한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적( 敵 ) 그리스도(anti Christ) 를 타도하는 성전(holy war)으로 보고 있음을, 종교 사회적 관점에서 본 이라크 전쟁 에서 강조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의 늪에 빠진 미국의 국력쇠퇴를 암시하기 위한 글 이 이라크 전쟁은 미국멸망의 서막? 이다. 게르만 민족이라는 오랑 캐에 의해 로마가 멸망했듯이, 중동의 새로운 오랑캐에 의해 미국이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은근히 드러내려고 했다. 제1부 이라크 전쟁 17

18 이라크 전쟁의 숨 막혔던 순간 - 이라크 전쟁 1주년을 맞이하여 2003년 3월 19일 밤,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부인 로라 여사 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미국은 이미 후세인과 두 아들이 48시 간 이내에 망명할 것 을 요구하면서, 이 요구를 거부하면 공격하겠 다는 최후통첩을 이라크에 보낸 상태이었다. 3월 19일 밤은 최후통 첩의 기한이 임박한 시각이었다. 기한인 밤 8시가 지나자 부시 대통령이 식사를 하고 있는 방의 전화기가 울렸다. 대통령의 측근인 알든 카드 수석 보좌관의 전화였 다: 후세인이 이라크를 떠났다는 흔적이 없습니다. 이제 예정대로 전쟁에 돌입할 수밖에 후세인의 망명 거부는 전 쟁을 의미했다. 이미 미군 전투기가 바그다드 상공을 향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저녁식사 이전에 공격의 결단을 내렸다. 3월 19일은 부시 대통령이 2년여 백악관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길고 숨 막히는 날 이었다. 1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9 부시 대통령은 이른 아침부터 전쟁 지도( 指 導 )회의를 소집했다. 체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방부 장관, 파웰 국무장관, 라이스 국가 안전보장 보좌관, 테넷 CIA 장관, 마이야즈 통합참모 본부장 등이 모였다. 이라크 공격을 지휘하는 토미 프랑크스 중앙군 사령관 등은, 중동의 카타르 전선 본부에서 비디오 회의에 참여했다. 회의 때 이례적인 긴장감이 감돌았다. 몇 분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핀이 떨어져도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회의에 참가한 고관 중 한 사람 이 New York Times 기자에게 들려준 회고담은 긴장을 더해 준다. 이라크 전쟁은 상대방(후세인 정권)의 공격을 받아 응수하는 전 쟁이 아니다. 부시 정권이 선택한 전쟁이다. 미군 전사자 수를 최소 한으로 줄이고 신속하게 승리해야 하는 등 부시 정권의 운명이 걸린 전쟁, 미국의 미래가 걸린 전쟁이다. 그래서 회의 참석자 모두가 대 통령의 전쟁 개시 결정의 엄중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탓인지 최 종단계에서 전쟁개시에 이의( 異 議 )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드디어 파웰 국무장관이 손을 뻗어 부시 대통령의 손을 만졌다. 결단을 재촉하는 몸짓이었다. 대통령은 드디어 작전의 실행을 명령 했다. 텔레비전 화상의 저쪽에서 (대통령으로부터 작전의 실행을 명 령받은) 프랑크스 사령관이 경례했다. 오전 8시였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날 부시가 소집한 첫 회의가 끝났다. * 출처= 평화 만들기( 123호( ) 제1부 이라크 전쟁 19

20 당초 예정된 작전은, 이라크 전역( 全 域 )에 정밀유도폭탄을 일제 히 뿌려 이라크 지도부를 마비시키려는 것이었다. 이는 국방대학에 서 교편을 잡고 있는 전략가인 해런 울만 박사가 정리한 충격과 공 포 이론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 울만 박사는, 걸프전 이후 미군의 새 로운 전략을 생각해 냈다. 압도적인 전력( 戰 力 )을 집중적으로 사용함 으로써, 상대방이 전투를 포기하게 하는 심리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에 이 작전이 변경되었다. 이날(2003년 3월 19일) 오후가 되자, 이라크 정권 안에서 암약 해 온 스파이로부터 귀중한 정보가 날아 들어왔다. 이 정보에 의하 면, 후세인 대통령이 이날 밤에 바그다드 시의 남부에 있는 방공호 로 몸을 숨긴다는 것이다. 테넷 CIA 장관은 곧장 국방성으로 달려 가, 럼스펠드 국방장관 마이야스 통합참모 본부장과 협의에 들어갔 다. 거의 같은 시간에 현지의 CIA로부터 연락을 받은 프랑크스 중 앙군 사령관은, 대통령으로부터의 공격명령에 대비하여 F117 스텔스 전투기 2기를 띄워 공중에 대기시켜 놓았다. 19일 오후 3시부터 백악관에 럼스펠드, 마이야스, 테넷 등 3명이 모였다. 라이스 보좌관과 카트 수석 보좌관도 참가했다. 부시 대통령 앞에서 후세인 개인을 노린 공격으로 작전을 바꿀까 말까 하는 이 야기 를 나누었다. 이 모임이 부시가 이라크 전쟁을 위해 주도한 두 번째 회의이다. * 출처= 평화 만들기( 124호( ) 2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1 후세인 대통령 개인을 노리고 전쟁을 개시하는 것은 모험적인 작전이었다. 후세인의 신상에 대하여 잘못된 정보를 믿고 전쟁을 벌 일 경우 그 부작용은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후세인과 관계없 는 시설을 공격했을 경우, 무고한 이라크 시민을 죽였다. 는 이라크 측의 선전공세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사실이 어찌 되었든지 이라 크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선전전( 宣 傳 戰 )으로 나올 것이다. 따라서 이런 여러 가지 우려 사항을 백악관에서 논의하는 바람에 부시는 2003년 3월 19일 하루 종일 분주했다. 프랑크스 중부 사령부의 사령관의 보고에 의하면, 폭격기가 되돌 아갈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한 시간은 (3월 19일) 오전 7시 15분이었 다. 선포포고를 향한 마지막 논의가 늘어져 논의의 마감시간이 재깍 재깍 다가왔다. 부시 대통령이 렛스 고(let s go) 의 결단을 내린 것 은, 폭격기가 되돌아올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 3분 전이었다. 3월 19일 저녁 8시 로라 부인과 식사를 하던 부시 대통령은, 이 미 두 차례의 고비를 넘겼다. 밤 9시 30분. 폭탄이 바그다드의 방공 호에 작렬했다. 10시 15분.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의 집무실에서 나 와 텔레비전 앞에 서서 미국 국민과 전 세계를 향해 다음과 같이 개 전을 선언했다: 미국 국민 여러분! 지금 이 시각에 미군과 동맹군 이 군사작전의 초기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이라크를 무장해제시켜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키고 세계를 중대한 위험으로부터 지켜 내기 위해서입니다. 동맹군은 나의 명령에 따라 군사적으로 중요한 목표 제1부 이라크 전쟁 21

22 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사담 후세인의 공격능력을 떨어뜨리 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개전 단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폭넓게 일치단 결한 작전이 앞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35개국 이상의 나라들이 중요 한 지원을 해 주었습니다. 협력내용은, 해군기지나 비행장의 사용, 정보나 후방지원의 제공부터 전투부대의 파견까지 다양합니다. 이 동맹에 참가한 각국은 의무를 지고 공동방위에 참가하는 명예를 나 누어 갖기로 선택했습니다. * 출처= 평화 만들기( 125호( ) 2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3 자원 약탈 조폭 전쟁 이라크에 대한 일방적인 무력행사를 전쟁 이란 일반 명사로 규 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안이한 발상이다. 동양사회에서 전쟁과 관련 된 여러 용법이 있는데 가장 흔한 것이 전( 戰 ) 이란 단어이다. 이 단 어는 동등한 정치집단 간의 무력 충돌을 지칭한다. 이라크 전쟁의 경우 미국이 지나치게 일방적인 공습을 단행했으므로 戰 자를 붙여 이라크 戰 이라고 부를 수 없다. 제1차대전과 제2차대전은 비교적 비슷한 힘을 가진 강대국들끼리의 싸움이므로 戰 자를 붙여도 무방 하다. 현재 진행 중인 이라크 사태는 제국 미국 의 패권욕에 따른 전 쟁이므로 그에 어울리는 다음과 같은 한자를 떠올린다: 征 (군주가 군대를 파견하여 악당을 정벌하다)/ 討 (치죄 治 罪 하기 위해 치다)/ 侵 (침략하다)/ 襲 (덮치다. 습격하다)/ 伐 (죄 있는 자를 치다. 토벌). 이 한자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면서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정확한 개념규정을 시도한다. 첫째, 이라크 전쟁은 정벌 전쟁이다. 21세기의 군주인 부시가 미국의 군대를 파견하여 악의 축 두목인 후세인을 정벌한 것이다. 미국이 최첨단 무기를 총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전 제1부 이라크 전쟁 23

24 쟁의 양식은 중세기 봉건영주 시대의 사무라이(기사도) 전쟁 을 재 현했다. 21세기의 정보화 자본주의 아래에서 중세기 전쟁을 벌인 셈 이다. 21세기의 군주국가 제왕( 帝 王 ) 국가를 노리는 미국은 미군 을 봉건영주 시대의 사무라이로 부려 먹으면서 역사를 중세기로 역 행시켰다. 이라크 전쟁 발발 이후의 세계정세는 중세의 암흑기로 돌 입했다. 둘째, 전쟁 하이에나 부시는 악의 축 국가인 이라크를 치죄( 治 罪 )한다며 전쟁이라는 더욱 큰 죄 를 저질렀다. 이라크 북한 등의 반미국가가 얼마나 죽을죄를 지었는지 알 수 없으나 죄를 지었다면 미국문명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하고, 미국에 불복하고, 미국을 뱁새 눈으로 쳐다보는 불경죄일 것이다. 이런 불경죄를 다스리기 위해 융단폭격을 가하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중대한 전쟁범죄이다. 죄에는 반드시 벌이 따른다. 제3세계 반미국가의 대표선수가 된 덕택에 악의 축 국가 로 뽑힌 이라크 북한 이란은 불경죄에 따른 벌을 받고 있으며 앞으로 받을 것이다. 그 첫 번째 벌을 받은 이라 크가 지금 전쟁의 지옥에 빠져 있다. 두 번째는 북한이며 세 번째로 이란이 될 것이다. 그런데 더욱 큰 전쟁범죄를 저지른 미국은 벌을 받지 않고 있으 며, 미국에 천벌을 내릴 세력이 전무한 지구촌의 모순은 참담함을 넘은 절망 자체이다. 2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5 셋째, 이라크 전쟁은 명백한 침략행위이다. 유엔의 승인절차를 무시한 침략이다. 이라크는 악의 축 국가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대량파괴무기 사찰을 흔쾌하게 받은 끝에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이 무혐의 판정에 초조한 미국이 서둘러 이라크를 침략한 사실은 세계 시민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전쟁 하이에나 부시의 몰이성이, 세계 인의 이성 양식을 진압 침략한 것이다. 이성의 회복이라는 차원에 서라도 부시 정권(미국) 반대 운동이 요청된다. 바그다드에 대한 공습은 평화를 염원하는 모든 이들의 양심에 대한 공습이다. 미국 영국 등 앵글로 색슨족의 전쟁구도를 따르지 않은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등의 평화 노력에 대한 습격이다. Pax Americana(미국의 힘에 의한 세계평정)의 전형인 이라크 전쟁 은, 아랍 민족주의의 상징인 후세인 체제에 대한 습격이며 이슬람 세계의 Jihad(평화로운 성전)에 대한 공습이다. 앞으로 Pax Americana의 도전을 받은 Jihad의 응전이 어떻게 나올지 지켜볼 일 이다. 넷째, 이라크 전쟁은 악의 축 오랑캐[ 夷 狄 ]에 대한 토벌작전이 다. 기독교 자유주의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은 언제나 선( 善 )이며 이 체제에 저항하는 세력은 언제나 악마라는 마니교식( 式 ) 2분법 심판 논리에 따른 마녀 토벌 전쟁 이다. 21세기 벽두의 마녀인 이 라크 북한 이란을 (오랑캐의 죄를 물어) 무찌르는 아마겟돈 성전 이 바로 이라크 전쟁이다. 제1부 이라크 전쟁 25

26 자원 약탈 조폭 전쟁 이라크 전쟁에 대하여 한자풀이를 하다 보니 표의문자인 한자가 지닌 고상함 때문에 전쟁 하이에나 부시의 행각이 적나라하게 드 러나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원색적인 우리말로 표현하여 이라크 전쟁은 이라크의 석유(원유)를 통째로 빼앗으려는 조폭 전쟁 이라 고 하면 실감이 나는 듯하다. 이라크의 유전( 油 田 )을 노린 油 戰 (유 전: 석유전쟁) 이라는 뜻이다. 이 油 戰 에서 미국이 이기면 더욱 강대 한 有 錢 국가(자본주의 국가)가 됨과 동시에 승전의 월계관을 쓰고 전쟁범죄에서 영원히 벗어나 무죄가 된다. 이라크가 지면 후세인이 (유고의 밀로세비치처럼) 헤이그의 국제사법 재판소에서 재판을 받 아 처형된다. 한마디로 이라크의 油 田 을 노린 油 戰 은 有 錢 無 罪 (유 전무죄)의 법칙(?)이 적용되는 조폭의 세계화 를 반영한다. 그리고 제국의 자원 약탈 전쟁( 油 戰 )은 면죄부를 받아 무죄가 되므로 油 戰 無 罪 (유전무죄)이다. 油 戰 無 罪 의 새로운 법칙(?)이 적용되는 조폭 세계화 의 두목이 바로 제국 미국 이다. 뒷골목의 조폭 들의 세계에는 그나마 의리가 있다. 그러나 제국 미국 이 주도하는 전쟁 조폭 의 세계에는 의리도 피도 눈물도 없 다. 이란을 덮치기 위한 선봉장으로 이라크를 앞세워 이란-이라크 8년 전쟁을 벌인 미국. 이 미국이 이제 이라크에 비수를 들이대는 인정머리 없는 제국의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그러므로 전쟁 조폭 2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7 국가 미국을 치죄( 治 罪 )하지 않으면 평화의 세계화 는 난망이다. 이라크 전쟁을 규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사회과학적인 분석틀을 동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자원 약탈형 조폭 전쟁은 일찍이 없었던 행태이므로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15~16세기 포르투갈 스페인 등 초기 제국주의의 원시적 자본축적(primitive capital accumulation)을 위한 무지한 약탈수법 에서 근거를 찾아야 할 것이 다. 이라크 전쟁과 같은 자원 약탈형 조폭 전쟁 은 마르크스의 생존 시에도, 레닌 시대에도, 모택동 시절에도 없었고(이들의 생존 시에 자원 약탈형 제국주의 전쟁은 있었으나 무지막지한 깡패 같은 악의 축 전쟁은 없었다), 현대의 석학 그람시(Gramsci)나 네그리(Negri) 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야만 적인 전쟁이므로 사회과학적인 개념정립에 앞서 자원 약탈형 조폭 전쟁 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앞으로 북한 등을 상대로 벌어질지 모를 제국 미국의 조폭 전쟁에서의 폭력을 지양할 세계 체제(시스템)가 무엇보다도 절실하 다. 2003년 3월 20일 바그다드를 공습한 순간부터 세계 체제는 제 국(미국)과 반( 反 )제국으로 갈라졌다(물론 제국 대 반제국 대항 전선 의 중립지대에 많은 나라들이 속해 있다). 앞으로 세계정세는 제국 대 반제국의 구도 로 분석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제국 대 반제국의 대립 전선 아래에서 한반도의 특수한 분단상황을 대입하는 정세분석 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제1부 이라크 전쟁 27

28 부시 정권은 2003년 3월 20일자로 전쟁범죄 집단이 되었으므로 인류의 양심이 모인 전범 재판장에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이와 더 불어 부시 정권의 조폭 전쟁 에 동조하는 아류 국가들(일본, 한국) 역시 새끼 조폭 으로 낙인찍어 전쟁범죄 집단의 예비자 명단에 집 어넣어야 할 게 아닌가?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역시 노무현 정권을 전쟁범죄 집단의 예비자 명단에 넣느냐 마느냐는 기준에서 다루어져 야 할 엄중한 사안이 아닌가? * 출처= 평화 만들기( 112호( ) 2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9 미국은 석유 날강도 - 이라크 원유를 배럴당 98센트에 구입 미국이 이라크의 원유를 1배럴당 98센트에 구입하고 있다고 인 터넷 신문 바스라 네트 ( )가 폭로했다. 바스라 네트 는 이라크의 저술가인 알리 자비리 씨의 이라크 참상에 관한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최근 1년간 이라크의 원유가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 수출되 었지만, 그 원유가 누구에게 팔렸으며 실제의 산출량이나 수출가격 을 알고 있는 이라크 사람은 아무도 없다. 2주 전에 이라크 석유부의 고관이 한 다음의 발언만큼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이 없다: 미국의 석유기업이 이라크에서 구입하는 원 유의 전량( 全 量 )이 1배럴당 98센트를 초과하지 않는다. 전쟁통에 이라크가 입은 손실액은 4천억 달러이다. 이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이라크는 모든 것을 팔아 치우고 있다. 후세인 정권 때 1백만 달러를 주고 사들인 전차를 암시장에서 1천 달러에 팔고 있다. 이라크의 국보인 원유마저 거의 공짜로 미국에 팔아 치우고 제1부 이라크 전쟁 29

30 있다. 그럼에도 실업률이 70%에 이른다. 세계 최대의 원유 보유국가 가 극빈 국가로 전락한 이유 중 하나는, 미국에게 원유를 헐값으로 강탈당하기 때문이다. 이라크 정부가 주권을 회복하는 첩경은 석유 자원의 독립에 있 다. 그런데 미국에 헐값으로 빼앗기고 있으니 독립의 길은 멀다. 알 자지라 방송의 저명한 캐스터인 아하마드 만슬 씨는 2004년 5월 30 일의 방송에서 이라크의 대외 부채가 1,279억 달러임을 지적한 다음 에 이라크의 자원은 공짜나 다름없이 약탈되고 있다. 고 분개했다. 이처럼 이라크가 친미국가가 되면 될수록 원유를 강탈당할 확률 이 높아진다. 친미국가인 쿠웨이트 역시 원유의 20%를 무상으로 미 국에 넘겨주고 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를 시장가격에 관계없이 배럴당 7달러에 구입하고 있다고 바스라 네트 ( )가 전했다. * 출처= 평화 만들기( 139호( ) 3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1 돈과 이라크 전쟁 - 전쟁 관련 기업제품 불매운동을 미국이 이라크의 석유 이권을 쥐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견해가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이라크 전쟁의 진짜 목적은 석유 그 자체가 아니고, 석유 대금을 지불하는 통화 쪽에 있다는 관점을 놓 치고 있다. 석유 대금을 어느 나라 화폐로 결제하느냐가 이라크 전 쟁과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달러로 석유 대금을 결제했는 데, 달러화 결제 시스템이 흔들리면서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석유 대금을 달러로 결제하던 시스템의 동요를 막기 위해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강행했다는 것이다. 돈-이라크 전쟁-석유 이권의 3차 방정식 그러면 지금부터 돈(달러 체제의 동요)-이라크 전쟁-석유 이 권의 3차 방정식을 풀어 보자. 달러는 세계의 기축통화이지만, 미국의 무역적자 경상 적자 재정 적자가 늘어날수록 기축통화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 미국의 무 제1부 이라크 전쟁 31

32 역적자 경상 적자 재정 적자의 누증으로 인한 통화위기 초( 超 )인 플레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달러의 일극( 一 極 )지배를 통해 미국의 통화가 전 세계에서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달러 일극 지배체제에 도전하는 유로화가 등장함으로써 새로운 사태가 생기고 있다. 이라크 등의 원유 생산국가들이 취약한 달러화 대신에 유로화를 선호하기 시작하자 미국 경제에 비상이 걸 렸다. 달러의 일극 지배체제가 도전을 받으면 미국 경제의 동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의 동요를 경제적인 수단으로 예방 하면 다행이지만, 경제 이외의 군사적인 수단, 즉 전쟁을 통해 예방 하려면 전쟁의 악순환 이외의 길이 없다. 다행스럽게 프랭클린 루즈 벨트 대통령은 뉴 딜(New Deal) 정책을 통해 미국경제의 위기를 넘 겼으나, 부시 대통령은 군사적인 수단, 즉 전쟁을 통해 달러화 일극 지배체제의 동요 현상(유로화 선호 현상) 을 돌파하려고 했으며 그 결과가 이라크 전쟁이다. 달러화 일극 지배체제의 동요 와 이라크 전쟁의 관련성 그러면 달러화 일극 지배체제의 동요(유로화 선호) 와 이라크 전쟁의 관련성을 아래와 같이 살펴본다. 3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3 후세인 정권은 2000년 11월 6일자로 원유 거래를 달러에서 유로 (EURO)화로 바꿈으로써 철두철미하게 미국에 등을 돌렸다(북한도 최근에 결제화폐를 유로화로 바꿈으로써 달러를 배척하는 진짜 반미 국가가 되었다. 이로써 달러마저 거부하는 반미국가=악의 축 국가 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다). 만일 이라크처럼 달러 대신 유로화로 결제 하는 나라들이 중동 산유국 가운데 증가하기 시작하면 머지않아 OPEC(석유수출국 기구)의 공식 결제화폐로 유로화가 지정될 것이다. 이렇게 공포스러운 사태에 직면하여 전쟁을 통해서라도 결사적으로 저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을 부시 정권이 가졌을 터이다. 미국의 국익을 좌지우지하는 원유 달러(Oil Dollar)가 한물가고 그 자리에 유로화가 들어선다는 것은, 제국 미국 을 강타하는 끔찍 한 일이다. 실제로 중동 산유국 중에서 불안정한 달러 대신 유로화 로 바꾸려고 검토하고 있는 나라가 꽤 있다고 한다. 그래서 원유 가 격을 유로화로 바꾸려는 산유국의 움직임을 미국이 상당히 두려워하 고 있다. 이러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유로화로 결제화폐를 바 꾸는 대열의 선두에 서 있는) 후세인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게 미 국의 세계지배 체제 유지의 급선무가 되었다. 미국이 오랫동안 갖은 노력을 기울여 후세인 정권의 타도를 시도했으나 불발탄에 그치자, 이라크 석유강탈 전쟁을 강행한 것이다. 이러한 해석을 따르면, 미국이 이라크의 원유를 빼앗으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욕심일 뿐이다. 진짜 속셈은 OPEC 등의 원유 대금 제1부 이라크 전쟁 33

34 결제화폐를 유로화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군기(?)를 잡으려는 데 있 다. 후세인의 이라크를 시범 케이스로 군기 잡아 다른 나라들이 감 히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 이라크 전 쟁을 벌였을지 모른다. 이라크의 군기를 잡기 위한 전쟁을 통해 달 러 체제를 군사적으로 방어하려는 목적이 내재해 있다. 이라크 전쟁은 달러 방위 전쟁 한마디로 이라크 전쟁은 달러 방위 전쟁이다. 이 달러 방위 전쟁 의 막후에서 지금도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달러화와 새로이 도전장을 내고 있는 유로화의 기( 氣 )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원유 결제 화폐를 에워싸고 달러화와 유로화의 대결이 이라크 전쟁의 뒷전에서 벌어지 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유럽의 맹주인 프랑스와 독일이 미국 의 이라크 전쟁 체계에 반기를 들고 있다. 이러한 달러 방위 전쟁의 선봉장은 토마호크 미사일이다. 이라크 전쟁 때 미국이 이라크에 대하여 결사적으로 토마호크 미사일을 퍼 부은 배후에, 달러 지배체제 고수의 집념이 도사리고 있다. 돈(달러 지배체제 고수)과 전쟁은 실과 바늘 이란 상식을 미국이 몸소 전쟁 을 통해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3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5 사실 화폐제도는 누군가가 이것을 돈으로 받아들여 줄 것 이라 는 기대에 의해 성립된다, 그래서 돈이란 실체가 없는 상당히 취약 한 것이다. 누군가 그 돈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 다. 어쨌든 달러라는 돈을 전 세계의 사람들이 모두 신용하고 수취 하기 때문에, 미국은 달러를 마구 찍어 내어 전 세계에서 필요한 모 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유로화가 달러와 동격의 기축통화로 된다면 필요 한 것이 있으면 돈을 찍어 내면 되는 특권을 미국이 잃어버리게 된 다. 유로화가 강세를 나타낼수록 미국이 달러를 남발할 능력을 상실 하여 (달러 지배체제에 입각한) 제국 미국 의 기반이 붕괴되므로, 전쟁을 감행해서라도 이를 예방해야 한다. 종합적으로 설명하면 미국이 무슨 일이 있어도 이라크를 공격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 는, 이라크를 시범 케이스 로 족쳐 군대를 주둔시킴으로써 중동의 산유국이 달러로부터 이탈하 지 않도록 견제하기 위한 것 이다. 달러 불매운동이 최대의 반전운동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이라크 전쟁을 중단시키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모두 달러화를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 모두가 달러를 사용 제1부 이라크 전쟁 35

36 하지 않게 되면, 미국의 지대한 힘도 무력화되어 버린다. 미국의 힘 을 무력화시키려면 전 세계의 민중들이 달러를 사용하지 않으면 된 다. 달러로 물건을 사지 않는 달러 불매운동이, 최대의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이 된다. 더 나아가 달러로 표시되는 미국 제품의 불매운 동은 금상첨화이다. 미국의 대기업과 초(다)국적 금융자본을 통해 달 러가 유통되므로 미국 제품의 불매운동은 곧 달러를 사용하지 않는 운동으로 연결되며, 이 운동이 커질수록 미국의 힘도 그에 비례하여 무력화된다. 미국 제품 불매운동 특히 부시 정권은 미국의 대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므로 미 국 대기업 제품의 불매운동은 부시 정권의 목을 비트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전 세계인이 이라크 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국 대기업 제품을 구입하지 않으면 큰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시위 중심의 반전운동보다 더욱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가 온통 세계화되어 있는 마당에 미국 제품 모두를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일상생활 자체를 포기하라는 말이 된다. 더구나 부시 정권에 영향력을 갖지 않는 미국 기업의 제품까 지 보이콧(boycott)하면, 거꾸로 경제적 약자의 생활을 곤란하게 만 드는 꼴이 된다. 그렇다면 어떤 제품을 보이콧하는 게 부시 정부의 급소를 찌르는 결과를 가져올까? 3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7 불매운동 대상 기업 명단 생각건대 부시 정권을 비호하는 기업의 제품을 개인이 사지 않 거나 자국의 정부가 사지 않도록 압력을 넣는 불매운동을 전개하면 (부시 정부에 견제구를 날림으로써) 이라크 전쟁에 제동을 걸 수 있 을 것 같다. 이러한 차원에서 전쟁 반대 차원의 불매운동 대상 기업 을, 부시 정권을 비호하는 유형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1. 부시 대통령과 관련이 있는 헌금 기업(맨 뒤의 숫자는 헌금 액수) 1) 메릴 린치(투자 고문) 132,425달러 2) Price Water House 쿠퍼스(컨설팅) 127,798달러 3) City Group(은행) 114,300달러 4) 엔론(에너지) 113,800달러 5) 텍사스 주(주 정부) 87,254달러 2000년 대통령 선거 당시의 데이터임. 2. 부시 정권의 각료 보좌관-헌금 기업의 연결구조 1) 죤 애쉬크로푸트(사법부 장관)---AT&T사(통신), 마이크 로소프트(컴퓨터 소프트) 기타 2) 도날드 럼스펠드(국방부 장관)---팔마시아 사(제약), 모토 롤라 사(전자 기기) 기타 제1부 이라크 전쟁 37

38 3) 스펜서 에이브러함(에너지부 장관)---GM 사(자동차), 포 드 사(자동차) 기타 4) 콜린 파웰(국무부 장관)---AOL 사(Internet Provider) 기타 5) 콘도리사 라이스(국가안전보장 담당 대통령 보좌관)---셰 브론 사(석유) 기타 3. 세계의 군수기업 Big 20(맨 뒤의 숫자는 계약고) 1) 록히드 마틴(미국)---179억 달러 2) 보잉(미국)---156억 달러 3) BAE 시스템(미국)---155억 달러 4) 레이시온(미국)---115억 달러 5) 노스롭 그라만(미국)---71억 달러 6) 제너럴 다이내믹(미국)---56억 달러 7) 토마스 CSF(프랑스)---41억 달러 8) 리튼(미국)---39억 달러 9) UTC(미국)---35억 달러 10) AM(프랑스)---33억 달러 11) 다임러 크라이슬러(독일)---31억 달러 12) IRI(이탈리아)---30억 달러 13) TRW(미국)---30억 달러 14) 미쯔비시 중공업(일본)---25억 달러 15) 롤스로이스(영국)---24억 달러 16) GKN(영국)---19억 달러 3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9 17) 뉴 포트 뉴스(미국)---18억 달러 18) DCN(프랑스)---17억 달러 19) 제너럴 일렉트릭(미국)---16억 달러 20) Computer Science C(미국)---15억 달러 스톡홀름 국제평화 연구소(SIPRI)의 자료(2001)에서. 4. 불매 대상 제품 서비스 1) 부시 정권에 헌금하는 회사와 주요 생산제품 1 쇠고기(미국 산) 텍사스 주(정권에 헌금)의 특산물 2 Kellog의 시리얼 3 몬산토 사( 社 )의 대두( 大 豆 ) 100%라고 표시되어 있지 않 은 간장(유전자 변환한 大 豆 ) 4 City Bank의 계좌, 외화 예금 5 Acusa 생명보험의 개인연금, 종신보험 6 메릴 린치 증권 7 노스웨스트 항공 8 유나이티드 항공 9 포드 자동차 회사의 포커스, 몬데오 등 10 필립 모리스 社 의 말보로, 버지니아 슬림, 필립 모리스 11 마이크로소프트 12 AOL 13 AT&T 14 모토롤라의 휴대 전화, 모뎀 등 제1부 이라크 전쟁 39

40 15 칼텍스의 엔진 오일 (셰브론 사의 자회사) 2) 석유 군수 관계 회사 1 동연( 東 燃 ) 제너럴 석유 2 모빌 석유 3 Esso 석유 4 코카콜라 회사의 스프라이트, 환타, 조지아 등 (전쟁터의 미국 병사에게 제공되는 음료) 5 칼텍스 社 의 엔진 오일 Multi National Monitor 誌 의 최악덕( 最 惡 德 ) 기업 명단에서 3) 기타 1 디즈니랜드 社 의 유원지, 캐릭터, 영화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조직(Zionist 조직)에 계속 기부함> 2 맥도날드(아프가니스탄 전쟁 때 식량 지원에 참가) * 출처= 평화 만들기( 112호( ) 4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1 미군, 열화우라늄탄 퍼부어 - 클러스터 폭탄도 사용 1. 열화우라늄 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이라크에 열화우라늄 탄을 투하함으 로써 이 전쟁의 부도덕성을 결정적으로 증명했다. 펜타곤은, 개전 직 전에 열화우라늄의 사용 금지를 요구하는 세계의 여론에 도전하듯 열 화우라늄 탄의 사용을 선언했다. Guardian 인터넷 판( ) 에 따르면, 영국 정부가 페르시아 만 지역에 열화우라늄 탄을 배치하고 열화우라늄을 사용한 것을 인정했다( uk_news/story/0,3604,895223,00.html) 이어 대( 對 )전차 공격기인 A-10이 이라크 전쟁에 출동했다는 보 도가 있었다. A-10은 전차를 공격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하며, A-10 기의 기관포탄은 4발의 열화우라늄 탄과 1발의 작열 탄을 공장에 서 혼합하여 출하된 것이다. A-10의 출격은 열화우라늄 탄의 발사를 확실히 말해 준다. 이 밖에 열화우라늄 탄을 발사할 수 있는 아파치 헬리콥터, 해리어, AC-130 등도 출격하여 공격을 반복하고 있다. 제1부 이라크 전쟁 41

42 미국 영국군이 이라크의 남부를 중심으로 한 이라크 전역에 열 화우라늄 탄을 발사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열화우라늄 탄의 발사량은 아직 모르지만, 사막을 전쟁터로 삼아 싸웠던 걸프전에 비하여 도시 를 무대로 싸우는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의 열화우라늄 탄 공격은 더 욱 끔찍한 결과를 가져와 열화우라늄 탄에 의한 학살 이 우려된다. 이라크에서 앞으로 열화우라늄 탄에 의한 환경오염 암 등 각종 질병 대량 발생 등 엄청난 인명피해가 속출할 것이다(걸프전에서 사용한 열화우라늄 탄은 약 100만 발, 320톤이라고 펜타곤이 발표했다). 2. 관통형 폭탄 집속( 集 束 ) 탄 사용 개전 당일부터 후세인 대통령이 숨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 하벙커를 관통하여 폭파하기 위한 세계 최대 화력의 관통형 폭탄을 퍼부음으로써 수많은 바그다드 시민이 몰살당했다. 이 또한 학살이 아닐 수 없다. 페르시아 만 북부에 있는 키티호크 항공모함의 해군 당국자는 2003년 3월 26일 항공모함 탑재기인 FA 18 전투공격기가 바그다 드 남방 약 80킬로 지점의 칼바라에서 클러스터(집속) 폭탄 2발을 투하했다. 고 밝혔다. 미군은 또 이라크의 지도부를 붕괴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벙커 버스터 라고 불리는 관통형 유도폭탄을 F-117 스텔스기에 탑재하여 4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3 투하하였다. 그런데 이 폭탄은 모두 열화우라늄으로 만들어졌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서 전쟁 이후에 전쟁범죄의 재판정에 제소할 만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한편 (이라크의 방공포를 피하여 고공에서 B-52가 발사한) 공 중발사 순항미사일과 (해상의 함선 잠수함에서 비가 내리듯 발사된) 토마호크 미사일의 탄두도 열화우라늄으로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 출처= 평화 만들기( 112호( ) [용어해설 1] 열화( 劣 化 )우라늄 탄( 彈 ) (DU: Depleted Uranium Ammunition) 원자력 발전소의 연료 제조과정에서 생기는 열화 우라늄(감손우 라늄)을 사용하여 전차나 탱크 등의 두꺼운 장갑을 뚫을 수 있도록 고안된 포탄이 열화 우라늄 탄이다. 비중이 납에 비해 약 1.7배 이 상 높아 텅스텐과 더불어 철갑탄의 관통자로서 적합하며, 장갑 관통 시 선단부가 버섯모양으로 퍼지는 텅스텐과 달리 Self-Sharpning이 라 불리는 가소성 변형을 통해 관통력을 높인다. 그러나 이 과정에 서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는 산화우라늄 입자를 생성한다. 1991년 걸프전쟁에서 미군이 처음으로 사용하여 이라크 전차 1,200여 대를 파괴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이후 세계 전역으로 급속 제1부 이라크 전쟁 43

44 히 확산되었다. 그러나 걸프전쟁에 참가한 군인들 중 걸프증후군 이 라고 하는 정체불명의 병을 앓는 사람이 늘어나자 그 원인으로 열화 우라늄 탄이 거론되면서 문제가 되었다. 또한 1995년의 보스니아전 쟁, 1999년의 코소보전쟁에서도 사용되어 발칸증후군 을 유발하기 도 하였다. [용어해설 2] 클러스터 폭탄( 集 束 彈 : Cluster bomb) 클러스터 폭탄은 한 개의 탄 안에 수백 발의 작은 자탄( 子 彈 : 아 들 탄)이 들어 있어서 폭발과 동시에 수백 발의 자탄이 공중에서 지 상으로 내리꽂히게 된다. 이 자탄은 폭탄은 아니지만 일종의 파편으 로 총알에 가까운 속력으로 지상에 닿기 때문에 파괴력이 엄청나다. 또한 지상에서 2차 폭발을 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일반 폭탄처럼 폭발력으로 파괴시키거나 열로 기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수백 발의 파편으로 일거에 넓은 범위에 타격을 입히는 형식이다. 클러스터 폭 탄은 전략 폭격기나 F-15기에서 투하한다. [용어해설 3] 벙커 버스터(Bunker buster) 폭탄 미국의 지하 침투용 무기로, 6m 두께의 콘크리트 벽을 뚫고 들 어갈 수 있는 레이저 유도폭탄이 벙커 버스터 폭탄이다. 1991년의 4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5 걸프전 당시 이라크 지하사령부를 파괴하기 위해 개발되었으며, 그 후 개조과정을 거쳤다. 벙커 버스터 폭탄은 길이 5.7m, 무게 2,260 kg의 레이저 유도폭탄으로, F-15 등의 전투기를 이용하여 투하한 다. 미군은 9 11테러 이후 오사마 빈 라덴이 은신한 것으로 알려진 산악지대의 동굴을 파괴하기 위해 벙커 버스터를 사용했으며, 2003 년 3월 이라크 공습 때 후세인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곳에도 벙커 버 스터를 투하했다. 제1부 이라크 전쟁 45

46 미군의 성( 性 )고문 성( 性 )학대 1. 들어가는 말 2004년 5월 초에 미국의 CBS는 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 사건 에 관한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국내의 언론사 중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일부 방송이 이 사건을 보도했다. 아직 주요 일간지가 이 사건을 크게 다루고 있지 않다. 아마 한국의 기자들이 CBS의 프로그 램을 보지 않았거나 보았더라도 자제 또는 외면하고 있을지 모른다. 필자 역시 이 사건을 단순하게 취급하는 국내 언론의 보도 방향에 따라 별 관심 없이 지내다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images/iraqi-pow/iraqi-pow를 접속하고(사건 발생 뒤 폐쇄하여 지 금은 접속할 수 없음. 접속가능함) 까무러 치게 놀랐다(위의 사이트에 실린 사진과 동일한 성고문 성학대 장 면이 워싱턴 포스트 등에 의해 공개적으로 폭로되었다). 2. 미군은 해방군? 성폭행군( 性 暴 行 軍 )? 우선 이라크 주둔 미군의 성격변화에 관하여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라크 점령 당시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미군을 이라크의 일부 국민이 환영했다. 이라크 국민의 환영을 받으며 바그다드에 입 4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7 성한 미군은 해방군으로 자처했다. 그러나 부시 정권이 세우려는 이 라크 잠정정부 수립의 구도가 민중지향적인 민주주의(이슬람교를 믿 는 민중의 정서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를 외면하고 친미정권을 지향 하자, 이라크인들은 미군을 점령군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식에 바탕을 두고 이슬람 게릴라들의 무장공격이 시작되었다. 이어 이라크의 무장 게릴라에 대한 미군의 소탕작전이 벌어졌으 며, 팔루자에서의 정면충돌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군은 군사 작전의 이름으로 팔루자 주민들에 대한 학살을 야기했다. 팔루자 학 살은 이라크 주둔 미군이 학살군임을 여지없이 증명했다. 학살군으로 성격이 바뀐 미군은, 또 하나의 학살인 성학대극 을 준비했다. 바그다드 부근의 미군 형무소에서 이라크인 포로에 대한 성고문 성학대 1) 가 은밀하게 벌어진 것이다. 이라크 전쟁 종료 1년 만에 미군은 도덕적으로 추락(해방군~점 령군~학살군~포르노 군단 / 성고문 성학대군으로 전락)하고 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패배한 이유는 무기의 수준이 뒤떨어진 데 있지 않다. 미군과 남베트남 정권의 부도덕성이 북베트남과 베트콩의 도 1) 국내외의 언론매체가 이라크 포로에 대한 학대 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얻은 자료에 의하면 단순한 학대가 아닌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성고문이자 성학대이다(성을 도구로 삼은 고문 학대). 성학대가 혹평이라면 성추행, 성모멸 정도의 단어가 떠오 를 텐데 이 정도의 표현으로 미흡한 느낌이다. 비록 성모멸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라도 가학성 변태성욕(sadism) 에 의한 성도착증이 나타나므로 성학대 로 포괄해 도 크게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제1부 이라크 전쟁 47

48 덕적 혁명성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베트남 민중의 민심을 등 진 악행(민중학살, 강간 등)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라크 종전 1년에 즈음하여 미군이 학살군 포르노 군단(성학 대군)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면, 베트남에서처럼 미군의 불명예스러 운 철수가 예상보다 빨리 이루어질 것 같다. 이런 마당에 미군(학살 군 포르노 군단 성고문 군단)과 호흡을 맞추며 작전을 전개하기 위해 이라크 파병을 서두르는 한국군은, 파병 자체에 대하여 깊이 숙고해야 할 것이다. 3. 군대와 성 군대가 주둔하는 한 성폭행 성학대가 일어난다고 법칙처럼 말 할 수 없으나, 그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다. 군대가 민중지향적일수 록 성폭행 성학대의 비율은 줄어든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 군 대(인민군)가 전쟁터에서 여성을 강간했다는 기록이나, (이라크 주둔 미군처럼) 성폭행군 이었다는 보고서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한반도를 유린한 미군은 조선 여성을 강간 성폭행했다. 군대는 원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집단적으로 밀집해 있는 곳이므 로, 정욕의 억제가 사실상 쉽지 않다.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좁은 내무반에서 스트레스에 싸여 생활하다 보니, 욕구 분출의 돌파구를 여성의 신체에 대한 폭행 에서 찾는 경우가 있다. 이때 지휘관이나 군부대 자체가 도덕적으로 무장되어 있거나 목적의식 작전의 대의 4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9 명분이 확실하면, 정욕의 개인적 집단적인 분출을 억제할 수 있다. 그러나 대의명분이 없는 전쟁을 벌이는 군대의 경우 정욕의 억 제는 병사 개인의 도덕심에 돌려진다. 상당한 도덕력을 갖춘 장병이 라면 양심에 어긋나는 성폭행을 삼갈 것이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군중심리에 의한 매춘 강간 성폭행이 일어나곤 한다. 군부대 주변 의 매춘 업소는 이런 경향을 반증한다. 그러나 군대를 운영하는 국 가권력의 의지에 따라 아예 매춘 강간 성폭행을 제도화하는 사례 도 있다. 일본군대의 종군 위안부(정신대)의 합법화가 그것이다. 일 제 군대의 종군 위안부 합법화는, 에도 시절부터 내려온 공창의 합 법화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변명 섞인 해석도 있으나, 군대의 도덕적 타락임에 분명하다. 4. 이 사건을 보는 10가지 관점 그러면 미군의 성고문 성학대를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나? 이 질문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10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1) 미국의 국가권력이, 성고문 성학대하는 미군병사를 통하여 이라크 포로에게 나타나고 있다. 지배자인 미군의 지배양식 이 성학대로 드러나고 있다. 2) 이라크 전쟁의 인간관계, 즉 미군이라는 가해자와 이라크 민 중이라는 피해자의 관계가 성학대로 나타날 수 있다. 제1부 이라크 전쟁 49

50 3) 모든 군사주의는 가부장적인 남성 병사가 여성을 강간하도록 되어 있나? 혹시 여성 병사가 남성이나 동성인 여성을 성학 대 성희롱하는 경우는 없나? 관련 사진을 보면, 여군(미군 여성)이 성학대의 가해자로 등장한다. 따라서 군사주의와 페 미니즘의 가부장적인 남성문화가 만악의 근원이라 는 정식 은 일부 수정될 필요가 있다. 4) 성고문 성학대는 이라크 주둔 미군만이 하는 게 아니다. 다 른 나라의 군대, 아니 혁명을 자처하는 군대도 성학대를 할 수 있다. 유엔 평화 유지군이 코소보에서 성폭행 사건을 일 으켰다. 이러한 측면에서 군대와 성 의 문제를 더욱 심층적 으로 다루어야 한다. 5) 관련 사진에서 보듯이, 미군의 동작에 타학적인 요소, 즉 새 디즘(sadism) 의 요소가 배어 있다. 변태적임과 동시에 타학 적인 성학대를 어떤 잣대로 해석해야 하나? 프로이드의 정신 분석학을 도입하여 항문기의 성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분출 한 성도착증 으로 보아야 하나? 아니면 미군이 남자이기 때 문에 성학대를 한다는 군사주의와 페미니즘 의 논리에 머물 러야 하나? 6) 논란이 많은 페미니즘과 민족주의 에 관한 것인데, 외세의 군대인 미군 앞에서 이라크 민족의 구성원이 신체적으로 수 탈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나? 7) 민중론적인 시각에서 이라크의 민중 과 제국 미국의 군대 의 대결선상에서 성학대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보아야 하나? 5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51 8)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든 이라크에 자유 민주주의를 정착시 키기 위해 파병된 미군 의 성학대 장면은, 이라크인에 자유 는커녕 성폭행을, 민주주의는커녕 포르노 군단의 반민주성 을 부각시켰다. 9) 한국군이 이라크에 파병된다면 포르노 군단 이 될 확률이 영(zero)인가? 베트남 전쟁 때 파병된 한국군의 성폭행 사례 가 이라크에서 재발되지 말란 법이 없다. 10) 이라크처럼 군사적으로 종속될 경우 민중의 신체가 타격을 입는다. 식민지 이라크의 백성들이 몸뚱이로 저항하다가 체 포되거나 포로가 되면, 사진에서처럼 성고문 성학대를 받 을 수 있다. 이때 민중의 신체를 어떤 시각에서 보아야 하며, 가해자인 미군의 신체는 어떤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하나? * 출처= 평화 만들기( 129호( ) 5. 이라크의 아랫것들 이 성학대 당했다 일반 언론매체처럼 성학대 사건의 피해자를 이라크 포로 로 규 정하면 너무나 단순하다. 가해자인 미군에 의해 성학대를 당한 관계 를 설정하는 개념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제1부 이라크 전쟁 51

52 이라크 포로 에는 가해자(미군)와 피해자의 성을 에워싼 지배- 피지배 관계 가 깃들어 있지 않다. 미군은 이라크의 권력을 쥔 자로 서 성학대를 저질렀다. 따라서 성을 에워싼 지배-피지배 관계 에 권력 이 내재되어 있다. 그렇다면 성을 둘러싼 권력의 피지배자인 이라크 포로 를 어떠 한 사회과학적인 개념으로 파악해야 하나? 그냥 민중이라고 하기에 싱겁다면 제3세계 민중 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제3세계 민중 의 일원( 一 員 )인 이라크 포로 가 제국 미국 군대의 일원(미군)에 의해 성학대를 받았다고 보아도 괜찮을 듯하다. 그러나 이렇게 설명 하면 관계의 그물망이 너무 커진다. 여기에서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의 하위주체(Subaltern) 개념을 적용하면 어떨까? 스피박이 말하는 subaltern을 하위주 체로 번역하면 좀 고답적인 듯하다. 우리말에 흔한 아랫것들 로 옮 기면 어떨까 생각한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체제의 아랫것들(이라크 식민지 백성) 중 아부 그라이브 형무소의 포로들이 집중적으로 성 학대를 당했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아닌 듯하다. 먼저 스피박이 말하는 subaltern 이 무슨 뜻인지 소개한다. subaltern 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글에서 유래하는데 계 급, 카스트, 젠더, 인종, 언어, 문화와 관련된 종속성을 함축한다. 이 단어에서 sub는 하위 나 하부 의 뜻을 갖는 동시에 substance에서 5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53 의 sub처럼 우리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공기처럼 우리를 우리로 존재하게 하는 소중하고 없어서는 안 되는 실체를 가리킨다. 인도에서 1982년에 출범한 하위주체 연구회 는 엘리트 중심의 식민주의적 인도 역사기술을 비판하며 농민과 같은 하위층을 전면에 내세우는 역사기술을 시도한다. 하위주체와 엘리트가 어떻게 서로 상호작용하고 서로의 경계를 가로지르는가에 관심을 가질 때, 식민 담론의 틈새와 모순의 효과로 출현하는 하위주체를 지배담론에 압력 을 가하는 일종의 저항적 차이로 설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하위주체 개념은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혹은 기층 민중 개념과 어떤 차이를 갖는가? 우리 사회에서 기층민중 개념은 1970년대, 1980년대에 주로 쓰였으며 생산과 임노동 중심이라서 성, 인종, 계급, 성적 취향, 종교 등의 축에 따라 전 지구적으로 엮이고 얽히는 복잡하고 다원화하는 21세기 현실의 다층들과 문화적 변동들 을 담아낼 수 없다. 대신 하위주체는 생산 위주의 자본주의 체계에 서 중심을 차지하던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물론 성, 인종, 문화적으로 주변부에 속하는 사람들을 포괄할 수 있다. 말하자면 하위주체는 프 롤레타리아 계급의 가능성을 복합화하고 확대한 것이다. 2) 그런데 이라크 포로들을 그냥 하위주체(아랫것들) 로 부르면 부 족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추측건대 아부 그라이브 형무소에 수감 중인 이라크 포로 중 상당수는 미군의 점령체제에 저항한 혐의 로 2) 가야트리 스피박 지음, 태혜숙 옮김 다른 세상에서(In Other Worlds) (서울, 여이연, 2003) 541~542쪽 요약. 제1부 이라크 전쟁 53

54 잡혀 온 아랫것들 일 가능성이 있다. 정치적 이유나 종교적인 이유 로 미국 점령체제에 저항해 온 투사들이 성고문 성학대의 대상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투사들은 현재 이라크 전역에서 활약하고 있는 반미 민중운동 세력, 게릴라 부대, 이슬람 전사 조직과 일정한 연관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라크 주둔 미군의 정보부 대는 이들 포로들의 주리를 틀어 반미 민중운동 세력에 관한 정보를 캐려 했을 것이고, 가장 효율적인 고문 수단으로 성학대를 일상화했 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학대 당한 일부 이라크 포로는 단순한 시민 (양민)이 아니라 저항의 주체, 즉 반미 투사, 해방운동의 투사, 민족 봉기(Intifata)의 투사이다. 위에서 저항의 주체 를 강조하는 이유는 subaltern 개념에 저항 의 주체 라는 요소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제국 (2000)에서 주장하듯 전 지구적 현실에서 이제 제국주의가 아니라 제국 에 실질적으로 맞서야 한다고 할 때 그것은 지구적 연대를 상상하고 실천하지 않고 서는 힘들다.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전 지구상에 다양한 형태로 흩어져 있지만 눈에 보이지는 않는 거대한 영역을 담아내고 담론화해서 자본의 논리에 희생당하고 착취당하면서도 자본의 논리 를 거슬러 갈 수 있는 저항적 주체성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이 런 맥락에서 스피박은 전지구성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는 하위주체를 내세우면서 몇 중으로 침묵되고 가려져 있는 제3세계적 포지션에 처 5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55 해 있는 보통 여성, 즉 하위주체의 젠더화 과정에 따른 젠더화된 하 위주체의 말하기 를 중시한다. 3) 이와 같은 하위주체의 젠더화 과정 을 따라 이라크 성학대 사건 의 피해자 인 이라크 여성 포로(수감자)의 정황을 분석하면 어떨까? 스피박의 저서인 다른 세상에서(In Other Worlds) 에는 두 편 의 인도 단편소설에 대한 번역이 실려 있다. 그중에서도 한없이 너 그러운 두올로티 는 독립 후 인도여성이 하위주체로서 몸으로 겪어 야만 했던 신(재)식민지화의 참상을, 독립 전에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농민반란에 참가했던 인도 하위주체 여성이 겪는 성적인 침해의 고 통을 그려 주고 있다. 두올리티는 아버지가 진 빚 300루피[8천 원] 때문에 유곽으로 팔 려 간다. 이 고리대 빚은 한 세대에 갚지 못하면 다음 세대로 대물림 된다. 이처럼 빚에 팔려서 유곽으로 흘러들어 간 여성들은 카미야 (Kamija) 성노동자 라고 불리는데 가족 에 저당 잡혀 매춘을 하는 셈 이다. 카미야가 된 인도여성들은 포주 키샨찬드, 영국인 사장, 인도 하위주체 남성들로부터 성적 경제적으로 착취된다. 두올로티는 8년 동안 4만 루피를 벌어서 포주에게 바치느라고 쇠약해진 몸인데도 계 속 하루에 다섯 명에서 스무 명의 손님을 받다가 병들자 유곽에서 쫓 겨난다. 몸이 완전히 망가진 두올로티는 고향으로 가는데 인도독립 3) 위의 책, 543쪽. 제1부 이라크 전쟁 55

56 기념일을 축하하느라고 학교 운동장에 그려 놓은 인도 지도 위에 몸 을 눕히고 마지막 남은 피를 모두 쏟아 낸 다음 그 위에서 죽는다. 4) 스피박이 말하는 인도 여인 두올로티와 (아부 그라이브 형무소 에서 성폭행당한) 이라크 여인이 거의 비슷한 고난을 겪고 있는 게 아닐까? 그들은 동일한 아랫것들(subaltern) 이 아닐까? * 출처= 평화 만들기( 131호( ) 6. 어떤 민간기업의 지시에 따랐나? 2004년 5월 8일자 워싱턴 포스트 는 성고문 성학대 사건으로 고발된 미국 여자 병사(잉글랜드 일병: 여성 기술병)와 이메일로 인 터뷰한 내용을 실었다. 잉글랜드는 발가벗겨진 이라크 남성의 그것 을 향해 손가락질을 한 여군이다. 그녀는 정보장교의 지시에 따라 심문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학 대를 계속한 실태를 밝혔다. 그녀는 나체의 이라크 남성의 머리를 끈으로 동여매고 개 취급한 다른 여군과 함께 헌병대에 속해 있다. 잉글랜드는 워싱턴 포스트 에 보낸 이메일에서 헌병이 하는 일은 포로(수감자)들을 잠재우지 않고, 참혹한 꼴을 당하게 하는 것 4) 같은 책, 545~546쪽. 5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57 이었다. 고 지적하면서 육군 정보장교나 CIA 요원, 심문을 맡은 민 간기업 사원들로부터 지시가 있었다는 점 을 분명히 했다. 여기에서 육군 정보장교나 CIA 요원 등은 군 정보 계통의 인 물이어서 이채롭지 않으나 민간기업 사원들 이 등장하는 게 이상하 다. 그렇다면 성고문 성학대를 지시한 민간기업은 도대체 어떤 기 업을 말하나? 일상적으로 이라크의 전후복구 사업을 위해 미국 기업들이 진 출해 있는 것 으로 알고 있는데, 성학대 성고문을 상업적으로 하는 기업이라도 있단 말인가? 성학대 성고문 방법을 가르쳐 주는 회사 라도 있다는 말인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전쟁 청부 기업(PMC) 에 관한 아래의 글 을 참고하기 바란다: 미국은 확장되는 신제국( 新 帝 國 ) 의 범위를 지키며 군사적 우 위를 활용하고 일련의 위협적인 첨단무기 群 (an awesome array of new high-tech Weaponry) 을 개발하며, 이 무기군의 활용을 수십 개의 사설 군사기업(PMC: Private Military Company)의 전문가들에 게 대행시키고 있다. 이라크를 점령한 14만 명의 미군과 2만 2천 명의 영국군에 의한 단기간의 전투승리와 유전의 안전확보는, 민간 군사계약 기업활용의 성패를 시험하고 있다. 디지털 전쟁, 컴퓨터 네트워크 전쟁이라고 불 제1부 이라크 전쟁 57

58 리는 이번 전쟁에서 유전의 파괴가 거의 없었다(걸프전 당시에는 320곳의 유전에 불이 났다). 이라크 전쟁은, 컴퓨터 서비스, 유전 서 비스 등의 민간기업과 그 기업 전사( 戰 士 )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 체이니 부대통령, 부시 대통령, 파웰 국무장 관 등은 펜타곤과 관련이 깊은 기업의 사외 사내 중역, 때로는 최 고 경영자가 된다. 이들은 미국 주식회사의 경영 테크노크라트 (technocrat)의 입장에서 펜타곤을 경영한다. 비즈니스맨 출신의 럼스 펠드 국방장관은, 펜타곤의 CEO(경영 최고 책임자)로 일컬어지며, 미국 군장비의 첨단화 민간 첨단기업의 군사기술 흡수와 민간기업 의 활용을 정력적으로 하고 있다. 최첨단 디지털 네트워크 전쟁이 거론된 것은 1990년대부터이지 만, 1991년의 걸프전쟁 때는 병사 1백 명 중 한 사람이 민간기업 출 신 기업 전사였다. 그런데 이라크 전쟁에서는 10명 중 한 사람 이상 (13%)이 기업 출신 전사였다.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인 제압이 끝난 뒤에도 전투원이 잔류하고, 점령지의 치안 유지 부흥에 임하지 않 으면 안 되는 세계정세 아래에서 군복을 입을 필요가 없는 기업 전 사의 수비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유전의 보위 부흥, 신규 원유 수 송관 건설, 테러 예방이 이라크 전쟁의 구도이다. 이 구도 속에서 해 리버튼의 켈로그 브라운 & 루트(KBR), 벡텔 등의 독무대가 이루 어지고 있다. 민생기술에서 전용한 첨단무기 IT무기의 조작은, 민 간 엔지니어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IT 거품의 붕괴 과잉 서비스 공급 아래의 가격인하 경쟁으로 고전하는 정보통신 업 계에 있어서도 펜타곤은 지옥 속의 부처님 으로 비쳐질지 모른다. 5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59 펜타곤 사업의 2003 회계연도 수주액 중 록히드 마틴(219억 달러), 2위 보잉(173억 달러), 3위 노스롭 그라만(111억 달러), 4위 제네랄 다이나믹스(82억 달러), 5위 레이시온(79억 달러), 6위 유나 이티드 테크놀로지(45억 달러)까지는 예전과 마찬가지이고, 軍 産 복합체 기업의 과점화( 寡 占 化 )를 나타낸다. 현재 7위에 KBR(39억 달러)이 들어가고 8위의 GE(28억 달러)에 이어 9위가 사이언스 어 플리케이션즈 인터내셔널(26억 달러)이 올라 있다. 10위가 된 컴퓨 터 서비스(CSC: 25억 달러)는 지난해에는 21위였다. CSC는 펜타곤과 연결된 PMC로서 급속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 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현지 군사 서비스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다인 코프(Dyn Corp)를 2002년 말에 10억 달러로 매수했다. 다인 코프는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의 경호를 담당하며 암살을 미연에 방지하는 능력으로 유명하다. 실리콘 밸리에서 태어난 통신 신흥기업인 L-3 컴뮤니케이션즈 (L-3 communications)는 1987년에 퇴역 고급군인 집단이 창립했으 며, 현재 세계 수십 개 나라에서 활동하는 고도 군사 컨설턴트, 훈련 교육 회사인 MPRI(Military Professional Resources Incorporated) 를 2000년에 3,500만 달러에 매수했다. 럼스펠드는 민간기업에 전투를 아웃소싱 해 줌으로써 원가를 낮 추는 노선을 새롭게 취하고 있다. 부시-럼스펠드 군사전략의 참모들 대부분은 기업가이기도 하다. 군사참모의 최상위직으로 네오콘 대표인 펄(전 국방성 정책고문)은, 통신회사 글로벌 크로싱 과 (국방 데이터를 서비스하는) 오토노미 社 의 제1부 이라크 전쟁 59

60 사외 중역이다. 퇴역 해군제독인 데이비드 E 제레미 씨는 Technology Strategy 社 의 사장이다. 이처럼 정부 펜타곤 수뇌부에 있는 사람들이 軍 産 복합체 확 장의 비즈니스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 전형적인 예가 체이니 부대 통령이다. 체이니는 국방장관 시절부터 육성한 해리버튼의 KBR에서 사설 군사기업(PMC: Private Military Company)의 대표자 노릇을 했다. KBR의 기업 전사( 戰 士 )들은 미국의 최첨단 무기를 유지 보수해 왔으며, 사용방법을 미군에 가르쳤다. KBR은 이란, 아프가니스탄, 코소보, 보스니아, 아이티에서 미군을 배후에서 지원하고 있다. 특히 이라크에서 KBR의 존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현재 이라크 점령 당국의 미국 담당관 1천 명과 수십만 명의 미군은 식량에서 잠자리 까지 모든 것을 KBR에 의존하고 있다. 미 공병대도 KBR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있으며, 원유 및 원유 수송관의 유지 보수 전반을 KBR이 차지하고 있다(82억 달러의 계약). KBR의 최대의 사업은, 1999년 7월에 완성된 발칸 반도 최대의 군사기지 본스틸 의 건설이다. 이 기지는 발칸 반도를 횡단하여 카 스피해~흑해(불가리아의 불가스 항)에 이르는 원유 수송관의 가까 이에 있다. 해리버튼 본사가 있는 텍사스 주의 석유 전문가들은 체 이니를 군사-석유 복합체(the military petroleum complex)의 대 부 라 부르곤 한다. KBR은 최근 10년간 지구상의 극지, 정치적으로 위험한 지역에 서 싸우는 미군에게도 식량 무기 안식처를 제공하고, 미국의 세계 6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61 적인 反 테러 작전의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 왔다. 체이니 부통령은 백악관의 최고 실력자로서 KBR의 활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한다. 위의 글에서 보다시피 이라크 전쟁의 만능 민간기업인 KBR은, 체이니 부통령<이라크 전쟁을 원격조종하는 네오콘(Neo Con)의 수 장>이 적극 지원하는 기업이다. 그렇다면 KBR로 대변되는 사설 군 사기업(PMC)과 잉글랜드가 말하는 기업(성학대를 지시한 민간기 업) 은 다른가? 같은가? 이것이 문제로다. * 출처= 평화 만들기( 131호( ) 7. 정신분석 으로 풀어 본 성학대 미군의 이라크 포로에 대한 성학대는 기본적으로 제국 미국 의 제3세계 민중(이라크 민중)에 대한 성적인 학대이다. 즉 성을 통한 제3세계 민중의 학대(성적인 착취)이다. 이라크는 미국에 의해 악의 축 국가로 지정되어 있으므로, 제국 미국 에 의한 악의 축 국가의 구성원(국민) 에 대한 성적인 착취라고 규정해도 좋을 듯하다. 성학 대 사건이 미군 당국에 의해 조직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에 주목하면 더욱 그렇다. 제국의 군대가 성학대의 조직적인 주체가 된 사건이어 서 충격이 더욱 크다는 뜻이다. 부시 대통령 등 미국의 권부는 이라 크 주둔 병사 중 망나니들이 벌인 잘못으로 축소하려고 하나, 이미 조직적이고 일상적으로 이라크인에 대한 성적인 학대가 전개되어 왔 음이 계속 폭로되고 있다. 제1부 이라크 전쟁 61

62 성학대 사건은 제국의 군대(이라크 주둔 미군)가 제3세계 민중(이 라크 민중)을 3류 인간이나 인간 이하로 취급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는 제국 미국의 제3세계관, 세계관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만든다. 부시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미국(제국 미국 )은 세계를 우리들 과 놈들(우리들에 비하면 형편없는 놈들) 로 구분하여 지배하고 있 다. 우리들 의 범주에 드는 세력은 미국, 친미 서방국가, 친미 국가 군(일본, 한국 등), 친미 제3세계 국가이며, 미국의 Power Elite<백 인의 앵글로 색슨 프로테스탄트(WASP), 유태인, 초국적 금융 독점 자본가, 군수 자본가 등> 가 이들 국가군을 총괄한다. 미국이 이끄는 이들 국가군( 國 家 群 )의 이데올로기는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군 사주의 의 합성체이다.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생략하고 자유주의+자 본주의의 합성체 가 군사주의( 軍 産 복합체) 와 만나면서 폭력지향 적으로 변하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자유주의+자본주의 의 폭력 성이 신자유주의로 나타나고 있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으며, 국가권 력(부시 정권)이 신자유주의의 폭력성을 수렴하는 권력 장치이다. 이 권력장치(부시 정권)가 군사력을 과도하게 사용하면서 신자유주의 폭력성의 군사화(군사주의화)가 과잉 표출된다. 결국 부시 정권은 자유주의+자본주의 의 폭력성과 군사주의( 軍 産 복합체가 군사 주의의 주동자임) 의 폭력성이 (제곱으로) 중첩되어 성립된 폭압 정 권 이다. 이 폭압 정권의 강권( 强 權 : power / Gestalt)이 성폭력으로 6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63 둔갑하는 것은 순간적인 일이며, 특히 미군 형무소와 같이 밀폐된 곳에서 성학대로 나타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이다. 그러면 앞에서 언급한 놈들 은 누굴 지칭하나? 일단 자유민주 주의+자본주의 를 신념체계로 갖지 않은 국가 집단 개인이다. 5) 여기에서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 를 신념체계로 갖지 않은 국가 집단 개인 중에서 미국을 곱게 보지 않고 미국을 향해 삿대질하며 미국을 비난하는 세력들이 있다. 악의 축 국가들(이라크, 이란, 북 한, 시리아, 쿠바 등) 및 악의 축 국가와 연계된 원리주의 무장 세 력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 악의 축 놈들 은 우리들 과 다른 신념체계를 갖고 있다. 중동의 악의 축 놈들은 이슬람 종교 체계를 신봉하며 (부시가 신봉 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와 맞대결하고 있다(이런 현상을 헌팅턴이 잘 못 보고 문명의 충돌 을 언급했다). 동아시아의 악의 축 놈 인 김 정일 국방위원장은 주체사상이라는 다른 신념체계를 통해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군사주의 에 대항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 중동의 악의 축 놈들(후세인 정권, 이란 정권, 시리 5) 때로는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 를 신념체계로 갖고 있더라도 하대할 때가 있다. 부시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을 향해 this man 이라고 부른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 나 노무현 대통령처럼 쉽게 길들여질 것 같으면 easy man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 리들 안에도 등급이 있으며 이 등급의 하위권에 속해 있는 한국은 these men / easy men 의 집합체이다. 제1부 이라크 전쟁 63

64 아 정권)과 동북아시아의 악의 축 놈(김정일 정권)을 동시에 죽이려 는 전략이 중동과 한반도라는 두 개의 전쟁터에서 동시에 승리하는 (win-win war) 전략 이다. 후세인 정권과 김정일 정권을 동시에 붕 괴시키려는 전략이다. 이런 전략은 9 11 사태라는 절호의 기회에 편승하여 구체화된 다 사태 발생 직후 부시는 전 세계를 향해 우리들 편에 서 든지 놈들 의 편에 서든지 양자택일하라고 강요했다. 이렇게 강요하 는 억압구조 안에 이미 우리들 과 놈들 을 가르는 편집증적인 2분 법 이 깃들어 있다. 우리들 은 정의이고 놈들 은 악당이라는 정신병 적인 편집증이 내재해 있다는 말이다. 그 이후 9 11 사태를 계기로 발생한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 쟁 및 (이라크 전쟁 이후에 내정된) 북한과의 전쟁은, 정신병적인 편 집증의 소산이다. 이런 편집증을 정신분석적으로 분석하면, 미숙하고 원시적인 세계관에 젖은 미숙아의 정신구조가 드러난다 사태 이후 세계를 2분법적으로 구별하여 놈들 을 타도하 려는 부시의 발언(이라크 전쟁이 십자군 전쟁의 재판이라는 발상)은, 미숙아들의 원시적인 방어기제( 防 禦 機 制 )가 상당히 강하게 남아 있 음을 증명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라크 전쟁은 정신 미숙아 부시 가 세계를 2 6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65 분법적으로 경영하면서 발생한 더러운 전쟁(dirty war) 이다. 이라크 포로에 대한 성고문 성학대 사건 역시 미숙아 부시의 아류들 (epigonen)이 벌인 더러운 성학대극 이다. 이 더러운 성학대극 은 우리들 과 놈들 을 구분지어 놈들 은 성학대 성고문해도 좋다는 발상에서 나온 작태이다. 성스러운 우 리들 은 악의 축 놈들 을 성학대 성고문할 권리 의무가 있다는 정신도착증의 결과물이다.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군사주의 의 성 도착 증세를 반영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제국의 타 락이 성적인 도착을 통해 드러난 게 심각하다는 이야기이다. 나(우리 미국) 만 우등생이고 남(특히 악의 축) 은 열등생이라 는 미숙아의 정신구조가 성학대 성고문 사건의 뿌리에 있다. 타자 ( 他 者 ) 타 문화(이슬람 문화 등)와의 평화 공존 상생( 相 生 )을 꿈조 차 꿀 수 없는 부시 정권이 존재하는 한, 제국의 성도착 현상인 성 고문 성학대 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평화를 애호하는 인류 는, 부시 정권을 정신병동에 보낸 뒤(국제형사 재판소에 전범으로 제소할 수 없으므로 정신병동에 보낼 수밖에 없다) 미숙아의 정신병 (미군의 성도착증)을 치유하기 위해 격리수용해야 한다. * 출처= 평화 만들기( 132호( ) 제1부 이라크 전쟁 65

66 김선일 증후군 과 평화 불감증 이라크 전쟁 1) 의 무고한 희생자가 된 故 김선일 씨의 명복을 빈 다. 명부( 冥 府 )에 전쟁이 없다면 그곳에서 장수하기 바란다. 김선일( 金 鮮 一 : 1970년 9월 13일~2004년 6월 22일) 씨는 이라 크 주둔 미군과 거래하는 업체인 주식회사 가나무역 소속으로 이라 크에서 근무하는 통역사였다. 그는 아랍어를 전공하여 2003년 2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중동의 선교사가 되 기를 원하였고 가나무역에 취직하여 2003년 6월 15일에 이라크로 갔다. 가나무역이 기독교 선교를 지원했다는 설이 있다. 2004년 5월 30일 바그다드 시에서 서쪽으로 50km 떨어진 팔루자 시에서 알 자 르카위가 이끄는 이슬람 무장단체인 자마트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 (아랍어로 유일신과 성전 이라는 뜻)의 인질로 납치되었다. 이 단체 는 파병국인 대한민국 정부에게 이라크 추가 파병 중단 및 한국군을 1) 필자가 보기에, 현재 이라크에서 2차 이라크 전쟁 이 전개되고 있다. 1차 이라크 전 쟁 은 지난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킨 전쟁을 말한다. 2차 이라크 전쟁 은, 현재 제국 미국에 저항하는 무슬림 무장 근본주의 세력과 점령군(미국+영국+일본+한국 등의 연합군)과의 전쟁을 말한다. 김선일 씨 피살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2차 이라크 전쟁 이지만, 1차 이라크 전쟁 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두 개의 전쟁을 종합하는 의미에서 이라크 전쟁 이라고 표현했다. 1차 이라크 전쟁 과 2차 이라크 전쟁 을 특 별히 구분할 필요가 있을 때는 2차 이라크 전쟁 을 명기할 것이다. 6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67 즉각 철수시키라고 요구하였고, 정부가 이를 거부하자 6월 22일에 그를 참살하였다. 이렇게 무고한 참살을 당한 김선일 씨에게 바치는 조사( 弔 辭 )를 써야 마땅하지만, 그에 앞서 평화의 시각 으로 곱씹어 볼 사안이 상 당히 많다. 1. 김선일 증후군 김 씨가 납치되었다는 뉴스를 들은 한국민은 가슴을 졸이며 생 환을 바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참수 소식이 들리자 날벼락을 맞은 듯 경악했고, 곧 이어 살인자 집단에 대한 증오 보복심리가 발동되 는 등 시민사회 전체가 참수 증후군(syndrome) 에 사로잡혀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김 씨 피살 이후의 사회 현상을 김선일 증후군 으로 요약하고, 이 증후군에 대한 한국 사회의 대응이 평화 불감증 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을 비판하고자 한다. 김선일 증후군과 연관된 한 국인(특히 냉전 수구 세력)의 평화 불감증을 집중 조명하고자 한다. 2) 먼저 김선일 증후군을 열거한다. 2) 진보 세력은 평화 불감증에서 벗어나 있으나, 파병 반대에만 머물러 있을 뿐 김선일 씨 피살의 본질적인 원인규명과 대안 찾기에 큰 관심을 나타내지 않고 않다. 제1부 이라크 전쟁 67

68 1) 김선일 씨 참수와 관련된 trauma(영구적인 정신 장애를 남기는 충격) trauma를 일으키는 정황은 다음과 같다: 1 이라크 저항 세력에 붙잡혀 심문을 받는 김선일 씨가 살려 달라. 나는 죽고 싶지 않다. 고 부르짖는 목소리. 이 목소리를 들은 한국의 시민들이 무언가 김선일 씨를 구출하기 위해 손 을 쓰고 싶은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자책감 어린 슬픔. 2 참수된 김선일 씨의 목. 3 김선일 씨가 입은 오렌지색 옷. 이 옷은 아부 그라이브 미 군 형무소에서 학대당한 이라크 인들이 입은 옷과 색깔이 똑같다. 김선일 씨의 살해자들은 이 옷을 김 씨에게 입힘으 로써 복수의 상징화를 시도했다. 4 스트레스 받게 하는 한국 정부의 대응. 김선일 씨 납치 사 실을 정부 당국이 미리 알았을 법한데 파병강행 발표를 한 괘씸죄. 5 미국에 줄 것 다 주면서 찬밥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정부. 미국이 파병하라면 끽 소리 못 하고 맹종하면서도, 김 선일 씨 피살 관련 정보를 미국으로부터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여 대책을 세울 수 없었던 한국 정부. 한국 정부의 협상 력 외교력 부족을 생각하면 열 받는다. 6 파병 반대=국론 분열=테러에 굴복 이라는 등식이 주는 스 트레스. 6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69 7 애꿎은 국내의 이슬람 사원을 향해 분풀이하는 못난 백성 들 의 신경질. 8 일부 네티즌들의 집단 공격성. 국방부 홈페이지 등에 극우 보수적인 글을 올려야 겨우 대리만족하는 군사주의의 노예 들. 주적 만들기에 너무나 익숙한 한국인들이 이라크의 저 항 세력을 새로운 주적으로 만들려는 심리적 기제. 주적이 없으면 불안한 한국사회. 너무나 쉽게 상대방을 적으로 만 드는 국민 심성. 이라크 저항 세력의 행위를 전체 이슬람권 사람들의 적대행위로 간주하고 반( 反 )이슬람 파쇼 의 칼날 을 가는 대중심리. 초전박살 내듯 이라크에 특전사를 풀어 섬멸하자는 실미도 발상. 2) 테러 공포증 한국이 테러의 무풍지대가 아니다. 내가 사는 곳 주변에서 테러 라는 날벼락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테러 공포증(정부 당국은 이 테러 공포증에 편승하여 테러 방지법을 입법하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다). 이라크의 저항 세력은 한국을 테러 공격의 취약한 고리로 여기고 있다. 이라크 주둔 한국군을 비롯한 수많은 한국민이 김선일 씨처럼 처참하게 당할지 모른다. 내가 재수 없이 테러에 걸려들지 모른다는 불안감. 제1부 이라크 전쟁 69

70 3) 동영상 위의 테러 공포증과 참수에 대한 호기심이 묘하게 배합되어 참 수 동영상을 보고 싶게 만드는 심리적인 자극. 4) 응징 보복 욕구 피의 보복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단순한 분풀이를 벗어나 보 복성 파병을 하여 람보 처럼 이라크 저항 세력을 소탕해야 한다는 보복 욕구. 앞에서 열거한 증후군은 한국 사회에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민으로 하여금 전쟁의 기억, 학살의 기억, 보 복의 기억, 증오의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북한을 상대로 형성되어 온 원수 상( 像 ) 이 이라크의 저항 세력 위에 그려지고 있 다. 그러므로 이런 증후군을 평화의 담론을 통해 치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평화의 담론을 통한 치유 를 가로막는 것은, 김선 일 씨 사건을 에워싼 해석의 남남갈등 이다. 분단 상황에서 켜켜이 쌓인 남남 갈등이, 김선일 씨 사건과 연관된 파병 논란을 통해 도지 고 있다. 김 씨 피살 사태의 해석을 둘러싼 남남 갈등은, 전쟁지향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쪽과 평화지향적으로 대응하려는 쪽으로 나뉘는 지점 7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71 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전자가 응징 보복 파병론으로, 후자가 파 병 반대(전면적인 파병 철회)론으로 나타나면서 양자 간의 팽팽한 긴장이 지속되고 있다. 이 긴장은 남북문제를 에워싼 오랜 남남 갈 등의 재판이다. 한편 김 씨 피살 사건이 국제적인 관심사가 된 측면에서 보면, 지금까지 한반도에 국한되어 온 남남 갈등이 세계화(?)되고 있다고 나 할까? 이라크 전쟁 자체가 미국 주도의 전쟁이 세계화된 것(제 국의 무장력의 세계적 진출로서의 이라크 전쟁) 이어서 그런지, 이라 크 전쟁 중에 터진 김선일 사건 속에도 세계화 담론이 내재해 있다. 이 담론 중의 하나로 김선일 씨 피살에 관한 국제적인 논란이 벌어 지고 있으므로, 김 씨 피살과 관련된 남남 갈등 역시 자연스럽게 세 계화되어 전 세계의 매스컴에 한동안 오르내렸다. 이 남남 갈등의 오른쪽에 있는 냉전 수구 세력의 평화 불감증이 심각하다. 이들은 분단체제의 사생아로서 평화의 감수성이 부족한 대신 전쟁의 감수성에 뛰어나다. 이들의 우익적인 세계관이 보복성 파병(참전)으로 연결되는 등 평화 불감증이 우심함을 드러내고 있다. 2. 피살의 의미 김선일 씨를 직접 살인한 자는 이라크의 저항 세력, 즉 자마트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 이다. 그러나 간접적인 살인자로 노무현 정 제1부 이라크 전쟁 71

72 권과 부시 정권을 상정할 수 있다. 이 간접적인 살인자에 의한 죽음 의 의미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정치사( 政 治 死 ) 한미 두 정부는 김선일 씨를 정치적으로 죽였다. 김 씨는 이라크 전쟁의 무고한 희생자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도입하지 않더 라도 현대 전쟁은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다. 따라서 김 씨의 죽음은, 전쟁이라는 이름을 빌린 정치에 의한 사망, 즉 정치사( 政 治 死 : politicide)이다. 이런 측면에서 김 씨가 세 번 죽임을 당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저항 세력에 의해 첫 번째로 죽임을 당한 김 씨의 시신 위 에, 미국의 군가권력과 한국의 국가권력이 차례로 정치사( 政 治 死 )의 낙인을 찍었다. 2) 한국 미국의 국가권력에 의한 사망 정치사( 政 治 死 )의 주범은 한국과 미국의 국가권력이다. 이라크 전쟁 자체가 미국의 국가권력에 의한 전쟁이고, 한국이 이 전쟁 구 도에 파병의 이름으로 참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김선일 씨의 간접적 인 살인자는 한국과 미국의 국가권력이다. 7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73 3) 동맹에 의한 사망 이라크 전쟁은 미국 영국의 앵글로 색슨 동맹이 주도했으며, 이 전쟁에 한-미-일 군사 공동체가 참여하고 있다. 미국 주도의 이라크 전쟁에 일본의 자위대와 한국군이 파병되어 있는 구조는, 한-미-일 군사 공동체의 군대가 의지 연합 을 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라크의 전쟁구조는 유럽형 동맹(미국+영국의 앵글로 색슨 동 맹)과 아시아형 동맹(한-미-일 군사공동체)의 연합구조이다. 이 동 맹의 연합구조에 저항하는 이라크의 무장 세력이 김 씨를 참수했다. 그러므로 이 동맹의 연합구조가 김 씨의 간접적인 사망 원인을 제공 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김선일 씨의 목숨이 백척간두에 서 있던 바로 그 위기의 순간에 파병 방침 불변 이라고 미국의 요구에 충실하게 화 답을 했다. 테러범들은 이 메시지를 듣고 김선일 씨를 살해했다. 김 선일 씨의 살해 소식이 알려진 이후에도 부시는 재차 한국 정부가 파병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고 못을 박았다. 곧, 한국 정부는 부시 의 부도덕한 전쟁을 지지하기 위해 김선일 씨를 버렸다. 이 시점에 서 한국이 오직 부시를 도와주기 위해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추가 로 보내려 한다는 사실, 그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한국 인의 목숨을 포기하더라도 미국의 으름장에 화답해야 했다는 사실이 문제의 근원이다. 동맹 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지난 50년 동안 그 제1부 이라크 전쟁 73

74 만큼 많은 한국인이 죽고 다쳤으면 되었지 얼마나 더 죽어야 하나? 3) 4) 전쟁 체제에 의한 사망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주도하는 최첨단 전쟁과 이에 원시적으로 맞서는 이라크 저항 세력의 대결구도이다. 이라크 저항 세력은 무장 세력의 근육을 총동원하는 노동집약적이고 신체 접촉형 전쟁을 수행 중인 데 비하여, 미국은 기술집약적이고 신체 접촉을 꺼리는 원격형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이 전쟁의 승부는 쉽게 판가름 나기 어 렵다. 양측이 서로 승리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가운데 신체 접촉형의 이라크 저항 세력이 납치 유혹을 떨치기 어려웠을 것이 다. 이라크 저항 세력은 납치 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유보한 채, 점령군에 대한 전술 로서 납치-참수극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서 생 명을 초개같이 여긴 이라크 저항 세력의 도덕 불감증을 간파할 수 있다. 어쨌든, 김 씨는 미국과 이라크 저항 세력의 첨예한 전쟁체계의 한가운데에서 홀로 서 있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참변을 당한 김 씨의 신체를, 양측 전략의 상충 속에서 독파하는 게 중요하다. 김 씨는 미군을 도와주는 군납업체인 가나무역 의 근로자였으므 3) 김동춘 한-미 동맹 위해 김선일을 버렸다, 한겨레 신문( ). 7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75 로, 이라크 저항 세력이 보기에 미군의 동조자이다. 따라서 납치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김 씨는 이라크의 최전선에서 노동력을 제공한 전쟁 노동자 4) 이므로, 노동집약적인 전투를 벌이는 이라크 저항 세력 의 밥 이 된 것이다. 이 구조를 모른 채 김 씨가 참수당한 동영상만 보고 흥분하면 안 된다. 김 씨의 신체가 미군 측에 서 있었기 때문 에 납치의 대상이 된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 김 씨는 돈벌 이하러 간 일반 노동자의 성격도 지닌다. 예전에 중동으로 돈벌이 간 노동자와 달리 전쟁터에서 돈을 벌려고 했고, 돈 버는 행위가 미 국 측과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이라크 저항 세력은 김 씨의 행위를 친미행동으로 보았을 것이다) 납치의 명단에 올랐다(김 씨가 이라크 주둔 미군 부대에 납품하고 돌아오던 길에 납치된 경위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음). 어찌 되었든 돈벌이에 나선 가난한 전쟁 노동자 김선일 씨가 거 대한 전쟁체계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일 반 산업장에서 근무하는 일반 노동자의 죽음보다 더욱 처절한 구조 적인 사망 으로 보아야 한다. 4) 가나 무역은 미국 관변의 민간 전사 戰 士 기업(PMC: Private Military Company) 인 AAFES와 계약을 맺은 회사이다. 김 씨가 가나 무역의 근로자이므로 김 씨는 민간 전 사 기업 계통의 전쟁 노동자로 분류된다. 제1부 이라크 전쟁 75

