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면서 소설이 아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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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를 북한에서 영화의 주제곡으로 사용했다든지, 남한의 반체제세력이 애창한다 든지 등등 여타의 이유를 들어 그 가요의 기념곡 지정을 반대한다는 것은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는 반민주적인 행동이 될 것이다. 동시에 그 노래가 두 가지 필요조 건을 충족시키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 1. 법 제34조제1항제3호에 따른 노인전문병원 2. 국민건강보험법 제40조제1항의 규정에 의한 요양기관(약국을 제외한다) 3. 삭제< > 4. 의료급여법 제2조제2호의 규정에 의한 의료급여기관 제9조 (건강진단) 영 제20조제1항의 규

노인복지법 시행규칙

4) 이 이 6) 위 (가) 나는 소백산맥을 바라보다 문득 신라의 삼국 통 일을 못마땅해하던 당신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더 커지는 것이라는 당신의 말을 생각하면, 대동강 이북의 땅을 당나라에 내주기로 하고 이룩한 통 일은 더 작아진 것이라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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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과 학기 술부 고 시 제 호 초 중등교육법 제23조 제2항에 의거하여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을 다음과 같이 고시합니다. 2011년 8월 9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 1.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은 별책 1 과 같습니다. 2.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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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위 가 오는 경우에는 앞말 받침을 대표음으로 바꾼 [다가페]와 [흐귀 에]가 올바른 발음이 [안자서], [할튼], [업쓰므로], [절믐] 풀이 자음으로 끝나는 말인 앉- 과 핥-, 없-, 젊- 에 각각 모음으로 시작하는 형식형태소인 -아서, -은, -으므로, -음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체험합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집시다. 5. 우리 옷 한복의 특징 자료 3 참고 남자와 여자가 입는 한복의 종류 가 달랐다는 것을 알려 준다. 85쪽 문제 8, 9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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伐)이라고 하였는데, 라자(羅字)는 나자(那字)로 쓰기도 하고 야자(耶字)로 쓰기도 한다. 또 서벌(徐伐)이라고도 한다. 세속에서 경자(京字)를 새겨 서벌(徐伐)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또 사라(斯羅)라고 하기도 하고, 또 사로(斯盧)라고 하기도 한다. 재위 기간은 6

時 習 說 ) 5), 원호설( 元 昊 說 ) 6) 등이 있다. 7) 이 가운데 임제설에 동의하는바, 상세한 논의는 황패강의 논의로 미루나 그의 논의에 논거로서 빠져 있는 부분을 보강하여 임제설에 대한 변증( 辨 證 )을 덧붙이고자 한다. 우선, 다음의 인용문을 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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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12일 사랑의 동삭교육 제 호 (2월) 년 2월 12일 사랑의 동삭교육 제 호 (2월) 6 겨울이 되면 1-4 박지예 겨울이 되면 난 참 좋아. 겨울이 되면 귀여운 눈사람도 만들고 겨울이 되면 신나는 눈싸움도 하고 겨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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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은이가 4) ᄀ에 5) 위 어져야 하는 것이야. 5 동원 : 항상 성실한 삶의 자세를 지녀야 해. 에는 민중의 소망과 언어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입니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가능성은 이처럼 과거를 뛰어넘고, 사회의 벽을 뛰어넘고, 드디어 자기를 뛰어넘 는

지 생각하고,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이 작업을 3번 반복 하는 것만으로 하루가 다 간다. 그들이 제작진에게 투쟁하는 이유는 그들이 원하는 재료를 얻기 위해서다. 그 이상의 생각은 하고 싶어도 할 겨를이 없다. 이 땅은 헬조선이 아니다. 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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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외구사( 三 畏 九 思 ) 1981년 12월 28일 마산 상덕법단 마산백양진도학생회 회장 김무성 외 29명이 서울 중앙총본부를 방문하였을 때 내려주신 곤수곡인 스승님의 법어 내용입니다. 과거 성인께서 말씀하시길 道 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어울려야만 道 를 배울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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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민락초신문4호


제1절 조선시대 이전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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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고1 전국연합학력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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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답 과 해 설 1 (1) 존중하고 배려하는 언어생활 주요 지문 한 번 더 본문 10~12쪽 [예시 답]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한 사 람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으며,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해쳐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0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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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금융분야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 1. 개인정보보호 관계 법령 개인정보 보호법 시행령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전자금융거래법 시행령 은행법 시행령 보험업법 시행령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자본시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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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시장 동향 1) 주택 매매 동향 2) 주택 전세 동향 3) 규모별 아파트 가격지수 동향 4) 권역별 아파트 매매 전세시장 동향 토지시장 동향 1) 지가변동률 2) 토지거래 동향 강남권 재건축아파트 시장동향 15 준공업지역 부동산시장 동향

580 인물 강순( 康 純 1390(공양왕 2) 1468(예종 즉위년 ) 조선 초기의 명장.본관은 신천( 信 川 ).자는 태초( 太 初 ).시호는 장민( 莊 愍 ).보령현 지내리( 保 寧 縣 池 內 里,지금의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서 출생하였다.아버지는 통훈대부 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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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 감사의 글 삼성화재 보험상품에 가입해 주신 고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삼성화재는 국내 최고를 넘어 글로벌 초일류 보험회사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에 앞서 가장 먼저 갖춰야 할 덕목은 고객만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저희 삼성화재는 고객님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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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실습 소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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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큐-표지

