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는 글 겨울이 다가옵니다. 곧 한 학기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 대학에서 가장 오래된, 그렇습니다, 숭실기독교역사와 문화연구의 초석을 깐 매산 김양선 교수께서 만드신,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의 학술 행사를 알려 드립니다. 한국 기독교 공동체 안팎에는 이른바 새로운 문화부족 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나안 족, 미셔널 족, 교회 소비 족, 문화인종주의 족 과 같은 것입니다. 저희 연구소에서는 이런 문화현상의 단순한 분석만이 아니라 문화행동의 특성도 살펴보려 합니다. 매산 김양선 교수께서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의 문을 여시고 한국기 독교인문학을 선도하시었습니다. 그 뜻을 모르는 이들이 이 연구소를 이끌어와 그 본모습이 퇴색하였습니다. 다시 한국기독교인문학의 요람이 되고자 합니다. 오시어 저희 연구소의 이러한 학문적 몸부림에 힘이 되어 주십시오. 2013년 11월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소장 박정신 드림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일시 : 2013년 12월 3일(화) 오후 16:00 장소 : 숭실대 벤처중소기업센터 311호 주제 : 교회 안의 문화 부족 연구 시간 내 용 15:30-16:00 등 록 개회식 16:00-16:20 16:20-17:20 [인사] 박정신(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장) 주제 발표 및 토론 주제 : 가나안족 탈현대 시대에 소속 없는 신앙인, 가나안족 정재영(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사회: 김회권(숭실대학교) 주제 : 교회소비족 소비시대의 기독교 문화부족: 교회쇼핑인가? 노마드인가? - 성신형(숭실대학교) 17:20-17:30 휴 식 주제 : 문화인종주의족 인생은 아름답지 않다: 한국교회 문화인종주의족에 관한 한 연구 구미정(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17:30-18:30 주제 : 미셔널족 길 잃은 교회와 새로운 종류의 그리스도인 부족 : 미셔널족의 출현과 전망을 중심으로 박양식(한신대학교) 18:30- 종합토론 사회: 이용주(숭실대학교)
CONTENTS 탈현대 시대에 소속 없는 신앙인, 가나안족 1 - 정재영(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소비시대의 기독교 문화부족 : 교회쇼핑족인가? 노마드인가? 21 - 성신형(숭실대학교) 인생은 아름답지 않다 : 한국교회 문화인종주의족에 관한 한 연구 39 - 구미정(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길 잃은 교회와 새로운 종류의 그리스도인 부족 : 미셔널족의 출현과 전망을 중심으로 41 - 박양식(한신대학교)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탈현대 시대에 소속 없는 신앙인, 가나안족 정 재 영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탈현대 시대에 소속 없는 신앙인, 가나안족ㆍ 3 탈현대 시대에 소속 없는 신앙인, 가나안족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1. 들어가는 말 한국 교계에서 언제부터인가 가나안 성도 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하였다. 어떤 이는 십 수년 전부터 이 말을 쓰기 시작하였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이십년 전에 신학교 다닐 때에 도 이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한다. 이 가나안 성도 라는 말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 은 가지고 있지만 현재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찾아 다 녔듯이 새로운 교회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가나안 이라는 말을 거꾸로 읽으면 안나가 인 것과 같이 교회를 나가지 않는 또는 의도적으로 기성 교회를 거 부하는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들 중 일부는 교계에서 집계한 1,190만명이라는 개신교인의 숫자와 통계청에서 집계한 860만이라는 수치상의 불일치로부터 잃어버린 혹은 소실된 300여만 명의 개신교인(본인들 을 포함)을 지칭하는 말로 가나안 성도 혹은 300만 성도 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 러나 이것은 논리상으로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구주택 총조사는 자기 확인 방법으로 조 사되므로 현재 교회에 적을 두고 있는지 또는 출석하고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스스로 개 신교인이라고 응답한 사람을 모두 포함해서 집계한 수가 860만 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860만 명 외에 추가로 300여만 명의 개신교인이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이러한 가나안 성도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추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2004년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로 추정해 본다면, 개신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가 교회를 떠난 사람들의 수가 무려 758만 명에 이르고, 이 중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한 198만 명을 제외한 560만 명이 개신교를 믿다가 무종교인이 된 수라는 점을 감안할 때 가나안 성도의 수가 결 코 적지 않을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 보다 구체적으로는 최근 한국기독교목회자 1) 이원규, 한국교회의 위기와 희망 (서울: kmc, 2010), 135쪽.
4 ㆍ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협의회 에서 조사한 결과에서 기독교인 중에 10.5%가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대략 100만 명에 가까운 가나안 성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회가 보다 다양하게 분화하고 다원화되는 경향으로 이러한 가나안 성도는 점차 증가하 고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종교와 관련하여 중심 주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서구에서는 이미 소속되지 않은 신앙 (believing without belonging)이라는 개념으로 이러한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2) 이 글에서는 이러한 가나안 성도들을 현대 한국 교회 안에 새롭게 출현한 하나의 문화 집단으로 간주하여 가나안 족 이라 지칭하고, 이들의 문화적 특성을 분류하고 분석해 보고자 한다. 이 글에 사용된 자료는 바른교회아카데미 의 주관으로 이루어진 가나안 성도 조사 연구 와 필자가 한국연구재단 의 연구과제로 수행한 종교 세속화의 한 측면으로서 소 속 없는 신앙인에 대한 연구 과정에서 얻은 총 38명에 대한 심층 면접 자료임을 밝혀둔다. 2. 가나안 족의 유형 분류 먼저 이들 가나안 족을 유형별로 분류하면, 정체성이 뚜렷한 기독교인, 문화적인 기독교 인, 구도자, 그리고 무신론자로 구분된다. 정체성이 뚜렷한 기독교인들은 교회는 떠났지만 여전히 스스로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성경의 내용들을 믿고 그것을 나 타내는 하나의 징표로 내세에 대한 구원을 확신하는 사람들이다. 이들 중에 일부는 최근에 다시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사람들도 있었다. 다음으로, 문화적인 기독교인들은 객관적으로 자신이 기독교인인지에 대한 확신은 부족 하지만 자기 나름의 기준에 따라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 은 성경의 내용에 대해서 전적으로 믿지는 않고 이른바 구원의 확신 은 없지만 기독교의 가르침을 좋아하며 스스로 따르려고 하는 특징을 보인다. 40대 사업가 남성은 자신의 신앙 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아마 중고등학교 이후에는 안 믿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그것이 믿고, 안 믿고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고요, 과학적 사고가 머리에 들다보니까, 제 스스로 그냥 변명을 한 적은 있었었 죠. 그럴 수도 있었겠다, 능히 생길 수 있는 기적들이나 이적들이고, 또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 2) 이에 대하여는 Grace Davie, Religion in Britain since 1945: Believing without belonging(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4를 볼 것.
탈현대 시대에 소속 없는 신앙인, 가나안족ㆍ 5 도 아니고, 그것이 어떤 초자연적인 힘에, 하나님의 힘에 의해서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었죠. 세상 에 살면서 있을 수 있는 일들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것 때문에 크리스천이어야 되고, 그것 때문 에 기독교가 유지하는 근본이 되어야 된다는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을 하는 거죠. 그런데 제가 신앙인으로서 행동하는 것들은 회사에서는 합니다.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는 회사에서 적용을 하 죠. 회사가 목회지라고 생각을 하고 공동체 운동을 해요, 회사 안에서. 급여라든가, 보직이라든가, 어쨌든 대표는 제가 하고 있지 않지만 남들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이고요, 직원들도 제가 기독교인 이기 때문에 일종에 어떤 신앙을 실천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것을 많이 압니다. 늘 책꽂 이에 성경책이 있었고 기도를 하고요. 다음으로 구도자는 스스로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이 없지만 기독교를 포함한 여러 종교 들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고, 그 안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반드시 기독교 안 에만 구원이 있다고 믿지는 않고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종교 다원주의식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40대 대학 교수인 남성은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라는 것도 그렇고 다른 것도 다 역사가 형성되면서 문화현상의 하나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만들어낸, 그런 생각이 좀 들더라고요. 그렇게까지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어쨌 든 적어도 내 생각 안에서는, 양태가 좀 비슷하잖아요. 모든 종교가 형성되는 것이. 성경이라는 것도 이슬람교나 뭐 이런 것이랑 크게 다르지 않고 가지에서 좀 달라진 것이고 가톨릭도 오랜 시 간 그때마다 정리를 한 것이고, 기독교는 정리가 안 되니까 파가 나눠지게 된 것이고. 그런 생각 이 굳어지게 되었죠. 내가 종교에 대해서 깊이 연구한 사람도 아니고, 날 설득할 수 있으면 설득 해보라는 생각이 들었죠. 설득 당하고 싶어요, 솔직히. 날 이성적으로 납득을 시키면 그렇게 하겠 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난 불교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 존중하는 거예요. 우리가 일본에 가면 일본에 대한 예의, 영국에 가면 영국에 대한 예의, 나는 기독교인이면 기독교인에 대 한, 내가 기독교는 좀 많이 알지만 그런 것이고, 불교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슬람교도 나 름대로 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마지막으로 무신론자들은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종교 자체 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첫째는 교회 를 다니는 동안에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했지만, 교회를 떠난 이후에 기독교인 으로서의 정체성이 약해져서 종국에는 무신론자가 된 경우이다. 두 번째 유형은 교회를 다 니는 동안에도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기독교 신앙을
6 ㆍ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가지려고 노력하며 교회 생활을 유지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교회를 떠난 이후에는 이러 한 노력이 지속되지 못하여 무신론자가 된 경우이다. 진보 성향의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30대 남성은 신앙을 추구하는 모임에 참석하고 있지만, 스스로 무신론자임을 자처한다. 그런 초월적인 유신론은 믿지 않죠. 저한테는 구원 사건의 신은, 여러 가지 구원이 있겠지만 술주정뱅이가 술을 끊으면 거기서 신을 만나는 거죠,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실체로서의 신이 아니라. 그러니까 인격적인 그런, 명령도 하고 심판도 하고 뭐 살려주시고, 이런 신은 안 믿어요. 이러한 성향이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신앙에 대한 회의에서 연유하는지 아니면 사회 의 진전에 따라 제도화된 교회를 거부하는, 사회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종교 세속화의 영향 때문인지를 판단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이 교회를 떠나게 되는 과정들을 통 해서 그 단서를 찾아보고자 한다. 3. 가나안 족의 문화적 특징 (1) 강요받는 신앙에 대한 부담감 교회를 잘 다니던 이들이 무엇 때문에 가나안 족이 되는 것일까? 첫째로 주목되는 요인 은 강요받는 신앙 에 대한 부담이다. 신앙은 개인의 믿음과 관련되는 것이지만, 우리 사회 에서는 이러한 신앙에도 집단주의적인 요소가 작용하여 자신의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 한다든지 자신과 같은 신앙을 갖지 않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갖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만난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에 친숙하지 않은 초신자들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면접자들 중 절반에 가까운 18명이 모태신앙이었음에도 신앙을 강요 받는 것을 매우 힘들어했다는 것이다. 모태신앙인 한 20대 여성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음에도 가정의 신앙교육이 오 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며 그 이유가 바로 어렸을 때부터 신앙을 강요받았기 때문이 라고 말하였다. 대학에 합격했을 때에는 어머니가 대학에 붙으면 외국으로 단기선교 가는 것으로 하나님께 약정 기도를 했다면서 본인이 원하지 않는 단기선교까지 다녀오게 되었다
