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Spring 12 UNHCR UN.?
난민보호 캠페인 월계관 형상은 UNHCR이 유엔 총회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은 UN 기구임을 A laurel wreath symbolizes UNHCR is mandated by the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사람 형상은 난민을 비롯한 UNHCR의 모든 보호대상자를 The person symbolizes persons of concern to UNHCR 두 손 형상은 UNHCR의 난민보호 노력과 의지를 상징합니다. Sheltering hands symbolizes UNHCR s commitment and efforts to protect refugees and persons of concern.,? 목차?,.,, 3,580, 03 Invisible People,. 04, 3D, 05 09 2013 10 With You 12 14,,, Ouda Ag Mohamed, ABY Philomene, BABIKIR Mohamed, 2002, 1999....,,?.,...,, 3,580.,. * 유엔난민기구 소식지 With You는 수신 동의를 하신 후원자분들께 연 4회(3월, 6월, 9월,12월) 우편으로 발송뒵니다. * 후원자님의 주소가 부정확한 경우 우편물이 반송되니, 한국대표부 홈페이지(www.unhcr.or.kr) 나의 후원(MY PAGE)에서 후원상태와 주소를 확인해주세요! 발행인 더크 헤베커 발행처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발행일 2014년 3월 제공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대외협력팀 디자인 인쇄 (주)이팝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각 난민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03
한국대표부 세계 속의 유엔난민기구 소식 세계 속의 유엔난민기구 3D, 2 7 3 2 < >.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는 소박한 명제에서 출발 한 이번 전시는 제일기획의 사회공헌사업과, 사회적 이슈에 대중 의 참여를 유도하는 서울시립미술관의 포스트 뮤지엄 비전에 그 기반을 두었습니다. 작년 12월, 제일기획 프로젝트 팀은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의 주선으로 서울시 근교에 거주하는 난민과 서아프리카 니제르, 니 11. 아메시 외곽에 거주하는 난민 등 총 30여 명을 직접 만나 촬영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3D 카메라로 촬영하고 3D 프린터로 인 쇄된 난민 미니어처는 미술관 곳곳에 배치되었으며, 관람객은 스 3,.,,.,. 마트폰의 NFC 기능 또는 QR 코드를 통해 각 난민들의 사연을 들. 을 수 있었습니다. 전시 기간 중 총 10,000명 이상이 전시관을 방문하였으며, 80명 이상이 유엔난민기구의 정기 후원자로 서약하였습니다.,? 어린이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회의 본 모습을 알 수가 있다. 넬슨 만델라 110 299-20, 10 1-75% 12-77%,.. * NFC (Near Field Communication) 기술 : 10cm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서 다양한 무선 데이터를 주고받는 통신 기술 * 3D 프린터 기술 : 2D 프린터가 활자나 그림을 인쇄하듯이 입력한 도면을 바탕으로 3차원의 입체 물품을 만들어내는 기술 *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전시 메이킹 필름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50 650-2 400 80, 600 55 -,, 04 05
,? 36,622 41,962 78,584 1,320 2,440 3,700 78,584 36,622, 41,962,.. -, 16, 3,700 2,440, 1,320..,.., 15, 800, 1 1,379, 3,500 49% 1,700 2013 4 75% 27% 1 1,379 - IMC, 255 75% - 27% 3...,. 49% 1,700 3,500. War Child Holland,,,,.,. 54%, 73% 29%, 54%, 73%, - - 29% 106..,.. -, 7 -, 56%, 80% 10 20 -,,,,,,,, 10 20 -, 80%, 56% - - 20%?, 17-2013 3-2012~13 4 06 07