76 5) 부국 강병론의 희생자 미국 제국의 부국강병론(중동의 원유 패권을 장악함으로써 미국 의 국익 증진)에 입각한 이라크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김 씨가 피 살된 것이므로, 김 씨는 전쟁을 통한 미국형 부국강병론 의 희생자 이다. 그리고 김 씨의 피살에도 불구하고 파병을 강행하려는 한국 정부 역시 파병을 통한 국익을 주장하므로, 김 씨는 파병을 통한 한국형 부국강병론 의 희생자이다. 6) 제국에 의한 사망 이라크 전쟁은 제국 미국의 Pax Americana(미국의 힘에 의한 세계 평정) 형 전쟁이다. 그러므로 김 씨의 죽음은. 제국 미국 에 의 한 간접적인 사망이다. 7) 전쟁 자본에 의한 사망 가나무역의 원청업체로 알려진 AAFES(The Army and Air Force Exchange Service: 미국 육 공군 복지기관)는 신종 죽음의 상인 으로 등장하고 있는 민간 전사( 戰 士 ) 기업(PMC)의 일종이다. 이 회 사의 이사회는 미군 현역장성 정부고위직 인사로 구성돼 있으며, 직원 중 1,000명이 현역장병이다. AAFES의 이사회 의장은 미군 중 장인 찰스 S. 메헌 Jr.이며 다른 현역 장성 외에도 미 육군성 존 맥 7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77 클로린 부차관보, 미 공군성 켈리 F. 크레이븐 부차관보 등이 포함 돼 있다. 또 AAFES 소속 직원 47,323명 가운데 1,000명 가까운 1.9%는 현역 미군 장병이다. AAFES는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미군 서비스 업체 로서 흔히 말하는 군수업체이다. 생각건대 AAFES는 미국 군 산 복합체( 軍 産 複 合 體 : military industrial complex)의 한 지류를 형성하는 PMC계 열의 관변회사로서 군수자본의 담지자이다. AAFES는 이라크를 종 횡무진하는 미국계 전쟁 자본의 한 지파이고, 이 지파의 지파인 가 나무역에 김 씨가 고용되었으므로, 김 씨는 전쟁 자본의 희생자이다. 최근에 등장한 PMC는 전쟁자본가이고 김 씨는 전쟁 노동자이 므로, 형식상 전쟁을 에워싼 노사관계가 형성되지만 전쟁터에서 죽 고 사는 문제를 놓고 계약하므로 생명을 담보로 한 노사관계라고 보 아야 마땅하다. 다만 일반 노동자처럼 생산현장에서 일하지 않으므 로, 전쟁 노동자로서 충분한 보상을 받기 어렵다. 이 점에서 전쟁 노 동자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면서 김 씨의 사망에 대한 관점을 정립 해야 할 것이다. 즉 전쟁 자본의 희생자인 김 씨를 자본과 노동의 관계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5) 5) AAFES를 전형적인 PMC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면 전형적인 PMC에 고용 되어 이라크 현지에서 활동하다가 저항 세력에 납치 참수된 전쟁 노동자의 문제를 생 각하게 하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4년 6월 15일 아라비아반도 알카에다 조직에 의해 납치된 사실이 인터넷에 공개 됐던 미국 군수업체 록히드 마틴의 직원 폴 마셜 존슨(49)은 6월 18일 참수당했다. 또 제1부 이라크 전쟁 77

78 8) 반미전사가 반미의식 소유자(?)를 죽인 사건 김선일 씨는 전쟁 노동자이면서도, 반전 반미 평화 의식이 뚜 렷했다. 6) 아마 이라크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의 반전 반미 6월 11일에는 이라크 건설노동자 2명과 함께 납치됐던 레바논인 후세엔 올라이얀도 목 잘린 주검으로 발견됐다. 6월 11일에는 인터넷 사이트에 미국인 닉 버그(26)가 참 수당하는 장면이 공개돼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앞서 지난 4월에는 이탈리아 무장 경 비업체 직원 파브리치오 쿼트로치가 다른 동료 3명과 함께 녹색여단 이라고 자칭하는 이라크 저항 세력에 의해 납치 살해됐다. 미국 기업 핼리버튼의 직원 티머시 벨과 윌 리엄 브래들리는 실종된 뒤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또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수 리공사에 참여했던 이라크 출신 캐나다인 리파트 모하메다 리파트(41), 요르단 사업가 와엘 맘두도 지난 4월 납치됐으며, 건설 용역 업체직원 터키인 2명은 지난 5월 10일 바그다드 서쪽 팔루자 인근에서 납치된 뒤 행방이 묘연하다. 앞에서 열거된 PMC 중 해리버튼은 미국의 이라크 전후 복구 사업 수주 제1위의 업체 이고 네오콘(Neo Con: 신보수주의자)의 수장인 체이니 부통령의 영향 아래에 있는 군 수업체이다. 해리버튼은 신자유주의 노선을 추종하는 초국적 기업이다. 해리버튼이 PMC로서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것은 신자유주의의 군사화에 해당되며, 이 기업의 종 사자 역시 봉급쟁이이지만 신자유주의 군사화를 이라크에서 펼쳤고, 이게 빌미가 되어 이라크 저항 세력의 납치대상이 되었다. 그러면 PMC 노동자의 전쟁을 위한 노동의 대가(전쟁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사용가치 산출: 이 사용가치는 생명을 파괴하는 가치 이다)와 관련된 노사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하나? 전쟁터에서 생명을 파괴하기 위해 애쓴 노동자의 대가에 대한 사회적인 보상에 대한 관점은 어떻게 정립되는 게 바람직 한가? 6) <에이피 통신>의 영상 취재를 담당하는 <에이피 텔레비전뉴스(APTN)>는 2004년 6월 24일 김선일 씨가 지난달 말 납치된 직후 납치범들로부터 심문을 받는 4분 분량의 비 디오를 방영했다. 이 화면에서 김 씨는 흰색 원 안에 보디 글로브(Body glove)라고 영 어로 쓰인 어두운 남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으며, 짧은 머리에 면도를 한 깔끔한 모습 이었다. 김 씨는 약간 긴장한 듯 보였지만 손으로 제스처를 해 보이기도 하며 차분하 고 분명하게 답변했다. 화면에 드러나지 않은 한 명의 남자 질문자는 영어로 김 씨에 게 질문했다. 다음은 <에이피티엔>에 공개된 납치범과 김선일 씨의 대화 전문이다: -이름은? =김선일이다. -생년월일은? 7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79 평화 의식이 싹 텄을 것이다. 그런데 반미 반전 의식이 투철한 이라크의 저항 세력이, (반전 반미 평화 의식을 지닌) 김 씨를 참수한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 가? 이는 김 씨 피살의 열쇠를 푸는 암호이다. 김 씨를 일단 미국 =9월 13일, 1970년 9월 13일이다. -국적은? =한국, 남한이다. -직업은? =한국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이라크에는 언제 왔나? =바그다드에 말인가? 5일 후면 6개월이 된다. 나는 이라크를 돕고 싶어서 왔다. 또 아랍어도 더 배우고 싶었다. 나에게 남자형제는 없고 결혼한 3명의 누이가 있다. 나만 결혼하지 않았다. 조지 부시에 대해 말하고 싶다. 조지 부시가 진짜 테러리스트다. 내 가 한국에 있을 때 텔레비전으로 이라크와 미국의 전쟁을 봤다. 나는 부시가 이라크를 공격한 것은 석유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조지 부시와 미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흘 전 팔루자의 미군 캠프에 갔을 때 미군들은 가끔씩 총을 들이대며 이봐, 여기 왜 왔냐. 직업이 뭐냐? 고 물었다. (벽에 기대서 몸수색을 당하는 흉내를 내면서) 온몸 을 뒤지며 몸수색도 했다. 당신이 의심스럽다. 고도 했다. 미국 캠프에 물건을 배달하 긴 했지만 나는 미국 군인들과 부시를 싫어한다. 이것은 옳지 않다. 미군들은 팔루자와 이라크 전체에서 선량한 이라크인들을 죽이고 있다. 나는 이라크인들을 좋아한다. 이라 크인들은 매우 친절하다. 바그다드 거리에서 돈을 달라. 며 구걸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돈을 주기도 했다. 김 씨의 위의 발언 중 다음의 내용이 그의 반전 반미 평화의식을 대변한다: 조지 부시에 대해 말하고 싶다. 조지 부시가 진짜 테러리스트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텔레비전으로 이라크와 미국의 전쟁을 봤다. 나는 부시가 이라크를 공격한 것은 석유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조지 부시와 미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흘 전 팔루자의 미군 캠프에 갔을 때 미군들은 가끔씩 총을 들이대며 이봐, 여기 왜 왔냐. 직업이 뭐 냐? 고 물었다. (벽에 기대서 몸수색을 당하는 흉내를 내면서) 온몸을 뒤지며 몸수색도 했다. 당신이 의심스럽다. 고도 했다. 미국 캠프에 물건을 배달하긴 했지만 나는 미국 군인들과 부시를 싫어한다. 이것은 옳지 않다. 미군들은 팔루자와 이라크 전체에서 선 량한 이라크인들을 죽이고 있다. 제1부 이라크 전쟁 79

80 측 끄나풀로 여겨(김 씨가 미군에 납품하는 PMC계통 회사의 종업 원이었기 때문에) 납치한 이라크 저항 세력이 심문을 해 보니까, 자 기들과 상반되지 않는 의식(미국관)을 지니고 있음을 파악하고 약간 의 안도를 했을 것이다. <에이피 텔레비전뉴스(APTN)>가 제공한 비디오 영상물을 보면, 김 씨가 저항 세력 앞에서 거리낌 없이 전쟁광 부시를 비판하는 한 편 김 씨의 발언을 저항 세력이 느긋하게(?) 듣는 장면이 나온다. 특 히 마지막 대목에서 김 씨가 팔루자에 갔을 때, 자신을 가혹하게 검 문한 미군을 비난하는 몸짓을 보여 주는 분위기는 참수와는 거리가 멀다. 추측컨대 저항 세력 내부에서 의식이 괜찮은 놈이니 경우에 따 라 풀어 주자. 는 의견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다가 한국 정부의 파 병강행 소식을 듣자마자 김 씨를 참수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정 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이라크의 반미세력(저항 세력)이 김 씨와 같 은 반미의식 소유자를 참수한 사건을 납득할 수 없다. 이런 측면에 서 김 씨의 간접적인 살해자는 노무현 정권이다. 8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81 3. 피살의 구도 1) 무장화한 근본주의 충돌 이라크 전쟁은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구도에 따라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전쟁의 맹주인 부시 정권이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에 심 취하여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다. 이라크 전쟁은, 부시 정권의 원군인 기독교 근본주의가 전개한 야훼 전쟁 이다. 구약성서의 야훼 전쟁론 에 따라 사탄(Satan)=악 의 축(Axis of Evil) 인 후세인 정권을 타도하는 성전(제2의 십자군 전쟁)을 벌인 것이다. 그런데 이라크의 저항 세력 역시 이슬람교의 성전(Jihad) 차원에서 점령군과 대결하고 있다. 이렇듯 양쪽의 무장 화한 근본주의(militarized fundamentalism) 사이에서 발생한 전쟁이 이라크 전쟁이다. 김 씨 피살은 이러한 무장화한 근본주의 간의 전쟁 에 기인한다. 미국 측의 무장화한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부시 정권)의 선제공격 7) 에 대한 무슬림 근본주의의 대응 폭력이 테러로 나타났으며, 극단적 인 테러의 한 종류인 참수가 김 씨를 상대로 이루어졌다. 7) 선제공격에는, 이라크의 무슬림을 기독교로 개종하려는 종교적인 선제공격이 포함된다. 기독교 신자인 김 씨도 이라크 현지에서 선교활동을 한 듯하다. 그러나 이라크의 무슬 림들을 기독교로 개종할 의지가 있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없다. 가나 무역에 취직한 인연이 그의 종교 활동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제1부 이라크 전쟁 81

82 2) 한국의 제3자 개입 이라크 전쟁은 본래 미국 제국과 이라크 민중의 대결양상을 띠 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 이 싸움에 끼어들 여지가 없으며, 간섭할 자 격도 명분도 없다. 그런데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원죄 때문에 이라크 내전에 개입하고 있다. 파병의 이름으로. 이는 명백히 이라크 내전에 대한 제3자 개입이다. 노동 현장에 서 제3자 개입을 잘못하면 감옥에 간다. 노동 현장보다 더욱 엄혹한 국제 정치의 현장에서 제3자 개입을 함부로 하면 엄혹한 벌( 罰 )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예로부터 마름이 지주보다 더 날뛴다. 는 말이 있다. 이를 이라 크 전쟁에 적용해 보면 이라크 전쟁의 지주(맹주)는 미국이고, 파병 한 한국은 마름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용병인 한국군이 미군보다 더 날뛰며 베트콩을 학살했다. 베트남에서처럼 마름(이라크 파병 한국 군)이 지주(이라크 주둔 미군)보다 더 날뛰지 말라는 법이 있나? 이 처럼 날뛸 경우 한국군과 한국군의 총수인 대통령이 전범재판에 회 부되어야 마땅한 게 아닌가? 김 씨 피살 사건은, 이라크 내전에 3자 개입한 한국의 대통령 한국군 지도부가 전범재판에 회부될지 모른다는 경고음을 내고 있 다. 청와대는 이 경고음을 잘 들어야 할 것이다. 8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83 3) 反 이슬람, 反 노무현, 反 부시, 反 美 파병을 통해 이라크 정세에 제3자 개입하는 죄를 저지르고 있는 한국 사회의 4 反 현상 에 대해 언급한다. 김 씨 피살에 대한 냉전 수구 세력의 반응은 응징과 보복이다. 이 응징 보복의 화살이 국내외의 이슬람 세력을 향하고 있다. 이들 은, 진보 세력의 파병강행 노무현 정권-미국 복합체를 향해 분노 의 화살을 날려라. 는 권유를 외면한 채, 이라크 저항 세력과 전혀 무관한 국내 이슬람교도들에게 분풀이하고 있다. 국내의 이슬람 사 원에 대한 살벌한 위협( 죽여 버리겠다. 는 등)이 이를 반증한다. 냉전 수구 세력은 단호한 대응 을 강조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하 여 오랜만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노무현과 일시적 제휴). 이들이 평 소에 반북(북한 반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점을 감안하면, 반북-반이슬람-친노무현의 구도가 형성된다(노무현과 일시적으로 제휴한 이들 냉전 수구 세력은 선거 때마다 한나라당의 표밭이다). 이에 반하여 진보 세력은 김 씨 피살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파병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파병반대 운동을 벌인 결과, 파병 을 강행하려는 노무현 정권과 대결하고 있다. 이들의 상당수는 지난 대선 때 노무현 정권의 지지파였다. 이렇게 노무현 표밭의 일부가 파병을 반대하고, 노무현 반대파였던 냉전 수구 세력이 노무현을 지 제1부 이라크 전쟁 83

84 지하는 기현상이 이 나라 정치를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있다. 파병 반대 세력 중 민중 진영(민주노총, 통일연대 등)은 김 씨 피살의 배후에 미국 제국주의와 부시가 있다며 반부시 반미의 목청 을 높이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한다. 김 씨 피살을 에워싼 이와 같은 4 反 구도 가 파병 정국과 부딪 치면서 어수선한 제휴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4. 국가안보 對 생명안보 1) 개인의 목숨을 살리는 인간안보 김선일 씨 참수 뒤 노무현 대통령의 담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익을 위해 파병을 강행하겠다. 는 국가안보 선언이었다. 이라크에 서의 평화재건을 위해 파병하는 것이 국가안보에 도움이 된다는 내 용이었다. 이러한 국가안보 개념에 입각한 파병강행에 반대하는 시민사회 단체들은 국가안보보다 개인의 목숨을 살리는 인간안보(human security)가 더 중요하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이들 단체들은 국가안보라는 미명 아래 인간안보가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이번 김 선일 씨 피살사건을 통해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고 주장했다. 8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85 2) 생명안보 시민 사회운동 단체들은, 인간 안보를 중요시하여 파병을 중단하 라는 호소력을 더욱 높이기 위해 생명안보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주로 여성 평화 운동 단체들이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한 국민(김선일 씨)의 생명이 극도로 위태로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추가 파병 입장을 강력히 밝혔으며, 그것은 오히려 그들(김 선일 씨를 참수한 저항 세력)에게 더욱 자극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개인의 생명이 처참하게 짓밟히는데 추가 파병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어떤 이득이 있는가. 국가의 존립은 개인의 인권과 생명이 존중될 때 비로소 그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개인에게 가해지 는 생명과 안전에 대한 위협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호하는 것이 진정 한 안보 라는 생명 안보 논리를 펼쳤다. 2004년 6월 24일 광화문에 서의 촛불 시위 참가자들도 한 생명이 국가보다 무겁다. 는 등의 피켓을 들고 파병 반대 구호를 외쳤다. 3) 평화적 생존권 생명안보는, 이라크 민중과 한국 민중의 평화적 생존권이 보장되 는 전제 아래에서 가능하다. 이라크 점령군의 팔루자 학살로 평화적 생존권을 상실한 이라크 민중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명 을 보호해 주는 생명 안보 체계 이다. 그 당시 이라크에 정부가 성 제1부 이라크 전쟁 85

86 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안보가 이라크 민중의 평화적 생존권을 지켜 줄 수 없었다. 최근에 출범한 이라크 잠정 정부는 친미정권이므로, 미국에 비판 적인 이라크 민중의 생명안보(생명의 안전) 를 이루어 낼 수 없다. 여기에서 이라크 민중들이 자신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내기 위해 (생명 안보를 위해) 민중봉기(팔레스타인의 Intifata와 비슷한 민중봉 기)를 전개하고 있으며, 그 민중봉기의 군사적인 편재를 이룬 것이 이라크 저항 세력이다. 따라서 이라크 저항 세력의 군사행동만을 보 고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것은 단견이다. 민중봉기 안에 이라크 민 중의 해방이 깃들어 있으며, 해방의 깃발 속에 무슬림 원리주의 사 상이 내포되어 있다. 이 점을 놓치면 이라크 민중의 생명안보 논리 를 이해할 수 없다. 이를 간과하면 김선일 씨를 살해한 저항 세력의 성명서를 이해할 수 없다(물론 필자는 김선일 씨를 참수한 폭거를 용납하지 않는다). 2004년 6월 21일에 낸 저항 세력(참수한 무장단체)의 성명은 다 음과 같다: 우리는 한국군이 이 땅에서 철군하기를 원한다. 더 이상 이 땅에 군대를 보내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이 한국인의 머리를 보 낼 것이다. 다른 당신들 군대의 목도 추가로 보낼 것이다. 위의 성명을 발표한 이라크 무장 세력은 한국 정부의 추가 파병 철회 성명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24시간의 시한을 제시했으나, 오히 8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87 려 노무현 대통령의 파병강행 선언이 나오자 참수를 결행한다. 참수를 결행한 분위기를 읽으려면 6월 22일의 성명서를 읽어 보 면 된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경고를 했지만 당신들은 이를 거부했 다. 이것은 당신들의 손이 저지른 일이다. 당신들의 군대는 이라크인 들을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저주받을 미국을 기쁘게 하기 위 해 왔다. 필자가 여태껏 수많은 성명서를 읽어 보았지만 위의 성명서처럼 끔찍하고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한국 사회가 파병 을 강행한다면 위의 성명서에 나오는 재앙이 닥쳐 올 것이다. 파병 강행이라는 국가안보 노선을 취한 엄청난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런 데 주로 힘없고 빽 없는 한국군 파병부대의 병사들(한국의 지배층 자녀들 중에 이라크 파병 부대원이 몇 명이나 있을까?)이 대가를 치 를 것이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김선일 씨처럼 가난을 헤쳐 나가기 위해 이라크라는 사지( 死 地 )를 선택한 민중의 자식들의 참수된 머리 가 계속 보내질 것이다. 이는 생명안보를 무시한 처절한 대가다. 저 주받을 미국을 기쁘게 하기 위한 국가안보 에 맹종한 대가다. 서희 제마 부대는 철수하라! 는 이라크인들의 경고를 무시한 국가안보 노선의 대가다. 앞으로 생명안보를 무시하고 파병을 강행하면 이라크 저항 세력 들이 계속 한국인의 머리를 보낼 것이다. 군대[한국 병사]의 목도 추 제1부 이라크 전쟁 87

88 가로 보낼 것이다. 한국사회는 이런 재앙에 대한 대비책을 갖고 있 나? 조갑제 씨 등의 우익 논객들이 부추기는 보복성 파병을 하여 이 라크 민중들을 향해 총구를 돌리면 재앙을 막을 수 있나? 이처럼 이라크인의 평화적 생존권을 지키는 차원(생명 안보)에서 파병을 철회하지 않으면, 한국인의 평화적 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없 음(생명안보의 파괴)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라크 민중과 한 국민중은 생명안보의 동아리 안에 있다. 파병철회를 통하여 이라크 민중-한국 민중의 생명안보 동맹 을 맺지 않으면, 양국의 수많은 민중들이 피를 흘릴 것이다. 베트남 전쟁에서처럼 그래서 생명안 보가 양국 민중의 생명선이다. 5. 냉전 수구 세력의 평화 불감증 냉전 수구 세력의 평화 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하지 알기 위하여 보수 논객 단체들이 낸 글이나 성명서를 분석한다. 1) 보수 논객의 글 1 조갑제 씨의 글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은 2004년 6월 23일 자신의 홈페이지 에 올린 김선일 씨 살해-대한민국은 응징해야 한다. 는 제목의 글 8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89 에서 정부의 방침대로 파병은 더욱 단호하게 변함없이 이뤄져야 한 다. 고 촉구했다. 그는 파병 이후 우리 군대가 이라크에 가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라크 주권당국과 협조하여 김선일 씨 살해범들을 색출, 처벌 하는 일 이라며 정당한 복수를 주저하는 국가는 국민들뿐 아니라 적( 敵 )이나 우방으로부터 경멸을 당한다. 고 주장했다. 이처럼 보복성 파병을 주장하는 조갑제 씨의 글은, 살해범 색출 처벌을 위한 군사행동을 요청하고 있어서 정부의 이라크 평화재건 방침에 어긋나는 위험한 발상이다. 조갑제 씨는 같은 글에서 테러에 관해서 말한다면, 북한 김정일 정권만큼 조직적이고 대규모의 테러 범행에 가담한 집단도 별로 없 다. 면서, 반북 이데올로기의 연장선상에서 김선일 씨 피살사건을 바 라보고 있음을 드러냈다. 조갑제 씨는 이렇게 관점 정립의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이라크 정세는 탈냉전 시대, 세계화 시대의 제국주의 침략전쟁과 이에 맞선 이라크 민중의 투쟁이 반영된 것이지, 냉전시대의 미-소 간 대립과 다르다. 조갑제 씨는 더 나아가 반테러 전쟁은 단지 이라크에만 해당되 제1부 이라크 전쟁 89

90 는 것은 아니다. 북한 김정일 정권과 맞서 있는 우리로서, 테러와의 싸움은 바로 우리의 매우 현실적이고 임박한 문제이다. 고 기술한다. 그는 이처럼 김정일 정권에 대한 반테러 전쟁을 촉구하면서 북 한과의 긴장을 애써 조장하려고 한다. 2 이상훈 씨(재향 군인회장) 기고문< 국방일보 ( )> 어떤 경우에도 테러범의 요구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유 사 이래 테러범에 대처하는 최선의 수단이자 불변의 원칙이다. 테러 범에 대한 굴복은 제2, 제3의 테러로 이어질 것이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이다. 테러에 굴복하지 않는 가장 좋은 모델은 이스라엘이다. 이 스라엘은 단 한 번도 이들의 테러에 굴복하지 않았다. 이에는 이, 눈 에는 눈이라는 저들의 독특한 대응 방법에 따라 테러범에게는 수십 배의 보복을 가했다 촛불 집회는 테러범의 요구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촛불시위가] 테러범을 도와주는 동시에 인질 석 방 교섭을 방해하는 최고의 장애물이 됐다. 위의 기고문에서 이스라엘과 같은 나라가 되라! 고 주문하는 내 용이 섬뜩하다. 9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91 2) 반테러 전쟁=정의의 전쟁 대다수의 보수적인 인사들은 조갑제 씨처럼 반테러 전쟁 을 강력 하게 요구한다. 8) 이들이 테러 집단(무슬림 무장 원리주의 집단, 김정 일 정권)에 대한 전쟁, 즉 반테러 전쟁이야말로 정의의 전쟁(Just War) 임 을 강조하는 점에서 부시 대통령 네오콘의 전쟁관과 비슷하다. 이들이 보기에 파병은, 이슬람 과격분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정의 의 전쟁이다. 따라서 한국군의 추가 파병부대가 이라크에 서둘러 배 치되어 정의의 전쟁 개념에 따라 이라크의 저항 세력을 소탕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이 점도 부시 정권의 전쟁관과 닮은 꼴이다. 한마디로 조갑제 씨와 그 아류들이 한국판 네오콘 을 자처하면 서 반테러 전쟁=정의의 전쟁 차원에서 추가 파병함과 동시에 파병 부대가 김선일 씨의 원수를 갚는 무슬림 게릴라 소탕작전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소탕작전을 위한 중무장 파병을 역설하고 있다. 8) 중앙일보( )에 기고한 박용옥 씨(전 국방부 차관)의 글 단합된 힘만이 추가테 러 막는다 의 마지막에 김선일 씨의 희생은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치른 한국과 한국 국민을 대신한 순국의 희생이다. 는 구절이 나온다. 박용옥 씨는 김선일 씨가 반테러 전쟁 과정에서 순국했다면서 애국주의 국가주의와 연결시킨다. 반테러 전쟁이 애국이므로 박용옥 씨의 애국행위(순국)를 길이 빛내자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인천공항에 도착한 김선일 씨의 운구 위에 태극기가 덮여 있었나? 제1부 이라크 전쟁 91

92 3) 일부 네티즌들의 과격한 주장 조갑제 씨와 그 아류들의 논지에 영향을 받은 보수적인 네티즌 들이 특전사의 파병을 요청하는 등 과격한 주장을 서슴지 않고 있 다. 이들의 반북-반이슬람-친미-광적인 군사주의 증세를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아래의 글들은 주로 국방부의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2004년 6월 23일자)에 실린 것이다. 1 그래 盧 [노무현 대통령]가 오랜만에 옳은 소리 한다 테 러 분자 척살하자! 2 놈현아[노무현 아] 특공대 파견해서 테러분자들 쓸어버린 다는 말 좀 해봐라. 3 김선일은 무고한 민간인이다. 테러범은 그런 민간인을 학살 한 전범이다. 그런 전범을 두려워하며 이라크 파병을 반대 하는 성명이나 시위나 보도를 하는 것은 테러에 굴복하거나 동조하는 악마의 세력들이다. 4 노무현 대통령은 파병함으로써 부국강병에 이바지하는 대통 령으로 거듭나기 바란다. 5 전투병 파병으로 응징하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테러가 겁나 철수하는 비겁한 지도자와 다른 새로운 모습을 국민에게 보 여 주어야 하지 않을까? 테러를 비난하기보다 미국의 이라 크 전쟁 때문에 테러피해를 입었다고 반미를 선동하는 반미 친북 언론들의 조폭적인 행태에 굴복하는 비겁한 정권이 되 9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93 지 않기를 바란다. 6 약해 빠진 정신 가진 시민들이 거리에 뛰쳐나와 파병반대를 외치니 수천 년 동안의 보복 없는, 힘없는 그러한 역사를 또다시 볼 것 같아 마음이 찢어진다. 왜 자꾸 나라를 약하게 만듭니까? 7 국민[김선일 씨]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면, 철저하게 보복 이라도 해라. 그것이 군대의 의무이다. 그동안 국민들이 피 땀 흘려 내온 국방비가 결코 헛되이 날려 버린 돈이 아님을 보여 줘라. 돈 퍼부어 길러 온 특전사들은 이럴 때 쓰려고 창설한 거 아닌가? 보복조차 못 하는 군대라면 한 국가의 정규 군대도 아니지. 8 자국민[김선일 씨]이 목이 잘려, 그것도 몸에 부비트랩이 장 착되어 길가에 버려진 마당에 평화재건은 무슨 얼어 죽을 놈에 평화입니까? 하루 빨리 전투병 파병해서 테러범의 씨 를 말려 버려야 제2, 3의 김선일 씨가 없습니다. 평화 및 재 건이라는 구호는 작금의 현실과는 맞지 않는 것 같다. 파병 은 하되 평화 및 재건이 아닌, 대한민국의 힘을 보여 주어야 한다. 10만 군대를 보내라. 막강 전력의 국군의 위용을 보여 줍시다. 10만 명의 군대를 파견하여 쓸어 버립시다. 우리도 잔혹하다는 것을 보여 줍시다. 특수부대 훈련시켜 이라크 무 장 세력을 완전히 씨를 말리시오 빈 라덴의 대가리를 잘 라 축구하는 모습을 TV에서 보고 싶소 더 잔인하게 갈기 갈기 찢어서 죽이는 모습을 [이라크 저항 세력이] 봐야 한국 제1부 이라크 전쟁 93

94 인들 무서운지 모르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다. 100% 특수부대를 파견해서 한국인의 힘과 잔인성을 전 세 계에 알리시오. 피의 보복으로 원수를 갚자. 당장 이라크를 초토화하자. 국내 이라크인들에게 복수의 테러를 가하자. * 위의 문단 중의 무슨 얼어 죽을 놈에 평화입니까? 는 냉전 수구 세력의 평화 불감증을 반증한다. 9 제발 그놈들[김선일 씨 살해자들] 찾아서 똑같이 목을 따야 한다. 똑같이 복수하고 싶다. 이들 네티즌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1 네티즌들은, 조갑제 씨의 아류 논객들보다 더 지독한 테러 분자 소탕 편집증 에 걸려 있다. 거의 광적인 람보 수준의 테러분자 소탕 작전을 요구하고 있다. 테러분자 소탕 편집 증 속에 한국형 군사주의의 싹쓸이 문화 가 들어 있다. 2 북한과 이라크의 저항 세력을 동치관계에 놓는 환시( 幻 視 ) 현상이 농후하다. 3 한국의 힘에 의한 이라크 무장 세력 평정(Pax Koreana)을 강력히 요청한다. 이 Pax Koreana 는 냉전 수구 세력의 북 한 흡수통일관 과 맞물려 있다. 4 이들의 잠재의식 속에 잔인한 한국 자본주의의 호전성 이 내재되어 있다. 마음에 안 들면 람보처럼 타자( 他 者 ) 타 문화 타 민족 타 인종을 섬멸하자는 파시스트적인 인종 9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95 차별 이 숨겨져 있다. 무슬림 원리주의자들을 인종청소 (ethnic cleansing) 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깃들어 있다. 5 이들의 보복성-호전적 민족주의 안에 지독한 배외주의( 排 外 主 義 )가 내재해 있다. 이들은 지독한 친미주의자들인바, 자신들의 排 外 主 義 는 미국 등 외세에 대한 배외주의( 拜 外 主 義 )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아랍 사람들은 배척하고 미국 인은 상전으로 모시려는 사대주의적인 배외주의( 排 外 主 義 ) 가 한국 우파의 정신구조를 지배하고 있다. 6 파병 반대 세력은 악마의 세력으로서, 악의 축 북한 과 동 일한 존재이다. 파병반대 세력은 반미세력이자 친북세력이므 로 이 땅에서 영원히 배제해야 한다는 빨갱이 사냥 의식이 이라크 테러리스트 사냥 의식과 깊숙하게 연결되어 있다. 7 반공-냉전의식에 따른 (박정희 식) 부국강병론이 묻어나온다. 8 파병을 중단하는 것은 테러분자들의 요구(서희 제마부대 철 수 요구)에 굴복하는 비겁한 짓이다. 그러나 파병을 강행하는 것은 용감한 마징가 의 행위이다. 10 추가 파병 부대의 임무를 평화 재건 지원에서 테러 소탕전 으로 바꿔야 한다. 이는 극도의 평화 불감증이 드러난 대표 적인 사례이다. 제1부 이라크 전쟁 95

96 4) 보수 단체의 성명서 보수 단체들 역시 냉전 수구 논객-네티즌과 비슷한 관점의 성 명서를 발표했다: 1 우리는 무장테러 단체들과의 총력투쟁을 선언한다. 파병 철 회 주장은 무장 테러집단의 주장에 굴복하는 처사이다. 자 이툰 부대를 전투병으로 편성하여 무장테러 조직 발본색원 하라!<북핵저지 시민 연대( )> 2 일부 좌파적 언론들이 김선일 씨 피랍 및 살해 사건을 통해, 파병철회 여론을 선동하고 반미감정을 부추기며 사건의 본 질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냐? 지금은 김선일 씨를 살해한 무 장 세력에 대한 규정과 경각심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 먼저 다 독립신문( ). 6. 테러 폭력의 문제 1) 전쟁이라는 폭력 전쟁은, 폭력을 독점한 국가권력에 의해 일어난다. 전쟁을 일으 키는 폭력 독점체인 국가가 공권력을 통해 조폭(조직 폭력배)을 소탕 하는 것이야말로 근대국가의 소극( 笑 劇 )이다.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 는 국가폭력의 무대 위에서 칼춤을 추고 있는 부시. 국가폭력의 칼 9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97 잡이 부시가 현재 이라크 저항 세력의 덫에 걸려 허우적대고 있다. 이러한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과 같이 충성스런 맹견을 이 라크에 풀어서 이라크 저항 세력의 군기를 잡으려는 게, 부시 정권 의 한국군 파병 카드이다. 이 지점에서 파병을 에워싼 한미 간의 폭력 동맹 의 의지 연합 이 형성된다. 제국 미국의 군대는 악의 축 국가 집단(반미 무장 집 단)을 향해 반테러 전쟁 이라는 선전포고를 했다. 이 반테러 전쟁 전선의 한가운데에 있는 이라크의 팔루자에서 미군에 의한 학살이 일어났다. 이 팔루자 학살은 제국(미국)의 국가테러 를 여실히 드러 냈다. 이어 아부 그라이브 형무소에서의 성학대, 즉 성테러(Gender terror) 는 제국형 국가테러의 절정을 이룬다. 위의 두 가지 국가테러는 당연히 이라크 민중의 봉기(이라크형 Intifata)를 불러일으키고 이라크의 열혈청년들로 하여금 AK 소총을 들게 한다. 이윽고 민중봉기군(이라크 민병대), 무슬림 무장 근본주 의 부대의 제국형 국가테러에 대한 맞대응(맞테러) 이 일어난다. 제 국의 국가테러에 대한 非 국가 테러 의 대결양상이 벌어진다. 이러한 대결양상의 희생양이 김선일 씨이다. 그런데 김선일 씨의 제1부 이라크 전쟁 97

98 참수는 이런 대결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앞으로 본격적인 대결이 남 아 있다. 아마 한국군이 파병되면 이런 대결의 본론에 들어갈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뿐 아니라 부시 대통령도, 참수한 저항 세력을 철 저하게 소탕하겠다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지금쯤 김선일 씨를 살 해한 저항 세력에 대한 소탕작전이 팔루자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이런 싸움을 부채질하는 한국의 냉전 수구 집단들이 파병을 통한 대응 폭력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한미 수구 세력들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파병은, 제국 미국 의 국가테러와 한국군의 무력(한국의 국가테러) 9) 의 합성, 즉 한- 미 폭력 동맹 을 의미한다. 이 폭력 동맹의 외화물이 한국군 추가 파병이다. 추가 파병된 한국군이 미군의 지도 아래에서, 이라크인에 대한 국가테러를 구사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을 한미 폭력 동맹 의 테러 化 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베트남전에서처럼 한미 폭력 동맹의 테러 化 (베트남 양민 학살의 테러)가 이라크에서 재발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비전 ( 非 戰 )의 비전(Vision) 10) 에 따라 이라크전 참전국가 대열에서 빠져 9) 한국의 파병부대가 앞으로 이라크 무장집단을 소탕하는 작전을 벌이며 학살에 가담한 다면, 한국의 국가테러가 드러날 것이다. 10) 2004년 6월 30일 민정이양을 앞둔 이라크 정세는 전쟁 상태이다. 제2의 베트남화로 치닫고 있는 증좌이다. 따라서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은, 한갓 군대를 파견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참가하는 것이다. 이라크 추가 파병의 참내용은 참전 이다. 필자가 특 9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99 나오는 것이 제2의 김선일 사건을 예방하는 첩경이다. 7. 파병 강행론에서 파쇼의 냄새가 난다 1) 보복성 파병을 조심하라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이성을 잃고 보복성 파병을 주장하는 우 익언론 단체의 의견을 수렴한다면, 노무현 정권이 의사( 擬 似 ) 파쇼 체제 로 나아갈지 모른다. 필자는 노무현 정권이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나, 아직도 보수세력에 둘러싸여 있는 노 무현 정권(열린우리당 포함)에서 파병을 강행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럴 리 없겠으나, 냉전 수구 세력을 의식한 파병이 이루어진다 면 노무현 정권이 개혁은커녕 전두환 시절로 후퇴할 것이다. 그냥 후퇴하는 게 아니라 진군가를 부르며 국가권력의 강성( 强 性 )을 강화 할지 모른다. 이것도 매우 불길한 예감이지만, 한국군 추가 파병에 저항하는 테러가 서울 시내에서 일어난다면, 정보기관이 여러 차례 시도 끝에 별히 참전 이란 용어를 선택한 이유는, 한국군에 제2의 베트남화 현상이 닥쳐올 것 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제2의 베트남화에 대비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군의 참 전은, 파병저지-반전(anti war)투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난제를 내포하고 있다. 한국이 이라크 전쟁의 참전국가가 되는 길을 원천봉쇄하는 非 戰 (No War) 의 비전(vision)을 내와야 할 것이다. 제1부 이라크 전쟁 99

100 뜻을 이루지 못한 반테러 법 을 기어코 통과시킬 것이다. 이렇게 되 면 반체제 세력이 테러리스트 명단에 올라 탄압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라크 파병 이후의 정국에 파쇼의 냄새가 날지 모른다는 예측 은, 이런 불길한 예감에 따른 것이다(그렇다고 노무현 정권이 전두 환 파쇼 정권의 닮은꼴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냉전 수구 세력의 보복성 파병론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보복성 파병 론 안에 파쇼의 지뢰가 묻어 있기 때문이다. 2) 한국 자본주의의 대외팽창 아닌가 김선일 씨의 피살을 계기로 박차를 가하는 추가 파병이, 미국의 요청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취하는 군사행동처럼 여겨지지만,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도 있다. 혹시 국력이 신장된 한국 자본주의의 군 사화가 파병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한 국도 일본처럼 제국 미국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아( 亞 ) 제국주 의(sub-imperialism) 의 흉내를 내려는 게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 가 있다. 일본이 언젠가 있을지 모를 북한군과의 대결을 예상하여 자위대를 파병했듯이, 한국군의 파병도 주적 북한을 의식한 것이 아 닌가? 지금까지 여러 차례 거론된 한국군의 파병론과 관련하여 한국의 야전군 일부에서 해외파병을 통해 실전연습을 하고 이 실전연습이 10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01 북한과 대적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는 바람이 있었던 것 으로 추정된다. 이라크 파병에 즈음하여 이런 속셈이 있다면 보통 유감스러운 일이 아니다. 미국의 북한 붕괴 전략( 작전 계 획 등)을 의식한 한국군 파병을 생각하면서 김선일 씨 피살을 호재 ( 好 材 )로 이용한다면 예사로운 문제가 아니다. 3) 평화 재건 에 부국강병론이 숨어 있다 김선일 씨 피살을 계기로 더욱 강화된 파병 반대 전선에 맞서는 정부 쪽의 궁색한 논리는 이라크의 평화 재건을 위해 추가 파병한 다. 는 것이다. 평화 재건 의 평화 는, 미국의 Pax Americana 노선 을 추종하는 Pax Koreana(한국의 국력을 대외적으로 팽창함으로써 국익을 증강시킴) 의 Pax(평화) 이다. 이는 월드컵 축구대회 때 붉은 악마들이 외친 Peace Korea 에 정면도전하는 악마의 평화 이다. 한편 재건 이라는 허울 속에 근대화 개발론이 숨겨져 있다. 이 때 평화 는 재건 의 당의정일 뿐이다. 이 평화 는 이라크에 근대화 개발론을 평화롭게 수출하자는 것이다. 추가 파병의 논리로 앞장세 우는 이라크 재건론의 구체적인 내용은, (근대화 개발론에 입각한) 새마을 운동을 이라크에 수출하겠다는 것이다. 새마을 운동은 박정 희 개발독재의 상징이다. 군부파쇼의 반공-개발독재론을 이라크에 수출 11) 하기 위해 수천 명의 군인을 사지( 死 地 )에 보내 저항 세력의 테러 앞에 놓이게 할 필요가 있나? 차라리 한국의 수많은 청년 실업 제1부 이라크 전쟁 101

102 자에게 새마을 운동을 훈련시켜 이라크에 보내면 이라크의 무장 세 력도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4) 노 대통령의 담화 노 대통령은 2004년 6월 23일 김선일 씨 피살과 관련된 담화문 을 발표했다: 국민 여러분, 무고한 민간인을 해치는 행위는 어떤 이 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우리는 이런 테러 행위를 강력히 규탄하며 국제 사회와 함께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결심임을 밝혀드린다. 12) 위의 담화문은 냉전 수구 세력으로부터 박수를 받았지만, 진보 진영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진보 진영 역시 테러에 반대하는 비 폭력주의를 주장하지만, 노 대통령 담화문의 어조와 문맥에 깊이 스 며든 반테러 전쟁 노선에 불만을 갖고 있다. 테러에 단호하게 대처 한다. 는 고양된 목소리가 이라크 무장 세력에 그대로 전달되면, 그쪽 에서도 보복의 악순환을 준비할 게 거의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담화가 부시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어조를 드러내는 등 부시를 닮아 가는 노무현(?) 에 대한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13) 11) 개발독재형 새마을 운동은, 이라크의 친미 개발독재 정권에 의해 수용되어 이라크형 새마을 운동이 될 것이다. 이라크의 친미 지배 세력은, 새마을 운동의 보급을 통해 저항 세력을 포위하는 전략을 강구할 것이다. 따라서 이라크 파병에 힘입은 새마을 운동은 이라크 민중(해방세력)을 포위하는 전략이 될지 모른다. 12) 김선일 씨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테이프가 <알자지라> 방송에 공개되자마자, 노 대통 령이 파병철회 불가 방침을 밝힌 것은 할 테면 해 보라. 는 식의 무모한 대응이었다 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한겨레신문 ( )사설>. 10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03 노 대통령보다 한술 더 뜬 열린우리당의 지도부는 테러는 응징 의 대상이지 굴복할 대상이 아니다. 고 못 박음으로써, 국내 냉전 수 구 세력-미국의 부시 정권(네오콘)과 코드를 맞췄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한 열린우리당의 안영근 의원이 추가 파병 되는 부대의 전투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왕 파병하기로 했으면 충분 한 자위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전투력 보강이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이해찬 총리 지명자도 추가 파병 병력에 대해서는 장비 등 방어력 과 경계력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며 파병군의 편성에 변화가 있을 수 있음을 내비쳤다. 이처럼 노무현 정권이 나라 안팎의 냉전 수구 세력 쪽으로 이끌 려 가면 갈수록 파쇼의 냄새가 더욱 고약하게 날 것이다. 파쇼의 냄 새는 테러 방지법을 다시 제정하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날 것이므로 비상한 긴장이 요구된다. 8. 맺음말: 우리는 무슬림 원리주의 집단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이번에 김선일 씨를 참수한 단체는 무슬림 원리주의에 따라 무 장 공격을 하고 있다. 이 무슬림 무장 원리주의 집단을 테러리스트 13) 부시 대통령은 김선일 씨 살해를 야만적인 인간들의 짐승 같은 행위 라고 비난하면 서 자유세계는 이런 사람들의 행위에 의해 협박당할 수 없다는 것을 노 대통령이 이 해할 것으로 희망한다. 고 말했다. 제1부 이라크 전쟁 103

104 라고 표기하지만, 이는 통칭에 불과하다. 김선일 씨를 납치 참수한 행위는 테러리즘의 소행이다. 그렇다 면 이라크 시민을 반체제 용의자로 마구 연행하여 아부 그라이브 형 무소에 처넣은 뒤 성학대 성고문하면서 살상한 미국의 악행 역시 테러리즘의 소행이다. 이 테러 행위를 교사한 미군 사령관 럼스펠 드 미 국방장관은 테러리스트의 왕초가 된다. 미국의 국가테러야말 로 테러의 극치이다. 그러므로 무슬림 무장 원리주의 집단만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 는 것은 잘못이다. 이 잘못을 벗어나려면, 부시 대통령 럼스펠드도 테러리스트로 불러야 한다. 테러의 원조들(미국 정보기관, 미군 기관 등)이 무슬림 무장 원 리주의 집단을 테러리스트로 부르며 자신들의 책임을 은폐하는 위장 술을 간파하기 위해서는, 무슬림 무장 원리주의 집단에 대하여 알아 야 한다. 필자가 알기에 무슬림 무장 원리주의 집단은 1977년경 이집트에 서 태동하여, 외국 관광객에 대한 테러를 자행했으며 정신적인 지주 는 사이이드 쿠도브(1906~1966년)이다. 1979년 上 이집트의 루크솔 고대 유적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무장 원리주의 집단에 의해 살해 되었다. 이 사건을 주도한 이슬람 집단 은 세속주의 노선을 걷는 무 바라크 정권을 타도하고 참된 이슬람 사회 의 건설을 목표로 반정 10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05 부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반정부 무장 투쟁의 제1차 과녁은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이집트에는 고대 문화 유적이 많아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쇄도한 다. 이 외국인 관광객들로부터 얻는 관광수입이 국가재정에 큰 부분 을 차지한다. 이에 착안한 무슬림 원리주의 집단이 외국인 관광객을 테러의 표적으로 삼아 살해한 것이다. 이러한 테러로 말미암아 한때 이집트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뜸해져, 이집트 정부에 큰 타격을 주었다. 무슬림 원리주의 운동은, 영국의 이집트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민족운동이 고양된 1928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이 운동을 주도한 무 슬림 동포단 은 이슬람(Islam)이야말로 이집트의 난국을 해결하는 지 름길 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서구 문명에 대한 부정을 시도했으나 테러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1970년대 들어 무슬림 동포단 의 온건노선에 반발하여 무장투쟁 쪽으로 나아간 조직이 이슬람 집단 이다. 쿠도브의 혁명사상은 현대 과격 원리주의 운동의 핵심 사상으로 서 사회의 모순에 민감한 이슬람교도를 매료시켰다. 빈 라덴도 쿠도 브를 사부님으로 모셨다. 아프간을 침략한 소련군에 대항한 무슬림 무장 원리주의 집단이 제1부 이라크 전쟁 105

106 무쟈히딘(이슬람 성전사 聖 戰 士 ) 이었으며, 아랍 국가들의 의용병 집 단 아랍 아프간즈 가 무쟈히딘 을 지원했다. 이 아랍 아프간즈 의 구성원 중 한 사람이 빈 라덴이다. 빈 라덴이 소련군에 대적할 때는 미국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9 11 사태 직후의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이 빈 라덴의 탈레반 정권 을 붕괴시켰다. 이에 빈 라덴은 미국 이스라엘을 비롯한 서방 기독 교 유대교 세력을 이슬람의 주적으로 상정하여 무장항쟁을 벌이고 있다. 이 무장항쟁이 테러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테러 는 서방측에서 붙여 주는 성격부여이지, 원리주의 집단의 입장에서 는 민족해방을 위한 무장투쟁 이다. 우리 선조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테러의 형태를 띤 무장공격을 했지만, 우리들은 그것을 테 러로 부르지 않는다. 일본제국주의는 물론 테러로 규정하여 반일( 反 日 )-민족해방 무장투쟁 조직 에 대하여 잔인한 탄압을 했다. 요즘 신문지상에 자주 오르내리는 알 카에다 등도 무슬림 무장 원리주의 조직이다. 그러나 무슬림 무장 원리주의 운동이 활발했던 이집트 안에서 무장 투쟁을 에워싼 노선 투쟁이 전개되었고, 그 결 과 무장 투쟁 노선을 포기한 집단도 나타났다. 따라서 무슬림 원리 주의 집단은 무장 투쟁을 하는 집단과 비무장 투쟁을 하는 집단으로 나뉜다. 김선일 씨를 참수한 집단은 무슬림 무장 원리주의 집단에 속한다. 10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07 무슬림 무장 원리주의 집단 소속원의 사생관( 死 生 觀 )이 한국인 의 사생관과 다른 점을 주목하면 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이다. 무슬림 무장 원리주의 집단에 속한 이슬람교도들의 자살폭탄 은 서방인에게 테러로 비춰지지만 아랍인들에게는 성전( 聖 戰 : Jihad) 도중에 순교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인식에 접근하지 못하면 김 선일 씨 참수의 배경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슬람교도들은 성전(Jihad)을 수행하다가 순교하면 천당에 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영광된 마음으로 자살폭탄을 던지 며 산화(?)한다. 그러면 어떤 천당인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당인가? 무슬림들은 신( 神 )은 우리들에게 천국을 약속한다. 순교자는 천 국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물, 가장 감미로운 과일, 육체 중 가장 부드 러운 부분을 취할 수 있다. 천국은 화려한 누각, 유려한 시냇물, 초 목이 우거진 들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슬림 무장 원리주의 투쟁을 한 순교자는 神 의 오른편에 앉아 72명의 미녀( 美 女 )의 서비스를 받 는다. 한번만 보아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처녀(영원한 처 녀) 72명과 신성한 결혼을 한다. 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 믿음의 과 학성 여부는 차치하고 한국인과 사생관-세계관이 너무 다르다. 이 다름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타( 他 ) 문화를 수용하려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김선일 피살 사건을 다층적으로 인식할 수 없다. * 출처= 평화 만들기( 137호( ) 제1부 이라크 전쟁 107

108 부시와 神 들의 전쟁 부시 대통령은 2003년 3월 20일 신( 神 )의 이름 으로 이라크 공 격을 명령했다.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선 부시는 승리 이외의 결과 를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들은 이겨 번영할 것이다. 미국과 미국을 지키는 자에게 신의 축복을. 이라고 연설했다. 부시의 공격명령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후세인 역시 神 의 이 름 으로 미국에 대한 반격을 명령했다. 권위주의적 세속지도자로 명성을 쌓아 온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미국 주도의 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 국민을 결집시키기 위해 자신 의 정권 수호가 아닌 종교와 애국심에 호소하고 있다. 이것은 부시 미국 대통령이 9 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 과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데 종교적인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 것과도 유사하다. 후세인 대통령은 3월 24일의 텔레비전 연설에서 神 께서 참고 기다리는 신도들에게 약속한 승리가 가까이 왔다. 며 현 정권의 방 10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09 어가 아닌 조상의 땅을 수호하기 위해 싸우라고 호소했다. 후세인 대통령은 이번 연설에서 神 이라는 단어를 28번이나 언 급했으며 성전을 뜻하는 지하드(Jihad) 는 7번, 신도들 은 4번 언급 했다. 이라크 일간지에 게재된 군부의 성명은 이라크 병사들을 神 의 병사들 이라며 소수가 종종 다수의 병력을 격퇴할 수 있었다. 는 내용의 코란 구절들을 인용했으며 神 은 위대하다는 의미의 알라 아크바르 로 끝맺음을 했다< 연합뉴스 >. 부시와 후세인이 서로 철천지원수이지만 神 에게 승전을 비는 마음을 동일하게 표현했다(물론 두 사람이 표현하는 神 의 격( 格 ) 이 다르다. 한쪽은 기독교의 神 이고 한쪽은 이슬람의 神 이다). 그래 서 이번 전쟁은 인간이 神 의 이름으로 벌이는 神 들의 전쟁 인 셈이 다. 문제는 인간사의 전쟁은 반드시 한쪽이 이기게 되어 있는데 이 神 이 어느 쪽 손을 들어 줄 것인가에 있다. 정의의 神 이라면 약자 이며 무고한 이라크의 편을 들어 주겠지만 호전적인 전쟁신( 戰 爭 神 ) 이라면 미국의 편을 들어 줄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부시는 날마다 미국의 전쟁신( 戰 爭 神 ), 기독교의 야훼 神 을 향해 열심히 기도한다고 한다. 매일 아침 설교집 읽는 부시 부시 대통령은 매일 아침 5시 반에 기상한다. 그는 기상하면 맨 먼저 기독교의 설교집을 읽는다. 이어 실내의 운동기구를 이용하 제1부 이라크 전쟁 109

110 여 약 5킬로미터의 달리기를 한다. 운동이 끝나자마자 그는 성서 연구회 모임에 참석한다. 신학자도 아닌 부시가 매일같이 기도하며 기독교 근본주의 (Christian Fundamentalism)의 가르침에 따르는 신학을 연구한다. 그 가 악의 축 발언을 한 것도 이 신학연구의 덕분인 듯하다. 요즘 그 의 표독스런 전쟁 발언의 뒤에 숨겨져 있는 비수 같은 전쟁신( 戰 爭 神 ) 타령 을 들어 보면, 그가 마치 고대의 제사장과 전제군주를 겸한 인물인 듯한 착각이 생긴다. 하긴 그가 21세기의 전제군주를 꿈꾸며 이라크를 공격하고 있으니 이 말도 크게 틀리지 않은 듯하다. 더욱 이 그는 자신이 제사장으로서의 신학 무장이 부족하다고 느낀 듯 그 렇게 바쁜 일정을 쪼개 신학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전쟁신의 가호를 빌려 백악관은 세계의 운명을 결정한다. 트루만 대통령의 원자폭탄 투 하, 케네디 대통령의 쿠바 위기 등 역대의 지도자들은 결단의 중압 에 괴로워했다. 그런데 단순무지한(?) 부시에겐 이런 괴로움이 없 는 듯 마음이 평안하다고 한다. 호전적인 기독교 근본주의가 믿는 전쟁신( 戰 爭 神 )의 가호로 이라크를 족칠 수 있다고 안심해서 그토록 평안한 것일까? 부시는 나를 지지하고 있는 것은 신앙이다. 고 자주 말한다. 2003년 2월 종교 관계자와의 조찬회에서 그는 신의 섭리에 자신 11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11 을 갖는다. 모든 배경에는 목적이 있다. 그것은 神 의 손에 의해 정 해지고, 흔들리는 것은 없다. 고 설파했다. 부시는 본래 믿음이 강하 지 않았다. 그는 정치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30대까지 술독에 빠 지는 생활을 했다. 그런데 기독교와 만난 그는 금주를 하면서 출세 의 길을 달렸다. 기독교 근본주의의 선악 이분법에 심취 부시가 보기에 神 의 은총을 받는 미국에는 특별한 사명이 있다. 이 특별한 사명에 따라 악의 축 인 후세인과 싸우는 것이다. 이는 지나치게 이분법적인 선악관( 善 惡 觀 ) 이다. 미국은 언제나 선( 善 )이 므로 이기게 되어 있고 이라크 북한 등 악의 축 은 언제나 악( 惡 ) 이므로 붕괴시켜야 한다는 부시의 발상은 기독교 근본주의에 따른 것이다. 부시 정권의 일방주의적인 전쟁정책의 뿌리에는 기독교 근본주 의의 발상이 깃들어 있다. 정치 세력화된 기독교 근본주의는 현재 미 공화당의 최대 세력이 되어 있다. 기독교 근본주의의 전쟁신( 戰 爭 神 )에 심취한 부시의 회개가 없는 한 악의 축 국가에 대한 순차 적인 공격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라크 다음에 북한, 그리고 그다 음에 이란의 순서로 공격명령을 내릴 부시는 줄기차게 神 의 이름 으로 미국에 승리를 안겨 달라고 기도할 것이다. 제1부 이라크 전쟁 111

112 전쟁꾼의 대선 전략 기독교 근본주의 신앙으로 무장한 카우보이 부시 는 정치적 노 름꾼이자 전쟁꾼이다. 2003년에 잇단 기업 스캔들로 대통령 지지율 이 떨어지자, 그는 이라크 문제를 중간 선거의 중심적인 전략으로 내세워 재미를 보았다. 이라크 공격은 9 11 테러 이후 부시 정권 내의 매파(강경파)가 뜸들인 시나리오이지만, 선거 쟁점으로 적중했 다. 상하 양원을 여당인 공화당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막 남은 숙제인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시는 이라크 전쟁이란 도 박을 시작했다. 그러나 단기전에서의 승리를 점쳤으나 예상 밖으로 고전하기 시 작하자 부시의 안색은 달라지고 있다. 애써 초조함을 감추려 하고 있을 뿐이다. 뜻밖에 미국이 패전하거나 장기전으로 돌입하여 이라 크 전쟁의 늪지대에 빠지면 재선가도에 먹구름이 덮칠 것이다. 그땐 제아무리 부시가 전쟁신( 戰 爭 神 )에 빌어도 쓸모없다. 부시는 지금이 라도 미국만이 神 의 축복을 받는다는 비합리적인 신앙을 뿌리쳐야 할 것이다. 미국 제일( 第 一 )주의를 일방적으로 엄호할 神 은 없기 때 문이다. 어쨌든 神 의 이름으로 전쟁을 벌이는 부시 같은 무리들이 있기 때문에 神 은 피곤하다. * 출처= 평화 만들기( 112호( ) 11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13 종교사회적 관점에서 본 이라크 전쟁 이라크의 원유(석유)를 빼앗기 위해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강행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맞는 말이지만 이라크 전쟁의 전체 구도 를 총괄하는 것은 아니다. 이라크 전쟁의 배후에 부시 정권의 비정 한 사회 진화론(Social Darwinism)이 숨어 있는 것을 파헤쳐야 이 전쟁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다. Social Darwinism이 온상 사회 진화론(Social Darwinism)은 미국 지배계급인 WASP(앵글로 색슨 系 의 백인 개신교도: White Anglo Saxon Protestant) 일부의 기본 적인 사상인데, 미국이 끝내 세상을 평정(pacification)해야 한다는 미 국 일극( 一 極 )주의 의 다른 표현이다. 이러한 일극주의(unilateralism) 에 기초한 부시 정권의 대외정책이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 비준 거부, 쿄토의정서 탈퇴 등에서 나타나며 9 11 사태 이후 제국 (Empire) 미국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즉 미국 일극주의에 의한 세계평정이 Pax Americana(미국의 힘에 의한 세계평정) 의 핵심이며, 미국을 지배하고 있는 유태인의 시오니즘(Zionism)이 신대륙 미국에 서 구현된 것 중 하나가 Pax Americana이다. 제1부 이라크 전쟁 113

114 물론 WASP의 핵심 세력인 앵글로 색슨계와 무관하지 않은 미 국 기독교 근본주의(Christian Fundamentalism) 1) 가 구상하는 Pax Americana 역시 Zionism이 구현한 Pax Americana와 잘 어울린다. 미국의 패권을 에워싸고 유대인 세력과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이 갈 등을 빚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 미국을 위한 Pax Americana에 는 뜻을 같이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라크 전쟁을 판독하는 게 중 요하다. 그러면 유대인 세력과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이 갈등을 빚고 있 음에도 불구하고 두 세력이 제국 미국을 위한 Pax Americana에 동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시 대통령이 야훼전쟁(Yaweh s War) 의 이름으로 非 미국- 非 기독교 세계의 악마들 을 처치하는 전쟁에 열중하기 때문이다. 非 미국- 非 기독교 세계의 악마 의 최신판은 지 난해 부시의 연두교서에서 밝힌 악의 축(an Axis of Evil) 이다. 1) 10년 전 러시아에서 필자는 선교하러 온 한국인 성직자를 만난 일이 있었다 그 성 직자와 이야기하면서 놀랐는데, 그는 그때 막 끝난 걸프 전쟁에 너무나 큰 의미를 부 여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살아 있는 사탄 이고 미국의 전쟁을 악에 대한 징 벌 로 보면서, 후세인을 완전히 타도하지 못한 것을 미국의 신앙 결핍과 도덕적 실패 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때 그 성직자는 나에게 걸프 전쟁의 신앙적 해석 에 대한 자신의 저서도 주었는데, 그 책의 골자는 후세인을 예비 적( 敵 ) 그리스도 로 보고 그 와의 전쟁을 아마겟돈의 시연( 試 演 ) 으로 본 것이었다 미국의 복음주의적 근본주의 에 관해 공부한 뒤, 그 성직자의 사고가 한국기독교보다 오히려 미국의 극단적인 근본 주의와 연결됐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과격한 전체주의나 아랍인에 대한 극히 편 협한 사고는 미국의 기독교적 근본주의를 따른 셈이었다 문제는 세상을 이와 같은 색안경 을 통해서 보는 사람들이 미국에서 약 2천만 명에 이른다는 사실과, 그들이 현 재 집권 여당인 공화당 안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시의 악의 축 망언도, 추종자 상당수의 근본주의적 배경을 먼저 이해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 <박노자 사탄의 국가여, 지옥으로 가라, 한겨레 21 ( ) 88쪽> 11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15 이라크 북한 이란 등 반미경향의 제3세계 국가들 은 미국 문 명의 악마로서 미국의 제1차적인 타도 대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an 이란 표현이 들어간 게 재미있다. an 은 ~과 같은( 同 類 ) 의 의 미가 있다. 부시 대통령은 빈 라덴과 같은 무리들이 악의 축이라고 규정하고자 하여 an 을 삽입했다. 즉 이라크 북한 등은 단순한 불 량국가(Rogue State) 가 아니라 9 11 테러의 용의자인 빈 라덴과 같은 악의 축이라는 것이다. 불량국가 와 반테러 전쟁 이 이러한 수사법을 통해 너무나 쉽게 연결된다. 악의 축 발언은, 반테러 전 쟁의 차원에서 불량국가를 지구촌에서 없애는 정의의 전쟁(Just War) 을 전개하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이 정의의 전쟁 의 첫 번째 과녁이 이라크이며 다음 차례가 북한이다. Shalom 이 아닌 Pax 에 의존 본래 백악관의 참모(speech writer)가 표현한 문구는 증오의 축 (axis of hatred) 인데 이를 악의 축 으로 수정한 부시 대통령의 세 계관을 분석해야 한다. 매우 보수적인 기독교풍이 강한 미국 남부지 역에서 자란 부시는 보수적인 복음주의 교단에 소속되어 있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성경의 무슨 구절을 읽고 감명받았는지를 분석하면 전쟁광 부시의 정신분석에 도움이 될 것이다. 혹시 구약성서의 야 훼전쟁 을 단순하게 받아들여 현실정치에 적용하는 게 아닌지 우려 된다. 그는 왜 신약성서의 예수님 말씀 중에서 평화의 메시지를 채 택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그가 성서의 가장 중요한 개 제1부 이라크 전쟁 115

116 념인 Shalom 을 Pax Romana 의 Pax(힘에 의한 평정) 로 받아들 여 이라크 전쟁에 임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부시는 이라크 전쟁을, 미국 문명에 적대하는 적( 敵 ) 그리스도 (anti Christ) 를 타도하는 성전(holy war)으로 보고 있다. 물론 북한도 적 그리스도 중의 하나이므로 언젠가는 보란 듯이 붕괴시켜야 한다. 이런 세계관은 국내의 극우 근본주의 신앙체계에서도 나타나는 증상 이다. 타자( 他 者 ), 타 종교를 전혀 이해하지 않는 배타적인 기독교관의 폐해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관용의 종교 이며 나눔의 종교인데, 기독교를 믿지 않으며 미국 문명에 저항한다 는 이유만으로 적 그리스도 로 낙인찍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 다. 부시는 현실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사고방식이 매우 단순하다. 빈 라덴의 편에 서면 미국의 적이고 우리 편에 서면 미국의 우방 이라는 이분법은 부시 특유의 선 악 이원론( 二 元 論 ) 에 입각한 것 이다.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선의 세력은, 미국 사회의 기둥인 WASP, 성공한 유대인(시오니즘), 기독교 근본주의 및 이의 이웃사 촌인 초국적 자본, Wall Street, CNN, 실리콘 밸리(Syllicon Valley), 할리우드, 펜타곤, 보잉사, 미국의 우방국가이다. 그러므로 이런 보수 적인 기독교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놈들은 악마(적 그리스도)이므로 11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17 제거해야 한다. 이와 같은 부시의 마니교식 선 악 이원론 이 지구 촌의 평화를 위협하는 화근이다. 마니교식 선 악 이원론이 화근 지금의 미국 행정부는 부시의 마니교식 선 악 이원론 을 신봉 하는 전쟁광 집단으로 채워져 있으며, 이들의 행각은 마치 컬트 (cult) 같다. 이 집단의 수장인 부시는 마치 신학자처럼, 고대의 제 사장을 겸한 임금처럼 선 악을 가려 주면서 악의 화신 인 이라크 를 치라는 전쟁 십계명 을 내렸다. 2) 2) 독일과 프랑스 등 과거 맹방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반전 시위에도 불구, 이 라크전에 대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강한 의지는 어디에서 연유된 것일까. 팍스 아메리카나 구현, 이라크 원유 지배권 확보 등 일각에서 갖가지 해석들을 내놓 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주요 시사 주간지와 영국의 일간 인디펜던트는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전 강행 의지를 신앙과 연관 짓고 있어 주목된다. <유에스(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최신호(2003년 3월 10일자) 인터넷 판은 부시 대 통령에게 이라크전은 단지 정책적 고려사항이 아니라 도덕적 명령 이라고 보도했다. 이 주간지는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악의 축 으로 지명한 것도 따지고 보면 그의 투 철한 종교관에서 비롯됐다고 시사하면서 부시 대통령의 종교관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 했다. 이 주간지는 부시 대통령의 종교적 수사( 修 辭 )를 들어 보면 일부 미국인들이 대 통령을 선출한 것인지 목사를 뽑은 것인지 의아해할 것이라고 전하며 부시 대통령의 역사인식이 기독교적 신앙에 기반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성공회를 믿는 집안에서 자랐으나, 로라 여사와 결혼하면서 감리교 신 자가 됐고, 1985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의 대화 이후 부쩍 신앙심을 키우는 데 열성 을 기울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부시 대통령은 현재 기독교 중에서도 근본주의적 성격 이 강한 복음주의 교파( 敎 派 )에 속한다. 특히 부시 대통령이 40살 되던 해 신앙의 도 움으로 완전히 술을 끊고 이후 매일 새벽기도와 함께 설교집과 성서 읽기를 반복하는 등 철저한 신앙인이 됐다고 이 주간지는 전했다. 이러한 종교적 관점들을 감안해 볼 때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전 강행 의지는 옳을 수밖 에 없는 일이며, (부시 대통령이 천명한) 선제공격이 정당한 전쟁에 대한 전통적 기독 교적 표준에 입각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제1부 이라크 전쟁 117

118 이런 마니교식 이원론은 매카시즘 의 후예로서 레이건의 Great America 를 추구한 패권주의와 닮은꼴이다. 소련이 붕괴된 다음에 무주공산( 無 主 空 山 )이 된 지구촌을 성조기로 뒤덮는 것이 대통령에 게 부여된 성스러운 과업이며 이를 수행하기 위해 전쟁을 불사하겠 다는 것이다. 정의의 전쟁 론은 부시의 막가파식 전쟁구도의 장식 품일 뿐이다. 부시의 마니교식 선 악 이원론 에 의한 이라크 타도 전쟁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와 아퀴나스(Thomas Aquinas)가 말한 정의의 전쟁 원칙마저 유린하고 있다. 이게 바로 전쟁에 미 친 미국 자본주의 의 정신이상 증세이며, 이런 전쟁 도착증이 더욱 심해지면 미국 문명의 황혼을 재촉할 뿐이다. 로마도 무력이 부족해 서 망한 게 아니라 도덕력의 붕괴로 망했다. 미국도 이런 길을 좇는 것 같다. 또한 부시의 마니교식 선 악 이원론 에 따른 전쟁정책은 구약 부시와 신(God) 이란 제목의 뉴스위크 최신호(2003년 3월 10일자) 커버스토리에서도 부시 대통령의 종교관은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뉴스위크는 부시 대통령 측근들의 말 을 인용, 그의 조용하지만 열렬한 기독교적 신념이 그에게 힘을 부여해 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 잡지는 부시 대통령의 신앙심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려는 열정을 주고 있으 며, 선과 악이라는 명확한 이분법적 관념을 부여하고 있다고 전한 뒤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이 이와 무관치 않다고 시사했다. 때문에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전은 미 국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 같은 악과 싸우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며, 필요할 경우 전쟁에 의해 싸울 수밖에 없다는 신념으로 발전했다고 뉴스위크는 분석했다. 실제로 부시 대통령은 최근 사담 후세인 정권 타도가 이라크를 민주화할 뿐 아니라 해방된 이라크가 자유의 힘을 보여 줌으로써 중동 전체의 민주화에 기여할 것 이라는 전쟁 불가피론 을 주창했다. 특히 후세인 제거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평화 롭게 해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 뉴스 ( )>. 11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19 성서의 야훼 전쟁 의 뜻에도 어긋난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힘으로 징계하여 회개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 여 주는 야훼 전쟁 과 이라크 전쟁의 구도는 다르다. 부시는 하나님 도 아니요 하나님의 대리인도 아니다. 하나님의 대리인인 로마 교황 도 반대하는 이라크 전쟁을 고집하는 부시, 부시 휘하의 전쟁광들은 기독교 정신을 훼손하는 반( 反 )기독교 무리들 이다. 그럼에도 그들 은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서 적 그리스도 인 이라크와 북한의 무리 들을 절멸시킬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이들의 기도를 들어 줄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지 규명해야 기독교의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된다. 전쟁광들의 집단심리 분석해야 또 하나 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할 대상은 부시 주변에 밀집되어 있는 전쟁광(체이니, 럼스펠드 등)들의 집단심리이다. 이들은 미국사 회의 전쟁신( 戰 爭 神 ), 미국의 호전적인 지배 세력이 간구하는 전쟁 신의 가호를 구하며 Pax Americana를 구현하려고 한다. 이교도 특 히 이슬람에 대한 이들의 편견은 미국 군국주의의 종교적인 그루터 기 를 이루고 있다. 이들과 인맥으로 연결되어 있는 기독교 근본주의 가 미국 군 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와 강고한 연대체 를 이루며 미국 군국주의의 아성이 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믿는 미국 문명의 전쟁신은 폭력을 양산하는 기제 (mechanism)로서 제3세계의 진보적 정치 세력을 발본색원(아옌데 제1부 이라크 전쟁 119

120 정권 붕괴)하는 귀신 노릇을 했다.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미국 문명 이러한 미국 문명의 폭력성은 어디에서 연원되는가? 폭력과 성 스러움 을 쓴 르네 지라르(Rene Girard)의 욕망의 3각형 에서, 오이 디푸스의 아버지인 라이오스라는 희생양이 필수적이다. 희생물이 없 으면 모든 사회질서(기독교 문명)가 불가능해진다는 게 지라르의 지 론이다. 희생양은 상호적 폭력에서 공동체적 평화로의 이행을 확실 하게 한다. 이때 오이디푸스는 평화의 초석이 된다. 이러한 지라르의 이론을 자본주의 분석에 원용한 학자들의 견해 에 따르면, 근대자본주의 시민사회의 동맥인 화폐 자본 안에 이미 타자( 他 者 )로서의 희생양 이 들어 있으며 이런 희생양이 없으면 자 본주의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자로서의 희생양 을 배제하 는 운동체로서의 자본과 이런 자본에 의해 국가권력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본주의에 입각한 국가권력은 반드시 폭 력을 내재한다. 이라크 북한은 현대판 라이오스 이러한 설명구도를 이라크 전쟁에 대입해 보자. 지라르가 말하는 희생양은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과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다. 이라크 12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21 와 북한은 현대판 라이오스이다. 미국의 지배 세력은 소련이라는 거 대한 주적( 主 敵 : 敵 그리스도)이 사라진 다음에, 군 산 복합체 중심 의 군국주의 유지 및 이를 기반으로 한 미국 경제의 유지를 위해 새 로운 가상적(새로운 敵 그리스도) 사냥에 나섰다. 새로운 사냥터는 민족분쟁이 끊이지 않는 유라시아 대륙의 남부 지역(중앙아시아, 중동)과 동아시아이었다. 이 두 곳에서 새로 발견 한 라이오스가 이라크와 북한이다. 이라크와 북한은 미국의 신념체 계에 거슬리는 이슬람과 주체사상을 신봉하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눈 엣가시였다. 따라서 이라크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보유 라는 신종 위협론을 개발하여 미국 자본주의의 동력으로 삼았다. 즉 이라크 북한의 대 량파괴무기로 인해 미국(미국 자본주의)이 위협받기 때문에 이들 적 그리스도를 징계하기 위한 전쟁이 필연적이며 미사일 방어망(MD: Missile Defense) 등의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는 점에서 유대계와 기독교 근본주의의 이해가 상통( 相 通 )한다. 이라크 전쟁과 자본주의의 폭력성 서구 기독교가 낳은 자본주의는 (본래의 청교도주의(Puritanism) 의 순기능과 달리) 가상적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체제로 되었다. 끊임없이 라이오스를 재생산하고 라이오스를 희생양으로 자본을 번 제1부 이라크 전쟁 121

122 식해야 생존하게 되어 있다. 이러 발상의 밑바탕에 기독교 우파의 사회사상인 Social Darwinism이 내재해 있다. Social Darwinism에 입각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관계(이 관계 속에서 적자생존 경 쟁의 탈락자들은 구제불능임) 를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질서로 설정 하고 여기에서 탈락한 자( 者 )는 타자 로 배제된다(이러한 타자 배제 의 물질적인 외화물이 근대 시민사회의 화폐 자본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에는 근본적으로 폭력성이 내재해 있다). 미국 국내의 이러 한 지배질서가 대외 안보정책이란 이름으로 미국의 대외정책으로 드러나며 이라크 전쟁이 가장 극단적인 사례이다. Social Darwinism을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펼치겠다는 Social Darwinism의 세계화 에 유럽문명이 저항하는 가운데 유럽의 시민들 이 반전운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다. <유럽에서 번창한 기 독교 정신의 기둥인 타자(이라크)에 대한 이해 를 바탕으로 한> 유 럽식 다자주의(multilateralsim) 對 <이라크를 희생양으로 해야 숨통 이 트이는> 미국문명의 일방주의 사이의 대결이 이라크 전쟁의 막 후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는 무주공산인 세계를 집어먹으려는 거식증( 巨 食 症 ) 환자인 부시 정권과 유럽의 앞마당(동유럽까지)을 넘보지 말라. 는 프랑스 독일의 대립 양태로 발전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이 번갈아 가면서 중동을 지배하고 있지만 서 있는 위치에 따라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같은 유럽 안에서도 이라크의 옛 종주국인 영국은 프랑스 독 12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23 일과 달리 미국식 일방주의의 깃발을 들고 있다. 폭력의 원동력을 제공하는 세력 <이라크 북한과 같은 현대판 라이오스를 타학( 他 虐 )함으로써 미국의 전쟁기구(군 산 복합체 포함)가 돌아가는> 미국 자본주의 안에 내재된 폭력성을 분석하고 이러한 폭력의 원동력을 제공하는 세력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라크 북한을 타학( 他 虐 )하는 전쟁지향적 자본주의의 물리력 은 군 산 복합체가 제공하고, 이데올로기는 기독교 근본주의가 제 공하며, 유대인 세력이 뒷돈을 대주며, WASP가 총괄한다. 부시 정 권을 원격조종하는 3대 세력인 기독교 근본주의, WASP, 유대인 세 력이 서로 각축을 벌이며 이라크 전쟁에 임하고 있다. 한국의 극우 근본주의 신앙체계와 비슷한 세계관(반공 냉전 수구 의식)을 갖는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에 힘입어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따라서 부시는 기독교 근본주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악 의 축 을 징계하기 위한 전쟁을 벌여야 할 입장에 놓여 있다. 한편 소련이 사라진 세계를 꿀꺽 삼키고 싶은 Great America 거 식증 에 걸린 WASP는 부시 정권의 본당이다. 석유재벌의 아류인 부 시 가문, 군 산 복합체의 맹주인 모건(Morgan)재벌 등 Anglo Saxon Protestant가 백악관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기독교 근본주의와 제1부 이라크 전쟁 123

124 유대인 세력(금융자본의 핵심인 록펠러 재벌, 군 산 복합체의 기둥 인 로스차일드 재벌, 키신저의 조직 등)을 좌청룡 우백호로 거느리면 서 미국과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과 유대 인 세력은 부시를 에워싸고 신경전을 벌이면서 자신들의 지분을 넓 혀 가고 있다. 이러한 갈등의 뒷전에서 9 11 사태를 조작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설( 說 )이 있으나 보통사람들은 이를 증명할 길이 없다. 이들 두 종교세력은 특유의 원리주의(기독교 근본주의, 시오니 즘)로 무장한 채 라이오스(이라크 북한)의 희생제( 犧 牲 祭 ) 로서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기독교 근본주의와 시오니즘은 모두 후세인 의 아랍 민족주의(Arab Nationalism)와 김정일의 주체사상을 적 그 리스도로 설정하고 이를 섬멸하는 전쟁에 돌입했다. 여기에 종교전 쟁의 요소가 내재해 있지만, 헌팅턴이 말하는 문명충돌론으로 몰고 가면 논리적인 한계가 뒤따른다. 헌팅턴은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원 리주의(Islam Fundamentalism)의 대결을 기본 축으로 삼고 있으나 논리설정이 잘못되어 있다.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 의 한계 헌팅턴은 <이슬람 원리주의의 기초에 있는 성전( 聖 戰 : Jihad)에, 서구문명에 도전하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반미 이슬람 세력 을 소 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맥을 잘못 짚은 것이다. 코란에 자 주 나오는 Jihad는 기본적으로 기독교의 샬롬(Shalom)과 같이 평화 12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25 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이슬람 세계를 위협할 때는 자위의 수 단으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 헌팅턴은 이 후자만을 과장하여 이슬람 위협론을 과대하게 선전함으로써 부시 정권의 전쟁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Shalom 과 Jihad 의 유사성으로 볼 때 기독교 미국과 이슬람 이라크가 싸울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싸움 을 거는 것은 유대인의 중동지배욕과 미국 지배계급의 세계제패 야 욕이 있기 때문이다. 중동을 시오니즘의 텃밭으로 이스라엘의 군국주의를 지원하는 유대인 세력은 중동의 친미 이 슬람 세력을 키우되 반미 이슬람 세력은 철저하게 섬멸하겠다는 것 이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세력은 말할 나위 없이 후세인과 이 란의 호메이니 후계자들이다. 후세인의 내치에는 문제가 있으나 그 는 기본적으로 낫셀주의자(Nasserist)이다. 그는 젊은 시절 이집트에 서 공부할 때 아랍 민족주의(Nationalism) 의 상징인 낫셀주의 (Nasserism)의 세례를 받고 감명받았다. 아랍 민족주의의 선봉자인 후세인이 아랍 민중들로부터 좋은 평 가를 받았기 때문에, 후세인의 제거는 이스라엘의 세력 확장 전략의 첫 번째 요소이었다. 이스라엘의 초강경파들은 팔레스타인을 병탄한 제1부 이라크 전쟁 125

126 뒤에 바그다드까지 진격하여 중동을 시오니즘의 판도로 만들겠다고 덤비고 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후세인이 전쟁내각을 구성하면서 강경한 정치를 펼치기 때문에 서방세계로부터 비민주적인 정권으로 낙인찍혔다. 그리고 바그다드를 점령하려는 시오니즘-미국 자본주의 에 맞 서는 또 하나의 요새는 이란의 이슬람 혁명정신이다. 이 요새를 반 드시 공략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부시가 이란을 악의 축 명단에 집어넣었다. 바그다드는 세계제패의 경락 미국의 이라크 점령계획의 제1차적인 목적은 원유(석유) 패권의 확보에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전쟁목적이 이것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미 아프간 전쟁을 통해 중앙아시아에 미군이 진주 함으로써 카스피해의 천연가스 유전지대를 석권하게 되었다. 이제 중앙아시아에서 조금 남하한 이라크를 장악하면 전 세계의 자원을 미국의 손아귀에 쥐며 유라시아 대륙의 남쪽 지방을 장악하고 중국 을 결정적으로 포위하게 된다. 이러한 패권 싸움의 체스 게임을 중 심으로 바라볼 때 바그다드는 세계제패의 경락이다. 이 경락을 미국 이 쥐고 세계를 향해 호령하겠다는 것이고 프랑스 독일 러시아는 호락호락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12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27 바그다드 라는 경락을 쥐기 위해 미국의 에너지 자본과 군수자 본이 총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과 유대계의 강 경파 시오니스트(Zionist)들이 관여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라크 점령을 향한 미국의 군( 軍 ) 산( 産 ) 종( 宗 :종교) 자본 동 맹 이 전 세계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라크 위협론, 북한 위협론 보다 미국 위협론, 미국의 군 산 종 자본 동맹 위협론 을 더욱 중요하게 다루며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미국 위협론 은 잠복해 있고 이라크 위협론, 북한 위협론 만 지나 치게 드러나 있는 불균형을 고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세상에 평화 가 깃들지 않을까? * 출처= 평화 만들기( 112호( ) 제1부 이라크 전쟁 127

128 이라크 전쟁은 미국 멸망의 서막? 미국은 마르고 닳도록 지구촌을 지배할까? 미국의 막강한 군사 력을 감안하면 미국의 멸망이란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들린다. 세계 최대의 부강한 나라 미국의 경제력을 보아도 미국이 멸망한다는 말 은 낭설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최대의 군사력 경제력을 지녔던 로마 제국이 도덕력 정당성의 부족으로 멸망한 사실 을 까 마득하게 잊고 이라크 전쟁에 돌입한 것 같다. 필자가 보기에 이라크 전쟁의 승패와 무관하게, 미국이 세계지배 의 도덕력을 상실함으로써 미국 지배 질서의 정당성이 와해될 것 같 다. 이는 이라크 전쟁을 통해 미국 주도의 새로운 세계 지배 질서를 구축하려는 야망에 미국 스스로 재갈을 물리는 꼴이 되어, 미국 뜻 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 될 것이다. 미국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덤빈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위기를 가중시키는 결과로 될 가능성이 엿보 인다. 이와 더불어 현재 지구촌을 덮고 있는 반전평화 시위가 반미 의 횃불로 변하여 미국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12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29 로마 멸망의 길 그럼 미국이 어떻게 하여 로마제국처럼 서서히 멸망하게 되는지 를 가상적으로 살펴본다(가상이므로 현실적으로 미국이 멸망하지 않 을 수 있다). 미국은 고대의 로마제국과 자주 비교되곤 한다. 로마제국은 그들 이 오랑캐 족( 族 ) 이라고 비웃었던 게르만 민족에 의해 멸망한다. 게르만은 야만인으로 업신여김을 받으며 부지런히 로마의 국경을 위 협하고 침입을 도모하는 가운데, 로마를 향한 민족 대이동을 거듭한 끝에 제국을 내부에서 붕괴시켰다. 이를 구체적으로 말하면 로마 전기( 前 期 )~중기( 中 期 )의 게르만 (과의) 전쟁은, 피신하여 쳐들어오는 게르만의 무장 난민을 로마 정 규군으로 편입시켜 게르만 병사들을 일방적으로 깨부수는 일이 허다 했기 때문에 승승장구했다. 전쟁에서 포로가 되거나 살아남은 게르 만인들은 로마의 노예로 되었다. 그런데 후기 로마시대에는, 게르만 對 게르만 용병의 전투에서 게르만인 스티리코처럼 권력의 중추를 장악한 인물들이 등장했다. 이들 게르만인들은 로마 황제와 인척 관계를 갖고 로마 방위군의 최 고 책임자로서 게르만 민족의 침공과 국내의 봉기를 막았다. 제1부 이라크 전쟁 129