탈현대 시대에 소속 없는 신앙인, 가나안족ㆍ 7 고 말한다. 특히 이들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구원의 확신 에 대해 서도 강요받는 데 대해서 매우 큰 부담감을 느꼈고, 심지어는 폭력적 이라고 느끼기까지 하였다. 역시 모태신앙이며 유명 대기업에 다니는 한 40대 남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원의 확신이라는 문제를 누군가에 의해서 자꾸 강요를 받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이지 그것이 누가 자꾸 나한테 물어보고 내가 그 사람에게 어, 있어요. 라고 말 한 만한 것이 아니고, 세상에 인간이 어떻게 기계도 아니고, 뭐 데이터를 때려 넣는 것도 아니고, 구원의 확신이라는 필드에 이름을 딱 찍어 놓으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자꾸 누가 나한 테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지하철에서 도를 아십니까? 와 똑같은 느낌이에요. 또 다른 모태신앙자이자인 30대 남성 사업가는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 냐는 물음에 도리어 기독교가 최고의 진리라는 것을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고,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증명하실 수 있냐 고 반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기독교가 최고 진리라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는데도 이것이 하나의 폭력화 되어있다고 생각을 해요. [기독교가] 아니면 다 사탄인 것, 부처도 사탄이고, 이슬람도 사탄이고, 모든 것이 다 사탄 이잖아요? 모든 것이 사탄의 계교잖아요?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고백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 한다는 그런 절대적 배타성이고, 도가도 과연 그 언어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관한 생각이 없고 조금이라도 이론( 異 論 )을 내밀게 되면 사상적으로 난도질하는, 저는 그것이 과연 진리인지 생각해보게 돼요. 이 남성은, 예수님의 이름만 들어서 가슴에 눈물이 나지 않으면 신앙이 없는 것은 아닌 데도 교회들이 그것을 강요하게 되니까 더 이상 다른 교회를 찾아보려고 하는 노력도 힘이 들어서 이제는 예배 시간에 말이 없는 퀘이커 교회를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말한다. (2) 소통 단절의 문제 이러한 신앙의 강요는 신앙 공동체에서조차 소통을 가로막는다. 신앙에 대한 생각이나 관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공동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것이 같은 기독교 안에서도 다양한 교단과 교파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네 기독교 안에서 이러한 차 이는 차별을 낳고, 나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 또는 신앙에 대해 질문을 하거나 의문을 품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한다. 목회자의 말씀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고 거기에 질문할 수
8 ㆍ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없으며, 교인들 사이에서도 신앙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이다. 교회는 서로 의견이 다르고 신앙관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공간이 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느낀다는 한 30대 남성은 교회 안에서 소통의 부재 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번째는 교회 내에서의 문제인데 교회 내에서 의사를 결정하고 대화를 하고 그러는데 원칙 들이 너무 무원칙이라는 거죠. 그리고 교회 안에 대해서든 밖에 대해서든 결국 치열한 고민이 없 어요, 별로. 그러니까 교회 안에 대해서 뭔가 안 좋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뼈를 깎아내는, 자기 뼈를 깎아내는 기분으로 그런 고민을 하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전제로 하는 만큼 경청을 하고 대화가 이뤄지고 해야 되는 것이고, 외부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더 조심스럽게 하 고, 더 현명해야 되는데 그런 것이 없이 그저 그냥 좋은 게 좋은 것이고, 덕이 안 되다 라든지. 뭐 그런 표현 있잖아요, 주의 종이라든지 그런 표현, 그런 어떤 목회자, 담임 목사님을 중심으로 하는 몇 몇 목회자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은 교회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얘기 하는 그런 것들. 제가 생각하는 생활공동체로서의 교회, 그런 이미지를 가장 심하게 방해하는 요 소가 사실 그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떼고 빼고 하다보니까 갈 데가 별로 없더라고요. 너무 생각 없 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서 문제의식 자체가 둔감해져 버린 것이 가장 싫더라고요. 그는 부흥회와 통성기도를 할 때도 소통의 부재를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저는 전형적인 우리나라 부흥회 분위기, 그 자체가 불편해요. 너무 분위기를 띄워서 가려고 한 다든지, 설교 같은 경우에도 대부분 부흥회 설교가 개인의 희생이라든지, 결단이라든지 어떤 소 위 말하는 영적의 문제들을 개인의 문제로 자꾸 강조를 하는 경향이 있어서 부흥회의 설교도 불 편했고, 그리고 통성기도라는 형태도 저는 기도를 할 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내가 들으면서 하 는 기도를 즐겨서 했거든요.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 나지막하게 얘기를 하든지 묵상을 하든지 그 런 분위기를 편하게 느끼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통성기도를 하면] 점점 그게 별의미가 없이 힘 만 들고 뭔가 좀 내가 하려던 이야기들은 자꾸 까먹게 되는 그런 희한한 기도, 그런 식으로 느낌 이 굳어져 가는 거거든요. 유명 기독교 대학교 출신인 한 30대 남성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기독교 정신을 주입하 려고 하는 분위기에 기독교인들조차 거부감을 느끼고 비기독교인들 중에는 학업을 포기하 는 경우도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자신은 기독교 안에는 매우 풍성한 가능성들이 있는
탈현대 시대에 소속 없는 신앙인, 가나안족ㆍ 9 데 그런 것들을 차단해 버리고 기성 교회가 가지고 있는 하나뿐인 목소리를 사람들에게 강 요하려고 하니까 이것을 견디기 힘들어 결국 교회와 멀어지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러한 분위기는 그 자체가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로 여겨지고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 들을 신앙이 없는 사람으로 판단하게 되는 분위기로 이어진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 이것이 실제 기독교의 핵심 문제의 구원의 문제와 관련될 때는 그 억압적인 분위기가 보다 강해지게 된다. 한 30대 남성은 기독교 신앙에 대해 자신의 멘토들에게 얘기했다가 겪은 황망한 경험담을 전해 준다. 군대 가기 전에 제 멘토 선생님들에게 제가 질문을 드렸어요. 기독교가 최고 진리임을 저에게 어떻게 증거해 주실 것입니까? 세분이 앉아 계시다가, 다 보수적이신데 앉아서 저를 쥐 잡듯이 잡았죠. 너는 진정한 신앙인이 아니다, 너는 구원의 확신이 어디 갔냐 부터 시작해서. 그런데 제 가 끊임없이 하는 질문은 그 질문이 더 잘못되었다는 것이고, 질문하지 못하게 하는 기독교는 도 대체 어떤 기독교인가? 그런 생각들을 했었어요. 한 30대 남성은, 교회는 공동체로서 단순히 사람들 사이의 연결이 아니라 서로 의지할 수 있고, 서로 신뢰할 수 있어야 하고, 목사님이 이거다 라고 이야기하는 방식이 아니라 신 앙이라는 주제를 놓고 함께 심각하게 고민하고 서로의 의견을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의 교회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라는 이름으 로 모인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워져서 아직까지 교회를 나가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3) 신앙과 삶의 불일치 이러한 소통의 부재에서 야기되는 문제는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의 생각이 틀리고 남아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님에도 기존 관념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교회 구성원들의 주류에 속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된다는 것이다. 가나안 족 들이 다른 교인들 속에 섞이기 힘들어하는 것 중의 하나는 교인들의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이원론식의 사고와 관련된다. 모태신앙자인 한 30대 남성은, 기독교인들이 신앙이 오래되 면 될수록 세상과 자신을 구별 지은 용어들을 사용하고, 자기들끼리는 알아듣지만 밖에 나 가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얘들 속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30대 남성도 교 회 안에서 이러한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이 견디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10 ㆍ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구원이라는 것이 한 순간을 포장을 해서 언제라고 말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그 뒤에 따라오는 과정의 거의 예외 없이 정신적인 것이고, 어떤 사람의 인격을 놓고 얘기했을 때 전면적 인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점 하나, 하나 찍혀서 전체가 습관이 바뀌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사람이 바뀌어 나가는 과정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 과정자체도 다 필요 없다, 크 리스천이다, 기독교인이 되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든지, 그런 류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꽤 많더라고요. 흔히 하는 표현으로 세상의 윤리라는 것도 거부하는 듯한, 사실 저는 대 학 가서 공부하면서 가장 집중했던 부분도 그쪽이었어요. 기독교인이 영적인 구원 이후에 성화의 과정에서 같이 살아가는 그런 부분이었기 때문에, 부딪힌 사람들은 그것을 분리해서 이원론적으 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원론적으로 교회와 세상을 자꾸 분리해서 생각을 하다보니까 교회서 세 상을 바라보는 그 틀이 맞다 하더라고 그 시각 자체가 건강하지 않다는 부분이거든요.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가 이른바 값싼 은총 의 문제이다. 신학자인 본회퍼가 말한 데서 유래하는 값싼 은총 은, 십자가의 고난과 하나님의 부름에 따름과 복종 이 없는 신앙을 의 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신앙은 하나님이 모든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는 자판기의 하나님 으로 여겨질 수 있으며, 기독교 신앙을 믿음만 강조하면서 믿음에 대한 책임 있는 행위는 중요하지 않은 실천 없는 신앙 으로 변질시킬 우려가 있다. 모태신앙으로 기독교학과 출신인 40대 남성은 단순히 입으로 고백하는 것만이 구원의 확신이 아니라 삶으로 표현되고 체화되어야만 진정한 구원의 확신이 아니겠느냐고 말하면 서 한국 교회의 편협한 구원관 때문에 신학을 그만 두고 목회자 되기를 포기했다고 말한다. 또 한 30대 남성은 기독교 자체는 더 많은 가치를 품고 있는데,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마치 예수 믿는 것을 특권화 하면서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예수를 안 믿으니까 지옥에 갈 것이고 나는 예수를 믿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해도 천국에 갈 것이라고 하는 유아적 수준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원의 확신이나 이런 얘기도 신학적으로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구원에 관한 문제도 폴 틸리 히부터 시작해서 하나의 통합된 신학 이론이 어디 있어요, 없잖아요. 그런데 구원의 확신이 있냐 고 묻고 네 라고 얘기하고 딴 짓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얘기하고 정말 너무나 다른 모습들을 갖고 있어요. 간디가 제일 좋아했던 것도 산상수훈이라고 하잖아 요. 자기는 자기가 힌두교인이 아니었으면 기독교인이 되고 싶지만 자기는 기독교인들 때문에 기 독교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얘기를 했죠. 저는 오히려 이런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죠. 그 밑에 간 디를 좋아했던 목사님이 계셨나 봐요. 그런데 이 목사님이 한 번도 예수 믿으라는 소리를 안 하셨 대요. 그냥 간디를 조용히 계속 도왔는데 나중에 이 사람이 그러더래요. 당신이 목사인 것을 우리