Transcription: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단 하나의 가능성, 소설 - 김연수의 근작들에 관한 몇 가지 독법 0. 이것은 소설이다, 소설이 아니다 소설은 이야기이다 라는 명제는 항상 옳다. 이야기를 아무리 쪼개고 흩뜨려 놓아도 언제나 거기에는 사람이 있고 풍경이 있다. 이야기가 진실인지의 여부도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설 읽기란 일종의 계약과 같아서 독자의 신뢰만 전제된다면 이야기의 사실성은 따지기 좋아 하는 사람에게나 중요할 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신뢰라는 말에 주목해보자. 독자는 무엇을 믿 는 것인가. 작가를? 이야기를? 혹시 그것은 소설이 아닐까. 이야기는 소설이다 라는 명제는 틀 렸기 때문에. 저편에서는 "이것은 소설이다"라고 자꾸만 외친다. 이것은 꾸며낸 이야기라고, 작가인 "나"가 여기에 있고, "보세요. 지금 제가 쓰고 있다니까요"라고 무수히 말한다. 다른 한 편에서는 "이것 은 소설이 아니다"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지금 이것은 우리 모두가 눈앞에서 마주하는 현실이라 고, 어서 주위를 둘러보라고 강변한다. 전자에 모더니즘의, 후자에 리얼리즘의 딱지를 붙이는 것 은 이제 촌스러울 수 있지만 아직 어색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 두 방식의 경계에, 혹은 그 언저리에 김연수의 근작들이 위치하고 있다. 1) 한쪽에서는 여전히 박민규가 쓰고 싶은 것 을 계속해서 써나가고 있고, 이편에서는 김연수가 써야 할 것 을 묵묵히 쓰고 있다. 놀랍게도 이것은 소설인데요, 또 소설은 아니에요 혹은 이것은 소설이 아닌데요, 또 소설입니다 의 같 은 방식으로. 작가란 모름지기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일 것이다. 동시에 그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고, 공유할 것인지를 누구보다 고민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그것을 읽는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수도 있을까. 물론 그럴 것이라고, 그래왔다고 전통적인 문학관은 응답할 것이다. 우리 의 성장 아래에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깔려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소설이라면 어떨 까. 이야기가 곧바로 소설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일군의 쿨한 작가들은 이야기가 가진 근본적 속성에 회의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이야기가 소설이라는 옷을 입는 순간 그것은 예술 장르 의 일종으로 속박당하고, 다만 작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얼마나 잘 가지고 놀 수 있는지 를 보여줄 따름이라는 듯이 작품을 써나간다. 다시 말해 이들은 소설 그 자체에 관심이 있는 작 가이다. 그런가 하면 소설가는 소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생에 관심이 있는 것이라 말하는 작가도 있다. 이들은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혹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를 올바로 바라보 기 위해 소설에 복무한다. 이들에게 이야기는 곧바로 소설이 되어야 하는 것이며 소설이라는 외 피는 드러내지 않을수록 좋은 것이다. 물론 이 두 부류가 옳고 그름의 문제로 판별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님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터. 2) 그러나 전자를 장르로서의 서사 즉 소설이라 명 1) 이 글에서 다루게 될 김연수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세계의문학», 2012년 봄호),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문학과사회», 2012년 여름호), 우는 시늉을 하 네 («문예중앙», 2013년 봄호), 동욱 («실천문학», 2013년 봄호), 벚꽃 새해 («창작과비평», 2013년 여름호), 파주로 («21세기문학», 2013년 여름호), 이상 단편. 원더보이 (문학동네, 2012),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자음과모음, 2012), 이상 장편. 본문 인용 시에는 작품명과 면 수만 간략히 기록하도록 한다. 2) 이와 유사한 관점에서 오르한 파묵은 프리드리히 실러의 논의를 빌려와 소설을 쓰는 두 가지 방식에 1

명하고, 후자를 근본으로서의 서사 즉 이야기라고 부를 수 있다면 김연수의 근작들이 소설과 소 설 아닌 것(이야기) 사이를 줄타기 하고 있음은 언급해야 한다. 이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전 위적인 실험성이 아니다. 그는 무의식에 의존하거나 비의식적 글쓰기를 통해 소설 아닌 소설을 만들어버리는 흔한 방법이 아니라 전통적인 소설관에 깊숙이 뿌리박은 채 소설-되기 를 실현 해 자신만의 소설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되어온 김연수식 글쓰기의 특징을 떠올려보자. 제라르 쥬네트가 프루스트 를 통해 말한 바 있듯, X가 Z에 관해서 Y에게 말한 서사 는 단순한 기법 상의 문제가 아니라 서사 그 자체로 우리들 경험의 조직결 이다. 3) 그리고 이렇게 분열되고 겹쳐진 서사야말로 문 학적 이다. 그러한 글쓰기는 세계의 끝 여자친구 (문학동네, 2010)에 이르는 동안, 또 그 이후 몇 몇 단편들에서 김연수가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는 이른바 이야기의 윤리학 4) 의 연장선상에서 파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그러나 두 편의 장편소설을 (다시) 썼던 2012년을 기점으로 김 연수의 작품들은 미묘한 변화를 보인다. 이를테면 이야기를 생략하거나 과잉하는 방식으로 그 자리에 독자를 불러들여 김연수-되기 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이제 그의 소설들은 소 설이면서 소설이 아닌, 그저 김연수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침잠해 들어가고 있다. 1. 이야기의 풍경 혹은 풍경의 이야기-그때, 그곳에서 김연수의 소설은 풍경의 소설이다. 그에게서는 항상 인물이나 사건보다 배경이 앞선다. 5) 세계 가 먼저 있고, 그 이후 모든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세계는 항상 완벽하다. 윤리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것은 다만 자족적이라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원더보이 에서 세계의 모든 것을 기억해 버리는 이수형을 떠올려보자. 기억 속 저장공간 중에서 가장 정교했던 것은 1974년 기억의 서울 이었어. 그는 광화문 네거 리에서 종로5가까지의 거리를 통째로 머릿속에 넣은 거야. 그건 일 년에 걸쳐서 아주 공들여서 만든 가상의 거리였어. 건물의 2층과 3층까지 포함해서 상점들과 집들과 나무들과 횡단보도와 노점상들까지. 거기에다가 늘 볼 수 있는 상인들까지 모두 머릿속에 넣은 것이니까. 1974년 그 모든 걸 외운 뒤부터는 아무리 긴 글이나 대화라도 그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할 수 있었 지. 1974년 기억의 서울 에 이미지로 만들어서 모두 때려넣은 뒤, 언제라도 1974년 기억의 서 울 을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원더보이, 173면) 관해 설명한다. 자신이 소설을 쓰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저절로 써나가는 소박한 (naive) 작가와 이와 반대로 텍스트의 인위성과 현실성을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써나가는 성찰적인 (sentimental) 작가가 있다는 것이다. 파묵도 힘주어 말하고 있듯, 소설 창작은 소박한 동시에 성찰적 인 일 이다. 오르한 파묵, 이난아 역, 소설과 소설가, 민음사, 2012, 20면. 3) 제라르 쥬네트, 권택영 역, 서사담론, 교보문고, 1992, 229면. 4) 신형철은 세계의 끝 여자친구 의 해설을 통해 김연수의 서사가 세계의 붕괴-삶의 이야기화-이야기의 연결 의 구성을 띠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5) 풍경에 관해서라면 가라타니 고진의 논의를 참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풍경을 역사와 타자의 배제를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 설명하면서 근대문학의 조건 중 하나로 내세운다. 여기에서 풍경은 내면적 인간 에 의해 발견 된다. 그러므로 근대적 인간에 의해 발견되는 풍경이란 하나의 인식틀 이며, 그 기원 은 은폐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풍경은 여전히 인물 뒤에 서 있다. 가라타니 고진, 박유하 역,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도서출판b, 17-48면 참조. 2