130 이윽고 로마 황제 호노리우스는, 막강한 권력을 소유한 스티리코 를 암살하고 그 부하의 가족을 학살하는 폭거를 저질렀다. 당시 황 제는 로마가 아닌 라벤나=밀라노에 궁전을 건설하고 수도로 삼을 작정이었다. 이때 스티리코 파( 派 ) 로마 병사가 반란을 일으키자 황 제는 통치능력을 잃어버렸다. 이어 게르만 계( 系 ) 서( 西 )고트 등이 로마를 약탈하고 서( 西 )로마는 이 사건으로 게르만 민족에 의해 분 할되어, 현재와 같은 유럽의 민족구분을 가져왔다. 게르만족이 로마에 끈질기게 침투하여 로마의 멸망을 재촉하는 과정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서로마 제국 최후의 황제인 로물로스 아우구스투스는 정식 황제의 수속을 밟지 못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 게르만 군인 오드아켈은 476년 로물로스 아우구 스투스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황제의 이름을 달았다. 로마 귀족의 인 정을 받지 못한 오드아켈은 이탈리아를 침공한 동( 東 )고트와의 전쟁 에서 패사( 敗 死 )했다. 역사적으로 오드아켈은 황제의 명단에 들어가 기는커녕 로마를 멸망시킨 반역자로 낙인찍혀 있다. 미국을 괴롭히는 오랑캐 이슬람 앞에서 설명했듯이 로마제국이 게르만족이라는 이방인에 의해 멸망한 과정을 미국이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로 마제국을 괴롭힌 이방인 게르만족 처럼 현재 미국을 괴롭히는 오랑 캐 이슬람(Islam) 의 도전을 무시할 수 없다. 로마시대에 경멸당했 13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31 던 게르만족에 의해 로마가 멸망했듯이, 미국 문명의 최대의 경멸 대상인 이슬람을 잘못 다룬 결과 미국의 멸망을 재촉하는 결과를 가 져올지 모른다. 이런 결과를 예단할 수 있는 계기가 이라크 전쟁의 승부일 것이다. 이라크 민중이 분전하여 미국의 공세를 물리친다면, 이는 이슬람 때문에 미국 제국 의 일각이 무너져 내리는 서막이 될 것이다. * 출처= 평화 만들기( 112호( ) 제1부 이라크 전쟁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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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제2부 반전평 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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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들어가는 말 참담함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 필자가 이라크 전쟁을 보고 느끼는 소감이다. 전 세계에서 수천만 명이 반전시위를 전개했으나 전쟁을 저지하지 못한 참담함, 필자가 평화 활동가 를 자임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조폭 전쟁을 막지 못한 참담함, 평 화를 향한 열정이 조롱당한 듯한 무력감, 하이에나처럼 전쟁을 좇는 전쟁 사냥꾼 부시 를 전쟁범인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무력함, 전쟁 의 하이에나 부시에 빌붙는 전쟁 불나방 정권(영국 일본) 과 그 아류인 한국 정부(의 파병)를 심판하지 못하는 무력감, 피에 굶주린 전쟁광들을 포박하지 못하는 무력감, 전쟁광들이 지배하는 이 더러 운 세상 에서 연명해야 하는 참담함을 쉽게 떨치기 어렵다. 부시의 그 표독스러운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참담함은 역겨움으로 변한다. 그러나 이라크 개전 소식을 듣자마자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반전 시위를 벌이는 민초들의 역동성 평화의지를 지켜보면서, 제국 미 국의 횡포가 없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을 갖기도 했다. 시애틀 에서 비롯된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과 이 투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반 전평화 운동의 열풍이 조폭 전쟁을 냉각시킬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다. 그러나 이런 믿음에 대한 서광이 실낱같이 비칠 뿐 아직 구체화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35

136 하기에는 이른 감이 들기 때문에 참담한 쪽으로 마음이 기울곤 한다. 이렇게 참담한 마음으로 반전평화 운동(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 동아시아의 평화 운동 이라크 파병반대 운동 등)에 관하여 쓴 글들 을 모은 것이 제2부이다. 제2부는 평화 만들기( 에 반전평화 운동 과 관련하여 기고한 글의 모음집이다. 저자는 제2부에서 반전평화 운동의 흐름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반전평화 운동의 방법론을 세우려고 애썼다. 저자의 반전평화 운동론이 아직은 어설프지만, 미 개척 영역인 평화 운동론을 정립하는 데 기초자료가 되길 바란다. 13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37 미국 영화가에 반전물결 - 아카데미 수상식에서 반전배지를 단 사람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상인 아카데미 수상식(2003년도 수상식) 이, 부시 대통령을 성토하고 전쟁 반대를 외치는 무대로 변했다. 얼마 전에 아카데미 영화상을 받은 여배우가 전쟁광 부시 대통 령을 혹독하게 비판하여 화제가 되었다. 그 여배우는 여론의 압력에 밀려 대통령을 욕한 부분에 대하여 사과했다. 현재 미국 영화계의 반전 분위기를 배우들이 주도하고 있으나 감독들도 이에 질세라 반전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2003년도 아카데미상의 다큐멘터리 부문상은 미국의 권총 사 회 를 엄혹하게 비판한 영화 볼링 포(for) 코롬바인 (감독: 마이켈 무어)으로 정해졌다. 무어 감독은, 루즈벨트 언론 자유상(캘리포니아 주의 시민단체가 주는 상)을 받는 자리에서 이라크 전쟁을 불필요 한 전쟁 이라고 평가하면서 부시 대통령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무어 감독은 (부시 대통령은) 9월 11일의 테러가 가져온 국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37

138 민의 공포감을 이용하여, 테러와 관련되었다는 증거도 보이지 않고 이라크를 공격하였다. 테러의 희생자를 모독한 행위이다. 고 맹비난 했다. 무어 감독은 가짜 이유를 내건 전쟁이 시작되었다. 가짜 정보가 흐르고 있다. 고 말하며 우리들은 이 전쟁에 반대한다. 부시여 부끄 러움을 알아라. 당신이 갖고 있는 시간은 끝났다. 며 연설을 마무리 지었다. 반전배지를 단 영화인들 그럼 이번에 아카데미상에 참가한 연화인들 중에서 반전배지를 달고 다닌 사람들을 소개한다. 1) 피카소의 비둘기 모티프의 배지를 단 영화인들 마이켈 더글라스, 살마 하에크, 수잔 사란든, 다니엘 데이 루이스, 브렌단 프레이저, 마틴 스콧세시, 리차드 기어, 로브 마 샬, 에이도리안 브로디, 벤 킹 슬레이, 페드로 알모드발, 지나 데이비스 13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39 2) 녹색 바탕에 비둘기 다리의 마크가 새겨진 배지를 단 영화인들 마이켈 무어 감독을 비롯한 장편 다큐멘터리 상을 받은 사람들: 데이비드 헤어, 스티븐 덜 드리, 마샤 게이 하덴, 크리스 쿠퍼, 에이미 마디간, 하베이 와인스타인, 이산 호크, 콜린 파렐. 그 밖 에 많은 스텝들의 명단은 생략. 베트남전 당시의 반전 분위기 이번 아카데미 수상식에서 집단적인 반전 분위기를 연출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통념대로 아카데미를 쇼 로 생 각하면 안 된다. 베트남 반전운동 때도, 1974년에 장편 다큐멘터리(베트남 전쟁 의 기록 영화 Hearts and Minds ) 수상자가 베트남 평화단 단장 의 메시지를 소리 내어 읽은 뒤 소동이 일어나는 정도로 그쳤다. 이 번처럼 수상식 참가자 대부분이 메시지를 발표하거나 반전 의지를 나타낸 적이 없다. 반전 행동이 정치적으로 과격한 극소수 반체제 파의 짓 으로 비난받기 쉬운 미국 사회의 분위기 때문이다. 스타들 은 이제껏 자신들의 생각과 달리 애국심 을 고무하는 연출을 사실 상 강요받아 왔는데 이번에 집단적인 반발을 보인 것이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39

140 미국 영화계는 전쟁 중인 해의 우수작 선정에서 정치색을 의도 적으로 배제한다. 1975년 베트남 철수 패전 때와 1991년 걸프전 때는 주요 5개 부문 영화상 을 정치색을 배제한 작품으로 선정했다. 1984년, 1994년(북한에 대한 전쟁 일보 직전에 돌입한 해), 1997년 등 전쟁과 관련이 있던 해에도 정치색이 거의 없는 작품을 선정했다. 영화인들의 반전 메시지 그럼 이번 아카데미 수상식에 참석한 영화인들이 수상 소감에 나타난 반전 메시지를 들어 보자. 1) 조연 남우상( 男 優 賞 ) 수상자 크리스 쿠퍼: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겠다. 지금은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 나 나는 평화를 바란다. 2) 방송 사회자 수잔 사란든( peace 사인을 하면서 등장): 대 화를 통해 세상을 바꿔 나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도중에 죽은 사람들을 기립니다. 3) 주연 남우상( 男 優 賞 ) 수상자 에이드리안 브로디: 잠시 기 다려요. 1초만. 한마디 하게 해 주세요. 슬프고 기묘한 느낌 이 듭니다. 나는 이 작품에 출연하여 경험했습니다. 전쟁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고, 비인도적인 것입니다. 신( 神 )도 알라 14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41 도 좋습니다. 神 의 가호가 있기를. 이 전쟁이 빨리 끝나게 합시다. 그리고 쿠웨이트에 있는 친구들, 아라빈스키, 살아 돌아와요. 4) 방송 사회자 더스틴 호프만: 과거사에 빛을 비추고 현재와 깊이 관련되는 가운데 장래의 올바른 방향을 이끌어 갑시다. 5) 주연 여우상( 女 優 賞 ) 니콜 깃드만: 왜 이런 시기에 전쟁인가 생각되지만 역시 예술은 언제나 필요하군요. 세상에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테러 이후 많은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어요. 지금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神 의 가호를. 6) 회장 플랭크 피어슨: 해외(이라크)에 있는 이 나라(미국)의 젊은이가 빨리 돌아와 주길. 이라크 사람들에게도 평화가 깃 들기를. 전쟁이 없는 세계가 도래하도록. 7) 각본상 수상자 페드로 알모드발: 금지되어 있지만 성명서 를 읽겠습니다. 현재 평화 인권 민주주의 정당성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상을 바칩니다. 8) 방송 사회자 가엘 가르시아 베르나르: 세계의 평화는 현 실이 아니면 안 된다. * 출처= 평화 만들기( 112호( )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41

142 베트남전 반대와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의 차이 베트남 전쟁이 오랫동안 지속되어서 반대 운동도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오랜 전쟁기간 중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어 느 시기를 취하느냐에 따라 베트남 반전운동의 특징도 꽤 다르다. 1965년 2월 미국의 북 베트남에 대한 대규모 폭격이 시작되자 비로 소 미국을 포함한 각국에서 반전운동이 크게 벌어졌다. 그런데 미국 의 베트남 공격은, 1965년 이전부터 있었다. 베트남 반전운동은 장기적으로 전쟁이 계속되는 도중에 점점 힘 을 얻어 강력해졌다. 현재 이라크 전쟁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이를 사전에 저지하려는 운동이 벌어진 것이 큰 차이점이다. 만약 세계 제1의 군사력을 가진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반전운동의 힘으 로 그만두게 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다면, 이 는 세계사에 전례가 없는 큰 사건이 될 것이다. 미국 정부와 군부는 베트남 전쟁의 경험으로부터 그들 나름대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들은 베트남전의 교훈을 걸프전이나 이라크 공 격 준비에 적용하여, 베트남에서의 정치적 군사적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셈이다. 그들은 매스컴 보도의 관리나 여론 조작의 방법, 미군 14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43 병사의 사상자를 내지 않도록 하는 등의 방법에 신경을 쓰지만, 참 된 의미에서 베트남 전쟁의 교훈을 배우고 있지 않다. 만약 베트남 전쟁의 교훈을 정말로 배웠다면 자신만이 올바르다, 이라크는 악마 의 나라이다. 는 독선적인 태도를 취하면 안 되며, 이라크 공격도 피 해야 한다. 현재의 반전운동 측도 물론 베트남 반전운동의 경험을 지니고 있으며, 그 교훈을 살리려고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전쟁 이 시작된 다음이 아니라, 공격의 준비 단계에서 전쟁을 어쨌든 그 만두게 하려고 한다. 이것을 전제로 생각하면 현재의 반전운동의 전개 속도, 규모의 크기는, 베트남 전쟁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아직 시작되 지 않은 전쟁에 대하여, 1,000만 명이 반전운동을 전개한 일은 유사 이래 없다. 게다가 베트남 전쟁 당시의 반전운동은, 처음에는 아시아 의 소농업국인 베트남의 인민에 대한 동정심에서 비롯되었다. 그러 나 현재의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은 그렇지 않다. 미국에 대한 비판 과 동시에 자국 정부가 미국에 협력하는 것을 저지하는 것을 처음부 터 주요한 목적으로 상정하고 있다. 베트남 반전운동 때도 다양한 그룹이나 단체 개인이 연합하여 공동의 행동을 한 일이 자주 있었지만, 그것을 실현하기까지 몹시 고생을 했고 용이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이라크 전쟁 반대 운 동의 경우 베트남 전쟁 반대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단체 그룹 NPO NGO 개인 등이 공동으로 행동하는 게 비교적 용이해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43

144 지고 있다. 인터넷을 운동에 이용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차이이다. 베트남 전쟁 때는 신문에 반전 의견 광고를 내려면, 선전물을 우편 전화 교환을 통하여 보내는 방법밖에 없었고, 실현하기까지 몇 달 또는 반년이 걸렸다. 그런데 지금은 이메일 연락 등으로 보름 정도 이면 수만 명, 수십만 명의 찬동을 받아 시위를 조직할 수 있다.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에 이렇게 밝은 측면이 있으나 어두운 구 석도 있다.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당시에 비하여 노동조합 운동과 학생운동 세력의 힘이 나약하다는 점이다. 베트남 전쟁 때는 일본 프랑스 독일 등에서 강력한 학생운동이 존재하여 격렬한 행동을 전개하고, 그것이 여론의 동향에도 영향을 주었다. 지금 젊은 사람 들이 서서히 반전운동에 참가하고 있으나, 학생운동과 같은 기동력 을 가진 운동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 점이 베트남 전쟁 당시와 다른 점이다. * 출처= 평화 만들기( 112호( ) 14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45 이라크 민중은 왜 투쟁하나 - 이라크 전쟁 1주년을 맞이하여 이라크 전쟁이 종료된 뒤 이라크의 민중운동이 점점 강해져 미 국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 볼 수 있듯이 아랍 이 슬람 민중들의 고난을 극복하며 살아 나가려는 힘 은 헤아릴 수 없 는 저력을 지니고 있다. 아마 베트남 전쟁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이 라크에서 결국 패배할지도 모른다. 베트남 전쟁은, 냉전구조 속에서 최대 국가(미국)와 최소 국가 (베트남) 사이에서 치러진 전쟁이다. 베트남에서는 그나마 사회주의 국가체제를 갖춘 월맹이 힘을 갖고 미국에 저항했다. 그런데 이번의 이라크 전쟁에서는, 베트남 전쟁 때와 같은 후방지원 국가가 없는 상태에서 외로운 항미( 抗 美 ) 민중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미국에 저항 하는 게릴라 세력 역시 베트남의 산악과 같은 은신처가 거의 없기 때문에 도시 게릴라 투쟁을 벌이고 있다. 게릴라 투쟁 중에서 가장 험난한 것이 도시 게릴라 투쟁임을 고려할 때, 이라크 민중의 반미 운동은 매우 외로운 상태라고 규정지을 수 있다. 이렇게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제국주의가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45

146 일방적인 공세를 통해 승리를 낙관(민중들의 반미 게릴라 투쟁을 완 전히 제압)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 이라크 민중의 뒤에는 미국 제 국주의의 최강의 적대 세력인 아랍 이슬람 민중 이 버티고 있기 때 문이다. 이미 이슬람의 세계화(globalization of Islam)가 이루어진 마당에, 이라크 점령군(미군)이 이라크 민중들의 반미 항전( 抗 戰 )을 섣불리 다룰 경우, 미군이 아랍 이슬람 민중 전체와 대결해야 할 상황으로 비화할지 모른다. 오늘날 이라크 민중이 저항운동을 전개하는 근원은 어디에 있을 까? 이에 앞서 중동의 역사, 제국주의와 중동의 관계, 이라크에 서 민중운동이 지속되는 사회적인 원인 등의 기본적인 것부터 설명 하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라크는 미국의 중동 지배와 깊은 연관이 있 다. 미국 제국주의는 물론 그 이전의 영국 프랑스 제국주의도, 그 지배구도가 동요되지 않은 적이 없다. 중동에서의 민중봉기가 예전 부터 영국 프랑스 반대의식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지금은 미국 반 대의식 중심으로 일어날 조짐을 보이기 때문이다. 제국주의가 제아무리 군사력을 강화하고, 현지 정부가 제아무리 치안대책을 강화해도 길거리를 다니는 군인 상인 노동자 학생 민초들의 생활 현실 속에서 봉기의 기운이 샘솟는 것을 제어하지 못 하면, 봉기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다. 더구나 지금처럼 중동의 민 14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47 중봉기가 국경을 넘어 세계적인 규모로 확대되어, 최신 무기로 무장 한 미군 점령군에 대한 자폭 공격이라는 시대착오적인 투쟁방법을 사용하더라도 이를 막을 수 없다. 중동의 반제( 反 帝 ) 민중봉기는 1960년대에 이집트 나셀의 아랍 민족주의, 이라크 시리아의 바스(Baath) 민족주의, 1970년대의 이 슬람 혁명사상 팔레스타인 해방사상 등의 혁명 이데올로기에서 비 롯되었다. 이들 혁명 사상이 민중들에게 전파되어 민중 스스로 사상 무장한 형태를 띠고 있는 특징이 있다. 한편 이데올로기의 지도부를 쳐부수면 민중봉기도 파탄 낼 수 있다. 고 판단한 제국주의는, 혁명지도부를 군사적으로 두들기는 강 경책이나 정치 경제적으로 회유하는 회유책에 주력했다. 그 결과 이집트와 같은 예전의 혁명국가가 친미국가로 되었다(최근의 리비아 도 마찬가지). 혁명국가를 친미국가로 전환시키는 작업은 중동 국가들의 왕제 ( 王 制 )를 공화제로 이행시키는 민주주의 개혁 이라는 미명( 美 名 ) 아 래에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런 중동정치의 개혁은 식민지 시대의 왕정에서 후기 식민지주의(post-colonialism)의 사이비 민주주의 (pseudo-democracy) 에로의 대체에 불과했다. 식민지 시대의 지배 층이었던 왕족 귀족이 후기 식민지 시대에 군인(군부 파시즘 세력 의 주류)이나 신흥 부르주아(새로운 자본가)로 바뀐 것에 지나지 않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47

148 았으며, 민중의 삶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지배층이 바뀌었을 뿐, 민초들의 고난에 찬 삶은 예전이나 마찬 가지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중동의 민중 특히 팔레스타인의 민중봉 기(Intifata)가 시작되었고, 이라크 민초들이 봉기의 횃불을 들고 있 는 것이다. 중동지역의 정치형태가 왕조에서 공화제로 바뀌고 경제적으로 원유 수입의 증가에 따라 부르주아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소외받은 민중들의 고난이 상대적으로 증가했다. 한마디로 (사막의 땅 중동에 알라 신이 내려 준) 원유 의 은혜를 받지 못한 하층 민중들의 생활 상태가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게 화근이다. 중동지역의 민중을 생각할 때 의외로 많은 숫자의 빈민 을 고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경제적인 맥락이 있다. 민중들이 은혜를 받지 못하고 하층생활을 맴도는 상태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게 문제이다. 2차대전 이후 방치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경우가 전 형적인 사례이다. 원유 판매 수익에 힘입어 중동에 거대도시가 생겨난 음지에서 빈민들이 급증했다. 원유 자본가들이 세운 신흥도시의 교외에 슬럼 현상이 두드러졌다. 근대화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도시빈민들의 존재 는, 중동의 형식적인 민주화를 허상으로 보이게 했다. 어찌 보면 형 식적 민주주의(서방식의 민주주의)의 탈을 쓴 중동의 근대화가 빈민 14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49 촌을 만들었다고나 할까? 지금까지 중동지역에서 공화제 혁명이란 말을 많이 들었으나 과연 토지 개혁 국가기구(국가권력)의 개혁까지 이루어졌는지 의심 스럽다. 중동지역에서의 개혁이 식민지 시대부터 배출한 빈민의 해 방을 이룩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빈민들을 새로운 억압체제에 집 어넣은 요소가 있다. 식민지 시대에는, 식민지 체제와 그에 편승한 왕정이 낳은 압도 적 다수의 가난한 농민이 존재했다. 그러나 식민지 체제가 공화정으 로 바뀌자, 이들 가난한 농민이 도시 빈민이 되어 슬럼가에 나타났 다. 이러한 변화 과정에 쿠데타가 일어났고 중동전쟁이 터졌다. 빈민 들이 엄청난 정세변화의 바람에 휩쓸려 하소연할 곳조차 찾지 못할 정도이었다. 바그다드 주변의 슬럼가 레바논의 베이루트 교외에 빈 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베이루트 교외에 난민촌이 만들어졌으며, 그 주변에 농촌의 빈농들이 모여 사는 삶의 구분선을 이루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중동의 어느 곳에서도 도시의 슬럼가 사람들이 국가체제 의 은덕을 입거나 공화제 혁명의 은혜를 받은 바 없다. 중동에서 일관되게 민족반란이 일어나고 있으나, 예전의 아랍 민 족주의가 번창했을 때는 상의하달형( 上 意 下 達 型 )의 민족주의이었다. 즉 낫셀주의에 동조하는 민중을 지도한다는 전통적이거나 엘리트의 민족주의 지도자가 민중을 조직했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49

150 그러나 지금의 민족주의는 민중 쪽에서 만든 것이다. 아라파트 를 대신하는 지도자가 없으므로 아라파트를 허용하지 않으면 안 된 다. 는 논의가 있었으나, 지금은 그런 일이 없어진 듯하다. 아라파트 가 명령을 내려야 싸우는 상황이 아니다. 운동의 주체가 엘리트에서 민중으로 이행했으며, 지역적인 운동의 지도자가 나오고 있다. 대문 자를 그리는 식의 지도방식으로는 운동을 통제할 수 없다. 현재의 미국 점령체제는 현지의 엘리트를 끌어들여 민중들에게 내리먹이는 꼴이다. 그러니 지배층과 저변 민중의 의향이 합치되지 못한다. 그러면 오늘날 민중운동을 전개하게 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민 중들이 드나드는 곳에 어떤 현실이 있으며, 민중운동은 어떻게 조직 되어 있는가? 이런 것들을 판단하는 요소가 지역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 여 기는 시아파 지역이므로. 라고 대충 파악하여 대응하는 자세가 아 직까지 강세이다. 하지만 민중이 그곳에서 지내며 갖는 고뇌와 그들 이 저항하는 의지가 다르다. 그럼에도 이전과 변함없는 틀의 도식을 내보이려 한다. 상의하달식의 운동이 남아 있지만, 게릴라형태의 새 로운 민중운동은, 민중들이 존재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만들어진 것 이다. 알자지라 같은 텔레비전 방송이 중동민중의 연대를 가져오게 한 다. 1991년의 전쟁상황을 중계한 CNN의 전쟁의 게임 化 에 농락당 15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51 한 중동 민중들 사이에 반전-반미의 연대를 나눌 심리적인 공간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부터는 알자지라와 같은 중동 토박이 언론이 중동인의 시각에서 화면을 내보내므로 반미연대의 기 운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알자지라의 텔레비전 방송을 본 중동민중들은, 이라크의 미군과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군이 동일한 형태의 폭력을 휘두른다는 인식 을 갖게 되었다.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사이의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인식의 공감대가 확대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중동민중의 반미 전 선의 심리적인 맹아가 싹트기 시작했다. 중동민중 사이의 이런 연대감정은 미군 점령당국이 내세우는 후세인 정권 타도=평화 라는 등식이 허구임을 서로 깨닫게 했다. 마치 1945년 서울에 입성한 미군을 해방군으로 여겼던 한국 민중의 일부가 이승만 정권 수립=평화 라는 등식이 허구임을 깨달아 미군 에 저항한 것처럼. 그러면 이라크 민중의 투쟁을 진압하는 미군의 상태는 어떠한 가? 미군은 부잣집 자식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주로 이민 온 빈 곤층 자식들이 돈벌이하기 위해 이라크행을 선택하는 용병 미군은 다양한 인종의 혼성부대 이다. 이들에게 어는 정도의 주입식 애국심은 있겠지만, 돈벌이가 더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51

152 중요하므로 애국심은 상대적이다. 미군이 승승장구 후세인 정권을 타도했을 때는 애국심이 넘쳐나겠지만, 현재와 같이 이라크 민중의 포위망에 걸려들어 누가 미군을 향해 포격을 가할지 모르는 초긴장 (panic) 상태에서는 내가 이라크에 돈 벌러 왔지 애국심 때문에 온 것은 아니다. 는 잠재심리가 팽배해질 수 있다. 이런 잠재심리가 깃 들 때부터 이라크 게릴라들과의 승산은 사라진다. 제아무리 미군이 최첨단 무기로 무장했더라도 용병 의식 이 있는 한 (무장이 허술한) 이라크 전사들을 소탕할 수 없다. 그래서 미군이 현재 이라크에서 밀리고 있으며, 이대로 가다가는 제2의 베트남 化 는 불을 보듯 뻔 하다. 이라크와 같이 사막이 많은 곳에서 게릴라 전투를 한다는 게 좀 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바그다드 등에서의 도시 게릴라 역시 산악 게릴라에 비해 전투 조건이 아주 불리하다. 그런데도 수십만 명의 점령군과 싸우며 치고 빠지는 도시 게릴라 전투가 가능한 이유는, 게릴라들의 배후에 민중의 바다 가 있기 때문이다. 민중 이라는 배 수의 진을 치고 싸우는 이라크 게릴라들을 모조리 소탕하지 않고는 미군의 승리를 낙관할 수 없는 실정이다. * 출처= 평화 만들기( 호 15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53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50가지 논점 1. 정세를 에워싼 10가지 고려 사항 1) 이라크의 현 상황을 분쟁론으로 해석하면, 종전 이후의 분쟁 (Post-Conflict)을 해소하는 과정이 악화되어 종전 이전의 상황으로 재귀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을 Post-Conflict론 에 따라 접 근하는 한편, 분쟁 이후의 상황을 잘못 관리하여 종전 이전의 전쟁 으로 회귀한 역사적 사례 를 재조명하는 게 중요하다. 앞으로 이라크 정세가 내란 또는 내전 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현재의 파병 개념을 전쟁 중의 파병 으로 확대해야 한다. 평상시 분쟁의 사후 관리를 위한 일상적인 파병이 아니라 다 시 도지고 있는 이라크 전쟁에 한국군을 보내는 참전 으로 해석하 는 게 올바르다. 파병의 이름을 빌린 참전 으로 이해하고 파병 찬반 논쟁을 전개해야 한다. 그러면 왜 전쟁 을 이야기하는가? 팔루자에서 미군과 이라크 민 중의 군사적 대결이 시작된 정세 속에서, 이라크는 평시상황이 아닌 전시의 예비단계 또는 내란 상태이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53

154 그리고 팔루자 학살의 충격을 받은 이라크 병사들의 대거 이탈 로 이라크 군대가 붕괴 상태에 빠져 있으므로, 미국은 치안 유지를 위해 외국군의 파병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 이에 미국 정부는 동맹 국을 상대로 파병 로비를 집요하게 벌이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도 예전보다 더 강력한 파병 압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 따라서 총선 이전(팔루자 사태 이전)의 이라크 파병 논의와 다른 수준에서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 몇 개월 전에는 평시의 민사 작전 평화재건 활동 등이 거론되었으나, 지금은 이와 다른 임무를 강요받고 있다. 즉 평화 유지를 위한 파병이 아닌 이라크의 내란 상 태를 평정하러 가는 파병임을 전제로 삼아야 한다. 3) 정부 쪽의 이라크 정세관이 너무나 안이하다. 파병을 통해 한 국민이 아랍민중과 적대관계로 될 가능성에 대하여 안이하게 생각하 는 것 같다. 현재의 이라크 정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Intifata 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라크 민중은 현재 Intifata 투쟁 중이다. 현재 이라크의 반미투쟁은 베트남식의 정글전 이 아니라 Intifata형이다. 따라서 이라크형 Intifata 를 전개하는 이라 크 민중의 정서를 모른 채 막무가내로 파병을 강행하면 화( 禍 )를 자 초할 것이다. 4) 이라크 추가 파병은 동티모르 파병과 전혀 다른 형태이다. 그 럼에도 동티모르 파병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려는 착시 현상이 15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55 한국 사회에 존재한다. 5) 팔루자 사태에서 보듯이 베트남전 때보다, 이라크 현지의 민 중과 점령군과의 대결이 더 빨리 더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6) 추가 파병은 노무현 정권 집권 2기의 시험대이다. 노 대통령 이 청와대에 재복귀하자마자 파병을 추진한다면, 노무현 정권과 (파 병에 반대하는) 시민 사회운동 진영 간의 갈등이 증폭될 것이다. 큰 틀에서 보면 노무현 정권과 시민 사회운동 진영은, 국가발전 대계 민족통일의 대계를 놓고 이심전심으로 호흡을 맞추며 냉전 수구 세 력을 청산해야 하는 역사적 임무를 안고 있다. 역사청산의 우호세력 끼리 파병을 에워싸고 다투는 게 문제이다. 이 과정에서 냉전 수구 세력이 어부지리하며 자신들의 입지를 넓힐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7) 노무현 집권 2기와 탈미( 脫 美 ) 문제를 생각해 본다. 파병은 미국의 집요한 압력 때문에 정부가 강행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성격상 반미(단호한 파병 거부) 는 못 하지만 탈미 는 할 수 있다. 국민의 정서를 핑계 삼아 미국이 원하는 파병을 하기 어렵다는 탈 미(협상을 통한 파병 거부 또는 유보) 의 시나리오를 서둘러 준비하 기 바란다. 팔루자 학살, 성학대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부시 정권이 더욱 강 한 파병 압력을 넣을 텐데 노무현 정권이 No 할 수 있을지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55

156 Yes 했을 경우 노 정권의 친미행각이 국정에서 초래할 난맥상이 예상된다. 한 미동맹 관계(미군기지 이전 등)의 재조정 문제와 얽혀 미국과 노무현 정권 사이에 갈등이 재현될 수 있는 국면에서, 파병 거부와 파병 찬성의 차이는 크다. 8) 이라크 파병이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북한 은 현재 노무현 정부가 파병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예리하게 지켜 보고 있다. 파병을 강행한다면 역대 정부와 진배없는 노무현 정부에 제한적인 신뢰를 보낼 것이다. 파병을 거부한다면 전폭적인 신뢰를 보낼 것이다. 제한적인 신뢰와 전폭적인 신뢰의 차이는, 노무현 집권 2기의 남북관계 증진의 진폭을 예견해 준다. 9) 한반도와 중동은 미국의 Win-Win 전략(중동과 한반도에서 동시에 승리하는 전략)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 여전히 한반도가 이라크전 이후의 영(0)순위 전쟁터이므로, 한국군 주한미군이 중동 에서 하는 모든 행동은 한반도의 정세와 연동되어 있다. 이러한 관 점에서 파병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10) 이라크 전쟁을 재빨리 매듭짓고 김정일 정권의 교체를 위한 전략을 가다듬으려고 한 부시 정권의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 그 렇다고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전쟁계획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부시가 재선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내몰리면 북한과의 전쟁계획을 서두르면 서 미국 보수층 유권자들의 표를 모으는 재선 프로그램을 실행할지 15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57 모른다. 이럴 경우 북-미관계의 경색에 따른 남북관계의 악화를 고 려하고 파병 문제를 거론해야 한다 가지 문제제기 1) 팔루자 학살, 아부 그라이브 형무소의 성고문 학대 사건 이 후 파병의 명분을 상실했다. 팔루자 학살과 성고문 학대 사건은, 생 명 말살의 제국주의 전쟁의 부산물이다. 이미 대량학살(genocide) 의 경향을 보이는 미국 주도의 이라크 전선을 평화를 위해 전 세계의 민중이 투쟁하는 전선 으로 바꿔야 한다. 2) 한국의 국가권력의 대외 팽창이 이라크 파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자비 부담의 파병을 다른 측면에서 보면 국력(경 제력) 신장에 따라 강대국의 파병(일본식 파병)을 흉내 내는 亞 제 국주의(sub-imperialism)의 모방극 이다. 좀 수위를 낮춰 이야기하 면 중진국 한국의 대외팽창욕이 드러난 것이다. 한국이 평화지향적 인 국가가 아닌 전쟁지향적인 국가로서 대외팽창하려고 한다는 느낌 을 국제사회에 줄 수 있다. 3) 국가이성의 오용을 지적한다. 파병을 반대하는 국민 다수의 의지를 무시한 파병강행은, 국민국가의 타락상을 나타낼 뿐이다. 국 민국가를 형성하는 군사력(한국군 전력)의 왜곡된 대외 파견이 이루 어질 가능성이 있다. 군의 활동이 국내에 머물 때의 영향력과 해외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57

158 로 미칠 때의 국민 국가의 힘(Power) 은 매우 다르다. 자비 부담의 이라크 파병의 문제점은 차치하고라도, 국민의 혈세 로 이루어진 국가의 자원을 이라크 민중을 감시 억압하는 데 사용 하는 게 문제이다. 4) 추가 파병이 된다면, 이라크의 민권( 民 權 )을 억누르는 한국군 의 군권( 軍 權 )이 많은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따라서 이라크 파병 문제를 이라크 민중의 민권 對 한국군의 군권의 대립 으로 볼 필요 가 있다. 이 군권이 기본적으로 이라크 점령군의 맹주인 미군에 종 속되어 있으므로 이라크의 민권-한국군의 군권-미군의 지배권 이 라는 3각 구도로 이라크에서의 권력(Power)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전시 작전권을 상실한 한국군이 이라크에서 독자적 으로 전략을 구사할 수 없는 노릇이고, 이라크 현지에서조차 미군 종속의 그늘에 있다면 한국군의 종속체제 가 이라크로 파견되는 구 도가 형성된다. 전시 작전권을 상실한 한국군이 해외 파병되어 상대 국가의 주권을 훼손하는 상호 모순되는 사태가 조성될 수 있다. 5) 한국이 군대를 보내 이슬람 사회에 개입할 이유가 있나? 한 국군이 이라크 무슬림들의 코란 공동체 에 개입하여 무력을 시위하 는 형상이 나타날 것이다. 코란 공동체 라는 평화지향적인 무슬림들 의 생활세계 안으로 총을 들고 뛰어 들어가는 불량한 행동 은 불 량국가(Rogue State) 나 할 짓이다. 한국군이 타 문화, 즉 이슬람 문 15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59 명에 대한 존경심이 없이 이라크 전쟁의 불섶에 뛰어들었다가 큰코 다칠 우려가 있다. 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파병의 문제점을 지 적한다. 6) 미국의 하위 동맹자로 한국군이 파견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 러나 더 깊이 들어가 분석하면 이라크 전쟁을 원격조종한 미국 네오 콘(유태인 세력이 주력임)의 지휘봉에 따라 한국군이 파병되어, 궁극 적으로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국군의 파병활동이 이루어질 가능 성이 있다. 이는 친미형 파병 이며 (네오콘과 직결된) 이스라엘이 보기에 아름다운 파병이다. 이스라엘이 보기에 아름답다면 아랍인들 이 보기에는 아름답지 못하다는 이야기이다. 이 점에서 친미형 파 병 의 긴장이 발생한다. 물론 폴란드 등도 친미형 파병을 했는데 그 들 나라는 군사적으로 미국에 종속되어 있지 않아 독자적인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 한국군은 혈맹의 이름으로 미군이 불명예스럽 게 철수할 때까지 미국과 함께할 가능성이 있다. 이로 말미암아 한 국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될 수도 있다. 그리고 미국의 이라크 점령체제 구축, 즉 이라크에 친미정권을 수립하려는 미국의 구도를 도와주는 한국군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 다. 미국은 이라크에 미국형 자유주의 시장 자본주의를 도입하는 한편 무슬림 민족주의를 제거하려고 한다. 미국이 원하는 친미 이슬 람 국가를 수립하려는 구도가 곧 있을 민정이양 이다. 이 친미 국 가형 민정이양 계획은 미군-(한국군을 포함한) 점령군 주둔체제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59

160 아래에서 이루어지므로, 이라크 민중이 저항할 것이다. 친미국가 한 국의 군대가 결국 친미형 민정이양의 하수인 이 되어 이라크 민중 과 등지는 결과가 예상된다. 이라크 민중이 원하는 정부를 만드는 데 한국군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이라크 민심과 동떨 어진 반( 反 )민중적인 한국군이 이슬람 전사들의 공격대상이 되고 한 국 사회가 테러의 과녁이 것이다. 7) 이슬람 문명권과의 마찰, 즉 문명의 충돌론 에 입각한 용병 으로서 파병이 이루어지는 게 문제이다. 한국사회는 너무나 이슬람 문명에 대하여 무지하다. 파병강행은 이슬람 문명에 대한 무지의 소 산이다. 한국형 유교 자본주의 문명과 이라크의 이슬람 문명이, 한국 군의 총을 매개로 불행하게 만나는 것이 문제이다. 한국형 군사문화 가 이슬람 사회에 진입하는 것도 문제이다. 이 진입이 무리 없이 이 루어지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라크 민중의 반미투쟁이 고조되는 정세 속에서 한국형 군사문화와 이슬람 전사들의 Jihad 문화 의 대 결은 이미 내정되어 있다. 8) 미군의 위상 변화에 맞춰 파병 논의를 다시 해야 한다. 한국 군이 해방군( 軍 )~점령군~학살군~성학대군으로 추락하는 미군의 졸병으로 파병되는 인상을 받으면 곤란하다. 서희부대가 파병될 때만 해도 미군이 해방군을 자처할 수 있었으므로 파병의 정당성이 지금 처럼 근본적으로 제기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미군은 점령군 단 계를 지나 학살군 / 성학대군의 단계로 진입했다. 이런 학살군 / 성학 16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61 대군과 보조를 맞추며 한국군이 추가 파병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부 정되어야 마땅하다. 동일한 파병이라도 시점에 따라, 미군(또는 연합 군)의 위상 변화에 따라 파병거부의 강도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파병될 한국군은, 팔루자 공습형 연합군(coalition forces) 체제 아 래에 들어간다. 공격지향적인 공습형 연합군의 맹주인 미군의 전략 우산 아래에서 군사활동을 벌일 한국군은 이라크 민중을 억압하는 구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 9) 스페인 군 등의 철군 유행에 역행하는 한국군의 파병은 시대 착오적이다. 최근 스페인에서 친미내각이 무너지고 사회노동당이 집 권했다. 사회노동당은 이라크 주둔 스페인군을 철수시키겠다. 는 선 거 공약을 실천 중이다. 스페인의 철군 움직임은 다른 나라에도 영 향을 미쳐 현재 이라크 주둔 외국군의 철군 도미노 현상 이 일어나 고 있다. 이렇게 이라크에서의 철군이 유행(?)인 시점에서, 한국군을 추가로 보내는 일은 시대의 민감함을 역행하는 청개구리 파병 이다. 10) 한국군의 파병은 부시 재선의 구원투수 역할을 할 것이다. 부시의 재선에 돌파구를 열어 주는 원군이 될 것이다. 부시가 재선 되면 한반도에 전쟁의 구름이 몰려 올 것이므로, 파병은 오히려 한 반도에서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61

162 3. 10가지 논쟁점 1)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이 이미 도덕적으로 지고 있다. 전쟁터 에서만 전술적으로 이겼을 뿐이다. 이라크 점령군에 대한 이라크인 의 민심은 이미 이반되어 있다. 이렇듯 민심을 얻지 못한 점령군의 일원으로서 한국군이 복잡한 정세를 뚫고 들어가는 게 문제이다. 2) 파병의 대의명분과 현실적인 이익 모두를 상실한 파병에 집 착할 이유가 없다. 한국군은 도대체 무슨 명분으로 무엇을 위해 파 병되나?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세계 평화를 위해? 원유 보급 로의 안전한 확보를 위해? 이라크 전후복구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이라크 민중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그 어느 것 하나 파병의 목적 과 지향점이 분명하지 않다. 3) 친미 사대주의 지배층의 파병론, 친미 관료, 친미 군부의 결 심에 따라 한국군이 파병되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4) 자주국방론을 내세우는 국가안전보장 회의(NSC)가 (미국의 눈치를 보며) 비자주적으로 파병을 결정하는 것 또한 문제이다. 5) 파병 예정지역인 쿠르드는 안전하지 않다. 현재의 쿠르드 치 안은 다른 지역에 비하여 안정되어 있다. 그러나 쿠르드족의 다양한 정치 세력이 잠정정권의 권력 분점 이나 민정이양 단계에서의 권력 16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63 분점 에서 소외되거나, 수니 시아파가 보기에 지나친 권력을 보유 하게 되면, 쿠르드 지역 안팎에서 분쟁의 휴화산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쿠르드는 예부터 터키 이란 이라크의 이해관계, 종파투쟁 종족 간 갈등의 진원지이다. 미국이 쿠르드 지역을 섣불리 다루면 이라크 정세가 매우 험악하게 돌아갈 것이다. 현재의 쿠르드 정치 세력이 친미적인 경향을 띠므로 연합군 지배체제에서 견디고 있으 나, 연합군의 강고한 보루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쿠르드 지역 내의 이라크지향적인 세력(수니파 쿠르드인 포함)이 반기를 들 가능성도 있다. 어찌 보면 쿠르드 지역이 이라크에서 분쟁의 잠재력이 가장 큰 곳이다. 이렇게 쿠르드 지역이 장기적으로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파병 논의를 해야 한다. 6) 이라크의 민중들은 한국군을 환영할 것인가? 한국군은 불청 객이 아닐까? 미군지향적인 한국군의 파병을 이라크 민중들이 진심 으로 원하지 않는다면, 이는 또 다른 일방주의(부시 정권의 일방주 의와 동일한 양상의 일방주의)로서 많은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따 라서 한국군의 파병이 이라크 민중들에게 어떻게 비칠까를 되새기는 역지사지( 易 地 思 之 )의 정신이 요청된다. 7) 악의 축 국가인 이라크의 저항 비판 세력을 평정하기 위해 (이라크인이 보기에) 진짜 악의 축 인 미국의 하위동맹군으로 파병 되는 게 문제이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63

164 8) 파병은 정말 국익에 보탬이 되나? 한국이 테러의 과녁이 될 수도 있다. 파병의 경제적인 효과로서 원유 확보, 원유 수송로 확보, 이라크의 경제재건에 참여하게 된다는 논리의 허구성을 지적하지 않 을 수 없다. 원유의 수급체계는, 군사(파병) 문제와 다른 경제논리에 의해 움직이므로 파병을 해도 안 해도 한국경제에 타격을 주지 않는 다. 이미 파병한 나라들도 이라크 경제재건의 콩고물도 얻지 못한 상태인데 뒤늦게 파병하여 무엇을 얻겠는가? 이미 네오콘과 결탁된 미국의 대기업이 이라크 경제재건의 이윤을 독점하고 있다. 9) 파병의 형식 절차에서 더욱 투명하고 국민과 숙의하려는 노 력을 기울여야 한다. 10) 혹시 한국군의 전투체험을 기르기 위해 파병한다고 생각하 는 야전 사령관들이 있다면 그들의 오산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이 라크는 지형상 한반도와 다른 사막지대이고 무장 항쟁 세력의 투쟁 방식이 베트남과 다르기 때문에 전투경험을 충분히 쌓을 수 없다. 한편 앞으로 있을지 모를 북한군과의 전투에 대비한 경험을 이라크 에서 축적하기 위해 파병하는 게 좋다는 야전사령관들의 발상은 황 당하기조차 하다. 설령 이라크에서 전투경험을 축적했다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얻은 전투력 증강으로 북한과 싸우려는 발상은 민족의 평화통일염원 에 역행하는 처사이다. 16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65 4. 10가지 문제점 1) 추가 파병은 한 미 상호방위 조약의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한 미 동맹의 왜곡을 가져올지 모른다. 한미 상호방위 조약 전문의 본 조약의 당사국은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평화기구를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하고 당사국 중 어느 일국이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고립하 여 있다는 환각을 어떠한 잠재적 침략자도 가지지 않도록 외부로부 터의 무력공격에 대하여 자신을 방위하고자 하는 공통의 결의를 공 공연히 또한 정식으로 선언할 것을 희망하고 또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더욱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지역적 안전보장조직이 발달될 때 까지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자 집단적 방위를 위한 노력을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하여. 에 나오는 태평양 공동방위 를 빙자한 이라크 파병논리는 허구이다. 한 미 상호방위 조약 체결 당시 이승만 정권의 북침 망동을 억 누르기 위한 방편으로 태평양 공동방위 를 삽입했을 뿐이며, 한 미 상호방위 조약에 따른 한 미 군사동맹의 방위 영역은 한반도에 국 한되어 온 것이 정설이다. 이런 정설을 깨고 한 미 동맹이 이라크 에 파병하는 분위기(한 미 동맹 관계에 기반을 두어 미국이 한국군 의 파병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으며, 주한미군도 이라크에 파병한 다는 이야기가 있음)를 조성하는 게 커다란 문제이다. 한 미 동맹 은 한반도의 방위만을 존재하므로, 이러한 틀을 깨고 한국군 주한 미군을 이라크에 파병하는 것은 한 미 상호방위 조약을 위반하는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65

166 중대한 문제이다. 그리고 한 미 상호방위 조약의 제약을 넘어 한 미 동맹이 이 라크에 파병하는 결과를 빚으면, 앞으로 주한미군의 전략변화(전략적 유연성 강화: 주한미군이 전 세계의 분쟁에 투입되는 기동 타격대 역할을 하는 쪽으로 탈바꿈)에 따라 한국군이 주한미군과 함께 자동 적으로 해외파병되는 길이 트인다. 앞으로 전 세계적 차원의 미군체 제 개편(GPR: Global Defense Posture Review)의 일환으로 주한미 군의 기능변화-한 미 연합전력의 성격변화(전 세계의 분쟁을 무력 으로 해결하는 기동 타격대로 변화)가 이루어진다면, 한국군은 국민 의 의사와 무관하게 펜타곤의 의지에 따라 해외 파병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헌법과 한미 상호방위 조약에 어긋난 해외 파병, 주한미군의 재편에 따른 자동적인 해외 파병을 근원적으로 예 방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라크 파병은 헌법 전문( 대한민국은 밖으로는 항 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과 제5조 제1항( 대 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 및 제5조 제2항( 국군의 사명은 자위전쟁에 국한되며, 침략전쟁 수 행은 국군의 사명에서 배제된다. )을 어기는 위헌 행위이다. 2) 미국의 권유에 따라 한국 일본의 파병이 이루어지면, 한 미 일 3각 군사공동체가 이라크에 파병하는 꼴이 될 것이다. 요즘 16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67 일본 신문에 나오는 문구로 말하면 유지 동맹( 有 志 同 盟 : 한 미 양국이 동지애로 뭉친 동맹) 이 이라크 파병하는 모습이 된다. 자위 대의 이라크 파병이 미-일 합작의 有 志 同 盟 인바, 미국 주도의 한 미 有 志 同 盟 과 미 일 有 志 同 盟 사이의 이라크 파병 연계 구도가 형성될 것이다. 3) 우리 젊은이들이 이라크에서의 유혈 전투에 가담할 경우 피 를 흘리게 되고, 피를 흘리는 과정에서 반격하면 이라크 민중과 적 대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다. 이라크의 내전상황이 악화되면 한국군 이 이슬람 전사와 맞대결하는 상황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의 예견이 성급하다면, 한국군이 이라크 민중의 해방투쟁에 대한 감시자로 전 락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어느 경우이든, 한국의 젊은이들이 남의 나 라(이라크) 땅에 들어가 토박이 젊은이들(이라크 무장 투쟁 세력 / 이 슬람 전사)과 원수가 될 특별한 이유가 있나? 여기에서 한국 파병부대의 편재 중 특전사 부대원이 들어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전사 부대는 특성상 유사시 공격지향적 인 자세로 전환하는 속도가 빠른데, 이 속도가 빠를수록 이라크 무 장투쟁 세력과 대결하는 순간이 앞당겨진다. 이라크 무장투쟁 세력 과 한국군 사이의 대결 양상이 벌어졌을 때, 이슬람 전사들의 한국 군에 대한 테러가 일어날 것이다. 이때 이라크 국민들이 이슬람 전 사들의 테러가 이유 있는 저항이다. 고 인식한다면, 한국군은 이라크 시민사회와 적대관계에 들어간다. 이로써 파병 초기에 전혀 예상하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67

168 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4) 한국군이 이라크의 민중운동을 평정해야 할 권리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5) 이라크는 한국의 주적( 主 敵 )인가? 주적이 아니라면 왜 총구를 이라크 민중을 향해 돌리는지를 분명히 해야 하며, 총구를 돌린 결 과 나타날 재앙을 충분히 감수하고 파병해야 한다. 6) 이라크의 상황이 제2의 베트남 化 로 치달을 가능성이 농후하 다. 베트남 파병의 악몽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예전에 베트남의 민중을 학살했던 한국군이 이라크 민중을 학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 이 없다. 7) 한국군이 가해자로, 이라크 국민이 피해자로 되는 구도를 차 단할 수 있는 방도가 있는가? 8) 파병이 된다면 한국 자본주의의 군사화(한국군은 대북 흡수 통일을 위한 군비확장 중임)를 이라크까지 확대하는 문제가 제기된 다. 한국 자본주의의 공격지향성이 확장되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9) 파병을 거부하면 한국경제가 휘청이나? 미국이라는 형님이 16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69 화가 나서 한국이라는 아우에게 호통 치며 경제적으로 불리한 조치 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경제신화 는 논리성이 결여된 막연한 추 측이다. 한미 관계에서 경제논리와 군사논리는 구도가 다르고 한국 경제가 미국의 보복(파병거부에 대한 보복)을 당할 정도로 취약하지 않다. 미국 측에서 보복조치의 폭이 넓지 않을 것이다. 상징적인 보 복조치의 심리적인 효과는 크겠으나 그것 때문에 주식시장이 동요하 는 등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10) 현재의 파병 논란은 한국사회의 평화의식 부족 현상을 여실 히 드러낸다. 이라크 파병을 에워싼 언론의 평론이나 일반 대중의 논의는 주로 현실주의적인 국제정치의 파워게임을 중심으로 이루어 지고 있다.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입장에서 이라크 파병 을 다루는 평화의 논의 가 본격적으로 시민들 사이에서 전개되고 있지 않다. 시민사회운동 단체들의 파병반대 운동 논리 역시 세계 평화, 동 북아 평화, 한반도 평화를 내오고 이라크 민중의 평화적인 생존권 확보를 위해 운동을 전개한다는 인식의 지평이 부족한 느낌이다. 정 부의 파병강행에 반대하는 반대를 위한 반대 로 비춰질 수 있는 게 현실이다. 평화 라는 인륜적인 적극적인 가치를 드높이고 이라크 민중과 한국 민중이 더불어 잘 살기 위해 이라크 파병을 저지한다는 논리의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69

170 개발이 시급하다. 특히 이라크 민중의 인간안보(human security), 이 라크 전쟁이 초래한 구조적 폭력을 지양하는 게 국제평화 운동의 임 무이며, 이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한국군의 파병을 저지한다는 논 리를 내세워야 한다. 이라크 민중의 인간안보를 위해 파병을 저지하는 운동은, 곧 한 반도 민중의 평화적인 생존권 확보와 연결된다는 사고가 중요하다. 즉 이라크 민중의 항미투쟁이 성공하지 못하거나 이라크 주둔 미군 을 철수시키지 못할 경우, 더욱 오만해진 미국의 군 산 복합체는 이라크가 아닌 한반도에서 제2의 전쟁을 기획할 것이다. 이라크 이 후의 전쟁터로 내정된 북한과의 전쟁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점을 명심하여 이라크 파병 저지-이라크 주둔 미군체제의 약화 를 이루어 내야 한다 가지 대안 1) 정부는 미국과 파병을 둘러싼 재협상을 서둘러야 한다. 재협 상을 통해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에 파병을 결정하는 쪽으로 유도하 기 바란다. 2) 정부 여당은 국민의 파병 반대의견을 지렛대로 삼아 대미 협 상력을 높여야 한다. 17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71 3) 열린우리당의 진보파와 민주노동당이 연대하면서 파병을 끝 내 저지하기 바란다. 4) 시민사회운동권은 국민 차원의 파병계획 철회운동을 전개하 는 게 바람직하다. 특히 평화 운동 세력은 국제연대의 차원에서 이 라크형 Intifata 투쟁을 측면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난번 국회에서 서희부대 파견안을 통과시킨 날부터 평화 운동 세력이 두 손을 놓고 사태를 방관했던 일은 없어야 한다. 추가 파병될 가능성까지 고려하여, 파병부대의 활동을 앞으로 모 니터하고 파병지의 민중들과 의사소통하는 구조, 파병 현지의 시민 과 한국의 시민이 파병부대를 동시에 감시하는 체제를 예비해야 한 다. 앞에서 한국군이 이라크 민중의 해방투쟁에 대한 감시자로 전 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는데, 파병되더라도 한국군의 전락 을 막기 위한 감시체계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이라크 파병운동을 계승할 수 있다. 5) 이라크 민중의 점령군 반대 흐름과 한국 내의 파병반대 운동 사이의 심리적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 6) 일본 쪽의 자위대파병 반대 운동과 연대할 필요가 있다. 7) 국제 반전평화 운동 흐름과도 연계되어야 한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71

172 8) 한국군 파병이 부시의 재선과 무관하지 않으므로, 부시 낙선 구도와 파병반대 운동이 연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9) 한국은 앞으로 다음과 같은 조건 아래에서만 파병을 할 수 있다는 해외 파병의 대원칙 을 확정해야 할 것이다: 1 국제평화를 위한 공공재( 公 共 材 )로만 해외 파병되어야 한다. 2 유엔의 이름으 로 국제평화를 이룰 수 있을 때만 파병한다(미국 주도의 유엔 결의 안은 파병의 정당성을 제공할 수 없다). 3 파병된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 4 파병될 나라의 국민들이 환영하고 해당 정부의 공식적인 초청장이 있어야 한다. 5 Pax Americana 등 제국주의의 사이비 평화론의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10) 정부는, 이러한 대원칙에 따라 대안을 마련하면서 미국과 재 협상하기 바란다. 유엔 안보리 총회의 결의를 거친 평화유지군 (PKF)이라면 수용하겠다고 배수의 진을 치기 바란다. 6. 파병의 기준점 만일 한국군이 파병을 할 수밖에 없다면 다음의 기준점을 따르 기 바란다: 1) 가능한 한 해외파병을 하지 않기 위해 진력한다. 2) 어쩔 수 없을 경우 유엔 주도의 평화유지군에 합류하는 것을 17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73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다. 3) 유엔 주도의 평화유지군이더라도 (세계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하는) 미국 등이 주도하는 형태에는 가담할 수 없다. 4) 평화 유지군은 군인 개인의 자위를 위한 최소한의 경무장(소 총 중심의 자위 수단만 보유)만 허용된다. 절대로 공격지향적인 작 전을 수행할 수 없다. 5) 평화 유지군은 절대로 현지 민중을 향하여 총구를 돌릴 수 없다. 불의의 사고로 현지의 민간인을 사상( 死 傷 )했을 경우 전범재판 에 회부되어야 한다. 6) 평화 유지군은 현지의 무장 게릴라 세력과 전투행위를 할 수 없다. 평화 유지군의 주요 임무는, 분쟁 상황이 확산되는 경향을 막 는 분위기를 창출하는 평화 유지(peace keeping)에 주력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분쟁 상황의 모니터 군사 분계선의 경비 등을 담당한다. 7. 결 론 앞으로 한국에서의 해외 파병 논의는 위의 원칙에 타당한지 아 닌지를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위의 원칙에 어긋나면 국회에서 거론조차 할 수 없는 사회적인 강령을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73

174 한국전쟁의 피해자인 한국의 군대가 이라크에서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원칙 위에서 파병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즉 이라크 국 민의 생명을 살리고 한국민과 상생( 相 生 )하는 한국군의 파송 이 가 시권에 들어오지 않는 파병을 거론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인 제동 장치 가 필요하다. 이라크 민중을 죽이는 죽임의 파병 이 될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평화공존(이라크 민중과 한국 민중의 평화공 존)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해외 파병이 불가피하다면 한국군도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평화 유지군 활동을 흉내 낼 필요가 있다. 그런 모방을 위한 파병이 유엔 의 평화유지군(Blue Helmet을 쓴 평화유지군: 미군 주도가 아닌 유 엔 주도의 평화유지군)의 이름으로, 최소한의 경무장으로 분쟁지역을 모니터하고 분쟁의 재발 방지 평화 유지 평화 창출에 주력하는 평화의 파수꾼 이 된다면 한국군의 파병을 거론할 수 있겠다. * 출처= 평화 만들기( 130호( ) 17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75 이라크 파병반대 운동 평가 한글학회에서 펴낸 우리말 큰 사전 에 나오는 파병 이란 단어 의 뜻풀이를 찾아보니 군대를 파견함 이라고 단순하게 뜻풀이하고 예문에 월남 파병 이라고만 소개되어 있다. 동아 세계 대백과 사전 등 유명한 백과사전에도 파병 이란 항목 자체가 없다. 백과사전 편집 자의 의도를 알 수 없으나, 파병 이 앎의 대상이 되지 않거나 파병 을 다루는 걸 꺼려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파병 하면 언뜻 떠오르 는 베트남 파병 으로 수많은 한국군이 죽고, 한국군에 의해 수많은 베트남 민중이 학살당한 역사적 진실로부터 멀리 떨어지고 싶은 잠재 심리가 편집진에 내재해 있었을지 모른다. 이라크 파병 을 에워싼 찬반 토론장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나오 는 이야기가 베트남 파병이 옳았느냐 글렀느냐의 논쟁이다. 베트남 파병이 현대사의 치욕이라고 생각하는 인사들은 이라크 파병에 반대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베트남 파병 찬성파가 이라크 파병에 찬동한다. 이처럼 베트남-이라크 파병 반대파는 소위 진보 진영이고, 찬 성파는 보수 진영(구체적으로는 냉전 수구 세력)이다. 전자는 주로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75

176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 지지파이고 후자는 주로 한나라당 지지 파이다. 양자의 이데올로기는 박정희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 미국 관, 대북관에서 물과 기름의 관계이다. 이라크 파병은 양자의 세계관 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도저히 융합될 수 없는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이라크 파병 찬반을 벌이고 있으며 노무현 정부가 그 한가운데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노무현 정부는 파병에 대한 결정권은 가지고 있지만, 파병을 종용하는 미국의 눈치 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파병을 조르는) 미국과 (파 병에 반대하는) 시민사회 운동 진영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 로 머물다가 추가 파병을 단행했다. 파병반대 운동 세력이 보기에 줏 대 없는 대통령 이다. 화장실 가기 전하고 화장실 갔다 온 다음이 너무 다르다는 이야 기는 노무현 대통령을 두고 한 말 같다. 지난 대선의 후보시절 그는 미국과 당당한 외교를 펼치겠다. 며 기염을 토하지 않았는가? 그런 데 청와대에 입성한 다음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미국의 눈치를 보 며 파병의 정당성을 설파했다. 미국 앞에서 당당하게 서고 싶었던 노무현 대통령 이 눈치를 보게 된 경위 속에서 한미관계의 슬픈 현 주소를 발견하게 되리라. 17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77 Ⅰ. 파병 담론의 역사적 의미 어찌 외세의 앞에 서기만 하면 자꾸만 작아지는 지도자가 노무 현 대통령뿐이었을까? 해방 이후 역대의 대통령이 미국의 파병 요청 에 대하여 국민의 이름으로 No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는 근대 역사의 현상만이 아니다. 우리 민족은 13세기 후반의 고려 때부터 오늘날까지 무려 7백여 년간 다른 민족의 군대와 공동작전을 전개하기 위해 파병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1) 조선 왕조는 1467년에 명( 明 ) 나라로부터 여진족을 1) 우리 민족은 13세기 후반부터 오늘날까지 7세기 동안 주변 강대국의 파병 강요를 거의 거역하지 않는 종속의 그늘 아래에 있었다. 1271년 국호를 元 으로 개칭한 몽고족은 고려 땅을 일본 원정기지로 삼았다. 주권의 제약을 받고 있던 고려는 국력을 기울여 일본 원정을 준비하고 군대를 파병하지 않을 수 없었다. 1274년의 제1차 일본 원정 때 무려 9백 척의 전선( 戰 船 )을 동원하고 고려 군민( 軍 民 ) 1만 5천여 명이 직접 참전(파 병)했다. 1281년의 제2차 일본 원정 때는 9백 척의 전선과 2만 5천여 명의 고려 군민 이 파병되었다. 元 의 부마국으로 전락한 고려에 강요된 파병의 역사는 元 의 압력을 약 화시키려는 고려 조정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국력을 고갈시켜 왕조 멸망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어 등장한 조선은 세조 6년(1460년)에 明 으로부터 조선군을 파병하여 두만강 대안 의 여진족을 토벌하라. 는 요청을 받는다. 세조 13년(1467년) 明 이 요동 지역의 여진족 을 토벌하면서 파병을 요청해 옴에 따라 조선군 정예부대 1만여 명이 파병되었다. 성 종 10년(1479년)의 파병 역시 明 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으나 조정 일부의 파병반대 여 론에 직면하였다. 明 은 1618년에도 後 金 을 정벌하기 위한 파병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1623년 광해군을 축출한 인조가 親 明 정책으로 급선회하자 淸 의 무력침공을 받게 되 었고, 병자호란(1636년)으로 인해 군신관계로 위상이 격하되었다. 주권이 제약된 조선 은 淸 이 러시아( 羅 禪 ) 정벌전에 조선군 정예 포수의 파병을 요청해 오자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효종 5년(1658년)의 2차 정벌 때 조총병 1백 명을 포함한 152명 을 파병하고, 9년(1658년)의 2차 정벌 때 조총병 2백 명을 포함한 265명을 파병하였 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77

178 징벌하기 위한 파병 요청을 받았다. 조선의 조정에서 활발한 찬반논 의가 일어났다. 마치 미국으로부터 이라크 파병 요청을 받은 노무현 정권 내의 당정 사이에 찬반논의가 일어난 것처럼. 조선은 明 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종속국가이었으므로, 파병을 거부하기가 곤란했다. 그 러나 파병을 할 경우 중국 대륙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여진족(여진족 이 나중에 청나라를 세움)의 미움을 사게 되어 장차 국익에 손해를 끼치게 될 것이라는 관점에서 신중론(파병 반대에 가까운 신중론)이 들고 일어났다. 15세기 중엽의 파병반대에 가까운 신중론은, 이라크 파병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반기를 든 열린우리당 내의 파 병반대 의원들의 심정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당시 파병과 관련된 권력 내부의 밀고 당기기(파병찬성 우위 속 의 소수파 반대론의 문제 제기)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파병을 전제로 준비 중인 상황에서 鄭 孝 終 이 낸 파병반 대 상소( 上 疏 )가 임금님에게 올라간 뒤 파병의 시기를 늦춘다. 열린 우리당의 파병 반대 의원들의 파병 반대 서명(현대판 상소) 등에 영 향을 받은 청와대가 파병 시기를 우물쭈물 늦춘 것과 비슷하다. 그 당시 유생들의 파병 반대 상소와 2004년의 이라크 파병반대 운동 단체들의 서명운동을 엇비슷하게 보면 몰역사적인 평가인가?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고 있는 현대사( 現 代 史 )에 있어서도 과거 우리 민족이 주변 강대국의 요청으로 파병하던 상황과 유사한 점들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 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주변 강국의 정치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 민족 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파병을 강요당했다<국방부 군사편찬 연구소 한민족 역대 파병사 (2002) 383~388쪽 참조>. 17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79 어쨌든 조선군의 파병을 단행했으며 그 대가로 임진왜란 때 명 나라가 군대를 보내 왜군을 격퇴한다. 그 뒤 조선을 살려 준 명나라 에 대한 보은론( 報 恩 論 )이 청( 淸 ) 나라 배척운동으로까지 비화하고 정묘호란( 丁 卯 胡 亂 )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전쟁 때 우리를 도와준 미 국의 은혜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이라크에 파병해야 한다는 논리는, 조선시대 명나라에 대한 보은론과 일맥상통한다. 조선 왕조의 보은 론이 모화론( 慕 華 論 )-숭명배청( 崇 明 排 淸 )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면, 21세기의 보은론이 모미론( 慕 美 論 : 미국을 흠모하는 논리)-숭미배 북( 崇 美 排 北 : 미국을 숭배하되 북한을 배척하는 논리)에 기반을 두 고 있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파병을 요청하는 나라가 명나라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 외세 로부터 파병 요청을 받은 뒤에 일어나는 권력 내부의 대응이 예나 지금이나 어쩌면 그렇게 같을까? 파병이라는 국가 대사( 大 事 ), 대외 정책의 근간을 결정하는 행태가 고금( 古 今 )을 불문하고 닮은꼴인 이 땅의 역사를 직시하면서 이라크 파병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어야 할 것이다. 고려 이후 지속되어 온 사대외교( 事 大 外 交 )의 맥락에서 파병반대 운동을 거론하는 역사적인 천착이 요구된다. 2) 2) 사대외교의 주인공인 지배계급들이 예나 지금이나 외세 앞에서 쩔쩔매다 보니 조선 땅 이 아예 전쟁터, 전쟁의 발진기지가 되었다. 이는 파병 동의보다 더욱 무서운 결과를 초래했다. 13세기에 몽고가 일본정벌을 위한 전진기지로 조선 땅을 빌려 달라고 제의 한 사실과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를 치러 갈 것이니 길을 안내하라 ( 征 明 嚮 導 ),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러 가는 길을 빌려 달라( 假 道 入 明 ) 며 조선 땅을 침략의 발진기지로 삼았다. 21세기의 미국 역시 중국 포위의 발진기지로 남한 땅을 사 용하면서 미군 재배치(GPR: Global Defense Posture Review)를 서두르고 있지 않은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79

180 Ⅱ. 파병반대 운동에 대한 침묵을 깨다 역사적으로 보면 외세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파병했음에도 민초 들 사이에서 큰 저항이 없었다. 이는 외세에 대한 보은론이 이데올 로기 化 한 데 기인하며, 파병을 강행하는 국가권력을 변혁하려는 의 지가 부족한 데서 비롯된다. 조선왕조의 파병 원리인 모화론은 성리 학이라는 지배 이데올로기와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누가 감히 도 전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당시 파병을 결정하는 국가권력인 왕정 에 도전하려면 천벌( 天 罰 )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베트남전 파병 3) 당시 재야가 침묵 4) 한 사실은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 월남 파병과 거의 동시에 진행된 한일회담에 반대했던 야당계 언론, 사상계 등의 잡지도 월남파병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비판을 하지 않았다. 사상계 를 끼고 다니지 않는 지성인은 간첩이다. 는 가? 3) 최근에 공개된 미국의 비밀문서를 토대로 이루어진 연구들은, 한국군의 베트남전 파병 을 요청한 쪽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 측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4) 재야가 침묵했다는 것은, 파병반대 운동을 전개하지 않았다는 뜻이지 파병반대 여론이 전혀 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휴전선에서 북과 대치하고 있던 우리의 열악한 안보 환경 때문에 전투부대 파병에 대해서는 비둘기 부대의 파병 때보다 반대여론이 거셌 다. 이승만 정권시절 국방장관을 지낸 손원일은 수송부대나 공병대를 보내는 데는 찬 동하지만, 전투부대 파견에는 찬동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언론이나 의원들 사이에서 는 현재의 열악한 안보환경을 고려해 현역군인을 보낼 것이 아니라 제대군인들 중에 서 지원을 받아 의용군을 파견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전투부대 파견에 대해서 뒤에 박정희와 함께 사살된 공화당 의원 차지철 같은 사람은 반대했다<한홍구 박정희 정 권의 베트남 파병과 병영국가화, 역사비평 62호(2003년 봄) 126~127쪽>. 그러나 1960년대 중반 단 한 번의 반전운동도 없이 우리는 베트남의 우방이 아니라 미국의 우방으로 남의 전쟁에 잘못 끼어들었다(위의 논문, 같은 책, 139쪽). 18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81 말이 나올 정도로 시대를 풍미했던 사상계 마저 모미 숭미론( 慕 美 崇 美 論 )에서 벗어나지 못했나? 사상계 등은 베트남 파병의 대 가를 미국에서 얼마나 확보해야 하느냐 에 관심이 있었을 뿐, 요즘 처럼 파병반대 캠페인을 벌이지 않았다. 이는 1960년대의 세계정세 가 베트남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상황 5) 에 대한 당시 재야 지도부의 몰이해, 베트남전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인식의 결여에 기인한다. 그리고 베트남 파병이 경제성장을 수반한 종속적 자본주의의 가 속화와 반공 냉전 이데올로기의 확산을 한국 사회에 불러일으켰음 에도 불구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파병반대 운동을 엄두도 내지 못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월남파병으로 인한 이데올로기적 경색화( 梗 塞 化 ) 때문에, 한일회 담 반대 운동에서 표출된 민족주의적 요구가 반( 反 )종속 자립화 5) 1964년 통킹만 사건 이래, 미군에 의한 월맹지역 폭격이 개시되고 전쟁이 본격화되었 다. 이에 북베트남 해방전선은 인민전쟁으로 저항하고, 1968년 구정공세를 계기로 반 격에 나섰다. 베트남 민중의 투쟁은 1960년대 후반 전 세계 청년학생을 반전운동으로 몰아넣고 Student Power 라고 불린 학생운동이 고양되었다. 이어 1975년에 북베트남 해방전선은 전면적인 승리를 거두어 미국이 최초의 패전국가가 되었다. 베트남 민중의 투쟁은 1960년대의 학생운동의 선풍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세계 각국의 변혁 정세변 화를 유발했다: 1 미국=워싱턴 반전 대집회( ), 디트로이트 흑인 폭동 ( ), 인디언의 권리를 지키는 싸움, 킹 목사 암살( ), 2 남미=체게바 라, 볼리비아에서 전사( ), 3 프랑스=5월 혁명(1968.5), 베트남 전쟁의 해결 을 위한 파리 평화회의( ), 격렬한 베트남 반전운동, 4 동유럽=체코 2,000 語 선언 ( ), 체코 사건( ), 5 소련=세계 공산당 회의( ), 6 중 소 대립=중 소 국경충돌(1969.3), 7 중국=중국 공산당 9 全 대회에서 모택동 임표 체제 확립( ), 중국 문화 대혁명(1969년부터), 8 중동=제3차 중동전쟁 ( ), 9 아프리카=흑인해방 운동.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81

182 자주화의 요구로 발전되지 못했다. 1960~70년대의 사회운동이 민 족(해방운동)적 성격과 민중(해방운동)적 성격이 잠재화된 채로 전개 될 수밖에 없는 중요 요인이 된 것으로 파악된다. 6) 1960~70년대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직사건(인혁당 사건, 통혁당 사건, 민청학 련 사건, 남민전 사건)의 공소장이나 해당 조직의 강령에 베트남 전 쟁에 반대하는 논리 가 전혀 없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베트남전 파병에 대한 한국 운동권의 침묵은, 그 당시 일본의 반 전평화투쟁(안보 투쟁)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군의 베트 남 1차 파병 동의안이 통과된 1964년 7월 일본에서 베트남 반전투 쟁이 한창이었는데, 당사자인 한국의 재야는 침묵을 지켰다. 일본에 서는 이미 1959년 11월부터 안보투쟁의 불씨가 뿌려졌다. 안보투쟁 은, 1951년에 체결한 미 일 안보조약을 개정하려는 미 일 집권 세력에 대한 반체제 반전평화 운동을 말하며, 최전방에 선 학생운 동 세력이 노동자와 함께 투쟁했다. 나중에 전공투( 全 共 鬪 ) 라는 전 국 조직으로 결집된 학생운동 세력은 베트남전 반대 등의 반전평화 운동에도 적극적이었다. 7) 일본의 노동운동 역시 베트남전쟁 반대 운 6) 조희연 현대 한국 사회운동 조직 (서울, 한울, 1993) 98쪽. 7) 2차대전 이후 일본의 학생운동은 1948년 9월 전학련( 全 學 連 )의 결성에 의해 막이 오 른다. 초창기의 학생운동은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투쟁에서 국민들과의 제휴를 통하여 계급투쟁의 선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데 중점이 있었다. 전학련은 1952년부터 반기지 운동 등을 전개하다가 1959년부터 본격적으로 안보투쟁을 벌인다. 그리고 1965 년 이후에는 베트남전 반대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1969년 전공투( 全 共 鬪 )로 이 름을 바꾼 학생운동 세력은, 야스다 강당 공방전 에서 한풀이 꺾인 다음에도 베트남전 반대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운동을 전개했으나 내분으로 말미암아 1971년에 해체 된다. 18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83 동, 반미 반기지 운동, 군수공장에서의 파업을 주도하면서 안보투쟁 을 이끌어 갔다. 8) 노동자들의 안보투쟁은 일본 사회당을 결성하는 힘의 원천을 이루었다. 1960년대에 이웃나라 일본에서 반전평화 운동이 만발한 것과 대 조적으로, 한국의 재야가 베트남전 파병에 침묵한 후유증은 70년대 까지 지속된다. 이 기간 중에 4 19 혁명이 일어났는데, 이때에도 베트남전 파병 반대 반전평화의 깃발을 든 조직은 하나도 없었다. 이러한 오랜 침묵(반전평화 운동의 不 在 )은 1980년대 들어 기독 교 운동권의 평화활동 9) 과 선진적인 학생 사회운동권의 조직적인 반전평화 운동 10) 에 의해 깨지기 시작한다. 이윽고 광주항쟁 당시 미 8) 안보투쟁 과정에서 중추적인 지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은 노동자였다. [1959년부 터] 1년 반에 걸쳐서 23차에 달하는 통일행동이 조직되었는데 그 중심에는 늘 노동조 합에 의해 조직된 노동자가 있었다. 특히 획기적이었던 것은 국철 노동자를 중심으로 3회에 걸쳐 항의 총파업이 수행되었던 것이다. 총평계와 중립계의 노동조합이 참가하 여 6월 4일 400만, 15일 580만, 22일 600만이 파업에 들어갔다고 발표되었다< 시오다 쇼오베에 지음 / 우철민 옮김 일본 노동운동사 (서울, 동녘, 1985) 181쪽>. 일본의 노동자대중을 비롯한 광범한 민주 세력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월남전 종결을 지원했다. 1966년 10월 21일, 총평의 제창으로 월남전 반대의 국제통일 행동을 전 세 계의 노조에 호소하여 520만 노동자가 파업을 포함한 항의행동으로 선진적인 투쟁을 만들었다. 9) 1988년 2월 29일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제37회 총회에서 채택한 민족의 통일과 평 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 은 반전 반핵 평화 운동의 기폭제로 손색이 없다. 위 의 선언이 있기까지 1984년의 도잔소 협의회를 비롯한 수많은 회의. 논의가 밀알 역 할을 했다. 그리고 기독교계는 1983년부터 한반도에 배치된 핵무기를 문제 삼기 시작 함으로써 반핵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한다. 10) 1990년 한국 최초의 평화 운동단체인 반핵평화 운동 연합 이 출범했으며, 그 유산을 물려받은 단체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이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83

184 국의 역할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반미운동의 깃발이 올려지기 시작하 고, 이에 영향을 받은 일부 단체가 반전 반핵 평화 운동 조직을 내오기 시작한다. 오늘날 파병반대 운동의 사상적 조직적인 뿌리는 1990년대 초반의 반전 반핵 평화 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 늘날의 파병반대 운동론은, 베트남전에 파병된 한국군이 결국 미국 의 용병이었음을 깨달은 데에서 비롯된다. 한국군이 미국의 용병 이 라는 인식의 바탕 위에서 1980년대부터 반미운동이 싹트면서 반전 평화 운동과 결합되기 시작한다. 11) 한국군은 미국의 국익을 위한 용병 이라는 인식이 1980년대에 선풍을 일으켰으며, 이러한 인식은 요즘 들어 약화되었으나 이라크 파병반대 운동의 흐름 속에서 드문 11) 1980년의 광주항쟁의 원흉인 신군부 세력의 배후에 미국이 존재하고 있다는 본질을 인식하지 못한 한계를 안고 있었으나 이때 흘린 피의 교훈은 80년대 반미자주화 투 쟁과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촉발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1980년대 초에 학생들은 광주학살 배후조종 미국 놈들 몰아내자! 등의 구호를 전면에 내세우고 투쟁하였다. 학생들은 1986년 3월 18일 서울대를 시작으로 반전반핵 평화옹호투쟁 위원회를 발족 했다(이때 반전 반핵 평화 라는 문구가 들어간 운동조직이 한국의 운동사에서 맨 처 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반전 반핵 평화옹호투쟁 위원회는 개헌논의에 발맞추 어 민주 제 권리 쟁취투쟁과 함께 미 제국주의 몰아내자!, 반전 반핵 양키 고 홈,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하라., 휴전협정 폐기하고 평화협정 체결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반미 투쟁을 전개했다. 또한 이들은 4월 3일 반미 자주화 반파쇼 민주화 투 쟁 위원회(자민투)를 결성하고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 를 외치면서 전방 입소 반대 투쟁을 펼쳤다. 이 투쟁을 전개하던 4월 28일 서울대 김세진, 이재호 학생 은 신림동 사거리에서 연좌농성을 지휘하던 중 경찰의 제지에 맞서 미 제국주의 물 러가라. 는 구호를 외치고 분신하였다. 당시 자민투의 견해를 대변하였던 소책자 해 방선언 은 한국사회의 변혁 이론으로 민족해방 민중 민주주의 혁명(NLPDR: National Liberation People s Democratic Revolution)론을 제시하였다. 해방선언 은 당면 5대 투쟁 지침으로 1 미제의 파쇼권력 재편 기도를 분쇄하는 민주 제 권리쟁취 투쟁, 2 반전반핵 평화 옹호 투쟁, 3 조국의 평화통일 촉진 투쟁, 4 민중생존권 지원 연대 투쟁, 5 미제의 경제침략 저지투쟁을 제시했다<전상봉 한국 근현대 청년 운동사 (서울, 두리 미디어, 2004) 248~249쪽>. 18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85 드문 발견된다. 12) 용병론의 논란과 무관하게 한국사회의 파병반대 운동이 반미운동과 연계되지 않을 수 없는 역사적 맥락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13) 아무튼 파병반대 운동의 불모지인 이 땅에서 이라크 추가 파병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 한국 평화 운동의 당돌한 성장(?) 에 찬사를 보내며, 파병반대 운동론을 서술한다. Ⅲ. 파병반대 운동론 운동론이 없는 운동은 맹목적이라는 관점에서 파병반대 운동론 12) 필자가 추가 파병과 관련된 많은 자료를 읽어 보았으나 한국군의 파병은 미국의 국 익을 위한 용병 이라는 점에 천착한 문건이 전혀 없었다. 우리나라의 청년들이 미국 의 용병이 되어 피 흘리게 되는, 말 그대로 총알받이가 되어 헛되이 목숨을 잃게 된 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민권연구소 정세동향 62호, 12쪽>는 주장이 오히 려 어색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이라크 추가 파병은 미국의 국익을 위한 용병 이라는 점에 주목하지 않고 운동을 전개한 맹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용병으로 참전한 월남전 파병에 대하여 비판하면서, 미국의 국익을 위한 용병으로서 이라크에 파병한 행태를 비판하지 않는 인식상의 불균형을 지적한다. 13) 반미운동의 무풍지대인 일본에서도 자위대의 해외파병 저지 투쟁이 전개되고 있는데, 한국처럼 파병반대 운동이 반미운동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 미국이 종용하는 군사대 국화 의 방편으로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이 이루어짐에도 일본의 운동권은 평화헌법 을 위협하는 해외파병 을 저지하는 데 주요 목적이 있지 파병을 유도하는 미국 을 반대하는 데는 관심이 거의 없다. 한국 일본이 동시 파병하는 시대에 양국의 운동권 이 파병을 독해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다. 한국 쪽은 미국반대와 파병반대를 연결 짓 는 데 비하여 일본 쪽은 유사법제( 有 事 法 制 )에 따라 파병을 강행하는 고이즈미 정권 에 과녁을 맞히고 있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85