탈현대 시대에 소속 없는 신앙인, 가나안족ㆍ 11 가 알고 있고, 그래도 한 번도 우리에게 예수의 도를 전하지 않았지만 당신 삶속에서, 당신의 손 짓과 몸짓 속에서 우리는 예수를 본다, 이런 표현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것이 진짜 기독교인답 지 않은가 생각해요. 또한 모태신앙으로 신경외과 의사인 한 30대 여성은 목회자와 교인들의 모습에 실망하 여 교회를 나가지 않고 있다고 말하면서, 현재 동료 기독교인들의 삶의 모습에서도 전혀 기독교인다운 모습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지금 단적으로 우리 전공의가 한명 있는데 그 친구는 자기는 신실한 기독교인이다, 나는 크리 스천이다, 나는 술도 안 먹고 기독교적으로 산다고 표방을 해요. 표방은 하는데 그 친구가 환자에 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친구는 기독교인이 절대 하면 안 되는, 기독교인이라고 말을 하면 안 되는 일들을 자행을 해요. 그러면서 열심히 하지도 않고,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해가 되 는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옆에서 누누이 얘기를 해도 뭐 그때 뿐, 뭐 이 런 식으로 하는데 저 사람이 크리스천이라고 하면 도대체 누가 교회를 갈 것인지 얘기를 하고 싶 은 거죠. 그렇게 안 보이게 저는 살고 싶은 것이고, 내가 내 자리에서 내가 하는 일을 충실히 하 는 것이, 그것이 기독교인이 해야 되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것은 그것이 기독교인 이든지 아니든지 사람이면 무조건 그렇게 해야 되는데 기독교인이면 더더욱 그렇게 해야 된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언젠가 만났던 한 40대 여성은 자기 주변의 기독교인들에 대해, 교회에 헌금을 많이 낼지 모르지만 회사에서는 절대 손해 보려고 하지 않고 자기 잇속만 챙기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하 면서 저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라면 나는 교회에 나가고 싶지 않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교회 안에서의 생활에 일차의 중요성을 부여하고 일상생활의 영역에 대해서는 중요성을 인정 하지 않는 이원론적 사고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사회생활에 올바른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게 되 고 결국 기독교인들을 분리주의자 또는 배타주의자로 만들어 버릴 위험성이 있음에도 대부분 보수 교회에 속하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이원론 속에 빠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4) 자기식으로 표현되는 신앙 지식정보화 사회 또는 포스트모던 사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제도 종교의 의례, 가르 침, 계율은 따르지 않으면서 개인적 신앙생활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현대 사회에 서 종교는 취미 생활의 하나로 여겨질 수 있으며, 다소 과장되게 표현하다면, 하나의 장신
12 ㆍ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 종교사회학자인 로버트 우스노우(Robert Wuthnow)는 이런 의미 에서 현대 사회를 D. I. Y. 종교의 시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현대인들은 기존의 전통적인 종교 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에서 취사선택을 하여 자기자신의 종교 를 만든다는 것이다. 가나안 족에게서도 이러한 경향이 포착된다. 스스로 생각하는 기독교에 대한 관념이 기 존 권위와 충돌할 때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권위에 복종하기보다는 자기자신의 기독교를 스스로 구성하는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부모 세대보다 교회에 대한 충성도가 덜하고 교회를 쉽게 옮기는 경향이 있어, 기성 교회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교회를 옮기거나 아니면 아예 자신들에게 맞는 새로운 교회를 세우게 되기도 한다. 보수 신학교 출신이고 현재 사회과학 분야의 박사과정생인 한 30대 남성은 신앙은 성경 을 배경으로 하면서 그것과 관련해서 계속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신 에 대해서 질문을 끝까지 던져보고 그런 견지에서 신은 특정 교리나, 심지어는 기독교라는 틀 안에조차도 가두어지지 않는 존재이므로 끝까지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신앙이라는 것이 다. 다음의 그의 이야기다. 과거의 계몽주의자들은 자기의 근본을 버리잖아요. 근본을 버리는 것이 계몽인 것이고, 버리는 것이 지식인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주어진 전통을 존중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주어진 것을 선용을 하는 거죠. 그것의 기본 뿌리 자 체를 내가 뭐 버릴 필요는 없다, 그것을 내가 어떻게 활용을 하고 재전유 하는가. 그러니까 복음 주의를 다른 식으로 만들어가듯이 저도 이제 뭐 기독교를 어떤 식으로 바꾸어가는 거겠죠, 내가 이렇게 실천을 하면서. 다른 의미의 기독교를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그것이 나한테 일차적으로 유의미하겠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유의미하면 좋고. 예를 들어서 기독교가 나쁘다고 기독교를 다 버리자, 이런 것은 아니고,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그 안에서 이것도 어떤 의미에 서 교회 안에서 개혁이라고 할까? 교회는 버렸지만 기독교는 버리지 않은 거죠. 모태신앙자이고 보수 신학교 출신이면서 현재는 다른 신학교에서 석사과정에 재학중인 한 30대 남성은 교회에 출석하느냐는 물음에 주일은 쉽니다. 라고 답하면서 자신의 생각 을 들려주었다. 불교의 영성 수행도 해보고 그런 여러 가지 것들을 하면서 뭔가 내가 갖고 있는 신앙은 교회라 는 것으로 담을 수 없겠구나, 신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교회나 성서를 넘어선 존재로 있겠지 그
탈현대 시대에 소속 없는 신앙인, 가나안족ㆍ 13 안에 갇히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저는 있었어요. 주중에는 기독교 기관에 있으니까 주일 하루 쯤은 쉬어야지 하는 생각에 계속 교회는 마음의 고향 같지만 어떤 면에서 약간의 상처와 분노도 갖고 있고, 재미있는 것은 그것이 교회의 비리나 이런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너무 정상적 으로 굴러가는 그 일상이 너무나 답답하고 싫었던 거예요. 그것은 교회에서 너무나 정상적인 것 이고, 예를 들면 교회의 조직된 모습이라든지, 제자훈련이라든지, 그 일상이 저는 너무 견디기가 싫었던 거예요. [허용된 얘기 외에는] 다른 얘기를 할 수 없고, 그 다음에 서로 다들 나약해져버 리고, 서로 상처받지 않을까 배려하는 사이에 정작 어떤 그 강한 얘기도 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그런 모습, 그런 것이 오히려 더 못 견디었던 것이지요. 제가 다녔던 교회는 다 건강한 교회였거 든요. 재정적으로도 건강하고 교회도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이런 편이었는데 저는 그것보다 더 급 진적인 어떤 것이 필요했던 것 같고. 그래서 학교가 싫어서 학교를 뛰쳐나갔듯이 그때는 교회가 너무 지겨워져서 나오게 돼서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는 거죠. 한 40대 남성은 정규 신학교에 다니지 않았지만, 독학으로 많은 신학 서적을 섭렵하고 여러 권의 주석 책을 독파한 후에 자기자신의 복음 이 생겼다고 말한다. 3) 그게 제가 삶에 날이 선 부분도 있을 것이고, 무뎌진 부분도 있을 것이고, 저 잘난 맛이 있을 것이고, 또 교회가 내가 바라본 아까 말했듯이 너무 날이 선 상태로 내가 봐라봐서, 일단 복음에 대해서는 제가 좀 자부를 하는 부분이 있어요. 바울도 자기 복음이라고 했고, 마태도 마태복음이 고, 누가도 자기 공동체에 대한 자기의 복음이 있었듯이 나도 자신에 대한 복음이 있지 않겠습니 까? 그런 부분이 있는데 교회들과 잘 안 맞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경계를 좀 해요. 이 남성은 제도권 교회와 비제도권 교회까지 몇 군데 나가봤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독특한 생각에 정착하지 못하고 현재까지도 혼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정 보화 사회는 과거와 같이 특정인이 정보를 독점하지 않고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변하였다. 마찬가지로, 목회자들만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평신도들 도 얼마든지 신학 서적을 접할 수 있고, 나름대로 성경에 대한 해석을 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가나안 족들이 자기들끼리의 교회로 모이도록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에서는 조사 과정에서 찾아간 가나안 교회에 대하여 소개하기로 하겠다. 3) 이와 비슷한 발견이 미국 종교에 대한 로버트 벨라의 연구에서도 나타나는데, 그가 인터뷰한 한 기독 교인은 쉴라 라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종교를 쉴라교 (Sheilaism)이라고 표현했다. 이에 대하 여는 로버트 벨라 외, 미국인의 사고와 관습: 개인주의와 책임감 (김명숙 외 옮김)(서울: 나남, 2001), 373쪽을 볼 것.
14 ㆍ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4. 가나안 교회의 특징 4) 우리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가나안 족이 모여 있는 가나안 교회 세 곳을 방문하여 참여관찰하고 가나안 교회 참여자들과 집담회 형식으로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세 곳 모두 참여자는 20명 이내의 적은 인원들이 모이고 있었고, 모두 주일 오후 시간에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한 곳은 다양한 연령대에 속한 20여 명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었고 안수 받은 목회자가 설교를 하고 있었던 반면에, 다른 두 곳은 10~15명 정도로 대부분 20~30대 의 젊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설교는 신학 교육을 받은 전도사와 함께 일반 평신도 도 돌아가면서 맡아서 하고 있었다. 한 교회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은 이 모임의 가장 큰 장점을 신앙이 강요되지 않는 점, 각자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신앙을 그 상태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 이라고 말한다. 이 교회 에는 복음주의자부터 무신론자까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무신 론자라도 자기 생각을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눈다고 말한 다. 이들의 예배에서는 주기도문도 각자의 버전으로 고쳐서 자기의 신앙고백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을 예수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무엇보다도 일상생활을 중요시하고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자신의 신앙고백에 따라 예수적인 삶을 사는 것을 추구하고 있었다. 또 다른 교회는 특정 목회자의 설교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교회를 세운 경우이다. 기존 교회 목회자들의 설교가 성경에 대한 자세한 강해나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합리로운 설교 가 아닌 성경 본문에 관계없이 지나치게 헌금을 강요하거나 목회자의 권위를 강조하는 설 교에 지친 나머지 성경에 입각한 설교를 하는 것으로 알려진 목회자를 초청하여 교회로 모 이고 있었다. 스스로를 영적 노숙자 라고 표현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교회가 영적 노숙자들 의 쉼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예배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교회는 초기에 유명 대형교회 출신자들이 모여서 만든 교회였다. 유 명 대형교회에서 문화 사역의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던 이들이 자신들의 사역에 회의를 느껴 교회를 나와서 자신들 나름의 문화 사역을 수행하다가 교회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 다. 현재는 문화 사역과 관계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었는데, 많은 참여자들이 4) 여기서 말하는 가나안 교회 는 교회 이름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이 글에서 말하는 가나안 족이 모인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탈현대 시대에 소속 없는 신앙인, 가나안족ㆍ 15 이 교회의 장점으로 수평적 리더십을 꼽았다. 이 교회는 특정 권위자가 정답을 제시하지 않고 효율성을 명분으로 핵심 구성원 주도로 의사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들 모두 의 사 결정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만장일치제를 도입하였다고 한다. 결정은 다소 느리더라 도 참여자들이 다 함께 자신의 의견을 내놓고 서로 다른 점을 조정하면서 공동체를 세워간 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교인 수가 20명이 넘으면 분리 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세 교회에 공통점이 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첫째는, 적은 수가 모여서 공동체적인 환경에서 인격적인 교제를 하고, 리더십을 공유한다는 점이 다. 이들은 적은 수가 모이기 때문에 친밀한 대면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예전 예배를 드 리는 한 교회 외에 두 곳은 예배도 둘러 앉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드린다. 그리고 제도화 된 기성 교회와 달리 이들은 특정인이 리더십이나 권위를 독점하지 않고 구성원들 모두 자 유롭게 의사 표시를 하고 의사 결정 과정에도 참여한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이들의 예배는 주일 오후의 편안한 분위기에서 모이고 주일 이외에는 다른 모임이 없다는 것이다. 여느 교회들처럼 오전이 아니라 오후에 모이는 것은 주일 아 침에 번잡하게 준비하여 교회에 가지 않고 한가로운 오후 시간에 여유롭고 편하게 모이기 위해서이고, 또 한 가지는 오전에 기성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도 오후에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은 주일 예배에 집중하고 이 시간에 삶을 나누고는 삶 의 현장으로 돌아간다. 평일에 성경공부 모임을 하는 경우도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일상생 활에서 신앙을 실천하는 것을 중시하는 것이 일종의 흩어지는 교회 를 표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주일 예배 이외에 다른 모임이나 활동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관점 에서는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사역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로 여겨질 수도 있는 부 분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공통점이자 특징은 이 교회들은 예배 후에 그 날의 설교를 나눈다는 것이다. 이 세 교회 모두 설교 후에는 매일 설교에 대해 받은 감동을 나누기도 하고, 정확 하게 이해가 되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는 질문을 하며 자기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고 심지어 는 설교에 대한 비평을 하기도 한다. 5) 기성 교회에서 설교 후에 설교 내용에 대해 토론을 하고 설교자에게 설교에 대해 질문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그것은 교회 5) 가나안 교회는 아니지만, 최근에 등장한 여러 형태의 대안적 교회들 중에는 예배 처소를 주일에만 빌 리거나 가정에서 소규모로 모이면서 예배 후에는 설교에 대해 토론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 져 있다.