이수형은 숫자들을 색깔로, 단어의 초성을 다시 숫자로 변환해 이를 이야기로 만들어버린다. 하나의 단어, 하나의 색채가 만들어낸 어떤 이미지를 다시 이야기의 형태로 조합하는 것이 그의 능력이었다. 이를 통해 그는 하나의 풍경 속에 그가 기억해야 할 모든 것을 입력한다. 색깔과 어휘들이 숫자로 변환되는 과정을 넘어 여기에 이르면 인간이라는 개체마저도 세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펼쳐진 풍경의 일부로, 세계를 구성하는 이미지로 인물은 기능할 뿐이다. 따라서 이때의 풍경이란 인물과 사건을 보조하는 배경 으로서가 아니라 이 모두를 포괄하는 커다란 풍경 6) 이다. 1974년의 서울처럼 과거의 기억이란 언제나 완벽하다. 기억은 그것이 떠오르는 순 간 그 자체로 완벽함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 완벽함을 비집고 들어갈 인간은 결코 없다. 그저 그 풍경 속에 존재하고 있을 뿐, 어느 누구도 과거로 돌아가 그 기억을 부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어떤 인물의 이야기가 가능해지려면 그 이야기가 가능해질 수 있는 풍경이 준 비되어 있어야 한다.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이하 터널의 밤 )에서 어머니를 기억하는 두 남매의 이야기는 밤이어서, 달도 이미 져 버린, 아주 깊은 밤 ( 터널의 밤, 319면)이어서 가능 했다. 다시 안산의 그 터널까지 가는 동안, 큰누나는 이런 이야기를 내게 들려줬다. 장례를 치르고 난 뒤, 그간 갖가지 옷들을 입고 찍은 엄마의 사진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다가 큰누나는 그 사진 을 찍는 동안 두 사람이 인생을 한 번 더 산 셈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옷을 꺼내 입을 때 마다 엄마는 그 옷에 얽힌 이야기를 큰누나에게 들려줬고, 큰누나 역시 자신이 기억하는 그 시 절의 엄마에 대해서 얘기했단다. 한 집에서 같은 밥을 먹고 살았지만, 사는 동안에는 서로 바라 보는 바도, 생각하는 것도 달라서 가족이라도 결국에는 남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기억과 큰누나의 기억은 조금씩 달랐다고 한다. 아마도 엄마와 큰누나의 기억은 나의 기억과도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큰누나는 두 사람의 삶이 서로 겹친다는 것을 알게 됐단다. 그래서 엄마가 다시 한 번 인생을 살 수 있다면, 그건 우리도 또 한 번의 삶을 사는 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말하면, 우리가 또 한 번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엄마 역시 다시 한 번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렇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터널의 밤, 320면) 김연수 소설의 핵심 중 하나는 같은 사건에 대한 각자의 기억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그것 은 한 사람의 인생을 총체적으로 재구성하는 수준이기도 하고(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 엄마의 마 음을 돌리려고 아버지와 함께 내려왔던 20년 전 통영의 어느 날이기도 하며( 우는 시늉을 하네 ), 둘이서 같이 봤던 영화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벚꽃 새해 ). 그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겹쳐질 때 비로소 세계의 풍경은 완성되는데,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또 하나의 풍경이 필요하다. 다시 말 해 과거의 기억이나 사건이 하나의 원풍경 으로 존재한다면 이를 지금 여기로 소환할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현풍경 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풍경들은 다시 커다란 풍경 이 되 어 세계를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니 우리가 주목할 것은 주쌩뚜디피니, 즉 모든 게 끝났다는 걸 나는 안다.(Je sais tout est fini.) 로 시작되는 아다모(Adamo)의 <Sans Toi Mamie> 가 아니라 이를 듣게 했던 터널의 밤 인 것이다. 자정 너머 스멀스멀 기어나온 안개에 가려 흐릿해지던 반달 과 드문드문 불빛들이 반짝이 던 아파트 건물의 육중한 몸피, 줄줄이 휘어지는 가로등 불빛 들로 구성된 그 여름밤의 고속 도로 위를 큰누나와 나 는 달리고 있었다( 터널의 밤, 304면). 나 가 그 새벽의 도로를 왕복해가며 엄마의 노랫소리가 들린다던 터널을 네 번이나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큰누나에게 엄마의 여생 을 떠맡기다시피 했던 미안한 마음 때문이라든가, 정말로 그 터널 속에 엄마의 목소리가 있을 6) 오르한 파묵, 앞의 책, 15면. 3