186 을 먼저 거론한다. 필자는 파병반대 운동론을 <C(Civil ) N(National ) P(People s )론>으로 집약한 다음, C N P론 을 파병반대 운동을 분석하는 방법론으로 채택한다. 운동의 주체가 없는 운동을 상상할 수 없으므로, <이라크 파병 반대 비상 국민행동(351개의 시민사회운동 단체가 결합한 파병반대 운동의 구심체: 이하 국민행동 >을 운동의 주체로 설정한다. 국민 행동 은 C N P론을 어렵사리 합성하면서 파병반대 운동을 이끌 었다. C N P론 사이의 상호 삼투작용이 이루어져 국민행동 이라 는 파병반대 운동의 공동전선이 구축되었다. 이러한 운동의 주체를 더 세분하여 C론(Civil ) 쪽을 C 그룹, N론((National ) 쪽을 N 그룹, P론(People s ) 쪽을 P 그룹 이라고 부른다. 앞의 C N P론 을 통하여 1980년대의 CNP논쟁(Civil Democratic Revolution-National Democratic Revolution-People s Democracy론)을 부활시킬 의도는 없다. 국민행동 을 비롯한 시민사회 운 동권에서 지금도 혁명을 꿈꾸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1980년대 CNP논쟁의 목표인 혁명(Revolution) 은 잊힌 꿈이다. 그러나 CNP 의 두 문자 Civil, National, People s 는 아직도 운 동 진영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파병반대 운동권에서도 20년 전 CNP 논쟁의 수맥이 Civil, National, People s 의 형태로 흐르 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에 주목한 필자는 파병반대 운동론과 운동의 주체를 Civil, National, People s 로 3분( 分 )하는 18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87 가운데 운동의 흐름을 서술한다. 1. 이라크 전쟁-파병에 관한 인식의 분화 1) C론-C 그룹 C 그룹은 평화 운동의 보편적인 가치를 시민운동 차원에서 전개 하려고 한다. C 그룹은 이라크인의 평화적인 생존권 인도주의 인 간 안보에 반( 反 )하는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면서, 평화를 염원하는 세계 시민 양심적 시민의 목소리를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C 그룹에 속하는 대표적인 단체는 참여연대,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등으로, 이들은 평소에 시민사회의 인간안보(Civil security / human security) 차원에서 시민(시민사회)의 평화(Civil Peace) 를 창출하려고 한다. 2) N론-N 그룹 N 그룹은 반전-평화-자주(반미)-통일 의 입장에서 파병반대 운동에 임한다. 14) N 그룹은 반전-평화 에서 C 그룹과 어느 정도 호흡을 같이하지만, 자주-통일 에서 C 그룹과 갈라선다. 반전평화 14) 참고 자료: 1 김서원 반전평화 운동, 반미반전운동 그리고 이라크 파병저지 투쟁, 한국민권연 구소 정세동향 63호(2003년 10월) 18~20쪽. 2 김서원 반전평화 공동연대 투쟁체 건설에 적극 나서자, 한국민권연구소 정세동 향 60호(2003년 17호) 35~37쪽.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87

188 운동과 반미운동을 연결시키려는 N 그룹과, 그냥 평화 운동을 향유 하려는 C 그룹 사이에 인식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반전평화 운동 과 반미운동을 연결시키려는 N 그룹에 대하여, P 그룹의 일부는 반 미=반제국주의 차원에서 동조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P 그룹은 N 그룹이 민족주의에 따라 반전운동과 반미운동을 연결시키려 한다. 며 경원시한다. 15) 이처럼 자주-통일의 입장에서 반전평화 운동을 수용하는 게 N 론의 특징이다. N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이 탈냉전 시대 의 세계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가상적으로 상정한 불량국가(악의 축 국가)를 상대로 한 전쟁 시나리오의 순위다툼에서 이라크가 1순위로 걸려들었다. 다음 차례는 북한이 될 것이다. 이라크 전쟁이 이처럼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미국 반대-민족통일 의 관점에서 반전평화 운동을 생각해야 한다. 16) 민족의 안보(National security) 차원에서 반전평화 운동에 접근 하려는 N 그룹의 대표적인 단체는 민주노동당의 NL파(민족해방 파), 통일연대, 한총련, 실천연대(남북공동선언 실천연대), 평 15) <고민택 한국에서의 반전운동과 반미운동에 대하여, 현장에서 미래를 (2003년 8-9월호)>을 참조할 것. 16) [현재의] 투쟁은 미국의 강도적 이라크 침공 반대와 정부의 파병결정 철회를 요구하 는 투쟁으로 발전되면서 반미반전투쟁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고 이러한 투쟁방향은 정 확히 설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김서원 반전평화 운동, 반미반전운동 그리고 이라크 파병저지 투쟁, 한국민권연구소 정세동향 63호(2003년 10월) 14쪽>. 18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89 통사(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등이다. N 그룹은 평화 운동과 통일운동의 접맥에 큰 관심이 있다. N 그룹 안에서도 미국 반대- 연북(북한과의 연대)의 배합을 놓고 약간의 편차가 있다. 3) P론-P 그룹 이라크 전쟁의 배후에 노동자를 수탈하는 전쟁지향적인 독점자 본 / 신자유주의 가 있다는 것이 P론의 핵심이다. 신자유주의에 의한 세계화 시대에 노동자를 착취한 자본가 초국적 기업, 금융독점자본, 군수자본이 전쟁체제의 맹주이므로, 이들을 타도하는 운동의 일환으 로 반전평화 운동을 벌이자는 게 P 그룹의 주장이다. 17) P 그룹이 보기에 노동자(민중)들이 등 따습고 배부른 게 최고의 안보이다. 민중안보(People s Security: 일부 계급 환원론자들은 Proletariat s security) 를 이룬 민중의 평화(People s Peace) / 노동자(Proletariat)의 평화 18) 를 구가하기 위한 반전평화 운동을 P 그룹은 역설한다. 17) <김진균 자본과 전쟁 그리고 반전평화 운동, 시민과 세계 제4호(2003년 하반기) 10~18쪽>을 참고할 것. 18) 전쟁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가지는 모순에 의해 발생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외치 는 전쟁 반대는 단순하게 평화를 염원하는 이들의 외침과 같지 않다. 반전운동이 전 쟁의 원인인 자본주의에 대한 철폐투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전쟁은 끊임없이 계속 될 것이다. 반전운동과 자본주의 철폐투쟁이 하나로 이어지는 것은 노동자 계급이 반 전운동의 전면에 나서거나, 노동자 계급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지는 위치와 힘을 인 정하는 세력이 반전운동을 주도할 때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노동자 계급은 반전 운동에 이렇다 할 관심을 보여 주기 있지 않다. 현재 반전운동을 주도하는 세력은 부 르주아 민주주의의 확대를 요구하는 시민운동 세력과 민족주의 세력이다. 그들에게 자본주의 철폐는 불가능하거나 먼 미래의 일이다< 국민행동 의 홈페이지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89

190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과 반제(제국 미국 반대)-반전-평화 운 동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P 그룹은 N 그룹과 연대해 왔다. P 그 룹에는 민주노동당의 PD파(민중 민주주의파), 민주노총, 노동자 의 힘, 사회진보연대, 다함께 등이 있으며, 이들 단체 사이의 시 각편차는 N 그룹 내의 편차보다 더 두드러진다. 2. 운동 중점의 분화 이라크 전쟁에 대한 C N P론의 인식상의 분화는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으나 파병반대 운동의 중점이 어떻게 분화해 왔는지를 서술하기란 쉽지 않다. 애써 구분하기 위해 김선일 씨 피살 직후의 긴장된 상황에서 김선일 씨 피살과 파병반대를 연계지은 성명서 를 분석한다. 1) C 그룹 C 그룹은 평화 운동의 보편성에 입각하여 국가안보 차원의 파 ( 실린 2003년 8월 3일 토론회 자료 >. 2003년 10월 22일 열린 반전노동자 토론회 의 발제자인 김우용 씨는 서구 유럽의 노동자들이 총파업까지 하면서 전쟁 반대에 나섰던 것은 그들이 지금 자신을 공격하 고 있는 민영화, 정리해고, 구조조정, 복지축소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과 이라크 전쟁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정치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임을 지적하며, 남한의 노동자 들 역시 이 같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반전운동에 나서야 한다. 고 이야기했다<박용현 반전 노동자 토론회 참관기, 현장에서 미래를 (2003년 11 월) 120쪽>. 19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91 병 을 비판하면서 인간안보(시민 개개인의 안전보장), 생명안보 차 원의 파병반대 논리를 펼친다. 19) 2) N 그룹 N 그룹은 평화 운동의 보편성을 인정하지만, 한반도의 분단이라 는 특수한 상황에 주목한다. N 그룹은, 미국의 북한붕괴 전쟁 위협 이 상존하는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의식하면서 반전-평화-자주- 통일 의 입장에서 파병반대 운동을 전개한다. 20) 19) 이러한 관점에서 낸 성명서를 다음과 같이 예시한다: 1 반전평화 여성행동 의 성명서 무엇보다도 생명이 우선이다. 이렇게 개인의 생명이 처참히 짓밟히는데 추가 파병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어떤 이득이 있는가. 국가의 존립은 개인의 인권과 생명이 존중 될 때 비로소 그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개인에게 가해지는 생명과 안전에 대한 위협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호하는 것이 진정한 안보이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안보라 는 미명 아래 인간안보가 어떻게 파괴될 수 있는지 극명한 사례를 보고 말았다. 결국 김선일 씨는 우리 정부가 살려 낼 수 있었다. 파병 철회, 아니 적어도 추가 파병을 연기만 했어도 김선일 씨는 살려 낼 수 있었다. 우리 정부에 생명이 어떠한 가치보다 도 존귀하다는 원칙이 존재했더라면 이런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 다. ( ) 2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이라크 저항단체는 파병철회 요구가 거절되자 마침내 김 씨를 처형하였다. 노무현 정부는 김 씨의 목숨이 위태로운 그 순간에도 파병과 인질은 별개의 문제라고 하였 다. 한 국민 김선일 씨의 생명이 극도로 위태로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추가 파 병 입장을 강력히 밝혔으며 그것은 오히려 그들에게 더욱 자극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생명이 우선이다. 이렇게 생명이 처참히 무시되면서 추가 파병은 무 의미하며 우리 정부가 파병을 한다면 또 다른 테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 하다. ( ) 20) <김서원 반전평화 운동, 반미반전운동 그리고 이라크 파병저지 투쟁, 한국민권연구 소 정세동향 63호(2003년 10월) 20~22쪽>을 참조할 것.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91

192 3) P 그룹 민주노총은 김선일 씨 피살 직후에 명분도 실리도 없는 전쟁에 서 더 이상 노동자[김선일 씨와 같은 노동자]의 희생이 계속되어서 는 안 된다. 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국가와 자본이 제휴하여 일으 킨 이라크 전쟁에 파병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P 그룹의 일 부는 N 그룹을 강하게 비판 21) 하는 한편 C 그룹의 보편적인 평화론 의 그물코가 조밀하지 못한 점에 대하여 자신들의 시각에서 비판하 기도 한다. 22) 3. 인식의 한계 21) 민족운동 진영에서 말하는 파병반대의 논리는 얕게는 민족주의적 감상을 토대로, 깊 게는 미국 자본이 주도로 한 전쟁에 반대하자는 것이다. [민족운동 진영이 말하는] 다음[차례의 전쟁]은 한반도다. 나 조국은 아직도 식민지 라는 구호는 우선 대중에 게 우리 민족의 안위를 걱정하게 하면서 즉각적인 분노를 이끌어 내는 데 효과적이 다. 하지만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명확한 분석을 거쳤다고 보기 힘들고, 미국 에 질질 끌려가는 한국 정부의 종속적 태도에 대한 비판에 머물게 된다. 이는 전쟁이 왜 일어났고, 파병을 왜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벗어나 한국은 왜 자주국 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으로 흘러가 한미동맹 파기 주장으 로 나아간다< 국민행동 의 홈페이지( 실린 2003 년 8월 3일 토론회 자료 >. 22)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명분 없는 전쟁에 의해서, 목숨을 잃는 이라크 민중과 전장으로 나가는 우리의 젊은이들 을 말하고, 무고한 희생을 감행하지 말아야 하며, 모든 폭력 과 전쟁에 반대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존재한다. 물론, 폭력과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 를 사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들의 파병반대 운동은 여기서 그친다. 과 연 누구를 위한 전쟁이고, 파병이기에 반대해야 하고, 누구를 위한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단위의 파병반대 운동은 파 병하지 말 것을 정부에 강력히 호소하고, 부탁하는 시민운동 양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매일매일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는 노동자들과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 구 조 속에서 인권과 평화를 외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국민행동 의 홈페이지( 실린 2003년 8 월 3일 토론회 자료 >. 19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93 그러나 C N P론 모두 다음과 같은 인식상의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 1 이라크 민중의 삶에 육박하지 못하는 인식의 한계이다. 전쟁 의 정글에 빠진 이라크 민중의 삶을 즉자적으로(an sich) 인 지하는 데 그치고 이를 대자적으로(für sich) 인식한 다음에 이론-실천의 합일을 이루어 내지 못한다. 2 중동지역의 다민족+다종족+다종교 사회구성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종교와 전쟁의 복합체로서의 이라크 전쟁 을 내밀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종교가 전쟁의 요인임을 경험하 지 못한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 실천가들은 종교와 전쟁의 두 담론이 얽히고설켜 있는 이라크 전쟁의 구도를 정확히 간파하지 못한다. 이런 까닭에 이라크 전쟁의 저변에 있는 Ethnicity 를 민족주의적으로 재해석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물론 후세인의 바트 黨 이 아랍 민족주의의 지파임을 기준 으로 민족주의 담론을 한반도로 끌어올 수는 있지만 ). 그리고 이라크 전쟁은 미국 對 이라크 민족의 싸움이 아니 라 미 영 동맹(앵글로 색슨 제국) 對 중동의 다민족+다종 족+다종교 사회구성체 와의 싸움임을 간과한다. 3 이라크 게릴라들의 저항(무슬림 근본주의 무장집단의 테러 형 식을 빌린 반격)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부족하다. 미국의 국가 테러로 나타난 이라크 전쟁과 이에 맞서는 대항 테러에 대한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93

194 깊은 인식이 없으면 이라크 전쟁을 심층적으로 분석할 수 없다. 4 파병을 강요하는 미국을 비판하지만, 정치경제학적으로 심층 적인 접근을 하지 못한다. 미국의 軍 産 복합체(군 산 복 합체 자본), 네오콘(Neo Con: 신보수주의 집단)이 집요하게 파병을 강요하는 지점에 천착하지 못하고 미국이란 공룡에 만 파병반대의 화살을 날린다. 위와 같은 운동론의 분화에도 불구하고 C N P 그룹은 국민 행동 의 기치 아래 자연스럽게 모였다. 23) 그럼 국민행동 을 중심으 로 전개된 파병반대 운동의 흐름을 설명한다. 23) 전쟁 반대 파병반대를 위한 사회운동은 우리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나누어져 있던 민 중운동, 시민운동, 통일운동을 하나의 기치 아래로 모이게 만들었다<박순성 이라크 파병 논란, 창작과 비평 122호(2003년 겨울호) 368쪽>. 19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95 Ⅳ. 파병반대 운동의 흐름 이라크 추가 파병반대 운동의 흐름을 3단계로 분석한다. 각 단계 별로 운동의 논리를 서술한 다음에 평가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 작업 을 위해 국민행동 의 홈페이지( 실린 내용과 한겨레신문 을 기본 자료로 이용했다. 2003년 9월부터 시작된 추가 파병반대 운동은 상당히 심한 굴곡 을 그리며 단속적( 斷 續 的 )으로 진행되어 왔다. 지난 1년 동안의 운 동의 흐름을 다음과 같이 3단계로 구분할 수 있겠다. 1 제1단계(발 흥기): 운동이 발흥한 2003년 9월~12월, 2 제2단계(동면기): 운동 력이 뚝 떨어진 2004년 1월~4월의 동면기( 冬 眠 期 ), 3 제3단계 ( 再 高 揚 期 ): 운동이 다시 고양된 2004년 4월~8월. 필자는 각 단계마다의 흐름을 도식화하려고 노력했다. 날짜 사 안별로 파병주도 세력(노무현 정부, 부시 행정부)과 파병반대 세력 ( 국민운동 등) 간의 밀고 당기는 관계를 <표 1>에 나타냈으며, 비 고란에 쟁점을 표기하고 쟁점별로 설명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리고 양자가 각기 자신들의 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해 힘(Power)을 나타낸 정도를 *(별표) 로 나타냈다(별표는 사안의 뒤에 붙임). 별이 다섯 개 있는 경우(*****)는 가장 왕성한 힘을 발휘한 상태이고 별이 하 나(*)일 경우 힘이 가장 약한 상태이다. 그리고 별표를 시간 순서로 연결시키면 파병반대 운동의 전체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래프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95

196 를 그릴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사회운동은 밀물기( 期 )와 썰물기( 期 )로 나뉘는 경향 을 보인다. 그런데 이번의 파병반대 운동은, 밀물기 없는 발흥기를 거친 뒤의 급격한 썰물기(동면기)를 딛고 일어나 고양기를 보였다가 수그러들 가능성이 엿보이는 양상, 즉 발흥기 동면기 재고양기 의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2004년 9월 이후 소강기( 小 康 期 )의 기운 이 엿보인다. 지난 1년 동안 발흥기에서 동면기로 급락한 이유, 동 면기를 딛고 일어나 다시금 고양기를 나타낸 이유를 분석하는 게 필 자의 주요한 관심사이다. 그럼 각 단계별로 흐름을 <표 1>로 나타낸 뒤에 운동의 논리를 제시하고 평가를 내린다. 1. 제1단계(2003년 9~12월)의 운동 양상 19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97 <표1> 제1단계(발흥기)의 양상 구분 파병 주도 세력 파병 반대 세력 비고(쟁점) 미국, 경보병 3천~1만 명 파병 요청(청와대에 공식 전달) *** 361개 운동단체, 기자회견+항의 집회 *** 명분 없는 침략전쟁에 동참 9.16 국회의원들 대부분, 조건부 찬성. 김근태 의원 등 강력저지 국회 안에서 국익론 대두 9.17 장영달 의원, 전투병파병 난색* 9.18 정부 안에서 파병 신중론 확산 / 유인태 정무수석 파병 않는 게 국익 도움 /한나라당 대표 파병 동의 시사 * 파병부대 성격(다국적군? 유엔 결의 여부?)과 부대규모 관련 논쟁 9.19 종교계 원로 비전투병 파병을 * 양비론 9.23 럼스펠드, 파병 간접 압박 *** 국민행동 시국선언**** 9.24 노 대통령 북한 핵 관련 미국 태도가 파병 변수 *** 북한 핵 문제와 파병 연계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97

198 구분 파병 주도 세력 파병 반대 세력 비고(쟁점) 9.27 국제반전 공동행동의 날 집회*** 정부, 파병 조기결정론 확산*** 청와대, 파병 여론수렴 나서*** 이라크 조사단 속임수 논란 범국민 행동의 날 집회*** 한미정상회담 앞두고 파병압력 이라크 다국적군 인정 결의안, 유엔 통과 파병 압력**** 유엔 결의 명분 졸속파병 안 된다. 잇단 반대*** 정부, 한미 정상회담 의식하여 이라크 파병 발표***** 정부의 파병결정 대통령의 재신임과 연계 총선 때 낙선운동**** 정부 內 파병부대 성격논쟁 차 비상 시국회의**** 총선에서 심판 차 범국민 행동의 날 집회*** 11.5 정부 비전투병 3천 명 파병 *** 美, 경보병 고수 차 비상시국회의, 1천인 선언 차 행동의 날 집회*** 19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199 구분 파병 주도 세력 파병 반대 세력 비고(쟁점) 12.1 정부 오무전기 직원 피살됐어도 파병 방침 불변 /미국도 한국군 파병 불변 ***** 긴급 기자회견 서희 제마 부대도 철수하라 *** 총선 이후로 파병 연기론 12.4 노 대통령 4당 대표 회동 3천 명 규모의 독자적 지역 담당 부대 보내는 의견 모아져**** 범민련 의장단, 파병반대 노상 단식***** 파병반대 이등병에 징역 3년 파병반대 시민모임, 노상단식***** 국무회의에서 파병동의안 의결**** 파병동의안 국회상정 규탄 집회** 1) 운동의 평가 <운동 행태> 시민사회 운동권은, 2003년 9월 16일 미국이 한국 정부에 파병 을 요청했다는 소식이 전달된 직후 발 빠른 대응을 하면서 351개의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국민행동 을 9월 23일에 출범시킨다. 국민행동 출범 이후 제1단계 기간의 운동 양상은 대체로 다음 과 같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199

200 1 2003년 10월 18일의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서둘러 이라 크 파병 원칙을 발표한 정부의 태도에 대하여 강력한 경종 을 울리는 운동을 전개한다. 2 9월 27일의 국제 반전 공동행동의 날, 10월 25일의 전 세계 반전평화 공동행동의 날에 맞춰 이라크 파병반대 운동을 전 개하면서 국제적인 반전평화 운동 대열에 한국이 합류함으 로써 국제연대의 지평을 넓힌다. 이후에도 이런 유형의 집회 가 여러 차례 열린다. 3 10월 18일, 정부가 이라크 파병 의지를 표명하자 이에 저항 하는 운동이 비교적 강하게 일어난다. 4 11월 30일, 오무전기 직원의 살해 소식이 전해진다. 이에 충 격을 받은 국내 운동단체들은 서희 제마부대도 철수하라. 며 강력하게 반발한다. 5 12월 4일, 노 대통령 4당 대표 회동에서 3천 명 규모의 독 자적 지역담당 부대 를 보내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다. 이에 대하여 강력한 대응이 필요했으나 미흡했다. 정부는 총선 이후로 파병을 연기한다. 는 연막작전을 펼치며 파병을 향하 여 집요한 발걸음을 떼고 있었으나, 시민사회 운동권은 거꾸 로 대응력이 떨어지는 역전 현상이 전개된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쪽 원로들이 12월 10일부 터 국회 앞에서 칼바람 속의 노상단식을 결행한다. 8순 원로 들의 생명을 건 노상단식에도 불구하고 운동의 동력이 되살 아나지 못하여, 파병반대 운동 진영은 긴 겨울잠에 빠진다. 20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01 <운동 논리> 국민행동 이 2003년 10월에 발표한 이라크에 전투병력을 보내 서는 안 되는 12가지 이유 에 나와 있는 운동 논리는 다음과 같다: 1 명분 없는 전쟁, 거짓으로 점철된 침략을 지원해서는 안 된 다. 2 미국 스스로도 실패를 인정한 전쟁에 한국군을 파견해서는 안 된다. 3 한국의 파병은 헌법과 국제법에 위배된다. 4 전투병 파병은 미래의 한미관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5 전투병 파 병은 미군을 도울 수도, 이라크에 평화를 가져다줄 수도 없다. 6 이라크인들이 원하는 것은 파병이 아니라 점령군의 조속한 철수이 다. 7 전투병 파병은 한반도 평화를 근본적으로 위협한다. 8 전투 병 파병과 한반도 안보문제는 별 관계가 없다. 9 이라크 재건 특수 를 노리고 전투병력을 보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10 파병에 따 른 미국의 경제적 반대급부는 환상에 불과하다. 11 유엔 결의도 여 러 가지이다. 점령군을 지원하는 다국적군 파병은 있을 수 없다. 12 미국의 압력 때문에 한국민의 자유로운 선택이 왜곡되는 것만큼 중 대한 국익손실은 없다. 운동단체의 이와 같이 복잡한 반대 논리와 달리 국민적인 차원 의 파병찬반 논의는 명분과 실익(국익) 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파 병찬성 진영은 미국 보은론+정치적 실익(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국익)+경제적 실익(이라크 재건 사업에서 한국기업이 얻을 게 많다)을 내세웠다. 이에 파병반대 진영은 명분론(침략전쟁에 가담해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01

202 서는 안 된다)으로 맞섰다. 이로써 현실주의자와 명분론자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파병을 둘러싼 명분론-국익론의 대립은 고려 조선시대의 파병 논쟁을 재현한 듯하다. 정부는 현실정치(real politics)의 입장에서 파 병을 강행했고, 반대 진영은 명분, 즉 미국의 제국주의 전쟁인 이라 크 전에 참여하는 정당성의 결여 를 제기하며 반대했다. <평가> 1 운동전선이 협소해짐 파병반대 운동의 전선이 협소해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 *파병은 국가 국민적인 사안인데, 국민행동 을 중심으로 운동 이 전개되는 바람에 운동전선이 협소해졌다. 여권의 일부 인사를 중 심으로 파병 신중론이 나왔을 때, 이들 신중파와 심리적 연대를 하 면서 운동을 전개했어야 한다. 국민행동 이 노무현 정권 전체를 싸 잡아 치밀하게 반대 운동을 전개하지 못했다. 정권 내의 반대파 회 의파(파병에 회의적인 견해를 지닌 인사들)를 확실하게 견인하지 못 했다. 예컨대 장영달 의원(국회 국방위원장)은 전투병 파병을 반대하 고 유인태 정무수석 등 청와대 고위 참모들도 전투병 파병의 형식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들 정권 내의 소신파( 所 信 派 )들을 끌어들이 20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03 려고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만 얼마나 성과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소 신파 의원들과 파병반대 운동 진영의 공동대책 모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국회에서 파병동의안을 저지하기 위한 공동전선을 펼치 지 못하여 아쉽다. 전투병파병 반대 여론이 58%(파병찬성 38%: 한겨레신문 )로 나오는 등 초반부터 반대 운동에 유리했으므로, 정권 내의 소 신파들과 함께했으면 운동의 전선이 훨씬 넓어졌을 듯하다. 파병강 행 때는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며 단식한 임종석 의원이 나중에 현실 론을 좇아 파병에 동조했는데, 이들 의식 있는 386 의원들을 운동전 선 안에 묶어 두었으면 그런 배반(?)을 하지 않았을 터이다. * 한나라당-조(조선일보) 중(중앙일보) 동(동아일보)-우익 단 체들이 파병반대하면 한미 동맹이 흔들린다. 미국 정부가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들고 나와 한국 정부를 위협하는데, 파병반대하면 미국 이 주한미군을 빼내간다. 이때의 안보손실이 엄청나다. 미국이 한국 민의 파병반대에 배신감을 느껴 한국에 경제적 보복(경제 제재)을 하 면 국익에 큰 손실이다. 는 논리를 유포했는데, 이 논리의 확산을 차 단하지 못함으로써 운동전선이 협소해졌다. 파병반대 활동가들이 시민을 상대로 선전작업할 때 한국민의 파병반대에 분노한 미국이 주한미군을 빼내고 경제보복을 할 경우 너희들에게 대안이 있느냐 는 반론에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함으로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03

204 써 시민 설득에 실패했다. 바로 이 점이 대중적인 운동의 승패를 가 른 분기점이었다. 파병반대 진영은 일반 시민만 놓친 게 아니라 파병을 반대하는 여론의 지도층도 놓쳤다. 정부와 국회 내 파병반대론자들이 처음엔 명분론에 섰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보수적인 현실론으로 기울었는데 도, 이런 경향을 막을 정도의 운동을 펼치지 못했다. 물론 국민행 동 이 파병과 관련한 경제 실리론의 과장 왜곡이 심각하다. 는 인 식 아래 반박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의 노력을 했으나 파병을 반대 하면 미국의 경제제재를 당한다. 는 이데올로기 공세를 막아내는 데 는 역부족이었다. * 예전에 네티즌과 함께했던 두 여중생(효순 미선 양) 관련 운 동 탄핵무효 운동과 달리, 파병반대 운동은 네티즌 젊은 층과 연대하는 데 소홀함으로써 전선의 폭이 좁아졌다. * 초반에 신중을 기하던 정부가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는 조건 으로 이라크 파병가능하다. 며 한반도 안보현안과 파병을 연 계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할 때 쐐기를 박았어야 한다. 파병 의 사안 자체가 북한 핵문제와 전혀 무관함에도 이를 연계 지으려는 정부의 얄팍한 술수를 타파하지 못했다. 20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05 * 운동의 초반부터 파병을 강요하는 미국에 대한 규탄은 자연 스러웠으나, 파병 요청을 중단시킬 만큼의 압박을 가하지 못 했다. 이 바람에 미국은 한국의 파병반대 세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파병을 줄기차게 요구했으며, 노무현 정권이 초반에 조 금 버티다가 이내 백기를 들었다. 청와대가 백기를 들기로 의 견을 수렴할 무렵에 정권심판의 깃발을 드는 게 운동의 흐름 으로 보아 자연스러웠으나 그렇게 하지 못한 결과 운동의 맥 이 끊겼다. 2 전투병 파병반대에 매몰된 운동 국민행동 의 명칭 이라크 전투병 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 에서 알 수 있듯이, 운동의 목표를 전투병 파병반대 에 국한함으로써 운 동전선이 협소해지는 데 일조( 一 助 )했다. 정부는 재건 평화부대가 이라크 현지에서 대민활동(민사 업무)에 주력하므로 전투병이 아니 고 평화유지군이다. 는 논리로 국민을 설득했다. 국민행동 이 운동 의 목표를 전투병 으로 제한함으로써, 정부가 재건 평화부대 파견 론 을 통해 빠져나갈 구멍을 운동권 스스로 만들어 놓는 실책을 저 질렀다. 전투병과 비전투병의 구분은 한국(한국의 국방부)에서나 통용될 사안이다. 이라크인이나 무슬림 무장 세력은 전투병이나 비전투병 모두 점령군으로 보기 때문에 24) 전투병을 굳이 특칭할 이유가 없었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05

206 다. 파병반대 운동 단체가, 상대방인 이라크인이 어떻게 인식하느냐 를 고려하지 않고 단체명을 붙인 게 문제이다. 25) 애초에 미국이 한국 정부에 요청한 것은 미군의 일부를 대체할 점령군이었다. 점령군으로 파병해 달라는 주문을 받은 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청을 평화 재건부대 로 둔갑시켜 비전투병(치안유지 부대 / 민사 군정부대) 26) 을 보내는 것처럼 연출하다가 끝내 미국이 원하는 형태에 가까운 중무장 부대를 보냈다. 전투병 파병에 매몰된 운동으 로는 한국 정부의 이런 속임수를 감당할 수 없었다. 24) 2003년 8월 24일 KBS 뉴스9 를 통해 공개된 약 1분 분량의 비디오테이프에 의하면, 자신을 검은 깃발(블랙 배너) 이라고 밝힌 무장저항 세력은 한국 정부에 경고한다. 는 문구로 시작해 우리는 한국군 3천 명의 이라크 파병 추진 사실을 알고 있다. 이 라크 파병을 중단하라. 이라크 땅을 밟는 한국국과 한국 민간인은 모두 점령군이다. 자비를 베풀지 않겠다. 우리는 이미 경고를 끝냈다. 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도현 서기관은 이라크의 우호적 분위기 를 강조하는 여타 외교부 관계자와 달리, 우리나 라에는 전투병과 비전투병 차이를 이해하지만 이라크에서는 미국을 도우러 왔다는 점 에서는 동일하게 안 좋게 생각하는 듯하다. 고 밝혀 현지의 적대적인 분위기를 전했 다. 그는 또 대체로 이라크의 아랍계 사람들은 쿠르드 사람들을 나쁘게 보고 정치적 인 적으로 삼고 있다. 며 쿠르드 지역인 아르빌에로의 한국군 파병은 아랍계 이라크 인들에게 잠재적으로 반감을 주고 있다. 고 덧붙였다< 프레시안 ( )>. 위의 기사에서처럼 이라크인들(특히 무슬림 무장 세력)에게 한국 파병부대가 전투병 인가 비전투병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25) 국민행동 의 출범 무렵에 전투병파병 반대 가 아닌 파병반대 를 기치로 내걸자는 문 제제기가 있었으나 수용되지 못했다. 파병반대 를 기치로 내걸자는 기치를 내건 사람 들의 의견은 의료병 공병 민사지원 장병 등의 파병도 반대하려면 전투병이라는 말 을 넣으면 안 된다. 전투병의 파병반대를 주장할 경우 정부의 재건 평화부대 논리에 말려든다. 고 경고했으나, 국민행동 측이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 같다. 26) 조영길 국방부 장관은 10월 17일 기자회견에서 이라크 추가 파병 병력을 전투병 이 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며 치안유지 부대 또는 민사 군정 부대 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 )>. 20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07 정부가 실제로 재건 평화부대는 이라크 현지에서 대민활동(민 사 업무)에 주력하므로 전투병이 아니고 평화유지군이라는 논리 로 국민들을 설득했다. 국민행동 이 전투병 에 제한함으로써, 정부가 재건 평화부대 파견론 을 통해 빠져나갈 구멍을 운동권 스스로 만 들었다. 어쨌든 전투병과 비전투병을 구분하면서 전투병 파병을 반대한 국민행동 은, 노무현 정권의 비전투병 파병(민사지원을 위한 재건 평화 부대 파병)을 앞세운 파병강행 의 덫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27) 9월 19일 김수환 추기경, 강원룡 평화포럼 이사장, 송월주 전 조 계종 총무원장 등 종교계 원로 3명은 노 대통령을 만나 (파병 여부 를) 양자택일하지 말고 유엔결의하의 평화유지군 속에 비전투병을 파병하는 것으로 절충하는 게 좋겠다. 고 건의했다. 위의 평화유지 군 속의 비전투병 파병 론은, 파병반대도 파병찬성도 아닌 양비론 비슷하게 들리지만 실제로 조건부 파병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있 는 주장이다. 실제로 현대전에서 비전투병과 전투병을 구분할 수 없 다. 최근의 평화유지군은 미군 주도일 뿐 아니라 중무장한 평화유지 27)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하는 것은 민사지원부대 구성 비율과 관계없이 조금 더 또 는 조금 덜 의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이라크 민중을 학살하는 것임을 우리는 이미 알 고 있다. 파병이 학살인 점에 한에서 파병을 철회시킬 것이냐 아니냐의 싸움이 중요 하다. 전투병이냐 비전투병이냐의 논란은 파병방침을 밀어붙이려는 노무현이 쳐 놓은 덫이다. 노무현의 이 덫을 치워 내는 일로부터 우리의 투쟁은 개시될 수 있을 것이다 < 사회진보연대 ( ) 87~88쪽>.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07

208 군이 많이 파견된다. 특히 파병 반대 쪽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데 (전투병 파병에 반대하는 파병반대 운동의 힘을 분산시킬 우려가 있 는) 사회 원로의 이런 발언에 대한 견제가 없었다. 이 때문에 중립 론(양비론)을 가장한 조건부 파병론 이 한때 기승을 부려 운동력의 분산을 가져왔다. 3 퍼주기 용병 을 거론하지 않음 한국군이 미국의 국익을 위한 용병 으로서 이라크에 파병된 게 아닐까? 그것도 우리 돈(국민이 낸 국방혈세)을 잔뜩 짊어지고 간 파병이 아닌가? 세상에 자기 돈 쓰며 자국 젊은이들의 목숨을 저당 잡는 퍼주기 용병 이 있나? 국민행동 이 이처럼 도전적인 문제제기를 했다면, 한국군의 퍼 주기 용병 을 중단하라는 슬로건이 나왔을 법하다. 2. 제2단계(2004년 1~4월)의 운동 양상 20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09 <표2> 제2단계(동면기)의 양상 구분 파병 주도 세력 파병 반대 세력 비고(쟁점) 정부, 국회에 파병 동의안 제출**** 국민행동 2004년 투쟁 선포대회** 비전투병 파병 방침 어겨 1월 중순 총선 대비 낙선 당선 운동 돌입 1.25 국회국방위원장 서둘지 않아 / 대통령국방보좌관 서두를 것 / 김근태 의원 동의안을 17대 국회로 넘기자 ** 당정 간 호흡 불일치 / 先 당론 결정, 後 파병안 처리 2.13 추가 파병안 국회 통과***** 파병 찬성의원 낙선 운동 **** 3.11 한 미, 이라크 작전통제권 이견 파병일정 지연 3.12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 탄핵 무효 국민행동 출범 파병반대 운동의 공간이 협소해짐* 대통령 부재 파병 표류 3.20 이라크 침략 1주 반전집회*** 4.8 한국인 목사들, 이라크에서 피랍 파병 재검토 여론 높아짐*** 이라크에서 잇단 외국인납치 4.15총선 직전 민노당 민주당 파병, 원점에서 재검토 국민행동 총선 출마자 131명에 대한 낙선운동 전개 ***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09

210 1) 운동의 평가 2004년 1월 6일, 국민행동 이 2004년 투쟁 선포식 을 갖고 운 동력을 복원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이때에도 국회 앞에서는 통 일연대(6 15 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 재야 운동 단체 소속원들이 범민련 원로들의 노상단식에 합류하는 단식행 렬이 계속되었으나 언론이나 운동권의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원로 들이 운동의 동면기를 막아 보자고 분투했으나 헛수고에 그쳐 동면 기로 들어갔다. 파병반대 운동이 동면기로 진입한 이유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국민행동 등의 투쟁대오가 흐트러짐. 주력 실무역량의 결 집력이 떨어진 듯함. 2 대부분의 국민들이 오랫동안 지겹도록 논란만 반복된 파병 논의에 식상함. 파병에 반대하는 국민들도, 정부의 언론 플 레이 연막작전(비전투병 파병한다고 표명하면서 실제로는 전투병을 60% 끼워 넣기) 평화재건부대 파견 공론 空 論 (이라크의 전후복구를 위해 평화로운 의료병 공병을 파견 한다는 헛구호)에 말려들기 시작하여 대중적인 운동을 전개 할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음. 3 파병 담론이 총선 물갈이 대선 자금 등의 정국 현안에 묻 혀 파병반대의 목소리가 사라질 위기에 놓임. 4 여기에 2004 총선시민 연대 와 물갈이 국민연대 가 낙선 21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11 당선 운동에 돌입함으로써, 국민행동 의 주력부대인 시민운 동 단체들이 파병반대 운동에 전력투구할 수 없게 되었음. 5 2월 13일, 국회에서 추가 파병안이 통과했지만, 이에 대한 저항을 조직하지 못했다. 발흥기에 여러 번 열렸던 비상시 국회의 범국민 행동의 날 집회 없이 성명서 등으로 대응하 는 데 그침. 한편 시민 사회단체들의 파병 찬성의원에 대한 낙천 낙선 운동을 전개하겠다. 는 다짐은 동면을 깰 호재( 好 材 )였으나 불발탄으로 그침. 파병찬성 의원이 155명이나 되어서 이들 을 모두 낙선 운동 명단에 넣으면 살아남을 정치인이 별로 없다는 난제가 등장했기 때문. 이렇게 파병 찬성의원에 대 한 정치적인 압력철퇴도 불가능해져 동면기는 계속됨. 6 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됨. 이는 전 국민적인 공분을 일으켜 탄핵무효 국민행동 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촛불시위가 5월 15일(탄핵기각 결정)까지 이어짐. 이 기간에 탄핵무효 촛불시위가 파병반대 촛불시위를 대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파병반대 운동의 입지가 현저 하게 약화됨. 춘삼월( 春 三 月 )을 맞이하여 오랜 동면기에서 기지개를 켜려던 파병반대 운동 대오에게 춘곤증( 春 困 症 )이 겹쳐 옴. 7 3월 20일, 이라크 침략 1주년을 맞이하여 전 세계에서 반전 평화 집회가 열렸다. 이에 발맞춰 한국에서도 미국의 이라 크 점령 반대, 한국군 파병 반대 를 구호로 내걸고 시위를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11

212 조직. 이 집회는 국민행동이 아닌 3 20 전 세계 반전행동 한국조직위 가 개최했으며, 집회가 끝난 5천 명의 대오가 탄핵 무효 촛불시위에 합류. 이날의 반전집회는 탄핵 무 효 집회의 사전 행사로 끝남으로써 파병반대 운동의 기운을 되살리지는 못함. 이 기간에 이라크 평화네트워크 등의 활동 (현지 조사 등)이 있었으나 대중의 관심사를 끌 정도는 되지 못함. 8 4월 8일 한국인 목사 7명이 이라크 무장 세력에게 납치되었 다 풀려난 사건을 계기로 파병반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 국민행동 은 4월 9일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과 4당 대표에 게 파병 결정 철회와 서희 제마부대 철수를 촉구하는 공개 서한을 보냄. 이어 4 15 총선을 앞두고 파병이 선거 쟁점 화 28) 되는 데 힘입어 파병반대 운동의 기운이 높아짐으로써 길고 긴 동면기를 마감하기 시작. 28) 이라크 현지의 사태 악화로 추가 파병을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면서 정치권이 긴장하 고 있다. [총선의] 접전지역을 중심으로 파병 문제가 당락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나라당은 애초 결정대로 파병을 해야 한다는 태도이나, 톤이 다소 낮아 졌다. 박근혜 대표는 9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회에서 통과된 약 속은 지켜야 한다. 면서도 다만 상황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파병의 성격, 시기 문제 등은 정부가 잘 대처해야 한다. 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은 지지층 이탈가능성을 우려한 때문인지 신중론을 폈다. 정동영 의장은 파병 원칙의 큰 틀은 변화가 없다. 고 전제 하면서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으며, 상황 변화에 따른 대응을 검토할 필요가 있 다. 고 밝혔다. 김근태 원내대표는 개인적으로는 파병 시기를 이라크 임시정부가 통 치권한을 넘겨받는 6월 이후로 늦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반면, 파병에 반 대했던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이라크 사태를 총선의 호재 로 판단하고, 파병 철회를 주장하는 등 쟁점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 )>. 21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13 3. 제3단계(2004년 4~8월)의 운동 양상 구분 파병 추진 세력 파병 반대 세력 비고(쟁점)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과 반 의석, 민주노동당 10 석 얻어 국회 내 파병 반대 의원 크게 늘어 <표3> 제3단계( 再 高 揚 期 )의 양상 의원 당선자 46% 파병 재 검토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 체니 미 부통령에 파병, 정해진 원칙 따라 진행 재확인**** 파병을 둘러싸고 열린우 리당 내부 갈등 당 지 도부 재논의 불가 -소 장파 원점 재검토 *** 2월 13일에 통과된 파병안 을 철회? 파병 재검토 정치권 목 청 / 열린우리당 한나라 당 원내대표 경선과정에 서 쟁점이 됨** 열린우리당, 파병 공식 재검토* 노 대통령 탄핵기각 직무 복귀 국민행동 확대대표자회의**** 국민행동 비상 시국선언***** 미군의 성학대와 파병반 대를 연결시키는 시위가 계속됨*** 이젠 파병반대 촛불 점 화*** 국회개원 뒤 파병철회 결의안 논란가능성 미국인 참수 비디오 공개 부시 이라크 에 계속 주둔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13

214 구분 파병 추진 세력 파병 반대 세력 비고(쟁점) 미, 주한미군 4천 명 이 라크 배치 광주 5.18행사에서 파병 철회 /파병철회 촉구 삼 보일배*** 한미 방위조약 위반 논란 / 미 국, 주한미군을 미끼로 파병 압력? 한미동맹 고리로 파병 불가피론 다시 점화 주한미군 차출 문제가 쟁 점으로 떠오르면서 열린 우리당 내에 확산되던 파 병 재검토론이 급속하게 냉각됨**** 이종석 NSC 차장 북한 핵 해결과 이라크 파병이 연계됨 *** 청와대 안보보좌관, 미국 에 파병 다시 약속*** 여야 의원 21명 파병 재 검토 권고 결의안 내기 로 ** 민주노동당, 파병철회에 찬성하는 국회의원들과 시민사회단체 대표자 간 의 대표자 회의 제안*** 초라하고 쓸쓸한 촛불 집회* 여성 국회의원 당선자 여성운동단체 파병 재검 토 *** 평택에서 반전평화 축제*** 21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15 구분 파병 추진 세력 파병 반대 세력 비고(쟁점) 열린우리당 의원들, 신중 론으로 회귀 당 정 청 협의회 6월 중 선발대 파병 **** 파병 원점 재검토를 위 한 의원 및 시민단체 모 임 을 갖고 서명에 참석 한 91명의 의원 명단을 공개**** 열린우리당이 정부의 파 국민행동 은 기자회견을 병안을 따르기로 당론을 열어 열린우리당이 노 확정하자, 67명의 파병 대통령과 정부를 곤란하 재검토 서명의원 중 대부 지 않게 하기 위해 파병 분이 진압 됨. 파병 너 의 성격과 규모, 시기 등 무 많이 지체되었다. 는 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노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않은 채 정부의 강행 방 파병 재검토론이 쑥 들어 침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감. 전대협 출신들의 무 소신을 드러냄 29) 직무유기 라고 주장**** ***** 정부, 김선일 씨 피랍 확인 한나라당 촛불시위 자 제 주장 촛불 시위 열기 높아져 / 이날부터 매일 저녁 촛불 시위***** 열린우리당의 대표적인 파 병반대론자들 이 대거 찬성 쪽이나, 소극 적인 반대로 돌아선 데 대 하여 논란이 일어남. 29) 17대 국회에는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출신 12명 모두 열린우리당으로 등원 했다. 이들 중 지난 6월 23일 파병중단 및 재검토 결의안 제출에 동참한 의원은 이 인영, 복기왕, 김태년, 정청래 4명뿐이다. 오영식, 우상호, 이철우, 이기우, 한병도 의 원은 91명이 서명한 재검토 촉구 서명 은 했지만 결의안 제출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임종석, 백원우, 최재성 의원은 정치권의 파병 재검토 움직임에 일체 참여하지 않았다 < 프레시안 ( )>.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15

216 구분 파병 추진 세력 파병 반대 세력 비고(쟁점) 6.23 김선일 씨 참수됨. 보수 언론(조 중 동)과 냉전 수구 세력 김선일 씨 참 수한 이라크인 응징 위해 파병해야 ***** 김 씨의 피살이 알려진 뒤에 시민사회단체들 사 이에 파병철회 요구 성명 서 빗발쳐 / 민주노동당 서 희 제마 부대 철군촉구 결의안 제안***** 여야 의원 50명 파병 중단 결의안 발표 노 대통령 추가 파병강 행 담화 발표 / 냉전 수 구 세력, 파병강행하는 노무현 대통령 옹호***** 민주노총, 고 김선일 씨 추모 및 파병철회 총력투 쟁 기간 설정 / 항공연대, 파병병력 운송 거부 / ***** 전국에서 수만 명이 촛불 시위***** 민주노총, 파병철회 등을 주장하며 13만 명이 파 업 돌입 / 전교조 7월 3 일부터 반전 평화를 주 제로 한 수업에 들어가겠 다. ***** 김선일 씨 장례에 맞춰 전국에서 범국민 촛불집 회***** 국민행동, 비상시국회의 열 어 7월 한 달을 총력투 쟁의 달 로 결정 / 각계각 층의 파병철회 성명서 쏟 아져 나옴***** 노사모 홈페이지에서 노 대통령 지지 철회 논란 21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17 구분 파병 추진 세력 파병 반대 세력 비고(쟁점)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잘 못된 정보를 근거로 이루 어졌다는 7월 9일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 보고서 의 공개를 계기로 정치권 에서 파병 재검토 주장이 다시 불붙음. 김선일 추모 파병철회 촛 불집회 / 일부 노사모 회 원들은 파병반대 전쟁 반대하는 나는 노빠다. 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 **** 밤 9시까지 촛불집회 뒤 청와대로 행진하다가 경 찰과 충돌***** 부산항 8부두 앞에서 파 병물자 수송 저지 시위 ***** 전교조 교사 1만 6천 명, 파병철회 선언**** 부산 110개 단체, 파병저 지 인간 띠*** 민주노동당 지도부 의원 단, 무기한 농성 돌입 ***** 국민행동, 파병 결사저 지를 위한 10만 릴레이 단식농성 시작 민주노 동당 대표 등 20명, 무기 한 단식 선언 / 파병반대 전국 보도 행진단, 활동 개시***** 파병강행 땐 정권퇴진 운동 을 에워싼 논란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17

218 구분 파병 추진 세력 파병 반대 세력 비고(쟁점) 민주노동당, 임시 당대회 열어 파병지지 투쟁 등에 전 당원이 나서기로 ***** 민주노동당, 8월 7일까지 모든 당원이 릴레이 단식 등 결행하기로***** 민주노동당 대표, 단식 중 탈진하여 병원에 입 원 노 대통령 면담 요 청***** 경기도 광주에 있는 자이 툰 부대 정문 앞 퍼포먼 스 / 종교인들, 청와대 앞 에서 기자회견***** 청와대 앞 집회. 자이툰 부대가 떠나는 성남 서울 공항의 진입을 시도하던 집회 참가자들, 경찰과 심 한 몸싸움. 저녁에 파병강 행 규탄 촛불집회***** 파병을 저지하지 못한 것 을 참회하는 단식농성 삭발**** 이라크 파병 철회 범국민 대회**** 자이툰부대 본진 출국 성남 공항 앞 시위***** ***** 21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19 1) 운동의 평가 파병반대 운동이 길고 긴 동면을 마치고 다시 기지개를 켠 요인 은, 국민행동 안에 있기보다는 다음과 같은 외부 요인에 있었다: 년 4월 8일 한국 목사 7명이 이라크 무장 세력에 납치 된 사건에 대한 우려가 파병반대 운동으로 이어짐. 그 뒤 이 라크 무장 세력의 정략적인 인질 납치 참수가 계속되어 파 병반대의 여론을 높임. 2 4월 초부터 이라크의 팔루자에서 무고한 민중에 대한 미군 의 잔인한 공격( 팔루자 학살 이라고도 일컬어짐)으로 인한 반미감정이 미국이 강요하는 파병 반대 의 정서로 이어짐. 이라크 민중을 학살한 미군을 도와주는 파병에 반대하는 정 서가 높아짐. 이라크 내 반미투쟁의 격화로 파병 반대 목소 리가 높아짐 총선으로 진보적인 성향의 의원들이 많이 당선되었으 며, 이들이 속한 당( 黨 ) 안에서 파병반대 그룹을 형성하기 시작함. 4 4월 18일에 정변이 일어난 스페인(보수 정권에서 사회당 정 권으로 권력 교체됨)이 이라크 주둔군 철수를 발표한 다음 에 각국의 이라크 철군 도미노 현상이 일어남. 스페인을 비 롯한 각국이 이라크 주둔 자국군을 철수시키는 게 유행인데, 한국만 뒤늦게 파병함으로써 세계 제3위의 파병국가 가 된 다는 시대 역행의 자괴감( 自 愧 感 ).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19

220 5 4월 28일에 폭로된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형무소 성학대 사건이 부도덕한 이라크 전쟁에 대한 파병을 반대하는 대중 적인 정서를 고양시킴. 한국군이 파병되면 베트남 전쟁 때처 럼 성학대 등의 인권유린 행위를 자행할 수도 있으므로, 성 학대 미군 과 함께하는 이라크 파병을 막아야 한다는 주 장. 30) 6 파병 앞둔 테러 위협( 한국이 파병하면 항공기 재외공관 한국기업에 테러를 하겠다. 는 협박편지가 계속 날아옴)에 영향을 받아 한국병사의 테러로 연결되는 파병에 찬성할 수 없으며 국익에도 손해 라는 인식이 형성됨. 7 이라크 현지 상황이 전쟁상태(무슬림 무장 세력과 미군 사이 의 전투로 내전 상태에 빠짐)이므로, 한국군이 파병되면 제 2의 베트남 파병이 될 가능성(베트남 파병 한국군이 베트남 민중의 삶을 유린하고 학살함으로써 가해자가 된 현상이 재 현될 가능성) 이 크다는 우려. 8 파병을 강요하는 미국에 대한 불만, 미국 앞에서 쩔쩔매며 파병을 강행하는 노무현 정권의 줏대 없음에 대한 불만. 9 아부 그라이브 미군 교도소에서의 성학대 사건 이후 전 세 계적으로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 요구 운동 이 일어났는데, 이와 연동되어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저지해야 한다는 대 30) 김희선 의원은 미군이 이라크 포로들에게 저지른 반인권적 유린 행위는 1980년의 광주학살 때보다도 더 심한 행위 라며 이런 상황에서 파병은 연기 가 아닌 철회 가 되어야 마땅하다. 고 주장했다< 한겨레신문 ( )>. 22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21 중의 의지가 높아짐. 10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이 밀리는 상황 31) 에서 한국군이 파병 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여론. 11 진짜 불량국가(Rogue State)인 미국이 추악한 이라크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그런 미국을 도와주러 이라크에 파병하는 것 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정서. 위의 11가지 요인이 시너지 효과를 가져와 파병반대 운동이 저 절로 고양될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제 파병반대 운동의 불을 붙이 기만 하면 저절로 타오를 지경이 되었다. 이와 같은 유리한 정세는, 국민행동 으로 하여금 흩어진 대오를 추슬러 파병반대 운동의 촛불을 대중과 함께 들도록 했다. 운동력을 외부에서 수혈받은 국민행동 은 2004년 4월 24일 확대 대표자 회 의를 열어 다음과 같은 운동계획을 결정한다: 1 파병 철회 1만인 릴레이 시국선언, 2 파병 철회 국민청원 운동, 종교계를 비롯한 사 회 각계로 파병반대 운동의 지평을 넓힘, 3 위력적인 대중투쟁을 중심에 두고 의회 투쟁과 결합(국회 내 파병철회 의원들과의 연대를 강화하여 파병철회 결의안을 성안하도록 함), 4 국제적 약속 이행 론, 한미 동맹론 등 파병논거에 대한 반박, 국방부의 여론호도, 정보 31) 이라크 전쟁이 점점 더 수렁에 빠져 드는데 스페인을 비롯해 여러 외국군들이 병력을 철수시키고 있다. 이 틈을 노린 이라크 무장 세력이 인질 납치 등 극단적인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더구나 이라크 포로 성학대 파문 이후 저항 세력의 증오심과 무력공 세 강도가 더 드세지고 있는 등 미국이 전반적으로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21

222 왜곡, 부실조사 등을 규탄, 5 인터넷을 통한 운동 개발, 6 문화문 예 교육 운동의 강화, 7 국제연대 및 이라크 현지활동 추진(파병철 회 국제연대, 이라크 현지 모니터, 이라크 전범 재판 참여). 드디어 5월 3일에 국민행동 은 기자회견을 열어 사회원로와 학 계, 종교 여성 교육계 인사 등 10,571명의 이름으로 이라크 파병 철회를 촉구하는 비상 시국선언을 발표한다(이때부터 기존의 파병 반대 구호 대신 파병 철회 구호를 내건다). 국민행동 은 또 파병 철회를 위한 범국민 청원운동과 대규모 반전 촛불시위(5월 14일부터 토요일마다 광화문에서 파병철회 촛불 한마당 을 연다)에 본격적으 로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전국적인 차원에서 파병반대 촛불시위가 다시 타오르게 되었다. 촛불시위가 지속된 광화문은, 지난해와 달리 파병반대를 외 치는 민권( 民 權 ) 과 파병을 강행하는 국권( 國 權 : 국가권력) 이 대립 하는 현장으로 변모했다. 촛불시위 현장을 에워싼 전투경찰은 그런 국권의 현지 파견부대이었을 뿐, 파병강행의 본거지인 청와대는 지 척에서 파병반대의 함성을 듣고도 모른 체했다. 그리고 파병을 원격 조종하고 있는 미 대사관이 시위 현장의 지척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는 한 번도 미 대사관에 접근하지 못한 채 (국권의 파견부대 인) 전투경찰에 에워싸여 촛불 농성을 했다. 그럼에도 민중의 힘 이 강했다. (탄핵 무효 촛불시위를 통해 총 22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23 선 승리를 이끌어 내고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을 헌법재판소 에서 부결시킨) 민중의 힘 이, 광화문에서 파병반대 촛불시위로 다 시 나타났다. 노무현을 구제한 탄핵무효의 촛불이 (파병강행하는) 노무현을 규 탄하는 촛불로 바뀌는 촛불시위의 암전( 暗 轉 ) 이 일어났다. 동일한 광화문에서 한 달 전에 노무현 탄핵저지 투쟁을 벌인 대중들이, 파 병을 강행하는 노무현 대통령 규탄 투쟁(시위대 일부는 노무현 정권 퇴진 투쟁을 요구함)을 전개했다. 탄핵 무효를 주장한 촛불시위의 힘이 총선승리로 연결될 조짐이 보일 때, 시위대 일부는 노무현 대 통령이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면 파병을 철회할 것이며, 그렇게 하도 록 만들어야 한다. 는 비장한 각오를 나타내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 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하자마자 파병강행 쪽으로 기 울자 시위 대중들은 배신감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의 멍에를 벗어나 업무에 복귀하기를 기다 린 미국 정부는 주한미군 일부 병력을 이라크로 배치하겠다. 는 카 드를 들고 나오며, 국회 안에서 형성되어 가던 파병 재검토론을 결 정적으로 냉각시킨다. 이어 한미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 고 파병해야 한다. 는 논리가 집권당 내에서 득세하면서 파병이 대 세론으로 기운다(파병반대 단식을 했던 임종석 의원이 이 대세론에 굴복하여 비난의 대상이 된다 32) ).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23

224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열린 5월 22일의 파병반대 촛불집회는 너 무나 초라하고 쓸쓸하여 33) 또다시 파병반대 운동이 소강상태로 빠 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자아냈다. 한국 미국 정부의 파병 의지 는 갈수록 강해지는데 반대 운동력은 갈수록 약해지는 경향이 나타 났다. 5월 3일 비상시국 선언을 통해 운동전선을 재정비한 지 20일 만에 운동력이 쇠진한 듯한 인상을 주었다. 5월 22일의 쓸쓸한 집회 가 국민행동 측의 준비부족 탓일 수도 있겠으나 대중과 더불어 운 동을 전개하지 못한 후과( 後 果 )가 이날 집회에 나타난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6월에 들어와서도 파병반대 운동의 촛불은 명맥을 유지했으나 왕성하게 타오르지 못했다. 힘을 잃어 가는 촛불을 되살린 것은, 김 선일 씨 피살 사건이다. 6월 21일 김선일 씨가 피랍되어 참수당할 위기에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수많은 시민 사회 단체는 파병 철 32) 임종석 의원은 6월 18일 나의 주관적인 희망이나 철학과는 달리 객관적으로 돌아가 는 국제질서 안의 문제를 완전히 무시하고 항상 원점에서 가치만 갖고 주장할 수 없 다. 며 파병 현실론 을 주장했다. 이날 MBC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임 의원은 파병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는 서명에 왜 동참하지 않았느냐 는 질문에 대해 지금 바꾸기는 어렵다는 판단 때문 이라고 대답하여 이렇게 밝혔다< 프레시안 ( )>. 6월 25일 전대협 출신 시민사회 운동가 5명이 임종석 의원을 찾아갔다. 이들은 정치 를 하는 사람이 지조와 신념 없이 국민 염원을 헌신짝처럼 버릴 수가 있나. 임 선배 의 명확한 입장을 확인하러 왔다. 며 선배가 파병을 강행한다면 선배와 명확한 대척 점에 서서 국민적 심판을 이루겠다. 고 경고하기도 했다. 밤을 새워서라도 임 선배를 만나고 가겠다. 고 공언한 이들은 임 의원 외에 오영식, 우상호 의원 등 파병에 동조 하고 있는 전대협 선배들에게도 파병 반대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는 서한을 전달했 다. 이들이 바랐던 임종석 의원과의 면담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프레시안 ( )>. 33) 국민행동 가맹단체가 351개인데, 5월 22일 집회에 130명이 참여함< 프레시안 ( )>. 22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25 회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빗발치게 내고 광화문의 촛불시위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틀 뒤 김 씨가 참수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파병반대 운 동의 열기가 급상승했다. 김선일 씨의 참수에도 불구하고 파병을 강 행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담화에 격분한 일부 시위대는 노무현 정권 의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파병반대 운동과 관련하여 노 무현 정권 퇴진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하여 국민행동 안에서 논란거 리도 등장한다(노무현 정권 퇴진 논란에 관하여 이 글의 보론 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함).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노 사모 안에서도 파병 철회 논란이 격렬하게 일어났다. 이 기간에 네티즌 사이에서 파병반대 여론이 수직상승함으로써 오프라인(off line) 운동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탄핵무효 투쟁 당시처럼 온라인 운동과 오프라인 운동의 시너지 효과를 연출하지 못한 결과 네티즌- 국민행동 의 운동력이 총화되지 못했다. 김선일 씨의 참수를 계기로 급상승한 온라인+오프라인 운동이 합성된 큰 우산이 만들어졌다면, 그 위력에 눌린 정부는 파병을 포기하든지 파 병의 시일을 상당히 늦췄을 것이다. 어쨌든 김선일 씨의 피살을 계기로 파병반대 운동의 열기가 급 상승한 분위기를 이어 가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나타났다. 34) 이때 가 장 기동력을 발휘한 쪽은 민주노동당이다. 민주노동당은 6월 15일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25

226 당내에 이라크 파병철회를 위한 특별위원회 를 구성하고 17일부터 전국 123곳 지구당에서 파병철회를 요구하는 전 국민 청원운동을 전개한다. 민주노동당은 6월 23일부터 국회 앞 농성에 돌입했으며, 7월부터 총력투쟁을 하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 7~8월의 파병반대 운동 전선의 중심에 민주노동당이 있었다. 이렇게 민주노동당이 장외투쟁으로 나선 데에는 정치적인 이유 가 있는 듯하다. 민주노동당이 총선에서 10명의 의원을 배출하는 쾌 거를 이루었지만, 기성 정당의 장벽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존 정치권의 잘못된 관행과 특권을 깨겠다는 포부를 밝힌 민 주노동당이 등원 한 달 만에 한계와 설움을 실감했다. 원내 제3당이 지만 교섭단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여야 협상에서 철저히 배제된데 다, 정부 쪽으로부터도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애초 꿈꿨던 입법활동보다 농성과 거리시위에 나서는 일이 잦아졌다< 한 겨레신문 ( )>. 위의 기사가 사실이라면 원내의 장벽을 뚫지 못한 민주노동당이, (파병철회 운동이 범국민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대중투쟁의 현장에 서 돌파구를 찾으려 한 듯하다. 34) 6월 26일 김선일 씨의 운구가 부산에 들어온 날 밤의 범국민 추도대회에는, 전국적으 로 수만 명이 김 씨의 사망을 애도하는 한편 파병을 반대하는 촛불을 높이 들면서 운 동의 기운을 절정에 올려놓았다. 이 시위 현장에서 일부 목소리 높은 참가자는 대통 령의 하야 를 서슴없이 주장하기도 했다. 22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27 7~8월 파병반대 운동의 전선을 형성하게 한 매개체( 媒 介 體 )는, 김선일 씨를 추모하는 촛불이었으며 가장 대중적인 구호는 김선일 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이었다. 헛되이 죽고 싶지 않았던 김 선일 씨가 납치되었을 때 던진 외마디 조국의 동포여 제발 도와주 십시오! 저는 살고 싶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여, 부시여 제발 이것 은 당신의 실수입니다. 가 시위장을 짓누르고 있었다. 파병이 노 대 통령의 가장 큰 실수임을 예고하는 김선일 씨의 절규였다. 촛불시위 현장에 모인 상당수의 시민들은 노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지지자인 듯한데(이들은 탄핵 무효 촛불시위에도 열심히 참가했다), 이들은 파병 이라는 노 대통령의 커다란 실수를 예방하는 의미에서 촛불을 들었다. 촛불시위장에 온 일반시민들은 제2의 김선일을 만들지 않 기 위해서라도 노 대통령이 파병하면 안 된다. 는 비원( 悲 願 )을 파병 반대 구호로 나타냈다. 이어 김선일 씨의 장례식이 있던 6월 30일에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 추모시위에 참여한 뒤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하여 운동대오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김선일 씨의 피살을 계기로 급상승하던 운 동의 기운이 가라앉는 듯한 분위기이었다. 파병반대-반전평화의 여 론은 비교적 높은데 파병반대-반전평화 행동은 광범위하게 일어나 지 않는 간극을 메우지 못하는 파병반대 운동의 난맥상이 드러나면 서, 파병반대 운동의 방법론 방향을 놓고 논란이 일어났다. 이 논 란은 국민행동 의 안팎에서 일어난 듯하며, 가닥을 잡아 가며 조직 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지 않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27

228 운동이 약간 소강상태에 빠진 7월 10일은 비교적 적은 숫자의 시위대가 청와대로 행진을 하다가 경찰과 충돌하여 일부 시민이 다 쳤다. 이날 촛불시위에 앞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네티즌 모임, 사 회진보연대 회원 등 100여 명은 탑골공원에서 파병강행 노무현 퇴 진을 위한 만민공동회 를 열어 노무현 정부가 파병을 강행할 경우 정권 퇴진을 선언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한겨레신문 ( )>. 이날의 노무현 정권 퇴진 구호가 국민행동 의 노선과 일치하 는지의 여부도 중요하지만, 퇴진 구호의 정치성을 고려할 때 비상 한 관심을 끌 만한 것이었다. 국민행동 소속 단체의 일부와 일부 시위대중 사이에서, 파병을 강행하는 노무현 정권의 퇴진을 내세우 지 않는 지도부에 대한 불만이 터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노무현 정 권의 퇴진론은 보론에서 다룬다). 이와 달리 대부분의 파병반대 단체들은 노무현 정권의 책임론보 다 미국 책임론에 더 무게를 둔 듯하다. 이는 촛불집회장에서 미국 규탄 구호가 노무현 정권 규탄 구호보다 더 많이 나온 사실이 증명 한다. 파병과 관련하여 미국 규탄의 정점에 오늘 날은 7월 12일이 다. 이날 국민행동 소속 회원 5백여 명은 이라크로 보내질 군수물자 를 배에 싣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부산항 8부두 앞에서 도로를 막 고 성조기를 불태우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35) 35) 촛불시위가 유행인 요즘 성조기를 불태웠다는 기사는 파병과 관련된 반미운동의 극치 를 보여 준다. 대중의 정서상 촛불시위와 성조기 불태우기 사이의 간격이 크다. 촛불 22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29 이윽고 결단의 시간이 다가왔다. 부산항 8부두에서 파병부대용 군수물자를 선적하는 등 파병전야가 임박함에 따라 반대 운동 진영 의 지도부는 목숨을 건 단식을 결행한다. 단식의 선두에 선 사람은 민주노동당 대표이었고, 국민행동 이 민주노동당 등과 함께 집단적 인 단식(10만 릴레이 단식)을 주도했다. 지난해 파병운동의 동면기를 막기 위해 원로인사들이 국회 앞에서 쓸쓸하게(언론의 주목을 전혀 받지 못한 채) 단식했을 때와 달리, 이번 단식은 언론 정치권은 물 론 양심적인 시민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진행되었다. 이렇게 화 려한 단식(?) 은 동면기의 단식과 비교할 수 없었다. 국민의 관심 속 에서 화려하고 화끈하게 단식을 진행한 것은, 민주노동당의 위상이 높아진 데 기인한다. 진보 세력이 의회의 의석을 가진 경우와 그렇 지 않은 경우의 차이가 단식의 화려함과 초라함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결사적인 단식 농성을 우롱이라도 하듯, 8월 3일에 자이 툰 부대가 도둑고양이처럼 이라크를 향해 빠져나갔다. 김혜경 민주 노동당 대표가 병상에서 말하듯 대통령의 파병결정은 몇 달 뒤면 후회할 일이고, 몇 년 뒤엔 온 국민의 비난을 받고, 이후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의 부끄러운 기록으로 남게 될 파병이 단행된 것이 다. 8월 3일 파병되던 날 청와대 앞 시위장에서 파병강행 고집하는 시위로는 성에 차지 않아 성조기를 불태운 운동의 격렬함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성 조기를 불태웠다는 기사를 오랜만에 본 약간의 당혹감 이 교차하는 심정이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29

230 노무현 정권 물러나라. 국민의 생명 안중에 없는 노무현은 퇴진하 라. 는 등 그동안 파병반대 집회에서 좀처럼 듣기 어려웠던 정권 퇴진 요구의 목소리가 빗발쳤다. 이라크 추가 파병의 신호탄인 자이툰 부대의 선발대가 은밀하 게 이라크로 떠난 다음 날인 8월 4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 서는 조용한 삭발식이 진행됐다. 안원영 평화를 여는 가톨릭 청년 대표는 지금이 바로 파병 반대와 철군의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시 작점 이라며 삭발의 각오를 밝혔다. 7월 26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파 병철회를 촉구하는 단식을 이어온 김재복 수사(가톨릭 마리아회 소 속)가 파병부대 출발 뒤 참회 단식 을 했다. 이처럼 파병 반대-철군 운동을 다시 시작하자는 뜻에서 삭발 참회 단식을 결행했지만, 파병반대 운동은 석양의 해처럼 기울었다. 국회에서 다시금 이라크 파병 동의안의 연장에 관한 논란이 일어날 것이 틀림없는데도 운동의 대오가 빠져나갔다. 마치 거품이 사라지 듯 파병 문제가 뜨거운 현안이 될 때 파병반대 운동도 거품처럼 부 상되었다가, 파병이 단행되면 거품처럼 가라앉는 거품형 운동 (bubble movement) 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러한 거품형 운동은 제 1차 파병(서희 제마 부대 파병)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재발되었다. 한국의 시민사회운동권이 총집결한 파병반대 운동의 거품을 제 거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운동 틀의 문제점을 아래와 같이 지적한다. 23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31 Ⅴ. 운동 틀의 문제점 1. 백화점식+거품형 운동 운동권의 고질병인 백화점식 운동의 이합집산으로는 거품형 운 동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몇 년 전부터 전국적인 사안이 터질 때마 다 시민사회운동권 전체가 모여 범국민 운동본부 를 급조하여 운동 을 해 온 틀의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범국민 운동본부 가 워낙 급하게 꾸려지고, 운동의 급박함 때문에 내부 정비의 소홀, 의견 조 율 의사결정 과정의 문제 등이 속출하고 있다. 또 범국민 운운 하지만 국민을 대변하는 조직이 되지 못하고 운동권의 집합체로 전 락하는 경우가 이번 파병반대 운동에서도 재현되었다. 해당 사안의 전문단체가 두텁게 형성되어 있지 않은 한국의 운 동판에서 모든 운동단체가 모든 사안을 백화점식으로 범국민운동 을 전개하는 게 큰 문제이다. 파병반대 운동을 전공으로 하는 단체 가 적은 상태에서 351개 가맹단체가 총론만 가지고 운동을 전개했 다. 351개 가맹단체의 대부분에게 파병운동-반전평화 운동은 비전 공이다. 그러면 가맹단체 중 평화 운동을 전공으로 하는 단체 또는 인사를 운동의 전면에 배치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마당발 같은 명망가(?) 를 전면에 배치한 백화점식 운동 방식은 수정되어야 한다. 해당 운동에 비전공인 마당발 명망가의 덕담형 연설이 운동을 이끌어 가는 시대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파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31

232 병반대 운동의 경우 반전평화를 화두로 고민하는 일꾼들이나 집단을 전면에 배치하고 나머지 해당 사안의 비전공 단체들은 뒤에서 도와 주는 쪽으로 운동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마당발 명망가는 또 다 른 운동거리가 항상 그를 기다리고 있으므로 파병반대 운동의 열기 가 식으면 재빨리 다른 범국민 대책위 로 옮겨가 덕담형 연설을 할 수밖에 없다(본인이 그런 행태가 싫어도 그럴 수밖에 없는 운동의 풍토를 개선해야 한다). 마당발 명망가는 범국민 운동본부 를 주도하는 몇몇 메이저 (major) 운동단체의 단체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더욱 백화점식 운동 +거품형 운동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백화점식 운동을 한다고 비판 받는 각각의 메이저 운동단체가 총집결하여 범국민 운동본부 를 꾸 리니 백화점식 운동이 옥상옥( 屋 上 屋 )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이 바 람에 해당 사안의 전문 단체 인사들을 전면 배치함으로써 운동의 전문화를 꾀하는 시도를 할 수 없고, 그 결과 거품형 운동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범국민 운동본부 의 운동이 퇴조하면 메이저 운동단 체들부터 철수하므로(메이저 운동단체의 본래의 업무로 복귀) 거품 형 운동이 안 될 수 없다. 2. 냄비형 운동 냄비 언론, 냄비 정치 가 범람하는 한국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운동권도 냄비 운동 을 벌이는가 보다. 뜨거운 현안이 있으면 냄비 23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33 언론 이 치고 나오고 운동권이 이에 대응하면서 거리로 뛰쳐나와 냄 비처럼 부글부글 끓듯 운동하다가 그 사안의 선풍( 旋 風 )이 사라지면 냄비 식듯 금방 냉각되는 운동을 이제 집어치우자. 제1차 파병 때도 냄비처럼 끓어올랐다가 국회에서 파병안이 통과되자마자 냄비처럼 냉각된 전례가 있다. 이번의 추가 파병에서는 그런 전례를 막아 보자고 노력했으나 물거품이 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이는 운동의 조루증(?)과도 연결되 는 현상이 아닌가? 1960년대 일본의 안보투쟁 때 창설된 베트남전 반대 운동 단체 ベ 平 連 이 지금도 홈페이지를 개설한 상태이며, 젊 은 시절 그 단체에서 활동했던 노( 老 )투사들이 40년 전의 그 운동단 체 이름이 새겨진 명함을 돌리고 있다. 파병과 같이 장기적인 과제 를 다루는 운동을 전개했으면 냄비처럼 식지 말고 미온( 微 溫 )을 몇 십 년간 유지하는 똥고집이 필요하지 않은가? 이라크 파병의 경우 앞으로 수십 년간 우려먹어도 시원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운동의 담 론-실천과제가 생산될 텐데 운동의 장막을 그렇게 빨리 걷어치우면 어떻게 되나. 3. 운동 대오 정보화 네트워크의 원탁형 의사소통을 즐기는 시민들을 대신하 여 범국민 운동본부 를 꾸린 운동권은 원탁형 대오를 외면하고 냉 전형 선형( 線 型 ) 대오를 유지하는 냉전 세력(?)이다. 시민사회 운동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33

234 권이 탈냉전 진보 세력을 자임하는 것은 너무나 옳은 말이지만, 냉 전시대의 발상이 묻어 있는 선형 대오를 아직도 즐기므로 냉전 세 력 이라고 비꼴 만하다. 선형 대오를 선호하는 한 그람시(Gramsci)가 언급하는 진지전 ( 陣 地 戰 )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범국민 운동본부 에 가담하지 않은 네티즌들이 진지전을 벌이며 정치 세력화(노사모가 대표적인 사례) 하고 있다. 온라인 운동 세력이 탄핵무효 투쟁에 상당히 큰 영향력 을 발휘한 사실을 알고 있는 오프라인 운동단체들은 여전히 선형 대 오를 유지함으로써, 진지전에로의 통로를 봉쇄하고 있다. 필자의 이런 주장에 대하여 아직도 기동전( 機 動 戰 )이 중요하므 로 선형 대형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반론이 나올 법하며, 그럴 수 밖에 없는 운동단체 내의 상황도 이해할 수 있다. 필자가 상황론의 입장에서 선형 대오의 유효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선형 대오의 맨 앞에 서는 마당발 명망가의 세대교체(?)는 이루어져야 한 다. 마당발 명망가를 앞세우는 것은 반드시 선도투쟁은 아니다. 범 국민 의 국민을 앞세우는 것이 선도투쟁이다. 이런 차원에서 범국민 운동본부 의 경우 국민을 대표할 수 없는 마당발 명망가들은 가능한 한 겸손하게 뒷자리로 물러서는 게 바람 직하다. 그들이 몇십 년 동안 언제나 흰머리 휘날리며 맨 앞자리를 차지하므로 진짜 주인공인 국민 시민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23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35 한겨레신문을 볼 때마다 줄기차게 나오는 마당발 명망가들의 사진을 보는 게 지겨운 시민들이 한둘이 아님을 깨닫고 세대교체해야 할 것 이다. 세대교체라고 말하니 운동을 그만두라는 주문이 아니다. 맨 앞 줄에서 한발 물러나 바로 뒷줄에 서는 연습을 하라는 이야기이다. 36) 자신들이 맨 앞에 선 자리에 해당 사안의 전문운동 단체 간부, 진지 전을 하는 시민들, 양심적인 시민들을 세우라는 이야기이다. 이런 겸 손함이 없으면, 세상은 변했는데도 운동권만은 냉전형 운동대오를 고집하는 시대의 지진아 가 될 것이다. 이런 요청을 고깝게 생각할지 모르는 분들에게 老 子 66장의 欲 先 民 必 以 身 後 之 (백성들에 앞서려면 반드시 몸을 뒤에 서라) 라 는 경구( 驚 句 )를 들려주고 싶다. 4. 촛불의 힘? 깃발의 힘? 두 여중생 사건을 계기로 촛불을 들자고 제안한 앙마 라는 친구 의 기본적인 발상은 운동권이여 깃발을 내리고 촛불을 들어라. 이 었다. 촛불시위가 맨 처음 시작될 무렵 운동권이 여전히 수많은 깃 발을 들고 광화문에 집결했으나 촛불시위의 위력을 실감하고 깃발을 내렸다. 그 이후 탄핵 무효 시위 때 깃발 대신 촛불이 광화문의 밤 36) 바로 뒷줄에 한번 서 보면, 맨 앞줄에 선 사람이 뒷줄에 선 사람을 얼마나 소외시키 고 있는 줄 알게 될 것이다. 이게 바로 선형 대오가 시민들을 소외시키는 지점이다. 맨 앞줄이 바로 뒷줄을 소외시키면서 대중들을 시위의 현장에 모시려고 하는 것은 모심의 정신 이 부족한 소치이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35

236 을 수놓았다. 파병반대 운동 역시 중반전까지는 촛불이 힘 있게 타올랐으나 운동의 재고양기 이후에는 깃발이 다시 나부끼기 시작했다. 파병반 대 운동의 전성기인 2004년 7~8월에는 촛불을 든 사람들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줄고, 촛불을 들었다고 해도 힘 있게 촛대를 쥐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는 촛불시위가 운동력의 한계를 드러낸 징 후일 수도 있고, 다시 깃발의 중요성을 실감한 결과일 수도 있다. 여 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촛불을 들었을 때와 깃발을 들었을 때를 비교하여 어느 경우가 운동력이 더 강력했느냐를 분석하는 일이며, 차후의 운동을 위해 이런 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5. 촛불시위 형식 촛불을 드는 시위형태를 놓고 왈가왈부할 이유는 없으나, 촛불시 위는 앉아서 하는 운동 형태이므로 기본적으로 정태적이다. 그리고 주최 측에서 시위참가자들의 문화적 감성에 어울리는 문화행사 위주 로 촛불시위가 흐르는 경향이 있었다. 파병반대의 정치적 메시지는 양념이 되고 춤판 노래판이 주요 메뉴가 되는 주객전도의 현상도 가끔 벌어진 것 같다. 여기에 촛불시위 현장을 기동대가 철통같이 에워싸기 때문에 경찰이 금 그어 놓은 광화문 자투리땅의 자유지대 에 갇혀 촛불시위를 한 꼴이 되었다. 23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37 독 안에 든 불나방처럼 촛불시위를 하는 바람에 시민들의 참여도 줄어들고 문화행사 중심의 정치적 메시지가 부족한 시위 에 대한 근 원적인 문제제기가 나왔을 법하다. 이런 연유로 국민행동 안에서 시 위방식을 놓고 진군파 와 농성파 로 나뉘어 논란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한다. 진군파는 독 안에 든 불나방들의 정태적인 시위 방식을 벗 어나 경찰의 봉쇄망을 뚫고 미 대사관이나 청와대로 향하자는 선도투 쟁 선호파이고, 농성파는 그냥 주저앉아서 촛불시위를 하되 방식을 개 선하자는 쪽이었을 것이다. 이런 진군파와 농성파의 대립은 6월 항쟁 의 지도부, 광주항쟁 때 전남도청에 들어간 지도부가 이미 겪은 것이 라 새삼스럽지 않으나 이번에도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재현되었다. 37) 6. 느슨한 연대? 강고한 연대? 국민행동은 느슨한 연대와 강고한 연대의 중간쯤 되는 연대 전 선을 펼친 듯하다. 그러나 운동대오가 흐트러질 때 느슨한 연대로 기우는 바람에 가맹단체 숫자보다 적은 동원력을 나타낸 적도 있다. 강고한 연대가 수직적인 조직형태로 나타나 경직될 우려가 있지만 파병반대와 같은 긴장도 높은 운동을 전개할 때는 강고한 연대의 끈 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여기에서 범국민 운동본부 流 의 연대방식에 가벼운 문제제기를 37) 8월 초 광화문의 경찰 봉쇄망을 돌파하기 위해 몸싸움하다가 민주노동당 의원이 부상 을 입은 사건은, 진군파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이루어진 작품의 부작용으로 이해된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37

238 하고자 한다. 큰 사안이 터지면 주도적인 운동단체가 의기투합하든 지 사발통문을 돌려 긴급대책위원회 또는 시국회의를 소집하고 내정 된(?) 지도부와 집행부를 거의 무사통과로 결정짓는다. 이때 수백 개 의 중소 규모의 단체들이 단순참가한다. 단순참가란 회비를 내야 한 다는 의무감이 별로 없이 운동의 기류에 따라 회원들을 집회에 동원 하는 정도의 참여를 의미한다. 이런 유형의 느슨한 연대는 많은 문 제를 야기한다. 운동이 잘될 때는 단순참가 단체들이 너도 나도 참 가하지만, 운동의 열기가 냉각되는 기미가 보이면 썰물처럼 빠져나 가기 때문에 범국민 운동본부 가 속 빈 강정이 될 수 있다. 단순참 가하는 단체가 많을수록 범국민 운동본부 의 집행력이 부족하게 될 뿐 아니라, 자칫 집행부의 주도권을 쥔 인사들이 운동을 좌지우지하 는 꼴이 될 수 있다. 7. 온라인 운동과의 결합 탄핵무효 투쟁에서 맹활약한 네티즌들이 파병반대 운동에 그다 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2003년 9월 말부터 평화 바이러스( -virus.net) 가 인터넷 시위를 주도했고, 10월 20일에 노사모 출신 이 주축이 된 생활정치 네트워크 국민의 힘 이 성명서를 발표했으 며, 오마이 뉴스 등의 인터넷 언론 한겨레신문 홈페이지 등에서도 네티즌들이 파병반대의 기치를 들었으나 국민행동 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다. 네티즌의 힘 사이버 범대위가 1차 파병 때부터 분 발하고 2차 파병 때에는 파병저지 사이버 행동의 날( ~ 23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39 16) 에 사이버 시위를 하는 등 국민행동 과 함께했으나 그 운동의 성과는 미지수이다. 8.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시각 차이 이번 파병반대 운동의 경우 시민운동과 민중운동과의 관점 차이 가 시간이 흐를수록 드러나 노무현 정권 퇴진 문제 등으로 신경전을 벌인 듯하다.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관점 차이는 어제 오늘의 이야 기가 아니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9. 파병 이후에 대비하는 운동의 기획 이미 파병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파병반대 운동과 철군운동 을 이중으로 전개해야 하는 등 운동의 과업이 증폭되어 있는데 운동 열기는 가라앉아 있다. 8월 3일 날 자이툰 부대의 선발대가 출국했 다고 해서 운동이 끝나는 게 아니다. 어쩌면 이제부터 시작인지 모 르는데 중도에 작파하는 인상을 주는 운동권의 분위기에 문제가 있 다. 파병추진 세력보다 뚝심도 끈질김도 부족한 운동을 해서 무엇 에 쓰랴. 38) 38) 파병 이후의 운동거리 중 하나가 이라크 파병 한국군에 대한 모니터이다. 이라크 현 지에서 모니터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현재의 이라크 정세가 이를 허락지 않는다. 에돌 아가는 방법을 취하더라도 반드시 모니터를 지속적으로 실시해야 하고, 이 일을 전담 하는 단체 그룹이 홈페이지 등을 만들어 감시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39