16 ㆍ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전통에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자로서의 목회자가 선포를 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이 것은 상당 부분 일방성을 띌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가나안 교회에서 설교에 대해 토론을 한다는 것은 기존의 교회 전통과는 사 뭇 다른 특징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들의 신앙관과 교회관을 표출하는 행위로 이해된다. 위 에서 살펴본 대로 가나안 족들은 신앙은 고착화된 것이 아니며 다른 사람에 의해 정답이 제시되거나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질문하며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것이라 생각한 다. 그리고 교회는 이러한 과정을 수용하며 서로의 의견을 조정하며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여기에 녹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이 자칫 기성 교회와의 사이에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도 있으나 앞으로의 사 회가 더욱 다원화될 것임을 감안할 때 교계에서 깊이 있는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6) 이러한 가나안 교회를 섣불리 제도권으로 흡수하려고한다면 자칫 더 큰 갈등 을 야기할 수도 있다. 이들이 기성 교회를 떠난 이유가 바로 그러한 강압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기성 교회가 제도화의 딜레마를 극복하고 보다 수용성 있는 공동체적인 환경으 로 전환되는 것이 교회를 떠나는 이들을 보다 근본으로부터 줄이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 이다. 7) 5. 탈현대 시대의 종교인, 가나안 족 이제까지 가나안 족의 특징과 가나안 족이 되는 이유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제 글을 마치면서 이들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교회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오늘날 사회에 대하여 학자들은 탈현대성 을 말한다. 이제까지 당시대를 표현하는 현대 라는 말로 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사회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탈현대성의 관점에서, 역사에 대한 전반적인 개념화를 의미하는 거대 서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어떤 것도 유일한 중심성을 갖지 않는 무한한 수의 서로 다른 역사들과 지식의 형식들뿐이다. 6) 이미 신학계에서는 전통적인 설교에 대한 대안을 찾기 위해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관 련하여 일방향의 선포가 아닌 소통으로서의 설교를 강조하는 보기로, 루시 앳킨슨 로즈, 하나님 말씀 과 대화 설교: 변혁적 설교로서의 대화 설교 (이승진 옮김)(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0)을 볼 것. 7) 제도화의 딜레마란 교회가 하나의 조직으로서 유지ㆍ존속하기 위해서는 교회 역시 제도화될 필요가 있지만, 제도화가 될수록 비인격적인 관계나 관료주의화와 같은 문제를 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 미한다.
탈현대 시대에 소속 없는 신앙인, 가나안족ㆍ 17 인간의 이성에 기반한 과학의 권위가 실추하고, 다양하지만 동등한 중요성을 지닌 가치와 성향들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탈현대의 세계는 고도로 다원화된 세 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탈현대 사회에서는 집단보다는 개인이 중시된다. 우리 라는 집단에 매몰되기보 다는 자신을 찾고 느끼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우리 사회에서 최근 독신 가족이 급증한 것 도 이러한 가치관의 변화에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따라서 앞으로의 사회는 전문화되고 개성이 넘치는 개인주의 사회 가 될 것이다. 이것은 근대 사회에서 등장한 개인과는 또 다 른 특성을 지닌다. 그것은 바로 소속 없는 개인 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사회 역할을 부과하 는 획일적이고 상투적인 규범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대로 살겠다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 성 해방 운동, 가족적 풍속의 해방, 이혼과 독신 생활의 증가는 모두 강요된 소속의 식을 대신하여 개인의 독립을 내세우는 탈제도화 개인주의 혁명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8) 이러한 변화에 따라 탈현대 사회에서는 종교성도 바뀌게 된다. 탈현대 시대의 사람들은 제도 종교의 의례, 가르침, 계율은 따르지 않으면서 개인적인 신앙생활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영성은 추구하지만, 더 이상 제도 종교에 소속되어 강요당하길 원하지 않는 영 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은(spiritual but not religious)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 은 세속화의 한 측면으로서 제도화된 종교 형태를 벗어나 자신들의 신앙을 추구하고 실천 하는 것을 의미하는 소속되지 않은 신앙 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현대 사회 에서 종교는 실존의 문제라기보다는 하나의 기호로 여겨지며, 그것이 갖는 이미지에 따라 선호되기도 하고 배격되기도 한다. 앞서 소개한 로버트 우스노우는 오늘날 미국이 겪고 있는 심대한 가치의 위기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초월성에 대한 추구를 자극한다고 보면서 새로운 영적 수단의 탐구이며 또한 거룩한 순간을 개인적 으로 찾는 것을 뜻하는 추구의 영성 (spirituality of seeking)이 그 동안 전통 종교가 제공한 것으로서 교회, 성당 같은 특정의 거룩한 장소에서 초월성을 경 험하는 거주의 영성 (spirituality of dwelling)을 대체하고 있다고 말한다. 9) 이러한 개인 주의화 경향은 교회의 보이지 않는 교회로서의 특성을 강조하게 됨에 따라 보이는 교회, 역사적 교회, 기성교회를 부정하는 경향을 부추기게 되고, 이는 이른바 '교회를 떠난 기독 8) 이에 대하여는 정재영, 한국교회, 10년의 미래 (서울: SFC 출판사, 2012)의 6장을 볼 것. 9) Robert Wuthnow, After Heaven: Spirituality in America Since the 1950s(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8).
18 ㆍ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교인들 (unchurched Chrisitian)을 양산해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10) 2005년에 실시한 인구센서스 결과에서 천주교 인구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한 반면에 개 신교 인구는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 내용을 자세 히 살펴보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신도시에서 천주교 인구가 큰 폭으로 증가한 반면에 개신교 인구는 같은 곳에서 큰 폭으로 감소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흔히 도시의 합리적인 지성인들에게 설득력이 있는 종교로 여겨져 온 개신교가 최근에는 깊이 있는 사고를 하기 보다는 비합리적이고 덮어놓고 믿는 식의 감정적인 종교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납득이 되고 이치에 맞아야 믿는 이른바 '사고하는 기독교인들'(thinking Christian)은 이런 식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것은 최근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 고 있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젊은이들은 그들의 부모 세대와 같이 충성도가 높지 않고 개교회에 대한 애착심도 그다지 깊지 않아서 과거와 같이 모교회 에 대한 개념도 모 호할 정도이다. 오히려 자신의 신앙관을 인정받을 수 있고, 실제로 자신의 신앙 발달에 도 움을 받을 수 있는 교회로 옮기기를 선호한다. 이러한 젊은이들은 한 사회 안에서 언제나 기성세대에 도전하고 새로운 사회의 변화를 가장 첨단에서 수용하는 이들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따라서 이들이 교회를 떠난다는 말은 교회가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미래 사회를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교회의 본질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항상 역사 형태로 나타난다는 한스 큉의 말대로, 교회는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기보다 새로운 세대에게 설득력을 줄 수 있는 모습으 로 갱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는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고 시대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 교회 조직은 보다 탄력 있고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형태로 재구조화될 필요가 있고, 교회 구성원은 보다 주체성을 가지고 각자의 전문성에 따라 다양 한 영역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 지도자는 교회 구성원들의 다양 한 요구를 수렴하여 의사 결정을 하고 교회가 현대 사회에서 적실성을 갖는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스스로 공동체임을 표방하지만 그 공동체의 성격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이루 어 가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개인을 무시하는 공동체는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라고 말할 수 없다. 영성과 사회성의 균형을 이루며 바람직한 공동체상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야 10) 미국 교계에서는 90년대 이후 교회를 떠난 기독교인들 이 이슈가 되었으며, 이와 관련된 서적도 여러 권 출판되었다.
탈현대 시대에 소속 없는 신앙인, 가나안족ㆍ 19 기되는 세이비어 교회의 고든 코스비 목사가 참된 교회와 공동체에는 극도의 다양성이 존 재한다. 고 강조했던 점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교회가 다양한 생각을 가진 개인 들을 존중하고 포용하며 서로 간에 소통할 수 있는 공동체성을 회복함으로써 탈현대 시대 에도 종교적 의미를 담지할 수 있는 진정한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6. 나가는 말 우리 사회에서 교회는 비기독교인들에게 마치 소통 불능의 공간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 다. 사회 안에 존재하면서도 바깥세상과는 담을 쌓은 채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말로 자기들 끼리의 논리로 자기들끼리의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조사 연구에서 드러났듯이, 기독교인들 특히 모태신앙자들에게조차도 교회가 이렇게 여겨 지고 있는 것은 한국 교회에 매우 큰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특정 부류의 사 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만인이나 스구 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 없이 서로 다른 부류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하나 되는 공동체여야 하기 때문이다. 2005년에 실시한 인구센서스 결과에서 천주교 인구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한 반면에 개 신교 인구는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신도시에서 천주교 인구가 큰 폭으로 증가한 반면에 개신 교 인구는 같은 곳에서 큰 폭으로 감소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흔히 도시의 합리적인 지성 인들에게 설득력이 있는 종교로 여겨져 온 개신교가 최근에는 깊이 있는 사고를 하기보다 는 비합리적이고 덮어놓고 믿는 식의 감정적인 종교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지 성을 강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지나치게 감성에 호소하는 것도 바람직하게 여겨 질 수 없을 것이다. 가나안 족, 가나안 교회는 그들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기성 교회에 큰 도전이 되고 있다. 그것은 이들이 기성 교회에 대해 뚜렷한 불만을 가지고 떠난 사람들이고 그들 중에 일부는 기성 교회와 차별성을 갖는 대안적인 교회를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중세 교회가 제도화되고 교권화 됨에 따라 수도원 운동이 일어나고 교권이 미치지 않는 사 막으로 나갔던 사막 교부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른바 교회 제도화에 대한 반작용
20 ㆍ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운동이었던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가나안 족, 가나안 교회도 한국 교회가 지나치게 제도화되는 데 대한 반작용이자 비제도권의 교회 갱신 운동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을 섣불리 교화하려고 하거나 제도권으로 흡수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들의 영적인 욕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것을 기성 교회에서 수용함으로써 교회를 갱신하고자 하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교회는 스스로 공동체임을 표방하지만 그 공동체의 성격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이루 어 가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개인을 무시하는 공동체는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라고 말할 수 없다. 영성과 사회성의 균형을 이루며 바람직한 공동체상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야 기되는 세이비어 교회의 고든 코스비 목사가 참된 교회와 공동체에는 극도의 다양성이 존 재한다. 고 강조했던 점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교회가 다양한 생각을 가진 개인 들을 존중하고 포용하며 서로 간에 소통할 수 있는 진정한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소비시대의 기독교 문화부족 : 교회쇼핑족인가? 노마드인가? 성 신 형 (숭실대학교)
소비시대의 기독교 문화부족: 교회쇼핑족인가? 노마드인가?ㆍ 23 소비시대의 기독교 문화부족 : 교회쇼핑족인가? 노마드인가? 성신형 (숭실대학교) 1. 들어가는 말 여러 가지 문화인류학적 분석 중에서 문화부족의 출현은 현대 사회에 대한 가장 커다란 특징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문화부족이란 과거 혈연 중심의 공동체 혹은 부족의 개념에서 비슷한 생활양식, 소비성향 등의 문화적인 지향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집단을 의미한 다. 1)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문화부족이 형성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는 삶의 질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이에 따른 가족 형태의 변화로 보고 있다. 전자는 전통적인 부족사회에서 가지고 있었던 조직 구성과 밀접하게 연결된 삶의 질에 대한 개념이 현대로 들어와서 개인 의 행복 중심의 사회로 전환된 것을 말하고, 후자는 이에 따른 전통적 대가족 혹은 집단적 부족의 개념이 소수의 가정 중심으로 전환하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로 인해서 출현된 문화부족은 전통적인 의미의 부족 공동체를 형성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들만의 문화 향유 양식, 특히 소비 성향을 드러내면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살아가 고 있다. 2) 문화부족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부족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소비성향이다. 특히 소비는 현대인들의 가장 중요한 삶의 기반으로 현대인들의 소비 성향(혹은 더 큰 의미에서 소비문화)을 살펴봄으로 그 사회를 읽어갈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소비는 현 대인들의 일상 속에 가장 깊숙이 들어와 있으면서 현대인들에게 삶의 제 영역(정치, 사회, 문화 등)을 사적인 생활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면서 소비 라고 하는 수동적인 행동을 통해서 1) 이봉례, 이성근, 문화부족의 형성과 발전의 메카니즘: 포스트 모더니즘적 접근, 성신여대 경영연구소, 여성과 경영 제 1 권, 제 1호, 2008년 8월, 72-82. 조금 더 깊은 논의를 위해서는 이동연의 문화부 족의 사회: 히피에서 폐인까지 (서울: 책세상, 2005)를 보라. 2) 같은 글.