것이라 믿어서가 아니었다. 자정을 넘긴 일요일 늦은 여름밤, 이상하게도 낮보다 환했던 밤의 고속도로를 달렸기 때문이다. 그뿐이다. 이 풍경 속에서 인물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그 것이 겹치는 지점에서 일종의 깨달음을 얻는다. 그것은 대체로 사랑의 외피를 걸치고 있지만 각 성이기도 하고, 성장이기도 하며, 연대이기도 하다. 우연히 찾아간 시계방의 노인이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헤어진 두 연인은 그들이 함께 보냈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벚꽃 새해 ). 또한 그 깨달음은 재개발지역에서 연쇄 방화 를 저지른 아이를 어렵사리 이해하면서 마음속에 관계의 불 이 타오르기 시작하는 담임선생의 연대의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동욱 ). 이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저 각자의 이야기가 서로 만날 수 있는 풍경이었다. 7) 한 인물을 둘러싼 풍경을 집요하게 그려내고 있는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하 파도가 )을 보자. 대개의 김연수 소설이 그렇듯 여기에서도 가족 혹은 연인의 부재와 그것의 복원이 중요한 모티프가 되고 있다. 범박하게 요약하자면 이 소설은 미국으로 입양된 딸이 한국의 친모를 찾아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딸, 즉 카밀라 혹은 정희재는 자신의 엄마 정지은에 관해 놀라운 사실들을 알아나간다. 정지은의 아버지가 진남조선소 노동자 농성 과정에서 크레인 을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것, 이후 정지은이 정신적 충격 속에서 방황하면서 아이를 가진 사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오해와 음해들. 결국 딸인 카밀라를 강제입양 보내고 정지은이 자살을 선택 하기까지, 뒤늦게 엄마의 생애를 복원하려는 카밀라에 의해 이 모든 것들은 재구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김연수가 작가의 말에서도 언급했듯 쓰지 않은 이야기 ( 파도가, 327면)가 있다는 것이다.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밝혀지지만 정지은이 사랑했던 것은 독일어 선생 최성식도 아니었고 친오빠 정재성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진남공업주식회사의 사장 이상수의 아들, 이희재였다. 둘의 관계는 적어도 처음 만났던 1985년 6월부터 정지은이 자살한 1988년 6월까지, 3년 간 이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놀랍 게도 소설 속에서 이 둘의 이야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소설 말미에 에필로그 식으로 잠깐 언급될 뿐이다. 다시 말해 김연수는 정지은과 이희재의 사랑이라는 이 소설의 핵심을 최대한 배 제한 채 그 풍경 만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보여주기도 말해주기의 방식도 물론 아니거 니와 단순한 암시의 수준도 아니다. 왜냐하면 명백하게 이 소설은 정지은과 이희재의 사랑이 정 희재라는 인물로 현현되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희재가 거꾸로 걸어놓았다는 지도는 정지 은의 北 海 라는 시로 씌어졌고, 그녀가 아이의 이름을 희재 로 짓겠다는 고백 역시 자신이 쓴 도서반 문집 속 수필에 드러나 있다. 인물이나 사건들을 풍경 속에 가려놓고 그 풍경이 아니면 절대 가능하지 못할 소설을 써내면 서, 김연수는 이를 플롯의 차원으로 확장하고 있다. 예컨대 꽃을 그리는 화가가 꽃은 흐릿하게 그려놓고 주위의 흙은 알갱이 하나까지 세세하게 그리고 있는 형국이랄까. 풍경이 단순히 인물 과 사건의 배경이라는 개념이 아님은 여기서 명확해진다. 이를테면 여러 개의 사건들이나 여러 명의 인물들이 풍경이 될 수 있다는 것, 정지은이 곧 카밀라이자 희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세 명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일종의 풍경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1980년대의 진 남이라는 정지은과 이희재의 세계를 만들어놓고 정희재를 그저 그 속에서 걸어가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는 것. 그리하여 그 거대한 풍경이 독자로 하여금 쓰지 않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게 하고, 이때 비로소 하나의 소설은 완성된다. 7) 이러한 풍경의 공간들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음은 특기할 만하다. 안산 의 터널, 종로 의 명품시 계 정시당, 뉴타운 개발 예정구역 등 인물들의 이야기가 만나는 곳은 존재근거로서의 공간이나 상징 적 장소의 차원을 넘어 문학적 토포스로 기능한다. 4

2. 두 개의 이야기, 그리고 소설가의 일 21세기 한국 단편소설의 정수로 손꼽히는 김연수의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창비, 2005, 이하 설산 )에서 죽은 여자친구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그 녀가 마지막으로 대출한 도서 왕오천축국전 이다(물론 이것 만 은 아니다). 인물의 부재를 텍스 트를 통해 확인하고 다시 그 텍스트를 둘러싼 이야기로 인물을 이해하는 행위는 김연수 소설의 반복되는 플롯이다. 그런데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를 '글'로써 수행한다는 것, 이럴 때 우리 는 어쩔 수 없이 소설 혹은 소설가를 요청하게 된다. 그러므로 설산 에서 또 하나 기억해둘 것 은 소설의 주인공인 남자가 소설을 쓴다 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김연수의 근작들은 어떠한가. 애초에 작가가 될 생각을 한 것은 아니지만 주변 인물의 권유에 의해 작가가 되기도 하고( 원더보이, 파도가 ), 종합병원 소아과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사람이 평생의 꿈이던 소설가가 되겠다며 병원에 사직서를 내기도 하며( 터널의 밤 ), 매일 밤 캄캄한 방 안에 누워 낮 동안 읽은 재미난 이야기들을 고단한 아내에게 들려주는 노인 이 등장하고( 벚꽃 새해 ), 소설가들 의, 소설에 관한 이야기가 그려지기도 한다(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파주로 ). 이처럼 끊임 없이 쓰는 자를 등장시키는 김연수의 소설들은 변신 8) 하는 자들에게 숨겨진 이야기가 무엇인 지를 찾는 과정이다. 다르게 말하면 변신의 가능성이 이야기에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우는 시늉을 하네 에서 부재한 사람은 아버지이다. 어머니가 소설가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아버지를 이해해보고자 마음먹은 자는 이들의 아들 영범이다. 영범이 십대였던 때 이들은 이혼했다. 어머니는 헤어질 결심을 굳히고 고향인 통영으로 내려와버렸고, 어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그 먼 길을 내려왔던 열네 살의 기억과 가출해 혼자 통 영에 내려와 어머니가 이미 재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열여섯의 기억을, 영범은 가지고 있다. 할 말은 많지만 그냥 그걸로 끝 ( 우는 시늉을 하네, 132면)이었던 그때 통영의 풍경 속에 그가 다 시 도착한 장면은 어머니를 기다리면서 소설을 읽던 아버지의 모습이다. 윤경의 말이 옳았다. 가족이라고 해도 자신의 진심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그 건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토록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평범한 진심이라면 자기 자신에 게도 강요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였다. 아버지의 삶이 실패하게 된 건 그 때문이었다. 그렇게 옛일을 떠올리다가, 아버지를 생각하고, 또 딸아이를 생각하다가, 영범은 문득 아버지가 읽었다던 그 책을 서가에서 발견했다. 그러니까 늦여름 이라는 게, 독일어로 Der Nachsommer 라는 게 한문으로는 晩 夏 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던 것이다.( 우는 시늉을 하네, 137면) 지금 자신의 이혼을 결심한 영범이 열네 살이었던 20년 전 두 사람은 이혼했다. 그때 아버 지는 상인이었다 로 시작되는 이 소설을 읽었음을 고백하는 아버지를 영범은 믿지 못한다. 2011년에 출간된 늦여름 을 아버지가 20년 전에 읽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아 버지가 뭐든, 그 순간 최선을 다하는 거지 라고 얘기할 때도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일이 있 어요. 예를 들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아직 나오지도 않은 책을 읽을 수는 없는 것처럼 이라고 생각한다( 우는 시늉을 하네, 128면). 그런데 그 아버지가 읽었다던 책을 어머니인 윤경의 서가에서 발견할 때, 소설 속 남녀가 사랑을 확인하는 유치한 사랑 묘사에 그어진 밑줄을 확인했을 때, 8) 그는 자신의 소설적 최소 단위가 변신 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정지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안 가고 그러니까 그 사람이 왜 바뀌었는지가 궁금한 거예요. 그때부터 이야기가 다 숨어 있다고 보 거든요. 김연수, 진은영, 김홍중, <좌담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 «문학동네», 2012년 겨울호, 108면. 5