240 Ⅵ. 결 론 추가 파병반대 운동을 통해 한국의 평화 운동이 장족( 長 足 )의 발전을 보인 점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39) 그러나 필자가 앞에서 지적했듯이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평화 운동이 다른 운동 에 비하여 시민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떨어지는 점 40) 을 보완하지 않으면, 파병반대 운동 역시 운동의 지평을 넓히는 데 한계점을 드 러낼 것이다. 파병반대 운동은 한국의 평화 운동권이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기 회를 제공하지만, 운동이 용두사미로 끝나면 오히려 질곡이 될 수도 있다. 최근 자이툰 부대의 선발대 본대가 이라크로 떠난 뒤 운동이 소강상태로 들어가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제1차 파병 때처럼 국회에서 파병안이 통과되자마자 운동의 대오가 흐트러진 사 39) 이라크 전쟁 파병반대 운동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낳았음을 지적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전쟁과 평화 문제에 대한 대중적 인식의 향상이다. 둘째, 외 교 안보 정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의 확대와 개입력의 향상이다. 셋째, 미국중심의 패권체제가 대테러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이른바 의지연합 (coalition of willing)을 요구하듯이, 평화의 실현 역시 전 세계 운동 세력의 연대와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 평화 운동의 국제연대 기반을 강화하고, 지구적 차원에서 문제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능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황인성 이라크 파병반대 운동을 통해 본 한국 반전평화 운동, 시민과 세계 제4호(2003년 하반기) 117쪽>. 40) [미군 장갑차에 의한 두 여중생 피살 관련] 촛불시위는 전국적으로 100만 명을 넘어 선 데 비해 이라크 반전시위는 참여인원이 훨씬 적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반전시위나 행사는 5천 명 정도가 가장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평화 운동은 대중운동이 되긴 아직 어려운 상황처럼 보여요. 솔직히 동원과 참여에는 실패했습 니다. 민주노총이 결합해야 겨우 인원이 모이는 수준이었죠< 시민과 세계 제4호 (2003년 하반기) 37쪽>. 24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41 태의 재판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 시키려는 듯 국민행동 은, 8월 28일 자이툰 부대의 본대가 몰래 성 남공항을 빠져나간 행태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면서 앞으로 철군 투 쟁 에 주력하기로 다짐했다. 국민행동 은, 파병반대 운동보다 철군 투쟁이 몇 배나 어려운 점을 깊이 인식하고 철군 투쟁에 걸맞게 운 동 대오를 재정비하고 운동의 작풍을 새로이 정립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파병반대 운동에 나선 모든 단체 인사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여, (청와대 앞에서 장기간 단식농성을 하고 있 는) 김재복 수사의 다음과 같은 고언( 苦 言 )을 들려준다: 혹시 파병반대 운동이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요? 제가 여기 들어와 앉아 단식기도를 하는 건 그런 분위기가 매우 싫었 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정부가 파병을 강행하면 큰 시민단체들은 투 쟁수위를 더욱 높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운동의 동력이 떨어 졌지요. 우리 군대는 계속 이라크로 가고 있고, 전쟁도 끝나지 않았어 요.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에서 뭘 하고 있는지 시민사회에는 정보도 없습니다. 이건 아니지요. 뭔가 해야지요 반전운동이 이렇게 흐물흐 물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을 목격한 사람은 생명이 얼 마나 애절한 것인지 잘 압니다. 우리 사회에 있는 반전평화 운동가들 도 일반 시민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얘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 들이 가슴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고, 평화 운동의 대열에 동참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러나 운동이 시끄러운 마이크, 확성기여서는 곤란합니다. 목소리만 크고 감동이 없는 것은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41

242 운동이 아니라 빈 메아리 에 불과하지요. < 오마이 뉴스 ( )> <보론> 노무현 정권 퇴진 논쟁에 관하여 2004년 7월 1일 국민행동 의 회의석상에서 노무현 정권 퇴진 논쟁이 시작되었으나, 이 논쟁은 파병반대 운동이 끝날 때까지 지속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 프레시안 ( )>은 다음과 같이 전 한다: 노무현 정권 퇴진에 관한 전면적 문제제기는 [P그룹 즉] 민주노 동당을 지지하는 네티즌들의 모임(민지네)이 시작했다. 이들은 국 민행동 이 국민의 파병반대 열기를 관리하고 있다. 며 좀 더 적극 적인 구호인 노무현 정권 퇴진 을 내세우자. 고 주장했다. 한 민지네 관계자는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주요 단체인사가 파병 에 반대하면서도 노무현 대통령님 파병을 철회해 주세요 식의 읍 소 발언을 하는 등 노무현 정권에 대한 직접적 규탄발언을 자제하 고 있는데 이는 논리적 모순 이라고 비판했다. 국민행동 관계자는 이러한 일각의 비판을 의식해 운영위를 열 고 구호나 운동수위를 논의했지만 노무현 퇴진 구호는 현 상황에 24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43 는 적절치 않다는 방향으로 모아졌다. 며 파병반대와 정권퇴진은 다른 문제인데다가 퇴진구호가 자칫 시민들의 참여를 막고 운동을 협소화시킬 수 있다. 고 설명했다. 노무현 정권 퇴진 과 관련하여 P 그룹의 일부에서 성토하는 대 상은 주로 C 그룹이지만, P 그룹 안에서도 회의적인 부류가 있다. 41) 또 이 사안과 관련하여 N 그룹의 일부가 P 그룹을 비판하기도 한 다. 42) 이렇게 파병반대 운동과 관련된 노무현 정권 퇴진 논쟁은, C 41) 파병을 강행하려는 노무현 정권 퇴진하라는 구호가 집회에서 자주 등장한다. 실천적 으로, 노무현 정권 퇴진을 주장하는 것은 파병을 함으로써, 역시 이윤 증대를 꾀하는 국내 자본과 정권에 대해 전선을 확실히 긋는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 있는 구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구호가 다음과 같은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넘 어가자. 이 구호에 대해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병강행을 어떤 면에서, 노무현과 반대했다가 찬성으로 돌아선, 열우당[열린우리당] 등 부르주아 정치인의 변덕의 소산 으로 판단하고, 대통령이라는 특수한 자리가 노무현을 이렇게 변질시켰다고 여길 수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그들에게 반대하는 것에 머무는 한계를 지니게 된다. 하지만 민노당[민주노동당]이 집권하더라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한다. 앞 서 말한 것처럼 대통령이라는 특수한 자리 가 자본의 이윤 증대를 위한 전쟁과 파병 에 반대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무현 정권을 물러가게 하고 나서, 누 구를 대통령 자리에 세우고, 조금씩조금씩 한 걸음씩 개혁을 해 나가면서,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하다< 국민행동 의 홈페이지 ( 실린 2003년 8월 3일 토론회 자료 >. 42)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현재의 투쟁양상이 주된 타격을 한나라당, 조중동 등의 수구 냉 전 세력과 노무현 정권 내의 파병론자들로 집중하기보다는 노무현 정부만을 타격대상 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이 파병결정을 하는 정책결정권자이기 에 노무현 또한 파병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과 손잡고 노무현 정 부에게 끊임없이, 여러 형태의 파병압력을 가하고, 국민여론을 조작하는 등 파병결정 을 내리도록 정국을 인위적으로 조성하고 있는 한나라당,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 냉전 세력과 노무현 정부 내의 파병론자들이 더 주되고 선차적인 타격대상이라고 할 수 있 다<김서원 반전평화 운동, 반미반전운동 그리고 이라크 파병저지 투쟁, 한국민권연 구소 정세동향 63호(2003년 10월) 14~15쪽>.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43

244 N P 그룹 상호간에 얽히고설켜 있다. 그럼 노무현 정권 퇴진 을 주장한 P 그룹 쪽의 글 두 편을 먼저 소개한다. 1. P 그룹의 노무현 정권 퇴진 관련 문건 1) <[사회화와 노동] 230호( )> 2004년 7월 3일 집회를 둘러싼 파병반대국민행동 참가단체들의 입장 차이는 확연했다. 시청집회를 강행할 것이냐 광화문으로 옮길 것이냐, 청와대와 미 대사관을 향해 행진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규탄 의 목소리를 드높이는 집회를 할 것이냐 아니면 추모 문화제의 기조 를 지속할 것이냐 들로 논점은 좌충우돌 우왕좌왕했지만 이들 사이 의 간격은 쉽게 좁혀질 것이 못 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충돌만큼 이 날 집회에 참여한 대중들의 반응도 극단적이었다. 어떤 이는 성난 만큼 노무현 퇴진의 목소리를 높였고, 어떤 이는 실망 한 만큼 집으 로 빨리 발길을 돌렸다. 분노와 무기력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한편, 시민단체-들(!)[C 그룹] 역시 최근의 파병반대 운동에 대 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시종일관 파병 반대 운동 내 [P 그룹]의 노무현 규탄 / 퇴진 주장을 문제 삼고 있 다. 이들은 파병반대 운동내의 노무현 규탄 / 퇴진 주장에 매우 신 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이들 목소리를 잠재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민중운동[P 그룹 /N 그룹]의 일부 인사들마저 여기에 동요하고 있는 24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45 데, 김선일을 죽음으로 내몬 노무현 정권과 미국에 대한 분노의 함 성을 내자고 하고서도, 시민단체들의 이런 비판이 제기되면 기다렸 다는 듯이 이에 동조하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김선일 씨가 피살된 직후 광화문에는 촛불이 밝혀졌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토론하기 시작하였다. 전쟁은 안 된다., 왜 우리국 민이 거기서 죽어야 하느냐 부터 미국이 만악의 근원이다, 김선 일을 죽음으로 내몬 노무현과 외교부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까 지 다양한 의견이 오고 가기 시작했다. 김선일 피랍 사실을 노무현 정권이 고의적으로 은폐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후자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급기야는 노무현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물러 나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촛불의 한계가 지적 되기 시작했다. 추모의 분위기를 넘어서야 한다는 문제도 제기되었 다. 노무현과 싸워야 하는데, 촛불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대중들의 터져 나오는 발언이 자유발언을 가장한 활동가의 선동 에 불과하다며 맘대로 험담하고 외면할 생각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들이 외치는 목소리의 진실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바로, 효순 이, 미선이 추모의 촛불과 탄핵무효의 촛불, 그리고 지금 김선일을 추모하는 촛불 사이에는 빗대려야 빗댈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한다 는 사실 말이다. 효순이, 미선이 추모의 촛불과 탄핵무효의 촛불 이 불평등한 한미관계와 수구 보수 세력의 퇴행성을 드러내기는 했지 만, 그 촛불 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을 진두지휘하는 사령 관이자, 온갖 감언이설로 민중운동을 지속적으로 분열시켜 온 노무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45

246 현 만큼은 단 한 번도 문제 삼지 않았다. 탄핵무효의 촛불 은 오히 려 반대방향을 밝혔다. 이 촛불 은 노무현의 자멸을 지연시키고, (아니, 정확히는 노무현의 올인 전략의 기반이 되어) 역사의 무대 위 로 복귀할 길을 안내한 촛불 이었기 때문이다. 대중이 심각한 혼란 에 빠지고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지도부가 심각한 혼란에 빠진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김선일 피랍 사실이 알려진 당일은 누구든 그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촛불을 들 수 있었지만, 그의 죽음이 알려진 다음 날부터는 누구든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노무현은 테 러행위를 규탄하며, 국제사회와 함께 단호히 대처할 것 이라며 이라 크에 대한 정치적 보복을 선동하고 다녔고, 광화문의 촛불에게 자신 을 지지하는 촛불 인지, 자신의 파병강행 결단을 비난하는 촛불인지 양자택일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광화문 촛불은 이렇게 균열하기 시 작했다. 언제나 그랬듯, 국가의 기본적 기능은 주어진 상황과 조건에 서 이데올로기적 수준에서든 강제적인 수준에서든 대중의 명확한 인 식과 정치적 단결을 저지하는 것이었고, 지금도 이에는 변함이 없다. 김선일 피살 이후 광화문의 촛불을 분열시켜야 하는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노무현, 국방부, 외교부, 국회, 언론 모두 여기 에 충실했던 것이다. 탄핵무효의 촛불 을 들었던 상당수의 인사들은 탄핵무효운동의 촛불 과 파병반대 광화문의 촛불을 구별할 수 없었 고, 이 혼란을 수습할 길이 없었다. 이 상태로는 선택 을 강요당한 광화문 추모의 촛불이 파병철회운동의 촛불로 번질 수 없을뿐더러 사그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광화문에 모인 대중들이 추모의 분위기를 넘어야 한다. 고 주장한 것은 바로 이를 24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47 지적한 것이다. 광화문에 모인 대중의 촛불이 파병철회운동으로 나아가기 위해 서라도 노무현 지지와 탄핵무효운동의 잔흔이 남아 있는 광화문의 촛불 을 당장 놓아야 한다. 새로운 촛불을 들어야 한다. 광화문의 촛불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노무현의 강요된 선택 앞에서 시민운동 진영[C 그룹]은 노무현에 대한 비판을 자제할 것을 요구했다. 파병철회운동이 촛불 속에서 분 열하도록 오히려 이를 부추겨 온 것이다. 민언련의 최민희 사무총장 은 백만 시민이 결집해야 파병철회가 가능 < 시민의 신문 6월 29일 자>하다며 이를 선도해 왔다. 그는 노무현과 열린우리당 지지자들 중 상당수가 파병철회를 요구하고 있다며 파병철회운동이 이들을 아우 를 것을 주장했다. 이어 노무현이 피랍사실을 알고 있었겠느냐며, 김 선일 피살의 책임소재를 미국으로-만(!) 돌리고, 노무현과 청와대의 정치적 책임소지는 교묘히 회피했다. 그는 또한 파병철회 운동의 주 타깃이 노무현이 되고, 심지어 탄핵까지 거론되자 노무현 지지자들이 정서적 불일치 로 여기서 이탈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까지 주장하 였다. 더불어 노무현 퇴진운동은 정권교체 이후 진보 진영의 로드맵 을 그릴 수 없다. 며,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범개혁 진영의 실패로 비쳐지고, 따라서 이 정부가 개혁적 로드맵을 지키도록 견인하고, 때로는 힘을 실어 주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더 중요하다. 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주요 단체들 사이에서 노무현에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47

248 대한 정치적 책임(노무현 규탄 / 퇴진)을 어떻게 물을 것 이냐, 집회 기조와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이냐 에 대해 논의를 할 때마다 시민운동 단체 책임자-들(!)[C 그룹]이 내세우는 논거는 여기서 벗어나지 않 는다. 참여연대 김기식 사무처장이 파병철회 운동과 정권퇴진 운동 은 차원이 다른 운동 이라며, 운동의 성격과 목표가 달라지는 만큼 유보해야 한다. 는 좀 더 세련된 논지를 제시한 것 말고는 말이다. 피랍되어 있는 김선일이 나는 살고 싶다. 이라크 파병을 철회하 라! 며 목숨이 경각에 달린 채 부탁해도 피랍 불구, 파병원칙에는 변함없다. 며 차라리 죽을 것을 종용했던 것을 보고도 파병철회 운 동과 정권퇴진 운동이 무관하다는 주장을 할 수 있는가? 노무현의 이라크 파병 결정이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의사 에 기반을 둔 것임을 공언하고 다니는데도, 파병 결정으로 자신의 국민이 비참하게 죽었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노무현이 국 민의 힘에 밀려 파병을 철회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가? 노무현은 지금 정권의 명운(!)을 걸고 파병을 강행하고 있다. 수 도이전 사업 반발조차 자신에 대한 퇴진운동이라 여기는 노무현에게 정권의 명운이 달려 있는 파병철회 방침이 (한나라당의 정치적 공세 차원이든, 대중들의 정치적 반란 차원에서든) 강요된다면, 이는 노무 현 정권의 자멸을 뜻하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핵심 의원들은 이런 상황을 분명히 깨달았고, 노무현 정부의 한국군 파병을 노골적으로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파병철회 운동이 노무현지 24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49 지 운동(노무현 지지자들)을 포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무 슨 정치적(!) 불일치 인가? 지금 상황에서 파병반대 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은 열린우리당의 핵심 의원들이 지배 세력의 단결을 도모해 가듯, 정반대방향에서 노 무현 지지운동과 결연히 단절하고 난 뒤, 파병반대 운동에 참여하는 대중의 정치적 단결을 이루는 것이다. 그들이 노무현 지지 냐 파병 철회냐 식으로 파병반대 운동을 뒤흔든다면, 그와 정반대로 전 세 계 민중을 죽음으로 내모는 파병 / 전쟁을 강행할 것이냐, 민중의 자기 통치의 권리를 강화할 것이냐 로 저들을 뒤흔들어야 한다. 노 무현의 강요된 선택 위에 놓여 있는 파병반대 운동은 스스로 분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정치적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 정서적 불일치 를 앞세우며, 파병반대 운동의 최소 단결을 해치 면서까지 노무현 규탄의 목소리를 낮출 것을 요구하는 시민운동[C 그룹], 노무현의 테러보복-파병강행방침을 문제 삼지 않고 되려 파 병반대 운동의 정치적, 대중적 단결을 강조하는 운동을 문제 삼는 시민운동은 지금만큼은 전쟁에 반대하는 파병철회운동 을 하는 것 이 아니라 노무현을 지지하는 노무현 엄호운동 을 하는 것이다. 오늘 파병철회운동이 스스로 단결을 도모하고, 진정으로 그 범위 를 확장하려 한다면, 노무현의 얼치기 도박판부터 거두어야 한다. 노무현 지지 와 파병철회 를 선택할 것을 강요하는 도박판을 물리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49

250 치고, 노무현 퇴진 과 파병철회 를 나란히 앞세워야 한다. 우리가 그의 강요에 내몰려 선택할 것이 아니라, 노무현이 우리의 주장에 내몰려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파병반대 운동의 단결과 대중적 확장은 민중운동의 일부 인사들 이 주장하듯 어정쩡하게 타협하여 조정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 다. 우리들의 정치적 단결과 대중적 확장을 가로막는 장애를 제거해 야 가능하다. 무엇이 우리의 정치적 단결을 가로막는가? 무엇이 파 병반대 운동의 대중적 확장을 가로막는가? 노무현과 그의 행정수반 들의 파병 / 전쟁 참여노력이 우리의 정치적 단결을 가로막았다. 김선 일의 죽음을 두 눈으로 보고도 반테러 / 복수 운운하는 노무현 정권 의 방침이 우리의 대중적 확장을 가로막았다. 대중적인 참여를 보장 하는 집회 공간마저 없애고, 청와대와 미 대사관을 향해 대중의 분 노가 폭발되는 것을 막으려는 경찰의 저지선이 우리의 정치적 단결 을 가로막았다.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의 저 더러운 입놀림과 언론 의 기만적인 펜대가 우리의 대중적 확장을 가로막았다. 이를 끊어 내야 한다. 시민운동 진영[C 그룹]처럼 노무현 정권에 대한 분명한 비판을 주저하며 이 장애를 제거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이야말로 파 병반대 운동의 정치적 단결을 저해하는 것이고 나아가 대중적 확대 를 머뭇거리게 하는 것이다. 시민운동 진영들이 강변하듯 지금 파병 반대 운동의 머뭇거림을 노무현에 대한 규탄 / 퇴진 탓이라고 보는 것이야말로 파병반대 운동을 질식시키는 것이다. 25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51 2) 다함께 김하영 씨의 글 43) 국민행동 지도부가 김선일 씨 피살에 대한 노무현의 책임을 분 명히 하지 않고 읍소형 추모 집회로 일관함으로써 대중의 분노와 투 지를 억눌렀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국민행동 집회의 한 사회자는 김선일 씨가 피살된 뒤에도(6월 26 일 집회) 대통령님, 국민들의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하고 외쳤고, 빗속에서 진행된 7월 3일 집회는 3분의 2가량이 추모 공연이었다. 주요 시민단체들[C 그룹]은 김선일 씨 피살이 파병강행과 직결 되면 노무현 진퇴 문제와 연동될 것이라는 점에 강한 부담감을 느끼 고 있다. 최근 등장하고 있는 미국 책임론은 노무현 책임론을 피하기 위 한 방편으로 강조되는 것이다.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은 과연 지 금 이 사안을 놓고 주된 타깃을 노무현 대통령에 두어야 하는가 정치적으로 미국의 책임이 가장 크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책임이냐 노무현의 책임이냐를 나누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일방주의적으로 이라크를 침략한 것은 미국이지만, 그 침략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세계 3위 규모의 파병을 결정한 것은 바 43) 김하영 씨의 글은 국민행동 의 홈페이지( 실려 있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51

252 로 노무현이다. 더구나 목숨을 살려 달라는 김선일 씨의 애원을 뿌 리치고 파병강행 방침을 발표한 것은 살인방조나 마찬가지다. 주요 시민단체들[C 그룹]과 좌파민족주의 계열의 남북공동선언 실천연대[N 그룹]는 집회에서 노무현 퇴진 주장이 나온 것이 집회 규모가 축소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국민행동이 노무현 퇴진 요구를 내거는 것은 부적절할 것 이다. 국민행동은 파병에 반대하는 단체들의 공동전선이므로 노무현 퇴진 같은 것을 걸자고 하면 분열하거나 마비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행동은 파병에 반대하기만 한다면 누구든-노사모나 열우당 지 지자들도-함께할 수 있는 게 좋다. 그 대신, 국민행동에 속한 단체들은 나머지 소속 단체들의 회원들 을 향해 노무현 퇴진 주장을 포함해 자기 입장을 선전할 자유가 있 어야 한다. 그래야 공동행동에 참가한 대중이 어떤 단체와 지도자가 올바른 주장과 실천 방향을 제시하는지 판단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파병 반대 집회에서 노무현 퇴진 주장을 가로막는 것은 운동을 대중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운동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국민행동 에 소속된 단체 중 시민운동 경향의 단체들[C 그룹]은 노무현 정권 퇴진을 주장하면 파병운동의 대중성을 확보할 수 없 25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53 다. 고 하는데, 이런 관점이 오히려 운동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라고 김하영 씨는 주장하고 있다. 김 씨는 노무현 정권의 책임이 상당히 있음에도 미국 책임론으로 돌리는 게 문제라면서, 민언련 사무총장 의 미국 책임론과 남북공동선언 실천연대를 병렬적으로 다루고 있는 데 이는 현상적인 파악이다. 민언련은 평소에 미국과 관련된 운동을 하는 곳이 아니며, 단체의 업무상 민중운동[N 그룹+P 그룹]의 기류 와는 떨어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억지로 분류하자면 시민운동 계열의 단체[C 그룹]라고 할 수 있다(물론 필자는 한국의 시민사회 운동권을 단순히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떨 때는 이렇게 구분하는 게 간편한 경우가 있다). 남북공동선언 실천연대는 미국에 상당히 비판적인 민중운동 계열의 단체이다. 여기에서 미국 반대 운동에 열심인 민중운동 계열[주로 N 그룹] 의 단체가 파병반대와 미국반대를 연계 짓는 것은 별로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시민운동 계열 단체[C 그룹]나 그 소속원이 파병반대와 미국반대를 연결 지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물론 최민희 총장 등이 파병을 강요하는 미국에 대한 비판으로 언급한 것이겠지 만 ). 평소에 미국 반대 운동에 무관심하거나 경원시(?)하던 시민운 동권[C 그룹]이 파병반대 운동에서 유별나게 미국반대(비판)의 목소 리를 높이는 가운데 노무현 정권 퇴진구호를 잠재우는 결과를 빚는 다면, 이런 상황에 대한 예리한 접근이 필요하다. 김하영 씨가 이 점 을 고려하여 자기주장을 펼쳤으면 더 심도 있는 글이 되었을 것 같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53

254 2. 노무현 정권 퇴진 논쟁, 국민행동 밖으로 번져 국민행동 이라는 파병반대 운동조직 안에서 일어난 노무현 정권 퇴진 논쟁이, 장외로 흘러나와 예상 밖의 논란을 거듭했다. 1) 김태경 기자의 기고문 국민행동 안에서 진행되던 노무현 정권 퇴진 논쟁이, 김태경 기자( 오마이 뉴스 소속)의 < 인물과 사상 기고문(2004년 9월호)> 을 통해 국민행동 밖으로 번진다. 다음은 김태경 기자의 기고문과 관련하여 < 프레시안 ( )>이 쓴 기사 내용이다: 오마이 뉴스에서 외교안보를 담당하고 있는 김태경 기자는 최근 발간된 < 월간 인물과 사상 9월호>에 기고한 노 정권과 시민단체 들, 유착 혹은 상생? 이라는 기사를 통해, 기자의 표현을 빌면 진보 언론한텐 비판의 무풍지대 였던 이른바 주류 또는 이름 있는 시 민단체들 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 펜을 들이댔다. 그는 우선 이라크 추가 파병과 관련해선, 내 생각을 솔직히 말 하면 이른바 주류 또는 이름 있는 시민단체들[C 그룹]이 현 정부 의 잘못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과감하게 비판하기보다는 미국 탓, 수 구 세력 탓 또는 정부 안의 친미라인 탓으로 돌리며 변죽만 울린다 고 느껴졌다. 며 심하게 말하면 노 대통령님, 파병하지 말아 주세 25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55 요. 라고 호소하는 읍소형 운동으로 전락하고 있는 듯 보였다. 고 질타했다. 김태경 기자의 비판이 제기되자, 비판의 대상이 된 시민단체들[C 그룹]은 적잖이 곤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2) 김태경 기자의 기고문에 대한 반박문: 이태호 실장< 오마이 뉴스 ( )> 작성 <오마이 뉴스> 김태경 기자는 최근 월간 <인물과 사상> 9월호 에 노 정권과 시민단체들, 유착 혹은 상생? 이라는 제하의 글을 발 표했다. 이 글에서 김 기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파병반대 의지나 움직임 이 느려지는 것이 눈에 띄었고 지난 6월 23일 김선일 씨가 피살된 후 벌어진 일련의 촛불시위에서는 문제가 심각했다. 이른바 주류 또는 이름 있는 시민단체들이 현 정부의 잘못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과감하게 비판하기보다는 미국 탓, 수구 세력 탓 또는 정부 안의 친 미라인 탓으로 돌리며 변죽만 울린다고 느껴졌다. 이는 노 정권을 직접 겨냥하지 않으려 했던 주류 시민단체가 파병반대 운동을 읍소 형 운동으로 전락시켰기 때문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글은 정확한 사실에 기초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의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55

256 도된 결론을 이끌어 내려 한 나머지 비약과 과장, 사실검증 없는 불 충분한 추론으로 점철되어 있다. 김 기자의 기사 외에도 이런 추론 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어 적절한 반론이 필요하겠다고 판단하여 몇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은 파병에 반대하고 그 결정을 철회시키기 위 해 모인 360개 단체의 연대체이다. 연대체에서 파병을 근거로 노무 현 퇴진 구호를 내걸 때에는 우선 소속단체들의 정세인식이나 위임 한 실천범위에 합당한 것인가, 내건 구호를 관철시킬 수 있는가를 면밀히 따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대운동이 실없어지거나 목소리 높은 소수의 정 파적 운동으로 축소, 왜곡되고 만다. 말하자면 연대단체는 노무현 퇴 진이 좋냐 나쁘냐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노무현 퇴진을 내거는 것 이 파병철회운동을 고조시키는 데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로 판단 한다. 김태경 기자도 기사에서 언급했듯이 노무현 퇴진 구호는 운동 기술적으로도 문제가 적지 않은 구호였다. 주지하듯이 대통령 탄핵 은 간단치 않은 일이다. 쟁점이 파병이냐 아니냐를 넘어 탄핵이냐 아니냐, 친노냐 반노냐로 확장되는 것이 파병반대 운동에 실익이 있 는지도 전술적으로 따져 봐야 한다. 25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57 노무현 퇴진 문제를 일부 단체[P 그룹]가 제기하긴 했다. 그러나 파병반대 운영위 소속 대다수 단체들이 동의하지 않았다. 김태경 기 자의 가설처럼 시민단체만 반대한 것이 아니다. 민주노총, 민노당, 민중연대, 통일연대 등 대다수 민중단체들이 동의하지 않았다. 운영위원회 대다수 단체가 노무현 정권 규탄이 적절한 구호라고 입장을 밝혔다. 노무현 정권에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라면 현실적으 로 가능하지 않은 실현가능성 없는 노무현 정권 퇴진보다 노무현 사 과, 노무현 규탄 등을 외치는 것이 적절한 수준이라고 본 것이다. 회 의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던 유일한 단체인 사회진보연대 [P 그룹]도 노무현 퇴진이 공통의 구호가 될 수 없는 조건과 정세에 공감했다. 운영위원회에서 세 차례나 이 문제가 거론되었던 것은 노무현 퇴진을 주장하는 단체가 있어서가 아니라 회의석상에서는 다들 동의 해 놓고 집회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퇴진을 주장하는 이들이 공동구호를 외치는 최소한의 공동행동 의 순간에도 자신들의 퇴진 구호를 외치는가 하면 주체를 명시하지 않은 노무현 퇴진 손 피켓을 집회장에서 무차별적으로 배포한 데 대 해 상황실에서 문제제기하고, 이에 대해 소수 그룹이 선동의 자유를 지도부가 가로막는다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논쟁이 격렬해진 것이다. 그리고 이 논쟁은 주로 민중연대 소속단체들 간[P 그룹과 N 그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57

258 룹 사이에]에 이루어졌다. 필자가 해프닝이라고 표현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흔히들 파병반대국민행동 지도부를 비판하는데 연대기구 에 지도부가 따로 있을 리 없다. 매 회의의 결정사항을 공동으로 실 천하는 것이다. 의사결정회의는 운영위원회다. 운영위 구성단체에는 민중단체가 더 많다. 사족이지만 한 가지만 더 언급하기로 하자. 파병반대 촛불집회에 서 시민단체 사회자가 노무현 대통령님 파병을 철회해 주십시오. 라고 읍소했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간혹 접한다. 프레시안과 부안독 립신문 창간호에도 이와 유사한 기사가 실렸다. 그 뒤로 파병반대 운동을 읍소형 운동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간간이 있다. 실제로 6월 26일 집회 말미에 수차례 반복된 이 멘트는 필자가 보기에도 집회분위기에 적절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 다고는 여기지 않았다. 집회장에 가면 감정에 복받쳐 이러저러한 말 실수나 분위기에 맞지 않는 멘트도 더러 나오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날은 김선일 씨 유해가 귀국해 빈소에 안치된 날로서 추모와 규탄 의 안배가 만만치 않았던 까다로운 집회였다. 따라서 읍소형 멘트는 사회자 나름대로 파병철회의 절절함을 표 현하고자 하는 것이었지 말 그대로 읍소 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예 컨대 파병반대 전쟁피해자 전국도보순례에 참여했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도 청와대 앞에서 청와대에 절을 하며 파병철회를 읍소했지만 25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59 모두가 감동을 받았을지언정, 왜 노무현에게 읍소하냐고 비난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날 집회 사회자는 시민단체인사가 아니라 여 중생 촛불집회 사회자로 잘 알려진 민노당 관계자였다. 3) 이태호 실장의 글에 대한 반론: 박준도 처장< 프레시안 ( )> 작성 김태경 기자의 글을 Pressian 에서 처음 보았을 때, 난 그가 상 황을 상당히 예리하게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기자로서 의문을 품을 만한 것들, 그러니까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시민단체[C 그룹]의 이중적인 태도를 문제 삼았고, 이때 제기될 수 있는 비판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글을 맺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글에 대한 시민단체[C 그룹]의 반응이 어떨지 몹시 궁 금했었다. 그러던 차에 Pressian 과 OhmyNews 에 실려 있는 참 여연대 이태호 정책실장(이하 이태호 실장)의 반박 글을 보았다. 그 의 글을 처음 보았을 때 난 너무도 실망했다. 나는 이태호 실장의 글이 시민단체[C 그룹]의 입장을 방어하기 에 급급한 나머지 노무현 퇴진 에 대한 모두의 입장을 애매하게 서 술하거나 뭉뚱그려 놓았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서로 입장 차이가 무엇인지, 무엇을 가지고 논쟁을 했는지를 애매하게 만 들어 놓고 말았다. 사회진보연대[P 그룹]의 입장을 훼손해 놓은 것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59

260 은 둘째 치더라도 이렇게 되면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논쟁을 했는 지, 앞으로 어떻게 논쟁해야 하는지 서로 근거가 없어지게 된다. 나는 그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정확히 알고 있다. 노무현 퇴 진 을 둘러싼 논쟁은 매우 소모적이었고 쓸모없었다는 것, 이것이다. 이태호 실장이 정확히 이 효과를 노리고 썼는지 알 길은 없지만, 나 는 파병반대 운동에서 노무현 퇴진 을 둘러싼 논쟁의 성과가 이렇 게 유실되는 것은 불가하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파병반대 운동이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에 맞서는 유력한 운동으로, 전 세계 민 중의 평화를 향한 의지를 스스로 담으려는 운동으로 성장하려거든 이 논쟁의 의미를 정확히 재확인해야 한다. 분명히 전개된 논쟁은 운동 자체를 정치적으로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시민단체[C 그룹]가 어떤 입장이었는지, 우 리가 어떤 입장이었는지 기억나는 대로 상세히 남겨 보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의 노무현 비판이 파병반대 운동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하여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좀 더 정확히 주장하고자 한다. 이태호 실장은 어떻게 기억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김태경 기 자 말대로 파병반대국민행동의 대통령 책임 기조를 잡는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김선일 사망 직후 추모제를 앞두고 진행된 첫 운영위에서 민중운동[P 그룹+N 그룹]의 상당수 26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61 단체들이 대중의 분노가 드러나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참여연대[C 그룹]의 참석자는 추모기조 를 강조했고, 민언련[C 그룹] 참석자는 노무현 지지자들을 참석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아예 노무현 비판 을 자제하고 문제의 근원인 미국 에만 비판의 초점을 맞추자고 주장했 다. 6월 26일 대회기조는 이라크 파병철회, 피랍상황은폐 진상규명, 미국 파병압력 규탄 이자 동시에 추모기조로 치르기로 했다. 잘 아는 것처럼 이날 집회에 대한 평가는 서로 극단을 달렸다. 한 극단에는 추모와 읍소로 될 일이 아니며 노무현이 이 사태에 대 해 정치적으로 책임을 져야 그제야 파병이 철회된다. 는 주장이 있 었다면, 또 다른 한 극단에는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에 대 한 야유는 불공평한 것이며 노무현을 향한 정치적 비판이 너무 극단 적이거나 노골적이면 평화적 감수성에도 어긋나고, 일부 참석자들의 경우 그 말에 놀라 파병철회 집회에 동참할 수 없게 된다. 는 주장 이 있었다. 파병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퇴진당할 것 이라는 경고성 발언을 한 청소년과 노무현 퇴진을 주장한 인쇄 노동자의 발언을 놓 고 민중운동 진영이 사전에 조직한 것 아니냐 며 그 자리에서 의문 을 제기했던 사람은 참여연대 관계자였고, 앞서 의견은 운영위 회의 에서 여성단체연합[C 그룹]의 참석자가 제기한 것이다. 공개된 비상시국회의 자리에서 노무현 퇴진론자로 알려진 한 참 석자가 현 시기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정치적 목표에 대해 토론하자고 할 때, 이 자리는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주요 방침을 결정하는 자리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61

262 가 아니다. 라며 이를 제지한 것도 참여연대 관계자였고, 노무현의 정치적 책임에 대한 언급이 교묘히 빠져 있는 대국민호소문 에 격 분한 참가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려 했을 때도, 참여연대 관계자는 채택할 것인가 여부를 놓고만 논의하자. 고 주장했다. 물론 이태호 실장은 수정할 부분이 있다면 수정하면 되는 것 아니냐. 고 제안하 였지만, 격앙된 상황에서 아무도 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 무 문제없는 훌륭한 호소문 이라는 참여연대 대표의 압박이 있었음 에도 끝내 이 호소문은 채택되지 않았다. 당일 열린 운영위에서 민중운동 단체들과 인권단체들은 대중의 분노가 있고, 분노의 대상이 노무현을 향하고 있는 만큼 정치적 기 조는 적어도 노무현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분명히 하자는 의견을 강 하게 제기하였다. 그에 따라 파병철회. 진상규명, 대통령사죄(대통 령책임), 미국규탄, 점령반대 라는 5개 기조가 확정되었다. 또, 이제 까지 집회와 달리 7월 3일 집회만큼은 대중의 분노를 모으고 노무 현과 미국을 규탄하는 집회로 진행하자고 결정하였다. 하지만 한 시민단체[C 그룹] 활동가가 제출한 기획안은 여전히 변함없는 추모대회 안이었다. 급하게 기조를 바꾸어 보려 했지만 시 간제약이 있었다. 이 와중에 장소조차 긴급하게 변경되고 행진 계획 마저 재론되는 등 모든 것이 혼란에 빠지고 만다. 비마저 내려 더더 욱 초라해진 7월 3일 집회는 집회참석자들과 진행자들 사이의 불신 과 대립이 극단적으로까지 전개되고 말았는데 전사가 있었던 것이다. 26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63 이후라고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7월 14일 운영위에서 참여연 대[C 그룹] 관계자는 집회참석자들이 노무현 퇴진 집회에 나왔는 지, 파병철회 집회에 나왔는지 혼란스러워한다. 며 파병반대 운동 은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을 포함하고 있는 만큼 파병반대 운동의 다 수화를 위해서는 파병철회만을 주장해야 한다. 는 의견을 다시 제기 했다. 또 파병반대국민행동의 투쟁 기조 자체를 문제 삼고는 파병 반대국민행동이 노무현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미국문제는 부차화되 고 있으며, 민중운동의 고착화된 집회운영이 대중의 집회참석을 가 로막았다. 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제 더 이상 광범위한 대중이 운집 하는 집회는 곤란할 것이고, 결사투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라고 주장한 뒤, 김선일 피랍 은폐 의혹에 대한 국회 청문 회와 국정감사가 제대로 진행되는지, 이를 소홀히 하면 국회의원 소 환운동(노무현이 아니라 국회의원 소환)을 전개하자. 는 의견까지 덧 붙였다. 역시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대중들이 폭넓게 파병반대 집회 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노무현의 보복 선동에 밀렸기 때문이지 반 대가 아니다. 라는 주장과, 파병을 강행한 실질적 주체는 미국도 한 나라당도 아니라 노무현과 열린우리당 이라는 주장,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공동전선 이라는 주장들이 반론으로 제기되었다. 노무현 퇴진 주장이 자꾸 나오는 것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것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63

264 이냐는 의견을 주고받으면서부터는 더더욱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시 민단체와 민중단체 사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민중운동 단체들 사 이에서도 격렬했다. 일체의 퇴진 주장은 불가하다는 의견에서 완전 히 가능하다는 의견까지 이견은 좁혀질 여지가 없었다. 참여연대 회 의 참석자는 퇴진 주장을 외치고 선전선동하는 사람들이 사려 깊 지 못한 행동을 하고 있다. 며, 집회가 계속 이렇게 진행될 경우 결 국에는 파병반대국민행동 명의의 집회 개최 자체가 제한하게 되지 않겠냐. 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비치기도 했다. 이날 이후 관련 논 쟁은 상반기 파병반대 투쟁 평가토론에서 서로의 의견을 조금씩 주 고받은 것 말고는 더 이상 전개되지 않았다. 나 역시 대통령 사죄와 대통령 책임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보지는 않지만, 이상에서 보듯 김태경 기자의 글에 인용되어 있는 오창익 사무국장 말대로 대통령 사죄(책임), 규탄 기조를 확정하 는 데만도, 그리고 그 기조에 따라 집행을 하는데도 간단한 일은 아 니었다.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김선일 씨의 죽음에 대한 모든 정치적 책임을 노무현 이 져야 한다는 주장 자체였고, 이 목소리를 가장 높인 것은 퇴진 이라는 구호로 자신의 주장을 요약하려 했던 이들이었다. 또, 보는 바와 같이 여기에 이런저런 이유로 끊임없이 이견을 제시했던 그룹은 이른바 이름 있는 시민단체[C 그룹]였다. 그럼 시민단체의 노무현 비판 혹은 노무현에 대한 입장과 태도는 진실로 어떠했는가? 어떤 맥락에서 진행되었는가? 이를 좀 더 살펴 보자. 26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65 노무현 비판에 머뭇거렸다는 사실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단체 는 민언련[C 그룹]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민언련은 회의 자리에서 (전술적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노무현 비판은 자제하고, 모든 것의 원흉인 미국을 규탄함으로써 아예 우회하자. 는 제안을 하기도 했고, 최민희 사무총장은 인터뷰에서 김선일 사망 이후 피랍과정에 대한 의 혹이 한참 막 제기되던 시절에 당당히 노무현을 옹호했기 때문이다. 7월 16일 운영위에서 여성단체연합 [C 그룹]의 회의 참석자는 오늘 노무현 정부가 보이는 모습은 노무현 정부 내 우파(특히, 국 방외교통상 라인)들의 입김이 강해서 나타난 결과 고, 따라서 노무 현 정부 내 좌파가 주도하는 개혁에 힘을 실으면서 파병반대 운동을 벌여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 참석자 또한 노무현 퇴진 이후 로드 맵 을 걱정하였는데, 1987년 당시에는 그래도 진보야당이라도 있었 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퇴진을 이야기할 수 있느냐며 퇴진 주장에 강한 의문을 표명했다. 그럼, 참여연대는 어땠을까? 노무현 정부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하라는 주장이 제기될 때마다 참여연대가 당당히 내놓는 근거가 있는 데, 바로, 정부의 조직적 은폐의혹이 밝혀질 경우, 노무현 정권의 진 퇴문제를 거론할 것 이라는 참여연대 관계자의 한겨레신문 인터뷰다. 이 인터뷰 하나로 참여연대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가 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외교적 언변에 능숙한 참여연대가 이 말의 진의를 모를 리 없는데, 이 말은 하나마나 한 소리기 때문이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65

266 김선일 사망 직후 참여연대[C 그룹]가 제출한 성명서는 파병반 대국민행동을 제안한 단체라는 명성에 걸맞게 썼는지 의문이 들 만 큼 점잖게 썼다. 이 성명서는 김선일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것 은 파병 전면 재검토 라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파병 철회 도 아니고 파병 재검토 다(파병반대국민행동의 공식입장은 무조건 파병 철회 다. 단, 대국회사업에 한해서 예외적으로 재검토 를 구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내의 미묘한 갈등을 강조하며, 당면목표(파병철회) 달성을 위한 상당한 정치 테크닉을 강조하는 단 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김선일 씨 피랍 직후 상황도 아니고, 주검이 되어 돌아오게 된 마당에 대국회사업에서나 구사해야 할 세련된 언사를 구사하고 있으니 여러모로 납득하기 어 려운 면이 있다. 김선일이 억류된 상황을 눈으로 직접 보고도 파병강행한 것을 보며, 우리는 노무현이 마지못해 파병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의 사활 을 걸고 파병을 강행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 니라, 바로 노무현이 이 참혹한 전쟁터에 우리를 내몰고 있는 것이 다. 따라서 노무현 퇴진 주장은 복받쳐 오르는 감정의 배출이건, 선 전 슬로에 불과하건, 전술 전략적 주장이건 간에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런 주장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구호 자체, 이런 주장 자체 가 논쟁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왜인가? 굉장히 다양한 정치적 입장의 단체와 개인들이 모여 있는 연대체 내에서 왜 특정한 정치적 입장이 매번 논란이 되는가? 26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67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노무현 퇴진 주장 자체를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매번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앞서 서술한 대로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 대부분이 시민단체 [C 그룹] 관계자였고, 노무현 비판 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이들로서는 이런 주장 자체가 집회장에서 오 고 가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관계자 중 몇몇 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에 대한 대중의 즉석 야유를 민주노동당 관 계자가 선동한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하고, 자유발언대에 서 터져 나온 퇴진주장을 보면서는 지금 촛불집회 자유발언은 자유 발언을 가장한 특정정치집단의 정치발언이라며 (내 보기에 촛불집회 의 유일한 자랑거리인) 자유발언 자체를 도매금으로 매도했다. 대중 은 다 안다며 선동하고 가르치려 들지 말라며 강변하는 이들이 대중 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부터가 의문이다. 파병을 철회해 주세요. 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대중이고, 열린우 리당 한나라당 민주당 국회의원에게 야유하고, 몽둥이로 때려 청 와대에서 내쫓아 버릴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대중이 아니라 는 말뜻인가? 아니면, 대중이 열린우리당에 야유하고 노무현 퇴진과 같은 고강도 정치발언을 할 리가 없다는 뜻인가? 왜 대중과 활동가 들을 무 가르듯 확실히 나누려 하는가? 집회 참석 대중의 범위를 넓 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앞서 본 대로 실상은 대중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던 것이다. 이때 벌어진 논쟁의 축은 다음과 같다. 시민단체 [C 그룹]는 파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67

268 병반대 운동은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다수화 전 략을 위해서 파병철회만을 주장해야 한다. 는 요지의 주장을 되풀이 해서 제기해 왔고,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의 힘, 다함께, 인권단체연석 회의, 전국학생연대회의[P 그룹] 등은 파병강행의 모든 정치적 책임 은 노무현이 져야 하며, 노무현에 대한 예리한 비판과 대중의 직접 적인 행동이 파병반대 운동의 숨통을 틔게 할 것 이라는 요지의 주 장을 강조해 왔다. 그리고 이것은 파병반대 운동의 정치적 방향에 대한 분명한 입장 차이 이기도 하다. 이것이 퇴진 을 둘러싸고 전 개된 논쟁의 진실이다. 따라서 퇴진 주장을 둘러싼 토론의 가장 기 본적인 배경은 무엇보다도 김태경 기자가 지적한 대로 이라크 파병 의 이유, 노 정권의 성격, 시민단체와 현 정부와의 관계에 대한 시각 차 였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논의가 격렬했던 것은 시각차가 얼 마나 큰지를 그대로 반영한다. 3. 필자의 견해 위의 논쟁을 보고 필자는 논쟁이 오히려 과학적이고 치밀하게 이루어져야 다음 차례의 파병반대 철군 운동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 했다. 이러한 차원에서 필자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1) 파병의 직접적인 책임은 노무현 정권이 져야 한다. 1 외세(미국)의 압력이 없으면 노무현 정권이 자발적으로 파병 26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69 하지 않았을 것이므로(역사적으로 늘 그랬지만), 압력을 가 한 미국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직접적으로 책임질 일은 없 다. 미국은 성토의 대상이지만 파병의 모든 책임을 미국에 떠넘길 수 없다. 파병의 의사결정을 노무현 정권이 했기 때 문에 파병문제의 최종 책임은 노무현 정권에 있다. 그러므로 국민의 이름으로 파병을 강행한 노무현 정권에 책임을 묻고 국민행동 이 책임 묻는 행위를 대행할 수 있다. 2 파병의 책임을 미국 쪽이나 친미관료들에게 일방적으로 돌 리는 태도는 안이하다. 미국 쪽 압력에 복종한 노무현 대통 령, 친미관료 친미군부의 손아귀 안에서 파병을 결정한 정 부에 중차대한 책임이 있다. 2) 퇴진 요구에 대하여. 1 파병의 직접적인 책임은 노무현 정권이 져야 한다. 는 논리 를 원론적으로 받아들이면, 파병의 책임을 물어 노무현 정권 의 퇴진을 요구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요구를 어떻게 현 실화할 것인가에 있다. 운동은 시공간과 민심(운동노선을 대 중들이 수용하느냐 하는 문제)에 제약을 받는다. 노무현 정 권 퇴진은 원론상으로 있을 수 있지만, 시공간 민심이 크게 허용하지 않는다면 신중한 판단이 요청된다. 국민행동 의 운동이 전 국민의 큰 호응을 받으며 전개되었다면 약간의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69

270 무리한 구호도 내놓을 수 있으나, 그런 운동을 벌이지 못했 다면 더욱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한다. 2 국민행동 이 국민적인 파병반대 운동을 전개했다고 자임한 다면 국민들이 퇴진 요구에 얼마나 동의하느냐를 따져 봐야 한다. 많은 국민들이 퇴진을 요구한다면 퇴진 구호를 내걸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파병 건( 件 ) 하나만으로 퇴진을 요 구하는 것은 무리이다. 파병 문제와 더불어 민중 생존권 문 제, 정권의 정당성 문제 등으로 도저히 이 정권을 묵과할 수 없어서 퇴진시켜야 한다. 고 국민대중이 결심할 때 이런 구호를 내걸 수 있다. 3 정권퇴진 구호를 내거는 문제는 민심의 동향에 따라 결정되 어야 한다. 민심이 파병과 관련하여 정권퇴진을 요구할 가능 성이 있을 때 선도적으로 구호를 내걸어야 한다. 무리한 퇴 진 구호가 운동의 혼란만 가중시킬 우려도 있다. 몇 년 전에 민주노총 지도부가 정권퇴진 구호를 내걸었으나, 관철하기는 커녕 운동 내부의 논란만 야기한 경우를 생각해 보라. 국민 들보다 너무 앞서거나 과격한 인상을 주면 국민운동으로서 는 부적격이다. 4 변혁의 차원에서 파병반대 운동을 전개한다면, 정권퇴진 은 더욱 높은 차원에서 고려해야 한다. 우선 파병반대 여론을 등에 업은 사회집단이, 미국의 파병압력-노무현 정권의 파 27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71 병강행에 쐐기를 박을 만한 민중의 힘(people s power)을 동 원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주적인 외교능력이 없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강력한 견제력이 필요하다. 태생적으로 미국에 No 할 수 없는 종속 정권(노무현 정권)을 갈아치 운 다음의 대안에 대한 민중적인 합의가 없으면 무모한 구 호가 될 수 있다. 태생적으로 미국에 No 할 수 있는 정권 을 세울 만한 토대가 없이 구호만으로 정권 퇴진 운운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 3) 노무현 정권 심판 이 적절하다 1 파병의 결정권을 쥔 사람이 대통령이므로 파병반대 운동의 과녁은 형식상 대통령에게 향해 있다. 그러나 군사력을 기반 으로 한 친미형 국가권력( 强 權 ) 이 파병강행의 그루터기에 있으며, 미국이 친미형 국가권력에 파병강행의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다. 그러므로 파병반대 운동의 진짜 과녁은 파병 과 관련된 권력구조 에 맞춰져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노무 현 정권(국가권력의 외화물로서의 노무현 정권) 퇴진 구호는 검토의 대상이다. 다만 퇴진 이라는 구호가 대중적인 설득 력을 갖지 못한다면, 심판 으로 수위를 낮추면 된다. 이 문 제로 심각한 논란이 일어나 운동전선의 동요를 가져온다면 불행한 일이다. 2 정권 퇴진의 구호를 국민들이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71

272 있지 않다면, 수위를 낮춰 정권 심판(내년 보선 때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겠다) 또는 현재 진행 중인 부시-블레어에 대한 국제적인 민간 전범재판 에 노무현 대통령을 끼워 넣 는 것 44) 을 고민하면 어떨까? 이러한 고민 없이 국민행동 내의 일부 인사가 파병반대와 노무현 정권이 무관하다. 는 논리에 문제가 있다. 노무현 정 권의 성격이 파병강행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데도 파병반 대와 노무현 정권이 무관하다. 고 주장하면 노무현 정권을 비호하는 것으로 오해받기 안성맞춤이다. 노무현 정권을 단 순한 정치집단으로 보지 말고 국가권력의 외화물로 본 다음 에, 국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파병을 강행한 국가권력을 정치 적으로 심판할 필요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애써 무시 하거나 감지하지 못하는 인사들이 운동을 지도한다면 그 운 동은 곧 바닥이 날 수밖에 없다. 3 파병을 에워싼 노무현 대통령-노무현 정권-국가권력-제 44) 국내 시민사회운동권의 일각에서 부시-블레어-노무현에 대한 민간 전범재판 을 거 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부시 블레어는 A급 전범이 분명하지만, 파병을 강행한 노무현을 몇 급(B급? C급? D급?)으로 점수 매기느냐를 에워싼 논란이 예상된다. B+ 정도라면 부시 블레어와 함께 전범재판의 대상이 될 수 있겠다. 일시적 국가이익을 명분으로 한 제국주의나 패권주의 편에 선 해외파병은 곧 제국주의적 침략 그 자체와 다를 바 없으며, 반드시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된다<강만길 해외파병과 국익, 역사적 관점에서, 민주사회와 정책연구 제3권 제2호(2003) 16쪽>. 이와 같은 관점에서 한 국군의 추가 파병을 평가한다면, 파병강행의 총책임자인 노무현 대통령을 B+전범으 로 점수 매겨 재판에 회부해도 무리는 아닌 듯하다. 그러나 B-이하라면 곤란하지 않을까? 27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73 국 미국 사이의 권력구조(파병과 관련된 권력구조의 사슬) 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감각적으로 노무현 정권 퇴진 구 호를 꺼리는 인사들이 있다면, 그들의 정치적 세계관의 천박 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파병을 에워싼 위의 권 력구조를 복합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노무현 대통령을 따로 떼어내어 미국의 압력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쌍한 대통령에 무슨 잘못이 있느냐 고 반문한다. 또 친미 군부 외교 관료가 득실대는 정권이 파병을 거부하는 데 원 초적인 한계가 있는 걸 잘 알 텐데 왜 자꾸만 정권퇴진을 주장하려고 하느냐 고 반문한다. 그들은 파병이라는 국가권 력의 중대 결단과 제국 미국 사이의 깊은 연관을 간과하면 서, 파병반대 운동의 과녁을 노무현 대통령 개인(좀 더 나아 가 청와대)으로 좁힌다. 파병문제로 마음고생 하는 노무현 대통령(청와대 권부)을 안쓰러워하는 인사일수록 파병반대- 노무현 정권 퇴진의 연계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4 필자가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했는데도 필자의 논지를 이해 할 수 없다면, 정치적 심판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선거에 있음을 환기시켜 준다. 선거(내년 보선) 때 파병강행 정권에 타격을 주자는 쪽으로 의견을 집약하면, 노무현 퇴진 구호를 주장하는 그룹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도 남을 텐데 왜 이런 정치사업에 게으른지 이해할 수 없다. 필자의 이야기를 어색하게 받아들일 인사가 있을지 모르므로 일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73

274 본의 사례를 든다.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자위대를 이라크에 파병한 일본의 이야기이다. 일본 역시 파병반대 운동의 열기가 드높은데, 한 국과 달리 파병반대의 민심이 표로 연결되어 파병을 강행한 고이즈 미 정권에게 큰 타격을 안겨 주었다. 2004년 7월 11일의 참의원 선 거에서 일본 국민들은 고이즈미 정권의 이라크 파병에 대한 심판 을 내림으로써, 자민당이 제2당으로 전락하는 등 고이즈미 정권이 퇴진 압력을 받고 있다. 이처럼 파병 은 정권의 운명과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국민(유권자)의 표로 파병강행 정권 을 심판하면 정권퇴 진의 길이 열린다. 5 일본의 이야기가 실감이 나지 않으면 스페인의 이야기를 들 려준다. 일본에서는 파병을 강행한 고이즈미 정권이 유권자 의 심판을 받았지만, 스페인에서는 파병철회를 주장한 사회 당이 총선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거머쥐었다. 스페인에서 정 변을 일으킨 사회당의 주요한 선거구호가 이라크 파병 철 회 였다. 이처럼 파병반대 파병철회(철군)는 정권(국가권력) 의 존립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파병 을 강행한 정권을 선거에서 심판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진보 를 지향하는 사람 단체의 임무이기도 하다. 특히 파병 상 대국(이라크) 민중들의 평화적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파병국 (한국)의 정치권력을 심판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이런 일을 위해 대중적인 파병반대 운동을 전개하는 것 아닌가? 27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75 국민행동 내의 일부 인사들이 노무현 정권 퇴진 구호로는 대 중적인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고 지적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 다. 그렇다면 대중들이 파병강행하는 정권을 심판할 준비가 되어 있 지 않다면,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진정한 운동이 아닌가? 내년 보선 때 유권자가 파병에 대하여 표로 심판할 기회가 있는 데도 이를 눈감는 것은 게으른 운동단체나 할 일이다. 노무현 정권 퇴진 구호를 못마땅해하는 시민운동[C 그룹] 단체들이 지난 총선 때 파병찬성 정치인들을 낙선시켜야 한다며 파병과 정치적 심판 을 연 결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정권을 열외로 취급 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노무현 대통령도 정치인이며 국가권 력의 수장인데, 노무현 대통령이 예외가 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그 리고 총선 때에는 파병과 관련하여 정치적 심판을 하자고 앞장선 사 람들이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심판은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열린우리당의 소신파 의원들이 파병을 반대함에도 불구하 고 밀어붙이기 식으로 파병을 당론으로 확정지은 근원지가 청와대인 데도 청와대를 예외지대로 놔두자는 것은 노무현 정권을 정치적 심 리적으로 비호하려는 의지가 있든지 정치적 감각이 부족하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6 필자가 보기에 파병을 강행하는 모든 정권은 정치적 심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한 미 양국의 정부에 대한 정치적 심판 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에 파병을 강요한 부시 정권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75

276 에 대해서는 부시 낙선운동 으로, 파병을 강행한 노무현 정 권에 대해서는 보선 때의 심판 으로 응답해야 한다. 파병을 강요하는 부시 대통령(부시 정권)은 비난하면서 파병을 강행 하는 노무현 대통령(노무현 정권)에 관대한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 반미 환원론(?) 이자 정치적 불감증의 소산이다. 평소에 반미운동에 열중하지 않던 인사들이 파병과 관련하여 미국책 임론에 매달리는 게 이상하다(평소에 반미운동에 열중한 단체 나 인사들이 미국 책임론을 거론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필자의 이런 지적에 반론을 펴고자 하는 단체나 인사가 있다면, 파병과 관련하여 미국의 집요한 압력을 받은 스페인 필리핀 정부가 파병철회의 결단을 내린 데 반하여 한국은 질질 끌려 다닌 차이점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스페인 필리핀 정권의 파병철회를 높이 평가 한다면, 파병강행하는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 않 은가? 노무현 정권 못지않게 미국 눈치를 보지 않으면 안 되는 필리 핀의 아요로 정권이 필리핀판( 版 ) 김선일 사건 45) 에 임하는 태도를 보라. 이렇게 비교 평가할 수 있는 자료가 풍부한데도 노무현 대통 령(노무현 정권)을 싸고도는 태도는, 파병반대 운동에 임하는 자격 운동을 이끌어 갈 만한 자질을 의심받기 십상이다. 46) 45) 무슬림 게릴라들이 이라크 주재 필리핀인을 납치하여 필리핀군이 철수하지 않으면 참수하겠다. 고 위협했다. 아요로 정권은 자국인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의 엄 청난 압박을 물리치고 파병을 철회하여 납치된 필리핀인의 생명을 건져 냈다. 김선일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파병을 강행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과 너무나 대조적인 처사이 다. 노무현 대통령의 이러한 처사가 바로 정치적 심판의 대상이다. 27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77 4. 결 론 볼리비아의 차베스 정권처럼 반외세(반미)를 주창하거나, 스페인 의 사회당 정권처럼 파병철회를 공약화하여 정권을 잡았을 경우 파 병철회(철군)는 확실히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처럼 친미 가 지배의 담론이 된 사회에서 파병철회란 쉽지 않은 과제이다. 47) 친미 지배 세력의 틈바구니에서 우왕좌왕하다 파병을 강행한 가 련한 노무현 정권 에게, 오히려 동정심이 발동되기도 한다. 만약 노 무현 정권이 친미관료 친미군부에 이끌려 파병을 강행했다면, 질질 끌려 다닌 죄 를 물어야 하며, 죄를 묻는 방법 중 하나로 보선에서 의 정권 심판 을 추천한다. * 출처= 평화 만들기( 150호( ) 46) 필자 역시 사안에 따라 노무현 정권을 지지한다. 필자는 노무현 정권의 수도권 이전 정책에 찬성한다. 그러나 미국 앞에서 Easy Man 노릇 하면서 파병을 강행하는 처 사를 용인할 수 없다. 47) 노무현 정권이 스페인의 사회당 정권처럼 파병철회를 실행하려면, 친미 관료 친미 군부를 배제할 정도의 변혁의지가 있어야 할 텐데 노무현 정권에게 그런 것을 기 대할 수 없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77

278 전 세계 반전평화 운동의 구도 -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을 중심으로 Ⅰ. 들어가는 말 이라크 전쟁은 전쟁주도 세력과 전쟁 반대 세력 모두에게 성전 (holy war)이었다. 전쟁을 주도한 미국 영국 연합군은 십자군 전쟁 (1096~1272년)을 재현하는 성전(군국주의적 성전)을 벌였고, 전 세계 의 양심적인 시민들은 역사상 최대의 평화대( 平 和 隊 : peaceforces)를 이루며 성전(평화주의적 성전, 평화를 위한 성스러운 투쟁) 을 벌였다. 악의 축(axis of evil) 국가 群 (이라크 북한 이란)을 차례차례 붕괴시키는 게 성전 이라고 주장한 부시 정권. 진짜 악의 축 인 부 시 정권의 제국주의적인 침략을 저지하는 게 성전 이라고 주장하는 전 세계 반전평화 운동 세력. 전자가 제국 미국의 세계지배를 위한 Pax Americana(미국의 힘에 의한 세계평정) 의 성전이라면, 후자는 제국의 힘이 관철되지 않는 세계평화를 위한 성전 이다. 가공할 무력으로 세계를 평정하기 위해 아프간 전쟁에 이어 이 라크를 침공하려는 미국. 가진 것이란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뿐인 전 27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79 세계의 양심을 대표한 반전평화 운동 세력. 이 두 세력의 불꽃 튀기 는 한판 승부는 유엔의 외교무대와 길거리에서 벌어졌다. 이라크 침 공의 승인을 에워싼 외교전이 장내(유엔 안보리)에서 전개되었지만, 장외투쟁은 뉴욕 베를린 런던 동경 서울에서 벌어졌다. 2003년 2월 15일 3월 15일을 정점으로 수천만 명의 세계 시민 이 이라크 전쟁 반대 집회장에 모여 평화의 함성을 외쳤다. 그러나 평화의 함성이 전 세계에 메아리치는 순간에 미국 영국 연합군은 이라크 공격을 위한 전열을 가다듬었다. 드디어 2003년 3월 20일에, 부시는 이라크 공격명령을 내렸다. 미 영 연합군의 날강도 같은 침략을 중단하라. 는 반전운동 세력의 구호는 토마호크 미사일의 굉음 에 가려 들리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미 영 연합군은 군사적인 승리를 거두어 악의 축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다. 후세인의 악의 축 동상 이 파괴된 그 자리에, 악의 제국 미국의 새로운 동상이 세워졌다. 부시가 신봉하는 야훼 전쟁신( 戰 爭 神 )은 미국 편을 들어 주었으 나 평화의 여신은 미국을 비난했다. 충격과 공포(이라크 전쟁의 작 전명) 로 전 세계를 지배하려는 미국을 지지하는 전쟁신은 추악하다. 이라크 전쟁에서의 승리를 신의 선물로 착각한 부시 정권의 전쟁광 들(펜타곤, 군 산 복합체,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이 총구를 한반도 로 돌려 (또다시 전쟁의 여신으로부터 월계관을 받기 위해) 북한과 의 전쟁을 시도할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79

280 오로지 반전평화 운동 세력의 원군이 되어 주는 평화의 여신 만 이 아름답다. 이라크 전쟁을 결사반대한 인류의 양심에 빛을 주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은 너무나 싱겁게 끝난 전쟁, 너무 빨리 끝난 전쟁이 다. 이 때문에 반전평화 운동의 열기가 빨리 냉각된 느낌이다. 반전 집회에 모인 수천만 명의 세계 시민들 대부분은 이제 일터로 돌아갔 다. 반전운동의 현장이었던 뉴욕, 런던, 베를린, 파리, 동경, 서울의 거리엔 전쟁의 망령이 사라진 듯하다. 이들 거리엔 이라크 전쟁의 사령탑인 펜타곤의 깃발 대신 월스트리트의 주가를 나타내는 전광판 이 반짝인다. 이제 세계 곳곳에서 반전평화 운동을 조직한 평화의 일꾼(peaceworker)들은, 전쟁광들과 한판 승부를 벌인 투쟁의 현장을 되새기며 평화로운 세계를 향한 새로운 설계도 를 그릴 때이다. 물론 평화의 신 의 영도를 받아. 이 글은 평화의 설계도를 위한 판단자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 다. 지난 몇 달 동안 지구촌에 울려 퍼졌던 반전평화의 함성을 철저 하게 분석하여 21세기의 평화의 대안을 위한 밑그림 을 그리는 데 이 글이 보탬이 되길 바란다. 이 글은 크게 3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부분의 중심은, 반전평 28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81 화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폭발한 에너지와 운동의 지향점을 발견하 는 데 있다. 두 번째 부분은 반전평화 운동의 밀물과 썰물의 유속과 흐름을 분석하는 데 주안점이 있다. 세 번째 부분은 운동론 운동의 구도를 기술하고 이를 평가하는 게 요점이다. Ⅱ. 반전평화 운동의 에너지원( 源 )과 지향점 도대체 전쟁광 부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반전평화 운동의 힘 은 어디에서 나왔나? 수천만 명의 보통사람들로 하여금 길거리로 나 와 평화의 함성을 지르게 한 힘은 어떻게 축적되었나? 수천만 명을 평화대( 平 和 隊 )로 엮은 조직의 힘은 어떤 경로로 형성되었나? 이런 의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계적인 반전평화 물결이 일어난 근본적인 이유를 캐물어야 할 것이다. 1. 반전평화의 물결 1) 전쟁광 부시 정권에 대한 저항 전선을 형성 9 11 사태의 진범이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용의자일 뿐인 빈 라덴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아프간 전쟁을 벌였다. 미국의 막가파 식( 式 ) 아프간 전쟁에 대한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81

282 비난과 더불어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미국의 일방주의적 패권 추구를 방치하면 세계의 역사가 중세기의 암흑으로 되돌아간다는 우 려는, 미국의 전쟁구도를 저지하는 힘을 요청하고 있었다. 이는 시대 의 요청이기도 했다. 이 시대의 요청에 발 빠르게 대응한 유럽과 미주(미국, 캐나다) 의 운동단체들은 반전평화 운동의 전선을 형성하는 쪽으로 힘을 모 았다.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에 주력했던 변혁지향적인 운동단체들이 전쟁 반대 미국반대 노선으로 선회한 사례가 이를 반증한다. 이러 한 힘의 결집은 2002년 11월 6~10일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열린 제1회 유럽사회포럼(ESF)의 개막행사인 이라크 전쟁 반대 집회에 (이탈리아를 비롯한 전 유럽에서) 1백만 명이 모였다. 이 집회에서 채택된 전쟁 반대 호소 는 년 2월 15일의 이라크 전쟁 반 대를 위한 유럽 통일행동을 하고 2 이라크에 대한 무력공격이 강행 될 경우 전쟁개시 즉시 항의행동을 한다고 다짐했다. 유럽사회포럼을 성공시킨 각국의 주요조직이 참가한 유럽사회포 럼 조정위원회는, 유럽사회포럼의 성과 특히 전쟁 반대 호소 의 내 용을 실행하기 위해 2002년 12월 15일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최초 로 유럽반전운동 네트워크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 참석한 유럽 11개국(필리핀, 미국 대표도 참석)의 대표들은 다음과 같이 합의했 다: 1피렌체 반전집회의 전쟁 반대 호소 를 지지한다. 2 유럽 각 국의 이라크 전쟁 참여를 저지하기 위해 유럽 규모의 통일 행동을 28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83 취한다. 3 유럽과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국민의 과반수가 전쟁에 반대한다. 그러므로 우리들(국민들)의 이름으로 전쟁을 하지 말라(not in our name) 고 주장할 근거가 있다. 도처에서 가능한 한 광범위한 반전연합을 결성하는 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4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가 유럽의 참전을 정당 화하는 작전행동의 수단으로 되어 있다. 5아직 반전운동이 발달하 지 못한 나라를 상대로 시위의 참가 확대를 이끌어 내자. 6최초의 통일행동이 이루어질 2003년 2월 15일의 집회에서 동일한 플래카드 상징표시(symbol mark)를 사용함으로써 가능한 한 최대의 호소력 과 형식상의 통일을 가져오자. 이어 2002년 12월 18~19일 카이로에서 열린 국제 반전회의<미 국의 침략과 대결하는 이집트 인민운동(Egytian Popular Campaign to Confront US Aggression)이 주최함>에서 채택된 카이로 선언 (Cairo Declaration: Against U.S. Hegemony and War on Iraq and in Solidarity with Palestine) 은 유럽 사회포럼의 전쟁 반대 의지를 더욱 확고하게 다졌다. 카이로 국제반전회의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에 반대하는 국제 캠페인(International Campaign Against US Aggression on Iraq) 을 발족시켰다. 이 캠페인은 벤베라 알제리아 전직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영국의 Stop the War Coalition 의 리즈 씨와 미국의 평화 운동 단체 국제 ANSWER 의 라슈마위 씨를 부 위원장으로 하는 조정위원회(운영위원회)를 창설했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83

284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국제 캠페인 은 (마틴 루터 킹 목사 탄생 74주기, 걸프전 개시일에 맞춰 미국 쪽에서 준비 중인) 2003년 1월 18일의 집회를 전 세계적인 차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카이로 선언 의 부제가 말해 주듯 미국의 일방주의적 패권(헤게 모니)추구가 이스라엘의 강경파와 제휴하는 가운데 이라크 전쟁을 모색하고 팔레스타인 사태가 발생하는 지점을 공략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불량국가(Rogue State: 이라크 북한 등 악의 축) 에 대한 선제공격으로 대변되는 부시 독트린(Bush doctrine)의 기운을 꺾어 야 평화가 도래한다는 의지가 카이로 선언문에 나타나 있다. 카이로 선언 은 전 세계의 진보 진영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2003년 1월 23일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제3회 세계사 회포럼(World Social Forum)에서 반전평화-반미 전선을 형성하자 는 결의로 이어졌다. 세계사회포럼의 주제는 이라크 전쟁 반대와 세 계화 반대이었다. 전쟁 반대와 세계화 반대의 변증법적인 종합이 세 계사회 포럼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동안 계급투쟁으로서의 신자유 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 노선과 반전평화 운동 노선은 서로 엇갈린 지점에 서 있었다. 한국의 경우 계급 지향파(과거의 용법으로 말하 면 PD 진영 )는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에 주력해 왔고, 민족 지향 파(과거의 용법으로 말하면 NL 진영 )는 반전평화-반외세(반미)- 통일운동을 중요시했다. 심지어 양자는 서로 경원시하기도 했다. 28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85 이러한 양자의 노선 대립은 세계사회포럼을 경과하면서 전쟁 반대=신자유주의 반대 의 단일화에 성공한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이 호전적인 제국 미국의 전쟁정책을 뒷받침함을 깨달았기 때문에 노선의 단일화는 쉽게 이루어졌다. 세계사회포럼의 정신적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촘스키(Chomsky)가 이라크 전쟁 반대를 통해 제국 미국에 대한 전선을 형성하는 데 성공하면 제4차 International을 성 공적으로 조직할 수 있다. 는 연설은 노선의 단일화를 굳히는 발언 이었다. 반전평화-반제(반미)의 단일 대오를 다짐한 세계사회포럼은 전 세계적인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2) 전 세계 시민들의 단결 세계사회포럼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가진 전 세계의 NGO들은 자기 조직 주변의 시민들을 향해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자 고 설득 선전하며 거리 시위를 조직했다 사태 이후 야수로 돌변한 부시 정권의 전쟁책동을 꾸짖어 온 시민들은 NGO의 제휴를 반갑게 여기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미국 시민들의 경우, 9 11 사태 이 후 전쟁내각으로 바뀐 부시 정권의 억압체제에 대한 반감이 거리시 위로 연결되었다. 유럽의 경우 미국 정부의 일방주의 가치관을 견제 하는 의미에서 다자주의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반전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동북아시아 나라의 시민들은 전쟁꾼 부시= 惡 / 평화 세력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85

286 = 善 이라는 동양적(유교적인) 선악관을 갖고 시위에 동참했으며, 동 남아시아의 무슬림들은 이슬람권을 무력화하려는 미국 이스라엘 동 맹에 저항하는 뜻에서 반전시위를 벌였다. 이렇게 각 대륙마다, 각 나라마다 시민들이 반전시위에 나선 논 리적 근거가 다르지만 부시 정권의 일방주의적인 전쟁구도에 파열구 를 내야 한다는 데 뜻을 함께하면서 평화를 위한 세계 시민사회의 단결 을 이루어 냈다. 2. 반전평화 운동을 폭발시킨 에너지는 어디에?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제아무리 전 세계의 시민들 이 이라크 전쟁 반대의 열기를 지니고 있더라도 이 열기를 한군데 모으는 운동꾼 운동 조직 이 없으면 허사이다. 그런데 지구촌을 떠 들썩하게 한 반전평화 운동의 폭풍이 일어날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 오래전부터 반전평화 운동의 밭을 갈아 온 꾼 들이 있었다. 이 꾼 들의 질량에 따라 반전평화 운동의 질량이 결정되었다. 질 높은 꾼 들이 많이 포진된 유럽이 세계적인 반전평화 운동을 이끌어 간 비결 은 바로 여기에 있다. 유럽에 질세라 분발해 온 미국의 꾼 들 역시 9 11 사태 이후 비상한 각오 아래 시민사회에 반전평화의 깃발을 튼튼하게 꽂았다. 그러나 질 높은 꾼, 즉 일당백의 평화 일꾼 들이 태부족한 아시아 28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87 지역에서 꾼 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반전운동이 달구어졌으나, 이라크 전쟁이 끝나자마자 가장 빠르게 냉각되어 버렸다. 여기에서 준비된 운동과 준비되지 않은 운동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풀뿌리 평화 운동 조직의 일상활동을 통해 반전운동의 용암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평화 운동의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은 평화 운동의 다층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평화 운동 단체를 교회가 에워싸며 도와주고 정당(독일의 녹색당, 스칸디나비아 의 사회주의 정당 등)이 엄호하거나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다층구조를 다지면서 반전운동의 용암을 터뜨렸다. 프랑스 독일 정부가 미국의 전쟁정책에 반기를 들고 영국의 시 민들이 블레어 내각을 괴롭힌 저력은, 쉴 틈 없이 평화 운동을 조직 해 온 양질의 꾼 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유럽 못지않은 평화 운동의 저력을 축적해 왔다. 지난 번 미국 대통령 선거 때 고어 후보에 표를 던진 대다수의 시민들은 반전평화 운동에 심정적인 박수를 보냈다. 녹색당 후보 랠프 네이더 를 지지한 사람들 역시 적극적으로 운동에 뛰어들었다. 결국 시민사회의 물밑에서 평화 운동의 잠재력을 키워 온 유럽 과 미국의 반전평화 운동 진영은, 이라크 전쟁국면이라는 운동의 호 기를 살려 평화의 힘(Peace Power)을 분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에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87

288 비해 준비가 덜 된 아시아의 반전평화 운동 세력은 유럽 미국의 운 동권을 뒤따라가는 데 급급했다. 준비된 평화 운동을 전개한 유럽 미국 쪽이 반전운동의 폭죽을 터뜨리는 데 앞장서게 되었다. 유럽 미국에서 전 세계적 차원의 반전평화 운동을 주도한 단체 는 다음과 같다: 1 영국의 Stop the War Coalition(전쟁중지연합), 2 독일의 Netwerk Friedens-kooporative(평화 운동 협동 네트워 크), 3 프랑스의 La coordination nationale de l Appel(이라크 전 쟁 반대 호소), 4 이탈리아의 Comitato Fermiamo la Guerra(전쟁 을 중단시키자), 5 미국의 국제 ANSWER(Act Now to Stop War and End Racism) 이들 네트워크 조정위원회(운영위원회)는 각각 독자성을 갖고 있 으나 전통적인 평화 운동조직과 노동조합이 핵심이 되고 여기에 청 년 조직, 혁신 좌익정당(사회민주주의 정당의 경우 당 전체로서가 아니라 일부의 그룹이나 개인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비교적 새로운 환경운동 단체, 일부 세계화 반대 운동 단체(ATTAC)가 가 세하는 꼴을 이루었다. 3. 저항의 지향점 수천만 명의 세계 시민들은 미국의 명분 없는 이라크 침공에 저 항했지만 저항의 이유는 일률적이지 않다. 시민들의 세계관이나 자 28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89 신의 입지에 따라 저항의 강조점이 다르다. 그러나 대체로 다음과 같은 지점에서 저항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1)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 (아프간에 이어 이라크를 침공한 다음에 북한이나 이란을 공략 하려는)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을 방치하면 안 된다는 세계 시민의 자각이 운동의 자양분이 되었다. 2) 기만적인 전쟁정책 아프간 전쟁의 재판인 이라크 전쟁의 속임수가 비판의 도마 위 에 올랐다. 아프간에 진주한 소련군을 내쫓기 위해 빈 라덴과 제휴 했던 미국 이란의 이슬람 혁명기운을 꺾기 위해 후세인과 제휴했던 미국. 미국의 정보기관은 빈 라덴을 앞장세워 소련군에 대항하게 했 고, 이란-이라크 8년 전쟁 때는 후세인을 앞장세웠다. 그런 미국이 이제 불필요해진 옛 동지(빈 라덴, 후세인)를 치기 위해 전쟁을 일으 킨 기만극을 용서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옛 동지를 토사구 팽하는 잔인함에서,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은 닮은꼴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비정한 전쟁의 속임수에 대한 규탄이 반전운동 의 도덕력을 제공했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89

290 3) 세계질서 파괴범 미국 유엔의 권능을 무시한 미국이 바로 불량국가임을 확인한 양심 세력들이 세계질서의 파괴범인 미국을 규탄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4) 제국 미국의 횡포 오만 수천만 명이 모인 반전집회의 목소리를 아랑곳하지 않는 부시 전쟁집단의 오만함에 분통을 터뜨린 세계 시민들은 제국 미국의 콧대를 꺾어야 평화가 도래한다고 주창했다. 미국의 횡포를 묵과할 수 없다는 단호한 결의가 반전 집회장에서 이루어졌다. 5) 미국의 호전적인 지배계급 이라크 전쟁의 원흉인 미국의 신보수주의 세력(Neo Con: Neo Conservative)과 이들을 원격조정하는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유대인 세력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의 실체를 파헤쳐 응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진보적인 지식인 사회에서 많이 나왔다. 6) 무력에 의한 후세인 정권 붕괴 군사적인 수단에 의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키는 비이성적인 전 쟁행위를 중단하라는 구호가 시위장에서 터져 나왔다. 이라크에 진 29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91 격한 미군이 전쟁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대량파괴무기를 혈안이 되 어 찾았으나 실패했다. 대량파괴무기를 보유한 후세인 정권이 인류 평화의 적이므로 전쟁을 통해서라도 타도해야 한다. 는 미국의 전쟁 명분이 근거 없음이 드러났다. 이런 명분 없는 전쟁극을 비난하는 목청이 높았다. 7) 자원 약탈형 침략 전쟁 미국 자본주의의 승승장구를 위한 원유 확보의 수단으로 이라크 전쟁을 개시했다는 평론이 설득력을 갖추면서 자원 약탈 전쟁 이 성토의 대상이 되었다. 8) 제국의 살육, 이라크 민중에 대한 무차별 공격 이미 걸프전 이후의 경제제재로 수많은 이라크 어린이들을 죽이 고 모성( 母 性 )을 파괴한 학살의 주범 미국은 징벌의 대상이었다. 이윽고 전쟁에 돌입한 미국은 이라크 민중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통 해 수많은 살상자를 낳았다. 이러한 제국의 살육 전쟁 을 심판해야 한다는 주장이 쇄도했다. 9) 중동 재식민지 정책 (19세기 말~20세기 중반의 서구 제국주의가 중동을 식민지로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91

292 삼아 착취한 방식을 답습한) 미국의 중동 재( 再 )식민지 정책이 이라크 전쟁을 통해 확증되었다. 지난번 아프간 전쟁은 중동 재식민지 정책 의 서막이었고 이라크 전쟁은 본론에 해당된다. 중동의 무슬림 정권 을 차례차례 무너뜨려 서구식 자본주의 정권을 세워 미국 이스라엘 의 판도로 만들겠다. 는 재식민지 정책. 이 정책의 시범 케이스로 선 발된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의 야만 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위의 다양한 지향점의 바탕 위에서 유병무죄( 有 兵 無 罪 )의 세계 질서를 재편해야 한다. 는 세계 시민의 평화를 향한 변혁의 욕구 가 반전시위의 형식으로 분출되었다. 미국같이 병( 兵 ), 즉 무력을 많이 가질수록 전쟁범죄의 면죄부를 받을 뿐 아니라( 有 兵 無 罪 ), 승리의 월계관을 쓰는 모순투성이의 세상 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세계 시민 이성 이 폭발한 것이다. 이렇게 평화를 행한 세계 시민의 이성이 분출되는 반전평화 운 동의 현장을 중심으로 운동의 흐름 상황 추이를 살펴본다. Ⅲ. 반전평화 운동의 흐름 9 11 사태 이후로 가닥을 잡기 시작한 세계적 차원의 반전평화 운동이 서서히 달아올랐다. 반전운동의 열기는 2003년 2월 15일~3 29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93 월 15일에 정점을 이룬 다음, 전쟁 종식 이후 서서히 냉각되는 과정 을 거쳤다. 매주 주말마다 전 세계의 양심적인 시민들이 벌인 반전 평화 운동의 과정을 5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반전평화 운동의 예열( 豫 熱 )기간에 해당되는 제1단계는 9 11 사태(2001년 9월 11일)부터 세계사회포럼이 열린 2003년 1월 23일 까지이다. 점화( 點 火 )기간인 제2단계는 2003년 1월 23일(세계사회포 럼 개최일)부터 시위대중의 숫자가 1천5백만 명에 이른 2월 15일 이전이다. 운동의 고양기( 高 揚 期 )인 제3단계는 2월 15일부터 3월 15 일까지이다. 반전운동의 밀물과 썰물이 교차한 제4단계는 3월 15일 부터 미군이 바그다드를 완전히 점령한 4월 20일까지이다. 운동의 썰물이 밀려오기 시작한 하강기에 해당되는 제5단계는 4월 20일부 터 현재까지이다. 위의 5단계마다 이라크 전쟁을 에워싼 정세에 따른 운동의 흐름 이 권역별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분석한다. 반전평화 운동의 사상 적 기반을 이루는 문화적 권역(기독교권, 유교권, 이슬람권)과 지리 적 권역(유럽 북미주,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중동)을 임의적으로 짝짓기 하면서 분석한다. 즉 기독교권인 유럽 북미주를 하나의 권 역으로, 유교권인 동북아시아를 또 하나의 권역으로, 무슬림들의 밀 집지역인 동남아시아~인도 대륙~중동을 또 다른 권역으로 나눈다. 각 권역마다 반전평화 운동의 양태가 달리 나타났기 때문이다. 기독교권은 고대의 초기 기독교 평화 운동의 전통을 전수받은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93