24 ㆍ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느낄 수 있는 인간의 행복을 기호화하면서, 그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소 비 가 마치 기적처럼 현대인들에게 안정감을 주면서 즐거움을 제공해주고 있지만, 역설적 이게도 그 즐거움은 우울함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3) 이러한 현상을 다르게 설명하면 배려 의 이데올로기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서비스 된다 는 행복의 약속은 사람들에게 소 비사회 에 대한 무한한 신뢰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그 무엇보 다도 당신에게 봉사하는 것 이기 때문이다. 4) 그러나, 이것은 사람의 모든 사회적 영역(특 히 인간관계)을 대상화하고 개량화해서 다른 형태의 사회통제의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고 있 다. 모든 사회적 관계가 교환 가능하다는 사실은 현대인들을 끝도 목적도 없는 욕망으로 끌고 가는 힘이 있으며 그 속에 사회적인 죄의식은 사라지게 된다. 급기야 평화에 대한 소 비 의 약속은 폭력으로 변질되어 버리고 만다. 더 풍부해지면 풍부해 질수록, 사람들은 더 피로해지고 더 폭력적이 되고 만다. 이제 소비의 소비 를 생산해내는 집단의식이 현대인들 을 지배하는 소비사회를 만들어내었다. 5) 소비사회에 대한 이와 같은 분석 속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 부분은 소비는 모든 것을 서 비스로 만들어서 이러한 서비스를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는 소비신화를 만들어가면서 현대인들에게 그것을 숭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속에서 자연스럽게 종 교조차도 소비의 배려 아래도 들어가게 되고 말았다. 과거 인간의 행복과 삶의 의미를 제 공했던 종교의 역할을 이제 소비가 대체하면서 종교는 소비의 하나의 부속물, 즉 하나의 서비스 가 되고 말았다. 이런 현상은 기독교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 모든 것을 소비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능력을 부여받은 현대인들은 종교를 하나의 소비로 인식하기에 이르렀 다. 6) 본 연구는 이러한 현실 분석을 바탕으로, 현재 한국인들의 삶 속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소비문화가 한국 교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고찰하면서, 이러한 현상에 들어있는 의미 를 파악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한국 교회의 문화부족의 한 형태를 파악해보고자 한다. 이 를 위해서 본 연구는 먼저 기초 문헌자료를 살펴보았다. 현재 출판된 문헌들과 저널들의 글을 참고 했다. 특히 2004년에 교회성장연구소에서 나온 한국 사회의 교인이동에 관한 자 료는 본 연구에 아주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10 여 년 간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 3) 장 보드리야르, 소비와 사회, 이상률 역, (서울: 문예출판사, 1991), 21-30. 4) 같은 책., 242-243. 5) 같은 책., 242-305. 6) 박종균, 소비사회 문화와 종교, 한국기독교연구소, 세계의 신학 2000년 여름, 91-94.
소비시대의 기독교 문화부족: 교회쇼핑족인가? 노마드인가?ㆍ 25 해서 필자는 두 번의 그룹 면접을 실시하였다. 그 그룹들은 현재 한국 교회 젊은이들을 위 해서 목회하고 있는 목회자 그룹과, 일반 성도(평신도)그룹이다. 이들은 각기 자신들의 그 룹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현재 한국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에 대해서 정직하게 묘사하고 있다. 본 연구는 이상의 자료들을 바탕으로 소비문화가 한국 기독교에 미치는 영 향을 파악하고, 한국 교회의 이동교인들의 소비 성향을 분석하면서, 그들을 부족의 형태로 나누어 볼 것이다. 그리고 끝으로 이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 교회에 신학적인 제안을 시도해 볼 것이다. 2. 소비문화와 기독교 전술한 바와 같이 소비문화는 현대인들의 삶 전반에 걸쳐서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소 중에 하나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 또한 예외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러한 점에 대해서 걱정을 하고 있으며, 서점에 가 보면 눈이 많이 띄는 책 중에 하나도 이 런 현상에 대한 책이다. 일반적으로 교회 성장론에 치중한 저자들의 글을 보면 이런 현상 을 잘 이용해서 교회를 운영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한편, 이런 현상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서 묻고 새로운 답을 찾고자 노력하는 저자들은 글도 적잖게 눈에 띠 고 있다. 본 장에서는 이러한 문헌들을 바탕으로 소비문화가 현대 기독교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대해서 그 현상적인 분석을 해 보려고 한다. 현상적인 분석을 하기에 앞서서 먼저 짚어볼 것은 소비문화가 교회에 직접 영향을 미치 고 있는 소비의 역설이다. 소비의 역설이란 소비의 주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 인간이 소비의 종속물이 되어버린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역설 속에서 소비문화와 기독교의 관계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사실 이 부분은 기독교만 의 문제는 아닌데) 인간 관계성에 대한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상품화에 대한 문 제이다. 어떻게 보면 이 두 가지 점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이 다. 하나님을 소비할 수 있다고 믿어버린 인간은 결국 자기 스스로가 소비의 대상이 되어 버린 현실을 뒤늦게 서야 깨닫게 되고 말았다. 소비의 자유와 소비의 행복은 역설적인 상 황을 만들어 내고 만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 속에서 현대 교회는 크게 세 가지 현상적인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26 ㆍ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그 첫 번째 흐름은 현대인들의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에 기인한 거대한 브랜드 교회의 출 현이다. 소비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브랜드는 가장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가 되었 다. 실로 브랜드는 가히 종교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할 만하다. 브랜드는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를 제공해준다. 브랜드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단순한 신뢰를 넘어 서 거의 광신적 믿음에 까지 이르게 된다. 이런 점에서 브랜드는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만 들어 낼 수 있는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다. 소비문화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소비 성향에 맞는 브랜드를 사용함으로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를 드러내게 되고, 같은 브랜 드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씨족들처럼 서로 모여서 자신들의 브랜드를 신봉하는 예식(각종 문화 및 여가 활동)을 치르면서 살아가고 있다. 브랜드에 충성을 다하고 있는 사 람들은 삶의 본질보다도 스타일에 집중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문화적인 영역을 구축해나가 고 있다. 물론 기존 자신이 쓰고 있던 브랜드보다 더 강력한 브랜드가 등장하게 되면 이들 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사용했던 브랜드를 새로운 브랜드로 바꾸면서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더 질 좋은 삶의 단계로 올라가게 된다. 7) 이와 같이 브랜드를 추종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은 교회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이러 한 현상은 마치 교회 라는 상점에서 그리스도 라는 제품을 팔기 위해서 자신의 제품을 얼 마나 잘 홍보하면서 생산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교회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할 수 있을 정도 이다. 이런 현상은 서구 교회(특히 미국교회)나 한국 교회 모두 비슷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 다. 한 두 세대 전만해도 각 교단의 교리와 신념을 기준으로 교회를 선택하던 시대에서 이 제는 브랜드가 자신의 취향에 맞으면 선택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실제로 미국 새들백 교회 의 릭워렌 목사는 음악 이 교회 성장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마치 스테 이크보다는 지글지글 소리가 더 중요하다 는 말과 같은 것이다. 8) 한국에도 이러한 현상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가장 전통적으로는 오순절계열의 교회가 한국의 샤마니즘적인 요소 와 결부되면서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으며,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까 지 한국 교회를 휩쓸었던 경배와 찬양 브랜드와 제자훈련 브랜드는 여전히 그 세력을 확장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신도시 지역에서는 자신들만의 이미지로 브랜드를 만드는 데에 성 공한 교회들이 등장하고 있다. 소비문화와 관련해서 현대 한국교회 교인들에서 나타나는 그 두 번째 흐름은 교회와 교 인, 교인과 교회지도자, 혹은 교인과 교인들 간의 관계가 매우 다면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7) 스카이 제서니, 하나님을 팝니다 이대은 역, (서울: 죠이선교회풀판부, 2011), 96-99. 8) 같은 책, 98.
소비시대의 기독교 문화부족: 교회쇼핑족인가? 노마드인가?ㆍ 27 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이 교회에서 발견되는 양태는 지역 교회에 소속되어서 교제는 하고 있으면서 온라인을 통해서 설교를 듣거나, 오전에 지역교회에 출석하고 오후에는 다른 교 회에 출석하거나, 혹은 예배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 다른 교회 목회자들을 통해서 영적인 공급을 받는 형식 등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런 현상은 대개 나이가 높은 중년 층 이상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소비사회에서 드러나는 인간 관계성의 새로운 패턴에서 찾을 수 있다. 공동체 속에서 서로 배려하면서 대화하고 따뜻함으로 다가가면서 성실함을 형성해가는 관계성의 자리가, 생산자의 끊임없 는 배려 덕분에(?) 소비 중심의 수동적인 인간관계로 바뀌게 되었다. 관계에 대한 성실함은 이제 소비에 대한 성실함으로 바뀌게 되었다. 관용의 도덕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 었으며 기능의 융통성만 존재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9) 이런 현상 속에서 결국 사람 들은 다중적인 인간관계를 만들게 되었다. 이것은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현대인들의 생활 이 파편화 되고 다양화 되면서 과거 대가족 중심의 사회에서 핵가족 혹은 일인가족 중심의 사회가 만들어 놓은 결과물이다. 필요에 의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정도에서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관계 때문에 피곤하지 않다. 적절한 교환과 피상적인 관용만 이루어지면 사람들은 대체로 만족하면서 살게 된다. 10) 이런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특정 공간(그것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상관없이)을 자유롭게 오가게 되었으며, 그 곳에서 사람들은 각종 다른 얼굴을 하고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럽 게 인간관계는 다중화되게 되었다. 현대 소비 사회에서 드러나는 기독교 신앙의 세 번째 현상은 노마드 교인의 출현이다. 노마드는 유목민을 뜻하는 것으로 노마드를 현대 철학의 개념으로 끌고 들어와서 자신의 철학을 발전시킨 대표적인 철학자는 프랑스 포스트모던 철학자 들뢰즈이다. 노마드는 길 위에 사는 사람으로 이들은 항상 길 위에서 다른 곳으로 움직이면서 살지만,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목적지가 불안한 반면에 이들에게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11) 현대인들은 이러한 삶의 현장 속에서 의미와 비의미의 역 설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다니고 있다. 실로 의미와 무의미가 공존하는 현실 세계에서 현대인들은 노마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12) 9) 소비의 사회, 266-268. 10) 같은 책. 11) 박정자, 박정자의 노마드 강의: 마이크 잭슨에서 데리다까지 (서울: 도서출판 기파랑, 2009), 7-8. 12) 같은 책, 165-166.
28 ㆍ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노마드처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불안전성과 자유라는 두 가지 삶의 방식과 비슷하 게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노마드의 신앙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주로 젊은 층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자신의 삶의 가치에 적합한 새로운 공동체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포스트모던 사회의 새 로운 부족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근대 계몽주의 사회에서의 자율적 자아가 현대 포스트모 던 사회로 넘어오면서 새로운 부족주의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 부족주의는 자신들과 문화 적인 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할 것을 요구한다. 과거 소속감 와 지속성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던 혈연중심의 부족이 이제는 일시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 람들이 모여서 문화를 공유하는 새로운 부족의 형태로 바뀌게 된 것이다. 13) 이들은 고향을 상실한 방랑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새로운 공동체를 찾아다니고 있다. 이들은 기성세대와 그들이 다니고 있는 교회에 의해서 자신들의 문화적인 성향이 거부되고 있음을 발견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를 찾아다니 고 있다. 3. 교인 이동의 현상들 이상에서 소비사회가 한국 기독교에 미치는 영향과 그 결과로 나타난 주요 현상에 대해 서 살펴보았다. 본 장에서는 한국 교회의 교인이동 현상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현재 한국 교회의 교인이동 현상에 대해서 가장 최근에 발표된 보고서는 2004년도 교회성장연 구소에서 발표한 보고서이다. 14) 이 보고서는 만 18세 이상의 성인 교인을 대상으로 9개 도 시에서 약 1000여명의 표본을 선정해서 가구방문을 통한 일대일면접으로 진행되었으며, 표본 오차는 ±3%로 신뢰도 95%를 나타내고 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교인이동의 현상에 대해서 특성을 세 가지 정도로 살펴볼 수 있다. 한국 교회 교인이동의 첫 번째 특징은 도시화와 직업선택에 따른 이주 때문에 교회를 옮 기는 경우가 가장 많다는 것이다. 교회성장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2003년 현재 한국교회 교인들 중 75퍼센트 가량이 교회를 옮긴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 되었다. 이들에게 교회 13) 지미 롱, 새로운 청년 사역이 온다, 신현기 역 (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9), 99-102. 14) 교회성장연구소, 한국교회 교인들이 말하는 교회 선택의 조건: 한국교회 교인 수평이동에 대한 연구 (서울: 교회성장연구소, 2004).