영범은 아버지의 평범한 진심 과 그 순간의 최선 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아버지가 그동안 보여 왔던 행동들, 즉 윤경을 찾아 통영으로 내려갔던 일이 라든가 영범의 이혼을 말리기 위해 처음으로 혼자 영범의 집으로 찾아온 일 등은 진심으로 증 명 받지 못한다는 말인가. 그저 같은 책을 읽었을 뿐인데, 마치 정말 모든 지혜가 책 속에 있는 것처럼 텍스트의 의미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아닌가. 특히 소설이라는 것에 대한 도저한 믿 음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이런 질문들을 김연수에게 던질 수 있을 듯하다. 핵심은 여기에 있 다. 하나의 인간을 이해하려면 내가 모르는 다른 이야기 가 필요하다는 것. 아버지가 보여준 행동들을 영범은 모두 알고 있다. 윤경에게 아버지를 이해시키려는 영범의 발언에서 심지어 그 것이 진심이었다는 것도 충분히 알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그러나 어머니를 찾아 홀로 외가로 온 열여섯의 소년이 1년 전에 어머니가 재혼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속에서 자꾸만 뭔가가 울컥 울컥 치밀어서 이러다간 안 되겠다, 울자. 라고 마음을 먹어도 도무지 눈물은 나오지 않 는 상황이 있다는 것이다( 우는 시늉을 하네, 132면). 우는 시늉을 해보 아도 나오지 않던 그 눈물은 갑자기 어떤 순간 에 쏟아지고 만다( 우는 시늉을 하네, 133면). 그러니까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시늉 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노력이 요구되는 일이면서도 벼락처럼 다가 오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 그 이해의 이면에는 나와 당신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 그런데 그 이야기가 반드시 소설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 의 이야기가 담긴 어떤 사물이어도, 또는 이들을 이어줄 어떤 사람이라도 무방하지 않은가 반문 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그 편이 더 설득력을 가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소설의 등 장 은 서사적 논리나 개연성의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믿음의 차원이다. 전치과 全 齒 科 에서 24번 어금니를 뽑으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고통 苦 痛 이 단수 單 數 라는 것 이었다. 여러 개의 고통을 동시에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 (중략) 한 번 감각이 비틀리기 시작하자, 기괴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예컨대 나는 낮에도 죽은 사람들을 보고 다녔다. 말하자면 실수로 두 번 찍은 필름의 영상처럼 두 개의 세계가 겹쳐 있었다. 그다음 에는 세 개, 네 개의 세계가 계속 겹쳤다. 그러면서 현실 現 實 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단층 單 層 적인 시공간에서 주관적으로 변화하는 다층 多 層 적인 시공간으로 바뀌었다. 기이한 점은 그렇게 죽은 자들과 얘기하면서 거리를 걸어 다니는 동안, 나의 고통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는 점이었 다. (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92-3면) 소설가 정대원 씨를 우연히 병원에서 만나 그의 작품을 찾아보게 되는 주인공은 드디어 소설 가이다. 24번 어금니로 남은 사랑 이라는 제목으로 1965년 9월에 발표된 정대원의 단편 속 남 자 주인공이 말하는 고통에 주목해보자. 고통이란 언제나 단수라는 것. 이유인즉슨 실연의 고통 을 잊기 위해 치과를 찾아가 생니를 뽑았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아가 현실의 고 통을 사라지게 한 것이 세계의 겹침 이었다는 언급은 핵심적이다. 단층의 시공간은 딱 그만큼 의 세계를 보여준다. 설령 그것이 진심 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은 그것이 한 번 이기 때문이다. 9) 세계에 대한 다른 이야기가 겹쳐 들어와 그것이 다층의 시공간으로 바뀔 때, 풍경은 변화한다. 이것이 다른 인간, 다른 삶에 대한 이해의 단초로 기능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다시 지적하거니와 이 과정을 매개하는 존재가 39살의 김 씨 성을 가진 9) 저 유명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에서 주인공 토마스는 독일의 속담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하 지 않았던가.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 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 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밀란 쿤데라, 이재룡 역,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2003, 15면. 6