294 탓인지 시민사회 속에서 평화의 가치에 대한 공감대가 강하다. 물론 정의의 전쟁(Just War)론이라는 현실지향적인 평화론이 제도권에 팽 배해 있으나, 평화 운동 주도 세력은 절대평화주의(Pacificism)를 무 시하지 않는다. 서구의 평화 운동 주도 세력은 사상적으로 깊이 있 는 평화 운동을 현실화하는 능력과 조직을 갖추고 있다. 이에 비해 고대부터 유교 세력에 의해 평화 운동(묵자의 평화 운동)의 맥이 끊긴 중국 등의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을 제외하고는) 평화의 담론이 유럽에 비해 낯설다. 그런 탓인지 평화 운동의 지평 이 넓지 못하고 평화의 이론과 실천의 접점 이 시민사회 안에서 이 루어져 있지 않다. 따라서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 운동은 시민들과 밀접해 있지 않다. 세 번째 권역인 이슬람권(동남 아시아~인도~중동)에서는 코란 (Koran)의 평화개념에 입각하는 종교적 평화론이 주류이므로, 시민 사회 속에서 평화 운동의 꽃을 피운 서구 유럽 일본과 달리 사원 (모스크) 안에서 운동의 발원지를 찾는다. 그럼 위의 구도에 따라 단계별, 권역별로 반전평화 운동의 밀물 과 썰물 현상을 분석한다. 필자가 확보한 자료(연합뉴스, 아카하타 신문)에 의존하여 운동의 현황을 설명한다. 아래의 설명보다 더욱 광범위한 반전평화 운동이 전 세계로 전개되었음은 물론이다. 29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95 1. 제1단계: 예열기( ~ )의 반전평화 운동 1) 정세요약 9 11 사태를 아프간 전쟁으로 맞받아친 부시 정권의 전쟁구도 에 대한 비난이, 2001년 가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이때 아프간 전 쟁 반대 투쟁의 대오가 형성되어 오늘날의 세계적인 반전평화 운동 의 밑거름을 이루었다. 이 기간에 크고 작은 수없이 많은 반전(아프간 전쟁 반대 미국 의 반테러 전쟁 반대) 시위가 열렸다. 이러한 시위의 열기가 모아져 2002년 12월 18일의 카이로 국제반전회의(이 회의의 결과를 담은 Cairo Declaration 발표), 2003년 1월 23일의 세계사회포럼, 유럽 사 회포럼, 아시아 사회포럼으로 집약되었다. 2002년 11월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열린 유럽사회 포럼은 2003년 2월 15일을 유럽 반전의 날로 결정했다. 2) 운동의 흐름 2002년 여름부터 관심을 끌기 시작한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라 크 전쟁) 에 반대하는 운동을 다룬다. 이 기간에 이라크 반전운동은 유럽 북미주 중심이었으며, 동아시아와 이슬람권의 평화 운동 진영 은 이라크 전쟁을 에워싼 정세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한 탓인지 대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95

296 중적인 반전운동을 전개하지 못했다. 이라크 반전운동의 예열단계에 서부터 뒤진 동아시아 이슬람권은 2003년 초부터 분발했으나 유럽 미국 쪽과의 격차를 좁히지는 못했다. 결국 이라크 전쟁은 백인 (Anglo Saxon계 미 영 연합군)이 벌이고 백인(유럽 미국의 시민 들)이 저지하는 백인들끼리의 공방전임을 무시할 수 없다. 백인들끼 리 벌인 공방전의 틈바구니에서 제3세계 민중, 제3세계 반미국가들 (불량국가들),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희생 양으로 선발된(김정일 정권은 1순위의 예비후보) 것으로 보아도 무방 하다. <유럽 북미주> * 2002년 7월 30일, 영국의 10대 노조 지도자들은 토니 블레어 총리에게 미국이 주도하는 이라크 침공에 참여하지 말라. 고 경고하는 공동성명을 발표. * 2002년 9월 24일, 미국 시카고의 반전운동 단체인 황야의 외침(Voices in the Wilderness) 대표단은 바그다드 시내의 사담교육 병원의 어린이(미국의 경제제재로 병에 걸린 어린 이) 병동을 방문해 의료품을 전달하고 이라크에 대한 유엔의 제재와 미국의 전쟁위협에 반대한다고 밝힘. * 2002년 9월 24일, 영국의 하원의원 64명이 이라크와의 전쟁 에 반대하는 표를 던짐. * 2002년 9월 28일, 런던 시내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이라크 군 29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97 사공격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전시위. 40만 명 참가. 전쟁중 지 연합(Stop the War Coalition) 이라는 반전단체와 영국 이 슬람 협회(MSB)가 주도. 전쟁중지 연합 은 9 11 사태의 충 격과 부시의 반테러 전쟁 선언으로 표면화된 전쟁 위기에 대 응하기 위해 2001년 9월 21일 런던에서 모인 대중집회를 계 기로 출범. 철도운송노조 RMT, 언론인 노조 UNJ, 죠지 가로 웨이 등의 노동당 좌파의원 그룹,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등 의 활동가를 중심으로 전쟁중지 연합 이 꾸려짐. 이날 로마 에서도 10만 명 시위. 파리에서는 트로츠키 주의 노동자 단체 가 주도하는 집회. 워싱턴에서도 반세계화 시위와 이라크 전 쟁 반대 시위를 병행. * 2002년 10월 6일,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관련 연설을 하루 앞두고 유럽 미국의 주요 도시에서 집회. 뉴욕에서 2만 명 (헐리우드 스타들 가세. Not in Our Name 이라는 단체가 주 도), 샌프란시스코에서 5천 명(택시기사들이 경적을 울리며 시위에 참석하는 등 다소 흥겨운 분위기 연출), 로스앤젤레스 에서 3천 명,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5천 명이 참여. * 2002년 10월 12일, 파리에서 5천 명이 반전시위. 인권단체, 노조, 좌파 정당 등이 주도. 시위자들은 이라크 전쟁 반대, 중동에 정의와 평화를, 석유를 위해 피를 흘리지 말자 는 구호를 외침. 뉴욕 타임즈 10월 12일자는 이라크에 대한 미 국의 군사행동이 점차 가시화하면서 대학가의 반전운동도 본 격화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고 보도.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97

298 * 2002년 10월 21일, 반전 시위대(남자 12명, 여자 3명으로 구 성된 청년들)가 유엔 총회장에 난입해 이라크 공격반대 및 유 엔 제재 중지를 요구하는 시위. 이날 역대 노벨 평화상 수상 자들은 로마에서 이라크 전쟁을 막기 위한 유엔의 중재 외교 의 필요성을 전면 지지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채택. * 2002년 10월 26일, 유럽 곳곳에서 반전집회. 베를린 시민 1 만 명이 제국주의 전쟁, 석유와 피의 교환 불가, 부시의 전 쟁위협 중단 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시위. 프랑크푸르트에서 1,500명, 함부르크에서 500명이 미 대사관 앞에서 항의집회.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1,500명이 미 대사관 앞 시위. 스웨덴 의 스톡홀름에서 1천 명이 이라크 전쟁계획 규탄. 바그다드의 유엔 사무소 앞에서 미국인들( Voices in the Wilderness 의 회원들)이 집회. 이날 ANSWER(Act Now to Stop War and End Racism) 가 주도한 워싱턴 집회에 20만 명이 운집한 데 고무된 미국 의 반전평화 운동 세력은 자신감을 갖고 연말과 2003년의 운 동계획을 세움. ANSWER는 고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과 걸프전 발발 기념일인 2003년 1월 18일과 19일에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함. * 2002년 11월 9일, 유럽 각지에서 40만 명이 시위. 이탈리아 의 피렌체에 모인 반세계화 회의 행사의 일환으로 수만 명이 반전시위. * 2002년 11월 13일 미국의 가톨릭 주교회의는 이라크 전쟁 29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299 반대를 결의. * 2002년 11월 17일, 벨기에의 노조, 인권 단체, 반전단체, 아 랍계 이민 대표 등 130개 단체가 대규모 시위. 1만 명 참가. * 2002년 12월 10일, 할리우드의 유명 연예인 1백 명이 기자회 견을 갖고 부시의 이라크 전쟁 수사(rhetoric)를 중단할 것을 요구. 이날 워싱턴에서 2백 명 시위. 백악관 앞에서 50명 시 위. 경찰은 시위자 1백 명을 체포함. * 2002년 12월 14일, 유럽 각국에서 시위. 프랑스 곳곳에서 시위. 파리에서 4,800명이 가두행진. 이 집회 에 전 내무장관, 인권동맹, 공산당, 녹색당, 노동단체 등의 회원 들이 참가. 시위대는 부시 式 도살(Busherie) 중지 등의 구호 가 적힌 플래카드를 흔듦. 좌파정당, 노조, 반전평화 단체의 주 도 아래 그레노블, 리옹, 니스, 마르세유, 툴루즈 등에서 시위.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5천 명이 미 제국주의 에 반대하는 시위. 일부 시위대는 부시 대통령은 세계 최악의 테러리스트 라는 포스터를 들고 부시는 물러나야 한다. 고 외침(외국인 시위대 15명 체포됨). 독일의 슈팡달렘과 람슈타인, 라인 마인 지역의 미군기지 주 변에서도 100~400명의 주민들이 시위. * 2003년 1월 8일, 9 11 사태로 가족을 잃은 미국 여성 4명이 바그다드에서 평화를 촉구하고 이라크에 대한 전쟁에 반대한 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 * 2003년 1월 11일,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시민 2만 명이 시위. 제2부 반전평화 운동 299

300 반전운동 단체인 국제 ANSWER, 세계평화연대(CWP), 정의 평화 종교 간 연합체, Not in Our Name 프로젝트 등이 이 시위를 주관함. 미국 정가에 새해 벽두부터 이라크 전쟁의 기운이 높아지기 시작하자 워싱턴 일대에 이라크 전에 반대 하는 반전기운이 급속하게 높아짐. 반전단체 등은 이제 시간 이 없다. 며 1월 20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탄신일인 연방 공휴일을 앞두고 대대적인 시위를 열기로 함. * 2003년 1월 13일,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미국 학자들 35명 이 바그다드에서 자체적인 진상조사 활동에 착수. * 2003년 1월 14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일부 여성들이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에 대한 명백한 침략행위에 항의하기 위해 나체평화 운동을 시작. 적게는 22세에서 많게는 83세까지의 주부, 할머니, 의사 등으로 이루어진 105명의 여성그룹은 알 몸으로 평화 구호의 알파벳을 만드는 소위 스펠링 비 (spelling bee) 항의 시위를 하기로. * 2003년 1월 15일자 르몽드지는 미국과 영국이 걸프지역에 병력배치를 확대하는 등 이라크 전쟁 준비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유럽인들 사이에 이라크 전쟁 반대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고 보도. 이처럼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일반 여론이 강해지자 유럽 각국 정부 안에서도 이라크 무기사찰단에 충 분한 사찰 시간을 부여하자는 입장과 공격 연기론이 제기되 는 등 이라크 공격을 찬성하지 않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고 르몽드는 보도. 30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01 * 걸프해역의 전운이 한층 고조된 가운데 최전선에 투입된 미 군 진영에서도 반전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고 영국 BBC 방송 인터넷 판이 1월 17일 보도. * 2003년 1월 18일 미국 워싱턴에서 ANSWER가 주도한 수십 만 명의 반전시위가 열림. 마킨 루터 킹 목사의 탄신일인 18 일을 즈음하여 대대적인 반전시위를 전개하자는 ANSWER의 제의에 호응한 전 세계의 평화 운동 단체들이 동시 반전집회 를 성공시킴. 프랑스의 40여 개 도시에서 집회(파리에서 6천 명). 스웨덴의 예테보리에서 6천 명 시위. 오스트리아에서 1 천 명, 영국의 런던 버밍엄 맨체스터 노팅엄 등에서 대규 모 철야 촛불시위.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에서도 집회. 아일랜드의 샤논 공항에서 수천 명 시위. 러시아의 모 스크바 시민들이 미 대사관 앞 시위. ANSWER의 제안에 호응한 동시 다발 투쟁은 전 세계인 이 라크 전쟁 반대 운동의 정형을 이룸. 이를 계기로 미국 쪽 반 전운동의 선두주자로 ANSWER가 떠오름(유럽 쪽은 Stop the War Coalition 등이 주도함). 1월 18일의 대규모 시위는 제1단계의 반전평화 운동을 집대 성함과 동시에 제2단계로 확대발전시키는 교량 역할을 하는 매우 중요한 집회임. * 1월 18일 집회의 연장선상에서 19일에도 세계 주요 도시에서 반전시위. 워싱턴(수백 명), 런던(4백 명), 독일, 터키(2천 명), 스페인(1만 명)에서 집회.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01

302 * 1월 20일,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은 로마에서 지도자 회의 를 갖고 이라크 전쟁 반대를 천명. <동북아시아> * 2002년 10월 26일, 일본 도쿄에서 3백 명이 평화행진. * 2003년 1월 18일, 일본과 한국에서 규모 있는 반전시위. 일본 의 북단에 있는 홋카이도에서 남단의 오키나와까지 전국에서 반전집회(도쿄에서 5천 명) 1월 18일에 대대적인 반전시위를 전개하자는 ANSWER의 제의 가 일본과 한국의 NGO에 인터넷 등을 통하여 전달되었다. 일본과 한국의 반전평화 운동 세력 역시 반전시위를 기획하고 있었던 때여 서 자연스럽게 ANSWER의 제안에 따라 집회를 열었다. 일본과 한 국에서의 1월 18일 집회는 이전의 반전평화 운동의 힘을 배가시키 는 효과를 가져왔다. <한국에서의 반전운동> 년 10월 8일, 경실련 통일협회와 평화통일 시민연대 등 46개 시민단체는 미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의 이라크 공격계획 중단과 한국 정부의 전쟁지원계획 철회를 요구했다 년 10월 18일, 경실련, YMCA 등 경기도 안산지역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03 개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전쟁 반대, 평화실현을 위한 안산 지역 평화행진단 은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슬람권(동남아시아~인도~중동)> * 2002년 12월 18일,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국제반전회의 열림. 미국의 세계화와 이라크 전쟁에 함께 반대하며 라는 주제로 열린 이 회의에는 아랍권 국가들을 비롯해 미국, 영국, 러시 아, 쿠바 등 세계 각국의 70여 명의 대표들이 참석( 이라크 팔레스타인 침공에 반대하는 국제 캠페인 이 주최함). 회의 참석자들은 이라크 전쟁이 벌어질 경우 이라크에 인간 방패 (Human shield) 와 인도적 상황을 감시하는 대표단의 파견을 밝힘. * 2003년 1월 1일, 중동의 시민단체들이 이라크 전쟁 발발 시 중동에서 미국 상품 불매운동을 벌이기로. * 2003년 1월 18일, ANSWER의 제안에 따른 세계적인 동시 다발 시위가 벌어지고 있던 시각에 시리아(마다스쿠스에서 1 만 5천 명), 파키스탄, 이집트(카이로 1천 명), 레바논(4천 명) 등에서도 반전집회. 이날 수백 명의 이라크 언론인들이 바그다드 유엔본부 앞에서 반미시위.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03

304 2. 제2단계: 점화기( ~2.15)의 반전평화 운동 1) 정세요약 2003년 1월 23일 개최된 세계사회포럼(WSF)의 참가자들은 미 국의 이라크 전쟁 강행의지를 간파하고 대응책을 모색했다. WSF 주 최국인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 반대 연설을 하자 청중 2만 명이 기립박수. 이라크 전쟁 반대전선을 형성하자는 WSF의 결 의가 각국의 시민사회에 전달되면서 세계적인 반전평화 운동의 틀이 잡혔다. 2) 운동의 흐름 미국 정부를 비롯한 전쟁 추진 세력에 대한 세계 시민사회의 대 응을 날짜별 권역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유럽 북미주> * 2003년 1월 23일, 독일 전역에서 반전행동. 베를린에서 수백 명이 인간 띠 잇기 행사. 나토 훈련기지가 있는 그라펜뵈어에 서 시위. 쾰른에서 1만 명 시위. 라이프치히에서 5백 명 집회. * 1월 24일, 독일 프랑스 영국 그리스 미국 등에서 지식인 (60명으로 구성된 작가 예술가 음악가 과학자 그룹) 시 30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05 민들이 반전시위. 영국의 인간방패 60명이 이라크로 가겠다 고 선언. 이들은 2층 버스 2대에 분승하여 파리, 제네바, 취 리히, 밀라노, 베오그라드, 소피아, 이스탄불, 앙카라, 다마스 쿠스, 암만을 거쳐 가는 도중 인간방패 희망자들을 모집한 다음에 바그다드로 들어감. * 1월 25일, 전 세계의 정 재계 지도자들의 모임인 세계경제 포럼(WEF)의 회의장(스위스의 다보스) 부근에서 2천 명의 반 전운동가들이 시위. 그리고 거의 같은 시각에 브라질에서 열 린 세계사회포럼(WSF)에서도 이라크 전쟁 반대의 목소리를 높임. WSF에 참석한 유럽의회 의원 33명은 전쟁 반대를 위 해 이라크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힘. * 1월 30일, 유럽의회와 유럽회의 총회에서 이라크 공격은 정 당화될 수 없다. 는 결의문 채택. * 1월 30일, 독일의 슈뢰더 수상은 독일의 과거 전쟁체험에 따른 독일인 대다수의 자각에 따라 이라크 전쟁을 반대한다. 고 천명. * 1월 31일, 유럽의 7개 나라 수도(런던, 브류셀, 파리, 베를린, 모스크바, 빈, 로마)의 시장들이 미국 영국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성명서 발표. * 1월 31일 유럽의 반전운동 상황: 1 독일의 베를린에 있는 미 대사관 앞에서 핵전쟁방지 국제의 사회(IPPNW) 독일 지부 회원인 의사 60명이 이라크에 대한 선제공격을 중단하라고 호소.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05

306 2 약 1백 명의 시민들이 베를린의 독일 국방성 건물 앞에서 독일 내의 미군기지 사용, 상공비행을 허용한 정부 측의 조 치에 반대 하는 시위를 전개함. 3 스위스의 쥬네브에 있는 유엔 시설 앞에서 약 4천 명의 고 교생 청년이 이라크전쟁 반대 집회를 개최. 4 오스트리아의 제3의 도시인 린츠에서 1천 명 이상의 젊은이 들이 이라크 전쟁 반대 행진. 이 집회는 평화단체, 노동조합, 녹색당, 공산당 등이 합세한 전쟁저지 Platform 이란 조직 이 주최함. * 1월 31일,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배우 2명(수잔 사란든, 골디 혼)이 미국 정부를 엄혹하게 비판. * 2월 5일, 뉴욕에서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 ANSWER가 시위 를 주도. * 2월 5일, 멕시코의 제헌 기념일 행사를 주도한 전국민주법률 가 협회는 반전 성명을 발표. * 2월 6일 현재 미국의 2개 주 66개 자치체에서 이라크 전쟁 반대 결의. * 2월 6일, 이탈리아 수상의 이라크 전쟁 불가피 발언에 항의 한 야당 의원이 전쟁 No, 미군에 기지제공 No 라는 플래 카드를 높이 들고 시위함. * 2월 6일, 1982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가 부시 대통령 앞으로 보내는 서한 발송. * 2월 6~9일, 이라크, 대량파괴 무기 보유 증거 있다. 는 파웰 30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07 미 국무부 장관의 발언에 대하여 유럽 미국의 신문들이 비판 공세를 펼치면서 이라크에 대한 사찰을 계속할 것 을 주장함. * 2월 7~8일, 약 30개국의 외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이 출석 한 국제안전보장회의가 열린 뮌헨에서 1만 명이 반전시위를 전개함. 이 집회는 사회민주당, 90년 연합, 녹색당 등의 정당 을 비롯하여 노조, 기독교 교회, 예술가, 평화단체 등 광범위 한 단체가 주도함. 이 집회에서 뮌헨 시장도 이라크 전쟁을 강도 높게 비판함. * 2월 8일, 오스트리아의 제2의 도시인 크라츠에서 4천 명이 반전 시위를 전개. 이 집회는 각종 시민단체, 사민당, 공산당 등이 참여한 슈타이어 마르크 평화 Platform 이 주최함. * 2월 10일, 프랑스는 나토(NATO)의 이라크 군사공격 지원책 에 반대했으며 독일, 벨기에도 동조함. 이로써 프랑스, 독일, 벨기에가 공식적으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함. 프랑스는 2월 11 일 이라크에 대한 사찰 강화안을 유엔 안보리에 제출함. * 2월 10일, 독일의 작센 주와 작센 앙하르트 주의 주요 도시 에서 반전시위. 이 시위는 노조, 기독교 교회, 시민 그룹 등이 주최함. * 미국의 유력지에 전쟁 반대 의견광고가 연일 실림. 2월 10일 자 뉴욕 타임즈에 촘스키, 하워드 진, 반전운동 단체 등의 연 명으로 낸 의견광고가 실림. 2월 11일자 워싱턴 포스터지의 의견광고는 이라크의 석유쟁탈을 위한 전쟁 에 대한 비난이 주요 내용.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07

308 * 미국의 반전 캠페인 연합체는 2월 15일의 D-day에 즈음하 여 2월 13일부터 2월 20일까지를 전쟁 반대 주간으로 선포함. * 2월 14일 UNMOVIC(유엔의 이라크 무기 사찰 위원회) 위원 장인 한스 블릭스가 이라크에서 아직까지 대량파괴무기를 발견하지 못했으므로 사찰을 앞으로 계속해야 한다. 며 미국 에 견제구를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부시 정부는 이라크 공격 을 위한 새로운 안보리 결의안 채택을 추진. 이에 유럽 미 국의 평화 운동 세력이 이라크에 대한 무기 사찰을 계속하 는 것이 평화의 길 이라고 저항하면서 전 세계 반전시위의 대오를 늘려 감. 이들 반전시위의 대오는 2월 15일의 D-day 를 향해 맹진함. * 2월 12일, 독일에서 개최된 베를린 영화제에 참석한 미국의 저명한 영화감독 배우들( 말콤X 를 만든 스파이크 리 감독, 영화 25시의 주연배우인 에드워드, 크레이머 크레이머 의 주 연배우 더스틴 호프만, 영화 Gang of New York 을 만든 마 틴 스코세시 감독)이 부시 정권의 전쟁정책에 반대하는 목소 리를 높임. 프랑스의 유명한 샹송 가수 그레고와 영화감독 크로드 란쓰망 씨가 반전 주장. * 2월 13일, 미국 국회의원 미군 현역병의 가족 예비역들이 이라크 군사공격 계획을 중단하라며 보스턴 연방지방재판소 에 제소함. 미국의 90개 시의 의회가 전쟁 반대 결의. * 2월 13일, 멕시코의 문화인 3백 명이 반전평화 성명서 발표. * 2월 14일, 뮤지컬로 유명한 런던의 웨스트엔드의 배우들이 반 30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09 전 노래를 열창함. * 2월 14일, 유럽 16개 나라의 근로자 복지업무 노동자 교육 국제협력 인도적 지원 등을 담당하는 NGO 25개 단체로 구 성된 SOLIDAR 는 이라크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호소하는 성명을 발표. * 2월 15일. 전 세계 6백 개 이상의 도시, 지구의 동쪽에서 서 쪽까지, 북쪽의 아이슬란드에서 남쪽의 남극까지 지구촌 전 체에서 1천5백만이 참가하는 역사상 최대의 반전시위가 전개 됨. 이날 런던에서 2백만, 마드리드에서 2백만, 바르셀로나에 서 150만, 로마에서 3백만, 뉴욕에서 50만, 베를린에서 50만, 파리에서 25만, 아테네에서 10만, 빈에서 3만, 브뤼셀에서 8 만, 암스테르담에서 7만, 오슬로에서 6만, 스톡홀름에서 2만 5천, 코펜하겐에서 1만 명, 더블린에서 10만 명, 베른에서 4 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이라크 전쟁 반대 의 구호를 외침. 이날 집회를 주도한 단체, 집회 양상을 밝히면 다음과 같다. 1 영국: 영국군축운동(CND) 등의 평화 운동단체와 노동조합 등으로 이루어진 Stop the War Coalition(전쟁 중지 연합). 2 독일: 풀뿌리 평화 운동 단체, 독일 최대의 노조단체(DGB), 복음교회(개신교) 단체, 정당(사회민주당, 녹색당), 예술가 단체 등이 주도함. 3 프랑스: 걸프전 참전했던 퇴역병사 단체, 노조, 고교생, 대학 생,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 등이 눈에 띔.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09

310 4 이탈리아: 백발의 연금생활자에서부터 10대의 젊은이까지 거 리로 쏟아져 나와 부시는 현대의 히틀러, 석유를 위한 이 라크 전쟁 No 라고 쓰인 깃발을 휘두름. 이날 집회는 평화 운동 단체, 노조, 가톨릭 단체, 좌익 정당 등 5백 개의 조직 이 연합하여 집회를 준비함. 지난해 피렌체에서 열린 유럽사 회포럼의 성공에 힘입어 전쟁 반대를 위한 전국 단위의 실 행위원회를 결성함. 이 실행위원회를 중심으로 지난해 연말 부터 줄곧 반전 관련 토론회, 세미나, 중소규모의 집회, 홈 페이지 운영을 해 옴. 5 스페인: 평화 운동 단체, 정당(제1 야당인 사회노동당, 통일 좌 익 등), 노동총동맹(UGT), 노동자 위원회(CCOO) 등이 주도. 6 오스트리아: 평화 운동 단체, 환경단체, 종교단체, 사민당, 녹색당, 공산당, 노조 등이 주도함. 7 동유럽: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지지함으로써 친미성향을 드 러낸 동유럽 국가의 대도시에서도 반전시위가 열림. 8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수백 명의 반전시위. 9 미국: 전국 각지에서 모인 50만 명의 인파가 뉴욕의 맨해튼 거리를 메움. 뉴욕의 집회는 평화와 정의를 위한 연합 이 주도함. 이 밖에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마이애미 등의 대도 시를 비롯하여 미국 전역 2백 곳 이상에서 집회가 열림. 주 요한 슬로건은 Bush is Axis of Oil(부시는 석유의 축), 전쟁은 정답이 아니다, 나는 미국인. No War 등. 이라크 문제로 하루 전에 안보리에서 격론을 벌인 유엔 빌딩 앞에 31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11 서도 석유를 위한 전쟁 중단하라 는 구호를 외침. 미국 서 부의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25만 명의 집회. 이날 집회에는 바바라 리 상원의원(부시 대통령이 의회에 제출한 이라크 전쟁 결의안을 유일하게 반대한 의원), 저명한 음악가 보니 레이트, 배우 다니 글로버, 가수 죤 바이에스 등이 참여. 미국의 대대적인 반전시위를 지켜본 부시 대통령은 2월 18일 반전여론에 흔들리지 않을 것 을 다짐했다. 또 라이스 대통령 안보 보좌관은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전 세계 반전운동에도 불구하고 이 라크 공격계획을 강행하겠다. 고 밝혔다. 백악관의 이러한 태도는 오 히려 전 세계 반전운동 세력의 결집력을 높여 주었다. <동북아시아> * 2월 15일 한국, 일본, 대만에서 반전평화집회. <한국의 반전평화 운동> * 1월 29일. 민주당 송영길,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 등 여야의원 17명은 미국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다는 성명 을 발표. * 2월 7일,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NGO 인사들이 반전활동에 나서기 위해 이라크로 출발.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11

312 * 2월 11일. 참여연대, 녹색연합, 민주노총 등 700여 개 시민사 회단체로 구성된 전쟁 반대 평화실현 공동실천 회원 50여 명은 서울 종로구 미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 중단과 한국 정부의 협력 거부를 촉구. * 2월 14일 고은, 황석영, 이시영, 윤정모 씨 등이 소속되어 있 는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자유실천위원회는 미국의 이라크 침 략전쟁을 단호히 반대한다. 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 * 2월 15일, 세계 100여 개국 600여 개 도시에서 이라크 전쟁 에 반대하는 국제반전의 날 행사가 개최된 것에 발맞춰 서 울을 비롯해 전국 6개 도시에서 대규모 반전 평화시위가 열 림. 전쟁 반대 평화실현 공동실천 은 이날 오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시민단체 활동가, 학생, 종교인, 연예인 등 2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이라크 공격 반대, 한반도 전쟁위 협 반대를 위한 국제공동 반전평화 대행진 을 가짐. <이슬람권(동남아시아~인도~중동)> * 2월 7일, 필리핀에서 무장투쟁을 벌여 온 필리핀 공산당 (CPP)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면 이에 맞서 이라크를 지 지하는 투쟁을 벌이겠다. 고 선언. * 2월 8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비동맹 국가 정상회의에 즈 음하여 1백만 명 반전 서명운동을 전개함. * 2월 9일, 인도네시아 정의당의 지지자 수만 명과 국민 각성당 31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13 의 지지자 수백 명이 반전시위를 벌임. * 2월 10일,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서 6천 명이 반전시위. 인도 공산당 등이 참여한 이라크 전쟁 반대 위원회 가 주최함. 힌 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가 종파를 초월하여 이 집회에 참여함. * 이슬람 최대 명절인 이드 알-아드하(희생제) 연휴가 끝나는 금요 대예배일인 2월 14일에 이집트, 팔레스타인, 요르단 등 중동 각 지역에서 수만 명이 시위. * 2월 15일의 집회 현황: 1 말레이시아의 수도인 쿠알라름푸르에 있는 미 대사관 앞에 서 1천 명의 반전집회. 2 타이의 수도 방콕에 있는 미국 영국 대사관 앞에서 2천 명 의 반전집회. 남부지역의 대도시 빠타니에서 1만 명의 집회. 3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에서 수백 명이 집회. 4 동티모르의 수도인 딜리에서 수십 명이 미 대사관 앞에서 전쟁 반대 집회. 5 인도의 수도인 델리에서 이라크 전쟁 반대 델리 시민 initiative 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촛불시위. 캐시미르의 스리 나가르 市 에서 2백 명의 무슬림이 반전시위. 6 아랍 국가들의 경우 모스크나 이슬람 사원에서 반전시위를 전개하는 경우가 많음. 유럽 미국의 거리시위와 달리 종교 지향적인 반전시위를 벌임. 대통령이 반전 의 선두에 서 있는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 서 수만 명의 반전집회.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1만 명의 집회.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13

314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의 두 군데에서 집회. 카이로에 있는 모스크 앞 광장에 모인 시위군중은 No War, Life(생명) Yes, 여성은 전 쟁에 반대한다, 전 세계에 아랍인들의 반전의지를 알리자 는 플래 카드를 들고 행진. 이날 집회는 평화 운동 단체와 시민운동 단체가 주도함. 전쟁의 당사자인 바그다드에서 1백만 명이 전쟁에 반대하고 후세인을 지지하는 시위. 7 파키스탄의 각지에서도 반전시위. 반전시위에 영향을 받은 파키스탄의 무바라크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 어 전쟁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고 말함. <기타 지역> * 2월 1일, 아프리카 연합(AU) 외무부 장관 회의에서 남아프리 카 공화국의 외무부 장관은 이라크 전쟁은 아프리카 제국에 게 심각한 경제적 영향을 줄 것 이라며 전쟁 반대의 입장을 표명. * 2월 14일, 친미국가인 오스트레일리아(미국의 주문에 의해 페 르시아 만에 호주의 군대를 일찌감치 파병함)의 제2도시 멜 보른에서 15만 명이 참가하는 반전시위. 2월 14일에도 호주 전역에서 반전집회가 있음. 2월 15일 집회는 1960년대 베트 남전 반대 시위 이후 최대 규모. 학생 교회 관계자가 주도 함. 뉴질랜드의 수도인 웰링턴에서 5천 명, 오크랜드에서 수 천 명이 시위에 참가. 31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15 * 2월 9일, 홍콩의 가톨릭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대표들이 이라크 전쟁 반대 표명. 홍콩에서 반전 미니 콘서트 열림. 3) 평가 * 2월 15일의 시위는, 유럽 주요도시 시민(성인)의 절반가량이 반전시위에 참가하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집회였다. 시위장에 모인 시민의 숫자와 강렬한 반전의지는 부시정권 블레어 정 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2월 15일의 대 규모 반전시위에 고무된 프랑스 독일 등 반전국가는 people s power 를 지렛대로 삼아 이라크 사찰을 계속해야 한다. 면서 미국을 더욱 강하게 압박했다. 2월 13~20일 반 전주간의 평화열기가 유엔에 전달된 듯 2월 14일에 열린 유 엔 안보리에서 미국의 이라크 공격 강행 이 좌절되었다. 민간 차원의 이러한 대규모 집회와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 국 가 차원의 반전의지에 포위된 부시 대통령은, 전 세계 시민의 평화 염원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쟁을 강행했다. 그래서 전 세계의 평화 애호 세력은 한 달 뒤인 3월 15일을 결전의 날로 삼고 모든 역량을 모으기로 했다. * 각 권역별 비교: 2월 15일의 집회현황에서 본 바와 같이 유 럽이 세계적인 반전운동을 주도하고 미국이 이를 뒷받침했다. 2월 15일의 집회를 이끈 단체는 유럽 쪽의 Stop the War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15

316 Coalition과 미국 쪽의 ANSWER이다. 유럽의 집회 주도 세 력은 다자주의(multilateralism)에 입각한 평화로운 국제질서, 생명존중(이라크 민중의 생명 존중) 을 주창하며 미국의 일 방주의(unilateralism) 전쟁정책을 규탄함으로써 반전운동의 사상적 기반을 정립했다. 특히 단순한 전쟁 반대(not war)가 아닌 非 戰 (No War: 전쟁, 전쟁의 체제를 결사저지해야 한다) 의 관점을 정립함으로써 사상적으로 더욱 치열한 운동을 전 개했다. 유럽의 집회가 미국 반대의 경향을 강하게 드러낸 데 비하여 당사자인 미국 쪽의 집회는 반미보다는 반전평화에 무게가 있었다. 이에 비해 아시아 지역에서 2월 13일~20일의 반전주간 선포 이전에는 의미 있는 반전집회가 없었다. 2월 15일의 세계적인 반전 집회의 경우에도, 거의 모든 아시아 쪽 운동단체들이 유럽 미국 쪽 의 운동방침을 추종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자립적인 반전운동의 틀 을 갖추는 데 부족함을 드러냈다. 일본의 경우 유럽 미국풍의 축제 형 평화 시위 양상을 모방했으나 반전평화 운동의 사상이 집회장에 깃들지 않아 몸으로만 거리시위에 나선 꼴이 되었다. 일본의 집회장 에 반미 구호가 전혀 나오지 않은 반면 한국의 집회장에서는 미국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한국의 경우 거의 모든 운동권이 총력을 기울인 2월 15일 반전 시위장에 고작 2천 명의 시민(거의 운동 관계자나 운동 단체의 회원 31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17 들.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은 별로 없었다)들이 참여했다. 같은 날 로마 시민의 절반인 3백만 명이 시위에 참석한 것을 볼 때 서울 에서는 초라한 시위가 벌어졌다. 그 후 한국의 운동권은 3백만(로마 의 시위참가자 숫자) 對 2천 명(서울의 시위참가자 숫자)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노력한 끝에 유럽 미국과의 차이를 약간 좁혔다. 이슬람권 역시 이라크 전쟁의 정세를 예의주시하고 있었지만 시 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슬람권은 유럽 미 국을 추종하는 집회가 아닌 자체적인 역량을 결집하는 데 노력한 결 과 한 달 뒤인 3월 15일경에는 폭발적인 반전-반미 시위를 조직했다. 3. 제3단계: 고양기( ~3.15)의 반전평화 운동 1) 정세와 반전운동 2월 15일에 모인 1천5백만 세계 시민의 반전평화 합창은 커다란 평화의 힘을 발휘하면서 세계정치를 움직였다. 이날 집회는 이라크 전쟁을 강행하는 부시 정권 블레어 내각에 결정타를 날려 전쟁계획 이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세계적인 반전시위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유럽연합(EU)의 긴급 정상회담은 이라크에서의 사찰은 계속 되어야 한다. 전쟁은 불가피하지 않다. 군사력은 최후의 수단이다. 이라크의 무장해제에 대처하는 제1의 책임은 유엔 안보리에 있다. 이라크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바란다. 는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17

318 그리고 2월 15일 집회의 전야에 오스트리아 정부는 이라크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미군이 오스트리아의 영토를 통과하는 것을 거부한 다. 고 밝히는 등 대규모 반전시위의 약효가 증명되었다. 2월 15일의 유럽 미국 주도의 반전집회는, (이슬람권을 중심으 로 하는) 제3세계 지역에서 반전-반미운동의 바람을 일으켰다. 이 튿날인 2월 16일 카이로에서 열린 아랍연맹 긴급 외무부 장관 회의 에서 미국 영국의 이라크 공격에 협력하지 않는다. 는 성명서를 발표함으로써 전 세계 반전평화 물결에 동참했다. 이어 제13차 비동 맹 정상회담을 주도한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수상은 2월 17일의 기 자회견에서 전 세계의 반전운동에 합류하며 미국 영국의 이라크 공격계획에 반대한다. 고 언명. 2월 17일 페르시아 만의 작은 나라인 오만의 외무부 장관도 이라크 전쟁에 협력하지 않는다. 고 언명. 한 편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은 18일부터의 유럽 순방에 앞서서 가 진 기자회견에서 우리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이라크 전쟁 반 대의 자세를 견지하는 슈뢰더 독일 수상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이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 고 지적. 사우디아라비아의 외무부 장관은 18일 방영된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전쟁을 통해 미국 서방세계에 새로운 이슬람 원리주의가 출현하는 것 을 우려하면서 유엔의 지지 없는 일방적인 이라크 공격을 중단할 것 을 요구했다. 이렇게 2월 15일의 세계적인 반전시위가 반전국가인 프랑스 독 일 러시아 등에 힘을 불어넣는 가운데(NGO와 국가권력이 이심전 31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19 심으로 통하는 신종 World Governance 의 기류가 형성됨), 유엔 안 보리에서 프랑스 중국 러시아의 입지가 강화되었다(프랑스 등은 NGO의 힘을 지렛대로 이용하여 미국에 반기를 들었다). 이와 반대 로 한국 정부는 (촛불시위 반전시위 등을 통해 평화의 힘을 축적 한) NGO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파병을 강행했다. 이라크 전쟁 반대를 에워싼 World Governance의 영향력은 마침 내 유엔 안보리에 미쳤다. 반전시위가 세계정치에 영향을 주어 부시 정권을 압박해 들어갔다. 이에 맞선 부시 대통령은 2월 18일 반전운 동을 적대시하는 발언을 하면서 유엔 안보리의 이라크 공격 결의를 거치지 않고 미국 단독으로 전쟁을 강행할 방침 을 암시했다. 반전 운동이라는 복병을 만나 휘청거린 부시 대통령은 반전운동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더욱 강경하게 치고 나갔다. 이러한 부시의 강공책에 세계 시민(전 세계의 NGO)이 반기를 들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었으 며, 멕시코와 같은 친미국가도 저항했다. 멕시코 대통령은 2월 20일 이라크 전쟁에 동조해 달라는 미국의 거센 압력을 뿌리치고 유엔 중심의 평화적 해결. 전쟁 반대. 일방주의 반대 의 입장을 분명히 했 다. 유엔 안보리의 비상임이사국인 멕시코가 미국에 등을 돌림으로 써 (이라크 전쟁결의안의 통과를 위해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게 집 중 로비를 펼친) 미국에 좌절감을 안겨 주었다. 미국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2월 20일 터키 의회가 이라크 전쟁 을 위한 미군 주둔안을 다시 연기하는 조치 를 취한 일이다. 또 2월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19

320 19일부터 3일간 열린 프랑스 아프리카의 정상회담에서 이라크 문 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와 같이 2월 15일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반전평화 시위는 지 구촌에 평화의 기운을 높이면서 3월 15일의 제2차 D-day를 향해 줄달음쳤다. 2월 15일의 반전시위는 이른바 운동권(NGO)과 무관한 곳에서 생활하는 보통사람들(운동선수, 연극인, 배우, 법률가 등)을 분발하게 함으로써 평화 운동의 지평이 한층 넓어졌다: 2월 18일 독일의 올림 픽 금메달리스트 세계 챔피언 등 5백 명이 반전 성명 발표 /2월 19 일 동경에서 이라크 전쟁과 유사법제( 有 事 法 制 )에 반대하는 연극인 123명의 모임 이 반전성명을 발표 /2월 19일 제임스 크롬웰 등 할리 우드 배우 미국의 교회지도자는 전화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반전 캠페인 Net March 를 전개할 것이며 첫 번째 사업으로 2월 26일부 터 백악관 미 연방의회에 전화 팩스 이메일 공세를 펼치겠다고 발표 /2월 20일 일본의 법률가 변호사 1,200명이 반전 성명 발표. 전 세계의 보통사람들이 분발하기 시작하자 사태를 관망하던 전 세계 노동운동의 주요 단체, 종교단체, 아랍 정치권의 지도자들이 반 전대열에 가세함으로써 부시 정권에 대한 포위망을 더욱 좁혔다. 심 지어 유럽의 자본가(재계)도 이라크 전쟁에 동의하지 않을 정도였 다: 2월 19일 미국 노동계의 반전 세력이 조직한 미국 반전 노동 (USLAW)이 이라크 전쟁 반대 국제노동 선언 을 발표 / 로마 교황, 32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21 영국의 기독교 교회 최고위 성직자, 영국 국교회 대주교, 영국 가톨 릭교회 대주교, 브라질의 전국사교( 司 敎 )회의가 반전의 입장을 밝힘 / 방글라데시에서 1만 5천 명(2월 20일), 파키스탄에서 3천 명의 반전 집회(2월 21일). 주요 슬로건은 No Blood for Oil / 2월 20일 프랑 스의 재계단체인 프랑스 기업운동(MEDEF)의 회장이 이라크 전쟁 은 정당화될 수 없다. 고 성토. 독일 대기업의 간부 6할이 독일 정 부의 반전입장을 지지한다고 < Handelsblatt (2월 20일자)>가 밝힘. 더욱이 2월 22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외무부 장관 등이 어떠한 아랍국가에 대한 침략도 사우디 전체에 대한 적대행위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이라크 공격을 위해 미군이 사우디아라비아의 기지를 사용 하는 것을 거부한다. 고 언급함으로써 미국의 전쟁계획에 찬물을 끼 얹었다. 같은 날 제13차 비동맹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외무부 장관 회의는, 미국이 압도적인 무력으로 지배하는 세계질서를 비판하면서 이 세계질서를 변혁할 의무가 비동맹회의에 있음을 확인했다. 이날 회의는 미국의 일방주의를 비판하는 분위기에서 이루어짐으로써 제3 세계의 반전평화-반미의 입장을 강화했다. 유럽에서 시작하여 미국을 돌아 아시아를 경유하여 제3세계 지 역 전체에 퍼진 반전평화의 물결은 여러 차례의 순환을 이루면서 3 월 15일의 고갯마루를 향해 질주했다. 질주하는 속도는 2월 15일 이 전의 느린 속도와는 확연하게 구별되었다. 2001년 9 11 사태 이후 2003년 2월 15일까지 전 세계 반전평화 운동이 완만한 상승곡선을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21

322 그었다면 2월 15일부터 3월 15일까지는 세계정치를 움직이면서 수 직상승했다. 그 과정을 날짜별 권역별로 살펴본다. 2) 운동의 흐름 <유럽 북미주> * 2월 20일. CNN 인터넷 판은 할리우드 영화계 스타들이 2월 26일 팩스, 전화, 이메일 등을 통해 부시 대통령 등에게 이라 크 전쟁 반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상 시위(1백만 모뎀 시 위)를 벌일 것 이라고 보도. 전화, 이메일, 팩스 등을 이용한 반전시위를 계획 중인 할리우드 스타 마틴 신은 TV광고처 럼 촬영하여 반전의 메시지를 직접 내보내겠다. 고 밝힘. * 프랑스의 저명인사들(영화감독인 다베르니에 씨와 빠트리스 쉐로 씨, 여성 작가인 비비안느 포레스텔 씨 등)이 매스컴을 통해 미국 영국의 기만적인 전쟁계획을 고발. * 2월 22일, 이탈리아 북부에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 활동가 시민 40명이 미군 병력 장비를 운송하는 열차의 진 행을 저지하기 위해 철도 레일 위에서 농성. 스페인의 마드 리스에서 150만 명 시위. * 2월 23일, 독일 각지에서 2만 명의 반전집회(농성, 인간 띠 잇기, 반전 음악회 등 개최). * 2월 23일, 로마 교황은 3월 5일을 평화의 날 로 정하여 행동 과 기도를 하자고 제안. 32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23 * 2월 23일, 뉴욕에서 열린 제45회 그래미 상 수상식에서 인기 절정의 여성 록 가수인 쉐릴 그로우가 No War 라고 쓰인 기타 멜빵을 걸치고 반전노래를 부름. 인기 가수인 마돈나 씨 는 3월 중 충격적인 반전 비디오 를 발표하기로 함. 한편 뉴 욕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두 명의 무대 여배우가 풀뿌리 운동 의 확산을 위해 낭송극의 반전 캠페인 을 벌이기로 함. 이들 은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 중 전쟁 을 풍자한 너의 평화 를 3월 중 전 세계에서 상연하기로 함. 일본의 나고야 동경을 포함한 전 세계의 56개국 850개 연극 단체와 개인이 참여하기로 함. * 2월 23일, 미국 유럽 일본 한국에서 이라크로 들어온 인 간방패 팀이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 * 2월 25일, 집권당인 노동당 의원 59명을 포함한 124명이 반 전 동의안을 하원에 제출함으로써 블레어 정권 안에서 반란 이 일어남. * 2월 26일, 미국의 이라크 반전운동 연합체인 Win without War 는 인터넷을 통한 가상 반전시위를 조직. 가상 시위에 참여한 20만 명의 사람들이 1백만 건의 이메일 팩스를 백 악관 등에 보내는 바람에 전화회선이 불통되기도. * 2월 27일, 미국의 반전 캠페인 연합체인 Win without War 에 참가한 음악가들이 전쟁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 이들은 뉴욕 타임즈에 전쟁 반대의 의견광고를 내기도. 미국에서는 영화계뿐 아니라 음악계에서도 전쟁 반대의 목청을 높임.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23

324 * 2월 28일, 독일의 하겐 시에서 고등학생 2천 명이 반전평화 시위. * 2월 28일, 전 세계 148개 나라의 225개 조직에서 1억 5천8 백만 명의 노동자가 가맹되어 있는 국제자유노련(ICFTU)은 이라크 공격의 정당성이 없다. 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 * 3월 1일,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와 독일의 케일 사이의 국경 지대에서 4천 명이 반전집회. 양국의 노조 평화단체가 공동 주최. * 3월 1일, 독일의 함부르크, 로스토크, 괴팅겐에서 각각 수천 명의 반전집회. * 3월 1일, 로마 교황청이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면서 전쟁을 중 단시키기 위한 평화외교에 착수. * 2월 15일에 3백만 명의 반전집회에 성공한 주최 측은 이 집 회를 영속적인 반전집회의 시작으로 간주하고 줄기찬 반전운 동을 전개하기로 결의. 이 결의에 따라 3월 1일, 나토군 기지 가 있는 이탈리아 중부의 도시 마체라타 시와 북부의 도시 베로나에서 평화행진. 3월 4일부터는 프랑스와의 국경 도시 인 산레모에서 평화축제를 4일간 개최. 3월 8일, 이탈리아 중 부의 도시 피사에 있는 미군 병참기지 앞에서 전국규모의 반 전집회를 개최. 이 밖에 지방에서 선출된 국회의원에게 반전 의 주장을 하도록 요청하는 이메일을 발송하는 운동, 학습토 론회, 평화 음악회 등을 추진. * 3월 15일을 제2차 D-day로 잡은 미국의 평화 운동 단체들 32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25 은 3월 1일부터 운동의 열기를 모으기로 결의. 이 결의에 따 라 3월 1일 미국 각 지방에서 반전평화 행동에 돌입. 3월 5 일의 전국 moratorium day 3월 8일 국제 부인 婦 人 의 날 (세계 여성의 날) 을 맞아 워싱턴에서 반전시위. * 3월 2일, 샌프란시스코 시내의 그레이스 대성당에서 전쟁을 억지하기 위한 기도회를 가짐. 이 기도회에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불교, 힌두교 등의 종교자 2천 명이 참가함. * 3월 3일, 페르시아 만 협력회의(GCC)와 유럽연합(EU)은 유 엔을 통해 이라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 * 3월 3일,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전쟁 반대 월요시위를 가짐. 2만 명이 모인 이 집회에는 사회민주당, 90년 연대 녹색당, 민주적 사회주의당 등의 대표가 참여. * 2월 15일 영국 역사상 최대의 시위를 조직하는 데 성공한 Stop the War Coalition은 3월 15일의 대규모 시위를 성공시 키고 반전열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3월 8일 국제 부인의 날에 반전행동을 했고 3월 12일에는 평화를 위한 국민대표회의를 개최. 또 다른 평화 운동 조직은 3월 1일 전쟁에 저항하는 전 국회의를 런던에서 염. 이 전국회의는 영국 각지의 반전 조직 들이 연이어 집회, 시위, 야간 촛불 집회 등 다양한 행동을 하면서 국민의 반전여론을 모아내고 확산하는 데 목적이 있 음. 3월 13일에는 애견가의 평화행진도 가졌다. 노동조합회의 (TUC)도 전국단위의 반전집회를 염. 이러한 반전평화 운동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25

326 세력의 힘에 의하여 집권당인 노동당의 지지율이 42%에서 35%로 하락. * 3월 초 독일 각지에서 반전평화 행사를 열기로 함. 사육제 (Carnival)가 열리는 독일의 북서부 지방에서 카니발을 반전 시위로 바꿔 열기로. 쾨른 등에서는 사육제의 중심인 장미의 월요일 인 3월 3일 수백만 명의 가장 행진 속에 명확한 반전 메시지를 보내기로. 작센 주에서는 3월 3일부터 8일까지 평 화 주간 을 선포하고 매일 집회, 시위 등을 갖기로. 작센 주 의 라이프치히 시에서도 옛 동독 시대부터 민주화를 요구한 월요 시위의 전통을 이어받아 교회 등이 주도하는 1만~2만 명의 반전시위를 열기로. 작센 주의 포크트란트 지방에서는 매주 수요일에 전쟁 반대 집회를 열기로. 츠비카우 지방에서 는 3월 1일 독일 땅에서 다시는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 다. 는 슬로건을 내걸고 집회. 독일의 최대 도시인 프랑크푸 르트의 공항에 병설된 라인마인 미 공군기지 정문에서 농성 등의 항의행동에 돌입. 독일에서 이러한 반전행동들은 3월 15일의 D-day를 향하여 숨 가쁘게 이루어짐. * 3월 4일, 케네디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은 이라크 전쟁계획 에 반대하는 태도 를 표명함. * 3월 5일, 유럽 국가들의 고등학생 대학생이 반전행진 집회 를 열고 동맹파업에 들어감. * 3월 5일, 350개 이상의 대학 고등학교에서 동맹파업을 하면 서 반전집회를 가짐. 시카고 교외의 고등학교에서는 전체 학 32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27 생의 ⅟4 이상이 반전시위에 참석. 미국 젊은이들의 반전시위 에 호응하여 영국, 스페인, 프랑스, 스위스의 청년들도 집회를 염. 영국의 각 지역에서도 수천 명의 고등학생이 반전시위.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5만 명, 파리에서 약 2만 명의 학생 (고교생 대학생)이 집회에 참석. * 3월 5일, 그리스의 국회의원 120명이 반전 성명 발표. * 3월 6일.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에서 사찰을 중단할 이유가 없다. 는 IAEA 측을 견제하면서, 유엔 안보리의 논의 결과와 무관하게 이라크를 공격할 의지를 보임. 이에 전 세계 반전 운동은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반전운동의 고삐를 더욱 강하게 당김. 미국의 운동단체 ANSWER 등은 3월 15일의 대규모 집회에서 본때를 보여 주겠다고 벼름. * 3월 7일, 전 세계 반전운동의 힘을 지렛대로 이용하는 프랑스 러시아 중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미국 영국이 낸 수정안(3 월 17일 이후 언제나 공격이 가능하다는 최후통첩)에 반대. 이에 미국 영국이 유엔을 거치지 않고 단독으로 전쟁을 결 행하는 쪽으로 굳어짐. 미국의 이와 같은 일방주의 유엔 무 시에 대한 반전운동 진영의 반발이 더욱 커짐. * 국제 부인의 날(세계 여성의 날) 인 3월 8일, 전 세계 61개 도시의 여성들이 빵과 권리와 평화 란 기치를 내걸고 반전시 위를 전개. * 3월 8일, 미국에서 활동 중인 세네갈 출신 인기 가수 유스 운 도르 씨가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노래로 반전여론을 진작시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27

328 키겠다고 발표. * 3월 8일, 이탈리아 북부의 피사 근처에 위치한 미군기지 캠프 다비 외곽에서 좌파 하원 의원들이 동참한 가운데 6만 명의 시위대가 군복을 입은 부시 대통령의 인형을 불태움. * 유럽의 저명인사들(독일의 노벨상 작가 귄터 그라스, 런던대 학 교수인 메어리 칼도, 이탈리아의 노벨상 수상자 리타 레비 몬탈치니 등)이 8일자 르몽드 지에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요구하는 공개서한 을 발표. * 3월 9일, 이라크 전쟁을 강행하는 영국 수상에 반기를 든 각 료들이 사임하겠다고 함. 쇼트 국제개발 장관은 블레어 수상 을 무모 하다고 비판하면서 사의를 표명. 이에 동조한 몇 명 의 각료들도 사표를 낼 태세. 영국에서 매일같이 일어나는 반 전시위가 정치권에 큰 영향을 주어 블레어 내각 안에서 반 란(?) 을 일으킴. 이어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3월 9일자 뉴 욕 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이라크 침공은 2백 년 이상 내 려온 미국의 공약을 파기하는 것 이라고 지적. * 3월 9일, 스페인의 인간방패들이 이라크로 출발. * 3월 10일, 미국의 반전 연합체 Win without War 는 1백만 서명운동을 마감하고 서명용지를 유엔 안보리에 제출. * 부시 대통령 소유의 목장이 있는 텍사스 주 크로포드 부근에 평화 운동가들이 시위 근거지용 주택을 구입했다고 < CNN 인터넷 판 (3월 10일자)> 보도. 32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29 * 미국의 양심적 시민들의 반전운동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미 국 공화당 지방조직의 위원장들과 직업 외교관들이 줄줄이 사표를 냄. * 3월 11일, 영국 집권여당인 노동당 하원의원의 1할에 해당하 는 좌파의원 40명이 블레어 수상의 사임을 요구. * 부시 정권이 이라크 공격을 위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채택 하려고 막바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스페인 북부의 도시 오비에드에서 3월 11일 반전 집회. 참가자들은 Aznar (스페인 수상)와 부시는 암살자, Nato No, 석유를 위한 전 쟁 No 라는 피켓을 들고 거리시위를 함. * 3월 12일, 뉴욕 시 의회가 이라크 공격 반대 결의안 채택. * 3월 12일, 영국의 반전운동 단체인 Stop the War Coalition은 런던에서 인민 회의 를 열고 블레어 수상의 사임을 요구함. 이렇게 영국국민의 강력한 반전운동에 직면한 블레어 정권이 크게 동요함. 반전평화 운동의 정치력이 블레어 내각의 동요 를 가져오는 데 영향력을 행사함. * 3월 13일, 멕시코 국립자치대학에서 학생 교수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반전집회. 이 대학의 교수 칼로스 파시오는 미국이 야말로 진짜 악의 축 이라고 비난. 이라크 전쟁을 반대한 멕 시코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이 급상승. * 3월 15일, 전 세계 반전평화 집회 열림. 스페인의 마드리드에 1백만 명, 파리에 8만 명, 독일의 경우 베를린에 10만 명 / 노 르트 라인 웨스트팔렌 주에 10만 명 / 뉴다 작센주에 5만 명 /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29

330 스투트가르트에 2만 명 / 작센 앙하르트 주에 수천 명, 미국의 경우 워싱턴에 10만 명(백악관 포위)/로스앤젤레스와 미 중앙 군 사령부가 있는 플로리다 주 담파 등에 수십만 명이 모여 전쟁저지 긴급집회 / 부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텍사스에서 6천 명, 이탈리아 밀라노에 70만 명, 벨기에의 수도에서 수만 명, 그리스에서 2만 명, 덴마크의 수도에서 5천 명, 스웨덴의 수도에서 4천 명, 캐나다의 토론토와 몬트리올에 수천 명, 멕 시코시티에 3만 명 등이 운집함. 지난 2월 15일의 집회보다 참가자의 숫자가 적었으나 운동의 열기는 한층 고조됨. <동북아시아> * 49년 전 3월 1일 비키니 섬에서 원자폭탄에 의해 피폭당한 사건을 기념하는 집회가 일본의 시즈오카 현에서 열렸는데, 이 집회의 주요 슬로건은 이라크 전쟁 반대, 핵무기 사용 금 지 임. *3월 2일, 히로시마에서 6천 명의 시민들이 인간 띠를 엮어 No War No Du(열화우라늄탄) 이라는 초대형 문자(사람 문 자)를 만들어 반전의지를 과시함. 사람 문자를 통한 새로운 운동 방법을 개발함. 이 집회에 히로시마 시장도 참여하여 격 려함. 일본의 후쿠오카 현에서도 6천 명이 반전시위. * 3월 4일, 일본의 세계평화를 요구하는 교토( 京 都 ) 종교자 연 락회 는 부시 대통령, 고이즈미 수상, 유엔 안보리 이사국에 33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31 이라크 공격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요청문을 보냄. * 3월 8일, 일본 36개 도시에서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는 World Peace Now 집회가 열림. 4만 명이 집결. 같은 날 일본의 종 교계(천태종, 臨 濟 宗, 曹 洞 宗, 眞 宗, 가톨릭, 개신교 등)가 이 라크 전쟁 반대를 호소하는 거리 시위. 이미 2월 말에 일본의 거의 모든 불교교단이 가맹하고 있는 全 日 本 佛 敎 會 가 일본 佛 敎 者 의 비전 평화( 非 戰 平 和 ) 성명서를 발표. * 3월 11일, 일본 공산당 주도로 일본 전역 7,800곳에서 전쟁 반대 행동(집회, 시위, 피케팅, 거리 선전, 주택가 순회, 서명 받기 등)을 함. * 일본의 유명한 노래패인 SMAP가 평화를 노래한 CD, 텔레비 CM 등이 반전시위장의 애창곡이 됨. * 3월 13일, 한국의 여야 국회의원 35명이 이라크 전쟁 반대 성명. 외국의 정치인들에 비하면 너무 늦게 반응을 보임. * 3월 15일 전 세계 반전평화 시위 전개. 일본 동경의 히비야 공원에서 1만 명이 집회를 마친 다음 거리행진. 주요 슬로건 은 No War, Stop 이라크 전쟁, 유사법제( 有 事 法 制 ). 교토 에서 3천 명, 오사카에서 1,800명, 오키나와에서 5,500명, 히 로시마에서 1,300명이 반전행동을 함. 인도는 1천 명, 타이는 3천 명, 말레이시아 2천 명(최대 야당이 주도), 베트남 수백 명(베트남 여성연합회가 주도), 방글라데시 1천 명이 시위에 참여.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31

332 <한국의 반전평화 운동> * 2월 19일,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며 인간방패 를 자원한 한국 이라크 반전평화팀 3진 오김숙이(34. 여) 씨가 출국. * 2월 27일, 반전평화 여성행동 등 30여 개 여성단체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회원 3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집회를 갖고 이라크전쟁 반대를 촉구. * 3월 1일.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며 평화활동을 펼치기 위해 출 국했던 한국 이라크 반전평화팀 11명이 이라크에 입국, 본 격적 활동에 들어감. * 3월 13일, 민주당 김근태,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 등 여야 국 회의원 35명은 이라크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성명 을 발표. * 3월 14일, 이라크 공격을 반대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기원하는 반전단체의 집회와 시위가 부산에서 잇따름. 부산지역 100여 개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부산지역 시국회의는 부산항 8부두 에서 미 항공모함의 부산항 입항과 한미연합전시증원훈련 (RSOI)을 규탄하는 집회를 가짐. 시민단체들은 미국의 이라 크 침공이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미 항 공모함 칼빈슨이 부산항 8부두에 입항하는 것은 전쟁 반대와 평화실현을 요구하는 국민 모두의 바람에 찬물을 끼얹는 행 위 라고 항의. 이들은 한미연합전시증원 훈련기간인 오는 19 일부터 27일까지 일주일간을 부산시민규탄행동주간으로 선포 33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33 하고 집중적인 전쟁 반대 운동에 돌입. * 3월 14일, 민주노총이 이라크전쟁 반대 대표단 3명을 이라크 로 파견. * 3월 15일, 미국과 이라크 간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 운데 광주지역 시민단체들이 전쟁 반대와 평화실현을 촉구하 고 나섬. 전쟁 반대 평화실현 젊은 행동 은 이날 오후 광주 동구 충장로 밀리오레 앞 도로에서 이라크 전쟁 반대와 한국 군 파병 및 지원반대, 여중생 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를 촉구 하는 집회를 가짐. * 3월 15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는 이라크 전쟁 반대와 미군 궤도차량에 희생된 여중생(효순 미선 양)을 추모하는 대규모 촛불시위가 열림. 여중생 범대위 와 전국 700여 시민단체로 구성된 전쟁 반대 평화실현 공동실천 은 이날 오후 5시부터 서울 종묘공원에서 참여단체 회원과 시민 등 3천여 명이 참 가한 가운데 3 15 반전평화 촛불 대행진 을 개최. <이슬람권(동남아시아~인도~중동)> * 2월 22일, 이집트의 카이로 대학 학생들이 반전집회. 이 집회 에 호응한 교수, 언론인, 여성 조직의 활동가 등 1천 명이 대 학 앞에서 집회. * 2월 25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비동맹 정상회담은 이라크 정 세와 관련하여 무력사용 금지, 사태의 평화적 해결, 유엔의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33

334 역할 중시, 이라크의 유엔 결의 준수 등을 담은 성명서를 내 고 폐막. 비동맹 정상회담에 참석한 이란 대통령(이란), 인도 네시아 대통령, 싱가포르 수상, 레바논 수상, 짐바브웨 대통령 등은 2월 25일에 열린 일반 토론회에서 이라크 전쟁 반대- 평화적 해결 을 주장. * 2월 26일, 파키스탄의 북부도시 라와발핀디에서 언론인 등이 반전집회. * 2월 27일,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15만 명의 반전집회. 이라크 와 팔레스타인 인민을 지지하는 국민연합 이라는 단체가 주도 한 이 집회에 국회의원, 변호사, 의사, 언론인, 노동자, 여성, 학생 등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운집함. * 3월 1일, 예멘의 수도인 사누아에서 30만 명의 반전집회. 아 랍권에서 최대 규모의 집회임. 여당인 국민전체회의(GPC)와 노동조합이 주최함. * 3월 2일, 파키스탄의 남부 도시인 카라치에서 7만 명의 반전 반미 시위를 통해 파키스탄의 친미 군사독재 정권에 경고장 을 보냄. 파키스탄에서 최대 규모의 집회임. 이 집회는 이슬 람교도 정당인 통일 활동회의(MMA) 가 주도함. * 3월 5일,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여당인 국민 민주당이 반전집 회 개최. 정당 관계자를 비롯하여 기독교 신자를 포함한 종교 관계자, 노동자, 여성, 대학생, 고등학생 등 거의 모든 계층이 각지에서 쇄도함. * 3월 5일, 이슬람국가 회의 기구(OIC) 긴급 정상회의에서 이 33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35 라크 공격을 거부하는 성명서를 채택. * 드디어 이슬람권의 민중들이 들고 일어남. 3월 9일, 인도네시 아의 제2의 도시인 스라바냐에서 80만 명이 평화의 기도를 올림. 최대의 이슬람 단체인 나프다들 우라마(이슬람 학자의 각성) 가 주최함. 같은 날 파키스탄의 수도에서 가까운 북부 라와발핀디에서 40만 명이 석유를 위한 전쟁 반대, 이슬람 교도를 죽이지 말라 는 슬로건을 내걸고 반전집회. 이 집회에 젊은이들이 대거 참여함. * 이와 같은 세계적인 반전평화 운동의 물결은 부시의 전쟁정 책을 직간접적으로 밀어 주던 언론매체의 태도를 바꾸게 만 듦. 뉴욕 타임즈는 3월 9일자 사설에서 이라크 침공을 반대 하는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부시 정권에게 일침( 一 針 )을 놓음.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세계 시민의 여론이 철옹성 같던 언론 의 일각을 무너뜨리기 시작. * 3월 15일, 전 세계의 반전시위에 발맞춰 중동 지역에서도 가 열 찬 반전시위. 예멘의 각지에서 수십만 명이 시위. 여당과 이슬람 단체, 노조가 주도함. 요르단의 수도에서 이라크 공격 을 반대함과 동시에 요르단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에 저항하는 시위(5천 명 참가). 팔레스타인의 자치구인 가자에서 2천 명이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며 시위. 터키에서는 이스겐데른 항구 로 미군의 물자 장비를 반입하는 것을 저지하는 행동을 전개. * 3월 16일, 시리아 이란 대통령은 미국의 이라크 전쟁 군사 개입을 반대함.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35

336 <기타 지역> * 3월 4일, 아프리카의 카메룬 외무부 장관이 이라크 공격에 반 대함. * 3월 5일, 중남미를 대표하는 국공립대학(21개 대학) 학장들이 반전성명 발표. * 3월 10일, 뉴질랜드의 시민 5백 명은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 는 오스트리아의 수상이 뉴질랜드를 방문하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를 전개. * 3월 15일, 전 세계의 반전집회에 호응하여 풀뿌리 평화 운 동 을 전개하자는 결의 아래 오스트리아 각지에서 시위. 오스 트리아 정부가 이미 2천 명의 군대를 파병했기 때문에 하워 드 정권의 파병을 규탄하는 내용이 시위의 중심임. * 3월 15일. 아르헨티나의 수도에서 5천 명, 칠레의 수도에서 수천 명이 시위. * 3월 16일, 아프리카 3개국(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 세네갈)의 정상은 이라크 공격을 위해 중동 지역에 배치된 미군의 철 수 를 요구하는 공동서한을 유엔 미국 정부 앞으로 보냄. * 3월 17일, 러시아 정교회 총주교는 이라크 공격반대 성명을 냄. 33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37 4. 제4단계: 반전운동의 밀물과 썰물이 교차한 시기( ~ 4.20)의 반전평화 운동 1) 정세 3월 15일의 전 세계 반전시위,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반전국 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을 강행할 채비 를 서두르면서 전쟁의 D-day를 조율하고 있었다. 이윽고 3월 17일 에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를 공격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 최 후통첩을 영국 일본 오스트리아 한국 정부가 지지 동조하고 프 랑스 독일 중국 중동 국가(말레이시아 등)가 비판하고 러시아는 미온적으로 반응함으로써, 세계는 전쟁국가 군( 群 )과 평화국가 군 ( 群 )으로 나뉘게 되었다. 여기에서 한국 정부가 이라크 파병을 단행 함으로써 국민의 평화의지와 무관하게 전쟁국가 群 에 들어간 점에 주 목할 필요가 있다. 부시의 최후통첩과 이에 추종하는 블레어 정권에 항의하는 뜻으로 영국 집권당의 하원 원내총무, 보건부 담당 정무차 관(상원 의원), 내무 담당 국무부 장관이 사임했다. 한국의 정치인 중 파병에 항의하는 뜻으로 사임한 사례가 전무함에 비추어 보면 유 럽 미국 지도층은 반전평화 의식이 높고 평화애호 국민의 뜻을 받 들려는 의지가 강함을 알 수 있다. 한국 지배계층의 평화의식 전무 ( 全 無 ) 와 대조적이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37

338 2) 운동의 흐름 3월 17일에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 대하여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에 바짝 긴장한 전 세계의 반전평화 운동 진영은 전쟁을 반드시 저지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드디어 3월 20일 미국 영국 연합군이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개 시하자 즉각적인 반전집회가 세계 곳곳에서 열렸으며, 3월 15일의 집회 때보다 훨씬 엄중한 반전의지를 나타냈다. 이라크전 개시 이후 의 반전운동은 침공 자체에 대한 맹렬한 반대, 제국 미국에 대한 규탄과 더불어 무고한 이라크 민중에 대한 공격 및 비인도적인 폭탄 (열화우라늄탄, 벙커스터 집속탄 투하)에 대한 성토가 주요한 내용이 다. 특히 4월 10일경 미국 영국군이 바그다드를 점령하기 시작하자 이에 대한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4월 중순경부터 바그다드 의 점령이 확실시되자 점령에 저항하는 시위가 바그다드 등에서 있 었으나 전체적으로 반전운동의 썰물 현상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 다. 4월 20일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몰락을 지켜본 세계 시민들 상 당수가 거리로 나와 거세게 항의하기보다는 뒷전에서 미국 영국을 비난하거나 정세를 관망하는 자세를 취한 것으로 추정된다. 개전 이후의 반전운동의 특징 중의 하나는, 학생들 특히 고교생 들이 대거 반전집회에 참가했다(일부 집회에서는 아동들도 참가)는 점이다. 대학생들과 달리 고교생들이 거리시위에 쏟아져 나오는 현 33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39 상은 변혁의 기운이 높아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3월 15일의 대규모 집회 때보다 강한 반미정서가 나타난 점도 주목의 대상이다. 만약 전쟁이 몇 달간 지속되었더라면 반전평화 시위가 반 미 데모로 바뀌어 제국 미국에 대한 변혁적인 도전장을 보냈을 것 이다. 1968년 유럽 미국을 휩쓴 혁명적 상황 또는 70년대 베트남 반전운동의 긴박한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미군의 압도적인 무력에 힘입은 미국 영국 연합군이 예 상 밖으로 너무 빨리 이겼다. 이 바람에 세계적인 반전운동 세력이 미국을 옥좨 왔던 나사 역시 너무나 쉽게 풀려 버렸다. 한번 풀리기 시작한 나사를 다시 감기 어려워 반전운동의 기운이 급격히 떨어지 는 현상이 발생했다 사태 이후 아프간 전쟁을 경과하면서 서서히 달구어진 반 전평화의 열기가 이라크의 패전 직전부터 급격하게 냉각된 이유를 밝히는 게 중요하다. 이라크의 패전 이후 반전운동의 거품이 지나치 게 빨리 빠진 원인을 규명함으로써, 반전평화 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다시 정립해야 할 것이다. 생각건대 세계적인 차원의 반전운동에 다음과 같은 맹점이 있는 듯하다: 1 운동의 지도부가 부재한 점. 미국의 ANSWER나 영국의 Stop the War Coalition과 같은 단체가 앞장서서 운동을 이끌어 갔 으나, 이들 단체는 전 세계의 반전평화 운동을 진두지휘할 만큼의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39

340 조직편제나 역량을 갖추지 못한 상태이었다. 2 지도적인 사상, 반 전평화 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부족한 점. 예컨대 1968년의 사회혁명 시기처럼 세계적인 차원에서 가치관의 전도를 이끌 만한 사상적 토 대가 있었어야 마땅하다. 3 조직의 문제. 운동의 수평적인 네트워 크에 지나치게 기대했기 때문에 강고한 조직을 엮어 내지 못한 듯하 다. 4 학생 노동자 등 대중의 주력부대가 뒤늦게 발동이 걸린 점. 시민사회의 흩어진 개개인들이 이라크 침공 직후까지는 결집되었으 나 이라크 패전 이후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렸다. 이러한 맹점은 국 내의 반전평화 운동 진영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5 운동력의 파급효과 문제. 운동의 발원지가 주로 유럽 미국이고 수 렴되는 곳도 유럽 미국이었기 때문에 지구촌 차원으로 확산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미국의 공격대상인 제3세계 불량국가(반미국가) 群 으 로 반전운동의 불길이 크게 번졌으면 미국 영국이 진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이라크 민중과 동일한 세계관(이슬람 문명)을 가진 중 동에서 조직적인 반전 반미 운동이 일어나지 못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령의 최후통첩 이후 반전운 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다. <유럽 북미주> *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 최후통첩 연설이 있었던 3월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41 일. 미국의 반전 평화 운동 연합체들은 최후통첩에 항의하는 시위를 조직하는 한편 전쟁이 발발했을 경우의 저항 대처 요령을 담은 새로운 반전 캠페인 행사를 시작함. 반전연합체 중의 하나인 평화와 정의를 위한 연합(UFPJ) 은 3월 17~24 일을 비폭력 평화 운동 기간으로 설정하고 3월 24일 뉴욕에 서 대규모 집회를 열기로 함. 또 하나의 반전연합체인 ANSWER는 뉴욕의 유니온 광장에서 긴급집회를 가짐. 이들 조직들은 전쟁이 터졌을 경우 미국 각지에서 저항하자고 호 소하면서 항의행동 요령을 선전. 미국의 이름난 평화 운동 조 직인 AFSC(미국 친우 봉사회)도 전쟁 반대의 막바지 노력을 기울임. 이 밖에 베트남 전쟁의 거점이었던 샌프란시스코, 펜 실베이니아, 미시간, 콜로라도, 뉴햄프셔 주 등에서 대규모 반 전시위를 벌임. * 3월 17일, 독일의 라이프치히 시에서 3천 명이 시위. * 3월 19일, 영국의 초당적인 반전파 의원들 217명이 무력사 용은 부당하다. 는 동의안을 제출. * 3월 20일 미국 영국 연합군이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 자 즉각적인 반전집회가 세계 곳곳에서 열림. 이 무렵부터 학 생들 특히 고교생들이 대거 반전집회에 참가(일부 집회에서 는 아동들도 참가). 대학생들과 달리 고교생들이 거리시위에 쏟아져 나오는 현상은 변혁의 기운이 높아지고 있음을 반증 하는 것. 그리고 3월 15일의 대규모 집회 때보다 강한 반미 정서가 나타난 점도 주목의 대상.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41

342 3월 20일 유럽의 반전운동 상황은 다음과 같다: 독일의 고교생 수만 명(베를린 2만 명, 뮌헨 5천 명, 쾨른 2천 명)이 각지에서 항의 시위. 독일 전국에서 3백 건 이상의 반전집회 에 20만 명 참가. 프랑스의 파리에서 7만 명이 시위. 全 學 連 (UNEF)은 수업거부를 발표. 저녁에 파리의 미 대사관 앞에서 반전 시위. 파리 리용 등에 서 이날 오전부터 대학생 고교생들이 항의집회. 이탈리아의 3대 노조가 오후 3시부터 2시간 동안 파업하자고 호 소. 오전 중부터 로마 밀라노 나폴리 등 주요도시에서 고교생 대 학생이 항의 집회. 로마의 미 대사관 앞에서 약 1천 명이 전쟁 No, 폭탄 No 라고 외치며 농성. 밀라노에서는 고교생 노조 조합 원 등 15만 명이 항의 시위. 스페인의 전쟁 반대 platform 주도로 대규모 시위를 전개.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15만 명의 대학생 고교생이 미 대사관 앞 에서 시위. 스위스에서도 고교생이 수업을 거부. 주네브에서 5천 명, 누샤텔 에서 3천 명 등 전국 30개 도시에서 시위. 영국의 런던에서 5만 명이 시위. 주요 평화 운동 단체인 Stop the War Coalition 과 공무원 노조 UNISON 등은 오후 6시부터 각 도시에서 긴급 항의 행동을 벌였고 22일 런던에서 집회를 열기 로 함. 이 밖에 맨체스터, 리즈, 브래드포드 등에서 노동자 학생들 이 집회. 런던의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고교생 등이 시위. * 3월 20일, 이라크 침공 소식을 들은 미국 시민들이 항의집회 34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43 를 즉각적으로 준비함. 워싱턴을 비롯하여 뉴욕, 시카고, 샌프 란시스코, 필라델피아, 보스턴, 마이애미, 댈러스, 피츠버그 등 주요도시에서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반전의 목소리를 높임. 하버드 대학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하고 시카고의 고교 생 수백 명 역시 수업거부. 워싱턴에서는 ANSWER 주도의 긴급시위가 백악관 앞에서 열림 테러 관련 유족회가 반전 성명서를 냄. *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시작된 가운데 미군 부대 내에서 잘못 된 전쟁 에는 참가할 수 없다는 참전거부 움직임이 일어나 기 시작. 반전단체들은 지난 1월, 군인들이 전쟁에 반대한다 며 비상 전화망을 통해 상담을 타진해 온 건수가 3,500통에 달했다. 고 지적. 이는 평소 월 평균 상담건수의 두 배에 해 당됨. * 3월 21일, EU 정상회담이 열리는 브뤼셀에서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의 노동자가 중심을 이룬 3만 명이 평화와 고용 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시위. 로마에서는 전국에서 모인 농민 20만 명이 농업정책 규탄 대회 중 평화 운동을 상징하는 깃발 을 휘날림. 파리에서는 고교생 2,500명이 미 대사관 근처의 광장에서 시위. 아테네에서도 반전집회. 고교생들이 미 대사관 앞에서 항의. 독일의 포츠담에서 2천 명의 고교생이 평화행진. 코펜하겐에서 1천 명 이상의 고교생이 국회 앞에서 집회. * 3월 22일, Stop the War Coalition이 주도하는 집회가 런던에 서 열림. 개전 직후 영국민의 여론이 이라크 전쟁 지지 쪽으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43

344 로 기울었음에도 불구하고 1백만 명의 시민이 반전시위에 참 여함. 시위대는 중심가를 돌며 전쟁 중단, 블레어는 사퇴하 라 는 구호를 외침. 고교생 대학생들이 많이 참가함. 처칠 전 영국 수상의 손자(14살)도 시위대에 참가하여 이라크 공격 에 반대함. 같은 날 독일의 각지에서 10만 명이 시위. 포르투갈에서 9만 명, 스웨덴에서 6만 명, 스페인에서 25만 명, 이탈리아의 밀 라노에서 5만 명, 파리에서 10만 명이 시위. *3월 22일, 미국 독립영화계의 아카데미상으로 일컬어지는 Independent Spirit상 수상식에 참석한 영화감독 배우들은 부시 대통령 이라크 전쟁을 비난하는 발언을 쏟아 냄. * 3월 23일, 미국의 워싱턴에서 퇴역군인과 가족, 이라크 전쟁 에 가족을 보낸 사람들 5백 명이 반전시위. Veterans for Peace 등 반전 평화를 내건 퇴역군인 조직들이 결성한 이 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퇴역군인 이라는 단체가 주최함. 참가자 들은 우리들은 결코 베트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 주창함. * 3월 24일,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5만 명, 함부르크에서 2만 명, 예나에서 수천 명, 킬에서 수천 명이 시위. * 3월 27일, 독일의 전쟁 반대 어머니 라는 단체의 어머니 40 명이 베를린에서 브란덴부르크 주까지 150킬로미터를 걸으며 평화행진을 벌임. 포츠담에서 2,500명의 고교생이 시위. 킬에 서도 3,500명의 고교생이 집회에 참석. * 3월 29일 독일에서 12만 명, 프랑스의 파리에서 6만 명, 영국 34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45 런던에서 1만 명, 이탈리아에서 10만 명, 그리스의 아테네에 서 5만 명, 스위스의 쥬네브에서 5천 명이 시위. 이 밖에도 스페인, 폴란드, 불가리아, 헝가리, 슬로베니아 등에서 시위. 미국의 보스턴에서 수만 명 시위. 뉴욕에서 1천 명 시위. * 뉴욕을 비롯한 미국의 162개 자치주에서 이라크에 대한 선제 공격을 반대하는 결의를 가결함. * 로마 시장이 지난 1월 말 유럽의 6대 도시 시장에게 제안한 바 있는 이라크 전쟁 반대 성명을 냄. 이탈리아에서 평화선언 을 한 자치체의 집합체인 평화를 위한 지방공공단체 는 개전 직후부터 가맹자치체에서 반전결의를 채택하는 데 성공. 지난 2월 25일의 국제반전의 날에 278개 지역 자치체의 대표들이 참석. 3월 중순 노조 주최의 반전집회에도 나폴리 시장이 참 석하는 등 다수의 자치체가 평화 운동에 나섬. * 3월 31일,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4만 5천 명이 시위. * 4월 2일, 이탈리아 전국에서 8시간 동안 파업(1백만 명이 참 여). 파업과 더불어 전국 주요도시에서 30만 명의 노동자 시 민 학생이 행진. * 미군병사들의 가족 동아리인 Military Families Speak Out 가 이라크 침략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여 옴. 반전조직을 만 든 가족들은 한시라도 빨리 전쟁이 끝나 사랑하는 자식들이 나 남편 애인이 귀환할 것을 호소함. 이 단체는 지난 2월에, 유엔의 승인 없이 전쟁을 일으킨 부시 대통령을 보스턴 재판 소에 제소함.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45

346 * 4월 4일, 대기업의 범죄나 정치인과의 유착을 고발하는 미국 의 민간조직 Citizen Works 는 이라크 부흥사업을 수주했으 며 체이니 부통령과의 관계가 깊은 회사(에너지 건설 대기업 헐리버튼의 자회사인 KBR) 앞에서 항의시위. * 바그다드를 무차별 폭격하면서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한 사 태에 항의하는 집회가 4월 5일 집중적으로 열림.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평화단체들의 반전집회가 열림. 캘리포니아 주의 오 클랜드에서 수천 명(바바라 리 상원의원이 연설), 시카고 집 회에 수천 명이 모임. 워싱턴에서 수백 명의 여성들이 시위. 영국 런던에서 Stop the War Coalition의 주도 아래 3천 명 이 집회.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유럽주둔 미 육군사령부 앞에서 2천 명이 항의시위. 이탈리아의 아비앙 미 공군기지 앞에서 1천 명이 시위. 스페인의 발레시아에서 3만 명이 집회. * 4월 7일,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3천 명 시위. * 4월 9일, 모스크바의 미 대사관 앞에서 10만 명 시위(과거 10 년 동안 최대의 집회). * 4월 10일. 1987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리아스(전 코스타 리카 대통령), 미국의 영화배우 제인 폰다, 1999년 노벨 문학 상 수상자 귄터 그라스가 미국을 비판. * 4월 10일, 스페인의 2대 노조인 노동자위원회(CCOO)와 노동 총동맹(UGT)이 주도한 집회에 10만 명 참석. 34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47 * 4월 11일, 미국의 워싱턴에서 ANSWER가 주도하는 집회에 수만 명 참석. * 4월 12일, 독일의 각 신문은 미국 영국군의 바그다드 점령 을 비판. * 4월 12일, 로마의 집회에 50만 명 운집.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에서 30만 명, 마드리드에서 20만 명, 런던에서 20만 명, 베 를린에서 1만 5천 명, 파리에서 1만 5천 명, 멕시코의 주요도 시 10만 명 집회. * 4월 14일,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1만 5천 명 시위. 이날 올 해의 미국 아카데미상의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식에서 부시 대통령을 통렬하게 비난하여 화제를 뿌린 마이켈 무어 감독 은, 미국 정부의 전쟁 노선을 강력하게 비난. * 4월 15일, 미국의 배우 감독인 팀 로빈은 미국 시민들은 분 노와 용기를 갖고 전쟁의 흐름을 바꿔 보자 고 호소. * 4월 15일,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이 이라크를 점령한 미 영 국군이 시민의 인명 병원 수도보다 유전의 보호를 우선시 한다. 고 비판. * 4월 18일, 부활절 기간 중 독일의 개신교 가톨릭교회를 중 심으로 평화행동을 개시. 켐니츠에서 8백 명이 평화행진. 라 이프치히에서 자동차로 시위. 프랑크푸르트에서 미 공군기지 앞 시위. 4월 21일에 베를린에서 5천 명, 함부르크에서 8천 명, 프랑크푸르트에서 9천 명이 시위. 시위자들은 전쟁범인 부시 블레어를 국제법정에 세워야 한다. 고 역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47