소비시대의 기독교 문화부족: 교회쇼핑족인가? 노마드인가?ㆍ 29 를 옮긴 이유는 23퍼센트 가량이 직장을 옮겼기 때문이고 17퍼센트 가량은 이사 때문인 것 으로 밝혀졌다. 즉 40퍼센트 가량의 교인들이 교회를 옮긴 이유로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 라, 주변 환경의 변화로 인해서 교회를 옮긴 것으로 밝혀졌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한국 교회 교인들은 교회 이동에 대해서 상당히 보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 이동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57퍼센트 가량은 가능하면 떠나지 않겠다 고 대답했고, 29퍼센트 가량은 결코 떠나지 않겠다 고 응답을 했다. 또한 이동을 한 경험이 있는 교인들 에게 향후 교회를 옮길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옮기지 않는다 는 대답이 70퍼센트 가량으로 높게 나왔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 교회 교인들의 교회 이동의 경우는 상당히 보수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부득이하게 옮긴다고 하더라도 옮기는 것에 대해서 바람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그들이 교회를 결정하는 방식에서도 드러 나고 있다. 교회 이동을 하는 경우 교회를 방문하는 회수는 2회에서 5회 정도가 가장 많았 고(79%), 최소한 3개월에서 3년 정도에 걸쳐서 교회를 결정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69%) 것으로 드러났다. 두 번째 특징은 목회자 문제로 인해서 교회를 옮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23%). 사실 위에서 언급한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교회를 옮기는 경우를 제외하고 실질적으로 교회를 옮기는 가장 큰 이유는 목회자로 드러나고 있다. 이들이 꼽은 이유는 목회자의 인 격과 권위주의, 그리고 설교의 문제가 가장 크게 대두되었다. 이러한 사실과 연관되어서 교회를 이동하는 경우 그 교회 출석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이유들로 목회자의 설교와 인 격이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볼 때 한국 교회 교인들은 목회자에 대한 의존 도가 매우 높으며 이에 따라서 그 실망감도 큰 것을 볼 수 있다. 과거 한국 교회에서 교인 들은 다소 권위적이고 성장지향적인 목회자의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서 지도를 받으면서 수 동적으로 신앙생활을 해 왔다면, 오늘날에는 이러한 리더십이 교인들에게 그 영향력을 많 이 상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인터넷이나 언론 등을 통해서 여러 가지 면에서 목회자들을 서로 비교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정치적으로도 성숙되는 과정을 통해서 목회 자가 지녀야할 리더십의 형태도 변화하고 있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즉 한국 교회 교인들 은 이런 현상을 잘 읽어가면서 새로운 리더십을 발휘하는 목회자가 있는 교회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 교회 교인 이동의 세 번째 큰 특징은 중대형 교회로의 이동이 상당히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에 소형 교회와 미자립교회에 출석하던 사람의 비율은 32퍼
30 ㆍ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센트 가량에서 이들이 교회를 옮기는 경우 다시 비슷한 규모로 옮기는 경우는 11페센트로 떨어진다. 반면 중형교회는 이전과 비율에서 이후 비율이 48퍼센트에서 54퍼센트로 다소 증가하고 있다. 중대형 및 초대형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의 이동 이전과 이후의 비율은 20 프로에서 35프로로 증가하게 된다. 여기에서 교회 이동을 통해서 사람들은 중형이상 중대 형 교회로 쏠림 현상이 생기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특히 미자립교회나 소형 교회에 출석 하고 있던 사람들이 중대형 교회로 많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자연스럽게 미자립교 회나 소형 교회의 교인들은 현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교인들의 이사와 이직 등의 자연적인 현상으로 도시 아파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교회를 선택하는 과정에 서 주변의 중대형 교회로 모이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교회에 실망한 교인들이 브랜드 가치가 있는 큰 교회로 이동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점점 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서 문을 닫는 교회들도 증가하고 있다. 이상에서 2004년 교회성장연구소에서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서 현재 한국 교회 교인들의 이동 현상에 대해서 크게 세 가지 특징을 살펴보았다. 이 자료가 10년 전의 자료라는 점에 서, 과연 지금 이와 같은 조사를 하게 되면 그 데이터가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가? 하는 점 에서 아쉬운 점은 있지만, 현대 한국 교회의 교인 이동의 현실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기에 는 좋은 자료라고 판단된다. 4. 소비시대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교회 안의 문화부족들 이번 장에서는 필자가 연구한 1차 문서자료와 함께 2차 자료로 필자가 실시한 면접을 바 탕으로 소비시대에 드러나고 있는 교회 내의 문화부족의 패턴들을 조금 더 세분화해서 몇 가지로 구분해보고자 한다. 현대사회에서 소비는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의 의미에서 멈추 는 것이 아니라, 더욱 확장되어서 브랜드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부족을 만들어서 자신들이 원하는 관계를 형성하는데 까지 이르게 된다. 이런 점에서 교회 내에 소비문화부족을 아래 의 네 가지 패턴으로 나누어 보았다. (1) 안개 교인 첫 번째 패턴은 안개교인이다. 안개 교인이란 교회에 출석만 하고 예배만 드리면서 그
소비시대의 기독교 문화부족: 교회쇼핑족인가? 노마드인가?ㆍ 31 외에 다른 어떤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는 교인들을 말한다. 이들은 대개 기존에 다니던 교 회에서 크고 작은 이유로 상처를 받고 교회를 이동하게 되어서, 대형교회에 옮겨서 출석하 면서 교회 활동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고 예배만 드리고 있는 교인들이다. 교회성장연구소 의 보고에 따르면 교회 이동 이후에 새로 옮긴 교회에서 예배만 드리고 있는 교인들을 대 략 20퍼센트 정도라고 하고 있다. 교회의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이런 교인들의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 즉 목회자와의 갈등(23%)이나 다른 성도들과의 갈등(7%)등을 겪고 교회를 옮기게 되고, 옮긴 후에는 대형 교회에 출석하면서 예배만 참석하고 다른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대형교회의 세련 된 예배와 목회자의 설교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재충전하는 경험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현재 대형교회에서는 이들을 발굴해내어서 다시 교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사역에도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15) 이들의 이러한 모습 은 현대인들이 크고 작은 이유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교회를 옮기 면서 가지게 되는 현상이다. 신앙은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교회생활 대신에 종교적인 의 식만을 선택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2) 가면( 假 面 ) 교인 가면 교인이란, 출석하고 있는 교회는 있으면서 다른 시간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다른 교 회 방문하면서 자신들의 신앙적인 욕구를 채우고 있는 교인들을 말한다. 이러한 현상은 필 자가 연구를 위해서 방법론으로 사용한 그룹 면접을 통해서 밝혀졌다. 면접에 의하면, 지 역 교회를 다니고 있는 성도들 중에 주일 오전에는 자신의 교회를 출석하고 오후나 다른 주중에는 다른 모임을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비롯해서 자기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 에 자신 말고도 더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교회에 출석하게 되어서 형성된 관 계를 놓칠 수가 없고 또 이사 이외의 타당한 이유 없이 교회에 옮기는 것이 부담이 되는 성 도들이 자신이 현재 등록해서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 충분히 충족할 수 없는 다양한 신앙 의 욕구들을 이와 같은 방향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어쩌면 이미 공공연 한 비밀이 되었다. 아니 어쩌면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일인데, 교회의 목회자들만 잘 모르고 있는 일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조금 더 깊게 살펴보자면, 어쩌면 목회자들도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서 외면하고 있는 현실인 것 같다. 이와 같은 현 15) www.onnuri.org, 2013년 9월 8일 온누리뉴스에 실려있는 기사를 참조하였다.
32 ㆍ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실 속에서 교인들은 여러 겹의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어느 것 하나에도 깊은 관계를 형성 할 수 없게 되고 만다. 이들은 넓은 관계를 만들었지만, 깊은 관계는 만들지 못하고, 다면 적인 관계 속에서 교회라는 형식으로만 묶여져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3) 쇼핑몰 교인 세 번째 패턴인 쇼핑몰 교인은 현대 소비사회를 대표하는 교인들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 다. 현대 소비현상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용어로 빨대현상 이라는 말이 있다. 빨대 현상이 란 고속도로나 고속철도가 개통된 이후로, 마치 빨대로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사람들이 이런 편리한 교통시설이 발달된 대도시로 몰려드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16) 이러한 현상 은 교회에서도 드러나게 되는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형교회들은 도시 주변 구석구석에 버스를 보냄으로 그 버스를 타고 교회로 교인들을 끓어 모으는 현상이 크게 있었다. 이것 은 마치 대형 쇼핑몰이 버스를 운영해서 고객들을 끓어 모으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물론 지금은 지역 교회의 항의로 (지역 상인들의 건의로) 과거처럼 버스를 돌리는 교회나 백화 점은 거의 사라졌지만, 여전히 이와 비슷한 현상이 드러나고 있다. 차를 가지고 있는 중산 층 교인들이 크고 작은 이유로 교회를 떠난 이후, 이들은 새로운 브랜드의 교회로 신속하 게 유입되고 있다. 이들은 마치 백화점에서 한 곳에서 여러 가지 질 좋은 물건들을 사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백화점이 운영하는 문화센터에서 제공해주는 프로그램들을 자신들의 경비를 들여서 참여하는 것처럼, 교회에서 제공해주는 각종 문화 프로그램들에 참여하거 나, 교회가 제공해주는 각종 영적인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자신들이 원하는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교회에서, 너무 큰 헌신을 요구받지 않으면 서, 자신이 원하는 각종 프로그램들을 제공받으면서 교회 생활을 향유하고 있다. 브랜드 교회들의 세련되고 다양한 프로그램 제공은 현대 중산층들의 욕구에 매우 적합한 형태로 앞으로 이런 형식은 계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4) 노마드 교인 전술한 세 가지 패턴과는 그 동기나 내용이 사뭇 다른 교회 이동 그룹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노마드 교인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노마드는 길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말 16)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943383&cid=472&categoryid=472
소비시대의 기독교 문화부족: 교회쇼핑족인가? 노마드인가?ㆍ 33 하는 것으로 방향성을 찾지 못하는 단점이 있는 반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는 커다란 장 점이 있다. 이들은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언제든지 자신이 만들어 놓은 공동체에서 떠날 채비도 갖추고 있는 그룹이다. 왜냐하면 현재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공동체가 그들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힘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고정된 문화를 파괴할 힘도 가 지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맞는 공동체를 찾아서 길 위에 서서 있으며, 그 길을 가고 있으며, 한 곳에 머물렀다가는 다시 떠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젊은 세대에 많이 발견되고 있다. (물론 특정 세대의 특징만은 아니다). 교회 속에서 이들이 가 지고 있는 가장 큰 열망 중에 하나는 자신들의 신앙적, 문화적 요구를 함께 들어주고 공유 해 줄 수 있는(이끌어주는 것이 아니다) 리더를 찾고 있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의 문화 코드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작은 공동체를 지향한다. 그리 고 자신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리더를 만나게 되면 이들은 함께 공동체를 형성한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공동체가 최고 혹은 최대의 공동체가 될 것을 희망하지 않는다. 자 신들의 삶을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있으면 그 뿐이다. 이러한 공동체의 모습은 현대 교회에 매우 특이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노마드 현상 혹은 노마드 교인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앞으로 한국 교회의 미래를 이해하기 위 한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5. 소비 한국 사회의 그리스도인: 교회쇼핑족인가? 노마드인가? 현대는 소비사회가 되었다. 분명 이러한 거대한 소비사회가 운영되고 있는 모습을 이해 하는 것은 교회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안타 까운 것은 한국 사회의 현주소이다. 소비사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이를 바탕으로 하는 적절한 대안을 만드는 노력은 없이, 더욱 깊은 소비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실로 한국 사회는 스노보크라시(snobocracy, 속물사회) 신봉 사회가 되어버렸다. 17) 17) 박치현, 한국 사회의 변동과 노마드 신자의 증가, 복음과 상황편집부 복음과 상황 2012년 12월호, 52-53. Snobocracy는 속물을 의미하는 snob와 정치체제를 의미하는 cracy의 합성어이다.