소설가라는 사실이 심상하지 않다. 10) 파주로 는 이러한 관점에서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소설가로, 외 국이 배경인 역사소설 과 소통의 불가능성을 주장하는 연애소설 을 썼고, 달리기도 하는 사 람 이다( 파주로, 98면). 나아가 십 년 전쯤 달의 다른 얼굴 이라는 소설을 지금은 폐간된 계간 «소설과 사상»에 실었던 인물이다. 11) 이쯤 되면 여기 주인공 건우 는 작가 김연수라고 보아 도 무방하다. 이럴 때 소설가에 관해 언급하는 여러 진술들은 흥미롭게 읽힌다. 그간 어머니는 문성만 신부님의 신앙시집이 출간될 때면, 출판사에 몇십 권씩 주문해서는 주 위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특히 내게는 한 권이 아니라 다섯 권씩 보냈는데, 이유를 물었더 니 나만 읽지 말고 주변의 소설가들에게도 나눠줘 좋은 길로 인도하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머 니는 소설가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파주로, 96면) 역시 소설가라 기억력이 남다르구나. (98면) (고등학교 때의 주인공이-인용자 주) 조르바 이야기를 하더라고. 자기는 조르바 같은 삶을 꿈꾼다고. 어떤 도그마에도 갇히고 싶지 않다면서. 그래서 내가 이 아이는 우리와 다른 길을 가 겠구나, 라고 생각했지. 그게 소설가의 길 아니겠니? 도대체 또 이 분은 소설가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99면) 역시 소설가라 생각하는 게 남다르구나. (104면) 역시 소설가라 사회 현실에 예민해. (106면) 돌아가신 신부님의 장례식장에 내려온 소설가는 성당 고등부 시절에 알고 지내던 두 살 위의 형 조용식을 만나게 된다. 그가 전해준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1982년의 어느 밤 자신의 아버지 가 신부님, 조용식, 그리고 광주로부터 도피한 수배자 오인수와 함께 밤하늘에서 세 개의 빛 을 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윽고 이를 통해 아버지에게도 그 세 개의 빛을 생각하는 시 절이 한 번쯤은 있었으리라는 것을 ( 파주로, 115면) 깨닫게 되는 과정은 전형적인 김연수식 플롯 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김연수는 한 발 더 내딛고 있다. 소설가로서의 자의식과 현 실에의 인식이라는 두 문제점에 대한 김연수의 태도를 보자. 소설가는 어떤 사람인가. 다른 사 람들을 좋은 길로 인도 하는, 사회 현실에 예민 한 사람이다. 또 소설가는 어떤 도그마에도 갇히고 싶지 않다면서 다른 길을 걸어가는 남다른 사고의 소유자이다. 일반적으로 그러하 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김연수는, 이미 짐작했겠지만 사뭇 다르다. 뭐, 또 십자가라도 본 건가요? 그래놓고 왜 사제의 길은 포기했나요? 에이, 아니야. 십자가 같은 거.(중략) 누굴 사랑한 건 아니고요? 아니야, 그런 건. 에이, 소설가들은 그런 거 좋아하는데. 신앙시집이나 조르바 같은 거 말고요. ( 파주로, 107면) 소설가는 진리를 설파하거나 현실을 벗어나 영혼의 자유를 꿈꾸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 10) 김윤식은 이 소설에서 2009년, 세브란스 병원, <한겨레> 신문, 1000번 버스 등 이른바 실명 의 등장이 특징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나아가 자기를 숨기는 국적 불명 의 소설이 제법 글답다 라고 인정받는 세태 속에서 김연수가 민첩 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한다(김윤식, 내가 읽은 우리 소설, 도서출판 강, 2013, 116면.). 이는 짧은 몇 개의 문장으로 언급된 것이지만 김연수의 근작들을 이해하는 데 퍽 유효한 지점이라 생각된다. 11) 이 소설은 실제로 «소설과 사상» 1998년 겨울호에 발표되었다. 7

들은 속세에 뿌리박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눈여겨보는 존재다. 이러한 자각이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는 건우가 조용식과 그의 딸 애라를 차에 태운 채 파주로 향하는 마지막 장면에 서 암시되고 있다. 그가 열세 살 애라를 옆자리에 태우고 해줄 수 있는 이야기라고는 애라와 나 이가 같은 안네 의 이야기밖에 없었는데, 내용인즉슨 안네의 일기 에서 은신처 바깥에서는 게슈타포가 사람들을 체포해서 가스실로 보내버리는데, 안네의 관심사는 사랑, 오직 사랑뿐이 었 ( 파주로, 114면)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는 혼자 속으로 생각할 뿐,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 다. 우는 시늉을 하네 와 달리 섣불리 소설 을 인물에게 주입시키지 않는 것이다. 다만 그는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노란 달이 떠 있는 것을 보고 잠든 애라를 깨워 달을 가리킨다. 뒷자리 에 잠들어 있는 형이 저 달을 볼 때마다 1982년의 어떤 빛을 떠올 리는 것처럼, 애라 역시 2013년 3월 27일 새벽 3시 23분 의 달을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파주로, 115면) 바로 이 지점에서 김연수는 기존의 자기 서사 문법을 넘어선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 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겠다는, 안네의 입을 빌려 사랑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김연수의 입으 로 새로운 풍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소설가는 결국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존재이며, 마지막에 남는 것은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의 이야기임을, 그것이 바로 소설가의 일 12) 임을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김연수가 발견한 새로운 고백체의 형식이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물 론 그것은 이야기로서만 가능하다. 고등학교 때 신부님한테 자주 들은 이야기였는데, 그간 완전히 잊고 지내다가 그를 통해서 들 으니 그 시절의 일들이 오롯이 되살아났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다르지 않았던지 저마다 그 시 절의 일화들을 두서없이 얘기했다. 그렇게 각자가 기억하는 신부님의 모습에 대해서 말하는 걸 듣고 있노라니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서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저절로 생긴다는 것 을 알 수 있었다. 이야기는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함께 경험한다는 뜻이 다.( 파주로, 102-3면) 3. 이야기라는 신앙, 소설이라는 신학-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에게 마치 펼쳐진 책처럼 될 것이다 13) 그런데 여전히 왜 그것이 소설이어야 하는지는 불명확하다. 대다수의 작품에서 대부분의 인물 들이 소설을 읽거나 쓰고 있고, 이를 통해 부재하는 한 인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은 김연수 작품의 일관된 흐름이다. 그에게 소설은 마치 모든 삶과 인간에 관한 진리가 담겨 있는 종교처럼 보인다. 신앙을 가지지 않는 사람에게 종교가 무익한 것처럼, 소설의 세계를 쉽사리 믿지 않는 독자에게 김연수식의 구조는 결코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집요하게 다시 묻 자. 왜 소설이어야 하는지. 원더보이 는 공감과 이해라는 것이 초능력 을 통해서라야 가능함을 보여준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고, 또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 ( 원더보이, 192 면)을 가지고 있는 소년 정훈이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결국 원더보이 를 써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도 있겠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과 생각을 공유하는 일은 생각보 12) 김연수는 2012년 2월 29일부터 2013년 1월 29일까지 약 1년 간 문학동네 블로그에 소설가의 일 이 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바 있다. 13) 사사키 아타루, 송태욱 역, 잘라라, 그 기도하는 손을-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자음과모 음, 2012, 118면. 8