348 * 4월 19일, 독일의 운타덴딘덴에서 30여 일 동안 농성을 해 오던 활동가들은 이라크에서 미군이 나갈 때까지 운동을 지 속하겠다고 다짐. <동북아시아> * 3월 18일, 베트남 각지에서 부시 대통령의 최후통첩에 저항하 는 반전시위. * 3월 20일 미국 영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이에 항의하는 시 위가 일본 곳곳에서 열림. 3월 20일 하루 동안 일본의 반전시위 상황은 다음과 같다: 일본 공산당 주도로 10,675곳에서 반전시위. 1,200명의 고교 생이 시부야 미야시타 공원에 모여 전국 고교생 평화집회를 가짐. 집회를 마치고 미 대사관을 지나 히비야 공원까지 2시 간 동안 평화 행진. 시민단체가 주최한 World Peace Now 3.21 집회에 5만 명이 참가. 3월 22일에도 일본 각지에서 시위. * 3월 21일, 한국의 교수노조에 가입한 8백 명의 교수들이 이 라크 침공과 한국군 파병을 반대하는 성명을 냄. * 3월 25일까지 일본의 영화인 181명이 반전성명을 냄. * 3월 26일, 일본의 노조조직인 全 勞 連 등이 주최한 반전시위. 2,500명 참가. * 3월 30일, 일본의 오사카 시민 2,500명이 전쟁 반대 라는 인 34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49 간 띠를 형성하며 시위. 이날 중국의 베이징에서 개전 이래 최초의 반전시위. 베이징에 사는 외국인 등 300명이 참여함. 베이징 대학에서도 150명의 학생이 시위. * 3월 31일, 일본 동경의 미 대사관 앞에 고교생 50명이 모여 평화의 메시지 묶음을 대사관에 전달. * 4월 2일, 일본 동경의 메이지 공원에서 공산당이 주도하는 집 회에 1만 5천 명이 참석. <한국의 반전평화 운동> * 3월 17일.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임박한 가운데 네티즌의 절반 정도가 비전투병을 포함한 어떠한 군사적 지원도 하 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냄. 17일 포털 사이트 네이버 ( 네티즌 4천447명을 대상으로 한국의 이 라크전 지원에 대한 인터넷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의 47.6%가 지원을 일절 하지 말아야 한다. 고 답함. * 3월 17일, 교사단체인 화해평화통일교육 전국모임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한국 교사들의 평화선언 을 발표함. * 3월 18일,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등 13개 불교단체로 구성된 반전평화 불교대책위원회는 서울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에서 이라크 전쟁 반대와 한반도 평화기원 법회 를 봉행하고 조계 사 인근에서 촛불행진을 가짐. * 3월 19일, 35개 여성관련 단체로 구성된 반전평화 여성행동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49

350 은 이날 낮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이라크 침공과 한국군 파병을 반대하는 여성들의 외침 행사를 개최. * 미국의 대 이라크 공습이 시작된 20일 전쟁에 반대하는 시민 단체의 목소리가 잇따름. 전쟁 반대 평화실현 공동실천 과 전국민중연대, 미군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범대위 등은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 열린 시민마당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항의하고 우리 정부에 이라 크전 파병결정을 철회할 것을 촉구함. * 3월 20일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각 대학들은 미국의 이 라크 공습이 시작된 직후 학내에서 잇따라 반전 집회 및 선 전전을 갖고 미국의 이라크 공습을 규탄한다. 고 밝힘. * 3월 21일 새벽 미국의 이라크 공습이 다시 시작된 가운데 전 쟁에 반대하고 우리 정부의 전쟁지원방침에 항의하는 시민사 회단체들의 목소리가 이어짐.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등 45개 사회시민단체로 구성된 전국민중연대 는 이날 오전 청와대 부근 효자파출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 정부의 전쟁 지원 결정에 반대 입장을 나타냄. 김세균 서울대 교수 등 전 국교수노조 소속 대학교수 810명도 이날 미국의 이라크 침 략규탄과 한국군 파병반대 교수 800인 선언 을 발표. *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시작된 이후 첫 주말을 맞은 3 월 22일 오후 서울의 두 곳에서 집회. 이날 오후 서울의 종 묘 공원에서 학생 교사 NGO활동가 종교인 3천 명이 집 회. 환경재단, 참여연대 등 6개 단체는 이날 오후 서울 시청 35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51 앞 광장에서 틱낫한 스님 방한 기념 평화염원대회 를 염. * 3월 24일, 노사모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내부에 서 노무현 정부가 미국의 이라크전 개전 지지 입장을 표명한 데 대한 반대 입장 이 잇따라 제기돼 조직 내 찬반논란이 뜨 겁게 달아오름. * 3월 26일 오전 9시 5분께 학생 30여 명이 서울 종로구 미국 대사관 앞에서 기습시위를 벌임. 이어 오전 11시 50분께 환 경운동연합 소속 회원 3명이 서울 종로구 공평동 맥도날드 매장 앞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기습시위를 벌임. *3월 26일, 국가인권위가 정부의 전쟁지지 방침과 배치되는 전쟁 반대 의견서를 채택한 것에 대해 인권단체와 네티즌들 은 대부분 인권위가 이제야 제자리를 찾고 있다. 며 환영했 지만 일부에서는 파병 문제를 놓고 확실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함. * 3월 26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성국 신부(청주교구 청소 년수련관 관장)가 반전 평화활동을 펼치기 위해 이라크로 떠남. * 3월 27일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관련, 국내의 외국인 노동자 들이 시민사회단체들과 연계해 반전집회를 열기로 함. 가칭 경기남부 외국인노동자단체 연대회의 준비위원회는 오는 30 일 오후 안산역 광장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 중단과 외국인 노동자 차별철폐를 촉구하는 대규모집회를 갖기로 함. * 3월 28일 반전운동의 한 축인 한국 이라크 반전 평화팀 과 이들의 지원단체인 지원연대 는 기존 광화문 촛불시위가 반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51

352 전평화의 이념을 제대로 담고 있지 못하다. 며 반전평화를 위 한 새로운 촛불시위를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 것을 제안함. * 4월 12일 여중생 범대위와 전쟁 반대평화실현공동실천이 주 최하는 국제 반전평화 공동행동의 날 행사가 이날 오후 서 울시청 앞 광장에서 시민 1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열림. 광주와 전남 지역에서도 전쟁 반대 결의대회와 시위가 벌어 짐. 이날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는 광주 전남 민중연대 회원 100여 명이 2km 구간을 행진하며 시민들을 상대로 전쟁 반대 피켓 선전전을 벌였고 목포통일연대도 같은 시간 목포 역 광장에서 결의대회와 시가행진을 함. <한국군의 파병반대 운동> * 3월 21일, 민주노총은 국회 앞에서 전쟁 반대 파병반대 집 회를 갖고 간부들 중심으로 밤샘농성에 들어간다고 21일 밝 힘. * 3월 23일 민주노총, 전국민중연대, 여중생범대위, 전쟁 반대 평화실현공동실천 등 사회 노동 단체와 민주노동당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의 파병 철회를 촉 구하며 철야농성에 들어감. * 노동계가 이라크전 파병 동의안에 찬성하는 국회의원에 대한 대대적인 낙선운동을 선언하고 나섬. 민주노총은 26일 성명 35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53 을 내고 오는 4월 2일로 연기된 국회 한국군 파병 동의안에 찬성하는 의원들에 대해서는 곧바로 지역구 유권자를 대상으 로 강력한 사전 낙선운동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 전쟁 반대 평화실현 공동실천 참가 700여 개 사회단체와 연대해 내년 총선에서 낙선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것 이 라고 주장함. * 전쟁 반대 평화실현 전북 정읍연대 회원 20여 명은 3월 27일 오후 민주당 정읍지구당 김원기 의원 사무실에서 이라크 파 병에 반대하는 농성에 들어감. * 3월 27일, 전북지역 87개 시민 사회 종교 단체는 이라크 전쟁과 파병을 반대하는 전쟁 반대, 파병반대 한반도 평화실 현을 위한 전북도민대책회의 를 구성함. * 전쟁 중단과 파병반대를 요구하는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3월 31일에도 계속 이어짐. 리영희 교수와 최열 환경운동연합 공 동대표, 최병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영화배우 장미희 씨 등 각계 인사 50여 명은 이날 서울 명동성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의 이라크전 중단과 평화실현을 위한 반전평화 비상국민회의 를 구성한다고 밝힘. * 국회 파병동의안 처리를 하루 앞둔 4월 1일 이라크 전쟁과 파병에 반대하는 각계각층의 활동이 계속됨. 학술단체협의회 와 전국교수노동조합 등 5개 교육관련 단체는 이날 오전 서 울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쟁의 부당성 과 파병의 문제점을 공론화하기 위해 4월 한 달 동안 대학에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53

354 서 반전평화 토론수업을 실시한다고 밝힘. 경실련과 기독교윤 리실천운동 등 20개 시민사회단체 소속 200여 명은 이날 낮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이라크전과 전투병 파병을 반대하 는 시민반전평화대회 를 개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은 이날 저녁 7시부터 2일 오전 10시까지 15시간 동안 최병 모 회장 등 집행부와 회원 3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 서 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파병동의안 부결을 촉구하는 철야농성 에 돌입. * 국회가 이라크전 파병동의안을 처리키로 한 4월 2일 국회 앞 등 서울시내 곳곳에서 파병에 반대하는 집회 시위가 열림. 민주노총 등 46개 단체의 모임인 전국민중연대와 여중생범대 위, 한국노총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오전 국회 인근 국민 은행 앞에서 범국민 결의대회를 갖고 파병안 처리 결사 저지 를 선언. 이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은 전쟁이 아닌 일방적 인 학살이며 여기에 파병하는 것은 침략 공범이 되는 것 이 라며 파병안이 통과될 경우 찬성 의원들에 대해 낙선운동 및 지역구별 소환서명운동을 펼치는 한편 4월 중 국민적 파 업운동과 5월 1일 노동절 대회 등 강력 투쟁을 벌여 나갈 것 이라고 주장함. 집회 참가자 1천여 명은 집회 직후 국회 쪽으로 이동하려다 이를 막는 65개 중대 7천여 명의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으며, 오후에도 국회 앞까지 진출함. * 국회의 이라크전쟁 파병안 의결을 앞둔 4월 2일 대학생과 교 수가 함께 반전 집회에 참석하고 대학신문 기자들이 반전 기 35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55 자회견을 여는 등 대학가의 반전 분위기가 고조됨. 8년 만에 처음으로 동맹휴업을 선언한 서울대 총학생회는 이날 오전 교내에서 이라크전쟁 반대 집회를 개최. * 4월 2일 민주당 김근태( 金 槿 泰 ), 한나라당 서상섭( 徐 相 燮 ) 의 원 등 반전 평화의원 모임 소속 여야의원 10명은 이라크 전 파병동의안의 국회통과에 대해 오늘은 대한민국 국회가 평화의 길을 버리고 전쟁의 길을 선택한 치욕의 날로 기억될 것 이라고 말함. * 4월 3일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등 반전평화 운동단체들은 국 회의 국군 파병안 통과를 침략전쟁 의 공범행위로 규탄. <이슬람권(동남아시아~인도~중동)> * 3월 19일, 베트남의 호치민시에서 3천 명 시위. * 3월 21일, 필리핀의 마닐라와 인도네시아의 10개 도시에서 이라크 침공 반대 시위. 자카르타에서는 수백 명이 영국 대사 관을 향해 계란 토마토를 던지며 항의. 라스바냐에서 2천 명, 반둥에서 수백 명이 시내를 행진. * 3월 20일, 이집트 카이로의 시내 중심 광장에서 2만 명이 집 회. 이 집회에 국회의원, 변호사, 대학교수, 노동자, 학생 등 이 참여. 카이로 대학에서 5천 명이 반전집회. * 3월 20일, 요르단에서 2천 명이 시위. 암만 시내에서 전문직 업인 단체가 주최한 집회에 5백 명이 참여. 요르단 대학에서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55

356 1천 명의 학생이 시위. 요르단 북부의 인비드 시에서 여성 3 백 명이 참여한 집회가 열림. * 3월 21일 중동 전역에서 이라크 침공 반대 시위. 21일은 이 라크 침공 이후의 첫 금요일(무슬림들은 매주 금요일에 집중 적으로 예배를 본다)이어서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림. 예 멘의 수도에서 3천 명이 미 대사관 근처를 행진(경찰관과 충 돌하여 11세의 소년을 포함한 2명이 사망). 이집트의 카이로 시내에 있는 모스크 광장에서 1만 명 이상이 미 대사관 추 방 등을 요구하는 시위. 팔레스타인 자치구인 나블루스와 가 자 지구에서도 반미 시위. 레바논의 수도에서 미 대사관을 향 해 돌진하자 경찰이 최루가스와 물차로 저지함. 미군 제5함대 사령부가 있는 바레인에서도 수백 명이 미군 기지를 허용해 서는 안 된다. 며 가두시위. 미군의 거점인 쿠웨이트에서도 예배자들이 항의함. 아랍권이 아닌 이란에서 모로코까지에 이르는 지역의 이슬람 성직자들은 금요일의 설교를 통해 이라크 침공을 비난함. * 3월 22일, 세계최대의 이슬람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의 자카 르타 등 10개 도시에서 집회. 말레이시아의 말레 반도 동부에 서 열린 평화 마라톤 에 참가한 8천 명이 미국 반대의 목소 리를 높임. 타이의 방콕에서도 미 대사관 앞에서 3백 명의 시 민이 부시 정권을 비난. * 3월 23일, 파키스탄의 이슬람교 정당이며 야당인 통일 행동평 의회(MMA)가 주도한 반전집회에 15만 명이 참가. 35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57 * 3월 24일, 아랍연맹의 외무부 장관회의에서 전쟁의 즉시중 단 을 요구. * 3월 25일, 아랍 각국에서 반전 반미 시위. 시리아의 다마스 쿠스에서 50만 명이 강력한 반미감정을 드러내는 집회를 개 최(시리아의 수상은 미국 영국 침략군이 이라크에서 즉시 무조건 철수하라. 고 요구함.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에서 이슬람계 기독교계의 정당이 주도하는 집회에 수천 명이 참 여. 요르단에서는 이슬람 단체 정당 여성단체가 암만에서 반전집회를 개최. 리비아의 수도인 트리폴리에서는 수십만 명 이 반미구호를 외치며 시위. 튜니지아의 수도인 튜니스에서 노조가 주최하는 집회에 1만 명 참가. 시위대는 부시는 살인 자. 블레어는 부시의 개, 미국 대사를 추방하고 대사관을 폐 쇄하는 게 우리들의 임무 라며 목청을 높임. * 3월 28일,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10만 명이 시위. * 3월 28일, 이란의 수도인 테헤란에서 수만 명 시위. 이라크 전쟁 개시 이후 첫 번째 대규모 집회임. * 3월 29일, 말레이시아의 수도에서 5천 명 시위. 방글라데시에 서도 반전집회. * 3월 30일, 인도의 골카타(캘커타)에서 60만 명이 시위(인도 공산당 등 좌익정당들이 주최).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에서 7만 명이 시위.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서 25만 명이 시위. 참가 자들은 미국은 테러리스트 등의 구호를 외치며 미 대사관을 향하여 행진함.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에서 언론인 2백 명이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57

358 미국 언론은 전쟁의 진실을 전달하라. 고 시위. * 3월 31일, 인도의 델리 구시가지(무슬림들이 많이 사는 지역 임)에서 3천 명이 시위. * 4월 2일, 파키스탄의 퀘타에서 2만 5천 명이 시위. 이슬람교 연합정당인 통일활동회의(MMA)가 주도. 파키스탄 상원은 이 라크 전쟁의 중단을 요구하는 결의안 채택. * 4월 2일, 친미적인 행태를 보여 왔던 요르단 정부가 국민들의 반전여론에 이끌려 전쟁 반대의 자세를 강조함. * 4월 4일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 중 동국가에서 금요일 예배의 날을 맞아 반전집회가 열림. 요르 단의 수도인 암만에서 3천 명(요르단 공산당 등 4개의 야당 이 공동주최), 팔레스타인 자치구인 가자에서 3천 명이 시위. 파키스탄에서 5만 명 시위. * 4월 5일, 인도네시아의 쟈바 섬 동부의 구디리에서 1만 5천 명이 시위. 자카르타에서는 여당인 골카르당의 당원 1천 명 이 미국 영국 대사관 부근을 행진. 반둥에서 2천 명 집회. * 4월 7일,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 대통령(여성)은 자카르타에 서 열린 이슬람 여성 국제회의에서 세계의 여성들이 반전운 동에 나설 것을 호소하는 연설을 함. * 4월 7일, 요르단의 암만에서 이슬람교도 기독교도 정당 관 계자 수백 명이 촛불시위. * 4월 10일, 아랍연맹 사무국장은 미국 영국군은 이라크에서 철수하라. 시리아에 대한 위협을 중단하라. 고 역설. 35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59 * 무슬림들의 금요 예배일인 4월 11일,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하 메네이는 미국은 이라크에서 나가야 한다. 고 언급. 파키스 탄의 카라아치와 이슬라마바드에서 시위. 이라크 전쟁의 발진 기지인 바레인의 수도에서 항의 집회. * 4월 12일 인도의 골카타(캘커터)에서 1만 5천 명, 방글라데시 의 수도에서 2만 명 시위. * 4월 15일 미군이 이라크의 주요도시를 제압한 상황에서 열린 이라크 잠정통치기구의 준비회의장 앞에서 시민 2만 명이 집 회. 바그다드에서도 수백 명이 미국의 점령에 항의. * 4월 16일, 이라크의 바그다드 나시리아 나가프 카르바라 등에서 미군의 점령에 반대하는 시위. 참가자들은 후세인 No. 미국 No 라는 구호를 외침. 이날 아랍연맹의 사무국장은 미국 주도의 이라크 부흥을 비판함. 이란의 대통령도 미국을 겨냥하여 시리아에 대한 비난을 중단하라. 고 요구하면서 미 국 영국 주도의 잠정정권을 거부. * 4월 18일, 바그다드의 시민 수천 명이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반미집회. 이날 이슬람 시아파의 성지인 나쟈프에서 미군의 주둔에 반대하는 시위. 바그다드에서도 수만 명 미군의 철수 를 요구하는 집회. * 4월 22일, 이라크의 시아파 신도 1만 명이 바그다드에서 시위.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59

360 <기타 지역> * 3월 20일 모스크바 시내의 미 대사관 앞에서 수백 명의 시민 들이 이라크 침공 규탄시위. * 3월 20일, 오스트레일리아 각지에서 이라크 침공 몇 시간 만 에 반전시위. 시드니에서 2만 명, 멜보른에서 2만 명, 브리스 벤에서 5천 명, 캔버라에서 1,500명이 항의 집회. 뉴질랜드에 서도 이라크 침략 반대 시위. * 3월 20일, 남미의 칠레 산티아고에서 시민 수백 명이 미 대 사관 앞에서 촛불시위. * 3월 22일, 뉴질랜드의 수도에서 4천 명이 미 대사관까지 행 진. 오클랜드에서도 수천 명이 반전시위. 오스트레일리아의 브리스벤에서는 이라크 전쟁의 희생자를 추도하는 검정 띠를 찬 사람 3천 명이 번화가를 돎. 타즈마니아 섬에서도 2,500명 이 시위. 시드니에서 3만 명, 캔버라에서 5천 명, 아델레이드 에서는 장송( 葬 送 ) 행진 을 함. * 3월 25일, 남미의 베네수엘라의 수도에서 대학생 아랍계 주 민이 합세하여 학살을 중단하라., 석유를 위해 더 이상 피 를 흘리지 말라. 는 대형 깃발을 걸었다. * 3월 22일, 남미의 칠레의 수도인 산디아고에서 사상 최대의 집회. 1만 명이 시위. * 3월 26일,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에서 전쟁의 즉시중단 을 36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61 요구하는 중학생 고등학생 수천 명이 북을 치면서 시내의 번화가를 행진. * 3월 27일, 중앙아시아의 키르키스의 수도인 비시케크에서 27 개의 NGO 언론기관 관계자들이 공동주최한 집회에 4백 명 이 참석. 키르키스 동부의 중심도시인 카라코르에서 대학생 등 약 1천 명이 시위. * 3월 29일, 오스트레일리아의 멜버른에서 1만 5천 명이 시위. 남미의 베네수엘라의 수도인 카라카스에서 여성단체 주도의 집회. 이날 중남미 곳곳에서 다채로운 반전집회가 있음. 도미 니카 공화국의 수도에서 수백 명이 미 대사관을 향하여 행진. 칠레의 전국 각지에서 하루 종일 반전시위 가짐. * 4월 5일, 남아프리카의 요한네스버그에서 5천 명 / 케이프타운 에서 2천 명이 반전시위. 5. 제5단계: 하강기( 이후)의 반전평화 운동 후세인 정권이 붕괴한 4월 20일 이후 전 세계 동시 다발 투쟁이 한풀 꺾였다. 특히 유럽 미국에서 대규모 시위가 거의 없었으나 당 사자인 이라크 민중들만 외롭게 미군점령에 저항하는 집회를 열었다. 4월 23일 이라크의 이슬람 시아파 신도 2백만 명 이상이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집회를 가졌으나 아랍권은 물론 유럽 미국 아시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61

362 아에서 호응하는 시위가 없는 바람에 단발성 항의로 끝났다. Ⅳ. 반전평화 운동의 구도 이라크 전쟁을 앞뒤로 전 세계 차원에서 전쟁 세력(전쟁추진 세 력)과 평화 세력(전쟁 반대 세력)이 명확하게 갈라졌다. 아래의 <표 1: 반전평화운동의 구도>에서 보다시피 전쟁 세력은 미국 영국 및 그 아류국가들(일본, 스페인, 쿠웨이트, 한국 등)로 이루어진 전쟁국 가군( 群 )1이고, 평화 세력은 반전국가 群 (프랑스 독일 벨기에 러 시아 등)2과 반전평화 를 지향하는 세계 시민사회(전 세계의 반전 평화 운동권)3로 이루어졌다. 전쟁국가 群 1과 반전국가 群 2이 대립 4하는 가운데 반전국가 群 2과 평화지향적인 세계 시민사회3는 교 호작용5을, 전쟁국가 群 1과 평화지향적인 세계 시민사회는 대결하 는 구도6를 보였다. 36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63 <표 1> 반전 평화운동의 구도 분류 전쟁 세력 평화 세력 주체9 WASP, 유대인 세력, 軍 産 복합체 9-1 World Governance? Multitude? People? 9-2 주체의 대행자 10 Neo Con, CNN 등 10-1 ANSWER, Stop the War Coaltion 등 10-2 노선, 슬로건 11 Bush Doctrine 11-1 No War 11-2 위의 노선의 수행자 12 수행 방식 13 일본, 한국 등 이라크전쟁의 간접적인 공범자 12-1 다보스 회의 유엔 안보리에서 미국 영국의 외교 공세, 전쟁 세력의 총공세 13-1 전쟁 공법자 규탄 운동 그룹(유사입법 반대, 파병 반대) 12-2 세계사회포럼, 유엔 안보리에서 프랑스 러시아 중국의 반발, 가두시위+On line 운동의 합성 13-2 전쟁과 평화를 에워싸고 새롭게 형성된 이라크 전쟁 구도는 마르 크스주의의 국제정치론, 네그리(Negri)의 제국론, 월러스틴(Wallerstein)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63

364 의 세계체제론(종속론), 사이드(Said)의 후기 식민주의론(Post-Colonialism), 무정부주의(Anarchism), 세계화(globalization)론, 러셋 (Russett)의 민주평화론, 헌팅턴(Hungtington)의 문명충돌론, 포스트 모더니즘(Post Modernism)의 국제관계론에 의해서는 풀이되기 어렵 다. 이들 기존의 이론 틀로는 아래와 같은 이라크 전쟁의 구도를 설 명하기 어렵다: 프랑스 등 제국의 아류들이 제국의 원조인 미국에 대항함 프랑스 독일 등의 국가권력이 반전을 주창함 1) 유럽의 일 부 자본주의 국가가 진보적인 NGO와 뜻을 같이함 세계 체제가 단 순하게 중심부 대 주변부로 나누어져 있지 않음 19세기 말에 횡행했 던 제국주의적 약탈전쟁을 통해 이라크를 再 식민(re-colonialization) 하려고 함 신자유주의에 영합하던 프랑스가 신자유주의형 이라크 전쟁 에 반기를 듦 민주평화론을 왜곡하여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킴 문명충돌론에 입각하여 전쟁을 일으킴. 기존의 이론 틀 중 일부, 예컨대 Negri의 제국론이나 세계 거버 넌스(World Governance)론을 원용하여 이라크 전쟁을 국부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나 총체적인 접근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새로운 구도 에 걸맞은 이론이 요청된다. 새로운 이론은 우선 전쟁국가 群 의 전쟁의 힘(war power: 전쟁 1) 폭력의 독점체로서 전쟁수행 능력을 지닌 국가권력이므로 늘 전쟁의 원흉이 된다. 그 런데 이라크 전쟁에서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의 국가권력은 예외적으로 반전의 대열 에 섬으로써, 전쟁의 원흉이 되는 길을 벗어났다. 36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65 이라는 폭력)과 평화의 힘(peace power) 사이의 대결의 결절점 (node) 7을 정확하게 해설해야 할 것이다. 즉 전쟁의 힘을 드러낸 Pentagon(미국 국방성)+Wall Street(미국의 금융가) 동맹8과 평화 의 힘을 보여 준 평화지향적인 세계 시민사회 가 어떠한 경로로, 어 떠한 논리로, 어떠한 수행방식을 선택했는지, 두 진영의 주체는 누구 인지 등을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 대결의 결 절점에서 드러난 몇 가지 양상을 기술한다. 첫째, 주체9의 문제이다. 이라크 전쟁의 주범인 부시 정권을 원 격조정한 Pentagon+Wall Street 동맹 은 전쟁의 공범으로서 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 유대인 세력, 군( 軍 ) 산 ( 産 ) 복합체를 합성한 미국의 지배계급(9-1)이다. 호전적인 제국 미국의 지배계급이 이라크 전쟁의 주체이다. 그러면 이에 맞선 평화 지향적인 세계 시민사회의 주체(9-2)는 누구인가? 프랑스 등의 국 가권력이 반전평화 운동 진영과 이심전심으로 통했으니 세계적인 거 버넌스(World Governance)가 핵심 세력인가(이런 핵심 세력이 실존 할까?), 거리시위의 현장을 메운 불특정 다수로서의 다중( 多 衆 : Multitude)인가? 제국 미국에 저항하며 미국 주도의 전쟁지향적인 세계체제를 변혁하려고 작심한 People(민중, 인민) 인가? 전쟁 세력 의 주체는 윤곽이 뚜렷한데 평화 세력의 주체(주체의 범주)가 불분 명하다. 평화 세력의 주체가 명확히 범주화되어야 앞으로 반전평화 운동의 전략도 명확해질 것이다. 어쨌든 9-1과 9-2의 두 주체 간의 대결구도를 밝히는 가운데 새로운 이론의 틀이 잡힐 것이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65

366 둘째, 이 주체의 대행자10는 누구인가? 전쟁 세력의 경우 신보 수주의 세력( Neo Con 으로 줄여서 부름)과 CNN 등의 이데올로기 기구이며(10-1), 평화 세력의 경우 미국의 ANSWER(Act Now to Stop War and End Racism) 와 영국의 Stop the War Coalition 등 의 반전평화 운동 연합체 및 이들 단체에 호응한 전 세계의 반전평 화 운동 단체이다(10-2). 그러므로 미국에서 Neo Con과 미국의 평 화 운동 진영(ANSWER 등)이 어떻게 맞섰으며, 유럽에서 블레어 정권과 유럽의 평화 운동 진영(Stop the War Coalition 등)이 어떤 대결의 결절점을 이루었는지를 규명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셋째, 이들 대행자들의 노선과 슬로건11은 무엇인가? 전쟁 세력 의 노선은 부시 독트린(Bush Doctrine) (11-1)에 담겨 있으며, 이 노선에 따른 반테러 전쟁 구도에 발맞춰 불량국가(이라크, 북한, 이 란 등의 악의 축 국가) 타도 를 내걸었다. 이에 평화 세력의 좌파 쪽 은 신자유주의 반대와 짝 짓기 한 변혁 반미 반제국 지향적인 반 전평화 운동 노선을, 평화 세력 일반은 세계 시민론과 연계된 평화 운동 노선을 지향했다. 평화 세력 안에서 노선의 편차는 있으나 이 편차를 뛰어넘은 슬로건 No War (11-2)를 내세움으로써 대동단결 을 이룩했다. 변혁지향적인 평화 운동 그룹은 No War를 非 戰 (어떠 한 전쟁도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는 평화지상주의Pacificism의 의 지) 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한 데 비하여 평화 세력 일반은 No War를 反 戰 (그냥 현상으로서의 전쟁에 반대) 으로 해석하려는 것 같다. 이와 같이 느슨한 견해 차이를 뛰어넘은 평화 세력과 전쟁 세 36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67 력 사이의 치열한 노선 싸움이 이라크 전쟁의 뒷전에서 벌어졌다. 넷째, 위의 노선을 뒷바라지한 국가 집단 개인12의 문제이다. 전쟁 세력 노선의 압권인 Bush Doctrine에 힘을 실어 준 스페인 이탈리아 동유럽 국가 쿠웨이트 바레인 일본(자위대 함정 파견) 한국(한국군 파병)의 국가권력(정부)은, 이라크 전쟁의 간접적인 공 범자들이다(12-1). 이들 공범자들을 규탄하는 운동이 각국에서 전 개되었는데 일본에서는 이라크 전쟁 반대+유사입법 반대 의 형태, 한국에서는 이라크 전쟁 반대+파병 반대 의 형태로 이루어졌다(12-2). 이 지점에서 각국의 반전평화 운동 세력과 국가권력(정부)이 직접 대립하게 되었다. 다섯째, 수행의 방식이다. 전쟁 세력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노 력한 방식(13-1)과 평화 세력이 수행한 방식(13-2)의 대립이다. 첫 번째 대결은 전쟁 세력의 다보스 회의 對 평화 세력의 세계사회 포럼이다. 두 번째 대결은 유엔 안보리에서의 이라크 전쟁 결의를 에워싼 전쟁국가 群 對 반전국가 群 의 로비 전쟁이다. 세 번째 대결은 전쟁국가 群 의 이라크 전쟁을 위한 총공세에 대항하여 전 세계 주요 도시의 도심에서 이루어진 가두시위이다. 평화 세력은 온라인을 통 한 게릴라 수법으로 전쟁국가 群 의 총공세를 맞받아쳤다. 온라인 평 화 세력의 힘이 오프라인의 거리시위로 다시 연결되는 오프라인+ 온라인 운동의 합성력 이 전 세계에서 반전평화 운동의 폭죽을 터뜨 렸다. (전쟁 세력의 자본가들이 정보 자본주의의 세계화를 위해 깔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67

368 아 놓은) 온라인망을 최대한 활용한 게릴라 반전평화꾼 들이 반전평 화 운동의 세계화에 앞장선 뒤집기(전복)의 쾌감 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과 평화를 수행(이룩)하는 방 식의 공방이 벌어졌다. Ⅴ. 반전평화 운동 총평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드러난 전쟁과 평화의 새로운 구도 에 대 한 논리적인 접근과 더불어 반전평화 운동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가 중요하다.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났다가 이라 크 전 종식 직후 식어 버린 냄비 현상 을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이러한 진단을 위한 예비적인 판단자료로서 몇 가지 사항을 지적한 다. 1. 반전평화 운동론의 재정립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은 두 가지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다: 1 전쟁이 터지기 훨씬 전부터 전 세계에서 전쟁 반대 운동이 일어난 신기록. 2 전쟁이 일단락되자마자 운동의 열기가 가장 급속하게 냉 각된 신기록이다. 베트남 전쟁 때는 전쟁발발 이후 약 10년 뒤에 반 전운동의 최고봉을 이루었고, 1968년 유럽의 68혁명 은 베트남 반 36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69 전운동 등에 영향을 주면서 68혁명 의 발단이 된 상황의 종료와 무 관하게 서구사회의 가치관의 대전환을 이루어 냈다. 너무 빨리 달아올랐다가 너무 빨리 냉각된 세계반전평화 운동의 냄비 현상 의 수수께끼가 풀려야 운동론이 본격적으로 거론될 것 같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운동의 사상적 조직적인 지도부의 부재를 거론할 수 있다. 무주공산( 無 主 空 山 )인 온라인에서 맹활약한 온라인 평화 운동의 공헌도를 생각할 때 지도부 부재론은, 오프라인의 발상 이라고 지탄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심력 없이 산만하게 반전평화 운동의 불꽃을 일으켰다가 금방 사그라진 이유를 알아야 한다. 반전평화 운동의 보배 같은 결절점을 지구촌 곳곳에 만들어 놓 고도 그런 보배를 하나의 띠로 꿰지 못한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규 명되어야 한다. 운동의 사상이 결여된 채 감각적인 반전운동에 심취 된 탓이 아닌지, 전쟁 세력의 본거지인 Pentagon+Wall Street 의 주변에서 변죽만 울린 것은 아닌지, 이라크 전쟁의 본질인 군국주 의적인 미국 자본주의 와의 육박전을 왜 벌이지 못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이와 같은 본격적인 운동론을 다루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 청되므로 몇 가지 문제제기로 가름한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69

370 1) 반전평화 운동의 편차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전 세계 평화 세력은 통합된 사상적 지침이 없이 반전운동을 벌 인 결과 운동의 냄비현상을 초래했다. 즉 사상의 나침반이 없는 운 동을 전개했다는 점이다. 나침반이 없는 운동이었기 때문에 운동론 을 펼치는 게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의 경향이란 측면 에서 세 가지 유형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변혁지향적인 반전평화 운동론이고 두 번째 유 형은 전쟁지향적으로 나아갈지 모를 세계 시민사회를 개량(reform) 하려는 운동론이며 세 번째 유형은 생명 환경 여성 인권 운동을 아우르는 제3의 섹터(sector) 이다. 첫 번째 유형의 운동론은 Pentagon+Wall Street 의 아성에 도전 하는 의지를 내보이며 전쟁지향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했다. 세계 사회포럼,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 세력, 노동운동 세력, 촘스키 (Chomsky) 등이 대표 주자이다. 한국에서도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통일연대, 민중연대, 자통협(민족화해자주통일 협의회) 한총련 등이 이런 경향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제국 미국 반대 신자유 주의 반대 운동과 반전평화 운동의 결합 또는 자주와 평화의 결합 (자주평화 노선) 에 관심이 있다. 평소에 계급적 민중적 민족적 사 고에 젖어 있는 이들에게 있어서 반전평화 운동과 반미 반제( 反 帝 ) 운동 사이의 문지방은 그다지 높지 않다. 37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71 한편 세계 시민의 양식 양심에 호소하는 두 번째 유형의 개량주 의 운동론 에 개혁의 요소가 깃들어 있지만, 그것은 혁명(revolution) 이 아닌 전환(transformation)에 불과하다. 이들이 단순하게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구조나 세계체제의 구조적인 모순으로 부터 전쟁이 발생하는 지점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 대신 시민사회 의 안보에 주력하는 인상을 준다. 이들은 전쟁에 반대하는 이성적 시민의 입장에서 반전운동에 임하고 있는 듯하다. 국가안보의 대안 으로서 시민사회 안보를 내세우지만 미국형 국가안보 체제의 핵심인 제국주의적 요소를 강하게 비판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반전평 화에 주력할 뿐 반전평화가 반미 반제로 이어지거나 승화되는 데에 는 거의 무관심하다. 이들 중 일부는 반미주의에 대한 혐오증을 드 러내며 반전평화 만을 주장한다. 세 번째 유형인 제3의 섹터 는 두 번째의 시민사회 지향적인 반 전평화 운동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자신들이 고수하려는 운동의 가치(환경 여성 생명 종교 인권 운동)에 입각하여 반전평화 운 동을 바라본다. 이들에게 반전평화 운동이 반미냐 아니냐는 전혀 관 심사가 아니다. 이러한 운동경향의 편차는 세계적인 차원의 반전평화 운동이란 대의명분 앞에서 작은 차이에 불과하다. 한국에서도 촛불시위의 반 전평화 운동에로의 이행과정, 파병반대 운동 속에서 작은 차이 때문 에 대세에 지장을 가져온 적은 없다. 그럼에도 이런 작은 차이가 불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71

372 씨가 되어 전국적인 차원의 반전평화 운동 조직을 내오는 데 장애물 이 될 소지는 있다. 2) 동아시아에서는 유럽 미국에 비하여 반전평화 운동력이 왜 뒤졌는가? 평화 운동의 역사가 깊은 일본 쪽이 분발했으나 전쟁 세력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한 점, 운동의 강성대국(?) 으로 알려진 한 국 쪽이 가장 적은 대중동원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명쾌한 해답을 찾기 어려우나 몇 가지 운동의 맹점 을 어림잡아 거론하고자 한다. 1 일본 쪽 운동의 맹점 일본의 운동은 싱겁다. 매서운 맛이 없어서 정부나 지배 세력이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배 세력이 두려워하거나 경계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언론에서도 다루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본의 일반시민들은 평화 운동 진영이 무엇을 하는지 알 리 없다. 따라서 대중성이 떨어 져 소수 열혈활동가들의 헌신적인 활동으로 전락한다. 37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73 2 한국 쪽 운동의 맹점 그럼 한국의 반전평화 운동은 어떠했나? 걸음마 단계의 한국 평 화 운동이 이 정도이면 잘했다고 자위할 요소가 있으나 몇 가지 구 조적인 맹점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전략적인 지도부의 부재이다. 현재 시민사회운동 단체를 이끌어 가는 상층 인사들의 경우 태반이 평화 의 가치에 대한 심층 적인 교양이 부족하다. 이러한 두 가지 현상은 전국 단위의 반전평 화 운동 조직을 꾸리는 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둘째, 반공 의식에 의해 심리적으로 억압받고 있던 시민들의 전 쟁 불감증을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점이다. 최근 냉전 수구 세력의 반전-반핵(북한 핵 반대, 전 세계 평화애호 세력의 반핵과 다른 노선)-반김(김정일 반대) 캠페인을 쐐기 박지 못하는 저변에, 시민 들의 전쟁불감증을 방치한 원죄(?) 가 있다. 셋째로 한국인의 냄비 기질 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라크 전쟁이 종식되자마자 전쟁 반대의 구호가 낯설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광화 문에서 소수의 시민들이 매일같이 촛불시위를 하면서 우리는 냄비 가 되지 말고 뚝배기가 되자! 고 다짐하고 있으나 이들의 메아리가 시민사회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지 못하다. 넷째, 시민운동 진영과 민중운동 진영의 반전평화 운동에 대한 감각 차이 각 진영 내의 이견으로 촛불시위를 전국적인 전쟁반대 물결로 승화시켜 내지 못하고 있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73

374 다섯째, 운동권의 국제적인 감각의 부족이다. 전 세계의 정치판 도가 농축된 이라크 전쟁을 반대할 때 국제 감각이 절실하게 요청됨 에도 불구하고, 활동가 스스로 국제 감각을 터득하는 데 철저하지 못했다. 특히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쪽(이른바 NL 진영)이 민족 에 습관적으로 매몰된 결과 이라크 전쟁의 다층적인 측면을 인식하 는 데 소홀했다. 여섯 번째, 파병반대를 통해 반전평화 운동의 동력을 배가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파병반대에만 집착한 결과 파병안 통과 이후 운동의 과녁을 상실했으며, 이라크 전쟁이 예상 밖으로 빨리 종결되 자 방향감각을 잃어버려 반전운동의 거품이 빠져 버렸다. 일곱 번째, 반전평화 운동의 주력부대인 학생운동의 약화이다. 학생운동의 무기력이 반전평화 운동에도 직접 나타났다. 반전 동맹 파업도 겨우 서울대만 성사시켰다. 이러한 몇 가지 맹점이 종합적으로 나타난 것이 2003년 2월 15 일과 3월 15일 집회의 역부족이다. 물론 이 집회를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닌 한국의 운동지도부 활동가들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구태의연한 시위방식으로 대중을 동원하려 한 점 등 풀어야 할 숙제가 그들 앞에 놓여 있다. 이 밖에도 조직의 문제, 시민사회에 파고들지 못하는 운동 양태, 37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75 통 크게 단결할 줄 모르는 단점 등을 거론할 수 있다. 이러한 맹점을 극복하는 가운데 (반전평화 운동 대열에 함께했 던 시민들이 대거 빠져나가는) 운동의 썰물현상을 막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시민들을 엮어 내는 사람 사업 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며 이런 측면에서 반전평화 운동의 기동전 못지 않게 진지전이 중요하다. 2. 논쟁점 이번의 전 세계 반전운동은 세기적인 사건이므로 그에 따른 수 많은 논란거리가 있을 터이다. 그중에서 다음과 같은 논쟁점을 간과 할 수 없다: 1 반전평화 운동의 주체 논쟁, 2 반전평화 운동이 반 미냐 아니냐, 3 제국 미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4 미국의 일방주 의에 눌린 유엔의 무기력과 더불어 유엔 기능의 회복가능성, 5 평 화 운동의 사상 논리, 6 이라크 전쟁을 에워싼 전쟁지향적 국가 주의 對 평화지향적 국가주의 논쟁, 7 신보수주의(Neo Con)가 지 배하는 세계정세의 위험성과 이를 극복할 대안, 8 미국 신보수주의 세력의 다음 차례 승부처인 북한을 에워싼 논쟁(한반도에서 전쟁과 평화의 논쟁)이다. 이들 논쟁점의 일부는 본문에서 다루었으나 미흡한 느낌이다. 부 족한 점을 메우는 과제는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75

376 Ⅵ. 맺는 말 지구촌의 정치를 움직였던 반전운동의 물결이 퇴조하는 가운데 운동의 썰물현상을 막기 위해 지금도 전 세계의 수많은 활동가들이 애쓰고 있다. 이들의 노력이 없었으면 이렇게 빛나는 운동의 성과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 시민과 함께한 반전평화 운동은 다음과 같은 성과를 거두었 다: 1 미국의 위신 저하, 미국의 세계지배 정당성 약화. 미국이 전투 에서 이겼으나 정당성 확보 전쟁에서 패배함, 2 시민사회의 정치력 강화. 세계 시민사회의 세계정세에 대한 개입력 강화, 3 평화를 사랑 하는 세계 시민의 도덕적 승리, 4 국제 진보운동의 결속에 따른 운동 력 확장. 이에 따라 세계적 차원에서 새로운 운동 틀을 내올 가능성.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무소불위의 군사력을 남용하며 세계평 화를 파괴하는 미국을 견제할 평화의 힘 을 온전하게 갖추지 못하고 있다. 전쟁지향적인 세계화를 차단할 장치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전쟁광 부시 정권의 막가파식( 式 ) 전쟁을 저지할 평화의 힘 을 기르기 위해서는 반전국가군( 群 )과 평화지향적인 세계 시민사회의 강고한 연대가 시급하다. 이와 더불어 평화를 애호하는 세계 시민사 회의 구성원들끼리 국경 민족 종교의 차이를 뛰어넘는 소통이 중 요하다. 특히 전쟁 세력의 맹주인 미국이 아직도 북한에 대한 공격 37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77 의지를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저지하기 위 한 세계 시민들 사이의 연대 를 위해 맹진할 필요가 있다. 이라크 전쟁은 끝났다. 이제 전쟁 세력은 전리품을 나누어 갖기 위해 이라크의 전후복구 계획, 유전 개발, 미국식 정계개편을 시도하 고 있다. 이들 전쟁 세력이 전리품을 나누어 갖는 바로 옆자리에서 최대의 전쟁 피해자인 이라크 민중의 신음 소리가 들린다. 한국인들 이 이라크 민중의 고난에 동참하는 연대의 정신을 발휘하지 않으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졌을 경우 한국 민중들에 대한 국제적인 성원 이 없을 것이다. 산수갑산을 가는 한이 있더라도 한반도 안팎에서의 전쟁을 막아 야 하며, 전쟁을 일으키려는 세력을 배제함과 동시에 평화 세력을 키워야 한다. 이게 국가와 민족이 평화롭게 발전하는 길이요 통일의 첩경이다. 그 길을 향해 매진하자. * 위의 내용을 요약한 글이 동일한 제목으로 < 기억과 전망 2003년 여름호>에 실려 있다. * 출처= 평화 만들기( 112호( )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77

378 아시아의 평화 운동 개관 1. 반전 평화 1) 아프간 전쟁 반대 전 세계의 평화 운동 단체들이 미국에 의한 아프가니스탄(아프 간) 전쟁에 반대했다. 아시아의 평화 운동 단체 역시 아프간 전쟁 반대에 앞장섰다. 한국에서는 반전평화 공동실천 등의 시민사회운 동 단체들이, 필리핀에서는 Peace Camp 등이, 일본에서는 여러 평 화 운동 단체들이 아프간 전쟁에 반대했다. 한국과 일본의 평화 운 동 세력은 자국군의 아프간 파병을 저지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 운동가들을 아프간 현지에 보내 아프간 민 중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프간 전쟁 이전부터 아프간에서 의 료 활동을 전개하던 일본인 의사가 아프간 전쟁의 속보를 일본 운동 권에 알린 활동은 눈부셨다. 반전평화 운동가는 아니지만 일본 외무 성과 손잡고 NPO 활동을 벌인 20대 초반의 일본 여성은 아프간 난 민과 함께 카블 고개를 넘어 파키스탄으로 들어가 난민촌에서 동거 동락했다고 한다. 37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79 1 아프간에서 지뢰제거 작업 1천만 발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는 아프간에서 지뢰제거 운동을 벌인 활동가들이 많으나 이들의 활동상에 대하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2 아프간 전쟁난민 돕기 운동 한국의 경우 시민운동 단체들의 모금 활동, 아프간 전쟁난민 돕 기 음악회, 법륜 스님이 이끄는 정토회의 아프간 현지 방문 등이 눈 에 띈다. 3 아프간 전쟁 상황 알리기 운동 기록하는 데 재주가 있는 일본인들이 아프간 현지에 들어가 전 쟁 상황을 소상하게 기록하여 세상에 알렸다. 필리핀의 월든 벨로 (Walden Bello) 교수가 이끄는 Focus와 APA(Asian Peace Alliance) 도 아프간 전쟁 상황을 민중의 시각에서 조사하기로 했다. 이 조사 자료를 통해 아프간 전쟁난민에 대한 구조적 폭력의 정도가 드러날 것이며, 아프간 전쟁의 주범이 누구인지 명확히 드러날 것이다. 4 아프간 전쟁범죄를 심판하는 운동 일본에서 아프간에 있어서 미국의 전쟁범죄를 재판하는 민간법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79

380 정 이 열리고 있다. 이 민간법정이 작성한 부시에 대한 기소장 을 보면 전쟁광 부시 정권의 범죄가 만천하에 드러난다. 위의 민간법정 은 일본 전역을 순회하며 전개될 예정이다. 한편 평화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진보적인 법률가(변호사 등)들 은, 미국의 압력에 의해 국제사법재판소(ICC)의 규약이 왜곡된 점에 분개하고 있다. 즉 범죄를 저지른 미군을 기소유예할 수 있다는 예 외규정에 분노하고 있다. 아프간 전쟁 범죄를 단죄하려는 민간법정 은 이러한 분노를 대변하고 있다. 2) 이라크 공격에 대한 반대 이미 미국 영국의 공군기들이 이라크의 상공을 3등분하여 공습 을 해 왔기 때문에 지금도 전쟁 중이다 사태 이전의 이라크 와 관련된 평화 운동은, 이라크 상공을 공습하는 행위에 대한 비난 과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한 이라크 민중의 고난(아동의 죽음)을 폭 로하고 비판하는 데 초점이 있었다. 그런데 미국은 9 11 사태 직후에 돌입한 아프간 전쟁으로도 성 에 안 찬 듯 이라크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이에 바짝 긴장한 아 시아의 평화 운동 진영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각종 활동을 전개 하고 있다. 38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81 APA는 2003년 10월 8일 아시아 주요국가의 수도에서 이라크 전쟁 반대를 위한 공동행동을 주도했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 일본 의 평화 운동 그룹, 홍콩의 Hong Kong for Peace Not War Committee, 필리핀의 Peace Camp 등의 운동단체가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을 열심히 전개하고 있다. 한국의 시민사회운동 단체는 이라크 전쟁에 이어 북한과의 전쟁 이 내정되어 있음을 직감하고 이라크 전쟁을 원천봉쇄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다듬고 있다. 일본의 운동권은 이라크 전쟁이 일어날 경우 자위대의 해외파병의 폭이 넓어지고 그에 따라 일본의 유사법제-평 화헌법 파괴의 속도가 빨라질 것을 염려하면서 이라크 전쟁 반대 전 선을 형성하고 있다. 반테러 전쟁의 일환으로 아브 샤야프(필리핀 이슬람 반군의 조 그만 지파)에 대한 소탕작전을 주시하고 있는 필리핀의 운동단체들 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 운동에 돌입했다. 3) 반테러 전쟁 반대 1 필리핀 아브 샤야프 소탕 작전은 미군이 필리핀에 재상륙하겠다는 의지 의 표현이다. 1990년대 중반에 힘겹게 미군기지를 내쫓은 필리핀 운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81

382 동권은 아브 샤야프 소탕을 빙자한 미군 재상륙에 경악하면서 미군 의 필리핀에서의 반테러 작전을 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더구나 신인민군 등 필리핀의 좌파운동 세력을 테러 조직으로 내 몰려는 미국 필리핀 정부의 합동작전은 필리핀 운동권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며 이런 위협에서 벗어나려는 저항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2 인도네시아 미국은 최대의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를 겨냥하여 반테러 전 쟁의 전선을 확산하려고 한다. 즉 인도네시아의 일부 이슬람 세력이 알카에다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반테러 전쟁 전선을 인도네시아로 확대하려고 한다. 학생운동이 강한 인도네시아는 최근 국제 NGO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평온했던 인도네시아에 신자유주의 열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 리에서 종교 폭동이 연발하고 있다. 이런 종교 폭동의 간접적인 원흉 인 미국 등 강대국이 또다시 반테러 전쟁이란 명목을 내걸고 인도네 시아의 정세에 개입하려고 한다. 최근 발리 섬에서의 테러는 이러한 동향과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반테러 전쟁의 전선을 확대하려 는 세력, 운신의 폭이 좁아진 인도네시아의 군부가 발리 섬의 테러를 조작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엄중한 정세 속에서 인도 네시아의 운동권이 어떤 대응을 할지 국제 사회는 지켜보고 있다. 38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83 3 한반도 조그마한 테러 집단인 아브 샤야프 등에 대한 소탕작전을 벌이 며 필리핀을 벌집 쑤시듯 헤집고 돌아다니는 미군의 행태는 남의 일 이 아니다. 아시아에서 국가 차원의 테러 집단으로 유일하게 낙인찍 혀 있는 북한을 미국이 가만둘 리 없기 때문이다. 북한을 고집스럽 게 테러 지원국가 명단에 남겨 두려는 미국은, 아시아에서의 반테러 전쟁 전선을 북한 쪽까지 확대하려고 덤빌지 모른다. 이러한 미국의 동향에 둔감한 한국의 운동권이 2003년의 전쟁 위기설을 거론하면서도 북한 핵문제만 부각시키고 있다. 북한에 대 한 미국의 전쟁 계획은, 북한이 핵무기 등 대량파괴무기를 보유할 가능성을 전쟁을 통해서라도 원천봉쇄하겠다는 것이지만, 반테러 전 쟁 전선을 북한에까지 확산하려는 원대한 목표도 내재되어 있다. 앞 으로 한국의 평화 운동 세력은 이 점을 명심하여 한반도 주변에서의 전쟁 반대 운동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2. 반핵 평화 운동 1) 일본의 반핵운동 피폭 국가 일본의 평화 운동은 반핵운동이 출발점이자 귀환점이 다. 일본은 전 세계의 반핵운동을 주도하고 있으며 국제연대 활동이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83

384 활발하다. 일본의 반핵운동은 나가사키 히로시마를 기점( 起 點 )으로 동진하면서 오사카 교토에서 작열한 다음 도쿄에서 마지막으로 승 화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1 일본 최대의 반핵운동 조직인 원수협( 原 水 協 ) 2002년 8월 1일부터 10일까지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열린 원수폭( 原 水 爆 : 원자폭탄 수소폭탄) 금지 2002 세계대회(일본 原 水 協 주최) 에 24개국 38개 단체에서 64명의 평화 활동가와 3개 국 정부대표를 포함하여 해외에서 67명이 참석했고, 일본 국내에서 는 약 1만 명이 참석했다. 일본 국내참석자들 대부분은, 두 달 전부 터 일본 전국을 도보로 순회하며 반핵평화 캠페인을 전개한 사람들 이었다. 그들의 당찬 모습은 한국의 통일 선봉대를 연상케 한다. 2 기타 반핵운동 한때 원수협과 어깨를 겨뤘던 원수금( 原 水 禁 : 옛 사회당 계열의 반핵평화 운동 단체)의 세력이 약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8월 초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대회에 3천 명 이상의 동원력을 과시했다. 그리고 우메 바야시 등이 주도하는 반핵운동 모니터 조직인 Peace Depot 가 있다. 국제연대 활동으로는 Abolition 2000(21세기가 도 래하기 이전인 2000년까지 핵무기를 없애겠다는 운동) 이 있으며 일 38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85 본 정부가 반핵에 앞장서도록 종용하는 운동의 흐름도 있다. 2) 인도의 반핵운동 1996년 인도의 핵개발에 이은 파키스탄의 핵탄두 실험 발사로 인도 파키스탄의 핵무기 경쟁은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가난하 기 그지없는 나라 인도 파키스탄의 핵무기 경쟁은 두 나라 민중의 가난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다. 그리고 두 나라의 핵무기 경쟁의 배 후에 종교분쟁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 국제 정치의 관계 속에서 핵무기 경쟁을 해결할 수 없는 깊은 요인이 있다. 특히 힌두 민족주의(Hindu Nationalism)를 따르는 인도의 BJP같은 호전 집단 을 제거하고, 파키스탄의 국수주의(Jingoism)적인 핵개발 노선 을 앞세우는 군부 집단을 제거하지 않는 한 핵무기 경쟁을 원천적으로 중단시킬 수 없다. 이러한 심각한 배경을 가진 핵무기 경쟁을 중단시키기 위한 인 도 평화 운동 단체들의 각고의 노력은 주목의 대상이다. 인도에는 CNDP(Coalition for Nuclear Disarmament and Peace) MIND (Movement in India for Nuclear Disarmament) 등 수백 개로 추정 되는 반핵운동 단체가 맹렬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파키스탄의 경 우 Pakistan Peace Coalition 등이 반핵운동을 벌이고 있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85

386 3) 비핵지대화 운동 이미 남태평양 지역과 동남아시아 지역에는 비핵지대화가 선포 되어 있으며 중앙아시아에 새롭게 비핵지대화 기운이 높아지고 있 다. 중동지역의 비핵지대화도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동북아시아 에서도 비핵지대화 운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목소리가 가냘프 게 들린다. 일본 중국의 학자들, 한국의 일부 지식인, 미국의 일부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동북아 비핵지대화의 방안을 내놓고 있으나 아 직 대중화되어 있지는 않다. 동북아시아의 비핵지대화 방안은 주로 한반도를 중심으로 몇천 킬로미터의 방사선 비핵지대화를 설정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 므로 동북아 비핵지대화는 한반도 정세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반도는 북한의 핵문제를 중심으로 핵무장 여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으므로 비핵지대화와 더욱 동떨어지는 느낌이다. 이미 남북한이 약속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지평을 확대하면서 동 북아 비핵지대화의 길을 모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길은 멀 어지고 있는 인상을 준다. 특히 남태평양 비핵지대화 조약은 훌륭한 문구로 장식되어 있음에도 미국의 비협조(핵 탑재 미군 함정의 조약 위반)와 프랑스의 남태평양 군도에서의 핵실험으로 만신창이가 되었 다. 이런 측면어서 볼 때 비핵지대화 운동은 아시아 민중 전체의 반 외세(미국 등 강대국 배제)투쟁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한반도 주 변의 비핵지대화도 마찬가지이다. 38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87 3. 무기 반대 운동 1) 대인지뢰 반대 운동 조지 윌리엄스라는 평범한 대인지뢰 활동가가 노벨 평화상을 받 은 뒤 아시아에서도 지뢰 관련 운동이 활성화되고 있다. 아시아에 묻힌 지뢰는 제국주의 나라들이 벌인 전쟁의 잔재물이다. 미군이 베 트남전, 한국 전쟁, 아프간 전쟁 때 뿌린 지뢰가 제국주의의 독성을 대변하면서 지금도 해당 지역 민중의 발목을 자르고 있다. 또한 이 런 제국주의 전쟁의 불똥이 내전으로 번진 캄보디아의 경우 수백만 발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 지뢰운동은 한국, 캄보디아, 아프간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아프간 전쟁이 한창인 때 국제적인 대인지뢰 활동가들이 유엔의 이 름으로 현지에 파견되어 지뢰제거 작업에 나섰다. 그리고 일본의 일 부 평화 활동가들은 캄보디아의 지뢰 밀집지역에 들어가 현지 주민 과 동거동락하면서 지뢰도 제거하고 학교 등을 세워 주는 등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 2) 무기거래 관련 운동 아시아 지역은 미국 등의 군수기업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기를 아시아 지역들이 앞 다투어 구입하기 때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87

388 문이다. 전 세계의 무기 전시장으로 전락한 아시아에서 무기 거래를 감시하고 축출하는 운동이 중요함을 깨달은 일부 활동가 집단이 무 기 거래 모니터 운동 등을 전개하고 있으나 아직 미약하다. 한국의 경우 1999년 헤이그에서 열린 국제 평화대회 참석자 중 일부가 무기 거래 운동에 관심을 갖고 운동을 전개했으나 지금은 중단 상태이다. 3) 외국무기 도입 반대 운동 미국은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면 우선 동맹국들에게 실험용으로 사용해 보라고 권유(경우에 따라서는 강매)한다. 아시아의 미국 동맹 국인 일본과 한국은 미국 군 산 복합체의 신무기 실습장이며, 우리 민족이 이 신무기의 모르모트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을 인 식하게 된 한국 일본의 평화 운동 세력은 자국 정부가 미국 등 외 국의 최첨단 무기를 마구잡이로 도입하는 것에 저항해 왔다. 일본의 운동 단체들은 차세대 전투기 사업 FX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했다. 한국의 평화 운동 단체들은 외국무기 도입으로 국민의 국방 혈 세가 낭비될 뿐 아니라 외제무기가 남북한의 군비확장을 유발하여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며 끝내 민족의 생명을 위협하는 흉기임을 고발 하는 운동을 전개해 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F-15K 도입 반대 운동이며, 이 운동에 앞선 아파치 헬기 도입 반대 운동의 힘이 작용 하여 정부로 하여금 도입을 중단하게 했다. 38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89 단순한 무기는 아니지만 미사일 방어망(MD) 체계에 대한 한 일 민중의 저항력도 강해지고 있다. 4. 군축운동 아시아에서 군축운동의 뿌리는 깊다. 일본의 경우 태평양전쟁(제 2차대전) 당시에도 생사를 건 반전운동가들이 군축운동을 전개했다. 일본의 패망 이후 평화헌법이 제정되자 군축운동은 날개를 단 듯 활 발해져 핵무기 반대 운동과 병행하여 큰 힘을 발휘했다. 한국의 경우에도 1990년대 초반부터 국방비 삭감운동을 전개하 면서 국방비 삭감-군축을 통한 평화 배당금(peace dividend)으로 민중 복지를 향상시키자. 는 운동이 벌어졌다. 특히 IMF 외환위기로 민중경제가 피폐되었는데도 정부가 국방비를 크게 삭감하지 않자, 민주노총 등 노동운동 세력이 앞장서서 군축을 통한 민중복지 향상 운동 을 전개한 것은 매우 인상 깊은 일이다. 물론 한반도의 경우 군축운동이 남북한의 통일로 직결되므로 그 중요성이 남다르다. 이 렇게 군축운동은 그 나라의 상황에 따라 다른 내용을 지니고 있으 나, 미국의 군( 軍 ) 산( 産 ) 복합체-미군(군 산 복합체의 하수인)과 의 투쟁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89

390 5. 미군주둔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평화 운동 아시아는 미국의 사활이 걸린 지역이다. 아시아는 미국의 국익이 가장 크게 걸려 있는 곳이다. 따라서 미국의 지배계급은 아시아에서 미국 자본을 마음껏 유통시키기 위한 자본 지킴이(capital keeper) 인 미군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아시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10 만 명이 미국계 초국적 자본의 헌병 노릇을 하고 있다. 나이 보고서(Nye Report)에 따른 미군 10만 명 주둔 체제는 아 시아의 국제정치 질서를 친미 쪽으로 규정짓는 원동력이다. 미군 주 둔 체제는, 한국 일본 등 미군이 집중적으로 배치된 나라의 대외정 책 안보정책을 외세지향적 반( 反 )민중적인 형태로 나아가게 함으로 써 자주 를 지향하는 민중들과 정면충돌하고 있다. 이 충돌 지점에 서 두 여중생(효순 미선 양) 압살 사건이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 르면서 한국 민중 對 미국의 대립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이에 앞선 미군병사에 의한 오키나와 소녀 강간 사건이 오키나와인 일본인의 평화의 힘 을 폭발시켰다. 한국의 경우 미군범죄 규탄운동이 미군주둔 체제 반대 운동으로 급진전되는 데 비하여 오키나와는 미군주둔 체제를 반대하는 운동이 미약한 게 다른 점이다. 39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91 두 여중생의 압살에 대한 운동의 경우처럼 미군주둔 체제에 대 한 반대 운동이 전 국민적인 운동으로 승화될 때는 반미운동이라고 낙인찍히지 않는다. 이 운동이 소강상태로 후퇴하여 운동집단의 전 유물로 될수록 반미운동으로 낙인찍히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을 유의하면서 대중성을 확보해 가는 게 미군주둔 체제에 대하여 저항 하는 평화 운동의 과제이다. 1) 미군기지 반대 운동 미군주둔 체제의 보루인 미군기지를 좌시할 수 없다는 게 평화 운동 세력의 중론( 衆 論 )이다. 이러한 중론은 운동 노선의 차이를 뛰 어넘어 미군기지 앞에서의 공동투쟁을 가능케 한다. 몇 년 전 오키 나와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에 즈음하여 열린 가네다 미 공군기지를 에워싼 인간 띠 잇기는, 일본 국내외의 평화 운동 세력이 대동단결 하여 미군기지 반대 운동에 임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국에서도 줄기차게 미군기지 반대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최근 에는 용산에 있는 미 8군 입구가 미군기지 반대 운동의 새로운 명소 로 자리 잡았다. 2) 미군범죄 반대 운동 한국 오키나와 등에서 저지른 미군범죄에 대한 반대 운동의 사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91

392 례는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으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3) 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 필리핀에서 철수한 미군기지를 오염 없는 땅으로 되돌려 받기 위한 필리핀 운동권의 노력은 눈물겹다. 미군기지의 이전이 비교적 많았던 오키나와에서는 일찍이 우리 땅을 더럽히는 미군 들을 좌시 할 수 없다는 자각이 집결되어 환경평화(eco-peace) 의 차원에서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제거운동을 열심히 전개했다. 한국에서도 만시지탄이지만 녹색연합 등이 중심이 되어 환경평 화의 차원의 미군기지 환경오염 제거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LPP(한미 연합토지 관리계획)에 따라 돌려받을 미군기지가 오염으 로 찌들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오염 없는 미군기지 반환운동 이 중요한 시점이다. 6. 군사투쟁과 평화 운동 군대-군사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평화 운동과 깊은 연관 을 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이다. 2차 대전 기간 중에 일본의 사회주의 운동 세력에 의한 군대 반대 운동 (병역기피 운동 포함), 중국 조선의 민중이 전개한 일본군대 반대 운동(탈영 등), 베트남전 당시의 미군 반대 운동 등 아시아 민중들에 39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93 게 군사투쟁은 익숙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아시아에 냉전의 그늘이 깊숙이 드리워지 자 자국군대의 모순을 지적하는 행동이 반공 체계 의 검열을 받게 되었다. 한국의 경우 1980년대 학생운동이 주창한 미국의 용병인 한국군에 입대할 수 없다. 는 논리가 친북이라고 규정되어 탄압받은 사례가 이를 반증한다. 그만큼 반군( 反 軍 ) 투쟁은, 군사체제에 위협 적인 행동이므로 극심한 탄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반 ( 反 )평화적인 군사집단 군사문화를 규탄하는 행동의 정당성은 널리 인정받았다. 이런 차원에서 군사투쟁 반군 평화 운동의 계기가 발 생한다. 최근 한국 등에서 전개되는 징병제에 대한 저항, 군 의문사 사건 에 대하여 강도 높은 비판, 군 폭력에 대한 시민사회의 관심 제고 는, 앞에서 언급한 반군 평화 운동의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7. 일본의 군국주의화 반대 운동 1990년대 후반 들어 미 일 新 가이드라인(미 일 안보 협력을 위한 새로운 지침) 협정에 따라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제도화하는 권 능을 인정받았다. 이에 자위대가 사실상의 군대로 재정립되고 해외 파병되는 등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실제의 힘으로 나타나기 시작했 다. 이윽고 일본의 지배 세력은 최근 유사법제를 서두르면서 평화헌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93

394 법 파괴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이에 일본의 평화 운동 단체를 비롯한 모든 운동 세력이 단결하여 유사법제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은 일본의 평화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평화를 내오 는 관건이므로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다. 8. 구조적 폭력을 지양하는 평화 운동 지금까지 거론한 내용을 갈퉁(Johan Galtung)의 평화 운동 분류 법으로 재조명하면 소극적인(negative) 평화(단순하게 전쟁이 없는 상태)를 지키려는 운동 이다. 여기에서 소극적 이란, 갈퉁이 중요시 하는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 억압 착취 인권탄압 인종 차별 성차별 빈곤 등) 에 대하여 소극적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 다. 그러나 이들 운동이 전쟁 반대에 적극적이란 측면에서 보면 적 극적인 평화 운동이다. 억압 착취 인권탄압 인종차별 성차별 빈곤을 척결하기 위한 전문운동으로서 인권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이 존재하므로, 평화 운동만이 구조적 폭력의 제거를 전담한다고 볼 수 없다. 다만 평화 운동은 평화의 시각에서 이들 구조적 폭력을 제거하는 데 앞장선다. 우리들은 아프리카가 빈곤의 대륙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인식은 교정되어야 한다. 아시아가 새로운 빈곤의 늪지대로 등 장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민중의 빈곤을 해소하는 길은 아시아 평화 39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95 의 지름길이다. 특히 아시아에는 빈곤한 나라들(인도 파키스탄 북 한)이 핵무장을 했거나 핵문제로 의혹을 받고 있어서, 빈곤-핵무장 -평화 의 삼각관계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핵심적인 사안이다. 억압 착취 인권탄압 인종차별 성차별 빈곤 을 포괄하고 있는 또 하나의 사안은 이주 노동자 문제이다. 신자유주의 선풍이 낳은 전 세계 민중의 유목 시대(nomad age) 를 반영하는 이주 노동 자 문제를 인간 안보(human security) 평화 의 측면에서 접근할 필 요가 있다. 1) 인간 안보와 평화 국가 안보의 대안으로 제기되는 인간 안보 는 시민사회 구성원 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안녕을 보장하는 안보가 진정한 안전보장이라 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보는 관점에 따라 인간 안보를 민중 안보 로 대체해도 무방하다. 국적을 묻지 말라는 세계화 시대 에 한국으로 돈벌이 온 이주 노동자 개개인의 인간 안보를 보장하지 못하는 한국 시민사회의 반( 反 )평화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군기의 폭격 연습으로 삶의 질서가 깨진 매향리 주민에게 민 중 안보 를 보장하라는 운동은 평화 운동의 한 종류이다. 매향리 주 민에게 민중 안보 를 안겨 주라고 국가권력에 압력을 넣는 운동은 더욱 고차원적인 평화 운동이다. 최근에 발생한 두 여중생 압살 사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95

396 태는 한국 국민 전체가 미군 범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드러낸 것 으로 민중 안보, 인간 안보 개념을 적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이 밖에 아시아 전역의 지뢰 피해자, 미군 범죄 피해자, 군 폭력 의 피해자, 군 기지의 환경오염 피해자, 군사문화에 의한 성차별 피 해자와 관련한 인간 안보-평화 운동 이 절실하다. 9. 군사문화 척결과 평화 운동 아시아 각국이 군사문화의 상흔(Trauma)을 안고 있으며, 이 군 사문화가 사회통합을 가로막고 있다. 또한 군사문화는, 기본적으로 폭력지향적인 사회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으며, 호전 세력의 전쟁문화에 쉽게 영합하여 대중들로 하여금 평화의식을 가다듬게 하 는 데 걸림돌이다. 특히 한국과 같은 분단국가의 경우 군사문화가 반공체제와 결합되어 민중의 의식을 짓누르거나 평화통일 의식을 금 압하는 지배의 기제(mechanism)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군사문화 를 척결하는 일은, 군사 파시즘 전쟁지향적인 체제의 상흔을 제거 함으로써 사회 국가 민족의 통합을 내오는 중요한 작업이다. 군사문화의 최대의 피해자인 여성들이 Gender 의 시각에서 군사 문화를 척결하려는 움직임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동아시아-미국-푸에르토리코의 여성 네트워크(East Asia -US-Puerto Women s Network Against Militarism Resources and 39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97 Information) 에 한국 일본 필리핀의 활동가들이 함께하고 있다. 10. 비폭력 평화 운동 비폭력 평화 운동의 원조인 간디를 낳은 인도를 비롯한 전 세계 에서 비폭력 평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비폭력 평화의 사상은 곧 장 서방 세계로 유입되고 그곳의 시민 불복종 인종차별 철폐운동 등과 결합하여 마틴 루터 킹과 같은 걸출한 지도자를 낳았다. 이러한 비폭력 평화 운동을 분쟁 지역에 적용한 운동으로서 평 화 여단(Peace Brigade)의 인간방패 운동(평화 운동가들이 분쟁의 현장에 뛰어들어 몸으로 평화를 지켜내는 방패의 역할을 한다) 을 벌여 왔다. 그러나 Peace Brigade의 운동이 소수 백인의 중산층 지 향적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Nonviolent Peace Force(비폭력 평화대) 라는 새로운 국제적인 평화 운동 네트워크가 태동했다. 이 Nonviolent Peace Force 에 한국 일본 오스트리아 타이 인도 등 아시아 지역의 활동가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11. 평화를 위한 아시아의 국제연대 아시아 각국의 평화 운동가끼리 국제연대를 하는 사례를 모두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97

398 수집할 수 없다. 필자가 보기에 한 일 간에 국제연대가 비교적 활 발하며, 일본 필리핀도 못지않게 활발하다. 최근에는 한국 필리핀 의 국제연대가 빈번해져 한-일-필리핀의 3자 연대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미군 문제와 관련하여 오키나와가 3자 연대에 참 여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대의 틀이 협소하다고 느낀 나머지 아시아 전 체를 묶어서 탈미( 脫 美 ) 아시아 평화연대 를 마련해 보자는 분위기 가 높아져 가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APA의 창립대회가 2002년 8월 29일부터 9월 1일까지 필리핀에서 열렸다. 12. 맺음말 필자가 갖고 있는 정보의 한도 안에서 아시아의 평화 운동을 개 괄했을 뿐이므로 아시아의 평화 운동 전체를 보는 데는 미흡하다. 그러나 개괄적으로 보더라도 다양한 평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아시아의 평화 운동은 주로 전쟁(분쟁)의 예방 반대에 주안점이 있으나, 구조적 폭력의 제거에는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다. 아시아의 평화 운동이 구조적 폭력에 소홀한 것을 단점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아시아는 역사적으로 제국주의의 전쟁터이었고, 제국주의가 물러간 자리에 냉전의 그림자가 덮쳐져서 아시아인끼리의 분단의 골 39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399 이 깊어졌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 미 일의 해양 세력과 중국 러시 아의 대륙 세력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전쟁 반대 구호가 큰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아시아의 역사 지리적 맥락 때문에 구조적 폭력을 지양하는 평화 운동이 정착하지 못했다. 이게 유럽 미국처럼 시민사회가 안정된 곳의 평화 운동과 다른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인의 삶을 왜곡시키는 구조적 폭력을 제거하는 평화 운동이 강력하게 요망되고 있다. 따라서 전쟁 반대로 서의 평화 운동의 지평을 넓혀 구조적 폭력을 제거하는 평화 운동으 로 승화시키는 노력이 긴요하다. 아시아에서 전쟁 반대의 평화 운동 과 구조적 폭력 제거의 평화 운동이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를 가져올 때, 아시아에 지속가능한 평화(sustainable peace) 가 이루어질 것이다. * 출처= 평화 만들기( 112호( ) 제2부 반전평화 운동 399

400 2004년도의 평화통일 운동 Ⅰ. 한반도 안팎의 정세와 평화통일 운동의 개괄 2004년도에 펼쳐진 한반도 안팎의 정세는 북한 핵문제를 중심으 로 펼쳐졌는데 이를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단계는 연초 부터 4월 15일의 총선까지이다. 이 시기 역시 북한 핵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2004년 1월 초에 북한은, 방북한 미국의 민간대표단에게 재처 리된 플루토늄 을 공개함으로써 핵 억제력 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한편 남한에서는, 1월 15일에 한 미 당국이 용산기지 이전(주한 미 군을 평택으로 총집결함)에 합의함으로써 북한 핵문제-한미동맹- 주한미군 재배치를 둘러싼 운동전선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어 2월 25일의 6자회담을 앞두고 북한 핵을 에워싼 6자회담 당사국 사이의 신경전이 날카롭게 전개된다. 북한은 남한 쪽을 향해 민족공조를 촉구하는 한편, 미국을 향해 핵 억제력을 보여 주면서 말 對 말, 보상 對 보상 의 원칙에 따라 핵의 동결이 가능함을 밝 힌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에 대하여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 며 돌이킬 수 없는 방식의 핵폐기(CVID: Complete, Verifiable, 40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01 Irreversable Dismantlement)만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바람에 6자회 담의 공전을 불러온다. 이처럼 북한 핵을 둘러싸고 한반도 주변정세가 요동치는 파장이 국내정치에도 미친다. 핵문제에 따른 북한 위협론을 내세워 대북전 쟁을 기도하는 미국을 추종하는 경향이 강한 한나라당 중심의 수구 보수 세력들은, 3월 12일에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안을 통과시킨다. 노 대통령 탄핵안은 범국민적인 탄핵무효 투쟁과 선거참여 투쟁을 일으켜 4 15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패배를 초래한다. 이처럼 첫 번째의 정세(1월 초~4월 15일 총선)는 북한의 대미 공세가 시작되는 단계, 남한에서 수구 냉전 세력들의 도전을 국민들 의 투쟁으로 맞받아쳐 나간 단계를 나타냈으며, 이런 정세에 대응한 운동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두 번째 단계는 총선 이후 6월 말까지에 해당된다. 총선이 진보 개혁 세력의 과반의석 확보로 매듭지어진 힘을 바 탕으로 남북관계의 급진전이 이루어진다. 남북 간에 경제교류의 원 활한 추진, 군사 분야의 협력 모색, 북한 핵문제의 해결여건 조성 등 남북관계의 훈풍이 불기 시작한다. 이러한 정세에 힘입어 인천에서 6월 15일에 열린 남북 공동행사가 성공을 거둔다. 세 번째 단계는, 두 번째 단계의 반동으로서 미국이 남북관계의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01

402 훈풍에 찬물을 끼얹은 시기이다. 7월달 미국의 안보보좌관 라이스가 방한한 이후부터 연말까지이다. 남북관계의 진전에 보조를 맞추려는 노무현 정부는 7월 6일 북 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북핵문제의 완전한 해결 전에라도 2차 정상회담을 개최할 수 있다. 고 언급한다. 이에 미국 정부는 라이스 보좌관을 보내 남북정상 회담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입장을 북핵문 제 해결 이후 남북정상회담 이라는 기존 입장으로 돌려놓는다. 7월 초 라이스의 방한으로 시작된 미국의 간섭은 남한 당국의 김일성 주석 서거 10주기 추모 방북의 불허(7월 8일)로 이어져 남북 관계가 급랭하기 시작했으며, 남한 당국이 탈북자 400여 명을 대 거 입국시킴으로써 더욱 심각해졌다. 이러한 정세악화를 반영하듯이 8 15 통일행사를 남북한이 각각 치르는 상황이 된다. 이 기간에 미국은 남한에 이라크 파병을 강하 게 요청하여 관철시키며, 북한에 저강도 압박(북한 인권법 통과) 중 강도 압박<PSI(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 훈련> 고강도 압박(대북 선 제공격 가능성 시사)을 넣는다. 이에 저항하는 운동, 즉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과 미국의 북한에 대한 압박(대북 전쟁위협)에 반대하는 운동 이 뜨겁게 전개된다. 그리고 주한미군의 재배치를 에워싼 치열 한 운동도 펼쳐진다. 겨울의 한파 속에서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단식투쟁을 결행한 점도 빠뜨릴 수 없다. 이러한 운동력이 결실을 40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03 맺어 11월 23일 6 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 준비위원회 결성 을 선포하게 된다.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한반도 안팎의 정세에 대응한 평화통일 운동이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2004년도 평화통일 운동을 간 단하게 총괄하는 어렵지만, 미국 반대, 전쟁 반대, 이라크 파병 반대, 6 15 선언 실천 에 중점이 있었다. 미국 반대 운동은 1 미국의 대북전쟁 기획, 2 한미동맹 체계, 3 주한미군 재배치, 4 한 미 합동군사 훈련에 대한 반대를 포괄 한다. 미국 반대 운동은 대미 종속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탈 미자주( 脫 美 自 主 )의 성격을 지닌 운동이다. 전쟁 반대 운동은 이라크 전쟁 반대, 미국의 한반도에서의 전쟁 구도 에 반대하는 반전운동을 말한다. 이라크 파병반대 운동은,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반대에 초점을 둔 평화 운동이다 선언 실천운동은, 남북한이 6 15 공동선언을 함께 실천 하자는 의미의 통일운동이다. 2004년 6월 15일 8월 15일에 남북한 이 공동으로 6 15 선언의 실현을 위한 통일행사를 가진 것이 대표 적인 사례이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03

404 이와 같이 미국 반대, 전쟁 반대, 이라크 파병 반대, 6 15 선언 실천 으로 표징되는 반미(탈미) 반전 평화 통일 운동의 상 호관계를 통해 2004년도 평화통일 운동을 총괄할 수 있겠다. 미국의 대북전쟁 기획 한미동맹 체계 주한미군 재배치 한미 합동군사 훈련에 대한 반대로서의 반미운동은, 반전 평화 운동의 성격도 지 닌다. 즉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미국에 반대 하는 반미운동 이지만, 전쟁(미국의 대북전쟁)을 반대 하는 반전운동인 동시에 전 쟁을 예방 하는 평화 운동이다. 이처럼 반미-반전-평화 운동은 하나의 띠를 이룬다(물론 각자 의 독립변수로 인한 3자 간의 착종현상도 있다). 이 띠 안에서의 선 순환( 善 循 環 )이 통일운동에 도움이 되므로 반미-반전-평화 운동과 통일운동의 관계가 형성된다. 그런데 이 양자의 관계를 상보관계로 볼 것인가, 통일운동 우위론(통일운동이 반미-반전-평화 운동을 이끌어 간다) 또는 평화 운동 우위론(평화 운동이 통일운동을 견인 한다)의 입장에서 볼 것인가에 따라 평화통일 운동론의 서술방식이 달라진다. 여기에서 필자는 평화 없이 통일 없고, 통일 없이 평화 없다. 는 절충점을 찾아 반미-반전-평화 운동과 통일운동을 서술하면서 도 각 운동의 특징을 최대한 살릴 생각이다. 반미-반전-평화 운동 은 주로 미국과 관련(한미관계, 북미관계)된 특징을 지닌 반면 통일 운동은 주로 북한과 관련된(남북관계) 것이어서 그 지평이 다르다. 40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05 또한 반미운동 지향적인 운동단체와 통일운동 지향적인 단체의 운 동 목표 운동 양태 가 조금씩 다르다. 이런 탓으로 반미-반전-평 화 운동이 통일운동으로 수렴된다는 기존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 으며, 반미-반전-평화 운동이라는 흐름과 통일운동의 흐름이 서로 상승효과를 내는 쪽으로 평화통일 운동의 가닥이 잡혀 가고 있다. 그러면 본론에서는 반미 반전 평화 통일 운동이 2004년 한 해 동안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Ⅱ. 본 론 1. 반미(탈미)운동 두 여중생(효선 미선 양)을 압살한 미군을 규탄하는 촛불시위는 반미운동을 대중화하는 결정적 계기였다. 2003년 한 해 동안 300여 차례의 촛불시위가 진행되었는데 여기에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사 무원, 교수, 예술인, 종교인을 비롯한 연 500여만 명의 시민이 참가 하여 미국 반대의 구호를 외쳤다. 촛불시위를 통해 달구어진 반미운동은, 미국의 한반도에서의 전 쟁 책동 과 (전쟁 책동과 관련이 있는) 미군 재배치 를 반대하는 운동 대열을 강화시킨다. 이렇게 운동대열이 강화된 반미(탈미)운동은 기존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05