한국대표부 소식 2013 전 세계 난민보호 활동은 여러분의 참여로 만들어집니다. 2013년 유엔난민기구는 정부 및 민간에서 참여해 주신 여러분 덕분에 더욱 많은 난민을 보호하고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2013년 1월 1일 부터 12월 31일까지 대한민국 정부 및 민간에서 모아진 후원금 총액은 미화 11,327,226달러이며, 전 세계 총 모금액과 지원 상세보고 및 내역은 2014년 6월 유엔난민기구 제네바 본부에서 출간하는 연례 보고서(Global Report 2013)를 통해 보고될 예정입니다. 3., 12,,,, 5,,,,, 300.,. 13 4,500, 296,144,053 78% 2014 3 13 2 7,300, 36,002,650 87% 2014 3 13 *...,. 5. 10 25. 50. 100. " " www.unhcr.or.kr blog.naver.com/unhcr_korea happylog.naver.com/unhcr www.unhcr.or.kr/futureofsyria 02-773-7075 407537-01-004288 UNHCR 소식지에 동봉한 약정서를 작성해 보내주시면 시리아 난민을 돕기 위한 일시후원에 동참 가능합니다. 기존 후원자를 비롯한 여러분 모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 2013 594., UNHCR : 2013,,., 2012 2,943,617,923 JPO *,,. : UN - UN UN. 1.7% 98.3% 5,888,315,630-72 60. 5,791,094,933 98.3% 97,220,697 1.7% 2013 5,888,315,630 : -.,. SBS TV_ SBS TV_ MBC W 0.1% 0.1%, / 54% 46% 5,946,688 0.3% 0.6% 0.9% : -. 82.3% 5,888,315,630 1.3% 2.0% 4.1% 8.4% 4,847,875,209 82.3% 496,686,000 8.4% 239,624,700 4.1% 118,019,459 2.0% 75,124,599 1.3% 50,241,427 0.9% 33,664,236 0.6% 16,890,000 0.3% 7,240,000 0.1% 2,950,000 0.1% -,. 08 09
With You가 만난 사람 11 6,000 410. Stella Ogunlade. Q? A 필리핀 사회복지개발부의 주도 하에, 유엔난민기구는 타클로 반과 그 주변 지역에서 일하는 모든 인도주의 기구들의 보호 업무를 조정하는 보호 클러스터(UN Protection Cluster) 를 이끌고 있으며, 저는 보호 클러스터 조정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호 업무 를 모니터링하고 조정하며 태풍 피해자들의 문제와 수요를 평가하 고 있습니다. 필리핀 정부와 다른 인도주의 기구들이 이들의 필요에 잘 대응할 수 있게 옹호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국 내실향 사태에 대한 유엔 가이드 원칙 과 같은 보호 기준을 관련당 국, 경찰, 군, 인도주의 기구들에 기술/정보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밖 에도 출생신고서와 같은 서류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재발급을 돕는 다거나, 여성 경찰관의 배치, 사회심리 상담 지원과 같은 다른 업무 들도 돕고 있습니다. 특히, 보호 클러스터는 아동 보호 및 성폭력 예방 대응 활동에 초점 을 맞추어 일하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방수천, 옷, 매트리스, 생계 도구 등의 분배를 감독하면서, 지난주부터 유엔난민기구 타클 로반 사무소의 소장 역할도 맡고 있습니다. Q? A 현장의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고 빠른 변화와 발전상에 적응하 는 것, 이것은 어느 긴급구호 현장에서나 처음에 겪게 되는 힘든 부 분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국내실 향민 지역, 난민 이동 지역, 귀환민 지역의 문제를 동시에 다뤄야 했 어요. 주말까지, 혹은 몇 시간 눈을 못 붙이는 상황에서도 열심히 일 하는 긴급구호팀 직원, 필리핀 현지 직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 한 것이었지요. 대응하고 있는지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곳 사람들이 집을 새로 짓고 아이들을 다시 학교에 보내고 스스로 일을 하면서, 다시 예전의 평범한 삶을 일구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어 좋 았습니다. 물론, 도움을 받은 필리핀 사람들이 직접 찾아와 감사를 전할 때면 더없이 기쁘고요. Q? A 긴급구호 현장에서는 현지의 상황과 문제점을 재빨리 파악하 고 판단하여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전 세계 출 신의 다양한 직원들, 현지 정부 관계자들과 일할 수 있는 강한 팀원 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보호와 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할애해 헌신할 필요도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 는 것 또한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해요. 가령 제 동료들 몇 명 은 아직도 텐트에서 살고 있고 그래서 지난 2개월간 홍수의 피해를 몇 번 입기도 했어요. Q. A 필리핀 태풍이 지나간 지 4개월, 필리핀 긴급구호 현장은 조금 씩 회복 단계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가족들이 인도주의 지원과 보호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그나마 복구 가능한 돌아갈 곳이 있는 가족들에게는 집과 시설을 재 건하는 데 긴급한 도움이 필요하고, 돌아갈 곳조차 없는 사람들은 다 시 삶을 일구어 나갈 새로운 지역을 찾아야하는 위기에 놓여 있습니 다. 