34 ㆍ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이와 같은 속물 사회에서는 모두가 함께 속물이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이다. 홀로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 일은 생존을 위해서는 무의미한 일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 소비부족의 등장은 한국 교회 역시 교회의 본질과 가치를 지키는 일에 실패하고 말았 음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18) 한국 교회의 소비부족(그들이 안개족이든, 가면족이든, 쇼핑족이든, 노마드이든 간에...) 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한국적인 경제상황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현상은 최근 인 구 통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2012년 인구 통계를 통해서 보면, 현재 한국 사회는 1인 가 구가 25퍼센트에 육박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 사회가 무연( 無 緣 ) 사회로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하지 않고 혼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는 것은 매우 심각한 사회현상이다. 또한 한국 노동 인구 중에 48퍼센트가 비 정규직이다. 이는 OECD 가입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로 2위 국가의 23퍼센트보다 두 배를 뛰어넘는 수치이다. 이들은 직업의 불안정성으로 인해서 언제든지 자신의 삶의 자리 를 옮겨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들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 교회가 왜 이렇게 많 은 사람들이 교회를 이동하고 있는지는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 중에 하나이다. 19) 이와 같은 현실인식 속에서 우리는 소비부족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면접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 중에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에 하나는 목회 자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였다. 한국 교회 목회자들은 자신이 미자립교회를 목회하든 소 형 교회를 목회하든 간에 상관없이 모두 조용기 목사를 꿈꾼다. 이러한 모습을 보는 것이 매우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는 한국 교회가 그리고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의 자신의 사역 에 대한 진지함과 상상력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 가 대형 브랜드를 신봉하는 모습은 분명 한국 교회는 심각할 정도로 스노보크라시를 신봉 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을 마련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 필자는 면접을 통해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끌어낸 점들을 함께 생각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 한국 교회는 한국교회내의 소비부족들이 보여주고 있는 관계의 회복에 대한 열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소비 사회를 살아가면서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이 한국교회 교인들에게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이 안개 교인들의 모습처럼 관계 를 피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가면 교인들처럼 다중적인 관계를 형성하려고 하기도 18) 같은 글, 53-54. 19) 같은 글, 54-55.
소비시대의 기독교 문화부족: 교회쇼핑족인가? 노마드인가?ㆍ 35 한다. 교회를 쇼핑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도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이며, 노 마드 교인들 역시 공동체를 향한 열망이 매우 크다. 한국 교회는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하고 관계 중심의 교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여러 방향들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 한국 교회는 교인들의 참여에 대한 다양한 요구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한국 교회의 적잖은 교인들은 과거에 목회자들에 의해서 만들어 준 큰 교회를 짓는 아름다 운 비젼(?) 에 따라서 움직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대형교회에 출석하면서 대 형교회의 프로그램을 즐기는 교인들은 증가하고 있지만, 교회 건축을 새로 시작하는 교회 에서는 많은 교인들이 떠나고 있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쉽고 편리한 것을 추구하는 것으 로 보이는 이 현상의 이면에는 자신들의 요구에 맞는 종교적인 혹은 영적인 욕구를 채우고 자 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교회는 이런 현상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이러한 경향들을 긍정적인 측면으로 발전시키면서 교회를 이끌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자신들에게 맞는 교 회라면 굳이 대형교회가 아니더라도 출석해보고 싶은 요구들이 교인들에게 많이 있기 때문 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또 하나의 세련된 브랜드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옮겨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 교회 자체가 자신들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만드는 자신들만의 색깔이다. 이를 위해서 한국 교회는 다양한 참여의 요구들을 듣고 실행하도록 해야 한다. 끝으로, 한국 교회는 노마드식의 삶에 대한 이해와 그 대안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실, 교회마다 젊은이들이 떠난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들을 잡기 위해서 각종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그램을 제공해주는 브랜드 교회에 젊은 이들이 많이 모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기성 교회와 맞지 않는 자신의 삶의 모습을 받아주고 이해할 수 있는 공동체를 열망하고 있다. 이들은 객관 적 진리 보다는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공동체의 주관적 진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거대한 이야기보다는 작은 이야기들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포스트모던 문화에 영향을 깊게 받은 이들에게 한국 교회가 올바른 기독교 공동체 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20) 왜냐하면 성경 속의 많은 이야기들은 이 들의 고민을 비슷하게 담고 있으며, 성서가 말하는 공동체는 정형화된 틀에 박혀 있는 공 동체가 아니라, 노마드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21) 한국 교회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깊 은 이해와 공감을 통해서 앞으로 미래 교회를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20) 새로운 청년 사역이 온다, 113. 21) 같은 책, 117-137.
36 ㆍ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6. 나가는 말 본 연구를 진행하면서 필자가 가지고 있었던 고민은 크게 두 가지였다. 소비문화가 사회 와 교회에 미치는 영향과 결과에 대한 것이 그 첫 번째 고민이었고, 두 번째는 과연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교회가 어떠한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처음 필자는 소비부족들이 가지고 있는 속물근성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노마드식의 모습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헌을 연구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과 정 속에서 과연 노마드가 대안이 될 수 있는가하는 질문에 빠지게 되었다. 필자가 깨닫게 된 것은 안개족인든, 가면족이든, 쇼핑족이든, 노마드이든 각기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독 특한 소비문화가 있다는 점이다. 그 속에는 각기 장점과 단점, 혹은 안타까운 점과 다행스 러운 점이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 어느 것 하나가 다른 것들의 단점에 대한 대안이 되기에는 부족함을 느꼈다. 오히려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하고 대안을 줄 수 있는 특색 있는 교회들이 많이 나오길 바라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크기에 상관없는 그 교회 자체가 만들 수 있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진지한 공동체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편, 연구를 진행하면서 많은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 중에 가장 큰 것은 객관적인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물론 데이터가 충분하다면 이런 연구가 필요가 없겠 다는 생각에 연구의 보람을 느끼고 있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판을 위한 비판을 만들 어내는 문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이 연구는 대안 에 대해서 고민하는 연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는데, 그런 부분에서 많이 미흡함을 느꼈다. 필자가 느낀 미흡함은 첫째,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을 넓은 지역에서 만나서 더 깊은 이야 기들을 들어보지 못했으며, 둘째, 연구 과정 중에서 필자가 내린 여러 분석에 대한 전문가 들의 조언을 충분히 듣지 못했고, 셋째, 연구 방법론 중 면접의 방법에 필자가 이분야의 다 른 전문가들에 비해서 익숙하지 않아서 그 데이터를 충분하게 생산해내지 못했다는 점이 다. 앞으로 더 깊은 연구를 위해서 이와 같은 점들이 충분히 논의 되면서 연구가 발전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면접 중에 나누었던 한 가지 이야기를 더 인용하고 본 연구를 갈무리하고자 한
소비시대의 기독교 문화부족: 교회쇼핑족인가? 노마드인가?ㆍ 37 다. 목회자들과의 대화중에서 소비사회에 여러 문제들을 생산해내고 있는 주체가 교회인가 아니면 회중인가 하는 질문을 필자가 제기했다. 이 질문에 대한 한 목회자의 현답이 이 연 구의 마무리 문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싫든 좋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소통의 가장 중요한 도구 중에 하나입니다. 교회가 노력해야 할 것은 교회 내에서 상업성을 완전하게 제거하는 일이 아니라, 이 시대 와 소통할 줄 아는 신앙인을 키우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38 ㆍ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참고문헌 교회성장연구소. 한국교회 교인들이 말하는 교회 선택의 조건: 한국교회 교인 수평이동 에 대한 연구. 서울: 교회성장연구소, 2004. 박정자, 박정자의 노마드 강의: 마이크 잭슨에서 데리다까지. 서울: 도서출판 기파랑, 2009. 박종균. 소비사회 문화와 종교. 한국기독교연구소. 세계의 신학 2000년 여름, 박치현. 한국 사회의 변동과 노마드 신자의 증가. 복음과 상황 편집부 복음과 상황 2012년 12월. 이동연. 문화부족의 사회: 히피에서 폐인까지. 서울: 책세상, 2005. 이봉례., 이성근. 문화부족의 형성과 발전의 메카니즘: 포스트 모더니즘적 접근. 성신 여대 경영연구소. 여성과 경영. 제 1 권, 제 1호, 2008년 8월 Baudrillard, Jean. La Societe de Consommation. 소비와 사회. 이상률 역. 서울: 문예출판사, 1991. Jethani, Skye. The divine Commodity. 하나님을 팝니다. 이대은 역. 서울: 죠이선 교회풀판부, 2011. Long, Jimmy. Emerging Hope: A Strategy for reaching Postmodern Generations. 새로운 청년 사역이 온다, 신현기 역. 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9.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943383&cid=472&categoryid=472 http://www.onnuri.org, 2013년 9월 8일 온누리뉴스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인생은 아름답지 않다 : 한국교회 문화인종주의족에 관한 한 연구 구 미 정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길 잃은 교회와 새로운 종류의 그리스도인 부족 : 미셔널족의 출현과 전망을 중심으로 박 양 식 (한신대학교)
길 잃은 교회와 새로운 종류의 그리스도인 부족: 미셔널족의 출현과 전망을 중심으로ㆍ 43 길 잃은 교회와 새로운 종류의 그리스도인 부족 : 미셔널족의 출현과 전망을 중심으로 박양식 (한신대학교) I. 머리말 역사와 사회의 변화를 깨닫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런 시대적 변화를 인지하는 것은 새로이 나아갈 길을 보게 하기 때문이다. 시대적 변화를 인지하게 된다면 자신이 서 있는 좌표를 파악하게 되고, 자신의 좌표를 안다면 거기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고 움직이 게 된다. 이로써 일어나는 시대적 전환의 상황에 대한 대처는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낼 것 이다. 모더니티 시기가 끝났음을 인지한 사람들은 포스트-모던의 도래를 선포하였다. 비슷하 게 교회도 포스트-기독교(post-Christianity) 시대를 인지하고 그 나름으로 대처하였다. 정체 모를 포스트 시기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이런 저런 논의를 하면서 변화의 상황을 파악하려는 다각적인 노력을 보였다. 교회도 그런 노력을 좇아 자기 상황을 알아내려는 시 도를 강구하였다. 1980년대부터 활발하게 전개되어 온 포스트에 관한 논의는 2010년대에 들어서서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는 듯 보인다. 모더니티와는 확연히 다른 징후들을 파악 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대안적 모색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유일한 패권국 미국이 중국과 함께 G2를 이룸으로써 국제질서의 재편이 이루어졌다. 러 시아 대통령 푸틴이 세계 영향력 1위로 부상한 것도 국제질서의 재편을 보여주는 또 하나 의 징후다. 더욱이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시민사회는 물론이고 주요국가 원수들에게까 지 무차별적 도청과 감시를 했다는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의 폭로는 기득권 유지를 위한 국가 또는 세계기구의 독점적이며 조작적인 행태에 제동을 거는 것으로서 이 전과 단절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징후이다.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 (Occupy Wall Street)는 구호와 함께 서민들의 경제적 불균형
44 ㆍ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이 부상한 것은 1%에 맞서려는 서민들의 자발적인 대안 모색의 한 형태다. 지역 협동조합이나 공동체에서 자급자족적 시스템의 작동 가능성이 확인되는 성공 사례들의 등장도 미래 사회의 출구를 보여주는 대안적 모색의 일종이다. 블로그와 뉴스의 만남을 통해 시민 참여의 저널리즘을 표방한 허핑턴포스트 라는 인터넷 매체의 등장도 권 력과 이데올로기에 자유로운 글로벌 네트워크로 진화, 발전하는 것으로서 미디어의 재편과 함께 미디어 역할의 재조정을 향한 대안적 모색의 한 모습이다. 이런 시대적 흐름과 다르지 않게 교회도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전통 교회의 모습이 새로운 형태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교회, 이머징 교회, 유기 적 교회, 관계적 교회, 교회 안의 교회, 교회 밖으로 나온 교회, 어쿠아 교회, 리퀴드 교회, 카페 교회, 미셔널 교회 등 각양각색의 이름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모 습이 점차 선명해지고 있기는 하나 그 모습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텔레비전의 한 프로가 하나의 시사점을 던져 주었다. 정글의 법칙 이 그 것이다. 병만족이라는 부족원들은 병만 족장의 인도 하에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원초적 환 경에서 생존하는 과제를 수행한다. 아프리카 열대 지역부터 시베리아 툰드라 지역까지 그 리고 무인도, 정글, 캐리비언, 고산, 동토, 사막, 사파리 등 다양한 조건의 환경 속에서 기 본 도구만으로 생존해 가야 한다. 일단 어느 지역이든 주어진 공간에 들어가면 집을 지어 야 하고 현지에서 식량을 조달하여 먹어야 한다. 추위를 피하거나 조리를 하기 위해서 불 을 피우는 것도 필수다. 이 과정에서 병만족의 부족원들은 이제껏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 곧 애벌레 같은 것도 먹어야 하고 다양한 위험 상황들을 이겨내야 한다. 새로운 거 주 지역에 들어가 생존하는 기술을 습득하면서 적응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병만족은 원초 적인 삶의 조건으로 대표되는 정글의 법칙을 터득하며 어떤 조건에서든 적응하여 생존하 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을 보는 시청자들로서 힘든 조건에서 살아가는 모습에 감흥을 느낀다. 금요일 예능 프로그램 시청률 1위를 유지하는 정글의 법칙 에서 병만족이 보여주는 모습 은 거친 영적 환경에서 변신을 모색하는 교회에게 의미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것은 시 대적 전환에 따라 교회 안에도 생겨났을 새로운 종류의 종족을 떠올리게 한다. 교회의 모습 이 변하고 있다는 것은 그 안에 새로운 종류의 그리스도인도 생긴다는 것인데 그들을 주목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고는 병만족의 출현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교회에 적용하여 교회 안에 존재하는 새로운 종류의 그리스도인 종족 곧 교회 안의 문화부족을 살펴보고자 한다.