406 의 자주운동과 결합되면서 반미자주 운동으로 승화된다. 2004년도의 반미자주 운동은 미국의 대북전쟁 기획, 한미동맹의 파행, 주한미군 재배치(용산기지 이전), 한미합동 군사훈련, 미국의 이라크 파병 강요 에 집중되었으며 일부의 내용은 반전운동 평화 운동과 연결되었다. 그리고 반미운동의 주체는 민중운동 계통의 평화통일 운동 단체 였다. 아직까지 시민운동 계통의 평화 운동 단체들(시민운동 단체들은 통일운동에 큰 관심을 나타내지 않지만 평화 운동에 상대적으로 관심 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시민운동 계통의 평화 운동 단체 라고 표기 한다)은, 반미운동에 소극적이며 시민운동의 일부는 반미운동에 나서 기는커녕 반미, 미군 철수 라는 용어를 기피하거나 거부하는 반응 을 보이는 쪽도 있다. 시민운동 단체들은, 두 여중생 압살 관련 촛불 시위에 참여하여 반미 대열에 편승하는 정도로 그친다. 이런 정황 때 문에 민중운동 단체를 중심으로 반미운동을 기술할 수밖에 없다. 1) 미국의 대북전쟁 기획을 반대 북한은 1월 초에 방북한 미국 민간대표단에게 핵 억제력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북한의 당돌한 행동에 대한 대응을 찾지 못해 안절 부절못하던 부시 행정부는, 외교적 수단과 군사적 수단을 병행하면 서 북한에 (핵)전쟁 위협을 가했다. 2월 25일의 6자회담 이후에 미국은 프리덤 배너 훈련, 연합전시 40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07 증원훈련, 독수리훈련 등을 진행했으며 핵항공모함을 배치하는 등 군사적 행보를 강화하였다. 그리고 5027 작전계획 이외에도 5026, 5030 등의 작전계획을 수립하면서 북한에 대한 군사 압박 전쟁 위 협을 가했다. 이윽고 7월 9일 라이스 보좌관의 방한 이후 주한미군은 군사력 을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배치하기 시작한다. 7월부터 9월까지 F- 117 스텔스 전폭기 10여 대를 한반도에 배치하여 작전계획 숙지훈 련을 실시하였는데, 미국이 보유한 55대 중 20%가 한반도에 배치된 것이다. 한편 8월 알래스카에 배치돼 있는 F-15E 스트라이크 이 글 전폭기 1개 대대 20여 대를 한반도에 배치하여 수개월 동안 한 반도 지형적응 훈련을 전개하였으며, 11월 22일~23일에 태평양 해 상에서 인공위성으로 유도되는 JDAM(합동직격탄: 이 무기는 북한 의 주요시설을 정밀타격하는 5026 작전계획에서 핵심적인 무기이다) 투하 훈련을 실시한다. 이 훈련에는 미 본토인 텍사스에서 출격하는 B-1 장거리 폭격기와 괌에서 이륙하는 B-52 폭격기까지 동원되 었으며, E-8C로 불리는 최신 레이더 시스템, 공중조기경보기 (AWACS) 등 첨단 시스템까지 동원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대북전쟁 위협에 대하여 시민사회 운동 세력 전 반의 비판이 있었다. 특히 미국이 이라크 다음의 전쟁터로 북한을 생각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과 더불어 미국의 대북전쟁 기획에 대한 한국 시민사회의 경계심은 남달랐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의견을 집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07

408 약한 평화통일 운동권은 미국의 대북전쟁 책동을 저지하는 투쟁을 힘 있게 전개했다. 2) 한미동맹 체계에 대한 반대 미국의 대북전쟁은 한미 연합 전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한미 연 합 전력은 한미동맹에 의하여 움직이고 한미동맹은 한미 상호방위 조약에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미국의 대북전쟁 책동을 근절시키는 운동은 한미동맹 한미 상호방위 조약의 개폐를 요구하는 쪽으로 나 아갈 수밖에 없다. 미국의 대북전쟁 기획에 반대하는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 진 한미동맹 한미 상호방위 조약 개폐 운동이 조직적인 형태로까지 발전한 것은 아니지만, 진보적인 시민들의 의견을 종합한 형태로 발 전했다. 일부 목소리가 높은 민중운동 계열의 통일운동 단체는 한미 동맹의 폐지를 주장할 정도이었다. 그리고 평통사(평화와 통일을 사 랑하는 사람들) 한미관계 연구회 는 새로운 한미 상호방위 조약 을 체결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40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09 3) 주한미군 재배치 반대 주한미군 철수 운동 1 용산 미군기지 이전 주한미군 재배치 반대 운동 용산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총집결하는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 은 해외주둔 미군의 재편 구상(GPR: Global Posture Review) 의 일환 이며, 미군의 북한 포위 공격-대북전쟁 계획의 정교화와 관련이 있는 등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통일의 저해 요소이다. 이는 본 연구에서 거론되는 네 가지 핵심운동(반미 반전 평화 통일 운동) 과 직 간접적으로 연결된 문제이므로, 평화통일 운동 단체가 적극 적인 대응논리를 펼치면서 운동을 전개했다. 지면 제약상 모든 단체 의 활동을 전달할 수 없으므로 주요 단체의 성명서를 통해 용산 미 군기지 이전 주한미군 재배치 반대 운동의 흐름을 전달한다. 한 미 양국은 2004년 1월 15 16일 하와이에서 열린 제6차 한미동맹 정책구상 회의(FOTA) 에서 한미 연합사령부 유엔사령부 를 포함한 용산 미군기지를 2007년까지 평택으로 이전하되 이전비 용 전액을 한국이 부담하고 평택에 대규모 대체부지를 제공하기로 합의한다. 이와 관련하여 1월 18일에 성명서를 낸 민주노동당, 평통사 등 의 단체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09

410 * 용산기지 이전비용 전액의 한국 부담을 굴욕외교의 표본으로 규탄하며 이를 철회할 것을 한 미 당국에 강력히 요구한다. * 평택에 대규모 대체부지를 제공하기로 한 이번 합의는 (기존 의 457만 평의 미군기지로 인해 수십 년 동안 수많은 미군범 죄와 지역발전 장해의 희생을 겪어 온) 평택주민에게 또다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강요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이를 결코 용납할 수 없다. * 지금 미국이 추진 중인 한미 연합사령부 유엔사령부를 포함 한 용산기지의 평택 이전은 어디까지나 주한미군을 신속 기 동군화하고 동북아 지역군으로 전환하려는 미국의 군사전략 에 따른 것일 뿐으로, 향후 한반도와 동북아에 심각한 군사적 긴장과 군비경쟁을 촉발시킬 것이 분명하다. 이에 주한미군의 감축과 단계적 철수 원칙에 입각한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을 촉구한다. 위의 성명서에 나오는 요구사항을 중심으로 용산 미군기지 이전 주한미군 재배치 반대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어 6월 7~8일의 제9차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 회의에서 용산 미군기지 이전 협상을 마무리할 태세를 보이자, 평화통일 운동 단체들은 성명서를 내고 굴욕적인 용산기지 이전협상을 중단하고 전면 재협상에 나서라. 고 요구한다. 이들 단체들은 한미동맹의 재 조정 이라는 명분 밑에 8차례 열린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 회의 41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11 가 결국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라는 미국의 군사패권 구상을 일방적으로 관철하기 위한 회의였음을 강조하며 이 에 대한 투쟁을 선언한다. 특히 주한미군의 기동화(지역 동맹군화)가 한미 상호방위 조약의 위반임을 지적하면서 불평등한 한미 상호방위 조약을 전면적으로 개폐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드디어 7월 23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10차 FOTA에서 용산기지 이전 협상을 타결하자, 운동단체들은 용산 미군기지 이전은 무효 임 을 선포하고 투쟁의 강도를 높인다. 특히 미군기지의 총집결이 이루 어지는 평택지역의 운동단체들은 미군기지 확장반대 평택 대책위원 회 를 만들어 강력한 대응체제를 갖춘다. 평택 지역 중에서도 대추 리 주민들은 50여 년 전의 악몽(미군기지 확정을 위한 공권력의 강 제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남)을 되살리며, 주민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결사적으로 투쟁할 의지를 밝힘으로써 제2의 부안투쟁 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2 미군 철수 운동 민중운동 단체의 미군 관련 운동은 전통적으로 주한미군의 단계 적 철수론과 즉각 철수론으로 나뉜다. 단계적인 철수론은 현실정치 한반도의 군사적 정황을 고려하여 단계적이며 치밀하게 미군을 철 수시켜야 한다 는 입장인 반면, 즉각 철수론은 주한미군이 지체 없 이 이 땅을 떠나야 한다 는 당위론을 따른다. 미군이 언제 떠나야 하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11

412 느냐는 시차를 제외하면 양자 간에 운동의 양태에서 큰 차이가 없다. 미군 철수 운동은 미군기지의 평택 총집결 반대 투쟁 과 관련이 있는데, 양자가 어우러져 현장성과 대중성을 갖게 될 경우 폭발력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미군 철수 운동이, 주한미군의 기동군 화 반대 및 이와 연동된 한미 상호방위 조약 개폐를 에워싼 운동과 결합될 때, 한미동맹의 구조적인 측면까지 육박하는 운동으로 발전 할 수 있다. 4) 한미 합동 군사훈련 반대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에 대한 북한의 민감 한 반응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주요 원인 제공자이다. 특히 대북전쟁을 기획 중인 미국이 2004년도에 주도적으로 전개한 합동훈련은 전쟁예비 연습의 성격을 지닌 것이어서, 평화통일 운동 단체들은 예년과 달리 투쟁의 강도를 높였다. 한반도의 봄기운이 북상하는 3월 중순에 시작되는 한미연합 전 시증원 연습(RSOI) 독수리 훈련에 대한 반대 집회를 몇몇 단체들 이 지속적으로 가졌으나 그 메아리는 크지 않았다. 그리고 8월 23일 에는 을지 포커스 렌즈 훈련 반대 집회가 열렸다. 5) 기타의 반미운동 41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13 평통사(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가 매월 미 대사관 옆 열린공원에서 주최하는 반미 집회 5월 18일에 광주에서 열리는 광주민중항쟁 정신 계승대회 기간 중에 반미 거리전 개최(통일연대 등이 주최) 8월 14일 용산 미군기지 인간 띠 잇기(통일연대 실 천연대 등이 주최) 9월 초에 북(한) 측에서 미군 철수 남북공동 대책위원회 를 결성하자는 제안에 발맞춰 민중운동 진영의 통일운동 단체들이 남(한) 측의 대책위 구성에 나섬 12월 18일 평택의 대 추리에서 평화축전 2. 반전운동 2004년의 반전운동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대와 미국의 대북전 쟁 위협에 대한 반대 운동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은 2003년의 운동력을 계승하여 이라크 전쟁 이후의 미군 에 대한 태도를 비판하는 경향이 강하며, 이는 한국군의 이라크 파 병 반대의 기류와 연결되어 있다. 한편 미국의 대북전쟁 위협에 대한 반대는, 이라크 전쟁 이후의 전쟁 예정지로 북한이 손꼽히고 있다는 불안감에서 출발한다. 그리 고 5027 작전계획 이후에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북한 붕괴용 작전계 획에 대한 성토가 주류이다. 미국 쪽의 이러한 작전에 편승하여, 협 력적인 자주국방 이란 미명 아래에서 북한 붕괴용 전략을 거들어 주 는 한국 정부의 전쟁 보조 역할에 대한 비판도 강하게 제기되었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13

414 3. 평화 운동 앞에서 반미운동, 통일운동에 소극적이라고 언급한 시민운동 계 열은 평화 운동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이다. 그중에서도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에 시민운동 쪽이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민중운동 진영과 함께 평화 운동의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점이 2004년 의 평화통일 운동에서 대서특필할 점이므로, 이라크 파병반대 운동 에 대하여 언급한다. 이라크 파병반대 운동이 2004년도의 평화통 일 운동을 좌지우지했으며 관련 단체 사이에서 (운동의 경향 노 선을 포함한) 운동론의 편차가 표출되었고 이 편차가 앞으로 상 당기간 동안 평화통일 운동의 기류를 결정지을 것이다. 이라크 파병반대 운동과 관련하여 이미 앞의 글 이라크 파병반 대 운동 평가 에서 거론했으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1) 평화군축 운동 2004년의 평화군축 운동은 대체로 한국 정부의 미군 첨단무 기 도입 저지(이 무기들은 사실상 북한 붕괴용이며 대북전쟁용으로 사용될 무기이므로, 이들 무기의 도입 저지는 통일운동과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협력적 자주국방의 명분을 내걸고 군비확장을 서두 르는 국방부에 대한 규탄 위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발생한 국방 비의 증액에 대한 반대로 좁혀진다. 평화군축 운동은 주로 평통사, 참여연대 의 평화군축 센터, 민 41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15 주노동당의 평화군축 부서 등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 평통사 는 다 음과 같은 평화군축 운동을 전개했다: 한국형 다목적 헬기(KMH) 사업 차기 유도무기(SAM-X) 사업 조기 경보기(AWACS) 도입 사업 등 주요 무기 도입 사업에 대한 운동 매월 국방부 앞에서 평화군축 집회 개최 국방비 삭감운동을 민중운동 단체와 시민운동 단체가 합동으로 시도했으나 그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이들 단체들은 대폭적인 국방 비 증액을 요구하는 국방부를 규탄하는 운동, 국방비 관련 질의 활 동, 기획 예산처 장관 면담 및 국방비 삭감 의견서 전달, 청와대 앞 기자회견 등의 정부기관 대응 활동을 전개했다. 국방비의 예산 편성 단계부터 국방비 증액의 논리를 대중적으로 유포시킴으로써 운동의 예열을 높인 다음에 정기국회 때 운동력을 고 조시키는 게 바람직한데 그렇게 치밀하게 운동을 준비하지는 못했다. 국회 상임위(국방위)가 열릴 때 방청하면서 국방비 증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수준에 머물렀을 뿐 국민적인 운동으로 승화시키지 못했다. 2)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 2001년 1월 초 한겨레 21 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기사를 통하여, 여호와 증인의 병역거부 일반 징집 대상자의 양심적 병역 거부가가 사회문제화되었다. 이윽고 2001년 12월 17일에 오태양 씨 가 양심적 병역거부을 선언하면서부터 선언을 넘어선 양심적 병역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15

416 거부 운동 으로 발전한다. 이어 2002년 2월 4일에 양심에 따른 병 역거부권 실현 및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를 발족시키 고 대만의 대체복무 제도를 모델로 한 대체복무 입법 투쟁을 전개 해 왔다(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에 시민단체들의 관심이 큰 반면에 민 중운동 단체는 거의 무관심하다). 이 운동과 관련된 2004년의 주요 흐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3월 30일: 제60차 유엔인권위원회 병역거부 연대회의 참가단 기 자회견 /5월 15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행사 /5월 24일: 대체복무 제도 입법 촉구 각계 인사 기자회견 /6월 1일: 대만 대체복무제도 한국 참관단 보고대회 /6월 16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관한 국 가인권위원회 진정서 제출 및 기자회견 /7월 13일: 헌법재판소와 대 법원이 양심적 병역 거부 와 관련, 전향적 판결을 내려줄 것을 요구 하는 기자회견 /8월 19일: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제 입법을 위 한 병역법 개정안 공청회 /9월 10일: 다큐멘터리 708호, 이등병의 편지 공개 시사회 /9월 22일: 임종인 의원 외 21명이 병역법 중 개 정 법률안 의원발의 /11월 19일: 노회찬 의원 외 9명이 병역법 중 개정 법률안 의원발의 /12월 1일: 평화수감자의 날 행사 평화의 페 달을 밟자 개최 3) 기타의 평화 운동 파주에 있는 스토리 사격장의 불법 건설 공사 중단촉구 투쟁 (1월 7일) 1월 중순에 인도의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사회 포럼 41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17 (WSF)에 다수의 평화 운동가가 참가하여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 부시 낙선운동 등과 관련한 국제적인 합의를 이끌어 냄 1월 말~ 4월 초에 평화통일 운동 단체들이 총선과 관련된 투쟁(평화통일 정 신에 어긋나는 국회의원 후보의 낙선 운동 포함) 3월 20일 이라 크전 개전 한 돌을 맞이하여 반전운동을 전개하는 등 이라크 관련 평화 운동을 다양하게 펼침 한반도에 전쟁을 몰고 오는 체니 미 부통령 파웰 미 국무장관 라이스 보좌관의 방한을 저지하기 위한 거리 시위(4월 13~16일 체니 방한 반대 /7월 9일 라이스 방한 반 대 /10월 25일 파웰 방한 투쟁)/ 4월 12일에 매향리 소음피해 배상거부 기자회견(4월 18일 국방부는 매향리의 쿠니 사격장을 폐 쇄하기로 결정했다고 공표함으로써 몇 년간 지속된 매향리 투쟁의 승리를 확인함) 5월 29일 평택에서 미군기지 확장반대 축제(평화 유랑단 등이 주최) 미국의 북한 인권법 통과 직후 반박 성명서를 낸 평화통일 운동 단체들이 토론회 등을 개최 일부 평화 운동가 들이 유엔사령부 해체 투쟁 미사일 방어망(MD) 도입 관련 투쟁 / 9월 18일 패트리어트 여단 선발대의 광주지역 배치 반대 10월 26일에 한미 연합토지 관리계획(LPP) 협정 서명 규탄 집회: 11월 16일에 용산 LPP 협정 국회비준 저지 투쟁 부시 낙선 네트워크 에서 아시아의 NGO 활동가를 상대로 부시 낙선운동 전개 한반 도에서 전쟁을 기획하는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방지하기 위한 일환 으로 뉴욕 타임즈 에 전면 의견광고를 내는 캠페인 전개 ( 자 뉴욕 타임즈에 게재됨) 한 미 군수지원 협정 개 악 반대 주한미군을 위한 방위 분담금 협정 폐기 촉구 투쟁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17

418 4. 통일운동 1) 6 15 대회, 8 15 대회 통일운동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한이 매년 공동으로 여 는 민족통일 대회이다. 2004년에는 6월 15일 8월 15일에 두 차례 열렸다 대회(6 15 우리민족 대회)는 인천에서 남북한이 성 공리에 치렀으나, 8 15 대회는 정세의 악화로 남북한이 분리하여 개최했다 대회는 남측의 통일연대 민화협(민족화해협력 범국민 협의회) 종단(종교인 단체 협의회) 중심의 틀과 북측의 해당기관이 합세하여 치렀다. 그러나 8 15 대회가 남북한 별도로 치러지고 남한 안에서도 통일연대 와 민화협 이 독자적인 행사를 가짐으로써 연대성의 한계를 드러냈다 대회와 8 15 대회의 기조는 6 15 공동선언 실천운동 민족공조 남북교류에 있었다. 민족공조 중 중요한 부분은 남북한 이 힘을 합하여 미국의 대북전쟁 기획을 파탄내자! 는 것이었다. 인천에서 열린 6 15 대회에 지역자치단체인 인천시와 광범위한 사회단체가 결합하였으며 2만여 명의 시민 북녘동포들이 참석하여 6 15 선언을 실천하여 평화통일 앞당기자 고 다짐했다. 이 대회에 앞서 6 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의 상설적 41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19 연대기구를 구성함으로써 6 15 선언의 실천 운동에 큰 걸음을 내 디뎠다. 이 연대기구는 전쟁(미국의 대북전쟁) 반대와 6 15 선언의 실천을 기조로 활동하기로 결의했다. 최근 6 15 대회의 위력에 가려 전통적인 8 15 행사가 좀 퇴 색된 듯한 인상을 주나, 8 15 대회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통일 선봉대 의 전국 순회는 지속되었다. 양 대회의 기조에 전쟁 반 대가 들어가고 8 15 대회(남측 개최) 기간 중 이라크 파병 반대 집 회를 여는 등 평화 의 지평이 넓어진 게 특징이다. 또 하나 통일운 동의 기둥이었던 학생운동(한총련)의 운동 역량이 크게 줄어드는 대 신 노동자 농민 시민들의 참가율이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남북 해외 3자 연대를 이끌었던 범민련(조국통일 범민족 연합) 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으며, 범민련 의 몫까지 통일연대 가 대행하고 있다. 그런데 통일연대 의 연대폭이 그다지 넓지 못하여 민중운동 전체를 포괄하지 못하거나, 시민운동 단체들을 통일운동의 대오로 끌어들이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민화협 역시 관 변단체라는 인상을 지우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종단 도 종교계 전 체를 아우르는 통일운동에 나서고 있지 못하다. 2) 국가보안법 철폐운동 예년과 달리 통일운동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은, 통일을 저해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19

420 하는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을 끈질기게 전개한 점이다. 6월 9일에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 의 발족식을 가진 뒤 주춤하던 운동대오 를 다시 정비하여 8월 10일에 재발족 선언을 했다. 국가보안법 폐 지 국민연대 에는 232개의 시민사회단체가 가입되어 있다.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이 인권운동과 통일운동의 요소를 공유하 고 있으나, 이 투쟁에서 통일운동 단체들(범민련 등 통일운동의 원 로들 포함)의 주도력이 강하게 나타났다. 국가보안법 투쟁의 예열을 가하기 위하여 2004년 7월 말~9월 초 한청협(한국 청년단체 협의회) 중심으로 전국 도보행진을 벌였 다. 그리고 국가보안법 철폐 100만인 청원운동 을 전개했다. 무엇보 다도 수백 명의 단식 투쟁단이 한겨울에 국회 앞에서 풍찬노숙하며 국가보안법 철폐를 절규한 사실이 중요하다. 일부 국회의원들의 국 가보안법 개폐 약속마저 지키지 못한 채 국가보안법 철폐가 입법기 관에서 관철되지 못했지만, 전국의 시민사회운동 단체 구성원과 양 심적인 시민들에게 국가보안법 철폐의 당위성 을 깊이 인식시켜 준 공적은 높이 살 만하다.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 의 주요활동은 일지로 정리하면 다음 과 같다: 42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21 6월 9일 - 17대 국회 개원에 즈음한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제 시민 사회단체 기자회견 진행 7월 22일~9월 5일 - 국가보안법 폐지 전국도보행진 8월 10일 -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 재발족 9월 5일 - 국가보안법 폐지 1차 국민대회 9월 7일 - 국가보안법 완전폐지를 위한 100만 청원운동 선포 기자회견 9월 18일 - 전국 동시다발 100만 청원운동 캠페인 및 범국민 대행진 9월 24~25일 - 추석 귀향에 즈음한 전국 동시다발 국가보안법 폐지 캠페인 10월 7일~23일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21

422 - 100만 청원운동 위해 매일 서울시내 홍보 10월 14~15일 - 국가보안법 폐지 학생 총궐기 및 동맹휴업 10월 16일 - 4차 전국동시다발 100만 청원운동 캠페인 및 대중집회 10월 23일 -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국민문화제(전국 동시다발 대중행사) 11월 2일~12월 6일 -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농성을 선포하는 기자회견 11월 6일 - 국가보안법폐지 2차 국민대회 11월 8일 - 전국 릴레이 시국기도회 11월 22일 - 기독교인 2004인 선언 42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23 12월 1일 -국가보안법 완전폐지 결의대회 및 56인 삭발식 12월 5일 - 국가보안법 완전폐지 범국민 촛불대행진 12월 6일 - 국가 보안법 끝장 보기 300인 국민 단식농성 돌입 12월 13일 - 국회 앞에서 국가 보안법 연내폐지를 위한 560인 단식투쟁 확대 기자회견 3) 기타의 통일운동 1 북한 동포 돕기 운동 2004년 4월 북한 용천역의 폭발사건을 계기로 시민사회 단체들 의 용천 돕기 운동 이 전개되었다. 이 운동에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 등의 단체가 합세했다. 이 밖에 북한 동포의 복지를 위한 먹을 거리 약품 연탄 등을 지원하는 다방면의 운동이 연중 계속되었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23

424 2 남북교류 운동 2004년은 미국의 대북전쟁 기도를 간접적으로 파탄 내는 길이 남북교류에 있음을 절감한 한 해이었다.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개 발 및 이와 연관된 경제교류가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기여하는 정도 가 높아져 가고 있다. 개성공단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저지하기 위 해서라도 남북교류를 왕성하게 해야 한다. 는 당위감을 느끼며 남북 교류 운동을 펼쳤다. 이 밖에 여러 남북교류 단체들이 정력적인 운동을 펼쳤다. 비교 적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 단체로는 남북민간교류 협의회 가 있다. 그리고 금강산과 관련하여 금강산 사랑 운동 본부 가, 개성공단과 관련하여 개성 사랑 포럼 이 활동하고 있다. 3 한나라당 퇴출 운동 민중운동 단체들은 총선에 즈음하여 반통일 세력이 밀집해 있는 한나라당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Ⅲ. 결 론 지금까지 북한 핵문제를 중심으로 펼쳐진 3단계의 정세 속에서 2004년도의 평화통일 운동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았다. 42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25 일반적으로 운동론을 기술할 때 정세에 부응한 운동을 나열한다. 필자는 이러한 일반론에 따라 2004년도 평화통일 운동을 기술했으 나, 운동의 분야별 양태, 즉 반미-반전-평화-통일 운동이 어떤 관계를 갖고 종합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규명하는 데 더욱 큰 비중 을 두었다. 반미-반전-평화-통일 운동의 4자간 관계 속에서 평화 통일 운동의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필자의 능력 부족으로 정세에 부응한 운동의 전개양상이 잘 드러나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또 반미-반전-평화-통일 운동 사이의 관계를 정립하는 운동론을 방법론으로 채택하지 않고 평범하 게 기술한 것도 아쉬운 점이다. 특히 평화 운동과 통일운동의 넘나 들기를 필자 나름대로 하면서 이 글을 썼으나 평화 운동과 통일운동 의 내포 외연관계가 이 글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방법론상의 미흡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4년 도에 평화 통일의 이름으로 전개된 각종 운동을 망라하려고 노력했 다. 지면 제약상 모든 평화통일의 양상을 자세히 설명하는 게 불가 능하므로 평화통일 운동사( 運 動 史 )에 길이 남을 만한 운동을 우선순 위로 자리매김했다. 예컨대 이라크 파병반대 운동은 한국 사회에서 평화 운동의 시민권을 획득하게 한 공적이 크므로 관심을 갖고 설명 했다. 그리고 통일운동으로서의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 역시 수백 명이 풍찬노숙하면서 거리 단식농성을 한 역사적인 현장 을 놓치지 않으려는 뜻에서 일지( 日 誌 ) 형식을 빌려 설명했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25

426 2004년 한 해 동안 미국의 대북전쟁 위협을 돌파하는 가운데 평 화통일의 전령사가 되기 위해 운동의 초석을 쌓아 올린 모든 이들의 투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채 이 글을 끝맺게 되어 참으로 아쉽다. * 출처= 평화 만들기( 197호( ) 42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27 반미+반전 운동의 시너지 효과 USA를 지칭하는 美 國 이란 한자말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아름 다운 나라 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나라 美 國 의 신화가 한국인들에 게 먹혀들어가지 않고 있다. 민초들의 힘(people s power)을 과시한 지난해 하반기의 촛불시위 이후 상당수 한국인에게 USA는 더 이상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라 미워하는 나라이다. 미워하는 나라 에서 미워하는 의 두 문자인 미 와 나라 국( 國 ) 자를 합성한 미국 이 美 國 (아름다운 나라) 을 부정( 否 定 )하고 있다. 1) 아름다운 나라 美 國 을 찬미해 온 친미 세력은 미국 을 비판 규탄 성토 반대하는 일체의 행위를 반미 로 규정짓고 이단시한다. 반미 는 영어로 Anti America 이지만 한자로는 反 美 이다. 친미 세력에게 反 美 는 아름다운 나라 美 國 을 반대하는 몰상식하고 위험 한 사상을 가진 자들의 맹동을 뜻한다. 그러므로 反 美 는 美 國 없이 살아갈 수 없는 한국 의 안보를 해치고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 1) 이 글에서 반미 는 미국(미워하는 나라)의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저해하고, 효순 미 선 양과 같은 무고한 민중의 인간안보를 해치는) 반평화적이고 (이라크에 이어 북한을 무력으로 붕괴시키려는) 전쟁지향적인 행태 를 반대하는 경향을 총괄하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한자말로 反 美 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한글로 반미 라고 표기한다. 反 美 의 美 에 아름다운 나라 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아름다운 나라를 반대 하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기 때문이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27

428 위로 여겨져 국가보안법의 적용대상이 된다. 도대체 美 國 을 미워하는 나라로 규정하고 미(미워하는) 국(나라) 반대 운동 을 전개한 대가로 감옥행을 각오해야 하는 나라 한국 은 과연 아름다운 나라인가? 이러한 의문은 1980년 광주항쟁 이후 지금 까지 줄기차게 제기되어 왔다. 1980~1990년대에 이른바 운동권(학생 운동 민중운동권) 에서 이러한 의문을 갖는 것은 상식에 해당되었다. 운동권의 상식에 머물던 반미의식 이 21세기의 벽두에 일반 국 민의 상식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03년 6월 13일 주한 미군 병사가 몰던 장갑차가 두 여중생을 압살한 사건을 처리하는 과 정에서 보인 미국의 오만한 태도는, 한국의 보통사람들 사이에 반 미의식이 상식화되는 엄청난 시민의식의 대변환을 일으켰다. 촛불시위를 유발한 두 여중생 압살 사건 은, 반미운동의 미풍 ( 微 風 )지대 한국이 태풍지대로 진입할 조짐을 보여 주었다. 이미 1980년대 학생운동 중심의 반미운동으로 한국은 반미운동의 무풍지 대에서 벗어났으나, 시민사회에 파고들지 못한 결과 반미운동의 시 민권 을 얻지 못했다. 이에 비해 촛불시위에서의 반미구호 는 친미 세력 국가권력 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에서 시민권을 얻어 가고 있다. 이것이 20세기 말의 한국 시민사회와 21세기 세계화 시 대의 한국 사민사회가 달라진 점이다. 이제 한국 시민사회는 반미 운동 도 소화해 낼 수 있는 소화력을 갖췄다. 42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29 여기에서 반미운동을 소화하는 효소 역할을 한 것이 반전운동이 다.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이 (이라크 전쟁의 주범인) 미국 을 반대하는 반미 를 포용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한국 시민사회 가 반전 이란 사닥다리를 건너 금단의 반미 에 진입한 셈이다. 거의 한목소리로 이라크 전쟁 반대 를 외친 한국 시민사회가 국가보안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반미운동 을 감싸 안을 정도로 성숙 한 점은 획기적인 일이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반미 와 반전 은 서 로 동떨어진 가치가 아니라 상호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 아직은 반 전 이 반미 를 경원시하는 경향, 즉 반전운동 대열에 참여한 시민들 대다수가 반미운동에 합류하길 꺼려하는 경향(더 나아가면 반전평화 운동은 되는데 반미운동은 안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남아 있지만, 운동의 역량에 따라 곧 극복되리라 믿는다. 반미운동과 반전운동의 시너지(synergy) 효과 가 커질수록 이러한 경향이 감소되고 반미의 식의 상식화 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반미운동과 반전운동의 시너지 효과는 한국 시민사회의 성숙된 역량을 모을 수 있는 호기( 好 機 )를 제공할 것이다. 이는 한갓 희망 사항이 아니라 현실화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사태에서 이라크 전쟁 국면까지 한국 국민들이 보여 준 반전평화-반미 행동에 그러 한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반미운동과 반전운동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잠재력이, 사회변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29

430 혁을 위한 현실적인 에너지로 드러나고 있다. 필자는 이런 현상을 주목하면서 반미운동과 반전운동의 접맥을 에워싼 흐름을 정리하고 그 파급효과에 대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이 글은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는 한국 시민사회의 일부가 비미( 批 美 : 미국 비판) 에서 반미 로 이행 중인 사실에 관 한 부분이며, 두 번째는 반미 와 반전 의 결합 양태에 관한 부분이 며. 세 번째는 한국형 반미+반전운동의 지형( 地 形 ) 에 관한 부분이 고, 네 번째는 반미+반전운동의 파급력에 관한 부분이다. Ⅰ. 비미( 批 美 ) 에서 반미 로 사태 이후 높아진 미국 비판의식 2001년 9월 11일의 뉴욕 워싱턴 동시 테러 사건(9 11 사태)은 전 세계에 걸쳐 전쟁과 평화의 대립 전선 을 형성하게 했다. 미국 영국이 주도하는 전쟁 세력과 이에 저항하는 평화 세력 사이의 대립 전선이 형성되었다. 미국 등의 전쟁 세력이 9 11 사태의 재발을 방지 하는 의미에서 반테러 전쟁 을 선포한 반면, 평화 세력은 미국의 일 방주의적인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평화-반미 운동 을 전개해 왔다. 미국은 9 11 테러 발생 직후 반테러 전쟁 의 첫 번째 포문을 43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31 아프간을 향해 열었다. 아프간 전쟁의 잔인함을 눈여겨본 한국 시민 들은 용의자일 뿐인 빈 라덴을 잡기 위해 탈레반 정권을 일방적으 로 붕괴시키는 악행 에 대한 비판의 칼을 갈기 시작했다. 아프간 전쟁을 통해 미국 비판력을 갖추기 시작한 시민들은 2002 년 초 동계 올림픽에서의 오노 사건 2) 을 통해 미국 비판력을 강화 한다. 독극물을 한강에 내버린 주한미군 당국, 시민을 폭행하는 주한 미군을 미워하는 사회심리가 시민사회 저변에 이미 형성되어 있었으 며, 오노 사건 을 계기로 미국 비판력이 한 단계 높아졌다. 이어 2002년 2월 19일 한국을 방문하는 부시 대통령이 한국 정 부에 F-15K 전투기의 구매를 강요할 것이라는 소문이 시민들 사이 에 널리 퍼짐으로써 미국 비판력이 훨씬 강화된다. 마침 부시 대통 령이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 로 낙인찍은 2월 13일의 발언이 한국 시민사회운동 세력의 반미감정을 부채질했다. 한국 시민사회의 반미 는 2002년 6월부터 시작된 월드컵 축구 대회 기간 중 시민 응원단 붉은 악마 의 오! 대한민국 구호에 묻 힐 뻔했다. 그런데 월드컵 축구대회의 열기가 달아오르던 6월 13일, 주한미군 제2사단 병사들이 몰던 장갑차에 두 여중생(효선 미선 2) 2002년 동계 올림픽의 쇼트 트랙 결승전에서, 일본 선수 오노의 반칙을 눈감아 준 미 국인 심판 때문에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차지하지 못했다. 고 분개하는 한국 시민들 사이에서 미국 놈들 나쁘다. 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31

432 양)이 깔려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무고한 여중생들을 살인 한 미군이 미군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뒤 미국으로 줄행랑쳤다. 한국 국민들은 가해자의 죄( 罪 )는 있는데 벌( 罰 )이 없는 모순 을 비 난하기 시작했다. 살인 미군에 면죄부를 발행한 한 미 당국을 규탄 하고 SOFA(주둔군 지위협정)의 전면개정을 요구하는 대중운동이 들 불처럼 일어났다. 이윽고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시위가 미국을 성토하는 국민 운동의 차원으로 비약하게 되었다. 한국인들의 가슴속에 응어리져 왔던 반미감정의 용암이 촛불시위를 통해 터져 나왔다. 특히 20~30 대의 인터넷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국가보안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반미 를 유희하듯 즐기며(?) 촛불시위에 동참함으로써, 친미의식에 찌든 한국 지배 세력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와 같이 아프간 전쟁을 통해 점증하던 미국 비판력이 오노 사 건 악의 축 발언 F15K 강매를 통해 수직상승했으며, 드디어 두 여중생 압살 사건을 통해 반미감정이 폭발한다. Ⅱ. 반미 와 반전 의 결합 월드컵 축구대회 기간 중 시민 응원단인 붉은 악마 들의 애국심 넘치는 필승 코리아 구호가 주류이었다. 그런데 일부 감각 있는 젊 43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33 은이들은 Peace Korea 을 외치기도 했다. 평화의 제전이라는 월드 컵 대회를 맞이하여 한국민은 평화를 원한다. 한국이 평화로운 땅 이 되고, 평화통일의 그날이 도래하길 기원하는 시민의식이 Peace Korea 라는 구호로 표출되었다. 그런데 일부 각성된 붉은 악마 대원들의 애틋한 Peace Korea 구호를 무색하게 하는 전쟁 정세가 한반도 주변에 펼쳐지면서 낭만 적인 Peace Korea 구호로는 부시 정권의 막가파 식( 式 ) 전쟁 몰이를 막을 수 없음 을 깨닫게 된다. 인터넷에서 미국 비판의식을 드높인 한국의 젊은이들은 전 세 계적인 전쟁 분위기의 주범인 미국을 견제하지 않고는 세계평화 한 반도의 평화를 보장할 수 없음 을 알아차린다. 특히 아프간 전쟁에 이어 명분 없는 이라크 전쟁을 치밀하게 준비하는 미국의 체제에 대 한 재평가가 젊은이들 사이에 이루어지면서 반전의식과 반미의식이 자연스럽게 결합하게 된다. 이들에게 반미 는 오만한 제국 미국을 성토하는 뜻이었으며, 반전 은 호전적인 부시 정권을 규탄하는 것이 었다. 결국 전쟁광 부시 정권의 전쟁구도를 반대하는 데에서 반미 와 반전 이 한 몸이 되었다. 인터넷을 무기로 사용하는 젊은 네티즌들이 대거 참여한 촛불시 위는, 반미 를 가장 꺼리는 한국의 친미 지배계층과 미국 지배 세력 (부시 행정부 등)에게 두려운 존재로 다가온다. 두 여중생의 추모로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33

434 시작된 촛불 시위가 반전평화의 대행진으로 나아가더니 이윽고 반 미 의 사회적 금지선을 넘으려 했기 때문이다. 경계선을 넘으려 하 는 순간에 노무현 대통령이 촛불시위를 자제해 달라는 주문을 한다. 촛불시위의 반미 표를 얻어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이 촛불시위를 방치하면 한국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하겠다. 는 무디스 사의 무언 의 압력에 굴복하여 촛불시위를 냉각시키는 발언을 했다. 노무현 대 통령의 촛불시위 자제 발언은 촛불시위가 반미로 번지면 미국의 경 제제재를 받아 한국 자본주의가 타격을 받는다. 고 노무현 정권에 겁주는 친미 지배 세력의 여론을 대변한 측면이 있다. 반전평화 운동은 눈감아 주겠는데 반미운동은 안 된다. 는 지배 세력의 규제는, 경계선을 넘으려는 반미운동의 물결을 반전평화 쪽 으로 되돌리려는 억압적인 암시 이었으며 일부 성공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에서 반미 와 반전 이 화 학적으로 결합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1. 이라크전쟁 반대 운동에 있어서 반미 와 반전 의 결합 이미 전 세계적인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은 1,500만 명의 세계 시민을 동원할 수 있는 거대한 평화의 힘(peace power)을 보여 주었 다. 세계적인 반전운동에 자극을 받은 한국의 시민사회도 이라크 전 쟁 반대 운동 전선을 꾸리기 시작했다. 43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35 촛불시위를 조직적으로 이끌어 간 여중생 범대위 역시 이에 발 맞춰 자주평화 의 깃발을 들었다. 두 여중생을 압살한 미군 미국 으로부터의 자주 없이 평화가 없다. 는 논리를 내세운 여중생 범대 위 의 움직임에 놀란 한국의 냉전 수구 세력은, 즉각적으로 반전 반핵(북한의 핵개발 반대) 반김(김정일 정권 반대) 친미( I love America 구호) 집회 를 급조하면서 반전평화-반미로 나아가려는 여중생 범대위 측에 반미 의 굴레를 씌우려 했다. 한국에서 반미 는, 반미운동 세력을 시민사회로부터 제거 배제 억압 탄압 투옥한 뒤 추방하려는 친미 지배 세력의 지배의 언어 이다. 반미 라는 지배의 언어 는 상당수의 미국 비판 의식을 가진 시민들에게 두 여중생 대책위원회와의 교섭을 끊으라. 는 명령을 담고 있다. 반미 라는 지배의 언어를 통해 의식 있는 시민들을 반 전평화의 우리에 가두어 두려는 심리전의 용법 이다. 이러한 심리전 은 일정한 성공을 거두어 뚝심이 없는 시민들로 하여금 반전평화- 반미운동에 경계심을 갖도록 했다. 그 결과 촛불시위로 촉발된 제1 라운드의 반미+반전운동의 시너지 효과는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2. 파병반대 운동 이라크전 반대 운동에 반전평화의 요소가 있지만, 그 속살을 보 면 이라크 전쟁을 주도하는 미국 및 그 아류국가(일본 한국)에 대 한 반대가 들어 있다. 반전운동의 깃발 속에 반미의 알맹이가 깃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35

436 어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을 열심히 할수록 반미운동이 고양될 수밖에 없다. 반전평화 운동이 반미운동으로 전환되는 건널목에서 냉각수를 뿌린 노무현 정권과 미국(무디스사+미군 재배치라는 협박카드를 사용한 펜타곤)의 비대칭적인 합동작전 으로 약간 흔들리던 반전평 화-반미운동은, 파병반대 운동을 통해 대오를 정비한다. 이라크에 한국군을 파병하는 문제를 에워싸고 (노무현 정권의 지지 세력 중 하나인) 시민사회운동 세력이 노무현 정권과 격돌했다. 시민사회 운 동권은 이라크 전쟁의 주범인 미국에 추종하여 한국군을 파병하려 는 노무현 정권의 대미추종 외교 를 규탄했다. 단순한 파병반대가 아니라 파병을 통해 미국의 전쟁정책에 동조하는 친미국가로 전락 하는 사태 를 예방하려 했다. 이와 동시에 파병을 통해 한국군이 이라크 민중의 전쟁사( 戰 爭 死 )를 가속화함으로써 전쟁범인이 되는 국가의 불명예 를 막으려 했 다. 이처럼 파병반대 운동의 이면에 반미(파병을 종용하는 미국 반 대, 파병을 서두르는 노무현=친미정권 반대)+반전의 복합적인 의 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파병반대 운동이 시민사회의 지지 속에 이루 어지면서 운동의 힘이 고양되었기 때문에 제2 라운드의 반미+반전 운동의 시너지 효과는 꽤 높았다고 평가할 만하다. 43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37 3. 반미+반전운동의 영향력 1) 대선 정국의 결정요인으로 2002년의 대통령 선거는 한국 정치사에서 처음으로 반미+반전 평화 운동 세력이 권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례를 남겼다. 의식 있는 중산층까지 촛불시위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연출되자 냉전 수구 세력의 수장인 이회창 대통령 후보까지 여중생 범대위 에 추파를 던지며 촛불시위의 표심을 빼앗으려고 덤볐다. 수십만 표로 대통령의 당락이 결정되는 한국 선거판에서 촛불시 위 대중은 욕심나는 표밭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이 촛불시위 의 표밭을 겨냥하여 내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과 당당한 외교를 펼 치겠다. 는 신호를 보냈다. 이 신호를 순진하게 받아들인 촛불시위 대중들은 별 의심 없이 노무현 후보에 몰표를 던진다. 촛불시위의 반미 표는, 선거전 초반에 열세였던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꺾는 데 한몫을 했다. 3)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반전평화-반미 표 가 대통령의 당선을 결정지은 사실 자체로 반미+반전운동의 시너 지 효과 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3) 2003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의 굴종적인 방미에 반발한 시민사회운동 세력 중 상당수는 반전평화+반미 표 를 행사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미국과 당당한 외교를 펼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 公 約 )이 대통령 취임 3개월 만에 공약( 空 約 )이 되는 황당한 꼴 을 보고 배신당한 심정으로 노무현 정권에 반기를 들었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37

438 2) 미국 전쟁 세력의 기( 氣 )를 꺾다 촛불시위의 주요 슬로건 중의 하나는 부시의 사죄 요구 였다. 두 여중생의 죽음, 살인 미군에 면죄부를 안겨 준 잘못에 대하여 부 시 대통령이 한국민 앞에서 직접 사죄하라는 압력을 넣었다. 맨 처 음에 이 압력을 뿌리친 부시 대통령은 촛불시위의 반미기운이 높아 지자 이를 잠재우려고 간접적인 사과를 한다. 부시 대통령의 사과는 북한과의 전쟁에 열중이던 부시에게 일침( 一 針 )을 놓는 효과를 가져 왔다. 촛불시위를 통한 반미+반전평화 운동 의 사죄 압력이 부시에 게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여 (북한에 대한) 전쟁의욕의 기( 氣 )를 꺾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촛불시위를 통한 반미+반전운동의 시너지 효과 가 한반도에서 전쟁을 예방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물론 전쟁지향적인 미국의 지배계급에게 한국의 반미 반전운동 세 력의 힘을 각인시켜 주어 한국민의 의지와 무관한 전쟁을 한반도에 서 벌이는 것 을 자제하도록 했다. Ⅲ. 한국형 반미+반전운동 의 지형( 地 形 ) 한국에서 반미+반전운동의 폭발력 이 나타난 시민사회의 지형 을 촛불시위 대중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촛불시위 대중의 정치적 견해는 단일하지 않다. 냉전 수구 세력 43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39 을 제외한 합리적 보수층에서부터 미군 철수를 외치는 좌파 세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개인의 성향은 다양하지만 촛불시위를 에워싼 노선 갈등의 구도는 간단하다. 촛불시위가 반전평화에 그쳐야 한다 는 주장과 촛불시위의 열기가 반미로 번지는 것을 은근히 바라거나 반전평화=반미 의 동치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부류로 대별 된다. 보수층일수록 촛불시위가 반미로 나아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만류한다. 반전평화에 그쳐야 한다는 부류와 반전평화 운동=반미운동 을 긍정하는 부류를 구별 짓는 첫 번째 기준은 양키 고홈(Yankee Go Home) 구호에 대한 선호도이며 두 번째 기준은 성조기를 불태우는 행위에 대한 찬반론이다. 우선 반전평화 만을 고집하는 쪽도 두 갈래가 있음을 밝힌다. 촛불시위가 두 여중생의 추모에 그쳐야 한다는 쪽은 반전평화 만을 주장하는 세력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다. 이들은 촛불시위 현장에 등장한 (두 여중생을 죽인) 미군 철수, 즉 양키 고홈 구호 에 섬뜩 놀라며 물러선다. 이들의 미국관은 지미론( 知 美 論 )이다. 미 국체제의 체질을 잘 분석하여 국익을 챙겨야 하므로 반미구호는 적 절치 않다는 견해이다. 반미시위의 격화가 미국 지배계급을 자극하 여 한국에 경제제재를 가하면 국익에 손상을 가져오므로, 두 여중생 을 추모하는 수준에서 촛불시위를 벌이는 게 마땅하다는 뜻이다. 그 래도 이들은 양심적인 보수층이므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뜻에서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39

440 No War 의 구호를 따라 외친다. 반전평화를 주장하는 층 에서 조금 더 전향적인 그룹은 양키 고홈을 외치는 좌파 에 저항감을 갖지만 미국의 이라크 전쟁 반대에 적극적이다. 이들은 반미 에 동의하는 진보운동 세력의 깃발을 촛불 시위 때 내리라고 요구하면서도 No War 를 주요 구호로 내세운다. 이들 중 일부인 시민운동 단체는 미국의 전쟁행위를 비난하지만, 전 쟁의 구조적인 죄악보다 이라크 민중의 고난에 동참하는 의식이 강 하다. 이들의 미국관( 觀 )은 용미( 用 美 ) 비미론( 批 美 論 )이다. 미국을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이들은 한국의 국력이 부족하 므로 미국을 이용하여 국익을 챙겨야 한다. 고 말한다. 미국의 이라 크 전쟁이 도덕적으로 심판받아야 마땅하지만 지나친 반미는 오히려 국익을 해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두 여중생 사건 같은 일이 재발 되지 않도록 SOFA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두 여중생을 죽 인 미 2사단이 한국 땅을 떠나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촛불시위가 반미로 나아가는 것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세력의 지형은 어떠한가? 이 그룹도 경향으로 보아 두 쪽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미국의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에 반대하지만 자신들은 반미주의자가 아니다. 고 주장한다. 이들은 용미론의 한계 를 지적하면서 등미론( 等 美 論 :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설정하자는 주 장)을 주장한다. 이들은, 미국에 예속된 상태를 근본적으로 지양하 라. 고 한국 정부에 압력을 넣는 데 덜 적극적이다. 물론 이들 역시 44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41 오만한 나라 미국을 규탄하며 Fucking USA 를 열창하지만 제국 미국에 비판의 창끝을 들이대지 않는다. 두 번째 부류는 촛불시위의 가장 왼편에 있는 좌파 세력으로, 두 여중생을 죽인 미군은 철수해야 하며(양키 고홈) 살인미군에 면죄부 를 발행한 미국 제국 은 인류의 공적( 公 敵 )이므로 물리쳐야 한다고 다짐한다. 최근 들어 미국 제국주의 타도 를 외치며 성조기를 태우 는 행동은 크게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그런 강력한 반미의식이 남아 있다. 이들이 사실상 여중생 범대위 를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이라크 전쟁 국면과 미국의 북한 공격 가능성이 상존하 는 국면에 대응하는 논리로서 자주평화 노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 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자주 없이 평화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지론 이다. 이 자주평화의 깃발이 최근 촛불시위장에 나부끼면서 반전평 화 를 중시하는 시민운동 세력이 이탈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 들 좌파의 상당수는 노무현 정권이 탈미( 脫 美 : 미국의 종속외교로 부터 탈출)하고 민중운동은 반미운동에 임하는 가운데 탈미와 반미 의 변증법적인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는 데 동의한다. 이들 중 일부 는 노무현 정권이 반미운동을 지렛대로 삼아 미국과 당당한 외교를 펼치라고 주문한다. 그러므로 이런 주문을 아랑곳하지 않은 노무현 대통령의 굴종적인 방미외교에 가장 크게 반발한 쪽은 당연히 촛불 시위의 좌파들이다. 이들 좌파의 반미론은, 등미론자( 等 美 論 者 )들과 미군 철수 노선(미군 철수의 시기 규모 주한미군의 성격변화 주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41

442 한미군의 평화유지군 化 를 에워싼 노선)을 에워싸고 미묘한 갈등을 겪고 있으나, 양자는 기본적으로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촛불시위 대중의 다양한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No War 에는 모두 동의한다. 현재 한국의 시민사회는 이념의 차이를 떠나 전쟁 반대 의 가치관 통일을 이루고 있다. 냉전 수구 세력이 주도한 집회 의 주요 슬로건인 반전, 반핵, 反 金 (김정일 정권 반대), 친미 중의 으뜸 구호가 반전일 정도로 한국사회에서 반전은 유행어이다. 그런 데 전쟁의 주범인 미국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려는 반미 는 냉대를 받는다. 이것 또한 논리적인 모순이지만 반전 을 시민의 상식으로 만든 시민사회운동 세력의 공적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Ⅳ. 반미+반전운동의 파급력( 波 及 力 ) 촛불시위와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의 시너지 효과가 대통령 선 거정국에서 하나의 결정요인이 되고 부시 정권의 대( 對 ) 북한 전쟁 구도의 쐐기역할을 한 점을 앞에서 거론한 바 있다. 반미+반전운동 세력이 내거는 자주평화 는 운동권의 신사고, 즉 반전평화의 가치를 내세우며 미국을 압박하는 발상의 전환이다. 그러나 이에 맞서는 냉전 수구 세력은 여전히 반전평화 운동=반미 =빨갱이=친북=이적단체=국가보안법 적용 대상 으로 보는 낡은 44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43 사고의 틀에 매달린다. 지금 한국 사회의 일각에서 자주평화의 신사 고와 냉전 수구의 낡은 사고와의 대결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 대결 의 한복판에 서 있는 노무현 정권은 좌충우돌하고 있다. 반미 세력 과 친미 세력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노무현 정권은 양쪽으로부터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 내는 데 정신이 없다. 반미+반전운동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진보 진 영(자주평화를 내건 운동 세력, 민주노동당 등)의 정치적 입지가 조 금씩 높아 가고 있기 때문에, 운동의 파급력 역시 증가하고 있다. 진 보 진영은 반미+반전운동의 시민권을 획득했으나, 미국 친미 지배 세력의 견제로 정치적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반미+반전 을 주창하는 진보 세력이 의회 정치권 국가권력 등 친미지배 세력의 텃밭에 진입했을 때 비로소 반미+반전운동의 진정한 시너지 효과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먼 길같이 보이지만 가파른 고갯마 루(선거법 개정 등 진보 진영의 정치권 진입로 확장, 남북관계-북 미관계의 호전 好 轉 )를 잘 넘기면 승산이 없는 것도 아니다. * 출처= 평화 만들기( 112호( )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43

444 양심적인 군사비 납세거부 운동 1. 사상적인 기반 양심상 부정하다고 확신하는 법이나 정책을 개선할 목적으로 기 존의 법을 위반하여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행한 공적( 公 的 )이고 정치 적인 집단적 항의 행위를 시민 불복종이라고 말한다. 시민 불복종은 기존 법질서의 정통성을 전제로 특정한 법규에 위배되는 비폭력적 방법에 의한 양심적 항의 행위인 점에서 대중시위 군중폭동 양심 적 복종거부 혁명 등과 구별된다. 시민 불복종은 양심상의 이유로 법에 불복종하는 행위이다. 이 점에서 양심적 복종거부(conscientious objection: 양심적 병역거부, 부정한 납세에 대한 거부, 여호와 증인의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 등) 와 유사하다. 그러나 양심적 복종거부가 법규의 범위 안에서 행하여 지는 점에서, 법을 위반하는 시민 불복종과는 구별된다. 양심적 복종 거부는 일반적으로 항의 행위의 일종으로 이해되지만 결코 시민 불 복종은 아니다. 시민 불복종 운동은 직접적인 시민 불복종 운동(인종 격리법에 44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45 반대하여 격리가 실시되고 있는 금지구역에 들어가 농성하는 행위, 징병법에 반대하여 징병명령을 거절하고 징병거부를 선동하는 행위), 간접적인 시민 불복종 운동(정부의 핵군비 정책에 반대하여 납세를 거부하거나, 군사훈련장에 불법으로 들어가 농성 피케팅하는 행위) 으로 구분할 수 있다. 1) 1) 양심의 자유과 납세거부 2)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납세거부는 간접적인 시민 불복종 운 동에 해당되며, 일본 독일 등에서 반전평화 운동의 일환으로 활용 되고 있다. 1 일본의 경우 일본은 1991년의 걸프전 당시 다국적군을 위해 90억 달러의 전 비를 지원하고, PKO(Peace Keeping Operation) 법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주변사태법 제정과 유사법제 등으로 국가의 군사적 행동으로 개인의 양심의 자유가 침해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일본의 시민 1) 시민 불복종 운동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점을 생각할 수 있겠다: 간디의 영국에 대한 비협조-시민 불복종 운동과 비폭력 운동의 연관성 소로(Thoreau)가 시민 불 복종의 차원에서 실행한 납세거부 (미국의 인종차별, 전쟁 핵무기, 여성차별 문제 를 해결하기 위해 1950~60년대에 전개된) 시민 불복종 운동이, 킹(King) 목사의 민권 운동(Civil rights movement)의 효과적인 전술로 활용된 점 한국의 낙선운동 2) 윤성호 양심의 자유와 납세거부, 부산경상전문대 논문집 12( ) 참조.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45

446 사회는 국가의 조세권에 대한 도전으로서 납세거부를 시도했다. 특 히 자위대 예산을 둘러싼 납세자의 저항운동이 일어났으며 걸프전 때의 전비 90억 달러에 대하여 3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원고가 된 시민 평화 소송 캠페인을 전개했다. 2 독일의 경우 독일의 납세거부 운동은, 1980년대 나토에 대한 중거리 핵탄두 설치에 대한 항거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 운동에 참가한 독일인들 은, 조세기본법의 저항권 및 양심의 자유를 근거로 군사비 상당분의 납세거부권을 주장하면서 법정 투쟁을 벌였다. 3 한국에서 양심적 납세거부 가능한가? 한국의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고 규정하고 있다. 양심의 자유는 양심상 결정의 자유, 침묵의 자유, 양 심상의 결정을 표명 실현할 자유를 핵심 내용으로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양심의 자유에 근거한 납세거부, 즉 양심적인 납세거부 를 할 수 있나? 특히 분단체제 아래에서 국방 문제에 대 한 도전이 금기시되어 있는 한국에서 국방-국방비와 관련된 양심 적인 군사비 납세거부 를 할 수 있나? 44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47 ᄀ 납세거부의 근거 한국의 헌법 제38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 고 선언하여 국민의 납세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납세의무는 국방의 의무와 더불어 고전적 의무의 하나이며, 양자는 근대헌법 이래 국민의 2대 의무로 되어 있다. 현행 헌법은 조세법률주의를 선언하고 있으며, 군 통수권자인 대 통령의 명령으로 조세법률주의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현 행 조세법상 세금을 체납하는 경우 국세징수법에 의해 강제 징수할 수 있다. 만약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납세를 거부하면, 국가가 강제 징수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양심적 군사비 납세거부를 감행했을 경우 납세의무와 신성한 국방의무를 거부하는 데 대한 쌍벌죄(?) 를 내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세금을 징수하는 목적은 국가의 존립을 위한 것이다. 여기 에서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국민이 국가공동체의 재정력을 마련하기 위하여 스스로 책임지는 차원에서 조세 문제를 해석할 수 있다. 스 스로 지는 책임 은 책임의 정당성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이러한 측면 에서 보면, 국민(시민)의 납세거부를 에워싼 논리적인 공간이 생긴다. 한국에서도 다음의 두 가지 관점에서 납세거부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47

448 첫째, 현행 실정법은 납세거부 시 강제집행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실정법은 국민주권 원리에 의거하여 사실상 국민에 의 하여 제정되는 법률이다. 그러므로 국민들이 수긍하지 못하는 납세 요구는 그 타당성의 근거를 잃게 된다. 둘째, 납세거부는 국민의 소극적인 저항권이다. 실정법상 명문화 된 권리는 아니라 할지라도 당연히 국민에게 유보되어 있는 권리이다. 2. 과잉 무기 도입에 쐐기를 박기 위한 양심적 군사비 납세거부 의 논의를 위하여 양심적인 군사비 납세거부 는, 양심의 자유 라는 국민의 권리와 납세 라는 국민의 의무가 길항관계에 있음을 나타낸다. 이 길항관계 는, 실정법을 집행하는 국가권력의 성격에 따라 양심의 자유에 무게 를 더 두는 쪽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납세 국방의 의무를 강조하 는 완고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독일 일본과 같이 국가권력이 시민의 양심의 자유나 시민사회 의 권리 주장을 경청하는 곳에서는 양심적인 군사비 납세거부 운 동이 비교적 용이하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반공 냉전 수구적인 법 이데올로기 가 많이 남아 있는 곳에서 양심적인 군사비 납세거 부 운동 을 전개하기 어렵다. 44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49 그렇지만 F-15K 등 거액의 최첨단 무기 도입을 비판 반대하 는 국민들의 정서를 고려할 때, 이제 한국에서도 양심적 군사비 납 세거부운동 을 조심스럽게 거론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한다. 2002년 2월 20일 방한한 부시 대통령의 방한 목적이 F-15K 강매에 있음을 심증으로 확인한 국민들은, FX 사업의 백지화 유보 연기-F15K 구매 반대 운동을 전개한 시민사회운동 단체 인터 넷 운동 그룹에 동조하면서 FX 연기-F15K 도입반대 전선(국민 과 시민사회운동 세력 사이의 심리적 인 네트워크)이 형성되었다. 이 네트워크에 속한 사람들은, F-15K 도입과 관련하여 민족적 양 심 을 지닌 양심적 시민들이다. 이들은 북한의 종심공격을 노린 F-15K 도입으로 남북한의 군비 확장이 더욱 심화되어 평화통일이 지체될 것을 우려하는 민족적 양 심 에 따라 FX 연기-F15K 도입 을 비판 반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민족적 양심에 따라 F-15K 구매 비용으로 들어가는 국방세 의 납세를 거부하는 운동을 전개한다면, 이는 지극히 한국적 이며 평화통일 지향적인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승화될 것이다. 이 운동은 F-15K 계약을 재가한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의 성격을 지닐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홍수같이 이루어질 외 국무기 도입(특히 미국으로부터의 무기 도입)에 대한 시민 불복종 운동의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겠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49

450 3. 한국형 양심적 군사비 납세거부 운동 의 모델을 찾아 양심적인 군사비 납세거부 운동 은 미국 유럽 일본과 같은 열린사회 에서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기 어려운 고난도의 운동 이 다. 더구나 한국처럼 반공 중심의 안보의식 으로 무장한 채 납세의 의무와 국방의 의무를 신성시(?)하는 곳에서 양심적인 군사비 납세 거부 운동은 고난의 행군(?) 을 강요한다. 그러나 F-15K 등 외국무기의 과잉도입을 반대하는 국민의 저 항이 만만치 않은 현실은, 양심적인 군사비 납세거부 운동을 요청 하고 있다. F-15K 도입 이후 쇄도할 외국무기 도입(특히 미국으 로부터의 무기 도입) 압력 에 순종할 경우 나라 살림이 거덜 나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는바, 양심적인 군사비 납세거부 운동은 시대 가 요청하는 애국운동이다. 그러면 양심적 군사비 납세거부 운동의 선구자인 일본 미국 등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형 운동의 모델(전형)을 찾아보자. 4. 일본 미국의 운동 사례 1) 일본의 사례 일본에서는 양심적인 군사비 납부 거부, 양심적 군사비 분납 45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51 ( 分 納 ) 저항운동 등의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 1 걸프전 전비 부담 90억 달러에 대한 시민 평화 소송 걸프전이 끝난 뒤 일본 각지의 3,000명이 넘는 시민들은, 일본 정부가 걸프전에 협력하면서 90억 달러의 전비를 낸 것에 항의하는 시민 평화 소송 을 냈다. 시민들은 가고시마 후쿠오카 히로시마 오사카 고베 나고야 나가노 도쿄 등지의 지방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므로 소송의 형식이 일률적이지 않으며 가처분, 민사, 행정, 국가배상 소송 등 다양하다. 피고, 청구의 취지, 청구의 원인 도 다양하다. 오사카 지방재판소에 낸 소송의 경우 피고는 국가이다. 이 소송 은, 자위대기(전투기 등) 파견 90억 달러 지출 소해정( 掃 海 艇 ) 파 견에 대한 국가배상으로서 1인당 2만 엔의 지불을 요구했다. A4 용 지로 18쪽이나 되는 긴 소장( 訴 狀 )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걸프전 전비부담의 위헌성( 違 憲 性 ) 소해( 掃 海 ) 부대의 해외파견은 위헌 위법 전쟁가담은, 시민의 평화적 생존권 침해 걸프전 가 담은 납세자의 권리(납세자 기본권)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손해배상 을 요구함.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51

452 2 良 心 的 軍 事 費 拒 否 の 会 의 운동 사례 이 단체는 매년 군사비만큼의 세금 안내기 운동을 벌인다. 이 단 체는 2002년 2월 16일 사가미하라( 相 模 原 ) 세무서에 세금을 안내 겠다. 는 소( 訴 )를 제출한다. 세무서장에 건넨 청원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득세 확정신고 기간의 첫날인 2월 16일, 우리 회원 들은 군사비만큼의 세금을 거부하는 확정신고를 하겠다는 청원문을 발표한다. 우리들이 내는 세금이, 일본의 평화헌법을 위반하는 군비 군대에 지출되지 않도록 해 달라. 우리들 양심적 전쟁 반대자(conscientious war resister)들이, 전력( 戰 力 ) 증강에 협조하는 세금 징 수를 거부하는 권리 를 인정하라. 그리고 납세거부한 액수를, 복지를 위한 지출로 대체 하여 지불하는 제도를 조속하게 검토하라. 일본의 군사태세를 풀고 평화국가에 상응하는 국가의 정책으로 전환하도록 노력하라. 3 주일미군 주둔 분담금 위헌 소송 2002년 3월 7일 주일미군주둔 분담금 등의 위헌소송 제3회 변 론이 오사카 고등법원 72호 법정에서 열렸다. 이날 주둔 분담금에 의해 지탱되는 주일미군의 실태 라는 문건을 중심으로 담당 변호사 가 진술했다. 증인으로 나선 北 野 弘 久 (일본대 교수)는 국세( 國 稅 )의 쓰임새와 납세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국가 측의 주장이나 판례 에 대하여 밀접하고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고 반박했다. 45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53 이에 앞서 2000년 3월 29일 오사카 지방재판소에서도 소득세 중 주일미군 주둔 분담금에 해당하는 0.9%의 납세를 거부한 사건의 재판이 열렸다. 4 방위비 상당분의 소득세 납세거부 일본의 우화회( 友 和 會 )에 소속된 퀘이커 교도 2명과 메노나이트 (Menonite)교계 소속 목사 1명은 절대평화주의(Pacifism)의 입장에 서 소득세 중 자위대 關 係 費 (예산) 해당액의 납세를 거부했다. 이에 세무서장은 납세처분으로서 그들의 예금을 차압함으로써 체납국세를 징수했다. 그러자 이들은 세무서의 조치가 헌법 9조 19조 20조 1 항에 위반된다며 국가배상법에 근거한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헌법 제9조는 군비의 보 지( 保 持 )뿐 아니라 군사목적의 군비지출도 금하고 있으므로 군사목 적의 재원을 국민에 부담시킬 필요가 없다. 따라서 군사목적의 과세, 징수도 금물( 禁 物 )이다. 또 국민들은 헌법에서 규정한 평화적 생존권 에 의해 군사목적의 지출의 재원조달을 위한 조세를 부과 징수 당 하지 않도록 보장되어 있으며, 군사목적의 지출의 재원으로 되는 조 세의 지불을 거부할 권리를 지닌다. 그리고 자위대 예산 지출은 헌법 이 금지한 군사목적의 국비지출에 해당되며, 소득세의 부과 징수는 군사목적의 조세 부과 징수로서 역시 헌법 위반이다. 그러므로 국 민은 소득세의 납세의무를 부과받지 않으며 납세를 거부할 수 있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53

454 2) 미국의 사례 War Resister League 등의 미국 쪽 평화 운동 단체들은 전쟁 세( 戰 爭 稅 ) 납부 거부(War Tax Resistance)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1 National War Tax Resistance Coordinating Committee 미국 주요 도시에 지부를 두고 있는 이 위원회는 1999년 5월 10일 전쟁세 거부 운동을 지속하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성명 찬동자들이 나서서 미국 전역에 서명용지를 배포했다. 이 성명서는 미국-나토(NATO)에 의한 유고 공습을 위한 세금의 거부 를 호소 했다. 이 성명은, 자신들의 세금을 살인이 아니라 난민이나 유고의 빈민을 위해 쓰라고 요구했다. 이 단체는 라디오 방송 비디오 자 동차 범퍼 등을 중심으로 전쟁세 납세거부 홍보 를 벌이고 있다. 이 밖에 전쟁세 납세거부가 미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지 름길 이라고 주장하는 Nonviolent Action Community of Cascadia 등의 단체들이 군사비에 해당되는 세금을 안 내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의회에 로비를 벌이고 있으며, 전쟁세 납세거부운 동에 동조하는 의원도 있다고 한다. 이들 단체의 홈페이지는 전쟁세 납부거부의 이유 납부거부 방법을 소상하게 알려 주고 있다. * 출처= 평화 만들기( 112호( ) 45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55 국제연대에 왕도 없다 필자는 국제 연대의 전문가가 아니다. 다만 평화 운동을 하는 가 운데 해외에 나가서 부딪히며 느낀 점을 국제연대 란 틀에 맞춰 겨 우 기술할 능력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정색을 하고 말할 때의 국 제연대 가 아닌 평화 관련 국제회의 에 참가하여 겨우 의사소통하며 국제적인 연대감을 느낄 정도의 감각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좀 섣부른 이야기도 있을 법하다. 국제연대에 관하여 glocal 운동 이란 화두를 던진다. glocal 운 동 이란 global 운동 과 local 운동 을 아우르는 말이다. 세계화 시 대에 걸맞게 지구촌을 누비며 활약하는 운동(global 운동)도 잘 하 고,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풀뿌리 운동(local 운동)도 잘 해야 한다 는 당위가 함축된 뜻이다. 지역의 풀뿌리 local 운동의 기반 없는 global 운동은 사상누각이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그럼 한국의 경우 민초들의 생활에 입각한 풀뿌리 local 운동을 잘 하면서 global 운동도 잘 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두 마리 토끼(풀뿌리 local 운동 global 운동)를 모두 놓쳐 허둥대는 상태에 빠져 있다. 민중 없는 국내(local)운동을 하다가 가끔 국제무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55

456 대로 나가 global 운동을 한다고 헤매는 듯하다. 이는 무언가 운동의 좌표 설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흔히 국제연대의 맹점을 지적할 때 우물 안의 개구리 라는 표현 을 한다. 이 표현은 국제적인 시야를 갖지 않고 우물 안, 즉 국내에 서만 꼼지락거리는 운동 을 풍자한 것이다. 그런데 이 말도 수정되 어야 한다. 진짜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려면 우물 안의 중생들과 친 화력을 갖춘 풀뿌리 local 운동을 잘해야 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라 해도 풀뿌리 운동을 제대로 못 하면 중생들로부터 개구리 취급도 받 지 못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 자격도 없는데 어떻게 우물 안을 박차 고 우물 밖의 세계를 지향할 수 있는가? 우물 안에서 우물쭈물 운동하는 필자가 자기성찰의 의미에서 몇 가지 당돌한 질문을 던진다: 한국처럼 세계적인 운동력을 갖춘 나라 가 해외에 나가기만 하면 맥을 못 추는 게 단지 영어를 모국어로 사 용하지 않은 탓인가? 혹시 운동력은 있으되 운동의 좌표 설정이 잘 못된 게 아닌가? 운동력은 있으되 민중 없는 국내(local)운동에 장기 간 매몰된 나머지 세계화 시대를 돌파하기 위한 global 운동력을 갖 추지 못한 게 아닌가? 한국처럼, 국내 운동력이 세계 최상위권인데 국제연대 운동력이 세계 최하위인 극도의 비대칭 인 경우가 있는 가? 얼마 전 홍콩에서의 국제무역기구(WTO) 각료회의 반대 시위 때 한국의 운동권이 이름을 날렸다고 하지만 극도의 비대칭을 극복 할 발판은 마련했나? 45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57 홍콩의 WTO 반대 시위를 요령 있게 함으로써 국제연대의 모범 을 보인 것 같지만 그저 멋진 국제행동의 한 장면을 연출한 데 불과 하다. 우물 안의 개구리들이 우물을 박차고 나와 개구리들의 반세 계화 짓시늉을 보인 쾌거 라고 겸손하게 말하면 어떨까? 국제무대에 서 담론 의제 설정 운동노선 제기 운동조직 구성 대중설득 능 력을 보이지 않을 때 국제연대의 일주문에도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 을 안다면, 홍콩 시위에 관해서도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 국제연대 의 기본기( 基 本 技 ) 없이 장외에서 몇 차례 멋진 시위를 했다고 국 제연대를 끝내 주게 했다. 고 자만하면 안 된다. 어쨌든 홍콩 시위는 국제연대의 일주문에 상당히 접근한 쾌거임 에 틀림없다. 이는, 시애틀에서의 반세계화 투쟁부터 뭄바이의 세계 사회포럼에 이르기까지 좌충우돌 하면서 국제연대 운동력을 축적한 산물이다. 앞에서 언급한 좌충우돌 이란, 영어의 청맹 인 한국 운동권이 국제연대 한다고 좌충우돌했으며 필자 역시 엄청난 좌충우돌을 했음 을 고백하는 문구이다. 한국의 운동권과 필자가 동시에 좌충우돌한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지면 제약으로 축지법을 쓸 수밖에 없다. 국내 운동권이 좌충우돌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벙어리 영어 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국제회의에 참석한 국내 운동가들이 아예 국제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57

458 회의장 주변을 맴돌며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심정을 이루다 말할 수 있으랴 낮에는 국제회의장에서 놀고(?), 저녁에는(이 시간에 다른 나라의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물밑 작업을 한다) 시내 구경을 하거나 술 한잔으로 국제연대의 쓴맛을 곱씹을 수밖에 없는 나들이 파( 派 ) 의 푸념을 죄다 늘어놓으면 서로 할 말이 많으 리라 그럼에도 나들이 파 의 푸념에서 국제연대의 교훈을 발견해 야 하는 게 한국 운동권의 현실이다. 늘 준비 안 된 국제연대이어서 나들이의 좌충우돌 을 강요받는 측면도 있으나, 나들이하기에는 너무나 안쓰러운 사연이 있기에 좌 충우돌 이란 표현도 사치스럽다. 그런데 사치스런 좌충우돌을 하는 나들이 국제연대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국제회의 적극 참석 파 역시 귀동냥 수준에 머문다면 이는 심각한 일이다. 이들이 국제 회의장에 적극 참석하여 하루 종일 머리가 쥐 날 정도로 들어도 무 슨 소리를 하는지 종잡을 수 없는 국제연대의 멀미 현상 을 느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런 경우에도 영어만 잘해 가지고 국 제연대를 잘 할 수 있다. 는 환상은 금물이다.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국제연대를 잘 하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 다. 무엇보다 국제연대의 기획 의제 설정 의제 실현 담론 형성 국제 네트워크 조직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국제연대는 백년하청이 다. 이렇게 비관적인 설명을 하면 영어의 청맹이 수두룩한 한국 운 동권이 어느 세월에 그런 능력을 겸비하느냐? 는 역공이 대뜸 쏟아 458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59 질 것이다. 이 역공을 맞받아치는 것은 아니지만 영어에 왕도가 없듯이 (영 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국제연대에도 왕도가 없다. 는 댓글을 단다. 끈질기게 국제연대에 매달려 귀가 뚫리고 국제연대의 멀미 현 상이 해소되는 그날, 국제회의장에서의 좌충우돌이 끝나는 그날 이 오리라는 믿음을 갖고, 국제연대를 위해 몸으로 때우라고 주문한다. 온몸으로 헌신하듯 국제연대에 임하지 않으면 국제연대의 감각이 갖 춰지는 그날이 결코 오지 않음을 강조한다. 국제연대에는 왕도가 없 을 뿐 아니라 꾀를 부리며 나아갈 지름길도 없다. 오직 우물 안의 개 구리 신세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몸으로 때우기 밖에 없다. 국제연대 나들이 파( 派 )들이여! 일단 몸으로 때우기 국제연대 를 시도하시라! 영어의 청맹을 모면하기 위해 영어회화 공부에 정진 하라! 벙어리 영어를 벗어난 국제회의 적극 참가 파들이여! 국제연대 의 멀미 현상에서 벗어나라! 국제연대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 자칭 꾼 들이여! 국제연대 무대에서 의제 담론을 장악하라! * 출처= 평화 만들기( 215호( )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59

460 Corea 운동의 의미 - 국호 되찾기와 역사 되찾기 1. 옛 국호 지명 되찾기 운동의 의미 1) 제국주의가 지어 준 이름 지우기: 제국주의의 기억으로부터 의 탈출 * 만주라는 이름을 일제가 즐겨 쓴 이유는 무엇일까? * 조선이라는 이름을 왜곡시킨 일제의 의도를 조선인은 멍텅구 리(조센징 빠가야로) 에서 찾을 수 있다. * 인도 지나(인도 China)는 일본식 이름이다. * 버마 인가 미얀마 인가. 버마 라는 표기가 올바르다. 미얀 마 는 포스트모던(Post Modern) 사고방식이 아닐까? 미얀마 는 미얀마의 일부 정치 세력(및 이 세력을 해외에서 지원하는 그룹)이 즐겨 사용하는 것 같다. 이처럼 국호 지명 속에 정 치적 정당성을 에워싼 대립이 내재해 있다. 460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61 2) 제국주의 잔재 청산: 역사 청산 * 인도인들은 봄베이(Bombay)를 뭄바이(Mumbai)로 개칭했다. 이는 영국 제국주의 청산, 우리 것 찾기, 제국주의 역사 청산 (제국주의 잔재에 매달리는 지배계급에 대한 도전), 민초들의 옛 인도에 대한 향수, 제국주의적인 국제주의(Internationalism) =세계화(Globalization)에 대한 민중지향적 지역주의 (people s localism)의 저항을 뜻한다. 인도인의 반제( 反 帝 ) 민족주의가 반영된 것이다. 이에 따라 캘커타를 골고타로 개 칭하고, 마드리드를 첸나이(Chennai)로 개칭했다. * 영어식 도시 이름을 지역 고유의 언어로 개칭. 이는, 영어라 는 세계어(세계화된 언어)에 대한 지방어 방언( 方 言 )의 도전 으로서, 과거사 청산의 의지가 깃들어 있다. * 이러한 경향은 인도 중산층의 자의식 민족의식 주권의식의 발로이다. * 여기에서 정체성의 정치학(Identity Politics)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봄베이라는 도시명, 봄베이라는 이름의 영국 제국주 의 도시(봄베이의 Church Gate 지역은 제국주의 냄새가 물씬 나는 지역임)를 민초들의 땀과 피로 적신 뭄바이(뭄바이 시의 중산층, 저소득층이 사는 애환의 저잣거리)로 환치시키려는 제국주의 정당성(Identity)과의 싸움 이다. 뭄바이의 의식 있 는 시민(중산층 저소득층)이 보기에 봄베이 는 저네들 (Church Gate 거주자들: 영국제국주의에 물든 지배계급)의 이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61

462 름이며 우리들의 인생과는 무관한 이름이다. * 이처럼 봄베이와 뭄바이 사이에 정체성 위기(Identity Crisis) 가 내재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Korea 와 Corea 사이에도 정체성 위기가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위기를 통일지향적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 히노마루( 日 章 旗 )- 日 本 (천황제의 일본)-대동아 침략전쟁의 짝짓기, 즉 깃발-국호-전쟁의 삼각 관계에 주목해 보자. 이 에 반대하는 진보 세력의 일장기 게양 반대-천황제 일본을 평화 헌법 아래의 일본으로 탈바꿈-평화국가지향 운동 에도 주목해 보자. 여기에서 양자 사이의 정체성 위기를 발견할 수 있다. * 일본인들의 북한 혐오 반북 의식이 반영된 北 이라는 호칭 을 일본 언론이 즐겨 사용한다. 일본의 언론은 일본인 납치 이전에는 북조선 을 애용했다. 北 은, 북쪽에 있는 조센징이 라는 뜻을 담고 있다. 조센징 이라는 경멸어도 사용할 필요 가 없을 정도의 하품( 下 品 )의 인간들이라는 뜻으로 北 을 사 용하는 것 같다. 北 이란 말은 부시의 악의 축 북한과 호 흡이 맞는다. 北 이라는 용어 속에,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에 대한 일본인들의 위협감, 즉 대포동 미사일의 북풍( 北 風 )을 경계하는 의지가 들어 있다. * 따라서 국호와 지역 이름은 역사 청산을 통한 통합, 통일, 화 해의 상징이다. 앞으로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려는 의지가 국 호 바꾸어 부르기 에 들어 있다. 462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63 2. 통일된 국가의 국호 1) 중립통일 국가 1) 의 국호로서 Corea 를 생각해 보자. 단일기 에 이미 중립의 의미가 있다. 여기에 또 다른 중립어인 Corea 를 덧붙여 쓰자. 2) 연방제 통일 국가의 국호로 Corea 를 사용하면 어떨까? 국가 연합 단계부터 Corea 를 사용하면 좋을 듯하다. 여기에서 Corea 사용 운동과 6 15 공동선언 실천운동이 연결되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3) 단일기 국기에 걸맞은 국호로 Corea 를 상정할 수 있다. 단 일기에 Corea 라는 문구를 새겨 사용할 필요가 있다. 3. 통일지향적인 국호 Corea 와 평화통일 지향적인 문화적 코드 (Code)로서의 Corea * 월드컵 응원 때 젊은이들이 태극기 두르고 Peace Korea- Corea 를 외쳤다. 막판으로 갈수록 필승 코리아 Peace 1) 한반도는 스위스와 같은 지정학적 조건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반도의 영세중 립 통일의 가능성은 남북한 정치지도자와 국민들의 영세중립 통일의 의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지 못하고 분쟁의 원 인을 제공해 왔으므로, 한반도는 가능성 있는 영세중립으로 통일하여 동북아시아의 중 심국가로서 스위스와 같은 완충의 역할과 세력균형의 주체적 국가로서 동북아의 평화 와 안정에 기여하여야 할 것이다. 제2부 반전평화 운동 463

464 Korea 로 변하는 가운데 Corea 구호가 스스럼없이 나왔다. 이 순간 태극기와 Corea의 짝짓기가 이루어졌다. 이때의 Peace Korea=Corea 는, 전쟁체제에 찌든 War Korea 와 대 립각을 이룬다. 분단 Korea / 미국에 종속된 Korea를 Corea로 탈바꿈(변증법적 지양)하는 통일 변증법의 상징 으로서 Corea 를 이해할 수 있겠다. * 이 Corea 를 통일지향적인 구호로 받아들여 민족주의적으로 만 해석할 이유가 없으나, Another Korea is possible, 즉 또 다른 코리아인 Corea 를 창출하자는 뜻이 내재되어 있다. Another Korea, 즉 모순(분단 모순 민족 모순 계급 모순 지역감정 모순 외세 지배의 모순)이 없는, 저 세상(유토피 아)에 있는 Korea 로서의 Corea를 창출하자는 구호이다. 이 Corea 구호에 실현가능한 유토피아가 깃들어 있다. * 따라서 월드컵 응원 때의 태극기-Corea 짝짓기를 한층 고양 시켜 매년 6월~8월에 열리는 남북 공동행사에서 단일기- Corea 짝짓기 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 이러한 짝짓기 구도를 남북한 교류 체육 행사 문화 행사에 도입하고, 나아가 올림픽에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 * 출처= 평화 만들기( 134호( ) 464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465 김승국 金 承 國 약 력 숭실대학교 대학원 철학박사 일본 메이지 대학 객원연구원 전, 한국은행 은행원 대전일보 기자 전자신문 기자 한겨레신문 기자 월간 {말} 편집국장 숭실대학교 강사 유네스코(아시아 태평양 국제이해 교육원) 선임연구원 1989년부터 지금까지 평화운동에 종사함 주요 논저 마르크스의 전쟁 평화 론 한반도의 평화 로드맵 잘사는 평화를 위한 평화 경제론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 핵 문제 오만한 나라 미국 한국에서의 핵문제 핵인식론 겨레의 칠성판 核 아시아의 종교와 평화 (공저) 서양 철학사 (역서) 맑스 엥겔스의 종교론 (역서) 외 다수

466 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초판인쇄 2008년 12월 3일 초판발행 2008년 12월 3일 지은이 김승국 펴낸이 채종준 펴낸곳 한국학술정보 주 소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 전 화 031) (대표) 팩 스 031) 홈페이지 출판사업부 등 록 제일산-115호( ) 가 격 29,000원 ISBN (Paper Book) (e-book) 본 도서는 한국학술정보(주)와 저작자 간에 전송권 및 출판권 계약이 체결된 도서로서, 당사와의 계약에 의해 이 도서를 구매한 도서관은 대학(동일 캠퍼스) 내에서 정당한 이용권자(재적학생 및 교직원)에게 전송할 수 있는 권리를 보유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지역으로의 전송과 정당한 이용권자 이외의 이용 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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