현재까지 이들이 이동할 수 있는 지역은 그 수가 많지 않고 국제적 기준에 맞는 거처가 더욱 개발되고 개선되어야 합니다. Q. A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스텔라 오군라데입니다. 서울에 위치한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소속 법무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법률 분 야를 전공했고, 차드, 콩고민주공화국, 스리랑카와 같은 긴급구호 지 역을 포함해, 아프리카와 아시아태평양 지역 유엔난민기구 사무소에 서 지난 10년간 일했습니다. 그러다 태풍 하이옌의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지역 중 하나인 필리핀 타클로반(Tacloban)의 긴급구호를 지원하 기 위해서 지난 1월 초 욜랜다(Yolanda) 현장으로 파견되었습니다. Q? A 처음 현장에 도착했을 때 말문이 막혔습니다. 장난감처럼 부서 져버린 주택들, 도심 한복판에 잔해를 내보이며 들어앉아 있는 대형 선박들, 빌딩에 매달려있는 차들까지, 이런 환경 속에서 많은 사람 들이 유엔난민기구가 제공한 텐트, 혹은 학교나 공공시설에서 살고 있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곳 사람들이 빈손으로 시작해 자신들의 집을 스스로 지으며 보여준 회복력에 크게 감동받았어요. 매일 집들이 조금씩 세워졌고, 상점과 음식점이 하나, 둘 문을 열었 으며, 사람들은 다시 생계를 꾸려나가기 시작했죠. Q A? 솔직히 말하면 이곳에서의 모든 경험이 가치있다고 느낍니다. 우선, 필리핀 정부와 국제 사회가 태풍 이재민들에게 긴급 쉼터와 구호 물품을 제공하면서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이들의 필요에 필리핀 정부와 국제 사회는 필리핀 사람들이 예전의 일상으로 완전 히 복귀할 수 있도록 이들의 필요에 계속해서 대응해가고 있습니다. 유엔난민기구는 이들이 더 나은 삶 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필리핀 정부와 계속 협력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과 같은 후원자 분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죽음과 절망만이 가득하던 필리핀 긴급구호 현장에서, 조금씩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참여해주신 후원자 여러분 덕분 에 가능했습니다. 유엔난민기구는 48만여 태풍 이재민들에게 담요 8만개, 방수천 6만개, 텐트 1만개, 물통 3만개, 조리도 구 1만 5000천개, 태양광 손전등 1만 5000천개 등 생명을 구하는 물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필리핀 긴급구 호 상황이 안정적으로 마무리되는 그날까지 유엔난민기구와 계속해서 함께 해주세요.! 10 11
난민배움터 Robert Capa 1913~1954 8 2 10 28 100 11 7,000. 20. Robert Capa,. 로버트 카파는 191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서 양복점을 운영하는 가난한 유대인의 아들 로 태어났습니다. 앙드레 에르노 프리드먼 (Endre Erno Friedmann)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가던 그는 미클로스 호르티(Mikolos Horthy) 장군의 극우 체제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17살 의 나이에 모국 헝가리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 는 언론학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 베를린으로 건너갔고 학비를 벌기 위해 포토 에이전시에서 암실 보조원으 로 일하며 경력을 쌓아갔습니다. 1933년 히틀러가 독일을 집권 하자 신분에 위협을 느낀 그는 다시 프랑스 파리로 떠났습니 다. 헝가리에 남겨진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나치 강제 수용소 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파리에서 재정착한 로버트 카파는 그곳에서 역시 유 대인 난민이었던 보도사진가 게르타 포호릴(Gerta Pohorylle)을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유대인 신분을 숨기기 위해 미국인 사진가 행세를 하다가 각 각 로버트 카파, 게르다 타로로 이름을 바꾸고 본격 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36년 그들은 스페 인으로 건너가 스페인 내전 상황의 모습을 생생 히 사진에 담아낸 것으로 보도사진가로서의 명 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인 내전 초반에 그가 찍은 사진 쓰러지는 병사 는 머리에 총알 을 맞고 사망하는 병사의 순간을 그대로 담았 고, 그 사진이 라이프 지에 실리면서 로버트 카 파는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이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전쟁 보도사진가로 불리며 