다 훨씬 어려운 일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세계의 온갖 폭력에 노출된 채 우리는 그러한 자극에 점점 더 둔감해져 간다. 그 둔감함은 거의 무기력에 다다라서 이제 엄청난 사회의 변화들이 일 어난다 해도 그것이 내 개인의 삶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것 같은 지경에 이른 것 같다. 이럴 때 타인의 고통이란 너무도 사소한 것이 아니겠는가. 결코 사그라지지 않는 나의 고통마저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말이다. 그러니 고립과 고독만이 남은 이 세계에서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초능력 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네게는 고통받는 이들의 삶과 완벽하게 공감하는 능력이 있으니 이미 절반은 작가나 마찬가 지지.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독자들에게 자신이 보고 듣고 맛보고 경험한 것들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재능이야. 넌 그걸 가지고 있어. ( 원더보이, 224면) 이럴 때 소설 쓰기란 초능력의 실천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야기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는 믿음, 이야기를 통해 혼자가 아니라 ( 원더보이, 320면)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이러 한 신앙이야말로 김연수 소설을 지탱하는 힘이다. 이야기가, 아니 소설이 우리를 구원해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다만 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소박하지만 절실한 믿음. 이때 소설 읽기란 날개 달린 희망 이자 심연을 건너가는 것 이며, 우리가 두 손을 맞잡거나 포옹 하는 것 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파도가, 327면). 이 지점에서 김연수가 놓치지 않은 것은 소설 쓰기만큼이나 소설 읽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 독자는 작가가 그려낸 세계를 제한된 언어로 머릿속에서 상상해내야 한다. 이것은 고도의 지적 활동이며 사실 신비로운 과정이기까지 하다. 하얀 종이와 그 위에 씌어진 검은 글 자만을 보면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해가는 독서의 과정은 인간의 상상력과 재현 능력의 위대함 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14) 그러니 당신이 소설을 읽어본 경험이 있다면, 그것이 짧든 길든 끝까 지 읽어냈으며 그 소설의 인물과 시공간을 경험했다면, 이미 당신은 그 신비로운 초능력 을 가 진 사람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소설에 관한 믿음을 독자에게도 요구하는 것이며, 쓰기와 읽기 의 경계를 지우고 그 심연을 건너가려면 우리도 믿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믿음이면서 동시에 작가 김연수에 대한 믿음과도 관련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예컨 대 아래와 같은 언급은 불가능하다. (중략) 천재적으로 책을 읽으려면 작가가 쓰지 않은 글을 읽어야만 해. 썼다가 지웠다거나, 쓰려고 했지만 역부족으로 쓰지 못했다거나, 처음부터 아예 쓰지 않으려고 제외시킨 것들 말이 지. 그것까지 모두 읽고 나면 비로소 독서가 다 끝나는 거야. 책을 다 읽는 일은 하루면 끝나는 것인데, 평생 읽어도 다 읽지 못하는 책이 이 세상에 수두룩한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지. ( 원더 보이, 234면) 원더보이 와 파도가 가 어떤 공통점을 가진다면, 나아가 이 두 작품을 함께 씌어진 소설이 라고 본다면 그것은 부모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이나 소설 쓰기를 모티프로 한다는 메타 적 속성 같은 것이 아니라 쓰지 않은 이야기 가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소설 이 감추고 있는 지점은 조금씩 다른데, 원더보이 가 결국 정훈과 엄마 이새인의 만남을 꿈의 장면으로 처리하고 끝낸 반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의 마지막 장면은 정희재가 이희재를 만나는 순간과 이희재가 정지은을 만났던 순간이 공존하는, 1984년과 2012년이 만나는 장면으 14) 또한 이러한 능력이 역사적 전개에 따라 발전 되어 왔음은 더욱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에 관해서는 로제 샤르티에, 굴리엘모 카발로 편, 이종삼 역, 읽는다는 것의 역사,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6. 9