길 잃은 교회와 새로운 종류의 그리스도인 부족: 미셔널족의 출현과 전망을 중심으로ㆍ 45 교회의 문화부족에 대한 논의가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를 두 가지만 지적하자면 우선은 교회 형태의 변화에만 주목해 오던 것에서 미래 교회를 구성할 교회 구성원에 대한 논의로 전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회 형태가 변하면 사람들이 교회에 올 것이라 생각하 지만 이제 그런 정도로는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오게 하는 데 한계에 도달한 듯하다. 이에 대한 대안이 바로 사람 특히 교회 구성원의 실질적 변화를 주목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 안 문화부족에 눈을 돌리게 만드는 이유이다. 다른 이유는 사람을 주목하여 교회 안 문화부족을 이해하게 되면 거친 영적 환경을 돌파해 나갈 실제적인 길을 찾을 수 있기 때 문이다. 시대적 전환에 따른 사람들의 변화를 깨우치지 못하면 그들에게 제대로 접근할 수 없다. 미래 교회의 출구를 찾는 과제의 실마리는 바로 새로이 출현한 교회 안의 문화부족 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본고는 첫째로 시대적 전환에 따른 새로운 문화부족의 출현과 함 께 교회 안에 생긴 새로운 종류의 그리스도인을 알아볼 것이다. 둘째로 문화부족으로서 미 셔널족의 형성과 정체를 알아볼 것이다. 셋째로 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그러한 문화부족의 교회의 문화부족으로서 미셔널족의 출현 배경과 문화부족으로서의 성격 규정을 논할 것이다. 이는 교회 안 문화부족의 개념에 대한 설명과 긍적적 측면의 미셔널족의 등장에 관한 설명이 되리라 생각된다. 둘째로 미셔널족 의 특성에 대한 이해를 구할 것이다. 이로써 교회 안 문화부족으로서 미셔널족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셋째로 미셔널족의 특징과 잠재력을 알아볼 것이다. 끝으로 한국 교회의 미래를 전망해 봄으로써 마무리할 것이다. II. 시대적 전환에 따른 새로운 문화부족의 출현 1) 시대적 전환에 출현한 문화부족들 시대가 바뀌면서 사람들도 변하기 마련이다. 그런 가운데 새로운 종류의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일어났다.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중세 말에 새로운 시기의 도래와 함께 등장한 사람 들이 휴머니스트들이다. 고전을 통해서 인간을 재발견하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설정하여 새 시대를 일구어낸 휴머니스트들은 일종의 역사적 문화부족이었다. 역사라는 긴 시간이 아니라 세대라는 짧은 시기만 생각해도 그런 식의 새로운 문화부족들은 여러 명칭으로 등
46 ㆍ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장하였을 볼 수 있다. X세대란 말을 시작으로 Y세대, N세대 또는 386세대, 디지털 세대 등이 그것이다. 도구 사용과 문화 취향에 따라서도 문화부족들이 명명되었다. 엄지족은 휴대폰을 무기로 하여 자기의 행동방식을 표현한 문화부족이라면, 보보스족은 부르조아 계급에 속해 있으면 서도 보헤미안적 문화취향을 보이는 문화부족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장난감에 푹 빠진 키 덜트족은 소비패턴에 맞추어 드러난 또 하나의 문화부족이다. 문화부족이란 말은 공통의 문화적 취향과 지향점을 가진 주체들을 인류학적 의미로 표현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 이러한 문화부족의 출현은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파악된다. 문화부족은 기존의 상식과 관습을 뛰어넘는 새로운 문화주체로 2) 등장하여 변화 하는 현실 속에서 자기 나름의 생존 방식을 터득해 간다. 그럼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생활 방식을 보여주는 문화부족은 그 존재의 현시를 통해 시대적 전환 속에서 꿈틀대는 역동적 움직임들을 감지하게 하는 센서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문화부족들은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다. 특히 전환기에는 더욱 다양 한 문화부족들이 출현하게 마련인데 이런 문화부족들의 출현을 단순히 하위문화적 현상으 로 보지 않고 그들을 통해 시대 변동의 운동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현 상 너머에 있는 역사적 동력을 감지하여 미래 사회에 대한 대응력을 더욱 키워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시대를 향유하는 문화부족을 잘 들여다 볼 때 그들만의 독특한 생활방식 과 삶의 적응력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현실 상황과 미래 전망에 대한 단초들을 얻을 수 있 다. 그래서 더욱 문화부족에 대한 발견과 묘사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2) 새로운 종류의 그리스도인 찾기 이런 맥락에서 교회 안의 문화부족을 살피게 되는데 그에 대한 설명은 개인적 차원에서 발견된 이력을 밝히는 작업으로 나타난다. 아직 그 정체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인류학적 관 찰 속에서 보고서 형식의 기술이 적합하겠다는 판단에서이다. 문화부족의 관점에서 제일 먼저 접한 것은 새로운 종류의 그리스도 이란 용어다. 교회 형태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종류의 그리스도인이 출현했다는 것은 이머징 처치(Emerging Church)의 선두 주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브라이언 D. 맥라렌(Brian D. McLaren) 목 1) 이동연, 문화부족의 사회: 히피에서 폐인까지, 책세상, 2005, 20. 2) Ibid., 23.
길 잃은 교회와 새로운 종류의 그리스도인 부족: 미셔널족의 출현과 전망을 중심으로ㆍ 47 사의 새로운 종류의 그리스도인 이란 책에서 처음 접했다. 한 목사와 그 딸의 과학교사가 대화하는 소설적 형식으로 이야기되는 것은 인생의 가장 긴급한 영적 질문들에 대한 지혜 는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로 보여주는 내용들을 보 면 매일 하는 하나님과의 개인적 교제는 제도 교회 구조보다 더 중요하다거나 믿음은 신조 의 체계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생활방식에 관한 것이라거나 진정으로 착하게 사는 것이 교리적으로 옳은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목사와 그 딸의 과학교사는 새로운 종류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3) 이로써 저 자는 교회 회중과 그 회중의 영적 생활을 부흥시키기 위한 접근을 새로이 제시하였다. 맥라렌 목사는 그렇게 자신의 책에 등장시킨 인물들을 가리켜 새로운 종류의 그리스도 인 이라 명명하였다. 새로운 종류의 그리스도인이란 말이 크게 주목된다. 그 이유는 그리스 도인도 종류가 있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전의 그리스도인과는 어떻게 다른가 하는 의문 때 문이다. 그리스도인을 종류로 나누어 보라면 일단 드는 생각은 교파를 떠올리게 된다. 종교개혁 을 통해 가톨릭을 거부한 프로테스탄트는 루터파, 칼빈파를 비롯하여 재세례파, 성령파 등 으로 갈라졌다. 이후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삼고 믿음과 은총으로 구원얻는다는 복음의 진 수는 공감하면서도 교리의 강조점이나 교회 운영이나 국가와의 관계설정에서 의견을 달리 하여 여러 교파로 나뉘는 일이 발생했다. 이는 교리에 입각한 특징적 분류이지 교회 안에 출현한 문화부족에 대한 명칭적 구분은 아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지 500년이 다 된 상황에서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교파로 갈라 져 있을 뿐 아니라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받고 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해 볼 때 교파 별 교 인을 가리켜 다른 종류의 그리스도인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맥라렌 목사도 새로운 종류의 그리스도인을 통하여 그런 교파 별 특성을 강조하려 한 것은 아니다. 그가 말하려 했던 것은 영적 차원에서 기존 교회에서 말하는 교인들과는 전적으로 구별되 는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런 구별된 새로운 종류의 그리스도인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런 대상을 모델화할 때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있다. 그것은 새들백 샘 과 같은 것이다. 새들백교회를 세운 릭 워렌(Rick Warren) 목사는 새로운 교인을 만들기 위한 전도자를 하나의 전형적인 모델을 만들어 새들백 샘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의 나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다. 대학 이상 3) Brian D. McLaren, A New Kind of Christian: A Tale of Two Friends on a Spiritual Journey, Jossey-Bass, 2010.
48 ㆍ 2013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정기세미나 졸업자이고 단란한 가정을 꾸린 전문직이나 관리인거나 성공한 기업가이다. 부유층에 속하 나 비싼 집 때문에 은행 빚이 있다. 건강과 신체 관리에 우선 순위를 부여하며 현대적 팝과 컨트리 뮤직을 좋아한다. 작은 모임보다는 익명을 요하는 큰 모임을 선호한다. 그의 옷차 림은 정장보다는 캐쥬얼 복장이다. 이러한 샘의 또 다른 특성으로는 조직화된 종교를 싫어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믿지만 조직화된 교회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4) 이런 사람이 비조직화된 교회로 끌어들이면 새로운 종류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까? 그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2013년 현재에 와서 그 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시대나 영적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목회자가 자신 의 비전에 맞춘 교회 목적에 따라 교육하여 양육한 교인이 새로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 는 것은 섣부른 일이다. 제도 교회 안에 정착한 사람들을 가리켜 새로운 종류의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기 어렵다면 어떤 이들을 새로운 종류의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 기존의 교회 틀에 서 벗어난 그리스도인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개인들은 여기 저기서 발견된다. 그러 나 그들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영적 혁명가라고 부를 수 있는 그들은 교회관 과 사역관에 있어 이전과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행동함으로써 기존의 교회 방식과는 다른 성장과 섬김의 대안들을 개발, 제시한다. 이들이 앞으로 어떤 대안을 가지고 성취하는 것 을 보여줄지는 아무도 예단할 수 없다. 5) 그만큼 그들의 미래는 열려져 있다. III. 문화부족으로서 미셔널족의 형성과 정체성 1) 개별적 이탈과 부족의 형성 교회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교회 안팍으로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그것은 교회 에 대한 외부의 시선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널리 인정된다. 그리하여 교회 안 으로 와서 신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교회 안 상황도 어렵다. 교회에서 이탈해 가는 교인들이 지속해서 생기는 것이다. 우리가 숙고해 보아야 할 사례 하나를 들 4) Rick Warren, 새들백교회 이야기: 목적이 이끌어가는 교회, 도서출판 디모데, 1997, 192-195. 5) 박양식, 이머징 문화 속의 미셔널 교회 만들기, 신학과 선교, 통권 40권, 2012, 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