명성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또한 로버트 카파는 제2차 세계대전 당 시 북미, 시칠리아, 그리고 노르망디에서의 연합군의 승리를 담아내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펼치는 병사들을 촬영한 그는 탄환이 빗발치고 주위 병사들이 죽어 나가는 혼란 속에서도 106장이나 되는 사진을 찍었고, 그의 사진 에서 보이는 흔들리는 초점은 전쟁의 긴박함을 충분히 느끼게 합니다. 1945년 로버트 카파의 경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는 영화배우 잉그리드 버그만과 2년간 만나며 헐리우드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로버트 카파는 영화배우 게리 쿠퍼와 진 켈리 같은 유명인사들 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으며,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화가 파블로 피카소 등의 거리로 내몰린 난민들은 운명의 손에서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다. The refugees on the road are in the hands of fate, with their lives at stake 친구를 사귀며 활동의 반경을 넓히게 됩니다. 또한 1947년 로버 트 카파는 사진작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과 데이비스 시무어 등과 함께 엘리트 보도사진작가 그룹 매그넘 을 창립하며 시 대를 기록하는 보도사진이 갖는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당신 이 다가가지 않아서다 라는 말을 남긴 로버트 카파는 피사체의 극적인 순간을 담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 놓을 만큼 헌신적이었습니다. 그는 1954년 라이프 잡지사로부터 인도차이나 전쟁을 취재해 달라 는 요청을 받아 베트남으로 향했고, 후송차량 에서 내려 군인들과 함께 걸으며 사진 촬영을 하던 중 지뢰를 밟아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 다.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도 한 손에 카메 라를 쥐고 있었던 그는 결정적 순간의 기 록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던 전설적인 사진작가였습니다. 유태인의 신분으로 태어나 모국인 헝가리를 떠나 독일, 프랑스, 그리고 미국을 전전하며 41년 의 불안정한 삶을 살았던 로버트 카파. 그가 남긴 7 만여 점의 전쟁 사진들은 단순한 시대의 기록을 넘어 해 석되고 있습니다. 그의 남동생인 코넬 카파의 증언처럼, 로 버트 카파는 평화 사진작가로서 전쟁뿐 아니라 전쟁터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초점을 맞추어 전쟁 중에도 평범함을 유지하려 노력하 는 사람들 의 모습을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거리로 내몰린 난민들은 운명의 손에 서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다(The refugees on the road are in the hands of fate, with their lives at stake). 로버트 카파는 본인의 삶을 증언하기라도 하듯 전쟁통에서 발 생한 무고한 난민들의 모습을 사진 속에 남기며 그들의 갈 곳 없는 처절한 삶을 세 상에 알리려 했습니다. 위대한 종군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 그도 난민이었습니다.?,,..,, 2013 7. 6,765 : 1,923 : 180 : 377, 2014 1 31 12 13
# #... 2010 IKEA Foundation 2014. 2 3 ~3 29, 180 2,.. 4 5 16,... 4..,.. 2016 3. 40 300, LED 1 1 1.3.,,,,,. 1.,. lyn. 2012 6..,....,.., /. 1 3 50.. 1 7,, 1. 1,. 3 2011 3... / 4 5. 715,740.. # 2010 4 MBLAQ.,.,,? 2012,?...?.?... http:// bit.ly/ 11,,. 9,952,200. Girl Fit 5, 2 Sentinel Girl Fit 126. 70. 1 3 100... 3. 20~30,.,? KOICA..,.,.,,. * 후원에 참여해주신 모든 미르 일본 팬 여러분, 고맙습니다! #., 2~3.,,. 14 15
전화 02-773-7272 이메일 withyou@unhcr.or.kr 홈페이지 www.unhcr.or.kr 블로그 blog.naver.com/unhcr_korea 해피빈 happylog.naver.com/unhcr 페이스북 www.facebook.com/unhcr.korea 기업후원 02-733-7075 후원계좌 국민은행 407537-01-004288 (예금주 : 유엔난민기구 혹은 UNHCR)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무교로 6 (을지로 1가) 금세기빌딩 7층 유엔난민기구 Print using soyink 유엔난민기구는 환경을 생각하여 콩기름 잉크를 사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