로 끝이 난다. 다시 말하면 전자는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채 현재를 감추는 방식이며 후자는 현 재를 보여주며 과거를 쓰지 않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느 쪽이든 독자가 핵심 서사를 채 워 넣어야 한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그것까지 모두 읽고 나 야 비로소 독서가 다 끝나 기 때 문이다. 백지의 공포 앞에서 떨고 있는 사람이 작가라면 무수한 문자들 앞에서 절망하는 사람은 독자 이다. 그러므로 읽는다는 것은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 나아가 벌거벗은 형태의 읽기, 혹은 최 대의 독서란 읽을 수 없는 책을 읽는 것이며 이는 곧 타인의 꿈을 꾸는 것인데, 이것이 실현된 다면 우리는 누구라도 미쳐버릴 수밖에 없다고, 사사키 아타루는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무의식에 문득 닿는 그 청명한 징조만을 인연으로 삼아 선택한 책을 반복해서 읽을 수 밖에 없다. 15) 인류 최대의 책이 성경이 된 것은 예수의 위대함이 아니다. 우리 모두 그것을 반 복해서 끊임없이 읽고 있기 때문에, 이해라는 심연에 조금이나마 가닿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 우리는 김연수 라는 서사의 반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 가능해진다. 요컨 대 독자의 지위는 서로 초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작가의 그것과 같다고 볼 수 있고, 소설은 곧 그것 자체로 삶이거나 인간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천재의 책 읽기 에 관한 위 인용문에서 책 을 인간 으로 바꿔서 읽어 보라. 이때의 책은 물론 소설을 의미하거니와 결 국 소설을 읽는 행위는 그 자체로 인간을 이해하는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삶 을 읽어나간다는 것은 그래서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세계와 맞서는 투쟁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우리 가 있다면, 나의 이야기와 당신의 이야기가 만나 우리 의 이야기가 된다면, 뭐라도 할 것이라고.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거 라고. ( 원더보이, 320면) 4. 쓰지 않은 이야기, 끝나지 않는 독서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에서 소설가 정대원이 죽기 직전 주인공에게 보낸 육필원 고에는 그가 24번 어금니로 남은 사랑 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치과 에서 이를 뽑은 직후, 그는 실연의 고통을 참지 못해 가지고 있는 칼로 목을 찔렀고, 마침 옆에 있던 간호사가 그를 죽음에 문턱에서 살렸으며, 이후 석 달 간 그녀의 집에 머무르면서 조금씩 그 고통에서 빠져나왔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소설 쓰기를 종용했고 그녀의 말 을 거역할 수 없었 던 그는 그녀가 결국 원고지 뭉치와 볼펜 한 다스 를 사오자 종일토록 머 릿속의 문장들을 받아적기 시작 한다( 푸른색, 95면). 그런데 쓰다 보니 작가의 고질이 발휘돼 나는 한 다스의 볼펜에 포함된 빨간색 볼펜을 집어 들고는 정말 여기까지가 다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모든 게 불분명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중략) 그제야 나는 볼펜을 쥐는 즉시 내 머릿속 에서 줄줄 흘러나온 검은색 문장들이 아니라 쓰지 못하고 있는 빨간색 문장들을 써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나는 온몸에 남은 오감의 경험을 문장으로 표현해야만 할 텐데, 그건 쉽게 문장으로 표현되지 않았다.( 푸른색, 96면) 아무리 잘 쓴 문장도 실제의 경험에 비하자면, 빈약하기 짝이 없 다는 것, 그것은 자기 경 15) 사사키 아타루, 앞의 책, 39-41면. 10

험의 주인이 되지 못하 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정대원의 깨달 음이었다. 그러니 그의 소설은 다시 빨간색 볼펜으로 고쳐졌어야 했다. 이를 통해 그는 구원받 는 다( 푸른색, 96면). 그러니까 소설가는 구원받기 위해 끊임없이 몰락하고 타락해야 하는 처지 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험의 세계는 너무도 완고해서 머릿속에서 나온 검정색 글씨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지점이 있고 그것을, 독자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작가들은 빨 간색 볼펜을 들고 내가 쓰지 못한 것을 쓰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것일 테다( 푸른색, 96면). 그러므로 쓰지 않은 이야기 를 읽어달라는 것은 작가의 직무유기가 아닌가. 또는 결국 쓰지 못 했거나 쓸 수 없었음을 고백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그녀의 얘기인즉슨, 내가 24번 어금니를 왼손에 들고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그녀는 아무리 손님이 원한다고 하더라도 멀쩡한 이를 뽑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니냐며 의사에게 따졌다는 것이 다. 그러자 의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마취도 하지 않고 이를 뽑았는데도 아프다고 소리치기는커 녕 이마를 찌푸리지도 않았다면, 그게 무엇을 뜻하는 것 같냐? 고 되물었다. 너무 고통이 크기 때문인가요? 그녀가 순진하게 묻자, 의사는 그건 멀쩡한 이가 아니라는 증거지. 라고 말했다. 뽑 고 보니 그 이는 뿌리부터 썩어 있었어. 그러니까 하나도 안 아팠던 거야.( 푸른색, 97면) 내가 믿고 있던 진실이 사실은 거대한 환상 이었을지 모른다는 정신적 충격에 정대원은 파 란색 볼펜 을 집어 들고 자신의 소설을 고치기 위해 책상에 앉지만, 단 한 줄의 문장도 쓰지 못 했다. 이후 자신이 암 선고를 받기까지 무려 33년 동안이나. 파란색 볼펜 으로 쓸 수 있는 문 장은 그저 아무도 없는 동물원을 가득 메운 침묵 같은 문장들 이었다고 정대원은 고백한다( 푸 른색, 99면). 그러니 39살의 소설가가 2009년 5월 23일 토요일의 일을 어떻게 쓸 수 있겠는가. 그저 푸른색으로, 내가 아니라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들을 써나갈 수밖에. 밀란 쿤데라는 소설을 작가가 실험적 자아(인물)를 통해 실존의 중요한 주제를 끝까지 탐사 하는 위대한 산문 형식 이라 정의했다. 16) 이러한 문학사적 정의와 또 이를 위해 빽빽하게 채워 넣은 서사 안에는 그러나, 독자의 자리는 거의 마련되어 있지 않다. 커다란 풍경 속에서 결국 소설가도 한 명의 독자로서 자리하는 김연수의 소설들은 그래서, 성글지만 미덥다. 이러한 지점 에서 우리는 믿어야 할 충분한 이유를 발견했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며, 확신에서 비롯된 복 종은 이미 우리의 주체성을 통해 매개된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복종이 아니 라는 지젝의 언급 을 음미할 만하다. 17) 요컨대 소설은 믿음을 전제로 한 만남의 한 형식이기도 하면서, 어쩌면 이 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단 하나의 가능성일지도 모른다. 16) 밀란 쿤데라, 권오룡 역, 소설의 기술, 민음사, 2013, 191면. 17) 슬라보예 지젝, 이수련 역,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인간사랑, 2003, 75면. 11